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고고학 13-1호 Ⅰ. 머리말 고려대장경[재조대장경] 판각지로 알려져 있는 남해 고현면 포상리 262번지 일원에 위치 한 전 선원사지와 전 백련암지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재조대장경 판각기인 13세기 대의 은병 명문와( 銀 甁 銘 文 瓦 )가 출토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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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 남해 은병명문와( 銀 甁 銘 文 瓦 ) 출토 건물지의 성격에 관한 연구 I 목 차 I 주영민* I 요 약 I 경남 남해군에 위치한 전 선원사지와 전 백련암지에서 13세기에 국가간의 거래나 고려의 왕실과 중앙 관료[귀족]들이 사용한 화폐인 은병이 타날된 명문기와가 출토되었다. 은병이 왕경과 근기지방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고려의 남쪽 끝에 위치한 남해도에서 발견된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하여 은병명문와가 출토된 전 선원사지와 전 백련암지에 대한 주거평면과 출토유물을 검 토하고 역사기록과 비교 검토하여 부합되는 조영세력을 찾아 건물지의 성격파악을 시도하여 보았다. 13세기 중기 경에 남해도에서 고려의 중앙사회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기사는, 정안이 대장경 판각을 위해 자신의 사제[별서]를 정림사로 고쳤다는 고려사 의 기록과 강월암에 대한 기록이 유일하다. 사제 는 별서의 이칭으로 정림사가 별서건축의 주거평면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당시 사원건축의 가람배 치와는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정안이 자신의 사제인 별서를 고쳐 정림사로 개창하고 고려대장경을 판각하였기에 판각작업에 용이한 구조로 별서를 고쳐 사찰로 만들었을 것이며, 이러한 사실과 부합되는 결과를 전 선원사지와 전 백련암지의 주거평면 분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주제어 고려대장경, 별서( 別 墅 ), 상형청자( 像 型 靑 磁 ), 은병( 銀 甁 ), 정림사( 定 林 社 ) 투고일 : 심사완료일 : 게재확정일 : * 남해군청 학예연구사

2 6 고고학 13-1호 Ⅰ. 머리말 고려대장경[재조대장경] 판각지로 알려져 있는 남해 고현면 포상리 262번지 일원에 위치 한 전 선원사지와 전 백련암지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재조대장경 판각기인 13세기 대의 은병 명문와( 銀 甁 銘 文 瓦 )가 출토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경남발전연구원 남해군 2013). 1) 은병( 銀 甁 )은 고려시대의 화폐로 활구( 濶 口 )라고도 불린다. 고려 숙종 6년(1101)에 처음 만들어진 은화로서 고려의 지형을 본떠서 만들었는데, 은( 銀 ) 1근( 斤 )으로 병( 甁 )을 만들어 이를 화폐로 사용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은병은 입이 넓은 데서 활구( 闊 口 )라고도 하였 는데, 그 교환가치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략 쌀 15~16석 내지 50석( 石 ), 포 100여 필 에 달하여 주로 국가간의 거래나 고려의 왕실과 중앙관료[귀족]들이 사용한 화폐이다. 은병의 사용이 국가간의 거래나 중앙관료[귀족]들에 의해서 사용되었던 점을 고려하면 당 시 왕도인 강화도로부터 멀리 이격되어 있는 남해안에 위치한 섬인 남해도에서 은병이 유통 되고 있었던 명문기록이 확인되는 것은 주목되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은병의 유통이 주로 왕도와 근기지역에서 이루어진 점을 염두에 둔다면 남해도에서 유통된 은병은 두 가지 측면 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은병이 각인된 기와의 명문을 살펴보면 장명원시납은병일구( 長 命 願 施 納 銀 甁 壹 口 )+ 성명으로 시주자가 은병 일개를 부처님께 받쳐 장수를 빈다는 내용이다. 기와에 시주자의 성 명이 각인되어 있어 기와불사에 은병을 시주해서 개인의 장수를 빈 것을 알 수 있다. 기와불 사는 건물을 새로 짓거나 오래된 기와를 교체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시주자 가 기와의 값을 대신 치르고 복락을 기원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행위의 이점은 왕도에 거주 하는 시주자가 원거리에 위치한 사찰에 직접 가지 않고도 시주할 수 있는 편의가 있다. 다음으로는 은병의 유통문제로 과연 고려의 왕경과 멀리 떨어져 있는 남변( 南 邊 )에 위치 한 섬 지역에서 은병이 사용되었는지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은병의 사용계층이 왕실과 중앙 관료[귀족]들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그 사용은 주로 왕경과 근기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사 용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현물로 시주하는 것이 더 유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시주자는 굳이 화폐로 기와불사의 시주를 대신하고 있는 것을 명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본고는 2013년 8월 27일 남해군에서 개최된 남해 고려대장경 판각지 성역화 사업을 위한 학술심포 지움 인 남해, 고려대장경 탄생의 비밀을 풀다 의 발표문으로 작성되었다. 당시 조사단에서 유적조 사에 대한 보고와 분석을 발표( 전 선원사지 백련암지의 구조적 특징과 조영 주체 )하기로 되어있어 본고를 바탕으로 가필 수정하여 발표문으로 작성한 것임을 밝힌다.

3 주영민 남해 은병명문와( 銀 甁 銘 文 瓦 ) 출토 건물지의 성격에 관한 연구 7 일반적으로 화폐의 유용성은 그 가치에 맞게 현물과 일대일로 교환할 수 있는 점이다. 이 러한 점을 고려하면 당시 지방사회에서 은병을 주고 와장을 고용하여 기와를 생산한다던지 와장이 만든 기와를 구입하던지 등의 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은병이 제한적으 로 유통되고 있었을 가능성은 높다. 따라서 은병명문와가 출토된 건물지의 조영세력은 고려 의 중앙사회와 관련된 인물이던지, 적어도 그들과 연관이 있는 지방세력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위와 같은 세력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전 선원사지와 전 백련암지의 성격을 밝히기 위해서 우선 이들 유적을 대상으로 실시한 시 발굴조사의 내용을 검토하여 성격을 밝히기 위한 기초자료로 삼을 것이다. 다음으로 전 선원사지와 전백련암지의 조영입 지와 주거평면의 특징을 도출하여 건물지의 사용 성격을 밝히고 조영세력을 유추해 보고자 한다. 건물지의 사용성격을 밝히고자 하는 의도는 전 선원사지와 전 백련암지에서 출토된 은 병명문와의 명문내용을 살펴보면 사찰건축물로 보이지만, 발굴된 주거평면이 별서건축( 別 墅 建 築 )의 특징을 보이고 있고 불탑, 불상 등의 출토품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Ⅱ. 건물지 검토 1. 전 선원사지 전 선원사지는 고현면 포상리 선원마을 사학산( 四 鶴 山 ) 말단부의 완경사면에 입지해 있고 현재는 논, 밭 등의 경작지로 사용되고 있지만 건물지의 축대가 잘 보존되어 있다. 축대는 거 칠게 다듬은 장방형의 석재를 이용하여 쌓아올렸고, 발굴조사 결과 석축열과 평행하게 건물 지를 조영하였다<그림 1>. 건물지는 구릉 말단부를 4단으로 정지하여 조영하였는데 가장 위의 단인 B단에서는 건물 지 2개소와 문지 1개소, 연지 1개소 마당이 확인되었다. B단의 중심건물인 B-1호는 정중앙 에 위치하며 8 5.4m2의 규모로 기단 내부에서 7개의 초석이 확인된다. 초석의 규모는 각각 직경 40~80cm 정도로, 초석사이의 간격이 40~80cm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각 칸의 규모에 차등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경사면을 정지하여 평탄면을 만들고 건물지를 조성 한 까닭에 기단 내부에서 황색점질토와 할석을 채운 것이 확인된다. 건물지의 기단석은 2~

4 8 고고학 13-1호 단이 잔존하며 30cm 가량의 장방형할석으로 가로쌓기로 축조하였다. 최하단석에서 두 번 째 단을 쌓을 때에는 들여쌓기를 하여 기단부의 내구성을 확보하고 있다<그림 2>. B-2호는 1호의 북서쪽으로 연접하여 기단석의 일부만 확인된다. 규모는 잔존길이 4.2m, 잔존너비 4.2m이며, 기단 내부에서 다량의 소토가 포함된 암갈색부식토와 폐기된 기와를 의 도적으로 채워 넣은 것이 확인되었다. 기단 내부를 목탄을 혼합한 소토를 10cm 가량의 두께 로 깔고, 그 위에 폐기된 기와를 채워 넣고 있는 것으로 보아 건물지 하부의 습기를 막기 위 한 조치로 보인다<그림 3>. 문지 규모는 너비 2.4m, 잔존길이 3m 정도로 B-2호 맞은편에 위치한다. <그림 4>를 살펴 보면 문턱에서부터 도로와 인도로 연결되는 문지의 앞쪽에 기와를 인위적으로 설치한 것은 통행인의 편의와 함께 손수레 등의 사용을 염두에 두고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 1> 전 선원사지 유구 배치도

5 주영민 남해 은병명문와( 銀 甁 銘 文 瓦 ) 출토 건물지의 성격에 관한 연구 9 <그림 2> B-1호 건물지 노출상태 <그림 3> B-2호 건물지 노출상태 연지는 장방형으로 크기는 3 3m2 규모이다. 연지의 위편으로는 집석암거가 3미터 정도 의 폭으로 10여 미터 정도 설치되어 있다. 연지가 설치된 곳의 지형은 산록말단부의 오목한 곳으로 곡부의 물이 집수되는 곳이어서 연지의 설치에 적합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다만 침 수지역이어서 건물의 설치에는 불리하다<그림 5>. 연지 내부의 토층 확인 결과 후대에 연지 가 폐기되면서 흘러들어간 다량의 석재가 확인되었다. 마당은 문지를 들어서면 바로 앞에 조영되어 있는데 B-1호와 B-2호 건물지의 마당이자 진입 공간으로 사용되어 졌고 규모는 m2정도이다. <그림 4> B-문지 노출상태 <그림 5> B-연지 노출상태 C단에서는 기단석 일부와 다량의 파기된 기와편 등이 확인되며, 다른 단에 비해 삭평이 진 전되어 있어 건물지의 형태와 규모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지표면에 노출된 기단석은 남 동-북서 방향으로만 확인되고 있어 건물지의 형태구분이 용이하지 않다. C단 역시 다른 단 과 동일하게 논으로 경작되고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단순히 삭평이 진전된 연유를 경작활동 만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구역 전체에서 건물의 기저부까지 삭평이 이루어졌기

6 10 고고학 13-1호 때문이다. 따라서 초축 이후에 의도적으로 건물의 용도가 폐기되고 다른 용도로 변모되었던 것으로 보이다. 건물지로 추정되는 부분은 넓고 편평한 할석을 장방형으로 깔아놓은 부분으 로 인위적으로 깔아놓은 와편과 암흑색점질토가 섞여 있고 기단석의 방향과 나란하게 확인 되는 부분으로 C-1, 2호가 있고 그 규모는 각각 m2, 4 7.2m2이다. C-1호는 내부에 암흑색 점질토와 소토를 깔고 그 위에 폐와편을 의도적으로 부설하고 있 어, 기단상부에 설치된 방으로 습기가 침입하지 못하게 한 조치로 추정된다. C-2호는 잔존 기단열의 형태로 보아 형 건물로 추정되며 내부에 와편을 깔지 않고 있어 상부에 마루를 설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그림 6>. <그림 6> C단 건물지 노출상태 D단에서는 모두 4개소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는데 4채의 건물이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사 합원( 四 合 院 )의 형태를 보인다. 특이한 점은 중앙에 위치한 마당에 6개의 초석을 일정한 간 격으로 설치하고 있는 점이다. 초석하부와 주위에 별다른 시설이 없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하늘로 개방된 마당을 우천 시에 비를 피해 이동하기 위한 회랑을 설치하였을 것으로 여겨진 다. D-1호는 잔존한 10개의 초석으로 미루어보아 정면 9칸, 측면 1칸의 건물로 규모는 m2 정도이다<그림 7>. 건물지가 세장한 특징을 보이고 있어 회랑으로 볼 수 있다. 그렇 지만 <그림 7>을 살펴보면 왼편 첫 칸에 와편을 활용하여 인위적으로 내부시설물을 만들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따라서 D-1호는 왼편부터 칸을 막은 방을 1개 설치하고 연접하여 마루 를 설치하여 너른 공간으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외부에 박석을 깔았던 흔적이 있어 정성을 들인 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그림 8>.

7 주영민 남해 은병명문와( 銀 甁 銘 文 瓦 ) 출토 건물지의 성격에 관한 연구 11 D-2호의 규모는 5 5m2로 정방형이다. D-1 3호와 연접하여 조영되어 있고 기단 내부 에 다량의 폐와가 부설되어 있어 방 등의 주거공간으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그림 7>. D-3호 역시 폐와편을 인위적으로 부설하고 있어 방 등의 주거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 으로 추정되며 규모는 m2 정도이다<그림 7>. D-4호는 우측으로 도로와 연접하여 있고 규모는 m 정도이다<그림 7>. D단의 건 물배치는 중정( 中 庭 )을 중심으로 막힌 폐쇄적인 배치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D-4호는 도로와 인도로 통하는 출입시설이 설치된 대문채임을 알 수 있다<그림 9>. E단에서는 문지 1개소만 확인되었다. 문지는 m 정도로 전 선원사지에서 확인된 여타 건물지에 필적하는 규모이다<그림 1>. 특이한 점은 문지의 한 칸에 넓은 출입구를 마련 하여 전 선원사지 내부에 부설된 도로와 연결되게 만든 것으로, 이러한 조영수법은 수레와 말의 출입을 편하게 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그림 7> D단 건물지 노출상태 <그림 8> D-1호 건물지 세부 <그림 9> D-4호 건물지 세부

8 12 고고학 13-1호 전 백련암지 전 백련암지는 선원사지 배후의 사학산 7부 능선상의 백련골에 위치하며 최근까지 계단 식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밭의 경계 단을 기준으로 능선에 평행하게 5개의 트렌치를 설치 하여 시굴조사를 실시하였다<그림 10>. 시굴조사 결과 1~4트렌치에서 건물의 기단부 하부 석열을 확인하였고, 특히 1~2트렌치에서 명문기와를 포함한 다량의 기와가 확인되었다<그 림 11>. 3트렌치에서는 장방형의 건물지가 노 출되었고 그 중앙부에 불상의 대좌를 받 치던 기초부가 남아있는 것이 확인되었 다. 기단부는 장방형의 돌을 사용하여 쌓 아 올렸고 3단 정도가 잔존한다. 기단 내 부에 인위적으로 폐기와를 깐 흔적이 없 고 불상의 대좌를 받치던 기초부 주변을 제외하고는 칸막이 등이 없는 것으로 보 아 기단상부에 마루를 설치한 건물로 추 정된다. 4트렌치에서도 건물지의 초석이 <그림 10> 전 백련암지 트렌치 배치도 확인되었다. 1트렌치에서는 3트렌치가 설치된 윗 단으로 올라가기 위한 계단시설의 일부로 보이는 석열이 바닥에서 확인되었고, 2트렌치와 인접한 부분으로 건물지의 기단열이 확인된다. 윗 단의 축대에 일부 남아있는 계단시설을 살펴보면, 계단은 윗 단의 축대를 쌓을 때 심석을 사용하여 서로 물려 쌓지 않고 덧대어 설치한 것이 확인된다<그림 10>. 그렇기 때문에 경 지를 조성할 목적으로 계단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축대의 훼손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여겨 진다. 2트렌치에서는 장방형의 건물지와 건물지 중앙 전방으로 출입시설이 설치된 것이 확인되 었다. 출입시설과 연접하여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계단은 정다듬한 장대석을 이용하여 축대에 붙여 견고하게 쌓아올렸다. 최하단에 설치한 5트렌치는 표토만 얕게 남아 있고, 2트렌치와 5트렌치 경계 지점에서 계 단이 확인되었다. 계단의 아랫부분은 후대 교란으로 일부 유실되거나 제자리를 이탈한 상태 로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9 주영민 남해 은병명문와(銀甁銘文瓦) 출토 건물지의 성격에 관한 연구 13 <그림 11> 전 백련암지 트렌치 내부 노출상태 1 2트렌치 내부에서 다량의 명문기와가 출토되는데, 명문의 내용은 전 선원사지에서 출 토된 것과 동일하지만 시주자의 성명이 확인된다. 시주자의 이름은 이부(李富)?, 이태서(李 台瑞) 등이 확인되며 이태서는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의 사서에서 이름이 확인되지는 않 는다<그림 13>. 다만 기와불사에 은병을 시주하였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의 중앙사회와 관련된 인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림 12> 잔존 계단시설 <그림 13> 1트렌치 출토 이태서명와(李台瑞銘瓦)

10 14 고고학 13-1호 Ⅲ. 건물지 성격 1. 주거평면 전 선원사지는 안온한 산지를 배후에 두고 앞쪽으로는 소하천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입지 유형을 보이며, 사학산의 야트막한 구릉 말단부를 5단으로 정지한 협소한 평탄지 위에 10기 의 건물을 조영하고 있다. 전 선원사지 유구 배치도를 살펴보면 구릉말단 완사면을 5단으로 정지한 후 장방형의 담 을 두르고 3,195.2m2 정도의 면적에 건축물을 조영하고 있다. 건축물은 B, C, D단에 집중적 으로 조영되고 있는데, E단은 문지 1개소만 확인된다. <그림 1>을 살펴보면 전 선원사지로 출입하기 위해서는 가장 아랫단(E)에 조영된 문지를 통하여 진입하게 되어있으며, 방문자가 밖에서 문지를 정면으로 바라보면 왼편에 3.9m 정도 의 넓은 출입구와 오른편에 2.4m 정도의 출입구가 연접하여 있다. 문지를 들어서면 15 정 도의 완만한 경사로 도로와 인도가 개설되어 있는데, 도로의 규모는 길이 28.9m, 너비 3.9m 정도로 E단의 문지에서부터 B단의 문지까지 30m정도 부설되어 있다. 도로 양끝에는 경계석 을 설치하고 내부에 폐와를 부설하여 바닥을 정지하고 있다<그림 9>. 인도는 도로 옆에 연접 하여 부설되어 있는데 경사지를 돌을 이용하여 일부구간에 계단을 설치하고 있다. 길이는 도 로와 동일하고 폭이 2.4m 정도로 도로에 비하여 다소 좁다. E단의 문지를 지나 5m정도 지나면 왼편으로 대문채(D-4호)가 나타나고 대문채를 지나면 D단으로 들어선다. D단은 4동의 건물이 마당을 중심으로 ㅁ 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는데 열 린 구조의 사합원( 四 合 院 )의 특징을 보인다. 일반적인 ㅁ 자 형태의 건축물의 출입구가 정 면에 설치되어 있는 것과는 다른 배치형태를 보이는데, 이와 같은 출입구의 배치형태는 전 선원사지 밖에서 안쪽의 모습을 볼 수 없게 하기 위한 조치로 여겨진다. 이에 더하여 구릉말 단부의 경사면을 정지하여 조성한 부지의 특성상 D단은 1.2m 정도의 축대 위에 놓이게 되는 데, E단의 마당에서 D단을 올려다보면 D-1호 건물의 벽체가 자연스레 담의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더욱이 대문채가 도로에 접해있어 E단의 문지를 지나도 대문채를 지나지 않고서는 D단의 내부를 볼 수 없는 독특한 건물배치를 보인다. C단은 두 채의 건물지가 조영되었는데 도로에 연접하여 C-2호 건물지가 건립되고, 그 왼 편으로 장방형의 마당과 건너편에 대형인 C-1호 건물지가 건립되었다. C단 역시 E단과 동일 하게 1.2m정도의 축대위에 부지를 마련하고, 도로에 연접하여 C-2호 건물지를 조영하고 있

11 주영민 남해 은병명문와( 銀 甁 銘 文 瓦 ) 출토 건물지의 성격에 관한 연구 15 어, 밖에서 안을 살피기에 용이하지 못한 건물배치형태이다. B단 역시 1.2m정도의 축대위에 부지를 마련하고 있는데 여타의 단과 차별되는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다. 우선 방이 달린 대문채가 아닌 대문을 설치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대문채 의 기능은 방문자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인의 기거를 염두에 둔 시설이다. 이 에 비해 B단에 설치된 문지는 별도의 방이 설치되어 있지는 않다. 이것은 엄중한 출입을 통 제하기 위한 공간이 아닌 점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안에서 문을 잠그면 담을 넘지 않 고서는 출입할 수 없는 곳이기에 사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건물지 왼편으로 방형의 연지를 만들어 운치를 더하고 있어 B단은 개인의 사적인 공간으로 조영되어진 것으로 여겨 진다. 이밖에도 전 선원사지의 건물지 배치형태에서 주목되는 점은 장방형의 담을 두른 부지 내 부에 좌우 앞뒤로 넉넉한 공한지를 두고 있는 점이다. 우선 주 출입구인 E단의 문지 왼편으 로 넉넉한 마당을 두고 있는 것이 주목되는데, 트렌치 조사결과 마당에 별도의 시설물을 설 치하지 않았음이 확인되었다. 마당에 조경 등의 목적으로 설치한 화계( 花 階 ) 등의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지 않고, 건축물이 조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물건 등의 야적장으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1>을 살펴보면 B단 뒤편으로 3m 정도 높이의 축대를 쌓고 그 윗부분 평지에는 아무 런 시설물도 설치하지 않고 있는데 이러한 양상은 왼편도 동일하다. 오른편은 0.5~1m 정도 의 단차를 가지며 지형이 낮아지며 외각에 담장을 둘러 안과 밖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한지를 남겨둔 의도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서 두 가지 가능성을 생 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물건의 야적 공간 확보의 필요성. 둘째는 외부로부터의 침입과 화재로부터의 방화선 구축 의도로 보인다. 전자는 전 선원사지에 부설되어 있는 도로와 건축물 배치상태로 설명할 수 있다. 일반적으 로 건축물은 거주인의 편의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건축평면과 건축물의 배치가 고려된다. 그런데 전 선원사지는 건물에 연접하여 우선적으로 도로가 접해있어 거주인의 통행편의보 다는 물건 등의 출납에 우선을 둔 설계의도가 확인된다. 특히 E단에 주출입구가 설치되어 있 었음에 불구하고 별도로 D단에 대문채를 두어 출입의 통제를 엄격히 하고자하였던 의도의 바탕에는 귀중품 보관처의 기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후자는 전자의 정황을 염두에 두면 이해가 가능하다. 즉,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할 정도로 중요한 물건의 보관과 유사시에는 방화선의 역할을 목적으로 내부에 공한지를 설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2 16 고고학 13-1호 지금까지 살펴본 전 선원사지에서 보이는 건축물의 특징과 배치 의도는 원시납( 願 施 納 ) 명문와의 출토로 사원지로 여겨지는 가람의 배치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 의문시된다. 일반적으로 고려의 사원건축의 가람 배치는 초기에는 탑을 중심으로 산지일 탑일금당병렬식과 산지쌍탑병렬식이 주 를 이루다가 후기로 갈수록 산지무탑식 이 혼재하게 된다. 이러한 세 가지 유형 의 가람배치 중 산지무탑식이 전 선원사 지와 유사한 평면 배치를 보이고 있지만 다소 차이를 보인다. 산지무탑식 사찰인 순천 송광사의 가 람배치는 직사각형의 마당을 중심으로 대웅전 등의 주요 전각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다<그림 14>. 이에 반해 전 선원사지의 건축물의 배치는 구릉의 <그림 14> 순천 송광사 가람배치도 말단부를 삭평하여 조성한 협소한 평지 위에 ㅁ 자형 마당을 중심으로 건축물을 조영하고 있어 산지무탑식 사찰의 가람배치와는 다 른 평면을 보인다. 또한 건물지가 10여 동에 불과하여 그 규모가 사찰건축의 장엄함과는 거 리가 멀다. 전 선원사지와 유사한 건축물의 배치형태를 보이는 유적으로는 창녕 말흘리 건물지가 있 다(경남발전연구원 2007). 이들 두 유적은 유사한 건축물의 배치형태를 보이고 있지만 다소 차이가 확인된다. 따라서 당대 별서건축의 특징이 어떠하였는가를 말흘리 건물지의 예와 문 헌자료의 비교를 통해서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말흘리건물지의 건물배치는 A, B 두 개의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B지역은 해발 105m 높이 에 건물지가 ㅁ 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그 위의 평탄면인 107m 높이인 A지역에 건물지 가 연못과 함께 조영되어 있다<그림 15>. 이와 같은 주거평면을 보이는 말흘리 건물지를 문 헌자료와 비교한 연구 성과에 의하면 별서건축은 사원과는 달리 담장을 두른 ㅁ 자형 형태 의 살림집과 방지형( 方 池 型 )의 연못을 중심으로 정( 亭 )과 당( 堂 ) 등의 건물이 배치된 유희처 로 구성된다 한다. 2) 필자의 창녕 말흘리 고려시대 건물지의 성격에 관한 연구 를 일부 수정 요약하였다(주영민 2009).

13 주영민 남해 은병명문와( 銀 甁 銘 文 瓦 ) 출토 건물지의 성격에 관한 연구 17 <그림 15> 창녕 말흘리 건물지 배치도 말흘리건물지의 평면구조와 유사한 건축물은 고려 말의 문신 남재( 南 在, 1351~1419)의 별서인 취미당( 翠 微 堂 )이 있다. 취미당의 모습은 그의 시문을 역은 귀정유고( 龜 亭 遺 稿 ) 에 아래와 같이 묘사되어 있다. 가) 공의 집은 남산의 끝자락에 위치하였고 별도의 당을 집의 서쪽에 지어 기거하였 고 이름을 취미( 翠 微 )라 하였다. 취미 앞에 연못을 파고 그 주변에 압각수( 鴨 脚 樹 ) 3) 한 그루가 있다. 4) 나) 당은 남부 명철방 제2리 성의 아래 있고 속칭 남소문동이라 불린다 중략 영락 갑오년(1414)에 당을 지었고 그 앞에 연못을 두었다. 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루는 3) 은행나무의 잎이 부채꼴 모양으로 오리발 같이 생겨서 鴨 脚 樹 라 한다. 4) 龜 亭 遺 稿 卷 上 遺 事 전략 公 第 在 終 南 之 巓 別 構 一 堂 于 宅 西 南 隅 而 揭 號 曰 翠 微 前 鑿 蓮 池 池 邊 有 一 鴨 脚 樹 하략

14 18 고고학 13-1호 동북방향에 두었는데 한 기둥이 물속에 있다. 연못 아래 7~8칸 떨어져 우물이 있으며 그 위로 정당이 있다. 당은 뒤편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면하고 정당의 왼쪽과 취미당의 오른쪽에 사당이 있으며, 대지면적은 총 팔백여 칸이다. 5) 다) 선조 귀정( 龜 亭 )선생이 한양 명철방 제2리 성 아래에 자리를 잡고 거주했다 중 략 공이 기거하는 집의 남쪽에 별도로 당을 짓고 그 이름을 취미라 불렀다 중략 정 면 4칸의 집을 짓고 깊은 방을 2개 두고, 그에 접하여 閣 을 두었다.중략 당의 앞에 연 못을 파고 그 아래를 구경하였으며, 연못 주변에 압각수 한 그루를 두었다. 6) 사료 가)에서 주목되는 점은 남재가 남산 끝자락에 있는 자신의 집에 별도로 연못을 파고 조경시설을 갖춘 취미당을 건립한 점이다. 이것은 기존에 그가 기거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 고 별도의 기거처를 조성한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당( 堂 )은 살림집으로 취미당은 별서로 여겨진다. 사료 나), 다)는 별서의 주거평면을 알 수 있 는 기록으로 연못을 중심으로 <그림 16>와 같이 건물이 배치되었던 것을 보여준다. 좀 더 부언 하면 正 堂 之 左 翠 微 之 右 有 祠 宇 基 는 연못을 중심으로 취미당과 정당, 사당, 누각이 배치되었 있었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은 도면 4 의 A지역의 주거평면과 모습이 동일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보아 말흘리 건물지 A지역의 건축물은 별서로서 기능하였던 <그림 16> 남소문동 주거평면 것으로 보인다. 반면 남재의 기거처가 살림집과 별서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살림집의 주거평면에 관한 기술은 없어 그 모습을 짐작할 순 없 다. 그러나 남재의 기거처가 말흘리건물지와 유사한 점에 착안하면 살림집의 모습이 <그림 5) 龜 亭 遺 稿 卷 下 翠 微 堂 圖 전략 堂 在 南 部 明 哲 坊 第 二 里 城 底 俗 稱 南 小 門 洞 중략 永 樂 甲 午 九 月 二 十 一 日 建 堂 前 有 蓮 塘 長 四 間 廣 三 間 而 樓 東 北 面 一 柱 立 於 池 中 池 下 七 八 間 壬 方 有 井 井 上 甲 卯 間 爲 正 堂 堂 背 東 面 西 正 堂 之 左 翠 微 之 右 有 祠 宇 基 原 垈 八 百 餘 間 하략 6) 전략 先 祖 龜 亭 相 國 曾 卜 居 于 漢 師 明 哲 坊 第 二 里 城 底 중략 公 乃 別 構 一 堂 于 宅 南 而 揭 號 曰 翠 微 중략 而 其 廣 四 室 其 深 二 室 餘 而 旁 達 一 閣 중략 前 鑿 蓮 塘 以 爲 俯 賞 之 地 池 邊 有 一 鴨 脚 樹 하략

15 주영민 남해 은병명문와( 銀 甁 銘 文 瓦 ) 출토 건물지의 성격에 관한 연구 19 15>의 B지역의 ㅁ 자형 주거평면과 동일할 것으로 생각된다. ㅁ 자형 주거평면에 대한 문헌기록으로 이색( 李 穡, 1328~1396)의 목은시고( 牧 隱 詩 藁 ) 券 33, 촌가( 村 家 )] 7) 가 있다. 촌가 의 내용은 이색이 시골로 이거한 후 예전 규모대로 지은 집에 대한 것으로 四 角 全 如 口 中 心 細 似 眉 門 從 山 作 對 란 묘사가 주목된다. 시구를 살 펴보면 주거평면을 원경에서 근경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四 角 全 如 口 란 먼 곳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건물로 둘러싸인 입구자 모양과 같은 주거평면을 표현한 것이다. 둘째, 中 心 細 似 眉 는 사각형의 주거평면 중심에서 바라본 건물의 형상을 표현한 것으로, 사방이 세장한 건물로 둘러져있는 것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셋째, 門 從 山 作 對 는 출입문이 산과 대응하고 있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위의 시구를 도면 4의 말흘리건물지 B지역의 건물지 평면과 비교하여 보면, 마당을 중앙 에 두고 삼면에 b-2, 3, 4건물이 배치되고 남쪽으로 출입문이 설치된 것이 확인되어 일치되 는 것을 알 수 있다. 촌가 에 등장하는 실례는 창녕 말흘 리 건물지 이외에도 장흥 상방촌 A유적 8) 에서 확인된다(최성락 정영희 고용 규 김영훈 김병수 2008). 장흥 상방촌 A유적에서 확인된 ㅁ 자형 주거평면은 두 가지 용도인 살림집과 사찰로 사용되 었다. <그림 18>을 살펴보면 마당 중앙에 탑지가 확인되고 있는 반면, <그림 17>에 <그림 17> 장흥 상방촌A유적 A-1지구 중앙 건물지 서는 탑지가 확인되지 않고 있어 ㅁ 자형 형태의 주거는 살림집 이외에 사찰로도 사용되어 진 것이 확인된다. 이상과 같이 고려시대 별서건축의 주거평면과 전 선원사지를 비교하여 보면 전 선원사지 역시 건물지가 ㅁ 자형으로 배치되고 연못이 조영된 별서건축의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전 선원사지의 주거평면을 자세히 보면 고려시대 별서건축의 주거평면과 완벽하게 일치되지 7) 居 鄕 從 世 上 結 屋 案 前 規 四 角 全 如 口 中 心 細 似 眉 門 從 山 作 對 牕 可 月 來 窺 我 欲 遂 居 此 應 敎 牛 解 詩 8) 고려시대 지방행정구역은 일반 행정구역과 함께 향소부곡 등의 특수행정구역으로 구성되는데, 장흥 상방촌 유적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유치향( 有 恥 鄕 ) 이라고 하는 행정구역의 이름을 알려주는 명문기와가 출토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사찰과 살림집을 포함한 도로, 우물, 수로 등이 확인되어 고려 시대 지방마을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16 20 고고학 13-1호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ㅁ 자형 건물지와 연지가 조영된 사적 공간은 별서건축의 특징과 부합되지만, <그 림 1>과 <그림 15>를 비교하여 보면 전 선원사지는 주출입구가 오른편에 쏠려있어 서로 차 이를 보인다. 다음으로 말흘리 건물지가 마당에 화단 등의 조경시설을 설치하여 공간 활용도 를 높인 반면, 전 선원사지는 무시설의 마당과 공한지를 두고 있어 차이를 보인다. 또한 말흘 리 건물지에는 도로가 설치되지 않은 반면, 전 선원사지는 도로를 설치하고 있고 인도 보다 는 도로를 우선시한 차이점이 확인된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전 선원사지 주거평면의 이러한 특징은 물건의 출납을 중요시한 것과 외부로부터의 침입과 화재의 피해에 대비한 조치로 생각되기 때문에, 전 선원사지는 처음에는 별서건축으로 조영되어 사용되다가 이후 용도가 물품출납의 기능으로 변모되었기 때문이다. 9) <그림 18> 장흥 상방촌A유적 A-1지구 서편 건물지 9)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조영세력에서 언급할 것이다.

17 주영민 남해 은병명문와( 銀 甁 銘 文 瓦 ) 출토 건물지의 성격에 관한 연구 21 전 백련암지는 시굴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파른 백련골의 경사면을 깎아 계단식으로 대지 를 조성하고 그 위에 건물을 조영하고 있다. 건물은 대지로 조성한 단 위에 단차를 가지며 조 영되어 있는데 수직으로 배치되어 있다. 전 백련암지에서는 전 선원사지에서 출토된 것과 동일한 원시납( 願 施 納 ) 명문와가 반출 되었는데, 주목되는 점은 전 선원사지에서 명문기와의 출토빈도가 극히 드문 것에 비해 전 백련암지에서는 건물지 전체에 걸쳐서 다량의 명문기와가 출토되는 것이다. 이렇게 두 유적 간에 명문기와의 출토 수량에 차이가 나는 것은 전 백련암지의 건물에 집중적으로 명문기와 를 지붕에 올린 반면, 전 선원사지에서는 일부 건물에 한정하여 명문기와를 올린 점을 시사 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언하자면 원시납명문와를 번와한 시기에 전 선원사지는 일부 건물을 개축하였고, 전 백련암지는 경내의 전체 건물을 증축 또는 초축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다음으로 주목되는 점은 전 선원사지가 별서건축의 주거평면을 가진 반면, 전 백련 암지는 가장 높은 단에 조성된 건물지 내부 중앙부에 불상의 대좌를 받치던 기초부가 남 아있는 것이 확인되어 사찰이 확실하지만 탑 지가 확인되지 않고 있어 간략화한 도량으로 서 기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그림 19>. 두 유적에서 공통으로 원시납 명문와가 <그림 19> 전 백련암 트렌치 내 건물지 출토되고 있어 동일한 의도로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서로 다른 별서와 간략화한 사찰 건축의 주거평면을 보이고 있어, 처음부터 같은 목적을 가지고 조영된 것은 아닌 것으로 여 겨진다. 2. 조영세력 원시납 명문와가 동시에 출토된 전 선원사지와 전 백련암지의 조영세력을 파악하기 위해 서는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조건이 검토되어야 된다. 첫째, 원시납기와의 연대파악이 선행되어야 한다. 둘째, 출토유물을 검토하여 특정계층에서 사용한 유물을 파악해야 된다. 셋째, 두 유적의 주거평면을 살펴 도출한 당대 별서건축의 향유계층을 추정하여야 된다. 우선 전 선원사지에서 출토된 원시납 명문와는 어골문이 타날되며 밑으로 명문이 타날

18 22 고고학 13-1호 되어 있다. 어골문은 12세기경의 특징인 45 의 정연함에서 벗어나 있어 13세기 경의 특징 을 보인다. 이러한 명문와는 전 관당성지와 전 선원사지, 전 백련암지에서 확인되었는데, 같 은 타날판을 활용하여 제작되었다(경남발전연구원 남해군 2012; 경남발전연구원 남해군 2013). 명문은 구양순체로 시주목적( 長 命 )+시주가 이루어짐( 願 施 納 )+시주에 사용된 물건과 금 액( 銀 甁 壹 口 )+시주자의 이름( 李 富?, 李 台 瑞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그림 20>. 명문의 내용 중 에서 주목되는 것은 모처에 시납되기를 바란다는 원시납( 願 施 納 ) 이다. 이러한 용례는 12 ~13세기 경에 제작된 보물 제778호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향완 에서 확인된다<그림 21>. 향완에 시문된 명문은 상사직장 동정 한언호가 마음이 일어 정성으로 마치다. 임금은 만수 무강하시고 괴로움은 보내고 즐거움을 얻어 속히 중생들이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가길 빌면 서 시납하다. 라는 내용이다. 원시납과 같은 용례는 고려시대 유물인 청동향완에서 추가로 찾아지는데 12~13세기에는 원시납 납 시납으로 표현되지만 14세기에는 시주 공덕주 봉헌으로 표기되고 있어 원시납( 願 施 納 ) 명문와는 13세기 경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 다<표 1>. 원시납 명문와 이외에도 전 선원사지와 전 백련암지에서는 귀목문막새기와가 출토되었는 데 그 형태가 동일하여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그림 22>. 귀목문막새기와는 파주 혜음원지 10) 강화 능내리 석실분 강화 곤릉에서도 확인되는데, 전 선원사지와 전 백련암 지 출토품과 동일한 기와는 강화 곤릉과 능내리 석실분 출토품이다. 10) 혜음사신창기( 惠 陰 寺 新 創 記 ) 에 따르면 혜음원은 남경과 개성 간을 통행하는 관료와 백성의 안전과 편의를 고려하여 예종 17년(1122)에 건립된 국립숙박시설로 국왕의 행차에 대비하여 만든 별원( 別 院 )이다. 東 文 選 卷 64 惠 陰 寺 新 創 記 [ 金 富 軾 ] 峯 城 縣 南 二 十 許 里 有 一 小 寺 㢮 廢 已 久 而 鄕 人 猶 稱 其 地 爲 石 寺 洞 自 東 南 百 郡 趣 京 都 與 夫 自 上 流 而 下 者 無 不 取 道 於 此 故 人 磨 肩 馬 接 跡 憧 憧 然 未 嘗 絶 而 山 丘 幽 遠 草 木 蒙 翳 虎 狼 類 聚 自 以 爲 安 室 利 處 潛 伏 而 傍 睨 時 出 而 爲 害 非 止 此 而 已 閒 或 有 寇 賊 敓 攘 之 徒 便 其 地 荒 而 易 隱 人 畏 而 易 劫 爰 來 爰 處 以 濟 其 二 邊 行 者 躊 躇 莫 之 敢 前 相 戒 以 盛 徒 侶 挾 兵 刃 而 後 過 焉 而 猶 或 不 免 以 死 焉 者 歲 數 百 人 先 王 睿 王 在 宥 十 五 年 己 亥 秋 八 月 近 臣 少 千 奉 使 南 地 迴 上 問 若 此 行 也 有 所 聞 民 之 疾 苦 乎 則 以 是 聞 之 上 惻 然 哀 之 曰 如 之 何 可 以 除 害 而 安 人 奏 曰 殿 下 幸 聽 臣 臣 有 一 計 不 費 國 財 不 勞 民 力 但 募 浮 圖 人 新 其 廢 寺 以 集 淸 衆 又 爲 之 屋 廬 於 其 側 以 著 閒 民 則 禽 獸 盜 賊 之 害 自 遠 行 路 之 難 平 矣 上 曰 可 汝 其 圖 之 중략 以 冬 十 一 月 到 其 所 作 草 舍 以 次 之 上 命 比 丘 應 濟 主 典 其 事 弟 子 敏 淸 副 之 利 器 械 鳩 材 瓦 經 始 於 庚 子 春 二 月 至 壬 寅 春 二 月 工 旣 告 畢 齋 祠 息 宿 以 至 廚 庫 咸 各 有 所 又 謂 若 乘 輿 南 巡 則 不 可 知 其 不 一 幸 而 駐 蹕 於 此 宜 其 有 以 待 之 遂 營 別 院 一 區 此 亦 嘉 麗 可 觀 至 今 上 卽 位 賜 額 爲 惠 陰 寺 하략

19 주영민 남해 은병명문와( 銀 甁 銘 文 瓦 ) 출토 건물지의 성격에 관한 연구 23 長 長 命 命 願 願 施 施 納 納 銀 銀 甁 甁 壹 壹 口 口 李 朴 <그림 20> 원시납 명문와 <그림 21> 원시납 사용례 <표 1> 원시납 용례 예시 12~13세기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향완 尙 舍 直 長 同 正 韓 彦 浩 謹 發 丹 誠 聖 万 年 兼 一 切 万 劫 有 情 離 苦 得 樂 速 證 菩 提 願 施 納 태화5년 선원사명향완(1205년) 太 和 五 年 乙 丑 三 月 日 禪 院 寺 良 中 亡 者 前 史 楊 朴 珍 施 納 香 一 入 重 二 斤 七 兩 納 三 寶 印 정우9년 해안사명 향완(1221년, 소재불명) 貞 祐 九 年 辛 巳 二 月 日 樞 密 院 使 御 史 大 夫 使 兵 部 尙 書 上 將 軍 崔 瑀 施 納 海 安 寺 百 座 排 鑄 香 此 樣 一 百 入 重 二 斤 九 兩 印 14세기 지정2년 송림사명 향완(1342) 至 正 二 年 壬 午 三 月 十 七 日 松 林 寺 香 ( 琓 ) 施 主 結 願 香 徒 坐 奉 安 樂 分 三 成 寶 棟 梁 芳 一 催 家 造 지정12년명 향완(전 표충사 향완) 至 正 十 二 年 壬 辰 閏 三 月 一 龍 藏 禪 寺 無 量 壽 殿 大 香 大 功 德 主 榮 綠 大 夫 資 政 院 使 高 龍 寶, 永 寧 公 主 辛 氏 大 化 主 慧 林 戒 休 景 眞 錄 者 性 謙 縷 工 지정16년 상원사명 향완(1356) 至 正 十 六 年 丙 申 五 月 日 造 智 山 上 院 寺 地 藏 前 靑 銅 香 一 座 奉 獻 화엄사지 출토 경술년명 향완(1250) 庚 戌 二 月 日 亡 父 崇 巾 愿 佛 典 排 香 一 造 納 女 子 嚴 加 강화 곤릉은 고려 22대 강종의 비 원덕태후의 무덤으로 고려사 에는 그가 고종 26년 (1239)에 세상을 뜨자 곤릉에 장사지내고 시호를 원덕태후 로 올린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강화 능내리 석실분의 피장자는 확인할 수 없지만, 주변에 고려 원종의 왕비인 순경태후의 분묘인 가릉이 있고 석실 내부에서 은으로 만든 장식 등이 반출되어, 축조연대는 강화 천도 시기인 1232~1270년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전 선원사지에서 출토된 귀목문 막새기와의 연

20 24 고고학 13-1호 대는 13세기 중기 경으로 보인다. 전 선원사 비교 유적 파주 혜음원지 파주 혜음원지 강화 능내리 석실분 강화 곤릉 <그림 22> 전 선원사지 출토 귀목문 막새 비교자료 <그림 23> 천 선원사지 출토 청자 원숭이모양 연적 이밖에도 E단 문지에서는 상형청자인 원숭이모양 연적 이 출토되었다<그림 23>. 고려 의 상형청자는 왕실을 중심으 로 한 최상류계층에서 의례용 기와 문방구 등으로 제작 사용 된 기물이다. 이규보의 동국 이상국집 에 원숭이와 관련된 여러 편의 시가 전하고 있어 원숭이는 당시 고려의 상류계층에서 애완용으로 기를 만큼 친 숙한 동물이다. 원숭이는 대체로 문방구인 연적으로 주로 제작되었는데, 이는 원숭이가 가진 길상적인 의미와 관련 있다. 원숭이와 관련된 길상적인 의미에는 대대로 후( 侯 )에 봉해지기를 축원하는 배배봉후( 輩 輩 封 侯 ) 가 있다. 이것은 어미 원숭이가 새끼 원숭이를 등에 업고 있는 보습을 나타내는 말 인 背 는 輩 와 동음동성( 同 音 同 聲 )이고 원숭이( 猴 )는 侯 와 동음동성인 것에 착안하여, 대 대로 모두 후에 봉해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부언 하자면 벼슬에 나아가 권력을 얻고 권 력이 후세에도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상징적으로 담겨져 있다. 또한 당시 원숭이가 상 류층에서 애완용 동물로 키울 만큼 친근한 동물이어서, 원숭이모양 연적은 문인의 책상 위에 놓여 감상적인 용도로 활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연적이 출토된 유적 의 조영세력의 위상은 높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으로 주목해서 살펴볼 점은 원시납 명문와에 타날되어 있는 銀 甁 壹 口 이다. 서두에 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은병은 고려사회에서 특정계층에서 사용된 것으로, 당시 고려의 왕도인 강화도와 멀리 이격되어 있는 남해도 지역에서 확인되는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

21 주영민 남해 은병명문와( 銀 甁 銘 文 瓦 ) 출토 건물지의 성격에 관한 연구 25 렇다면 원시납 명문와 및 귀목문막새기와의 편년에 해당되는 13세기 중기 경에 남해도지역 과 고려의 중앙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역사기록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서 주목되는 기록으로는 무신집권기 최우의 측근으로서 활동한 정안( 鄭 晏 )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정림사( 定 林 社 )가 있다. 정림사는 당대의 고승인 보각국사( 普 覺 國 師 ) 일연의 비문에 의하면 1249년 정안이 남해도에 있는 자신의 사제( 私 第 )를 고쳐 지은 절이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1). 비문의 기록에서 주목되는 점은 개인의 사제를 고쳐 정림사를 창건했다는 것과 사제이다. 사제는 개인이 지방에 별도로 마련한 기거처인 별서( 別 墅 )의 이칭으로 초기에는 본향에 있는 살림집과 개경에 마련한 경저( 京 邸 )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무신집권기에 이르면 무신의 난을 피해 지방으로 낙향한 문신의 기거처 내지는 지방의 농장경영을 위해 별 도로 지방에 마련한 살림집을 별서로 부른다. 이처럼 보각국사 일연의 비문에 등장하는 정안 이 남해도에 있는 자신의 고친 집은 별서인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사 열전의 정숙첨 기사 11) 에 정안의 부친 정세유는 하동군 사람으로, 그의 집안이 지 금의 하동과 남해도 지역의 유력한 향리가문인 것이 확인된다. 또한 정안의 선대가 관리로 출사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정안은 왕도인 강화도에 본집을 두고 별도로 자신의 농장이 있 는 남해도에 한시적 기거처인 별서를 두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안은 중앙정계에서 실각되고 하동으로 퇴거하였음에도 복권을 도모할 목적으로 최이의 외손자 를 자기 양아들로 삼아 최이의 호감을 사기에 힘쓰는 한편, 세도 재상들에게 아첨 하여 중앙 정계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였다. 12) 그러한 노력으로 최항( 崔 沆 )이 정권을 잡은 후에 다시 정안은 지문하성( 知 門 下 省 )으로 복귀하기에 이른다. 다음으로 주목되는 점은 정안이 사제를 고쳐 정림사를 개창한 것이다. 사제가 별서의 이칭 인 것을 고려하면, 당시 정안이 남해도에 창건한 정림사는 별서로 초축된 이후 사원으로 재 축되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림사의 가람배치는 사원의 가람배치와는 차이가 있고 그 규모가 크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당시에 주택을 사원으로 개축하는 것은 과 11) 高 麗 史 卷 100. 列 傳 13. 鄭 世 裕 附 鄭 晏 鄭 世 裕 河 東 郡 人 중략 叔 瞻 子 晏 晏 初 名 奮 性 聰 慧 少 登 第 陰 陽 筭 術 醫 藥 音 律 無 不 精 曉 出 倅 晉 陽 以 母 老 辭 歸 養 河 東 怡 愛 其 才 奏 授 國 子 祭 酒 晏 見 怡 專 權 忌 克 欲 遠 害 退 居 南 海 好 佛 遊 遍 名 山 勝 刹 捨 私 貲 與 國 家 約 中 分 藏 經 刊 之 事 佛 太 煩 一 方 厭 苦 晏 旣 退 猶 恐 及 禍 養 怡 外 孫 爲 子 以 取 媚 又 諂 事 權 貴 好 奢 侈 第 宅 器 皿 極 其 華 麗 崔 沆 秉 政 召 知 門 下 省 陞 叅 知 政 事 하략 12) 경관이 임지에서 사망하여도 장례는 개경과 근기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사실을 참고하면 경관 들은 주된 기거처와 기반을 왕도에 두고 있었다. 김용선, 1989, 高 麗 支 配 層 의 埋 葬 地 에 대한 考 察, 동아연구 23, 동아문화연구원.

22 26 고고학 13-1호 연 일반적인 것이었을까? 이와 관련하여 고려 고종 21년(1234)에 참지정사( 參 知 政 事 ) 차 척( 車 倜 )의 집을 봉은사( 奉 恩 寺 )로 고치면서 민가를 헐어 진입로를 확장했다. 는 고려사 의 기사가 참고가 된다. 13) 봉은사와 같은 실례는 앞서 언급한 장흥 상방촌A유적에서 확인되는데, <그림 18>을 살펴 보면 주거평면이 ㅁ 자형으로 일반적인 살림집의 형태를 보이지만 마당 중앙부에 탑을 세 우고 있어 사원건축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별서건축의 주거평면을 보이는 전 선원사지가 정림사와 부합되 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름 높은 문사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원숭이모양 연적 과 은병 명문와가 간접적으로 그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은병은 당시 고려의 중앙사회에서 통용되던 고액화폐이기 때문에 은병 1개를 시납하였다는 명문기와가 출토되고 별서건축의 주거평면을 보이는 전 선원사지의 조영주체는 고려의 중앙사회와 연관이 있는 세력이 분명 하다. 은병 일개를 시납하였다는 명문기와는 전 백련암지에서도 출토되고 있는데, 출토된 많은 수량의 명문와 중에서 판독이 가능한 성명은 李 台 瑞 朴 富 가 있지만 고려사 등의 사료에 서 재조대장경 판각시기에 활동했던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지방향리로 추정된다<그림 13>. 이 와 관련하여 고려시대의 성씨를 살필 수 있는 조선 중종 25년(1530)에 왕명에 의하여 편찬 된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 을 살펴보면, 남해현 하동현과 이들 현이 속한 진주목 의 성씨는 하동현 이씨, 진주목 박씨가 확인되어 적어도 이들은 남해현 인근의 지방향리들로 추정된다(민족문화추진회 1984). 그렇다면 당시 고려의 지방향리 계층에서도 은병을 유통 하였던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와 같은 사실은 고려사 열전에 등장하는 정방의( 鄭 方 義 ) 기 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진주출신의 향리인 정방의가 1200년 진주의 공사노예가 일으킨 난으로 주리의 집 50여호와 자신의 집이 불타자, 주동자를 잡기위해 활과 화살을 들고 사녹 전수룡를 만나 난을 일으킨다는 오해를 사서 고초를 겪고 풀려났지만, 목사 이순중이 그가 난을 일으키려 한 것이 틀림없다고 하여 옥에 가두고 국문하려고 할 때 동생 창대가 나타나 부축하여 도망갔다. 그 뒤 무리를 지어 평소 원한이 있던 자들 6,400여명을 죽였다. 이를 두 13) 高 麗 史 券 23, 高 宗 21 以 故 政 車 倜 家 奉 恩 寺 撤 民 家 以 廣 輦 路 時 雖 遷 都 草 創 然 凡 毬 庭 宮 殿 寺 社 號 皆 擬 松 都 八 關 燃 燈 行 香 道 場 一 依 舊 式 이 밖에도 稼 亭 集 卷 4, 大 都 天 台 法 王 寺 記 에 중략 有 泉 府 使 李 公 三 眞 捨 安 富 里 第 爲 佛 祠 名 之 法 王 召 鄕 僧 孜 信 者 主 之 라 하여 주택을 寺 刹 로 만든 例 도 있다.

23 주영민 남해 은병명문와( 銀 甁 銘 文 瓦 ) 출토 건물지의 성격에 관한 연구 27 고 문제가 커지자 이순중은 각문을 닫고 나오지 않고, 자신들의 잘못을 면하고자 은병을 거 두어 권신에게 바쳐 죄를 면하고자 한 것이 확인된다. 14) 위의 기사에서 이순중이 은병을 거두어 들였던 대상은 당시 진주목에 속한 지방향리들이 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서도 은병이 유통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전 선원사 지와 전 백련암지의 조영에 은병을 유통할 수 있는 지방의 호장층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은병명 명문와가 전 선원사지와 더불어 출토되고 있는 전 백련암지는 단순한 사 찰건축물 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와 관련해서 정림사와 관련된 김광식의 연구를 검 토하여 볼 필요가 있다(김광식 1993). 김광식은 정림사의 전신인 정안의 사제를 강월암( 江 月 庵 )으로 보고, 고종 10년(1223)경 정안이 남해도에 자신의 사제인 강월암을 건립하고, 1249년 정림사로 명칭을 바꾸어 중창한 것으로 본다. 이 논지는 별서의 이칭이 사제인 점을 고려하면, 일연스님의 비문에 정안이 남 해도에 있는 자신의 사제를 고쳐 정림사를 개창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어 타당한 면이 있다. 그러나 당대에 조영된 별서의 주거평면이 담장을 두른 ㅁ 자형 형태의 살림집과 방지형( 方 池 型 )의 연못을 중심으로 정( 亭 )과 당( 堂 ) 등의 유희처가 배치되었던 것과는 배치되고 있어 다소 미흡한 점이 확인된다. 이와 관련하여서 혜심( 慧 諶 )의 어록을 살펴보면, 고종 10년경에 강월암의 낙성 법회에 초 대된 혜심이 법회에서 돌문은 높고 바위굴은 기괴하며, 시원하고 유쾌하여 살기에 무방하 였다 중략 일암공( 逸 庵 公 )이 절을 지으매 묘한 붓으로도 다 묘사할 수 없고 무의자( 無 衣 子 )가 그 낙성 때 오매 묘한 공덕은 말하기 어렵다 중략 그대들 마음대로 하라 하고 손가 락을 한번 퉁기었다. 15) 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말미에 그대들 마음대로 하라 하고 손가락 14) 高 麗 史 卷 128, 列 傳 41, 鄭 方 義 鄭 方 義 晉 州 吏 也 神 宗 三 年 晉 州 公 私 奴 隸 群 聚 作 亂 屠 燒 州 吏 家 五 十 餘 延 爇 方 義 家 州 吏 告 牧 官 追 捕 之 方 義 手 弓 矢 入 謁 司 錄 全 守 龍 守 龍 詰 曰 何 爲 持 弓 矢 拜 乎 方 義 曰 欲 捕 賊 魁 他 人 已 擒 敢 入 賀 耳 守 龍 曰 不 然 汝 持 弓 矢 亦 必 作 亂 也 卽 栲 問 方 義 款 無 他 釋 之 太 守 李 淳 中 聞 之 曰 方 義 正 欲 作 亂 司 錄 放 之 非 也 遂 枷 鎖 方 義 下 獄 翌 日 欲 更 鞫 方 義 弟 昌 大 突 入 庭 脫 去 枷 鎖 扶 出 因 嘯 聚 群 不 逞 隳 突 州 里 殺 素 所 仇 怨 者 牽 連 被 殺 至 六 千 四 百 人 於 是 淳 中 等 懼 閉 閣 不 出 方 義 脅 令 視 事 多 歛 邑 內 銀 甁 欲 賂 朝 中 權 貴 以 自 免 按 察 副 使 孫 公 禮 行 部 至 晉 按 問 之 吏 民 畏 方 義 皆 曰 無 罪 淳 中 竟 坐 流 草 島 王 遣 少 府 監 趙 通 中 郞 將 唐 績 安 撫 晉 州 方 義 鍊 兵 擅 生 殺 虐 焰 甚 熾 通 等 至 但 拱 手 而 已 時 陜 州 賊 光 明 計 勃 亦 豪 橫 爲 一 方 巨 害 晉 之 與 方 義 有 隙 者 二 十 餘 人 往 投 陜 州 賊 黨 之 居 奴 兀 部 曲 者 請 兵 欲 擊 方 義 賊 從 之 方 義 出 擊 走 之 乘 勝 至 奴 兀 部 曲 盡 殺 其 黨 明 年 晉 人 討 方 義 殺 之 昌 大 率 二 百 餘 人 登 城 州 人 攻 之 昌 大 遁 去 其 黨 亦 散 晉 州 平. 15) 동국대학교 출판부, 1984, 慧 諶 語 錄, 韓 國 佛 敎 全 書 卷 6. 逸 庵 居 士 創 江 月 庵 請 上 堂.

24 28 고고학 13-1호 을 한번 퉁기었다. 는 내용에서 거문고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담고 있어 강월암 낙성 법회에 혜심을 초청하여 찬을 들은 것은 맞지만 강월암은 사찰의 성격보다는 정안이 남해도 에 조영한 유희처이자 은둔처로 보인다. 그렇다면 당시 고려사회에서 정안과 같이 자신의 사 제를 사원으로 고친 사례가 확인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별서로는 이승 휴가 두타산에 조영한 용안당( 容 安 堂 )이 있다. 라) 특별히 하나의 작은 구역을 이루고 있으니 이곳이 龜 山 洞 이다. 구산동을 가로질 러서 북쪽에서 동남으로 콸콸 흘러가는 물줄기가 용계이다. 용계를 따라 양쪽 가에 밭 二 頃 이 있는데 이것은 동안거사 외가에서 전해오는 柴 地 이다. 땅은 비록 메마른 박토이 지만 몇 식구의 집안이 의지해서 먹고 살만하다. 이에 시내의 서쪽 밭의 잘록한 언덕위 에 집을 짓고 陶 淵 明 의 歸 去 來 辭 에 나오는 審 容 膝 之 易 安 이라는 구절의 글귀를 취하 여 容 安 堂 이라 이름 하였다 중략 보광정의 아래쪽에 네모진 모양의 못을 파서 蓮 을 심고 물고기를 기르니 큰 은어가 연꽃과 연잎사이에 떴다 잠겼다 하며 헤엄치고 노니니 제자리를 찾아 그 쉴 곳을 얻은듯하였다. 이 것이 바로 물고기의 즐거움이라 하겠다. 또 어찌 내가 고기의 즐거움을 모름을 알겠는가. 라는 莊 子 의 齊 物 篇 의 말을 취하여 知 樂 塘 이라 이름 지었다. 16) 마) 간장사란 옛날 용안당이요, 용안당 이란 동안거사가 장차 海 藏 을 열람하려고 지 은 것이니 그 내용이 보광정기에 기록되어있다. 17) 바) 선인 동안선생이 지원 연간에 충열왕을 섬겨 간관이 되었는데, 일을 말하여도 듣 지 않아 그 직책을 버리고 본래 외가인 삼척현의 풍토를 사랑하여 드디어 두타산 밑에 가서 살다가 돌아가셨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유학을 하였는데 학문에 있어서는 연구하 지 않은 것이 없고, 그 성품이 부처를 좋아하여 만년에는 섬기기를 더욱 공경히 하였다. 이에 別 墅 를 두어 용안당 이라 이름 하여 거쳐하며 이 산에 있는 삼화사에 들러 경문을 16) 動 安 居 士 集 雜 著 一 部, 葆 光 亭 記 而 別 成 一 小 區 者 龜 山 洞 也 洞 之 中 自 西 北 激 二 然 泒 于 東 南 者 龍 溪 也 沿 溪 兩 過 有 田 二 頃 是 動 安 居 士 外 家 所 傳 柴 地 也 地 雖 脊 薄 可 以 資 數 口 之 家 乃 結 茅 於 溪 西 田 之 短 原 上 取 陶 淵 明 去 來 辭 審 容 膝 之 易 安 名 之 容 安 堂 堂 之 南 有 泉 勇 洌 旱 不 加 小 雨 不 加 多 而 冷 然 氣 逼 人 手 未 挹 掬 身 已 淸 凉 因 作 亭 其 上 雜 以 松 竹 花 草 繞 之 雖 朴 素 无 文 亦 不 至 於 陋 也 중략 亭 之 下 開 方 塘 種 蓮 養 魚 名 之 曰 知 樂 塘 17) 動 安 居 士 集 雜 著 一 部, 看 藏 寺 記 看 藏 寺 者 古 之 容 安 堂 也 容 安 堂 者 動 安 居 士 將 披 覽 海 藏 而 結 構 者 也 語 在 葆 光 亭 記

25 주영민 남해 은병명문와( 銀 甁 銘 文 瓦 ) 출토 건물지의 성격에 관한 연구 29 날마다 빌려다 10년 만에 읽었다. 뒤에 別 墅 를 중에게 희사하고 편액을 바꾸어 간장암 이라 하였다. 18) 사료 라)~바)를 살펴보면 이승휴가 삼척의 두타산 아래에 용안당과 보광정을 지어 별서 로 사용하다, 말년에 인근의 삼화사에 시주하여 간장암이라는 사찰로 만들어 그 곳에서 기거 하고 있었던 예가 확인된다. 이 밖에도 강월암이 유희처인 동시에 은둔의 목적으로 조영되었던 정황을 무의자시집( 無 衣 子 詩 集 ) 의 일암명병서( 逸 庵 銘 幷 序 )에서 찾을 수 있다. 일암명병서에서는 일암거사 정분 이 세상의 영화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속학도 잊은 채 항상 죽의포단 ( 竹 倚 蒲 團 )으로 짝을 삼아 수풀에 은둔하여 안명(몸을 안전하게) 하였는데 그 거처하는 곳 을 일암( 逸 庵 )이라 하였다. 일( 逸 )은 무위무박( 無 爲 無 縛 )의 총명( 總 名 )이다. 란 언급이 있다 19). 이 시에는 중앙정계에서 축출되어 지방으로 퇴거당한 정안이 자신의 신상에 대한 불안과 위험을 피해 낙향한 은둔자적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강월암은 그가 남해도로 퇴거하 여 유희처이자 은둔처로 삼았던 곳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정안이 고종 10년경에 강월암을 창건하고 무려 26년이 경과된 고종 36년에 강월암을 정림사로 고쳤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며, 적어도 고종 10년 이전부터 남해도에 사제[별서]를 두고 있었고 자신의 사제를 다른 용도로 재축한 후 자신이 머물 기거처인 강월암을 인근에 건립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정안이 남해도에 창건한 강월암의 위치는 어디일까? 이에 대한 단서는 앞서 살 펴본 것과 같이 강월암은 정안이 남해도에 창건한 유희처이자 은둔처였다는 것에서 찾아진 다. 창녕 말흘리에서 발굴조사된 별서의 예를 살펴보면 살림집과 유희처는 걸어서 왕래가 가 능한 지척지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조사결과를 활용하면 강월암은 전 선원사지 의 지척에 위치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고, 주거평면에서 살펴본 전 백련암지가 간략화한 도 량으로서 기능했을 가능성을 고려하면, 은병명 명문와가 반출되는 전 백련암지를 강월암으 로 보아야 될 것이다. 여기서 다시 혜심이 법회에서 언급한 돌문은 높고 바위굴은 기괴하며 란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혜심이 법회에서 설법한 내용을 살펴보면 강월암 인근에 바위굴이 있는 것이 18) 東 文 選 卷 68, 頭 陀 山 看 藏 庵 重 營 記 先 動 安 先 生 在 至 元 間 事 忠 烈 王 爲 諫 官 以 言 事 不 入 去 其 職 素 愛 外 家 三 陟 縣 之 風 土 遂 往 卜 頭 陁 山 下 以 終 焉 先 生 自 幼 業 儒 於 學 盖 無 不 究 性 好 佛 晩 年 事 之 愈 謹 於 是 別 置 墅 命 曰 容 安 堂 以 居 就 山 之 三 和 寺 借 浮 屠 藏 經 日 繙 閱 其 中 十 年 而 畢 後 以 墅 施 僧 易 扁 曰 看 藏 庵 19) 逸 庵 銘 幷 居 序 無 衣 子 詩 集 卷 下, 韓 國 佛 敎 全 書 卷 6. (동국대학교 출판부 1984)

26 30 고고학 13-1호 확인되는데 전 백련암지 인근에도 백련굴 20) 이 있어 전 백련암지가 강월암인 것을 뒷받침하 고 있다. 이상의 결과를 종합하면 전 선원사지는 정림사로, 전 백련암지는 강월암으로 비정된다. 그 렇지만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전 선원사지의 주거평면이 전형적인 별서건축과 차이를 보이 는 점은 의문일 수 있다. 그러나 이에 관해서는 정안이 자신의 사제인 별서를 고쳐 정림사로 개창하고 대장경을 판각하였기에 판각작업에 용이한 구조로 별서를 고쳤을 것이 예상된다. 이러한 연유로 전 선원사지의 주거평면이 B단만 별서건축과 부분적으로만 일치되고 나머지 는 물품의 출납에 용이한 구조를 보이는 것으로 이해된다. Ⅳ. 맺음말 국가간의 거래나 고려의 왕실과 중앙관료[귀족]들이 사용한 화폐인 은병이, 이들이 주로 거주하는 왕경과 근기지방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고려의 남쪽 끝에 위치한 남해도에서 발견 된 의문을 풀기위하여 전 선원사지와 전 백련암지에 대한 주거평면과 출토유물을 검토하여 조영세력을 유추하여 성격파악을 시도하여 보았다. 은병은 그 가치와 희소성으로 인해 전 선원사지와 전 백련암지의 조영세력이 고려의 중앙 사회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은병명문와에 타날된 원시납( 願 施 納 )의 사용 례와 귀목문막새기와의 편년으로 보아 이들 두 유적의 중심 조영연대는 13세기 중기 경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당시 문사의 귀중품인 상형청자 원숭이모양 연적이 반출되 어, 이들 유적이 고려의 중앙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더욱 확증할 수 있었다. 13세기 중기 경에 남해도에서 고려의 중앙사회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기사는, 정안이 대 장경 판각을 위해 자신의 사제[별서]를 정림사로 고쳤다는 고려사 의 기록과 강월암에 대 한 기록이 있을 뿐이다. 사제는 별서의 이칭으로 정림사가 별서건축의 주거평면으로부터 시 작되었기 때문에 당시 사원건축의 가람배치와는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정안이 자신 의 사제인 별서를 고쳐 정림사로 개창하고 대장경을 판각하였기에 판각작업에 용이한 구조 20) 백련굴은 임도공사로 굴의 입구가 무너져 내려 지금은 면모를 알 수 없지만 선원마을 주민들의 전언 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규모였던 것으로 보인다.

27 주영민 남해 은병명문와( 銀 甁 銘 文 瓦 ) 출토 건물지의 성격에 관한 연구 31 로 별서를 고쳐 사찰로 만들었을 것이며, 이러한 사실을 전 선원사지와 전 백련암지의 주거 평면 분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상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재조대장경과 관련된 산적한 과제 중 하나인 판각장소가 남해 군 고현면 일원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명확해졌다. 그렇지만 남해도에서 재조대장경이 모두 판각되었는지 하는 문제와 재조대장경 판각을 지휘한 도감의 운영형태에 관해서는 아직 해 결해야 될 과제가 많다. 다만 금번 발굴조사로 재조대장경 판각에 직접 관여한 것으로 여겨 지는 정림사로 비정되는 유력한 유적을 확인할 수 있었던 성과가 있었다.

28 32 고고학 13-1호 참고문헌 高 麗 史 龜 亭 遺 稿 東 文 選 動 安 居 士 集 無 衣 子 詩 集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1, 普 覺 國 尊 碑 銘, 普 覺 國 師 碑 銘. 민족문화추진회, 1984, 국역 신증동국여지승람Ⅳ. 동국대학교 출판부, 1984, 慧 諶 語 錄, 韓 國 佛 敎 全 書 卷 6. 경남발전연구원, 2007, 창녕 말흘리 고려시대건물지 1 2. 경남발전연구원 남해군, 2012, 고려대장경 판각추정지 확인을 위한 문화재 지표조사 보고 서. 경남발전연구원 남해군, 2013, 남해 고현면 고려대장경 판각추정지 문화재 발(시)굴조사 약 보고서. 최성락 정영희 고용규 김영훈 김병수, 2008, 장흥 상방촌A유적 Ⅱ, 목포대학교박물관 한국수자원공사. 김용선, 1989, 高 麗 支 配 層 의 埋 葬 地 에 대한 考 察, 동아연구 23, 동아문화연구원. 김광식, 1993, 정안의 정림사 창건과 남해분사도감, 건국사학 8, 건국대학교사학회. 주영민, 2009, 창녕 말흘리 고려시대 건물지의 성격에 관한 연구, 韓 國 上 古 史 學 報 65, 한국 상고사학회. 김미영, 2013, 전 선원사지 백련암지의 구조적 특징과 조영 주체, 남해, 고려대장경 탄생의 비밀을 풀다,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9 주영민 남해 은병명문와( 銀 甁 銘 文 瓦 ) 출토 건물지의 성격에 관한 연구 33 A Study on the Eunbyeong Inscrided Tiles excavated from the Building Site of Namhae Joo Young-min (Academic Studies Society of the Namhae-gun District Office) The present study examines recently excavated Eunbyeong (silver coin) inscribed tiles in Namhae, Gyeongnam, used as money during the 13th century. The discovery was unexpected given its geographic location in southernmost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The present study reviews the residential plan and excavated relics regarding the previous Seonwonsaji and the previous Baengnyeonamji where the Eunbyeong Inscrided Tiles was excavated, discovered a matching power group in charge of construction through a comparative review with historic records, and attempted to identify the character of the building site. As articles that are directly connected to the central society of Goryeo from Namhae-do during the mid-13th century, the sole records are the record of Goryeo History, from which it was known that Jeong An changed his private residence[villa] to Jeongnimsa for the engraving of the Tripitaka Koreana, and the record about Gangwolam. Private residence is a different name of Villa, and since Jeongnimsa began from the residential plan of Villa architecture, there must have been a difference from the placement of temple architecture. Also it is supposed that since Jeong An changed to Villa as his private residence and newly named it as Jeongnimsa and engraved the Tripitaka Koreana, he must have altered Villa so that it was a structure easier for engraving and made it as a temple. This fact was confirmed through an analysis of the residential plan of the previous Seonwonsaji and the previous Baengnyeonnamji. keywords the Tripitaka Koreana, Villa( 別 墅 ), hieroglyphic celadon, Eunbyeong(Silver coin), Jeongnimsa( 定 林 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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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한국과학사학회지 제35권 제1호 (2013) 의 수준에 이를 것이다. 하지만,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을 비 롯한 국학연구 기관들과 국립과천과학관, 한국천문연구원 등에 소장되어 있 는 조선시대 역서들의 숫자들을 모두 합하더라도 불과 수백 책의 수준을 넘 조선의 역서( 曆 書 ) 간행과 로컬사이언스* 박권수 (충북대학교) 1. 조선의 역서( 曆 書 )와 역법( 曆 法 ) 서운관지( 書 雲 觀 志 ) 와 내각일력( 內 閣 日 曆 ), 일성록( 日 省 錄 ) 등에 의거하건대, 조선시대 역서( 曆 書 )의 간행부수는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급격 하게 늘어나기 시작해서 정조( 正 祖 ) 22년( 戊 午 年, 1798)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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