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베트남 경제협력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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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남아시아연구 21권 1호(2011) : 249~286 19세기 전반 베트남 제국( 帝 國 )의 국제질서* 1) 2) 최 병 욱** 머리말 19세기 동아시아에는 네 개의 황제국이 있었다. 중국의 대청제국, 한국의 대한제국, 일본의 대일본제국, 그리고 베트남의 대남제국( 大 南 帝 國 )이 그것이다. 그런데 대한제국은 1897년부터 1910년까지 단 명한 제국으로서 실체를 고려할 때 제국이란 거의 허명에 불과했다 는데 누구나 동의할 것이고 대일본제국은 명치유신 이후 근대의 산 물로서 서구적 제국에 가깝다. 대청제국은 중국의 유구한 제국 전통 을 계승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그러나 황제가 만주인이었 기 때문에 남의 자리를 차고 들어와 앉아 있는 형국이었다. 제국으 로서의 전통과 황제로서의 정통성을 가장 온전히 보유하고 있던 제 국은 베트남의 대남제국이었다. 중국과 한국의 황제가 1910년대 초 반에 다 사라졌지만 베트남 황제는 1945년까지 존속했다. 제국 또는 황제의 역사가 긴 만큼 수명도 오래 갔다. 주로 상징적 존재로서 기 능했고 기능하는 일본 황제는 논외로 치기로 하자. 10세기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베트남의 모든 왕조(최초의 Ngô 왕조만 제외하고)는 황제의 제국이었다. 물론 제국을 지탱하는 * 이 연구는 포스코 청암재단의 지원으로 수행되었음. 이 글의 초안은 2010년 6월 3일 2010 포스코아시아포럼 에서 발표된 바 있다. ** 인하대 사학과

2 250 동남아시아연구 21권 1호 주변 왕국들은 늘 확보되었으니 이웃국인 참파(Champa), 캄보디아, 라오스 및 서부 고원지대의 수사( 水 舍 ) 및 화사( 火 舍 ) 등이었다. 특 히 19세기에 수립된 응우옌 왕조( , * 1834년부터 대남제 국을 칭함)는 베트남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제국을 유지하였다. 내적으로 최대의 성취를 이룬 제국은 바깥 세계와의 관계에서 스 스로를 어떻게 위치지었을까? 베트남 제국이 형성하고 있던 국제질 서는 무엇이었던가? 이 문제는 19세기 베트남의 외적 대응 양식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동남아시아 주변국과의 관계, 중국에 대 한 태도, 그리고 서방세계에 대한 대응 방식 등은 베트남 고유의 국 제질서에 기초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베트남 제국의 국제 질서는 19 세기의 동아시아 세계의 변화에 대응하는 베트남적 양식을 이해하 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베트남제국의 모습을 놓고, 중국적 조공질서에 익숙한 사람들은 중국과 닮은 소중화 질서 라는 모방적 화이관 개념이라든가 중국과 닮기도 했지만 축소판이라는 의미의 작은 용(smaller dragon), 작 은 중국(little China)' 및 중국적 모델(Chinese Model) 이라는 용어 를 베트남에 적용시켜 왔다. 1) 기존의 논의에 의하면, 황제라는 호칭 을 사용한 이래 베트남적 황제 및 제국은 중국의 모방 내지는 축소 1) Joseph Buttinger, The Smaller Dragon: A Political History of Vietnam (NY: Prager, 1958); A. H. Brodrick, Little China, the Annamese Lands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42); Alexander Barton Woodside, Vietnam and the Chinese Model (Harvard University Press, 1971); Liem C. Kelley, Beyond the Bronze pillars, Envoy Poetry and the Sino-Vietnamese Relationship (Hawaii University Press, 2005). 마지막 두 저 작은 매우 교묘하고 정교하게 베트남의 중국성 을 강조한다. 베트남의 자율성을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중국적인 면모 또는 중국문화에의 경도 사례를 들춰내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기 때문에 교묘하며 베트남 전공자로서는 매우 드물게 한문 및 중국어, 중국사를 이해하는 학문적 배경을 가지고 베트남을 분석하기 때문에 정교 하다. 베트남은 국체도 불분명한 수사 ( 水 舍 ), 화사 ( 火 舍 )까지 조공국을 만들어 중 국적 조공질서 체제를 구축하려 했으며 (Woodside 1971: ), 중국으로 파견되 는 사신들은 중국의 왕화가 베트남에도 미치길 갈망했을 정도로 (Kelly 2005: 139) 중국적인 것을 동경했던 나라로 묘사된다.

3 19세기 전반 베트남 제국( 帝 國 )의 국제질서 251 판이었다. 19세기 베트남의 황제를 두고 중국 황제의 동남아적 버 전(Southeast Asian version of the Chinese emperor) (Woodside 1971: 238)이라고 한다든가 심지어 중화제국질서를 그대로 모방한 것 (유인선 1994: 85)이라 단정하는 것도 이와 같은 관념의 연장이다. 그러나 황제가 있고 연호가 있고 왕들이 있다면 중국적인 것일까? 중국적 중화질서가 실제 존재하느냐 아니냐의 여부도 문제려니와, 베트남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고수되는 중국 흉내내기 라는 인 식 틀도 베트남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자주 방해한다. 이런 시각으 로부터 해방되지 않는 한 베트남의 자율적 역사(autonomous history) 혹은 아시아의 자율적 역사는 요원할 터이다. 일찍이 모모끼 시로는 10-15세기 베트남 제국의 국제 관계를 남국의식( 南 國 意 識 ) 에 기초 한 베트남형 화이질서 로 논한 바도 있다( 桃 木 至 朗 1992). 이 남국 의식 이란 것은 베트남의 자주성을 강조하는데 매우 유요한 개념임 이 분명하다. 그러나 모모끼가 정확히 파악하고 있듯 남국의식 은 대중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는 자기규정이어서 중국 또는 한민족( 漢 民 族 ) 이외의 관계는 시야( 視 野 )에 존재하지 않는다 ( 桃 木 至 朗 1992: 159)는 성격을 갖는다. 이런 남국 이 또다시 구축해 내는 베 트남적 화이질서 역시 태생적으로 중국 모방적 인식틀에서 자유롭 지 못함은 마찬가지이다. 설령 이런 국제관계의식이 독립 이후부터 15세기까지는 사실일 수 있다 쳐도 이를 19세기에 적용시키는 것도 무리이다. 절충적 대안으로 방교( 邦 交 ) 와 유원( 柔 遠 ) 의 이중적 관계를 베 트남적 세계관으로 제시하는 시각도 있다. 즉 중국과는 국가대 국가 라는 대등 의식이 강조되는 방교 의 관계이며 베트남과 여타 외국 과는 유원 의 개념에 기초한 위계적 질서라는 것이다. 여기서 유 원 의 대상은 베트남 주변의 소국뿐만 아니라 태국, 버마 및 영국, 프랑스 등의 유럽 국가까지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은 베트남적 천하

4 252 동남아시아연구 21권 1호 질서 속에서 베트남이 자의적으로 만든 조공국군( 朝 貢 國 群 )이었다 는 주장이다(유인선 1994: 82, 84; 坪 井 善 明 1991: 88-90). 이렇듯 베트남의 국제 질서를 방교와 유원이 공존하는 이중적 관계로 보는 것은 소중화적 인식에서 한층 더 발전된 형태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소위 유원 관념을 매개로 하는 국제질서 인식은 여전히 소중화 관 념 속에 묶여 있는 해석 방식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게다가 유원 의 실체도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2) 중국적 천하질서와 베트남적 천하질서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점이 있음은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 중앙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부의 분포가 무척 다르다. 중국 적 질서를 보자면, 중앙의 황제 주변에 동서남북 사방의 이적( 夷 狄 ) 이 있어야 했다. 3) 이적은 한화( 漢 化 )가 미치지 못하는 곳이자 한풍 ( 漢 風 )을 보호하는 병풍이었다. 반면 동쪽으로 긴 해안선을 갖고 있 는 베트남은 숙명적으로 동쪽의 번병이 없었다. 중국이 버티고 있는 북쪽은 늘 무겁기만 했다. 베트남의 조공국은 서쪽(라오스, 캄보디 아, 수사, 화사)과 남쪽(참파)에만 존재할 뿐이었다. 둘째는 중심의 문제이다. 중국적 질서 속에서 천하의 중심은 오직 중국 하나뿐이다. 그러나 베트남의 천하 질서 속에서 중심은 여러 개였다고 생각된다. 이는 동남아시아 정치구조를 얘기할 때 자주 언 2) 이에 대해서는 본문 제 1장 2절에서 다루기로 한다. 3) 일찍이 페어뱅크(John Faribank)는 중국의 국제질서를 논하면서 중국을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을 다음과 같이 세 그룹으로 나눈 적이 있다: 중국적인 지역(Sinic Zone) - 한국, 베트남, 류큐, 일본(잠시 동안); 내륙아시아지역(Inner Asian Zone) - 북서부 유목민족들; 외부지역(Outer Zone) - 베트남을 제외한 동남아시아, 일본, 남아시아, 유럽. John K. Fairbank(ed), The Chinese World Order(Harvard University Press, 1968), p. 2. 관계의 친소,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동서남북 사방을 번병이 둘러치고 있는 형국임은 분명하다. 역대 왕조 중에 영토 확장에 가장 주력했던 것으로 평가되 는 청조에서도 서쪽과 북쪽의 티벳이나 위구르, 그리고 몽골 등은 점령은 하되 지배 자들을 온존시키는 번부( 藩 部 ) 로서 존치시켜 동쪽의 조선, 남쪽의 베트남, 버마, 라오스 등과 더불어 중국 을 둘러싸는 형태를 온전시켰다.

5 19세기 전반 베트남 제국( 帝 國 )의 국제질서 253 급되는 만달라(mandala, 銀 河 政 體 )적 질서 를 떠올리게 한다. 복수 의 동등한 권력 중심과 그 각 중심들이 거느리는 지배 범위들(circles of kings)로 이루어진 세계 질서가(Wolters 1999: 27; 39) 베트남 제 국에게는 더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는 것이 본인의 생각이다. 셋째는 호칭의 문제인데, 베트남에는 황제 는 있으되 천자 는 없 었다. 4) 대신 부어(vua) 가 있었다. 하늘의 뜻을 대신 주관한다는 의 미의 천자 란 하늘 아래를 지배하는 존재의 유일성을 강조하며 왕 권의 신성성을 부여하는 용어였다.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천자 가 없었고 대신 부어 가 매우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부어 는 임금이 요 왕(king)이다. 이런 용어 관행상 베트남에서 황제 는 중국처럼 천자 즉 하늘의 아들 이 아니라 임금 의 또 다른 호칭일 뿐이었 다. 5)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정치 중심지의 문제이다. 역대로 베 트남 제국의 중심지는 탕 롱(Thăng Long, 昇 龍 )이었던데 반해 19세 기의 정치 중심지는 후에(Huế)였다. 중국이 13세기 이래로 줄곧 북 경을 천하의 중심지로 삼아 왔던 모습과 대비된다. 그리고 이 후에 는 남북 분립기 응우옌(Nguyễn) 정권의 도성이 있던 곳이었다. 즉 19세기 왕조의 정치중심지는 제국의 정치체제 경험이 전혀 없는 지 방정권의 수도였던 곳으로 이 지방 정권은 수립된 지 200여 년 동안 4) 大 南 寔 錄 에는 쟈 롱(Gia Long 嘉 隆, ) 황제 즉위 초기 한두 번 정도 스스로 천자 라 칭한 적이 있다. 大 南 寔 錄 正 編 第 一 紀 (이하 寔 錄 1), 28:21. 예를 들어 천자가 진주 구슬을 귀히 여긴다면 어찌 옳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다. 특별히 하늘의 아들 임을 강조한 용어가 아니라 천자 또는 군주의 대용어였을 뿐이다. 이 후 천자 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단 옥새에는 천자 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했 으나 1844년에 새로 제조한 옥새에는 大 南 皇 帝 之 璽 라 새겨 외국 칙서에 사용하도 록 하고 있다. 大 南 寔 錄 正 編 第 三 紀 (이하 寔 錄 3), 40:1b. 5) 이는 동남아시아적 왕권과도 거리가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동남아시아의 왕들이 종교적 권위를 비는 신권왕적 성격을 갖는데 비해 베트남에서 왕은 극히 인간적이었다. 과거 불교가 발전하던 시기에 베트남 왕들이 매우 열심히 불교를 연구하고 수행에 정진한 흔적은 있지만 여타의 동남아시아에서 그러했듯 스스로를 시바 또는 전륜성왕의 화신임을 자처했던 적은 없다.

6 254 동남아시아연구 21권 1호 중국과는 거의 관계를 맺지 않고 동남아시아 각국과의 관계에 더 익숙했다. 6) 일찍이 테일러(Keith Taylor)가 지적한대로 베트남의 남 진을 주도하던 이 정권은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던 전통적 베트남 영역에서 벗어나 조상들로부터 탈출(an escape from ancestors) 과 과거로부터의 탈출(an escape from the past) 을 실현하고 동남아시 아의 넓은 세계와 접촉하면서 새로운 자유를 경험 하고 있었던 터였 다(Taylor 1993: 64). 7) 이와 같은 차이점을 염두에 두면서 본문에서는 응우옌 왕조의 기 본 정사인 大 南 寔 錄 을 중심으로 한 일차 사료들을 샅샅이 뒤져가 며 두 가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제 1장에서는 베트남과 동남아시아의 관계를 다루겠다. 필자가 보기에 베트남의 국제관계 에서 1차적 관심은 동남아 대륙부 국가들에 두어졌다. 이 국가들과 의 관계를 먼저 검토하고, 도서부 제국( 諸 國 )의 존재가 베트남의 국 제질서 인식에 미친 영향도 알아보겠다. 당시 도서부에 들어와 있던 서양 국가들도 고찰 대상에 포함된다. 제 2장의 내용은 중국과의 관 계이다. 이 국가와의 전쟁 및 외교 관계 속에서 베트남은 어떻게 자 신들만의 천하 질서를 형성했는가를 볼 것이다. 중국과의 관계를 상 하관계가 아닌 평등관계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을 더욱 발전시킨 6) 반면 그 보다 더 오랜 기간인 16세기 중반부터 18세기말까지 북부 탕 롱에 거주하던 황제는 명목상의 존재였을 뿐이고 조공국도 거의 없었다. 북부는 중국, 남부는 응우 옌 씨 세력에 막혀 있었고 동쪽은 바다였다. 간혹 라오스 쪽 소국들의 사절만이 탕 롱을 찾을 뿐이었다. 말하자면 남북을 통틀어 베트남에서는 250년간 황제를 중심으 로 하는 중국적 조공질서 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 응우옌 왕조의 창시자 응우옌 푹 아인 (Nguyễn Phúc Ánh 阮 福 映 )이 1802년 탕 롱을 점령하고 통일을 완성했을 때 중국과의 외교 관계 수립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중국 과의 외교 경험이 전무했던 응우옌 푹 아인 측은 북부 인사로서 떠이 썬(Tây Sơn 西 山 ) 정권에 봉사했던 응오 티 념(Ngô Thì Nhậm 吳 時 壬 ), 판 후이 익(Phan Huy Ích 潘 輝 益 ) 등을 이용하기로 한다( 寔 錄 1, 17:25a). 응우옌 푹 아인이 얼마나 중국 과의 관계에 무지했고 또 한편으로는 별 비중을 두지 않았는가 하는 것은 다음 사례 에도 잘 드러난다. 그는 국가 건설 초에 번잡함을 생략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함을 이유로 들어 책봉 의식을 베트남-중국 국경이 있는 남관( 南 關, 중국의 鎭 南 關, 현재 는 友 誼 關 )에서 행함이 어떻겠느냐고 제신들에게 의견을 묻고 있다. 寔 錄 1, 18:6a.

7 19세기 전반 베트남 제국( 帝 國 )의 국제질서 255 유인선의 최근 연구는(유인선 2009: 396) 전통 시대 베트남-중국 관 계의 실상을 인식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19세기 베트남이 형성한 국제 질서의 요체는 무엇이었을까? 중국 적 화이질서였던가, 동남아적 만달라였던가, 아니면 베트남적 이라 는 수식어를 붙여야 할 제 3의 모델이었을까? 1. 동남아시아 제국 ( 諸 國 )에 대한 인식 1) 대륙부 19세기 통일 베트남 황제들의 관심은 중국 보다 주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 더 두어졌다. 황제는 자신에게 조공을 바칠 왕들이 필요 했다. 우선 캄보디아 사절이 자발적으로 찾아 왔고, 남장( 南 掌, 비엔 티엔)과 만상( 萬 象, 루앙프라방)이 사절을 보냈으며 중부고원지대 수사와 화사 국장( 國 長 ) 들이 조공 사절을 파견했다. 베트남 조정은 일일이 그들을 국왕으로 임명했다. 황제가 있고 주변 왕들이 있으며 그들이 조공을 바치고 황제가 그들을 왕으로 임명하는 절차를 밟고 있으니 이는 분명 중국적 조공질서와 유사해 보인다. 유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과도하기까지 해 보이는 것은 국가 체제도 불분명한 수사, 화사 국의 우두머리까지 왕으로 임명해 왕 수 늘리기에 급급 했던 베트남 소중화주의의 희극성 때문이다(Woodside 1971: 238). 이에 더해 19세기 베트남의 천하관을 중국과의 대등의식에 기초한 억지스러운 모방의 중화주의로 인식하는 입장에서 인용될 수 있는 자료는 明 命 政 要 나 大 南 會 典 事 例 에 나오는 柔 遠 조의 내용이 다. 여기에는 수사, 화사, 루앙프라방, 비엔티엔 뿐만 아니라 프랑스, 영국까지 포함되어 있으며 이들이 베트남 군주의 덕을 사모하여 또 는 위세를 두려워하여 와서 신복( 臣 服 )했다고 주장하고 있음이 지적 된다(유인선 1994: 84). 그러나 이런 소중화주의 는 베트남이 아니

8 256 동남아시아연구 21권 1호 라 베트남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갇혀 있는 중국적 사고틀 에 기인한 것이다. 베트남의 국제질서는 중국적이라기보다는 동남아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동남아적 세계관의 요체는 무엇인가? 세력 범 주의 중첩성과 조공제도이다. 월터스(Oliver Wolters) 등이 강조해온 소위 만달라적 세계는 중앙의 왕과 주변 권력 사이의 조공 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에서는 중국의 세계 질서와 유사하다. 그러나 만달라 이적 왕권에서 왕의 권력 범위는 명확한 경계선이 부재하며 이웃한 권력 중심부(왕권)의 영향력 범주와 중첩되는 부분들이 있음이 인정 된다. 세계는 다수의 권력 중심부가 이끄는 세력 범위들의 집합인 것이다. 이런 개념 속에서는 이쪽의 왕권 말고도 저쪽의 왕권이 인 정되고 동등한 관계 속에서 각개의 왕권들이 존중된다. 그래서 국 왕 이 보내는 국서 들이 조공품 과 더불어 국가들 사이를 왕래했 던 것이다 ( 小 泉 順 子 2008: 77-82). 즉 동남아적 세계관은 다중심적 ( 多 中 心 的, multicentric)이었다. 예를 들어 19세기 베트남의 황제는 자신이 일정 범위 권력의 중심부라 여기지만, 자신의 지배권 저쪽의 태국이라든가 버마의 권력 중심부적 역할 및 위상은 인정하고 있었 다. 관계의 우열은 결코 없었다. 이는 베트남의 외국 인식에서 나타난다. 나는 19세기 베트남의 외국 인식이 정사( 正 史 )인 大 南 寔 錄 의 외국 열전 구성에 잘 반 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 열전 1, 2, 3으로 세분되어 있는 외국 들 중에는 베트남에 조공을 바치는 국가도 있고 베트남 세력 판도 건너편의 이웃국도 있다. 외국 이란 당시 베트남의 관심 범위 혹은 외교 관계망 안에 있던 국가들의 집합이었다. 열전 제 1에는 진랍( 眞 臘 ) 즉 캄보디아가 있다. 그 다음 제 2에는 섬라( 暹 羅, 태국), 수사( 水 舍 ) 및 화사( 火 舍 )가 소개되고 있으며 제 3에는 면전( 緬 甸, 버마), 남 장( 南 掌, 루앙프라방), 점성( 占 城, 참파), 만상( 萬 象, 비엔티엔)이 차

9 19세기 전반 베트남 제국( 帝 國 )의 국제질서 257 례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이 분류의 기준은 무엇일까? 제 1 범주에서만 볼 때, 캄 보디아가 가장 앞에 나오는걸 보면 관계가 밀접한 국가, 또는 중요 한 조공 국가 순서인 것 같다. 그러나 제 3 범주에서는 베트남에의 조공국 중의 하나인 만상이 맨 나중에 나오는데 비해 베트남이 또 다른 권력 중심이라 인식했던 버마가 만상보다 세 단계 앞 열에 두 어진다. 이를 보면 조공국가 순서도 아닌 것 같다. 외국 열전 제 2 그룹에 태국과 수사, 화사가 함께 위치하고 있는 것도 이해하기 힘 들다. 그런데 이 생뚱맞아 보이는 외국 분류 방식에 베트남의 동남 아시아 세계관이 깃들어있는 것 아닐까? 가장 기본적 분류 구도는 외국 열전 3개 범주에 각각 두어진 캄보 디아, 태국, 버마의 순서이다. 이는 베트남으로부터 시작하여 서쪽 으로 가는 구도이다. 아울러 이들 국가들은 베트남과 이웃한 대륙부 동남아시아의 독립된 권력 중심부들이었다. 단지 캄보디아는 당시 베트남의 영향권 안에 있어서였는지, 외국 열전 1에 혼자서 특별히 취급되고 있다. 캄보디아에 대해서는 고대 푸난의 속국이었던 시기 로부터 융성기를 거쳐 최근 19세기의 역사까지를 다 다루고 있다. 캄보디아는 융성기에 베트남보다 대국이었던 데다가 종종 베트남을 압박하기까지 했었다. 예를 들어 앙코르 제국 최극성기인 13세기에 아무리 베트남이 황제를 칭하는 제국이었다고 하더라도, 캄보디아 는 베트남에게 조공국이 아니라 명백히 독립적인 권력중심이었다. 이렇듯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착종된 성격 속에서 캄보디아는 다소 특수한 형태로 외국열전 제 1항에 올라 있는 것 같다. 그 다음은 수사/화사와 남장/참파/만상 두 그룹의 문제이다. 우선, 태국과 수사/화사는 상호 연관성이 매우 적기 때문에 한 그룹으로 묶여야 할 이유를 찾기가 힘들다. 제 3 그룹에 속하는 버마와 남장, 참파, 만상의 상호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10 258 동남아시아연구 21권 1호 단지 두 경우 모두 강국 태국과 버마를 제외한다면, 수사/화사 및 남장/참파/만상은 각각 공통점이 있다. 수사/화사는 베트남 중부고 원지대 쟈 라이(Gia Lai) 족의 두 부족이기 때문에 한 그룹으로 묶여 진다. 남장과 만상은 공히 라오족의 왕국들이니 공통점을 갖는다. 이렇게 되면 수사/화사, 남장/만상은 베트남 중앙 조정으로 볼 때 가까운 쪽으로부터 서쪽 방향으로 차례로 배열한 것이다. 캄보디아 는 우선 특별한 외국 으로 놓은 뒤, 외국 2 그룹에서 강국 태국과 약국 수사/화사를, 제 3그룹에서 강국 버마와 약국 남장/만상을 배치 했다. 라오스는 메콩강을 경계로 하여 버마와 접하고 있고, 만상과 남장이 종종 버마의 조공국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버마 와 남장/만상이 한 그룹으로 엮여지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태국과 수사/화사가 함께 묶이는 것은, 캄보디아의 존재와 연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이 두 국가는 베트남과 캄보디아 양국에 조공을 바치고 있었는데( 大 南 正 編 列 傳 初 集, 32:36), 굳이 비교를 하자면 베트남 보다는 캄보디아와 더 가까웠다. 캄보디아의 세력 범 위 내에 있으면서 베트남의 그것과 중첩되는 곳에 위치한 존재였다. 캄보디아가 베트남의 조공국으로 전락했다고 하더라도 이 조공국 (캄보디아)이 또 다른 조공국(수사/화사)을 갖는다는 것 자체는 이상 할 게 없다. 그러나 캄보디아의 조공국인 수사/화사가 동시에 베트 남의 조공국인 것은 캄보디아-베트남 관계와 모순된다. 그래서 베트 남은 수사/화사를 베트남과 동등한 권력중심지 태국에 대응하는 약 소국 또는 조공국으로 위치시켜 놓은 것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되면, 베트남에게 외국 이란(캄보디아를 제외하고), 베트 남과 동등한 권력중심지 태국, 버마와 이 두 국가의 권력 범주와 베 트남의 권력 범주가 겹쳐지는 곳에 존재하는 소국들의 합인 것이다. 참파가 외국 제 3 그룹 즉 버마를 중심으로 한 세력 범위 안에서 남장/만상과 함께 있는 것은 이 국가가 19세기에 완전히 지도상에서

11 19세기 전반 베트남 제국( 帝 國 )의 국제질서 259 사라질 때까지 베트남에게 남장 및 만상과 더불어 가장 충실한 조공 국가였다는 차원에서 한데 묶은 것이 아닌가 싶다. 어떤 경우가 되 었든지, 19세기 베트남에게 외국 은 모두 서쪽에 있었으며(남쪽에 있던 참파는 이미 사라졌다) 그 외국은 대륙부 동남아시아에서 존재 하던 두 개의 세력(태국, 버마) 범위 구성원이기도 했다. 여기에 베 트남이 중심이 되는 세력 범위가 동등하게 존재했으니 세 개의 중심 부 및 그 중심부들의 세력 판도들이 부분적으로 중첩되면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이는 대륙부 동남아시아의 3강국인 베트남, 태국, 버마의 공통적 대외인식이었다 세기 이들 국가 사이에서 교환된 서신들을 분 석한 고이즈미 준꼬( 小 泉 順 子 )에 의하면 각 왕의 상호 호칭은 국 왕, 서신은 국서 로서 개별 국가의 독립적 존재가 인정되고 있었음 을 알 수 있다( 小 泉 順 子 2008: 76-81). 태국 왕이 베트남 황제에게 보낸 국서에서 월남국불왕( 越 南 國 佛 王 ) 이라 호칭해도 베트남이 이를 이의 없이 받아들이는 것도 태국과 베트남이 동등한 국가임을 인정하는 태도였으며(유인선 1994: 85) 버마의 바지도 왕(Bagydaw, )이 1823년 베트남에 사신을 보내 버마 - 베트남 간의 동 맹 관계 수립을 요청했을 때 베트남 조정에서 태국과의 관계를 고려 해 이 동맹 제의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이는 것도(Nguyễn Thế Anh 2008: 26-30) 3국이 동등한 권력 중심부라는 관념이 전제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런 관념은 베트남측 외교 용어에도 반영되었다. 민 망(Minh Mạng 明 命, ) 황제가 태국 왕에게 보낸 1830년의 국서를 보면, 베트남은 스스로를 본국( 本 國 ), 상대를 일러 귀국( 貴 國 ) 이 라 칭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국서에서 양국 간의 관계는 교 린( 交 隣 ) 또는 린교( 隣 交 ) 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8) 특히 린교 는 8) 大 南 寔 錄 正 編 第 二 紀 (이하 寔 錄 2), 68:15-16.

12 260 동남아시아연구 21권 1호 중국에 대한 방교( 邦 交 ) 와 짝을 이루는 말로 주목할 만하다. 이는 유사한 크기와 대등한 실력을 보지하고 있는 이웃국들과의 외교 관 계를 표현하는 언어로서 태국뿐만 아니라 버마에도 적용되던 관념 이었다. 대등한 국가로서의 3국 관계를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주 목할 필요가 있다. 1824년 태국 방콕 왕조의 2대 왕 라마 2세 ( )가 사망했고 국상을 알리는 사절이 베트남으로 파견되 었다. 이 소식에 접한 민 망 황제는 양국 관계의 특별한 우의를 고려 하여 3일간이나 조정의 아침 조회를 폐한다는( 輟 朝 ) 명을 내린 바 있다( 寔 錄 2, 28:17b). 그 당시 막 영국이 버마를 공격해서 전쟁(제 1차 버마-영국 전쟁, )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정 보를 이미 입수하고 있던 민 망 황제는 태국의 사절이 돌아갈 때 다음과 같이 국제 관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섬( 暹, 태국)과 면전( 緬 甸, 버마)이 대대로 원수인데, 지금 홍 모( 紅 毛, 영국)가 면전을 공격하니 섬인은 마음이 통쾌하지 않겠 는가?[태국의 사절들이 그렇다 고 하자 황제는 웃으며 말하길] 섬에게 면전이 있는 것은 집에 울타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만약 홍모가 공격하여 [면전을] 이겨내면 위세는 반드시 섬에게 미칠 것이니 섬을 위해 궁구해 보자면 근심이 될 일이지 기뻐할 일이 아니다. 9) 이 기술에서 볼 수 있듯이 대륙부 동남아시아 3개의 국가는 민 망에게 대등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대대로 원수인 것으로 인식되 던 태국과 버마가 그러하고, 태국 왕의 사망 소식을 듣고 3일 철조의 예를 보인 베트남이 대등한 세 국가군에 포함된다. 그리고 지금 버 9) 寔 錄 2, 28:17b-18a. 관련 기사는 1926년 태국 사절이 민 망 황제를 찾았을 때도 보인다. 이때 민 망은, 영국이 버마를 이기면 태국을 공격할 것이고 태국이 공격을 받으면 베트남이 태국을 돕지 않을 수 없는 추이의 필연성을 고려하여 영국과 버마 양국 간의 전쟁이 승패가 나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다. 寔 錄 2, 40:9b-11a.

13 19세기 전반 베트남 제국( 帝 國 )의 국제질서 261 마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홍모의 존재도 버마를 이겨내고 태국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서양 국가들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 좀 더 자세히 논하기로 하겠다. 2) 도서부 베트남의 국제질서, 특히 19세기의 천하관이 도저히 중국적인 것 이 될 수 없었던 데는 도서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부단한 접촉이 또한 큰 이유가 되었다. 이는 민 망 황제가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는 1823년부터 시작되었다. 매년 베트남의 젊은 유가 관리들은 정월 무렵 북동 무역풍이 불 때 조정에서 건조한 대형 범선들을 타고 도 서부 동남아시아 각지로 여행을 했다. 이때 그들이 방문한 곳은 싱 가포르, 페낭, 말라카, 바타비야, 마닐라, 서마랑, 브루나이로서 현재 기준으로 볼 때의 도서부 동남아시아 5개국이 다 포함되었고 베트 남 자료에 小 西 洋 이라 기록되는 동북부 인도 지역까지도 종종 항 해 대상지였다. 베트남의 채매단은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기선을 비 롯한 선진 무기류 및 서양 상품을 사들여 왔는데 구입 자금으로 당 시 동남아시아의 주요 유통 수단인 멕시코 은화도 들고 나갔지만 사탕, 생사, 침향, 가죽, 보석류 같은 베트남 특산품도 갖고 나가 판 매했다(최병욱 2000). 이를테면 왕실 또는 정부 주도의 대외 교역인 바 이는 매우 동남아시아적인 면모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왕이 대 외 교역에 직접 관여하는 것으로서 전통적인 중국의 중화주의적 세 계관 속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채매단이 방문한 동남아시아의 여러 도시에는 서양 제국( 諸 國 )이 있었다. 말라카, 페낭, 싱가포르에는 영국이 있었고 바타비아에는 네덜란드가, 그리고 필리핀에는 스페인이 있었다. 모두가 식민지였 으니 서양의 국가체제가 그곳에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베트 남인들은 이곳에서 서양 세계를 관찰했고 식민지 모국의 존재에 대

14 262 동남아시아연구 21권 1호 해서도 익히 알고 있었다. 민 망 황제가 1823년 동남아시아로 사절 단을 보내면서 그 목적이 외국의 산천 풍물에 대해 알고자 함이 다 ( 寔 錄 2, 19:15a)라고 했던 데서 읽을 수 있듯이 19세기 베트남 위정자들에게 도서부 동남아시아 각국은 대륙부 동남아시아 국가들 처럼 또 다른 외국 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 외국에는 도서부 동남아 시아에서 식민지를 건설하고 있던 서양 여러 나라들도 포함되어 있 었다. 관선을 타고 1833년 싱가포르와 바타비야를 여행했던 판 후이 쭈 (Phan Huy Chú 潘 輝 注, )는 이 두 지역에서의 영국, 네덜 란드, 미국, 프랑스 사이의 국제적 역학 관계를 세밀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의 바타비아를 둘러싼 열강들의 각축 에 대한 기술을 보자: 강류파( 江 流 波, 바타비아)는 옛 사파( 闍 婆, 자바)의 땅인데, 화랑( 和 郞, 네덜란드)이 와서 지배한지 이미 백년이 넘었다. 근세에 다시 홍모( 紅 毛 )가 공격하여 빼앗으니 화랑 거주자 들은 대적치 못하고 산으로 피했다가 [...] 화랑은 다시 그 땅을 빼앗 았으나 [...] 부랑사( 富 浪 沙, 프랑스)가 [네덜란드] 본국을 공격하니 [...] ( 潘 輝 注 1833: 193) 나폴레옹 전쟁 때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침 입하자 네덜란드 국왕이 영국으로 망명했고 보호의 대가로 인도네 시아에서 네덜란드의 권리를 포기한 바 있으며 이에 따라 영국이 인도네시아를 차지했으나 나폴레옹 전쟁 이후 다시 네덜란드가 인 도네시아를 되찾았던 역사가 있었다. 판 후이 쭈는 유럽과 인도네시 아에서 동시에 전개된 각국 사이의 정치 변화를 거의 정확하게 기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지식은 황제 이하 국내의 지식인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으 며 아울러 서양인들의 무력 및 문물의 우수성 역시 여과 없이 전해 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서양인들이 만든 기선과 대포, 소총 등 을 적극적으로 수입하고 있었던 것이니 이는 지대박물( 地 大 博 物 ) 운

15 19세기 전반 베트남 제국( 帝 國 )의 국제질서 263 운하며 이국에서 만들어진 것들을 폄하하는 중화주의와 거리가 먼 태도였다. 아울러 그것은 중국을 중심으로 두는 소중화주의자들의 속성인 모화적 중화주의와도 거리가 있다. 도서부 동남아시아를 방 문했던 유가지식인 중에는 중국에도 사절로 다녀온 사람들이 많았 으며 판 후이 쭈도 그런 이들 중의 하나였다. 서양인들은 중국에 없 는 기선을 만들고 있었으며 대포 및 소총도 중국 것보다 뛰어났다. 판 후이 쭈의 서양의 거제( 車 制 )는 섬세하고 정교하며 가볍고 튼튼 함이 중국의 것과 비교해 더 낫다 ( 潘 輝 注 1833: 196)는 기술에서 우리는 19세기 베트남 지식인들이 중국 경도 또는 자국 우월주의에 서 얼마나 자유로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민 망 황제가 서양의 수전( 水 戰 ) 진법을 대신들과 더불어 연구하 면서 영국과 미국의 전술을 비교하는 데서도 우리는 베트남이 중화 의식을 비켜서 다중심적 국제질서에 더 익숙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 할 수 있다. 1838년 민 망 황제가 병부 상서 쯔엉 당 꾸에(Trương Đăng Quế 張 登 桂 )와 더불어 수전을 논할 때 자신이 외국에 파견한 관리들의 보고를 종합해 보건데 서방제국( 西 方 諸 國 ) 중 오직 홍모 ( 紅 毛 )와 마리근( 麻 離 根, 아메리칸)이 수전에서 우월하다 ( 寔 錄 2, 192:6a)고 평가하고 있다. 민 망의 눈에 비친 천하의 구성원에는 서 방의 여러 나라들( 西 方 諸 國 ) 이 분명 포함되며 그들 중 홍모와 마리 근은 특히 해군력이 뛰어났던 국가들로 인식되었다. 이 논의에서 민 망은 두 국가의 뛰어난 해군 기술을 배워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 으니(Ibid), 비록 표현 방식은 붉은 털( 紅 毛 ) 운운일지언정 그 실상 은 독립된 국체들의 인정인 것이다. 1833년 어느 날 신하들과 더불 어 청국의 군사제도를 평가하는 가운데서도 민 망은 서방제국 가운 데 영국이 최강임을( 西 方 諸 國 英 吉 利 爲 最 彊 ) 시인하고 있다( 明 命 政 要, 14:19a). 세계를 다양한 국가들의 조합으로 보고 물자나 지식 은 필요에 따라 국가를 건너 유통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극히 상식적

16 264 동남아시아연구 21권 1호 인 세계관이 이 논의에 녹아 있다. 明 命 政 要 제 25권 柔 遠 조는 베트남 황제에게 신복( 臣 服 )하러 오는 국가들을 다룬 것이라기보다는 베트남과 접촉하는 외국 또는 외국인을 다룬 것이다. 유원 이라는 말도 먼 데서 온 사람을 부드럽 게 감싸 안는다는 懷 柔 遠 人 의 준 말로서 캄보디아, 만상, 남장, 화 사 등 사절을 보내 조공( 遣 使 入 貢 )하는 조공국들, 국서를 휴대한 사절을 보내 물품을 바친( 遣 使 來 獻 또는 遣 使 進 香 ) 태국과 버마 사절에 대한 기록 외에도 영국총독이 보낸 사절, 프랑스 사절, 태국 조난선 난민, 버마 상인, 말레이 난민, 청나라 해상 난민, 청나라 이 주민, 프랑스 난파 선원 등에 대한 기사들이 유원 조를 채우고 있을 뿐이다. 이중 영국이나 프랑스 사절은 와서 물품을 바쳤다( 來 獻 方 物 ) 라는 표현은 있을지언정 그 목적이 통상( 通 商 ) 이나 통호( 通 好 ) 를 청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이 분명히 명기되고 있으며 특히 후자는 태국이나 버마의 사절들처럼 국서( 國 書 ) 를 휴대하고 있었 다고 전하고 있다. 물품을 바쳤다 는 것은 태국, 버마 사절들에게도 적용되는 실재에 대한 전언일 뿐이다. 동등한 국가 간 외교에서 국 서와 방물은 함께 짝하여 따라다니는 것이기 때문이다. 欽 定 大 南 會 典 事 例 안의 유원 조는 다루는 범위가 외국 뿐만 아니라 베트남 내 속만( 屬 蠻 ) 에도 미친다. 그런데 외국 은 베트남 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캄보디아, 비엔티엔, 루아프라방, 수사, 화사) 과 그 바깥의 국가군이 따로 분류되어 있다. 이 바깥 국가군에 태국, 서양제국, 버마가 포함되어 있다. 10) 이들은 明 命 政 要 에서 국서 를 휴대한 사절을 보내 물품을 바친 국가들로 기술되는 그룹이다. 19세기 베트남의 천하관이 (소)중화주의의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 10) 欽 定 大 南 會 典 事 例, 卷 각 조목은 다음과 같다. 卷 132: 朝 覲, 館 舍, 迎 送, 恤 典, 拯 援, 禁 約, 象 譯 ; 卷 133: 賜 予 屬 國, 賜 予 屬 蠻 ; 卷 134: 遣 使 錫 封, 頒 給 勅 命, 屬 國 貢 期, 屬 蠻 貢 期, 屬 國 貢 物, 屬 蠻 貢 物 ; 卷 135: 款 頓, 官 宴, 行 人 ; 卷 136: 暹 羅, 西 洋, 緬 甸.

17 19세기 전반 베트남 제국( 帝 國 )의 국제질서 265 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응우옌 왕조 건국 주체 세력들의 세 계 경험과도 관련이 있다. 이 왕조는 건국 과정에서 다양한 나라 및 외국인들과 접촉했다. 우선 건국자 응우옌 푹 아인(Nguyễn Phúc Ánh )은 젊은 시절 떠이 썬(Tây Sơn 西 山 )과의 전쟁 중에 두 번이나 태국에 망명한 바 있다. 태국의 수도 방콕에 머물면서 대 륙부 동남아시아에서 또 하나 만달라의 중심이었던 태국 왕(라마 1세, )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했을 뿐 아니라 그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11) 방콕에 살고 있던 서양인들을 포함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도 보았을 것이었다. 태국과 버마 간 전쟁에도 참여했으 니 12)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양국 간의 대결 속에서 버마의 역량도 경험했을 터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프랑스 외방선교회 소속 신부 삐노 드 베엔느(Pigneau de Béhaine)와 협조했고 이 신부의 제 안을 받아들여 프랑스의 루이 16세에게 지원 요청 사절도 보내 그의 장남 왕세자 까인(Cảnh) 왕자가 프랑스 왕을 직접 만나고 돌아왔다. 1802년 나라를 세운 이후에는 중국에도 사절을 보냈다. 중국으로부 터 베트남의 유일한 지배자로 인정받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보자면 응우옌 푹 아인은 적어도 태국, 프랑스, 중국 등 3개 나라의 왕에게 도움을 요청한 바 있는 것이며 이 국가들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있었 던 셈이다. 북쪽의 중국, 서쪽의 태국, 13) 서양의 프랑스가 공히 응우 11) 응우옌 푹 아인이 훗날 황제로 등극한 이후 캄보디아를 두고 베트남은 캄보디아의 어머니로 태국은 아버지로 비유했다는 유명한 이야기에서도(프놈펜 불교학원 Wat Srolauv에 보관된 1858년 문서, p. 23, Owen(2005), p. 510에서 재인용) 우리는 베트 남 황제가 갖고 있던 다중심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12) 응우옌 푹 아인 및 그의 부하들은 라마 1세의 요청으로 버마와의 전투에 동원된 바 있다. 寔 錄 1, 2:18b-19a. 13) 건국 초기 태국과의 관계에서 태국 왕이 보낸 국서가 예에 맞지 않았다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태국 왕이 베트남 왕을 높이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낮추는 것이 문제였다. 이 당시 베트남의 노력은 베트남 왕이 태국 왕으로부터 동격으로 호칭되 어지는 것에 두어졌다. Woodside(1971), pp ; 寔 錄 2, 4:17. 이런 언어상의 신경전은 베트남 사료에서 심심찮게 나타난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응우옌 푹 아인이 떠이 썬에 쫓겨서 방콕으로 망명했을 때였다. 실록 은 이때 응우옌 푹 아인

18 266 동남아시아연구 21권 1호 옌 푹 아인 및 그의 추종자들의 머릿속에 강한 국가군으로 자리 잡 고 있었으니 베트남이 천하의 중심이고 그 외는 모두 야만이라고 간주하는 중화주의가 19세기 베트남 위정자들의 머릿속에 형성될 여지는 애초부터 없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물론 19세기 베트남이 중국 이외의 국가들을 야만이나 이적( 夷 狄 ) 으로 간주한 사례는 많다. 가까이는 캄보디아와 라오스가 베트남에 게는 열등한 야만국이었고 태국이나 버마에 대해서도 이적 운운할 때가 있었다. 사정에 따라서는 프랑스나 영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였다. 건국 초기 프랑스와의 우호적 관계 때문인지 프랑스의 라이벌 인 영국에 대해서는 홍모( 紅 毛 ) 라는 표현을 자주 썼고, 기독교 문 제가 심각해지고 급기야 1846년 프랑스가 다낭을 폭격하자 프랑스 인들도 양이( 洋 夷 ) 니 융적( 戎 狄 ) 이니 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寔 錄 3, 66:4-5b). 베트남 연구자들에게 종종 인용되는 기사이지만, 민 망 황제 말기에 중국에 사절로 갔던 이들의 보고에 의하면 중국 황제를 배알할 때 각국 사신의 자리가 조선, 남장( 南 掌 ), 태국, 유구, 베트남 순서로 배열되었던 적이 있었다. 이때 베트남 황제는 [조선 을 제외한] 나머지 세 나라[남장, 태국, 유구]는 이적( 夷 狄 ) 이라면서 중국이 베트남을 이들의 뒤에 세운 조치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寔 錄 2, 220:8). 그런데 이런 사례를 갖고 베트남이 자신과 자신이 조 공을 보내는 중국을 빼고 여타의 외국은 모두 이적시 하고 자신을 중화의 핵심이라 여겼다고 해석한다면 그것은 무리이다. 베트남의 이적 운운은 약한 나라들에 대해서는 업신여기는 심리에, 동등하 거나 우월한 나라들에 대해서는 감정적으로 불편한 심기에 호응하 는 호칭법이었을 뿐이었다. 중국에 갔던 사절들이 유구의 뒷자리에 을 황제 로 태국 라마 1세는 왕( 暹 王 ) 이라 칭하고 있다. 그러나 라마 1세는 응우 옌 푹 아인을 국장( 國 長 ) 정도의 의미인 짜오( 昭 ) 라 불렀음도 숨기지는 않고 있다. 寔 錄 1, 2:11a.

19 19세기 전반 베트남 제국( 帝 國 )의 국제질서 267 섰던 사례에서 오히려 주목되는 것은 베트남의 앞에 선 조선에 대한 평가이다. 민 망 황제는 고려[조선]는 문헌지방( 文 獻 之 邦 )이니 [맨 앞에 선 것에 대해] 논할 바가 없다( 無 足 論 ) 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는 조선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베트남과 대등한 나라( 國 ), 더 나아 가 베트남 보다 우위에 있을 수도 있는 나라의 존재를 상정하고 있 었다는 증거이다. 그 외에 미국, 영국 등도 19세기 전반 베트남에게는 이 세계를 구성하는 주요 국가들이었다. 1822년 크로퍼드(John Crawfurd) 일행 이 인도 총독의 서한을 갖고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개국 공신으로서 남부베트남을 통치하고 있었던 레 반 주엣이 지적한 문제는 왕은 왕에게만 [편지를] 쓸 수 있는데 벵갈의 총독이 어떻게 코친차이나 의 왕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가 (Finlayson 1826: 319)냐는 점이었다. 민 망 황제도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이들 [영국 사절]은 총독이 보내 온 것이지 국왕의 명이 아니다 ( 明 命 政 要, 25:7a)라는 말은 왕은 왕만을 상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다. 이 응우옌 왕 조의 건국 세대에게 영국 왕은 만이의 수장이 아니라 황제와 동격인 개별 국가의 왕이었던 것이다. 1845년 영국인 로스(Ross)가 베트남 을 방문했을 때 황제는 이 나라를 영국( 英 國 ) 이라 지칭하고 있으며 편지와 선물을 영국 왕에게 보냈다. 비록 베트남 측의 중화주의적 레토릭은 [영] 국왕에게 칙서를 내려 [사절을] 돌려보내고 선물을 상으로 주었( 頒 賜 勅 書 遣 回 賞 國 王 ) ( 寔 錄 3, 50:10)던 것이지만 말 이다. 아편전쟁의 결과는 물론이고 인도 및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영 국의 강력한 위상을 알고 있던 시기의 베트남이기에 이 레토릭이 진정성을 반영하지 않는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20 268 동남아시아연구 21권 1호 2. 중국과의 전쟁과 방교( 邦 交 ) 10세기에 중국으로부터 베트남이 독립한 이래 역대 중국 왕조(송, 원, 명, 청에 이어 중화인민공화국까지)는 단 한차례의 예외도 없이 베트남을 선제 공격하여 전쟁을 벌였다. 그런데 이를 베트남 측에서 따져 보자면 독립 이후 전통시대 베트남 역대 왕조(응오 Ngô 吳, 딘 Đinh 丁, ( 前 ) 레 Lê 黎, 리 Lý 李, 쩐 Trần 陳, 호 Hồ 胡, 레 Lê 黎, 막 Mạc 莫, 떠이 썬 Tây Sơn 西 山, 응우옌 Nguyễn 阮 ) 중에서 딘 왕조와 응우옌 왕조만 제외하고 모두 중국과 전면전을 벌였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딘 왕조의 경우는 전쟁을 치른 것이나 진배없었다. 송나라의 위협 속에서 전쟁 준비를 하다가 장군 레 호안(Lê Hoàn)이 왕위를 찬탈했고, 그의 지도 아래서(전) 레 왕조가 송과 전쟁을 벌였 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베트남 역사상 마지막 응우옌 왕조만이 중 국과 전쟁이 없었다. 중국과 충돌이 없었던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겠다. 첫째 는, 19세기에 등장한 이 통일 왕조는 이전의 역대 어느 왕조보다 강력했다. 북부로는 중국의 광서, 운남과 경계한 땅으로부터 남으로 는 메콩의 서극단 까마우(Cà Mau) 반도에 이르기까지의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할 수 있게 된 데다가, 적극적인 서구 문물 도입으로 국 방력이 이전의 그 어떤 왕조보다 향상되어 있었다. 둘째로는 건국의 과정이나 내치 등에서 청나라의 개입을 초래할 명분을 제공하지 않 았다. 건국의 과정이 찬탈도 아니었거니와 왕위 계승에서 정통성을 문제 삼을 정도의 심각한 분란이 있었던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 국 운남에 인접한 라오 까이(Lao Cai)에서 경계 및 관할권 문제를 놓고 베트남과 중국 간 군사적 충돌이 일어난 적은 있었으나 양측이 서로 조심하는 가운데 전면전으로 확대되지는 않았다(최병욱 2008: ). 셋째로, 이 시기 청나라는 이미 급속히 쇠퇴하고 있었기

21 19세기 전반 베트남 제국( 帝 國 )의 국제질서 269 때문에 베트남을 참견할 여유가 없었다는 점도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과 베트남 관계의 시간대를 좀 더 늘여서 하한을 19세 기 중반으로 잡고(이때부터 프랑스 침입이 시작된다) 상한을 베트남 의 남북이 하나의 단일체로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18세기 말로 잡는 다면 매우 흥미로운 모습이 포착된다. 18세기 말에는 떠이 선 세력 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1771) 200여 년 간 존속하던 남쪽 응우옌 (Nguyễn 阮 ) 씨 정권과 북쪽 찐(Trịnh 鄭 ) 씨 정권이 차례로 붕괴되 고 남북을 함께 지배하게 되는 왕조(떠이 썬 왕조, )가 등 장했으니, 남북이 한 덩어리가 되는 정권의 시발은 떠이 썬 왕조의 출현으로 잡아야 할 것이다. 14) 남북의 분립이 끝나는 시점은 중국 측에서 우려하던 상황의 시작이기도 했다. 일찍이 청나라 조정에서 광남국( 廣 南, 응우옌 씨 정권 판도를 이름)은 훗날 반드시 커져서 참파와 캄보디아를 다 차지하고 여씨( 黎 氏 ) 자손은 장차 [이를] 통제 할 수 없을 것이며, 나중에는 [여씨 자손의 땅, 북부 찐 씨의 판도를 가리킴] 역시 병탄될 것 ( 寔 錄 2, 212:12b)이라고 걱정했다 하니 북 부(* 이 판도만 갖고도 베트남은 明 을 이겨낸 바 있다)와 남부가 합 쳐진 정권은 중국으로부터 볼 때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중국으로서는, 떠이 썬 왕조가 안정되기 이전에 손을 쓸 필요가 있었다. 중국은 반란군 진압을 명분으로 20만의 병력을 동원해 베 트남에 출병했고 탕 롱 성을 점령했다. 그러나 곧 떠이 썬이 반격에 나서 치열한 격전 끝에 청군에 승리했다. 곧 이어 다시 이 떠이 썬을 이겨낸 응우옌 왕조가 수립되어 명실 공히 안남(북부)과 광남(남부) 을 합친 정권이 등장한 것이다. 응우옌 왕조는 이해관계가 상충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중국과 합 14) 떠이 썬 왕조가 최초의 통일 왕조라는 말은 아니다. 이 왕조가 시작되는 1788년에 우옌 씨 정권의 생존자인 응우옌 푹 아인이 남부 사이공에 거점을 확보했다. 이 정권과 떠이 썬과의 싸움이 이후 전개되다가 사이공 정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되면 서 1802년에 최초의 완전한 통일왕조가 출현하게 된다.

22 270 동남아시아연구 21권 1호 리적( 合 利 的, rational) 관계를 유지하면 충분했다. 양국 사이에는 의 례적 사절만이 오고갈 뿐이었다. 우드사이드의 조사에 의하면 응우 옌 왕조의 1, 2대 황제 재위기간인 1802년부터 1841년 사이에 베트 남이 중국에 사절을 보낸 것은 1802, 1803, 1804, 1809, 1813, 1817, 1819, 1825, 1829, 1831, 1833, 1837년으로(Woodside 1971: 115) 40 여 년 동안 총 12회에 불과했다. 이중에서도 응우옌 왕조의 국체가 완성되었던 민 망 황제 시기 20여 년 동안에 중국에 사절이 파견된 것은 5회밖에 되지 않는다. 그 이전의 형편도 마찬가지였다. 16세기 부터 200년이 넘는 응우옌 씨 역사를 적고 있는 大 南 寔 錄 前 編 에 는 태국, 캄보디아, 참파 및 서양 각국과의 외교 관계가 기술되어 있지만 중국 관련 기사는 전혀 눈에 뜨이지 않는다. 쟈 롱(Gia Long 嘉 隆, ) 황제 시기에 중국과의 사절 교환 기록은 6번인데 비해 태국과의 사절 왕래는 60여건이나 된다(Choi 2010: 95). 베트 남에서 중국으로의 사절 파견 횟수가 적었더라도 그 사절에 대응한 중국 측의 베트남행 사절도 있었을 법하다. 그러나 19세기 전반기 동안 베트남 실록의 기사 중에 중국 사절이 출현하는 것은 각 황제 들이 월남국왕 으로 봉해지는 광경에서 뿐이다. 그나마도 1-3대의 책봉식은 하노이에서 행해졌으니 프랑스가 베트남을 장악하기 이전 까지 청나라의 사절이 베트남의 수도로 들어오는 것은 제 4대 뜨 득(Tự Đức, )의 즉위식 때뿐이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대등성이었다. 특히 우열 관계가 명백해 보이는 책봉식에서 베트남의 신경은 늘 날카로웠다. 그래서 책봉 의식에 대한 기록의 언저리에는 늘 시종일관 우리의 國 禮 를 좇았다 ( 寔 錄 2, 13:2a)거나 모든 일에서 우리나라 禮 典 (혹은 典 禮 )을 따랐다 ( 寔 錄 2, 12:24a; 寔 錄 3, 18:22a)는 표현들이 있다. 실제 그렇게 진행되었다. 예를 들어 청나라의 규례에는 선왕이 사망 하고 신왕이 즉위하는 책봉 의식에 삼궤구고례( 三 跪 九 叩 禮 )가 세 차

23 19세기 전반 베트남 제국( 帝 國 )의 국제질서 271 례나 규정되어 있지만 적당한 절충 속에서 이는 생략되고 있었던 듯 하다. 즉위식을 앞 둔 민 망 황제가 신하들과 더불어 의식의 절차 를 논할 때 청나라의 예에 삼궤구고가 있는데 만일 그들이 이것을 나더러 하라하면 경들은 입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인가? 요컨대 예는 나라의 풍속을 따라야 하는 것이니 나는 스스로 내 나 라의 예를 행할 것이다 ( 寔 錄 2, 11:6a)라며 자기 식대로 할 것을 고집했다. 청나라에서 보내는 사절도 1788년부터는 중앙에서 직접 보내는 대신 양광 ( 兩 廣 ) 총독에게 이 일을 위임했던 고로 이때부터 는 베트남 사정에 밝은 광서성( 廣 西 省 )의 안찰사( 按 察 使 )가 책봉사 로 오는 것이 관례화되었기 때문에( 淸 會 典 事 例, 卷 502, 禮 部, 213) 책봉 의식을 두고 양 국 사이의 절충은 원활하게 이루어졌으리 라 추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820년에 있었던 민 망의 책봉식 기사 를 보자. 책봉사로 온 광서 안찰 공신( 恭 辰 )은 책봉식이 끝난 후 당 일로 귀국하고 있으며 이 사절에 대해서 실록은 부드럽고 공손하며 겸손하고 우아한데다가 정감과 학식을 두루 갖추었다 ( 寔 錄 2, 12:24a)고 적고 있으니 이 극진한 칭찬이 암시하는 바가 무엇이었겠 는가? 明 命 政 要 에 방교 ( 邦 交 ) 조는 없다. 단지 欽 定 大 南 會 典 事 例 에 방교 15) 조가 있으나 그 내용은 사신의 파견, 문서처리, 청나라 사신 접대, 선봉대례( 宣 封 大 禮 ) 등과 더불어 변경 문제, 범법자의 처 리 등 나라 대 나라의 외교 관계가 주를 이루고 있다. 16) 방교 라는 말은 조선에서도 사용되던 어휘였다. 그러나 조선과 베트남이 부여 하던 방교의 의미는 매우 달랐다. 조선은 방교의 실체가 어휘의 의 15) 유인선의 조사에 의하면 베트남에서는 레 왕조 초기에 交 邦 이란 용어가 출현했고 이후 떠이 썬 정권 때에 邦 交 로 쓰이기 시작하여 응우옌 왕조에 정착되었다고 한다. 유인선(2009), pp ) 欽 定 大 南 會 典 事 例, 卷 각 권의 조목은 다음과 같다. 卷 128: 遣 使 事 宜, 品 儀, 打 發, 賞 給, 護 送, 給 卹, 投 遞 文 書 ; 卷 129: 接 使 事 宜, 宣 封 大 禮, 諭 祭 大 禮 ;; 卷 130: 贄 見, 供 頓, 宴 款, 饋 贈, 使 館, 使 船 ; 卷 131: 申 嚴 疆 索, 拯 卹 解 犯..

24 272 동남아시아연구 21권 1호 미 이하였다면(조선의 입장에서 볼 때) 베트남의 방교는 명과 실이 일치하는 국가대 국가의 교류 그 자체였다. 중국 황제에 대한 왕(조 선) 의 대응과 황제(베트남) 의 대응은 다른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 가? 베트남의 유난스러운 자존심, 자주성, 또는 중국에 대한 대등/평 등 의식이 이 방교 의 저변에 도사리고 있다(유인선 1994: 82; 2009: 404). 그런데 우리는 이 베트남적 방교 의식 또는 대등 의식을 중국에 대한 베트남의 자존심으로서가 아니라 베트남이 갖고 있던 동남아 적 국제질서 전통 속에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은 10세 기 독립 이후 줄곧 남진하는 가운데 참파 및 캄보디아와 접하면서 동남아시아적 국제관계의 영향을 받았을 개연성이 매우 높으며, 남 진이 아니더라도 베트남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동남아적 전통이 중 국과는 다른 국제인식 형성에 일조하였을 것이다. 기실, 리 왕조 수 립 이후의 역사를 놓고 보자면 한동안 인도차이나 반도 내에서 베트 남, 참파, 캄보디아 등이 대등하게 공존했으며, 15세기에 들어서야 베트남-참파 간 균형이 깨지면서 베트남이 급성장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16세기부터 베트남에는 실질적으로 두 개의 나라가 들어서 200여년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10세기로부터 18세기까지를 놓고 보 면 예외적인 성세였던 15세기 레 타인 똥(Lê Thánh Tông 黎 聖 宗, ) 시기만 제외한다면 인도차이나에서 베트남이 독자적인 패자로 군림할 기회는 없었다. 대륙부 동남아시아에서는 찐 씨의 판 도, 응우옌 씨의 판도, 캄보디아 등이 서쪽의 태국, 버마 등의 국가들 과 공존하던 형태였다. 거기에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 서양 제국 및 일본 등이 베트남의 남북 정권과 공히 관계를 맺고 있던 터이라 베트남이 제왕적 천하관을 형성할 조건이 마련될 여지 가 거의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더군다나 제왕이 되어야 할 레 황실 의 황제가 찐 씨에 의해 명목만으로 옹립되어 있는 허수아비 같은

25 19세기 전반 베트남 제국( 帝 國 )의 국제질서 273 존재였다. 17세기부터 캄보디아가 급격히 약화되어서 베트남(남부 응우옌 씨)에게 조공을 바치기도 하지만 캄보디아는 태국에 대한 의존도가 더 강했기 때문에 정치권력들의 동남아적 공존 형태가 깨 지는 것은 아니었다. 18세기말부터 베트남의 판도는 급속도로 확대 되기는 했지만 이런 사정은 태국, 버마도 마찬가지였다. 동남아적 국제질서 인식 방식을 공유하는 베트남, 태국, 버마 등 대륙부 동남아시아의 중심 국가들에게 중국의 천하관 및 왕권은 도 무지 설득할 수 없는 막무가내의 아집이었다. 불가피한 외교 관계 유지를 위해서, 혹은 조공 사절을 필수적 요체로 인식하는 중국 측 의 강압적 또는 은밀한 요구에 의해서 사절 및 국서가 오갔지만 보 내는 측과 받는 측은 서로 자기 필요에 따라 문구를 조작하고 이해 하는 편이었다. 중국은 자기중심적 외교 언설(중국 측 사료에 기재 되는 朝 貢, 謁 見, 封 爵, 藩 屛 등의 용어)로 포장해 국제 관계를 인식 하고 있었고, 이런 중국과의 외교 방법을 터득해 온 동남아시아 국 가들은 적당한 수준에서 중국의 요구를 들어주며 관계를 유지하였 다. 예를 들어 베트남이 중국으로부터의 책봉 절차를 방교 라 하고 책봉 또는 勅 封 대신 선봉( 宣 封 ) 이란 단어를 즐겨 사용하는 것 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기본적으로, 동남아시아 왕들에게 중국 황제는 자신들과 동등한 일개 국가의 군주였을 뿐이었다. 국가 간 차이는 다소 있었다. 태국 의 경우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전통적으로 조심스러웠다. 그렇다고 해서 이 두 나라 사이에 무력 대결이 있어서 우열이 가리어진 적도 없었다. 버마는 전통적으로 중국으로부터 자유로웠으며 중국의 황 제는 동등한 개별 국가의 한 수장이었을 뿐이었다. 18세기에 있었던 4차례의 버마-청 간의 전쟁에서 승부가 나지 않은 것도 대등 의식을 강화시켰다. 전쟁 전후로 양국의 사절이 교환된 적이 있었다. 그러 나 중국 측에서 아무리 조공 사절 이라 주장해도 버마 왕 입장에서

26 274 동남아시아연구 21권 1호 중국에 보낸 사절은 단지 대등한 관계 속에서, 다시 말하면 두 개의 만달라 중심 사이의 외교적 관례였을 뿐이었다(Myoe 2008: 71; 73; 83). 베트남 황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역사 속의 양국 전쟁에서 대부 분 이겨 오기만 하던 베트남이 중국에 대해 신속( 臣 屬 ) 의식을 가질 이유가 없다. 게다가 종종 중국의 황제는 몽골, 만주인이지 않았던 가? 응우옌 왕조는 중국의 고전적 전통 또는 한자 문화와 유교로 상징 되는 동북아시아의 고전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강했 다.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야만인인 만주족이었기 때문이었다. 19세기 베트남이 중국 의 적통을 이었다는 의식은 1823년에 있 었던 역대제왕묘( 歷 代 帝 王 廟 ) 설치 논의에 잘 나타나 있다( 寔 錄 2, 20:1a-3b). 예부에서 황제에게 올린 글에 의하면, 명나라에서는 수도에 제왕묘를 만들어 5개의 공간으로 나눈 후 그곳에 오제삼왕 ( 五 帝 三 王 伏 羲, 神 農, 軒 轅, 堯, 舜, 湯 王, 文 王, 武 王 ) 및 한, 당, 송 창업 군주들을 모셨던데 반해서 청조에 이르러서는 역대 제왕 중에서 무도한 자들 및 요, 금 등 이적으로서 중화를 교란시킨 군주 들도 함께 배열했다고 비판되고 있다. 청조의 제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大 淸 이라, 그들의 선조는 滿 人 이니 [...] 滿 은 오랑캐다 ( 寔 錄 2, 26:22a)라는 민 망 황제의 인식과 호응한다. 이런 인식의 반영 인지 1840년 말 도찰원의 책임자였던 부 득 쿠에(Vũ Đức Khuê, 武 德 奎 )는 민 망 황제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심지어 만주가 일어나서 중국은 모두 이적 ( 夷 狄 )이 되었다 ( 寔 錄 2, 218:20b) 라는 표현까 지 서슴지 않았다. 베트남은 청을 제끼고 중국 의 계승자임을 과시하고자 역대제왕 묘를 자기 식으로 만드는데, 명제를 본따서 다섯 개의 공간을 나누 긴 하지만 그 공간에 배치하는 제왕의 종류는 명대의 것과 전혀 달 랐다. 정 중앙에는 오제삼왕을 차례로 배치한 후 그 다음 양쪽에는

27 19세기 전반 베트남 제국( 帝 國 )의 국제질서 275 베트남의 선조인 경양왕( 涇 陽 王 ), 락 롱 꾸언(Lạc Long Quân), 웅왕 ( 雄 王 ), 사왕( 士 王 ), 17) 정선황( 丁 先 皇 ), 여대행황제( 黎 大 行 皇 帝 )를 비 롯하여 리, 쩐, 레 왕조의 창시자 및 레 성종과 같은 성세기의 황제들 의 위패를 배치하는 식이었다. 18) 즉 오제삼왕의 존재를 베트남 왕실 계보와 연결시키고 있으니, 그 베트남 왕실 계보를 잇는 19세기 응 우옌 왕조는 결국 오제삼왕의 법통을 계승한 셈이었다. 19세기 베트남 황제들은 자신을 포함한 베트남인을 한인( 漢 人 ), 글자 및 언어를 한음( 漢 音 ), 풍속을 한풍( 漢 風 ) 이라고 표현하고 있었으며 이는 동아시아 고전 문화의 수호자라고 하는 문화적 자존 심의 발로였다 (Choi 2004: ). 자신들은 한인 인데 반해 만 주족뿐만 아니라 만주인 치하에 살던 원 한인 까지 모두 청인( 淸 人 ) 이었다. 더 심한 경우에는 베트남 스스로 中 國 을 칭하고( 寔 錄 1, 38:12; 44:19a) 중국인을 淸 夷 라 불렀던 사례도 있다( 寔 錄 1, 59:7b). 19세기 들어 수많은 중국인이 베트남에 이주해 올 때 베트남 황제가 이들을 두고 우리 낙토를 우러러 백성이 되고자 한다 ( 寔 錄 2, 61:8a)고 반기는 말투에는 중국 으로 들어오는 이적 의 행렬 을 바라보는 우월감이 배어 있다. 이미 논리상으로는 분명 베트남이 中 國 이고 중국이 夷 였다. 적어도 19세기 베트남은 중국과 베트남 사이의 우열 관계를 부정하고 있었던 것은 확인된다. 민 망 황제의 자존심은 각별했다. 신하들과 더불어 청 건륭 황제 ( )의 문학을 논하면서 건륭제를 선배( 先 輩 ) 라 지칭하고 17) 1830년 예부의 건의로 사왕의 위패는 역대제왕묘에서 제외된다. 그가 중국 지배기 후한의 교주자사( 交 州 刺 史 )였기 때문이란 것이 이유였다( 寔 錄 2, 69:14). 18) 이보다 앞선 1821년, 전국에 있는 역대제왕묘에 제사지낼 때의 기사를 보면 涇 陽 王, 雄 王, 安 陽 王, 趙 武 王, 徵 王, 李 南 帝, 趙 越 王, 枚 黑 帝, 布 蓋 大 王, 吳 王, 丁 先 皇, 黎 大 行 皇 帝 및 리, 쩐, 레의 각 황제가 대상으로 열거된다. 寔 錄 2, 10:19b. 지방과 중앙에 공통되는 네 帝 王 (경양왕, 웅왕, 정선황, 여대행황제) 중 경양왕은 신농씨의 사대손으로 일컬어지며 락 롱 꾸언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베트남이 오제의 적통을 잇는다고 주장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28 276 동남아시아연구 21권 1호 그의 시가 비록 의미는 고매하고 시어는 화려하나 운율을 신경 쓰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본받을 바가 못된다고 폄하하는 모습이라든가 ( 寔 錄 2, 185:28b-29a) 아편 전쟁의 결과를 놓고, 중국은 황자( 皇 子 ), 번왕( 藩 王 ), 문무대신( 文 武 大 臣 )이 모두 아편을 피운다니 어찌 법으로써 외국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라며 딱해하는 데서( 寔 錄 2, 208:28a) 중국을 상국으로 받드는 자세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실제로 응우옌 왕조의 황제들은 청조를 일컬어 대국 또는 천조 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아울러 이 나라를 가리키는 공식적 용어는 중국 이라든가 대청( 大 淸 ) 이 아니라 청국 이었다. 중국 황 제도 청제( 淸 帝 ) 라 불렀다. 중국과 베트남을 북, 남으로 구분하는 전통적인 관념의 연장선상에서 청은 북조( 北 朝 ), 베트남은 남조 ( 南 朝 ) 라 칭하기도 했다. 가끔 북경으로 가던 사절은 여청사( 如 淸 使 ) 였다. 말 그대로 청으로 가는 사절 로서, 중국은 중국 이 아니 라 청 이었을 따름이었다. 존숭의 관념이 배어있는 중( 中 ) 이라든 가 대( 大 ) 를 사상( 捨 象 )하고 객관화된 이름( 淸 )만 사용하던 베트남 에게 중국은 그냥 주변 여러 나라들 중의 한 나라( 國 ) 였을 뿐이다. 조선의 경우처럼, 조공이 무역으로서의 가치를 가지는 것도 아니 었다. 베트남은 중국 광동을 통해서 또 동남아시아 각국을 통해서, 또 베트남을 방문하는 각국 상선들을(특히 중국 남부 광동, 해남 등 지로부터 오는) 통해서 필요한 물자는 얼마든지 팔고 살 수 있었으 니 말이다. 19) 19) 북경으로 가는 사절이 구매하던 물품으로 서화( 書 畵 ), 옥기( 玉 器 ), 약재, 인삼 등이 사서에 나타난다. 이중 인삼은 만주산 관동인삼 ( 關 東 人 參 ) 으로서 청조 예부를 통해 하사품 형태나( 寔 錄 2, 38:17b; 65:9b-10a; 69:29-30) 베트남에서 가져간 육 두구, 연와, 계피 등과 물물교환 형태로 지급되거나( 寔 錄 2, 218:33) 취득되기도 했다. 그러나 북경으로의 사절 횟수가 적었기 때문에 물품 획득은 큰 중요성을 갖 지 못했다. 오히려 이들 물품의 안정적 공급처는 광동이었다. 특히 1832년 음력 9월의 기록부터는 고려인삼( 高 麗 人 參 ) 이 실록에 보이기 시작하는데( 寔 錄 2, 83:10a. 이전까지는 그냥 인삼 人 參 이었음). 고려인삼의 구입처가 광동이었을 가 능성이 높다.

29 19세기 전반 베트남 제국( 帝 國 )의 국제질서 277 글쓰기 방식에서는 청조에 대한 폄하의식까지 드러난다. 실록 의 기록 체제에서 베트남의 황제나 황제/황실과 관련된 명사들은 줄을 바꾸어 가장 윗줄로 가져가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지만 청제 는 글 쓰는 순서대로 아무데나 두어서 페이지의 아래쪽에 내려가 붙기도 한다. 이러니 한 페이지에서 두 황제가 동시에 언급되는 경우 베트 남 황제는 맨 위에 위치하고 청나라 황제는 훨씬 아래쪽에 놓여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20) 청나라 입장에서 볼 때 정식 조공국은 조선과 유구를 빼고는 대부 분 동남아시아 국가들이었다. 21) 이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베트 남은 중국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이야기되지만 같은 유교 문화권인 조선이나 유구에 비해서 중국과의 공식적 접촉은 소 한( 少 罕 )하기 그지없다. 조공 횟수 규정에 이것이 명확하게 드러난 다. 청조에서 정한 각 속국 의 조공 횟수는 시대에 따라 변화가 있 어서 정확한 수치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19세기 초반 언저리 조공 횟수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조선 1년 4공(사신 파견 1년 1회), 유구 2년 1공, 안남(및 월남) 2년 1공(사신 파견 4년 1회), 섬라 3년 1공, 하란( 荷 蘭 ) 5년 1차, 면전 10년 1공, 남장 22) 10년 1공( 淸 會 典 事 例 禮 部 213, 朝 貢, 貢 期 ). 청조에 대한 국가적 친밀도는 조선, 유구, 베트남, 섬라, 남장, 버마 순서로서, 베트남의 위치가 세 번째이지만 20) 예를 들어 寔 錄 1, 17:9b; 25 같은 곳을 보라. 21) 청의 외곽은 土 司, 藩 部, 屬 國 등 3개의 그룹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김한 규 (2005), pp 이 중 조공국 명단에 오른 국가들은 조선, 유구, 월남(또는 안남), 南 掌, 暹 羅, 緬 甸, 솔로( 蘇 祿 ) 등이다. 인도네시아의 바타비아에 동인도회 사를 둔 네덜란드( 荷 蘭 )도 조공국으로 언급된다. 淸 會 典 事 例 禮 部 213, 朝 貢. 22) 남장은 중국의 조공국이었지만 베트남의 조공국이기도 했다. 동남아시아의 대등한 권력 중심부들의 세력 범위에는 중첩되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이곳에 위치한 약소국들은 양쪽의 권력 중심부에 모두 조공을 바쳐야 함은 물론이다. 베트남과 태국 사이에 캄보디아, 만상, 남장 같은 나라가 있었고 버마와 태국 사이에는 말레 이나 몬족 국가들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이들 중첩지대 소국들의 존재는 주요 권 력 중심부 국가들의 평등성을 확인하는 요소들이기도 했던 것이다. 남장을 놓고 보자면 베트남과 태국, 그리고 중국은 동렬이었다.

30 278 동남아시아연구 21권 1호 조선에 비해서 청 조정과의 접촉 빈도는 크게 차이가 나며 이 횟수 는 유구와 태국 중간 정도이다. 고급 관료가 담당하는 조공 사절의 청국 방문 횟수는 유구는 물론 태국에도 못미쳤다. 유인선의 연구에 의하면 1839년에 베트남은 유구 및 섬라와 더불어 4년 1공이 되었다 고 하니 23) 베트남은 조선과는 구별되어 유구, 태국과 한 그룹으로 엮여진 것이며 그나마 이도 10여년 정도만 유지되다가 중국에서 태 평천국의 난( )이 발생했던 기간 동안에는 조공 사절도 끊 어졌다(유인선 2009: 409). 최근 년대 청불전쟁 기간까지 중-월 관계를 조선과 비 교해 고찰한 한 중국사 전문가가 양국관계가 일반적인 생각보다 소원했[다] (최희재 2010: 182)고 한 판단은 19세기 전반기에 모두 적용해도 타당성이 전혀 손상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의 양국 관계는 19세기 전반 상황의 연속 또는 반영이었던 것으로 이해 해도 좋다. 19세기 내내 베트남은 중국 조정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 져 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859년부터 프랑스의 베트남 침략이 시작되었지만 그로부터 20년이 넘게 자력으로 버티던(청불전쟁은 ) 베트남의 태도 전면에는 독립 제국으로서의 위상이, 그 배후에는 중국과의 소원함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라고 이해해야 하겠다. 23) 1839년 음력 10월에 청조에서는 유구, 섬라와 더불어 베트남도 4년 1공으로 개정하 겠다는 결정을 통보해 왔다. 이에 민 망 황제는 그동안 2년 1공( 貢 ), 4년 1사( 使 )의 원칙이었지만 편의상 합쳐서 4년에 한 번씩 보내왔는데 다른 게 무엇이냐고 반박 해서 방물을 반으로 줄이기로 청조와 합의했다. 4년에 한 번씩 청조로 보내게 된 방물의 내역은 다음과 같다. 상아 1대( 對 ), 서각( 犀 角 ) 2좌( 座 ), 토주( 土 綢 ), 토범 ( 土 糸 + 凡 ), 토견( 土 絹 ), 토포( 土 布 ) 각 일백 필, 침향( 沈 香 ) 200 兩, 속향( 速 香 ) 600 兩, 사인( 砂 仁 ), 빈랑( 檳 榔 ) 각 45근. 寔 錄 2, 207:41b-42a.

31 19세기 전반 베트남 제국( 帝 國 )의 국제질서 279 맺음말 19세기 통일베트남의 영토는 베트남에 두 개의 나라가 생기기 시 작한 16세기까지의 규모에 비해 두 배 정도가 늘어나 있었다. 갑작 스런 지배 범위의 팽창과 그에 따른 국력 증강, 동남아시아에서 차 지하는 베트남의 위상 강화 등의 변화와 더불어 새롭게 형성된 베트 남의 국제질서는 화이론적 (소) 중화질서라기 보다는 동남아시아의 만달라적 세계관에 가까웠다. 베트남 제국에게 중요했던 국가들은 중국보다는 동남아시아 이웃 국들이었다. 대륙부 동남아시아는 몇 개의 중심이 만들어 내는 지배 권 범위로 나뉘어 있었으며, 베트남은 버마 및 태국과 더불어 세 개 의 큰 중심지 중의 하나였다. 도서부 동남아시아 각국 및 서양 제국 을 베트남과 동등한 국가 로 인식하던 베트남에게 중화주의적 천하 관이 끼어들 여지는 매우 적었다. 대략 1780년대부터 시작되는 쟈 롱 황제의 실록부터 1847년 티에우 찌(Thiệu Trị, ) 황제 시기까지 3대의 실록을 살펴볼 때 베트남 황궁을 들락거리던 사절 들은 주로 태국과 캄보디아, 라오스 인들이었다. 남북분립기 200여 년 동안의 전통을 이어 남쪽을 기반으로 탄생한 응우옌 왕조에게 주된 외교 대상은 동남아시아였으며, 따라서 응우옌 왕조 지배자들 의 국제 인식에는 동남아시아적 경향성이 훨씬 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9세기 통일 베트남은 중국과의 외교적 관계에 별 관심이 없었다 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다. 비록 중국과는 형식적인 조공-책봉 관계 를 맺고 있었으나 그것은 중국이 고집하던 외교관계의 형식적인 틀 과 절충하는 방식이었을 뿐이다. 베트남이 중국에 보내는 사절의 횟 수는 매우 적었고 중국으로부터의 사절에 대한 베트남 조정 측의 관심은 적었다. 민 망 황제 재위기 20여 년 동안 베트남에서 중국으

32 280 동남아시아연구 21권 1호 로 파견된 사절이 5회밖에 되지 않았음은 소원했던 베트남-중국 관 계를 웅변한다. 중국으로부터 베트남으로의 사절 파견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단지 책봉 행사가 있을 경우 하노이까지만 들어왔다가 급히 돌아갔을 뿐이었다. 그러나 하노이에서의 책봉의식은 베트남 황제의 북순( 北 巡 ) 행사를 겸하는 것이어서 중국과의 관계 보다는 새 지배자가 북부의 정황을 시찰하고 인심을 다독이는 행차로서의 중요성이 훨씬 더 강조되었다. 19세기에 보이는 베트남적 국제 관계의 특징은 린교(또는 교린) 와 방교 의 공존으로 표현될 수 있겠다. 린교 란 주로 태국과 버마 에 적용되던 말로서 대륙부의 대등한 이웃국들과의 교류를 의미하 며 방교 란 대등하다고 여기던 중국과의 관계를 이름이다. 유사한 시기 조선의 외교 형태가 사대교린 (여기서 교린은 종종 불평등한 관계를 암시하지만)이었던 것에 비해서 훨씬 수평적인 국제 관계라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중국이 고집하는 형식에 순응해서 방 교 로 표현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린교 와 방교 는 결국 외교 의 형식적 차이일 뿐이며 관계의 근간은 평등성이었다. 그리 고 이 평등한 국제 관계는 급속도로 확대된 베트남의 동남아시아 및 세계 접촉에 기초한 19세기적 신면모였던 것이다. 단, 라오스 및 캄보디아에 대한 태도는 린교/방교 인식에서 벗어 난다. 라오스의 만상 및 남장, 그리고 캄보디아는 베트남에게 조공 국으로 인식되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베트남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제왕적 천하질서 속에 포함된 조공국이었던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들 국가들이 베트남뿐 아니라 태국에게도 마찬 가지 조공국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조공국 의 존재는 동남아시아적 만달라 세계에서 상존하였다. 19세기 베트 남의 천하관은 중국적 질서가 아니라 동남아적 범주 속으로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33 19세기 전반 베트남 제국( 帝 國 )의 국제질서 281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병합해 내지화 한 것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 가? 이것은 베트남적 전통의 연장선 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일찍이 유인선은 19세기 이전까지 베트남은 나름의 세계질서를 형성하는 데 노력하기 보다는 남진을 통한 영토 팽창에 더욱 주력하였다 (유 인선 1994: 82)는 점을 갈파한 적이 있다. 단지 그는 이 경향이 바뀌 어 19세기부터 베트남에서는 중화를 모방한 대남제국( 大 南 帝 國 ) 적 세계질서가 수립되었다고 주장하지만(유인선 1994: 82-87) 필자 는 19세기에도 줄곧 베트남의 전통적 경향성은 존속했다고 생각한 다. 남진으로 표현되는 영토팽창의 전통은 19세기에 캄보디아 병합, 만상의 일부였던 쩐 닌(Trấn Ninh 鎭 寧 ) 지역 흡수로 나타났고, 이 전통은 20세기로도 이어져 베트남의 강역은 중부고원지대로 확대되 었다. 정리하자면, 19세기 전반 베트남제국의 국제질서는 다중심 세계 관의 틀 속에서 남진 또는 영토확장이라는 베트남적 경향성이 운동 하고 있었다는 얘기이다. 다중심적이든 남진이든 모두가 동남아적 이고 베트남적 전통에 기초한 것이지 중국적 소중화는 없다. 오히려, 국체( 國 體 )를 일러 제국(empire) 이라 하되 경쟁주의적 다중심 세계 관에 기초하고 영토 확장과 식민지 획득에 몰두하는 가운데 문명화 의 사명 24) 을 강조하는 태도는 중국적 제국질서 보다는 근대 서구 및 일본의 제국주의에 더 가깝지 않은가? 주제어: 만달라, 소중화, 화이질서, 국제관계, 천하관, 대륙부동남 아시아, 도서부동남아시아. 조공질서, 린교, 방교 24) 이에 대해서는 최병욱(2009), pp 참조.

34 282 동남아시아연구 21권 1호 <참고자료> 김한규 천하국가 - 전통시대 동아시아 세계질서, 소나무. 大 南 寔 錄 前 編 1844, 東 京 : 慶 應 義 塾 大 學 語 學 硏 究 所, 大 南 寔 錄 正 編 第 一 紀 1848, 東 京 : 慶 應 義 塾 大 學 言 語 文 化 硏 究 所, 大 南 寔 錄 正 編 第 二 紀 1861, 東 京 : 慶 應 義 塾 大 學 言 語 文 化 硏 究 所, 大 南 寔 錄 正 編 第 三 紀 1894, 東 京 : 慶 應 義 塾 大 學 言 語 文 化 硏 究 所, 大 南 正 編 列 傳 初 集 1889, 東 京 : 慶 應 義 塾 大 學 語 學 硏 究 所, 桃 木 至 朗 1992, 十 - 十 五 世 紀 べトナム 國 家 の 南 と 西, 東 洋 史 硏 究 明 命 政 要 1897, Saigon: Bộ Văn Hóa và Thanh Niên, 潘 輝 注, 海 程 誌 略 Récit sommaire d'un voyage en mer (1833), trans. & ed. by Phan Huy Le, Claudine Salmon & Ta Trong Hiep, Paris, Cahier d'archipel, 小 泉 順 子 ラタナコーシン 朝 一 世 王 期 シャムの 對 外 關 係 - 廣 域 地 域 像 の 檢 討 にむけた 豫 備 的 考 察 -, 東 洋 文 化 硏 究 所 紀 要 第 154 冊. 유인선 전근대 베트남의 대중국인식 - 조공과 대등의식의 양 면성, 동북아역사논총 23호 베트남 완조의 성립과 大 南 帝 國 秩 序, 아시아문 화 10호, 한림대학교아시아문화연구소. 淸 會 典 事 例 ( 光 緖 ), 中 華 書 局 影 印 本, 최병욱 세기 전반( ) 베트남의 동남아시아 官 船 貿 易, 동양사학연구 70집.

35 19세기 전반 베트남 제국( 帝 國 )의 국제질서 , 19세기 베트남의 단일민족 만들기- 漢 夷 有 限 에서 일시동인 으로, 동북아역사논총 23호, 세기 전반 6맹( 猛 ) 지역 에 대한 중국 - 베트남의 지배권 논쟁: 역사성 과 현재성 의 대립 -, 안병우 외, 역 대 중국의 판도 형성과 변강, 한신대학교출판부. 최희재 越 南, 朝 鮮 과 년대 淸 朝 朝 貢 政 策 의 再 調 整, 歷 史 學 報 206 輯. 坪 井 善 明 近 代 ヴエトナム 政 治 社 會 史 - 阮 朝 嗣 德 帝 通 治 下 の ヴエトナム, , 東 京 大 學 出 版 部. 欽 定 大 南 會 典 事 例 Viên Hán Nôm VHv 1570, Hanoi. Brodrick, A. H Little China, the Annamese Lands, Oxford University Press, London, Buttinger, Joseph The Smaller Dragon: A Political History of Vietnam, Prager. Choi Byung Wook Southern Vietnam under the Reign of Minh Mang( ): Central Policies and Local Response, SEAP, Cornell University "Gia Long ở Thăng Long từ Ngày 21/7 đến 27/9 Âm lịch Năm 1802(탕 롱의 자 롱, 1802년 음력 7월 21부터 9월 27일까지)," International Conference with the title of 'Phát Triển bền vững Thủ Đô Hà Nội(수도 하노이의 확고한 발전)' for the celebration of the 1000 year capital, 7-9, October, 2010, Hanoi. Fairbank, John K The Chinese World Order, Harvard University Press. Kelley, Liem C Beyond the Bronze Pillars, Envoy Poetry and the Sino-Vietnamese Relationship, Hawaii University Press.

36 284 동남아시아연구 21권 1호 Myoe, Maung Aung Diplomacy and War: Myanmar's Relations with China in 17th and 18th Centuries", 인하대학 교 한국학연구소 동아시아한국학 학술회의 발표논문집 - 동아시아 질서의 변화와 중화론. Nguyễn Thế Anh "Vài nhận xét về thế cờ ngoại giao trong bán đảo Đông Dương đầu thế kỷ XIX(19세기 초반 인도차이 나반도 내 외교 게임에 대한 인식)," Triều Nguyễn & Lịch Sử của Chúng Ta(응우옌 왕조와 우리의 역사), Nxb Văn Hóa Sài Gòn. Owen, Norman G.(ed.) The Emergence of Modern Southeast Asia, University of Hawaii Press. Taylor, Keith W "Nguyen Hoang and Vietnam's Southward Expansion," Anthony Reid(ed.), Southeast Asia in the Early Modern Era, Trade, Power, and Belief, Cornell University Press. Wolters, Oliver History, Culture, and Region in Southeast Asian Perspectives, SEAP, Cornell University. Woodside, Alexander Barton Vietnam and the Chinese Model, Harvard University Press. ( 투고; 심사; 게재확정)

37 19세기 전반 베트남 제국( 帝 國 )의 국제질서 285 <Abstract> The World Order of Vietnamese Empire during the First Half of the 19th Century Choi Byung-Wook (Inha University) This study examines the nature of the world order or the international relations of the 19th century Vietnam. Those who are familiar with the Chinese world order based on the tributary system, have applied the quasi-chinese world order concept to Vietnam by the terms of 'smaller dragon,' 'little China,' and 'Chinese model.' According to this way of understanding, Vietnamese empire was the imitation or the small sized version of the Chinese empire. Examples are to label Vietnamese emperor as the "Southeast Asian version of the Chinese emperor" or "an absolute photocopy of the Chinese world order." But the author of this article raises questions to this framework of the Chinese Model, and looks for the Vietnamese own world order based on the Southeast Asian tradition. Two issues are discussed in this study. First is the Vietnamese relationships with Southeast Asia. According to author, the first concern of Vietnam in relation to diplomatic relations was to the Mainland Southeast Asian countries. To clarify the contacts with Southeast Asia

38 286 동남아시아연구 21권 1호 and Western powers, Vietnamese relationships with the regions of Island Southeast Asian countries were also examined. Second issue is to see the ways how Vietnam maintained its own world order in the course of wars and diplomacy with China. Author argues that the world order of the 19th century Vietnam was closer to the traditional world order of mandala in the Southeast Asia than to the quasi Chinese world order. The relationships among the countries were rather equal than hierarchical. Vietnam regarded the countries of Southeast Asia especially Thailand and Burma as the equal countries. China was one of the equal countries to the eyes of Vietnamese leaders and Vietnam did not have enough room to embody the quasi Chinese world order though the Vietnamese rulers used the titles of emperor, which was the Vietnamese version of Southeast Asian 'king.' In conclusion, the world order of Vietnam is summarized into the two facets of lân giao(diplomatic relations with neighbors) and bang giao(diplomatic relations between two countries i.e. Vietnam and China). Lân giao was to the countries of Southeast Asia while the bang giao was the term and concept for the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China. These two relationships composed Vietnamese foreign relationship, ngoại giao. Author claims that these two relations were based on the spirit of equality that emerged from the beginning of the 19th century. Key words: Chinese world order, Vietnamese world order, Vietnamese empire, 19th century Vietnam, mandala, lân giao, bang gi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