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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문한국(HK) 연구소 중남미지역원 2010 연례학술대회 종속의 Matrix 근대국가의 형성과 발전 일시 : 2010년 9월 11 일( 토) 13:00-18:00 장소 : 부산외국어대학교 본관 A508, A510호 주최 후원 :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 한국연구재단/ 부산외국어대학교

2 학 술 대 회 일 정 9月 11 日 ( 토) 장소 : 부산외국어대학교 본관 13:00-13:20 개회식 A510호 개회사: 김우성 (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장 ) 축 사: 유선규 ( 부산외대 총장) 13:20-15:30 제 1회의 - 일상문화의 아비투스 A510호 좌장 : 이광윤( 부산외대) 발표 : 박종욱(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 - 색채에 투영된 문화심리 연구: 멕시코시티에서의 색연상 조사분석 사례를 중심으로 임두빈(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 - 브라질 일상속어(Gíria) 에서 드러나는 사회적 편 견에 관한 연구 김영철(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 - 브라질 사회발전과 개신교의 성장 토론 : 김선웅( 경일대), 이승용( 한국외대), 이미정( 한국외대) 제 2회의 - 라틴아메리카의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A508 좌장 : 양동훈( 경성대) 발표 : 김유경(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 - 페루 정당체제의 탈제도화와 민주주의의 지연 안태환(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 - 탈식민성과 새로운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 이상현(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 사회운동과 정치정당: 볼리비아 MAS 사례 토론 : 정기웅( 강원대), 김은중(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김기현( 선문대) 15:30-15:50 coffee break 15:50-18:00 제 3회의 - 고대와 근대의 만남 A510 좌장 : 송병선( 울산대) 발표 : 송영복( 경희대) - 디에고 데 란다(Diego de Randa) 마야이야기 의 집필배경 최권준( 대구가톨릭대 ) - 프란시스꼬 로뻬스 데 고마라의 연대기에 나타난 인디오의 이미지 연구 구경모(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 - 이민과 위생정책을 통해 본 근대도시의 형성: 파 라과이 비야리까시의 사례 토론 : 김우중( 대구가톨릭대 ), 김선웅( 경일대), 이석환( 경성대) 제 4회의 - 이민과 정체성 A508 좌장 : 김명혜( 전남대) 발표 : 오수웅( 연세대) - 이민, 역이민과 민족정체성: 루소의 사상을 중심으로 윤석상( 단국대) - 일본계 브라질인 정주화와 사회자본에 대한 고찰: 다문화 공생사 회 구축을 위한 제언 이순주( 울산대) - 라틴아메리카의 여성 이민: 칠레의 페루 여성 이주자를 중심으로 토론 : 김태수( 한양대), 박윤주( 계명대), 최진숙( 울산과기대 )

3 제1회의 - 일상문화의 아비투스 13:20~15:30 (A510 호) 좌장 : 이광윤 ( 부산외대) 색채에 투영된 문화심리 연구 : 멕시코시티에서의 색연상 조사분석 사례를 중심으로 발표 : 박종욱 (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토론 : 김선웅 ( 경일대) 브라질 일상어에서 드러나는 사회적 편견에 관한 연구 발표 : 임두빈 (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토론 : 이승용 ( 한국외대) 브라질 사회발전과 개신교의 성장 발표 : 김영철 (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토론 : 이미정 ( 한국외대)

4 색채반응 설문분석을 통한 멕시코의 색채 문화심리 연구 Un estudio de la psicología cultural por los colores para los mejicanos a través de analizar la encuesta de la respuesta de color 박종욱 1. 서론 색채와 관련된 최근의 문화연구 동향 가운데 하나는 색채를 문화적 구성 및 정체 성과의 상관관계에서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색채 선호 감정은 각 민족 혹은 국가의 문화심리를 반영하고 있으며, 색채에 투영된 이러한 문화심리에 대한 포괄적인 관 심은 현대 산업에서 높은 활용도와 광범위한 적용 가능성 때문에 더욱 확대된다. 색채에 대한 문화심리 연구는 다양한 영역에서 그 긍정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으 며,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서 색채마케팅은 중요한 산업적 분야로 평가되고 있다. 문제는 색채가 지니고 있는 문화심리적 주제의 중요성은 일반화되어 있음에도 불 구하고, 다는 점이다. 문화권역별을 대상으로 세부적인 연구는 결여된 채 일반론에 치우치고 있 색채에 대한 심리적 반응은 부분적으로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주관적이고 개별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빨강이 정열과 역동성의 인상을 지니고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사안이지만, 감성 어휘와 관련지은 이미지의 상관성에서는 국가 혹은 민족 별로 그 세밀한 반응이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다. 이는 상관성에 유의 미한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빨강은 기본적으로 따뜻한 색채이며, 격 렬함과 의기양양함을 연상한다. 나아가 빨강 색의 피는 생명을 상징하는 긍정적 이 미지를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파괴될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의 부정적 이미지 를 지니기도 한다. 이는 인류의 보편적인 정서로서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 모두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냉전시대에 빨강은 이념적 표상으로 연상되기도 했다. 비근한 예 가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인데, 빨강 은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과 공산주의가 도래하 기 훨씬 전부터 광장을 상징하는 색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념적 속성의 사회문화 적 상징으로 읽히기도 하였다. 한반도의 냉전에 의한 긴장 관계 또한 좌파의 이념 성향 을 규정하는 빨강에 대한 파생적 이미지를 만들었으나, 2002년 월드컵 당시 서 포터즈들에 의해 역동성으로 읽히게 됨으로써, 문화심리적 시각에서 다양하고 복합 적인 구성의 사례로 읽히는 사회문화적 코드의 적절한 본보기가 된다. 이처럼 색채에 대한 감성과 관련된 이미지는 생물적 특수성을 기반으로, 인류의 보편적 정서는 물론이고, 문화권역 내에서도 다양한 변이 요소에 의해 상이한 결과 를 낳기도 한다. 같은 문화권에서도 시대를 달리하면서 다양한 반응 요소를 수용한 다. 따라서 색채에 대한 상식적이고 일반론적인 접근은 비과학적이고 비학문적인 요소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 언어공동체 혹은 국가 및 문화권역별로 지속적인 관심 과 조사를 통해서 각각의 개별 사회가 보유하고 있는 색채에 투영된 문화심리의 경 - 4 -

5 향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색채에 대한 문화적 접근을 위한 카테고리의 분류는 다양하다. 가장 광범위한 분 류는 인류색, 민족색, 개인색 등의 세 개의 카테고리를 통한 분류이다. 첫째, 인류 색 은 인류보편적인 정서에 기초하는 분류이다. 식물의 초록에 투영된 심상이 대표 적이다. 둘째, 민족색 은 문화와 민족의 고유성과 특수성을 반영하며, 이는 사회문 화적 가치가 문화 혹은 문명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이식되어 투영되는 구성적 특징 을 지닌다. 중국 황실의 노랑이나 유럽 근대 사회에서 노동계층의 파랑 등이 그러 하다. 셋째인 개인색 은 개인의 취향과 기호에 주목하며, 이러한 개인색은 유행이나 취향에 따라 세밀하게 변화하는 성향을 지닌다. 이러한 개인색 을 다시 남성과 여 성의 성별 차이에 의한 성별색( 性 別 色 ) 과 기호와 취향 및 유행에 민감한 변화를 경험하는 개인색 으로 나뉘는 경우도 있다1). 하지만, 이러한 분류 또한 상대적인 것 으로서,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결과를 분석했을 경우에만 그 구체적인 실체를 토대 로 실증적인 활용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 물론, 기초 연구가 아닌 구체적인 목적 을 수행하기 위해서, 색채의 감성적 연상 관계를 인간의 생물적 특징부터 개인적 기호까지를 보다 다양한 단계로 나누어 분석할 수도 있는 른 시각 의 문제이다. 목적 과의 상관관계에 따 본 연구의 목적은 색연상 설문 조사의 결과를 분석함으로써 멕시코 사회에서 색채 에 투영된 문화심리의 토대적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후속 연구의 방향성을 제시하 기 위해 기획되었다.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2010년 2월 멕시코시티를 중심으로 멕 시코 사람들의 색채 감성 정도를 분석하기 위한 색연상 설문 조사를 실시했으며, 설문 조사의 결과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통해 문화심리의 경향 파악의 가능성에 대해 검토하여, 색채에 투영된 문화심리 연구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본 연구 결과의 적용과 활용은 산업별 전문가 집단에 의해 보완되고 확장되어야 하 며, 개별적인 목적에 의해 수정되고 보완된 후속 설문 조사 연구에 의해 구체화될 수 있다. 2. 이론적 배경 2.1. 색연상의 개념 색연상이란 행복과 슬픔 등 감정 및 심리적 의미와 개념 등을 갖는 어휘로부터 색 채를 연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감정 및 심리와 관련된 어휘를 통한 색채반 응(Color response) 은 학문적으로는 문화심리 영역에 속하면서, 문화와 산업 및 예 술 등의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의학계는 색채가 인체에 생물학적으로 직 1) 산업계에서는 색채를 상업적 목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인류색, 민족색, 개인색 등의 세 개의 범주를 인류 색을 보편적인 색으로서 상품이미지색 ; 민족색을 사회색, 성색, 향수색 으로; 마지막으로 개인색 등으로 세분하여 접근하기도 한다. 민족색에 대한 부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입장이다. 참조: 색채와 마케팅 ( 조풍삼 감수), 금강서원, 서울: 1995, pp

6 접 작용한다는 데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지만, 색채에 대한 심리적인 요인이 인체에 미치는 작용과 영향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이다( 파버 버렌, 1985: 190). 결 국 색채반응이 생리적 반응의 절대적 조건은 되지 않더라도,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 요소라는 접근에서는 긍정적인 것이다. 최근 서구에서는 색채심리학이 의학과의 융합과 통섭을 통해 색채치료학(Colour Therapy) 의 분과로 성장하는 추세가 눈에 띈다. 산업계는 색채가 투영하고 있는 감 정의 상관성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를 제품의 디자인에 적용하려는 지속적인 시도를 꾀하고 있다. 병원과 학교 및 공장 등에서 특정한 색채로 구성된 공간이 심리적 안 정과 집중력을 통한 긍정적 결과와 연결되는 효과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 의미에서 색채반응을 통한 색연상 연구는 일반화된 연구를 탈피하여, 언어와 종교 및 인종과 관련된 문화권별 색연상의 조사에 긍정적인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현 황이다. 단순한 사례로서, 내수용 자동차와 수출용 자동차가 동일한 차종임에도 불 구하고, 색상을 달리하고 있는 것은 특정한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의 문화적 특성 에 대한 유의미한 차별성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는 경우이다. 그러므로, 색연상의 키워드는 동일한 역사를 배경으로 언어와 종교를 공유하는 공 동체의 문화 정체성에 대한 연구 주제로서 긍정적 의미를 지닌다. 색채에 대한 감 성 반응의 상관성은 집단으로서 공동체 의식이 가능한 사회에서 문화적 코드로서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색채 인식의 보편성과 개별성 오늘날 모든 인간이 인종과 문화적 배경에 관계없이 동일한 색을 볼 수 있는 능력 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민족과 인 종에 따라 구분할 수 있는 색이 달랐다고 여겼던 오해의 긴 역사가 있었다. 언어의 특성상 어휘가 수용하는 색의 정도가 문화권마다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인류학자인 브렌트 베를린과 파울 카이는 98개의 언어에 나타난 색채 명칭의 유래를 조사하였고, 많은 언어 체계에 파랑을 가리키는 단어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 했다. 그런 언어에서 파랑은 녹색의 하나로 분류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어휘 가 없어도, 하늘같은, 바다같은, 포도같은 등의 비유적 표현으로 파랑이란 색채를 묘사할 수는 있었다. 아무튼, 어휘적인 특수성이 이유가 되어 인종과 문화의 수준 정도에 따라 구분하고 인지하는 색채 자체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과도한 오 해가 근거 없는 억측이었음이 최근에야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헬러, 2002(1): 84-85) 는 사실( 史 實 ) 은 인류 보편적인 색 인식 반응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이다. 그러나 색 을 인지하는 능력과 색연상 작용은 동일한 메카니즘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인 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색채 인지 능력과는 별도로 개인이 선호하는 색채의 정도 는 물론이고 문화권역에 따른 색채 선호 정도도 다르기 때문이다. 빨강이 피의 생 - 6 -

7 명을 상징하여 온 것은 분명하지만, 스페인을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빨 강은 보통 사람의 피를, 파랑은 귀족의 피를 상징했다. 현재에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된 파랑 피 의 은유적 사용은 중세 동안에는 피부가 창백한 귀족과 왕족에게만 드러나는 특징으로서 파랗게 보이는 동맥이라는 실체에서 기인한다( 헬러, 2002(1): 84). 빨강과 파랑의 상대적 의미가 문화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괴테로 대표되는 근대 독일의 색 연상은 사회적 관련성과 관련하여 감각과 정신의 반응 정도에 대한 흥미로운 데이터를 내놓고 있다( 헬러, 2002(2):67). 도덕적 범주 지성적 범주 지위 전통적 상징 자주 아름다운 이성과 상상력 (= 천재성) 지배자 지배자, 추기경 빨강 고귀한 이성(= 감정과 이해력) 귀족 귀족 노랑 좋은 이해력 학자 깨달음, 자연과학 초록 유용한 감각성( 감정과 본능에 지배됨) 시민 시민 파랑 평범한, 일상적인 감각성( 감정과 본능에 지배됨) 노동자 노동자 위의 도표에 의한 구분은 사회적 덕목과 지성 및 신분을 색으로 구분하는 의도적 인 것으로서, 색채에 대한 자연적인 반응보다는 사회문화적인 가치관이 많이 반영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사회문화권역별로 이러한 사회문화적인 가 치 또한 일상적인 색연상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프랭크 H. 만케는 인간이 환경에서 체득하는 색채에 대한 인식은 생활에서의 체험 과 관계된다는 측면에서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는 색채를 인지하고 감성과 연관하 여 경험하는 정도를 6 개의 요소와 연결하여 그 상관관계를 정리한다. 6개의 요소란 생물개체로서 인간의 생리적 조건에서 시작하여, 인류의 보편적 기능인 무의식과 의식, 문화의 형성에 따른 문화권의 공통적 요소와 시대적 경향 및 개인의 체험까 지를 단계별로 나눈 것( 프랭크 H. 만케, 1998:17-25) 으로써, 색채 인식에 대한 보편 성과 개별성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프랭크 1 1. 개인적 관계 2 2. 시대사조, 패션, 스타일의 영향 3 3. 문화적 영향과 매너리즘 4 4. 의식적 상징화 - 연상 5 5. 집단 무의식 6 6. 색 자극에 대한 생물학적 반응 H. 만케, 1990 만케의 분석은 종합적 시각에서 긍정적이다.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으로서 보편성 을 기반으로 인류의 원형적 집단 무의식을 반영하고 있으며, 사회화 및 교육화의 과정에서 가능한 의식적 상징화와 연상을 지적할 뿐 아니라, 점차 사회의 문화적 영향과 집단적 경향의 영향, 그리고 최종적으로 개인의 독립적 경험에 의한 요소 - 7 -

8 등이 색채에 대한 감성의 인지적인 선호와 기호를 만든다는 데에 거의 모든 학자들 이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선언적 의미를 넘어서 구체적인 결과로서 실증적 적용에 있어서는 지역과 문화 권역에 따른 편차를 고려해야만 한다. 색에 대한 반응은 인류 보편적인 공통점이 있는 편이다. 검정색과 흰색에 대한 반 응이 크게 다르지 않으며, 초록이나 연두에 대한 감성적 느낌이 유사한 것 등이 그 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색채에 대한 문화적인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녹색은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희망을 상징한다. 하지만, 중남미 문화권에서 희망을 상징하는 색은 녹색과 더불어 하양을 비롯한 여러 색채인 것으 로 알려져 있다. 문화적 가치와 결부된 다양한 요소에 의한 이유를 분석하는 것은 매우 복합적인 일이며,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다. 그러나 최소한 감정과 관련된 색채에 대한 문화권 역별 데이터 분석 연구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선언적이거나 다른 연구 결과를 분석적 비판 과정이 없이 단순하게 재인용하는 경우가 많아, 그 정밀 함이 크게 부족하다 색채 연상 선행 연구의 사례 색채에 대한 감성적 반응의 관계에 대한 관심은 관계 연구와 Jaensch(1930) 의 색채와 성격간의 Goldstein(1942) 의 색채와 정신병의 관계 연구 등을 거쳐 색채와 감정 어휘의 관계에 주목하는 Birren 의 색연상 등으로 확장되었다( 장휘숙, 1987: ). Jaensch나 Goldstein 의 경우는 매우 초보적인 단계였으며, Birren의 경우 에는 성인의 국제적인 색채선호의 순위 가 존재할 수 있음을 밝힌 결과를 낳았다. 연구의 결과는 대체적으로 인종을 큰 단위개념으로 파악하여, 차별성을 찾으려 하 였던 것으로 보인다. 백인들의 경우 파랑, 빨강, 초록, 하양, 분홍, 보라, 등의 순서이 며, 황인종의 경우 빨강, 노랑, 황금색 등의 순서라는 주장( 장휘숙, 1987: 380) 은 오 랫동안 정설처럼 인용되는 경향을 보였으나, 후속 연구에 의해 기호 순위에 결과에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비렌 등에 의한 연구 결과는 구체적인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조사 문헌이나 조사 방법에서도 주 관적이었던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진일보한 결과이지만, 이는 괴테에 의한 색연상 연구와 비교하여 여전히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채 일반화하여 실체에 접근하 기에 한계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수의 연구들이 Birren을 비판적 대상으로 두며, 구체적인 대상집단을 적용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루돌프 슈타이너의 연구에 의하면, 녹색은 생명의 죽어가는 영상 이며, 살색2)은 혼의 살아 있는 영상, 하양 또는 빛은 영의 혼적인 영상, 그리고 검정은 죽음의 2) 슈타이너가 지적하는 살색은 피부색을 의미한다. 인간의 육신을 둘러싸고 있는 외형이라는 의미가 강하기 때 문에, 실증적으로는 백인들의 피부색을 통칭적으로 의미하며, 인종적 차별성의 문화적 배경은 배제되어 있는 개념으로 수용할 수 있다

9 영적인 영상 으로 분류한다. 그의 의도는 생명과 관련지어 색채를 분류하려는 것이 다( 슈타이너, 2003: 25-28). 또한 하양에서 검정으로 가는 단계에서 노랑, 주황, 빨 강, 파랑, 남색, 보라 등을 분류하여 각각 내부와 외부를 지향하는 속성으로 풀이하 고 있다. 이러한 그의 분석은 물리학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며, 사회문화적 보편성 에 있어서 생명과 죽음 사이의 문화심리적 스펙트럼에 대한 분류에 의한 것이다( 슈 타이너, 2003: 42-50). 에바 헬러의 경우에는 독일 중심을 대상으로 문화적 배경에 대한 연구를 통해 색 채의 문화심리적 스펙트럼의 다양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녀는 색연상의 현상의 주 된 원인으로서 역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계층과 신분 등의 사회문화적 배경 에서 그 구체적인 원인을 찾고 있다. 전통과 역사성이외에도 다양한 변수들이 색연 상의 원인으로 제시되고 있으며, 따라서 헬러는 일관되고 통일된 색연상을 제시하 지 않고 있다. 일례로 검정의 경우에 조사 대상자의 10% 만이 선호하는 색이지만, 특히 14~25세의 남자 20% 가 가장 선호하는 색이면서, 50세 이상의 남자는 전혀 선 호하지 않는 색임을 지적한다( 헬러, 2002(1): 179). 검정은 회색 및 하양과 더불어 대표적인 종말의 색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헬러, 2002(1): 181). 3. 연구문제, 조사대상 및 조사방법 3.1. 연구문제 인종별 색에 대한 감성이 다르다는 견해가 있어왔으나, 이러한 것들은 실증적인 설문조사 등을 토대로 한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차원에서의 연구에 의한 결과물로 부터 파생된 것들로서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연구방법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 다 입체적이고 분석적인 결과물들을 토대로 문화심리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으며, 감성과 관련된 색 인식도에 대한 지형도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의 방향성은 소비자- 생산자의 맞춤형 소통에 의한 제품의 생산/ 소비와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산업문화적 측면에서 그 효용가치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색채의 이미지나 상징과 관련된 많은 연구들은 개별 색채에 대한 일반인들의 감성 인식과 선호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헬러의 지적처럼(2002(1): 33) 색과 감정의 관계는 우연이나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 가 아니라 일생을 통해 쌓아가는 일반적인 경험, 어린 시절부터 언어와 사고에 깊 이 뿌리 내린 경험의 산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색과 감정의 관계는 일상문 화의 아비투스로서 중요한 코드적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색과 감정의 관계는 보편 성에도 불구하고, 문화권역 마다 상대적인 차별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연구 문제의식이다. 국제 색채 컨설턴트 연합회에 보고된 몇 개의 설문조사 연구의 주요 결과물 가운 데 주목할 내용은 미국과 유럽에서 각각 실시된 색채-감정 어휘 관련 조사의 결과 보 - 9 -

10 ( 만케, 1998: 56-59) 가 상대적으로 유의미한 지표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미국에서의 조사 결과 유럽에서의 조사 결과 분노( 미움) 검정, 빨강 (89.6%) 검정(58%), 빨강(36%), 초록(18%) 평화( 평온) 파랑, 초록 (93.6%) 파랑(56%), 초록(42%) 행복 노랑, 주황 (63%) 노랑(61%), 주황(45%), 초록(24%) 슬픔 검정, 회색 (86%) 검정(76%), 회색(30%), 갈색(18%) 사랑 빨강, 자주 (81%) 빨강(72%), 자주(27%), 핑크(15%) 위의 조사 연구 방법은 만케 자신이 저서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복 수 항목 선택을 허용한 방식이었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복수 항목 선택 방식은 자 체 연구 결과 내에서 선택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데 일정 부분의 장점을 지닌다. 다 양한 색채를 선택할 수 있는 개연성이 높기기 때문이다. 미국의 조사 결과는 감정 항목을 최고 빈도로 선택된 두 색채의 총합을 계산하고 있으며, 유럽의 조사 결과 는 최고 빈도로 선택된 세 색채의 개별 결과를 보여준다. 설문 및 분석 방식에 차 이가 있었음이 틀림없으며, 두 조사 결과를 동일한 의미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색채들 상호간의 상대적 빈도에 대한 결과는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감정 어휘에 대응하는 색채의 선택 빈도가 동일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는 점이다. 표본 집단의 크기와 색채 항목 선택의 방식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부재함에도 불 구하고, 만케의 연구 결과가 무의미한 것은 결코 아니다. 막연하게 색채의 상징성에 대한 추상적인 접근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현황에서 색채와 감정의 상관관계에 대한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자료 제시의 모범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 의 어휘와 색채를 일대다가 아닌 일대일의 대응관계로 선택하는 방식을 통해 색채 들 사이에서의 변별력을 높일 수 있는 항목 선택 방식의 설문 조사 연구가 필요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과연 위의 조사 결과가 모든 문화권역에서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연구의 문제의식이 되었고, 멕시코를 대상으로 본 연 구를 기획하게 되었다 조사대상 및 방법 본 연구는 멕시코시티를 중심으로 설문을 실시하여, 그 결과를 통해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색채의 정서적 반응이 어떠한 경향을 띠고 있는 지를 밝히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 색채의 정서적 반응은 다양한 경제 활동과 문화 행위에 유의미한 관계를 지니기 때문에 무역과 관련된 산업디자인에 실증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토대 자료 로서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연구의 실현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상 지역을 멕시 코시티로 한정하였으며, 조사 대상자를 100 명으로 제한하였다. 연구의 수행을 위하여 두 차례에 걸쳐 멕시코시티와 주변 지역에 거주하는 멕시코 국적의 100 명을 대상으로 삼았다. 설문 방식은 연구의 목적을 4~5분 동안 설명한

11 뒤, 10분 안팎의 시간 동안 설문대상자가 스스로 설문항목을 표시하는 방식을 선택 하였다. 그러나 추상적 어휘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12명의 경우 기본적인 설명 을 통해 설문항목을 선택하기를 원하는 설문대상자의 경우에는 설문 진행자가 어휘 의 정의를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 경우에 설문 진행자의 영향이 편견으로 치우 치지 않도록 미리 준비했던 사전적 정의를 두 차례씩 읽어주었다. 12명 가운데 7명 은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 없거나 매우 낮았기 때문에 설문대상자의 동의를 얻어 구술하는 설문대상자의 선택 항목을 설문 진행자가 표시하였다. 지역에 따른 학력의 정도와 빈부의 편차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가능한 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을 대상으로 하기 위해, 국립인류학박물관(11 명), 우남대학교(10 명), 컴퓨터디자인학 원(10 명), 대학도시내 관리사무소( 행정 직원 및 청소용역 직원 7 명), 차뿔떼뻭 공원 (10 명), 소나로사 상업지역(12 명), 과달루뻬 성당(11 명), 지하철 환승역사(12 명), 메트 로버스 환승정류장(10 명), 뻬세로 정류장(7 명) 등을 설문지역으로 삼았다3). 설문항목의 설계는 색채와 관련지을 26 개의 어휘를 대상으로 하였다. 각각의 어휘 와 연관되는 색채를 선택하도록 하였으며, 친근함과 두려움, 긍정과 부정, 희망과 불안 등으로 상대적 색채의 빈도수에 대한 분석을 가능하도록 하였다. 설문조사를 위해 가능한 색은 10 가지로 한정하였다. 단순하게 색채기호를 물어보 는 방식인 색채선호에 따른 기호색 접근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 어휘로부터 연 상되는 색을 질문함으로써, 보다 구체적인 선택을 유도하였다. 복수항목에 대한 선 택 방식이 아니라, 감성과 관련된 어휘를 하나의 색채에 대한 선택으로 정하도록 하였다. 특별한 색채를 선택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선택을 하지 않는 경우를 허용하 였다. 4. 연구결과 및 해석 헬러는 자신의 연구 결과로서 빨강의 상징은 두 가지 근본적인 경험에 의해 결정 된다. 빨강은 불 이고 피 이다. 불과 피는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실존적인 의미를 갖는다. ( 헬러, 2002(1): 90) 며, 상업적 광고에서의 과잉 사용에 의한 역효과에도 불 구하고, 선호도가 매우 높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 연구에 의하면, 빨강은 긍정적 인 색채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우선순위에 있으며, 부정적인 색채로서 대표적인 순 위에 꼽힌다. 일반론적인 연구의 성과가 본 개별 연구의 결과와 상충되는 대목이다. 보편성과 개별성의 상관관계에 대한 보다 정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본 연구 논문 3) 설문 조사 연구의 특성상 대상자가 많을수록 보편적 결과에 수렴할 수 있지만,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수 행한다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든 강행군이었다. 100명의 설문 결과를 얻기 위해 대략 300 회 가량 의 시도가 필요했으며,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설문 유형들과 상대적인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실질적으로 설문을 수행했던 128 건의 설문 결과 가운데, 개인정보에 대해 불성실한 측면이 발견된 13건 의 설문의 경우를 제외하고, 시간의 제약 때문에 26개의 항목 가운데 한 항목이라도 누락했던 14건을 제외했 으며, 동료의 설문 항목을 대신 표기했던 1건도 제외하여 결과적으로 총 100건의 설문 결과를 대상으로 분석 을 실시하였다

12 의 필요성과 목적이 바로 이러한 상충되는 결과에서 드러난다. 색채와 감정 관련 어휘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는 간헐적으로 이뤄져왔다. 특히, 미 국과 유럽에서는 지속적으로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국제 색채 컨설턴트 연합회를 주축으로 그 결과물의 상업적 활용을 위한 논의가 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 랭크 H. 만케(1998: 56) 는 미국인과 유럽인들의 색에 대한 인식도가 그리 크지 않았 음에 주목한다. 하지만, 몇 차례 실시된 결과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는 문화권역별로 차이를 두는 결과를 선험적인 요소보다는 후천적인 요소가 영향을 행사했을 가능성 에 대해 지적하는 정도로 연구의 의미를 정리하고 있다( 만케, 1998: 56-59). 만케의 연구 목적은 보편성을 확인하려는 의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럽인과 미 국인들 사이에 드러나는 차별성에 대한 중요성은 간과하고 있다. 본 설문조사 연구의 결과는 만케의 연구 결과와 본질적으로 큰 차이를 두지 않고 있음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존재하는 차이의 중요성에 대해 의미 부여 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얘기하려는 것이다. 미국에서의 조사 결과 유럽에서의 조사 결과 멕시코시티에서의 조사 결과 복수 선택 방식 결과/ 선호도 중심 복수 선택 방식 결과/ 선호도 중심 단순 선택 방식 결과/ 선호도 및 백분율 적용 분노( 미움) 검정 > 빨강 검정 > 빨강 > 초록 빨강 (43%) 평화( 평온) 파랑 > 초록 파랑 > 초록 하양 (77%) 행복 노랑 > 주황 노랑 > 주황 > 초록 노랑 (32%), 초록 (29%) 슬픔 검정 > 회색 검정 > 회색 > 갈색 회색 (37), 검정 (21%) 분노 항목의 경우, 멕시코시티의 사례에서 빨강이 검정보다 월등하게 높은 빈도수 로 선택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빨강의 43% 에 이어 노랑(11%) 과 회색(9%), 그리고 검정(8%) 이 선택되고 있지만, 빨강의 제외하고 선택의 빈도수는 특별히 유 의미하지 않다. 평화 항목의 경우 또한 하양이 압도적으로 많은 빈도수인 77% 로서 뒤를 잇는 파랑(12%) 과 초록(11%) 을 무의미하게 하고 있다. 행복 항목의 경우에는 노랑(32%) 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으나, 뒤를 이어 초록(29%) 과 빨강(20%) 가 선 택된 것은 미국과 유럽의 사례와 비교하면 노랑의 선택이라는 공통점 이외에 빨강 의 주된 등장이라는 점이다. 슬픔 항목에서는 회색(37%) 과 검정(21%) 이 주를 이루 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유럽에서의 선택 패턴과 유사하지만, 검정과 회색의 선택 빈도가 뒤바뀌는 약간의 유의미한 결과를 보였다. 분노와 슬픔의 두 항목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평화와 행복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묶어 결과를 비교하였을 때, 미국과 유럽에서는 파랑, 초록, 노랑이 긍정적인 감정 을 반영하는 주된 색이라는 결과로 나왔으며, 멕시코시티에서는 하양과 초록이 최 고의 빈도로 선택되었다. 부정적인 감정으로는 미국와 유럽의 경우에는 검정, 빨강, 회색에 집중되어 있으며, 멕시코시티의 경우에는 검정, 빨강, 회색으로 일치되는 것 을 볼 수 있었다.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 색채에 투영되는 감정은 보편적인 정서가 반영되는 경향을 띠고 있지만, 문화권역에 따라 매우 유의미한 조사 결과가 도출될

13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멕시코인들이 지닌 문화적 배경과 최 근 역사의 영향 등이 색채에 투영되는 감정의 정도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 적하는 것이다. 색채에 투영된 감정의 정도가 인류 보편적인 정서와 광역의 문화권 역에서의 의식과 무의식, 상징의 영향 이외에도 지역문화적 가치 개념에 의해 상당 부분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색채는 감성적 소통을 위한 매우 유용한 매개물이다. 색채의 심리적 효 과와 관련된 색채심리학에서는 오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 가운데 80~90% 가 시각을 통해 이뤄지며, 이중 70%~80% 는 색채에 의안 것이라 한다. 색채는 정서적 경험과 밀접한 관계에서 이뤄지며, 내면에 구축된 정서가 색채를 통해 표현되기 때 문이다. 이러한 색채의 정서적 반응 은 보편적 정서와 개인적 정서로 나눌 수 있으 며, 보편적 정서는 사회문화적으로 세대를 거쳐 축적된 감성과 긴밀하게 연관됨으 로써, 민족 혹은 국가의 보편적 정서와 긴밀한 관계에서 파악될 수 있다 조사 분석 결과 연령별 분포도 연령별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이상 100명 성별 분포도 남/ 녀 비율 남성 여성 100명 직업별 분포도 직업별 학생 직장인 무직( 전업주부포함) 퇴직 100명 학력별 분포도 학력별 고졸 미만 대졸 미만 대졸 이상 100명 혼인여부별 분포도 결혼여부별 싱글 기혼 동거 과부/ 홀애비 100명 색채 선호도 분포도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분홍 자주 하양 회색 검정 갈색 기권 총계

14 희망 행복 불안 따분 놀람 슬픔 고통 분노 평화 고독 긍정적인 색 vs 부정적인 색의 비율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분홍 자주 하양 회색 검정 갈색 총계 긍정 부정 긍정적인 색의 선호도: 하양(114)> 초록(62)> 노랑(44)> 파랑(35)> 빨강(29)> 분홍(6)= 자주(6)> 갈색(3)> 검정(0) 대표적인 3 가지 색: 하양> 초록> 노랑 부정적인 색의 선호도: 검정(111)> 빨강(107)> 회색(104)> 갈색(59)> 자주(53)> 파랑(41)= 노랑(41)> 초록(23)= 하 양(23)> 분홍(9) 대표적인 3 가지 색: 검정> 빨강> 회색 특징은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색에 대한 선호도와 부정적인 색에 대한 선호도가 대 조적인 관계를 이루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감성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선호색은 매 우 복합적인 요소에 의해 구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구결과 해석 성별 사례 남성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분홍 자주 하양 회색 검정 갈색 기권 총계 희망 행복 불안 따분 놀람 슬픔 고통 분노 평화

15 고독 성별 사례 여성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분홍 자주 하양 회색 검정 갈색 기권 총계 희망 행복 불안 따분 놀람 슬픔 고통 분노 평화 고독 남녀에 따른 긍정적인 색 남자 vs 부정적인 색의 비율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분홍 자주 하양 회색 검정 갈색 총계 긍정 부정 긍정적인 색의 선호도: 하양(54)> 초록(30)> 노랑(21)> 파랑(18)> 빨강(14)> 자주(3)> 분홍(2)> 갈색(1)> 검정(0) 대표적인 3 가지 색: 하양> 초록> 노랑 부정적인 색의 선호도: 검정(54)> 회색(51)= 빨강(51)> 갈색(30)> 노랑(19)= 파랑(19)> 초록(11)= 하양(11)> 분홍 (4) 여자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분홍 자주 하양 회색 검정 갈색 총계 긍정 부정 긍정적인 색의 선호도: 하양(60)> 초록(32)> 노랑(23)> 파랑(17)> 빨강(15)> 분홍(4)> 자주(3)> 갈색(2)> 검정(1) 대표적인 3 가지 색: 하양> 초록> 노랑 부정적인 색의 선호도: 검정(57)> 빨강(56)> 회색(53)> 갈색(29)= 자주(29)> 파랑(22)= 노랑(22)> 초록(12)= 하양

16 (12)> 분홍(5) 대표적인 3 가지 색: 검정> 빨강> 회색 대표적인 부정적 색으로 검정을 선택한 것은 남자와 여자 모두의 공통적인 내용이 었다. 에바 헬러(2002: 181) 에 의하면 종말의 색으로 무채색 계열인 검정과 회색, 흰 색을 예로 들었으며, 검정(56%)> 회색(15%)> 흰색(12%) 을 지적하였다. 헬러는 흰색- 회색- 검정의 무채색의 스펙트럼에서 부정적인 감성의 이미지를 탐색했고, 종말의 색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설문 연구를 통해 확인한 결과 대표적인 부정적 색으로 검정과 회색이 선택된 것은 동일했으나, 흰색은 주요한 부정적 이미 지의 감성을 대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빨강색이 부정적인 색의 이미지를 반영하 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헬러의 설문 조사가 독일 전역에서 다양한 직 업에 종사하는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는 사실은 표본 대상이 상당히 많음 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 대상이 독일에 국한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멕 시코의 사례와 차별적인 오차가 있을 수 있는 개연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결과적으 로 빨강에 대한 감성 인식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정서자체가 다른 것은 아닐 수 있지만, 세부적으로 독일인과 멕시코인 사이에 눈에 띄는 차이가 있 을 수 있다는 것이다. 6. 참고문헌 [ 저서] 금강기획 ( 편집)(1995). 색채와 마케팅( 조풍삼 감수). 금강서원 : 서울. 박종서(1994). 라면에서 항공모함까지 Color 로 승부하라. 도서출판쟁기 : 서울. 윤일주(1974). 색채학 입문. 민음사: 서울. 21 Seiki Kenkyuukai(2003). 하룻밤에 읽는 색의 문화사( 정란희 옮김). 예담: 서울. Birren, Faber(1985). 파버 비렌의 색채심리 ( 김화중 옮김). 동국출판사 : 서울. Eva Heller(2002). 색의 유혹. 재미있는 열세가지 색깔이야기 I, II( 이영희 옮김). 예담: 서울. Mahnke, Frank(1999). Color, Envirment, and Human Response. 색채, 환경, 그리고 인간의 반응( 최승희/ 이명순 옮김). 도서출판국제 : 서울. Steiner, Rudolf(2003). 색채의 본질( 양억관/ 타카하시 이와오 옮김). 물병자리 : 서울. [ 논문] 서성희, 천정임. 색채가 브랜드 가치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시각디자인학연구. 커뮤니 케이션디자인학회 (1). 장휘숙. 발달단계에 따른 색채기호와 색연상에 관한 조사연구. 인문학연구. 충남대학교 인 문과학연구소 (1)

17 브라질 일상 언어에서 드러나는 사회적 편견 - gíria 1) 를 중심으로- 임두빈 1. 들어가는 말 어느 누구도 일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일상이라는 말은 자명한 것으로 다가온다. 그만큼 일상의 의미는 누구에게나 일정정도 자명한 것으로 이해되 며, 새삼스럽게 학문적인 연구대상으로 접근할 필요성을 느낄 수 없는 개념 혹은 대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당연시된 자명성속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인문사회학적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려는 목적을 가지면서, 또한 이를 어떻게 브라질이라는 해외지역( 우리 가 아닌 타자를 대상으로 한) 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고자 한다. 우리가 자신이 아닌 타자의 일상을 본다는 것은 우리가 지닌 여러 가지 지적능력이나 오 감을 통해 관찰자로서 그들의 일상을 보고 접하고 느낀다는 의미이다. 물론 해당 사회의 구 성원으로서 관찰자뿐만 아니라 참여자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방향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본 연구는 실천적인 한계점을 인정하고 관찰자로서의 입장에서 참여하는 제한을 수용할 것이 다. 이처럼 관찰자의 입장에서 관찰자와 유리된 어느 사회의 일상을 분석함에 있어서 시간 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접근하기 위해서 그 일상을 재현하고 재생산하고 분석하고 피 드백을 줄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은 언어(linguagem) 이며, 특히 분석층위에서 사용하는 메타 언어가 아니라 코퍼스 차원에서 접근해야 될 언어가 바로 일상 언어이다. 이처럼 우리가 연구대상으로 다루는 언어는 일반언어학에서 다루는 학문적 대상으로 추 상화된 언어 또는 언어모델이 아니라 개인의 일상생활과 사회적 집단의 구조화된 경험들에 서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언어행위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현실세계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의 사결정 과정에 있어서의 언어의 역할에 관한 지식 을 탐구하는 것이고 동시에 언어가 사용 되는 다양한 층위와 맥락을 고찰하는 것이다 2). 우리는 한 언어공동체에 속한 화자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떤 특정한 언어사용이나 표현을 통해 일반적이지 않은 어떤 특별한 사회 심리적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각자의 경 험을 통해 안다. 사실 우리가 언어 라고 부르는 대상은 중층적인 구성물이다. 각종 지리적 방언뿐만 아니라 사회적 방언의 중층적 구성물인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의 언어를 보 1) gíria 를 우리 용어와 이 글의 맥락에서 볼 때 속어 로만 한정 지을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일단 외국어 표기로 사용한다. 2) 실제 giria 에 대한 연구는 언어학, 사회언어학, 언어사회학, 민족지학, 언어역사학 등 다른 인문학들 간의 학제 간 연구를 요구한다. 수집된 코퍼스들은 언어학자들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관점의 각도에서 인류학자, 사회학 자, 역사학자들에게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18 는 기본적인 접근방향은 전술한 바와 같이 추상적인 모델로서의 단일 언어가 아닌 언어의 복수성을 상정한다 3). 그런 관점아래, 본 연구에서는 브라질 포르투갈어들 의 일상 언어들 가운데 하나로써 속어나 비어, 특정집단의 전문어인 은어를 포괄하는 giria' 를 연구대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2. gíria의 정의와 연구방향 giria 4) 란 사전적 의미로 어떤 특정집단이나 사회계층, 전문 직업군에서 사용하는 언어 현상을 가리킨다. 인간사회에서 나이, 직업이나 종교, 혹은 소속된 사회계층의 종류에 따라 분류된 각각의 집단은 사회적인 의사소통에 있어 모두가 사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 외에 자기 집단안의 구성원들끼리만 통용되는 폐쇄적인 언어자원을 생산하고 공유한 다. 이런 특질의 중심에 본 연구의 대상인 giria 가 있다. giria는 단어형태뿐만이 아니라 문 장, 감탄사 등 여러 형태가 존재하지만 주로 어휘부를 통해 나타난다. 어휘는 언어를 구성 하는 여러 가지 구조 중에서 언어변이형들과 변화를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언어 요소 중의 하나이다. 어휘는 어떤 사실이나 과정, 대상과 인물들을 가리키는 지시 기능뿐만 아니라 새 로운 사회변화를 단어로 반영할 수 있는 열린 체계를 가지고 있어 사회가 새로운 개념을 갖 게 되면 그 개념을 표현해야 할 언어가 어휘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 또한, giria 에 대한 대표적인 선행연구들을 살펴보면, 그를 생성 관점에서 분석한 연구 (Souto Mairor e Barreto) 와 언어적 사회적 편견의 관점에서 분석한 연구(Preti; Bagno) 로 나눠진다. 본 연구는 giria의 어원이나 생성 과정에 대한 연구보다는 사회의 다양한 계층 안 에서 의사소통을 통해 빈번하게 사용되는 데 불구하고, 규범언어에서 벗어나 있고 때때로 의미파악이 쉽지 않은 언어변이 차원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편견에 주목하고 있다. 이 같은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각종 일상 언어에서 발견되는 giria에 대한 문 법적, 언어학적, 교육학적 관점을 간략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지만, 본 연구에서는 문어를 바 탕으로 규범언어사용을 우선하며 그 언어의 대중파급력이 큰 브라질의 주요 언론매체에서 제시하는 작문지침 뿐만 아니라 그 매체에서 giria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조사함으로써 브라질 일상 언어문화가 차지하고 있는 현 주소와 의미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본 다. 3. 구어성과 문어성의 사이 giria 는 기본적으로 구어를 바탕으로 생성된 언어이다. 인류사의 발전과정을 보면 인간 은 글을 쓰기 훨씬 이전에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모든 인간사회의 기본 특 성으로 구어성을 인정하고 있다. 인류의 원조인 호모사피엔스가 3만에서 5만 년 전에 존재 한 것으로 추정되는 반면, 최초의 문자는 기껏해야 6천년 전에 쓰인 것이 전부였듯이 문어 성과 구어성은 상당기간 동안 각자 독자적인 특징을 유지해왔던 과거가 존재했었다. 하지만 3) 브라질이 오늘날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의 중심에 학교에서 가르치는 언어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 간 간극의 차이가 심각하게 자리 잡고 있다. 4) 포르투갈에서는 calão 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19 전자문명의 도입과 이를 통한 다양한 매체의 발달로 문어적 특성과 구어적 특성은 상호간에 보다 활발한 교류를 하게 되었고, 이동통신기기의 발달로 인한 문자사용의 활성화를 통해 그 경계의 모호함까지 불러오고 있다 5). 실제로 오늘날에는 음성적 혹은 자소적으로 표현되 는 기준에 따라 구어적 또는 문어적 텍스트인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현대사회의 언어 활동 중에는 개념적으로 두 표현이 복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분법만으로 문어성과 구어성 규정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6). 따라서 문어성과 구어성의 관계는 사실 양자 간의 종속의 관계보다는 상호작용에 의한 언어변화 현상으로 파악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 각된다. giria가 문어로 표현되는 경우는 한정된 목적을 통해 언어자원으로 재현시키는 경우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녹취된 구어에 대한 분석이 필요할 때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전사 (trnscrição)작업을 통해 문자로 표기하는 경우와 작가와 독자 간의 더 긴밀한 유대감을 불 러일으키기 위해, 신문기사 등에서 현장감을 높이기 위해서, 문학작품이나 극작품에서 현실 감을 배가시키기 위해서, 배운 사람다운 어법을 사용하는 화자들이 사용하는 단어들과 구 별 짓기 위해 신문, 잡지 등 미디어에서 해당 낱말( 속어) 를 따옴표로 처리하는 방법을 동원 하기도 한다. 문어형식으로의 태생적인 결핍과, 많은 경우의 의사소통에 있어서 그 사용에 대해 제약 이 발생하는 환경은 giria를 해당 사회 안에서 편견에 직면하게 되면서 언중들에 의해 거부 되거나 기피되는 부정적인 언어적 태도를 생성해왔다. giria를 알거나 사용한다는 말은 바로 그 화자가 사회적으로 소외계층의 세계에 속한다는 의미로 다시 풀어볼 수 있다. 'giria' 라는 언어사용의 생태환경은 그 사용자가 속한 생태환경과 특정한 활동들( 사회적으로 규정된 불 법적인 행동을 포함) 을 통해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배제된 집단들의 삶에서 찾아볼 수 있 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공통의 언어자원을 암호처럼 사용되는 단어로 재창조하여 자신들의 공동체를 외부로부터 유리시키려는 목적을 수행한다. 역사적으로 중세시대에 상인들이 자신 들의 안전과 보안을 위해 비밀코드를 만들어 사용했던 것과 같은 동기와 목적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변두리 세계나 상인들이 사용한 giria는 인도에서 역사적으로 차별받아 온 ' 집시' 들의 노마드(nomade) 를 통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퍼져나가게 되었다. 15세기 일어난 인쇄술의 혁명은 당시 각기 고립되어 있던 부족사회를 폭발시켰으며 구어세 계와 문어세계의 역전을 불러일으켰다. 책의 보급을 통해 개인주의뿐만 아니라 보수주의까 지 발생시켰고 사람들은 인쇄된 글을 보고 자기네 언어에 대한 의식을 갖게 됨으로써 민족 주의를 낳았다( 올리비에, 1995: 182). 이러한 인쇄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giria 가 아주 최소한의 빈도로 문어 형태를 빌어 나타났다는 사실은 그 위와 처우를 대변할 수 있다. giria가 지닌 사회적 지 giria의 원래 특징은 특정 집단의 보안 유지를 위해 암호화된 어휘들을 통해 일상언어 5) 대표적인 SNS(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 의 하나인 Twitter 는 입력글자를 140자로 제한하고 있어 전통적인 문어 성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주체이기도 하다. 6) 학술강연의 경우, 음성적으로 언어표현이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언어영향성 에 따른 기준으로는 문어적 으로 구분된다. 사적인 편지의 경우 문자 형태이지만 언어표현의 상황에 있어서는 구어에 가까운 언어표현으로 평 가된다

20 (linguagem comum) 에 반하는 위치에 서 있었다. 또한 반정부 시위나 게릴라 조직처럼 반 체제 활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giria를 폐쇄적이면서 공격성을 띠고 반사회적으로 유표되는 특성의 언어로 낙인찍히면서 ' 정당한' 언어에서 giria를 배제시키게 되었다. 그와 병행해서 giria를 사용하는 일단의 사회 계층이나 집단을 그 언어사용만으로 사회 안에서 기피대상자로 낙인찍히기도 하였다. 이처럼 giria는 역사적으로 사회에서 소외 된 계층들로부터 생성되었고 이러한 기원이 다른 사회계층들에게 차별과 편견을 낳아온 것 이다. 브라질에서 giria 에 대한 관심을 연대기적으로 살펴본다면, 20세기 말 동안 브라질이 겪은 정치 사회 경제적 혼란을 고려해야 한다. 군사독재정권시기였던 70년대에는 giria의 사 용이 당국으로부터 엄격하게 금지 당했으며, 90년대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금제가 풀리게 되 었고 미디어라는 수단을 통해 점차적으로 사회 속에서 통용되는 일상어로 유임되면서 자연 스럽게 언어변이형의 한 부분으로 학교 및 교육시스템에서 수용되기 시작했다. 3. 일상어로의 편입 다양한 집단에서 사용하는 giria 의 복수성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대상은 일상적 giria 에 있다. giria와 같이 어느 특정한 집단 내부끼리만 공유하는 어휘들은 코드화된 특징을 간직 하고 있으며 유희적인 측면까지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어휘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일 부는 다른 말들과 쉽게 섞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일반어로 편입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한 다. 이처럼 원래의 정체성을 잃게 되면서 일반어에 편입된 이런 어휘들을 일상적 giria 라고 부른다. 이런 말들은 특정 집단 안에서만 통용되던 폐쇄적인 특성을 탈피하여 더 다양한 층위의 의사소통 상황에서 사용되면서 일상어 가운데 널리 퍼지게 되었다 7). giria 어휘 사용으로 인해 빚어진 사회적 편견의 경감에 대한 직접적인 동인으로 언론매체나 현대 작가들이 자신 들의 작품에서 giria 를 폭넓게 사용한데서 찾아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언어의 다양성을 옹호하는 사회언어학의 대두에 힘입어 의사소통의 상황과 맥락을 무시하는 언어적 차별을 범죄시하는 경향을 통해 그 인식이 새로워졌다. 이렇듯 giria는 사회언어학 이론을 증명이라 도 하듯 사회적 방언들과 섞여 사용되면서, 심지어는 그를 배척하며 차별에 앞장섰던 지식 층 화자의 글과 대화에서조차 그 존재를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NURC/SP 8) 에 서 자료로 녹취한 총 여섯 개로 이루어진 대화에서 대학 학력을 가진 화자로부터 giria 사용 기록이 조사된 결과가 나왔다. 84건의 7) 오늘날 인터넷 기반으로 한 모바일 기기를 통해 더욱 더 확산의 폭이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몇몇 보수적인 학자들은 이러한 측면을 중시하여 giria의 독자적인 자생 능력을 부정하면서 단순히 일반적인 어휘화 과정으 로 간주하기를 선호한다(Caradec, F. 1988). 8) Projeto de Estudo da Norma Linguística Urbana Culta de São Paulo: 1964년 멕시코 UNAM 대학의 Juan Lopes Blach 교수의 제안을 바탕으로 시작되어 1969 년부터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수행된 ' 상파울로 도심지 규범언어 연구 프로젝트. 브라질 NURC 프로젝트는 상파울로를 포함하여 브라질 내 주요 5개 도시를 대상으 로 이루어졌다

21 "84건 중 88% 에 해당하는 74건이 두 개의 대화에서 발생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 고 이는 우리가 예상한 바대로 정보제공자들 중 가장 젊은 연령층대인 25 세~35 세에서 주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7시간 27분이라는 녹음 분량에 비하면 적은 빈도수이지만 정보제공자들이 녹음사실을 알고 있었던 만큼 의식적인 제어가 내포되어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이 실험을 통해 giria가 일상언어에 수용되기 시 작한 것이 1970년대부터 임을 알 수 있었지만 실제로 표면화된 것은 1980년대 이후부터이다(Preti, D. 1989: ). NURC 연구를 참고할 때, 브라질에서는 90년대에 들어서서 이미 상당수의 giria와 그 사용에 대한 편견이 점차적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상당수의 giria가 자신의 기원이 되었던 특정 사회계층의 범주를 벗어나 일상 언어의 일부로 귀속되어 별다른 편견 없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과거에 giria의 일원이 었던 어휘들을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려는 노력도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인터뷰 같은 형식을 통해 드러난 언론매체에서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회 내에서 영향력 있는 직 급이나 위치에 있는 엘리트 계층 역시 었다. 그 대표적인 예들 제시한다면: giria로 분류되는 어휘들을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되 교수 Não adianta o marido ou a mulher reclamar um milhão de vezes, alerta o professor Aílton. Ninguém convence ninguénl argumentando que a casa está uma bagunça." (Veja, 11/08/99, p. 104). TV 진행자 "Por fim o apresentador Cid Moreira, no Fantástico: 'Príncipe Negro das noites de domingo, você é espada?' trovejou Cid. 'Claro! Além de espada sou sortudo."(veja, 04/08/99) Que isso, meu. Tá me estranhando? Eu sou espada." 신문기자 "Mas acredito que os outros 35 episódios sejam mesmo fruto da ação de quem curte o prazer sádico de ver o circo pegar fogo. " (Veja, 04/08/99) 하원의원 "Referiu-se ern. seguida a uma nota que apontava a existência de maracutaia legítima na decisão do Senado" (O Estado de S.Paulo, 15/03/97, p. A-18) 경제학자 "O exemplo mais recente foi o do presidente do BNDS, manifestando-se contra a 'abertura babaca', desconhecendo que abertura, como democracia não

22 admite qualificativos. (... ) Mas nem só de babacas compõe-se o governo." (Folha de S.Paulo, 10/04/97) 고위직 경찰 "Em seu passaporte consta que ele chegou ao Brasil em 24 de maio. Geralmente as mulas só ficam por aqui por cerca de quatro a cinco dias." (Folha de S.Paulo, 06/10/96) Será que você não me entende, sua mula! 장관 "O que foi feito recentelnente não foi - como dizem os mais afoitos e açodados de sempre - um liberar geral, um soltar a franga no que diz respeito à cobrança de tarifas bancárias, disse Malan." (Folha de S.Paulo, 06/09/96) 90년대를 넘어서서 이런 일상적 giria의 사용 및 활용의 폭이 사회 안에서 점점 커지고 있으며, 특히 대도시 환경과 일상적인 언어활동에서 이런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 여기에는 일상과 관련이 깊은 대중문화의 포괄적인 확산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사실상 대중문 화의 형성과 확산에는 언어의 획일성이 전제된다. 드라마들, 뉴스들, 코미디 프로들, 다큐멘 터리, TV 일간 뉴스, 영화 자막, 광고 등은 항상 가능한 한 개별성을 강조하지 않는 동일한 표준형 같은 수신자로서 대중 을 염두에 두고 있다. 9) 그렇기 때문에 고학력을 지닌 사람 들만을 겨냥한 드라마나 저 학력자 시청자만을 위한 텔레비전프로 편성이 중심이 될 수 없 다 10). 이는 모든 사회계층이 접근할 수 있도록 더 최근의 현실에 연결된 더 즉각적인 자신 의 관심사들 안에서, 모든 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통해 폭 넓은 테마를 만들어내게 필 요한 것이다. 바로 거기에 언어를 통한 문화적 획일성의 과정이 작동한다. 배운 이든, 못 배 운 이든 간에 동등한 레저와 정보를 모두가 이해할 수 있고 그 어떤 반향이나 의문을 야기 하지 않는 하나의 표준 언어를 통해 제공받는다. 거기에다 구어와 문어체가 섞인 언어습관 을 가진 미디어의 언어적 규범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언어유행을 창조하며, 당대의 가장 원 형적이고 표현적인 방식을 통해 giria를 비롯하여 구어로 탄생했던 비규범 언어들이 당당하 게 문어세계로 편입되는 정도가 아니라 미디어의 힘을 통해 예기치 못한 사회적 명성을 얻 기도 하는것이다. 이런 현상은 무가지 신문이나 Notocias Popular와 같은 소규모 지역 신문뿐만 아니라 상파울로주의 권위 있는 일간지 O Estadao, Folha de S. Paulo, Jornal da Tarde 및 브라 9) 이때 대중 이란 서로 고립되어 있으면서 양방향이 아닌 단방향에서 전언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많은 개인들 을 의미한다. 한 가지 예로 우리나라 교육방송 EBS 의 경우, 다큐멘터리을 편성할 때, 중학교 2학년 수준의 이해력을 기준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한다고 한다. 10) 물론 오늘날 인터넷의 발달로 능동형 양방향 TV이나 맞춤형 콘텐츠로 무장한 대중매체들이 등장하고 있지 만 위에서 전술했던 미디어의 타켓으로서 대중 이라는 근간을 완전히 뒤집을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23 질을 대표하는 시사주간지 Veja 에서 그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O povo quer grana no Bolso!" (Estadao, 04/09/2010) Quem der aquela espiadinha no site poderá encontrar, por exemplo, o perfil da carioca Sonia Regina Lins Louza, de 57 anos. Peruaça assumida, ela adora rir, fofocar com as amigas e pegar a estrada ouvindo música. (O Globo, 18/10/2008) Até a bola rolar, a Copa de 2014 vai dar muito bafafá. (E acho que depois também...) O primeiro deles está no ar há algum tempo: a polêmica em torno do Morumbi, que pretende... (Estadao, 02/04/2010) Sem Morumbi na Copa, SP muda plano do metrô: chefe de comitê do Mundial vê risco de maracutaia em arena de Pirituba (Folha de S.Paulo, 18/06/2010) Bagunçado, Mercosul deixou de funcionar como projeto de integração. (globo.com 18/01/2007) Timão cata o caneco na porrada. Aos 30 do 2 tempo Edílson humiihou. o Verdão pirou. O pau comeu e o jogo não acabou." (Notícias Populares, 21/06/1999) Rafael Coelho celebra gol 'sai uruca' e já planeja os que vêm pela frente(globo esporte 01/07/2010) No evento com PSDB, DEM, PP e alguns deputados do PMDB, Serra ficou numa saia justa quando o público começou a gritar Yeda no momento que o presidenciável pedia votos para os aliados gaúchos. O presidenciável sorriu, elogiou Yeda e também o ex-prefeito José Fogaça (PMDB). (Folha de S.Paulo, 16/08/2010) "Q espaço era tão grande que a saia nem ajustou, quando os ex se encontravam - se é que encontravam..."(folha de S.paulo, 29/07/99) É diferente de você só querer sair, fazer fuzuê, concorda Valéria, 19 anos.(jornal Hoje 05/05/2007)

24 위 예문에서 등장한 grana( 돈), peruaço( 성숙한 여인), bafafa' ( 혼란), maracutaia( 사 기, 협잡), bagunçado( 어지럽힌), na porrada( 힘으로), humilhou( 멋지게 골을 넘기다), pirou( 미쳐버린), o pau comeu( 다툼이 있었다), uruca( 불행), saia justa( 스캔들), a saia nem ajustou( 스캔들이 없었다), fuzuê( 혼란) 와 같은 giria들은 이미 언론매체에서 문자 형태 로 수용되고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장하는 바는 giria가 안고 있던 편 견은 그 사용을 둘러싼 맥락( 독자의 종류, 테마별, 신문 혹은 잡지의 섹션별) 이 고려되면서 경감되며, 매체의 경우 독자와의 더 만족스러운 상호작용을 끌어올리는 목적 아래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변화는 한 언어가 지닌 복수성을 인정하는 동시 에 단일성과 규범에 의해 단죄되던 언어차별과 사회적 편견이 해소되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수준의 언어사용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터부시하는 보수적인 방 어기제도 같은 여전히 작동하면서 견제를 통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대형신문사들이 가사작성에 기준으로 내세우는 매뉴얼에 따르면, 실제로 giria의 사용이 규정을 뛰어 넘어 사용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역시나 아직은 그 사용에 제한 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브라질 대통령궁에서도 A4 크기로 138페이지에 달하는 맞춤법 및 문서에 따른 작문형식을 담은 백서가 사용되고 있다 11). "giria 와 구어체 언어. giria 사용을 피하도록 하라. 필요에 의해서 사용하게 되었 을 경우, 이탤릭체로 표기를 하라. 예를 들어, 경찰들이 사용하는 은어 같은 것을 다룰 때는 괄호 안에 그 의미를 표기하라: 'Paguei um bagulho(objeto qualquer), fumei um baseado(cigarro de maconha) e depois mandei(roubei) um carro'. 구어체와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giria 용어들에 대한 따옴표 표기는 생략될 수 있지만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되어야 한다. (Martins, E. 1997: 134) "giria- Folha de S. Paulo는 컬럼리스트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차원이나 연 설문을 표현할 경우를 제외하고 지면상에 da redacao, Folha de Sao Paulo, 2000) giria 의 사용을 피한다. (Manual geral 이렇듯 아직까지 언론매체 기사 작성에 있어 규범언어를 준수하는 언어순수주의가 아직 잔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엘리트들의 신문에서 존재하는 giria 는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는 폐쇄적인 성격의 사용 환경을 잃었다. 그러나 예를 들어, saia justa처럼 앞서 인용했던 단어들의 일부의 경우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 표현은 아직까 11)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룰라 현 브라질 대통령은 최종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인 만큼 그가 지닌 학력을 기준으 로 한 언어차별을 바탕으로 8 년간의 국정운영기간 내내 엘리트 계층의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올해 10월 대 선에 나선 주요 후보자들의 TV 토론에서조차 각 후보자들의 공약내용보다 후보자들의 언어능력에 대한 검증 을 대통령 자질의 잣대로 주요 언론에서 호도하는 현상이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청와대에서는 한글 맞춤법 / 문법 교정 소프트웨어 바른 한글 을 2009 년 납품받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도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박경리 선생의 빈소에 남긴 조문을 비롯하여 사회지도자 계층의 맞춤법이나 올바른 문법사용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25 지 밤 과 상류층 이라는 환경이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중매체에 사용된다 할지라 도 아직 일상어로 완전히 편입되지 못한 경우들도 아직 상당하다. 현지 뉴스매체를 읽다보 면 Martins(1997) 이 제시한 것처럼 괄호나 따옴표로서 표기된 어휘나 절들이 바로 giria에 서 일상어로 편입 중에 있는 언어를 나타내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giria 의 일상어 편입에 대한 또 다른 결과는 사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 형 사전들은 어휘로서 giria들을 수록하는데 인색한 편이지만 이미 일상 언어생활에 침투된 일상적 giria 의 어휘등재는 현실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브라질의 대표적인 국어사전인 Aurelio 도 각 개정판마다 해당 어휘에 대한 업데이트가 이루어지고 있고, 2004년 발간된 브라질 현대사전 의 경우 Aurelio에도 누락되어 있는 문어성을 획득한 구어 및 giria를 대 부분 수록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들이 구어에 근거를 둔 비규범 언어에 대한 편견과 인식 이 점차 달라지고 있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4. 맺는 글 사회현실을 적절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담론이나 실증주의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대신 보다 구체적인 현실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이 현실이란 바로 구성원들이 살아가고 있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해외지역연구에 있어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구성원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연구는 미시적일지라도 그만큼 구체적이고 현실성을 바탕으로 조명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회적, 경제적 요인을 아무리 객관화한다고 해도 그 사이에 숨겨져 있는 구성원들의 일상적인 삶은 밝혀내기 쉽지 않다. 이러한 차원에서 본 연구는 규범언어를 벗어나 일상 언어, 그 중에서 Giria를 주 연구대 상으로 삼아 언어활동과 관련된 사회적 편견과 이를 통한 구별 짓기에 대해 살펴보았다. 우 리는 비트겐슈타인이 염려했던 것과 달리 실제 현실 생활 속에서 많은 부정확하고, 표현상 으로는 비논리적 언어를 대하면서도 전혀 혼란 없이,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전혀 오해하지 않고 잘 사용하고 있다. 비트겐쉬타인이 무의미한 말(non-sense) 을 내뱉지 말고 차라리 침 묵하라 고 한 요구는 인간과 세계에 대해 지나치게 협소하게 한계 지웠고 언어적 인간의 능 력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브라질을 연구대상으로 삼았을 경우, 표준 언어(linguagem padrão) 에 대한 연 구가 정장을 차려있는 브라질 사람을 보는 것이라면, giria와 같은 구어를 중심으로 관찰한 다는 것은 일상에서의 캐주얼한 복장 혹은 속옷 바람의 브라질 사람들과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방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한 문화권 안에서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복식문 화처럼 표준언어와 비표준어도 처음에는 서로의 경계가 분명하게 구분되었다가 시간이 흐르 고 각종 생태환경의 변화를 맞이함에 따라 그 경계점에 대한 의미가 없어지는 경우를 적 giria' 를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 일상 끝으로, 우리가 giria와 같은 언어차별을 통한 사회적 편견에 대한 연구를 통해 경계해

26 야 할 부분은 브라질과 같이 역사적으로 균등하게 교육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소수 계층이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국어의 사용 안에서 조차 언어적 편견을 이 용한 구별 짓기 를 통해 소외계층들을 배제시키고 주변부로 밀어내는( 다시 말해서 발전 가 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또 하나의 국가내부에 존재하는 제국주의적인 모습이다. 외세에 의 한 식민지배의 역사가 시대가 단지 내부적인 식민지배의 판도로 바뀌었을 뿐인 셈이다. 언 어사회학적 관점에 볼 때, 근대국가와 민족주의 형성에 있어 언어의 역할은 막강했다. 15세 기 일어난 인쇄술의 혁명은 부족사회를 폭발시켰으며 구어세계와 문어세계의 역전을 불러일 으켰다. 사람들은 인쇄된 글을 보고 자기네 언어에 대한 의식을 갖게 됨으로써 민족주의를 낳았다( 올리비에, 1995: 182). 이처럼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니라 사회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불평등과 차별의 근원이기도 하면서 반면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도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12) 참고문헌 고종석(2007). 말들의 풍경. 개마고원 (2007). 감염된 언어. 개마고원 미우라 가스야(2005). 언어제국주의란 무엇인가. 돌베개 르페브르, 앙리(2005). 현대세계의 일상성. 에크리. 이진희(2003). 언어의 구어성과 문어성에 관한 연구. 독일문학 제85 권, pp 임두빈(2008). 브라질의 언어현실과 언어 사회적 편견에 관한 연구, 이베로아메리카 제 10권1 호, pp 올리비에(1995), 언어와 이데올로기. 서울: 역사비평서 크리스틴 케닐리(2009). 언어의 진화. 알마 BAGNO, Marcos(1999). Preconceito Lingüístico: o que é, como se faz; São Paulo: Loyola Borba, F. S(org.)(2004). Dicionário do Português Contemporâneo, Editora UNESP. BURKE, P. (1995). A arte da conversação. São Paulo: Editora da UNESP. MARTINS, E. (1997) Manual de redação e estilo de O Estado de S.Paulo. São Paulo: 12) 서울과 경기지역 고교생들로 구성된 평화를 사랑하는 청소년들의 역사모임 회원 5 명은 10개 중앙 일간지 ㆍ경제지 ㆍ인터넷 매체, 3 개 지상파 방송사가 기사에서 살색이란 용어를 계속 써 문제가 심각하다 며 지난해 (2009 년) 9 월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또 대형할인점과 여성 속옷업체 등 5개 기업에도 상품명과 설명에 살색 ㆍ스킨색 ( 피부색 ) 이란 말을 쓴다며 수정을 촉구했다. 한국인 피부색을 뜻하는 살색은 2002년 인종차별을 부추 기고 외국출신 이주민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인권위 의견표명 후 2005 년 기술표준원이 살구색 으로 그 이 름을 바꿨다. 그러나 역사모임 회원들이 살색 에 대한 인권위 의견표명 직후인 2002년 8월1일부터 7년 동안 18 개 언론사 보도내용을 검색한 결과 살색 표현을 쓴 사례는 607 건에 달했다. 주로 상품 소개와 영화평, 스 포츠ㆍ 연예 보도에서 많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인권위가 지난해 10월부터 실태조사에 나선 뒤 18개 언론사와 기업 모두 살색 표현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역사모임과 인권위에 보내왔다. 회원들은 해당 언론과 기 업이 살색 이란 말을 쓰지 않겠다는 입장을 인권위에 전달한 사실을 듣고 지난달 말 진정을 취하했다 고 말 했다. 출처: 한국일보 사회면 < 인종차별 언어 살색 아직 쓰네요 > 2010/05/

27 O Estado de S.Paulo. Novais, F. A(1998). História da vida privada no Brasil 1. Companhia das Letras Preti, D(1984). A Linguagem Proibida, T.A Queiroz (1989). Norma e variedades lexicais urbanas. In: CASTILHO, A.T. (org.) Português falado culto no Brasil. Campinas: Editora da UNICAMP, p (Org.)(2000). Fala e Escrita em questão. USP: Humanitas Livraria Silva, D(2004). De Onde Vêm as Palavras. São Paulo: A Girafa. Estadao, 02/04/2010 Estadao, 04/09/2010 Folha de S.Paulo, 10/04/97 Folha de S.Paulo, 06/10/96 Folha de S.Paulo, 06/09/96 Folha de S.Paulo, 18/06/2010 Folha de S.Paulo, 16/08/2010 Notícias Populares, 21/06/1999 Jornal Hoje 05/05/2007 O Globo, 18/10/2008 globo.com 18/01/2007 globo esporte 01/07/2010 globo esporte 01/07/2010 Veja, 11/08/99, p. 104 Veja, 04/08/99 Veja, 04/08/99 바른한글:

28 < 기타> 브라질 시사주간지 Veja 2177 호 (2010년 8월11 일) 대선특집 중에서 이명박의 '2MB' 맞춤법은 계속된다 :

29 http ://w w w.p ressian.com /article /article.asp?article _num = & Sectio n=

30 브라질의 사회변화와 개신교의 성장 김영철( 중남미지역원 HK 교수) 들어가면서 브라질의 전통적 신앙체계 1) 식민사회의 가톨릭과 아프로-브라질 종교 2) 독립과 개신교의 등장 브라질 개신교의 성장 1) 종교 인구 변화 추이 2) 종교 인구 변화의 지역적 특성 3) 개신교 인구 성장과 구성변화 브라질 개신교의 성장 원인과 특성 맺음말 1. 들어가면서 최근 브라질은 안정적인 빠른 경제성장을 기록하면서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 다. 이런 변화는 1990 년대 이후 절차상의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의 공고화, 정치 절차의 예 측 가능성 향상 등의 정치적 안정, 만성적인 인플레이션 안정, 외채의 안정적인 운영, 경제활동 의 활성화, 국민 소득 향상, 삶의 질 개선 등의 경제성장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국민 복지 증 진, 사회 안전망들의 확충, 초등 교육을 비롯한 교육 기회의 확대 등과 같은 사회부문의 안정 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21 세기 브라질 은 20 세기 브라질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현 단계의 브라질 사회변화가 생활변화로 이어지고 있으며 특히, 종교 영역에서 그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 고 있다. 브라질 지리통계원(IBGE) 1) 의 종교 인구 구성 변화를 보면 어떤 사회변화보다도 더 역동적 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91년 82.97% 였던 가톨릭 신도가 2000년에는 73.57% 로 10년간 약 9.4% 정도 감소했다. 반면 개신교 신도들은 8.98% 에서 15.41% 로 6.43% 정도 증 가했다. 아직 2010년 인구센서스 결과가 진행 중이지만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되는 내용을 보면 이미 전체 인구의 신교의 성장은 25% 가 개신교도일 것이라는 추측성 기사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브라질 개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실제 그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난 것은 역시 1990 년대이다. 정치 경제적 안정, 신자유주의의 영향, 문화( 종교) 다원성의 증대, 종교 활동을 보장하는 제도 정비와 같은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요인들에 대한 분석은 2000 년 인구센서스가 발표된 이후 많은 학자들이 진행해 왔다. 크게 수요자 측면과 공급자 측 면으로 나누어 연구가 진행되어 왔으며 이 연구결과의 대부분은 그 접근방법이나 분석이 적절 1) 현재 2010 년 인구센서스가 진행 중인데 연말에 결과가 발표될 예정임

31 한 것으로 평가된다. 수요자 측면에서 사회적 아노미 상황, 대규모 의 종교적 개종, 정신적 깨달음과 급격한 사회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이 사회 경제적 혹은 문화적 이탈을 극복하기 위 해 새로운 종교를 찾게 된다고 주장하고 공급 측면에서는 사회 환경의 변화와 탈규제로 인 한 종교적 서비스 제공자가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특정한 이론적 접근보다는 브라질의 사회 변화와 개신교의 성장을 사적 접근을 통해 역추적하고 현재적 통계자료들을 활용하여 브라질 사회변화 과정에서 종교인구의 변화, 개신교 성장과 특성 그리고 그 변화의 원인을 밝혀보고자 한다. 브라질 종교의 전통적인 체제 와 개신교의 성장에 대해 살펴보고, 개신교 성장의 특성을 분석하여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분 석할 것이다. 2. 브라질의 전통적 신앙체계 1) 식민사회의 가톨릭과 아프로-브라질 종교 브라질의 종교역사는 포르투갈인들이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인 도착이전의 종교 역사에 대해서는 기록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본 연구에서 그 시기까지 언급하는 것은 연구의 범위를 벗어난다. 브라질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종교는 재론의 여지없이 가톨 릭이다. 1500년 까브랄이 브라질에 도착하여 최초로 가톨릭 미사를 가졌으며 1549년 총독 부임 과 함께 예수회 마노엘 다 노브레가(Manoel da Nóbrega) 신부가 브라질에 도착했고, 4년 후에 주제 지 앙시에따(José de Anchieta) 신부가 도착하여 가톨릭이 식민 사회에 뿌리내리기 시작 했다. 이후 가톨릭은 식민지에서 포르투갈인임을 나타내는 상징인 동시에 도덕적 가치 기준이 었다. 포르투갈 정착자들은 가톨릭의 직접적인 가르침과 조상들의 신앙과 관습을 통해 종교적 인 해답을 찾았다(De Azevedo, 1950). 가톨릭 교리는 예수회의 선교 활동과 교육을 통해 확산 되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식민 사회는 포르투갈 조상의 가치 기준에 따른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세계관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예수회의 근본적인 목적은 원주민과 농촌 지역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전도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예수회는 원주민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헤두싸웅(Redução) 과 정착마을(Aldeia) 시스 템을 활용했다. 헤두싸웅은 브라질 식민지에 세운 원주민 공동체로 개종된 원주민들을 보호하 며 경작법과 간단한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었으며 식민 정부의 노동력 동원에 즉각적으로 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헤두싸웅은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식민지에 건설되었으며 레둑시 온(Reducción) 혹은 꽁그레가시오네스 (Congregaciones) 라고 불렀다. 예수회는 평등한 사회를 형성하기 보다는 가톨릭의 정통성이 유지되고 평화와 번영을 보호하는데 주력했다. 이러한 과 정에서 가톨릭은 원주민과 흑인들의 종교 의식들을 일부 수용했다. 까르디엘 신부에 따르면 과 라니 공화국(Guaraní Republic) 2) 에서는 공동의 토지소유와 생산이 이루어졌으며, 원주민들의 문화가 보호되거나 존중되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과 유럽의 의식과 가치만이 수용되는 사회였 다. 또한 예수회는 원주민 보호와 포르투갈인들에게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적용하여 잦은 마찰 을 빚었다. 포르투갈의 폼발(Pombal) 재상은 종교적인 이유와 원활한 식민 정책을 추진하기 위 해 예수회를 추방했다. 그러나 예수회 추방은 브라질 내의 모든 가톨릭 교회의 추방을 의미하 지는 않았다. 식민 기간에 도미니크회, 아우구스트회, 프란시스크회, 베네딕트회, 오라토릭회, 카르멜회, 마케도니아회, 카푸친회 등이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3) 가톨릭화는 지속되 2)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미션을 지칭하는 말

32 었다. 식민 사회에는 가톨릭, 원주민과 아프리카인의 신앙과 관습이 공존했으나 4) 가톨릭이 브 라질 사회와 문화를 지배했다. 가톨릭에서 이용되는 후원제 시스템을 비롯한 다양한 체계가 브 라질 사회에 남아있다. 식민사회는 엘리트들의 가톨릭과 노예들의 아프리카 종교가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아프리 카 종교는 노예가 유입되면서 브라질에 소개되었다. 흑인 노예 유입은 아프리카의 문화적 전통 들이 브라질로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특정한 아프리카 부족들의 풍습과 가치 체계를 이루고 있는 종교는 브라질에서 흑인들의 결속력을 강화시켜주는 가장 큰 매개체였다. 1550년 대부터 1770 년까지 브라질로 유입된 흑인들은 대부분이 서부 아프리카 출신이었다. 1700년 초 반에는 기네 저지의 많은 흑인들이 북동부 지역으로 유입되었는데 이 영향으로 만딩가와 깔룬 두 부족의 볼사 지 만딩가(Bolsa de Mandinga) 와 깔룬두(Calundu) 와 같은 아프리카 종교가 나 타나게 되었다. 만딩가와 깔룬두는 19 세기말 흑인들의 도시화를 통해 깡동브레로 성장했다. 만 딩가는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신앙으로 물신 숭배에 기초하고 있었다. 만딩가는 식민 초기 세 네감비아에서 유입된 흑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신앙이었지만 유럽인, 아프리카인과 원주민 의 문화적 관습을 혼합하고 있었다. 피에츠(Pietz) 는 만딩가의 물신숭배적인 특성을 물질성, 역 사성, 추상화, 인격화로 정의했다. 반면, 깔룬두는 집단적인 성향이 강한 신앙으로 깡동브레의 전신으로 평가되는데 춤과 음악적인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는 신앙으로 18세기 미나스 제라이 스에서 출현했다. 깔룬두의 신앙 행위는 북, 탬버린, 작은 타악기의 일종인 깐사스(Canzás), 석 관 악기의 일종인 보찌자스(Botijas) 와 캐스츠넷을 사용했기 때문에 식민자들에게는 시끄럽고 이교적인 행위로 평가되었다. 볼사 지 만딩가와 깔룬두는 포르투갈과 브라질에서 마력의 표현 으로 이해되었다. 대중 문화는 포르투갈과 아프리카 부족 문화의 혼합으로 지배 문화와 연계되 어 있었으며, 가난한 시민, 흑인 노예, 도망 노예들이 상호 교류하면서 등장했다.( 김영철, 2003:63) 또한 움반다(Umbanda) 와 깡동브레(Camdomblé) 가 확대되면서 제설혼합주의적 특성이 아프로 브라질 종교뿐만 아니라 지배 문화였던 가톨릭에서도 수용되었다. 이러한 특성은 노예제 이후 가 톨릭이 흑인들의 이중적인 종교 생활을 허용하면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제설혼합주의는 어 떤 종교적 억압이나 상호 작용을 통해 믿음과 관습이 대립되는 상황에서 서로 다른 종교가 통합 과 병합을 일으키는 종교의 성장 발전 과정으로 파악할 수 있다. 움반다와 깡동브레는 아프로 브 라질 종교의 두 전형을 보여준다. 움반다는 브라질화된 아프리카 종교인데, 예배 형식이 유럽적인 특성에 아프리카 종교를 혼합 것이다. 반면, 깡동브레는 아프리카적인 원리와 예배 형식에 유럽적 인 예배 형식과 가톨릭의 성인을 혼합하고 있어 아프로 브라질 종교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 준 다. 여기서는 움반다와 깡동브레의 분석을 통해 아프리카 종교의 브라질화를 파악한다. 이와 같이 식민 사회 종교는 로마 가톨릭과 아프리카 종교로 구분되어 있었다. 로마 카톨릭은 포르투갈인의 지배 문화인 백인 문화와 가치를 지탱하고 있었고, 아프리카 종교는 피지배 문화인 3) 프란시스크회는 리우 그란지 두 노르찌 (Rio Grande do Norte) 와 알라고아스 (Alagoas) 의 해안 지대에서 선교 활 동을 전개했다 년 상비센찌, 1589 년 리우 데 자네이루, 1597 년 올린다에 선교지를 건설했다. 오라토릭회는 이탈리아의 종파로 바이아에 정착하여 전도 활동을 전개했다. 마케도니아회는 16 세기에 도착하여 올린다 (Olinda) 에 선교지를 건설했으며 원주민 언어를 가르쳤다. 이후 브라질 전역으로 선교지를 확장했다. 프랑스의 카푸친회 는 상프란시스코 (São Francisco) 강 내륙에 선교 마을을 건설했다. Boris Fausto(1996), pp.59-62; Maria Célia P.V.F. Freire & Marlene Ordoñez(1971), pp ) 1551 년 상비센찌에서 로마 카톨릭의 상징과 교권에 뚜삐남바 (Tupinambá) 의 신앙을 혼합한 메시아적인 종교 행위가 있었다. 포르투갈인들은 이를 성스러운 현상(Santidade) 이라 불렀다. Staurt B. Schwartz, op.cit., p

33 흑인 문화와 가치를 지탱하고 있었다. 가톨릭은 포르투갈인의 교육과 도덕적 가치를 지탱하는 기 능을 지니고 있었으며, 선교 활동을 통해 원주민과 흑인들을 개종시킬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반 면, 아프리카 종교는 백인의 지배를 회피하려는 흑인의 저항 이데올로기였으며 자신들의 결속력 을 강화시켜주는 기제였다. 2) 독립과 개신교의 등장 최초의 개신교 유입은 식민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이 기간 개신교는 가톨릭의 세력에 눌러 그 영향력이 확대되지 못했다. 포르투갈 왕정의 리우 파천과 독립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유럽의 이민자들이 몰려들면서 영국의 성공회신자들이 도시를 중심으로 정착했다. 이때부터 공 화 혁명기까지를 역사적 개신교의 등장기라 할 수 있다 년에는 감리교가 전파되었고, 1858 년에는 회중교회(Congregationist), 그리고 1881년에는 침례교가 미국 전도사들을 통해 들 어왔다. 까발깐찌(Cavalcanti) 는 19세기 브라질에 개신교가 확산되게 된 배경을 제2 왕정의 상황, 가 톨릭과 국가의 관계, 미국과 유럽에서 유입된 급격한 이민으로 설명하고 있다. 19세기 브라질 은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으로 사회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를 수용한 동 뻬드루 2 세(D. Pedr II) 는 정치활동의 자유, 노예해방 등 다양한 정책들을 추진했다. 시기적 으로 모든 개신교들은 제2왕정기에 전파되었지만 브라질 사회에 수용되는 과정들은 각각 다르 게 나타난다. 개신교의 브라질 수용은 종파와 특성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 첫째, 19 세기말 노예해방이후 부족한 노동 확보와 백인화 전략에 따라 브라질로 이주한 유럽이민을 통 해 들어왔다. 따라서 당시 이민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스위스와 독일인을 중심으로 복음주의 루 터 교회가 정착했다. 당연히 개신교의 대부분은 루터교회와 영국 성공회가 중심을 이루고 있었 고, 지역적으로는 브라질 남부지역에서 활성화되고 있었으나 브라질인들에게 전파되지 못했으 며 이민 공동체를 중심으로 활성화되어 이민자들의 종교였다. 둘째, 미국의 개신교인 감리교(Methodist), 장로교(Presbyterian), 침례교(Baptist) 가 미국의 전도사들을 통해 브라질로 유입되었다. 감리교가 1836년에 전파되어 모든 개신교 중에서 가장 먼저 전파되었고, 회중교회(Congragationist) 5) 는 1858년에 유입되었으며 침례교가 1881년으로 가장 늦게 전파되었다. 당시의 종교 상황은 공식적인 교회와 종교시장개방이라는 두 가지의 변 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공식적인 종교는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 경쟁을 펼치며 점령한 국가에 식민통치와 새로운 가치 기준으로 식민본국의 종교를 전파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아 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에 식민 본국의 종교들이 전파되었다. 이와 달리 브라질은 1889 년 공화정이 수립되면서 국 교 분리가 이루어져 종교시장이 개방되었다. 미국의 개신교들은 이 를 이용해 브라질에서 전도 사업을 진행했다(Cavalcanti, 2001:1). 그러나 개신교들의 초기 전도 사업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침례교와 장로교는 25년 간 전도 사업을 추진했으나 신도수가 각각 5,000 명 이하였다. 종교전파는 종교제례뿐만 아니라 생활 문화도 전파했는데, 장로교는 캘빈파 의 생활철학을 브라질에 유입시켰다. 그리고 침례교는 미국의 정치형태와 유사한 교회조직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를 통해 브라질에 민주적인 정치와 문화가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5) 위로부터의 지배를 부정하여 각 교회의 독립을 주장하고 국가로부터 분리를 주장하기 때문에 독립파를 구성하고 있다

34 침례교는 개인적인 특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개인의 권리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형성했다. 감리 교, 장로교와 침례교는 초기에 정착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종교적인 박해를 받기도 했 다. 특히,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가톨릭으로부터 많은 제재를 받았다. 셋째, 현재 브라질에서 개신교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오순절 교회(Pentecostal) 6) 로 1920년 부터 외국의 미션의 영향으로 형성되었으나 외국 미션으로부터 독립하여 브라질인들이 주도적 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Knebelkamp, 193). 오순절적 복음주의에서는 성령의 은사, 신유, 축사 등의 신비한 능력이 강조되는데, 이러한 능력을 지녔다고 인정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자연 히 신성시되고 절대시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응집력이 강한 조 직이 만들어진다. 뿐만 아니라 체험적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의 분위기가 활 성적으로 유지되고, 전도활동이 열성적으로 수행된다( 허남린, 1985:152) 1970년대 이후 브라질 프로테스탄트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교파는 신오순절 교회 (Neopentecostal) 로 전체의 67% 를 차지하고 있다. 이중 "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 가 1991년 이후 3 배정도 증가하면서 가장 큰 교파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가장 빠르게 성장한 교 회는 에지르 마세두(Edir Macedo) 7) 교주가 1977 년에 설립한 하나님 나라의 세계교회 (Universal Church of Reign of God) 로 2002년 신도가 200 만 명이 넘었다. 이 교회에서는 성 경은 상대적으로 의미가 약화되어 있으며, 가톨릭과 아프로 브라질 종교의 민속에서 예배의식 과 상징, 특히 움반다을 채용하는 제설혼합주의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브라질에 소개 된 일본의 신 구 종교와 하레 크리슈나(Hare Krishna) 8) 교단의 동양종교까지 포함하는 특성을 보인다. 마세두 교주는 악으로부터의 자유, 정신적, 육체적 질병의 치유와 교회 설립자의 번영 을 주장한다. 그는 악은 부모로부터 아이들에게 전승되는 것이라 믿고 있으며, 잘못된 종교를 믿거나 바이아 여인 9) 들이 마련한 음식을 통해 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세두는 모든 경쟁 과 적대감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신적인 통제와 권력 내에서 엄격하게 신도들을 통 제한다. 따라서 IURD 신도 중에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하는 신도는 교회가 제공하는 새로운 구 조, 심리적, 종교적, 사회적 기회와 혜택에 대한 보답으로 개인의 자유와 자립뿐만 아니라 감정 적, 정신적 안정에서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한다(Clarke, 1999: ). IURD는 1990년 초반 TV Record 라는 텔레비전 방송국과 라디오 방송국, 신문사를 매입하였으며, 극장, 슈퍼마켓, 쇼핑 센터와 같은 경제적인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개신교는 시민정신, 치유, 즐겨움, 소속감 등을 크리스챤 신앙의 특성으로 정착시키고 있다. 브라질에서 시민정신이 신학적인 논의와 교회 예배식에서 점점 중요해지게 되는 배경이다. 시 민정신은 어떤 사회나 도시 거주자로서 자신의 신분, 자신의 권리, 자신의 존엄성에 대한 자의 식을 의미한다. 3. 브라질 개신교의 성장 6) 20 세기 미국에서 시작된 종파로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성서만이 교의적 권위를 지니며 성서가 모든 인간 삶의 질서와 원칙을 제공하는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7). 마세두 목사는 북동부의 알라고아스에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서 33명의 자식 중에서 살아남은 7명의 자식 중 의 한 명으로 나은 삶을 찾아 남부로 이주했다. 히우 주 재무국에서 일하면서 중등학교와 3단계에서는 수학을 공 부했다. 8) 하레 크리슈나는 1966년 미국에서 새롭게 탄생한 종교로 15 세기 인도의 한 종교 전통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이들은 주님의 숭배, 무고한 자의 죽음, 완전한 헌신 등 크리슈나에 대한 박티로 현대 미국의 주류인 기독교와 공 통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하레 크리슈나와 참된 기독교는 그 목적과 수단이 같은 것이며, 참된 기독교인의 경 우에는 하레 크리슈나로의 개종할 필요없다고까지 주장하는 신종교이다. 9) 아까라제 (Acaraje) 와 바따빠 (Vatapa) 과 같은 음식을 길거리에서 파는 깡동브레 여신도들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 하고 있다

35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톨릭은 발견과 동시에 브라질에 유입되어 엘리트들의 지배 이 데올로기로서 브라질 사회의 형성과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해방신학은 자성적인 혁명 을 통해 빈민에 다가서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그것은 해방신학이 빈민을 위한 종교(Religion for Poor) 였으나 학식이 있는 계층(Knowledge Class) 의 종교로 인식되어 빈민층의 접근이 제 한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틈바구니를 개신교들이 접근하여 교세를 확대하고 있다 년대 들어서면서 가톨릭의 신도가 점차 줄어들었다. 그 원인들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브라질 사회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향들은 1990년대 다 양한 사회적 변화들이 발생하면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특히, 브라질 종교적 다원성이 충분히 보장되는 사회에서 일반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신앙의 범위가 훨씬 넓어진 것이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개신교의 성장은 놀라운 것이라 할 수 있다. 2000년 브라질 지리통계원의 인구센 서스에서 이미 이탈 현상을 볼 수 있었는데 지난 10 년간 이탈의 정도가 더욱 확대되었다. 1) 종교 인구 변화 추이 < 표1> 은 지난 30 년간 브라질 종교 인구 분포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가톨릭 인구의 감소 가 전진적으로 확대되고 있고, 반면 가톨릭 신조가 감소한 만큼 개신교가 성장하고 있다. 가톨 릭 신도의 감소가 종교 다원성이나 아프로-브라질 종교의 성장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들은 설 득력을 잃게 된다. 반면 개신교의 적극적인 전도 사업과 교리들이 브라질의 사회 변화를 효과 적으로 반영하고, 수요/ 공급의 논리에 맞는 전략들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길 (Gill, 1999)은 공급자 측면으로 개신교의 성장을 설명하면서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 개신교의 성장 정도가 다른 것은 종교적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규제수준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종교단체에 대한 법적 규제가 적을수록 종교 소비의 비용이 감소하기 때 문에 종교적 다양성과 참여가 확대된다. 표 17> 1980년-2010년 브라질인의 종교 변화추이 로마 가톨릭 89.20% 82.90% 74% 64% 65% 개신교 6.60% 8.98% 15.40% 22% 25% 정령숭배 0.70% 1.56% 1.30% 3% 1.40% 아프로 브라질 0.57% 44.00% 0.30% 2% 0.45% 기타 1.30% 1.40% 1.80% 3% 1.25% 무교 1.60% 4.80% 7.40% 7% 2.80% 1980 년, 1990 년, 2000년 통계는 IBGE 의 자료, 2010년 자료는 주이스 지 포라 연방대학교의 자체 자료임. 2010년 통계에서 9.6% 의 이중 중교 숭배자가 있어 100 율에는 맞지 않음. 이런 전체적인 종교 인구의 변화를 지역적으로 구분해서 일별해 보면 < 표2> 와 같이 나타난 다. 특히, 브라질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남동부 지역에서는 이미 2000년에 가톨 릭 신도가 전체의 60% 대로 감소한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남부의 경우에는 가톨릭의 영향력이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이 지역에서도 80% 이하에 머물고 있다. 이런 변화는 브라질 종교지형에 심각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신교의 성장은 주로 중서부, 북부와 남동부 지역으로 성장세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개신교가 대도시의 주변부 지역

36 을 중심에서 빠른 성장을 보이는데, 남동부 지역에서 그런 현상이 뚜렷하다10). 북부의 경우에 는 브라질에서 가장 먼저 오순절 교회가 유입된 곳으로 전통적으로 개신교의 영향력이 놓은 곳이다. 그런데 중서부의 경우에는 일반적이고 역사적인 배경이 없는 가운데 빠른 성장을 높이 고 있는 것이 특징적인데 이는 중서부 지역이 외국 교회의 목회활동이 증가하면서 나타난 현 상으로 보인다. 북동부의 경우에는 가톨릭 신자가 약 80% 로 여전히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표 18> 2000년 브라질 종교 인구 지역별 분포 구분 가톨릭 개신 정령 아프로- 유대교 교 숭배 브라질 종교 브라질 북부 혼돈니아 아크리 아마존 호라이마 빠라 아마빠 또깐찌스 북동부 마라냐웅 삐아우이 세아라 히우그란지두노르찌 빠라이바 뻬르남부꾸 알라고아스 세르지피 바이아 남동부 미나스제라이스 이스피리투산투 히우지자네이루 상파울루 남부 빠라나 산따까따리나 히우그란지두술 중서부 마뚜그로수두술 마뚜그로수 고이아스 연방직할시 년 IBGE 통계조사 동양 기타 무교 무응답 앞의 < 표1> 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개신교의 성장은 1991년에서 2000년 사이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개신교회의 성장은 교회 성격에 따라 그 편차가 매우 크다. 아래 그 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역사적인 개신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기타를 합산해도 30% 를 넘지 않는다. 그러나 오순절 교회는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개신교의 성장이 지속 10) 개신교 중에서도 오순절 교회는 빈민계층에 기반하고 있어 오순절 운동을 빈민의 혁명이 라고도 한다(Alvarez, 2002; 143)

37 되면 될수록 차이가 점점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학적 혹은 제도적 문제를 떠나 교회의 전도 활동만을 놓고 본다면 차이가 좁혀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것은 역사적인 개신교들이 전도 사업에 상당히 보수적인 접근 방법을 사용하는 대신에 오순절 교회는 상당히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전도 방식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2) 종교 인구 변화의 지역적 특성 브라질 종교 지형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 IBGE의 2000 년 통계, FGV의 2003년 자료들을 활 용했다. 특히 DataFolha 의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다따폴랴의 조사는 2006년에서 2007년 사이에 전국의 44,642 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이 세 개의 자료를 활용하는 것은 상호 보완적 인 부분이 있기 때문인데, 다따폴랴의 경우에는 지역적 편차와 특성을 잘 파악할 수 있고, FGV 는 종교 분포의 변화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다따폴랴의 조사 결과를 보면 2000년 IBGE 조사가 발표되고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 았음에도 불구하고 종교 인구 분포에 큰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사 결과에는 가 톨릭 인구가 전체의 64% 에 불과했다. 불과 6년 사이에 무려 9% 의 이탈이 있었다. 대신에 개신 교는 약 7% 성장한 22%( 구분없이) 를 기록했다. 이런 통계상의 변화가 더 중요해지는 것은 교 회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비율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어 일상생활을 비롯한 브라질 문화 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톨릭의 종교예식에 평신도의 참가 없이 교 회관계자들만 참여하여 진행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표 19 > 2007년 브라질의 종교 인구 분포 구분 가톨릭 개신교 오순절교회 복음교회 중서부 65% 24% 18% 6% 북동부 71% 17% 14% 3% 북부 61% 26% 22% 4% 남동부 59% 25% 20% 5% 남부 70% 18% 13% 5% 전국 평균 64% 22% 17% 5% 출처: DataFilha 2007 전국적인 수준에서 보면 내륙지역의 도시들은 가톨릭신자들이 약 70% 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도시만을 기준으로 했을 경우에는 이 보다 8% 나 낮은 56% 만이 자신을 가톨릭 신자 라고 밝혔다. 특히 전국의 주요 대도시들에서는 55% 정도만이 가톨릭 신자라고 응답했다, 개신 교가 대도시와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관관계는 각 지역적 특성을 살펴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북동부 지역은 전통적인 보수 가톨릭층이 존재하는 지역인데 이번 조 사에서도 71% 로 높게 나타났고 내륙지역에서는 이 보다 더 높은 75% 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러나 살바도르, 헤시피, 포르딸레자 등과 같은 북동부의 주요도시에서는 61% 로 오히려 전국 평 균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도시와 농촌이라는 지역과 문화의 차이가 반영된

38 것이라 할 수 있다. 남부에서도 70% 가 가톨릭을 믿는다고 대답해 평균 보다 높은 수준이었으며 특히 내륙 지역 에서는 73% 를 유지하고 있었다. 주요 대도시에서는 63% 로 평균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남부 지 역도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지역인데 종교 변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개신교가 13% 에 불과한 것은 도시들이 해안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의외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남부지 역이 지니고 있는 안정적인 사회 환경과 높은 경제 수준을 보다면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북부의 경우에는 가톨릭이 62% 와 개신교도 20% 로 나타났는데 역시 대도시 지역에서는 23% 로 높게 나타났다. 북부지역은 지역적 특성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가톨릭 신자들이 적은 곳 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초기 오순절 교회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이기 때문에 개신교 인들의 분포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남동부 지역은 브라질의 사회 인구학적으로나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또한 이 지역의 변화가 브라질 전체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남동부는 가톨 릭 신자가 59% 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대신에 개신교는 20% 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개신교의 인 구가 다른 지역에 비해 적다. 이 지역이 다른 지역과 달리 종교적으로 매우 다양하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된다. 예를 들어 무슬림, 불교, 유교 등 동양 종교를 비롯해서 아프로-브라질 종교 까지 다양한 종교들이 있기 때문에 가톨릭 신자가 줄어들었다고 하더라도 그 인구가 개신교로 바로 이동하지는 않는다. 주별로 특성을 살펴보면 상파울루주의 경우에는 가톨릭이 59%, 개신교가 20% 인데 상파울루 시는 가톨릭 54%, 개신교 20% 로 나타났다. 상파울루 주의 경우는 주와 시간의 차이가 크지 않 았다. 히우(Rio de Janerio) 주의 경우에는 가톨릭이 46% 에 불과했고, 개신교가 30%( 역사적 개 신교 포함), 정령숭배 5%, 무교가 12% 였다. 또한 히우(Rio) 시는 가톨릭 45%, 개신교가 24% 였 다. 히우 주의 내륙 지역에서는 개신교가 무려 29% 에 달했다. 히우주만 놓고 본다면 가톨릭은 이미 브라질 종교 활동 인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나스제라이스 주에서는 가톨릭이 69%, 개신교가 20%( 역사적 개신교 포함) 였다. 내륙지역은 73% 가 가톨릭 신자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벨루 호리존찌는 56% 만이 가톨릭이었다. 남동부의 3개 중에는 미나스 제라이스 주에 가장 많은 가톨릭 신자가 있고 종교 변화에 가장 수동적인 것을 알 수 있다. 3) 개신교 인구 성장과 구성변화 1940년 이후 개신교의 성장 추이를 살펴보면 2.0% 에서 출발해 1991년까지는 완만한 성장세 를 보인다. 표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브라질에서 인구센서스를 시작한 1940년부터 이미 오순절 교회의 신도가 역사적인 개신교의 숫자보다 더 많았다(Campos, 2007;14). 1991년부터는 전체적 으로 개신교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2000년에서 2007년까지 7년 사이에 무려 6.4% 증가했 다. 지난 60년간 약 2,361% 가 증가한 셈이다. 이런 증가에는 가톨릭 세력의 약화, 종교 시장의 확대 혹은 다양화, 개신교의 적극적인 전도와 목회활동이라는 종교적인 이유, 빠른 도시화의 진행, 빈부격차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들이 부재하는 상황, 경제 환경의 악화에 따른 사회적 아노미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했다. 특히, 짧은 기간에 개신교가 빠른 성장을 기록한 것 은 개신교가 지니고 있는 독특한 목회 활동을 들 수 있다. 브라질 경우 개신교의 성장을 주도 하고 있는 교회가 역사적인 개신교보다는 오순절 교회 그 중에도 신오순절 교회가 교세를 확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단순히 종교 인구의 변화를 넘어 브라질이 문화적

39 탈전통화의 길 에 들어선 것이라 평가한다(Campos,2007;20). 표 20 > 개신교의 성장 추이 년도 성장율 2.0% 3.4% 4.3% 5.2% 6.6% 9.0% 15.6% 17.9% 22.0% 자료: Campos 재인용(IBGE , FGV 2003과 DataFolha 2007) 아래 같이 개신교 중에 오순절 교회가 77.86% 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통계지표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가톨릭과 역사적 개신교에서 개종하는 사람들의 많은 부분이 오순절 교회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런 현상 오순절 교회의 특징적인 요소들 때문인 것으로 보 인다. 사실 브라질에서 개신교의 성장은 오순절 교회의 성장을 의미하며 그 중에서도 신오순절 교회의 성장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느님 나라의 세계 교회 의 경우에는 지난 10년간 약 600% 가 넘는 성장을 기록했다. 신오순절 교회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요인에 대해서는 김항섭(2004) 은 세계화로 특징지워지는 지구적 차원의 변화, 중남미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위기 등과 맞물려 새로운 정체성이나 의미체계를 갈구하는 대중들의 종교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라고 주장한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환경 변화가 많은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수요자적 측면에 동의하지만 신오순절 교회가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 추진했던 미시적 수준의 노력들 즉, 공급자 적 측면에서의 시도들도 개신교 성장에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신오순절 교회가 개신교 전체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신오순절 운동은 목회자들이 신과 악마의 성령 전 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설교하면서 개인적인 문제 극복과 같은 현실적 문제 해결 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또한 라디오, 텔레비전과 대중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방송제 도 개혁을 통해 방송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전자교회 시대를 개막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활동 은 종교를 생산과 분배의 관계에서 파악하고 접근하는 것으로 신자유주의 모델을 종교 영역으 로 도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표 21 > 개신교 신자의 구성 비율 구분 오순절 교회 복음 교회 비율 77.86% 22.14% 앞에서 역사적 개신교로 분류했던 복음주의 교회는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브라질 인들의 소수를 위한 교회로 머물러 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가톨릭 교회 보다도 더 보수적인 목 회활동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톨릭은 민주화와 사회변혁 과정에서 종교적 사회적 기능 을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역사적 개신교의 경우에는 브라질 사회 전반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동 력을 찾지 못하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전통적인 개신교들은 빈민보다는 중산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Alvarez, 2002;140). 중신층이 상대적으로 얇은 브라질에서 교세 를 확장시키는 어렵다

40 표 22> 복음교회의 구성 비율 구분 침례교 루터교 장로교 기타 비율 54.56% 18.32% 16.92% 10% 사실 오순절 교회 내에서도 교세 확장을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아래에서 보 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성회(Assembleia de Deus) 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다음은 예 수회중 교회(Congregação Cristã) 와 하나님의 나라 세계 교회(Igreja Universal do Reino de Deus) 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들 교회들은 방언(glossolalia) 를 강조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 교회의 내부 분열로 1951 년 사각 복음교회(Igreja do Evangelho Quadrangular) 와 1962년 하느님의 사랑교회(Igreja Deus é Amor) 가 창립되었다. 이들은 치유의 은사를 강조하는 특성 을 지니고 있다. 오순절 교회 중에 하느님 나라의 세계 교회가 악귀 추방을 내세우면서 교세를 확장했다( 김항섭: 2004, 김영철:2004). 이런 교회들은 공통적으로 적극적인 목회활동과 함께 네 트워크를 구축하여 지역간의 유대관계도 확대하고 있다. 신오순절 교회가 목회자의 예배능력에 따라 신도들이 결정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어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영 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표 23> 오순절 교회의 구성 비율 구분 하 느 님 의 예 수 회 중 하느님 나 사각 복음 하 느 님 의 성회 교회 라의 세계 교회 사랑 교회 기타 교회 비율 46.90% 13.85% 11.69% 7.34% 4.37% 15.85% 자료: Campos, 2007; p.31 개신교의 지역적 성장추이를 보면 1991 년까지 남부지역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부 지역 에서 개신교의 성장은 주로 농촌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2000년 이후에는 북부지방의 개신교의 성장이 두드려지는데 여기에는 개신교 특히, 오순절 교회가 유입되었던 역사적인 곳이라는 것 과 도시화 수준이 점점 증가하면서 북부인들의 관심이 높았다. 도시화가 사회적 혼란과 소외 계층을 만들고 개신교가 그 피신처를 제공해주는 대표적인 종교단체이기 때문에 개신교 성장 의 가장 큰 변수가 바로 도시화이다(Gill, 1999;291). 거의 모든 지역에서 1970년에서 1991년간 약 두 배 정도의 개신교 신자가 증가했고, 다시 1991년에서 2003년까지 다시 두 배가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남동부의 경우를 좀 더 면밀하게 검토하면 대도시의 주변부를 중심으로 개신교가 확대된 것을 알 수 있는데, 인구의 18% 에서 30% 가 여기에 속하는데 그림을 그리면 대도시를 오순절 교회가 포위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현상은 오순절 교회의 목회방식이 경제 적인 혜택을 직접적으로 준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빈곤한 상황에 처한 도시민 들의 욕구를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즉, 사회 경제적 문제가 많은 곳일수록 사원과 오순절 교회 의 네트워크가 많다는 맑스적인 주장이 맞아 떨어진다

41 표 24> 지역별 개신교 성장률 추이 구분 중서부 5.45% 7.77% 11.49% 18.87% 21.06% 북동부 2.56% 3.40% 5.49% 10.26% 11.79% 북부 4.80% 8.43% 12.20% 19.75% 21.99% 남동부 5.47% 7.12% 10.32% 17.51% 19.70% 남부 8.88% 10.18% 11.89% 15.33% 16.22% 전국 5.17% 6.63% 9.36% 15.41% 17.22% 자료: IBGE 2000과 Sepal 2003 오순절 교회의 신도들은 여성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표9). 특히, 하느님의 나라 세계교회 의 경우는 여성의 비율이 전체( 역사적 개신교) 에서도 여성의 비율이 높았다 % 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사실 오순절 교회뿐만 아니라 개신교 표 25> 오순절 교회의 성비 구분 남성 여성 전체 43.56% 56.54% 하느님의 성회 45.19% 54.81% 예수성회 교회 45.41% 하느님 나라의 세계 교회 38.07% 61.93% 사각 복음 교회 45.32% 58.68% 기타 42.52% 57.48% 자료: Campos, 2007 재인용 4. 브라질 개신교의 성장 원인과 특성 1980 년대 브라질은 만성적인 인플레이션, 재정적자, 화폐개혁 등 경제적 혼란을 경험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정치적으로는 군부정권의 붕괴, 다양한 사회집단의 이익추구, 민주화의 공고화 문제 등으로 역시 혼란스러운 10 년을 보냈다. 정치 경제적 위기에서 브라질 사회를 지 탱하고 있던 온정주의는 점점 사라지고 개인주의에 바탕을 다원주의적인 성향들이 강화되었다 년대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정책들이 추진되면서 개인주의적인 경쟁이 증가했다. 이런 변화 는 브라질인들 특히, 대도시 주변부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빈민층에서 사회적 아노미 현상이 발생하여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기본의 사회 질서의 토대와 다른 새로운 종교 시스 템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이와 동시에 종교 활동에 대한 정부규제들이 풀리면서 다양한 종 교들이 생성되었다. 그 중에 종교적 친화성이 높은 개신교가 브라질인들이 가장 많인 선택한 것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개신교가 강력하고 공격적으로 개종할 것을 권유하면서 신도가 증가 했다(Reis, 2006; 170). 개종한 신도들에게 가톨릭과의 차이점을 부각시키고 기존의 종교가 지 원하지 못했던 일상생활 영역으로 종교적 힘을 확대했다. 때문에 개종한 신도의 생활 패턴이 이전과는 다르게 형성되었다. 결국 이런 과정은 개인이 사회 내에서 형성하게 되는 정체성을

42 변화시키고, 그 변화는 금연, 금주 등 자신의 생활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때문에 열악 한 환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빈민계층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개신교는 새로운 생활 문화가 된다 (Stadtler, 2002). 이와 같이 브라질 개신교의 성장은 국제적 환경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경제의 글로벌 리제이션과 초국적화 진행으로 새로운 환경이 마련되었고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아 노미 현상을 개신교가 적절하게 종교적 전략을 추진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전략에는 매스 미디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비즈니스테크닉을 종교 활동으로 끌어오는 등이다. 예를 들 어 하느님 나라의 세계 교회 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는데 현재 교회 규모를 국제화시키고 있다 11). 브라질 사회가 농촌사회에서 도시사회로 전화되었기 때문에 개신교가 빠르게 성장했다. 3 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개신교 특히, 오순절과 신오순절 교회의 경우 대부분이 도시지역에 서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시화 과정에서 전통적인 공동체들이 해체되고 재편 성되는 과정에 개신교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특정한 교회에 소속된 개신교 신자가 농촌을 떠나 다른 지역이나 도시로 이주할 경우 교회 네트워크를 통해 개인을 보호해주는 기능을 강화했다. 이런 전략들이 브라질인들이 개신교로 개종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라틴 아메 리카 사회가 농촌 중심적, 전통적, 권위주의적인 사회에서 도회적, 산업적, 근대적, 민주적 사회 로 변화되었으며 오순절 교회는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는 것이다. 브라질도 전체 인구의 도시화 비율이 86% 이고 도시화율은 연평균 1.8% 이다. 매년 360만명이 도시지역으로 이 동하고 이중에 매년 66 만명 정도가 오순절 교회로 개종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종교적 탈중앙화(Religious Decentralization) 가 개신교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 을 미쳤다(Reis, 2006; 171). 본 연구에서는 구체적으로 목회자들의 출신지역이나 양성과정에 대해 분석하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브라질 개신교 목회자의 양성과정은 단기간에 이루 어지며 각 종파단위의 양성학교를 지니고 있다. 목회자들이 다양하게 배출되면서 교회의 숫 자를 빠르게 증가시킬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목회자들의 자질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 되고 있다. 이런 종교적 탈중앙화는 가톨릭의 위계적인 권위주의 태도와도 맞물려 있다. 가톨릭은 1950 년대 해방신학, 민주화 과정에서의 역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 이고 있다. 정치적인 주요 문제들이 완벽하게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일부 해소된 이후 국면 전환에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 이후 권위적인 태도가 실생활에서 효용성 이 떨어졌음에도 사회변화를 수용하지 못했다. 이런 괴리감이 브라질인들이 개신교로 개종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또한 오순절 교회의 경우에는 교리적인 부분에서 가톨릭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가톨릭은 교리와 종교적인 특성상 남성중심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으며, 권위주 의적이며 후원제에 기초한 교리를 지니고 있다. 반면 오순절 교회는 상대적으로 남성주의가 약 하며 남성의 폭력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보호단체들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학교 를 설립하여 교육의 기회를 증가시키고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브라질 개신교 신도들의 증 가는 여성들이 주도하고 있다(Woodberry, 1996). 그리고 새로운 교리를 주장하기보다는 신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주고,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의 행위를 개인수준으로 전환시켜준 다. 이러한 경험들이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 전체에게 일어난다는 것을 인식시켜줌으로써 신의 경험이 대중들의 언어로(in the language of the people) 제시된다. 11) 여기에 대해서는 김항섭(2004) 참조

43 종교행위에 있어서도 변화가 있었다. 오순절과 신오순절 교회의 경우 종교예식에 아프로- 브라질 종교적 특성을 반영했다. 아프로-브라질 종교는 빈민계층에서는 우리의 민간신앙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따라서 아프로-브라질 종교적 요소를 혼합한 개신교가 빈민지역에 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개신교가 빈민지역에서 빠르게 성장하 고 있는 이유이기 하다. 또한 사회 정치적 민주화가 개신교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개신교는 시민사회가 정치적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역에서는 역동적인 사회운동 중의 하나이다. 콜롬 비아(Erneto Samper), 과테말라(Jorge Serrano Alias), 페루(Alberto Fujimori), 브라질에서 정 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Gill, 1999;288). 이 때문에 개신교도들은 특정한 교회집단에 의해 선거에서 거수기로서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개신교의 정치적 성향은 반공산주의, 구체 적인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실용적인 보수주의, 도덕적 문제의 정치화, 종교적 상징과 의식 을 공공영역에 주입하려고 한다(Paul Fraston). 이러한 정치적 성향으로 브라질에서는 특정한 교파가 신도들을 독려하여 자신들의 정치인들을 의회에 진출시키는 경향들이 두드러지게 나타 나고 있다. 5. 맺음말 종교는 어떤 민족이나 사회의 문화적인 측면을 담보하고 있다. 따라서 개종한다는 의미는 행 태적인 측면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의식과 가치가 변화되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브라질을 비 롯한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이 가지는 의미는 경제적, 사회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의 도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개종으로 브라질인들은 점진적으로 Now and Here 가치 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수용해야 하는 산업사회의 문화형태라 고도 할 수 있다. 이미 브라질의 도시인구비율이 86% 에 이르고 있다는 것은 개신교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농촌지역으로 개신교의 영향력이 확대 되고 있어 가톨릭 전통에 기초한 커뮤니티가 해체되고 개신교의 세계관이 폭 넓게 전파된다.. 이와 같이 개신교의 성장은 가톨릭 문화가 지니고 있는 특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가톨릭이 가부장적인 사회구조를 형성시켰다면 개신교는 가부장적 구조의 해체까지는 아니지만 그 사회 체제의 많은 부분을 흔들고 있다. 또한 가톨릭이 권위주의적인 측면을 강조해왔다면 개신교는 실천과 연결되는 실천적 영향력을 중시하는 사회 변화시키고 있으며 경쟁적인 사회 구조화시 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변화들은 여성들의 사회참여를 유도하고 있는데 가톨릭을 통해 형성되어 있는 남성중심적 사회 패턴을 상당히 약화시키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개신교의 성장 은 브라질 사회구조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톨릭의 후원제도도 상당 히 약화될 수 밖에 없다. 후원제도의 약화는 개신교의 성장보다는 오히려 도시화를 통해 확대 되고 있는데 개신교가 강조하는 네트워크의 강화가 후원제도를 대신하고 있다. 브라질 인구에 서 22% 는 절대적인 수치에서는 가톨릭의 규모와 많은 차이를 보이지만 종교활동의 적극적 참 여도, 높은 공동체적 일체감, 전방위적인 전도 사업의 추진 등으로 개신교의 영향력은 상당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종교 인구의 변화가 브라질의 문화구조의 변화 자연스럽 게 연결된다. 본 연구가 개신교 신자들의 경제소득과 교육 수준에 대한 분석을 결여하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개신교는 소득수준의 평준화 혹은 기대를 확대

44 시키고 교육제도에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연구는 IBGE가 2010년 인구센서스를 발표한 이후 심층적 연구로 발전시킬 수 있는 과제이다. 참고문헌 김영철, 2003, 브라질 문화의 흑인성 연구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4, 브라질 오순절 교회의 토착화 이베로아메리카연구, 제15 권. 김용재, 이광윤, 포르투갈 브라질의 역사문화기행. 부산외대 출판부. 김항섭(2004), 90 년대 브라질 종교 지평의 변화에 관한 고찰, 종교연구, 34, pp 최영수, 브라질인의 종교와 종교 의식, 국제지역연구, 제4 권, 제4 호. 허남린, 1985, 최근 한국 개신교 성장의 문화적 요인에 대한 연구, 종교학연구, Vol.5. 김진환, 1974, 오순절운동의 역사와 그 의의, 기독교사상 년 1 월호,Vol 188, No 17-1호 Alvarez, Miguel(2002), "The South and The Latin American Paradigm of the Pentecostal Movement", Asian Journal of Pentecostal Studies, No.5, Vol.1. Cavalcanti, H.B "O Projeto Missionário Protestante no Brasil do Século 19: Camparando a Experiência Prebiteriana e Batista". Revista de Estudos da Religiao. No. 4. Clarke, Peter B 'Pop-Star' Priests and the Catholic Response to the 'Explosion' of Evangelical Protestantism in Brazil: The Beginning of the End of the 'Walkout?. Journal of Contemporary Religion, Vol. 14, No. 2. Cottrell, Ed Growth and Development of Protestantism in Latin America. Religious Studies 282. Da Matta, Roberto Review Essay: Religion and Modernity: Three Studies of Brazilian Religiosity, Journal of Social History. Winter, Vol. 25 Issue 2 De Almeida, Vasni O Metodismo e a Ordem Social Republicana, Revista de Estudos da Religião. No.1. De Azevedo, Feranado Brazilian Culture: 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Culture in Brazil,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De Souza, Luiz Alberto Gomes. "Church and Society in Brazil: The Basic Elements For an Analytical Framework". Journal of International Affairs. Fall82/Winter83, Vol. 36 Issue 2 Gill, Anthony(1999), "Goverment Regulation, Social Anomie and Protestant Growth in Latin America: A Cross-National Analysis", Rationality and Society, No.11, Vol.3. Harding, Rachel Elizabeth "Candomblé and Alternative Spaces of Black Being in Nineteenth Century Bahia, Brazil: A Study of Historical Context and Religious Meaning." Ph. D. Dissertation. Colorado:University of Colorado. Knebelkamp, Ari. Believing Without Belonging? In Search of New Paradigms of Church and Mission in Secularized and Postmodern Contexts: Brazilian Insights and "Outsights." Vol. XCII No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 Motta, Roberto "Sociologists managing religion: the formation of Afro-Brazi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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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제2회의 -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13:20~15:30 (A508 호) 좌장 : 양동훈 ( 경성대) 페루 정당체제의 탈제도화와 민주주의의 지연 발표 : 김유경 (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토론 : 정기웅 ( 강원대) 탈식민성과 새로운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 발표 : 안태환 (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토론 : 김은중 (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사회운동과 정치정당 : 볼리비아 MAS 사례 발표 : 이상현 (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토론 : 김기현 ( 선문대)

47 페루 정당체제의 탈제도화와 민주주의의 지연 김유경(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 연구교수) Ⅰ. Ⅱ. Ⅲ. 서론 페루 정당체제의 형성과 제도화 수준 1. APRA의 창당과 근대적 정당체제의 작동 2. 정당체제의 불완전한 제도화 페루 정당체제의 탈제도화 과정 1. 정당체제의 재작동과 무능력( ) 2. autogolpe 와 정당체제의 탈제도화( ) 3. 정당체제 탈제도화의 정치적 영향( ) Ⅳ. 결론: 페루 정당체제의 부분적 재생과 한계 Ⅰ. 서론 정당은 민주주의정치체제를 작동가능하게 하고 지탱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정치행위자의 측면에서 볼 때, 정당은 유권자에게 출마 후보들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그들이 어떻게 통치하는지에 대한 기대를 전달해줌으로써 선거에서의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또한 정당은 하나의 선거를 넘어서 존재하고 국가 수준에서 경쟁하기 때문에 장 기적인 전망과 함께 정치인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 광범위한 정치적 목표를 추구할 수 있게 해준다. 제도적 측면에서 정당은 민주주의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사회 전체가 인식할 수 있도 록 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수렴하고 대표하는 정당의 존재와 활동은 특히 신생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제도가 최소한 형식적인 측면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선거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대중을 정치영역에 끌어들임으로써 민주주의 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준다. 일반적으로 강력한 정당은 행정부와 입법부의 교량역할을 제공함으로써 정치적 교착상태 를 극복하는 중요한 기제가 될 수 있으며 이는 민주적 통치가능성을 높이는데 기여한다 (Levitsky and Cameron 2003, 3). 일례로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신생민주주의국가들이 경 험한 정치적 혼란의 요인 중 하나는 정당정치의 취약성에 기인한 입법부의 비효율성과 행정 부- 입법부간의 갈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Mainwaring and Scully 1995). 비슷한 맥락 에서 정당은 선출된 지도자로 하여금 민주적 제도들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견제하거나 대중 들을 선동함으로써 정권의 책임성을 높이는데 일조한다. 정당과 민주적 제도들이 취약하고 집권자가 직접적인 호소에 의존한 방식으로 권력을 획득한 경우, 행정부는 개인주의적이며 반제도적인 방식으로 통치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다른 한편, 정당은 특히 민주화 과정에서 민주적 엘리트들을 충원하고 사회화하는 기회를

48 제공함으로써 민주적 정치계급이 형성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준다. 정치적 계급이 형성되 면 이들은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른 제도적 이합집산의 방식으로 사회와 관련을 맺게 되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와의 관계가 곧 민주적 정치과정이라 할 수 있다. 정당은 때로는 집단행동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때로는 조정과 타협, 협상의 기회의 장을 마련함으 로써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특정 이익을 관철시키는 등 민주적 원리가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정당이 취약하고 정당체제의 제도화가 미비한 경우(Mainwaring and Scully 1995),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작동과 유지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실제로 이 러한 사례들을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경우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80년대 민주화 이후 민 주주의의 공고화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일부 국가들이 경험한 반정당정치(anti-party politics) 와 포퓰리즘, 정치적 외부인 의 등장과 집권 등의 현상은 정당체제의 취약한 제도 화로 야기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현상들은 정치적 결과에 대한 예측불가능성, 대표성의 약화, 행정권에 대한 견제와 균형 기제의 약화, 권위적 정책추진 등을 가속화하고 정당체제의 불완전한 제도화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탈제도화의 수준으로 떨어지는 부정적 효 과를 가져오고 있다. 이와 같은 정치적 악순환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페루라 할 수 있다. 페루의 경우 볼리비아, 브라질, 에콰도르와 함께 정당체제의 제도화 수준이 낮은 국가로 평가되어 왔다(Mainwaring and Scully 1995). 1978년 제헌의회 선거를 기점으로 민주화 과정을 거친 페루는 약 30여 년의 짧은 기간 동안 취약한 정당체제 및 민주적 제도들이 공 고화되기도 전에 심각한 경제위기와 정치적 폭력사태, 인격주의와 포퓰리즘에 기반한 정치 지도자의 등장과 탈제도적, 권위적 통치, 민주적 제도 및 원리의 재작동을 경험했다. 특히, 1990 년대 이후 정당체제를 중심으로 한 페루 정치의 변화는 정당정치의 붕괴, 정당체제의 해체 또는 탈제도화 (Kenney 2003; Levitsky and Cameron 2003; Mainwaring and Scully 1995; Mainwaring and Torcal 2005) 등 다양하게 명명되면서 민주주의의 공고화 에 기여하는 정당체제의 중요성과 취약한 정당체제가 갖는 부정적 효과를 동시에 보여주었 다. 최근 APRA 와 가르시아(A. Garcia) 대통령의 집권을 예로 들며 페루의 정당체제가 복구 되고 있다는 낙관적 기대가 형성되고 있기는 하지만 페루 정당체제의 복구와 민주주의로의 진전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페루 정당체제의 성격과 한계, 정당체제 작동의 부침에 관한 보 다 통시적이고 정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페루 정당체제의 성격, 한계와 다른 외부적 요인들이 그들의 탈제도 화 과정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나아가 정당체제의 탈제도화가 페루 정 치와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어떤 부정적 효과를 가져왔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현재 조심스럽게 전망되고 있는 페루 정당체제의 부활, 정당체제의 재제도화를 위해 극복해 야 할 문제점들을 검토함으로써 민주주의에 미치는 정당정치의 중요성을 제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본다. 이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먼저 2장에서 정당체제와 이의 제도화에 대한 간략한 이론 적 검토와 함께 페루 정당체제의 형성과 제도화 수준을 살펴볼 것이다. 3장에서는 정당체제 의 탈제도화 과정을 기존 정당들의 한계를 중심으로 주요 시기별로 구분해 검토할 것이다. 4장과 결론에서는 현재 페루 정당체제의 재작동이 갖는 성격을 검토하고 민주주의 공고화 에 기여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문제를 제시할 것이다

49 Ⅱ. 페루 정당체제의 형성과 제도화 수준 정당은 공직을 위한 입후보자들뿐만 아니라 선거가 치러지지 않거나 금지당했기 때문에 입후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정치집단이다. 이때 선거에서 경쟁하지 않는 집단은 정당이라 정의될 수 없다. 정당체제는 유형화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 정당들의 집합 1) 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정의는 정당체제와 비체제를 구분하는 세 가지 조건을 포함하고 있다. 첫 째, 사르토리의 지적처럼 정당체제는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정당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둘째, 유형화된 상호작용이라는 개념은 비록 새로운 정당들이 만들어지거나 사라져도 시간이 흐름 에 따라 정당들에 의한 선거 지지의 분포에서 일정한 규칙성이 나타나야 함을 의미한다. 셋 째, 정당체제는 그 체제를 구성하는 정당들에 어느 정도의 연속성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다(Mainwaring and Torcal 2005, 5). 그렇다면 정당체제가 제도화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하는가? 물론 제도화 는 정도의 문제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제도화는 어떤 조직과 절차가 가치와 안정성을 획득하는 것이다(Huntington 1968, 12). 정치 행위자들은 제도화를 통해 가치에 기초한 정치적 기대 및 절차의 실행과 그 결과가 예측가능하리라는 가정에 따라 행 동을 하게 된다. Mainwaring과 Scully(1995) 에 따르면, 제도화된 민주적 정당체제는 다음의 네 가지 조건 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 가장 중요한 조건은 정당 간 경쟁의 성격과 규칙들에서의 안정성이다. 정당 경쟁의 유형은 일정한 규칙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주요한 정당들은 규칙적으로 나타나고 제도화된 정당체제의 특성이 빠른 시간 내에 변화하거나 사라져서는 안 된다. 둘째, 주요 정당들은 사회 내에서 안정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정당과 사회의 관계가 확고하지 않으면 그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정치적 선호를 구체화할 수 없으며 사 람들이 투표하는 방식에서의 규칙성이 제한된다. 사회 내에 확실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정 당은 그들의 이데올로기적 성향이 상대적으로 일관적이며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도 비교적 일관적으로 나타난다. 셋째, 제도화된 민주적 정당체제에서는 주요 정치 행위자들이 선거 과정과 정당들에게 정 당성을 부여한다. 정치엘리트들은 선거가 통치의 주요한 경로일 것이라는 기대에 기초해서 행동한다. 만일 이러한 기대가 붕괴되기 시작하면 정당체제의 제도화 또한 흐트러지기 시작 한다. 제도화된 정당체제에서 정당들은 권력으로의 통로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행위자이다. 마지막으로 제도화된 정당체제에서는 정당의 조직이 중요하다. 그들은 야심찬 지도자의 1) 사르토리 (G. Sartori) 는 정당체제를 전체 정당 수에 따라 정의하고 분류하는 뒤베르제의 방법을 비판하며 두 개의 범주- 적실성있는 정당의 수와 이념적 양극화의 정도- 에 따라 정당체제를 정의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적실성 있는 두 개 이상의 정당이 존재하면 경쟁적 정당체제이며 이는 경쟁적 정당의 수에 따라 양당제, 다당 제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적실성있는 반체제 정당의 유무, 정당이 표방하는 이데올로기의 차이 정도에 따라 분극적 다당제와 분절적 다당제로 구분한다 (Sartori 1976). 이에 대해 메인웨어링과 스컬리 (Mainwaring and Scully 1995) 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정당체제를 정당 수에 따라 분류한다면, 동일한 종류가 아닌 정당체 제를 함께 묶기 때문에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볼리비아, 브라질, 에콰도르, 페 루와 칠레는 모두 다당제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이다. 그러나 볼리비아, 브라질, 에콰도르, 페루는 취약한 정당 들과 휘발성의 정당체제를 가지고 있는 반면 칠레는 역사적으로 비교적 강력한 정당들과 잘 구조화된 정당체 제를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때문에 사르토리의 분류에 더하여 정당체제의 제도화 정도를 비교하는 접근방식 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정당체제에서 나타나는 다양성을 포착하는데 더욱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4-6). 이 글에서는 정당체제의 정의 및 제도화의 척도에 대해 Mainwaring 과 Scully 가 제시한 내용(Mainwaring and Scully 1995) 을 따랐다

50 개인적 이익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 즉, 정당조직은 그들 자신의 독립적 위상과 가치를 획 득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네 가지 범주 중에서 정당 간 경쟁의 규칙성 및 안정성, 정당의 사회적 근원 은 선거유동성(electoral volatility), 이념적 분극화(ideological polarization) 의 측정치가 갖 는 의미를 검토함으로써 그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2). 정당의 정당성과 정당 조직의 독립성 정도는 개별 정당의 역사성과 성격에 대한 검토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1. APRA의 창당과 근대적 정당체제의 작동3) 독립 이후 페루의 정치는 통치능력의 위기, 군부 개입에 의한 헌정 질서의 중단, 그리고 상이한 권위주의적 발전 프로그램의 다양성에 의해 특징지을 수 있다. 이는 사회적, 인종적, 지역적 분열 및 세습주의적인 과두제 질서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정치구조의 주요한 변화가 있을 때마다 특정한 사회분파가 자신들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관철시키기 위 해 조직을 만들었고 이는 분화된 사회적 이익을 정당이 대표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때문에 페루의 정당들은 대부분 그 출발부터 고도로 개인화된 리더십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고 권위주의적 성격과 함께 전통적인 세습주의적 방식을 재생산하는 경로를 따랐다. 과두제 질서 하에서 지역의 정치지도자들은 모호하고 포괄적인 이데올로기 적 정향성을 가지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체화했으며 분배 자원과 후원-수혜 네트워크를 통제해왔다. 이러한 극단적 개인화, 반대자는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는 성향은 경쟁적 정치 에 필수적인 특징들로서의 협상과 계약의 발전을 방해하는 결정적 요인이었다(Cotler 1995, 323). 특히, 근본적인 인종적 균열과 불평등은 과두제 질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데 장애 로 작용했으며 독립과 워졌다. 1980년 재민주화 사이의 대부분은 불안정한 과두제와 군부통치로 채 페루의 첫 번째 주목할 만한 정당은 구아노를 독점하는데 성공한 리마의 상인들에 의해 창설되었다. 상인들은 독립선거사회당(Sociedad Independencia Elctoral) 을 창당했고 이후 1872 년 시민당(Partido Civil) 으로 이름을 변경했는데 이는 까우디요들의 군사 정당 에 반 대한다는 의미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근대적 의미에서의 정당은 아야 데 라 또레(Haya de la Torre) 가 1930년 창당 한 미주인민혁명동맹(Alianza Popular Revolucionaria Americana; APRA) 이라 할 수 있다. APRA 는 반봉건, 반제국주의적 혁명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며 아야 데 라 또레는 페루에서 사회주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율적인 국가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한 토대를 세우는 것이 필수적인 단계라고 인식하고 반봉건, 반제국주의적 혁명을 목표로 APRA 를 창당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야 데 라 또레와 그의 사상은 으며 APRA의 민족주의적이며 혁명적 성격을 상징했 APRA의 최고 수장으로서의 아야 데 라 또레 개인에 대한 의존성은 개인화된 정당의 특성을 보여준다. 비록 1932년부터 1962년까지 APRA가 군부에 의해 불법화되어 명목상이 나마 선거에서의 경쟁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APRA는 명실공히 페루의 주도적인 정당 2) 선거유동성 (electoral volatility) 은 하나의 정당에서 다른 정당으로, 한 시기의 선거에서 다음 번 선거에 나타 난 변화의 총합을 의미한다. 이는 개별 정당들이 한 선거를 기준으로 그 다음 선거에서 얻거나 잃은 표의 퍼 센티지의 순 변화를 모두 더해 2로 나누는 방식으로 계산되는데 이를 Pedersen Index 라 한다(Pedersen 1979). 이념적 분극화는 Mainwaring 과 Torcal(2005) 의 좌-우 정당 매치를 종속변인으로 하는 logistic regression 결과를 인용했다. 3) 이 절의 내용에 관해서는 Graham(1990), Cotler(1995) 를 참조

51 이었으며 첫 번째 대중정당으로서 페루 정치에 중요한 주체로 자리잡았다. 한편 마리아떼기(Mariátegui) 는 1928 년 페루 사회주의당(Partido Socialista del Peru) 을 조직했다. 그는 페루의 사회주의적 전환을 위해서는 도시노동자들과 인디오 농민들의 계급 의식을 고취시키고 혁명적인 조직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마리아떼기는 PSP 에 사회 부문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강조했으며 중간계층에 의해 주도되는 어떠한 정당의 중 재도 반대했기 때문에 점차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 정당체제가 형성된 것은 APRA 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Cotler 1995, 326) 년 벨라운데(Fernando Belaúnde) 에 의해 민중행동당(Acción Popular) 이 창설되고 이후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APRA와 경쟁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1968년부터 집권한 군사정권은 경제정책의 전환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내외의 압력에 따른 위기를 APRA 와 인민기독당(Partido Popular Cristiano; PPC) 의 지도자와 정치적 협 상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협상의 결과로 1978년 제헌의회가 구성되었고 정당정치가 복 구되었으며 준 불법적인 좌파 조직들도 출현하게 되었다. 좌파조직들은 1978년 제헌의회 선거를 보이콧하거나 적극적인 선거전략을 취하려 하지 않았지만 1980년 대통령 선거를 준 비하면서 유사한 지지기반의 분산을 줄이고 점차 확대되는 조직적 노동자 및 빈민들의 이해 관계를 대표하기 위한 전략적 협력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정당 및 분파를 구성원으로 하는 좌파 선거정당인 좌파연합(Izquierda Unida) 4) 이 탄생했다 년대 민주화 이행과 더불어 페루 정당체제는 보수주의적, 우파적 성격을 갖는 AP 및 정치적 협력관계인 PPC, 민족주의적, 개혁주의적 성향을 갖는 APRA, 보다 좌파적, 혁명 적 성향을 갖는 IU 의 경쟁적 관계를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APRA, AP, PPC의 지속적인 개 인화 경향과 IU의 분파적 분쟁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페루 정당체제의 작동은 비교적 안정 적이었다. 이들 정당은 과거 민족주의적 운동에 그들의 뿌리를 두고 있으며 서로 구별되는 이데올로기적 정향을 표명하였고 비교적 잘 규정된 사회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전통적 정당들은 1980년대를 통틀어 전체 투표의 70-90% 를 차지하며 선거에서 압도적인 주도권 을 행사했다(Sanchez 2008, 320). < 표 1> 페루 정당과 선거연합 ( ) 당명 창당연도 리더십 이데올로기적 정향 Acción Popular (AP) Alianza Popular Revolucionaria Americana (APRA) Fernando Belaúnde Terry( , ) Víctor Raúl Haya de la Torre 근본적으로는 개혁적, 민중주의적이지만 1980년대 보다 보수적으로 변화 창당시는 민족주의적, 혁명적이었으나 1950년대와 60년대는 보수주의적 동맹을 맺으면서 보다 개혁주의적 성향으로, 1980년대는 중도적 민중주의적으로 변화 4) 페루의 좌파 정당은 1970 년대까지 대중적인 정치적 기반을 가지지 못했다. 마리아떼기가 창당한 페루 공산당 (PCP) 는 반제국주의와 반과두제를 표방한 APRA 와 경쟁했고 노동조직과 대중적 유권자 기반을 얻는데 실패 해 정치적 소외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1956년 아야 데 라 또레가 정치체제로의 재진입을 위해 과두제적 대통 령이었던 프라도와 협약을 맺고 점차 보수주의적 성향으로 옮겨가면서 페루 좌파는 1960년대 안데스 고지대 의 급진적인 농민 운동과 가장 영향력 있는 동원체중 하나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또한 제조업 성장은 산업노 동자세력을 확장시켰고 이들은 점차 APRA 의 후원- 수혜주의적 연계로부터 이탈하여 계급 기반적 정체성과 조 직화된 전략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적 동원화는 좌파의 세력을 강화하는 기반을 제공했다 (Roberts 1996, 71-72)

52 Cambio ' Alberto Fujimori Convergencia Democrática (CODE) Democracia Cristiana (DC) Frente Democrático Nacional (FDN) Frente Democrático (FREDEMO) Frente Nacional de Trabajadores y Campesinos (FRENATRACA) Izquierda Socialista (IS) PPC와 Movimiento de Bases Hayistas로 구성 1945 APRA 포함 1989 AP, Libertad, PPC, SODE로 구성 출처: Cotler(1995), p.327; Kenney(2003), pp 에서 재구성 * 1978년 창당되었으나 제헌의회 선거에는 기권 후지모리 개인의 선거 참여를 위한 수단 으로 기술관료적이고 민중주의적인 이미 지를 중심으로 한 운동정당 1985년 선거를 위한 동맹이며 Movimiento de Bases Hayistas는 APRA의 보수적 분파 개혁주의적 중도적 성향. 1967년 이후 소 수정당으로 위축 1945 년 선거를 위한 동맹. 1948년 군사 쿠데타로 전복 1989년 시장선거와 1990년 총선을 위한 동맹. Mario Vargas Liosa를 대통령으로 지지 1962 개혁주의적, 민중주의적 성향 1989 IU의 중도 좌파 분파 Izquierda Unida 1980 Alfonso Barrantes 일부 정당과 선거연합의 좌파적 선거연합 Libertad 1988 Movimiento Democrático Pradista (MDP) Unión Nacionla Odriísta (UNO) Partido Popular Cristiano (PPC) Sociedad y Democracia (SODE) Mario Vargas Llosa Manuel Prado( , ) Manuel Odría( ) Mario Vargas Llosa의 선거운동을 위한 운동 정당. 보수주의적 Prado 개인의 선거 운동을 위한 운동 정 당. 보수주의적 Odría 개인의 선거 운동을 위한 운동 정 당. 보수주의적, 민중주의적 1967 DC의 보수주의적 분파 1985 중도주의적 기술관료들에 의해 창당된 군 소 정당 APS, PRT, UNIR* 1980 군소정당, 1980년 선거 이후 해체 FOCEP, PCP/UI, PSR + UDP 년 제헌의회를 위해 구성된 선거연 합. 1980년 선거 이후 해체 2. 정당체제의 불완전한 제도화 1) 선거유동성 < 표 2> 는 라틴아메리카 12 개 국가의 선거유동성을 보여준다. 유럽 및 미국과 비교해보았 을 때,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선거유동성은 상당히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페루 는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 모두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으 며 의회선거의 경우 가장 높은 선거유동성을 보이고 있다. 이는 선거 때마다 유권자의 선호 가 급격히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자신의 이해관계를 하나의 정당이 일관적으로 대표하고 있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53 < 표 2>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선거유동성 하원 의석 대통령선거 국가 선거 평균 평균 평균 시기 시기 선거회수 회수 유동성 유동성 우루과이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칠레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멕시코 파라과이 볼리비아 에콰도르 페루 브라질 유럽 미국 출처: Mainwaring and Scully(1995), p.8; Madrid(2005), p.6. 페루의 선거유동성이 높은 이유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도시의 조직화된 노동자, 농민과 비조직화되고 동원화되지 않는 지방 사이의 괴리가 매우 큼에 따라 대부분 의 정당들이 서로 겹치거나 경계가 불분명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둘째, 사회의 계급기반적 이해관계가 불분명했기 때문에 계급정당으로서의 성격보다는 포괄적 대중정당으 로서의 성격이 강하게 반영된 정당체제였다는 점, 셋째, 아야 데 라 또레의 APRA, 벨라운 데의 AP 등 주요 정당의 리더십이 정당 자체의 이미지보다 더욱 큰 인격주의적 성향을 보 이고 있다는 점 등이다. 한편, 높은 선거유동성에 따르면 페루 정당체제는 정당들 간 경쟁이 갖는 규칙성과 안정 성의 정도가 낮지만 < 표 3> 과 < 표 4> 는 주요 정당들이 지속적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비록 선거때마다 유권자들의 선택은 달라지지만 이러한 선택이 기 본적으로 정당체제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정당체제 내에서 주요 정당 간 경쟁은 유권자들이 대안적인 정당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고 이에 따라 정당 을 통한 이해관계의 관철을 기본적인 정치행위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적어도 1980년대 페루 정당체제는 구분되는 이데올로기적 정향성 과 경쟁적인 선거전략을 중심으로 정당체제 내에서는 일정한 경쟁법칙이 작동, 유지되며 유 권자에게는 기대에 따른 선택과 이해관계의 대표성을 인정받는 제도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 다고 말할 수 있다. < 표 3> 1978년 제헌의회 선거 및 년 대통령선거 정당 (1 차) 1990(2 차) APRA AP PPC IU Cambio ' 출처: Cotler(1995), p 재구성

54 < 표 4> 정당 별 하원 의석 점유율 ( , 180 석) 정당 APRA % AP PPC IU Cambio ' 출처: Cotler(1995), p 재구성. 2) 이념적 정향과 정당일체감 정당체제의 제도화 정도는 정당들이 사회 내에서 얼마만큼 뿌리내리고 있는가 즉 이념적 인 일관성이나 사회 행위자들과의 관련성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가늠할 수 있다. 예를 들 면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 사이의 차이는 정당들이 사회에 얼마나 깊게 침투하고 있는지 를 설명하는데 있어 일정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정당들이 정치적 선호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행위자인 경우 국민들은 대통령 선거나 의회 선거 모두에서 동일한 정당의 이념적 정향과 이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선호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Mainwaring and Scully 1995, 12). 또한 제도화 수준이 높을 경우 정당들은 주요한 사회 조직들의 이익을 압축해서 대표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는 국민들과 정당 간의 정당일체감으로 나타난다. < 표 3> 과 < 표 4> 에서 보듯이 페루 정당체제를 구성하는 주요 정당들은 지속적으로 일정 한 지지를 얻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페루 정당체제의 주요 정당들 중 창당 이후로 10% 이 상의 지지를 계속해서 받은 정당은 1990년을 기준으로 할 때 APRA(63 년), AP(37 년), PPC(26 년), Cambio '90(4 년) 이다. 이는 한편으로 정당체제를 구성하는 주요 정당들이 지속 적으로 일정한 지지를 획득하며 사회에 확고히 뿌리내렸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주요 정당들이 얻은 지지는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에서 총합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이는 적어도 선거에 있어 주요 정당 간의 경쟁과 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유권자의 선택은 이 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높은 선거유동성을 고려했을 때 정당체제의 경쟁이 갖는 규칙성과 안정성의 정도는 낮지만, 페루의 정당들은 정치적 경쟁의 성격을 결정하며 유권자와 정치엘리트의 목적에 맞추는 상징성을 제공하고 있고 개별 정당의 이념적 정향이 어느 정도 구분 가능하며 이에 따른 유권자들의 지지 유형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이라 볼 수 있다. 3) 개인화된 정당의 인격주의적, 세습주의적 특성 페루 정당체제의 제도화 수준이 취약하다는 평가에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준 요인은 다음 과 같은 페루 정당들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즉, 이념적, 실천적 상징체로서의 리더십에 대 한 과도한 의존, 리더십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심에 기반한 정당조직의 운영(APRA), 대중의 요구에 기반한 엘리트들의 정치적 선택보다는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감정을 근간으로 한 정 치적 이합집산(IU, PPC), 개인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개인화된 정당 조직(AP) 등의 특성이 지속되고 재생산되어 왔던 것이다. 합의의 부족, 정당 원들내 전문 인력의 부족, 고질적인 파벌주의의 문제는 페루 정당들이 기존의 사회 집단, 노조, 민간부문과 효율적으로 협력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능력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볼 수 있으며 점차 개별 정당에 대한 불신을 넘어서 정당체제 자체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확산

55 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Ⅲ. 페루 정당체제의 탈제도화 과정 정당체제의 쇠퇴 또는 붕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매우 다양하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당체제의 제도화와 안정적인 작동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에 따르면, 한 정당 에 기반하고 있는 정권의 정책성과 및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 정당이 표방하고 있는 이념적 정향에 대한 선호, 정치사회화 과정에서의 정당 역할 및 조직 성격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 때 특정 시기의 정치경제적, 사회적 환경은 정당의 정책수행이나 대중의 정당 일체감 정도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정당체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산체스(Sanchez 2008) 에 따르면, 정치적 정향성에 대한 신념 약화, 국가의 기능과 크기 축소로 인한 물질적 이익 또는 정책적 특권의 전달체로서 정당의 후원- 수혜 기능 약화, 비 공식부문의 증가와 조직화된 사회부문의 약화, 대중매체의 확산과 기술 발전이 낮은 정당 충성심 및 높은 투표유동성을 초래하고 나아가 정당체제를 탈제도화시키는 환경적 조건으로 작용한다. 페루의 경우 신자유주의로 인한 경제적 환경의 변화(Graham & Kane 1998; Karen 1991; Kelley 1994; Kenney 2003; Robert 1995), 비공식적 노동 부문의 급속한 증대 및 인종적, 지역적 불평등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균열의 확산(Cameron 1994, Dix 1989, Kelley 1994; Levitsky & Cameron 2003; Madrid 2005; Neto & Cox 1997), 대중매체 의 확산과 선거제도의 변화(Jones 1999; Cameron 1994; Levitsky & Cameron 2003) 등 을 정당체제의 약화를 가져온 환경적 원인으로 들고 있다. 그러나 케네이(Kenney 2003) 는 1978년부터 2001년까지 페루 주요 정당의 성쇠와 정당체제의 변화과정을 검토하면서 무엇 보다도 중요한 요인은 1980년대 이후의 정치경제적 위기와 사회 균열구조의 심화 등 환경 적 요인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정당( 정치엘리트) 의 내적 한계와 정책수행 실패가 선거 유동성, 정당일체감, 정당을 매개로 한 제도 정치에의 환멸에 영향을 미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라 지적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이에 덧붙여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데서 나타 난 후지모리의 정치적 전략 또한 정당체제의 해체에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고 본다. 따라 서 1978 년 이후 각각의 정권이 기반했던 정당들의 정책수행능력과 한계, 후지모리의 친위 쿠데타(autogolpe) 를 중심으로 페루 정당체제의 탈제도화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정당체제의 재작동과 무능력( ) 1978년 제헌의회 구성을 시작으로 한 민주화 이행에 따라 페루의 정당들도 법적 지위를 확보하고 1980 년 선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APRA와 AP는 군사정권 이전 창당되어 민주 화 이행과정에서 요구되는 경쟁적인 정당체제를 형성할 수 있었고, 다른 라틴아메리카 군사 정권과는 달리 개혁적, 좌파적 성향을 일정정도 가지고 있었던 벨라스코 군사정권 하에서 좌파 세력들도 민주화 이행시기에 일정한 지분을 차지하며 정당체제 내로 진입할 수 있었 다. APRA-AP, PPC-IU를 중심으로 하는 정당체제는 1980 년 벨라운데 정권(AP, PPC) 을, 1985 년 가르시아 정권(APRA) 을 창출하며 정당체제를 근간으로 페루의 민주주의가 공고화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정당체제가 가장 안정적으로 작

56 동했던 1980 년대에 바로 그 정당체제의 한계, 보다 정확히 말하면 정당체제를 구성하는 개 별 정당들과 정치엘리트들의 한계로 인한 정당체제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년대 경제적, 정치적 위기는 강력한 집단적 이해관계를 약화시켰고 이는 이 시기 대 중에 기반한 정당의 쇠퇴를 가져오는데 일조했다. 경제적 위기의 심화와 정치폭력의 확산은 사회운동을 위축시키고 원자화하는 불안감을 조성했으며 좀 더 방어적이고 소극적으로 변화 시켰다(Crabtree 2010, 375). 더욱이 이러한 상황을 민주화 이후의 정권들이 해결하는데 실패함으로써 이들과 이들이 기반하고 있는 정당의 정책수행력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켰다. 벨라운데 정권 5 년 동안( ) 일인당 GDP는 11% 가 하락했고 인플레이션은 3,584% 였다. 또한 더러운 전쟁 의 여파로 약 8천여명의 희생자가 생겼으며 따라서 정권 초 기 약 75% 의 지지율이 1985년 26% 로 하락했던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벨라운데 정권 의 경제적, 정치적 실패는 자연스럽게 벨라운데의 정당인 AP와 연정을 이룬 PPC에도 책임 이 돌려졌다. 게다가 PPC의 경우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정당이며 따라서 사회적으로 매우 배타적인 정당이라 인식되고 있었다. 실제로도 PPC의 경우 리마의 상류층과 소수의 중산층 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우파의 이념적 정향성을 가지고 있던 없었다. AP의 몰락을 대체할 수 있는 정당으로서의 국가적 위상과 기반이 매우 취약할 수밖에 창당한지 63년 만에 처음으로 정권을 획득한 APRA 의 경우, 가르시아 대통령이 보여준 당내에서의 카리스마와 대중적 인기는 매우 희망적으로 보였다. 가르시아는 아야 데 라 또 레 이후에 거의 처음으로 APRA의 대표성을 인정받는 리더십을 보여줬으며 연로하고 유약 한 이미지의 벨라운데와는 달리 젊고 야심찬 가르시아는 페루의 가장 오래된 정당인 APRA 의 입지와 상징성, 이전 정권의 실패로 인한 대중들의 상대적 기대감을 등에 업고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나치게 포퓰리즘적인 가르시아 정권의 경제정책은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페루 경제를 더욱 깊은 위기로 몰 아갔다. 일인당 GDP는 전체적으로 15% 가 하락했으며 임기 말년에는 연간 인플레이션이 3,800% 이상으로 상승했다. 더욱이 빛나는 길 의 활동이 확산됨에 따라 대게릴라전에 의한 희생자도 증가했고 더욱 심각한 것은 사회 전반적으로 정치폭력에 대한 공포감과 불안이 만 연하게 되었다. 한편, 대중의 지지를 잃은 APRA와 AP의 대안이 기존 정당체제 내에서 부재했다는 점은 페루 정당체제의 완전한 탈제도화를 촉진시킨 요인이라 볼 수 있다. PPC뿐만 아니라 좌파연합인 IU는 1980년대 상당한 성장을 보였고 선거에서도 일정한 지 지를 획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조직적인 정당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지 못 했다. 이는 IU가 선거를 위한 분파간 연합세력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고질적으로 내부의 분 열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으며 바란떼(Alfonso Barrante) 이후로 이들을 통합할만한 리더십 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Kenney 2003, ). 따라서 급변하는 정 치경제적 환경에 통합적으로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어려웠다. 다른 한편, 페루 정당체제 내 전통적인 정당들의 정책수행능력뿐만 아니라 세습적이고 개 인화된 성격은 이들 정당의 무능력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라함(Graham 1990) 은 APRA의 사례를 중심으로 개인의 리더십이 갖는 상징성과 군부 정권으로부터의 정치적 박해로 인해 신화적 이미지로 유지되어 왔던 정당 문화를 비판했다. 또한 페루 정당들이 의존하고 있던 이미지는 권력을 획득했을 때 현실로 구체화되지 못하고 위기에 대한 무능력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57 APRA 의 경우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을 추구하는 혁명적 노선을 표방하며 시작되었다. 이후 30여 년간의 정치적 박해는 APRA의 파벌주의적 성격뿐만 아니라 당의 존속을 당원의 사명감과 충성심에 의존하는 정도를 강화시켰다. 이러한 성향은 다른 진보세력과의 효율적 인 협력 능력을 축소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5). APRA 는 한편으로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다 른 한편으로는 정당 충성심의 복합적인 앙금과 강력한 개인적 경험, 수반하고 있는 이념적 스펙트럼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함께 집중적인 정당 기제에 부분적으로 지원받는 형태로 유 지되어 왔다. 또한 전문 인력의 부족, 창당 당시의 반봉건적, 반제국주의적 강령에 대한 합 의 부족에 따른 과도한 내부적 차이, 정당 지도자에 대한 의심 없는 충성심의 오랜 전통이 라는 짐을 동시에 지고 있다. APRA 자체의 이러한 문제점들은 1985년 가르시아가 대통령 으로 당선되고 이들이 집권당이 되었을 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러나 합의의 부족, 정당원들내 전문 인력의 부족, 고질적인 파벌주의의 문제는 비단 APRA 에게서만 나타나는 특징이라 볼 수 없다. 이념적 스펙트럼의 차이는 페루 좌파 정당 의 분열과 분파주의를 지속시키며 결국 IU 의 해체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IU를 구성하 는 정당들은 마르크스주의, 마오이즘, 트로츠키주의, 게바라의 민족주의적 혁명노선을 지지 하는 정치연합까지 다양한 이념적 정향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벨라스코 군사정권에 대한 지 지부터 정당의 행동강령까지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 극심한 대립 과 경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의 분파주의와 내적 분열, 이에 따른 지지기반의 불신과 이탈 등은 결국 라틴아메리카 에서도 가장 강력한 선거좌파정당으로서의 입지를 보여주었던 IU가 1980년대 벨라운데 정 권(AP) 및 가르시아 정권(APRA) 의 무능력을 채워줄 대안적 세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 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나아가 경제위기와 정치폭력은 페루를 더욱 분열되고 원자화된 사 회로 만들었고 이는 계급기반적인 집단적 행동을 저해했다. 또한 기존의 정치적 대표채널을 흐트러지게 하고 시민사회와 국가기관 사이의 중재자로서 정당의 입지를 취약하게 했다. 이 와 같은 환경에서 IU는 분파적이고 이질적인 사회부문들의 이해관계를 적절하게 대표하고 조율할 능력을 보이지 못했다. 결국 응집적이고 능력있는 정치적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함으 로써 IU는 양극화되고 1989 년 해체될 수밖에 없었다. < 표 5> IU의 구성 IU의 구성정당 이념적 정향성 Partido de Comunista Peruana 1930 년 창당. 마리아떼기의 페루 사회주의 정당이 기원 Unida del Izquierda Revolucionario 1980 년 창당, 1960년 PCP의 분파로 마오이스트 노선을 따르는 정치연합 Partido Comunista Revolucionario 1974 년 혁명전위당(Vanguardia Revolucionario)의 분파로 나온 신좌파정당 Partido Socialista Revolucionario 1976년 벨라스코 정권의 군부 및 기술관료 지지자들에 의해 창당 Frente de Obras, Campesinos, Estudiantes y Popular 1970년대 후반 트로츠키주의 정치연합이 기원 Accion de Politica Socialista 1980년 신문편집장인 Gustavo Mohme이 창당 Partido Unidad Mariateguista PCR, VR, MIR의 분파 연합 연속적인 정권의 정책실패는 선거유동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고 결국 정치 엘리트들과 5) 현지 조사를 통해 만나본 대다수 APRA 당원들은 당에 대한 충성심의 정도가 매우 강했으며 오직 그들만이 개혁을 수행할 수 있다("solo el APRA salvara el Peru") 는 감정이 깊숙이 내재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58 시민사회 간의 괴리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대중 부문의 정치적, 문화적 참여 가 증가하면서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경제적 문제는 더욱 광범위하게 인식되었고 이러한 문 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극복하려고 하는 의지와 능력이 부족한 정당들에 대한 불신이 점 차 증가했다. 정당의 책임성 부족에 대한 불신과 실망,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정당들의 개 인화 및 정당 간 갈등은 정당과 사회의 연관성을 약화시켰다. 따라서 대중들은 정당의 이념 적 정향과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일치시켜 투표하기보다는 자원의 배분, 정당 지도자나 후 보자 개인의 이미지, 현 정부의 정책으로 인한 생활조건의 변화 등에 기초해서 투표하는 경 향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전통적 정당들은 여전히 의회의 2/3을 차지하고 있었고 대선 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정당체제 내에서 다른 대안을 찾는 정치적 경쟁이라는 측 면에서 아직까지 정당체제 그 자체는 손상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었다고 볼 수 있다 6). 2. autogolpe 와 정당체제의 탈제도화( ) 많은 학자들이 페루 정당체제의 붕괴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준 요인으로 후지모리주의 (fujimorismo) 를 지적한다. 그러나 후지모리주의가 정당체제 붕괴의 원인인지 또는 결과인 지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후지모리 정권 시기에 정당체제가 회복할 수 없 는 쇠퇴의 조짐을 보였다는 주장도, 1985년부터 1990년까지의 가르시아 정권의 실책이 후 지모리 승리의 원인이기 때문에 정당체제의 쇠퇴가 후지모리 승리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주 장도 하나의 측면만을 과장해서 설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후지모리가 좌파 정당이든 우파 정당이든 정당체제의 작동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이며 동시에 페루 정당체제가 가 지고 있는 근원적이고 고질적인 병폐 즉, 사회 균열구조를 제대로 반영하지도, 사회 여타세 력들의 갈등과 이해관계를 제대로 조정하지도 못한 정당들의 무능력뿐만 아니라 후원-수혜 주의 및 세습주의, 인격주의 등과 같은 병폐와 경제위기, 정치폭력 등의 외부 요인들 또한 모두 정당체제의 붕괴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타나카(Martín Tanaka) 가 지적했듯이, 페 루의 후지모리는 볼리비아의 산체스 대통령이나 멕시코의 살리나스, 아르헨티나의 메넴과는 달리 신자유주의에 맞춰 그들의 정당을 변모시키기보다는 정당들과 정면으로 부딪혔다는 점 (Crabtree 2010, )에서 정당체제를 붕괴시킨 가장 큰 요인으로 부각되었을 뿐이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분을 획득하고 있던 전통적인 정당들이 1990년 후지모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까지 비교적 선거에서 일정한 1995년 대선과 총선에서 몰락에 가까운 결과를 얻었으며 이는 1992 년 후지모리 대통령의 친위쿠데타(autogolpe) 를 기점으로 반정당주의가 본격화된 결과임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6) 페루 정당체제 자체의 위기가 이미 1989 년 리마 시장 선거에서부터 나타났다는 주장도 있다. 레비스키와 카 메론(Levitsky & Cameron 2003) 은 Ricardo Belmont 가 Obras 로 불리는 독립적 운동 을 형성해 선거운동 을 하고 시장에 당선된 사례를 들어 이미 기존 정당에 기반한 후보자 중심의 선거전략이 힘을 잃었음을 주장 한다. 이는 1990 년 대선에서 후지모리뿐만 아니라 가장 관심을 끌었던 바르가스 요사(Marion Vargas Llosa) 후보도 명망은 있었지만 특정 정당에 소속되어 있던 정치인이 아니었다는 점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바르 가스 요사의 경우 AP와 PPC 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는 점에서, 또한 선거유동성은 높았지만 이념적 정향과 전 통적인 정당일체감이 여전히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이 시점을 정당체제 자체의 붕괴로 보기는 어렵다 고 본다

59 < 표 6> 1993년 시장 선거 참여 정당과 득표율 정당 득표율 Accion Popular(AP) 12.3 Partido Arista Peruano(APRA) 11.7 Partido Popular Cristiano(PPC) 5.3 Izquierda Unida (IU) 4.0 Frente Nacional de Tradajadores 3.3 Movimiento Democrático de Izquierda 0.5 Listas Independientes Ganadoras 25.6 기타 37.4 출처: Perú Politico en Cifras; Tuesta Soldevilla, Fernando; Fundación Friedrich Ebert; Tercera Edición, ONPE( < 표 7> 1995년 대통령선거 및 의회선거 참여 정당과 득표율 정당 대통령 후보 대통령선거 득표율 의회선거 득표율 Nueva Mayoría(NM) /Cambio' 90* Alberto Fujimori Union por el Peru(UPP) Javier Pérez de Cuéllar Partido Aprista Peruano(APRA)* Mercedes Cabanillas Frente Independiente Moralizador 4.8 Convergencia Democrática (CODE)/Pais Posible Alejandro Toledo Renovación 2.9 Movimiento Obras Ricardo Belmont Accion Popular(AP)* Raúl Diez Canseco Partido Popular Cristiano* 3.0 FREPAP Ezequiel Ataucusi Movimiento Independiente Agrario(MIA) 1.1 Izquierda Unida(IU)* Agustín Haya de la Torre Perú al 2000/Frente Nacional de Trabajadores y Campesinos(FNTC)* Luis Cáceres Velásquez Nuevo Perú Sixtilio Dalmau PRP Victor Echegaray Perú Puma Edmundo Inga Paz y Dessarrollo Miguel Campos Reconciliación Nacional Carlos Cruz INCA 0.2 Rcambio 0.2 기타 출처: Perú Politico en Cifras; Tuesta Soldevilla, Fernando; Fundación Friedrich Ebert; Tercera Edición, ONPE( 대통령선거 득표율은 8,803,049명 중 유효투 표 7,226,341 명(82.1%), 비기재투표 806,850 명(9.2%), 무효표 769,858 명(8.7%) 중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이며 의회선거 득표율은 7,961,114명 중 유효투표 4,289,650 명(53.9%), 비기재투표 482,266 명(6.1%), 무효표 3,189,198 명(40.1%) 중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이다. * 표시 정당은 1990년 이전 또는 1990년 선거에 참여했던 정당 후지모리와 Cambio 90은 대선 초기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급진적인 자유주의적 정책을 표방한 바르가스 요사와 우파 정당들에 반감을 가진 대중들의 지지와 함께 가르시아 정권의 실정으로 인한 APRA 의 쇠퇴, IU 해체로 인한 노동자, 농민들의 지지표 흡수 등에

60 힘입어 2 차 결선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특히 APRA의 내부 분열로 가르시아가 APRA의 까 스트로(Luis Alva Castro)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후지모리를 지원했으며 일본인 3 세라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또한 결선투표 방식 덕분에 결국 아웃사이더7)인 후지모 리는 1차 투표에서 2 위에 그쳤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 후지모리는 그의 정치적 배경으로 삼을 수 있는 실질적인 정당을 가지지 않았고 실행할 프로그램도 정부를 이끌 인력팀도 없었다. 의회 내에서 그를 지지하는 의원은 전체의 1/5정 도밖에는 되지 않았고 이는 후지모리가 급진적인 신자유주의 정책(fujishock) 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번번이 장애가 되었다. 민주적 정치체제의 소위 주고 받기(give and take) 에 익 숙하지 않았던 후지모리는 정치적 생존을 위해 군부의 지원자인 몬테시노스(Vladimiro Montesinos) 의 힘을 빌어 권위주의적 전략을 선택했고 그 결과가 1992년 4월 의회와 헌정 을 중단시킨 친위쿠데타(autogolpe) 였다. 후지모리는 친위쿠데타가 정당의 비판에 의해 지 배되는 허위적인 민주주의 에서 페루를 구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치적으로는 각 국의 비난이 빗발쳤지만 정작 페루 대중들의 지지는 1992년 3월 53% 에서 쿠데타 이후 81% 로 상승했다(Levitsky & Cameron 2003, 8). 후지모리의 친위쿠데타는 후지모리 vs 反 후지모리(la oposición) 라는 새로운 당파적 균 열을 만들었다. 대중들은 후지모리 정권의 권력 남용에 반대를 하면서도 그러한 남용이 강 력하고 효과적인 리더십의 대가라고 인식했고 오히려 민주적 제도들을 방어하는 반대파들을 비판하는 현상을 보여주었다. 특히 대중적 지지를 잃은 상태에서 1992년 치러진 제헌의회 선거에서 APRA, AP, 그리고 IU 는 불법을 이유로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들의 선택은 헌법적 절차를 진행시키는데 방해가 되었다고 받아들여졌을 뿐만 아니라 그 공백을 새로운 정치적 아웃사이더들이 채우는 기회를 제공했다. 비록 1993년 시장선거에 기존 정당들이 참여하기는 했지만 앞의 < 표 6>, < 표 7> 에서 보듯이 기존 정당체제 내의 정당들은 모두 합 해 33.3%, 1995년 대선에서는 6.3% 의 득표율을 획득하는데 그쳤다. 오히려 반대파를 실질 적으로 주도해온 새로운 정당 Pérez Cuéllar) 가 지지기반을 넓힐 수 있었다. UPP(Unión por el Perú) 의 리더인 뻬레스 꾸에야(Javier 친위쿠데타 이후 기존 정당들의 몰락과 민주적 제도의 방어에 대한 대중의 지지 하락을 경험하면서 기존의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새롭게 진입한 정치인들은 민주적 제도에 기반한 선거전략, 정치적 활동을 꺼리게 되었다. 기존 정당체제와 민주적 제도로부터 거리를 둔다 는 의미에서 무소속(independents) 이라 스스로를 정의한(Levitsky & Cameron 2003, 10) 정치인들은 유능한 행정가로서의 평판과 이력을 키우는데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나아가 이 들은 더 이상 정당이라는 정치적 배경과 조직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고 확산된 대중매체 는 이러한 경향을 촉진시켰다. 친위쿠데타 이후 페루의 정당체제가 붕괴되었고 탈제도화되 었다는 것은 기존의 정당체제 내 경쟁하던 전통적인 정당들이 몰락했다는 점 이외에 보다 근본적으로 정치적 매개체로서 정당이 갖는 역할과 제도적 틀 내에서의 경쟁을 정치엘리트 들 스스로 거부하게 되었고 나아가 정당체제를 중심으로 한 민주적 제도의 작동에 대한 불 신이 확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3. 정당체제 탈제도화의 정치적 영향( ) 7) 케네이 (Kenney) 는 아웃사이더를 국가적 수준에서의 정당 체제 외부에서 정치적으로 두드러진 정치인으로 정 의하고 있다. 정치적 인사이더는 기존의 정당이 새로운 정당으로 바뀐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정당체제 내부에 서 정치활동을 하는 정치인이다 (Kenney 2003, 1229, 각주 11)

61 후지모리의 반정당주의, 새로운 유형으로 일반화되어 선거수행의 도구로서 사적 정당을 이용하는 전략은 선거조직의 1990년대 동안 본연의 의미로서 정당체제의 작동을 무력화했 다. 이러한 전략을 가장 성공적으로 벤치마킹한 정치인은 非 후지모리파에 속한 PPC의 안 드라데(Alberto Andrade) 와 反 후지모리파에 속한 정치신인 똘레도(Alejandro Toledo) 를 들 수 있다. 안드라데는 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Somos Lima 당을 창당해 선거에 이용했 고 이후 대선에 출마했을 때는 Somos Perú 로 바꾸어 선거 조직으로 활용했다. 자신 스스 로는 유능한 행정가로, Somos Perú 는 전국정당으로 규정했지만 실상 이 정당은 체계적인 정강, 정책이 없는 개인화된 성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똘레도 또한 1995년 대선을 준비하면 서 선거용 조직의 의미 이상을 두지 않은 정당인 País Posible 당을 창당했고 이후 2000년 대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명을 Perú Possible 로 바꾸었다. 1995년 대선을 거치면서 페루의 정당은 선거 때마다 새롭게 만들어지고 없어졌으며 이에 따라 민주적 정치체제의 중요한 제도로서의 정당 역할은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 표 8> 2000년 대통령선거 및 의회선거 참여 정당과 득표율 정당 대통령 후보 대통령선거 득표율 의회선거 득표율 Perú 2000 Alberto Fujimori Perú Posible Alejandro Toledo Manrique Frente Independiente Moralizador(FIM)* Somos Perú Alberto Andrade Carmona Avancemos Federico Salas Guevara Schultz Solidaridad Nacional Luis Castañeda Lossio Partido Aprista Peruano(APRA)* Abel Salinas Izaguirre FREPAP* Ezequiel Ataucusi Gamonal Accion Popular(AP)* Union por el Peru(UPP)* Víctor Andres García Belaúnde Máximo San Román Cáceres 출처: Perú Politico en Cifras; Tuesta Soldevilla, Fernando; Fundación Friedrich Ebert; Tercera Edición, ONPE( 대통령선거 득표율은 12,066,229명 중 유효투 표 11,085,870 명(91.9%), 비기재투표 708,617 명(5.9%), 무효표 271,742 명(2.3%) 중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이며 의회선거 득표율은 11,943,192명 중 유효투표 9,935,439 명(83.2%), 비기재투표 703,371 명(5.9%), 무효표 1,304,382 명(10.9%) 중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이다. * 표시 정당은 1995년 선거에 참여했던 정당 뿐만 아니라 선거 전략에 있어서도, 유권자들의 선택에 있어서도 지속적인 정당체제의 작 동에서 볼 수 있는 정당들의 정치적 지향점과 이념적 정향에 따른 프로그램, 정당일체감은 중요한 요인이 되지 못했다. < 표 8> 은 정당의 이념적 정향에 따른 정당 간 매치를 종속변수로, 일인당 국민소득과 삶 의 질( 인간발전지수) 를 독립변수로 해서 이념적 정향에 따른 유권자들의 투표성향 변화를 분석한 결과이다

62 < 표 8> 정당의 이념적 정향(Left-Right Position Match) 과 정당 선호 정당 간 매치 좌-우 로지스틱 상관계수 Nagelkerke R² Cambio '90 v. UPP 유의미하지 않음 0.00 Cambio '90 v. APRA 유의미하지 않음 0.00 UPP v. APRA 정당 간 매치에 대한 Nagelkerke R²의 평균값 출처: Mainwaring and Torcal(2008), p 페루의 경우 원출처의 기준 시기는 1997 년 < 표 8> 의 결과는 정당의 이념적 정향과 정당 선호의 관계는 유의미하지 않은 관계 즉, 유권자는 소득수준이나 삶의 질이 정당의 이념적 정향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이 념적 정향에 따라 정당을 선호하고 표로 연결시키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결과가 나타난 이유로 유권자가 이념적 입장보다는 후원- 수혜관계에 기초해서 투표하는 경우 즉, 정치인 또는 정당의 이념적 정향이 자신의 선호와 가깝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자신이 속한 집단에게 좀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할거라고 기대하는 정당에게 투표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또한 페루의 정당들이 갖는 개인화와 세습주의적 특성으로 인해 유권자들은 정당이 표방하는 이념적 정향보다는 정당 지도자에 대한 이미지와 후보자 개인의 인격에 대한 인식 을 기초로 투표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유권자는 현재 정부의 정책수행력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기초로 투표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어떤 경우라도 페루 정당체제 는 사회에 깊게 침투하여 시민, 조직화된 이익을 정치영역으로 매개할 수 있는 능력과 역할 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즉, 페루는 선거 시기를 제외하고는 매우 부족한 제도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 인격주의적 집단에 불과한 정당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국가의 정책결정과정 에서 대중의 참여를 위한 통로로서의 주체가 되는데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페루 정당체제의 탈제도화는 개별적이고 차별적이며 단기적인 선거 목표만을 계산하는 정 치적 무소속 전략을 일반화시키며 민주적 제도와 정치행위자들의 집단적 행동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후지모리 정권의 권위주의적 성향을 견제하는데 필요한 집단적 행동 과 동원화를 어렵게 함으로써 민주주의 공고화를 지연시켰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경쟁적 권위주의 또는 의사민주주의 적 정치체제로 후퇴하는데 일조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높은 선거유동성, 개인화되고 후원- 수혜관계에 의존적인 정당 문화, 존재하기는 하지만 취약한 사회적 연계성 등 정당체제의 제도화를 불완전하게 했던 요인들은 오히려 심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Ⅳ. 결론: 페루 정당체제의 부분적 재생과 한계 정당은 정치엘리트와 대중, 국가와 사회를 연결시켜주는 통로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사 회적 균열을 반영하고 조정하는, 다른 기구들이 대체하기 힘든 역할을 수행한다. 페루의 경 우처럼 인종적, 역사적, 언어적, 문화적, 경제적 측면에서 불평등과 차이가 확연히 나타나고 사회적 통합의 정도가 매우 낮은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공고화되기 위해서는 개별 정당들의 역할뿐만 아니라 정당체제 자체의 안정적이고 민주적인 작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1990년대 정당체제가 탈제도화되면서 페루의 정당들은 최소한의 정치적 역할 을 수행하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후지모리의 실각 이후 민주적 제도들의 부활이 시도되고 있지만 정치엘리트 또는 제도들

63 에 대한 확신이나 신뢰는 여전히 부족하다. 여전히 페루는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있어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 중에서도 하위에 머무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민주적 거버넌스를 보 강하고 소통을 위한 통로를 제공하는 방식에서 정당이 사회와 국가 사이의 관계를 구조화하 고 중재할 수 있는 정도는 대의제에서의 정당 역할 자체와 관련이 있다. 페루가 강력하고 활기찬 정당체제를 결코 가져본 경험이 없다고 할지라도 여론을 동원하고 국가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쳤던 정당의 경험은 상당하다고 본다. 1980년대 정당은 취약한 수준이기는 하지 만 사회적 연계성을 가진 동시에 선거에서의 경쟁을 통한 권력의 획득이라는 룰을 안정적으 로 제공했다(Crabtree 2010, 358).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1년 대선에서 APRA가 아 직 건재함을 보여주고 PPC 의 플로레스(Lourdes Flores Nano), AP 의 빠니아구아(Valentín Paniagua) 와 같은 정당지향적 정치인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또한 2006년 가르시아 대통령 이 당선되면서 페루의 정당체제가 재생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중매체의 발전, 정당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과 정당 내 경쟁, 사회적 연계를 확고히 하기 위한 프로그램의 마련과 책임 등의 요인은 페루 정당체제 가 일정한 수준의 제도화를 다시 회복하는데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개별적이고 단기적 인 선거전략과 사유화된 선거도구로서의 일시적인 정당이 권력을 획득하는데 훨씬 유리하다 는 인식이 지속되는 한, 나아가 기존 정당들의 인격화되고 세습적인 성격이 지속되는 한 정 당체제의 복구와 안정적 작동에 대한 전망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당체제의 작동 이 없는 민주주의 공고화는 페루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 표> 2001 대통령선거 및 의회선거 참여 정당과 득표율 정당 대통령 후보 대통령선거 의회선거 득표율 득표율 Perú Posible* Alejandro Toledo Manrique Partido Aprista Peruano(APRA)* Alan Garcia Perez Unidad Nacional Lourdes Flores Nano Frente Independiente Moralizador(FIM)* Fernando Olivera Vega Somos Perú 5.8 Cambio' Acción Popular 4.2 Unión por el Perú 4.1 Solución Popular Carlos Boloña Behr Renacimiento Andino Ciro Gálvez Herrera Proyecto País Marco Arrunátegui Cevallos Todos por la Victoria Ricardo Noriega Salaverry Frente Popular Agrícola FIA del Perú 1.7 출처: ONPE( 대통령선거 득표율은 12,264,349명 중 유효투표 10,601,720 명(86.4%), 비기재투표 1,260,193 명(10.3%), 무효표 402,4362 명(3.3%) 중 각 정당이 얻 은 득표율이며 의회선거 득표율은 11,987,641명 중 유효투표 9,421,709 명(78.6%), 비기재투표 1,213,152 명(10.1%), 무효표 1,352,780 명(11.3%) 중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이다

64 < 표> 2006년 이후 페루의 대표적 정당들 당명 리더십 비고 Alianza por el Futuro(AF)** Cambio' 90, Nueva Mayoría, Si Cumple 포함 친 후지모리 정당연합 Frente del Centro(FC) Acción Popular, Somos Perú, Víctor Andres García Coordinadora Nacional de Belaúnde Independientes 정당연합 Partido Renovación Nacional Rafael Rey Restauración Nacional(RN) Humberto Lay Sun Unidad Nacional(UN) Lourdes Flores Nano Partido Popular Cristiano, Partido Solidaridad Nacional 정당연합 Perú Posible(PP)** Alejandro Toledo Manrique Partido Aprista Peruano(APRA)* Alan Garcia Perez Partido Nacionalista Peruano(PAN) Ollanta Humala Tasso Unión por el Perú(UPP)** Aldo Estrada Choque Concertación Descentralista(0.6%), Partido Justicia Nacional(0.5%), Partido Socialista(0.5%), Alianza para el Progreso(0.4%), Con Fuerza Perú(0.3), movimiento Nueva Izquierda(0.27%), Fuerza Democratica(0.2%), Avanza País-Partido de Integración Social(0.2%), Partido Renacimiento Andino(0.18%), Progresenos Perú(0.1%), Partido Reconstrucción Democratica(0.1%) * 1990년 이전 창당 ** 1995년 이후 < 참고문헌> Cotler, Julio "Political Parties and the Problems of Democratic Consolidation in Peru", in Mainwaring, Scott and Timothy R. Scully (eds.) Building Democratic Institutions: Party System in Latin America. Stanford, California: Stanford University Press. Crabtree, John Democracy without Parties? Some Lessons from Peru, Journal of Latin American Studies, Vol. 42, pp Dix, Robert H "Cleavage Structures and Party Systems in Latin America", Comparative Politics, Vol. 22, No. 1, pp Graham, Carol and Cheikh Kane "Opportunistic Government of Sustaining Reform?: Electoral Trend and Public-Expenditure Patterns in Peru, ", Latin American Research Review, Vol. 33, No. 1, pp Graham, Carol "Peru's APRA Party in Power: Impossible Revolution, Relinquished Reform", Journal of Interamerican Studies & World Affairs, Vol. 32, No. 3 ( 검색일 )

65 Huntington, Samuel P Political Order in Changing Societies. New Haven, Conn.: Yale University Press. Jones, Mark P "Electoral laws and the effective number of candidates in presidential elections", Journal of Politics, Vol. 61, No. 1, pp Kelley, Bruce "The Informal sector and the Macroeconomy: A computable general equilibrium approach for Peru", World Development, Vol. 22, No. 9, pp Kenney, Charles D "Outsider and anti-party politicians in power: New conceptual strategies and empirical evidence from Peru", Party Politics, Vol. 4, No. 1, pp Kenney, Charles D "The Death and Rebirth of a Party System, Peru ",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 Vol. 36, pp Levitsky, Steven "Fujimori and Post-Party Politics in Peru", Journal of Democracy, Vol. 10, No. 3, pp Levitsky, Steven and Maxwell A. Cameron "Democracy without Parties?: Political Parties and Regime Change in Fujimori's Peru", Latin American Politics and Society, Vol. 45, No. 3, pp Madrid, Raúl "Ethnic Cleavages and Electoral Volatility in Latin America", Comparative Politics, Vol. 38, No. 1, pp Mainwaring, Scott and Timothy R. Scully "Introduction: Party Systems in Latin America", in Mainwaring, Scott and Timothy R. Scully (eds.) Building Democratic Institutions: Party System in Latin America. Stanford, California: Stanford University Press. Mainwaring, Scott and Mariano Torcal "Party System Institutionalization and Party System Theory after The Third Wave of Democratization", Working Paper #319-April Neto, Octavio A. and Gary W. Cox "Electoral Institutions, Cleavage Structures, and the Number of Parties", Americ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Vol. 41, No. 1, pp Pedersen, Mogens N "Electoral Volatility in Western Europe, ". ( 검색일 ) Remmer, Karen L "The Political Impact of Economic Crisis in Latin America in the 1980s", The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Vol. 85, no. 3, pp Roberts, Kenneth M "Neoliberalism and the Transformation of Populism in Latin America: the Peruvian Case", World Politics, Vol. 48, No. 1, pp "Economic Crisis and the Demise of the Legal Left in Peru", Comparative Politics, Vol. 29, No, 1, pp "Social Inequalities Without Class Cleavages in Latin America's Neoliberal Era", Studies in Comparative International Development,

66 Vol. 36, No. 4, pp Roberts, Kenneth M. and Erik Wibbels "Party Systems and Electoral Volatility in Latin America: A Test of Economic, Institutional, and Structural Explanations", The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Vol. 93, No. 3, pp Sanchez, Omar "Transformation and Decay: the de-institutionalisation of Party systems in South America", Third World Quarterly, Vol. 29, No. 2, pp Sartori, Giovanni Parties and Party Systems: A Framework for Analysis. New York an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Schedler, Andreas "Under- and Overinstitutionalization: Some Ideal Typical Propositions Concerning Old and New Party Systems", University of Notre Dame, Kellogg Institute for International Studies Working Paper 213-March Taylor, Lewis "From Fujimori to Toledo: The 2001 Elections and the Vicissitudes of Democratic Government in Peru", Government and Opposition Ltd., pp ONPE (

67 탈 식민성과 새로운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 -ALBA와 UNASUR를 중심으로- 안 태환/ 부산외대 중남미 지역원 HK연구교수 I. 들어가는 말 II. 시몬 볼리바르의 꿈: 탈식민적 라틴아메리카 통합 III. IV. V. 탈식민적 기획으로서의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의 맥락과 현실 III.1. 메르코수르의 탈식민적 맥락 III.2. ALBA와 UNASUR 새로운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의 의미 IV.1. 복수- 보편적 인 라틴 이후의 비전 IV.2. 일국발전주의의 극복과 차이들의 평등성 IV.3. 비자본주의적 선물주기 에 기초한 사회적 포용 결론 I. 들어가는 말 90년대 이후의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운동이 지향하고 21세기에 들어와 새로운 라틴아메리카 정부들에 의해 더욱 확실해지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통합의 방향은 세 가지 측면에서 모두 탈근대성/ 탈식민성/ 탈자본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첫 번째로 현 단계 자본주의 즉 신자유주 의 체제의 위기에 대한 대안이 된다.(Amin 2010) 두 번째는 근대성의 상징주자인 프랑스의 라틴성 을 기초로 하여 끄리오요에 의해 19 세기 후반부에 형성된 라틴 아메리카의 개별적 근대 국가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1) 시몬 볼리바르의 사상을 차베스가 되살려 베네수엘라, 브

68 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로 이어지는 좌파 지향의 새로운 라틴아메리카 대서양동맹( 미뇰 로, 2005: 158) 적-메르코수르로 구체화- 움직임이 상징하는 탈 근대적 통합운동이다. 세 번 째는 안데안 국가들( 에콰도르, 볼리비아) 에서 구체화되고 있는 흑인과 원주민2)의 부상으로 드러나는 내부적 식민성의 극복으로 나타나는 탈 식민적 라틴 이후의 지향이다. 이 흐름은 신자유주의에 의해 배제된 사회세력에 대한 사회적 포용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새로운 라틴 아메리카 통합운동의 핵심인 ALBA(Alianza Bolivariana para los Pueblos de Nuestra America-' 미주 볼리바리안 동맹 ) 의 내용이기도 하다. 세 흐름이 합쳐져서 2008년부터 수 평적 연대의 라틴아메리카 국가연합 (UNASUR) 으로 나아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에 대 해 제국적 세력인 미국에 의해 멕시코, 콜롬비아, 페루, 칠레와 동아시아로 연결되는 태평양 동맹적 3) 움직임이 있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은 크게 세 가지 흐름 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60, 70 년대의 일국발전주의의 맥락에서 경제, 통상에 치 중한 통합운동을 들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1969 년에 시작된 ' 안데안 국가 공동체 (CAN, Comunidad Andina de Naciones) 4) 로서 라틴아메리카 지역통합운동의 오래된 모델을 보여 준다. 오래된 모델이라 함은 라틴아메리카의 역내 경제통합운동으로서의 역사가 가장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의 새로운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과 다른 점은 정치, 문화적 통합5)이 라기보다는 점진적 통상 협력 모델이라는 점이다. 이 모델의 특징은 통상을 확대하기 위해 특정지역에 자유무역 지대를 창설하고 역외 공통관세를 적용하는 등이다. 안데안 국가 공 동체 (CAN) 는 시간이 흐르면서 화려한 외교적 수사에 비해 통합의 힘이 약화되고 있다. 하 지만, 이 경우 엄밀하게 말해서 통합이라고 할 수 없다. 자유무역 지대 설치와 점진적 관세 동맹을 추진하는 경제 연합체 수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설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 지만 아직도 대외 공통관세를 수립하지도 못했다. 이렇게 된 데는 통합의 목적이 상호 연대 보다는 일국발전주의에 갇혀있고(Pizarro, 2008: 25-27) 역내 국가들이 미국과의 교역에 의존하는 정도가 심해 역내 교역의 활성화를 불러오기 힘든 구조적 이유도 있었기 때문이 다. 물론 순수 경제 이론적 시각에서는 시장개방을 추구하는 경제통합의 흐름과 이 당시 대 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던 강력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과의 충돌( 서경 태, 2000: 1) 때문으로 보고 있지만 탈 식민성 담론의 시각에서는 일국발전주의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두 번째로 90년대 이후에 강력한 시장통합과 정치적 통합을 강조하는 신자 유주의 체제의 공세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추진된다. 상징적 사건은 94년 1월 1 일의 북미자 1) 룰라, 키치너, 차베스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 남미 대륙의 통합은 오직 단호하게 탈국가적 그리고 급 진적으로 민주주의의 지평선을 펼쳐나갈 때만이 그 역동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Negri, 2006: 18) 2)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집권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이 탄생했다. 특히 원주민의 정치 세력화에서 에콰도르의 경험이 중요하다. 에콰도르의 원주민들은 1972년부터 토지문제를 둘러싸고 본격적 투 쟁에 나섰으며 1986 년 원주민 종족 연맹 (CONAIE-Confederacion de Nacionalidades Indigenas) 을 결성한 다. 이들은 에콰도르가 복수 민족국가 '-Estado Plurinacional- 가 되기를 지향한다. 3) 예를 들어, 태평양 경제 블록 (bloque economico del Pacifico) 은 페루, 칠레, 콜롬비아, 멕시코와 동아시아의 주요 국가들과 미국의 서부를 연결하는 경제블록이지만 정치적, 지역안보적 성격도 가지고 있다. 본 논문에서 는 경제 블럭의 의미를 분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므로 더 이상의 언급은 자제한다.(Nueva Sociedad 다음호 인 228 호에서 특집으로 다룰 것임)www. nuso.org/( 검색) 4) 최초 회원국은 볼리비아, 칠레,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이었고 1969년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에서 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리고 1973년에 베네수엘라가 가입하였고 칠레는 1976년에 탈퇴하였으며 베네수엘라도 탈퇴하 였다. 회원국의 경제발전과 안정을 도모하고 경제협력을 증진하고 점진적인 시장통합을 추진하였고 역내에 자 유무역지대를 창설하고 역외 공통관세를 적용하였다. 5) 문화적, 사회적 통합이 중요한 것은 유럽연합의 성공과 ALBA, UNASUR의 안정적 추진의 사례에서도 보고 있고 나프타의 경우에 미국, 캐나다와 멕시코 사이의 사회적 응집력의 결여가 나프타의 정치적 통합의 실패를 확인시키고 있다.(Zopel, 2008: 32)

69 유무역협정 (NAFTA) 발효와 94년 12월의 마이애미에서 열린 제 1차 미주정상회의 개최이 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체제는 일국의 단위를 넘는 통합운동이다. 구체적인 움직임이 미 국 주도하의 미주 자유무역지대 (ALCA-Aerea de Libre Comercio de las Americas) 의 구상으로 나타났으나 그것이 여의치 않게 되자 미국과 중미, 멕시코, 콜롬비아, 페루, 칠레 와의 쌍무적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귀결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근대 발전주의 체제의 국가의 세 가지 기능- 자본축적, 헤게모니, 신뢰- 중에서 국가가 한 가지 기능 즉, 자 본축적에만 몰두하도록 이끌었다.(Santos, 2005: 1) 국가의 서로 다른 기능들의 균형을 파 괴한 것이다. 일반 국민에 대한 헤게모니와 신뢰 기능을 급격히 약화시킨 반면 자본축적에 대한 국가의 기능은 비대하게 만들었다. 6) 그러므로 국가와 시장의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국가가 일방적으로 힘을 잃었다는 평가는 옳지 못하다. 국가와 시장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기 보다는 서로 합쳐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라틴아메리카의 좌파정부들이 중심이 되어 21 세기에 들어와 보여준 새로운 성격의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이 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1991년의 아순시온 협정 체결이후 1995 년부터 관세동맹과 공동시장( 조희문 1999, Maldaner 2010) 의 지역통합체로 출발한 메르코수르7)가 1999 년의 브라질 경제위기, 2001 년의 아르헨티나 국가 부도 위기를 겪고 난 뒤 2003년부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주도로 ( 룰라와 키치너) 정치적 성격의 전략적 통합체로 바뀌게 되었다는 점이다.(Caetano, 2006: 36, 한국수출입은행 2000, 윤현덕, 2001: 202 재인용) 미국과의 관계의 시각에서 볼 때 탈 식민적 기획의 움직임 즉, 미국의 일방적 헤게모니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연대가 21세기 들어 전개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정 치지형의 가장 큰 특징인 강력한 라틴아메리카 통합의 엔진으로 작동하고 있다.(Sader 2010, Negri 2006)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가 중심이 되어 2005년 11월의 마르 델 플라타 제 4차 미주정상회의에서 ALCA 구상을 거부했다 년, 집권 전부터 베네수엘 라의 차베스가 구상했고 2004 년에 쿠바와 베네수엘라의 체결을 통해 구체화한 ' 미주 볼리 바리안 대안 동맹'(ALBA-Alternativa Bolivariana para las Americas) 협정은 2백 년 전에 이미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문화적 통합을 꿈꾸었던 시몬 볼리바르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 다. 베네수엘라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점진적으로 비자본주의적 거래방 식인 선물주기 철학에 기초한 우애와 연대의 통합운동인 것이다. 새로운 라틴아메리카 통 합운동이 21 세기에 들어와 강력해진 맥락은 남미의 정치, 경제 대국이고 라이벌 관계에 있 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정부의 긴밀한 협력과 남미의 에너지 강국이고 새로운 정치적 변혁 을 주도하는 베네수엘라가 이들 두 나라와 연대하여 특히 에너지를 통한 라틴아메리카 통합 -그 상징적 예로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관통하는 가스관 건설8) 프로젝트-에 대부분의 나라 들이 동의하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은 민중에 대한 국가의 나머지 두 기능- 헤게모니, 신뢰-을 회복하기 위해 일국의 범주를 넘어서서 초국적이며 수평적인 상호 6) 대표적 신자유주의 자유무역협정인 나프타를 체결한 멕시코는 교역의 90% 를 미국에 의존하는 불균형 속에서 사회정책의 취약성과 경제적 어려움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Sader, 2010: 4) 7)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로 출범한 메르코수르의 상대적 성공은 역내 중심국가인 브라질과 아 르헨티나의 내수시장이 커서 메르코수르 역내 교역의 규모가 크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2007년의 역내 수 출 실적은 약 320 억불에 이른다.(Maldaner, 2010: 46) 이에 비해 안데안 공동체 (CAN) 는 역내 교역규모가 적 어 대외 지향적 성격 특히 미국과의 경제, 통상이익이 중요한 변수가 되어 역내 경제통합이란 화려한 수사에 비해 그 실천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 특히 역내 경제 강국인 베네수엘라의 탈퇴로 그 추진 동력을 잃고 있다. 현재, 친 신자유주의 체제의 칠레의 안데안 공동체 재가입이후 동아시아와의 경제협력을 목표로 새로운 경제통합체를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8) (Kozulj 2006)

70 연대와 통합을 통해 신자유주의 또는 자본주의 체제의 대안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통합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위에서 언 급한 다른 두 가지 통합운동과 달리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걸쳐있는 20대 80의 위계 서열적 또는 식민적 성격의 신자유주의 흐름에 공동으로 맞서 신자유주의체제의 작동방식을 극복하려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통합적 또는 개별 국가적 자유 무역 협정의 공세적 추진도 사실은 미국의 통상 이익만이 아니라 미국의 국가안전에 긴요하 기 때문에 추진되는 것이다.(Pizarro, 2008: 29) 즉, 자유무역 협정의 추진은 미국의 세계 체제적 정치적 헤게모니 전략에 따른 것이다. 새로운 맥락의 통합운동이 전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지역이 라틴아메리카 중에서도 남미 북부의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볼리비아등 원주 민이 많은 안데안 지역 국가들이다. 본 논문은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에 대한 경제, 통상적 또는 국제 정치적 분석이 아니라, 새로운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을 인문학적 시각의 탈 식민성 담론을 통해 해석하려고 한다. 우선, 시몬 볼리바르의 꿈이 품고 있는 인식론적 의미를 추적한 뒤에 어떤 맥락을 거쳐 새 로운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이 실천되고 있는지를 해석하고 구체적인 ALBA와 UNASUR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새로운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이 보여주는 인문학적 의미를 미래지향적 인 탈식민적 시각에서 조망해보려 한다.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에 대한 선행연구는 나프타 와 메르코수르의 갈등을 다룬 논문( 서경태 2000) 과 메르코수르의 경제적 성과를 분석한 논 문( 윤현덕 2001) 그리고 브라질의 시각에서 메르코수르의 전략적 가치를 다룬 논문 (Maldaner 2010) 이 있고 탈식민적 시각의 통합운동을 분석한 논문( 박정훈 2010) 이 있다. II. 시몬 볼리바르의 꿈: 탈식민적 라틴아메리카 통합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라틴아메리카의 독립운동은 경제적으로는 부유했으나 정치적인 힘 이 없었던 식민지 상층부의 백인 크리오요들이 주도했다. 이들은 독립의 비전으로 영국, 프 랑스의 민주주의를 생각했다. 이 들 중 두드러진 영웅이 시몬 볼리바르이다. 볼리바르는 콜 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등 5 개국을 해방시켰다. 이들 지역을 느슨한 연방형태로 통합시키려고 했던( 송기도, 1999: 146) 그의 꿈은 ALBA와 UNASUR를 통해 현재 구체화되고 있다. 볼리바르는 이들 5 개국을 아메리카의 심장 (Bolivar, 1815: 5) 이라 고 불렀다. 볼리바르는 ' 쟈마이카의 편지 (Carta de Jamaica) 에서 남부 아메리카(America Meridional)가 영토의 크기와 부로서보다 자유와 영광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로 통합되기를 보고 싶다 고 했다.(Bolivar, 1815: 16) 또한 " 아메리카 전체가 서로 묶이는 연 방제의 하나의 나라가 되는 생각을 하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왜냐하면, 같은 역사적 기원, 같은 언어, 같은 풍습,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기 때문 (Bolivar, 1815: 21) 이라고 했다. 볼 리바르는 라틴아메리카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 않다. 미국의 몬로주의에 기초한 범 미주 통 합구상은 미국이 중심이 되는 라틴아메리카 통합 구상이고 볼리바르와 호세 마르티가 구상 한 라틴아메리카 통합은 미국을 제외한 우리 아메리카 (Nuestra America) 의 구상이란 점 에서 너무 다르다.(Rodriguez 2008) 호세 마르티가 미국을 제외하자고 하는 것은 미국을 미주의 로마 로 인식하기 때문이고 시몬 볼리바르도 미국의 몬로주의 구상에 맞서 미국은 자유의 이름으로 라틴아메리카에 비참함을 씨 뿌리도록 하느님에 의해 운명 지어진 것 같다

71 고 비판한바 있다.(Boron, 2004: 38 재인용) III. 탈식민적 기획으로서의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의 맥락과 현실 III.1. 메르코수르의 탈식민적 맥락 브라질이 주도하는 9) 메르코수르는 출범당시인 1995년부터 1994년에 출범한 미국이 주도하 는 신자유주의 2005: 159) 경제 통합체인 나프타와 부딪치고 있었다.( 서경태, 2000: 251, Mignolo, 이렇게 두 블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맥락은 바로 메르코수르 국가들의 전체 수출 중 대미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30% 미만이기 때문이다.(253) 경제적으로 뿐 아니라 메르코수르는 더 이상 ' 북 에 의지하지 않는 블록이다.(Mignolo, 2005: 159) 예를 들어 브 라질의 최대 시장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중국의 수입에 의해 메르코수르의 경제적 활 력이 높아지는 상황이다.(Sader, 2010: 4) 2002년 말부터 메르코수르의 통합을 위한 제도 적 조치가 강화되는데 예를 들어, 역내 국가와 볼리비아, 칠레의 법무장관들이 살바도르 데 바히아 에서 11 월에 모여 이주에 관한 협정을 체결한 것을 들 수 있다. 이 협정은 2002년 12월의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메르코수르 정상회담에서 재확인되었는데 이 협정은 기본적 서류조건만 갖추면 이들 6개국의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한 점에서 미래의 메르코수르 시민권 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Caetano, 2006: 34-35) 그리 고 메르코수르의 경제통합 움직임이 단순한 통상증진이 아니라 탈식민적 지향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실은 IMF 또는 국제금융기구의 권위에 종속되어 브라질 또는 아르헨티나의 경 제정책을 제약받는 것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대륙통합의 동력에 따르고 있다는 점이 다.(Negri, 2006: 16-17)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이 구체성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아르헨티 나가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메르코수르가 정치적, 전략적 통합체로 선회하기 시 작한 2003 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인 해는 2005 년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라 틴아메리카 통합을 위한 상징권력의 헤게모니 변화라고 할 수 있는 'Tele Sur' 10) 위성 텔레 비전 방송이 2005년 7월에 출범했고 2005년 말에 아르헨티나의 마르 델 플라타에서 열렸 던 제 4 차 미주정상회의 에서 브라질을 비롯한 메르코수르 국가들과 베네수엘라에 의해 미 국의 라틴아메리카 전체의 미주 자유무역지대 (ALCA) 구상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텔레수르 위성방송만 하더라도 메르코수르와 ALBA회원국의 정부기관과 엘리트의 연대보다도 일반 시민과 대중의 일상적 문화적 연대와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미 90년대부터 브라질을 중심으로 하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사회운동세력( 노동운동, 원주민운동, 생태운 동, 농민운동, 여성운동, 학생 등) 은 나프타를 근거로 하는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전체에 대 한 신자유주의적 패권주의(ALCA) 구상에 반대11)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1년에 출범한 세계 사회포럼 (Foro Social Mundial) 도 그 중심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라는 점에서 메르 9) 브라질은 메르코수르 전체 GDP의 75%, 공업생산의 80% 를 차지한다.(Maldaner, 2010: 42) 10) 알튀세의 이데올로기 국가장치 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미국의 CNN에 맞서 라틴아메리카의 시각-식민적 차 이의 시각- 에서 뉴스를 해석하고 라틴아메리카 고유의 정체성과 문화연대를 강조하는 TeleSur 방송의 시작은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의 촉매제가 되었다. 차베스가 주도했고 베네수엘라 외에 아르헨티나, 쿠바, 우루과이, 볼리비아가 가입하였고 2005년 7월부터 위성방송으로 24 시간 방영되고 있다.( 안태환 2008) 11) 브라질에서는 2002년에 ALCA 에 대해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찬반 투표를 행해 1000만명 이상이 참여했고 95% 이상이 ALCA 에 반대했다. ALCA 가 통과되면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위원회에 모든 통상, 경제, 투자정책 이 이관되어 공기업의 민영화정책이 추진되리라는 것을 알수 있었기 때문이다.(Petras 2004, )

72 코수르의 탈식민적 기획에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년에 베네수엘라가 안데스 국 가 공동체 (CAN) 12) 를 탈퇴하여 메르코수르에 가입한 것이 결정적으로 새로운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이 가속화된 맥락이다. 최근 브라질은 베네수엘라와 전략적 협력관계13)를 유지하고 있다고 룰라가 밝혔다. III.2. ALBA와 UNASUR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현실사회주의의 퇴장은 사회주의적 기획의 불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 고 세계화의 이름으로 펼쳐진 미국의 일방적 헤게모니에 도전할 세력은 없는 것 같았다. 14)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운동세력은 1997년에 ALCA 준비를 위한 각료회의에 병행하여 브라질의 베요 오리손테에서 ALCA 반대를 위한 모임을 가졌고 그 결과 1998년에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제 1 차 미주 민중정상회의 가 개최되었고 이후 1999년 4 월에 출범한 미주 대륙의 사회적 동맹 (La Alianza Social Continental-ASC) 은 2001년 4월에 캐나다의 퀘벡 에서 제 2 차 미주 민중정상회의 를 조직하였고 ALCA 를 반대하는 내용의 미주를 위한 대 안들 (Alternativas para las Americas) 이라는 문서를 2002년 12 월에 만들었다.(Carrero, 2004: 17-18, Lander, 2004: 46)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세력의 이 같은 움직임을 배경으 로 하며 차베스는 1998 년 ' 제 5 공화국 운동 의 대통령 후보로 나서면서 새로운 공화국을 위한 다섯 개의 중심축 을 제안하는데 그 다섯 번째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사이의 전략적 연대를 통한 세계적 균형 의 추구였다. 특히 그 제안에서 안데안 공동체와 메르코수르의 통 합을 제안한 것이 흥미롭다.(Morales Manzur y Morales Garcia, 2007: 59) 차베스가 처 음으로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국가 연합 에 대한 생각을 비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1998년 12 월에 당선자 자격으로 브라질을 방문했을 때였다.(60) 2001년 12월 카리브 국가연합 정 상회담에서 차베스 대통령은 미주 볼리바르 대안 (Alternativa Bolivariana para las Americas) 15) 을 공식적으로 제안한다. 미국주도의 미주 자유무역지대 구상에 대한 좌파적 대안을 제안한 것이다. 이후 2004년 쿠바와 베네수엘라가 아바나 공동선언을 통해 공식적 으로 ALBA 를 출범시킨다. 그리고, 2006년 4 월 베네수엘라, 쿠바, 볼리비아가 미주 민중을 위한 볼리바리안 동맹 (Alianza Bolivariana para los Pueblos de Nuestra America-Tratado de comercio de los pueblos, ALBA-TCP) 16) 으로 확대시킨다. 17) 존의 통상적인 자유무역협정이 상품, 서비스, 자본투자의 개방과 협력을 중시한다면 이 협 기 12) Comunidad Andina de Naciones 은 볼리비아, 에콰도르, 페루, 콜롬비아가 회원국이고 칠레는 1976년 탈퇴 했으며 베네수엘라는 2006 년까지 회원국이었으나 그 해에 페루, 콜롬비아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자 탈 퇴하여 메르코수르에 가입했다. 볼리비아도 2006년에 CAN의 회원국 지위를 유지하면서 메르코수르 가입신청 을 하였다. 안데스 국가 공동체는 지역통합을 통한 경제발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국가발전을 이루기 위해 경제, 통상을 중시하는 지역 통합운동의 사고는 Cepal 과 라울 프레비쉬 (Raul Prebisch) 로부터 온 것이 다.(Pizarro 2008, 24) 13) 브라질과 베네수엘라는 22 개의 협력협정을 맺었고 브라질 기업들의 베네수엘라 투자가 활발하다. ( 검색) 14) Porto Carrero y Cavalcante y Neto(2004), "La actualidad del imperialismo y la necesidad del socialismo", en James Petras(ed.), America Latina: imperialismo, recolonizacion y resistencia, Quito:Abya-Yala, p. 9 15) (Naim Soto 2004) 16) =.. ( 검색) 17) 현재 회원국은 안티구아 - 바르부다, 볼리비아, 쿠바, 도미니카, 에콰도르, 니카라과, 산 비센트 - 그라나다니스, 베네수엘라로 8 개국이다

73 정은 가난과 사회적 배제를 없애는데 주력하는 특이한 협정이다. 2004년 12월의 쿠바와 베 네수엘라의 ALBA창설을 위한 아바나 공동선언18)을 보면, 미주자유무역 협정(ALCA) 은 신 자유주의 체제를 심화시키고 종속을 강화하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지배적 야심의 최종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동안 역사적으로 있었던 라틴아메리카 통합은 독립적 발전 과 지역 내 상호 보완의 목표와는 거리가 멀게 오히려 외부 지배에 취약하고 종속을 강화시 키는 기능을 보여 왔다고 지적했다. 지역통합이 지역의 진정한 발전에 필수 불가결한 조건 이라면 2001년 12월에 차베스 대통령이 제안한 ALBA가 정의에 기초한 통합의 원칙을 담 고 있으며 이기적 민족주의를 버리고 무조건적 시장통합이 진정한 라틴아메리카의 통합이 될 수 없으며 오직 라틴아메리카 민중 사이의 광범한 연대가 ALBA를 이끌어 나갈 가장 중 요한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2006년 4월의 확대된 제 3차 ALBA정상회의의 협정 문 19) 내용을 보면, 제 4 조에 베네수엘라에서 성공적으로 실행되었던 신속하고 빠른 효과 의 많은 대중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론을 이용하여 문맹을 퇴치하는 일을 할 것이다. 즉, 문맹퇴치20)를 전략으로 하여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과 연대할 것을 약속한 것이 다. 제 5 조는 사회적 포용, 자원의 산업화, 식품 안전성 등의 능력을 강화시키는 제안들에 우선될 것이다 고 되어있으며 제 9 조는 상품과 서비스의 통상적 보상 메카니즘을 실천할 수 있다 라고 하였다. 장기적 관점의 연대를 위해 구상무역의 필요성을 밝힌 것이다. 구체 적인 행동강령을 보면, 쿠바와 베네수엘라가 공동의 비영리 법인을 만들어 볼리비아의 가난 한 환자들의 안과 수술을 무료로 지원하기로 한 것 등이다. 쿠바는 쿠바의사들의 봉급을 책 임지고 베네수엘라는 에너지와 광업 분야에서 볼리비아에 광범한 지원을 약속한다. 베네수 엘라는 쿠바에 석유를 제공하고 쿠바는 의사와 교사를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에 파견하는 방식이다. 쿠바와 베네수엘라의 지원에 비해 볼리비아의 반대급부는 미약하다. 자본주의적 방식이 아닌 비대칭적 선물주기 거래방식이기 때문이다. 카리브 지역 국가들에 대한 에너 지 지원 및 주택, 교육, 건강 등 사회공공성 정책 지원과21) 니카라과에 대한 에너지와 인프 라 지원 22) 에도 적극적이다. ALBA 의 주요기구 또는 의제를 살펴보면, 사회운동위원회 (Consejo de Movimientos Sociales), Banco de ALBA, 라틴아메리카 대안 위성방송 (TeleSur), 역내 공동통화(Sucre), 환 카리브에너지 협정(Petrocaribe) 23) 등이다. 2009년 제 7차 ALBA 정상회의는 역내 상호대차 무역결제수단으로 달러대신 온라인 화폐인 Sucre를 2010 년부터 쓰기로 합의했다. 24) 미국과 IMF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경제위기에 대한 대 응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ALBA의 중심국인 베네수엘라의 2006년 메르코수르 가입에 의해 메르코수르와의 연계가 이루어졌고 여기에 안데안 공동체가 합류하여 2008년 5 월 남미국가연합(UNASUR-Union de Naciones Suramericanas) 이 출범했다. 2010년 5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UNASUR정 상회의는 인권과 사회적 포용을 중시하는 발전을 위해 여러 지역통합체의 점진적 접근을 중 18) ( 검색) 19) ( 검색) 20) 볼리비아, 니카라과, 베네수엘라에서 문맹이 퇴치되었음이 제 8차 ALBA 정상회의에서 밝혀졌다. 개안수술이 백만 명 이상에게 시술되었으며 2000 명이상의 졸업생이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 검색) 21) ( 검색) 22) ( 검색) 23) 베네수엘라는 2005년에 설립한 Petrocaribe 사를 통해 ALBA 와 중미, 카리브 지역 국가들과의 에너지 협력 과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Altmann 2009) 24) ( 검색)

74 시하고 이주, 보건, 교육 및 에너지 통합과 지역안보의 조정을 지향하고 있으며 현재 사무 총장은 키치너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맡고 있으며 상설 사무국은 키토에 있다. 25) UNASUR의 설립목표와 가치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빈곤과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공공성 강화와 인간 개발과 실질적 민주주의의 증진,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 확립 등에 두고 있다. UNASUR 는 정치, 사회, 문화, 경제, 재정, 환경, 인프라 등 모든 부문 에서의 라틴아메리카 통합을 추진한다. 안데안 공동체, 메르코수르, ALBA와 칠레와 가이아 나, 수리남 등 모든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국가들을 포괄하고 있다. 2010년 초에는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순수한 33 개국의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국가공동체 (Comunidad de Estados Latinoamericanos y Caribenos) 26) 가 결성되기에 이른다. 이 조직은 외교적 성격 을 가지는데 기존의 미국주도의 ' 미주기구 (OEA) 에 대한 대안적 성격을 가진다. 여기에는 멕시코도 참여하고 있다. 구체적 기능은 2011 년부터 시작될 것이다. 파나마와 멕시코는 UNASUR 의 회원국이 아니다. 미국, 캐나다와 멕시코가 맺은 자유무역협정인 나프타가 단순 한 자유무역협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통합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드 러내고 있다. UNASUR 의 주요 기구로는 남미국가연합 사무국, 남미의회, 남미방위이사회 (Consejo Sudamericano de Defensa), 남미은행(Banco del Sur), 공동통화 창설 프로젝트 등이다. 특히 남미 대륙 가스관의 건설과 남미은행의 설립 프로젝트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이미 합의된 IMF외채의 전면상환등과 함께 구체적인 라틴아메리카 통합의 핵심적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Negri, 2006: 16) IV. 새로운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의 의미 IV. 1. ' 복수- 보편적 인 ' 라틴 이후의 비전 탈식민성 담론은 서구합리주의의 맥락 안에서의 탈근대성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라틴아메 리카의 역사와 정체성에서 도출되는 인식론과 가치관을 유럽의 인식론적 틀과 상호 대등하 게 복원하는 것을 중시한다. 식민성이 근대적 자본주의체제의 구성요소이므로 그것의 극복 을 위해서 맑스주의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비자본주의적 실천 27) ( 예를 들어, 사회운동, 소농 과 소기업 조합운동 등) 전략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에서 탈주하는 것을 중시한다. 그러므로, 탈식민성 담론은 라틴아메리카의 고유한 문화와 인식론을 긍정한다. 아니발 끼하노는 근대성의 요소인 역사적 합리성은 긍정한다. 그러나 신 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 적 사고의 재등장에 드러나는 도구적 합리성의 우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비판한다. 그는 도구 적 합리성의 동전의 양면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거짓된 이분법에 대항하여, 라틴아메리카 의 역사와 정체성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육화된 대안적, 유토피아적 합리성의 존재를 주장한 다.(Pajuelo Teves, 2002: 7) 다시 말해, 탈식민성 담론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화를 몸으로 체득한 학자들만이 설득 25) 검색 Buenos Aires. htm. ( ) 26) ( 검색) 27) (Escobar, 2000: 126)

75 력 있게 내세우는 대안인 것 같다. 라틴아메리카는 식민시기 이래 약한 국가 체제를 가지고 있었고 문화적 혼종성과 역사적, 사회적 구조- 사회적으로 배제된 집단의 존재( 원주민) 등- 의 특성으로 인해 훈육적인 근대 민족 국가라기보다는 식민초기부터 오랫동안 탈근대적 권력 (bio-poder) 28) 의 기제를 가지고 있었다. 삶 약한 민족- 국가 건설의 분석은 삶 정치적 성격과 연관되는 관계를 피할 수 없다. 오직 이런 시각에서만 이 건설을 특징짓는 혼종성- 피의 흐름의 형식, 문화들, 내외부의 이민을 통해-을 이 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역설과 우연으로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지배 권력의 제작소로서 ' 삶 권력' 은 배제된 사회계층과 하위주체의 계급들의 삶을 관리하는데 기초하였다.(Negri, 2006: 173) 삶 권력 이란 의미는 주민을 근대적으로 훈육하기 보다는 유연하고 느슨하게 관리 하는 성 격을 가진다. 그러므로 1990년대 이래 인식론적 차원에서나 실천적 차원에서 라틴아메리카 의 하위 주체적 사회운동세력( 원주민, 흑인 등) 에게서 근대성/ 식민성/ 자본주의 비판의 움직 임이 강하게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세기 초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에 백인 크 리오요 엘리트계급은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19세기 후반부부터 스페인에서가 아니라 프랑스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찾으면서 겉으로는 근대성을 내세우며 실제로는 원주민, 흑인 등에 대해 내부적 식민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그러므로 유럽중심주의에 의한 위계적 차별의 절대적 타자로 있으며 동시에 문화적 혼종성과 약한 근대국가의 성격으로 인해 그 체제에 오랫동안 훈육되지 않으면서 소외되어왔던 라틴아메리카의 원주민과 흑인세력, 가난한 사람 들의 사회운동세력만이 식민성( 인종주의) 의 근본뿌리를 제대로 조망할 수 있게 된 것이 다.(Mignolo, 2005: 67) 최근의 제 10차 ALBA정상회의 이후 발표된 공동선언에서도 원주 민, 흑인 운동단체의 목소리가 함께 하고 있다. 29) 그리하여 라틴 과 아메리카 의 이후를 지 향하는 새로운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의 비전도 바로 원주민들에 의해 그들의 고유한 장소 의 이름을 재 호명(157) 하는 데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를 라틴아메리카라는 호칭 외에 원주민들의 용어인 Abya-Yala 로 부르자는 것(166) 이 원주민운동의 주장이다. 원래 아메리카 (America) 란 용어도 미국을 지칭하는 이름과 동일하여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은연중에 미국에 종속된 공동체로 상상되기도 한다.(151) 그러므로 새로운 라틴아 메리카 통합운동은 라틴 아메리카의 라틴성 을 극복하기 위한 라틴- 이후 의 인식과 맞닿 을 수밖에 없다. 즉, 원주민과 흑인 등 세력이 주도하는 인식론적, 실천적 노력이 없으면 라 틴아메리카 통합도 진정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에콰도르, 볼리비아, 콜롬비아 등 안데안 국가들의 사회운동이 주목된다. 원주민 운동이 복수-보편주의의 이념과 만나는 지점은 라틴아메리카의 고유한 지방의 장소와 그 장소에 기초한 지식의 구체적 표현 으로서의 자연에 관한 해석에 초점을 맞추어 세계를 재 정의하고 재구성할 것을 제안하기 28) (Negri, 2006: 55 주1)" 신자유주의는 파시즘, 나치즘이 질서, 기율 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던 것과 다르다. 신보수주의는 오늘날 통제와 삶 정치의 논리를 시도한다. 훈육사회에서 통제사회로의 변화는 푸코와 들뢰즈에 의해 분석되었다. 훈육사회는 자본주의 축적의 초기단계에서 유럽에서 감옥, 정신병원, 학교, 또는 공장을 통 해 작동되었다. 들뢰즈에 의하면 통제사회에서 권력의 메카니즘은 항상 더 민주적이고 더 내재적이고 시민들 의 머리와 육체 속에 산만하게 퍼져있다. 규범이 내면화되어있다. 통제사회는 유연하고 유동적으로 작동된다. 이 수준에서 삶 정치는 완전히 ' 삶 권력' 이 된다. ' 삶 권력' 은 내면으로부터 해석하고 동의하고 재현하는 방식 으로 사회생활을 통제하는 권력의 형식이다. 푸코의 삶- 권력 의 의미는 근대사회의 훈육적 권력 형식을 의 미한다면 네그리의 삶- 권력 의 의미는 탈근대 사회의 내면적 통제의 권력 형식을 뜻한다. 29) ( 검색)

76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주민과 생태적 소농의 보호는 복수-보편주의를 지향하는 라틴아메리 카 통합의 시각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글로발한 것은 공간, 자본, 역사, 대리인이고 로칼한 것( 지방성, 로칼리티) 은 장소, 노동, 전통 에 상응한다. 장소는 ' 세계화의 광풍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 같은 장소의 사라짐이 문화, 지식, 자연, 경제에 아주 깊은 결과를 가져왔다.(Escobar, 2000: 114) ALBA 는 소농과 원주민 등의 건강과 교육을 보장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지방의 고유한 장 소를 지키고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지키고 원주민들의 전통 문화와 가치관과 철학 등 인식론과 사회구조를 지키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 같은 고유한 장소를 지키자는 주장을 로 칼리즘이라고 할 수 있지만 기존의 유럽중심주의적 원주민 보호주의 를 의미하는 것은 아 니다. 원주민 보호주의 는 서구의 로칼리즘으로 부를 수 있고 이를 비판하는 비-서구의 로 칼리즘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가 된다. 왜냐하면 인종주의에 의해 침해받은 다양한 기억과 식민적 상처들이 있으며 서구와 연관되지만 동시에 서구로 포섭될 수 없는 삶의 방식, 언 어, 믿음이 있기 때문에 탈식민적 로칼리즘30)은 복수-보편적이어야 하기 때문이 다.(Mignolo, 2010: 19) 무엇보다 신자유주의 체제를 주도하는 미국 주도의 일극 중심 체 제를 거부하기 위해 ALBA와 UNASUR 는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멕시코를 제외하고 있다. 다른 하나의 논점은 기존의 유럽이 라틴아메리카를 건설했다는 유럽중심주의적 시각을 뒤집 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프란츠 파농은 유럽은 라틴 아메리카의 발명품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Coronil, 2007: 209 재인용) 근대성에 기초한 시각은 유럽중심부와 비유럽의 주변부로 세계체제를 단일- 보편화 시킨다. 그러나 탈식민적 시각은 지식과 권력의 유럽 중 심성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당연히 세계체제를 복수- 보편적 시각으로 인식한다. 라틴아메리 카의 통합운동은 다른 지역 블록( 유럽, 아시아 등) 과도 수평적, 자주적으로 대화를31)하며 세 계 체제적으로 유럽 중심적 단수- 보편주의(uni-versal) 가 아닌 비판적, 복수-보편적 (pluri-versal) 세계체제를 지향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든 맑시즘 체제든 유럽 중심적 단 일-보편성 프로젝트가 아닌 복수- 보편성을 지향하는 것이다.(Mignolo, 2005: 101) 안토니 오 네그리는, 19 세기 크리오요/ 메스티소의 정신에 들어있는 라틴성의 의미를 탈각시키고 원 주민적 가치가 부상되지 않는 한 라틴아메리카의 통합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한다.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의 핵심적 역할은 에콰도르와 볼리비아라고 할 수 있다. 에보 모 랄레스를 대통령으로 만든 힘도 일괴암적 의미를 가지는 볼리비아 민중 또는 라틴아메리카 민 중이 아니라 오랫동안 견뎌온 다양하고 복합성을 가지는 원주민 종족들의 특성의 총체였 다.(Negri, 2006: 17) 원주민의 인식론적 권리주장의 구체적인 사례를 든다면 2004 년 에콰도르의 아마우타이 와 시 (Amawtay Wasi)( 원주민 민중과 종족의 상호 문화 대학교-la Universidad Intercultural de las Nacionalidades y Pueblos Indigenas) 32) 의 창설을 들 수 있다. 유럽 중심적 인식론 30) 미뇰로는 탈식민적 로칼리즘 을 서구의 로칼리즘에 대항하여 코스모폴리탄적 로칼리즘 으로 부르고 있 다.(Mignolo 2010) 31)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등 대서양연안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IMF의 지도로부터 멀어지 고 중국과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다.(Mignolo, 2005: 100) 32) (Sarango 2009)

77 이 아닌 이와 다른 원주민의 철학과 인식론체계를 내세워 그들 사이의 복수-보편성을 통한 차이들의 평등성 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아직 진정한 보편주의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르므 로 서로 다른 보편주의( 가치관) 사이의 평화적, 비 위계적, 수평적 대화가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럽 문화와 원주민, 흑인의 하위 주체적 문화사이의 위계 서열성을 극복 하고 수평적 대화를 비전으로 가지려는 것이다. 19세기 중반의 프랑스 제 2제정 시기에 호 명된 유럽 중심적 라틴아메리카 33) 를 벗어나려는 것이다. IV. 2. 일국 발전주의의 극복과 차이들의 평등성 메르코수르에 이어 남미국가연합(UNASUR) 의 진행과정에서 베네수엘라를 위시한 좌파정부 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중도좌파 성향의 브라질의 룰라정부와 아르헨티나의 키치 너 정부도 일국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의 비전의 극복을 통해 상호 의존적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역사상 없었던 라틴아메리카 통합의 효율적인 과정의 시작으로 작동하고 있다.(Negri, 2006: 15) 20 세기에 있었던 일국 중심의 현실사회주의만을 사회주의로 인식하는 도그마적 인식의 지평 안에 근대국가 중심주의와 식민성이 숨어있음을 21세기 라틴아메리카의 소위 좌파 정부들과 사회운동세력이 깨닫고 있는 것이다. 일국을 넘어서는 연대의 통합이 가능한 것은 라틴아메리카 통합의 주역이 국가나 기업이 아니라 반 신자유주의 성향의 사회운동세 력의 통합이 되어야 함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Sader, 2010: 1) 특히 사회주의 체제를 모든 것의 국유화로 인식하는 태도를 비판하고 20 세기 소련의 현실사회주의 실험이 국가 자본주의로 변화되었기 ( 차베스, 2010: 1) 때문에 실패했음을 차베스도 지적하고 있다. 예 를 들어, 쿠바의 경우도 미국의 봉쇄정책에 맞서 일국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에 매진했지만 최근 ALBA 프로젝트에 대한 쿠바 의사와 교사들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쿠바 경제에도 도 움이 될 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운동세력의 통합에도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19, 20 세기의 좌파의 평등성의 주장은 유럽중심주의적 근대성의 틀 안에서였다. 즉, 근대성 은 유럽 안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라 중심부와 식민지사이의 초문화적 교류에서 나온 결과였 다.(Coronil, 2007: 208) 21세기의 라틴아메리카의 통합운동이 보여주는 평등성은 새로운 맥락의 평등성으로 유럽의 틀( 근대성- 일국발전주의) 을 벗어나 서로 다른 문화와 하위문화들 사이의 차이들의 평등성 을 지향한다. 즉, 차이들을 인정하고 이를 강제로 보편화-예를 들 어, 야만의 문명화- 시키지 않으면서 평등성을 인정하고 수평적 연대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19세기와 20세기에 유럽적 패턴 안에서의 평등성이 좌파의 중심목표였다면 오늘날의 평등성 은 유럽적 패턴을 벗어나 아니 유럽 밖에서 문제제기 되고 있다: 즉, 모든 종류의 문화와 하 위문화 들 사이의 차이들의 평등성 을 주장하는 것이다.(Coronil, 2007: 206) 예를 들어, 쿠바와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 사이에는 문화적 차이가 있다. 하지만 회원국들 이 문화적으로 하나의 가치 지향으로 동질화되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있음에도 그것이 위계 적 차별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새로운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을 피상적으로 33) 라틴아메리카 는 1860 년 이전에는 하나의 범주나 지역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프랑스제 2 제정, 즉 나폴 레옹 3 세의 근대적 발명품이다. 인도아메리카 는 더 최근인 20 세기의 발명품이다.( 화이트헤드, 밀러 et al. 2008: 273)

78 관찰하면 미국의 개입을 거부하는 반미주의의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근대 일국 발전주의 모델의 극복이다. 근대 일국 발전주의 모델은 근대성/ 식민성/ 자본주의 의 매트릭스위에 주조된 모델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초국가적 기득권층이 과거의 훈육적 방식이 아닌 노동의 다양성을 담보하는 통 제 메카니즘을 통해 노동자들을 파편화시켜 사회운동화하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다. 그리고 시장 을 마치 보편적이고 자유로운 공공적 공간인 것처럼 레토릭을 구사했다. 그러므로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좌파 정부들은 노동자 대중의 다양성이 인정되면서도 개인들이 파편화되지 않고 연대할 수 있는 정책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를 위한 도전은 내부적으로는 사회운동세력이 보여준 꼬 뮨 34) 의 건설에 있고 외부적으로는 민족국가 를 넘어서는 제도들을 재 발명하는데 있다.(Negri, 2006: 26-28) 국가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강력한 사회적 연대의 공동체적 또는 꼬뮨적 운동( 예: 조합운동) 과 민족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연대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 ALBA가 지향 하는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의 방향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선물주기 에 기초한 비자본주의 적 탈 성장의 철학이고 다른 하나는 근대적 일국발전주의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탈식민성 담론은 근대적 정치체계와 국민국가 체계 자체가 식민성에 기초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국민국가와 국민국가들 사이의 관계에서 글로발 자본주의가 일어났다. 자본주의의 지식을 위한 분석 단위일 뿐 아니라 유일한 유효한 강조점으로 기능했다. 이와 같은 유럽 중심성은 자유주 의만이 아니라 소위 역사적 유물론에도 마찬가지다.... 이런 유럽중심성에 대해 라틴 아메리 카는 항상 지적 반란을 보여 주었다. 왜냐하면 권력의 망에서 맨 경계에 있는 곳이 더 잘 볼 수 있고 더 일찍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새로운 컨텍스트는 권력의 식민성을 경계 하며 비유럽 중심적 이성을 강조하는 것이다.(Quijano, 2000: 3) 유럽중심성 즉 식민성과 일국발전주의는 자본주의만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존재했던 역사적 유물론도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현 단계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통합운동은 자 본주의 극복만이 아니라 비 맑시즘적 운동이 될 수밖에 없다.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의 의 미를 유럽연합의 결성과정의 맥락과 연결하고자 하는 시도 35) 가 있으나 이는 잘못된 시각이 다. 라틴아메리카에서 탈 식민적 지향이 근대 국가적 발전주의의 극복과 상응성을 가지는 이유는 유럽의 근대국가의 성립과 달리 국가로 건설되면서 19세기 초에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지들이 근대민족 19세기 후반부부터 백인 크리오요세력에 의한 원주민과 흑인에 대한 내 부적 식민지배가 지속되면서 식민성의 매트릭스가 강화되었기 때문이다.(Mignolo, 2005: 86) 이에 비해 유럽의 근대국가는 독일을 제외하고 내부적으로 인종주의적 식민성을 추구 하는 대신에 외부로 뻗어나가 제국주의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므로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 34) 여기서 이야기하는 코뮨 의 의미는 2001년 12월의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 당시 실업자들과 중간계급의 대 중이 연대하던 동네평의회 와 노동자 복구운동 등을 상징적으로 가리킨다.(Negri, 2006: 28) 35) 프랑스와 독일은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복지국가를 창출하는데 성공했던 국가들이었다. 이 국가들 이 유럽연합의 건설에서 리더국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라틴아메리카대륙에서 민주주의를 정착시 키고 새로운 유형의 복지국가를 창출하는데 좌파가 성공하느냐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것은 국민국가의 미 래를 위해서도, 지역통합운동의 진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박정훈, 2010: 39)

79 의 의미는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창출이라는 근대적 자본주의의 소명을 넘어 탈 식민적 맥락을 통해 사회적으로 소외된 세력을 포용하면서 신자유주의 체제를 극복하려는 점에서 유럽연합의 경험과는 다른 맥락의 비전을 가지고 있다. 즉, 경제성장과 평등, 사회정의를 동 시에 아우르는 모든 이를 위한 실현가능한 유토피아적 모델을 비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추 진하는 것이다. IV.3. 비자본주의적 선물주기 에 기초한 사회적 포용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구체적 전략인 자유무역 협정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겠지만 대체로 사회적 양극화 를 심화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자유무역 협정을 통한 지역 통합은 관세를 줄이고 상품과 투자의 편익을 제공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진다. 그렇게 되면 오직 기업적, 금융적 이익만을 협력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정치 없는 경제통 합의 시기가 지난 뒤에 이 통합이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였고 그 다음에 오는 협력은 억압 장치의 강화 즉, 경찰과 군대의 초국가적 조정이 온다(Canclini, 2002: 96-97) 자유무역 협정은 회원국 사이의 위계적 차별성을 온존시킨다는 의미에서 식민성이 강화됨을 비판할 수 있다. 또한, 회원국의 내부는 더욱 사회적 양극화를 벌려놓는다. 다시 말해 자유 무역 협정은 국제협력이 진행되면서 회원국들 사이에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차이를 줄여 동 일화시키는 단계로 노동, 문화, 교육의 관계가 변화하는 것을 암암리에 저지(Canclini, 2002: 96)하므로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한 통합이 되지 못하고 위계적 차별성이 온존하 게 된다. 최근 30년의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는 사회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인 것의 강력한 귀 환이라고 할 수 있다.(Edme, 2008: 2, Montesinos, 1998: 1) 정치적인 것의 귀환은 곧 공 공적인 것 의 귀환이라고 할 수 있다. 고통과 어둠의 90년대를 거치면서 라틴아메리카에서 는 조심스런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공공적인 것으로의 사회의 귀환을 점진적으로 불러오고 있다. 그 같은 귀환은 가난과 사회적 배제와 싸우는 ALBA로도 대표되는데 90년대 이후 라 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 체제로 인해 배제된 타자들( 원주민, 흑인, 여성, 젊은이, 아동, 노인, 장애인 등의 가난한 사람들과 소수자들) 에 대한 사회적 포용36)을 추진하는 사회운동 의 발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ALBA의 중심국인 베네수엘라의 사회적 포용정책37)은 보편 적이고 광범하게 펼쳐지고 있으며 자국의 한계를 뛰어넘는 라틴아메리카 전체의 연대를 보 여주고 있다. 또한 UNASUR의 중심국가인 브라질은 최근 일종의 마샬 플랜과 같은 기획을 제시하였는데 라틴아메리카의 저개발국을 돕기 위하여 자신의 시장을 개방하고 그들 가난한 나라의 인프라 건설을 도와주되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비자본주의적이고 비IMF적인 구상을 기획하고 있다.(Sader, 2010: 2) 이에 비해 인종주의적 신자유주의 체제의 정부들은 테크노 라트와 결합하여 지배 권력의 보편적이지 않은 기준에 의거하여 극소수의 일부 가난한 사람 들에게만 사회정책을 집중시킨다.(Negri, 2006: 22) ALBA의 성격 중 중요한 것은 자본주 36) 상징적으로 현재 에콰도르 정부의 부처 중에는 경제, 사회적 포용부 가 있다 검색) p. 1 37) 미션으로 상징되는 사회적 포용정책의 의미에 대해서는, ( 김은중, 2009) 을 참조

80 의 체제의 기브 앤드 테이크 식 거래방식이 아닌 라틴아메리카 원주민 문화의 오래된 선물 주기 방식을 통해 회원국 간에 서로 가진 것을 비대칭적으로 나누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정 확하게 대가를 치르는 것은 거래이고 협력을 해주되 조건을 거는 것도 협력이라기보다 개입 이라고 볼 수 있는데 ALBA 의 협력은 그렇지 않다.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적인 모델로서 위계적 종속이 아닌 수평적 연대의 차이들의 평등성 (Coronil 2007) 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의 정신이기도 하다. 둘을 엄격히 구 분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왜냐하면 예전의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과 달리 국가와 기업이 주체가 아니라 사회운동세력이 두 가지 운동의 주체가 되어있기 때문이 다. 글로벌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배제, 억압, 차별은 경제, 사회, 정치적 차원만이 아니라 문화적, 인식론적 차원에서 글로벌한 정의에 대한 해석을 새롭게 그리고 시급히 요 청하고 있다. 그 출발점은 세계에는 인식론적, 문화적 다양성이 거대하다는 것을 받아들이 는 것이다.(Santos, 2007:xix) 예를 들어, 라틴 아메리카 도시의 노동의 50% 는 비공식노동 이다. 즉, 세금을 안내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를 사회적 노동으로 인정하는 독특한 시각 을 보여주고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 예: 조합운동) 을 하고 있는 곳이 라틴아메리카이 다. 서구는 개인적 권리를 천부 인권으로 하고 시민들로부터 세금을 걷어 이를 재분배하는 것을 통해 사회정의를 추구했다면 사회적 또는 공동적 인권개념을 통해 공공과 사익의 구분이 무의미하게 된 것이다.(Negri, 2006: 243) 다시 말해, 사회 정의를 강화시키는 사회 포용정책이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의 핵심적 아젠다가 되었고 유럽중심적, 근대적 의미의 개인적 인권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의 사회적 또는 공동적 인권개념이 복수-보편적 인식 론을 주장하는 라틴아메리카의 정의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V. 결론 참고문헌 김은중(2009), 베네수엘라: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문제설정과 국가기능의 재편, 라틴 아메리카 연구, 제22권 제 2 호, pp 로렌스 화이트헤드(2008), 언제부터 라틴아메리카가 근대적이었는가? in 니콜라 밀러, 스티븐 하트(eds.), 라틴아메리카의 근대를 말하다, 서울대 라틴아메리카 연구소 옮김, 그린비, pp 박정훈(2010), 탈신자유주의 시대, 라틴아메리카 통합운동의 현재와 미래, 주년 국제학술대회 발제문, 5.18 기념재단, pp.1-39 서경태(2000), FTAA를 향한 NAFTA와 Mercosur 의 갈등 및 시사점, 라틴아메리카 연 구, 제 13권 제 1 호, pp 송기도(1999), 시몬 볼리바르: 해방자 의 고뇌, in 이성형(ed.),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와 사상, 까치, pp 안태환(2008), 베네수엘라 혁명은 연대 의 혁명이다, 부산외대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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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사회운동과 정당정치: 볼리비아 MAS 사례를 중심으로* 이상현(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 I. 서론 2005년 12월 18 일 사회주의운동당(Movimiento al Socialismo, 이하 MAS) 의 대통령 후 보로 출마한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 는 볼리비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부통령 후보 알바로 가르시아(Álvaro García Linera) 를 러닝메이트로 출마한 원주민 출신의 코카 재배 농민운동 지도자 모랄레스는 1차 직접투표에서 53.7% 를 득표하며 과반수를 획득하는 압도 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결국 28.6% 득표에 그치며 2위를 기록한 우파성향의 민족민주행동 당(Acción Democrática Nacionalista, 이하 ADN) 후보 호르헤 키로가(Jorge Quiroga) 는 패배를 시인하였고, 모랄레스는 2 차로 실시될 의회투표와 관계없이 당선을 확정지었다. 한 편 같은 날 치러진 의회선거에서도 MAS 의 약진은 두드러졌다. MAS는 27명을 선출하는 상 원선거에서는 12석을 그리고 130명을 선출하는 하원선거에서 72석을 당선시켜 상하원에서 각각 제1 당의 지위와 과반의석을 차지하는 대승리를 거두었다. 선거 이듬해인 2006년 1월 22일 5년 임기의 대통령에 취임한 모랄레스의 집권과 대통령 선거에서의 승리는 물론 의회 다수당의 지위까지 확보한 MAS의 성공은 볼리비아 역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우선 모랄레스와 MAS의 승리는 볼리비아에서 1980년대 이후 지속 되었던 보수정당 중심의 연정정치가 종식되었음을 뜻한다. 즉 1985년 이후 신자유주의적 경제기조에 동의하는 기존의 3 당(MNR-MIR-ADN) 중심의 체제에 대하여 볼리비아 국민은 명확한 반대의 뜻을 표명한 것이다(Sanchez 2008, 323). 특히 1952년 볼리비아 혁명 이후 반세기 동안 볼리비아 정치에서 핵심적 역할을 해온 민족주의혁명운동당(Movimiento Nacionalista Revolucionario, 이하 MNR) 은 상원에서 1석 그리고 하원에서 7석을 기록하 며 몰락하였다. 원주민에 기반을 둔(indiginous-based) 정당(Van Cott 2005) 으로 평가 받는 MAS와 180 년 볼리비아 역사상 최초의 원주민 행정부(New York Times, 2005년 12월 19 일) 의 수반이 된 모랄레스의 등장은 최근 들어 의미가 커지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원주민 운동의 정치세력화를 알리는 중대한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Postero 2010). 즉 식민시대 이래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소외되었던 원주민이 볼리비아 정치의 중요한 결정세력이 되었음을 주장한다(Cusicanqui 2004). 한편 MAS와 모랄레스의 집권은 사회운동이 성공적으로 정치정당화 하는 중요한 사례를 제공해주고 있다. 즉 원주민 운동, 코카 재배 농민을 중심으로 한 농민운동, 엘알토 주민을 * 이 글은 2010년 9월 11일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열리는 중남미지역원 2010 연례학술대회를 위한 발표문입니 다. 저자의 허락 없는 인용 또는 배포를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HK교수 shyi@pufs.ac.kr

84 중심으로 한 도시빈민 운동 그리고 광업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 동 세력이 하나의 정치정당을 이루어 집권에 성공한 사례인 MAS는 어떤 이익단체 또는 사 회운동세력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전술을 구사하여 정치에 참여할 때 성공적인 정치세력화 가 가능한지를 살펴볼 수 있는 사례이다. 이에 본 연구는 연구를 위한 다음의 질문을 제기한다. MAS 의 성공요인은 무엇인가? 어 떤 조건에서 사회운동은 정치정당을 결성하고 어떤 조건에서 성공하는가? 본 연구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통하여 MAS와 모랄레스가 어떻게 정치세력화에 성 공하였는가를 밝히는데 기본 목적이 있다. 즉 사회운동의 집합체이자 정치정당으로서의 MAS 는 어떻게 성공적인 정치세력화를 이루어 냈는가를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II. 이론적 검토: Tool-kit 접근법 본 연구를 위한 기존 문헌 중 Van Cott(2005) 의 연구가 가장 눈에 띈다. Van Cott는 1990 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원주민 중심의 종족정당(ethnic parties) 에 관한 심도 깊은 비교연구를 수행한 그의 저서 From Movements to Parties in Latin America: The Evolution of Ethnic Parties에서 정치제도와 정당체제 내의 권력구성 형태가 종족정당의 형성과 성공을 가늠할 수 있는 결정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즉 Van Cott 는 지방분권화, 지지정당에 대한 투표 접근권 그리고 소수인종을 위한 의석할당제와 같은 제도적 요인과 더불어 정치세력의 진출입이 용이하여 변화가능성이 높은 개방적인 정당체제 하에서 종족정당의 형성과 성공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한편 Van Cott는 이러한 구조적 요 인과 더불어 정치행위자의 특정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적이고 전략적인 선택과 특정 사 회 또는 정치운동이 가용할 수 있는 자원 또한 종족정당의 형성과 성공을 높이는 요인이라 는 주장을 하고 있다. 따라서 Van Cott 는 원주민 운동 정치세력화의 대표적 성공사례인 볼리비아의 경우, 관대 한 제도적 변화, 1989년 이후 좌파 정당의 몰락 그리고 촘촘하게 연결된 관련 조직들을 동 원할 수 있는 카리스마 있는 원주민 지도자의 능력이 결합되어 마침내 원주민이 제도권 정 치의 주요 참여자로 성장하였다고 결론짓고 있다(Van Cott 2005, 50). 하지만 원주민 정당 의 성공요인을 초점을 맞춘 Van Cott의 연구에서 본 연구의 질문을 위한 답을 찾기에는 한 계가 있다. 즉 MAS의 성공을 원주민 운동의 정치세력화로 등치시키고 있는 Van Cott의 연 구는 MAS의 조직형성과 성공적 정치세력화에 영향을 끼친 원주민 운동 이외의 다양한 사 회운동 세력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또한 성공의 구조적인 조건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과연 이러한 구조적인 조건이 어떻게 MAS의 성공으로 이어졌는가를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를 보인다. 결국 Van Cott의 연구는 사회운동의 정치세력화를 결정짓 는 조건은 다양한 조건들에 대한 포괄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밝혀주고 있다. MAS 안의 다양한 세력들이 어떻게 원주민 정당의 가치 에 동조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85 Van Cott가 제시한 구조적인 조건들이 어떻게 MAS의 성공으로 이어졌는지를 분석하기 위 해서는 구조와 개인을 연결할 수 있는 중범위(Meso Level) 의 이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사회운동조직의 성공과 실패를 분석하는 이론틀인 사회운동론을 적용하고자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Van Cott를 포함한 많은 학자들이 MAS의 성공을 설명함에 있어서 우호적이었던 구조적 조건을 꼽고 있다(Van Cott 2005). 하지만 우호적인 구조적 조건이 곧 MAS 의 성공을 결정짓는다고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특히 비슷한 구조적인 조건 속에서도 라틴아메리카에서 MAS가 유일하게 원주민 정당으로서 정치세력화에 성공하였다 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호적인 조건을 조직의 성공으로 이끄는 연결고리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구조적 조건과 조직의 성공 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중범위(Meso Level) 이론에 대한 갈증 은 사회운동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개인들이 집단을 이루고 다시 이 집단이 다양한 구조적 모순 속에서 구조를 바꾸는 노력을 분석하는 사회운동론은 태생적으로 중범위 이론에 가깝 다. 이러한 중범위 이론의 주요성은 사회운동조직에서 쉽게 미시와 거시가 상호침투하고 작 용하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잘 나타난다(Staggenborg 2002, 124). 따라서 특 정 구조적 조건 하에서 다양한 세력이 공존하는 MAS가 과연 어떻게 성공하였는가를 분석 하고자 하는 본 논문을 위해 사회운동론이라는 이론틀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물론 정당을 연구함에 있어서 사회운동론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 남을 수 있다. 특히 제도권 정치 속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정당과 제도권 밖에서 사회 변화를 요 구하는 사회운동조직 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MAS 연구에 있어서 MAS가 정치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운동론을 적용할 수 있는 이유는 MAS가 갖고 있는 독특한 형성 과 발전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MAS는 볼리비아 사회의 변혁을 제도권 밖에서 요구하던 다양한 사회운동조직들의 총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비록 MAS를 결성하면서 제도권 내의 정당정치를 실현하려고 시도하였으나 본질적으로 기존 볼리비아의 사회질서를 개혁해야한다는 의지를 갖은 세력들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볼리비아의 기성정당 들과는 달리 사회운동조직으로서의 성격을 유지하며 기존 정치권으로의 편입을 자신들의 목 적을 달성하려는 수단으로 이용하였다(Albro 2005, 442). 따라서 MAS 형성 이후 이들의 행보는 볼리비아의 사회를 변혁시키려는 사회운동조직의 성격을 유지하였다. 다양한 사회운동론 중 본 논문은 특정 사회운동조직의 성공의 이유를 사회운동조직의 효과적인 Tool-Kit 활용에서 찾는 Tool-kit 접근법을 활용하고자 한다. Tool-kit 접근법은 문화를 상징과 서 사, 관습과 세계관 등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 속에서 겪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는 Tool-kit 즉 도구함이라고 상정한다 (Swindler 1986, 273). 사람들은 문화라는 도구함에서 자신 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인 도구를 선택, 활용하며 이러한 도구로 사용되는 문화의 요 소로는 서로 다른 상징, 서사, 세계관 등이 있다. 문화를 Tool-kit 으로 보는 이러한 시각은 사회 운동조직의 행태를 분석하는 데에도 활용된다. 이 이론적 접근에 따르면 사회운동조직들은 필요 에 따라 자신들의 문화 속에 있는 다양한 세계관, 상징, 서사들을 선택하는 것이다(Swindler

86 1986, 284). MAS의 성공을 분석함에 있어서 Tool-kit 접근법은 매우 유용하다. 특히 다양한 사회운동조 직의 결합으로 생겨난 MAS 의 경우, 노동, 농민, 원주민 권리, 빈민들의 인권 등 다양한 이슈들 을 강조하는 상징, 서사, 세계관들을 풍부하게 소유한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Tool-kit 을 소유했다는 것은 사회구조의 변화에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커졌음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본 논문은 MAS의 성공적인 정치 세력화가 다양한 사회운동세력의 협력 체로 출범한 MAS 의 형성단계에서부터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즉 여러 사회운동세력들이 제시하 는 서로 다른 상징, 서사, 세계관들이 MAS 가 선택할 수 있는 도구(Tool) 의 범위를 넓힌 것이다. 아울러 MAS는 이러한 다양한 도구들 중 사회구조적인 조건에 들어맞는 효과적인 도구를 선택하 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MAS 안에 존재하는 여러 사회변혁의 요구 중 원주민의 인권이라 는 당시 사회구조 속에서 유리한 이슈를 강조함으로써 MAS 전반의 정치세력화를 효과적으로 추 동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증명하기 위하여 다음 장에서는 해보겠다. MAS의 형성 및 발전단계를 집중적으로 분석 III. MAS 의 형성과 발전: 역사적 고찰 앞서도 언급했듯이, 정치정당으로서의 MAS의 형성과 발전에 대한 이해는 오랜 시간에 걸쳐 볼리비아 역사 속에서 형성되고 발전한 다양한 사회운동에 대한 고찰을 필요로 한다. 이에 앞서 우선 본 장에서는 선거도구로서의 자 한다. MAS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MAS의 탄생은 1979년 결성되어 원주민 운동과 농민운동의 정치세력화에 기여한 볼리비 아농업노동자총연맹(Confederación Sindical Única de Trabajadores Campesinos de Bolivia, 이하 CSUTCB) 이 1994년 12월 지도자 총회에서 1995년 12월에 실시될 지방선거 에 참여하기 위하여 정치조직 원주민주권회의(Asamblea por la Soberanía de los Pueblos, 이하 ASP) 의 결성을 결의하며 시작된다. CSUTCB 지도자 뿐만 아니라 저지대 원주민 농민 조직인 동부볼리비아원주민총연맹(Confederación Indígena del Oriente Boliviana, 이하 CIDOB) 과 저지대 이주민 조직인 볼리비아이주민총연맹(Confederación Sindical de Colonos Bolivianos, 한 이하 CSCB) 등 주요 원주민 농민 조직이 참가하여 결의 ASP의 결성은 원주민 및 농민 운동 내부에서 최초로 결성한 정치정당이라는 의미가 있 다(Van Cott 2005, 70-71). 알레호 벨리스와 에보 모랄레스를 지도부로 한 ASP는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정당등록허 가를 받는데 실패하고 1997 년 의회선거에 연합좌파당(Izquierda Unida, 이하 IU) 후보로 참여한다. 선거결과 에보 모랄레스를 비롯한 4명의 ASP 후보는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첫 전 국적 정치무대에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1999년 의회선거 이후 벨리스와 모랄레스를 양축

87 으로 ASP 는 분열되고 만다. ASP로부터 축출된 모랄레스는 ASP와 유사한 정치참여체인 원 주민주권기구(Instrumento Por la Soberanía de los Pueblos, 이하 IPSP) 를 결성한다. 한 편 1999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 다시 정당등록에 실패한 IPSP는 고육지책으로 기존 정당 의 하나인 사회주의운동당(Movimiento al Socialismo) 의 정당등록을 빌려서 선거에 참여한 다. 훗날의 집권당인 MAS-IPSP(Movimiento al Socialismo-Instrumento Por la Soberanía de los Pueblos) 는 이렇게 탄생하였다. 하지만 MAS와의 연합은 CSUTCB 지도 자 펠리페 키스페(Felipe Quispe) 와 IPSP가 정치적으로 결별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 다. 키스페는 MAS가 역사적으로 파시스트 분파의 하나인 MAS-Unzaguista는 원주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없는 이름이라고 주장하며 IPSP 를 탈퇴하였다. 이후 키스페는 급진적 인 원주민 정당인 파차쿠틱원주민운동(Movimiento Indígena Pachakuti, 이하 MIP) 을 창당 하여 독자적인 정치행보에 주력하였다(Monasterios et al. 2007, 79). < 표> MAS 와 주변 정당의 선거결과, 선거 MAS/IPSP IU/ASP MIP 3% 득표 1995 지방선거 총선 지방선거 2002 총선 2005 총선 2009 총선 3.27% 10 시장 득표 79 시의회의원 Evo Morales 20.9% 득표 (1 차) (1차 2 위, 2 차 낙선) 8/27 상원의원 27/130 하원의원 Evo Morales 53.7% 득표 ( 당선) 12/27 상원의원 72/130 하원의원 Evo Morales 64.22% 득표 ( 당선) 26/36 상원의원 88/130 하원의원 출처: CNE(Corte Nacional Electoral) 10 시장 54 시의회의원 6 도의회의원 3.7% 득표 4 하원의원 1.12% 득표 4 시장 23 시의회의원 Felipe Quispe 6.1% 득표 6 하원의원 Felipe Quispe 2.2% 득표 1999년 첫 번째로 참여한 선거에서 전국득표율 3.3% 를 획득한 MAS-IPSP는 특히 코차 밤바주에서 39% 를 획득하며 거점을 마련한다. 1999년 지방선거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MAS가 정치정당으로서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것은 2002년의 대통령과 의회 선거에서 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더욱 격렬해진 코카 재배 농민들의 저항과 2000년의 코차밤바 물전쟁 그리고 2002년 모랄레스의 의회퇴출은 MAS-IPSP의 조직역량 확대와 더불어 모랄

88 레스와 MAS 가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2002년 치러진 대선에서 20% 이상의 득표율로 2위를 기록한 모랄레스는 비록 당선에는 실패하였지만 대안정치세력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동시에 실시된 의회선거에서 MAS는 상하원에서 각 각 8석과 27석을 확보하며 제1 야당의 지위를 구축하였다. 2002년 총선 이후 볼리비아 정국은 소위 가스전쟁이라 불리는 천연가스 산업의 소유권을 둘러싼 논쟁의 소용돌이로 빠져 들었다. 2003년 다국적기업의 투자를 이용하여 볼리비아 남부로부터 칠레로 파이프라인을 건설하여 천연가스를 수출하려던 산체스 데 로사다 대통령 의 계획은 MAS 를 필두로 한 전국민적 저항에 직면한다. 결국 2003년 10월 17일 산체스 데 로사다 대통령은 사임과 동시에 망명길에 오른다. 공석이 된 대통령에 취임한 부통령 메 사(Carlos Mesa) 는 국민투표를 통하여 정국혼란을 수습하여 시도한다. 그러나 2005년 6월 국민투표 끝에 국회를 통과한 새로운 탄화수소법은 사태해결의 실마리가 되지 못하였다. 전 면적 국유화를 주장하는 MAS를 중심으로 한 야당세력은 다시금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였고 메사대통령 마저 사임한다( 이상현 2007b). 결국 2005년 12월 18일 앞당겨 실시된 총선에 서 MAS 는 압도적인 득표로 대통령직과 하원 과반수의 의석을 확보하였다. ASP를 결성하 여 선거에 참여하기 시작한지 불과 한 것이다. 10년 만에 볼리비아 사회운동 세력은 정치권력을 획득 IV. 볼리비아 사회운동과 MAS 본 장에서는 볼리비아 사회운동과 정치정당 MAS의 상관관계에 대한 분석을 주요 내용으 로 한다. 특히 MAS 조직과 지지기반을 이루고 있는 원주민 운동, 코카 재배 농민 운동, 도 시 빈민 운동, 노동자 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세력이 어떻게 발전하고 어떻게 MAS의 조 직적 기반이 되었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IV 경제위기, 광산 노동자 그리고 코카 재배 농민 정치정당 MAS의 기원은 가깝게는 1985년의 볼리비아 경제위기로 멀게는 1952년 볼리 비아 혁명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선 토지를 원주민에게, 광산을 국가에게 라는 슬 로건으로 집약된 1952 년 볼리비아 혁명은 식민시대 이래로 소외되었던 원주민, 농민과 노 동자들이 보통 선거권의 확립, 토지개혁 그리고 광산국유화를 핵심으로 하는 최소한의 정치 적 경제적 권리를 획득한 사건이다(Grindle and Domingo 2003; Klein 2003). 이에 혁명의 과정에서 중요한 정치세력의 하나로 부상한 고지대 농민과 노동자는 볼리비아전국노동조합 (Central Obrera Boliviana, 이하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장기적으로 COB) 중심의 조직화를 거쳐 제도권 정치에서 영향력을 MAS 의 조직화에 영향을 끼쳤다. 한편 1952년 혁명 이후 시도된 볼리비아의 국가사회주의적 성장모델은 1980년대의 경제

89 위기와 함께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시장주도적 성장모델로 전환한다. 또한 이러한 성장모 델의 전환은 정치 및 사회세력의 재편을 의미하였다. 오랜 군부독재 끝에 집권한 중도좌파 민간정부 실레스 수아소(Hernan Siles Suazo, ) 정권의 실정과 볼리비아 경제의 만 성적 결함이 중첩되어 찾아온 볼리비아의 1985 년 경제위기는 물가상승, 성장저하, 실업률 상승, 무역적자 및 재정적자 확대 등이 악화되어 발생하였다. 특히 20,000 퍼센트를 넘나드 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은 경제를 극도의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결국 조기에 실시된 선거로 대 통령직에 복귀한 1952 년 볼리비아 혁명의 주역 파스 에스텐소로(Victor Paz Estenssoro) 는 급진적인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패키지인 신경제정책(NPE) 을 실시하였다. 단기적으로 는 시장안정화를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국가주도의 기존 경제체제를 신자유주의적인 시장주 도적 경제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된 NPE는 당시 27,000명을 고용하던 최대 국 영기업의 하나이자 볼리비아 경제의 상징인 볼리비아국영광업공사(Corporación Nacional Minera de Bolivia, 이하 COMIBOL) 의 구조조정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상현 2007a, 90-91). 그러나 NPE가 발표된지 두 달 만인 1985년 10월 볼리비아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산업 이자 수출품의 하나인 주석산업이 붕괴되는 또 다른 시련을 겪게 되었다. 국제주석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창설된 국제 주석 생산국 및 소비국 연합인 국제주석기구 (International Tin Council)가 주석소비 부진에 따른 누적되는 재고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 을 선언한 것이다(Crabtree et al. 1987). 국제주석가격은 하루아침에 파운드 당 미화 5.4 달러에서 2.5달러로 폭락했고 주석 생산과 수출이 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낮은 기술 과 부진한 투자 그리고 높은 생산 단가로 인하여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던 COMIBOL은 결 국 거의 모든 생산을 중단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처하게 되었다. 특히 효율성의 증진을 목적으로 추진된 COMIBOL의 1 단계 구조조정( ) 은 적자광산 폐쇄와 대규모 해고를 주요 내용으로 하였다. 몇 몇 경제성을 지닌 소수의 광산을 제외하고 많은 광산들이 폐쇄되 었으며 광산 노동자들은 재배치라는 명목 하에 해고되었다. 1985년 27,000명에 달하던 COMIBOL의 노동자는 1987년에 이르러 7,000 명 이하로 줄어들었는데, 약간의 수당을 받 고 광산을 떠난 광산 노동자들은 도시빈민이 되거나 차파레(Chapare) 지역과 같은 열대지 역에서 코카재배 농민이 되었다( 이상현 2007a). 전통적으로 볼리비아 노동운동의 가장 핵심세력으로 다양한 조직경험을 지닌 COMIBOL 해고 노동자의 전국적 재배치는 예상치 못한 정치적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코카재배 농민 이 된 해고 광산 노동자들은 코카재배 농민들의 조합운동에 큰 기여를 하였는데, 풍부한 노 동조합 및 정치경험을 지닌 다수의 해고 광산 노동자들은 조직화된 코카재배 농민으로 탈바 꿈하여 정부의 코카 박멸정책에 대한 조직적이고 급진적인 투쟁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Albro 2005; 이상현 2007a). IV-2. 원주민 운동, 코카 재배 농민 그리고 도시빈민 운동

90 앞서 살펴 본 주석광산의 폐쇄와 광산 노동자 대량해고에 따른 코카재배 농민으로의 전환 이 현재의 MAS에 영향을 끼친 간접적인 요인이라면 1980년대 이후 코카재배 농민의 조직 화와 전투적 저항은 현재의 MAS 를 있게 한 직접적인 요인이다. 차파레의 재배치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코카 재배 농민의 조직화는 미국의 지원 하에 이루어진 코카 박멸 정책에 대한 직접적 저항으로 이어졌다. 특히 우고 반세르 정권( ) 하에서 실시된 강력한 코카 박멸 정책인 ' 존엄성정책(Plan Dignidad)' 은 코카 재배 농민의 거센 저항을 불러 일으 켰는데, 33명의 농민이 죽었고 1,000 명 이상이 다치거나 구금되었다(Ledebur 2005, ). 코카 재배 농민에 대한 지속적인 탄압은 꾸준한 조직화로 이어졌다. 1988년에 이미 다섯개의 코차밤바 코카 재배 농민 연맹이 조정위원회(Comité Coordinador) 를 결성하 였으며, 1990년에 이르면 160개의 지역조합과 30개의 하부연맹 그리고 다섯 개의 상부연 맹에 소속된 오만여명의 코카 재배 농민이 차파레에서 생산활동을 하게 되었다(Van Cott 2005, 58, 재인용) 1). 한편 모랄레스는 1988년부터 사무총장의 역할을 수행하며 지속적으로 차파레 지역의 코카 재배 농민 조직을 이끌었다. 차파레 코카 재배 농민 지도자라는 강력한 조직기반은 모랄레스가 중앙정치에서 성공할 수 있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음은 물론 코카 재 배 농민 조직이 MAS 의 급진적인 핵심 전위 조직의 역할을 수행하는 이유가 되었다(Albro 2005, 438). 결국 현재의 MAS가 지닌 반미적 성향에 기반을 둔 반신자유주의와 코카옹호 라는 이념적 정책적 방향성은 오랜 기간에 걸친 코카 재배 농민조직들의 조직화와 저항이 MAS 조직에 직접적으로 반영된 결과이다. 이러한 코카 재배 농민의 조직적 전투화는 1970년대 말부터 농민조직에서 영향력을 확대 하기 시작한 원주민 운동과 결합되어 그 파괴력이 증폭되었다. 특히 1979년에 결성된 CSUTCB는 정치세력화 과정에서 농민 운동과 원주민 운동 그리고 노동자 운동을 결합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최대의 원주민 조직으로서 모든 주에 산하 조직을 가지고 있는 CSUTCB는 저지대 원주민 조직과 이주민 조직을 망라하여 지역별로 주별로 촘촘하게 농민 들을 조직하고 있다(Van Cott 2005, 59). CSUTCB는 광산 노동조합이 몰락한 후 지도부 의 공백이 생긴 COB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여 노동자 중심의 계급적 이슈에 몰두하 던 COB 의 행동방향을 원주민 이슈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결국 CSUTCB는 2000 년대 이후의 정권반대 투쟁에서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편 MAS 의 조직기반에서 간과할 수 없는 세력은 도시빈민 특히 엘알토 주민이다. 라파 스의 외곽도시인 엘알토는 2010년 현재 인구 100만명에 육박하며 정치적으로 가장 잘 조 직된 도시이자 MAS 의 핵심거점이다. 1950년에 인구 11,000명에 불과하여 라파스의 한 구 역에 지나지 않았던 엘알토는 1950년대부터 시작된 도시이주로 팽창하기 시작하여 1980년 대 경제위기 이후 급격한 팽창을 경험하였다. 특히 차파레 지역처럼 1980년대 후반의 해고 된 광산노동자의 대량 유입은 엘알토의 양적 팽창만이 아니라 정치문화에도 큰 변화를 주었 다(Arbona and Kohl 2006, 258). 즉 경제적 불안정과 사회적 좌절의 배경 속에서 전통적 인 지역기반 조직, 노동조합주의 그리고 원주민주의2)가 융합된 독특한 엘알토의 정치문화 1) 에 따르면 년에 차파레 지역에는 약 명의 코카 재배 농민이 여섯 개의 상부연맹 Albro(2005, 438) ,000 으로 조직화되어 있다

91 는 다양한 사회운동세력의 자양분이 되었으며 MAS 의 강력한 지지기반으로 성장하였다. 엘 알토의 이러한 정치적 역량이 도드라지게 드러난 사건은 2003년 10월 소위 가스전쟁의 과 정에서 이다. 50만명 이상이 참여하여 산체스 데 로사다 정권을 물리적으로 고립시킨 2003 년 10월 시위에서 당시 65만명의 엘알토 주민은 실질적으로 대부분이 시위에 참여하는 놀 라운 동원력을 보여주었다. V. 결론: MAS, 사회운동 그리고 이론적 함의 살펴보았듯이 MAS 의 조직기반은 원주민 운동, 농민 운동, 노동 운동, 도시 빈민 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이 오랜 시간을 두고 복합적으로 발전한 결과이다. 더불어 볼리비아의 사례 는 MAS의 정치적 성공이 이러한 다양한 조직기반에서 표출되는 여러 아젠다 중 효과적인 아젠다가 시의적절하게 선택되고 집중되어 자원이 동원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코카박 멸 반대, 수자원 민영화 반대, 탄화수소산업 국유화, 원주민 권리 증진, 토지 개혁 등 MAS 가 역사적으로 선택하고 추구한 다양한 아젠다는 MAS 조직기반 확대와 선거에서의 지지율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런 점에서 비추어 볼 때, MAS는 다원주의적 정치를 관통 하여 대변하고 있으며, 원주민이나 코카 재배 농민과 같은 태생적 기원에 해당하는 정체성 의 협소함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였다. 따라서 MAS는 단순히 단일이슈를 중심으로 농촌의 한 분야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라는 Albro(2005, 442) 의 평가는 중요한 이론적 의미 를 제공하고 있다. 한편 MAS 의 이러한 노력은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이 표출된 2000년 대 볼리비아의 반정부 시위에서 어떤 명백한 정체성 을 찾아볼 수 없었다(Albro 2005, 448, 재인용) 는 연구자들의 평가에서도 확인된다. MAS가 보여준 다원주의적 성향은 MAS 조직과 이슈선정의 유연함으로 표출되었는데, 이는 MAS가 볼리비아 대중의 의사를 적극적 으로 반영하여 대변한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볼리비아 역사 속에서 발전한 다양한 사회운동의 결합 체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MAS는 노동자, 코카 재배 농민, 원주민, 도시빈민 등 MAS조직 구성 원과 지지기반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Tool-kit 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Tool-kit의 다양성은 정치조건의 변화와 사회적 요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효율적이고 유연한 행동선택을 가능케 하였다. MAS가 소유한 이러한 Tool-kit 의 다양함은 MAS가 원주민 정체성을 대변한다는 대표적 이슈를 선점함과 동시에 코카 박멸 반대, 반민영화, 반미, 자원국유 화 등 다양한 볼리비아 사회의 요구를 효과적으로 시의적절하게 선택하여 행동할 수 있는 근원 이 되었다. 결국 이는 볼리비아 역사상 최초의 원주민 정권이자 사회운동의 성공적 정치참여 사 례인 MAS 의 집권을 가능케 하였다. 2) 2001년 실시하고 2003 년 발행된 통계청 (Instituto Nacional de Estadísticas, 이하 INE) 센서스에 따르면 엘 알토 주민의 74.25% 가 본인을 아이마라로 규정하였다. 엘알토는 대부분의 주민이 원주민으로 이루어진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독특한 도시이다(Lazar 2006, 186)

92 참고문헌 김기현(2010),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은 종족 정체성을 회복하고 있는가?, 라틴아메리카 연구, Vol. 23, No. 2, pp 김은중(2008), 권력의 식민성과 볼리비아 원주민 사회운동, 이베로아메리카연구, Vol. 19, No. 1, pp 이상현(2007a), 볼리비아 국영광업공사 구조조정의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 , 라틴아메리카연구, Vol. 20, No. 3, pp 이상현(2007b), 중장기통상전략연구 볼리비아의 자원민족주의와 천연가스산업 재편의 전개와 의미, KIEP , 대외정책연구원. Albó, Xavier(2008), "The "Long Memory" of Ethnicity in Bolivia and Some Temporary Oscillations," in John Crabtree and Laurence Whitehead(eds.), Unresolved Tensions: Bolivia Past and Present, Pittsburgh, PA: University of Pittsburgh Press. Albro, Robert(2005), "The Indigenous in the Plural in Bolivian Oppositional Politics," Bulletin of Latin American Research, Vol. 24, No. 4, pp Albro, Robert(2006), "Bolivia's "Evo Phenomenon": From Identity to What?," Journal of Latin American Anthropology, Vol. 11, No. 2, pp Arbona, Juan M. and Benjamin Kohl(2004), "City Profile La Paz-El Alto," Cities, Vol. 21, No. 3, pp Crabtree, John, Gavan Duffy and Jenny Pearce(1987), The Great Tin Crash Bolivia and World Tin Market, London, UK: Latin American Bureau. Crabtree, John and Laurence Whitehead(2008), Unresolved Tensions: Bolivia Past and Present, Pittsburgh, PA: University of Pittsburgh Press. Cusicanqui, Silvia Rivera(2004), "Reclaiming the Nation," NACLA Report, Novemebr/December 2004, pp Grindle, Merilee S. and Pilar Domingo(2003), Proclaiming Revolution: Bolivia in Comparative Perspectives, Cambridge, MA and London, UK: Harvard University Press. Klein, Herbert S.(2003), A Concise History of Bolivia, New York, NY: Cam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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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제3회의 - 고대와 근대의 만남 15:50~18:00 (A510 호) 좌장 : 송병선 ( 울산대) 디에고 데 란다(Diego de Randa) 마야이야기 의 집필배경 발표 : 송영복 ( 경희대) 토론 : 김우중 ( 대구가톨릭대) 프란시스꼬 로뻬스 데 고마라의 연대기에 나타난 인디오의 이미지 연구 발표 : 최권준 ( 대구가톨릭대) 토론 : 김선웅 ( 경일대) 이민과 위생정책을 통해 본 근대도시의 형성 : 파라과이 비야리까시의 사례 발표 : 구경모 (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토론 : 이석환 ( 경성대)

95 프라이 디에고 데 란다(Fray Diego de Landa) 의 마야문명이야기 (Relacion de las cosas de Yucatán) 집필배경 공동/ 송영복, 허문선 * 3) Song, young-bok, Heo, mun-seon(2010), Fray Diego de Landa, la Relacion de las cosas de Yucatan: una perspectiva sobre los motivos de escribir. Fray Diego de Landa es un sacerdote franciscano del siglo XVI. Llego a America para evangelizar a los indios. Escribio Relacion de las cosas de Yucatán, la obra mas importante para comprender la civilizacion Maya. Hoy en dia, esta obra es una fuente historica primordial en este campo de investigacion. Sin embargo, esta por indagar tanto sobre el personaje Landa como la de su obra. Entre varias tareas de investigacion relacionadas a este rubro, en este articulo estamos tratando de analizar los motivos de escribir Relacion de las cosas de Yucatán. En terminos generales, podemos apreciar los siguientes cuatro motivos. 1. Defender en contra de la acusacion por el maltrato a los Indios. 2. Elaborar las Relaciones Geograficas como informe oficial. 3. Intereses personales de conocer a cerca de la cultura Maya. 4. Las aficiones religiosas. Esta obra es un resultado de un larga espera y fue hecha para varios propositos, asi que no podemos enfatizar en uno en especifico. La iniciacion de la obra podria ser causada por la defensa contra la acusacion por el maltrato de los indios que ocurrio en Yucatan. Es probable que cuando Landa viajo a España para presentar ante la autoridad española empezo escribir la obra, pero desde antes ya tenia preparada los datos basicos. La calidad de este obra como un informe no es inigualable a los demas. Asi que, con intencion o no, este trabajo fue hecho para este fin. Por otro lado la importancia de este trabajo viene tambien a los intereses y aficiones personales de Landa. Las descripciones detalladas y amplias que podemos apreciar en su obra, sirven como el unico e incomparable testimonio sobre las civilizaciones antiguas de los Mayas. El es una persona que no descansa en su deseo de saber. Ademas su fe catolica fue un factor importante. Su pasion hacia la evangelizacion de los indios podria ser un motivo importante de este magnifico trabajo. Para este fin debio de conocer a los indios y su alrededor, ademas de justificar la conquista. Ya que en muchas partes de su obra encontramos su voz tan apasionante y clara que enfatiza la necesidad de evangelizar a los indios. 1. 들어가는 글 [landa / relacion/ yucatan/ maya/ prehispanico; 란다/ 렐라씨온 / 유까딴 / 마야/ 정복이전 ] 프라이 디에고 데 란다(Fray Diego de Landa) 는 16세기 아메리카 대륙에서 활동한 프란시스코 수도 회 소속의 에스빠냐 신부이다. 그는 원주민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겠다는 신념하나로 초기 식민지시 대에 멕시코의 유까딴 (Yucatan) 반도로 건너갔으며, 평생을 바쳐 그 지역의 마야 원주민들에게 기독교 를 전파하는 동시에 고대마야의 문화에 대한 정보를 집대성하는데 힘쓴 사람이다. 란다는 고대마야문명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집필 한 마야문명이야기 (Relacion de las cosas de Yucatán) 는 고대마야사람들에 대한 사료로서 가히 최고 의 가치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곳에 기록된 내용들은 에스빠냐의 정복이전과 정복 당시 마야인 들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알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사료로서 평가되고 있을 정도로 그 학문적인 비중 *3)연구책임자 : 송영복 ( 경희대학교 ) 공동연구원 : 허문선 ( 경희대학교 )

96 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록의 정확성과 종합성이 더해져서 더 큰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1). 게다가 고대마야사람들의 시간과 달력에 대한 기록은 란다가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 유일한 것으로 이 를 통하여 오늘날 마야 문자를 이해하는데 실마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사료의 중요성을 가 늠할 수 있겠다. 또한 메시까(Mexica) 나 남아메리카의 잉까(Inca) 문명 등은 상대적으로 더욱 많은 사료와 기록들이 남 아 있는 반면, 마야를 연구하기 위한 식민지 초기의 종합적인 1 차 사료는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 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종합사료이기에 이 책의 가치는 그 희소성에서도 기인한다. 그 밖에도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점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한편 16세기 에스빠냐어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로 이용된다는 1864년 란다의 저서가 처음으로 발간된 이후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마야에 관한 가장 중요한 사료로서 일반인들과 학자들에게 많이 읽히고 있고, 또 인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저술이 언제, 어떻게, 왜, 누구의 도움으로 완성되었는가에 대한 철저한 연구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Okoshi, 56). 고로 이 논문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연구의 하나로 란다가 왜 이 책을 저술했는지에 대한 여러 가 능성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란다의 저술이 특정한 목적성을 가진 집필이라는 점을 구체화함으로써 어 떤 부분에서 어떤 점이 왜곡되거나 강조 혹은 축소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하기위한 바탕이 된다 는 점에서 우리는 이 연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란다의 저술 목적을 외면한 채 그가 기록한 내용을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인다면 현실을 간과하고 역사를 왜곡하여 받아들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본론에서는 란다가 육필원고를 작성하게 된 배경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4가지 가능성에 대하여 살 펴보고 있다. 각각은 다음과 같다. 1. 원주민 탄압 사건에 대한 해명을 목적으로 저술을 함, 2. 보고서 (Relaciones geograficas) 작성을 목적으로 저술을 함, 3. 란다신부 본인의 학문적 호기심으로 저술을 함, 4. 란다신부 본인의 종교적 신념에 기인하여 저술을 함. 란다가 저술 작업을 한 배경에는 여러 복 합적인 이유 및 상황들이 맞물려 있었다. 그가 라틴아메리카로 건너갔던 시기와 집필을 시작한 시기 의 시대적인 상황, 그의 우주관과 세계관 및 종교관, 신부로서의 삶, 유까딴에서의 활동, 인디오들에 대한 입장, 개인적인 호기심 등의 다양한 요소들을 들 수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복합적인 요 인들이 그의 작품 속에 그대로 담겨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주변 정황을 살펴봄과 동시에 그의 저술 내용에도 주목함으로써 그가 마야문명이야기 라는 역사적인 저술을 왜 하게 되었는지에 대 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제 II장에서 란다의 생애와 작품의 배경에 대하여 살펴본 후 각 장에서 본격적으로 저술의 배경과 관련된 논의들을 이어가도록 하겠다. 2. 란다의 생애와 마야문명이야기 (Relacion de las cosas de Yucatán) 의 배경 란다는 1524 년 에스뺘냐의 중부고원지방인 과달라하라 (Guadalajala) 의 씨푸엔떼스 (Cifuentes) 에서 태 어났다. 사제가 될 것을 결심하고 17 세의 나이에 똘레도 (Toledo) 에 있는 산 후안 데 로스 레예스 (San Juán de los Reyes) 라는 프란시스코 수도회 (Franciscano) 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부터 그는 본격적인 신부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1547년 다른 5명 의 신부들과 함께 아메리카 대륙의 유까딴지역으로 건너간다. 마야지역은 1520 년대부터 몬떼호 (Francisco de Montejo) 에 의해 정복이 이루어지기 시작해서 1540년 대 이후에는 이미 많은 지역이 에스뺘냐에 복속되어 있던 상태였다. 2) 에스뺘냐 사람들은 16세기 초 1) 이 책은 그 중요성으로 인하여 식민지시대의 여러 자료에 언급되어 있다. 산체스 데 아길라 (Sanchez de Aguilar), 로뻬스 데 고마라 (Lopez de Gomara), 라스 까사스 (las casas) 등과 같은 사람들의 기록에 란다의 원본에 대한 언급이 나타난다. 란 다의 저술이 마야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료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마야 중에서도 주로 16세기 정복기를 전후 한 시기에 유까딴 반도에 거주하였던 마야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따라서 시기적으로 그 시대 이전의 마야나 지역적으 로 중부 고원지방이나 남부지방의 마야에 대한 세부적인 정보는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97 전체마야지역에 대한 정복사업을 빠른 속도로 펼쳐 나갔고, 대부분의 지역은 최소한 외형적으로나마 식민지화되었다. 따라서 란다가 이곳에 도착하였을 즈음에는 본격적으로 성당이 세워지고 수도사들에 의하여 포교 활동이 시작되던 시기, 즉 초기 식민지 시대였다. 란다는 1549년 다른 12 명의 사제들과 함께 산 후안 데 울루아 (San Juan de Ulua) 에 도착한 후, 1552 년 이사말의 구아르디안(Guardian de Izamal) 3)으로 부임하는 것을 시작으로 마야원주민들과의 인연을 맺게 된다 년에는 유까딴의 꾸스또디오 (Custodio de Yucatan) 4), 1560년에는 메리다의 구아르디안 (Guardian de Merida) 그리고 1561 년에는 쁘로빈시알 (Provincial) 5)의 직책을 맡았으며, 1572년에는 당 시 유까딴 지역에서 가톨릭의 최고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메리다 (Mérida) 오비스뽀 (Obispo, 대주교 ) 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572년 4월 29일 유까딴의 메리다에서 55세의 나이 로 사망하였다. 이제 막 새롭게 접하는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가톨릭의 포교를 위해서 그 당시 신부들을 비롯한 종교계 사람들은 원주민들의 언어와 관습에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란다 역시 마야 인디오들의 생활과 언어 등을 공부하였다. 또한 그의 생애 가운데 3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마야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 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집필활동을 하였고, 이후 세상에 육필원고를 남겼으나 현재 그 원본과 필사본 은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다. 다만 세기 몇몇 사람들에 의해 발췌 요약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본 만이 발견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접하고 있는 란다의 유일한 작품이며 이 사본은 현재 마드 리드의 라 레알 아까데미아 데 라 이스또리아 (La Real Academia de la Historia) 의 도서관에 소장되 어 있다.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 의 구성과 그에 따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멕시코 마야 원 주민들의 땅인 유까딴 지역의 자연환경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또 이곳 지명의 유래는 무엇이고, 에스 빠냐 사람들이 이곳을 어떻게 발견 및 정복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세밀하게 기술하고 있다. 본론에 서는 마야원주민들의 건축과 종교, 음식, 문자, 산업, 공예, 관습, 역사, 생활 등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책의 뒷부분에서는 이 지역의 동식물에 관한 서술을 하고 있으며, 마지막 부 분에서는 에스빠냐 사람들이 마야지역을 정복한 것이 이곳 원주민들에게는 더 없이 잘된 일이고, 은 혜로운 일이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결론을 맺고 있다.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 는 이미 19 세기부터 번역되기 시작하여 현재 영어, 불어, 독어, 이탈리아어, 일 본어 등 세계 각국어로 다양하게 번역되어 있다. 6) 고대마야문명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마야지역을 여행하는 관광객에서부터 문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자료로 또는 하 나의 문학작품으로 폭넓게 읽히고 있다. 다음 장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란다가 이 책을 저술한 배경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2) 몬떼호는 1527 년부터 본격적으로 유까딴 반도의 마야지역을 정복해 나가기 시작한다. 정복기인 1527년부터 1546년간의 기 간을 지역적인 특징으로 구분해 보면, 1527년부터 1528년 사이에는 유까딴반도의 동쪽을 중심으로 하여 정복전을 해나간 기간 이며, 1528년과 1531년의 공백기를 거쳐 1531년부터 1535년까지는 방향을 바꾸어 반도의 서쪽에서부터 군사작전을 펼쳐나갔 다. 그러나 이 양대 기간 동안의 공격이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1535년에서 1540년까지 이어지는 휴식기를 거쳐 1540 년에서부터 1546 년까지 현재 멕시코 유까딴주의 주도인 메리다시를 건설하고 유까딴반도의 군사적 정복을 일단락 짓게 된다. ( 송영복, 2005, 320) 3) Guardian 은 프란시스꼬 수도회 수도원의 원장을 가리키지만 정복당시 상황을 보면 한 지역을 대표하는 주교와 같은 역할 을 담당하였다. 4) 가톨릭 행정체제에서 독립 교구보다는 작은 단위의 수장을 가리킨다. 5) 한 교구의 수장 6) 1864 년 브라쉘 (Brasseur de Bourbourg) 에 의하여 처음으로 필사본의 원본소개와 더불어 불어로 번역된 것을 필두로 1881 년에 레온 로스니 (Leon Losny) 의 에스빠냐어본이 나오고, 1937 년 윌리암 게이트 (William Gate) 의 영어본에 이어, 1938년 알프 레도 바레라 바스께스 (Alfredo Barrera Vasquez) 의 에스뺘냐어로 된 멕시코본이 출간되었다 년 알프레드 토설(Alfre M. Tozzer) 에 의하여 다양한 주석과 해설이 곁들여진 영어본이 새롭게 번역되었다. 일본에서도 1982년 코이께유우지에 의하여 일 어로 번역되었다

98 3. 원주민 탄압사건에 대한 해명을 목적으로 저술을 함 아메리카 대륙에서 기독교 포교를 하는 신부들의 눈에 원주민 이교도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미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었으며, 하루빨리 복음을 전해 개종을 시켜야 할 대상에 불과했다. 게다가 원주민들이 행하는 피공양과 인신공양 7) 은 물론이요 미신적 행위들 역시 악마를 숭상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란다 는 초기 식민지시대에 선교를 목적으로 유까딴 지방에서 활동한 신부들 중 한명이었고, 그 역시 다른 여느 신부들과 마찬가지로 반 기독교적으로 보이는 인디오들의 우상숭배를 매우 혐오했다. 그러나 인 디오들 입장에서는 조상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신앙과 종교적 관습을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따라서 기독교인으로 변화되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 요했고, 그 과정에서 혹은 처음부터 이를 거부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또한 외형적으로는 기독교로 개종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에스빠냐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그들의 전통종교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란다는 이러한 상황에 강경하게 대응하고자했다. 그는 개종하지 않은 원주민들과는 절대적으 로 적대관계에 놓여있었다. 결국 이러한 란다의 강경한 입장은 많은 원주민들을 탄압하고 죽이는 결 과를 낳게 되었고, 그 정도가 심해서 란다와 생각 혹은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다른 에스빠냐 사람들에 의해 고발을 당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중대한 문제로 대두되었고, 급기야는 에스빠냐에 있는 꼰세호 데 라스 인디아스 (Consejo de las Indias) 에 직접 가서 해명을 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Esteve, 318). 그리고 이 시점에서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 의 저술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 인다 원주민 탄압 사건의 전말 1562 년 란다가 쁘로빈시알직을 맡고 있던 차에 마니(Mani) 지방에서 인디오들이 우상숭배를 하다가 발각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란다는 그 지역 일대를 샅샅이 조사해서 이 사건에 연루된 인디 오들을 엄중히 벌하였다. 그는 1562년 7월 12 일 종교집행을 주관했으며,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인디오들의 우상숭배를 근절시키고자 인디오 지도자들에게 고문을 자행하였고 그들을 화형에 처하도 록 하였다. 또한 원주민들의 수많은 책들이 우상숭배를 하는데 쓰이는 악마의 책 이라고 여겨서 이것 역시 불태워 버리기에 이른다. 이 사건이 벌어진 시기에 유까딴에서는 에스빠냐 정부의 폭정과 함께 란다의 강경한 포교활동과 종교재판관으로서의 엄중한 처벌 등으로 하여 인디오들이 자살을 하는 등 의 사회적인 혼란이 야기되었다. 이와 관련된 란다 스스로의 표현을 들어보자 : 이런 문자가 쓰인 많 은 책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 중에 악마의 거짓과 미신이 아닌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으며, 그 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은 인디오들은 무척 괴로워하였다 (Landa, 1986, 105). 8) 당시 란다가 행한 가혹한 처벌이 원주민들을 탄압하는 것이며, 이로 인한 원주민들의 반발이 우려되 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조차 이러한 란다의 행동에 우려를 표명하였다. 또한 당시 지방호족들 (Los colonos españoles) 의 노동력 착취로부터 원주민들을 보호하고자 했던 강경 한 입장의 란다와 농장주들은 대립관계에 놓여 있었는데, 이 사건을 빌미로 지방호족들, 즉 농장주들 은 란다가 부당한 행위를 했다는 주장에 목소리를 합치면서 란다의 정책을 반대하였다. 게다가 당시 유까딴의 가톨릭을 대표하던 또랄신부 (Fry don Francisco Toral) 역시 원주민들을 대하는 란다의 방 식과는 입장 차이를 보이면서 그를 강력히 비난했다. 급기야는 1563년 당시의 에스빠냐 국왕인 펠리 7) 실제로 란다가 마야사람들이 인신공양을 하는 것을 보았거나 들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마야가 후고전기 이후 인신공양 을 하였을 가능성이 상당히 낮기 때문이다. 이는 메시까지방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 문서나 저술 등에서 그들의 야만적인 행위 를 강조하기 위하여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었고, 이것이 아메리카 전 지역에 마치 모든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인신공양을 하고 있는 것처럼 유포되기도 하였다. 8) 논문에 나오는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 의 한국어 번역 부분은 송영복 ( 근간), 마야문명이야기 의 번역을 바탕으로 한다

99 뻬 2 세에게 공식적인 항의 서한을 보내기에 이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인디오들에게 교리를 전하는 대신 온갖 불행한 고문들을 가했으며, 신을 알리는 대신 오히려 절망의 수렁으로만 빠트렸다는 점을 국왕께서 인지하시도록 이야기를 드린바 있습니다 ; 또한 로마 교회의 성녀인 우리들의 어머니에게로 이끄는 대신에 그들을 산과 들로 내쫒는 결과만 초래하였습 니다; 더욱 최악인 것은 그들이 이러한 형벌을 가하지 않고는 신의 말씀을 전할 수 없다고 주장한 다는 것인데 이러한 점은 전도 과정에 형벌을 가하는 것은 신성한 마리아 교회로부터 부당한 것 으로 결정된 사안입니다. 또한 예수님이나 산 빠블로 (San Pablo) 역시 그렇게 하지 않고 사랑으로 전도를 하였습니다( Carta de Fray Franciscano de Toral, en Don Diego Quijada, 36-37, en Leon, 32). 이에 란다는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고 올바른 것이었음을 국왕과 꼰세호 데 라스 인디아스에 직접 해 명하기 위해 1563 년에 에스빠냐로 가게 된다. 그리고 란다는 이 시기에 맞추어 자신의 변호를 목적으 로 마야문명이야기 의 저술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에스빠냐의 왕과 꼰세호 데 라스 인디아스 (Consejo de Las Indias) 에 자신의 무죄를 피력하기 위해 집필을 시작함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란다는 에스빠냐의 바르셀로나 (Barcelona) 에서 프란시스꼬 수도회에 정황을 설 명하고, 본인이 종교집행관의 허가를 가지고 있다는 서류를 보여주는 등 적극적인 대처에 나섰다. 또 한 프란시스코 수도회와 꼰세호 데 라스 인디아스의 관리들에게 자신의 행위가 정당함을 피력하기 위 해 1566 년경 똘레도의 산 후안 데 로스 레예스 수도원에서 마야문명이야기 의 저술 작업을 시작한 것 으로 보인다. 그는 XVIII 장에서 인디오들의 나쁜 습관과 원주민들의 교육 및 배교자에 대한 벌(Landa, 1986, 31-32) 에 대해 기록하였고, XXVII 장에서 유까딴 사람들의 일종의 고해성사 - 금욕과 미신 - 많고 다 양한 우상들 - 제사장 (Sacerdote)의 직무(Landa, 1986, 47-49), XXVIII 장에서 잔인하고도 더러운 유까 딴 사람들의 인신공양과 고행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하였다 (Landa, 1986, 49-51). XLIII장에서는 왜 인 디오들이 인신공양을 하는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Landa, 1986, ). 이렇듯 란다는 그의 글을 통해서 이곳의 마야원주민들이 계속해서 악마를 숭배하고 있고, 미신적인 행위들을 멈추지 않기 때문 에 교화시키기가 어렵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란다는 그들을 악마로부터 끌어내어 교화시키는 것이 교회의 막중한 임무이자 사명이라는 것 역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원주민들이 교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그들이 악마를 숭배하고 여러 악습들을 유지한다 면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마땅하다는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1562년 이 교도 및 배교자에 대한 본인의 엄중한 처벌은 정당하고 올바른 것이었다고 결론지으면서 국왕과 행정 기관 및 종교단체에 자신의 무죄를 호소하고 있다. 인디오들의 나쁜 습관을 들자면 우상을 숭배하는 것, 배우자를 버리는 것, 마을전체가 술에 취하는 것, 그리고 노예를 사고파는 것인데 ; 신부들이 이러한 것들을 고쳐나가려고 했기 때문에 인디오들 은 그들을 증오하기에까지 이르렀다 ; 신부들을 가장 애먹이던 사람들은 옛날 마야의 제사장들 이었는데 그들은 비록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의 주업을 잃어버리게 되어서 그로 인한 이익도 잃어버리게 된 사람들이었다(Landa, 1986, 31). 어떤 때에는 이런 인신공양을 신전의 높은 단과 돌에서 행하고 죽은 시체를 단 밑으로 굴려 버리는 데 밑에서 행정관들은 그것을 잡아 손과 발을 제외한 부분의 몸통전체의 가죽을 벗긴다. 제사장이

100 스스로 발가벗은 다음에 자신의 몸에 벗긴 인간의 가죽을 쓰고 다른 사람들과 춤을 추는데, 이러한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대단히 엄숙한 일이다(Landa, 1986, 51. 또 XIX장을 통해 또랄주교의 도착에서부터 또랄주교가 감옥에 가두어 둔 인디오들을 자기마음대로 석방하는 조치를 취한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 밖에도 프란씨스코 수도회의 활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란다 본인이 에스빠냐를 방문하게 되는 경위와 그 과정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Landa, 1986, 33-34)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덧붙이고 있다. 란다는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서 자신은 정의를 바로 세 우려는 사람일뿐이며 잘못한 점이 없다는 것을 직 간접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프란씨스꼬 수도회 소속으로, 고향이 우베다 (Ubeda) 인 돈 프란씨스꼬 또랄 신부가 20 년 동안 멕시코에 있다가 유까딴 주교로 깜뻬체 (Campeche) 에 부임하였다, 에스빠냐사람들이 그에게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고 인디오들이 항의를 하기도 하여,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석방하는 등 기존에 있던 신부들이 한 일들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었는데, 이에 강한 모욕감을 느낀 유까딴의 주관구 장( 州 管 區 長 ) 이 멕시코 (México) 에 항의를 한 후 에스빠냐 (España) 에 가기로 결심을 하였다, 마드리 드(Madrid) 의 꼰세호 데 라스 인디아스는 그가 주관구장이 주교와 종교재판관의 직분을 남용하는 자라고 강력히 비난하였다, 이에 그는 이러한 비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교황 아드리아노 (Papa Adriano)와 황제로부터 그가 그곳에서 부여받은 권한과 아우디엔시아 레알 데 라스 인디아스 (Audiencia Real de las Indias) 에서 주교들에게 주었던 증표 를 들어 해명하였다 ; 그러나 이런 그 의 해명이 꼰세호 데 라스 인디아스를 더 노하게 하여 꼰세호에서는 주교가 보낸 신부들에 반대하 는 편지에 답변을 하였다, 이에 왕은 까스띠야 (Castilla) 사람인 프라이 뻬드로 보바디야 (Fray Pedro Bobadilla) 신부를 보내어 정의( 正 義 ) 를 회복하도록 명하였다 (Landa, 1986, 33). 이렇게 란다는 자신과 대립되는 의견과 행동들에 비하여 본인의 판단과 결정들이 옭은 것이라는 점 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강변하고 있다. 마야문명이야기 XXXIX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자기 정당성 의 주장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는데, 원주민들에 대한 처벌은 신에 의하여 허락된 것이란 점을 강조 하고 있다(Landa, 1986, 71). 본문 중에도 성경의 이사야서 1장 9절을 인용하며 원주민들에 대한 강력 한 처벌은 한 개인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닌 하나님의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행해진 것이라는 결론을 맺고 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몇몇을 살아남게 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소돔 같이, 고모라같이 됐을 것이다 9)(Landa, 1986, 71). 저술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강한 논조에서 란다는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고 그러한 정당성의 근거 를 객관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내용을 삽입하고 있으며 계속적으로 이를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내용은 유까딴에서 행한 란다의 행동에 대한 고소에 대항하여 에스빠냐의 왕과 꼰세호 데 라스 인디아스에 자신의 무죄를 피력하기 위해 집필을 시작하였다는 점을 뒷받침하고 있다. 4. 보고서(Relaciones geograficas) 작성을 목적으로 저술을 함 식민지 초기 에스빠냐 정부는 아메리카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정 복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이 지방의 절대 권력을 가지게 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지방행정관을 직접 파견하여 행정을 관할하는 한편, 이들로부터 지방의 사정을 상세히 적은 보고서 등을 작성하게 하였 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지역보고서였다. 16세기 말엽 식민지 전 지역에서 한 지역을 관할하고 있 던 지방행정의 수장이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이를 중앙 정부에 제출하도록 하였다. 이는 식 민지 지배를 원활히 하기 위한 종합 자료구축을 목적으로 하는 동시에, 정복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이 9) 두란노 우리말 성경 이사야서 1장9 절,

101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고, 이를 바탕으로 세금을 징수하거나 행정을 통 제하기도 하였다. 지역보고서는 총 50여개의 항목들로 이루어진 질문에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질문들은 에스빠냐가 식민지를 관할하고 그곳에서 수탈할 수 있는 모든 물자들을 파악하는데 필요로 하는 다양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특히 이러한 보고서에서 역사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변 내용은 오늘날 고대 인디오 사회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으며 에스빠냐의 정복과정과 식민지 초기 를 연구하는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 그 밖에도 보고서에는 공물납부방식, 물물교환에 대한 정보 및 동 식물을 포함한 자연환경에 대한 정보도 풍부하게 기록되어있다(Relaciones..., XLIV-LVI). 란다의 저술 마야문명이야기 도 많은 부분에서 지역보고서의 내용과 형식을 두루 갖추고 있는데, 그 의 저술 중 일부 내용이 다른 보고서에 직접적으로 활용되기도 한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란다의 저술 이 보고서의 성격을 다분히 갖추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란다가 저술을 함에 있어 서 일부를 지역보고서로 활용하려고 집필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혹은 일부내용은 이미 보 고서로 작성한 상태에서 차후에 이를 자신의 집필 속에 포함시켰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또한 광범위 한 의미에서 보면 자신이 주관하고 있던 지역에 대하여 알림으로써 -그것이 보고서의 형식이든 아니든 간에- 자신에 대한 비판에 변호를 할 수도 있으며 새로 부임하는 다른 선교사들의 지역에 대한 이해 를 도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교활동과 정부의 행정 일에도 유용할 수 있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 될 수 있었다. 이렇듯 란다가 본인의 저술 과정에 있어서 이러한 다양한 목적들을 두고 집필을 하였 을 가능성 또한 다분하다. 다음으로 란다의 저술이 보고서를 목적으로 작성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요소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보고서의 항목에 상응하는 내용들이 많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역보고서는 50여 가지의 문항을 포함하고 있으며 보고서의 작성자가 이들 각각의 항목에 상응하는 답변을 기재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각각의 항목들은 지명과 지명의 유래 및 그 땅을 발견한 사람과 정복한 사람에 대한 정보를 기입하도록 되어 있고, 그 밖에도 자연환경, 행정 중심지와의 근접성, 토착민들의 언어, 인디오들의 무기, 요새, 질병, 동식물, 종교 등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아우르는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보고서의 문항 에 상응하는 내용들이 란다의 저서 마야문명이야기 에도 다음과 같이 매우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음 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까딴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섬도 아니고, 바다로 향해있는 곶( 岬 ) 도 아니다, 이곳은 육지인 데, 다만 꼬또츠 (Cotoch) 곶( 岬 ) 때문에 외형적으로 섬처럼 보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 꼬또츠 (Cotoch) 곶( 岬 ) 에 있는 골포 둘세(Golfo Dulce) 앞 바다로 난 아센시온 (Ascencion) 이라고 하는 조그 마한 만( 灣 ) 을 통해서 바닷물이 들어오고, 메히꼬 (Mexico) 로 향하고 있는 이 곶( 岬 ) 의 다른 쪽 면으 로는, 깜뻬체까지 도착하기 전에 호수가 이어지면서 뿌에르또 레알(Puerto Real) 과 도스 보까스 (Dos Bocas) 쪽으로 바다가 흐르기 때문이다 (Landa, 1986, 3). 이 지방은 인디오 말로 울루우밀 꾸츠 예뗄 쎄(Uluumil cutz yetel ceh) 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칠 면조와 사슴의 땅 이라는 뜻이다, 또한 이 지역은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오는 곳과 만 등으로 둘러싸 여 있어 섬 이라는 뜻의 뻬뗀(Peten) 이라고도 불린다 (Landa, 1986, 4). 게다가 보고서의 10번과 42번 문항에서는 마을이나 건축물 혹은 섬 등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함께 삽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란다의 저서에도 란다가 직접 그린 그림 자료가 삽입되어 있다. 이러한 점 역시 일반 지역보고서와 상응하는 특징으로서 받아들일 수가 있다

102 4.2. Que 로 시작하는 보고서의 문체를 가지고 있다. 문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란다의 저서 마야문명이야기 의 1장부터 25장까지 즉 I장의 유까 딴 반도에 대한 묘사에서부터 XXV장의 혼인 - 유까딴 사람들의 잦은 이혼 - 그들의 결혼식 (Landa, 1986, 3-44) 까지 문장의 절이 비교적 짧고 간략하게 작성되었다는 것과 문장이 Que 로 시작한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보고서의 문장구조를 살펴보면 역시 문장이 Que 로 시작되고 있는데 보고서와 란다의 저서 간에 이러한 문장구조가 상응하는 것 역시 란다가 보고서 작성을 목적으로 저술 작업을 하였을 것이라는 주장에 좀 더 많은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곳의 언어는 하나여서 이들을 개종시키는 데에 많은 이점이 있다, 10) 그렇지만 해안지역으로는 다 른 단어들을 사용하기도 하고 억양의 차이도 있다; 해안 쪽이 훨씬 풍습이나 언어가 잘 다듬어져 있어서, 해안 쪽의 여자들은 가슴을 가리는데 비해 내륙 쪽의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Landa, 1986, 11). 반면 장과 33장 즉 XXVII 장의 유까딴 사람들의 일종의 고해성사 - 금욕과 미신 - 많고 다양한 우상들 - 제사장의 직무에서부터 XXXI 장의 유까딴 인디오 여자들의 의복과 장식(47-56p) 과 XXXIII 장의 장례 - 제사장의 무덤 - 족장들의 유해를 보관하는 조각상 - 조의를 표함 -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58-60p) 에서는 Que 의 사용이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그 밖의 다른 장에서는 문장 의 절이 Que 로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 수가 있다. 이렇듯 Que 의 사용이 줄어든 장과 Que 로 시작하지 않는 장은 란다의 원본을 발췌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또한 배제 할 수가 없다. 세라노 이 산즈(Serrano y Sanz) 는 다음과 같이 란다 저서의 문체가 마치 지역보고서 의 문항에 답변을 하는 투라고 주장하고 있다: 렐라씨온은 보통 보고서를 작성하는 그 지역에 대 하여 잘 알고 있는 사람에 의하여 작성되었는데 공식보고서에 있는 일련의 문항에 답변을 하는 투로 란다 역시 그의 저서 속에서 글을 쓰고 있다(Serrano y Sanz, 447 en Okoshi, 53). 그 밖에도 본문 내용에 번호를 매겨 질문항목을 적고 각각의 물음에 대한 답변을 기재하는 형식으로 기술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기 경 란다의 원본이 다른 이들에 의해 발췌되기 전에는 보고 서의 설문항목을 포함하고 있었고, 란다는 그 문항에 답변을 하는 식으로 글을 작성한 것일 수도 있 다는 추측이 가능하다(Okoshi, 53) 보고서와 유사한 일인칭 단수나 복수 형태의 문장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세라노 이 산즈는 란다 저술의 문장 구조가 일인칭 단수나 복수의 형태라고 하였다(Serrano y Sanz en Okoshi, 53) 장, 39 장, 장, 46 장, 장 그리고 52장에서 위의 문장구조가 나타나는 것 을 확인할 수 있으며, 각장의 제목과 해당 페이지는 아래와 같다. XXXI 장, 유까딴 인디오 여자들의 의복과 장식(Landa, 1986, 55-56) XXXII 장, 유까딴 인디오 여자들의 순결성과 교육 - 그들의 높은 수준과 경제 - 출산에 관련한 신앙 심과 특별한 관습들(Landa, 1986, 56-58) XXXIII 장, 장례 - 제사장의 무덤 - 족장들의 유해를 보관하는 조각상 - 조의를 표함 - 사후세계에 10) 실질적으로 마야어는 하나가 아니라 30 여개가 넘는다. 란다가 유까딴 반도에 대한 묘사만을 하고 있기 때문 에 이곳의 언어가 모두 같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유까딴의 마야어도 3-4 개의 다른 방언을 가지고 있다

103 대한 믿음(Landa, 1986, 58-60) XXXIV 장, 유까딴의 연도 계산 - 날에 해당하는 문자 - 4 명의 바깝(Bacab) 과 그들의 이름 - 불길한 날들(Landa, 1986, 60-63) XXXV 장, 불길한 날에 하는 의례 - 깐(Kan) 을 머리문자로 시작하는 새해의 공양(63-65) XXXIX 장, 달력에 대한 설명(Landa, 1986, 70-71) XLI 장, 마야의 연도 - 그들의 문자(Landa, 1986, p) XLII 장, 유까딴의 많은 건축물 - 이사말 (Izamal), 메리다, 치첸 이차(Chichen Itza) 의 건물들 (Landa, 1986, ) XLIII 장, 왜 인디오들은 인신공양을 하였는가 (Landa, 1986, ) XLIV 장, 땅에서 생산되는 것들(Landa, 1986, ) XLVI 장, 이구아나와 악어(Landa, 1986, ) XLVIII 장, 벌, 꿀, 밀랍( 蜜 蠟 )(Landa, 1986, ) XLIX 장, 유까딴의 식물(Landa, 1986, ) L 장, 육지와 바다의 새(Landa, 1986, ) LII 장, 결론(Landa, 1986, ) 그런데 보고서 (Relaciones geograficas) 에도 역시 일인칭의 문장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란다의 저 서와 보고서와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 다음은 란다의 저서에 나타난 일인칭 단수나 복수형태의 문장구조이다. 우리나라 여자들처럼 얼굴에 화장을 하지 않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경박한 것으로 여겨진다(Landa, 1986, 55). 나는 이러한 이유로 하여 그것을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에스빠냐사람들이 유까딴에 도착 하기 이전의 다른 지역에서 이런 것을 십자가를 확인할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없을 뿐더러, 또한 이들이 유까딴 지역에 도착을 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이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Landa, 1986, 140) 란다의 저서를 토대로 다른 보고서들이 작성되었다. 란다가 무죄로 판명된 후 에스빠냐에서 유까딴으로 돌아올 당시 그는 똘레도에서 집대성한 원본을 함께 가지고 왔는데, 이후 따비(Tabi) 와 춘우웁 (Chunhuhub) 지역의 농장주였던 뻬로 가르시아 (Pero García) 가 란다의 글을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한 자료가 남아있다 (Okoshi, 52). 뻬로 가르시아 는 자신이 작성하여 제출한 보고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란다의 필사본을 참고했다는 것과 란다가 인디 오에 대한 기록을 할 때 자문을 얻었던 인디오들 중 한명인 가스빠르 안또니오 (Gaspar Antonio) 가 보 고서를 작성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이 지역을 주관한 주교인 존경하는 디에고 데 란다의 사본을 인용 하였다. 또한 이 지역 원주민으로 스페인어를 쓰고 말 할 줄 아는 가스빠르 안또나오의 도움 역시 받았다 (Relaciones..., ). 레온 역시 란다의 저술과 다양한 당대의 보고서나 기타 다른 저술과의 관계를 짐작할 만한 연관관계 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확인하고 있다

104 란다는 나열적으로 그의 저서(relacion) 이곳저곳에서 그들에 대하여 [ 란다의 저술에 도움을 준 사람 들에 대하여 ] 노인들이라는 표현을 빌어서 언급하고 있지만 후안 나치 꼬꼼(Juan Nachi Cocom) 에 대하여는 그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에레라 (Herrera) 라고도 불렸던 가스빠르 안또니오 치(Gaspar Antonio Chi) 도 란다를 함께 도왔던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는 시우족 (Los Xiu) 의 후손으 로 마니에서 종교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통역을 담당했다, 그 후 꼰세호 데 라스 인디아스에서 요구 하던 문항에 답변을 작성하는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지역보고서를 만드는데 기여하였다. 또한 이 후에 인디오들의 생활상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Leon, 55). 우리는 란다의 글이 보고서의 어떤 항목과 어떻게 일치하는지, 그래서 어떤 부분을 어떻게 인용하였 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란다가 작성한 글의 내용이 보고서의 문항에 상응한다는 점과 혹은 그와 유사한 내용들을 담고 있기에 뻬로 가르시아가 이를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정부 에 제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 등을 어렵지 않게 추론해 볼 수가 있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 란다가 작성한 글의 내용이 정부에서 요구하던 지역보고서의 문항 내용과도 상 당히 상응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으며, 문장구조에 있어서도 역시 문장의 첫 머리가 Que 로 시작되는 문장이 많다는 것, 질문에 답변을 하는 투로 쓰였다는 것, 일부 장에서는 일인칭 단수와 복 수체로 쓰였다는 것 등에서 란다의 저서와 일반 지역보고서 간의 유사점을 확인할 수가 있다. 또한 란다의 원본 중 일부내용을 토대로 그 지역의 한 농장주가 보고서를 작성하였다는 것 역시 위 주장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란다의 저서가 당시 정부에서 요구하던 보고서의 내용 및 형식과 일치하거나 또는 유사하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이로써 란다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나마 보고서 작성을 목적으로 또는 보고서로의 활용을 염두에 두고 저술 작업을 하였을 가능성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황에도 불구하고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 가 보고서를 주목적으로 하여 작성되었다 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란다의 본 저술은 일반적인 보고서나 설문지와 같이 각 항목에 대한 답 을 적는 보고서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다른 보고서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부연설명이 많은 장문의 형식이 대부분이고, 분량이 월등히 많다는 점 등을 그 근거로 들 수가 있다. 또한 글의 저자인 란다가 보고서에서 요구하는 문항 외의 주제들에 대해서도 역점을 두어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 서 다른 일반 지역보고서와는 달리 그가 주로 관심을 가지는 분야에 대해서도 역시 자유롭게 기술하 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저자의 의도가 다소 엿보이는 내용들도 살펴볼 수 있으며, 문체가 유려하여 기행문과 감상문의 느낌 또한 강하게 준다는 것, 그리고 란다 본인의 감정이 들어간 문장들이 상당히 존재하고, 란다 본인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도 일 반보고서와의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란다가 보고서 작성만을 목적으로 저술 작업을 했을 것이라고는 주장하기가 힘들다. 란다의 저서는 다른 일반적인 보고서와는 두드러지는 차이점을 갖는 데 그러한 차이점에 대해서는 다음의 장들에서 더욱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5. 란다 본인의 학문적 호기심으로 저술을 함 란다는 마야인디오들이 하는 우상숭배와 미신적 행위를 악마를 숭배하는 이교도적 행위로 간주하였 고, 그와 같은 행위를 하는 인디오들을 엄중하고 혹독하게 처벌하는 등 매우 강경한 입장을 가졌다. 그러나 그 반면에 란다는 마야인디오들의 건축과 예술, 그리고 그들이 이룩한 다양한 문화유산에 대 해서는 부분적으로나마 감탄과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듯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은 사랑과 증오 는 그가 작성한 저서의 내용 속에서도 역시 매우 상반되게 나타난다. 원주민들의 사회 문화적인 요소 를 기록 할 때 그 내용이 가톨릭적인 부분과 대치되지 않는다고 본인 스스로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 생각하는 부분에 있어서 그가 보인 원주민 문화에 대한 관심과 칭송은 가히 상당한 수준이다. 특히 그는 과학적인 탐구심을 가지고 원주민들의 문화를 관찰하고 그에 대해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이는

105 앞서 살펴본 원주민 탄압에 대한 해명을 목적으로 작성하였다거나 지역보고서의 목적으로 작성하였다 는 주장으로는 설명되기가 힘든 부분이다. 란다 본인의 개인적인 호기심과 철저함에서 그러한 내용을 기록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부분이 강조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XXXIV 장, 유까딴의 연도 계산 - 날에 해당하는 문자 - 4명의 바깝과 그들의 이름 - 불길한 날들 (Landa, 1986, 60-63) XXXV 장, 불길한 날에 하는 의례 - 깐을 머리문자로 시작하는 새해의 공양(Landa, 1986, 63-65) XXXVI 장, 물룩(Muluc) 을 머리문자로 시작하는 새해의 공양 - 키다리 삐에로 (Zanco) 들의 춤 - 흙으 로 만든 개와 함께 추는 할머니들의 춤(Landa, 1986, 65-66) XXXVII 장, 익스(lx) 를 머리문자로 시작하는 새해의 공양 - 불길한 예언과 그에 대한 대책(Landa, 1986, 67-68) XXXVIII 장, 까우악 (Cauac) 을 머리문자로 시작하는 새해의 공양 - 불길한 예언과 불 춤으로 하는 대 책(Landa, 1986, 68-70) XXXIX 장, 달력에 대한 설명(Landa, 1986, 70-71) XL 장, 로마달력과 유까딴달력의 시작(Landa, 1986, ) XLI 장, 마야의 연도 - 그들의 문자(Landa, 1986, ) XLII 장, 유까딴의 많은 건축물 - 이사말, 메리다, 치첸 이차(Chichen Itza) 의 건물들 (Landa, 1986, ) XLIV 장, 땅에서 생산되는 것들(Landa, 1986, ) XLV 장, 유까딴의 물고기 ( ) XLVI 장, 이구아나와 악어(Landa, 1986, ) XLVII 장, 뱀과 독을 가진 다른 동물들 (Landa, 1986, 125) XLVIII 장, 벌, 꿀, 밀랍( 蜜 蠟 )(Landa, 1986, ) XLIX 장, 유까딴의 식물(Landa, 1986, ) L 장, 육지와 바다의 새(Landa, 1986, ) LI 장, 유까딴의 다른 동물들 (Landa, 1986, ) LII 장, 결론(Landa, 1986, ) 대표적인 예문들을 찾아보면 특히 마야의 문자와 달력, 마야의 건축물, 유까딴의 동식물에 대한 기록 부분에서 란다의 학문적 호기심이 절정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에 언급하였던 인디오의 문자로 그들의 달들에 있는 각각의 날들에 이름을 붙였는데, 그러한 달 들이 모여서 그들의 달력을 이룬다, 우리가 우리들의 달력을 가지고 하는 것처럼 그들도 그들의 달 력을 가지고서 계산, 교섭, 거래를 하듯이 의례를 정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달력은 한해의 첫날부터 시작을 하지 않고 훨씬 이후부터 시작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달에 있는 날을 계산 하는 데에 어려 움을 준다, 이러한 것들은 여기에 기록하는 그들의 달력을 보면 알 수 있다; 비록 달에 해당하는 문 자와 날들은 20이지만 1에서부터 13 까지만 세는 것이 규칙이다 (Landa, 1986, 70). 이곳 이사말의 여러 건물 중에서 상당히 높고 경탄할 만한 아름다운 건물이 있는데, 여기에 그림을 그려 놓았다, 다음과 같은 것이 그 크고 아름다워서 놀랄만한 이유이다 : 그 건물 안에는 높이와 넓이가 각각 2뼘이 족히 되는 20개의 계단이 있는데 그 길이가 100 피트가 넘을 것이다 (Landa, 1986, ). 선천적으로 겁이 많은 짐승이 있는데 그 짐승은 동굴이나 음침한 곳으로 항상 밤에만 돌아다닌다;

106 인디오들은 덫을 놓아 그 안으로 걸려들게 해서 이놈들을 사냥한다 ; 뛰어다닌다(Landa, 1986, 136). 산토끼와 비슷하여 깡충깡충 특히 란다가 마야문자에 대해 기록한 부분은 마야문자를 해독하는데 있어서 필요로 하는 거의 유일 한 단서로서 오늘날 마야문자를 해독하는 데에 큰 실마리를 주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란다의 호기심 과 탐구심에서 비롯된 저술의 일부가 오늘날의 마야문자 해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에 이른 것이 다. 또한 만연체로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솔직하게 피력하였다는 점 그리고 유독 많은 감탄사를 연발하 고 있다는 점 등은 란다의 개인적인 지적호기심 혹은 학문적 호기심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란다 본인이 상당한 학문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 몇몇의 기록들이 있다. 그 일례로 란다는 멕시코의 유까딴에 도착하자마자 함께 온 사제들과 함께 루이스 데 비야빤도 신부(Fay < 그림 6> 란다의 원고 중 마야문자에 대하여 언급한 부분 Luis de Villapando) 11) 에게서 이곳 원주민들의 언어인 유까딴 마야어 수업을 들었는데 이에 대하여 베르나르도 데 리사나 신부(fray Bernardo de Lizana) 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배운지 얼마 되지 도 않았는데 마치 모국어처럼 마야어를 했다 (Lizana, 170) 12) 11) 1544 년 또리비오 신부(fray Toribio Motolinía) 가 보낸 과테말라 (Guatemala) 에서 온 신부로 (Okoshi, 45), 1546년 몬떼호 엘 모소(Montejo el Mozo) 의 지원을 받아 깜뻬체에서 첫 번째 수도원을 건설하였고, 또한 마야어를 배운 후 그의 첫 번째 어휘 와 문법서를 작성하기에 이른다(Leon, 67). 12) 이 문장을 쓴 리사나 (Lizana) 는 그의 저술에서 한 장 전체(Capitulo VI, ) 에 걸쳐 란다의 생애와 업적에 대하여 적 고 있는데 내용이 칭찬과 찬양 일색이다. 란다를 Santo Padre 라고 하며 성자로 부르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따라서 란다가 마 치 모국어처럼 원주민어를 구사 하였다고 하는 점을 문장 그대로 믿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란다가 원주민어에 대한 상당한 이 해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란다 본인의 저술 등에서도 잘 나타난다

107 아메리카 대륙에 온 모든 선교사들의 경우 말이 통하지 않는 원주민들에게 포교를 하기 위해서는 그 들의 언어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그러나 란다는 그러한 기본적인 필요성을 뛰어넘는 지적인 접근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1550년 루이스 데 비야빤도 신부가 마야어에 대해 저술 한 것에 새로운 규칙을 덧붙이고 수정을 하는 작업을 통해 저서를 완성시킨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Leon, 68). 마야어에 대한 관심을 단순히 선교 방법의 하나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란다의 마야 어에 대한 남다른 열정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란다는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이해하려는 데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 폐허가 된 마야의 이전 도시들을 방문하여 거기에 새겨져 있는 마야문자가 무슨 뜻인지에 대해 함께 온 혹은 그곳에 있 던 원주민들에게 물어보았으며, 자신이 직접 돌의 길이를 재는 등 세밀한 조사와 기록을 하였다. 이러 한 방식으로 란다는 그가 관찰한 모든 것과 원주민들에게서 얻은 정보들을 기록해나갔다. 주로 원주 민 귀족 노인들에게 자문을 얻었고, 그렇게 도움을 얻어 기록한 것들을 dicen, decían, dicen que, que es opinión entre los indios 와 같은 인용의 문장표현을 사용하여 자신의 저서에 기록하고 있다: 인디오들의 의견에 따르면 꾸꿀깐 (Cuculcan) 이라는 위대한 족장이 치첸이사 (Chichenizá) 에 살았던 이 사에스(Yzaes) 들을 다스렸다고 한다, 이곳의 가장 중요한 건물의 이름이 꾸꿀깐이라는 것만 보아도 이를 알 수가 있다(Landa, 1986, 12). 하지만 별도로 란다가 방문하는 거의 모든 곳에 동행을 하면서 도움을 주었던 두 명의 인디오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돈 후안 꼬꼼(don Juan Cocom) 과 가스빠르 안또니오 치 시우(Gaspar Antonio Chi Xiu) 였다. 특히 란다는 돈 후안 꼬꼼에게서 많은 정보를 얻었는데, 란다는 그의 저술에서 돈 후안 꼬 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세례를 받은 다음에 돈 후안 꼬꼼이라고 불리게 된 꼬꼼의 후계자가 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명 성이 매우 높았고, 여러 가지 일을 잘 아는 사람이었으며, 굉장히 영리했고, 자연의 섭리를 잘 이해 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프라이 디에고 데 란다를 잘 알고 있어서 그 란다 에게 옛날 일들 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Landa, 1986, 21). 또한 하나의 주제에 대해 여러 명의 사람들에게 물어봄으로써 다양한 그들의 견해를 기록하고 있으 며, 그들로부터 얻은 정보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Okoshi, 46-47): 사람들 은 그가 서쪽에서 왔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가 들어온 시기가 이사에스 이전인지 이후인지 아 니면 그들과 같이 들어 왔는지에 대하여는 각 사람마다 의견이 달라 정확히 알 수가 없다(Landa, 1986, 12-13). 란다의 면밀함은 이사말 유적지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곳의 기념비적 건물 앞 에서 란다는 이것저것 을 꼼꼼히 살펴보았고, 계단과 기둥의 수가 몇 개이며, 각 건물의 길이는 얼마나 되는지와 같은 정보 들을 글로 일일이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의 세밀한 관찰이 돋보인다. 이러한 그의 지적인 호기 심에서 기인한 전문지식과 그의 면밀한 성격으로 인하여 그는 이사말 성당을 건축하는 총괄책임자가 되기도 한다(León, 69). 한편 란다는 마야 신전의 건축 도면을 그리기도 했는데 이것 역시 다양한 분야에 대한 그의 세밀한 관심이라는 관점에서 볼 수가 있다. 이 도면이 언제 어떤 목적으로 그려졌는지는 불분명하다. 이 논문 의 앞부분에서 제기한 Ⅱ. 원주민 탄압사건에 대한 해명을 목적으로 저술을 함 의 주장에서와 같이 인디오 탄압 사건과 관련해 에스빠냐에 가서 해명을 할 목적으로 저술 작업을 시작하였고, 인디오 사

108 회 문화에 대한 지식이 없던 왕과 관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건축의 도면을 그렸을 것이라 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혹은 마찬가지로 앞서 살펴본 Ⅲ. 보고서 (Relaciones geograficas) 작성을 목 적으로 저술을 함 의 주장에서와 같이 보고서에서 도면과 같은 그림 자료를 요청했으므로 그에 상응 하는 결과물을 제출할 목적으로 도면을 그렸을 가능성도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도면은 란다의 인디오 건축양식에 대한 지식과 그에 대한 기존의 세밀한 조사가 바 탕이 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유까딴의 동식물, 물고기 등에 대해서 란다는 매우 섬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동식물들의 이름과 특유의 습성 및 인디오들이 짐승과 물고기들을 포획하는 방법은 물론이요, 식용의 자연산물 등을 접하게 될 때마다 직접 맛을 보고는 그것이 어떤 맛인지 그리고 그 용도는 무엇인지까지도 일일 이 기록하고 있다. 특히 독을 가지고 있어서 위험하지는 않은지, 식용이 가능한지 등의 여부에도 신경 을 써서 세밀히 기록하였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3) 이 모든 것을 통틀어 보았을 때 란다가 마야문화에 대해 굉장한 호기심과 열성을 가지고 본인이 직 접 돌아다니면서 성실하고 면밀하게 기록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때로는 인디오들에게의 자 문을 통하여 객관적으로 서술을 하려고 노력하였다는 점도 알 수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꼼꼼하게 기록한 란다의 저서내용이 증명해 주고 있다. 마야문화와 관련해 자신이 찾아가고 살펴보고 손수 기 록한 것을 집대성 하고픈 지적인 욕구가 영향을 미쳤을 것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6. 란다 본인의 종교적 신념에 기인하여 저술을 함 기독교전파를 명분으로 교황의 허락을 받은 종교단체들은 아메리카대륙의 인디오들을 기독교를 전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에스빠냐를 떠나 아메리카 행을 감행했다. 프란시스코 수도회에 속해있던 란다도 이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마야인디오들이 사는 멕시코의 유까딴 지방으로 오게 되는데, 그는 그 후로 이곳에서 약 30년간 마야원주민들과 함께 지내며 우상숭배를 하는 이교도들에 대해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엄중한 처벌을 가했다. 그의 종교관은 투철하였으며 전도방법 등에서도 보수적이며 완고했다. 그 런 그에게 인디오들이 우상숭배를 하는 것은 납득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것이었으며 엄중히 처벌 해야 하는 문제였다. 란다가 그의 직무를 수행하느라 평소에도 매우 바쁘게 활동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주변에서 본 다른 사제는 그의 이러한 열정적인 노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꽃이 지기 전에 꿀을 모으려고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는 벌꿀과 같이 란다는 늘 분주히 활동을 했다 (Lizana. 172). 그는 이곳 유까딴에 온 초창기부터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기독교를 전할 수 있는 인디오들을 찾아다녔 다. 지방 순회 포교활동을 하던 중 우상숭배를 하던 인디오들을 만났는데 란다는 죽음의 위험도 무릅 쓰고 우상숭배를 멈추게 했으며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설득하였다(Leon, 68). 옥스꾸스깝 (Oxkutzcab) 의 에피소드는 란다의 이교도에 대한 배척감과 강경한 대응을 보여주는 한편 기독교적 교리에 얼마나 철저하였는지를 보여준다. 1550년경 란다는 산에 흩어져 살고 있던 원주민들 을 옥스꾸스깝에 모으려고 했다. 하루는 인디오들이 자신을 그들의 신에게 인신공양하려고 계획했다 는 것과 그 후 그의 인육을 먹으려고 14)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란다는 신앙심이 굉장히 13) XLIV 장, 땅에서 생산되는 것들(Landa, 1986, ) XLV 장, 유까딴의 물고기 (Landa, 1986, ) XLVI 장, 이구아나와 악어(Landa, 1986, ) XLVII 장, 뱀과 독을 가진 다른 동물들 (Landa, 1986, 125) XLVIII 장, 벌, 꿀, 밀랍( 蜜 蠟 )(Landa, 1986, ) XLIX 장, 유까딴의 식물(Landa, 1986, ) L 장, 육지와 바다의 새(Landa, 1986, ) LI 장, 유까딴의 다른 동물들 (Landa, 1986, ) LII 장, 결론(Landa, 1986, )

109 깊은지라 어떠한 두려움도 보이지 않은 채 라틴어와 마야어로 몇 마디를 건네자 곧 그들의 적대감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인디오들은 란다에게 용서를 빌며 자발적으로 옥스꾸스깝으로 이주했 다(Okoshi, 46). 이교도에 대한 배척감과 이러한 상황에서 더더욱 하느님을 간절히 부르는 내용이 그의 저술 속에 생 생하게 남아있다. XLIII 장의 왜 인디오들은 인신공양을 하였는가 (Landa, 1986, ) 에 기록한 내 용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디오들이 악마들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를 비난하고 안타까워하는 동시에 하느님에게 이러한 현실에 대한 구원의 손길을 간절히 청하고 있다. 마을에서 참살을 하고 난 후에는, 구원받지 못할 두 개의 신전인 치첸이사와 꾸스밀 (Cuzmil) 로 인신 공양을 하기 위해 수많은 불쌍한 사람들을 보내는데, 이들을 높은 곳에서 던지는가 하면 이들 의 심장을 꺼내어 신에게 바치기도 한다; 자비로우신 우리의 주님은 이런 모든 불행한 일들로부 터 그들을 영원히 구원해 주시고자, 십자가에 못 박힌 채로 만물의 아버지께 자신을 희생하셨다 (Landa, 1986, 115). 기독교를 전파해 준 것은 에스빠냐인들이 식민지에 전해준 그 어떤 무엇보다도 으뜸가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식의 생각은 란다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LII 장의 결론(Landa, 1986, ) 에서는 에스 빠냐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오들에게 선진문물을 전해주었고, 무엇보다도 기독교 문물을 전해줌 으로써 옳은 일을 했음을 강조하고 있는 동시에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것들을 주님의 뜻에 따라 에스빠냐를 통해 우리 에스빠냐사람들이 인 디오들에게 전해 주었다, 그러나 인디오들은 단지 그러한 것들과, 또 앞으로도 그들에게 전해 주 게 될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에 대한 것만을 갚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살 수 도 없고 보상받을 수도 없는 정의와 기독교정신 그리고 평화에 대한 것 역시 갚은 것이 없다, 그로 인해 인디오들은 에스빠냐와 에스빠냐 사람들 그리고 특히 에스빠냐의 가톨릭 왕들에게 더욱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 그분들은 이곳에 지속적인 관심과 위대한 기독교정신으로 이 두 가지 를 베풀어 주셨으며 지금도 역시 계속해서 베풀어 주고 계신다 - 최초의 조상들, 사악한 아버지가 그들에게 죄악과 분노의 자식을 잉태하게 하는 동안 기독교정신은 이들에게 영생을 누리게 할 주님 의 은총을 주었다(Landa, 1986, 138). 그 밖에도 유까딴의 축복받은 자연환경 역시 만물의 주인인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리는 내용을 다음 과 같이 중간 중간 발견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인디오들이 세노떼 (Zenote) 라고 부르는 지하연못을 주셨는데, 그 연못의 깎아지 른 바위는 수면에까지 이어져 닿는다, 그것들 중에 일부에서는 굉장히 빠른 급류가 흐르고 있어서, 만일 소가 그곳에 빠지게 되면 급류 를 따라 앞에서 말한 샘이 만들어지는 바다에까지 이르게 된 다(Landa, 1986, ). 우리 주님께서는 바닷물이 아닌 늪지의 빗물로 소금을 만드셨는데, 바닷물은 여기까지 침범하지 못 한다, 왜냐하면 바다와 늪지 사이에 땅으로 된 해변이 있어서 모든 늪지부분을 바다로부터 분리시키 기 때문이다(Landa, 1986, 120). 14) 실제로 인육을 먹는 의식을 했거나 하려고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당시의 사제들에게 인신공양이나 인육을 먹는. 행동과 같은 것은 그 사실관계에 대한 정확한 확인도 없이 이교도들의 문화와 종교 등을 비하하는 중요한 이야기로 통용되었 다

110 이 모든 배경과 그가 작성한 저술내용에 주목해 볼 때, 그리고 당대의 역사적인 상황과 그의 직무 등 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란다의 저술이 종교적인 신념에서 기인하였으며 종교적인 목적성을 띠고 있다는 점 역시 극명하게 나타난다. 한편 식민지 초기 사제들은 다른 사제들이 포교를 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그 지역에 대한 일 반적 정보를 기술하여 제공하였는데, 란다 역시 유까딴 지역에 오는 다른 선교사들이 인디오들을 포 교하는데 갖는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서 저술 작업을 했을 것이다. 란다의 책이 마야원주민들의 문 물을 총망라해서 다루고 있다면, 메시까 ( 아즈떼까 ) 지방에선 비슷한 시기에 사하군 (fray Bernardino de Sahagún) 에 의해 Historia general de las cosas de la Nueva España 가 작성되었다. 사하군이 이 책 을 쓴 목적 중 하나가 멕시코에 오는 다른 선교사들에게 메시까지방의 지역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였 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그 당시 기독교를 전파하러 오는 사제들은 다른 사제들이 자신이 머무는 지방으로 와서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게끔 하고 그와 동시에 원주민들에게 포교를 하는데 도 움을 주기 위해서 저작활동을 하였다. 이를 요약하면, 란다는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이고 보수적인 신앙으로 똘똘 뭉쳐있었으며 인디오들의 우상숭배와 이교도 행위에 대해서는 극한 반감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란다는 본인이 사제로서 그 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는 것이 곧 자신의 의무이며 이 모든 것은 아직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은 불쌍 한 인디오들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아무 거리낌 없이 우상 숭배를 하다 발각된 인디오들을 처형시키는 동시에 그들의 책과 도구들을 반 기독교적이며 악마를 숭 배하는데 사용되는 도구라고 하여 모조리 불사르는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란다는 에 스빠냐인들이 인디오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해 줌으로써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다고 믿었고, 란 다는 이러한 메시지를 그의 저술 속에서도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믿음이 마야문명이야기 라는 그의 저술에 그대로 녹아있으며 그것이 이 책을 쓰게 된 가장 강력한 동기 중의 하나가 된다는 점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7. 맺는말 란다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다양하다. 그의 종교적인 열정, 독선적인 신념, 강인한 행동력 등은 란 다를 성자와 악마의 사이를 오가게 만든다 (Esteve, 318). 그가 만들어 놓은 역사의 결과물들 역시 그 러한 극단적인 양상을 보인다. 란다는 마야문명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사료인 마야문명이야기 의 저자이자 다른 면으로는 마야의 사료를 모조리 불태우고 원주민들을 탄압한 장본인이기도하다. 그러 나 무엇보다도,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란다라는 인물을 그의 작품인 마야문명이야기 와 함께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무한한 마야 이해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마야문명이야기 는 그런 면에서 마야문명과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애증의 자국을 가지고 있다. 집필동기를 이해하는 것이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료를 쓴 사람이 그 사료 를 왜 어떤 이유를 가지고 썼으며 그래서 이러한 면은 이렇게 기록되었고 저러한 면은 저렇게 기록되 었다고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란다가 마야문명이야기 를 저술한 배경은 다음과 같이 크게 4 가지로 요약된다. 1.원주민 탄압사건에 대한 해명의 목적 2.보고서작성의 목적 3.본인의 학문적 호기심 4.종교적 신념 오늘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마야문명이야기 는 요약본에 불과하다. 원본은 더욱 방대하고 자세한 내

111 용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저술은 단 하나의 배경 하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수십 년에 걸친 그의 생애의 귀결물이자 종합판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생애 자체가 이 작품 속에 녹아 있다고 할 수 있 다. 원주민들을 탄압하게 되어 많은 미움과 반대의견을 만들게 되었고 그 결과 에스빠냐에까지 직접 가서 자신의 정당함을 변호해야만 했던 저자의 상황이 이 책에 그대로 담겨있다. 애당초 이 책은 시 기적으로 볼 때 그러한 이유에서 처음으로 구체적인 집필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또한 그의 저서는 그가 부임하고 있었던 지역에 대한 보고서의 형식과 자세한 내용을 일부 갖추고 있기도 하다. 각 지방에 대한 에스빠냐의 지배를 강화하고 행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방의 정보를 알 리는 지역보고서의 내용과 형식으로 본다면 마야문명이야기 는 다른 어떤 집필과 비교할 때 그 정보 의 양과 질의 면에 있어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에는 이러한 실질적인 목적 외에도 더 욱 많은 것이 그 이면에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란다 본인의 학문적인 호기심인데 이는 이 책의 집필 목적 중 하나이자 이 책의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저술내용 중 당대 마야의 다양한 문물과 자연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표현에서 그의 학문적인 호기심이 돋보이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마야 문명을 이해하는 유일하고 결정적인 단서들이 여기에서 발견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 편 란다의 종교적인 신념은 책 전체에 흐르는 일관된 주장이자 중심 뼈대와 같은 축을 형성하고 있으 며, 감정이 섞인 강한 어조로 거듭 반복되고 있다. 원주민들에게 기독교를 철저히 전파해야한다는 종 교적인 신념은 란다로 하여금 원주민들의 미개함을 알리고 가톨릭을 믿지 않는 갖가지 상황들을 고발 하며 강력한 처벌과 조치들에 대한 정당성을 알리게끔 한다. 당연히 이러한 면은 마야문명이야기 에 중언부언되면서 중요한 저술 목적의 하나로 분석된다. 이러한 부분은 마야문명이야기 에 운율의 높낮 이를 주며 읽는 독자로 하여금 금방이라고 목에 핏대를 세운 란다의 주장이 쩌렁쩌렁하게 들릴 것만 같은 생생함을 느끼게 해준다. 참고문헌 송영복(2005), 마야, 서울: 상지사. ( 근간),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 Landa, Diego de(1986), Relacion de las Cosas de Yucatan, Introduccion por Angel Maria Garibay k., Mexico: Porrua. (1994), Relacion de las Cosas de Yucatan, Introduccion y Paleografia por Leon Cazares, Maria del Carmen, Mexico: CIEN de Mexico, Consejo Nacional para la Cultura y las Artes. Esteve Barba, Francisco(1992), Historiografia Indiana, España: Gredos. Leon Cazares, Maria del Carmen Landa, Diego de(1994) 참조 Lizana, Fr., Bernardino de(1995), Devocionario de Nuestra Señora de Izamal, Mexico: Universidad Nacional Autonoma de Mexico. Okoshi Harada, Tsubasa(2004), Relacion de las cosas de Yucatan de fray Diego de Landa: un crisol de intereses, en Creacion y consumo de imagenes etnicas de los matas. Memorial del simposio en el VI Congreso Internacional de Mayistas, Japan, Universidad de Tohoku, Relaciones histórico geográficas de la gobernación de Yucatán(1983), Mexico: Universidad

112 Nacional Autonoma de Mexico. 두란노 우리말 성경 이사야서 1장9 절, 송영복 경희대학교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경희대 국제캠퍼스 외국어대학 Tel.: 031) , 호 허문선 경희대학교 충북 제천시 신백동 덕일한마음아파트 204동 1301호 Tel: 043) ,

113 프란씨스꼬 로뻬쓰 데 고마라의 연대기에 나타난 인디오의 이미지 연구 최권준 단독/ 대구가톨릭대학교 1. 들어가는 말 본 논고에서는 연구시간의 물리적 공간적 제한으로 인하여 수많은 중남미 연대기들 가운 데 한 작품으로 정복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꼬르떼스의 전속사제로 중남미에 관한 연대기 를 남긴 프란씨스꼬 로뻬쓰 데 고마라(Francisco López de Gómara) 의 중남미 총사 Historia general de las Indias 를 선정하였다. 2. 연대기에 나타난 인디오의 이미지 중남미 연대기들에 등장하는 인디오와 그들과 관련한 것들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를 연구 함에 있어서 나름의 통일성과 체계를 갖추어 비교 분석하기 위해 본 논고에서는 이들을 몇 개의 분야로 분류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본 논고에서는 어느 한 사회나 집단을 바라보는 가 장 일반적인 분야들을 종교, 사회, 문화, 정치로 보고 이것들을 기준으로 세부적인 이미지들 을 살펴볼 계획이다. 1) 2.1. 종교 가톨릭 사제인 로뻬쓰의 원주민들의 종교에 대한 시각이 역설적으로 매우 미신적임은 눈 여겨볼만한 일이다. 로뻬쓰는 기독교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먼저 원주민들이 믿고 있는 신들은 모두 악마이며 우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모순적이게도 이것을 보여 주기 위해 원주민 사제들이나 조상들의 예언이나 기도 혹은 점치는 능력을 통해서 말한다. 구아리오넥스(Guarionex) 라는 족장의 아버지가 스페인 병사들이 나타나기 전 원주민들의 악 마 우상에게 미래에 대해 물어보도록 사제들에게 시켰다고 한다. 사제들은 5일 기도 후 이 에 대한 대답을 하였다. 그런데 이 원주민들의 신들은 사악한 악마들이어서 미래의 일을 숨 기고자 하였지만 사제들은 좋은 종교인들이어서 사실 그대로 말했다(70) 고 한다. 이 사제들 에 의하면 긴 수염에 옷을 입은 사람들이 와서 번쩍이는 칼로 단 번에 사람들을 두 동강 낼 것이며 그 땅의 신들을 폐지할 것이라는 것이다.(70) 이 이야기를 들은 원주민들이 아레이또 (areito) 2) 라는 것의 노랫말로 만들어 축제에서 불렀는데 후손들의 피를 뽑아내고 노예로 만 1) 언급한 분야들 외에 경제 분야가 더 있을 수 있지만 경제와 관련한 내용은 독립된 한 분야로 살펴보기에는 극 히 미미하게 언급되어 있어 본 논고에서는 사회 분야에 포함시켰다. 2) 춤과 음악이 혼용되어 있는 춤의 일종

114 들 것이라는 식의 내용이라는 것이다.(70) 로뻬쓰는 원주민들의 노랫말 내용 그대로 모든 일 들이 실제로 일어났다(71) 고 강조한다. 왜냐면 수많은 인디오들이 스페인인들에 의해 죽고 자살하여 에스빠뇰라에서만 150만의 인구가 있었는데 글을 쓰는 당시 500명도 채 남지 않았 기 때문이라(71) 고 한다. 3) 로뻬쓰는 인디오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이야기들을 또한 재미있게 소개한다. 부께부까 (Buquebuca)란 한 족장은 스페인인들이 온다는 소식에 처음에 도망을 갔다 나중에 찾아와 서 도망간 이유가 하늘의 사람들을 대접할 변변한 것이 없어 부끄러워 그랬다는 것이다. 그 러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인사하러 왔다. 고 했다(123) 고 한다. 인디오들은 가톨릭 사제 들의 설교를 쉽게 받아들이고 감동적으로 가톨릭에 빠져들었는데 그들이 십자가를 숭배하며 아베 마리아를 찬양하고 무릎으로 기어 계단을 올라 예찬하는 것을 보면 커다란 헌신을 느 낀다(350) 고 말한다. 또한 성모마리아가 쿠바의 대 족장에게는 여러 번 발현하였고 또 다른 여러 인디오들에게도 발현하였으며(96) 심지어 꼴론이 남겨둔 나무 십자가가 신앙심 많은 병자들을 낫게 해 인디오들이 이를 유물로 여기기도 한다(71) 고 한다. 로뻬쓰는 까베싸 데 바까(Cabeza de Vaca) 의 이야기도 인용하며 스페인인들이 기도와 성호를 긋고 바람을 콧구 멍에 불어넣어 인디오들을 치료한 것도 사실로 받아들인다.(87) 로뻬쓰는 종교적 기적과 관련한 흥미 있는 일화도 두어 개 소개한다. 기독교를 의심한 까 오나우(Caonau) 계곡의 한 족장이 교회에서 기도하고 있던 자신의 부인과 같이 잠자리를 했는데 갑자기 벙어리가 되고 사지가 마비되었다. 이를 본 원주민들이 기적으로 여기게 되 고 결국 그 족장은 성당지기가 되었다는 것이다.(72) 좀 더 심한 일화는 어느 천둥번개가 몰 아치는 날 이를 피해 네 명의 인디오가 한 동굴로 피신했다. 천둥번개가 너무 심해 놀란 한 인디오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 무사했는데 이를 믿지 않은 나머지 세 명은 번개를 맞아 죽 어버렸던 것이다.(72)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로뻬쓰에게 종교란 가톨릭이며 원주민들이 믿는 어떠한 신도 모 두 우상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원주민들에게 기독교를 전하고 개종시키는 것은 스페인인 들의 의무이고 권리인데 그 근거는 로마 교황 알렉산더 한 사실이다.(50~51) 6세가 교서로써 정복과 개종을 허락 2.2. 사회 물질적 부유함에 대해 로뻬쓰는 어디서 본 자료에 근거하는지는 몰라도 때때로 구체적인 수치로 언급한다. 4) 예를 들어 꼴론을 본국으로 체포하여 송환했던 인물인 프란씨스꼬 데 보 바디야(Francisco de Bobadilla) 가 에스빠뇰라를 통치할 때 그는 본국의 두 왕에게 10만 뻬 소(peso) 이상의 금을 실어 보냈는데 이 가운데에는 여왕에게 바칠 15킬로그램 정도 나가는 3) 로뻬쓰가 의도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바로 이러한 말들을 통해 우리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잔혹성에 대해 알 수 있다. 4) 로뻬쓰는 이것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구체적인 숫자를 사용하는데 이는 그가 한번도 인디아스에 가보지 못한 사실을 보완하기 위함일 것이다. 보다 자세한 것은 최권준 (2008), ibid. 참조

115 금 알맹이가 하나 있었다(69) 고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쁜 날씨 때문에 배가 침몰하여 다른 모든 것들과 함께 이 금 알맹이도 분실하고 말았다. 물론 금과 관련하여 가장 놀라운 부를 가지고 있었던 부족은 잉까인들이었다. 아따우알빠(Atahualpa) 가 풀려나기 위해 꼬르 떼스에게 바친 금들 가운데는 그릇 하나가 무려 8 아로바(arroba) 나가는 것도 있었다(212) 고 로뻬쓰는 기술하고 있다. 1아로바가 대략 11킬로그램이 조금 넘으니 88킬로그램이 넘는 금 으로 된 그릇을 의미한다. 5) 물질적인 부에 대한 로뻬쓰의 기술은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 지만 잉까 지역에서는 몸통만한 무가 자라며 양은 한꺼번에 5마리의 새끼를 낳을 정도로 비 옥하다(342) 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이 놀라운 것들에 대한 기록은 사람들과 관련하 여서도 마찬가지다. 빨마스(Palmas) 강 유역의 사람들은 하루 종일을 쉬지 않고 뛸 수 있다 (86) 고 하며 심지어 하얀(jayán) 들은 사슴보다 더 빨리 뛰어 사슴을 손으로 잡는다(166) 고 한다. 산 아구스띤(San Agustín) 곶의 사람들은 독일인보다 덩치가 더 크고 발의 크기가 한 배 반에 이르며(160), 마갈랴네스(Magallanes) 는 거인 가족을 발견하였는데 얼마나 크고 힘 이 센지 스페인 병사 여덟 명이 한 명을 제압하기 힘들었다.(171) 이들의 평균 키는 11에서 13 뼘 크기이며 발이 이상하고 크게 생겨 그래서 이들을 빠따곤(patagón) 이라 부른다(171) 고 한다. 또한 잉까인들은 100 세 이상 살며(342) 하얀은 150 년을 산다고 강조한다.(166) 그리고 빨마스강 유역 인디오들의 활은 덩치에 맞게 얼마나 큰지 화살의 길이가 12뺨에 이르며 굵 기는 팔뚝만하고 날아가는 거리는 200 보에 이른다(86) 고 한다. 또한 꾸마나(Cumaná) 지역의 박쥐는 얼마나 큰지 한 번은 한 아이의 피를 모두 빨아 죽이는 일도 있었다.(151) 로뻬쓰의 책에 등장하는 인디오들은 약한 모습과 강한 모습을 동시에 보인다. 바로 앞에 서 보았듯이 어떤 부족들은 야생의 사슴과 달려서도 뒤지지 않고 하루 종일을 달려도 지치 지 않으며 머리가 얼마나 단단한지 몽둥이가 깨질 정도이고(132) 또 다른 부족들은 키가 2 미터가 넘는 거인들로 묘사된다.(80, 160, 171) 그러나 이들도 결국 모두 스페인 병사들에게 포획되는 허약한 원주민들에 불과했다. 로뻬쓰가 가끔 언급한 인디오들의 강인한 모습은 과 장이거나 허황된 이야기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디아쓰 조차 거인의 뼈를 발견하여 본국 의 왕실에 보낸 일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여하 튼 그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로뻬쓰가 묘사하는 인디오들은 대체적으로 스페인 병사들에 게 먹을 것을 공짜로 주고 거주할 수 있도록 집도 지어주며 노예처럼 온순하게 다니는 모습 이 보통이다. 초기 유까딴에서 발견한 곤쌀로 게레로(Gonzalo Guerrero) 는 그동안 같이 살 던 원주민들과 살기 위해 꼬르떼스와 같이 떠날 것을 거부하여 나타나지 않았고(99) 꼬이바 (Coiba) 란 지역에 잡혀 살았던 스페인인 세 명도 원주민들이 잘해주었다(112) 고 보고하는 이야기들을 로뻬쓰가 쓰고 있음에서 우리는 원주민들의 본래의 기질들을 추측해볼 수 있다. 다만 이렇게 순종적임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병사들의 너무나 가혹하고 잔혹한 혹사에 못 5) 꼬마그레 (Comagre) 지역 족장의 아들 빠끼아꼬 (Paquiaco) 는 스페인인들이 금 때문에 서로 싸우고 원주민들 을 죽이는 등 갖은 추악한 짓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하찮은 것 때문에 싸우고, 훌륭한 공예품들을 분배하기 위해 녹이며, 가까운 친구들끼리도 싸우다니. 당신들이 상스럽고 야만적이라고 말한 이 땅에서까지 와서 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싸우고 심지어 그것 때문에 죽이고 하니 물리도록 금이 많은 땅을 보여주겠다. 라고 스페인 인들을 꾸짖었다.(113) 그리고 로뻬쓰는 스페인인들이 황달에 걸려 노래지는 이유가 금을 좋아해서 그렇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129)

116 이겨 때론 반란을 일으키고 스페인인들을 죽이는 모습도 보인다. 꼴론이 에스빠뇰라에 남겨 두고 떠난 39명의 선원들이 강간과 난폭한 행위 등 갖은 횡포를 부리자 구아까나가리 족장 이 이들을 모두 죽인 일(55) 부터 꾸마나의 원주민들이 스페인인들이 가하는 강제노동과 진 주 채취의 힘든 작업에 견디지 못하고 1519년 반란을 일으켜 스페인인 100명을 죽이고 수도 원에 있던 사제들도 죽였으며(146), 빠나마(Panamá) 지역의 족장 빠리스(París) 는 스페인 병 사들이 금을 빼앗기 위해 너무나 잔혹한 일들을 저지르고 도망가자 이들을 추격하여 80명을 죽이고 금을 도로 빼앗기도 하였다.(344) 그리고 아마도 가장 큰 반란 중 하나는 1536년 꾸 쓰꼬에서 일으킨 것일 것이다. 삐싸로(Pizarro) 가 보낸 병사들과의 몇 번의 전투에서 무려 400명의 병사들과 말 200 필을 죽였다(237~8) 고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원주 민들의 전투력은 형편없었다. 예를 들자면, 잉까 지역이 매우 혼란하던 시기 본국 왕의 명령 으로 그 지역을 통치하러 갔던 뻬드로 데 가스까(Pedro de Gasca) 가 1542년 본국에서 발효 된 신법을 적용하면서 원주민들에게 강제노동을 금지시켰지만 그래도 이런 일은 지속되었 다. 그 지역의 최고 통치자로 간 가스까도 이를 폐지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스까 는 그럼 다른 일은 차치하고 최소한 인디오들을 다른 곳으로 강제로 이주시키는 것은 그만 둘 것을 명령했는데 이는 약한 인디오들이 거주지를 옮기면 적응하지 못하고 쉽게 죽어버렸 기 때문이었다.(330) 로뻬쓰는 원주민들과 관련한 다양한 것들을 이야기 하다 갑자기 전혀 상황에 맞지 않는 근거 없는 욕설들을 퍼붓는다. 좀 환상적인 것을 말하다 혹은 그들의 풍습에 대해 이야기하 다 갑자기 거짓말쟁이, 허풍쟁이, 게으름뱅이, 남색자, 배은망덕하다고 늘어놓는다.(101) 인디 오들의 배신자적 모습과 관련하여서도 마찬가지이다. 로뻬쓰가 말하는 이러한 이미지는 근 거가 없다. 지금의 콜롬비아 북쪽에 위치한 띠리삐(Tiripi) 란 지역에서 알론소 데 오헤다 (Alonso de Hojeda)는 몇 번의 전투에서 실패하고 주변을 돌아다니던 중 한 인디오 여인을 포로로 잡게 된다. 그러자 이 여자의 남편이 나타나 몸값으로 다음날 금을 가져오겠다고 약 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인디오는 약속을 어기고 다음날 다른 8명의 동료들과 나타나 갑 자기 공격했다(107) 고 로뻬쓰는 비난한다. 그리고 발보아(Balboa) 가 남쪽 바다를 발견하기 직전 아비베이바(Abibeiba) 강 근처에서 주변의 몇몇 원주민 족장들이 공모하여 그를 죽이기 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 음모는 실행에 옮기기 전 발각되었다. 이유는 발보아가 데리고 있던 원주민 여인들 가운데 한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는데 이 여인의 오빠가 그녀를 보기 위 해 자주 방문하였고 그는 쎄마꼬(Cemaco) 란 족장의 부하로서 음모를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사실을 여동생에게 말해주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발보아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리고 자신에 게 잘해주었기 때문에 그만 이를 그에게 밀고했던 것이다.(116) 이러한 밀고와 관련한 로뻬쓰의 글 가운데 가장 황당한 것은 아따우알빠를 처형하게 된 밀고사건이다. 몸값으로 막대한 금을 삐싸로에게 주고도 아따우알빠는 결국 처형되고 말았 는데 그 이유는 너무나 황당하게도 원주민 통역 필리삘료(Filipillo) 란 인물이 아따우알빠의 부인들 가운데 한 여인을 사랑한 나머지 그가 반란을 일으킬 계획이라고 고발하였기 때문이 었다.(217) 그러나 이 밀고 때문에 아따우알빠란 잉까의 왕을 죽이고 난 후 필리삘료란 원주

117 민이 거짓 밀고를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어이없게도 알마그로(Almagro) 가 필리삘 료를 처형하기 직전 이 원주민 통역은 자신의 밀고가 거짓이었다고 자백했다(235) 고 한다. 6) 로뻬쓰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디오들의 잔연환경과 풍습은 매우 다양하다. 그는 자신이 보 기에 특이해 보이는 곤충이나 동물과 식물 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으며 인디오들의 일상적 인 관습이나 기이한 관습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에스빠뇰라 섬에서 발견된 크기가 무 려 3 센티미터나 되는 개똥벌레(cocuyo) 는 모기를 잡는데 이용되기도 하고(67) 벼룩의 일종 인 니구아(nigua) 는 발톱과 발가락 사이로 파고들어 스페인 병사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혔으 며(67~8), 마나띠(manatí) 란 물고기는 크기가 5미터 정도에 이르는데 두 발로 헤엄을 친 다.(67)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적 있는 꾸마나의 박쥐는 무척 크기도 하였지만 한번은 한 환 자의 복숭아 뼈 부분을 물었는데 이 때문에 그 환자의 병이 낫기도 하여 가톨릭사제들이 기 적으로 여기기도 했다.(152) 그리고 이러한 것들 외에도 빠빠가요(papagayo) 나 까빠(capa), 아라나따(aranata), 사슴, 사자, 척추에 배꼽이 있는 돼지와 닮은 이상한 동물(354), 크기가 7 미터가 넘고 엄청난 힘으로 배까지 뒤집을 수 있는 물고기(151) 등 다양한 것들이 있다. 인디오들의 풍습과 관련한 로뻬쓰의 기록에는 흥미로운 것들도 상당히 많다. 장례의 풍습 과 관련한 예를 들면, 빨마스강 유역의 인디오들은 만약 자식이 죽으면 숯검정을 몸에 바르 고 슬피 울며 이를 매장하고 1 년의 상을 지내는데 온 마을이 하루에 세 번 운다. 그리고 부 모도 친척들도 이 기간 동안은 씻지 않는다. 그러나 노인이 죽으면 울지 않고 그의 소유였 던 모든 것들을 매장하는데 시체만은 화장하며 태우는 동안 춤을 추고 노래한다. 뼈는 가루 를 만들어 1 년이 되면 친척들과 여자들이 나누어 마신다.(87) 치꼬라(Chicora) 지역의 인디 오들은 족장이 죽으면 마치 육체에서 영혼이 막 나갔음을 상징하듯 폭죽 같은 불꽃을 피우 고 슬피 울며 매장한다. 족장을 존경하는 의식에서 코에 손을 대고 바람을 불며 시체의 이 마에서부터 뒤통수까지 사지를 쓰다듬는데 죽은 족장의 시체가 만약 좋다고 느끼면 머리를 왼쪽 어깨 쪽으로 트는데 그러면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 것이라고 믿는 다.(82) 놀이도 매우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공놀이 외에도 우리의 팽이놀이와 유사한 놀이와 화살을 바구니에 넣는 놀이 등이 있다.(82) 꾸마나 지역의 인디오들은 턱수염이 나면 뽑아버리는데 이는 수염이 난 사람을 짐승으로 여기기 때문이며, 남자들은 이빨을 고추의 잎으로 검게 물들이는데 이는 이빨이 흰 사람들 을 여자처럼 여기기 때문이라(149) 고 한다. 결혼의 풍습은 딸을 결혼시키기 전 2년 동안 못 나가게 가두어 두며 이 기간 동안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다. 결혼식에는 친척들과 이웃 과 친구들을 초대하며 초대받은 여자들은 음식을 가져오고 남자들은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목재와 짚 등 필요한 것을 가져오며 남자들과 여자들이 나뉘어 각각 신랑과 신부에게 춤추 고 노래해준다. 그리고 난 후 머리카락은 뒤는 그대로 두고 앞만 조금 자르고 밤이 되면 이 들을 한 방에 들여보내준다. 이곳의 귀족들과 부유한 남자들은 원하는 만큼 여자를 가질 수 6) 로뻬쓰는 스페인인들의 악행에 대해서도 그들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다 갑자기 고백자적인 모습으로 고발한다. 스페인인들이 악행을 저지른 이유는 금이 그들의 감각을 눈멀게 했기 때문이며, 그들은 결코 진실을 말하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언제나 타인에게 전가하였으며 항상 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거짓 증언과 매수를 일삼았고 질투심이나 탐욕으로 보복을 자행하였다고 한다.(334)

118 있으며 손님이 집에 찾아오면 가장 아름다운 부인을 손님에게 내준다. 유부녀들은 매우 정 절을 잘 지키는데 음탕한 짓을 저지르면 이혼을 요구할 수 있다.(150) 니까라구아 지방은 결혼식장에서 사제가 새끼손가락으로 신랑신부의 손을 잡고 의식을 진 행한 뒤 한 방에 넣어주는데 처녀가 아니면 신랑은 족장에게 파혼을 신청할 수 있고 두 번 결혼한 경우 추방된다. 그리고 비록 다처제이나 한 여자만 합법적인 부인이 된다.(355) 로뻬 쓰는 이 지역의 여자들에 대해 갑자기 별다른 설명 없이 결혼 전에는 모두 나쁘지만 결혼 후에는 좋은 여자들이 된다(355) 고 말한다. 일상적인 생활양식의 예들을 보면 유까딴에서 처음으로 돌로 된 건물과 목화로 만든 셔츠 를 입은 사람들을 볼 수 있으며 놋쇠와 몽둥이로 된 십자가가 발견되었는데 로드리고 (Rodrigo)왕 시절 모로족을 피해 스페인인들이 왔을 것이라는 설이 있지만 자신은 이를 믿 지 않는다(97) 고 한다. 다리엔 지역의 원주민들은 음식을 많이 먹지 않고 술은 있지만 족장 들만 마시며 목화로 짠 옷을 입고 자주 목욕을 하며 매우 깨끗이 다닌다.(125) 삐싸로가 들어간 초기 지역의 원주민들은 강이나 습지에서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며 매 우 호전적으로 스페인 병사들에게 모욕을 주었으며 머리는 앞뒤는 자르고 옆은 기르고 있었 다. 얼굴의 곳곳에 구멍을 뚫어 보석을 끼고 있어 탐이 났지만 너무 수가 많아 엄두를 내지 못했다(199~201) 고 한다. 꾸마나 지역에서는 베개 두 개로 눌러 머리를 납작하게 해 다니며 폭식을 하지 않고 식량도 풍부한데 이상한 벌레들을 먹는 풍습을 가지고 있다.(151) 그런데 니까라구아 지역의 원주민들은 희한하게 여자들은 잔뜩 치장을 하고 시장에 나가며 남자들 이 집을 치우고 불을 지피고 실을 잣는 등 집안일을 보며 남자들은 쪼그려 앉아 오줌을 누 고 여자들은 서서 오줌을 눈다(355) 고 적고 있다. 로뻬쓰가 묘사하는 원주민들의 의술은 자연의 약재를 이용하는 모습이다. 구아이(guahi) 란 풀은 콜레라를 치료하는데 쓰이고(80~1) 구아야깐(guayacán) 이란 나무는 가래톳을 치료하는 데 쓰이며(66), 하루마(jaruma) 란 나무의 과일은 지렁이나 구더기처럼 생겼지만 맛이 있고 부스럼에 액을 바르면 낫는데 한 번은 두 스페인 병사가 싸워 한 명이 칼로 상대방의 팔을 잘랐지만 한 노파가 뼈를 바루고는 이 과일의 즙과 잎만으로 치료하였다(78) 고 한다. 그리고 상처가 곪아 썩은 곳은 절개하여 빨아내는 치료법을 사용하고 우리나라의 뜸과 같은 보똔네 스 데 푸에고(botones de fuego) 란 치료법도 소개한다.(87) 에스빠뇰라 섬의 치료사들은 치 료행위를 할 때 꼬오바(cohoba) 란 풀을 씹는데 치료하다 환자가 죽으면 스페인 의사가 그러 하듯 다 핑계가 있다(63~4) 고 한다 정치 프란씨스꼬 로뻬쓰 데 고마라의 글에 나타난 족장 혹은 왕의 권력은 절대적인 모습을 보 인다. 잉까의 신하들은 왕궁에 들어갈 땐 신발을 벗고 눈을 내리깔아 감히 왕의 얼굴을 쳐 다보지 못했다.(220) 이러한 절대 권력에 대한 복종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스페인 병사들이 자신의 왕을 사로잡는데도 아따우알빠의 병사들은 공격하지 않았는데, 로뻬쓰의 추측에 의

119 하면, 주된 이유 중의 하나는 아마도 왕이 공격을 명령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211) 고 한다. 또한 잉까의 신하들은 아따우알빠가 길을 나서면 시동들이 길을 청소하고 노래와 춤을 추며 앞장섰다.(209) 오늘날 꼴롬비아 지역에 있었던 보고따(Bogotá) 왕도 마찬가지로 절대적 공경을 받았다. 그의 신하들은 그를 마치 신처럼 숭배하였는데 그가 침을 뱉으면 목화 천으로 이를 받아내 었다. 이것은 신성한 무엇이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139) 에 스빠뇰라 섬에서도 잉까의 왕과 보고따 왕 못지않게 족장의 권한은 절대적이었는데 족장이 허락하지 않는 한 부족들은 사냥도 고기잡이도 하지 않았다(65) 고 한다. 반면 니까라구아(Nicaragua) 지역의 자유도시(behetería) 라고 불리는 마을들에서는 부족 구성원들이 족장을 살해하는 경우가 없으므로 그들의 형벌조항 가운데 족장 살해와 관련한 조항은 아예 없다(356) 고 한다. 놀라운 것은 족장의 허락이 없이도 구성원들에게 명령하고 형벌을 가할 수 있는 총대장을 주민들이 선출하여 뽑는다는 사실이다.(356) 사회 통치적 질서 측면에서 보면, 보고따 왕이 다스리는 곳은 죄를 지으면 채찍질을 가하 거나 귀나 코를 자르고 그 죄가 클 경우 교수형에 처하기도 한다.(139) 그러나 죄를 범한 사 람이 귀족인 경우는 머리칼을 자르거나 남방의 소매를 찢어 모멸감을 주는 정도이며, 권력 과 부를 아들이 아니라 동생이나 조카에게 승계함이 특징적이다.(139) (Cartagena) 와 치미따오(Chimitao) 지역에서는 여자들도 전투에 참여한다.(135) 또한 까르따헤나 에스빠뇰라 섬과 지금의 꼴롬비아 지역 등 로뻬쓰의 책에 나타난 원주민들의 가장 큰 범 죄는 탐욕과 도둑질이다. 따라서 에스빠뇰라 섬에선 도둑은 가장 큰 벌인 사형에 처하며 (65), 다리엔(Darien) 지역에서는 옥수수를 훔치면 팔을 잘라 목에 걸게 만든다.(132) 또한 꾸쓰꼬 지역에선 도둑은 눈을 뽑아버리며, 니까라구아 지역에선 도둑의 머리칼을 자른 뒤 훔친 것을 배상하기 전까지 물건의 주인에게 노예로 준다.(356) 그러나 이들의 재판과정은 매우 공정하다. 다리엔 지역에선 재판을 3 일에 걸쳐 진행하며 집행관은 따로 있다.(132) 꾸 쓰꼬 지역에서도 재판과 관련하여서는 매우 공정한 정의를 지킨다고 로뻬쓰는 강조하고 있 다.(225) 하지만 범죄들과 관련한 엄격하고 공정한 재판 이전에 이들 사회에는 구성원들이 법질서를 지킬 수 있도록 오늘날의 경찰과 같은 사람들이 있어 이들이 가게나 건물 등을 지 킨다.(354) 2.4. 문화 프란씨스꼬 로뻬쓰 데 고마라의 작품은 다양한 지역에 대해 다루다보니 생활문화와 관련 된 이야기들도 매우 다양하다. 의복과 관련하여 살펴보면, 에스빠뇰라 섬 주민들은 더위로 인해 나체로 다녔지만(64) 대륙으로 들어가면 유까딴 반도에서부터 원주민들은 모포 형태의 옷이나 셔츠 등 화려한 색의 옷을 입고 다닌다.(97) 또한 깃털 장식이나 황금이나 은으로 된 흰색이나 여러 색의 귀걸이나 장신구들을 하고 다니다.(97) 하지만 지금의 빠나마 지역에 있 는 까스띠야 데 오로(Castilla de Oro) 의 원주민들은 천 조각으로 음부를 가리는 정도이나

120 귀족이나 왕실의 신하나 여자들은 무명으로 짠 옷을 입고 매일 자주 목욕을 하므로 매우 깨 끗하게 다니고(125) 온두라스의 사람들 또한 까스띠야 데 오로의 사람들과 같은 복장을 한 다.(101) 반면 할리스꼬(Jalisco) 지방 근교의 치아메뜰란(Chiametlán) 의 여자들은 발까지 덮 이는 옷을 입고 남자들은 짧은 모포를 걸치고 가죽신을 신는다.(365) 한편 시볼라의 사람들 은 가죽신을 신는데 겨울엔 무릎까지 오는 오늘날의 부츠와 비슷한 장화를 신고 여자들은 발까지 오는 메딸(metal) 을 입는다.(367) 그리고 칠레 지역에선 바다사자의 가죽으로 옷을 해 입고 다니는 원주민들도 발견되었다.(233) 페루의 경우 평원 지대 사람들은 옷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지만(337) 산악 지대 남자들은 머리에 묶는 끈이 달린 양모의 셔츠를 입고 여 자들은 소매가 없는 긴 옷을 입는데 금과 은으로 된 머리가 큰 브로치로 맨 어깨 숄을 걸치 고 띠를 많이 두르고 다닌다.(338) 음식과 관련하여서도 로뻬쓰는 다양한 것들을 소개한다. 이들 다양한 음식들 가운데서도 당연 가장 중요한 음식은 역시 옥수수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식 인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초기 스페인 정복자들이 주로 언급한 식인종들은 까립이라고 불리 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지금의 카리브해안에 거주하는 부족으로 다른 부족들을 잡아먹는 것 으로 유명하였다. 로뻬쓰에 의하면 이들 까립들은 주로 아이아이(Aiay) 의 사람들을 잡아먹 는데 알론소 데 오헤아다(Alonso de Hojeada) 가 이 사실을 발견하였다.(55) 그리고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있어서 유명한 식인 사건은 플로리다에서 있었던 것으로 가톨릭 사제들을 원 주민들이 잡아먹은 사건이다. 스페인 왕실은 1549년 몇 명의 사제들을 플로리다에 파견하였 는데 설교하러 도착한 이들을 원주민들이 잡아먹고는 자신들의 사원에 잡아먹힌 가톨릭 사 제들의 머리 가죽을 걸어놓았던 것이다.(85) 또한 산따 마르따 지역에선 아이들에게 사람의 고기를 먹는 것을 가르치는데 로뻬쓰는 이들이 까립이라고 주장한다.(138) 그리고 꾸쓰꼬의 원주민들은 고기와 생선을 날로 먹으며(225) 뻬루의 평원 지대 사람들도 생선을 날로 먹는 풍습이 있고(336), 지금의 북미 지역에 속하는 씨꾸익(Cicuic) 에서 끼비라(Quivira) 까지 이르 는 지역에서는 소의 지방을 먹기도 하며 또한 소의 뜨거운 피를 마시기도 한다.(369) 하지만 옥수수로 만든 빵이 원주민들의 가장 주된 식량이므로 로뻬쓰는 옥수수와 고추만 있으면 사람과 말이 살찐다고 말한 당시 스페인 사람들의 말을 인용한다.(372) 원주민들은 옥수수로 빵과 술을 만들며 옥수수는 악천후에도 잘 자라고 동물로부터 피해도 적으며 밀 빵보다 영양가도 높다.(372) 게다가 옥수수는 한 알을 심으면 적게는 200배 많게는 1,200배 를 수확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371) 4개월이면 수확하는데 논에선 심지어 1개월 반이면 가능하다.(371) 또한 옥수수 가루는 썩은 물을 정화시키는데 썩은 물의 악취와 나쁜 맛을 제 거시키기 때문에 바닷물에 좋다.(372) 로뻬쓰의 책에 기록된 다양한 음식물들을 보면, 유까딴에선 많은 벌집을 키워 꿀을 체취 하고(97) 치꼬라 지역에선 사슴을 사육하며(82) 뻬루의 산악 지역에선 많은 목축 떼를 농장 에서 키운다.(338) 또한 옥수수로 만든 빵뿐만이 아니라 유까와 아히 그리고 빠빠로 만든 빵 도 있는데(372) 뻬루의 산악 지역에서는 꼬까(coca) 가 매우 귀중한 것으로 금보다 오히려 귀하게 여겨진다.(336) 술은 여러 가지 과일과 풀로 만드나(66) 다리엔 지역에선 족장들만

121 즐기는 반면 꾸마나 지역 사람들은 유럽인들의 바카스 축제 같은 것을 즐기는데 무려 동안 술 마시고 춤추며 즐기기도 한다.(154) 또한 이곳에선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을 높이 평 가하므로 마시기 위해 토하고 다시 마시기도 한다.(155) 그러나 지금의 꼴롬비아에 속하는 보고따 족장의 지역에선 기독교인들의 사순절 같이 1년에 2개월 동안은 금식하며 심지어 소 금도 먹지 않는다.(139) 한편 까베싸 데 바까가 들어갔던 지역인 빨마스(Palmas) 강 유역에 는 매우 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애꾸이거나 장님들로 특이한 것은 여자들이 모두 술 중독이었다.(89) 그리고 꼴롬비아의 떼네수차(Tenesucha) 란 지방 사 람들은 먹기 위해 개미를 키우는 특이한 풍습을 가지고 있었고(140), 플로리다 지역 근처에 서는 숯을 먹는 사람들도 발견되었다.(155) 원주민들의 집과 관련한 글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데 발보아가 갔던 지역에서 발견된 나 무 위에 지은 집들이 특이한 것으로 기록되어져 있다. 아비베이바(Abibeiba) 강 주민들은 높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사는데 그 나무의 둘레가 8 명이 둘러설 정도로 굵다. 그러나 이 러한 집들을 보고 스페인 병사들은 마치 황새나 까치와 이웃하는 것 같다고 비웃기도 하였 다.(115) 반면 도르래나 기중기도 없이 쌓아 올린 꾸쓰꼬의 튼튼하고 아름다운 요새들에 대 해서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339) 또한 끼또에서 꾸쓰꼬까지 두 개의 훌륭한 길이 있는데 하 나는 평원으로 하나는 산맥으로 나 있으며 평원으로 난 길은 길이가 무려 8일 3,900킬로미터 이 상으로 폭은 25 보에 이르고 길 양쪽으로 담이 있고 그 옆으로 수로가 있다. 산맥으로 난 길 은 언덕은 깎고 계곡은 메워 돌과 바위와 석회로 건설한 길이 있으며 이 길의 폭도 25보 정 도이며 길을 따라 일정하게 땀보(tambo) 라고 불리는 휴식처가 있어 잠을 잘 수도 있다. 로 뻬쓰는 이 잉까의 길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로마의 길보다 훌륭하고 놀랍다고 감탄한 다.(340) 다양한 생활문화들 가운데 가장 손꼽히는 것은 단연 노래와 춤의 문화로 보인다. 치꼬라 의 사제들은 신들을 위한 노래를 부르고(82) 하구아쓰(Jaguaz) 사람들은 배가 고파도 즐겁 게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는데(88) 이는 에스빠뇰라 섬에서부터 익히 보았던 것이다. 이들은 아레이또(areito) 란 춤과 노래를 즐기는데 꽃과 더불어 다양한 장식을 하기도 한다.(64~5) 또 한 꾸마나에선 무려 스무 가지의 색으로 칠하곤 손을 잡거나 놓고 앞뒤로 움직이는 매우 조 화된 리듬의 춤을 즐기는데 6시간을 쉬지 않고 즐길 때도 있으며 술과 마찬가지로 춤도 오 래 추는 사람을 높게 평가한다.(154~5) 이렇게 술 마시며 춤추고 즐기는데 8일을 소모할 때 도 있을 정도로 매우 흥이 있지만 또한 여인들이 슬픈 곡조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155) 잉까인들이 사용한 매듭 문자를 로뻬쓰는 소개하고 있는데 그는 잉까인들이 돌이나 색깔 있 는 끈의 매듭으로 수를 표시하는데 매우 정확하여 놀랍다(341) 고 말한다. 또한 끼뿌(quipu) 와 마찬가지로 아마떼(amate) 에 대한 용어를 직접 언급하진 않지만 종이와 양피지 책에 그 림으로 된 문자를 사용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이 종이 책은 한 뼘 넓이에 길이는 열두 뼘으 로 접을 수 있으며, 파란색과 자주색 등 여러 색들로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고 법률 이나 의식들도 기록하고 있는데 니까라구아 지역과 메히꼬 지역이 매우 유사하다.(357) 따라 서 정복의 초기부터 원주민들이 편지가 말한다고 생각한 것(72) 은 매우 당연한 것으로 보아

122 야 할 것이다. 로뻬쓰의 책에 등장하는 이상향도 플라톤의 글에 등장한 여인들의 왕국과 주로 관련된 것 이다. 지금의 바하마군도에 있는 섬들은 당신 루까요스(Lucayos) 라 불렸는데 이 섬들에 아 마쏘나스가 있고 늙은 사람을 젊게 만드는 샘이 있다는 전설이 있었음을 소개한다.(77) 그리 고 이곳의 원주민들은 매우 희고 세련되었는데 특히 여자들이 그러하다고 한다.(77) 이 전설 에 루이스 뽄쎄(Luis Ponce) 가 그 샘이 있다는 보유까(Boyuca) 섬을 찾아 나섰다가 1512년 플로리다를 발견한 것이다.(84) 이후에도 전설의 아마쏘나스를 발견하기 위해 프란씨스꼬 데 오레야나(Francisco de Orellana) 를 대장으로 한 원정대가 모험에 나섰지만 결국 실패하는데 따라서 로뻬쓰는 여인의 왕국을 믿지 않았다고 말한다.(162) 그러나 또 다시 로뻬쓰는 레우 첸 골마(Leuchen Golma) 라는 한 영주의 이상향의 섬과 그 앞에 있는 아마쏘나스에 대해 말 한다. 이 영주는 섬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이 섬에는 2천 명의 사제가 있는 큰 사원이 있고 정원의 나무도 금으로 되어 있을 정도로 금이 많으며 이 섬 앞에는 아마쏘나스가 있고 그곳 의 여왕은 황금 하늘 을 뜻하는 구아노미야(Guanomilla) 라 불린다. 그러나 그 땅은 40도에 위치하고 있고 금이 많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말하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기에 로뻬쓰 자신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한다.(248)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뻬쓰는 식자로서의 자 신을 과시하고 자신이 한 말이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 플라톤이 말한 사 라진 아틀란티스 섬과(378) 세네까(Seneca) 가 메데아(Medea) 라는 극작품에서 말한 것을 직접 인용한다.(377) 3. 나가는 말 지금까지 살펴본 인디오와 그들과 관련한 것들의 이미지는 매우 다양하였다. 종교 분야에 서 가톨릭 사제인 로뻬쓰의 종교에 대한 시각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가장 미신적이었다. 로 뻬쓰는 기독교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먼저 원주민들이 믿고 있는 신들은 모두 악마이 며 우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였으며, 인디오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야기와 종교적 기적과 관련한 흥미 있는 일화도 소개했다. 물질적 부유함에 대해 로뻬쓰도 앞의 두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언급하였다. 그런데 그는 어디서 본 자료에 근거하는지는 몰라도 때때로 구체적인 수치로 언급하였으며 다분히 과장 적이었는데 그의 이 과장스러운 기록은 사람들과 관련하여서도 마찬가지였다. 로뻬쓰의 책 에 등장하는 인디오들은 약한 모습과 강한 모습을 동시에 보였지만 결국 모두 스페인 병사 들에게 힘없이 무너지는 허약한 모습에 불과했다. 로뻬쓰가 묘사하는 인디오들도 또한 대체 적으로 스페인 병사들에게 먹을 것을 공짜로 주고 거주할 수 있도록 집도 지어주며 노예처 럼 온순하게 다니는 모습이 보통이었다. 다만 이렇게 순종적임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병사들 의 너무나 가혹하고 잔혹한 혹사에 못 이겨 때론 반란을 일으키고 스페인인들을 죽이는 모 습도 보였다. 한편으로 로뻬쓰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디오들의 잔연환경과 풍습은 매우 다양 하였으며, 장례식 풍습, 놀이문화, 결혼식 풍습 등 흥미로운 것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123 로뻬쓰가 묘사하는 원주민들의 의술은 자연의 약재를 이용하는 모습이었다

124 이민과 위생 정책을 통해 본 근대도시의 형성 - 파라과이 비야리까 시의 사례 - 구경모(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1. 이민과 위생, 근대도시 근대도시는 직 간접적으로 가장 흔하게 다룬 연구 주제 중에 하나이다. 마르크스를 비롯 한 베버, 뒤르켐 등 사회과학의 고전적 이론가들은 초기 자본주의 특성을 연구하기 위해 근 대도시를 중요하게 다뤘으며, 고전적 사가에 속하는 톰슨과 브로델도 자본주의 역사를 분석 하기 위해 근대 도시 분석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고전적인 연구들은 주로 유럽에 한정 되긴 했지만, 이들 연구에서 근대 도시의 특성을 추출할 수 있는 공통적인 요소를 발견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이민과 빈곤, 위생이다. 자본주의가 태동하면서 유럽의 주요 도시들은 시골에서 이주한 노동자의 주거 환경 문제에 봉착하였다. 도시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민에 의한 급격한 도시 성장은 열악한 주거 상태를 그대로 노출시켰고, 이 로 인해 도시는 다양한 사회문제, 그 중에서도 위생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1) 특히 19세기 중반 페스트 류의 전염병이 열악한 환경에 의해 발생하고 전염된다는 사실의 발견으로 인 해, 공중 보건과 위생 문제는 도시 정책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민유기, ). 유럽의 영향으로 인해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위생과 보건에 대한 관념이 도시 정책 및 계획 에 반영되기 시작하였다. 19세기 말 멕시코의 뿌에블라 시의 위생 정책의 역사를 분석한 갈 린도(Galindo, 2006) 는 도시의 유럽계 이민자들의 지원에 의해 공중 보건이 실시되었다는 것을 밝혔다. 이러한 위생 문제는 도시 계획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까사스(Casas, 2000) 는 19세기말 20세기 초 콜롬비아의 까르따헤나 시의 급배수 체계 정비 과정을 기술 하였다. 그는 의사에게 일임되었던 보건위생 정책이 도시 건설자와 과학자, 정책입안자로 확대되었고, 이를 통해 위생이 도시 인프라를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분석하였다. 본 연구도 이민과 위생의 문제가 근대 도시 정책과 계획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자 한다. 다만 상기의 연구들은 위생 정책 혹은 일부 도시 계획을 통해 근대도시와 위생, 이민의 관 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이민과 위생, 근대도시의 관계의 중요성을 파악하기 에 용이하지만, 그 당시의 이민과 위생 정책이 근대 도시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부분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이민과 위생 정책이 도시 구조를 어떻게 변모시켰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는 사례지역인 비야리까 시가 이민과 위생 정책의 영향으로 식민시기 도시 모습을 탈피하여 근대 도시로 재편되는 과정에 주목하 고자 한다. 시기는 1872년부터 1936 년까지로 한정해서 분석할 것이다. 1872년은 삼국동맹 1) 톰슨(E.P.Thompson) 과 브로델 (Braudel) 은 각각 영국노동계급의 형성( 나종일외 5 명 역, 2000), 물질문명과 자 본주의 ( 주경철 역, 2001) 에서 근대 도시의 사회문제와 위생문제에 대해 언급하였다

125 전쟁 이후 황폐화된 도시를 재건하려는 노력이 시작되는 시기로 이때부터 지금의 도시 모습 을 갖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36 년은 도시 계획이 마무리되는 시기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1936 년은 현재의 도시 구조를 갖춘 시점이 된다. 이와 같은 연구목적을 바탕으로 본 논문의 2장에서는 근대 도시 이전의 비야리까의 모습 과 근대도시의 모습을 갖춘 비야리까를 서로 비교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도시 계획이 시작 되기 전인 1872년 이전의 비야리까 모습과 현재 도시의 모습을 갖춘 1936년도의 비야리까 를 살펴 볼 것이다. 3장은 이민정책을 통한 인구 증가로 도시의 경계가 확장되는 과정을 분 석할 것이다. 4 장은 위생 정책을 통해 현재의 도시 구조를 갖춘 과정을 살펴 볼 것이다. 필자가 파라과이의 비야리까(Villarrica) 를 조사 대상지로 선택한 것은 근대 도시 형성과정 을 이해하는 데 적합했기 때문이다. 특히 비야리까는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 파라과이의 2대 도시에 속할 정도로 규모가 커서 근대 도시로의 전이 과정이 잘 드러남과 동시에 최근 반세기 동안 정치 경제적인 문제로 도시 규모와 인프라가 거의 변화되지 않아 분석에 용이 하다. 본 연구는 2007년과 2010년 두 차례 비야리까에 체류하면서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이루 어졌다. 2007년에는 약 6 개월간 이민 정책과 유럽계 이민자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였다. 2010년 1월부터 2월까지의 현지조사에서는 위생 정책 부분에 대한 자료 수집에 치중하였 다. 주요 분석 자료는 비야리까 시청 문서보관소에 소장된 옛 문서와 비야리까 시와 시의회 정책 문서 모음집이며, 주민과의 인터뷰도 일부 포함되어있다. 시청 문서보관소 담당자인 루르데스 소또(Lourdes Soto) 는 문서 해독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문서는 근대 도시 형성 의 기반이 된 시기인 1872년부터 1936 년까지의 자료를 분석하였다. 2. 근대도시로의 전환 1) 식민시기 비야리까 모습 1872년 이전의 비야리까2)는 식민 시기의 도시 형태를 그대로 갖추고 있었다. 물론 독립 이후 일부 건물은 용도가 변경되었고, 새로운 주거지도 생겨났지만 식민 시기의 도시의 틀 을 크게 벗어나진 못하였다. 이 당시의 도시의 반경은 교회(iglesia matriz) 을 중심으로 불 과 사방 몇 블록에 불과하였다. 주요건물은 지금의 대성당이 된 교회가 있었다. 당시의 교 회는 지금처럼 첨탑도 없이 기와를 올려서 건축한 식민시기 건축 양식이었다. 교회 뒤편에 는 교회와 유사한 건축 양식으로 지은 초등학교(La Escuela de Niño) 가 있었다. 교회의 맞 은 편 광장 너머에는 군사령부(La Comandacia Militar) 가 있었다. 군사령부의 건물은 식 민시기에 까빌도(cabildo) 와 아윤따미엔또(ayuntamiento) 로 쓰였다. 군사령부 건물은 삼국 동맹전쟁을 치르면서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초에 이 건물의 용도는 비야리까 경찰 청으로 쓰인다. 지금은 주청사로 사용하고 있다. 군사령부 옆에는 옛 경비대(La Guardia Cué) 건물이 있었다. 경비대는 지금의 경찰로서 도시 치안을 담당하였다. 경비대 내부에는 구치소도 있었다. 교회의 북서쪽에는 예수회 시기 양식의 프란시스코회의 옛 수도원 2) 비야리까는 1570 년 스페인계 정복자인 멜가레호가 지금의 브라질 꾸리띠바 인근에 설립한 것이다. 이 도시가 파라과이로 옮겨온 것은 상파울루의 포르투갈계 정복자의 후손들인 마멜루꼬의 침입 때문이었다. 이들의 침 입을 피해 1701 년 현재의 장소에 비야리까시가 다시 설립되었다

126 (Convento Cué) 과 옛 신학교(Colegio Cué) 가 있었다. 수도원의 서쪽은 임시 장터(La Recova) 가 열리는 공터가 있었다. 이 시기에는 지금처럼 도시 구획이나 도로 정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일한 도 로는 비야리까(Villa Rica) 거리가 있었다. 이 거리는 상업거리로서 군사령부 앞과 임시 장 터가 서는 공터 앞의 길을 말한다. 현재 이 거리의 명칭은 꼬로넬 보가도(Coronel Bogado) 로 변경되었다. 2) 근대 도시로의 비야리까 비야리까 식민 시기의 도시 모습에서 근대적인 도시 구조를 갖추게 된 것은 1872년에 법 령으로 제정된 도시 구획과 1905 년의 도로 정비를 통한 시 경계의 확립을 들 수 있다. 이 두 계획을 통해 비야리까는 현재와 같은 도시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1872년의 법령을 통 해 비야리까의 주거지는 정방형의 블록으로 일정하게 유지되었으며, 정방형 사이는 도로로 연결되었다. 1905년은 인구의 증가로 도시의 규모가 확대되면서 도시의 경계와 도로 정비 를 실시하였다. 1905년 이후에 도시 인프라를 토대로 도시 내부의 기반 시설들도 새로 건축되거나 이전 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시설과 건물은 시청과 시장, 광장, 공동묘지 등을 들 수 있다. 19 구( 舊 ) 시장 철폐와 신( 新 ) 시장 건설을 마지막으로 비야리까의 주요한 시설은 1936년 이전 에 건축되었으며, 현재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3. 이민 정책과 도시 계획 1865년에 발발하여 5년 동안 일어난 삼국동맹전쟁은 파라과이 사회 구조가 재편되는 결 과를 가져왔다. 각종 시설 및 기간산업의 파괴는 둘째 치더라도, 인구 감소는 정부입장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다가왔다. 의견의 차이는 있지만, 학자들은 전쟁 이후 그 이전 인구와 비교하여 10분의 1정도만 생존했다는 의견에서 부터 4분의 1수준으로 줄었다는 견해에 이 르기까지 다양한 분석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3) 이렇듯 전쟁으로 인한 파라과이 사람들의 사 망 숫자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상당한 수가 희생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생존 자의 대부분이 여성 혹은 노약자와 어린이로서 국가 재건을 위한 성인 남성의 수가 절대적 으로 부족하였다. 정부는 도시 계획을 통해 인구 유입 정책을 마련한다. 먼저 6개의 거점 도시를 지정하여 도시 정비와 관련된 법령을 준비하였다. 이어서 수도인 아순시온을 비롯한 거점 도시에 경 제행정위원회를 설립하였다. 경제행정위원회는 시의 행정과 의회를 통합한 임시기구에 해당 되는 것으로 시의 주요 사안을 의결하고 실행하였다. 파라과이 정부와 의회는 1872년 5월 25 일 법안을 통과시킨 후 각 도시의 경제행정위원회에 하달하였다. 제 1 조 지방정부는 법률에 의거하여 각 마을에 집을 짓기 위해 땅을 청구하는 모든 내 국인과 외국인에게 무상으로 토지를 제공한다.) 3)구경모 (2008), 유럽계이주민의 유입에 따른 과이레뇨 (Guaireño) 의 타자화 : 파라과이 비야리까 (Villarrica) 시의 사례, 비교문화연구, Vol 14, No 2, p

127 제 2 조 앞 조항에서 다룬 토지는 각 마을의 성당을 기준으로 동서남북으로 750바라4) 까지로 한정한다. 제 3 조 각 블록 4면의 폭은 150 바라로 하며, 블록마다 12 개의 부지로 나눈다. 4개 부 지의 전면은 55바라로 하고 길이는 50 바라로 한다. 이 부지들은 첨부된 도면에 A로 표 시되어 있다. 다른 4개의 부지는 두 전면에 40바라로 하고 길이는 50 바라로 한다. B로 표시되어 있다. 다른 4개 부지는 전면이 25바라로 하고 길이는 65 바라로 한다. 첨부된 소형 도면에 C 로 표기되어 있다. 출처: 비야리까 시청 문서보관소5) 위의 문서는 법안이 통과된 지 3일 후에 국회가 비야리까 시의 경제행정위원회로 발송 한 것이다. 제 1항은 토지 제공에 있어 내외국인의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것으로 외국인 이 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엿 볼 수 있다. 2항은 성당을 기준으로 토 지 무상제공의 범위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성당(capilla) 은 현재의 대성당(catedra l) 6) 이다. 성당을 중심으로 사방( 四 方 ) 750바라는 현재의 센뜨로의 경계에 못 미치는 거리이 다. 한 블록이 150바라이면 성당을 중심으로 사방 5블록은 토지를 무상으로 증여하는 구 역이다 7). 법안의 나머지 항의 내용은 1872년 5월 29일 부통령이 비야리까 경제행정위원회에 보 낸 시행규칙 문서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이 시행규칙은 총 13항으로 내외국인에게 토지를 무료로 제공하는 방식과 관리, 집의 규격 등 각 시에서 법령을 시행하기 위한 준수 사항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제 7 항, 모든 집은 두 종류 이하로 지어야 한다. 전면은 막혀있어야 하며 붉은 나무 혹 은 벽돌로 건축해야한다. 제 8 항, 집 건축의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갓돌은 6바라 높이로 해야 하며 지붕은 2 바라 경사로 해야 한다. 출처: 비야리까 시청 문서보관소8) 이러한 건축 양식은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당시의 블록과 건물 구조는 현재 비야리 까 도시 구조의 맹아가 되었다. 내외국인을 구별하지 않은 인구 확대 정책은 최소한 비야리 까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1880년대 후반에 철도가 건설되면서 비야리까에는 아르헨티 나를 통해 들어 온 유럽계 이민자들, 특히 이탈리아계 건설노동자와 상인이 대거 정착하였 다. 9) 이탈리아계로 철도공사에 참여한 뻬드로 보지노(Pedro Boggino) 의 아들인 루이스 보 4) 1 바라(vara) 는 0.425m 이다. 따라서 750바라는 m 이다. 5) 출처의 1항과 2 항은 구경모 (2008: 14) 의 글에서 인용한 것이며, 3 항은 새로 추가한 것이다. 이 문서는 첫 장 의 4 개항만 남아있으며, 여기서는 세 항목만 인용하였다. 4항은 첫 줄만 남아있어 그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 다 6) 대성당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춘 것은 1886년 6 월경에 증축을 하면서이다. 7) 현재 센뜨로의 북쪽과 서쪽 경계는 이 당시 보다 4 블록 확대되었으며, 남쪽은 2 블록, 동쪽은 그대로이다. 8) 이 시행규칙은 13 항으로 구성되어있다

128 지노(Luis Boggino) 에 따르면, 이 당시에 철도 건설을 위해 들어온 이탈리아 노동자들 중 약 명이 비야리까에 정착했다고 한다. 10) 지금도 비야리까에는 이탈리아계 후손들 의 모임이 유지되고 있다. 철도건설을 전후하여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비야리까에 정착한 증거는 다음의 문서에서 잘 드러난다. 비야리까 1888년 11월 29일 시장님께 엘레우떼리오 히메네스(Eleuterio Gimenez) 기혼이며 이웃인 이탈리아 국적의 후안 팜부띠가 자격을 갖고 정중하게 요청한다. 공화국의 헌법에서 특히 1872년 5월 25일 법령 6조에 의거하여 시청 소유의 대지를 청구한다. 그는 아래에서 설명하는 곳 근처의 20 년 된 집에서 살고 있다. 그의 집은 정 면에서 대략 비야리까 거리 방향의 12월 15일 광장에서 1000 바라 떨어진 곳에 있다. 청구자의 거주지에서 쪽으로 80바라 떨어진 지점에 으꾸아-앙과11)라 불리는 샘이 있으며, 북 60 바라 떨어진 곳에 펠빠 오레고 여사가 거주하고 있다. 요청자는 위에서 설명한 토지를 청구하며, 관련 문서는 세르데 후스띠나 그라우 람베르 또(Cerde Justina Grau Lamberto) 가 준비하고 있다. 같은 날 오후 4시에 비서에게 전달됨 접수 리벨리(Livelli) 출처: 비야리까 시청 문서보관소 이 문서는 이탈리아계인 후안 팜부띠가 1888년 11월 29일 시청소유의 토지를 청구한 것 이다. 문서의 엘레우떼리오 히메네스( Eleuterio Gimenez) 는 스페인어를 쓸 수 없어 팜부띠를 대신하여 대필한 사람의 이름이다. 문서의 내용을 보면, 그는 1872년 제정된 법령에서 외국 인 정착을 위한 토지 무료 제공 조항에 의거하여 그가 살고 있던 시청소유의 땅을 청구하였 다. 이 문서는 내외국인을 차별하지 않았던 정부의 이민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고 있음을 증 명하고 있다. 특히 이 업무의 담당자가 이탈리아계인 리벨리라는 것은 이미 이탈리아계 이 민자들이 비야리까에 성공적으로 정착했음을 보여준다. 이 시기에 얼마나 많은 수의 유럽계 이민자들이 비야리까에 정착했는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여전히 비야리까에 살고 있는 상당수 유럽계 이민자 후손들의 모습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향토 사학자인 프 랑코는 조사를 통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 비야리까에 정착한 유럽계 이주민의 성씨가 228 개라고 밝히고 있다. 9) ibid, p.17 10) ibid,, p.18 11) Ycuá-Anguá(donde sale el agua) 는 과라니어로서 물이 나오는 곳, 즉 샘을 말한다

129 이민정책의 성공과 함께 비야리까의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비야리까의 도시 구조는 변화 하게 된다. 1905년에 도로와 시청이 건설되면서 비야리까는 식민 도시의 틀을 벗어나 현재 와 같은 모습의 도시로 재편된다. 불바드(boulevard) 의 건설은 비야리까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였다. 불바드는 도시의 경계를 나타내는 도로로서 도심의 도로보다 그 폭이 두 배가량 넓 다. 비야리까에서는 내불바드와 외불바드가 건설되었다. 내불바드는 도시의 중심과 외곽을 경계짓는 불바드이며, 외불바드는 도시와 시골을 구분하는 불바드이다. 내불바드는 1872년 법률에서 제시한 마을 규모인 사방 750바라보다 2~3 블럭 넓어진 지점에서 건설되었다. 외 불바드는 도시 전체를 감싸듯이 외곽지역에 위치하였다. 이렇게 도시의 규모가 커지면서 시 에서는 불바드를 통해 도시의 경계를 새로이 조정하였다. 그리고 도시를 네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관리하였다. 첫 번째 구역은 도시의 북서쪽, 두 번째 구역은 도시의 남서쪽, 세 번째 구역은 도시의 북동쪽, 네 번째 구역은 도시의 남동쪽이었다. 현재 비야리까는 총 9개 구역 으로 구성되어있다. 내불바드의 안쪽은 센트로이며, 내불바드와 외불바드 사이에는 8개의 바리오가 있다. 시청은 불바드 보다 1 년 뒤에 건설되었다. 그 이유는 시청이 들어설 자리에 있던 프란시 스코 수도원을 철거해야 했기 때문이다. 시장과 붙어있던 프란시스코 수도원이 철거된 자리 에 시청이 들어서면서 시장과 시청 사이에 도로가 건설되었다. 이때부터 지금과 같은 시청 주변의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4. 도시의 성장과 위생 정책 1) 위생문제와 공동묘지 이전 도로와 같은 토목 공사가 비야리까의 기본적인 도시 구조를 만들었다면, 주요 생활시설은 위생 관념의 대두와 그에 따른 정책의 뒷받침 속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도시 인프라가 구축 된 기본적 요인은 앞서 말한 이민 정책으로 인한 인구의 증가일 것이다. 인구 증가는 위생 을 위해 소수의 인구에 최적화된 생활시설에 대한 재정비를 요구하게 되었다. 위생 관념이 생긴 것은 전염병이 병원균에 의해 옮겨진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후 부터였 다. 비야리까에서 공중보건 및 위생과 관련된 조직은 1886년 10 월에 처음 조직되었다. 이 당시 수도에서 전염병이 창궐하였고,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시에서 보건위원회12)를 설립하 였다. 보건위원회는 자체 의료팀을 구성함과 동시에 시민들에게 위생 규정을 준수하도록 다 음과 같은 지침을 내렸다. 1. 각자의 집을 깨끗이 청소하라. 2. 쓰레기는 태워라. 12) 보건위원회는 후안 길츠(Juan Giltz) 와 에스떼반 고로스띠아가 (Esteban Gorostiaga), 호르헤 라따사 (Jorge Lataza), 까를로스 챠세(Carlos Chase) 등의 의사와 약사로 이루어졌으며, 위원회 산하에 하부조직을 추가하 여 각 가정을 담당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첫 번째 구역은 베르나르디노 보르돈 (Bernardino Bordon) 과 루 까스 빠빨루까 (Lucas Papaluca), 막시모 맞추까 (Maximo Machuca), 이노센시오 딸라베라 (Incencio Talavera) 로 조직되었다. 두 번째 구역은 뜨리폰 고로스띠아가 (Trifon Gorostiaga) 와 플로렌시오 로뻬스 (Florencio Lopez), 호세 알폰소 (José Alfonso), 뻬드로 아르구에요 (Pedro Arguello) 로 구성되었다 (Meaurio 1942, 95)

130 3. 말뚝에 소가죽 말리는 것을 금한다( 소가죽을 공기에 노출하는 것을 금한다). 13) 비야리까는 1855 년에 이미 열병 류 전염병 창궐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 그 당시 정부에 서는 군의관이었던 스코틀랜드 출신의 페데리꼬 스킨네르뜨(Federico Skinnert) 박사를 비 야리까에 급파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였다. 14) 그러나 범시민적으로 보건과 위생을 강조한 것은 전염병에 대한 경험과 위생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유럽계 이민자들, 특히 의사 와 약사들이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 보건위원회 소속의 길츠와 챠세는 각각 독일계와 프랑 스계 이민자들이었다. 길츠는 추후에 주거지에서 공동묘지를 옮기는데 중요한 공헌을 했으 며, 챠세는 처음으로 약국을 세운 인물이다. 위생 관념이 대두됨에 따라 도시 인프라와 관련하여 비야리까시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던 위생 정책은 공동묘지 이전이었다. 1873년 경제행정위원회에서는 옛 공동묘지 (Cementerio-cué)에 매장하는 것을 금하고 새로운 공동묘지에 매장해야 한다는 규정을 수 립하였다 15). 옛 공동묘지는 성당에서 불과 동쪽으로 4블럭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 다 16). 옛 공동묘지가 시내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관계로 위생문제와 도시 계획에 걸림돌 로 작용하였고, 이로 인해 경제행정위원회에서는 북서쪽 공동묘지(Cementerio Nor-Oeste) 를 건설하였다. 약 15년이 지난 1888년 길츠와 인사우랄데는 도시의 북동쪽에 새로운 공동묘지를 건설 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길츠는 1855년 발생한 전염병에 의해 죽은 사람들이 북서 공동묘지 가 있던 자리에 묻혔다는 것을 밝혔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그는 북서 공동묘지의 땅에 침 투된 병원균으로 인해 주변 주민들의 공중보건이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다고 주장하였 다. 17) 새로운 공동묘지 건설 문제는 토지 확보 등의 문제로 인해 바로 해결되지 못하고 논 의만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년 한 시민에 의해 다시 공동묘지 신축에 관한 상세한 방안이 제시되었다. 다음은 시장에게 공동묘지 신축 필요성을 제안한 문서이다. 비야리까 1908년 12월 8일 존경하는 시장님께 나를 신뢰하는 영광스러운 시의회와 시장님께 공동묘지에 대한 의견을 제출합니다. 비야리까 시민들을 위한 나의 희망은 8 년간 지체되어온 공동묘지 정리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의 공동묘지를 폐쇄하고 신식 공동묘지를 남동쪽에 건설했으면 합니다. 신식 공동묘지 제안은 위생을 위한 것입니다. 지금의 공동묘지는 근처의 마을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공동묘지의 구덩이에 스며든 물이 마을의 우물로 흘러갑니다. 우물들은 공동묘지 근처에 살고 있는 많은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유는 자주 발행하는 후텁지근한 북풍이 무덤의 냄새를 옮기고 있습니다. 13) Meaurio, Ernesto(1942) Villarrica Contemporanea y Su Municipio, Asunción: Litocolor, p ) ibid, p.37 15) ibid, p.37 16) 옛 공동묘지는 알레호 가르시아와 헤네랄 까바예로, 아자라, 아순시온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17) ibid, p

131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지금의 공동묘지는 주민들에게 이롭지 않습니다. 시청 소유의 값싼 땅이 있는 곳에 신식( 新 式 ) 공동묘지를 신축해야 합니다. ( 생략) 도시 남동쪽 출처: 비야리까 시청 문서보관소 이즈음에 인구가 점점 증가하여 내불바드 안쪽과 바깥쪽에는 집들이 빽빽이 들어섰다. 인 구 증가에 따른 도시 성장도 새로운 공동묘지를 필요성을 야기하였지만, 위의 문서 내용처 럼 위생문제 해결은 더 시급한 과제였다. 문서를 보낸 사람은 신축공동묘지의 설계도를 첨 부하여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였다. 결과적으로 그의 계획은 시로부터 승인을 받지 못했지 만, 공동묘지로 인한 거주지 주변의 식수와 공기의 오염으로 인한 공중 보건 문제가 당시에 주요한 화두였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 계획이 거부된 것은 길츠를 비롯한 보건위원회와 시관계자들이 주장하는 장소와 반대되는 곳에 공동묘지 건설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그 이듬해에 시에서는 1903년부터 약 10년간 끌어왔던 공동묘지 신축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차세를 중심으로 공동묘지 건축 계획을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18) 시장과 위원들은 시의 북동쪽에 토목 기술자인 콘웬츠(Conwents) 가 설계를 마친 지역을 공동묘지 자리로 선택하 였다. 그리고 1910년 시에서는 도시 북동쪽의 주민이 살지 않는 외불바드의 바깥 지점에 공동묘지를 건설하였다. 현재 비야리까에서는 북서쪽 공동묘지를 구( 舊 ) 공동묘지라 부르며, 북동쪽 공동묘지를 신( 新 ) 공동묘지라고 부르고 있다. 북동쪽 공동묘지는 관리 규정과 요건 을 이전의 공동묘지와 달리 아주 까다롭게 만들었다. 지시 계획 비야리까 시의회 지시 사항 제 1 조. 북동쪽의 공동묘지는 세 구역으로 나눈다. 첫 번째 등급 묘소는 1번부 터 288 번까지 분류한다. 두 번째 묘소 등급은 문자 A, B, C 로 나눈다. 세 번 째 등급 묘소는 로마자로 I y II 로 나눈다, 제 2 조. 첫 번째 등급은 영구소유의 형태로 판매한다. 두 번째 등급은 5년을 주기로 임 ( 중략) 대한다. 세 번째 등급은 어떤 규정 없이 공짜로 준다. 제 4 조. 첫 번째 등급의 면적은 12.5 m2이어야 한다. 제 5 조. 거리에 접한 묘소는 시에 50% 를 세금을 더 부담해야한다. 제 6 조. 2번째 및 세 번째 등급은 1.25m의 깊이와 3 m2의 넓이여야 한다. ( 중략) 제 13 조. 소유자와 임대인은 묘소를 깨끗이 유지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 중략) 한다. 18) ibid, p

132 제 15 조. 어떤 소유주든 한 개 이상의 묘소를 가질 수 없다. 묘소를 기부하거나 거래할 수 도 없다. 제 16 조. 도면에 따라 건축해야하며 시청의 허가 없이 어떤 물건을 배치할 수도 없다. ( 중략) 제 18 조. 공동묘지 관리자는 거리를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며 내부의 모든 것을 잘 보존 제 제 해야한다. 19 조 허가 없이 어떤 시신도 매장할 수 없다. 20조 공동묘지 출입은 공휴일 혹은 특별 시청에서 허가를 받은 방문객만이 가능하 다. 출처: 비야리까 시청 문서보관소 시청 문서 보관소의 위생 관련 문건 중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자료는 공동묘지에 관한 것 이었다. 이는 1873년과 1910년 사이에 두 개의 공동묘지가 신축된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이처럼 공동묘지의 관리는 비야리까시의 공중보건을 위한 우선 과제였다. 도시 계획 에서 공동묘지를 외불바드 밖에 건설하고 신 공동묘지의 규칙을 엄격하게 정한 것은 위생에 있어 공동묘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잘 보여준다. 역으로 말하면, 공동묘지는 공중 보건을 위 협하는 대표적인 시설물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공동묘지가 주민의 위생을 위협하게 된 원인 은 도시의 성장으로 외곽지에 있던 공동묘지가 점차 주거지 내부로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2) 위생 문제와 시장 이전 19세기 중반까지 비야리까에서 번화했던 곳은 성당과 그 앞의 12월 25 일 광장이었다. 그 러나 성당에서 북서쪽으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큰 시장과 시청이 건축되면서 그 주변은 상 업중심지로 변모하였다. 시장은 1855 년 옛 수도원(convento-cue) 옆 공터에서 처음 개시 하였다. 19) 이 시장은 큰 시장(mecado guasu) 으로 불렸다. 20) 삼국동맹전쟁이 일어나기 전 인 1862 년의 기록에 의하면, 시장의 공터에는 북쪽에서 서쪽으로 약 55미터의 오두막이 있 었다고 한다. 21) 음식물과 수레를 끄는 동물, 사람들이 뒤섞이면서 시장의 위생 관리는 시청의 골칫거리로 등장하였다. 시에서는 환경 정비를 위해 몇 차례 시장을 개보수 하였다. 1910년 4월에는 철골 기둥에 50 개의 대리석 가판대를 설치하였고, 1921년에는 위생과 편리함을 위해 시장 건물을 새로 수리하였다. 아래의 사진은 수리한 이후의 시장의 모습이다. 19) ibid, p ) guasu 는 과라니어로 크다는 뜻이다. 21) Franco, Artemio(1984), Villarrica: Un Mosaico de su Historia y Folklore en Romántica Evocación, Villarrica: Escuela Técnica Salesia. p

133 1921년 9월 22일 촬영한 큰 시장의 모습22) 가판대와 건물을 새로 지어도 시장의 위생 문제는 끊임없이 대두되었다. 시장 주변의 도 로는 상거래를 위해 모여든 사람들, 특히 기차역에 물건을 싣고 온 수레들이 모이는 정류장 역할까지 담당하여 항상 북적거렸으며, 상인들과 손님들이 버린 음식쓰레기와 수레를 끄는 동물들의 배설물이 넘쳐났다. 당시 지역신문에 시장의 위생(La higiene en el mercado) 이 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는 시장의 위생 상태가 심각했음을 잘 보여준다. 무더운 더위와 함께 엄청난 양의 폐기물과 수박 껍질은 시장의 십자로에 가득 쌓여 있다. 거기에는 망아지들이 모여 있으며 마치 쓰레기 창고 같다. 앞서 지적한 장소가 청소와 위생으로부터 방치 된 것은 시청이 태만한 탓이다. 시청 은 단지 상인들로부터 세금 받는 것에만 열중한다. 오물을 전혀 관리하지 않는다. 시청 이 주민의 위생과 건강에 전념하도록 우리의 보건권( 保 健 勸 ) 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 다. 출처: 엘 수르꼬(El Surco) 1926년 1월 13일자 시장의 열악한 위생 상태는 주민들에게 시의 관리 소홀로 인식되었고, 주민들은 주변 환 경에 대한 불안과 불만으로 가득 찼다. 결국 시에서는 주민들의 원성을 잠재우고 전염병에 대한 공포를 제거하기 위해 1936년에 큰 시장을 없애고 다른 곳에 시장을 세우기로 결정하 였다. 시장의 위생 상태로 인해 주민들의 불만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의 대책이 늦었 던 것은 상권을 둘러싼 이권 문제 때문이었다. 큰 시장이 해체되면, 그 주변의 상업 활동은 침체될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에 상가를 소유한 사람들이 반대한 것이다. 특히 상가 소유자 의 대다수는 유럽계 이민자 혹은 아랍계 이민자들로 비야리까 시의 부와 권력을 좌지우지 22) 이 사진은 2007 년도에 스까보네 (Scavone) 로 부터 받은 것이다. 당시 스까보네는 주청사 농업과 담당자로 근무하였다, 그는 향토사에 관심이 많아 신문에 비야리까 역사 관련 글을 많이 기고하였다. 현재는 대학생 협 동조합에서 근무하고 있다

134 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결정은 시의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23) 새로운 시장은 수요를 분산하기 위해 두 곳에 설치하기로 하였다. 한 곳은 내불바드의 북 동쪽이며, 다른 한 곳은 내불바드의 남서쪽에 세우기로 하였다. 시장의 이름은 북동쪽의 시 장을 1 시장(mercado uno) 으로 명명하였고, 남서쪽의 시장은 2 시장(mercado 2) 으로 이름을 붙였다. 1 시장은 1936년에 8월 26일에 착공하여 같은 해 12월 15일까지 약 4개월 동안 공사를 진행하였다. 2 시장은 1936년 10 월에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인 1월 12일에 공사를 마쳤다. 현재는 2시장 보다 1 시장이 훨씬 상권이 발달되어있다. 그 이유는 1시장 옆에 버스 터미널 24) 이 있기 때문이다 년은 터미널을 제외한 도로와 기타 생활 인프라가 현재의 위치에 구축되었다. 특히 두 개의 시장이 내불바드 경계로 이동하면서 상권도 확장되었다. 기존의 상권은 큰 시장을 중심으로 주변 도로에만 상가들이 밀집한 형태였지만, 그 이후에는 상권이 내불바드 경계 안으로 확장되었다. 시장의 이전 건설로 비야리까의 중심지는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5. 결론 본 연구는 이민과 위생이라는 측면이 근대 도시 구조를 형성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 했다는 것을 밝히는데 목적이 있었다. 이를 위해 필자는 근대 도시 계획이 시작된 1872년 부터 지금의 도시 구조를 갖춘 1936 년까지, 약 60 년 동안 일어난 이민과 위생 정책, 그에 따른 도시 구조 재편 과정을 분석하였다. 앞에서 살펴 본 결과, 도로 건설 및 공동묘지, 시장의 이전과 건축은 이민에 따른 인구 증가와 도시의 성장, 공중 보건과 위생 정책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비야리까는 이러 한 요소들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지금과 같은 도시구조를 이루게 되었다. 근대 도시 형성의 대표적인 요소로 도로와 공동묘지, 시장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것은 식 민지 시기 도시 양식에서 중요하지 않았지만 근대 도시로 이행하면서 드러난 대표적인 도시 구조물이었기 때문이다. 비야리까가 근대 도시로 성장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철도 를 크게 다루지 않은 것은 철도역이 비야리까 도시 경계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도시 계획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1960년대에 철도 노선이 폐쇄되면서 비야리까에서 철도는 유명무실해졌다. 23) 2007년도에 현지조사를 하던 당시 원단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레바논계 이주민인 훌리오 무씨는 필자에게 큰 시장을 해체할 무렵 그의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반대했다는 내용을 필자에게 언급하였다. 무씨(Mussi) 가족은 1902 년에 비야리까에 이주하여 큰 시장 맞은편에 규모가 큰 원단 가계를 운영하였다. 그러나 시장이 없어지 면서 무씨 가족은 새로 생긴 1 시장 쪽으로 가게를 옮겨서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24) 비야리까의 버스 터미널은 1960 년대에 세워졌다. 그 이전에는 큰 시장의 주변 도로가 터미널 역할을 담당하 였다. 큰 시장이 없어진 이후에도 주변 도로는 터미널 역할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철도가 없어지고 버스와 운 송수단이 늘어나면서 버스터미널이 지금의 자리에 들어섰다

135 6. 참고문헌 구경모(2008), 유럽계이주민의 유입에 따른 과이레뇨(Guaireño) 의 타자화: 파라과이 비야 리까(Villarrica) 시의 사례, 비교문화연구, Vol 14, No 2, p 민유기(2007), 도시이론과 프랑스 도시사 연구 서울: 심산. Braudel, Fernand(1986), Civilization Matérielle, Économie et Capitalisme, SiÈcle( 주경철 역 2001,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 일상생활의 구조 下, 서울: 까치). Casas, Alvaro(2000), Water pipelines conduits and urban sanitation in Cartagena in the beginning of the twentieth century, História, Ciências, Saúde-Manguinhos, vol.7, n.2, p Franco, Artemio(1984), Villarrica: Un Mosaico de su Historia y Folklore en Romántica Evocación, Villarrica: Escuela Técnica Salesia. Galindo, Rosario(2006), Los Primeros Proyectos de Higiene y Salubridad Pública en Puebla a Finales del Siglo XIX, Meaurio, Ernesto(1942) Villarrica Contemporanea y Su Municipio, Asunción: Litocolor. Thompson, E.P.(1963), 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s,( 나종일 외 5 명 역,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2000, 서울: 창착과 비평사), Diario El Surco(1926년 1월 13 일자) Notas Recibidas (año 1872), Archivo de la Municipalidad de la Villarrica Notas Recibidas (año 1888), Archivo de la Municipalidad de la Villarrica Notas Recibidas (año 1908), Archivo de la Municipalidad de la Villarrica Notas Recibidas (año 1910), Archivo de la Municipalidad de la Villarrica

136 제4회의 - 이민과 정체성 15:50~18:00 (A508 호) 좌장 : 김명혜 ( 전남대) 이민, 역이민과 민족정체성 : 루소의 사상을 중심으로 발표 : 오수웅 ( 연세대) 토론 : 김태수 ( 한양대) 인본계 브라질인 정주화와 사회자본에 대한 고찰 : 다문화 공생사회 구축을 위한 제언 발표 : 윤석상 ( 단국대) 토론 : 박윤주 ( 계명대) 라틴아메리카의 여성 이민 : 칠레의 페루 여성 이주자를 중심으로 발표 : 이순주 ( 울산대) 토론 : 최진숙 ( 울산과기대)

137 이민 역이민과 민족 정체성 : 루소의 사상을 중심으로 오수웅 ( 연세대학교) Ⅰ. 문제제기 세계의 역사는 수차례에 걸친 이주의 역사를 담고 있다. 최초라 할 수 있는 아프리카 원 주민의 전 세계적 이주와 이집트, 황하 문명 등 많은 문명들의 탄생에서 신대륙의 발견과 남북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이주를 거쳐, 최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주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주의 원인으로 대체로 기후환경의 변화, 인구증가와 식량문제, 외세의 침략, 신대륙 발견 혹은 식민지 개척 등등이 이야기되어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치, 경제, 환경적 차원 의 설명들은 일정한 시기에 집단적으로 나타나는 이주 현상에 대한 설명에서는 설득력을 가 질 수 있겠지만 오늘날 자주 발견되는 개인들의 개별적 이주에 대한 설명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개인들의 개별적 이주현상을 보다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문화적 측면 에서 인간 본성적 차원의 원인들을 발견할 것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글의 목적은 첫째,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이민 역이민 현상의 인간 본성적 원인들 을 발견하는 것이다. 둘째 발견된 원인들이 민족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함으로써 이 민 역이민과 민족 정체성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니다. 사회, 문화, 민족 그리고 정체성이라는 학자들 사이에서 오랜 기간 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 어 온 개념들을 다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각 개념들의 정의는 물론 개념들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데, 예를 들어 팀 에덴서에 따르면, 사회와 민족을 같은 개념으 로 간주하는 입장도 있고, 민족을 문화의 공간으로 간주하는 입장도 존재한다. 이 입장에 서게 될 경우에는 사회, 민족, 문화는 한마디로 모두 같은 대상의 다른 이름으로 간주할 수 도 있게 된다. 1) 게다가 여기에 사회, 문화, 민족( 의 정체성) 은 어떤 고정불변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이를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과정들의 결과가 아니라 그 원인이며 행동의 표면 뒤 에 놓인 본질 이라고 보는 입장과, 클리포드(James Clifford) 처럼, 문화는 자라고 존속하고 1)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중문화와 일상생활에서 민족이 어떻게 재현되고 경험되는지에 관한 비판적 분석 이 거의 없다는 점은 이상한 일이다. 이런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사회과학자들과 문화이론가들을 괴롭혀 온 민족 과 사회; 가 동일하다는 흔한 가설이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제임스 Paul James 는 민족과 사회, 그 공동체는 흔히 같은 영역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고 단언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 라는 개념은 민족 국가, 시민권, 민족 사회라는 개념 안에 내재되어 있다. 게다가 빌리히 Michael Billig 는 사회학을 정의하는 데 핵심이 되는 사회 라는 개념은 민족국가의 이미지에서 만들어진 것 이라고 부연한다. 팀 에덴서. 박성일 옮김. 대중문화와 일상 그리고 민족 정체성 ( 서울 : 도서출판 이후, 2008), 참조.

138 죽는 뿌리내린 실체가 아니라 치환과 간섭, 상호작용이 벌어지는 장소 라는, 2) 생성과 소멸 의 과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입장이 더해진다면, 이들 개념들에 대한 논쟁은 더욱 더 혼탁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글은 이러한 논쟁들에 있어서 어떤 하나의 입장을 방어하거나 다른 입장들을 논파하는 것을 의도하지는 않는다. 루소(Jean Jacques Rousseau) 의 사상을 토대로 하여, 이 네 가지 개념들을 정의하고 그러한 개념정의에 따라 이민 역이민과 정체성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에 천착하고자 한다. 3) 루소의 사상을 토대로 하는 이유는, 루소는 근대의 계몽주의, 자유주의 사상가로서 사회계약론 에서 민주주의 관념을 확립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인간불 평등기원론 에서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발생에 대해 사회문화적 차원의 설명을 행하고 있 기 때문이다. 또한 학문예술론 에서 그는 문화( 문명) 의 형성과 특징에 대한 비판적 성찰 을 보여주고 있으며, 민족주의 논의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는 헤르더(Johan Gott von Herder) 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사상가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은, 비록 이민 역이민 현상에 대한 완전한 설명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의 사상 속에서 유의미한 설 명들을 발견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타당하게 해준다. 또한 사회, 민족, 문화가 지칭하는 대상들에 대한 오늘날의 이해가 17세기 이래 지속적으 로 발전되어 온 근대적 산물이라는 것이 부인되지 않는다면, 루소의 사상에 천착하여 행해 진 개념정의들과 관계들에 대한 설명은 현대의 학자들 간의 논쟁에 걸려있는 자물쇠를 풀 수 있는 열쇠를 발견하는 작업이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는 것도 타당하다고도 할 수 있다. Ⅱ. 사회, 민족 그리고 이민 1. 개념정의 : 사회와 민족 1) 사회(société) 사회를 정의하고자 할 때 세 가지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 첫째는 공간적 접근 이다. 사회라는 단어를 공간의 의미로 사용한다면 역시 공간적 의미의 국가 개념에 의해 제 한된다. 사회는 군락, 촌락, 도시, 지역 등을 지칭하게 되며 최종적으로 하나의 국가 안에 존재하는 각 단위들을 총체적으로 지칭하게 된다. 이때의 사회를 국가와 구별하는 것은 중 요하지 않게 된다. 둘째는 시간적 접근이다. 이는 역사적 접근과도 같으며, 공간적 접근에서 의 사회를 바탕으로 그 사회의 물질적 발달과 구성원들에 의해서 형성되는 일정한 특징들을 총칭하게 된다. 이러한 특징들은 세 번째의 구성적 접근과 관계되는데, 구성적 접근은 일정 한 공간이나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예를 들어, 제도와 법, 생활양식 과 예술품 등과 같은 결과나 현상들, 그리고 이 양자의 상호작용의 과정과 그 결과를 모두 종합하여 구성해내고자 하는 것이다. 루소에게 있어 사회는 우선적으로 단순한 인간들의 모임을 뜻하는 군집(assemblé) 의 의 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촌락과 도시, 국가 내에서 얼마든지 발견될 수 있는 단순 2) 팀 에덴서. 대중문화와 일상 그리고 민족 정체성, 참조. 3) 자주 인용되는 루소의 저작을 인용하기 위하여 머리글자로 약칭하여 표기할 것이다. 학문예술론 은 FD 로, 인간불평등기원론 은 SD 로, 사회계약론은 SC 로, 에밀 은 EM, 극장에 관하여 달랑베르에게 보내 는 편지 는 LDT, 언어기원론 은 EOL 로 표기한다. 불어본은 Pléiade 판본 P1-5 로 표기한다

139 하고도 자연스런 사람들의 모임 또는 회합을 뜻한다. 4) 동일한 의미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LDT, 99). 5) 루소가 사회를 클럽이나 서클 등과 루소는 군집, 촌락(ville), 도시(cité), 국가(Cité), 세계(cosmopolite) 라는6) 용어를 사용하 고 있는데, 군집은 일단의 사람들의 모임에 해당하며, 그런 사람들이 일정한 공간에서 일정 한 시간동안 삶을 영위할 때 촌락 그리고 촌락이 보다 큰 단위로 확장될 때 도시라고 지칭 한다. 그러나 국가는 공간적 의미보다는 그러한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정치경제 등 모든 분 야에서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공동체를 지칭하는데 사용한다. 7) 루소가 사회를 국가를 지 칭하는 의미로 사용할 때는 수많은 인간 군집들의 결합체 혹은, 사회계약론 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 자체가 하나의 단일한 인간 결합체로 간주되면서 공간적 의미가 탈색되기 때 문이다. 그리고 인간불평등기원론 에서 자연상태가 사회상태로 전환되는 것은 사회계약 에 의해서 도덕과 관습이 법으로 정립되고 그 법에 따라 각종 제도가 생겨남으로써 가능하 기 때문에, 사회는 자연상태와의 시간적 의미가 단절되면서 법과 제도라는 구성 요소에 의 해 새로운 시간 위에 존재하게 된다. 8) 2) 민족(nation) 민족 개념은 우선적으로 외형적으로 가족들 간의 결합체 혹은 가족 군집으로 간주될 수 있다. 9) 자연 상태에서 홀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인간은 자신의 자연적 필요의 충족을 위 해 타인을 필요로 하게 되고, 집의 발명과 함께 가족을 형성하게 된다. 가족의 형성은 자연 적 필요의 양을 증가시키게 됨으로써, 증가된 양만큼 혹은 그 이상의 자연적 필요의 대상들 을 확보할 것이 요구되면서 타인의 협력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래서 다른 가족들과 근접한 거리에 모여 살게 되었고, 가족의 수와 인구의 규모가 점점 더 커지게 되면서, 그 지역에서 하나의 민족(Nation particuliére)(p3, 169) 을 이루게 된다(SD, 173). 10) 이처럼 민족은 가 족을 단위로 한 결합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시간의 공유를 고려할 때, 필연적으로 인종적 단일성과 혈연, 지연 등의 특징을 내포하게 된다. 11) 4) 덴트도 루소에게 있어서 사회는 단지 인간 결합체 (human association) 를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N. J. H. Dent, A Rousseau Dictionary(Cambridge : Blackwell Publishers, 1992), ) 오수웅 루소의 시민사회와 인권실현 민주주의와 인권, 제 8권 3 호, 172 참조. 6) cosmopolite 는 시민들이 살고 있는 세계 또는 세계시민 (cosmopolite ou le citoyen du monde, P3.1919) 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공간적 의미뿐만 아니라 구성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cosmopolite 라는 표현은 루소 의 저작 중에서 약 2 차례만 언급되고 있다. 7) 루소는 학문예술론 과 인간불평등기원론 에서는 도시를 뜻하는 용어로 cité 만을 사용하고 있으나, 에 밀 에서는 ville와 cité 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앨런 블룸(Allan Bloom) 은 Emile 에서 ville 와 cité를 모두 city 로 영역하고 있지만, 사회상태의 단계적 구분이라는 점에서 구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ville는 다 양한 활동적인 일들을 하는 거주민들이 사는, 비교적 중요한 밀집지역 (agglomeration relativement importante et dont les habitants ont des activités professionnelles diversifiées, notamm.)이라는 의미와 촌락에 사는 사람들의 집합(ensemble des habitants d`une ville)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반면, cité는 ville 의 이와 같은 뜻뿐만 아니라, 촌락과 그 영역에서의 고대와 중세시대의 정치적 통일체와 경제적 구성 (Danns l`antiquité et au Moyen Âge, unité politique et économique constituée par une ville et son territoire)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루소가 대문자 Cité 로 쓸 때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다. Le Petit Larousse : Illustré (Paris : Larousse, 1999), ville- p.1067, cité-p.221, 참조. 8) 만약 구성적 접근에 따라 사회를 정의한다면, 루소에게 있어서 사회와 민족은 구별되기 어렵다. 그러나 공간- 시간적 접근에 한정할 경우에는 사회와 민족은 구별될 수 있다. 9) 루소는 최초의 사회는 가족이라고 말한다(SC, 47). 10) 개인이 민족을 이루게 되는 본성적 차원의 원인에 해당하는 데, 이는 다음 2절에서 보다 심도 있게 논의된 다. 11) Nation 의 어원이 태어나다 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 동사 nasci, 또는 출생이나 출생지에 의한 공속감

140 매개적으로 민족은 언어, 생활양식, 습관, 도덕, 성격 등의 공유에 의해서 하나의 결합을 유지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루소에 따르면, 가족 결합체의 외형적 발달과 함께 자신 들의 욕망( 자연적 필요를 충족하려는 마음) 을 타인에게 전달해야할 필요에 의해서 언어를 필요로 하게 되고, 언어는 점차 단순한 외침에서 분절된 음성과 문법을 가진 언어로 발달한 다. 일정한 지역적 한계는 그 안에 군집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종의 방언을 형 성하게 하였고 이는 결과적으로 다양한 언어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지역적 한계와 언어 의 공유는 욕망의 교환과 행동방식에 있어서 그것을 공유한 사람들 사이에 유사한 생활양식 과 통용되는 행동습관을 생겨나게 하였고, 자연스럽게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행동규칙들 즉 도덕과 성격(moeurs et character) 들을12) 형성하게 하였다(SD, ). 13) 따라서 언어, 생활양식, 습관, 도덕, 성격 등의 공유는 개별적인 구성원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결합시키는 매개로서 기능하게 된다. 는 민족은 내면적으로 동족의식과 동료애를 바탕으로 하는 애국심에 의해서 인식되고 강화되 의식공동체 로도 간주할 수 있다. 14) 왜냐하면 루소는, 자연 상태에서 홀로 존재하던 사 람들이 점차 모여 살게 되고 하나의 민족으로 발달함에 따라 인간 정신 즉 감성과 이성 또 한 점차 발달하게 되었고, 사람들 사이에 지속적인 관념과 감정의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최 초로 군집을 이루게 된 시기에 형성한 타인이 자신과 같은 존재라는 동족의식과 동료애가 점점 더 강화되게 됨으로써 민족의 구성원들 간의 상호의존성을 심화시키게 된다(SD, 172; EOL, 248) 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호적으로 심화된 동족의식과 동료애는 애국심의 토 대가 되는데, 애국심(love of country or patriotism) 은 그가 속한 땅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같은 조국(fatherland) 에 살고 있는 시민에 대한 사랑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15) 김용민에 따르면, 루소에 있어서 애국심은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국가(country) 는 terra patria (land of fathers) 를 의미하는데, 이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고, 교육받고 생 계를 유지하며 자손을 낳는 그러한 삶의 터전이며, 이에 대한 애착은 자연적 애국심의 한 형태가 된다. 그리고 자연적 애국심은 삶의 터전에 대한 신성화 과정을 통해 종교적 애국심 ( 신앙공동체) 과 연계되며, 자신의 조국과 공화국, 공동의 자유, 공동선이 동일시될 때 정치 적 애국심( 정치공동체) 이 형성되게 된다. 단일민족과 단일한 종교를 가진 정치체의 구성원 들에게는 이 세 가지 애국심이 일치할 것이지만, 다민족이라거나 경쟁하는 종교가 존재한다 거나 정치체의 정당성 결여 혹은 참여배제 등등의 이유에서 정치체에 대한 소속의식과 소속 감이 없다면 세 가지 애국심은 일치하지 않을 것이며 극단적으로 어떠한 애국심도 존재하지 않을 경우도 있을 수 있다. (belonging together by birth or birthplace) 이라는 의미의 명사 nation 에서 비롯되었듯이, 민족은 원래 혈연 이나 지연 공동체를 의미한다. 나중에 언어, 역사, 전통, 문화적 동질성이 추가됨에 따라 사회, 문화, 심리적 개념으로 발전하였다. 이명남. 현대 정치 이데올로기 ( 광주: 전남대학교 출판부, 2004), 279 참조. 12) 이런 점에서 비록 영국인은 어떻고, 프랑스인은 어떠하다와 같은 민족성이라는 진술들이 경험적 증거의 불충 분으로 인해 그 타당성이 부인된다하더라도, 여전히 일정한 지역의 일정한 민족에 속한 사람들은 어떤 일정한 성격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유지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3) 예절, 습관, 관행, 관습의 도덕들이 발생하고 법으로 수용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오수웅 루소의 도덕 과 법: 개념과 관계 정치사상연구 제 15집 2 호 참조. 14) 이런 의미에서 앤더슨 (Benedict Anderson) 은 공동체 구성원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어떤 신화나 상징 들에 점차 일체감을 느껴가는 행위들에 의해 민족이 형성된다는 견지에서 민족을 가리켜 이미지화된 공동체 (imagined community) 라 한다. 이명남. 현대 정치이데올로기, 참조. 이외에도 귀속의식, 공속 감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는 민족을 설명함에 있어서 중요하게 취급된다. 15) 김용민. 루소의 정치철학 ( 고양 : 인간사랑, 2004), 참조

141 2. 사회와 민족의 발생원인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민족을 이루게 되는 것은 모든 인간이 그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 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루소는 최초의 자연 상태의 인간을 독립된 채로 삶을 살지만 쉽게 행복에 도달하는 존재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자연인은 음식과 이성(female) 그리고 휴식이 그가 아는 유일한 좋음이며, 고통과 배고픔이 그가 두려워하는 유일한 악(SD, 150) 이기 때 문에 그의 욕망이 이러한 자연적 필요를 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인은 자연으로부 터 부여받은 능력으로 16) 음식, 휴식 그리고 이성(female) 에 대한 욕망을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었고, 17) 욕망이 충족되면, 그의 영혼은 자신의 현존감(sentiment de son existence) 을 느끼며 행복한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인간이 사회, 민족을 이루고 살게 되면, 인간은 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삶을 구성 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능력 중에서 가장 빠르게 발달하는 상상력이 발현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욕망이 증가하게 되고 자연적 필요의 정도를 넘어서게 된다. 자연적 필요의 정도를 넘어서게 되면 그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 또한 넘어서게 됨으로써 인간은 점차 보다 많 은 불행에 노출되게 된다. 모든 고통의 감정은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과 분리되지 않는다. 모든 즐거움의 관념 은 그것을 향유하려는 욕망과 분리되지 않는다. 모든 욕망은 결핍을 나타내고, 감각된 모든 결핍들은 고통스럽다. 우리의 불행은 그래서 우리의 욕망과 능력사이의 불균형에 서 생겨난다(EM, 80). 일단 독립된 자연인이 아니라 인간관계 속의 인간이 되고 나면, 그 관계 속에서 욕망이 증가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최초의 자연 상태에서 일단 떠나온 뒤에는 결코 이 순수하 고 평등한(innocence and equality) 시기로 돌아갈 수는 없(RJJJ, 3; 213) 으며, 인간이 일단 가족을 이루게 되면 가족의 행복을 위해 충족시켜야 할 자연적 필요의 양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는 사회 상태에서는 자연적 필요외에도 사회적 필요에 대한 욕망의 증가와 함께 인간관계로부터 발생하는, 필요에 기초하지 않는 사회적 욕망도 발생하고 증가할 것이기 때문에, 충족될 것이 요구되는 필요와 욕망의 양은 점점 더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관계 속에서 욕망의 증가는 자신의 현존감을 보다 많이 느낄 수 있는 기회의 증가를 의미하므로 부정적으로만 간주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보다 많은 불행에 노출시키는 욕망의 증가를 긍정적으로만 간주할 수도 없다. 그래서 결국 욕망의 충족을 통해 즐거움을 얻고 자 신의 현존감을 느낌으로써 행복에 도달하려는 모든 행위는 욕망의 크기와 종류 그리고 그것 을 충족시키는 능력들과의 비례균형의 문제로 귀착되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 루소는 사회인 이 참된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 안에 욕망을 묶어두어야 한다고 제안한 16) 자연은 처음에 인간을 가장 좋게 구성하였다. 자연은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자기보존에 필요한 욕망과 그 욕 망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능력들을 주었다. 자연은 다른 능력들을 필요할 때 발전될 수 있도록 인간 영혼의 깊은 곳에 저장해 두었다(EM, 80). 17) 플라톤에게 있어서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 또는 욕구는, 식욕(food), 성욕(sex), 음욕(drink) 으로 간주되고 있 지만, 루소는 음식, 휴식, 성욕을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들로 간주하고 있다. 음식과 휴식이 자기보전을 위한 1 차적인 필요라고 한다면, 성욕은 그것이 자기 자신의 현재의 개체적 자기보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아 니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1차적인 필요가 충족되지 않고서는 보장될 수 없다는 측면에서 2차적인 필요라고 할 수 있다. 김용민, 루소의 정치철학,

142 다. 18) 그러나 사회인은 오히려 반대로 욕망의 증가분에 대한 능력의 부족분을 메우는 방법, 예를 들어, 야금술, 농업기술, 공동작업, 분업 등등의 방법들을 발전시켰고, 그 결과 인간은 상호의존성이 심화된 채,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 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이나 가족이 자신이 속한 사회와 민족을 떠나 새로운 사회와 민족 속에 정착하려는 것은, 보다 많은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거나 혹은 보다 적은 능력 으로도 쉽게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을 찾아 그 곳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루소에 따르면, 이주( 가족) 자가 능력과 욕망의 비례균형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능력과 욕망의 비례균형의 문제는 세 가지 접근에서의 사회와 세 가지 측면에서의 민족 모두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3. ( 역) 이민과의 관계 이민을 뜻하는 migration, immigration 을 엄밀히 말해 이민( 移 民 ) 으로 번역하는 것은 문 제가 있을 수 있다. migration은 라틴어 동사 migro의 명사형 migrātĭo 를 어원으로 가지며, 사람( 또는 종족) 이나 동물( 무리) 이 하나의 삶의 장소( 서식지) 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거나 운반하는 것을 의미한다. immigration은 라틴어 동사 immigro에서 파생된 명사로 어떤 장 소로 이동해 들어가다의 의미를 가지며, 제자리를 찾아 들어가다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 따라서 민족을 옮기거나 다른 민족으로 이동해간다는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는 이주( 移 住 ) 라고 번역해야 바람직할 것이다. 아마도 이민으로 번역하는 것은 근대국가를 형성하는 과정 에서 국가가 단일민족으로 구성된다는 전제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다른 국가로 이주하는 것 을 다른 민족이 된다 는 것과 동일하게 간주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족의 발생에 관한 루소의 설명을 따른다면, 일정한 지역에 형성된 민족은 우선적으로 동일한 인종과 혈 연, 지연 등에 의한 단일민족에 해당한다. 일단 한 지역에서 민족의 일원으로 태어나게 되 면, 비록 극소수의 사람들이 다른 민족들의 사회로 이주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회의 고유한 민족으로 습합되는 것은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게 된다. 습합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그 사회의 고유한 민족과는 다른 민족으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단일민족으로 이 루어진 국가가 다민족국가가 되는 것은 오히려, 미국, 호주, 캐나다 등의 경우처럼 집단적인 이주 현상 때문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볼 때, 이민으로 번역하는 것은 바람 직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집단적이건 개별적이건 이민은 일차적으로 다른 공간으로의 이주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 다. 이차적으로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인간적 결합을 해체하고 이주한 곳의 사회에 들어간 다는 것을 의미하며 거기서 새로운 인간적 결합체를 형성할 것을 요구받게 된다. 그러나 공 간적 차원의 이주가 반드시 시간적이고 구성적 차원의 사회에 융해된다는 것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다른 촌락과 다른 도시로 이주하는 경우라면 민족 개념에 포함되어 있는 특징 들( 이하 민족적 특징들) 에 의해 발생하는 문제들은 가볍거나 아예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 다. 그러나 다른 국가로 이주하는 경우에는 다르다. 이주자가 자기가 속해 있던 이전 사회 의 민족적 특징 즉 인종, 혈연, 지연, 언어, 생활양식과 습관, 행동규칙과 성격 그리고 동족 18) 오수웅 인간 삶의 도덕적 좋음과 정치원리 정치사상연구 제 16집 1 호, 참조. 19) Cassell`s New Latin Dictionary (London : Cassell & Company LTD., 1959)

143 의식과 동료애를 유지하는 한 그의 이주는 단순한 삶의 공간의 변화에 불과하게 되며, 이주 한 국가의 민족적 특징들과의 갈등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또한 비록 이주한 국가가 다민족국가이기 때문에 행동규칙( 도덕과 법) 을 제외한 민족적 특징들을 유지하는 것이 관용과 승인에 의해서 별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더라도, 해당 국가의 시민에게 요구되는 시민의식과 동료애( 동족의식과 동료애의 정치적 확장) 를 형성하 지 않는다면 자의건 타의건 간에 그 국가의 인간 결합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승인되기 어렵 게 된다. 왜냐하면 루소에 따르면, 단일민족 국가이건 다민족 국가이건 간에, 이주국가에서 시민으로서 또 시민으로 인정받고 살기 위해서는, 시민적 덕으로서 애국심을 형성하고 유지 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간적, 구성적 측면에서 국가수준의 사회 개념과 매개적, 내면적 측면에서의 민족 개념에 포섭되지 못한다면, 공간적 측면에서의 사회와 외 형적 측면에서의 민족 수준에서, 재이민 또는 역이민이 발생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는 것이다. 역으로 국가수준의 사회개념과 내면적 측면 즉 이주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애국심을 지니고 있다면, 시공간적 측면에서의 사회나 외형적이고 매개적인 측면에서의 민족에 포섭 되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20) Ⅲ. 민족 정체성과 이민 1. 개념정의: 문화와 정체성 1) 문화(culture) 문화의 개념을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오늘날 그 의미를 다중적으로 사용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자들 사이에서도 합의된 정의는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류 학자 에드워드 타일러(Edward Tylor) 는 문화를 지식, 신념, 예술, 도덕, 법, 관습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람들이 요구하는 어떤 능력과 습관들을 포함하는 복합 전체 라고 정 의한다. 21) 그리고 케이트 크리언(Kate Crehan) 은 문화는 세 가지 의미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일반적인 지적 영적 미적 발달과정, 둘째, 특정집단 또는 인류 전체의 생활방식 그리고 19세기 후반과 20 세기 초에 추가된 의미로서, 셋째, 지적인 그리고 특히 예술적인 활동의 산물 을 의미한다고 정리한다. 22) 이 외에도 인간 영혼에 있는 능력들의 조화 즉 미 학적 경험을 통한 완전성의 추구 라는 칸트적인 문화개념을 계승하거나, 세상의 존재들과의 교류 속에서 형성되는 상징체계 라는 측면을 강조하는 학자들도 있다. 특히 사회학자 젠크 스에 따르면, 인류학, 사학 등에서 문화는 삶의 방식 을, 사회학, 정치학 등에서는 행동양 식, 언어학, 기호학 등에서는 상징체계, 그리고 예체능 분야에서는 정신 및 예술적 활동 과 결과 를 의미한다. 23) 그러나 아직까지 이러한 구체적인 문화 개념은 소수의 학자들 사이 에서 이해되고 논의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을 뿐 일반적으로 이 모든 개념들이 혼용된 채 20) 루소는 에밀 에서 에밀에게 자신이 살 국가를 선택하게 하고, 좋은 국가, 좋은 정체에 대해서 논하고 있 기 때문이다. 즉 어느 국가를 선택하든 그 국가의 시민의식과 동료애를 바탕으로 애국심을 가진다면 여타의 문제는 단지 시간이 걸릴 뿐 해결될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에밀 5 권 참조. 21) Marc Manganaro, Culture 1992 (Princeton :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2), 1-2 참조. 22) 케이트 크리언 저, 김우영 역, 그람시 문화 인류학 ( 서울 : 도서출판 길, 2002), 참조. 23) Chris Jenks, 문화란 무엇인가, 참조

144 사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오늘날의 문화개념은 루소의 개념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문화라는 용어는 colere 24) 에서 파생된 라틴어 Cultura 를 그 어원으로 가지며, 원래 경작(husbandry), 자연적 성장을 돌보기(the tending of natural growth) 라는 뜻으로 원예, 목축 등 농업과 관련되어 사용되었다. 이러한 의미를 키케로(Cicero, B.C ) 가 투스쿨룸에서의 대화 (Tusculan Disputations) 에서 철학적으로 영혼의 배양(cultivation of the soul) 을 말하기 위해서 Cultura animi 를 사용하면서, 인간 영혼의 자연적 잠재력을 얻기 위한 특별한 교육 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25) 영혼교육 및 그 결과 를 의미하는 데에 사용하였다. 26) 루소가 살았던 당시의 학자들은 문화 개념을 이러한 루소는 학문예술론, 인간불평등기원론, 사회계약론, 에밀 에서, culture라 는 용어를 약 22 회 사용하고 있는데, 토지의 경작이나 식물의 재배라는 culture의 기원적 의미로 약 5회 27) 사용하고, 나머지 17회는 영혼의 어떤 능력의 배양이나 그 결과 된 상태 를 의미하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특히 17회의 사용 중 13회가 그의 교육론이라 할 수 있는 에밀 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의 문화개념은 영혼 교육을 의미하는 키케로의 의미에 포섭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학문예술론 과 에밀 에서 보여주듯이, 루소가 영혼에 덕( 능력) 을 형성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에게 있어 문화는 영혼 교육 및 그 결과 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28) 오늘날의 학자들처럼, 문화를 생활양식, 행동양식, 상징체계, 정신 및 예술적 활동과 그 결과 등으로 간주한다면, 이 중 그 어떤 개념으로 간주하건 간에, 문화는 매개적 측면에서 의 민족개념과 문화는 구별되지 않을 수 있다. 루소의 문화개념에 비추어볼 때, 이와 같은 문화개념은 영혼이 작동한 결과가 외재화된 것 을 지칭하는 것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으며, 영혼교육 및 그 결과라는 문화개념이 상징하듯, 영혼에 교육되고 결과 된 무엇인가가 작동 하고 외재화되는 과정적 측면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문화는 그것이 무엇 24) 이 외에도, 라틴어 colere 는 거주하다 (inhabit). 배양, 경작하다 (cultivate). 보호하다 (protect). 존경심을 가진 명예(honor with worship) 라는 의미의 범주를 가지고 있다. inhabit 은 라틴어 colonus 를 거쳐 to colony 가 되었고, honor with worship 은 라틴어 cultus 를 거쳐 to cult 가 되었으며, cultivate, protect 의 의미가 키케 로의 Cultura animi 의 개념으로 발달하게 된다. Raymond Williams, Keywords : A vocabulary of culture and society (London : Flamingo, 1983), 87 참조. 25) Richard L. Velkley, Being after Rousseau (Chicago :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2), 15 참 조. 26) 무어(Thomas More) 는 그들 정신의 문화와 이익(the culture and profit of their minds) 이라 말했고, 베이 컨(Francis Bacon) 은 정신의 문화와 연마(the culture and manurance of minds) 라 했으며, 홉스(Thomas Hobbes) 는 정신의 문화(a culture of the minds) 라고 사용한 바 있다. Raymond Williams, Keywords : A vocabulary of culture and society, 87 참조. 27) 몇 가지 예를 들면, 식물은 재배(cultivation : culture P4.246) 에 의해서 형성되고, 인간은 교육에 의해서 형성된다 (EM, 38). " 일단 사람들이 부지런해진 후, 밀을 타작하고 가루를 내는 방법을 알고, 대량의 재배 (large scale cultivation : la culture en grande P3.173) 를 위해 필요한 도구들을 가지기 훨씬 이전에 사람 들은, 아마도 자신의 오두막 주변에 날카로운 돌이나 뾰족한 막대를 가지고 소량의 야채나 뿌리를 재배하는 것(cultivating : cultiver P.172) 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SD, 178). 정치체 (a body politic) 는 두 가지 방식 즉 그 영역의 정도에 의해서 그리고 그 국민의 수에 의해서 측정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국가가 그 참된 규 모가 주어지게 된다면, 거기에는 이 두 가지 측정사이에 적정한 비율이 있다. 이 비율은 땅에 의해서 식량을 얻을 수 있는 만큼의 거주민들과 그 거주민들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땅으로 구성된다. 주어진 국민의 최대 힘은 이 비율에서 찾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지나치게 많은 땅이 있다면 그 방어가 부담이 될 것이 고, 그 경작(cultivation : culture P3.389) 은 부적절할 것이며, 그 산물은 넘쳐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방어 적인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SC, 73). 28) 오수웅 문화와 문명개념 비교연구 : 루소의 사상을 중심으로 동서연구 제 19권 2 호 참조

145 으로 정의되던 간에 반드시 된다는 것이다. 교육 의 의미가 포함되어야만 과정적 측면을 고려할 수 있게 2) 정체성 정체성으로 번역되는 영어의 identity는 같음 혹은 동일성을 의미하는 라틴어 identitas를 어원으로 가지며, 이는 다시 the same를 뜻하는 지시대명사 라틴어 idem에서 파생된 것이 다. 그러나 이 라틴어에 상응하는 그리스어 tautotes 는 자신 또는 자체를 의미하는 말(self) 과 같다는 뜻을 가진 말이 하나로 표현된 autos 에서 유래한다. 말하자면 원래 identity는 정 체성으로 번역될 수 있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시간과 공간, 정신과 육체 그리 고 내면과 외양의 조건들의 변화 속에서도 하나의 존재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변하지 않는 그 무엇 즉 존재의 실체(substance) 라는 의미가 부여된 것이다. 29) 이러한 실체 에 대한 탐구는 필연적으로 자신에 대한 인식 즉 자의식에 탐구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으며, 시공간적이고 내외형적인 요소들 중에서 그러한 자의식을 동일하게 유지하게 하는 요소들은 무엇이며, 어떻게, 얼마만큼의 중요성을 가지는가 등에 대한 탐구로 나아가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루소에게 있어서 정체성이란 용어는 발견되지 않지만 그 재료가 되는 관념들은 심층적으 로 논의되고 있다. 관련된 용어로 자의식(soi-même), 자기애(amour de soi), 자기편애 (amour propre) 를 들어볼 수 있다. 30) 최초의 자의식은 동물과의 비교를 통해서 자신이 동 물에 비해 우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서 자신의 종에 대한 자부심(d`orgueil) 을 자각 하게 되고 자신의 종을 제일의 개체(individu) 로서 인식하는 것에 해당한다(SD, ). 31) 이 자의식은 동족의식과 동료애의 형성에 토대로 작용한다. 두 번째 자의식은 동종의 사람들과 함께 모여 살게 되고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 대 한 비교가 이루어지면서, 능력과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을 가지게 되면서 타인으로부터 자신 이 주목받기를 원하게 되고 자신의 우월함을 인식하게 되면서 형성된다. 이렇게 형성된 자 의식은 타인에게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맹아적 자기편애(amour propre) 라 할 수 있다. 루소는 자의식이 자기편애로 변하게 된 것을 불평등과 악덕으로 첫걸음을 내딛은 것으로 간주한다(SD, 175). 사회의 규모가 증대되고 의존성이 심화되며, 관념과 감정의 교류가 계 속됨에 따라, 자신에 대한 타인의 의견들( 학문과 예술 등) 에 종속되는 만큼 자기편애는 점 점 더 강화되게 된다. 32) 자기편애가 강화되면 될수록 자아는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게 되 고 타인에 비춰진 자신의 허상들을 자아로 간주하는 - 그래서 외양과 내면이 일치하지 않 는 다중적인 자아를 형성하는 - 헛된 자의식을 형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헛된 자의식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거나 오인하게 만들며, 타인에 대한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는 일련 의 행동습관과 행동규칙을 만들게 되고 급기야 그러한 우월성을 법과 제도에 의해 보장받고 자 노력하게 된다. 나아가 동족의식과 동료애의 생성을 방해하여 애국심이 형성되고 유지되 29) 양승태 국가정체성 문제와 정치학 연구: 무엇을, 어떻게 한국정치학회보 제40집 5 호 참 조. 30) 그러나 루소 후세의 사상가들에게서 발견되는 용어는 authenticity 로 이는 자기진실성 혹은 자기충실성으로 이해되고 있다. 31) C`est ainsi que le premier regard qu`il porta sur lui-même, y produisit le premier mouvement d`orgueil(p3, 166) 32) Richard L. Velkley, Being after Rousseau, 14, 참조

146 는 것을 저해하게 된다. 왜냐하면, 외양과 내면의 불일치는, 스타로뱅스키(Jean Starobinski) 의 이해에 따르면, 단 순히 얼굴표정 과 그 마음의 성향 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넘어서, 모든 악과 인간의 비 애가 비롯되는 공간이 되는 외양과 그 실재의 불일치를 의미한다. 33) 외양과 실재의 불일치 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타인의 반응을 자신이, 그리고 타인의 행동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타인이 예측할 수 없게 만들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 상호간에는 알 수 없음 의 불확실성이 형성될 것이며, 나아가 자기 보전의 안전과 함께,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결속과 유지 그리 고 그 안전을 담보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루소가 에밀 에서 제안하는 바와 같이, 외양과 실재의 불일치는 문화적 측면에서 극 복될 수 있다. 바로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문화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함으로 해서 가 능하게 된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F. Baumeister) 는 자신의 쾌락을 타인과 공 유한다는 점에서 또는 타인의 인정을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관찰자 또는 구경꾼의 시각에서 판단하게 되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본성적으로 문화적 동물 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고, 자신들이 유사한 존재들의 네트워크의 부분임을 인식할 수 있으며, 자신들의 사회적 집단이 개인들의 활동을 평가하는 신념과 가치의 구분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34) 다시 말해 자의식은 문화를 통해서 생성, 변화, 소멸의 과정을 거칠 수 있으며, 이것은 인간의 본성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마치 루소가 인간이 학습능력을 통해 완전해져가는 능력, 이른바 완전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전 제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바로 이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타존재 와의 관계 속에서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과정을 거치게 되며 그 결과 점점 더 완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루소가 문화를 교육의 의미로 이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학자들의 문화개념에 교육의 의미를 포함시킨다면, 정체성의 실체로서 자의식은 생활양식, 행동양식, 상징체계 그리고 정신 및 예술적 활동과 그 결과물들과의 교류를 통해 서 지속적으로 생성되고 변화되며 소멸하는 과정 중에 있다는 것이 된다. 예를 들어, 전통 적인 휴일에 일정한 행사를 반복하거나 애국가 제창이나 국가간 스포츠 경기 등등과 같은 문화적 현상들과의 교류 속에서 자신을 민족이나 국가에 동일화하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일정한 민족이나 국가정체성을 형성하는 자의식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2. 이민과 민족 정체성의 관계 민족과 정체성의 합성어로서 민족정체성의 실체는 따라서 자신을 특정한 민족과 동일화하 는 자의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의 의미에서 문화를 바라볼 때 문화는 자의 식, 민족의식과 민족애 그리고 애국심을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자기편애는 민 족과의 동일화를 저해함으로써 역으로 이러한 민족의식과 민족애 그리고 애국심의 형성을 방해한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로의 결합과 유지, 그리고 그 안에서 안전을 찾는 데로 나아 가지 못하게 하고 자신에게 맞는 다른 공동체로의 이주를 고려하게끔 유도할 것이다. 자의식은 동족의식과 동료애, 민족의식과 민족애로 발달하고 애국심으로 승화되게 된다. 33) Jean Starobinski, Jean-Jacques Rousseau : Transparency and Obstruction, pp.3-21, 참조. 34) Roy F. Baumeister, Cultural Animal : Human Nature, Meaning, and Social Life (New York :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참조

147 그런데 만약, 전술한 바와 같이, 정치적 애국심이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개 념이라면 자연적 애국심은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개념일 것이다. 국가와 단 일민족 그리고 사회가 일치한다면 정치적 애국심과 자연적 애국심 그리고 국가 정체성과 민 족 정체성을 구분하는 것은 실익이 없을 것이다. 반면에 일치하지 않을 경우 이들 각각의 개념들은 구별될 필요가 있다. 자의식 속에 국가와 민족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자의식은 국가 또는 민족의 어느 한쪽에 자신을 동일화할 것이며 이중적인 자아를 형성하게 될 것이 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자의식은 자기편애로 전환되는 정도에 비례하여 자신의 행복 과 안전에 대한 불확실성을 증가시키게 되며, 자신의 행복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민 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다민족 국가의 경우에 있어서 민족 정체성은 이민과의 관계성이 비교적 낮다고 할 수 있 다. 국가 정체성을 유지함으로 해서 민족적 특징들에 의한 갈등의 문제가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는 문화를 향유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속한 국 가에 대한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문화를 경험하고 학습하는 것에 의해 가능하게 된다. 다시 말해 다른 민족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속한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유지하고 있다면, 문화 속에서 그것을 재생산하고 유지하는 자의식은 자신과 국가를 동일시 함으로써 다른 국가로의 이주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국가에 대한 애국심은 예를 들어, 민족적 갈등의 문제를 국가가 정당한 방법과 절차에 따라 해결해주는 경험을 반복할 경우, 자의식은 자신의 행복과 안전을 담보해주는 국가에 자신을 동일화시킬 가능성이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주한 국가가 단일민족 국가라면 민족 정체성은 국가 정체성과 일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런 국가에 이주한 사람들이 자신이 이전에 속했던 사회의 민족 정체성을 유 지할 경우, 민족적 특징들에 의한 갈등 문제들이 자신의 행복과 안전을 위하는 방식으로 해 결되지 못하게 됨으로써 자신과 이주한 국가와의 동일화에 실패하게 되어, 재이민이나 역이 민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Ⅳ. 맺음말 : 또 다른 문제제기 이민 역이민의 인간 본성적 차원의 원인은 이민자 자신의 행복과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며, 자신이 속한 사회, 민족, 국가와의 동일화의 실패 즉 정체성의 결여로 인하여 이민 을 선택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정체성의 결여는 자의식이 자기편애로 심화되는 정도에 비례 하여 심화되지만 이는 문화적 재생산을 통하여 극복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다민족국가이건 단일민족 국가이건 국가정체성은 국민의 행복과 안전을 담보해주는 문화 의 생산을 통해서 사람들의 자의식 속에 형성될 것이며, 이러한 국가정체성은 다시 정당한 정치체제, 공공선, 사회정의 등에 대한 논의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민족 이건 단일민족이건 그 사회에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동족의식과 동료애로부터 비롯 되는 것이며, 따라서 현재의 민주주의 정치체제 하에서, 국가는 시민의 대리자로서 간주되 기 때문에, 국가의 부분으로서 시민들은 동족의식과 동료애를 저해하지 않는, 공동의 행복 과 안전을 추구하는 정치체와 운영을 하도록 해야 할 의무가 또한 부여된다. 이는 다시 시 민의 덕과 그것을 함양하는 방법에 관한 논의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학자 특히 정치학자들이 이런 문제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해오고 있는 것은

148 사실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문화 분야 특히 교육적 측면에 있어서의 해결을 도모하는 연구 는 전무하다. 오늘날의 교육이 자의식을 자기편애로 심화시키고 있는지 아닌지가 장기적으 로 어떻게 민족과 국가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로 드러나게 될 때 아마도 민족과 국가는, 극단적으로 생각할 때, 심각한 디아스포라의 상태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김용민 루소의 정치철학. 고양 : 인간사랑. 양승태 국가정체성 문제와 정치학 연구: 무엇을, 어떻게 한국정치학회보. 제 40집 5 호. 에덴서, 팀. 박성일 옮김 대중문화와 일상 그리고 민족 정체성. 서울 : 도서출판 이후. 오수웅 루소의 도덕과 법 : 개념과 관계 정치사상연구. 제 15집 2 호 인간 삶의 도덕적 좋음과 정치원리 : 루소의 정치미학 정치사상연구. 제 16집 1 호 루소의 시민사회와 인권실현 민주주의와 인권. 8권 3 호 문화와 문명개념 비교연구 : 루소의 사상을 중심으로 동서연구 제 19 권 2호 이명남 현대 정치 이데올로기. 광주: 전남대학교 출판부. 크리언, 케이트. 김우영 역 그람시 문화 인류학. 서울 : 도서출판 길. Jenks, Chris. 김윤용 역 문화란 무엇인가 서울 : 현대미학사. Baumeister, Roy F Cultural Animal : Human Nature, Meaning, and Social Life. New York : Oxford University Press. Brooks, Thom. ed Rousseau and Law. Hants : Ashgate Publishing Limited. Cooper, Laurence D Rousseau, Nature and the Problem of the Good Life. University Park: The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Crocker, Lester G Nature and Culture : Ethical Thought in the French Enlightenment. Baltimore : The Johns Hopkins Press. Dent, N. J. H A Rousseau Dictionary. Cambridge : Blackwell Publishers. Manganaro, Marc Culture Princeton : Princeton University press. Rousseau, Jean Jacques Oeuvres Complètes. Vol. I-IV. Edited by Bernard Gagnebein & Marcel Raymond. Paris : Gallimard, Bibliothèque de la Pléiade Politics and the Arts: Letter to M. D'Alembert on the Theatre. Translated by Allan Bloom. Ithaca : Cornell University Press La Nouvelle Héloïse : Julie, or The New Eloise. Edited by Judith H. McDowell. University Park : The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Emile or On Education. Translated by Allan Bloom. New

149 York : Basic Books Inc On the Social Contract with Geneva Manuscript and Political Economy. Edited by Roger D. Masters. New York : St. Martin's Press The First and Second Discourses and The Essay on the Origin of Language. Edited by Victor Gourevitch. New York : Harper & Row Rousseau, Judge of Jean-Jacques: Dialogues. The Collected Writings of Rousseau. Vol. 1. Edited by Judith R, Bush, Christopher Kelly & Roger Masters. Hanover and London : University Press of New England The Plan for Perpetual Peace, on the Government on Poland, and Other Writings on History and Poltics. The Collected Writings of Rousseau.. Vol. 11. Edited by Christopher Kelly. NH : Dartmouth College Press. Starobinski, Jean Jean-Jacques Rousseau : Transparency and Obstruction. Chicago :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Velkley, Richard L Being after Rousseau. Chicago :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Williams, Raymond Keywords : A vocabulary of culture and society. London : Flamingo. Cassell`s New Latin Dictionary. London : Cassell & Company LTD Le Petit Larousse : Illustré. Paris : Larousse

150 일본계 브라질인 일본 정주화와 사회자본에 대한 고찰 : 다문화 공생사회 구축을 위한 제언 윤 석 상( 강원대학교) Ⅰ. 서론 지난 20 년간 세계화의 확산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 영역에 걸친 글로벌리즘 지리 적 경계의 초역화 및 보편적 가치기준의 확대 에 대한 맹신화를 가져왔으며, 국경을 초월 한 이주민의 증가를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비대칭적 국가 간 이주의 증가는 이 주자들의 사회적 소외로 인한 생활환경의 궁핍과 사회적 격차 등 삶의 질 하락 이라는 일상 적 위협에 노출시키고 있다. 따라서 전쟁, 테러, 경제위기 등 비일상적 위협이 국가 차원의 대응을 필요로 한다면, 일상적 위협은 개별적 차원의 즉각적 대응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종래의 이주민 연구는 비교적 가시적이고 명확한 연구대상을 제공하는 정치, 경제 영역 등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지원자의 입장이 강조되어 왔다. 이러한 문제점들로 인해 이주민에 대한 정책은 원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주민의 경제적, 사회적 발전에 커다란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오히려 이주민에 대한 지원이 필연적으로 그들 의 사회 경제적 지위 성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지리적 경계의 초역화와 국가를 둘러싼 환경 변화에 의해 심화되고 있다. 우선 행위와 목표에 있어 국제적 준거 틀을 지닌 비정부단체의 영향력 증가로 인해 이주민 정책은 개별 국가차원을 뛰어넘어 범세계적 관심사가 되고 있으며, 심지어 국가간 갈등의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따라서 이주민 문제는 국가적 차원, 지역적 차원, 세계적 차원이 상 호 교차하는 중층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오히려 지리적 공간의 의미는 축소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이주민에 대한 대응책이 영역별로 세분화된 협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주자들에 대한 문제, 다문화 사회에서 표출되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해야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사회에 대한 심층적 이해와 적극적 협력, 공존을 위해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확충과 확산 이라는 인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즉, 이주자들이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이 같은 이 주자 그룹과의 상호 신뢰와 가치의 공유 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고 나아가 이들이 갖고 있는 상호 신뢰와 가치의 공유 가 이주자 그룹을 넘어 새로운 사회의 구성원들로까지 확장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주자들 개인에 대한 시 혜 차원의 지원보다는 이주자들이 사회적 자본을 형성할 수 있는 이주자 집단에 대한 지원 이 절실하며 나아가 이들이 이주국 사회와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협력적 사회적 자본을 형성 하는 것을 지원해야할 필요성은 강조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이미 1980 년대부터 세계와 함께 살아가는 일본 이라는 시점에서 다문화 공생 사회 구축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 오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1990년대 이후부터 일본계 브라질인을 중심으로 한 뉴커머의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일본계 브라질인들은 주 로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 공업지역, 예를 들어 군마현( 群 馬 県 ) 오이즈미초

151 ( 大 泉 町 ), 아이치현( 愛 知 県 ) 토요하시시( 豊 橋 市 ), 시즈오카현( 静 岡 県 ) 하마마츠시( 浜 松 市 ), 미 에현( 三 重 県 ) 스즈카시( 鈴 鹿 市 ) 등을 중심으로 집단 거주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일본계 브라질인들 및 뉴커머(new-comer) 들의 증가에 대한 일본인들의 태도는 생활의 질 악화, 치안 악화 등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1) 이처럼 뉴커머에 대한 부 정적 태도는 일본사회가 계층화, 분단화(segmentation), 주변화 되고 있으며, 사회적 자본 수 준이 낮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다문화 공생사회 구축과 관련하여 강조되는 것은 시민사회의 성숙이라 할 수 있다. 따라 서 이문화 간 서로 협력하는 집단구성원들의 실증적인 가치나 규범을 공유할 수 있는 시민 사회의 역할이 중요시 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1990 년대 이후에 들어 지적교류, 시민교류가 중심이 되는 쌍방향적인 다문정책을 중심으로 문화 민족 간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 이고 있다. 그러나 일본사회는 뉴커머들의 증가에 따른 배타적 네오네셔널리즘의 확산 움직 임을 동시에 표출시키고 있다. 즉, 우리 라는 집단적 아이덴티티를 통해 무한경쟁에 있어 생존 을 위한 방안으로 차별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우리와 다른 타자를 구별하는 국가적 애착 및 민족적 자긍심을 강조하는 배타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2) 이 점은 형태나 구조면에서 다문화공생 의 추세를 따르기 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차별적 전략을 채택하고 과거를 통한 현재의 재구조화를 목표로 함을 특징으로 한다. 민족과 문화의 다양성이 확대되고 있는 세계화 속에서 조화와 공존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민족적, 문화적 배경이 다른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민족적 아이덴티티 (identity) 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재일외국인들에게 자국어, 자문화, 자국의 역사를 교육하는 것은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고양시키는 것이며,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함과 동시에 이문화간 공통성을 인식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뉴커머에 대한 일본어, 일본문화 및 자문화 교육은 다문화 공생사회 실현뿐만 아니라 재일외국인들의 정체성 확립에 있어서 중요하다. 따라서 이주민들의 문제, 다문화 사 회에서 표출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주민들과 이주자들이 상호신뢰와 가치공유 를 통해 이주자들이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협력적 사회적 자본(cooperative social capital) 의 확장이 요구된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본고는 1990년대 이후 일본계 브라질인을 중심으로 한 뉴커머들의 일 본 사회 부적응 현상에 대한 논의와 함께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사회적 자본의 확충 과 그 방안으로서 인적자본의 확충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해 보고자 한다. 살아가는 다문화공생 지역 만들기가 정책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주민과 더불어 그러나 단지 정책이 추진된다고 하더라고 외국인에 대한 인식의 거리가 존재한다면 정책은 공허한 메아 리에 불과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커뮤니티에 있어 개인 간의 신뢰, 협력 등 상호 행위 를 촉진하는 것 3), 불평등성을 해소하기 위해 인적자본 확충을 촉진하는 것 4), 친밀함과 옳 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잠재적인 자본의 총체 로 정의되는 사회적 자본 확충을 통해 이 1) 山 本 かほり " ブラジル 人 集 住 都 市 における 日 本 人 住 民 の意 識 (1) 西 尾 市 の日 本 人 調 査 から" 社 会 福 祉 研 究 愛 知 県 立 大 学 第 8券 2006年 pp ; 鐘 江 晴 彦 編 著 外 国 人 労 働 者 の人 権 と地 域 社 会 明 石 出 版, 年 ; 松 宮 朝 " ブラジル 人 集 住 都 市 における 日 本 人 住 民 の意 識 (2) 愛 知 県 西 尾 市 の日 本 人 調 査 から" 社 会 福 祉 研 究 愛 知 県 立 大 学 第 8券 2006年 pp ) 斎 藤 日 出 治 ㆍ 高 増 明 アジアのメディア 文 化 と社 会 変 容 ナカニシヤ 出 版, 2008年 pp ) J. Jacobs, 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 New York: Modern Library, ) G. C. Loury, "A dynamic theory of racial income differences," in Wallace P. A. and LaMond, A.M. (eds.) Women, Minorities, and Employment Discrimination, Cambridge, MA: MIT Press,

152 문화간 공생 네트워크 구축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Ⅱ. 사회적 자본의 의미와 일본의 사회적 자본 실태 1. 다문화 사회에서 사회적 자본의 의미 사람들의 협조행동에 의해 사회의 효율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신뢰, 규범, 네트워크라는 사회조직의 특성 5) 으로 규정되는 사회적 자본은 지역의 치안, 건강증진, 교육, 민주주의 기능 강화, 주민 생활환경 개선뿐만 아니라 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확산되고 있는 다문화사회에서 의 배타성과 계층성을 해결하기 위한 기제로 관심의 폭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자본이 반드시 공공재적 성격을 지닌다고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사회적 자본이 연대적 성격을 지닌 공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경쟁적 성격을 지닌 사적인 측면도 내 포하기 때문이다. 공적인 측면에서의 사회적 자본, 즉 연대적 사회적 자본 은 퍼트남(Robert Putnam) 이 지적하는 것처럼 상호성의 규범과 관련된 것 으로, 해체되고 있는 사회관계, 시 민적 참가의 쇠퇴를 방지하고 협조적 행동을 촉진시키는 규범으로서 역할을 한다. 또한 퍼 트남은 시민적 적극참가를 유인하는 수평적 네트워크가 사회적 신뢰와 협력을 창출하고, 지 배 종속관계에 기초한 수직적 네트워크는 사회적 신뢰와 협력이 유지될 수 없다고 지적한 다. 반면에 사적 측면에서의 사회적 자본인 자원동원적 사회적 자본 은 개인이 사회적 지위 향상 등 개별 이익을 실현시키기 위해 사회네트워크를 동원함으로써 개별 행위자들의 차별 적 이익을 유도하고 이익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사회적 자본은 상호연대, 이익유도와 유지라는 측면을 가지고 있지만, 지나친 연대성의 강조는 외부성 배제, 개인의 자유 제한, 집단성원의 과도한 요구라는 부정적 성격 을 내재하고 있다. 따라서 배타성을 극복하기 위한 상호연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퍼트남이 제시한 포괄형 네트워크의 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6) 이를 위해 개인적 수준, 개인주의 적인 사회적 자본을 뛰어넘어서 협력적 사회적 자본(cooperative social capital) 을 발전시는 것이 필요하다. 협력적 사회적 자본을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첫째, 인적자본의 확충이 요구 된다. 인 적자본은 개인적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서 불평등을 해소시키고, 결과적으로 타자와 관계를 대칭적 관계 로 확장시켜 타자와 협력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인적자본 이 개인주의의 심화로 연결되어 갈등을 유발하고 협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 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두 번째, 상징과 가치관을 핵심으로 하는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 간 사회적 자본 확충이 중요하다. 다문화 사회에 있어 문화적 차이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우월주의를 극복하고 소수자 문화 5) 퍼트남은 신뢰 는 자발적인 협력을 발생시키는 원천이며, 사회적 자본의 본질적인 요소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규범 은 이타주의와 이기주의가 상호 결합된 호혜성의 규범 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네트워크는 사회적 연결 고리로서 신뢰와 호혜성의 규범을 창출하고, 규범과 네트워크로부터 신뢰가 형성 확산된다고 정의한다. 따라 서 신뢰와 규범, 네트워크는 서로 타자를 배양시키는 기능을 한다. Robert D. Putnam, Making Democracy work: Civic Traditions in Modern Italy, New York: Prinston University Press, ) 퍼트남은 네트워크를 조직 내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배타형과 조직외의 이질적인 사람들과 조직을 연결하는 포 괄형을 구분, 사회적 자본의 형성에는 포괄형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Robert D. Putnam, Bowling Alone: The Collapse and Revival of American Community, Simon & Schuster, 2000, p

153 를 포용하며 협력과 공존을 위한 새로운 가치관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소수자들의 결 속과 단합을 통해 주류사회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결속과 단합 의 근간이 되는 것은 바로 사회적 자본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유사한 문화를 공유 하는 이주자 그룹이라면 이러한 사회적 자본의 확장은 용이할 것이다. 그러나 문화적으로 유사한 집단들 내에서 형성되는 사회적 자본만으로는 평등하고 공생적인 다문화사회를 이루 기에 부족함이 많다. 특히, 사회적 자본이 갖는 배타적인 특징이 부정적으로 발현될 여지가 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세 번째, 이주민과 원주민 네트워크 간 상호교류 촉진에 의한 상호신뢰 확보 등 연대성을 강화하는 방안이 요구된다. 네트워크 간 상호교류에 있어 중요한 것은 네트워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개방성과 이주민과 원주민의 공생커뮤니티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주민 그룹들은 그룹 내 사회적 자본을 넘어 이주 사회의 구 성원들과 사회적 자본을 형성시킴으로서 공생적 다문화 사회의 기반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 이 열리게 된다. 그러므로 다양한 층위와 수준으로 나뉘어져 있는 사회적 자본에 대한 체계 적인 분석과 상호관계를 통해 다문화 공생사회를 구축할 수 있는 방안과 정책 제시가 필요 하다. 2. 일본의 사회적 자본과 실태 세계화와 함께 시민사회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으며, 시민사회의 활성화는 시민들의 자발 적인 자유의지에 의해 촉진된다. 이에 더불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가능성은 사회적 자 본의 수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뉴커머의 증가와 함께 다문화 공 생 사회를 모색하는 일본에 있어 사회적 자본의 실태는 다문화 공생사회 구축을 위한 이문 화간 이해와 커뮤니티의 활성화를 위한 척도라 할 수 있다 년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 에 따르면(< 표1 참조>) 일본은 일반적 신 뢰감의 측면에서 39.08로 전체 42 개국(OECD 가맹 17 개 국, OECD 비가맹 25 개 국) 중 10위 를 기록, 비교적 높은 신뢰사회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네트워크 참가 측면에서 일본은 0.94로 평균인 1.68보다 현저히 낮은 33위로 사회적 참가가 활발한 국가라고 볼 수 없다. 이 외에 공평성, 시민의식, 활동, 미디어의 측면에서는 각각 평균에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 세계가치관조사를 통해 일본의 사회적 자본은 43개 국 가 중 중간, 혹은 중간을 약간 상회하는 국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세계가치관 조사를 통해 일본의 사회적 자본을 일반화하기에는 약간의 수정사항이 필요하다. 실제 일본인의 단체 소속율은 조사보다 높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세계가 치관 조사의 경우 국제비교 조사를 위해 특정국가에 적용되는 단체가 조사 항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실시하는 조사의 경우 자치회 등 지연조직에 참가율이 50% 전후로 조사되는 반면에 세계가치관조사에는 지연조직이 조사항목에 포함되지 않음으로써 실제보다 낮은 수준의 사회적 자본 국가로 평가된다. 이에 대해 Pekkanen 은 자치회( 약 30 만개), 부인회, 청년회, 노인회 등 관련 지연조직이 다양하며, 대부분의 일본인이 이들 지연 조직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일본의 사회적 자본이 풍부하다고 지적한 다. 7) 7) Robert Pekkanen, Japan's Dual Civil Society: Members Without Advocates, Stanford C. A: Stanford University Press,

154 < 표 1> 사회적 자본 국제비교 국가 인지적 사회적 자본 구조적 사회적 자본 신뢰 공평성 시민의식 참가 활동 미디어 평균 표준편차 출처: 土 岐 智 賀 子 外 world Value Survey を用 いた実 証 研 究 : 労 働 幸 福 リスク, 2009 年, p.50. < 표 2> 는 일본인의 단체 조직에 대한 참가율을 나타낸 것으로 1990년대 이후 참여율이 저 하되고 있다. 이 점은 사회적 자본이 저하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일본 국민의 60% 이 상이 단체 조직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2005년 세계가치관조사와 비교해 볼 때 일본의 사회적 자본은 낮은 수준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사회적 자본을 측정하는 변수로서 신뢰감의 경우, < 표 3> 처럼 1990년대 일반적인 신뢰감( 대체적으로 사람을 신뢰한다) 은 감소하는 경향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인에 있어 필요한 존재라고 느끼는 신뢰감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상승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신뢰감은 큰 폭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일관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55 < 표 2> 일본인의 단체 조직 참가율 출처: 辻 中 豊 変 わる コネ 社 会 日 本 ネットワー ク社 会 の政 治 と利 益 団 体 伊 藤 光 利 編 ポ リティカル サイエンス事 始 め 有 斐 閣 2009年 p < 표 3> 신뢰감과 여론조사 회답율 추이 출처: 統 計 数 理 研 究 所 日 本 人 の国 民 性 調 査 2009年 < 표 4> 는 지역과 직장에서 바람직한 인간관계과 관련된 조사결과이다. 일본인은 자신의 일을 상의하고 도움을 청하는 전면적인 만남 보다 인사 정도의 형식적인 만남 와 가볍게 이 야기 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지향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긴밀한 인간관계지향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약화되고 있다. 따라서 상호부조의 정신과

156 < 표 4> 바람직한 인간관계의 변화 (1) 1973년 1978년 1983년 1988년 1993년 1998년 2003년 2008년 바람직한 지역관계 형식적인 만남 부분적인 만남 전면적인 만남 (2) 바람직한 직장관계 형식적인 만남 부분적인 만남 전면적인 만남 출처: NHK放 送 文 化 研 究 所 日 本 人 の意 識 調 査 2009年 2009 年. 이상의 조사 결과를 통해 일본의 사회적 자본은 1990년대 전반기 까지 증가추세에 있었지 만 1990 년대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사회적 자본의 감소가 지속되고 있다. 이 같은 사회적 자본의 감소는 신뢰감과 규범적 측면보다 인간관계와 네트워크 참가의 측면에서 두 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는 시민적 참가(civic engagement) 가 저하되고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Ⅲ. 일본계 브라질인의 정주화와 사회적 자본 1. 일본계 브라질인의 현황 1990 년대 이후 일본계 브라질인의 증가가 두드러지고 있다. 8) 일본계 브라질인의 증가 요 인으로 첫 번째, 1980 년대 중반이후 일본 산업시설의 해외 이전, 고령화 사회의 도래, 젊은 층의 3D 업종 경원, 국내 노동력 부족 현상의 도래에 의한 저임금 단순노동자의 수요를 들 수 있다. 두 번째, 1990년 출입국관리법 개정이 일본계 브라질인이 증가하는 요인으로 작 용하였다는 점이다. 동법은 일본계 외국인에 대한 불법취업 처벌 강화와 함께 취업제한 철 폐 등 법적 지위를 인정하고 있으며, 9) 단순노동에 대한 취업을 합법화 시켰다. 세 번째, 198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의 잃어버린 10년 이라고 말해지는 경제위기도 일본계 브라질인 의 일본 정주화 증가 요인이다. 브라질 경제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전반기까지 GDP 성장률 연평균 10% 를 상회, 브라질의 기적 이라고 까지 불렸다. 그러나 2차 석유위기와 대 8) 일본계 브라질인을 포함한 일본계 노동자에 관한 대표적인 연구로 稲 上 毅 桑 原 靖 夫 国 民 金 融 公 庫 総 合 研 究 所, 外 国 人 労 働 者 を戦 力 化 する中 小 企 業 中 小 企 業 リサー チセンタ ー, 1992; 桑 原 靖 夫, グロー バル時 代 の外 国 人 労 働 者 どこから 来 てどこへ 東 洋 経 済 新 報 社. 2001;UFJ 総 合 研 究 所, 製 造 業 における 外 国 人 労 働 者 の活 用 の実 態 と日 本 人 労 働 者 の雇 用 賃 金 への影 響 に関 する調 査, 2005; 梶 田 孝 道 丹 野 清 人 口 直 人 編 顔 の見 えない 定 住 化 日 系 ブラジル 人 と国 家 市 場 移 民 ネットワ ー ク 名 古 屋 大 学 出 版 会. 2005; 小 内 透 編 在 日 ブラジルジンの 労 働 と生 活 お茶 の水 書 房 등 참조. 9) 일본계 브라질인들이 정주자 라는 재류자격은 재일한국인 등 구식민지 출신자들이 특별영주자 라는 불안정한 재류자격을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서 신이민자 (new comer)' 와 구이민자 (old-comer) 의 차별을 표면화시키고 있다

157 외채무위기로 인해 1981년과 83 년도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 80년대 말에는 연 1,000% 를 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 현상이 초래되었다. 10) 깊은 포루투갈이나 북미 등으로 이주하는 브라질인들이 나타났으며, 이러한 경제위기 속에서 역사적으로 관련이 일본계 브라질인들의 경우 일본으로 대거 이주를 시작하였다. < 표 5> 는 2000년부터 20008년까지 일본의 영주자 국적별 추이를 나타낸 것으로 일본계 브라질인은 재일한국인과 중국인에 이어 세 번째로 많 은 규모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본계 브라질인들의 고용상황은 직접고용보다 간접고용의 형태를 띠며, 단순제조 업에 취업하는 비율이 높다. 직접고용보다 간접고용이 일반적인 것은 경기변화에 따른 노무 관리의 효율성과 비용삭감 측면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며, 11) 미숙련 노동자로서 전문직 에 취업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12) 비정규직 노동자로써 일본계 브라질인들의 취업상황은 계약기간이 2개월에서 6 개월 정도로 단기취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직률이 높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물론 일본계 브라질인들의 이직률이 높게 나타는 것은 계약직이라 는 한계를 반영하지만,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려는 개인적인 의욕도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 다. 13) < 표 5> 영주자 국적별 추이 ( 단위: 명) 2000년 2002년 2004년 2006년 2008년 비율 일반영주자 145, , , , , % 중국 48,809 70,599 96, , , % 브라질 9,062 31,203 52,581 78, , % 필리핀 20,933 32,796 47,407 60,225 75, % 한국 북한 31,955 37,121 42,960 47,679 53, % 페루 7,496 13,975 20,401 25,132 29, % 기타 27,081 38,181 52,968 65,589 80, % 특별영주자 512, , , , , % 한국 북한 507, , , , , % 중국 4,151 3,924 3,306 3,086 2, % 기타 4, , % 합 657, , , , , % 출처: ( 財 ) 入 管 協 会 在 留 外 国 人 統 計 2009 年. 일본계 브라질인들의 주거지역을 보면 도카이( 東 海 )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보 이고 있는데 그 배경으로 도카이 지역이 자동차, 전기, 기계관련 기업들이 집중되어 단순노 동을 필요로 하는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14) 8만3 천명에 이르고 있으며, 전체 제조업에서 3.8% 를 차지하고 있다. 도카이 지역의 일본계 외국인 노동자 수는 약 10) 小 池 洋 一 ブラジルの 企 業 アジア 経 済 研 究 所 1991年 pp ) 渡 邊 博 顕, 間 接 雇 用 の増 加 と 日 系 人 労 働 者 日 本 労 働 研 究 雑 誌 No. 531, ) 이 점은 보자스 (Borjas) 가 개인의 이민결정과정에 관한 연구 에서 밝히는 것처럼 개발도상국과 같이 소득분 포의 불균형이 높은 국가에서 선진국으로의 이주는 미숙련 노동자의 이주가 두드러진다는 연구결과와 일치한 다. George J. Borjas, "Self-Selection and the Earnings of Immigrants," The American Economic Review, Vol. 77, No. 4, 2008, pp ) 橋 本 由 紀 " 日 本 におけるブラジル 人 労 働 者 の賃 金 と効 用 の安 定 に関 する考 察 " 日 本 労 働 研 究 雑 誌 No.584, pp ) 2006 년 아이치현 ( 愛 知 県 ) 이 현내 제조업 기업을 상대로 실시한 유효구인배율에 따르면 1.85를 기록 제조업 생산부분에서 노동력 부족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中 部 経 済 産 業 局, 東 海 地 域 の製 造 業 に働 く外 国 人 労 働 者 の実 態 と共 生 に向 けた取 組 事 例 に関 する 調 査 報 告 書 2007年 5 月

158 그러나 이 같은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한 일본계 브라질인들의 집중화 현상은 지역사회뿐 만 아니라 자신들에 있어 다양한 문제점들이 표출되고 있다. 첫째, 일본계 브라질인들의 집 단거주화 현상에 의한 부적응화이다. 본에 영주하고자 하는 의식이 희박함으로써 15) 집단거주화는 생활과 취업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일 나타나는 현상으로 생활과 취업에서의 편의 성은 있지만, 지역사회와의 단절을 심화시켜 일본인들과의 마찰이 증가하는 요인이 되고 있 다. 또한 간접고용에 따른 높은 이직률은 일본계 브라질인의 빈번한 이주로 인해 외국인에 대한 불신감과 외국인에 대한 주택 임차 거부로 이어져 생활의 불안정으로까지 이어지고 있 다. 둘째, 사회복지의 소외가 심각하다는 점이다. 일본계 브라질인의 집단거주가 가장 두드러 지는 토요하시( 豊 橋 ) 시의 경우 91.6% 가 사회보험( 후생연금, 국민연금), 32.9% 가 의료보험( 국 민의료보험, 사회보험, 생명호험 등) 에 미가입한 것으로 조사됐으며, 두 번째로 일본계 브라 질인이 집단거주하는 하마마츠( 浜 松 ) 시의 경우 각각 68% 와 43% 로 나타났다. 16) 사회보험과 의료보험에 대한 미가입율이 높다는 것은 개개인들에 있어 의료비 지출 부담이 원인으로 보 이지만, 더 큰 문제는 고령화로 인한 이주자들의 고용기회가 감소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는 노후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켜 새로운 사회적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셋째, 일본계 브라질인들의 자녀 교육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일본계 브라질인들 의 자녀들이 일본사회에 생활하고 적응하기 위해서는 학교교육은 중요하다. 그러나 언어문 제로 인해 학교를 중도 포기하거나, 경제적 이유로 외국계 학교에 진학할 수 없는 미취학 아동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또한 잦은 전직도 일본계 2 세, 3세들이 학교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감소시켜 교육수준의 저하로 이어지며 결국은 노동문제, 사회문제로 이어지는 단초 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 표 6> 일본계 브라질인의 정주화 요인과 문제 15) 오나이 토오로 ( 小 内 透 ) 가 아이치현 토요하시 ( 豊 橋 ) 시에 거주하는 일본계 브라질인을 대상을 실시한 조사에 다르면 약 70% 가 귀국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小 内 透 編 전게서, p ) 토요하시시의 경우 전체 인구 약 37만 명 중 외국인이 약 2만 명으로 이 중 일본계 브라질인은 약 1만2천 명이 거주하고 있다. 志 甫 啓 " 日 系 ブラジルジンの 社 会 保 障 適 用 の実 態 " 季 刊 社 会 保 障 研 究 Vol. 43, No.2, 2009年 pp

159 2. 일본계 브라질인 정주지역의 사회자본 1990년대 이후 일본계 브라질인의 급격한 유입은 다문화 공생 사회를 위해 민족적 차원을 뛰어넘어 이문화간 이해와 커뮤니티의 활성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제기해 주고 있다. 다문화 사회가 이문화의 수용과 자문화의 융합, 그리고 상생이라는 문화간 상호교류주의의 중요성 이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문화인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특히, 뉴커머(new-comer) 와 일본인들과의 사회적 자본의 수준은 뉴커머들이 일본사회에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척도 로 작용하며, 이주민들이 사회의 낙오자가 아닌 당사자로서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역 량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제가 된다. < 표 7> 은 일본계 브라질인 정주지역의 사회적 자본과 관련해 직장( 아이치현 토요하시시 A 회사) 에서 일본계 브라질인들과 일본인들과의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일본계 브라질인들 과 일본인들은 직장에서 일과 관련해 상호협력 하는 비율이 높은 반면, 일과 관련 없는 부 분에서는 접촉이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 표 8> 은 근속년수에 따른 일본인과의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대부분의 일본계 브라질인들은 일본인과의 관계에서 근무연수와 나이에 상 관없이 업무상 교류를 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고령자 일수록 일본인과의 관계가 증가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의미한 것은 근무연수가 길고 < 표 7> 직장에서의 일본인과의 관계 ( 단위 %, 도수 700) 동료 교류 업무상 교류 퇴근 후 회식 휴일 클럽활동 급전 차용 업무 상호협력 여려운 일 상담 자주 있음 때때로 거의 없음 아주 없음 N.A 출처: 小 内 透 編 在 日 ブラジルジンの 労 働 と生 活 お茶 の水 書 房 2009 p.62. < 표 8> 근무 연령과 일본인과의 관계 ( 단위 %, 도수 700) 근속 연령그룹 10-20대 근속 0-4년 30-60대 근속 0-4년 20-60대 근속5년 이상 일본인과의 관계 선을 그음 동료 교류 업무상 교류 출처: 小 内 透 編 在 日 ブラジルジンの 労 働 と生 活 お茶 の水 書 房 2009 p.65. 다문화 공생사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일본 인들과의 교류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 표 9> 는 일본계 브라질인들이 지역사회에 참여하는 비 율을 나타낸 것으로 직장에서 일본인과의 교류가 활발한 이주민 일수록 지역사회 참여율이 높음을 알

160 수 있다. 그리고 업무상 교류의 유형은 일본인과의 관계를 업무상 영역에 한정시키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선을 긋는 유형은 지역사회에 참여율이 저조하며 지역사회에서 고립되는 모습을 보 인다고 할 수 있다. < 표 9> 일본계 브라질인의 지역사회 참여율 ( 단위 %, 도수 700) 일본인과의 관계유형 지역행사 참여 적극참여 불참 모름 선을 긋음 동료 교류 업무상 교류 출처: 小 内 透 編 在 日 ブラジルジンの 労 働 と生 活 お茶 の水 書 房 2009 p.66. 이와 같이 일본계 브라질인의 직장과 거주지역에서의 일본인들과의 관계는 낮은 수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문화 사회에서 공생의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문화적 소수자들 이 결속하고 단합하여 주류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일본계 브라 질인의 경우 자의적이건 타의적이건 지역사회에 대한 참여율이 현저히 낮음으로서 사회에서 배제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대성을 강화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주민과 원주민 네트워크 간 상호교류 촉진에 의한 < 표 6> 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일본계 브라질인들에 대한 지역사회의 인식은 생활의 질 악 화, 치안 악화, 도덕적 해이 등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 점은 일본사회에서 뉴커머들의 주변화가 심화되는 부정적인 모습과 함께 다문화 공생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 다. 그러나 이문화간 사회적 자본을 확충 한다면 다문화 공생사회의 구축 가능성은 열려있 다고 볼 수 있다. < 표 10> 외국접촉과 긍정적 영향에 대한 인식 출처: 小 内 透 編 在 日 ブラジルジンの 労 働 と生 活 お茶 の水 書 房 2009 p

161 오나이( 小 内 ) 의 분석에 따르면, 일본인들이 외국인과의 접촉이 많으면 외국인에 대한 긍정 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본계 브라질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군마( 群 馬 ) 현 오오즈미( 大 泉 町 ) 초, 아이치( 愛 知 ) 현 토요하시( 豊 橋 ) 시, 그리고 시즈오카( 静 岡 ) 현 하마마츠( 浜 松 )시17)의 일본계 브라질인에 대한 인식 분석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표 10> 참조). Ⅳ. 1. 사회적 자본 확충과 다문화 공생사회 구축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일본계 브라질인들의 정주화 현상에 따른 다문화 공생사회 구축을 위해서 이주자들의 경제적 안정 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경제적 불안정은 지역사회의 갈등과 교육문제를 비롯한 사회 부적응의 문제 를 발생시킨다. 이 점은 상호 신뢰, 규범, 사회적 네트워크라는 사회적 자본의 형성을 어렵게 하며 결과적으로는 다문화 공생사회 구축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이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의 인재육성, 일본어능력 향상, 교육훈련 등이 필요하다. 일본계 브라질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도카이 지역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제조업을 유 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점은 외국인 노동자와 이들을 고용하는 기업들이 지역사회의 구성원 이라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이주민과 원주민 간의 신뢰의 저하, 갈등 등 사회적 문 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일원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 NPO등이 다양한 활동을 실시하고 있지만 기업도 지역사회의 특히, 이주민 자녀들의 교육문제와 관련해서 이들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 건은 이주노동자들의 안정된 직업이다. 그리고 중장기적인 시야에서 본다면 양질의 교육은 다문화 사회 구축하는데 초석이 될 것이며, 기업의 경쟁력 향상과도 연결 된다고 볼 수 있다. < 그림 1> 다문화 공생을 위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17) 오오즈미초의 경우 전체 외국인 6,959 명(2009 년) 중 5,074 명이 일본계 브라질인 이며, 토요하시 ( 豊 橋 ) 시의 경우 19,715 명 중 11,931 명, 하마마츠 ( 浜 松 ) 시의 경우 32,536 명 중 18,247 명이 일본계 브라질인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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