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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문 화 비 전 선 언 문화는 삶을 담는 그릇이다. 우리는 문화시대에 살면서 세계인과 한 가족으로 인류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할 책무를 지닌다. 지방문화원은 전통문화예술의 발굴과 육성, 문화예술교육 기회의 제 공, 문화자원의 확보와 활용에 앞장서 온 지역문화발전의 주역임을 자 랑스럽게 여긴다. 이제 인간의 창의성 계발, 우리 문화의 세계화, 지방분권하에 따른 문 화적 책임 등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고 새로운 문화환경을 선도하는 문화원이 되기 위해 역할의 재정립을 가다듬어야 한다. 지방문화원은 도약을 다짐하는 뜻에서 문화원의 날 을 재정하고 우 리의 공고한 의지를 모아 다음과 같이 실천할 것을 선언한다. 하나 지방문화원은 지역의 여러 문화 주체들의 힘을 모으는 데 주도 적 역할을 한다. 하나 지방문화원은 이 시대 주민들에게 필요한 지식정보와 다문화 시대의 매개자가 된다. 하나 지방문화원은 일회적 단기적인 사업을 지양하고 지속적 장 기적인 활동을 추진한다. 하나 지방문화원은 문화경영의 전문조직으로 적극 육성한다. 대한민국 224개 지방문화원 임직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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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발간사 Pubication 올 한해 는 지구온난화로 가뭄. 폭염. 태풍이 유난히 심했고 그리고 많은 눈 과 한파가 예상된다 하여 많은 분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 같아 걱정이 먼저 앞섭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고 전 세계가 함께 겪는 일이 라 어쩔 수 없지만 이런 어려움을 겪을 때 빛나는 것이 국민들의 문화수준 이라 생각합니다. 횡성문화원장 국민들의 의식이 높을수록 슬기롭게 대처하고 서로 배려하는 의식문화가 김 광 수 높다고 하지요. 우리는 지난여름 런던올림픽을 통해 단결된 저력으로 다른 국가에서 개최된 대회 에서 금메 달 13개 종합순위 5위를 이루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유난히 우리선수들에게만 불리해 보이는 판정으로 온 국민은 분개하였지만 차분하고 성숙 한 자세로 어필하고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줘 우리국민의 위상을 드높여 대한민국을 전 세계 에 알렸습니다. 물론 우리의 이의가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묵살되기도 하였지만 선수들은 모 두 최선을 다해 역대 최고의 성적으로 환호와 감동을 국민들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또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각종 기록을 갈아 치우며 국위를 선양하며 대한민국의 대중문화 를 세계에 보급한 전달자가 되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문화강국론)에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생략> 이 글에서 문화가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주위에는 이기적인사고로 나의 상황과 생각을 우선하는 논리와 행동을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제는 문화국민 답게 남에게 행복을 주는 국민이 됩시다. 존경하는 5만 군민과 애뜻한 고향사랑을 보여주시는20여만 출향인사 여러분 우리는 올해 총선과 대선을 통해 우리나라를 이끌어나갈 첫 여성대통령과 일꾼들을 선출 했습니다. 물론 뜻은 서로 달랐겠지만 이제는 우리 모두 갈렸던 마음을 모아 행복하고 아름다운 횡성과 조국 의 미래를 위해 뜻을 모아 나아갈 때라고 생각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발간되는 횡성문화27호가 여러분들에게 고향에 정을 전할 수 있는 가 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다사다난 했던 임진년을 멀리 보내고 밝아오는 계사년에는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한 한 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6 격려사 Congratulatory Message 횡성의 맥과 얼을 이어가는 소중한 문예지인 2012 횡성문화가 발간됨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우리지역의 문화를 널리 알리고 지역문화 창달을 위해 노력해 오신 김광수 문화원장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횡성군수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찬란한 역사만큼이나 자 고 석 용 랑스러운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화라는 이름아래 우리의 전통문화가 지금처럼 잊혀져 간다면 결국 우리 민족을 지탱하는 민족정신도 사라질 수 도 있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현대사회에서 지금까지 전승해온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화 속에서 그 어느 때 보다도 문화 활동이 활발했던 올 해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 계가 가수 싸이(강남스타일) 열풍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세 계 3대영화제로 꼽히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우리나라를 알리 고 우리 문화를 홍보하는데 역할을 톡톡히 해 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횡성문화는 횡성을 대표하는 향토문예지로 큰 의미를 담고있다고 생 각됩니다. 회원여러분들의 활동에서 횡성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애향심을 느낄 수 있으 며, 지방의 경쟁력을 높이는 든든한 밑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횡성문화가 전통문화를 기록하고 새로운 문화와 조화를 이루어 가는 매개 체로 역할을 다해줄 것으로 기대하며, 우리문화예술을 사랑하고 발전시키는 일에 군 민여러분들의 관심과 협조를 당부 드립니다. 다시 한 번 우리지역의 이야기를 담아 횡성문화 발간에 애써주신 모든 분들에게 축 하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새해에도 건강과 활력이 넘치는 행복한 한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7 축사 Congratulatory Message 역사와 문화의 우리 고장을 군민들에게 올바르게 전해주고 애향심을 고취시킬 제27호 횡성문화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아울러, 힘든 여건 속에서도 횡성의 문화적 뿌리와 참 모습 을 찾는데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횡성문화원을 이끌어 오신 김광수 문화원장님과 문화원 가족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에게 이것만큼 지키고 싶은 것이 있을까? 개발과 발전이라는 논리 앞에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무 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문화입니다. 횡성문화원은 그 같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의 가치를 묵묵히 지켜왔으며, 지역 사회 문화예술 활동의 심장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다양한 예술 공연과 문화 행사를 통해 군민들의 참여와 화합을 이끌어냈 고, 잊혀져가는 향토 문화와 역사의 재발견, 문화 교육 사업을 통해 우리 군민들 의 다정한 벗이 되어 왔습니다. 앞으로도 향토사 연구와 문화 자료의 조사 연구 활동을 통해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고, 나아가 지역 문화의 창달과 전통 문화의 계승 발전으로 횡성 문화의 진정한 길잡이 가 되어 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다시 한 번 제27호 횡성문화 발간을 축하드리며, 횡성문화원의 더 큰 발전을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횡성군의회 의장 이 대 균

8 Contents 문화 비전 선언문 발간사 문화원장 축간사 군수, 의장 문화재 종류와 분류의 이해 홍 성진 10 Ⅰ. 향토문화의 숨결 (연구) 애국지사 김순이 삶 고찰 박 순업 21 강원도의 인문적 정체성을 찾아서 홍 인희 30 놀이의 범주화 이 세희, 조민아 57 Ⅱ. 향토문화탐구 삽교 안석경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서 이 영식 72 둔내 고랭지 토마토 축제 박 현숙 83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강림에 각림사가 있었다 임 태규 92 상동리 석불좌상에 얽힌 이야기 진 광수 97 우리땅, 독도 이 일영 100 성공 못한 귀농인, 귀농 준비자들에게 고함 성 락 107 큰 나방 이야기 한 상균 111 훗날 장관이 된 총상 입은 윤성민 중대장을 살린 원준희 여인의 6.25 전쟁이야기 김 동정 127

9 Ⅳ. 지역문화 학습정보 덕고생태체험학교 에서 사시사철 놀이와 학습을 즐겨요 조 원룡 136 횡성군 새마을문고 이야기 장 태종 146 시대는 선비정신을 기대한다 김 인규 151 인구가 늘고 지역발전에 가속도 붙는 전국 제일 교육도시 횡성 자치행정과장 이 상 권 162 Ⅴ. 문화탐방기행 안동문화유적지 답사 서 제원 강릉 ICCN 세계 무형문화 축전 을 다녀와서 이 방우 174 향토사연구 비교답사 양 기호 184 향토문화유적지 답사 한 효진 문 이준 전 하영 191 Ⅵ. 문예마당 한시 공명선거 최 서현 200 한시 고향산천 김 인규 201 시 조 고향이 그리워, 새벽길 허 충구 203 수 필 나는 횡성스타일 김 미애 205 시 그 림 전 진 광수 208 시 내 고 향, 아버지 이 병오 209 동 시 우리가족나무 김 가영 213 산 문 나의 꿈은 수의사 남궁서연 214 Ⅶ. 문화원소식 2012년 문화원 사업실적 218 문화원 회원명부 232

10 문화재종류와 분류의이해 횡성문화원 사무국장 홍성진 우리나라에서 문화재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에 들어서 부터이다. 그 이전까지는 보물, 고적, 유적, 유물 등 각각 따로 정의되어 왔다. 그러나 1950년 일본에서 문화재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에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에 <문화재보존위원회 규정>을 공포하면서 법정용어로 사용되고 본격적으로 일반화되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문화재는 사전적으로 문화 활동에 의하여 창조된 가치가 뛰어난 사물로 문화재 보호법이 보호의 대상으로 정한 유형 문화재, 무 형 문화재, 민속 문화재, 천연기념물, 사적, 명승지 따위를 이르는 말 이라 정의 한다. 문화재는 조상들이 남긴 유산으로서 삶의 지혜가 담겨 있고 우리가 살아 온 역사를 보여준다. 또한 문화재가 실생활에 사용된 시기의 생활상을 비춰 볼 수 있기에 귀중한 자료로서의 역할도 한다. 그렇기에 과거의 모든 문화유산은 모든 문화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문화재는 넓은 의미에서 보면 형체가 있 는 물질적인 측면 뿐 만아니라 판소리, 탈춤과 같이 형체가 없는 인종적 또는 국 민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이것은 문화재가 국민들에게 있 어서 정신적 가치 내지 역사적 가치가 큰 사물 또는 사상과 그의 토대가 되는 자 횡성문화

11 연으로서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멸실 손괴될 가능성이 짙은 국민적인 재 산 이기 때문이다. 1) 유형적인 것, 무형적인 것, 나아가 자연적인 것 까지 모두 포 괄하는 문화재의 속성 때문에 근래에는 문화재라는 말보다는 문화유산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된다. 이렇듯 우리 겨레의 삶과 숨결이 깃들어 있는 소중한 보배이자 인류 문화의 자산인 문화재는 일차적으로 건조물, 전적, 서적, 고문서, 회화 등 유형의 문화 적 소산인 유형문화재와 연극, 음악, 무용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 예술상 가 치가 높은 것을 무형문화재로 선별하여 나눌 수 있다. 그 다음은 지정되는 문화 재와 그렇지 아니한 문화재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지정되는 문화재를 살펴보면 지정문화재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중요한 문화재를 보호 관리하기 위하여 선 별해 놓은 문화재이다.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희귀성, 역사성, 학술성에 의 거하여 가치가 높은 것을 선별한다. 이는 다시 국가지정문화재와 시 도지정문 화재, 문화재자료로 구분된다. 국가지정 문화재는 문화재청장이 문화재보호법에 의하여 문화재위원회의 심 의를 거쳐 지정한 중요문화재로서 국보, 보물, 중요무형문화재, 사적, 명승, 천 연기념물, 중요민속문화재자료 등 총 7 종류가 있다. 숭례문 종목 : 국보 제 1호 ( 지정)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시설 시대 : 조선시대 위치 :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40 소개 : 조선시대 서울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으로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 불렀다. 1) 오세탁, 문화재보호법원론, 2005년, 주류성, 22쪽 사진자료, 다음 포털 싸이트, 문화재청홈페이지, 횡성 문화원 홈페이지 참조 문화재 종류와 분류의 이해 11

12 훈민정음 종목 : 국보 제 70호 ( 지정)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 목판본 > 관판본 시대 : 조선시대 위치 : 서울 성북구 성북로 소개 : 이 책은 조선 세종 28년(1446)에 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을 왕의 명령 으로 정인지 등 집현전 학사들이 중심 이 되어 만든 한문해설서이다. 국보는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문화의 견지에서 그 가치가 크고 유례 가 드문 것으로 서울 숭례문, 훈민정음 등이 있다. 보물은 건조물 전적 서 적 고문서 회화 조각 공예품 등의 유형문화재 중 중요한 것으로 서울 흥 인지문, 보신각종, 대동여지도 등이 있다. 흥인지문 종목 : 보물 제1호( 지정)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시설 시대 : 조선시대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종로 288 소개 : 서울 성곽은 옛날 중요한 국가시설이 있는 한성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도성( 都 城 )으로 성곽8개의 문 가운데 동쪽에 있는 문이다.(일명 동대문) 보신각종 종목 : 보물 제2호 ( 지정) 분류 : 유물>불교공예>의식법구>의식법구 시대 : 조선시대 위치 :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소개 : 조선시대 만들어진 종으로, 1985년까지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제야( 除 夜 )의 종을 칠 때 사용되었다. 대동여지도 종목 : 보물 제 850-2호 ( 지정) 분류 : 유물>과학기술 천문지리기구>지리 시대 : 조선시대 위치 :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55 소개 : 대동여지도는 조선 철종 12년(1861)에 고산자( 古 山 子 ) 김정호( 金 正 浩 ) 가 만든 전국 지도로 최고의 선본이다 횡성문화

13 사적은 유적 제사 신앙 정치 교통 산업 분묘 등으로서 중요한 것으 로 경주포석정지, 수원화성 등이 있다. 경주포석정지 종목 : 사적 제 1호 ( 지정)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역사사건>역사사건 시대 : 통일신라시대 위치 : 경북 경주시 배동 (7,445m2) 소개 : 경주 남산 서쪽 계곡에 있는 신라시대 연회장소로, 젊은 화랑들이 풍 류를 즐기며 기상을 배우던 곳이다. 수원화성 종목 : 사적 제 3호 ( 지정)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시대 : 조선시대 위치 : 경기 수원시 장안구 장안구 연무동 19 소개 : 화성은 서쪽으로는 팔달산을 끼고 동쪽으로는 낮은 구릉의 평지를 따 라 쌓은 평산성이다. 명승은 기념물 중 경승지로서 중요한 것으로 강릉 명주 청학동 소금강, 여수 상백도하백도일원 등이 있다. 명주 청학동 소금강 종목 : 명승 제 1호 ( 지정) 분류 : 자연유산>명승>자연경관>지형지질경관 위치 : 강원 강릉시 연곡면 부연동길.. (23,971,684m2(지정구역)) 소개 : 원래 이 산의 이름은 청학산이었는데, 산의 모습과경치가 금강산을 닮았다 하여 율곡 선생이 소금강 이라 이름지었다고 전해진다. 여수 상백도 하백도 일원 종목 : 명승 제 7호 ( 지정) 분류 : 자연유산>명승>자연경관>지형지질경관 위치 : 전남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산.. (3,070,897m2(지정구역)) 소개 : 백도는 거문도에서 약 28km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이 살지 않는 39개 의 섬들로 이루어졌다. 북쪽에 있는 섬들을 상백도, 남쪽에 있는 섬들 을 하백도라 한다. 문화재 종류와 분류의 이해 13

14 천연기념물은 기념물 중 서식지, 번식지, 도래지, 자생지를 포함하여 동물, 식 물, 지질, 광물로서 중요한 것으로 자연유산의 일부이다.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제주도 만장굴, 횡성 앞곡리 백로및왜가리 번식지 등 이있다.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 종목 : 천연기념물 제 1호 ( 지정) 분류 : 자연유산>천연기념물>생물과학기념물>분포학 위치 : 대구 동구 도동 산180 (35,603m2(지정구역)) 소개 : 측백나무는 중국 및 우리나라에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단양, 대구, 안동, 영양 등지에서 자라고 있다.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종목 : 천연기념물 제 30호 ( 지정) 분류 : 자연유산>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종교 위치 : 경기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62.. (1,810m2(보호구역)) 소개 :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1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42m, 뿌리부분 둘레 15.2m이다. 우리나라 은행나무 가운데 나이와 높이에 있어서 최고 높은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줄기 아래에 혹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제주도 김녕굴 및 만장굴 종목 : 천연기념물 제 98호 ( 지정) 분류 : 자연유산>천연기념물>지구과학기념물>천연동굴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동김녕리.. (1,450,815m2(지정구역)) 소개 : 제주 김녕굴 및 만장굴은 제주도 동북쪽에 있는 거문오름 용암동굴 계의 대표적인 동굴이다. 횡성 압곡리 백로와 왜가리 번식지 종목 : 천연기념물 제 248호 ( 지정) 분류 : 자연유산>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민속 위치 : 강원 횡성군 서원면 압곡리 산.. (23,140m2(지정구역)) 소개 : 횡성군 소재지에서 약 20km 떨어진 압곡2리의 마을 서쪽 영산과 북 쪽 압산에 번식지가 형성되어 있다 횡성문화

15 중요무형문화재는 무형문화재 중에서 중요한 것으로 종묘제례악, 양주별산대 놀이 등이 있다. 종묘제례악 종목 : 중요무형문화재 제 1호 ( 지정) 분류 : 무형유산>전통연행>음악>궁중음악 위치 : 서울 소개 : 종묘제례악은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사당(종묘)에서 제사(종묘제례)를 지낼 때 무용과노래와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하는 음 악을 가리키며, 종묘악이라고도 한다. 양주별산대놀이 종목 : 중요무형문화재 제 2호 ( 지정) 분류 : 무형유산>전통연행>연희>탈놀이 위치 : 경기 소개 : 양주별산대놀이는 서울 경기지방에서 즐겼던 산대도감극 ( 山 臺 都 監 劇 )의 한 갈래로 춤과 무언극, 덕담과 익살이 어우러진 민중 놀이이다. 중요민속문화재자료는 의식주, 생산, 생업, 신앙, 연중행사 등에 관한 풍습, 습 관과 당시의 생활상을 파악 할 수 있는 의복, 가옥, 기타 물건 중에서 중요한 것 으로 덕온공주당의, 안동하회마을 등이 있다. 덕온공주당의 종목 : 중요민속문화재 제 1호 ( 지정) 분류 : 유물>생활공예>복식공예>의복 시대 : 조선시대 위치 : 경기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12.. (1착) 소개 : 조선시대 순조(재위 )의 셋째 공주인 덕온공주가 입었던 당 의이다. 안동하회마을 종목 : 중요민속문화재 제 122호 ( 지정)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마을 시대 : 조선시대 위치 : 경북안동시풍천면하회리(1,343필지/7,200,660m2) 소개 : 풍산 유씨의 씨족마을로 유운룡 유성룡 형제 대( 代 )부터 번창하게 된 마을이라고 한다. 낙동강 줄기가 S자모양으로 동.남.서를 감싸돌고 있 고 독특한 지리적 형상과 빼어난 자연경관을 갖추고 있다. 문화재 종류와 분류의 이해 15

16 시 도지정문화재는 시 도지사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 아니한 문화재 중 보존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것을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의하여 지정한 문 화재로서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상 또는 예술상 가치가 큰 것과 이에 준 하는 고고자료인 유형문화재,와 무형의 문화재 소산으로서 역사상 또는 예술상 가치가큰것인무형문화재,또 패총 고분 성지 유물포함층 등의 사적지로서 역사상 학술상 가치가 큰 것과 경승지로서 예술상 관람상 가치가 큰 것, 동식 물 광물 등으로서 학술상 가치가 큰 것인 기념물, 과거 국민생활의 추이를 이해 함에 불가결한 것인 민속자료 등 총 4 종류가 있다.<도표1 횡성군지정문화재현황> 문화재 자료는 시 도지사가 시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 아니한 문화재 중 향 토문화보존상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시 도 조례에 의하여 지정한 문화재를 말한다. 건조물, 사적 등의 구분없이 일률적으로 지정한다. <도표1 횡성군지정문화재현황> 반면에 지정되지 아니한 문화재를 보면 등록문화재와 비지정문화재로 나눌 수있다. 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가 아닌 근현대시기에 형성된 건조물 또는 기념이 될 만한 시설물 형태의 문화재 중에서 보존가치가 큰 것을 말한다. 프랑스 영 국 등 외국에서는 건축물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관광산업과 연계, 활용토록 하는 제도로서 활성화되어있다. 우리나라도 개화기 를 기점으 로 하여 해방전후 까지의 기간에 축조된 건조물 및 시설물 형태의 문화재를 중심으로, 그 이후 형성된 것일지라도 멸실 훼손의 위험이 크고 건설기술이나 기능, 재료 등이 희소하여 보존가치가 있을 경우 포함하여 선별한다. 우리나라 에서는 2001년 7월에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하기 시작하여 서울 남대문로 한국 전력사옥, 종로 화동 구 경기고교, 태평로 구 국회의사당, 횡성 풍수원성당 구 사제관, 횡성성당 등을 등록하였다 횡성문화

17 남대문로 한국전력 사옥 종목 : 등록문화재 제1호( 지정) 분류 : 등록문화재>기타>업무시설 시대 : 일제강점기 위치 : 서울 중구 남대문로 92, 외 3필지 (남대문로2가) 소개 : 1920년대말 경성전기주식회사 사옥으로 서울도심부에 세워진 본격적 인 사무실 건물이다. 화동 구 경기고교 ( 花 洞 舊 京 畿 高 校 ) 종목 : 등록문화재 제2호 분류 : 등록문화재>기타>교육시설 시대 : 일제강점기 위치 :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48 (화동) 소개 : 화동 구 경기고교는 스팀난방방식을 도입한 당시 최고급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학교 건물로 1938년 건립되었다. 태평로 구 국회의사당 종목 : 등록문화재 제11호 분류 : 등록문화재>기타>업무시설 시대 : 일제강점기 위치 : 서울 중구 세종대로 125 (태평로1가) 소개 : 건물 일부를 탑식으로 높여 권위성 및 상징성 강조, 1935년 경성부 공연 장으로 건립, 1954년부터 1975년까지 국회의사당, 현재는 서울특별시 의회로 사용되고 있다. 횡성 풍수원 성당 구 사제관 ( 橫 城 豊 水 院 聖 堂 舊 司 祭 館 ) 종목 : 등록문화재 제163호 분류 : 등록문화재>기타>종교시설 시대 : 일제강점기 위치 :강원 횡성군 서원면 경강로유현1길 30 (유현2리) 소개 : 횡성 풍수원 성당은 한국인 신부가 지은 첫 번째 성당이고 한국에서 네 번째로 지어진 것이다. 이중 사제관은 1912년 착공 1913년10월1일 준공 횡성성당 종목 : 등록문화재 제371호 분류 : 등록문화재>기타>종교시설 위치 : 강원 횡성군 횡성읍 읍상리 388번지 소개 : 이곳에는 원래 풍수원 성당의 공소가 있었다.1930년 본당으로 승격된 후 기와를 얹은 목조건물을 신축하였으나,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타 없어 져 현재의 건물을 건립하였다. 문화재 종류와 분류의 이해 17

18 비지정문화재는 문화재보호법 또는 시 도의 조례에 의하여 지정되지 아니한 문화재 중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로 일반동산문화재와 매장문화재가 있다. 일반동산문화재는 국외 수출 또는 반출 금지 규정이 준용되는 지정되지 아니 한 문화재 중에서 동산에 속하는 문화재를 말하며, 전적, 서적, 판목, 회화, 고고 자료, 민속자료, 조각, 공예품으로서 역사상 예술상 보존가치가 있는 문화재 이다. 이에 속한 문화재는 제작된지 50년이 지나고 생존인의 작품이 아닌 것이 어야 한다. 매장문화재는 토지, 해저 또는 건조물 등에 포장되어 노출되지 않은 문화재를 말 하며 고고학적 유적과 유물을 의미한다. 문화재보호법에 함부로 발굴 할 수 없도 록 규정하여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발굴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로 도래하면서 사람들은 정착생활 을 하고 농경과 사육, 어로를 통해서 식량을 확충해 나갔다. 시대가 점차 변할수 록 안정된 생활과 풍족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이전까지 생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사람들이 이렇듯 안정감을 갖추면서 그들의 예술성이 짙어져 갔 다. 그것이 어떤 목적이었든 그들은 바위에 그림을 그리고 토기에 장식을 하는 등 꾸며나가고 그 시대 자신들의 모습을 하나둘씩 새겨나갔다. 그 모습은 형체 가 있을 수 도 있고 없을 수도 있었으며, 제각각의 모습으로 지금의 우리에게로 전해왔다. 지금의 우리 모습을 있게 해주고, 지금까지의 역사를 품고 있는 그것, 바로 문화재는 그렇기 때문에 보호 관리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규정이 어떻 게 보면 너무 세분화 되어 있어서 이것, 저것 다 문화재에 넣어서 너무 양이 많 다할수도있겠지만, 그 만큼 그 존재 하나하나가 중요하고 그 가치는 지금의 우리 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 더욱 큰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문화재 는 정확하고 확실하게 보호되어야 할 것이다 횡성문화

19 <도표1> 문화재 종류와 분류의 이해 19

20 ❶ ❷ ❸ ❹ ❺ ❻ ❼ ❽ ❾ ❿ ❶ 횡성 회다지 소리 강원도지정 무형문화재 제4호 ❷ 전통자기도공 강원도지정 무형문화재 제6호 ❸ 중금리삼층석탑 강원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9호 ❹ 상동리석불좌상 강원도지정 유형문화재 제20호 ❺ 상동리삼층석탑 강원도지정 유형문화재 제21호 ❻ 읍하리석불좌상 강원도지정 유형문화재 제22호 ❼ 읍하리삼층석탑 강원도지정 유형문화재 제23호 ❽ 횡성신대리삼층석탑 강원도지정 유형문화재 제60호 ❾ 공양공김관( 金 瓘 )영정 강원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42호 ❿ 육절려 강원도지정 유형문화재 제65호 11 문정공조충지석 강원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10호 12 횡성풍수원천주교회 강원도지정 유형문화재 제69호 ❶ ❷ ❸ ❹ ❶ 둔내철기시대주거유적 강원도지정 기념물 제82호 ❷ 태종대 강원도지정 문화재자료 제16호 ❸ 운암정 강원도지정 문화재자료 제17호 ❹ 횡성향교 강원도지정 문화재자료 제100호 횡성문화

21 Ⅰ.향토문화의 숨결 연구 애국지사 김순이 삶 고찰 박순업 강원도 인문적 정체성을 찾아서 홍인희 놀이의 범주화 이세희, 조민아

22 횡 성 문 화 애국지사김순이 삶고찰 횡성문화원 부원장 박순업 1. 시작하며 여성으로서 독립운동가 하면 유관순 열사, 또 의병 활동에 참여한 윤희순 애국지사가 떠오른다. 구한말 치열했던 의병활동과 횡성4 1만세운동은 어느 지역 못지않게 거셌다. 그러한 근거에 의해 횡성을 애국의 고장이라 부르고 있다. 횡성에서도 여자의 몸 으로 유일하게 횡성 4 1만세운동에 앞장선 분이 있다. 그 분이 바로 김순이 여 사다. 외딴 한치고개에서 어렵게 주막을 운영하는 여사에게 당시 천대받던 직업 이라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센 여사를 황소갈보라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누구 보다도 나라 걱정을 하였으며 가시밭길 애국의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 순이 여사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으며 행적도 별로 알려지지 않고 묘비문 내용이 전부이다. 애국지사 김순이 여사의 삶의 고찰을 통하여 횡성이 애국의 고장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여사의 애국정신이 이어지길 소망해 본다. 2. 횡성과의 인연 나라 안팎은 어수선하고 국력이 쇠진하여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 같았던 어 려운 시절인 1879년 5월 15일 김순이 여사는 경주 서부리 김해김씨 문중에서 태어났다. 22 Ⅰ.향토문화의 숨결

23 19세가 되던 1898년 10월 19일 안흥면 안흥리 박영화씨와 결혼하면서 1) 횡성 땅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안흥에서 횡성 옥동리와 구방리로 거처를 옮기며 어 려운 생활이 이어졌다. 그래서 생계 수단도 되고 뜻한 바도 있어 횡성읍 옥동리 와 갑천면 경계인 한치고개에서 주막을 경영하게 되었다. 지금은 갑천, 청일, 서 석을 통과해 구룡령을 넘어 영동을 잇는 2차선 포장도로 잘 정비되었지만 그 당 시는 한적한 무인지경의 오솔길로 사람들은 걸어서 이 길을 왕래하여 찾는 길 손들이 꽤 있었다고 한다. 3. 슬픈 횡성 의병 소식 일본의 계책에 의하여 1895년 명성왕후가 시해되자 횡성에서도 권대형, 박성묵, 홍재구 등이 의병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05년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병 활동은 더욱 거세지고 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때 횡성에서의 대표적 의병장 으로는 원용팔이 있는데, 체포되어 옥중에서 순국하기 까지 일제에 항거했다. 주춤했던 의병활동은 1907년의 조선군 강제 해산과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 종이 폐위당하는 비극으로 인해 의병활동이 더 거세졌다. 2) 횡성면 법주리 최인 순, 문암리 한상렬이 의병을 모집, 목숨 바쳐 일본군에 저항하였다. 원주 진위대 출신 민긍호 의병장은 강림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 전사하였으며 그때의 흔적 들인 강림의병총이 그때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서원면 금대리에도 무연고 의병총이 있어 횡성에서의 치열했던 의병활동을 증명해 주고 있다. 주막을 운 영하면서 길손에게서 조금씩 들은 이러한 의병 활동 소식들은 김순이 여사에게 도 슬픔과 걱정으로 다가왔다. 4. 애국지사 최양옥과의 운명적 만남 지금은 횡성댐으로 수몰되었지만 갑천면 화전리에 최양옥지사가 살고 있었 1) 김순이 여사 묘비문에서 인용. 2) 횡성군지, 2011, 885쪽. 애국지사 김순이 삶 고찰 박순업 23

24 횡 성 문 화 다. 물에 잠긴 화전리, 구방리. 부동리, 중금리는 김순이 여사가 사는 한치와 같 은 생활권으로 이곳 사람들이 외부로 나가려면 한치고개를 넘어야 했다. 최양옥 지사는 서울 중동중학교에 유학하던 중 3 1운동을 맞이하였다. 선각 자로서 나라를 걱정하던 최양옥 지사는 서울에서 3 1운동에 참여한 후 고향인 횡성으로 내려와 횡성 4 1만세운동에 앞장섰다. 3) 고향에 온 최양옥 지사는 오고가는 길목인 한치고개의 김순이 여사가 운영하 는 주막을 자주 찾게 되었다. 희생되는 의병 소식으로 가슴아파 애국심이 싹트 던 여사는 지사와 만날 때마다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외부 소식을 들 으며 애국 운동에 동화되어 갔다. 빼앗긴 나라를 찾는 일에 몸을 던지려는 지사 를 적극 도우려 굳게 결심을 하게 되었다. 으슥한 곳에 위치한 주막은 횡성 4 1만세 운동의 모의 장소로 제공되었고 어렵 게 푼푼이 벌은 돈 일부는 지사의 독립운동을 하는데 쓰기로 하였다. 나라를 찾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일제와 싸우고자 하는 지사의 뜻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최양옥 지사는 천도교 지도자, 청년회 지도자, 감리교 지도자 등 동지들과 함 께 횡성장날 횡성군민 4 1만세운동을 치밀하게 준비해 갔다. 강달회, 강성순, 전한국, 하영현 의사는 총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순국, 강만형 의사는 옥중 순국, 그리고 많은 지사가 투옥되어 옥고를 치루고 태형을 당했던 1919년 4월 1일 횡성 장날만세운동은 김순이 여사도 빠질 수가 없었다. 총소리 에 놀라 숨어드는 군중을 규합 독려하며 만세운동에 앞장섰다. 이것은 애국지 사 최양옥을 만남으로 인한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5. 다시 만날 수 없었던 애국지사 최양옥 동지들이 총탄에 맞아 쓰러진 아수라장에서 최양옥 지사도 그 옆에 죽은 척 누 워 있다 야음을 틈타 빠져나오는데 성공하였으나 상안리 처가에서 체포되어 압 송 도중 다시 탈출, 도합 17년간의 옥고를 치루며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3) 애국의 고장 횡성, 횡성교육청, 1990, 41~42쪽. 24 Ⅰ.향토문화의 숨결

25 광복을 맞이하였다. 한편 많은 매를 맞고 풀려나온 김순이 여사는 일제의 감시 로 생업에 종사하기도 힘들었으며 그 후 최양옥 지사를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지 금은 수몰된 화성초등학교 교문 앞 구방상회 터에서 1952년 12월 19일까지 살 다73세에한많은생을마쳤다. 6. 김순이 여사 가족 이야기 횡성군지 등 모든 자료에는 자손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남매를 둔 것으로 본 조사에서 밝혀졌다. 맏이로 태어난 아들은 박태옥씨로 결혼도 하지 않고 모 친이 작고한 후 홀로 계속 구방리에서 살다 70년대 말 원주지역에 있는 양로원 에서 생을 마감하였다고 같은 마을에 살았던 구방리 주민들은 말하고 있다. 둘 째로 태어난 딸은 박덕원씨로 13세에 횡성읍 학곡리 임씨 가문으로 출가하였고 외증손자 임채호(62세)가 현재 읍하 3리에 살고 있다. 임채호씨에 의하면 할머니의 오빠 박태옥씨가 생전에 가끔 다녀갔다고 했으 며 할머니도 외증조할마니를 닮아 기골이 장대하고 힘도 세었다고 말했다. 4) 일제시대의 독립운동은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도 불행을 넘어 파멸로 이어갔으니 일찍 남편을 여읜 여사는 어려웠던 시절 남매 양육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순이 여사에게 딸이 있었던 것은 이웃 사람들도 몰랐다고 하니 일제시대 독 립운동은 자랑이 아니라 탄압의 대상이었으며 당시 천시하던 주막 운영, 어려 운 형편 등의 연유로 딸 가족과도 왕래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7. 묻혀버릴 뻔한 김순이 여사의 독립운동 김순이 여사의 독립운동은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 1972년 당시 춘 천교육대학 조동걸 교수 저 횡성과 3 1운동 에서 당시 관련 생존자의 증언으 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니 고귀한 행적은 묻혀버릴 뻔했다. 광복 후에도 김순이 여사는 자기의 만세운동에 대해 입을 다물어 이웃사람들 4) 임채로써 증언, 2012년 11월 17일. 애국지사 김순이 삶 고찰 박순업 25

26 횡 성 문 화 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으며 오히려 알려질까봐 걱정을 했을 것이다. 6 25가 채 끝나지도 않았을 때인 1952년 12월 19일 세상을 뜨자 마을 사람들의 울력으로 구방리 공동묘지에 장사지내지고 그후 잊혀져 버렸다. 그러나 38년이 지난 1990년 부동리 정연덕씨(전 횡성군 농업협동조합장)과 이복균씨(전 군의원)에 의해 선양사업 건의가 횡성군청에 전달되어 1990년 4월 27일 공동묘지에서 한 치저수지 앞 오르막길 옆에 옮겨, 5) 높은 뜻을 기리고 있다. 막상 이장을 하려 할 때 묘를 찾을 길이 없었다. 당시 장례를 치뤘던 사람들이 거의 세상을 떠났기 때 문이다. 다행히 당시 참여했던 지창선씨(구방리, 작고) 등의 증언으로 묘를 찾 아 옮길 수 있었으니 그 때 시기를 놓쳤으면 영원히 잊혀질 뻔했다고 당시 이 사 업의 주무 사회계장이던 고 김윤수씨가 생전에 증언하였다. 8. 애국지사 김순이 여사 묘비문 여사께서는 1878년 10월 15일 경주읍 서부리 김해김씨 문중에서 태처났다. 1898년 10월19일 안 흥면 안흥리에서 박영화씨와 결혼하여 횡성읍 옥동리와 갑천면 구방리를 거점으로 가난과 세파에 시달리면서 애국의 일념으로 생활하시다가 1952년 12월 19일 한 많은 삶을 마쳤다. 기골이 장대한 여사(일명 황소갈보)께서는 뜻한 바가 있어 당시 천대받던 주막을 경영하면서 푼푼 이 받은 돈으로 애국지사인 갑천면 화전리 최양옥 선생의 독립운동을 도우셨고 자금 모금에도 협력 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특히 3 1운동 시에는 자신의 주막을 모의 장소로 제공하여 하영현, 강달 회, 강성순, 전한국, 강만형 의사가 순국하시고 많은 지사가 투옥되었던 4월 1일 횡성장날 독립만세 운동 때에는 일경에 쫓겨 장터 술집에 숨어든 동지들을 규합 군중을 진두 지휘하다 투옥됨으로써 횡 성 3 1독립만세운동을 성취시킨 전설적인 여인이다. 자손은 절손되고 난중에 소실된 기록을 챙기 는 후사가 없어 찬연한 공적에도 보훈의 대열에 들지 못하고 갑천면 구방리 공동묘지에서 실묘의 지 경에 이르니 실로 애석함을 금할 길이 없던 바 다행이 이를 안타깝게 여기는 군민의 뜻이 있어 이곳 에 안장하고 여사의 드높은 애국의 뜻을 기리며, 후세에 귀감을 삼고자 이 비를 세우노라. 6) 1990년 4월 27일 횡성군민일동 5) 구방리 이복균씨 증언, 2012년 10월 2일. 6)김순이 여사 묘비문 전문. 26 Ⅰ.향토문화의 숨결

27 9. 증언해 주신 분들의 이야기 김순이 여사는 6 25가 끝날 무렵 작고할 때까지 지금은 횡성댐 건설로 물에 잠긴 구방리에서 아들과 함께 살았다. 이건춘(75세, 구방리), 한종기(74세, 구방 리), 심영식(70세, 가담1리), 정운기(75세, 구방리)씨는 이웃에서 소년 시절 아 들 박태복과 살던 머리가 하얀 김순이 여사를 기억하고 있다. 당시 누구한테도 그 할머니가 독립운동을 하였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여자 이지만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었다는 이야기를 어른들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독립운동은 파멸을 가져왔으므로 광복 후에도 입을 굳게 다물었기 때문일 것이 다. 김순이 여사는 어렵게 살았지만 성격이 좋아 이웃사람과 잘 어울렸다고 모 두회고하였다. 10.선양사업 망향의 동산, 호숫길 5구간 가기 전, 한치고개 오르막 길이 시작되는 한치저수 지 앞 국도에 접해 애국지사 김순이 여사의 묘가 단장되어 있어 오가는 사람들 의 시선을 끌고 있다. 횡성 관내 각급 학교 학생들의 얼 선양교육장이 되고 있으 며 접근성이 좋아 많은 참배객이 찾고 있다. 외증손자 임채호씨도 가족과 가끔 성묘를 간다고 하였다. 횡성 여성단체의 하나인 예림회 에서는 해마다 묘소를 찾아 헌 다례( 獻 茶 禮 ) 를 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 각급 기관장, 지역 인사들과 함께 행사를 하였는데 횡성군의 지원금이 끊기면서 회원들만이 참석하여 추모행사를 이어 가고 있다. 11. 마치며 김순이 여사는 인적이 드문 한치고개에서 당시 천대받던 주막을 운영하며 고 단한 삶을 살던 분이다. 지금은 애국지사라 우러러 호칭하지만 작고할 때까지도 그 분이 못 듣는 데서 황소갈보라 불렀다. 애국지사 김순이 삶 고찰 박순업 27

28 횡 성 문 화 그러나 자신의 온갖 불이익과 독립운동으로 인해 파멸이 올 것을 알면서도 횡 성 4 1만세운동에 앞장서 애국을 실천한 분이다. 조국의 혜택을 받지 못했지만 빼앗긴 나라를 찾고자 하는 차원 높은 명분은 그의 어려운 삶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어머니만 바라보고 사는 어린 딸 박덕원은 어쩔 수 없이 13세에 학곡리 임씨 가문에 출가시키고 성장 과정에서 미처 돌볼 수 없었던 아들 박태옥은 결혼도 못하고 독신으로 살다 세상을 떠 후손도 끊겼다. 이것은 횡성 4 1만세운동에 앞장선 혹독한 대가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김순이 여 사처럼 살아간 분이 이 땅에 많았기에 횡성을 애국의 고장이라 부르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김순이 여사는 횡성의 유일한 여성 애국지사임에도 그의 행적에 대한 자료는 묘비문 외에 별로 없다. 그것은 자손이 챙길 수 없었고 알려지면 탄압이 따랐으 므로 쉬쉬하다 세월이 흘렀고 또한 증언해 줄 함께했던 동지, 주변 목격자들이 세상을 떴기 때문일 것이다. 1972년 횡성군에서 발행한 횡성과 3 1운동 (조동걸 저)에서 당시 생존자의 증언에 의해 김순이 여사가 일부 조명되어 빛을 보게 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 다. 또한 1990년 이 지역 뜻있는 분의 제보와 건의에 의해 횡성군에서 구방리 공동묘지에 묻혀 있던 김순이 여사 묘소를 어렵게 찾아 현 위치로 옮겨 기리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 하겠다. 세월이 흐르면 잊혀지고 없어질 곳곳에 묻혀있는 조상들의 크고 작은 가치 있 는 흔적들이 발굴되어 선양되기를 김순이 여사의 삶을 고찰하면서 소망해 본다. 참고문헌 1. 횡성군지(하권). 횡성군지 편찬위원회 강대덕 외 2명 공저. 횡성민족운동사. 횡성문화원 화성의 옛터. 횡성군 김승학외1명 저. 한국독립사. 대한홍보사 조동걸 저. 횡성과 3 1 운동 Ⅰ.향토문화의 숨결

29 김순이 여사가 주막을 운영하던 한치고개 김순이 여사가 살던 구방리(지금은 수몰됨) 김순이 여사 묘지 표지판 구방리 공동묘지에 이장되어 단장된 애국지사 김순이 여사 묘 애국지사 김순이 삶 고찰 박순업 29

30 횡 성 문 화 강원도의 인문적 정체성을 찾아서 강원도 산천유곡에 남겨진 지존들의 발자취 강사 홍인희 강원도는 진한의 태기왕을 시작으로 신라 마의태자, 고려 공양왕 등 각 왕조의 마지 막 제왕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현장이었고 조선 개국이 암시되는 등 시대의 아 픔과 희망을 같이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까지 이 곳 출신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으니 가희 우리 왕조 역사의 명멸( 明 滅 )을 줄곧 지켜봐 온 소리 없는 목격자였다. 삶과 죽음이 하나요,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라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 방향으로 가다가 면온 인터체인지로 빠져 나가면 횡성군과 평창군에 걸쳐 있는 해발 1,261미터의 태기산을 만날 수 있다. 면온은 멸온 에서 온 말이다. 멸 滅 은 죽음이요, 온 은 백 百 을 뜻함과 동시에 온통 온갖 등과 같이 많은 것 을 표현하는 순우리말임을 이해하면,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멸망해간 곳 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금이야 이 일대에 대형 스키장이 자리 잡고 있지만, 오랜 옛날 두 왕조의 제왕들이 패권 쟁 취를 위해 생사를 건 전투를 벌였던 역사가 오롯이 숨어 있다. 그 유래는 삼한시 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한 중 진한은 고조선 멸망 후 북방 이주민들이 한강 이남에서 토착민들과 연 합해 새운 국가로, 낙동강 일대에 위치한 사로 斯 盧, 경주가 중심이었으며 후에 30 Ⅰ.향토문화의 숨결

31 신라의 발상지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진한의 마지막 왕이었던 태기왕이 경남 울산으로 추정되는 삼랑진에서 크게 패한 후 충남 일원에서 머물다 다시 추격을 받아 쫓긴 것으로 보인다. 박혁거세는 그의 숨통을 철저히 끊어놓기 위해 추적을 거듭했다. 결국 태기왕 은 이곳 태기산 일대에 폭1미터, 둘레 1,840미터 산성을 쌓고 신라 대군을 맞아 4년여간 전투를 벌였으나, 끝내 패하고 몸이 세 동강 난 채 죽었다고 한다. 그 당시 성 일부와 집터, 샘터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등 고서 에는 성안에 마르지 않는 시냇물이 흐르고, 군대 창고 다섯 간. 관청 두 간과 우 물도 있다 는 등의 기록으로 보아 몰락해가는 한 왕조의 피신처였지만 상당한 위용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태기왕과 박혁거세의 전쟁, 부족국가 진한의 멸망시기 등 역사적 사실에 대해 서는 학계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더구나 인근 평창지역에서는 태기왕의 전 설이 부족국가 시절 춘천에 자리 잡았던 맥국과 강릉의 예국간의 전투에서 나 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명확한 기록이 없어 간접적인 정보들을 모아 짐 작해볼 뿐이다. 여하튼 당시 박혁거세가 진한에 속해 있던 부족들을 정복하고 도읍인 금성을 축조한 것이 기원전 57년임을 볼 때 줄잡아 지금으로부터 2000 년 전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 의 기록에서 진한이 멸망한 시기를 미루어 짐작 해볼 수 있다. 봄 2월 마한왕이 사신으로 온 호공에게 진한과 변한은 우리의 속국인데 왜 공 물을 바치지 않는가? 큰 나라를 섬기는 예의가 어찌 이럴 수 있느냐? 고 꾸짖자 호공은 진한의 유민은 물론 변한 낙랑 왜인까지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나라 가 없습니다. 라고 응대했다. 즉, 신라의 옛 이름인 서나벌에서 온 사신 호공이 마한의 왕에게 자기 나라는 진한의 유민들도 두려워한다고 했으니 결국 진한이라는 나라가 기원전 20년 이 강원도 인문적 정체성을 찾아서 홍인희 31

32 횡 성 문 화 전에 사라졌다는 것을 방증한다. 어찌 되었건 횡성의 태기산 일대에서는 두 왕 조 간에 장기간에 걸친 처절한 전투가 벌어졌던 만큼 그 주변에는 당시 상황을 증언해주는 장소와 지명 등이 여기저기에 남아있다. 태기왕 전설과 결부해 덕고산을 태기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고 궁이 있었던 성은 태기산성으로 불리며, 지금도 이를 알리는 태기산성비 가 세워져 있다. 군사들이 피 묻은 갑옷을 씻었다는 갑천, 왕이 옥새를 잃어버린 옥산대, 왕의 몸 이 세 동강 난 삼동거리, 병사들을 훈련시킨 병지방, 귀족들이 낚시하던 낙수대 와 왕이 간이침대인 어탑을 놓고 쉬었다는 어탑산, 적군에 쫓겨 말안장이 벗겨 진 줄도 모르고 도망간 고개 질매재 등도 남아있다. 태기산 자락에 있는 횡성 둔 내면 화동리는 당시 군사들의 식량이 부족하자 이곳 골짜기에서 볍씨를 구해 농사를 짓도록 해주었다는 의미로 마을 이름에 벼 화 禾 자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태기산은 1970~1980년대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던 황석영 작가의 대하 역사소설 장길산 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장길산의 친구 이갑송이 썩은 조정 을 뒤엎기 위해 승려들을 모아 훈련시키고 금정굴에서 군사자금으로 쓸 위조 엽전을 제작하던 장소가 이곳이었다. 오늘날 횡성지역에서는 매년 태기문화제 라는 장례문화 행사를 열어 태기왕의 넋을 기린다. 이 행사 중 횡성 <회다지소리>공연은 지난 1984년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에 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역의 문화제라고 하면 살아 있는 자들의 경축 마당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 고장에서는 죽음 을 모티브로 축제를 치름으로써 삶과 죽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요 하나이며, 죽음이 새로운 시작 임을 보여주는데, 그 역발상이 놀랍다. 이 문화제에서 상두꾼이 요령을 흔들면서 읊어대는 <상여요 謠 > 자락은 물론 32 Ⅰ.향토문화의 숨결

33 이요 하관 下 棺 후 흙을 다지는 선소리꾼의 <회다지소리>를 들으면 권력의 성쇠 와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고 태기왕의 서글픈 영혼이 멀리서 다가오는 듯하다. 저승길 멀다더니 대문 밖이 저승일세 호오호오 허이나 갈까 호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서러워 마라 호오호오 허이나 갈까 호오 여보시오 지원님들... 어허름차 호오 이 내 말씀 들어보소... 어허름차 호오 저승길이 멀다더니... 어허름차 호오 대문 밖이 저승일세... 어허름차 호오 가세 가세 어서 가세... 어허름차 호오 -<상여요> 중에서 만승천자 진시황이 육국을 통일하고 아방궁을 높이 짓고 만리장성 쌓은 후에 동남동녀 500인을 삼신산에 보내여다 불사약을 구해서 장생불사 하렸으나 여사래 무덤이요 천하일색 양귀비도 매호 간에 묻혔으며 글 잘하는 이태백과 시 잘 짓는 도연명도 일생일사가 분명해 무주고혼이 되었구나 에이허라 달호... 에이허라 달호... -<회다지소리>중에서 강원도 인문적 정체성을 찾아서 홍인희 33

34 횡 성 문 화 대동방국을 그리던 궁예대왕의 꿈과 좌절 지금부터 1,100여 년 전 태봉국의 제왕 궁예는 강원도를 평정한 후 그 세력을 북으로는 대동강 유역, 남으로는 나주까지 뻗쳐 종래 통일신라 영토의 3분의 2 정도를 아우르게 되었다. 여세를 몰아 당시 동주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삼한 통 일을 넘어 불력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미륵세계를 꿈꾸고 있었다. 토성인 궁예 도성 터가 남아 있는 풍천원은 현재 비무장지대에 속해 실사가 어렵지만 옛 자 료에 따르면 내성 둘레가 7.7킬로미터 외성은 12.5킬로미터 정도로 한성 백제 의 풍납토성이3.5킬로미터나 고구려 국내성2.7킬로미터을 능가하는 규모였다 고한다. 나라 이름도 고려, 후고구려에서 마진대동방국 또는 태봉평화가 깃든 평등세 계으로 개칭해 삼한을 넘어 만주와 연해주까지 넘보는 기상을 담았다. 그러나 건국한 지 18년 만에 궁예는 자신이 가장 믿었던 왕건과 그 추종세력의 심야 쿠 데타에 허를 찔린다.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듯, 이 반정 주체세력은 자신들의 정 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궁예의 온갖 설정과 패륜을 부각시키는 것은 물론 도참 앞날의 길흉을 예언하는 술법까지 동원했다. 이에 대해 구한말 문신 이유원은 우리 역사의 일화 등을 묶어 쓴 임하필기 에서 옛날 어떤 사람이 팔던 낡은 거울에는 뱀의 해 巳 年 에 두 마리 용이 나타나는데, 한 마리는 청목 속에 몸을 감 추고 또 한 마리는 흑금의 동쪽에 그림자를 나타낸다. 먼저 닭계림을 치고 뒤에 오리압록를 때린다고 했다 는 내용의 이른바 고경참문 古 鏡 讖 文 설화를 소개한 다. 이는 결국 송악 출신인 왕건이 먼저 신라를 장악하고 후에 압록을 거두어 삼 한을 통일한다는 예언을 적은 글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기습을 피해 철원을 탈출한 궁예는 일단의 군사들을 이끌고 춘천 방향으로 도 34 Ⅰ.향토문화의 숨결

35 주하던 중, 지금의 소양댐 입구인 천전리 일원의 삼한골을 거쳐 의암댐 옆에 있 는 삼악산에 오른다. 삼악산은 해발 654미터로 그리 높지 않지만 우리나라 5대 악산 중 하나로 불 리기도 한다. 험준한 산세 때문인지 부족국가 시절 현재의 춘천 신북읍 발산리 에 궁터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오는 맥국의 전쟁터였으며 19세기 말 이 지 역에서 봉기한 의병 5,000여 명이 전투 방어선으로 삼았던 천혜의 요새다. 또한 1907년 이인직의 대표적 신소설이었던 귀의 성 의 무대가 되었다. 지금도 이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는 삼악산이 조화를 부린다 는 속설이 전해 온다. 춘천지역에 비가 올라치면 제일 먼저 삼악산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 한다. 수많은 원혼들의 슬픔과 한이 검은 구름을 만들고 눈물을 뿌리는 것이다. 이때가 되면 서민들은 빗물로 설거지할 준비를 한다. 간혹 산 정상에 화려한 무 지개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는 원통하게 패망해간 각 왕조의 부흥을 소망하는 하늘의 뜻 이라는 내용이다. 궁예는 깎아지는 듯한 이 험산 위에 폭 1.3미터 높이 2미터 둘레 5킬로미터의 삼악산성을 쌓은 데 이어 승려 출신답게 부처의 힘으로 제기해 보려는 염원을 담아 흥국사까지 지어가며 전열을 정비한다. 그러나 초반에 왕건 세력의 줄기 찬 공격을 잘 막아내던 궁예 진영도 점점 세 勢 의 중과부적을 절감하던 차에 후 방을 기습적으로 공격당하며 그 자리를 내주고 포천과 철원에 걸쳐 있는 명성 산 일대로 또다시 밀려난다. 삼악산 피신 중에 기와를 굽던 와데기, 검술을 익히 던 칼봉, 말을 매어둔 말골, 도성 쪽을 바라보았다는 망국대, 그리고 군사들의 옷을 말렸다는 옷바위 등 지명만 전설로 남긴채... 명성산에서 다시 성을 쌓고 은거하던 궁예는 밀려드는 왕건의 군사들이 점점 늘어나자 자신의 군사들에게 각자 살길을 찾아 흩어지라 고 명하고는, 극소수 강원도 인문적 정체성을 찾아서 홍인희 35

36 횡 성 문 화 측근들만 대동한 채 평강 방면으로 이동하던 중에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한 다. 이때 군사들과 산새들이 궁예의 죽음에 절규했다고 해서 울음산명성산 이 란 이름을 얻었는데 지금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면 사방에서 구슬픈 울음소 리가 들린다고 전해온다. 궁예의 최후에 대해서는 사복 차림으로 도망하다가 부양평강 백성에게 해를 입었다 거나 심지어 보리 이삭을 훔쳐 먹던 중 백성에 의해 타살되었다 는이 야기까지 지극히 비굴한 모습뿐이다. 그러나 그의 영웅다운 스케일을 묘사하는 기록도 있다. 태봉주 궁예의 묘에는 석축이 수십 길이나 되고, 주변에 높다란 형대 炯 臺 가 솟아 있으나 지금은 절반쯤 허물어져 있다'. 1864년 김정호가 펴낸 대동지지 의 내용이다. 육당 최남선도 이러한 입장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1924년 궁예왕릉 있는 삼방협평장-안변 일대에서 채록한 내용을 그의 여행기 < 풍악기유>에 다음과 같이 기술해놓았다. 구레왕고려왕이 삼방 골짜기에 들어왔다. 재기할 땅을 찾고자 하던 차에 한 스님에게 용잠호장 龍 潛 虎 藏 할 만한 곳이 없겠느냐? 고 물었으나 스 님은 이러한 궁벽한 곳에서 살길을 찾으니 어리석다 고 답했다. 그러자 구레왕은 하늘이 나를 잊었노라 며 길게 탄식하고는 심연을 향해 몸을 던졌고 우뚝 선 채로 운명했다. 그 뒤 이 지방의 독존신 獨 存 神 이 되었다. 통일신라 말기, 이른바 '강원왕국'이라는 대제국을 세우고 고구려의 후예임을 자처했던 궁예. 그는 죽음만큼이나 출생과정도 베일에 싸여 있는데다 우리 역사 상 패악했던 제왕 가운데 으뜸으로 철저히 매도되어온 인물이다. 고려의 관찬서 인 삼국사기 와 조선의 관산서인 고려사 에 따르면, 궁예는 포악하기 이를 데 없는 데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본다는 이른바 미륵관심법을 내세워 '처자식을 36 Ⅰ.향토문화의 숨결

37 비롯해 수많은 사람을 무참히 살해한 폭군이요 미륵을 사칭한 사이비 교주'였다. 삼국사기 는 '왕이 "네가 간통하니 무슨 일이냐?"는 말에 부인 강씨가 "어찌 그런 일이 있으리까"라고 하자, "내가 신통력으로 보아 다 알고 있다" 며 무쇠로 된 방망이를 불에 달구어 그녀의 음부를 치고 두 아들까지 죽였다'고 묘사한다. 이러한 공식적인 기록들뿐만 아니라 구전 설화까지도 부정적 평가로 일관한다. 우선 '풍수가 궁궐 터를 잡아주면서 궁예에게 별도의 이야기가 있을 때까지 엎 드려 있으라고 했음에도 무더위와 주변의 이상한 소리에 일어나자 학 세 마리 가 날아갔다. 이로써 300년 지속될 왕업이 30년에 그쳤다'는 설화는 궁예의 치 세가 단명할 수밖에 없었음을 애써 강조한다. 또한 '궁예가 곤암산을 주산으로 해 궁궐 터를 잡자 곤암산이 싫어서 이천 쪽 으로 머리를 돌렸고 금학산은 곤암산에 밀려난 것을 서러워해 3년 동안이나 나 뭇잎을 피우지 않았다' 며 자연의 마음조차 궁예에게서 떠났음을 은근히 부각 시킨다. 심지어 '구미호가 궁예의 부인을 잡아먹은 뒤 그 부인으로 둔갑해 사람 죽이기 를 즐기자, 궁예도 이를 흉내내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에 이르면 궁예는 인간이 아닌, 사라져야 할 악마의 화신일 뿐이다. 그러나 후세의 많은 역사가들은 애초에 역사가 승리한 편에 의해 일방적으로 기록되는 데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장악한 왕건 측이 의도적으로 각 색한 측면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그 증거로 삼국사기 와 고려사 의기록등에 서 모순점을 찾아냈다. 홍유 등 4인방이 비밀 모의 후 왕건에게 쿠데타를 종용하자 왕건은 신 하로서 두마음을 가질 수는 없다. 고 했지만 당시 41세였던 왕건은 이미 30세부터 9층 금탑에 올라 왕이 되는 꿈을 꾸었다. 궁예가 폭정으로 지지를 일어 자멸하고 왕건이 민심의 추대에 의해 왕위 강원도 인문적 정체성을 찾아서 홍인희 37

38 횡 성 문 화 에 오른 것으로 강변하고 있지만, 왕건 즉위 후 나흘 만에 일어난 환선길 모반사건을 필두로 그해에만 여섯 차례의 반란, 후백제로의 집단 탈출 등 이 잇따랐다. 궁예를 제왕 자질이 없는 미치광이 수준으로 묘사하면서도 사졸과 노고 를 같이하고 공적을 배분할 때는 사사로이 하지 않으며 많은 사람이 그를 두려워하고 경애해 장군으로 추대했다 고 기록하는 등 모순투성이다. 궁예는 이처럼 실체를 놓고 논란이 많았는데, 공식적인 역사 기록에 따르면 성 이 김씨로, 아버지는 신라 47대 헌안왕 또는 48대 경문왕이며 어머니는 궁녀였 는데 이름은 알 수 없다고 한다. 궁예는 왕실에서 자라다가 장래 나라에 이롭지 못할 인물로 낙인찍혀 우여곡절 끝에 열 살 무렵 세달사로 출가 선종이란 이름 으로 승려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당시 북원 (지금의 원주)을 본거지로 하던 초 적 양길의 휘하에서 공을 세운 후 독자세력을 구축했으며, 급기야 새로운 국가 를 창업한 입지전적 영웅이었다. 세달사의 위치에 대해서는 개풍의 흥교사, 영주의 부석사 등으로 논란 빚어오 던 중 최근 여러 정황상 영월군 흥월초등학교 분교 자리였음이 밝혀졌다. 이 지 역에서는 옛날 절이 크게 번창했던 당시, 끼니 때 남한강에 허연 쌀뜨물이 흐 를 정도였다. 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한편 삼국사기 에는 궁예가 자신의 부인을 죽일 때 두 아들 청광과 신광도 함 께 죽였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학계 일각에서는 오늘날까지 그 후예들이 엄연 히 핏줄이 이어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사의 기록과는 달리 동광 이라는 또 한 명의 아들까지 있었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어 흥미롭다. 다만 으레 그렇듯이 해당 종중에서는 이를 부인하고 있기는 하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궁예는 역대 제왕 중 가장 많은 역사적 부관참시 를당해 38 Ⅰ.향토문화의 숨결

39 왔지만 당시 주 활동 무대였던 강원도와 경기도 일원에서는 그의 뜻을 기리는 자취가 여전히 살아 있다. 연천지역에서는 삼방 三 方 을 다스리고 길흉화복을 주 관하는 신적 존재인 구레왕고려왕으로 모셔지고, 도읍지였던 철원에서는 1982 년부터 매년 태봉제 행사를 통해 궁예의 어가 행렬 즉위식 등을 재현하며 그 를 기리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태봉국의 부활, 그 꿈으로의 초대. 1,100여 년 오랜 역사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궁예왕의 대동방 건설이라는 이상과 같이 통일을 꿈꾸며 라는 캐치프레이즈에는 그 옛날 한반도를 넘어 북장지역 까지 넘보던 한 걸출한 영웅의 크나큰 기상과 원대한 포부가 깃들어 있다. 오늘날 궁예의 이러한 웅지가 좌절된 것을 아쉬워하는 많은 이들은 그가 설파 했다는 다음의 명언을 떠올린다. 나는 비겁한 자와 친구가 되느니 정직한 사람의 원수가 되련다. 독사와 전갈 은 조심하면 되지만 비겁한 인간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의태자, 과연 삼베옷 입고 금강산으로 갔는가 구한말 일제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을 협박하며 양위를 종용하던 중 신 라 경순왕도 국운이 다했음을 알고 왕건에게 나라를 바치지 않았습니까? 라며 국가를 양도하는 것이 마치 우리 민족의 전통인 양 희롱한다. 지금 들어도 울분 을 토할 일로, 이는 철저히 고려의 입장에서 기록된 삼국사기 내용에서 비롯된 바 크다. 그러나 이후에도 일제 강점기 때 쓰여진 이광수의 소설 마의태자 를 비롯해 영화, 가곡, 대중가요까지 신라 왕족들의 나약한 이미지를 키우는 데 한 몫했다. 1930년대 가곡 <마의태자>에 담긴 이은상의 노랫말을 보면 다분히 염 세적이고, 패배주의적이다. 강원도 인문적 정체성을 찾아서 홍인희 39

40 횡 성 문 화 그 나라 망하니 베옷을 감으시고 그 영화 버리니 풀뿌리 맛보셨네 애닯으다 우리 태자 그 마음 뉘 알고 풍악산 험한 곳에 한 품은 그 자최 지나는 길손마다 눈물을 지우네 - 1절 태자성 옛터엔 새들이 지저귀고 거하신 궁들은 터조차 모를노다?허라 우리태자 어데로 가신고 황천강 깁흔 물에 뿌리신 눈물만 곱곱이 여울되어 만고에 흐르네 - 2절 이러한 기록과 분위기는 상당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대로 이어져 학창 시절 배운 마의태자도 삼베옷 입고 금강산에 들어가 풀뿌리나 뜯어먹고 살다가 죽 은왕자 정도였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 태봉국 궁예가 죽은 후 37년이 지나 또 한명의 지 존이 자신의 어머니 죽방왕후와 처자, 충신열사들을 이끌고 경주, 충주, 제천, 양평을 거쳐 강원도 깊은 산으로 찾아든다. 그가 신라의 마지막 태자 김일이다. 삼국사기 는 당시 상황을 이에 왕경순왕이 시랑 김봉휴로 하여금 국서를 가 지고 가서 태조고려에게 귀부를 청하게 했다. 왕자는 통곡하며 왕을 이별하고 곧 개골산으로 들어가 바위에 의지해 집을 짓고 마의와 초식으로 일생을 마쳤 다 며 담담하게 기술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2,000여 년 전 박혁거세가 강원도까지 쫓아와 진한의 마 지막 왕인 태기왕을 무너뜨리더니, 그로부터 1,000여 년 뒤에는 신라 최후의 태 자가 다시 강원도 땅에서 천년 왕업을 마무리하게 된다. 이것이 역사의 윤회 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로부터 500여 년이 지나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마 40 Ⅰ.향토문화의 숨결

41 저 또다시 이곳을 떠돌다가 생을 마감하게 되는 기이한 인연을 맺는다. 그러나 정사의 설명과 달리 오래전부터 마의태자가 당시 강원도로 와서 원주 와 횡성 어답산, 홍천 지왕동 등을 지나 설악산 기슭 밑 인제군에서 신라소국 을 세우고 대왕으로 옹립된 후 상당 기간 동안 고려에 대한 항전 체제를 구축하 고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그 일대에는 이를 뒷받침 해주는 지명, 유물, 유적 등 갖가지 증거가 수두룩하다. 우선 서울에서 속초 방향으로 가다 한계령 을 넘기 전 나오는 인제군 상남면에는 김부리라는 마을이 있는데 여기서, 김 부 는 경순왕의 이름과 음이 동일하다. 다만 이 지명은 경순왕이 아닌 그의 아 들 마의태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제군사 를 보면 이곳은 과거 김부 동, 김보왕촌, 김보왕동, 김보리를 거쳐 김부리가 되었는데, 신라 56대 경순왕 의 아들 마의태자가 이곳에 와 머무르며 신라를 재건하고자 김부대왕이라 칭하 고 양병을 꾀했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 지금도 김부대왕각이 있어 봄가을 동 제를 지내고 있다 고한다. 여기서 마의태자가 본래 이름인 김일 金 鎰 대신 김부 金 富 로 지칭된 것에 대해 서는 여러 가지 설이 엇갈리고 있다. 뜻이 통하는 한자를 차용해서 쓰는 신라식 향찰표기법 에 따라 부른 것이라는 해석에 따르면 鎰 은 溢 과음이같고 溢 은 富 자와 넉넉하다는 의미로 서로 통한다는 것이다. 즉 마의태자가 떠난 뒤 마을 주민들은 그를 기리면서도 고려 조정에는 반역의 뜻이 없다 는메시 지를 보냄으로써 후환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려에 항복한 경순왕 이 름을 빌려 한자 표기만 달리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 하면서도 마의태자에게 신라 부흥에 나서라 는 밀명을 주었기 때문에 태자가 이를 받든다는 의미로 아버지 이름을 내세웠다는 흥미로운 주장도 있다. 한편 마의태자 이름에 얽힌 이야기와는 별개로 당시 상황을 가늠해볼 수 있는 지명들도 많다. 옥새를 숨긴 옥새바위, 태자의 수레가 넘은 행차고개 또는 수거 너머, 충신 맹장군 일가의 고분군이 있는 맹개골, 지금은 진부령 고개로 불리는 강원도 인문적 정체성을 찾아서 홍인희 41

42 횡 성 문 화 김부령 등이다. 또 갑옷을 입고 진을 친 곳이라는 의미의 갑둔리, 마의태자를 따 라온 화랑들이 결의의 표시로 손가락을 잘랐다는 단지골, 항전하는 병사라는 뜻 의 항병골, 맹장군이 인근 양구군에서 군량미를 징발해 비축했다는 군량리 및 국 권 회복과 광복을 의미하는 다물리 등을 접하면 마의태자와 추종자들의 신라 부 흥 운동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 특히 당시 신라재건 추진세력의 방어진 으로 추정되는 한계산성의 삼신단 비명에서 발견된 간지 干 支 의 제작연도가 고 려 광종 20년970년과 21년971년으로 판명된 바 있어, 신라 멸망935년 후 최소한 35년 이상 이곳에서는 마의태자가 이끄는 부흥운동이 지속된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이 지역에는 마의태자를 받들었던 다양한 자취가 남아 있다. 김부리 마 을 중앙에 있는 대왕각에는 신라경순왕태자김공일지신 新 羅 敬 順 大 王 太 子 金 公 鎰 之 神 이라는 위패와 철마상 모형이 모셔져 있다. 1987년에는 갑둔리 일원 에서 고려 정종 2년 1034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5층 석탑과 간지도 발견 되었는데 여기에는 마의태자의 장수 長 壽 와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이 있 다. 마을 사람들은 수백 년 전부터 매년 음력 5월 5월과 9월 9일을 맞아 동제를 지내오고 있는데, 제왕에 대한 예로 4배를 하며 제사상에는 마의태자가 좋아했 던 미나리와 취떡을 올린다고 한다. 이들 신라 부흥 세력이 인제지역에 주둔한 이후의 행적과 관련해서는 여러 이 야기가 내려온다. 결국 이곳에서 고려군에 패해 금강산에서 진지를 재구축했다 는 이야기, 마의태자가 당초 알려진 한 명이 아니라 왕자 김일과 김분 두 명이었 고 이들이 각자 설악산과 금강산에 있었다는 이야기 설악산 일대를 떠난 세력 들 대부분이 금강산을 지나쳐 여진으로 이동했다는 이야기 등이다. 이에 대해 육당 최남선은 1927년 금강산 유적들을 둘러보고 쓴 금강예찬 에서 신라 태 자의 유적이라는 것이 전설적 감흥을 깊게 하지만 역사적 진실과는 다르다. 세 상만사를 다 끊고 깊은 산골에 들어온 태자라면 성이니 대궐이니 하는 것이 무 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라고 반문하며 금강산에 있다는 마의태자 유적지는 후 42 Ⅰ.향토문화의 숨결

43 대에 조작된 가짜라고 단언한다. 어떤 경우든 마의태자가 단순히 신라 패망에 분기를 누르지 못하고 개골산에 은둔하다 맥없이 죽었다는 고려 왕조의 설명은 허구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삼국사기 등에서 굳이 금강산이라는 아름다운 말대신 모든 것이 해골 인 죽음의 골짜기를 의미하는 개골산 이라는 명칭을 부각시킨 것도 태자와 그 세력의 종말을 사람들에게 세뇌시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결국 설악산을 떠난 마의태자 무리가 북쪽으로 진출을 거듭해 만주 일대에서 여진족을 통합하고, 이 후예들이 급기야 중국 금나라와 청나라를 세우게 되는 대목에 이르면, 그 옛날 마의태자가 간직해왔던 국권 회복 의지가 낳은 역사의 결과에 숙연한 느낌마저 든다. 수년 전 <KBS역사스페셜>이 이러한 내용을 매 우 심도 잇게 밝혀내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사서를 보니 신라 왕실인 김씨가 수십 세를 이어왔고 금이 신라로부터 온 것 은 의심할 바 없다. 금나라 국호 또한 김씨 성을 취한 것이다. - 흠정만주원류고 청나라 몰락 과정을 그린 영화 <마지막 황제>로 잘 알려진 청나라 황제들의 성 姓 인 아이신줘러 愛 新 覺 羅 중 아이신 은김 金 줘러 는 족 族 이란 말로 결 국 김씨들 이란 뜻이다. - 만주실록 금나라 시조의 이름은 함보로 고려인이라 했는데 이는 경순왕의 외손이다. - 금사 여진의 추장은 신라에서 온 사람이고 완안으로 불렸다. 篤 耉 휑이라 함은 중국말로 왕을 의미하는 것이다. -송막기문 강원도 인문적 정체성을 찾아서 홍인희 43

44 횡 성 문 화 우리나라에서 마의태자 후손을 칭하는 성씨와 본관은 통천 김씨 경주 김씨 대 장군공파와 계림공파, 청풍 김씨, 부안 김씨, 부여김씨 등 여섯 개인데, 이들 대 부분이 대대로 살아왔던 곳으로 경주 일대가 아닌 현재의 강원도 통천을 거론 하고 있어 당시 마의태자 추종세력들의 행로를 짐작하게 한다. 한편 경순왕은 1,000년 사직을 왕건에게 넘기고 한동안 천추의 한을 품은 채 충북 제천 백운면 의 이궁 離 宮 에 머무르며 강원도 땅을 가끔씩 방문했는데, 이때 주로 거처하던 곳이 원주 귀래면이다. 귀한분이 오셨다 歸 來 의미의 지역명이 여기서 유래했다. 또한 그곳 황산사의 타종 때가 되면 귀래면과 제천 백운면 사이에 있는 언덕 에 올라 경주 쪽을 바라보면서 사죄의 큰절을 올렸다고 해서 瀆 枉 횬 叡 라는 이 름이 생겼으며 이따금 월악산 덕주사에 머물고 잇던 덕주공주가 올 때면 무던 히 기다리지 못하고 배재까지 마중 가곤 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나라를 빼앗긴 후 신라 화랑의 후예답게 고려에 결사 항전하던 끝에 중국 대륙까지 진출을 꾀했던 마의태자를 기리며, 2003년 한 독지가가 인 제지역에 세운 노래비의 가사를 음미해본다. 행치령 고개 넘어 백자동 고개 넘어 산새도 오지 않는 깊은 산골 갑둔리 달빛보다 더 푸른 천추의 그 푸른 한 나라를 찾겠노라 그 큰 뜻을 품은 채 어찌 눈을 감으셨나 마의태자 우리 님 하늘이 버리셨나 바람도 스산하다 무덤조차 일어버린 첩첩산중 김부리 꽃보다 더 붉은 망국의 그 붉은 한 세월아 말을 하라 통한의 그 역사 어찌 눈을 감으셨나 마의태자 우리님 -마의태자 정두수 작사 조영남 노래 44 Ⅰ.향토문화의 숨결

45 고려 마지막 임금과 세 무덤의 미스터리 지금부터 600여 년 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중추원부사 정남지과 형 조전서 함부림을 강원도 삼척에 파견했다. 그들은 오랜 유배에 행색이 초라해 진 49세의 중년 남자를 꿇어앉힌 후 군 君 을 관동에 가 있게 하고 나머지 동성 들도 각자 편리한 곳에 가서 생업을 유지하도록 해왔다. 그간 대관들과 법관들 이 열두 번 씩이나 연명으로 군에 대한 처단을 주청해 여러 날 다투었으나, 대소 신료들이 또 글을 올리어 간하므로 내 부득이 그 청을 따르게 되었으니 군은 이 사살을 잘 알라 는 교지를 전달하고 마침내 그와 두 아들을 교살했다. 조선왕조실록 에서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의 최후를 묘사한 대목이다. 그 는 이 일이 있기 이미 4년 전, 이성계 일파의 치밀한 사전 계략에 따라 울며 겨 자 먹기로 왕위에 올랐다가 2년 후에는 그들에 의해 인심을 잃었다. 덕이 부족 하다 는 이유로 강제로 폐위되어 강원도 일대를 떠돌고 있었다. 사실 공양왕이 왕위에 거론될 당시부터 군왕 자질론 시비가 불거졌다. 봉건 왕조 시절 지존의 자리를 놓고 조정 중신들의 투표를 거쳐 가까스로 즉위할 때부터 이미 불행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다. 이러한 연유로, 왕이 된 뒤에도 고려 왕조와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이 미 폐위되어 귀양 중이던 우왕, 창왕을 죽이는 등 정권 실세들의 충견 노릇을 해 야만 했다. 심지어 자신의 신하인 이성계를 몸소 찾아가 의형제를 맺고 서로의 후손을 보호하자고 애원하는가 하면 즉위나 퇴위할 때는 눈물까지 보였던 유약 한 성품이었으니 조정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 등 무인들에게 휘둘리기 십상이었 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1392년 7월 17일자의 기록이다. 마침내 왕대비의 교지를 받들어 공양왕을 폐하기로 일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남은이 시좌궁에 이르러 교지를 선포하니, 공양왕이 부복해 명령 강원도 인문적 정체성을 찾아서 홍인희 45

46 횡 성 문 화 을 듣고 말하기를 내가 본디 임금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여러 신하들이 나를 강제로 왕으로 세웠습니다. 내가 성품이 불민해 사기 事 記 를 알지 못 하니 어찌 심정을 거스린 일이 없었겠습니까? 하면 이내 울어 눈물이 두 서너 줄기 흘러내렸다. 조선조로부터 공손하게 왕위를 이양했다 恭 讓 는 의미의 굴욕적인 시호까지 받은 그는 자신의 두 왕자 왕석, 왕우와 함께 개성을 떠나 뱃길을 따라 강원도의 초입이자 현재의 문막읍 옆에 위치한 부론면 일원의 은섬포에 다다른다. 배향 산 중턱에 움막을 짓고 매일 산꼭대기에 올라 향불을 피워놓고 개경 쪽을 바라 보며 조상과 백성에게 사죄의 절을 올리는 일을 반복했다. 이것이 결국 조선 조 정에 알려져 유배지를 옮기는 빌미가 되고 만다. 배향산이 위치한 손곡리는 광 해군의 어머니 공빈 김씨가 태어난 곳으로 오늘날에도 상당수 주민은 행정구역 명칭인 손곡 보다 손위실 遜 位 室 이라 즐겨 부른다. 이는 공양왕이 왕위를 물려주고 온 곳 이라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원주에서 쫓겨 간곳을 현재 강원도의 동해안 북쪽 끝자락인 고성군 간성으로, 이 때문에 그는 후대에 간성왕 이라는 별칭을 얻는다. 이 일대에 체류하던 중 역모의 우려가 제기됨에 따라 또다시 유배지를 옮기게 된다. 여기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온다. 당초 공양왕을 간성에 유배토록 한 데는 그를 따르던 지관들의 은밀한 공작이 있었다고 한다. 금강산과 설악산의 정기가 당시 그곳의 수타사에 서려 있다고 믿어 고려 왕조 재건 운동의 적지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연유인지는 모르 겠지만 공양왕이 피살된 후에 산의 정기가 뚝 끊어져 수타사 내에 빈대가 들끓 는 등 도저히 살 수 없게 되었다. 결국 7층 석탑만 남긴 채 절을 불태워버리고 현 재의 홍천군 동면으로 자리를 옮겨 가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동해안을 따라 고성에서 삼척지역으로 밀려난 공양왕은 현재의 근덕면 46 Ⅰ.향토문화의 숨결

47 궁촌리 宮 村 里 임금의 마을 한 민가에 머물던 중, 그 일대에서 공양왕 복위 운동 이 일어나는 등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또 한 번 반역 음모론에 휘말리게 된 다. 급기야 조정에서 내려온 집행관들에 의해 1394년 4월 17일 마을 뒤편 살해 재(일명사라치)에서 자신은 물론 왕자, 추종자들까지 본보기로 집단 처형됨으 로써, 오랜 강원도 유배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이로써 고려 왕조도 역사의 뒤안 길로 완전히 사라진다. 이때 겨우 살아남은 고려의 충신들은 울분을 삭힌 채 현 재의 태백 방향으로 도주하다가 높은 고개에서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겠다 고 다짐하며 관모 巾 와 관복 衣 을 벗어놓으니 이것이 건의령 巾 衣 嶺 의 유래다. 한편, 삼척 처형 장소에는 공양왕 일행이 사라져간 마지막 모습을 목격했을 법한 높이 20미터 둘레 5.4미터에 수령이 1,000년 남짓 되는 대형 음나무가 지 금도 서 있다. 마을에서는 이를 신령스러운 나무 神 木 로 섬기면서 매년 정월과 단오 때 제사와 굿을 올리는데, 나무의 잎이 동쪽 가지에서 먼저 피면 영동지방 에, 서쪽 가지에서 먼저 피면 영서지방에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공양왕의 죽음과 관련한 최대의 미스터리는 능의 위치다. 공식 기록인 조선왕 조실록에는 공양왕릉 이 경기도 고양에 왕과 왕비의 능이 쌍릉 형태로 있다고 적혀있다. 이곳에는 공양왕 부부가 자결했으며, 그들을 따르던 삽살개가 끝까 지 주인의 시신을 지켰다는 전설도 전한다. 태종은 재임 중 공양왕의 묘를 찾으 라는 명을 내려 고양에 있다는 보고를 받고는 묘에서 능으로 승격시킬 것을 지 시했다. 또 세종은 공양왕의 둘째 딸 정신공주의 상소를 받아들여 군 君 으로 강 등되었던 그를 다시 공양왕으로, 어머니 순비 교하 노씨를 왕비로 각각 추봉하 도록 한데 이어 묘호를 고릉 古 陵 으로 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삼척에서는 각종 고문헌, 역사, 풍속, 인물 및 주변의 지명 등을 들어 이를 반박하면서 진짜 공양왕릉은 태조실록 에 그와 추종세력들이 죽은 장소 로 기록한 이곳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 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들이 내 세우는 문헌적 근거는 위의 태조실록 외에도 척주지 척주생안 및 일제강 강원도 인문적 정체성을 찾아서 홍인희 47

48 횡 성 문 화 점기에 편찬된 삼척군지 등이다. 이중 척주지 는 예학의 대가이자 깐깐한 성 품으로 정평 나 있던 미수 허목이 삼척부사 시절에 저술한 책이어서 신빙성이 높다. 척주지 내용의 일부다. 추라 楸 羅 궁촌마을에 오래된 무덤이 있는데 왕릉이라고 전한다. 이곳의 밭을 왕이 머물던 옛 궁터라고 하나 떨어져나간 주초석이나 기와도 없다. 늙은이들은 공양왕이 원주 간성을 거쳐 우리 태조 3년에 삼척에서 운명했 다고 말한다. 그때 왕의 집은 민가에 불과했으며 돌아간 후의 장례도 이와 같았다. 산지기 한 명만 있고 분묘는 폐허 가 되다시피 했다. 근래에 들어서도 여전히 능에 대한 진위 논란이 그치지 않자, 급기야 1977년 당시 근덕면장이 군수의 명을 받아 발굴에 나섰는데 능 전면을 개봉한 수 석관 이 있는 것까지 확인했지만, 이 과정에서 궁촌리 마을 사람들이 능을 파헤치면 동리가 망한다 고 극력 반대해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발굴 도 중 왕릉 및 다른 두 개의 무덤에서 구렁이가 나오자 경악하며 왕과 왕자의 능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신성한 능 앞에다 비린내 나는 생선 같은 것을 널어 말리면 바람에 다 날려간다 속설도 내려오고 있는 가운데, 특히 궁촌 마을에서는 3년마다 지내는 어룡제에 앞서 공양왕릉에 먼저 제사를 받드 는 풍습이 남아 있다. 현재로서는 고양과 삼척 두 곳 왕릉의 진위를 가릴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했 다. 이렇다 보니 당시 공양왕 등을 살해한 후 몸통은 삼척에 묻고, 머리는 사실 확인을 위해 한양으로 가져갔다는 설에서부터, 살해 현장인 삼척에 매장했다가 나중에 능을 고양으로 이장했다거나, 고양의 왕릉은 애초부터 시신이 없는 가 묘에 불과하다거나, 고양릉은 순비 노씨의 것이라는 등 각종 이야기가 분분한 실정이다. 더구나 이처럼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들어서는 양근 함 48 Ⅰ.향토문화의 숨결

49 씨 후손을 중심으로 진짜 왕릉은 삼척도, 고양도 아니니 간성에 있다는 주장과 함께 이를 뒷받침하는 사연이 제기되었다. 공양왕이 강원도로 유배되던 당시는 바야흐로 새 왕조가 막 열려 새로운 집권 세력의 서슬이 시퍼렇던 때였다. 이러한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은밀히 폐왕 을 따라온 충신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고려 왕조에서 예부시랑 오늘날 교육과 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바 있는 함부열이었다. 그는 공양왕이 간성 수타사에 체 류하던 1년 수개월 동안 인근 지역에 터를 잡고 아예 식솔들까지 내려오게 한 후 오로지 주군의 안위를 보살폈다. 그러나 이러한 정성에도 공양왕 일행은 또 다시 삼척으로 쫓기게 되고 그도 조용히 뒤따른다. 급기야 공양왕 최후의 날이 다가왔는데 운명의 장난인지 그 집행관으로 형조전서 함부림 곧 자신의 친형이 온것이아닌가! 이에 함부열은 공양왕을 살리기 위해 온갖 궁리를 한 끝에 형을 찾아가 다른 사람들은 처형해도 좋으니 임금만은 자신에게 넘겨달라고 간청을 거듭한다. 동 생의 충절에 감명 받은 형은 공양왕을 극비리에 간성으로 피신시킨다. 하지만 함부림은 뒤늦게 앞날에 대한 걱정과 어명을 어겼다는 자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객을 동원해 간성에 숨어 있던 공양왕을 기어이 찾아내 죽이니 이때가 1394 년 4월 25일이다. 실록에 처형일로 기록된 4월 17일에서 8일이 지난 후다. 이후 함부열은 왕의 시신을 남몰래 수습해 일체의 석물을 배재한 채 소박하게 인근 고성산 자락에 매장하고 자신도 간성에 은둔하면서 주군의 능을 보살피는 일에 여생을 바쳤다. 그는 이곳에서 낳은 아들의 이름을 함극충 咸 克 忠 이라고 할 정도로 고려를 향한 지극한 충성심에 변함이 없었다. 임종을 앞두고는 왕릉 밑자락에 나를 묻고 제사 때는 반드시 임금님께 먼저 예를 올리되 축문은 하지 말라 고 유언했는데 혹시라도 왕릉의 실체가 소문나 후손이 다칠 것을 염려했 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이러한 연유로 고성군 간성읍 및 죽왕면 일원에는 후손이 600여 년째 집성촌 강원도 인문적 정체성을 찾아서 홍인희 49

50 횡 성 문 화 을 이루어오고 있다. 종중묘 중건이나 시제를 지낼 때는 고려 왕실의 후손인 왕 씨 문중에서도 방문, 함부열의 충절을 기리기도 한다. 또한 함부열은 당시 이성 계의 역성혁명에 반기를 들어 두문불출 이라는 말을 낳게 한 고려 72현 賢 에 도 이름이 올라 불사이군의 충신으로 우뚝 서게 된다. 특히 죽왕면 왕고마을에 대대로 살고 있는 함씨들 중에는 함부열의 후예답게 효심이 뛰어나 조선시대 조정으로부터 벼슬과 함께 효자비를 받는 일이 이어졌다. 현재 마을에는 이를 알리는 양근 함씨 4세 효자각이 서있다. 한편, 공양왕의 사형 집행관이었던 형 함부림은 조선 개국공신 반열에 올라 영 의정에 추증되기까지 했는데, 이렇게 엇갈린 형제의 선택이 결국 그 후손에까 지 미쳐 형 부림계는 강릉 동생 부열계는 양근양평의 옛 지명으로 본관이 나뉘 는 결과를 낳았다. 그 세력도 강릉 함씨의 경우 조선시대에 가문이 번창했기 때 문인지는 몰라도 지난 2000년 기준 5만 6,718명으로 은둔의 삶을 살았을 것으 로 보이는 양근 함씨1만 478명를 훨씬 앞서고 있다. 어느 왕릉이 진짜 공양왕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삼척과 간성 두 군데에 현 존해 있는 그의 묘는 온갖 역사의 풍랑을 넘고, 지난 1997년과 2000년 동해안 일대를 휩쓸었던 대형 산불의 와중에서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은 가운데 온 전히 지켜지고 있다. 고려 왕조의 종언과 관련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1943 년 음력 4월 2일 당시 삼척지역 공양왕릉 제향 행사에서 낭독되었던 제문의 일 부를 소개한다. 마지막에 왕운은 불행을 당해 산해에 한 줌의 흙이 되어 무덤 속으로 돌아가고 강산은 주인이 바뀌어 영혼은 보금자리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으니 천년 의 한이로다. 세월은 흘러가고 사람마저 사라졌구나. 이 왕의 능에는 향불을 지 키는 사람도 없어서 좌우 밭둑길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앞뒤 언덕에는 가시덤불 만이 무성하니 더욱 한스럽구나. 50 Ⅰ.향토문화의 숨결

51 동해안 남단에서 조선 왕조의 창업이 움트다 지난 2008년 2월 무려 600년이 넘도록 온갖 풍상을 견디어온 숭례문이 한 노 인의 방화로 석축을 제외한 건물 전체가 소실되었다. 창건 당시 남쪽에 위치한 관악산의 불기운 火 氣 을 누르기 위해 숭례문이라 이름 붙여진 대한민국의 상징, 국보 제1호가 다섯 시간 동안 화마에 싸인 채 맥없이 무너지는 아이러니를 연출 했다. 이름도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숭 崇 자 와 오행에서 화 火 에 해당하는 례 禮 자를 쓰게 되었으니, 이는 곧 불을 불로써 제압한다 는 비보 책 裨 補 策 에서 비롯되었다. 그로부터 1년여 지난 2009년 2월 3일 각 언론은 다음과 같은 골자의 기사들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의 대들보로 쓰일 재목으로 강원도 삼척 준경묘 금강송 열 그루가 오늘 경복궁 부재관리소에 도착했다. 높이 20미 터, 지름 70센티미터, 수령 100년 이상의 준경묘 금강송은 예로부터 궁궐용으 로 쓰이던 소나무로, 숭례문 대들보와 추녀 등을 만드는 데 활용된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다소 생소한 이름인 준경묘 다. 준경묘가 무엇이기 에 강원도동해안 남단에 있는 삼척까지 가서 재목을 구하려 할까? 이에 대한 답 을 찾기 위해서는 무려 78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강원도에서도 변방에 위치한 삼척은 참으로 기묘한 사연을 담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양왕의 죽음과 함께 고려 왕조가 종언을 고한 곳일 뿐 아니라 고려 를 멸망시킬 새 왕조 조선의 창업이 이미 오래전에 예언된 곳이었다. 때는 고려 후기인 1231년이었다. 당시 이성계의 조상은 본향인 전주에 대 대로 살며 대체로 무인집안의 전통을 이어가던 중 4대조 목조 이안사대에 와서는 사병 170여 호 戶 를 거느리며 반정부적 성격을 띤 토호세력을 형성하 고 있었다. 그 무렵에는 각 지방에서 고려 조정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던 군소 호족들이 다수 포진해 있던 시절이었고, 이안사도 그들 가운데 하나였다. 강원도 인문적 정체성을 찾아서 홍인희 51

52 횡 성 문 화 이러한 상황을 조심스럽게 관찰하던 전주 주관 州 官 과 전라도 안렴사가 중앙 에서 내려온 산성별감과 상의 끝에 군사를 동원해 치려 했는데, 이를 눈치챈 이 안사는 170여 호를 이끌고 태산준령을 넘어 현재의 삼척 미로면 활기리로 도피 해 터를 잡는다. 그가 굳이 전주에서 수천리 길인 삼척을 찾은 것은 이안사의 외 조부가 삼척 이씨의 시조이자 고려 대장군인 이강제로, 외향 外 鄕 이라는 혈연 적 기반이 있었던 데다, 앞뒤로 동해와 준령이 막고 있어 관군의 추력을 피하기 좋은 천연요새라는 점이 작용했다. 이처럼 다소 딱딱한 내력과는 달리, 이안사가 총애하던 여인과 결부된 흥미로 운 이야기도 전해온다. 이안사가 전주에서 생활할 때 매우 총애하던 어떤 관기 가 있었는데, 어느 날 새로 부임한 산성별감이 자신의 취임을 축하하는 술자리 에서 그 기생의 미모와 춤 실력에 반해 수청 들 것을 강요하는 등 온갖 추태를 부렸다. 그러자 이안사가 패거리들을 동원해 구타를 하고는 후환을 우려해 밤 의 어둠을 틈타 삼척으로 도망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삼척에서 도피생활에 들어간 이안사는 자신을 따라온 추종 세력들과 함께 배 15척을 건조해 수차례 왜구를 물리치는가 하면, 몽고군 침입 시에는 인 근 두타산성에서 방어진을 구축하고 싸우는 등 그 지역에서 상당한 세력을 형 성해갔다. 그러던 중 부모가 모두 타계하자, 그곳에 모시게 된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 이양무이성계의 5대조의 묘는 준경 濬 慶 묘 어머니 삼척 이씨 묘는 영 경 永 慶 묘 로 각각 불리게 되는데, 특히 준경묘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이 조선 개국을 예고하는 금관백우 金 棺 百 牛 설화가 전해온다. 이안사가 삼척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어느 날 아버지 이양무가 숨을 거두 게 되는데, 미처 장지를 마련하지 못한 터라 궁리만 거듭하고 있었다. 때마 침 하인이 장례에 쓸 나무를 하러 갔다가 언덕에서 노승과 동자승이 어떤 묏자리를 보고 장차 왕이 나올 명당 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는 주 52 Ⅰ.향토문화의 숨결

53 인에게 고한다. 이안사가 급히 달려가 그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 간 곡히 청하니 길지를 가리키면서 5대 후손 중 제왕이 탄생할 것이로되 반 드시 금관과 소 100마리를써 제를 지내야 한다 고 말하고 떠난다. 피난 와 있는 처지로 도저히 금과 그 많은 소를 구할 수 없었던 이 안사는 결국 누 런색의 호밀대로 관을 만들도 때마침 처가평창이씨에 있던 흰소 白 牛 가 소 100리 百 牛 와 음이 같고 글자도 비슷하다며 그소를 잡아 장사를 치르고 매장하니 이곳이 곧 준경묘 다. 호사가들 간에는 조선 왕조가 온갖 고난과 풍파를 겪은 것은 노승이 시킨 대로 하지 않고 이처럼 편법으로 묘를 썼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안사는 전주에서 자신을 치려던 산성별감이 강원도 안렴사 가 되어 삼척으로 순시를 올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한다. 고심을 거듭한 끝에 다 시 170여 호를 이끌고 북쪽으로 올라가 고려와 원나라를 넘나들며 무인생활을 하는데 이것이 후대까지 계속 이어진다. 1940년 강원도지 는 성품이 호방한 목조는 천하를 경영하려는 뜻을 갖고 있었다. 이곳 활기동에 살던 중에 전주에 서 만났던 산성별감이 다다른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족을 이끌고 항해해 함길도 덕원군에 이르렀다. 170여 호가 또 그를 따라와 원나라에 귀화해 경흥부에서 동 쪽으로 3리 떨어진 곳에 옮겨 살았다. 조선 왕업의 흥기가 여기에서 비롯되었 다 고 당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목조 이안사가 삼척을 떠난 지 160여 년이 지나, 노승의 예언대로 4대 후손 태 조 이성계가 새 왕조의 지존에 오른다. 삼척에 5대조 묘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어 백방으로 실체를 규명하도록 어명을 내린다. 그러나 묘를 일어버린 상태 에서 워낙 많은 세월이 흘러 찾는 데 끝내 실패하자 그 대신 왕실의 외향인 삼척 군을 부 府 로 승격시키고 홍서대 를 내린다. 서대 犀 帶 란 조선시대 일품 벼슬 의 관리들이 허리에 두르던 것으로, 태조가 삼척부에 하사한 홍서대는 물소 뿔 강원도 인문적 정체성을 찾아서 홍인희 53

54 횡 성 문 화 을 장식으로 붙인 길이 1.2미터의 붉은 띠로 강원도 지방 민속자료 2호로 지정 되어 있다. 그러던 중 세종 때에 들어서야 삼척부사가 어명을 받들어 이 양묘 兩 墓 의 행방을 찾게 되었지만 역대 왕들의 재위기간 내내 그 실체에 대해 반신반 의가 계속됨에 따라 국가 차원의 묘역 관리가 흐지부지 되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어사흥서대기적 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성종 때 왕명에 의해 묘를 수축하려다가 다시 왕명에 의해 중지하고 묘를 지키는 일도 그만두었다... 선조 때는 강원도 관찰사 정철이 양묘를 수축할 것을 건의해 개축하고 수호군도 두었다. 이때 양묘는 황지 黃 池 에 있다고 이 의를 제기하는 자가 있어 수색했으나 찾아내지 못했다... 황지 서쪽에 진짜 묘가 있다는 다른 상소가 올라와 탐방했으나 역시 증거를 찾지 못했다. 그 후로는 다시 양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이도, 탐문하는 일도 없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1899년 고종 때 이르러 묘의 이름을 준경 과 영경 이라고 공 식적으로 명명한다. 이때 제반 관리와 의식 절차 등을 엄격히 시행하는 규정인 양묘수호절목 兩 墓 守 護 節 目 도 제정해 시행하게 되는데, 그 내용이 매우 치밀 하고 세세해 양묘 일대에 현재와 같은 금강송 군락지가 조성될 수 있었던 이유 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강원도 관찰사를 비롯한 인근 지역 부사, 군수 등 관할 지방관들이 묘에 대한 관리와 제례 등을 책임지되 그 결과를 정기적으로 중앙의 관할 부서에 보고하 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각별히 신경을 쓰는 것이 식목과 산불 방지다. 특히 산 불 예방을 위해서는 묘 주변에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 표계 標 界 를 설치하고 벌 목 벌초에 만전을 기했으며, 이러한 제반 업무를 위해 무려 14명의 실무 관리를 배치해 놓았다. 이처럼 고종 때부터 묘소를 수축하고 제실과 비각을 건축하는 등 성역화하면 54 Ⅰ.향토문화의 숨결

55 서 일대에 토종 소나무 조림과 보호에 만전을 기한 것이 결과적으로 오늘의 금 강송 군락지를 원시림 형태로 유지해주었다. 특히 이 지역의 송림은 임금의 관 을 짤 때 쓰이던 황장목으로, 경복궁을 중건할 때도 자재로 사용한 명품이다. 여기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산림청은 충북 보은 속리산에 있는 천연기념 물 정2품송의 품종 교배용으로 전국을 뒤진 끝에 이것에서 미인송 으로 불리 는 늘씬한 소나무를 찾아냈다. 정2품송의 수술 꽃가루를 미인송의 암술에 뿌려 얻은 2세 소나무 200여 그루가 지금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자라고 있다. 지난 2001년에는 세계 최초로 이 정2품송신랑과 미인송신부간의 전통 혼례식 을 가져 한국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2005년에는 이곳 금강송 군락지 가 전국 아름다운 숲 경연에서 천연의 숲 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등 화제가 되었다. 한편, 풍수지리가들 간에는 준경묘가 전국 10대 명당에 꼽히는 길지로 통한 다. 그러나 우백호오른쪽 산줄기의 기운이 좌청룡왼쪽 산줄기을 압도하는 형세 여서 조선시대 내내 좌청룡에 해당하는 장남들이 수난을 당하는 역사가 이어졌 고, 좌청룡과 우백호가 마주보며 대결하는 양상이라 왕자들 간에 다툼이 계속 되었다는 재미있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지역에서도 마을이름인 활기리의 원래 명칭이 황기리 皇 基 里 즉 왕이 나올 터 로 언뜻 보아도 명당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며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2000년 삼척지역에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 묘를 지키기 위한 주민조직을 운 영하는가 하면, 경복궁 중수 등 정부의 고건축 복원이 있을 때마다 일대 소나무 들이 벌채되는 수난을 겪는데 대한 반감으로 관계 요로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일본의 상당수 극우 사학자들은 이성계가 여진족 후예이므로 조 선 왕조가 사실상 500여년간 여진족의 지배 아래 있었다 는 주장을 펼쳐 우리 를 자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준경묘는 그들의 억지 논리를 반박하고 이 강원도 인문적 정체성을 찾아서 홍인희 55

56 횡 성 문 화 성계의 혈연적 뿌리를 밝히는 것은 물론, 우리 역사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유 서 깊은 현장인 셈이다. 이 준경묘는 전주 이씨 시조 이한의 묘로 전주 덕진구에 있는 조경단( 肇 慶 檀 )이래 남한에서 확인된 태조 이성계의 조상 묘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매년 4월 20일 문중 차원의 제례 행사가 펼쳐지고 있는데, 이 모 든 절차는 일반 묘가 아닌 왕릉에 대한 예법을 따르고 있다. 즉 묘가 아닌 능으 로 지칭하며 받들고 있는 것이다. 강사홍인희 P r o f i l e - 강원도 출생 - 교육학사 - 행정학 석사 - 前 국무총리실 근무 - 現 국가공무원 재직 저 서 - 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 (11. 6월 교보문고) [ 부제 : 정철도 몰랐던 21세기 관동별곡 ] - 중앙일보, 교보문고 인문분야 베스트셀러 선정(2011.6) - 대한출판문화협회, 청소년 권장도서 선정(2011.9) - 국립중앙도서관 길위의 인문학 추천서 선정( 및 ) - 2권 근간 예정 주요활동 - MBC라디오 정보시대 오늘 출연( ) - KBS-1라디오 생방송 토 일요일 오후입니다 출연( ) - 공무원이 쓴 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 출간 1주일 만에 돌풍 (국민일보) - 골마다 숨은 강원도 얘기 많기도 하지 (중앙일보) 등 중앙 및 지방 언론 30여차례 관련기사 보도 - 국립중앙도서관, 강원도중등교장협의회, 춘천교대 등 각 기관, 단체, 대학 등 초청 강연 30여회 56 Ⅰ.향토문화의 숨결

57 놀이의 범주화 1. 서론 1-1. 연구의 필요성 민족사관고등학교 이세희, 조민아 놀이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 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모든 문화 현상의 기원을 놀이에 두었 다. 1) 보통 사람들은 흔히 놀이 문화의 중요성을 경시하시만, 특정 놀이 문화 연 구서에서는 인간의 본질과 목적은 단순히 즐겁기 위해, 유희하기 위해서 라는 본능에서 시작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즉, 유희를 주는 놀이 가 인간의 본질과 문화의 중심에 자리할 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과 놀이가 불가분 관계에 있기에,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사상과 본질, 그리고 문화를 알기 위해서 는 '놀이 문화'에 관한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학계에서는 놀이 문화 에 대해 아직 활발히 논의 및 연구되고 있 지 않으며 놀이 범주화를 위한 시도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1980년대 우리 는 이를 통감하고, 서구 교육 사상의 무비판적 도입에 대한 반성과 함께 주체성 있는 아동 교육 정립의 일환으로 2) 전통적 아동 놀이를 개괄적으로 정리하거나 발달 단계별로 분류한 연구 (김덕선, 1978, 1980: 유안진 1981, 1990), 그리고 1) 요한 하위징아,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 (연암서가, 2010) 2) 백운학, 김경아 전통적 아동 놀이의 범주화를 위한 시도, (1997) 놀이의 범주화 이세희, 조민아 57

58 횡 성 문 화 이를 4 5세 아동의 성별, 연령별에 맞게 분류한 연구(김경희, 1986), 전통적 아동 놀이의 범주화를 위한 시도 (백운학, 김경아, 1997) 등 전통적 아동 놀이의 연구에 관심을 갖고 이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성별이나 연령의 벽이 허물어진 현재 시대에 입각하여 보았을 때 놀 이를 정확히 분류하기에는 기준(연령별, 성별)이 모호하거나, 놀이의 분류가 전 통적 놀이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한계점을 지닌다. 그 외에 로제 카이와는 그의 저서 <놀이와 인간>에서 놀이를 네 가지 범주로 분류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로제 카이와는 놀이를 규칙도 있고 의지를 반영하 는 아곤(경쟁), 규칙은 있으나 의지가 반영되지 않는 알레아(운), 규칙은 없으나 의지를 반영하는 미미크리(모의), 규칙도 없고 의지도 반영되지 않는 일링크스 (현기증)로 나누고 각 놀이의 특징과 종류, 타락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분류는 놀이에 대한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욕망, 타락, 의지, 심리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현실에서의 적용이 어렵다고 판단되었다. 이상과 같은 선행 연구를 살펴 본 결과, 현재까지 놀이 전체에 대한 범주화 및 분류가 거의 시도되지 않았던 실정이며, 이후의 놀이 문화 연구나 혹은 이를 통 한 인간의 심리, 문화, 아동 교육 등의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조사를 위해 좀 더 체계적이며 현실 적용 가능한 놀이 범주화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현재 행해지는 놀이 전반에 대하여, 인간의 심리 및 각 놀이 별 특성을 중심으로 범주화 및 유형화시켰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놀이 범주화를 위한 작업은 이후의 놀이 문화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가 될 수 있 을 뿐 아니라, 앞으로의 놀이 문화 연구를 촉진시키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58 Ⅰ.향토문화의 숨결

59 1-2. 연구 방법 본 연구의 초기 단계에서는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 책과 로제 카이와 의 <놀이와 인간> 책을 바탕으로 놀이에 대한 인간의 경쟁성, 모방성, 탈일상성 등 놀이의 본질과 인간 심리에 대한 탐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또한 보다 정확한 놀이 분류를 위하여 놀이 연구 서적과 논의들을 바탕으로 놀이의 정의 를 내 리는 작업을 하였다. 후에 앞서 내렸던 놀이의 정의와 여러 지역 학생들과의 인터뷰, 경험 등을 바 탕으로 현재 행해지고 있는 놀이 목록을 세분화하여 작성하였다. 이 세분화시 킨 목록에서 각 놀이의 놀이 방법, 놀이 참여자의 경험 및 느낌 인터뷰 등 놀이 채록 자료를 통해 기능, 행동, 작용하는 심리 등 놀이의 특성을 파악하였다. 마지막으로 앞서 조사하였던 놀이의 성격과 각 세분화한 놀이 특성을 바탕으 로 놀이를 개괄적으로 범주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하였으며 최종적으로 범주화 의 상위 개념, 하위 개념, 정의를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2. 놀이의 정의 놀이란 인간으로서의 삶의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즐기고자 하는 의지적 인 활동이다. 3) 이때 놀이로서의 정의를 충족시키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이 따른다. 첫 번째로, 놀이 활동의 근본적인 목적이 유희 에 있어야 한다. 놀이 도중 경쟁 심리나 모방 심리 등 다양한 감정이 발현될 수 있으나, 그러한 경쟁이나 모 방 등은 부수적인 목적 혹은 감정이 되어야 한다. 만약 경쟁에게 이기려는 욕구 가가장우위에있다면그행위는더이상놀이가될수없다. 두 번째로, 놀이는 어떠한 강제성이 없이 자발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요한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놀이, (한국학중앙연구원, 1996) 놀이의 범주화 이세희, 조민아 59

60 횡 성 문 화 하위징아는 모든 놀이는 우선적으로 먼저 하나의 자유로운 행동이다. 명령되 어진 놀이는 놀이가 아니다. 그러한 놀이는 아무리 잘된 것이라도 우격다짐의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어떠한 행위가 자의성과 유희성을 띄어야 비로소놀이가될수있는것이다. 앞서 언급한, 유희 가 주 목적이 되며 자의성을 띄는 행위가 놀이라는 조건에 서 과연 스포츠도 놀이인가? 라는 의문이 제시될 수 있다. 스포츠의 사전적 정 의는 경쟁과 유희성을 가진 신체운동 경기의 총칭을 일컬으며, 심한 육체활동 이나 연습 요소도 포함한다. 이때, 스포츠는 경쟁 과 유희성 이라는두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놀이 참여자의 행위나 의지에 따라서 놀이가 될 수도 있고, 단순 경쟁 및 경기가 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자의성이 있는, 그리고 단 순히 유희와 자기만족을 위한 스포츠는 놀이에 포함시켰고, 반대로 자의성이 없이 강압적인 압력에 의해, 그리고 자기만족의 의미를 넘어 특정 목적을 위해 서 하는 스포츠는 놀이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다. 즉, 벤다이어그램 상으로 스 포츠가 놀이의 진부분집합적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앞서 고려한 요소를 바탕으로 스포츠와 놀이가 교집합적 관계에 있다고 결론 내렸다. 세 번째로, 놀이는 일정한 규칙 아래에서 행해져야 한다. 이때, 놀이 규칙이 현실법칙과 꼭 부합할 필요는 없다. 놀이 라는 시공간 안에서는 유효한 질서 가 있어야 하며, 이러한 규칙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놀이로서의 의미 를잃고더이상진행될수없다. 마지막으로, 놀이는 직접 참여해야 한다. 직접 참여하여 놀이하는 행위를 통하 여 의의가 실현되며 스스로 참여하는 주체적 행위가 포함되어야 한다. 즉, 보며 즐기거나 쉬면서 즐기는 것은 놀이가 아닌, 오락 및 휴식인 것이다. 4) 본 논문에서 놀이 범주화 시 전자기기를 이용한 게임 소프트웨어 (컴퓨터, PSP, X-box. 닌텐도 등)를 사용한 놀이는 편의상 제외한다. 각 게임 소프트웨어 4)Ibid 60 Ⅰ.향토문화의 숨결

61 의 기능, 행위, 특성 등이 매우 다양하고, 게임 소프트웨어 숫자 또한 무수히 많 아, 각 게임을 모두 분류하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3. 놀이의 범주화 스포츠 형 승패 결정 놀이 벌칙 형 도박형 스포츠 형 승패 결정 놀이 보드게임형 찾기형 벌칙형 놀이 승패 비결정 놀이 잡기형 폭력형 레크리에이션 형 수집형 감상형 놀이 승패 비결정 놀이 찾기형 폭력형 잡기형 승패 무관형 놀이 털기형 역할형 폭력형 조립형 장소형 퍼모먼스형 승패 무관형 놀이 공작형 역할형 퍼포먼스형 손장난형 수집형 운동형 편 가르기형 손장남형 3-(b) 최종 범주화 및 유형화 3-(a) 초기 범주화 및 유형화 놀이의 범주화 이세희, 조민아 61

62 횡 성 문 화 초기 연구에서는 놀이를 범주화 할 때에 놀이 참여자의 성별, 연령대, 도구 사 용 여부 등으로 분류하려고 시도해보았으나, 현재의 놀이는 남녀의 구분이나 연령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아 분류가 모호해졌다. 또한 놀이의 놀이 참여자의 외부적 요인에만 의거한 간단한 분류를 할 경우에는 놀이의 특성들을 경시되어 범주화가 현실에 적용하기에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놀이 전체를 승패와의 연관성, 놀이 참여자의 경쟁 심리 와 모방 심리를 고려하여 크게 세 가지로 나누었다. 이때, 모방 심리는, 놀이를 같이 하는 인원 중 특정 사람을 모방하려는 심리이다. 놀이는 크게 1) 승패 결정 놀이, 2) 승패 비결정 놀이, 3) 승패 무관 놀이로 나눌 수 있다. 이 승패 결정 놀이, 승패 비결정 놀이, 승패 무관 놀이라는 큰 범주의 하위 항 목들을 다시 놀이의 기능, 행위 등 특성을 중심으로 유형화시켰다. 이 때, 유형 화한 범주의 이름은 명사에 -형이라는 접미사를 붙여 놀이의 특성을 나타내려 고 하였다 승패 결정 놀이 승패 결정 놀이는 놀이를 할 때 경쟁 상대가 필요하며, 이 경쟁으로 인해 승패 가 갈리는 놀이를 말한다. 이 때, 의지와 상관없이 승패가 갈릴 수도 있으며 경 쟁 상대가 반드시 사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승패 결정 놀이는 1) 스포츠형 2) 보드게임형 3) 벌칙형 세 가지로 유형화할 수 있었다. 첫번째스포츠형은 앞서 정의한대로, 특정 목적 달성을 위한 경쟁심보다, 유 희성과 자기만족이 최우선시 되는 운동 종목 혹은 경기를 행한 경우에만 스포 츠형으로 취급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축구와 테니스가 있는데, 놀이 참여자들 끼리 서로 경쟁하며 점수 혹은 평가에 따라서 승패가 갈릴 수 있다. 두번째보드게임형은 일정한 놀이판 (보드) 위에서 말을 움직이는 놀이와 정 62 Ⅰ.향토문화의 숨결

63 해진 숫자의 카드를 가지고 일정한 룰 아래에서 승부를 겨루는 놀이를 뜻한다. 5) 연구 초기 단계인 3-(a) 에서는 도박형 이라는 어휘를 사용하여 포커나 트럼프 같은 놀이를 포함시키려고 의도하였으나 도박 이 금품을 걸고 승부를 겨루는 일 6) 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즉, 놀이는 유희를 얻음을 주 목적으로 하는 반면, 도박은 사행적 금품 습득을 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논의 에서 도박이 놀이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결과적으로 도박을 대신 할 다른 어 휘로 현재 널리 통용되고 있는 보드게임 을 선택했다. 보드게임형의 대표적인 놀이로는 원카드, 포커, 트럼프, 부루마블 등이 있다. 세번째로 벌칙형 놀이는 평소 놀이가 행해질 때, 놀이 규칙을 어기거나 놀이 에서 패한 사람에게 주로 벌칙을 주게 되는 놀이를 말한다. 실생활에서 단체 활 동 시 분위기 쇄신과 친밀감 형성을 위해서 많은 인원이 간단하게 진행할 수 있 는 놀이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앗싸 홍삼, 딸기, 왕 게임 (술자리 게 임) 등이 있다. 벌칙형 놀이에서 벌칙을 생략하면 범주화에 포함되지 않느냐 는 의문이 제시되었으나, 벌칙을 주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기보다 평소 놀이를 함으로서 벌칙이 많이 행해지고, 구조 자체도 간단한 규칙의 놀이를 통하여 벌 칙을 받을 사람 (놀이에서 패한 사람)을 쉽게 정할 수 있는 놀이라는 것에 의미 를 두었다 승패 비결정 놀이 승패 비결정 놀이는, 놀이를 할 때 다수의 인원이 참가하나 서로 경쟁은 하지 않는 놀이이며 따라서 경쟁으로 인해 승패가 갈릴 수 없다. 그러나 놀이 참여자 들 사이에 견제 심리나 모방 심리가 촉진될 수 있다. 승패 비결정 놀이는 또 다 시 1) 잡기형, 2) 찾기형, 3) 폭력형으로 나뉘었다. 잡기형 놀이들은 놀이 안에서 주로 술래와 도망자로 역할이 나뉘어, 도망가는 5) 두산백과 보드게임 6) Ibid 도박 놀이의 범주화 이세희, 조민아 63

64 횡 성 문 화 사람들을 술래가 잡는 행위로 놀이 전반이 구성된다. 놀이 안에서 점수가 계산 되거나, 패배자를 가려내는 데에 목적을 둔 놀이가 아니기 때문에, 경쟁을 통해 승패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술래가 도망자를 잡기 위해 도망가는 방향에 신 경을 곤두세우고 반대로 도망자는 술래의 동향을 파악하는 등 서로 견제하는 심리와, 다른 도망자들을 보고 술래에게 잡혔던 사람의 경로나 방법 등을 학습 하여 회피하거나 혹은 술래에게 잡히지 않는 방법을 따라하려는 등 모방 심리 가 촉진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얼음땡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있다. 다음으로 찾기형 놀이는 개인이 사람이나 물건을 찾는 행위로 구성된 놀이이 다. 대표적인 예로는 보물찾기와 숨바꼭질이 있으며, 이 또한 승패를 가린다 는 개념까지 확장된 것이 아닌, 술래가 대상을 찾을 수 있나 라는 행위에 초점 을 맞춘다. 범주화를 위한 논의 중, 위의 잡기형 놀이와 찾기형 놀이가 명확히 구분될 수 있는가 반론이 제기되었다. 즉 찾기형 놀이의 최종 목적은 대상을 잡는 것이라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잡기형 놀이 안에 찾기형 놀이가 포함될 수 있다는 가능 성을 시사한 것이다. 하지만, 찾기형 놀이의 대표적 예인 숨바꼭질과 잡기형 놀 이의 대표적 예인 얼음땡을 대조해 보았을 때, 숨바꼭질은 숨어 있는 사람들을 찾기만 하면 그 사람들이 게임에서 탈락하게 되어 결국 대상을 찾는 것에 목 적이 있는 반면, 얼음땡은 도망가는 사람들을 따라가 잡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잡기형 놀이와 찾기형 놀이는 서로 다른 유형화 범주라고 결론을 내렸다. 마지막 폭력형은, 놀이 안에서의 행위가 현실법칙에 입각해 보았을 때 폭력성 이 내재되어 있는 놀이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물총싸움과 전쟁놀이가 있는데, 놀이 참여자들은 상대방에게 공격성을 조금이라도 내포하고 있는 행동을 가하 고, 또 적의 공격 을 피하는 행위 안에서 쾌감과 유희를 느낀다. 현실의 전쟁 혹은 총싸움과는 떨어진 허구적인 놀이 세계 안에서 행해지는 놀이이기 때문에 64 Ⅰ.향토문화의 숨결

65 경쟁심을 가지고 이기는 것에 목적을 두기보다 행위 자체의 즐거움에 목적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놀이 안에서 실제로 사람이 죽거나 상처가 나는 것 이 아니기 때문에 승패를 가릴 수 없지만 놀이 특성 상 아군과 적군으로 나뉘어 져 견제 심리가 발동되기도 한다. 초기 범주화 3-(a)에서는 승패 비결정 범주 하위 항목으로 레크리에이션형, 즉 수학여행에서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일방적으로 이끌어 감으로서 의존적으로 하게 되는 놀이들은, 우리가 세웠던 놀이 조건 중 하나인 자의성을 충족하지 못 한다고 판단하여 범주화에서 제외시키기로 했다 승패 무관 놀이 승패 무관 놀이는 승패 자체가 연관성이 없으며, 홀로 놀이가 가능하다. 놀이 참여자들에게 견제 및 모방 심리가 작용하지 않는다. 승패 무관 놀이는 1) 공작 형, 2) 역할형, 3) 퍼포먼스형, 4) 손장난형, 5) 수집형으로 나누어진다. 가장 초기 범주화에서 존재했던 감성형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거나 혹은 그 감성을 이용하는 놀이라고 정의를 내렸지만 감성 이라는 기준이 모호하여 다 시 범주화 작업을 거친 3-(a)에서는 감상형과 퍼포먼스형으로 나뉘었다. 이 때 감상형은 영화 감상, 음악 감상과 같이 기존의 제작품들을 참여자들이 간접적 으로 즐기는 놀이이다. 하지만 우리가 앞서 밝힌 놀이의 정의에서, 놀이는 놀이 참여자가 직접 참여한다는 제한을 두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유희를 얻지 못하 는 감상형 놀이는 범주화에서 제외시켰다. 퍼포먼스형 놀이는 춤추기나 노래 부르기로 인간의 감정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려는 놀이라고 보았다. 여기서 퍼포 먼스형 놀이가 연예 혹은 정기적인 공연과 같이 목적이 본인의 유희보다 대중 들에게 보여주기 에 있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되었지만, 우리는 일 로서나 약속 으로서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놀이 참여자가 자의적으로 유희를 얻을 수 있는 예술 표현 행위만을 퍼포먼스형 놀이라고 정의하였다. 놀이의 범주화 이세희, 조민아 65

66 횡 성 문 화 그 외에도 초기 단계에서는 데덴찌, 가위바위보 등의 놀이들을 아우르는 편가 르기형이 존재하였으나, 편가르기형 놀이의 목적은 다른 놀이를 하기 위한 수 단으로 사용될 뿐, 편을 가르는 그 행위 자체가 유희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 다. 따라서 편가르기형을 범주에서 삭제하였다. 또한 3-(a)의 장소형 놀이에는 노래방 가기, 영화관 가기 등의 놀이 등이 포함 되어 있었다. 하지만, 노래방, 영화관 같은 장소에 가는 본 목적 자체가 단지 그 장소를 가기 위함이 아니라, 가서 노래를 부르거나 영화를 보는등본목적을위 해서라고 보았다. 결국 장소형 이라는 이름과 내용을 삭제하고 직접적인 활동 인 노래 부르기라는 직접적인 활동으로 교체하고 퍼포먼스형으로 분류하였다. 3-(a)의 털기형은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 상에서 친구의 신상 정보를 몰래 공개하거나 로그아웃하지 않은 친구 아이디로 웃긴 글을 남겨 다른 사람 들이 공공연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일명 털기 라는 특별한 놀이 문화도 이 범주화에 포함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사실상 털기 라는 놀이의 형태는 많은 친구들이 가까이 생활하며 쉽게 다른 친구의 소셜 네트워크 계정에 접속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기숙사가 있는 학교 에서만 주로 이 루어지는 놀이라는 한계성과 특수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털기형 놀이는 보편 적인 놀이 문화에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놀이 범주화에서 제외시켰다. 최종 범주화인 3-(b)에서 공작형은 도구를 가지고 무엇을 만들거나, 조립하는 놀이들을 말하며 대표적 예로는 레고 블록 쌓기나 찰흙 공예가 있다. 역할형은 놀이 안에서 다양한 인물, 동물, 사물의 역할을 맡아 흉내 내는 놀이를 일컫는 다. 대표적인 놀이로는 소꿉놀이, 시체놀이가 있다. 손장난형은 아무 도구 없이 손을 가지고 노는 간단한 놀이들을 말하며 주로 쎄쎄쎄, 푸른 하늘 은하수, 우정 테스트 등의 놀이가 있다. 이상의 세 가지 유형의 놀이들은 놀이 안에서 상대방 을 이기려는 경쟁 심리나 모방 심리가 촉진되기 힘들고, 승패가 정해지기 위한 놀이 구조 및 성질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 66 Ⅰ.향토문화의 숨결

67 수집형은 대상이 되는 물체를 수집하는 놀이로, 주로 카드나 구슬, 딱지 모으 기가 많이 행해진다. 범주화 논의 중에 수집형의 목적이 유희가 아니라, 좀 더 희귀한 물품 혹은 많은 물품을 모으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어 놀이에 포함되 지 않는다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상 물품을 다 모았을 때 느끼는 자기 만족감과 성취감 또한 유희의 일종으로 판단하여 승패 무관 놀이 하위 항목에서 제외시키지 않았다. 4. 결론 이와 같이, 본 논문에서는 인간의 심리 및각놀이별특성을중심으로, 현재 행해지고 있는 놀이 전반을 범주화 및 유형화하는 작업을 완성하였다. 놀이는 처음 승패와의 관련성 및 인간의 견제 및 모방 심리를 기준으로 크게 승패 결정 놀이, 승패 비결정 놀이, 승패 무관 놀이로 범주화 시켰다. 그리고 이렇게 분류된 세 범주의 하위 놀이들을 다시 놀이의 기능, 행위 등 특 성에 따라 몇 가지 형태로 유형화할 수 있었다. 승패 결정 놀이의 하위 놀이들은 스포츠형, 보드게임형, 벌칙형으로 분류 되었으며, 승패 비결정 놀이의 하위 놀 이들은 찾기형, 폭력형, 잡기형으로, 마지막으로 승패 무관 놀이의 하위 놀이들 은 공작형, 역할형, 퍼포먼스형, 손장난형, 수집형과 같이 유형화 하였다. 이러 한 놀이 범주화작업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시도를 함으로서 학술적으로 매우 의미가 있다는 점과 더불어, 이후의 놀이 문화 연구에도 크게 공헌할 수 있을 것 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앞으로는 이 논문의 연장선상으로서 놀이 문화를 좀 더 다양하고 체계적인 방면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본 논문에서 다루었던 놀이 범주화 및 유형화를 바탕으로, 현존하는 놀이들을 직접 채록하고 이를 연구함으로써 각 지역의 놀이 문화, 놀이를 할 때 나타나는 인간의 심리학적 면모,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탐구할 기회를 가질 것이다. 놀이의 범주화 이세희, 조민아 67

68 횡 성 문 화 참고 문헌 요한 하위징아,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 (연암서가, 2010) 김덕선, 한국 아동놀이 발달사에 관한 연구 : 전통적 표준놀이 선정을 위하여, (대구대학교, 1975) 김덕선, 영남지방의 고유한 아동놀이에 대한 수집개발과 분석연구, (대구대학교, 1970) 김덕선, 한국아동놀이 변천사에 관한 연구, (중앙대학교, 1973) 유안진, 한국의 전통아동놀이, (정민사, 1981) 김경희, 전통놀이의 개념 및 특징, (2009) 백운학, 김경아 전통적 아동 놀이의 범주화를 위한 시도, (1997) 로제 카이와, 놀이와 인간, (이상률 역, 문예출판사, 199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놀이, (한국학중앙연구원, 1996) 부 록 서론의 연구 방법에서 제시하였던 놀이 목록을 부록으로 첨부하였다. 놀이 명칭 정리 팽이 치기, 탑 블레이드, 딱지 치기, 레고 조립, 에스 보드 타기, 휠리스 타기, 구슬 모으기, 유희왕/ 포켓몬스터/ 디지몬/ 그리스 로마신화 카드 모으기 콩알 폭탄 갖고 놀기, 나무 오르기, 언덕에서 굴러 내려오기, 장난 전화하기, 실뜨기 공기 놀이, 고무줄로 모양 만들기, 마론 인형 갖고 놀기, 요리 놀이, 화장 놀이, 주방 놀이, 코믹송 부르기(우유송/ 숫자송/ 팥죽송/ 당근송), 철봉 매달리기, 그네 타기 그네 토네이도 타기, 다트, 본드 풍선 불기, 킥보드 타기, 방귀 풍선 갖고 놀기, 손등치기 얌체공 튀기기, 얼음 썰매 타기, 물 썰매 타기, 눈썰매 타기, 아이스 스케이트 타기 자전거 타기, 에니메이션/ 어린이 드라마 역할 놀이 (매직키드마수리 목걸이 갖고 놀기, 68 Ⅰ.향토문화의 숨결

69 꼬마 마법사 레미 마법봉 갖고 놀기), 롤러스케이트 타기, 만득이 갖고 놀기 매미 자석으로 소리내기, 플러버 갖고 놀기, 요요하기, 퍼즐 맞추기, 정글짐에서 놀기 마술, 흙장난, 방방 타기, 알까기, 물총 싸움, 자치기, 드래곤볼, 역할 놀이, 유희왕/ 포켓몬스터/ 디지몬/ 그리스 로마신화 카드 배틀, 오징어, 오줌싸개, 푸른 하늘 은하수, 영심이, 우정 테스트, 그네 바이킹, 가게 놀이, 백화점 놀이, 애완동물 가게 놀이, 텔레파시 놀이, 은행 놀이, 대문 놀이, 아이엠 그라운드, 보리쌀, 라비린스, 모노폴리, 부루 마블, 인생 게임, 풍선 운반하기 놀이, 보물찾기, 캥거루 달리기, 훌라후프 돌리기, 긴 줄넘기, 눈 감고 물건 맞추기, 수건돌리기, 땅 따먹기, 옥상 탈출, 지옥 탈출, 젓가락, 경찰과 도둑, 디비디비딥, 가위바위보 하나빼기, 제퍼디, 우노, 당연하지, 비밀 부대 놀이, 골든벨, 런닝맨, 거미줄, 신호등, 스무고개, 찌찌뽕, 나만의 열쇠, 나뽕, 무지개뽕, 수수께끼, 눈싸움, 때리고 안 때린 척 하기, 꼭짓점 댄스, 숨바꼭질, 쥐를 잡자, 여우야여우야, 악어 놀이, 술래잡기, 얼음 땡,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세 발 뛰기, 귀신 놀이, 뱀 꼬리잡기 놀이, 고래 잡기, 끝말잇기, 귀신 술래잡기, 이빨 뽑기 놀이, 꼼꼼이, 귀신 잡기, 콘따리 찐빵, 좀비 놀이, 대통령 놀이, 핸드 비트, 교과서 낙서, 깡통 차기, 멀리 뛰기, 달리기, 기절 놀이, PC방 가기, 조깅, 맨손 체조, 학종이 모으기, 춤추기, 절대 음감, 러시아워, 로직, 미로, 스도쿠, 미니 카툰 그리기, 인형 뽑기, 교과서 이름 바꾸기, 바둑, 장기, 체스, 짤짤이, 어벤저 놀이, 스파링 놀이, 신발 차기, 주사위 게임, 초성 잇기, 다리 찢기, ABC, 퐁당 퐁당, 베스킨라빈스 31, 코카콜라, S자, 돈가스, 계단 가위바위보, 계단 묵찌빠, 연극 놀이, 시체 놀이, 같이 노래 부르기, 똥킥, 바니바니, 홍삼, 쪽팔려, 할리 갈리, 젠가, 원 카드, 판치기, 다빈치 코드, 텀블링 몽키, 루미 큐브, 화투 치기, 오목, 물 풍선 던지기, 팔씨름, 엄지씨름, 손가락 씨름, 발가락 씨름, 놀이의 범주화 이세희, 조민아 69

70 횡 성 문 화 눈치 게임, 포테토 칩, 쿵쿵따, 내기, 369, 후라이팬 놀이, 사랑해 게임, 빙고, 제로, 마피아, 황금 마티즈, 묵찌빠, 인디언 밥, 물 튀기기, 곰 발바닥, 전기, 젠디 또오야, 마녀 사냥, 진실 게임, 탑 쌓기, 복불복, 코스프레, 쇼핑, 산책, 혼자 노래 부르기, 드립 치기, 성대모사, 수다, 베개 싸움, 왕 게임, 손병호 게임, 말뚝 박기,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 마니또, 몰래 카메라, 딸기, 야너임마 70 Ⅰ.향토문화의 숨결

71 Ⅱ.향토문화탐구 삽교 안석경 선생 탐구 이영식 둔내 고랭지 토마토 축제 박현숙

72 횡 성 문 화 길에서 만난 안삽교 횡성문화원 이사 이영식 횡성지역의 문화를 더 깊이 알고자 횡성문화원 임원들은 2012년 6월 27일 수 요일에 둔내면 삽교리에 있는 안삽교 거주 터 및 묘소를 다녀왔다. 이러한 지역 문화 탐방은 횡성문화원에서 몇 해째 꾸준히 진행하는 일련의 행사인데, 올해 는 군청의 허가를 받아 특별히 태기산의 임도를 걸으면서 수많은 나무와 풀 그 리고 꽃 등을 함께 감상하고 삼림욕도 함께 했다. 오전 8시 30분 횡성문화원 주차장에는 탐방에 동참한 문화원 임직원들이 하 나둘 모여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둔내면 삽교리에 있는 숲체원에 9시 20분경에 도착하였다. 주의사항 몇 가지 듣고는 바로 출발하였다. 3시간 이상을 걸어야 하는 까닭에 혹시 있을지도 모를 낙오자를 위하여 자동차 한 대가 뒤따랐다. 처음 출발해서는 다함께 아울려서 걷더니, 십여 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3~4 그룹으로 짝을 이루어 각자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사진을 좋아하는 김광수 원장님은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고, 들풀에 조예가 깊은 박순업 부원장님은 일일이 들풀의 이름과 특징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 고 둔내가 고향인 안병성 부원장님은 삽교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는 임도를 걷는 것이 처음이고 보니 잘 닦아진 길을 보고 일반도로와 별반 다 를 것이 없음을 느꼈다. 길을 한참 걷다가 길 위에 놓여있는 몇 무더기의 오디 덩어리를 보았다. 동물 의 배설물이라고 생각되지만, 키가 큰 나무에 달려있는 오디를 따먹고 배설을 하였는지 그네발달린동물이궁금했다. 나뿐만 아니라 그것을 본 주위 분들도 72 Ⅱ.향토문화탐구

73 그 동물을 짐작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에 그 배설물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참으 로 신기했다. 불현듯 커피 중에서 최고급품이라는 원숭이커피가 생각났다. 곧 원숭이 따먹은 커피가 소화기관을 거쳐 배설물에 섞여 나왔을 때 그 맛이 좋은 까닭에 가장 비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다는 이야기 말이다. 냄새를 맡아보았는 데 진한 오디냄새가 코를 울린다. 하지만 이것이 커피가 아닌지라 그것을 씻거 나 먹어보지는 못하고, 땅을 흥건히 적신 오디 배설물만 한참 바라보고는 내가 알고 있는 동물들의 이름을 뇌어보았다. 멀리 있는 태기산 풍력발전단지를 바라보며 계속 걷더라니 여러 산봉우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전망대가 있었다. 그곳을 지나 한참을 가니 원두막이라 고 새긴 정자가 있었다. 그곳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걷기를 시작하였다. 한참을 가서 시간을 보니 12시가 훨씬 지났다. 다리도 뻐근하고 허 기증도 느껴질 무렵 앞서가던 신상선 이사님이 차를 세우더니 타라고 한다. 나는 괜찮다고 했으나, 점심을 예약한 시간이 지났고, 목적지까지 아직 많이 남았기 삽교 안석경 선생 탐구 이영식 73

74 횡 성 문 화 때문에 차로 가야만 한다고 하기에 몇 번을 나눠 타고 산채마을에 도착하였다. 산채마을은 둔내면 삽교1리 마을 분들이 영농조합을 만들어 운영하는 곳으 로, 숙박과 체험학습이 가능해서 많은 도시민들이 방문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 다. 산채마을답게 상에는 온갖 산채나물이 가득했다. 모두 지역에서 생산되는 나물인 까닭에 나물을 먹을 때마다 취나물, 두릅, 잔대, 고사리 등 나물이름을 생각했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어디서 노래가 나오자, 여기도 소리 잘 하시 는 분이 계시다며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를 추천한다. 우리는 박수를 치며 소 리를 청하자, 어려서 어머님께 배운 소리라고 하면서 아라리 몇 수를 불러주셨 다. 현재는 둔내에 살지만, 고향이 삼척 하장이라고 하는데 청이 고왔다. 한치뒷산에 곤드레 딱지기 임의 맘만 같다면 고거만 뜯어먹어도 봄살어 나겠네 슥세베 노랑치매를 오바삼아 두르고 낫자루 호무자루를 만년필로 쓰자 강낭밥 사절치기 주마같은 통로구지에 오골바짝 끓는데 뿌러진 시어머닌 잔소리는 구슬닷치듯 하네 영감은 할멈치고 할멈은 아치고 아는 개치고 개는 꼬리치고 꼬리는 마당치고 마당가에 수영버들근 바람을 맞받아치는데 뿌러진 스방님으는 낮잠만 자느냐 74 Ⅱ.향토문화탐구

75 오늘 안삽교의 주거 터 및 묘소를 찾는 일이 아니라면 소리를 더 들었으면 좋 으련만, 일정으로 인해 우리는 식당을 나와 양배추 밭에서 안삽교 주거 터와 묘 지를 안내할 김항기 씨를 만났다. 삽교리에는 곳곳에 양배추를 비롯하여 더덕 을많이심었다. 김항기 씨와 인사를 나눈 후에 안내 를 받으며 안삽교가 살았던 집을 찾았 다. 김항기 씨는 군대생활 30여 개월 을 빼고는 고향 삽교리를 떠난 적이 없으며, 그의 고조할아버님이 안삽교 의 손자사위라고 한다. 이러한 까닭에 안삽교에 대해서는 어려서 할아버님 과 부모님께 많이 들었다고 한다. 삽교 안석경 선생 탐구 이영식 75

76 횡 성 문 화 안삽교가 살았다고 전해지는 이 집은, 예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부엌문의 돌쩌귀나 방문 등 을 통하여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 으나, 현재 집은 후대에 늘린 것으로 이 해된다. 곳곳에 박혀있는 못이 예전 대 장간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최근에 공 장에서 생산된 못이다. 안삽교는 이 집 에서 사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76 Ⅱ.향토문화탐구

77 집 뒤에 서 있는 돌배나무는 2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되며, 안삽교 선생이 심 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돌배나무는 원래 더 컸는데, 고목인 까닭에 웬만한 바람 에도 가지가 부러지고 해서 현재와 같이 남아 있다고 한다. 더불어 지금 집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데, 돌배나무 뿌리가 집안으로까지 뻗쳤기 때문에 나무불 을 때면 연기가 돌배나무 뿌리를 타고 나온다고 한다. 이러한 까닭에 불을 때지 못해 사람이 살지 못한다고 한다. 지금도 돌배나무가 봄이면 꽃을 피우지만 열매 삽교 안석경 선생 탐구 이영식 77

78 횡 성 문 화 맺는 것은 시원치 않다고 한다. 그리고 가끔 돌배나무가 휘잉 하고 운다고 하는 데, 아마도 배나무에 구멍이 있어서 바람이 불면 우는 소리로 들리는 것 같다. 몇 년 전에 개인적으로 이곳을 다녀갔는데, 당시에는 변소가 집과 약간 떨어 져 한쪽에 있었다. 사정을 물어보니 아마 집주인이 농사짓는데 불편해서 없앤 것 같다고 한다. 안삽교는 삽교만록( 橋 漫 錄 ), 삽교예학록( 橋 藝 學 錄 ), 지 문( 識 聞 ) 등의 저술을 남겼다. 특히 삽교만록 에 수록된 한문단편( 漢 文 短 篇 ) 은 문학성이 뛰어나 우리 문학사에서 소중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마을에는 안삽교와 관련해서 몇몇 얘기가 전해오는데, 그 대표 적인 것이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은 얘기와 축지법을 써서 한양을 하루에 다녀 온 이야기이다. 그런데 안삽교와 호랑이 얘기는 변소에서 이뤄진다. 이 이야기 를 들려준 김항기 씨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어른들에게 들었는데, 화장실에 가가지고 용변을 보다나니까는 뭐 강아지가 한 마리, 뭐 커다란 개가 한 마리 와가지고는 여기, 여기(사타구니를 가리키며) 끼워가지고, 무릎에 끼워가지고는 앉아서꽁뭐이래보니까호랭이드래. 그래 그걸 죽였다고. 78 Ⅱ.향토문화탐구

79 예전에 있던 변소가 호랑이를 잡던 그 변소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우 리는 예전의 그 변소가 당시 안삽교가 사용하던 변소이고, 그곳에서 호랑이를 잡았다고 믿고 싶다. 이에 아쉽지만 예전에 찍었던 사진으로 대신한다. 아울러 김항기 씨는 안삽교가 축지법을 써서 한양에 다녀온 이야기도 들려주 었는데, 이 얘기는 기존에 전승되던 것과 차이가 있다. 곧 예전에 정리된 것에는 안삽교가 서울에 다녀오면서 칡에 걸려 넘어졌다는 얘기는 없는데, 김항기 씨 는 안삽교가 칡에 넘어져 부적을 써서 칡이 자라지 못하게 했다고 얘기한다. 물 론 안삽교와 칡에 대한 얘기가 전해지나 한양에 다녀온 이야기와는 별개이다. 어느 날 아침 그의 부인이 점심 걱정을 하니 오늘은 한양에 가서 먹게 될 터 이니 걱정 말라 고 하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 고 물은 즉 한양을 당일치기하 는 판에 어느 틈에 집에 와서 점심을 먹겠느냐? 고 하더니 쏜살같이 사립문을 나서는 것이다. 그러나 부인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저녁때가 되어 찬바람을 몰고 돌아온 안삽교는 이마에 땀이 촉촉이 나 있었다. 정말 서울에 다녀오신 거요 하니 그의 손에는 부인에게 줄 신발 선물이 들려 있었다 한다. (역사에 빛나는 인물, 횡성문화원, 1999.) 김항기 ; 그 뭐 칡 하면은 줄기가 이렇게 뻗어나가잖아요? 이영식 ; 네. 김항기 ; 그래가지고 칡을 끊어가지고 나뭇단, 옛날에 나뭇단도 묶고 그거 가지고 연장도 만들고 그랬는데, 저녁 때 저녁을 먹고 한양을 저게, 축지법을 써 서 한양을 다녀오시다가, 새벽에 집에 돌아오시는데 칡뿌리에 걸려서 넘 어졌다 이거지. 이영식 ; 아, 당신께서? 김항기 ; 그래서 이제 부적을 하나 써가지고는, 부적을 하나 딱 뿌리니까 칡이, 그 이후로는 칡이 못 뻗어났대요. 삽교 안석경 선생 탐구 이영식 79

80 횡 성 문 화 이영식 ; 그게 어디 없어요? 김항기 ; 그러니까 지금 가신 그 안삽교 선생님 집 위로는 없어요. 칡은 있는데 줄 기를 못 뻗어요. 이영식 ; 실제로 현재도 그렇습니까? 김항기 ; 현재도 뭐 칡이 많이 뻗는 걸 못 보겠어요. 이와 같이 제보자에 따라 이야기가 첨삭되는 것은 구비문학의 특징 중 하나 이므로 자연스러운 일이나, 기존의 축지법으로 한양에 다녀온 이야기에는 없던 칡과 부적의 얘기가 첨부된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집을 돌아보고, 우리는 안삽교 묘소가 있는 매당덕으로 향했다. 묘소 입구에 는 서울에 있는 한 문화센터에서 만든 안내판이 세워져있다. 지역의 인물을 알 리는 일에 타지역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데 대해서는 매우 고마운 일이나, 지 역민들이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안삽교 선생 묘소는 최근에 새로 단장한 것으로, 예전에는 지금보다 봉분이 80 Ⅱ.향토문화탐구

81 더 컸다고 한다. 묘소에는 봉분과 더불어 상석이 있고, 좌우에는 문인석이 세워 져 있다. 그리고 묘 앞에는 장명등이 있고, 봉분 우측에는 묘표가 세워져 있다. 묘 뒤의 한쪽에는 토지지신을 위하는 곳을 별도로 마련해 두었다. 묘표에는 앞뒤는 물론 좌우 측면에도 많은 글이 있는데, 앞면에는 세로로 有 明 朝 鮮 國 橋 安 先 生 配 密 陽 朴 氏 之 墓 와 같이 새겨 묘의 주인이 안삽교와 그의 부인 박씨임을 밝히고 있고, 뒷면과 측면에는 안삽교의 행적에 대해 정리 해 놓았다안삽교 묘를 돌아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오늘 일정을 모두 마 쳤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안삽교는 비록 역사적으로 크게 이름을 남긴 분이 아니지만, 지역에서는 그 분에 대한 전설이 널리 회자되고 있 다. 이렇듯 한 인물에 대한 전설이 오랫동안 여러 사람에게 다양한 내용으로 전 승되고 있음은 역사적 사실과는 별도로 그를 지역의 큰 인물로 추앙하고 있음 을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전승되는 이야기는 다소 허황되고 터 무니없는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곧 안삽교를 향한 지역민의 마음 그것이 다. 이에 우리는 그것을 통하여 지역민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 미에서 안삽교와 관련된 전설 중 또 다른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어느 해 합천 해인사에서 큰 불이 났는데, 이때 그는 봉복사에 놀러와 주승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저런 불이 났군, 큰 불이 났어! 하는 것이었다. 주지는 안삽교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라 어디서 불이 났단 삽교 안석경 선생 탐구 이영식 81

82 횡 성 문 화 말이오? 이 근처와 다른 곳이지요. 합천 해인사 본당이 타들어가고 있어 요. 이 말이 끝나자마자 봉복사 뒤안으로 가더니 물 한 동이를 퍼서 남쪽을 향 해서 뿌리면서 무언가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웠다. 한참 후에 자리에 돌아온 그 는 이젠 진화가 되었다. 고 했다. (역사에 빛나는 인물, 횡성문화원, 1999.) 82 Ⅱ.향토문화탐구

83 한 해를 보내며 1년 결실의 씨앗을 모아본다. 박현숙 그것을 글로 표현하여 횡성문화에 꼭꼭 심는다. 요즘, 하늘이 낮게 내려 앉는 날이 잦다. 오늘도 입동을 지내놓고 고운 이파리들을 떨궈낸 마른 가지들을 보 며 그곳에 횡성사람 횡성이야기들을 매달기에 적당한 시기가 아닌가 한다. 오 늘은 지난 8월 10일부터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제1회 둔내 고랭지 토마토 축 제 를 상기하며 입안 가득히 단맛을 보였던 그날을 잊을 수 없어 독자들에게 소 개하고자 한다. 둔내 지역은 구석기~초기 철기시대의 유적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와 고려시 대의 고분 등 많은 유적, 유물이 발견되어 수만년 전부터 인류가 생활하였던 유 서 깊은 역사의 고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둔내면 둔방내리 둔내 고랭지 토마토 축제 박현숙 83

84 횡 성 문 화 둔창 에서는 주민에게 매년 양곡 300섬 씩을 대여하 였는데 그 규모가 당시로서 는 상당히 컸음을 알 수 있다. 둔내면은 횡성군 동부 산간지대에 위치한 면으로 동서남북으로 태기 산(1,261m), 청태산(1,200m), 수리봉(896m), 덕고산(705m) 등 많은 산들이 위치해 있다. 주천강은 태기산에서 발원하여 대체로 둔내의 중앙부를 흐르며 그 좌우에 크고작은 들판을 형성, 옥토를 이루어 둔내의 곡창지대를 이 룬다. 기후는 기온차가 심한 대륙성기후이고, 지형적인 영향으로 강수량이 다 른 곳보다 비교적 많으며, 평균기온이 낮아 식물생육기간이 짧은 고랭지기후를 나타내어 고랭지 채소 및 양채류 재배에 적합하다. 그래서 전국 제일의 품질인 브로커리 샐러리 파세리 양상추 토마토등 준 고랭지에 맞는 작물 재배가 많은 지역이다. 또한 관광명소로 스노보드 세계대회를 4회나 가졌던 글로벌한 아름다운 경관 을 자랑하는 신안종합리조트가 있고 자연휴양림, 숲체원, 펜션, 민박등 누구나 편안한 고향같은 휴식 공간들이 잘 조성되어 있는 지역이다. 이런 곳에서 농산물들을 대외적으로 홍보를 하고 내방객 유치를 통한 주민소 득 창출을 연계하기 위한 축제를 구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주민이 주도하고 참여하는 축제를 통해 지역에 대한 자부심 고취 및 주민 화합 등 관 주도가 아닌 자율 참여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더불어 2018평창동계올림 픽 유치와 관광특구 및 원주 - 강릉간 철도와 연계한 둔내지역 홍보와 역할 증대 에 방안을 강구하게 되었다. 지역축제 추진시 기본방향으로는 첫째, 문화를 대표하는 관광지, 문화예술 등 모든 분야의 대표성과 상징성을 검토하고 추진한 문화축제. 둘째, 지역 농산불을 대표하고 생산량이 많으며 특화가 가능한 농산물과 지속 적으로 재배가 가능한 농작물 품목을 선정한 농산물 축제. 84 Ⅱ.향토문화탐구

85 셋째, 청태산 자연휴양림, 숲체원, 태기산 및 Eco-800 태기산 임도증 지역의 산림과 산채등 산람농업을 연계할 수 있는 산림관련 축제. 넷째, 문화 + 농산물 + 산림축제 운용상의 프로그램에 상호 연계한 복합적 인 종합적인 축제를 구분하였다. 제1회의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이니만큼 축제 구성을 위한 사전준비 및 발기 총회를 통하여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축제명칭 및 방향 설정을 통하여 축제위원 회 및 실무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행사 세부 추진계획을 수립하게 된것이다. 지역을 대표할 축제로 주관, 주최, 후원, 협찬등의 방법과 예산 문제도 중요하 게 협의가 되어야했다. 그래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 조율하여 각종 프로그램을 결정하고 농산물 판매장 및 행사참여 단체도 선정하여 각종 행사 장소와 매칭 되어야만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행사 홍보문제라고 생각하여 이에 집중하여 매스컴과 내 방객 외지 홍보 마케팅까지 세세한 문제점을 발견하고 행사개최에 노력을 했다. 둔내 고랭지 토마토 축제 박현숙 85

86 횡 성 문 화 축제명을 둔내 고랭지토마토 축제 로 결정하고 2012년 8.10(금) ~ 8.12(일)3일 간 둔방내리 둔내종합공원 일원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행사 한주전쯤 둔내면사무소에 들러 토마토 한박스를 사가지고 매일아침 갈아 먹 었다. 색깔도 곱고 먹음직스런 영양 만점의 토마토는 하루 일과를 싱그럽게 만들만 큼 향도 좋고 맛있다. 특히 비타민A, C가 풍부해 지성피부에 적합하며 보습, 미백, 노화방지에도 큰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요리로에도 많이 이용하여 뛰어난 영양이 풍부한 채소에 속한다. 주로 8~9월경 3~4개월 동안 수확을 하게 된다고 한다. 어릴때 아침에 논둑길을 걸어서 아침 이슬을 헤쳐가며 발그레한 토마토를 논물에 씻어먹던 유년의 그맛을 생각해냈다. 토마토의 추억은 참 많다. 지금은 사계절 언제든지 맛볼 수 있는 과일들, 내가 크던 유년의 시절에는 토마토를 먹던 시기가 참으로 짧았던 기억이다. 그래서 더 큰 그리움과 추억이 남아있는듯 하다. 개막식 전 만찬이 끝난후 하천에 놓인 경관다리를 건너 축제장을 올라가는 주변이 너무 아름다웠다. 빗방울이 오락가락하기도 했지만 더위를 식혀주고 돌다리를 건 너는 추억은 옛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중앙 무대앞엔 화분에 심어 놓은 토마토 들이 조롱조롱 아기자기 매달려 있었고, 아파트 베란다에 두고 매일 감상했으면 하 는 정서가 마음에 들어와 있었다. 외지에서 방문에 내방객들도 상당히 많아서 축제장의 분위기는 한층 고조 되었다. 86 Ⅱ.향토문화탐구

87 축제추진 의지가 강하고 주민들의 관심도가 높아 첫 번째 개최하는 축제이니 만큼 기대도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일간의 주요 프로그램들도 다양한 축제분위기를 만들어 나갔다. 농산물 판 매장에는 친환경 농산물직거래 운영과 더덕 판매장, 그리고 난장까지 흥을 돋 우는 풍경이었고. 농촌에 정취와 감동을 주는 박터널, 해바라기 정원, 포토존, 코스모스꽃길, 조형물, 토마토 화분, 조각품 전시 등 볼거리도 풍부하여 더 머 물고 싶은 마음이 들게 조성되었다. 또 먹거리도 풍부하여 토마토 관련 토속음 식등을 부녀회나 봉사단체 요식업체등에서 한몫을 했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중 빨간색 옷을 입은 방문객에게는 토마토 할인행사를 한 것이 특이하고 재미있었다. 내가 지닌 것 중 빨간색을 찾느라 한바탕 웃음을 자 아내기도 했다. 참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둔내의 면면을 보여 주었고 주민들의 단결한 모습으로 첫 번째 시도한 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프로 잭트였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쉽게 사먹을 수 있고 더 달고 맛있는 과일을 먹느라 토마토는 외면 당 하는 과일 아닌 식품을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해 성공적인 홍보에 중점을 두고 조직이 활성화 되어 있는 작목반의 협력과 추진 의지가 커다란 꿈을 이뤄냈으 리라고 생각한다. 화천 토마토축제에도 가보진 않았지만, 올해에는 둔내고랭지 축제 같은 날 개최한것으로 알고 있는데 올해 10회째를 맞이했고 토마토로 만 든 비타민제를 구입해 사먹은 적이 있다. 맛도 좋고 향이 좋고 영양도 좋았다. 방문객들에게도 좋은 호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둔내 고랭지 토마토 축제 박현숙 87

88 횡 성 문 화 이제 첫발을 내딛은 둔내 고랭지 축제도 해를 거듭하여 전국적으로 소문난 축 제로 자리잡기를 바란다. 또, 그렇게 될것을 확신한다. 각 기관마다 저마다의 포부를 내놓고 의견을 수렴하여 추진을 해온 결과이기 도 하기 때문이다. 둔내 청정 자연을 주제로 한 특성에 맞는 각계각층의 연상되 는 이미지들이 우리 자연에 걸맞는 신체의 조건과 환경에 적합하다. 총평에서는 올해로 처음 개최된 제1회 횡성 둔내 고랭지 토마토 축제는 둔내 면에서 재배되는 토마토는 물론 둔내 지역의 다양한 문화와 관광지를 소개하고 브랜드화 함으로서 둔내의 지역경제 활성화와 활력을 불어 넣어주고 타지역 관 광객을 비롯한 지역민에게 자긍심을 갖게해주고 토마토만으로도 다양한 축제 와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축제로 첫 해임에도 불구 하고 외지인이 많이 방문한 축제라고 평했다. 또한 지역 관광지와 관내 업체와 팬션업체 및 외식업체 및 유동인구 유입대책으 로 고속도로와 휴게소 및 국도를 이용한 홍보와 사전 매스컴 홍보로 둔내 IC와 연 계한 향후 둔내 철도와 연계한 확실한 지역홍보와 발전가능성을 보여주었다. 88 Ⅱ.향토문화탐구

89 잘된점으로는 토마토 재배 농가의 토마토 화분을 재배 및 전시하고 품종전시관 및 주제관을 설치하여 관광객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둔내 토마토의 다양한 재배와 품질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고, 부녀회 및 외식업체 및 봉사단 및 간식코너의 적절한 배치로 먹 거리의 다양한 계기 마련과 저렴한 먹거리로 축제장 먹거리가 비싸다는 인식을 불식시켰다. 또한 평생학 습축제를 병행 개최하여 다양한 체험과 자치센터 동 아리 공연과 둔내초교 학생 공연과 지역주민과 함게 하고 송호대를 비롯한 숲체원 및 자연휴양림과 공동 체험 추진으로 풍성한 체험거리를 준비했다. 주차장의 충분한 확보와 각종 체험비 무료와 즉석 이벤트와 빨간색 할인등을 통한 재미있는 즐길거리 도입으로 사전 접수로 인한 혼잡 및 불편 해소 및 미 참여에 대한 불만이 없었다. 대형 인기 가수 위주 편성보다 공연위주로 관중 호 응과 야간의 영화상영을 통한 야간 축제장 체류인구 잡아두는 역할을 했다. 개선할점은 하천변 물놀이장 주변의 유입대책 강구와 놀이기구 임차를 통한 다양한 풍성한 볼거리 즐길거리를 확대 제공할 필요가 있다. 토마토 따기 체험장과 축제장과의 원거리에 따른 접근성과 체험시간 안배 어 려움에 따라 근거리 조정 배치가 필요했고, 지역주민의 주차장 진입 자제 통제 에 어려움이 있고 중반에 야시장이나 잡상인의 무분별한 접근의 통제에 어려움 이 발생했다. 셔틀버스의 경우 관광지와 왕복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축제장 주변 셔틀구간 조정이 필요함을 느꼈다. 2박3일간의 축제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고 지역 주민들은 행복해 했다. 둔내 고랭지 토마토 축제 박현숙 89

90 횡 성 문 화 어려움과 두려움 그리고 기대의 엇갈림속에서 성공적인 개최로 나름 평가를 했고 향후 보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 경기에 활성화에 직 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안 용역 또는 전문가를 의뢰하고 타 축제 벤치마킹 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차별화를 필요로 했다. 무엇보다도 내년부터는 행정주도형 위주의 프로그램 편성과 축제운영을 과감 히 탈피하여 명실상부한 자체운영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음을 향후 계획으로 결정했다. 부스가 걷히고 수 많은 인파의 발자국들은 그림자처럼 얼룩져 있고 강한 햇살 의 여름은 평정을 되 찾아 일상으로 되돌아 가는 민심의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여름은 이렇게 하루하루 뒤안길로 접어들었다. 끝. 90 Ⅱ.향토문화탐구

91 Ⅲ.횡성사람, 횡성이야기 강림에 각림사가 있었다 임태규 상동리 석불좌상에 얽힌 이야기 진광수 우리땅, 독도 이일영 성공 못한 귀농인, 귀농 준비자들에게 고함 성 락 큰나방이야기 한상균 훗날 장관이 된 총상 입은 중대장을 살린 원준희 여인의 6.25 전쟁이야기 김동정

92 횡 성 문 화 강림에 각림사( 覺 林 寺 )가 있었다 먼저 각림사를 소개하기 전에 강림면의 역사와 유래 를 알아 보기로 하자. 강림면은 횡성과 더불어 상고시대에는 마한의 영역으로 있었 임태규 고, 서기 년경에는 백제의 영역에 있었으며, 년경에는 고구려 의 영역에 있다가 551년경에는 신라의 영역에 있었다. 그후 고려시대에는 지금의 횡성인 횡천에 속하여 있다가 조선시대 인조 5년 (1926년)이인거의 난으로 횡성현 철폐로 1636년까지 원주목에 속하여 있었다. 고종 43년(1906년) 강림면 지역은 원주군 수주면에서 영월군 수주면에 편입되 었고 1945년 영월군 수주면 강림출장소를 설치하여 강림,월현,부곡 3개리를 관 할하였다. 1963년 1월1일 법률 제1175호( 공포)로 영월군 수주면에서 횡성군 안흥면으로 편입되었다. 1989년 4월1일 횡성군 조례 제1254호( )로 안흥면 강림출장소 관할 강 림리(5개리),월현리(2개리),부곡리(2개리) 법정리3개리 행정리 9개리가 횡성군 강림면으로 승격되었다. 강림면은 동쪽으로 영월군 수주면, 서쪽으로 원주시 소초면, 남쪽으로는 원주 시 신림면, 북쪽으로는 안흥면과 각각 접해 있다. 강림면의 지명에 대한 유래는 통일신라시대때 부터 있었던 각림사( 覺 林 寺 )라 는 사찰로 인하여 불리워 지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강림( 講 林 )이라 불리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92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93 다음은 각림사( 覺 林 寺 )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 각림사는 1416년 태종의 배려로 중창( 重 創 ) 되었고 왕에 등극해서는 두 번이나 각림사에 행차하였다고 한다. 강림면 강림2리에 위치한 태종대와도 무관치 않다고 하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없어졌다. 태종 재임시의 불교정책은 국가공인 사찰을 242곳만 남기라고 했는데 이 당시에 불교에 대한 지원은 주로 각림사와 강원도 고성의 유점사(강원도 북고성 금강산에 있었던 사찰)에 대한 지원 뿐이었다. 태종과 세종이 재임하던 시기의 숭유억불( 崇 儒 抑 佛 ) 정책에 대하여 각림사만 예외로 인정되었다.(세종실록) 각림사지는 현재 강림교회와 강림우체국이 들어서 있으며 그 주위에 강림중학 교와 민가 몇채가 있다. 주변 밭에는 석재편과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다. 이 절터에서는 연화문( 蓮 花 文 ) 수막새를 비롯하여 선조문( 線 條 文 ),격자문( 格 子 文 ),수지문( 樹 枝 文 )과 기하학적 문양의 평와편( 平 瓦 片 )이 발견되고 있다. 각림사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는 알수가 없으나 중종25년(1530년)에 편찬된 신 증동국여지승람( 新 增 東 國 與 地 勝 覽 )이 완성될때 까지는 존속되었음을 알 수 있 고, 숙종13년(1687년)의 내용을 보면 지평( 持 平 ) 이정익( 李 禎 翊 )의 상소에 원성 ( 原 城 ) 각림사( 覺 林 寺 )의 위전( 位 田 )은 이미 유궁( 儒 宮 )의 그 전부터의 것이므로 내탕( 內 帑 )의 사저로 옮길 수 없는 것인데,... 같이 정리되어 있어 이 당시 각림 사가 유생들에 의해 피해를 입은 것을 알 수 있다. 절터에 산재된 와편들로 볼 때 적어도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추측되나 고구려시대 이전의 평와편도 발견되고 있어 빠르면 고구려 시대에 세워진 사찰 일수도 있다. 강림에 각림사가 있었다 임 태 규 93

94 횡 성 문 화 각림사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초기까지 번창하였으나 여지도서( 與 地 圖 書 ), 관동지( 關 東 誌 ),관동읍지( 關 東 邑 誌 ) 등에는 금폐( 今 廢 ) 로 기록되어 있는 점으 로 볼때 18세기 말을 전후한 시기에 폐사( 廢 寺 )된 것으로 보인다. 각림사와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전해지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新 增 東 國 輿 地 勝 覽 )에 각림사에 대하여 비교적 상세한 기록 이 남겨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新 增 東 國 輿 地 勝 覽 ) 제46권 원주목( 原 州 牧 ) 불우( 佛 宇 )조에 보면 각림사에 대해 치악산 동쪽에 있다. 태종이 잠저( 潛 邸 )에 있을때 여기서 (각림사) 학문을 배웠던 곳으로, 이후에 횡성에서 강무( 講 武 )할 때 이절에 머무 르며 옛 노인들을 불러 위로하였으며 이 절에 토지와 노비를 하사하고 고을 관원 으로 하여금 조세와 부역을 덜어주게 했다고 전하고 있다. 1410년(태종10년) 12월에 석초( 釋 超 )를 주지로 임명하고 향을 하사하였다. 1412년(태종12년) 10월17일에 원주목사( 原 州 牧 使 )에게 이 절의 승려들이 전세 ( 田 稅 )를 많이 거두어들인 일을 문책하지 말도록 명하였고, 각림사 주지( 住 持 ) 석휴( 釋 休 )가 와서 아뢰니 위의 일과 요역 ( )면제해 주도록 승정원( 承 政 院 ) 에 명해 원주에 치서( 馳 書 )토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찰이 방금 재건되어 낙성 ( 落 成 )을 보게되자 부처님께 현훈폐( )1필( 匹 )을 바치고 승려들에게도 면 포( 綿 布 )와 주포 10필, 마포 50필, 저화( 楮 貨 ) 2백장을 직물로 하사하였다. 다음은 태종실록에 나타난 태종의 행적으로 각림사에 오기까지의 행적이 비교 적 자세히 정리되어 있다. 1414년(태종14년) 9월7일에 횡천(오늘의 횡성) 사기소에 머물렀으며, 9일에는 횡천 화동에 머물렀고,13일에는 실미원에 머물렀다. 9월14일에는 원주 각림사에 거등하였으니, 잠저( 潛 邸 )때 공부하던 곳이다. 94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95 절의 중에게 채단( 綵 緞 ) 홍초를 각각 3필씩 내려주고 쌀과 콩을 아울러 일백석 을 내려주고 전지( 田 地 ) 일백결과 노비 50구( 口 )를 더 주고 절의 노비등에게 쌀 과 콩을 30석을 내려 주었다. 1416년(태종16년) 4월28일에 철( 鐵 ) 일천근( 斤 )을 하사( 下 賜 )하여 사승( 寺 僧 ) 들로 하여금 중창하게 하였다. 1416년(태종16년) 8월23일에 강원도 관찰사에게 각림사를 고쳐짓기 위하여 재 목 1,000대를 주려고 하니 도내에서 배정하여 폐단이 없이 운반해 보내라고 지시 하였고, 충청도 제천 창고의 쌀과 콩 100석을 하사하였다. 1417년(태종17년) 2월27일에 춘등강무( 春 等 講 武 )를 겸하여 각림사에 행행 ( 幸 行 )하였다. 같은해 9월15일 각림사가 완성되자 이전에 황고( 皇 考 )와 황비( 皇 ) 의 명복( 冥 福 )을 빌기 위하여 만들어 두었던 화엄경( 華 嚴 經 )을 옥천부원군( 玉 川 府 院 君 ) 유창( 劉 敞 )을 시켜 보내고, 아울러 유창에게 향( 香 )과 내소( 內 疏 )를 주어 법회( 法 會 )를 베풀어 낙성( 落 成 )케 하였다. 거가( 車 駕 )가 각림사에 이르자 절의 중에게 전지( 傳 旨 )하기를 내 장차 지의( 地 衣 )를 주겠고, 또 오는 9월에는 불사( 佛 事 )를 하겠다 고 하였다. 그러나 이 화엄경은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다음은 춘정 변계량(1369~1430)이 각림사에 들렸다가 주변 경관에 취해 지은 시로 춘정집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치악산은 동해의 명산이고 산중의 보찰은 각림사가 으뜸인데 구름안개와 바위 골짜기는 몇 천년의 세월인가? 지령도모인 청령을 옹위하네 강림에 각림사가 있었다 임 태 규 95

96 횡 성 문 화 각림사는 18세기 중엽까지 번창하였으나 폐사( 廢 寺 )된 사유는 알 수 없지만 다 음과 같은 재미있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오대산 상원사에 빈대가 심하여 쇠락하자 절에 불을 질러 없앤 뒤,각림사를 헐어다 상원사를 복원하는데 사용하였다고 하나 확인이 곤란하다. 이 전설을 토대로 본다면 각림사의 규모가 상원사와 비슷한 규모였지 않나 생각되며, 상원사 관련 자료인 이색의 오대상원사승당기 에는 고려말 나옹스 님의 제자로 알려진 영로암이라는 스님이 오대산을 유람하다가 터만 남은 상원 사를 중창하였다고 적혀있고 일설에는 각림사를 고려말 나옹스님이 세웠다는 설도 있어 어떠한 형태로든 상원사와 각림사간의 상관 관계가 있을 개연성을 가 지고 있다고 하겠다. 또 어떤 전설은 각림사에 빈대가 많이 생겨서 불을 질렀는데 한달여 동안 탓다고 하는데 이걸로 보면 절의 규모를 알수있다고 하겠다 아무튼 각림사는 조선시대 태종과 많은 인연이 있고 오대산 상원사와도 관계 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절이 폐사되면서 승려들이 상원사나 월정사로 간 것으로 추측이 된다. 지금까지 강림면의 유래와 각림사에 대하여 소개한 내용은 강림면지(2009년4 월 발간)를 토대로 기술한 것으로서 내용이 사실과 차이가 날 수도 있음을 말씀 드립니다. 참고자료 : 강림면지( 講 林 面 誌 ) 96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97 횡성에서 북쪽으로 8번춘원국도를 따라 춘천방향으로 약 7km를 가면 공근면 소재지 학담리에 이른다. 이곳에서 다시 좌운방면으로가는 지방도로를 약 8km 가량 가면 홍천군과 경 계 부락인 공근면 상동리 작은 부락이다. 부창리와 상동리를 이어주는 금계천의 작은 교량을 건너가면 바로 강원도 유형 문화재 20호로 지정된 상동리 석불좌상이 오른쪽 도로변에 자 리하고 있다. 진광수 좌불상 안내판에 이 석불좌상은 통일 신라후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머리 부분은 과거에 잘린 것을 올려놓았는데 최근 잃어 버려 새로 만든 것이다 라 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부처의 모습등 특징으로 미루어 통일신라후기 약 9세 기경에 뛰어난 솜씨를 가지고 있는 작가에 의해 만들어 진 것으로 짐작한다고 한다. 또 석불좌상 오른쪽에는 강원도유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된 3층석탑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필자는 자로 횡성경찰서 수사과에서 공근지서장으로 전보되어서 근무한 사실이 있어 위 좌불상머리에 대한 이야기를 주민들로부터 들어 잘 알 고 있었다. 내가 공근지서로 부임하기 1년전 수사과에서 상동리 좌불상머리 도난사건을 신고 받고 수사를 진행하였으나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였다. 상동리 석불좌상에 얽힌 이야기 진 광 수 97

98 횡 성 문 화 지서장으로 부임하여 상동리 주민들로부터 민원을 청취한바 부처님머리를 도난당한 후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동리에 탈선하는 학생과 젊은이들 이 사망하는 등 재앙이 자주 일어난다며 부처님의 머리를 찾아주던가 아니면 새로 머리를 제작해 달라는 것이다. 나는 전임지 수사과에서 위 석불상 머리 도난사건을 접수 수사하였으나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미안함과 이곳의 치안책 임자로 와서 다시 동일사건의 민원을 받고 보니 나의 무능함을 지적하는 것 같 아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나는 이런 죄책감 때문에 주민들에게 석불상의 머 리를 찾을수가 없으니 새로 머리를 제작해 복원해 드리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그 후 나는 상동리 인근 부락 부창리에서 포크레인 사업을 하는 Y씨를 찾아 가 포크레인과 차량지원을 받아 횡성읍내에 있는 우성석재로 불상을 운반해 놓고 공장 석공에게 불상의 머리를 부탁하였다. 석공은 조각이 전문이 안이라 자신이 없다고 하였지만 나는 다른 방법이 없 어 기사님이 최선을 다해 만들어 보시라고 졸라 몇 일후 머리가 완성되었다고 하여 공장에 가보니 내 마음에도 옛 원형의 불상얼굴이 아님을 느낄 수가 있었 다. 그러나 어쩌랴 머리를 불상 목에 맞추어 보니 몸과 머리의 색깔이 너무 정 반대라 보기가 싫었다. 그때 석재주인과 석공이 만든 불두를 시궁창에 묻어 썩히면 새깔이 변할 것 이라며 해보자고 하여 그 불두를 공장부근 논으로 들어가는 진흙 시궁창에 묻 어 두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하여도 괜찮은 것인가? 성스러운 부처상의 머리 를 더러운 시궁창에 묻는다는 것이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그로부터 1개월이 지나 시궁창의 부처상 머리를 확인 하였으나 조금도 변색이 되지 않아 변색될 때까지 오래 두기로 하였다. 7개월이 지난 11월경 횡성군청 문화 담당직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상동리 석불좌상을 어떻게 하였냐고 그 석불좌상은 지방문화재이기 때문에 98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99 관계기관의 승인 없이는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없고 변형 할 수도 없는데 어떤 장소에 보관했는냐? 하며 강원도에서 문화재 점검을 나올 예정이라고 하니 빨리 제자리에 돌려 놓으라 는 것이다. 나는 이런 전화를 받고 마음이 다급했다. 시궁창에서 제작한 부처님 머리를 꺼내 세척한 후 시멘트로 부처님 목에 부쳐 원래의 위치로 운반을 하였으나 Y 씨가 포크레인 사업을 접었기 때문에 불상을 내릴 수가 없어 나는 당황 할 수 밖에 없었다. 하느님의 도움이었는지 부처님의 자비였는지 그때 주변에 야외 기동훈련을 나온 포부대가 보였다. 나는 그 훈련장병들을 찾아가 사정을 말하 였더니 장병들이 포차를 끌고 와 포신에다 불상을 묶어 내려 원위치에 세워 주 었다. 이렇게 하여 강원도로부터 문화재 점검을 이상없이 받게 되었고 상동리 지역 주민의 민원도 해결해 주었다. 불상 머리를 떼어간 범인을 잡지 못해 누가 왜 불상 머리를 떼어갔는지 지금까지도 의문이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아기를 갖지 못하는 여인들이 아기를 갖기 위해 떼어 갔을 것이라는 풍문만 떠돌 뿐 상동리 석불좌상 머리 도난 사건은 이제 영원한 미제 사건으로 역사와 함께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상동리 석불좌상에 얽힌 이야기 진 광 수 99

100 횡 성 문 화 이일영 그렇게도 가보고 싶었던 독도 그 꿈이 마침내 이루어졌다. 들뜬 마음으로 기대 속에 울릉도항에서 독도행 여객선에 몸을 싣고 거친 파도를 헤 치며 두어 시간 항해 끝에 늠름하고 당당한 독도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우리나라 동쪽끝 동해에서 억겁을 거센 파도와 눈보라와 비바람을 견디며 외로이 우리나라를 지켜온 독도(동서, 서도) 그 모습이 웅장하고 당당하지 않은가! 횡성민주평통회원 일행은 하선하여 동도에 첫발을 디뎠다. 첫발을 독도에 디디고 독도를 보는 순간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순간 애국하는 마음도 생겼었다. 독도는 늠름하고 의젓한 모습으로 우리 일행을 반기는 듯 맞이하는 것 같았다. 우리 횡성민주평통회원들은 준비한 태극기를 손에손에들고 애국가를 부르며 대 한민국만세 독도만세를 힘차게 외쳤다. 그 순간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뿌듯함 100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101 과 감격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이제 우리 땅 독도에 관하여 역사적 지 리적 자원적면에서 고찰하고자한다. 독 도는 언제부터 우리 땅인가 물론 독도는 우리나라 태생 때 부터 우리 땅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삼국사기에 신라지 증왕 13년(서기 512년)에 신라 이사부장 군이 우산국(울릉도, 독도)을 병합하였 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부터 울등도와 독도는 한국 고유 의 영토가 되어였다. 신라장군 이사부는 하슬라(강릉) 군주 로서 신라의 동해안 진출과 우산국(울 릉도, 독도) 부속과 가야정벌을 이끌었 던 무인이며 국사( 國 史 )를 총괄하고 국 사편찬을 주도한 문인이기도 했다. 또한 덕업일신과 망라사방이라는 신라의 국 가비젼을 실천에 옮긴 인물이기도하다. 이사부 장군은 우산국 정벌당시 나무 로 깍아만든 나무사자를 정벌에 이용하 였다고 한다. 그 후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라 는 사실은 일본은 물론이고 서양에서까 지 알려졌다 프랑스의 유명한 지리학자 당빌 (J.B.B. DANVILLE)이 그린 조선왕국전 도에도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로 그 려져있다. 일본정부가 독도를 일본에서 처음 기 록했다고 지적한 1667년의 일본관찬 고 문헌 은주시청합기( 隱 州 視 聽 合 記 )에도 울릉도와 독도가 고려영토이고 은기도 ( 隱 岐 島 )를 한계( 限 界 )로 한다고 기록되 여있다. 일본이 1592~1598년까지 임진왜란을 일으켰을 때 왜군은 독도를 거쳐 울릉도 에도 침략하여 주민을 학살하고 노략질 하였다. 이에 주민피살을 막기 위하여 1417년 (태종 17년) 조선조정이 울릉도를 비워 두는 공도( 空 島 )정책을 강행하였다. 이 틈에 일본 도쿠가와 막부는 조선조정몰 래 일본어부 2가문에 1618년 울릉도에 건너가는 죽도해 면허와 1656년 독도에 건너가는 송도해 면허를 내주었는데 이 것은 외국에 건너갈 수 있는 허가장이다. 이에 고기 잡으러 동래에서 을릉도와 독도에 온 어부 안용복과 조선어부들과 일본 어부들간에 큰 충돌이 있었다. 일본어부들을 쫏아 내려고 최선을 다 우리땅, 독도 이 일 영 101

102 횡 성 문 화 하여 싸웠으나 안용복과 박어출과 조선 어부들은 일본어부들에게 납치되어 일 본 인슈( 因 州 )로 끌려갔다. 안용복 일행은 호키슈( 百 耆 州 )태수와 담판을 벌려서 일본막부로부터 울릉도 독도가 조선령이라는 서계를 받아냈는 데 나가사키에서 대마도 영주에게 빼앗 겼다고 주장했다. 1696년 1월 28일 막부는 일본인들에게 울릉도와 독도 도해를 금지했다. 이때부 터 한일간의 외교 분쟁도 시작되었다. 그해봄 안용복은 울릉도, 독도로 다시 가서 일본어부들을 쫓아내 오카섬으로 보냈다. 안용복은 애국심이 강한 어부이자 민 간외교가이다. 일본에서 1868년 1월 도쿠가와 막부정 권이 붕괴되고 새메이지( 明 治 )정부가 수립되자 새 정부의 태정관(총리대신) 외부대신을 조선에 파견하여 조사하게 하고 1870년 조선국교제시말 내탐서( 朝 鮮 國 交 際 始 末 內 探 書 )를 만들게 하였는 데 이때 울릉도와 독도도 이 책에 넣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확인하 였다. 1876년 일본외무성은 5개월간 조사한 결과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영토이고 일 본과는 아무관계가 없다고 하였다. 일본 최고국가기관인 태정관은 내무 성의 결정 품의서를 재검토한 결과 1877 년 3월 20일자로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 과는 관계없다는 요지의 훈령을 내무성 에 보냈다. 일본인들이 을릉도에 불법 상륙하여 나무를 베고 이주까지 하려하자 조선조 정도 1882년 공도( 空 島 )정책을 폐기하 고 조선인 이주정책을 실시하였다. 갑오 개혁후 작성된 근대적 한국지도에 정확 한 위치에 표시하고 한국영토임을 명백 히 하였다. 울릉군에 따르면 한아문화연구소(소 장 유미림)에서 제공한 자료에는 1902년 대한제국이 울릉군수에게 울릉도 외 독 도에서 경제활동을 하면 세금을 부과하 도록 하고 군수가 일본인의 강치수출에 세금을 부과해 한국이 울릉도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였음을 입증하였다. 1898년 대한제국 학부의 大 韓 與 地 圖 와 1899년 大 韓 全 圖 는 독도가 한국영토 임을 명백히 표시하였다. 102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103 대한제국은 일본인들의 울릉도 독도 불법입국을 방지책으로 행정체제를 개 편하여 1900년 10월 칙령 41호를 제정 반포해서 종래 강원도 울진군에 속했던 울릉도를 울릉군으로 승격시키고 새로 울릉도 군수를 임명하고 독도가 대한민 국 영토임을 세계에 공포하였다. 일본정부는 독도가 한국소유땅임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무주지( 無 主 地 )라 고 전제하면서 1905년 1월 28일 내각회 의에서 독도를 마음대로 일본영토에 편 입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자행하였다. 그리고 독도 이름을 다케시마( 竹 島 )로 하며 시네마현 행정소관으로 한다고 결 정하였다. 이 야비한 영토 침탈사실이 세계에 알 려질까 두려워 관보에 싣지도 못하였다. 울도(울릉) 군수는 1906년 3월 28일에 비로서 일본의 독도 침탐사실을 알고 강 원도 관찰사를 통하여 중앙정부에 보고 하였으며 대한제국 참정대신은 즉각 일 본의 불법성과 영토침탈사실을 규탄하 였다. 그러나 4년 후인 1910년 8월 29일 대한 제국은 일제에게 강제병탄 되어벼렸으 므로 독도는 온 우리나라를 되찾을 때 함께 되찾게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국에 항 복한후 연합국은 1946년 1월 29일 연합 군 최고사령부지령(ASAPIN) 677호의 군령을 발표하여 일본 어부들은 독도와 12해리 수역에 접근하는 것을 금하여 독 도가 한국영토임을 거듭 명백히 하였다. 1950년 연합국의 구 일본영토 처리에 한국에 반환하는 영토는 한반도와 그 주 변의 모든 섬이 한국영토라고 명료하게 밝혔다. 1951년 9월 센프란시코 對 日 本 강화조 약에는 독도가 누락 되었으니 1953년 유 엔군은 독도를 한국영토에 포함시켰다. 1952년 독도를 우리주권 영역에 포함 하는 인접해양에 관한 주권선언 (평화 선언)을 반포함으로 독도가 우리 영토 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던 중 1952년 8월 일본인 9명이 독 도에 상륙하여 일제한국강점시대에 세 운 일본인 독도조난어민위령비에 조문 하였고 이어 일본시네마현 관리 30명이 독도에 상륙하여 독도가 일본 영토임을 표시하는 표지석을 세우고 돌아갔다. 이 우리땅, 독도 이 일 영 103

104 횡 성 문 화 러한 일본인의 불법행위에 대해 홍순철 을 비롯한 울릉군민들은 1953년 4월 20 일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하여 일본의 독도침탈에 맞섰다. 1965년 6월 한일기본조약체결시 영토 문제에는 현안문제가 없는 것으로 체결 되었다. 1953년 7월부터 우리나라 국회에서 울 릉경찰서 소속경찰관 37명과 등대관리 원 3명이 경비를 전담하고 주민 김성도 (73세)시가 있다. 해상에는 해경 경비 구난함 상봉호와 독도경비 전담반이 배치되어 독도를 수 호하고 있다. 우리정부는 2013년 3월에는 독도지배 실효성을 높이기 위하여 90억원을 투입 하여 독도입도지원센터를 착공할 예정 이고 또 예산 4000억원을 들여 독도에 방파제와 수중관람실을 건설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2015년 완공될 방파제는 현재의 둑보다 20배이상 크고 최대 5000톤급 여객선과 2000톤급 규모선박 이 접안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방파제 주변에 조성될 수중관람실 은 높이 55m 면적 900m2 크기의 콘크리 트 구조물로 실효적 지배권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이 독도를 탐내는 이유는 첫째 일 본의 제국주의 침략근성때문이고 둘째 지리적 이유때문이고 지리적특성이란 독도의 위치 독도의 자원(풍부한 어족 자원, 해저에 매장된 광물자원) 산업적 가치와 서쪽으로 영토를 넓히고 많은 자 원을 확보하기 위한 욕심에 눈이 어두워 서라고본다. 독도는 몸값을 따질 수 없지만 서울과 학기술대 에너지 환경대학원 유승훈 교 수는 보고서에서 독도의 가치가 유무형 자산을 포함에 12조 5586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하였음니다.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 실적 점에서 두말할 나위 없이 원초적으로 명 백한 대한민국 영토이다. 독도 영유권을 100으로 표시하면 대한 민국은 100 모두 갖고 있고 일본은 0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일본 방위백서에는 8년째 독도 는 일본 땅이라고 되풀이 하고 있고 노 다일본총리와 전 아베총리를 비롯한 일 본 극우분자들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104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105 억지를 부리고 망언을 일삼고 있다. 또 독도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 여 판결을 하자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 고 있다. 독도는 우리나라 고유 영토이자 협의 나 분쟁대상이 아님을 일본정부는 분명 히 알고 일본국익과 양국을 위하여 일본 제국주의 침략근성과 독도침탈 야욕을 버리고 국제사회에 이바지하고 한국에 사죄하여야 한다. 우리정부와 국민은 일본의 독도침탈 야욕에 강력하게 대응하여야 한다. 오히 려 대마도가 우리 땅 이였었다는 주장을 하고 일본정부에 대마도 반환요구를 하 여야 한다. 참고문헌 독도학회 발행 : 독도영유권에 대한 일본주장은 왜 오류인가 독도보존협회, 독도학회발행 : 우리 땅 독도 이야기 삼척시 강원도민일보발행, 이사부와 동해 그리고 독도, 일간신문 독도의 명칭변이 예로부터 우산도 삼봉도 가지도 석도 등으로 불려왔으며 1906년 (광무 10년) 울릉군수 심흥택의 울릉군수 보고서에서 본군소속 독도라는 기록과 한말지사 황현( 黃 玹 )의 매천록에서 였다. 독도의 개요 - 행정구역(주소)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37번지 - 소 유 권 : 대한민국 - 관 리 청 : 국토해양수산부 - 거 리 : 울릉도 - 독도 87.4Km, 울진군 죽변면 - 독도 216.8Km - 독도의 면적과 모양 : 독도는 동도와 서도 2개의 주된섬과 주변 89개의 작은 바위와 암초들로 구성 되 었으며 총면적은 16만 평방미터이다. 동도(독도경비대 근무지) : 해발 994m 면적은 6만 5천 평방미터 서도 : 해발 174m, 면적 9만 5,000평방미터 동도와 서도의 거리 110 ~ 160m 수심 3~10m 주요 시설물 : 독도경비대시설 독도 등대 주민(어민)숙소 접안시설 서도 계단 상 주 인 구 : 41명 (독도경비대원, 등대관리원, 주민) 우리땅, 독도 이 일 영 105

106 횡 성 문 화 1531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의 첫머리에 수록된 조선 8도총도 ( 八 道 總 圖 ) 우산도(독도)의 위치를 울릉도 안쪽에 그렸지만, 이것은 오히려 우산도(독도)의 영유의식을 더 강렬 하게 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토해양부가독도 지배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짓는 독도입도지원센터(점선안)조감도 90억원이 투입된 이 센터는 2015년 완결될 예정이다. 106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107 성공 못한 귀농인, 귀농 준비자들에게 고함 거창한 계획서에서 거품을 빼야 진정한 귀농을 이룰 수 있다 "일어나세요! 모닝콜 시각입니다." 친절한 안내 멘트에 이어 '띠리리, 띠리리리...' 귓전을 울리 는 효과 음악이 이른 새벽의 적막을 깬다. 오전 5시 30분. 무 거워 주체하기 어려운 눈꺼풀을 굳이 들어 올리려 애쓸 필요 는 없다. 휴대전화 알람 시각을 10분 연장하고 벌렁 누워 버린 다."...세요! 모닝콜 시각입니다." 앞의 멘트는 대개 듣지 못한다. 그새 10분이 흘렀다. 잠결이지만 능숙하게 또 한 번 모닝콜 시각을 연장 설정하고 또 자리에 벌렁. 세 번째 성화에야 마지못해 졸린 눈을 비비고 자리를 턴다. 10분 전 여섯 시. 아무리 서둘러도 여섯 시 정각에 가게 문을 열기엔 이미 늦었 다. 제시간에 식사를 못하고 피로가 쌓이면서 부쩍 자주 나타나는 '변기 위의 전 쟁'이라도 도지는 날에는 30분 지각을 각오해야 한다. 사슴 이끌고 고향 앞으로, 그러나... 성 락 횡성군 안흥면 상안리 441 자동차로 5분 남짓의 가게에 '헐레벌떡' 도착. 문 열리기를 기다리던 애연가들 의 표정이 곱지 않다. 담배 판매점이 흔하지 않은 외딴 시골 국도 변이기에 마지 못해 기다려주는 고객과 이틀에 한 번꼴로 이렇게 마주친다. 넓지 않은 가게 구석구석에서 나방과 하루살이, 날개미 시체가 쓰레받기로 가 득 나온다. 밤사이 곳곳에 '레이더'를 장치한 거미들과의 신경전도 기다린다. 바 닥 걸레질과 각종 상품이 진열된 쇼케이스 청소, 야외 간이 의자며 파라솔 등을 청소하고 안팎의 쓰레기를 봉투에 담으면 대충 아침청소가 끝난다. 성공 못한 귀농인, 귀농 준비자들에게 고함 성 락 107

108 횡 성 문 화 그러는 동안 출근한 주방 아주머니(이곳은 식당과 편의점을 겸업 중이다)가 장 볼거리를 메모지에 적어 건네준다. 오전 9시. 지역신문의 인터넷판에 올라온 기 사들을 모아 중학교 총동문회 인터넷 카페에 올리는데 30분은 족히 걸린다. 점점 느려지는 컴퓨터 처리속도 탓에 답답함이 아침부터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가게에서 5km 정도 떨어진 안흥시장에 가서 식재료들을 구입하고, 이장님 댁 비 닐하우스에 들러 대파를 '훔친다'. (사전 양해는 있었지만 주인도 없는 비닐하우스 에서 농작물을 수확해 오는 행위라 이런 표현을 쓴다.) 이렇게 시작된 일과는 밤 11시에 마무리된다. 앞에서 언급한 이야기에서 살짝 엿볼 수 있지만 국도 변 휴게소 내에 있는 식당과 편의점을 운영하는 게 내 직업이 다. 이제 겨우 3개월을 넘긴 처지라 '직업'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게 좀 어색하다. 8년 전, 그러니까 2003년10월 대농장주의 꿈을 안고 마리당 1000만 원을 훌쩍 넘는 엘크사슴 22마리를 앞세우고 고향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으로 돌아왔다. 그때가 30대 후반이었으니, 거의 20년 만에 귀향한 셈이다. 서울 등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다니던 직장 역시 농축산 분야여서 대농장을 일굴 수 있다 는 자신감도 컸다. 하지만 지금은 구두굽 높이에 맞춘 바지가 길고 거추장스러 워 장딴지까지 걷어 올리고 주방과 계산대를 종종걸음으로 누비는 내 모습에서 목부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경험하지 않고 작성한 '귀향 사업계획서' 쓸모없어 다 정리한 건 아니지만 사슴농장은 이미 크게 축소됐고, 나의 주력 사업도 아 니다. 고맙게도 수년간 믿고 찾아주시는 단골손님들과의 인연을 정리할 수 없 어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귀향(귀촌) 사업계획서에서 사슴농장 다음의 비중을 차지했던 농촌민박도 접 108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109 은 지 오래다. 구구절절 '나는 이렇게 했는데 저렇게 안 되더라'며 푸념섞인 그 간의 과정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다만, 더욱 철저한 사전조사 또는 직간접적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의 '오만한' 사업계획으로는 결코 농촌살이를 성공으로 이 끌 수 없다는 게 그동안 얻은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농촌에는 젊은 사람이 없다. 즉 일꾼이 없다는 얘기다. 농사일이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활동가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사 정이 이렇다 보니 도회지에서 눈칫밥 좀 먹고 세상 물정 살피기에 조금 나은 귀 향인들에게 그 역할이 집중적으로 주어지게 마련이다. 여기에 낯선(나는 고향으로 왔기에 조금 사정이 낫지만) 마을, 생소한 사람들 과 빨리 동화되기 위해 이런저런 사회단체를 기웃거리게 되고, 역할이 하나 둘 늘어나다 보면 정작 본업에 소홀해지는 상황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닥쳐오기도 한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작은 농촌 지역일수록 각종 성격의 단체와 친목모임, 행 사가 많다. 인구 3,000명 남짓의 이곳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에만 30여 개나 되 는 기관과 사회단체가 있다. 주변 돌아보지 않고, 손가락질 받아가며 자신의 일 에만 몰두하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50대 이하 청년(?)으로서 사회단체 서너 곳 이상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잠시 우쭐하고 정신 못 차리는 사이 이곳저곳에서 주어지는 감투가 늘어나다 보면 자칫 '건달' 신세가 되어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 수년간 마을 이장직을 맡았다가 문전옥답 팔아 빚 청산하고 결국 고향을 떠난 이들의 생생 한 사례가 심심찮게 회자하기도 한다. 처음 귀농이든 귀촌이든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기려면 배우자나 가족의 동의 가 당연히 뒷받침돼야 한다.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전원생활이고, 주변에서 접 하는 여러 매체도 다소 과장된 환상을 전하기에 막상 현실로 닥쳐올 불편함을 알기는 어렵다. 성공 못한 귀농인, 귀농 준비자들에게 고함 성 락 109

110 횡 성 문 화 도시에서 시골로 오는 사람들을 보면, 생활의 불편함도 그렇거니와 농촌 사람 의 사고나 생활방식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의외로 많다. 농촌의 특성상 이웃과 허물없이 매사를 공유하는 것 자체가 개인주의적 생활에 물든 귀농자들에게는 극복하기 힘든 벽이 되기도 한다. 처음 귀농할 시점에는 가족들과 합의가 잘 이뤄졌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의견 이 달라질 수도 있다. 서로 잘 풀거나 합의하지 않으면 자칫 가족 간 불협화음이 생기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어려움의 불씨가 생기기도 한다. 솔직히 나도 그런 경험을 했다. '거품'을 빼야 진정한 귀농인이 될 수 있다 대목장주의 꿈을 안고 귀향한 내게 식당과 편의점 운영이라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물론 선택은 나의 몫이었다. 지난 8년의 득실을 따져 본다면, 사실 잃 은 게 더 많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의 일이다. 그동안 마을 이장은 물론, 각종 사회단체를 기웃거리면서 좋은 이웃을 많이 만 난 게 지금의 새로운 사업에 많은 도움이 됐다. 계절마다 식당에서 소요되는 나 물, 야채 등 음식재료 등을 불쑥불쑥 가져다 놓고는 답례인사라도 받을세라 종종 걸음으로 뒤돌아 가는 이웃들을 보면서 진정한 귀농인이 돼가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습관처럼 새벽 5시 30분에 알람을 설정하고 잠자리에 든다. 글쓴이 / 성락( 안흥출생), 상지영서대학 축산학과, 경희사이버대학 벤처농업경영학과 졸업(경영학사). 축산신 문 기자, 농민단체 사단법인 한국양록협회 사무총장 역임. 현 재단법인 안흥면지역발 전협의회 상임이사, 현 안흥중고등학교 운영위원장, 2010 지방선거 횡성군의원 출마 낙선. 한국영농신문사 주관 농촌문학상 우수상(수필) 수상. 110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111 Ⅰ. 들어가는 말 한상균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나방 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비 와는 달리 못생기고 보기 흉하며, 게다가 가루가 많아 지저분하고 더럽다. 만지면 가루가 묻어 온 몸 이 가려워지거나 피부병이 생길 것 같다. 게다가 어릴 적 시골에서 여름밤에 큰 나방들이 불빛을 보고 날아와 방안의 등잔불을 갑자기 꺼버려서 나방이 미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라는 생각 때문에 뱀처럼 가까이 하기가 싫었다. 그런데 나 방 사진을 촬영하면서 나방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곤충강 나비목은 편의상 나비와 나방으로 나누는데, 전 세계에서 16만 5 천여 종이 알려져 있고 이중 나방이 89%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는 2751종이 기록 되었는데 그중 2497종이 나방이다. 나방은 크기가 매우 다양해서 날개편길이가 4mm인 것부터 거의 300mm인 것까지 있으며, 극지방을 빼고 어디에나 살고 있다. 나방은 날개 몸 다리가 먼지 같은 비늘가루로 덮여 있는데, 손으로 만지면 쉽게 떨어진다. 흔히 이 비늘가루가 몸에 묻으면 사람에게 해롭다고 알고 있지 만 전체 나방의 1~2% 만이 독이 있다고 한다. 몇 종의 나방은 낮에 활동하지만 대개의 나방은 밤에 활동한다. 나비와 비교하여 나방은 몸이 단단하고 색깔이 흐리며 몸에 비해 날개가 작다. 또한 독특한 깃털이나 빗살 모양의 더듬이를 가 지고 있으며, 휴식할 때는 날개를 포개 몸 위에 두거나 옆에 펼쳐 놓는다. 나비 목의 생활사는 알 애벌레 번데기 어른벌레의 4단계를 똑 같이 거친다. 그 큰나방이야기 한상균 111

112 횡 성 문 화 런데 나비는 애벌레가 바로 번데기가 되지만 나방은 실을 내어 고치를 짓고 고 치 속에서 번데기가 된다. 나방 종들의 대부분의 애벌레와 어른벌레는 초식성 이다. 특히 애벌레는 관상용 나무나 관목 및 경제적 중요성을 지닌 많은 식물에 큰 피해를 준다. 나비는 시각으로 먹이와 짝을 찾지만 나방은 더듬이 후각으로 먹이와 짝을 찾는다. 그 동안 촬영한 나방 중에서 크고 색깔이 고운 산누에나방류와 자나방류 중 대 표적인 나방을 소개 한다. Ⅱ. 산누에나방류 산누에나방류는 산누에나방과(Saturniidae)에 속하는데 몸이 큰 종류가 많고 대개 광택이 있는 빛을 띠며 세계적으로 분포하나 열대 지방에 많은 종이 있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나방 중 가장 큰 것은 700mm가 넘는 것도 있었다지만 지금은 화석으로만 남아있고, 현재는 동남아시아에 날개편길이가 300mm나 되는 괴물 같은 아틀라스대왕산누에나방(Attacus atlas) 이 세계에서 제일 큰 나비로 알 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산누에나방류는 날개편길이가 140mm가 넘을 정도로 국 내에서는 제일 큰 나방이며, 11종이 알려져 있다. 사람의 손으로 길러져 날지 못 하는 누에나방 과는 달리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으며, 나방의 몸 색상이 흰 색인 누에나방에 비해서 화려한 편이다. 천적인 새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눈알 무늬가 앞뒤 날개에 있거나 앞날개 양 끝에 뱀 머리 같은 무늬가 있는 것이 특 징이다. 수컷의 더듬이는 깃털 모양이고, 암컷은 빗살 모양이 많다. 대부분이 알 로 월동하는 산누에나방류는 애벌레, 번데기, 나방의 네 단계를 거치는데 애벌 레는 통통한 몸매를 갖고 있으며 90mm 정도 자라는 것도 있다. 활엽수를 먹이식 물로 하며 다식성이다. 다 자란 애벌레는 실을 내어 만든 고치 속에서 번데기가 된다. 어른벌레는 입이 퇴화되어 먹지는 못하고 짝짓기와 알 낳기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112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113 1. 옥색긴꼬리산누에나방 (Actias gnoma) 옥색긴꼬리산누에나방 옥색긴꼬리산누에나방 옥색긴꼬리산누에나방 2005년 6월 27일 갑천면 병지방리 2005년 7월 20일 갑천면 병지방리 주머니속 곤충도감에서 인용 예쁜 옥색이 특징이며, 큰 나방으로 눈에 잘 띈다. 밤에 가로등이나 주택의 불 빛에 날아들 때는 그림자가 하도 커서 새처럼 보이는 어른벌레는 5~8월 연 2회 출현하는데 날개편길이는 95~110mm정도 된다. 유사종인 긴꼬리산누에나방 (Actias artemis) 과는 앞날개의 끝이 뾰죽하고 뒷날개의 꼬리 모양 돌기가 약 간 길며 날개의 청색이 강하고 뒷날개의 눈알모양무늬가 길고 가는 것으로 구 별된다. 애벌레는 층층나무, 자작나무 등의 잎을 먹으며 다 자라면 연두색을 띠 는 고치를 짓고 그 속에서 번데기가 된다. 전국에 비교적 광역 분포하며, 국외에 는 러시아 극동지역, 중국 북부, 일본에 분포한다. 2. 참나무산누에나방 (Antheraea yamama) 참나무 산누에나방 참나무 산누에나방 고치 애벌레 2005년 7월 5일 갑천면당평리 2006년 8월 4일 갑천면 병지방리 주머니속 곤충도감에서 인용 날개마다 하나씩 있는 커다란 눈알 모양 무늬가 특징이다. 눈알모양무늬에는 흑갈색의 테가 있고, 중심은 백색으로 투명하다. 참나무 밤나무 숲에 많이 있지 큰나방이야기 한상균 113

114 횡 성 문 화 만 밤에 불빛에 잘 날아옴으로 숲 근처의 가로등 밑에서 잘 보이는 어른벌레는 6~9월에 출현하는데 날개편길이 115~140mm이다.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날개 색의 변이가 심하다. 상수리나무, 밤나무,사과나무, 졸참나무 등의 잎을 먹고 자라는 애벌레는 천잠이라고 불리는데 애벌레 몸의 길이는 5cm 정도이며 누런빛을 띤 녹색이다. 두툴두툴한 돌기가 많고 길고 성긴 털이 있다. 다 자란 애벌레는 먹이 식물의 잎을 엮어 누런빛을 띤 녹색 고치를 짓고 그 속에서 번데 기가 된다. 고치에서는 천잠사라고 불리는 갈색의 고급 명주실을 뽑는다. 옛날 제주도에서 전해내려 오던 천잠은 일본에 유출되어 고급 비단 생산으로 국제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는 농가 소득을 위 해 장려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국외에는 중국, 일본, 러시아 등지에 분포한다. 3. 작은산누에나방 (Caligula boisduvalii) 작은산누에나방 작은산누에나방 작은산누에나방 2005년 9월 13일 17:57 백두산 2005년 9월 13일 17:57 백두산 2005년 9월 13일 17:57 백두산 앞 뒤 날개에 각각 하나씩 있는 눈알 모양의 무늬가 특징이다 무늬는 적갈색 이고 흑색 테두리가 선명하다. 아직 횡성에서 보지 못했지만 2005년 9월 10일 경 백두산 아래 숙소에서 보았는데 색깔이 다양한 작은산누에나방을 볼 수 있 었다. 날개편길이는 75~80mm 로 다른 산누에나방보다 작다. 애벌레는 벚나무, 배나무, 사과나무, 매화나무, 뽕나무, 호두나무의 잎을 먹는다. 114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115 4. 밤나무산누에나방 (Dictyoploca japonica) 밤나무산누에나방 밤나무산누에나방 밤나무산누에나방 년 9월 26일 홍천면 북방면 2005년 9월 13일 17:57 백두산 2005년 9월 13일 17:57 백두산 밤나무산누에나방 밤나무산누에나방 애벌레 고치 2005년 9월 13일 17:57 백두산 2005년 9월 13일 17:57 백두산 주머니속 곤충도감에서 인용 눈알모양의 무늬가 뒷날개에만 크고 뚜렷한 것이 특징이다. 어렸을 때 고향 밤 나무 밑에서 고치를 보았던 밤나무산누에나방을 아직은 횡성에서는 보지 못한 나방이지만 2005년 9월 중순 백두산 2차 촬영여행 시 숙소에서 다양한 종류를 만날 수 있었고 홍천에서도 볼 수 있었다. 어스렝이나방 이라고 불리기도 한 밤 나무산누에나방은 연 1회 7 9월에 발생하는데 날개편길이는 l00 120mm 이 며. 몸과 날개는 회갈색 또는 황갈색이다. 내가 본 산누에나방 중 체색이 아주 다양하였다. 유충은 참나무 상수리나무 밤나무 등의 잎을 먹고 머리와 몸은 녹 색을 띠며 몸길이가 70 90mm 까지 자란다. 갈색의 큰 고치를 만드는데 고치가 너무 질겨서 찢어지지 않는다. 우화( 羽 化 )한 나방은 분비물을 내어 고치를 녹이 고 나온다고 한다. 일본, 타이완, 중국, 헤이룽, 우수리에 분포한다. 큰나방이야기 한상균 115

116 횡 성 문 화 5. 가중나무고치나방 (Samia cynthia pryeri) 가중나무고치나방 가중나무고치나방 애벌레 고치 2006년 7월 25일 갑천면 당평리 2006년 7월 25일 갑천면 당평리 주머니속 곤충도감에서 인용 앞날개 양끝이 돌출해 있어 뱀머리와 비슷한 것이 특징인데 수컷이 더 뚜렷하 다. 몸과 날개가 갈색인 어른벌레는 5~7월에 보이는데 날개편길이가 110~140 mm 나 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본 나방중 제일 컸다. 유충도 대형종으로 소태나 무, 가중나무 등의 잎을 먹는다. 다 자란 애벌레는 먹이식물의 잎을 엮어 회갈색 의 고치를 만들고 그 속에서 번데기가 된다.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6. 유리산누에나방 (Rhodinia fugax) 유리산누에나방 유리산누에나방 유리산누에나방 2004년 10월 섬강테니스 장 주머니속 곤충도감에서 인용 주머니속 곤충도감에서 인용 금년 10월 27일 아침 테니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앞날개와 뒷날개의 눈알 모 양의 무늬가 유리창처럼 맑고 투명한 것이 특징이다. 어른벌레는 늦은 가을 (10~11월)에 출현하는데. 날개편길이는 수컷이 75~90mm, 암컷이 80~110mm 정 도이다. 유충은 뒷가슴 등면에 1쌍의 돌기를 가지고 있으며 초록색이다. 벚나 무, 느티나무, 밤나무, 상수리나무, 황철나무, 느릅나무류 등의 잎을 먹는다. 겨 116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117 울에 나뭇가지에 달린 파란 고치는 팥마구리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 는데, 장난감이 없던 시절 고치 속에다 팥을 넣어 흔들어 달가락 소리를 들으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자루가 긴 것이 특징이며 이미 어른벌레가 나온 구명이 고 치 밑에 있다. 알로 겨울을 난다.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Ⅲ. 자나방류 자나방과의 곤충은 한국에만도 300여종이 있을 정도로 종류가 방대하다. 날씬 한 몸과 큰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힘차게 날지 못하고 정지할 때는 날개를 수평으로 펴놓는 것이 특징이다. 주둥이는 있는 것이 보통이나, 없는 경우도 있 고 어떤 것은 날개가 퇴화되어 없는 것도 있다. 많은 종이 말라 죽은 잎처럼 생 겼으나 어떤 종은 색상이 화려하다. 내려앉을 때 이 나방은 배경의 색깔이 자기 색깔과 비슷해 구별이 되지 않는 곳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으나. 어떤 종은 뚜렷 한 색깔로 자신이 맛이 없음을 포식자에게 경고한다고 한다. 자나방과의 애벌 레는 앞다리 2~3쌍이 퇴화되어 없기 때문에 이동하는 모습이 마치 손으로 길이 를 재는 것 같아 통칭 자벌레 라고 부른다. 자가 귀했던 어린 시절 엄지와 검지 를 펴서 길이를 재던 생각이 떠올라 애벌레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알 애벌 레 번데기 어른벌레를 거치는 갖춘탈바꿈을 한다. 애벌레는 나뭇잎 색깔과 나뭇가지 색깔로 나뭇가지처럼 보이는 두 종류가 있는데 이에 따라 풀색의 애 벌레는 자나방, 나뭇가지색의 애벌레는 가지나방 이라고 이름 끝에 붙인다. 1. 참빗살얼룩가지나방 (Abraxas latifasciata) 참빗살얼룩가지나방 참빗살얼룩가지나방 참빗살얼룩가지나방 2005년 5월 5일 07:38 횡성 읍하리 2005년 5월 5일 07:38 횡성 읍하리 주머니속 곤충도감에서 인용 큰나방이야기 한상균 117

118 횡 성 문 화 날개는 흰색 바탕이며 가슴과 접한 부분과 날개의 아랫부분에는 반원형으로 황갈색과 갈색이 섞여 있는 무늬가 특징이다. 색깔이 화려해 눈에 잘띄는 어른 벌레는 가을까지 관찰되나 7~8월경 가장 많이 보인다. 몸길이 15~19mm, 날개편 길이 37~42mm이다. 머리에서 배 끝까지 황갈색의 긴 털로 촘촘히 덮여 있다. 더 듬이는 황갈색으로 마디 사이는 검은색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길이는 앞날개의 1/2 정도이다. 애벌레는 노박덩굴의 잎을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6년 일 본인에 의해 처음으로 국내에 기록되었다. 일본, 중국, 극동 러시아 등지에 분포 한다. 2. 뒷노랑점가지나방 (Arichanna melanaria) 뒷노랑점가지나방 뒷노랑점가지나방 뒷노랑점가지나방 2005년 5월 5일 07:38 횡성 읍하리 2005년 5월 5일 07:38 횡성 읍하리 주머니속 곤충도감에서 인용 뒷날개의 특징이 한국명에 반영된 어른벌레는 6~7월, 8월에 2회 출현한다. 몸 길이 25~40mm, 날개편길이 30~45mm이다. 더듬이는 수컷이 빗살 모양이고, 암컷 은 실 모양이다. 몸 빛깔은 노란색이다. 이마 아랫입술수염 다리는 갈색이 다. 뒷날개는 노란색인데 뒷면의 무늬는 앞면과 다르지 않으나 검은색 무늬는 다소 크다. 일본, 사할린, 만주, 아무르, 시베리아, 유럽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3. 불회색가지나방 (Biston regalis) 날개의 모양이 물결처럼 아름다운 것이 특징인 어른벌레는 봄부터 가을까지 전국에서 볼 수 있다. 날개편길이는 수컷 50~59mm, 암컷 70mm이다. 몸과 날개는 118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119 불회색가지나방 불회색가지나방 불회색가지나방 2005년 6월 26일 06:28 횡성 읍하리 2007년 9월 16일 7:19 갑천면 병지방 주머니속 곤충도감에서 인용 백색인데 날개의 횡선은 흑색이다. 등 쪽은 매우 작은 알맹이들로 덮여서 우툴 두툴하다. 수컷 더듬이는 빗살모양, 암컷 더듬이는 실 모양. 야행성으로 불빛에 잘 날아온다. 유충은 느릎나무, 아카시아나무 등의 잎을 먹는다. 4. 세줄점가지나방 (Chiasmia hebesata) 세줄점가지나방 2005년 7월 6일 06:24 갑천 병지방리 본, 만주, 중국, 인도, 미얀마 등지에도 분포한다. 앞날개와 뒷날개 모두 뚜렷한 갈색 줄무늬와 많은 점들이 특징이다. 몸길이 20~27mm, 날개편길이 50~60mm이다. 더듬이를 포함하여 몸 전체가 진한 갈 색을 띤다. 어른벌레는 1년에 1회 출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7월 경 깊은 산지에서 발견된다. 일 5. 노랑띠알락가지나방 (Culcula panterinaris) 노랑띠알락가지나방 노랑띠알락가지나방 애벌레 2006년 5월 22일 07:00 횡성 읍하리 주머니속 곤충도감에서 인용 힌색 바탕에 갈색 가로 무늬가 특징이다. 참빛살얼룩가지나방과 비슷하다. 날 개편길이는 50 58mm 이다. 몸빛깔이 귤빛이나 배쪽의 등면과 배는 암갈색을 큰나방이야기 한상균 119

120 횡 성 문 화 띤다. 수컷의 더듬이에는 가는 털이 나 있고 암컷은 실 모양이다. 다리는 암갈색 으로 회백색의 알락무늬가 있다. 어른벌레는 6 8월에 나타난다 6. 먹세줄흰가지나방 (Myrteta angelica) 먹세줄흰가지나방 애벌레 먹세줄흰가지나방 2002년 5월 강림 부곡 주머니속 곤충도감에서 인용 주머니속 곤충도감에서 인용 앞날개에 갈색의 비스듬한 세로줄 무늬가 3개가 특징이다. 가장자리에는 선명 하지는 않으나 갈색 무늬가 있다. 뒷날개에는 암갈색에 주황색이 섞인 가는 2개 의 비스듬한 선이 있으며, 그 바깥쪽 후각 부근은 주황색을 띤다. 몸길이 20mm, 날 개편길이 30mm 이다. 더듬이는 수컷이 빗살 모양이고, 암컷은 실 모양에 가까우며 흑갈색을 띤다. 어른벌레는 늦은 여름부터 시작하여 가을철(7~10월)에 이르기까 지 출현하며 주로 깊은 산지에 서식한다. 일본, 타이완 등지에도 분포한다. 7. 흰제비가지나방 (Ourapteryx maculicaudaria) 몸과 날개는 모두 백색인 데, 앞뒤 날개에 담흑갈색 의 네 개의 세로줄 무늬가 선명하며 꼬리부분에 2개 의 흑색점무늬가 있는 게 흰제비가지나방 흰제비가지나방 2005년 6월 15일 05:16 횡성 읍하리 2005년 6월 15일 05:16 횡성 읍하리 특징이다. 제비처럼 멋지고 날씬해서 생긴 이름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재미있는 이 름이다. 날개편길이는 36~54mm이며 더듬이는 수컷은 빗살 모양이고 암컷은 실모양이 다. 어른벌레는 6~8월에 출현한다. 국외에는 일본, 중국, 극동 러시아 등지에 분포한다. 120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121 8. 끝짤룩노랑가지나방 (Pareclipsis gracilis) 몸과 날개가 담황갈색으로 희미한 암회색 점이 가 로 줄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날개편길이는 30~38mm이고 5월과 7~8월에 나타나는데 암컷이 수 컷보다 크다. 더듬이는 암수가 모두 실 모양이다. 기 주식물은 때죽나무이다. 끝짤룩노랑가지나방 2008년 10월 1일 07:16 횡성 읍하리 9. 흰띠푸른자나방 (Geometra sponsaria) 푸른색 바탕 앞날개에 2개, 뒷날개에 1개의 굵은 흰색줄 무늬가 세로로 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몸길 이 15~19mm, 날개편길이 35~45mm 이다. 더듬이는 몸 길이의 1/3 가량이며 갈색을 띤다. 뒷날개의 가장자 리부분은 갈색을 띠기도 한다. 어른벌레는 6~9월에 흰띠푸른자나방 2004년 8월 20일 06:29 갑천 병지방리 걸쳐 2~3회 출현한다. 애벌레는 길이가 35mm 가량이며 떡갈나무를 먹는 것으 로 알려져 있다. 흰꼬리푸른자나방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일본, 중국, 극동 러시 아 등지에 분포한다. 10. 흰줄푸른자나방 (Geometra dieckmanni) 흰줄푸른자나방 흰줄푸른자나방 애벌레 2007년 7월 24일 갑천병지방리 2005년 6월 1일 06:27 갑천병지방리 주머니속 곤충도감에서 인용 몸과 날개는 녹색인데 앞날개에는 흰색의 세로줄이 선명하고 가늘게 나있는 것이 특징이다. 낮은 야산에 서식하며, 몸길이 20mm, 날개편길이 40mm 이다. 어 큰나방이야기 한상균 121

122 횡 성 문 화 른벌레는 5월~10월에 출현하는데 한여름에는 침엽수 등의 표면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애벌레는 밤나무, 참나무, 신갈나무 등을 먹는 것으 로 알려져 있다.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11. 큰애기물결자나방 (Microlygris complicata) 큰애기물결자나방 2011년 8월 18일 횡성 운암정 짙은 갈색 앞날개에 물결 같은 흰줄무늬가 특징이다. 몸 길이 10~14mm, 날개편길이 24~30mm 이다. 머리와 배 부분 은 밝은 갈색이고 가슴은 암갈색 털로 덮여 있다. 더듬이 는 암수가 모두 실 모양으로 갈색을 띠며 길이는 앞날개 길이의 1/2 이상 이다. 어른벌레는 5~7월에 산지에서 매 우 귀하게 볼 수 있다. 남한 전역에 분포하나 울릉도에서의 기록은 없고 북한에서는 원 산에서채집기록이있다. 일본, 타이완등지에분포한다. 12. 별박이자나방 (Naxa seraria) 별박이자나방 애벌레 애벌레 2005년 6월 26일 06:31 갑천 병지방리 주머니속 곤충도감에서 인용 주머니속 곤충도감에서 인용 밝은 회색바탕의 날개에 흑갈색의 작은 점이 산재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몸길이 15~23mm, 날개 편 길이 25~35mm이다. 더듬이는 암수가 모두 톱니 모양이다. 먹이식물 로는 쥐똥나무, 광나무,물푸레나무, 층층나무, 라일락 등이 알려져 있다. 애벌레의 몸 은 검은색과 담황갈색의 무늬가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머리는 검은색이다. 쥐똥나무 등의 가지와 잎 사이에 거미줄 같은 집을 짓고 모여 살다가 겨울을 나서 흩어 진다. 4월부터 잎을 먹고 5월에 거미줄 사이에서 번데기가 되며 6~7월에 어른벌레가 122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123 되어 알을 낳고 8월에 부화한다. 연1회 발생한다. 북한,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13. 왕무늬푸른자나방 (Ochrognesia difficta) 뒷날개의 바깥쪽 부분이 누런 백색 바탕에 갈색의 얼룩무늬가 특징이다. 어른 벌레는 7~9월에 발생하는 데 날개편길이는 28~35mm 왕무늬푸른자나방 왕무늬푸른자나방 2005년 8월 28일 06:17 갑천 병지방리 주머니속 곤충도감에서 인용 이며. 몸과 날개는 진한 녹색이다. 앞날개에는 흰 가로줄이 있고, 암컷의 더듬이는 실 모양이고, 수컷은 빗살 모양이다. 애벌레는 버드나무, 황철나무 따위를 먹으며 15mm 정 도 자라는데 먹이식물의 가지 끝에 붙어 있으면 알아보기 어렵다. 몸은 밝은 녹색이고, 등 쪽 가운데 흰 줄무늬가 있다. 이동할 때 몸을 좌우로 흔드는 버릇이 있다. 14. 줄노랑흰애기자나방 (Ourapteryx nivea) 줄노랑흰애기자나방 줄노랑흰애기자나방 줄노랑흰애기자나방 2008년 6월 22일 16:49 갑천 병지방리 2008년 6월 19일 17:41 횡성 운암정 2007년 10월 22일 횡성 읍하리 앞뒤 날개에 오렌지색 가로선이 여러 개가 달리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날개길 이 약 20mm이다. 주로 평지의 초원에서 많이 발생한다. 성충은 5 9월에 걸쳐 나타나며 어린벌레는 왕벚나무의 잎을 가해한다.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15. 각시톱무늬자나방 (Pingasa aigneri Prout) 앞날개와 뒷날개를 반으로 나누는 톱니 모양의 세로 선이 특징이다. 날개편길 큰나방이야기 한상균 123

124 횡 성 문 화 이 36~41mm 이고 날개와 몸 색깔은 회색바탕이다. 산지에 서식하며 어른벌레는 6~7월에 걸쳐 한 번 발 생한다. 남한에는 강원도, 경기도, 전라남도 및 거제 도, 해외에는 일본에 분포한다. 16. 네눈은빛애기자나방 (Problepsis diazoma) 네눈은빛애기자나방 네눈은빛애기자나방 각시톱무늬자나방 2010년 7월 13일 춘천 만천리 네눈은빛애기자나방 2010년 6월 29일 06:21 횡성 읍하리 2005년 8월 31일 횡성 읍하리 남상호 한국의 곤충 에서 인용 이름처럼 앞날개와 뒷날개의 4개의 눈 모양의 뚜렷한 무늬가 특징이다. 날개 길이 28~34mm. 몸과 날개는 모두 순백색이다. 더듬이는 수컷이 빗살모양이고, 암컷은 실모양이다. 전국에 국지적으로 분포하며, 어른벌레는 6월~7월, 8월~9 월에 출현한다. 국외에는 일본, 중국, 러시아 극동지역에 분포한다. 유사종으로 왕눈큰애기자나방(Problepsis superans)이 있다. 17. 톱날푸른자나방 (Thalera lacerataria) 앞날개 전연이 날개 끝 가까이에서 심하게 휘어지 고 날개끝은 낫 모양으로 뾰죽한 것이 특징이다. 더 듬이는 수컷이 짧은 빗살모양이고, 암컷은 실모양 이다. 성충은 7월에 출현한다. 우화 직후는 몸과 날 개색이 아름다운 녹색이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갈 색으 로 변한다. 톱날푸른자나방 2005년 5월 27일 07:48 횡성 읍하리 124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125 18. 홍띠애기자나방 (Timandra comptaria) 홍띠애기자나방 홍띠애기자나방 2008년 8월 26일 07:23 횡성 읍하리 주머니속 곤충도감에서 인용 연한 갈색을 띤 앞날개 끝 부분에서부터 중간 아랫부 분을 지나 뒷날개로 이어지 는 선명한 적갈색 선 무늬 가 특징이다, 머리에서부터 배에 이르기까지 갈색 털로 덮여 있고, 더듬이는 흑갈색이며 앞날개 길이의 반이 될 정 도로 길다. 몸길이 20mm, 날개 편 길이 30~50mm이다. 어른벌레는 한여름 중부지방에서 많이 보이며, 애벌레는 버드나무류의 잎을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중국, 극동 러시아 등지에 분포 한다 Ⅲ. 나가는 말 횡성문화 라는 지면을 통해서 네 번째로 벌레 사진을 발표하게 되었다. 음직이는 사진을 찍다보니 사진의 질이 좋지 않아 유감이지만 이 글을 보고 많은 분들이 나방에 대한 편견을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방 사진을 촬영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재미있었던 추억이 되었고 행복했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아 침 일찍 갑천면 병지방리를 찾아서 수많은 나방을 만났던 일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 지만 찾을 때 마다 원인은 모르지만 개체수가 점점 줄어서 안타까웠던 마음도 들었다. 지금은 생각날 때 가끔씩 가보지만 나방보기가 힘들다. 특히 잊을 수 없었던 일은 백두 산 숙소에서 작은산에나방 과 밤나무산누에나방 을 보았을 때가 제일 기뻤던 것 같다. 같은 장소에서 본 밤나무산누에나방 과 작은산누에나방 이 날개의 무늬는 같지만 색깔이 서로 다른 것이 많아 놀랐고, 왜 체색의 차이가 생기는지 의문이 생겼 다. 많은 자료들을 찾아 봤지만 아직도 풀지를 못해 지금도 가슴이 답답하다. 어떤 이 들은 먹이 때문이라고 하는데 알 길이 없다. 큰나방이야기 한상균 125

126 횡 성 문 화 인간의 사랑을 받는 나비와는 달리 나방은 모두 활엽수나 농작물에 해를 끼친다는 인식 때문에 보호종, 천연기념물 등으로 지정된 것을 찾기가 어렵다. 오직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할 종으로 생각하고 멸종에만 힘써왔기 때문이다. 관심을 갖고 보면 나방도 나비만큼 예쁘고 아름다운 종도 있고 누에나방처럼 인류에게 큰 혜택을 주는 나방도 있다. 생명공학기술(BT)의 발달로 생물자원을 이용하여 신품종, 신물질 개발 등 고부 가가치 창출이 가능해져 BT 산업이 21세기 성장을 주도할 핵심 산업으로 부상함에 따 라 앞으로 나방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요즘 와서 자원의 귀중함을 알고 해외반 출 금지 종에 나방을 포함시켰다는 반가운 소식에 마음을 달래며 이 글을 맺는다. 참고문헌 남상호 한국의 곤충 교학사 2003년 9월 20일 조영권 주머니속 곤충도감 황소걸음 2006년 8월 10일 손재천 주머니속 애벌레 도감 황소걸음 2006년 9월 21일 126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127 훗날 장관이 된 총상입은 윤성민 중대장을 살린 원준희여인의 6 25전쟁이야기 2012년 11월 1일, 깊어가는 가을에 사무국장과 함께 오전에 영랑대를 찾아 영랑리 주변을 답사하였다. 답사를 가는 도중 홍국장이 지난 밤 집에 놀러 온 한 할머니로부터 61년 전 총상 입은 중대장을 정성껏 치료해 주었는데 그 부상병이 훗날 국방 부장관이 되었고 올 6월 6일 현충일에도 초빙을 받아 아들 딸 며느리를 데리고 융숭한 대접을 받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김 동정 오전에 영랑대 답사를 마치고 오후 2시에 안흥에서 식사를 한 후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홍국장 집으로 갔다. 그곳에는 사무국장 어머니와 그 할머니가 이야 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할머니는 이름이 원준희로 현재 86세로 1927년 12월 6일생이라고 하였다. 두 사람은 옛날 젊은 시절 공근면 도곡리에서 언니 동생 같이 하면서 살았다 고 한다. 현재 경기도 김포에 살고 있는 원준희 할머니가 이번 주에 고향에 놀러 가고 싶다고 하여 아들이 이곳 홍국장 어머니에게 데려다 주고 토요일 모시러 온다고 하였다고 하였다. 인사를 드리고 홍국장이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61년 전의 이야기를 부탁드렸더니 쾌히 받아 들이시고 말씀을 해 주셨다. 이에 훗날 국 방부장관이 된 한 총상 입은 병사와의 가 슴저리면서도 기적 같이 피어난 아름다 운 훈훈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무국장 어머니 (이종문 당79세 )와 원할머니 훗날 장관이 된 총상 입은 윤성민 중대장을 살린 원준희 여인의 6.25 전쟁이야기 김 동 정 127

128 횡 성 문 화 피난가다 되돌아오다 때는 바야흐로 1951년 2월 어느 날! 50년 10월 중공군 개입으로 결국 51년 1월 4일에는 수도 서울을 버리고 후퇴를 거듭했는데, 1월 중에 횡성에도 피란명령이 내려져 동네 젊은이들은 모두 피란을 떠났다. 남편도 군인병으로 부대를 따라 피란을 갔다. 원할머니는 21세에 시집와서 이때가 25세가 되었다. 원할머니의 가족은 시부모 내외와 시동생들, 시누이들, 3살 된 어린 아기를 등에 업고 피난 길에 나섰다. 학담 공근지서에 다달았을 때, 경찰이 시동생을 두고 가면 일 보 다가 피란 잘 시켰다가 데려다 주겠다 고 하면서 두고 가라고 하여 지서에 두고 떠났다. 학곡 큰골에서 자고 아침에 갈풍까지 갔는데, 인민군과 중공군이 들어 와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오면서 장지고개를 보니까 폭격을 하여 신작로 에 시체들이 널렸는데, 그 시신을 밟고 인민군과 중공군이 넘어오고 있었다. 돌아오는 도중 등에 업힌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내다 당시 공근지서( , 강원지방경찰청 제공) 공근면 도곡리 원여인 살던 마을 큰골에서 장지고개를 넘어오는데, 아군의 폭격이 있어 솔밭에 가 있다가 저녁 때가 되어 장지고개를 넘었다. 고개를 넘어오는데 아이는 죽었는지 뻗뻗해져서 자꾸 흘러 내렸다. 어른들도 폭격에 기가 넘어가 죽겠는데, 앓던 아이가 죽으 려하니 바늘이라도 찔러보고 싶다 고 하였지만 시부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연당골을 넘어오는데 자꾸 아이가 흘러내렸다. 당시 엄동설한의 눈길인데도 퍼 128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129 대기가 없어 이불을 뜯어 업었으니, 이 얼마나 불쌍한 일인가! 연당골을 넘어 집 가까이 올 때는 이미 등에서 축 쳐져서 자꾸 올려도 내려가 고 자꾸 올려도 내려갈 정도로 이미 이 세상 아이가 아니었다. 집 주위에는 중공 군과 인민군이 이미 있었다. 집에 돌아와 웃방 웃묵에 눕혀 놓고 혹시나 하여 등 밑에 손을 넣어보았지만 차가웠고 또 얼마 있다가 또 넣어 보아도 차가 와서 아 이는 죽었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시아버지는 거적을 가지고 들어와서 아이를 둘둘 말아 가지고 나가더니 어디다가 눈구덩이에 던져버리고 왔는지 금방 들어 왔다. 이렇게 하여 세상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참혹하고 추운 전쟁 중에 아 들은 하늘나라로 간 것이었다. 총상입은 중대장을 정성껏 간호하다 2월어느날저녁집의뒷산신부골 에서 총소리가 났다. 아마도 서로 총 격전을 하는 모양이었다. 온 천지가 눈으로 덮여 있는데, 인민군과 중공 군이 8사단을 포위하고 공격할 때였 다. 아침에 한 병사가 피투성이가 된 한 군인을 껴들고 들어왔다. 부축 받 뒷산 신부골 전경 고 온 병사는 빨리 가라. 어떻게 해서든 우리 만나자. 빨리 가서 너도 잘 살아야 한다 고 하면서 보냈다. 그리고 방에 들어와서는 천정을 찔러 군복을 감추고 나 서 신발(워커)과 시계를 주면서 어디 갖다 버리라고 하였다. 산사람의 것이어서 차마 버릴 수 없어 부엌에 잘 감추어 두었다. 시계는 피가 묻지 않은 신발 속에 넣어 두었다. 입을 옷을 달라고 하여 바지와 저고리를 주었다. 그리고 총알을 빼었는데, 그 곳에서 피가 주루룩 흘렀다. 그리고는 호박을 긁어서 소금과 찧어 발라달라고 훗날 장관이 된 총상 입은 윤성민 중대장을 살린 원준희 여인의 6.25 전쟁이야기 김 동 정 129

130 횡 성 문 화 하였다. 그래서 호박을 긁어 소금을 섞어서 상처에 발랐다. 3일인지 5일이 지나 서인지 보았더니 그 구멍 난 상처부위에 새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참 신기했다. 그래서 며칠이 지나서부터는 바르지 않았다. 호박에 소금을 섞어 바르면 상처 가 낫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발라달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상처는 치료되어 가고 있었다. 여기서 이 부상병은 어떻게 총상을 입었는지, 당사자인 윤성민 전국방부장관 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길로 내려왔어요. 소로를 타고. 그런데 거기서 매복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15m거 리에서 저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중대원들이 산개해서 가지 않고 후퇴하다보니. 총상입은 곳이 여기 저기 뚫고 나가는 거. 그 다음 여기. 여기(허벅지 4발). 여기 (엄지손가락)는 달랑달랑했지. 여섯 발을 맞았는데, 심장이라던가, 복부를 맞았으면 못 살지. 총도 카빈 총이야. 적의 15m에서 맞았으니까 보통 총 같으면 즉사하지. 적군에게 15m 전방에서 저격을 받아 6발을 맞고 부하의 부축을 받아 아침에 신부골(예전에 천주교 신부가 살았다고 하여 이름 지어진 골짜기)로 내려와 피 란에서 돌아온 이 원여인집으로 들어 온 것이었다. 부상입은 중대장을 남편이라 속이고 구원하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피난 간왼딴집에부상병이 들 어 온 그날 저녁 인민군과 중공군이 들이닥쳤다. 미군을 10여 명 포로로 잡아왔 는데, 어둠 속으로 끌고 가는 것을 보았 다. 아침에 보니, 미군 군복을 벗겨서 자 기네들이 입고 자기네 옷을 그들에게 입 혔는데 또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아마 죽였을 것이다. 중공군들과 인민군들은 거지였다. 제대로 먹지 못한데다 입은 것 51년 2월 당시 횡성전투에서 나팔 불며 진격하는 중공군들 130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131 도 거지 같이 입었다. 낮에는 아군 전투기 때문에 다니지 못하고 밤만 되면 저녁 에 내려와 부엌에서 죽을 쑤어 먹기도 하고 산으로 나르기도 하였다. 아마도 동 료 인민군과 중공군에게 가지고 가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오줌바가지에 죽을 담아 먹는 것이었다. 어디에서 쌀을 훔쳐다가 맷돌에 갈아 솥 3개에다 죽을 쒀 먹었던 것이다. 당시 학담에 벼 가마가 쌓여 있었는데, 인민 군들이 먹지 못하도록 모두 불태워버렸다. 한편, 부상병은 웃방에서 이불을 뒤 집어 쓴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인민군이 밟고 다녀도 꿈틀거리지 않았 다. 밥은 조밥에 김치 한가지로 제공하였는데, 이것마저도 시부모가 밥 많이 줄 까봐 야단이었다. 언제 봤다고 밥을 쳐 먹이나. 도대체 창지가 있는거냐 없는거 냐 하면서 구박을 하였다. 그러면 그럴수록 아니꼬워 밥을 더 많이 주었다. 당시 안방에는 인민군 대장 혼자 큰 방에 혼자 누워있었고. 웃방에는 시부모와 시 동생 2명, 시누이 3명, 윤중대장 등 9명이 누워 잤다. 중공군과 인민군이 밤새도록 죽 을 쑤느라 불을 때었기에 웃방까지 따뜻하여 비좁았지만 별 문제 없이 잘 수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인민군 한 사람이 웃방을 쳐다보다가 들어와서 이불을 제키면서 총을 겨누었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아본다. 윤성민 전장관은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눈이 퉁퉁 붓고 얼굴도 부어서 호박을 붙이고 있으니까 이 사람이 누구냐? 나는 지금 폭탄을 짊어지고 가다가 폭격을 받아서 지금 부상병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나를 홍천 포로수용소로 보내려고 그래. 아 이제 죽었구나. 하고 당시 절박한 상황을 말하였다. 그럼 당시 원여인은 어떻게 극복했는지 들 어보았다. 나는 신랑이라 그러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아들이라 그러고. 군인이니까 머리 깎은 게 다르잖아요. 그래서 알아보는 거죠. 우리는 군인 밥 날라주다가 총알 맞아 아파 못 일어나고 들어 누워있다 고 했다. 그러자 목에다 총을 들이 댔다. 그래서 중공군들한테 단련을 많이 받았어요. 내가 밥을 하러 들어가면 목 훗날 장관이 된 총상 입은 윤성민 중대장을 살린 원준희 여인의 6.25 전쟁이야기 김 동 정 131

132 횡 성 문 화 에 총을 들이대요. 그래서 내가 죽여라 죽여라. 나는 하루 사는 것이 열흘 사는 것보다 더 지겹다. 죽일테면 죽여라 이 놈들아. 아주 단호하고도 자신감 있게 야단치듯 말하였다. 이렇게 저녁마다 중공군과 인민군들과 씨름하고 낮에는 시부모에게 구박받고 있었다. 남들은 며느리가 겁탈당할까 며느리를 틀어박고 시어머니가 밥을 한다 는데, 반대로 시어머니는 당해도 괜찮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 설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보름정도 지났을 때, 중공군과 인민군이 물러가고 미군이 들어왔다. 이때 윤중대 장은 천장 위에 있는 군복을 꺼내 입고는 신발을 찾아달라고 하였다. 버렸다고 하 니, 그곳에 가보라고 하길래 부엌에 잘 감추어 놓은 신발과 시계를 건네주었다. 문을 열고 손을 들고 나갔지만 미군이 무서워 나가보지도 못하였다. 당시 미군 은 여자만 보면 끝까지 달려가서 강탈하였다. 집집마다 남편들이 아내를 감추 어 놓고 밥을 할 정도였다. 20년 후에 3성장군이 되어 원여인을 찾아오다 20여 년이 지난 70년 초 어느 9월에 콩을 떠는데, 한 병사가 와서는 아주머니 난리 때 빨갱이 밥해 주었지요. 하는 것이 아닌가. 빨갱이 하면 진절머리 나서 듣기도 싫어. 아주머니 댁에서 빨갱이가 피란했다던데요 빨갱이가 아니고 윤백만인가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소식이 없어. 20년이 지 났는데,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소식이 없어. 또 한 병사가 다녀간 다음날 군인들이 집 주변을 둘러쌌다. 큰 전쟁이 일어났 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신작로에서 걸어 올라오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6.25때 총 에 부당을 당한 그 중대장이었다. 달려 내려가서 기쁘게 맞이하였다. 132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133 방에 들어 온 두 사람은 그 때 그 감회를 마음껏 쏟아냈 다. 원여인은 조밥에 김치하나 밖에 못해 준 것이 미안해 쌀밥을 해 주려고 하였고 윤성민 군단장은 시부모에게 구 박을 받아 가면서 끝까지 정성껏 간호하면서 따뜻한 조밥 이라도 해 준 정성이 감사할 뿐이었다. 쌀밥보다는 조밥이 더 맛있다고 하면서 다음날을 기약하고 그날은 그냥 갔다. 윤성민 전국방부장관 모습(1982) 짧은 만남이었지만 정성껏 간호하여 살린 그 중대장이 훌륭한 군단장이 되어 나 타난 것 자체가 꿈이었는데, 맥주 3박스, 통닭 3박스 사가지고 와서 동네 사람들 에게 까지 다 먹였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다음날 군인들이 TV를 가지고 왔다. 뒷산에 안테나를 세우고 TV를 켜니 동네 사람 들이 모두 몰려와 함께 보았다. 고구마를 쪄주면 맛있게 먹고 재미있게 보고 갔다. 새 집으로 보은의 마음을! 이렇게 사는 것에 재미를 더해가고 있을 때 윤전장관은 23평짜리 집을 지어 주었다. 반듯하고 따뜻한 집까지 지어준 윤전장관의 정성이 너무나 고마워 어쩔 줄 몰랐다. 2012년 올 6월 6일에 윤전장관으로부터 초빙을 받았다. 아들, 딸, 며느리 모두 데리고 갔다. 너무나 잘 살고 있었다. 사모님이 고맙다고 손을 잡고 몇 번이고 인사를 했다. 정원을 거닐 때도 손을 꼭 잡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다. 그도 그 럴 것이 당시 윤전장관은 약혼을 한 상태에서 임관을 하였고 이어 6.25전쟁을 중대장이 부상을 입고 피신해 들어간 도곡리 원준희 씨의 집 윤성민 전국방부장관이 지어 준 보은의 집 당시에는 피난했던 집과 새로 지은 집(인터뷰 365제공)이 같이 있었으나 지금은 본래의 건물은 헐고 새로 지어준 집만 있다. 훗날 장관이 된 총상 입은 윤성민 중대장을 살린 원준희 여인의 6.25 전쟁이야기 김 동 정 133

134 횡 성 문 화 맞이한 것이었다. 당시 8사단이 중공군ㆍ인민군 연합군에 뜻하지 않은 일격을 받아 큰 타격을 입고 패배했다. 당시 전황을 간략히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1951년 2월 11일 밤, 중공군 40군 42군 66군은 8사단을 향해 쓰나미처럼 몰아 닥쳤다. 8사단이 만들어둔 부대 간격 간격마다 중공군이 파고들어 갔고, 빈틈을 따라 깊숙이 내달린 중공군은 곳곳에서 8사단의 퇴로를 차단하며 완벽한 포위 망을 구축했다. 대대도 연대도 사단도 전혀 지휘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고, 중공 군의 공세가 시작된 지 몇 시간만에 8사단은 완벽하게 마비상태에 빠졌다. 조직으로서 움직이지 못한 채 고립된 8사단 병력들은 무질서하게 후퇴를 시작 했으나 곳곳에서 퇴로를 차단한 중공군에 의해 후퇴 도중에 격파되고 말았다. 8 사단의 전방 부대가 궤멸되면서 8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배치되어 있던 미군 지 원병력과 한국군 포병대도 그대로 포위망에 갇혔고,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중 화기와 중장비를 전부 버린 끝에 겨우 몸만 건질 수 있었다. 2월 13일, 중공군의 공세시작 후 대략 하루만에 8사단은 궤멸되었다. 살아 돌 아온 8사단 병력은 3000여 명 정도. 그 중에서도 태반은 애초 후방인 사단본부 에 있던 병력으로, 사단 전방에 있던 8사단 예하 3개 연대는 소멸되다시피 하고 말았다. 미38연대?횡성전투 특별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한국군 9,844명, 미군 및 UN군 1,823명 모두 11,672명이 전사했다. 이렇게 치열한 전투 속에서 당시 제8사단 21연대 중대장이었던 윤성민 전국 방부장관은 원여인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고 그 보은으로 TV를 사 주고 집도 지어주었으며, 지금까지도 그 때 그 시절을 생각하며 가족들과 더불 어 해후의 정을 나누고 있다. 134 Ⅲ.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135 Ⅳ. 지역문화 학습정보 덕고생태체험학교 에서 사시사철 놀이와 학습을 즐겨요 ㅣ 조 원 룡 횡성군 새마을문고 이야기 ㅣ 장 태 종 시대는 선비정신을 기대한다 ㅣ 김 인 규 인구가 늘고 지역발전에 가속도 붙는 전국 제일 교육도시 횡성! ㅣ 자치행정과장 이 상 권

136 굼비야날자 덕고생태체험학교에서 사시사철 놀이와 학습을 즐겨요. 심장의 고동소리가 울려퍼지는 덕고산 자락에 짧은 순간을 영원한 추억으로 만들고자 교사가 춤춘다 학부모가 모두의 부모가 된다 자연에게 배우고 공동체를 느낀다 덕고생태체험학교 교장 조원룡 (전 인천대학교수) 제 땅에서 나고 자란 먹거리가 순환하고 이름 모를 풀꽃들이 식약초가 되고 옛것이새것이되고 새것이옛것을익히는 마음과 몸이 열리는 곳 일하며 공부하는 것이 즐거운 곳 이곳에 협동하는 횡성인이 자라나니 생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경륜과 재능을 기부하러 구름처럼 모여들다. 136 Ⅳ. 지역문화 학습정보

137 1.무슨 체험이 있나요? 숲속창작활동 덕고산 자락에 소나무 숲과 밤나무, 뽕 나무, 자작나무가 어우러진 숲에는 나 무의 이름이며, 옛 이야기가 울려 퍼진 다. 나무를 안아보고 귀에 대보고 잔가 지를 꺾어다 무엇인가를 만들어 본다. 숲 체험을 지도해주시는 배연조 선생 님이 숲이 주는 혜택을 묻자 학생들이 손을 들어 피톤치트요 맑은 물을 줘 요 홍수를 막아줘요 라고 큰소리로 대답한다. 선생님은 다 듣고 나서 숲이 주는 혜택 중에 나무가 홍수를 막아주는 것이 아니라 나무뿌리를 덮고 있는 흙 이 흠뻑 물을 머금었다. 조금씩 흘려보내주는 거라고 설명해 주신다. 숲에 관한 얘기가 끝나면 선생님의 가방에서는 도토리와 새총, 잣과 까는 막 대, 호르라기가 나오고 요술지팡이를 갖고 한 번씩 만져보게 하신다. 그다음 나 무를 톱과 칼, 사포를 이용해서 원료(다름나무,쪽동백,뽕나무,느릅나무등)를 손 질한 다음 자기가 만들고 싶어하는 모양대로 붙이고,조각하고,그리게 한다. 솟 대나 목걸이,핸드폰, 호르라기가 다 만들어지면 자기만의 소리와 악세사리를 갖는 성취감이 느껴진다. 야생화와 화분만들기 덕고체험학교에 가면 후박나무 그늘 아래에 나리꽃과 바위취와 인동초가 돌 틈 사이로 자리를 잡고 있다. 20 여년간 바위솔로 분경을 해오신 박순업 선생님 은 요즘 학생들끼리 폭행을 하거나 서로 참지 못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사랑을 덕고생태체험학교 에서 사시사철 놀이와 학습을 즐겨요 ㅣ조원룡 137

138 횡 성 문 화 통해 극복되어야 한다며 원예치료 사로서 자생화 수업을 진행하신 다. 스무가지가 넘는 바위솔이 햇 볕에 건조되어 시원한 곳에서 꽃 과 새끼로 번식하는 것을 보여주 며, 자연과 가깝게 해 주는 방법으 로 생명을 키우도록 알려주신다. 깨진 재떨이도 화분이 되고 산에 떨어진 관솔도 바위솔과 함께 새롭게 태어나 는 것을 보면 식물 키우기가 인류 역사만큼 다양한 재료로 둘러싸여 있는 셈이 다. 복수초,기린초,인동초,부처손같이 약초도 될 수 있는 자원의 무한 가능성을 배우고, 식물을 좋아하는 곤충을 알다보면 더 많은 애정을 느끼게 된다. 생명의 강한 적응력은 학생들의 손에 화분으로 옮겨지며, 학생은 자기 집에서 가장 적합한 곳을 생각하게 되고 생명을 키우기 위해 사람이 해 줘야 할 일을 생 각하게 된다. 곤충을 분양받아 변화의 과정을 보면서 자신의 생명을 더욱 존중 하게 된다. 흙과 불로 만드는 도자기 도구를 만들면서 발달한 인류의 문명이 어려서 흙을 만지고 손가락을 자유자 재로 움직이다가 성장하면서 기 계와 전자문명을 다루는 것으로 재현되는 것 같다. 황토 흙은 촉 감이 좋을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좋은 물질이어서 이걸로 자신에 게 필요한 용기나 누군가에게 선 물할 걸 만드는 경험은 오랫동안 138 Ⅳ. 지역문화 학습정보

139 기억에 남을 일이다. 서성덕 선생님은 동서양이 비슷한 기술로 도자기를 구어내면서 문명을 발달 시켜 온 역사를 설명하시며 화분, 그릇, 컵, 접시를 만드는 데 신경을 집중하도 록 만드신다. 시간을 조금 더 들이면 초벌 구이가 된 도자기를 학교에서 두벌 구이하는 과정을 배울 수 있게 된다.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나만이 예술품을 만드는 데 미리 생각을 하고 오면 좋 겠고, 내가 만드는 것이 오직 하나 뿐이라는 존재의 고귀함을 배워갔으면 한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인 요리 요리의 비결은 원재료의 선택과 양념의 적절한 조화에 있다. 횡 성의 특산물인 한우와 더덕을 가 지고 송호대 호텔외식조리학과 실습실에서 이뤄지는 양식,한식 요리는 성장기의 청소년이 꼭 해 보고 싶은 학습 과정이다. 어렸을 때의 식습관은 평생을 가며,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식품으로 인한 성 인병을 키워가기 때문에 요리를 직접 해보면서 건강한 농축어업과 식품과의 관 계를 볼 수 있도록 한다. 또 전통 음식이나 효소를 만들어 봄으로써 자연의 원 리를 배운다. 채현석 선생님은 요리의 레시피를 소개하고, 요리 도구를 다루는 데 주의를 주 고 난 다음 순서에 따라 요리대에 모인 4~5명의 학생들을 지도한다. 요리를 하 면서 양과 질의 관계를 생각하며, 안전하면서 맛있는 요리로 행복한 가정을 꿈 꾸는 시간을 보낸다. 요리를 마치고 나면 설거지와 뒷정리를 하면서 스스로에 게 당당한 횡성인이 된다. 덕고생태체험학교 에서 사시사철 놀이와 학습을 즐겨요 ㅣ조원룡 139

140 횡 성 문 화 세계적 신궁의 역사는 국궁에 있다 생존의 도구에서 전쟁의 무기로 발달하다 지금은 스포츠와 여가 활동의 수단이 된 활쏘기. 그 중 에서 우리나라 활은 재료도 귀하 거니와 성능도 뛰어나다. 힘이 조금 부치는 듯한 국궁을 하기 전에 박정복 선생님은 활을 쏘는 마음가짐을 먼저 갖추게 한다. 활을 겨누어 과녁을 맞추는 순간 짜릿한 전율을 느끼는 데 그 목표는 마음을 먹기에 달려 있다. 나의 꿈, 우리의 행복, 인류의 과제를 생각하며 모든 정신을 한 곳에 모아 시위에서 날려 보냄으로서 잡념은 사라지고 생활이 더욱 활기차 게 바뀌는 경험을 한다. 전래놀이는 역시 마음과 몸이 부딪쳐야 제 맛 싸움을 할 때도 규칙이 있듯이 전래놀이는 재밌게 규칙을 만들 고 규칙이 안 맞으면 바꾸고, 규 칙에 따라 승부를 가르면서 여럿 이 함께 하는 놀이로 사회성을 키 워준다. 놀이가 가까이 있는 상 대와 이뤄지기 때문에 감정도 생 기고, 체격이 달라 놀이마다 장단점이 발휘되는 특성상 규칙을 만들 때부터 사 회관계에 대한 조정을 배우게 된다. 전래놀이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함께 참여 140 Ⅳ. 지역문화 학습정보

141 하면서 규칙도 조정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40대까진 공간과 사시사철에 맞게 놀이를 익히며 자라서 누구나 지도가 가능하다. 사방치기,오징어,윷놀이,비석 치기,나이먹기,줄넘기,제기차기,닭싸움,기마전,땅따먹기,강강술레,남대문놀이, 차전놀이,꼬리잡기 등을 하다보면 어느새 가까워지는 친구 사이로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인성 놀이가 이뤄진다. 한편, 진수이 선생님의 생태 움직임 신체 표현 시간은 정신없이 솟구쳤던 기운 을 차분하게 모으는 체조 시간이다. 물질문명에 찌들려 살고 있는 내 몸을 들여 다보고 느끼며, 아프거나 억지로 움직이는 나를 발견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 있는 움직임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생활공예로 품위 있는 생활 천연재료를 이용해서 만든 비 누,샴푸,손수건,가방 재봉하기로 사물을 소중히 아끼는 습관을 만 든다. 자기의 체질에 맞는 비누 와 샴푸를 만들고 손수건과 옷에 자연의 빛을 물들이며 한 번 쓰고 버리는 천을 가지고 장바구니와 책가방으로 만든다. 조경자 선생님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자연의 선물을 가 지고 몸에 좋은 소비를 할 수 있고, 함께 사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고 가르친다. 염색체험과 가방 만들기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할 수 있는 교육이 된다. 환경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투자는 지금 절약하고 가려 쓰는 일이다.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배우는 전통혼례 신랑,신부가 서로에 대해 존중할 뿐 아니라 양가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핵 덕고생태체험학교 에서 사시사철 놀이와 학습을 즐겨요 ㅣ조원룡 141

142 횡 성 문 화 가족 시대의 결혼관에 되새겨봄 직한 내용이다. 음양의 이치에 따라 상을 차리고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진설용품도 볼 만하고, 가마를 타고 입장하는 신부가 되 어 행복한 결혼을 꿈꾸게 한다. 김인규 선생님은 전통의 형식보 다는 현대에 맞게 변형시킨 예절의 정신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축문과 홀기 를 한글로 바꿔 쉽게 이해하도록 한 것도 청소년이 예절을 고리타분한 것으로 보지 않도록 한 것이다. 전통혼례에는 상대방에 대한 예절도 있지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도 재미를 주는 요소가 있다. 술을 주고받는 신랑 신부에게 한마디씩 할 수 있고, 혼례가 끝난 후 떡을치 고 경사를 알리는 풍물을 울리며 놀아주는 것이다. 신랑 측과 신부 측 친구들이 서로 어울려 장래의 배우자를 탐색하는 놀이의 장을 만들어 간다. 2. 덕고생태 체험학교 프로그램의 기대 효과 횡성에 평생 교육 자원으로 물적 토대를 갖는 곳이 상당 수 존재하고 있지만 이를 엮어갈 기관은 아직 없는 게 현실이다. 특히 인적 자원은 학교에 방과 후 특별 활동으로 들어가 있어 비슷한 활동이 이름만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프로 그램간 연계는 시도조차 할 수 없다. 배움터는 횡성의 문화와 자연이 청소년 시기에 충분히 접해져야 된다고 생각 하고 2009년부터 횡성의 관광 문화 유적지를 탐방하기 시작했고 2000년에는 청소년기의 체험 프로그램을 지역에서 유치하고자 폐교를 활용하게 되었다. 142 Ⅳ. 지역문화 학습정보

143 특히 농촌지역이므로 농촌 청소년답게 부모가 하는 일을 이해하고, 자연환경이 주는 장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 생태적인 관점을 가지고 체험을 구성하기로 하였다. 생태적으로 산다는 것이 자연과 더불어 이웃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환경에 영 향을 줄이면서 지역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길이므로 이를 프로그램에 반영하 기로 하였다. 덕고생태체험학교에서는 횡성지역교육공동체가 다음과 같이 실 천하기를 바란다. 하나. 생물을 키울 줄 아는 힘과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을 키운다. 하나. 식,주,의등 생활에 필요한 것을 만들 줄 알고 환경에 오염을 주지 않고 살아가는 습관을 키운다. 하나. 몸으로 하는 놀이를 여럿이 함께 하고 마음을 닦는 수련활동으로 청소년 문화를 활성화 시킨다. 하나. 경쟁보다는 협동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앎과 실천을 지속적으로 연마 한다. 3. 덕고생태 체험학교의 운영 현황 평생교육 기관으로서 청소년의 생태적 감성을 키우고 생태적 지혜를 터득하 며 생태적 실천을 할 수 있는 체험활동을 운영한다. 체험 활동이 진행되는 공간 을 살펴보면 학교에 숙박시설과 회의실, 한우체험관, 텃밭, 목공실이 있으며, 세 덕사와 조충장군 묘소가 역사탐방지가 되며 레포츠공원이 전래놀이와 공연 무 대로, 덕고산이 생태 테마 등산로로 이용될 계획이다. 정암3리의 농사체험은 프로그램으로 들어가며 전통문화와 먹거리 만들기가 주민의 노력으로 계승 발 전할 것이다. 현재 지역 학교와 도시 학교에서 하루 또는 일박이일로 생태체험 혹은 농촌체 험을 다녀가고 있고, 매주 토요일에는 배움터에 다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 덕고생태체험학교 에서 사시사철 놀이와 학습을 즐겨요 ㅣ조원룡 143

144 횡 성 문 화 년 단위의 주제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영농과 요리, 붓글씨와 오카리나, 목공예와 도자기, 생활공예 중에서 선택하여 동아리 모임을 만들 계획이다. 이 를 진행하는 사람은 각 분야에서 지도경험을 쌓은 분이 교사를 맡고 자원봉사 자가 진행 보조를 맡아 부모와 학생이 함께 체험학습을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덕고 생태 체험학교의 회원이 되고자 하시는 분은 횡성고른기회장학협동조합 에 가입하시거나 정암3리 마을 영농회원으로서 각종 체험활동에 참여하면 된 다. 자기의 재능과 경험을 지역의 청소년과 함께 나누고 싶은 분은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다. 평생학습 동아리를 만들고 싶으신 분은 체험학교의 시설과 공간을 잘 활용한 후에 교육실습의 장으로서 혹은 청소년의 멘토로서 지역교육공동체 에 환원해 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4. 횡성의 교육공동체 만들기 학생들은 기성세대가 만든 울타리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다. 이들에게 선택권 이란 주어진 수업을 참여하거나 기피할 권리밖에 없다. 자신에게 맞는 교육과 정을 선택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흔히 체험하면 서너 가지 안을 내놓고 다수결 로 어디를 갈 것인가를 결정하게 되고 대부분의 결정이 대도시 물질문명의 유 혹에 따라 더 크고 더 넓은 곳으로 가게 마련이다. 심지어 외국으로 수학여행을 나가는 학교도 생겨난다. 횡성군은 조그만 농촌이다. 여기서 자란 학생들이 대부분 도시로 흡수되는 인 력 양성소다. 하지만 농촌에도 미래의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 농업을 중심으로 식품,가공,유통,관광산업과 기계,에너지산업이 발달해야 미래의 식량 주도 문 제를 해결할 수 있다. 예로부터 성현들은 나라가 농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지 않으면 힘들고 어려운 일을 누가 할 것인가를 걱정하였다. 젊은이들이 지역에 서 할 일을 찾도록 지역사회가 이끌어주어야 한다. 144 Ⅳ. 지역문화 학습정보

145 교육을 얘기하면 농촌이 도시보다 수준이 낮다는 점만 부각시킨다. 정작 교육 의 주체인 부모와 학생의 역할은 무엇인지. 지역 교사가 알아야 할 점은 무엇인 지가 나타나지 않는다. 특히 다문화사회로 가는 속도가 빠른 농촌에서 교육은 사회통합의 의미인 평생학습과 맞닿아 있다. 농촌청소년은 과소화된 학교에서 농촌의 정서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 학교가 끝나고 나면 학원에 절반 가 량은 가고 나머진 뿔뿔이 흩어져 갈 곳도 마땅치 않다. 몇 명 되지 않는 학생마 저도 핸드폰을 가지고 노는 데 더 익숙하다. 학교를 벗어나면 또래 집단의 문화 가 형성되지 못하다보니 왕따나 폭력에 자포자기해 버린다. 몇 명 되지 않는 학 생 수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하고 이를 키워줄 전달자나 길잡이가 절실히 필요한 데도 어른들은 외면하고 있다. 그래서 지역주민이 교육기관과 군청에 손을 내밀어 평생학습의 차원에서 학 생들과 함께 지역에서 일하고 싶은 행복한 교육 공동체를 만들자고 나서게 되 었다. 그 방식은 지역 주민 중에서 교육의 경륜이 높은 사람부터 아이들의 돌봄 이 가능한 사람까지 모두 참여할 수 있는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에 는 소외된 면 지역에 방과후 배움터를 만드는 협동조합이었고, 2011년부터는 장학협동조합으로 횡성군의 다양한 교육활동과 수익사업을 포괄하는 명칭으 로 바뀌었다. 학생이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잘 하는 것을 더욱 잘하게 도 와주는 지원 활동은 교육청의 영역이자 지역사회 주민의 평생학습 영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육과 복지가 만나고, 네트워크가 발전하는데 기여하고, 지역주 민과 학생의 참여 폭이 넓어지도록 노력하는 단체가 될 것이다. 지역사회가 아이를 키운다는 믿음은 자기 자녀만이 아니라 지역 청소년이 모 두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확산되고 지역사회의 미래를 희망차게 열어가는 실천교육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덕고생태체험학교 에서 사시사철 놀이와 학습을 즐겨요 ㅣ조원룡 145

146 횡 성 문 화 횡성군새마을문고이야기 사람이 살아가면서 해결해야 할 일이 크게 나눠 3가지로 분류된다. 衣 (의), 食 (식), 住 (주)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입고 먹고 사는 공간이다. 우리가 60~70년대 보릿고개를 넘을 때는 정말 절실했던 것들이다. 오죽하면 보릿고개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우리가 어려운 시절을 잘 견뎌왔고 경제부흥을 일으켜 지금은 선진국문턱에 와있지않은가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시대가 먹는 것이 전부일 때라면 우리는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지금에 해방둥이를 기점으로 부모님때는 더욱 더 그랬을 것이다. 지금은 모두 석양을 보는 듯한 인생 고개를 내려오는 연령이지만 자식들은 이 해를 못해 가끔은 명절때만 되면 화제가 되는 단골이야기이다. 새마을운동의 시작 횡성군문고회장 장태종 지금에 경제부흥을 시작한 동기는 누가 뭐래도 새마을운동이다. 박정희대통령께서 잘 살아보세라는 큰 목표를 세워 마을길도 넓히고 주택도 개량하고 공동으로 일을 하며 협동심도 키우고 이렇게 태동 되었다. 우리나라의 대동맥인 서울 부산간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지역의 교류가 활발 해져 동서남북의 교역이 매우 활발해졌다. 이리하여 삶의 질이 조금씩 나아졌고 인간이 제일 필요로한 물, 음식, 환경을 146 Ⅳ. 지역문화 학습정보

147 깨끗이하여 지금의 인간수명이 10년이상 늘어나게된 동기도 된 것이다. 전세계 가 극찬하여 아프리카와 동남아 일부국가에서는 대한민국의 새마을운동을 모 토로 하여 배우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새마을문고는 어떤일을 하는가? 새마을조직을 잠깐 소개해본다. 새마을중앙회 강원도새마을회 횡성군새마을회 산하에 새마을지도자협의 회, 새마을부녀회, 새마을문고, 새마을직 공장협의회, 새마을교통봉사대가 있다. 지도자와 부녀회는 워낙 봉사를 많이 하시는 훌륭한 단체이므로 오늘은 문고 를 중심으로 설명을 할까 합니다. 우리 새마을문고는 책을 중심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작은 변화로 지 역주민의 생활이 조금씩 발전할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마 횡성군새마을문고 하면 무엇을 하는 곳이지? 하고 물어볼 것이다. 한마 디로 이야기를 함축하면 나라의 품격을 올리는 일을 하고 있는 곳이다. 쉽게 설 명하면 각 면별로 작은도서관을 아마 한번쯤 본적이 있을 것이다. 사랑방 이장 님집, 마을회관 한귀퉁이, 면사무소 옆 작은공간에서 몇 권의 책을 놓고 읽을 수 있도록 시작한 것이 문고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면된다. 아마 작은도서관 만들기 운동의 시초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십 여년을 이어오면서 활동도 줄었고 관심도 줄어서 지금은 그 단어마 저 생소한 이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새마을문고운동은 새마을운동 40년역사보다도 10년 먼저 시작된 국민의 문맹 을 깨치고 의식수준을 높이고자 한 목표로 50년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 다. 얼마나 의식개혁이 필요했으면 새마을운동보다도 10년 먼저 시작됐는지 그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횡성군 새마을문고 이야기 장 태 종 147

148 횡 성 문 화 새마을문고의 활동 문고는 설명해 드린 바와 같이 필자가 군회장으로 있으면서 각 9개읍면 회장 님들이 계시고 각 면별로 조직이 골고루 갖춰져 있다. 2009년에 취임당시엔 5명의 회원과 필자가 전부였지만 지금은 120여명의 회 원과 회장님들이 선임되어서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하고 있다. 지난 2년간의 사업활동을 잠시 소개해 본다. 상반기에는 문고워크샵을: 문고란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하는 문고의 이해와 문고는 어떻게 가입해서 활동하나요?를 전제로 2시간동안 설명, 소개, 교육 등 짜임새있는 프 로그램을 운영해서 회원들을 대상 으로 교육을 하고 있다. 하반기에는 문학기행을 2011년 충북 옥천 정지용시인의 생가를 2012년에 대관령옛길을 걸어내려 가 오죽헌과 허난설헌 생가터를 둘러보며 옛 문인들이 걸었던 삶 의 발자취와 문학을 이해하고 배 워보는 시간을 가졌다. 분기별로 각 면회를 순차 방문하여 지역 1읍면 1사업을 권장해 지역의 봉 사단체로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으며 148 Ⅳ. 지역문화 학습정보

149 지난해 연말에는 횡성군문고회 지금회(동아리)회원님들께서 횡 성노인요양원을 위문차 방문하여 노래와 율동 재미있는 게임으로 환우들과 어르신들의 사랑을 듬 뿍 받았었다. 올해부터는 재능기부도 접수받아 본인이 또는 동아리클럽에서 재능이 있 는 프로그램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재능을 기부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등록을 해주고 계신다. 특히 지난 8월 동화구연지도자 교육과정을 통해 20여명의 동화구연지도자 를 배출하였고 교육과정을 마치신 참가자들이 문고동아리를 구성하여 동 극공연 봉사활동을 해오고 계심은 정말 신바람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시대는 삶의 질은 높아졌으나 인정이 메마르고 사랑의 부족하여 여러 가 지 사회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너무 개인주의와 핵가족화로 이웃과 사회가 사 랑이란 샘물을 자꾸 퍼주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유감일 수 밖에 없다. 다행히 횡성군은 평생교육도시로 선정되어 타 시도에 비해 윤택하다고 생각 이 되나 사람들은 부족한 부분만 생각한다. 문고가 나설 차례다 비록 봉사하는 것이 보이지는 않더라도 내가 남을 위해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 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지난 9월 문학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일이다. 회원 몇분이 일어나서 그 횡성군 새마을문고 이야기 장 태 종 149

150 횡 성 문 화 날의 일정을 기행문으로 작성하여 발표를 하는데 이렇게 옛문인도 만나보고 우 리나라 오천원, 오만권의 인물도 함께하며 내가 이렇게 그 자리를 딛고 있다는 자체에 너무 행복하다는 말씀과 처음 문고를 접한 사람들도 횡성군에 이러한 봉사단체가 새마을조직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감동받았단 말씀이 아직도 귓가 에 생생한 거 같다. 춤추고 노래하며하는 여행에 길들여져 있던 여행문화도 이 렇게 바뀌면 좋겠다는 말씀들도 많이들 하셨다. 물론 책읽기가 중요하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도 맞다. 그렇지만 지금 자라는 어린이와 청소년들 우리나라를 이끌 인재들이 아닌가. 바로 인성을 중심으로 가정에서 간혹 소홀해질 수 있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받 을 수 있다면 우리는 더욱 더 행복할 것이다. 이제 조금씩 알려지는 횡성군새마을문고... 서두르지는 않되 멈추지는 않을 것 이다. 누구나 무료로 봉사할 수 있는 문고봉사 조그만 용기만 있으면 귀하에게 도 즐거운 일이 펼쳐질수 있습니다. 문의 : 횡성군새마을문고 Ⅳ. 지역문화 학습정보

151 시대는 선비정신을 기대한다 유학 예절강사 김인규 유학의 유( 儒 )자는 사람 인( 人 )자와 구할 수( 需 )자가 결합하여 육서법( 六 書 法 )의 하 나인 형성( 形 聲 )자로 구성된 한자어이다. 즉, 선비란 인간 세상에 필요시 되는 모범 적인 사람으로 학문을 연구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덕망을 갖춘 사람으로서 진정으 로 이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과 공정하고 청렴한 도의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 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가 바로 이와 같은 선비정신이 요구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우리 모두가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1. 조화와 균형 유구한 반만년의 인류역사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지나 첨단과학 정보화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다행히도 불과 몇 세기만에 찬란한 과학물질문명의 편리하고도 풍요로운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세계여러나라도 지구촌이라는 인 류 통합시대로 다가서고 있다. 교통수단의 1일 생활권과 상호무역주의 경제교 류가 일상화되어 실질적으로 유럽의 EU공동결합체가 유로화통합을 이루고 앞 으로 정치통합마져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가! 그동안 경제 성장이라는 과제 속에 몰두하면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대립 하던 냉전시대마져 종식된 시기에 이제는 세계가 이념대립각을 거두고 화합과 시대는 선비정신을 기대한다 김 인 규 151

152 횡 성 문 화 협력의 공존상생의 장으로 정책을 전환시켜야 하는 때가온것이다. 물론 과정상 의 시행착오와 오류가 없지만은 않겠지만 그러나 어느 정도의 고통수반은 필연 적인 산물로서 극복해야할 과제이다. 어떤 산모가 옥동자를 분만하기 위하여는 산고를 인내하고 감수할 각오로 분만에 임하는 자세와도 같은 것이다. 일찍이 동독과 서독이 이념의 장벽을 허물고 수년간 고통분담도 따랐지만 그 러나 먼 훗날까지의 민족의 미래를 열어놓지 않았는가! 통일이란 지나고 보면 모두가 잘된 일로서 역사적으로 어느 나라 통일이든 잘 못됐다고 후회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근세에 베트남 통일역시도 당시에는 공 산화를 염려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세계화에 발맞춰 민족의 미래가 열려있지 않 은가! 고대 전국시대에 진나라통일(15년)과 남북조시대에 수나라 통일(30년)이 통 치과오로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한나라와 당나라로의 연계로 한족의 평 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이념대치 문제는 개인적인 싸움과도 같아서 옆에 서 공조하거나 후원하는 배후가 있으면 더욱 격렬해지는 이치와도 같다. 막상 결합하고 나면 어느 정도의 난관을 겪은 후에 민족상생의 길을 찾게되어있다. 유학에서 부끄러워 하는 마음( 羞 惡 之 心 )은 도의 감의 단서라고 하였듯이 역설 로 부끄러운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도의 감의 결핍이다. 남북한이 막강한 무력 으로 양극적으로 대치하는 것이 국력이라며 안도할일이 아니라 세계지구촌이 라는 무대 위에서는 우리민족정신의 부끄러움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나라들은 경제개발에 투자하는데 우리들은 첨단무기를 구입해서 해마다 운용비용까지 감당하는 형세에 놓여있다. 세계2차 대전 말엽에 포츠담선언과 얄타회담을 기점으로 4대열강들의 이권에 종속되어 불과 10여 년 전에 일제억압에 항거하며 독립운동을 함께하고 항일투 쟁을 함께했던 동족이 그토록 염원했던 해방을 맞이하고도 결국은 신탁통치 찬 반을 표방하고 좌우익으로 분열해서 국가와 민족이 분단되어 동족상잔의 전쟁 152 Ⅳ. 지역문화 학습정보

153 까지 치르고 지금까지도 무력으로 대치해야만 하는 현실이 매우 안타까운 일이 다. 지구상에 하나뿐인 민족양극화를 조화시킬 수 있는 거룩한 민족지도자가 출현해서 위대한 대업을 열어주기 바랄뿐이다. 손자병법에 이르기를 적을 알고 우리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을 것이 고 적을 모르고 우리만 알면 한번 승리하고 한번 패배할 것이며 적의 동향도 모 르고 우리 실정마저 모른다면 매번 싸울 때마다 패배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독도 문제만 하더라도 남북한이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고 단결하여 공동대처 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으며 본토 안위마저 염려된다면 도전 자체를 하지 못 하게 된다. 예로부터 집안싸움이 일어나면 이웃에서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이득이 생길까만을 생각한다고 한다. 6.25전쟁 때 국익을 본나라가 바로 일본이지 않은가! 차제에 관념을 바꾸고 남북한지도자들이 용단을 내려 주변 열강들이 경계하고 있는 민족통일을 이룩하여 세계 속에 위대한 민족임을 천명하고 강성대국으로 거듭나는 것이 반세기동안의 과오와 부끄러움을 씻는 길이다. 앞으로 더 이상 우리 금수강산이 국제 첨단무기 진열시장으로서 경제 를 잠식하는 일은 벗어나야 경제대국으로 갈 수 있는 첩경임을 잊어서는 안 된 다. 반도체와 자동차를 수출해서 첨단무기도입과 비교 될 수 있는가! 바로 이점 이 심사숙고 해야할 일인것이다. 2. 정신문화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모든 영역에서 첨단과 학 물질문명의 정점을 누리고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그러나 고도성장의 구도 속에 가리워진 정신문화는 뒤쳐진 것이 현실로서 성장된 과학문명의 편리성과 효용성만큼의 수준으로 정신문화의 도덕성과 가치관을 정상궤도로 올려놓아 양대 축이 동일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있는길이다. 시대는 선비정신을 기대한다 김 인 규 153

154 횡 성 문 화 대학에 이르기를 진리란 대자연의 도이고 그 대자연의 도에 따라 성실히 노력 하는 것은 사람의 도라고 하였다. 그 진리가 바로 조화와 균형이다. 태양계의 운행과 지구의 자전공전 원리가 그렇고 전자의 음극, 양극작용이 그렇고 인체 의 혈류계와 신경정신계의 기능이 그렇다 어느 한쪽의 부조화와 불균형은 곧 이변과 고장과 병변 으로서 인류정신문화 역시도 부조화와 불균형은 곧 사회병 폐를 의미한다. 정신문화의 중요성을 예를 든다면 독일출신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 성이론에 의하여 발명된 원자핵물질이 인류과학에 무한한 효용성을 준 것은 사 실이지만 만약 정신문화가 퇴폐적인 전쟁광이 무기로 사용한다면 일거에 온 인 류를 멸망시키고도 남을만한 위력이다. 또한 예로 견고한 고성능의 군용전차가 안전성은 보장되지만 만약 테러단체가 폭파테러용으로 사용한다면 못갈 곳이 없고 파괴 못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문명의 효율적인 이용은 정신 문화로 극대화하는 것이며 인체에 생리영위는 신경정신계가 조화하는 것이어 서 정신문화의 부조화와 불균형을 방치한다면 그것은 병폐를 방조하는 일로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까지도 얼마든지 야기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의 시 대가 선비정신을 요구하고 있다는 말로 설득력을 갖고 논설하는 것이다. 논어에 이르기를 아는 것이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이 즐겁게 실천 하는 것만 못하다. 고 하였다. 보편적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지식이라 하더라도 실천하고 행동하는 노력이 더욱 중요함으로 거시적인 안목으로 국가적인 차원 에서 새시대 새마음갖기운동으로 유학의 선비정신을 채택한다면 민족정신의 함양과 가치관정립에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웃나라 중국도 문화 혁명으로 단절되었던 유학사상을 경제발전에 맞춰 공자학교를 세우고 본국에 서부터 세계 여러 나라로 진출시켜 전개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유학을 고구려 소수림왕(372년)때부터 일상생활 속에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계 154 Ⅳ. 지역문화 학습정보

155 승하여왔으나 국가적인 차원에서 더욱더 적극적인 노력과 실천이 필요한 때이 다. 그러므로 유학경전속의 성현말씀을 분야별로 소개한다면 정치 논어에 이르기를 전국시대에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질문하자 군왕 은 군왕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라고 하여 각자의 위치에서 사람다운 도의를 강조하였으며... 또 제자인 자하가 정치를 질문하자 정치란 경제가 풍족하고 국력이 튼튼하면 국민들이 신뢰하겠 지만 만약 군왕이 신뢰를 잃는다면 존립할 수 없다. 라고 하여 경제안정과 신뢰 성을 강조하였으며... 또 계강자가 정치를 질문하자 정치란 공정하고 정직해야 함으로 통치자가 솔선해서 공정하고 정직한다면 누구인들 감히 정직하지 않겠 는가 라고 하여 통치자와 고위공직자의 모범적인 공정성과 정직성을 강조하였 다. 그리하여 누구나 자기위치에서 공정하고 정직하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문 제는 반복적으로 그렇지 못한 데 있다. 소수정치인이 직무는 유기하고 책임은 회피하며 사리사욕을 부리다가 안 들키면 다행이고 들키면 모르쇠로 부끄러움 조차 모르기에 이제는 국민들이 정치인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이번국회는 화합의 장이 되겠지 기대 하고보면 또 그렇고 이번 측근들은 공명 정대하겠지 기대 하고보면 또 그렇고 무엇이 문제인지 국민들은 선출해놓고 기 만당하는 느낌이다. 정말로 새 정부만큼은 아니그럴것이라고 믿고 싶기에 정치 역시도 공정하고 정직한 선비정신이 요구되는 것이다. 국회가 번번이 민생법안 을 미루고 변론만을 내세워 당리당략만 앞세울 바에야 차라리 정당공천을 배제 한 지역단체장을 선출해서 입법권과 국정조사권을 겸직하는 제도가 국정운영 에 효율적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볼 때도 있다. 국민들이 정치인을 더욱 외 면하기 전에 각성하시라는 소망이다. 시대는 선비정신을 기대한다 김 인 규 155

156 횡 성 문 화 4. 경제 맹자에 이르기를 국민들의 생활상에 있어 일정한 생업이 있는 사람은 일정한 도의의 마음이 있겠지만 그러나 일정한 생업이 없는 사람은 도의의 마음마져 잃게 되어 편벽되고 사악하여 사행성을 계속하게 된다. 라고 하여 경제안정이 도덕성의 근원임을 강조하였으며... 대학에 이르기를 사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니 먼저할일과 뒤에 할 일을 알면 곧 도에 가까운 것이다. 라고 하여 무엇이 급선무인지를 알고서 실행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 하였으며... 논어에 이르기를 그림그리는 화가의 일은 흰비단이 준비된 다음의 일이다. 라고 하여 단계적 준비를 강조하였다. 대기업들의 무역수지에 관한 경 제지표가 아니라 서민경제의 안정성을 말하는 것으로 시장경제 동향을 알려면 자영업자에게 물어보고 고용시장을 알려면 구직자에게 물어보고 국민생활수 준을 알려면 중산층의 비중을 조사해보면 바로 그것이 정답으로 서민경제 불황 을 호황이라고 말한다면 앞서 말한 급선무가 뒤바뀐 것이다. 그러므로 평준화된 고용시장 안정을 위하여 고졸취업비율을 전체의 50%로 확대해야하고 일자리창출을 위하여 임금구조개선과 근로환경을 개선하여 외 국인근로자를 내국인으로 대체할 계획을 세워야한다. 때문에 경제역시도 사회 공동체라는 견지에서 빈부격차를 해소하여 경제풍요를 공유할 수 있는 정책과 빈곤층이 중산층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선비정신이 요구되는 것이다. 5. 사회 중용에 이르기를 중화( 中 和 )속에 세상이 자리 잡히고 중화 속에 만물이 생육 한다. 라고 하여 사회의 조화와 균형을 강조하였으며... 논어에 이르기를 옛적의 학문은 자신을 위하는 학문( 爲 己 之 學 )을 하였는데 지금의 학문은 남에게 쓰여지기위한 학문( 爲 人 之 學 )을 한다. 라고 하여 사회교 육이 점진적으로 자기계발과 수양을 벗어나 남의쓰임 용도로 전개되는 폐단을 156 Ⅳ. 지역문화 학습정보

157 지적한 것이다. 물론 물질문명의 직무다양성에 전문화는 장점이지만 반면 종합 적인 인격도야는 미흡할 수밖에 없다. 옛 말에 한쪽에 치중하면 다른 한쪽은 소 홀해지고 한쪽을 길게 당기면 다른 한쪽은 짧아지고 한쪽을 들어 올리면 다른 한쪽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모든 사람들의 사회진출역시 취향과 적성이 아닌 성적순(수능점수)으로서 평 생 동안 생업에 갈등을 겪게 되는 불만 층이 많아지게 된다. 더욱이 그런자리마 져도 잃게 되면 실의와 좌절로 극복하지 못하고 열등감을 표출하는 막가자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때문에 사회문제 역시도 경제안정에서 근본을 찾아야 되고 교육정책도 성적순에서 탈피하여 취향과 적성으로 유도해서 사회 안녕질서를 도모하고 개인행복권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인도해야 되기 때문에 사회역시도 자기성실로부터 사회공동체로 지향하도록 하는 선비정신이 요구되는 것이다. 6. 문화 예기에 이르기를 군자는 도를 얻는 것을 즐거워하고 소인은 욕망을 얻는 것을 좋아함으로 도로써 욕망을 제재하면 혼란스럽지 않고 욕망으로써 도를 잊으면 즐겁지 못하다. 라고 하여 도덕성이 가치관의 기준임을 강조하였으며... 소학에 이르기를 인의예지( 仁 義 禮 智 )는 사람본성의 강령이다. 라고 하여 유학의 인의 ( 仁 義 )사상이 동양인의 기본덕목으로서 정신문화임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정 신문화가 바로 우리민족의 긍지이자 생활상으로 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래서 유학은 바로 종교가 아닌 생활상으로 현실삶속에서 나 자신의 성실로부터 가정, 이웃, 사회, 국가, 민족 관에 이르기까지 이상적인 사회상( 大 同 社 會 )을 표 방하고 추구하면서 반만년을 계승하여 왔지만 애석하게도 20세기 초반부터 잠 시나마 국권침탈과 서구문명의 유입으로 다양한 문 화속에 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예로부터 관습화된 뿌리깊은 우리 동양문화의 겸양지덕과 예의범절과 정의로운 선비정신만큼은 자자손손 계승해 나가야 세계 속에 자랑스러운 한국 시대는 선비정신을 기대한다 김 인 규 157

158 횡 성 문 화 인임을 자부하는 길이며 그러한 주체성이야말로 머나먼 미래까지로 민족정신 을 보존하는 길로서 다 같이 뜻을 모으고 힘을 합쳐 노력하고 실천하여야만 한 다. 그러므로 맹자에 이르기를 국민이 제일소중하고 종묘사직이 다음이고 군 왕이 또 다음이니 군왕이 국가를 위태롭게 하면 바꾸어둘수있다. 라고 하여 민 족관의 소중함을 천명하였다. 7. 결론 문화는 계승하거나 유행하는 실체적인 문화와 주도하거나 감화하는 정신문화 가 조화와 균형을 이룸으로서 건전한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음으로 균형에 맞게 정신문화를 향상시킬 때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의 모든 사회병폐가 균형 을 잃은 정신문화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선비정신을 함양하는 국가차원의 확충, 노력을 필요로하며 그 저변에는 빈부격차와 사회소외층의 절박감에서 기인함 으로 포용할만한 특단의 대책을 수립하지 않으면 날이 갈수로 악화현상을 막을 방법이 없게 된다. 빈부격차와 소외감을 줄이는 방안으로 국가 100년대계를 꿈꾼다면 대승적인 부동산 정책을 검토하고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현재로서는 국민정서에 민감한 사안이지만 미래의 희망사항이라고 가정하고... 국가는 국토를 공공사업에 효율적으로 이용(반값주택공급등)할 수 있어야하 며 국민은 재산증식 의식구조를 바꿔서 누가보아도 상식이 통할 수 있는 부유 형성이 될 수 있어야 건전한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의 토지정책구조는 건국 이후 악순환을 계속 반복하고 있어 국민정서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등 모 든 영역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므로 국가 공공사업의 추진차질 및 막대한 국민세금이 낭비되고 있고 가 는 곳마다 토지투기 현주소로 사회에 불로소득층이 늘어나고 한탕주의가 만연 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기획부동산이 전국토를 누비고 있는데 방관하는 추세이 158 Ⅳ. 지역문화 학습정보

159 고 더욱이 부유층들이 토지이용과는 무관하게 땅장사 내지는 자손의 유산으로 소유하려는 의식들이 팽배하고 있으나 대책이란 과세뿐이고 오히려 정책은 땜 질식으로 뒤따라가면서 정리하는 형식이다. 우주대자연의 태양계 행성으로 모 든 생물의 터전인 지구를 누가 무슨자격으로 팔고 산다는 말인가! 이 지구는 모 든 생물의 보금자리로 100년 동안 잠시 빌려 쓰다가 되돌려 놓는다는 사실을 깨 달아야 한다. 땅만큼이라도 무소유로 되돌리고 토지소유제도를 토지이용제도 로 전환하기만 해도 모든 사람들이 경제적이나 심리적으로 여유가 있을 것이며 신혼가정의 새출발도 용이할 수 가있다. 실질적으로 중국의 토지임대제도(50년 또는 연장가능)가 국민행복지수나 경제발전에 장애가 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국 가공익사업에는 효율적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러한 상상은 장단점을 비교분석할 여지가 있다는 취지이며 기득권층 의 상실감해결을 통한 국민공감대가 형성된 다음의 일로서 여러 나라의 토지정 책분석을 통한 광범위한 연구와 많은 노력과 오랜 시간을 전제로 하는 미래 희 망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고대사회에서도 정전( 井 田 )제와 균 전( 均 田 )제 등의 토지정책을 시행한 기록이 있으며 토지문제가 국가경영에 중 대한 과제였음을 알 수 가있다. 그러므로 중용에 이르기를 사람의 도의는 정치에 민감하고 땅의 성장력은 나 무에 민감함으로 정치란 정치인에게 달려있어 정치인 선택하기를 그 사람의 전 인성(공공성, 정직성, 청렴성, 도덕성)으로 선정하되 그 사람과의 관계성(학연, 지연, 혈연)을 배제하여야하고 자신수양하기를 도의로써 해야 하고 도의 수련 하기를 인(성실, 배려)의 정신으로 하여야 한다.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사회병 폐는 정치력을 발휘하고 제도와 정책을 보완하여 불안요소를 해소하고 빈부격 차로 인한 양극화현상을 방지하여 사회통합을 이루고 온 국민과 함께 노력하느 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에 관한 벌칙은 근원을 해소한 다음에 검토하는 것이 순서이며 국민공감대가 형성된 다음에는 더한층 강력할수록 효 시대는 선비정신을 기대한다 김 인 규 159

160 횡 성 문 화 과적이다. 또한 사회통합에 저해가 되는 지방자치단체장 정당공천제를 검토할 여지가 있으며 화기애애한 지역사회가 양분화 되는 현상을 예방하기 위하여는 여론을 수렴해서 개선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선거철만 되면 지방행정수장이 정당 관리자에게 공천을 의뢰하는 부적합성이 이미 노출되고 있다. 그러므로 논어에 이르기를 사람이 원대한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시일에 근심할 일이 있 게된다. 라고 하여 긴 안목으로 사회문제를 신중히 다루어야함을 강조하였다. 이제는 선비정신으로 가치관을 정립하고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상식이 통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여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마지막기회라고 하였 듯이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주역이라는 신념으로 기회를 놓치는 우 를 범하지 않도록 방법을 강구하고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하는 실천만이 남았을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세계가 경탄하는 국력신장이 될 것이다. 조화와 균형과 화합과 노력만이 진리에 부합하는 길이다. 잠언한마디 기 회 (저서: 명심보감 표지문) 기회는 노력하고 준비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그러나 다가온 그 기회마저도 수용할 준비가 없다면 그 기회는 다음 주인을 찾아가버리는 것이니 그토록 맞이할 주인이 많은 그 기회가 어찌 다시 오기를 바라리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그마저 기회이니 오직 노력하며 수용할 준비를 하는 길밖에는 없는 것이다. 160 Ⅳ. 지역문화 학습정보

161 선 택 (저서: 소학, 대학 표지문) 선택은 존재 구현의 과정이다. 사람들은 선택받은 존재로서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그러나 그 선택은 결과를 낳고 교훈을 남기고 책임을 지운다. 선택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풍미한다면 어찌 작은 선택이라도 신중히 하지 않으리오. 참 잘했다는 결과를 체득한 뒤에야 비로소 현명한 선택이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노 력 (저서: 논어, 맹자 표지문) 노력은 모든 생물의 생존활력이다. 나무가 잎새피우려고 수십일 전에 물을 흡수하듯이 사람은 성취를 위하여 수십 년 전에 학문을 닦으며 식물이 자라서 꽃피우고 열매 맺듯이 사람은 배워서 깨닫고 존재를 구현한다. 성숙한 결실과 화려한 성취는 노력의 열매로서 노력 없이도 영원함이란 오직 대자연의 진리뿐이다.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연구원 김인규 시대는 선비정신을 기대한다 김 인 규 161

162 횡 성 문 화 인구가 늘고 지역발전에 가속도 붙는 전국 제일교육도시 횡성! 횡성의 교육이 획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란 말이 있다. 인재양성이 국가와 사회발전의 근본초석이고 그 영향이 크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과 인내심을 가지고 백년앞을 내다보고 큰 계획을 세운다라는 말이다. 이러한 백년지대계와 걸맞게 우리군에서는 횡성인재를 적극 육성하고자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갖고 교육시책개발과 투자를 지속해오고 있다. 횡성군청 자치행정과장 이상권 우리군이 교육정책에 역점을 두고 추진하게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우리군은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원주시와 춘천시로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상 위권 16%의 학생들이 인근도시로 진학하는 실정이다. 이는 학생들만이 타지역 진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가구 전체가 이사를 나가게 되어 인구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횡성군을 이끌어가는 공직자 또한 재직공무원중 타지 출신 공직자가 76%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군 출신 공직자가 적은 실정이다. 이처럼 우리군의 지속적인 인구감소, 우수인재부족등은 횡성발전의 저해요인이 되었 다. 이에 우리군은 교육환경이 획기적 개선없이는 지역발전이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교육정책을 우리군의 제1의 정책과제로 삼고 추진해오고 있다. 우리군의 교육정책중 대표적인 것을 몇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학교교육경비의 획기적 확대지원 둘째, 학교급식지원센터와 연계한 유초중고 162 Ⅳ. 지역문화 학습정보

163 전면무상급식, 셋째 우리군 핵심인재 양성프로그램인 횡성인재육성관 운영, 넷째 지역 우수인재 발굴 및 지속적인 지원체계마련을 위한 횡성인재육성장학재단 설립 운영을 들수 있다. 이러한 획기적인 교육정책으로 지난 2012년 6월 29일 전국기초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경남 창원)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농촌교육의 새로운 희망을 쓰다 라 는 제목으로 강원도에서는 유일하게 우수사례로 선정된 쾌거를 이루었다. 이번 수상은 지역실정을 정확히 반영 한 교육정책의 창의성과 효율성, 그리 고 추진과정에서의 주민과의 소통노력 등이 심사위원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우리군은 지난 2012년 3월에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서 전국 지자체를 대 상으로 공약이행과 정보공개 등의 노력을 평가한 2012년도 전국 기초지자체 공약이 행평가 에서 전국 최우수 군으로 선정되는 등 민선5기 공약사항 이행을 위한 노력이 대외에서 높은 평가와 호응을 받은바 있다. 우리군의 교육정책을 세분목별로 살펴보면 우선 첫째로 학교교육경비를 획기적으로 확대지원하는 체계구축 이를 위해 2011년 4월 14일 횡성군교육발전기본조례를 제정하여 교육예산을 전년도 결 산 자체재원(지방세, 세외수입 중 경상적 세외수입) 총액의 100분의 25범위에서 교육예 산을 편성하여 각급 학교, 법인 및 단체에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년 지원가능액을 산정해보면, 58억원 범위내에서 교육예산을 편성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교육경비지원현황을 보면 민선4기인 2010년에 13억원에서 민선5기 1년차인 2011년에는 33억원, 2년차인 2012년도에는 40억원으로 확대지원해 교육환경을 획기 인구가 늘고 지역발전에 가속도 붙는 전국 제일 교육도시 횡성! 자치행정과장 이상권 163

164 횡 성 문 화 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포괄적 지원하였다. 주요지원내용으로는 학교 방과후학교 운영비를 2011년부터 전액지원하였다. 방과후학교중 교과뿐만아니라, 특기적성 프로그램으로 컴퓨터, 미술, 볼링, 그룹사운 드, 플루트, POP 등 개개인의 재능과 능력을 키울수 있는 분야에 집중지원하였고 노후 화된 교육환경시설개설에도 선별적으로 지원하였다. 교육경비지원은 획일적지원에서 벗어나 그간 지원된 학교교육경비에 대한 성과분석 보고회를 통하여 우수한 프로그램에 대하여 지원을 강화하였다. 둘째로, 학교급식지원센터와 연계한 유초중고 전면 무상급식지원사업 친환경무상급식은 2011년부터 관내 유 초 중 고교를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2011년 에는 예산상으로 읍단위 4개중고(규모큰학교)를 제외한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추진하였 고, 2012년도부터는 관내 학교 전학교 친환경무상급식을 실시하였다. 학교무상급식 단순히 아이들에게 밥한끼를 공짜로 주는것이 아니라. 학교급식도 교육의 일부라는 개념하에 먹거리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지금 내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가 어떠 한 과정을 거쳐서 밥상에 올라오게 되었는가를 가르치는 교육의 일부로서 추진하고 있다. 또한 안전하고 위생적인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들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가르치며 건 강한 몸을 이루기위한 식생활 교육이 함께 이루어 지도록 영양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우리군은 이러한 학교급식의 교육적측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현재 정선군에 이어 강원 도에서 두 번째로 유 초 중 고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학교급식의 공공성 공익성을 실현하고자 학교급식지원센터를 설립운영을 한다. 학교급식지원센터는 2012년 강원도시범사업으로 7월에 착공하여 12월에 준공을 하였다. 164 Ⅳ. 지역문화 학습정보

165 학교급식지원센터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친 환경 농산물을 공급하여 어려운 농촌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고, 지역 로컬푸드 와 연계하여 수도권판로개척도 추진할 계획 이다. 셋째로, 우리군 인재육성프로그램인 횡성인재육성관 운영 횡성인재육성관은 관내 중고등학생중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여 방과후에 수준 높은 교육을 시키는 인재양성프로그램이다. 2011년 4월18일에 개관을 한후 금년도에 3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횡성인재육성관을 운영하게 된 경위는 우리군은 전형적인 농촌군으로서 매년 초등학 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진학률을 보면 16%의 학생들이 외지로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외지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우수한 학생들이다보니, 관내 학교의 학습분위기가 저하되 고 선생님들의 의욕 또한 감소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모든상황을 타개하고자 횡성군교육발전기본조례를 만들어 법적근거를 마련 하였고, 횡성군의 전반적인 교육현실에 대해 자문 및 의견수렴할 수 있는 횡성군교육 발전위원회(위원장 조원용)를 설립하였다. 또한 우수한 인재를 발굴해 핵심인재로 양성시키고자 횡성인재육성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법적기반을 마련하였다. 횡성인재육성관은 상하반기별로 관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중등부는 학년별 25명 씩, 고등부는 1학년 25명, 2~3학년은 20명씩 선발해 수도권 유명학원 강사들로 하여금 교과과목에 대하여 강의를 하고 있다. 2012년도에는 수도권에 소재한 중등부는 (주)케이에듀, 고등부는 (주)스카이에듀의 전문학원의 스타강사가 강의를 하고 있다. 강의시간은 중등부는 월, 수, 금 고등부는 월,화,목,금 방과후에 4시간씩 교과목(국,영, 인구가 늘고 지역발전에 가속도 붙는 전국 제일 교육도시 횡성! 자치행정과장 이상권 165

166 횡 성 문 화 수,논술,영어회화)을 집중 강의를 받고 있고 방학중에는 별도의 학사일정하에 체계적으 로 교육을 받고 있다. 횡성인재육성관은 횡성군교육발전위원회에서 3년간 위탁을 받아 학사운영 전반에 대하여 운영관리를 하고 있다. 2011년 4월부터 운영을 하여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향후 2~3년내 에 수도권 대학을 비롯하여 명문대학에 많은 합격생이 배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등부의 경우 작년 3학년 수강생 25명 전원이 관내고등학교로 진학해 관내고등학교 가 명문고로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을 다졌다. 횡성인재육성관에서는 수준높은 교과교육 뿐만아니라, 교육컨설팅도 병행하여 학생 개개인의 컨설팅도 병행하여 맞춤식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중등부 2학년과 고등부 1학년에 대하여 해외 선진지 연수를 실시하여 학생들의 글로벌마인드를 향상 시켜주는 프로그램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획기적인 교육시책인 횡성인재육성관을 설립운영함에 따라 향후 우리군의 우 수인재를 발굴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초석이 될 것이다. 넷째로, 우수인재 발굴 및 지속적인 지원체계를 위한 횡성인재육성장학재단 설립운영 교육이 살아야 횡성군이 살 수 있다는 군민의 여망을 담아 우리지역 학생들이 경제적, 환경적 요인으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위해 횡성군 교육발전기본 조례 제정을 하고 횡성인재육성장학재단을 일 설립하였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심어주고 우리군을 빛낼 글로벌 인재로 166 Ⅳ. 지역문화 학습정보

167 양성하겠다는 큰 뜻과 사명감을 갖고 일 횡성인재육성장학재단을 출범 식을 개최하였다. 운영형태는 공익형 재단법인이며 이사회는 이사회 16명(이사장 조창진)과 사무국에 횡 성군 교육행정담당관 1명, 민간전문인력 1명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운영위원은 재정, 홍보운영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운영위원은 항시 모집중에 있 다. 횡성인재육성장학재단 주요사업으로는 우수학생 장학금, 저소득주민자녀 장학금 농어촌 청소년 유망선수 장학금을 지급할 계획이며, 장학금 지급사업외에 미래 교육경 쟁력 제고를 위한 교육환경개선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장학재단 장학금 조성목표는 2020년까지 100억원이며 년( 월) 조성액은 33억(횡성군 향토인육성기금 24억원, 횡성군 출연금 5억원, 기타 후원금4억)이 조성 되었으 며, 2020년까지 횡성군 매년 장학금 5억 출연금으로 40억을 출 연하고, 민간후원금으로 27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2020년 100억 목표 지역인재육성이 지역경쟁력이다. 지역의 미래는 얼마나 경쟁력 있는 인재를 많이 학보하느냐에 달려있다. 글로벌시대 를 선도할 역량있는 인재육성이 매우중요하며, 이는 지역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정 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를 선도해 나갈 인재를 길러내고 이들이 가진 잠재력을 충 분히 발휘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면 지역발전에도 속도가 붙는다 향후 우리군 교육정책방향은 당장의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로 드맵을 갖고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갈것이다. 인구가 늘고 지역발전에 가속도 붙는 전국 제일 교육도시 횡성! 자치행정과장 이상권 167

168 횡 성 문 화 인재육성프로그램 다양화, 실질적 학생 능력개발에 주안점을 두고 우리군 인재를 양 성하는 방향으로 모든 교육행정역량을 경주해 나갈것이다. 168 Ⅳ. 지역문화 학습정보

169 Ⅴ.문화탐방기행 안동문화유적지 답사 서제원 강릉 ICCN 세계 무형문화 축전 을 다녀와서 이방우 향토사연구 비교답사 양기호 향토문화유적지 답사 한효진 문이준 전하영

170 횡 성 문 화 안동기행 하루동안의 안동여행을 다녀왔다. 횡성지속가능발전협의회 회장 서제원 여행이라기보다 문화 탐방이라 이름부침이 오를것 갔다. 내가 아는 안동은 소년시절의 어르신들로부터 귀에 젖도록 들어온 세도 정치의 고장 이였다. 강원도의 도령들은 안동 김씨 성을 가진 집과 혼인하는 것을 큰 영 광으로 여기는 경향이짙었다. 우리집의 고모 두분이 양반중의 양반집안인 안동 김씨 집으로 출가를 한 사례도 있다. 안동김씨성을 따라 출가한 것은 아니지만 신 랑을 평가 하는데 영향을 준 것이 안동김씨 성이였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고 모들은 시집 잘 가서 아들딸 잘 낳고 키웠다. 두 고모들의 아들들이 우리가 기억 할 수 있는 종합 병원의 원장을 지냈고 백혈병의 권위를 지키고 있다. 철이들어 내가 연상한 안동은 간고등어와 헛제사밥 정도였는데 횡성문화원의 문화 탐방계획으로 찾은 안동은 나에게 안동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는데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안동의 전통 문화가 유물이나 유적과 같은 유형의 문화재 보다는 하회탈춤, 차 전놀이, 유교적 전통 등 무형의 가치에 대한 비중이 높은 것을 생각해 보면 전통 170 Ⅴ.문화탐방기행

171 문화의고장다음에뜻을달리할수가없게된다. 이런가운데또한가지놀란일 이있다. 강원도에 당연이 있어야 할 산림과학 박물관이 안동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 강원도는 산악도로서 산림면적이 80%에 달한다. 시 도 직제 중 산림국이 있 는 유일한 도로 알고 있다. 그런데 21세기는 문화를 중심으로 자연과 환경과 그 린이 축을 이루는 문화 부국시대를 연다고 이곳 안동에 산림 박물관이 설립된 것이 아닌가? 나는 산림박물관의 기능을 자세히 살펴 볼 수밖에 없었다. 그 기능은 이렇게 되 어 있다. 전문 박물관 기능으로서 자연과 산림에 대한 지식과 산림의 과학적 관리 도산서원 단체사진 보존.개발 이용을 제시하는 역할을 당당하고 교육 학습 홍보기능으로서 자연과 산림의 과학적 보존과 이용 등 산림이 우리에게 어떤 혜택을 주는지를 종합적으 로 알아보는 지식전달 매체로서 현장 체험을 통한 교육의 역할. 지역의 유적지 및 전통 문화 등 관광명소와 연계된 차원 높은 자연 과학의 산림 문화 공간제공. 외래 관광은 물론 자연학습 체험과 종합문화 이벤트 장으로 활용하고 자연과 산림의 과학적 보존과 이용 등 산림이 우리에게 어떤 혜택을 주는지를 종합적으 안동문화유적지 답사 서제원 171

172 횡 성 문 화 산림과학박물관 안동컨텐츠박물관 로 알아보는 지식전달 매체로서 현장 체험을 통한 교육의 장 박물관을 중심으로 옥외 테마 별 각종 시설은 수경, 조경수목, 청정 공간 등 시 설 속에서 휴양과 레저 피크닉 오락 여가선용 등 종합 레저 기능을 잘 조화 시키 고 있었다. 또한 해동주자라 일커러지는 한국 최고의 유학자 퇴계 이황이 도산 서당을 짖 고 유생들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곳으로 선생이 돌아 가신 후 제자들과 유림에서 선생의 높은 덕을 추 모하기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이 외에도 병산서원, 태사묘, 시사단, 이육사 문학관 학봉종택, 등 유교 문화의 본향다운 유적이 많이 있어 안동은 의 와 예 를중시 하며 대쪽같이 꼿꼿한 절개로 학문과 풍류를 즐겼던 옛 선비들의 생활과 정신이 그대로 배어 있는 곳이다. 동방의주자로 불리울 정도의 대 학자 였던 퇴계 이황을 비롯하여 서애 유성용 등 명현이 많이 배출 되었으며 이들의 학문의 전당이였던 향교의 서당이 발달하였다. 특히 가장많은 서당이 건립되어 학문의 전당으로 이 름 높았으며 그중 26개소가 아직도 현존하며 봄 가을 두차례의 경초 향사을 봉행 한다. 선비정신에 기초한 학문적 전통을 바탕으로 안동은 한국에서 도 이름 높 은 교육의 도시이자 현대 한국 정신문화의 토대를 마련한 뿌리가 되었다. 또한 안동은 한국정신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불교문화의 중심지 이다. 모든 존재는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변화 하고 생멸하는 모든 것들에 부 172 Ⅴ.문화탐방기행

173 월영교 이천동 미륵불 처의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절대적 현실관을 바탕으로 찬란한 불교문화의 꽃을 피웠던 것이다. 안동지역 불교의 특성은 자연을 그대로 불교의 이상 사회로 승화 시키고자 노력한데 있다. 이러한 특성은 자연을 사찰 구조로 이용한 것에서 잘 드 러난다. 그래서 이지역 사람들은 세파에 시달리면 서도 안동에 사찰 안동의 자연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 마음의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세계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 보기 어려운 남성들 만의 격렬한 대동놀이인 차전놀이, 품격과 적극성을 갖춘 여성들의 대동놀이인 늦다리 밟기 민간신앙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성주의 고향 제비원 세계적인 탈 문화의 한국적 신명이 넘처나는 하회별신굿 탈 놀이.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며 농사일에 피로를 덜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저 전농요 의 편안과 풍농을 기원하는 동제 등은 안동에서만이 볼 수 있는 한국 민 중들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4차원 4DFX영상관 체험은 또다른 안동의 모습을볼수있는계기가됐다. 80석 규모의 4D영상관에서는 3D입체 영상과 함께 물 분사, 바람분사, 안개효과, 번개 효과, 의자효과 등 다양한 특수효과를 체험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 안동은 고전과 현대가 함께 어우러져 새로운 역사의 장을 그리는 곳으로 평가 하고 싶다. 참 좋은 문화 탐방이였다. 좋은 문화 탐방계획을 세우고 추진해준 횡성문화원 관계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고맙습니다. 안동문화유적지 답사 서제원 173

174 기행문( 紀 行 文 ) 횡 성 문 화 2012.강릉 ICCN 세계 무형문화 축전 을 다녀와서 ( 壬 辰 )년 10월 12일 오후 현관을 오르는데, 우체통에서 서신이 나를 반긴다. 문화원에서 보내 준 우편물이었다. 공근면 학담리 향정 이방우 제목은, 관외( 管 外 ) 전통문화 현장학습 참가신청 안내문이었다. 내용인즉, 10 월 24일(수) 오전 8시 출발 이고 장소는 강릉 임영관, 단오문화관, 구. 명주초교 도심 일원이라고 했고, 10월 16일까지 참가신청을 하라는 것이었다. 참가대상은 324명(회원 172명, 수강생 152명)인데 참가인원은 120명이라니, 선착순으로 신청을 마감하는 것 같아 10월 15일 오전에 전화로 신청을 했다. 여 직원이 친절히 받아 접수해 주었다. 우편물에 동봉한 행사장 배치도, 해외에서 참가해준 팀, 특별이벤트, 커피축제, 유네스코 등재 주요참가 공연, 행사 기간 등을 자세히 안내해주어 문화원을 운영 하는 분들이 세심( 細 心 )하게 안내해준 정성에 감사한다. 서신의 공문 본문은 큰 글자로 읽기가 좋았는데, 별도로 동봉한 행사 안내문은 글자가 깨알같이 작아 노안( 老 眼 )으로는 돋보기를 별도로 사용해서야 읽을 수 있었다. 10월 24일 (수-국제연합일) 간편한 복장을 하고 현관문을 나오니 맑은 하늘 이 오늘을 반기었다. 구름은 없는데 하늘이 약간 흐려 보인다. 가을 안개 때문이 라고 생각했다. 174 Ⅴ.문화탐방기행

175 횡성문화원 광장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8시 20분 전이었다. 어제가 상강( 霜 降 ), 늦가을 아침이라 안개가 가볍게 끼어 시야는 쾌청하지 않았 다. 관광버스 두 대가 대기하고 있었고, 참가할 분들이 한 두 분 씩 모이기 시작했 다. 반가운 분들이다. 횡성의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이기에 밝고 화창한 표정이시다. 대화는 자주 못했지만 진정 반가운 분들이었다.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담소하는데 8시 7분전에 세번째 버스가 왔다. 문화원의 홍성진 사무국장님과 김재성 과장님은 앞차 뒤차를 오르내리며 바쁘게 활동한다. 우리는 1호차에 배정되었다. 버스 3대에 각각 42명 씩 승차하게 했다. 1호차에는 회원 28명과 수강생 14명. 2호차에는 문화원 이사 20명과 수강생 22명. 3호차에는 수강생 42명이 탑승했다. 계획이 면밀( 綿 密 )함을 보았다. 행사 를 주관하는 문화원인원이 추가 됐을 뿐이다. 8시 3분전에 고석용 군수님이 1호차에 오르셨다. 마이크를 잡고 인사하고 군수 님도 문화원 회원이라며 동행했으면 좋았는데 그렇지 못한다고 양해를 구하며 즐겁게 잘 다녀오라는 덕담( 德 談 )을 했다. 출발 직전에 버스기사가 인사말을 하고 당부가 있었다. 각 좌석마다 안전벨트가 있는데 모든 승객이 안전벨트를 착용해달라고 했다. 물론 사고 없이 안전운행을 하려는 운전기사의 의무가 있는데 안전벨트를 꼭 매야 하느냐? 는 반문이 있겠지만 안전벨트는 생명벨트다. 사고는 예고가 없는 것이 아닌가? 내가 겪은 15년 전의 운전 중 사고를 되새겨 본다. 안전벨트가 내 생명을 구해 준 기억이 난다. 직장에서 홀로 퇴근 길, 오르막길은 두 차선이고 내리막길은 한 차선인 언덕길을 운전하면서 오르는데, 가랑비 정도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르 막길 차도의 2차선을 오르면서 오른쪽으로 도는 커브 길에서 방향을 오른쪽으로 돌리는 순간 내려오는 승용차가 갑자기 내차의 정면에 충돌되었다 강릉 ICCN 세계 무형문화 축전 을 다녀와서 이 방 우 175

176 횡 성 문 화 아! 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탄 차는 90도를 돌아 앞면은 2차선에 있고, 뒷면 은 1차선을 막았다. 내차를 충돌한 승용차는 앞면이 내차와 맞물린 상태에서 박 살이 났고 뒷면이 깎아진 산 절벽에 부딪히어 멈추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차가 90도로 틀어지는 순간 충돌의 충격이 안전벨트에 흡수된 것이다. 나는 벨트를 푸르고 내려 사고 낸 차를 보니 두 젊은이가 피투성 이고 고개를 비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구하고자 운전석 문을 열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이 와서 나를 만류( 挽 留 )하고 사고를 수습해 주었다. 지나가던 모든 차가 섰고, 교통순경이 오고, 구급차가 오고, 견인차가 오는 등 야단법석이었다. 나는 태연하게 사태를 수습했다. 뒤에 경찰서에 가서 사고조사 를 받는데 경찰관의 말이 나를 더 격려해주었 다. 사고조사 경험으로는 정면충돌을 하고 이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사고조사 를받는분은처음본다. 는 것이다. 그때도 안전벨트가 고맙다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도 안전벨트를 소홀히 하 는일은없다. 뒤에 들은 말인데, 승용차가 커브 길을 내려오는 길에 약간의 비 때문에 노면 에 쌓인 먼지로 인해 미끄럼 현상이 생겨 내려오던 차가 커브 길에서 미끄러져 생긴 사고라고 들었다. 자동차 사고는 예고가 없고 안전벨트는 생명벨트라는 것을 명심하면서 차를 운행하는 것이 생활화 되었다. 오늘의 여행에서 버스기사님의 당부에 감사한다. 8시 정각에 버스는 출발했다. 출발한지 1 분 뒤에 한 분이 승차를 못했다며 2~3분 기다려 태운 뒤에 출발했다. 횡성읍의 읍내 도로는 교차로를 고쳐 로터리(순환도로)로 만든 곳이 네 군데 있다. 번거로운 신호등이나 정차( 停 車 ) 없이 서행하면서 4방향이던 5방향이던 순조롭게 원을 그리며 운행되는 교통시설이 편리하고, 안전운행에도 크게 도움 176 Ⅴ.문화탐방기행

177 이 되고 있다. 버스는 향교( 鄕 校 ) 앞, 송호대학 입구의 이중 로터리를 지나 새말 IC 로 가는 길이었다. 금년에 두 번씩이나 겪는 태풍에도 피해 없이 논마다 황금물결이 가득하다. 횡 성은 복 받은 고장이라고 자랑할 만하다. 코스모스 길은 더더욱 아름답다.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이 우리의 전통 문화 현장학습을 격려하는 인사인 듯 친근감을 준다. 버스는 하이패스 시설을 해서인지 정차 없이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사무국장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김광수 문화원장님의 인사말씀이 있었다. 운 전기사의 안전운행에 대한 수고와 격려의 박수도 부탁해서 모두 힘찬 박수를 쳤다. 그리고 사무국장님이 일정을 자세하게 안내해 주었다. 버스는 다른 차량을 추월하지도 않고 지정속도를 지키면서 안전 운행을 잘해 주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가을 단풍과 소나무들! 그리고 고랭지 채소 밭과 아 름다운 집들이 산 좋고 물 좋은 대관령의 정취를 돋보이게 한다. 터널도 많고 도로변에 방음벽도 있었지만 아름다운 산과 멀리보이는 경치를 감상하는 데는 우리나라의 자랑이요, 강원도의 자랑이라는 느낌이 앞선다. 그러면서 산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본다. 강원도 산의 특징은 솔숲이라 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솔숲보다 단풍 숲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지구의 온난화 현상 때문이라고 누군가가 말한 것을 들은 기억이 난다. 지구가 양극( 兩 極 )의 빙산과 빙해 층이 녹으면서 따뜻해지니까 북반구의 우리 나라 기후는 명태의 서식처가 북상하듯이 산의 나무도 소나무 벌목을 한 뒤에 는 활엽수림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소나무 침엽수 숲의 산보다 활엽수인 참나무 숲의 산이 더 많아 보 인다. 근래에는 솔잎 흑 파리의 피해가 줄어서인지 붉은 빛을 띤 소나무 숲이 안 보인다.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흐려진 차창을 닦았다. 좌석 옆에 앉아있는 이송윤 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술도 한잔씩 나누었다. 문 강릉 ICCN 세계 무형문화 축전 을 다녀와서 이 방 우 177

178 횡 성 문 화 화원에서 준비해 온 안주거리 봉투를 하나씩 주었는데 간식거리, 안주거리, 마 실 거리가 가득하다. 평창 휴게소에서 머물러 화장실도 다녀오고 평창의 맑은 공기도 마시면서 15분을 쉬었다. 어느 덧 버스는 강릉에 도착했다. 10시 25분에 다노세마당(강릉 임영관)에 입장하기 위해 버스를 정차하려고 했 으나 혼잡한 교통사정으로 다보세마당(구. 명주초교)으로 이동하여 입장했다. 一. 다보세 마당(구. 명주초교)에서 입장하기 직전 사무국장이 특별할인권(5천원)을 나누어 주어 입장했다. 입장 권은 세 곳에서 사용할 수 있게 했는데 입장할 때 해당 행사마당 표 란에 구멍을 뚫어 입장했음을 표시해 주었다. 처음 대한 곳이 시민문화 공연장이었는데 11시에 시작하는 이란 이스타한 민 속음악 이었다. 공연장 좌석에 꽉 차게 앉고 앞 공간에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빽 빽이 앉아 있었다. 이란 노래를 하는 가사의 뜻은 잘 모르지만 열창하는 모습이 힘차 보였고, 목 소리가 우렁찼다. 11시 30분부터 몽골 홉스골 우루탄두 가 공연되었으나 우리 는 전시관으로 이동했다. 행사장은 구( 舊 ). 명주초등학교 건물로 1층에 입실하면 이층으로 이어지면서 교실마다, 참가한 나라마다 체험실과 인체 장신구 전시와 판매장이었다.초등학 교 학생들이 많이 관람하고 다니므로 이 학교 학생 이냐고 물었더니 명주초등 학교는 새로 교사를 현대식으로 신축하고 이미 이전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자리는 초등학교 학생이 공부하는 자리가 아니라 시내에 행사장을 마련하려고 강릉시의 계획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강릉시는 2005년에 강릉단오제 를 세계 문화제로 등재함으로써 차원 높 178 Ⅴ.문화탐방기행

179 은 발전을 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비좁은 교실을 많은 관객이 오가니 까 교실 바닥에 깔려있던 먼지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매쾌한먼지냄새가난다. 앞 교정 자리엔 텐트를 치고 세계전통놀이체험, 여러 나라, 여러 종류의 체험 장이 있었다. 12시가 가까워지면서 다보세 마당을 나와 명주로를 지나 점심을 먹을 식당을 찾아 가는데 강원여중이 전통을 자랑하는 정원수와 깨끗하고 정돈된 교사 배 치, 넓은 운동장이 낮은 담장너머로 보인다. 깨끗하고 정돈된 학교를 보니 역시 강릉은 교육의 도시임을 느끼게 한다. 신사임당의 얼이 이곳에 있으리라. 200~300m 정도를 걸어 오솔길 식당 에 갔더니 2층으로 된 비좁은 음식점이 었지만 깨끗하고 손님맞이가 친절했다. 음식을 맛깔스럽게 맛있게 먹었는데 십여 가지 반찬에 검은 해초인 지누아디 가 좀 질기기는 했지만 특별한 맛이 있었다. 뒤에 들은 말인데 예약을 한 손님이 라고 정성 드려 손님맞이를 했다며 보통손님 보다 특별히 잘 차렸다고 했다. 식사 후 식당 주인이 안내하는 길을 찾아 갔는데, 강릉의 토성로 오솔길을 처 음 걸으면서 오솔길 폭이 1m도 안 되는 골목이었는데 노면에 깔린 알갱이가 작 은 아스콘으로 포장된 골목길을 이리 저리 꼬불꼬불 50m 정도 빠져 나가니까 다노세 마당(강릉 임영관) 후문에 오게 되었다. 토성로( 土 城 路 ) 에는 120여 호 의 주택이 있었다. 二. 다노세 마당(강릉 임영관)에서 일행은 다노세 마당 후문으로 들어갔다. 후문으로 들어갈 때는 입장권을 보 자고 하지 않았다. 앞문에서만 표를 팔고 입장을 하도록 했나보다. 우리는 입장 권은 가지고 있지만 체크하는 사람은 없었다. 뒤에 알게 됐지만 강릉 시민은 65세가 넘으면 신분증만 보이면 무료입장 이란 다. 우리는 강릉시민이 아니니까 무료입장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강릉 ICCN 세계 무형문화 축전 을 다녀와서 이 방 우 179

180 횡 성 문 화 후문을 들어가니 처음으로 대하는 것이 많았다. 그런데 조금 한산함을 느꼈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아마 점심시간 바로 뒤라서 그런가 보다. 문화전승자, 다도 체험장, 강원예술장터, 뚝딱 공예 체험장, 오죽( 烏 竹 )공예, 잡풀공예, 농가체험, 전통자수, 매듭 시연 및 체험 등을 하는 사람으로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중문을 거쳐 임영관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이리 오너라! 체험장, 칠보공예 체험장, 전통 차, 떡 식사, 연지 곤지 혼례 체험, 강릉규방공예 관람, 옛 물건 만들기 체험 등을 관람하다가 공연장에 이르렀다. 오후 1시 20분경이었다. 사무국장님이 큰 소리로 주의를 집중하게 하더니 임영관의 강( 江 ) 건너편 다오세 마당(단오 문화관)이 있으니 이곳까지 자유 롭게 관람하면서 오후 4시 까지 다노세 마당 (현 위치) 정문 앞에 모이라고 한 뒤 자유롭게 관람하도록 풀어 주었다. 우리 일행은 임영관 공연장에서 캄보디아 크메르 궁중 무용 을 잠시관람하 다가 다오세 마당(단오 문화관)으로 향했다. 三. 다오세 마당(단오 문화관)에서 마침 강릉농악 보존회에 중요 무형문화재 제 11-라 호 를 공연하고 있었다. 역시 한국농악놀이가 멋지다. 청( 靑 ) 홍( 紅 ) 황( 黃 ) 색의 어울림, 꽹 가리, 징, 장구, 소고, 나발 등의 강한조화 음, 신나는 춤과 몸놀림, 상모돌리기 등 흥겨운 모습이었다. 이어서 1시 30분부터 봉산탈춤 보존회에서 중요 무형문화재 제 17호 를 공 연했다. 해학적( 諧 謔 的 )인 극 내용과 탈춤의 어울림이 무형문화재로서의 가치 가 높음을 알았다. 춤 중에는 탈춤이 제일 힘 든다는데, 춤을 추다가 잠시 탈을 벗고 쉬는 모습에서 붉어진 얼굴과 뻘뻘 흘리는 땀을 보았다. 오후 2시 30분경에 다노세 마당인 임영관 공연장에 오니 몽골 홉스골 우루탄 180 Ⅴ.문화탐방기행

181 두 를 공연하고 있었다. 관람객이 빽빽하다. 우루탄두는 몽골의 중요 축제와 행사에서 연주하는데 결혼식, 새 집의 준공, 아이의 탄생, 당나귀 낙인( 烙 印 ) 등 몽골 유목사회의 중요한 의식의 한 부분이 라고 한다. 서정적인 노래로 다양한 장식적 표현, 가성과 폭넓은 음폭 및 구조로 구성했다 고 한다. 올라가는 멜로디의 경우 느리고 점진적인 반면, 떨어지는 멜로디는 리 듬이 활동적이었다. 오후 3시부터 30분 동안 브라질 아테슬 노래를 감상했다. 오후 4시가 되어 사 무국장의 안내로 임영관 정문을 나오니 버스 세대가 순번대로 기다리고 있었 다. 주위사람과의 인사는 뒷전이다. 반기는 버스에 오르는 것이 우선이다. 조용했다. 안전벨트를 매고 차에서 들려주는 음악을 감상하며 귀가하는 길에 휴 게소에서 쉬지도 않고 버스는 직행했다. 차창 밖은 점점 어둠이 다가오고 있었다. 예정한 시간에 맞춰 오후 6시에 횡성종합운동장 앞에 왔다. 문화원에서 주신 저녁 곰탕을 맛있게 먹고, 다시 버스를 타고 문화원 앞에까지 동행한 관광버스 를 내려 귀가 길에 오르면서, 하루의 체험이 보람이 있었음을 느끼며 조금 피로 하기는 했지만 문화원에서 시행한 전통문화 현장학습에 참가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되었다. 참고로 국제무형문화도시연합 (ICCN: Inter-City intangible cultural Cooperation Network)에 대해 알아보았다 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창립 되었으며, 사무국은 강릉에 두고 대표자는 강릉시장이며 회원은 21개국 29개 지방정부. 8개 협력기관이라고 한다. 이 행사에 참가한 국내 초청 팀은 38개 팀이었단다. 오늘의 체험에서, 인류 문화유산에 대해 많은 이해가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종묘제례, 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단오제 등을 포함해 총 강릉 ICCN 세계 무형문화 축전 을 다녀와서 이 방 우 181

182 횡 성 문 화 14건의 인류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추가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정선아리랑 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형 성하고 결속을 다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평가해 등재평가를 받아, 2012 년 12월 3~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제7차 무형유산 위원회에서 지정이 결 정된다고 한다. 문화원에서 실시한 현장학습이 치밀한 계획과 정성이 담긴 준비로 세계적인 전통문화를 체험하는데 크게 노력했음을 알게 해 줬다. 참으로 좋은 현장학습 을 답사하게 해준 문화원 김광수 원장님과 홍성진 사무국장님께 감사한 마음을 기행문에 남긴다 <캄보디아 크메르 궁중 무용> <몽골 홉스골 우루탄두 공연> 182 Ⅴ.문화탐방기행

183 <정선아리랑 공연> <ICCN 세계무형문화축전 행진 행사> <몽골 홉스골 우루탄두 공연> 강릉 ICCN 세계 무형문화 축전 을 다녀와서 이 방 우 183

184 횡 성 문 화 향토사연구 비교 답사기 양기호 지역 문화 발전과 향토 문화 진흥을 위한 타 지역의 우수한 문화 유산을 폭 넓 게 접하여 익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우리의 전통 문화와 유산을 보존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데 이바지 하고자 횡성문화원 2012년 향토사 연구 비교 답사 계획이 12월 4일부터 1박 2일간 전라북도 부안군 일원 문화유적 및 문화 기반 시설을 중심으로 수립 되었다. 첫날 오전 7시 30분 일행과 함께 설레이는 마음으로 답사 차량에 오르니 문화 원 광장을 정시 출발하여 섬강변 돌아 횡성을 뒤로하고 중앙고속도로, 영동고 속도로, 경부고속도로, 공주서천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와 일반 국도를 번갈 아 달려 줄포IC를 끝으로 11시 50분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소재 부안청자박물 관에 도착 하였다. 반곡저수지를 내려다보며 갈풍리를 지나니 원주 기업도시공사장이 옆으로 비 켜선다. 아침 일찍이라 그런지 공사현장은 조용해 보였고 수확이 끝난 문막들 판은 비닐에 싸인 볏집덩이가 배미를 채운채 초겨울을 맞아 한산한데 인접도로 에는 차량들이 분주했다. 덕평휴게소에 잠시 휴식하고 안성땅을 가로 질러 천안땅 거쳐 공주방향 들어 서니 새로 세운듯한 세종시 표지판이 옆으로 비켜가고 이어 전라도 땅이 다가 오더니 끝이 안보이는 김제평야가 시야를 꽉 채웠다. 때 맞춰 뿌려진 논보리싹 이 파랗게 보여 지매 부지런한 농심의 근면함이 농학도인 나의 마음을 흐뭇하 게 하였다. 184 Ⅴ.문화탐방기행

185 부안청자박물관 세계도자기 가운데 으뜸인 고려상감청자를 제작하였던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에 2011년 비색의 청자상감국화넝쿨무늬찻잔(국보115호)을 형상화 하여 국가 사적69호인 유천리 도요지의 복원과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건립, 지상 3층으로 전 시동, 체험동과 야외 사적공원 등 3개의 공간으로 구성 되어있는 시설. 소재지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청자로 주요소장품 : 12세기 후반~13세기 고려시대 <청자 구름 무늬병> 13세기<청자국화무늬참외모양병> 주요활동 : 도예체험 프로그램 운영 고려청자는 처음 중국에서 만들었던 청자의 제작 기술을 우리나라 고려시대에 받아들여 만들기 시작 하였고 500여년동안 애용된 실용성과 장식성을 고루 갖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예품이며 특히 부안 상감청자는 고려청자 중에서도 명품 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유천리가 대표적인 생산지라고 부안청자박물관은 설명하 고있다. 대표적인 고려청자에는 <상감청자>그릇표면에 선이나 면으로 홈을 파고 하얀흙.붉은흙 등 다른 색깔의 흙을 메워 넣는 방법으로 무늬를 새긴 청자. <철화청자>철분이 많이 함유된 안료를 사용 하여 붓으로 그림을 그린후 유약을 발라 구워 낸청자. <비색청자>음각, 양각, 투각, 상형 등의 방법으로 무늬를 넣어 안료를 사용하지 향토사연구 비교답사 양 기 호 185

186 횡 성 문 화 않은 푸른빛 (비색 또는 비취색)이 나는 아름다운 청자라는 설명문을 읽으며 공 근면 창봉리의 사기점골에서 수년전 도자 파편 채취 보도한 방송을 연상해 보 았다. 내소사( 來 蘇 寺 ) 답사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능가산 관음봉( 伽 山 觀 音 峰 )기슭에 위치한 내소사는 대한불교 제24교구 본사 선운사의 말사로서 백제 무왕 34년(서기633 년)에 승려 혜구두타가 창건하여 소래사( 蘇 來 寺 )라 하였는데 창건 당시에는 대 소래사( 大 蘇 來 寺 )와 소소래사( 小 蘇 來 寺 )가 있었으나 대소래사는 소실되었고 지금의 내소사는 소소래사가 남아 전하는 것이라고 한다. 현존 사찰은 조선조 인조 11년(서기1633년)에 청민선사와 대웅보전을 지었는 데(보물291호)그 건축양식이 매우 정교하고 환상적 이어서 조선 중기 사찰 건 축의 대표적 작품이라 하며 서기 1865년(고종2년)관해선사가 중수하고 그 후 만해선사가 보수하였고 1983년 혜산이 중창하여 현재의 가람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당초의 소래사를 내소사로 부르게 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을 전후해 서 내소사로 불러온 것으로 추정 된다고 하며 고려동종(보물277호) 영산회괘불 186 Ⅴ.문화탐방기행

187 탱화(보물1268호)등 여러 문화재가 있으며 정문에는 실상사지에서 이건한 연 래루가 있다. 내소사의 유래에 관하여 일설에는 중국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와서 세웠기 때 문에 내소 라 하였다고도 하는 이는 와전된 것이며 전북 기념물78호로 문화재 보호구역에 지정 되었으며 일주문부터 천왕문에 걸친 약600m에 이르는 전나 무 숲길이 울창한데 태풍피해인 듯 부러진 나무, 쓰러진 나무가 있어 평창의 월 정사 전나무 숲길과 비교할 수 있으며 대웅보전 등 시설물의 단청이 퇴색되어 품위가 좀 떨어져 보임에 아쉬움을 더 했다. 채석강( 彩 石 江, 국가지정문화재 명승13호) 답사 내소사 답사 중 날리기 시작한 눈발이 점점 굵어지고 빗방울 섞여 보행을 훼방 했다. 우산을 펼쳐들고 젖은 모래 밟아 해식해안을 살폈으나 날씨 때문에 자세 히 탐사치 못함에 아쉬웠다. 향토사연구 비교답사 양 기 호 187

188 횡 성 문 화 채석 범주 일원은 변산반도에서 서해 바다쪽으로 가장 많이 돌출된 지역으로 강한파랑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곳이며 높은 해식애 및 넓은 파식대는 수만권 의 책을 정연히 올려 놓은듯 한 해변, 높은 절벽과 자연미가 뛰어난 경관지 이며 중국 당나라 때의 시성 이백( 李 白 )이 술에 취해 뱃놀이를 하다가 강물에 뜬 달 그림자를 잡으려다 빠져 죽은 중국의 채석강과 흡사해서 그 이름을 따온 것이 라고 하기도 한다는 안내판을 읽으며 십여 년전 영상회원들과 풍광을 촬영 하 던 중 너럭바위에서 자연 석굴 안주하여 소주잔 넘겨주시던 인자한 얼굴의 할 머니 생각이 언듯 스쳐갔다. 부안댐(물문화관) 변산반도 국립공원내 남서부 산 악지인 내변산 중계계곡에 있으며 동진강 유역에 인접해 있다. 1990년 2월에 착공하여 1996년 12월에 완공 되었고(총 사업비 620억원) 서해한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와 산업화 및 도시화의 촉진 으로 급증하는 용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조성하였다고 한다. 댐 건설에 따른 용지 보상 대상 지역은 1군 2면 3개리이며 수몰지는 296만m2 에다 19만m2의 공사부지 포함 총 315만m2이며 이주민은 96세대 323명에 달했 다고 한다. 현재 부안군, 고창군의 상수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새만금지구의 공 업용수까지 공급하고 있는 부안호는 기존의 갖가지 기암괴석과 어울려 절경을 이루면서 전북지역의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되었다고 홍보하고 있다. 횡성댐 건설에 따른 갑천 지역 실향민과 중금리 망향동산을 비교 생각하며 부 안댐 산책로를 거닐었다. 188 Ⅴ.문화탐방기행

189 새만금 방조제 새만금 사업의 첫 삽을 뜬 기공 식 부지 인근에 위치한 전시관은 새만금 간척 사업의 추진 과정을 보여주는 각종 사진, 도표, 모형 등의 자료와 영상 매체를 갖추어 새만금 사업을 이해 할 수 있도록 1995년 농업기반공사가 개관한 간척 전문 전시관이며, 방조제는 단군이래 최대 역점 국책사업으로 부안과 군 산을 연결하는 세계 최장 방조제로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에 길이 33.9km의 뚝 을 쌓아 조차의 피해와 염해를 없애기 위해 1991년부터 시작된 국가사업으로서 2010년 4월 준공, 2010년 8월 기네스북에 등재함으로서 중국의 만리장성에 비 견되는 해상 만리장성을 구축하여 1억 2천만 평(여의도의 140배, 서울 면적 ⅔) 을 총 사업비 22조 2천억을 투입 2030년까지 내부 개발을 완공함으로서 산업, 주거단지, 도로 등으로 매년 2만 ~ 3만 ha씩 사라지는 토지를 대체 할 수 있는 대단위 사업이다. 현대산업이 맡아 공사를 진행하였고 처음에는 작업이 수월하였으나 마지막 물막이에 억센 물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폐유조선을 이용하여 마무리 하 였다고 한다. 참모들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정주영 회장의 해 보기나 했어 라는 한마디에 유조선공법이 성공적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 80km속도로 방조제를 서행하며 좌우를 관망하니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 고 신시 배수 갑문에서 바라본 군산, 부안 땅은 작은 점으로 보이매 내 눈을 의 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매립공사광경을 차창으로 바라보며 비응항에 도착 바지락 죽으로 중식을 마 향토사연구 비교답사 양 기 호 189

190 횡 성 문 화 치고 나니 날씨가 또 흐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대로 폭설이 예상되어 나머지 일정을 취소하고 귀로에 올랐다. 충청 땅에 이르니 목화송이 같은 눈발이 앞을 가려 차들이 황소걸음처럼 가다, 서다를 반복 매우 긴장 되었다. 곰소항에서의 젓갈중식, 변산격포에서의 벗기면 벌어지는 은박지 백합구이 석식 등 남도 음식 맛을 반추하며 눈길 혜처 횡성 도착하니 가로등이 휘황한 늦 은 시간이었다. 직원들을 대동하고 우리 일행을 따뜻하게 영접해주신 부안 문화원장님의 고 마움과 김광수 황성문화원장님과 협조하여주신 직원님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이번 답사가 우리군 문화발전에 기여하기를 기대 한다. 190 Ⅴ.문화탐방기행

191 횡성군 향토 문화유적 답사 서원중학교 2학년 1반 한효진 체험일 : 일(금요일) 체험내용 : 횡성군 향토문화유적답사 장송모도자연구원 횡성댐 망향의 동산 3.1공원 횡성향교 한얼예술박물관 횡성참전전우기념공원 강림의 병총 태종대 버스를 타고 도착한 장송모도자연구원은 역시 횡성이라 그런지 그리 멀지 않 았다.장송모도자연구원에서는 가치가 놓고 아름다운 도자기를 마음껏 볼 수 있 었다. 다음으로 간 횡성댐에서는 아무래도 물이 가득 차있던 댐이 기억난다. 이 댐에 가득차 있는 물이 원주까지 간다고 하셨던 국어선생님의 말씀도 기억난 다. 횡성댐 건물 안에서 갖가지 체험할 수 있는 장소도 있었다. 거울을 보는데 내 모습이 나오는게 아니라 다른 쪽 사람의 모습이 나오는 것등 굉장히 신기하 였다. 횡성댐을 보고난 뒤 망향의 동산을 갔다. 망향의 동산은 침수되기 전 사람 들이 살던 곳이라는데 도착하자마자 큰 석탑하나가 우릴 반겼다. 석탑의 이야 기를 듣고 건물 안에 있는 농기구들이나 옛날 물건들을 보았다. 건물 안에서 울 리던 풍금의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 싶다. 예쁜 벚꽃이 활짝 핀 3.1공원에서는 3.1운동을 참여하셨던 분들을 인상깊게 볼 수 있었고, 횡성 향교에서는 지금도 모이셔서 함께 공부한다는 것이 인상 깊 었다. 그리고 길 한 가운데는 신이 다니는 길이라 그길로 다니면 안되는 것과 같이 한 얼예술박물관은 예쁜 수묵담채화들이 기억에 남는다. 매화부터 시작해서 많은 꽃들이, 풍경들이 정말 예뻤다. 그리고 푸른 빛 도자기들과 조각품들도 예뻤다. 다음으로 간 횡성참전 전우기념공원은 하얀 목련꽃이 피어있었다. 목련꽃이 향토문화유적지 답사 한 효 진 191

192 횡 성 문 화 잔뜩 핀 나무 사이에 있는 계단을 오르니 전투에 참전하신 횡성분들의 성함이 새겨져 있었고 네덜란드군 기념비도 있었다. 다 보고 내려가기 전 목련나무 밑 에서 2학년끼리 사진도 찍고 내려왔다. 버스를 타고 약15분 정도를 가 강림의병총에 도착했다.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 하신 5명의 의병들을 묻은 곳이였는데 안타깝기도 고맙기도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태종대에 들렸다. 태종대의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밑으로 내려가 작은 도랑 길 옆을 조심조심 걸으면서 멋진 돌에 새겨진 글자와 개울을 볼 수 있 었다. 이번 횡성문화유적답사는 정말 전혀 알지 못했던 횡성의 문화유적을 보 고 배울 수 있었던거 같다. 횡성의 다른 문화유적들도 찾아보고 배우고 싶다. 192 Ⅴ.문화탐방기행

193 횡성군 문화유적답사 기행문 민족사관고등학교 16기 문이준 지난 토요일, 즉 4월 7일에, 나를 포함한 16기 학생들 전부는 횡성군의 향토문 화유적을 탐방하는 시간을 가졌다. 비록 지금까지 근 1년 반 동안 횡성군의 주 민으로 살아왔지만 횡성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극히 드물고, 횡성 밖으로 나가 본 것도 고작 우리 학교 지구와 횡성과 둔내 시내뿐이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하여 횡성에 어떠한 문화유적이 있으며 내가 자라서 리더로서 우리가 자라 온 횡성 이라는 고장의 유적을 어떻게 보존해야 할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사실 지금까 지 횡성이라는 곳은 나에게는 그저 '학교가 있는 곳'에 불과했고, 횡성 시내를 제외한 다른 곳에는 논밭과 산이 전부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이번 횡성문화 유적 탐방으로 횡성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사연과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시대의 문화 유적들을 직접 찾아가 보고 느끼며 횡성에 대한 애정 을더키울수있었다. 우리가 간 곳은 강림의병총, 태종대와 노고사당, 풍수원성당, 횡성댐, 망향의 동산과 중금리 3층석탑, 그리고 봉복사와 신대리 3층석탑이었다. 먼저 들른 곳 은 강림의병총, 태종대와 노고사당이었는데, 우리 학교에서 얼마 채 가지도 않 았는데 향토 문화유적이 위치한 곳에 도착했다고 하니 문화유적과 그만큼 가까 이, 함께 살고 있는 횡성의 주민들에게 부러움도 느꼈다. 강림리 의병총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 중 패한 의병들이 묻혀 있는 일제강점기 의병 의 묘역이다. 여기에서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의병들에 대한 묵념을 하고 태종 대와 노고사당에 들렀다. 조선의 3대 왕인 태종의 흔적이 머나먼 강원 산골짜기 인 횡성에까지 닿아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태종의 스승인 원 천석과 태종 간의 일화가 남아 있는 중요한 유적인 태종대와 노고사당을 방문 향토문화유적지 답사 문 이 준 193

194 횡 성 문 화 해 보니 새삼 횡성에 대해 몰랐던 것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후꽤먼거리를이동한후에풍수원성당에 도착했다. 정확한 명칭은 횡성 풍수원천주교회인데, 횡성 중에서도 시내가 아닌 산 속에 우리나라에서 네 번 째로 세워진 천주교회가 위치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천주교가 심하게 박해받던 시절, 초기 신자들은 풍수원성당이 세워진 이 곳에 들어와 숨 어서 신앙을 키워 왔다고 한다. 이 곳은 강원도 천주교의 발상지이고 한국천주 교사에 전기를 마련한 성지라고 불릴 만큼 유서 깊은 곳이다. 이러한 곳을 직접 들러 초기 천주교의 흔적을 느꼈다는 것이 매우 새로웠고 개인적으로도 천주교 신자인 나로서는 감격할 만한 경험이었다. 풍수원에서 나와서 횡성댐으로 이동했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횡성에 댐 이 있는지 몰랐다. 횡성댐은 여느 댐이 늘 그렇듯이 매우 조용했고, 깊이를 알 수도 없이 어두운 횡성호를 보자니 무서운 생각까지 들었다. 횡성댐에서 점심 을 먹은 후 그 옆 망향의 동산을 방문했다. 횡성댐이 2000년도에 완공되면서 총 258가구가 자신의 고향이 물에 잠겨 고향을 떠나야 했다. 망향의 동산은 그러한 수몰민들의 삶의 흔적과 역사를 전시해 놓은 곳이었다. 그들이 썼던 농기구들, 한때는 사람들이 다녔을 논밭과 학교 등의 사진을 보고, 이 모든 것이 다 지금은 망향의 동산 앞 횡성호의 검푸른 물 밑에 있을 것을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아팠 다. 졸지에 자신들이 살던 고향이 물 속에 잠기고 의지할 것이라고는 이 망향의 동산뿐일 수몰민들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이 곳에 들러 그들 의 애환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망향의 동산에 있는 내내 정말 마음이 아 팠다. 이 곳에서 나는 횡성호 밑바닥에 혹시 마을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나 그 밑바닥을 열심히 쳐다보기도 했는데, 밑바닥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검푸른 물 이 자신의 고향 전체를 덮어 버렸다는 사실 앞에 하루아침에 고향 없는 사람들 이 되어 버린 수몰민들의 아픔과 애환에 나도 눈앞이 흐려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봉복사와 신대리 3층석탑에 다녀왔다. 봉복사에서 나는 처음으로 194 Ⅴ.문화탐방기행

195 덕고산을 볼 수 있었는데, 학교의 교가에서도 등장하는 덕고산인 만큼 덕고산 산자락에 있는 봉복사를 직접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의미 있는 경험이었 다. 그 후 신대리 3층석탑을 잠시 방문한 후 학교로 돌아왔다. 이 횡성문화원 향토문화유적 답사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 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의 향토 문화유적을 직접 방문해보는 것도 난생 처음 해 보는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횡성문화원에서 오신 분들께서 함께 다니시며 친절한 설명까지 해 주시니 이러한 문화유적들에 관한 일화까지 알 수 있어 정 말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사실 이 향토문화유적 답사를 가기 전에는 할 일도 많고 시험 기간도 얼마 남지 않은 2학년 학생들의 아까운 시간을 뺏는 것 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문화유적 답사를 가는 것도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횡성문화원 향토문화답사를 통해 지금까지는 전혀 몰랐 던 횡성의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에 따라 내가 앞으로 커서도 어떠한 마음가 짐으로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하여 여러 모로 얻은 것이 많았다. 내가 이러한 기회 를 제공한 학교의 일원이라는 것이 기뻤고 자랑스러웠다. 이번 횡성군 문화유 적 답사는 앞으로도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경험이 될 것 같다. 향토문화유적지 답사 문 이 준 195

196 횡 성 문 화 횡성군 문화유적답사 기행문 민족사관 고등학교 전하영 저희 학교는 소위 말하는 '산골'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강원도 횡성' 이라는 말을 하면,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한우 얘기부터 꺼냅니다. 자연스러운 수 순처럼 횡성 하면 한우, 한우 하면 횡성 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1년 반 을 사는 동안, 횡성의 볼거리에 대해 들은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기껏해야 전 에 갔다온 민속 놀이 체험 정도만 인식에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횡성 문화 답사' 라는 것은, 기대감을 주지는 않지만 나름의 의 미가 있다고 수긍할 수 있는 행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교에서 다 같이 가기 때문에 참여한다는 느낌이 강한 활동이기는 했으나, 동시에 우리가 횡성에 살고 있다, 우리는 횡성주민이다 라는 사실을 잘 각인 시켜주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본 래 살고 있는 곳인 일산에 대해 이 자랑 저 자랑 늘어놓으며 소개를 할 수 있듯이, 횡성에 대해서도 자랑스럽게 소개를 할 수 있는 때가 오면 좋겠습니다. 가장 처음으로 간 곳은 '횡성신대리삼층석탑' 입니다. 솔직히, 처음 탑을 본 순간 느낀 것은 우리 문화재에 대한 감탄보다는 '뭐 이런 곳에 탑이 있나' 라는 생각이 었습니다. 분명 누군가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 분명한 밭 한가운데에 떡 하니 서 있는 탑 하나는 여지껏 문화재라고 소중하게 대우받으며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사진을 찍히는, 그런 다른 탑들과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도유형문화재까지는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곳 이라면 굳이 수고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 게 들었습니다. 그 탑을 봐줄 사람은 아마 그 주변 밭에서 일하시는 분들, 그리고 그 근처에 살고 있던 개 몇마리. 그런 탑의 느낌을 애써 '친숙하다' '소박하다' 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화려한 관광지로써 귀히 대우받는 석가탑이나 다보탑과 같 은 탑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합니다. 예전에는 분명 절과 함께 찾아오 는 사람들을 맞이해주었을 탑. 그 탑 역시 세월의 흐름과 사람들의 무관심에 묻혀 잊혀지는 느낌이었습니다. 196 Ⅴ.문화탐방기행

197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니 '봉복사' 라는 절이 있었습니다. 이름조차 생소한 절이 지만, 봉황의 배에 해당하는 곳이라고 하니 예전에는 나름 의미 깊은 절이었겠구 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자그마한 절에서 '문화재'의 향기는 더이 상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절을 옮기는 과정에서 조금 더 그럴 듯하게 보수를 해보 려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시간의 향기를 담고 있던 삼층석탑과는 다르게 이 절은 최근에 지어진 절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습니다. 절을 둘러보 는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남은 시간을 멍하니 계단에 앉아 든 생각은 '이 자 그마한 절에게 남은 것은 이름 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봉복사, 지금은 '봉황의 배' 라던 본래 위치에서도 옮겨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희미해진 이 절에게 남은 것은, 어쩌면 과거에 대한 향수 밖에 없 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어서 간 곳은 '중금리삼층석탑'. 두 개의 탑이 나란히 서있는 곳이었습니다. 횡 성댐 건설로 인해 이 곳으로 옮겨졌다는 탑을 보며, 댐을 지어서 사람들의 삶이야 더욱 풍요로워졌을지 모르지만, 사람도, 탑도 제 고향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 었습니다. 사람이야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 하며 살다가 가겠지만, 돌로 만들어진 두 탑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 그 자리에 머무를텐데 코 앞의 가득찬 물을 바라보며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제 자리를 그리워하는 것 같아, 탑이 '망향의 동산'으로 이전 된 것이 아니라 탑이 그 자리에 세워졌기 때문에 이 곳이 '망향의 동산'이라는 이 름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실 없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간은 나날히 발 전하고 있지만, 발전이라는 녀석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야 했던 사람 들, 그리고 이런 옛 흔적들은 어떠한 심정일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 알 수는 없지만, 작게나마 헤어려봅니다. 다음에 간 곳은 정말 의외의 장소였습니다. 물론 약간은 점심 식사를 위해 간 측 면도 있겠지만, '한국 수자원 공사' 라니. 방문 자체는 흥미로웠지만, 그래도 문화 답사에서 이런 곳을 방문하게 될 줄은 몰랐던터라 가서 둘러보면서도 한동안은 ' 여기가 횡성댐인가. 댐에 이런게 있나' 싶다가, 홍보 영상을 보고 나서야 이곳이 향토문화유적지 답사 전 하 영 197

198 횡 성 문 화 한국 수자원 공사와 관련 되어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새는 댐에도 홍보관을 만들어 주는구나, 했던 스스로에게 실소가 나오면서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었습니다. 물론 볼 거리가 아주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댐에 대해, 또 물에 대해 나름대로 새로운 사실을 얻는 것 같아 유익하다는 생각 을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방문한 곳은 '횡성풍수원천주교회' 입니다. 전국에서 4번째로 세워 졌다는 이 성당은, 횡성 문화재에 대해 까막눈이나 다름 없던 저조차도 많이 들어 봤을 정도 입니다. 물론, 그것도 그나마 횡성에 살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이기는 하 지만, 늘 '예쁘다' 라고 들었던 성당의 모습은 여태까지 봤던 것 중 가장 문화재 답 다고 할 만한 것이라 왜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 했는지 알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었습니다. 산골마을에 갑자기 등장한 고풍스러운 건물이 이질적이면서도, 어떻 게 보면 참 평화롭게 느껴져 더욱 성당 다운 느낌을 더해준 것 같습니다. 성당 내 부, 성당의 유물, 고행의 길 등을 따라 걸어보면서, 비록 천주교인은 아니지만 이 곳에 숨어 예배드렸을 사람들의 신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태종대' 입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가장 '이게 뭐 야'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곳이기도 합니다. 옛 사람들에게는 왕이 머문 곳이니 중요했겠지만, 이 비석 하나 보자고 여기까지 왔다니, 하는 생각이 들어 허탈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이 곳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니, 반짝이는 계곡물을 바라 보며 태종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에 대해 약간 궁금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아버 지를 도와 개국을 하기 위해, 그 다음에는 그럼에도 인정 받지 못한 자신의 공을 위해, 그리고 끝끝내는 왕위를 위해 형제와의 싸움을 하면서 손에 피를 묻혀야 했 었을 태종. 그런 자신을 보다못해 사라져버린 스승님을 찾기 위해 왔다가, 스승님 이 자신을 만나기를 원치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 계곡물을 바라봐야 했을 태종의 마음은 씁쓸함으로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왕권을 강화한 위대한 왕이지만, 한평 생 피를 묻히며 살았을 그의 손이 저승에서라도 깨끗한 물에 씻겨 내려갔기를 기 도합니다. 198 Ⅴ.문화탐방기행

199 Ⅵ.문예마당 한시 공명선거 ㅣ최서현 한시 고향산천 ㅣ김인규 시조 고향이 그리워, 새벽길 ㅣ허충구 수 필 나는 횡성스타일 ㅣ김 미애 시 그림전 ㅣ진광수 시 내고향, 아버지 ㅣ이병오 동시 우리가족나무 ㅣ김가영 산문 나의꿈은수의사 ㅣ남궁서연

200 횡 성 문 화 200 Ⅵ.문예마당 최서현 공 명 선 거 를 푸 른 하 늘 아 래 맹 세 하 니 국 운 흥 망 이 앞 에 있 더 라 지 혜 를 다 하 여 함 께 선 진 에 날 로 기 약 하 고 어 진 이 를 선 택 하 여 태 평 시 대 를 누 리 리 라 금 전 이 세 도 를 잃 으 니 경 륜 이 정 밀 하 고 술 대 접 이 공 없 으 니 정 책 이 온 전 하 네 여 야 가 힘 을 합 쳐 국 사 를 의 논 하 니 국 방 경 비 견 고 함 보 다 낳 으 리 라

201 春 抱 金 仁 圭 半 士 半 農 友 自 然 반사반농우자연 榮 輕 辱 淺 太 平 春 영경욕천태평춘 靑 松 下 雪 鑑 雲 跡 청송하설감운적 桃 杏 開 花 嘗 菜 香 도행개화상채향 膏 雨 淸 凉 耽 道 德 고우청량탐도덕 薰 風 溫 暖 趣 耕 耘 훈풍온난취경운 感 懷 漫 興 詠 詩 想 감회만흥영시상 活 氣 沈 潛 傾 酒 杯 활기침잠경주배 반푼 선비 반푼 농부 자연을 벗삼으니 영화 없고 욕됨 없어라 태평세월이구려 푸른 소나무에 눈 쌓이면 구름 흔적 감상하고 복사꽃 살구꽃 필 쯤이면 산나물 향기 맛 본다네 단비가 시원스레 오면 도덕경 을 탐독하고 훈풍이따뜻해지면씨앗뿌리고김매기를취미로삼지! 감회 흥겨우면 시상을 읊조리고 활기 가라앉으면 술잔을 기울여보네 한시 고향산천 김인규 201

202 횡 성 문 화 渡 峽 灰 鳩 求 配 偶 도협회구구배우 後 園 布 穀 答 雛 豊 후원포곡답추풍 山 村 月 出 愛 無 睡 산촌월출애무수 幽 谷 鳥 啼 情 不 孤 유곡조제정불고 勞 困 思 夢 眠 草 幕 노곤사몽면초막 汗 流 沾 背 浴 溪 邊 한류첨배욕계변 世 人 莫 道 罔 時 運 세인막도망시운 成 敗 盛 衰 懸 處 身 성패성쇠현처신 건너 골짜기 잿비둘기 짝을 구애하면(구국 구국) 뒷동산 뻐꾹새는 새새끼 풍년이라 화답하누나 (뻐꾹뻐꾹) 산촌에 달 밝으면 아까워라 잠못 이루고 그윽한계곡에새들이지저귀니정겨워라외롭질않네 노곤해 꿈나라 그리우면 초막에서 낮잠도 청해보고 땀 흘러 등 젖으면 시냇가에서 목욕한다네 세상 사람들이여 시운이 없다고 말하지 말게나! 성공과 실패와 번성과 쇠퇴가 처신에 달렸다오 韻 考 無 關 偶 吟 운고무관우음 202 Ⅵ.문예마당

203 고향이 그리워 저 멀리 고향하늘 바라보면 어린시절 정들었던 옛고향 세월속에 산천은 변함이 없구나 허충구 흐르는 강물처럼 티없는 창공처럼 언제나 평화로운 고향에서 아름다운 풍경속에 행복하게 살았으면 세월따라 바람따라 사는인생 昔 日 少 今 日 老 돌이킬수 없는 인생 어느덧 꿈같이 지나갔노라 오늘이 가면 내일의 행복을 꿈꾸며 세월따라 오늘도 살아간다 반가운 친구여 석양풍에 발길이 바쁘구나 앞강에는 유유히 흐르는 금계천 맑은물 강가에서 밤새워 고기잡든 그때가 그리워 주야에 쉬지않고 세월따라 곱게 흐르네 시 조 고향이 그리워, 새벽길 허 충구 203

204 횡 성 문 화 새벽길 나는 만물이 고히 잠든 새벽길을 걸었다 산천도 깊은잠에 조용히 꿈속에 잠겼네 세상도 잠에 취해 아무말이 없구나 허충구 멀리서 외롭게 비치는 가로등 발길을 밝혀주네 새벽길 홀로 걸어가니 반겨주는 이 없구나 길가에 외로운 벚나무 깊은잠에 대답이 없네 동쪽하늘 먼동이 트니 길을 사쁜사쁜 걸었다 푸른 저하늘에 외롭게 날아가는 저백로야 무엇이 그리워 급히 바쁘게 날아가느냐 기다리는 사람없는 길을 조용히 걸어가라 숲속에 산새들 노래소리 마음이 설레인다 하늘에는 종달새가 활개치며 날으네 길가에 무궁화꽃 오고가는 눈길을 잡고 오늘도 꽃을보니 나의 마음 향기 맡으며 벌나비도 향기 맛고 다정하게 속삭인다 204 Ⅵ.문예마당

205 나는 횡성스타일 서울에서 동창들이 놀러왔다. 북천리 金 美 愛 작년 가을 친정에 갔을 때 잠시 만난 후 의 시간들은 1년 전이 아니라 어제 만나고 또 만난 것처럼 그렇게 편안한 것은 그녀들이 오래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두빛 교복을 입고 학교와 화실, 그리고 방과 후에 장충동 공원에서 롤러스케이 트를 타고, 신당동 떡볶이 집을 누비던 그 철없이 어여쁘고 앳된 그 모습, 그 시절 은, 다 어디로 갔는지 새삼 중년의 아줌마들의 얼굴에 그려진 잔주름에도 염색한 머리카락 사이로 자유롭게 하늘거리는 은발이 곱기 만한 중년의 넉살과 재치로 우 리는 수다의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오래전 내가 횡성으로 이사를 온다 할 때도 그녀들은 그 시골로이사가서 어찌 살 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인생살이가 그리 녹녹하지만은 않을 때 우리는 횡성에서 터 를 잡아야 했고 횡성에서의 적응이 너무 힘들어서 몇 번이고 보따리를 싸고 싶었지 만 그 또한 나의 생각은 그제 두통의 무게처럼 무거울 뿐 쉽게 옮길 수가 없었다. 바람이 깎아놓은 조각구름처럼, 그렇게 한해두해 살아온 것이 어느새 십 수 년이라니... 세상의 이슈들과 맞서는 중년의 아줌마들에게 자녀 문제를 비롯해서. 정치. 경제. 사회문화 의 일면을, 이야기 하면서도 제일가는 관심사는 건강 그리고 환경문제였다 작년 과 다르게 몸이 아프다든지, 다른 질병이 찾아와서 나이 먹는다는 것이 서글 프다는 등등 나에게도 한마디씩 하며 미애는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 사니 아픈 곳 은 없을 거라고 단정을 지으면서 나직이 흐르는 강물위에 손을 밀어 넣는다. 횡성 가만히 살펴보면 횡성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 집에서 7분거리 보건소 뒷산은 사계절 화가의 작품인 듯 너무도 편안하고 아름다 움으로 모든 사람을 환영하는 곳이며,15분 거리 섬강이 있고 그 강을 지키는 산이 수 필 나는 횡성스타일 김미애 205

206 횡 성 문 화 있고 전설을 노래하는 신비스런 바위들이 있어 좋은 곳, 녹즙을 짜내어 단풍드는 강 건너 나무들의 소곤거림에 그녀들은 횡성의 풍경에 퐁당 빠졌다. 그녀들은 섬강을 보며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 살고 있는 나를 부러워하였고, 너 희들도 횡성에 이사 와서 살고 싶지 않으냐 는 나의 질문에 그녀들 역시 터를 쉽게 박차고 나올 용기가 없는지 그래도 서울이 좋다고 웃는다, 이해하지! 나또한 그러 했으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그 어떠한 규칙 때문에 불편한 게 아닌가?! 생각을 하겠지만 규칙은 사 람을 행복하게 하는 하나의 분포라고 생각을 한다. 분명한 것은 자연이란 개발과 개척을 필요도 요구도 않으며 보존을 하는 것에 중 점을 두고 있다는 것. 자연은 그걸 원하는 것이다. 강원도 전체가 개발하고 개척해서 당장은 얻어지는 것이 많겠지만 멀리보고 넓게 본다면 안목을 그리 길지가 않다는 것이다. 일회용처럼 모든 자연이 속도 빠르게 늙고 병들어 죽는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자 연을 지키고 보존하는데 최선을 할 것이며 또 다른 연구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연 은 위협의 속도가 느리게 왔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야 자연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그 린운동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이다. 누구나 세계를 바꿀 수 있는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바로 그 마법의 힘을 보여 줄때가 아닌가? 다시 말하면 지능과 지식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자연의 힘이고 그 자연을 환경 으로 다독여야할 할 문제고, 그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하고 전체적으로 이해할 때 심신이 건강해 지는 것 이라고 생각을 한다. 횡성에 살면서 자연에 감사하고 그로인해 행복을 덤으로 받을 수 있는 곳이 우리 가 사는 횡성이고 환경이야말로 지키는 사람, 누리는 사람, 모두에게 질병과 마음 의 병으로부터 지켜주는 방패막인 것이 아닐까?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이슈인 건강과 환경 사람이 먹고사는 일이 중요하지만 환경적인 요소에서 건강을 해치는 일이 발생되면 모든 것을 놔야 한다는 결과이다. 206 Ⅵ.문예마당

207 작지만 쓰레기 분류,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등을 주부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의 구성원, 나라 전체가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환경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환경 사랑에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환경 사랑의 정의다. 어찌 생각하면 너무도 쉬운 것이기에 다른 한쪽으로 밀어 놓을 법하지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우리의 문제가 상실로 이어지고 우리는 이 아름다운 강산을 눈에서 마음에서 멀어지게 할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가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라고 말한 것처럼 청정녹색도시 횡성에 사는 것을 얼마나 감사한지를 아는 순간 행복도 함께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 한다. 섬강에서 간식을 먹으며 그녀들은 미애는 좋겠다.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서 살고 말이야 그러게! 나는 빙그레 웃었다. 나는 횡성에서 살고 있지만 서울이 고향이라는 자부심이 얼마나 큰지, 그 역시 다 른 지역에 살고 있는 횡성 분들도 횡성 사람인 것을 커다란 자부심을 느끼고 살 수 있도록 현제 우리가 살고 있는 횡성의 터를 잘 보존하고 가꾸는 일에 충실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루소가 말했다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우리는 지금 자연으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선택을 하며 이 터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친구들처럼 오랫동안 우리를 지켜준 자연이 편안함을 느낄 때 그것이 인 간의 행복인 것이다. 그녀들은 나에게 한마디씩 한다. 우리는 강남스타일 미애는 횡성스타일 우리는 나이를 잊은 여고 때 모습으로 돌아가 하하하 호호호 깔깔깔 그 웃음에 강 건너 산 저산도 비틀거렸고 나는 망설임 없이 그래 너희들은 강남스타일이고 나는 횡성 스타일이야 라고 했다. 수 필 나는 횡성스타일 김미애 207

208 횡 성 문 화 그림전( 展 ) 문화원 전시실 가득한 님의 얼굴 한번 더 보았으면 진광수 아름다운 님에 홀린나! 가슴 콩당 콩당 일곱살 아직은 어리건만 님의 미모는 성년이어라 시원한 강물 아름다운 꽃 마셔볼까 꺽어볼까 예쁜님 모두 모두 내집으로 초대 춤이라도 추며 안아주고싶네 208 Ⅵ.문예마당

209 내고향 나만 그러나? 년에 두세번 태( 胎 )버린 땅냄새를 마셔야 산다 이병오 지구( 知 舊 )와 어울려 일가와 더불어 한두 서너잔 적당한 음주 환담이 그 냄새 마시기엔 따-악 제격이라 가을의 가운데 열나흔날 어김없이 그리 해 본다 너무 좋아 이냄새 그속에 빠져 자맥질이란 너무좋아 이냄새 早 晨 에 胎 버린 그곳에서 시 내 고 향, 아버지 이병오 209

210 횡 성 문 화 아버지 아버지 ❶ 새끼까서 내보내고 집수리중이여! 아마 또 알날 준비하는 모양이지? 이병오 처마밑 물받이에 둥지튼 잿 비둘기 집을 가르키며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다. 내년이면 米 壽 이신데 새삼 새생명의 발현을 발견하시곤 신기해 하신다. 아버지 건강을 묻는 이들에게 아직 건강하십니다 라고 답은 하지만 기력은 많이 떨어지셨습니다 라는 말은 언제부터인가 생략하곤 한다. 계절이 바뀔때마다 이승의 끈을 놓으시는 분들이 많아 지지만 이봄들어 부쩍 상가조문이 잦은 느낌이다. 한백년 거기 그렇게 계셔주실것으로 당연하게 생각하던 당신의 그 자리 였는 데... 조심스레 餘 命 을 헤아리는 불효를 저지르며 가슴이 아려 목이 메인다. 아버지 ❷ 읍에 애가오면 혼나 일찍 기침하신 아버지 서둘러 창문을 여시며 하셨단다. 온도 내려가면 기름 많이땐다고 환기는 도대체 비각으로 여기시던 아버지 잦은 흡연과 세월의 냄새로 벽이 절어 들릴때마다 온창을 다열어 놓곤 했었는데... 자식 며느리 손주 모다 당신의 체취를 노인냄새 처럼 킁킁대며 부담스러워 했 210 Ⅵ.문예마당

211 었는데... 오감의 기능이 많이 쇠잔( 衰 殘 )하신 당신의 눈높이로 보지못한 자손을 꾸짖어 라도 주세요. 높게만 생각되던 당신이, 우리아버지가, 어느새 자식의 잔소리에 겁을 내는 노 인이 되어 계신건가? 아버지 ❸ 너 중국 안가면 안되니? 연전에 하신 말씀이다. 出 必 告 反 必 面 은 당연한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출필고 를 생략하고 반필면도 遠 行 은 그냥 얼굴확인 드리는 것으로 한다. 너 산에가지 마라 철따라 두릅이며 버섯이랑 더덕캐는걸 좋아 틈만나면 산에가는 아들이 불안 해 성화를 부리신다. 몇 번이나 말씀안드리고 가기도 했지만 이젠 족해야 연에 한두번으로 줄였다. 자식을 앞세운 당신의 까만 속을 이제야 겨우 알고난후에... 아버지! 내색않고 계신 날들을 제가 몰랐어요. 아버지! 이순( 耳 順 }을 바라보며 이제야 정신깸을 하다니. 철없는 자손아! 자책을 수도없이 한다고 세월을 돌릴 수야 살아계신 오늘을 다시오는 오늘들을 일삼아 기억하자 시 내 고 향, 아버지 이병오 211

212 횡 성 문 화 우리의 소중한 오늘들을 아버지의 소중한 오늘로 드릴께요 아버지! an epilogue 자손들아 이리 한번 해보자 돌아가며 전화드려 청력증강 해드리자 년중명절 돌려놓고 귀향인사 두세번을 자손마다 돌아가면 월에한번 족히 될껄 셈빠르고 총기많은 자손들아 남은여생 셔봐도 횟수그리 많지않네 드릴용돈 걱정인가 지참과일 부담인가 맨몸뚱이 상관말고 노인냄새 타박말고 장찍어 고추에다 겸상이면 제일이다 재미없는 화제라도 면전에 올려드려 자꾸자꾸 떨어지는 기억세포 붙잡아서 할아버지 까만속에 홍조로 물들이자 할아버지 하얀속에 효성색을 칠해보자 2011년 春 中 之 節 好 時 節 에 이병오 212 Ⅵ.문예마당

213 故 이연승 선생님 동시비건립기념 동시부 (최우수) 우리 가족 나무 우리 가족 나무가 저기 모여 있네! 우리 집의 반장인 아빠는 횡성초등학교 5-난초 김가영 웅장하고 멋~진 소나무! 우리 집의 요리왕 엄마는 애기들을 많이 업고 있는 듯한 사과나무! 우리 집의 심술꾸러기 오빠는 뾰족 가시들이 삐죽삐죽 솟아있는 가시나무! 너무 착한 우리 언니는 매일 만날 때마다 좋은 향기가 날것같은 향나무! 마지막으로 나! 우리집의 어리광쟁이 나는 항상 진실 되고 참 되라고 참나무가 좋겠다. 우리 가족은 언제나 웃음이 넘치는 푸르른 스마일 나무 가족! 동 시 우리가족나무 김 가영 213

214 횡 성 문 화 故 이연승 선생님 동시비건립기념 산문부 (최우수) 나의 꿈은 수의사 성북초등학교 6-여울 남궁서연 서연아, 너는 장래희망이 뭐니? 4학년이 끝나갈 무렵 친구가 물어왔다. 그때 나는 장래 희망이 딱 정해져 있지 않았다. 나의 재능도 잘 모르겠고 당시 짧게 정해놓은 패션 디자이너란 꿈도 그다지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금방 잊 혀질 꿈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딱히 없어 라고 막연히 대답하였다. 친구는 실망한 듯이 아..그래? 라고 말한 뒤 다른 이야깃거리로 나와 수다를 떨었다. 친구와 헤어진 뒤 나의 꿈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 해보니 나에겐 명확한 장래희망이 없다. 라는게 꽤나 충격이었기 때문에 친구 가 물어본 것 하나하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요즘은 장래희망으로 고민하지 않 는다. 나의 적성, 흥미에 딱 걸맞는 꿈을 찾았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동물이 참 좋다. 곤충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여러 동물들, 동물이라면 징그럽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싫어해도 모두 사랑스러워 보였다. 동물과 함께 있을 때의 나는 참 신 기하다. 귀찮은 것도 싫어하고 4살이나 차이나는 동생도 잘 돌보지 않지만 동물 이 있으면 꾸준히 먹이도 주고 계속 돌보아 주었다. 그래서 난 친구의 달팽이가 낳은 새끼 달팽이를 받아 열심히 길러 어른 달팽이가 될 때까지 잘 키웠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달팽이가 죽어 있었다. 껍데기는 물기가 없어 생기가 없었 고 껍데기만은 바싹 말라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아..달팽이를 기르려면 언제나 습기 있게 해야 하는데 나는 한달이나 물을 뿌려주지 않았어. 달팽이가 죽었을 때에는 정말 슬펐다. 214 Ⅵ.문예마당

215 그래서 나는 동물이 제 명을 다하지 못 하고 죽는 게 싫어서 수의사 되기로 마 음먹었다. 엄마께서 그래, 너는 동물을 좋아하니까 수의사가 딱 어울려. 라고 하셔서 더 욱 마음을 굳힌 것 같다. 이제 나는 친구가 너 장래희망이 뭐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나는 말 못하는 동물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치료해주는 멋진 수의사가 될 거야. 라고 말할 것이다. 산 문 나의 꿈은 수의사 남궁서연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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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Ⅶ.문화원 소식 2012년 문화원 사업실적 문화원 회원명부

218 횡 성 문 화 2012 문화사업실적 지역사회문화사업 전시회 제5회 횡성평생학습축제 서화작품전 (7.1. ~ 20. / 횡성군청 갤러리) 군민의 정서함양과 개인의 자아실현 문화적 소양과 삶의 질을 향상시켜 평생 학습 공동체를 도모하고자 횡성평생학습 축제 서화휘호대회가 열렸다. 각 작품 마다 수준 높은 실력을 선보였고, 진하게 흘러 나오는 묵향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횡성문화원 문화학교 수강생 작품전시회 ( ~ 21. / 문화관지하전시실) 문화학교 수강생들이 한해를 마무리하 고 배운 과정을 작품으로 보여주는 전시 회를 가졌다. 서예(한글, 한문, 문인화, 전 통규방공예)를 일년동안 배우고 익혀 만 든 작품들이 전시되어 문화원을 찾는 사 람들의 관심과 큰 호응을 받았다. 218

219 음악회 2012희망나눔음악회 & Cinema Concert ( / 횡성문화관) 전문 오케스트라단을 초청하여 문화적으로 소외되기 쉬운 횡성군민과 대입 및 취업 수험생들을 위한 2012희망나눔음악회 & Cinema Concert가 열렸다. 이 번에 진행된 크로스오버 콘서트는 음악과 영상이 결합된 보고 듣는 공연으로 무대 스크린을 통하여 영화의 하이라이트 영상과 함께 영화의 주제곡과 영화에 삽입된 클래식, 뮤지컬, 팝, 재즈, 가요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감상할 수 있 었다. 소프라노 이미성, 정은희, 뮤지컬가수 정연주, 박주희, 사회에 이길아가 출연해 전 세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과 스크린을 통해 보여지는 영상으로 다시 한번 영화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멋진 공연이었다. 문화예술공연 마당놀이 뮤지컬 신판 춘향전 (10.9. / 횡성문화관) Ⅶ 문 화 원 소 식 마당놀이 뮤지컬 신판 춘향전 공연은 전통 고전으로 널리 알려저 있는 춘향 219

220 횡 성 문 화 전을 새롭게 각색하여 마당놀이 형태로 접목시켜, 웃음과 해학의 장으로 만들 어 관객 여러분에게 우리 전통문화의 향수와 연극문화예술의 향유를 전달하고 자 기획된 공연이다. 향토문화교육사업 문화강좌 2012 향토문화 강연 ( / 횡성문화관) 관내 횡성고, 횡성여자고, 안흥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강사 홍인희님 을 초청해 강원도의 인문적 정체성을 찾아서 를 주제로 강연회가 열렸다. 문화유적지순례 문화원은 향토문화교육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유적지를 답사하고 있으며, 금년 에도 4차례에 걸쳐 관내 중 고등학생, 문화원 회원 및 문화학교 수강생들이 문화유적 답사에 참여하였다. 관내 문화유적지 1차 (토) 민족사관고등학교 160명 2차 (목) 횡성중학교 39명 3차 (금) 서원중학교 33명 4차 (화) 우천중학교 95명 220

221 <민족사관고등학교> <횡성중학교> <서원중학교> <우천중학교> 관외 문화유적지 1차 일 시 : 참가대상 : 문화원 회원 및 수강생 120여명 답사지 : 경북 안동시 일원 문화유적지(도산서원권역) (콘텐츠박물관, 제비원, 월영교, 도산서원, 산림과학박물관) 2차 일 시 : 참가대상 : 문화원 회원 및 수강생 120여명 답사지 : 2012 강릉 ICCN 세계무형문화축전 행사장 일원 (강릉임영관, 단오문화관, 구 E명주초교등 도심일원) Ⅶ 문 화 원 소 식 안동1 안동2 221

222 횡 성 문 화 세계무형문화축전1 세계무형문화축전2 향토문화보존전승사업 제17회 강원도 사물놀이 경연대회(7.5.) 한국문화원연합회 강원도지회가 주최하여 영월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이번 대 회는 강원도 시 군별 15개 문화원팀의 경연이 있었고 전년도 대상을 수여한 영월문화원 누리패의 시범공연이 있었다. 대상은 동해문화원에 돌아갔고, 횡성 문화원 어사매풍물패는 장려상을 수상했다. 횡성회다지소리축제(4.14. ~ 15.) 지난 4월 14일부터 15일까지 정금리 민속마을에서 열린 제26회 횡성회다지소 리축제에서 문화원은 식전공연으로 김영아전통예술단을 초청해 횡성회다지 소리춤 공연을 갖는 등 다채로운 행사로 향토문화의 발전과 전통민속문화를 보전. 전승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222

223 향토문화기록촬영 지역에 산재되어 있는 유 무형 문화재 및 문화재자료, 향토문화유적등과 각종 문화생사 자료들을 촬영하여 후손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기록, 보관하고 있다. 애향활동 전개사업 애향지 발간 횡성문화원 애향지 통권 제27호로 발간되는 2012횡성문화 는 향토문화 창달을 위한 향토문화의 숨결, 향토문화 탐구, 횡성사람 횡성이야기, 지역문화 학습정보, 문화탐방기행, 문예마당, 문화원 소식 등을 수록해 전국문화원과 문화원 회원 및 관내기관 및 단체, 공공도서관, 자료실 등에 배포하여 횡성을 알리는 애향지 로서의 역할을 크게 하고 있다. 향토인물 선양(5.23.) 아동문학가로서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 가득했던 故 (고)이연승 선생님의 업적 을 기리고 어린이들에게 시심과 동심을 심어주며 새로운 창작 문화 활동을 창 달시켜나가는데 이바지하고자 금년에도 어린이글짓기대회가 동시비가 위치해 있는 횡성초등학교에서 열렸다. 5월 23일 열린 글짓기 대회는 횡성관내 초등학 Ⅶ 문 화 원 소 식 223

224 횡 성 문 화 교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초등학교, 약240여명이 참가해 동시부문 164편중 50 명, 산문부문 66편중 20명을 입상자로 선정해 시상하였다. 시설관리 유지사업 문화원 소식을 빠르게 전하고 다 양한 문화정보를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문화원 홈페이지를 운영, 유지관리하고 있다. 또한 사 무실 환경개선을 통해 방문객이 불편함이 없도록 서비스를 개선하 고 업무능률 또한 향상시켜나가고 있다. 향토사료조사사업 향토사료 수집 및 자료집 발간 근현대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횡성군내 교육 사중 횡성 근 현대 교육사 에 대한 조사를 통해 횡성군내 존재했던 각급학교의 소재 224

225 지, 교훈, 연혁, 교가, 과거 현재의 모습, 역임한 역대 교장, 교육구성원 들에 의해 조성된 교육풍토를 탐색 조사 정리하여 향토사료 제25집으로 횡성 근 현대 교육사 를 발간하였으며, 전국문화원을 비롯한 유관기관 및 단체, 공공도 서관 자료실 등으로 배포해 향토자료로서의 귀중한 자료가 되도록 하였다. 향토사 연구 제22회 강원도 향토문화 연구 발표회(10.26.) 지역의 향토사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방법의 일환으로 매년 강원도 향토문화 연구논문 발표회 가 개최된다. 금년에는 속초문화원에서 열렸으며 우리문화원 은 민족사관고등학교 이세희, 조민아 학생이 놀이의 범주화 라는 주제로 발표 하였다. 향토문화유적 안삽교 주거터 답사 (6.27.) 향토문화유적지인 안삽교 주거터를 답사. 자료를 수집 및 연구하여 향토문화유산 에 대한인식을 고취시키고 보존 및 계발을 전개시켜 나가고자 안삽교주거지와 묘소 를 조사, 답사 하였다. 향토사연구 전북 부안군 일원 향토문화유적지 및 문화기반시설 비교답사 (12.4. ~5. / 1박 2일) 향토사료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지역문화 발전과 향토문화 진흥을 위하여 전북 Ⅶ 문 화 원 소 식 225

226 횡 성 문 화 부안군 일원 향토문화유적지 및 문화기반시 설을 답사 우수한 문화유산을 폭넓게 접하고 익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우리의 전통 문화와 문화유산을 보존계승 발전시켜 나가 는데 이바지 하고자 비교답사 하였다. 문화학교 운영사업 매년 지역주민들을 위해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문화 참여기회를 확대하고 문 화적 감성 계발 및 지식기반 창출로 건전한 여가문화 활동과 밝고 명랑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기여하였으며, 또한 각 대회에 출연하여 많은 상을 수상 하는 등 어느 해보다도 많은 성과를 이루었음. <2012년도 운영현황> 226

227 제13기 문화학교 운영성과 각종 지역문화행사 참가 사물놀이, 국악, 장수춤 시연 및 공연(19회) 제5회 평생학습축제 문화행사 수강생 참여(5/5~5/6) 체험 : 사물놀이 시연공연 : 국악(민요, 판소리), 장수춤 공연 제5회 횡성평생학습축제 휘호대회(5/5) (전시 : 7/1~7/20) (서예반/대상 1명, 최우수 1명, 우수 2명, 특선4명, 입선 3명) 문화유적지 답사 행사 문화학교 전 수강생 참여 2회(5/10, 10/24) 제18회 강원도 사물놀이 경연대회(어사매풍물패)장려상(7/5) 제11회 수원화성 주부국악제 전국대회(어사매풍물패)동상(11/10) 제15회 남도민요전국경창대회 동상(11/3) 제4회 강원어르신한마당축제 실버에어로빅팀 포함횡성군 종합5위 (10/4~10/5) 제10회 연합장기 국민생활체육강원도생활체조 경연대회 (실버에어로빅부문)1위,(실버댄스부문)2위 (10/27) 제22회 강원서예대전(특선4명,입선9명) 제3회 강원서예문인화대전(특선2명,입선9명) 제2회 세종대왕 전국한글 휘호대회(입선2명) 제15회 김삿갓문화제 전국휘호대회(특선1명,입선3명) 제2회 제천의병전국서예대전(특선1명) 제6회 서희선생전국서예대전(특선1명) 제7회 운곡서예문인화대전(특선3명,입선1명) 제10회 님의침묵서예대전(입선1명) 제15회 대한민국 화홍시서화대전 (특별상1명,입선1명) 제7회 한반도미술대전(특선1명) 제2회 의암유인석선생 전국휘호대회(차하1명,특선3명,입선8) 제1회 명인미술대전(특선2명) Ⅶ 문 화 원 소 식 227

228 횡 성 문 화 전통문화체험학습 (7.23. ~ 8.3. / 문화사랑방) 한 여름방학 전통문화체험학습이 열렸다. 한지공예, 가야금 배우기, 무형문화재 횡 성회다지소리 체험관 현장학습, 국악 배우기(판소리, 민요), 하회탈 만들기 체험, 탈춤 배우기, 천연염색 체험, 사물놀이 배우기, 전통떡 만들기 등의 수업이 있었으며 49명 이 2주 동안 참가하여 우리의 전통문화를 접하고 익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음. 기타지원 문화사업 제16회 청소년 건전가요제 (5.19. / 횡성문화관) 청소년들간의 우정과 화합을 도모하고 끼를 마음껏 뽐내고 즐길 수 있는 청소년들 만의 문화의 장을 마련한 청소년 건전가요제 가 관내 중,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지 난 5월 19일 열렸다. 총13개팀이 참가하여 입상자들에게 장학금과 부상을 수여하였 228

229 으며, 청소년들의 정서함양과 자기욕구를 건전하게 발산할 수 있는 행사였다. 정월대보름 달맞이 행사 (2.6. / 교항리 전천 둔치) 우리민족의 세시풍속인 정월대보름을 맞아 횡성군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 고 전통민속놀이 재현과 체험을 통하여 고유의 민속문화에 대한 이해와 전통문 화를 보존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데 이바지하고자 2월 6일 교항리 전천 둔치에 서 열렸다. 평생학습축제 휘호대회 (5.5. / 횡성실내체육관) 평생학습 참여에 따른 자아실현과 성취감을 고취시키고 서예예술의 저변확대와 신 진예술인을 발굴 육성함은 물론 문화적 소양과 삶의 질을 향상시켜나가고자 5월 5일 횡성실내체육관에서 휘호대회를 실시하였다. 학생부, 일반부로 나누워 진행되었으 Ⅶ 문 화 원 소 식 229

230 횡 성 문 화 며, 일반부57명(한글15명,한문37명,문인화5명),학생부13명(초등부7명,중 고등부6 명),초대작가11명(한글3명,한문8명)이 참여하였다. 국악대잔치 ( / 횡성문화관) 문화적으로 소외되기 쉬운 우리지역에 우리의 전통문화를 접하고 알리는 기회를 마 련하고자 2012 횡성군민을 위한 국악대잔치 가 문화원 주관아래 11월 29일 열렸다. 특히 중앙대 한국음악 석사와 중앙대 예술대학원 음악대학 석사를 졸업 현재 원광디 지털대학 실용음악 교수이며 영화 <서편제>에 출현한 오정해씨의 퓨전국악 을 포 함한 2시간동안 진행된 공연은 북춤을 시작으로, 경기민요, 부채춤, 판소리(흥부가), 가야금병창, 엿타령, 창작무용, 남도민요 등 여러 장르의 국악공연이 진행됐다. 어르신문화프로그램 어르신 문화나눔봉사단 어르신들의 삶에 적극적인 의욕과 사회적 자긍심을 증진시키고 새로운 여가 문화체 험 및 건강증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개발한 장수춤을 보급하고 수료자로 구성된 어 230

231 른신 문화나눔봉사단 을 조직하여 교육기관 및 각종 복지시설에서 봉사공연활동 및 주역축제 등에서 시연공연활동을 하고있다. 4월부터 12월까지 총28명의 단원들이 관 내 행사 및 지역축제에 참가하여 축하공연을 비롯한 각 단체 위문공연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금년에는 한국문화원연합회 창립50주년 기념행사 공연, 구곡순담 함께 하는 장수춤 체조 공연등 문화원 교육프로그램을 홍보하는데 큰 기여를 했음. 어르신문화프로그램 어르신 문화학교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소외되기 쉬운 어르신들의 은퇴 후 생활을 문화예술 건강 컨텐츠인 전통예술문화교육을 통하여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생활여건 제공하고 양성 과정을 통해 향후 어르신 풍물패 봉사공연단을 조직하여 교육기관 및 경로시설 등의 공연을 통해 세대 간 문화적 격차를 해소하고 지역문화축제 등에서 시연공연활동을 해나갈 예정이다. 올해 처음으로 5월부터 12월까지 총24명의 풍물단원들이 관내 행 사 및 지역축제에 참가하여 공연을 펼쳤음. Ⅶ 문 화 원 소 식 231

232 횡성문화 통권 제27호 편 집 후 기 태기산 품속에 안겨 평화롭고 정겹게 살아온 선인들의 발자욱을 뒤돌아보 며, 횡성의 얼을 지키고 삶의 질을 높이려고 안간힘을 쓰시는 군민 여러분의 성원에 횡성문화 통권 제27호 를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알차고 좋은 문화지를 만들기 위해 여러 차례 만나 의견을 나누어 주신 편집위원님들과 주옥같은 작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과 본 문화지 출간 을 위해 시작부터 끝까지 많은 관심과 노력을 해주신 관계직원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횡성문화 통권 제27호 편집위원회 위원장 진광수 239

233 편집위원장 : 진광수 편집위원 : 김인규, 박순업, 박현숙, 이병오, 임태규, 장태종, 한상균 2012 횡성문화 (통권 제27호) 발행일 _ 발행처 _ 횡성문화원 (033) 발행인 _ 김광수 기 획 _ 홍성진 디자인 제작 _ 서원기획 (033) 본 책자는 비매품 입니다. 본 책자의 일부 내용은 횡성문화원의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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