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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조사보고서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32조제1항 규정에 따라 2008년 7월 9일부터 2009년 1월 5일까지의 진실 화해를위 한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을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되었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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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차례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김세태 등에 대한 보안대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사건 11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25 보안대의 가혹행위로 인한 임성국 사망사건 57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77 동명목재 사건 119 고 윤태현 소령 의문사 사건 155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169 김철 간첩조작 의혹 사건 233 어부 최봉직의 실종 의혹 사건 265 김희권 5 18관련 총기은닉 및 강도조작 의혹 사건 279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297 제24회 제25회 행정고시 면접탈락 사건 333 김상원 의문사 사건 367 김종옥 홍복동 부역조작 의혹 사건 393 지리산 공비토벌대에 의한 강정금 상해 사건 409 박동운 간첩조작 의혹 사건 421 경무대 앞 시위 사건(불능) 461 하주대의 의문사 사건(불능) 471 권두상 인권침해사건(불능) 당시 이적죄로 수감 중 의문사 사건(불능) 491 김영진 간첩조작 의혹 사건(불능) 501 김영옥 불법구금 및 고문치사 의혹 사건(불능) 513

6 부록 Ⅰ. 진실화해위원회 일반 현황 523 Ⅱ. 진실화해위원회 활동 현황 528 Ⅲ. 진실화해위원회 활동 일지 563 Ⅳ.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보고서 총 목차 570

7 1권 총론 제1절 조사보고서 개요 1. 위원회 활동 개요 2. 보고서 구성과 주요 내용 제2절 신청사건 처리 및 결정 현황 1. 신청사건 처리 현황 2. 진실규명 및 진실규명 불능 결정 현황 제3절 권고 및 처리 현황 1. 위원회 권고 현황 2. 권고사항 처리 현황 제4절 결정 사건 분석 1. 항일독립운동 및 해외동포사 2. 적대세력관련 사건 3. 민간인 집단희생사건 4. 인권침해사건 제 1 부 민족독립규명위원회 사건 제1절 항일독립운동 사건 이용규의 통영 수산학교 학생운동의 건 김홍배 등 57명의 전남운동협의회 항일운동의 건 하동 의신마을 의병사건 오만수의 경남 고성군 일원에서의 항일독립운동의 건(불능) 이목의 항일독립운동(불능) 구소현의 항일독립운동의 건(불능) 최인환의 항일독립운동의 건(불능) 신정흔의 항일독립운동의 건(불능) 정국래의 항일독립운동의 건(불능) 이원식의 항일독립운동의 건(불능) 제2절 해외동포사 사건 파독 광부 간호사의 한국경제발전에 대한 기여의 건 태권도의 국제적 보급을 통한 국위선양의 건

8 제3절 적대세력관련 사건 청주지역 신교식 등 8인의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및 강제연행(납치) 사건 김제에서 이석상 등이 적대세력에 의해 희생된 사건 부여지역 윤대선 등 11명의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및 강제연행 사건 예산지역에서 고영준 등 26명의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의 건 대전지역 적대세력 사건 영암지역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 강화지역 적대세력 사건 청원지역 이갑동 등 33인의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및 강제연행 사건 2권 제 2 부 집단희생규명위원회 사건(1) 김포 부역혐의 희생사건 남원지역 민간인 희생사건 나주 다도면 민간인 희생사건(1) 청원 국민보도연맹 사건 영덕 지품면 민간인 희생사건 경기지역 미군폭격사건 광주 민간인 희생사건(1) 거제지역 민간인 희생사건 서산 태안 부역혐의 희생사건 담양 장성지역 경찰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 포항 흥안리 미군폭격사건 3권 제 2 부 집단희생규명위원회 사건(2) 불갑산지역 민간인 희생사건 함양 민간인 희생사건 합천읍 민간인 희생사건 순창지역 민간인 희생사건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1) 의령 미군폭격사건 안동 부역혐의 희생사건 영천 청통면 이영쇠 사망사건 순천지역 여순사건 김해 국민보도연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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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김세태 등에 대한 보안대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사건 결정사안 위원회 조사결과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보안대에서 간첩혐의에 대한 구체적 근 거없이 피해자들을 불법연행 구금 및 가혹행위를 가한 인권침해사건으로 밝혀져 진실 규명으로 결정하고 피해자들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고 권고한 사례. 결정요지 보안대는 군인 군무원이 아닌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김세태, 장태임 및 김상선을 연행하여 3일 내지 3주간 정도를 수사한 사실이 인정된다. 2. 수사과정에서 헌법 및 군법회의법에 규정된 영장주의 및 적법절차를 위반하여 주거 지에 대한 수색을 거친 다음, 피해자들을 불법연행 및 구금을 하는 위법을 범하였을 뿐 아니라 피해자 김세태에 대하여는 고문까지 가한 사실도 인정된다. 3. 그럼에도 505보안대는 피해자들에 대한 간첩혐의를 밝혀내지 못한 채 무혐의 석방 을 하였는바, 결국 객관적 사실에 바탕한 구체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무리한 수사를 진 행하면서 불법연행 구금 및 고문을 가한 사실은 위법하고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 로 인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 해당한다. 전 문 사 건 라-7967 김세태 등에 대한 보안대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사건 신청인 김세태 결정일 주 문 이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진실규명 으로 결정한다. 김세태 등에 대한 보안대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사건 11

12 제4권 이 유 Ⅰ. 조사개요 1. 사건개요 및 신청요지 피해자 김세태, 장태임, 김상선은 경 전남 신안군 압해면 송공리 소재 거주 지에서 보안대원에 의해 마을 앞 해상에 정박 중이던 신안군청 행정선 신안호로 순차적 으로 불법연행되었다. 1) 피해자 김세태는 위 행정선에서 2일간 및 505보안대 목포분견대에서 1주일가량 고문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북한 왕래 횟수 및 교육내용 등의 간첩행위 관련 진술을 강요받은 후, 광주시 소재 505보안대로 인치되어 반복해서 진술서를 작성하였고 동시에 고문 흔적 을 없애기 위한 마사지를 받는 등 동소에서 정월대보름을 지내도록 구금된 후 3주 만에 석방되었다. 한편, 피해자 장태임 및 김상선은 행정선에서 위 김세태와 동일한 내용의 조사를 받았 으나 가혹행위는 당하지 않았으며 505보안대 목포분견대로 인치된 다음날 석방되었다. 피해자 김세태는 보안대의 조사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인들로부터 간첩가족이라 는 오명을 얻어 생활기반이 붕괴되는 등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했고, 고문후유증 등의 피 해로 고통을 당해왔다며 당시 보안대에서 자신들을 조사한 경위 등을 비롯한 사건진상을 밝혀 달라는 내용으로 진실 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원회라 한다)에 진실규명을 신청하였다. 2. 조사의 근거와 목적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이하 기본법 이라 한다) 제1조는 항일독립운 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 학살 의문사 사건 등을 조 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 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 으로 하고 있다. 동법 제2조제1항제4호는 인권침해에 관한 진실규명 대상 범위를 1945년 8월 15일부터 1) 김세태는 망 김남태의 동생, 장태임은 위 김남태의 처, 김상선은 위 김남태 및 장태임의 아들이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 상해 실종사건, 그밖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 으로 정하고 있다. 이 사건은 보안대에 불법연행 구금되어 약 3주간에 걸쳐 간첩행위에 대한 고문 조사 를 받았다는 것인바, 진실화해위원회는 기본법이 정하고 있는 진실규명 대상 범위에 해 당한다고 판단하여 조사개시를 의결하였다. 3. 규명과제 가. 보안대의 조사 여부 피해자 김세태는 보안대원에게 연행된 후 약 3주간에 걸쳐 간첩행위에 대한 조사를 받 았다는 것으로, 이는 후술하는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 여부에 대한 불가분의 전제가 되므 로 그 조사사실 여부 및 혐의내용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나. 보안대의 일반인에 대한 수사권 여부 먼저 보안대에서 군인 군속이 아닌 민간인인 피해자들을 연행하여 조사하였다는 부 분과 관련하여는, 군형법 적용대상자가 아닌 이들에 대하여 보안대에 수사권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그 수사행위의 적부( 適 否 )가 달리 평가되므로 민간인에 대한 보안대의 수사 권 존부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다. 불법구금 및 불법수색 여부 나아가 피해자들은 범죄사실 고지 및 영장제시의 절차 없이 불법연행되어 신안군 행정 선 및 보안대에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 김상선은 불법적인 주거 수색을 당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그 사실 여부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라. 가혹행위 여부 피해자 김세태는 행정선 및 보안대에서 거꾸로 매달기, 코에 물 붓기 및 전기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당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그 여부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김세태 등에 대한 보안대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사건 13

14 제4권 4. 조사방법 가. 자료조사 신안군청 행정선 신안호의 근무자 명단 확인 국군기무사령부 국가정보원 및 목포경찰서를 상대로 피해자 김세태에 대한 수사 기록, 정보및보안업무기획 조정규정에 따른 조정자료, 월북자동향자료 등을 제출받고자 하였으나 위 수사기록 및 조정자료 등이 존안되어 있지 않는다는 통보에 따라 자료조사 는 진행하지 못하였다 나. 진술청취 - 피해자 김세태, 김상선, 장태임 - 참고인 김, 이, 고, 김, 김, 장, 강, 조, 손 - 보안부대원 이, 최, 김, 김, 안, 신, 임 Ⅱ. 조사결과 1. 사건경위 사건 외 김남태는 군에 입대하였다가 행방불명 2) 되었으며, 광주 지방법원목포지원에서 실종선고 심판이 확정되어 3) 제적처리되었다. 위 망( 亡 ) 김남태의 행방과 관련하여 사건 당시 505 보안대원이었던 이 은 진실화 해위원회 조사에서 505보안대에서 김세태를 조사한 동기는 그의 형인 김남태가 월북하 였기 때문으로 기억하고 있다 고 진술하였고, 당시 신안군 압해면 예비군 중대장으로서 위 이 의 협조요청을 받고 피해자들의 동 향 파악 등 내사활동을 하였던 장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보안대 및 경찰서 지 서에서 위 김남태를 월북자로 관리하고 있음을 확인한 사실이 있다 고 진술하였다. 한편, 피해자 김세태는 보안대원으로부터 월북한 김남태에게 도움을 받고 잘사는 것이 아니냐 는 내용의 조사를 받았다 주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피해자 김상선도 당시 할머니 2) 김남태의 병적증명서에는 입대하여 제대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3) 확정사유 : 생사불명기간 만료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로부터 집을 뒤지러 온 사람이 네 아버지(김남태)가 간첩으로 내려오다가 붙잡혔다고 하 더라 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위 내용들을 종합하면 이 사건은 위 김남태가 월북하였다가 다시 남파되어 그 가족들 과 접촉하였을 것으로 판단한 보안대가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피해자 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2. 사건 조사결과 가. 피해자에 대한 보안대의 조사 여부 1) 관계기관 조회 국군기무사령부로부터 1피해자 김세태에 대한 수사기록, 2505보안대 대공과에서 작 성한 월분 소환 및 연행자 명부, 3망 김남태에 대한 월북자 분류 및 관리여부, 월 북자잔류가족동향파악 등의 자료를, 국가정보원으로부터 4정보및보안업무조정 감독 규정 4) 에 따른 보안대와의 조정자료, 5망 김남태에 대한 월북자로서의 관리대상 여부 등의 자료를, 목포경찰서로부터 6망 김남태에 대한 월북자로서의 관리대상 여부 등의 자료를 각 제 출받고자 하였으나 모두 관련 자료가 없다는 내용의 회신을 받았다 2) 보안부대원의 진술 가) 505보안대 대공과 근무자 505보안대 대공과에서 근무한 이 은 진실화해위원회의 1차 조사시 5) 김세태 및 그 에 대한 조사여부도 모른다 라고 진술한 후, 2차 조사에서는 6) 505보안대 대공과에서 김세태를 조사한 것은 사실이나 내가 조사에 관여하지 않아 조사내용, 방법 및 조사기간 4) 대통령령 제6872호, 제5조 (정보사범등의 내사등) 1정보수사기관이 정보사범등의 내사 수사 에 착수하거나 이를 검거한 때와 관할 검찰기관(군검찰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에 송치한 때에는 즉시 이 를 정보부장에게 통보하여야 한다. 제6조 (정보사범등의 신병처리등) 1정보수사기관의 장은 정보사범등의 신병처리에 대하여 정보부장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 2정보수사기관이 정보사범등 월남귀순자 불온문건투입자 및 납북귀환자와 피난 사민에 대하여 심문 등을 하고자 할 때에는 사전에 정보부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그 결과를 지체없이 통보하여야 한다. 5) 진술청취. 6) 진술청취. 김세태 등에 대한 보안대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사건 15

16 제4권 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김세태의 형이 월북한 것 때문에 조사받은 것으로 기억된다. 대공과에서 특정 사건 조사 시 담당수사관이 아니더라도 사건 내용은 알게 되는데다 김 세태가 고향사람이고 형 친구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 조사 시 본 건에 대하여 진술하지 않은 것은 김세태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과정을 알지 못한다는 이 유도 있었지만 조사과정 일부라도 진술할 경우 김세태가 나를 통해 더 많은 내용을 알아 내려고 할 것 같다는 판단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고 진술하였다. 반면 같은 505보안대 대공과에서 근무자인 김 및 임 은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 여부 내지 신안군 행정선을 동원한 사건조사 여부도 기억나지 않는다 고 진술하였다. 7) 나) 505보안대 목포분견대 근무자 505보안대 목포분견대장 안 를 비롯한 김 및 최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 서 분견대의 주된 업무는 군인사에 대한 신원조사일 뿐 수사는 업무범위에 포함되어 있 지 아니하고 실제 피해자들을 조사한 사실이 없고, 505보안대에서 분견대를 이용하여 피 해자들을 조사하였다면 지원을 하였을 텐데 그런 사실이나 신안군청에 행정선 지원 요청 을 한 사실도 없다 고 진술하였다. 8) 그러나 경부터 78. 초경까지 505보안대 목포분견대에서 신안군을 담당하였던 신 은 관내에 대공사찰 관리대상자가 많았는데 에이급(A급)만도 20여 명 정도였고, 특 히 지도면 및 임자면에는 월북자들이 많았고, 안좌도 출신이 월북하여 장관까지 한 사람 이 있었다. 77년도 하반기에 신안군 행정선을 동원하여 신안군 어의도 감정리 거주자 이 이라는 사람을 조사한 사실이 있고, 이후 목포분견대로 재차 연행하여 조사한 사실이 있었다. 당시 위 사건에 대해서는 동네사람인 주모씨라는 사람과 이장( 里 長 )을 정보원 삼 아 내사하였다 고 위 안 등과 달리 분견대에서도 대공사찰 및 수사를 하였음을 진술 하였다. 9) 3) 참고인 진술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피해자 김상선은 동네청년들과 망가진 수로를 보 수하고 집에 가자 보안대원 3~4명이 집을 수색하고 있어 할머니에게 무슨 일인지 묻자 아버지가 간첩으로 내려오다가 붙잡혀서 그런단다 는 얘기를 들었고, 보안대원도 아버지 7) 및 각 진술청취. 8) , 및 각 진술청취. 9)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가 배에 있으니 보고 싶지 않냐 며 나와 모친을 행정선으로 연행해갔는데 보안대원들은 범죄사실 고지나 영장제시도 하지 않았고, 연행된 일자는 5 18 이전인데다 너무 큰일이 라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연행된 후 보안대원 한 명이 자신을 모르겠느냐고 해서 자 세히 보자 김(해태) 절단용 기계 판매 행상으로서 서너 차례 집에 왔다간 사실이 있을 뿐 만 아니라 하루는 잠을 재워달라고 해서 숙식까지 제공했던 그 사람이었다. 당시 실제 집 에서 키우던 개 1마리가 이유 없이 죽은 사실이 있을 뿐 아니라, 집 담장에 기대어 설치 한 김 건조대에는 못이 박혀 있어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밤마다 치워지고 해서 누군가 담장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치우는 것이 아닌가 하여 신경이 쓰였 는데, 보안대에서 평소부터 감시를 해왔던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 억이나 생일도 모르기 때문에 제사를 지낸 사실이 없다. 다만 할아버지 제사가 보리수확 을 한 직후인 음력으로 6. 초이렛날인데 추도예배식으로 하고 있을 뿐 아버지에 대한 제 사를 지낸 사실이 없다. 연행된 후 신안군청 행정선에서 1주일가량, 505보안대 목포분견 대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석방되었는데 재산 형성과정에 대해서 조사받았다. 목포분견대 에서 작은아버지 김세태를 데리고 가라고 해서 광주에 있는 505보안대에 갔는데 보안대 원은 의사들이 김세태의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모두 확인했으니 서류에 지장을 찍 으라 고 해서 어떤 서류에 지장을 찍어주고 작은아버지를 모시고 왔다 고 진술하였다. 10) 당시 신안군 반공연맹 사무국장으로서 피해자 김세태에 대한 신원보증서를 작성해주 었다는 김 은 김세태는 신안군 압해면 송공리 사람으로 저보다는 5년 연하로 압해면 축협 등의 감사로 일하여 알고 지냈는데, 신안군 도초면 도락리 출신인 망 김 이 목포 보안대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김세태를 석방시키는 데 필요하다며 신원보증을 요청하여 최 로 기억되는 목포보안대 신안군 담당에게 전화하여 내용을 알아본 다음 신원보증 서를 작성해주었는데 위 김 이 보안대에 제출하였다. 김세태를 명분 없이 잡아 들였 기 때문에 명분을 찾기 위해 신원보증을 요청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김세태가 간첩행 위를 할 사람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보증을 해준 것이다. 김세태가 석방된 후 전화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뱀술을 대접하겠다고 했으나 술을 마시지 않는데다 뱀술 이라고 해서 기겁을 하고 거절한 사실이 있다. 오래되긴 했으나 김 을 통해 김세태를 위해 신원보증을 해준 것은 사실이다 고 진술하였다. 11) 피해자 김세태로부터 본건 제보자로 오인받았던 김 은 김세태가 연행된 당일 자신 10) 차 진술청취. 11) 진술청취. 김세태 등에 대한 보안대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사건 17

18 제4권 의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보안대원 2명에게 행방불명된 위 김세태의 형 김남 태는 김세태보다 나와 더 절친하였으므로 만약 김남태가 마을에 나타났다면 나에게 찾아 왔을 것이라며 오히려 김세태를 변호까지 했음에도 김세태는 나를 본건 제보자로 지목하 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김세태를 6개월에 걸쳐 내사를 하였다는 신안군 압해면 예비군 중대장이었던 장 을 통해서도 무고함이 밝혀졌을 뿐 아니라 김세태의 조카 김상선도 보안대에서 근무한다는 동서( 同 壻 )를 통해 확인하였다. 그리고 김세태가 언제 잡혀가고 며칠 동안 잡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보안대로 연행된 것은 사실이다 고 진술하였다. 12) 피해자 김세태와 같은 마을에 거주하였던 고 는 김세태가 보안대에 연행되었다는 얘기를 들은데다 김세태의 처로부터 남편이 보안대에 끌려갔으니 알아볼 데가 있으면 알 아봐달라는 부탁을 받아 알고 있었고, 실제 위 부탁을 받은 후 목포보안대 수사과장 최 의 집에 전화하였으나 동인이 부재중이라 직접 통화하지는 못한 사실이 있다. 김세태 는 내가 보안대에 제보하였다고 하나 김세태의 형이 월북했는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그 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슨 제보를 할 수 있겠으며, 설사 내용을 안다고 한들 같은 마 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을 못되게 할 이유가 있겠느냐, 그런 사실이 없다. 김세태가 보 안대에 연행된 시기는 모르겠으나 나도 신안군청 앞 초원다방에서 목포보안대로 연행되 어 김세태의 조카인 김상선의 부동산 매매경위에 대해 조사를 받은 사실이 있고, 위 최 가 석방시켜주었다. 보안대에서 자신을 상대로 김상선의 부동산 매매경위를 조사할 무 렵에 위 김상선이 송공리 온수골 소재 이 와 오촌지간인 사람의 논 3~400평을 구입 한 것은 사실이다 고 진술하였다. 13) 압해면 예비군 중대장이었던 장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505보안대에서 근무 하고 있던 고향선배인 이 상사의 협조요청에 따라 77년경부터 약 3년가량 김세태의 부동산 소유 내역, 자금관계, 혼인 외의 자가 호적에 등재된 사실, 주요 접촉인물 및 주야 간 동태 감시, 망 김남태에 대한 제사 사실 등을 단독 또는 보안대원과 함께 내사를 한 사실이 있고, 보안대에서는 보안대원을 행상으로 위장시켜 내사를 하였으며, 그 외 김세 태와 같은 마을에 거주하면서 정보원 역할을 하였던 망 최 이 피해자들의 동향을 확 인하였다. 내사를 하는 중에 야간 잠복에 방해가 되는 김세태의 개 3마리 및 김상선의 개 1마리를 죽이기까지 하였으며, 김상선의 집은 그 가족이 일하러 나가 집이 빌 때는 집안 에 들어가 누군가가 먹을 밥을 별도로 차려놓지는 않았는지도 확인하였다. 피해자들의 12) 진술청취. 13)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일가인 김아무개가 101보충대에서 신병교육을 마치면서 작성한 가진 것도 없고 생활도 윤택하지도 않은 김세태가 부락에서 떨어져 외진 곳인 산비탈의 넓은 땅을 사가지고 밤 나무를 심고 염소와 소를 키우고 한다. 김세태의 형이 월북했다 는 내용의 소원수리서를 505보안대에서 본 사실이 있는데 위 소원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하여 내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고, 보안대 및 경찰서 지서에서 김세태의 형 김남태는 월북자로서, 김업태는 행불 자로 관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사실이 있다. 505보안대에서 김세태를 연행할 때 경비정 (신안군 행정선임)을 동원하기도 하였으며, 505보안대 목포분견대에서 김세태 및 그와 자 주 접촉하였던 망 김, 김, 고 까지 연행하여 조사를 하였고, 김세태가 연행된 후 주변 사람들이 신안군 출신으로서 보안사령부 인사참모부에서 근무하였던 망 박 상사 14) 를 통해 구명운동을 하기도 하였다. 목포분견대에서 많이 맞았는지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얼굴이 부어 있는 김세태를 본 사실이 있고, 김세태는 연행 후 약 한 달 만 에 석방되었다 고 진술하였다. 15) 신안군청 행정선 신안호의 기관장으로 근무하였던 이 는 시기는 기억할 수 없으나 목포보안대에서 신안군 압해면 송공리 사람을 조사하는 데 2일가량 동원된 사실이 있고, 당시 조사장소인 상황실의 접근을 금지하여 무슨 내용으로 조사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행정선 갑판에서 보안대원끼리 손으로 송공리 뒷산을 가리키며 7부쯤 되는 저곳에서 교 신을 했을 것이다라고 주고받는 얘기를 들은 사실이 있고, 그 외에도 완도군 보길도, 신 안군 어의리 및 포작도에서 조사할 때도 동원된 사실이 있다. 당시 보안대원은 사병을 포 함하여 총 7~8명 정도였으나 실제 보안대원은 4명 정도였고, 사병들은 그중 한 사람을 손 반장 이라고 호칭하였다. 접안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송공리 앞 해상에 정박한 상태에 서 조사를 하였다 고 진술하였다. 16) 신안군청에서 부터 까지 근무하다가 퇴직한 조 는 경 신안군 어업지도선에서 통신직으로(통신7급) 근무하던 중 2박 3일간 신안군 행정선 신안호의 통신담당인 장 의 대직근무를 할 때 보안대 또는 안기부의 작전 지원근무를 한 사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전남 신안군 압해면 송공리에서 누군가를 데리고 와서 행 정선에서 조사한 사실이 있고, 당시 조사하는 곳에는 접근통제를 하여 조사내용 방법 및 피조사자가 누구인지는 몰랐으나 조사장소에서 신음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으며, 나 14) 병적증명서에는 부터 까지 보안사령부 인사처에서 근무한 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15) 차, 차 진술청취. 16) 진술청취. 김세태 등에 대한 보안대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사건 19

20 제4권 중에 목포항에서 하선할 때 피조사자가 전부터 알고 있던 새마을지도자 김세태임을 알게 되었다. 당시 4~6명이 작전에 참여하였으나 그 사람 중 아는 자는 없었다 고 진술하였 다. 17) 신안군 행정선 신안호의 선장으로 근무하였던 강 은 시기는 기억하지 못하겠으나 보안대는 신안군 행정선을 지원받아 신안군 지도면 포작도 및 어의리, 완도군 보길도에 서 사건조사를 한 사실이 있다. 피해자 김세태에 대해서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압해도 송공리에 지원을 나간 기억이 나는 것 같다 고 진술하였다. 18) 피해자 김상선은 손위동서인 손 이 안기부에서 근무하는 동생 손 으로부터 전 해 듣고 알았다며 보안대에서 조사받은 나를 위로하였다 고 진술하였다. 이에 대하여 손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舊 안기부 목포출장소에서 청원경찰 로 근무하다 89년도에 퇴직하였을 뿐 보안대와는 관련이 없다. 청원경찰로서 사건조사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본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둘째형인 손 과 동서지간인 김 상선을 모른다. 위 김상선이 당한 일을 형에게 얘기한 사실이 있는지는 기억이 없다 고 위 사실을 부인하는 진술을 하였다. 19) 4) 소결 가) 보안대의 피해자 조사 여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 응한 보안대원들은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사실을 부인하고 있 으나 분견대의 업무에 대공사찰 업무가 포함되어 있고, 분견대에서도 행정선을 동원하여 사건조사를 한 사실이 있다는 보안대원 신 의 구체적인 진술, 보안대에서 피해자 김 세태를 조사하였다는 행정선 근무 공무원 강, 이 및 조 의 진술, 반공연맹 신 안군지부 사무국장 김 의 신원보증 경위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 보안대원의 요청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내사를 하였다는 예비군 중대장 장 의 구체적인 진술, 보안대원에게 김남태와의 관계를 설명하였다는 김 의 진술, 보안대에 연행되어 김상선의 부동산 매 매경위에 대해 조사를 받고 평소 알고 있었던 보안대원의 편의로 석방되었다는 고 의 진술, 안기부 청원경찰 손 이 본건을 인지하고 있었던 사실로 미루어볼 때 피해자들 을 505보안대에서 조사한 사실이 인정된다. 17) 진술청취. 18) 진술청취. 19)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특히, 피해자 김세태가 처음부터 조사 관여 보안대원으로 지목하였던 이 은 뒤늦게 나마 김세태를 505보안대에서 조사한 것은 사실이고, 위 사건조사에 관여하지는 않았지 만 동인이 고향사람이라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면서 김세태에 대한 조사사실을 모른다는 기존 진술을 번복하였다. 나) 피해자에 대한 혐의내용 보안대원 이 의 피해자 김세태의 형 김남태가 월북한 것 때문에 조사한 것으로 기 억하고 있다 는 진술, 예비군 중대장이었던 장 의 김세태와 같은 동네사람인 훈련병 이 작성한 김남태가 월북하였다는 내용이 포함된 소원수리서를 확인하기 위하여 내사를 하였고, 실제 보안대 및 경찰서 지서에서도 김남태를 월북자로서 관리하고 있음을 확인하 였다 는 진술, 김 의 김세태가 연행될 무렵 우연히 조우한 보안대원에게 김남태가 마 을에 나타났다면 내게 찾아왔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는 진술, 피해자 김상선의 아버지 가 간첩으로 내려오다가 붙잡혔기 때문에 주거지를 수색한다고 했다는 보안대원의 말을 할머니로부터 전해 들었고, 보안대원이 아버지가 행정선에 있으니 보고 싶지 않냐며 나와 모친을 행정선으로 연행하였다 는 진술을 종합하면 보안대에서 망 김남태가 월북한 것으 로 판단하고 잔여 가족과의 연계 여부에 혐의를 두고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나. 보안대의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 여부 1) 관련규정 등 국군보안부대령 20) 제1조에 의하면, 보안부대는 군법회의법 제44조제2호에 규정된 범 죄 21) 에 대한 수사권이 있다. 군법회의법 제2조에 의하면 군법회의는 군형법 등에 대한 재판권이 있는바, 군형법 제1조 제1항 내지 제3항은 군인 및 군무원 등에게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보안부대는 원칙적으로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다. 또한 민간인에 대 하여는 군형법상의 특별규정이 아닌 국가보안법위반이나 형법상 간첩죄는 군법회의 관 할이 아니다. 따라서 보안부대는 민간인의 국가보안법 위반이나 형법상 간첩혐의에 대한 수사권이 없다. 20) 대통령령9734호 21) 법률제2630호, 제44조제2호 : 군형법제2편제1장(반란의죄) 및 제2장의 죄(이적의죄), 형법제2 편제1장(내란의죄) 및 제2장의죄(외환의죄), 군형법제80조, 제81조, 국가보안법 반공법 및 군사기밀보호 법에 규정된 죄 김세태 등에 대한 보안대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사건 21

22 제4권 2) 소결 결국, 505보안대는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법적 근거없이 피해자 들을 수사하였는바, 이는 위법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다. 불법구금 및 불법수색 여부 1) 피해자 및 참고인의 진술 요지 피해자 김세태는 범죄사실 및 구속이유 고지를 비롯한 영장제시도 받은 바 없이 구정 (설) 직전에 연행되었다가 행정선에서 2일간, 목포분견대에서 1주일 정도, 505보안대에 인치된 후 동소에서 정월대보름을 지내도록 구금된 다음 3주 만에 석방되었다 진술하고, 피해자 김상선은 행정선에서 1주일 정도, 목포분견대에서 1박을 한 다음 석방되었고, 연행에 앞서 불법적인 주거 수색을 당하였다고 진술하였다. 그 외 예비군 중대장 장 은 위 김세태가 연행된 후 한달여 정도 후 석방되었다고 진 술하고, 행정선 기관장 이 는 보안대의 지원기간을 2일 정도로 기억하고, 같은 조 도 지원 첫날은 연행자가 없었으며 이틀째 되는 날 사람을 데리고 왔고, 그 다음날 목포 항에 귀항하였다고 진술하였다. 2) 소결 피해자 김세태와 김상선의 진술부분 중 행정선에서의 조사기간이 일치하지 않고 있으 나 김세태의 진술과 행정선 승선원의 진술이 일치되는 점에 비추어 김세태는 3주간 정 도 22), 장태임 및 김상선은 3일간 조사받았음이 인정된다. 그러나 당시 보안대의 이러한 조사는 망 김남태가 월북했다거나 국내잠입을 하였다거 나 잠입하여 가족들을 만났다거나 하는 등의 구체적 사실에 근거한 기초적 혐의조차 확 보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나아가 장기간의 내사과정을 통하여 위 김세태의 농 수협 대출금을 통한 자금조성 사 실, 동인이 임의개간하여 식재하거나 가축을 방목한 임야는 국유지라는 사실, 동인의 호 적에 혼인 외의 자가 입적되어 있음을 인지한 사실, 그 외 추도예배식의 제사 봉양 사실 을 확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일상적인 동향을 감시해 왔다면, 강제연행하여 수사할 필요 성이나 영장없이 체포해야 할 긴급성이 인정되지 않음에도 영장에 의하지 아니한 체포 22) 정월대보름이 이므로 부터 기산할 경우 날짜로는 18일로 환산되고 있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구금을 한 것이므로 명백한 불법체포 구금에 해당한다. 한편, 위 김상선의 주거지에 대한 수색도 적법한 체포를 전제로 하는 긴급행위에 해당 되지 아니하므로 위법하게 수색하였음이 인정된다. 23) 라. 가혹행위 1) 피해자 및 참고인의 진술 요지 피해자 김세태는 보안대원으로부터 거꾸로 매달기, 코에 물 붓기 및 전기고문 등의 가 혹행위를 당하였다고 진술하였다. 그 외, 행정선 승선원 조 는 피조사자의 신음소리를 듣고 누군가 당하고 있다고 생 각하였다, 예비군 중대장 장 은 목포분견대에서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얼굴이 부 어 있는 김세태를 본 사실이 있다 고 각 진술하였다. 또한 김 은 석방된 후 문병시 김세태를 본 순간 엄청난 일을 당했구나라는 인상을 받은 정도로 얼굴 전체 특히 눈 주변이 파랗게 변해 있었고 모골이 삐쩍 말랐는데 그대로 두면 죽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고 진술하였고, 24) 고 는 김세태가 석방된 후 입원해 있 는 병원을 찾아가 몸보신을 하라며 6~7만원인가를 주고 온 일까지 있고, 당시 김세태는 고통을 당하였다는 얘기를 했으나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 하였다. 2) 소결 피해자 김세태의 구체적인 진술이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김세태의 상태를 목격하였다 는 참고인들의 체험 진술에 의하면 김세태가 보안대에서 가혹행위를 당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다. Ⅲ. 결론 및 권고사항 1. 결론 505보안대는 군인 군무원이 아닌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23) 헌법(제8호)제10조, 군법회의법(법률 제2630호) 제242조(긴급구속), 제246조(현행범인과준현행범인), 제 251조(압수,수색,검증), 제252조(영장에 의하지 아니한 강제처분). 24) 진술청취. 김세태 등에 대한 보안대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사건 23

24 제4권 김세태, 장태임 및 김상선을 연행하여 3일 내지 3주간 정도를 수사한 사실이 인정된다. 나아가 위 수사과정에서 헌법 및 군법회의법에 규정된 영장주의 및 적법절차에 따른 영장 및 그 제시도 하지 아니하고 주거지에 대한 수색을 거친 다음, 동인들을 연행하여 위 기간 동안 불법구금하는 위법을 범하였을 뿐 아니라, 위 김세태에 대하여는 고문 가 혹행위까지 가한 사실도 인정된다. 한편, 내사과정에서까지 주거침입, 재산권침해 및 사생활침해 등의 위법을 범한 사실까 지 확인되고 있다. 그럼에도 보안대는 피해자들에 대한 어떠한 혐의도 밝혀내지 못한 채 무혐의 석방을 하였음은 물론 김남태의 월북 및 잠입활동 여부 등에 대한 아무런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 고 있다. 결국 객관적 사실에 바탕한 구체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무리한 수사를 진행하 였음을 알 수 있다. 피해자들은 본건의 원인을 제공한 사실이 없거니와 일방적으로 수사대상자로 선정되 어 사생활을 감시당한 피해자에 불과하므로 불법구금 등의 불이익한 처분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고, 피해자들이 군입대한 위 김남태의 생사 여부나 제대 후 미귀가 사유조차도 알지 못하여 오랜 기간 한( 恨 )을 품고 살아오던 상황에서 국가가 이를 해소해주기보다는 오히려 혐의에 대한 구체적 근거도 없이 수사에 착수, 고문 가혹행위를 가하고 끝내 간 첩혐의의 오명을 떠안고 살아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보안대의 수사는 부당한 공권력 행 사에 해당함이 명백하다. 또한, 보안대의 연행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를 통한 수사행위는 법령이 정한 요건 및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였으므로 본 사건은 위법하고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 해당한다. 2. 권고사항 위 사건에 대하여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기본법 제4장에 따라 국가가 행할 조치에 관 하여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국가는 위법하고 부당한 공권력 행사과정에서의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에 관하여 피해 자들에게 사과하고, 피해자들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 요하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결정사안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결과 오주석 등이 불법구금, 가혹행위, 허위자백 등을 통해 간첩죄 로 조작된 인권침해사건으로 밝혀져 진실규명으로 결정하고 피해자들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 사례. 결정요지 1. 안기부는 피해자 오주석 등을 불법체포 연행한 후,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50여 일 동안 가족 및 변호인의 접견을 차단한 채 안기부에 불법구금한 상태에서 구타 등 가혹 행위를 가하고, 잠 안 재우기 등 강압적 조사를 통해 허위자백을 받아 간첩죄로 조작하였 음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안기부의 조치는 헌법상 보장된 신체의 자유 를 침해하고 헌법 상 원리인 적법절차의 원리 를 위반하여 피해자들의 인권을 침해한 것이다. 2. 서울지검은 오주석이 간첩혐의를 부인하였음에도, 안기부 수사관으로부터 당한 가 혹행위로 인한 위압적인 분위기가 검찰 조사에까지 이어진 상태에서 자백에 의존하여 검 사작성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한 뒤 서울형사지법에 기소하였다. 3. 서울형사지법은 피해자 오주석이 공판과정에서 장기간의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로 인 해 허위자백을 한 것이며, 간첩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고 일관되게 호소하였고, 일부 참고 인들 역시 진술을 번복하였음에도 검찰에서의 허위자백과 조작된 증거물을 증거로 채택 하여 징역 10년형을 선고하였다. 또한 서울고법에서는 징역 7년형을 선고하였고, 대법원 에서는 이를 그대로 확정하였다. 결국 이는 법원이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적 의 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 전 문 사 건 바-3894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신청인 오주석 결정일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25

26 제4권 주 문 이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진실규명 으로 결정한다. 이 유 Ⅰ. 조사개요 1. 사건개요 가. 신청배경 신청인 오주석(이하 피해자라 한다)은 춘천시 소재 (주)새시대체인의 영업이사로 재직 중, 부터 까지 한국슈퍼체인협회 주관, 일본의 (주)가스미 스토아 초청으 로 일본 유통업계 연수 및 시찰 목적으로 도일하여 연수 중 재일교포 친척인 안, 김, 오 등을 잠시 만나고 귀국하였다. 오주석은 일본 연수를 다녀온 지 약 3년 후인 춘천시 소재 본인 자택에서 영장 없이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라 한다) 남산분실로 연행되어 약 50여 일간 조사 를 받은 뒤, 서울지방검찰청에 송치되어 조사를 받고 구국가보안법 제2조(간 첩 또는 간첩방조), 형법98조제1항(간첩), 구국가보안법 제4조제1항2호(간첩) 등 위반죄 로 기소되어 서울형사지방법원(이하 서울지법이라 한다)에서 징역 10년, 자 격정지 10년을 선고받고 항소하고, 서울고등법원(이하 서울고법이라 한다)에 서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고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나. 판결요지 피고인 오주석은 일본 유통업계 연수 차 도일하여 1) 재일 북괴공작원 안 과 김 를 접촉하고, 안 에게 춘천시와 춘 천 근교 군부대 현황과 남한의 국내 정세 등 국가기밀을 누설함으로써 간첩행위를 방조 하고, 2) 동일, 위 안 으로부터 춘천지역의 군부대 주둔 상황, 춘천 거주 월북자 가족 수,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라이온즈클럽의 이북 출신자 소개, 김 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 등의 지령을 받고 일 화 2만 엔과 김 칼라사진 1매 등을 받아 회합, 금품수수하고, 3) 재일 조총련 오, 오 길을 만나 4만 엔을 받아 회합, 금품수수하고, 4) 김포공항에 입국하여 잠입하고, 5) 오 과 전화통화를 하여 통신연락하고, 6) 안 에게 편지를 발송하여 통신연락하고, 7) 초순, 김 에게 안, 김 부부 접촉 사실을 고지하여 편의를 제공 하고, 8) ~ 춘천지역 검문소 현황, 춘천 근교 군부대 현황 등 국가기밀을 탐 지, 수집하고, 9) 초순 안 으로부터 편지를 수신하여 통신연락하고, 10) <월간 새마을 금고> 호에 게재된 의료보험에 관한 해설 을 모아놓아 국가 기밀을 수집하고, 11) 죽림동 방위협의회에 참석하여 방위지원위원회 내규책자를 모아놓아 국가기밀을 수집하고, 12) ~ 이 과 접촉, 군납에 대한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하고, 13) 중순 안 으로부터 편지를 수신하여 통신연락하였다. 다. 신청취지 피해자는 안기부 수사관에 의해 강제연행된 후 장기간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고문, 가 혹행위로 인한 허위자백을 근거로 간첩행위가 조작되었다며 진실화해위원회 에 진실규명을 신청하였다. 2. 조사의 근거와 목적 이 사건은 피해자가 안기부 수사관들에 의해 장기간 불법구금된 채 구타, 물고문, 잠 안 재우기 등의 가혹행위를 당하여 그 실체가 조작되었다는 것이므로 진실 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이하 기본법이라 한다) 제2조제1항 4호 1) 에서 정한 진실규명의 범위에 1) 기본법 제2조제1항4호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 상해 실종 사건,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 사건.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27

28 제4권 해당하고, 수사관들의 불법구금, 가혹행위 등도 형사소송법 제420조 7호, 제422조가 정한 재심사유에 해당하여 기본법 제2조 제2항의 요건을 충족한다. 따라서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피해자에 대한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를 규명하고, 기본법 제4장이 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국가로 하여금 피해자와 그 가 족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법적 정치적 화해조치, 국민통합을 위한 필요한 조치 등을 취할 필요성을 인정하여 조사 개시를 의결하고 조사를 진행하였다. 3. 규명과제 가. 불법구금 여부 피해자는 안기부 수사관들에 의해 구속영장 없이 강제연행되어 구속영장이 집행될 때까지 58일 동안 불법구금상태에서 수사를 받았다고 하므로 이에 대 한 조사가 필요하다. 나. 가혹행위 여부 피해자는 안기부 수사관들에 의해 간첩행위를 한 것으로 자백을 강요받으면서 잠 안 재우기, 도구에 의한 구타, 통닭구이, 물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당하였다고 하므로 이에 대 한 조사가 필요하다. 다. 범죄사실 조작 여부 피해자는 안기부 등 수사기관에 의해 고문,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재일( 在 日 ) 친척으로 부터 교양, 지령을 받고 목적수행을 위해 잠입하여 군사기밀 탐지 등의 간첩행위를 한 것 으로 조작되었다고 하므로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4. 진실규명 조사방법과 경과 가. 자료조사 서울지방검찰청 기록관리과 보존 수사 및 재판기록 27권 5783쪽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안기부의 수사착수 경위 및 수사과정, 검찰의 수사과정, 법원의 재판과정 등을 분석, 검 토하였다. 국가기록원 보존 수용자신분장 650쪽 나. 진술조사 피해자 및 당시 공동피고인 4명, 참고인 19명 2), 수사관 11명 3) 에 대한 진술청취를 통해 수사과정, 불법구금, 가혹행위 여부 및 자백의 경위 등을 조사하였다. Ⅱ. 조사결과 1. 사건배경 대법원이 사법부 과거사정리 차원에서 검토한 1972~1987년 동안의 시국 공안사건 판결 가운데 불법구금과 고문 등 재심사유가 있는 사건 중 국외 사건의 대다수는 재일동 포관련 사건이다. 4) 이와 같이 일본이 시국 공안사건의 주요 지리적 배경이 된 것은 지 리적으로 남북이 가깝다는 이유뿐 아니라 일본사회와 재일교포사회의 특징 때문이다. 일본은 공산당, 사회당 같은 사회주의 이념을 표방하는 정당들이 합법화되어 의회에서 활동하고, 공산주의 문헌들이 합법적으로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곳이며, 재일동포들 또 한 민단, 조총련 등 각자의 소속과 상관없이 부모, 형제, 친척, 친구 등을 통해 서로 교류 하면서 왕래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5) 한편 한반도는 남북한으로 분단되어 이념대결 양 상을 보여왔다. 남한과 재일동포사회의 접촉은 위와 같은 사정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발 생했다. 일본사회와 재일동포사회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하고, 한국에서 일본을 방문하여 자연스럽게 북한과 친숙한 친척 등 재일동포를 만나고 귀국하는 행위나, 일본에서 북한 을 옹호하는 친척, 친구와 함께 자라나 한국에 들어와 활동하는 행위는 남한사회에서는 간첩행위로 쉽게 해석될 수 있었다. 이런 상황 하에서 재일동포와 관련된 간첩사건은 부 모형제 친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이 회합 통신죄, 의례적으로 주고받은 여비가 금 2) 당시 공동피의자로 조사를 받았으나 최종적으로 불기소된 이 은 사망하였음. 3) 참고인 및 수사관 진술청취 현황은 별표1 참조. 4) 대법, 시국 공안사건 판결 중 224건 재심대상 선정. ( ). 동아일보, 1면. 5) 국정원과거사진실규명을 통한발전위원회. (2007). 과거의 대화, 미래의 성찰. 284쪽.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29

30 제4권 품수수죄, 우연히 대화한 내용이나 전달한 일간신문, 잡지 등이 간첩활동 6) 으로 되었으 므로 끊임없이 조작 시비가 있었다. 1980년 이후 국군보안부대는 한국에 와 있는 재일동포 유학생들에 대한 조사에 집중하 였으나 수사권이 없어 안기부 수사관의 이름으로 사건 발표를 하였고, 안기부는 한국인 의 일본에 대한 방문, 취업, 밀항 등과 관련된 사건에 집중하여 조사하는 경향이 있었다. 7) 이 사건은 ~ 동안 오주석, 김성규, 송, 안교도, 김, 이, 김 8) 이 친척 9) 인 조총련 안, 김 를 만나거나 서신왕래가 문제가 되어 안기부의 수 사를 받고 간첩죄로 처벌받은 사건이다. 2. 사건경위 가. 수사착수 경위 1) 기록상의 정황 안기부의 김 에 대한 인지보고에 따르면, 경 김 가 수년 전부터 재일거 주 조카인 김, 안 부부와 상호 서신교환을 계속해오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 후 김 및 주변인물에 대한 신원을 예의 내사한바 김 의 사위 송 과 당질 김성규 등 이 기술연수 및 산업시찰 차 도일 중 김 의 주선으로 위 안, 김 부부 접촉 사 실을 포착, 계속 내사결과 이들이 귀국 후 간첩으로 암약중임을 인지 10) 하였다고 되어 있고, 안기부 작성의 첩보보고서 (보고자(부호) ) 11) 에 따르면, 전 이 본인의 집으로 잘못 배달되어 온 김 발신, 김 수신의 서신 12) 에서 우리 조국 6) 박원순. (1997). 국가보안법연구2. 434쪽., 재인용 국정원과거사진실규명을 통한발전위원회. 앞의 책. 289쪽. 7) 국정원과거사진실규명을 통한발전위원회. 앞의 책. 287쪽. 8) 이, 김 은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았으나 불기소 석방된바, 공안부장 검사가 검찰총장에 올린 공안사범에 대한 불기소 승인 품신 에 따르면, 범증은 충분하나 사안이 비교적 경미하고 피의자의 친인척이 본건으로 기소될 예정이며, 자신들의 잘못을 깊이 뉘우쳐 정상 참작할 사유가 있다고 하여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9) 김, 안 은 부부관계로, 사건 관련자들과 친척관계에 있다. 국내연락책으로 지목된 김 는 김 의 아버지인 김 의 여동생이고, 김성규는 김 의 당질, 송 은 김 의 사위, 이 은 김 의 남편, 김 은 김 의 4촌 동생이다. 오주석은 김 의 어머니인 오 의 당질이다. 안교도는 안 의 4촌 동생이다. 사건 관련인의 관계도는 별표2 참조. 10) 수사기록 인지보고 ( ), 3177~3192쪽. 11) 국정원 회신문 (수삼-49)( ). 12) 오착 서신이 첩보보고서 ( 작성)에 첨부되어 있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3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은 미군이 철수하면 반드시 통일될 것이다. 조국이 통일되면 고모도 만나고 얼마나 좋겠 습니까 등의 불순한 문구를 발견하여 신고하였다고 되어 있고, 안기부 작성의 압수조서 13) 에 의하면, 전 이 김 발신, 김 수신의 서신을 임의 제출하여 이를 압수하였다고 되어 있는데 압수된 서신은 자 첩보보고서 에 첨부되어 있는 서신과 같다. 결국 오주석에 대한 조사는 안기부의 인지동행보고 14) 에 따르면 당부에서 피의자 김 의 진술에 의해 오주석이 도일하여 재일북괴공작원 안 을 접촉 한 사실이 있어 동 진술에 의거 하여 착수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2) 수사관 진술 당시 내사에 참여한 안기부 수사관 이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조총련 간부 등에 대한 동향감시나 정보들을 수집하는데 확증이 없는 경우 그냥 두고 있다가 첩보나 단서가 들어오면 확인 작업을 하게 된다. 이 사건은 서신첩보가 들어와 첩보 서신을 바탕 으로 본격적 수사가 진행되었다 고 진술하였다. 15) 당시 김 조사에 참여한 수사관 임 도 첩보서신의 내용 중 미군이 철수하면 통 일이 될 수 있다, 새해를 열렬히 축하한다 와 같은 표현을 보고 조사를 하게 되었다고 진술하면서 수집된 서신을 송치 단계에서 압수조서로 만든 것이 다 라고 진술하였다. 16) 3) 소결 기록 및 수사관들의 진술에 의하면 안기부는 조총련 관련 재일동포와 국내인의 접촉을 지속적으로 조사해오다가 당시 잘못 배달된 서신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나. 안기부 수사과정 안기부 수사관들은 김 를 조사하던 중 피해자의 안 접촉 사실을 듣 고, 피해자를 춘천 집에서 연행, 17) 안기부 남산분실에서 조사를 진행하였고 13) 수사기록 압수조서 ( ), 3459~3465쪽. 14) 수사기록 인지동행보고 ( ), 1179~1188쪽. 15) 진술청취. 16) 진술청취.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31

32 제4권 구속영장 18) 을 발부받아 구속을 집행, 서울지방검찰청 에 송치하였다. 피해자 외 김성규, 송, 안교도도 피해자와 같은 일자에 구속되어 송치 되었다. 다. 서울지방검찰청의 수사과정 서울지방검찰청은 부터 공동피의자들에 대한 조사를 하여 피해자에 대한 회 피의자신문조서, 회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한 후 공동피고 인 4인과 함께 서울지방법원에 기소(검사 임 )하였다. 라. 재판과정 서울지방법원은 제1차를 시작으로 제5차 공판까지 진행하였다. 피 고인인 오주석은 간첩혐의를 부인하였으나 서울지방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인정해 피해자에게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 판결을 선고 19) (재판장 서, 판사 정, 김 )하였다. 위 판결에 대하여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의 폭행과 협박 등의 고문에 의 한 증거능력이 없는 증거를 채택하였다는 취지로, 검사는 형량이 가볍다는 취지로 각각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하였다. 서울고등법원은 제1차 공판을 시작으로 제4차 공판에서 피해자에게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 20) (재판장 김, 판사 박, 유 )하였다. 위 판결에 대하여 피고인 21) 들만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기각(대법관 윤, 정, 김, 오 )하였다. 17) 수사기록 인지동행보고 ( ) 1179~1188쪽. 18) 안기부는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하였으므로 사후영장을 발부받아야 함에도 사전영장을 발부받고 5일이 지 나 집행하였다. 19) 당시 공동피고인이었던 김성규는 무기징역, 송 은 징역8년, 안교도, 김 는 징역3년을 선고받았다. 20) 항소심에서 김성규는 징역 10년, 송 은 징역 7년, 김 는 징역 3년(집행유예 5년), 안교도는 징역 1년 6월(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21) 김 는 상고 포기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3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3. 사건 조사결과 가. 불법구금 여부 1) 수사기록 등의 정황 가) 피해자 수사 수사기록 22) 에 따르면, 안기부는 피해자를 영장 없이 연행하여 약 보름간 구금상태에서 아래와 같이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보이는데, 피해자는 제 1회 진술서(50쪽)를 작성하고,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58쪽) 조사를 받고, 1959.~1961. 동 안 재일친척 오 과의 서신 연락, 일본 연수 시 재일친척 안, 김 등을 만난 시각 등까지 자세히 기술하고, 위 진술서에 국가기밀 탐지, 금품수수, 통신연락 등 범죄사실 대부분의 내용을 자백하였고, 제2회 진술서(55쪽), 제2회 피의자신문조서 (92쪽), 제3회 진술서(53쪽), 제3회 피의자신문조서(82쪽), 제4회 진술서(41 쪽), 제4회 피의자신문조서(56쪽), 제5회 진술서(18쪽), 제5회 피의자신문조서(29쪽) 조사를 받았다. 나) 공동피고인 수사 김성규( 연행)는 제1회 진술서(86쪽)를 시작으로 같은 날 제1회 피의 자신문조서(74쪽), 제2회 진술서(50쪽), 제2회 피의자신문조서(74쪽), 제3회 진술서(66쪽), 제3회 피의자신문조서(118쪽) 등 방대한 분량의 진술서 및 조서작성 조사 를 받았다. 송 ( 연행)은 제1회 진술서(38쪽)를 시작으로 제1회 피의자 신문조서(29쪽), 제2회 진술서(46쪽), 제2회 피의자신문조서(82쪽), 제3 회 진술서(30쪽), 제3회 피의자신문조서(46쪽) 등 조사를 받았다. 안교도( 연행)는 제1회 진술서(19쪽)를 시작으로 같은 날 제1회 피의자 신문조서(49쪽), 제2회 진술서(20쪽), 제2회 피의자신문조서(75쪽) 등 조사를 받았다. 김 는 부터 서울 중구 필동 소재 성심병원에 입원 23) 중인 상태에서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56쪽)를 시작으로 제2회 피의자신문조서(32쪽), ) 수사기록 인지동행보고 ( ), 1179쪽. 23) 법정에 제출된 나 작성의 소견서 에 따르면 김 는 1983년 4월 5일 본원(중대 성심병 원)에 내원, 4월 6일 입원하였다.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33

34 제4권 제3회 피의자신문조서(57쪽), 제4회 피의자신문조서(32쪽) 등 조사를 성심병원에서 받았다. 2) 피고인들의 진술 가) 피해자의 진술 서울지방법원 공판에서 피해자는 안기부에 연행 뒤 수사관으로부터 권총 을 머리에 대고 신문할 수 있다 는 등의 위협을 당하고 침대봉으로 구타를 당하면서 안 으로부터 간첩지령을 받았다고 자백하라고 강요 받았다고 하고, 24) 서울고등법원 공 판에서는 안기부 춘천지부를 통하여 서울 남산 소재 안기부로 연행되어 신 문을 받았다 고 진술하였고, 25) 항소이유서( ), 상고이유서( )에서도 오전 8시에 안기부 수사관에 연행되어 서울 남산 소재 안기부로 가서 침대 봉으로 구타를 당하면서 안 으로부터 간첩지령을 받았다고 자백을 하라고 강요받아 단순한 친척 상봉에 불과하다고 말하였으나 다시 구타당하였다 고 진술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는 친목계 여행을 다녀온 다음날인 3월 11일 새벽에 신원을 밝히지 않은 남자 4명으로부터 본인의 집에서 연행되어 안기부 남산분실에서 50여 일 넘 게 불법구금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 고 진술하였다. 26) 나) 공동피고인들의 진술 공동피고인 김성규는 서울지방법원 공판에서 금년(1983) 노량진동에 있는 사무 실(조선신약주식회사)에 안기부 직원 두 사람이 찾아와 동행을 요구하여 남산 중턱에 이르자 고개를 숙이라고 하여 그때부터 금년(1983) 서울구치소로 넘어올 때까지 줄곧 그곳에 있었다 고 진술하였다. 27) 같은 송 은 수사기관에 연행되어 현재까지 구금상태로 조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고 진술하였다. 28) 같은 김 는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중 퇴원 전날인 안기부에 연행되었다 고 진술하였다. 29)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김성규는 휴무일인 근로자의 날에 영업부서 담 24) 서울지법, 5차 공판( ). 25) 서울고법, 1차 공판( ). 26) 진술청취. 27) 서울지법, 5차 공판( ). 28) 서울지법, 2차 공판( ). 29) 서울지법, 5차 공판( )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3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당이라 출근하였다가 사무실로 찾아온 세 명 30) 의 남자들에게 이끌려 차에 태워져 안기부 남산분실로 연행되어서 송치될 때까지 계속 안기부에서 조사받았다 고 진술하였다. 31) 송 은 회사(동아건설주식회사) 사무실(부평공장)로 남자 두 명이 찾아와 업무관련 자문을 구한다며 밖으로 유인하여 차에 태우더니 머리를 쥐어박아 항의했더니 옆구리를 세게 때린 후 남산분실로 연행하였다. 검찰에 송치될 때까지 계속 안기부에서 조사받았다 고 진술하였다. 32) 안교도는 말 봄방학 기간에 당시 재직하고 있던 비안고등학교로 수사관 셋이 찾아와 권총으로 위협하여 집으로 이동해서 안 이 보낸 편지를 압수했다. 그리고 안 기부 안동분실로 끌려가 조사받고 다음날 귀가하였다 며, 1개월 후인 말 안기부 에서 학교로 연락이 와서 그날로 서울 세종호텔로 와서 안기부 수사관에게 남산분실로 연행당해서 송치될 때까지 계속 안기부에서 조사받았다 고 진술하였다. 33) 3) 기타 참고인들의 진술 오주석의 처 심 은 서울지방법원 공판에서 남편 오주석이 금년(1983) 3월경에 연 행되었다 고 진술하였고, 34) 송 의 처 이 은 송 이 연행되었고, 모 김 도 교통사고로 테헤란 병원 입원 중이었던 연행되었다 고 진술하였고, 35) 진실화해위원회원회 조사에서 피해자의 아들 오 은 초순 개강 후 얼마 안 돼서 어머니 심 의 전화로 아버지 오주석이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 진술하 였고, 36) 피해자의 처조카인 이 는 오주석이 연행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으며 그 래서 오주석이 계약한 건물에 대한 잔금 처리를 대신 처리했으며 3. 중순경 춘천시내에 오주석이 연행되었다는 소문이 났다 고 진술하였다. 37) 30) 공판기일과 달리 3명의 수사관에 의하여 강제연행된 것으로 진술하였다. 31) 진술청취. 32) 전화청취(미국거주). 33) 진술청취. 34) 서울지법, 4차 공판( ). 35) 서울지법, 4차 공판( ). 36) 진술청취. 37) 진술청취.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35

36 제4권 4) 수사관들의 진술 당시 피해자를 연행한 안기부 수사관 이 는 진실화해위원회원회 조사에서, 연행날 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오주석을 춘천에서 연행하여 장기 구금한 것 같다며 장기 구 금은 우리가 반성할 일이다. 중간에 귀가시키거나 하면 증거를 없앨 수 있어 장기간 구금 하는 경우가 있었다 고 진술하였다. 38) 송 을 연행한 안기부 수사관 이 은 당시 피의자 송 을 아침에 회사에서 구속 영장 없이 연행하였는데, 50여 일 동안 안기부에 구금한 것은 당시 수사관행상 어쩔 수 없는 일로 이는 검찰이나 법정에서도 용인된 부분이라고 진술하고, 다른 공동피의자들도 비슷한 기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고 진술하였다. 39) 안기부 수사관 박 는 자백을 받을 때까지 장기 불법구금을 하였다 며, 간첩사건의 경우 순순히 자백하는 경우가 없고 조총련 사건은 증거도 빈약하여 추궁하여 자백을 받 으려고 장기 구금을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40) 김 를 조사한 안기부 수사관 임 는 간첩 수사는 48시간 내 구속영장 받아서 조 사하기 어렵다. 자백을 바로 하는 경우가 없다, 그래서 영장 없이 데려오고 조사하는 것 이 관행이었다 고 진술 41) 하여 영장 없이 연행하고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장기간 불 법구금상태에서 조사하였음을 시인하였다. 김 를 조사한 안기부 수사관 김 는 사건 수사 초기에 검찰과 협의를 하고 수사 진행하면서도 상의를 한다 고 진술하였고 42), 송 을 조사한 안기부 수사관 우 은 피의자를 연행해 왔을 때 검찰에 연락한다, 직접 가기도 하고 검사가 부 내로 오기도 하 여 사건에 대해 협의를 한다 고 진술 43) 하는 것으로 볼 때, 검찰도 송치 이전에 사건에 대 해 인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안기부의 불법구금 사실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5) 기타 확인서 공동피고인이었던 송 의 출근표 (동아건설산업주식회사)에 의하면 44), 란에 08:30 행불, ~4. 25.까지 무단결근, 자로 휴직 처리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38) 진술청취. 39) 진술청취. 40) 진술청취. 41) 진술청취. 42) 진술청취. 43) 진술청취. 44) 공판기록 송 출근표 ( , 서울지법, 5차 공판)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3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송 에 대한 인지동행보고 에 의하면 45) 송 의 연행일자는 :00, 연행장소 는 동아건설 부평공장 기계과 사무실로 되어 있다. 위 인지동행보고 를 작성한 수사관 이 는 동행한 날에 이렇게 범죄사실을 상세히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연행일 전에 데리고 와서 조사를 했을 거다. 당시에는 동행일에 인 지동행보고를 쓰지 않는 경우도 있다 보다는 앞서서 연행한 게 맞는 거 같다 고 진 술 46) 하였다. 6) 소결 참고인들의 진술, 수사관들의 진술, 확인서 등을 종합하면 안기부에서 작성한 인지동행 보고 등은 허위작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피해자의 연행시점은 이며 사전구속 영장은 발부되어 집행되었으므로 피해자는 58일 동안 영장 없는 불 법구금상태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음이 인정된다. 당시 공동피고인이었던 김성규(59 일간: ~5. 7.), 송 (60일간: 3. 9.~5. 7.), 안교도(약 40일간: 3월 말경~5. 7.), 김 (60일간: 3. 9.~5. 7.)도 영장 없이 안기부에 연행되어 구속영장이 집행될 때까지 약 60 여 일 동안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이 불법구금은 형법 제124조 불법체포감금죄에 해당하며 47),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확정판결을 받을 수 없으나 불법구 금이 확인된 만큼 형사소송법 제420조7호, 제422조 소정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수사검 사는 이런 범죄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나. 가혹행위 여부 1) 피고인들의 진술 가) 피해자 진술 피해자는 서울지방법원 5차 공판에서 연행되어 10일간 수사 관으로부터 침대봉으로 무수히 구타당하면서 안 으로부터 간첩지령을 받았다고 자백 하라고 강요받았다. 단순한 친척 상봉에 불과하다고 간첩지령 자백을 완강히 거부 부인 45) 수사기록 인지동행보고 ( ), 2225쪽. 46) 진술청취. 47) 형법제124조(불법체포, 불법감금) 1재판, 검찰, 경찰 기타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보조하는 자가 그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을 체포 또는 감금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 정지에 처한다.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37

38 제4권 하였더니 비눗물을 코에 붓는 등 고문을 당했다, 5월 초쯤 진술서 초안을 내놓고 베끼 라고 하여서 이를 베끼는 중 간첩 구절을 고쳐 쓰니 고문을 다시 가하여 수사관 작성 초 안 그대로 작성하였다, 구치소에서 검사가 신문을 할 때 친척을 찾아간 것이지 간첩활 동이나 포섭당한 사실이 없음을 털어놓고 공정하게 수사하여 억울함을 없애달라고 탄원 하였지만, 도리어 안기부 수사관이 (구치소로) 5~6차례 내소하여 검사조서대로 시인하 지 않으면 다시 고문을 한다고 위협한 사실이 있다, 간첩이 아님을 극구 주장하고 수사 관이 마음대로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 날인을 거부했더니 수사관들이 삥 둘러싸고 위 협하면서 전신을 묶고 비눗물을 또 붓겠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날인을 하였다, 검찰에 송치된 후에도 안기부 수사관이 5~6차례 구치소로 찾아와 안기부에서 한 것처럼 시인하 지 않으면 다시 안기부로 가서 고문하고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처럼 처리할 것 이라며 위 협했다 고 진술하였고, 당시 법원에 제출한 항소이유서, 상고이유서에도 같은 취지의 글 을 기재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도 연행 후에 안기부 수사관들이 며칠 동안 잠을 재우지 않 고 자술서를 쓰라고 강요해서 외울 정도로 작성을 많이 하였고, 졸려고 하면 옷을 모두 벗게 하고 벌을 서게 하였다, 주심문관 심 이 안 이 너를 포섭하지 않았냐는 질 문에 아니라고 대답하자 옷을 벗으라고 하더니 엎드려뻗쳐를 시킨 후에 군용침대 각목으 로 구타를 하였다, 간첩을 했다는 진술이 사실이 아니어서 진술을 바꾸겠다고 하자 안 기부 수사관이 손과 발에 몽둥이를 끼워 책상사이에 매다는 통닭구이 고문을 하고 얼굴 에 수건을 덮고 물을 붓는 물고문을 하였다, 검찰 조사 직전에 안기부 수사관이 구치소 로 찾아와 검사조서에 순순히 인정하고 날인하지 않으면 안기부에 다시 끌려갈 거라고 협박하였다 고 진술하였다. 48) 나) 공동피고인들의 진술 공동피고인 김성규는 서울지방법원 5차 공판에서 회사에서 안기부로 연행되어 굵은 각목으로 구타당해 정신을 잃고 깨어나면 각목을 무릎에 끼어 꿇어앉게 한 뒤 위에서 힘껏 내리밟는 고문과, 협박을 받아 수사관들이 작성한 조서를 베 껴 쓸 수밖에 없었다 고 진술하였고, 같은 송 은 안기부로 연행되어 유서를 강제로 작성하고 수건을 얼굴에 덮고 물을 붓기, 책상 사이에 올려놓고 뺑뺑 돌리기 등의 고문을 당하였으며 무릎 사이에 48)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3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각목을 넣고 비틀고 머리를 책상에 짓찧는 등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하였 다 고 하면서 검찰 조사 시, 서명, 날인을 거부하였더니 수사관이 들어와 고문을 해서 실 신하였다 고 진술하였고, 같은 김 는 서울고등법원 2차 공판에서 수사기관에서 엄한 조사를 받 고 성심병원에 입원한 사실이 있다 고 진술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김성규는 안기부 수사관들이 안 을 조총련인지 알고 만 나지 않았느냐고 계속 물어봐 부인하자 야전침대 각목으로 구타하고 그 각목을 무릎 뒤 쪽에 끼우고 허벅지를 밟고, 잠을 계속 안 재워서 너무 괴로워 수사관들이 원하는 대로 진술서를 수십 번 써주었다, 사형을 시켜버리겠다, 가족들도 조사하겠다는 협박을 당해 서 수사관이 불러주는 대로 진술서를 그대로 베껴 썼다 고 진술하였고, 검찰 수사단계에서 검찰에서 조사받은 당시 안기부 수사관이 입회하여 겁이 났었다 고 진술하였고, 49) 송 은 안기부에서 물고문, 통닭구이 고문, 구타로 인해 하혈(항문에 피가 고이고 변을 볼 때 핏덩어리가 나옴)을 수차례 당하였고 그로 인해 빈혈로 여러 차례 쓰러졌다, 부인이 끌려와 옆방에서 옷 다 벗기고 수모를 당하니 빨리 자백하라고 협박당하고 유서 를 강제로 작성하였다 고 진술하였고, 검찰에서 검찰 조사 시 검사에게 억울하다고 하자 서기가 안기부 서류만 보고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해서 서명, 무인을 거절했더니 검사와 서기는 나가고 안기부 수사관들이 들어와 말 못 할 고문을 당해 실신했는데, 깨어보니 손가락에 인주가 묻어 있었다 며 강 제 날인을 주장하였고 너무 억울해 법정에서 피신서에 서명 무인한 적이 없다고 말했 다 고 진술하였고, 50) 안교도는 안기부에서 손, 발, 각목에 의한 구타로 기절하였다, 잠을 못 자게 해서 꿈 속같이 멍해진 상태에서 진술서를 작성하였다 고 진술하였고, 51) 한글의 쓰기, 읽기가 어려웠던 김 는 안기부에 연행된 후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물어봐서 답을 잘 못하니까 때렸다. 뭘 쓰라고 했는데 한글을 잘 몰라 쓰지 못하니까 수 사관이 구두를 벗어서 때렸다. 그 이후로는 뭐 쓴 기억은 없다, 구두로 맞은 기억이 많 은데 구둣발에 맞아 기절을 해서 깨어보니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고 진술하였다. 52) 49) 진술청취. 50) 전화청취(미국 거주). 51) 진술청취. 52) 진술청취.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39

40 제4권 2) 참고인들의 진술 재소자였던 윤 은 서울고등법원 2차 공판에서 복역 중에 송 을 알게 되었는데 수사기관에서 맞아서 몸이 안 좋다고 송 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처음 며 칠 동안 일어나지도 못하고 모든 거동을 할 수 없었으며 대소변 보러 가는 것도 못 보았 다 고 증언하였다. 피해자의 처조카인 이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피해자를 교도소에서 면회할 때 피해자로부터 수사관들이 잠도 못 자게 하고 무지하게 때려서 괴로움에 벽에 머리를 부딪쳐 죽고 싶었다, 검찰 조사 때도 안기부 수사관이 찾아와 협박하고 괴롭혔다 는 이 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53) 김 의 주치의였던 나 은 안기부 수사관들이 간첩혐의가 있다는 김 를 병원 으로 데려와 진찰 및 입원을 시켰는데 당시 김 는 혀의 강직과 사지마비의 전환장 애 54) 증상이 보였다, 치료상 심층 인터뷰가 필요한데 상위스텝에서 너무 깊숙이 인터 뷰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소견서에 고혈압이나 다발성치핵이 있는 걸로 보아 다 른 과 검진도 받은 거 같다 고 진술하였다. 55) 당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보였던 손 은 피의자들이 검찰 조사 시 진술을 거부하거 나 부인할 경우 안기부 수사관을 불러 협조를 구하기도 한다 고 진술하였다. 56) 3) 수사관들의 진술 김 수사관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오주석 사건에 참여한 기억이 전혀 없으며, 위 사건 수사기록 중 송 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의 본인 서명도 본인 글씨가 아닌 것 으로 보이며 조총련 사건은 조사해본 적도 없고 사건을 조사할 때 가혹행위를 한 적도 없 다고 진술하였다. 57) 우 수사관은 김 수사관이 송 을 신문했는데 신문과정에 트러블이 있었는 지 여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가혹행위를 한 적이 없다 고 진술하였다. 58) 53) 진술청취. 54) 나 (중앙대학교 용산병원 신경정신과 의사)에 의하면, 전환장애란 생리학적인 취약점에 과도한 스트레 스가 가해졌을 시 신체, 운동기능에 이상이 오는 장애를 말한다. 55) 진술청취 56) 진술청취. 57) 진술청취. 당시 공동피의자인 송 주신문관. 58) 진술청취. 당시 공동피의자인 송 부신문관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4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김 수사관은 김 가 안기부에서 조사받다 문제가 생겨서 당시 안기부와 가까운 거리에 있던 중대 부속 성심병원에 입원하였는데 그때부터 김 를 담당하여 임상신문 을 진행하였기 때문에 자신은 가혹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진술하였다. 59) 임 수사관은 (김 의 임상심문은) 의사 소관이 아니기 때문에 임상 심문의 여 부를 묻거나 의사, 가족, 변호인 입회 없이 진행하였다, 김 가 한글 사용에 어려움이 있어 진술서는 작성하지 않았고 피신서만 수사관이 작성해 변호인이나 가족의 참관 없이 읽어주어 피신서 확인을 하였다 고 진술하였다. 60) 박 수사관은 처음 자술서를 작성하게 하려고 녹취를 할 때는 며칠씩 잠을 재우지 않고 조사를 하기도 하지만 가혹행위나 고문은 절대 없다 고 진술하였다. 61) 안 수사관은 피의자들이 인신이 장기간 구속되어 있으니까 집에도 귀가하지 못하 고 자유롭지 못해 패닉 상태에 빠지면 자기가 하지 않은 일도 했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 다 고 진술하였다. 62) 심 수사관은 나는 고문이나 가혹행위를 한 사실은 없으나 수사관마다 성격과 수 사 요령이 달라서 뺨을 때리거나 한 수사관이 있다 고 일부 가혹행위 가능성에 대해 진 술하였다. 63) 이 수사관은 (당시 피의자 김 의 소견서를 보니) 당시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 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증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조사를 하다 보니 이런 일(김 가 수사 받던 중 입원)이 생길 수도 있었다, 증거가 없이 수사해야 하니까 소리는 크게 지른다. 수사관마다 욱하는 사람들이 윽박지르거나 몇 대 때릴 수 있다. 구타 등은 있을 수 있지만 고문은 없었다 고 진술하였다. 64) 안 수사관은 이틀 정도 말을 걸지 않아 심리적 압박을 주었다, 65) 이 수사관 은 일반적으로 수사하는 데 따귀 정도는 때린다, 66) 이 수사관은 수사관마다 어느 정도의 구타는 있을 수 있다. 고문까지 가느냐 안 가느냐의 차이이고 피의자 중 진술 번 복이 심한 경우는 수사하는 데 애를 먹는다 67) 고 진술하였다. 59) 진술청취. 당시 공동피의자인 김 의 주신문관. 60) 진술청취. 당시 공동피의자인 김 의 부신문관. 61) 진술청취. 당시 의견서를 작성. 62) 진술청취. 63) 진술청취. 신청인 오주석의 주신문관. 64) 진술청취. 신청인 오주석의 부신문관. 65) 진술청취. 당시 공동피의자인 김성규 부신문관. 66) 진술청취. 당시 공동피의자인 김성규 주신문관. 67) 진술청취. 당시 공동피의자인 안교도, 이 부신문관.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41

42 제4권 이 수사관은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이후에는 검찰 송치 시 대기 중이다가 검사가 부르면 피의자가 번복하는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할 수도 있는데 본인이 그런 적은 없다, 이, 임, 우 수사관 등은 피의자가 진술을 번복하거나 하면 검찰에서 안기부에 연락을 해서 설득을 하라고 한다. 그러면 안기부에서 피의자를 면회하여 안기부에서 진술한 정황 등을 설명하면서 검찰에서도 동일하게 진술하라고 설득하는 경우가 있다 는 취지의 진술을 하였고, 우 수사관은 송 을 만나러 간 적은 없어서 송 이 강제로 무인을 하였는지의 여부는 모르겠지만 모르는 일이니 부인하기도 어렵다 고 진술하였다. 4) 기타 확인서 공판기록에 첨부된 김 의 소견서 68) (나 발행)에 의하면 김 는 , 4. 6., 2회에 걸쳐 본원[중앙대학교 의과대학부속 성심병원] 응급실에 내원하여 치료한 후 본원 신경정신과에 입원함. 입원 당시 불안, 불면증, 식욕부진, 흉부압박감, 심 계항전, 두통, 현기증, 시력감퇴, 항문출혈 및 혀의 강직과 사지마비 증상으로 본태성 고 혈압, 다발성치핵, 전환장애의 임상진단하에 치료한 후 퇴원함 이라고 기록되 어 있다. 당시 중앙대학교 부속 성심병원 의사 나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안기부 수사 관들이 김 가 간첩혐의가 있다고 하면서 응급실로 데리고 온 것 같다. 혀의 강직과 사 지마비 증상이 나타났으며 이는 간첩혐의로 조사받아 스트레스가 상당해서 나타날 수 있 는 증상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69) 5) 소결 수사관들은 피해자 및 공동피고인들에 대한 가혹행위 사실을 직접적으로 인정하고 있 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피해자 및 공동피고인 등은 재판과정부터 진실 화해위원회 조사에 이르기까지 안기부 남산분실에서 구타, 물고문 등의 고문과 가혹행위 를 당하여 허위자백하였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으며, 참고인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피 해자 및 공동피고인들은 안기부에서 가혹행위를 당하였고, 검찰 수사과정에서도 수사관 들의 압박이 있었던 점을 인정할 수 있다. 특히 공동피고인 김 에 대한 임상심문은 임 상심문 여부에 대한 의사의 소견 없이 심문을 진행한 사실이 있고, 같은 송 은 검찰 68) 공판기록 김 소견서 ( , 서울지법, 5차 공판). 69)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4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조사과정에서 안기부 수사관에게 상해를 입었고 기절하였던 중 강제날인 당하였다고 진 술하였다. 위 가혹행위는 형법 제125조 폭행가혹행위죄 70) 에 해당하고 형사소송법 제420 조7호, 제422조 소정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4. 범죄사실 조작 여부 피해자는 안기부 남산분실에서 범죄사실에 대하여 모두 자백하였고, 서울지방검찰청에 서는 일부 범죄사실에 대해 시인하였는데, 법정에서부터 모두 부인하는 취지의 진술을 하였다. 법원에서 채택한 피해자에 대한 유죄증거는 오주석, 김 의 일부 법정진술, 증인 김, 신, 하, 이, 안 의 각 증언, 검사작성의 오주석, 김 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 사법경찰관 작성의 김, 신, 하, 이 의 각 진술조서, 사법 경찰관 작성의 각 수사보고서와 북송 및 연고자명단 등본, 영사증명서, 압수된 여권, 사 진, 책자 등이다. 가. 간첩방조 여부 1) 범죄사실의 요지 피고인 오주석은 슈퍼마켓체인 연수 차 도일하여, 재일 북한공 작원인 안 을 만나 교양을 받고 춘천시와 춘천 근교 군부대 현황, 춘천 내 월북가족 현황 등을 파악하라는 지령을 받고 춘천 내 공공기관, 춘천지역 댐 이름 등에 대한 국가 기밀을 누설함으로써 위 안 의 간첩행위를 방조하였다는 것이다. 2) 관련증거 가) 유죄증거 유죄증거는 피해자의 법정진술과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 김, 신, 하 의 법정진술 및 사법경찰관 조서, 영사증명서 등이다. 검사작성의 피의자의 신문조서는 안기부의 고문 및 가혹행위를 가한 수사관이 피해자를 위협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것으로 안기부에서의 심리적 압박상태가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협박행위 70) 폭행가혹행위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5년이다.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43

44 제4권 로 볼 수 있어 임의성에 의심이 있어 증거능력 인정에 문제가 있다. 나) 피해자 진술 피해자는 1차 공판( )에서 안 으로부터 대남비방 및 북괴 우월성에 대한 교양을 받은 사실이 없으며, 안 에게 춘천 군부대 현황에 대해 말한 적도 없고, 안 으로부터 지령을 받은 적도 없다, 5차 공판( )에서 침대봉으로 구타를 당 하면서 안 으로부터 간첩지령을 받았다고 자백하라고 강요받은 사실이 있다 고 진술 하였다. 항소이유서에서도 연수 차 도일시 김 의 집을 방문하기 전까지 조총련인 줄 알지 못했고 그래서 육친의 정으로 그 집을 방문하였지 선전교양이나 북괴찬양에 대한 말을 들은 적도 없고 안 에게 국가기밀을 누설하지도, 교양과 지령을 받은 사실도 없다 고 진술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안 의 집에 방문해서 김일성 사진을 목격하 고 안 이 조총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몇 십 년 만에 만나는 친척이라 안부 묻고 2시간 만에 헤어졌다. 그 시간 안에 어떻게 저런 이야기들(교양, 지령내용)이 다 가능한지 모르겠다, 당시 내 재산이 10억이 넘었는데 금품을 받고 지령을 받고 포섭 을 당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고 진술하였다. 다) 참고인 진술 유죄증거로 채택한 김, 신, 하 71) 의 사법경찰관 작성의 진술조서의 요지는 김 는 오주석이 연수소에서 50대 남녀를 만나고 있다가 인사를 시켜주어 인사를 하 였다 72), 신 은 연수 기간 중 오주석, 하 과 같은 방을 사용했는데 오주석 씨가 50대 남자와 40대 여자를 만나는 것을 보았고 그날 관광 후 24:00에 돌아와 보니 하 혼자 잠을 자고 있었다 73), 하 은 오주석, 신 과 같은 방을 사용했는데 오주석의 친척 되는 사람이 왔다는 말을 듣고 50세 전후로 보이는 중년부부와 오주석씨 가 나가는 것을 보았다 74) 고 진술하였다는 내용이다. 김 는 서울지방법원 공판에서 오주석이 친척을 만난다고 나가서 자고 들어왔는지 71) 김, 신, 하 은 당시 오주석과 일본 연수를 함께 간 일행들이다. 72) 수사기록 김 진술서 및 진술조서 ( ), 1486~1501쪽. 73) 수사기록 신 진술서 및 진술조서 ( ), 1637~1665쪽. 74) 수사기록 하 진술서 및 진술조서 ( ), 1666~1698쪽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4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잘 모르겠고 밤에 자는데 누가 와서 자다 말고 일어나 인사를 받은 기억이 난다 75) 고 증 언하였고, 신 은 오주석이 친척을 만난 날과 자고 온 날을 기억하지 못한다 76) 고 하 였고, 하 역시 약 50대로 보이는 부부인 듯한 사람들이 오주석을 찾아왔으나 오주석 이 그 친척 집에 찾아가거나 자고 왔는지는 모르겠다 고 증언하였다. 77) 김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안기부 수사관이 오주석이 40, 50대 남녀와 만나 지 않았냐 하고 흐름을 일러주어 그대로 작성하였다 고 진술하였고, 78) 신 은 오주석 과 같은 방을 사용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오주석과 같은 방을 사용했다는 당시 기숙사 방 배치도는 수사관이 이미 그려진 걸 보여줘서 그렇다고 했고, 법정에서 오주석을 찾아 온 50대 부부를 소개받았다는 건 그렇게 질문을 해서 부부인지 잘 모르면서도 그렇게 증 언했다 고 진술하였고, 79) 하 은 일본 연수 시 오주석과 같은 방을 사용했는데, 오주 석이 만난 사람들이 동창인 줄 알고 있었다며 왜 수사기록의 본인진술에 그들을 부부라 고 진술했는지 모르겠다 고 진술하였고, 80) 장 은 일본 연수 시 본인이 오주석과 같 은 방을 사용했고 하, 신 과는 같은 방을 사용하지 않았다 고 진술하였다. 81) 라) 기타 증거 안 에 대한 영사증명서는 피고인이 증거로 동의하지 않았고, 원 진술자를 신문한 기록도 없으므로 법원은 형사소송법 제315조에 의하여 증거능력을 인정한 것으로 보이나 이는 위법한 증거채택 82) 이다. 증거능력의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피해자의 범죄사실을 단 독으로 입증하기에 부족하고, 주일본대한민국대사관 영사(1등서기관 박 ) 발급의 영사증명서로써 안 은 후꾸시마현 조선 초, 중급 학교 교장이며 반국가단체 인 조총련의 구성 간부로서 동 단체에 지도적 임무에 종사하는 자 라고 기술되어 있다. 국가정보원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안 의 조총련 인물록 등재 여부 확인서류 는 발견되지 않았다 83) 고 하고 안기부가 제출한 안 에 대한 사실조사결과보고( ) 공판기록 김 증인신문조서 ( , 서울지법 3차 공판). 76) 공판기록 신 증인신문조서 ( , 서울지법 3차 공판). 77) 공판기록 하 증인신문조서 ( , 서울지법 3차 공판). 78) 진술청취. 79) 진술청취. 80) 진술청취. 81) 진술청취. 82) 서울고법 2006노2317( ) 판결, 영사증명이 영사가 직무상 증명할 수 있는 사항에 관하여 작성한 문서로 인정될 수 없다 며 그 증거능력을 부인하였다. 83) 국정원 회신문(수삼-797).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45

46 제4권 11.) 84) 는 안 에 대한 동향 및 신상관계 지실자가 없어 구체적인 사상 파악이 곤란하다 는 내용으로 안 이 후꾸시마 조총련 초중급학교 교장 재직 중이라는 경력만을 인정하 고 있다. 3) 소결 법정에서의 진술은 안 을 만난 사실 외에는 부인하고 있으며, 수사보고서 및 북 송 85) 및 연고자 명단등본, 영사증명서, 압수된 여권 등은 범죄사실을 독자적으로 입증하 기에 부족하다. 김, 신, 하 에 대한 사법경찰관 작성의 진술조서 및 법정진술 또한 피해자가 친척으로 생각되는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 이외에는 내용이 없어 피해자의 진술이 가혹행위로 인하여 허위의 자백일 가능성이 높은 한 독자적으로 피해자의 유죄의 증거로 쓰기에 부족하고 다른 증거는 없다. 특히 영사증명서의 작성에 대한 법적 근거 86) 뿐만 아니라 내용 또한 근거가 없거나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였을 가능성이 있어 모두 믿 기 어렵다. 결국 피해자의 간첩방조의 점은 유죄의 증거가 없이 내려진 판단으로 보인다. 나. 국가기밀 탐지 여부 1) 범죄사실의 요지 및 유죄증거 피해자의 범죄사실 8항, 10항, 11항, 12항은 모두 피고인 오주석이 재일 북한공작원 안 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그 목적수행을 위하여 춘천지역 검문소 위치 등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하여 간첩하였다는 것이며, 유죄증거는 검사작성 피의자신문조서, 이 과 안 의 법정증인 및 사법경찰관작성의 각 진술조서, 수사보고서와 책자 2이다. 2) 관련 증거 가) 피해자의 진술 검사작성 피의자신문조서는 앞에서 정리한 대로 증거능력에 의심이 가고, 피해자도 서 울지방법원 공판에서 혐의사실 모두를 부인하였다. 84) 국정원 회신문(수삼-49). 85) 안 의 처남인 김, 김 의 북송관련 명단. 86) 자료입수보고.,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입수한 주일본국대사관의 회신문에 따르면, 영사증명서 제도가 30년 전에 있었는지 여부는 법령에 근거가 없어 확인할 수 없으며, 영사가 서류를 직 접 작성하여 발급해주는 영사증명서 제도는 없다고 하였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4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피해자는 서울지방법원 1차 공판에서 안 에게 지령을 받은 사실도 없고 목적수행을 위해 검문소 등의 위치, 의료보험에 관한 해설 설명문(월간 새마을 금고 수 록), 방위지원위원회 내규책자, 군납에 관한 사항 등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한 적이 없다 고 진술하였고, 항소이유서 및 상고이유서에서도 마찬가지로 단순히 마을금고에서 주는 것(월간 새 마을금고 )을 집에 비치 보관한 것이다, 방위(지원)위원회 내규책자는 배부 받아 가지 고 있었는지도 알지 못하였다, 이 과의 대화는 군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것이 아 니라 일반적 대화였다 고 범죄사실을 부인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는 서울을 자주 다녀서 검문소 위치를 잘 알고 비행장 등 군 부대는 춘천 사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며 30년을 넘게 춘천에서 살았기 때문에 알 수 밖에 없는 내용이다, 마을금고 이사여서 그냥 나누어준 책을 보관한 것이다, 내규책 자라는 것은 본 적도 받은 적도 없다, 이 과 친해 자주 사무실에 놀러가서 사업, 일 상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나누었는데, 안기부 조사 시 평생 자술서에 친구관계에 이 을 썼더니 이렇게 조작된 것 같다 라고 진술하였다. 나) 참고인 및 수사관 진술 1 방위지원위원회 내규책자 수집에 대하여 춘천시 죽림동 전 동장 는 서울지방법원 4차 공판에서 검사와 피고 인의 변호인의 질문에 오주석에게 방위협의회 내규책자 등을 배포하였다, 방 위지원위원회 내규책자를 병무계 직원을 시켜 방위협의회 위원들에게 돌리라고 하였다, 내규책자에는 비밀취급, 기밀사항이 없었다 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당시 피해자인 피고 인 오주석의 질문에는 방위지원위원회에 관한 책자를 위원들에게 직접 주지 않고 병무 계 직원을 시켜 돌린 것이고, 이를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며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배포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일부 사실을 번복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봄 안기부 직원이 찾아와 오주석에 대한 동향 관찰을 지시하고, 여름 오주석의 방위협의회 활동, 모임 활동 등에 대한 동향 관찰을 지시 하여 오주석 동향에 대해 지속적으로 보고하던 중 안기부 직원이 방위협의회 내규책자를 만들라고 하여 병사계 직원을 시켜 내규책자를 만들어놓자 안기부 직원이 그것을 가져갔 다, 오주석에게 그 책자를 주거나 배포한 적이 없다, 서울지방법원 증언 ( ) 에 대해 증언내용(오주석에게 위 내규책자를 배포하였다)은 사실이 아니며 그렇게 진술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47

48 제4권 한 이유는 법원에 출석하기 전 안기부 강원지부 담당직원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증언을 잘하고 오라고 해서 방위협의회에 관한 범죄사실을 만들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안 기부 직원의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어서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고 진술하였다. 87) 당시 방위협의회 위원이었던 장, 죽림동 동장이었던 88), 89) 은 진실화 해위원회 조사에서 위와 같은 내규책자를 제작하거나 본 적이 없다고 진술하였다. 당시 안기부 수사관 이 는 방위지원위원회 내규책자에 대해 보강증거가 필요해서 무 리를 한 것 같다. 내규책자를 오주석이 수집했는지 확인을 하지 못한 것 같다. 자백이 있으 니까 동장에게 내규책자에 대해 확인하고 그렇게 증거를 수집한 것 같다 고 진술하였다. 90) 2 군납 납품 관련 내용 탐지 수집에 대하여 이 은 사법경찰관 작성의 진술조서에 군납은 군부대를 통하지 않아 신경이 쓰인 다, 2군단 본부와 주로 계약을 한다, 군납 사업이 힘들다, 군납은 KS 마크가 있는 제품만 군납하게 되어 있다 는 이야기를 오주석과 나누었다고 진술하였으나 91), 서울지방 법원 공판에서는 오주석과 나눈 군납 이야기는 직업에 대한 애로사항의 토론 정도에 불 과한 이야기였다 고 증언하였다. 92)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도 오주석이 군납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고 군대에 KS 마크 제품을 납품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안기부 수사관이 어떤 제품을 납품하냐고 물 어서 KS 마크 제품이라고 답했는데 이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93) 수사관 이 도 참고인 이 에 대한 조사에 대해 수사가 완벽할 수는 없다. 사실이 확대되어 정리될 수는 있었을 것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94) 다) 기타 확인서 및 증거물 유죄증거로 채택된 수사보고 95) 는 의암검문소가 실재하고 춘천시 근화동에 미군부대가 주둔한다는 내용의 실재 사실에 대한 확인서가 첨부된 보고서와, 또 다른 수사보고 96) 는 87) 진술청취. 88) ~ 동안 죽림동 동장 재직. 89) 부터 죽림동 동장 재직. 90) 진술청취. 91) 수사기록 이 진술서 및 진술조서 ( ), 1870~1886쪽. 92) 공판기록 이 증인신문조서 ( , 서울지법 3차 공판). 93) 진술청취. 94) 진술청취. 95) 수사기록 수사보고 ( ), 1905쪽.. 96) 수사기록 수사보고 ( ), 1899쪽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4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오주석의 춘천새마을금고 이사 재직 사실을 확인하는 내용으로 위 범죄사실들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 내규책자 수집과 관련된 수사보고 97) 는 오주석의 죽림동 방위협의회 의원 재직 사실만을 확인하는 내용일 뿐 오주석이 내규책자를 수집하였는지 여부는 판단할 수 없다. 또한 유죄증거인 책자는 월간 새마을금고 (새마을금고연합회 발행) 1981년 4월호 의 의료보험에 관한 해설(Ⅰ) (74-76쪽) 이라는 설명문과 춘천 죽림동 방위협의회 내규 책자이다. 수사보고들은 모두 피해자의 자백을 보강하는 증거들로 범죄사실을 독자적으 로 증명할 수 없고 춘천 죽림동방위지원위원회 내규책자는 공식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닌 안기부 수사관의 요청에 의하여 동장이 만들어 제출한 압수물에 불과하다. 3) 소결 피해자는 안기부, 검찰에서 위 범죄사실에 대하여 자백하였으나 이는 위에서 보듯 불 법구금된 상태에서 강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증거능력이 없고, 법정에서는 위 범죄사실을 부인하였다. 참고인들의 진술, 사법경찰관 수사보고와 압수 물건들은 범죄사 실을 독자적으로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유죄증거인 내규책자(증제25호)는 춘천시 죽림동 동장들과 방위협의회 위원들이 만들 거나 본 적이 없다고 진술한 점, 가 안기부 수사관의 지시에 의해 내규책자를 병 사계 직원에게 만들게 한 것이라고 진술한 점으로 보아 이는 국가보안법 위반죄 범죄수 사에 종사하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을 받게 한 것 98) 으 로 형사소송법 제420조7호, 제422조의 재심사유에 해당하며, 는 법정에서 피해자 에게 위 내규책자를 배포한 적이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 위증을 하였을 개연성이 높아 이 는 형법 152조 위증죄에 해당하며 99) 형사소송법 제420조2호 100), 제422조의 재심사유에 해당된다. 이 은 당시 피해자에게 군납과 관련해서 질문한 적이 없고 안기부 진술내용 일부도 97) 수사기록 수사보고 ( ), 1887쪽. 98) 국가보안법제12조(무고, 날조) 1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이 법의 죄에 대하여 무 고 또는 위증을 하거나 증거를 날조 인멸 은닉한 자는 그 각조에 정한 형에 처한다. 2범죄수사 또는 정보의 직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이나 이를 보조하는 자 또는 이를 지휘하는 자가 직권을 남용하여 제1항의 행위를 한 때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다만, 그 법정형의 최저가 2년 미만일 때에는 이를 2년으로 한다. 99) 형법 제152조(위증, 모해위증) 1법률에 의하여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하여 피고인, 피의자 또는 징계혐의 자를 모해할 목적으로 전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100) 형사소송법 제420조2호 원 판결의 증거된 증언, 감정, 통역 또는 번역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허위인 것이 증명된 때.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49

50 제4권 사실과 다르다고 진술하고 있어, 피해자가 군납 관련 국가기밀 탐지 수집에 대한 범죄사 실을 증명할 증거가 부족하다. 춘천 검문소 위치 등 국가기밀 탐지와 월간 새마을금고 책자 수집의 범죄사실은 피 해자가 부인하고 있고, 검사의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없고, 사법경찰관 수사보고 및 책자는 확인서 또한 객관적 사실을 보고하는 문서에 불과하여 독자적으로 범죄사실을 입증하기에 부족하다. 결국 피해자의 국가기밀 탐지 수집 범죄사실은 충분한 증거가 없이 인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 회합 통신 및 금품수수 여부 1) 범죄사실의 요지 및 유죄증거 피해자에 대한 범죄사실 2항, 3항, 5항, 6항, 13항은 피고인 오주석이 반국가단체인 조 총련의 구성원 안, 오 등과 서신 및 전화로 연락하고 금품을 수수하였다는 것이 며, 유죄증거로는 피고인 오주석의 법정진술 및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와 사법경찰 관의 수사보고이다. 2) 관련 증거 가) 피해자 진술 피해자는 이 범죄사실에 대해 안기부와 검찰 조사에서 자백하였으나 법원의 공판에서 대부분 부인하였는데, 서울지방법원 1차 공판에서 김 가 서울 고모에게 안부 전해달라며 준 사진을 받았을 뿐이며 안 이 준 2만 엔은 김 에게 돌려주었 다, 오 과 오 길이 친척이어서 만났고 오 길이 식비로 주는 2만 엔만 받았다, 오 과 통화한 일은 있으나 단순히 도착했다는 안부전화였다, 안 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없다, 안 으로부터 서신을 받았으나 바로 찢어버렸다 101) 고 진술하였고,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안 에게 받은 2만 엔은 김 에게 돌려주었다, 몇 십 년 만에 고모 오 과 오 길을 만나 그 친척의 정에 오 길이 준 돈 2만 엔을 받았다, 안 의 편지를 받아 찢어버려서 내용을 잘 모른다. 편지는 딱 한 번 받은 적이 있고 그 편지를 찢어버렸다 고 진술하였다. 101) 서울지법, 2차 공판( )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5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나) 기타 확인서 사법경찰관의 작성의 수사보고 102) 는 오주석이 안 으로부터 받은 2차 서신을 수사 기관에 적발될 것을 우려 파기하여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진술에 따라 쓰레기통의 위치 등을 확인하였다는 내용에 불과한데 피해자 자백의 증거능력이 부인되므로 이는 독자적 으로 범죄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 3) 소결 회합 통신연락 및 금품수수의 범죄사실에 대한 유죄증거는 피해자의 자백뿐이다. 따라 서 피해자 자백의 임의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위 범죄사실에 대한 증거는 없다. 나아가 피해자가 친척인 오 길로부터 일화 2만 엔을 수수한 것은 몇 십 년 만에 만난 친척 어른이 준 돈이라는 점은 인정되므로 오 길이 반국가단체 구성원이라는 증명이 없 는 상태에서 피해자가 오 길로부터 금품을 수수하였다는 사실만으로는 반국가단체 구 성원과의 금품수수를 인정하기 어렵다. 103) 수사기록에 포함된 안 발송, 오주석 수신의 편지도 판결에서 증거로 사용되지 않 았고, 서신을 파기하여 버렸다는 쓰레기통 위치를 찍은 사진과 수사보고서 역시 범죄사 실을 입증하는 증거로는 부족하다. 따라서 피해자의 반국가단체 구성원과의 회합 통신, 금품수수의 사실은 증거가 없다. 라. 편의제공 여부 1) 범죄사실의 요지 피해자는 초순 김 가( 家 )를 방문, 안 으로부터 받은 김 사진을 보여 주고 김 에게 안, 김 부부 접촉 사실을 고지하여 안 에게 편의를 제공하 102) 수사기록 수사보고 ( ), 1721쪽. 103) 대법 96도2158( ) 판결.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로부터 받는 금품의 가액 이나 가치 또는 금품수수의 목적은 가리지 아니하나, 그 구성요건상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로부터 금품을 수 수하여야 한다고 할 것이므로, 금품의 수수행위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 게 할 위험이 없는 경우에는 금품수수죄로 처벌할 수 없다. 대법 84도1796( )판결. 국가보안법 제5조 제2항의 금품수수는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 령을 받은 자로부터 그 정을 알고 금품을 수수함으로서 성립되고 그 금품수수의 목적이 무엇이건 동죄의 성립에는 영향이 없다.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51

52 제4권 였다는 것이며, 유죄증거는 피해자 및 공동피고인 김 의 법정진술, 검사의 각각 피의 자신문조서, 사진 1장이다. 2) 관련 증거 가) 피해자 진술 피해자는 안기부, 검찰에서 자백하였으나 법정진술, 항소이유서 및 상고이유서에서 김 를 만나 안 이 조총련으로 사상이 다르고 적대관계이니 친척이라도 편지 내왕을 해서는 안 되고 내왕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는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고, 진실화해위원 회 조사에서는 당시 김 를 만났으나 사진이 있어서 주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조심하 자는 이야기는 한 것 같다 고 진술하였다. 나) 참고인 진술 김 는 서울지방검찰청 조사에서 오주석이 방문해서 김 내외의 사진을 주고 본인 사진은 보여주기만 하고 다시 가져갔으며, 김 부부가 조총련으로 일본에 서 활동하고 있고 어렵게 사는 것 같다며 이런 얘기는 남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하여 조심 하자 고 진술하였다. 104) 서울지방법원 5차 공판에서 오주석을 만났을 때 남에게 절대로 말하지 말라 는 말을 들은 사실이 없고, 검사에게 조사받을 때 검사가 조서를 다 써놓고 그냥 손도장 찍으라고 해서 찍고 말았다 고 진술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오주석이 아들 만나러 가는 중에 잠시 우리 집에 온 기억이 있는데 조총련 소리는 들은 기억이 없다. 사진(증제21호)도 본 기억이 없다 고 진술하였 다. 105) 3) 소결 피해자 자백의 임의성이 부인되고 법정진술이 김 와 만난 사실은 인정하고 나머지 는 부인하는 상황, 공동피고인 김 가 검사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임의성을 부인하고 있고 김 의 법정진술 또한 오주석을 만난 사실만 인정하고 서로 조심하자는 언급 여 부 등이 있었다면 피해자의 편의제공 고의를 인정할 수 없고, 김 의 사진이 있다고 해 104) 검찰기록 김 제2회 피의자신문조서 ( ), 4203~-4205쪽. 105)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5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서 범죄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106) Ⅲ. 결론 및 권고사항 1. 결론 이 사건은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조총련 관련 친척과 수십 년 만에 만나 대화하고 전화, 편지, 금품을 주고받은 사실을 확대하여 간첩죄 등으로 유죄판결 받게 한 사건이다. 안기 부는 피해자를 비롯한 피의자들을 영장 없이 불법연행한 후 수십 일에서 60일까지 장기간 불법구금한 상태에서 고문 및 가혹행위를 통하여 피의자들의 허위자백을 받아내고, 보강 증거를 날조하는 등 위법한 수사를 거듭하였고, 검찰 수사과정에서도 안기부가 찾아가 협 박을 계속하여 간첩사건으로 조작하여 처벌받도록 한 비인도적, 반인권적 사건이다. 안기부는 피해자를 비롯한 피의자들을 영장 없이 불법연행한 점,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60일 가까이 불법구금한 점과 피해자에 대한 증거날조 및 안 가 허위증언한 것 등은 각각 형법 제125조 불법체포감금죄, 제125조 폭행, 가혹행위죄, 국가보안법 제12 조 무고, 날조죄, 형법 제152조 위증죄에 해당되며, 형사소송법 제420조2호, 7호, 제422조 가 정한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서울지방검찰청은 안기부의 위법적인 수사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치하 였고, 피의자들의 인권침해 여부 및 범죄사실에 대하여 철저히 수사하지 않고 안기부에 서 있었던 자백에 의존하여 검사작성 피의자신문조서만을 작성한 뒤 서울지방법원에 기 소하였다. 법원은 피해자 및 피고인들이 위법수사와 증거의 문제점을 호소함에도 듣지 않고, 검 사작성 피의자신문조서 상의 자백을 토대로 보강증거들을 덧붙여 중형을 선고하였다. 피 고인들의 자백을 제외한 증거들만으로는 범죄사실을 입증할 수 없으므로 결과적으로 법 원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결과를 초래했다. 106) 서울고법 74노329제4형사부( ) 판결, 단순한 대면이나 그들의 목적수행을 위한 활동과는 아무 런 관련 없이 전연 다른 의도 하에서의 모임이나 순수한 인도적인 의미에서의 도움은 반공법 제5조 소정 의 회합죄나 제7조 소정의 편의제공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53

54 제4권 2. 권고사항 위 사건에 대해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국가가 화해를 위한 조치에 대하여 다음과 같 이 권고한다. 국가는 안기부가 수사과정에서의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 증거를 허위조작한 점에 대하여, 그리고 검찰이 안기부의 위법수사를 묵인한 점, 법원이 고문 및 가혹행위에 대한 무시 및 미진한 심리에 의해 중형을 선고한 점에 대하여 피해자들과 그 가족에게 사과하 고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는 위법한 확정판결에 대하여 피해자들과 그 가족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형사소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5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별표 1. 사건 관련인 명단 구 분 성 명 조사 및 면담일시 관련성 비 고 신청인 오주석 동 사건으로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형을 선고받고 5년5 월 복역 후 출소 참고인 김성규 동 사건으로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형을 선고받음 참고인 송 (전화조사) 동 사건으로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형을 선고받음 참고인 안교도 참고인 김 동 사건으로 징역 1년6월, 자격정지 1년6월형을 선고받음 (집유 3년) 동 사건으로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형을 선고받음(집유 5년) 참고인 김 동 사건으로 구속, 불기소 처리됨 참고인 오 오주석의 장남 참고인 심 오주석의 부인 참고인 이 오주석의 처조카 참고인 안 전 춘천시 죽림동장 참고인 심 전 춘천시 죽림동장 참고인 마 전 춘천시 죽림동장 참고인 장 일본 연수단 일행 참고인 하 일본 연수단 일행 참고인 김 일본 연수단 일행 참고인 신 일본 연수단 일행 참고인 장 죽림동 방위협의회 위원 참고인 이 오주석의 지인 참고인 엄 새시대체인 이사회 회장 참고인 나 당시 김 를 진료했던 의사 참고인 전 당시 오착 서신을 안기부에 신고 참고인 장 당시 검찰주사보 참고인 손 당시 검찰주사보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55

56 제4권 구 분 성 명 조사 및 면담일시 관련성 비 고 수사관 심 인천시 계양구 수사관 이 경기도 용인시 수사관 이 서울 송파구 수사관 안 서울 서초구 수사관 김 서울 관악구 수사관 우 경기도 용인시 수사관 이 서울시 강동구 수사관 이 전북 전주시 수사관 김 경기도 군포시 수사관 임 경기도 남양주시 수사관 박 경기도 용인시 별표 2. 사건 관련인 관계도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5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보안대의 가혹행위로 인한 임성국 사망사건 결정사안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결과 임성국에 대한 국가권력의 가혹행위에 의한 사망 등 인권침 해행위가 규명되고 그에 따라 국가는 임성국과 관련자에게 사과하고 피해 배상 등 화해 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한 사례. 결정요지 가. 이 사건은 광주 505보안부대에서 최 일가 및 임성국 등이 가족 가운데 한국전 쟁 시기 월북했다가 남파된 자와 접촉하고 간첩행위에 협조하지 않았을까 의심하고 불법 적인 강압수사를 벌이다가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 이 없는 보안부대는 임성국 등을 영장 없이 불법구금한 뒤 구타, 잠 안 재우기 등 가혹행 위를 하였고, 이로 인해 임성국은 타박상, 코피, 각혈, 혈뇨 등의 상해를 입었으며, 정신적 충격으로 장애 후유증을 보이다가 약 2주 후에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위법한 공권 력의 행사로 인한 사망사건이다. 나. 이 사건 신청인과 가족 등은 사망한 임성국이 군 수사당국에 연행되어 조사받고 돌 아온 뒤 20일 만에 사망하였으나, 그 사연을 어디에도 항의하거나 하소연하지 못한 채 억 울함을 간직하며 지내왔다. 그 이유는 국가기관에 연행되어 돌아온 뒤 사망했다는 사실 을 어디에서도 믿어주지 않을 뿐더러 그 사실 자체로 인해 또 다른 피해를 받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공권력에 의한 위압감과 공포심이 우리 사회에 뿌리깊 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 피해자의 가족은 임성국이 사망한 지 십 수년이 지나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에 각각 진상규명을 신청하였으나 이마저도 신청기간이 경과하였거나 시 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결국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신청 하게 이르게 된 것이다. 전 문 사 건 라-138 보안대 가혹행위로 인한 임성국 사망사건 보안대의 가혹행위로 인한 임성국 사망사건 57

58 제4권 신청인 임성산 결정일 주 문 이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진실규명 으로 결정한다. 이 유 Ⅰ. 조사개요 1. 사건개요 가. 신청배경 사망한 임성국( 사망)은 전남 신안군 흑산면 수리(일명 대둔도)에서 태어나, 빈곤한 가정형편으로 인해 같은 마을 최 의 집에서 셋방살이를 하며 살던 중, 초경 집주인 최 일가가 간첩연계혐의로 광주 화정동에 위치한 광주 505보 안부대 방첩과에서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약 15일가량 대공관련 조사를 받게 되었는 데, 사망한 임성국도 광주 505보안부대 방첩과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약 28 시간 만에 풀려난 뒤, 1) 사촌 임 의 집에서 하루 동안 머물다 대둔도 자가( 自 家 )로 돌 아간 뒤 약 2주 후인 사망하였다. 2) 신청인 임성산(사망한 임성국의 친동생)은 국가인권위위원회에 인권침해 구제를 위한 진정을 제기하였으나 공소시효가 지났다 3) 는 이유로 각하되었다. 1) 신청인의 주장에 따르면, 임성국이 보안부대에서 조사받은 기간은 약 7일간이었다고 주장하나, 광주보안 부대 연행자 명부에는 임성국의 구금기간에 대해 :27~ :45 방면 으로 기재되어 있다. 2) 실제 사망신고는 임성국 사망 후 1년이 지난 뒤 이루어졌다. 호적등본상 임성국의 사망일자는 로 기재되어 있다. 신안군 흑산면사무소 발급 임성국의 제적등본, 참조. 한편 임성국의 사망과 관련해 흑산면과 목포지원에 기록 확인을 요청한 결과, 사망관련 자료는 모두 폐기 되었음을 확인하였다.(흑산면-4739 회신공문.) 3)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2조제1항제4호의 규정에 의해 각하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5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나. 신청요지 신청인은 친형인 임성국이 광주 505보안부대 수사관들로부터 강제연행된 후, 감금된 상태에서 고문, 가혹행위를 받고, 석방 직후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며, 진실 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라 한다)에 진실규명을 신청하였다. 2. 조사의 근거와 목적 사망한 임성국은 광주 505보안부대에서 이틀 동안 조사를 받고 석방된 뒤 약 2주 만에 사망하였다. 신청인의 주장대로 사망한 임성국이 광주 505보안부대 수사관으로부터 구금 된 상태로 조사를 받으며 구타 등의 가혹행위를 당하고, 후유증으로 인하여 사망하였다 면 기본법이 정한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사망사건으로 제2조제 1항4호 진실규명의 범위에 해당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여 국가 로 하여금 사망한 임성국과 그 가족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 가 해자에 대한 적절한 법적 정치적 화해조치, 국민통합을 위한 필요한 조치 등을 취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여 조사개시를 의결하고 조사를 진행하였다. 3. 규명과제 가. 보안대의 수사권 여부 광주 505보안부대가 민간인 신분인 임성국 등을 강제연행하여 수사를 진행하였다는데 보안부대의 민간인 수사권이 있는지 조사가 필요하다. 나. 강제연행, 불법구금 여부 광주보안부대 수사관들은 사망한 임성국을 연행하여 조사하였는데 적법절 차를 거쳤는지 조사가 필요하다. 다. 고문, 가혹행위 여부 사망한 임성국는 광주 505보안부대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받았다는 데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보안대의 가혹행위로 인한 임성국 사망사건 59

60 제4권 라. 가혹행위와 사망의 인과관계 사망한 임성국은 석방된 뒤 2주 만에 사망하였는데, 광주 505보안부대 수사관들의 구타, 전기고문 등 가혹행위로 인한 상해 및 후유증이 사망의 원인이 되었는지 조사가 필요하다. 4. 진실규명 조사방법과 경과 가. 자료조사 국군기무사령부 보존 1985년도 연행자 명부 중 임성국의 연행일자 기록(5매) 4) 연행자 명부를 통해 광주 505보안부대에서의 임성국 연행담당자 및 참여수사관, 연행일시, 조사기간 등을 확인하였다. 국가기록원 존안 최 의 광주지방법원 판결문(15매) 위 판결문을 통해 흑산도에서 발생한 흑산도 간첩사건과의 관련성을 확인 하였다. 나. 진술조사 신청인 및 참고인 등 13명, 5) 광주 505보안부대 전직 수사관 3명 6) 에 대한 진술청취를 통해 수사과정, 불법감금 및 가혹행위 여부 등에 대하여 파악하였다. 진술청취 현황은 [별표]와 같다. Ⅱ. 조사결과 1. 사건의 배경 가. 임성국과 최 와의 관계 1) 사망한 임성국의 주변 환경 사망한 임성국이 거주하였던 전남 신안군 흑산면 수리는 일명 대둔도라 불리는 곳으로, 4) 연행일자: :27~ :45 방면, 연행수사관: 변. 5) 당시 참고인 중 최, 최, 최 는 사망하였음. 6) 당시 수사관 중 변 은 사망하였으며, 강 는 행방불명되어 조사할 수 없었음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6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94km, 대흑산도에서 북서쪽으로 약 3.2km 떨어져 있 다. 대둔도는 주위에 있는 다물도, 대장도, 대흑산도, 홍도 등과 함께 흑산군도를 이루고 있으며 도목리, 오리, 수리의 3개리를 하나로 묶어 큰 섬을 이루었다는 뜻에서 대둔도라 불린다. 7) 대둔도 수리에 소재한 최 의 집에 셋방살이를 하고 있던 임성국은 최 의 도움을 받으면서 모 오, 남동생 임, 여동생 임, 임 와 함께 살다가, 사건발생 당시 임성국(당시 31세)는 모 오 와 함께 살면서 어업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었으며, 남동생 임성산은 서울에서 취업준비를, 누이 임 는 결혼하여 서울에, 여동 생 임 는 흑산도에서 혼자 자취생활을 하며 흑산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2) 1969년 흑산도 간첩단사건 임성국의 셋방집 주인 최 의 반공법 위반에 관한 광주지방법원 판결문 8) 에 의하면, 최 에게는 최, 최 두 명의 남동생이 있었으며, 이중 최 는 한국전쟁 당시 월북하여 행방불명되었는데, 최 는 1965년 당시 거주하던 흑산면 수리(대둔도)에 행방불명되었다는 동생 최 가 무장간첩 2명과 함께 남파되어 만난 사실이 인정되어 1969년에 최, 동생 최, 처 한, 이웃 오 이 각각 체포되어 최 는 반공법 제5조제1항 9), 반공법 제8조 10) 등을 적용받아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형을 받고 다른 공동피고인들은 각각 징역 1년, 자 격정지 1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당시 수사기관의 발표와는 달리 간첩혐의가 아닌 회 합, 통신과 불고지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3) 임성국 家 와 최 家 와의 관계 신청인 임성산 11) 및 사망한 임성국의 여동생 임 12) 는, 사망한 임성국을 비롯한 자 신들은 아버지가 일찍 죽어 가정형편이 매우 빈곤하여 친하게 지내던 최 의 집에서 7) 전남 신안군 흑산면사무소 홈페이지 ( 흑산면 소개 참조. 8) ) 제5조 (회합, 통신등) 1반국가단체나 국외의 공산계열의 이익이 된다는 정을 알면서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 또는 통신 기타 방법으로 연락을 하거나 금품의 제공을 받은 자는 7년이하의 징역 에 처한다. 10) 제8조 (불고지죄) 전5조의 죄를 범한 자를 인지하고 수사정보기관에 이를 고지하지 아니한 자는 국가보안 법 제9조의 례에 의한다. 11) 진술청취. 12) 진술청취. 보안대의 가혹행위로 인한 임성국 사망사건 61

62 제4권 셋방살이를 하는 등 두 집안이 긴밀하게 지내고 있었고, 1985년 이 사건 당시에는 흑산도 에는 최 의 처만 거주하고 있었는데 사망한 임성국의 모, 임성국 모두 최 처와도 역시 친분이 두터웠다고 말한다. 2. 사건의 경위 가. 수사기록상 경위 광주 505보안부대 기록 중 소환 및 연행자 명부 에 따르면, 경 최 일가는 흑산도 간첩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동생 최 와의 연계활동 혐의로 광주 505보안부 대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으며, 임성국 역시 남파복귀간첩 최 와 연계활동 혐의 로 광주보안부대 변 수사관 등에 의해 임의동행 형식으로 연행되었다. 13) 국군기무사령부, 전남지방경찰청 보안과, 목포경찰서 등에 당시 사건기록 보존 여부를 확인하였으나, 국군기무사령부로부터 1985년도 광주 505보안부대의 소환 및 연행자 명부 만을 회신 받았다 나. 참고인 진술 신청인, 사망한 임성국의 여동생 임 는 임성국을 수사한 기관은 모두 광주보안부대 라고 주장하나, 최초 흑산도에서 연행한 기관이나 수사관은 알지 못한다고 진술하였다. 대둔도 수리마을 이장이었던 김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이 동네에 최 씨 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친척이 북한에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외지에서 사람이 오면 지 서에서 이장한테 신고하라고 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네에 정보부나 보안부 대 사람이 자주 왔다 갔다 했습니다. 사실 저희는 그런 사람들이 왔는지도 몰랐는데, 정 보부 같은데서 다녀갔다 그렇게 동네에 소문이 나서 알게 되었죠. 그러다가 임성국이 최 씨네랑 친해서 보안부대에 끌려가서 조사를 받고 왔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끌려간 것을 아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저도 이장이었지만 나중에야 소문으로 알았어요 라고 진 술하였고, 14) 임성국의 마을 후배였던 문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임성국이 보안부대에 끌 려갔다 온 것은 경이었습니다. 그때가 한참 더웠을 때였습니다, 임성국이 잡혀 13) 소환 및 연행자 명부, 국군기무사령부 과거사진상규명지원T/F, )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6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갈 때는 못 봤고, 해경 배가 임성국이를 데리고 갔다는 방송을 하길래 임성국이 보안부대 에 갔다 왔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15) 한편, 당시 흑산파출소 대둔도 수리출장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조 16) 경관은 오 래된 일이라 정확히 언제, 몇 차례였는지는 기억이 없으나 임성국의 소재, 동향 등에 대 한 정보를 이장 등을 통해 수집하여 보안부대에 알려준 적이 있다 고 진술하였다. 17) 다. 수사관 진술 광주 505보안부대 박 18) 수집하사관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연행한 사람의 성별과 나이는 기억나지 않으나, 제가 분견대장 지시로 관련자를 장 과 함께 한 번 광 주 505보안부대로 수송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변 로부터 수송하기 며칠 전 연락이 와 언제 피의자를 수송한다고 연락받고 나서 약속한 당일 목포항에 나가 대기하였다가 흑산 도에서 온 연행자 19) 를 변 로부터 인계받아 함께 광주 505보안부대로 수송하였던 것 같습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20) 3. 사건 조사결과 가. 국군 보안부대 21) 의 민간인 수사권 여부 국군 보안부대가 군법회의에 재판관할권이 없는 민간인을 수사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 다. 광주 505보안부대 수사관들이 민간인인 임성국 비롯하여 최, 최, 최, 최 을 연행하여 사안에 따라 15일 정도 조사하였는데, 보안부대의 민간인 수 15) 진술청취. 16) ~ 대둔도 수리출장소장으로 재직. 17) 진술청취. 18) 박노구(중사)는 당시 505 보안부대 산하 목포분견대에서 근무하고 있었으며, 임성국(흑산면 수 리에서 연행), 최삼두(목포시 용해동에서 연행)와 최난초(무안군 망운면에서 연행)를 연행하였다. 19) 국군기무사령부에 보존되어 있는 소환 및 연행자 명부 에 의하면 흑산도에서 연행된 연행자는 임성국이 유일하다. 20) 진술청취. 21) 보안사는 원래 1945년 미군정청법령 제28조에 의거 설치된 국방사령부 내의 정보과로 첫 출발하여 그 뒤 1947년 조선경비대가 창설되자 그 예하 정보처로 개편되었고 1948년 국군이 창설되면서부터는 국방부 직 제에 따라 특별조사대로 편제되었다가 한국 전쟁 중인 육군본부 직할부대로 독립하여 '육군 특무부대'라고 불렸다. 그 후 제2공화국 하에서는 '방첩대'로 개칭되었고 1977년 9월경 구 국군보안부대 령(대통령령 제8704호)이 공포됨에 따라 비로소 육 해 공군 방첩대를 통합한 구 국군보안사령부( 국군기무사령부로 개칭)로 개편. 보안대의 가혹행위로 인한 임성국 사망사건 63

64 제4권 사권이 없다면 수사 자체가 위법이고, 범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구 국군보안부대령 22) 에 따르면, 보안부대는 군법회의 관할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있고, 군법회의는 군형법 등에 대한 재판권이 있으며, 구 군형법은 원칙적으로 군인에게 적용 되고, 민간인의 경우에는 군사상 비밀을 적에게 누설한 경우와 일정한 군사상 기밀을 군 사기관이나 시설 내에서 간첩 내지 누설한 경우에만 적용된다. 사망한 임성국 및 관련 연행자들은 민간인이었으며, 남파간첩의 연계활동 혐의로 조사 받기 위하여 연행되었으므로 군형법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이 사건은 군법회의 관할 사건이 아니어서 군 보안부대는 수사권이 없었다. 대법원도 보안사령부가 군과 관련된 첩보수집, 특정한 군사법원 관할 범죄의 수사 등 법령에 규정된 직무범위를 벗어나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평소의 동향을 감시 파악할 목 적으로 내 수사를 하는 경우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23) 그렇다면 광주 505보안부대의 사망한 임성국 및 관련자 연행 조사는 구 형법 제123조 타인의 권리행사방해죄(현행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24) 나. 강제연행 불법구금 여부 1) 강제연행 여부 가) 광주 505보안부대의 임성국 등 구금 광주 505보안부대 방첩과에서 작성한 소환 및 연행자 명부 에 임성국은 :27 연행되어 다음날인 :45 석방되었고, 최, 최 형제는 :30 연행되어 약 15일 후인 :23 에 각각 석방되었으며, 최 의 셋째동 생 최 (1931년생)와 여동생 최 (1930년생)는 연행되어 6일 후인 에 석방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신청인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초에는 서울 친척집에 머물고 있어서 임 성국의 연행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으나, 임성국이 연행된 직후 모 오 로부터 전화 연락을 통해 연행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약 4~5일간 광주보안부대에서 조사받고 돌아왔 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하였고, 25) 22) 대통령령 제9724호. 23) 대법원 선고 96다 ) 당시 형법 제123조 (타인의 권리행사방해)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행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6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임 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초 당시 자신은 흑산도에 위치한 흑산중 학교에 다니며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임성국의 연행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 만 모 오 로부터 초에 연행되었으며, 약 4~5일간 광주보안부대에서 조사받 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진술하였다. 26) 1985년 광주 505보안부대에서 조사받았던 최 27)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약 15 일간 광주보안부대에서 구금된 채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며, 사망한 임성국 역시 광주보안부대에서 조사받은 것은 확실하나 며칠간 구금되어 조사받았는지는 알지 못한 다고 진술하였으며, 28) 임성국과 함께 조사받았던 최 의 딸 최 (1947년생) 29)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 서, 임성국의 연행일자나 구금일수는 알 수 없으나, 부 최 등이 광주보안부대에서 약 보름 정도 구금되어 조사받은 사실이 있다고 진술하였다. 30) 나) 불법구금 여부 소환 및 연행자 명부는 사망한 임성국 등을 임의동행 형식으로 연행하여 구금하였다고 기재하고 있으나 사망한 임성국 등은 자유의사에 반하여 연행되었고, 수사기관을 자유롭 게 이탈할 수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광주 505보안부대 장 31) 수집하사관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임성국의 연행일 시와 구금일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나, 당시에는 대개 영장 없이 연행해서 데려오는 것 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연행자 중 최장 15일간 조사한 이유에 대해서는 입건을 하기 위해 오랫동안 구금하면서 조사를 한 것 이라고 진술하였고, 32) 강 33) 대공수사관은 당시에는 대개 영장 없이 연행해서 데려오는 것이 일반적인 25) 진술청취. 26) 진술청취. 27) 최 (1923년생, 진술조사 당시 84세)는 노환으로 인한 심각한 청각장애, 기억력 감퇴 증상을 보여, 구체 적인 진술조사가 어려웠다. 28) 진술청취. 29) 위 보안부대 연행자 명부에 따르면, 최 은 :00~ :00 간 조사를 받았다고 기재되어 있다. 30) ; 진술청취. 31) 장 (중사)은 당시 505 보안부대 산하 목포분견대 무안파견관으로 근무하고 있었으며, 최 와 최 를 연행하였다. 32) 진술청취. 33) 강 은 대공수사관(당시 5급)으로 기무사의 소환 및 연행자 명부 에 최, 한 (최 의 처) 임의 동행 시 참여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보안대의 가혹행위로 인한 임성국 사망사건 65

66 제4권 관행이었다. 사건이 될 것 같은데 사건이 되지 않고, 뭔가 나올 것 같은데 나오지 않아서 오랫동안 구금하면서 조사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고 하였으나 사망한 임성국의 구금일수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술하였고, 34) 박 수집하사관은 변 와 함께 흑산도에서 데려온 연행자를 광주보안대까지 수 송한 사실은 있으나, 정확한 일시와 신원을 기억하지 못하며, 며칠간 조사받았는지 알지 못한다고 진술하였다. 35) 다) 소결 보안부대 연행자 명부 기록 및 신청인, 참고인, 수사관 등의 진술을 종합하면 사망한 임 성국 등이 내지 7. 6.경 광주 505보안부대 수사관에 의해 연행되어 최소한 이틀 간 조사받은 후 석방되었고, 임의동행의 형식이지만 강제연행임을 인정할 수 있으며, 임 성국 등의 연행을 위한 구속영장은 발부받지 않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결국 광주 505 보안부대의 임성국 등의 연행과 구금은 법률상 영장주의를 위반한 위법한 것이었다. 다. 가혹행위 여부 1) 사망한 임성국 가족의 진술 임성국의 모 오 는 임성국으로부터 듣고 목격한 사실을 진술서 형식으로 제출하였 는데 초 오후 7시경 광주보안부대로 연행되어 저녁밥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전 기고문, 각목으로 인한 구타 등을 당하였으며, 집으로 귀가한 임성국의 몸에 시퍼런 멍 자국이 들었고, 가혹행위에 의한 후유증으로 벌벌 떨면서 마당에 앉아서 자신을 또 잡으 러 온다는 등의 정신분열 증세도 보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36) 신청인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당시 서울에서 머물던 중 임성국이 연행되었 다는 소식을 듣고 대둔도 수리에 내려와 석방되어 있던 임성국과 4~5일간 함께 지내게 되었는데, 이때 임성국으로부터 광주보안부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왔으며, 조사받는 동안 보안부대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말을 들었고, 광주보안부대에서 나온 뒤 곧 바로 목포에 있던 사촌 여동생 임 의 집에서 자고 왔는데 당시 고문으로 인해 옷에 피 가 묻어서 매형 옷으로 갈아입고 왔다는 말도 들었다고 진술하였고, 37) 34) 진술청취. 35) 진술청취. 36) 진실화해위원회 신청서 중 진술내용, )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6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여동생 임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광주보안부대에 다녀온 뒤로 임성국이 늘 힘들어 하며 방이나 마루에 누워 있곤 하였고, 가끔 부엌이나 토방 아래 바닥에 피를 토 하는 것을 보았으며, 임성국이 러닝셔츠나 속옷을 갈아입을 때 몸 전체가 새까맣게 멍들 어 있던 것을 보았다고 진술하였다. 38) 2) 참고인들의 진술 사망한 임성국의 사촌여동생 임 은, 광주보안부대에서 조사받고 나온 임성국이 자 신이 살던 목포 집에 찾아 약 1~2일가량 머물다 간 일이 있는데, 이때 임성국이 입고 있 던 옷이 피와 얼룩으로 더러워져 남편의 옷으로 갈아입고 세탁하여준 일이 있으며, 그 과 정에서 임성국의 온몸이 가지색처럼 시커멓게 멍이 들어 있었던 것을 목격하였다고 진술 하였고, 39) 임성국이 거주하였던 대둔도 수리 이장 김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임성국이 보안부대에서 조사를 받고 온 후, 광주보안부대에서 죽을 만큼 맞았다는 소문이 났으며, 보안부대에 조사받고 온 이후로는 임성국이 밖에도 잘 나오지 않았으며, 가끔 만나게 되 면 평소답지 않게 천천히 걸어 다니며, 시름시름 앓았다고 진술하였고, 40) 사망한 임성국의 이웃주민이었던 채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임성국으로부터 보안부대 수사관이 최씨네 막내동생인 최 랑 같이 배 타고 다닌 일이 있냐고 물어봐 서 낚시하러 한두 차례 다녔다고 이야기하자 더 이야기하라며 때렸다 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하였고, 41) 역시 같은 이웃주민이었던 박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임성국이 조사받게 된 사유에 대해, 임성국으로부터 광주보안부대에서 최 간첩사건으로 조사받았다는 말 을 들었다. 최 와 일가친척관계가 아니라고 하자 수사관이 각목을 가지고 마구 두들 겨 팼다고 했으며, 어찌나 구타를 하던지 이런 저런 변명을 할 틈도 없었다는 말을 들었 다 고 진술하였고, 42) 사망한 임성국의 마을 후배인 문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수사관이 임성국을 잡아가서는 최 와 형제간인 것을 인정하라며 구타를 했다고 합니다. 가서 최 와의 38) 진술청취. 39) ; 진술청취. 40) ; 진술청취. 41) 진술청취. 42) 진술청취. 보안대의 가혹행위로 인한 임성국 사망사건 67

68 제4권 대질을 통해 최 와 몇 번 접촉을 하였는지, 어떻게 접촉하였는지 등에 대한 자백을 강 요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허위사실을 자백하라고 강요하며 고문도 하고, 옆방의 비명소 리도 들려주고 잠도 재우지 않았다는 등의 끔찍한 소리를 하였습니다, 전기고문을 당했 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처음에 살짝 전기고문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간첩을 만난 사 실이 없다고 여러 번 부인하자 심하게 고문을 당했다고 합니다. 전기고문을 몇 번 당했다 며 울면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임성국이 집에 돌아온 뒤에도 피를 토했다는 말을 했으 며, 그 안에서 고문을 당해 피를 토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임성국은 자신이 오래 못 살 것 같다며 저에게 배를 처분해줄 것 등을 부탁했습니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술을 먹어 술기운에 거동을 하였습니다 43) 라고 진술하였고, 임성국과 함께 조사받았던 최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광주보안부대에서 15일 간 구금된 채 조사받는 동안, 구체적으로 기억이 안 나지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맞 았다고 진술하였고, 44) 광주보안부대에서 조사받았던 최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임성국의 가혹행위 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나 부 최 를 통해 당시에 주먹이나 각목 등으로 맞고 물고 문도 당했다고 하며, 광주보안부대 수사관으로부터 이빨을 빼버린다는 협박을 받기도 하 며, 당시 옆방에서 숙부 최 의 고문 받는 소리와 비명소리도 심하게 들렸다고 진술하 였다. 45) 3) 수사관들의 진술 장 수집하사관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505보안부대에서는 주로 군용삐삐전 화기를 이용한 전기고문과 얼굴에 물을 붓는 물고문 등이 있었다. 수사관이 진술을 끌어 내기 위해 욕을 하거나 뺨과 머리를 때리거나 전기고문, 물고문 등이 있었다고 한다 고 진술하였고, 46) 강 대공수사관은 당시 수사과장이었던 이 는 군 기질이 있어 성질이 매우 급 하여 지하조사실에도 수차례 내려갔던 것은 분명하나 고문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다. 수사기법 상 진술을 끌어내기 위해 욕을 하거나 뺨, 머리를 때리거나 손가락에 볼펜을 끼 워 비틀거나 각목으로 때리기도 한다. 가혹행위를 누가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가혹 43) 진술청취. 44) 진술청취. 45) 진술청취. 46)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6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행위를 했던 것은 최 에 대한 혐의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진술하였고, 47) 박 수집하사관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수사에 참여하지 않아 직접 목격한 사 실을 말할 수는 없으나, 광주 505보안부대에서는 구타와 잠 안 재우기 고문도 있다는 말 을 들었다. 또한 자백을 받기 위해 물고문을 한다는 말을 들어본 바 있다. 범죄사실을 입 증하기 위해 전기고문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고 진술하였다. 48) 4) 소결 임성국으로부터 고문사실을 들었다는 모 오, 신청인, 채, 박, 문 의 진 술, 임, 임, 김, 채, 최, 최 의 진술, 수사관 장, 강, 박 의 진술을 종합하면 광주 505보안부대 수사관들은 임성국 등을 조사할 때 자백을 강요 하면서 구타, 잠 안 재우기, 물고문, 전기고문 등 가혹행위를 가한 사실이 인정된다. 이는 구 형법 제125조 폭행, 가혹행위 49) 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라. 가혹행위와 사망의 인과관계 1) 관련 기록 임성국의 사망과 관련하여 흑산면사무소에서는 사망한 임성국의 사망과 관련하여 제 적등본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 그밖에 의료기관에서 발행한 사망신고서 등 사망관련 서 류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하였다. 50) 그 외 사망과 관련한 기록은 발견할 수 없었다. 2) 참고인 진술 가) 연행 전 임성국의 건강상태 임성국이 광주 505보안부대에 다녀오기 전 건강상태와 관련하여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에서, 대둔도 수리보건진료원에서 근무했던 양 간호사는 자신이 근무하는 동안 임성 국이 큰 병을 앓아 치료를 받거나 입원한 적이 없으며, 지병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고 진술하였고, 51) 사망한 임성국의 친구였던 문 은 (임성국은) 그전에 심한 질병을 앓은 47) 진술청취 48) 진술청취. 49) 제125조 (폭행, 가혹행위) 재판, 검찰, 경찰 기타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형사피의자 또는 기타 사람에 대하여 폭행 또는 가혹한 행위를 가한 때에 는 5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50) 흑산면-4739, 보안대의 가혹행위로 인한 임성국 사망사건 69

70 제4권 적은 없었습니다. 힘도 좋아 남들과 씨름을 하면 모두 이길 정도로 건강한 체격이었습니 다 라고 진술하였고, 52) 장 은 (임성국은) 보안부대에 다녀오기 전에는 쾌활하고 건 강했어요. 운동을 좋아하고 특별히 병적인 질환을 앓고 있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라고 진 술하였고, 53) 동네 후배였던 윤 은 (임성국은) 주로 낚시로 큰 고기도 잡는 건강한 체질이었습 니다. 부지런하고 날쌔고 산도 잘 탈 정도였습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54) 나) 석방 후 임성국의 건강상태 임성국이 광주 505보안부대를 다녀와서 사망까지 상황에 관련하여 진실화해위원회 조 사에서, 신청인은 평소 큰 병이나 지병을 앓아본 적이 없고 매우 튼튼한 체질이었던 임성 국이 광주보안부대에 끌려갔다 온 뒤 몸이 너무 아프다고 하여 자신이 자주 머리를 감겨 드리곤 했는데, 살살 머리를 감겨주어도 머리가 아프다며 머리의 통증을 호소하였고, 이 때 가슴, 어깨, 등에 남아 있던 시퍼런 멍 자국을 목격하였으며, 임성국이 가끔 코에서 피 를 쏟는다거나, 저녁 5~6시경 길가를 손으로 가리키며 누가 자기를 잡으러 온다고 소리 를 지르는 등 정신 나간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하였고, 55) 여동생 임 는 광주보안부대에 다녀온 뒤로 오빠가 늘 힘들어하며 방이나 마루에 누워 있곤 하였고, 부엌이나 토방 바닥에 피를 여러 번 토하였으며, 몸 전체가 새까맣게 멍들어 있었다 고 진술하였고, 56) 양 간호사는 임성국이 사망하기 전 두 번 약을 지어준 기억이 있다며, 한 번은 배가 아프다고 하여 약을 지어주고, 또 한 번은 몸이 아프다고 하여 소염진통제 를 지어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임성국의 사망이 정상적인 자연사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임성국이 사망에 이르게 될 정도의 큰 질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보안부대 에서 가혹행위를 당하고 와서 죽었다는 정황을 보면 임성국의 죽음은 보안부대에서 그런 가혹행위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는 생각이 듭니다 라고 진술하였고, 57) 문 은 그 전에는 사람이 말도 술술 또박또박하게 하고 했었는데 (광주보안부대에서) 조사받고 와 서는 말을 어눌하게 하고 그랬습니다. 광주보안부대에 다녀와서는 보름 정도 있다 사망 51) 진술청취. 52) 진술청취. 53) 진술청취. 54) 진술청취. 55) 진술청취. 56) 진술청취. 57)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7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했는데 사망할 당시에는 거의 말을 잘 하지 못하였습니다, 갔다 와가지고 저에게 옷을 벗어 몸을 보여주었는데, 배와 가슴이 푸르게 멍이 들었고, 허벅지하고 정강이는 모두 타 박상을 입어 다 까졌습니다. 멍이 든 것은 말할 것도 없구요. 팔도 검푸르게 멍이 들어 모 두 못 쓰게 되었습니다. 얼굴에는 상처가 없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 상처가 심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라고 진술하였고, 58) 박 은 임성국의 어깨, 팔에 멍이 들어 있던 것을 보았으며, 늘 방에 누워 있었고, 소변을 볼 때 빨간 피가 섞여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보안부대에 끌려가서 약 20일 만 에 죽은 것 같다 고 진술하였고, 59) 같은 마을에 살았던 윤 은 임성국이 사망한 직후 마을이장 김정석의 부탁으로 염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시신의 상태는 얼굴을 제외하고 전신에 멍 자국이 심하게 들었으며, 임성국이 사망한 직후 동네사람들로부터 사망한 임성국의 사망원인이 보안부대에서의 구타로 인한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하였고, 60) 마을이장 김 은 보안부대에서 조사받으면서 죽을 만큼 맞았다는 소문이 났습니 다, 임성국이 끌려갔다 와서는 시름시름 아팠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안 되서 급사를 했 습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61) 3) 기타 확인서 진실화해위원회는 참고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임성국의 사망과 관련하여 국 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에 질의서를 보냈는데, 당시 임성국의 상태로 볼 때 1 어떤 상병을 의심할 수 있는지 여부, 2 참고인들의 진술을 종합해볼 때 장기손상을 의심해볼 수 있는지 여부, 3 참고인들의 진술내용에 나타난 증상에 따라 임성국이 사망에 이를 수 있을 만한 증세인지 여부에 대해 자문을 구하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에서는 질의회보서(법의학과-28, )를 통해, 1 가슴, 어깨 등에 멍 자국을 목격 하거나 배와 가슴에 멍이 들었으며, 허벅지, 정강이 는 타박상을 입음, 어깨, 팔에 멍이 들어 있었음 에 대한 견해: 참고인들의 말에 비춰볼 때 당시 임성국의 몸에서 멍이 관찰되었을 것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멍은 멍이 든 부위에 외력( 外 力 )이 가해지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8) 진술청취. 59) 진술청취. 60) 진술청취. 61) 진술청취. 보안대의 가혹행위로 인한 임성국 사망사건 71

72 제4권 2 가끔 코에서 피를 쏟음, 가끔 바닥에 피를 토하였음, 소변을 볼 때 빨간 피가 섞여 나오는 것을 목격 하였다는 사실에 대한 견해: 가혹행위를 추정해볼 수는 있으나 가혹행 위 등과의 연관성을 단정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3 임성국이 사망에 이를 수 있을 만한 증세인지에 대한 견해: 멍과 임성국의 사망에 대한 단정적인 판단은 어려우나, 일반적으로 멍은 멍이 든 부위에 외력이 가해지며 발생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자문을 하였다. 4) 소결 사망한 임성국이 광주 505보안부대에 연행되기 전에는 건강하고 쾌활하였다는 양, 문, 장, 윤 의 진술, 석방된 후 온몸에 상처가 있고, 피를 토하기도 하고, 임성 국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 현저히 약해졌고, 시름시름 앓다가 얼마 후 죽었다는 신청인, 임, 양, 김, 문, 박, 오, 임 등의 진술, 석방 후 임성국의 멍 등이 외력 때문에 생기고, 피를 토하는 등의 증세가 가혹행위로 생길 수 있다고 추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질의회보서 등을 종합하면, 사망한 임성국은 광주보안부대에서의 가혹행위로 인해 심각한 신체의 상해를 입었으며,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심리적 공황상 태에 이르렀으나, 작은 섬의 낙후된 의료시설로 인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상태로 방치되었다가 그 후유증으로 약 2주 후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광주 505보안부대의 임성국에 대한 가혹행위와 사망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으므 로 가해행위를 한 수사관들의 행위는 형법 제259조 상해치사 62) 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Ⅲ. 결론 및 권고사항 1. 결론 이 사건은 광주 505보안부대에서 최 일가 및 임성국 등이 가족 가운데 한국전쟁 시기 월북했다가 남파된 자와 접촉하고 간첩행위에 협조하지 않았을까 의심하고 불법적 인 강압수사를 벌이다가 초래한 사망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 는 보안부대에 의해 임성국 등이 영장 없이 불법구금되었고, 수사과정에서 구타, 잠 안 재우기 등 가혹행위를 당하였다. 이로 인하여 임성국이 타박상, 코피, 각혈, 혈뇨 등 상해 62) 형법 제259조 (상해치사) 1사람의 신체를 상해하여 치사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7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를 입고, 정신적 충격을 받고 후유증을 보이다 약 2주 후에 사망에 이르게 된 위법한 공 권력에 의한 사망사건이다. 이 사건 신청인과 가족 등은 사망한 임성국이 군 수사당국에 연행되어 조사받고 돌아 온 뒤 20일 만에 사망하였으나, 그 사연을 어디에도 항의하거나 하소연하지 못한 채 억울 함을 간직하며 지내왔다. 그 이유는 국가기관에 연행되어 돌아온 뒤 사망했다는 사실을 어디에서도 믿어주지 않을뿐더러 그 사실 자체로 인해 또 다른 피해를 받을까 하는 두려 움이 있었기 때문이며, 이는 공권력에 의한 위압감과 공포심이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영 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피해자의 가족은 임성국이 사망한 지 십 수 년이 지나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국가 인권위원회에 각각 진상규명을 신청하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신청기간이 경과하였거나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결국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신 청하게 이르게 된 것으로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피해자의 구제에 대해 국가기관이 그 의무를 소홀히 하였음이 명백히 인정된다. 2. 권고사항 위 사건에 대해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기본법 제4장에 따라 국가가 행할 조치에 관하 여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지난날 국가는 공권력의 남용으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지 못하였고, 또한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을 구제하는 기본적인 인권보호조치조차 마련하지 못한 것에 대한 성찰 을 할 필요가 있다. 국가는 국군 보안부대가 수사권이 없음에도 민간인을 수사한 점, 불법구금한 점, 수 사과정에서의 가혹행위 등을 한 점, 가혹행위로 임성국이 사망에 이르게 된 점 등에 대하 여 사망한 임성국 및 그 가족에 대하여 사과하고 배상 등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안대의 가혹행위로 인한 임성국 사망사건 73

74 제4권 [별표 1] 사건 관련인 명단 구 분 성 명 진술청취 여부 관 련 성 비 고 사망자 임성국 사망 전남 신안군 흑산면 참고인 최 경기도 남양주시 임성국과 함께 광주보안부대에서 조사받음 참고인 김 (전화조사) 전남 신안군 흑산면 임성국의 친구로 고문후유증 목격 참고인 장 (전화조사) 전남 여수시 임성국의 친구로 고문후유증 목격 참고인 문 (전화조사) 전남 신안군 흑산면 임성국의 친구로 고문후유증 목격 신청인 임성산 참고인 임 전북 군산시 옥서면 임성국의 남동생 전북 군산시 산북동 임성국의 여동생 참고인 양 (전화조사) 전북 남원시 주천면 임성국 사망 당시 수리보건소장 참고인 최 (전화조사) 광주광역시 최 의 친딸 참고인 임 (전화조사) 전남 목포시 죽동 임성국의 사촌여동생 참고인 채 참고인 윤 참고인 박 전남 신안군 흑산면 임성국의 고문후유증 목격 전남 신안군 흑산면 임성국의 고문후유증 목격 전남 신안군 흑산면 임성국의 고문후유증 목격 505보안부대 수사관 강 5급 광주광역시 북구 최 등 연행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7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구 분 성 명 진술청취 여부 관 련 성 비 고 수사관 박 해군중사 경북 김천시 최 / 최 / 김 부심 수사관 변 해군중사 사망. 전남 목포시 임성국 등 연행 수사관 장 김 등 연행 경찰 조 대둔도 출장소장으로 재직 현 밀양경찰서 산내파출소 경위 재직 보안대의 가혹행위로 인한 임성국 사망사건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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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결정사안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가 불법구금상태에서 수사관들의 가혹행위에 의한 허위진술로 인해 간첩으로 조작되어 처벌받게 된 사건에 대하여 진실규명으로 결정하고, 피해자와 가족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 사례. 결정요지 1. 국군보안사령부는 신청인 이종수를 연행하여 구속영장이 발부되기까지 39일간 가족 및 변호인의 접견을 차단한 채 불법감금한 상태에서 구타 등 가혹행위를 가하고, 신청인 이종수에게 검찰에 가서 부인하면 다시 고문하겠다고 위협하 여 허위자백을 받아 간첩죄로 조작하였다. 2. 서울지방검찰청은 신청인이 제3회 조사에서는 불법구금상태에서의 가혹행위와 허위 자백사실을 진술하였으나 이를 조사하지 않은 채, 위법한 보안사 수사에 눈감고 보안사 수사관의 협박을 받는 신청인에 대해 검사작성의 조서들을 만드는 수사만 하여 서울형사 지방법원에 기소하였다. 3. 서울형사지방법원을 비롯한 법원은 신청인이 공판에서 수사기관에서는 부당한 대우 로 허위자백을 하였다며 간첩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였음에도, 임의성이 없는 피의자신문조서를 토대로 수사관의 보고서 등을 증거로 삼아, 장기간의 불법구금과 가혹 행위로 인한 허위자백을 유죄의 증거로 인정하고, 통역 신청을 거절하는 등 심리를 미진 하게 하여 신청인에게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한 위법을 범하였다. 전 문 사 건 라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위반사건 신청인 이종수 결정일 주 문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77

78 제4권 이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진실규명 으로 결정한다. 이 유 Ⅰ. 조사개요 1. 사건개요 가. 신청요지 신청인 이종수( 李 宗 樹 )는 일본에서 자란 재일동포인데 일본 내 민족학교 한국어교사가 되고자, 재외국민교육원에 입학하여 1년간 한국어, 한국사 등을 배우고, 경부터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여 공부하면서, 방학 때마다 일본에 머물곤 하 였는데, 국군보안사령부(이하 보안사라 한다) 서빙고분실로 연행되어 재일 대남공작지도원으로 지목된 조신부( 曺 伸 夫 )에게 포섭되어 여러 차례 회합하여 교양 및 간첩지령을 받고, 재외국민교육원의 실태, 계엄하의 한국의 치안상태, 기간산업인 조선소 의 시설현황, 전방의 경계상황, 김포국제공항 경계상황 등과 같은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 보고하는 등 간첩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북한방송 청취를 권유하고, 좌익활동을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는 방법으로 북한을 찬양고무한 혐의로 조사를 받은 후, 서울 지방검찰청에 송치되어 국가보안법 제4조(목적수행)제1항제2호, 제6조(잠입 탈출)2항, 제7조(찬양 고무)제1항, 5항, 구국가보안법( 법률 제1151호) 제2조(군사목적 수행), 제14조, 구 반공법( 법률 제1997호) 제6조(잠입, 탈출)제4항, 형법 제98 조(간첩)제1항, 제37조, 제38조 위반죄로 기소되었고,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형, 서울고등법원( )에서 항소가 기각, 대법원( )에서 조신부의 반국가단체 구성원 여부에 대해 확인하라는 취지로 파기환송, 서울고등법원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형, 대법원에서 상고기각 판결을 받고 복역하다가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이에 대해 신청인은 보안사 수사관들로부터 강제연행된 후, 장기간 불법구금된 상태에 서 고문, 가혹행위를 받고 허위자백하기에 이르러 범죄사실이 조작되었다면서 진실 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라 한다)에 진실규명을 신청 하였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7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나. 판결요지 (1) 중순경 북괴 재일 대남공작지도원 조신부에게 포섭되어, 하순경까 지 수차례에 걸쳐 북한찬양, 한국비방의 교양을 받고, 한국유학 중 북한방송을 청취하고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등 전반적인 사항을 관찰하여 수집, 보고하라는 지령 을 받고, 서로간의 연락방법을 정한 후, 칼(KAL)기 편으로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하여 반국가단체 구성원의 지령을 받고 그 목적수행을 위하여 잠입하고, (2) 부터 까지 서울대학교 재외국민교육원에 입학하여, 동 교육원의 실 태, 계엄하의 치안상태, 동 교육원의 시찰계획에 따른 국가 기간산업인 현대중공업조선소 시설 현황, 제3땅굴 등 전방지구의 경계상황을, 하기방학 중 일본에 돌아갈 때 김포국제 공항의 경계상태를 탐지, 수집함으로써 국가 및 군사상 기밀을 탐지, 수집하고, (3) 부터 사이에 일본에서 조신부를 만나 한국 체류 중 탐지, 수집한 군사상 기밀을 보고하고, 남한의 정세를 계속 파악하라는 지령을 받은 후 칼(KAL) 기 편으로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함으로써 잠입하고, (4) 재외국민교육원의 시찰계획에 따른 국가체육시설인 국제종합사격장에 관한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하고, (5) 부터 하순경 사이에 일본에서 조신부에게 국내에서의 활동상 황을 보고하고, 남한정세의 파악과 연락방법 등에 관한 지령을 받고 칼 (KAL)기 편으로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함으로써 잠입하고, (6) 중순경부터 중순경까지 육군사관학교에 대한 기밀, 고려대학교의 현황 및 대학가의 동향, 학원의 동향 등을 탐지, 수집하고, (7) 부터 하순경 일본에서 조신부를 만나 탐지 수집한 사항을 보고 하고, 조신부로부터 군사상 기밀의 수집 및 북괴의 혁명노선에 의한 한국의 혁명과업 수 행에 노력하라는 지령을 받고 잘(JAL)기편으로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함으로써 잠입하고, (8) 초순경 대학생군사 훈련제도 상황, 중순경 대학생의 군사훈련 상 황을 탐지, 수집하고, (9) 초순경 홍충희, R에게 북한방송 청취를 권유하여 북한의 대남선전활동에 동조하고, (10) 초순경 R에게 일본어판 마르크스 엥겔스 소전 을 주면서 읽어보라고 권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79

80 제4권 유하여 국외 공산계열의 활동을 찬양할 목적으로 도서를 반포하고, (11) 경 홍충희, R에게 북괴방송을 청취하도록 권유하고, 고려대학교 졸업 후 일본에 돌아가면 좌익활동을 하여야 한다는 등 생각을 표명하면서 동인들도 좌익활동을 하도록 권유함으로써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였다는 것이다. 2. 조사의 근거와 목적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이하 기본법이라 한다) 제1조는 반민주적, 반 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 학살, 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 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 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 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 기본법 제2조제1항4호는 진실규명 대상으로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 상해 실종사건, 그 밖의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 에 대하여 조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기본법 제2조제2 항은 진실규명의 범위에 해당하더라도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에 대해서는 민사소 송법, 형사소송법에 의한 재심사유가 있는 경우에 조사하도록 하고 있다. 이 사건은 신청인이 수사권이 없는 수사기관에 영장 없이 장기간 불법구금된 채 가혹 행위를 당하여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것이므로 기본법이 정한 진실규명 범위에 해당하고, 확인된 수사기관의 불법감금 및 가혹행위는 형사소송법 제420조7호, 제422조가 정하고 있는 재심사유에 해당하므로 진실규명 대상에 속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위법한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불법구금, 가혹행위와 조작된 사건 의 진실을 규명하고, 기본법 제4장에 따라 국가가 취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 등을 권고할 필요성을 인정하여 조사개시를 의결하고 조사를 진행하였다. 3. 규명과제 가. 불법구금 여부 신청인이 보안사 수사관들에 의해 거주지 자취방에서 연행되어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39일간 불법구금상태에서 수사를 받았는지와 보안사의 민 간인 수사권 여부에 대해 조사할 필요가 있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8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나. 고문, 가혹행위 여부 신청인이 보안사 서빙고분실 지하조사실에서 수사관들로부터 범죄에 대하여 자백을 강요받으면서 잠 안 재우기, 구타, 물고문, 전기고문 등 극심한 가혹행위를 당하였는지에 대해 조사할 필요가 있다. 다. 범죄행위 조작 여부 신청인이 간첩행위나 R, 홍충희 등에게 북한을 찬양한 일이 없는데도, 보안사 수사관들 에 의해 범죄사실이 조작되었는지에 조사할 필요가 있다. 4. 조사방법 가. 자료조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기록관리과 보존 수사 및 재판기록 9권 2,500여 쪽 국가기록원 보존 이종수 판결문, 수용자신분장 4권 500여 쪽 국군기무사 보존 간첩 이종수 사건 기록 등 문서 115여 쪽 국가정보원 보존의 이종수 사건 기록 및 이종수의 상부선 이종수 조사기록 100여 쪽 나. 진술조사 신청인과 보안사 수사관 A, B, C, D, E, F, G, H, S 총 9명, 검찰수사관 I, 참고인 홍충 희, P, Q, 조신부, 조창순, 하병욱, 손마행, 금기도, 양기홍, 야스다히로시( 安 田 弘 ) 총 10명 에 대해 면담조사하였고, M, N, J, K, L에 대해 전화조사를 하였다. Ⅱ. 조사결과 1. 사건배경 간첩사건의 통계를 분석 1) 한 바에 따르면 70~80년대 간첩사건은 966건(보안사가 수사 1) 국방부과거사진싱규명위원회, 재일동포 및 일본관련 간첩조작의혹사건 조사결과보고서 중앙정보 부의 간첩검거명단(1970~1979), 대공판단, 대공정보 등을 분석한 결과라고 한다.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81

82 제4권 한 사건은 234건), 재일동포 및 일본 관련 간첩사건은 319건(보안사가 수사한 사건은 73 건)이며, 1980년대에 발생한 간첩사건은 285건, 일본 관련 사건은 115건에 이른다. 대법원이 사법부 과거사정리 차원에서 검토한 1972~1987년 사이 시국 공안사건 판 결 가운데 불법구금과 고문 등 재심사유가 있는 것으로 파악한 사건은 224건, 재일동포 관련 사건은 68건이라고 하는데, 이 사건과 유사한 한국에 유학온 재일동포 학생 관련 사 건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2) 특히 1983년 이후에는 남파공작원사건 이 한 건도 없었던 반면, 일본 관련 재일동포 관련 사건 등이 집중적으로 발생하였다. 3) 일본은 1970~1980년대 간첩사건의 주요 지리적 배경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지리적으 로 남북이 가깝다는 이유뿐 아니라 일본사회와 재일동포사회의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은 공산당, 사회당 같은 사회주의이념을 표방하는 정당들이 합법화되어 의회에서 활 동하고, 공산주의 문헌들이 합법적으로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곳이며, 재일동포들은 민 단, 조총련 등 각자의 소속과 상관없이 부모, 형제, 친척, 친구 사이에 서로 왕래하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4) 이에 대해 한반도는 남북한으로 분단되어 이념대결 양상을 보여왔다. 남한과 재일동포사회의 접촉은 위와 같은 사정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발 생했다. 일본사회와 재일동포사회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하고, 한국에서 일본을 방문하여 자연스럽게 북한에 대해 친숙한 재일동포 친척 등을 만나고 귀국하는 행위나, 북한을 옹 호하는 친척, 친구와 함께 자란 재일동포가 한국에 들어와 이념이나 북한에 대해 언급하 는 말들은 남한사회에서는 간첩행위로 쉽게 해석될 수 있었다. 이런 상황 하에서 재일동 포와 관련된 간첩사건은 부모형제 친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이 회합 통신죄, 의 례적으로 주고받은 여비가 금품수수죄, 우연히 대화한 내용이나 전달한 일간신문, 잡지 등이 간첩활동 5) 으로 되었으므로 끊임없이 조작 시비가 있었다. 1980년 이후 보안사는 한국에 와 있는 재일동포 유학생들에 대한 조사에 집중하였다. 6) 보안사에서 발간한 대공활동사Ⅰ 7) 에 따르면, 1981년도 중점사업으로 재일동포유학생 중 유학을 가장하여 한국에 침투한 간첩을 색출할 목적으로 수사근원 발굴 에 착수하였 다고 하는데, 당시 국내에 430여 명의 재일동포 유학생이 있었다. 2) 동아일보, 2007년 2월 1일자., 2월 2일자. 3)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작성, ) 국정원과거사진실규명을 통한발전위원회. (2007). 과거의 대화, 미래의 성찰. 284쪽. 5) 박원순. (1997). 국가보안법연구2. 434쪽., 재인용 과거의 대화, 미래의 성찰. 289쪽. 6) 위의 책. 287쪽. 오주석 간첩조작의혹사건(바-3984) 조사보고서 사건배경 재인용. 7) , 184쪽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8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신청인은 일본에서 출생한 한국국적의 재일동포로, 1977년 일본 교토 세이까( 京 都 精 華 )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고, 한국유학을 준비하면서 고모 이미지자( 李 美 知 子, 이미치코)가 운영하는 란( 蘭 )주점에서 근무하다가, 서울대학교의 재외국민교육 원에 입학하여 1년간 우리말 등에 대해 교육을 받은 후 1981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과에 입학한 학생이었다. 2. 사건경위 가. 수사착수 경위 대공활동사Ⅰ 8) 에 따르면, 보안사 수사과에서는 1981년도 중점사업으로 재일동포유 학생 중 유학을 가장하여 한국에 침투한 간첩을 색출할 목적으로 수사근원 발굴 에 착수 하였고, 그 결과 430명의 유학생 중 40명을 중점대상자로 선정하였는데, 신청인이 포함되 어 있었다. 보안사는 신청인의 하숙집 주인과 대학 지도교수 등을 대상으로 신청인의 대학생활, 일상생활, 교우관계, 발언내용 등을 수집하였고, 하숙집 주인의 협조를 얻어 하숙방을 수 색하여 마르크스엥겔스소전 책자를 발견하였다 보안사 수사과는 내사결 과를 보고하는 동시에 공개수사 승인을 받아 신청인을 서빙고분실로 연행하 였다. 9) 보안사에서 국방부에 보고한 간첩검거보고 와 보안사에서 국가안전기획 부(이하 안기부라 한다)에 보고한 정보사범 발생 및 검거통보 에 따르면, 피의자(이종 수)는 평소에 공부에는 열중치 않고 학생들에게 데모만 선동하는가 하면 마르크스 엥겔 스 소전 등 공산서적을 탐독하고 있다는 첩보에 따라 미행감시를 통해 증거를 포착하고 라고 기재되어 있다. 10) 신청인 내사를 담당 11) 했던 D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당시 이종수의 거주지 주변, 학교 주변에 대해 조사했고, 당시 이종수의 지도교수를 만났으며, 이런 저런 내사결과보 8) 보안사령부( ), 184쪽. 9) 국군기무사령부로부터 신청인에 대한 직접적인 첩보경위, 내사경과, 구속수사승인요청 등 수사착수경위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별도로 제출받지 못했다. 10) 보안사령부, 대공활동사Ⅰ, 185쪽. 11) 자료협조요청에 대한 회신(법무부, 공공형사과-896, )에 의하면, 이 사건으로 지급된 국가보안유 공자 상금 수령자는 B, C 수사관이다.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83

84 제4권 고 후에 수사승인이 떨어져서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12) 나. 국군보안사령부의 수사 보안사 수사관들은 신청인을 강제연행하여 서빙고분실 조사실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한 뒤 안기부의 수사관 명의로 수사기록을 작성하였다. 보안사는 국방부(국방정보본부장)에 간첩검거보고, 안기부(1국장)에 정 보사범 발생 및 검거통보 13) 하고, 연행한 지 17일이 지난 수사관 B 명의로 피의 자인지동행보고를 작성하고, 제1회 자필 진술서를 제출받았고, 제1회 피 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하여 14), 검찰에 기소하라는 취지로 정보사범 처리조정결과 를 받았다. 보안사는 서울형사지방법원(판사 신 )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신청인 을 서울구치소에 인치한 후에도 서빙고분실로 불러 제2회 자필진술서, 제2회 피의 자신문조서 등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보안사는 안기부 수사관 명의로 신청인을 서 울지방검찰청에 송치하였다. 다. 서울지방검찰청의 수사 서울지방검찰청은 와 각각 제1, 2회 피의자신문조서, 15) 홍충희, R, N의 참고인 진술조서, 제3회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였고, 서울 형사지방법원에 기소(검사 최 )하였다. 12) 진술청취. 13) 정보사범 발생 및 검거통보를 한 날짜에 대해 보안사에서 안기부에 통보한 문서에 따르면 이 나, 안기부 회신의 문서에 따르면, 이다. 14) 이종수의 수사기록에는 (15.에서 수정함) 국군보안사령부 분석실장 이항구의 마르크스엥겔스 소전의 감정서가 첨부되어 있으며, 태릉국제종합사격장 영업과장 대리 남원규의 사격장 실태 등에 대한 진술서가 첨부되어 있고, 같은 달 날짜불명의 육군사관학교 교무과장 김정웅의 확인서, (19.에 서 수정함). 오박소의 진술서, 진술조서, 같은 날 홍충희, R, N, 김수년의 진술서, 진술조서, 공항경 비단 작전과장 김창환의 확인서가 첨부되어 있다. 또한, 조창순 신원사항 등에 대한 수사보고 등이 첨부되어 있으며, 보병 제1사단 수색대대 중령 정용구의 제3땅굴 실태에 대한 진술서가 첨부되어 있다. 15) 검찰사무 보고기록 표지와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 사이에 이종수 작성의 반성문(작성용지: 육 군양식)이 첨부되어 있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8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라. 재판과정 서울지방형사법원(이하 서울형사지법이라 한다)은 제1회 공판을 시작으로, 제2회, 제3회, 제4회, 제5회 공판을 거쳐 제6회 공판에서 신 청인 이종수에게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하였고(재판장 안, 판사 최, 유 ), 신청인과 검사는 각각 항소하였다. 서울고등법원(이하 서울고법이라 한다)은 제1회 공판을 시작으로, 제 2회, 제3회 공판에서 검사, 피고인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였으며(재판장 김, 판사 박, 유 ), 신청인과 검사는 각각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제1심 판결의 거시증거 중 조신부가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이라는 입증자료가 부족하며, 대한민국 거류민단 구라시끼 지부 지단장 박태수가 작 성하고 주 고베 대한민국 총영사관 영사가 확인한 신원보증서(공판기록 533 면)의 기재에 의하면 조신부가 재일 대한민국 거류민단 구라시끼 지부 단원임을 증명하 는 등 조신부의 신원에 대하여 피고인의 검찰에서의 자백내용과 위 신원보증서 등의 기 재 내용이 서로 상치하고 있다며 원심을 파기,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하였다(재판장 김, 대법관 정, 윤, 오 ). 서울고등법원은 파기환송 후 제4회, 제5회, 제6회, 제7회, 제8회 공판에서 조신부를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16) 으로 인정하여 신청인에게 징역10 년, 자격정지 10년의 형을 선고하였고(재판장 이, 판사 신, 박 ), 신청인은 상 고하였다 대법원은 신청인의 상고를 기각, 형을 확정하였다(재판장 대법관 신, 정, 이, 김 ). 16) Q(다른 간첩사건의 피고인), P(다른 간첩사건으로 공소보류처분을 받은 후 당시 보안사 직원으로 근무), 한태웅(보안사의 정보망, 본명 김경식)의 진술, 2심의 변호사 측 증인 최영오(조신부 재직 회사 사장)가 조 신부의 입사 이전과 퇴근 이후의 활동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취지로 기존 진술서를 번복한 진술서를 제출한 것 등을 근거로 조신부가 반국가단체 구성원이라고 판단하였다.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85

86 제4권 3. 사건 조사결과 가. 보안사의 수사권 및 수사기록위조 여부 1) 보안사의 수사권 존부 17) 보안사는 민간인인 신청인에 대해 내사 및 가택수색에서 얻어진 내용을 분석하고 공개 수사 18) 를 하였다. 당시 주무수사관인 B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보안사는 군법회의 에 기소할 피의자가 아니라면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내사 단계부터 안기 부에 통보를 했다고 진술하였다. 19) 국군보안부대령 20) 제1조에 의하면 보안부대의 경우 군법회의 관할 사건에 대한 수사 권이 있고, 군법회의법 제2조에 의하면 군법회의는 군형법 등에 대한 재판권이 있으며, 당시 군형법 제1조제1항에 의하면 동법이 원칙적으로 군인에게 적용되나, 군형법 제1조 제4항은 동법 제13조제2항, 제3항 범죄에 대하여 민간인 수사권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신청인은 민간인으로 구 국가보안법 제2조(군사목적수행), 국가보안법 제4조(목적수행) 제1항2호, 형법 제98조(간첩)제1항 위반으로 조사를 받았으므로 수사권이 없는 보안사로 부터 불법적인 수사를 받은 것이다. 2) 수사기록 위조 여부 2회의 피의자신문조서, 참고인 진술조서, 구속통지서, 확인서 등은 모두 피의자 인지동행보고 이후 날짜로 하여 안기부 사법수사관 O 21) 가 작성한 것으로 기재 되어 있다. 22) 주무 수사관 B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안기부 수사관은 연행 직후부터 사건에 직 접 관여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보안사에서 안기부에 수사관을 요청하면, 곧 바로 안기부 공작과 O 수사관이 와서 있었다. 내가 이종수를 조사할 때, O가 들어와서 있 기도 하고 내가 쓴 신문조서를 읽어보기도 하고 그랬다, 23) 또한, 이종수 수사기록 중 수 17) 공판기록 상 변호사가 보안대의 민간인 수사의 적법성 에 대해 이의제기를 한 기록은 없다. 18) 피의자, 참고인을 연행하여 조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19) 진술청취. 20) 대통령령 제9724호 ) 사망으로 조사하지 못하였다. 22) 인지동행보고는 국군보안사령부 수사관 B가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고, 피의자 신문조서의 참여인은 국군 보안사령부 수사관 D로 기재되어 있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8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사보고 에 있는 결재(서명) 24) 에 대해 보안사에서 결재한 것이 아니고, 안기부에서 결재 받은 것이다. 이것을 봐도 알겠지만, 보안사에서 검찰로 보내는 서류에 대해서는 안기부 에 다 보고가 된 것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25) 수사관 D는 당시 안기부에서 조정통제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서빙고분 실에 자주 왔고, 조서에 도장을 찍어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고 진술하였다 26). 반면, 신청인은 보안사 수사관 이외의 수사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하고, 2계장 A는 안기부 수사관이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다. 서빙고분실에 안기부 수사관이 온 적은 없다, 우리가 민간인을 수사하고 검찰에 송치할 권한이 없지만 관행적으로 간 첩사건에 대해 민간인을 조사했기 때문에 우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 보고서 등을 안기부 수사관이 작성한 것처럼 만들기 위해 안기부 수사관의 이름으로 서류를 작성하여 검찰에 송치했다, 사무실에 안기부 수사관의 도장을 갖고 있다가 사용했다. 담당 수사 관이 도장을 보관했다. 기록을 보여주고 서명을 받거나 도장을 찍어달라고 하지 않았다 고 진술하였다. 27) 검찰 연락관이었던 F는 통상적으로 안기부에서 조정통제를 받으면서 담당수사관 배 정을 받고, 그 뒤로는 수사가 끝난 뒤 결과를 통보할 뿐 수사과정에서 특별히 안기부와 협의하는 것은 없다 고 진술하였다. 28) 3) 소결 보안사는 민간인인 신청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었음을 알고도 불법적인 수사를 하였고, 안기부 수사관 명의를 빌어 공문서인 수사기록을 허위로 작성하였고, 안기부 29), 서울지 방검찰청 30) 은 국군보안사령부의 위법사실을 알고도 방조하거나 묵인하였던 것으로 판단 된다. 이는 형법 제124조 불법체포감금죄 31) 에 해당되고,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확정판결 23) 진술청취. 24) 증거의 요지 에 포함된 수사보고뿐 아니라, 검찰 송치 이후 추가 송치한 영사증명, 사진 9매, 한태웅 서신, 확인서 등과 함께 보낸 수사보고에 대해서도 안기부에서 결재(서명)하였다. 25) 진술청취. 26) 진술청취. 27) 진술청취. 28) 진술청취. 29) 앞에서 기술한 B 수사관의 진술에 따르면, 안기부에서는 수사관의 명의를 보안사에서 빌리는 것에 대해 묵인한 것뿐만 아니라 수사관을 지정하여 통보하였고, 추송 기록에 관해서도 검토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30) 피의자 신문조서, 참고인 진술조서에 따르면, 조사장소가 국군보안사령부로 되어 있다. 31) 형법 제124조(불법체포, 불법감금) 1 재판, 검찰, 경찰 기타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보조하는 자가 그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을 체포 또는 감금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87

88 제4권 을 받을 수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420조7호, 제422조 소정의 재심사유에 해당된다. 나. 영장 관련 불법구금 여부 1) 수사기록 신청인의 연행일자에 대해 보안사령부에서 검찰에 송치한 수사기록 중 국가보안법 위 반 등 피의자 인지동행보고 에는 :00, 피의자의 하숙집에서 임의동행했 다 고 기재되어 있다. 2) 국군기무사령부 보존기록 32) 국방부에 대한 간첩검거 보고( ), 안기부에 대한 정보사범 발생 및 검거통보 ( ) 등에 따르면, 피의자의 주거지 자취방에서 연행하였다고 되어 있다. 대공활동사Ⅰ 에도 사령부 수사과에서 검거 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3) 신청인 및 참고인 진술 신청인은 서울고법 1차 공판에서 경 이 사건으로 수사기관으로 연행되었다 고 진술하고,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오후에 하숙집에서 연행 되었으며, 그날은 나의 생일이어서 연행일자를 분명하게 기억한다 고 진술하였다. 33) 4) 수사관 진술 주무수사관이었던 B는 대공활동사의 연행일자 34) 에 따르면 이종수가 영장 발부일 35) 전까지 39일 동안 보안사령부 조사실에 구금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종수가 검찰에 송치 하기 전까지 계속 서빙고분실에서 조사했고, 수사 중에 이종수를 귀가조치한 일은 없다 고 진술하였다. 36) C는 대공활동사의 연행일자에 따르면 이종수가 영장 발부일 전까지 39일 동안 보안사 정지에 처한다. 32) 검찰에 송치된 수사기록 외에 기무사령부에 보존되어 있는 당시 수사기록. 33) 진술청취. 34) 이 연행하였다고 되어 있다. 35) 에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36)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8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령부 조사실에 구금된 것으로 판단된다, 장기간 구속하여 조사하는 것에 대해 큰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했는데, 당시 이 사건에서만 장기간의 구금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전반 적으로 모든 사건들을 장기간 진행했다 고 진술하였다. 37) D는 이종수를 연행한 다음 검찰에 송치할 때까지 계속해서 서빙고분실에서 1개월 정 도 구금상태에서 조사를 했다 고 진술하였다. 38) 5) 소결 기록의 기재내용과 관련자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신청인은 보안사 수사관 들에 의해 연행되어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영장 없이 39일간 불법구금 상태에서 수사를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 이는 형법 제124조 불법체포감금죄 39) 에 해당되 고,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확정판결을 받을 수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420조7호, 제422조 소정의 재심사유에 해당된다. 다. 고문, 가혹행위 여부 1) 신청인 진술 신청인은 서울형사지법 제2차 공판( )에서, 보안사 수사관한테서 조사를 받 을 때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 사실과 다르게 진술하였고, 검사 앞에서 조사를 받을 때는, 보안사 수사관이 그곳에서 말한 대로 하지 않으면 다시 불러다가 조사를 하겠다고 말을 하였고, 검사도 공소사실대로 진술하고 빨리 끝내자고 하여 겁이 나서 그렇게 말하였으 나, 3번째 조사를 받을 때는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려고 하였으나 기회가 안 되어 서 말을 못하였다 고 진술하였다. 서울구치소에서 신청인이 작성한 일본어 탄원서에서, 연행될 때 나는 한국에 간 지 3 년 정도 되었을 때로, 아직까지도 한국어가 서툴렀고, 한국의 문화에도 적응하지 못했을 때였다. 그런 나에게 체포영장도 없이 이유도 모르는 채 갑자기 하숙집으로 들이닥쳐 때 리고, 고문까지 받게 된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를 재판장님은 이해하느냐. 육체적, 정신적으로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 아는가, 고문에 의해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에서 37) 진술청취. 38) 진술청취. 39) 형법 제124조(불법체포, 불법감금) 1 재판, 검찰, 경찰 기타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보조하는 자가 그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을 체포 또는 감금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 정지에 처한다.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89

90 제4권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사실과는 전혀 다른 일을 수사관 앞에서 인정하였다, 수사관들 이 자신에게 보안사 조사기록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면 재조사를 하게 되는데, 그때는 조사서류를 사형( 死 刑 )을 받을 수 있도록 바꿔버릴 것이라며, 우리가 말한 대로 해라. 네 목숨은 우리들이 쥐고 있다 고 말해 검사 앞에서도 또다시 인정하게 된 것 이라고 기술하 였다. 40) 서울고법 제1차 공판( )에서, 신청인은 공소사실의 내용을 부인하면서, 검사 의 제3회 신문 때에 제대로 말할 기회가 주어졌으면 법정에서와 같은 말을 하려고 하였 다 고 진술하고, 제2차 공판( )에서, 신청인은 검사 앞에서 진술할 때 자유스러 운 분위기에서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였냐는 검사의 질문에 수사기관에서 고문을 당하고 또한 검사실에 보안사 수사관이 함께 있어서 자유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었 다, 수사기관에서 일종의 세뇌 같은 것을 당해 자유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고 진술 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 )에서 보안사 서빙고분실에서 얼굴 때리기, 뺨 맞기, 물고문, 전기고문, 몽둥이를 무릎 사이에 끼고 밟기, 통닭구이를 동반한 전기고문, 통닭구이를 동반한 물고문 등을 받았다며 상황에 관해 자세하게 진술하였는데, 몽둥이 를 무릎 사이에 끼고 수사관 두 명이 양쪽 몽둥이를 밟는 고문을 30초에서 1분 정도 당했 고, 이 고문은 2회 받았는데, 이 고문을 받은 날은 수사관들이 꼭 발바닥을 10번 정도 막 대기로 때렸다 고 진술하였다. 또한 같은 조사에서, B, C, 이름 모를 수사관 1명과 함께 조사실보다 1층 아래 지하실 로 들어갔는데, 수사관들이 옷을 모두 벗기고, 의자에 앉게 했으며, 수사관들이 두 팔을 묶고, 얼굴 전체에 손수건을 덮어놓고 주전자로 5분에서 10분여 동안 물을 부으면서, 너 북한 갔다 왔지, 이제 솔직하게 얘기할 거지 라고 말을 해서, 안 갔다 왔습니다, 모릅니 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수사관들이 나를 보고 독종이다, 저거 정신 못 차렸다 고 하 면서, 5분에서 10분 정도 물을 붓는 고문을 4~5번 정도 반복했고, 내가 제대로 숨을 못 쉬면 수건을 잠깐 잠깐 떼어주어 숨을 내쉬게 해주고 다시 수건을 덮었다. 그 고문이 끝 나면, 옷을 입고 다시 조사실로 돌아왔고, 초기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이와 같은 고문을 반복적으로 당했다 고 진술하였고, 의자에 앉게 한 다음 팔을 의자에 묶고 양쪽 엄지손가락에 전선을 감고 1번에 2~3초 40) 서울구치소에서 작성하여, 서울형사지방법원에 제출되었으며, 법원에 제출할 탄원 서를 일본어로 작성한 것으로 볼 때, 당시까지도 한국어 사용이 익숙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9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정도 전기를 흘리게 하는 것으로, 15번에서 20번 정도 전기를 흐르게 하였다. 1회에 15분 정도 걸렸던 것 같은데, 이런 전기고문을 2~3회 받았다 고 진술하였고, 통닭구이를 동반한 전기고문에 대해 재연하며 내가 있던 방에 책상을 하나 더 가져와 서 내 팔과 다리를 묶고 내 팔로 무릎을 감싸게 하였고 내 무릎 사이에 막대기를 끼웠고, 수사관들이 나를 들어 책상 사이에 올려놓아 내 몸이 흔들흔들했는데, 그런 상태에서 나 의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왼쪽 엄지손가락 사이에 전선을 연결해서 전기를 흐르게 하였 다, 이런 고문이 15분 정도 진행되었던 것 같은데 총 2회 받았다 고 진술하였고, 통닭구이를 동반한 전기고문 때와 같은 자세로 나를 책상 사이에 올려놓고는 주전자 로 얼굴에 물을 부었다. 15분에서 20분 정도 당했던 것 같은데, 이 고문도 내가 숨을 헉헉 거리면 수건을 치웠다가 다시 올려놓았다, 이 고문들은 초기에 집중적으로 받았는데, 내가 언제 이북에 갔다 왔는지를 조사받으며 당한 고문으로, 이후에도 고문을 받기는 했 지만, 초기만큼 심하게 고문당하지는 않았다. 이외 군화로 차이거나 뺨을 때리는 구타 등 은 상시적으로 있었다 고 진술하였고, 검찰에서 제1회 조사를 받기 이틀 전쯤에 보안사에 다시 불려가 41) 곧 높은 사람에게 조사를 받게 되는데 보안사에서 인정한 대로 진술하지 않으면 다시 불려와서 고문을 받 게 될 것 이라며 그렇게 되면 자기들이나 신청인 모두 고생하게 되므로 전부 인정하라 고 협박을 받았고, 나를 고문했던 수사관이 내가 최병국 검사에게 조사받는 모습을 지켜보 았는데, 이것이 무언의 협박으로 다가왔다 고 진술하였고, 개별 범죄사실별로 확인한 것이 아니라 국군기무사령부에서 조사를 받은 내용이 사 실인가요 라는 취지로 검사가 질문하여 내가 예 라고 대답을 했던 것 같으며, 조사 분위 기도 내가 말을 하면 들어줄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3번째 조사를 받을 때, 최병국 검사에게 내가 제1, 2회 조사에서 진술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얘기를 했더니 검사가 바 로 그 자리를 피했다. 그 직후 타이핑을 하던 검찰서기가 검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을 하였고, 내가 항의하는 말을 했다. 얼마 뒤 구치소로 돌아왔다, 그 이후 서빙고분실에 불려갔는데, 수사관 B가 누가 너한테 검사 앞에서 부인하는 게 좋겠다, 부인하라, 고 시 켰냐 누가 어드바이스(조언)를 했느냐 왜 부인하냐, 이 새끼 물 먹었구나, 어떤 사동에 사냐 고 물어봐서 내가 사는 사동은 소년수 사동으로 누구의 조언을 얻어 그러는 것은 41)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신청인은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고, 검찰에 송치되었다. 신청인은 서울구치소 수감 이후 위에서 언급한 두 차례를 포함하여 모두 세 차례 보안사에 다시 불려갔다 고 진술하였다.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91

92 제4권 아니다 라고 답변하자 나보고 부인하지 마. 지금 와서 부인해봤자 소용없다. 부인하면 시 간만 끌게 되고 좋을 것이 없으니 처음부터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해라 는 식의 말을 했다 고 진술하였다. 2) 참고인 진술 당시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던 홍충희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이종수의 비명소 리를 2~3번 들었다, 나를 사건에 같이 묶겠다는 협박 속에서 조사를 받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고, 이종수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조사를 받았던 것 역시 고통스러웠다. 나에게 물리적인 고문을 하지 않았지만, 그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자유롭게 진술을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고 진술하였고, 내가 이종수의 목소리를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도 있고, 비명소리가 재일동포 특유의 목소리였다 고 진술하였다. 42) 3) 수사관 진술 가) 보안사 수사관 B 수사관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신청인에게 가혹행위를 한 일이 없다고 부인하 면서도 이종수와 24시간 내내 함께 같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종수에 대해 다른 수사관들의 고문, 가혹행위가 없었다고 장담하지 못하겠다 고 진술하였다. 43) 신청인의 검찰 조사 시 수사관이 입회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이종수가 그렇게 얘 기한다면, 그랬던 것 같다 면서, 수사관들이 검사실에 입회한 이유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고 하고, 교도소에서 이종수를 데려와 조사한 일이 있었지만 추가조사를 위해서였고 진 술번복을 강요한 적은 없다고 진술하였다. 44) C, D 수사관은 신청인의 가혹행위 주장에 대해 전혀 그런 일이 없었고, 신청인이 거짓 말을 하고 있다고 진술하였다. 45) S 수사관은 나는 이종수가 구타당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다른 사건에서 수사관들 이 피의자 따귀를 한두 대 때리는 것은 본 일이 있으나, 물고문, 전기고문 등을 하는 것은 전혀 본 일이 없다 고 진술하였다. 46) 42) 진술청취. 43) 진술청취. 44) 진술청취. 45) ,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9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A 수사계장은 나는 이종수를 고문하거나 다른 수사관들이 고문하는 것을 본 적이 없 다, 다른 사건에서 가혹행위에 대해 간첩을 한 것으로 확실시되는 피의자가 혐의내용에 대해 거의 얘기할 듯 말 듯하여 목까지 차오르는 상태가 되면 수사관 입장에서 그냥 둘 수 있겠냐. 이런 경우에 조사하다가 때리는 경우는 있을 것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47) E 수사관은 당시 간첩사건 피의자 중에 맞지 않은 사람이 있냐, 당시 간첩사건 조사하 면서 수사관들이 피의자들이 내사내용과 다르게 거짓말할 때는 때릴 때도 있다. 나도 다 른 간첩사건에서 조사하다가 뺨도 때리고 그랬다. 당시 간첩사건을 조사할 때 물고문을 하기도 하며, 뺨(귀싸대기)도 때리고, 물도 조금씩 붓고 할 수도 있지만,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조사를 한 것이다, 담당수사관들한테 이종수가 위와 같이 전기고문을 받았을 수 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전기고문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당시 피의 자들을 검찰에 송치한 뒤 거짓말하면 서빙고분실로 다시 데려와 왜 부인하냐, 우리가 언 제 고문했냐 고 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고 진술하였다. 48) C, D 수사관은 당시 대공분실은 방음장치가 다 되어 있기 때문에 비명소리를 들었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고 진술하였지만, E 수사관은 이종수의 비명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방음장치가 되어 있기는 했지만 완벽하지 않았고, 문이 열리거나 그랬을 때 비명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고 진술하였고, B 수사관도 E 수사관과 같은 취지로 진술하였다. A 수사계장은 나는 그런 비명소리를 들은 적이 없는데, 그 사람이 들었다고 한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내가 현장에 있지 않아 뭐라 말할 수 없다 고 진술하였다. 나) 검찰수사관 검찰주사보 I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방에는 검사, 타자수, 내가 있었고, 이종수를 데려온 교도관이 옆에 앉아 있거나 교도관실에서 대기하는 수도 있고 그랬으나, 수사관 이 배석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 라고 진술하였다. 한편 신청인이 검찰 제3회 조사 시 제1, 2회 진술을 부인하였으나, 검사가 자리를 뜬 후 검찰서기가 그 내용을 신문조서에 포함하지 않았다는 신청인의 주장에 대하여 있을 수 는 있는 일이나, 이에 대한 기억이 없다, 간첩은 이북에서 검거당했을 때 대처요령을 교 육받아오고 그에 따라 부인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피의자가 부인하는 내용을 조서에 46) 진술청취. 47) 진술청취. 48) 진술청취.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93

94 제4권 기재하지는 않았고, 당시 간첩사건에서는 거의 대부분 부인조서를 받지 않았다 고 진술 하였다. 49) 4) 소결 신청인의 공판부터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고 상세하게 보안사 서 빙고분실에서의 고문 및 가혹행위에 대한 진술, 검찰 송치 이전에 보안사 수사관들로부 터 받은 협박 진술, 수사관들이 검사실에 입회했다는 진술, 검찰 제3회 조사 시 범죄사실 에 대해 부인한 뒤 보안사에 다시 불려가 협박을 당한 사실이 있다는 진술, 참고인 홍충 희가 서빙고분실에서 신청인의 비명소리를 들었다는 진술, E 수사관의 당시 간첩사건 피 의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폭행 등이 관행적으로 행사되었다고 한 진술, B 수사관의 검 사실에서 조사받을 상황에 대한 진술을 종합하면 고문 가혹행위 사실을 부인하는 수사관 의 진술을 믿기 어렵고, 신청인이 장기간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받은 점을 볼 때 신청 인이 보안사 서빙고분실에서 조사받는 도중 수사관들로부터 심한 고문, 가혹행위를 당하 였고, 장기간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로 인하여 자백을 한 점이 인정되고, 검찰 조사에서도 위축된 상태가 계속되었고 수사관에게 협박을 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위 고문 및 가혹행위는 형법 제125조의 폭행, 가혹행위 죄에 해당하고, 형사소송법 제 420조7호, 제422조 소정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라. 범죄사실 조작 여부 신청인의 1심 유죄증거의 요지는 1 피고인의 법정진술 2 증인 홍충희, R, N, 김수년, 허관명, 최인복의 법정진술 3 검사작성 피의자신문조서 4 검사 및 사법경찰관 작성의 홍충희, R, N에 대한 각 진술조서 5 사법경찰관 작성의 김수년, 허관명의 진술조서, 6 남원규, 김창환, 권영철, 정용구, 최인복 작성의 진술서 및 김정웅 작성의 확인서 7 사법 경찰관 O 작성의 각 수사보고 8 이종수의 출입국에 관한 사실증명, 감정의견서 50), 영사 증명서( ) 9 압수된 일제 산요 카세트 라디오, 레시버, 대한민국 일본여권, 일 본어판 마르크스 엥겔스 소전, 보통예금통장 등이다. 파기환송심에서 추가된 유죄증거의 요지는 1 치안본부 제3부장 작성의 신원조사 회보 서 51) 2 증인 P, Q, 한태웅의 법정진술 3 최영오 작성의 환송 후 진술서 4영사증명서 49) 진술청취. 50) 국군보안사령부 3처 분석실장 이항구 작성, 일본어판 마르크스엥겔스 소전에 대한 감정서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9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 ) 및 한태웅 작성의 진술서 52) 의 각 기재 등이다. 대법원이 거시한, 유죄증거와 배치되는 증거는 항소심에 제출된 1 최영오의 법정진술 과 신원보증서 2 박태수 작성의 신원보증서 53) 3 민단 교토부 단장 하병욱의 진술 및 진술서 54) 등이다. 1) 신청인이 반국가단체구성원 또는 그로부터 지령을 받은 자에게 지령을 받았는지 여부 가) 문제의 소재 신청인에 대한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인 이종수는 북한 재일 대남공작지도원 조 신부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북한찬양 및 한국비방의 교양을 받고 포섭되었으며, 한 국에 유학을 온 뒤 그의 지령에 따라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관한 각종 정보 를 수집하여 보고했다는 것이다. 조신부는 리쯔메이깐( 立 命 館 )대학 재학 시 재일조선인 총연합회 산하단체인 재일조선인학생동맹 55) 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위 단체에서 김일성 일대기, 김일성 주체사상, 북조선의 경제발전상, 조총련 중앙본부의장 연설문 등에 대해 학습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 조신부의 조총련 관련 활동 여부 (1) 신청인의 진술 신청인은 보안사와 검찰에서 판결요지 1)~11)의 범죄사실에 대해 모두 자백하였으나, 서울형사지법 제1차 공판( ), 제2차 공판( )에서 공소사실 일시 장소에 서 조신부를 만난 사실, 조신부의 재일조선인학생동맹 가입사실을 청취한 사실 외에는 범죄사실을 부인하였다. 란( 蘭 )주점에서 함께 일할 때 조신부가 조총련 활동 등에 대하여 51) 환송전 당심증인 하병욱은 1949.경 밀항, 도일하여 조총련 상공회 재정부장으로 활동하다가 1963.경 민단 원으로 전향하였으며, 재일 반한단체인 베트콩과(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속칭 한민통)의 교토 책 임자로 활동한 사실이 있다는 내용 등. 52) 한태웅이 위 파기환송심에서 증언을 한 날( )에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로서 법정 증언과 비슷한 내용. 53) 민단 구라시끼지부 지단장, 조신부가 재일 대한민국 거류민단 구라시끼지부 단원임을 증명한다는 내용 등. 54) 민단 교토부 지방본부 단장, 조창순은 건실한 민단원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인의 긍지를 가지고 조국발전에 이바지하였으며 재일본 교토 민단사회의 훌륭한 지도자후보의 한 사람임을 확신하고 보증한다는 내용 등. 55) 재일본조선학생동맹(조학동)의 오기( 誤 記 )이다. 피의자신문조서, 판결문 등에 조신부가 가입한 단체로 나 오는 재일조선인학생동맹은 약칭 조학동으로 볼 때, 재일본조선학생동맹을 말하는 것으로, 위 단체는 1950년까지 존재했던 단체로, 민단계 학생들이 탈퇴한 후 명칭을 재일본조선유학생동맹(유학동)으로 변경 하였고, 당시부터 현재까지 유학동은 조총련 산하단체이다. 재일동포 참고인 조창순, Q, P, 하병욱 등을 조 사한 결과 조학동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나, 과거에 존재했던 조직이고, 당시에는 사용되지 않 았다고 진술하였다.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95

96 제4권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으며, 조총련계라고는 못 느꼈다고 진술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 )에서 조신부에 대해 둘째고모부 조창순의 조 카로서 란( 蘭 )주점에서 같이 일을 했고, 당시에 한국과 북한 그리고 정치상황 등에 대해 서 자신보다 좀 더 관심을 가졌던 사람으로, 리쯔메이깐( 立 命 館 ) 대학에 다닐 때 조문연 (조선문화연구회)이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반국가단체 구성원은 아니었다 고 진술하면서, 피의자신문조서 등에 조신부가 재일조선인 총연합회 산하단체 인 재일조선인학생동맹에 가입하여 활동 중인데 동 단체에서 김일성 일대기, 김일성 주 체사상, 북조선의 경제발전상, 북조선 노래, 북조선 영화관람, 조총련 중앙본부의장 연설 문, 북조선의 실정 등에 대한 학습을 받았다는 내용의 말을 듣고, 반국가단체 구성원임을 알았다 고 기재된 것은 수사관들이 만들어낸 허위이며, 조신부와 그러한 이야기를 나눈 바가 없다고 하면서, 서울형사지법 2차 공판에서 조신부가 대학 재학 시 조총련계라고 대 답한 점에 대하여 조신부가 조총련계인 적이 없는데, 내가 왜 그때 이렇게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고 하였고, 조신부가 조문연이 아니라 조학동(재일본조선학생동맹) 이라는 동아리 활동을 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고, 조학동은 조총련계 산하단체이 기 때문에, 조신부가 대학 때 조총련계 활동을 했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데 내가 스스로 잘못 인식하고 있었는지, 수사관들의 유도에 의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당시에 내가 활동했던 한학동(재일한국학생동맹)을 제외하고 조 학동과 유학동(재일본조선유학생동맹), 조문연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고 진술하였다. (2) 국가안전기획부(주일오사카영사관)의 영사증명 1심에 제출된 영사증명서( 자) 56) 에는 ~ 경, 신청인과 조신부 가 란( 蘭 ) 주점에서 같이 근무하고, 근교 삼화장에 거주한 바 있으며, 신청인이 한국 유학 후에 방학 중 귀일하여 가끔 접촉한 바 있다고 기재되어 있어 신청인의 자백의 일부만을 보강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및 국군기무사령부의 보존문서 57) 는, 위 영사증명서는 보안사에서 안기부에 대일영사증명을 의뢰하여( 추가 의뢰) 안기부가 보안사에 회신한 것으로 대일사실조사결과를 함께 통보하였다. 대일사실조사결과에 따르면, 란( 蘭 )주점 종업원 야스다히로시( 安 田 弘 ) 58) 에 확인한 결 56) 駐 오사카 영사관(총영사 윤영엽) 발행, 영사 최상열 작성. 57) 수오-1145( ) 이종수 사건 관련 자료 요청에 대한 회보, 과거사진상규명지원T/F-1198 ( ), 간첩 이종수 사건 관련자료 확인결과 통보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9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과 조신부가 평소 조총련이라고 발설한 사실은 없고 민단계라고 말하였다고 하며, 확인 결과 조신부는 민단으로 가입되어 있었고, 민단 및 일본경찰에 확인결과 이종수의 단체 가입활동사실을 발견하지 못하였고, 조신부 59) 의 좌익활동 및 불순단체가입사실과 조총 련계 업체인 나까야마( 中 山 )관광 근무사실을 발견하지 못하였으며, 란 주점 사직 후 다까 야마( 高 山 )물산(교토한국학교 이사장인 민단계 최영오 경영) 교토 본사, 오사까 지사, 가 나자와 지사를 거쳐 시가현 나까하마 지사장으로 재직 중, 이종수 관련 의뢰사항 중 상 부선이라는 조창순, 조신부는 민단계이며 대남공작혐의사실이 발견되지 않고 있어 이종 수와 조신부의 거주사실 및 근무사실에 대한 영사증명만을 첨부한다 고 되어 있다. 그런 데 보안사에서 검찰에 송치한 수사기록에는 위 대일사실조사결과가 빠져 있다. 파기환송심에 제출된 제2차 영사증명서( 자) 60) 에 따르면, 조신부는 1977년 교토( 京 都 )시 소재 입명관( 立 命 館 )대학 조총련계 조직인 조선인유학생동맹에 가입, 북괴 를 지지 찬양하는 활동을 한 바 있으며, 조총련계 재일동포가 경영하는 나까야마( 中 山 )관 광에 근무한 바 있다 함 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61) (3) 참고인의 진술 1 유죄의 증거와 관련된 참고인 보안사에서 검찰에 송치한 수사기록에는 보안사 협조자 한태웅(본명 김경식) 62) 이 란 ( 蘭 )주점에서 이종수, 조신부와 함께 근무했던 위 야스다 히로시( 安 田 弘 )을 만나 대화한 녹취록이 첨부된 수사보고( ) 63) 가 들어 있는데 64) 야스다 히로시( 安 田 弘 )가 이종 58) 야스다 히로시, 일본인. 이종수, 조신부와 같은 시기에 란( 蘭 ) 주점에서 함께 근무하였고, 그들이 퇴사한 뒤에도 근무하였다. 59) 위 대일사실조사결과에는 이종수와 조신부의 관계에 대해 이미지자가 이종수의 고모이며, 조신부의 이모 라고 되어 있으나,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결과 이종수와 조신부는 인척간으로, 이종수의 둘째고모부가 조창 순이며, 조신부는 조창순의 조카이다. 60) 駐 오사카 영사관(총영사 윤영엽) 발행, 영사 이태오 작성. 61) 위 영사증명서에는 영사증명을 추가로 발부하게 된 경위와 위와 같은 사실을 누구에게 확인하였는지에 대해서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국정원과 기무사로부터 최초 영사증명서 발부 시에 첨부된 대일사실 조사결과와 자료에 대해서도 제출받지 못했다. 62) 보안사 수사기록에 협조자이며 본명은 김경식이라고 기술되어 있고, 한태웅 명의로 작성된 수사보고서가 여러 개 있다. 보안사 수사관은 대부분 김경식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그가 한태웅이라는 가명을 사용 한 것은 E 수사관 혼자만 알고 있다고 진술하였다. 수사관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김경식은 재일동포가 아 니며 한국과 일본을 자주 왕래하였고, 재일동포 양원석의 지원 아래 일본 관련 업무에 대해 협조를 했다 는 것이다. 위 양원석은 아시아민족동맹 회장이자 일본관서지방의 야쿠자 조직의 1인자로서 일본 경시청 의 전현직 간부들과 친분이 두터워 정보력이 상당했기 때문에 보안사에서는 대일정보 수집에서 양원석에 게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는데, 양원석의 국내 방문 일정 등을 알아보기 위해서도 김경식과 접촉했다는 것이다.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97

98 제4권 수는 한국사람이며, 조신부는 조선사람 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되어 있어 대일사실조사결 과와 서로 반대되는 내용이다. 65) 한태웅은 서울고법(파기환송심) 제6차 공판( ) 66) 에서 조신부가 일본 교토에 있는 리쯔메이깐( 立 命 館 )대학에 다닐 때 조총련 산하단체인 유학동(조학동)에 가입, 김일 성 노선을 지지 찬양하고, 조총련계 학생규합 등의 활동을 하였고 위 대학을 그만둔 후에 도 계속 활동하였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였고, 란( 蘭 )주점이 입지적 조건으로 보아 재일대 남공작원들의 비밀아지트로 사용되기 제일 좋은 장소라는 생각된다고 증언하였고, 자신이 작성한 수사보고서 67) 에 기재된 리쯔메이깐( 立 命 館 )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계 속하여 조총련 내의 조직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라고 기재한 내용에 대해, 조총련 내의 조 직원 의 의미에 대해 진술서 68) 에서 전부 진술했다 69) 고 답변하였으나, 진술서에 내용이 없고, 판단 증거에 대해서는 조신부가 조총련의 조직원으로서 사업했다는 것은 그 조직 원에 있는 사람만이 알고 있다, 조총련의 지하공작조직으로서 그런 체제가 일반조직과 관계가 없으나 조신부가 조문연에 속하고 있을 때 조총련 지하공작원들의 지시를 받고 학생조직을 떠나서 지하공작을 했다, 졸업 후에 조신부가 조선청년동맹에 가입하였다 는 증거는 못 잡았다 라고 증언하였고, 수사보고서의 란( 蘭 )을 경영하기에 이르면서 조신부의 활동은 이전과는 달리 표면에 는 보이지 않고 오직 배후 활동의 임무 수행에만 주력하게 되었다 고 기재된 것에 대해 나의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조신부는 이 자리를 아지트로 해서 대남공작을 한다고 느꼈 다, 두 번에 걸쳐서 야스다 히로시를 만났는데 이것은 조총련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 어서 녹음을 했다 고 증언하였고, 조신부가 현재 민단계 인물이 경영하는 다까야마( 高 山 )물산주식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이유가 조직상 비밀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며, 야스다 히로시를 통해 조신 부가 나까야마( 中 山 )관광주식회사에 대해 근무한 사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며 야스다 히로시에 대해 자신의 심부름꾼 이라고 증언하였고, 야스다 히로시로부터 조신부가 평 63) 작성일은 기술하지 않았으며, 위 기록의 서울지방검찰청 접수일은 이다. 64) 위 수사보고는 법원에서 증거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65) 뒤에 서술하는 야스다 히로시에 대한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결과 참조. 66) 한태웅은 이날 증언과 비슷한 취지의 진술서를 제출하였는데 앞에서 보았듯이 증거요지로 채택되었다. 67) 날짜는 없으며, 국가안전기획부 제 호( )에 첨부된 보고서를 의미한다. 68) 작성하고 제출된 보고서를 의미한다. 69) 위 진술서를 확인한 결과 자신의 신분 및 조총련 대남공작원을 고발하는 이유에 대해 기재하였고, 이종수 사건과 관련하여 조신부의 신분, 조신부가 다녔다는 중산관광, 그리고 최영오, 조창순, 한민통, 유학동 등 에 대해 기재하고 있으나 조총련 내의 조직원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9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양이 좋다, 한국에서는 여러 가지 군사적인 문제, 파쇼적인 문제도 있다 는 말을 하는 것 을 들었기 때문에 그 사람(조신부)이 한국 측이 아니고 조선 측이라고 느꼈다 고 나한테 말해주었다고 증언하였다. Q 70) 는 서울고법(파기환송심) 제5차 공판(3. 26.), 제6차 공판(4. 16.)에서 조총련에서 대남공작지도원이나 대남공작원을 포섭 시에는 과거 학생시절에 유학동, 한학동, 한청(재 일한국청년동맹) 등에서 반한활동을 하던 사람 중에서 선발하고, 그 이유는 반한활동이 나 좌익활동하던 사람들이 북괴 노선에 쉽게 순응하기 때문으로, 조총련이나 그 산하단 체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은 일본에서 활동할 수가 없으며, 또한 한국을 출입할 수 없기 때 문으로, 북괴는 조총련을 민단원으로 위장 전향시켜 활용하거나 민단원을 비밀히 포섭해 서 대남공작 지도원이나 대남공작원으로 활용하고 있고, 일본에 있는 재일 유학생 동맹 을 약칭 유학동 이라 하며, 이 단체는 조총련 산하단체로 일본 각 대학에 있는 우리 교포 대학생들을 포섭해서 김일성주의사상을 학습시키고 있다, 조문연이란 명칭을 쓸 때는 유학동을 말하는 것, 조문연은 유학동 산하단체, 유학동은 조총련 산하단체 라고 증 언하였고, 같은 취지의 진술서( )를 제출하였으나,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Q는 대남공작활동과 관련하여 나는 깊숙이 그 조직 내용을 알고 있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북한이 조총련을 통해 대남공작사업을 하는 방법에 대 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총련이 민단 신분을 가지고 조총련 대남공작사업 을 하는지 여부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또 유학동이나 한학동, 한청 등에 열심히 활동하 는 사람은 대남공작지도원이 된다고 진술서에 썼으나, 그런 사람들은 이미 정부기관에서 포착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그런 사람들이 대남공작원이 되는 것은 오히려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조문연이 대학의 정식 서클로서 유학동과 직접적인 상관관계 는 없지만, 조문연 회원 가운데 유학동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있었고, 또한 유학동이 조총 련 산하단체이기는 하지만, 유학동을 나왔다고 해서, 조총련계 일꾼이 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유학동 활동하는 사람 중에서도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었 다. 유학동에서 나오는 장학금이 한학동에서 나오는 것보다 푸짐하니까 그것 때문에 유 학동에 가입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고 진술하였다. 71) 70) 이 사건에 대해 진술할 당시에 Q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1969년에 고베대학교를 입학한 Q는 북에 가서 간첩교육을 받고, 한국학생동맹 에 적극 가담, 활동하면서 후배들을 포섭하여 간첩교육을 시킨 혐의로 1983년 8월 보안사에 의해 체포되어, 국가 및 군사기밀 탐지 수집, 밀입북 혐의 등으로 기소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1990년 5월 가석방되었다. 71) 진술청취.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99

100 제4권 P 72) 는 서울고법(파기환송심) 제6차 공판(4. 16)에서 자신의 상부선은 재일 대남공작지 도원이나, 자신, 자신의 상부선, 위 상부선의 상부선은 순수한 민단원이라고 진술하며, 조 총련에서 동조자를 포섭하는 과정 및 조총련의 민단조직을 이용한 대남공작활동에 대해 증언하였고, 같은 취지의 진술서( )를 제출하였으나,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위 진술서는 B 수사관이 불러준 대로 작성했고, 법원에서는 한학동에 가입되었냐, 서성수를 아느냐, 조아무개를 아느냐 는 질문에 예, 예, 아니 오 라고 대답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또한 법정에서 진술한 대남공작활동 방식인 조총련 의 내부 인사가 위장 전향했다는 등의 내용에 대해 당시 어린 자신으로서는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고 진술하였다. 73) 교토( 京 都 )한국학교 이사장이자 다까야마( 高 山 )물산 사장인 최영오는 서울고법 제2차 공판( )에서 조신부가 다까야마( 高 山 )물산주식회사 사원으로 채용 되어 충실히 근무하고 있으며 채용 당시 조신부가 조총련계나 조총련계의 공작원이 아니 라는 것을 확인하고 채용하였으며, 회사 채용 이후 회사에 일본사람이 주로 많고, 한국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에 사상과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알고 있고, 대한민국을 지지하는 사람으로 확신한다고 증언하였고, 같은 취지의 진술서( )를 제출하였으나, 보안사에서 조사받으면서 작성하여 파기환송심에 제출된 진술서 74) 에서는 조신부의 사 상이나 성향에 대하여는 정확하게 모른 채 조창순의 부탁으로 위와 같은 취지의 증언을 하였다고 기재하였다. 2 기타 참고인 조신부는 1심 재판에 제출한 자필진술서 75) 에서 리쯔메이깐( 立 命 館 )대학교에 입학한 72) 1983년 7월 연세대학교 대학원 재학 중에 위 Q에게 포섭되어 교양, 입북권유 등을 받은 혐의로 보안사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후 P는 공소보류처분을 받고 부터 까지 보안사 군무원으로서 일 본 자료를 번역하거나 관련자 조사 시 통역을 담당하였다. 73) 진술청취. 74) 1980년 7월경 다까야마( 高 山 )물산 상무이사로부터 조창순의 4촌동생(위원회 조사결과, 실제로는 조카임) 으로 리쯔메이깐( 立 命 館 ) 대학을 졸업한 조신부를 사원으로 채용한다는 보고를 받았고, 조신부는 현재 열 심히 일하고 있다. 조신부가 민단원이라는 것은 알고 있으나, 회사 입사 전 사생활이나 대학 재학 시 학생 운동 등등의 내용과 조신부의 사상에 대하여는 아는 바 없고, 조총련과의 관계 여부에 대해서도 알지 못 하는데, 조창순으로부터 조신부가 정치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증언해달라고 부탁을 받아, 회사 입사 후 조 총련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으로 증언하였다는 내용이다. 75) 1심 재판 중 2개의 진술서를 제출한바, 첫 번째 진술서는 조신부가 직접 일본어로 작성하고, 번역문이 첨 부되어 있고, 두 번째 진술서는 이종수의 고모인 이경예가 조신부의 구술에 따라 한글로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조신부가 한글을 알지 못하는 점을 고려하여 첫 번째 진술서의 번역내용만을 인용한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0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후 한국말을 공부하고 싶어서 학교 내 하나밖에 없는 한국 관련 공인서클인 조문연에 가 입했으며, 선배 중 김일성을 찬양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자신은 이해할 수 없었고, 그 선 배들이 조문연은 입명관대학교의 조선인 학생에게 있어서는 사상, 신념을 초월한 동포 학생의 모임이며, 김일성 체제를 비판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좋다. 상관이 없어 라 고 말해서, 사상이 달라도 있을 만하다고 생각했다며, 2학년 때 선배들이 총련 76) 산하의 유학동에 가입하면 하숙집과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권유했으나 거절했고, 3학년 때부터는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어 조문연에 거의 나가지 않았고, 4학년 때는 학교도 거의 가지 않았다고 기재하였고,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조선이라는 말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 처음에 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거절을 했는데, 금기도 선배가 5~6번 정도 권유하면서 조선이라 는 말은 북조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고, 리쯔메이깐( 立 命 館 )대학교에는 재일학생단체가 조문연밖에 없다고 하여 가입하게 되었다, 조총련계 학생들은 상당수가 조선대학교에 입학하기 때문에 일본 대학에는 민단계 학생들이 휠씬 많았고 따라서 조문연에도 민단계가 휠씬 많았다, 조문연은 우리말, 우리 역사 등을 배 우고 친목을 다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고, 공식적으로 등록된 대학내 서클로, 당시에 전 국의 주요 대학에는 대부분 있었고, 교토에도 여러 대학에 있었다며, 리쯔메이깐( 立 命 館 ) 대학 자체의 정기 모임도 있었고, 교토지역 연합모임도 있었다, 조문연 회원 가운데 유 학동 모임에 참가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조문연 회원들과 함께 어울려 이러 저런 모 임에 참석한 것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조문연 모임에 참석한 것인지 유학동 모임에 참석 한 것인지 구분이 명확하지 않는 점이 있다 유학동에 가입원서를 낸 일은 없으나 자동 적으로 유학동에 가입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으며, 유학동을 정치적인 모임이라고 생각하 지 않고, 학생모임이라고 생각하였다 고 진술하였고, 일시적으로 유학동 가수단 활동을 했다며, 대학교 2학년 또는 3학년 여름방학 때 각 지역의 유학동 가수단(남성 중창단)들이 참석하여 행사를 열었는데, 내가 교토지역 유학 동 가수단에 들어가서 3개월 동안 노래 연습을 한 일이 있다. 당시에 나는 우리나라 동포 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았고, 다른 곳에 여행을 가서 각 지역의 대학생들을 함께 지내는 것이 좋았다. 내게 조문연이나 유학동 활동은 학생시절에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고 진술하였고, 조문연 탈퇴경위에 대해서는 내가 3학년 이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조문연 모임 76) 조총련을 일본 내에서는 총련이라고 표현한다.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101

102 제4권 에는 참석을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을 만나려고 이따금 서클 사무실에는 들르곤 했다. 그 러다가 4학년이던 1977년 여름방학에 규슈( 九 州 )에서 조문연 학습회가 열렸는데, 규슈를 가본 적이 없어서 그곳에 가보고 싶어서 이 학습회에 참석했다. 당시 학습회의 주제가 북 한의 세습제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참석하기 전에는 주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내가 토론시간에 김일성의 독재와 김정일을 후계자로 세우는 북한의 세습제가 싫어서 강하게 비판했다. 김정일보다 훌륭한 사람이 없느냐 하는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뒤로는 두 번 다시 조문연 모임이나 사무실에 가지 않았다 고 진술하였고, 77) 자신은 나까야마( 中 山 ) 관광에 근무한 사실은 없으며, 란( 蘭 )주점 퇴사 후 곧바로 다까야마( 高 山 )물산에 입사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다까야마( 高 山 )물산에서 입수한 조신부의 사원카드는 조신부가 부터 현재까지 위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고 적고 있다. 야스다 히로시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당시 한국인이 조신부, 이종수에 대해 확인 하러 온 사실이 있었는지에 대해 기억하지 못한다며, 조신부, 이종수가 재일조선인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국적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고, 나까야마( 中 山 )관광은 전혀 알지 못 하는 회사이며, 다까야마( 高 山 )물산은 조신부와 관련된 회사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 하였다. 조신부와 조문연 동기였던 양기홍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리쯔메이깐( 立 命 館 )대 학교에 입학하여 조문연에서 조신부를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우리말을 배우고 싶어서, 목요일 밤에 한국어공부회 에 꾸준히 참가하였는데, 조신부는 조문연 활동을 열심히 하 는 친구는 아니었으며, 아르바이트 등으로 바빴다 고 진술하였고, 조문연에 대해 교포학 생들이 모이는 자리로, 자유롭게 한국, 북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서클이었으나, 서클 내에서 선배들을 포함해서 정치적인 얘기는 안 했으며, 김일성 일대기 등을 배우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서클룸에서 관련된 책을 본 일은 있었고, 당시 학생들이 한국정치에 관심 을 가지기보다는 일본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더 고민이 많았다며, 당시 동기 들이 동포학생들이었던 것만 알고 있을 뿐 개개인의 국적은 알지 못한다고 진술하였고, 조문연과 유학동은 조직적인 관계는 아니었고, 교류는 있었다 고 하면서, 대학시절 2 박 3일 정도 한국어 공부를 하는 캠프( 단기학습회 ) 같은 것을 한 번 다녀온 일이 있었 고, 5월 1일 노동절(메이데이)에 집회를 다녀온 일이 한 번 있었는데 조문연의 행사인지 아닌지 유학동의 행사인지 불분명하다 고 진술하였다. 78) 77)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0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조창순 79)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조총련계라 하더라도 한학동을 가입할 수 있고, 한국계라 하더라고 유학동에 가입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재일동포들은 고등학교 때까지 일본학교에 다니면 특별히 조총련계인지 한국계인지 인식이 없었으며, 조신부의 다까야 마( 高 山 )물산 입사 경위와 관련하여 교토( 京 都 )한국학원 이사장인 최영오가 경영하는 다까야마( 高 山 )물산의 총무한테 조신부의 취직을 부탁해서 조신부가 그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최영오는 조신부가 나의 조카인 것도 알고 있었다 고 진술하였고, 80) (이 사건에 대해)대법원에서 파기환송한 이후에 최영오씨가 한국에 갔을 때 보안사 관계자 3~4명이 찾아와서, 2심 재판에서 한 증언을 언급하면서 다른 취지의 내용을 인정 하도록 요구하면서, 서류를 작성하여 가져와서 사인을 하라고 하고, 그 서류에 사인을 해 주지 않으면 일본에 보내주지 않는다고 협박을 했다고 최영오씨로부터 들었다 고 진술하 였다. 하병욱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최영오가 법원에 증언을 하러 간 이후에 개인적인 업무로 한국에 갔을 때 보안사에 불려가서 2~3일 동안 조사받았다고 (최영오로부터) 들 었다 고 진술하였다. 다) 조신부의 간첩지령, 교양실시 여부 (1) 신청인 진술 신청인은 서울형사지법 제1차 공판에서 조신부의 지령사실 및 교양실시에 대하여 그 런 말은 들은 일이 없고, 일본에 돌아와서 한국학교 선생을 하려면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 였다, 남한의 애국가보다 북조선의 애국가가 가사도 좋고 멜로디도 좋다고 하면서, 조 신부가 소위 북괴의 국가를 부르는 것을 듣고 그 가사와 멜로디가 좋다고 하였는가요 라 는 질문에 대해 예 라고 답변한 것, 조신부를 만난 사실 외에는 모두 부인하였다. 서울고법 제1차 공판에서는 조신부가 우리나라 애국가보다는 북조선 애국가가 더 좋 다는 말을 한 것을 들은 적은 있으나 (조신부가) 북괴의 국가를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은 없다 면서 1심에서의 진술 일부를 철회하면서 (통역이 없어) 질문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 하지 못하고 답변한 것이라고 진술하였고, 81) 한국에 유학 오기 전 일본에서 같이 아르바이트 하던 사람 중 재일동포가 있냐는 보안 78) 진술청취. 79) 1960년대 초반에 한학동 위원장을 지냈다. 80) 진술청취. 81) 신청인이 1심에서 증언할 당시에 우리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서술.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103

104 제4권 사 수사관의 질문에 조신부는 먼 친척으로 리쯔메이깐( 立 命 館 )대학에 다닌다 고 하자 갑 자기 수사관들이 조신부를 빨갱이로 몰아세웠으며, 그들이 리쯔메이깐( 立 命 館 )대학은 빨 갱이 성향을 가지고 있는 대학으로, 조신부도 공산주의자 라고 했는데, 자신은 처음에는 아는 것이 없다 고 하였으나, 부인하면 구타를 당하였기 때문에 일관되게 부인하지 못했 다고 진술하였고, 82) 내가 조신부에게 들었다는 말은 사실과 너무 달랐지만, 내게 가해지는 고문 때문에 인 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김태홍 83) 의 공소장을 책상에 놓고 (조사실에) 나만 두고 나간 적이 있는데, (이후 수사관들이 들어와서) 조신부가 나한테 얘기한 내용에 대해 물 어보며, 그런 84) 말 못 들었나 고 하면서 인정하라고 한 적도 있다. 나에게 가해지는 고문 으로 인해서 수사관이 인정하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물고문과 전기고 문을 같이 받고 기절할 뻔한 적도 있고, 나는 이 정도 사안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징역 을 살게 되는 것인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고 진술하였다. (2) 참고인 진술 조신부는 1심 재판 진행 중 제출한 자필진술서에서 85) 에서 신청인과 함께 일했다고 진 술하였으나,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전부 부인하였고, 3학년 때부터는 조문연에도 전혀 안 간 자신이 북한의 공작원이 되어야 하겠냐고 반문하면서, 이종수의 유학 후 하순 경 이종수를 만나서 한국에 대해 자세한 현황보고를 받았다는 내용은 공소장 86) 을 읽고 처음 알게 된 것이라고 하면서, 란( 蘭 )주점 퇴사 후 고산물산에 입사하여 근무하였고, 입사 후 엄하게 교육을 받았다며, 자신이 북한의 공작원이라든지, 이종수에게 지령을 했다든지 하는 것은 전혀 82) 진술청취. 83) 1978년 3월에 연세대 상경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한 김태홍은 북한 지령에 따라 교포 유학생을 가장해 국내 학원가에 침투, 좌경성향의 일부 학생들에게 폭력에 의한 국가전복을 유도하고 1981년 1월 28일에서 같은 해 2월 21일까지 겨울방학을 이용해 일본 야마구치 해안에서 원산을 경유, 평양에 들어가 간첩 밀봉교육 을 받은 혐의로 1981년 9월 9일 보안사에 의해 체포되었다. 김태홍은 1976년 12월 당시 문교부가 시행한 모국 유학생 선발시험에 합격해 1977년 4월 서울대학교 재외국민교육원에 입학, 12월 수료했으며 1978년 3월에는 연세대 상경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해 국가 위해행위를 한 혐의를 받았다. 국가 및 군사기밀 탐지 수집, 밀입북 혐의 등으로 기소되어 징역을 선고받았고, 1996년 8 15 특사로 가석방되었다.(국방부과거사 진싱규명위원회, 재일동포 및 일본관련 간첩조작의혹사건 조사결과보고서 참고.) 84) 김태홍의 공소장에 있는 내용. 85) 1심 재판 중 2개의 진술서를 제출한바, 첫 번째 진술서는 조신부가 직접 일본어로 작성하고, 번역문이 첨 부되어 있고, 두 번째 진술서는 이종수의 고모인 이경예가 조신부의 구술에 따라 한글로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조신부가 한글을 알지 못하는 점을 고려하여 첫 번째 진술서의 번역내용만을 인용한다. 86) 원문에는 종수의 구술서 내용이라고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공소장으로 추정된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0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난센스라며, 자신은 조총련계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 사실관계 를 조사하여 확인해달라고 요청하였다. 87)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이종수와 란( 蘭 ) 에서 약 1년 동안 함께 일하는 동안 자주 만나 얘기하면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대화 중간에 화제의 하나로 한국의 정치와 사회 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은 있다. 당시 나는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일본 신문이 나 방송에서 한국에 관한 기사나 보도가 나오면 관심을 갖고 들었다. 그리고 당시에 나는 박정희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억누르고 독재정치를 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졌 고, 한국의 빈부격차가 심하다는 것, 김대중 납치사건이나 김지하 시인의 구속에 대해 일 본 언론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는 한국전쟁이 소련의 비밀문서에서 드러났 듯이 북침이 아니라 남침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남한에서 북한을 침입한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이 정치, 경제, 군사적인 측면에서 자주적으로 살아야 한다 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김일성정권도 독재정권이지만, 김일성이 박정희에 비교해볼 때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종 수와 한국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이와 같은 내 생각을 얘기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북한과 남한을 비교하여 북한이 우월하다고 말했다거나 북한이나 김일성을 찬양하는 말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내가 주체사상에 대해 말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며, 나는 주체사상에 대한 책을 갖고 있었지만 다 읽어보지도 않았고 지금도 주체 사상이 무언인지 잘 모른다. 그런 내가 이종수에게 주체사상에 대해 설명했다는 것은 전 혀 이해할 수 없는 얘기다. 이종수도 주체사상이 무엇인지 잘 모를 것이다, 내가 이종수에게 나의 우리말부터 배워라 고 했다는데, 나는 지금도 우리말을 거의 할 줄 모르는데 그런 내가 어떻게 이종수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겠다고 할 수 있었겠냐고 반 문하면서, 북한 국가와 남한 애국가 가사의 의미는 둘 다 모르며, 지금은 북한 국가의 후 렴 부분인 장백산 밖에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에는 노래를 부를 수는 있었다. 북한 국가 를 배운 적은 없고 조총련의 문화공연에 가서 들었다. 결론적으로 위에서 언급된 내용 중 내가 말했거나 말했을 수 있는 것은 열에 세 가지 정도다, 내가 박정희 정권에 대해 비 판적인 생각 등을 이종수에게 얘기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대화 도중에 여러 가지 주제 를 얘기하다가 화제의 하나로 꺼낸 것뿐이지 이종수에게 교육을 시킨 것은 아니다. 이종 수는 정치나 사회, 사상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음악, 문학 등에 관심이 있 었고, 아이 같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가 만나면 주로 하는 얘기는 위에서 87) 작성, 서울지법 제출.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105

106 제4권 언급된 정치, 경제, 사회, 사상에 대한 얘기가 아니고 여자친구 얘기 등 일상적인 주제였 다. 당시 나와 이종수 모두 여자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한국의 정치나 사회에 대한 대화는 우리가 평소 나누었던 대화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종수에게 위와 같은 지령을 내린 적이 없고, 한국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말한 적도 없으며, 나중에 일본에 돌아오면 술이나 한잔 마시자는 식의 말을 했고, 당시 서승 등 재일동포 가운데 한국 정보기관에 체포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종수는 약간 덜 떨어지고, 아는 척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 이어서 한국에 가서는 말을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한국이 일본과 같은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아니니, 한국학생동맹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얘기한 적이 있고, 이종수에게 북한방송을 청취하라고 한 일도 없다, 일본에서는 라디오 주파수를 여기 저기 돌리다보면 북한방송이 잡혀 잠 깐 들은 적이 있으나, 북한방송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억양을 듣고는 북한방송인지 알 기만 할 뿐 곧 채널을 돌려버렸다 고 진술하였다. (3) 수사관의 진술 수사관 B는 이종수는 연행되어 그날 범죄사실에 대해 모두 자백을 했는데, 처음에 구 체적으로 자백하지 않았지만, 날이 지나가면서 구체적으로 기억을 해서 자백했다 고 하 고, 현재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하는 이종수의 주장에 대해 이종수가 당시 스스로 진술했 는데, 지금에 와서 그렇게 얘기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고 진술하였다. 수사관 C는 (이종수의) 구체적인 범죄사실은 모르겠다. 그냥 간첩이라는 것만 기억날 뿐, 다른 건 기억나지 않는다. 이종수가 누구한테 포섭이 되었는지, 구체적인 행위가 무엇 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신문을 하지 않아서, 구체적으로 어떤 증거를 가지고 (수 사가) 진행되었는지, 이종수가 처음부터 인정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 고 진술하였다. 당시 내사를 담당했던 D는 누가 이종수에게 지령을 했는지 여부는 기억나지 않고, 당 시 학원 간첩이었던 것만 생각난다 고 진술하였다. 2계장이었던 A는 이종수가 조신부의 지령을 받아 조총련 활동을 했고, 고대에 와서 좌익활동을 한 내용 등에 대해 조사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 진술하였다. 라) 소결 (1) 조신부가 재일 대남공작지도원이라는 점에 대한 증거는 검사작성 피의자신문 조서, 제2차 영사증명서, 한태웅 88) 의 법정증언과 진술서, 최영오의 파기환송심 진술서, Q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0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와 P의 파기환송심에 제출한 진술서와 증언 등 89) 이다. 반대 및 탄핵증거는 당사자인 조 신부의 진술, 신청인의 법정 이래의 진술, 1차 영사증명에 첨부된 대일사실조사결과, 다 까야마( 高 山 )물산의 조신부 사원카드, 최영오, Q, P, 야스다 히로시, 조창순, 금기도, 양기 홍, 하병욱 등의 진실화해위원회에서의 진술 등이다. 검사의 피의자신문조서는 수사권 없 는 보안사의 불법구금, 가혹행위에 따른 자백을 그대로 반복하고, 고문수사관이 검찰 수 사에 대한 자백 협박, 수사진행시 협박, 검찰 조사 시 고문수사관의 참여 등을 볼 때 임의 성에 의심이 가고 믿을 수 없으며, 제2차 영사증명은 전문의 사실을 적시하고 있으나 법 적 근거가 없는 수사보고서에 불과하고, 원 진술자의 진술이 없으므로 증거능력이 없 고 90), 한태웅의 법정진술 및 진술서는 추측의 사실이 상당히 있고, 앞뒤 모순이 있으며, 일부 사실에 대하여는 원 진술자인 야스다 히로시의 진술과 내용이 다르며, 조총련계열 의 학교를 다녔다고 허위진술한 점으로 보아 믿을 수 없고, 최영오, P, Q의 파기환송 시 제출된 진술은 협박에 의한 것이거나 신병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자유로운 상태인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부인하고 있어 믿을 수 없다. 종합하면 조신 부가 조총련의 대남공작원으로서 민단에 위장잠입하였다는 법원의 판단은 증거가 없는 판단이며, 오히려 조신부는 대남공작원이 아니라는 증거가 더욱 믿음이 간다. (2) 조신부가 신청인에게 교양하고 간첩지령을 내렸다는 유죄증거는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뿐이며, 나머지 유죄증거들은 이를 독자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반대 및 탄핵증거로는 신청인의 법정 이후의 진술, 조신부의 진술 등이다.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 88) 공판조서에 기재된 생년월일, 본적 등을 활용하여 한태웅과 김경식 두 이름으로 각각 신원 조회하였으나 이 조건에 맞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서울고등법원 증인신문조서상의 지문으로 경찰청 과학수 사센터에 지문 조회한 결과 동일인물이 존재하지 않았고, 증언에 나오는 그의 약력에 따라 동경조선중고 등학교 등에 조회한 결과 동일인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무사에 한태웅(김경식)에 대해 신원조회 를 하였으나 직원이 아니며 관련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는 회신을 받았다. 89) 이들이 법정 증언 당시 각각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거나 보안사 직원으로 근무한 점, 진실화해위원회 조 사에서 당시 증언내용은 잘 모르는 사실이며 수사관이 불러준 사실을 그대로 작성한 것이라는 점 등을 종 합하면 당시 진술내용도 믿기 어렵다. 90) 형사소송법 제313조(진술서등) 1 전2조의 규정 이외에 피고인 또는 피고인이 아닌 자가 작성한 진술을 기재한 서류로서 그 작성자 또는 진술자의 자필이거나 그 서명 또는 날인이 있는 것은 공판준비나 공판기 일에서의 그 작성자 또는 진술자의 진술에 의하여 그 성립의 진정함이 증명된 때에는 증거로 할 수 있다. 단, 피고인의 진술을 기재한 서류는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그 작성자의 진술에 의하여 그 성립의 진정함이 증명되고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진 때에 한하여 피고인의 공판준비 또는 공판 기일에서의 진술에 불구하고 증거로 할 수 있다.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107

108 제4권 조서는 앞에서 설시한 바와 같이 임의성에 의심이 가고 믿기 어렵다. 그렇다면 조신부의 신청인에 대한 교양 및 간첩지령의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3) 결국 법원은 조신부가 대남공작원이며 신청인에게 간첩행위를 지령하고 신청 인은 조신부에게 국가, 군사기밀을 보고하였다는 범죄사실은 증거 없이 인정한 것으로 증거재판주의를 위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 간첩행위 조작 여부 가) 신청인 진술 신청인은 보안사, 검찰에서 수사를 받으면서 작성한 신청인의 진술서 및 피의자신문에 서 현대중공업 시설, 전방 경계상황, 김포국제공항의 경계상태, 국제종합사격장과 육군사 관학교, 고려대학교 및 학원 동향 등 국가, 군사기밀을 탐지, 수집하고 조신부에게 보고하 였다고 자백하고 있다. 서울지방법원 제2차 공판에서는 간첩지령 및 탐지 수집 사실을 모두 부인하면서도, 한국에 유학 왔다가 첫 번째로 일본으로 돌아갔을 때 난 주점에서 위 지도원 조신부와 만나 동인에게 자신은 재외국민교육원민족교육원에 입학했으나 진학반으로 옮 겨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되었다는 국내 체류 시 동향과 전항의 군사상 기밀을 보고 하 였냐는 질문에 대해 인정하였다가, 서울고법 제1차 공판에서 통역문제(1심 재판 시 통역 인을 요구하였다가 거절됨)로 질문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답변한 것이라며 진술 철회를 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내가 우리말에 자신이 없어서 일본어 통역관을 여러 차례 요청하였으나 재판부에서 들어주지 않았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20년 이상 자유롭 게 사용했던 언어는 일본어일 수밖에 없는데, 재판을 받으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여 정말 주눅 드는 심정이었고, 당황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닌 상황에서 재판 을 받았다 고 진술하였고, 91) 보안사에서 불법구금, 고문 가혹행위에 의하여 허위자백한 내용으로, B 수사관이 재외 국민교육원에서 견학을 다녀온 일, 대학 입학 후 친구들과 다니면서 본 것,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사실 등에 대해 질문하여 아는 대로 답변하였더니 나중에 더해지고 보태져서 기밀을 탐지한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진술하였다. 91)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0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나) 남원규, 김창환, 권영철, 정용구, 최인복 작성의 진술서 및 김정웅 작성의 확인서 위 진술서, 확인서는 신청인이 위 범죄사실의 내용을 탐지, 수집 보고했음을 증명하는 내용이 아니고, 위 범죄사실의 일시에 신청인이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판결문에 열거된 이종수가 상부선 조신부에게 보고하였다는 내용이 사실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확 인한 것이다. 다) 사법경찰관 O 작성의 각 수사보고 검찰에 송치된 수사기록 600, 604, 610, 620, 645, 652, 659, 662면으로 버스안내양 근로 조건 및 급여, 일본은행 환율, 땅굴 현황, 한학동, 광주민주화운동, 북한방송 청취, 고려대 신입생, 재외국민교육원 학급반 편성 등과 관련된 내용 등이다. 라) 기타 증거 이종수에 대한 출입국 사실 증명, 대한민국 일본여권은 범죄사실 에 기재된 시점에 한 국과 일본에 출입국을 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N과 김수년의 법정증언 및 사법경찰관 작성의 진술조서는 N이 김수년이 있는 자리에 서 ROTC 제도 등과 관련하여 이종수에게 알려준 적이 있다는 내용이다. 마) 참고인 진술 증인 홍충희는 서울형사지법 제3차 공판( ) 중 증인신문에서 신청인에게 고 려대학교의 현황 및 대학가의 동향, 학원에 관한 동향, 대학생 군사훈련상황 등에 대해 대학생으로 알아야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야기를 해준 바 있으며, 일본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을 물으면 신청인이 말해주고, 신청인이 한국 실정에 대해 물으면 자신이 말을 했 으며 그 당시 피고인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물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고 증언하였고,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종수가 특별히 의도를 가지고 나에게 접근했다거나 국내 사 정에 대해 상세히 묻는다고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종수와는 음악 얘기, 진로 얘기, 문화, 문학 얘기를 많이 했는데, 내가 일본문화에 관심이 있고, 종수가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얘기를 많이 했을 뿐이다. 조서에 기재된 것과 같은 얘기는 평소에 거의 없었던 대화 내용으로, 사실 종수는 데모 등 사회문제에 크게 관심이 있는 편이 아 니었다 고 진술하였다. 92) 92) 진술청취.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109

110 제4권 조신부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방학 때 일본에 들어온 이종수를 두 번 정도 만나 서 한국에서 이종수가 경험했던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종수가 나의 지시를 받아 보고했다거나 내가 다시 기밀 탐지를 지시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 니다. 한국의 계엄령 상황에 대한 얘기는 일본 언론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많이 방송되었 으므로 한국에서 살다 온 이종수에게 궁금하여 물어보는 것뿐이다. 또한 이종수가 땅굴 을 견학한 얘기를 해준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얘기는 우리가 나눈 이야기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이 이종수의 하숙집 아줌마 얘기, 음식은 잘 맞는지, 학 교는 잘 적응하고 있는지, 대학 친구들은 어떤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광주민 주화운동과 관련해서는 당시 일본 방송에서도 많이 나왔던 이야기로, 그런 이야기를 이 종수에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나, 전두환 대통령이 개 최한 남북회담이나, 한국의 군사정권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종수와 내가 한 이야기의 주된 화제는 아니었으며, 당시 한국을 유학하고 있는 이종수 와 한국사회의 상황에 대해 얘기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된 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얘기를 의식적으로 한 적은 없으며, 잡담하는 가운데 얘기했을 뿐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93) 93) 진술청취. 국가정보원 회신 자료에 따르면, 국정원에서는 ~4.에 조신부를 조사하여 진술서를 제출받았고,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였는데, 3~4군데에서 상당 부분이 삭제되어 있는 상태였 다. 조신부에 따르면, 駐 오사카 한국 영사로부터 자신이 국정원의 주요관찰대상자로 기록되어 있으니 한 국에 가서 조사를 받고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을 받아 위 조사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에 금기 도(조선문화연구회[조문연] 1년 선배, 조총련 교토본부 간부)의 지시를 받고 이종수에게 간첩활동을 지시 한 것이 아니냐고 집중적으로 추궁당했다고 한다. 또한, 조신부는 위 진술서 내용이 사실인지에 대해 묻자, 사실대로 진술한 것이지만 중간에 3군데나 삭제 되어 있기 때문에 당시 나의 의도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고 진술하였다. 그리고 위 신문조서 에는 진술서에는 없거나, 의미가 미묘하게 차이가 있는 내용이 들어 있는데(예를 들어, 조신부가 신청인에 게 나는 한국에 가본 적이 없는데, 향후 일본에 오면 한국의 실상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달라 고 말한 것), 이에 대해 조신부는 한글로 된 내용을 통역이 내게 알려주면서 내가 쓴 진술서의 내용과 다름이 없 다고 하여서 그런 줄로 알고 서명하였다 고 진술하였다. 또한, 조신부는 금기도와 몇 년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사이로 금기도와 대화하면서 신청인으로부터 들은 한국 유학생활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긴 하지만, 친척인 이종수가 한국으로 유학을 갔다는 등 자랑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이야기를 한 것으로, 이종수가 대학 생활하면서 겪은 일상적인 얘기를 금기도에게 말한 것이지 이종수가 땅굴 견학을 갔다 온 것이라든지 계엄 하에서 군인의 경비상황 등에 대해 말한 것이 아 니다. 이종수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 것은 대화내용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과거 조선문 화연구회[조문연] 사람들에 대한 얘기 등을 하였다. 또한 금기도는 조총련과 관련하여 일을 하고 있는 사 람으로, 과거 학생시절부터 금기도와 정치, 사상, 한국과 북한과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고 진술하 였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1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바) 소결 검사작성 피의자신문조서와 신청인의 1심 법정진술 외의 유죄증거는 신청인이 국가기 밀을 탐지, 수집하여 조신부에게 보고했다고 독자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증거는 없고 단 지 단편적인 사실을 입증할 뿐이다. 신청인의 1심 법정의 자백은 이후 철회되었고, 통역 의 요구가 거부된 상태에서 피고인의 방어권이 현저히 제한된 상태에서 한 진술을 철회 한 것이므로 유효하다고 볼 수 있으며,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는 앞에서 본 바와 같 이 증거능력에 의심이 있어 이 점 명백히 증거로 입증되었다고 할 수 없다. 결국 조작된 간첩행위를 증거 없이 유죄로 인정한 사실이 인정된다. 3) 반국가단체 등을 찬양, 고무, 동조했는지 여부 가) 신청인 진술 신청인은 보안사와 검찰에서 북한방송을 청취하려고 시도하다 실패한 적도 있고, 실제 로 청취한 적도 있으며, 홍충희, R에 북한방송을 청취할 것을 권유하고, R에게 일본어판 마르크스 엥겔스 소전 을 주면서 읽어보라고 하고, 일본과 비교하여 한국을 비난하고 94), 과거에 좌익학생운동을 했고 대학 졸업 후 일본에 돌아가서 좌익활동을 하여야 한다고 자신의 사상을 표명하였다는 사실을 자백하였다. 서울형사지방법원 제1, 2차 공판에서, 김정일에 관해 찬양하는 내용의 북한방송을 청취 했는지에 관해 노래하고 여자 소리만 들었지 김정일의 말은 들은 일이 없다 며 처음에 는 말투나 내용으로 보아서 이북방송으로 알았는데 한국에 있으면서 방송도 들으면서 그 것이 이북방송이 아니라 이남방송인 줄 알게 되었다 고 진술하였고, 좌익학생운동을 했 다는 점은 한학동 가입 사실을 이야기하다가 한국말이 서툴러서 좌익이라는 말만 알아 서 그렇게 하였다 고 대답하였으며, 미래의 좌익활동과 관련해서는 농담으로 말한 것 이 라고 진술하였다. 북한방송 청취 시도 실패 및 청취 권유, 포섭 기도, 마르크스 엥겔스 소전 읽기 권유, 한국비난 등에 대해서는 사실이라고 인정하였다. 서울고법 제1차 공판에서, 북한방송 청취 시도에 관해서는 일본방송을 듣기 위하여 사 이클을 맞추었으나 듣지 못하였고, 이북방송을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다. 또한 조신부가 이북방송을 들으라고 한 적도 없다, 긴장을 하고 우리말에 서툴러 질문의 취지를 제대 로 이해하지 못하여 검사의 질문에 대해 인정 한 것이라고 진술하였고, 94) 한국은 일본에 비하여 물가가 너무 비싸다. 한국의 경제는 일본에 비하여 25~30년간은 뒤떨어져 있다. 명 동을 한국의 긴자라고 하지만 명동은 일본의 소도시만도 못하다는 등의 내용이다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111

112 제4권 친구들에게 북한방송을 청취하도록 권유했다는 점과 관련해서 당시에는 동무 라는 말 도 나오고 억양이 이상하여 북한방송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야 우리나라 방송인 줄 알았 고, 재미있으니 들어보라는 취지였다고 진술하였고, R 등을 포섭할 것을 기도한 일이 있다고 한 1심 진술은 포섭이란 말의 뜻을 몰라 수 사관에게 그 뜻을 물으니 친구들과 사상, 이념을 같이해 친하게 지내는 것이라고 해서, R 과는 친한 사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라고 진술하였고, 마르크스 엥겔스 소전 은 재일동포인 오박소에게 빌렸던 것 95) 인데, R이 일본어로 된 책을 빌려달라고 해서 마음대로 골라가라고 하였다고 진술하였고, 좌익활동을 언급한 것은 R이 옛날에 데모를 하다가 구속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서 자신도 데모를 한 일이 있다는 의미로 놀려줄 생각에 그런 농담을 한 것이라고 진술하 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신청인은 동무, 했으매, 있겠지비 라는 말을 사용하는 방 송이 나와 북한방송으로 알았으나, 교도소 수감 시 점심 때 김삿갓의 북한방랑기 라는 라 디오 드라마를 매일 틀어주어 그것을 듣고 나서 과거에 자신이 들은 방송이 한국에서 북 한을 무대로 만든 드라마 방송이라는 것을 알았고, 보안사에서 조사받을 때 수사관들이 골라준 북한방송문의 내용을 적었을 뿐이라고 진술하였고, 북한방송을 청취했다는 증거로서 제시된 라디오는 FM과 중파방송만 청취할 수 있고, 단파방송은 청취할 수 없다 고 진술하였다. 좌익활동 운운은 홍충희가 데모를 한 적이 있다고 하여 일본에서 자신도 비슷한 것을 해보았다는 취지로 한 말이며, 공산주의 활동이 아니라 운동권 혹은 데모를 했다는 의미 로 사용한 말이라고 진술하였다. 96) 나) 참고인 진술 홍충희, R은 보안사, 검찰에서 신청인의 위 범죄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을 하였고, 서울지방법원 제3차 공판조서의 증인신문조서( )는 홍충희가 신청인으로부터 좌익활동에 관한 언급을 들었다고 증언한 것 외에는 신청인의 찬양고무동조에 관한 다른 사항은 기재되어 있지 않고, R은 피고인이 이북방송을 들어보니 재미있더라고는 말하였으나 나에게 이북방송을 95) 신청인은 학교 과목 중에 맑스주의 비판 이 있어서 이 과목의 공부를 위해 오박소에게 빌렸으며, 한국어 로 된 책은 사전을 찾아야 되는 반면, 일본책은 바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 96)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1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들어보라고는 하지 않았다 고 진술하면서 좌익활동 언급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하였고, 한국의 물가에 대한 신청인의 언급은 피고인이 하숙방을 구하는데 방값이 비싼 것을 알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라고 증언하였다. 홍충희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신청인이 북한방송을 들었다고 말했다는 점은 수 사관에게 그런 대화는 없었다고 얘기를 했는데, R 97) 이 나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이종수 에게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하여서 당시 강압적인 조사 분위기 속에서 인정했던 것이라 고 진술하였고, 98) 좌익활동과 관련하여 대화를 나눈 적은 있었는데, 나와 R은 한국말이 서툰 이종수가 농담으로 그런 말을 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종수는 자유롭고 진보적으로 살고 싶다는 의미에서 그런 표현을 했는데, 우리는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 는 말도 해본 적이 없다. 한국말이 서툰 이종수가 한국에서 좌익이 갖는 의미를 정확하게 모 른 채, 자신이 아는 단어 내에서 말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된다 고 진술하였다. 다) 기타 증거 일제 산요 카세트 라디오, 레시버, 일본어판 마르크스 엥겔스 소전, 보통예금통장은 신 청인이 증거 동의를 하였으나 찬양고무 범죄사실을 독자적으로 입증하기엔 부족하다. 허관명의 법정진술 및 사법경찰관 작성의 진술조서는 신청인이 오박소로부터 마르크 스 엥겔스 소전 을 빌리는 광경을 목격했다는 점, 이종수와 함께 육군사관학교에 간 일이 있다는 점에 불과하고, 최인복의 법정진술은 자신과 같은 암달러상에게 외화를 바꾸면 외환은행보다 10~15% 더 받는다는 내용이다. 라) 소결 유죄증거는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 범죄사실 일부를 인정하는 신청인의 법정진술 과 여러 증거와 진술이 있다. 검사작성 피의자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이 없고, 신청인의 1심 법정진술은 철회되었고, 신청인이 한국어를 세밀하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 진술이 어서 전적으로 믿기 어렵다. 기타의 증거는 독자적으로 범죄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그렇다면 반국가단체 등의 찬양고무의 범죄사실은 적법한 증거 없이 인정된 사실이라 할 수 있다. 97) R은 주소지에 거주하지 않고 있어 소재를 파악하지 못해 조사하지 못하였다. 98) 진술청취.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113

114 제4권 4) 기타 객관적 사실과 다른 부분 가) 문제의 소재 법원이 범죄사실 인정의 보조사실로서 신청인이 대학 재학 중 재일한국학생동맹(한학 동)에 가입하여 활동한 사실 99), 신청인과 조신부가 서로 만나게 된 계기를 제공하는 조창 순 100) 이 반국가단체인 재일한국 민주회복통일촉진 국민회의 일본본부(속칭 한민통)의 산하단체인 재일한국학생동맹(속칭 한학동)의 배후 조정자 라고 인정하였는데 객관적 사 실과 일치하는지가 문제된다. 나) 한학동이 한민통의 산하단체인지 여부 (1) 신청인 진술 신청인은 검찰에서 한학동이 한민통의 산하단체라는 것은 알지 못했으나 반한단체라 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고 진술하였고, 101) 서울형사지법 제1차 공판( )에 반국가단체인 제일 한국민족회복통일촉진국민 회의 일본본부 속칭 한민통의 산하단체인 제일한국학생동맹 속칭 한학동의 배후 조종자 인 고모부 조창순의 집에 기거한 일이 있다고 진술하였으나, 서울고법 제1차 공판( )에 위 진술은 조창순의 집에서 기거한 사실이 있다는 의미일 뿐이며, 한학동이 한민 통의 산하단체인지 아닌지에 대하여서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고 진술하였고,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는 한학동이 한민통 산하단체가 아니라고 진술하였다. 102) (2) 참고인 진술 한태웅은 서울고법 6차 공판( )에서 한민통(재일 민주회복통일 촉진 국민회 의 일본본부)은 북괴의 지령을 받고 배동호, 곽동의, 김재학 등이 조직하였으며, 북괴의 노선에 따라 활동하는 반한단체로, 한학동, 한청은 한민통의 산하단체라고 증언하였다. P도 같은 공판에서 재일 한민통을 최초 베트공파라 불려진 것으로 배동호가 북괴에서 지시를 받고서 조직된 전 민단원으로 구성되고, 한민통도 북괴의 지시에 따라 활동하는 단체라고 생각하며, 한청, 한학동 은 한민통의 산하단체로 북괴 및 조총련의 지시에 따 라 활동하는 단체로 알고 있다 고 증언하였지만, 99) 이 점에 대해서는 신청인도 인정하고 있다. 100) 이종수의 고모부이자 조신부의 작은아버지. 101) 피의자신문조서. 102)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1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당시 법정에서 위와 같은 진술을 하지 않았고 짧은 단답형의 질문만 오고 갔다고 하면서, 한학동은 민단 소속 단체였는데 민단의 민주화를 요구하다 가 71년 처분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한학동은 단순히 남한의 민주주의를 지 향하는 성향의 학생모임으로 친북성향을 가지지는 않았다. 한민통에서 민주화투쟁을 같 이 하자고 제의하기도 하였는데, 한민통이 가지고 있는 친북성향에 대한 의심 때문에 거 절했던 일이 있다고 들었다, 한학동 내부에서는 공식적으로는 북한과 관련된 부분에 대 해서는 공부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고, 한국적 카테고리 안에서 활동한다는 것에 대해 서는 한학동 내부에서 서로 동의를 하고 있었다, 1972년도에 7. 4공동성명이 있었을 때 유학동에서 한학동과 함께 지지하는 공동집회를 하자고 했는데, 한학동에서 거절한 일도 있었다고 들었다 고 진술하였다. 103) Q는 위 서울고법 제5차, 6차 공판에서 한학동이 한민통의 산하단체이며, 조총련의 지 령을 받고 활동하는 단체라고 증언하였고, 같은 취지의 진술서를 제출하였으나,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위 진술은 사실과 다르며, 진술서 작성경위에 대해서는 기억 나지 않으나, 보안사에서 쓰라는 대로 쓴 것으로 생각된다며, 한학동은 한민통의 산하단 체가 아니고, 조총련의 지령을 받고 활동하던 단체가 아니었다며, 한학동은 조국의 민주 화를 위해 박정권에 대한 반독재활동을 했을 뿐이라고 진술하였다. 104) 하병욱 105) 은 한민통은 북한의 조정을 받는 단체가 아니라 조국의 민주화를 바라며 반 독재정권, 군사정권을 반대했고, 민단의 혁신 106) 을 바란 단체였다. 한학동은 민단에 속했 다가 제명된 단체로, 한민통의 산하단체는 아니다 며, 한학동, 한청이 본국의 군사정권 에 대해 반대하는 운동을 열심히 하였기 때문에 민단에서 빨갱이 단체라고 이름 붙여 제 명했다고 생각한다 고 진술하였다. 107) 다) 조창순이 1970년대에 한학동을 배후조종했는지 여부 (1) 신청인 진술 신청인은 서울고법 1차 공판( )에 조창순이 한학동의 배후조종자인지 아닌지 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진술하였다. 103) 진술청취. 104) 진술청취. 105) 당시 경도 민단 본부 단장, 현재 경도 민단 본부 고문. 106) 진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혁신이라는 말로 표현한다고 하다. 107) 진술청취.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115

116 제4권 (2) 참고인 진술 한태웅은 서울고법 제6차 공판에서 조창순에 대해서는 일본 경도대학 농학과 재학 당 시 한학동 교토본부에 가입, 교토 한학동 본부 대표위원을 역임하고, 민족일보사건 규명 이란 미명하에 조총련계 유학동 인사들과 합세 좌익활동을 하였으며, 학생시절부터 외 면상으로는 민족주의자라는 가면을 쓰고 내면적으로는 조총련계 재일본조선유학생동맹 (유학동) 간부들과 접촉하면서 통일론을 토론하는 등 연계를 맺어왔으며, 조총련 간부들 과도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있고, 조총련 조직의 영향을 받아 일본 교토에서 재일한국학 생동맹(한학동) 및 재일한국청년동맹(한청)의 이론 담당지도자이며 요지 간담회의 행동 대원으로 민단 분열 활동을 해왔으며, 일본 교토 한국학원 사무장 직책에 있으면서 조총 련 교토본부 교육부장 송화종(현 재일 조총련 오사까 본부 교육부장)과 비밀리에 연계를 맺고 접촉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하고, 조학동이든 유학동이든 재학 시에 가입을 하면 그것이 학생단체이니만큼, 자진하여 탈퇴할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졸업과 동시에 자동탈퇴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증언하였다. 그러나 조창순은 1심 재판 진행 중 제출한 자필진술서에서 자신은 한학동 배후조종자가 아니며, 1965년경까지 한학동에 속하고 있었으며, 1961년 및 1963년 경도본부 위원장을 한 것은 사실이나, 졸업 후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활동했을 당시 민단 산하단체의 하나 였다고 진술하였고, 108)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도 같은 취지로 진술하였다. 109) 교토( 京 都 )한국학원 110) 에서 발급한 조창순 경력증명서에는 부터 까지 사무장으로, 까지 상무이사로서 경도한국학원에 재직하고 있었다고 기재 되어 있다. 위 한국학원은 교토 민단계 인사들이 설립한 학교이고 우리 정부에서 교장 등 을 파견 받았고, 지원금도 받고 있다. 111) 하병욱은 서울고법 제2차 공판( )에서 조창순에 대해 1959년에 민단 경도본 부에 등록한 사실, 그 후 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 향상을 위해 활동한 사실, 경도민단사 회에서 설립한 한국학원의 사무장으로서 국어 및 민족교육을 위해 헌신한 사실, 조창순 108) 작성, 서울지법 제출. 109) 진술청취. 110) 2004년 2월 1일부터 교토( 京 都 )국제학원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111) 위 경도한국학원의 개교 50주년기념지(1997년 발행) 등에 따르면, 1946년 9월 경도조선인교육회를 결정 하고 경도조선중학교를 설립하여, 1947년 1월 본국(우리나라)으로부터 국정교과서 허가를 받고, 1965년 9월 고등학교를 인가받았으며, 1949년 이사회(대표 김재술)와 민단경도본부(단장 김원수)가 합류협정을 맺고 위 단장이 3대 운영책임자를 맡았다. 1951년 3월 교명을 경도한국학원으로 변경하고, 우리나라 정 부에서는 1954년 7월 국고보조금(일화 100만 엔)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지원을 하고 있고, 1968년 7대 교 장을 시작으로 교장, 교사를 파견 보냈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1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의 인품, 조창순이 교토 민단사회의 훌륭한 지도자후보라는 점에 대해 증언하였고, 같은 취지의 진술서( )를 제출하였다. 치안본부 제3부장 작성의 신원조사 회보서와 한태웅의 진술에 따르면, 2심 증인 하병 욱은 1949.경 밀항, 도일하여 조총련 상공회 재정부장으로 활동하다가 1963.경 민단원으 로 전향하였으며, 재일 반한단체인 베트콩파(한국 민주회복 통일촉진 국민회의, 속칭 한 민통)의 교토 책임자로 활동한 사실이 있다는 것이고, 파기환송심은 이를 이유로 하병욱 의 2심 증언을 배척한 바 있다. 하병욱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1950년 한국전쟁 당시에 일본으로 밀항했으나, 자 신은 처음부터 민단계였으므로 전향할 이유가 없고 조총련이나 한민통에서 활동한 일이 전혀 없다고 진술하였다. 112) 한민통 중앙본부 부의장 손마행은 조창순은 한통련이나 한청과 관련된 활동을 한 일은 없고, 당시 민단에서는 한통련이나 한청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고, 조창순 역시 한통 련과 교류가 없었고, 한학동은 한민통과 관련이 없는 단체라고 진술하였다. 113) 라) 소결 한학동이 한민통의 산하단체라는 점, 조창순이 1970년대 한학동을 배후조종하였다는 점 등은 보안사 안기부 수사보고, 법원 등에서 사실로 인정되고 있고, 이 사건과 관련하 여 한태웅 진술, Q와 P의 파기환송심에서의 증언이 이를 인정하고 있으나, 수사기관의 일방적인 조사이며 증거로 입증되지 못하였고, 한태웅은 보안사 협조자였고, Q, P는 신병 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진술한 것이어서 객관적인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조직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조창순, 손마행, 하병욱 등의 진술과 Q와 P의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등을 종합하면, 위 두 가지 점은 허위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Ⅲ. 결론 및 권고사항 1. 결론 이 사건은 민간인 수사권이 없는 보안사에서 재일동포 유학생 중 대공혐의자를 색출하 112) 조창순, 하병욱, 언론 보도 내용 등에 따르면, 위 신원조사서에 기재된 경력은 2006년경 민단본부 단장을 지낸 하병옥의 경력과 유사하다. 다만, 그는 교토에서 거주하거나 활동한 적은 전혀 없다고 한다. 113) 진술청취.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117

118 제4권 기 위해 내사하던 중 신청인을 불법으로 연행하여 장기간 구금하고, 고문, 가혹행위로 자 백을 받아내고, 안기부가 수사한 형식으로 만들어 구속영장을 발부받고, 검찰에 송치하고 신청인을 협박하여 검찰 수사에 관여한 위법한 수사로 범죄사실을 조작하여 중형을 선고 하게 한 비인도적, 반인권적 인권침해사건이다. 보안사는 신청인을 39일 동안 불법구금하여 형법 제124조의 불법체포감금죄를 범하였 고, 신청인에게 폭행, 물고문, 전기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가하여 형법 제125조 폭행, 가혹 행위죄를 범하였고, 이는 형사소송법 제420조7호, 제422조 소정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서울지방검찰청은 신청인이 제3회 조사에서는 불법구금상태에서의 가혹행위와 허위자 백사실을 진술하였으나 이를 조사하지 않은 채, 위법한 보안사 수사에 눈감고 보안사 수 사관의 협박을 받는 신청인에 대해 검사작성의 조서들을 만드는 수사만 하여 서울형사지 방법원에 기소하였다. 서울형사지방법원을 비롯한 법원은 신청인이 공판에서 수사기관에서는 부당한 대우로 허위자백을 하였다며 간첩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였음에도, 임의성이 없는 피의 자신문조서를 토대로 수사관의 보고서 등을 증거로 삼아, 장기간의 불법구금과 가혹행위 로 인해 강요된 자백을 유죄의 증거로 인정하고, 통역 신청을 거절하는 등 심리를 미진하 게 하여 신청인에게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한 위법을 범하였다. 114) 2. 권고사항 위 사건에 대해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기본법 제4장에 따라 국 가가 행할 조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국가는 보안사가 수사권이 없음에도 민간인을 수사하고 불법감금과 가혹행위로 사 건을 허위조작한 점과 안기부와 검찰이 보안사의 불법수사 및 인권침해 사실을 알고 있 었음에도 이에 동조한 점과 검찰이 임의성 없는 자백에 의존하여 무리하게 기소한 점에 대하여 신청인 및 관련 참고인들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 이 필요하다. 국가는 위법한 확정판결에 대하여 신청인과 그 가족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형사소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114) 형사소송법 제307조(증거재판주의)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 ( 개정된 형사소송법 에는 2항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 는 내용이 추가되 었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1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동명목재 사건 결정사안 동명목재 사주 및 임원들이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의 해 장기간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가혹행위를 당하였고, 동명목재 사주들은 강압에 의해 개인재산을 침탈당하는 등 국가권력에 의해 신체의 자유와 의사결정의 자유 및 재산권이 침해된 것에 대하여 진실을 규명한 사례. 결정요지 전두환 등 신군부세력이 설치한 국보위가 사실상 국무회의 내지 행정 각 부를 통제하거나 그 기능을 대신하여 국가 행정기능을 무력화시켜 강압에 의해 헌법기관 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였는바, 국보위는 초헌법적이고 초법적인 방법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면서 삼청교육대 등의 사회정화활동, 언론통폐합, 10 27법난, 개인재산 몰수 조치를 실시하였다. 2. 국보위와 계엄사 합수본부는 경 동명목재의 재산을 강제헌납 받기 위해 근거 없이 신청인 강정남 등 동명목재 사주들을 부정축재를 일삼는 반사회적 악덕기업인 이라 고 지목하여 명예를 훼손하고 범죄혐의가 없음에도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에 동명목재 에 대해 수사할 것을 지시하였다. 3. 위 지시를 받은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 수사관들은 경부터 신청인 등을 연행하여 2주 내지 2개월 간 불법구금하였고, 수사과정에서 폭행 및 전기고문 위협 등의 가혹행위를 가하였으며, 동명목재 사주들에게는 재산포기위임각서 작성을 강요하였다. 4. 국보위와 계엄사 합수부는 신청인 등 동명목재 사주들로부터 강제로 받아낸 재산포 기위임각서를 근거로 이들의 전 재산을 부산시와 한국토지개발공사에 매각 및 증여하게 하여 이들의 전 재산을 강제헌납 받은 것이다. 전 문 사 건 라-6224 동명목재 사건 신청인 강정남 동명목재 사건 119

120 제4권 결정일 주 문 이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진실규명 으로 결정한다. 이 유 Ⅰ. 조사개요 1. 사건개요 및 신청취지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되어 권력 중심부에 공백이 생기자 전두환 등 신군 부세력은 12 12군사반란을 일으켜 군의 지휘권과 국가의 정보기관을 실질적으로 장악 하였다. 전두환 등 신군부세력은 대통령령으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이하 국보위 라 한다)를 설치하여 공직자 숙정, 언론인 해직, 부패 타락한 기업풍토 척결 등을 중요 국정 시책 으로 결정하고 이를 대통령과 내각에 통보하여 시행하는 방법으로 사실상 국무회의 를 비롯한 모든 헌법기관을 통제하거나 그 기능을 대신 수행하였다. 1) 이들은 또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로 진압한 상태에서 사회정화를 내세워 국민 들의 신뢰를 얻고자 했다 경 국보위 정화분과위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 하 계엄사 합수부 라 한다)는 부실기업 정리 및 반사회적 악덕기업인 척결 명목으로 동 명목재와 그 사주 일가를 악덕기업인으로 지목하고,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에 동명목재 사주들의 재산은닉 및 탈세 등에 대해 수사를 지시하였다.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501보안부대) 2) 는 경부터 동명목재 사장인 신청인 의 부 강석진(1984년 사망)과 동명중공업(주) 등 5개 계열회사의 대표이사인 신청인 강정 남 및 계열사 임원들을 연행하여 2주간 내지 2개월간 수사하였고, 신청인 등 사주들로부 터 동명목재 및 계열회사 재산 전부를 동명목재상사문제처리위원회에 그 처분을 위임한 1) 대법원 선고 96도3376호 판결 참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여 헌법기관인 행정 각 부와 대통령을 무력화시킨 것은 행정에 관한 대통령과 국무회의의 권능행사를 강압에 의하여 사실상 불 가능하게 한 것으로 국헌문란에 해당한다 ). 2)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부대장 백 )는 기존의 부산보안부대(501보안부대) 편제에 경찰, 국세청 등 각 기관에서 파견된 자들로 구성되었으며, 위 501보안부대 사무실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2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다는 내용의 위임각서 와 승낙서 에 서명 날인 받고 석방하였다. 동명목재상사문제처리 위원회는 신청인 등의 재산을 부산시와 한국토지개발공사에 매각 및 증여하게 하는 방법 으로 헌납 받은 재산을 처리하였다. 신청인 강정남은 국보위와 계엄사 합수부가 동명목재의 사주들인 신청인 등을 소위 악덕기업인 으로 지목하여 명예를 훼손하고,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를 가하여 전 재산을 포기하도록 강요한 것은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라며 진실 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 라 한다)에 진실규명을 신청하였다. 2. 조사의 근거와 목적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이하 기본법 이라 한다) 제2조제1항4호는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 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 상해 실종사건,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사 건과 조작의혹사건 을 조사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이 사건 신청인 등을 불법구금하고 가혹행위를 가하여 전 재산을 포기한다 는 내용의 위임각서를 작성하게 하고 처분하였다면 이는 개인의 신체의 자유와 의사결정 자유 및 재산권을 보장하는 대한민국 헌법상의 기본원칙에 반하는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 로 중대한 인권침해를 한 것으로 판단되므로 진실화해위원회는 조사개시를 의결하고 조사를 진행하였다. 3. 규명과제 가. 국보위와 계엄사 합수부의 피해자 조사경위 신청인은 국보위와 계엄사 합수부가 동명목재의 재산을 강제헌납 받기 위해 근거 없이 강석진 등 동명목재 사주 일가를 부정축재를 일삼는 반사회적 악덕기업인 이라고 지목하 고 조사에 착수하였다고 주장하므로, 국보위와 계엄사합수부의 동명목재에 대한 조사경 위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나. 피해자들에 대한 불법구금 및 폭행 가혹행위가 있었는지 여부 신청인은 피해자들 3) 에게 계엄법 위반 등의 구체적인 범죄혐의가 없음에도 합수부 부 동명목재 사건 121

122 제4권 산지부 수사관들이 동명목재 임원들을 경부터 까지 부산보안부대(501보 안부대)에 불법구금하였고, 강석진과 강정남을 경부터 까지 같은 장소에 불법 구금하였고, 수사관들은 구금되어 있는 동명목재 임원들에게 폭언과 폭행 및 전기고문 위협 등 가혹행위를 하였으며, 강석진과 강정남 및 고고화에게는 재산포기위임각서와 승 낙서 작성을 강요하며 폭언과 가족의 신변 및 재산에 대한 위협을 가하였다고 주장하므 로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다. 재산헌납 강요 여부 신청인은 국보위와 계엄사 합수부의 지시를 받은 합수부 부산지부가 불법구금상태인 피해자 강석진과 강정남으로 하여금, 회사 임원들에 대한 가혹행위와 본인들에 대한 재 산 및 신체적 위협 등으로 의사결정의 자유가 박탈당한 상황에서 백지의 위임각서에 날 인하게 하였고, 피해자 고고화 역시 남편과 아들이 구금되어 있는 궁박한 상태에서 수사 관들의 강요에 의해 의사에 반하는 재산포기각서를 작성케 하였다고 하는바, 이는 결국 국보위에 의한 강제적인 재산헌납이었다는 주장이므로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4. 조사방법 가. 자료조사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왜 설치되었는가 (문화공보부, 1980) 국보위백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1980) 국보위철 (업무보고) (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원회, 1980) 동명목재상사문제처리위원회 규정 (1980) 동명재산 감정평가서(한국감정원, 1980) 전언통신문 동명목재정리추진현황보고 (제501보안부대장, ) 학교부지보상및매도요청(부산시교육위원회, ) 동명목재처리종결보고 ( ) 동명계열정리채권단구성합의서( ) 동명계열채권기관대표자합의서( ) 3) 신청인 강정남과 신청인의 부 강석진, 신청인의 모 고고화 및 동명목재 임원들로서 1980년 당시 불법구금 되어 조사받은 20여 명을 모두 피해자로 칭한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2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사회정화과제연구 (사회정화위원회, 1981) 강석진의 녹취록(1984년 3~4월 녹취 후 1999년 10월 19일 부산합동법률사무소에서 공증한 녹취록) 동명 강석진 전기 (동명문화학원, 1994) 20세기 부산을 빛낸 인물(Ⅱ) (부산광역시, 2005) 대한민국헌정사 제2집 (중앙선거관리위원회) 1980년도 동명목재상사 관련 조선일보, 동아일보, 부산일보 등 언론보도자료 30여 매 1980년 7월호 신동아, 2008년 2월호 신동아 1990년 7월호 월간조선 서울지방법원 선고 97가합29634 소유권이전등기말소 판결문 및 증인 신문조서, 피고와 원고측 각 준비서면 서울고등법원 선고 98나66101 소유권이전등기말소 판결문 및 피고와 원고 측 각 준비서면 대법원 선고 96도3376 반란수괴 등 판결문 나. 진술청취 신청인 강정남 참고인 이관우, 류필윤, 노익성, 오정환, 이종희, 강정웅, 김재관, 김덕성, 이은호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 501보안부대 수사관 준위 구, 준위 추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 파견 경찰관 부산시경 소속 김, 강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장(501보안부대장) 백 계엄사 합수부 합수단장 이 계엄사 합수부 수사1과장 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정화분과위원장 김 부산시청 사회과장 신 동명목재 사건 123

124 제4권 Ⅱ. 조사결과 1. 사건배경 가. 시대적 상황 정부는 1979년 10 26사건 을 계기로 비상계엄을 선포함과 동시에 계엄공고 제5호에 따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10 26사건의 수사를 전담하기 위한 합수 부 4) 를 설치하였다. 합수부는 계엄사령관 직속으로 중앙정보부, 경찰, 보안사뿐만 아니라 헌병과 군검찰까지 감독할 수 있었다. 합수부 본부장을 겸임하던 전두환은 중앙정보부 국장급 이상을 전원 조사하면서 중앙정보부를 무력화시켜 국가의 정보기관을 독점하였 다. 5) 계엄사 합수부는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 연계 되었다면서 최규하 대통령 직무대행의 허락 없이 상관을 전격 연행하는 12 12군사반란 을 단행하였다. 이어 정권마저 탈취하기 위해 반대정치세력을 제거하는 작업에 착수하였 다. 계엄사령부 합수부는 사회정화의 1차 작업으로 부패 비리정치인을 척결한다며 김종 필, 이후락 등을 부정축재자로 연행하여 조사하고 853억 원의 재산을 환수하는 조치를 취 하였다. 전두환을 필두로 한 소위 신군부 는 제주도를 포함하는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를 의결 선포하게 하고 전국 주요 관공서에 계엄군을 투입하였다. 신군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로 진압한 후 정부와 계엄당국 간의 긴밀한 협조로 계엄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함으로써 국기를 튼튼히 다지고 누적된 병폐를 과감히 제거 한다 는 명분으로 계엄법 및 정부조직법에 의거 국무회의에서 국가보위비상 대책위원회설치령(대통령령 제9897호)을 제정하고, 전국비상계엄 하에서 대통령의 자문보좌기관으로 행정 사법업무를 조정 통제하는 기능을 갖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전두환)를 설치하였다. 6) 4) 합수부의 조직에 관한 규정은 계엄법에 있는 것이 아니고 육군본부의 비상사태 조치계획인 충무계획에 합수부를 설치할 수 있다 는 단 한 줄의 규정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월간조선 1990년 7월호). 5) 조갑제, 제5공화국(2): 합수본부의 권력모의, 월간조선 1990년 7월호. 6)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한민국헌정사 제2집 64-65쪽, 국보위 의장은 대통령으로, 그리고 국무총리, 부총 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외무부장관, 내무부장관 법무부장관, 국방부장관, 문교부장관, 문화공보부장관, 중 앙정보부장, 대통령비서실장, 계엄사령관, 합동참모회의의장, 각군참모총장 및 국군보안사령관과 대통령 이 임명하는 10인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되었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2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이와 관련하여 법원은 피고인 전두환은 형식적으로는 대통령의 계엄업무에 대한 자문 기구의 형태로 비상기구를 설치하되 실질적으로는 전두환 등의 주도로 행정각부 등을 통 제하여 국정을 수행해 나가겠다는 의도 하에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 치하여 상임위원장에 자신이 취임하였다. 그리고 당연직 상임위원을 군장성 12명과 대통 령 비서관 4명으로 구성하고, 피고인 이학봉, 허화평, 허삼수와 함께 각 분과위원과 전문 위원을 선정하여 피고인들이 그 실권을 장악한 후 국보위상임위원회를 통하여 공직자숙 정, 언론인 해직, 언론통폐합, 불량배소탕 등 소위 국정개혁 작업을 수행하였다. 피고인 전두환 등은 이러한 국정개혁 등 국정수행능력을 내외에 과시하여 자신들을 집권세력으 로 부각시키는 데 이용하였다. 국보위상임위원회는 사실상 국무회의 내지 행정각부를 통 제하거나 그 기능을 대신하여 헌법기관인 행정부와 대통령을 무력화시켰다 라고 판시 7) 하였다. 국보위는 상임위원회 중심으로 활동하였는데 산하에 13개의 분과위원회 8) 를 설치하였 으며, 사회정화분과위원회는 감사원 기타 사정담당 기관 소관사항 및 민원업무, 중앙정보 부, 합수부 소관사항을 관장하였는데, 공무원 숙정작업, 언론기관의 통폐합, 학원 및 노조 의 시위활동 근절, 기존의 경제질서 조정 및 재벌그룹의 계열기업 정리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신군부 집권의 장애요소를 제거해 나갔다. 정화분과위원회 9) 는 이 사건 신청인의 부 강석진 등 동명목재 그룹의 소유주들을 소위 악덕기업주라며 사회정의구현 및 기업윤리의 정화 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10) 계엄사 합 수부 부산지부에서 조사 11) 하도록 하였다. 나. 동명목재 12) 의 설립과 발전과정 동명목재상사는 강석진(1907~1984)의 개인 기업으로서, 1925년 부산 좌천동에 동명제 재소에서 1945년 조국광복 후에는 부산 범일동에서 국내 최초로 합판생산을 위한 설비 7) 서울고등법원 선고 96노1892 및 대법원 선고 96도3376 반란수괴 등 참조 8) 13개 분과위원회는 운영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외무위원회, 내무위원회, 재무위원회, 경제과학위원회, 문 교 공보위원회, 농수산위원회, 상공 자원위원회, 보건 사회위원회, 교통 우편위원회, 건설위원회, 사 회정화위원회로 구성되어 있다. 9) 사회정화위원회와 정화분과위원회는 동일한 것으로 당시 언론이나 발행책자에서 두 용어를 혼용함. 10) 동아일보, 1980년 6월 19일자 등 11)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범죄수사라기보다는 임의적으로 사건조사라는 차원을 띠고 있어 조사의 법적 근거 에 문제가 있다. 12) 동명목재상사를 비롯한 동명산업(주) 등 동명계열회사를 통칭하여 동명목재라 한다. 동명목재 사건 125

126 제4권 를 갖추었고, 1949년에 동명목재상사로 개명되었다. 한국전쟁의 피해복구 과정에서 합판 의 수효가 늘어남에 따라 동명목재상사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1960년 부산 용담동에 60만여 평의 부지를 매입하여 제1합판공장을 세우고 합판을 대량생산하여 국내 수요를 넘어 미국에 수출하기에 이른다. 1967년 제2공장, 1974년 제3합판공장과 화학가공공장을 연달아 세워 종업원이 7천여 명에 이르렀고, 매출은 70년 100억 원, 76년 500억 원 상당 이어서 국내 수출산업을 주도하여 1970년대 단일 합판생산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였다고 한다. 13) 강석진은 1974년 동명목재상사 옆에 약 3만 제곱미터의 건물과 570명의 종업원으로 페 인트와 도료분을 생산하는 동명산업(주)을, 1974년 창원기계공단 내에 부지 약 4만 5천 제곱미터에 기계설비 및 지게차, 유압기 등을 생산하는 동명중공업(주)을, 1976년 남진식 품을 인수하여 동명식품(주)을, 1977년 동성해운(주)(1978년 동명해운으로 개칭)을, 1977 년 건설업을 목적으로 동명개발(주)을 각 설립하여 동명목재 그룹을 이루었다. 강석진 자 신은 동명목재그룹 회장이 되고, 아들인 신청인 강정남은 새로 설립한 회사들의 대표이 사로 취임하였다. 다. 신청인 강정남 등이 제기한 민사소송 신청인 강정남 등은 국보위와 계엄사 합수부의 강압에 의한 동명목재 사주들의 헌납 재산 중 매매 형식으로 처분된 토지 일부에 대하여 서울지방법원에 소유권 이전등기말소 의 소를 제기하였다. 서울지방법원은 신청인 등의 위임각서 작성경위와 토 지 매매경위가 민법 제103조 위반 및 강박에 의한 법률행위로서 무효사유라며 원고승소 판결을 하였으나,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은 국가권력의 강박 14) 이 의사결정의 자유를 완 전히 박탈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며 취소사유가 있다고 보았고, 제척기간 3년이 도과하 였다며 원고 패소판결을 하였다. 13) 조선일보, 1980년 5월 8일자; 신동아 1980년 7월호; 천덕호, 동명 강석진 전기 (동명문화재단, 1994). 14) 강박의 정도와 관련 1심은 의사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여지를 완전히 박탈당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 이며, 각 작성서류는 그 법률행위의 외형만을 갖추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여 위 재산처분위임의 각 의사표시는 그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 고 판시하여 무효로 보았다(서울지방법원 선고 97가 합29634 소유권이전등기말소 판결문 15쪽). 이와 달리 항소심과 상고심은 강정남 등이 불법구금된 상태 에서 불법적인 강박을 당한 끝에 처분을 위임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나, 그 강박의 정도가 의사결정의 자유가 완전히 박탈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며 강박을 이유로 위 의사표시를 취소 할 수 있다고 판시하며, 헌정질서를 회복한 이후부터 3년의 제척기간이 경과하여 취소권이 이미 소멸되었다 고 판시하여 강박의 정도를 무효사유가 아닌 취소사유로 보았다(서울고등법원 선고 98나66101 소유권이전등기말소 판결문 11-13쪽)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2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이 사건과 관련하여 유일한 위 판결은 신청인 등 동명목재 사주가 헌납 15) 한 토지 및 임야 약97만 평 중 극히 일부인 5천여 평에 대한 것이며, 증여 형식으로 헌납한 재산에 대한 판단이 없고, 강정남 등 동명목재 사주들 외 20여 명의 임원들에 대한 고문 가혹행 위가 사주들의 위임각서 작성경위와 매매계약 체결경위에 미친 영향에 대한 판단이 없 고, 주식과 현금 등 전 재산의 강제헌납도 판단하지 않았다. 신청인의 신청취지가 위 민 사소송 판결의 목적과 상이하고 조사범위 또한 위 민사소송의 범위에 한정되지 않으므 로, 진실화해위원회는 국보위와 계엄사 합수부가 동명목재를 조사한 경위 및 조사과정에 서의 인권침해 여부, 재산헌납 과정과 그 피해 등에 대해 총괄적으로 조사하였다. 2. 사건 조사결과 가. 국보위와 계엄사 합수부의 동명목재 조사경위 1) 동명목재 조사 착수 경위 가) 1980년 당시 언론 보도 내용 당시 언론보도 16) 에 의하면 동명목재상사가 자금난으로 원목 원자재를 확보하 지 못해 부터 까지 15일간 근로자들에게 유급휴가를 주면서 기한부 휴업 에 들어갔는데, 만약 구제금융을 받지 못하면 휴업의 장기화가 불가피하여 경제계에 파 급효과가 크게 우려되고 있는 등 동명목재의 정상가동을 위한 정부당국의 정책적 배려가 아쉬운 실정이라는 사실, 아울러 동명목재 휴업에 따라 근로자들은 조업정상화추진위원 회를 결성하였고 휴업철회를 위한 대규모 항의농성을 벌였으며, 강석진, 강정남, 고고화 는 동명목재의 회생을 위해 전 재산을 근로자들에게 넘겨주겠다는 각서를 정상화추진위 에 전달했다는 사실, 당시 동명목재는 유동자산 201억 원과 고정자산 556억 원 등 자산총 액이 761억 원이고, 부채는 제일은행에 250억 원, 부산은행에 80억 원 등 5개 금융기관에 서 600억 원의 규모라는 내용 등을 보도하였다. 동명목재의 경영 위기의 한 원인으로 가족들 간의 내분과 재산 싸움으로 보도하기도 하였다. 강정남이 동명중공업(주) 등 계열회사의 대표이사로 취임하고 에는 동명목 15) 헌납 재산은 토지 및 임야에 대해 매매 약53만 평과 무상증여 약43만 평뿐만 아니라 부산투자금융(주) 주 식 97만 주와 부산은행 주식 613만 주 및 수억 원의 예금 및 현금이 포함되어 있으나 97년 제기한 민사소 송은 위 토지 중 매매 형식으로 소유권이전된 토지 3필지에 대하여 제기한 것이다. 16) 동아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1980년 5월 8일부터 5월 13일 사이 기사. 동명목재 사건 127

128 제4권 재의 사장으로 취임하자 강정남과 고고화의 불화는 깊어갔고, 강정남의 무리한 계열회사 확장과 동명목재상사에서 고고화와 강정남이 각각 재산을 빼돌려 결국 경영 위기에 이르 렀다는 것이다. 17) 1980년 6월 언론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사회정의구현 및 기업윤리의 정화를 위 해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동명목재 사주 강석진 회장(70세)과 그의 아들 강정남 사장 (40세) 그리고 강회장의 부인 고고화 여사 등 3명을 18일 정화분과위에서 조사 중 이라고 보도했다. 18) 나) 국보위의 발표내용 당시 국보위 정화분과위(분과장 김 )는 동명목재 사주들에 대한 조사의 이유를 ⅰ) 강회장을 비롯한 경영진 가족이 종업원들에게 써준 전재산양도각서 내역을 확인하여 양 도각서대로 이행하도록 조치, ⅱ)동명그룹 산하의 7개 회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불법으 로 사리를 취한 행위를 규명, ⅲ)이들 경영진이 빼돌린 은닉재산을 빠짐없이 찾아내고 ⅳ)만일 조업정상화가 불가능할 경우 종업원들의 퇴직금과 해고수당 보상금 등 29억 7천 여만 원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 이라고 밝히고, 또한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잘 산다 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와 부패 타락한 기업풍토를 과감하게 척결, 근로자들 위에 군림하여 부정축재를 일삼는 악덕기업행위가 발붙일 수 없도록 하고 근로자들의 권리보 호와 생업보장을 하는 데 있다 고 발표했다. 19) 당시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 수사계장으로 근무한 구 준위는 동명목재 관련 민사 소송(97가합29634 소유권이전등기말소) 및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에서 1980년 6월 중순 경 서울 계엄사 합수본부로부터 출장명령을 받아 서울에 가서 김 소령과 함께 위 신 문기사의 보도자료 문건을 작성하였다고 진술하였다. 20) 국보위 상임위원회는 26일 그동안 합수부가 조사해온 동명목재상사와 그 계열회사에 대한 정리대책을 발표, 동명목재상사는 정리청산한다 고 발표하였다. 21) 17) 조선일보, 1980년 5월 10일자, 신동아 1980년 7월호. 18) 동아일보, 서울신문, 중앙일보, 1980년 6월 19일자. 19) 앞의 신문과 동일. 20) 구 의 증인신문조서 서울지방법원; 구 의 1차 진술조서( ), 6쪽. 21) 조선일보, 1980년 7월 27일자 및 국제신문, 1980년 7월 26일자 유사내용( 국보위는 합수부의 1개월여에 걸 친 수사결과 )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2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다) 구체적인 조사경위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 수사계장 구 준위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서울 계엄 사 합수본부로부터 출장명령을 받아 합수단장 이 을 만났으며, 이 은 동명목재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설명해준 후 대공처 수사계장 22) 김 소령에게 지시해놓았으니 만 나서 지시를 받으라, 수사계장 김 소령은 동명목재 관련 정보보고 및 신문기사 등 의 자료를 주며 국보위 정화분과위 소관이라 합수본부에서 처리해야 한다. 1개월 안에 동명목재에 대한 수사를 끝내라 고 지시하였다. 위 지시를 받고 당일 서울에서 1박하고 다음날 부산으로 내려왔다 고 진술하였고, 23) 동명목재 강제헌납재산 관련 민사소송에 증인으로 출두하여 당시 김소령으로부터 전 두환의 지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 하고, 24) 진실화해위원회에서의 조사 25) 에서 동명목 재에 대한 조사는 처음부터 국보위와 합수부가 재산 환수라는 목표를 정하고 수사를 개 시한 것이다. 물증이 없으니까 일단 지침에 의해 연행 수사하여 그 지침에 맞추려고 한 것이다. 기소를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회사정리를 위한 것이었다 고 진술하였다. 부산보안부대장 겸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장으로 근무하였던 백 대령은 당시 동 명목재 수사에 대한 상황을 명확히 기억하지는 못하나 사령부의 지시에 의해 수사하였 을 것이다. 전두환의 지시가 있었을 것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26) 구 준위와 같은 부대에 근무하였던 추 준위도 계엄사 합수부의 지시에 의해 부산지부 윤 수사과장이 자신에게 강석진을 조사하라고 하였으나 추 은 평소 강 석진을 잘 알고 있다며 조사를 거부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하였다. 27)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에 파견된 부산시경 김 순경과 강 순경은 구 가 동 명목재에 대한 수사실무를 총괄하였으며 자신들이 직접 동명목재 임원과 사주들을 연행 하여 수사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하였다. 28) 그러나 당시 국보위 정화분과위원장을 역임한 김 는 상임위원회에서 의결하여 결 정한 사항에 한하여 분과위원회에서 업무를 처리하였는데 본건 동명목재에 대하여는 자 신이 정화분과위원장으로 근무하면서 조사하거나 사건을 처리한 사실이 없다, 다만 국 22) 김 소령은 보안사 체계로는 수사계장이나, 합수부 체계로는 수사1과장이었음. 23) 구 의 1차 진술조서( ), 4-5쪽 및 3차 진술( ). 24) 구 의 증인신문조서 서울지방법원. 25) 구 의 1차 진술조서( ), 11-12쪽. 26) 백 의 참고인 진술( ). 27) 추 의 참고인 진술조서( ). 28) 김 의 참고인 진술조서( ) 및 강 의 참고인 진술조서( ). 동명목재 사건 129

130 제4권 보위 내 다른 곳에서 동명목재를 조사하고는 있었다 고 진술하였다. 29) 합수단장이었던 이 은 동명목재에 대해 수사지시를 한 기억이 없으며 계엄사에서 국보위의 지시를 받아 처리할 성격이 아니지만, 국보위에서는 수사 역량이 안 되므로 계 엄사 합수부에 수사협조를 의뢰했는지는 모르겠다 고 진술하였다. 30) 김 소령도 1980년 당시 계엄사 합수본부 수사1과장(보안사 수사계장)으로 근무하 면서 중앙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주로 처리하였기에 부산 소재 기업은 내 담당이 아니었 고 동명목재 수사지시사항에 대하여 기억나지 않지만 구 준위는 이전부터 알던 사람 으로 그 진술이 거짓은 아니라고 생각하므로 아마 합수단장이 비공식적으로 나에게 심부 름시키는 차원에서 부산지부에 수사하게 하라고 부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고 진술하 였다. 31) 라) 국보위 백서 등의 내용 국보위가 발행한 국보위백서 에는 국보위는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산다 는 식의 기업풍토를 쇄신하기 위하여 동명목재와 그 계열회사의 대주주(강석진, 강정남 및 고고 화)의 재산을 조사하고 동명목재는 기업으로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정리, 청산토록 하였으며 32) 라고 기술되어 있다. 동명목재를 수사한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의 501보안부대장은 (계엄)사령관에게 동 명목재정리추진현황보고 라는 제목의 문서 33) 를 전언통신문 형식으로 보고하였는데, 위 문서에 합수본부에서 국보위와 절충하여 사주 3인의 생계대책, 1,200명 규모의 (고화여 자대학)학교를 설립토록 조치, 동명중공업에 대한 국보위 지시는, 강석진 보호 해 제(국보위) 등을 기재하여 국보위와 계엄사 합수본부의 지시사항과 위 기관에 대한 건 의사항을 보고하였다. 정부 공식문서로는 합동참모본부 기록보존실에 국보위철 34) 이라는 제목으로 보관되 어 있는 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원회의 업무보고서 20쪽에 Ⅲ. 업무추진계획 중 제5 항 경제 항목에 동명목재처리대책 수립 제일은행 부도처리 후 기업정리 방침 이라고 29) 김 의 2차 전화진술( ). 30) 이 의 전화진술( ). 31) 김 의 진술( ). 32)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국보위백서, ) 자로 제501보안부대장 작성 명의의 9쪽 분량의 전언통신문 동명목재청리처리현황보고 (수신: 사령관, 참조:대공처장). 34) 합동참모본부 기록보존실에 보관되어 있는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민사심리전참모부 계엄과에서 관리하는 비공개 문서로 사본은 불가하고 제한적 열람만 가능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3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명기되어 있어 국보위에서 동명목재를 조사하여 정리하였음을 자료상 확인할 수 있었다. 2) 1980년 전후 동명목재의 상황 가) 동명목재의 경영난 70년대 석유파동은 원목 원가를 폭등시켰고, 생산국으로 하여금 원목 공급량을 제한하 게 만들었고, 정부의 저물가정책은 국내 합판고시 가격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할 수 없게 하였다. 합판을 주력품목으로 하고 있는 동명목재가 1980년대에 접어들어 경영난을 겪게 되었고, 35)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강정남은 합판공정 설비의 50%를 인도네시아에 이 설, 강석진과 강정남 소유의 비업무용 부동산 처분, 동명목재상사의 법인화 등을 주 내용 으로 하는 경영개선안을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에 제출하여 자금지원을 약속받았으나 실제로 자금지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강석진은 정부에 200억 원 상당의 구 제금융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자 부터 15일간 유급휴업에 들어가 정상화를 도모하였지만, 종업원들은 조업정상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하였다. 강석진, 강정남 및 고고화는 자신들의 전 재산을 동명목재 근로자들에게 넘겨주겠다고 각서를 작성하였고, 강석진은 보유 주식을 매각하기로 하고 경 부산투자금융 (주) 주식 97만 주(총 발행주식의 32.5%)를 럭키금성그룹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하였고, 부산은행 주식 665만 주(총 발행주식의 33.2%)에 대하여도 매각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국보위 정화분과위와 계엄사 합수부는 동명목재 자구노력이 진행되는 중에 강석진 등 을 악덕기업주로 지목하고 빼돌린 은닉재산을 찾아낸다는 명목으로 계엄사 합수부 부산 지부로 하여금 동명목재를 수사하도록 지시하여 경부터 피해자들이 조사를 받고 있었다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은 동명목재가 36억 7천 300만 원의 부 도를 냈다고 공식 발표했다. 나) 동명목재 사주 강석진 등에 대한 사회적 평판 강석진은 기업경영을 하면서 BBS운동 36), 팔각회 37) 등 사회활동을 하였고, 해군사관학 교에 호국사를, 군수사령부에 금연사라는 사찰을 지어 헌납한 사실도 있다. 38) 1977년에 35) 동아일보사, 신동아, 1980년 7월호. 36) 우애와 봉사이념을 바탕으로 비행, 불우 청소년에게 삶에 대한 희망과 의욕 고취를 목적으로 하는 청소년 보호 선도운동임. 강석진은 부산에 BBS회관을 건립하고, 청소년 생업자금과 학비지원 등의 활동을 하였다. 37) 국토수호 및 안보의식 함양 등을 목적으로 하는 부산경남지역 인사들로 구성된 조직임. 38) 부산광역시, 20세기 부산을 빛낸 인물(Ⅱ), ; 천덕호, 동명 강석진 전기, 동명문화재단, 동명목재 사건 131

132 제4권 는 동명문화학원을 설립하여 동원공업고등학교와 동원전문대학(후에 동명대학교로 개칭 함)을 개교하였다. 강석진은 1962년부터 76년까지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았으며 부산 금융의 모태 인 부산은행과 부산투자금융을 설립하였고, 부산항만 부두관리협회를 설립하는 등 부산 지역사회와 경제발전에 여러모로 기여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39) 추 준위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계엄사 합수부의 지시에 의해 수사과장 윤 40) 중령이 강석진을 수사할 것을 지시하였으나 자신이 평소 존경하고 잘 아는 사람이므 로 수사지시를 거부하였고, 다른 수사요원에게도 강석진은 좋으신 분이니 잘 대해주라 고 부탁한 사실이 있다며 강석진은 부산지역에서 존경받는 분이었다 고 진술하였다. 41) 강석진을 조사한 구 준위는 동명목재는 부산에서 대단히 큰 기업이었는데 한 달 안에 도저히 (수사가) 안 될 것 같았다. 국세청에서 나온 반장이 하는 말이 동명목재는 정부에서도 인정하는 우등업체인 녹색업체이므로 부산국세청에서는 부정사실에 대한 자 료가 없어서 3개월 이상은 수사를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고 진술하였다. 42) 합수부에 파견된 부산시경 소속 김 순경도 강석진 회장은 BBS운동 지원이나 불 우이웃돕기도 많이 했다. 그 당시 동명목재 종업원들이 데모를 했는데 그 데모 이전에는 동명목재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동명목재의 재무구조에 대하여 몰랐는데 나중에 조사를 해보니 재무구조가 상당히 튼튼하였고, 그래서 적자도산이 아닌 흑자도산 이 된 것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43) 강정남은 당시 정부 시책인 개인회사의 법인화를 추진하고 있었는데, 동명목재를 법인 화하기 위한 전 단계로 (주)동명산업, (주)동원, (주)동명중공업, (주)동명식품 등 동명계 열 법인회사를 설립하면서 사업다각화를 시도하였고, 1970년대 석유파동 등의 국내외 경 제여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동명목재의 일부 생산라인을 원목 생산국인 인도네시아에 이전하기 위한 활동을 벌였으며, 강석진의 사회사업에 동참하여 1977년 학교법인 동명문 화학원을 설립하였다. 39) 부산광역시, 20세기 부산을 빛낸 인물(Ⅱ), ; 동아일보사, 신동아 1980년 7월호 및 2008년 2월호. 40) 윤 는 자로 사망신고된 자로 조사하지 못함. 41) 추 의 참고인 진술조서( ) 42) 구 의 1차 진술조서( ) 43) 김 의 참고인 진술조서( )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3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3) 소결 국보위가 동명목재를 조사하게 한 명분은 강석진 등이 악덕기업주들로 사회정화의 대 상이기 때문이라고 발표하였다. 강석진 등은 동명목재의 경영난 타개를 위하여 개인재산 처분노력, 융자 등 자구노력, 개인재산 포기각서 제출 등의 노력을 하고 있었고, 강석진이 여러 사회활동을 통하여 악덕기업주라는 평이 없었다는 점을 볼 때 국보위와 계엄사 합 수부가 강석진 등을 악덕기업인으로 판단한 근거가 빈약하고, 직접 수사를 담당한 수사 관들조차도 피해자들이 자금을 빼돌려 부실기업으로 만든 악덕기업인이라는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였다는 점 등을 볼 때 국보위의 주장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부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보위와 계엄사 합수부가 근거 없이 동명목재 사주들을 악덕기업주로 단정하고, 범죄 혐의 없는 이들과 임원들을 구속 수사한 것은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할 수 있 다. 그 큰 책임은 당시 국보위 상임위원장이자 계엄사 합수부장이었던 전두환에게 있었 음을 업무체계상, 그리고 관련자들의 진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나. 불법구금 여부 1) 피해자 진술 동명목재 전무로 근무하던 류필윤은 경 구제금융 200억 원을 지원받기 위해 서울에서 경제부총리를 만난 후 숙소인 서울 하얏트호텔에 투숙 중 수사관에게 연행되어 부산으로 이송되었다가 44), 같은 달 30일경 석방되었다고 하며 석방된 다음날인 7. 1.과 7. 2.에 삼육군병원에 입원한 강석진을 문병 갔다고 진술하였고, 45) 동명목재 경리이사로 근무하던 노익성은 중순 21시경에 부산 민락동 소재 류 필윤의 집에서 보안사 요원들에게 연행되었다가, 46) 약 보름 정도 구금된 후 석방되었고 7월 초순경부터 동명목재상사문제처리위원회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진술하였고, (주)동원의 관리상무이사로 근무하던 오정환은 시경 부산 온천동 소재 자신의 집에서 연행되었다고 진술하였고, 47) 동명산업(주) 기술담당 전무이사로 근무하던 이종희는 중순 05시경에 부산 대 44) 류필윤의 참고인진술조서( ). 45) 강정남의 2차 참고인진술조서( ) 중 류필윤의 진술부분. 46) 노익성의 참고인진술조서( ). 47) 오정환의 참고인진술조서( ). 동명목재 사건 133

134 제4권 연동 소재 자신의 집에서 보안사 직원 2명으로부터 연행되었다고 진술하였고, 48) 동명목재 경리업무를 담당하다 사건 당시 동명문화학원 사무처장으로 근무하던 강정 웅은 중순경 보안사 요원들에 의해 연행되었다가 49) 약 15일 정도 구금된 채로 조사를 받았다고 진술하였고, 동명목재 무역1부장으로 근무하던 김덕성은 중순경 저녁식사 중에 사복차림의 보안부대 요원들에게 부산보안부대로 연행되었다고 진술하였고, 50) (주)동원의 기획 및 자금담당이사로 근무하던 김재관은 임원들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피신해 있던 중 경 자진 출석하기 위해 구본무 계장과 전화통화 후 부산 보안부대로 출석하였으나 체포되어 감금당했다고 진술하였고, 51) 동명목재 관리이사로 근무하던 김종철은 같은 달 18일경 서울 명동소재 동명목재 서울 사무소에 출근하자 수사요원으로 보이는 4명이 자신을 서울 소재 보안부대로 연행한 후 대한항공 편을 통해 부산보안부대로 강제이송 당하였다고 진술하였고, 52) 강정남은 시경에 서울 압구정동 소재 자신의 아파트에서 보안부대 직원 에게 연행되어 서대문보안부대로 이송된 후 11시경 비행기로 류필윤 등과 함께 부산보안 부대로 이송되어 조사를 받다가 경 석방되었지만, 석방 후에도 자신의 집 경비실에 사복을 입은 군인이 24시간 감시했다며 약 2개월간 가택연금되었다고 진술하였고, 53) 강석진도 강정남과 비슷한 시기인 경에 부산보안부대에 연행된 후 이틀가량 구금 되어 있다가 몸이 좋지 않자 수사관들이 부산 소재 삼육군병원에 입원시켰고 그곳에서 총을 든 보안부대 사병의 감시를 받으며 계속해서 구금되어 있었고, 54) 석방 후 동명불원 서원 옆에 있는 선당에서 거주하였는데 경까지 보안부대 군인 1명으로부터 상시 감시당하였다. 55) 위 피해자들은 부산보안부대에 감금되어 있을 때 동명목재 임원인 강기수(동명목재 부 사장), 강시봉(동명목재 총무이사), 하두호(동명목재 총무상무), 정규식(동명목재 무역부 장), 도현규(동명목재 이사), 문철진(동명목재 이사), 라병문(동명목재 이사), 허환(동명목 48) 이종희의 참고인진술조서( ). 49) 강정웅의 참고인진술조서( ). 50) 김덕성의 참고인진술조서( ). 51) 서울지방법원 97가합29634 소유권이전등기말소 사건 김재관의 증인신문조서(제5차 변론조서 일부) 및 김재관의 참고인진술조서( ). 52) 김종철의 진술서( 작성 후 같은날 공증하여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한 서류). 53) 강정남의 2차 참고인진술조서( ). 54) 강정남의 2차 참고인진술조서( ). 55) 이은호의 참고인진술조서( )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3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재 이사), 양승규(동명목재 총무상무) 등도 연행된 것을 목격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 으로 보아 동명목재 관련 체포 및 구금된 자들은 20여 명 정도로 추정된다. 2) 수사관 진술 합수부 부산지부 수사계장이었던 구 준위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중 순경 야간에 계엄사 합수본부에서 합수부 부산지부에 동명목재의 임원과 사주에 대하여 수사 착수를 지시하였다, 파견 경찰관과 보안사 요원들을 각 조로 편성하여 연행 대상 동명목재 사주와 임원들을 지정해주어 부터 연행이 시작되었다 고 하며, 56) 합 수부로부터 동명목재에 대한 수사는 계엄기간이므로 계엄법 위반으로 수사하고 모든 방 법을 동원하여 1개월 안에 수사를 끝내라는 지침을 받았다고 하고, 57) 계엄사령부의 지시 를 받은 백 대령이 계엄법에 의해 연행하는 것이니 모두 영장 없이 체포 구속하라 고 지시하였다고 진술하였으며, 58) 파견경찰관 순경 김 과 강 은 경찰, 헌병 등에서 파견된 수사관들 4명이 1개조 로 편성된 수 개의 조가 수사과장 윤 중령과 구 준위의 지시에 따라 조 단위로 피해자들을 연행하는 방식이었으며, 파견경찰관들의 경우는 다시 김 경위의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하였다. 59) 파견경찰관 김 순경, 강 순경도 피해자들을 연행할 당시나 수사를 위한 구금 기간 중 구속영장을 발부받은 사실이 없다고 하고, 60) 연행한 후 진술서를 수차례 받은 사 실은 있으나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한 사실은 없다고 진술하였다. 3) 소결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는 피해자들을 계엄법 위반으로 영장 없이 체포 구금하였다는 형식을 띠었으나 실제로는 처음부터 동명목재의 재산을 강제헌납 받기 위한 방침에 따라 계엄법 위반이나 포고령 위반사실이 없음에도 61) 동명목재 사주 강석진, 강정남과 임원들 56) 구 의 2차 진술조서( ), 2쪽. 57) 구 의 1차 진술조서( ), 4-5쪽. 58) 구 의 1차 진술조서( ), 11쪽. 59) 김 의 참고인 진술조서( ), 2-5쪽; 강 의 참고인 진술조서( ), 2-4쪽. 60) 김 의 참고인 진술조서( ), 6쪽; 강 의 참고인 진술조서( ), 4쪽. 61) 당시 선포된 포고령 10호( )는 모든 정치활동을 중지하며 정치목적의 옥내 외 집회 및 시위를 일체 금함, 언론 출판 보도 및 방송은 사전검열, 대학의 휴교 조치, 정당한 이유 없는 직장 이탈이나 태 업 및 파업행위 일체 금지, 유언비어의 날조 및 유포금지 를 규정하고 본 포고를 위반한 자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수색하며 엄중 처단한다 고 규정되어 있으나, 피해자들이 위 포고사항 중 위반한 범죄사실이 동명목재 사건 135

136 제4권 을 구속영장 등 적법한 인신구속절차 없이 불법적으로 구금하였다. 피해자의 진술 및 수사관들의 진술에 의하면 동명목재 임원들은 경부터 동 명목재 임원들은 10일 내지 15일간, 강정남과 강석진은 약 2개월간 불법구금된 사실이 인 정된다. 이는 형법 제124조 위반의 불법구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다. 폭행 가혹행위 여부 1) 피해자 진술 피해자들은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 수사관들이 연행한 후 입고 있던 사복을 벗기고 군복과 고무신을 착용하게 한 상태에서 진술서 작성을 강요하였다고 하고, 진술 강요내 용은 개인의 성장 및 동명목재 입사동기와 담당업무를 적게 한 후 강석진, 강정남, 고고 화 등 동명목재 사주들의 은닉재산을 밝히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62)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는 구 준위가 총괄하였고, 직접 조사를 담당한 자는 파견경 찰관들로 김 63) 경위가 지휘하였다. 류필윤은 서울 하얏트호텔 숙소에서 연행된 후 다음날 비행기로 부산보안부대로 이송 되었는데 지하 감방에서 강석진과 하두호의 목소리를 들었고, 보안사 요원이 백지를 여 러 장 주며 성장과정과 회장과의 관계, 강정남이 유용한 재산 등에 대하여 기재하게 하였 고, 다음날 다시 진술서를 작성하게 하는 등 수차례 진술서 작성을 강요당하였고, 6월 말 경에 연행되었던 사람들을 넓은 강당 비슷한 곳에 집결시켰는데 그때 김덕성이 고문을 많이 당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고, 또한 수사 중간에 백대령(백 대령)이 내가 내 일 전두환 사령관에게 보고해야 하는데 할 얘기가 있으면 얘기해라 고 말하여 경제부총 리를 만나 구제금융을 받기로 하여 동명을 살려낼 수 있다 고 말한 기억이 난다고 진술 하였다 64). 이종희는 6월 중순 05시경에 연행되어 부산보안부대 지하실로 이동 중 전기고문실을 목격하였고 다른 방에서 가혹행위로 인해 소리 지르는 것을 들었으며 방에 들어서자 김 없고 수사관들도 포고령 위반혐의로 조사한 사실이 없다고 한다. 62) 노익성, 오정환, 류필윤, 강정웅, 김재관, 김덕성, 강정남 등 참고인 진술조서. 63) 김 경위는 후에 동명목재상사문제처리위원회에 반장으로 참여하여 동명목재 수사 및 재산처분과정에 깊이 관여하였으나 1998년 민사소송 시 증인으로 채택되었지만 출석 거부하였고, 자로 사망하 였기에 진술청취 못함. 64) 류필윤의 참고인 진술조서( )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3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형사가 종이를 주며 판교와 태광산업 부근의 땅에 대하여 적으라고 하여 강정남 소 유의 땅이라고 기재한 사실이 있다며 당시 직접적인 폭행은 당하지 않았지만 조사과정에 서 기가 죽고 위축된 사실이 있다고 진술하였다. 65) 오정환은 연행된 후 김형사 라는 사람에게 인계되어 지하조사실로 끌려 내려가니 이 미 여러 명의 임원들이 끌려와 고문당한 것을 알게 되었으며, 위 김형사가 입사경위와 강 정남 사장의 개인재산 및 비자금 조성과 사용처 등을 작성하라며 백지 20여 장을 주면서 내용이 다를 경우 온전하게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라고 협박하였고, 진술서를 어떻게 써 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으니 수사관의 명령에 반항한다 고 말하며 곤봉으로 어깻죽지를 서너 번 내려치는 등의 폭행을 가하였다고 진술하였다. 66) 노익성은 연행 당일 23시경 수사관들에 의해 지프차에 태워져 용당동 소재 동명목재 회사로 이동하였고, 수사관들이 경리부 사무실에서 서류를 가지고 나왔으며, 다시 부산보 안부대로 이동한 후 지하실 2평 남짓한 방 안에 갇혔고, 다음날 옆방에서 강석진 회장과 하두호의 목소리를 들었으며, 장모 수사관으로부터 회사 재산상태와 자금출처 및 사주들 의 은닉재산 등에 대하여 진술서 작성을 수차례 강요당하였다. 다음날 수사관들이 다시 진술서 작성을 강요하여 작성하였으나 전날 내용과 다르다며 다시 쓰라고 하여 이에 항 의하자 수사관들이 욕설을 하며 안경을 벗게 하고 뺨을 때렸다. 부산보안부대에 계속 구 금된 15일 후쯤에 수사관들이 연행자들을 목욕탕같이 보이는 큰 방에 모아놓았는데 그때 약 15명 정도 임원들이 있었고 서로 구타당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특히 무역담당 이 사 정규식의 엉덩이에 피멍이 시퍼렇게 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진술하였다 67). 강정웅은 연행된 후 지하로 끌려가 독방에 수감되었고 사복을 입은 몽둥이를 든 수사 관으로부터 백지에 성장과정과 동명에서의 근무내용을 적을 것을 강요당하고 강석진 등 이 숨겨놓은 재산을 말하라며 바른말을 하지 않으면 성한 몸으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라고 협박당하면서 어깨와 등을 몽둥이로 수차례 구타당하였으며, 이러한 폭언과 구타가 수일 동안 이루어졌고 밤에 잠을 재우지 않고 계속 조사를 하기도 하는 등 신변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상당히 불안하였고, 당시 일이 너무나도 악몽 같아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 다고 진술하였다 68). 65) 이종희의 참고인 진술조서( ). 66) 서울지방법원 97가합29634 소유권이전등기말소 사건에 제출된 공증서류( 작성) 및 오정환의 참고 인 진술조서( ). 67) 서울지방법원 97가합29634 소유권이전등기말소 사건에 제출된 공증서류( 작성) 및 노익성의 참 고인 진술조서( ). 동명목재 사건 137

138 제4권 김덕성은 집에서 저녁식사 중 연행되어 살아온 경력과 회사에서 하는 업무 및 해외로 빼돌린 자금 등에 대하여 진술서 작성을 강요당하여 회사에서 은닉한 재산이 없다고 기 재하자 담당수사관은 몽둥이로 피해자의 엉덩이와 허리 등을 사정없이 구타하였으며, 진 술서를 다시 작성하도록 강요당하였으나 여전히 밝혀진 사실이 없자 수십 회 발길질을 하였고, 5~6일 동안 계속하여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하였으며, 10여 일 후에 목욕탕 같은 곳에 피해자들을 모아놓았는데 그때 류필윤, 정규식, 노익성 등을 보았고 그들은 모두 엉 덩이, 다리, 허리 등에 시커멓게 멍이 들어 있었다고 진술하였다. 또한 구금기간 중 전기고문실 같은 곳에서 협박당하였는데 당시 잘못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겠구나 하는 상당한 공포감을 느꼈다고 진술하였다 69). 김재관은 김종철과 도현규가 보안사 요원에게 연행되었다는 말을 듣고 처에게 전화하 니 보안사 요원이 집에 왔다갔다며 피신하라고 하여 피신하였는데, 경 이창석에게 서 전화로 강정남 사장이 개인재산관계를 수사관들에게 말했다며 재산목록 70) 을 찾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자진 출석하기 위해 수사계장 구 에게 전화하고 부산보안부대로 찾 아갔다. 구 계장을 만난 후 부산시경 소속 김 경위에게 인계되었고 강정남 사장의 개 인재산목록을 제출하자 좋은 자료를 가져왔다 는 말을 듣고 김모 형사에게 인계되었으 나, 김모 형사로부터 고함소리를 들으며 진술서 작성을 강요당하였다고 진술하였고, 다음날 저녁 8시경에 수사관들과 최모 반장이 방에 들어와 머리를 툭툭 치며 오늘 김 재관이 제삿날이 될 테니 마음 단단히 먹으라 고 겁을 주며 지하 1층에 한자로 합심실( 合 心 室 ) 이라고 표기된 약 40평 크기의 전기고문실로 끌고 가 15여 명의 수사관들이 거짓 진술을 하면 살아나갈 수 없다. 팬티 외 모든 옷을 벗어라 고 명령하여 왜 옷을 벗느냐 며 항의하자 너 하나쯤 죽어도 눈 깜짝할 사람도 없다. 이 새끼 반항해 라고 말하며 몽둥이 로 엉덩이를 내리쳤고 이에 겁먹고 옷을 다 벗자 수 명의 수사관들이 삽으로 다리를 구타 하고 몽둥이로 내리치고 군홧발로 짓밟는 등 집단구타하였다. 약 1시간 이상 폭행이 계속 되어 이를 이기지 못해 실신하자 수사관들이 찬물을 끼얹었다. 이후 깨어나자 의자에 앉 힌 후 전깃줄을 두 팔에 연결하며 바른말 하지 않으면 전기고문하겠다 고 협박하였고 왜 남의 일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겠느냐. 제발 믿어주고 살려달라 고 애원하자 갑자기 군 복을 입은 군인이 군화를 신은 발로 태권도식 이단옆차기 하여 왼쪽 목 부문을 타격하였 68) 강정웅의 참고인 진술조서( ). 69) 김덕성의 참고인 진술조서( ). 70) 김재관의 진술에 의하면 경 종업원들이 농성을 하며 사주의 은닉재산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여 강 정남의 자산상태를 분명히 정리해둘 필요가 있어 진술인과 강정남이 같이 작성한 것이라고 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3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고 다시 쓰러지자 수사관들이 이 새끼 죽으면 큰 문제이니 고문은 그만하고 군병원에 연 락해두라 는 말을 서로 주고받았으며, 수사관의 등에 업혀 독방으로 옮겨졌다. 며칠 후 공 동목욕탕에 피해자들이 모두 집결되었는데 그때 끌려온 임원들의 온몸에 시퍼렇게 멍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 진술하였다. 71) 강정남은 약 2개월간 부산보안부대 지하 독방에 감금되어 있으면서 수사관들이 처음에 는 바닥에 눕지도 못하게 하고 불을 끄지 않고 계속 앉아 있도록 강요하였으며, 한 달이 지난 후에 바닥에 깔 담요 한 장을 주었다며 그런 곳에서 한두 달 동안 있다 보니 나중 에는 제 머리가 이상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라고 진술하였고, 직접적인 구타는 없었으나 김재관 이사가 고문 받아 쓰러져 있는 모습을 목격하였고, 김종철 이사가 각목 같은 것으로 맞아서 생긴 멍을 보았는데, 수사관들이 진술인을 조사 실 3곳으로 왔다 갔다 하게 하면서 임원들이 구타당하는 소리와 비명소리를 듣게 하여 엄청난 공포감을 느꼈다, 또한 윤 중령으로부터 재산포기각서에 날인하지 않으면 아버지도 위험하다 라고 협박을 당하면서 각서 작성을 강요당하였다고 진술하였다 72). 2) 수사관 진술 구 준위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구타나 가혹행위가 있었는 지 알지 못하며 그러한 사실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고문사실을 부인하면서 연행자들을 지하실에 데리고 가서 먼저 군복을 갈아입히면 상당히 겁을 먹는다 고 진술하였고, 구금된 지 1개월이 지날 무렵 강정남이 자신에게 계장님 수사관들이 수사하는 데 감 독을 철저히 해야 되겠습니다 직원들이 문제가 있는데 라고 말하였다, 73) 제가 폭행 이 꼭 없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데 각 기관에서 나와서 수사하는데 다른 기관 사람을 지시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입장에서 원칙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 시 물증이 달리 없었으니까 사령부에서는 1개월 안에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정리하 라고 하였으니까 라고 진술하였고, 합심실 에 대하여도 허언탐지기 전기시설을 설치한 큰 방이 있었는데 일부 수사관들 이 폼 잡느라고 그 시설을 전기고문실로 이용했는지도 모르겠다 고 진술하였다. 71) 서울지방법원 97가합29634 소유권이전등기말소 사건 김재관의 증인신문조서(제5차 변론조서 일부) 및 김재관의 참고인진술조서( ). 72) 강정남의 1차 진술조서( ) 2-8쪽. 73) 서울지방법원 97가합29634 소유권이전등기말소 사건 구 의 증인신문조서( ) 및 구 의 1차 진술조서( ), 15쪽. 동명목재 사건 139

140 제4권 김 순경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자신이 직접 피해자들을 구타한 사실은 없다 고 부인하였으나, 다른 수사관들이 고성을 지르며 욕하는 것을 목격 하였고, 조사실에 경비근무를 하던 해병대 사병들이 가지고 있던 나무막대기 비슷한 곤봉이 있었으며, 해 병대 사병들이 군화를 착용하였다, 맞은 사람이 맞았다면 그렇겠지요, 사건 수사가 끝나고 만난 몇몇 임원들은 당시 수사과정에서 폭행당했다 고 자신에게 말하였다 고 진 술하였다 74). 강 순경은 진실화해위위원회 조사에서 조장의 지시에 의해 진술서 징구하는 일을 주로 하여 폭행 및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였지만, 저희가 직접 폭행한 사 실은 없습니다. 뭐 보안사 직원들이 했는지는 몰라도. 그리고 조사가 거의 끝나고 나중에 조사받은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놓은 적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뭐 당했다느니, 폭행이 있었다느니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들었습니다, 당시 조사 분위기가 상당히 엄격 하였다 고 진술하였다 75). 추 준위는 피해자들에 대해 직접 수사하지 않아 폭행이나 가혹행위가 행하여졌는 지 여부를 알 수 없다고 진술하면서, 부산보안부대 지하에 허탐실 또는 합심실 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고 진술하였다. 76) 3) 소결 피해자 및 수사관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는 피해자들을 부산보 안부대(501부대)로 연행한 후 군복과 고무신을 착용하게 하였고, 각자 독방에 수감시켜 동명목재의 은닉재산을 밝히라는 진술서 작성을 강요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보안사와 경 찰 수사관들은 피해자들에게 몽둥이 구타, 손과 발에 의한 폭행과 가혹행위를 가하였고 일부는 실신하게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직접적인 폭력 행사 이외에 고성과 심한 욕설, 협박이 있었고, 일명 합심실 이라는 조 사실을 전기고문실이라고 소개한 후 마치 전기고문을 가할 것 같이 위협하여 극도의 공 포분위기를 조성한 사실도 인정된다. 74) 김 의 참고인 진술조서( ), 10-11쪽. 75) 강 의 참고인 진술조서( ), 7쪽. 76) 추 의 참고인 진술조서( ), 8-9쪽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4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라. 재산헌납 강요 여부 1) 위임각서 및 승낙서 작성 경위 가) 피해자 진술 신청인 강정남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에 연행된 후 약 2 개월간 불법구금되어 있으면서 수사관들의 강요에 의해 위임각서와 승낙서 및 이에 대한 공증행위를 하였다고 진술하였고, 77)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 수사관들은 연행되어온 십 수 명의 임원들에 대해 수차례에 걸쳐 폭행과 가혹행위를 가하였으며 이를 강정남과 강석진에게 직접 목격하게 하고 강정 남 본인과 가족에 대하여 위협을 가해 강정남, 강석진과 고고화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 을 국가에서 환수하여 동명목재의 부채를 청산하겠다며 모든 재산의 소유권을 포기하라 고 강요하였다고 진술하였다. 강정남은 장기간의 불법구금과 본인에 대한 각종 위협 및 회사 임원에 대한 폭행 가 혹행위를 당하면서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 수사관들 78) 의 강요에 의해 백지 에 서명하였다고 진술하였고, 백지 위임각서는 윤 중령이 도현규에게 본인은 본인 소유 전재산 및 본인이 투자 한 회사(동명산업, 동명중공업, 동명해운, 동명식품 (주)동원)의 소유주식을 처분하여 동 명목재상사 부채 청산 및 회사 복지기금에 충당할 것을 확약하고 그 재산 및 주식처분에 관한 일체의 권한을 동명목재상사처리위원회에 위임합니다 라는 내용을 불러주고 강제로 받아쓰게 하는 방법으로 작성되었다 고 진술하였고, 79) 강석진도 역시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위와 같은 강요에 의해 백지에 날인하 였고, 수사관들이 류필윤에게 본인은 본인 소유의 전 재산을 동명목재상사 부채청산에 충당할 것을 확약하고, 그 재산 처분에 관한 일체의 권한을 동명목재상사처리위원회에 위임합니다 라는 내용으로 대필하여 보충하게 하는 방법으로 위임각서 를 작성하도록 하 였다 고 진술하였다. 80) 77) 강정남의 1차 진술조서( ) 및 2차 진술조서( ). 78) 강정남은 최모 형사 가 위임각서 작성 강요에 관여하였다고 진술하였고, 최모 형사 는 부산시경 소속 최 으로 확인되었으나 진실화해위원회의 출석요구에 불응하고 진술거 부하여 조사하지 못함. 79) 강정남의 1차 및 2차 진술조서 및 서울지방법원 97가합29634 소유권이전등기말소 사건에 제출된 도현 규의 자 확인서. 80) 강정남의 2차 진술조서( ). 동명목재 사건 141

142 제4권 고고화는 남편 강석진과 아들 강정남이 불법구금되어 조사받는 궁박한 처지에서 역시 강요에 이기지 못하고 경 사위 장상문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동명목재상사의 부채청산에 사용하도록 위임한다는 내용의 각서 와 요망사항 을 작성하였고, 신청인 강정남은 위임각서를 작성한 후 경 합수부 부산지부 수사관들이 진 술인과 조창덕을 부산 서구 부민동 1가 16번지 소재 공증인가 구덕합동법률사무소 로 데 리고 가고 고고화로부터 재산처분위임을 받은 변호사 이강욱을 위 법률사무소로 불러내 어 승낙서 에 서명, 날인하도록 강요한 뒤 이를 위의 각서 및 각 위임각서와 함께 공증하 게 하였다 고 진술하였고, 81) 승낙서의 요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강석진과 강정남이 경영하는 동명목재상 사, 동명산업주식회사 등 6개 계열기업의 누적된 채권채무를 정리하기 위해 동명목재상 사문제처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재산을 조사하고 이를 채권채무정리에 제공할 것을 종용 함에 있어 강석진, 고고화, 강정남은 전적으로 승낙하면서 첫째 이미 동명목재상사처리 위원회에 제시한 위임각서 및 요망사항을 철저히 이행하고, 둘째 강석진, 고고화, 강정 남은 본인 및 대리인이 승낙하거나 위 처리위원회와 합의한 사항 등은 적법히 이루어지 는 것으로 승인하고, 셋째 위 처리위원회의 규정을 이의없이 승낙하고 준수한다 는 내용 이었다. 강석진은 동명 강석진 전기 82) 에서 국가가 재산을 환수할 이유가 없다고 완강하게 저항하였으나 당시 고혈압이 위험수위에 있었으므로 끈질긴 강요를 끝까지 이겨내지 못 하고 백지에 날인하여 주었다 고 하고, 자신의 녹취록 83) 에서도 죄가 없는데 나를 갖다가 뭣 때문에 1년이나 감금하고 내 재 산은 백지에 도장 찍으라 해가지고서 다 가져갔나 라고 진술하였다. 나) 참고인 진술 당시 부산시 사회과장으로 근무하였던 신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84) 에서 자신은 동명목재상사문제처리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한 부산시 보건사회국장 성호덕의 지시에 의 81) 강정남의 진술과 달리 김기진은 조창덕과 함께 공증사무실에 갔으나 강정남은 동행하지 않았으며, 신 과 윤 가 강석진의 인감날인을 받은 서류를 자신이 지참하여 공증사무실로 갔다고 진술함(김 의 참고인진술조서 13쪽). 82) 천덕호, 동명 강석진 전기 (동명문화재단, 1994), 320쪽. 83) 강석진이 1984년 모 월경 오후6시 동명대학 학장실에서 배석현, 김일회 등의 입회하에 녹취한 후 자로 부산합동법률사무소에서 공증한 녹취록. 84) 신 의 참고인 진술조서( )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4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해 위 처리위원회에서 약 2개월간 근무하였는데 당시 부산시경에서 파견된 김 경위 가 정리반장으로 실무를 총괄하였다. 김 이 정권의 민정이양 시기에 앞서서 동명목재 가 국가에 헌납하기로 한 재산을 각 필지별로 소유권이전등기해야 한다고 하여 이를 위 해 등기촉탁서를 작성하고 강석진과 고고화로부터 인감도장을 날인 받는 일을 담당하였 다고 진술하였다. 강석진이 거주하는 부산 용당동 소재 동명불원 내의 사택에 찾아가 소유권이전등기를 위해 인감도장을 날인 받고자 하였더니 강석진이 이런 도둑놈들 안 찍어준다, 나가라 고 하였고, 2시간 동안 앉아서 대기하고 있으니 강석진이 계속 안 찍어준다고 버티다가 나중 에는 인감도장을 던지면서 알아서 찍어가라 고 하여 그 사택에 같이 거주하던 성명불상 의 남자가 수십 개의 등기이전 서류에 강석진의 인감을 날인해주어 이를 받아온 사실이 있다, 85)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고고화의 아파트로 소유권이전등기서류에 인감도장 날 인을 받으러 갔으나 고고화는 도장을 찍어주지 않겠다며 욕설만 해서 그냥 돌아왔고, 김 이 알려준 대로 계엄사 합수본부에 찾아가 도움을 청한 후 다음날 다시 고고화를 찾 아가니 그때는 체념한 듯 도장을 찍어주어 인감날인을 받아왔다 고 진술하였다. 86) 구 는 위임각서 징구나 동명목재상사문제처리위원회 활동에 대하여는 아는 바가 없다고 하였지만, 동명목재를 처음 수사할 때부터 계엄사 합수본부의 이 과 김 을 만나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1개월 안에 조사를 마치고 기업을 정리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므로 처음부터 재산 환수를 목적으로 조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고 진술하였다. 87) 다) 자료조사 당시 언론은 국보위에서 동명목재의 강석진 등을 악덕기업주로 지목하고 악덕기업주 의 재산색출 88) 이나 불법축재규명, 은닉재산환수 89) 를 목적으로 이들에 대해 정화분과 위 주관으로 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하였다. 제501보안부대장이 동명목재정리추진현황보고 라는 제목으로 (계엄)사령관에게 전언통 신문으로 보고한 문서 90) (3)문제점 항에 고고화는 기부체납의사 결여 라고 명기하였고, 85) 앞의 진술조서, 5쪽. 86) 앞의 진술조서, 5-6쪽. 87) 구 의 1차 진술조서( ) 및 서울지방법원 97가합29634 소유권이전등기말소 사건 구본무의 증인신문조서( ). 88) 동아일보, 1980년 6월 19일자. 89) 경향신문, 1980년 6월 19일자. 90) 자로 제501보안부대장 작성 명의의 9쪽 분량의 전언통신문(수신:사령관, 참조:대공처장). 동명목재 사건 143

144 제4권 5쪽에는 강정남 소유 발굴 부동산 중 동인으로부터 기부체납서 등을 징구코져 하였으 나 자신의 퇴직금으로 취득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완강히 거부 라고 기재되어 있다. 동명 강석진 전기 에는 이창석(강정남의 장인, 전 과학기술처 차관)이 경 윤 중령을 만나니 윤 가 국보위에 강석진 회장이 악덕기업인이란 사실을 하나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고하였더니 국보위에서 그냥 그대로 밀고 나가라는 지시가 있었 다 는 말을 들었다, 동명이 해체되고 난 얼마 후 제일은행 하영기 은행장은 신현확 총리 가 자기에게 (동명목재를)봐 줄 수 있느냐 고 물어보았는데 그 당시 압력 때문에 봐줄 수 가 없었다고 한 말이 있다 91) 는 진술이 있다. 2) 헌납재산 처리과정 가) 동명목재상사문제처리위원회의 구성 국보위는 동명목재상사문제처리위원회(이하 처리위원회라 한다)를 발족시 켰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92) 법원은 동명목재상사문제처리위원회는 군사반란으 로 등장한 신군부세력이 정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국헌문란행위를 계획한 바에 따라 진행 해가는 과정에서 그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추진하던 부정축재재산의 사 회 환수 활동의 한가지로서 동명목재 사주들의 재산환수문제를 담당하게 하기 위해 설립 한 임의적인 조직이다 라고 규정하였다. 93) 처리위원회는 경 국보위에서 제정된 동명목재상사문제처리위원회 규정 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 규정은 제3조에서 동명목재상사의 도산으로 인하여 발생한 채권자, 채무자와 기타 이해관계인의 이해를 조정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채권 및 채무를 정리하 여 사회안정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였다. 법원은 위 규정이 헌법이나 법률적 근거를 가지지 못한 위헌 위법적 94) 인 것이라고 판 단하였고, 실제 규정 제8조에는 이 처리위원회의 채권채무정리 계획표에 따라 정리처리 한 사항에 관하여 채권자 채무자 및 기타의 이해관계인은 일체 이의를 할 수 없으며, 여 하한 사유로써도 법적제소는 할 수 없다 고 규정하여 행정처분의 이해관계인의 사법적 91) 천덕호 동명 강석진 전기 (동명문화재단, 1994), 쪽 및 자로 공증된 이창석의 자필 동 명목재사건의 진상. 92) 조선일보, 1980년 7월 4일자. 93) 서울지방법원 선고 97가합29634 소유권이전등기말소 에서 재판부는 위 처리위원회를 법인격 없는 사단으로서의 실질은 가지고 있다고 판시하였다. 94) 서울지방법원 선고 97가합29634 소유권이전등기말소 판결문 13쪽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4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권리구제절차를 원천적으로 봉쇄하여 헌법상 국가배상청구권,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침 해한 위헌적 규정으로 볼 수 있다. 처리위원회에는 부산시 부시장 이남두(위원장), 부산지검 형사부장 김태조(부위원장), 부산시 보사국장 성호덕(감사), 501보안부대 수사과장 윤 (감사), 제일은행 부산지점 장 이범창(위원) 등 14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었으며, 처리위원회에서 심의 의결한 사항을 집행하기 위해 정리반을 설치하였다. 95) 나) 동명목재상사문제처리위원회의 재산정리 처리위원회는 강석진과 강정남의 위임각서와 고고화의 각서에 의거하여 동명목재의 재산을 정리하기 위해 동명목재상사 정리청산, 기타 계열기업은 제3자인수 또는 정리청 산, 동명목재 종업원의 퇴직처리 및 취업알선, 채권채무정리, 동명목재 부지, 건물 등을 국가(해운항만청)와 부산시가 감정가격에 의거 인수한다 는 정리계획안을 수립하였다. 처리위원회 정리반은 정리반장에 부산시 경찰국 소속 김, 반원에는 국세청과 부산 세관, 부산시은행합동조사단의 직원과 동명목재의 임원 등 총 10명으로 구성되었다. 처리위원회 정리반에서 활동했던 류필윤은 처리위원회에서 부터 같은 해 10월 까지 동명목재상사의 전 재산을 조사하여 목록을 만들어 국보위에 보고하였다 고 진술하 였고, 96) 경리이사였던 노익성은 처리위원회에서 경리 부분에 대해 결산서를 작성하고 종업원 퇴직금을 정산하여 이를 지급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97). 동명목재 임원들에 대한 수사를 담당한 후 위 처리위원회 정리반에 합류하게 된 김 순경은 김 경위의 지시에 의해 동명목재상사 전국 150여 개 대리점의 외상대금을 파악하고 이를 징수하는 일을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98) 부산시 사회과장 신 은 동명목재가 국가에 헌납하기로 한 재산 중 증여할 부분에 대해 강석진과 고고화를 만나 부동산 단위필지별로 등기촉탁서와 인감증명을 날인 받는 업무를 수행했다고 진술하였다. 99) 김 은 처리위원회가 말일까지 업무수행하고 같은 해 해체되면서 그 95) 동명목재상사문제처리위원회 규정 및 첨부 서류 명단. 96) 류필윤의 참고인 진술조서( ). 97) 노익성의 참고인 진술조서( ). 98) 김 의 참고인 진술조서( ). 99) 신 의 참고인 진술조서( ). 동명목재 사건 145

146 제4권 업무처리 결과를 재무부 금융정책과에 보고하였고 100), 다시 동명목재처리종결보고 라는 제목으로 국보위 재무분과위원장 심욱선과 국보위 교체분과위원장 이우재 명의로 문서 작성되어 대통령 전두환에게 보고되어 최종결재를 받았다. 보고서는 처리위원회의 활동목적을 동명목재를 정리청산하고 근로자의 퇴직금 처리 및 영세채권 최우선 지급, 강석진 등 대주주 3인의 잔여재산 사회환원, 동명목재 부지의 부산항 제2부두 시설 개발, 계열법인의 제3자 인수 또는 정리 로 적고 있고, 처리업무를 근로자 임금 약 29억 원을 지급완료, 영세기업채무 약 17억 원 지급완료, 총채권회수액이 84억 원 총채무변제액이 79억 원 잔액 약 5억 원, 대주주 3인의 개인소유 미담보 재산 총 79억 원으로 평가(전재산을 부산시 앞으로 이전등기 완료), 부두시설 활 용대상 공장부지 60만 평을 504억 원으로 감정완료, 계열기업 정리(정리 추진 중) 라고 정리하고 있으며, 로 부산 현지 동명문제처리위원회의 업무를 종결하고 잔여업 무를 은행공동관리단에 인계한다고 기재하고 있고, 현안사항으로 부두시설 정부매수자격 결정 및 예산조치와 금융기관 및 단자회사 채권 정리 문제,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정부매수 부동산 가격을 감정원 감정가격으로 결정하고 미담보 재산을 대기업 채권에 우선 충당과 외국은행 채권액 우선변제 등의 내용과 사회 환원재산의 처리방안으로 부산문화화관(명칭: 고화문화회관)을 건립한다고 되어 있고, 사 주 3인의 생계대책으로 주택 반환 및 16억 원의 생계자금을 지원한다고 정리하고, 기타 동명 관련 은행채권 정리에 최대한 협력을 전제로 사주 3인에 대한 형사책임 및 개인입보를 면제해준다고 기재되어 있고, 동명목재 정리와 관련하여 처리된 모든 사항에 관하여는 향후 법률적 차원에서의 쟁의 의 대상이 될 수 없음 이라고 기재하여 법적 권리구제절차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다) 처리위원회의 해체 이후 과정 부동산 매각관련업무를 인계받은 은행공동관리단은 매각실무를 주관하고 직접 매각대 금을 수령하여 채권회수에 충당하였고, 부산시는 강석진과 강정남의 토지 77필지를 매수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는 데, 국가매수예정인 토지 187필지는 해운항만청에서 일괄 매수하여 부산항 제2부두 시설 개발을 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예산부족이 문제되어 부산해운항만청에서 채권 100) 신 의 참고인 진술조서( ), 6쪽. 신 은 자신이 위 보고서를 지참하여 재무부 금융정책과 장에게 직접 전달하였다고 진술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4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자등 이해관계자회의를 개최하여 정부가 대책을 세워줄 것을 요청하였고, 경제장관협의회에서 해운항만청 매수분을 한국토지개발공사가 채권 발행하 여 전량매수한 후 해운항만청에서 86년까지 매년 분할매수하기로 협의되었으며, 국가매입과 관련하여 동명계열정리채권단구성합의서 를 작성, 자로 한국토지개발공사에서 해운항만청 매수분 187필지에 대해 매매계약을 체결하였고, 자로 작성된 동명계열채권기관대표자합의서 101) 에 따라 이후 채권단대표 제일 은행이 매수금을 수령하여 각 채권기관에 분배함으로서 전액 채무변제에 충당되었다. 102). 3) 헌납재산 내역 동명목재 사주들이 국가에 강제헌납한 재산은 강석진, 강정남, 고고화의 개인재산과 동 명산업(주), 동명해운(주), 동명중공업(주) 등 법인재산으로서 부산시와 한국토지개발공 사가 매매 형식으로 취득한 약53만평의 토지, 부산시가 무상증여 받은 토지 43만평 및 기 타 주식, 예금 등이다. 토지 등 부동산은 동명목재와 그 사주들이 부산시와 한국토지개발공사에 매매와 증여 형식으로 소유권이전되었다가 교육부, 해운항만청, 관우회 등으로 소유권이전되었다. 부산시는 피해자들과 부산 용당동 등에 소재한 강석진의 토지 318,457m2와 강정남의 토지 38,568m2 및 위 토지의 지상 건물, 구축물을 감정가격 2,003,652,200원에 매 수하는 매매계약을 체결하여 소유권이전 받았으며, 고고화의 부산 남천동 등에 소재한 토지 158,949m2를, 강석진 의 경남 거창 소재 임야 등 1,241,492m2를, 강정남의 경남 거창 소재 임야 10,711m2를 각각 무상 증여받아 소유권이전하였다. 103) 한국토지개발공사는 동명목재상사 대표 강석진, 동명산업(주) 대표이사 강 석진, 동명해운(주) 대표이사 강정남 및 강정남을 매도인으로 하여 부산 용당동 소재 동 명목재상사 부지 등 1,397,941m2의 토지 및 임야와 그 지상 정착물 및 구축물을 감정가격 52,536,100,000원에 매수하는 매매계약을 체결하여 소유권이전 받았다 104). 101) 합의서상의 채권기관은 제일은행, 부산은행, 상업은행, 한일은행, 서울신탁은행, 외환은행, 챠타드은행, 동양투자금융, 부산투자금융, 대한보증보험, 신용보증기금, 대우실업(주), (주)유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102) 서울고등법원 98나66101호 소유권이전등기말소 사건 피고(항소인) 대한민국 소송대리인 준비서면 참조. 103) 증여받은 토지에 대하여는 감정평가 실시하지 않아 그 가액 산정이 곤란하나 부산시에서는 고고화의 사 회 환원 요망에 따라 부산문화회관 건립기금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고고화 재산 부분을 동명목재처리종 결보고서 에서 65억 원 가량으로 평가한 사실이 있음. 104) 자로 작성된 한국토지개발공사와 강석진 등 사이에 체결된 매매계약서. 동명목재 사건 147

148 제4권 이밖에 동명목재 사주들의 토지 중 6,484m2는 경매로 처분되었고, 동명중공업(주)는 법정관리되다가 (주)대우로 넘어갔다. 강석진은 부산시와 한국토지개발공사에서 매수한 부분에 대한 감정평가액이 시세에 비해 현저히 낮은 가격이라며 이의를 제기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동명목재처 리종결보고서 에도 강석진이 국가매수 부동산에 대한 감정원 평균 감정가액인 평당 12만 원을 30만 원 이상으로 실질감정해줄 것을 주장한다고 기재 105) 되어 있다. 한국감정원 부 산지점은 부터 까지 6일간 약 500여 필지 1,755,000m2의 토지와 임 야 및 100여 동의 건물과 수천 개의 공작물을 위 기간에 감정평가하였는데, 피해자들로부 터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며 미리 정해진 금액에 따라 현저히 저가 감정한 것이라 는 이의가 있었다. 부산시교육위원회가 강제헌납 사실을 모른 채 석포여자중학교 부지 확보 를 위해 강석진에게 토지매도 요청을 하면서 대상 토지인 부산시 남구 용당동 산51번지 임야와 595번지 답을 각 m2당 9,000원과 18,300원으로 제시한 적이 있는데, 위 헌납 토지 의 감정가는 각 m2당 1,800원과 6,000원으로서 당시 거래 시세의 20%내지 3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게 저평가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06). 또한 동명목재처리종결보고 에 당시 동명목재가 금융권 및 대기업에 약 543억 원의 채무가 있다고 보고되었는데, 이 채무는 대부분 강석진과 강정남의 부동산에 담보를 설정하고 대출해준 것으로 담보설정금액을 목적 부동산의 재산가치 내에서 대출금의 150% 정도로 설정하는 것이 당시 관례였으므 로 강석진과 강정남의 담보부동산은 최소한 위 대출금을 크게 상회하는 것으로 감정평가 서상의 감정가 504억 원은 현저히 저평가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부산시는 금융권 담보가 전혀 설정되어 있지 않은 고고화의 토지 158,949m2와 강석진 의 토지 1,241,492m2, 강정남의 토지 10,711m2를 무상증여 형식으로 소유권이전 받았다. 강석진 등 사주 3인 소유의 부산투자금융(주) 주식 97만 주(총 발행주식의 32.5%)는 조 사 이전에 이창석(강정남의 장인)과 삼보증권을 통해 주당 3,000원에 럭키그룹에 매도되 었고, 부산은행 주식 613만 주(총 발행주식의 30.7%)는 재무부의 지시로 주당 850원에 롯 데그룹에 매각되었다. 강정남은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에서 조사받던 기간 중 자신의 처 이관희와 자녀 명의 105) 동명목재처리종결보고 ( ), 1-7쪽. 106) 자로 부산시교육위원회에서 강석진에게 발송한 학교부지보상및매도요청 이라는 제목의 공 문(재무 ) 참조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4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의 예금액 4억 원과 서울 소재 아파트 2채도 빼앗겼으며, 강석진 명의의 상업은행, 한일은 행, 제일은행 등 예금액 합 12억 원 상당도 처리위원회에서 환수해갔다고 진술하였다. 4) 재산헌납 후 반환요구 강석진, 강정남, 고고화는 자신들의 재산헌납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정부에 반환요청을 수차례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강석진은 처리위원회가 활동 중이던 경 국보위 상임위원장 전두환에게 진 정서를 제출하여 전 재산을 동명목재상사에 내어놓고 본인은 기업에서 손을 떼고 전문 기업인을 영입하여 경영을 맡겨 자력으로 기업을 재생하겠다고 탄원하였으나 묵살당하 였고, 107) 강정남은 전두환이 대통령 재임 시에는 반환 노력이 헛되다고 판단하였다가 노태우 대 통령에게 강요에 의한 재산포기각서는 무효임을 주장하고 몰수한 재산을 환원해주고 선 친의 명예를 회복시켜달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제출하였으나, 해운항만청과 부산시가 동명계열 부동산에 대하여 적법하게 취득하여 반환할 사유가 없다는 회신을 하 여왔다고 진술하였다. 강정남과 망 강석진의 딸 강정자와 강애자는 전술한 바와 같이 서울지방법 원에 국가와 부산광역시 등을 상대로 강제헌납당한 토지 중 일부인 부산 용당동 및 남천 동 소재 대지 17,101m2에 대하여 매매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등기 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서울지방법원은 국보위와 계엄사 합수부의 불법구금 및 폭행 가혹행 위 등 강요에 의하여 행하여진 위임각서와 승낙서 작성 및 그 후 소유권이전등기에 인감 날인하는 등 일련의 재산처분행위를 선량한 풍속 및 건전한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민법 제103조에 위반하는 무효의 법률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았으나, 108) 이에 반해 항소심 과 상고심은 강박에 의한 행위를 취소 사유로 보았고, 헌정질서를 회복한 이 후에는 강박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어 그로부터 3년의 제척기간이 경 과하였으므로 위 취소권은 이미 소멸하였다고 판단하여 원고패소 판결을 하였다. 109) 107) 천덕호, 동명 강석진 전기 (동명문화재단, 1994), 쪽. 108) 서울지방법원 선고 97가합29634 소유권이전등기말소 판결문. 109) 서울고등법원 선고 98나66101 소유권이전등기말소 판결문 및 같은 취지의 대법원 선고 2000다31052 소유권이전등기말소 판결문. 동명목재 사건 149

150 제4권 5) 소결 강석진과 강정남은 경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에 연행되어 불법구금상태에 서 재산헌납을 강요받고 , 전 재산의 처분을 처리위원회에 위임한다는 내 용의 위임각서를 작성하고, 추가로 승낙서에 서명 날인하고 위임각서와 함께 같이 공증을 마친 후, 경 비로소 석방되었다. 동명목재 사주 강석진과 강정남은 구속영장 등 적법한 인신구속절차 없이 연행되어 장 기간 구금된 상태에서 회사 임원들에 대한 폭행 가혹행위와 본인과 가족의 생명, 신체 에 대한 위해와 협박 등의 강압과 신군부에 의해 지속된 국가 사회적인 공포분위기 등 의 강박에 의해 자신들의 전 재산을 포기한다는 내용의 위임각서 에 서명날인하였고, 고 고화는 남편과 아들이 장기간 구금된 궁박한 상황과 수사관들의 계속된 협박에 의해 각 서 에 서명날인하였으며, 위와 같은 불법구금과 강압 및 공포분위기가 계속된 상황에서 재차 승낙서 에 서명날인하여 이를 공증하도록 강요당하였다. 처리위원회의 구성도 공무원이 개입하였고, 처리규정도 이의제기를 원천봉쇄하여 위법 적인 것이었으며, 신청인과 강석진 및 고고화는 자신들의 부동산을 무상증여하였을 뿐 아니라 매매 형식의 헌납도 시세에 현저히 낮은 감정가로 매도되었고, 기타 주식과 예금 등도 위법한 공권력에 의하여 강탈당한 것이다. Ⅲ. 결론 및 권고사항 1. 결론 이 사건은 전두환 등 신군부세력이 설치한 국보위가 사실상 국무회의 내지 행정 각부를 통제하거나 그 기능을 대신하여 국가행정기능을 무력화시켜 강압에 의해 헌 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다. 국보위는 10 26사태 이후 혼란기에 실력 있고 추진력 있는 대안세력으로 자신들을 부 각시키려는 정치적 목적 하에 초헌법, 초법적 방법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삼청교육대 등 사회정화활동, 언론통폐합, 10 27법란, 개인재산 몰수 등 조치를 실시하 였다. 이 사건 또한 국보위가 악덕기업주의 개인재산 몰수라는 사회정화 명분을 달성하려 하 였으나 잘못된 대상 선정, 방식의 폭력성에 의한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헌법상 기본권을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5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침해한 전형적인 사건이다. 국보위와 계엄사 합수부는 구체적인 근거 없이 동명목재 사주 강석진 일가를 악덕기업 인으로 지목하고 공표함으로써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였고, 국보위와 계엄사 합수부의 지시를 받은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501보안부대) 수사관 들은 계엄법이나 포고령 위반사실이 없음에도 동명목재 그룹의 사주들과 임원들을 연행 하여 15일에서 2개월 동안 불법구금하고, 폭행과 협박 등 가혹행위를 가하여 피해자들의 신체의 자유 등을 침해하였는데 이는 형법 제124조의 불법체포 감금 및 제125조의 폭 행 가혹행위에 해당하는 위법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행위이다. 국보위와 계엄사 합수부는 불법구금과 폭행 가혹행위를 가하여 신청인 등 동명목재 사주들에게 재산포기위임각서를 작성하게 하여 이들의 전 재산을 강제헌납하게 하고 동 명목재상사문제처리위원회로 하여금 처리하게 한 것은 피해자들의 의사결정의 자유 및 재산권 등을 침해한 것으로 이 또한 위법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 한다. 2. 권고 1) 1980년 설립된 국보위의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인권침해사건으로 본 동명목재 사건 외 삼청교육 피해사건, 강제징집 녹화 사업 사건, 언론인 강제해직 및 언론통폐합 사건, 10 27법란( 法 亂 ) 사건, 송원영 등 재산 강제헌납 사건 등이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되었는바, 유사한 사건의 실태를 파 악하여 다시는 그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특별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어 다음 과 같이 권고한다. 1 국가는 1980년도 설립된 국보위가 초래한 헌정질서 파괴와 초법적 행위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시정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2 국가는 1980년 국보위 설치와 같은 돌발적 정치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무고한 서민이 나 약점이 있는 사람, 비판적 세력이 사소한 잘못을 빌미로 정치적으로 탄압받고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하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하여, 평소 민주적 시민의식을 신장시킬 수 있는 꾸준한 노력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2) 본 동명목재 사건에 대하여는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국가가 행할 조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동명목재 사건 151

152 제4권 1 국가는 피해자들을 장기간 불법구금한 점과 수사과정에서 폭행과 생명 신체에 대 한 위협 등 가혹행위를 가한 점 및 동명목재 사주들을 악덕기업인으로 매도한 점에 대하 여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사과하는 것이 필요하다. 2 국가는 불법구금과 폭행 협박으로 동명목재 사주 강석진, 강정남, 고고화로부터 전 재산을 강제헌납 받고 위법한 동명목재상사문제처리위원회에 처리케 함으로써 재산권을 침해한 점에 대하여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사과하는 것이 필요하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5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별표 1] 진술청취현황 구 분 성 명 조사일시 관 련 성 기 타 신청인 강 정 남 (1차) (2차) 참고인 이 관 우 동명중공업 생산부장 참고인 류 필 윤 동명목재 사주(동명산업(주), 동명중공업(주), 동원개발 (주), 동명식품(주) 대표이사) 동명목재 전무 본 사건으로 15일간 구금 참고인 조 창 덕 동명목재 이사 참고인 노 익 성 참고인 이 종 희 참고인 오 정 환 참고인 강 정 웅 동명목재 경리이사 본 사건으로 15일간 구금 동명산업(주) 기술전무 본 사건으로 15일간 구금 (주)동원 관리상무 본 사건으로 11일간 구금 동명목재 경리담당 및 동명문화학원 사무처장 본 사건으로 15일간 구금 참고인 이 은 호 동명목재 보안과 경비원 참고인 김 재 관 참고인 김 덕 성 참고인 신 동명산업(주) 이사 본 사건으로 10일간 구금 동명목재 무역1부장 본 사건으로 15일간 구금 부산시 사회과장 동명목재상사문제처리위원회 정리반 활동 참고인 백 부산보안부대(501보안부대) 참고인 구 (1차) (2차) (3차) 부산보안부대(501보안부대) 참고인 추 부산보안부대(501보안부대) 참고인 김 부산 남부경찰서 근무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에 파견된 경찰관 참고인 강 부산 해운대경찰서 근무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에 파견된 경찰관 참고인 김 계엄사 합동수사본부 참고인 이 계엄사 합동수사본부 참고인 김 (1차) (2차)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동명목재 사건 153

154

15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고 윤태현 소령 의문사 사건 결정사안 한국 전쟁 시 전투수행 과정에서 장병들의 전장 이탈행위가 극에 달하자 명령 없이 전 장 이탈할 시의 즉결처분권을 분대장급 이상에게 :00부터 부여한다 는 육본 훈령 제12호를 하달한 바 있으나 훈령 하달 이전인 윤태현 소령을 작전명령 위반 이라는 이유로 적법한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전장에서 총살시킨 공권력 행사에 의한 인간의 생명을 침해한 사건으로 진실을 규명한 사례. 결정요지 1. 이 사건은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 중에 발생한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생명침해사건 이다. 육군 8사단 연대 연대장 중령 김 가 예하 대대장인 소령 윤태현을 작전명령 에 불복종하였다는 이유로 군법회의 등 적법한 재판절차 없이 즉결처분의 형식으로 총살 한 것은 반인륜적 인권유린행위이며 위헌, 위법한 사건이다. 2. 나아가 이 사건은 육군참모총장이 지휘관에 대한 즉결처분권 부여 이전에 있었던 사건이므로 국가의 책임이 크며, 소령 윤태현의 사망사실과 그 이유에 대하여 40여 년간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고 시신을 인도하지 않은 점 또한 소령 윤태현 가족에 대한 중대한 인권침해라 할 수 있다. 3. 국가는 위법하게 피해자를 총살한 점에 대하여 피해자 및 가족에게 사과하고 명예회 복 등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4. 국가는 피해자의 사망사실을 피해자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유해를 방치한 점에 대 하여 사과하고, 피해자 유해발굴에 노력해야 하며, 피해자의 사망사실과 경위를 유가족에 대하여 통지할 필요가 있다. 전 문 사 건 라- 3453, 故 윤태현 소령 의문사 사건 신청인 윤덕한 결정일 고 윤태현 소령 의문사 사건 155

156 제4권 주 문 이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진실규명 으로 결정한다. 이 유 Ⅰ. 조사개요 1. 사건개요 가. 사건경과 故 윤태현 소령은 공주에서 출생, 해방 前 상해 임시정부 예하 광복군에 복무 하다가, 해방 이후 봄 이범석 장군과 함께 귀국 1) 하여, 육군사관학교 특별 7기로 임관하여 국군 8사단에 소속되어 삼척군 도계지역 북한 인민유격대(이호 제 부대) 토벌작전에 참가하였고, 사후인 화랑무공훈장을 수여 2) 받았다 단양지구 936고지 전투에서 사망한 8사단 연대 대대장 최치성 대위 의 후임으로 대대장(시흥 보병학교 파견 중)으로 임명되어 전투 중, 경 지휘 관 명령불복종 3) 으로 卽 決 총살당하였고, 제적 파면 4) 되었다. 나. 신청취지 신청인 윤덕한(윤태현의 조카이자 사후 양자)은 피해자의 한국전쟁 참전 이후 생사를 모르고 있었는데, 자 중앙일보 민족의 증언 에서 즉결처분에 의 해 총살되었다 는 보도를 접하고, 육군본부에 윤태현의 생사확인에 대하여 민원을 제기한 결과, 육본으 로부터 제적 파면되었다는 회신을 받았으나, 피해자의 사망과정과 즉결처분의 과정에 의 1) 강준만, 한국현대사의 산책, 1940년대 편 2권, 인물과 사상사, (2004) 167쪽. 2) 국방부에 공적조서가 보존되어 있지 않아 공적을 알 수 없으나, 국방부 관계자는 인민유격대 토벌작전 유 공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3) 연대장 김 가 윤태현을 총살한 실제이유에 대하여 명령불복종이 아니라 군입대 전 출신 및 활동으로 인한 갈등, 개인감정 등이라는 의혹과 관련 서류도 사후에 조작 내지 폐기되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 었으나 확인할 수는 없었다. 4) 육군본부, 민원처리 결과 회신 (1998) 국 40호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5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혹을 제기하면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하며 진실 화해를위한과거사정 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 라 한다)에 진실규명을 신청하였다. 2. 조사의 근거와 목적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이하 기본법 이라 한다) 제2조제1항4호는 위 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에 의하여 저질러진 사망, 상해, 실종 기타 중대한 인권침 해 등을 조사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윤태현은 경 한국전쟁 수행 중 지휘관의 명령에 불복종하여 卽 決 處 分 형식 으로 총살되었다고 하고, 즉결처분 훈령 5) 이 발령되었으므로 지휘관의 위법 한 공권력 행사로 윤태현의 생명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되어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을 규 명하고 국가로 하여금 피해자와 그 가족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 등을 취하게 할 필요성을 인정하여 조사개시를 의결하고 조사를 진행하였다. 3. 규명과제 가. 피해자의 사망경위 윤태현은 명령불복종으로 총살되었다고 하므로 경 한국전쟁의 전 황과 피해자가 받은 명령과 위반내용, 사망시기, 처형의 방식 등이 구체적으로 어떠하였 는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나. 즉결처분의 적법성 여부 한국전쟁 당시 육군본부 총참모장 소장 정일권은 육본 훈령 제12호 명령 없이 전장 이 탈할 시의 즉결처분권을 분대장급 이상에게 :00부터 부여한다 를 하달한바, 윤태현을 총살한 법적 근거로서 즉결처분권의 행사가 적법한지, 정상적인 군법회의가 불 가능하였는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5) 육군본부, 육본 훈령 제12호 ( :00발령). ( :00시부터 :00까지 분대장급이상에게 즉결처분권을 부여) (1.신병에 대한 전투간의 교육은 계속 시행하라. 2. 명령 없이 전장 이탈 시의 즉결처분권을 분대장급이상 에게 영시부터 부여한다.) 고 윤태현 소령 의문사 사건 157

158 제4권 4. 조사방법 가. 진술조사 신청인 윤덕한( ), 참고인 송 ( ), 참고인 윤익한( ), 참 고인, 참고인 최 ( )에 대하여 진술을 청취하였다. 나. 자료조사 1) 육군기록정보관리단의 피해자 관련 자료 군복무기록카드 사본 1부 1매, 자력기록표 1부 12매, 제적 파면근거 서류 1부 1매, 병 적부 사본 1부 2매, 한국전쟁사, 6 25전쟁사(풍기-안동전투) 6) 66매, 육본훈령 제12호(즉 결 처분) 3매, 대비정규전사 7) 이호제 소탕작전 6매, 국방부의 즉결처분에 대한 적법성 검토 회신자료 8) 3매, 행자부의 건국훈장 애국장 상훈기록 확인 회신 1매, 자 중앙일보 민족의 증언 1매, 월간조선 월호 6 25전쟁 50년의 재조명/즉결처 분권 13매, 언론보도 확인 결과(sbs 뉴스추적 즉결처분, 방영) 등 자료를 조 사하였다. Ⅱ. 조사결과 1. 사건배경 9) 광복 이후 38도선 이남에 주둔한 미군정과 대한민국의 건국과정에서 군의 창설과 강성화는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어, 학동동맹을 비롯한 조선 국군준비 대, 건군준비위원회, 광복군국내지대 등 30여 개 군사조직이 조직되었으나, 미군정은 일 본군 출신의 군 경험자를 중심으로 국방계획안을 수립하였다. 따라서 군내에는 일본군 출신, 만주군 출신, 광복군 출신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군인들이 뒤섞이게 되었다. 6)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사 2권(지역 작전기, ~7.30) (1977). 6 25전쟁사 4권(금강-소백산맥선 지역작전, 풍기-안동전투) (2008). 7) 국방부 전사편찬위, 대비정규전사 (1988), 134~137쪽. 8) 국방부, 민원회신 ( 감민 ). 9) 국방부, 국군 50년사 화보집 건군기 (1977.)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5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북한 인민군은 월등한 병력과 장비 10) 를 이용하여 예기치 않았던 남침을 하였고, 한국군은 병력 및 장비의 열세로 인하여 3일 만인 수도 서울을 북한 인민 군에게 내주고 후퇴를 거듭하면서 유엔(United Nations)에 군사 지원을 요구하였다. 국군 8사단(사단장: 이성가 대령)은 1949년부터 한국전쟁 이전까지 강원도 삼척시 일원 에서 태백산을 중심으로 침투하는 무장공비를 대상으로 대비정규전 임무를 수행하다 전 쟁 발발 이후 원주-제천 등을 거쳐 남한강을 도하하여 단양전투를 실시하였 고, ~7. 31.간 북한 인민군 8, 12사단과 풍기-영주-안동 일대에서 방어전투를 수 행 11) 하였다. 그러나 한국군 전체는 후퇴를 거듭하여 한국전쟁 발발 후 1개월도 안 된 중순경 북한 인민군에게 남한강과 소백산맥마저 내주게 되었다. 2. 사건경위 신청인의 친형(윤은한)은 한국전쟁 당시 8사단 연대 연대장이었던 김 가 육군 참모총장 예편 후 1971년경 공사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찾아가 윤태현의 처형 경위를 문의하였는데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 못했다. 윤태현의 가족들은 국방부 및 육군본부에 사망경위 확인 및 국가 보훈청에 독립유공자 인정을 요청하였으나, 국방부로부터는 사망경위 등에 대하여 만족할 만한 답변을 듣지 못하고 제적, 파면되었다는 통지만 받았으며, 국가보훈청으로부터는 신청인이 피해자의 사후( 死 後 ) 양자( 養 子 )인 점을 들어 유공자 유족으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통지를 받은 바 있다. 3. 사건 조사결과 가. 윤태현에 대한 총살 경위 1) 윤태현의 주요 약력 윤태현은 충남 공주군 장기면 하봉리에서 출생, 1930년대 중반에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 임시정부 예하 광복군에 입대하여 광복군 2지대에 소속 12) 되어 美 OSS 13) 훈 10)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사 (1977). 북한군 201,105명, 한국군 103,827명. 11)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6 25전쟁사 4권 (2008), 324쪽. 12) 광복군 제2지대 전후장안회, 불굴의 민족혼 (1994), 43, 48, 64쪽. 13) 전략 첩보국 (Office of Strategic Services, CIA의 전신). 고 윤태현 소령 의문사 사건 159

160 제4권 련을 받고 활약하다 임시정부와 미국 OSS가 합작하여 한반도에서의 게릴라활동을 목적 으로 수립한 독수리 작전(Eagle Project) 14) 에 참가하여 연합훈련을 마치고 침투 준비 중 8 15 광복을 맞이하였다. 윤태현은 봄 이범석 장군과 함께 귀국하여 육사 7기(특별)를 거쳐 소위로 임관하여, 소령으로 진급하여 8사단 연대 1대대장으로 부임하였고, 경 태백산맥의 공비토벌작전에 투입되어 이호제 부대의 부대장과 작전참모를 사 살하는 전과를 세웠다. 2) 8사단 작전상황 및 풍기전투 참전 국군 8사단은 동해안 삼척지역 일대에 주둔하고 있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강원도 원주를 거쳐 충북 단양까지 후퇴하였다. 남한강을 넘으려는 북한군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경 경북 영주까지 밀려났으나 영주와 풍기 일대에 방어선을 펴고 북한군 8사단과 열흘간에 걸친 치열한 접전을 전개하였다. 8사단은 단양을 철수하여 풍기-영주 방어를 위해 사단장은 야간에 풍기지역 군 차량을 영주로 철수하는 유인작전 및 풍기분지를 중심으로 2개 연대를 V자형으로 진지를 구축 하여 최대한의 지연작전을 계획하였다. 북한 인민군은 2개 사단(8사단, 12사단)을 투입하 였기 때문에 2개 연대밖에 없던 8사단은 열악한 상황 하에서 전투 15) 를 계속하였다. 또한, 윤태현 소령은 시흥보병학교 교육 파견 중 사단 연대 1대대장 직무 대리인 최치성 대위가 936고지 전투에서 사망하자 파견 중 복귀하여 1대대장으로 임명 되어 영주-풍기 전투에 참가 16) 하였다. 3) 8사단 21연대의 풍기-영주 전투 8사단 연대(연대장 중령 김 17) )는 단양지구 전투에서 열세의 장비와 화력을 가 지고 적극적인 방어작전을 수행 중 청풍지구 전투에서 예하 지휘관들에게 누구의 명령 으로 수산리를 철수하였는가? 즉각 청풍으로 돌아가라. 명령에 불복 시는 총살하겠다 는 지시를 하달한 바 있으며, 개전 초 제2대대장(소령 조규영)을 작전 실패로 직위를 해제 14) 美 OSS와 광복군 합작 한반도 침투작전. 15)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사 2권(지역 작전기, ~7.30) 개정판 (1979,) 330쪽. 16)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사 2권(지역 작전기, ~7.30) (1977), 332쪽. 17) 김 (1923년생)은 해방 전 일본군 장교로 근무, 1946년 군사영어학교(군번 )에서 임관, 중령으로 진급, 사단 연대장으로 취임, 육군참모총장을 역임 후 대장으로 예 편, 공사 사장을 역임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6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하여 연대 연락장교로 보직시켰던 바도 있다. 18) 단양-풍기-영주 전투는 인민군 2개 사단에 대응하여 병력 및 장비의 열세로 매우 어려 운 상황에서 작전명령이 중요하기는 하나 전투의 승리와 부하장병의 생명도 지켜야 하였 기 때문에 매우 힘든 결정을 하여야 했을 것이다. 4) 피해자의 상관 명령 불복종 경위 8사단 연대 대전차포 소대장이었던 참고인 송 (현 80세, 한국전쟁 당시 연 대 경비소대장)은 산악지대에서 대전차포( 對 戰 車 砲 )는 필요 없다고 해서 대전차포는 경 북 안동으로 내려 보내고 보병소대로 임무를 전환하여 전투에 참가하고 있었다. 송 은 언론 인터뷰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연대본부가 영주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경이었습니다, 나중에 연대 출신 장교들의 모임에서 윤태현 소령 이 즉결처분( 卽 決 處 分 )을 당한 이유에 대해서 얘기가 있었습니다. 윤태현 소령의 1대대가 연대본부 작전 계획대로 제 위치를 사수하지 않고 뒤로 물러난 것이 한 번에 그친 것이 아니고 서너 번 그런 적이 있었다더군요 라고 진술하였고, 그때는 예비대를 안 두고 연대 산하의 3개 대대를 모두 일선에 배치했는데 윤 소령의 제1대대는 몇 번인가 작명에 지시된 지점보다 뒤쪽에 배치되어 연대 참모들과 인접 대 대장들의 불평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실지로 작전에 큰 지장을 주었다는 것 19) 이며, 나 (송 )는 대전차포중대의 소대장인데 대전차포는 별로 쓸데가 없으니까 대전차포는 안동에 반납을 하고 보병전투를 했어요. 그때 연대는 파죽지세고, 좌우간 후퇴가 지속되 고 내일은 여기, 모레는 여기, 그러니까 5만분지 1의 지도상에 나타나는 그걸 가지고 연 대는 여기, 사단 저기에 결정이 됐으니까, 그 동네 이름도 지금 전혀 생각이 안 나요, 2 대대는 어디어디를 방어해라, 그렇게 작전명령이 내려가면 수행을 하는데, 내가 대전차 포 소대장으로서 연대 경비대장을 했었어요, 자꾸 후퇴를 하고 연대 명령은 연대, 1대대는 어디서 방호해라, 2대대는 어디서 방호해라 이렇게 방호명령이 내려가면 연결 이 되어야 될 거 아닙니까. 여기는 2대대, 여기는 1대대, 여기서 다른 연대와 이렇게 연 결이 되어야 되는데 몇 번 전투를 해보니 그 부대가 없다 이거예요. 거기 부대가 없다 이거예요, 하루하루 방어하라고 했는데 옆에서는 그 대대가 안 왔다, 이렇게 된 거죠. 그런 것이 몇 번인지 모르죠. 두 번 이상 있었던 것 같아요 20), (윤태현이) 연대 지시내 18)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사 2권(지역 작전기, ~7.30) 개정판 (1979), 186쪽. 19) 중앙일보, 중앙일보 연재 민족의 증인 ( ). 20) 참고인 송제근 진술청취( ). 고 윤태현 소령 의문사 사건 161

162 제4권 용(방어선 구축지시를 후방지역으로 이격하여 실시)을 1~2번에 걸쳐 명령 위반하였다 고 진술 21) 하였다. 당시 8사단 연대 3대대 9중대장이었던 참고인 최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풍기 전투는 말이 지연전이지 몸으로 막는 전투여서 작전명령을 어겼다, 아니면 지시를 미이행하였다 하는 내용은 지금은 말할 수 있지만 그 당시로는 매일 지시, 작전명령위반 을 밥 먹듯이 하고 있었다 고 하면서, 어디를 방어하라고 하면 방어를 해야 하는데 장비의 열세인 우군이 북괴군을 방어할 수 있는 것은 인적자원 밖에는 없었던 까닭으로 모두 명령위반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고 진술하였다. 5) 총살 경위 당시 8사단 연대 대전차소대장이었던 참고인 송 은 언론과 진실화해위원회 조 사에서 윤태현 소령의 총살일시는 ) 라고 하였는데 국방부도 사망일자를 로 확인 23) 하였다. 송 은 저녁 영주 북쪽 안심동 능선에 구덩이가 하나 파져 있었고, 그 옆에는 웬 청년이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2명의 헌병이 카빈을 들고 있었구요. 곧이어 몇 발의 총성이 울리고 그 청년은 호 속으로 쓰러졌습니다. 김 연대장 등 50여 명의 장교와 사병들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연대 CP로 돌아가더군요. 즉결처분을 받은 사람은 연대 1대대장 윤태현 소령이었습니다. 나는 약 30m 떨어진 개인호 속에서 광경을 보 았어요 24), 윤 소령은 팬티바람으로 구덩이 앞에서 헌병 2~3명에 의해서 총살형이 되 었다 고 진술 25) 하였고, 1대대장의 윤 소령이라고 하면 좀 마르고 그런 인상이 있었어요. 한두 번, 머리에 남 아 있다는 것뿐인데, 왜 그러냐면 언제 데려왔는지, 왜 왔는지도 모르고 또 거기서 무슨 얘기가 있었는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불쑥 나타나서, 팬티 바람에 호를 파놓고 거기에 세 워 놓고. 헌병이 두 명인지 몇 명인지 그것도 정확히 기억이 안 나요. 예, 헌병이 사살했 어요 라고 진술 26) 하였다. 21) SBS 방송국, SBS 뉴스추적 즉결처분 ( 방영). 22) SBS 방송국, SBS 뉴스추적 즉결처분 ( 방영). 23) 국방부, 민원처리 결과 회신(부병 ) ( ). 24) 중앙일보, 중앙일보 연재 민족의 증인 ( ). 25) SBS 방송국, SBS 뉴스추적 즉결처분 ( 방영). 26) 참고인 송제근 진술청취( )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6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당시 8사단 연대 3대대 12중대장이었던 참고인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 서 인접대대 대대장인 윤태현 소령이 근무한 것은 알고 있으며, 사망원인에 대하여는 작 명(작전명령)위반으로 처형이 되었다 고 진술 27) 하였다. 6) 소결 윤태현의 총살사실을 직접 목격한 송 의 여러 차례의 진술과 국방부의 확인에 의하 면 피해자는 영주 북쪽 안심동 북쪽 능선에서 명령불복종의 이유로 헌병 2~ 3명에 의해 처형되었고, 총살의 명령자는 한국전쟁 당시 8사단 연대의 김 연대 장이었다. 참고인들은 피해자가 즉결처분권이 발령된 후에 처형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고 진술하고 있으나 풍기 전투가 경에는 종결되고 즉결처분권이 발령된 에는 8사단은 이미 낙동강 전선으로 후퇴한 사실과 모순되어 잘못 기억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나. 즉결처분의 적법성 여부 1) 즉결처분의 내용 육군 총참모장 명령으로 전투지휘자에게 즉결처분권을 인정한 것은 :00 에 발령된 경우가 유일한데, 육군총참모장 소장 정일권은 전투수행 과정에서 장병들의 전장 이탈행위가 극에 달하자 명령 없이 전장 이탈할 시의 즉결처분권을 분대장급 이상 에게 :00부터 부여한다 는 육본 훈령 제12호를 하달하여 약 1년간 시행되다 :00 육본훈령 제191호 28) 에 의하여 취소되었다. 2) 즉결처분권 남용 사례 가) 허지홍 29) 대위 사례 대법원은 故 허지홍 대위의 유가족이 국가를 피고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사건 선고 30) 에서 경 육군 모 사단 연대장인 김 모가 정당한 이유 없이 대대장인 허지홍 대위를 즉결처분하고 그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허지홍 대위가 육군 27) 참고인 맹보영 진술청취( ). 28)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자료총서 65집 (2002). 29) 육사 5기. 30) 대법원 , 2006다 고 윤태현 소령 의문사 사건 163

164 제4권 제1군단 고등군법회의에서 적전비행죄( 敵 前 非 行 罪 )로 사형판결을 선고받은 것처럼 고등 군법회의의 판결문을 위조하고, 사형 집행 기록을 위조하는 등 사건의 진상을 은폐, 조작 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배상을 명 한 원심판결에 대해 국가 측의 국가배상 청구권 소멸시 효 완성 주장 배척을 이유로 한 상고에 대해 재심판결 31) 에 의해 위 판결문 등이 위조되 었다는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 원고들이 국가배상 청구를 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장 애 상태가 계속되었다고 보아야 하므로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 에 해당되어 허용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고 원심을 지지하는 판결을 하였다. 나) 김천만 32) 중위 사례 육사 8기생들이 펴낸 노병들의 증언( 證 言 ) 이라는 회고록은 즉결처분권의 남용 사례 를 기재하고 있는데 에 소위로 임관한 육사 8기생들은 대부분 중위 때 6 25를 맞아 소대장으로 6 25의 초반부를 보냈던 그들은 육사 어느 기수보다 희생이 컸다. 1,345명의 동기생 중 6 25 때 전사하거나 실종된 사람은 419명으로 전체 동기생 중 3분 의 1에 달한다. 그 희생자 중에는 적군이 아닌 상관에 의해 즉결처분( 卽 決 處 分 )된 사람들 도 포함되어 있다. 8사단 연대 1대대 소속의 김천만 중위는 경 원주와 제천의 중간지점에 서 인민군의 남하를 저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월등한 화력과 병력을 앞세운 인민군의 야 간 기습공격에 김천만 중위의 소대는 전멸하다시피 했고 간신히 살아남은 김중위는 후퇴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즉결처분권( 卽 決 處 分 權 )을 앞세운 연대장 고 중령(육사 2기)의 질책뿐이었다. 결국 김 중위는 연대장으로부터 명령 없이 후퇴했다는 이유로 즉결처분 선고를 받자 소지하고 있던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 적고 있다. 다) 8사단 연대 1대대장 박 진술 33) 인민군의 야간 기습공격으로 일부 중대가 연대본부가 위치한 곳까지 후퇴 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연대장 고 중령이 명령 없이 후퇴하여 방어선을 무너지게 한 책임을 물어 김천만 중위와 이인수 소위를 즉결처분했다는 사실은 대대장인 31) 유족들은 위조된 고등군법회의 판결이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재심을 청구하였으나 재심 결정 절차 에서 판결문이 위조된 것이 확인되었다. 32) 8사단 10연대 소대장, 육사 8기. 33) 조선일보, 월간조선 6 25전쟁 50년의 재조명(즉결처분권) ( )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6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저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연대장이 두 사람을 즉결처분시킨 다음에 나한테 전화를 해 알려주더군요. 그래서 내가 장교 하나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항 변하자 그렇게, 됐소 라고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전화를 끊어버리더군요. 소대장 한둘을 죽인다고 해서 이미 뚫린 방어선이 복구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고 진술하였다. 3) 즉결처분 훈령 이전의 처형에 대한 견해 태윤기 변호사(당시 82세)는 언론 기고 34) 에서 육본 훈령 이전의 즉결처분은 명령 위 반이며, 사적 제제에 해당되고 개인적인 살인행위이며, 군인에게도 보상해야 하며, 국가 도 군 전체에서 막아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에 보상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면서 즉결 처분권 자체의 합법성에 대하여는 6 25 전쟁 중 분대장급 이상 지휘관에게 주어졌던 즉결처분권은 법률에 의하지 않고 인간의 고귀한 생명권을 침해했다는 점에서 위헌적인 요소가 있다, 당시 상황이 지금과 같은 평시가 아니라 인민군의 남침을 무슨 수를 써서 라도 막는 것이 급선무였다는 점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나라의 운명이 어 찌될지 모르는 판국에 즉결처분권의 위법 여부를 따지고 있을 겨를은 없었습니다. 그리 고 즉결처분권은 부하들을 지휘관 마음대로 죽일 수 있다는 것보다는 사기가 떨어진 병 사들에게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전장 이탈을 하면 총살을 당할 수도 있다는 위협을 주어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시키려고 하는 경고성 목적이 강했습니다 라고 하며 판단을 유보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수도사단 1연대 작전주임 보좌관이었던 윤흥정은 사실 즉결처분은 6 25 때도 물의가 많았습니다. 특히 일선 전투현장에서 분대장이나 소대장 같은 지휘관이 전투 도중 행사했던 즉결처분은 상황 자체가 군법을 행사할 만큼의 여유가 없으므로 이 해할 수가 있지만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충분히 군법으로도 처리할 수가 있는 연대급 이상의 대부대 지휘관이 즉결처분권을 행사했다는 것은 쉽게 수긍할 수 없습니다 라고 즉결처분권의 적법성에 대하여는 판단을 유보하였다. 4) 피해자의 처형 근거 육군훈령 제12호는 부터 시행되었고, 피해자의 처형일시는 이므 로 훈령은 피해자 처벌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전쟁 중이더라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근본인 생명권을 법적 근거 없이 전장에서 지 34) 조선일보, 월간조선 6 25전쟁 50년의 재조명(즉결처분권) ( ). 고 윤태현 소령 의문사 사건 165

166 제4권 휘권에 의해 즉결처분한 것은 생명권에 대한 명백하고도 위험한 인권침해로서 요건의 측면에서나 그 침해의 정도에 있어서 위법하다. 즉결처분권은 계엄법, 군형법에도 근거 가 없으며, 전쟁이라는 사태의 긴급성, 보충성을 판단하여 초법규적 적법성을 주장하는 견해도 있을 수 있으나 법률적 근거와 재판 없이 인간의 생명권을 즉결처분으로 박탈하 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이라 할 수 있다 육군 훈령 제191호도 민주주의 국가의 국군으로서 엄연한 군법이 확립되 어 있는 이상 여하한 즉결처분권을 행사할 바 아니다 고 밝히면서 즉결처분제도의 시행 이 불명예 한 것이었다고 반성적인 표현을 보이고 있다. 5) 소결 공포되었다는 국방경비법 35), 공포된 계엄법 36), 공 포된 국군조직법 37) 등 한국전쟁 이전의 군과 전쟁관련법 어디에도 즉결처분의 근거가 없 다. 전시를 염두에 둔 국방경비법과 계엄법은 군법회의 구성 및 회부 절차 등에 대한 규 정을 두고 있으므로 법적 절차 없이 명령불복종자에 대하여 지휘관이 즉결처분을 할 수 는 없다고 판단된다. 나아가 헌법과 법률에 근거가 없는 육군총참모장에 의한 즉결처분 훈령 또한 위법하다고 할 수 있다. Ⅲ. 결론 및 권고사항 1. 결론 이 사건은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 중에 발생한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생명침해 사건 으로 8사단 연대 연대장 김 가 예하 1대대장인 윤태현을 군 명령에 불복종하였다 는 이유로 재판절차 없이 즉결처분의 형식으로 총살한 것은 반인륜적 인권유린행위이며 위헌, 위법하다. 나아가 이 사건은 육군참모총장의 지휘관에 대한 즉결처분권 부여 이전에 있었던 것 이므로 국가의 책임은 큰 것이며, 윤태현의 사망사실과 이유에 대하여 40여 년간 가족에 35) 법률 제 0호. 36) 법률 제 69호. 37) 법률 제 9호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6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게 통지하지 않고 시신을 인도하지 않은 점 또한 윤태현 가족에 대한 중대한 인권침해라 할 수 있다. 2. 권고사항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기본법 제4장에 따라 국가가 행할 조치에 관하 여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국가는 위법하게 피해자를 총살한 점에 대하여 피해자 및 가족에게 사과하고 명예 회복 등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국가는 피해자의 사망사실을 피해자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유해를 방치한 점에 대하여 사과하고, 피해자 유해발굴에 노력해야 하며, 피해자의 사망사실과 경위를 유가족 에 대하여 통지할 필요가 있다. 고 윤태현 소령 의문사 사건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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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결정사안 1974년 말부터 중앙정보부가 동아일보 광고주들에게 광고를 해약 취소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이를 통해 언론사주를 굴복시켜 언론인의 해직 등 언론탄압에 관여했던 사건에 대해 진실을 규명한 사례. 결정요지 1. 박정희 정권은 3선개헌 이후 중앙정보부를 동원하여 언론사의 취재 및 기사보도 등 의 언론활동을 부당하게 통제하였다. 이에 동아일보사 기자들은 ~ 까지 3차례에 걸쳐 언론자유수호선언을 한 데 이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 면서 부당한 언론통제에 항거하였다. 2. 전국의 언론인들이 이에 호응하여 자유언론실천선언이 확산되자, 1974년 중앙정보 부가 나서서, 동아일보 광고주들에게 광고를 전면 금지하도록 압력을 행사하였다. 그 결 과 광고수주가 불가능한 동아일보는 광고지면을 백지 상태로 발행하였고, 이에 국민들은 동아일보에 성금 및 격려광고를 게재하는 등 정부의 조치에 반발하였다. 3. 동아일보사 기자들은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집단적인 농성과 유인 물 배포 등의 방식으로 탄압에 저항하였으나, 결국 많은 언론인들이 해임되고 나서야 광 고탄압이 중지되었다. 4.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에 의한 동아일보 광고탄압과 그 과정에서 언론사주, 언론 인, 광고주 등에 대한 권리침해는 위법하고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서 본건은 중대한 인 권침해사건에 해당한다. 5. 동아일보사는 비록 광고탄압이라는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야기된 경영상의 압박 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동아일보사의 명예와 언론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헌신해왔던 자사 언론인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정권의 요구대로 해임함으로써 유신정권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고 말았다. 6. 국가는 동아일보사 및 언론인들을 탄압하여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언론인들을 강 제로 해임시키도록 한 행위에 대해 동아일보사 및 해임된 언론인들에게 사과하고, 피해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169

170 제4권 자들의 언론자유수호 노력에 대해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피해 자들의 피해 회복을 통해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7. 동아일보사는 비록 정부의 편집권에 대한 간섭과 물리적인 압력, 그리고 광고탄압을 통한 경영상의 압력 등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피해자의 처지에 있었다 하더라도 결국 정 부의 압력에 굴복하고, 또 정부 압력을 기화로 언론인들을 대량 해임시킨 책임이 있음을 부인키 어렵다. 그럼에도 이후 민주화의 진전으로 언론자유가 신장되었고, 권력의 간섭이 사라진 후에도 이들에 대한 아무런 구제조치도 취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법률적 의무 여부를 떠나 피해자인 해직된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 등 언론인들에게 사과하고 피해 자들의 명예회복과 피해회복을 통해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 전 문 사 건 라-3059,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신청인 조양진 외 49인 결정일 주 문 이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진실규명 으로 결정한다. 이 유 Ⅰ. 조사개요 1. 사건개요 및 신청취지 가. 사건개요 박정희 정권은 3선개헌을 통한 장기집권을 시도한 1960년대 말부터 언론에 대한 통제 를 노골화하였다. 유신 이후에는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등 법률적 통제 외에도 언론사 출 입, 보도제한, 언론인 연행 및 가혹행위 등을 행사하여 언론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 였다. 이에 대한 언론계의 저항도 계속되었는데, 특히 동아일보 기자들은 진실보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7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도 부당한 압력 배격 정보요원 사내출입 거부 등의 주장을 담아 이른바 1차 언론자유 수호선언 을 하였으나 언론통제에 시정이 없었고, 에 2차, 에 3차 선언을 연이어 발표하였다 에는 편집국장이 중앙정보부에 연행된 데 항의하 며 동아일보 편집국 출판국 방송국 기자 180여 명이 자유언론실천선언 (이하 실천선 언 이라 한다)을 하였다. 실천선언은 언론계의 폭넓은 호응을 받아 1주 만에 전국 35개사 의 언론사와 기자들이 동참하였다. 나아가 동아일보사의 기자, 동아방송의 기자 프로듀 서 아나운서 등은 자유언론실천특별위원회 를 구성하여 신문지면과 보도내용 등에 대 한 정부의 간섭을 배제, 개선시키는 구체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중순경부터 동아일보사의 주요 광고주들이 갑자기 기존의 광고계약 해지를 요구하였고 광고 동판을 회수하여 갔다. 동아일보사는 이미 계약되어 있는 광고조차도 게재할 수 없게 되자, 광고지면을 백지로 비워 발행 배포하였다. 백지광고를 접한 국민들은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선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활동에 대한 지 지와 민주주의 수호 등의 의미를 담은 성금을 보내주었고, 동아일보는 이러한 격려광고 로 광고면 일부를 채워 발행하였다 동아일보사가 경영 악화를 내세워 18명의 직원을 해임하자, 해임 소식을 들 은 동아일보사 직원들은 전체 급여를 감봉해도 좋으니 해임하지 말아줄 것을 건의하였으 나 회사는 수용하지 않았다. 기자들은 회사가 정권의 언론탄압에 굴복하여 해임한 것이 라 판단하고, 신문과 방송의 제작을 거부하며 정권의 언론탄압에 대항하는 농성을 하였 다. 동아일보 경영진은 새벽 3시경 경비원 등을 동원하여 공권력의 지원 하에 기자 들의 농성을 강제해산시키고, 까지 동아일보사의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 등 130여 명의 직원을 해임 또는 무기정직시켰다 중순경부터 까지 동아일보사 경영진 측과 중앙정보부 간에 비공식적인 협상이 있은 후 동아일보사는 경부터 광고를 게재할 수 있었다. 나. 신청취지 신청인들은 1974년부터 1975년에 걸친 동아일보사 광고탄압과 이에 항거하는 과정에 서 대량 해임 및 무기정직된 자들로서, 광고탄압 과정에 중앙정보부 등 공권력이 개입한 경위( 經 緯 )와, 유신체제에 저항하면서 언론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투쟁해온 기 자 아나운서 프로듀서 등 언론인들을 강제 해임시키고 복직과 재취업을 방해해온 부 당한 공권력의 개입에 대한 진실을 밝혀줄 것을 요구하며, 진실 화해를위한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171

172 제4권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 라 한다)에 진실규명을 신청하였다. 2. 조사의 근거와 목적 이 사건은 박정희 유신정권 하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언론탄압 사건으로 역사적으로 중 요한 사건이며, 국가 공권력이 동아일보사, 기자 아나운서 프로듀서 등 언론인들에게 압력을 가하였으며, 나아가 광고주들에게도 압력을 행사, 광고를 해약케 하여 동아일보사 의 경영난을 악화시켜 결국 언론의 자유 를 실천하려 했던 동아일보사 언론인들의 집단 해임에 이르도록 하였고, 이후 해임 및 무기정직된 언론인들의 복직, 재취업도 방해한 인 권침해사건이라는 신청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 화해를 위한 과 거사정리 기본법 (이하 기본법 이라 한다) 제2조제1항4호가 정하는 진실규명 대상으로 판단하고, 그 사실 여부를 밝히고자 조사개시를 의결하고 조사를 진행하였다. 3. 규명과제 가. 국가권력이 언론사, 기자, 광고주들을 탄압하였는지 여부 박정희 유신정권이 직 간접적인 방법으로 언론사와 기자들에게 압력을 가하여 보도 를 통제 간섭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였다 하고, 특히 중앙정보부가 동아일보 광고 탄압의 주역이었다고 하므로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나. 광고탄압이 언론자유실천운동을 탄압하기 위함이었는지 여부 중순부터 중순까지 기업 광고주들이 동아일보에 광고계약을 해지하 고 계약된 광고도 싣지 못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중앙정보부 등이 광고주들에게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라 하고, 나아가 국민의 격려광고도 탄압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과 실천활동이 언론계 전반으로 확대되는 것을 제압하기 위 한 것이었다고 하므로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다. 언론인의 대량해임과 재취업 방해에 공권력 개입 여부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동아일보사의 논조 및 기사내용 등을 정권유지에 유리하도록 바 꾸기 위해 광고탄압뿐만 아니라 공권력이 언론인의 해직 과정에 개입하였으며 재취업마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7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저 방해하였다고 하므로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4. 조사방법 진실규명신청서와 첨부자료, 관련 참고자료를 수집하여 검토 분석하고, 신청인과 참고 인, 당시 중앙정보부 관계인 등에 대한 진술을 청취하였다. 가. 자료조사 동아일보사에서 발간한 동아일보 사사, MBC 특집프로그램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 38회 방영분 자유언론실천선언,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에서 발간한 동아투위 자 유언론운동 13년사, 동아일보사노동조합에서 발간한 동아자유언론실천운동백서, 한국 기자협회에서 발간한 한국기자 삼십년,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간한 신군 부의 언론통제사건조사결과보고서 등 주요 자료를 수집 분석하였다. 특히 국가정보원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에서 발간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을 기초로 동아일보에 대한 광고탄압 이전인 조선일보에 대한 광고탄압에 중앙정보부가 개입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와 관련하여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생산 한 조선일보 광고게재 조정 보고 서류를 국정원으로부터 제출받았다. 또한, 자유언론실천선언 직전에 송건호 편집국장 등 동아일보사 편집간부들을 중앙정보부 로 소환하여 조사한 기록 동아일보 학생데모 기사 보도경위 조사보고 를 역시 국정원으 로부터 제출받아 본 보고서의 주요 자료로 참고하였다. 그러나 동아일보사에 대한 광고해약 과정에서 국가기관의 개입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신청인 및 참고인들의 진술에 근거하여 당시 동아일보사의 광고주들이 작성하여 중앙정 보부에 제출하였던 서약서 내지 각서 등 관련 서류와 김상만 사장이 광고 재개 과정에서 중앙정보부와 협상한 내용과 합의문서를 수집하고자 하였으나, 국가정보원, 기무사령부 와 동아일보사로부터 관련 자료가 보존되어 있지 않다는 회신을 받았다. 나. 진술청취 및 면담 신청인들에 대한 진술청취 및 사건 당시 동아일보사의 주요 광고주들과 언론통제에 관 련된 중앙정보부 직원들에 대해 진술을 청취하였다.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173

174 제4권 Ⅱ. 조사결과 1. 시대상황 가. 유신체제 이전의 정권과 언론 5 16 군사쿠데타 세력은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포고령을 통해 언론 출판 보도의 사전검열 과 보도금지조항 조치를 발표하여 언론의 사전검열을 실 시하였다가 1) 비상계엄을 해제함과 동시에 신문 등에 대한 사전검열제는 중 지하였지만 언론자유를 제약할 수 있는 조항은 여전히 존치시켰다. 2) 박정희 군사쿠데타 세력은 언론보도를 통제하기 위하여 직접적인 개입을 하였다. 동아일보가 자 국민투표는 결코 만능이 아니다 제하의 사설에서 민정 이 양에 앞서 군부가 새 헌법에 기초해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은 부당하다 고 지적하자, 기사 내용 중 우리가 UN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국가로서 승인을 아직 받지 못한 의미 다 라는 구절을 문제 삼아 고재욱 주필과 황산덕 논설위원을 구속하였다. 3) 한국일보도 자 신문에서 혁명주체세력이 영국 노동당과 비슷한 정당 창당을 추진 중에 있다 고 보도하자 한국일보 장기영 사장과 편집국 간부들을 혁명위원회 포고령 위반으로 구속하였고, 신문도 자진 휴간케 하였다. 4) 선거 과정에서 언론들은 대체로 군정을 비판하였으나, 박정희를 비롯한 5 16 쿠데타세력은 선거에서 승리하여 집권에 성공하였다. 박정희 정권은 대일굴 욕외교 반대시위 를 계기로 비상계엄령과 위수령을 연이어 선포하여 시위를 진압하는 한 편, 비판 언론에 대한 규제에도 나섰는데, 비상계엄 하에서 공화당이 발의한 계엄법 개정 안과 언론윤리위원회법 이 제정되었다. 5) 그러자 한국신문발행인협회 편집인협회 통신 협 IPI한국위원회 신문윤리위원회 등 5개 주요 언론단체가 이 법들을 악법으로 규정하 1) 김진홍, 언론통제와 사회적 변인과의 상호관계에 관한 연구, 쪽. 2) 동아일보, 자 1면 비상계엄 해제, 경비계엄을 선포 제하의 기사요약.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이 날짜로 비상계엄 해제와 동시에 경비계엄을 실시하면서 군사혁명위원회 포고 제1호제3항제3호를 언론, 출판, 보도 등은 국가보안상 유해로운 기사, 논설, 만화, 사진 등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 로 개정한다고 발표 하였다. 3) 한국기자협회, 한국기자사십년, 2004, 60쪽. 이후 고재욱은 기소유예, 황산덕은 군법회의 검 찰부의 공소취하로 각각 풀려났다. 4) 한국기자협회, 위 책자 61쪽. 5) 언론윤리위원회법은 제정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7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는 한편 언론법철폐투쟁위원회 를 구성하여 폐기운동을 전개하여 이른바 유성회담 6) 을 통해 언론윤리위법 시행이 전면 보류되도록 하였다. 1967부터는 기관원 들이 언론기관에 무상출입하면서 노골적으로 제작에 간섭하기 시 작했다 에는 신동아 에 게재된 특집기사 차관( 借 款 ) 과 10월호에 게재된 논문 을 문제 삼아 기자 수 명을 중앙정보부에 연행하고 편집간부 2명을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하였다. 그런데 동아일보사는 이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구속된 2명을 석방해주 는 조건으로 주필 등 3명을 퇴사시키라는 중앙정보부의 제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7) 부터 학생시위가 격화되자 서울 일원에 위수령 을 발동한 데 이어, 박정희 대통령은 중국의 유엔 가입 등 국제정세의 변화를 명분으로 삼아 국가비상사 태 를 선포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담화문을 통해 혹세무민의 일부 지식인들이 언론자 유를 빙자하여 무책임한 안보론을 분별없이 들고 나와 민심을 더욱 혼란케 하고 있다 면 서 이와 같은 무절제하고 무궤도한 안보논의는 국민의 사기를 저하시킬 뿐 아니라 국민 의 단결과 국론의 통일을 저해한다 고 지적하고, 최악의 경우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자 유의 일부도 유보할 결의를 가져야 한다 고 주장했다 에는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 조치법 이 국회에서 전격 통과됐는데, 이 법은 국가안보에 관한 사항과 국론분열 및 사 회질서 혼란의 위험이 있는 사항에 관한 언론 출판을 규제할 수 있다고 규정, 언론자유를 원천적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8) 이처럼 언론의 자유로운 활동을 봉쇄하는 여러 조치들이 잇달아 강행되는데도 불구하 고 신문 발행인들로 구성된 한국신문협회는 오히려 정부의 비상사태 선언을 강력히 뒷 받침할 국민의 총단결을 호소한다 면서 국가안전보장 논의에 있어 언론이 지켜야 할 절 도를 자인하고 모든 언론은 앞으로 국가안보의 차원에서 향도적 사명을 수행함으로써 자 유언론의 책임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고 말함으로써 자의든 타의든 스스로 언론자유 포 6) 유성에서 있은 박정희 대통령과 언론계 대표들의 회담을 일컬음. 송건호는 이 과정에 대해 이 렇게 기술하고 있다. 박대통령에게 윤리위법 을 폐기가 아니라 유보해 달라는 건의문을 제출케 하여 박대통령이 이 청원을 들어주는 식으로 문제를 호도하려 한 것이다, 언론계 대표들은 공화당 중진이 중간 에 서서 꾸며낸 이 같은 계략에 넘어가 이른바 유성회담( 儒 城 會 談 ) 이라는 것에 응하고, 이 자리에서 대 표들은 문제의 건의서 대통령 각하께서는 대소고처( 大 所 高 處 )에서 이 나라 민주언론의 발전을 위해 언론 윤리위원회법의 시행을 보류하시와 자율적인 신문윤리위를 강화함으로써 책임 있고 공정한 언론이 이 나 라에 이룩되는 길을 열어주시기를 삼가 건의하나이다 를 대통령에게 전하고 박대통령이 이 건의서에 따라 법 시행을 유보, 자비를 베푼다는 절차로 수습이 되었다, 송건호 전집9-민주언론 민족언론2, 한길사, )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이하 동아투위 ), 자유언론 1975~2005 동아투위 30년 발자취, 해담솔, 2005, 69쪽. 8) 위 자유언론, 74-75쪽.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175

176 제4권 기각서 를 쓰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뒤이어 에는 문공부의 지시에 따라 프레스카드제 실시 와 지방주재기자 대폭 감축 등을 골자로 하는 언론자율정화 7개항을 결의했다. 이 가운데 특히 프레스카드는 정부의 취재활동 허가증 과 같은 것이라 하여 반 대 여론이 높았음에도 그대로 시행되었다. 9) 나. 유신헌법과 긴급조치에 의한 언론통제 1) 유신헌법 개정된 헌법(이하 유신헌법 이라 한다) 제1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에 의 하지 아니하고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제한받지 아니한다 고 규정하여 개별적 인 법률유보조항을 규정하였다. 이는 언론의 자유를 기본권 일반적 제한 조항과 본질적 내용침해금지를 규정하였던 이전 헌법 10) 에 비하여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현저히 약화시 킨 내용이었다. 11) 비상계엄으로 언론은 엄중한 사전검열을 받게 되고, 기자들은 일상적인 취재활동마저 엄격히 제한을 받았다. 모든 언론이 보도해야 할 자유는 물론 보도하지 않을 자유마저 완 전히 박탈당해, 당국이 허용하지 않는 기사는 한 줄도 보도하지 못하는 반면에 계엄사령 부의 발표문이나 정부당국이 배급하는 해설기사 등은 토씨 하나 고치지 못하고 그대로 대서특필해야 했다. 방송의 경우는 신문보다도 더욱 통제가 심해서 뉴스만이 아니라 오 락프로그램까지도 당국의 손길이 뻗쳤다. 특히 유신헌법을 채택하기 위해 비상국무회의에서 확정, 공포한 국민투표에 관 한 특례법 은 언론활동을 더욱 위축시켰다. 찬반토론을 금지한다 는 특례법의 조항 때문 에 언론은 계몽 이라는 미명 아래 유신헌법을 찬성하는 길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따 라서 개헌안이 공고된 뒤 국민투표가 실시될 때까지 신문의 많은 지면과 방송의 많은 시간이 정부당국이 배급하는 새 헌법에 관한 해설기사로 메워졌다. 그리고 부터 12.말까지 모든 신문의 1쪽과 7쪽에는 통일을 위한 구국영단 너도나도 지지 9) 위 자유언론, 75쪽. 10) 공포된 헌법 제18조 1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2언 론 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다만 공중도덕과 사회윤리 를 위하여는 영화나 연극에 대한 검열을 할 수 있다. 3신문이나 통신의 발행시설 기준은 법률로 정할 수 있다. 4옥외 집회에 대하여는 그 시간과 장소에 관한 규제를 법률로 정할 수 있다. 5언론 출판은 타인 의 명예나 권리,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11) 김민남, 유신체제하의 언론통제 연구, , 15쪽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7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하자 새 시대에 새 헌법, 새 역사를 창조하자 뭉쳐서 헌정유신, 힘 모아 평화통일 등 의 문공부 제정 표어가 매일 6단 크기로 게재됐다. 12) 2) 긴급조치 제1호 제9호 선포된 긴급조치 제1호는 1대한민국의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 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2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 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3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4전 1 2 3호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의 방법으 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한다 고 규정하고 이 조치를 위반, 비방하는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비상군법회의에서 재판을 하며, 15 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고 정하고 있다 선포된 긴급조치 제9호는 1가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 여 전파하는 행위 나집회, 시위 또는 신문 방송 통신 등 공중 전파수단이나 문서 도 서 음반 등 표현물에 의하여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그 개 정 또는 폐지를 주장 청원 선동 또는 선전하는 행위 등을 금하고 2제1조에 위반하 는 내용을 방송, 보도,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전파하거나 그 내용의 표현물을 제작 배 포 판매 소지 또는 시위하는 행위를 금한다. (3, 4 생략) 5주무장관은 이 조치 위 반자, 범행 당시의 그 소속 학교, 단체나 사업체 또는 그 대표자나 장에 대하여 방송 보 도 제작 판매 또는 배포의 금지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였고, 6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은 이 조치에 저촉되더라도 처벌하지 아니한다. 다만 그 발언을 방송, 보도,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전파한 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고 규정하였다. 당시 동아일보사 기자로 근무하였던 임채정은 이러한 긴급조치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 이 지적하였다. 긴급조치는 자타가 공인하는 악법의 전형으로서 법 만능주의의 부끄러운 표본이었다. 법 이라기보다는 법을 가장한 폭력이라는 말이 보다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논평이나 해설은 물론 있었던 사실 에 대한 최소한의 단순보도조차 금지함으로써 한국의 언론 상황은 3차례 의 긴급조치 밑에서 최악의 암흑기를 맞게 되며 언론매체의 존재 이유가 의심받게 된다. 긴 급조치 하의 언론은 약간 극단적으로 말하면 통치자 한 사람의 논리, 한 사람의 의지만을 보도 대상으로 취급할 수 있었을 뿐이다. 남자를 여자로, 여자를 남자로 만드는 일 이외에 12) 위 자유언론, 76-77쪽.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177

178 제4권 는 모든 것이 가능한 법 이라고 했던 세간의 야유처럼, 이 법은 언론자유 문제 이전에 인류 문명의 진보에 역행하는 악몽이었던 만큼 논란의 가치조차 없다 할 것이다. 이 법대로라면 사기업인 언론매체의 직원까지도 법의 이름으로 쫓아낼 수 있었고, 따라서 인간의 생존권 마저 박탈할 수 있었다. 13) 이 외에도 신문 통신 등의 등록에 관한 법률, 계엄법, 대통령선거법, 국민투표법, 방송 법, 외국간행물 수입배포에 관한 법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 조치령, 군사기밀보호법 등에도 언론 자유를 규제할 수 있는 독소조항들이 곳곳에 들어 있었다. 2. 사건배경 - 일상적인 언론통제와 언론인들의 항거 가. 언론사에 대한 보도통제 1962년부터 동아일보에서 근무하였던 박권상 14)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15) 에서 박정희 정권 하에서 언론은 정권으로부터 자유로운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즉 군사 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이 등장한 이후, 삼엄한 비상계엄 통치 하에 있을 때 모든 기사는 사전검열 을 받기도 하였고, 사전검열 이 다소 풀어진 상황이라 하더라도 유 무형의 감 시와 간섭 으로 통제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취재와 보도, 해설, 논평 등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어렵고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라고 하면서 유 무형의 감시와 간섭 은 중앙정보부 로부터 받은 것 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제가 동아일보사의 편집국장으로 근무하던 경부터 경까지에도 흔히 기관원 내지는 중정 요원 으로 불리는 중앙정보부의 직원이 거의 24시간 동안 마치 동아일보사의 직원처럼 상주를 하면서 편집국에 왔다 갔 다 하며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 문화부 등 각 부서의 부장이나 차장 등 간부들의 자리를 돌아다니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다녔는데, 이러한 상황들은 당시 근무하였던 동아일보 사의 직원들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다 알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또한 당시 동아일보 편집부장 직무대리와 여성동아 부장이었던 권도홍은 진실화해위 원회 조사 16) 에서 중앙정보부에서 각 언론사마다 담당 직원을 정하여 두고 이들이 수시 13) 임채정, 70년대 언론규제법과 그 적용 연구, 취영 홍남순선생 고희 기념논집, 형성사, 1983, 448쪽. 14) 박권상은 경부터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근무하였고, 부터 까지 동아일보 편집국장 으로 근무하였으며, ~ 까지 동아일보 영국특파원, ~1979. 말까지 통일연구소장, ~ 경 해직당할 때까지 동아일보 논설주간으로 근무하였다. 15) 박권상 진술조서 1회,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7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로 담당 언론사를 출입하면서 편집국의 간부들을 상대하며 보도 기사를 확인하고 체크하 면서 간섭을 하였습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신청인 이태호는 17) 동아일보사를 담당했던 중앙정보부 요원이 수시로 들락날락하면 서 주로 편집부장이나 국장 등 간부들을 만나 기사내용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을 거의 매일같이 목격할 수가 있었고, 또 당시 중정과 편집간부들 선에서 기사의 내용이라든지, 제목은 뭐다, 어떤 기사는 좀 키우고, 어떤 기사는 좀 빼고 등 이런 일련의 보도내용과 관 련해서 전화상으로 감독하고 사실상의 검열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라고 하며, 빈민들이 판자촌을 철거하는 데 대들고 저항하는 기사라든지, 연탄 값이 폭등하는 것 등 민생과 관련한 기사도 게재하기 힘들었는데, 그 이유는 기자가 아무리 사실을 사실 그대 로 작성하여 편집국에 제출해도 그 내용이 박정희 정권의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실추시키 거나 손상시킬 소지가 있는 기사는 데스크에서, 즉 편집간부들이 알아서 잘라버리는 경 우가 수시로 발생했기 때문에 언론사는 정권에 의해서 거의 원격조종되다시피 전락해버 린 것이고, 때문에 대학가에서 언론 화형식 을 하고 심지어 동아일보사 사옥 앞에까지 와 서 민중을 배신한 죄 무엇으로 갚을 텐가 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까지 했기에 우리 같은 기자들로서는 수치감이나 모멸감 같은 것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들었습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당시 조선일보사에 근무하였던 신홍범도 18) 중앙정보부를 비롯한 수사기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편집국에 끊임없이 드나들면서 기사를 빼라, 넣어라, 줄여라, 키워라 하며, 간 섭 통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이런 저런 구실을 잡아 사건을 만들고는 기자나 신문사의 간부를 연행하여 공포분위기 속에서 폭력을 가하는 일이 되풀 이되었다. 신문사의 편집국은 질식할 것 같은 공포분위기 속에 휩싸였으며, 기자들은 좌 절감과 무력감 속에서 타율적인 신문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고 진술하였다. 동양방송(TBC)에 근무하였던 노계원은 박정희 정권 당시의 보도통제방식에 대해 자신 의 논문 제3공화국 말기 언론통제에 관한 분석적 연구 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언론사에 대한 보도통제는 주로 통제기관의 해당 매체 담당자와 매체사의 담당데스크 사이에 전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통상적 관례였다. 중앙정보부 소속의 각 언론사별 전담자는 전화를 통해 보도내용이나 형식에 대해 전면적 금지 또는 부분적 제한을 통보 16) 권도홍 진술조서 1회, 진술청취. 17) 이태호 진술조서 1회, 진술청취. 18) 신홍범, 목 잘린 자의 아직도 아픈 추억, 기자협회30년사, 한국기자협회, 1994, 쪽.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179

180 제4권 하고, 언론사를 직접 방문했을 때는 주로 통제의 배경이나 불가피성을 설명해주는 수순 을 밟았다. 전담요원은 수시로(1일 1~2회) 언론사를 방문하여 언론인과의 친면을 다지고 회유책을 구사하여 친밀감을 조성함으로써 원활한 통제절차와 효과를 얻으려고 했다. 그 러나 통제요청에 대한 반응이 소극적이거나, 미흡한 결과 및 사전허가 없는 단독기사의 보도 등 통제지침에 복종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서는 협박과 폭언, 심한 경우는 연행과 폭 행 고문도 서슴지 않았다. 19) 노계원은 위 논문에 당시 보도통제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 1975년도 분( 分 ) 몇 가지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20) 서울대생 2명 고 김상진군 가장 장례식 기사, 서울대 도서관 앞에서 거행 사이공발 외신 국제적십자 조사결과 사이공에 외국인수 6천6백35, 한국인 2백8, 기사 전체 <남산 박> 서울대생 제적기사 <남산 박> 김한수 법무부 발표기사로만, 필름도 안 됨 신직수 박사학위 기사 내지 말 것 교민 사이공 탈출 외신 Hold 북괴 남침 의사 없다는 동경발 UPI, 동양통신 보도 Hold <남산 박> 국제정치학회 월례회, 코리아나 기사 Hold <남산> 오후8시 중공 북괴 남침기도에 경고, UPI 동양 <전문 취소됨>-No more 김상진군 추모식 Hold <C방송과> 설탕값 인상과 관련 생필품 인상 관계 취급 불가 19) 노계원, 제3공화국 말기 언론통제에 관한 분석적 연구, , 19쪽. 노계원은 1964년부터 1979년까지 동양방송(TBC)에서 근무하였고, 이 논문은 그가 동양방송 외신부장과 경제부장직에서 근무하는 동안 박 정희 유신정권 후반기, 즉 1975년 5월 16일부터 1979년 12월 11일까지에 걸쳐 당국이 구 동양방송에 통보 한 보도통제의 내용을 기록한 보도통제연락접수대장(이하 대장 ) 이라는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자료를 토 대로 한 것이고, 집필자 노계원이 위 대장 의 기록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논문 내용이 글쓴이의 개인적 경 험에 대한 기록(일기)과 기억에 의한 상황도 참작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논문의 부록에는 당시 정부당 국으로부터 보도통제를 연락받은 날짜와 시간, 통제내용, 통제기관, 그리고 통제가 해제된 경우는 그 일시 등을 메모 형식으로 기록한 879건의 통제요청 접수기록이 수록되어 있고, 이와 같은 대장을 기록하여 비 치하기 시작한 동기는 그 내용을 모든 보도국 요원들이 상시로 열람하게 하여 주지시킴으로써 당국의 통 보사항을 뉴스보도에 실제로 반영하는 데에 오류나 누락을 예방하자는 것이었으며, 통보내용이 잘못 이행 됐을 경우 입게 될 불이익과 위협적 요인을 사전에 배제하기 위한 예비조치의 일종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20) 노계원이 소장하고 있는 위 기록 대장은 주간지 미디어 오늘 제33호( )에 ~7. 6.까 지의 내용에 한해 최초로 보도된 바 있다. 보도지침 내용 중 < > 안의 내용은 보도지침 시달처 및 시달자 를 말하는 것으로 남산, CIA', C 등은 당시 언론통제의 주무부서였던 중앙정보부를 지칭하며, 또 박, 곽 등은 동양방송을 담당하였던 중앙정보부 직원을 칭하는 것이고, Hold'는 별도의 지침이 하달될 때까 지 보도를 중지하고 있으라는 표시이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8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고대 추가 3명 제적 Hold <C방송과> 신민당 확대간부회의 내용 주의 요망 <CIA> 김일성이 알제리 떠나면서 남한에 미군이 핵무기를 장치했다고 한 발언 Hold 한국에 핵무기 1백개 지급 운운 Hold <남산> 여행사 수사 중 셋방 관계를 뺄 것 세계편집인연맹 동아(동아일보)에 수상 Hold <남산> 사이공 억류 교민 관계 일체 Hold 명동서 금융노조 농성 운운 Hold <남산 곽> 명동서 금융노조 농성 운운 Hold <남산 곽> 프레이저 청문회 일절 Hold <남산 박> 타임지 여론조사 Hold <남산 박> 신민당, 월남 잔류 교민 대책관계, 프레이저 청문회 보류 <남산 박> WS지 한국방위성금 관계 기사 Hold <남산> 월남교민 관계, 한국 비동맹 가입 관계 기사 Hold <남산> 긴급조치 9호 위반 서울대생 송치 Hold <남산 박> 노계원은 위 보도통제 기록대장을 근거로 보도지침의 시달기관에 대한 통계를 냈는데, 아래 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당시 보도통제에는 중앙정보부가 총 879건의 보도통제 중 83.6%에 해당하는 735건의 보도통제를 하여 전권을 행사하였고, 문화공보부와 각 부 처의 공보관 등 거의 모든 정부기관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21) <표 1> 보도통제 기관과 통제 건수 22) 통제 기관 중앙 정보부 국방부 육군 본부 해군 본부 공군 본부 보안 사령부 계엄 사령부 문공부 치안국 청와대 기타 통신 취소 총계 통제 건수 (%) 735 (83.6) 27 (3.1) 58 (6.6) 2 (0.2) 9 (1) 3 (0.3) 7 (0.8) 19 (2.2) 5 (0.6) 2 (0.2) 7 (0.8) 5 (0.6) 879 (100) 또한 총 879건의 통제된 기사를 내용별로 분류해보면, 아래 표2와 같이 분류해볼 수 있 는데, 그중 반체제 활동에 관한 사항이 전체 879건 중 275건으로 가장 많았다. 21) 노계원, 위 글, 17-18쪽. 22) 노계원, 위 글, 18쪽.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181

182 제4권 <표 2> 통제된 기사의 내용별 분류 23) 분류별 내용 건수 비율 1. 반체제 활동에 관한 사항 ⑴ 야당, 재야인사의 반체제 활동 109 (39.6) ⑵ 학원의 반체제 운동 48 (17.5) ⑶ 시민, 종교계, 노동계, 농민 등의 반체제 활동 46 (16.7) ⑷ 외국인의 정치인, 언론인의 한국정정에 관한 언급 62 (22.6) ⑸ 타국가 내부의 반체제 활동에 관한 사항 10 (3.6) 2. 언론통제 및 언론인 탄압에 관한 사항 정부의 주요 정책(사업) 및 이에 부정적 평가 공직자의 비리 부정에 관한 사항 군 관련 사항 ⑴ 군사작전, 훈련, 무기 및 장비의 수급에 관한 사항 18 (12.6) ⑵ 주한미군, 군사원조 및 방위산업에 관한 사항 19 (13.3) ⑶ 군의 안전사고, 총기사건, 탈영 및 대민 비행 106 (74.1) 6. 남북한 문제에 관한 사항 ⑴ 남북한의 대북 대남 정책에 관한 사항 19 (26.4) ⑵ 남북한 긴장완화를 위한 외국인의 활동 사항 8 (11.1) ⑶ 국내 인사의 남 월북 및 방북에 관한 사항 16 (22.2) ⑷ 국제외교에서의 북한의 성과 3 (4.2) ⑸ 북한 요인의 동정 2 (2.8) ⑹ 북한의 도발, 귀순 24 (33.3) 7. 외교 관련 사항 ⑴ 외교활동 및 미수교국과의 교류 추진에 관한 사항 59 (38.6) ⑵ 정부의 외교 정책 부진 및 실패에 관한 사항 50 (32.7) 23) 노계원, 위 글 28-29쪽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8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분류별 내용 건수 비율 ⑶ 국내 요인의 외국 망명에 관한 사항 8 (5.2) ⑷ 외국 주요인사의 방한 및 국내 동정 36 (23.5) 8. 기타 사항 ⑴ 국내외의 특정 사건 사고 22 (17.5) ⑵ 특정 요인의 동정, 발언, 경력, 불명예 사항 49 (38.9) ⑶ 미수교국과의 스포츠 교류 6 (4.7) ⑷ 주요 해외 경제사업 21 (16.7) ⑸ 기타 28 (22.2) 총 계 나. 언론인에 대한 연행 및 가혹행위 박정희 정권 하에서 중앙정보부는 정권유지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기사를 쓴 언론 인들을 임의동행 방식으로 연행하거나 소환하여 취재경위 등에 대해 조사하는 방식으로 언론활동에 개입하였다. 중앙정보부에 의한 연행은 언론인들에게 매우 위협적인 것이었 다. 대부분 1~2일 동안 취재보도경위에 대한 조사를 받고 풀려났지만, 언론인들로서는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국정원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이하 국정원진실위 라 한다) 조사결과, 국정 원에 소장되어 있는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생산된 문건과 자료조사를 토대로 언론인들에 대한 연행과 조사는 문제의 기사가 보도되었을 때마다 수시로 진행되었음이 확인되었는 데 24) 그 내용 중 몇 가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불온신문기사 수사기록( ) 경향신문 1. 1.자 3면에 게재된 전환의 69년, 아주인에 의한 세력균형 이라 는 기사에 대해서 중앙정보부는 불온신문기사 인지보고 를 하고 불온성 유무 판단. 중앙정보부 해당관은 미국의 월남전 실패와 중공의 핵무장 등으로 공산혁명세력 다 24) 국정원진실위, 위 책자, 쪽.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183

184 제4권 시 고개를 들 것이다 라는 등의 기사내용이 국외 공산계열을 찬양함으로써 불온성 내포했 다 고 판단하고 반공법 위반 혐의가 있음으로 경향신문 편집관계자를 소환조사하여 의법 처리함이 가하다 고 수사 중간보고. 한편, 경향신문 1면에 게재된 파리 확대회담 급진전 제하 기사에 대해서도 역 시 불온 신문기사 인지보고 하고, 불온성을 다음과 같이 판단. 국외 공산계열의 만만치 않은 활동상을 보여 독자들에게 적지 않은 자극을 줄 혐의는 있 으나 이 기사 자체가 신문사의 논설이나 기자의 수집 기사가 아니고 모두 외신기사임으로 반공법 위반으로 속단키는 어렵다는 판단임. 두 건의 불온기사 와 관련 경향신문 발행 편집 겸 인쇄인 박찬현( 朴 瓚 鉉 ), 편집국장 서임수( 徐 壬 壽 ), 외신부장 서동구( 徐 東 九 ), 기자 송두형( 宋 斗 亨 )에 대해 다음과 같이 중간수 사보고. 본 건 수사한 바, 경향신문사는 2차에 하여 불온 혐의가 있는 기사를 보도한 사실은 있으나 동 기사는 외신을 인용 보도한 것이므로 편집관계자를 환문하여 경고조치함이 가하 겠습니다. KAL기 납북 미귀환자 송환대책 보도경위 조사보고( ) 중앙일보 자 1면 톱으로 중립국감위 개입요청 검토, 관 민 혼성사절 파 견도 제하로 당시 납북됐던 KAL기 미귀환승객 송환에 대한 기사 보도. 동 기사 보도경위를 파악하기 위하여 중앙정보부는 중앙일보 출입기자 허준( 許 準 ), 중앙청 출입기자 윤기병( 尹 寄 炳 ), 정치부장 김동익( 金 東 益 )을 소환조사. 보도 전 허준 기자는 외무부 방교( 邦 交 ) 국장에게 관련 내용을 사실화해도 좋은가 라 고 물었고, 이에 언론자유가 있는데 어떻게 쓰라, 쓰지 마라 할 수 있냐 고 답변했다고 진술. 윤기병 기자는 기사 관련내용을 off-the-record 전제로 브리핑 했다 는 얘기를 취재 과정에서 들었다고 진술. 중앙정보부는 기사 내용 중 관계 장관들이 참석한 미송환자 대책회의에서 논의 검토 된 것이라고 한 정부소식통이 전했다 고 보도한 부분을 문제 삼았으며,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사 보고. 5. 소견 출입기자단에 논의된 송환추진방안을 관계장관 연석회의에서 검토되었다고 추리하여 사실을 왜곡보도한 점 엄중문책하고 기록 존안함이 가하다고 사료됩니다. 조선일보 필화사건 조사결과 보고( )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강인원은 문공부가 발간한 남북공동성명에 대한 문답 이라는 홍보책자의 내용을 근거로 자 조선일보 1면에 UN의 남북한 초청 거부 안해 라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8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는 제하의 6단 기사 보도. 동 기사에 대해서 중정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고, 강인원을 비롯, 정치부차장 이종구, 편집부 기자 배우성, 편집부장 조병철을 ~23. 소환조사. (이 기사는) 정부에서 북괴노선에 동조하여 대 UN정책을 전면적으로 변경한 것처럼 독 자들이 왜곡 인식할 수 있도록 과장 보도함으로써 적을 이롭게 한 혐의가 있음. 조사결과 다음과 같은 소견 을 보고. 동 기사의 문장작성과정에서 확대 해석하고 또는 집약하는 문장작성의 미숙에 기인된 것으로서 고의적으로 적을 이롭게 할 범의는 없었다고 인정되므로 취재기자인 강인원과 제 목을 작성한 배우성에 대하여는 면직조치토록 조종하고, 편집부장 조병철, 정치부차장 이 종구 등에 대하여는 엄중 경고함이 가하겠습니다. 반공법 위반 등 피의사건 수사결과 보고( ) 중앙일보는 석간 5면 남기고 싶은 이야기 란에 진보당 사건 을 다루면 서, 과거 진보당 간사장이었던 윤길중이 기고한 글을 진보당은 죽산의 보람과 애환 담겨, 평화적인 정권교체 외치다 형장의 이슬로 라는 등의 제목으로 게재. 동 기사가 진보당과 조봉암에 대한 인식을 오도하고 진보당을 소위 적화혁명 역량이 었다고 극찬하는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이롭게 했다 는 등의 혐의로 중앙정보부는 당시 편 집국장 김인호( 金 寅 昊 ), 편집부국장 김동익, 정치부 기자 이영석, 편집부 기자 조남희, 편집 부 기자 김수보, 집필자 윤길중을 소환 조사하고 진술서, 각서 등을 징구한 뒤, 다음과 같은 조치의견 을 보고. 본건 혐의자 등의 행위는 반공법 제4조에 해당되는 범죄이오나 북괴를 이롭게 할 목적 으로 보도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나 북괴의 대남전략에 부합되는 결과를 초래한 데 대하 여 깊이 뉘우침과 동시 자 3, 4판(22만부)에 대한 동 기사를 전면 삭제하였으며 앞으로 이와 같은 사례가 없도록 하겠다는 취지의 서약을 하고 있으므로 엄중 경고 방면함 이 가하겠습니다. 동아방송, 중공의 한국배드민턴 선수단 입국사증 발급거부 보도경위 조사결과 보고 ( ) 동아방송은 라디오 조간 시간에 오는 10일부터 열리는 제2회 세계배드민 턴 선수권대회에 참가해달라고 한국선수단에게 초청장을 보낸 중공이 선수단 입국을 거부 하고 있다 고 보도 중앙정보부의 동아방송 담당직원은 07:10경 동 내용 방송 삭제 전화하여 이후 방송을 중지시키고, 사회부 기자 노한성( 盧 翰 成 ), 보도국 부국장 신용순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소 환하여 조사 상기명 등은 1976년 정부에서 제정 시행 중에 있는 공산권 국가에 관한 보도 요강 의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185

186 제4권 우 언론기관은 정부 및 민간의 공산권국가와의 교섭, 접촉 또는 이와 관련된 사항을 보도 함에 있어 문공부의 공식발표 이외의 사항을 보도할 수 없다 는 등의 제한내용과 ~ 차에 걸쳐 중공에서 개최되는 제2회 세계배드민턴 선수권대회 한국선 수단 참가문제는 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을 때까지 보도를 보류하여 달라는 CIA로부터 요 청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 중략 ) 보도 조사보고서는 상기명이 잘못되었음을 깊이 뉘우치고 차후 여사 사례 없도록 할 것을 다짐하므로 각서 징구 후 엄중 경고 방면하였음 이라고 기술. 위 사례 중 동아방송, 중공의 한국배드민턴 선수단 입국사증 발급거부 보도경위 조사 결과 보고( ) 문건에는 중앙정보부의 동아방송 담당직원은 07:10경 동 내용 방송 삭제 전화하여 이후 방송을 중지시키고 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이는 앞서 살 펴본 바와 같이 중앙정보부에서 각 언론사마다 담당 직원을 정하여두고 기사의 보도내용 에 대해 일일이 개입하여 간섭하였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당시의 언론인에 대한 탄압에 대해 유신초기 사회부기자였던 정구종 편집국 편집위원 은 東 亞 자유언론실천운동 白 書 에서 이렇게 진술하였다. 25) 유신발표 당시 본인은 동대문 경찰서 출입기자였다. 유신과 함께 기자실이 문을 닫자 동 대문 경찰서 출입기자들은 아침에는 창경원에 모였고 낮엔 경찰서 외곽을 돌면서 사건 사 고를 쫓아다녀야 했다. 몇 달 후 경찰서 기자실은 묵시적으로 다시 이용하게 되었으나 취재 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따랐다. 하루는 기독교 회관에서 목사들의 집회가 있다. 취재해보 라 는 지시를 회사로부터 받고 본인 등 각 언론사 기자들이 기독교 회관으로 달려갔다. 李 海 學 목사 등 10여 명의 젊은 성직자들이 유신 반대 성명 을 발표하는 현장이었다. 일단 모두들 회사에 전화보고는 했으나 어느 신문 방송도 유신반대성명을 싣지는 못했다. 그날 오후 동대문 경찰서의 정보과장이 기자실에 와서 모두들 모여 달라는 통보를 했다. 영문도 모르고 기자실에 모이자 정보과장은 오늘 기독교회관의 취재관계로 중앙정보부에서 기자 들을 만나자고 한다. 내 차에 타고 가보자 고 했다. 반강제연행식으로 모두들 南 山 중앙정 보부 6국 수사과로 실려 갔다. 그리고는 밤새 피의자 조사를 받았다. 옆방에는 목사들이 이 25) 동아일보사노동조합 백서발간특별위원회, 동아자유언론실천운동백서, 1989, 31-32쪽. 동아일보사 노동 조합에서는 백서발간을 통해 우리는 자유언론실천운동에 앞장섰던 선배언론인들의 용기 있는 모습을 되 새겨 자유언론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초석으로 삼고자 한다 며 백서발간특별위원회(위원: 한 진수, 심규선, 홍권희, 양영채, 손광주, 조헌주, 허승호)를 구성하여 2개월여에 걸쳐 20차례의 공식청문회를 갖고 관계자들의 증언을 청취했으며 사내외 인사들과의 비공식접촉을 통해서도 필요한 증언들을 수집했 음을 밝히고 있으며, 백서는 동아일보사 노동조합 집행위원회의 추인을 받아 발 간되었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8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미 연행돼와 밤새 구타당하며 취조 받는 소리가 생생히 들렸다. 기자들에게 씌어진 혐의는 간단했다. 목사들의 유신반대 성명내용을 회사에 전화로 알림으로써 유신헌법반대 의견을 타인에게 고지 전달했다 는 것이며 이는 법에 저촉된다는 것이었다. 옆방에는 그날 현장 에 취재 나왔던 정치부의 강성재 기자도 연행돼 와 조사를 받고 있었다. 밤을 새운 조사와 조서작성, 범죄인 도표작성 등으로 겁을 준 뒤 중앙정보부 측은 새벽에 취재기자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다시는 유신반대 관련 취재를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은 뒤였다. 말하자면 유신체제를 왈가왈부하는 어떤 움직임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협박과 공갈을 하기 위한 일막 극이었다. 물론 그 같은 전말은 신문 방송에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으며 각 언론사 젊은 기자들의 허탈함과 불만은 안팎으로 쌓여갔다.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이었던 송건호 26) 는 박정희 정권하의 언론 에서 이렇게 진술 하였다. 이 당시 언론은 법률 외적 통제를 받아 거의 제구실을 못하고 있었다. 첫째는 기관원이 무상출입하여 일상적으로 신문 제작에 압력을 가했으며, 조금이라도 말을 안 듣거나 비위 에 거슬리는 기사를 썼을 경우에는 임의동행 이라는 형식으로 연행하여 조사 위협했고, 걸핏하면 기자들에게 폭행을 가해 공포에 떨게 했다. <기자협회보>에 나타난 사례에 의하 면, 부터 1974.말까지의 약 10년간 언론인에 대한 폭행은 모두 97건으로 나타나 있다. 27) 박권상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28) 에서 이들(중앙정보부 직원들)이 출입하면서 언론에 대한 노골적인 간섭행위들을 한 것도 문제가 있지만, 일선 취재기자나 그 위 부 차장들 을 직접 중앙정보부로 연행하여 겁을 주거나 심문한다는 명목으로 폭행을 가하는 식의 물리적 통제도 서슴지 않는 언론사찰 그 이상의 행위를 했기 때문에 언론은 침묵을 강 요당하는 시대였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라고 하면서, 일례로 국가비상사태 선 언이 있은 다음해 동아일보 1면에 옥외 집회 시위 조치령 제하의 머리기사가 보 도된 것과 관련하여 작성 기자인 최 이 중앙정보부에 불려가 가혹행위를 당했던 사례 를 들면서 최 기자가 풀려나서 제가 당시 정릉에 살고 있던 최 기자의 집에 찾 아간 기억이 납니다. 그때 최 기자의 얼굴이 어떻게 맞았던 것인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 로 아주 퉁퉁 부어 있더라구요. 그래, 왜 그렇게 되었느냐 고 물었더니 중정 남산 지하실 26) 송건호는 ~ 까지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근무하였다. 27) 송건호, 박정희 정권하의 언론, 한국언론 바로보기 100년, 도서출판 다섯수레, 2000, 321쪽. 28) 박권상 진술조서 1회( ).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187

188 제4권 로 끌려가서 된통 맞았습니다 고 하더군요 라고 진술하였다. 이에 대해 당시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근무하였던 최 29)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 사 30) 에서 옥외집회시위 특조령 에 관한 기사를 취재하여 보도하였다는 이유로 중앙정 보부에 연행되어 인간 이하의 폭행과 인격적 모독을 당하였다 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진 술하였다. 제가 중앙청 기자실에서 다른 취재기사를 정리하고 있는데, 중앙정보부 요원 2명이 저를 찾아와서는 기사 건 때문에 왔다 하면서 잠깐 같이 가자 고 하며 저를 지프차에 태워 당 시 정부청사 내 중앙정보부 사무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기사 내용을 누구로부터 취재한 것인지, 기사 내용의 출처가 어디인지 대라는 것이었습 니다. 그러면서 비밀안건인데 이것이 중간에 신문에 보도가 되었으니, 이렇게 되어서는 국 가 운영에 장애가 되고 기강이 제대로 안 선다 고 하면서 취재원이 누구였는지 말하라 하 기에 제가 국민들에게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언론 활동의 일환으로 취재를 한 것이고 기사내용을 제공한 취재원에 대해서는 기자가 보호를 해주어야 할 언론인으로서 의 윤리가 있습니다 하면서 내심 기사내용이 없는 사실을 꾸며서 허위보도를 한 것도 아니 기 때문에 취재원을 밝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취재원에 대해서 끝까지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당시 중정 수사관이 1명씩 교대로 들어와서 조사하고 했었는데, 이 사람들이 대 뜸 음악적으로 해서는 안 되겠네 하면서 그들 용어대로 하자면 이제 체육적으로 해야 되 겠어 하면서 오후 6시경 되었을 무렵에 저를 다시 지프차에 태워 남산 중앙정보부 지하실 로 연행해 갔습니다. 남산 중앙정보부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지하 조사실에 저를 데리고 가 서는 수사관 2명이 저를 세워놓은 채로 양 쪽에서 저의 옷을 확확 벗기기에 제가 움칫 하 면서 거부하는 자세를 취하자 발로 차고 몽둥이로 패면서 완전히 발가벗겨놓고 몽둥이로 저를 개 패듯이 패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빨리 취재원을 대라는 것이었고, 저는 취재원 을 끝까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저를 쪼그려 앉은 상태로 만들고 오금 사이에 몽둥이 를 끼워놓고 양쪽에서 몽둥이를 마구 돌리니까 뭐 다리가 찢어져 나갈 듯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느껴졌고, 정말 개돼지만도 못하게 몽둥이로 저를 패고 인격적 모욕을 주고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납니다. 이튿날 오전 8시쯤 되었을 때 중정 수사관들이 저에게 백지를 주면서 사직서를 써라 하 더군요. 제가 그때는 정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것은 다 몰라도 제가 평생을 29) 최 은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계속 정치부 기자로 근무하였고, 1981.부터 동아일보 안보통일문제 연구소 상임 연구위원, 1985.부터 동아일보 정치담당 편집위원, 1988.부터 동아일보 정치부 부장, 1993.부 터 1994까지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으로 근무하였다. 30) 최 진술조서,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8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두고 일할 직장이라 여겼고, 또 아내와 자식들의 앞날까지 생각할 때 정말 눈앞이 캄캄해지 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는 수 없이 그들의 요구대로 사직서를 써서 주었고, 또 서약서 라고 하면서 여기서 있었던 일은 밖에 나가서 일절 발설하지 말 것 을 서약하는 서약서를 작성해서 줬습니다. 31) 한편 동아일보 사사( 社 史 )에는 당시 언론탄압에 대한 단적인 예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정부의 시책은 국가 안보를 최우선으로 하는 국가비상사 태 를 선언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안전보장 상 중대한 차원의 시점에 처해 있다고 단정하면 서, 정부와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비상사태를 극복할 결의를 새로이 할 필요를 절감한 다 고 말했고, 이에 야당인 신민당에서는 안보를 빙자한 국민 기본권의 제약과 정권 안보 에의 악용이라고 지적,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어떠한 위협에도 투쟁할 것이고 비상사태 선언이 국민 총화를 깨뜨리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고 논평하였다. 32) 동아일보는 다음날인 7일 국가안보와 자유민주주의, 8일 새 가치관의 문제 라는 제하의 사설을 게재하면서 박 정권의 비상사태선언에 대해 공박했다. 이 두 사 설이 나가자 박 정권은 당장에 동아일보에 압력을 가했고 어쩔 수 없이 이동욱 주필 이 물러나고, 천관우 이사도 사임하였다. 33) 이에 대해 당시 동아일보사 주필이었던 이동욱은 2001년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비상사태 선언이지만 이것은 결국, 비상사태는 잠깐 몇 달 하고 마는 거야, 아주 어려울 때. 그런데 이 양반은 이건 자기 장기집권, 종신집권을 보장하는 헌법이 나올 때까지 오래 그냥 계속할 거다, 이런 게 머리에 들어왔어요. 그래가지고 그 때 그 사설을 쓰는데, 처음에는 송건호씨가 썼어. 지금 비상사태 할 필요가 없는데 한다, 그건 아주 마일드(mild)해요. 두 번째는 안재준 논설위원이 똑같은 걸 쓰는데, 이건 쎄게 나왔어요. (중략) 그래서 난 그것을 깎으려다가 에이 암만 해도 그런 거 같다, 모르 겠다, 될 대로 되라 해가지고선, 그 워낙 쎈 사설이 나갔단 말이야. 나가니깐 그 다음에 나한테 중앙정보부에서 전화가 올 텐데, 전화가 오질 않아. 전화는 안 왔는데 이런 사람 들, 이런 친구들이 와가지고선 김 사장, 김상만 사장 좀 같이 갑시다 그래요. 그래서 내 31) 당시 동아일보사에서는 최 이 중앙정보부에서 작성한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았다. 32) 동아일보사, 동아일보사사 권4, 1990, 69-70쪽. 33) 위 책, 74쪽.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189

190 제4권 가 이 양반이 가서 대답하실 게 없습니다. 뭘 물어보려면 내가 대답할 수가 있지. 이 양 반은 대답할 아무런 내용도 모르시는 분이니까 내가 가겠소 하니까 당신 올 필요 없어. 우린 김상만 사장 모시고 오라고 하니까 김상만 사장을 모시고 가면 되는 거지, 우린 당 신 필요 없어 그렇게 하구 김상만 사장이 가신다 말이야. (웃음) 한 시간 두 시간도 안 되었어. 김상만씨가 오신단 말이야. 오시더니 야, 너 관두게 되었다. 너 관둬라 허, 허.(웃 음) 관두게 되었다. 그러니까 뻔하지 않습니까. 써놓고 도장 눌러라, 도장 누른 다음에 잠깐 나오는 거야. 야, 너 관둔다. 내일부터 나오지 말아라. 이렇게 된 거에요 34) 라고 진 술하였다. 동아방송의 뉴스편집부장이었던 박중길 35)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36) 에서 연행되기 전 날 뉴스 쇼 를 내가 방송했는데 방송내용 중 학생들이 대학가에서 데모를 하였기에, 정부 가 학생들의 요구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고 방송에서 제가 말했고, 이것이 문제가 되어 중앙정보부에 연행된 것입니다 고 하면서, 오전 7:30경, 회사에 출근하 려고 집을 나서는데 검은색 양복을 입은 사람 2명이 대문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제가 나오 니까 중정에서 나왔다, 조사할 게 있으니까 우리 차를 타고 가자 고 하기에 순간 의아해서 쳐다보니까 가면 안다면서 미리 대기시켜놓은 지프차에 저를 태우고 남산 중앙정보부로 데려갔습니다. 조사실로 데리고 간 후에 처음 집에서 연행해온 4명의 직원들은 다 나가 고, 조금 있으니까 수사관 1명이 들어오자마자 제가 매고 있던 넥타이를 콱 잡아당기면서 때릴 듯한 자세로 겁을 주며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상스러운 욕을 퍼부으며 심한 모욕감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제가 전날 방송했던 방송내용을 트집 잡으면서 왜 그런 소 리를 했느냐 지금 그 방송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면서 똑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 해서 묻다가, 조사실에서 나갔다가 얼마 후 다시 들어와서는 또다시 똑같은 질문을 하는 조사를 계속 반복해서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10:30경에 저를 지프차로 집에까지 데려다준 후, 이튿날 아침 7:30경 또 똑같이 서너 명의 수사관들이 내 집 앞에 대기 하고 있다가 내가 나오니까 조사할 게 더 있으니까, 다시 가줘야 되겠다 면서 나를 또 중앙 정보부로 데리고 갔고, 전날 저를 조사했던 그 수사관이 똑같이 저를 조사했고, 둘째 날도 역시 저녁 10시 경 무렵에 나를 집에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뉴스편집부장 박중길의 연행에 이어 오후 편집국장 송건호와 사회부장 박 34) 이동욱, 녹취록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자유언론실천선언, 이동욱 인터뷰( ), 12쪽. 35) 참고인 박중길은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편집부에서 근무하다가 외신부 차장을 지내고 ~ 까지 동아방송 뉴스편집부 부장으로 근무하였다. 36) 박중길 진술조서,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9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원근, 지방부장 한우석이 서울 농대생들 3백여 명 데모 제하의 기사와 관련, 중앙정보부 에 연행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와 관련하여 중앙정보부에서 작성한 동아일보 학생데모 기사 보도경 위 조사보고 37) 에는 이렇게 기재되어 있다. 1. 인적사항 (생략) 2. 문제 기사 보도경위 동아일보 사장 김상만은 문공부장관으로부터 학원 내에서의 데모, 휴강 등 사태는 보도하지 말고 학원 외 기사는 1단 정도로 축소 보도하고, 연탄관계 기사는 자극적인 면을 피하고, 월남사태 관계 보도는 자극적인 기사는 보도하지 말라는 요청을 받았고, 동사 편집국 장 송건호를 대리한 부국장 신용순은 :30경 시내 청운동 소재 장원에서 문공 부 주관으로 개최된 편집국장 간담회 석상에서 이규현 문공부 차관으로부터 전시 보도 한 계지침과 동일한 내용의 보도협조요청을 받아 문공부 당국의 보도지침을 충분히 지실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초판에 서울청량리경찰서는 19일 학생데모와 관련, 경희대학생 정범수 (정외과 4년) 박건천(외국어교육과 2년) 조형모군(경영학과 1년) 등 3명을 즉심에 넘겨 5일 동안의 구류처분을 받게 했다 초판에 서울농대생들 3백여 명 데모 수원시내서 산발로 의 제목으로 22일 오후 3시경 서울농대생 3백여 명은 시내로 나와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틀째 교 내 농성을 했던 농대생들은 이날 정오경 기동경찰과 정 후문에서 대치했다가 각각 흩어져 시내로 빠져나와 남문 옆 북수동 매교동에서 구속학생 석방하라 는 등 구호를 외치며 시위 를 벌였다. 이들 학생들은 경찰의 페퍼포그 발사 등 제지를 받고 오후 4시경 귀교했다 라는 기사를 보도한 사실임. 3. 조사결과 (인적사항 생략) 교내 사항이 아니라는 구실로 동지 초판 7면에 경희대생 3명 구류 라는 제목으로 학생 데모에 관계된 기사를 보도 하였다가 동일 CIA 동아일보 담당 신 직 37) 중앙정보부, 동아일보 학생 데모기사 보도경위 조사결과 보고, 이 보고문건에는 당시 소환 조사받았던 송건호, 한우석이 작성한 진술서, 각서, 출석요구서, 그리고 보도된 신문 복사본 이 철해져 있다.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191

192 제4권 원의 요청으로 2판부터 동 기사를 삭제한 사실이 있고, 동사 수원 주재 기자가 송고한 서울 농대생의 데모 기사를 검토한 즉, 교외 에서의 데모 사건으로서 문공부 당국이 보도금지란 교내 데모가 아니라는 구실로 이를 기 사화하여 초판 7면에 전시 문제 기사 내용과 같이 서울 농대생들 300여 명 데모 수원시내서 산발로 이라는 제목의 수원발 기사로 수원 농대생 300여 명이 교내에 서 농성하다가 산발적으로 교내를 빠져나와 남문 옆 복수동과 매교동에서 구속학생 석방 하라 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 제지로 해산하였다는 지( 旨 )의 학생 데모 기 사가 포함된 초판 조판을 끝낸 후인 동일 11:00경 CIA 동아일보 담당 신 직원으로부터 전시 서울농대생 데모 기사를 삭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본명 등은 언론기관 주무장 관인 문공부 장관이 시달한 불보도 사안이 아니라는 이유로 동인의 기사 삭제 요청을 거부 하고 초판 인쇄중인 동일 12시경 문공부 차관으로부터 동기사의 삭제 요청이 있었으나 시 간을 다투는 신문제작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를 구실삼아 초판은 그대로 인쇄 발간하고 2판 에서 동 기사를 삭제한 사실임. 4. 조치 의견 본명 등은 문공부의 보도 한계지침이 모호함을 악용하여 그 허점을 찔러 사실보도라는 명목으로 의식적으로 학생 데모 관계 기사를 보도하고 있음으로 신문 편집인 협 회 주최 연례 세미나에 임석하는 문공부장관으로 하여금 보도 한계 지침을 명확히 시달하 도록 조치하였으며 본명 등은 차후 문공부의 방침에 역행하는 편집을 지양 적극 협조하겠 다는 각서를 제출함으로 훈계 방면함이 가하겠습니다. 위 보고문건을 보면 CIA 동아일보 담당 신 의 역할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었고, 또 보도지침의 한계를 교묘히 어기는 일까지 적시하여 철저하게 통제하였다. 그리고 위 보 고문건에는 아래 그림과 같이 당시 동아일보에 게재되었던 문제의 1단짜리 기사 사본이 첨부되어 있었다. [자료사본 1] 동아일보 기사 [자료사본 2] 동아일보 기사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9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당시 동아일보사 기자들은 송건호 국장 등이 귀사할 때까지 농성을 벌였고, 이는 자유언론실천선언 으로 이어졌다. 다. 기자들의 항거 동아일보사 기자들은 언론자유수호 제1차 선언에서 진실을 진실대로 자유 롭게 보도 외부로부터 직 간접으로 가해지는 부당한 압력 배격 정보 요원의 사내 상 주 또는 출입 거부 등의 내용을 결의하였고, 언론자유수호 제2차 선언에서 정부의 언론에 대한 부당한 간섭 중지 요 구 언론인은 외부의 압력 배격 언론 자유 확보 등의 내용을 결의하고, 보도해야 할 중 요한 기사가 누락되었을 때에 그 누락 경위를 알아보고 그날 밤으로 편집국에 모여 가능 한 모든 대책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선후배 동료가 기사와 관련, 부당하게 연행되었을 때, 이 사실을 즉시 보도하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편집국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는 등의 행동강령을 세웠다. 38) 정부는 중순부터 수차에 걸쳐 발행인과 편집국장 등을 간담회 형식으로 불러 자제( 自 制 ) 를 요청하다가, 결국엔 발행인들로 하여금 국내외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을 인식하고 유신체제나 안보에 위해가 되는 기사는 싣지 않기로 한다 는 이른바 자율방침 을 마련해 서명작업을 벌이도록 종용했다 언론자유수호 제3차 선언에서 우리는 당국이 자율을 빙자한 발행인 서명 공작을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 같은 강압에 맞서 언론 본연의 임무를 지 키려는 양식 있는 언론인의 의연한 자세에 경의를 표하며 함께 투쟁한다. 우리는 이 시점 까지 서명을 거부해 온 본사 발행인이 당국의 강압에 못 이겨 끝내 서명하게 되는 불행한 사태가 올 경우 신문 제작과 방송 뉴스의 보도를 거부한다 는 등의 내용을 결의하였고, 39) 오후 송건호 편집국장을 비롯한 기자들이 중앙정보부로 연행되자 동아일 보 기자들은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면서 본질적으로 자유언론은 바로 우리 언론종사자들 자신의 실천과제일 뿐 당국에서 허용 받거나 국민대중이 찾아다 쥐어주는 것이 아니다 라며, 외부간섭 배제, 기관원 출입 거부, 언론인의 불법연행을 일절 거부하 고, 만약 어떠한 명목으로라도 불법연행이 자행되는 경우 그가 귀사할 때까지 퇴근하지 않기로 한다 등을 결의하였다. 38) 동아투위, 자유언론 1975~2005 동아투위 30년 발자취, 해담솔, 2005, 78-80쪽. 39) 동아투위, 위 책, 210쪽.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193

194 제4권 밤 9:20 조선일보 기자 150여 명이 편집국에서 모임을 갖고 언론자유회복 을 위한 선언문 을 채택하였고, 중앙일보와 동양방송 등 중앙매스컴 기자들도 모임을 갖 고 중앙매스컴 언론자유수호 제2선언 을 채택하였으며, 한국일보 40) 기자들이 민주언론 수호를 위한 결의문 을 채택하였고, 경향 신문 서울신문 신아일보 동양통신 합동통신 문화방송 국제신문 부산일보 전남 매일 매일신문 충남일보 전남일보 영남일보 대구MBC 기자들이 참여하였으며, 산업통신 전북신문 경남일보 전주MBC에서, 기독교방송, 경기신문, 내외경제 기자들이 언론자유 수호 선언을 발표하는 등 1주일 동안 모두 35개 언론사의 언론인들이 동참하였다. 41) 라. 소결 신청인 및 참고인들의 진술과 각종 저서 및 출판물, 국정원진실위의 보고서를 종합하 면, 박정희 정권 하에서 언론은 헌법과 긴급조치를 비롯한 각종 법률적 규제와 행정조치 들로 인해 많은 제약과 규제를 받았다. 관련부처인 문화공보부도 프레스카드제를 실시케 하고 각종 보도지침들을 통해 언론사에 대한 간섭과 통제를 행하였지만, 특히 중앙정보 부는 각 언론사별로 통제담당자를 두고, 이들을 언론사에 상주시키다시피 하면서 기사의 보도제한조치 이행을 요구하였고, 기사의 방향설정, 기사의 편집, 기사의 크기 등을 조정 했으며, 이를 따르지 않는 언론인들에 대해서는 기자, 주필, 이사, 사주 등 직위를 가리지 않고 회유, 협박, 폭행, 연행, 고문, 사표종용, 해고압력을 행사하는 등 언론통제의 모든 역할을 전담하였다. 중앙정보부는 무소불위의 정보사찰기관으로서 언론인과 언론사에 대한 각종 정보 수집을 하였고, 이를 활용하여 정권유지에 유리한 언론구조를 만들려고 했다. 42) 40) 한국일보에서는 이틀간에 걸쳐 편집국장 및 사장 연행 사건과 관련해 기자 130여 명이 철야농성을 벌였다. 중앙정보부는 베트남사태에 관한 홍순일 특파원의 기사와 관련해 김경환 편집국장과 이상우 편집 부장, 장강재 사장을 연행했다. 24일 저녁 기자들은 연행사건의 보도를 요구하며 제작거부를 결의했고, 25 일 새벽 민주언론 수호를 위한 결의문 을 채택했다. 한국기자협회, 한국기자사십년, 2004, 70-71쪽. 41) 한국기자협회, 한국기자사십년, 2004, 70-71쪽. 42) 중앙정보부의 언론사에 직접 개입은 중앙정보부법 제2조의 직무범위에 속하지 않는 것이며, 또한 정보 및 보안업무조정 감독규정에 의하더라도 문화공보부를 통하게 되어 있어 그 법률적 권한이 없다. o 중앙정보부법 제2조 (직무) 1정보부는 다음 각 호에 정하는 직무를 수행한다. <개정 > 1. 국외정보 및 국내보안정보(대공 및 대정부전복)의 수집 작성 및 배포 2. 국가기밀에 속하는 문서 자재 및 시설과 지역에 대한 보안업무 3. 형법 중 내란의 죄 외환의 죄, 군형법 중 반란의 죄 이적의 죄 군사기밀누설죄 암호부정사용죄, 군사 기밀보호법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에 규정된 범죄의 수사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9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이 같은 정부의 언론탄압에 맞서 동아일보사의 기자들은 세 차례의 언론자유수호선언 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전개하였는데 이는 곧바로 각 언론사의 언론인들에 게 확산되었다. 자유언론을 위한 저항운동은 언론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각성과 정권의 부당한 언론통제에 대한 반발에서 실행된 것으로 민주주의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언론자유화 운 동이었다. 3. 사건 조사결과 가. 동아일보 광고주들에 대한 중앙정보부의 압력 여부 1) 주요 광고주들의 광고 해약 경위 가) 자료조사결과 동아일보사 노동조합은 동아일보 주요 광고주들이 광고 해약을 요구하는 과정을 백서 로 정리하였다. 그 백서 내용을 중심으로 광고 해약사태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오후 4시경 한일약품의 광고담당 책임자가 회사로 찾아와 광고동판을 회수 해갔다. 한일약품의 광고책임자는 사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말 아 달라 며 동판 회수의 이유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 중략 ) 부터 시작된 무더 기 광고 해약사태는 연중 광고가 가장 많이 들어오는 시기인 한꺼번에 몰아닥쳤다. 이날 하루 동안 롯데그룹, 오리엔트시계, 미도파백화점, 일동제약, 종근당, 한국바이엘, 태평 양화학 등 동아일보 광고수익의 절반 이상을 점하는 8개 대광고주들이 해약 이유를 묻지 말아 달라 며 일시에 광고계약을 철회했다 부터는 극장광고가 일제히 끊겼다. 이 날짜 신문에는 1판에 실렸던 일동제약의 5 단 광고가 광고주 측의 이유를 밝힐 수 없는 간청 으로 2판부터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 는 시판된 지 보름이 지나 이미 시중에 매진된 여성동아 75년 1월호의 광고가 실렸다. 이날 게재된 광고 중 상당수는 당초 며칠 뒤에 실리기로 한 것이 앞당겨진 것이었다. 4. 정보부직원의 범죄에 대한 수사 5. 정보 및 보안업무의 조정 감독 o 정보및보안업무조정 감독규정 제3조 (조정 감독의 대상기관 및 범위) <개정 > 6. 문화공보부 가. 신문 잡지 기타 정기간행물과 방송 영화 등의 대중전달 매개체의 활동 동향의 조사 분석 평가에 관한 사항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195

196 제4권 오후 대한비타민과 현대자동차가 광고해약을 통보하였고, 이 날짜로 주거래 광고 주 20여 개사가 떨어져 나갔다. ( 중략 ) 당시 동아일보는 통상 하루 8면에 총48단의 광 고를 게재해 왔으나 이후부터는 광고담당자조차 바로 다음날 광고 지면배정을 예측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까지 동아일보 하단에 실린 광고들은 신문사 의 자체광고, 사설학원, 대학생 신입생모집 광고, 의견광고, 그리고 동아안내 에 실리는 대 학생 아르바이트, 식모구함 등과 같은 소액광고뿐이었다. 동아일보 광고는 광고탄압이 시 작된 지 한 달여 만인 까지 대광고주 20여 개사를 포함 평상시 상품광고의 98% 가 떨어져 나갔다. 동아방송의 경우에도 신문과 마찬가지로 부터 광고가 해약되기 시작하여 까지 13개 광고주들이 해약을 통고했고, 개 대광고주들이 말 못 할 사정 을 내 세워 광고용 녹음테이프를 회수해간 데 이어 오후 7시까지 27개 업체가 광고해약을 통고했다. 방송광고 해약은 오전 10시까지 44개 업체로 확대되면서 방송광고의 75% 가 줄어들었고, 오후 1시까지 53개 기업체, 80개 광고방송이 떨어져나가 전체 광고방 송의 84%가 해약됐다. 광고탄압이 있기 전 동아방송의 1일 평상 광고량은 프로그램 광고 91건, 스파트광고 145 건 등 총 236건이었다. 광고량은 건으로 줄기 시작, 광고탄압 한 달여 만인 2. 7.에 는 프로그램 광고 3건, 스파트광고 21건만 남고 모두 해약됐다. 총 광고건수는 88.7%, 수익 면에서는 91.7%의 결손을 보였다. 동아방송 광고는 탄압 3달째인 프로그램 광고 1건, 스파트광고 2건만 남아 광고의 99%가 없어졌다. 43) 나) 진술청취 결과 동아일보사 광고국장이었던 김인호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44) 에서 초순에도 마찬가지로 월간 광고배정을 해야 되는데 그달은 여느 때와 달리 광고주들이 광고 문안 을 다시 만들 테니까 구 동판은 돌려달라 라든지, 이번 달은 아직 광고예산이 서지 않아 서 기다려달라 며 계속 미루면서 평소 때와 달리 광고 의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자 신문에는 5단짜리 2개 분량의 광고가 모자라서 4면과 5면에 처음으로 백 지광고가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백지광고가 나가기 약 1주일인가 열흘 전에 당시 가장 큰 광고주의 하나였던 한일약품의 김 선전부장한테 찾아가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광고를 중단하느냐고 물었더니, 김 부장이 한일약품 사장을 비롯해서 제약회사 사장 들이 중앙정보부로부터 동아일보에 광고를 게재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았다. 보통 심각한 43) 동아일보사노동조합 백서발간특별위원회, 동아자유언론실천운동백서, 1989, 75~77쪽. 44) 김인호 진술조서 1회,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9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상태가 아니니까 잘 참고하라 며 아주 조심스럽게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초경 어느 날, 김상만 사장이 저를 호출하여 사장실로 올라갔더니 한 약품 김 사장이 와 있었는데, 김상만 사장이 한 약품에서 광고는 내지 말고, 돈 1백만 원을 기부했으니, 격려광고나 상업광고 등 일체의 광고는 내지 말고 금액만 접수해 둬라 며 저 에게 봉투를 하나 건네주었고, 한 약품 김 사장 45) 이 우리 한 약품 입장에서 광고 는 내지 못하더라도 돈은 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중앙정보부에 알려지면 곤란하니 다른 광고는 일체 내지 말아 달라 하며 아주 미안해하면서 부탁의 말씀을 하였습니다 라고 진 술하였다. 당시 한일약품 광고담당자 김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46) 에서 자신이 직접 중앙정 보부나 치안국 등 수사기관에 불려가 압력을 받은 사실은 없다 고 하면서, 당시 동아일보 에 광고를 중단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고 광고를 게재하지 않은 사실은 있는데, 그러한 지시를 사장으로부터 받은 것인지 아니면 대한약품공업협회로부터 협의된 사항을 통보 받은 것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고 진술하였다. 2) 중앙정보부의 개입 양태 가) 자료조사결과 광고탄압이 본격화된 이후 동아일보는 , , 에 각각 다음과 같은 기사를 게재하였다. 광고탄압이 시작되고 보름 정도 지난 일자 동아일보에는 광고자유 없이 언 론자유 없다 언론과 광고 한국적 현실의 명암 제하의 좌담 기사가 게재되었다. 이 좌 담은 신인섭 47) (국제광고협회한국지부이사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강사), 이상회(연세 45) 당시 한 약품 김 사장을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면담하고자 하였으나, 회사 측에서 고령과 건강 등의 이유로 면담이 어렵다고 하였음. 46) 김 면담결과보고서, 면담. 47) 신인섭은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 <역사로 이야기하는 광고의 인생>에 동아 광고 사태와 나 라는 제목으 로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을 게재하였다. 1974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날부터 동아일보 광고란에는 광고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언론 자유 를 부르짖는 동아일보사 사원들의 투쟁에 대한 정부의 대답이었다. 대답이라느니 탄압이었다. 물론 언론 자유를 위한 투쟁은 한국의 모든 언론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동아일보와 자매 방송인 동아방송(라디오)에 대한 광고를 금지시킴으로써 목을 조르자는 계산이었다. 주 요 기업 (광고주) 대표와 광고 담당자들은 중앙정보부에 불려가서 동아일보와 동아방송 그리고 자매지에 광고를 내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도록 강요당했다. 이른바 격려( 激 勵 )광고 라는 것이 등장했다. 광고계에서 말하는 일종의 의견( 意 見 )광고였다. 두 줄, 석 줄 또는 그 비슷한 크기의 의견광고들이 동아일보에 쏟아져 들어왔다. 정부도 이런 격려광고를 막을 길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197

198 제4권 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참여하여 이석열(동아일보사 광고2부장)의 사회로 진행되 었다. ( 전략 ) 신 = 지난 해 12월 26일자 동아일보 일부 광고란이 백지로 광고 없이 발행되었는데 이것 은 광고에 대한 외부간섭이 뚜렷이 드러난 좋은 선례가 될 것입니다. 이 = 여기서 독자로서 청취자로서 정부당국에 바라고 싶은 것을 말씀드리면 독자와 청취 자는 언론과 정부가 영원히 밀월 관계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않고 상호 적절히 감시하고 견 제하는 관계에 있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매스미디어의 보도 내용에 대 하여 정부가 지나치게 신경질적으로 저는 신경질적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만 민감하게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여서 되겠느냐 하는 생각입니다. 어느 정부든지 언론의 자 율성을 견제하려고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미국이나 다른 선진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자본주의체제, 이 이념 이 근본적으로 동요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소한의 간섭이라면 몰라도 지금과 같은 상태 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번 동아일보사의 불행한 광고해약 파동도 이런 각도에서 해 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 =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된 광고 파동이 많은 사회적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새 해 들어 더욱 거세어지고 있습니다. 광고주, 광고인, 광고를 연구하는 학자, 광고업체에 종 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지혜를 짜서 이 파동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었으면 합니다. 광고의 자유 없이 언론의 자유가 있을 수 없고, 언론의 자유 없이 기업의 자유를 포함한 모 든 자유, 그리고 기본인권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짐하면서( 후략 ) 48) 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동아일보에 대한 광고탄압이 부당하다는 것을 좌담회에 나가 말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위험천만 의 일이었다. 광고계에서 누군가가 나와 주기를 바랬으나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하기야 응할 수도 없었다. 우선 소속한 기업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터뷰에 갔다 오면 결과는 중앙정보부행일 것이 뻔했다. 그 무렵 정보부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나는 일단 인터뷰에 응했다. 그 당시 나는 호남정유 (지금의 LG 정유)에서 광고 책임을 맡고 있었다. 회 사에 피해를 입힐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무렵 서강대학 강사이던 타이틀과 또한 IAA (국제광고협회) 한국지부 이사라는 이름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 뒤 이틀은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누군가 잡으러 올 것 을 예기했기 때문이었다. 별다른 말을 한 것도 아니었으나 인터뷰기사가 동아일보에 실리고 나니 ( 일호 3면 -주1975를 잘못 기재) 회사 사무실에는 사원들이 잘 했다는 전화, 그리고 격려차 찾아오는 사람들로 한때 바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중앙정보부에서 판단관(?)이라는 사람이 나를 찾아 왔다. 중년으로 점잖은 태도였고 다시 신문에 나오지는 말았으면 하는 간청이었다. 일은 그것으로 끝났다. 한 편 그룹 (호남정유는 럭키 그룹사였다) 홍보실장은 나를 찾아와 난처한 듯한 말을 하고 갔다. 하기야 그 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후략 ) (2005년. 인터뷰가 있은 지 31년이 되는 날. 신인섭), 출처: 48) 광고자유 없이 언론자유 없다, 동아일보, 면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19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이 좌담기사에서 신인섭은 동아일보 일부 광고란이 백지로 발행된 것은 광고에 대한 외부 간섭이 뚜렷이 드러난 선례라고 지적하였다. 이어서 동아일보는 1면에 동아 광고 전면탄압 한 달째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머리기사를 게재하였다. 모 기관서 기업 책임자 불러 각서 쓰게, 계속 광고 내던 대표 등을 연행 또 각서 동아일보 및 동아방송(DBS)에 대한 광고 탄압은 지난 74년 12월 중순께 모 기관의 지시 에 따라 행정부의 관련 부처 당국자들이 각 부처 소관별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각 기업 체 책임자들을 불러 동아일보 및 동아방송에 광고를 내지 말도록 압력을 넣음으로써 시작 됐다. 이러한 압력에 따라 74년 12월 16일부터 고정 대광고주였던 A기업, B보험, C약품, D 은행, E병원 등의 광고담당 간부나 담당직원들이 소속사의 사장 지시라면서 광고계약을 취 소하거나 동판을 회수해가기 시작했다. 본사의 종합취재에 의하면 그 뒤 모 기관은 작년 12 월 20일 전후해서 G기업 등 대기업의 책임자들을 모 기관에 출두시켜 더 이상 동아일보 및 동아방송에 광고를 게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게 했다. 관권 깊숙이 관여한 사례 밝혀 본사 종합취재 모기관이 직접 강력하게 광고를 못 내도록 압력을 넣은 결과 년말을 앞두고 가장 광고수 요가 높은 시기인 크리스마스이브(24일)부터 고정대광고주들의 큰 광고가 무더기로 해약돼 동아일보의 경우 연말까지 19개 기업, 동아방송의 경우 16개 기업광고가 각각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모기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본사와 관련이 깊은 P, Q기업 등이 지난 1 월 초순께까지 계속 광고를 내자 모기관은 그 기업 대표들을 자기네 사무실로 소환, 광고게 재중지 지시를 어겼다고 힐난한 다음 다시는 동아일보에 광고를 내지 않겠다는 각서를 거 듭 쓰게 하고 동아방송 및 신동아, 여성동아 동아연감에까지 광고를 내지 말도록 압력을 넣 었다. 광고해약사태가 본격화 한지 한 달이 넘은 25일 현재까지도 이같은 모기관의 압력은 계 속되고 있으며, 최근 얼마 전까지 광고게재를 계속해 온 R, S, T기업 등 3개사의 경우는 대 표 및 중역이 모 기관에 연행 돼 상당한 곤욕을 겪은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이 같은 기업광고의 대거 해약에 반발, 정당 종교단체 시민 각급학생들의 격려광고가 광고면을 채우게 되자 정부관련 모 부처에서는 격려광고를 낸 J모대학의 익명 교수광고에 대한 주의환기를 위해 J대학 당국에 압력을 넣기까지 했다. 이 같은 광고해약사태와 관련, 정부당국은 현재까지도 그것은 광고주인 기업과 동아일보 사 간에 빚어진 사태라고 밝히고 있으나 정부관련부처 및 모 기관의 관권이 이에 깊숙이 관여한 많은 케이스가 본사 취재진에 의해 그 진상이 밝혀졌다.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199

200 제4권 대표적인 것을 보면 A기업의 경우 무더기 광고 해약 사태가 있기 며칠 전 모 부의 어떤 국장이 사 간부를 불러 모처에서 동아일보에 광고를 내지 말라고 하니 협조해 줬으면 좋겠 다 고 말하면서 이런 사태가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니 협조해 달라고 거듭 종용했다. 그러 면서 나도 이 자리에 있으려니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고 말하면서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B기업의 대표는 지난 12월 21께 직접 모 기관에 불려가 동아일보에 광고를 게재하 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모 기관원이 불러주는 대로 썼다. C사의 경우는 12월 20일께 모 기관으로부터 업무상 협조해야 할 일이 있으니 출두할 것을 요청받고 광고 실무자를 보 냈으며 모 기관원은 그 자리에서 그 기업이 며칠 전에 동아일보에 냈던 광고문을 제시, 이 러면 곤란하다. 더 이상 동아에 광고를 내는 것을 중단해 달라 고 요구했고 그런 다음 미리 준비한 듯한 각서 문안을 읽어주면서 그대로 받아쓰도록 강요, 서명시켰다. D사의 경우 선전책임자가 모 기관에 불려가 동아일보에 광고를 내지 않도록 거듭 압 력을 받고 광고를 내지 말라는 지시를 어겨 다시 광고를 낼 때는 각오를 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F대학 당국자는 당국이 동아광고 무더기 해약사태는 신문사와 광고주 사이의 업무상 관 계일 뿐이라고 말해놓고서 왜 개입하는가. 당신들이 광고해약사태를 일으킨 책임자 이름을 밝힌다면 우리도 광고를 낸 교수의 이름을 밝히겠다 고 응수했다.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의 자유언론을 말살하려는 이 같은 부당한 광고탄압으로 인해 동아 일보 및 동아방송과 장기 광고게재 계약을 맺고 있던 A기업 등 대광고주들은 금년 1월 10 일께 전후해서 모두 광고계약을 해약, 동판이나 CM테이프를 회수해 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모 기관에 의한 광고탄압사태에 대해 광고주들은 한결같이 공식적으로는 社 의 형편 이 어려워 당분간 게재 중지하는 것 이라고만 말할 뿐 해약경위에 대해서는 밝히기를 꺼리 고 있다. 어떤 기업의 광고담당자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모두 다 아는 사실이 아니냐, 괴로 우니 더 이상 묻지 말아달라, 이런 사태가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니 다시 광고 낼 때까지 기다려 달라 고 말했다. 광고탄압이 본격화 된지 한 달이 지난 이날 현재 동아일보의 경우 평상시 통상 상품광고 의 98%가 떨어져 나갔으며 이중에는 월간 1백만원이상 대 광고주만도 20여개사나 들어 있 다. 동아방송의 경우도 평상시 하루 광고건수 1백30여건 가운데 65건이 해약했고, 1백만원 이상짜리 광고만도 26건이 떨어져 나갔다. 지난 20일을 전후해서는 군소광고주, 심지어 개 인병원이나 학원 광고 등 부정기 광고까지도 모두 끊겼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에서 광고를 탄압하는 모 기관 의 존재성을 분명하게 드러내었으 며, 광고주들을 불러 각서를 작성케 한 경위와 사례, 격려광고 게재자에 대한 압력 등에 대해서 보도하고 있다. 또한 동아일보는 면에 동아 광고 탄압 석 달째 접어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0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들어 제하의 다음과 같은 머리기사를 게재하였다. 배후지시자 불명 정상화 감감 구독 청취율 날로 증가, 수입 감소는 70%선에 압력 역겨워 격려광고 시민 분노 동아일보와 동아방송 및 월간 신동아, 여성동아 에 가해지고 있는 광고탄압은 26일로 만 두 달을 넘겨 3개월째로 접어들었으나 아직 해제될 기미도 없이 날로 우심해지고 있다. 동아일보 광고주에 대한 압력이 중앙정보부에 의해 가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알려 졌으나 광고탄압의 배후 책임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정부당국도 이에 대해 아직 명백한 해명을 않고 있다. 김종필 총리는 지난 6일 외신기자들과의 회견에서 동아일보사태는 확실히는 모르는 일 이라면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고 말했으나 광고탄압 지시자가 누구인 지, 해결책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지난 21일 박정희 대통령의 문공부 연두 순시에서 도 이원경 문공부 장관의 보고내용 가운데 동아사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현재 광고탄압 실태를 보면 동아일보의 경우 광고탄압 1개월째인 1월 25일에는 광고수 입(격려광고 제외)이 평상시 수주의 50%에 머물렀으나 2개월째인 25일 현재 감소액은 70%선에 이르고 있다. 12월 말부터 시작된 광고 압력으로 처음 한 달 동안에는 대광고주들이 무더기로 광고를 해약하는 사태를 빚었으며, 그 후 지금까지 1개월 동안에는 그나마 남았던 작은 광고들에 대한 압력이 가해져, 주로 사설학원광고를 비롯한 많은 광고들이 떨어져 나갔다.(25일자 본 보 7면 49) 참조) 광고압력의 실례로 M사의 모씨는 24일자 동아일보에 2단 8cm의 작은 광고를 냈다가 중 앙정보부의 모과장으로부터 출두하라는 통보를 받았으며, 한 미싱자수학원은 1단 5cm의 광고를 냈다는 이유로 모처에 불려가 동아일보 뿐 아니라 여성동아에도 광고를 내지 말라 는 압력을 받았다 고 밝히면서 이런 불쾌한 요구가 역겨워 여성동아 만에라도 광고를 내겠 다 고 분노를 토로했다. 김인호 광고국장은 26일 최근 과거의 동아일보 광고주들을 만났더니 한결같이 광고 압 력사태가 빨리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면서 국가와 독자, 광고주, 그리고 신문사를 위해 광고사태가 하루빨리 정상화 돼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위 기사에서 시간이 자나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는 김종필 총리의 발 49) 동아광고탄압 갈수록 심화, 사설학원에 까지 압력, 15개 학원의 연합모집공고 이유 안 밝히고 갑자기 취 소, 관계자들 모기관서 조사했다는 등 시교위서 엄포 제하의 기사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201

202 제4권 언과, 사설학원 광고 등 작은 광고 등에도 압력이 가해긴 경위를 보도하였다. 그리고, 있었던 제9대 국회본회의에서 당시 신민당 송원영 의원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대정부질의를 하였다. 나는 허다한 東 亞 廣 告 彈 壓 事 件 중에서 최근에 일어난 극히 일부를 이 자리에서 공 개하겠습니다. 提 報 한 사람들의 身 邊 安 全 을 위해서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것은 유감입니다. 어떤 카메라 商 이 5 萬 원자리 2 段 8cm 크기의 廣 告 를 동아일보에 냈다고 해서 지난 2월25일 상오 11시20분 중앙정보부 제6국102호실에 출두명령을 받았습니다. 어떤 기술학원을 경영하는 여인은 1만8,000원짜리 1단 광고를 냈다고 해서 중앙정보 부 제6국 105호실로 호출이 되었습니다. 지난 2월20일자 동아일보에 책 광고를 낸 D출판사는 뒤이어 들이닥친 세무서에서 장 부를 압수하는 등 갑작스럽게 세무사찰을 하는 바람에 회사가 쑥밭이 됐습니다. 지난 1월31일자 동아일보 7면에 명함4분의 1 크기의 3만 원짜리 악기점광고를 낸 모 상점은 하오 1시 반에 신문이 나왔는데 3시30분경 종로서 정보과원을 자칭하는 세 사람에 게 사장의 동생이 연행되어 한 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는데 왜 광고를 냈느냐고 추궁을 받 았으며 앞으로는 내지 말라고 강요당했습니다. 동아방송에 스팟트 광고를 낸 모 지방 주조회사는 중앙정보부 모 지방주재관실로부 터 광고해약의 압력을 받았는데, 그 회사의 말로는 동아에 광고를 내면 제품판매의 서울 진 출을 방해당하고 주류공급이 중지 당하고 세무사찰을 당하여 결국은 회사가 망한다고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50) 국정원발전위 보고서에는 중앙정보부가 5개 지부 조직을 동원하여 백지광고를 게재한 ROTC 출신 장교를 색출하였던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51) 중앙정보부는 단짜리로 자유언론 이라는 격려광고를 게재한 한양대 신문학 과 3회 출신의 ROTC 7기 장교 색출작업을 벌였다. 중앙정보부는 한양대학 ROTC 7기 임 관자가 총 169명이고, 그중 신문학과 출신이 6명임을 파악한 뒤, 광고게재 3일 뒤인 2월 8 일 각자의 본적지(서울, 경기, 경남, 전북, 충남)로 인적사항, 현거주지, 현 직업, 접촉인물 및 교우관계, 비위관계 등의 내용을 파악하라는 긴급 신원 내사 지시를 내렸고, 이후 해당 중정 지부에서 올라온 보고를 종합해 광고게재자로 추정되는 해당자에 대한 보고를 하였다. (전략) 50) 제9대 국회본회의 회의록, ) 국정원 발전위 보고서 언론 노동편,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0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의견 한양대 신문학과 3회 ROTC 7기 명의로 동아일보 격려광고 게재자는 동아일 보 천안지국장 최 로 인정됨으로 본건 동아일보 조사시 ROTC 7기 명의로 광고 게재한 저의를 규명함이 가하겠습니다. 이 보고 내용으로 보아 이후 중앙정보부에서는 최 에 대한 조사도 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박정희 대통령과 회담하였던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회고록에 의하면, 당시 동아일보 광고탄압에 박정희 대통령이 개입한 정황을 살펴볼 수 있다. 동아일보 광고사태는 1975년의 최대 사건이었다. 박정희는 언론자유를 주장한 동아일보 에 광고를 내지 못하도록 기업인들을 협박했다 광고주들이 동아일보에 대한 광고를 무더기 해약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사상 유례없는 광고탄압 이었다. 광고가 완전히 중단된 동아일보는 신민당을 비롯한 국민들의 성원에도 불구하고 존폐의 위기를 맞고 있 었다. 박정희와의 회담을 앞둔 어느 날 김상만 회장이 나를 급히 만나고 싶다고 요구해온 일이 있었다. 만나보니 몇 달째 계속되는 광고탄압으로 인해 신문사가 쓰러지게 됐다는 것이다. 김회장은 여러 가지 통로로 박정희에게 사정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다면서, 내가 박정희에 게 얘기해서 좀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동아일보 광고사태에 대해 박정희와의 회 담에서 중요한 의제로 다루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나는 영수회담에서 박정희에게 동아일보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했다. 박정희는 그 때 나 에게 동아일보 광고사태를 풀어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김총재뿐입니다 라고 말했다. 내 가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박정희는 동아일보가 괘씸하다면서 상기된 표정으로 동아일보를 비난하는 얘기를 늘어놓았다. 나는 동아일보는 일제 때 여러 차례 정간과 폐간을 당하면서도 끌고 나온 민족지다, 올 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의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해 무기 정간을 당하 기도 했다 고 설명하고 박정희가 이런 오랜 민족지를 문 닫게 하면 역사에 오명을 남기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또 국민들이 동아일보 광고사태를 언론탄압이라고 보고 있으 며, 공화당 정권에도 득이 될 것이 없으니 반드시 동아일보 광고사태를 풀어야 한다 는 취 지로 길게 설득했다. 박정희는 동아일보에 대한 험담을 길게 하고 나서야, 뜻을 잘 알겠으 니 내게 맡겨 주십시오 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에서 조만간 동아일보 광고사태가 풀릴 것 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청와대에서 나와서 김상만 회장을 만나 곧 해결될 것으로 본다고 말해주었다. 김회 장은 정말 고맙습니다. 내 대는 물론 자손들까지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203

204 제4권 하며 눈물까지 흘리며 감격해 했다. 결국 사태는 해결되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부터는 광고게재가 정상화되었다. 52) 또한, 박정희 정권 시절 소위 대미( 對 美 ) 로비스트로 활동했던 김한조 53) 에 대한 인터 뷰 내용을 다룬 코리아 게이트 의 내용에도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에 박정희 대통령 이 중앙정보부 신직수 부장에게 지시하여 광고탄압을 하였던 정황이 다음과 같이 기록 되어 있다. 김한조는 동아일보 탄압이 마음에 걸렸다. 각하, 동아일보문제는 손해 보는 일 같습니다. 미국의 언론들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세계의 언론들이 특유의 동지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아주 못 됐습니다. 일전에 WP지에서 나를 보고 세계에서 가장 위험스러운 인물 이라고 썼는데 동아일보가 그것을 그대로 전재했어요. 그래 내가 김일성이란 말이요? 일국의 대통령을 그렇게 부를 수 있어요? 김한조는 이 문제는 역설적으로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각하, 한번 NYT지도 같이 본때를 보여주시지요 아니 내가 어떻게. 각하, 미국에서는 언론의 비판을 받는다고 해서 반박하거나 보복하지 않습니다. 동아일 보는 민족지이고 미국에서도 잘 알려진 신문입니다. 괜히 건드려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 같 습니다 하긴, 한국에서는 신문이라면 동아일보 이지. 일제시대 우리 형님( 相 熙 )도 동아일보지 국장을 하셨지. 미국에서야 동아 라는 발음이 쉬워서 잘 알려졌을 거야. 박대통령은 그 이상 그 문제에 관해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박대통령이 신직수 부장에게 동아일보를 혼내주도록 지시했는데 양두원이 광고탄압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두원은 김한조 앞에서 백두진 국회의 장과의 통화를 하면서 스스로 진두지휘자임을 과시했던 것이다. 54) 김한조는 박대통령에게 한 묶음의 편지를 전했다. 이 편지는 무어요 제가 번역해 놓았으니 한번 읽어보십시오. 지난번 각하께서 인권문제, 종교탄압 그리고 52) 김영삼, 김영삼 회고록, 제2권 백산서당, 2000, 85-87쪽. 53) 이와 관련하여 대통령기록관에서 입수한 박정희 대통령 면접인사 기록부 에는 박정희 대통 령이 청와대 서재에서 김한조를 :37~15:22과 동년 :00~17:22 각각 면접하였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54) 이경재, 코리아게이트, 동아일보사, , 85-86쪽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0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동아일보 광고사태를 해결하시겠다는 약속을 전해 주었더니 미국의 친한파인사들이 매우 고맙다는 인사편지를 쓴 것입니다 아 그래요? 내가 잘했지요? 잘하셨습니다. 그러면 동아일보도 풀린 것이죠? 그럼 김박사 특청인데. 여기서도 야단들인데 어떻게 미국 친구들까지 그 야단인지 모 르겠어. 좀 버르장머리를 고쳐놓으려 한 건데. 박대통령은 이미 신직수부장에게 이 문제를 지시해놓고 있었고, 신부장은 양두원에게 지 시했다. 각하의 엄명인데 동아일보를 풀도록 하시오 언제는 혼을 내주라고 하더니 어느 때는 풀라니 참 어렵군요. 대통령께서는 명령만 하 시면 다 되는 줄 아시는 모양인데. 신부장과 양두원의 대화는 양두원이 김한조에게 전한 말이다. 양두원은 김박사가 무 슨 말씀을 박대통령에게 올렸는지 모르지만 참 한국에서는 일하기 힘듭니다 고 불평 비 슷하게 늘어놓았다. 그것은 김한조의 요청에 협조한다는 일종의 생색이 되었다. 당시 김 영삼 총재도 박 김 회담에서 동아일보 문제를 강력히 제기하여 단계적으로 푼다는 언질 을 받은 바 있다. 따라서 박대통령이 어느 편 말을 듣고 동아일보를 풀게 되었는지는 확 실치 않지만 여러 경로가 함께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55) 나) 진술청취결과 당시 태평양화학(주)의 선전 광고업무 책임자였던 신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56) 에서 초경 어느 날 강 사장님이 저를 사장실로 불러서 중앙정보부에서 전 화가 왔는데, 야 이거 뭐 동아일보사에 계속 광고를 집행할 거냐고 물어오는데 말이야, 어떻게 하면 좋겠냐 고 걱정하시면서 저에게 물었다. 저는 이미 다른 회사에도 동아일보 사에 광고를 끊으라는 압력이 들어왔던 것을 알고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른 회사 에서 하는 것 보면서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다 고 말씀드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동아일보사 김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중앙정보부에서 직접 사장님 한테 동아일보에 광고를 계속할 거냐고 전화까지 하는 상황인데 당분간 광고 내기 힘들 겠다 고 하니까 김 국장이 어떻게 알았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면서 지금 다른 회사 55) 이경재, 위의 책, 쪽. 김한조는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프로그램 38회 방영분 자유언 론실천 선언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도 이에 부합하는 진술을 하였다. 56) 신 진술조서 1회, 진술청취.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205

206 제4권 도 다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하고 답하였다 라고 하면서, 태평양화학에서는 동아일보사에 우리 태평양 광고 내지 말아라 하고 통보를 해주었 으나, 이후 동아일보사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여성동아> 1975년도 1월호에 태평양화학 의 광고가 게재된 데 이어 2월호에도 게재가 되었다. 이로 인해 당시 태평양화학 강 사장과 신 본인이 중앙정보부에 불려가 동아일보사에 왜 광고를 냈는지 동아일보 사에 광고비를 줬는지 를 추궁 받으며 조사를 받았다 고 하고, 중정 사람들이 전화로 알려준 대로 찾아갔죠. 그랬더니 처음에 커다란 철문이 있고 경비실에서 허리띠도 풀고 소지품을 전부 맡기고 중정 직원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저를 동행하여 어떤 방으로 데려갔습니다, 수사관으로 보이는 듯한 사람 2명이 교대로 들락날 락하면서 동아일보에 광고를 내고 돈을 줬느냐 하고 추궁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동아일보에 광고 낸 적 없다 고 대답해주었죠. 그랬더니 서회장(서 회장) 어디 있느 냐 고 물으면서 이거(동아일보사에 광고 난 것) 서회장도 다 아는 거 아니냐? 하면서 추 궁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거는 회장님도 잘 모르고 우리 회사에서 의뢰한 게 아니라 동아일보사에서 소위 뎁뽀 광고 57) 로 낸 것이다. 필요하면 내가 녹음테이프도 갖다주겠다 고 대답했더니, 그 중정 직원들이 녹음테이프 어디 있느냐 고 묻기에, 제가 제 책상에 있 습니다 했더니, 상급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와서 직원들한테 직접 데리고 가서 테이프 가 져오지 하고 지시를 하여서, 그 사람들하고 지프차 타고 회사에 가서 아까 말씀드린 김 인호 국장의 얘기가 녹음된 테이프하고 녹음기를 찾아가지고 다시 중정 조사실로 왔습니 다. 그랬더니 그 자리에 강 사장님이 와 계셨습니다. 그래서 아니, 사장님 언제 오셨 습니까 하고 여쭈었더니, 강 사장님이 지금 하고 대답하기에 그 얼굴을 쳐다보니까 나 이 많으신 분이 어찌나 겁에 질리셨던 것인지 입술이 새~파래져가지고 부들부들 떨고 계시더라고요. 그러자, 곧이어 아까 상급자처럼 보이던 사람이 다시 들어와서는 저에게 아니, 이런 게 있으면 진작 말하지 하면서 각서 를 쓰라고 하기에 무엇을 어떻게 써야 됩니까? 했더니 거기서 있었던 일은 외부에 나가서 일체 누설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보 안각서 였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쓰고 지장을 찍고서야 풀려난 적이 있습니다 라고 진술 하였다. 당시 안국약품 사장이었던 어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58) 에서 월 초순 경 57) 광고주의 계약과 무관하게 언론 매체사에서 일방적으로 내는 광고. 58) 어 진술조서 1회, 진술청취. 참고인 어 은 방영된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프로그램의 인터뷰에서도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각서를 작성할 것을 요구받은 내용을 밝힌 바 있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0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어느 날, 누구인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이 저에게 전화를 했는데 자기네 회사 과장이 저를 좀 뵙고 싶어 한다면서, 남산 밑에 위치한 세종호텔 안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하여 나갔는데, 저는 그때까지도 그 사람이 중앙정보부 소속 직원인지 누구인지 모르고 그냥 나갔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 사람 하는 말이 과장님이 일이 있어서 못 나왔는 데, 회사가 여기서 가까우니까 같이 좀 가자 고 하여 같이 따라갔는데, 가면서 보니까 그 유명한 남산의 중앙정보부로 안내를 하는 겁니다. 가니까 넓은 회의실 같은 방으로 안 내를 하여 들어갔는데, 저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조금 있으니까 책임자급 되어 보이는 사람이 가운데 나서면서 지금 뭐 국가가 어려우니 경제 계에 계신 분들이 뭐 협조를 좀 해 줘야 되겠다 하면서 말을 하더라고요. 그러자 다른 직 원들이 거기 모인 사람들한테 종이를 한 장씩 나눠주었는데, 종이에는 미리 등사기로 인 쇄한 글이 써져 있어서 이걸 읽어보니 앞으로 동아일보에 광고를 게재하지 않겠다 59) 는 말하자면 자기가 자율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형식으로 글이 써져 있는 거죠. 다 른 사람이나 외부의 어떤 강압이라든지 압력, 어떤 요구 같은 것이 없이 순수하게 자기가 자신의 의지로 동아일보에 광고를 게재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하는 일종의 각서였던 것입 니다. 그래서, 거기다 사인을 하면 다 나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그 종이에 다가 사인을 하고 나가는 상황이었고, 모 계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저한테 다가와서 종이 를 이제 수거하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니 내가 이거 꼭 사인을 해야 되는 거 냐? 하고 그 계장에게 따지듯이 물었더니 좀 기다리라면서 옆으로 제껴 놓더라고요. 그 리고 다른 사람들은 다 사인을 하고 나갔는데, 이제 그 넓은 회의실 같은 방에 저 혼자만 남은 겁니다. 그러곤 조금 전의 그 계장이 저에게 오더니 이제 그만 사인하고 나가는 것 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면서 좋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니, 당신 동아일보 59) 이와 유사한 경우였던 조선일보 광고탄압 시 중앙정보부가 광고주들에게 요구하였던 서약서 양식 2종이 중앙정보부 작성 문서 조선일보 광고업체 조정현황 에서 발견된다. 첫 번째 서약서 양식의 내 용은 본인은 영업상 여러 가지 광고를 게재하여 왔는바, 조선일보에 대하여는 기히 계약된 광고를 을 기하여 즉시 철회하겠으며 앞으로 귀부의 사전 승인 없이는 여하한 광고 또는 기타 이권에 관한 계약 일체를 체결하지 않을 것과 이런 사실을 누구에게도 누설하지 않겠음을 맹서하고 이에 서약서를 제 출합니다 서약자 라고 타자기로 작성 등사되었는데, 용지에 친필로 회사와 서약자 이름을 서명 무인하도록 되어 있다. 두 번째 서약서 양식에는 본인은 서기 197 년 월 일 중앙정보부를 출입함에 있어 귀부에서 견문하는 일체의 사항이 대한민국의 안전보장에 관계되는 기밀임을 인정하고 이를 타인에 게 누설하지 않을 것이며, 만일 누설한 때에는 법에 따라 어떠한 처벌이라도 감수할 것을 엄숙히 서약합 니다. 197 년 월 일 이라는 내용이 이미 인쇄된 서약서 용지에 서약인의 좌우수 무인을 찍도록 되어 있고, 본적, 주소, 직업, 성명 등의 란에 각 해당사항을 기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207

208 제4권 에다가 광고를 내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아느냐, 내가 정말 어렵게 어렵게 해서 광고를 내 려고 하는데, 이걸 하지 마라 하는 거는 나는 잘 납득이 안 간다 그랬더니 그 책임자 되 는 사람하고 자기들끼리 뭐라고 상의를 하더니 그 넓은 방에 저 혼자 남겨놓고 다들 나가 버리더라고요. 조금 있으려니까 어디선가 비명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는 거예요. 누군가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비명소리가 들려오는데, 처음에는 순간 긴장이 되었고 이게 잠깐 잠깐 들려오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들려와서 속으로 아, 이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공포감 같은 것을 줄려고 녹음테이프를 틀었구나 하고 생각하고 앉아 있는데, 약 2~3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제가 앉아서 깜박 졸았던 순간에 누군가 제 정강이를 팍 차기에 깜작 놀라서 눈을 떠보니 군 제복을 입은 사람이 앞에 떡 하니 서서 여기가 어딘데 졸고 앉아 있냐 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아까 그 계장하고 책임자 되는 사람들이 나오기에 제가 우리 안국약품처럼 조금이라도 상업광고를 하는 회사가 있어야 지금 정부가 광고탄압이라는 비난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는 거다 그리고 이미 계약도 된 거고 광고 크기도 1단 크 기로 작은 사이즈니까 크게 문제될 거 없지 않느냐 하면서 나름대로 설득을 시켰죠. 그 랬더니 일단 그냥 가라고 하면서 돌려보내더라고요. 그 후로 약 한 달간은 계속 광고를 냈는데, 한번은 동아일보사에서 저와 상의도 없이 그냥 5단 사이즈로 광고를 내보낸 적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중앙정보부에 다시 불려갔던 적이 있는데 그 땐 저도 별 수 없이 다신 동아일보에 광고를 게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와야 했습니다. 당시 중앙정보부 국내보안담당차장보였던 양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60) 에서 당시 동아일보사의 광고주들에 대해서 중앙정보부에서 전화로 동아일보사에 광고를 내지 말 아라 하는 일종의 뭐 요청이랄까 하는 것들이 진행된 것은 알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 다, 중앙정보부에서 당시 동아일보사의 광고주들에 대해 그러한 압력을 행사하였던 것 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한 사실을 국장들을 통해서 사후에 보고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 을 한다 고 진술하였다. 3) 조선일보에 대한 광고탄압 사례 한편, 국정원진실위 조사결과 중앙정보부가 동아일보 광고탄압에 앞서 조선일보에 대 해 광고탄압을 했음이 밝혀졌다. 중앙정보부에서 작성된 조선일보 광고게재 조정보고 라는 제목의 내부 문 60) 양 진술조서,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0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건을 보면, 중앙정보부가 부터 까지 약 6개월간 조선일보에 광고를 게재한 94개 업체의 광고게재 회수를 조사해 조선일보 광고업체 일람 이라는 제목의 보 고서를 작성했고, 또 5회 이상 광고를 게재한 36개 업체와 2회 광고를 게재한 광일화직을 포함한 37개 업체에 대해서는 :00 현재 조정완료 했다고 보고한 사실이 확 인되었다. 61) 그리고 위 조선일보 광고게재 조정보고 문건에는 아래 사본자료와 같이 당시 조선일보 광고주들의 서약서 사본이 첨부되어 있는데, 서약서는 미리 타이핑된 문 서에 광고주들이 서명을 하면 되는 형식의 것이었다. [자료사본 3] 조선일보에 대한 광고탄압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광고주들에게 요구한 서약서 사본. 62) 조선일보에 대한 광고탄압에서 중앙정보부는 우선 이튿날인 3. 6.자 조선일 61) 중앙정보부, 조선일보 광고게재 조정보고, ) 중앙정보부, 위 문건, 7쪽. - 서 약 서 - 본인은 영업상 여러 가지 광고를 게재하여 왔는바, 조선일보에 대 하여서는 기히 계약된 광고를 기하여 즉시 철회하겠으며, 앞으로 귀부의 사전 승인 없이는 여 하한 광고 또는 기타 이권에 관한 계약 일체를 체결하지 않을 것과 이런 사실을 누구에게도 누설하지 않 겠음을 맹서하고 이에 서약서를 제출합니다 서약자.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209

210 제4권 보에 광고를 게재하기로 되어 있던 9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정했는데, 중정은 해당 업체 광고담당자 및 회사 대표 등에게 3. 6.자 조선일보에 싣기로 되어 있던 광고를 전면 취소 토록 조정했다. 특히 3. 6.자 광고주 9명 중 6개사 대표에 대해서는 직접 중정으로 소환하여 3. 6.자 광고를 취소함은 물론 이후 중정 지시가 있을 때까지 조선일보에 광고 게재를 중지토록 조정한 후 보안각서를 징구하였다. 이 중 국제극장 전무이사 박 와 을지극장 대표이사 김 에 대한 조정결과 보고서의 일부 내용은 아래와 같다. 가) 조정사항 :00~ :30까지 上 記 박 로 하여금 조선일보사 광고부에 임하게 하 여 회사에서 조선일보 4면 4단 25행으로 광고(에덴의 동쪽)하던 것을 지방판 및 가판을 제외하고 시내판 광고는 취소 삭제하였으며, 이후는 당부 지시가 있을 시까지 조선일보에 광고를 게재치 않도록 하였음. 나) 억제상황 본명은 을지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오백화( 五 百 花 )의 광고를 7만원에 조선일보사 광고란에 게재 의뢰한 바 있는 자로서, 동 광고를 삭제하여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하여 :30부터 동일 24시간에 조선일보사에 임하여 의뢰한 광고를 삭제할 것을 강력히 요 청하는 억제 조치를 한 바 있고, 본명은 향후 當 局 의 지시에 순응할 것이며 앞으로 일체 광고 의뢰치 않을 것을 별 지와 같이 제출한 바 있음. 중앙정보부의 광고탄압에 의하여 조선일보 자 3 4면에 광고가 없어지고, 3. 8.자 면이 기사로만 채워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63) 국정원진실위는 이와 같은 중앙정보부의 광고 탄압에 대해 유신 선포 이후 사 회적 비판여론에 대한 통제와 권력기반을 확고히 해야 할 필요성, 당시 정권을 비판하는 언 론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 1973년 총선 승리라는 유리한 정치적 상황 조성 등 복합적인 배 경 아래 발생한 사건이라 분석하면서, 중앙정보부가 조선일보 광고주들에게 광고를 해약 취소하도록 압력을 가하였고 그 결과 신문경영에 타격을 가함으로써 언론사주를 굴복시키 는 새로운 형태의 언론통제 방식이라고 규정하였다. 64) 4) 소결 참고인들의 진술과 기존 출판물, 동아일보와 동아일보 노동조합 및 국정원진실위의 보 63) 조선일보 60년사 편찬위원회 편, 조선일보 60년사, 조선일보사, 1980, 쪽. 64) 국정원진실위,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언론 노동편 5, 국가정보원, 2007, 164쪽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1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고서 등을 종합하면, 중앙정보부는 1973년 조선일보를 상대로 실행하였던 광고탄압이 매 우 효과적인 언론통제방식이라는 점을 확인하였고, 이를 본격적으로 동아일보사에 적용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중앙정보부는 동아일보사와 계약한 광고주들을 남산 중앙정보부로 불러 동아일보와 동아방송, 여성동아, 신동아, 심지어는 동아연감에까지 광고취소와 광고 를 게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와 보안각서를 쓰게 하는 방법으로 광고탄압을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개인 소액광고주까지도 중앙정보부에 출두케 하거나, 경찰 정보과 직원이 연행하여 조사하거나, 세무서의 세무사찰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탄압을 하는 방식도 동 원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백지광고 사태에 직면하여 격려광고를 게재한 교수가 속한 학 교 등에 압력을 가하기도 하였고, 중앙정보부 지부망을 동원하여 ROTC 출신 광고 게재 자를 색출하기도 하였다. 이는 동아일보사에 경제적인 압박을 가함으로써 언론탄압을 하 였을 뿐 아니라 영업의 자유, 신체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나. 자유언론실천 활동과 광고탄압의 관련성 여부 신청인 등은 중앙정보부가 광고주를 직접 압박하여 동아일보사의 광고해약을 유도하 고, 동아일보사에 대한 경제적 통제 를 가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자유언론을 실천하고자 하는 기자들을 언론사의 손으로 해고 하도록 하는 언론사, 기자에 대해 탄압을 가하였다 고 주장하고 있다. 65) 1) 관련 사실 조사 당시 민주공화당 의장서리인 이효상( 李 孝 祥 )은 기자회견에서 최근 동아일 보와 동아방송의 광고 무더기해약사태의 원인에 대해 언론은 국가에 유익한 보도를 하 는 사회적 공기인데 아마 동아일보가 정부의 비위에 거슬리는 점이 있었지 않았나 추측 된다 고 밝히고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생각해보고 대처해 보다가 결국 안 되니까 마지막으로 이런 방법을 택했는지 그것은 모르겠으나 하여간 이런 상황 이 오래 계속되는 것은 좋지 못한 일 이라고 말했다. ( 중략 ) 그러나 이 의장서리는 동 아 광고문제에 대한 보충질문이 있자 광고문제는 광고를 내달라고 부탁한 사람과 신문 사와의 관계에 관한 문제 라고 당초의 답변내용을 수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66) 당시 태평양화학 광고 선전업무 책임자였던 신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중요 65) 이태호 진술조서 1회, 진술청취. 66) 동아일보, 면.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211

212 제4권 한 것은 당시 제가 근무하였던 태평양화학은 광고집행 규모에서 10대 주요 광고주 중에 서도 업계 1위를 지켜온 입장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 우리 회사가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나 광고비를 절감하기 위해서 여성동아나 동아방송에 대한 광고를 중단 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죠 67) 라고 진술하였다. 동아일보사 광고국장이었던 김인호는 당시에 동아일보가 모든 면에서 선두였습니다. 부수 면에서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격차가 너무 커서 조선일보는 경쟁상대가 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동아일보 기자들이 거의 전부 다 들고 일어나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니까 조선일보, 경향신문, 한국일보, 신아일보 등 주요 일간지와 지방지, 방송사 등 전국적으로 자유언론실천선언이 들불처럼 번지게 된 것입니다, 그동 안 금지된 것처럼 여겨졌던 학생들의 데모기사라든지 인권문제라든지 종교인들의 민주 주의를 열망하는 집회기사라든지 이런 것들이 보도되기 시작하니까 박정희 정권이 동아 일보를 탄압하기 위해서 언론사도 하나의 기업이니까 기업의 수입원을 끊어버리는, 봉쇄 하는 차원에서 광고탄압을 한 것이죠 68) 라고 진술하였다. 당시 중앙정보부 국내보안담당 차장보 양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69) 에서 경 퍼시픽호텔 안에 있는 일식집에서 김상만 동아일보사장과 만나 그때 최종적으로 제가 김상만 사장한테, 동아일보사에서 <개전의 정>을 표시하는 사과성명을 내라, 그리 고 편집국장 방송국장 정치 경제 사회 등 신문사의 주요 간부들의 인사에 있어서는 사전에 중앙정보부와 반드시 협의를 하라 는 광고탄압을 풀어주는 조건 70) 을 제시하였는 데, 김상만 사장이 그 조건을 수용하였습니다. 제가 그 결과를 신직수 부장한테 보고하자 바로 동아일보사에 대한 광고탄압을 해제하였던 것입니다 라면서, 위 김상만 사장과의 협상에서 동아일보사의 편집국장 등 주요 간부들의 인사에 있어 서 사전에 중앙정보부와 협의할 것을 요구 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래야 다음부터 동아일 보에서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기사를 게재하지 못할 것 아닙니까, 그렇지만 그것이 67) 신 진술조서 1회, 진술청취. 68) 김인호 진술조서 1회, 진술청취. 69) 양 진술조서 1회, 진술청취. 김상만이 작성하였다는 각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 에서 당시 협상 상대자였던 양 이 그 내용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과정에서 최초로 진술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동아일보 사사인 민족과 더불어 80년 에는 한 달간의 승강이 끝에 7월 15일 밤 드디어 동아일 보사와 중앙정보부가 합의했다. 정부에 대한 사과성명이나 사설 대신 긴급조치 9호를 준수한다 는 내용을 보도하는 선에서 타협을 본 것이다. 정부도 이를 눈치 채고 체면을 세우는 선에서 물러나기로 작정했던 것 같다. 이로써 실로 7개월 만에 광고탄압은 가까스로 막을 내렸다 라고 기재되어 있다. 70) 이동욱 주필은 당시 중앙정보부가 동아일보사의 지분을 요구하였다가 김상만 사장이 강하게 반발하였다 고 전언하였으나 양 은 지분 요구 자체를 부인하였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1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법적으로 어떤 구속력을 갖지는 않는 것이긴 하지만, 김상만 사장으로서는 내심 상당한 위압감을 느꼈을 것 이라고 하며, 그 요구대로 하지 않으면 또 다시 광고탄압을 받고, 또 다시 사세가 기울어지는 위기상황을 맞을 것 이라고 하면서 당시 시대상황에서 중앙정보 부의 요구를 함부로 거절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기 때문에 위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 이라고 진술하였다. 2) 소결 동아일보가 정부의 비위를 거슬렀을 것으로 추측된다는 민주공화당 의장서리인 이효 상의 발언, 광고 재개의 조건들이 중앙정보부가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기사를 게재하 였던 데 대한 사과성명 요구와 주요간부 인사 시 사전협의 요구인 점 그리고 관련자들의 진술과 동아일보의 보도내용 등을 종합하면, 중앙정보부가 동아일보사 광고탄압을 하였던 주된 의도는 동아일보가 박정희 대통령 의 비위에 거슬리는 보도를 하였을 뿐 아니라 박정희 정권의 언론통제에 맞서 동아일보 사 언론인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고, 이것이 타 언론사로 확산되자, 동아일보사의 경 영진을 굴복시켜 동아일보사를 정권에 순응하도록 하여, 결국 유신체제의 안정화와 정국 장악을 꾀하고자 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 언론인들의 해고 및 재취업 방해 과정에서 공권력의 개입 여부 1) 언론 관련 사건일지 조선일보, 동아일보 언론인의 해직이 있었고, 이어 기자협회보가 폐간 되는 등 한 달 동안 언론관련 사건들을 정리 71) 하면, 조선일보사, 해고된 기자 2명의 복직을 요구하며 100여 명의 기자들이 농성 71) 성명서, 동아일보 부 차장단의 결의 -동아투위( )는 기쁨과희망사목연구소 pp.430~431 참조; 성명서 조선일보기자들의 파면조치에 대하여 -민주회복국민회의( )는 위의 책 pp.444~445 참 조; 성명서 언론에대한 관권압력을 규탄한다 -민주회복국민회의( )는 위의 책 pp.445~447 참 조; 성명서 최근의 언론사태에 대한 우리의 견해 -신 구교합동기도회참석자일동( )은 위의 책 pp.448~450 참조; 결의문 동아일보기자들에 대한 탄압에 대하여 -동아투위 김종철기자( ) 는 위의 책 pp.450~454 참조;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기독교, 1983, 305~ 308p, 314p, 317p;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 1987, 1972p, 19747p;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 암흑속의 횃불, 가톨릭출판사, 1996, pp.261~263, pp.430~431, pp.444~454.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213

214 제4권 을 벌이자 주동자 5명을 또 해임 광고탄압을 받고 있는 동아일보사, 경비절감책으로 심의실 등 4개 부서 폐지. 기자 사 원 18명 해임 동아일보사, 자유언론투쟁위원회 장윤환 기자(문화부), 박지동 기자(외신부) 등 2명, 편 집방침 비판 이유로 해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조선일보사, 동아일보사의 기자 해고를 비판하는 결의문 채택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10월~12월 언론 상황에 대해 1언론탄압 즉각 중지 2기자협 의회 자유언론 실천선언 적극지지 3조선일보사, 기자신분 완전보장 4동아일보사, 언론탄압에 대항해 싸워 온 기자 해고가 동아일보사의 변절 아니길 바람 5언론자유 성취 시까지 계속투쟁 다짐 등 5개항을 담은 성명서 발표. 기자협회보 등록 취소( 기자협회보 로 복간) 조선일보 기자 4명 추가 해임, 37명 무기정직 처분. 동아일보 기자, 20명의 해임에 대해 항의성명 발표, 동아일보 기자 150여 명이 편집국에 서 집회 개최, 제작거부 주동자 17명 추가 해임 결정 NCC, 언론탄압과 동아 조선 기자들의 해직을 규탄하는 성명서 발표. 동아일보 기자 약 150여 명, 오전 9시부터 편집국서 집회 개최. 동아일보사는 자유언 론 압살하는 정부음모에 가담했다 고 항의성명 발표, 해고 철회, 이동욱 주필 퇴진 등 요 구, 신문, 방송, 잡지 3부문 파업 돌입, 동아일보사 경영진, 간부들의 손으로 신문 제작하고 기자들이 인쇄공장 점거하자 조선일보사에서 인쇄하여 5시간 늦게 석간 발행, 고바우 작 가 김성환 씨 제작거부에 동조, 기자들 동아일보는 부로 사멸했다 고 선언문 발 표, 심야 간부회의에서 제작거부 주동으로 기협 동아일보 분회장 권영자(문화부차장) 등 17 명 해임 결정, 기자들은 편집부 차장 안종필 기자 분회장으로 선출하여 임시집행부 발족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동아, 조선일보 기자 해임, 기자협회보 폐간은 현 정권의 언론 탄압 위한 음모 라고 성명발표, 조선일보 불매운동, 광고 취재 기타 일체 협력 거부방침 천명 기자협회, 전국시도지부 가맹사 분회장급 300명 소집 대책협의, 김병익 회장을 위원장 으로 언론자유 투쟁위원회 설치. 중앙일보, 동양방송 기자 150여 명 총회 개최하고 언론자유수호선언 채택, 조선, 동아 일보 기자 해임과 기자협회보 폐간조치 철회 등 요구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1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동아일보 기자들, 공무국 내에서 단식 돌입 조선일보사, 주간조선 을 돌연 폐간, 기자들이 즉각 성명 발표하여 철회를 촉구 사회단체들이 자유언론 지원 및 조선일보 불매운동을 전개하자 조선일보가 폭언을 1 면에 게재, 기자들이 성명서를 통해 회사도 자유언론의 대열에 나설 것을 촉구 송건호 동아일보 편집국장이 기자 대량해임에 항의 사표제출 자유언론실천 문인협의회 문학자 165명 연명의 성명서 기자협회에서 발표. 72) NCC, 해직 기자들의 복직을 촉구하는 동아일보 사태를 염려하는 NCC의 견해 발표 동아일보사, 새벽 3:30 시내 배달원 200명 동원, 2층 공무국, 3층 편집국, 4층 동아방송 에서 농성 중이던 기자 130여 명 전원을 실력으로 축출 기자협회 동아일보 분회, 인간의 기본권인 언론자유말살 불가하며 경영자 언론자유실 천 대열에 복귀하라 는 성명내고 항의행동속행 선언. 기자협회, 민주주의의 조종 듣는 듯한 절망적 분노, 슬픔 금할 수 없다. 언론자유 봉쇄 의 관헌 경영자 야합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고 성명 발표 동아일보사 농성기자들 폭력 축출에 농성기자들은 이제 동아는 동아가 아니다 라고 72) 최근의 사태에 대한 문학인 165인 선언 우리는 무엇이나 쉽사리 성취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협 회보> 등의 심각한 사태를 보고 통분을 금할 수 없다. 또한 시인 김지하씨가 석방된 지 1개월도 되지 않 아서 다시 구속된 사실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 1. <조선일보사>의 기자 해임 및 파면사태와 관련하여 신문은 독자와 국민의 공기( 公 器 )라는 사실을 재 확인한다. 우리는 <조선일보>가 민족의 대의와 자유를 위하여 싸운 지난날의 찬연한 명예를 다시 회 복하도록 강력히 촉구한다. 만약 이 사태가 정당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조선일보>의 존엄성 을 거부할 것이다. 2. <동아일보>에 벌어진 사태는 그동안 세계적인 양식( 良 識 )의 지원과 전 국민적인 성원을 배신한 일로 서 환멸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동아일보> 없이 자유실천에 어떤 가능성도 성립되지 않는다고 믿고 <동아일보>의 시련에 대하여 지속적인 뜻을 표시해왔다. 그리하여 동사의 기자들을 무더기 연속으로 파면 해임하는 일이 언론자유를 말살하는 또하나의 책동이라고 판단, 3월 8일 이전의 상태로 환원시 킬 것을 희망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동아일보>가 어떤 작위를 행사해도 국민은 앞으로의 <동아 일보>를 믿지 않을 것이다. 언론의 자유실천의 정통성은 경영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자에게 있다 는 사실을 엄숙히 확인한다. 3. 한국기자협회의 기관지 <기협회보>에 대한 주무당국의 폐간조처야말로 일련의 한국 언론에 대한 제도 적 탄압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자들의 유일한 호흡기관이라고 할 수 있으며 기자활동의 대 내적 무대인 <기협회보>를 폐간하는 일이야말로 언론의 암흑시대에 다름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 협 집행부와 각분회의 진지한 저항을 지원한다. 따라서 우리 문학인은 기자들의 자유실천에 대열을 함 께할 것이다. 4. 우리들의 동료시인 김지하씨의 거듭된 수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그의 수난이 문학의 표현과 관련된 사실을 환기하면서 그가 하루속히 돌아와서 극도로 악화된 심신을 정양하게 되기를 갈망한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215

216 제4권 천명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기자해직 사건에 대한 언론탄압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 발표 KSCF, 동아일보사 경영주 작태에 대한 성명서 발표 1동아사태는 민주세력과 비민주 세력간의 투쟁의 문제 2부당해고된 37명 기자에 격려, 감사 보내며 동료기자 복직 위해 투 쟁하는 전 동아 언론자유 투쟁위원회 활동 전폭지지 3부당해고 복직까지 동아일보 불매 운동 전개 4 동아돕기운동 을 동아기자돕기운동 으로 전환 5전국학생, 지식인, 언론인, 근 로자, 정당, 사회단체는 전 동아 언론자유 투쟁위원회 적극후원운동 전개 촉구 등 5개항 결의.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구성, 단식투쟁에 들어감, 동아일보 편집국장 송건호 다 시 사표제출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결성 자유언론실천 문인협의회, 언론계 현상과 표현의 자유에 관련하여 성명 발표, 해직기자 복직 실현까지 회원일동은 동아, 조선일보 전 간행물에 집필거부 결의 동아일보사 편집, 방송, 출판의 부차장급 7인 포함 12명 기자 해임, 7명 무기정직, 송건호 편집국장 사표수리, 까지 복귀 않는 기자, 전원해임 이라고 경고, 동아일보 해임 49명, 징계처분 56명에 이름 서울대 500여 명, 정부의 언론탄압 중지, 동아기자 복귀, 언론자유투쟁지지 동참 등 결 의문 채택 후 침묵시위, 가면극연구회, 문학회, 연극회, 3개 서클 공동으로 진동아굿 공연 기독교정의구현전국성직자단, 동아사태와 연세대사태에 대한 정부 측의 태도를 비판 하는 성명서 발표. 동아일보사 신춘문예출신 문학동우회 소속 문인 200여 명이 성명을 발표하고 해직사 원 복직될 때까지 동아에 대하여 집필을 거부한다고 선언. 2) 차 집단 해임과 제작거부 농성 광고탄압에 직면한 동아일보사는 자 신문 4면과 5면의 5단광고란에 자매 지인 신동아 와 여성동아 의 구독신청을 안내하는 문구를 조그맣게 게재하고 나머지 지 면은 백지상태인 이른바 백지광고 를 게재하여 발간 배포하였다. 73) 백지광고가 나가자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1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국민들의 격려광고가 쇄도하였다. 광고탄압 기간에 동아일보에 실린 격려광고는 1만 351 건이었고 판매부수는 오히려 12만 부가 늘었다. 74) 당시 박준규 민주공화당 정책위의장이 UPI와 기자회견을 하였는데, 동아일 보 광고해약 사태는 신문사와 광고주들 사이의 문제 라고 하면서도, 동아일보(사)는 지 금 기자들의 지배 아래 있다. 우리는 동아일보가 발행인이나 편집인들의 지배 아래 놓여 지기를 바란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사태 해결을 손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동아일보 의 주장이 통일되고 규율이 잡히기 전에는 아무도 이니시어티브를 취하지 않을 것이 다 75) 라고 하며 기사 및 편집에서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한 기자들의 배제가 광고탄압 해 결의 관건임을 시사하였다 동아일보사는 제49회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임기 만료된 이사 감사진을 개편하고, 첫째, 일부 사원들의 거듭되는 사규문란 행동을 주시하면서 모든 방법을 다하 여 조속히 사내의 질서와 기강을 확립할 것을 요망한다. 둘째, 경제난국을 극복하기 위하 여 불요불급한 사업과 기구를 정비하고 기타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경영을 합리 화할 것을 요망한다 76) 고 결의하였다. 이와 함께 박정희 대통령의 비상사태 선포 에 비판적인 사설을 게재한 것으로 인해 사직하였던 이동욱이 주주총회를 통해 새로운 주필에 선임되었고, 취임인사말을 통해 사내질서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사내질서 문제는 김상만 사장의 담 화문과 이동욱 주필의 취임사를 통해 강조된 데 이어 인사규정 과 복무규정 의 개 정으로 명문화되었다. 회사 측은 근무시간 내외를 막론하고 회사의 허가 없는 사내집회 를 금지한다 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규정을 새로 만들었다. 77) 송수항 기획조정위원은 부당인사조치 무효확인소송 법정증언에서 초부터 본격적으로 개정작업을 시작했으며 중순에 사장에게 초안을 제출했 었다 고 밝히고 사장으로부터 무단유인물 배포나 무단집회의 금지조항 등을 꼭 삽입하 라는 지시를 받았었다 고 증언했다. 78) 이어서 동아일보사 경영진은 (토) 오후 3시 심의실, 편집국 기획부와 과학 73) 김인호 진술조서 1회, 진술청취. 74) 동아일보 80년사 편찬위원회, 민족과 더불어 80년, 동아일보사, , 쪽. 75) 동아일보, 면. 76) 동아일보사노동조합 백서발간특별위원회, 동아자유언론실천운동백서, 1989, 98-99쪽. 77) 동아일보사, 동우, 쪽, 위 책자, 99쪽 재인용. 78) 동아일보사노동조합 백서발간특별위원회, 동아자유언론실천운동백서, 1989, 100쪽.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217

218 제4권 부, 출판국 출판부 등 1실 3부의 기구를 폐지하고 소속사원 18명을 사전통고도 없이 해임 한다 는 내용을 공고했다. 79) 같은 날 동아일보사 기자들은 <기자협회 동아일보분회>의 분회장선거를 위한 정기총 회 를 예정하고 있어,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신임 분회장 투표를 실시하여 분회장에 권영자(당시 문화부 차장), 자유언론실천특위 간사에 전임 분회장 장윤환 기자를 선출하 였다. 분회장 선출이 끝난 뒤 기자협회동아일보분회 집행부와 자유언론실천특별위원회는 소식지 <알림>이라는 1장짜리 유인물을 통해 다음과 같이 집단해직에 대한 대안을 제시 하였다. 우리는 이번 기자들의 집단해직 문제도 근본적으로는 회사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해결 하고자 합니다. 동아일보가 자유언론으로부터 후퇴하기를 결정하지 않은 이상 자유언론실 천을 위해, 동아의 명예를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진력해온 기자들을 해직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합니다. 경비절감을 위해 직원들을 집단해 직시킬 것이 아니라 직원 전원의 봉급을 인하함으로써 같은 효과를 거두라는 것입니다. 이 길만이 동아가 처한 난국을 가장 현명하고 명예롭게 수습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80) 권영자 분회장과 장윤환 전 분회장은 총회가 끝난 뒤 이동욱 주필을 만나 집단해임을 철회하는 대신 기자들의 봉급을 인하할 것을 결의한 총회의 내용을 건의했다 이동 욱 주필은 기자협회 동아분회 집행부와 다시 만난 자리에서 기구축소는 주주총회 에서 결정된 사항으로 번복할 수 없다는 것이 회사 입장이라고 밝혔다. 81) 이어서 동아일보사는 (월). 오후 6시 회사의 허가를 받지 않은 유인물 <알 림>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장윤환 기자를, 같은 날 집회에서 이동욱 주필을 모욕하는 발 언을 했다는 이유로 박지동 기자를 추가로 해임했다. 이와 관련하여 재야인사들이 김상만 사장을 면담, 해임 철회를 요구하였던 내용에 대 해 이우정은 열린 부당인사조치 무효확인 소송 5차 공판에서 다음과 같이 증 언하였다. 윤보선 대통령 부인 공덕귀 여사, 기독교장로회 주재숙 여신도연합회장, 서울연합회장 79) 위 책자, 102쪽. 3월 8일의 기구축소로 해임된 사원 18명은 다음과 같다. 심의실 김준철(실장서리), 유례 희, 김동흥, 신양휴, 노상우(이상 심의위원), 조동화, 홍선주(이상 방송심의위원) 편집국 기획부 김진배 (부장), 안성열(차장대우), 강순자 편집국 과학부 김재관(부장), 조학래, 오진환 출판국 출판부 이의식 (부장대우 차장), 이계익, 황명걸, 정흥열, 양한수. 80) 동아투위, 동아투위자유언론운동 13년사, 1987, 83-84쪽. 81) 동아일보사노동조합 백서발간특별위원회, 위 책자 104쪽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1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김명주, 총무 구충회, 기장총무 김윤옥씨 등 6인이 김상만 사장을 면담했을 때 김 사장이 광고 해약사태로 경영이 어려워 기구 축소했다 고 밝혔다. 이에 우리 신구종교단체에서 해임사원들의 인건비를 맡을 테니 복직시켜달라 고 했더니 경영난 때문이라기보다는 위 계질서 문란이 해임사유라고 번복했다. 그리고 송건호도 같은 공판에서 사원 18명을 해임할 때 사전협의를 한 바 없고 간부회의에서 사장이 주주총회 보고 형식으로 통보했다. 광고사태로 야기되는 경영난은 2, 3개월 후에 나타나는 것으로 들었으며, 무렵에 경영난이 심각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회사 측은 최근 취재범위가 줄어 기자 수를 줄여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사실은 그 반대로 출입처가 확대되어 몇몇 부장들이 기자 증원을 요청해오곤 했다. 감원해임 후 스스로 봉급을 깎아 함께 일하고 싶다는 기자들의 뜻을 전했으나 김상만 사장은 주주총 회의 결정이니 어쩔 수 없다 고 말했다. 언론사의 특수성으로 보아 기구축소를 하더라도 제작부서가 아닌 외곽 지원부서부터 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되며, 그렇지 않을 경우라 도 제작부서와 비제작부서 반반씩 감원하는 것이 마땅하다. 기구축소로 폐지된 기획부, 과학부, 출판부 등에는 노조임원이나 자유언론실천 특위원 등 회사 측에서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기자들이 많았다. 위계질서 문제는 제작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언론기 관은 속성상 위계질서가 엄격하지 않아서 언론보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될 때는 아랫사 람이 시정을 요구하거나 항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자유언론실천운동은 편집권 의 옹호와 회복운동이며, 이번에 해임된 기자들이 한 번도 독점적으로 편집권을 갖겠다 고 주장한 일이 없다 고 증언하였다. 82) 동아일보 기자들은 오전부터 3층 편집국에서 기자협회 동아일보분회집행 부의 제의로 긴급총회를 열어 기자협회 동아일보분회와 자유언론실천특별위원회에서 제 출한 <자유언론실천백서>와 <알림> 등 2가지 문건을 채택하고 해직사원 20명의 복직 과 이동욱 주필의 퇴진 을 요구하며 제작거부 농성에 들어갔다. <자유언론실천백서>는 선배 동료 20명에 대한 무더기 해임사태와 조선일보 동료 2명 해임, 14명 파면, 37명의 무기정직 사실에 봉착 하여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83) 먼저 위정자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당신들은 <동아>에 대한 광고탄압이 성공도 못 거 둔 채 국내외의 물의만 일으키는 역효과로 끝나자 이제 자유언론을 주장 실천하는 기자들 82) 1975년 열린 부당인사조치 무효 확인소송 5차 공판에서 원고인 동아투위 측 증인으로 나온 서울여 대 이우정 교수와 송건호 전 편집국장의 진술. 동아투위, 자유언론, 해담솔, 2005, 243쪽 83) 동아투위, 자유언론실천백서( ), 동아투위자유언론운동 13년사, 1987, 85-86쪽.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219

220 제4권 을 구조적 제도적으로 제거하려는 이른바 <언론유신> 작업을 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 중히, 그리고 대의에 입각해서 당신들의 자유언론 압살 망상을 걷어치울 것을 촉구합니다. 나라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이 당신들만 못하다고 절대로 생각하지 않기에 하향식으 로 강요된 국민총화가 가져올 결과가 과연 어떤 것인가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또한 이 모 든 결과로 고통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 수 있기에, 더욱이 이 모든 사태로 이득을 볼 자들이 누구인지 너무나 명백하기에 당신들에 대한 우리의 고언은 여기서 멈출 수 없는 것 입니다. 이제 우리는 당신들에 의해 지난 14년간 언론계에 가해진 협박 공갈 연행 조 정 강요된 부패에 종지부를 찍어야하겠습니다. 우리는 물론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도 말 입니다. 다음 언론계 경영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중략 ) 이 이상 부정 불륜한 권력과의 야합 결탁을 거두고 자유 진리 정의를 갈망하는 국민의 쪽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신청인 성유보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84) 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중순경부터 동아일보에 광고가 뚝 끊겼는데, 제가 기억하기로는 그때 동아일 보의 수익구조가 신문 판매수익과 광고수입이 약 5 : 5 쯤으로 광고가 수익의 절반을 차 지하고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고수익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상태 에서 경비절감의 필요성은 인정되었지만, 18명씩이나 대량으로 해고를 해버린 것은 납득 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때 우리 기자들은 그 해고사태가 정부의 광고탄압이라는 압력에 회사가 굴복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인식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날 있었던 정기총회에서 회사의 경영상 어 려움을 직원들도 함께 분담하겠다는 취지로 뜻을 모았는데 회사 측이 그걸 거부했기 때 문입니다. 경비절감을 위한 해고였다면 그런 건의를 거부할 리가 없었겠지요. 농성을 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에 동아일보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기자들을 해고한 것에 대한 항의였지만, 사실 그 제작거부농성은 당시 언론에 가해지는 정권의 압 력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언론의 자유를 지키려는 동아일보 기자들의 의지를 적극적으 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신청인 이태호 또한 당시 저희 기자들이 회사 측에 보십시오, 박 정권이 아무리 광고 를 끊고 탄압을 가해도 지금 국민들이 봇물 터진 것처럼 한푼 두푼 모아 격려광고를 보내 고 있습니다, 정 그렇게 해임까지 해야 된다면 우리가 월급 전체를 자진해서 감봉을 할 테니까 해임을 하지 말고 다 같이 근무할 수 있도록 하자 라는 구체적인 제안까지 했었습 84) 성유보 진술조서 1회,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2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니다. 그런데 회사 측에서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해임이 자기들 말처럼 뭐 기구축소니, 경영난 극복을 위한 것이니 하는 것들은 다 거짓 명분에 불과한 것입니 다 면서 우리 기자들이 물러선다면 정말로 우리나라에 진정한 자유언론은 사라질 것이 다 하는 절박함 속에서 신문과 방송의 제작을 거부하고 공무실을 점거하며 단식농성을 하는 등 극한의 방법으로써 항거를 하였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는 박정희 정권이 언론 을 자신의 편에 세우기 위해 먼저 우리 동아일보에 대해 탄압을 시작하는 출발이라고 본 것입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85) 김인호 광고국장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 제작거부와 함께 농성을 시작할 때도 기자들 이 그랬어요. 우리는 회사와 싸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적은 결코 우리 회사가 아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를 말살하려는 박정희 정권에 맞서서 싸우려는, 말하자면 항거를 하는 것이다 라면서 자신들의 적이 회사가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 왜냐하면 기 자들도 광고탄압이 청와대에서부터 시작된 것이고, 그 이유는 언론자유 수호의 선두에 서 있던 동아일보사를 굴복시키는 데 있는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가장 극한 수단으로 제작거부 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 기자들도 다 가족이 있고 처자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작거부로 인해 당하게 될 불이익까지 감수하겠다는 자세로 제작거 부 를 선택했던 것이죠 라고 진술하였다. 86) 3) 강제해산과 추가 해임 동아일보사는 기자들의 제작거부가 시작된 밤 11시경, 권영자 기자협회 동아일 보분회장과 김명걸 기자협회 부분회장 등 17명을 추가로 해임했다. 동아일보사 언론인들은 부터 새벽 강제해산될 때까지 공무국에서 기 자들 23명이 단식농성을 하였고, 3층 편집국에는 편집 출판국 소속 기자들이, 4층에서는 방송국 사원들이 함께 농성을 벌였다. 농성이 시작된 당일 차장급 8명이 제작거부에 들어 간 데 이어 에는 부장급 2명이, 에는 차장급 2명이 제작을 거부했다. 제작거부 농성을 벌인 부 차장은 모두 18명이었다. 제작거부 농성에 참여한 인원은 기준으로 부차장급 이상을 제외한 편집국 방송국 출판국 기자 150명(출장, 입원 등 유 고 13명 포함) 중 87명이었고, 50여 명만이 신문 방송 제작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 송국의 프로듀서 아나운서 엔지니어 등 사원 70명 중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은 1 85) 이태호 진술조서, 진술청취. 86) 김인호 진술조서 2회, 진술청취.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221

222 제4권 명뿐이라고 하고 있다. 87) 동아일보사는 부터 별관건물 주위에 제작거부 기자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가두판 매원 등을 배치했다. 당시 경비책임을 맡았던 조종명 판매2 부장대우는 부당인사조치 무 효확인소송 법정에서 오후 3시경 사장으로부터 제작을 계속할 사원들이 별관에 피신하여 신문제작을 할 예정인데 제작거부 사원들이 그곳에 몰려가 폭력으로 제작을 방 해할 염려가 있으니 별관을 잘 지키라 는 지시를 받았다 고 증언하였다. 88) 제작거부에 들어간 지 6일째인 새벽 3시경, 야간통행금지시간대 89) 에 동아일보사 2층 공무국 철문과 벽을 뜯어내는 용접기 소리와 해머소리가 나면서 강제해산이 시작되 었다. 조종명 판매2 부장대우는 위 법정에서 회사의 지시에 따라 17일 새벽 3시 15분경 경비과 직원, 보급소 총무, 가판구역장, 업무사원 80여 명 등 모두 2백여 명을 데리고 공 무국 내의 사원 구출작업을 시작했다 고 말했다. 90) 당시 총무국 인사부장 유옥재도 위 법정에서 부터 17. 사이에 경비직원 14명을 고용한 사실이 있다 면서 실력으로 신문방송 제작시설을 점거, 정상업 무 진행을 방해하고 있어 이를 제거해야 했는데 기존 경비직원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이들을 채용하게 됐다 고 증언했다. 91) 이와 관련하여 신청인 정동익은 당시 농성을 진압 하던 사람들 중 회사 직원이 아니라 무술 유단자 등 폭력배 출신의 사람이 있었다는 의혹 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동아일보사는 동아일보 1면 하단 광고란에 소수 과격분자들의 행위를 묵과하여 비정상적인 제작을 계속함으로써 더 이상 국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칠 수 없다고 판단, 본사 공구 광고판매국 사원 2백 명이 점거농성 사원을 해산시켰다 고 밝혔다 동아일보사는 송건호 편집국장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제작을 거부해온 부차장급 7 명을 포함 12명을 추가 해임하고, 방송국 사원 7명을 무기정직시키고, 출근을 거부 하는 사원 75명에 대해 무기정직 처분을 내린 데 이어 에는 기자협회 회장이었던 김 병익 기자, 5. 1.에는 임부섭 기자에게 각각 무기정직 처분을 내렸다. 한편 동아일보사에서 해임된 언론인들이 해고처분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하였는데, 87)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 책자, 92쪽. 88) 동아일보사노동조합 백서발간특별위원회, 동아자유언론실천운동백서, 1989, 115쪽. 89) 당시에는 0시부터 오전 4시까지 통행금지제도가 시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시각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 여 농성을 해산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권력의 개입과 협조가 있어야 했다. 90) 위 책, 쪽. 91) 위 책, 118쪽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2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대법원은 선고 78다304 등 사건 판결에서 업무실적이나 필요성이 별로 없는 원판시 1실 3부를 폐쇄하고, 그에 소속되어 있는 직 원을 감원 해임하기로 하여, 일부 사원들의 감봉 제의나 외부 사회단체의 봉급부담 제 의는 일시적이고 목가적인 조치에 불과하여 그것이 상당 기간 계속되고 또 피고회사(동 아일보사)의 경영상태를 호전시키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고 원고들이(징계처분 받은 기자 중 일부) 편집국 집회에서 피고회사(동아일 보사) 주필 이동욱 등 상사들에 대하여 모욕적인 발언을 하거나 방송제작 및 신문제작 거 부의 결의를 하고 방송국 주조정실을 점거하여 방송을 불가능케 하고, 방송실을 점거하 여 방송을 방해하였으며, 편집국 또는 공무국에서 농성을 하여 신문제작을 방해하였다, 원고(징계된 기자 등) 등 많은 사원들이 근무시간 중에 피고회사(동아일보사)의 허가 없 이 편집국 사무실에서 무단집회를 하고 피고회사 사규에 반하여 무단유인물을 제작 배포 하고 피고회사 사유와 지시에 반하여 한국기자협회 회장에 입후보 취임하고 신문 및 방 송제작을 거부하고 사무실과 시설을 점거 농성하여 해사행위를 하고 피고회사의 출근권 유를 거부하였다 고 하면서, 인사규정과 복무규정이 취업규칙의 일종 이라는 점과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작성 또 는 변경하는 경우에 당해 사업자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이와 같은 동의 없이 작성 또는 변 경된 취업규칙은 그 효력이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회사의 안위 와 존망이 경각 에 달려 있다는 점을 들어 징계처분의 효력이 취업규칙의 유무효로써 좌 우될 수 없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피고회사는 제작거부 출근거부 사원들을 여러모로 설득하여 정상업무에 복 귀할 것을 종용하고 이를 끝내 거부한 사원들에 대하여서만 징계처분을 하고 제작거부 의사를 번의하여 피고회사에 복귀한 사원들에 대하여는 아무런 문책도 하지 아니하였음 은 의용 증거들에 의하여 명백하므로 피고의 이 건 처분을 가리켜 형평의 원칙이나 평등 대우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는 원고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시한 것만으로는 미흡한 점 없지 아니하나 라고 하면서 판단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징계의 정당성을 인정하였 다. 그리고 경영난 때문에 기구를 폐지하고 소속인원을 해고한 사실이 인정되고 노조간 부나 실천특위 위원을 해고하기 위해 기구폐지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 면서 원심을 확정 했다. 동아일보사 언론인들의 대량해임 당시 경영진이었던 이동욱 주필은 2001년 MBC와의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223

224 제4권 인터뷰에서 에 해임된 18명에 대해서는 동아일보사가 책임이 있고 광고탄압이 해임 원인이었음을 인정하였지만 이후의 해임과 무기정직에 대해서는 그 책임을 부인하였다. 4) 동아투위 위원들에 대한 복직 및 재취업 방해 여부 해임기자들과 제작거부 농성에 가담했던 사원들은 신문회관에 모여 동아 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를 결성했다. 동아투위 위원장에는 권영자 전 문화부차장이 선 출되었는데, 해임자의 복직, 이동욱 주필과 이동수 방송국장의 퇴진 등을 요구하였고, 경까지 거의 매일 아침 출근시간에 회사 정문에 도열, 시위를 벌이면서 출근하는 사원들과 행인들에게 유인물을 나누어주었다 이래 5. 1.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49명이 해임되고 84명이 무기정직 처분을 당했다. 무기정직 처분을 당한 사원들 대부분은 6개월이 지나도록 회사 측으로부터 복직 명령이 없어 결국 해임되었다. 92) 동아일보사는 부당인사조치 무효확인소송 등의 재판과정에서, 제작거부의 사를 밝혔다가 다시 회사에 출근한 사원들의 수효가 48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신청인 김학천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93) 에서 회사에서 무기정직당한 사람들 을 대상으로 잘못했다는 각서를 쓰고 들어오라 는 제안을 해서 우리가 대책회의를 하면 서 이렇게 살기가 어려우니, 정권에 굴복하고 들어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뒤에 서 뭐라고 비난하거나 흉보지 말자 라고 하여 저와 몇몇 동아투위 동지들이 회사의 간부 들에게 그래, 복귀하겠다 는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회사에서는 그런 사람들 의 회사 복귀의사를 수용하지 않고 이를 내쳤습니다. 복귀 허가가 안 났으니, 회사가 이 를 수용하지 않은 것이지요. 그런데 회사에서는 복귀의사를 전달한 사람들 중에서 일부 사람들만 복귀를 받아들였 는데, 방송국의 경우 약 50여 명의 무기정직자 중 몇 명 정도가 복귀신청을 했는지는 모 르나, 최종적으로는 3명이 다시 복귀하였으며, 그 3명도 처음에는 다 동아방송으로 복귀 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일보와 동양방송(TBC)으로 이직했던 것으로 알고 있고, 그중 한 명은 법원 출입기자 근무 명을 받았는데, 당시 법원 출입기자의 주 업무가 민주 인권사건 일지나 긴급조치 위반 등의 죄목으로 연행된 동아투위 위원들의 재판을 취재하 는 것이어서 그러한 비극을 참지 못하고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표를 제출했던 것으 92) 동아일보사노동조합 백서발간특별위원회, 동아자유언론실천운동백서, 1989, 124쪽. 93) 김학천 진술조서,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2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경우처럼 회사에 복귀신청을 했는데, 회사가 이를 수용하 지 않아 회사의 말처럼 복귀를 하고 싶어도 복귀하지 못했던 동아투위 위원들이 여러 명 있었습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이동욱 주필은 지난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94) 왜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동아일보 다시 들어오겠다고 야단합니까? 그때도 하나하나, 우 리 들어오라 그랬어요. 하나하나 각서 쓰고 들어오라. 그렇지 않고 떼거지로 들어오면 여기 일 하는 사람들, 벌써부터 동아일보 지키고 있던 제작파하고 제작거부파가 있지 않습니까? 제작파하고 나중에 제작거부파하고 또 싸움이 붙어요. 그러니까 한 사람 하나씩 각서 쓰고 들어오라. 한 사람 하나씩 쓰고 들어와 일들 하고 있는 사람들 있습니다. 몇 명. 한편, 1980년 신군부에 의한 언론통폐합 과정에서 정화언론인 타 업종 취업허용 건의 가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소속 언론인들과 이에 관계된 언 론인들이 타 업종으로 취업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허 95) 했던 것이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 위원회 조사결과 확인되었다. 정화 언론인 타 업종 취업 허용 건의 96) 1. 개요 자율정화 언론인 711명 중 국시부정 및 극렬 반정부자 28명을 제외한 인원에 대하여 1차 순화시킨 후, 타업종 취업 허용 건의임. 2. 현황 구분 총인원 타 업종 취업 가능자 *취업불허 대상자 비고 계 중 앙 지 방 언론사 및 관공서 취업불허 94) 영치물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자유언론실천선언 이동욱 인터뷰( ), 녹취록 12쪽. 95)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신군부의 언론통제사건조사결과보고서, 52쪽. 보안사는 강제해직된 언론 인의 취업을 제한하기 위하여 총무처 비위관련 공직자 취업제한 기준에 준하여 형평을 유지하기 위한 취 업제한 이라는 명분으로 정화언론인 취업허용 제한기준 을 만들었다. 해직언론인은 공무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총무처 비위관계 공직자 취업제한 규정을 적용하였고, 언론사 및 관계단체, 공무원, 국영업체, 정부투자 및 출자법인과 단체에 취업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사기업의 홍보 및 광고 담당 요원까지를 해직 언론인의 취업을 제한하였다. 96) 보안사에서 작성하여 노태우 사령관의 결재를 받은 문서.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225

226 제4권 3. 문제점 다수 인원 생계위협 받을 시 반정부 불평집단화 가능성 있음. 4. 해결방안 가. 국시부정 및 극렬 반정부행위자 28명은 일정 기간 취업불허 (정화공무원에 대한 국가방침에 준함) 나. 취업가능자에 대해서는 퇴직사의 재직증명발급시 자연스럽게 각서접수, 문공부에 제출케 하여 간접적으로 순화시킨 후 타 업종에 취업허용을 건의합니다. 97) 문화공보부에서 경 작성한 정화 언론인 취업문제 라는 문서에도 해직 언론인 에 대한 취업을 제한할 때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이 각각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98) 문제점 대부분이 의식분자이며, 부유하지 않은 실정으로 제작시 반정부 불평 집단화할 것임 동아, 조선투위와 같이 집단행동을 벌일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안정되고 있는 기 존 언론인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며, 내외 언론에 부정적 요인이 될 것임 소수의 반체제 분자 이외 언론 이외 분야의 취업을 막아야 할 이유와 명분이 희박함 해결방안 가. 소수의 악질적인 반정부 반체제 분자 이외의 해임자들에 대해서는 언론 이외 타 분 야의 취업을 허용함 나. 단 취업자에 대하여는 향후 반시국적 언동을 하지 않음은 물론 새시대의 국가건설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겠다는 각서를 징구함. 퇴직 언론사에서 재직증명 발급시, 각서 징구 문 공부에 제출 다. 취업허용방침은 언론인 등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알려지도록 함 (현재 각 기업체는 정부방침을 몰라 취업 기피 경향) 위 보안사 작성 문건에 첨부된 취업불허 대상자 명단(28명분) 중 동아일보사 소속 5명 의 언론인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들의 취업불허 사유를 보면 다음과 같다. 99) 97)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언론통제사건조사기록 2, 쪽. 98)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신군부의 언론통제사건조사결과보고서, 55쪽. 99)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위 책, 275쪽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2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사별 성명 직위 내용 요지 박권상 논설주간 72년도 대통령 선거 시 김대중 일방적 지지 김대중 정계 출현 부각을 간접 지지 본명은 평소 반정부 비판 자세 견지 동아 박병서 문화부 기자 본명은 동아투위 가담자로 자유언론실천을 위한 선언문 채택시 투위 복직 주장 제작거부 주동인물 강성재 정치부 기자 본명은 동아투위 가담자들과 친교, 제작거부시 주동인물임. 김용정 경제부 기자 강성재와 동일 윤재걸 출판국 기자 강성재와 동일 그리고 보안사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측되는 위해요인자(정화 언론인) 등은 해직 언 론인 49명을 A, B, C, D등급으로 구분하여 이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동향 내용에 따라 수 시로 등급을 조정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100), 여기에 동아일보사 해직언론인과 조선일 보사 해직언론인이 포함되어 적어도 등급조정 날짜인 경까지 지속적으로 감시 및 통제를 받아왔음이 드러났다. 등 급 인 원 내 용 A급 3명 B급 7명 - 극렬비판 인물로 순화가 불가능한 자 - 위해도가 현저하여 계속적인 감시가 필요한 자 - 비판활동 재개 가능성이 농후한 자 - 순화와 미행, 감시가 요구되는 자 C급 D급 17명 22명 - 비판성향은 잠재해 있으나 특이동향 없는 자 - 순화만으로 회유가능성이 있는 자 - 문제성은 있으나 자숙하면서 생계에 전념중인 자 - 현재로서는 거주파악 외 별도의 조치가 불필요한 자 100)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신군부의 언론통제사건조사결과보고서, 56쪽. 101) 조정내용 란의 등급조정일로 미루어볼 때, 이 문서는 경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써 보안사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227

228 제4권 등 급 성 명 직 업 조 정 내 용 101) B급 이 협 전 김대중비서 A급에서 하향조정 C급 천승준 전 DBS 방송위원 B급에서 하향조정 D급 박종렬 전 DBS 기자 C급에서 하향조정 이 형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박정삼 전 서울경제 기자 노향기 전 한국일보 기자 박종만 전 동아일보 기자 성유보 전 동아일보 기자 윤활식 전 동아방송 차장 정윤수 전 동아일보 기자 백기범 전 조선일보 기자 5) 소결 중앙정보부는 그동안 주요 광고주는 물론 탄압 이후 국민들의 격려광고에 대해서도 계 속 정보를 수집하고 간여해왔다. 민주공화당 정책위의장 박준규는 동아사태의 해결을 위 해서는 동아일보사가 발행인이나 편집인 지배하에 놓여야 한다고 정부의 의사를 표명했 으며, 이러한 발언이 있은 이후 동아일보사 주주총회와 이사회가 조직축소와 해임조치를 의결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이를 두고 뒷날 이동욱 주필은 해임이 광고탄압 때문 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맞서 동아일보사 직원들은 경영상의 압박을 줄여주기 위해 스스로 감봉을 결의하였고, 재야인사들도 해임사원 임금지원 등을 제의했지만 사측은 이 를 묵살했다. 동아일보사 언론인들의 해임 시기에 조선일보사에서도 언론인의 해임이 있었고, 기자 협회보도 폐간 당했다. 당시 중앙정보부의 광고탄압이 한창인 상태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간섭과 개입 없이 개별 언론사들 임의대로 기자들을 해임시켰다고 보기 어렵다. 중앙정 보부의 광고탄압 의도는 언론사를 압박하여 정부에 저항하는 기자들을 무력화시키고 언 에서 적어도 경까지는 해직언론인의 동향을 파악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문서는 확보하지 못했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2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론사를 통제 가능한 상태에 두려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기자들의 해임 및 무기 정직이 마무리될 즈음에 중앙정보부와 동아일보사의 협상이 시작된 것이다. 중앙정보부 는 광고를 다시 싣기 위해서는 인사문제가 핵심이라고 여겼는데, 이는 언론통폐합 당시에도 보안사 및 문화공보부가 작성한 문서에서 해임된 언론인들의 재취업을 제한하 면서 동아, 조선투위와 같이 집단행동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래서 해 임된 언론인들을 위해요인자 로 낙인찍어 경까지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관리해 왔으며, 동아투위 해임자들과 친교를 맺고 있다는 이유 등으로 강제해임된 언론인 들마저 재취업을 봉쇄하였다. 이상의 사실들로, 동아일보사가 박정희 정권의 광고탄압을 통한 압력에 굴복하여 정권 의 요구대로 자사 언론인들을 해임하였던 것으로 판단되고, 이후 소수가 선별 복직되었 으나, 여타의 해직언론인들은 1980년대 초반까지도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에 의해 재취업 이 봉쇄되고 지속적인 감시 및 관리를 받아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아일보사에서 해임 된 언론인들이 해고처분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대법원은 이를 심의하면서 중앙정 보부 등에 의한 위법한 공권력의 압력은 고려하지 않았다. Ⅲ. 결론 및 권고사항 1. 결론 조사결과 박정희 유신정권 하에서 언론자유는 헌법과 긴급조치를 비롯한 각종 법률적 규제와 행정조치들로 인해 많은 제약과 규제를 받았다. 관련부처인 문화공보부도 언론사 에 대한 간섭과 통제를 행하였지만, 특히 중앙정보부는 직무범위를 벗어나 언론통제의 모든 역할을 주도하였다. 중앙정보부는 각 언론사별로 담당자를 두고, 이들을 통해 보도 제한조치 이행 요구, 기사의 방향설정, 기사의 크기 등을 조정했으며, 이를 따르지 않는 언론인들에 대해서는 기자, 주필, 이사, 사주 등 직위를 가리지 않고 회유, 협박, 연행, 폭 행, 고문, 사표종용, 해임압력 등을 행사하였다. 이 같은 정부의 언론탄압에 맞서 동아일보사의 언론인들은 세 차례에 걸쳐 언론자유수 호선언을 발표하였지만 언론통제를 향한 당국의 압박은 갈수록 심해졌다 동아일보 송건호 편집국장이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자 이에 동아일보의 언론인들은 자유 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고 항의농성에 돌입하였으며, 전국의 여러 언론사들에서도 지지하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229

230 제4권 고 동참하는 선언이 이어졌다. 정부는 이미 1973년에 조선일보를 상대로 광고탄압방식을 실행하여 효과를 보았던 수 단, 즉 광고 수주를 차단하여 경영상의 압박을 가함으로써 언론사 사주를 굴복시키는 방 식으로 동아일보사를 탄압하였다. 광고주들을 중앙정보부 남산 조사실로 불러 동아일보 와 동아방송, 여성동아, 신동아, 심지어는 동아연감에까지 계약된 광고를 취소케 하였고, 광고를 게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와 보안각서를 쓰게 하였다. 개인 소액광고주에게까지 이러한 위압을 행사하였다. 광고면이 백지상태로 발간되는 동아일보를 지원하고 격려하 기 위한 시민들의 격려광고에 대해서도 당국은 조사하여 압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격려광고를 낸 교수의 소속 학교 등에도 압력을 가하였고, ROTC 출신이라 게재된 격려 광고 지지자를 색출하기 위해 중정 지부조직을 동원하여 대대적인 조사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는 동아일보사에 대한 부당한 탄압일 뿐 아니라 언론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 헌 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히 훼손하고 침해한 것이다. 한편 동아일보사는 부터 5. 1.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49명을 해임하고 84명 을 무기정직 처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민주공화당 정책위의장 박준규가 동아일 보사는 발행인이나 편집인 지배하에 놓여야 사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발언한 이후 취해 졌으며, 또 이러한 인사조치에 대한 동아일보 언론인들의 항의농성도 통행금지가 있던 새벽에 정부의 비호 아래 동원된 인력에 의해 강제해산되었다. 같은 시기에 조선일보사 에서도 언론인들이 대량해임되었고 기자협회보도 폐간되었다. 언론인들의 해임 및 무기 정직 이후에 중앙정보부와 동아일보사의 협상이 이루어졌으며, 광고 재개 조건에서 동아 일보사의 인사문제가 거론되었고, 그리고 동아일보사 이동욱 주필이 해임의 원인은 광고탄압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하여 판단할 때 동아일보사는 언론자유 수호에 앞장선 언론인들 을 위법한 공권력의 압력에 굴복 순응하여 정부의 요구에 따라 대량해임 무기정직 시 킨 것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비록 정부의 광고탄압으로 인한 경영상의 압박을 견디기 어려웠다고 하더라도, 동아일보사도 정부의 강압을 기화로 언론자유 수호에 앞장선 언론 인들을 탄압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고 하겠다. 중앙정보부 및 문화공보부 등 당국은 자유언론실천을 주장하는 기자들을 해임 또는 무 기정직 시키도록 압력을 행사했고, 복직도 막았으며, 재취업마저 방해하였다. 이는 비판 언론과 언론인을 언론계에서 추방 격리시켜야 한다는 유신정권의 언론통제 방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침내 정부의 치밀한 주도 하에 진행된 일련의 탄압조치로 비판언론 거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3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세라는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판단되자 동아일보 광고탄압을 해제하였다. 곧 전대 미문의 동아 광고탄압과 언론인 대량해임은 유신정권의 언론탄압정책에 따라 자행된, 현 저히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행위였다. 동아일보사는 비록 광고탄압이라는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야기된 경영상의 압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동아일보사의 명예와 언론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헌신해왔던 자사 언 론인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정권의 요구대로 해임함으로써 유신정권의 부당한 요구에 굴 복하고 말았다. 더욱이 사측은 이후에도 정권의 강압에 의한 해임이라는 점을 시인하지 않고 경영상의 이유로 해임하였다고 주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유신정권의 언론탄압에 동조하였으며, 언론의 자유와 언론인들의 생존권 침해를 초래하였다. 2. 권고사항 이상과 같이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기본법 제4장에 따라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가 행 할 조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국가는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에서 동아일보사 및 언론인들을 탄압하여 언론의 자유 를 침해하고, 언론인들을 강제로 해임시키도록 한 행위에 대해 동아일보사 및 해임된 언 론인들에게 사과하고, 피해자들의 언론자유 수호 노력에 대해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도 록 해야 한다. 아울러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통해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아일보사는 비록 정부의 편집권에 대한 간섭과 물리적인 압력, 그리고 광고 탄압을 통한 경영상의 압력 등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피해자의 처지에 있었다 하더라도 결국 정 부의 압력에 굴복하고, 또 정부 압력을 기화로 언론인들을 대량해임시킨 책임이 있음을 부인키 어렵다. 그럼에도 이후 민주화의 진전으로 언론자유가 신장되었고 권력의 간섭이 사라진 후에도 이들에 대한 아무런 구제조치도 취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법률적 의무 여부를 떠나 피해자인 해직된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 등 언론인들에게 사과하고 피해 자들의 명예회복과 피해회복을 통해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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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김철 간첩조작 의혹 사건 결정사안 신청인 김철이 수사기관에서의 불법구금, 고문 및 가혹행위, 조작된 증거물 제출 및 참 고인들의 허위증언으로 인해 간첩으로 조작되어 처벌받게 된 사건에 대하여 진실규명 결 정을 내리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 한 사례. 결정요지 1. 치안본부는 정숙이의 아버지 정춘식이 조총련 간부라는 추정 하에 명백한 증거자료 없이 정숙이를 북한공작원으로 상정하고, 불법구금과 구금장소의 위법한 임의적 변경, 고 문 및 가혹행위를 통하여 신청인의 허위자백을 받아내고, 증거물을 조작하고, 참고인의 진술과 증언을 허위로 유도하였다. 2. 검찰은 피고인의 고문과 허위자백에 대한 진술을 무시하고 검찰작성의 피의자신문 조서만을 작성하는 자백 위주의 수사로 일관하였고, 법원도 이러한 위법한 증거로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의 유죄판결을 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이다. 3. 수사기관에서의 6일간의 불법구금, 고문 및 가혹행위, 참고인들의 허위증언, 수사관 의 증거물 조작과 허위진술 요구 및 조작된 증거물 제출은 각 형법에 정한 범죄에 해당하 며 형사소송법 제420조1호, 7호, 제422조 소정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전 문 사 건 바-157 김철 간첩조작의혹 사건 신청인 김 철 결정일 주 문 이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진실규명 으로 결정한다. 김철 간첩조작 의혹 사건 233

234 제4권 이 유 Ⅰ. 조사개요 1. 사건개요 가. 사건요지 신청인 김철(이하 신청인 이라 한다)은 재미교포( 경 이민)로서 무역업에 종사 하던 중, 경 동업자 정숙이(여, 재미교포)의 부탁으로 일본 거주 정춘식(정숙 이의 부친, 전 재일조선인총연합[이하 조총련 이라 한다] 중앙위원)을 일본 나리따공항에 서 잠시 만나고 귀국하였다. 신청인은 미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입국하였는데 ) 서울시 강남구 소재 로마모텔에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로 영장 없이 연행되어 까지 약 24일간 정춘식과 만난 사실에 대하여 조사를 받은 뒤, 서울지방검찰청(이하 서울지검 이라 한다)에 송치되어 조사를 받고 국가보안법 제4조제1항2호(목적수행), 제5조제2항(금품수수), 제6조 제2항(잠입), 제7조제1항(찬양고무), 제8조제1항(통신연락) 위반죄로 기소되었고, 서울지방법원(이하 서울지법 이라 한다)에서 목적수행 간첩의 점에 무죄 를 받았으나 항소하고, 서울고등법원(이하 서울고법 이라 한다)에서 1심 무죄 부분이 공 소장 변경으로 다시 유죄선고를 받아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을 선고받아 상고하고, 대법원에서 연락 통신의 점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고 파기환송되었고, 서울고법에서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아 상고하고, 대법원에 서 상소 기각 받아 형이 확정되어 복역 중, 가석방되었다. 나. 판결요지 피고인 김철은 미국으로 이민 간 후, 경 재미교포 정숙이로부터 동업 제의를 받고, 1) :00경 일본 나리따공항에서 정숙이의 부친 정춘식(68세, 조총련 중앙 위원, 동해상사 감사역)을 만나, 정춘식으로부터 김일성 선집 1권을 전달받는 등 반국가 1) 수사기록에는 연행된 것으로 되어 있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3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단체의 구성원과 회합하고, 2) 같은 날 위 정춘식의 지시에 따라 김일성 선집 이 들어 있는 가죽가방을 소지한 채 대한민국에 입국함으로써 잠입하고, 3) 위 정춘식으로부터 사업자금 명목으로 총 36,456,000엔을 송금 받아 인출함으로써 금품을 수수하고, 4) 경 처 유 에게 둘째딸 김 를 입북시키고, 같은 해 경 내연의 처 양 에게 그녀의 아들 강 을 대동하여 입북할 것을 제의하고, 같은 해 11. 중순경부 터 12.경 까지 사이에 수회에 걸쳐 위 양 의 집에서 북한방송을 청취하며 지령을 받는 등 공작활동을 하다가, :30경 서울 프라자호텔 지하 레스토랑에서 정숙이로부터 군사시설 보 호구역 현황표 와 홍천군 소재 군부대 필름 을 전달받고, 정숙이의 지시에 따 라 조 명불상자에게 한국 군 주요장성명단 을 전달받아, 천안시 문화동 소재 양 의 집 에 은닉 보관하는 등 국가기밀을 전달하려다가 검거됨으로써 미수에 그치고, 5) 하순경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케스시 소재 피고인의 집 뒷산 등산로에서 강 에게 김일성과 김일성의 아버지가 항일투쟁을 하였으니 애국자라고 말하는 등 반 국가단체의 구성원과 그 활동을 찬양함으로써 이를 이롭게 한 것이다. 다. 신청취지 신청인은 치안본부 수사관들로부터 강제연행된 후, 불법구금상태에서 가혹행위를 받고 간첩행위 등을 허위자백을 하여 범죄행위가 조작되었다며, 진실 화해를위 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 라 한다)에 진실규명을 신청하였다. 2. 조사의 근거와 목적 이 사건은 신청인이 치안본부 수사관들에 의해 불법구금된 채 구타, 물고문, 잠 안 재 우기 등의 가혹행위로 인해 허위자백하여 범죄사실이 조작되었다는 것이므로 진실 화 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이하 기본법 이라 한다)이 정한 진실규명의 범위에 해당 하고, 수사관들의 불법구금, 가혹행위 등은 형사소송법 제420조7호, 제422조의 재심사유 에 해당하고 기본법 제2조제2항의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은 형사소송법상 재심사 유가 있어야 조사개시 할 수 있다는 요건에 충족된다. 김철 간첩조작 의혹 사건 235

236 제4권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신청인에 대한 중대한 인권침해행위를 규명하고, 기본법 제4장이 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국가로 하여금 신청인과 그 가족의 피 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법적 정치적 화해조 치, 국민통합을 위한 필요한 조치 등을 취할 필요성을 인정하여 조사개시를 의결하고 조사를 진행하였다. 3. 규명과제 가. 불법구금 여부 신청인은 치안본부 수사관들에 의해 구속영장 없이 강제연행되어 구속영장이 발부되었고, 검찰에 송치될 때까지 19일 동안 구속영장의 기재와 다 른 유치장소에서 수사를 받았다고 하므로 불법구금 등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나. 가혹행위 여부 신청인은 치안본부 수사관들에 의해 간첩행위를 한 것으로 자백을 강요받으면서 구타, 물고문, 잠 안 재우기 등 가혹행위를 당하였다고 하므로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다. 수사관에 의하여 유죄증거가 조작되었는지 여부 신청인은 강 가 수사관의 지시로 신청인을 간첩이라고 허위로 제보하였고, 양, 유 등이 사적인 원한관계에 의해 허위로 진술하여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하므로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라. 범죄사실의 허위조작 여부 신청인은 동업자 정숙이의 부 정춘식으로부터 사업자금 3,600만 엔을 받아 물품을 사 서 정숙이에게 전달하였을 뿐인데, 치안본부 등 수사기관이 고문 가혹행위를 가하여 허 위자백을 강요하여 간첩행위 등으로 조작하고 조작된 증거물로 국가기밀 누설을 준비하 였다고 범죄가 조작되었다고 하므로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3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4. 진실규명 조사방법과 경과 가. 자료조사 서울지방검찰청 기록관리과 보존 수사 및 재판기록 : 1,689쪽 치안본부 대공2부와 서울지검의 수사착수 경위 및 수사과정, 서울지법 등의 재판 과정, 관계인들의 진술내용을 분석 검토하였다. 신청인의 서울구치소 의무기록( ~ ) : 12쪽 나. 진술조사 신청인 및 참고인 9명, 수사관 11명에 대한 진술청취를 통해 수사과정, 불법감금 및 가 혹행위 여부 및 자백의 경위, 증거 조작경위 등을 조사하였다. 2) Ⅱ. 조사결과 1. 사건의 배경 가. 관련자들의 관계 신청인에게 간첩행위를 지령한 자로 지목된 정춘식은 영사증명에 의하면 전 조총련 중 앙위원이고, 정숙이는 정춘식의 딸로 신청인의 미국 소재 한국물품 수입업체의 동업자이 다. 강 는 신청인과 1981.경 모래채취사업을 하던 중 동업하면서 친하게 지낸 사이였 고, 유 는 신청인의 처이며, 양 는 신청인의 내연녀로 부터 동거한 사이이다. 나. 관련자들의 사적 관계 변천과정 관련자들의 법정진술 및 진실화해위원회에서의 진술을 종합하면 강 는 부터 까지 미국에 있는 신청인의 집에 머물면서 신청 인과 감정이 좋지 않게 되었다고 하고, 3) 이 무렵( )에 정숙이에게 신청인을 사기죄로 고소할 것을 종용하다 실패하자, 4) 정숙이를 강제추행하려고 하였다. 5) 2) 참고인 강 는 거주 불명으로, 참고인 김, 김 및 수사관 윤 은 사망하여 조사하지 못하였다. 3) 강 의 법정진술, 이 의 진술, 수사관 유 의 진실화해위원회 진술. 김철 간첩조작 의혹 사건 237

238 제4권 한편, 신청인의 처 유 는 신청인과 정숙이의 불륜 문제로 부터 별거상태였 고, 위자료 6만 불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자, 위자료를 목적으로 신청인과 정 숙이를 간통죄로 고소하고 이혼소송을 제기하였으며, 이혼소송에서 강 와 동행한 바 있고, 6) 경 양 를 만나 신청인의 불륜사실을 말하였다. 같은 시기 신청인은 내연녀 양 에게 헤어지자고 하였으나, 700만 원을 요구받자 거 절하였다. 7) 신청인과 정숙이는 유 가 고소한 간통죄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은 뒤, 강 를 사기 및 변호사법 위반죄, 강제추행죄로 고소하였다. 8) 다. 신청인의 간첩행위 고발과정 강 는 치안본부 대공2부 수사관 유 에게 제보하였고, 9) 말 경과 말 재차 신청인을 제보하였다. 10) 치안본부 수사관 유 는 강 와 함께 충남 천안 소재 양 의 집에서 암호책자와 군부대 필름 등을 압수한 뒤, (수사서류상) 신청인을 검거하였다. 강 는 신청인과 정숙이가 고소한 사기 및 강제추행혐의에 대해 혐의 없 음 처분을 받았다. 11) 2. 사건경위 가. 수사 착수경위 치안본부 수사관 유 는 경 치안본부 비공식라인을 통해 신청인의 국가보안 법 위반혐의에 대해 정보를 입수한 후, 12) 강 를 면담하여 신청인의 혐의 를 확인하고, 13) 이 무렵 강 로부터 신청인의 내연녀 양 를 소개받아, ) 강 의 법정진술. 5) 김 의 법정진술. 6) 강 의 법정진술, 유, 양 의 진실화해위원회 진술. 7) 김철의 진실화해위원회 진술, 유, 양 의 진실화해위원회 진술. 8) 강 의 법정진술, 김철의 진실화해위원회 진술. 강 의 사건처분결과 증명서 (검찰청). 9) 치안본부 첩보입수보고, 유 의 진실화해위원회 진술. 10) 강 법정진술, 양 의 진실화해위원회 진술, 유 의 진실화해위원회 진술. 11) 서울북부지검 1989형제 23921호 사건처분결과증명서. 12) 유 의 진실화해위원회 진술. 13) 치안본부 대공 2부, 첩보입수 보고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3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천안소재 양 의 집에서 사회구성체이행론서설, 군부대 촬영 필름을 압수하고, 14) 양, 유, 강 로부터 신청인의 언동내용을 청취한 뒤, 15) 같은 장소에서 공산주의 책자, 군사시설보호구역현황표 16), 군요인명단표 17) 를 3회에 걸쳐 압 수한 뒤, 신청인을 검거하였다. 18) 나. 치안본부 대공2부의 수사 치안본부 수사관들은 서울 강남구소재 로마모텔에서 신청인을 검거한 뒤,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수사하여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하고 서울지검에 송치하였다. 다. 서울지검의 수사 서울지검은 제1회, 제2회, 제3회, 제4회, 제5회, 제6회, 제7회, 제8회, 제9회, 제10회 피의자신문조서를 각 작성 한 후, 서울지법에 기소(검사 이춘성)하였다. 라. 재판과정 서울지법은 목적수행을 위하여 간첩하였다는 부분은 무죄를 선고하고 나 머지 사실만으로 간첩미수죄를 인정하여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을 선고(재판장 홍석 제, 판사 김용직, 성낙송)하였다. 19) 서울고법은 목적수행 간첩 부분을 국가기밀 전달미수 로의 공소장 변경을 받아들이고,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을 선고(재판장 송재헌, 판사 서상홍, 임승순)하였다 대법원은 연락통신죄에 대해서 무죄의 취지로 서울고등법원에 파기환송 (재판장 윤영철, 대법관 박우동, 이재성, 김용준)하였다. 20) 14) 치안본부, 압수조서 , 공작진행보고 ) 치안본부, 공작진행보고 ) 치안본부, 압수조서 공작진행보고 ) 치안본부, 압수조서 ) 치안본부, 동행보고 ) 상부조직 정숙이가 하부조직 피고인에게 나중에 요구할 때 달라고 하면서 맡긴 군사기밀인 물건을 은닉 보관한 행위는 군사기밀의 탐지 수집을 돕는 행위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군사기밀을 탐지 수집한 행위자 체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20) 피고인의 진술 이외에 인정할 만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고, 피고인이 이 부분 공소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보강증거가 될 만한 것이 없다는 취지다. 김철 간첩조작 의혹 사건 239

240 제4권 파기환송심 서울고법은 연락통신죄는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으로 무죄, 국가기밀 전달 미수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여 징역 7년 및 자격정지 7년을 선고 (재판장 박영식, 판사 김이수, 김상호)하였다 대법원은 상소를 기각(재판장 이회창, 대법관 배석, 김상원, 김주환)하였다. 3. 사건 조사결과 가. 불법구금 여부 1) 수사기록 등의 정황 자 치안본부의 동행보고 에는 김철을 검거하였다 고 되어 있고, 자 치안본부의 출장수사결과보고 에도 김철이 강남구 역삼동 로마모텔에 투숙 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아 모텔 주변을 잠복 중 검거하였다 고 되어 있다. 한편, 발부된 구속영장 21) 은 같은 날 집행되어 신청인을 용산경찰서에 인치 한 것으로 되어 있다. 2) 신청인의 진술 신청인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는 입국한 다음날 연행되어 23일 동안 감금상태에 서 조사를 받았고, 고문에 의해 허위진술한 것은 사실입니다 22), 한국에 입국해서 강남 로마모텔에 정 와 함께 있었습니다. 저녁 7시경 제가 모텔 방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니 까 5~6명의 남자들이 제 가방을 들고 있었습니다. 제가 옷을 입고 당신들 누구냐 고 하 니까, 저에게 함께 가자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신들 누구냐, 가방은 내놔야 할 것 아니냐 고 말하였더니 이 새끼, 아직도 건방지구만 하며 제 눈을 가렸습니다. 한 사람이 제 눈을 가리면서 저를 떠밀다시피 하면서 차 뒷좌석 가운데에 태웠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 사람들이 깡패인 줄 알았습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23) 21) 신청인이 긴급구속을 당했으므로 사후영장을 발부받아야 긴급구속이 적법하게 될 것이나 사전영장을 받 았으므로 긴급구속 자체가 적법하다고 판단할 수 없다. 22) 진술청취(2회). 23) 진술청취(3회)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4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3) 참고인 진술 신청인의 동생 김 는 검찰에서 김철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형의 면회를 갔으나 용산경찰서에서 면회를 허가해주지 않았다 고 진술하였다. 연행사실 목격자 정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김철이 입국한 다음날 김철과 함 께 전북 금산사를 다녀와 서울 내 모텔에 투숙했는데 2~3명의 사내들이 들어오더니 목 욕을 마치고 나온 김철을 무작정 데리고 갔다고 진술하면서, 무조건 태워갔기 때문에 건 달인지 경찰인지 분간할 수도 없었습니다. 남영동에서 조사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경찰 인 줄 알았습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24) 그러나 수사기록에는 정 의 진술서가 편철되어 있지 않았다. 4) 수사관 진술 당시 신청인을 연행한 치안본부 수사관 김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법무부 출 입국관리사무소에서 입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출처는 모르겠지만 김철이 서울에 있다는 제보를 받고 서울로 올라와 검거하였는데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며 구속영장은 없었고, 변호사의 접견과 가족의 면회도 없었다고 진술하였다. 25) 수사관 김, 같은 이 은 김철을 검거한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였 고, 26) 이 은 김철을 검거한 이후 남영동에서 잠을 재우며 같이 있었다고 진술하였다. 27) 수사관 김 은 당시 영장 없이 김철을 긴급체포 형태로 검거하였고, 김철은 남영동 분실 5층 신문실에서 숙식을 하면서 변호인 접견 및 가족 면회 없이 조사를 받았다고 진 술하였다. 28) 수사관 유 는 매일 아침에 계속해서 출입국명단으로 입국 여부를 확인했다, 입국 한 당일 날 김철을 검거하였던 것으로 기억이 되지만 로마모텔에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하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5층 신문실에 침대가 있고, 송치한 날까지 같이 있었고, 식사는 우리 남영동 식당에서 제공하였고, 야식도 제공했다, 잠은 신문실 침대에서 재 우면서 직원들이 교대로 감시하였다 고 하고, 29) 변호인 접견이나 가족 면회는 없었다 24) 진술청취. 25) 진술청취. 26) 진술청취. 27) 진술청취. 28) 진술청취. 29) 진술청취(2회). 김철 간첩조작 의혹 사건 241

242 제4권 고 진술하였다. 30) 5) 기타 자료 서울출입국관리 사무소에서 발행한 출입국증명서 에 의하면 김철은 입국 한 것으로 되어있다. 31) 치안본부는 외사부장(공항분실장)에게 대상자 출국 예 약사항을 사전 입수하여 통보해달라는 협조를 요청하였다. 32) 6) 소결 참고인, 수사관들의 진술, 기타자료 등을 종합하면 신청인은 입국한 점, 경 찰에서는 신청인이 입국사실을 계속적으로 관리하고 있었던 점, 경찰이 신청인을 검거하 기 전에 이미 많은 증거를 수집하고 있었던 점, 신청인과 직접목격자 정 의 진술이 입 국 다음날인 로마 모텔에서 연행되었다고 일치하는 점, 수사관 유 가 입국 당일 에 검거하였다고 기억하고 있는 점을 보면, 연행하였다는 동행보고, 출장수사결과 보고의 내용은 믿을 수 없고 신청인의 연행일시는 인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신청인을 구속한 영장은 발부된 통상적인 구속영장이었으므로 긴급 구속된 이후 구속은 계속 불법적인 구금상태 33) 였다. 나아가 구속영장 상의 구금장소가 용산 경찰서임에도 치안본부 남영동분실에 구금되었으므로 구금장소가 임의로 변경되어 방어 권이나 접견교통권의 행사에 중대한 장애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34) 결국 신청인은 6일간 영장 없이 불법구금되었는데, 이는 형법 제124조 불법체포감금죄 에 해당하고 35),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확정판결을 받을 수 없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420 30) 진술청취(1회). 31) 김철의 출입국 증명서. 32) 치안본부 대공 2부 황해공작 상황보고 ) 대법원은 선고 93다 판결 에서 수사관들이 피의자를 연행한 후 48시간 내 사후구속영 장을 발부받지 아니하고, 통상의 구속영장을 발부 받았다면 피의자를 불법체포 구금한 것에 해당하고, 통 상의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하였다고 하여 불법체포나 그 동안의 구금이 적법하게 된다고 할 수 없다. 고 하였다. 34) 대법원은 선고 자 95 모 94 결정 에서 구속영장에는 청구인을 구금할 수 있는 장소로 특정 경찰서 유치장으로 기재되어 있었는데, 경찰서 유치장에 인도된 바 없이 계속하여 청사에 사실상 구금되어 있다면, 청구인에 대한 사실상의 구금장소의 임의적 변경은 청구인의 방어권이나 접견교통권의 행사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하는 것이므로 위법하다 고 판시한 바 있다. 35) 형법 제124조(불법체포, 불법감금) 1재판, 검찰, 경찰 기타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보조하는 자가 그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을 체포 또는 감금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 정지에 처한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4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조7호, 제422조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나아가 경찰이 구금장소를 임의로 변경한 것은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에 의한 변호인, 가족 접견교통권 및 피의자 방어권을 침해한 중대 한 인권침해에 해당된다. 나. 가혹행위 여부 1) 신청인의 진술 신청인은 검찰의 제4회 피의자신문에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을 때 강압 에 못 이겨 사실과 다른 내용을 진술하였기 때문에 검찰에서 사실대로 진술한다, 제1회 검찰 피의자신문에서 혐의사실을 인정한 것은 경찰서에서 받은 내용과 다른 내용을 말하 면 경찰서에 가서 혼나는 줄 알고 전부 자백한 것 이라고 진술하였고, 검찰의 제5회 피의자신문에서도 경찰 조사를 받을 때 신체적으로 심한 단 련을 받았지만, 몸에 상처 흔적이 남지 않은 것은 형사들이 기술적으로 고문을 하였기 때 문 이라고 하여 고문과 고문으로 인한 허위자백사실을 진술하였다. 신청인은 서울지법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경찰에 납치되다시피 연행되어 조사받는 과정에서 구타, 물고문, 잠 안 재우기 등을 당하였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재판에서 법의 보호를 받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에 자술서를 경찰이 부르는 대로 쓰고 무인을 찍었다 고 진술하였고, 또한 어느 날 윤전무가 저를 잡아올 때는 거물간첩인 줄 알았는데 조사를 해보니 계 란도 안 되는 것을 알았다며 유반장의 입장이 곤란하게 되었는데 유반장이 저를 놓아주 고 손을 들지는 않을 것이다. 유반장도 경찰을 몇 십 년 했는데 불명예스러운 낙인을 받 는 것을 원하겠느냐. 서로 좋은 방향으로 처리하자고 회유하였다 고 진술하였고, 서울지법 제2차 공판에서는 너무 많이 구타를 당해 그 회수를 기억하지 못 하지만 한 번 때리면 20~30분을 신발짝으로 때리고,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책을 접어서 찌르는 가혹행위를 당했고, 물고문을 3회 정도 당했으며 잠을 20여 일 동안 15시간 밖에 재우지 않았다 고 진술하였다. 신청인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도 의자에 묶인 상태에서 5~6명의 수사관으로부 터 구타를 당한 뒤, 정춘식에게 돈을 받았으니 간첩이라고 하면서 구타를 하였다, 가혹 행위를 당하면서 진술서를 작성하였는데 정춘식과 정숙이가 보낸 돈은 물건을 사서 보낸 것이라고 진술했더니, 거짓말을 한다면서 물고문을 하기 시작했다 고 진술하였고, 36) 김철 간첩조작 의혹 사건 243

244 제4권 유 등 3~4명에게 물고문을 받았는데 바지와 와이셔츠만을 입은 채로 끈으로 손 목과 발목을 묶고, 쇠파이프를 손목과 발목 사이로 끼우고 하나는 화장실 담에 하나는 책 상에 올려놓고 통닭구이 자세로 대롱대롱 매달리게 한 뒤, 목이 젖혀지자 노란 타월을 얼 굴에 덮고 주전자로 코에 물을 부었고, 그렇게 약 2~3번 주전자로 부었을 때쯤 기절을 하였다 고 진술하였고, 신청인이 혐의를 계속 부인하자 수사관들이 밤낮 그렇게 얘기를 하면 사람구실도 못 하게 고문을 당할 것 이라며 협박을 하였고, 수사관 두 명이 교대로 들어와 볼펜으로 찌 르면서 잠을 자지 못하게 하였는데 이렇게 4~5일이 지나자 정신을 차릴 수 없어 혼미한 상태로 진술서를 작성하였다 고 진술하였고, 또한,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에도 수사관들이 입실한 상태에서 신청인이 부인하면 뒤 에서 때리고 협박을 하여 두려운 마음에 검찰에서도 범죄사실을 시인한 것이라고 진술 하였다. 2) 참고인의 진술 신청인과 내연의 관계에 있던 양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치안본부 에서 김철과 대질한 바 있는데, 김철과 대질신문을 하려고 조사실로 김철을 데리고 들어 오면서도 경찰들이 김철을 때리는 것을 보았다. 내가 보기에 김철은 거의 초주검 상태였 다. 평소 김철은 아주 건강하고 당당한 사람이었는데, 당시 내 앞에 앉아 있던 김철의 모 습은 잔뜩 주눅 든 얼굴에 하얗게 질려 있는 모습이었으며, 마치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며, 유 로부터도 김철이 악질이라 가슴 등을 몇 대 쥐어박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 진술하였다. 37) 신청인의 처 유 는 양 의 아들 강 이 치안본부에서 조사를 받은 날 양 가 김철을 고문 했느냐 고 물으니 유 가 말하기를 김철이 악질이라 주먹으로 따귀를 때리고 가슴 등을 몇 대 쥐어박았다 고 한 적이 있다 고 진술하였다. 38) 3) 수사관들의 진술 신청인의 조사과정에 참여한 바 있는 수사관들은 물고문, 구타 등에 대해서 부인하 였다. 36) 진술청취(1회), (2회), (3회). 37) 진술청취. 38)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4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다만 수사관 김 는 욕 정도는 했고, 열이 받아 꿀밤 정도 때렸다면 모를까 가혹행 위는 없었다, 39) 수사관 김 은 피신을 직접 받았다면 수사과정에서 욕설도 하고 한 두 대 때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40) 수사관 김 은 담당수사관이 개인적인 성취감 때 문에 무리를 할 수는 있다, 혐의를 부인하면 험한 말을 하기도 하고 한두 대 주먹이 나 갈 수는 있겠지만 물고문은 있을 수 없다, 41) 수사관 이 은 수사과정에서 뻔한 사실 을 부인하면 험한 일이 있을 수는 있을 것이라고 추정은 된다, 42) 수사관 김 은 김철 의 진술이 오락가락해서 수사관이 한두 대 때렸을 수는 있지만 합법적으로 수사를 하였 다, 43) 수사관 이 은 화가 나니까 욕을 할 수는 있겠지요 44) 라고 각기 진술하면서 고 문의 일부 내용만을 인정하였다. 수사관 김 는 밤늦게까지 조사하기는 했다, 45) 수사관 이 도 조사가 늦어질 수는 있다 46), 수사관 고 는 욕설을 하거나 잠을 덜 재울 수는 있다, 47) 수사관 김 은 관례적으로 밤늦게까지 조사한 것을 가지고 가혹행위 주장을 하는 것 이라고 진 술 48) 하면서 밤늦은 조사 내지 잠 안 재운 사실을 일부 인정하였다. 담당 수사관 유 는 당시 관례상 피의자가 한두 대 맞는 것은 수사과정에서 비일비 재 한 일이다. 김철은 윗선에서 원칙 수사를 강조하였기 때문에 상당히 신사적으로 대우 받았다, 만약 물고문을 했다고 하면 욕탕에 거꾸로 집어넣었다는 말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렇게 하면 목이 욕조에 걸려서 사람이 죽는다. 그런 무식한 방법은 사용하지 않는다 고 진술하였다. 49) 수사관 김 은 검찰 송치 시 검사의 요구에 의해 입회하였고, 인정심문 후 서울구치 소에 피의자를 데려다주었다, 수사관 유 는 김철의 신변보호가 주목적이었는데, 김 철이 진술을 자주 번복하였기 때문에 입회하였다 고 진술하였다. 39) 진술청취. 40) 진술청취. 41) 진술청취. 42) 진술청취. 43) 진술청취. 44) 진술청취. 45) 진술청취. 46) 진술청취. 47) 진술청취. 48) 진술청취. 49) 진술청취(2회). 김철 간첩조작 의혹 사건 245

246 제4권 4) 기타 자료 서울구치소 의무기록 50) 에는 신청인이 25일경 척추 타박으로 통증 호소하였고, 6. 1.부 터 까지 진통제와 근육이완제가 투약되었고, 6. 5.에는 척추 엑스레이 촬영을 한 것 으로 되어 있고, 우측 가슴에 통증을 호소하였고, 우측 흉부 통증을 호소하였 다 고 기록되어 있다. 서울구치소는 진실화해위원회에 보낸 공문을 통해 김철에게 서울구치소 수용 중( ~ ) 주로 투약된 약물은 Brufen(진통제), Rinlaxa(근육이완제), penmetin (소화제)로 이와 같은 투약 내용으로 보아 상기 김철은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했던 것으로 추정 된다고 회신하였다. 51) 5) 소결 신청인의 검찰 수사, 법원진술,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구타, 물고문 등에 대한 일관된 진 술, 서울구치소의 의무기록과 진실화해위원회에 보낸 회신문의 내용, 유 로부터 가혹 행위를 했다는 말을 들었다는 유, 양 의 진술, 수사 도중의 신청인의 모습을 보았 다는 양 의 진술, 또한 수사관들이 구타에 대해서 일부 인정하면서 밤늦게까지 수사 하였고, 신청인이 계속 진술을 번복하였다는 진술을 보면 수사관들의 신청인에 대한 직 접적인 가혹행위 사실을 부인하고 있음에도 신청인이 경찰에서 수사를 받으면서 고문 및 가혹행위를 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나아가 검찰 수사에서도 고문 경찰이 입회한 사실도 인정할 수 있고, 변호인 접견 및 가족 면회 등이 제한 된 상태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에 24일간 구금되어 심리적으로 위축 된 상태로 반복적인 진술서 작성을 강요받았고 검찰에서도 위축된 심리상태가 계속되었 음을 인정할 수 있다. 52)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이 자행한 신청인에 대한 고문 및 가혹행위는 형법 제125조 폭행, 가혹행위 죄에 해당하며 형사소송법 제420조7호, 제422조 소정의 재심사유 에 해당한다. 50) ~ 서울구치소 의무기록. 51) 서울구치소, 사건조사 협조요청에 대한 회신. 52) 대법원은 자 92두 30 결정에서 헌법상의 영장주의의 원칙은 구속의 전 과정에 있어서 일관하여 적용되는 것이고 형사소송법은 구속영장에 피고인 또는 피의자의 인치 구금할 장소를 기재하도록 하고 있으며 구금장소는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방어권행사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의 하나이고 구금장소의 임의 적 변경은 피의자 또는 피고인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고 판시한 바 있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4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다. 수사관에 의하여 유죄증거가 조작되었는지 여부 1) 신청인 진술 신청인은 치안본부의 조사(제1회 피의자신문)와 검찰 조사(제8 회 피의자신문), 검찰 조사(제10회 피의자신문)에서 양 의 진술은 거짓 말로 유 가 양 를 유혹하여 거짓말을 하도록 시킨 것 이라고 진술하였다 서울지법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강 는 처 유 를 꾀어 피고인과 유 를 불화케 하였고, 유 와 함께 피고인에게 6만 불을 해달라고 했다가 안 되니까 피 고인을 중부경찰서에 간통죄로 고소하였는데 무혐의로 풀려나자, 당시 정숙이를 꾀어 피 고인을 사기혐의로 고소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정숙이를 강제추행하려다 실패하 였던 것으로, 피고인은 이러한 강 를 상대로 고소하여 서울지방검찰청에 계류되었는데, 이러한 이유로 강 는 피고인을 모함하고 있다 고 진술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도 하순경 강 가 미국에 있던 나의 집에 기거하 면서 동업자인 정숙이와 바람을 핀다고 나의 처 유 와 이간을 시켜, 유 는 강 의 꼬임에 빠져 나를 간통죄로 고소했으나 내가 무혐의를 받자 원수사이가 되었고, 양 는 나와 10여 년 사귀던 내연녀로서 다방을 하나 차려달라고 요구한 것을 거부하 였더니 내가 정숙이와 바람이 난 것으로 생각하여 서운한 감정을 가졌던 것인데 결국 이 들이 나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워서 간첩으로 몰아세운 것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53) 2) 참고인 진술 가) 참고인들이 신청인에 대한 증거조작에 참여하게 된 동기 신청인의 처 유, 내연녀 양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강 와 함께 공모하 여 신청인의 혐의에 대해 허위로 진술하였고, 증거물도 조작한 바 있다고 진술하였다. 신청인의 처 유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이 사건은 강 로부터 김철이 동업 자인 정숙이와 불륜관계에 있으며 이들을 간통죄로 고소하면 위자료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되면서 시작되었다 며, 김철이 을 시켜 나를 겁탈하여 쫓아내려고 한다 는 강 의 이야기를 듣고 분노해서 앞뒤 분간이 안 되었고, 26년이나 함께 산 나를 해 코지까지 하려고 했다고 하니 김철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었다 고 진술하였고, 54) 53) 진술청취(1회). 54) 진술청취(1회), (2회). 김철 간첩조작 의혹 사건 247

248 제4권 김철을 간첩으로 신고하면 포상금도 5천만 원 정도 나오고, 김철이 가지고 있는 현금 2, 3억 원과 땅 9,000평을 취득할 수 있다는 강 의 말에 솔깃하여 공모에 이른 것이다 라며, 그렇지만 애들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고, 미국 땅에서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 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고 진술하였다. 신청인의 내연녀 양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경 김철이 관계를 정리 하자고 절연을 선언하고 돈 문제로 다투어 화가 나 있던 상태였다 며, 경에 유 를 만났는데 김철이 정숙이와 간통했다는 말을 듣고 배신감 때문에 너무 분했는데, 강 가 포상금을 나누어 쓰자고 하여 그 말에 현혹되었다 고 진술하였고, 또한 양 는 치안본부에서 아들 강 도 김철과 친하게 지냈다며 데려다 조사하였 고, 잘못하면 아들까지 잡혀간다고 하니 (조작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고, 강 가 김철 이 무혐의가 되면 무고죄로 14년을 살아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 고 진술하였다. 55) 양 의 아들 강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일자미상 경 치안본부 수사 관들에게 회사에서 연행되어, 오전에는 진술서를 작성하고 오후에는 3~4시간 조사를 받 은 일이 있는데, 김철에 대해 확실하게 이야기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 다 고 추궁하고, 수사관이 어머니(양 )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진술을 강요하고 나도 잘못이 있다면서, 김철과 연결시키려고 하였다 고 진술하였다. 56) 그러나 위 강 이 작성하였다는 진술서는 수사기록에 편철되어 있지 않다. 나) 증거조작 과정에서의 수사관 역할 유 는 초부터 강 와 양 와 거의 날마다 만났는데, 남영동 근처 다방 에서 만날 때는 항상 유 과 함께 만났다 며, 유 는 항상 강 와 무엇인가 협의를 하고는 저희에게 이렇게 이렇게 진술하라고 가르쳐주었고, 언젠가는 쪽지를 주면서 외우 라고 해서 쪽지에 적힌 대로 외우기도 했다. 그리고 강 가 양 에게 책자나 쪽지 등 을 주면서 천안 소재 양 의 집에 있는 김철의 소지품에 넣어두라고 할 때도 유 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유 가 개입한 것이라고 진술하는 것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57) 양 는 나와 유 는 강 를 통해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당시 경찰관 유 가 지시한 것으로 생각한다 며, 우리가 남영동 다방에서 만나 이야기를 할 때 유 가 나왔는데 나와 유 와는 개인적으로 만나서 물어본 적은 없었지만, 우리 55) 진술청취(1회), (2회). 56) 진출청취. 57) 진술청취(2회)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4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가 만나고 있는 다방에 들어와서는 다른 좌석에 가서 강 와 이야기했다. 그러고는 강 가 자꾸 증거가 미비하다, 약하다 말을 하면서 더 확실해야 한다고 우리들을 설득했 다. 그래서 나와 유 는 강 가 유 에게 지시를 받아서 그런가 보다, 유 가 증 거가 모자란다면서 그렇게 만들라고 했나 보다고 짐작했다 고 진술하였다. 58) 수사관 유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강 가 양 와 유 에게 어떻게 이 야기를 했는지는 나로써는 알 수 없다. 만약 강 가 김철에게 감정이 좋지 않았고, 양 와 유 도 김철에게 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강 가 나와 면담하면서 김철 을 간첩혐의로 구속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양 와 유 에게 알려서 나에게 협조적이었을 수는 있겠다 고 진술하였고, 내가 강 에게 협조를 받고자 자주 만났고, 정보를 더 알고자 했던 것을 양 나 유 의 입장에서 내가 개입한 것으로 오해 할 수는 있겠다 며, 만약 양 나 유 가 내가 강 를 시켜서 허위진술을 하도록 유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나의 입장에서 는 내가 강 와 자주 상의한 것을 그렇게 오해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고 진술 하였다. 59) 3) 기타 자료 치안본부 압수조서 에 의하면 천안 소재 양 의 집에서 사회구성체이행 론서설, 군부대 촬영 필름을 압수하였고, 천안 소재 양 의 집 비키니 옷장에서 공산주의 책자, 군사시설 보호구역 현황표를 압수한 후, 같은 장소인 양 의 집 비키니 옷장에서 군요인명단표를 압수하는 등 동일장소에서 세 차례 압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60) 4) 소결 신청인, 참고인, 수사관의 진술을 종합하면 양, 유, 강 가 신청인에 대한 증 거조작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개인적인 원한, 포상금 및 신청인의 재산에 대한 탐욕 때문 인 것으로 보이며, 지속적으로 증거조작과 허위진술을 한 것은 자신과 가족의 구속 위험 이 두려웠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담당 수사관은 증거조작 과정에서 참여 내지 지휘한 것에 대하여 참고인들이 오해한 58) 진술청취(1회). 59) 진술청취(2회). 60) 치안본부 압수조서. 김철 간첩조작 의혹 사건 249

250 제4권 것이라고 부인하고 있으나, 경찰관 유 가 강 를 통하여 수사과정을 계속 조절하였 던 점, 강 가 유, 양 의 허위진술을 유도하였던 점, 특히 같은 곳을 3차례나 압수수색하면서 증거가 차례로 발견된 점, 유, 양 가 증거조작에 관여하였다고 진 술한 점, 신청인이 입국하자 구속한 점 등을 종합하면 경찰 수사관이 참고인들로 하여금 신청인에 대한 사적 원한관계와 포상금 지급을 이용하여 증거물조작, 허위진술을 유도한 점이 인정된다. 4. 범죄사실 조작 여부 가. 회합 통신, 잠입, 금품수수 여부 1) 범죄사실의 요지와 유죄증거 피고인이 정숙이의 지시에 따라 :00경 일본 나리따공항에서 정춘식을 만 나, 김일성 선집 1권이 들어있는 가방을 전달받아, 지시에 따라 가방을 소지한 채 입국한 뒤, 정춘식으로부터 2차례에 걸쳐 36,465,000엔을 송금 받아 총 7회에 걸쳐 전액 인출함으 로써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회합 통신, 잠입, 금품수수 하였다는 것인데, 유죄증거는 피고인의 법정진술 및 검사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 방, 강 의 법정진술 및 검사작성 각 진술조서, 사법경찰관 작성의 강 의 진술조서, 피 고인 및 정숙이에 대한 개인별 출입국현황표 사본, 정춘식에 대한 영사증명, 조흥은행 중 앙지점 외환거래 내역 등이다. 2) 신청인 진술 신청인은 검찰 조사의 제4회 피의자신문에서 정춘식을 한 차례 만나, 사업 자금을 받은 일은 있고, 대부분 경비는 컴퓨터 칩을 구입하는 데 사용하였다고 진술하였 지만, 범죄사실은 경찰의 가혹행위에 의해 허위로 진술한 것이라며 부인하였고, 서울지법에 제출한 탄원서에서는 정춘식이 반국가단체구성원이라는 사실 도 전엔 몰랐고 김일성선집과 같은 책은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정춘식 을 만날 때는 정춘식이 조총련이란 사실도 몰랐고, 경 알게 되어 보안사에 자수 한 것이고 정춘식으로부터 지령을 받은 사실도 없다 고 진술하였고, 서울지법 제1회, 제2회 공판에서도 정춘식을 만나기는 했지만 조총련인 줄 몰랐고, 김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5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일성선집이 든 가방을 전달받은 일도 없다고 부인하였으며, 제3회 공판에서는 검찰에 송치된 날 신문을 받을 때 가혹행위를 하였던 형사들이 그 자리에 같이 있었기 때문 에 범행을 시인한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신청인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도 정춘식을 만날 때까지만 해도 정춘식 이 조총련 관련자인지 몰랐고, 정숙이가 아버지 정춘식이 사업자금을 빌려준다고 했으니 한번 만나서 컴퓨터 칩의 수입판매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고 하여 귀국하는 비행기 편에 경유지인 일본 나리따공항에서 20여 분 정춘식을 면담한 것밖에 없다. 정춘식을 면담할 때도 자신의 딸 정숙이를 고생시켰는데, 이렇게 사업자금을 대주어 보상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면서 정숙이를 잘 도와달라고 했고, 사업 이야기를 한 것밖에 없으며, 김일 성선집을 받거나 그런 일은 없다 면서 범죄사실은 완전히 조작된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61) 3) 참고인 진술 정춘식의 딸 정숙이는 서울지법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미국에서 컴퓨터칩 사 업이 잘될 때라 김철에게 한국에서 칩을 좀 사오시라 고 부탁을 드렸는데 칩 살 돈이 없 어서 일본에 있는 부친에게 이익금을 주기로 하고 사업자금을 빌린 것이고, 한국에 나가 있는 김철에게 돈을 보내면 칩을 사서 미국으로 보낼 것이라고 부탁을 하였고 정춘식에 게 김철이 동업자라는 것은 편지로 설명하였던 것 이라고 진술하였다. 보안사 대공수사관 김 (사망)는 서울지법 제4차 공판에서 하 순경 보안사 요원의 입장에서 김철을 만난 일이 있다고 진술하면서, 피고인이 하는 말이 정숙이라는 재미교포와 동업을 하는데 정숙이의 아버지 정춘식이라는 사람이 조총련인 것 같다. 그런데 정숙이가 정춘식에게 돈을 받아 내게 송금한 것 같다고 이야기하였다 며, 김철을 이후 수회 만났고, 정춘식의 명함을 받은 일이 있고, 정숙이를 만나보기도 하 였다 고 진술하였다. 신청인의 무역회사 직원 김 은 서울지법 제5차 공판에서 김철은 일본에 있는 정춘식이 조총련 간부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 또한 같은 달 24. 자 수한 것 이라고 진술하였다 강 62) 은 서울지법 제5차 공판에서 북한산 등반과 관련(정춘식 지시 수 61) 진술청취(2회). 62) 강 은 김철의 사업에 도움을 주었던 자인데, 치안본부 수사보고에 의하면 신청인이 정춘식의 지시 를 수행하기 위해 북한산에 김일성선집을 놓아두었다는 곳을 함께 등반하였다는 것임 수 사보고. 김철 간첩조작 의혹 사건 251

252 제4권 행 여부)와 관련해 거기까지 올라간 것도 증인(강 )의 의사였고, 또한 증인이 앞장을 서서 간 것 이라고 진술하였다 자수한 방 63) 은 서울지법 제4회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무슨 대회 때 먼발치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다. 정춘식은 동해상사의 감사역으 로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 진술하였다. 방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나는 정춘식에 대해 알지 못하며, 내가 동해상사 의 대남사업을 담당하는 한 사람은 아는데 정춘식은 모른다 고 기존 진술을 번복하였 고, 64) 진실화해위원회 2회 조사에서도 지금 생각해보아도 정춘식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 나는 것이 없다 며, 법정에서 정춘식에 대해 허위진술한 것은 아마 당시 내가 귀순간첩 이라는 신분으로 안기부 공작조로 활동하고 있던 신분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 다 고 진술하였다. 65) 주일한국대사관 영사 강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영사증명서는 자신이 작성한 것이 아니라면서 나의 서명이 있지만 영사증명서의 증명이라는 말은 작성한 측에서 붙 인 것이고 그 내용 자체를 영사가 증명해주었다는 것은 아니다. 내용 자체를 영사가 알 수도 없고, 이 영사증명서처럼 몇 차례 방북했다 이런 것은 영사가 확인할 수 있는 사항 이 아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강 은 영사증명서의 작성자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다른 영사 확인 행위와 마찬가지로 영사의 권한밖에 있기 때문에 영사의 확인서명이 있다고 해서 영사가 영사증 명서 내용의 사실을 증명한다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하였고, 영사증명서 내용의 사실유무 에 관해 법정에 출석하여 증언 한 바 없고, 법원으로부터 영사증명서의 내용에 대한 확인 을 요청 받은 사실도 없다고 진술하였다. 66) 4) 수사관 진술 수사관 김 은 김철이 정춘식의 지시를 수행했는지 여부에 대해 정확히 수사과정에 서 입증하지 못했다고 진술하였다. 67) 63) 방 은 자수한 뒤 1985.까지 안기부 공작과에서 위장간첩으로 활동한 바 있고, 안기부에서 간첩 신 를 체포할 당시 공식적으로 자수한 것으로 처리된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조선일보 기사 참조. 64) 진술청취(1회). 65) 진술청취(2회). 66) 진술청취. 67)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5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수사관 이 은 강 의 진술에 김철이 가방을 놓아두었다는 진술이 없다면 실제 그런 일이 없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장답사를 갔다 온 후에 진술조서를 받은 것으로 기억되는데 내가 중요한 것이었다면 빼먹을 일이 없다 고 진술하였다. 68) 수사관 이 은 수사기록 상 압수조서, 유, 양, 강 의 진술조서, 김철의 피 의자신문조서 상 기재된 서명은 자신이 서명한 것이 아니라고 진술하였다. 69) 수사관 김 은 처음에 정춘식이 반국가단체 구성원이라는 것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송치 이후 안기부에서 일본대사관에 의뢰하여 일본대사관 직인이 있는 영사증명서를 받 은 것으로 알고 있다 며, 정춘식이 북한공작원이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안기부에 협조요청을 했던 것이고 안기부에서 구두로 정춘식이 북한공작원이라고 확인 해주었고, 송치 후 영사증명서를 보내준 것으로 알고 있다 고 진술하였다. 70) 수사관 유 는 당시 정춘식에 대한 자료가 열악하였기 때문에 이후의 경력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안기부에 확인을 요청하여 영사증명서로 증명을 하려고 했는데, 영사증명서가 늦게 도착하여 확인이 늦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며, (무리한 수사라고) 생 각할 수는 있지만 정춘식이 북한공작원이라고 확신했다. 재판과정에서 영사증명서의 증 거를 제출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송치한 것이다 라며, 관례적인 영사 증명서의 증거능력을 믿고 김철을 송치한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71) 5) 기타 자료 영사증명서에 의하면 정춘식은 ~ 등 총 5회 방북한 사실이 있고, 현재 조총련 산하 사업체인 동해상사 및 인터내셔날 기획의 감사역으로 재직 중인자라고 기재 되어 있다. 72) 국방부 과거사위원회로부터 입수한 주일한국대사관의 회신 문서에 의하면 영사가 서 류를 직접 작성하여 발급해주는 영사증명서 제도는 없었고, 30년 전에 있었는지 여부는 법령에 근거가 없어 확인할 수 없다 고 기재되어 있다. 73) 법원의 범죄사실에는 신청인이 정춘식의 지시를 실행하였다는 판단이 없다. 68) 진술청취. 69) 진술청취. 70) 진술청취. 71) 진술청취. 72) 영사증명서. 수사기록 972쪽 73) 주일한국대사관이 국방부장관 앞으로 보낸 회신문서(주 일본대사관-1330). 김철 간첩조작 의혹 사건 253

254 제4권 6) 소결 피고인의 법정진술 내용은 신청인이 정춘식을 만나 금전을 수수하였다는 사실만 범죄 사실에 관련되며, 방, 강 의 법정진술 및 검사작성 각 진술조서, 사법경찰관 작성 강 의 진술조서, 피고인 및 정숙이에 대한 개인별 출입국현황표 사본, 정춘식에 대한 영사증명 등은 독자적으로 또는 합하여 신청인의 범죄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 다만 검사 작성 피고인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가 범죄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신청인, 참고인, 수사관들의 각 진술과 기타 자료를 종합하면 신청인에 대한 검 사작성 피의자신문조서는 고문수사관이 입실한 상태에서 조사된 것으로 임의성이 없고, 정춘식에 대한 영사증명서만이 정춘식이 대남공작원임을 추단케 하나 수사관의 진술 도 영사증명의 진정성을 보장하고 있지 못하고, 정춘식이 공작원 신분임을 보강하고 있 지도 못한다. 나아가 영사증명이란 법적 근거가 없는 문서이자 전문증거임에도 불구하고 법적인 절차 없이 증거능력을 인정한 법원의 판단은 증거법칙을 위배한 것이다. 더욱이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결과 방 의 법정진술이 번복되었고, 영사증명서 역시 영사가 직접 작성하지 아니한 문서로 확인되었다. 74) 결국 신청인에 대한 회합, 통신, 잠입, 금품수수에 대한 법원의 범죄사실 인정은 증거재 판주의를 위반한 위법한 것이며, 방 의 허위증언은 형법 제152조1항 위증죄에 해당하 므로 형사소송법 제420조2항, 제422조 소정의 재심사유에 해당된다. 74) 1 재외공관공증법 제3조(영사관의 권한과 직무) 영사관은 소속공관의 관할구역안에서 당사자 기타 관계 인의 촉탁에 의하여 법률행위 기타의 사건에 관한 사실에 대한 공정증서의 작성, 사서증서에 대한 인증 및 공증에 관계되는 문서의 확인에 관한 사무를 처리한다. 제4조(문서의 공증력의 요건)영사관이 제3조의 규정에 의하여 작성한 공증문서는 이 법이 정하는 요건을 구비하지 아니하면 공증의 효력이 없다. 제14조(증서의 내용) 영사관이 증서를 작성함에는 청취한 진술, 목도한 사실 기타 실험한 사실을 기록하고 또한 그 실험의 방법을 기재하여야 한다. 2 서울고등법원은 선고 2006 노 2317에서 영사증명서의 증거능력에 관해 영사증명서에 대 해 형사소송법 제315조 제1호 소정의 호적의 등본, 또는 초본 공정증서등본 기타 공무원 또는 외국공무원 의 직무상 증명할 수 있는 사항에 관하여 작성한 문서라거나 제3호 소정의 기타 특히 신용할 만한 정황에 의하여 작성된 문서에 해당하여 당연히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서류로는 볼 수 없고, 가사 형사소송법 제 313조에 해당하는 서류라고 하더라도 공판준비나 공판기일에서 그 작성자의 진술에 의하여 그 성립의 진 정함이 증명된 때에도 해당하지 아니하므로 결국 이 부분 각 기재는 증거능력이 없다 고 판시한 바 있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5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나. 국가기밀 전달 여부 1) 범죄사실 요지 및 유죄증거 피고인은 경, 각각 처 유 와 내연녀 양 에게 입북을 제의, 같은 해 11. 중순경부터 12.경까지 사이에 수회에 걸쳐 위 양 의 집에서 북괴방송을 청취하며 지령을 수수, 서울 프라자호텔 지하 레스토랑에서 정숙이로부터 군사시 설 보호구역 현황표 와 홍천군 소재 군부대 필름 을 전달받고, 12. 중순 13:00경 정숙이 의 지시에 따라 조 명불상자를 만나 한국 군 주요장성명단 을 전달받아, 이를 천안 소재 양 의 집에 은닉하여 국가기밀을 전달하려다 검거됨으로써 국가기밀 전달의 미수에 그쳤다는 것인데, 유죄증거는 피고인의 법정진술 및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 강, 양, 방, 신, 강 의 법정진술 및 검사작성의 유, 강,양, 방, 신, 강 진술조서, 사법경찰관 작성의 유, 양, 강 의 진술조서, 국군 제1363부대장의 회보, 압수된 물건들의 각 현존(사회구성체이행론서설, 군부대 촬영 필름, 공산주의 책자, 군사시설보호구역현황표, 군요인명단표) 등이다. 2) 신청인 진술 신청인은 치안본부 조사에서 범죄사실의 대부분을 시인하였으나, 입북 제의 및 북한 지령 수신혐의는 부인하였고, 검찰 조사에서도 위 범죄사실을 부인하였다 서울지법에 제출한 탄원서에서도 경찰의 물고문과 구타를 받고 견디다 못 해 자술서를 쓰겠다고 하였을 때, 경찰이 정숙이가 간첩이란 것을 말하라고 하여 경찰이 불러주는 대로 정숙이를 간첩이라고 조작하였다 고 진술하였고,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도 수사기관에서의 가혹행위와 유, 양 의 모함으로 자 신에 대한 혐의가 조작되었다고 진술하였다. 75) 3) 참고인 진술 유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경찰관 유 와 강 가 둘째딸 도 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를 조사하지 않을 테니, 조사에 응하라고 하여 시키는 대로 검찰에서 진술한 것 이라며, 검찰 진술 당시 유 의 안내를 받아 진술해야 될 내용이 적힌 쪽지 75) 진술청취(1회), (2회), (3회). 김철 간첩조작 의혹 사건 255

256 제4권 를 전달받고, 이를 암기한 후 허위진술하였다고 진술하였다. 76) 또한 유 는 강 가 사회구성체이행론서설, 공산주의 책자, 군사시설보호구역현황 표, 군요인명단표 등을 양 에게 전달해주는 것을 목격했고, 군부대 촬영 필름은 자신 과 강, 양, 성명불상자가 경 홍천 인근에서 촬영한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양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군부대 촬영 필름은 홍천 부근에서 강, 양, 성명불상자 등 4명이 촬영한 것으로 사진은 진술인이 직접 촬영한 것이라고 진술하였고, 사회구성체이행론서설, 군사시설보호구역현황표, 군요인명단표 등은 강 로부터 전달 받아, 김철의 소지품에 넣어두었다 경찰에 임의 제출한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77) 또한 양 는 범죄사실에 대한 진술은 유, 강 에게 교육을 받았으며, 진술내용 이 적힌 쪽지를 전달받아 암기하여 유 와 강 가 시키는 대로 검찰이나 법정에서 진술한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신 은 서울지법 제4회 공판에서 정숙이가 처음 한국에 왔던 것 은 인데 내가 사업관계로 정숙이에게 전화하여 정숙이가 한국에 오게 된 것 이다 라면서, 부터 3박 4일간 정숙이와 포항에서 머물렀다 고 진술하였고, 플라자호텔에서 정숙이 가족 및 김철과 식사를 나눈 바 있는데 식사를 마치고 피고인이 먼저 자리를 떠났다. 우리 부부는 정숙이 가족들에게 시간을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약 10~15분 정도 더 이야기를 하다 자리를 떴다 며, 정숙이가 피고인에게 어떤 물건을 건네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 고 진술하였다. 신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도 정숙이가 김철에게 어떠한 물건도 건네주는 것 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하였다. 78) 방 은 서울지법 제4회 공판에서 일반적으로 암호를 수신한 흔적을 책속 에 남겨놓아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암호책자는 아무도 모른 곳에 숨겨 둔다 고 진술하였다. 방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도 암호내용이 방치된 것에 대해 우리 세계에서는 상상을 할 수 없는 일로 초짜라고 하더라도 그럴 수 없다, 이 사건 암호문은 글자에 동 그라미와 체크 표시 되어있는 것을 연결하면 문장이 되었던 것 이라면서, 암호문의 표식 은 아무나 작성할 수 있다 고 진술하였다. 79) 또한 방 은 암호책자는 북한에서 직접 전달해주고, 2권 이상을 동시에 사용하지 76) 진술청취(1회), (2회). 77) 진술청취(1회), (2회). 78) 면담조사. 79) 진술청취(1회)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5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않을 뿐 아니라 한번 사용된 암호책자는 다시는 사용되지 않으며, 암호책자는 한 권을 사용한 후 다른 한 권을 북한에서 전달받아 사용하고 한 권의 암호책자는 통상 1년가량 을 사용하는데, 북한에서 간첩의 수준과 기간 등을 고려하여 암호책자를 선정한다고 진 술하였고, 암호교육 및 호출부호에 대해서도 방 은 치안본부가 간첩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다. 간첩에 대해 잘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간첩이 호출부호가 없다면 주소 없는 편 지인데 그 내용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나. 호출부호가 없다면 지령을 받을 수는 없다 고 진술하였다. 80) 4) 수사관 진술 수사관 김 는 압수물을 김철이 단지 보관했다는 것으로 간첩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치안본부가 과장하거나 확대한 것이라고 생각하 지 않는다 고 진술하였다. 81) 수사관 고 는 이 사건 증거물 등이 3차례에 걸쳐 양 의 집 비키니 옷장에서 발 견된 것은 조금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라고 진술하였다. 82) 수사관 조 83) 은 북한 지령을 받으려면 라디오, 호출부호, 암호책자(또는 난수표)의 3박자가 맞아야 하고 간첩은 매달 정해진 날짜에 자신의 호출부호가 불려지는지 확인해 야 한다 며, 호출번호를 알지 못하면 지령문을 확인할 수는 없는데 (이 사건 수사관들 이) 호출번호를 확인하지 않고 어떻게 암호책자임을 확인했는지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다 고 진술하였고, 84) 암호책자에 대해서도 규칙이 없이 그냥 문장으로 이어진 것이라면 실제 암호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면서, 나도 수사보고를 보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수사보고에는 어떤 기준의 어떤 규칙에 의해 문장이 되었는지 설명이 없다. 그 부분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고 진술하였다. 수사관 김 은 정숙이가 김철의 상부선인지와 실제 북한공작원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정숙이의 아버지가 조총련 고위간부였기 때문에 그렇게 추정한 것이다 라면서, 80) 진술청취(2회). 81) 진술청취. 82) 진술청취. 83) 치안본부에서 대북 통신공작 분야를 20년간 담당하였다. 84) 진술청취. 김철 간첩조작 의혹 사건 257

258 제4권 무리한 수사라고 볼 수는 있지만 정확히 정숙이가 북한공작원이라고 단정한 바 없다 며, 김철이 정숙이나 정춘식에게 암호 교육을 받았다는 증거는 없다 고 하고, 양 의 법 정진술 당시 동행한 바 있다 고 진술하였다. 85) 수사관 유 는 김철의 진술과 정춘식의 딸이라는 정황으로 정숙이가 북한공작원이 라고 추정한 것 이며, 정숙이의 활동을 입증할 자료는 없다, 김철이 정숙이나 정춘식 에게 암호 교육을 받았다는 증거는 없지만, 정숙이에게 암호 교육을 받았을 것이라고 판 단한 것 이라고 진술하였고, 호출부호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책자의 동그라 미 표식이 북한 지령이라고 판단한 것이지, 지령수신 가능 여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며, 당시 호출부호를 찾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간이 없다보니 기록상 혐 의 정도에 만족을 한 것이다. 김철이 자주 진술을 번복하였기 때문에 김철의 진술을 믿지 않고, 유, 양, 강 의 진술을 바탕으로 송치한 것 이라고 진술하였다. 86) 5) 기타 자료 치안본부 수사관 윤 (사망)은 북괴가 간첩들에게 조직하는 하향 지령의 호출부호 수신일자 등은 암기하기가 용이하도록 관련자의 성명, 생일, 주소 등을 발췌 인용하는 특 성이 있다 고 진술하였지만, 사회구성체서설과 공산주의 책자가 암호책자임을 확인하면 서도 김철이 암호 교육을 받았는지 여부와 호출부호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조사하 지 않았다. 87) 수사기록에 편철된 국군 1363부대 수사협조 의뢰 회보 에 의하면 군부대 촬영 필름에 있는 사진의 위치는 강원도 홍천이며 차 안에서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고, 군사보호구역 현황표는 가을 이전이며, 군요인명단표의 장성들의 보직일자의 공통기간은 ~ 까지로 동 명령지는 1개월간 보관토록 되어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사건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감정 의뢰 회보 에 의하면, 사회구성체서설, 공 산주의 책자 속의 필적과 김철의 필적은 동일 필적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고 기재되어 있다. 사단법인 한국사진작가협회 홍천지회는 진실화해위원회에 회신한 문서에서 군부대 촬 85) 진술청취. 86) 진술청취(1회), (2회). 87)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 (사건번호 82고합800)의 수사기록, 5108쪽. 윤 은 위 진술서에서 자신은 23년간 간첩통신정보 분석업무를 전담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 사건 당시에도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근무하면서 증 제2, 6호가 암호책자라고 확인해준 바 있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5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영 사진의 촬영시점을 2월 하순경에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고 하였는데, 필름을 전달하였다는 정숙이의 출입국 기록현황을 보면 입국, 출국한 것으로 되어 있고, 88) 정숙이는 부터 3박 4일간 신 과 포항에 있었 고, 범죄장소에서 신청인과 상면한 뒤 다음날인 출국하였다. 그 렇다면 정숙이는 신 과 헤어진 후 3~4일 동안 위 증거물을 직접 수집하였거나 누군 가에게 전달받아 다시 신청인에게 전달하여 보관도록 하였다는 것인데, 군부대 촬영 필 름 상 사진의 계절적 특징이 겨울(2월)이므로 판결의 내용과 모순된다. 6) 소결 신청인은 법정에서 위 범죄사실에 대해 부인하였고,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의 증 거능력에도 문제가 있어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신청인, 참고인, 수사관의 진술 및 기타 증거들을 종합하면 유, 강, 유, 양 가 군부대 필름 암호책자 등 증거물들을 조작하였다는 점, 양 의 법정증언도 수 사관의 감시 하에 하였던 점, 정숙이가 북한공작원이라는 증거가 없는 점, 암호 교육에 대한 증거도 없었고 암호책자도 공작의 일반법칙에 맞지 않다는 점, 수신용 라디오 호 출부호 암호 교육을 받은 정황 등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호출부호가 없어 지령문임 을 확인할 수 없음에도 사회구성체서설, 공산주의 책자를 암호책자라고 단정한 점, ~12. 사이 2권의 암호책자를 이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 2개월 간 6개의 지령 을 받는다는 것은 간첩의 지령 수신방식 상 불가능하다는 점, 책자의 필적이 동일 필적이 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 책자의 표식이 어떠한 기준과 규칙이 없이 단순하게 연결되 어 문장이 되었다는 점 등을 인정할 수 있다. 나아가 신 은 정숙이가 김철에게 어떤 물건을 건네준 것을 목격한 바 없다고 진술 하고 있고, 증거물들이 3차례에 걸쳐 양 의 집 비키니옷장이라는 동일한 장소에서만 수개월에 걸쳐 발견되었고, 판시사실 상 신청인이 증거물들을 전달받은 시점이 증거물의 내용상 시점과 모순되고, 양, 유 의 진실화해위원회 진술과 국군 1363부대 회신 및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신 내용이 일치하고 있어 증거물들은 허위의 증거로 조작되었다. 양 의 법정에서의 위증은 형법 제152조제2항 모해위증죄에 해당하며, 89) 수사관과 공조 하에 양, 유 의 허위진술 및 조작된 증거물 제출은 범죄수사에 종사하는 공 88)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관리과 ) 형법 제152조 (위증, 모해위증) 2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하여 피고인, 피의자 또는 징계혐의자를 모해할 목적으로 전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김철 간첩조작 의혹 사건 259

260 제4권 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증거를 조작한 것 90) 으로 이는 수사과정에서의 범죄행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 420조7호, 제422조의 재심사유에 해당하며, 형사소송법 제420조1호, 7호, 제422조 소정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다. 고무 찬양 여부 1) 범죄사실 요지 및 유죄증거 피고인은 하순경 강 에게 김일성과 김일성의 아버지가 일제시대에 중국에 서 항일투쟁을 하여 빛나는 성과를 거두었는데 그들이 사상은 다르지만 진정한 애국자들 이다 라고 말하여 반국가단체의 구성원과 그 활동을 찬양하였다는 것인데, 유죄의 증거는 강 의 치안본부, 검찰, 법정진술뿐이다. 2) 신청인 진술 신청인은 치안본부 및 검찰 수사, 서울지법에 제출한 탄원서, 법정에서 위 범죄사실을 모두 부인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도 나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워서 간첩으로 몰아세운 것 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이 건을 무마해주겠다며 강 가 돈을 요구하였지만 내가 거 절한 후 보안사 김 에게 면담을 요청하여 정춘식에게 받은 돈에 대하여 상담하였고, 정숙이로부터도 강제추행혐의로 고소를 당하자 나를 간첩으로 몰아 경찰에 허위신고하 였던 것이다 라면서, 강 는 유 를 꾀어 나의 소유 단양 소재 임야 9,700평을 마음 대로 처분해버렸다 고 진술하였다. 91) 3) 참고인 진술 강 는 서울지법 제3회 공판에서 김철에게 고소(변호사법 위반)를 당한 일이 있고, 유 가 간통죄로 고소장을 제출할 때 따라간 일이 있고, 정숙 이에게 김철을 사기로 고소하라고 한 적이 있고, 정숙이로부터 강제추행혐의로 고소당한 90) 국가보안법제12조(무고, 날조) 1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이 법의 죄에 대하여 무 고 또는 위증을 하거나 증거를 날조 인멸 은닉한 자는 그 각조에 정한 형에 처한다. 2범죄수사 또는 정보의 직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이나 이를 보조하는 자 또는 이를 지휘하는 자가 직권을 남용하여 제1항의 행위를 한 때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다만, 그 법정형의 최저가 2년 미만일 때에는 이를 2년으로 한다. 91) 진술청취(1회), (2회), (3회)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6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바 있다 고 진술하였다. 강 은 치안본부 자술서에서 강 로부터 초순에는 김철이 시궁창 같은 인간이니 컴퓨터 칩을 구입할 수 있으면 김철에게 주지 말라는 연락을 받은 적 이 있다고 진술하였다. 김 은 서울지법 제5차 공판에서 강 가 미국에 갔다 온 후 피고인이 자기 자식의 미래를 망쳐놓았다고 하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김철을 매장시키겠다고 한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고 진술하였다. 강 의 처인 이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강 가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김 철과의 사이가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미국에서 돌아온 뒤로 김철에 대한 이야기도 못 꺼내게 했다고 진술하였다. 92) 유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강 가 혼자 김철을 간첩으로 만들려다 안 되니 까 나와 양 를 끌어들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면서, 강 가 단양 소재 땅을 팔았다 고 하면서 200만 원을 주기에 받은 적이 있다 고 진술하였다. 93) 양 역시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강 가 김철을 간첩으로 만들면 상금을 타니 까 나누어서 쓰자고 제의했다 고 진술하였다. 94) 정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강 와 김철이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만나기만 하면 싸웠는데 무슨 일로 싸웠는지는 모르겠고, 강 가 김철에게 돈을 요구 한 것을 본적이 있다 고 진술하였다. 95) 4) 기타 자료 청주지방법원 단양등기소 폐쇄등기부 등본에 의하면, 김철 소유의 단양군 적성면 기동 리 산 107번지는 유 에 의해 가압류되었다 강제경매 신청되 어 소유권이 이전된 것으로 되어 있다. 경찰청 감찰관실의 회신공문에 의하면 신고유공자 강 에게 720만원이 지급 되었다 고 기재되어 있다. 96) 92) 면담조사. 93) 진술청취. 94) 진술청취. 95) 진술청취. 96) 경찰청 감찰담당관-2131 회신문. 김철 간첩조작 의혹 사건 261

262 제4권 5) 소결 신청인은 수사기관에서부터 위 범죄사실을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지만, 법원은 강 의 진술만으로 유죄로 인정하였다. 참고인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이 사건발생 직전, 신청인과 강 는 사이가 좋지 않았 고, 당시 강 가 신청인으로부터 변호사법 위반혐의, 정숙이로부터는 강제추행혐의로 고소를 당한 상태였던 점, 강 가 신청인을 매장시키겠다고 공언하였던 점, 신청인에게 이 건을 무마해주겠다는 조건으로 돈을 요구하였던 점, 신청인과 강 의 대화를 목격 하였다는 목격자 진술, 강 로부터 포상금을 나누어 쓰자는 제의를 받았다는 양, 유 의 진술, 강 가 신청인 재산을 처분한 바 있다는 유 의 진술, 강 가 이 건의 포상금을 수령하였다는 점 등이 인정된다. 이런 점을 볼 때 강 는 신청인과 사적 원한관계에 있어 신청인의 찬양고무의 진술 을 들었다고 증언하였으나, 강 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또한 강 의 진술 이외 달리 신청인이 고무 찬양하였음을 입증할 증거도 없다. Ⅲ. 결론 및 권고사항 1. 결론 이 사건은 치안본부가 정숙이의 아버지 정춘식이 조총련 간부라는 추정 하에 명백한 증거자료 없이 정숙이를 북한공작원으로 상정하고, 불법구금과 구금장소의 위법한 임의 적 변경, 고문 및 가혹행위를 통하여 신청인의 허위자백을 받아내고, 증거물을 조작하고, 참고인의 진술과 증언을 허위로 유도하였고, 검찰은 피고인의 고문과 허위자백에 대한 진술을 무시하고 검찰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만을 작성하는 자백 위주의 수사로 일관하 였고, 법원도 이러한 위법한 증거로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의 유죄판결을 한 중대한 인권 침해사건이다. 수사기관에서의 6일간의 불법구금, 고문 및 가혹행위, 방, 양 의 허위증언, 수사 관의 증거물 조작과 허위진술 요구 및 조작된 증거물 제출은 각 형법에 정한 범죄에 해당 하며 형사소송법 제420조1호, 7호, 제422조 소정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6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2. 권고사항 위 사건에 대해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국가가 행할 화해를 위한 조치에 대하여 다음 과 같이 권고한다. 국가는 치안본부가 수사과정에서 행한 위법한 구금 및 가혹행위, 증거를 조작한 점 에 대하여, 신청인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는 위법한 확정판결에 대하여 신청인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형사소 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철 간첩조작 의혹 사건 263

264 제4권 [별표 1] 사건 관련인 명단 구분 성명 조사일시 관련성 비고 신청인 김 철 (1회) (2회) (3회) 동 사건으로 징역7년 선고 참고인 유 (1회) (2회) 신청인의 처 참고인 양 (1회) (2회) 신청인의 내연녀 참고인 강 양 의 아들 참고인 신 신청인과 사업관계 참고인 정 연행과정 목격자 참고인 방 (1회) (2회) 귀순간첩 참고인 강 주일한국대사관 영사 참고인 김 신청인의 무역회사 동업자 참고인 이 제보자 강 의 처 수사관 김 치안본부 수사관 수사관 고 치안본부 수사관 수사관 이 치안본부 수사관 수사관 김 치안본부 수사관 수사관 조 치안본부 대북통신공작담당 수사관 박 치안본부 수사관 수사관 김 치안본부 수사관 수사관 이 치안본부 수사관 수사관 이 치안본부 수사관 수사관 김 치안본부 수사관 수사관 유 (1회) (2회) 치안본부 수사관(담당)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6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어부 최봉직의 실종 의혹 사건 결정사안 초 어부이자 선주인 최봉직이 간첩신고를 하였다가 배와 함께 국가기관에 연 행된 후 실종되었고, 그로 인해 신청인 등 유가족이 월북자가족으로 오인되어 경찰당국 에 의해 조사 및 감시를 받아 이웃으로부터 냉대와 차별을 받았다는 사건에 대하여 일부 진실을 규명한 사례. 결정요지 1. 충남 보령 출신의 어부이자 선주인 피해자 최봉직( 崔 鳳 直, 1917년생)이 인천 소래 포 구에 거주하던 김 이라는 사람에게 어선을 이용한 동업 제안을 받고 만나오던 중 초경 그로부터 입북( 入 北 ) 협박을 받은바, 간첩신고를 하고 며칠 뒤 피해자 소 유의 배와 함께 정보기관에 의해 연행되어 지금까지 생사를 알 수 없다는 내용이다. 2. 조사결과, 위 김 이 자수간첩으로서 육군 첩보대의 공작원이었고, 피해자는 첩보 대의 특수임무수행자로 발탁되어 북파되었다가 연락두절되고, 미귀 처리되었음을 확인하였다. 3. 특수임무수행자 모집이 일반적으로 기망 및 강제적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특히 민간 인 어부의 경우 북파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는 진술들이 있고, 또 일본에서 대학을 나 온 지식인으로서 교사 생활을 하였다는 위 김 이 사건발생 무렵 소래지역으로 와 어 업에 종사하고 피해자의 특수임무수행 기간 중에 첩보대공작원이었던 점, 피해자와 김 의 특수임무수행 기간이 일치하고 거주지가 논현동 번지로 동일한 점, 피해자의 공작기록부상 지원동기가 김 관련 내용으로 기재된 점, 피해자가 당시 군복무 중이 던 신청인(최봉직의 아들)에게 김 의 월북 협박 및 간첩신고 사실 등을 전달하여 온 점 등의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볼 때 피해자는 공작원 김 에게 유인되어 비자발적 상태에서 북파공작에 응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나, 김 의 사망 등 증거자료 부족으로 강제성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4. 그러나 국가가 피해자를 비밀리에 북파하여 실종되었음에도 이를 가족들에게 알리 지 않은 것은 피해자 가족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다. 피해자의 실종으로 인하여 어부 최봉직의 실종 의혹 사건 265

266 제4권 신청인이 부친의 소재 파악 및 어린 동생들의 생계 마련을 위해 탈영하였다가 징역형을 선고받고 이병으로 강등조치되고, 이후 피해자의 가족들이 경찰당국으로부터 월북자가족 으로 의심되어 조사 및 감시를 받아 이웃사람들에게 냉대와 차별을 받는 등 정신적 피해 를 입었으며 그 명예가 훼손되었다. 이는 헌법상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저버 린 것으로서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 전 문 사건명 라-206, 어부 최봉직의 실종 의혹 사건 신청인 최동현 결정일 주 문 이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일부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일부 진실규명 으로 결정 한다. 이 유 Ⅰ. 조사개요 1. 사건개요 이 사건은 충남 보령 출신 어부이자 선주인 최봉직( 崔 鳳 直, 1917년생, 이하 피해자라 고 한다)이 인천 소래에 거주하던 김 이라는 사람에게 어선을 이용한 동업 제안을 받고 만나오던 중 초경 그로부터 입북 협박을 받은바, 정보기관에 간첩신고를 하고 며칠 뒤 피해자 소유의 배와 함께 당국에 연행되어 지금까지 생사를 알 수 없다는 내용이다. 신청인(1942년생, 피해자의 아들)은 당시 군복무 중에 부친에게 전해 들은 김 의 월 북 협박 및 간첩신고 사실, 그 직후 부친과 배의 실종 등으로 추측하건대 부친은 정보기 관에 의해 북파된 것인데 관련 당국이 사실을 은폐함으로써 신청인이 부친의 소재 파악 및 어린 동생들의 생계 마련을 위해 탈영죄를 범하여 징역형을 선고받게 되었고, 이후 가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6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족들이 피해자를 월북자로 오인한 경찰당국에 의해 지속적으로 조사 및 감시를 받았고 이웃사람들로부터 간첩 집안 으로 냉대와 핍박을 당하였다며, 이 사건에 대 하여 진실규명을 신청하였다. 2. 조사의 근거와 목적 진실 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라 한다)는 항일독립운동, 반 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 학살 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전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 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 (제1조)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이하 기본법이라 한다)에 의거하여 설치되었다. 기본법 제2조제1항4호는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 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 상해 실종사건, 그밖의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 을 진실규명의 범위로 정하고 있는데, 이 사건은 피해자가 간첩신고 후 배와 함께 국가기관에 연행된 후 연락두절되었다는 것이므 로 공권력에 의한 실종의 의혹이 있고, 그 이후 신청인 등 가족들이 간첩 집안으로 의심 받아 수사당국으로부터 지속적인 감시대상이 되었다고 하는바, 공권력 행사로 인하여 발 생한 실종으로서 그 과정에 인권침해가 있었는지를 규명할 필요가 있어 조사 개시를 의결하였다. 3. 규명과제 피해자 및 배의 실종에 국가 공권력이 개입하였는지 피해자 가족에 대한 인권침해 여부 4. 조사방법 가. 자료조사 특수임무수행자보상에관한법률 ( 제정 공포) : 피해자의 특수임무수행 자 대상 여부 판단 은닉된 분단의 희생자 : 북파공작원 리포트 (2000년 국회국정감사자료집), 북파공 어부 최봉직의 실종 의혹 사건 267

268 제4권 작원의 현실과 대책 (세미나 발표문, ), 우리가 지운 얼굴 (김성호 지음, 한겨 레신문사출판부, 2006) 등 북파공작 관련 간행물 국가정보원의 회신 자료 : 전직 중앙정보부 충남 보령지부 조정관 이 (사망)의 인적 기록 등 신청인의 병적 기록 : 탈영 및 처벌 사실 확인 특수임무수행자보상심의위원회 및 국군정보사령부 회신공문, 공작기록부 등 관련 자료 등 나. 진술청취 옛 중앙정보부 보령지부 현지채용 직원 김, 전 보령군 오천면 직원 이, 김 의 지인 최, 김성호 전 국회의원, 전 북파공작원 김 등의 진술을 청취하였다. Ⅱ. 조사결과 1. 사건배경 6 25전쟁 후 냉전적 상황 하에서 남과 북의 정권은 상대 지역에 타격을 가하고 또 첩 보하는 공작원 을 무수히 파송하였으나, 이는 정전협정 위반행위에 해당하므로 그 존재 에 대하여 서로 함구하여왔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이른바 비전향장기수에 대한 북한 송환이 정부차원에서 추진되면서 생존 북파공작원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하였고, 이들의 존재 및 대우 문제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2000년 김성호 의원이 국회 국정감사 대정부질의 자료집( 은닉된 분단의 희생자 : 북파 공작원 리포트 )에서 북파공작원 수가 대략 1만여 명, 사망 실종자 수는 총 7,726명에 이른다고 처음 공개하였고, 이후 국군정보사령부는 제203차 국가안전보장회 의에서 북파 사망 실종자수는 7,987명이라고 보고하였다. 1) 2003년 말에는 영화 <실미 도>가 개봉되어 북파공작원의 존재는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특수임무수행자보상에관한법률 (법률 제7122호, 이하 보상법이라 한다) 및 1) 김성호, 우리가 지운 얼굴, 한겨레신문사출판부, 2006, 쪽. 7,900여 명에 달하는 북파 사망 실종 자의 연고자를 찾은 경우는 현재 400여 명(5%)에 불과하다( 국군정보사 보훈TF단장과 의 대화에서)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6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특수임무수행자지원에관한법률 (법률 제7160호) 제정에 이어 관련 시행령 및 시행규칙 이 만들어지면서 북파공작원으로 인정될 경우 국가차원의 보상 및 지원이 가능해졌다. 2) 북파공작(이하 특수임무수행이라는 용어와 혼용한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3) 특수임무 요원은 대부분 민간인 신분으로 군부대 혹은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前 身, 이하 중 정이라고 한다)의 각 공작부대가 운영하는 물색조 라 불리는 채용전담자들에게 발탁되어 일정기간 교육 및 훈련을 거쳐 계약하는 방식으로 선발, 파견되었으나, 특별한 훈련을 받 지 않은 평범한 민간인이 동원된 사례도 있었다. 대개 배를 소유한 선장이나 어부들이 그 러하다. 이 사건의 피해자 최봉직은 만 46세의 어선을 소유한 선주로서 특수임무수행자 호송을 위해 동원된 민간인 어부의 사례에 속한다. 2. 사건경위 신청인 진술에서 파악된 사건의 경위는 다음과 같다. 당시 육군본부 부관감실에 근무 중이었던 4) 신청인은 초경 지인을 통해 두 차례 부친의 연락을 받은바, 처음에 는 동업관계에 있던 김 으로부터 10월 12일 대통령 취임식 날 5) 어수선한 틈을 타서 새벽에 출항하여 북으로 가서 금과 마약을 받아오라고 권총 협박을 당하였다 고 하기에 우선 다녀오겠다고 하여 김 을 안심시킨 후 신고하라 고 말하였고, 두 번째는 김 과 출발하기로 약속한 날 새벽 5시 무렵 인천 송도에 배를 대어놓고 동인천경찰서 공작 반에 간첩신고를 하였더니 중정에 신고하라고 하여 중정을 찾아갔던바 김 을 피해 송림동으로 가 있으면서 지시를 기다리라고 하는데 선원을 가장하여 정보요원들을 태워 가려는 것 같다 고 말하였다는 것이다. 그 후 오랫동안 부친에게서 연락이 없어 부대장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특별휴가를 받아 부친이 살던 집을 찾아갔더니, 이웃사람들이 시커먼 차가 와서 느 아버지하고 배하고 끌 고 갔다 고 말하였고, 한 달쯤 지났을 무렵 부친의 편지를 받았는데 아버지는 잘 있으니 2) 위 보상법 제4조에 의거, 특수임무수행자 및 그 유족에 대한 보상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 의결하 는 특수임무수행자보상심의위원회(국무총리 소속)가 설립, 활동 중이다. 3) 2000년 국회 국정감사 대정부질의 자료집 은닉된 분단의 희생자: 북파공작원 리포트 ; 김성호 저, 민간 인 어부도 북파공작에 동원되었다, 우리가 지운 얼굴, 쪽 등. 4) 신청인은 입대하여 육군본부 부관감실에 배치되었다(병적기록 4/4쪽). 5) 실제 1963년 대통령선거일은 이고, 당선자 박정희의 대통령 취임식은 이었다. 국군정보사령 부 보존 공작기록부에 기재된 최봉직의 북파일은 이다. 어부 최봉직의 실종 의혹 사건 269

270 제4권 걱정마라. 동생들을 잘 부탁한다 는 짧은 내용이었으며 우편소인이 반쯤 지워져서 발송 지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부친의 소재 파악을 위해 육군본부 8081부대 방첩 대에 찾아가 사정을 설명한바, 윤[ 名 不 詳 ]상사라는 분이 인천의 중정까지 6) 동행하여 가 서 별일 아니니 곧 나올 것 이라고 하였으나 여전히 소식이 없었고, 이후 청와대에 탄원 서를 제출하였더니 치안본부에서 사람이 나와 상부에 보고하여 조치하겠다 고 하였으나 종무소식이었다는 것이다. 3. 사건 조사결과 가. 피해자의 실종과 중정의 개입 여부 1) 신청인 진술 신청인은 부친이 동인천경찰서 공작반에 김 을 간첩신고하였더니 중정에다 하라고 하여 중정에 가서 신고하니 송림동으로 가 있으면서 지시를 기다리라 고 하였다. 또, 제 대 후 보령으로 가서 건축 등 노동일에 종사하였는데 주민등록증 제도가 실시되면서 경 찰이 수시로 찾아와 아버지 어디 갔냐 고 묻고 다녔고, 형과 동생, 누나 등 형제들이 이 웃사람들로부터 빨갱이 집안 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등으로 자주 싸움을 벌여 경찰서에 잡혀가는 일이 발생하여 당시 중정의 조정관이었던 이 7) 을 소개받아 가서 도움을 구 하였더니, 이 이 사상불순자 명단에는 없는데 본사에 연락하여 알아보겠다 고 하였 고,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 지나서 찾아갔더니 부친 잃은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나라에 좋 은 일을 하셨다고 생각하고 이해하라 고 말하였다. 그래서 부친의 월북 오해로 빨갱이 가 족 취급을 받고 있으니 사망신고를 할 수 있게 해주면 부친 일을 덮겠다고 하자, 지금은 때가 아니니 기다렸다가 내가 가능한 때를 알려주겠다 고 하였고, 그로부터 2년인가 지 나서 사망신고를 접수하라 는 연락을 받았다고 진술하였다. 2) 참고인 진술 1970년대 중반 중정 보령지부 현지채용직원(이른바 망원) 김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 6) 신청인은 당시 윤상사 와 함께 방문한 기관을 중정 인천지부로 알고 있었다. 윤상사 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 하였으나, 1963년 이전까지 8081부대 소속 부사관이 총 1,559명이므로 소속 부대와 윤상사 라는 정보만 으로는 찾기 어렵다는 회신을 받았다. 7) 출생, 사망. 국가정보원 조회 결과 ~ 사이 옛 중정 충남지부 근무사실 확인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7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사에서, 최동현이 경찰들이 간첩 집안이라고 하며 귀찮게 하여 고초를 겪는다고 해서 만날 그렇게 당해서 살겠냐, 우리가 그걸 관장하고 있으니 과장한테 얘기해서 해결을 하 자 고 해서 제가 과장님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과장이 여기저기 다 연락해보 고 나서 아무 이상 없으니까 사망신고라도 해주어야겠다고 하며 오천면에다 바로 직접 전화를 했고, 보령경찰서 정보과장 박 8) 에게도 전화를 걸어 우리에게 많이 협조해주 는 사람이니까 괴롭히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고 진술하였다. 전 보령군 오천면 직원 이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최동현이 허구한 날 찾아 와서 부친의 사망신고를 해달라고 졸랐으나 행불자라는 이유만으로는 처리해줄 수 없어 서 계속 돌려보냈는데, 어느 날 중정 조정관이 찾아와서 왜 사망신고를 해주지 않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행불자라는 사실만으로는 해줄 수 없다고 하자, 조정관 하는 말이 우리 기관을 위해서 협조를 많이 해준 분이다. 그러니 염려 말고 사망신고 처리해라. 책임은 내가 지겠다 고 했습니다. 당시 중정이라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했고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때여서 그러마고 했습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9) 3) 공작기록부 등 자료조사결과 피해자의 제적등본에는 1981년 10월 5일 오전 7시 10분 인천시 송림4동 8번지에서 사 망, 1984년 7월 9일 호주가 신고 10) 로 기재되어 있다. 국가정보원에 최봉직의 북파사실 여부를 조회한바, 경 우리 원 충남지부에 경 부( 父 ) 최봉직이 간첩신고 후 행불되었다 고 제보(제보자 이 추정)한 바 있어 당시 확인결과 신고사실 등 관련 내용이 확인되지 않아 종결처리한 바 있음 이라는 회신을 받았다(수조-3362, ). 11) 특수임무수행자보상심의위원회에 방문 면담하고(도 조사관), 관련 자료를 요청하였으나, 두 차례 모두 해당사항 없음 회신을 받았다 차 정보기관에 의한 북파 의혹을 제기하며 자료협조를 요청한바, 년 인천 첩보대에 동명인이 채용되었던 것은 확인 된다는 회신을 받았다(조사처-254) 국군 정보사령부에 관련 자료를 요청한바, 공작기록부는 비밀자료로 관리 8) 생, 사망(보령경찰서 인적조회 결과, 시행공문 경무과-5295, ). 9) 김, 이 의 진술은 전화면담 및 진술청취. 10) 신청인은 이 이 알려준 대로 쓴 것이라고 하며, 이에 근거하여 부친이 1981년 무렵에 사망하였을 것이 라고 믿고 있다. 11) 이 이 사망하여 그가 무엇에 근거하여 최봉직의 사망신고 처리를 하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어부 최봉직의 실종 의혹 사건 271

272 제4권 되어 대외유출이 불가 하다는 회신을 받았고, 그 후 두 달이 지난 6. 4.에 어렵사리 인사 카드로 보이는 공작기록부와 관리카드로 보이는 공작기록부 등 2종의 최봉직 관련 공작 기록부를 열람하였다(표지 포함 도합 7쪽 분량). 간단한 메모와 기억에 근거하여 작성한 1종의 공작기록부 기재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채용일자 : 미귀 : ) 주소 : 논현동 번지 13) 가족사항 : 장남 정원, 차남 동현, 딸 동금 교육기간 : (1963) 8. 2.~ 지원동기 : 친형 김 의 권유에 따라 자수 권고, 14) 공직에 경험 많은 조종관 권유 피해보상 : 소형 어선 시가 45,000 관리카드로 보이는 다른 1종의 공작기록부 기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채용동기 : 주공작원 김 의 권유 소속부대 : 육군 제3516부대 공작임무 : 오지 단기 어부 파견지점 : [황해도] 연안군 송호리 일대 파견 : 귀예 : 미귀보고 : 연락두절로 해고 관리카드로 보이는 공작기록부 표지에는 피해자의 이름 위에 김, 임 2명의 이 름이 나란히 기재되어 있고, 15) 가족사항에 막내아들(최정현, 당시 8세)이 추가되어 네 자 녀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12) 다른 1종에는 미귀일이 8. 4.로 기재되어 있다. 13) 최봉직의 당시 주소지는 호적등본상 사망장소인 인천시 송림4동 8번지였다. 이는 신청인의 병적기록에서 확인된다. 14) 이 내용이 피해자 최봉직의 지원동기로 기재된 점이 매우 이상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이유를 알기 어렵다. 김 의 공작기록부에 따르면, 김 은 김 의 형으로 당시 49세, 전북대 교수, 전주 거주로 기재되 어 있다. 15) 동 공작기록부에 임 은 38, 소졸, 평북, 어부, 미귀, 김 은 44, 대졸, 평북, 교원 으로 기재되어 있 다. 임 은 우리가 지운 얼굴 의 북파사망자 명단 에도 등재되어 있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7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4) 소결 조사결과, 피해자는 중정이 아니라 육군 제3516부대에 의해 북파되었다가 연락두절되어 미귀 처리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김 이 1955년에 간첩 자 수한 육군 첩보대의 공작원 신분이고, 피해자 소유의 배도 동 북파공작에 이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즉, 피해자는 첩보대 공작원 김 에 의해 특수임무수행자로 발탁 되어 피해자 소유의 배와 함께 북파공작에 동원되었다가 실종되었던 것이다. 나.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여부 1) 북파의 강제성 여부 가) 모집과정의 기망 제16대 국회의원으로서 특수임무수행자 관련 법 제정에 노력한 김성호는 저서 우리가 지운 얼굴 에서 군 당국은 1951년부터 1972년까지 22년 동안 물색조 라는 채용전담자를 두어 민간인에게 접근하여 평생생활 보장, 군 경찰 등 기관원으로 특채, 병역면제 등 의 조건을 내세워 채용하는 형식을 취하였으나 대부분의 경우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썼다. 16) 또한,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17) 특수임무수행자는 모두 국가 공권력에 의한 피해자다. 특수임무수행자는 거의 대부분 거액의 돈과 취업 등으로 유인한 기망이 있었 고, 도중에 포기의사를 밝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있는 등 강압적인 상태에서 추진되었다. 일부 아무것도 모른 채 가게 된 경우도 있는데 내 책에 나오는 민간인 어부 들이다. 내가 국회에 있을 때는 법 제정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인권 문제의 측면에서 접근 하지 못하였는데, 분명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라고 생각한다. 늦게나마 진실화해위원회를 통해 이 문제가 제기되어 다행이다 라고 진술하였다. 1963~1964년 첩보부대 공작원으로 근무했던 김 은 힘깨나 쓰고 영민해 보이는데 행색이 남루한 젊은이들한테 접근하여 나라를 위해 좋은 일 하라고 구슬리면 대부분 넘 어온다. 북파 직전에야 비로소 북한에 간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때는 안 갈 도리가 없다. 민간인 어부들의 경우 떠날 때까지도 목적지가 북쪽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고 진술하 였다. 18) 16) 김성호, 누가 공작원이 되었나, 우리가 지운 얼굴, 31-34쪽. 17) 전화면담. 18) 전화면담. 어부 최봉직의 실종 의혹 사건 273

274 제4권 나) 김 의 이력 및 개입 여부 1 신청인 진술 신청인은 김 을 두 번 만났는데, 처음에는 입대 후 첫 외출을 받아 나왔을 때 아버 지가 동업하는 사람으로 소개받았으며, 부친과 비슷한 연배로 소래파출소 옆 일제 때 화 약창고로 쓰이던 땅굴에서 처, 자녀(1 2명)와 살고 있었고, 키가 크고 훤칠한 호남형으 로 주말마다 산에 다닐 정도로 건장한 체격에 별자리 등 높은 사람들과 친분이 많다는 것 을 자랑하였으며, 인천 송도중학교 명예강사로 재직하는 등 동네유지로 통하였다 고 진 술하였다. 또 한 번은 부친으로부터 연락이 없어서 휴가를 받고 나왔을 때 김 을 찾아 가 당신 간첩 아니냐 며 아버지의 행방을 캐물으며 따졌더니 얼굴이 벌겋게 된 채 말이 없었고, 동네사람들에게 들으니 간첩 자수하여 잘살고 있다더라 고 진술하였다. 2 참고인 진술 1960년대 무렵 인천에서 살았던 최 은 19) 김 이 소래포구에서 어업에 종사(남의 배에 종사)하며 일제 탄약고로 쓰였던 움막집에 살았으나, 도쿄제대 출신으로 학식이 높아 우리 형과 형 친구에게 과외를 지도하고 스케이트를 가르쳐주는 등 스포츠에도 능하였다. 그가 자수간첩이라는 사실은 당시 부친(한전 간부로 근무)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고 이웃 사람들도 다 알았으나 이미 당국에 자수하여 풀려났고, 아는 것이 많고 외모도 준수하여 주변 사람들이 모두 지식인으로 인정하고 존경하는 등 격의 없이 지냈으며, 고등공민학교 (생활농민학교), 송도중학 등 교직에도 잠시 종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고 진술하였다. 3 자료조사결과 국군정보사 보존 김 의 공작기록부 표지에는 임, 최봉직의 이름이 함께 적혀 있다. 공작기록부상 김 의 이력은 다음과 같다. 20) 소속 : 201지구대 특기 : 스케이트, 일어, 소련어 생년월일 : 학력 : 일본 京 都 금성중학교 5년 수료 일본 東 京 일본법대 3년 퇴 경력 : ~ 평북 박천중학교 교원 19) 생; 전화면담 20) 김 의 공작기록부 역시 대외유출이 불가능한 비밀자료라고 하여 오전 10시 국군정보사령 부에 출장하여 열람, 메모하였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7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 대남간첩으로 밀파 ~ 성신중학교 교원 채용일 : 해 118 : 공작기록부에는 형 김 을 비롯한 재남 재북의 가족사항과 친구관계가 기재되어 있다. 김 의 제적등본 및 주민등록등본, 1950년대 종로구 동적부 등 자료에 따르면, 김 은 취적( 就 籍 )하고 1957~1958년 무렵 이 과 혼인하여 처가인 서울 종로구 누하동에서 살면서 두 아들을 낳았고, ~12. 사이 인천 논현동으로 이주하였고, 사망하였다. 다) 피해자의 처지 신청인 진술 및 제적등본에 따르면, 당시 피해자는 만 46세 중년의 나이로 21) 1958년 처 홍옥련( 洪 玉 蓮, 1921년생)을 여의고 사업에 실패하자 1961년경 가산( 家 産 )으로 물려받은 배 1척과 막내아들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 차남(신청인)과 차녀가 살고 있던 인천으로 이 사하여 왔다. 피해자는 입대하였던 신청인이 육군본부에 배치받은 후 첫 외출을 나오자 동업하고 있던 김 을 소개하였고, 이후 군복무 중이던 신청인에게 연락하여 김 의 월북 협박 사실, 간첩신고와 신고 후 수사기관의 반응을 전하는 등 자신의 동향 과 처지를 알렸다. 라) 소결 특수임무수행 관련 저서 및 관련자 진술을 종합한바, 이른바 북파공작은 정전협정에 반하는 행위로서 비밀리에 추진되었으므로 가족들에게 관련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은 물 론 당사자에 대하여도 선발 및 채용, 북파과정에 기망이 있는 등 철저한 기밀유지가 강제 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특히 단순 호송을 담당하는 민간인 어부의 경우 북파 직전까지 관련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는 것이므로 피해자 역시 교육이나 채용 등의 절차 없이 비자 발적인 상태에서 북파되었을 개연성이 있다. 21) 신청인은 피해자의 5남매 중 셋째이다. 장녀( 崔 東 乙, 1938년생)는 出 嫁 하였고, 장남( 崔 貞 元, 1936년생)은 충남 당진에서 머슴살이하였고, 차녀( 崔 東 今, 1946년생)와 삼남( 崔 貞 賢, 1955년생)은 인천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당시 피해자는 20세 이상 성년 자녀를 셋이나 둔 초로( 初 老 )의 연배에 해당한다. 어부 최봉직의 실종 의혹 사건 275

276 제4권 일본에서 대학을 나온 지식인으로서 교사생활을 하였던 김 이 사건발생 무렵 소래 지역으로 와 어업에 종사한 점, 피해자의 북파교육 기간( ~ )에 김 이 육 군 첩보대의 공작원 신분이었다는 점, 당시 두 사람의 거주지가 논현동 번지로 동 일하고 피해자의 공작기록부 상 지원동기가 김 관련 내용으로 기재된 점, 피해자가 당시 군복무 중인 신청인에게 김 의 월북 협박 및 간첩신고 사실 등을 전달하여온 점 등의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하건대, 피해자는 공작원 김 에게 유인되어 비자발적 상 태에서 북파공작에 응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나, 김 의 사망 등 증거자료 부족으로 강 제성 여부를 확정하기는 어렵다. 2) 가족들에 대한 인권침해 가) 신청인 진술 및 판결문 등 신청인은 김 을 간첩신고하였다는 연락 이후 오랫동안 부친으로부터 소식이 없어 서 특별휴가를 받아 외박을 나왔더니, 부친은 배와 함께 기관에 연행되어 소식이 없고 어 린 동생들이 어렵게 살고 있어 곧바로 귀대하지 못하다가 탈영죄로 체포, 군법회의에 회 부되어 징역을 살았다. 부친의 일이 아니라면 육군본부 부관감실이라는 좋은 근무조건을 내팽개치고 탈영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진술하였다. 군법회의 판결문에 따르면, 신청인은 ~6. 27.간 소속 대장으로부터 외박을 득하였으나 귀가하지 않던 중 자가( 自 家 )에서 체포되어 군법회의에 회부, 군형법 제30조제1항3호에 의거 징역 10월형 을 선고받았다. 병적기록에 따르면, 신청인은 이병으로 강등되어 의무복무기간을 다 채운 뒤 에 전역 하였다 입대 후 4년 10개월 만이다. 신청인은 전역 후 고향인 충남 보령으로 돌아가 건축 일에 종사하였는데, 이 무렵 주 민등록제도가 시행되어 부친의 부재는 월북으로 의심되었고, 이로 인하여 형과 남동생 은 당진경찰서의 유 형사와 손형사에게, 누나와 신청인은 보령경찰서의 김, 유 형사에게 시달림을 당하였고, 22) 경찰의 감시와 조사로 인하여 이웃사람들이 경계 하고 손가락질하여 살기가 힘들었고, 결국 막내 남동생은 사회 부적응자가 되었다고 진 술하였다. 22) 유 ( 생)는 사망, 김 ( 생)은 연락 불가하고, 손형사(손, 생)는 경우회에 물 어보라 며 진술을 거부하였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7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나) 참고인 진술 신청인 등 피해자 가족에 대한 경찰의 조사 사실은 위 전 중정 보령지부의 직원 김 과 전 보령군 오천면 호적담당 이 의 진술에서 확인된다. 이 는 오천면은 6 25 때 부역자가 많았고 고정간첩도 있었고 1974년인가는 배 타고 간첩이 들어와서 대전에서 잡힌 사건도 있었다. 납북어부들도 많아서 도경에서 경찰에서 사람을 찾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행불자라는 이유로 사망신고를 맘대로 처리할 수 없었다 며 월북자 및 행불자 가 족에 대한 경계가 심하였던 지역적 특성에 대하여 진술하였다. 다) 공작기록부 및 전사확인서 등 기록 국군정보사 공작기록부에는 피해자가 북파, 복귀로 예정되었으나 연락두절되어 미귀(해고)한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23) 국군 제9965부대가 자에 발급한 피해자의 전사확인서에는 1964년 8월 12일 중부지구에서 전사하 였음을 확인 통지합니다 라고 기재되어 있다. 라) 소결 조사결과, 피해자는 육군 첩보대에 의해 북파되었다가 미귀 처리되었 음을 확인하였다. 국가의 명령에 따른 업무수행 과정에서 피해자의 신상에 변화가 발생 할 경우 마땅히 그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려야 함에도 국가는 에 이미 피해자의 실 종사실을 인지하였음에도 피해자의 소재 파악에 동분서주하는 신청인의 노력에도 불구 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이로써 군복무 중이었던 신청인이 부친의 행방불명 으로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린 어린 두 동생의 생계 마련을 위해 군무 이탈하여 징역 8월 형을 선고받고 이병으로 강등되는 등의 불명예를 겪게 되었다. 또한, 신청인 등 유가족들 이 주민등록제도 시행 이후에는 피해자의 실종을 월북으로 의심하는 경찰당국의 조사와 감시에 시달렸고 이웃사람들로부터 빨갱이 집안 으로 냉대 받는 등 정신적 피해를 입고 그 명예가 훼손되었다. 이는 헌법상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저버린 것으로서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 23) 1종의 공작기록부에는 미귀 보고, 연락두절로 해고되었다고 나오나, 김 의 공작기록부에 김 이 해고되었다고 기재된 사실로 보건대, 피해자에 대한 미귀(해고) 보고는 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어부 최봉직의 실종 의혹 사건 277

278 제4권 Ⅲ. 결론 및 권고사항 1. 결론 조사결과, 피해자의 실종은 육군 첩보대의 북파공작에 의한 것이었음을 확인하였다. 피 해자는 첩보대 공작원 김 에게 발탁되어 자기 소유의 배와 함께 북파되 었다가 실종되어 미귀 처리되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특수임무수행자 모집이 기망 및 강제적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특히 민간인 어부의 경우 북파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는 진술들이 있고, 당시 김 이 육군 첩보 대의 공작원이었던 점, 피해자와 김 의 공작기록부 기록이 연관되어 섞여 있는 점, 군 복무중의 신청인이 피해자에게 들었다는 진술 등의 여러 정황을 종합하건대, 피해자가 공작원 김 에 유인되어 특수임무수행에 발탁되었을 개연성이 있으나, 김 의 사망 등 증거자료 부족으로 북파과정에서의 강제성은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국가가 에 이미 피해자의 실종을 확인하였음에도 그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피해자 가족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부친의 생사 파악 및 동생들의 생계 마련을 위해 애쓰던 신청인이 군복무 중 탈영하여 징역형을 선고받고 이병으로 강등되는 등의 불명예를 겪고, 주민등록제도 시행 이후 피해자의 실종을 월북 으로 의심한 경찰당국에 의해 신청인 등 피해자의 자녀들이 조사 및 감시를 받고 이웃사 람들에게 빨갱이 집안으로 냉대 받는 등의 정신적 피해를 입고 그 명예가 훼손된바, 이 는 헌법상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2. 권고 국가는 피해자의 실종을 알리지 않음으로써 유가족이 겪은 인권침해에 대하여 사과하 여 위로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관련 법률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할 필요 가 있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7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김희권 5 18 관련 총기은닉 및 강도조작 의혹 사건 결정사안 5 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고등학생이던 김희권이 5 18에 참여한 후 총기를 반납하 였으나, 총기 반납과 관련하여 경찰에 불법연행된 상태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통하여 총기은닉 및 강도사건의 범인으로 조작되어 광주교도소 및 소년원에서 수감생활을 한 점 이 밝혀져 진실규명으로 결정한 사례. 결정요지 1. 본 사건은 신청인 김희권이 광주 5 18민주화운동에 참여한 후 시위를 마치고 총기 를 반납하였으나, 광주경찰서에 총기은닉 및 강도사건의 용의자로 불법체포 연행된 후, 구속영장이 집행되기까지 23일 동안 영장 없이 가족 및 변호인의 접견을 차단한 채 광주 경찰서 등지에 불법구금한 상태에서 구타 등 가혹행위를 통하여 허위자백을 받아 총기은 닉 및 강도죄로 기소되어 1년여에 걸쳐 교도소와 소년원에서 복역하고 나온 사건이다. 2. 광주경찰서는 신청인을 불법연행하여 가혹행위 등을 통한 강압조사를 실시하여 신 청인의 거짓 자백을 받아내었고, 광주지방검찰청은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를 당하였다는 신청인의 주장을 묵살하고, 경찰의 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수사서류에 근거하여 광주지 방법원에 기소하였고, 광주지방법원을 비롯한 법원은 검사의 공소내용을 그대로 인정하 여 신청인에게 단기 3년 6월에 장기 4년을 선고하였지만, 항소심에서 소년부지원 송치 결 정을 선고하였다. 3. 본 사건은 신청인에 대한 불법연행과 불법구금, 가혹행위를 통한 수사, 검찰의 무성 의한 기소 및 법원의 판결과정까지 전 과정에 걸쳐 신청인에 대한 인권유린사실이 확인 된 사건으로서,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의 진실규명을 결정하면서 국가에 대해 광주경 찰서가 신청인에 가한 불법감금과 가혹행위, 불법으로 범죄사실을 허위조작한 점에 대하 여 신청인 및 고문피해자들에게 사과할 필요가 있음을 권고하였다. 김희권 5 18 관련 총기은닉 및 강도조작 의혹 사건 279

280 제4권 전 문 사 건 라-10589, 김희권 5 18 관련 총기은닉 및 강도조작 의혹사건 신청인 김희권 결정일 주 문 이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진실규명 으로 결정한다. 이 유 Ⅰ. 조사개요 1. 사건개요 가. 사건의 경위 및 신청취지 신청인 김희권(1964년생, 당시 15세, 이하 신청인 이라 한다)은 경 평소 알 고 지내던 선배 윤문호와 함께 전남 강진군 성전면 소재 친구 정원의 고향집에 놀러 갔 다가 경 성전면까지 내려온 5 18민주화운동의 시민군에 가담하여 해남 등을 돌며 시위에 참여하였고, 전남 해남군 계곡면지서를 습격하여 총기를 탈취한 후, 시민군 차량 (버스)에 탑승하여 광주 진입을 시도하였으나 광주비행장 입구에서 계엄군과 대치하여 포기하고 강진군 성전으로 돌아와 해산하는 과정에서 시민군 버스차량 안에서 성명불상 청년들에게 총기를 자진 반납한 바 있는데, 경 신청인 집으로 찾아온 광주경 찰서 형사 2명에게 연행되어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된 후,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 까지 불법구금상태에서 5 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탈취한 총기 은닉장소를 대라며 물고 문과 곤봉 구타를 당하는 등 가혹행위를 당하였고, 신청인이 시종일관 총기은닉사실을 부인하자 수사관들은 강도사건 관련자 윤 등을 고문, 협박, 회유하여 신청인과 함께 총기를 은닉하고 강도행위를 한 것으로 조작하고, 신청인에게 고문, 구타 등 가혹행위를 가하여 윤 가 허위진술한 내용을 인정하도록 강요, 허위자백을 받아 검찰에 송치하였 고, 광주지방법원은 신청인 등을 총포화약류단속법위반죄, 특수강도죄, 강도 상해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죄를 인정하여 신청인에게 징역 단기 3년 6월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8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장기 4년 선고 1) 하였으며, 광주고등법원은 신청인 등을 소년부에 송치한다고 결정하였고, 이후 신청인들은 소년원으로 옮겨 생활하다가 두 달여 뒤인 경 출원하였다. 이에 신청인은 국가가 형벌권을 위법 부당하게 남용하여 고문, 구타 등 가혹행위로 사 건을 조작하였다며 진실 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 회라 한다)에 진실규명을 신청하였다. 나. 광주지방법원의 판결요지 2) 및 광주고등법원 소년부 송치 결정 피고인 김희권, 같은 윤, 같은 이 은 1) 공소외 정 과 공모하여 :00경부터 경까지 전남 강진군 성전면 도림리 소재 공소외 김 남진의 집 선반과 같은 리 소재 피고인 이 의 집 천정에 광주사태 당시 습득한 총번 , 칼빈 2정과 탄알 16발이 든 탄창1개를 은닉, 소지하고, 2) 공소외 박 과 공모하여 :30경부터 :30경까지 광주시 북구 풍향2동 599 소재 피해자 최 경영의 원호문구사에 침입하여 칼을 들고 죽인다고 협박한 후 방안 금고에 보관되어 있는 현금 100,000원과 거북선 담배 10보루, 사인펜 12개, 대학노트 3권 등 시가 금 56,700 원 상당을 강취하고, 3) 공소외 김 과 합동하여 :00경부터 :30경까지 광주시 동구 장동 103의 4 소재 피해자 최 경영의 경진상회에 침입하여 복면을 한 김 이 각목으로 피해자의 머리 부분 을 1회 가격하고 금고 등에 보관되어 있는 현금 130,000원, 인삼주 7병 등 총 19병의 주 류를 강취하고, 위 최경식에게 전치 약 1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가하고, 피고인 김희권은 4) 장, 정, 박, 이, 김 등과 공동하여 :00경 광주시 동구 계림동 시청 후문 앞에서 피해자 홍 등을 불러 도망가지 못하게 둘러싸고 주먹만한 돌을 들어 홍 의 머리 부분을 1회 때려 전치 약 1) 광주지방법원은 공동피고인 윤문호에게 징역 단기 4년 장기 5년, 같은 이제철에게 단기 3년 6월 장기 6 년, 같은 윤영남, 같은 문상길, 같은 장종권에게 각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였다. 2) 이 사건은 광주고등법원에서 소년부 송치결정을 함으로써 광주지방법원에서 인정한 아래 범죄사실은 확 정판결된 것이 아니지만 신청인의 신청내용과 관련되어 있어 기술하였다. 김희권 5 18 관련 총기은닉 및 강도조작 의혹 사건 281

282 제4권 2주간의 전두부열상을 가한 것이다. 2. 조사의 근거와 목적 진실 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이하 기본법 이라 한다) 제2조제1항4호는 진실규 명 대상으로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 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 상해 실종사건, 그 밖의 중대 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 에 대하여 조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바, 이 사건은 신청인이 광주경찰서에 장기간 불법감금된 채 가혹행위를 당하여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것이므로 기본법이 정한 진실규명 범위에 해당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불법감금, 가혹행위와 조작된 사건의 진실 을 규명하고, 기본법 제4장에 따라 국가가 취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 등을 권고할 필요성 을 인정하여 조사개시를 의결하고 조사를 진행하였다. 3. 규명과제 가. 불법감금 여부 신청인이 경 광주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구속영장 없이 연행되어 구속영장이 발부, 집행될 때까지 23일간 경찰서 유치장에 불법구금당한 상태에서 수 사를 받았다고 하므로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나. 고문, 가혹행위 여부 신청인이 광주경찰서 본청과 지원동, 대의동파출소 등지로 끌려가 총기은닉사실과 강 도사건 가담 여부에 대해 자백을 강요받으며 물고문과 폭언, 구타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 고 하므로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다. 범죄사실혐의 조작 여부 신청인의 총기은닉 및 강도사건 혐의가 고문, 구타 등 가혹행위로 인한 허위자백에 의 하여 조작되었다고 하므로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8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4. 조사방법 가. 자료조사 광주동부경찰서 수사과 기록 31매 입수 구속인명부 1매, 범죄접수부 3매, 사건송치서 25매, 5 18 당시 반납총기 자료 요청에 대한 회신 2매 국가기록원서울센타 신청인 판결문 19매 입수 광주지방법원 판결문(80고합269), 광주고등법원 제1형사부 결정문(81노393) 미 입수자료 및 사유 광주지방검찰청 자료 협조 요청 결과, 동 사건은 소년부 송치사건으로 종결되어 법원 사무규칙 제48조에 의거 관련문서의 보존기간 5년이 경과하였음으로 파기 처분하였다며 자료 없음 통보받음 광주지방법원 가정지원 소년부 자료 확인결과, 소년원생들은 보호처분 대상으로 소년원생 보호를 위해 관련서류를 10년간 보관한 후 파기한다고 통보받음 나. 진술조사 신청인 김희권( ), 참고인 윤 ( ), 같은 정 ( ), 같은 김 ( ), 정 ( ) 당시 수사관 ( ), 같은 ( ), 같은 ( ) Ⅱ. 조사결과 1. 사건배경 1980년 5 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이나 시위대에 참가하여 총기를 소지한 채 활동하 였던 자 중 총기를 반납하지 않은 채 은닉하고 있었던 자가 다수 존재하고 있었는데, 정 부는 부터 말경까지 불법무기류 자진신고기간을 설정하여 불법총기를 소지한 자가 총기를 반납했을 경우 총기 1정당 1백만 원씩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이와 더 불어 불법 소지한 총기의 출처에 대해 불문에 부치기로 하고 경찰관서에서 총기를 반납 받는 한편, 총기를 3정 이상 반납 받는 수사관에게 1계급 특진을 내걸고 총기 회수 업무 김희권 5 18 관련 총기은닉 및 강도조작 의혹 사건 283

284 제4권 를 독려하여 각급 경찰관서에서는 경쟁적으로 총기를 반납 받거나 회수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2. 사건경위 가. 수사 착수경위 신청인의 동네 선배인 윤 의 아버지 윤 (전직 경찰공무원)은 우연히 습득한 총 기라고 하면서 자기 그리고 친구인 양 의 명의로 , 총 2회에 걸쳐 칼빈 총 기 2정을 광주경찰서에 반납하여 합 200만 원의 포상금을 수령해갔다. 3) 그러나 경찰은 윤 의 총기 습득과정에 대해 조사하던 중 동 총기가 윤 이 아들 인 윤 로부터 넘겨받아 경찰서에 신고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경 윤 를 연행하여 수사를 진행한 결과 김희권과 정 등도 총기은닉에 가담하였다는 자 백을 확보하고, 경 신청인을 연행하여 총기은닉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게 되었다. 나. 광주경찰서의 수사 광주경찰서는 신청인으로부터 자술서, , (총2회), 신청 인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를 4차례 받아 수사하고, 자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 법률위반죄를 기소중지한 사건을 재기하고,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신청인을 구속하였으며, 광주지방검찰청에 송치하였다. 다. 광주지방검찰청의 수사 광주지방검찰청에서 수사기록을 보관하고 있지 않다는 회신을 받았다. 4) 따라서 구체적 수사경과 및 기소일자는 파악하지 못했다. 또한 신청인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경찰로부터 고문을 받아 허위로 자백하였다며 무죄 를 주장하였으나, 검사와 검찰수사관은 이를 묵살하였다 5) 고 진술하였다. 3) 송치의견서, 5 18 당시 반납총기 자료요청에 대한 회신, 광주동부경찰서장. 4) 소년부 사건은 보존시한이 5년임으로 5년경과 후 모두 파기 하였다고 함. 5)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8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라. 재판과정 광주지방법원은 신청인에 대하여 총포화약류단속법위반, 특수강도, 강도상 해,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죄로 징역 단기 3년 6월 장기 4년을 선고하였고, 신청 인이 항소하자 광주고등법원은 신청인을 윤, 이 과 함께 소년법 제46 조에 의하여 광주지방법원 소년부지원에 송치한다고 결정하였다. 다만, 광주지방법원 소년부지원의 보호처분서를 입수하지 못해 처분일자 및 구체적 내 용을 확인하지 못하였다. 3. 사건 조사결과 가. 불법감금 여부 1) 기록조사 광주경찰서의 송치의견서, 경찰 수사 기록목록 등을 검토하면 에 자술서를 제출받았고, 구속영장을 집행한 것으로 되어 있다. 2) 신청인 및 참고인 진술 신청인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6) 에서 1980년 10월 25일부터 10월 27일경으로 기억하 는데 오전쯤에 광주시 풍향동 저의 집에 광주경찰서 소속 형사 등 2명이 찾아와 아무런 말도 없이 수갑을 채우고 포승줄로 묶은 후 경찰서 형사과로 연행 하였다 고 하면서 선배 정 이 1980년 10월 23일경 연행되었고 제가 곧바로 연행되었다 고 진 술하였다. 신청인의 동네 선배이자 신청인과 같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지목된 윤 는 진실화 해위원회 조사 7) 에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10월 말경 광주경찰서 맞은편 대의동파출 소 2층으로 끌려가서 김희권과 대질신문을 당한 적이 있다고 진술하였고, 신청인의 고향 선배인 정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8) 에서 10월 23일 연행된 후, 다음날 수사관이 윤 와 김희권의 이름을 말하며 같이 강도를 모의하지 않았느냐? 총기는 어 6) 진술청취, ) 진술청취, ) 진술청취 김희권 5 18 관련 총기은닉 및 강도조작 의혹 사건 285

286 제4권 디에 숨겼느냐 며 추궁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신청인의 친구인 김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9) 에서 하순경 형사 2명이 찾 아와 광주경찰서로 연행되어 윤, 김희권과 대질신문을 당한 적이 있다고 진술하였다. 3) 수사관 진술 당시 신청인 등의 수사를 담당하였던 경찰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10) 에서 윤 가 불었기 때문에 알았을 것입니다. 대략 10월 중순경일 것입니다, 아마도 연행하고 집 에 보냈다가 다시 부르지는 않고, 경찰서에서 보호한 상태로 조사를 진행했을 것입니다 라고 진술하였고, 신청인 김희권과 참고인 윤 가 당시 약 20일간 광주경찰서 유치장 에서 수감되어 조사를 받았는지에 관해서는 아마도 그랬을 겁니다, 그 당시는 총기 소 지자는 전부 폭도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그런 일(영장 없이 임의동행하여 불법구금한 상 태로 조사한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그때는 유치장에 영장 없이 막 넣었을 겁니다. 대장에 주소 명단만 기록해놓고 영장 없이 막 넣었을 것입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당시 수사관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11) 에서 당시 편법으로 경범죄처벌법으로 즉결심판을 신청하여 유치장에서 29일까지 데리고 있었던 적은 있으나 이 사건은 그런 절차를 이용하지는 않은 것 같고, 왜 그렇게까지 오래 데리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계 엄 때라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4) 소결 관련기록과 신청인과 참고인, 수사관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신청인은 경찰관에 의해 내지 경 영장 없이 광주경찰서로 연행되어 은닉하고 있는 총기 여부 와 강도행위 등에 대한 조사를 받고 구속영장이 집행되어 광주교도소로 유 치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이는 약 21 내지 23일간 영장 없이 불법구금한 것이므로 형 법 제124조의 불법체포, 감금죄에 해당한다. 9) 진술청취 ) 진술청취 )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87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나. 고문, 가혹행위 여부 1) 신청인 진술 신청인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12) 에서 연행된 날 오후쯤 제가 끝까지 총기를 반납하였 다고 진술하자 형사들은 검정색 포니승용차에 태워 넥타이로 저의 눈을 가린 채 지원동 파출소로 끌고 가 파출소 안쪽 숙직실 비슷한 곳에서 양쪽에 책상을 놓고 수갑을 채워 팔 과 다리 사이에 나무를 넣어 거꾸로 매달아 눈, 입, 코를 수건으로 막고 대형 주전자로 코 와 입에 물을 따르는 물고문을 하며 독종이네, 너 한번 당해봐라. 경찰서에서 석방했다는 지문날인을 받고 포대기에 싸서 수원지에다가 수장시켜버린다 고 협박하는가 하면 수갑 을 뒤로 채운 채 무릎을 꿇게 하여 앉힌 상태로 발바닥, 무릎, 허벅지, 어깨 등을 곤봉으 로 수도 없이 구타를 하였습니다 라고 진술하였고, 당시 저의 심경으로는 이 사람들이 나를 죽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고 문 중에 공포가 엄습하여 결국 일단 살고보자 라는 심정으로 성전에 총을 숨겨놓았다, 성전에 가봐야 자세한 장소를 알 수 있다 고 허위자백하였고, 그러자 형사들이 저를 성전 까지 데리고 가 현장조사를 하였으나 총이 나오지 않자 광주경찰서로 돌아와 또 수없이 구타를 하였으며, 이후 강도사건의 누명을 씌우게 된 것입니다 라고 진술하였고, 강진 성전에서 현장조사를 하고 돌아온 다음날 광주경찰서 맞은편 대의동파출소 2층 으로 끌려가 눈이 풀린 상태로 이미 심한 고문을 당한 듯한 가 미리 와 있어 첫 대 질신문을 하게 되었는데 형사들이 너! 강도짓도 했지? 라고 하면서 강도혐의에 대하여 시인하라고 하여 제가 강하게 부인하자 가 옆에 있던 형사의 눈치를 보면서 너! 나하고 했지 않냐 라고 하여 제가 내가 언제 강도짓을 했어요 라고 하자 형사들이 너 한 번 더 당해야 쓰겠다 라고 협박을 하며 집단으로 구타를 하였습니다 라고 진술하였고, 당시 15살의 어린 나이로는 형사들의 고문과 구타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광주경찰서로 돌아와 형사들이 작성한 수많은 서류에 지장을 찍게 하고 부인하면 또 구 타하고 하여 조작된 서류에 지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고 진술하였고, 연행된 날 지원동파출소에서 눈을 가린 채 구타당하면서 앞니 일부가 부러졌고, 양쪽 어깨와 무릎 등 온몸을 심하게 구타당하여 출소 이후 광주시 우산동 소재 의원과 목포 소재 의원 등에서 치료받아 진료기록을 찾아보았으나 시간이 많이 경과하여 자료가 폐기된 상태였습니다 라고 진술하였고, 12) 진술청취 김희권 5 18 관련 총기은닉 및 강도조작 의혹 사건 287

288 제4권 당시 고문을 한 형사들은 광주경찰서 형사과 직원들로 팀 인원이 다섯에서 여섯 명 정도로 얼굴은 모두 기억나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반장 과, 이 었습니다 라고 진술하였고, 검찰 조사 과정에 수사관에게 제가 폭력은 관련된 부분이 있으나 강도짓은 한 적이 없다. 경찰에서 고문을 받아 허위로 자백한 것이다 고 무죄를 주장하여 항변을 하였으나 듣는 척도 하지 않는 등 무시하고 수사관이 했지? 안 하기는 왜 안 해? 라는 식으로 일방 적으로 조사를 하였습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2) 참고인 진술 참고인 윤 는 진술화해위원회 조사 13) 에서 대의동파출소에서 대질신문을 할 때뿐 만 아니라, 광주경찰서 형사계에서도 김희권과 함께 조사받고 진술서를 쓰면서 경찰관이 이것 아니고 이것 아니야! 라면서 진술서를 맞추고, 김희권과 같이 구타당하기도 하였습 니다. 김희권과 이제철도 같이 고문을 당했기 때문에 이해하리라 믿지만 한이라도 풀어 주기 위해 이렇게 사실대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고, 참고인 김 14) 은 연행된 날 12:00경 광주경찰서 등 형사 3명이 형사과에서 윤, 김희권을 데리고 와 공범을 데리고 왔으니 이야기해 라고 하여 제가 형! 어떻게 된 일이요 라고 하자 윤 와 김희권이 아! 시인해라 모두 불었으니 버텨봐야 고문 만 당한다 고 하여 제가 무슨 말을 하냐 고 했다가 무수히 구타를 당했습니다. 그러고 나 서 경찰들이 똑바로 이야기 좀 해봐라 고 하면서 자리를 피해주자 윤 가 우리도 고문 을 당했는데 부인해봐야 날짜만 늘어지고 고문만 더 심하게 받는다. 가족 면회도 안 되니 검찰에 넘어가 변호사를 사서 석방되는 수밖에 없다 고 하여 당시에는 어이도 없고 일단 검찰로 넘어가서 누명을 벗자는 선배와 친구의 부탁도 있었으며 그동안 구타를 당하여 비참한 생각에 시인하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3) 수사관 진술 당시 신청인 등을 조사하였던 수사관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15) 에서 고문한 사 실은 없다. 그 나이 같으면 고등학생이고, 말 안 들으면 귀뺨이나 때리고 했겠는데 고문 을 했겠습니까? 우닥거리기야 했겠지요. 콧구멍에 물을 넣는다거나 전기고문을 한다거나 13) 진술청취 ) 진술청취 ) 진술청취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89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등은 안했지요. 그 당시 총을 소지한 자는 폭도로 취급하여 강압적으로 수사했습니다 라 고 진술하였고, 신청인의 진술을 토대로 고문을 묻자 기억이 없다고 진술하였지만, 김희권인지는 모르겠고, 김희권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조사할 때 폭도로 취급해서 형사들이 그리 했을 것입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당시 수사관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16) 에서 총기 3정을 찾으면 일계급 특진할 때라서 혈안이 되었던 기억이 나는데, 학생들에게는 고문을 안 해요. 안 했습니다 라면서 고문사실을 부인하였다. 당시 형사반장이었던 은 고문 혹은 가혹행위에 대하여 전혀 기억이 없다고 진술 하였다 17). 4) 소결 신청인, 참고인들이 모두 고문을 당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였고, 수사관들은 당시 총기 수거에 일계급 특진을 내세웠다, 당시 5 18 시민군 등의 총기소지 경우 폭도로 취급하였 다, 신청인이 어린 학생이었으므로 고문은 하지 않고 가벼운 구타는 하였을 것이다, 라고 진술 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신청인은 광주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구타, 물고 문 등을 당하였고, 고문을 이기지 못하여 자백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형법 제125조 의 폭행가혹행위죄에 해당한다. 다. 범죄사실 조작 여부 1) 총기은닉 범죄사실 신청인이 광주지방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사실의 요지 18) 는 윤, 이, 정 과 함께 :00경부터 경까지 전남 강진군 도림리 소재 공소외 김 의 집 선반과 같은 리 소재 피고인 이 의 집 천정에 광주사태 당시 획득한 칼빈 2정과 탄알 16발이 든 탄창 1개를 은닉 소지하였다고 하는 것이고, 유죄증거는 신청인, 윤, 장 의 각 법정진술, 윤, 신청인, 이, 문 의 자술서, 검사작성 피의자신문조서와 일부 부합 법정진술과 압수물에 대한 검증조서 및 증거물 등이다. 16) 진술청취 ) 진술청취 ) 광주지방법원, 제1형사부, 판결, 80고합269. 김희권 5 18 관련 총기은닉 및 강도조작 의혹 사건 289

290 제4권 가) 신청인 진술 신청인은 누구인지는 모르나 계곡지서에서 탈취한 총을 고속버스로 가져와 저도 1정 을 지급받았으나 실탄이 없이 총만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5.23경 시민군과 함께 강진 성전 터미널로 돌아와 예비군 복장을 한 명불상이 총기를 회수할 당시 정원 선배와 같이 총기를 반납하였는데 누구에게 반납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진술하였고, 총기를 반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문 등 가혹행위로 인하여 경찰, 검찰에서 허위로 자백한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나) 참고인 진술 공동피고인 윤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당시 버스에는 시민군 10여 명이 타고 있었고 차량 내에 군데군데 총기가 있는 것을 보았으나 다음날 성전으로 돌아와서 총기 를 놔두고 내렸습니다 라고 진술하였고, 제가 강진군 성전면 도림리 김남진의 집에 돌아와 보니 아무도 없어 자고 있는 데 해질 무렵에 성전의 명불상 친구와 후배들이 돌아왔는데 김남진의 집에 총기(칼빈) 5~6정을 두고 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다음날 총을 놔두면 나중에라도 문제가 될 것 같아 버리든지 가져가든지 하라고 명불상 친구와 후배들에게 말하자 (총을) 치우는 과정에서 이 이 칼빈 소총 2정을 가져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라고 진술하였고, 각종 TV와 방송을 통해 5 18 당시 총기를 자진신고하면 출처를 묻지 않고 총기 1정 당 포상금 100만원을 지급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 이 가져간 총기가 생각나던 참에 1980년 9월경 이 로부터 연락이 와 광주 계림동 소재 세운제과 빵집에서 만나 혹시 광주사태 때 가져간 총이 아직도 있느냐? 신고할 테니 있으면 가져오라 고 하자 며칠 후 보자기에 칼빈 소총 2정을 가져와 부친 윤 을 통해 경찰에 신고하여 포상금 200만 원 을 수령한 적이 있습니다 라고 진술하였고, 부친이 경찰에 총기를 자진신고하자 뒷조사를 하던 중 제가 기소중지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어떤 총의 실탄인지는 모르지만 옛날부터 가지고 있 던 실탄을 발견하고 함께 압수하면서 5 18 때 실탄까지 습득하여 은닉 보관한 것으로 조작한 것입니다 라고 진술하였고, 전후 연행되어 최초 광주경찰서에 데리고 가자마자 총기은닉한 곳을 대라며 고문을 하는데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고문을 피하기 위해 강진군 성전면 등 3~4군데 은 닉장소를 거짓으로 말하면 경찰관들이 가서 찾아보고 고문하는 것을 반복하였다 고 진술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91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하였다. 정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경 시민군과 함께 강진 성전면 처인마을 앞까 지 돌아왔는데 총기를 반납하라고 해서 버스에 내리면서 명불상에게 주고 내린 기억이 있습니다 라고 진술하였고, 강진 선배들이 엄하여 사고 난다고 후배들에게 총을 주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김희 권이가 총을 지급받지 않은 것으로 기억됩니다 라고 진술하였고 문제의 총기 2정 탄알 16발이 든 탄창에 대하여는 모른다고 진술하였다. 다) 수사관 진술 당시 수사관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19) 에서 윤 는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가 총기보상금 타고 그것이 허위신고라서 다시 우리가 구속한 것은 기억이 좀 납니다. 윤 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총을 신고하기는 했으니까 가서 가져왔겠지요. 그 집을 수색 해서 실탄을 가져왔는지는 모르겠네요, 우리가 알기로는 5 18 때 가지고 다니다가 집 에다 숨겨놓은 것 같애요. 강도할 목적인지는 우리가 잘 모르지요 라고 진술하였다. 당시 형사반장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20) 에서 자진신고할 경우 총기은닉에 대 한 처벌을 하지 않지만 다른 사건에 연루되었을 때는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 진 술하였다. 라) 소결 총기에 관련한 윤 의 진술을 보면 신청인은 총기와 무관한 점을 인정할 수 있으며 검사가 작성한 신청인 윤, 이 의 각 피의자신문조서는 불법구금과 고문에 의한 경찰에서의 자백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신청인 등의 고문 및 부인 진술이 검찰에서 조사되지 않고 무시되었다. 나아가 증거물 또한 독자적으로 신청인의 범죄사실을 증명하 기에는 부족하다. 신청인이 총기를 은닉하였다는 범죄사실은 윤 가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신청인과 강도를 하였다는 범죄사실을 끼워 넣으면서 총기도 공모하여 은닉한 것으로 진술한 것이 직접적인 것인데 이는 고문에 의한 자백으로 신뢰성에 의심이 가는 진술일 뿐이다. 19) 진술청취 ) 진술청취 김희권 5 18 관련 총기은닉 및 강도조작 의혹 사건 291

292 제4권 2) 강도 범죄사실 신청인, 윤, 이 등이 박 과 공모하여 실행한 :30경부터 :30경까지 광주시 북구 풍향2동 599 소재 피해자 최 경영의 원호문구사 강도와, 신청인, 윤, 이 등이 김 과 합동하여 실행한 :00경부터 :30경까지 광주시 동구 장동 103의 4 소재 피해자 최 경영의 경진상회에 침입 하여 범한 강도상해인데, 유죄증거는 각 피고인들의 법정에서의 일부 부합진술, 검사작성 각 피의자신문조서, 피 해자의 진술, 압수물 등이 있다. 여기서 핵심적인 증거는 신청인의 자백과 공동피고인의 진술이라고 할 수 있다. 가) 신청인의 진술 신청인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경찰이 새롭게 총기은닉의 범죄사실을 찾아내지 못하자, 윤 등 공동피의자들을 고문하여 신청인과 함께 강도와 강도상해를 하였다는 자백을 받아내고 이를 토대로 신청인에게도 고문을 통하여 강제로 인정시키므로 허위로 자백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다. 나) 참고인의 진술 윤 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경찰의 고문에 못 이겨 김희권이 강도를 하였다고 허위진술을 하였습니다.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으로 강도사건의 경우 피해자 상 점에 현장검증을 가면 그 피해자들도 아니다 라고 하는데 형사가 범인을 데려왔 는데도 아니라고 하느냐 며 호통을 치면 피해자들도 맞다 고 인정하는 식으로 조작되었 던 것입니다. 사건현장은 가보지도 않았고 강도질을 한 적도 없습니다 라고 진술하면서 신청인과 함께한 강도행위를 부인하였고 오히려 택시강도를 자백하고 있었고, 김희권에 대해서도 고문을 하면서 같이 강도짓을 했지 않느냐고 추궁하여 할 수 없이 같이 강도행위를 했다 고 진술하게 된 것입니다. 정말 당시 저의 심경으로는 죽고 싶은 마음뿐으로 경찰관이 요구하는 대로 진술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라고 진술하였고, 광주경찰서 맞은편 대의동파출소 2층으로 끌고 가면서 희권이 왔으니까 시인하라 고 하여 할 수 없이 김희권과 대질신문할 때 너! 나하고 했지 않냐 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광주경찰서 형사계에서도 같이 조사받고 진술서도 같이 쓰면서 경찰관이 이거 아니고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93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이것 아니야! 라면서 진술서를 맞추고 같이 구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범죄를 저질렀다 면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있어 진술서 쓰기도 편하지만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몰라서 못 쓰면 맞고 서로 진술서를 고치고 하는 식으로 수사를 받았습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당시 강도의 피해자인 정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21) 에서 제가 광주상고 야간에 재 학 중이었고 학교 서무과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인데 학교 앞 원호문구사 주인이 강진 출신으로 평소 형님이라 부르면서 자주 놀러 갔었는데 그날도 저녁 10:00경 가게 문을 닫 고 안에서 주인과 술을 마시던 중 저녁 늦은 시간에 3~4명의 강도가 들어와 손도끼를 들 이대며 돌아보지 마라 고 위협하고 손을 어떻게 묶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불을 뒤집 어 씌워 순순히 응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강도들은 새벽 6~7시경에 나간 것으로 생각 됩니다, 강도들이 손도끼를 들고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하여 인상착의를 알 수 없는 상황 이었습니다 라고 진술하였고, 원호문구사 주인이 강도들이 제 또래라고 말한 것을 들은 것 같습니다, 저는 술에 취해 비몽사몽간 자다 일어나다 했으나, 당시 주인의 처를 덮치자는 강도들의 말을 들었 던 것 같습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김 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22) 에서 광주경찰서 형사과로 연행되자마자 강 정옥 등 3명의 경찰이 너! 강도짓 했지? 윤, 김희권, 이 가 공범으로 모두 진술했 으니 자백하라 고 하여 부인하자 경찰봉으로 패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12:00경까지 자백 하라고 경찰봉으로 집단구타를 당했고, 경찰관들이 수갑을 주먹에 끼고 때리다가 광주경 찰서 앞 대의동파출소에 눈을 가리고 포승줄을 묶은 상태에서 데리고 가 집단구타를 하 기도 했습니다 라고 진술하였고, 연행된 날 12:00경 광주경찰서 형사과에서 윤, 김희권의 대질에서도 고문의 공포 때문에 범행을 시인하였고, 위 강도사실을 모두 허위로 자백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다) 수사관 진술 수사관, 같은, 같은 등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신청인 등에 대한 강도죄 추궁에서 고문을 하지 않았다며 조작사실을 부인하였다. 라) 소결 신청인, 참고인의 진술 등을 종합해보면 경찰의 고문 및 구타 등 가혹행위에 의하여 윤 21) 진술청취 ) 진술청취 참고인 김 은 어린 시절에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다. 김희권 5 18 관련 총기은닉 및 강도조작 의혹 사건 293

294 제4권 의 자백과 이어진 공동피의자 및 신청인에 대한 고문과 자백강요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단할 수 있고, 공동피의자 상호간의 대질신문에서 허위자백을 한 윤 를 중심으로 신청인과 참고 인들에게 진술서를 강요하여 신청인이 강도행위를 한 것으로 조작했다고 추정된다. 증거 물 자체만으로는 강도사실의 유죄를 인정하기 어렵고, 검사가 작성한 각 피의자신문조서 또한 임의성에 의심이 있고, 피해자 등의 진술 또한 신청인을 명백히 범죄인으로 지목하 고 있지 못하고 있어 명백한 유죄의 증거가 없다고 할 수 있다. Ⅲ. 결론 및 권고사항 1. 결론 이 사건은 5 18민주화운동 후 총기의 자진신고 및 은닉 수사과정에서 신청인이 총기 은닉과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윤 등 관련자들에게 고문, 구타 등 가혹행위를 가하여 신청인이 관련되어 있다는 허위자백을 얻었으나, 조사과정에서 실제로 신청인 및 참고인들이 은닉하였다는 총기를 발견하지 못하자, 동년 , 에 발생한 강도의 범죄행위를 했다고 인정하기를 강요하여 모두 처 벌한 조작사건이다. 재판부는 1심에서 실형을 선고하였으나, 신청인 및 참고인들이 소년 인 점을 참작하여 광주지법 소년부 송치 결정을 하였고, 신청인 등은 소년원에서 보호처 분을 마친 후 구속된 지 약 1년 만에 출소하게 되었다. 광주경찰서는 신청인을 불법연행하고,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21일 내지 23일간 불 법감금하였고, 경찰봉을 사용한 구타, 물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통해 허위자백을 받아 사 건을 조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건을 송치 받은 광주지방검찰청은 신청인의 고문사실, 범죄조작사실을 진술하였으나 철저한 수사를 하지 않고 피의자들의 자백만을 검사작성의 문서로 바꾸어 기소하였다. 광주지방법원은 검사의 공소내용을 그대로 인정하여 신청인에게 단기 3년 6월에 장기 4년을 선고하였지만, 항소심에서 소년부지원 송치 결정을 받은 것이다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295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2. 권고사항 위 사건에 대해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기본법 제4장에 따라 국 가가 행할 조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국가는 광주경찰서가 신청인에 가한 불법감금과 가혹행위, 불법으로 범죄사실을 허위조작한 점에 대하여 신청인 및 고문피해자들에게 사과할 필요가 있다. 김희권 5 18 관련 총기은닉 및 강도조작 의혹 사건 295

296 제4권 [별표 1] 사건 관련인 명단 구 분 성 명 조사일시 관 련 성 비 고 신청인 김희권 신청인 참고인 윤 신청인에 대해 허위진술을 하여 신청인이 강도로 누명을 씀 참고인 정 윤 의 허위진술에 의해 강도 피의자로 누명을 씀 참고인 김 윤 의 허위진술에 의해 강도 피의자로 누명을 썼으나, 기소유예로 석방 참고인 수사관 가혹행위 가담 형사 참고인 수사관 가혹행위 가담 형사 참고인 정 강도사건 목격자 참고인 수사관 가혹행위 가담 형사 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체험합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집시다. 5. 우리 옷 한복의 특징 자료 3 참고 남자와 여자가 입는 한복의 종류 가 달랐다는 것을 알려 준다. 85쪽 문제 8, 9 자료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체험합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집시다. 5. 우리 옷 한복의 특징 자료 3 참고 남자와 여자가 입는 한복의 종류 가 달랐다는 것을 알려 준다. 85쪽 문제 8, 9 자료 통합 우리나라 ⑵ 조상님들이 살던 집에 대 해 아는 어린이 있나요? 저요. 온돌로 난방과 취사를 같이 했어요! 네, 맞아요. 그리고 조상님들은 기와집과 초가집에서 살았어요. 주무르거나 말아서 만들 수 있는 전통 그릇도 우리의 전통문화예요. 그리고 우리 옷인 한복은 참 아름 답죠? 여자는 저고리와 치마, 남자는 바지와 조끼를 입어요. 명절에 한복을 입고 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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