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교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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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세기를 읽기 전에 진화론의 대전제는 과거와 현재는 동일하다(= 현재는 과거의 열쇠)는 것이다. 동일 과정설이라고도 불리는데 지구 과학의 절대적인 전제이며 진화론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다. 현재 모든 지표상의 영 역에 작용하는 힘이 과거에도 똑같은 방법과 강도로서 작용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를 면밀하게 관찰함으로 과거에 있었던 일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지사학의 기본이 되는 지층 누증 의 법칙도 이 전제 하에 만들어 졌다. 만약 지구가 어떤 격변을 겪었다면 진화론은 물론이고 지구 과학은 완전히 다시 써야 한다. 석유와 석탄: 세계의 원유추정량은 1500억 톤(04년)으로 사람의 시체가 묻혀서 된 것이라고 한다면 (실제로 수율은 10내지 20%도 어렵다지만) 수율을 100%로 치고도 2조 5000억 명에 해당하는 분량이 다. 60억 인류를 400번 갖다 묻어야 되는 양이다. 이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유기체가 존재했 다는 말인가? 그러니 이렇게 막대한 기름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잘 모른다. 과학자들도 동물의 유기체라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가능한지 상상할 수 없으니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 게 막대한 동물이 언제 어디서 묻혔을까? 그래서 겨우 하는 말이 동물의 유기체로 추정한다 는 것이다. 모른다는 말이다. 거꾸로 생각해보자. 과거 어느 때 지금보다 몇 십 배나 크고 많은 사람과 짐승이 있었다면 언제 일까? 지금보다 10배 이상이나 오래 살고, 그만큼 환경이, 삶의 질도 좋았던 때가 있었을까? 노아 홍수 이전의 지구 환경에 그러했을 가능성이 크다. 엄청나게 좋은 환경에서 인간뿐만 아니라 온갖 동식물이 번성하였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노아 시대의 홍수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는 말이다. 석탄 추정량은 5조 300억 톤으로 원유의 13배이다. 한꺼번에 갑작스럽게 매몰되지 않고는 그렇게 될 수 없다. 석탄의 생성 과정을 설명하는 습지이론은 오랜 세월동안 늪지대에서 나무가 쌓이고 쌓여서 탄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탄화되기보다는 산화된다(썩는다는 말이다). 탄화되었 다는 것은 숯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같다. 공기가 차단된 상태에서 열이 가해져야 되는 일인데 자 연 상태에서는 이런 막대한 양의 숯이 만들어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더구나 석탄은 나무의 줄기가 아니라 껍질이란다. 엄청난 양의 나무가 뽑혀서 물위에 매트처럼 떠 있게 되면 껍질은 줄기와 분 리되고 물을 먹어 가라앉게 된다. 물에 떠있는 줄기는 썩어버리고 가라앉은 껍질은 퇴적되고 매몰 되어 탄화되는 과정이 일어날 수 있단다. 갑작스런 빙하기: 1년에 온도가 1도씩 내리면 갑작스러운가? 엄청나게 빠른 것이다. 그러나 일, 이 십분 사이에 급속냉동이 되지 않으면 맘모스 뱃속에 소화되지 않은 풀이 그대로 얼어붙을 수 없 다. 돌연변이: 진화의 원인을 설명하는 두 가지 이론이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설득력 을 잃게 되자 돌연변이설이 각광을 받게 되었는데 유전이 된다는 점 때문이다. 1) 돌연 변이는 아주 드물게 나타난다. 2) 돌연 변이라 해도 같은 종 내에서만 돌연변이가 이루어질 뿐, 다른 종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초파리를 재료로 해서 600여 가지의 돌연변이를 만들어 냈지만 모두가 초파리였지 한 마리의 잠자 리나 나비도 생기지는 않았다. 간혹 잡종 돌연 변이가 생겨서 다른 종이 만들어진 것 같았으나 번 식이 되지 않았다. 3) 돌연변이는 해로운 방향으로 나타난다. 2차 대전 때 일본에 떨어진 원자탄 때문에 사람들 중에도 돌연변이가 많이 생겼는데 그 사람들을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4) 심지어 돌연변이 교정 장치가 있어서 돌연변이가 생겼더라도 정상으로 되돌려 놓으려고 생물체 내에서 노력하고 있다. 화석: 화석은 퇴적물이 차곡차곡 쌓일 때 생겨난다고 한다. 모든 화석은 퇴적암에서 발견되기 때 문이다. 그러나 말 한마리가 죽어서 두께가 30cm 정도 되는 화석이 되려면 퇴적물이 덮어줄 때까 지 썩지 않고 5,000년 이상 기다려 주어야 하고 그나마 깊이 묻혀서 제대로 화석이 되려면 몇 만 년 걸려야 될 것이다. 수많은 화석이 한꺼번에 같은 장소에서 발견되기도 하며, 큰 나무가 몇 개 의 지층을 관통한 채로 화석이 된 것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점 등은 급격한 변화(대홍수)에 의 - 1 -

2 해 화석이 형성된 것임을 보여준다. 조개화석이 거의가 입을 다문 채 화석이 되었다는 점과 조개의 무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살아있을 때 갑자기 매몰되었음을 뜻한다. 먹이를 입에 물고 화석이 된 어류도 순간 적인 격변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시멘트를 만드는 석회암이 바로 이 무척추동물의 화석에서 나온 것은 생각해보면 이들의 양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중간형태: 진화는 오랜 세월 동안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므로 가령, 지느러미가 변해서 지느 러미도 아니고 다리도 아닌 중간 형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반 쯤 다리가 된 지느러미를 달고 있는 어류를 찾을 수가 있을까? 확률적으로 보아도 지느러미 달린 어류와 다리가 달린 파충류보 다는 중간 형태가 더 많아야 하지 않을까? 파충류(도마뱀 종류)가 변하여 조류가 되었다고 하는데 걷는 동물과 나는 동물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도마뱀이 변하여 새가 되었다고 한다면 어떤 도마뱀은 아직 도마뱀이고 어떤 도마뱀은 아주 진화를 잘해서 하늘을 훨훨 날고 있다. 그렇 다면 어중간한 도마뱀은 조금 날다가 떨어지는 정도라도 진화를 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 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원숭이가 변하여 사람이 되었다면 원숭이도 아닌, 사람도 아닌 존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원숭이면 원숭이고 사람이면 사람이지 그 중간 형태는 단 하나도 없다. 흔히 중간 형태라 하면 화석에서 찾고 있는 데 진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꼭 화석에서만 찾을 필요가 없다. 우리 주변에 중간 형태는 많이 있어야 한다. 괜히 시조새가 파충류와 새의 중 간 형태니 아니니 하고 싸울 필요조차 없다는 말이다. 창세기 요약: 창세기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인간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야곱과 요셉). 결국 하나님을 떠나 점점 멀어져가다가 결국은 죽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출애굽기는 정 반대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죽음과 같은 노예의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성경에서 무엇을 읽어야할 까?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성경을 읽는다 = Θ's 마음을 읽는 것(때로는 거부할 수도 있는 것: 출 32:7-10, 손, 발, 눈을 찍어버 리라(막 9:43, 45, 37)! 재산을 다 나눠주고 따르라? - 2 -

3 창세기 성경공부 :1~31 창세기 1 장 우선 1, 2장을 읽으면서 다음 도표를 완성시키시오. 준비 (배경) 완성 (설치) 첫째날 (1) 둘째날 (2) 다섯째날 (5) 네째날 셋째날 (3) 여섯째날 (6) (4) 일곱째날 (7) (1) 빛(낮과 밤), (2) 하늘=대기, 궁창 아래물=바다, (3) 땅, 풀, 채소, 과목, (4) 해, 달, 별, (5) 어류, 새, (6) 땅의 생물, 사람, (7) 안식하심: 낮과 밤의 세계의 주인공은 해, 달, 별, 대기와 바다 세계의 주인공은 어류와 조류, 땅의 주인공은 생물, 이 모든 자연의 주인공은 사람, 이 모든 것의 주인공은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셈이다! 참고로 바다는 둘째 날에 만들어진 셈이다. 셋째 날에는 바다에서 뭍이 솟아오른 것으로 보면 되겠다. 1. 성경은 대단히 도전적이다. 자세하게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고 믿을래, 말래? 하는 식이다. 어느 문장이 그런 느낌을 주는가? 1장 1절: 이것이 믿어진다면 못 믿을 것이 없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것이나 처녀가 아이를 낳는 것은 별 것 아닌 셈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조차 설명하지도 않고 그냥 선언하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믿고 따라가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 희랍 철학자들은 만물의 근원을 물, 불, 공기, 흙... 등으로 믿었다. 성경에는 이런 생각이 있을 까? 반드시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만물의 근원은 빛: 1절과 2절 두 구절은 서론이거나 선언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면 구체적인 물질의 창조에서 최초의 창조는 빛이라고 볼 수 있다. 반드시 그렇다고 말할 수 없더라도 최소한 만물보다 먼저 빛을 창조하셨다. (탈레스, 물, 아낙시만드로스?) 빛을 가장 먼저 창조하셨다면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다. 아인슈타인의 공식 E = mc2은 모든 물체를 에너지화 할 수 있다는 말이며 그것은 모든 물체는 빛으로 이루어져있다는 말이다. 이 빛은 현재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빛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빛은 태양 빛이다. 그 태양 빛은 넷째 날에야 만 들어진다. 말하자면 태양 빛도 그 빛의 그림자일 뿐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도 원래는 빛 (태양빛이 아닌)이었다. 살아있는 모든 생물체는 태양에너지에 의해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태양이 있기 전에 더 근원적인 빛이 있었다고 한다. 태양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식물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고대인이 쓴 글인지 아니면 사람의 지혜를 뛰어넘는 하 나님의 지혜인지 우리에게는 판별할 능력이 없다. 믿든지 버리든지 둘 중의 하나다. 함부로 버리기 전에 과연 그럴까하고 많이 공부하는 것이 좋다. 땅, 빛, 뭍 외에도 궁창 위의 물, 사람을 만드신 흙... 우리가 쓰고 있는 땅과 같은 개념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가령, 컴퓨터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할아버지에게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이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조그만 심부름꾼이 하나 있어서 여기서 일을 시키면 시키는 대로, 엄청나게 빠르 게 불평 한마디 없이 합니다. 달리 좋은 방법이 있겠어요? 창세기의 앞부분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 는 놀라운 사실을 우리의 언어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 잘 듣는 심부름꾼 을 찾아보려고 컴퓨터를 뜯어보는 할아버지 같은 짓을 우리가 많이 한답니다. 3. 시간도 하나님의 창조 속에 들어 있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은 시간 바깥에 계시는 분이시다. 그 것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창조물은? 아인슈타인의 시간에 대한 설명을 참고해 보자. 빛: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르면 빛보다 빠른 속도를 낸다면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있다고 한다. 그 말은 빛보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면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빛 을 창조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은 시간 밖에 계시는 분이시란 말이 된다.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는 말은 전지전능하다 혹은 무소부재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우리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든 일들은 시간과 관련이 있다. 가령,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 헤아리고 계신다는 말씀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것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 때문이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서울과 포항을 왔다갔다 하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면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 되며,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은 모든 곳에 동시 에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4. 비유적 하루설이란 진화론에 바탕을 둔 지질학적 연대기와 성경의 기사를 조화시키려는 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이론 같은데, 요는 성경의 하루를 지질학적 OO기로 본다는 말이다. 이에 따르면 창 조 기사에 나타나는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불특정한 시간의 길이(예를 들면 선캄브리아기라는 식)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 증거로 현재의 하루는 24시간인데 24시간을 의미하는 하루는 ( )째 날 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4 창세기 성경공부 :1~31 넷: 믿을 필요는 없지만 이런 이론도 있음을 참고로 알아두자. 5. 창조론자들의 가정에 의하면 처음의 지구는 온실의 비닐처럼 물로 둘러 싸여 있었다. 물이 온 실처럼 지구를 둘러싸고 있었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하는 말씀은 무엇인가? (구름이란 표현도 노아 홍수 이후에 나온다) 궁창 위의 물: 하늘과 물은 아무 관련이 없을까? 히브리어에서 물은 마임, 하늘은 샤마임(저 편의 물) 이라고 한다.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릴 때는 궁창 위의 물은 구름이라고 배웠는데 구름은 결코 궁창 위의 물이 아니다. 높은 하늘에서 보면 지표면에 깔려 있는 것이지 궁창 위의 물이 아니다. 노아 홍수 때에 사라진 수층이 대기권 어디엔가 있었다는 가정은 성경의 여러 가지 사실과 부합된다. 고대인들이 그린 벽화에 등장하는 태양 중에는 타원형이 있다. 물을 통해서 보았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6. 우리 몸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우리가 먹는 음식에서 나온다. 이러한 음식에서 나오는 열은 태 양에서 나오는 열을 식물이 받아서 저장한 것이다. 태양에너지가 없으면 모든 생명체는 움직일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생물의 근원이 되는 에너지도 근본이 태양이 아니라 하나님인 것을 보 여주는 대목이 있다. ( )보다 ( )를 먼저 창조 하셨다. ( 태양 )보다 ( 나무나 채소 ): 태양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우리 상식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성경은 태양이 없는 세상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계 21:25, 22:5). 하나님이 빛이시다. 결국은 태양도 하나님의 빛을 상징하는 것일 뿐이다. 7. 에덴동산의 사자와 호랑이는 ( )을 먹고 살았다. 푸른 풀: 사자의 소화기관이나 이빨은 육식에 알맞게 되어 있는데 그 무슨 어리석은 소리? 사 11:7 에도 같은 표현이 있다. 아담의 범죄와 노아 홍수와 함께 닥친 변화가 얼마나 큰 변화였는가에 관 심을 두면 이 정도의 변화는 별 것 아닌 변화일 수도 있다. 8. 어떤 부자가 다음과 같이 유언을 했다. 모든 재산을 자기 종에게 준다. 다만 어린 아들에게는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 한 가지만 준다. 어린 아들이 종에게 살해당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 랬는데 아버지를 닮아서 똑똑한 이 아들은 무엇을 택했을까?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것은 하나 님께서 모든 생물에게 복을 주셨는데 그 중에서도 사람이 받은 복이 가장 큰 이유가 이 이야기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모든 재산을 소유한 종을 가진다: 복 받은 피조물을 다스린다. 9. 우리 꼬마가 고집이 좀 세다.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닮았다고 해도 자기는 엄마를 닮았다고 우 긴다. 이 꼬마의 이론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시는 증거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것(=하나님의 자녀로 창조하셨다는 뜻): 형상이란 말의 어원을 보면 히브리말 은 그늘 을 뜻하는 말에서 나왔는데 헬라어로는 아이콘 으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현재 인간의 모습 은 결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다. 너무나 깨어지고 비틀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한다(고후 4:4, 골 1:15, 히 1:3).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알거지가 옛날에 우리도 떵떵거리며 살았다고 자랑하는 꼴이다. 이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 으신 우리 (롬 14:15, 고전 8:11)이기 때문에 존귀한 것이다. 10. 주인공은 늦게 등장하는 법이다. 맛있는 음식은 맨 나중에 나온다. 모든 사람이 준비를 끝내고 난 후에 대통령이 손을 흔들며 등장하는 법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이 가장 중요한 존재로 만 들어졌다. 왜? 제일 나중에 만들어졌다. 11. 성경의 가르침 외에 사람이 존귀한 이유를 말해보고 성경의 가르침과 비교해 보시오. 만물의 영장(동물들이 들으면 자기네들끼리 하는 이야기라고 하지 않을까?), 사고하는 능력이 있으니까(사고능력이 없거나 잃어버린 사람은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공부 못하는 사람은 인간도 아니란 말인가?), 도구를 사용하니까(도구 쓰는 동물이 사람뿐인가?) 동물은 완전한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사람은 미숙한 상태로 태어난다. (사람에 의해서만 사람으로 완전하여지도록 만들어졌다. 오히려 사람의 값을 떨어트리는 것 아닌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관심을 갖고 만드셨다. 어른이건 아이들이건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자신을 소중한 존재로 가르치는 일에 등한하다. 도대 체 무엇을 가지고 사람이 귀한 존재라고 할 것인가? 거기다가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판이니, 갈수록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풍조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능력이 있건 없건 잘 났건 못났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점에서 사람은 존귀하다. 신약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인간을 하 나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에 존귀하다. 이런 자존감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가끔 말썽피우는 학생들 - 4 -

5 창세기 성경공부 :1~31 과 상담하면서 옛날에는 고생하는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참고 학교에 열심히 다녀라하면 통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어렵다. 엄마도 우리를 버렸는데요 라는 데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성경 을 가르쳐야 한다. 인간의 소중함을 달리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다음과 같은 결과가 생 긴 것이다. 1) 다스리라(26, 28): Θ's 대리인 자격, 동물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Θ께 더 가까운 존재다. 2) 자세한 서술: 각 피조물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언급했지만 사람은 다섯 절에 걸쳐서 언급할 뿐 아 니라 뒷장에서도 계속된다. 3) 음식이 다르다(12번, 씨와 채소): 모든 짐승은 푸른 풀을 먹었다. 더구나 덩지와 영양가를 고려해 보면 사람은 많이 먹는다. 연비(1ℓ 로 갈 수 있는 거리)가 낮을수록 고급 장치가 많이 들어간 고급차 처럼 사람은 기름을 많이 먹는 차와 같다. 복잡한 사양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이 먹 으면서 동물보다 나은 점이 뭔가? 머리를 쓰는 것 뿐! 4) 최후의 등장: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다! 5)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합의하여 행하신 일이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 을 만들...자(26). 합의 하에 사람을 만드셨다. 그만큼 중대한 일이란 뜻이다. 6) 의복: 하나님은 빛 가운데 거하신다(시 104:2, 딤전 6:16). 아담과 하와도 빛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벗었으나 부끄럽지도 않았고, 짐승들이 복종했을 것이다.(3장 8번, 시 104:2, 딤전 6:16) 7) 추가: 미성숙 탄생, 화장지, 언어, 요리, 발정기, 웃음... 미성숙 탄생: 동물에 비해서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난다. 대부분의 야생동물을 태어나는 즉시 스스 로 먹이를 찾아다닐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인간은 독립해서 스스로 살아가는데 너무나 긴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의 손에 의해서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화장지를 쓰는 동물이 인간 외에 없다. 다른 동물은 구조적으로 그게 불가능하다. 그래도 좀 우아하 게 살라고... 언어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동물들의 의사소통 역시 생육을 위한 본능적인 도구일 뿐이지만 사 람의 언어는 단순한 정보전달의 도구가 아니다. 교제를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이 더 크다. 요리하는 인간: 대부분은 짐승들은 먹이를 씹지 않고 삼켜버린다. 그게 무슨 맛이 있을까? 맛으로 먹는 게 아니란 얘기다. 인간은 요리해서 맛을 음미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발정기가 없는 인간: 대부분의 동물은 발정기가 되면 목숨을 건다. 그러나 일시적이다. 사람에게는 특별한 발정기(?)가 없다! 부부에게 좋은 선물을 주신 셈이다. 다른 동물에게는 웃을 수 있는 표정이 없다. 혹 있어도 아주 조금! 그에 비하면 인간의 웃음은 너 무나 다양, 변화무쌍하다. 12. 진화론에서는 한 종에서 다른 종이 나왔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을 명확하고도 단호하게 부정하 는 표현을 찾는다면? 종류대로: 종에서 종으로의 진화는 불가능하다. 단지 한 종 내에서 더 뛰어난 개체는 있으나 이것은 소진화라고 말한다. 결코 종에서 종으로의 진화는 지상에서 단 한 건도 목격되지 않는다. 13. 하나님을 닮은 것과 다스리라는 명령을 받은 외에 사람이 하나님에게 복을 받은 존재라는 증 거를 찾으시오. 음식이 다르다: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 우리는 밥을 먹는다. 아버지는 식사 를 하고 아버님은 진지를 드신다. 임금님은 수라를... 말은 다르지만 내용은 거의 같은 셈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아예 질이 다른 음식이 주어졌다. 또, 짐승들에게 비하면 사람은 굉장히 많은 양을 먹는 셈이다. 소죽에 사람이 먹는 보리를 조금만 섞어주면 부쩍부쩍 자란단다. 사람이 다른 동물들 에게 비하여 훨씬 더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두뇌활동 혹은 정신적인 활동과 관련이 있 을 것이다. 머리를 쓰지 않으면 비정상적으로 살이 찌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도 이런 현상이 아닐 까? 14. 우리 주변의 인간세상이나 자연 세계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좋다 라는 감탄사가 나올까 아니면 개판이구만 이라는 탄식이 나올까? 하나님께서는 보시기에 좋았더라 고 하셨다는데 우리의 반응이 이와 다르다면 왜 그럴까? 현재의 세상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그 세상이 결코 아니다. 타락이후 그만큼 변했다는 말 이다.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음에도 1,000년 가까이 살았으나 노아 홍수이후 100세 정도로 줄었다. 이 왕 다시 태어날 모습이라면 그렇게 오랫동안 사는 것이 하나님의 원하는 바가 아니란 증거다. 잘 살면 100년이나 사는 우리의 인생은 10살밖에 살지 못하는 불쌍한 아이와 같은 모습이다. 15. 동물은 몇 가지로 분류되나? 어류, 조류, 육축(가축), 기는 것, 짐승, 사람: 몇 종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짐승과 구별지 었느냐는 것이 중요하다. 가축으로 쓸 수 있는 짐승도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사람 들이 일찍부터 길을 들인 것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육축이 따로 만들어 졌다는 말이다. 누구나 별다른 노력 없이도 함께 지낼 수 있는 동물도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이다

6 창세기 성경공부 :1~ 사람이 살고 있는 지구를 단면으로 잘라서 본다면 우리는 굉장히 위험한 곳에 살고 있다. 육지 보다는 바다가 훨씬 더 넓고, 육지의 높이보다 바다의 깊이가 훨씬 더 깊다. 우리가 사는 포항은 아주 깊은 바닷가인 셈인데 위험한 물가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해역 근처의 섬나라 필리핀 사람들은 아마 자신들의 위치를 그림으로 그려보면 불안해서 잠이 잘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수면이 조금만 더 높아진다면 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아도 우리는 별 걱 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왜? 하나님께서 물을 한 곳으로 모아 두셨기 때문에 결코 육지를 침범하지 않는다(9): 포항 해수욕장의 모래는 곱기로 소문이 났었다. 바람에 날려가고 파도에 쓸려가는 듯 싶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던 모 래가 제철이 들어선 이후 다 떠내려가고 이제는 그 옛날의 곱던 모래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포철에 서는 결코 포철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함). 사람이 손대지 않는 한 자연은 하나님께서 정해두신 경계 를 침범하지 않는다. 동해안은 점점 가라앉기 때문에 바닷가에 집을 사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 는데 그런 염려는 접어두는 것이 옳다. 17. 주야, 징조, 사계절, 일자, 년한은 태양이 있고 달이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우리말 성경은 다소 애매하게 번역이 되었지만 원어에 충실하자면 14절은 주야, 징조, 사계절, 일자, 년한을 이루기 위하여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으라 라고 해야 한다. 우리에게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끝도 없다는 우주의 많은 별을 창조하셨 다고 말한다면 지나치게 인간중심일까?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을 위하여 창조되었음을 성경에서 확 인할 수 있다(신 4:19). 피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최대 관심은 사람이었다. 그에 비하면 끝없이 넓 은 우주도 하나님에게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 친구가 암으로 투병 중일 때 하반신이 마비 되어 대, 소변도 못 가린 채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을 때 그 친구의 아내가 한 말은 이런 모습으로 라도 살아만 주면 감사하겠다 는 것이었다. 그의 재산이나 그의 능력, 그의 그 무엇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 친구를 사랑한 것이었다. 진정한 사랑은 오직 그 한 사람 자체에만 온 관심이 다 쏠리는 것이다. 18. 장차 회복될 새 하늘에는 밤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계 21:25, 22:5). 다시 말하면 본래 하나님의 나라에는 밤이 없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어두움(밤)을 만드셨을까? 육체를 입은 우리에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천지 창조의 핵심이 사람에게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에게는 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3교대 근무나 24시간 환자를 돌보아야 하는 경우에 밤에도 근 무를 하는 것이 어쩔 수 없지만 밤과 낮을 바꾸어 사는 것은 자신에게 결코 이로울 수 없다. 타락 과 구원이라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회복된 모습은 처음 창조 때보다 더 나은 모습임을 보여주고 있다. 19.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후에 좋았더라 고 말씀하시지 않은 경우가 몇 번이며 어떤 공통점을 지 니고 있는가? 2번, 나누임: 1)빛과 어두움을 나누신 경우(4절 18절)와 2)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 셨을 때 좋았더라 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나누어지는 것을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기 때문 아닐 까? 그런 하나님에게서 사람이 떨어져 나온 것이 하나님에게는 얼마만한 고통이겠으며 부부가 하나 되는 것이나 교회가 하나 되기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소원하고 계시는 지 짐작할 수 있다. 물과 뭍 이 나누어진 것은 나누어진 것으로 표현하지 않고 물이 한 곳으로 모인 것이라고 하시며 보기에 좋았더라고 하셨다. 본래 나뉘어져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흩어져 있던 물 이 한 곳으로 모인 것이다. (4절의 빛과 어두움은 18절의 빛과 어두움과 어떻게 다른가?) 전자에 대해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 았더라가 없지만 후자에는 있다. 후자는 나누임이라기보다 협력관계인가? 그러면 전자는 완전한 분 리인가? 물과 뭍이 그러하다. 나누어졌음에도 좋았더라가 있다. 20. 하나씩 창조하실 때마다 좋았더라 고 하신 하나님께서 사람까지 완성하신 후에 심히 좋았더 라 고 하셨다. 비유컨데 토기장이가 토기를 구워내고 좋다 고 탄성을 연발하다가 어느 하나를 보 고 심히 좋다 고 했다면 하나님의 감탄과 같을까 다를까? 토기장이의 감탄에는 우연 이나 요행 의 의미가 들어있을 수 있다. 똑 같은 것을 여러 개 만들었는 데 대체로 잘 나왔는데 어느 하나가 특별히 마음에 더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경우에는 이 런 요행수가 없다. 처음부터 다르게 작정해서 만드셨다는 뜻이다. 21.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사역은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보다는 인간을 구속하였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창조사역은 1:1절 한 마디로 끝내고 1:2절부터 구속의 이야기를 시작하셨다고 보 아도 무방하다. 6일간 모든 자연만물을 창조하셨지만 창조행위보다는 그것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구속의 역사, 곧 인간을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예표로 보여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다음 빈 곳에 알맞은 말로 채워보자

7 창세기 성경공부 :1~31 하나님의 나라 사람의 왕국(준비단계) 준비단계 (자연세계) 준비단계 지배단계 빛(낮) 궁창윗물 어두움(밤) 큰 광명 작은 광명 아래물 새 물고기 지배단계 지배단계 뭍 바다 사람 안식(하나님, 사람, 자연) 짐승 안식일은 안식년을 겨냥하고 있다. 안식년은 희년을, 희년은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겨냥하 고 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겨냥하고 창조 사역을 6일간이라는 구조로 만드셨다. 굳이 6일간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분이 아니잖은가? 창조 때부터 인류의 타락을 아셨고, 회복을 염두에 두셨다는 말이 다. 사랑하는 사람이 편지에 오늘은 시내에 나가서 CD를 사고, 카드를 고르고, 책을 샀다 고 적었다 면 이것을 애인의 쇼핑 내역 이라고 말해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사랑고백 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창세기를 하나님께서 단순하게 세상을 이렇게 창조했다 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를 구속하기 위해서 이렇게 일을 시작하셨다 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옳다는 말이다 장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는 하나님(29번)이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시작하셨음을 잘 나타내는 셈이다. 그 외에 다음과 같은 표현도 많이 반복된다. 그 중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을 고른다면 무엇인가? 종류대로(5번), 좋았더라(7번),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6번), 그대로(6번). 종류대로(5번):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만한 표현인데 반복하는 것은 특별한 뜻이 있다는 말이다. 아 마도 훗날 진화론이 나올 것에 대한 대비 아닐까? 그 표현이 하나님의 전지(全知)하심을 나타낸다면 좋았더라(7번)와 그대로(6번)란 표현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낸다

8 창세기 성경공부 :1~25 창세기 2 장 1. 성경의 장, 절을 가르고 모음 표시를 한 사람들은 맛소라 학파라고 불리는 유대인 학자들이다. 주후 5세기 말경부터 시작해서 본문을 정확하게 전승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인쇄술이 발달될 때까지 했다. 그런데 1장과 2장은 아무래도 잘못 가른 느낌이 든다. 어디를 갈라야 옳을까? 이유 는? (자유롭게 이런 생각을 가질 필요는 있으나 이것을 이렇게 나눈 사람들의 노력마저 부정하자 는 뜻은 아니다.) 2:3과 2:4절 사이: 아무래도 2:1~2:3은 1장의 내용과 더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천지창조의 마지막 날 을 설명하는 것이니까. 반면에 2:4 이하는 인간창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 하나님은 피곤하실 이유가 없다. 왜? 말로만 창조하셨으니까(1점): 말도 많이 하시지 않았다. 피곤을 느끼는 육적인 존재가 아니다(2점). 연약한 육체를 지닌 우리 인생을 위해서 이런 주기를 만 드셨다. 주일의 개념이 없었던 옛날 사람들은 며칠 일하고 며칠 쉬었을까? 3.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피곤해서? 만드신 것, 특히 사람을 즐기며 감상하고 기뻐하는 것: 하나님은 피곤해서 쉬실 이유가 없으신 분이 다. 안식일이 확장되면 안식년이 되고 안식년이 확장되면 희년(禧年)이 된다. 공통점은 기쁜 날이다. 하나님의 안식이란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희년이 확장되면 새 하늘과 새 땅이 될 것이다. 창조세계 를 바라보시며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하는 것이 진정한 안식이다. 예수님께서 폐지시켜 버린 것은 이런 기쁨 없이 일하지 않는 것 만이 안식일이라고 여겼던 바리새인들의 고정관념이었 을 뿐이다. 일하지 말라는 것은 대회(성회)로 모이기 위함이었다(레위기 23:7, 8, 21, 24-25). 예배를 통 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하는 것이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안식을 아담이 깨어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일을 시작하셨다. 예수님은 아버지 께서 지금까지 일하신다고 하셨다(요 5:17). 그 일은 구원역사를 가리킨다. 자기 백성이 온전히 구원 을 받기까지 하나님의 안식은 보류된 상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요리문답 제 1번에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 이라고 한다. 천국 가면 맨날 예배와 찬송만 드린다면 얼마나 따분할까?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 옆에 있는, 옆에만 있어도 좋은, 그렇게 흥분된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는 곳 이 천국이다. 천국을 편안히 누워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큰 오해다. 천국에 갔더니 자기 문패가 붙은 대궐 같은 집이 있더라고 하는 사람은 성경공부를 좀더 하고 갔 다 올 일이다. 4. 한자의 아주 기본적인 것들은 창세기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한자를 처음 만들었던 사람 들이 창세기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만들 조(造)자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 지 빈 곳을 채워보자. 만들 조(造) = 土(흙) + 口(사람) + 辶(움직임=생령) + (생기) 丿(생기): 사람과 짐승의 근본적인 차이가 이것이다. 이 생기(영혼) 때문에 사람은 육체라기보다는 영 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5. 1장과 비교해보면 어떤 다른 점이 있는가? 창조의 순서, 남자와 여자의 창조, 하나님의 이름: 2장은 창조의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순서대로 기 록한 것이 아니라 중심주제인 사람의 창조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여자 창조에 관한 내용을 다르다기보다는 더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2:4부터 여호와 하나님 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래서 하나님을 엘로힘 이라고 부른 문서(1:1-2:3)와 여호와 라 고 부른 두 가지 문서가 혼합되어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소위 문서설이 한때 신학의 주류를 이루기도 했지만 고고학이 발달하면서 많이 퇴색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창조주요, 심판 자적인 모습일 때는 엘로힘 이라는 이름(공식적인 명칭?)이 사용되고 자기 백성과 언약을 맺고 그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친근한 분으로 나타날 때는 여호와 란 이름(사적인 명칭?)이 사용되었다. 6. 1장의 창조 순서와 약간 달라 보이는 점이 있다. 무엇이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cf)우리나 라의 중심지는 어디일까? 답을 서울이라 하니까 서울은 우리나라의 한쪽에 치우쳐 있다고 반론이 생겼다 무어라고 대답해야할 지를 생각해보자. 서울은 지리적 중심지가 아니라 행정적 중심지이다. 즉 1장은 전체적인 순서에 따라 기록했다면 2 장은 사람의 창조를 중심으로 기술한 것이다: 동일한 사건을 조금씩 다르게 반복해서 기록한 것을 성경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는 기록조차 있다 (가령, 노아 홍수 때 방주에 들어온 짐승의 숫자 같은 경우). 우리의 독해력이 부족하거나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시대적 배경이나 사고유형의 차이에 따른 지식이 부족해서 달라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조점이 다르거나 관점이 다를 때 조금씩 다르게 되풀이하는 것은 히브리 문학의 한 양식이다. 전형적인 예가 여호수아 3, 4장의 요단 강 건너는 사건이 세 번, 출애굽기의 유월절 기사도 세 번이 나 반복되는 것을 들 수 있다. 서로 내용상 차이가 있을 때 이것이 여러 가지 자료들을 편집한 증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지만 누가 여러 가지 자료들을 모아서 하나의 글로 만들면서 앞뒤가 맞 - 8 -

9 창세기 성경공부 :1~25 지 않는 글을 그대로 연결시키겠는가? 적절하게 문맥을 다듬는 것이 정상 아닐까? 아니면 성경을 편집한 사람은 그 정도 눈치도 없는 무식한 사람이란 말인가? 7. 사람의 구성성분은 뼈와 살이라고 하면 되지만 그것은 초등학교 수준의 답일 뿐이다. 중, 고등 학교 수준이면 C, H, O, N과 같은 원소를 주로 하여 각종 무기물질로 구성되어 있다고 답해야 한 다. 그런데 성경이 기록될 때에는 이런 단어나 개념이 없었고 거의 대부분의 원소가 자연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근대에 와서야 발견되고 이름 지어졌다. 그러면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이러한 각 종 원소와 무기물들을 가리켜 무엇이라고 했을까? 흙: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것이 아이들이 흙으로 장난감 만들 듯이 만드신 것이 아니다. 고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그렇게 표현한 것뿐이다. 사람을 만든 재료는 원어상 으로 아다마의 아파르(흙의 먼지) 인데 동물을 만든 재료는 아다마(흙) 이다. 우리말로는 둘 다 흙으 로 번역이 되었으나(개정판에는 땅의 흙 이라고 함) 약간의 차이가 있다. 아파르 는 더욱 미세한 흙 알갱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원소를 따지자면 흙이라고 할 수밖에 없음에도 3,000 여년 전에 기록된 고대문서가 그 차이를 두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동물의 세포나 질이 사람과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과학자의 연구 결과가 놀라울 뿐이다. 현재까지 주기율표에 공인된 원소 기호는 111개이지만 자연계에 존재하는 천연 원소는 H(수소)에서 U(우라늄)까지 92개다. 나머지는 인공원소로 반감기가 수백분의 1초밖에 되지 않아 자연계에는 존재 하지 않는 셈이다. 그 중에서 흙의 원소는 86종이고 나머지 6종은 기체 상태로만 존재한다(주기율표 18족의 헬륨, 네온, 아르곤, 크립톤, 크세논, 라돈). 사람을 흙으로 만들었다면 사람의 원소는 흙의 원 소 86종보다 적어야 한다. 인체를 구성하는 필수 원소는 25종이며 미량원소가 대략 22종으로 총 47 종이다(국민일보 ). 8.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는 과정을 보면 사람은 어떤 두 가지의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영혼(하나님의 생기)과 육체(흙): 우리에게는 두 요소 중에 어느 것이 더 크게 작용하는가? 우리는 육적 존재인가, 영적 존재인가? 육체적인 요소보다 영적인 요소가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9. 6:3에 보면 홍수의 원인을 사람이 육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원래는 육체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생령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만들어진 살아있는 영) 살아있는 (=육체가 있는) 영적인 존재: 범죄한 이후 우리에게서 영적인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 럼에도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육적인 존재 즉 짐승이 될 수도 있고 영적인 존재 즉 거룩한 삶을 살 수도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10. 생령이란 육적인 존재인가? 영적인 존재인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처럼 육체가 있으되 영처럼 움직이는 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닫혀있는 문을 열지도 않고 들어오신 것은 분명히 영인데 귀신인줄 알고 놀라는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찾으신 것 은 육체가 있음을 보여주시려는 것이다. 각종 초능력이나, 영력이 있는 사람은 잃어버린 우리의 옛 모습을 조금 더 가진 사람 아닐까? 사람도 때로는 특별한 상황에서 평소에 볼 수 없던 정신력을 발 휘하는 것(괴력, 정신일도 하사불성)도 영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11. 아담에게 배꼽이 있었을까? 없었을까? 혹은 닭이 먼저일까? 계란이 먼저일까? 분명히 닭이 먼저 창조되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성숙한 모습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성숙창조 론). 아담도 성숙한 청년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 성숙한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면 배꼽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중요한 것은 배꼽의 유무가 아니라 성숙한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창 조를 인정하지 않는 연대 측정은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막 눈을 뜬 아담의 겉모습은 20살을 넘은 청년이었겠지만 실제 나이는 하루밖에 되진 않는다. 아담 이 눈을 뜨고 바라보는 나무들은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묵은 나무들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하나 님께서 며칠 전에 창조하신 것이다. 진화론자들이 수십억 년 되었다고 주장하는 지구 역사도 하나 님께서 만드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면 그렇게 밖에는 대답할 수밖에 없다. 아담에게는 배꼽이 있 을 이유가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젊은이의 모습으로 창조하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가 진흙으로 인형을 하나 만들었는데 누군가가 그것이 우연히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면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렸다고 주장할 것은 뻔한 일이다. 12. 두 종류의 나무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일까? 생명나무: 선악을 분간하는 능력보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훨씬 더 귀한 일이다: 아담과 하 와 뿐 아니라 모든 인류는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보다는 사람을 살리는 일에 더 관심을 가져야한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생명나무만이 차고 넘친다. 13. 에덴 동산에서 시작된 강의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내보면 일반적인 강의 모습과 다르다. 어떻게 다른지 그려보자. 일반적인 강: 나무 가지와 비슷하다

10 창세기 성경공부 :1~25 에덴의 강: 가운데 근원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간 강: 지금과는 현저하게 다른 모습의 지형을 암시하 는 셈이다.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중심에 둔 천국의 모습에 대한 그림자인 셈이다. 14. 에덴 동산은 어디에 있었을까? 유프라테스 강이나 힛데겔(히브리어, 그리스어로 티그리스)이나 구스(홍해 남부의 양안(兩岸) 지역)란 이름을 보면 대충 짐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엄청나게 변해버린 지금의 세상에서 답을 찾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학자들은 고대에 모든 육지 가 한 덩어리였다고 한다(판게아 대륙). 후에 이리저리 갈라져버렸으니 그 당시 지구 위의 위치를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강이름을 근거로 이라크와 가까운 어떤 곳이 아닐까하고 추정도 하는 모양이다. 15. 에덴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다는데 지킨다는 것은 훔쳐갈 사람이 있기 때문인가? 훔쳐가지 못하게 지킨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께서 만든 이 아름다운 동산을 유지, 보존하라는 뜻이 다. 영어로 Keep는 지킨다기보다는 유지, 보존시키다라는 뜻을 가진다. 우리말로는 동산이라고 번역 되었지만 영어로는 garden으로 번역된 것처럼 원어는 (울타리가 있는) 정원 이라고 한다. 16.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잘못이 하나님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은 대단히 염치가 없는 사람이다. 왜 그런지 16절, 17절 말씀을 근거로 설명해보자. 수 없이 많은 과일 중에서 유독 하나만 먹지 말라고 했는데 하필이면 그것을 먹었다: 집안 가득히 먹을 것을 쌓아두고 단 하나만 해로우니 먹지말라고 했는데 하필이면 그것을 먹었다면 그래도 왜 그것을 거기다 두었느냐고 한다면 염치없는 짓 아닐까? 하나님의 강조점은 16절에 있다. 그 모든 것 을 즐기라는 것인데 하필이면 단 하나의 금지사항에 빠지는가? 그리스도인은 삶은 기본적으로 하나 님께서 베풀어 두신 것을 즐기는 삶이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원하심이기 때문이다. 너무 하지 마라 에 관심을 쏟는 것은 옳지 않다. 17. 돕는 배필이란 조수란 뜻일까? 배필 이란 표현은 한국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들어간 말이다. 영어로 말하면 helper이다. 성경에는 이 단어가 또 누구를 가리키는 말일까? 하나님(신 33:29, 시 121:1-2, 118:6): 단어가 같아도 개념이 전혀 다를 수 있다. 한국말의 약속 과 영어 의 promise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강도의 차이를 감안하면 같은 뜻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아내는 돕는 자이지만 결코 지위가 낮은 것이 아니다. 차라리 하나님처럼 돕는 자 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 가 있다. 18.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셨을까? 교제의 대상이 필요함을 자신에게서 앎: 하나님 자신이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교제를 위함이었다는 사실은 자신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았기 때문(김성일 장로의 글에서). 반드시 그러냐 아니냐를 떠 나서 하나님의 마음 한 구석을 읽을 수 있을 것만 같다. 19. 사람은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어떤 언어라도 배울 수 있는 능 력은 있지만 언어를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아무도 그에게 말을 하지 않으면 어떤 말을 쓸까? 그것이 천국의 언어일까? 정답은 말을 배우지 못한다. 사람의 언어도 외부에서 주어져야 한다. 그 러면 무슨 언어든지 배울 수 있다. 진화론은 언어조차도 진화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생겼다고 한다. 사람의 구강구조가 말을 할 수 있 도록 얼마나 설계가 잘 되어있는지 알고 하는 소릴까? 잘 지어진 음악당은 사람의 구강구조를 본떠 서 만들어진다. 사람의 입안이 소리를 만들고 증폭시키는 묘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입술, 치아, 치경(이빨의 바로 뒷부분으로 딱딱하면서 우둘투둘한 부분), 경구개(치경의 안쪽, 딱딱하면서 매끄러운 부분), 연구개(경구개 다음의 말랑말랑한 부분) 등으로 이루어진 깊은 곡선이 잘 설계된 말 하는 장치이다. 본문에서 언어의 출발점도 하나님인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구절은 몇 절인가? 19절: 하나님께서 마음에 정하신 데서 언어가 시작되었음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염두에 두신 대로 아담이 이름을 붙였다. 언어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었다. 20.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데에 전제조건이 무엇일까? 가령, 컴퓨터가 초창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전 자계산기로 불렸다. 주로 계산하는 데 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 는다. 이제는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사물에 이름을 붙이려면 어떤 일이 선행되어야 하는지 말해보자. 대상의 본질과 특성을 파악하는 일: 컴퓨터를 우리말로 어떻게 불러야 할지 난감하다. 이게 어떤 기 계인지는 아는데 그에 걸맞는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전뇌(電腦)라고 한단다. 성경에서는 사람의 이름을 바꾸는 일이 종종 있다. 이름을 붙이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일생이나 하나 님께 받은 사명을 잘 나타내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나님께서 나는 여호와라 라고 하실 때는 이름 에 걸맞은 행동을 하시겠다는 선언이다. 단순하게 이름만 붙이는 행위가 아니라 모든 사물의 본질 을 꿰뚫어 볼 수 있거나 장래사까지 아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아담이 모든 동물 에 이름을 주었다는 것은 아담의 능력이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차원이 달랐다는 말 이다

11 창세기 성경공부 :1~ 누가 말 을 보고 말 이라고 했을까? 우리 주변 모든 사물에 이름이 있게 하신 것은 누구인가? 아담(1점), 하나님(2점): 1:5, 8, 10에서 하나님께서 이름을 붙이신 것이 5개다(낮, 밤, 하늘, 땅, 바다).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먼저 사물에 이름이 있도록 의도하셨다는 점과 아담의 작품을 결재했다는 점 에서 이름을 붙이는 일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일이다. 설리반이 헬렌켈러에게 글을 가르치기 전에 사물마다 이름이 있다는 것을 먼저 깨우쳐야만 했다. 사물의 이름을 붙이는 일도 하나님의 주도 하 에서 이루어진 것과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점에서 하나님께서 이름을 정하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물이 있어서 말이 있는 걸까, 말이 있어서 사물이 있는 걸까? 쉬운 질문이 아 니다. 하나님 편에서 본다면 실체가 먼저가 아니라 말이 있어서 실체가 생겨난 것이다. 사람 편에서 도 그런 일이 적지 않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그렇다. 말이 있어서 그 말대로 되는 일이 비일비 재하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만 말을 주셨다는 것은 이게 보통의 것이 아니란 점을 알아야한다. 철 학에서는 분명이 실체보다 말이 먼저라고 결론이 난 모양이다. 22. 모든 생물에게 이름을 붙이는 일을 우리에게 맡기신다면 우리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왜 그럴 까? 어휘가 딸린다(동물이나, 식물이나 몇 가지 이름을 댈 수 있는가?). 이름을 붙여놓고도 나중에 헷갈리지 않을까? (무엇을 무엇이라고 이름 지었는지, 이름 붙인 놈과 붙 이지 않은 놈을 혼동하지 않고 구별하는 것을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을까?) 사람은 평생 동안 두뇌의 3 5%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5%를 사용하는 사람은 천재란 말을 듣고 10%정도 쓴다면 아인슈타인 정도 된단다. 아담은 몇% 정도를 사용했으며 IQ는 어느 정도 였을까? 수명이 무한대 1,000년 100년으로 줄어든 것처럼 우리의 두뇌 사용량도 그 정도 비율 로 줄었다고 생각해보면 아담은 두뇌를 100% 사용했다고 보아야한다. 아담의 IQ가 100이라면 우리 는 5 10이라는 말이다. 문명이 발달했다고 인간들아 교만하지 말아라. 새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잘 짜여진 법칙들을 겨우 하나씩 발견해서 우선 놀라고, 그런 다음 눈꼽만큼 변형해서 위대한 발견이라고 소 리치지 않았느냐? 그렇게 규칙적이고 조직화된 세계를 만드신 분 앞에 겸허하게 고개를 숙여야 한 다. 저 넓은 바닷가에서 예쁜 조개껍질 하나를 주워서 기뻐하는 아이 라고 말한 사람은 아인슈타인 에 버금가는 뉴턴이었다. 23.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주시려고 마음을 먹었으면(18) 바로 여자를 만드는 이야기로 넘어가야지 중간에 짐승들의 이름을 붙인 기사(19)가 왜 들어갔을까?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 단순한 작명의 차원이 아니라 그 본질을 꿰뚫어 본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모 든 피조물의 본질을 다 이해하고 파악해도 진정으로 자신의 돕는 배필은 없더라는 뜻이다: 세상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남녀가 있어도 진정한 자신의 배필은 한 사람 밖에 없다. 부인이 많으면 행복 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바를 따라서 살자. 24. 남자의 갈비뼈를 뽑아서 여자를 만들었으니 남자는 갈비뼈가 하나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 던 모양이다. 실제로 갈비뼈가 하나 부족한 것은 아니다. 어느 구절을 무시했기 때문에 그런 잘못 이 생겼을까? 살로 대신 채우시고: 갈비뼈 개수가 몇 개냐는 둥 이런 데 너무 신경 쓰는 것도 잘 하는 일은 아니 다. 그런데도 쓸데없는 관심이 참 많다. 더구나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 아담의 갈비뼈를 빼냈 다 해도 후손들에게는 여전히 그대로 있어야 한다. 사고로 갈비뼈를 잃어버려도 자식에게는 여전히 그대로 있잖아! 왜 갈비뼈로 만들었을까? 남자는 흙으로 만들었고 여자는 갈비뼈로 만들었으니 재료상으로 보면 여 자가 월등히 우수하다? 비싼 물건을 깨어지기 쉽다? 머리나 다리나 살 많은 궁둥이는 놔두고 왜 갈 비뼈로? 머리를 떼어서 만들면 너무 교만하고 다리에서 떼어 만들면 너무 천대받을 것이고 그래서 중간의 갈비뼈로 만들었다? 그딴 데 신경 그만 쓰고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가 하나 되어 서로 돕 고 살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남자가 여자 위에 군림해도 안 되고, 여자가 남자를 짓 밟아도 안 된다. 25. 생물학적으로 보면 남자를 재료로 해서 여자를 만들 수는 있어도 여자를 재료로 해서 남자를 만들 수는 없다고 한다. 그것은 남자의 염색체는 ( ) 두 종류로 되어 있으나 여자의 염색체는 ( ) 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XY, XX : 성경이 과학적이니 아니니 떠들어대니 이런 소리도 해보는 것이다. 26. 하나님께서 아담의 몸(冂)에 손을 넣어(入) 갈빗대(人)를 빼낸 글자는? 肉: 한자를 배울 때는 고기의 결을 본 따서 만들었다고 배웠는데 글쎄? 27. 하나님께서 하와를 데리고 왔을 때 아담이 어떻게 그 여자의 살과 뼈가 자신의 살과 뼈임을 당장에 알아차렸을까? 그만한 지혜는 있었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 우리가 없을 뿐이지(22번 참조).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 말을 다른 표현으로 고치면 오, 마이 엑기스 가 아닐

12 창세기 성경공부 :1~25 까? 우리말에는 없지만 원어에는 now에 해당하는 단어가 있다. 맨날 동물들과만 지내다가 이번에 야,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 을 발견한 셈이다. 28. 영국의 어느 유명한 사전에 나오는 이야기란다. 아담이 처음에 하와를 보고 소리친 말 Wo! man(우와! 사람이다)"에서 woman이란 단어가 생겼단다. 성경적인가? 아니라면 이유가 무엇인가? 아담과 하와가 영어를 사용했다는 증거가 없다: 사실은 남자를 이쉬(ish) 라고 하는 데 여자는 거기 에 여성형 어미 아 발음만 덧붙여서 이샤 (isha) 가 된다.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는 게 바로 이런 까닭이다. 29. 성경이 말하는 결혼의 중요한 원리 두 가지를 본문에서 찾아보자.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과 부모를 떠나는 것: 부모를 떠나는 것이란 의미는 배우자를 제일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라는 말이다. 부부가 함께 부모를 섬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합의하지 않고 서로가 몰 래 각자 자기 부모를 섬기는 것은 부모를 떠나지도 않은 것이며 동시에 둘이 한 몸을 이룬 것도 아니다. 30. 결혼이 아주 중요한 것이라는 근거를 본문에서 찾는다면 무엇인가? 천지창조의 한 부분,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최초의 제도: 결혼은 단순한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천 지를 창조하시던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제도다. 개인이 마음대로 하고 말고 하기에는 하나 님께서 너무 큰 관심을 가지신 일이다. 31. 삼위일체라는 말과 표현방법상으로 가장 비슷한 표현을 찾는다면?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삼위일체를 무리없이 잘 설명하면 이단이란다. 그만큼 사람의 지혜로 설명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성경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은 삼위이면서 동시에 한분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쩌면 영원한 수수께끼일지도 모른다. 다만 둘이서 하나가 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부부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그렇게 되면 하 나님의 존재양식을 얼마정도는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자신의 모습을 말씀대로 사는 사람 만이 실감하도록 교묘하게 장치해둔 것이 결혼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결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 것인지 잘 보여준다 장의 (그)사람 이라는 단어는 원어상으로 (하)아담 이다. 그 사람 을 전부 아담 이라고 바꾸어 서 읽어보자. 반대로 아담 을 그 사람 이라고 읽어보자. 그렇게 읽어도 별 무리가 없는 것이 몇 개나 있는가? 그 사람은 3개(15, 16, 18), 아담은 7개 전부: 의도적인 애매성이 보인다. 아담이 곧 사람이다. 그가 사 람의 대표성을 띠고 있음을 밝히려는 의도로 이렇게 애매하게 기록한 것은 뛰어난 문학가의 소질 을 갖고 계신 분의 작품이다. 개역 성경과 NKJV은 2:19절부터 아담으로 번역하였지만 NIV는 3:17절 을 처음으로 아담이라고 했고, 표준새번역은 3:20에 가서야 아담이라고 번역했다. NASB는 3:21에 가 서야 아담이라고 했는데 좀 심하다

13 창세기 성경공부 :1~24 창세기 3 장 1.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간교(奸巧: 간사하고 교묘히 속임)한 들짐승을 만들었을까? (원어로, 간교 하다는 말은 슬기롭다 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잠 12:16, 13:16) 하나님께서는 그냥 지혜로운 들짐승을 만들었는데 사탄이 점령하니까 지혜 가 간교 로 바뀌었을 뿐 이다. 지혜뿐만 아니라 돈도 그렇다. 성경은 돈을 결코 나쁜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돈을 사랑하 는 것 을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한다. 돈이든, 지혜든 선하게 사용하면 그만큼 더 선한 도구가 된다.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악이 되기도 하고 선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2. 뱀이 여자에게 물어볼 것이 달리 없었을까? 만물을 다스리는 인간으로 창조된 것에 대하여, 동산의 모든 실과를 즐기는 것이 풀만 먹는 우리와 비교하면 얼마나 복을 많이 받았는가? 등등. 그런데 하필이면 먹지 말라고 한 것에 관심을 갖는가? 사탄의 본성은 나쁜 것만 주목하는 것이다: 사탄의 마음을 닮으면 좋은 것 다 버려두고 남의 결점 만 잘 보게 된다.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을 잘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부부끼리 싸우는 경우도 좋은 점 100개를 보지 않고 나쁜 점 1개를 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사탄의 습성이다. 내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글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이 읽은 글의 제목은 나쁜 놈 시리이즈 이다. 왜 사람들은 이런 제목에 관심을 더 가질까? 얼마 전에 막을 내린 용의 눈물 은 태종의 이야기였고 그 후속으로 나온 프로그램은 왕과 비 였다. 그건 누구의 이야기냐고 물었더니 세조 이야기란다. 왜 가장 많은 관심 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세종 의 이야기는 건너뛰는 것일까? 우리는 무언가 비뚤 어진 심성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좋은 것을 더 좋아하는 자세를 기르자. 3. 뱀의 질문에 대한 여자의 대답(2-3)을 2:16-17과 비교해 보고 하와의 죄목을 요즈음의 용어로 무 엇이라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자. 공문서 위조: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만지지도 말라 는 것은 추가한 것이 고, 죽을까 하노라 는 변조이다. 그리고 그 위조된 공문서를 실제로 사용했다면 동행사죄 가 추가되 고 몰래 먹었으니 절도죄, 하나님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은 것은 책임회피죄 혹은 한국식이 라면 괘씸죄에 걸리지 않을까? 4. 뱀의 유혹하는 말은 사실인가? 죽지 아니하리라 죽게됨: 선악과를 따 먹은 지 일년이 지난 후에 이 뱀이 찾아와서 내 말 맞 지? 하면 뭐라고 대답하지? 100년 혹은 600년이 지난 뒤에 찾아와서 또 그렇게 물을는지 모른다. 여 전히 그의 말은 맞다. 아마 나중에 천국까지 따라와서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봐라, 내 말이 맞지! 할 지도 모른다. 이런 것까지 다 감안해서 뱀이 유혹했다면 그의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죽지 않게 된 것은 하나님의 엄청난 희생, 즉 외아들을 대신 죽이고서야 가능해진 일이다. 그럼에도 그 놈은 자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어거지를 부릴 것이다. 눈이 밝아 밝아져서 벗었음을 알게 되었다: 맞긴 맞았지만 결코 행복은 아니었다. 수술로 시력을 되찾은 어느 소경이 추악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서 다시 소경이 되기를 원했다는 심경과 비슷할 것이다.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이 두려워질 바에는 차라리 눈이 밝지 않은 것이 행복이다.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천사보다 나은 존재가 천사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뱀은 그래 도 할 말이 있다. 비록 쫓겨났지만 하나님과 당당하게 맞서보지 않았느냐는 것이다(선악과를 설명 하는 글에서 하나님을 떠날 자유 를 참고 바랍니다. 설교 에도 있고 작은 글 에도 있습니다). 또 선 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같이 되지 않았느냐(22)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래, 만신창이가 되긴 했지만 네 덕분에 목에 힘 한번 줘봤다. 고맙다 이 자식아! 잘 먹고 잘 살아라. 이 문디야. (종합)Ambiguity(애매함, 의미의 이중성)가 있음: 사탄의 말은 일견 사실인 듯하면서 하나님과 사람에 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다. 그런 면에서 사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 속임수 일 뿐이다. 사실이냐 아 니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나쁜 의도를 숨긴 채 하는 바른 말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야 한다. 설령, 나쁜 의도로 한 짓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해도 하나님의 심 판은 피할 수 없다. 5. 여자가 쳐다본 그 나무의 실과는 먹음직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했다고 한다. 정말일까? 금지된 것은 그렇게 보인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하는 데 금지된 것을 당연히 여기고 접근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큰 복인가? 우리에게 금지된 것은? 술, 마약, 다른 여자... 아내 이외의 다른 여자 는 아예 예쁘게 보이질 않는다? 그런 남자가 있다면, 서로에게 엄청난 복이겠지만 그런 꿈은 꾸지 않는 것이 현실적이다. 6. 여자가 잘못된 길로 빠지게 되는 과정을 정리해보자. 뱀의 말에 귀를 기울임 쳐다본 것 먹은 것 아담에게 준 것: 아이들이 악한 일에 눈이 멀 어가는 과정도 이와 흡사할 것이다. 아니, 우리 모두가 이런 과정을 따라서 죄악의 길로 갈 위험이 있다면 어느 단계에서부터 피해야 할지 미리 마음을 정해두자. 요즈음 원조교제가 사회적인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처음에는 元祖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고 援助란다. 나원참, 기가 막혀서. 별 희한한 원조도 다 있다. 그걸 원조라고 생각한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가? 정 원조하고 싶으면 차라 리 어디 장학금으로 기탁이나 하지. 그런 일은 듣지도 말아야 한다고 마음을 정하는 것이 좋겠다

14 창세기 성경공부 :1~24 7. 에덴동산에는 각종 열매를 맺는 나무가 있었다.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엉뚱한 마음을 품은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관심이 있었다. 연예인을 좋아하고 유행에 민감한 아이들은 아마 옷을 만든 무화과나무에 관심이 더 끌릴 것이다. 우리는 어떤 나무에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이 옳을 까? 생명나무: 사람을 지혜롭게 하는 것(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보다 사람을 살리게 하는 일에 더 관심 을 두는 것이 옳은 일이다. 사람의 단점이나 약점보다는 장점을 살필 줄 아는 눈이 필요하다. 8. 선악과를 따먹고 나니 눈이 밝아져서 벗었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러면 그 전에는 자기들이 벗었음도 몰랐단 말인가? 2장 끝에 보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였더라고 한 것으로 보아 자기들이 벗고 있음은 알고 있었다. 다만 부끄럽지 않던 것이 부끄러워졌다는 말이다. 무슨 변화 가 생겼길래? 일종의 무장해제: 모든 짐승들은 일체형 털옷(?)을 입고 있는 셈인데 사람만 벌거벗고 살아야 한다 는 것은 직위에 어울리지 않는다. 바다의 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다스릴만한 권위의 표상이나 능력을 아니 주셨을까? 대령이 별을 달게 되면 50여 가지 가 바뀐다던가? 회사에서도 직급이 올라가면 소위 품위유지비가 주어진다. 하물며 모든 생물을 다 스리라고 하시면서 품위유지비(?)가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빛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시 104:2, 딤전 6:16)의 형상을 닮은 그들도 빛나는 모습이었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모세가 하나 님을 대면하고 내려올 때 얼굴에서 나는 빛 때문에 백성들이 바로 쳐다보지 못하였다(출 34:29-35). 변화산 상의 예수님 모습도 그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바로 그런 빛을 입고 살다가 빼앗겨 버렸을 것이다. 한자의 火는 빛이 나는 사람의 모습 이라고 한다. 9. 황수관 박사의 건강에 대한 강의 중에서 우리 몸이 언제 가장 건강한가? 라고 묻고 대답하기를 우리 몸이 있는 지 없는지 모를 때 라고 했다. 예를 들면 자신의 발바닥이 있음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발바닥에 티눈이 있거나 무좀이 있으며 손가락이 있음을 항상 의식하고 사는 사 람은 손가락에 종기가 있거나 곪아 있다는 말이다. 너무나 건강하면 우리 몸의 부분 부분이 있는 지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몸의 구석구석을 너무나 잘 아는 상태(온 몸이 병든 상태)라 면 타락하기 전의 아담과 하와는 몸이 있는 지조차 잘 모르는 건강한 상태이었다고 비유하면 될 것이다. 어떤 말씀이 이런 설명과 관련이 있는가?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도, 벗은 것도 몰랐다: 모른다고 무식하고 유치한 것이 아 니라 정신적으로도 완벽하게 아름다웠고 순수했다. 10.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면 따먹는 순간에 사약을 먹듯이 꼬꾸라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죽는 대신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눈이 밝아진 것(7)과 하 나님이 두려워진(8) 것이다(10). 이것이 죽음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실제로 죽었음을 의미한다: 성경이 말하는 죽음이란 분리를 뜻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이런 작은 변 화가 생긴 것은 하나님과 분리된 결과이다. 선악과를 먹는 순간에 하나님과 분리되었고 죽었다. 눈 이 밝아져서 부끄러움을 알았다는 것은 부부사이의 분리를 의미하고 하나님이 두려워진 것은 아담 과 하나님의 사이가 분리되었다는 뜻이다. 줄기에서 꺾인 나무는 싱싱해 보여도 죽은 것이다. 시간 이 문제일 뿐이다. 영혼과 육체의 분리는 인간이 하나님과 분리된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성경은 이 죽음에 그렇게 무게를 두지 않는다. 잔다 고 표현하기도 했다. 바울은 이 죽음 앞에서 어 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기도 했다. 바로 죽지 않고 천년을 살았어도 영원한 생명에 비하면 즉시 죽은 것이다. 무한대 분의 천 은 零이다. 11.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숨었단다. 하나님께서 거니시는데 웬 소리가 났을까? 일부러 소리를 내셨을 것이다: 아담과 하와에게 나 여기 있으니 빨리 와서 자수하라 는 신호를 보 내는 셈이다. 그런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도망을 가서 숨었다. 이것들이 정말 죽을라고? 자수하지 않으니 모른 척 하고 어디 있느냐? 고 찾는 것이다. 신호를 줄 때 눈치 채야하는 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것은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만나면 반갑고 생각만 해 도 기쁜 그런 관계를 하나님께서 원하셨지만 범죄한 후 어떤 모습으로 변해 버렸는가? 도망가서 숨고 애타게 찾아다니는 관계: 도망자와 추적자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 찾아서 현상금을 타거나 원수를 갚으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집나간 아내를 찾아다니는 남편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왜 찾아 다니셨을까? 왜 숨었느냐고 물으셨을까? 대답을 하지 않아도 아실텐데...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인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여기서부터 나타난다. 하 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도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알고 찾아 간 사람이 있는가 보라. 한 사람도 없다.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찾아오셨다. 죽을 죄인에게 왕이나 공주가 찾아온다는 것은 살아날 구멍이 있다는 뜻이다. 13.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그래도 친근하게 대하고 계신다는 것을 뱀과 비교해서 설명

15 창세기 성경공부 :1~24 해보자. 친히 찾아 오셔서 계속해서 질문하심: 어디 있느냐? 누가 고하였느냐? 먹었느냐? 먹었느냐? 잘못한 학생에게 선생님이 차근차근 질문을 많이 할 때는 벌을 많이 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질문없이 단칼에 날려버리는 선생님 반에는 지각, 결석이 거의 없다. 반면에 사유를 소상히 캐묻고 정상을 참 작하는 반에는 일년 내내 지각, 결석이 끝이지 않는다. 인격적으로 대우하려면 얼마나 피곤한지 모 른다. 민주주의는 비용이 많이 드는 제도이기도 하다. 그래도 우리는 그것이 좋단다. 상대를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뱀에게는 단 한번의 질문도 없이 형을 선고해 버렸다. 뱀은 하나님의 대화의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14. 아담이 하와를 처음 만나던 날 그는 정말 아름다운 연애시를 지어 노래를 불렀다.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 이것은 오! 그대는 나의 태양 보다 더 감동적이지 않은가? 처음의 이 감격을 잊지 않고 산다면 일평생 얼마나 행복할까?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이 감정을 잊어버렸을 때 하 와를 가리켜 무엇이라고 하는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여자는 여전히 그 여자다. 변한 것은 범죄함으로 말미암 아 생각이 변한 것이다. 죄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면 그로 인해 사람과의 관계마저 깨 뜨려져버린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어 있을 때에는 억울함과 짜증을 쉽게 극복하면서 어느 누구와도 화평을 누릴 수 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가장 가까운 사람과도 화평을 누리 지 못한다. 사소한 일마저 견디지 못하여 인간관계가 엉망이 되어 버린다. 15. 어쨌거나 선악과를 따먹고도 죽지 않았다. 죽기는커녕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이런 저런 질문 을 하셨다. 만약에 아담이나 하와가 이 때 무조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더라면 어떻게 되 었을까? 아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기회를 주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부자지간이나 사람 사이에는 그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피조물과 조 물주라는 다른 점이 있다. 비유컨대 토기장이와 도자기의 관계이다. 구워낸 도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모조리 두들겨 깬다고 토기장이를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잘못 만들어진 토기를 깨 지 않고 고민하는 토기장이가 바로 하나님의 모습이다. 롬 9:21-23에서 토기장이 얘기를 하면서 참 으심, 관용, 부르심 이란 단어를 쓰는 것은 토기를 깨지 않았다는 뜻이다. 결국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고 결론은 내린다(10:21). 16. 성경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뱀에게 흙을 먹고 살라고 했다고 해서 뱀은 결코 흙을 먹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이 틀렸다 이러면서 마치 대단한 발견을 한 듯 떠드는 무리가 있 다. 가소로운 일이다. 만약 여러분이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다양한 수사법을 과학적 지식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뱀이 지면을 기어다니면서 혀를 낼름거리며 먹이를 구하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면 안 되나? 태양이 돈다고 하면 안 되나? 지구가 돌지 어떻게 태양이 도느냐고 따져야 하나? 어머니의 사랑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고 해도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따지고 들 것인가? 아이는 어머니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고 해도 시시비비를 따질 것인가? 이런 식의 다양한 수사법으로 표현된 진실을 과학적 지식으로 풀어보면 모조리 엉터리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이것은 유명한 싯귀이다. 이걸 보고 말이 안 된다. 그 책은 틀렸다 고 말하는 사람 은 아무도 없다. 과학적 지식에 적합한 글만 옳다고 한다면 인류의 문화유산 중에 절대 다수는 무 가치한 셈이다. 뱀이 흙을 먹으리라 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모습을 표현하려는 것이지 뱀의 생태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다. 17. 죄를 짓고 경찰서에 잡혀 있는 학생을 찾으려고 학부형과 함께 가보면 아버지의 반응은 다양 하다. 이게 무슨 집안 망신이냐? 고 펄펄 뛰는 아버지는 그 다음 행동이 그리 훌륭하지 않다. 묵묵 히 아들을 바라보다가 네가 정말 그랬느냐? 고 딱 한 마디만 하는 아버지가 있다. 대꾸를 못하는 아들에게 이 한 마디를 던진 아버지는 아들이 저지른 모든 잘못을 자신이 변상하고 책임을 지려 는 아버지이다. 아담과 하와에게 쓰린 가슴으로 몇 가지 질문을 하신 하나님은 이들이 저지른 모 든 잘못에 대해서 자신이 희생하면서 원상회복을 다짐하신다. 무슨 각오를 하셨는가? 독생자를 보내셔서 회복의 길을 여실 것을 각오하셨다(3:15절). 원시복음이라고 한다. 18. 메시야를 보내실 계획을 말씀하고 계시는 구절은 몇 절인가? 누구에게 그런 약속을 하셨는가? 3:15절: 회복의 길, 사탄의 역사는 바로 이 여자의 후손이 이 땅에 오지 못하게 막는 역사이다. 아브 라함이나 이삭이 잘못했음에도 사라나 리브가를 함부로 데려가지 못하도록 막거나 심지어 잘못이 없는 바로나 아비멜렉을 벌하시는 이유도 이것이며 예수님 탄생시에 헤롯의 유아학살 사건이 벌어 지는 배후에는 사탄의 이런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다. 계시록에도 여자가 낳은 아이를 해하려는 용 의 위협이 잘 나타나 있다. 뱀에게는 심판의 선언이다. 그 속에 이 약속이 담겨져 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복음이지만 뱀에게 는 심판이다. 이렇게 중요한 약속을 아담과 하와에게 직접 말씀하시지 않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기 때문 아닐까? 더구나 하나님께서 일구이언은 곤란하니까(?),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말 씀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말씀이니 마치 딴 얘기하듯이 하지만 이 나쁜 녀석아 눈치껏 알아들으란

16 창세기 성경공부 :1~24 말이다 라는 심정일 것이다. 아담이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지만 뱀에게 야단치면서 은근슬쩍 흘리 고 있다. 하나님의 가슴 아픔을 엿볼 수 있다. 자식이 몹시 잘못하여 실망스럽기도 하고 마음도 아 프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자식임을 아는 아버지는 자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본인에게 직접 하지 않고 먼 산 보면서, 혹은 지나가는 소리로, 혹은 제 삼자에게 하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4장 1절에 보면 아담은 자기에게 하는 소리도 아닌데 가슴 속 깊이 새기고 있다. 부부싸움을 크게 하고 부인이 아침상을 차려놓고 괜히 아이들 보고 큰 소리로 밥 안 먹나? 하는 것과 비교하면 어떨까? 실제로는 신랑이 듣고 밥 먹으로 오라는 말이다. 19. 동물에게는 있다고 해도 사람과 비교하면 없다고 해야 할 정도로 경미한 해산의 고통을 사람 에게 주신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어하시는 것이 있을 것이다. 무엇일까? 참고로 바울도 해산의 고통을 겪었다(갈4:19). 떠나버린 인간을 다시 자녀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고통: 바울은 한 생명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을 해산의 고통이라고 표현했다. 범죄한 인간을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 위하여 독생자 를 보내시고 그가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함을 차마 바로 보지 못한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이 해산 의 고통이 아닐까? 그러므로 여자들은 하나님의 이런 마음을 체험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여 자에게는 해산이 구원의 방편이 된다(딤전 2:15). 20. 남편을 사모하는 것이 어떻게 벌이 될 수 있는가? 남편과 분리됨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이 벌일 수 없지만 애당초 범죄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우리가 이토록 애타게 사모하지 않을 것이다. 견우직녀의 사모함과 비교해보자. 이 구절은 4:7과 문법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죄가 가인을 자기의 먹이로 삼으려고 노리고 있는 것 처럼 여자가 남자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창조 시에 주어진 질서가 아니라 서로 분리되어 지배하 고 다스리려고 하는 투쟁의 모습이 연상된다. 성경적 결혼관에 입각한 남녀관계가 아니면 이런 징 벌 아래서 사는 것이다. 두 구절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3:16, 너의 욕망이 남편을 향하여 있으나 남편은 너를 다스릴지니라. 4:7, 죄의 욕망이 너를 향하여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21. 요즈음 남자나 여자나 운동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목적은 다르다. 여자는 미용, 즉 살을 빼기 위해서 운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남자는 건강하고 오래 살기 위해서 운동을 한다. 그럼에도 운동하지 않는 여자들보다도 수명이 짧다. 40대 돌연사는 거의 대부분 남자들의 몫이다. 그럴 수밖 에 없음을 설명하는 말씀이 무엇일까? (남자는) 이마에 얼굴에 땀을 흘리며 먹고 살아야 한다(19). 22. 모든 생물에게 이름을 붙이고 난 후에도 여자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았는데 왜 여기서 느닷없 이 하와란 이름을 붙였을까? 이전에는 다른 여자가 없으니 여자라고 해도 되겠지만 앞으로는 많은 여자들이 탄생할 것이기에 고유명사가 필요하게 된 것 아닐까? 여자가 머리를 고치면 무언가 일이 있거나 결심을 하는 경우란 다. 남자들도 무언가 일이 있으면 삭발을 하더라. 새삼스럽게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 큰 변화를 암시 하는 셈이다. 23. 범죄한 사람에게 형벌을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엄함 속에서도 엿보이는 자상함은? 1) 정녕 죽으리라는 선언대신 고생하며 살아야 할 것(17) 을 말씀하심: 즉결처분이라면 기회가 없겠 지만 그나마 고생하면서 반성할 시간을 주신 것이다. 2) 여자의 후손을 보낼 약속과 가죽옷을 입힘: 죽을 죄인에게 이렇게 좋은 옷은 왜 해주나? 이제까 지는 옷이란 보호막이 필요 없었으나 이제는 필요하게 되었다. 이 짐승은 자신들의 범죄 때문에 자 신들을 위해서 죽임을 당했다. 대신 죽은 셈이다. 최초의 죽음을 목격한 셈이다. 어렴풋이나마 대속 의 개념이 제시된 셈이다. 메시야를 보내실 의사를 이렇게 은근슬쩍 표현한 것이다. 24.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 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 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3-24). 사도 바울이 십자가만 전하기로 결심을 했을 때 십자가는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것이었다. 사형을 집행하는 가장 잔인한 도구였기 때문에 헬라인들은 이 단어를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아담이 느끼기에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의 능력이면서 동 시에 끔찍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최초의 죽음이라는 끔찍한 기억과 메시야 대속의 의미가 담긴 가죽옷: 아담이 본 최초의 죽음 장면 이었을 것이다. 그 양이 자기로 말미암아 죽게 되었다는 죄책감과 함께 그 끔찍한 장면은 지워지지 않고 뇌리에 박혀 있었을 것이다. 자신을 위하여 또 다른 양 즉 예수의 죽음이 있을 것임을 언제쯤 이해하게 되었을까? 25. 최초의 옷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된 옷이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주신 옷과 비교해 보면 차이점 은?

17 창세기 성경공부 :1~24 임시변통 영구적: 처음에 빛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면 가죽옷도 누더기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범 죄하고 쫓겨나는 이 판국에 자신들이 만든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은 것이다. 범죄하고 쫓겨나는 아담과 하와에게 왜 이렇게 좋은 옷을 해 입혀서 쫓아내는가? 장차 대속의 죽음을 당할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26. 인간의 본질적 요소 즉 생명의 신비에 접근한다는 생명공학은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방법을 추구하고 있지만 어쩌면 인류를 한꺼번에 전멸시킬 지도 모르는 위험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일부 과학자들은 경고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화염검이 지키고 있음: 접근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며 대단히 위험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불을 내 뿜으며 빙빙 돌아가는 칼날을 돌파해야 한다고 상상해 보라.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영원히 사는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27. 선악과와 관련된 한자가 있다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 다음의 글자들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자. 한자 공부 삼아. 禁 = 금하다 始 = 비로소 林 두 나무 女 여자 + + 裸 = 示 하나님이 명하다. 厶 + 남모르게 벗다 衣 + 果 옷 실과 口 먹다 示(보일 시): 원래 의미는 신을 가리키는 것임 厶(마늘 모): 원래 의미는 남모르게 口(입 구): 食口처럼 사람을 의미한다. 이런 글자들이 많다는 것은 한자를 처음 만든 사람들이 바벨탑 사건 이후에 중국으로 와서 그 내 용들을 기억하면서 글자를 만들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이미 이 방면에는 여러 종류의 책이 오래 전부터 나와 있다. 28. 아담의 범죄 이후 세상은 많이 변해 버린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처음에 창조하시고 기뻐하신 그 모습이 아니다. 원래의 그 모습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 려운 일이다. 그러나 형벌을 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역으로 생각하면서 처음의 모습을 조금이라 도 상상해 보자. 뱀: 지혜로움, 여자가 친근히 할 수 있는 외모, 대화 가능, 걸어다님. 여자: 잉태하는 고통, 남편을 사모할 필요도 다스림을 받을 필요도 없었을 것(9, 14) 남자: 수고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흙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지금은 일용잡급직이지만 한 때는 세계 을 경영하는 관리자였다. 땅: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없었다. 벌거벗고 다녀도 몸에 전혀 상처를 주지 않았다 장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찾아오시는 하나님, 말씀하시는 하나님(=말이 많으신 하나님): 하나님은 아담을 찾으러 오실 때 걸 어오셨다. 그것도 큰 소리를 내면서. 나 여기 있다! 하시는 거다. 그리고 계속 해서 묻는 것은 빨리 자수하라는 의도이다. 벌을 주지 않으려고? 아니면 벌을 주더라도 정상을 참작할 만한 건수라도 찾 아보려는 마음? 벌하시는 무서운 하나님만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린 사람이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 장의 내용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이야기: 부모에게 몹시 야단을 맞고 야단맞은 것만 기억하는 아이와 같다. 엄마 미워!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렇다. 인간이 범죄하고 벌받은 이야기: 왜 야단을 맞았는지 기억하는 아이는 그래도 훌륭하다. 대부분 아 이들은 야단맞은 것만 기억하고 왜 맞았는지는 기억하지 않는 법이다. 어쩔 수 없이 심판하시는 하나님: 부모가 매를 들지만 정작 아픈 것은 매 맞는 자식보다 매를 드는 부모란 것을 아이가 상상이나 할까? 제가 자라서 자식을 길러봐야 알 것이다.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서 더 가슴이 아픈 것을 안다면 제대로 성경을 읽는 셈이다

18 창세기 성경공부 :1~26 창세기 4 장 1.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 좋은 낙원에서 쫓겨나올 때 아담의 아픔은 어떠했을까? 그토록 존경 스럽고 생각만 해도 기뻤던 그 하나님이 어느 날 갑자기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변해버렸 으니... 지금까지 지내온 옛 정을 생각해서라도 한번쯤은 눈감아 줄 수도 있었을 텐데 끝내 없었 던 걸로 하자 거나 용서해주마 고 말씀을 아니하셨으니 얼마나 야속한 분인가! 전에는 그냥 온 천 지에 먹을 것이 풍성했는데 이제는 먹고 살려면 이 고생을 해야 하다니... 아이고! 그 놈의 뱀 새 끼... 그런 와중에서도 또렷이 기억나는 한 마디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이것은 분명히 날 들으라고 하신 말씀이 틀림없다. 그래서 그는 가인을 낳고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라고 했다. 가인(얻음)을 낳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으로 알았지만 그런 기대감 이 여지없이 무너지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1) 그 한 마디는 무엇이었을까? 2) 기대감이 여지없이 무너지게 된 것은 언제인가?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할 것 가인이 뱀대신 아벨을 죽였을 때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는 말을 직역하면 여호와를 낳았다 이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탓일까? 아니면 그런 소망을 담은 표현일까? 2. 하나님께서 왜 가인의 제사를 열납하지 않으셨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단순히 제물 자체 때 문이라고 보는 것은 좋은 답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 )과 ( )은 열납하지 않으셨다 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인, 그 제물: 중요한 것은 그가 무슨 제물을 드렸느냐보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느냐는 것이다. 제 물보다는 가인이라는 인간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셨다. 귀여운 아들이 주는 과자부스러기는 침이 묻고 땟물이 묻은 것이라도 그렇게 싫지 않지만 미운 사람이 주는 귀한 선물은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혹자는 아벨의 제사는 피흘림이 있고 가인의 제사는 피흘림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짐승대신 고운가루로 속죄제를 드리는 수도 있으니(레 5:11)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도 없다. 제물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사람에게 관심을 두는 것이 옳다. 3. 하나님께서 가인을 기뻐하지 않으신 이유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제사 바로 뒤에 나오는 하나님 과 가인의 대화에서 하나님께서 제물을 받지 않으신 이유를 역으로 추적해 보자. 분하여 안색이 변하다니(5)?: 학교 선생님 앞에서도 그럴 수 없을 텐데 하나님 앞에서? 그러다가는 죽도록 얻어터지게 마련이었다. 요즈음은 그럴수록 안 맞는단다. 참 좋은 세상이 된 건지... 축구 심판이 명백하게 오심을 해도 대들지 못하던데? 7절의 네가 선을 행하면... 을 역으로 생각하면 악을 행했다는 말이다. 6, 7절의 책망에 대한 대답이 8절일까? 하나님의 책망에는 아무 말도 않고 있다가 동생에게 무서 운 말을 한 셈이다. 무슨 말을 했을까? 이 새끼 두고 보자? 우리말 성경이나 히브리 원문에는 없 으나 70인 역 성경에는 들로 가자 는 말이 삽입되어 있어서 그 영향으로 어떤 성경에는 이 말이 삽입되어 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완전히 반항이다. 11, 12절의 선고에도 형벌의 중함에만 관심이 있지 결코 자신의 잘못에 대한 인식이나 반성은 없 다(13).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부족과 변명, 면피에 급급함, 반성의 빛은 전무함: 하나님께서 이런 저런 질 문을 하고 계실 때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더라면 인류의 역사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끝내 회개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가슴을 치며 후회를 하면서도 회개하지 않았던 가롯 유 다처럼.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 아닌가? 아! 어쩔 수 없는 가인의 후 예들이여! 4. 롬 7:21-24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 가 나를 건져내랴? 사도 바울의 이 탄식처럼 우리 마음 속에는 악이 존재하고 있다. 나는 왜 이렇 게 나쁜 놈일까 하고 자책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속에 악이 완전히 없기를 바라 는 것도 옳지 않다. 어느 말씀을 기억해야 할까? 물론 사도 바울이 이 문제를 해결한 방식과는 다 르지만.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7): 죄의 소원이 있다는 것은 우리 속에 죄의 경

19 창세기 성경공부 :1~26 향이 있음을 말한다. 태어날 때부터 선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겨내야 한다. 그것은 가인에게 주어진 숙명이랄까. 우리에게는 다른 방법이 주어졌다. 우리의 능력으로 죄를 다스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이겨내야 한다. 그것이 바울의 해결방식이다. 5. 가인의 형벌은 두 가지이다. 그 중에 어느 벌을 더 두려워하는가? 그 두려움으로 인하여 무슨 일을 하는가? 땅이 소출을 충분히 내어주지 않음: 노동을 해야 먹고 살게 되었다. 지금도 충분한 곡식이 생산된다 기보다 사람들이 땅을 쥐어짜는 것 아닐까? 무리하게 쥐어짜다 보니 자연을 망가뜨리는 것 아닌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방황하게 됨: 이것을 더 두려워하였다(14). 에덴에서 멀어지는 것이며 하나님의 앞을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성을 건설하였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없 었다. 이제는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한다는 의미에서 성을 쌓았으니 하나님에 대한 반항의 시작이기 도 하다. 6. 가인이 회개할 기회가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제물을 받지 않으셨을 때(5), 그 직후 하나님께서 물으셨을 때(7),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실 때(9), 형벌의 선고 때(11, 12) - 형벌의 중함에만 관심이 있지 결코 자신의 잘못에 대한 인식은 없다. 7. 하나님께서 열납할 수 없는 제사를 드렸고, 열납되지 않음에 분개했으며, 하나님의 책망에 동생 을 죽였으며, 동생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에 반항하는 이런 가인을 대하는 하나님을 어떤 하 나님이라고 하겠는가? (질문)하시는 하나님: 아담이 범죄했을 때도 그랬고, 가인이 범죄했을 때도 그랬다. 범죄한 아담과 가인을 단칼에 끝내지 못하고... 박력 넘치는 하나님: 유일한 때가 노아 홍수 때 아닐까? 이런 하 나님이라면 우리는 죽었다. 옆 반에 박력 넘치는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그 분은 학생이 늦으면 이 유를 묻는 법이 없었다. 그대로 한 방 올리고 끝내버렸다. 그 반에는 지각, 결석... 이런 건 전혀 없 었다. 연말에 그 선생님 왈, 학급 운영 방법을 좀 바꿔야겠어요. 생활기록부에 쓸 말이 없어요 하 는 것이다. 모두가 똑같이 완벽하니까 학생의 본 모습을 알 수가 없더라는 거다. 하나님이 이런 분 이 아니란 점에 감사해야 한다. 가인아! 가인아! 하나님께서 그렇게 자꾸 물으실 때 잘못했다고 한 마디쯤 해보지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이제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 불행하게도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 뿐이다. 가인이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증거가 무엇 인가? 성을 쌓음(17): 힘들여 성을 쌓은 것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불안하다. 어 떤 분이 집을 유난히 튼튼하게 지었다. 외부 사람이 절대로 침입할 수 없도록 단단하게 지었는데 알고 봤더니 자신이 도둑이었단다. 인류의 문명은 이런 동기에서 시작되었다. 위대한 발명은 대체로 전쟁을 치루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비디오 보급이나 인터넷 발달의 일등공신은 음란물이다. 그래 서 안전한 듯 싶은 자신의 성이 어느 날 도리어 자신을 향하여 비수를 들이대는 것이 인류의 문명 이기도 하다. 9. 兄(형) = 口(입) + 儿(사람) : 형은 말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입만 갖고 모든 것을 다 때우는 사람이다. 8절과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흉악할 兇자는 어느 구절과 관련이 있을까? (어떤 아이가 화면 가득히 붉은 손을 그렸다고 한다. 어떤 어른에게 손바닥으로 맞고 나니 사람은 안 보이고 붉 은 손바닥만 보였다는 뜻이다) 15 가인에게 표를 주사: 누가 보아도 하나님께서 가인을 해치지 를 주었다는 말이다. 이미 문자가 사용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졌다는 것은 다른 형제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아뢴다는 말이다. 는 입을 가진 사람이란 뜻으로 글자를 만들었단다. 아우 제(弟) 아우는 형과 달리 활(弓)을 메고 땀나게 돌아다니는 사람이다. 말라는 뜻을 금방 알 수 있는 표시 후일 얘기겠지만 형이 장자권을 가 그래서 중국의 조상들이 형을 말하 자와 비교해보면 의미가 선명하다. 10. 진화론자들의 주장은 인간은 야생에서 수렵, 어로, 채집시대를 거쳐서 농사를 짓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성경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고 하는가? 처음부터 목축, 농업을 했다고 말함: 노아홍수 이후부터는 그럴 것이다. 문제는 성경이 현재와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문명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11. 인류의 4대 문명 발생지를 이야기 할 때 그 시기는 대체로 BC 3,000으로 추정한다. 그 이상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비로소 인류는 동물과 달리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훨씬 더 이전에 찬란한 문명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4장에서 그 문명의 흔적을 있는 데로 찾아보자. 표(문자의 가능성), 城, 악기, 기계: 문명이 발달하기 이전에 현 문명과는 관계없는 고대 문명이 있었 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노아의 방주, 성적인 타락). 만약에 핵전쟁이라도 일어

20 창세기 성경공부 :1~26 나서 모든 사람이 다 죽고 몇몇 사람이 살아남았다면 그들은 후손들에게 이 문명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지만 몇 세대만 지나가면 그것은 전부 전설이 되고 만다. 문명을 그대로 전달할 수 없기 때문 이다. 가령 비행기 조종사가 살아남았다고 해도 자손들에게 그것을 설명해 줄 수 없다. 혼자서 비행 기를 만들어서 나는 시범을 보일 수 없다는 말이다. 당장에 비행기는커녕 원시인처럼 먹고 살기 바 쁠텐데.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설 연대를 대략 BC2500년으로 추산하는데 우리나라 단군의 고조선 건국연대와 비슷하다. 이 때는 대체로 석기시대로 추산하는데 피라미드 내부의 석실은 대단히 단단한 돌을 직 각으로 파내서 만들었다. 단단한 돌의 내부를 직각으로 매끄럽게 파낼 수 있었다는 것은 강력한 동 력을 지닌 더 단단한 연장 없이는 불가능하다. 고대의 문명을 부정하고 나니 이런 것은 모조리 불 가사의(=모르겠다)로 묻어버린다(피라미드의 건설 과정, 수많은 바위를 관통하고 있는 구멍, 천문학 과 관련된 수치들). 현대의 기술로도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는 피라미드 외에도 많이 있다. 공룡 화석과 함께 발견된 탄소대신 염소가 포함된 망치, 에밀레 종을 달아매었던 쇠고리(유홍준의 문화 유산답사기 2권), 한의학의 시작은 중국의 삼황오제의 황제가 스승으로부터 배웠다고 하는데 아직도 그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단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멀어지고 있음을 본다. 문명과 예술의 발달이 결코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우리를 인도하지 않는다.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얼마나 음란이 판 을 치는가 보라.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있지 않으면 인간의 노력은 점점 더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뿐이다. 12. 가인이 유리 방황할 때 가인을 해칠 사람이 있었느냐? 누구와 결혼했느냐? 등의 질문에 답하 여 아마도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아담의 후손이 대단히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 다. 그 근거를 말해 보시오. 지금에 비해서 대단히 좋은 환경과 오랜 수명: 가인이 아벨을 해친 사건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다 음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10대가 함께 살았고, 자연환경도 지금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좋았기 때 문에 많은 자녀를 낳았다고 보아야 한다. 단지 성경이 기록을 너무 간단하게 했을 뿐이다. 13. 빵을 훔쳐먹은 아이를 잡고 보니 집안 형편도 어렵고 끼니를 많이 굶었다. 벌을 주기는커녕 밥 도 먹이고 용돈도 줘서 보냈다. 다음날 또 빵을 훔쳐간 녀석이 있어서 붙잡아서 야단을 쳤더니 어제 걔는 밥도 주도 용돈도 주었다던데 나는 피자를 주세요. 누구와 닮았는가? 라멕: 자녀들이 이룩한 각 분야별 최고 수준의 문화를 한 손아귀에 틀어쥐고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 는 사람이다. 하나님 없이 이룩한 문명의 결과는 이런 것이다. 가인은 아무 이유도 없이 아벨을 죽 였는데도 가인을 죽이는 사람은 벌이 7배라면 나는 나의 창상(작은 상처)으로 인해 소년을 죽였으니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 그러니 나를 죽이는 사람은 더욱 죄가 많다. 그래서 77배나 벌을 받아야 한 다. 이건 기고만장이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식으로 큰소리 치고 사는 사람이 많다. 14. 라멕은 현대적으로 말하면 경제력(육축치는 자의 조상), 문화 예술계(수금과 퉁소 잡는 자의 조 상), 군사력(날카로운 기계 만드는 자)까지 한 손에 거머쥔 실세이었다. 이런 능력을 지녔으니 무슨 일을 했을까? 중혼: 능력이 있으면 불법이거나 말거나 부인을 여럿 두는 일이 흔한 요즈음에는 별로 충격이지 않 겠지만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한 것은 그 당시에는 놀랄만한 충격이었다. 둘이 하나가 되라는 하나님 의 말씀에 정면으로 도전한 셈이다. 돌아가신 어느 회장님은 부인이 몇 명이라고 하더라? 이유없는 살인: 두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니다(병행법). 상처가 났다고 사람을 죽였고 이것을 자랑삼아 떠들고 있으며 가인보다 더 정당하다고 어거지 주장을 하고 있다. 15. 다음에 나열한 사실들은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 아담의 범죄, 가인의 시기와 살인, 라멕의 중혼과 살인, 전 인류의 악함 > 죄악의 역사, 악의 확대: 창세기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인류가 점점 더 악해져 간 역사이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내려갔고 두 사람의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반면에 출애굽기는 노예생활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서 성막을 완성하고 하나님이 임재하심으로 끝을 맺는다. 16. 에덴 동산은 참으로 아름다운 하나의 공동체였으나 범죄이후 분리되기 시작했다. 첫 분리는 하 나님과 인간의 분리였다. 그 결과 계속해서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분리되는 것이 인간의 역사이었 다. 두 종류의 분리가 4장에서 엿보인다. 무엇과 무엇의 분리일까? 사람과 사람(형제간), 인간과 땅 이렇게 분리되어 나가다가 최종적인 분리는 아마 가정일 것이다. 가정마저 무너지는 현실을 보면서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적어도 크리스챤의 가정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크리스챤 부부는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를 이루어야 한다. 17. 가인의 후예(16-24)와 다른 씨 즉 셋의 후예(25-26)에 대한 기사를 비교, 분석해 보라

21 창세기 성경공부 :1~26 가인의 후예: 문화적으로 번영, 기록된 양도 많음, 악도 번성. 셋의 후예: 별로 없음, 특이하다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어떤 점에서 보면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삶이 훨씬 더 현명하고 지혜롭기도 하고 멋있어 보이 기도 한다.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눅16:8). 이 땅 위에서, 일정한 기간 안에 서는 그렇다. 잔치를 위해서 잘 먹이는 돼지처럼. 예수 믿는 우리의 삶보다 안 믿는 친구들이 삶이 부러울 때가 있느냐는 질문에 거의 대부분이 그런 적이 있단다. 무미건조한 듯한 우리의 삶이 더 의미있고 기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있을 때에만이 가능하다. 18. 축구 용어에 공격이 최상의 수비 라는 말이 있다. 수비만 하면 한 골을 먹을 수는 있어도 한 골을 넣을 수는 없고, 또 상대방의 공격수 뿐만 아니라 수비수도 공격에 가담할 수 있으니까 목표 는 수비에 있지만 공격을 하게 되면 그만큼 수비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는 뜻인 것 같다. 이와 거의 비슷한 표현을 찾아보자.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 그나마 죄를 멀리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선은 아니다. 19. 솔로몬은 아가(雅歌)를, 예레미야는 애가(哀歌)를 불렀다. 그렇다면 라멕은? 칼의 노래(검가:劍歌) 20. 본문에 사용된 말 중에서 공개석상에서 잘 사용되지 않거나 설교의 주제로 사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말은? 동침하매(1, 17):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이 단어가 성경에는 대단히 많이 사용되고 있다(51번). 금기 시, 터부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본문에서는 이 말을 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글 이라면 분명히 빠졌을 말이다. 소중하게 여기며, 잘 사용하여서 하고, 감사해야 할 일 중에 하나이 다. 실제적인 교훈을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다(고전 7장). 만일 상전이 달리 장가들지라도 그의 의 복과 음식과 동침하는 것은 끊지 못할 것이요(출 21:10). 폴 토우르니에 의 성서와 의학 (1979, 전망사)에서 조금만 인용해 보자. 최근에 나는 한 부인을 만났는데, 그녀는 자기 자신의 결혼 생활에서 영적 사랑과 성적 사랑이 융 합될 수 있게 되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 끝에 자기와 함께 열성적 크리스천인 남편과 그 일에 대하여 의논을 하였다. 그 결과로 그들은 성교 때마다 행위에 앞서 함께 기도하기로 결정 을 보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의 첫 반응은 가장 바람직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일을 생각 해 본 끝에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그녀에게 던졌다: 당신은 마음 깊이에서 그 기도가 실상 일 종의 귀신 쫓는 일로 생각한 것은 아닙니까? 그리고 마치 성적 사랑은 하등인 것처럼 생각하고 기 도로써 이를 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일 테죠? 잠시 후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네, 그렇습니다. 나는 그녀의 표정에서 영적 사랑과 성적 사랑을 융합시키고 싶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그들의 의식적인 결심의 밑에 깔린 무의식적인 근거였다. 그것은 기 도에 의한 교접이 육체의 교접보다 더 신성하다고 보는 잘못된 가치관의 문제였다. 그 둘은 다 신 의 선물인 것이다. 21. 가인이 하나님 앞을 떠나 세운 것이 성이다. 성은 곧 도시문화의 발달을 의미한다고 보아도 좋 다. 도시가 시골에 비해서 발달한 것은 무엇이며 퇴보한 것은 무엇일까? 발달한 것: 문화, 안전(도둑이 자신의 집을 튼튼하게 짓는 것): 인간이 하나님 대신 자신의 힘을 의 지하고 자기의 안전을 도모하는 장소: 한 편에서는 그런 희망이 이루어지는 듯 하면서 또 한편으로 는 모래성처럼 허약한 피난처이기도 하다. 퇴보한 것: 예절, 인간됨, 하나님과의 관계 문화의 발달이 결코 인간들을 더 행복하게 하지는 못한다. 편하게 해주는 것이 결국은 더 약하게 만들고, 악하게 만들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역할을 하는 수가 많다. 노벨이 다이나마이트를 만든 것도 선한 동기였지만 사람을 살상하는 데 더 많이 사용되는 것을 보고 평생 모은 재산으로 노벨상을 만든 이유도 그렇고, 원자폭탄이 만들어져서 투하되는 것을 보고 이론적 바탕을 제공했던 아인슈타인도 후회했다고 한다. 이제 성경의 역사 속에는 여인의 후손이 이 땅에 오는 것을 막으려는 사탄의 온갖 흉계가 난무하 게 된다. 가인의 살인은 그 시작일 뿐이다. 최후의 발악은 헤롯의 유아학살 사건일 것이다

22 창세기 성경공부 :1~32 창세기 5 장 1. 4장에는 가인의 족보가 나온다. 그렇다면 5장에 나타난 계보는 누구의 계보(족보)여야 하는가? 셋의 계보: 셋의 계보라고 해야 할 텐데 아담 자손의 계보라고 한다. 여기서 계보란 족보, 세계(世界 가 아니라 世系, 마1:1)와 같은 말이다. 가인의 후손은 아담의 후손에서 제외되었음을 의미한다. 아 무리 화려한 문명을 이루었다 해도 하나님의 관심에서 멀어져 버린 인생들의 모습이다. 화려해 보 이는 가인의 족보에 들어갈래? 무미건조한 셋의 족보에 들어갈래? 4장에 나온 사람들은 아담자손에 넣지 않는다는 말이다. 혈통은 분명히 아담의 혈통임에도 가인의 후예는 아담의 계보에 넣지 않는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그가 비록 하나님의 창조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버려질 수가 있다. 2.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으나 사람이 그 형상을 잘 보존하지 못하여 깨어 져 버렸다. 대형 거울의 다 부서진 조각 하나가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지금 우리의 모 습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하기 곤란하다. 너무 깨어지고 부서진 탓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오히려 누구의 형상일까? 아담의 형상(3 1절): 그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에게 어느 정도 남아있을까? 우리가 평생 동안 사용 하는 두뇌의 양이 3% 5%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니까 그 정도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혹은 영원한 존재가 일시적인 삶으로 수명이 줄어들었으니 거의 0이 아닐까? 우리가 우리의 삶을 볼 때는 근사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안타깝고 불쌍한 모습인지 모른다. 성경이 말 하는 유일한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이다(고후 4:4, 골 1:15, 히 1:3). 깨어진 형상이지만 이것 을 복원하려는 하나님의 관심 때문에 인간은 여전히 존귀하다(롬 14: 15, 고전 8:11). 3. 무슨 족보에 낳고, 살고, 죽었더라 는 말만 있는가? 뭔가 바쁘게 가야 하는 모양인데 이 족보의 끝이 어디기에 이럴까? 예수 그리스도: 다들 갈 길이 바쁜 사람들처럼 빨리 빨리 지나가려는 모양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최대한 생략하고 빨리 가려고 서두르는 모양이다. 그런 와중에도 아담, 에녹, 라멕은 설명할 것이 조금은 있었다. 4.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을 바친다는 각오로 산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깊은 수도원에 들어가서 세상과 담을 쌓고 살거나, 생업을 버리고 갖가지 고행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려 했던 것이 다. 기둥 위에서 일생을 지내려고 한 사람도 있었으며 루터도 베드로 성당의 그 높은 계단을 오르 내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바로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충 실하면서 가능한 일이다. 학생이 공부를 집어치우고 기도와 전도에만 열을 올리는 것도, 성경 공 부에만 열심을 품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니다. 에녹이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한 일은 무 엇일까? 자녀를 낳았음: 어떻게 보면 자녀를 낳고 기른다는 것이 성스러운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 다. 아이가 예배시간에 떠들고 똥싸는 것이 얼마나 미안스러운 일인가?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좀 높은 어른들 앞에서 그랬다가는 버릇없는 짓이라고 얼마나 야단을 맞겠는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어떻게 성행위도 가능한가? 그것마저도 부부에게 주 신 하나님의 소중한 선물이며 결코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장애물이 아니다. 5. 성경에는 도저히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많이 있다. 비둘기와 같이 순결하고 뱀과 같이 지혜로워라 는 예수님의 말씀이나, 황금으로 만들어진 집의 바닥이 흙으로 되어있는 것이나, 예수 님은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지녔다는 것 등이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본문에서 이와 비슷한 현 상이 있다면 무엇일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과 자녀를 낳는 행위: 거룩한 행위와 거룩하지 못한 행위를 나누는 버릇에 대 해서 생각을 좀 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거룩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일들이 사실은 하나 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이며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인 경우가 허다하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고 말한다. 군에 갔다 온 사람들이 신성한 무슨 일을 했는지 들어보라. 결코 신성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실수하고 터지고 고생하고 사고 친 이야기가 주류일 뿐이다. 그런 것들이 모여서 신성한 국방을 이루고 있다고 하면 비약일까? 남자들이 모였다 하면 군대 이야기인 반면에 여자들은 애기 낳는 일이다. 출산하는 이야기 역시 신성한 일이라고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 면 신성하다기보다는 웃기는 이야기가 더 많다. 몰라서 저지른 실수, 신랑과 시어머니 붙들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퍼부은 이야기... 끝도 없다. 그런데 이것을 신성한 일이라고 한다. 하나님과 동행이라는 것이 날마다 예배와 찬양과 기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삶 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먹을 땐 먹어야 하고, 배가 아프면 화장실엘 가야 하고, 성행위도 해야 하고... 문제는 이런 모든 행위를 끊어야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서 행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눈을 잠시 피해서 오직 자신만을 위한 행위라고 여기느냐에 따 라 경건 이 되기도 하고 퇴폐 가 되기도 한다

23 창세기 성경공부 :1~32 6. 에녹의 승천 이전에 죽은 사람은? 비정상적으로 죽은 아벨을 제외하면 에녹을 하나님께서 데려 가시기 전에 죽은 사람은 아담 한 사람 밖에 없다. 아담의 죽음과 에녹의 승천은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사건이었다. 죽음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하던 시대에 사람이 죽었다. 죽지 않고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데려가셨다. 하나님은 무슨 말씀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아래 표를 참조) 첫 아들 출산(아담 기원) 사망 아담 (930) 셋 (235) (1042)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90(325) (1140) ---70(395) (1235) --65(460) (1290) (622) (1422) --65(687) (987) 므두셀라 (874) (1656) 라멕 (1056) (1651) 노아 (1556)---600(1656) (2006) 죽지 않고 사는 방법이 있다: 아담처럼 죽을래? 에녹처럼 산 채로 하나님께 갈래? 7. 위의 연대표를 잘 보고 다음의 나는 누구일까 생각해보세요. 1) 내 나이 300세 일 때 아버지가 행방불명되었습니다. 2) 내 아들은 나보다 5년 먼저 죽었습니다. 3) 내 이름의 뜻은 내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 입니다. 4) 내가 죽던 그 해에 내 손자는 600세였습니다. 므두셀라: 이름의 뜻을 직역하면 창 던지는 사람 이다. 의역을 하자면 내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 는 뜻이다. 고대에 적과 싸우러 나갈 때 가장 든든한 한 사람에게 창을 주고서 마을을 지키게 했단다. 최후의 수비병(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8.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은 그의 출생이 그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 뜻이 내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 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그 아이가 죽을 때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계시하셨을 것이다: 아이를 기르는 부모가 아 이 때문에 얼마나 마음을 졸이는지 모른다. 하물며 자기 아이의 죽음이 인류의 종말과 관련이 있다 면 그 아이를 얼마나 안전하게 돌보려고 애를 썼을까? 그런 수고와 고통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한 것이다. 우리가 당하는 많은 어려움과 아픔이 때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하는 것과 닮았다. 9. 이런 경고의 메시지를 가진 므두셀라가 가장 오래 살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어떤 성품을 보여주 는가? 심판의 날을 하루라도 미루려는 하나님의 인내심을 보여준다. 유 1:14-15에 보면 에녹은 이 땅에 하 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알았다. 첫 아들을 낳았을 때 이 아들이 죽으면 종말이 온다는 계시를 받 았고, 그래서 경건하게 살았다. 에녹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의 모범이다. (유 1:14-15)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10.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는데도 처음 인류는 적어도 900년 이상씩 살았다. 하 나님의 말씀이 옳다면 이것을 수학적으로 설명해 보시오. 900 = 0 : 천년 가까이 살았지만 무한히 살 수 있는 존재가 1000년을 살았다는 것은 즉시 죽은 것이다. 얼마 살지 못하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오래 살았다고 여겨지지만 1000년이 하루같 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즉시 죽은 것이다. 1000년도 즉시 죽은 것이라면 다시 100년으로 줄어든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불쌍한 모습인가? 참고로 성경은 죽음을 세 종류로 말한다. 죽음 이란 분리 를 의미하는 것으로 첫 번째 죽음은 하나 님과 인간의 분리요 두 번째 죽음은 인간의 육체가 영혼과 분리되는 것으로 첫 번째 죽음의 결과 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죽음은 이 두 번째 죽음이다. 세 죽음 가운데서 가 장 별 볼일 없는 죽음인 셈이다. 세 번째 죽음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 과 영원한 지옥으로 나누어지는 최종적인 죽음이다. 아담과 함께 첫 번째 죽음에 동참한 우리들에 게 다시 영생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지만 끝내 거부하는 자에게 정녕 죽으리라 고 하신

24 창세기 성경공부 :1~32 말씀이 적용되는 것이다. 이런 설명도 가능할 것이다. 나뭇가지를 꺾는 순간(1차 죽음)에 이 가지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꺾어 지는 순간에 죽은 것이다. 그러나 꺾꽂이나 접을 붙이면 살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고 생 명을 얻는 것을 접붙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말라서 시들고 만다(2차 죽음). 그러면 아궁이에 던지게 되는 것(3차 죽음)이다. 11. 타락 이전에 아담과 하와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밑줄친 부분과 대구를 이루는 표현을 찾으시오. 하나님께서 이 아름다운 동산을 주시니 즐겁기만한 우리. 온 땅이 우리를 위하여 열매와 채소를 내고 온갖 새들이 우리를 위하여 노래하니 이 아름다운 동산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노래하리라.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니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29) 12. 4장의 족보와 5장의 족보를 비교해서 차이점을 찾아보자.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나이, 죽었더라가 있음, 문명의 발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음: 가인의 자식들이야 살든지 죽든지 관심이 없다. 그저 자기들 욕심대로 사는 것 뿐이다. 셋의 후손이라고 문명의 발달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터이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약속한 여인의 후손이 빨리 오는 것뿐이다. 빨리 예 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향하여 달려가야 하는 것이 이 족보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너무 느린 가? 노아 홍수 후에는 사이클이 거의 1/10로 짧아진다. 13.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희망이라고는 하나님께서 약속한 여인 의 후손이 빨리 오는 것뿐이었던 모양이다. 그 사실을 미루어 짐작케 하는 구절은? 라멕의 노래(가인의 후예는 검가를 불렀지만): 이 아들을 통해서 이어질 여인의 후손을 통한 구원의 역사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4. 라멕은 정말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수고로이 일한다고 했을까? 현재 우 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그 후에 또 저주를 받아서 더욱 파괴된 땅이다. 그러면 라멕이 살던 때는 우리보다 환경이 훨씬 좋았을텐데 왜 이렇게 엄살을 부리나? 우리와 비교하면 그렇지만 그 이전의 에덴과 비교하니 그렇게 고통스럽지! 15. 셋의 후예 중에서 가인의 후예와 동명이인이 몇 명이나 있으며 어떻게 다른가? 에녹: 땅에 성을 쌓고(가인의 후예) 하늘로 올리움(셋의 후예) 라멕: 타락의 극치(가인의 후예) 회복을 바라봄(셋의 후예) 집안이 달라서 그럴까? 이름이 같다고 사람도 같은 게 아닌 모양이다

25 창세기 성경공부 :1~22 창세기 6 장 홍수 일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면서 읽어봅시다. 관련성구 관련 사건 때 기 간 120년 120년 6:14 홍수로 심판하실 것을 예고함 7: 7 방주완성, 입장완료 600세 :11 홍수 시작 2월 17일 7:23 완전 침수 3월 29일 7:24 계속 침수 8: 3 물이 감하기 시작함 8: 4 아라랏 산에 도착 7월 17일 8: 5 산들의 봉우리가 보임 10월 1일 8: 6 창을 열고 8: 7 까마귀를 보냄, 비둘기를 보냄 8: 8 비둘기를 보냄 8:10 비둘기를 보냄 2차 8:12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음 8:13 물이 걷힘 1월 1일 8:18 땅이 마름 2월 27일 40일 110일 73일 40일 7일 7일 (36일) 57일 홍수가 시작되고 완전히 침수되었다가 빠지기 시작해서 아라랏 산에 도착하기까지 150일이다. 15규 빗이 빠지는 데에 며칠 걸렸을지는 모른다(거의 110일 전부?). 아라랏 산에 도착하고 다른 산들의 봉 우리가 보이기까지 73일, 그리고 땅의 물이 다 빠지기까지 90일, 다 마르기까지 57일 걸렸다. 이런 과정이 홍수의 경험도 없는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온 일정일까? 1. 하나님께서 처음에 창조하신 인간은 생령 (살아있는 영, 창 2:7)이었다. 이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 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자 하나님께서 사람을 무엇이라 규정하는 가? 육체(영적인 존재가 타락하여 육체가 됨):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말한다. 육체의 아름다움도 찬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지만 사람을 그렇게만 평가하는 것에 우리는 너무나 익숙 해 있다.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결코 육체에 있지 않다. 진정으로 위대한 많은 일들은 육체의 아름 다움에서 탄생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육체를 희생시키거나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나타난 것이 다. 지적인 면과 인격적인 면을 고려한 평가방법을 도입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육체의 아름다움을 가 장 중요시 할 수밖에 없는 미스코리아나 미스터 코리아 선발대회 같은 것이 많은 사람의 관심의 대상이 되면 될수록 우리 사회는 질이 낮은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사람의 진정한 값어치는 결 코 육체적인 매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영(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 간)이 될 수도 있고 육체(짐승)가 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가리켜 육체 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우리끼리 하는 말로 인간이 아니라 짐승 이라고 할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2.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타락한 천사를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여러 가지로 이치에 닿지 않는다. 천사가 사람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는다는 생각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하 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네피림을 통 털어서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표현하고 있는가? 나의 창조한 사람(7): 하나님을 나름대로 경건하게 섬긴 믿음의 자손들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가인의 후예들이 번성하고 있었음을 기억하자. 3. 사람의 딸들이 나니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이 일로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이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참고, 마 24:38, 눅 17:27에 노아의 때에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라고 함) 성적 문란을 뜻한다 (향락적인 문화, 정상적인 음식 문화가 아닌 비정상적인 육체적 방탕을 의미함): 딸들의 아름다움이란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말하며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다는 것은 성스 러운 영혼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유혹에 따라 마음대로 성관계를 맺었다는 말 이다. 영적인 존재가 완전히 육적인 존재로 떨어져버렸음을 말한다.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위하여 온갖 성적인 억압을 다 벗어버리라는 어느 교수처럼 마음에 들기만 하면 남녀가 아무런 제약없이

26 창세기 성경공부 :1~22 마음껏 성을 즐기는 것이 진짜 자유일까? 그 글을 읽은 어느 고등학생의 대답이 걸작이다. 개처럼 살라는 말이네요 성이라는 문제가 결코 가벼운 문제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남녀간에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 다. 결혼한 이후에도 사고로 성적인 불구가 되면 법적으로는 이혼사유가 된다. 그리스도인까지 이래 서는 안 된다. 전통적으로 성문제가 억압되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성경은 이것을 소중하게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충분한 지식을 전해주고 있다. 성경적인 해답을 찾아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누리며 살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영적 존재가 될 수도 있고 육적 존 재가 될 수도 있다. 이성에 따라 살 것인가 본능에 따라 살 것인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4. 네피림이란 말은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체로 장대한 자 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민13:33). 아마 고대의 권력자 내지 폭력을 행사한 사람들일 것이며 경건한 무리들도 이들과 연합 하여 고대에 유명한 자식들을 낳았음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 4절의 유명한 은 famous(유 명한)일까 notorious(악명이 높은)일까? 무슨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가? (네피림을 언급한 이유가 무엇 일까?) notorious(악명이 높음): 하나님의 아들들이 육체적 쾌락뿐만 아니라 권력에까지 빠져 있었음을 말한 다 절의 패괴, 강포 가 바로 이들에 의해서 저질러진 무법천지를 뜻한다. 목회자가 돈, 여자 문제에 걸리면 끝장이 난다. 그러나 권력과 결탁한 경우에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 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쩌면 돈이나 여자문제보다 더 치명적인 위협이다. 돈이나 여 자문제가 골절이나 외상 정도라면 교회가 권력과 타협하는 것은 암이나 마찬가지다. 죽어 가는 줄 도 모르는 채 속으로만 골병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박해를 받을 때에는 계속해서 성장했지만 국가의 지원을 받을 때는 외형적으로는 크게 성 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참된 신자를 찾기 어려워지는 법이다. 전쟁에서 노획한 말 뒷발의 힘줄을 끊 고 병거를 사르라(수11:6) 이스라엘의 왕된 자는 말을 많이 가지지 말라(신17:16) 고 하신 하나님의 뜻을 항상 되새겨야 한다. 5. 하나님께서 홍수로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의 상황을 6:5절에서 간략하게 기술하 고 있다. 다음과 같이 다시 정리해보자. 악의 범위: 세상에 관영함-모든 분야에 악이 가득함 악의 내면성: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악함-본질적으로 악함 악의 절대성: 악할 뿐임-선함이 전혀 없음 악의 습관적이고 계속적인 점: 항상-가인, 라멕의 경우에는 우발적이라고 할만한 요소가 보임. 6. 하나님의 인내 혹은 자비하심을 보여 주는 것은? 120년 간 참음(3): 하나님에게 있어서 120년은 즉시이기도 하다. 우리 기준으로 보았을 때 심판이 굉 장히 지연되거나 오랜 후에 일어난 것이다. 분노를 바로 쏟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서 감사해야 하 나? 진노를 바로 쏟는 하나님이라면 우리는 살아남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도 곧 재림하실 것처럼 말 씀하셨지만 벌써 2000년이나 지났다. 더딘가? 가나안 족속들이 진멸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도 430년이나 시간이 지나야 했다(창 15:16). 더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계신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참고로, 여기서 120년이 되리라는 것은 異論이 있다. 인간의 수명에 대한 것 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7. 노아가 500세 이후에 셈, 함, 야벳을 낳았다(5:32). 홍수는 600세에 있었다(7:6). 홍수 예고는 언제 쯤 있었을까? 방주를 만든 기간은 얼마나 될까? 120년 전에 예고되었다면 아이들을 낳기 이전이다(6:5-8). 방주를 만들라는 예고(6:13-21)는 아이들이 결혼한 이후이기 때문에 540세 정도라고 본다면 방주를 준비하는 기간은 최대로 잡아도 60년을 넘 지 않는다. 8. 하나님의 진노에서 빠진 생물(동물류)은? 식물과 어류(어류): 그래도 동물들이 사람과 가까운 모양이다. 억울하지만 사람의 잘못으로 이들도 함께 죽고 말았다. 9.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 둘? (5장과 6장에 각각 1명씩) 노아(9), 에녹 10.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멸하시려면 간단하게 말씀 한 마디로 없애버릴 수는 없었을까? 그럴 수 없는 이유를 창세기 3장에서 찾아보세요. 3:15절: 여인을 후손을 보내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모든 사람이 다 죽어도 여자 한 사 람은 남겨야 한다. 그러다보니 그 여자의 남편이나 가족이 필요했던 것이다. 노아의 가족이 살아남 은 이유를 노아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래야할 이유가 있다.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려고 이런 복잡한 과정을 밟으시는 것이 은혜다

27 창세기 성경공부 :1~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아무 리 악해도 우리는 노아처럼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라고 하면 노아가 홍수에 서 구원받은 것이 전적으로 노아 자신의 공로 때문인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어느 구절을 또 발견해야 하나요? (인류를 완전히 멸망시키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하는 바가 아니다. 약속 하신 여자의 후손이 오기까지 인류를 보존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만약 노아가 없었다면 인 류는 완전히 멸망해 버렸을까?) 6:8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 구절을 직역하면 노아는 주의 눈에서 은혜를 발견하였더 라 가 된다. 온 세상을 멸하려는 이글거리는 하나님의 분노의 눈빛 속에서 은혜의 빛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야단치는 아버지를 두려워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야단 속에서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볼 수 있는 자식은 자신뿐만 아니라 아버지까지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자식이 된다. 구약을 많이 아 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단다. 천만의 말씀! 노를 발하시는 그 모습에서 오히려 은혜를 발견할 수 있다. 구약의 하나님이 무섭기만 하다고? 스스로 질투하는 하나님 이라고 까지 말씀하시 는데? 질투하는 남자. 얼마나 시시하게 보이는가? 하물며 하나님은 자신을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12. 노아가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은 자신에게도 있었고 하나님에게도 있었다. 다른 원인이 또 있다면 무엇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노아의 조상들, 에녹, 므두셀라, 라멕은 모두 경건한 사람들이었다: 경건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것은 대단한 복이다. 그 자체로 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큰 복을 누릴 가능성을 가졌다는 말이다. 왜냐하 면 그런 가정에서도 온갖 반항아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방법으로 신앙이 잘 전수되는 것이다. 위대한 아버지 밑에 위대한 아들이 나오는 경우가 드물다. 오히려 위대한 어머 니 밑에 위대한 아들이 나오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것은 가정에서 어떻게 교육을 시키느냐에 따른 문제이다. 사회와 교회에서 위대한 사람이라 해도 가정의 문제를 결코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 다. 가정에서 교육의 중요함을 천주교에서는 일찍 깨달았던 모양이다.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미션 스 쿨은 대체로 여학교이다. 이들에게 천주교의 분위기를 심어놓으면 언젠가는 한 가족이 천주교로 돌 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자식의 문제를 모조리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은 오직 복음만을 위해서 헌신한다고 바깥 으로만 뛰어 다니는 것이 반드시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다. 13.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는 지금과 대단히 다르다. 얼마나 변해버렸는지 상상할 수도 없다. 영원한 존재가 1,000년 정도로 수명이 줄었다가 다시 100으로 감축이 됐으니 그 변화가 어느 정도 일까? 땅도 이와 같은 비율로 망해버렸음을 암시하는 표현을 찾아보시오. 13절, 땅과 함께 멸하리라: 원래 땅의 모습은 현재와 다르다는 말이다. 현재는 다 부서진 흔적인 셈 이다. 14. 길이를 잴 수 있는 자가 만들어지기 전에 사람들은 신체의 길이를 이용해서 길이를 쟀다. 가령 서양 사람들이 자신의 키를 5피트 7인치라고 하면 사람을 눕혀 놓고 재보니 다섯 발하고 일곱 손 가락마디 였다는 말이다. 하긴 우리나라 사람들도 사람의 키를 단위로 물의 깊이를 재었으니... 피 장파장일까? 규빗이란 단위는 대체로 팔의 길이에 해당한다. 1규빗을 편의상 50 로 잡고 방주의 크기를 계산해보자. 과연 그 당시에 이런 배를 만들 수 있었을까? (규빗) = (m): 이 크기와 비율은 현대에 만들어진 초대형 유조선의 그것과 일치한 다. 단순히 크기만 큰 것이 아니라 비율이 현대식 유조선과 같다는 것은 결코 우연히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당시에 이런 배가 필요하지도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하나님께서 지시한 대로 만들었다고 보아야 한다. 노아가 이런 배를 만들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시 사 람들이 무식했다고 생각하는 그릇된 편견 탓이다(cf 7장 4번). 15. 아 의 다 현대 문명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진기를 보고 사람 그리는 기계, 사람의 혼을 빼앗 가는 기계 라고 했다. 전자는 상당히 유식한 미개인이다. 알지 못하는 것을 표현하다 보면 약간 무리가 생길 수 있는 것이 사람의 언어다. 하나님의 성품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다보면 이보 더한 무리도 생기게 마련이다. 본문에 이와 같은 현상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한탄함과 근심(6): 하나님도 한탄하고 근심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표현으로 비유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가 한탄하고 근심하는 것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이 표현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16. 대통령이 잘못하면 온 백성이 고통을 당하는 법이고, 국가대표가 망신을 당하면 온 나라가 망 신을 당하는 법이다. 사람이 범죄하는 바람에 억울하게 당한 것을 있는 대로 찾아보자. 육축, 기는 것, 공중의 새, 땅: 미안하다 이 놈들아. 17. 성경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면서 여기서 처음 나오는 단어가 있다. 무엇일

28 창세기 성경공부 :1~22 까?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피눈물 나는 고통(?)을 겪으셨다. 언약(18, 은혜라는 단어도 답이 될 수는 있으나 의미의 폭이 넓어서 여기서는 언약을 정답으로 하는 것이 좋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우리에게 주신 엄숙한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 행한 노력이 바로 인류의 역사요, 하나님의 섭리이다. 그래서 성경을 구약과 신약으로 이름 지은 것 은 정말 잘한 일이다. 누가 그랬을까? 원래 성경은 책(파피루스 비블리오스 바이블) 이라고 불렸다. 캐논이라 말은 우리 삶의 표준이 된 다는 뜻에서 갈대, 척도 를 뜻하는 말에서 빌려온 정경 을 가리키는 말이다. 18.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방해 요소가 될 만한 것은 무엇일까? 오랜 세월, 배를 짓는 장소(산 위: 그들은 대체로 산지에 살았음, 바다와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 람들이 배를 어떻게 만들어?), 당시 사람들의 조롱, 양식을 준비하는 것, 배를 짓기 위한 나무를 나 르는 일: 가장 힘든 것은 오랜 세월이 아니었을까? 하루 이틀 충성하는 것이나 순간적인 고통은 이 길 수 있어도 오랜 세월을 버티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하여 노아는 의를 전파하 는 자가 되었다(벧후 2:5). 말로 하는 설교가 아니라 삶 자체가 당대 사람들에게 설교가 되었다. 한 두 해 주일학교 교사 노릇을 할 수는 있어도 몇 십년씩 주일학교 교사 노릇한 선생님은 존경해 야 한다. 한 교회에서 10년이나 반주자 역할을 했다면 역시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긴 세월동 안 가족 중에서 아무도 이탈하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19. 다음에 거론되고 있는 것들은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가?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 내를 삼는지라.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 온 땅이 패괴, 강포가 땅에 충만함(11) 노아의 때(마 24:38, 눅17:27)에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홍수의 원인) 20. 성경이 말하는 언약은 이미 서로가 친숙하거나 특별한 관계에 있으면서 그 관계에 문제가 생 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의미에서 맺는 것이다(창21, 26, 31, 수9, 삼상11, 18, 삼하3, 왕상20, 왕하11). 노아와 언약을 세우겠다는 것은 무슨 문제가 생겼기 때문인가? 홍수심판: 언약의 이러한 성격은 어쩔 수 없이 심판을 행하시면서도 발전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시 키며 구속으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세속적인 언약은 상호 동의하에 맺어지지만 성경 의 언약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이란 점에서 다르다. < 추가 > 노아 시대에 떠난 버린 하나님의 영이 언제 다시 돌아올까? 오순절 강림! 그 전에도 가 끔 가늘게 명맥이 이어져 왔음. 노아가 배를 만들고 짐승을 태우고 돌보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누구의 마음인가? 하나님의 마음 아니던가? < 설교 제목 >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에게는 노아가 필요했음. 관영(貫盈, 꿰뚫을 관, 찰 영): 크다, 너무 많다. 차지 않은 곳이 없음 패괴(悖壞, 거스를 패, 무너질 괴): 극심한 부패와 타락 강포(强暴): 억세고 포악함

29 창세기 성경공부 :1~24 창세기 7 장 1. 노아는 인류를 멸종의 위기에서 건져내어 씨를 전하는 위대한 임무를 완수했다. 이렇게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노아의 공로를 1) 두 가지 지적한다면? 2) 만약 노아의 이런 공로 가 없었다면 인류는 다 망해버렸을까? 1) 의로움(7:1)과 순종(120년간, 7:5). 2) 노아 때문에 인류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선악과 사건 이후 무수한 범죄행위에도 더 나은 관계 를 이루기를 원하시는, 다시 말하면 결코 멸망시키기를 원하시지는 않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 문이다. 하나님의 그런 뜻이 있었기에 노아의 의로움이나 순종이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겉으로 보 기에는 노아의 의로움과 순종 때문에 인류가 살아남은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보면 하나님의 섭리 가 작용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역하시면서 이런 방식으로 일하시기를 기뻐하신다. 나의 노력, 나의 두뇌, 나의 열심, 나의 능력... 다 좋다. 그러나 그것이 제대로 사용되 려면 그 뒤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계셔야 가능하다. 내가 무엇인가를 이루었다고 자만하지 말자. 큰 일을 이루고도 하나님께 겸손하게 감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 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는 말씀의 의미는 발견 했다는 뜻이 아니라 인정 했다는 뜻이다. 비록 불완 전하지만 노아의 노력을 하나님께서 인정했다는 말이다(아무 공로도 없는 동물들을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노력을 생각해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2. 모든 짐승은 2쌍씩 넣었다는 말씀도 있고 정결한 짐승은 7쌍씩, 공중의 모든 새도 7쌍씩 넣었다 는 말씀도 나온다. 이것을 성경의 오류라고, 혹은 두 가지 자료를 편집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어린아이가 보아도 분명하게 오류로 보이는 것을 수정하지도 않고 또 그 런 비난을 예상도 못할 정도로 성경의 저자는 무식한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성경의 저자는 이런 것을 전혀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기록했을까? 당대 최고의 학문을 통달하여 말과 행사에 능 한(행 7:22) 그를 이렇게 간단하게 바보 취급을 해도 실례가 아닐까? 아니면 그가 당연하다고 생각 한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우리가 바보일까?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니라 수 천년의 시간과 시대적 상황과 문화적 차이가 우리를 이렇게 갈라놓은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면서 성경의 저자가 당연히 여긴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우리의 임무요, 배워야 하는 자가 지녀할 자세다. 이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선 번제용으로 필요한 것(8:10) 정결한 짐승은 번식에 다소 불리한 점(순하고, 초식이고 공격성이 없음) 홍수 후의 육식을 고려한 것일 수도 있다. 원칙은 번식을 위한 모든 짐승을 한 쌍씩 태우는 것이다. 특별한 경우가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다 섯 명이 탄 버스를 보고 몇 사람이 타고 있느냐고 물으면 입장에 따라 대답이 다 달라질 수 있다. 회사의 사장은 버스기사와 차장과 요금을 받지 않는 어린아이를 제외하고 2명이라고 할 수 있고 기 사는 무료로 승차한 노인까지 제외하고 사람이 한 명 밖에 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아무 도 안 탔네' 했다가 '나는 사람이 아니냐?'는 항의를 받을 수도 있다. 요는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숫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3. 그 당시의 사람들은 노아를 보고 무엇이라고 조롱했을까? 조롱거리가 될 만한 것을 생각해 보 고 또 특별히 조롱을 견디기 어려운 요소가 있다면? 배 만드는 장소, 기간이 너무 오랜 점 홍수라는 것? 비(무지개가 없었다는 것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유대인들은 유목민이었다. 저수지조차 없는 가나안에서는 홍수를 경험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에게 홍수 이야기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다. 산에서 사는 사람들이 산 위에서 배를 만든다는 것 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웃기게 했을까? 무엇보다도 하루 이틀이 아닌 너무나 오랜 세월 그렇게 살 았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루 이틀의 고통을 참고 순교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오 랜 세월의 고통을 이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주기철 목사님의 기도가 생각난다. 4. 노아는 홍수에서 구원받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치자. 노아의 며느리들은 어떤 이유로 구원을 받은 것인가? 신랑을 잘 만나서? 아니면 시아버지를 잘 만나서? 6장 초두에 나오는 당시의 사회상 과 비교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시집을 잘 가서(별로 좋은 대답은 아니다): 이들이 결혼할 당시에는 이미 노아의 가족은 머리가 이 상하게 된 집안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을 것이다. 이런 집에 시집을 가서 그들과 하나가 되어서 오랜 세월을 함께 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범상한 일이 아니다. 말로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실제 결혼 당사자들에게는 별로 그렇지 못한 현실과 비교해보면 이들의 행위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 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삶이 당시의 중혼, 축첩 등의 사회상과 거리가 먼 삶이었다. 가족 모두가 단합되고 같은 믿 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한다. 아버지가 돌았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간 며느리도 없었다는 뜻이 되

30 창세기 성경공부 :1~24 는데 이런 아버지에게 순종한다는 그 자체도 위대한 신앙이다. 미국사회가 음란과 마약으로 막가는 세상처럼 보여도 그 속에는 우리들보다 더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다. 함부 로 세상이 다 그런데... 해서는 안 된다. 엘리야가 혼자 남았다고 생각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따로 7,000명이나 남겨두셨다(왕상 19:18).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시대를 거스를 수도 있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다. 5.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 으리라.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눅 13:24-25) 천국 문이 열려 있을 때 들어가야 한다. 한번 닫힌 후에 열 자가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것을 보여 주는 대목은? 7:16 여호와께서 닫아 넣으시니라: 사랑과 자비가 한이 없으신 하나님이시지만 문을 닫을 때가 있다 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즉 문이 열려 있을 동안에는 사랑과 자비가 무한하시지만 닫힌 후에는 결코 사랑과 자비를 기대할 수 없다. 기름 준비하고 신랑을 기다리던 열 처녀 비유만 해도 그렇다. 늦게라도 기름을 구해오면 열어주면 안되나? 아니 기름 없이 들어가면 안 되나? 일단 닫히면 안 된 다는 것이다. 6. 부분침수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즉 노아의 홍수가 메소포타미아 지방이나 중동지방에 있었던 큰 홍수를 과장되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본문의 어떤 점과 상충되는가? 1) 온 인류를 심판하겠다는 하나님의 의지. 2) 침수가 150일이나 계속된 점: 한 곳만 덮은 채 그렇게 오래 있을 수 없다. 3) 날짐승을 방주에 태운 것: 부분침수라면 날짐승을 태울 이유가 없다. 4)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9:15) 라는 하나님의 선언이 완전히 거짓이다. 노아의 홍수와 같은 그런 홍수는 다시 있지 않으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선언이다. 그렇지 않은 홍수야 항상 일어나는 것 이 아닌가? (4번은 9장에서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7. 부분침수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현재 지구상의 물로는 높은 산들을 다 덮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높은 산들이 노아의 홍수 때에도 그 모습이었느냐는 것이다. 가장 높은 산 이라는 에베레스트산도 한 때는 물 밑에 있었다. 언제 저렇게 높이 솟아올랐을까? 노아 홍수 이후 라고 생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구의 표면이 급변을 겪었다는 증거는 지사학에도 많이 있다. 지구의 표면이 많은 변화를 겪었다면 노아 시대에는 표면이 완만했을 것이라는 주장과 대륙이 한 덩어리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리 큰 무리가 아니다. 현재 지구 표면을 고르게 깎는다면 지구는 수심 2700m로 잠기게 될 정도로 물이 많다(아래 그림 참조, 학생동아대백과 사전에서). 이 물이 노 아 홍수 때에 외부로부터 들어온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무슨 근거로? 하늘의 창들이 열려: 비가 쏟아지는 장면에 대한 시적인 표현이라고 하는 것을 굳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또 다른 가능성을 굳이 무시할 필요는 없다. 여러 가지 정황들을 참고로 하여 노아 홍 수 이전에 대기권 바깥에 수층(궁창 위의 물: 결코 구름이 아니다. 구름은 지표면에 있는 것이다)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그래야 많은 의문점이 해결된다. 사실을 알지 못하는 우리 가 너무 단정적일 필요가 없다. 남극의 얼음은 민물일까 바닷물일까? 민물이다. 도대체 어떻게 생성 된 것일까? 눈이 내려서 바닷물 위에 쌓이고 쌓여서? (윌리암 행콕의 문명의 거울 : 고대의 해수면 은 지금보다 낮았다. 사람들이 대륙붕에 거주했다고 한다.) 8. 홍수의 개략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자. 시작: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 비가 쏟아진 기간: 40주야 동안 최소한 침수된 깊이: 15규빗 위로 오름(높이 30규빗인 배는 물에 얼마 정도가 잠길까?)

31 창세기 성경공부 :1~24 침수된 기간: 150일 동안 창일 9. 최초의 문자는 수메르인의 쐐기 문자라고 한다.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와 유사한 이야기가 수메 르인의 토서판에 많이 나오기 때문에 수메르인들의 홍수 이야기를 히브리인들이 빌려다 창세기에 기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성경의 역사성을 믿지 않기 때문에 성경의 이야기는 무조 건 빌려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일종의 편견이다. 어느 것이 원본이고 어느 것이 사본인가 하 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일반적인 역사가들은 수메르인의 것이 원본이고 그 기록이 성경에 영향 을 주어서 성경에 노아 홍수 기사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음 몇 가지를 비교해 보자. 어느 것 이 더 사실에 가깝고 과학적 원리에 맞는지 생각해 보자. 성경 수메르자료(길가메쉬 서사시) 홍수의 원인 인간의 악함 신들의 다툼, 신들의 실수, 홍수의 기간 1년 10일 40일 방주의 크기 300규빗 50규빗 30규빗 물의 출처 깊음의 샘, 하늘의 창 비, 격노한 바다와 바람 결론: 수메르 혹은 바벨론 전승에 나오는 자료는 현실과 잘 맞지 않는다. 현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자료가 현실과 잘 어울리는 자료의 원본이 될 수 없다. 전설과 역사의 차이다. 현실과 잘 맞는 자료가 오히려 후대의 것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상상이나 허구에 서 시작된 이야기가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차츰차츰 말이 되도록 고친 경우에 해당한다. 공상이나 현실성이 없던 이야기가 현실성을 얻어 가는 것이라면 그럴 수 있다. 가령, 이런 배를 만드는 것이 모세 시대에 가능한 일이었다면 허구에서 현실로 수정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방주의 장, 광, 고에 관한 이런 비율은 1844년 영국의 브루넬이 The Great Britan(98m 15.5m 9.9m, 방주의 2/3 크기)을 건조하 면서 설계에 처음으로 사용하여, 항해보다는 잘 떠 있기 위한 대형 선박에 즐겨 사용하게 된 비율 이다. 이 비율은 현대 유조선이나 대형 전함의 비율과 흡사한 것이며, 1000년 동안 축적된 영국 조 선기술의 결정판인 셈인데 이 비율이 수 천년 전의 유목민의 글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후대 사 람들이 자신들의 지혜로 현실에 맞게 수정한 이야기라고 할 수 없다. (부언) 수메르의 쐐기 문자가 최초의 문자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홍수 이후, 문명이 새로 밝아오면서 사람들이 고안해낸 최초의 문자라는 뜻이다. 홍수 이전에 어떤 형태의 문자와 글자가 있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10. 땅의 모든 짐승이 둘씩 나아와 방주에 들어갔단다. 아메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처럼 바다를 건 너야만 하는 생물들은 어떻게 왔을까? 이 때까지 모든 육지는 하나로 이어져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육지가 하나로 되어 있었다(1:9): 지 구과학에서는 이 가상의 대륙을 판게아 대륙이라고 부른다. 그것을 둘로 나눈 것이 곤드와나(아프 리카, 남아메리카, 인도, 남극)와 로라시아(북아메리카, 유라시아) 대륙이다. 그 후에 땅이 갈라져 나 가서 지금처럼 되었다는 주장을 대륙이동설이라고 한다. 이런 이론이 처음 나오게 된 것은 아메리 카 대륙과 유럽의 해안선이 닮았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베게너 가 그 증거를 찾아낸 것이다. 각 대륙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빙하의 흔적과 지질학적 증거, 그리고 도저히 바다를 건널 수 없는 생물이 바다를 건넌 대륙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 등을 제시하였다. 11. 홍수가 있기 전에 120년이라는 예고 기간이 있었다. 최후통첩은 7일 전에 또 있었다. 이 마지막 7일 동안 노아는 무엇을 했을까? 마지막으로 심판을 알리려고 뛰어 다녔을까?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그 동안의 고생을 돌 아보고 있었을까? (그냥 토론 삼아 이야기해 볼 문제) 12. 방주가 아무리 크다 해도 이렇게 많은 짐승을 어떻게 다 실을 수 있나? 오늘날 살고 있는 포유류: 3,500종, 조류: 8,600종, 파충류와 양서류: 5,500종으로 분류할 수 있단다. 각 쌍으로 계산하면 방주 안에 35,200 마리의 동물을 실었다. 이들의 평균 크기는 거의 양의 크기만 하 며 방주는 125,000 마리의 양을 실을 수 있었으므로 실제 수용했던 수보다 3배 이상까지 가능했다. (방주의 크기는 1규빗을 44.5 로 환산하면 현대철도의 가축운반차량 522대의 분량이라고 한다) 더 자세한 것은 1961년에 초판된 The Genesis Flood 를 참고하면 좋겠다. 1979까지 23판이 나왔으며 1985년에 창세기 대홍수 (성광문화사)란 책명으로 번역이 되었다: 분량이 많고(630page) 학술적인 책이 어서 읽기는 쉽지 않으므로, 기타 창조과학회 발간 서적을 참고하거나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이런 문제를 대답하고 있는 사이트를 찾을 수 있다. 13. 학교나 집에서 매를 많이 맞고 나면 몹시 야속할 것이다. 그러나 섭섭한 마음을 억제하고 왜 맞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옳다. 우리도 노아 홍수를 기억할 때 심판의 철저함(21-23)보다는 무엇을 기억하는 것이 바른 태도일까? 의로운 씨를 보존하려는 하나님의 노력: 매를 맞은 경우에도 매를 들지 않으려고 애를 쓴 선생님의

32 창세기 성경공부 :1~24 안타까움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를 많이 맞았음에도 그 선생님이 그리운 기억이 있는 사람은 전혀 매를 맞지 않은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다. 14. 창세기 1:2부터 시작되는 창조는 땅이 공허하고 혼돈한 상태에서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홍수심판은 다시 처음의 혼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1장에 나타난 다음 사실이 홍수로 인하여 어떻게 변하는지 설명해보자.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낮을 빛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40일간 주야로 비가 쏟 아져서 밤낮이 분간이 안됨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늘의 창이 열리고 깊음의 샘이 터져 궁창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이 구분이 안됨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물과 뭍의 경계가 사라지고 물이 뭍을 침몰함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전부 수장되어버림 생물로 번성케 하라: 모든 생명체를 죽임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조 이전의 혼돈으로 되돌아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 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다스리기는커녕 인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파 괴됨 15. 육식동물의 창자를 가리켜서 우스운 말로 깽톡 이라고 한다. 가령, 사자가 토끼를 잡아먹으면 토끼가 깽 하기 무섭게 뒤로 톡 떨어진다고 하는 말이다. 반대로 초식동물의 길고 긴 창자를 九 折羊腸이라고 한다. 멀고 먼 하늘을 가리키는 九萬里長天,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을 九牛一 毛라고 하는데 이런 표현에서 보듯이 중국 사람들은 크다 혹은 많다는 의미로는 주로 아홉 九 자 를 많이 쓴다. 그런데 다음 글자에는 왜 여덟 八자가 사용되었을까? 船(큰배 선) = 舟(배 주) + 八(여덟) + 口(사람) 노아의 가족 8사람이 탄 내용으로 글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10장의 8번). 창일(漲溢): 물이 계속 불어나 한계 수위를 넘어 사방으로 흘러넘침

33 창세기 성경공부 :1~22 창세기 8 장 1. 온 천지가 물로 뒤덮이고 모든 생물이 죽어버렸을 때 노아의 가족과 방주에 탄 생물들은 무료 한 채 그냥 떠다니고 있었다. 무섭기도 하고 지겨운 나날들이었을 것이다. 이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권념(眷念)하사(1): 늘 잊지않고 생각하며 보살펴 주는 것이다. 휘몰아치는 엄청난 파도나 물결이 위 험한 순간을 초래하기도 하였겠지만 하나님께서 간섭하셨음을 의미한다. 연민의 정이 없다면 그렇 게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에게도 원하시지 않는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우 리를 위하여 끊임없이 간구하시는 예수님처럼. 2. 어쩌면 노아 홍수 이전에는 본격적인 바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홍수를 일으키기 위한 대기의 변화로 인하여 바람이 불게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 바람을 불게 하신 이유는? 물을 감하게 하기 위하여? 다소간의 영향은 있겠지만, 바람이 물을 크게 감하게 하기는 어렵다. 바 람이 부는 것, 하늘의 창이 닫히는 것, 깊음의 샘이 막히는 것 등이 비를 그치게 하는 원인이 되었 다. 하늘의 창이 열리고 깊음의 샘이 터질 때 언급이 없던 바람이 분다는 것은 바로 이 때 대기의 변화가 생기게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바람은 우리 삶에 아주 중요하다. 가끔 태풍이 휩쓸기도 하지만, 자연의 청소부라고 할까? 그 속에 도 인간을 생각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언젠가 대구 앞산에 친구들 과 함께 올랐다가 대구 상공을 덮고 있는 시커먼 공기층을 확인하고 대구 시내에 들르지도 않은 채 도망을 쳤다. 찌끼가 둥둥 떠 있는 구정물 통 아래에서 살고 있는 물고기 같았다. 저 분지에 태 풍이라고 불어주지 않으면 사람이 살 수 없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3. 홍수가 시작된지 며칠 만에 하늘의 창이 닫히고, 깊음의 샘이 막혔을까? 150이라고 대답하는 것 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는 것 같다. 하늘의 창이 닫히고 깊음의 샘이 막히면서 비가 그치게 되었다(2)고 하니까 비가 왔던 기간 즉 40일 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비와, 땅속에서 터져 올라오는 물이 40일 간 계속되었다고 한다면 지금 우리가 보는 폭우와는 비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4. 성경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정리하면서 읽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된다. 빈 칸을 채워보 자. 홍수의 시작은 2월 17일(7:11) 홍수의 끝 2월 27(8:14)이었다. 다음의 경우는? 방주가 아라랏 산에 착륙한 날은 월 일, 산들의 봉우리가 보인 것은 월 일, 까마귀를 내 보낸 것은 월 일, 지면에 물이 걷힌 것은 월 일, 땅이 마른 것은 월 일. 7월 17일, 10월 1일, 11월 10일, 1월 1일, 2월 27일: 날짜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자체가 놀랍다. 엄청난 폭우가 밤낮을 분간하기 어려웠을 텐데... 홍수의 경과 과정을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 은 그럴 능력이 있었다는 것 외에도 실제로 체험한 일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5. 땅에 물이 걷히고도 사람이 다닐 수 있을 만큼 마르는 데 얼마나 걸렸나요? 약 두 달 (8:13, 14): 홍수 전후에 일어난 시간의 흐름이 거의 실제였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신화에서 는 대체로 무리가 따르는데 비하면 실제 있었던 사건의 기록임을 인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6. 왜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는 데 비둘기는 돌아왔을까? 스스로 삶을 살아가는 능력의 차이랄까? 썩은 고기를 먹는 까마귀는 먹을 것이 많이 있었을지 모른 다. 못난 자식이 효도한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우리말도 있다. 인간적으로 매력 있는 사 람이 신앙적으로 별 볼일 없는 경우처럼. (비둘기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깨끗한 새 가 아니라는 반론도 있었음) 7. 간절한 소망이 있는 사람은 극히 작은 것에도 감동을 잘한다. 겨울이 지나기를 학수고대하던 사람이 파르라니 돋는 풀 한 포기를 보고 감격하고 가을을 기다리는 시인을 감동시키는 데에는 코스모스 한 포기면 충분하다. 요즈음은 시도 때도 없이 피는 것들 때문에 감동조차 제대로 느끼 지 못할 지도 모른다. 노아에게 이런 감동을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감람 새 잎사귀: 죽음의 공포가 지나고 땅에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움트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8. 지면에서 물이 걷힌 것이 1월 1일인데 홍수가 난지 314일 째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오지 않고 57일 더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34 창세기 성경공부 :1~22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내려와 보았을 것이다.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고 더디 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까지 미련하다싶을 정도로 기다림. 이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하여 실 패한 사울과 비교해 보자. 상황의 변화를 알려고 노력은 하면서도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기다리는 인내가 아름답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닿기만 하면 가방을 챙기고 일어서는 세계 유일의 민족, 한국 인이라면 밧줄을 타고서라도 내려와 보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를 바라는 우리는 미련하다 싶을 정도의 여유를 가지자. 어차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우리라면. 9. 미국이 어떻게 복을 받은 나라가 되었는가를 설명할 때 등장하는 이야기에 다음의 것이 있다. 청교도들이 신천지로 건너가서 죽을 위험을 넘기고 살아남아 첫 수확을 거둔 후에 제일 먼저 지 은 건물이 교회요 두 번째 지은 것이 학교였다. 그 다음에 자기들의 살 집을 지었다. 노아의 경우 에 이와 유사한 내용을 찾는다면? (노아에게는 무엇이 가장 급했을까?) 제단을 쌓은 일(20): 항상 하나님을 사고의 최우선에 두는 삶을 말한다. 청교도들이나 노아에게 그 당시 상황에서는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것 외에는 달리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말끝마다, 매사에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 나님을 항상 먼저 생각하는 자세로 살자. 10.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은 출애굽 때에 주어진다. 안식일을 제정하신 동기가 천지 창 조와 관련된 것(2장의 2번 질문을 꼭 참조하시기 바랍니다)이라면 이스라엘의 출애굽 때까지 아무 런 언급없이 버려두셨다가 느닷없이 생각난 듯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했을까? 정식으로 안 식일이 제정되지 않았어도 창조원리에 따라 살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노아의 행위가 있다 면? 7일 간격으로 비둘기를 내보낸 것(10, 12): 7일 단위로 생활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아무렇게 그 냥 세월을 흘려보낸 것이 아니라 날짜를 7일 단위로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세월을 보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에는 묘시에 출근(5시-7시)했고 지정된 휴일은 없었다. 정초나 왕의 탄생일 정도가 공휴일이었단다. 11.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1:22) 는 말씀은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이다. 8장에 같은 표현이 있다면? 없다: 있다고 해도 되는데 굳이 그 차이를 좀 인식하자라는 뜻에서 없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1장 에서는 직접 명령으로 주어졌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지만 여기서는 동물들에게는 그런 명령도 없 었을 뿐만 아니라 단지 노아에게 알려주는 것 뿐이었다. 느낌이 너무 다르다. 1장에서는 기쁨에 넘 치는 모습이었지만 여기서는 무덤덤한 느낌이다. 12. 노아가 드린 제사의 향기를 맡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향기를 좋아하시 는 분인가? (히 11:6) 제물 자체가 아니라 그 제물을 바치는 노아의 믿음을 기뻐하신 것: 물론 이 믿음의 바탕에는 예수 님의 죽음이 전제되어 있다. 13. 하박국은 악인이 선인을 괴롭히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하나님께 항변했던 인물이다. 천벌을 받아 마땅해 보이는 사람이 잘 먹고 잘 살 때 울화통이 터지지만 그런 사람을 그대로 두는 하나 님의 마음이 어떠할까? 그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단서가 본문 어디에 있는가? 21-22: 홍수를 일으켜 모든 생물을 멸해버린 것은 하나님의 본래 의도가 아니다. 매를 들었던 아버 지가 매를 들지 않을 수 없어서 매를 들었다 해도 그 일로 가슴이 아프다. 우리 하나님도 그렇다.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악이 기승을 부려도 당장에 무슨 날벼락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노아 때에 있었던 홍수 사건으로 인하여 가슴이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 잘못이 있다 해도 이제 다시는 매를 들지 않으마. 일종의 한시적 포기: 악한 것을 악한대로 다 갚다가는 남아나는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일일이 심판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완전하게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방법을 모색하셨다. 흔 히 우리 부모들이 그러는 것처럼 내가 죽어야지 하나님도 스스로 희생을 작정하셨다. 그럼에도 끝 내 돌이키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땅이 있을 동안은 그렇다. 노아의 제사를 흠향하시고 이렇게 작 정하셨다. 모든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을 상징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에 참여하 는 자에게는 비록 악해도 심판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4. 우리는 계절의 변화를 보고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춥다고 짜증을 내거나 덥다고 성질을 부릴 형편이 아니다. 그 이유는 계절의 변화조차도 하나님의 에 의해 계속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영원한 것은 아니다. 왜? 라는 단서가 있기 때문이다. 약속(혹은 섭리), 땅이 있을 동안에: 단순히 지구의 종말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교체될 때, 즉 언젠가는 이 피조세계의 종말이 있음을 말한다. 15. 해수면이 조금만 올라와도 포항시내는 사람이 살 곳이 거의 없어진다. 모르니까 마음이 편하지 우리가 어떤 곳에 어떤 위험을 안고 살고 있는지 알면 포항에서는 정말 살기 어렵다. 산 위의 고 층 아파트라면 모를까. 그러나 한 가지만 더 알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일까?

35 창세기 성경공부 :1~22 22절: 자연계의 정상적인 운행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음 16. 중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 농사짓는 것을 보고 그랬다나? 어떻게 그렇게 농사를 지어? 안 먹고 말지. 열대지방의 벼농사와 우리나라의 벼농사를 비교해보아도 우리가 얼마나 농사를 어렵 게 지내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홍수 이전에는 자연 환경이 지금과 많이 달라서 농사를 짓는 것도 지금처럼 이렇게 힘들고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홍수 이후의 새로운 선언을 동사만 찾아보자. 1) 저주하지 아니하리라, 2) 멸하지 아니하리라, 3) 쉬지 아니하리라: 아담의 범죄이후 계속해서 파괴 되다시피 한 피조 세계가 어쩌면 더 이상 부숴질 것도 없는 모습이 아닐까? 많이 일그러졌지만 이 런 모습대로 하나님께서 일정기간 보존하시기로 하셨다. 근래에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 이제는 사람 들이 환경을 부수기 시작을 한 셈이다 절의 601년은 기준이 무엇일까? 노아의 나이 18. 자연 환경의 변화를 암시하는 말 중에 여기에서 처음 나오는 단어가 있다면? 바람, 더위, 추위: 아마 이전에는 바람도 별로 없고 더위와 추위도 없는 온실 속과 같은 환경이었을 것이다. 북극이나 남극도 한 때는 아열대 기후였다고 한다. 19. 아담의 범죄(3:18)와 가인의 범죄(4:12)로 땅은 사람과 멀어져 갔다. 땅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아마 이랬을 것이다. 사람과 계속 사귀다가는 큰 일이 나겠다 그랬던 그 땅이 소원을 이룬 것 같 다. 완전하게 사람과 분리된 것이다. 위의 두 사건과 성격이 다소 다른 분리이긴 하지만 어떻게 또 분리되었는가?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않으심(21) 20. 노아 홍수는 후대 인류가 결코 잊을 수 없는 끔찍한 기억일 것이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다시 하나님을 반역하는 인간을 보게 된다. 홍수 기억을 가지고 하나님을 폭군이니 난폭하니 말하 지 말자. 노아 홍수는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 본격적인 심판은 언제 있을까? 예수의 재림 때: 120년을 기다리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예수의 승천 이후 2000년이 넘도록 기다리고 계신다. 곧 다시 오실 것이다. 그 때는 예고편을 넘어서는 엄청난 재앙이 닥칠 것이다. 땅의 임금들 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 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계 6:15-17)

36 창세기 성경공부 :1~29 창세기 9 장 1.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에게 명령했던 것(창 1:28)과 홍수 이후 노아에게 명령한 것(9:2-3)을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나요? 땅과의 관계에서 정복하라 가 생략됨: 관리자의 자격이 없어진 걸까? 현재 우리의 모습에서 실제로 선한 관리자의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영국의 어느 환경 학자가 지구는 피부병을 앓고 있다. 가장 악성 바이러스는 인간이다 라고 말했다. 하늘과 땅 속을 오염시키는 것이 지구 전체로 보면 피부병 밖에 안 되지만 피부병치고는 엄청난 피부병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지하수를 퍼 올리기 위해 수백 미터 깊이로 구멍을 뚫어 놓고는 관리를 소홀히 해서 지하 수백 미터를 순식간에 오염 시켜버리는 것이다. 생물과의 관계에서 다스리라 대신에 두려워하리라 : 범죄로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니까 생물도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동물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두려워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관계가 아니다. 두려움에서는 선한 것이 나오지 않는다. 동물과 사람사이에 벌어지는 잔혹함이 바로 그 두려움에서 생긴 것이다. 그런 동물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얼 마나 불행한 일인지 깨달으라는 것이다. 동물을 다스릴 수 있는 영적 권위가 있었으나 그것이 깨어 지니 그 다음 수단으로 주어진 것이 두려움 이라는 차선책이다. 가족 관계도 이런 두려움이 주류를 이루는 경우는 얼마나 비참한 모습인가!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두려움을 근거로 유지된다면 제대로 된 교육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인간 의 제일 되는 목적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 이라고 말한다. 하 나님을 즐겁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란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롬8:15, 딤후1:7 참조). 창조 시에 주어 졌던 명령의 내용은 동일하지만 방법에 변화가 생겼다. 2. 사람이 소중한 이유는 인물이 좋아서, 돈이 많아서, 귀한 집안이라서, 지식이 많아서, 재주가 많 아서...? 성경은 무엇이라 하는가? 하나님이 그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6): 비록 깨어지고 일그러졌지만 그래도 사람이 귀한 것 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지 않는 것 에 주목해야 한다. 처음에 그렇게 만들어졌지만 현재는 깨어지고 일그러졌다. 그러나 장차 하나님께 서 회복시키실 것이므로 소중한 것이다. 사람의 소중함에 대해서 별다른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면 부모마저 포기한 불량 학생을 바르게 이끌기란 정말 어렵다. 3. 범죄한 인류를 심판하신 후에 살아남은 노아에게 그 동안 수고했다고 특별 서비스로 육식을 허 락하셨을까? 왜 그랬을까? 육식을 하지 않고는 지탱하기 어렵도록 환경과 몸이 변했음을 암시한다. 가령 추워진 기후에 견디 려면 육식으로 지방을 보충해야 한다거나 사람이 하나님을 잘 섬길 때와 하나님께 반역한 이후에 달라진 것은 엄청나게 많다. 심지어 동 물과의 관계도 달라졌다. 어떻게? 타락 이전: 서로 어울리며 살았다. 타락 이후: 동물이 사람을 두려워 함, 전에는 안 그러더니 이제는 막 덤벼? 인간이 하나님께 반역하니 이제는 동물마저 만만하게 보고 인간에게 반역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니 동물과의 관계마저 깨어지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면 모든 사람과의 관계도 바르게 되는 것이다. 회복된 낙원에서는 다시 어울려 살게 될 것이다(사 11:6-9, 65:25) 5. 사람보다 더 영리하고 충성스런 개의 이야기는 종종 들을 수 있다. 개는 왜 사람을 그렇게 잘 따를까? 훈련을 잘 시켜서 그런가? 근본적으로 동물이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려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창조의 원칙이었는데 그런 에서 개는 그 원칙을 아직도 잘 따르고 있는 것 아닐까? 훈련을 잘 시킨 것이라기보다는 그렇게 람을 따르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개는 요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람보다 더 사람의 애정을 지하기도 한다. 사람을 잘 따르는 모습에서 창조시의 동물과 사람의 관계를 어렴풋이 그려볼 수 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그런 모습을 잃어버렸음에도 견본삼아 하나를 남겨두셨는가? 점 사 차 있 6. 계시록 7:14에 하나님께 나아오는 성도들이 어린 양의 피로 씻은 흰 옷을 입었다고 한다. 어린 양의 피는 흰색일까? 우리의 죄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야 한다. 피가 무엇이길래 성경에서 는 피비린내가 나는가? 피는 곧 생명이다(4): 모든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며, 우리의 구원과 죄 씻음에 예수의 생명이 필요 하기 때문이다. 육식을 허락하면서도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말이다. 피의 색깔이 살색이나 물처 럼 맑은 색이라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붉은 피가 생명을 보존하는데 엄청나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피를 붉은 색으로 만드신 것 같다. 7. 무지개가 뜨면 색깔을 헤아리는 버릇이 있다. 일곱까지 색깔이라고 배웠기 때문인데 아무리 헤 아려보아도 3, 4가지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 누가 빨조노초파남보라고 했지? 노아도 무지개를 보면

37 창세기 성경공부 :1~29 그랬을까? 홍수의 끔찍했던 기억과 새 언약, 다시는 홍수를 심판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감사를 드렸 을 것이다. 단 맛과 쓴 맛을 동시에 보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비가 오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이었다 가 무지개를 보면서 안도하였을 것이다. 8. 무지개는 대기의 물방울에 빛이 산란되어서 생긴다. 홍수 이전에는 무지개가 없었다가 홍수 이 후에 무지개를 만들어 두셨다는 말씀을 구속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다시는 홍수로 심판을 하지 않 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지만 기상학적 측면에서 보면 어떤 변화를 가리키는 것일까? 대기의 변화: 단순하게 무지개를 만드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대기가 엄청난 변화를 겪었음을 말한 다. 노아 홍수 이전에 무지개가 없었다는 말은 빛이 대기를 통과하면서 산란현상이 생기지 않았다 는 뜻인데 대기 상태가 지금과는 달랐다는 뜻이다. 궁창 위의 물이 지상으로 다 쏟아지고 나니 지 금과 같은 대기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아메리카 인디언이 남긴 대홍수의 그림에 보면 태양이 마치 물 속에서 보듯이 길쭉하게 그려져 있고 홍수 후의 태양은 동그랗게 그려져 있다. 고대 벽화에 그 려진 태양은 대체로 타원형으로 그려져 있단다. 태양의 모습이 한 때는 물속에서 보는 것처럼 보였 던 때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 될 수 있다. 9. 부분침수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즉 노아의 홍수가 메소포타미아 지방이나 중동지방에 있었던 큰 홍수를 과장되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본문의 어떤 점과 상충되는가?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11, 15): 노아의 홍수와 같은 그런 홍수는 다시 있지 않으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선언이다. 그렇지 않은 홍수야 항상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달리 말하면 용어가 없어서 그렇게 표현했을 뿐, 노아의 홍수는 홍수가 아니다. 다른 용어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일이 없어서 그런 말이 없을 뿐이다. 10.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지 아니하리라 (15)는 말씀을 직역하면 홍수를 위한 물이 다시 있지 아 니하리라 가 된다. 이 말에서 이전에는 홍수로 멸할 만한 물이 준비되어 있었으나 다 써버리고 이 제는 없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더 이상의 격변은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 전체 인류를 심판하는 일은 없는 것 아닌가? 물로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불? 사람들이 만들어둔 원자폭탄만 해도 지구를 몇 번 부술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이 나서지 않아도 사람들이 스스로 불심판을 자초할 수도 있는 셈이다. 박대 통령이 어느 해 이번만 표를 주면 다시는 여러분들에게 표를 구하는 일은 없을 것 이라고 했다. 그 는 그 약속을 지켰다. 사람들은 물러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표를 구걸하 지 않았을 뿐 이었다. 더 나쁜 방법, 유신이라는 또 다른 혁명을 일으킴으로 약속을 지킨 셈이었다. 평소에 이런 성경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박대통령의 말뜻을 알아챘을 텐데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찾아오셨던 그 하나님과 홍수 후에 노아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을 비교해 보자. 비슷한 점은 무엇이며 차이점은 무엇인가? 찾아오셔서 말씀이 많으신 하나님, 아담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외면하면서 하셨지만(3장의 14번) 노아에게는 직접 차근차근하게 말씀 하심. 12. 홍수는 창조 질서를 깨뜨리고 원래의 혼돈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반면에 9:1-19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홍수심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회복, 혹은 보존의 길로 인도하신다: 처음 창조 때 주셨던 복을 주실 뿐만 아니라(9:1-2) 육체가 되었다(6:3)고 하셨던 사람을 다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함(9:6). 13.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告하매... 에서 보고 는 어쩌다 보게 된 것일까 주목하고 보는 것일까? 告의 내용은 무엇일까? 그래서 내린 결론은? 아버지를 멸시: 악의적으로 보고 즐겼다는 의미이다. 술을 마시면 왜 옷을 벗을까? 14. 홍수 이전에 있었던 노아에 대한 칭찬을 기억하면서 노아의 실수를 생각해 보면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위대한 인간도 실수할 수밖에 없다. (술은 대단한 위력을 지녔다?) 이런 얘기를 성경에다 왜 기록했을까? 노아가 주인공이 아니란 뜻이다. 하나님께서 주인공이시기에 이런 노아를 통해서 역사 하시는 일을 기록한 것이 성경임을 잘 보여주는 예다. 15. 출애굽 때 여호수아에 의해 징벌되기도 하고 살아남아서 종이 된 족속을 통 털어서 무슨 족속 이라고 하는가? 가나안 족속: 함의 잘못에 대해서 왜 가나안이 저주를 받아야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함이 잘못을 저 지르게 되는 데 가나안이 도움을 주었는지, 단순하게 선지자적인 예지의 능력으로 저주를 한 것인 지

38 창세기 성경공부 :1~ 함의 잘못에 대한 저주가 지나친 것이 아닌가? 가나안이 저주를 받아서 가나안 족속이 그렇게 수난의 역사를 겪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들이 범죄 했기 때문일까? 애굽의 바로가 그렇게 징벌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 편에서 본다면 하나님의 뜻이기 도 하지만 본인의 편에서 본다면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강퍅하게 하셨다라 는 표현과 자신이 강퍅하게 했다는 표현이 반반이다. 후대에 가나안 족속이 여호수아로부터 그렇게 수난을 당하는 것도 자신들의 범죄함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가 가득 찰 때까지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셨기 때문이다(창 15:16). 이 모든 것을 내다본 예언이기 때문에 반드시 노아의 저주 때 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매사를 시간의 순서대로 살펴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하나님은 먼 훗날에 되어질 복이나 심판을 위하여 미리 준비하실 수 도 있는 하나님이시다. 17. 세 아들의 장래에 대한 예언을 간추려 보자. 1) (셈) : 종교적으로 복을 누림 2) (야벳) : 문화, 과학적으로 복을 누림 3) (함) : 계속해서 정복을 당함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흑인들을 잡아다 노예로 부리면서 성경의 이런 구절을 인용했다면 그것은 엄 청난 오해다. 자기들의 못된 악행을 성경으로 합리화하는 것이지 성경말씀이 그러했기 때문에 역사 가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바리새인들이 구약성경을 제멋대로 오해했다가 예수님에게 독사의 자식 이라고 욕을 먹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18. 홍수 심판으로 모든 죄는 사라졌을까? 하나님은 그렇게 기대하셨을까?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한 노아가 죄를 지을 수가 있는가? 이 중에 한 가지 질문만 확실하게 답을 해보자. 모든 죄가 사라질 것이라고 하나님은 기대하지 않았다. 왜냐고? 메시야를 보내겠다는 약속으로 보 아서: 여전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 에덴을 떠난 인간이다. 노아가 실수하고 손자가 저주를 받아서 비참한 처지에 빠지는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다. 그러면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하는 것은? 헤 르만 바빙크라는 위대한 개혁신학자가 남긴 말이다. 일반 정치는 때때로 지저분하고, 야비한 면을 나타낸다. 그러나 교회정치는 항상 그러하다 타락한 이후 하나님께서 특별히 간섭하지 않으면 인 간이 관계된 것은 부패하는 것이 필연적인가 보다. 그 과정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사는 그 한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내가 다시 올 때 믿는 자를 보겠느냐? 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이런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본 것이다

39 창세기 성경공부 :1~32 창세기 10 장 1. 역사상 최초의 문자를 남기고 최초의 국가로 인정받는 수메르는 성경에서는 10장에 가서야 나 온다. 역사가들은 성경의 기록이 수메르나 바벨론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수메르의 기록보다 훨씬 오래 되고 상세한 기록이 창세기에 있음에도 종교적이라는 이유로 성경의 역사적 기록을 무 시하는 것은 올바른 역사를 알 수 있는 길을 애써 피해가는 또 하나의 편견이기도 하다. 10장 어 디에 수메르에 대한 기록이 있을까? 시날(10): 수메르는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의 주변지역이다. 그 곳에서 유명해진 도시가 바벨론과 니느웨이며, 민족으로는 악카드족이 번성하기도 했다. 일반 역사는 수메르의 역사에서 시작한다. 그 러나 성경은 그 이전에 찬란한 문명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홍수로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폐허가 된 다음에 새롭게 시작된 것이다. 그 이전 문명은 신화 속으로 사라 지고, 그 흔적이 혹시 남았다가 발견이 되면 그것은 불가사의일 뿐이다. 성경의 창세기 1-10도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계시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신화나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셈이 다. 만약에 핵전쟁이 일어나서 모든 사람이 다 죽고 겨우 몇 사람이 살아남았다고 한다면 또 이런 현 상이 생기지 않을까? 상상력을 동원해 보라. 다시 이런 문명을 회복하지 못한 채 원시생활부터 시 작할 터이고 몇 세대가 지나지 않아 지금의 문명, 하늘을 날고 땅속을 달렸다는 이야기는 전설 속 의 이야기가 되고 만다. 문명의 흔적이 좀 남았다고 해도 그것은 한 두 세대에게는 전해지지만 몇 세대 지나지 않아 새로운 원시 시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홍수 이전의 기록 혹은 내용이 어떻게 전해졌을까? 홍수 직후의 선조들이 오래 살아 있어야 할 필요는 여기에도 있다. 2. 지구의 모든 인류가 노아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나뉘었단다. 아담의 후손일 줄 알았는데... 노아 는 중시조인 셈인가! 1) 그러면 한 사람에게서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도 다 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2) 모든 인류가 한 종족이란 것은 확실한가? 어떤 종족이 특별히 우등한 종족인가? 3) 종족을 나눈 성경적 기준은 무엇인가? 1) 인종을 피부색이나 신체 골격에 따라 분류하는 방법은 연속된 색상표(혹은 스펙트럼)에 선을 긋 는 것처럼 애매한 작업이다. 분류방법에 따라 수백 종족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온 인 류가 분명하게 한 종족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한 종족이 분명하다면 인류는 모든 인종의 특징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 어떤 특수한 경우에 특정한 형질이 많이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분명하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이며 더 연구해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함. 2) 인류가 한 종족이라는 데는 전혀 이의가 없다. 또, 지구상의 어떤 종족도 더 열등하거나 우등한 종족은 없다. 심지어 아프리카 오지의 미개한 종족이라도 관점의 차이에서 미개해 보일 뿐 전혀 열 등한 종족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도 결코 별개의 종족이 아니다. 똑같은 종족이다. 색깔이나 크기, 외모의 차이는 큰 차이가 아니다. 심지어 함의 후손은 흑인, 야벳의 후손은 백인이라고 하는 것도 성경적인 근거를 가진 좋은 설명은 아니다. 어쩌면 백인들이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기 위한 자기합 리화에서 나온 설명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인종을 이런 식으로 분류하는 것은 너무나 문제가 많다. 3) 족속(민족), 방언, 지방, 나라(5, 20, 31): 현재 인류학자들이 사용하는 인종 분류에는 크게 두 방법 이 있다. (1) 문화 인류학적 분류 - 정치, 문화, 언어, 지리적 요인에 따른 분류: 지저분하고 씨끄러우면 중국 인, 깔끔하고 조용하게 무리지어 다니면 일본인, 깔끔하나 좀 씨끄럽고 개별행동이 많으면 한국인, 이런 분류도 여기에 포함 될 것이다. (2) 형질 인류학적 분류 - 피부색이나 신체 골격에 따른 분류가 그것이다: 성경의 분류는 (1)번과 가 깝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다른 인종과 섞이지 않은 편이지만 여러 인종이 뒤섞여 사는 다인종 사회 에서는 (2)번의 분류방법이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앞으로 더욱 그러할 것이다. 더구나 단일 민족이 라는 우리나라에서도 엄밀하게 형질 인류학적인 방법으로 따져 순수한 토종 한국인의 모습을 열심 히 찾으면 이웃간의 분쟁과 미움만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서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3. 가장 땅을 많이 차지하고 번성한 족속은 누구의 후손인가? 함(가나안): 먼 훗날 가장 하나님과 멀어질 백성이 가장 번성하고 땅을 많이 차지하는 것은 버림받 은 가인의 족보가 셋의 족보보다 더 화려한 것과 마찬가지, 야곱보다 에서의 후손이 더 화려해 보 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삶이 우리보다 더 화려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진정한 행복은 결코 이 땅에서 번영하는 것이 아니다 장에 보면 언어가 혼잡케 되어 온 인류가 흩어지게 된다. 그 사건이 언제쯤 있었는지 정확하 게 알기는 어렵지만 어쩌면 그 시기를 짐작케 하는 표현이 10장 어디엔가 있지 않을까? 세 곳을 짚으시오. 4절 다음, 18, 25: 25절의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란 표현에 특히 주목해 보자. 이것이 꼭 인류가 흩어 진 사건이냐 아니냐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사건 외에 달리 기록할만한 다른 일이

40 창세기 성경공부 :1~32 있었을까? 또 바벨탑의 주역이 니므롯이라면 니므롯의 시대가 벨렉의 시대보다 조금 앞선 것 같아 보인다. 11장의 바벨탑 사건이 위치해야 할 자리도 여기다. 참고 삼아 김성일 장로님의 홍수이후 (1-4) 를 읽어보시도록 권합니다. 5. 바벨탑 사건을 일으킨 주동자는 누구일 가능성이 가장 높을까요? 니므롯 = 반역자, 특이한 사냥꾼이란 짐승을 난폭하게 잡는 사냥꾼이란 뜻인데, 잔혹한 전쟁광과 비 슷하다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이런 사람이 권력을 잡는다. 이런 힘을 가진 자를 제거하고 민주주의 가 제대로 살아남으려면 투표에 적극 참여하는 수밖에 없다. 민도가 낮을수록 대체로 이런 사람들 이 정치판에서 힘을 쓰는 법이다. 6. 만약 중국 사람도 노아 홍수 이후에 갈려 나간 것이라면 그들이 처음에 글자를 만들 때 그들이 공통적으로 잘 아는 내용(창 1-9)을 가지고 글자를 만들었을 것이 당연하다. 다음 글자들의 구성이 창세기와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살펴보자. 靈 = 雨 + 口口口 + 신령(령) + 示 且 조상(조) 보이다(신을 의미) 禁 (巫 = 人+工+人: 일하는 세 사람) 비 세 사람 세 사람이 일함 (삼위일체 하나님을 묘사) = 祖 巫 = 두 나무 裸 = 示 하나님이 명하다 (선악과와 생명나무) 衣 + 果 벗다(라) 옷 始 = 비로소(시) + 林 금하다(금) 같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같음) 실과 (선악과를 먹고 벗었음을 알게 됨) 女 + 여자 厶 + 남모르게 口 먹다 (비극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7. 사람의 동작을 나타내는 글자를 만들려면 사람 인(亻)을 사용하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그런 데 수 없이 많은 두인(두 사람 인 彳) 변의 글자들은 무슨 근거로 만들어졌을까? 往(갈 왕) = 彳(두 사람) + 主 來(올 래) = 木 + 人人 두 사람이 나무 사이에서 나왔습니다. 征(정복할 정) = 彳(두 사람) + 正 坐(앉은 좌) = 人人 + 土 두 사람이 땅에 앉았습니다. 從(좇을 종) = 彳(두 사람) + 人人 + 足(발) 後(뒤 후) = 彳두 사람으로부터 많은 아이가(幺) 계속(夂) 태어났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행동을 나타냅니다. 8. 여덟 팔 변(八)의 글자들은 성경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穴(굴 혈) = 여덟 사람(八)이 임시로 거처를 정한 곳 空(빌 공) = 여덟 사람이 일하기(工) 위해서 나갈 경우 동굴(穴)은 텅 비게 되었다(空). 分(나눌 분) = 여덟 사람이 농사를 지어 나누어 먹었습니다. 노아의 가족들의 사는 모습 9. 다음 글자들은 어떤 사건과 관련이 있을까? 塔(탑) = 인류(人)가 하나의(一) 언어(口)를 갖고 진흙(土)으로 시작한 것을 나타냅니다. 亂(=舌+乙: 혼란할 란) = 혀(舌)를 굽혀서(乙) 언어가 혼잡해 졌습니다. 바벨탑 사건 (언어의 혼란)

41 창세기 성경공부 :1~32 창세기 11 장 1. 홍수로 인한 심판을 사람들은 잊어버렸을까? 잊지 않았을까? 심판이 일어난 이유는 잊어버렸고, 심판이 있었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온 지면에 흩어 짐을 면하자고 하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원인은 잊어버리고 결과만 기억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수련회 다녀와서 우스운 이야기만 기억하고 정작 중요한 내용은 잊어버린다? 아버지가 매 를 든 이유는 잊어버리고, 맞았다는 사실만 기억하는 것도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2. 탑을 쌓는 것이 잘못인가? 높이 올라간 것이 잘못인가? 이름을 낸 것이 잘못인가? 무엇이 제일 문제인가? 탑을 쌓는 일이 잘못이라기보다는 동기에 문제가 있다. 하늘에 닿게, 우리 이름을 내자, 흩어짐을 면하자 는 것은 편만하라, 충만하라,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는 하나님의 약속을 무시하고 있 거나 아니면 잊어버렸거나. 기술의 발전이 유익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이 바르냐 그르냐 가 더 중요한 것이다. 생각이 잘못된 경우라면 어떤 일을 하건 유익이 될 수가 없다. 3. 바벨탑을 쌓은 동기는 몇 가지 있지만 그 중에서 특히 왜 흩어짐을 면하자고 했을까? 왜 그것 이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이유가 되는가? 충만하라,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에 대한 고의적인 반역이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 셨을 지라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도 크다. 심판만 기억하고 심판받은 인생을 불쌍하게 여기는 하나 님의 마음을 전혀 기억하지 않고 있다. 4. 홍수 이후 사람들이 차츰 번성하고 있을 때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독재자가 나타난다. 한 군 데 모여 거대한 탑을 만드는 작업은 개인의 주체적인 결단이 무시되는 전제군주적인 권력이 없이 는 불가능하며 이런 전제군주적인 사람의 나라는 땅을 정복하라, 땅에 충만하라 는 하나님의 말씀 에 어울리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야심가들이 온 세계를 자신의 권력 밑에 두기를 원했으며 세계 적인 단일 국가를 꿈꾸어 왔던가? 다른 민족을 점령하고 영토를 확장하려는 전제군주의 노력에 가장 큰 장애가 무엇일까? 언어의 혼란: 하나님의 의도는 개인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요구하고 있다(중앙 집중식이 아 닌 개별 난방식처럼). 터어키나 이라크에 흩어져 있는 쿠르드족이 그렇게 수난을 당하면서도 쉽사리 각 나라에 동화되지 않는 것은 다른 것도 있겠지만 언어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언어의 혼란은 이런 전제군주의 출현을 막기 위한 기막히는 하나님의 작전이라고 여겨진다. 교회사에서도 흩어지 라는데 흩어지지 않고 똘똘 뭉쳐 있다가 두들겨 맞은 예가 신약에도 있다. 초대 교회에 대한 박해 가 바로 그것이다. 참고) 언어로 사회를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소설에 처음 사용한 사람은 1984, 동물농장 의 저자 조지 오웰이다. 20세기에 와서 겨우 생각해 낸 기발한 아이디어가 성경에는 거의 3,000여년 전에 이 미 기록되어 있다 의 주인공은 절대자 Big Brother 의 통치에 장애가 되는 사상을 표현하는 단 어를 모든 문헌에서 제거하는 일을 맡고 있다. 단어를 모두 없애고, 사용을 금하면 동시에 사상마저 사라진다는 것이다. 북한에는 자유라는 단어가 없거나 있다면 아주 나쁜 의미일 것이다. 우리와 같 은 자유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어를 배우게 되면 그런 개념이 반드시 도입될 수밖에 없고 체제에 위험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의 단어가 없으면 그런 자유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 하게 되고 따라서 독재정치가 수월해 지는 것이다. (더 생각해 볼 일) 어머니와 아들이 무인도에 불시착했다. 그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날까? 언어학적 인 대답은 이렇다. 아들이 어머니라고 부르는 한 불가능하다. 언어가 사람의 행동이나 감각에 영향 을 줄까? 미국 사람들은 뜨거움과 매움을 구별하지 못한다. 단어가 구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단어가 구분되어 있으면 그 차이를 저절로 안다. 컴퓨터를 통한 자동번역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까? 아주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것은 가능하겠지만 미묘한 차이나 서로 다른 개념은 번역이 불가능 하다. 언어가 얼마나 복잡미묘한 것인지 아는 사람에게는 바벨탑의 언어혼란이 놀랍도록 충격적이 다! 5. 여러분이 만약에 하나님이라면 온 세상 사람들이 힘을 합쳐 쌓는 탑을 어떤 방법으로 막겠는 가? 번개와 천둥으로 때려버려? 지진으로 뭉개버려? 지도자급만 골라서 유배를 보내버린다? 하나 님께서 왜 이런 방법을 쓰셨을까? 사람들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일을 효과적으로 중지시켰다: 홍수 때에 많은 사람들이 죽임당한 것 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6. 인류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많은 언어가 있다(6,809 Ethnologue. 2000년 1월). 진화론자들은 언어도 진화과정에서 생겨났다고 말한다. 그래서 최초의 언어가 무엇일까 하고 각 언어의 공통점을 찾고 연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각각의 언어에는 진화로 설명할 수 없는 근본적인 간격이 무수하다. 가 령 우리나라 말은 조사(토씨)를, 영어는 순서를 중시하고 어떤 언어는 어미변화를 이용하고... 그러 다가 비교언어학은 진화를 부정하게 될 것이다. 무엇이라고 하면서?

42 창세기 성경공부 :1~32 언어와 언어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언어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하는 생물이다. 그러나 생물이 한 종 내에서 변이는 가능하나 다른 종으로의 변화는 불가능한 것처럼 구조가 거의 비슷한 어족이 있기는 하지만 어떤 언어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서 공통분모를 찾기란 불가능하다. 하나님 께서 의도적으로 혼란케 하시지 않았으면 이렇게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도록 구조가 달라질 수 없다 는 뜻이다. 점진적으로 변화했다면 언어 사이에 있는 근본적인 차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성경번역선 교회(GBT) 자료에 따르면 성경번역이 필요한 언어가 아직도 3,000여 개란다. 신구약이 전부 번역된 언어가 371, 신약만 960, 일부 번역된 것이 902, 현재 번역이 진행 중인 언어는 1,500 개이다. (1999년 12월 기준) 하나님의 지혜가 작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언어가 이렇게 갈라졌을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7. 언어는 진보하고 있을까? 퇴보했을까? 퇴보: 1)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을 때만 해도 숨의 강약을 나타내는 방식이 ㅇ ㅎ 사이에 두 가 지나 더 있었다. 지금 우리는 그것을 전혀 구별하지 못한다. 언어는 점점 단순화하고 있다. ㅇ 은 소리가 나지 않는 자음이라고 한다. 그러나 처음에 한글을 만든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목구 멍을 통과하는 숨의 양이 가장 작음을 의미하는 글자다. 단계적으로 강해지는 것(ㆆ, ㆁ, ㆀ, ㆅ)을 나타내다가 가장 강한 글자를 ㅎ 으로 표시한 것이다. 2) 고대 언어가 현대 언어보다 변화가 훨씬 더 심하고 어렵다. 배우는 우리에게는 엄청나게 복잡한 변화이지만 그 언어를 쓰는 사람에게는 전혀 그런 변화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사용하는 사람에게 는 전혀 어렵지 않고 자연스러우면서 배우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작전(?) 이 아닐까? 8. 인류의 범죄로 말미암아 언어가 혼잡해졌지만 모든 죄를 용서받은 낙원에서는 다시 언어가 통 일될 것이다. 그 예를 신약에서 찾아본다면? 성령 강림 이후 방언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당시의 모든 외국인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각 나라 사 람이 각 나라의 방언으로 말을 할지라도 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행2:4-12, 계7:9) 묘한 언어의 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어교사는 어떻게 하지? 성경교사도 필요 없어질 텐데... 천국의 언어는 한국어라고 주장하여 수많은 외국인들이 천국언어를 배우기 위해서 한국을 찾는다 고 한다.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국을 빛낸 인물에 들어갈까 두렵다! 통일교 얘기다. 9. 어떤 공감대를 형성하거나 만들어 주면 많은 사람을 하나로 묶을 수가 있다. 가령 선거에서 학 연, 지연, 혈연을 이용하여 몰표를 얻는 방법도 그런 예가 될 것이다. 모래에 자석을 갖다 대면 모 래 속의 쇠붙이만 딸려 나오듯이 이런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면 사람들이 아무리 뒤섞여 있어도 상황에 따라 무서운 단결력을 발휘할 수 있다. 바벨의 사람들이 하나로 단결하여 반역할 수 있었 던 것은 어떤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가? 한 언어(1, 6), 한 민족(6) 10. 예수님 이후에 주연배우가 된 사울은 교회를 핍박하면서 등장하게 된다. 그가 주동이 된 핍박 을 피해서 신자들이 흩어졌지만 결국은 그만큼 복음이 널리 퍼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가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으니 핍박이라는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복음을 널리 전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11장의 어떤 점과 유사한가?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9:7)는 명령을 무시하고 흩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 언어의 혼란이라는 쓰라린 매를 맞고 흩어짐. 11. 다음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해석은? 홍수 이후의 나이 변화: 자연에 심대한 변화가 있었음을 암시한다고 보아야 한다. 서서히 줄어든 것 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줄었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아래 도표를 참조). 12. 다음 도표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연도별) 노아 (前略)--502(1558)--600(홍수, 1656) (2006) 셈 (1658) (2158) 아르박삿 --35(1693) (2096) 셀라 --30(1723) (2126) 에벨 --34(1757) (2187) 벨렉 --30(1787) (1996) 르우 --32(1819) (2026) 스룩 --30(1849) (2049) 나홀 --29(1878) (1997) 데라 (1948) (2083)

43 창세기 성경공부 :1~32 (나이별) 노아 셈 아르박삿 셀라 에벨 벨렉 르우 스룩 나홀 데라 아브람 이삭 야곱 요셉 노아와 셈은 그 후손들이 얼마 살지 못하고 죽는 것과 데라와 비교한다면 자기 나이의 ⅓밖에 안 되면서 같이 늙어 가는 것을 목격했다. 홍수를 체험한 노아가 살아있는 동안에 사람들이 홍수의 원인과 참상을 잊어버리고 바벨탑을 쌓았 다. 아, 끔찍한 인생! 6.25를 직접 체험한 사람들은 공산주의에 대하여 치를 떨지만 그 다음 세대만 해도 그렇게 심각하게 듣지 않는다. 머 그럴라꼬! 하면서. 바벨탑 사건이 터질 때 노아가 살아 있 었다고 보아야 한다. 노아의 홍수에 관한 이야기가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었던 이유가 그 장본인들이 살아 있었기 때문 이라고 해야 한다. 몇 세대만 지나면 신화가 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일부에 의해 정확하게 전해 질 수가 있었을 것이다. 구전으로 전해졌는지 자료가 있었는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지만 구전으 로 전해졌다면 어떻게 정확하게 전해졌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판소리 완창에 6시간이 걸린다고 하던가? 음정, 박자, 가사, 추임새까지 정확하게 배워서 그대로 부른다는 것이 불가능한가? 특별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길고 긴 것이 정확하게 전달이 된다. 같은 원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히브리어 성 경은 단순한 기사가 아니다. 판소리보다 더 아름답고 그레고리안 챤트보다 더 감미로운 음악이다. 그래서 모음도 없이 자음만으로 표기되었음에도 정확하게 전달이 되었다. 지구의 환경이 바로 나빠진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악화되었던 것 같다. 수명은 성장한 이후의 환 경보다는 태어날 때의 환경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더 크게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가령, 일벌이나 여 왕벌은 다 같은 암펄이다. 차이는 여왕벌은 애벌레 때 로얄제리를 더 먹는다. 그것 때문에 여왕벌은 몇 년씩 살지만 일벌은 길어야 수 개월이고 일을 많이 할 때는 한, 두 달에 불과하다. 사람도 태중 에서 나쁜 영향을 받는 것은 작은 것일지라도 치명적인 경우가 허다하다. 홍수 후에 태어난 세대는 조기에 출산했고 절반 정도로 수명이 단축되었음(1차)을 알 수 있고 세상이 나뉘었다는 벨렉 때 또 절반 가까이 단축되었음(2차)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끔찍한 변화가 계속되었음을 짐작 케 한다. 그 이후에는 서서히 줄어서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인생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형벌의 모습으로 오래토록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기 때문에 구원의 역사를 그만큼 빠르게 진행시키시려는 의도가 아닐까? 노아는 홍수 이후 350년을 살았는데 환경 변화의 영향이 별로 없었다. 나이가 많이 든 분이 좀 더 오래 살겠다고 건강식을 하고 담배를 끊어도 별로 영향이 없는 것에 비기면 되지 않을까? 셈은 홍수 이후 500년을 살았는데 그 이전 세대에 비하면 300년 정도 줄었으니까 홍수 때에 있었던 환경변화의 영향을 제법 받은 모습이다. 홍수 직후에 태어난 아르박삿, 셀라, 에벨은 약 500년 정도 수명이 단축되었으니 홍수 때에 생긴 변 화가 인간의 수명을 절반으로 줄인 셈이다. 세상이 나뉘었다고 하는 때에 태어난 벨렉, 르우, 스룩은 또 절반 정도 줄었으니 이때에 또 한 번의 변화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아브람이 고향을 떠날 때도 노아가 살아 있었다. 노아가 맡은 임무 대신 새로운 민족을 이루기 위 해서 새로운 사람을 선택해서 일을 시작하셨다. 13. 아브람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떠날 때의 나이가 75세였다(12:4). 행 7:4에 의하면 아브람은 최 소한 데라가 130세 이후에 낳은 아들이다. 아브람이 맏이일까? 맏이가 아닐 가능성을 찾아보시오. 하란이 세 아이를 낳고 먼저 죽은 사실로 보아 하란이 맏이일 가능성이 많다. 하란의 딸 밀가가 작 은 아버지 나홀과 결혼한 것을 보아 나홀이 하란보다 나이가 훨씬 적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아 브람이 롯과 나이 차가 적거나 롯이 많을 수도 있다. 아브람이 주인공이 되다 보니 먼저 쓰게 된 것 아닐까? 롯의 결혼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데 아브람이 이삭을 낳기도 전에 장성한 딸이 둘이나 있었던 것을 감안해보면 우르를 떠나기 전에 결혼한 것 아닐까? 나홀은 분명히 아브람의 동생이다 (24:48). 14. 아브라함의 위대함을 말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했다는 증거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다는 것(히 11:8) 을 든다. 그러나 그 순종에 몇 가지 흠이 될만한 요소를 찾아보자

44 창세기 성경공부 :1~32 목적지가 분명히 가나안이었다( 히 11:8): 어릴 적부터 존경하는 목사님께서 전화해서 필리핀 선교 지에 같이 가자고 해서 예 했다. 얼마 후에 자비다 고 하셨다. 또 예 했다. 필리핀 비행기 삯을 보내라고 누군가 연락을 해서 보냈다. 얼마 후에 또 비행기 삯을 보내란다.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마닐라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가가?? 이라는 곳으로 간다고 했는데 발음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누 구는 민다나오 섬으로 간다고 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또 부쳤다. 누구와 함께 가서 무엇을 해야 하 는지도 모르고 2주간의 강의 자료만 챙겨서 갔다. 교인들이 어디로 가느냐고 하길래 필리핀 이라고 했다. 필리핀 어디? 몰라 전화가 되는 곳인지, 한국 돈이 사용되는지... 도무지 몰랐다. 가자고 하신 목사님만 따라서 하염없이 갔다. 도착하고 보니 필리핀의 민다나오 가갸얀데오르였다. 처음 보는 곳, 처음 보는 사람들, 헌신적인 선교사, 감동 그 자체였다. 이 선교여행이 하필 아브라함의 이 장면 을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좋은 예가 되어버렸다. 난 그 목사님만 믿고 따라갔을 뿐이다. 목적지를 알 았냐고? 알았다고 할 수도 있고, 몰랐다고 할 수도 있다. 서로 다른 두 이야기가 아브라함의 어려웠 던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셈이다. 그리로 가려고 한 것은 그의 아버지였다. 바로 가지 않고 하란에 오래 거하였다. 가나안으로 여행할 때 하란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마지막 국경 도시이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다른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쉽게 국경을 넘지 못했다는 말이 다. 마지못해 떠나간 측면이 더 강하다. 아브람의 순종도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 진 십자가 이다. 시몬은 그날 얼마나 욕을 했을까? 그냥 구경삼아 머리를 디밀었다가 촌놈에 힘깨나 쓰겠다 싶은 탓 에 붙들려 억지로 십자가를 졌다. 욕을 했거나 말거나 그로 인해 그의 아들(루포)는 신약시대에 유 명한 사람이 되었다. 결코 아브람이 신앙이 좋아서 하나님께서 불러내신 것이 아니다(수 24:2). 멱살 잡힌 채 끌려갔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하나님의 작품이다! 15. 데라의 가족 관계를 도표로 그려보시오(11장, 22장). 데 라 아브람 하란 나홀 롯 이삭 에서 야곱 레아 이스가 <밀가는 나홀과 결혼> 브두엘 라반 밀가 리브가 라헬 <리브가는 이삭과 결혼> <레아, 라헬은 야곱과 결혼> 16. 데라의 가족 중에서 고향을 떠나 가나안으로 출발한 사람과 고향을 떠나지 않은 사람을 구별 해보고 느낌을 말해보자. 나홀은 아버지를 따라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데라가 아들과 손자를 데리고 고향을 떠나는 것이 쉬 운 일이 아니라 어쩌면 가족 간의 의견일치를 볼 수 없으면서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을 것 이다. (일가족이 북한을 탈출해서 대만에 남자 한국으로 가자고 해서 고민하던 이만철씨 가족을 생 각해 보자.) 그 후에 이 족속들이 대거 이동했던 것으로 추정이 된다. 그래서 야곱이 나홀을 만났던 곳이 밧단아람이다 :27-11:32에서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를 찾아보시오. 하란(인명이면서 동시에 지명) 18. 가나안으로 가려고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의 아브람은 당시의 시각으로 보면 대단히 실패한 인생이다. 실패라기보다는 무능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엇 때문에? 일부다처 사회에서 한 아내를 두고도 가장 중요한 아들이 없었으니: 지금도 한 남자, 한 여자에게 평생 순결을 지키며 살려는 사람을 존경하기보다는 못난 사람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19. 북한의 나진, 선봉지역에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몹시 노력한 끝에 겨우 승낙을 얻어냈단다. 그 것도 십자가를 붙이지 않고 공장의 한 부분만을 교회로 쓰기로 조건을 달고. 그것마저 대단한 성 과라고 생각하면서 북한 선교를 위하여 기금을 조성해 둔 어떤 교회에 교회건축을 위한 헌금을 요청했다가 거절을 당했단다. 이유는 회사 공장의 일부가 아닌 곳에 십자가를 당당하게 세운 교회 를 짓겠다는 것이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렇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무서운 죄악이 도사리고 있 다. 그 죄가 무엇인지 본문에서 찾아보자. 북한 당국에서 그런 교회를 허락할 턱이 없는 상태에서

45 창세기 성경공부 :1~32 그런 고집을 부리면서 찾아온 기회를 무산시킨다는 것은 교회 건축을 주님을 위해서 하려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자기 이름을 내려는 죄악: 북한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기금을 마련하고 많은 돈을 적립해 둔 교 회는 많다고 한다. 바람직한 일인지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 설교 제목> 흩어짐을 면하자?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잘 먹고 잘 살아? 힘을 모아 하나님을 대 적해?

46 창세기 성경공부 :1~20 창세기 12 장 1. 떠나라 는 설교가 많더라. 더 나은 미래를 향하여 현실에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하는 설교일텐데 꼭 이렇게 떠나야만 하는 걸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으로 가는 것(1)이 더 중요하다: 떠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준비 하신 곳으로 가는 것이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고른 땅이다(겔 20:6). 그 땅에서 하나님 께서 이루려고 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고향을 떠나라고 하는 것이다. 무조건 떠나는 것이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어디로 가느냐는 것이 중요하다. 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는 말씀이 오늘날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개신교인들 뿐만 아니라 천주교, 유대인, 심지어 이슬람교도들까지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여긴다. 가 장 큰 차이점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느냐 아니냐에 따라 구분이 된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하 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으니 회개하고 돌아서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고 불리기 어렵다. 결국은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2000년 전에 쫓겨난 땅에 다시 나라를 세우는 기적을 일으키긴 했지만 진정한 회복은 예수를 영접할 때 이루어질 것이다. 혈통적인 아브 라함의 후손이라는 말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3.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아름다운 교제를 원하였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 리고 말았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에 하나님은 셋을 통하여 믿음의 후예들을 기대했으나 모두가 타락하고 말았고 홍수 심판을 초래했다. 노아의 가족을 통하여 믿음의 후예들을 기대했으나 별로 소용이 없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불러내어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실 모양이다. 무 슨 계획을 갖고 계시길래 이렇게 끈질기게 사람을 부르고 계실까? 답을 짐작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본문에 있다면? 3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땅의 모든 족속이 받을 복이 무엇이겠는 가? 메시야를 아브람을 통해서 이 땅에 보내겠다는 말씀이다. 그 약속은 뒤로 가면서 차츰차츰 분 명해진다(22:18). 아브람의 이름을 창대케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로 인해 땅의 모든 족속이 메시 야를 통한 복을 누리게 하는 것이 아브람을 불러낸 목적이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다. 나만 이런 복을 누리라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나의 이웃과 모든 족속에게 이 기쁜 소식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이다. 4. 아이들 만화에 나오는 말이지만 어떤 戰士에게 방탄막이 둘러처져 있는 경우가 있다. 적이 공 격해오면 총알이든 몽둥이든 튕겨나갈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공격하는 사람이 피해를 입는 그런 방 탄막(요즈음 아이들은 반사 라고 하더라)을 아브람이 입고 있었다. 어디에 그런 말이 있는가?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리니: 신앙 문제로 우리 남편을 핍박하고 괴롭힌 사람치고 지금까지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는 어느 집사님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 이 말씀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애꿎은 소리를 퍼부어도 우리는 웃으며 넘어갈 수가 있다. 개가 짖는다고 기차가 안 가나?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 학생에게 충고해 준 말이다. 개가 짖는다고 따라 짖니? 5. 포항중앙국민학교 6학년 때(1967년도) 담임선생님 성함이 김 복원 이었다. 26년 후에 뜻하지 않 게 그 아들을 만났다. 그 선생님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는데 학교 다닐 때 에는 몰랐는데 그 분이 독실한 장로님이시라고 해서 더욱 반가웠다. 이제는 정년은퇴를 하시고 대 구에 계신단다. 이 귀한 시간과 지면에 나는 왜 이런 쓰잘 데 없는 말을 하고 있을까? 복 福자, 근원 原자 라는 이름이니 틀림없이 아브람에게 하신 말씀에서 이름을 지었을 것이라는 생 각 때문에: 우리의 이름은 불행한 경우가 많다. 항렬에 따라서 아무렇게 지었거나 사주팔자를 살펴 서 지었거나... 우리 아이들에게는 적어도 부모의 신앙이 전달되는 이름이어야 한다. 아이 이름이 새날 이면 그 부모는 틀림없이 운동권 출신이란다. 신앙적인 이름 하나가 평생 그를 붙들어 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무리 신앙 없는 자처럼 살고 싶어도 이름만 듣고도 불신자들마저 그를 믿는 사람으로 인정해 버리는 데는 타락해볼 재간이 없더란다. 6.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에 하란에 꽤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는 증거를 찾는다면? 5: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 아브라함이 위대하다는 증거로 말씀에 순종하여 고향을 떠나,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떠났다지만 완벽한 순종은 아니다. 가나안으로 가기를 거부하고 하란에 오랫동안 정착했었음에 틀림없다. 재차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거듭 명령하셨기에 떠났고 마침내 (5)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 11:8)라는 말씀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 비록 부 족함이 많고 억지로 떠밀려 순종했다고 해도 그것을 귀한 것으로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모세가 그랬고, 구레네 시몬이 그랬다. 억지로 진 십자가조차 그렇게 은혜로운 것이다. 결코 성경은 아브라함이 위대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허물투성이 인간일 뿐이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47 창세기 성경공부 :1~20 그런 아브람을 인도하여 위대한 신앙인으로 만들어 가신 하나님이다. 아들을 바치기까지 순종한 것 은 대단한 신앙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브라함의 마지막 사건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훈련기간이 다 끝나고 마지막 테스트에 합격한 셈이다. 그런 신앙이 가능하도록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셨다는 말이 다(cf. 고전 1:26-29, 수 24:2). 7. 아브람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나이가 75세였다. 25년이나 더 기다려서 아들을 얻게 된다. 짐작 이지만 장가는 몇 세쯤에 들었을까? 30대: 당시의 일반적인 결혼 적령기는 30 전후였음을 참고하면(11:12, 14, 16, 18, 20, 22, 24) 그랬을 것 이다. 당시에는 자식이 없는 것이 가장 불행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에게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약속은 정말 믿기 어려운 말이다. 8.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 이 말이 잘못이 아니다. 단지 너무나 세속적인 복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바람에 문제가 된 말이다. 예수 믿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다. 아니 그것보다 더 좋은 표현은 예수 믿는 사람은 ( )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때문에 우리의 이웃과 형제들 이 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복의 근원: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란다(개역). 그것은 그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 게 될 것이란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복을 누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로 말미암아 다른 이 에게 복이 전해져야 하는 복의 근원이어야 한다. 복의 최종 기착지가 되면 안 된다. 9.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기 어려운 조건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일가친척을 떠나야 한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지금 집을 떠나서 먼 아프리카로 떠나라 하면 떠날 수 없는 이유는 무 엇입니까? (정답은 없음) 낯익은 사람을 떠나는 것 낯선 음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10. 아브람은 오랜 여행 끝에 가나안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하나님께 단을 쌓았다. 그는 가는 곳마 다 단을 쌓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다. 이 말도 대체로 맞는 말이지만 흠을 잡는다면? 자기가 먼저 단을 쌓았더니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면 그렇게 칭찬을 해도 좋지만 하나님께서 먼저 나타나신 후에 자기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7)께 단을 쌓았으니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 런 다음 거기에 거해야 하는데 버려두고 옮겨간 것도 문제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경우를 살펴보 면 대부분 아브람이 힘들고 어려울 때였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 람을 먼저 찾아오셨다는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11. 아브람의 행위 중에서 잘못을 찾아보시오. 1) 기근으로 약속의 땅을 떠난 것 2)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아니함 3) 자신의 목숨만 생각함(13), 비굴한 삶을 도모함 4) 아내를 팔아 많은 재물을 얻음: 차라리 돌려주었더라면... 아내나 딸을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던 당시 상황(창 19, 삿 19장)을 고려해보면 그렇게 나쁜 행위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의견도 있으나 적어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에게 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의견이 다수임. 12. 약속의 땅,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해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도 기근이 오나? 온다(10): 예수 믿는다고 이 땅의 모든 불행이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세상의 질서대로 돌 아간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이런 세상에 매몰되지 않을 뿐이다. 아브람의 경우라면 하나 님을 믿고 조금 더 기다렸어야 했다.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려는 순간에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간 것이다. 13. 데이트 중에 한 무리의 깡패를 만났다. 남자가 혼자서 도망 가버리고 여자만 잡혔다. 봉변을 당하기 직전에 멋있는 사나이가 나타나서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상대를 바꾸어서 새로 연애를 시작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도망 가버린 남자를 어떻게 하지?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 고 대답을 하길래 한 번은 만나야 한다 고 가르쳐 주었다. 어떻게 그냥 안 만나느냐? 최소한 뺨이라도 한 대 후려갈기고 안 만나야지. 아브람이 한 짓이 꼭 이 모양이라는 말 이다. 아니, 피치 못할 형편에서 도망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 궁리한 짓이니까 이 경우보다 훨씬 더 나쁘다. 14. 아내를 빼앗기고 많은 재물을 얻은 아브람은 그 날 기분이 어떠하였을까? 혹은 그 날 밤에 무 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고통 속에 밤을 지새웠을까? 무능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니면 이왕에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얻은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이나 하고 있었을까?

48 창세기 성경공부 :1~ 바로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브람의 씨를 통해서 메시야를 보내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이 때 아브람의 씨란 아브람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래까지 포함되어 있다. 사래를 통해서 얻은 아브람의 씨만이 아브람 의 씨로 인정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메시야의 길을 막는 엄청난 잘 못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었다. 이것이 확대되어 현실로 나타난 것이 예수의 탄생 때 있었던 유아학 살사건이다. 16. 아브람이 특별히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이유가 될 만한 것이 본문에 있는가? 아무 것도 없다. 어쩌면 제일 불쌍한 아들이었을지도(자식이 없는) 모른다 장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은 누구인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 손해 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바로, 사래를 좋아했기 때문(사래의 신분을 알지도 못한 채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이 있는 여자인 것도 모른 채), 하나님 편이 되는 것: 자신의 잘못이 없음에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바로의 이런 불행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400여 년 후의 바로도 똑같은 이유로 더 큰 불행을 자초하게 된다. 자신의 선하고 악 함이나 잘나고 못남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느냐 마느냐하는 것이다. 이왕에 하나 님 없이 살려면 믿는 사람 근처에는 얼씬도 않는 것이 낫다. 어설프게 하나님을 아는 친구 옆에 있 으면 내가 애꿎게 당할 가능성이 많다. 하나님께서 그 친구를 위하여 훈련시키시는 데 나만 죽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18. 아브람의 경우나 이삭의 경우에는 기근 때문이었지만 무슨 이유이었건 간에 하나님께서 주시 겠다고 약속한 땅을 떠나서 잘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사실을 잘 아는 야곱은 마땅히 애굽으로 가야하는 데도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주저했을 때 오히려 하나님께서 걱정하지 말고 가라고 하셨 다(46:3). 약속의 땅을 떠난 적이 있는 사람들의 예를 아는 대로 말해보자. 아브람, 이삭, 야곱, 나오미, 다윗(하나님께서 도로 들여보내심), 상징적이지만 롯(아브람을 떠남): 비 록 어려움이 있을 지라도 약속의 땅에 머물러 있는 것이 고생을 적게 하는 비결이다. 내 자신의 방 식대로 처리하다가 더 어려운 일을 겪게 된다. 19. 애굽으로 가는 바람에 아브람은 이런 저런 아픔을 겪었다. 본문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이 일로 훗날 아브람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일이 숨어있다. 뭘까? 애굽에서 하갈을 얻어서 돌아온 일(16절의 노비 에 포함되었을 것): 하갈은 애굽인이다. 아마 이 때 샀거나 왕이 사래를 돌려보내면서 딸려 보냈을지도 모른다.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이스마엘이 태어 나는 불행이 생긴다. 가지 말아야할 애굽으로 갔던 후유증 중의 하나인 셈이다 때의

49 창세기 성경공부 :1~18 창세기 13 장 1. 창 12:9에 보면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갈 때 남방으로 갔다고 한다. 13:1, 2에 남방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데 왜 또 남방으로 올라간다고 하는가?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갈 때도 남방이라 하고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올 때도 남방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남쪽 방향 이라는 뜻이 아니라 가나안과 애굽 사이에 있는 지명(고유명사)이다. 원래 성경의 지명 에는 옆에 쌍줄 이 그어져 있는데 개역성경의 남방 에는 없다. 아마 다른 설이 있는 듯 싶지 만 문맥상 지명이 틀림없다. 2. 애굽으로 들어갈 때 아브람은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른다. 힘이 되어줄 사람은 하나도 없는 외 국에 단신으로 들어왔으니 아내를 빼앗기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가족과 재산 을 지켜낼 능력이 전혀 없음에도 아내와 육축과 은금이 풍부한 채로 애굽에서 나오고 있다. 누군 가가 웬 재산이냐? 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지? 애굽에서 나올 때 아브람의 심정을 재산과 관 련해서 설명해보자. 재산. 재산이 많아서 아주 기뻤거나, 재산만 생각하면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 다. 하나님의 도우심에 무한히 감사하면서도 낯이 뜨거움은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 어떻게 해서 이렇게 부자가 되었느냐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지? 차마 아내를 팔아서 번 것이라고 말 못 하 겠고... 찝찝하다! 3. 재산이 많은 것도 복인가? 위험한 복이다: 그것 때문에 두 사람의 가족이 다투게 되고 결국은 헤어지게 된다. 더 중요하게 기 억할 것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아브라함은 여전히 복을 누리지만 복의 근원을 떠나 멸망받을 소돔 으로 간 롯은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한 번은 포로로 잡혀가고(14장, 이게 일차 경고라 고 봐야 하는데...)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쳐 짐승같이 살게 된다(19장). 재산의 많고 적음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느냐 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다. 산지냐 평지냐? 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땅이냐 죄악으로 가득 찬 땅이냐? 의 문제다. 오늘날 성도들에게 복의 근원은 교회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복을 주시기 때문이다. 교회가 말씀 위에 바르게 서 야 성도들이 복을 누리는데 요즈음 이상한 교회가 많아서 걱정이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란다(딤전 6:10). 돈의 종이 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돈의 주 인이 되는 것은 많은 선행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돈을 나쁘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에 따라 살지 못하는 자신을 탓할 일이다. 4. 롯과 헤어질 때의 일은 아브람이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삼촌으로서 먼저 선택할 권리가 있음에도 선택권을 양보한 것: 그 동안 정처없이 다니면서 돌보아 준 것과 삼촌과 숙모 덕에 재산을 불린 점도 있을 텐데 조카가 어떻게 이렇게 염치가 없을까? 애굽 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진정한 복은 하나님이지 결코 자신의 노력이나 주위환경 탓이 아니란 것이 었다. 그렇지만 한 번 얼굴에 철판을 깔면 평생이 여유로운데? 이런 유혹을 벗어날 수 있어야 하지 만 일반적으로는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눈 딱 감고 한 번만 버티면 되는데...? 5. 롯과 헤어질 때 아브람의 행위는 훌륭하지만 12장의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을까? (1번 질문의 답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면 이런 것을 무슨 심리라고 한다?) 보상심리: 잘못을 저지른 다음에는 더 잘한다. 그런 면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칭찬을 아낄 필요는 없다. 어쨌거나 대승적인 차원에서 자기의 유익을 다소 포기하면서 사는 것이 참된 그 리스도인의 자세이다. 누군가가 양보하거나 희생하지 않으면 공동체가 화평을 누리기 어렵다. 누가 양보할 것인가? 6. 롯이 아브람을 떠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재산이 많은 것이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것 때문에 더 큰 비극이 생기기도 한다. 제대로 관리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과도한 재물이 있는 것은 불행이다. 그 래도 한번 누려봤으면...? 가난할 때는 의가 좋았던 형제가 소유가 많아지자 의가 깨어진 예가 많다. 복권당첨이 복이 아닌 이유나 일확천금을 노리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7. 요단들은 어떤 땅이었는가(4가지 표현으로)? 종합해서 간단하게 결론을 내린다면 무엇과 같은 땅이라고 하겠는가? 1) 여호와의 동산 같은 땅(애굽 땅: 기름지고 물이 풍부하여 농사짓기에 좋은 땅이란 뜻) 2) 물이 넉넉한 들: 이스라엘에서 물이 많다는 것은 대단히 좋은 곳이다. 전혀 물이 고이지 않는 산 악지대와 사막지대가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3) 멸망될 땅 4) 패역이 있는 땅(소돔사람이 있는 땅)

50 창세기 성경공부 :1~18 잔치를 기다리는 살찐 돼지 같은 땅: 아무리 좋아 보여도 복의 근원을 떠나서는 좋은 곳이 될 수 없다. 아브람이 차지한 산지는 들판에 비해서 형편없는 땅이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땅이다. 겉모습만 보고 우습게 여길 일이 아니다. 여기에 진짜 복이 있는데... 불신자들의 삶이 겉으로 보기에는 멋지고 화려하게 보여도 소돔이 있는 기름진 들판일 뿐이다. 어 설프고 답답해 보이는 믿는 사람들의 삶이 실제로는 더 화려하고 위대한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세웠던 성막이 사면이 금으로 된 황금의 집이었음에도 밖에서 보기에는 거무튀튀할 뿐이 었다.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도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 다운 것이 없었다(사 53:2). 8. 요단들을 가나안 산지 즉, 아브라함이 차지한 땅과 비교해서 대조적인 면이 무엇인가? 요단들: 풍요로운 곳 (물질 위주의 땅) 가나안 산지: 척박한 곳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땅) 겉으로 보면 요단들은 가나안 산지보다 훨씬 아름답고 풍요로운 곳이다. 불신자들이 예수 믿는 사 람들을 보면 얼마나 불쌍한지 모른다. 낙엽이 붉게 물들어 가는 이 좋은 가을에 교회 때문에 꼼짝 도 못하고, 조금 버는 월급가지고 헌금 다 해버리고...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사는지 모르겠단다. 가나 안 땅이 진정으로 행복한 곳인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땅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지옥에 있다 면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는 루터의 이 고백의 의미를 알 수 있을까? 9. 지금 한창 잘 나가는 롯의 생애는 결국 엄청난 비극으로 막을 내리고 만다(19장). 그런 비극의 원인을 이 본문에서 찾는다면 무엇일까? 복의 근원을 떠난 것(9, 11, 14): 소유물이 많아서 서로 떠났지만 그것이 결국은 비극의 출발점이다. 떠나야 할 형편일지라도 소돔까지는 이르지(12) 는 말았어야 했다. (대화와 토론을 위하여) 소유물은 많고 땅은 좁고 그러면 어떻게 했어야 할까? 10.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때는 대체로 아브람이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지금도 그런 때일 까? 무슨 약속을 하시는지 정돈해보자. 동서남북의 보이는 모든 땅을 주리라: 좋은 땅을 한번 사양도 해보지 않고 덥석 챙겨버린 롯에 대 한 섭섭함도 있을 수 있고, 자신이 차지한 땅이 아무래도 조카의 땅보다 못해 보이는 것에 대한 위 로의 말씀일 수도 있다. 자손을 땅의 티끌 같이 번성케 하리라: 그나마 유일한 혈육으로 함께 의지하고 지냈는데 떠나버린 것에 대한 위로를 겸했을 수도 있겠다

51 창세기 성경공부 :1~24 창세기 14 장 1. 전쟁 팀을 둘로 나누어 보시오 메소포타미아 연합국 사해 동맹국(반란국 연합) 시날왕 아므라벨, 엘라살왕 아리옥, 소돔왕 베라, 고모라왕 비르사, 아드마왕 엘람왕 그돌라오멜, 고임왕 디달 시납, 스보임왕 세메벨, 소알(벨라)왕 2. 전쟁의 경과를 정리하면서 빈 곳을 채우시오. 진행 내용 구절 발단 사해 5개국이 동맹을 맺어 그돌라오멜을 배반함 1-4 엘람왕이 주축이 된 메소포타미아 연합국이 사해 지역까지 원정, 경위 도중에 있는 가나안 열국들을 초토화시킴 사해 동맹국이 참패함, 원정군들이 포로와 전리품을 취해 귀환, 결과 수습 롯도 포로로 잡혀감 아브람이 원정군을 뒤쫓아가 모든 약탈물을 되찾고 롯을 구출해 냄 이 일로 일개의 이방인이었던 아브람이 강력한 부족 단위의 지도자로 아브라함에게 끼친 영향 국제적인 위상이 대단히 높아짐: 말하자면 국제 무대에 정식으로 데뷔를 한 셈이다. 3. 이 전쟁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려면 최소한 이 나라들의 위치라도 파악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위치를 대강이라도 알 수 있는 나라는 어느 나라인가? 시날: 수메르지역 (바벨론, 지금의 이라크 북부지역쯤) 엘람: 바벨론의 동부 고원 지역인데 지금의 이란 서부지역에 해당하는 셈이다. 소돔 고모라: 사해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대군이 엄청나게 먼 곳까지 원정을 온 고대의 세계대전이었다. 4. 전쟁에 참패한 반란군 연합국에게 한 마디 충고를 해보자.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이길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살핀 다음에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반 드시 이길 수 있는 보장이 있어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속국에서 벗어나기 위 한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 비록 졌지만 그래야 한다. 국가의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세속 적인 충고일 뿐이다. 세속 역사야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5. 남의 전쟁에 말려 억울하게 당한 민족들(6족속)을 정리해보자. 르바 족속, 수스 족속, 엠 족속, 호리 족속, 아말렉 족속, 아모리 족속(5-7): 메소포타미아 연합국의 침공 진로는 북에서 남으로 곧장 내려와서 사해연합국을 친 것이 아니라 사해 동편으로 내려와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7절의 돌이켜 ) 남쪽에서 치고 올라왔다. 그 도중에 있는 이들 작은 나라들을 모조리 초토화시킨 것이다. 주변 청소를 먼저 한 셈인데 아마 반란군에 가담할 가능성을 미리 없애 기 위함이거나 힘 있는 자의 오만 때문인지 모른다. 힘없는 백성의 서러움이 이런 것이다. 개인은 선한 경우가 있을지라도 국가 간에는 힘이 정의다. 인정이나 양보심이란 없다. 오직 자국의 이익만 존재하는 것이 국가 간의 일이다. 나라의 부강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일본에 너무 많은 경제적인 부를 넘겨주고 있다. 학생들의 학용품, 비디오, 만화, 만화 영화에서부터 첨단 전자제 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일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러 해 전이긴 하지만 국산 비디오 카메 라를 하나 얻었는데 알고 보니 껍데기만 국산이었고 껍데기와 상표를 제외한 알맹이는 완벽한 일 제 sony였다. 정말 위험한 일이다. 6. 아브람은 어느 족속이라고 하는가? (가나안 사람들이 아브람은 자신들과는 분명하게 다른 이방 인인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히브리 사람(13): 히브리라는 말의 어원이 (강을) 건너온 사람들(=아바르)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위시해서 에벨 의 후손(10:21)이라는 것이 틀림없다고 하기도 한다.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 을 것 같다. 더구나 당시에 천한 계급을 일컫는 말 하비루(아피루) 와 뒤섞여 사용되면서(창 39:14,

52 창세기 성경공부 :1~24 17: 출 2:6: 삼상 4:6, 9) 분명한 어원을 밝히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아브람이 나그네로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한다(벧전 2:11). 불신자 들이 볼 때에 똑같은 모습으로 살고는 있지만 분명히 자신들과는 다른 사람이란 것이 표시날 정도 로 살아야 한다. 7. 온 천지가 초토화되고 있는 판에 겨우 318명을 거느린 아브람이 어떻게 이겼을까? 승리의 요인 을 두 가지 지적한다면? (멜기세덱의 표현을 빌리자) 하나님께서 도우신 것(20)과 야간 사방 기습작전의 성공(15): 아브람이 혼자 싸우러 간 것이 아니라 다른 부족과 함께 동맹해서 싸웠다(13, 24). 유일한 혈육인 조카 롯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무모 하게 전쟁에 뛰어들었을지도 모르는데 너무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운이 좋았을까?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키우고 계시다는 뜻이다.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의 맛보기 가 아닐까? 8. 아브람에게는 무모할지라도 뛰어들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었지만 함께 싸우러 간 세 부족은 어떻게 이런 싸움에 뛰어들 수가 있었을까? 아무래도 평소에 아브람을, 혹은 아브람의 하나님을 신뢰할만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하지 않을까? 소를 지붕에 올리라는 아버지의 말에 아들, 딸, 며느리들이 군소리 없이 순종했다는 얘기를 하고서 집안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어른에게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리지만, 평소에 아버지의 말이 얼마나 자식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었기에 말도 되지 않는 말에 그렇게 순종을 하는 가? 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한다. 아브람이 그러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9. 아브람이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왜 살렘왕 멜기세덱에게 드렸는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기 때문이다(18): 살렘왕 멜기세덱은 오실 메시야를 상징하는 인 물이다(시 110:4): 살렘 은 평화, 멜기 는 왕, 세덱 은 의 를 뜻한다. 히브리 기자에 의하면 그는 의 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 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한 제사장이라고 한다(히 7:1-3). 시편 110편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이다. 예수께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 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막12:37, 마 22:45, 눅 20:44) 할 때 인용한 시인데 그 시의 4절에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 다(시 110:4) 이 시편이 쓰여질 때에는 아론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 있었음에도 또 다른 계열의 제사장이 필요한 것을 말씀하였다. 결국 이 대제사장은 오실 메시야를 의미하는 것이다. 아브람이 이런 내용을 알고 드렸을까? 아마 몰랐을 것이다. 자신도 그 의미를 잘 모른 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린 셈이지만 이런 일들을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시면서 자신의 뜻을 계시하셨다. 10. 너 때문에 부자 되었다 는 소리 듣기 싫다(23). 이 말은 끔찍한 말이다. 학교에서 옆의 친구가 공부하는 것을 도와주겠다는데 네가 도와주어서 100점 맞았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다 고 했다고 생각해 보자. 1) 왜 이런 말을 하게 될까? 2) 친구 사이는 어떻게 될까? 1) 네가 너무나 싫어서, 혹은 그만큼 자신이 있어서: 롯은 좋아라 하고 갔지만 아브라함은 죄악에 물든 소돔을 대단히 싫어했던 것 같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신감의 발로라기보다는 소돔을 싫어했 던 것 같다. 2) 관계가 완전히 끊어짐: 그래 너 잘 났다. 내 꺼는 더럽다 이거지? 11. 내가 옳다고 믿고 내가 희생할 각오를 하는 것은 좋으나 남도 나와 같이 하기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나는 내 이익을 포기하지만 타인의 것을 챙겨 주는 자세가 어디에 있는가? 14:23-24 소년들과 나와 동행한 자들의 분깃을 제하라 : 진리가 아닌 한 나의 기준을 함께 사는 사람 에게 강요하지 말자. 동화되던지 아니면 나는 이렇게 하지만 너는 그렇게 해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남의 서랍에 함부로 손대지 않는 사람은 겨우 볼펜이나 칼을 빌려 쓰는 일이라도 다른 사람이 자 신의 서랍을 허락 없이 여는 것을 굉장히 기분 나빠 한다. 이것이 심해지면 동료들과 사이좋게 지 내기는 글렀다. 나는 남의 서랍에 허락 없이 절대로 손대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그럴 수 있 다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특히 부부 사이에 여유를 좀 가져야 한다. 치약을 밑에서부터 짜올라가야 하느냐 중간을 쿡 눌러 짜야 하느냐? 신문을 본 다음 페이지대로 차곡차곡 접어야 하느냐 마느냐? 양말을 벗을 때 뒤집지 말아야 하느냐? 싸울 필요 없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버릇이므로 동화되 든지 이 정도의 여유를 가지든지. 제발 상대방의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생각은 버리자. 12. 사해 근처의 동맹국들이 다 패했음에도 아브라함이 승리하고 잃은 것을 다 찾아 돌아왔다. 어 쩌면 가나안의 통일왕국의 초대 왕이 될 수 없었을까? 왜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으며 당연히 가 져도 되는 노획물을 마다하였을까? 그런 욕심으로 전쟁에 뛰어든 것이 아니었다. 오직 롯 때문이었다. 인기나 지위가 높아지면 쉽게 변 하는 것이 사람인데 처음에 가졌던 선한 생각이나 의도가 얼마나 변하기 쉬운가? 그럼에도 그는 하 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한 것이지 자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애굽에서 있었던 일로 인하

53 창세기 성경공부 :1~24 여 재물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음을 확신한 것 같다. 때로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하여 맹렬하게 노력하면서도 거기에 빠져들지 않는 묘한 자세가 우리에 게는 필요하다. 출세를 위하여 회사 일에 전력을 투구하는 사람과 출세와는 상관없이 열심히 일하 는 사람의 차이점이 아닐까? 교회에서 봉사할 때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일해야 한다. 이런 일로 인해서 받을 칭찬이나 사례금이 먼저 떠오르면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설교자의 눈 에는 하나님만, 은혜를 바라는 성도들만 보여야 한다.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한다. 초심, 처 음 사랑을 잃지 않는 자는 복되다! 13. 이 전쟁이 롯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염치없이 좋은 땅을 차지하고 화려한 도시로 찾아간 그에게 닥친 최초의 시련이었다. 웬만하면 그 쯤에서 소돔을 나와야 했는데... 19장처럼 파멸에 이르기 전에 악다받게 버티지 말고 잘못되었구나 싶으면 돌아서야 한다. 14. 아브람은 그렇게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 아니었다. 애굽에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목숨을 보 존하려던 것을 보면 그렇게 용감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이렇게 용감하게 나섰을 까? 소돔왕에게 하는 말에서 다른 가능성을 찾는다면? 하나님을 가리켜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 라고 부른 점은 하나님을 의지하 고 살려는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22): 나름대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새로운 각오로 사는 것은 좋은데 그렇다고 소돔왕에게 한 말은 좀 신중하지 못한 것 아닐까? 신앙 으로 살려는 사람이 열심이 지나쳐 주변의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들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 열심 히 전도하다가 잘 안 되면 저주 비슷한 말을 하거나 부조리 한 세상의 모습을 인식하고 같은 회사 의 동료를 모조리 불결한 인간으로 치부해버리고 혼자서 순교하듯이 정의의 투사처럼 살고 있지는 않는가! < 14절의 단 : 먼 훗날 사사시대에 붙인 이름인데(삿 18:29)? 후대의 가필? >

54 창세기 성경공부 :1~21 창세기 15 장 1.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이유를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찾으시오. 아브람이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려워 마라. 나는 너의 방패이다. 조카를 구해야 한다는 일 념으로 엉겁결에 전쟁에 뛰어 들어 승리를 얻었지만 상대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언제 반격 해 올지 알 수 없다. 다시 싸우게 된다면 도저히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런데다 기댈만한 자손도 없다. 땅과 후손을 주시겠다고 약속은 하셨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침묵 가운데 계신다. 롯이 야 위험에 빠지면 내가 구해 줄 수 있지만 내가 위험에 빠지면 누가 구해 줄 것인가? 견딜 수 없는 치욕을 당하고도 아들들이 돌아올 때까지 조용히 있었던 야곱(창 34:5)과 비교해 보아도 아브람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2. 하나님은 왜 방패일까? 왜 상급일까? 방패: 아브람이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지킨다. 상급: 소돔왕이 가지라고 한 전리품을 차지하려 하지 않은 데 대한 대답이다. 아브람이 받을 최고의 상급은 하나님이시다. 아내가 받을 가장 큰 선물은 남편이다. 남편이 가져오는 선물에 너무 큰 기대 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남편은 아내가 얼마나 큰 선물인지 잘 알아야 한다. 그녀가 해주는 그 무 엇이 아니라 절을 간단하게 4글자 정도로 줄여보자. 아브람이 무엇을 주시려나이까? 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것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일종의 반항이나 원망도 포함된 듯 하고! 됐습니다: (자식도 하나 안 주면서) 또 뭘 주시겠다고요? 마, 됐습니다. 자식문제는 더 이상 신경쓰 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는 셈이다. 어른 얘기에 이렇게 대답하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짓이다. 선생님 이 말씀하시는 도중에 이런 소리했다가 맞아 죽을 뻔한 아이들이 많다. 4. 롬 4장에 아브라함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 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 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그러나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라는 말씀과 나중에 이스마엘을 낳은 점, 아들 의 이름을 이삭(웃음)으로 하라는 말씀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완벽한 믿음은 아닌 것 같 다. 도대체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긴 뭘 믿어 믿은 걸로 해준 것이지: 결코 완벽한 믿음이 아님에도 그것을 믿음으로 여기신 하나 님의 사랑과 역사가 더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몇 번이나 명령을 하셨고 모세가 얼마 나 반항을 했는지 생각해 보자(출 3, 4장). 그러나 그런 모세의 믿음이라고 할 수도 없는 믿음을 소 중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때문에 위대한 신앙인이 된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잘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우리의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 이다. 믿음이란 내가 노력해서 가지고 있는 나의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내게 복을 주시 려고 무슨 건수라도 없나 해서 살펴보다가 나에게서 발견한 그 어떤 것인 셈이다. 그래서 믿음도 우리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한다. 다음 이야기는 믿음의 출발점이 아니라 도착점을 가 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어떤 분이 나이애가라 폭포 위에 걸쳐놓은 외줄을 타고 와서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저 밧줄을 걸어서 폭포를 건널 수 있음을 믿습니까? 진정으로 믿는다면 내 목에 올라타고 나와 함 께 폭포를 건너갑시다 이럴 때 서슴없이 그 목에 올라타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감동적인 이야 기지만 주의해야 한다. 거듭 얘기지만 이것은 믿음의 출발점이 아니라 최종 도착점에 관한 것이다. 이런 믿음만이 믿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친 것도 아브라함 생애의 마 지막 사건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그럴 수밖에 없는 신앙인으로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신 최종 작품 이지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그런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5.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4절)는 말씀에 따르면 후에 태어나는 이스마엘은 네 몸에 서 난 자 인가? 아닌가? 만약 아니라면 왜 아닌가? 단순하게 혈통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서 주어진 아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약속은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사라를 포함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사라를 한 몸으로 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난 자식만이 네 몸에서 난 자 이다(21:12). 한국식 사고방식이라 면 이스마엘도 당연히 네 몸에서 난 자 이지만(21:13) 둘이 한 몸이 되라 는 성경적 결혼의 원리는 이와 다르다.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6)라는 말씀은 롬 4:9, 22과 갈 3:6에서 믿음으로 의로워진다 는 것을 설명할 때 인용되었다. 같은 구절이 약 2:23에서는 행함으로 의로워진다 는 것을 설명하는데 인용되었다. 왜 같은 구절이 정반대의 설명에 인용되었을까? 두 구절을 적용하는 시기에 차이가 있다. 야고보서에서는 이 구절이 20년 쯤 뒤, 아브라함이 이삭을

55 창세기 성경공부 :1~21 바칠 때 이루어졌다고 말한다(=응하였고). 사도 바울의 말은 이런 믿음마저 하나님께서 귀하게 인정 하신다는 뜻이고(믿음의 출발점), 야고보의 말은 이런 믿음도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만들어가신다는 의미이다(완성된 믿음). 이 본문의 믿음은 완전한 것이 아님에도(후에 이스마엘이 태어나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웃기도 하니까)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다는 것은 믿음의 주체가 아브라함이 아니 라 하나님이란 뜻이다. 우리의 관점으로는 도무지 믿음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은 믿음이 성경에는 많이 있다. 출애굽기 3, 4장의 모세, 막 9장의 아버지, 베드로의 왔다갔다 하는 믿음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업으로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라는 물음은 증거를 보여 주 십시오 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무슨 증거를 주셨나요? 아니면, 아브람의 요구와 하나님의 그 다 음 행위는 증거와 무슨 상관이 있는 지 아래 문장을 완성시키세요. 1) 제물을 통하여 2) 이스라엘이 400년만에 1) 제물을 통하여 언약의 확실함만을 보여주심: 내가 누고? 나는 하나님이다. 증거를 제시하는 것보 다 더 확실한 경우에 이런 방법이 사용된다. 사랑하는 아내가 사랑하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할 때 다른 물적 증거를 제시하는 것은 관계가 깨어지기 일보 직전인 셈이다. 그럼 어떡하지? 자신을 믿 게 해야지! 2) 이스라엘이 400년만에 애굽에서 나오게 되면 그것이 증거니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증거라는 의 미로는 이런 것은 증거가 될 수 없다. 커봐라 알게 될 것이다 라는 말과 흡사하다. 하나님은 하나님 답고 아브람은 아브람답다. 아빠가 선물을 사 주기로 약속을 했는데 아들이 확실하게 사 준다고 각서라도 쓰라면 어떡하지? 재 미로 한 장 써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답은 야 임마 내가 누고? 일 것 같다. 8. 이스라엘이 400년간 애굽에서 지내야 하는 이유는? 본문에서만 찾으면?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관영치 아니함: 훗날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침공하면서 씨를 말리듯이 사람과 가축을 죽이는 것이 무척 잔인하다(여호수아). 그러나 이 본문을 보면 그들의 악함에 대해서 하나님 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들어서 심판하시는 것이다. 9. 이스라엘이 400년간 애굽에서 지내야 하는 것은 새를 쪼개지 않은 아브람의 잘못 때문인가? 그럴 수 없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지 않은 결과 이런 엄청난 비극이 닥치 게 되었으니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합시다. 이런 설명을 들은 기억이 난다. 성경을 보는 시각에 문 제가 좀 있다는 느낌이다. 하나님을 너무 나쁜 분으로 몰고 가는 셈이다. 제사법에서도 비둘기는 쪼 개지 않고 목을 비틀어 끊고, 날개 자리에서 몸을 찢었다(레 1:15, 17, 5:8). 더구나 솔개가 내려앉은 사체는 비둘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사체는 복수형임). 실상은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애굽이라는 온실에서 크게 번성케 하시 는 것이다. 요셉을 모르는 왕이 두려워했던 것은 이들이 너무나 많이 번성한 것이었다. 외적의 침입 이나 기근이 없는 고센 땅에서 번성케 하신 후에 온실에서 노지로 옮겨 심듯이 가나안 땅으로 인 도하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겪은 시련이야말로 하나의 민족으로 만드는 필수과정 아닐까? 10. 4대란 몇 년을 가리키는 말일까? 실제로 400(혹은 430)년을 가리킨다(13절): 당시의 세대란 지금처럼 그렇게 짧은 것이 아니다. 아브람 이 175세까지 살았으니 아브람에게 한 세대는 100년이라는 설명도 가능하겠지만 이런 수치에 너무 민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한 세대가 30년인 경우와 비교하면 100년인 경우는 시간상으로는 단순 하게 3배지만 인구가 불어나는 경우에는 제곱에 비례한다. 11. 이스라엘이 이방에서 객으로 400년을 지났다고 하면 몰라도 종살이를 400년 한 것은 아니다. 이방에서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그다지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있기 에 마지막에 종살이 한 것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보면 좋겠다. 자세하게 들여다 본다면 종살이를 얼마나 했을까?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등장해서 박해를 시작하던 때에 모세가 태어났고 그가 80세 때에 출애 굽을 했으니 대략 80년 조금 넘는 정도로 보면 되겠다. 요셉이 실세 총리로 있던 시절에 그 형제들 이 바로의 재산관리인이 되기도 했으니(47:6) 제법 대우 받으며 잘 살았고, 결과적으로 엄청나게 불 어났다. 출애굽하기 전에 당했던 고난은 일종의 산통이었던 셈이다. 12. 언약이나 동맹을 체결하고 이에 대한 보증으로 제물을 쪼갠 후 그 사이를 당사자들이 통과했 다고 한다. 만약 언약이나 동맹을 위반하면 이 제물과 같은 처지가 되어도 좋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약속이 하나님과 아브람이 대등한 자격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 적인 약속이라는 증거는 무엇인가? 하나님만 제물 사이로 지나가심: 정상적인 관계라면 언약의 당사자 둘 다 통과해야 한다. 13. 한 쌍의 연인이 낙엽이 지는 공원의 벤취에 앉아 데이트 중이었다. 떨어지는 낙엽에 가슴이 뭉

56 창세기 성경공부 :1~21 클해진 여인이 말했다. 어머, 이 낙엽 색깔이 어때요? 똥색이네요. 이러고도 연애가 가능할까? 본문에서 이런 느낌이 드는 대목을 찾아보세요. 내가 너의 상급이니라: 무엇을 주시려나이까? 나는 이 땅을 네게 줄려고 너를 이끌어낸 여호와니라: 증거가 무엇입니까? 연애 중인 사람들의 대화가 이런 식이면 결말은 뻔하다. 다음과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인생 전부를 당신께 맡기겠소. 인생? 그거 먹을 수 있는 겁니까? 오늘 저녁이나 사 주세요. 그럼에도 하나님과 아브람의 사이는 아무 이상이 없다.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다. 아브람의 기대와 하나님의 계획하심 사이에는 너무나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이렇지 않은가? 14. 아브람과 하나님의 관심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아브람의 관심: 눈 앞의 것 (당장에 자식이 필요함) 하나님의 관심: 먼 훗날의 일 (하늘의 별과 같은 자손, 400년 간의 애굽생활. 아브람은 그냥 아들이 나 하나 달라니까...) 15. 아브람은 장수하다가 어디로 돌아가는가(15)? 떠나온 고향 갈대아 우르를 의미하는가? 경건한 삶을 산 믿음의 조상들을 의미하며 영적인 가나안으로 돌아갈 것을 의미한다. 약속한 것 받 아 보지도 못하고 떠나면 이게 뭐야? 아브람은 놀라운 약속을 받았지만 실제로 이 땅에서 그 약속 이 이루어진 것은 전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약속을 믿고 사는 나그네이다. 돌 아갈 고향이 따로 있는 사람들이다. 16.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땅은 얼마나 넓은 땅인가? 애굽강에서 유브라데까지는 꿈같은 넓은 땅이다: 심지어 여호수아의 정복 시절에도 다 점령하지 못 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잠시 누려보았을 뿐이다(왕상 4:24). 열왕기에서는 간단하게 딥사에서부 터 가사까지 라고 표현했다. < 설교 > 누려보지 못한 꿈 딥사에서 가사까지

57 창세기 성경공부 :1~16 창세기 16 장 1. 자식이 없어서 사래가 취한 행동이 잘못인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어야 한다: 당시의 풍습으로 보아서는 잘못이 아니다. 어느 나라에서 건 흔히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더구나 약속이 주어진 이후 10년이나 흘렀으니. 그러나 아브라 함이나 사라가 취할 방법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기준이나 당시의 풍습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2. 사래의 말을 듣고 취한 아브람의 행동은 은근히 바라던 것 아닐까? 일반적인 남자들의 심리로는 그렇겠지만 모르겠다. 다만 사래의 잘못된 제안을 그대로 따른 것은 잘못이다. 사래의 잘못과 동일하다. 결국 두 사람 다 하나님께 재판을 받는다면 둘 다 똑 같다 는 판결을 받을 것 같다. 3. 하갈이 잉태함을 깨닫고 주인을 멸시한 이유는 무엇인가? 대체로 첩이 아이를 가지면 아이를 낳지 못하는 본부인을 밀어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남편의 사랑이 자신에게로 기울어진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아브람이 이 때 하갈의 이런 태도에 동의하지 않은 것이 더 이상의 실수를 막았다. 4. 자신이 편리한 대로 하나님을 이용하는 잘못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진작 하나님께 물어 보 아야 할 것을 묻지 않고 멋대로 일을 하다가 잘못되고 난 후에 이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나 보 다 혹은 하나님께서 선으로 갚아 주시겠지 하는 태도는 대단히 위험하다. 자신의 그릇된 계획이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는 사례를 사래에게서 찾는다면?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2): 진짜 그렇다고 믿는다면 기다려야지 왜 하갈을 남 편에게 주나?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5): 하갈의 멸시를 받고 한 말이지만 자신의 잘못이 더 크다. 역사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죄악은 너무나 크고 두렵다. 개인적인 욕 심에서 나온 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둔갑되기 쉬우니 우리는 함부로 자기 주장을 하나님의 뜻이라 고 말하지 말자. 불신자들의 싸움은 술집에서 거의 해결이 되지만 신자들의 싸움은 서로가 하나님 의 뜻이라고 주장하니 결과적으로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이 되는 바람에 도무지 끝이 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세심하게 살피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성경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지 말자. 5.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게 되는 사건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하 갈이 자신의 잘못으로 쫓겨났을 때 하나님께서 취하신 태도는 상당히 우호적인데 17장에 보면 어 쨌든 그도 아브람의 자식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결국은 떠 나야 한다. 이스마엘 모자가 결국은 떠나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바울의 다음 설명에서 찾아보라.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 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 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갈 4:22-29).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약속에 따른 것이지 혈통(율법)의 문제가 아니다: 유대인들은 혈통을 따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약속을 따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다고 말했다. 혈통을 중요시한다면 이스마엘도 분명히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그를 내어보냈다는 것은 단순한 혈 통을 자녀로 보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이스마엘은 육신의 자녀가 자녀가 아니라 언약의 자녀 가 진정한 자녀임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인 셈이다. 6. 베두인계 아랍족이나 사라센 족들(이스마엘의 후예)은 정착 생활을 하지 않고 문명 생활을 멸시 하면서 약대나 말을 타고 창을 든 채 광활한 자연을 마음껏 누비면서 난폭하고 거칠게 살아왔다. 이와 같은 삶의 방식을 성경을 ( )와 같다고 했다. 들 나귀(12): 앞으로 이스마엘의 후예들이 어떻게 살 것인지 역사 전체를 내다보시는 분이 하신 말 씀이다. 특히 그들이 높은 산성에 살면서 약탈을 주업으로 삼고 사는 모습의 심판에 대한 묘사가 오바댜 서에 잘 나타난다. 7. 성경에 나타나는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의 이름은 누가 붙인 것일까? 하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 신 것도 있고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지어 부르기도 했다. 감찰 하시는 하나님 이란 이름은 독특 한 경우이다. 어떤 의미에서 독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자가 붙인 이름: 유일한 경우이다. 하갈에게는 잊을 수 없는 놀라운 일이었다. 사실은 바로 이 장 면이 이슬람교와 코란의 출발점이다. 8. 사라, 하갈, 아브람 세 사람이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아브람이 칭찬들을 일이 있는가?

58 창세기 성경공부 :1~16 이런 과정 속에서도 부부 사이에 전혀 손상이 없었다는 점: 하갈이 비록 종이었지만 주인의 씨를 잉태한 점에서 사래가 함부로 손대지 못하고 아브람도 함부로 그녀를 내쫓지 못하는 것은 당시의 사회관습에 따른 것이다. 그럼에도 잉태한 자식에 대한 생각보다 사래의 뜻을 존중한 것은 잘한 일 이다. 오늘날 부부관계가 쉽게 손상을 입지만 따져보면 정말 별 것 아닌 자존심 때문인 경우가 너무나 많다. IMF가 터진 직후에 수많은 가정이 파탄을 일으킨 것을 보면 우리의 가정이란 것이 얼마나 허약한 기초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부부관계가 손상을 입지 아니 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차라리 돈을 좀 잃어버리고라도 온전한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 렇게 하는 것이 옳다. 필요하다면 부모와 자식을 버리고라도 부부관계를 우선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9. 본 장만 연극으로 옮긴다면 주연은 누구인가? 하갈: 극적인 변화를 겪는 것은 하갈이다. 이런 역할이 주인공이다. 그러나 작가나 프로듀서처럼 무 대 전면에 나타나지도 않으면서 중요한 흐름을 결정짓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 인생의 전면에 나타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사실은 주인공같은 나보다 더 중요한 방향을 잡고 계신다는 것을 아 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 살기는 내가 살고, 중요한 결정을 내가 했다고 해서 내 인생을 내가 사 는 것이 아니라 뒤에 계신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공이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평생 을 죽자고 고생한 끝에 가서야 하나님께서 나를 기르셨다 고 고백하는 야곱은 참으로 안타까운 사 람이다. 고생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다 겪었으니 본 장만 연극으로 옮긴다면 엑스트라는? 하나님: 연극으로 친다면 드러나는 뚜렷한 역할은 없다. 드러나지 않는 하나님이라고 아무런 영향 력이 없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연극의 전개방향은 하나님께 달렸다. 역사의 주관자가 따로 계 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11. 자식을 갖는 방법에는 정상적인 결혼, 씨받이, 입양, 아기 도둑질... 이것들과 전혀 다른 한 가 지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주시는 것: 인간적인 방법은 엄청난 재앙인 셈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방법 이어야 한다. 적어도 아브람은 더 기다려야 했다. 12. 본문에서는 사래의 아픔, 아브람의 번민, 하갈의 교만 이런 것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하갈에 게 아픔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자식을 가졌는데도 주인이 자기를 여전히 종으로 대함, 들어가기 싫은 주인 밑에 들어가야 하는 것: 하갈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셈이다. 자식을 낳 기까지 훗날을 기다리면서 참았어야 했는데... 왕비열전을 많이 보신 분의 소감이다. 13. 하갈이 쫓겨났다가 돌아올 때 무엇이라 하면서 들어왔을까? 그에 대한 사래의 반응은?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웃기지 마라 이년아!(죄송) 하나님이 뭐 할 일이 없어서 네 게 나타나? 14. 가정에 이런 어려운 일이 발생하게 된 것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잘못이 있다면? 하나님을 온전히 순종하지 않음 = 아내의 잘못된 말을 들음: 아브람의 심경을 이해는 할 수 있다. 아니 우리는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했다. 15. 이스마엘 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들으심 이다(사무엘, 시므온, 쉐마와 공통점은 ㅅ, ㅁ 이 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들으셨는지 두 가지를 찾는다면? 하갈의 고통과 아브람의 아픔: 하갈을 내쫓도록 허용할 수밖에 없는 것도 아브람에게는 고통이었고 그럴수록 준다면서 주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그만큼 고통이었을 것이다. 16. 이스마엘의 출생은 아브람과 사래의 불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돌아보시며 살 길을 열어주신다.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신 것과 후손의 복을 주신 것이 그러하다 (10, 17:20, 21:13, 18-21). 그렇다면 훗날에 이삭이 취해서 안 될 태도가 있다면? 자신만 하나님께서 택하셨다고 하는 배타적인 우월감: 이런 선민의식이 자존감을 높일 때는 유익하 지만 다른 민족을 차별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는 비난받아 마땅했다. 오늘날 신선민(新選民)인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에 의한 나의 선택이 바로 타인의 버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 를 선택하신 것을 믿는다는 고백은 곧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다른 이에게도 복주시기를 원 하신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져야 한다. 추호라도 나를 택하시고 타인을 버리셨음에 대한 감사가 되어 서는 안 된다

59 창세기 성경공부 :1~27 창세기 17 장 1.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신지 근 24년이다.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계산하면 50년이 넘었을지도 모른 다. 그런데 이제서야 완전하라고 하신다. 우리의 생각과 어떻게 다른가? 우리의 사고 방식으로는 처음부터 완전하라고 하실 것 같은데 하나님은 이렇게 인내하시면서 때를 기다리시는 분이시다: 아브람을 불러내시고 완전한 신앙인이 되라고 요구하시기까지 대략 50년을 기다리셨다. 우리는 예수를 믿은 바로 그 순간부터 완벽한 사람이기를 바라는, 하나님보다 더 엄청 난 기대감을 우리 자신에게 요구하고 있다. 아브람에게 완전하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이렇게 긴 수련기간을 주셨다면 우리에게는 몇 년이나 주 실까? 조급하지 말자. 비록 완전하지 못한 상태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자. 그러노라면 하나님의 정한 때에 우리가 변화해 있을 것이다. 내 노력으로 자신을 어떻게든 바 꾸어 보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만 찾으며 노력하자. 여태까지 하나님은 일방적인 약속만 하셨다. 이제는 완전하라고 요구하신다. 언제까지나 하나님 앞에서 어린 아이 모양으로만 살 수는 없다. 2.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약속과 하나님의 언약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일까? (cf 6:18, 9:9,16, 15:18) 일방적이다: 사람 사이의 약속은 쌍방이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가 약속을 지킬 것을 기대하지만 하 나님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이다. 아브람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우리의 구원도 그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약속을 영어로 promise라고 배운 탓에 한국 사람들이 실수를 많이 한단다. 영어의 promise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중대한 약속이다. 일상적인 일에 함부로 쓰는 단어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어길 수도 있는 약속은 make an appointment라는 표현은 몰라도 promise라고 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언약은 promise보다 더 중대한 국가간의 조약이나 군주가 신하와 맺은 계약 같은 것이다. 3. 하나님의 언약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예전에 반복해서 말씀하셨던 것이 더욱 구체적으로 나 타나고 있을 뿐이다. 확인 삼아, 아브람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핵심을 두 단어로 나타내면 무 엇인가? 후손과 땅: 15장에서 하늘의 별과 같을 후손이 여기서는 열국으로 표현되고 있다. 가나안 땅에 열국 이 생기면 너무 좁지 않은가? 가나안은 결국 더 넓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4. (위 질문에서 계속) 그것들을 주시는 하나님의 최종 목적은 무엇인가? 너와 너 후손의 하나님이 되는 것(8): 아브람을 통해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나? 꼭 이렇게 해 야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는가? 많은 후손들의 하나님이 되겠다는 것은 많은 후손들을 자녀로 삼겠 다. 즉 구원하겠다는 선언이다. 아담이 깨어버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겠다는 말씀이다. 아브람이 아들을 갖는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겠지만 그 지향점은 인류의 구원이다. 그리스도인 에게 일어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도, 개인적인 성장도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의 성장을 위한 걸음 이다. 군인들, 특히 졸병들의 일상을 보면 전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 하고 있다고 볼 수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견 무의미해 보이는 사소한 일상이 조국 수호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5. 결혼한 지 오래지만 자식이 없는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큰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12:2). 여전히 아들 하나 없이 많은 세월이 지났습니다. 또 후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겠 다(13:15-16)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십여년이 지나도록 자식을 못 낳은 채 지냈습니다. 또 아들을 주 겠다고, 그것도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5:4-5). 일종의 반항이나 투정 비 슷하게 집에서 기른 종을 아들로 삼겠습니다 고 했더니 아니다. 반드시 네 몸에서 아들이 태어날 것이다 고 재차 확인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십 여년이나 지났습니다. 또 아들을 주시겠다는 것입니 다. 이왕에 주시려면 진작 주시지... 이때쯤 아브람의 자식에 대한 기대는 어떠할까요? 자식에 대한 기대를 포기했을 것: 이제는 더 이상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자식을 가질 수 없다는 생 각이 들었을 때가 바로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만한 때이다. 인간이 모든 가능성을 포기한 그 때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때이다. 그래서 태어난 아이는 아브람과 사라의 능력으로 태어난 아이가 아니 다. 그래서 이삭을 약속의 자녀 즉 하나님께서 주신 아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아브라함의 자녀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치유 은사를 가진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런 은사가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죽을 병에 걸려 목숨을 걸고 기도하다보니 자신의 병도 나았을 뿐만 아니라 남의 병도 고칠 수 있는 은사가 생겼더란다.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주시기 전에 혹독한 시련의 기도를 드리도록 한나를 훈련시키신 하나님께서 병 고치는 은사나 특별한 아들도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단련시키신 후에 주신다면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이 될 사람인데 얼마만큼 단련시키시겠는가? 우리에게 닥치는 많은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고 뒤이어 복을 주시려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복을 주시기 위한 예비조치로 이해하면 된다

60 창세기 성경공부 :1~27 6. 다음 문장의 내용이 본문과 다른 점을 찾아서 바르게 고쳐 보자. 아브람의 후손들은 열 개의 나라를 세우게 될 것이다. 아브람의 후손들은 여러 개의(=많은) 나라를 세우게 될 것이다: 열국이란 十國이 아니고 列國이 다. 7. 하나님의 이런 약속 덕분에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만 선택하셨다는 믿음을 갖게 된 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려는 거대한 꿈을 유대인들이 이해하기란 정말 어려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기 민족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어느 대목이 그러한가? 아브라함이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된다(5-6): 아브라함에게서 여러 민족이 나오고 많은 왕들이 나온 다는 것은 이 약속이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넓은 의미에서 쓰이고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이런 편협한 생각을 깨뜨리셨다. 8. 이름을 고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름을 바꾼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행동과 신분의 변화: 이름에 걸 맞는 사람이 되라는 요구(행동의 변화)이기도 하고 하나님은 실제로 그렇게 여기신다(신분의 변화). 9. 할례는 남자아이들에게 행하는 포경수술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1) 무슨 의미로 이것 을 명한다고 하시는가? 2) 지금도 해야 되는가? 1) 언약의 표징: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었다는 의미이다. 고대에 할례를 행한 기록이 있기는 하나 당시 사람들이 할례를 행하는 것이 특이한 짓이었다. 아브람이 99세 때까 지 할례를 행하지 않았고, 세겜성 사건에서 이방 사람들이 할례를 받은 것이나, 후대에 유대인임을 확인하기 위해서 할례 유무를 검사한 일(안티오커스, 나치 하에서)이 있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육신적인 죄와 부정을 끊어 내어버린다는 상징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를 잊어버리고 행위 자체만을 소중하게 여기다가 바울에게 혼이 났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롬 2:27-29). 의학적으로 이것이 건강에 도움 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2) 신약 시대 교회의 세례를 예표한다. 지금은 세례로 대치되었다. 할례나 세례 자체가 무슨 능력을 지닌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예식이다. 구원에 세례가 반드시 필요하다 해서 세례 받지 않고 죽어가는 사람을 위하여 물대신 침으로라도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는 주장은 인간적인 냄새가 많이 난다. 10. 일생 중 가장 통증을 적게 느끼고 동시에 피가 가장 잘 응고되는 때가 언제일까? 난지 8일 째: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것을 용케 알아내었다? 11. 다음 중 할례의 대상이 아닌 사람은? 아브라함, 리브가, 야곱, 에서, 엘리에셀, 라헬. 리브가, 라헬: 여자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적어도 성경적 할례의 의미에서는 제외된다. 극히 일부 미 개한 곳에서 여자도 할례를 행하는 수가 있기는 했지만 성경적 의미의 할례가 아니다. 여자가 성적 인 쾌감을 느끼는 것이 부정하다하여 성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신체 일부를 잘라내는 할례의식을 행하기도 했단다. 아파트에서 개를 기르면서 성대나 생식기관을 제거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비록 짐승이지만 못할 짓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기르지 말 것이지... 여성들이여! 왜 남자만 할례를 행했느냐고 절대로, 절대로 원망하지 말지어다. 부부가 함께 누리는 성적인 쾌감과 흥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이므로 감사하게 누리되 깨어지기 쉬운 보물을 다루듯이 극히 소중하게,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12. 어떤 사람이 신에게 부탁할 게 있어서 어렵사리 신을 찾아가서 만났다고 치자. 그 부탁을 들어 주기 위해서 어려운 과정을 요구할 것이고 그 다음에 소원을 이루게 하는 법이다. 아브람이 하나 님을 만난 것과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는가? 순서가 반대로 되어 있다: 일반적인 종교의 경우에는 사람들에게 먼저 할 일을 요구하고 그 다음에 은혜를 베푸는 법인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엄청난 복을 주신다고 선언하신 다음(2, 4-8)에 사람이 해야 할 작은 일들을 말씀하신다(9-14). 성경에서 이런 예는 무수히 많다. 가장 대표적인 곳 이 십계명일 것이다. 십계명의 서문은 십계명보다 더 중요하다. 계명을 잘 지켜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너 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았으니(출20:2) 백성답게 살려면 이런 계명을 지키라(출20:3-17)는 것이다. 이 계명을 다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이렇게 묻는다면 서문이 있고 없음에 따라 답변이 크 게 달라진다. 서문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다음 대답을 확신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다시 애굽에 도 로 집어넣지는 않는다. 다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했으니 매는 좀 맞아야지 아무리 신앙이 좋 다 해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지는 않는다는 선언이 바로 십계명의 서문에 담겨 있다. 아니 성경 전체가 그런 말씀을 하고 있다. 인간의 노력보 다 하나님의 뜻이 더 강하고 더 우선적이고 더 효력이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일이

61 창세기 성경공부 :1~27 있다면 하나님의 손에 잡힌 것을 감사하는 것뿐이다. 13.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과 아브람에게 요구하신 것을 비교해보자. 약속하신 것: 하늘의 별과 같이 무수한 자손과 땅 요구하신 것: 할례를 행하는 것 너무나 크신 것을 약속하시면서 요구하시는 것은 너무나 작다. 우리의 구원도 그렇다. 우리에게 요 구하시는 것은 믿습니다 라는 고백 한 마디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창세 이후 오늘까지 이루어 오신 구원역사이다. 그 가운데 독생자마저 희생시키셨다. 14. X지혜란 학생이 있었다. 성품은 더 할 수 없이 원만하고 명랑한데 공부는 꼴찌였다. 보는 선생 님들마다 야, 임마, 이름 값 좀 해라 고 쥐어박았다. 본문에서 그런 예를 찾아보시오. 아들 하나도 없는 다 늙은 아브람을 보고 많은 무리의 아비라는 이름을 준 것: 낯선 사람이 만났을 때 통성명을 하고 나면 아브라함이 얼마나 곤란했을까? 전 많은 무리의 아비입니다 아들이 몇 명 이나 됩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약속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다. (고후 6:9-10)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 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15. 선생님께서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데 한 학생이 씨 익 웃으면서 마 됐습니다 이랬다가 막 말로 박살이 났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그랬는데 어디에 있나요?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18): 함께 있는 젊은 전도사 한 분이 고등학교 시절에 출석부로 툭치는 선생님을 째려보았다가 이성을 잃은 선생님께 죽도록 맞았단다. 나중에 정신을 차 린 그 선생님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서 용서했단다. 괜히 내가 미안해져서 한 마디만 물었다. 그 선생님 초보지? 처음 발령받은 젊은 선생님들이 가끔 저지를 수 있는 실수에 해당한다. 별로 심각 한 뜻도 아닌데 괜히 난리를 저지르는 것이 초보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선생님이라도 초보 선생님 께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아브라함이 이런 실수를 했음에도 코피가 터지지 않은 것도 상대가 노련 한(?) 하나님이었기 때문이다? 16. 혼자서 생각만 해도 부끄러워서 낯이 화끈거리는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기억하는 한 다시는 그런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하다니 맞아죽을 죄에 해당하지만 야단을 치거나 벌을 주는 대신에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무슨 좋은 방 법이 없을까?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들의 이름을 웃음 이라고 짓는다(19): 무한한 창피와 무한한 기쁨이 동시에 담긴 절묘한 방법이다. 웃음 이를 부를 때마다 왜 웃느냐는 물음에 안 웃었습니다 고 대답한 것이 생각나서 다시는 하나님 의 말씀에 웃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이 잔인하다고? 결코 잔인하지 않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지만 이삭도 자신의 이름 뜻이 웃음 인 것에 대해서 좋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이 부끄러운 기억이 묻어있는 사람은 아브라함과 사라뿐이다. 나중에 이삭의 이름이 왜 그렇게 지어졌는지 가르쳐 주었을까? 성경의 웃음에 대하여: 성경에는 웃음이란 단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밝고 희망에 가득찬 성경 에 웃음이 없다? 몇 번 사용되지 않은 웃음조차 거의가 비웃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삭이 태어 났을 때 사라가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21:6) 라는 웃음이 거의 유일한 것이다. 도대체 성경은 왜 웃음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기피하는 것일까? 웃음 이라는 단어 대신에 많이 사용된 것이 기쁨 이다. 웃음은 표면적이고 기쁨은 내면적인 것이 차이점이다. 기쁨이 있으면 웃음은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이기에 기쁨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했을 것이다. 웃음이란 단어가 별로 없다고 성경이 웃음을 가볍게 보거나 기피하는 것이 아니다. 내면의 기쁨에서 우러난 웃음은 대단히 소중한 것이다. 웃으며 삽시다. 17. 처음부터 아브라함이 위대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정식으로 세례 교인이 될 때의 나이는 얼마일까? 이제야 정식교인이 되었다는 증거는 무엇일까? 99세 1)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신자가 됐다는 것을 공적으로 선포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데 구약에서 는 할례를 의미한다. 2) 여태까지는 하나님께서... 해 주겠다 고 말씀하시다가 처음으로 내 앞에서 완전하라 고 명하셨 다: 육신이 약하다는 말만 되뇌이며 언제까지나 약한 모습으로만 살 수는 없다. 주 안에서 자라가야 한다. 3) 이름을 고쳐주셨다. 4) 이제야 아들을 주겠다고 확실하게 시기까지 밝혀주셨다. 18. 다음 이름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그 중에서도 밑줄 친 이름의 특징은 무엇일까?

62 창세기 성경공부 :1~27 이스마엘, 이삭, 아브라함, 사라,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 이스마엘과 이삭은 나기 전에 미리 붙여준 이름이다(세례 요한, 예수도 그러함).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의견이긴 하지만 앞의 둘은 작명, 뒤의 셋은 개명이란다. 맞기는 맞는 말이다. 19. 하나님은 누구와 언약을 세우셨나?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 일차적으로는 아브라함과 세운 것이다(2, 4). 동시에 그 언약의 대상은 아브 라함과 그의 후손이다(7).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언약의 대표자일 뿐이다. 언약은 개인적이면서도 동 시에 공동체적이다. 결코 공동체로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교회에 소속되어서 공동체를 잘 이루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63 창세기 성경공부 :1~33 창세기 18 장 1. 손님을 맞이하는 아브라함이 굉장히 민첩하다. 하나님이신 줄 알았기 때문일까? 만약 그렇지 않 다면 그 이유를 짐작할만한 단어를 본문에서 하나 찾아보자. 날이 뜨거울 때에(1): 보통의 여행자들도 낮에는 여행을 하지 않고 쉬다가 밤에 여행을 한단다. 그래 서 예수님의 비유에 보면 주인이 한 밤중이나 새벽에 느닷없이 나타나는 장면이 더러 있다. 관광지 에도 낮에는 볼 것도 없고 사람도 없다가 밤이 되면 북적이는 도시로 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런데 날이 뜨거울 때 나타난 손님은 특별히 잘 모셔야 했을 것이다. 2. 아브라함이 찾아온 손님들이 하나님인 것을 미리 알았을까(18:1-8)? 몰랐다고 본다: 히브리서에서는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했다고 한다(히 13:2). 1절에 하나님 이라고 했 지만 1절의 첫 문장은 18장 전체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2 절에는 사람 셋 이라고 한다. 얼핏 보면 처음부터 아브라함이 행동이 아주 민첩했고, 가장 귀한 것 으로 대접한 일과 나무 밑에 모셔선 자세가 종이 주인을 섬기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럼에도 히브리 서에서는 부지중이라고 말한다. 평소에 그랬다는 말인데 손님을 그렇게 대접하다가 어느 순간에 신 분을 알게 된 것 같다. 더구나 날이 뜨거울 때에 나타난 손님은 더 잘 보호해야 한다. 19장에서 롯도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사기 19장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은 베냐민 지파는 아주 불량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다. 유목민들은 손님을 귀하게 대접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한다. 심지어 손님의 안전까지 책임져 주어야 했단다(19:8, 삿 19:24).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밤중에 찾아온 친구에게 빵을 주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의무이었다(간청 때문이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눅 11:8,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간청 때문에 떡을 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최갑종 의 예수님의 비유 참조). 우리와 다른 문화풍토를 생각해보면 히브리서에서 이 일이 부지중에 일어 난 일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3. 성경의 천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천사와 어떻게 다른가? 성인 남자의 모습이다: 머리 위에 둥근 테가 있거나 날개 달린 예쁜 여자나 아기의 모습이 아니다. 천상의 천사는 날개가 있으나 사람에게 나타난 천사는 성인 남자의 모습이 거의 대부분이다. 4. 무심코 손님을 대접하던 아브라함이 어느 순간에 이 분들이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하나님이시 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에 알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분들이 하나 님이시라는 티가 난 제일 첫 증거는 무엇인가?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9)? 하나님께서 이름을 고쳐주신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정확하게 이름까지 알고 있지 않은가? 5. 내년 이맘 때 네게로 돌아오리라(10, 14)는 말씀대로 이삭이 태어날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는 가? 겉보기에는 나타나시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돌아오셔서 이삭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이삭이 태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임재 하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란 말인데 그 때 그 곳에 임재하신 분은 성령이시다. 그러니 이 말을 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거나 성령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천사다. 6. 사라의 말(11-13)이 일리가 있나요? 경수가 끊어지다니? 일리 있다: 폐경기란 말이다. 장사로 치면 폐업한지 오래되었다는 말이다. 100세 된 할아버지와 경 수가 끊어진지 오래된 할머니가 아이를 낳는다? 부부가 각방을 쓴지가 언제인데? 낙이란 히브리 단 어는 에덴 이다. 에덴동산이란 이름도 기쁨이란 단어에서 오지 않았을까? 이 나이에 아이를 가진다 는 생각보다 성관계를 가진다는 생각이 더 웃겼을지 모른다. 아이고 망측해라! 7. 웃어놓고 왜 웃느냐? 고 야단치는데 왜 안 웃었다고 할까(15)? 두려워서: 잘못한 것을 들키면 부정부터 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인가 보다. 돌아서면 거짓임이 드러 날 것인데도 우선 아니라고 하고 본다. 거짓일수록 더 강하게 부정하기도 한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우리의 단점인 것 같다. 8.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어느 정도의 친밀감을 갖고 계시는지를 잘 보여주는 구절은? 17: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비밀이 없는 사이를 친구라 한다. 아는 사람과 구 별되어야 한다. 이 구절을 다미 선교회를 비롯한 이단들이 어떻게 이용했을까? 아들도 모른다고 한 비밀이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셨다 는 식으로 이용했다. 미인계라는 것이 있다. 미모를 이용 해서 적지에 잠입하여 비밀서류를 훔치는 것은 미인계 중에서 최하급이다. 최고급은 사랑에 빠지도 록 하여 국가가 흔들릴 정도의 비밀을 스스로 발설하게 만드는 것이다. 진짜 사랑에 빠지면 죽을 줄 알면서도 스스로 비밀을 숨기지 못한다. 9.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는 이 엄청난 일을 왜 아브라함에게 숨기지 못하시는가? 천기누설인데 18, 19절을 간략하게 다른 말로 표현해보자. 정 안 되면 대하 20:7을 참고하자. 주의 벗이기 때문이다: 이미 몸과 마음을 다 주어버린 상태라면 그런 사이에서 비밀을 간직하기는

64 창세기 성경공부 :1~33 어렵다. 아브라함을 그만큼 친밀하게 여기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거민 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으로 주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영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대하 20:7) 사랑하는 사람에게 비밀로 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이것을 악용하는 것이 미인계이다. 사랑한다면 서? 이러면서 대어들면, 아니, 대어들지 않아도 감춰두고 있지 못한다. 삼손이 들릴라에게 왜 그렇 게 바보짓을 했느냐고? 누군가를 사랑해 봐야 이해가 된다. 하나님도 사랑에 눈이 멀어 독생자에게 혹독한 고생을 시켰다는 사실을 감사하자. 10.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될까요? 하나님께서 작정하셨으니까(19):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추적하시는 하나님(박영선 목사님)을 읽어 보세요. 11. 천사들이 소돔으로 떠났는데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있었단다. 이게 무슨 말일지 18:2 절과 19:1절을 참고로 생각해보자. 세 천사 중에 둘이 떠나고 한 분이 남아서 아브라함과 더 말씀을 나눈 모양이다. 결국 이 세 천사 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현현인 셈이라는 말이다. 어째 이럴 수가??? 12.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제대로 깎으려면 조금씩 깎아달라고 하면 거의 깎아주지 않는다. 처음부 터 50%씩 깎으면서 낯짝에 철판 깔고 덤비면 많이 깎을 수 있단다. 이것도 타고나야 할 수 있다는 데 물건을 싸게 사는 요령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거래에서 이와 반대 현상이 보인다. 혹시 나 해서 조금 부탁을 드려 보았더니 잘 들어주신다. 용기를 내서 점점 더 심하게 깎아 버렸다. 깎 는 솜씨가 없다는 뜻인데 그런데도 어떻게 80%나 세일해서 살 수 있었을까? 우선 다음 빈칸부터 채우고 생각해보자. 50 ( ) ( ) ( ) ( ) 10 ( ): 가게 주인을 잘 만나서: 그렇게 해줄 마음이 하나님께 있었기 때문이지 아브라함이 말재주가 좋았거나 간절함 때문이 아니다. 만약 시장에서 이런 식으로 물건을 깎다가는 귀통배기가 날아갈지도 모른다. 13. 아브라함이 이렇게 하나님과 흥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믿었기 때문 인가? 공의로우신 분(25): 범죄하지 않은 사람을 억울하게 심판하시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 문에 그랬지만 결과적으로 아브라함이 기대한 인간은 없었다. 반대로 범죄한 인간에게는 결코 좋은 말이 아니다. 절대적으로 자신이 선하다고 자신하지 못하는 한 함부로 이 말은 쓰지 않는 것이 좋 다. 정의로운 통치자는 자식의 목을 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범죄했을 때는 정의 로운 경찰보다는 불의한 경찰이 더 반갑지 않을까? 스스로 벌을 받겠다고 나설 정도로 의롭지 않다 면 말이다. 14. 처음부터 의인 10명이 있어도 멸하시겠습니까? 하지 않고 50명이라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브라함의 생각에는 소돔과 고모라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의인이 50명은 되어야 한다고 생 각했다: 그 아래로 내려오는 것은 차마 염치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간청한 것이다. 정상적이 라면 50명이고 어거지로 10명인 셈이다.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앞두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 은 예루살렘에 의인이 한 명이라도 있는지 찾아보라고 하셨다(렘 5:1). 이 한 명의 의인 노릇을 누가 할 것인가? 이 한 명이 나라를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회사를 살린다. 15. 결국 소돔 고모라에는 의인 10명이 없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50명을 요구하든 10명을 요구하 든 그게 그거다. 아브라함의 부탁을 다 들어주는 것처럼 선심을 쓰셨지만 결국은 되지 않는 일임 을 다 알고 아브라함을 갖고 논 것 아닌가? 그렇다면 처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물었을 때 하 나님께서 의인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서 멸망시킬 거니까 그런 소리하지 마라 이래야 옳은가? 다음의 경우와 비교해 보자. 엄마, 나 이번에 전 과목 A를 받을 테니까 컴퓨터 사줄래? 엄마가 보 기에는 전혀 가능성이 없는 얘기다. 그럴 때 다음 두 가지 대답 중에 어느 쪽이 바람직한가? 1) 야,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거니까 일찌감치 포기해라. 너 그 실력에 무슨...? 2) (속으로 웃을지라도)그래 사줄테니 한 번 해봐라. 1번 대답이 솔직한 표현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엉망이 될 소지가 많다. 2번 대답이 아들을 가지 고 노는 것일까? 16. 아브라함이 이렇게 열심히 철판을 깔고 흥정을 하고 있는 이유는 누구 때문일까?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알고 계실까? 롯 알고 계신다: 아브라함은 속내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왜 모르시겠는가?

65 창세기 성경공부 :1~33 그 불 심판 가운데서 롯을 불러내신 것도 롯이 의인이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벧후 2:7-8에 따르 면 롯은 과연 의인이었을까? 그릇된 욕심에 이끌려 엉뚱한 길로 들어가서 고통하는 대표적인 인물 일 것이다. 죄악의 도시에서 거기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그 모습을 가리켜 의인이라고 표 현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의인이어서 구원을 얻었다기보다는 아브라함의 애틋한 마음 때문이라 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19:29). 소돔 고모라의 심판에서는 벗어났지만 그 이후에도 완전한 구원 의 삶을 누리지는 못했다. 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렇게 흥정하듯이 깎아내린 것은 일종의 기도라고 보아도 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셨을까? 들으신 셈이다: 아브라함이 직접 말은 안 했지만 롯을 구원해 달라는 것이 핵심이다. 결국 소돔에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을 당했지만 그 와중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생각하고 롯을 불러내셨 다. 18. 다음 대화의 밑줄 친 부분에 해당하는 말을 본문에서 찾아보시오. 학생: 아저씨! 이것 얼마죠? 주인: 5,000원 이다. 학생: 아저씨 ①정말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4,500원에 안될까요? 주인: 그래 4,500원에 줄께. 학생: 4,000원은 안될까요? 주인: 좋아 줄께. 학생: 아저씨! ②놀린다고 성내지 마세요. 3,000원에 안되겠어요? 주인: 그래 가져가. 학생: ③이런 말해서 될 일이 아닌 줄을 알지만 2,000원에는 어때요? 주인: 그래 2,000원에 줄께. 학생: ④아저씨 화나게 하려는 뜻은 전혀 없어요. 정말 마지막으로 드리는 부탁인데요. 1,000원에는 안될까요? 주인: 그래 가져가. ①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② 노하지 마옵시고, ③ 감히, ④ 노하지 마옵소서, 이번만 더 말씀하 리이다: 이것은 정상적인 흥정이 아니다. 학생이 흥정을 잘한 탓이 아니다. 어려운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주인 아저씨의 너그러움 때문이다. 19. 위의 대화에서 학생이 마지막에 아저씨, 그냥 주시면 안돼요? 했으면 어땠을까? 왜 아브라함 은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정말 기본이 없는 사람이 된다. 흔히 하는 말로 일말의 양심 때문이 아닐까? 장을 요약하면 대조적인 두 가지 예고 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예고인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오랫동안 하나님에 부름에 이끌려 살아온 두 사람의 인생행로가 드디어 갈라 지기 시작한다. 한 사람은 이제야 진짜 복의 길로 또 한 사람은 치욕의 길로(19장 참조)

66 창세기 성경공부 :1~38 창세기 19 장 1. 빨간 딱지(19세 이하 관람금지 표지)를 성경에 붙인다면 어디 어디가 적당할까? (3군데) 창 19, 38, 삿 19장: 셋 다 19장(38=19 2)이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2. 어떤 할머니가 교회에 다니게 되었는데 성경을 읽으라고 해서 열심히 읽었단다. 창세기부터 읽 다가 정말 망측한 이야기 를 읽고는 누구에게 물어보지 못하고 혼자 앓았단다. 무엇을 읽으면서 그렇게 망측하다고 생각했을까? 딸이 아버지와 관계한 사건: 손님을 내 놓으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딸을 내어주겠다고 하는 것도 망측하긴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딸이 아버지를 범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지만 일리가 있다. 3. 롯이 소돔에서 비교적 유지처럼 살았다는 증거는 무엇일까? 성문에 앉았다(1): 고대사회에서 성문은 재판, 사업, 고지, 사교활동의 중심지이었다. 따라서 그가 성 문에 앉았다는 말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보아스가 룻과 결혼하기 전에 엘리멜 렉의 기업 무를 자가 자기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음이 알고 그 사람이 자기의 권리를 포기할 것 을 공개적으로 확인한 곳도 성문이고(룻 4:1-6),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사고 공증절차를 마친 곳도 성문이다(창 23:18). 4. 이 지역에서는 낯선 손님이 길에 앉았으면 누구든지 먼저 보는 사람이 집에 데려가서 먹이고 재워주는 것이 관습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을 전체가 욕을 먹게 된다. 롯이 손님들에게 자기 집에 들어오라고 청하는데 천사들이 거리에서 경야하리라 는 것은 무슨 뜻인가? 단순하게 한번 빼 본 것이라기보다는 당장 심판이 임할 타락한 곳에서 머무르고 싶지 않다는 뜻 아닐까? 혹은 이후에 롯에게 미칠 악한 짓거리를 예상하기 때문일 수도! 그렇지만 롯의 입장에서는 간청을 해서라도 손님을 대접한 것이 잘 한 일이다. 이 손님들을 집으로 들이지 않았더라면 소돔과 함께 멸망당했을까? 아찔한 순간일 수도 있다. 5. 왜 무교병을 구워 대접했을까? 딱딱해서 좋은 음식은 아니라던데? 급하게 대접하느라고 그랬을 것이다. 6. 대적자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모여들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동자들이 있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기보다는 악감을 가진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것 을 의미한다. 7. 영어 Sodomy는 소돔사람 이라는 Sodomite에서 온 단어인데 사실은 남색하는 자 (호모)란 뜻으로 쓰인다. 소돔사람들은 이 분야의 전문가라는 뜻인데 어느 구절이 이 내용을 말하나요? 5-8절: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는 말은 성적인 관계를 가지겠다는 말이다. 오죽하면 멀쩡한 처녀 를 대신 내놓겠다고 하는가?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이것보다 더 험한 일이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노소를 막론하고 다 모여서 그랬다는 것은(4) 막 가자는 얘기다. 이런 곳에서 자란 롯의 딸들이니 아버지와 관계하여 후손을 전할 생각을 한 것 아니겠는가! 소돔 사람들이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 (롬 1:27)므로 불심판을 초래했다면 현대판 소돔 사람들이 불러온 재앙이 바로 AIDS 아닌가? 바르게 사는 사람에게는 아무 위협이 되지 않으면서 부끄러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만 위협적이란 점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라고 본다. 특별한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건전한 가정 을 이루라는 하나님의 경고임에 틀림없다. 8. 집에 온 손님을 보호하겠다고 딸을 내놓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만큼 상황이나 시대가 험악했다는 말이다. 딸을 이렇게 취급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방 풍습일 뿐이다. 하나님을 저버린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9. 롯을 찾아온 손님들을 향하여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라면서 그들을 욕보이려한 것은 아 마 롯이 그런 일을 하고 있었고 그게 아니꼬왔기 때문이 아닐까? 롯이 소돔이라는 타지에서 그 정도의 유지 노릇을 할 수 있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까? 재산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소돔의 전 주민이 포로로 잡혀갔다가 롯의 삼촌이 구해준 공로가 아닐 까(14장)? 충분한 이유가 있음에도 소돔사람들이 속으로는 롯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이 틀림없다. 이런 류의 텃세는 어디에도 있는 것이지만 교회 안에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정말 주의해야 한다. 10. 우리가 전도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기 때문이다. 혹은 하늘나라나 교 회의 상급을 타기 위함이다. 다 옳은 말이지만 가장 바른 답은 그들이 불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갖 아양을 다 떨어보지만 정작 답답한 것은 저들이 아니다. 그래서 어느 분은 정말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내 좋으라고 이러는 줄 아나? 속으로는 때려치우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단 다. 이럴 때 우리는 본문의 어떤 구절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까?

67 창세기 성경공부 :1~38 농담으로 여겼더라(14): 농담으로 여길 게 따로 있지! 공부 안 하는 자식보다는 그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더 속이 타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다시 학교에 다닐 수만 있다면 열심히 공부할 것이라 고 다짐하는 분일수록 자식들을 보면 속이 끓는다. 사정하고 달래고 어르는 수밖에 없다. 전도를 하 다가 속이 상하더라도 그것이 정상임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어차피 답답한 것은 아는 우리 일 수밖에 없다. 11. 지체하는 롯과 그의 가족들이 귀중품을 챙길 여유도 없이 그대로 성 밖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좀 심한 일 아닌가? (양 쪽에서 잡고 끌어냈을까, 순간이동을 시켜버렸을까?) 하나님의 자비다(16): 우리에게 어떤 위험한 일이 닥치는지 알지도 못한 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고 불만을 터뜨리거나 원망하는 일이 더러 있다. 하나님을 보고 너무 한다고 할 일이 아니다. 사정 이 이런 줄 안다면 절대로 못할 말일텐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이런 실수를 면하는 방법이다. 12. 아브라함의 기도(18장)가 본 장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표면적으로 보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의인 10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가 망했다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 와중에서 하나님께서 롯에게 인자를 더하신 것은(16, 29) 분명한 기도의 응답이다. 롯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의 의도가 롯 때문인 것을 하나 님은 아신다. 13. 다음 사람들의 심정을 간단히 한 마디로 표현해 보시오. 1) 천사들: 시간 없다. 2) 롯: 정리할 시간이라도 있어야지. 3) 처: 어떻게 얻은 재산인데... 4) 딸들: 우리 아빠 말이 농담 아니다. 14.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에 별 탈 없이 롯의 부탁(18-20)이 이루어졌지만 우리가 천사의 입장이 라고 가정해서 21절 대신 롯을 보고 한 마디 한다면? 참 말 많다! 15. 롯이 살아난 것은 두 분의 합작품이다. 누구?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아브라함의 (형제애, 중보기도): 하나님께서 소돔을 멸하실 것을 미리 말씀하 신 것도 롯에 대한 아브라함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롯을 구해내실 마 음이 있었기 때문에 롯이 구원을 받았다는 말이다. 이유를 롯에게서만 찾는다면 정확한 답을 구할 수 없다. 16. 롯이 아브람을 떠나서 소돔으로 갈 때와 소돔을 떠날 때의 모습을 그려보고 가장 대조적인 면 을 두 개 정도 찾아보시오. 천천히와 급히, 재산을 많이 가진 것과 잃어버린 것: 소돔으로 갈 때는 희망에 부풀어 콧노래를 불 렀을 것이다. 그 동안 불어난 많은 재산을 몰고 가면서 더 큰 재산을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돔을 떠날 때는 모든 것을 버리고 아내마저 잃은 채 정신없이 뛰어야만 했다. 아마도 뛰지 못하 겠다고 하는 것은 살이 찐 탓 아닐까? 산이 너무 멀었기 때문일 지도! 17. 롯의 이런 비극은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 복의 근원을 떠난 것에서: 아브라함을 떠난 것이나 약속의 땅을 떠난 것도 답이 되겠지만 복의 근 원을 떠난 것이라고 하는 것이 제일 좋겠다. 물질에 눈이 어두운 것이란 답은 정답에서 제외한다. 왜냐하면 물질에 눈이 어두워도 복의 근원에서 떠나지 않으면 이것보다는 나았을 테니까. 물질 위 주의 풍요로운 삶을 찾아서 하나님을 떠난 것 이 비극의 원인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욕심이 넘쳐흘러도 복의 근원을 떠나서는 안 된다. 비좁아서 하인들끼리 싸움을 하고 지지고 볶더 라도 복의 근원을 떠나서는 안 된다. 그렇게 떠났다가 인생의 마지막 바닥까지 내려간 사람들이 많 다. 나오미, 탕자, 유다, 가룟 유다, 다윗, 롯, 베드로...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돌아온 사람은 기 대 이상의 영광스러움을 회복했다. 18. 하나님께서 할 수 없는 일이 다 있는가(22)?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적인 문제다. 다른 말로 하면 안 하겠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하나님 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신앙의 초보도 아니다. 능력보다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과 시기와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옳다. 19. 롯의 아내는 너무 억울하다? 겨우 한 번 뒤돌아 보았을 뿐인데? 지금은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더라도 새겨들어야 할 때이다. 이런 판국에 미련을 갖고 뒤를 돌아보는 것은 큰 잘못이다. 롯의 가정에 임한 저주의 한 부분이지 롯의 처가 특별히 더 벌을 받은 것이 아니다. 차라리 살아서 더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 나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장연읍 몽 금포에 있는 용소와 관련된 우리나라 전설이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와 비슷한가? 그 리스 신화의 얘기는 안 되는 것을 허락하는 척하면서 결국은 안 되게 하는 것이고, 용소의 얘기는 애당초에 불가능한 일을 시킨 것이다. 성경의 얘기는 롯과 두 딸처럼 순종하면 가능한 일이다

68 창세기 성경공부 :1~ 결혼도 않은 두 딸이 아버지와 동침함으로 인종을 전할 생각을 한 것과 그 일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은 그 방면의 선수였기 때문이다. 어디서 이런 재주를 배웠을까? 소돔의 백성들의 성적 문란에서: 소돔에서 살면서 보고들은 것들의 종합적인 결과라고 보아야 한 다. 우리가 아무리 깨끗한 모습으로 살기를 원해도 그 시대의 모습에 물이 전혀 들지 않을 수는 없 다. 우리 아이들이 음란물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으며 일반적으로 가진 문란한 사고에 접촉되지 않 을 수 없다. 부모가 자식들을 그런 모습에 노출이 되지 않겠다고 작정하는 것보다는 노출이 된다는 전제 하에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컴퓨터를 없애고 통신을 못하게 하고 눈과 귀 를 틀어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런 문화에 노출이 되더라도 자신을 지켜나갈 수 있는 자세를 가르치면서 키워야 한다. 21. 술에 취해서 정신없는 사람과 성관계가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단 한 번의 관계로 두 딸이 다 임신이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렇지 않다면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 나이까지 감안해보면 불가능한 일이며 결국 지속적인 성관계가 있었음을 암시한다고 보아야 한다: 처음에야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시작되었겠지만 일단 선을 넘어버리면 자포자기 상태로 발전하 여 결국 부녀가 부부처럼 살고 말았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지만 부녀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말씀하시는 분은 아직도 이 사회에서 순진한 사람이란다. 주변의 추한 모습에 조금만 눈을 돌려보 면 얼마든지 그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단다.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리 나쁘다 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방식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세상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더 추한 모습을 숨기고 있다는 말이다. 22. 모압과 암몬 족속은 근친상간이라는 치욕스런 범죄로 말미암아 태어났다. 혹자는 이것이 사실 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 민족의 우월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 말이 옳지 않다는 증거를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1) 성경은 타민족의 수치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조상들의 수치도 전혀 감추지 않고 있다. 비슷한 현 상이 창 38장에도 있고, 자신들의 위대한 조상 다윗의 이야기도 있다. 2) 다윗 왕의 외할머니 룻은 모압 여인이었다. 23. 벧후 2:7에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라는 말씀이 있다. 이 본문만 보면 롯이 의로웠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다. 다른 성경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라고 말하는데 도대체 어느 말이 맞을까? 둘 다 맞다: 의롭다는 단어는 같지만 의미하는 바는 다르다. 노아의 예를 들면 이해하기가 쉽다. 가 령, 온 인류가 범죄한 것 때문에 심판을 하시려면 하나님께서 가장 쉬운 방법은 전부 없애버리고 다시 창조하는 것이다. 그 방법이 훨씬 쉬울텐데 굳이 노아를 선택해서 오랜 세월동안 방주를 짓게 하고 그 많은 동물들을 보존하게 하시는 어려운 방법을 택하셨을까? 그것은 창 3:15에서 여인의 후 손을 보내겠다고 하신 자신의 말씀을 지키시려는 것이다. 그래서 적당한 사람을 찾다보니 노아가 선택되었다는 뜻이다. 노아의 의로움이 그를 구원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작정하심에 노아가 선택된 것이다(창 6:8). 그런 하나님의 작정하심이 있으니 노아에게 있는 의로움이 의로움으로 인정이 되는 것이다. 노아의 의로움은 자신의 공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혹은 간주)하심이다. 롯이 소돔 성에 서 고민하고 아파했을 것이지만 그것이 자신을 구원할 만한 의로움이 아니지만 그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의로 여기신 것이다. 죄를 간과하시고 (의롭지 않은 사람을) 의롭다고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롬 3:25-27 참고). 15번도 참고 할 것! 장과 19장에서 아브라함과 롯의 공통점은? 손님 대접을 잘함: 천사라기보다는 손님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 처음부터 천사인 것을 알고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손님 접대를 잘 한 것이 반드시 복을 받은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하 나님의 복이 그들에게 이르는 통로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장과 19장에서 아브라함과 롯의 공통되는 점이면서 사실상 아주 다른 점을 찾으시오. 후손을 갖게 된 점: 아브라함에게는 참으로 소중하고 귀중한 후손이지만 롯에게는 부끄러움을 만대 에 전하는 후손이다. 아브라함의 아들은 약속의 자손이지만 롯의 자손은 찝찝한 자손 이다. 이삭의 이름 뜻은 웃음 이다. 비록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는 부끄러운 과거를 회상케 하는 이름이지만 복된 이름이다. 그러나 롯의 큰아들 모압의 이름 뜻은 나의 아버지의 아들 이란 뜻이다. 모르고 들으면 괜찮지만 알고 보면 웃기는 이름이다. 큰 딸의 입장에서 나의 아버지의 아들은 오빠거나 남동생이 다. 자기 아들이 말이다. 벤암미의 벤은 아들, 암미는 내 백성이란 뜻이다. 26. 소돔과 고모라의 위치는 대체로 사해 남쪽의 호수 내부로 추정한다. 롯이 피했던 작은 성읍 소 알이 사해 남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사해는 수면이 해하 400m, 가장 깊은 곳은 800m로 내륙에 서 가장 낮은 호수이다. 바로 서쪽이 높은 산맥지대(가장 높은 곳은 1002m)임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깊이 꺼진 곳이다. 이 땅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기 전에는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 더라 (창 13:10)고 했다. 아무래도 사해가 죽음의 바다 가 된 것이나 깊이 꺼진 형국이 하나님의 분 노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문의 어떤 표현이 이런 추정을 가능하게 할까?

69 창세기 성경공부 :1~38 엎어 멸하셨다(25, 29): 어쩌면 땅 속이 화석이 노아 홍수 심판에 대한 증거물로 남겨둔 것 아닐까? 사해 바다라는 모습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모습을 흔적으로 남겨두신 것 아닐까?

70 창세기 성경공부 :1~18 창세기 20 장 1. 아비멜렉과 아브라함을 서로 비교해 보자. 아비멜렉 아브라함 동기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염려해서 책망 받은 후 생사불구 아브라함을 책망함 구차한 변명 재산의 변동 양, 소, 노비, 땅, 은 (손실) 공짜로 엄청난 재산을 얻음 하나님께 벌받음 (모든 태를 닫힘) 아비멜렉을 용서하도록 기도함 결국 잘못 없이도 엄청난 손해와 벌 잘못에도 엄청난 재산을 얻음 나의 의견 깨끗한 삶을 가진 이방인 못난 신앙인 2. 이 본문을 가지고 드라마를 한다면 누구 역을 해 보고 싶은가? 이유는? 아비멜렉: 드라마의 주인공으로는 아비멜렉이 옳다. 대사도 길고 마음껏 뽐낼 수 있으니까. 하나님 을 향해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향해서, 신하들을 향해서 소신껏 고함칠 수 있는 사람이다. 멋있다! (7번의 답을 참조) 사라: 예쁘니까. 정답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여자들은 사라역을 하고 싶단다. 온갖 광고에 모델 로 나가면서도 그저 화장품 광고에 한번 나가는 것이 소원이라던 어느 가수처럼. 아브라함: 이 역할은 아무래도 마누라를 빼앗기는 푼수나 찌질이 연기를 해야 할 판이다. 거짓말, 구차한 변명을 해야 한다. 3. 예전에 애굽에서 바로가 사라를 취하여 간 것은 그녀의 미모 때문이었다. 여기에서는 아비멜렉 이 사라를 취하여 간 이유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지금은 나이가 많을테니 미모 때문이 아닌 것 같다. 미모가 아니면 무슨 가능성이 있을까? 14, 21장을 참고해서 생각해보자. 정략결혼: 아브라함이 이제는 유능한 족장으로서 명성과 부를 누리고 있었다. 아비멜렉이 보기에는 그렇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아직 두려움이 많은 겁쟁이다. 자신이 크게 성장하여 변했지만 여전히 자신을 옛모습 속에 그대로 가두어 두고 있다.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기가 얼마나 어려운 가? 과신도 금물이지만 과소평가도 금물이다. 4. 본문에서 가장 큰 소리를 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아비멜렉 (9-10): 하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셨는지 알 수는 없으나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할 말은 다 한 사람은 거의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선생님께 대어드는 놈도 보통은 아니다. 하물 며 아비멜렉은 하나님께 내가 무얼 잘못했습니까? 하고 대어들었으니 사나이 중에 사나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5. 아브라함이 잘한 점은 무엇이며, 아비멜렉이 잘못한 것은 무엇인가? 없다. 6. 사라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는가? 부른다고 그냥 따라가냐? 자결을 하던지 반항이라도 해야지! 그 남편에 그 아내라고 할까(부창부 수)? 남편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느냐고 사라의 편을 드시는 분도 있다. 순종할 걸 순종해야지... 부 부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고향과 명예를 버리고 도망을 간 부부의 애절한 사연을 간직한 옛이야 기에 비하면 이들 부부의 이야기는 전혀 감동적이지도 않다. 하나님은 어떻게 이런 부부를 들어서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을까? 여자가 예쁜 것은 복일까?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그 미모 때문에 위험에 빠지거나 스스로 잘못된 길을 걸은 사람이 너무나 많다. 마치 날이 잘 선 칼과 같다. 부인의 외모가 뛰어나게 예쁜 남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외모에만 신경을 쓴다면 진정으로 행복하기는 더 어렵다. 오히려 의처증이 생 기기 쉽다. 평범한 외모에 특출한 신앙을 지닌 모습이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 7. 아비멜렉은 인간적인 면만 본다면 어떤 점에서 칭찬 받을 만한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당당함 1) 4: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2) 9: 하나님께 책망을 받고도 자신의 생사를 쥐게 된 아브라함에게 당당하게 말함. 신하들이 두려 워하는 모습과 비교해 보아도 비굴한 모습이 전혀 없음, 3) 14-16: 예물을 주어서 사라를 내보내면서도 당당함 8. 그는 실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처가 되었음이니라 (12)는 이 말은 사실인가 아닌가?

71 창세기 성경공부 :1~18 말은 맞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결코 옳지 않다: 미안하다. 할 말 없다고 하면서 용서를 구해야 한다. 어떻게든지 변명이라도 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자신의 말이 완전히 거짓이 아니라 실상 약간 의 진실은 있다고 말한 것이 오히려 아브라함의 구차함을 더 드러내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아담에게 데려왔을 때 아담이 얼마나 좋아했는가! 그러나 범죄하고 책망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내 게 주셔서 함께 하게하신 여자 라고 말했다. 말이야 맞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맞는 말이라도 적절 한 상황이 아니면 맞다고 할 수 없다.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단다. 자기들은 수도 없이 낳아놓고 나는 겨우 하나 놓은 거 가지고... 변명하는 사람도 나름대로는 일리가 있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일리가 있고 말이 맞다고 옳은 것은 아니다. 9. 사라를 취하여간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화를 내시는 것일까? 아브라함이 새로 장 가를 들게 해주면 될 텐데. 하나님께서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을 것이라고 하실 때 그 약속은 아브라함에게만 준 것이 아니라 사라도 함께 받은 것이다. 따라서 약속한 그 후손은 사라를 통해서 태어날 것임을 약속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나이가 되도록 아들을 주시지 않은 의도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주신 약속은 아내에게도 유효하다. 부부는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벧전 3:7) 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혼자가 아니다. 처녀 시절에 선교사로 가기로 서원한 것 을 모른 채 결혼한 남편은 아내를 따라서 선교사 보조 로 나가야 하는가? 민 30:6-9절을 참고하세요. 다른 비슷한 경우를 든다면 부흥회에서 은혜에 감격하는 바람에 부부가 따로 거액의 작정헌금을 하고 왔다. 집에서 의논을 해보니 너무 엄청나서 후회스럽다.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집 팔아서 갖 다바치면 혼자 서원을 지킬 수는 있는데? 부부는 함께 모든 것을 의논하면서 뜻을 합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상대방의 동의를 얻지 않은 일방적인 서원은 원인무효다. 하나님 앞에서 이런 짓을 저지르게 해서도 안 되고 그렇게 함부로 작정을 해서도 안 된다. 10. 아브라함에게 이런 창피스러운 일이 생기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남방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1): 하나님께서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했음으로 하나 님께서 주신 땅에서 죽든지 살든지 해야지, 좀 어렵다고 함부로 떠나가면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된 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하나님의 품을 떠나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도, 평탄한 것도 아니다. 아내를 누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당장 눈 앞의 위기만 모면할 잔꾀를 부 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용기를 내야 한다. 정도를 걷자. 그것이 형통한 길이요, 평안 한 길이다. 11. 왜 아내를 누이라고 불렀을까? 하긴 요즘 젊은 부부 사이에는 남편을 보고 오빠라고 하던데 그런 것일까? 타국에 거하면서 아내를 빼앗기고 자신이 죽음을 당할까 두려워서: 아내를 빼앗기더라도 살아 남아 야한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해서 고향을 떠났으면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야지 자신의 꾀를 믿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가? 결코 그것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눈에 훤히 보이는 데도 그런 방법으로 자신을 지키려 하다니... 그것도 처음이 아니라 예전에 그런 적이 있었는데 또 그러다니.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야 한 다. 인간적인 꾀를 부리는 것은 가시밭길을 스스로 자청하는 것이다. 결국 복을 받았지 않느냐고? 그냥 받을 복을 꼭 고생하고 받아야 하나요? 12.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여 아내로 삼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께 대한 범죄가 되는가(6)? 하나님의 백성에게 해를 가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범죄함이다: 그리스도인들이여! 불신자들과 함께 살면서 억울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거든 적어도 이 정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자. 내가 누군지 아느 냐? 너희가 지금 누구를 대적하는지 아느냐? 말로 표현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장차 메시야를 보내실 길을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비멜렉이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는 일이다. 우 리가 알고 지은 죄보다 모르고 짓는 죄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아니 모르기 때문에 죽을 죄를 매 일 짓고 있는지 모른다. 더구나 이삭을 낳을 때가 다 되어 가는데 그럴 수 없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사라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부부이다. 아브라함이 사라 아 닌 다른 여인을 통해서 아들을 낳으리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3. 하나님이 나타나신 그 날 아비멜렉이 왜 일찍 일어났을까? 놀래서? 억울해서? 두려워서? 놀랐기 때문일 것이다: 2절의 사라를 취하였더니 와 관련지어 그 밤에 아무 일도 없었음을 증명하 기 위해서 라는 대답이 나왔다. 왕이 신방을 그렇게 간단히 치르는 것이 아니다. 며칠씩 걸리는 절 차를 다 치루어야 하는 법이다. 취하였다 는 말은 단순히 데려갔다 고 이해하면 된다. 14. 아비멜렉은 정말 억울하기도 하고 신경질나기도 했을 것이다. 도대체 저렇게 멍청한 자식에게 당하다니... 하나님만 아니라면... 이런 심사를 담아서 아브라함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네 오라비: 너희들끼리 그렇게 부르니 나도 그렇게 불러준다. 나중에 만나도 네 오라비 잘 계시냐? 고 물을 것만 같다. 비꼰다고 할까, 유머감각이라고 할까? 15. 아비멜렉이 자초지종을 다 알고 난 후에 아브라함에게 야, 넌 어떻게 저런 분을 알게됐어? 나

72 창세기 성경공부 :1~18 좀 소개시켜 주라 혹시 이렇게 부탁하면 아브라함이 무엇이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나도 몰라. 알고 보면 나를 얼마나 괴롭히는지 알아?: 왜 날 사랑하나? 라는 복음송이 기억난다. 흐 느끼듯 울부짖듯 왜 날 사랑하나? 를 반복하지만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오직 감사할 뿐. 16. 아비멜렉의 꾸중을 다 듣고 난 후에 아브라함은 미안하기도 하고 계면쩍기도 하겠지만 어쨌건 아비멜렉을 위하여 기도를 했다. 그래서 아비멜렉의 집 모든 태가 열렸다. 아브라함이 무엇이라고 기도했을까? 또, 그 기도가 얼마나 웃기는 기도인가? 원인은 자기에게 있으니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되, 내용은 닫힌 태를 열어달라는 것이었다. 사라의 태를 열어달라고 한 번, 두 번 기도한 게 아니다. 그렇게 기도해서 응답을 받을 능력이 있다면 자기 부인의 닫힌 태를 열어달라고 기도할 일이지! 그러나 아브라함의 이 기도는 깨끗하게 이루어졌다. 그렇게 기도가 잘 이루어진다면 불임전문기도원(?)을 열면 어떨까? 자기 아들이 없다는 것이 결정적 인 흠이지만... 결국 기도의 응답도 기도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열심 히 기도하되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뜻대로 되지도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기도해야 하는가?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17. 일을 이렇게 처리하는 하나님에게 이름을 붙여 봅시다. 편애하시는 하나님: 편애라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는 더 이 상 좋은 말이 없다. 말끝마다 이쁘다고 하는 남편을 향하여 당신은 왜 나만 그렇게 이쁘다고 그러 세요? 다른 여자도 공평하게 사랑하셔야죠?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공평한 남편과 편애하는 남편? 어느 편이 정상인가? 아버지, 내게만 용돈을 주실 게 아니라 공평하게... 나만 사랑하는 아버지와 모든 아이들을 다 사 랑하는 아버지? 중요한 것은 그 분과 나와의 관계이다. 내가 얼마나 멋진 인간인가? 능력있는가? 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분의 자녀인가 아닌가? 이것이 중요하다. 믿습니다는 단 한 마디 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대신 지불하게 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지극 히 간단한 이 한 마디의 고백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렇게 간단한 이 한 마디를 위하 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으셨는지 아십니까? 이 한 마디를 우리에게 전해 주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를 뿌렸는지 아십니까? 엄청난 기적 같은 고백을 아무런 감동도 없이 함부로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비멜렉은 그렇게 멋있는 사람이었지만, 이런 경험을 하고서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아무나 이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편애라는 단어가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떤 단어가 이것을 가장 잘 표현할까요?) 18. 아비멜렉과 아브라함 중에서 누구처럼 살고 싶은가? 가장 바람직한 것은 아비멜렉처럼 사나이다우면서 동시에 아브라함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입니다. 두 사람의 장점만 다 본받으면 좋죠. 아쉽지만 하나를 택하라면 아브라함을 닮읍시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 이야기를 하고서 예수 믿는 우리는 거지 나사로처럼 삽시다 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 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부자는 전부 나쁜 것처럼 은연중에 인식될 가능성도 있고 나사로 의 신앙적인 모습보다는 거지라는 모습이 뇌리에 오래 남을 가능성이 더 크다. 신앙은 나사로처럼, 삶은 부자처럼 이런 결론이 어떨까?

73 창세기 성경공부 :1~34 창세기 21 장 1. 성경의 본문을 함부로 고쳐서 될 일은 아니지만 만약에 1절을 다시 쓴다면 문장이 자연스럽도 록 빼내어도 될 말이 있을까? 2번째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 빼내어도 전혀 문맥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결코 빼내고 싶 지는 않다. 여호와께서 를 빼고 싶지 않은 것은 이 일을 행하신 이가 여호와임을 강조하고 싶은 감 사의 마음이며 그 말씀대로(1절에 두 번, 2절에 또 한번) 를 빼고 싶지 않은 것은 그 분은 자신의 말씀대로 행하시는 분이심을 감사하고 싶기 때문이다. 한번 뱉은 말도 뒤집기 일쑤인 우리로서는 한번 약속하시면 철저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창 3:15절에서 여자의 후손을 보내겠다는 한 마디 때문에 세상을 다 멸하고 싶어 도 재창조라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고 노아를 통하여 번거롭게 세상을 보존하셨고 결국 독생 자를 보내어 죽게까지 하신 것도 약속에 신실하신 그 분의 성품 때문이다. 그 분이 내게 무슨 약속 을 하셨는지 생각해보자. 이 약속에 근거하여 기도하고 찬양하면 하나님은 꼼짝 못하시는 분이시다. 성경 말씀에 근거한 기도를 하자. 권고하셨고: 원어상으로 보면 파카드( )פקד 라고 하는 단어인데 방문하다 는 뜻이다. 하나님의 방문이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이 되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복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단어는 심판하다, 복을 주다 라는 양쪽으로 사용되는 단어다. 방문을 받는 사람이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서 결과 가 정반대가 될 수 있다. 2. 성경주의(Biblicism)란 말이 있다. 좋은 말처럼 보이지만 대단히 위험한 말이다. 성경에서 문맥과 상관없이 자기가 필요한 대로 인용하여 멋대로 풀이하는 것을 말한다. 독해력이 조금만 있거나 본 문을 조금이라도 자세히 읽어보면 금방 잘못임을 알 수 있는 데도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가령, 본문에서 문맥과 상관없이 잘라내면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 속을 간절하게 기다리다가 미쳤답니다 어느 구절을 근거로 이런 바보 같은 소리를 했을까? 2절 미쳐 늙은 아브라함 : 여기 미쳐 는 이르러 라는 뜻이다. 어거지 같은 예를 들었는데 그리스도 인은 극장에 가면 안 된다. 성경에 그렇게 적혀 있기 때문이다. 행 19:31을 보라 고 주장하는 사람에 게 어떻게 대답을 하면 될까? 고전 2:8을 근거로 통일교에서 예수는 죽으려고 이 땅에 온 것이 아 니라 사람들이 모르고 죽였다. 그래서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고 나머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문 예수가 왔다 고 설명했다. 7-9절을 자세히 읽어보면서 이것이 얼마나 어거지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이 런 식으로 성경을 읽으면 그것은 성경이 아니라 자기 주장일 뿐이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성경이 말하게 해야 한다. 성경을 인용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3. 갈대아 우르와 하란에서 아브라함을 불러 내셔서 방랑의 길을 걷게 하시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특히 사라를 지켜주신 하나님의 목표는 무엇일까? 이 본문에서 답을 찾는다면? 이삭의 출생: 다른 여인이 아닌 사라여야 한다. 결혼한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은 사라에게도 동일하 게 유효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사라와 상관없는 약속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생각 하시는 부부의 관계란 바로 그런 것이다. 부부는 유업을 함께 받을 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21장의 9번). 그래서 위험에 처할 때마다 사라를 구해주셨다. 그로 인해 약속의 씨가 보존되게 하심이다. 예 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4. 이삭의 이름 뜻은 웃음 이다. 먼 훗날 사라가 아들을 부를 때마다 생각나는 두 종류의 웃음은 무엇일까? 1) 부끄러운 기억: 왜 웃느냐? 안 웃었습니다. 아니라 웃었느니라. 비웃음을 진짜 웃음으로 바꾸 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했을까? 2) 90세에 아들을 얻은 환희의 웃음: 평생의 소원이 풀어진, 한국식으로 말하면 평생의 한이 풀어지 는 웃음이다. 사라는 비웃음을 진짜 웃음으로 바꾸어주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했을까? 이 웃음의 또 다른 의미는 온 인류를 위한, 온 인류의 웃음이기도 하다. 그냥 보면 단순한 사건도 그 뒤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담겨있음을 계시가 진전됨에 따라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구약 성경의 많은 비밀은 기록한 당사자도 정확한 의미를 모른 채 오랜 세월을 지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밝혀졌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으므로 아직도 구약의 많은 부분이 해석되지 않은 채 답답한 성경을 가지고 있다(창 3:15 여자의 후손, 사 53장의 고난 받는 종, 레위기의 짐승들의 피). (웃음에 대하여 17장 11번 참고) 5. 우리의 신앙은 체험적인 신앙이어야 한다.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 리와 교제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마리아 여인이 전도하여 데려온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나서 한 말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요 4:42)는 고백처럼 친히 체험하는 하나님이어 야 한다. 누가 뭐라 해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체험은 그 말씀대로 살아야 가능하다. 사 라의 이런 체험적인 고백은 무엇인가? (세 단어 정도로) 내가 아들을 낳았다(7): 이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7) 라는 말

74 창세기 성경공부 :1~34 은 아무도 기대하거나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일을 행하셨다는 고백이 다. 이 말에는 하고 싶은 엄청난 말이 숨겨져 있다. 아들 없는 여인의 슬픔이 어떠했을지 상상은 잘 안 되지만 그 모든 아픔을 일시에 털어버린 감격이 이 말 속에 담겨 있다. 내가 아들을 낳았다! 우 리의 신앙은 이런 체험이 가능한 것이다. 말씀대로 사는 경우에 말이다. 6.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시고도 가나안 땅에 들 어온 지 25년을 기다리게 하신 것은 무슨 이유일까? 1) 이삭의 탄생은 확실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인정하도록: 이삭은 육의 자녀가 아니라 약속 의 자녀이다(1절의 그 말씀대로 ). 14만명을 상대로 싸워야 할 기드온의 군사는 겨우 32,000명이었다. 하나님은 많다고 줄이라고 하셨다. 얼마까지? 300명? 300명이라기보다 더욱 정확한 답은 도저히 우 리 힘으로 싸워서 이길 수 없다 는 고백이 나올 때까지이다. 출생이 예수의 동정녀 탄생처럼 초자연 적 방법으로 이루어졌음을 고백하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2) 오랫동안 기다렸던 아들이라고 불려지기 위해서: 이삭은 신약 시대의 예수님의 모형으로 아담 때 부터 기다려진 여자의 후손을 예표하기 때문이다. 7. 사라가 하갈에게 행한 일은 너무 무정하거나 가혹한 처신이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자기가 아이를 못 낳을 때 대신 아이를 낳으라고 하고 그 아이를 자기 아이로 여기지 않았던가 (16:2) 법적으로도 아브라함의 아이(12, 13)가 아닌가?: 그런데 이럴 수가 있나! 자기가 어려웠던 때는 생각도 하지 않고 불쌍한 사람을 괄세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더구나 이러면 안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더욱 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선한 일에 조심하자(고후 8:21)는 말씀을 기억하자.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실수조차 복으로 바꾸어주셨다. 하나님의 약속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아이가 아님에도 여종의 아들도 네 씨 라고 말씀하시며 복을 주셨다. 8.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방법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쓴 탓에 아브라 함의 가정에 생겨난 부정적인 일들을 나열해 보자. 1) 끊임없는 가정불화(대연을 망쳐버렸다. 잔칫날 이게 무슨 꼴이야?) 2)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는 아픔 (11, 인간적으로 못할 짓) 이유가 어찌됐건 아브라함이 하갈을 취한 것은 불신앙적인 행위이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아브라 함을 책망하시지도 않았지만 이런 고통을 맛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말이 잘못해도 매를 맞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이 땅에서 고생을 더 하느냐 아니면 평탄한 길을 가느냐는 문제는 자신이 얼마나 신앙적으로 사느냐에 달린 문제다. 9.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것이 집에서 쫓겨나갈만큼 큰 죄인가(9)? 문제는 하갈에게 있었을 것이다: 10절을 참고하면 기업을 상속하는 문제와 관련된 일이다. 하갈이 사라에게 복종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었을 것이다. 이삭만 아니라면 이스마엘이 상속자가 되었 을 것인데? 그런 미움이 이스마엘의 이런 행동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하갈은 사라의 그늘에 거하는 것이 복이다. 이스마엘도 할례를 받았으니(17:23, 26) 아브라함의 자녀로서 복을 누리려면 이삭의 그 늘에 머물렀어야 한다.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이삭이었으니.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나 아간처럼! 10. 하갈이 이스마엘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가다가 길을 잃은 듯하다. 이때 이스마엘의 나이는 얼 마 정도로 추정할 수 있을까? 누가 먼저 사막에서 퍼져 버린 것 같은가? 왜 그럴까? 17, 18세 정도( or 4): 아브라함이 99세 때 이스마엘은 13살(17:24-25), 100세 때 이삭 출생(1년 추 가), 젖 뗄 때 사고 발생했으니(3-4년 추가). 험한 세월을 이긴 엄마와 귀하게 자란 아들의 차이: 아이가 필요한 모든 것을 제때에 잘 해주는 것 이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인지 참으로 의심스럽다. 오히려 나약하고 의타심만 기르는 것이 아닌지 생 각하면서 해줄 것도 주어야 한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떨어져야 한다. 일본에서는 아 이가 다 자랐음에도 근처를 뱅뱅 돌며 온갖 보호를 아끼지 않는 엄마를 헬리콥터맘이라고 한단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어릴 때 못 먹고 껄떡거린 음식은 평생 맛이 있다. 실제로 더 맛있는 음식이 있는데도 말이다. (살 한 바탕이란: 화살이 날아갈 만큼의 거리 약 300m) 11. 누가 初志一貫과 가장 거리가 먼 행동을 하는가? 하나님(2점): 하갈이 집을 나갔을 때 들어가라 하시더니(16:9) 이제는 내보내라 하시는가? 차라리 이 스마엘이 어릴 때 나왔더라면 아픔이 덜했을 텐데. 그런데 왜 쫓겨난 하갈에게 나타나서 도와주시 는가? 도와주시려면 차라리 아브라함의 집에 있도록 도와주시지? 하나님도 하갈이나 이스마엘이 미 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여기까지는 하나님께서 가장 오락가락 하신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 바울에 의하여 밝혀진다. 육의 자녀는 결국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음(갈 4:22-31)을 설명하는 것이다. 육의 자녀 이스마엘은 유업을 받을 수 없으며 약속의 자 녀인 이삭이 유업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두 아내는 각각 은혜와 율법을 상징한 것이다. 같은 이치로 유대인들은 더 이상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할 이유가 이제는 없다

75 창세기 성경공부 :1~34 사라(1점): 아들을 얻기 위하여 하갈을 남편에게 첩으로 주었다가 이제는 사소한(?) 일로 쫓아냄. 아브라함(0점): 그래도 자식을 염려하여 고민함: 가장 初志一貫에 가까움.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니 그 아이가 오히려 더 큰 부족을 이루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보내라고 하시면 보내라, 죽 지 않는다. 12. 누가 크게 울었을까? 하나님께서 들으신 것은 누구의 소리였을까? 크게 운 사람: 하갈(의 방성대곡,) 하나님께서 들으신 것: 아이의 소리(17) 하갈이 크게 울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들으신 것은 아이의 소리였다. 소리가 크다고 하나님께 더 잘 들리는 것은 아니다. 관심이 있는 자의 소리가 잘 들린다. 아브라함에 대한 관심 때문에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하나님의 관심이 있다. 이스마엘의 후손이 큰 민족을 이루게 되는 것도 아브라함 때 문이다(13). 13. 하필이면 하갈이 샘물 가까이에서 목말라 죽는다고 방성대곡을 하였을까? 눈이 어두운 인생이 바로 그런 것, 하나님께서 눈을 밝혀주시지 않으면 그럴 수도 있다: 눈 앞이 캄 캄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으면 때로는 너무나 쉬운 해 법이 바로 곁에 있기도 한다. 실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우리 인생이 이런 것이다. 14. 아비멜렉과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평화 조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찾아온 동기는 무엇 을 보았기 때문인가? 무슨 일을 하던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았기 때문(22): 여기의 무슨 일 은 잘 하는 일을 의미하 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잘못하고 있는데도 하나님이 아브라함 의 편을 들더라는 고백이다. 네가 잘못했는데도 하나님이 네 편을 드니 내가 미치겠다 네가 거짓 말을 했는데 그 말을 곧이들은 내가 벌을 받게 되더라 는 말이다. 블레셋 족속은 비교적 싸움에 능 하였고 나중에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힌 민족이다. 지금도 팔레스타인이란 이름으로 싸우고 있 다. 이런 족속의 땅에서 이렇게 대우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었다. 이스마엘(하 갈)은 할례를 받았음에도 아브라함과 이삭의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 할례 없는 아비멜렉은 이렇게 하나님을 보았는데 조약의 내용은 무엇인가? 거짓되이 행치 말라: 세상에! 어떤 국가나 부족이 조약을 맺으면서 이런 조건을 내건 적은 없다. 아 브라함이 거짓말을 해도 피해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이다. 이래도 아브라 함이 위대했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보는 것이다. 나중에 아브라함은 정말 위대해진다. 그것이 하나님의 작품이다. 16. 사라로 말미암아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두려움에 잡혀 실수만 해대던 아브라함이 그래 도 아비멜렉에게 큰 소리로 항의를 한번 했다. 언제, 누구 덕인가? 거짓말 않기 조약을 체결한 후, 하나님 덕에: 아브라함이 용감하고 박력있는 사나이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25-26). 억울하게 당했지만 참고 있었다는 말이다. 제대로 항의도 한번 해 보지 못하고 지 냈던 모양인데 하나님의 능력이 아비멜렉에게도 확실히 미치고 있음을 보고 속에 묻어두었던 말을 한번 터뜨린 셈이다. 훗날 야곱도 그런다(31:36-42). 17. 아브라함이 따로 떼어서 준 일곱 암양새끼는 요즘말로 하면? 공증비, 혹은 등록세: 증거를 위해서 준 것이므로. 18. 믿는 우리가 불신자들에게 꼭 들어야 할 한 마디가 있다면?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22): 나중에 이삭(26:28), 야곱(30:27), 요셉(39:3)도 같은 말을 이방인에게 듣게 된다. 하나님께 인정받기 전에 불신자들에게서도 먼저 인정받는 삶이 되자. 사회에서는 왕따나 바보처럼 취급당하면서 교회만 오면 살아서 펄펄뛰는, 소위 교회 안에서만 출세한 사람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19. 이런 일련의 일들을 통하여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 있다면 무엇일까? 하나님에 대하여 더 많이 알게 됨(33): 영생하시는 하나님이란 표현은 단 4:34, 단 12:7에만 나오는 표현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그것 이 하나님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인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친히 도와주셨음을 고백 하는 셈이다. 에셀나무는 바로 그런 하나님의 도우심에 감사하는 기념식수라고 할까? (도움을 뜻하 는 에벤에셀의 에셀과 원어상으로는 발음이 다소 다름) 하나님에 대해서 체험적이면서도 깊이 알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런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서 다음 장의 위대한 시험을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차원을 넘어서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 는 결정적이고 신앙적인 체험을 하게 되었다. 기독교 신앙은 이런 체험이 가능하다. 말씀대로 살아 갈 때 이런 체험이 따르게 되고 그래야 진정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가능하다

76 창세기 성경공부 :1~24 창세기 22 장 1. 그 일 후에 란 말은 구체적으로 언제인가? 1) 짧게 본다면: 아비멜렉과 평화조약 체결 후, 즉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심을 확인한 후. 2) 길게 본다면: 일생을 통하여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면서 그의 편이 되어 선으로 인도하심을 확신 케 한 후. 짧게 보나 길게 보나 같은 마찬가지다. 3) 결과적으로 본다면: 시험칠 준비가 다 된 후, 2. 입학시험은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인가 합격시키기 위한 시험인가? 자기 실력에 따라 답이 다를 수 있다. 중간고사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이다. 말은 그렇다. 시험 날짜를 정하는 것도 시험의 성격에 따라 다소 달라질 수 있다. 공부시키겠다고 치르는 시험은 꼭 주일이 나 공휴일이 끼인 날로 잡는다. 교사가 개인적으로 치르는 부정기적인 시험은 예고 되었다가도 학 생들이 준비를 제대로 못하면 연기되기도 한다. 아브라함의 시험은 다음 중 어느 것에 가장 가까 울까 생각해 보자(창 18:17, 요 8:56 참조). < 정기 시험, 불시에 치르는 시험, 공부시키기 위한 시험, 상을 주기 위한 시험 > 복 주시기 위함: 시험 치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은 자신이 있는 사람이다. 시련 앞에서 하나님의 임 재를 느끼는 사람은 시련을 기뻐할 수도 있다.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조상 이라는 타이틀을 주기 위 함이다. 21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하나님을 체험케 하기 위함이다(계속되는 질문과 답을 참 조). 시기상으로는 아브라함의 공식적인 활동의 끝이요, 신앙생활의 끝 무렵이다. 명예로운 은퇴를 준비시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성경에는 두 종류의 시험이 있다.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유혹(temptation)과 복을 주시기 위한 연단 (test)이 그것이다. 하나님의 시험은 반드시 후자이다. 사람이 자기 욕심에 이끌리어 시험에 빠지는 경우가 전자이다. 3. 하나님께서 자식을 바치라시면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를 어느 날 신학교, 혹은 선교사로 보내라 고 하신다?) 부부 사이에 어떤 일이 생길지 이야기해 보자. 예전에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신학교에 많이 갔 다. 우수하고 능력 있는 사람은 이 땅에서 출세를 노리고 이것도 저것도 안 되는 사람이 신학교에 갔으니 교회마다 지도자 문제로 시끄러워지는 것이다. 어려웠던 시절에 진짜 능력있고 귀한 아들들 을 신학교에 보내려고 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한다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일이 결코 쉽지 않 았음을 쉽게 알 수 있다. 4. 모리아 산의 그 곳은 나중에 아주 중요한 곳이 된다. 지금도 유명한 곳이다. 왜? 솔로몬 성전(대하 3:1)이 세워졌다가 헤롯 성전이 건설되고 현재 이슬람 사원이 위치한 곳이다. 유대 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이다. 기독교에서는 성지라는 것이 그렇게 큰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니지 만 삼대종교가 주목하고 있는 곳이라서 위험성이 큰 곳이다. 5. 아브라함은 워낙 믿음이 출중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이삭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일찍 길을 떠난 것도 그래서 그럴까? 신앙이 특출한 아버지가 자식을 잃은 사례에 대해서 아는 대로 이야기 해보자. 특히 아브라함에게 고통이 있다면 어떤 점이 다른 사람보다 더 고통이 될까? 1) 25년이나 기다려 낳은 아이, 2) 사흘 길을 함께 걸으며 아파야 하는 점(매맞는 것보다 매를 기다리는 것이 더 아프고 힘들다. 그 래서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한다), 3) 이스마엘도 떠난 이제 단 하나의 아들, 4) 자기가 알고 있는 하나님과 너무나 다른 명령, 혹시 귀신이 아닐까? 5) 자기 손으로 직접 죽여야 하는 아픔 6) 말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자식을 죽인 자를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아서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불린 손양원 목사님은 자식의 장례식 때 10가지 제목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고 한다. 기뻐하며 감사를 드렸을까? 울며 감사 를 드렸을까? 그런 아버지와 하나님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며 집을 뛰쳐나갔던 그 딸이(손동희 권사) 올해(2000)에 아버지의 이야기를 책으로 냈다(나의 아버지 손양원?). 그렇게 신앙 좋은 아버지 가 영광스럽게 순교한 자식의 죽음 앞에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확인해 보자. 6. 5절에 일련의 동사가 세 개가 있다. 가서, 경배하고, 돌아오리라 인데 이 동사들의 주어는 누구 일지 짐작해 보세요. 우리말로는 표시가 나지 않지만 원어 상으로는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우리: 이삭이 죽지 않고 돌아온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상한 눈치를 채이지 않으려 고 그랬을까? 구체적인 방법은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든지 이삭을 살려주시리라는 확신이 있

77 창세기 성경공부 :1~24 었던 것 같다. 7. 이삭이 아버지를 따라서 번제를 드리러 더러 다닌 모양이다. 이번에는 전과 비하여 무언가 다 른 점이 있음을 알았다. 무엇이 다른가? 제물이 없음 8. 영어에서 God knows... = Nobody knows... 라는 뜻이다. 이삭이 아버지에게 번제할 어린 양이 어 디 있나이까 하고 물었을 때 성질 같으면 바로 너다. 이놈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께 서 자신을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는 아브라함의 대답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위의 영어 와 비교해 보시오.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다. (확신, 1점)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실 줄 알고 있었다. (0점) 모르겠다. (-1점) 영어의 God knows...는 강조점이 God에 있다. 원래는 신앙적인 표현이었던 것이 신앙은 빠져나가고 형식(모른다)만 남은 것이다. 현충일이 처음 제정되었을 때는 온 국민이 숙연한 분위기에서 조국을 위하여 산화한 넋을 기렸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니 이제는 노는 날 로 여기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holy day(거룩한 날)가 holiday(휴일)가 된 것이나 Lord's Day(주님의 날)가 lord's day(주일: 주님이라는 개 념이 약화된 주일, 그래서 children's lord's day라는 이상한 표현이 생겨난다)가 된 것이 그렇다. 신앙에 근거한 행동들이 알맹이는 빠지고 형식만 남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똑 같이 교회를 다니고 봉사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신실한 신앙생활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이 있다. 9. 이삭이 예수님과 비교해서 닮은 점을 생각해 보시오. 1) 탄생이 예고된 점 2) 죽기까지 잠잠히 순종한 점 (마 26:42 = 죽었다가 살아남) 3) 나무를 메고 산을 올라간 점 4) 사랑받는 아들 5) 조롱과 박해받음(이스마엘, 블레셋) 6) 신부를 맞이하는 신랑(창 24:63-64, 요 3:29, 요 14:3) 7) 죽었다가 살아난 점 8) 태어난 과정 10.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마음을 굳힌 것은 하나님의 무슨 약속과 하나님의 무 슨 능력을 믿었기 때문일까? (참고 히 11:17-19) 약속: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를 칭하리라(창 21:12, 히 11:18). 네 몸에서 날 자라야 네 후사가 되리라.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으리라(창 15:5). 능력: 죽은 자 같은 몸에서도 아들을 주실 수 있는 능력(히 11:19) :16-18에서: 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복의 내용은 무엇인가? ① 네 씨가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 같을 것: 더 이상 혈통적인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다. 표면 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롬 2:28-29)는 말씀은 오늘날 예수를 구주 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선언이다. ② 대적의 문을 얻을 것: 사단을 완전하게 정복해 버린 예수님의 승리.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 이겨 놓은 싸움을 싸우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할 일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일정한 범위 내에서 사 단이 활동이 허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후 승리를 믿으며 나를 승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그 분을 믿으며 능력 이상의 삶을 사는 것이 대적의 문을 얻는 그리스도인의 기쁨이다. ③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도록 길이 열린 것을 말한다. 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약속한 이유는 나의 말을 준행하였기 때문, 독자를 아끼지 아니 하였기 때문(12)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아무 것도 행하기 전에 후손을 통하여 복을 주 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무슨 뜻일까(12장, 15장, 26:5)?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제 대로 순종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될까? 아브라함이 능히 순종하리라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다. 아니, 순종할 수 있도록 만들어 오셨다. 아브라함의 믿음조차 하나님께서 만들어 오신 것이다. 단지 그것을 아브라함의 것이라고 인정해 주 신 것일 뿐이다. 이 본문만 따로 떼내어서 순종하였기 때문에 복을 받았다고 말하면 위험하다. 믿음 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면서도 그 믿음이 나의 것이 아니요 은혜라고 하는 이유도 그것이 나로 말미

78 창세기 성경공부 :1~24 암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손에 잡힌 것이 복일뿐 거기에 비하면 우리의 순종이나 믿음 은 결코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다. 12. 이삭이 이상하게 생각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전에는 양을 가지고 갔는데... 갑자기 자기를 묶었다. 아버지가 혹시 노망이 든 게 아닐까? 이삭이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을까? 1) 이삭의 나이가 얼마쯤 되었을까? 21:34절의 여러 날 이란 여러 해 란 뜻이다. 세월이 지났음은 알 수 있으나 정확하게 나이를 짐작하 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번제용 땔감을 메고 산을 올라갔으니 그렇게 어리지는 않았다고 보아야 하는데... 2) 손과 발 중에 어느 쪽을 먼저 묶었을까? 답은 손이나 발이 아니다. 묶이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으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삭이 순종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3) 전혀 반항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왜?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이 워낙 순종을 잘 하는 편이라서 그럴까? 이삭이 순종적이기도 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더 크지 않았을까? 어쩌면 자식이 인정하는 정 도의 신앙을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도 좋을 듯. 13. 아브라함이 칼을 높이 쳐들면서 설마 하나님이 적당한 때에 말리거나 취소하시겠지라는 생각 이 있었을까? 없었을까? 만약 없었다면 그 증거가 있는가? 하나님께서 다급하게 아브라함을 부르심(11). 이전에는 항상 점잖은 분이었다 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그 전에는 몰랐다는 말인가? 이 말씀이 하고 싶어서 시험을 치신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일을 다 만들어 놓고 그 공을 아브라함에게 돌리는 것. 언젠가 우리 꼬마가 옆집 아이의 체인 달린 두발 자전거를 얻어 타고 있는 걸 보면서 자전거를 사 줘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날 이 녀석이 자전거를 사달라 고 하기에 사주겠다 고 했는데 당장 사내라 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으나 결국 매만 맞았다. 어느 정도 지난 후 칭찬할 만한 일이 생겼다. 상이라면서 자전거를 사주었다. 이 녀석은 자기가 공부를 잘 해서 자전거를 상으로 받았다고 자랑 하고 다녔다. 그 말이 맞나? 아이 입장에서는 맞다. 그래 더 잘 하면 자전거 밖에 안 사주겠냐? 라 고 대답하지만 아버지가 필요하겠구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준 것이다. 공부를 못해도 결국은 사 준다. 사주려고 먼저 마음을 먹고 건수를 찾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그런 것이다. 15. 이런 엉뚱한 일을 하시는 하나님과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아브라함의 관계를 잘 표현하는 말은 창 18:17-19에 있다. 이런 사이를 친구 사이라고 한다(약 2:23, 대하 20:7 사 41:8). 속에 있는 비 밀을 묻어두지 못하는 사이이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털어놓고 싶었기에 이런 시험을 베풀었을까? 요 8:56을 참고로 해서 생각해 보세요.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는 그 마음을 알려주고 싶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법이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말해 주고 싶은 사연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가장 큰 일, 온 인류를 위하여 독생자를 주시는 그 아픔 을 적어도 아브라함은 알아주기를 원하셨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느라고 겪었던 아버지로서의 아픔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사 죽음의 길을 걷게 하시는 하나님 아 버지의 고통 바로 그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고통을 체험으로 알게 되었으므로 예수님의 때를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았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은 하나 님을 아는 것이다. 욥이 받은 복은 결코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하박국도 그렇고 바울도 그랬다. 여 인에게 해산의 고통을 준 것도 단순하게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그런 아픔이 있 음을 은근히 알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16.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속담,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는 무슨 뜻으로 쓰였을까? 믿음으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신다. 17. 고향을 떠난지 정말 오랜 세월이 흘렀다. 아브라함은 늦둥이 하나를 얻어서 이러고 있는데 고 향을 떠나자고 할 때 함께 떠나지 않고 남은 동생은 쫄딱 망하기는커녕 아들이 몇인가? 아브라함 의 지난 삶이 후회스럽지 않았을까? 아니라면 왜 아닐 거라고 생각하나요?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뻐할 만한 때가 되었기에 이런 소식도 전해지는 것: 이제는 세상의 유혹이 전 혀 유혹이 되지 않을 만큼 성숙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 ימ י ה לּו 는 히브리 문장은 세 단어 밖에 되 지 않는데 첫 글자를 따서 모으면 수양( )אַ ל 이 된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물고기(익투스 ivcqu/j: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라는 고백의 머리글자와 일치) 그림을 열심히 그린 것과 비슷한 현 상이다. 성경을 히브리어로 보면 이런 재미도 있다. 배우기는 어려워도 성경 보는 재미가 훨씬 좋아 진다

79 창세기 성경공부 :1~20 창세기 23 장 에서 생략해도 되는 단어나 반복되는 표현들을 찾아보세요. 생략 가능: 들어가서, 일어나 반복: 120세를 살았다 와 사라의 향년, 말하여 와 가로되 생략해도 문맥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말을 자꾸 반복하는 히브리 사람들의 독특한 어 법이다. 사라의 나이도 히브리식으로는 100세, 20세, 그리고 7세였다 고 표현한다.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중에 가서(눅 1:39) 에서 일어나 를 잠자리에서 일어난 것으로 이해하고 마리아가 천사와 성 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책을 낸 사람조차 있었다. 일어나 라는 표현은 어떤 동작을 시작할 때 관용적으로 붙는 표현으로 성경에서 많은 예를 볼 수 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힘을 내서 정도라 고 할까? (참고 수 1:2, 창 13:17) 2.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기보다는 약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22장에서 위대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 본문에서는 어떠한가? 이방인에게까지 인정받는 모습(6): 교회 안에서 인정받기도 쉽지는 않지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불 신자들에게까지 인정받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신앙인이라면 일과 신앙에 대해서 불신자들에게까지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사회나 직장에서 더 적극적 이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세상을 정죄하며 혼자 고고하게 사는 것도 곤란하다. 세상은 나의 정 죄의 대상이 아니라 나의 선교지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보다 더 노력하지 않는다 는 말이 있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내가 마 땅히 해야 할 일조차 게을리 해도 좋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3. 본문에 헷 족속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20세기 초만 해도 헷 족속에 대한 기록은 성경 이외 에 전혀 없었다. 그래서 성경을 역사적 자료로 믿을 수 없다고 했는데 그 후 고고학이 발달하면서 뒤늦게 헷 족속의 자료가 나타나서 성경의 역사적 기록에 대한 신빙성을 더해 주었다. 철기 문화 가 발달했던 이 헷 족속은 역사책에 어떤 이름으로 나올까? 힛타이트: 본인들은 하티라고 불렀지만 이 족속이 존재한 것을 알고 찾아 헤맬 때 학자들이 예측한 이름이 힛타이트였는데 지금도 그대로 힛타이트라고 부른다. 4. 사라를 장사하기 위하여 처음에 아브라함이 원했던 것은 무엇이며 결국 사게 된 것은 무엇인 가? 필요한 것: 에브론의 밭머리에 있는 막벨라 굴(9) 결국 산 것: 막벨라 굴과 굴에 딸린 밭(과 수목): 수목은 경계를 표시하는데 유용한 것이다(17). (아브 라함은 굴만 사려고 하고 에브론은 다 팔아버리려는 것은 종교적 의무나 국가에 대한 의무를 피하 기 위한 노력이다는 주장이 있음) 5. 다음은 에브론과 아브라함의 흥정을 정리한 것이다. 어떤 느낌이 드는가? 아브라함: 장사 지낼 굴을 하나 파시오 에브론: 굴에 딸린 밭까지 그저 드리겠습니다 아브라함: 밭까지 사겠습니다 에브론: 밭값이야 은 400세겔이지만 우리 사이에 어떻게 따져 보겠습니까? 아브라함: 그러면 은 400세겔(약 1200돈)을 받으시고 밭과 굴을 파시오 바가지를 썼다: 그저 얻지 않고 값을 지불하여 확실하게 해 둔 것이 대대로 아브라함의 땅이 된 것 이다. 계산을 분명하게 해 두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음(이경춘). 아브라함이 그저 준다고 그저 받아갈 사람이 아니란 것을 계산에 넣었을 것이다. 결국 에브론은 남을 생각하는 척 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다 챙기는 사람이다. 묘지에 딸린 밭은 산 가까이에 있어서 농사에 좋은 땅이 아니다. 단순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야곱이 세겜에서 은 100개를 주고 싼 땅(33:19)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야곱은 큰 성 옆의 밭을 거주지로 삼으려고 은 100개를 주고 샀는데(도시 주택지) 아브라함은 산 밑에 굴을 사 용하기 위해서 딸린 밭(=들)을 은 400개를 주고 샀다(산골 비탈밭). 무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후손 들이 이 땅의 주인이라는 말이 된다. 6. 아브라함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막벨라 굴뿐이었다. 장지가 필요한, 그것도 아내가 죽은 슬픔 속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인심을 베푸는 척하면서 굴에다가 밭까지 끼워서 팔아먹은 에브론 같은 이기심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이 일이 하나님의 약속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 )을 주겠다고 하신 이후 최초로 ( )을 갖게 되었다. 땅: 요즈음은 많이 좋아졌겠지만 여전히 장례식장의 횡포는 심하다. 이유는 상주들이 싸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의 어려운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는 상술이다. 밭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실 제로는 들이다. 7. 아브라함의 기사는 22장과 23장으로 사실상 끝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거창한 약속이 아브라함

80 창세기 성경공부 :1~20 당대에는 어느 정도로 이루어졌는가? 희미한 아들 하나에 바가지 쓴 밭 한 떼기: 비록 희미한 아들이지만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 래같이 많아질 후손을 뜻하는 아들이요 비록 바가지를 썼을망정 온 가나안 땅을 차지할 상징인 셈 이다. 시작은 너무나 작아 보여도 이제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화되는 시발인 셈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약속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다. 하박국이 그랬고 믿음의 조상들이 그랬다.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주 시려는 것은 이 땅의 복이나 사람의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다. 나 여호와가 너의 상급이 니라(창 15:1). 8. 죽을 때의 나이와 매장지를 언급한 여자가 또 있는가 생각해 보시오. 없다: 사라는 적어도 믿음의 어머니로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9. 요즈음은 부동산을 사게 되면 등기소에서 등기를 해 두어야 한다. 아브라함 시대에는 현대와 같은 등기법은 없었다. 그 당시의 등기 행위를 찾아보시오. 성문으로 드나드는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확인함 (굴, 밭, 수목) 10. 드디어 아브라함의 공식적인 삶이 끝났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산다는 것은 참으로 평안한 삶 이다? 인간적인 측면만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예를 들어서 가장 힘들었던 점 을 두 가지 지적한다면? 험난한 외유의 길과 아들을 기다림 11.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본향은 하나님 나라이다. 아브라함의 표현을 빌린다면 이 땅에서의 삶은 어떤 삶인가? 아니면 무엇에 비길 수 있는가? 나그네, 우거(임시 거주)하는 삶(4): 실제로 아브라함은 이 땅을 하나님께 상속을 받은 셈이다. 그러 나 현재의 소유권은 헷 족속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어떤 할머니가 버스를 타고 차비를 내지 않으니 운전기사가 야단을 쳤다. 할머니 왈, 온 천지가 다 우리 아버지 건데 내가 왜 차비를 내야 하느냐? 혹시 이런 분이 계시면 아브라함에게 한 수 배워야 한다. 얼마나 정중하게 정당한 값을 치 르고 있는지 주목해야 한다. 준가(準價): 제 값어치에 꽉 찬 값: 원어상으로는 많은 은 상고(商賈): 상인 향년(享年): 죽은 이의 한평생 살아서 누린 나이 교계(較計): 맞나 안 맞나를 견주어 봄, 비교+계산

81 창세기 성경공부 :1~67 창세기 24 장 1. 아브라함의 일생은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삶이었다. 약속 하나만 믿고 떠도는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훈련장에서 훈련받는 일생인 셈인데 그 훈련의 마지막 코스가 22장 의 이삭을 바치는 사건이었다. 엄청나게 고통스런 시험이었겠지만 동시에 엄청난 사랑을 깨닫는 체험이기도 했다. 이제 그는 모든 훈련을 다 마친 상태에서 편안함을 누리고 있다. 욥 23:10의 나 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는 말씀의 친 부분을 연상시키는 말씀은?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1): 예수 믿는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내게 훈련이 필요 한 모양인가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또 내게 무슨 복을 주시려고 그 러시나? 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다. 복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아브라함의 생애가 평탄한 것은 결 코 아니었다. 끝없는 방황과 고초를 겪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이었기에 복된 삶이다. 그저 노년에 좀 평안하다고 하는 말씀이 아니다. 2. 아브라함이 이삭의 결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모든 소유를 맡은 자에게 임무를 맡김: 모든 집안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말 한 마디만 해도 충성스럽게 순종할 종에게 맹세까지 시킨 점 낙타 10마리에 모든 좋은 것을 실어서 보냄 3. 환도뼈 밑에 손을 넣고 맹세하는 것은 아마 당시의 관습에 따른 행위일 것이다. 환도뼈라는 표 현은 소위 완곡어법 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기에는 좀 곤란하니까 둘러서 표현한 것이다. 사타구 니 사이에 라고 번역하면 비슷하면서도 이해하기가 쉬울 것 같다. 왜 하필 거기(?)에 손을 넣고 맹 세를 시킬까? 생식과 관련이 있다. 즉, 자자손손 지키리라는 맹세인 셈이다. 4. 이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영생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21:33). 여기서는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라고 말한다(3). 이 표현이 여기서 처음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창 14:22, 14:19절에 하나님을 가리켜 천지의 주재 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여기 표현과 어떤 점이 다를까? 그 때는 자신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멜기세덱이 그렇게 표현한 것을 배워서 소돔왕에게 써먹은 셈이 다. 이제야 진짜 자신의 신앙을 담아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5. 유전이 후손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우생학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친족에게 가서 이삭의 아내를 구해오라는 아브라함의 처사는 옳지 않다. 그래서 어리숙한 에서가 태어난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동성동본의 혼인을 금하는 것도 그런 연유일테고 심지어 이집트 멸망의 원인을 과 도한 근친결혼에 의한 우생학적 측면에서 찾는 사람도 있단다. 아브라함이 보기에는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무엇인가? 우상숭배에 빠진 가나안인과 혼인하는 것: 우생학적 손해보다는 신앙적 유익이 더 크다. 세상적으 로 뛰어난 조건을 갖춘 불신자와 그렇게 잘난 것 없는 신자 중에서 결혼상대로 누가 더 적합한가? 기혼이냐 미혼이냐에 따라 답이 거의 다르다. 기혼은 십중팔구 신앙이 먼저라고 말한다. 미혼의 경 우에는 결혼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신앙이 우선이라고 하지만 현실의 문제가 되면 아무래도 세 상 쪽이 더 강해진다. 그러면서 절묘한 대답은 전자와 결혼해서 예수를 믿게 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기혼자들의 충고는 그게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란다. 가장 아름다운 대답은 믿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서 한 등급을 낮추었다 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신앙을 위해서 이삭의 결혼에서 많은 불이익을 스스로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6. 이삭의 신부를 구하는 일에서 아브라함과 종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이다(7-8, 14): 그러면서도 약대를 열 필이나 끌고 가는 것은 자신들이 해야 할 최선의 노력을 다 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하고 자신의 욕심을 따라 되지도 않을 일을 벌여놓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리라고 큰 소리 치는 사람도 많다. 자 신의 게으름이나 이기적인 동기에서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고 확신이 들면 과감하게 나서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그 길을 인도하신다. 7. 며느리를 구하는 아브라함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6): 3-4절을 근거로 내 고향의 내 족속에게서 아내를 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 아내를 구하려고 그리로 돌아가는 방법도 있을 수 있지만 만약 여자가 따라 오지 않으 면 결혼을 포기하더라도 그리로 가지 말라 고 하는 것을 보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더 중 요하다. 며느리를 못 구하면 못 구했지 그리로 돌아가지는 말라는 당부이다. 고향에 무슨 원수진 일 이 있나? 표현을 바꾸면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이 땅에 거하는 것 이 가장 중요하다. 예전의 그

82 창세기 성경공부 :1~67 곳으로 돌아가지 않아야 한다. 며느리를 구해야 하지만 이것이 더 중요하다. 승진을 해야 하고, 취 직도 해야 하고, 대학에도 가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품에 거하는 것이다. 며느 리를 못 구하면 못 구했지 그리로 돌아가지는 말라! 온갖 인간적인 수단을 동원했던 그가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말이다. 8.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서 신부를 구해오라는 것이 우생학적인 이유 외에 현실적으로도 어 리석은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 지금은 아브라함이 고향사람들보다는 가나안 사람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고향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잊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70여 년 전에 못 사는 나라로 이민을 간 불쌍한 사 람으로 기억할 수도 있다. 반면에 가나안에서는 소돔 사람들을 구원한 일로 명성을 얻은 상태다. 자 기를 알아주는 곳에서 신부를 구해야 좋은 사람을 얻는 법이다. 결국 사람의 좋고 나쁜 문제가 아 니라 신앙의 문제라는 것이다. 9. 무슨 약대를 열 필이나 끌고 가는가? 신부에게 줄 지참금, 신부 집에 줄 선물, 귀한 신부를 태우고 오는 격에 맞추기 위해서. 부자 표시 내는 것 아닐까?: 여주인을 구해서 모시고 와야 하고 그 일을 위해서 많은 짐도 싣고 가 야한다. 오래 전에 고향을 떠나온 그가 다시 고향을 찾는 것이니 부자가 된 티를 내는 것이 당연하 다.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한 이유 중에는 어릴 적 소판 돈을 훔쳐서 가출한 영향이 분명 히 있을 것이다. 돈으로 부치는 것이 훨씬 편하고 비용도 덜 들텐데... 고향을 떠난 그가 꾀죄죄한 모습으로 며느리를 구하러 보냈다면 고향 사람들이 무엇이라 하겠는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 세상에서 매일 꾀죄죄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서 가난한 형제를 위하여 검소한 옷을 입더라도 동창회에는 남의 기를 죽일 만큼 입을 수 있으면 입 고 갈 수도 있다. 영적인 복이 더 중요하지만 육적인 복도 누릴 만큼 누리자! 10. 주인 아들의 아내를 택하기 위해서 어디로 갔는가? 우물가: 최소한 여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소녀, 혹은 젊은 여자(43)이어야 한다. 아무리 기 도를 열심히 해도 이 정도 기본에서 벗어난 사람은 대상이 아니다. 우물 근처(=믿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면서 믿는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청년들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셈이다. 11. 우리가 기도한 일에 대하여 비슷하게라도 맞아지면 이것이 하나님의 응답이구나 하다보면 때 로는 억지 비슷한 경우도 보게 된다. 기드온이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 하나님께 요구한 것처럼, 도 저히 가능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야 진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늙은 종이 사용한 이런 방식은 무엇인가?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14): 약대는 물 없이 오랫동안 지낼 수 있다. 그 대신 물을 먹으면 많이 먹는다. 보통 2말 정도를 한꺼번에 마신단다. 10마리면 20말을 날라야 하는데... 이 소녀 가 미련한 건가, 아니면 정말 미련하도록 마음씨가 너그러운 건가? 재산 1호라고 할 수 있는 우물 을 달라고 뺏기고 마는 허약한 이삭과 살려면 이 정도 너그러운 사람이어야 한단다. 물 뜨러 내려갈 때 미리 그러지 물을 떠서 올라오는데... : 이게 얼마나 무거운 줄 아나? 우물이 낮 은 곳에 있었던 모양이다. 물 항아리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이고 올라오는데 물 좀 달 라? 웬만하면 내려가서 니 떠무라(네가 떠 먹으라)! 하기 십상이다. 더구나 약대에게 먹일 물이야 자기가 데려온 사람들(32)에게 시킬 일이지 거들지도 않고 구경만 하고 있다(21). 성질나서 못 하겠다 고 하고 집어 던질만도 한데... 우연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어려운 기도를 했다. 우리도 구체적인 기 도를 해야겠다. 12. 리브가가 열심히 물을 길으러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의 기도가 완전하게 응답되었 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21). 왜 그럴까? (어느 때에 기도의 응답을 확신하는가?) 아브라함이 내 친족에게로 가라고 한 것 때문: 신분을 확인한 후(24)에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 하고 찬송했다(27). 꿈을 꾸거나 누군가가 멋진 가르침을 주더라도 그것이 성경과 일치하는가를 반 드시 따져야 한다. 설교 말씀이라도 마찬가지다. 함부로 흥분하지 말고 말씀과 일치하는지를 곰곰이 따져야 한다. 과연 하나님께서 주시는 답인지를 확인하기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13. 상고에 다니면서도 주일에 시험 치는 것이 싫어서 은행시험을 포기하고 대학 진학하려고 마음 먹은 것이 내게는 일생일대의 모험이었다. 고3 때에도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눈물로 기도했던 기억 이 있다. 수년 뒤에 내 동생이 그 학교에 다니면서 선생님들의 말을 전해주었다. 네 형은 은행 시 험을 쳐도 신체검사(색맹으로)에서 떨어진다 이 말은 내게 엄청난 감격을 주었다. 떨어질 것이 뻔 한데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시험 준비를 했다면? 수년간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갈등을 겪으면서 행한 나의 기도에 대한 명백한 하나님의 응답이었기 때문이다. 본문에 이 종이 어느 말을 들으면 서 이런 감동을 받았을까? 24절: 기도의 응답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터져 나온다

83 창세기 성경공부 :1~ 리브가의 대답(24-25)을 두 가지 내용으로 나누어보면 각각 무엇에 대한 내용인가? 1) 자신의 신분, 2) 약대의 양식이 풍부함: 짐승들을 이렇게 배려하는 것은 제대로 된 사람이란 뜻이다. 15. 리브가는 얼마나 횡재를 한 셈인가? 눈에 보이는 것만! 물 먹인 것과 친절한 말 한 마디의 대가 = 금 고리(코거리(47절), 반 세겔), 금 손목 고리(팔찌, 열 세 겔, 약 30돈), 열국의 어미: 약대 10마리에게 물을 다 먹이려면 얼마나 길어야 했는지 모르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보상차원이라면 너무나 엄청나다. 보상을 바라지 않은 선행 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을 때 얼마나 아름다운가? 1세겔=11.42g 16. 리브가의 아름다움에는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이라는 말이 있다(16). 남자를 가까이 하는 게 나 쁜가? 여기서는 성적인 관계를 말한다: 혼전의 순결은 서로를 위하여 필요하다. 어려운 일을 함께 이기어 나간 경험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게 하는 것이고 나아가 더 큰 어려움이 닥쳤을 때 위기를 극복 하게 해준다. 결혼이란 결코 쉽게 헤쳐 나갈 수 없는 암초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항해와 같다. 미 리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 혼전의 순결을 지키는 것은 결혼 이후에 부닥칠 위험을 예방하는 탁월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 17. 물 길러 간 동생이 빨리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 라반이 짜증을 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동생에게 고함을 치려다가 눈이 어디로 갔을까? 그 다음으로 제일 먼저 취한 행동은 무 엇이며 왜 그랬을까? 금 고리와 금 손목고리 우물로 달려감: 라반은 야곱처럼 대단히 이기적인 사람이다. 자기도 뭔가를 얻을 것이라고 열심히 달려갔다. 그리고는 얼마나 열성적으로 손님을 맞는지 모른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하며 (31) 온갖 부지런을 다 떨었다. 대세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면서! 18. (Nonsense) 이 종의 나쁜 점을 하나만 찾는다면? 상을 차려놓았는데 말이 너무 많다(34-49): 식사기도가 긴 것만큼 얄미운 사람도 드물다. 요즈음은 많이 짧아졌지만 옛날에는 공중기도에서 신구약을 한 번씩 훑는 일도 심심찮게 있었다. 물론 이 종 의 경우는 좀 다르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열성이 음식을 먹는 것보다 더 우선이 라는 충성심의 발로이다. 19. 이 종은 신앙도 좋지만 말도 정말 잘한다. 종으로 두기에는 정말 아깝다. 어떻게 종으로서 이 렇게 말도 잘할까? 자기 경험에서 나온 것이며 자신이 체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하 는 말은 추상적이고 현학적이 되기 쉽다. 20. 라반이 그 종에게 베푼 것을(32-) 리브가와 비교해 보시오. 그 소득은? 아양(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 대단한 호의를 베풀고 약대의 짐을 부리고 짚과 보리를 약대에게 주고 발 씻을 물과 식물을 베풀었지만 가만히 있어도 돌아올 것이었으니 소득은 전혀 없는 셈이다 (53): 나중에 조카를 수없이 이용해 먹은 이기적인 모습이 여기서도 보이는 듯하다. 21.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50) 하는 이 대답은 브두엘 의 신앙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다. 아니면 무엇일까? 먼 옛날의 이야기를 참고하자. 여호와라고 하면 그의 할아버지와 삼촌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간 일을 먼저 생각하게 됐을 것이 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브두엘은 윗대로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할아버 지와 삼촌이 거역하지 못하고 떠났는지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유명한 사건을 일으킨 분이라면 거역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22. 바로 그 다음 날 아침에 딸을 데리고 떠나려는 이 종을 보면 부모의 입장에서는 섭섭하기 이 를 데 없다. 그럼에도 곧 떠나려는 종의 마음(54)을 설명해보자. 리브가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떠나 야 한다? 하나님께서 길을 인도해주신 기쁨을 미리 말씀하신 주인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우리가 받은 복음 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이런 기쁨을 함께 나누자고 하는 것이 바로 전도이다. 종이 빨리 주인에 게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빨리 주인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의무감 으로 생각하지 말라. 의무감보다는 자신이 기뻐서 하고 싶은 일이었다. 마음이 변하기 전에 빨리 떠나려 했다 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자기 수준에 맞게 답이 보인다 는 것이다. 23. 리브가는 과단성이 있는 여자였다. 어떤 일에서 그러한지 두 가지 경우를 찾아보시오. (한 가지 는 뒷날 사건에서) 1) 가겠느냐에 바로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함: 어딘지, 남편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자기가 상상도 못

84 창세기 성경공부 :1~67 한 큰 복이 기다리고 있는 걸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다음 세상이 천국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거의 알지 못한다.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복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만 알아두자. 2) 야곱에게 충동질하여 아버지의 복을 가로챌 때: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 을 기억하고 행한 위대한(?) 신앙의 결단이 아니다. 자식에 대한 편애의 결과인데 과감하게 실천에 옮겼을 뿐이다. 24. 리브가가 어떤 생각으로 당장에 가겠다고 대답했을까? 아마 이 일이 하나님이라는 위대하신 분의 뜻에 거역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해도 그렇게 급하게 따라나서지 않아도 될텐데... 그 심정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힘을 느끼며 막연한 기대감도 가진 채 따라 나섰을 것이다. 자신도 잘 알지 못했던 그 길은 우리가 볼 때는 어떤 길인가? 단순히 한 족장의 아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 통로의 역할: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구 속사의 귀중한 역할을 맡았다. 우리가 믿음으로 시작한 작은 일 하나가 나중에 얼마나 위대한 일을 초래할지 우리는 모른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겨자 씨 하나가 엄청난 크기의 나무로 자라듯이 우리의 믿음은 이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아마 시어머니를 끝까지 따랐던 룻도 얼마나 영광스 런 자리에 자신이 이르게 될지 상상이나 했을까? 25. 히브리인들은 다산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본문에서 그 사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은?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60). 26. 사람의 만남 속에서는 첫 만남이나 첫 인상이 참으로 중요하다. 그것이 평생의 삶의 결정적인 면을 보여 주기도 한다. 우리는 등산 갔다가 만났습니다. 버스간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이런 만 남보다 더 의미 있는 만남이나 첫인상이 주어진다면 그만큼 더 의미 있는 생을 나누게 될 것이다. 리브가가 가지고 있을 이삭의 첫 인상은? 들에서 배회하던 사람: 이삭에게는 묵상인데 리브가에게는 배회로 보였다. 많은 세월이 지난 후 처 음 만나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리브가가 그 때 당신은 들판에서 헤매고 있었지요? 하면 이삭이 말 할 것이다. 멍청한 소리하지 마시오. 어떻게 들에서 배회하는 것과 묵상하는 것을 분간도 못하는 가? 기도하던 한나를 보고 술취한 것으로 알았던 엘리와 비슷하다. 27. 이 본문은 자세히 살펴보았을 때 결혼에 있어서 중매결혼을 지지하는가? 아니면 연애결혼을 지지하는가? 이 본문의 관심은 연애냐 중매냐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본문을 근거로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이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의 언약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가? 에 관심을 가질 일이다. 만약 중매를 지지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면 그 다음에 이어지는 야곱의 이야 기에서는 어떻게 결론을 내릴 것인가? 봐라, 연애했기 때문에 이 고생 아니냐? 28. 결혼을 위한 다음 두 가지 태도 중에 어느 것이 옳은가? 1)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정해 두신 사람을 주시라고 기도만 한다. 2) 모든 노력을 다해서 내게 가장 적합한 사람을 선택한다. 본문의 방법이 그 당시 그 상황에서 늙은 종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음을 인정한다면 우 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 옳다. 즉 앉아서 기도만 하는 것이 최선이라면 옳다. 그러나 과거에 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많은 방법과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어 린아이와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옳지 않다. 상냥하고 친절한 마음씨를 가진 현숙한 여자를 찾아내는 방법으로 그 종이 택한 기도의 내용이 적합한지 생각해 보라 장은 길이로 따져서 창세기에서 가장 긴 장이다. 이삭의 결혼이 뭐 그리 대단하길래 이렇게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가? 천지 창조라는 거창한 일을 이루시면서 아담과 하와의 결혼문제를 다룬 것을 생각해보면 뭔가 있기는 있을 것 같은데? 신부를 맞이하는 신랑도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보여주는 것이다(요 3:29, 요 14:3): 성경은 결혼 자 체를 대단히 소중하게 취급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결혼에 비유하기 때문이다 (호 2:19-20). 더구나 이삭의 결혼은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을 이루시려는 전주곡이다. 단순하게 이삭 이 결혼하는 것만이 아니라 끝 날에 있을 거룩한 혼인예식을 예표하고 있다 (계 19:7). 천지창조라는 거창한 일에 아담과 하와의 결혼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은 그것이 거기에 어울릴만한 무게를 가지 고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최초 이적도 결혼식에서 있었다. 그리스도인의 결혼이 단순하게 남녀가 만나서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란 말씀이다. 적어도 하나님의 교회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로 서 엄청난 무게를 지닌 것이다. 혼인을 무겁게 여기고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 을 기울여야 한다. 30. 이 종은 어느 정도로 충성된 종인가? 누구 탓일까? 하나님께서 주인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비는 종(12), 자신의 일을 이루기까지 식사도 않겠다(33): 진 심으로 주인을 존경하는 것 같다. 아니 주인의 일이 곧 자신의 일인 것처럼 다루었다. 주인과 종이 라기보다는 한 몸, 한 가족이라고 생각된다. 아브라함의 탓이다

85 창세기 성경공부 :1~34 창세기 25 장 1.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여 많은 후손을 얻었다. 무엇의 성취인가? 하나님의 언약과 관계없다: 이삭은 약속의 자녀, 나머지는 육신의 자녀이다. 은퇴 이후 하나님께서 주시는 휴식이라고 할까? 보너스 삼아 자식을 키우는 인간적인 즐거움을 주시는 걸까? 당시의 족장 들이 가진 관례이었을지는 모르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일이다. 이들은 하 나님의 약속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자들이어서 모두 약속의 땅에서 떠나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하는 것도 약속에 의거한 것이지 혈육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2.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여 이렇게 많은 아들을 두었다면 그 전에 아들이 없었던 것은 아브라함 에게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있었기 때문인가? 신체적인 결함으로 아들을 못 낳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다: 하갈을 첩으로 들여서 아 들을 낳은 것이나 그두라를 통해서 아들을 낳은 것을 본다면 사라에게 신체적인 결함이 있었다고 보아야할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그것은 생물학적 지혜이지 성경적 지혜는 아니다. 사라가 신체적 결함이 있었건 없었건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셨느냐가 중요 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늦게 그런 아들을 주시려고 생각하고 계셨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성경적 지혜이다.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라는 질문보다는 왜 아들을 이렇게 늦게 주셨을까? 라고 생 각하는 것이 옳다. 우리는 지금 생물학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3. 은퇴(?)한 아브라함이 이렇게 많은 자식을 낳고 거느리는 것을 현역시절과 비교하면 무슨 느낌 이 드는가? 혹시 창세기의 앞 부분에서 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내용이 있는가? 하나님의 직접 간섭하심을 받을 때는 그렇게 고통스러웠는데 이제 물러나니 이렇게 삶이 쉽다. 하 나님의 손에 잡혀 산다는 것이 때로는 하나님 없이 사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적어도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렇다. 하나님을 잘 섬기던 셋의 족보는 무미건조하고(5장) 악한 가인의 족보는 화려하기 그지없었던 것(4장)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에 이르도록 훈련을 받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4.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준 것은 무엇이며 다른 아들들에게 준 것은 무엇인가? 이삭에게: 모든 소유와 가나안 땅. 이것은 상속자임을 의미하지만 가나안 땅은 400년이나 지나야 얻 을 수 있는 약속어음이나 마찬가지다. 재산의 상속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상속자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다른 아들들에게: 재물만 주었다. 그리고 떠나야 했다. 떠나는 것이 반드시 해로운 것만도 아니다. 가나안 땅은 자기 생전에 자기의 땅이 되지 못한다. 반면에 다른 자손들은 말뚝만 박으면 당장에 자기 땅이다. 이스라엘보다 훨씬 먼저 넓은 땅을 차지한 미디안, 앗수르를 보라. 더구나 지금은 기 름이 펑펑 쏟아져서 유대인들의 부러움을 사는 판이다(농담). 생전에 이렇게 재산을 잘 정리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형제간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결국 이들은 땅의 복을 받았다. 하늘의 복은 이삭과 화목함으로(=예수를 믿음으로) 받는다. 미디안은 (모세의 장인의 집안은 복을 받았지만) 이스라엘과 대적했다가 망했다. 반면에 앗수르는 요나 때에 기회를 한번 주셨지만 끝내 이스라엘과 화목하지 못했다. 아브라함이 죽자 이삭과 이스마엘이 함께 장례를 치렀다. 쉽지 않은 일이다. 왜? 70여년 전에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나갔던 이스마엘이 권리를 주장하거나 자기 어머니와 합장을 하 겠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예견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일찍이 하나님께서 내보 라는 말씀에 순종한 결과가 이렇게 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5. 이스마엘이 12아들을 낳았다. 무엇의 성취인가? 하갈과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의 성취(16, 17, 21장): 그두라의 후손과 이스마엘의 후손들도 다 번영한 다는 사실에서 후손의 번영이 반드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아닐 수도 있다. 이것을 땅의 복이라고 한다. 땅에서는 좀 부족해 보여도 하늘의 복이 진정한 복이라고 믿는 자가 복되다. 6. 약속의 자녀인 이삭의 후손과 버림받은 이스마엘의 후손도 비교해 보자. 누가 더 번창하고 있 는가? 이스마엘은 12아들을 낳아서 12방백이 되는데 이삭은 쌍둥이 한 쌍을 그것도 오랜 세월 후에 낳아 서 결국은 하나만 제대로 자식 노릇을 하게 된다. 약속의 자녀가 오히려 더 못한 것 아냐?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 진정한 하나님의 복이 아니다. 거지 나사로가 부자보다 더 복되다! 7.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후손을 약속하셨음에도 평생에 아들 하나만 주셨다. 그렇 다면 다음 세대인 이삭은 이스마엘의 후손이나 후처의 후손들과 비교해서 어떠한가? 20년간 잉태치 못함: 그래도 쌍둥이를 낳았으니 아브라함에 비하면 배로 복을 받은 것인가? 결과를 보면 배가 아니다. 여전히 한 아들을 주신 셈이다. 본격적인 자손의 번성은 야곱의 시대에 가서 시 작된다. 8. 이스마엘의 사는 곳은 형제들의 맞은 편,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

86 창세기 성경공부 :1~34 중에 야곱의 집안과 무슨 관련을 맺는가? 요셉을 사서 애굽에 판 사람들이 바로 이스마엘 상고(商賈)들이었다: 아마 이 지역에 거하면서 무역 을 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9. 이삭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잘 들어주셨는가? (두 번 째 기도, 즉 태아의 싸움 때문에 드린 기도 는 리브가의 기도이지만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보고) 잘 들어주셨다: 잘 들어주셨다는 것이 흔히 생각하듯 자판기처럼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다음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1) 이삭은 40세에 결혼하여 60세에 쌍둥이를 낳았다.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더라도 금방 들 어주신 것이 아니다(합 2:3).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다가 포기한 것이 하나님의 약속 이 후 몇 년 만이었을까(16:3, 75세에 가나안에 왔고, 99세 때 이스마엘이 13세였다. 17:24-25)? 10년 정도 기다리다가 일종의 포기상태가 되었던 모양인데 이삭은 자식을 위하여 몇 년이나 기도를 했을까? 다시 말하면 자식을 위한 기도가 몇 년 만에 응답이 되었을까? 적어도 10여년이 넘는다. 그래도 잘 들어주신 것일까? 2) 이삭의 두 번째 기도에 응답하셨지만 이삭의 소원대로 쌍둥이의 싸움을 중지시키지는 않으셨다. 이삭의 두 번째 기도는 아이들이 뱃속에서부터 싸우니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라는 물음인데 하 나님의 대답은 그 놈들 줄기차게 싸울 거니까 그리 알아라 정도가 아닌가?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분의 섭리하심에 따라 우리에게 응답하실 것이다. 나 의 욕심이나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그 분의 계획이 어디에 있을까에 관심을 가지 자. 10. 쌍둥이를 가진 리브가의 가장 큰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을까? 서로 싸우는 것: 그러면 산모가 아플까? 태중에서 혼자서 심하게 설쳐도 산모가 몹시 아프단다. 적 어도 리브가의 경우에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할 정도로 심각했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11. 피부가 갖옷같다는 말의 의미는? 갖옷의 갖 은 가죽을 의미한다. 가령 갖바치에 쓰이는 갖 처럼: 털이 많은 가죽옷같은 피부를 가졌 다는 말이다. 12. 만약 한국에서 등치는 사람 이라면 무슨 뜻이 될까? 대번에 간 빼 먹는 사람으로 이해할 것이 다. 비슷한 히브리 표현이 본문에 있다면 무엇일까? 야곱: 야곱이란 말은 발꿈치를 잡았다는 말인데 속이는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좌우간 발꿈치는 나쁜 뜻으로 쓰인다(창 3:15, 시 41:9, 요 13:18). 형도 그런 식으로 비난했으며(27:36)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시고 이름을 고쳐주셨다(32:28). 13. 야곱과 에서가 무슨 문제로 뱃속에서부터 싸웠을까? 많이 먹으려고? 먼저 나가려고: 그들의 일생 일대의 싸움은 장자가 되는 것이었다. 야곱아 먼저 나간다고 장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단다. 만약 뱃속에서 이겨서 먼저 나왔 더라면? 14. 야곱의 성미는 지고 못사는 악착같은 면이 있다. 예를 들어보시오. 태어날 때 먼저 나오려고 발꿈치를 잡고 나옴, 장자의 명분을 노림 15. 이삭의 가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20년 동안이나 자녀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자식을 편애하는 점: 자식을 무엇으로 여기느냐가 중요하다. 이들은 자기들의 먹는 음식과 관련해 서 자식을 좋아했다. 하나님께서 내게 임시로 맡기신 자녀라는 생각이 중요하다. 필요 이상으로 자 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부모가 많다. 16. 흔히 야곱은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을 속이고 장자의 명분을 가로챘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지만 야곱만 잘못이 있는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기는 에서의 잘못이 더 크다. 당시에 장자의 명분을 사는 일이 가능하였다 고 한다. 귀중한 물건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한 사람에게 그것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가 르쳐주고 사야 하나 아니면 그냥 헐값에 사야 하나? 어떤 시골 집에서 강아지 밥그릇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무래도 값이 많이 나가는 골동품 같더란다. 어떤 사람이 비싼 값에 강아지를 흥정해서 산 후에 이왕에 강아지를 팔았으니 강아지 밥그릇도 끼 워달라고 했더니 주인 왈, 그 밥그릇 때문에 내가 강아지를 얼마나 많이 팔았는데... 하더란다. 누 가 나쁜 사람인가? 그래서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는가? 현실적인 물질의 복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복이 훨씬 큰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것을 아는 것이 더 큰 지식인 데 에서가 어떻게 에돔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는가?

87 창세기 성경공부 :1~34 팥죽과 그 피부색: 팥죽이라고만 해도 답이 되겠지만 조금 더 눈을 넓혀 보면 피부색도 전혀 무관 하지는 않다. 성경도 읽으면서 조금 더 눈을 넓혀보자. 18. 다음은 로마서에서 인용한 글인데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의 신분이나 공로에 따라오는 것이 아 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달린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 자식들이란 누구인가?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 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롬 9:11) 야곱과 에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불쌍한 자를 더 위하시는 하나님이어서 그럴까? 능력이 뛰어난 인간이 되는 것 보다 하나님의 눈에 불쌍하게 보이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다. 19. 에서는 왜 사냥꾼이 되었을까? 집안이 어려워서? 사냥의 재미에 빠져서: 요즈음 말로 하면 공부는 뒷전이고 오락에만 빠진 아이와 같다. 먹고 살기 위해서 사냥터를 뛰어다녀야 할 집안은 아니었다. 익숙한 사냥꾼 이란 말은 오랫동안 수련해서 숙 달된 이란 뜻이다. 그런 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난폭하고 방탕하고 방종하기 쉽다(27, 들사람). 이방 여자들을 둘이나 데려와서 부모의 근심거리가 된 것(26:35)도 그런 연유이다

88 창세기 성경공부 :1~35 창세기 26 장 1. 흉년이 드는 것도 하나님의 간섭일까? 나중의 일이지만 총리가 된 요셉에게 흉년은 자신을 온 세상의 통치자로 세워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믿음의 조상 아브람이 가 나안에 들어왔을 때 최초의 어려움이 바로 흉년이었다. 이삭에게 또 다시 흉년이 찾아왔다. 이런 흉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일까? 흉년을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중요하지 흉년이 자연법칙에 따른 것이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냐는 질문은 별 의미가 없다. 어느 것이든 결과는 마찬가지일 뿐이다. 하나님에게 더욱 매달리느냐 아니면 인간적인 계산을 따라서 가나안을 떠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약속의 땅에 흉년이 찾아오는 것은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흉년은 다가온 다. IMF라는 이름으로 오기도 하고 명퇴란 이름으로 오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원인을 따지는 것보다 이런 일을 계기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보고 제자들이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 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요 9:2) 라는 질문에 예수님께서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 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요 9:3)고 대답하셨음을 기 억하자. 원인보다는 이런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주목하라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원하시는 바는? 가나안을 떠나지 말 것(2): 아브람, 이삭, 나오미는 가나안을 떠났다가 어려움을 겪었고, 롯은 아브람 을 떠났다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 복의 근원을 떠나서 잘 될 턱이 없다. 가나안이 특별히 좋은 땅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지 말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가나안 땅을 떠나서는 안 되 듯이 하나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3. 여호수아가 이끄는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적을 마주 대했을 때 하나님은 할례를 행하라고 하 셨다(수 5장). 죽으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모든 남자들이 수술을 하고 누워있으면 하나님께서 나 머지 일은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뜻이다. 1) 이삭에게 주어진 이와 비슷한 명령은 무엇인가? 2) 이 삭은 어떻게 했는가? 3) 결과는? 1) 흉년을 피하려고 애굽으로 가지 말고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는 말씀은 죽으라는 말 아닌가? 유목민에게 흉년은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 돌보시겠다는 말이다. 2) 애굽으로 가지 말라니까 애굽으로 가지는 않았지만 조금 옆에 떨어져 있는 블레셋 땅에 거하였 다. 애굽으로 가는 길목이다. 여차하면 애굽으로 튀어? 절반의 순종인 셈이다. 그래서 이런 저런 어 려움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백배의 복을 주셨다. 땅을 파면 물이 나왔다. 아비멜렉이 보기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보였다. 3) 수치(9), 억울, 서러움, 시기, 미움을 받으며 쫓겨 나왔다(14-22). 그렇게 해서라도 가나안 땅으로 돌 아오게 하셨다 절을 아브라함이 다시 듣는다면 어느 부분이 가장 감격적일까? 내 말을 순종하고 지켰음이라(5):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잘 순종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럴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가셨으면서도 그것을 그의 공로로 인정하시기 때문이다. 불순종의 증거가 있음에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아브라함이 듣기에는 대단히 황송한 말씀이다. 5. 아내를 누이라 했다가 봉변을 당한 일을 보면 무슨 속담이 생각나는가? 세 번이나 반복된 이 羞恥는 그 원인에 공통적인 면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父傳子傳: 교육의 문제일까? 보고 따라 하는 것일까? 말로 아무리 가르쳐도 결국은 행동을 따르게 된다. 반면에 전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부모의 행위를 그대로 재연하기도 한다. 우리 몸 속 어 디엔가 우리의 모든 행위가 기록되어서 자녀에게 전해지고 있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 해도 하나 님 앞에서는 그대로 생생하게 재연될 수 있다. 가나안을 떠난 것, 목숨에 대한 두려움(타국인이니까): 결국 근본원인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약한 탓이다.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일에 스스로 두려워하는 모습은 딱하다.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 한 일에 대하여 아비멜렉이 앞장서서 막아주는 모습을 보라(11).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기를 얻자. 부인이 예뻐서: 남자든 여자든 너무 잘난 것은 위험하다! 그만큼 주의해야 한다. 6. 이삭이 아브라함과 같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아브라함의 실수와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으며 누가 더 바보짓을 했는가? 이삭: 아브라함은 사라를 빼앗길 정도로 거짓말을 완벽하게 했지만 이삭은 거짓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들켰다. 이왕에 거짓말을 하려면 확실하게 해야지. 덕분에 더 큰 화는 면했지만 재물(?)은 더 얻지 못했다. 부부가 껴안고 있는 것을 남에게 들키다니! 정녕 네 아내여늘(9) 이라는 말로 미루어 보아서 단순한 포옹 정도가 아니다. 세상에! 남의 눈에 뜨일 걸 뜨여야지! 7. 아비멜렉이 이삭의 대답을 듣고 자기 백성에게 내린 명령이 이상하지 않은가? 왜 이렇게 후대

89 창세기 성경공부 :1~35 하는가? 아마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사건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거나 물려받았을 것이다(21장).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선대의 아비멜렉이 죽을 뻔했던 이야기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삭의 거짓말을 깨닫는 순간에 아비멜렉이 이랬을 것이다. 너, 누구 신세 망칠 일 있냐? 8. 아비멜렉은 얼마나 오래 살았길래 아브라함 때에도 나오더니 이삭 때에도 등장하는가? 인명이 아니라 바로 처럼 관직명이기 때문이다. 9.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는 것이나 아비멜렉이 떠나라고 하는 주 원인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복을 너무 많이 주셨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아도 배가 아플 정도로 확실하게 복 을 주셨음을 의미한다. 농사나 목축업의 경우 어느 한 집만 잘 되면(그래야 돈이 된단다) 너무 표가 잘 난다. 가령 주변의 모든 논에는 쭉정이만 달리는데 유독 한 집만 풍년이 들었다고 생각해 보라. 가난한 이웃들이 많이 있는데 혼자 비싼 승용차 타고 다니면 누군가가 차를 손상시킬 위험이 아주 높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지만 지금도 그러하거늘... 너무 있는 티를 내지 말고 가난한 이 웃들을 생각하면서 살자. 이삭의 경우는 감출래야 감출 수도 없었겠다. 아브라함의 우물을 왜 메웠을까(18)? 자기들이 사용하면 될텐데? 10. 우물은 유목 민족에게는 삶의 중심지이며 재산 목록 1호다. 이렇게 중요한 우물을 막는다는 것 은 선전 포고요 도발이다. 우물 때문에 블레셋인들과 다투는 이삭을 평가한다면? 너무 허약하다: 온유하다, 신앙적이고 양보심이 강하다는 설명을 많이 들었다. 만약 자기 집 재산 1 호를 깡패들이 와서 때려 부쉈는데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부쉈는데 말 한마디 제대로 안 하는 자기 남편보고 우리 남편은 정말 온유하다, 신앙적이다 라고 말할까? 차라리 맞아 죽을 때 죽더라도 한 판 붙는 것이 사나이다운 것 아닌가? 이삭은 바보거나 상상을 초월하는 위대한 신앙인 일 것이다. 나중에 할 말이 있는 것(27)으로 보아 전자 쪽일 것이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나으니 까 잘 했다 는 평가도 적지 않다. 옛날 같으면 택도 없는 말이겠지만 세월이 바뀐 탓이다. 타국에서 의 두려움 때문에 분함을 참고 물러서기만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고 생각한다. 알고 보면 공 연한 두려움이었다. 진정한 용기도 하나님을 더 신뢰하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나 목소리 크고 거세게 싸우는 사람보다 물러서기만 했던 이삭이 더 큰 복을 누렸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 의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11. 이삭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브엘세바로 돌아오는가? 1) 우물을 메이움(15): 가장 큰 재산의 손실을 입음 2) 떠나라(16): 그랄 골짜기로 밀려났다. 약소민족이 서러움을 겪은 이야기는 세계사에 부지기수다. 장사가 될 만하면 나가라는 집주인의 횡포도 당해본 사람만 아는 억울함이다. 그와 별반 다를 바 없다. 3) 우물을 2번 더 빼앗긴 후에(18, 21): 가장 큰 재산을 강제로 빼앗김 억울하고 분함을 안은 채 고통스런 경로를 밟으며 돌아왔다. 그러나 그 길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도 하시는 복된 길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가나안을 떠났다가 재산을 그대로 가지고 돌아오는 경우는 드물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큰 복을 주신 것이다. 롯이나 나오미의 경우만 이 아니라 많은 분들의 간증도 한결같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돌아왔다고 한다. 12. 이삭의 귀향이 본의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말은? 27절 너희들이 나를 미워하여 쫓아내지 않았느냐? : 살다보면 억울한 일도 당하게 마련이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명하지 않고 묻어두고 있으면 스스로 찾아와서 사과하는 경우도 있다. 옳고 그름은 반드시 따져야 한다는 식으로 살 필요는 없다. 선악과보다는 생명나무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 결코 사람에게 생명을 주지 못한다. 13. 본 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두 번(2, 24) 나타나셨는데 어떤 경우에 나타나셨는가? 이삭이 어려움을 느낄 때: 흉년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2), 억지로 쫓겨나왔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 오 셨다(24). 특히 그가 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서 나타나셔서 격려하시고 복을 약속하신 후에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이 순서에 주 목하여야 한다(아브라함도 그랬다. 창 12:7).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있다는 사실은 예배를 위시해서 우리의 모든 행위의 기본이어야 한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중요한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다 받은 상태이다. 14. 아비멜렉이 이삭과 평화 조약을 체결하려고 찾아온 것은 이삭의 입장에서는 감지덕지다. 아비 멜렉은 이삭과 비교하면 훨씬 강한 나라인데 왜 먼저 손을 내밀었을까?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분명히 보았으므로(28): 희미한 자식인데 하는 일마다 잘 된단 말이야! 15. 아비멜렉의 말 중에 사실과 다르거나 주관적인 판단으로 하는 말은? 너를 평안히 가게 하였음(29): 아비멜렉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아무 것도 빼앗지 않았고, 아무도 해를 입히지 않도록 명령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미움을 당하고 쫓겨 나왔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말을 항상 이런 식으로 한다. 특히 부부사이에 이런 경우가 대단

90 창세기 성경공부 :1~35 히 많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 부부는 그리 많지 않다. 내가 못한 게 뭐 있느냐? 안 해준 게 뭐 있느냐? 그러면 해준 게 뭐냐? 밥만 먹고 사냐? 는 식이다. 언제쯤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대화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까? 16. 왜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과분한 복을 주고 계시는가? 본문에서 찾으시오. 아브라함을 위하여(5, 24절): 이삭의 위대한 신앙 때문이 아니다. 아브라함을 위하여라는 말도 아브 라함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위하여 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 이다. 결국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라는 고백처럼 일의 주관자는 하나님이 시다. 17. 에서는 40세에 결혼을 했다. 당시의 결혼 적령기가 대략 이쯤 되었을 것 같다. 야곱이 외삼촌 집에서 결혼을 할 때는 대략 몇 살쯤이었을까? 40미만은 틀린다. 둘의 나이가 같으니까 최소한 40은 넘어야 옳다: 다른 년도를 다 검토하면 77세 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18. 에서의 결혼이 이삭과 리브가에게 근심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친족이 아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친족이었다는 점이다. 가장 큰 원칙이 깨어진 셈이다. 결국 이방인들의 문란하며 우상숭배에 깃들인 문화에 접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노아 홍수의 원인이 되기까지 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부일처의 원칙이 깨어졌다: 당시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뜻 은 그렇지 않았다. 야곱의 생애에서 다음 두 항목에 해당하는 일을 찾아봅시다. 장 야비하거나 속인 일 26 발꿈치를 잡음, 이름이 교활을 의미 26 배고픈 형에게 팥죽으로 장자권을 삼 27 아버지를 속임, 염소로 속임을 당한 일, 괴롬을 당한 일 28 고향에서 도망함 29 첫번째 결혼에 속음 네 명의 부인 사이에서 줄타기 29,30 31 라반과 두뇌 싸움을 벌임(품삯) 라반이 품삯을 열 번이나 변개 31 라헬이 도적질함 31 하란에서 도망함(열흘 동안) 32,33 에서를 만나기 전에 고통스러워함 34 딸의 고통, 레위와 시므온의 속임 35:22 르우벤의 통간 37 자식들에게 속음 (단기), 염소피로 37,43 자식들에게 속음 (장기) 결)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91 창세기 성경공부 :1~46 창세기 27 장 1. (1-4)이삭이 1) 무엇을 잊어버리고 있었을까? 2) 그 원인을 본문에서 찾아낸다면? 3) 무슨 실수를 했는가? 1)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하나님의 예언, 2) 별미를 너무 즐김: 고의로 하나님에게 대적하려는 뜻은 없다. 요일 3:6, 9에서 범죄하지 못한다는 것은 고의적인 범죄를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죄를 지을 수 없다. 그냥 연약해서, 잠시 욕심 에 이끌려 죄를 지을 뿐이다. 기억해야하는 것은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3) 에서를 마음껏 축복하려함: 영적인 분별력이 흐려진 탓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으며 헷족속 과 결혼했고, 그것도 둘이나, 장자권을 경홀히 여기고 있었음에도 그를 축복하려 하였다. 2. 이삭이 작은 아들에게 속았음을 알았을 때 이미 준 축복이라도 취소하고 야곱을 저주하지 않은 것은 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받았던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전혀 불쾌해 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심히 크게 떨었다고 한다(33). 대신 에서에게는 저주같은 기 도를 하고 만다(39-40). 28장에서는 다시 야곱을 불러 축복하고 당부해서 보낸다. 3. 리브가의 잘못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렇다면 리브가는 어떤 사람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가? 1) 남편의 이야기를 몰래 엿들은 것: 참 귀가 밝다. 정보력에 뛰어나다? 에서가 동생을 죽이려는 말 도 먼저 알아냈다(42). 2)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을 위하여 남편을 속임: 사기 교사죄? 시집올 때 보여준 과단성이 아직 그 대로 살아 있다. 3) 에서의 좋은 의복을 훔침: 주도면밀한 구석이 있다. 4) 야곱을 외삼촌 집으로 피신시킬 때 엉뚱한 구실을 댐: 내가 헷 사람들의 딸들로 인하여 내 생명 을 싫어하거늘... 며느리들 때문에 죽고 싶다는 말이다. 5)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잊은 것 6) 남편의 의견을 함부로 무시한 것 결론: 리브가는 21세기가 요구하는 지혜로우면서 결단력과 추진력을 갖춘 능력있는 여자이었다. 문 제는 이렇게 능력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의지한 것이 불행이었다(16번 참고). 4. 아버지를 속일 때 사용된 도구라고 할 만한 것은? 그 중에 가장 나쁜 것은? 염소고기, 떡, 에서의 옷, 가죽, 목소리 흉내, 하나님, 거짓말 하나님: 하나님을 팔아야 하는 짓은 정말로 하지 말자. 내가 교회의 장로인데 그랬겠습니까? 나중에 보니 그랬다! 작은 거짓을 덮으려다보니 결국 하나님까지 팔아먹은 셈이다. 5. 들킬 뻔한 적이 두 번 있었는데 언제인가? 왜 이렇게 빨리 잡아 왔는가? 목소리가 야곱 같은데? 6. 속이는 데 사용되었다가 나중에 속임을 당하는 데 사용된 것은? 염소: 아버지를 속이기 위해서 염소를 잡았는데 자기 자식들이 자기를 속이려고 염소를 잡아 요셉 의 옷에 묻혀서 들고 온다(창 37:31). 7. 이삭 한 사람을 위해서 요리를 하는데 염소 새끼가 두 마리나 필요할까? 특별히 맛이 있는 부위는 분량이 아주 적을 수 있다: 소고기도 가장 맛있는 부위라고 할 안심은 양 이 극히 작단다. 흔히 그 주위를 통틀어 안심이라고 하지 실제로는 아주 작은 부위란다. 야곱의 몸 을 감싸기 위한 가죽이 두 마리는 돼야 했다는 주장도 있기는 하지만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내용을 두 가지로 요약하면? 1) 물질의 축복(경제적 27-28) 2) 권세의 축복(정치적 29): 세속적인 권세처럼 보이지만 영적인 권세 즉 영적인 복이다. 이런 복을 받지 못한 사람은 이 그늘에 거하는 것이 이 복을 나누어가지는 비결이다. 9. 에서의 방성대곡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새삼스럽게 아버지의 축복을 간절하게 애원하는 그의 모습은 누구를 닮았는가? 쏟아지는 빗속에서 방주를 두드리는 사람들, 내어쫓겨 슬피 울며 이빨을 가는 사람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마 25:30)

92 창세기 성경공부 :1~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이까 라는 것이 무슨 말인가? 이름조차 속이는 자라는 뜻이 아닙니까? 우리 식으로 하면 등치는 사람 정도?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인정하시고 나중에 이름을 바꿔버린다. 11. 훗날, 에서의 후손은 세일 산지를 근거로 일시적으로나마 번성하게 되지만 결국은 역사의 무대 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것이 에서에게 해준 이삭의 대답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39) 12. 오바댜서는 에돔(에서)족속에 대한 예언이다. 에돔 백성들은 왜적의 침입에 대하여 별 걱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들의 거주지가 지리적으로 유리한 면이 있었기 때문인데 오바댜서에 보면 에 돔이 바위 틈, 높은 곳에 거하면서, 누가 나를 끌어내리겠느냐? 고 큰 소리를 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에돔 족속의 수도였던 페트라는 좌우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로 노새 두 마리 가 간신히 비켜갈 수 있는 좁은 통로를 3 정도 지나야 이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그들의 생 업은 무엇이었을까? 약탈: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13. 다윗 시대부터 에돔은 이스라엘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간혹 그 지배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오히려 오바댜에서처럼 이스라엘을 괴롭히기도 하다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예 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의 통치자 헤롯은 에돔 사람이었다. 이런 사실은 본문의 어느 구절과 관련이 있을까? 창 27:40b: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 버리리라 하 였더라. 14.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한 이삭의 표현을 비교하면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일까? 하나님과 관련이 있고 없고의 차이: 하나님 없는 복은 결코 복이 아니다. 하나님 없이 돈을 많이 벌 고 좋은 대학 다니고? 결코 복이 아니다. 기름짐의 차이도 있겠으나 위의 답과 비할 바가 아니다. 15. 몇 날(몇 년 이라는 뜻)이면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떠났는데 결국은 몇 년이나 걸릴 까? 20년 16. 리브가도 자기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야곱이 축복을 받도록 계교를 꾸몄다. 결과적으로 성공 했으나 자신도 피해를 입었다. 리브가가 입은 피해는 무엇일까? 아들을 다시 보지 못함(아들에 대한 편애가 결국은 아들을 잃어버린 원인이 됨): 자식이 잘 되라고 시킨 일이 때로는 자식을 고생길로 내모는 수도 있다. 이런 고생을 자초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 씀을 잊지 말았어야 한다. 17. 리브가가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고 말할 때 어떻게 하루에 둘을 잃을 수가 있는가? 에서가 야곱을 죽이면 에서도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것이나, 어차피 리브가에게는 에서가 죽은 것 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장자권을 빼앗긴 에서를 죽은 자식으 로 취급하기 때문이 아닐까? 18. 뚜렷한 공적이나 특이 사항이 별로 없는 이삭의 생애가 왜 성경에 기록되었을까? 무슨 업적을 남겼기에 위대한 조상의 반열에 들었을까?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면 남긴 업적이라고 할 게 없어 보인다. 기껏해야 자기 욕심에 이끌려 하나님 의 뜻과 달리 에서에게 장자가 누릴 복을 주려했다가 아내와 자식에게 속은 것 뿐이다. 중요한 것 은 속았음을 알았을 때 자신의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잊어버렸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겸손 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다. 무슨 거창한 업적을 남겨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 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요 6:29). 하나님의 뜻에 순종 하는 이것이 가장 큰 일이다. 그렇게 보면 이삭은 위대한 일을 이룬 사람이다. 모리아 산에서 아버 지에게 순종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삭을 보는 하나님의 눈에는 자기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 눈에 보인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가장 위대한 일이다. 다른 봉사는 거기에 덧붙인 장식품이다. 아브라함이나 야곱처럼 선이 굵고 뚜렷한 삶이 아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삭처럼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 이삭의 하나님 이라고 하신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삭 같은 나를 자녀로 삼 으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내게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최선을 다하는 삶이어야 하지만 자랑할 게 없어도 관계없다. 너무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려고 하지 말자. 희미한 모태신앙인 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19. 다음과 같은 이삭의 가정을 가리키는 우리말은?

93 창세기 성경공부 :1~46 이삭: 좀 무능하고 박력도 없고, 겁도 많고 희미하다. 고기를 좋아해서 편애함. 리브가: 영리하고 용감하다. 야곱을 좋아했으나 영영 헤어짐, 며느리가 싫음. 에서: 사나이다우나 교활한 동생에게 빼앗김, 동생을 죽이리라는 마음까지. 야곱: 부형을 속인 것이 죄가 되어 외삼촌 집으로 떠나 다시는 부모를 못 봄. 콩가루 집안: 제각각 따로 노는 경우를 가리킨다. 밀가루는 물을 부으면 반죽이 되지만 콩가루는 반 죽이 되지 않는다. 20. 야곱은 갖고 싶은 것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뺏어야 하는 성품이다. 경쟁에서 꼭 이겨야 하는 악바리 성격인데 그의 이런 면을 보여주거나 암시하는 점들을 찾아보시오. 그런 노력의 결과 는 무엇인가? 1) 태중에서 싸움, 2) 출생시, 3) 장자의 명분을 빼앗음, 4) 형의 축복을 가로챔 결과(훈련기간): 20년의 객지생활, 가만히 있었더라면 에서는 목축에 별 흥미가 없었으니 이삭의 모 든 재산도 자기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모세의 40년 광야생활이며, 다윗의 쫓기는 생활이다. 21. 히브리서 12장에는 에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 )에 알맞은 단어를 채우세요. 음 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 )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 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망령된 (히 12:16-17): 하나님의 복을 스스로 차버린 자는 진실로 망령된 자이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 인들이 그랬다. 오늘 우리는? 22. 별미를 먹고 싶어한 이삭의 욕심, 리브가의 과단성 및 자식에 대한 편애, 야곱의 거짓말이 합 력하여 무엇이 되었나요? 예언의 성취(=하나님의 뜻을 이룸): 영양가라고는 전혀 없는 재료들을 가지고 일류 요리를 만들어 놓은 꼴이다. 위대한 요리사 만세! 이 때 이삭은 137세<47장의 7번 참고> 23. 이런들 저런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든지 별로 관계가 없네? 우리의 결정이 우리의 삶의 형태를 결정한다: 하나님의 뜻이 무언인지 확인하고 그 길을 따르는 것 이 가장 쉬운 길이다. 그렇지 않았기에 리브가는 자식을 잃어버렸고,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지나게 된다. 자기의 속임수 때문에 야곱이 장자의 복을 누린 것이 아니다. 본래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었 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든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다. 엉뚱한 짓을 저지르면 하지 않아 도 될 고생을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94 창세기 성경공부 :1~22 창세기 28 장 1. 자신을 감쪽같이 속인 아들에게 축복하며 당부하는(1-3) 이삭의 태도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 가? 자식에게 속았다는 분노가 전혀 없다: 비록 자신을 속였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를 되찾았다. 이삭이야 순종 빼고나면 시체가 아닌가! 런 모습이 요셉에게서 재연된다. 똑똑한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이라면서 내 뜻과 다르게 따지고 때 그들이 말이 옳다고 여겨지면 나의 기분까지도 좋아진다? 말은 옳다고 인정하면서도 얼마나 분이 나쁜가! 가 이 들 기 2. 이삭이 야곱을 처가로 보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결혼문제: 리브가가 속인대로 따르고 있다. 실제로는 형의 분노를 피하는 것인데... 정말 결혼이 주 목적이었다면 왜 빈 손으로 보냈을까? 이삭이 자기 아내를 얻으려고 보낼 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 하고 있을텐데? 리브가가 말을 그렇게 했고 이삭도 동의를 했지만 실제로는 형을 피하기 위한 망명 길이나 마찬가지였다는 말이다. 만약 많은 재물을 실어서 야곱을 보냈더라면 자제하고 있던 에서의 분노가 폭발했을지도 모른다. 순수한 신앙의 맥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라반의 딸이라고 믿음이 더 좋은 것은 아닐텐데... 여 기서는 가나안 족속의 딸은 안 된다는 점이 강조되어 있다. 믿음의 유업을 함께 누려갈 사람이 중 요한 것이다. 한 번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좌우하는 것이다. 결혼은 신앙을 담는 그릇일 뿐만 아니라 신앙의 질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일이다. 이렇게 중요한 일이니 미주알고 주알 잘 따져야 할까? 다 따질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만이라도 확실하게 따져야 한다. 3. 하나님께서 무슨 복을 주실 것이라고 하는가? 후손의 번성과 땅(4): 아브람과 이삭에게 약속하셨던 그 복이다(이삭이 제대로 정신을 차린 증거다). 두 사람의 일생을 통하여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어쩌면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꿈이다. 효자 제일교 회가 앞 쪽 삼층 건물은 교육관으로 쓰고 옆의 이층 주택은 사택으로 쓰고 왼쪽 기와집들은 교회 의 대지가 되고... 이것보다 더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꿈이다.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 이란 말은 후손과 땅의 복 과 동격인 셈(=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 메시아를 의미)이다. 4. 입지전적인 인물 이야기를 할 때 잘 나오는 표현으로 정식 직원도 아닌 청소부나 말단 심부름 꾼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사장이 되었다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서 장관이 되었다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의미로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을 본문에서 찾는다면? 우거하는 이 땅을 벌기 위해 들어와 는 형편에 그것도 들이 들으면 뭐라 유업으로(4): 우거라는 의미는 자신들의 삶이 나그네 같다는 말이다. 이 땅에 돈을 있는 외국인들이 이 땅의 주인이 된다는 뜻이다. 남의 땅에 잠시 나그네로 와 있 모자라 외삼촌 집으로 쫓겨가는 판에 이 땅을 유업으로? 그 땅의 주인인 원주민 그럴까? 놀고 있네! 5. 에서는 아버지가 자기에게 축복해 주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간신 히 짐작해 낸 것은 무엇일까? (깊은 의미는 알지 못한 채 겉모습만 흉내내는 신앙을 가진 척하는 신앙인의 대표인 셈이다.) 가나안의 딸들 때문에...(8) 헌금의 의미도 모른 채, 아니 관심도 없이 많이만 하면 복 받는다는 생 각은 하나님을 아주 질 나쁜, 돈만 아는, 저급한 인간으로 만드는 일이다. 과부의 두 렙돈을 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이시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형제와 화해하고 오라는 말씀도 마찬가지다. 예배가 더 중한가? 형제우애가 더 중요한가? 제대로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그렇다는 말이다. 6. 히브리란 말은 어디서 왔는가? 이것은 대답이 그리 쉽지 않다. 강을 건너 왔다 는 뜻이라고 하 기도 하고 사회의 낮은 계층을 가리키는 말이다 라고도 하고 에벨의 후손이라고도 하고... 본래 는 무슨 민족이었을까? 아람 사람(5): 유리하는 아람 사람들(신 26:5), 예수님께서 쓰신 모국어도 사실은 아람어이다. 달리다 굼, 게바 등등. 그래서 신약에 번역하면 이란 말이 가끔 나오는데 아람어를 헬라어로 번역한다는 뜻 이다. 그것을 우리말로 다시 또 번역하는 예가 가령, 게바를 베드로로, 베드로를 다시 반석으로 번 역하는 경우가 그렇다. 7. 보통 형제간은 출생 순서대로 기록하는 것이 정상인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경우에 바뀌어 기록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언약의 입장에서 더 중요한 사람이 먼저 나타난 경우를 찾아보시오. 5절(야곱과 에서의 어미 리브가): 바나바와 바울이 바울과 바나바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브리스 길라와 아굴라로! 8. 개 눈에는 밖에 안 보인다고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중요한 것이 많건만 에서에게는 한 가지 밖에 보이지 않았다. 무엇인가? 가나안의 딸들과 혼인하지 말라(6-8): 듣는 대로 들리고 보는 대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수준

95 창세기 성경공부 :1~22 대로 들리고 보인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거기에 어울리게 들린다. 평소에, 지적인 수 준이든, 신앙의 수준이든, 좀 높여둘 필요가 있다. 에서는 아비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다 시 이스마엘의 후손과 또 결혼했지만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일이다. 일만 더 저지르는 격이 아닌 가! 9. 사람이 가공의 이야기를 쓰면 거기에 나타나는 하나님은 대체로 사람의 뜻과 일치하게 마련인 데 성경에는 사람의 뜻과 다르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사람이 주체가 아니 라 하나님께서 주체적으로 성경을 기록하셨다는 좋은 증거가 된다. 28장에서 이것을 나타내는 표 현을 찾아보시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16): 이런 하나님을 가리켜 놀라게 하시는 하나님 이라고 말한다. 희 랍의 신들은 하는 짓이 사람이다. 도둑이 사업차 차를 사서 사업이 잘되고 차사고 나지 않도록 해 달라고 고사를 지낼 수 있는 것도 가짜 신이기 때문이다. 신의 수준이 바로 자기 수준이기 때문이 다. 하나님께 그런 제사를 드리면 어떻게 될까? 10. 벧엘의 하나님에게 이름을 붙인다면? 1) 나타나시는 하나님: 야곱이 요청하거나 무슨 선한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스스로 나타나셨 다. 하나님 자신이 계시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노력으로 하나님을 찾아갈 능력이 없다. 찾아오 시는 하나님? 2) 일방적으로 약속하시는 하나님: 야곱이 아무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선언 하듯이 약속하셨다. 주고 싶어 안달하시는 하나님? 함께 하시는 하나님? 3) 놀라게 하시는 하나님: 자신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니 놀랄 수밖에 더 있겠는가? 4)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13):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야곱은 평생 하나님을 자 신의 하나님으로 부르지 않고 아버지의 하나님, 조부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11. 야곱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아버지하고 똑같다? 이삭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하나님께서 친히 또 말씀하고 계신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하셨던 그 약 속을 다짐이라도 하듯이 반복하시는 이유가 뭘까? 하나님께서 뭐가 답답하셔서 이렇게 다짐에 다 짐을 거듭하시는가? 이 땅에 메시야를 보내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야곱이 한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야곱이 자신의 역할을 잘 해주어야 한다. 1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여 준 이유는 우리끼리 잘 멀고 잘 살라고 한 것이 아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 외에 한 가지가 더 있다면?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14):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이 복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13. 야곱에게 약속하시는 내용 중에 아브라함이나 이삭에게 했던 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너와 함께 하겠다(15). 지키며 돌아오게 하겠다는 약속이 추가된 것. 14. 야곱은 이후에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된다. 하나님의 약속 중 어느 것을 잊지 않고 기억했더라면 그렇게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15): 돌아올 때 형님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 아도 되었을 텐데 하나님의 약속과 야곱의 서원을 잘 비교해 보면 약간 핀트가 안 맞는 부분이 있다. 어쩌면 하 나님께서 섭섭할지도 모르는 부분을 설명해 보시오. 하나님은 야곱을 자기 백성으로 생각하고 있는 반면에 야곱은 조건부로 기도하고 있다. 우리의 기도가 늘 이런 차원 아닌가? 요구조건보다는 감사가 많은 기도로 자라야 한다. 야곱은 언 제야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가? 죽기 직전에 다섯살배기 꼬마에게 10000원 짜리 지폐를 주었더니 이것말고 돈 주세요 하더란다. 500원 짜리 동전을 달라는 말이다. 야곱이 이런 식이다. 어디에? 하나님께서 주시겠다는 것은 엄청나게 큰 것이지만(13-15) 야곱이 요구하는 것은 극히 작은 것이다.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평안히 돌아가게 하시면... 아이고,이 얼라야! (얼라, 혹 은 알라: 성인을 아기같다고 얕잡아 부르는 경상도 말) 17. 아버지를 속이고 형에게 죄를 지은 야곱을 대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하나님의 사랑의 어떤 특징이 있는가? 무조건적인 사랑 18. 야곱이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요구한 것과 나중에 돌아올 때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하나님께서

96 창세기 성경공부 :1~22 이 기도를 어떻게 들어주셨는가? 요구 외에 아내들과 자식들과 넘치는 재산까지 주셨음 19. 본문에서 이삭에게 축복을 받은 야곱의 삶과 축복을 받지 못한 에서의 삶을 비교해보자. 에서: 아내가 셋이요, 고향에서 평온한 삶을 누림 야곱: 결혼을 위하여 머나먼 곳으로 홀로 떠나야 함. 온실 속에서 갑자기 차가운 곳으로 던져진 느 낌일 것. 그 길에 하나님이 동행하심. 적어도 20년이란 세월을 야곱은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처음부터 만사 가 형통한 경우보다는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더 많다(명현반응?). 예수 믿고 어느 정도 훈련을 받으 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까? 각자의 경험이나 들은 바를 나누어 보자. 20. 야곱은 의식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를 주목하고 계셨다. 아브라함 의 생애에서도 그러하고 앞으로 야곱의 생애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그 하나님이 어떤 상황에서 야 곱에게 나타나셨는가? 스스로 가장 고통스럽다고 여길 때: 이 후에도 가장 위급하거나 고통스러워할 때 나타나셔서 격려 하신다. 21. 야곱이 말하는 십일조는 어떤 성격인가? 우리들이 드리는 십일조와 비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한 자발적인 감사(후사)이다: 십일조를 내야하다는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 었음에도 스스로 그렇게 하겠다는 점이 돋보인다. 비록 조건부로 제안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선불 이나 보험의 의미로 드리는 경우가 없지 않을까?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 좋을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이 들만큼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교회가 십일조를 강조하기 전에 하나님에게 받은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우선이다. 십일조 폐지론자들도 나름대로 일리는 갖추고 있겠지만 말려도 해야겠다고 우기는 모습이 더 아름 답다. 너무 이상적인가? 결코 이루지 못할 이상은 아니다. 22. 야곱이 야영한 벧엘은 하란으로 가는 길목이 아니다. 더구나 산지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길은 경사가 너무 심하다. 가능한 한 좋은 지도책을 구해서 자세히 살펴보라. 왜 엉뚱한 곳으로 갔을까? 왜 성에서 자지 않고 들에서 잤을까? 야곱이 야영한 벧엘은 평탄한 길을 제쳐두고 굳이 험한 산길을 택해서 도착한 곳이다. 계속 험한 산길을 타든지 아니면 오던 길로 되돌아가서 예루살렘 근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서 요단강을 따라 올라가든지 해야 한다. 근처에 루스라는 성이 있음에도 성에 들어가지 않고 위험하기 그지없는 들 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모험이다. 왜 그랬을까? 이 곳은 예전에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제 단을 쌓았던 곳이다(창 12장, 13:3): 오래 전에 할아버지가 하나님을 섬겼던 그 장소, 말로만 들었던 그 곳에서 허물어진 제단을 다시 쌓고 그 제단의 돌을 베고 잠을 잤던 것이다. 부모를 떠나 타향으 로 떠나면서 울적하고 답답하여 견딜 수 없는 아픔을 안고 이 곳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 정으로 하나님을 찾았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97 창세기 성경공부 :1~35 창세기 29 장 1. 야곱이 발행(發行)하여? 어째 표현이 낯설다. 국어사전에도 설명이 없다. 영어 성경에는 went on his journey라는 표현이 압도적이다. 원문에는 그의 발을 들어 올려 라고 되어있다. 1절을 직역하면 야곱이 그의 발을 들어 올려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가 되는 셈이다. 어떤 느낌을 주는가? 하나님을 만난 이후 경쾌하게 먼 길을 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이전에는 고향을 떠나야 하는 서러움과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으로 발걸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2. 그냥 물을 퍼 먹이면 되지 다 모여야 물을 먹이나? 우물을 왜 큰 돌로 덮어두나? 물이 귀한 곳이어서: 우물을 큰 돌로 덮는 것도 다목적이었을 것이다. 증발을 막거나 보호하는 의미 와 짐승이나 사람이 빠지는 것도 막을 뿐만 아니라 함부로 퍼내가는 것도 방지했을 터이다. 3. 야곱은 지금 외삼촌 집으로 가는 길이다. 그러니까 그냥 라반을 찾으면 되는데 왜 나홀의 손자 라반 이라고 하는 걸까? 나홀과 야곱은 어떤 관계인가? 공식적인 이름이기 때문: 나홀은 작은 할아버지이기도 하고(아버지 쪽으로 보면) 외증조 할아버지이 기도 하다(어머니 쪽으로 보면). 그러면 라반은 외삼촌이기도 하고 6촌 형님이기도 하다. 촌수는 가 까운 쪽으로 따지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나홀의 손자 라반 이란 표현을 쓴 것은 나홀 이라는 이름이 하나의 유명한 부족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 내를 구하기 위하여 도착한 곳의 이름도 나홀의 성이었다. 4. 자기의 친척 여자가 온단다. 이 친구들 좀 비켜주면 좋겠는데 그래서 뭐라고 했나? 해가 아직 높은즉 짐승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뜯기라(창 29:7): 눈치 없는 자식 들, 원리원칙만 따지고 해가 아직 높은즉 짐승 모일 때가 아닌데 왜 양떼들이 우물가에 모여 있는가? 목자들의 책임감이 부족한 탓: 진정으로 양을 위한 태도가 아니라 빨리 물이나 먹이려는 것이다. 라 헬이 게을러서 늦게 오는 것이 아니다. 자기 양을 조금이라도 더 풀을 뜯게 하려는 마음 탓이다. 비 슷한 예를 든다면 어린아이를 돌보는 분들이 편할려고 수면제를 먹여서 잠들게 하는 것이다. 6. 인사할 때 안녕 을 묻는 민족은 우리 민족 외에 유대민족이 있단다. 안녕하시냐고 번역했으면 쉬울 것을 무엇이라고 번역되어 있는가? 평안(6): 히브리어로 샬롬인데 우리말의 안녕과 다를 바가 없다. 7. 처음 보는 친척, 사실은 이종 사촌 여동생을 붙들고 왜 이렇게 우나? 반가워서? 일단은 서러움 아닐까? 약 20일 이상 외롭고 힘든 길을 걸었을 것이다. 아무라도 붙들고 하소연하고 싶은 사람처럼. 억지로 울음을 참고 있는데 격려한다고 한마디 하면 그만 터져버리는 것처럼? 8. 우리나라에서는 연애의 주무대가 주로 물레방앗간인데 성경에서는 어디인가? 우물가: 야곱, 모세, 엘리에셀, 예수님의 경우에 중요한 일이 우물가에서 많이 발생하였다. 리브가가 횡재한 곳도 우물가였다. 9. 라헬에게 입 맞추고 운 것이 먼저인가? 양떼에게 물을 먹인 것이 먼저인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 전에 양떼에게 물을 먹였다. 다른 목자들이 물을 먹이고 다 간 후에. 일종 의 작전 아닐까? 사랑에 빠져도 될 것인가 아닌가를 탐색하는... 레아가 왔더라도 이렇게 울었을 까? 말하지 않을 때는 참을 수 있다. 말하고 나면 울음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10. 라반이 야곱의 말을 듣고 너는 참으로 나의 골육이로다 면서 반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반 가움이 얼마나 갔을까? 아마 오래 전 (거의 90여년 전)에 떠나간 여동생의 소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나서 반가운 것이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산가족 찾기를 통 해서 평생 헤어졌던 가족을 되찾은 사람들 중에는 차라리 만나지 말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단다. 부부 사이도 늘 함께 하는 것보다 떨어져 있다가 가끔 만나야 한다고 하 는 사람도 적지 않던데... 한 달 만에 보수를 주겠다고 하는 이야기는 얼핏 보면 대접을 하는 것 같 아 보이지만 실상은 오래 붙잡아 두려는 계책으로 보인다. 11.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삼촌에게 고하였단다(13). 설마 사실대로 다 말했을까? 형님에게 맞아 죽을 것을 피해서 왔다고 그랬을까? 필수로 이야기한 것은 무엇이며 빠뜨린 것은 무엇일까? 반드시 말한 것: 반드시 친척 중에서 아내를 구하라: 리브가를 구하러 왔던 때를 라반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때에는 많은 패물을 가지고 왔었는데 야곱을 보고 결혼지참금이 왜 없느냐고 물었 을 수도 있다. 야곱이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고 대답이 참으로 궁했을 것이다. 말하지 않은 것: 형님의 살해 기도를 피해서 왔다. 12. 품삯 얘기를 누가 먼저 꺼냈는가?

98 창세기 성경공부 :1~35 라반이: 아쉬운 것은 라반이었다는 말이다. 붙잡아두면 쓸만한 목자가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스로 발을 묶네! 칠년간 머슴살이를 하겠다고 스스로 자청을 하다니! 덕분에 20년이나 머 슴살이를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하나님께 눈을 돌리지 않고 라헬에 빠진 탓 아닐까? 13. 이제 야곱은 공으로 얻어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해서 급여를 타게 되었다. 행복했을 까? 야곱이 고향에서 어머니와 살던 모습과 비교하면 어떤가? 왜 이렇게 되었지? 집안에서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살던 그가 객지에서 홀로 험한 일을 해야 하는 모습으로 변함, 공 밥 먹다가 이제 벌어 먹어야 하는 형편이 됨 아버지와 형을 속인 대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기를 쓰고 애쓰고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 다. 성경의 가르침은 그렇지만 세속적인 기준은 오히려 이것을 더 권장하는 것 같다. 착하고 공부 잘하는 학생은 선생이나 월급쟁이 노릇하고 공부는 조금 떨어지더라도 욕심 많은 학생이 뭔가 큰 일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욕심을 부리다가 실패한 것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 아닐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이다. 14. 라반이 야곱에게 보수를 주려고 묻는 것을 보면 공정하고 양식 있는 사람 같은데? 손이 모자라는 판에 좋은 일꾼이 들어왔음을 기뻐하여 하는 말일 것이다. 두 딸을 미끼삼아 괜찮은 일꾼 하나 장기간 붙들어 두는 것도 좋은 일 아닌가? 나중의 결과를 보아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결국은 완전히 성공한 셈이다. 20년간이나 붙잡았으니. 야곱에게 하는 대답을 보면 대단한 인심을 쓰는 것처럼 말한다.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19).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계산은 분명해야 한다. 형제간이라도 금전관계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잘 사는 형님 돈이야 천천히 갚거나 이자를 좀 떼먹는다고 별 일 있겠나? 천만의 말씀!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돈보다 더 소중한 형제간의 우의를 다칠 위험이 있다. 15. 외가에서 정말 뼈가 빠지도록 일을 열심히 했다(31:38-42).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무 척 힘들고 어려웠을 것이다. 힘들게 일하면서도 즐거우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 누군가를 사랑하면 된다(20): 라헬을 사랑하는 관계로 7년이 수일같이 지나갔다. 자식을 사랑하거나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온갖 어려움을 잘 견딜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더 큰 어려움 도 쉽게 이길 수 있다. 진정으로 행복하려면 하나님과 연애하면 된다. 목숨마저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행복을 누리게 된다. 참고로, 당시에는 나이가 별로 문제가 안 된 모양이다. 라헬을 만날 때 야곱의 나이는 최소한 77세 이상이다. 사라가 아비멜렉에게 시집갈 뻔 했을 때도 거의 90이었다. 나 이 개념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고 보아야겠다. 16. 결혼시켜주세요 대신에 뭐라고 하나?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21): 재밌다. 성관계를 갖겠다는 말이다. 이렇게 직설법으로 말해도 되 나? 완곡하게 표현하면 안 되나? 이런 표현이 여러 곳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무난한 표현이었던 모 양이다. 17. 야곱의 항의에 대한 외삼촌의 대답(26)은 옳은 말인가? 여러분이 야곱이라면 무엇이라 말하겠는 가? 말이야 맞다. 의도가 나쁘면 옳은 말이라도 옳은 것이 아니다. 그러면 그렇다고 미리 말해야지요! 라고 따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럼 미리 물어 보지? 이 정도면 이미 대화가 아니라 싸움이다. 미리 계약조건을 잘 따져야 하는 건데 야곱이 잘못했나? 아니다. 외삼촌이 어거지를 쓰는 것이다. 힘있는 자가 어거지를 쓰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힘을 길러야 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하 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야곱이 복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18. 야곱이 자기를 속인 외삼촌의 말을 따르기로 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대단히 화 가 나고 분통이 터졌을 터인데도 외삼촌의 말대로 한 원인을 생각해 보시오. 자포자기, 자신이 지은 죄: 삼촌이 내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하고 대어들다가 목소리가 차츰 줄어 들었을 것이다. 마음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잘 났다. 잘 났어. 너는? 19. 야곱이 라헬을 아내로 맞아들이는데 몇 년이 걸렸는가? 14년 아니고 7년: 7일을 채우라는 말은 결혼 절차가 7일이 걸렸다는 뜻이다. 레아의 결혼이 성립되 기 위해서 결혼절차를 다 치뤄야 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레아는 선불이고 라헬은 후불이다. 물건 에 자신이 있으면 대금을 받기 전에 물건을 양도할 수도 있다. 자신이 없으면 돈을 먼저 받아야 하 고. 레아는 시집가기 어려웠는데(안력이 부족하였단다. 16절) 라헬을 보내면서 끼워보낸 셈이다. 야 곱이 외삼촌 집에 도착하고 라헬과 결혼하기까지 얼마 걸렸느냐니까 7년 한 달 8일 이란다. 수학자 다! 20. 딸만 준 것이 아니라 시녀까지 준 것은 라반이 크게 인심을 베푼 것 아닐까? 나중에 야곱이 많은 자녀를 가지게 되는 데에는 두 시녀도 공헌을 하는데? 기본이다: 리브가가 시집을 갈 때에는 유모까지 갔는데

99 창세기 성경공부 :1~ 연애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야곱이 연애에 빠짐으로 예상과 달라져 버린 일이 무엇인가? 잠시 피해 있는다는 것이 20년이 되어 버림: 꼭 연애 때문이었느냐고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예상보 다 오래 머물게 된 중요한 요인이 된 것은 사실이다. 7년 노동으로 아내를 얻을 만한 가치가 있나? 젊은 사람에게 여자가 혹은 남자가 생기면 부모형제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부모의 입장에 서는 그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고 젊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 럴 위험이 있으므로 부모를 너무 섭섭하게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22. 레아와 라헬에게 행하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공평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보시기에 불쌍한 것이 인간적으로 행복한 것보다 낫다(참고 삼하 16:12). 그러면서도 우리는 모두 라헬이 되기를 원한다. 굳이 구별해야 할 일이라기보다는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곳이 두 군데 있음을 있지 말자. 하나님이 먼저, 그 다음에 남편 식으로! 그래야 하나님 께서 주신 복을 오래 누릴 수 있다. 23. 선택할 권리가 있다면 여러분은 라헬이 되겠습니까? 레아가 되겠습니까? 이유는? 레아: 남편의 사랑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겠다. 여전도회 회원의 경우는 압도적으로 라헬이었음. 남편들이여 좋아하지 말지어다. 남편의 사랑을 받겠다는 뜻이 아니라 틀릴 때 틀리더라도 예뻐야겠 다는 거다. 남편이냐 하나님이냐는 식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인내와 노력으로 두 가지 사 랑이 동시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24. 라반의 속임수와 부인들의 시기, 질투, 야곱의 무능과 억울함이 합쳐져서 무엇이 되는가? 후손을 번성케 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 시작함: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거창한 약속을 하 셨지만 약속이 없는 사람보다 더 후손이 적었지만 이제 쏟아지기 시작한다. 애굽으로 이주하여 크 게 번성시킬 준비를 하고 계신다. 전혀 영양가도 없고, 먹을 수도 없는 것들을 모아서 멋진 음식을 만들어낸 것과 같다. 25.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루어져 간다. 야곱이 외삼촌 집으로 갈 때 그 어머니가 당부한 부탁 중에는 결혼해야 할 사명이 있었다. 언약의 계승자로서 의무이기도 했다. 그런데 야곱이 결혼하고 싶어했던 여자는 라헬이었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야곱의 뜻과는 달랐다. 어떻게 다른가? 왜냐하면 메시아는 라헬의 후손으로부터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총(寵): 총애의 준말, 남달리 사랑받음

100 창세기 성경공부 :1~43 창세기 30 장 절에 제목을 붙여보자. 사랑 싸움, 결혼의 첫 시련, 꿈에서 깨어난 야곱, 사랑의 종말(여인열전?): 7년을 수일같이 여길 만큼 사랑했던 라헬에게 노를 발하다니! 그럴 수 있다. 야곱의 능력이 출중하지만 나로 자식을 낳게 하 라 에는 별 수 없었나 보다. 라헬이 예뻤지만 흔히 하는 말로 얼굴값을 하는 표독스러움이 있었던 모양이다(언니와의 다툼, 드라빔을 훔침). 이런 어거지가 시작될 때에 부부간의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면 파경에 이르기도 한다. 연애감정은 3년 정도는 지속된단다. 결혼해서 3년 정도는 꿈이 깨지 않은 상태로 지낼 수 있지만 요즈음은 그 기간이 짧아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 꿈에서 깨어나기 전에 그리스도인의 부부관계가 어떠해 야할지 정립해 두어야 한다. 2. 남편이 있어도 아들이 없는 라헬과 남편의 사랑은 부족하지만 아들이 넷이나 있는 레아 중에 누가 더 불쌍한가? 둘 다: 자신이 가진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없는 것만 찾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지 그 생각만 바 꾸면 전혀 불쌍하지 않다. 온전한 가정생활이 되려면 아이 중심보다는 부부중심이 낫고 하나님 중 심이 최고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이가 없어도, 남편이 없어도 온전한 가정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3. 시녀를 통해서라도 아들을 낳아야겠다는 라헬의 요구가 무리였을까?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이 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한 왕, 사울이 끝내 버림받은 것처럼 이 아이의 결과는 그리 아름답지 못하 다. 오랜 세월 후에 이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단의 후손은 12지파에서 사라지고 만다: 반드시 그것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결과 를 보면서 그런 느낌이 든다는 것뿐이다. 단지파가 사라지게 되는 원인도 사실은 명확하지 않다. 우 상숭배가 주원인이 아닐까라고 추정하는 정도일 뿐이다. 열심히 기도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아는 것이 우선이다. 히스기야가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서 15년을 더 살았지만 그 때 낳은 아이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주범이 된다. 4. 단을 낳고 라헬이 하는 말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소리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 셨다 는 말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제 멋대로다(=자기 합리화, 아전인수격): 자신의 꾀로 일을 저지르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고 기 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6, 18).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도 하나님의 복이라고 하는 신자가 너무 많다. 정당한 방법으로 벌지 않은 복은 결코 복이 아니다. 납달리를 낳고 하는 말(8)을 언니가 듣고 는 무어라 했을까? 아마 가소롭다 거나 우습다 고 했을 것이다(놀고 있네). 5. 동생이 몸종을 통하여 아들을 둘 얻은 것을 보고 레아가 자신도 몸종을 남편에게 주었다. 이런 행위도 비난받을 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본인은 결코 그것이 비난받을 행위하고 생각하지 않 고 있음을 어떻게 알 수 있나? 18절: 자신의 정당한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값을 주셨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하나님의 뜻과 전 혀 상관없이 뛰어놓고 함부로 하나님을 끌어다대는 이런 악한 짓을 언제나 그만 둘까? 6. 야곱은 복도 많다! 왜? 어쨌거나 아내가 넷이나 되었으니! 그로 인해 바람 잘 날이 없는 것이 야곱의 생애이다. 부인들 간 에 시기와 질투, 자식들 간에 미움과 싸움이 그를 한시도 평온케 하지 못했다. 아버지 이삭이나 할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비하면 엄청난 복을 누리는 셈이다. 특히 자식의 복! 7. 아내가 넷이나 되면 누구하고 잠을 자야 하나? 모르겠다: 아내들 간의 합의가 있거나 아니면 아마 순번이나 기간에 대해서 나름대로 정해둔 원칙 이 있었을 것이다. 레아가 야곱을 샀다는 말은 합환채를 차지하는 대신에 그 순번을 양보받은 것이 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야곱이 부러운 남자들이 많을 것이다. 마호멧의 이야기에 비슷한 예가 있 다. 어떤 계기로 이 순번을 어기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마호멧은 평생 그 순번을 어기지 않았단다. 복이라고? 그 날의 기분에 따라 이 집 저 집으로 마음대로 갔을 것이다? 이것은 절대권력을 쥔 왕 도 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꿈 깨자. 8. 합환채란 지중해 연안 지방에 널리 자생하는 다년생 초본으로 가지만한 크기의 향기로운 열매 를 맺으며, 땅속으로는 인삼처럼 갈라진 뿌리가 있는데, 고대인들은 이것을 수태력 증진제로 믿었 다. 이것 덕분에 누가 아이를 낳았는가? 레아: 잇사갈, 스불론을 낳았는데 합환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라헬만 손해봤나? 9. 합환채를 두고 부인들끼리 주고받는 이야기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레아가 피해의식이 심했던 것 같다. 아이를 그렇게 많이 낳고도 자신감을 갖지 못했던 모양이다. 남 편을 사이에 두고 잠자리를 흥정하는 이런 자세가 결국은 르우벤에게 좋지 못한 것을 가르쳐주는 결과가 되지 않았을까(35:22)? 그럼에도 결국은 레아가 정실부인의 역할을 한다. 죽어서도 함께 묻힌

101 창세기 성경공부 :1~43 다(49:31). 10.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표현이 본문에 두 번 나온다(17, 22). 하나님의 귀는 들으시는 것이 일정 하지 않은 것 같다. 레아의 마음은 잘 들리고 라헬의 마음은 잘 안 들리시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아무래도 하나님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의 말이 더 잘 들리나 보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던데... 남편의 사랑을 덜 받은 레아가 아무래도 하나님에게 불쌍하게 보였던 모양이 다. 11. 각 부인들이 낳은 자녀들을 순서대로 정리해 보시오 레아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빌하 잇사갈 스불론 디나 단 납달리 실바 갓 아셀 라헬 요셉 베냐민 12.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진 이름은 누구이며 왜 그렇게 지어졌는지 생각해 보자. 값: 더함: 보라 아들이라: 복됨: 기쁨: 연합함: 경쟁함: 찬송함: 들으심: 거함: 억울함을 푸심: 값(잇사갈), 더함(요셉), 보라 아들이라(르우벤), 복됨(갓), 기쁨(아셀), 연합함(레위), 경쟁함(납달리), 억울 함을 푸심(단), 찬송함(유다), 들으심(시므온), 거함(스불론) 순서대로 하면, 보라 아들이라(르우벤, 벤이 아들이란 뜻임), 들으심(시므온: 쉐마란 말과 같이 듣다 란 뜻임), 연합함(레위), 찬송함(유다), 억울함을 푸심(단), 경쟁함(납달리), 복됨(갓), 기쁨(아셀), 값(잇사 갈), 거함(스불론), 더함(요셉): 아들을 낳고 느꼈던 기쁨과 기대는 훗날 전혀 딴판이다. 르우벤은 서 모와 간통,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성에서 사고를 치고 요셉을 파는 일에 앞장선다. 유다는 가출하지 만 메시야의 조상이 되고, 단은 12지파에서 사라지고... 낳는 것보다 바르게 키우는 일이 중요하고, 바르게 키우는 것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자식이 뜻대로 되는 것 아님을 일찍 깨닫는 것이 복되다. 부모가 공부를 잘 했다고 자식이 반드시 잘 하는 것이 아님을, 부 모가 착하게 살았다고 반드시 자식이 착해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해야 한다. 13. 레아와 라헬의 아들 낳기 경쟁은 표면적으로 보면 야곱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못난 딸을 비싸게 치우려는 라반의 흉계에서 유래되었고 하나님은 인간적으로 불쌍한 레아를 돌 아보고 라헬에게는 인내를 요구하셨고 아내들은 하나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서로 인간적인 방법 을 동원해서 경쟁하였다. 사람들의 선하지 못한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은 무슨 계획을 이루어 가시 는가? 약속한 후손의 번성을 성취함: 사람들의 선하지 못한 행위를 통해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 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이 구절에서 모든 것 이라는 말이 풍기는 뉘앙 스는 나쁜 일까지 포함하는 것 같다. 가장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부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라는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14. 라헬이 잉태하지 못하고 있을 동안 언니 레아가 낳은 아이가 몇 명인지 생각해보고 라헬의 고 통을 느껴보자. 인간적인 고통일지라도 하나님께 매달리면 어떤 축복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참고, 한나의 기도나, 범죄한 후의 다윗의 기도) 가장 쓸만한 아들(요셉)이 태어남 15. 레아는 7년 만에 7명의 자녀를 낳았고, 시녀들을 통해서 4명이 더 태어났다. 라헬도 요셉을 낳 았다. 어떤 느낌이 드는가? 레아는 애기 낳는 기계? 무척 힘들었겠다? 어떻게 이렇게 속사포처럼 낳을 수가 있었을까? 실제로 가능하기는 할까? 정답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시작하면 엄청나게 쏟아부으신다. 아버지(20년 만 에 쌍둥이)나 할아버지(백 세에 아들 하나)에 비하면 너무 빠르다. 많은 후손과 땅을 주시겠다고 약 속하셨음에도 너무나 느리기만 하더니 이제는 쏟아부어 버린다. 동작이 그리 빠르지 않으신 하나님 께서 주시기 시작하면 이렇다. 16.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에게 꼭 들어야 할 말이 있다. 예수 믿는 것이 핍박의 대상일 때는 들을 말이 욕 이겠지만 마음껏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때는 들어야 할 말이 무엇일까?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27): 신앙이 좋았다기보다는 맡은 일을 성심성의껏 잘 했다는 뜻이다. 본의든 타의든 간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인들이

102 창세기 성경공부 :1~43 믿는 구석이 있어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직장에서도 순교하는 자세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툭하면 신앙생활을 핑계로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회피하지 않도록 주의하여 야 한다. 17. 라반이 야곱을 붙드는 이유는? 속여먹기 좋고, 품삯 없이 일 잘하고, 그로 인해 재산이 많아졌기 때문이다(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 님을 봄). 18. 라반이 품삯으로 무엇을 줄까? 하고 물어도 야곱이 구체적인 삯(가령, 월급)을 요구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외삼촌을 믿지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품삯으로 야곱이 요구한 것(일 종의 능력급을 요구한 셈)이 무엇인가? 라반이 기꺼이 동의한 것으로 보아 라반에게 유리한 것이 었을 것이다. 양이나 염소 중에 얼룩무늬가 없는 것만 칠 터이니 그 중에서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검은 것이 나오면 품삯으로 달라고 했다. 라반이 기꺼이 동의한 것으로 보아 아마 많은 양을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하나님께서 기대 이상으로 베풀어 주셨다. 19. 라반이 자기 사위에게 결코 호의를 가지고 대하지 않았다는 것은 야곱이 품삯을 요구한 후에 그 방법에 동의하고 취한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라반의 어떤 행동이 야곱에게 호의적이지 않았 음을 알게 하는가? (최소 세 가지) 1) 그 날에, 2) 친히 가려낸 점, 3) 야곱이 훔쳐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거나, 서로 교미하는 것을 막을 의도이었을지 몰라도 사흘 길이나 뜨게 한 점. 4) 가려낸 것은 자기 아들들에게 맡김 20. 야곱이 재산을 그렇게 많이 늘릴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야곱이 얼룩무늬 있는 양 과 염소가 태어나기를 바라고 취한 행동은 생물학적으로 근거가 약하다. 야곱 스스로도 이 점을 시인하고 있다(31:7-8).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 야곱이 기대한 것은 적은 것이었을 텐데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셨다. 그것은 품삯을 열 번이나 변역해도 야곱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야곱이 보기에는 자 신의 노력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것이 정답이 아니다. 21. 야곱이 악착스럽고 교활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로 일하는 데에도 성실하고 부지런 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많다. 라반이 한사코 야곱을 붙들어 두려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같다. 야곱의 말 중에서 야곱이 성실하고 부지런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을 찾아보시오.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30:26, 29). 22. 다음 인물들에게 한 마디씩만 해주자! 야곱: 여러 아내들 사이에 고생이 많습니다! 잔머리로도 안 되는 일이 많단다. 그래도 장인에게 또 잔머리를 굴린다. 알게 모르게 하나님께서 도와주셨으니 망정이지... 레아: 못생겨도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니 복되다. 아버지의 속임수가 아니었으면 노처녀로 늙을 뻔했던 것을 생각해봐라. 얼마나 복을 많이 받았냐? 라헬: 아들이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이 목표여야 합니다. 아들보다 남편의 사랑을 받는 것이 더 중요 합니다(그 당시에는 이런 말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부부의 사랑은 서로 마주 보고 가 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을 통해서 하나님을 항해 갈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의 결혼이 당을 향한 두 사람의 결합 이었다던가? 이런 표현이 등장한 것은 6.25이후 사상 체계를 정립할 때 신학자들이 많 이 도왔기 때문이란다

103 창세기 성경공부 :1~55 창세기 31 장 1. 산통은 산모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태아도 받는단다. 그런 고통이 없으면 나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때가 되면 극심한 고통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야곱이 이제 산통 을 겪을 때가 된 모양이다. 1) 무슨 일을 위하여 2) 어떤 고통이 찾아왔는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 라반의 아들들과 라반이 싫어함 객지에서 의지하고 살았던 그들이 싫어한다는 것은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일이다. 스스로 의지하고 있던 것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고통이다. 바로 다음 순간에 어떤 복이 있을지 알지 못한 채 그 곳에 서 벗어나야 함을 두려워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마치 태아가 탄생의 순간에 엄청난 스트레 스를 받는 것처럼. 죽음 이후의 어떤 영광스러운 장면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지 못하여 죽음을 두려 워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에게는 무서운 고통이 닥칠지라도 하나님께서 내게 무슨 복을 주시려는 가 하고 기대해도 좋다! 고통의 원인도 좁게 보면 야곱이 무슨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라반의 아 들들의 시기 때문이다. 그가 고통을 받았다는 증거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너와 함께 있으 리라(3) 는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야곱의 의사와 관계없이 나타나셔서 위로 하셨던 하나님이시다(벧엘에서, 얍복 강가에서, 요셉을 만나서 애굽으로 갈 때 등). 2.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은 시기에서 나온 말이다. 실제로 야곱이 라반의 재산을 가로챈 것은 없다. 설명을 해 보자. 라반의 아들들이 치던 양을 야곱이 치던 양과 적어도 사흘 길이 떨어져 있었다. 야곱의 재산이 아 무리 많아도 그것은 야곱이 치던 양에게서 나온 것이다. 3. 야곱에게 네 조상의 땅, 네 족속 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어떤 느낌을 주는가? 네 조상의 땅: 가나안, 사실은 남의 땅이다. 그저 눈치봐가며 잠시 살고 있는 사글세 집 같은 땅이 다. 조상이라고 해봐야 아버지, 할아버지뿐이다. 네 족속: 늙은 아버지와 자기를 원수같이 여기던 형님 한 분 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거창하게 보이는 말일지는 몰라도 실제는 너무나 형편없는 말이다. 장차 거대한 민족을 이루게 될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이라는 말이 힘이 있고 거창한 말이 지 지금은 아니다. 너무나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현실보다는 먼 훗날의 영 광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4.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야곱에게는 그럴지라도(5)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왜 이렇게 다른가? 아니, 어떤 점에서 같은 말 인가?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내게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라는 뜻이고 그럴지라 도 의 경우에는 외삼촌이 내게 그러할지라도 라는 뜻이다. 전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고 후자는 세상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변치않는다는 고백이란 점에서 같은 말이다. 5. 야곱이 하란을 떠나는 장면에서 아름답지 못한 점을 있는 대로 찾아보시오. 1) 아내들의 동의를 얻으려고 사실이라 해도 장인을 너무 나쁘게 말함(5-13). 2) 가만히 도망감(20) 3)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도 않으면서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 때문에 된 것처럼 말함(5-13) 이 부분만 보면 야곱의 신앙이 대단해 보인다. 뒷부분까지 살펴보면 위대한 신앙이라기보다는 아무 래도 자기 합리화를 위해서 하나님을 들먹이는 것 같다. 부부가 다 마찬가지인데 제발, 자신의 유익 을 도모할 필요가 있을 때만 하나님을 파는 행위를 그만 두자. 내가 교회 장로인데, 권사인데 그랬 겠습니까? 라고 항변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거짓말인 경우가 너무 많았다. 6. 야곱의 말이 진실이라면 라반이 품삯을 줄였다. 계약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경됐는가? 처음 계약(30:32):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검은 것이 나면 야곱의 것이다. 첫 번째 변경된 내용(8): 점 있는 것만 네 삯이다. 두 번째 변경된 내용: 얼룩무늬 있는 것만 네 삯이다. 위의 세 가지를 다 합쳐도 흰 색보다 적은 것이 정상이다. 아마 삼분의 일 정도일 텐데 라반의 어 거지는 그 중에서도 또 삼분의 일로 줄인 것이다. 그래도 유전의 법칙을 어겨가며 하나님께서 야곱 을 돌아보셨음을 야곱도 알고 라반도 안다. 7. 그 나물에 그 밥 이라는 말도 있고 딸 은 다 도둑 이라는 우리말도 있다. 본문에서 그런 모습 을 두 가지 찾는다면? 남편이 아비 욕을 하는 데에 맞장구를 침(14-16): 사실이 그렇다 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럴 수가... 드라빔을 훔침(19): 시집간 딸이 시부모를 장사지내면서 친정 부모가 묻힌 명당자리를 차지하려고

104 창세기 성경공부 :1~55 묘를 파내고 그 밑에 시부모를 묻었다는 정도는 아니겠지만 의도는 동일한 셈이다. 집안의 수호신 을 훔친 것이다. 라반이 추격했을 때도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8.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주인공이 꽤 오랜 세월동안 간수에게 온갖 심부름을 다하면 서 신임을 얻어서 결국은 탈출에 성공하고 간수는 파멸을 맞는다. 몇 십년 동안 죄수들에게 군림 한 그 똑똑하고 머리 좋은 교도소장은 결국 주인공에게 당하고 말았다. 밑줄 친 부분에 해당하는 말이 본문 어디에 있을지 짐작해 보자. 아람 사람(20:24): 라반이 아람 사람인 것은 굳이 여기서 기록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굳이 기록했다 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보여진다. 서울 깍쟁이라는 표현처럼 특정한 지명이 붙은 것이 때로 는 특정한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아람 사람이 교활하기로 유명했단다. 그 아람 사람이 야곱에게 당 했다는 것이다. 서울 깍쟁이를 속인 촌 놈같은 표현이다. 9. 야곱이 도망한지 며칠만에 외삼촌에게 잡힌 셈인가? 최소한 열흘: 사흘만에 들켰고 이레 동안 추격을 당했으니(22-23). 라반도 끈질기다. 마 그냥 두지 야곱의 행위가 신사답지 못하다는 점을 하나님도 알고 계신다는 증거가 있다면? 선악간 말하지 말라(24): 선악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의 문제이다. 부자지간에는 내 자식이 냐 아니냐가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보다 더 중요하다. 비록 악을 행했을지라도 내 자식이라면 부모 는 그 자식의 편을 들게 마련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자가 누리는 행복이다. 11. 야곱을 따라와서 하는 라반의 말은 자기 입장에서 하는 말일뿐이다. 야곱이 보기에 사실이 아 닌 것과 코웃음을 칠 일이 있다면? 내 딸들을 칼로 잡은 자같이 끌고 갔으니(26): 야곱이 속으로 무어라고 했을까? 웃기고 있네. 당신 딸이 뭐라 했는지 말해줄까요?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27): 환송식이라도 치뤄주겠다는 말인데, 글쎄...? 12. 위에서 나온 대답 외에 라반의 말 중에 우스운 말이 있다면? 어찌 내 신을 도적질하였느냐(30)?: 고무 신 이라면 말이 되지만 God는 말이 안 된다. 그렇게 도둑맞 는 것이 무슨 신이냐? 세상에 많은 신들은 그 모양이다. 13. 당당한 라반과 왜소해 보이는 야곱의 모습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억지 부리지 말라 고 한 마디 퍼붓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있다고 생각된다: 믿는 자가 다소 잘 못하면 이처럼 온갖 억울한 누명까지 덮어쓰게 된다. 대체로 비난하는 사람들은 사실보다 부풀려서 말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당하는 사람은 억울하지만 일부의 진실 때문에 제대로 변명하지 못 한다. 신자가 흔히 이런 아픔을 겪게 되므로 믿는 자는 다소간의 아픔을 겪더라도 정도를 걷는 것 이 유리하다. 14. 라반이 꿈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가리켜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 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 까? 야곱이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야곱은 결코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5). 15. 사람이 함부로 큰소리칠 일은 아니다. 아무리 자신이 있더라도 그래서는 안 된다. 야곱이 여기 서 삼촌의 신을 훔친 자는 살지 못할 것(32)이라고 장담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라헬이 훔친 것을 모르기 때문(1점) 부끄러움에 대한 반작용(2점) 꼭 이 말 때문일까? 라헬은 얼마 가지 않아서 죽고 만다. 제발 말을 함부로 하지 말자. 쓸데없는 장 담도 말자. 죽도록 사랑하겠다는 고백도 너무 믿지 말자. 오래 살 능력도 없으면서 말이야. 16. 경수가 나면 일어날 수도 없나? 요새는 수영도 할 수 있다고 광고하던데? 라반이 왜 더 이상 조사하지 않았을까? 라반은 당시로서는 집안의 가장 경사스런 털 깎는 일을 하다가 뛰어왔다. 그런 경사스런 일에는 부 정 탄다면서 여자를 끼워주지 않았다. 여자를 배에 태우지 않거나 제사에서 뺀 이유도 피흘림을 부 정하게 여긴 탓이 아닐까? 그래서 가까이 하지 않으려했을 가능성도 있다. 라반의 사고방식으로는 생리중인(부정한) 여자가 자신의 신을 깔고 앉아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라헬도 라반의 생각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본다면 이 여자는 지금 엄청난 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17. 야곱이 라반에게 항의조로 말하는 것을 보면 정당한 자기의 권리까지 주장하지 아니하고 양떼 를 돌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으며 사는 사람은 사람을 상대로 너무 까다롭지도 않으며 미련하다싶을 정 도로 계산이 밝지 못하다. 사람을 상대로 미련한 것이 하나님에게 지혜로운 경우라면 그렇게 사는 것이 낫다

105 창세기 성경공부 :1~ 야곱은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자신의 고난과 수고 때문에(42): 하나님께서 야곱아, 웃기지 마라 하실 것만 같다. 19. 그 동안 야곱은 외삼촌에게 할 말이 많았지만 별로 반발하지 않고 하자는 대로 따라 주었다. 그러나 이제 기회가 돼서 그 동안 쌓인 울분을 마구 쏟아 놓았다(36-42). 간이 부어서 그럴까? 아니 면 어디서 용기를 얻었을까?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고 했다니까: 드라빔을 찾지 점으로 삼아 큰 소리를 친다. 만약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야곱은 지난 하고 살다가 결국은 몰래 도망쳐버린 도망자가 되었을 것이다. 명색이 습을 남겨서야 되겠는가? 하나님께서 특별히 배려하신 것이다. 우리의 록 노력하자.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 못하니까 오히려 그것을 약 20년 동안 찍 소리 하지 못 믿음의 조상인데 이런 뒷모 뒷모습이 이렇게 되지 않도 20. 야곱이 하나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버지의 하나님, 할아버지 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섬기지 않는 불신자가 믿는 사람의 흉내만 내는 경우도 있다. 하필이면 신앙도 별로 좋지 못한 신자의 흉내를 내서 사람 을 웃기는 예를 본문에서 찾아보시오. 라반의 말: 나홀의 하나님(53): 야곱이 하나님을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42)이라고 부르 기 때문에 그 흉내를 내는 셈이다. 하나님께서 들으시면 얼마나 우스울까? 내가 언제 나홀의 하나 님이 되었지? 라면서. 21.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누가 가장 마음에 드는가? 왜? 없다: 대체로 약은 사람들이다. 초잡다. 콩가루 집안이다. 본받은 만큼 좋은 면이 별로 없다. 인간적 으로 보면 욕심이 많은 것이 그래도 출세는 하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욕심이 많고 꾀가 많은 라헬 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바람직하지는 않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따르려는 날이 속히 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콩가루 집안일 수밖에 없다. 22. 칼을 뽑아 휘두르려고 하는데 건드리지 말라고 하니까 그냥 집어넣기가 민망해서 한 번 휘둘 러나 본 소리는? 언약을 맺자: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또 자기 딸을 박대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언제 그렇게 딸을 생각해줬다고. 마치 닭 좇던 개가 지붕 쳐다보기가 민망해서 한번 짖어라도 보는 격이 다. 23. 경복궁 30경비단이라면 한 때 유명한 장소였다. 전두환 장군의 직속 부하들이 모여서 거사를 모의하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장태완 포병사령관이 여기다 포격을 하려고 했다던가? 본문에 그 정 도는 아니지만 그 비슷한 장소가 있는가? 들: 아내들을 들로 불러내어 아버지 집을 떠날 것을 요구한 것도 비밀 유지를 위한 조치이다

106 창세기 성경공부 :1~32 창세기 32 장 1. 마하나임의 뜻은 두 진영(부대) 이라고 한다. 마하나임 사건은 지나가는 투로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사자들이 우연하게 야곱을 만났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야곱이 만난 것이 아니 라 주어가 하나님의 사자임에 주목하라. 하나님께서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의도적으로 하신 일이 다.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하나님의 군대 라고 부른 점을 근거로 하나님의 의도를 짐작한다 면? 에서를 그렇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군대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자가 자신과 동행하고 있음을 안다면 도대체 어느 누가 두렵겠는가? 비슷한 형편에 처했던 여호수아에게 나타나 신 하나님의 사자는 군대장관(수 5:14) 이었다. 마하나임은 정확하게 위치를 알지는 못하지만 요단 동편의 북쪽지역이다. 압살롬의 난을 피해서 다윗이 피난을 갔던 곳이다. 에서를 만날 때가 다 되었 기 때문에 에서의 군대와 대조적인 하나님의 이런 모습을 보이신 것이다. 2. 야곱의 말이나 하는 짓에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참으로 섭섭한 말이 있다면? 에서를 내 주 라고 부르는 것: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동행하며 그렇게 많은 은혜를 베풀었건만 나의 하나님 이라고 부르지 않은 야곱이 두려운 형을 보고 내 주 에서(4-5) 라고? 그것도 한 번이 아 니라 말끝마다? 그러니 그 형이 두려울 수밖에. 주인을 제대로 모셔야 마음 고생을 안 하지! 9절에 서 나의 하나님 이라고 부르지 않은 점도 대답이 되겠지만 여기서는 차선의 답이라고 본다. 실제로 에서를 주 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작전상 그렇게 부른 것이다. 본인이 듣지 않는 경우에는 그냥 형 이다. 3. 여전히 하나님은 하나님(야곱이 알아주든 말든 자신의 뜻대로 야곱을 돌보는 것)답고 야곱은 야 곱답다(하나님이 항상 동행하면서 자신을 돌보고 있음에도 자신의 잔머리만 굴리는 것). 에서에 대 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야곱이 부리는 잔꾀를 찾아보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있다면 찾아보 자. 하나님의 반응이 나타나 있지 않으면 점잖은 하나님께서 하실 수 없는 상스런 표현을 우리가 대신해 주자. 1)형님에게 아부: (2번 참고) 2) 떼를 둘로 나눔: 만약 한 떼를 치면 한 떼를 피하리라는 생각인데 그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다리 를 부러뜨려 버렸다(환도뼈 위골). 이래도 도망칠 생각이냐? 3) 하나님께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상기시킴(9-12, 돌아가라, 은혜를 베풀리라, 씨가 많게 하리라 고 하셨지요?):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고 싶으실까? 네 할 일이나 해라 이 놈아!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기도가 아니다. 약속을 지키시고 자기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알면서도 이렇게 또 걱 정을 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인간적인 느낌으로 본다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기분 나 쁜 기도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선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너무나 감사하다. 더 나은 기도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야곱의 그릇이 그것 밖에 안 되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다만 약속에 근거 하고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는 기도는 바람직한 기도이다. 다른 잔꾀를 부리지 않고 이런 기도를 했 더라면 멋진 기도일텐데. 기도를 하면서도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어떨까? 신뢰를 기반으 로 해서 최선을 다 하는 것과 신뢰없이 보험삼아 기도하면서 자신의 꾀를 다 부리는 것은 모양이 비슷해도 내용은 전혀 다르다. 4) 예물(뇌물)을 준비함(13): 그것도 세 때로 나누고, 간격을 띄움: 잘 해봐라! 야곱아 그럴 필요 없 다! 여러 가지 한다! 선물이나 뇌물도 한 번에 안겨주는 것보다는 조금씩 나누어서 자주 주는 것 이 효과적이란다. 5) 혼자 남아 몸부림이라도 치려함(22-24): 이렇게 힘들어 하니 하나님께서 친히 나서서 힘도 주시고 격려하셨다(24-30). 4. 땡전 한 닢도 없다는 것을 무일푼이라고 하는가? 어쨌거나 야곱은 무일푼으로 가출하여 큰 부 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격이다. 야곱이 무일푼이었다는 표현이 어디에 있는가? 지팡이만 가지고(10). 5. 야곱이 하나님을 조금만 더 믿었더라면 그렇게 고통스러워하지 않았어도 될, 그가 기억하고 있 는 하나님의 약속이나 하신 일은 무엇인가? 1) 하나님께서 고향으로 돌아가라 하심(31:3), 하나님께서 외삼촌에게 하신 말씀(31:29), 혹은 벧엘에서 의 약속(28:13-15): 여기서 죽임을 당케 하려고 고향으로 가라고 하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이렇게 많은 재산을 주셨다: 체험적인 신앙이 가능할 텐데... 하나님께서 이런 복을 주셨는데 그것을 형에게 갖다 바칠 생각이나 하고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는데도 하나님께서 야곱을 돌보신다? 편애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3) 후손을 번성케 해주겠다. 6. 유목민들은 가축의 많고 적음이 바로 부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형 에서를 위해서 예물로 준 가축은 몇 마리 정도일까? 여러분 같으면 얼마를 줄 것인지 마음을 미리 정한 다음에 합계를

107 창세기 성경공부 :1~32 내 보세요. 군사가 400명이나 되니까 최소한 400마리는 넘어야 한다: 실제로 550마리를 넘는다( 마리 정 도). 암염소가 200이요 숫염소가 20이요 암양이 200이요 숫양이 20이요 젖 나는 약대 30과 그 새끼요 암소가 40이요 황소가 10이요 암나귀가 20이요 그 새끼나귀가 10이라(창 32:14-15). 7. 밤중에 이동하는 것은 군인과 벌뿐이다. 야반도주도 있지만 그것은 비공식적 행사니까 제외하 자. 모든 식구들을 밤중에 강을 건너게 하고 홀로 남은 그 야곱의 심경을 그려보자. 왜 자신도 함 께 건너지 않았을까? 참으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런 꼴을 가족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홀로 하나님께 매어 달리려 는 것 아닐까? 수퍼맨의 비애라는 노래가 있었다. 난 수퍼맨이 아닌데 왜 자꾸 수퍼맨으로 취급하 느냐는 것이다. 야곱에게도 지금 그런 아픔이 있기 때문이다. 8. 인적이 드문 밤중에 강가에서 씨름을 하다니? 아주 이상한 일이다. 누가 얍복 강가에서 씨름을 했나요? 왜 그랬을까요? 어떤 사람(24),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시비를 걸고 계심, 야곱이 먼저 씨름을 건 것이 아니다: 하나 님께서 수많은 약속과 보증을 했음에도 위기의 때에 야곱은 잔꾀만 부리고 있다. 하나님께만 매달 리기를 기다리면서 옆에서 서성이고 계시는 하나님이 결국에는 시비를 걸어오시는 것이다. 옆에 있 는 나를 좀 알아보란 말이야 하시면서. 9. 씨름치고는 좀 이상하다. 샅바 매고 하는 한국식 씨름이 아니다. 이상한 점을 있는 대로 다 찾 아보자. 낯선 사람이 밤중에 씨름을 걸어온 것,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뼈가 위골될 만큼 칠 수 있는가? 반칙인가? 다리를 저는 사람에게 보내달라고 사정을 한다? 씨름에 이긴 사람이 느닷없이 축복하지 않으면 보내주지 않겠다고 함. 야곱이 기도를 했다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매달리기를 바라고 계시는 사건이다. 씨름을 하면서 이 분이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10. 하나님께서 씨름에 진 이유는 뭘까요? 의도적으로 저준 것: 그렇게 해서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하고 싶은 것이다. 이름을 바꾸어 주시는 것도 마찬가지다. 11.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시면서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좀 특이하다. 하나님과 겨 루어 이기었음이라고 하면 될 텐데 왜 하나님에게도 이기고 사람에게도 이겼다고 말하는가(28)? 히 브리어의 과거는 확실한 미래 로 해석할 수 있고 하나님이라는 말도 일반적인 신들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말이다. 다른 모든 신들과 사람을 이길 것이기 때문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에서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려도 좋다는 뜻이 된다. 12.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유가 무엇일까? 몰라서 묻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야곱의 뜻: 발뒤꿈치를 잡다-직역, 간사하다는 의미-의역) 너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여전히 이름처럼 그렇게 간사하게 살 것이냐는 물음이다. 13. 이제는 야곱이 에서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나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 그럼에도 여전히 야곱으로 살아간다. 언제쯤 이스라엘로 살아갈 까? 죽을 때가 다 돼서! 14. 본문에는 야곱의 기도가 두 번 나온다. 기도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으니 각 기도의 특 징이 잘 나타나도록 기도라는 용어대신 다른 용어로 바꾸어 보자. 발버둥(9-12): 자신이 할 수 있는 조치를 강구하면서 또 한편으로 하나님께 구함, 일종의 양다리 걸 치기, 협박? 보험? 매달림(26): 이제 다른 방법이 없다. 환도뼈 위골이 문제가 아니라, 죽기 살기다. 이런 저런 방법을 다 해보고 하나님께 매달리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이런 식의 양다리 걸치기가 아닌지 생 각해 보자. 우린들 별 수 있을까?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본 후에 그래도 안 되니까 하나님께 매달 리는 최후의 수단으로써 기도가 있다. 그것보다는 처음부터 하나님께 바로 매달리는 최선의 기도가 더 나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15. 위기의 때에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야곱의 경우를 보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불러 주기를 바라며 바로 곁에서 빙빙 돌고 계신다. 내가 변하기를 바라면서. 16. 위기에 처한 야곱의 모습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최선의 기도를 드리

108 창세기 성경공부 :1~32 자. 2) 하나님을 만나자. 3)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4) 하나님께 매달리자. 그 외에 다른 것은 없을 까?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자. 야곱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항상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전 혀 의지하고 있지 않다. 17. 야곱의 그 사람의 이름을 물었는데 그 사람이 왜 자기 이름을 알리지 않았을까? 물으나 마나한 질문을 왜 하느냐는 것이다. 마치 아버지를 보고 친아버지가 맞느냐고 물을 때 그걸 증명하느라고 애를 쓰면 이상하게 보이는 것처럼 대꾸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109 창세기 성경공부 :1~20 창세기 33 장 1. 우리 주변에는 단 한 번의 기적같은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고 평생을 헌신하는 분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께서 엄청난 경험을 그에게 주시며 이름마저 거창한 이름으로 고쳐주 셨음에도 아직도 에서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은? 1) 가족을 나누어서 라헬과 요셉을 최후에 배치함 2) 한사코 형님과 함께 있으려 아니함(13-15): 결국 세일로 가지는 않는다. 3) 7번 절하며 나아간 것이나 형님께 아부성 발언을 하는 것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 인간적인 두려움마저 완벽하게 사라진다는 것은 아니다. 희노애락을 느 끼지도 않는, 완전히 무감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아픔은 작게 느끼고 쉽게 극복하는 반면에 기쁨은 더 크게 느낀다. 그것이 신앙인의 일반적인 경우라고 해도 야곱은 좀 심하다. 신앙의 성숙도 점진적이니 앞으로 야곱도 좋아질 것이다. 신앙이 좋다고 그런 아픔도 없을 것이라 고 생각하지는 말자. 툭하면 목사님이, 장로님이 뭐 그 정도 가지고? 이러지 말자. 오히려 수퍼맨 의 비애가 있을 수 있음을 기억하자. 2. 아내들과 자식들을 배치하는 순서에 대해서 어떤 느낌이 드는가? 야곱의 이런 태도가 결국은 그 가정에 어떤 불행을 가져오는가? 자식을 이렇게 편애해도 될까?: 아내에 대한 편애가 자식에 대한 편애로 이어지고 결국은 자신에게 엄청난 불행으로 돌아온다. 요즈음 표현으로 자신이 총알받이 가 되어야 하는 신세라는 걸 의식하 면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요셉을 죽이려는 사건을 보면서 형들이 어떻게 동생을 죽일 생각을 다 했을까 싶지만 이런 감정이 쌓이면 그럴 수도 있다. 3. 에서가 달려와서 목을 어긋맞기고 입 맞추고 울었단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고통스러워하 지 않을 건데... 에서의 이런 마음은 언제 생긴 것일까? 야곱이 보낸 선물을 받았을 때: 설마 그랬을까?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께 매어달린 후에: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는 말인데 반드시 그렇게 생각해야 할 근거가 분명치 않다. 분명하게 나타나있지 않은 것을 너무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 에서의 마음이 언제 바뀌어졌느냐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위해서 에서의 마음을 바꾸셨다는 말이나 처음부터 에서는 동생을 해할 의도가 없었다는 말이나 야곱에게는 같은 말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기를 내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400명을 거느리고 나아온 것이 꼭 동생과 한판 붙어보자는 의도였을까? 아니면 20년만에 만나는 동 생에 대한 애정의 표현일까? 아니면 그의 평소 행차인가?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부분은 야곱이 혼자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그 고민은 전혀 쓸데없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기질상으 로 보아도 에서는 옛일을 잊어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야곱을 외가로 보낼 때에도 몇 날이면 형의 분노가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다(창 27:4). 오랫동안 형님을 만나지 못했던 것은 에서 때문이 아니고 야곱의 사정 때문이었다. 야곱의 기도 때문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고 많은 분들이 설명하지만 야 곱이 하나님을 제대로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에게 속아서 고통스러워했을 뿐이라고 설명하면 안 될까? 4. 에서는 오래 전 한 때, 집을 나가 버린 야곱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졌다. 다른 녀석에게 속았다 면 그래도 덜 억울할 텐데 우리 식으로 말하면 계집애 같이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자식 이 막판에 남의 일을 이렇게 망쳐놓다니... 에서의 눈에는 야곱이 어설프기 이를 데 없는 동생이었 다. 아버지가 외가에 가서 결혼도 하라고 했지만 저게 객지에 나가서 제대로 살기나 살겠나 싶었 을 것이다. 자신의 활달한 기상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 데 이 멍청한 자식에 돌아오는데 분위기가 좀 다르다. 뜻밖이었다는 말이다. 그런 에서의 마음이 담긴 말이 있다면? 5절과 8절의 질문: 너와 함께한 이들은 누구냐(5) 나의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8): 에서 로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야곱의 모습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께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복을 주셨다는 뜻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그렇다. 보이지 않는 진짜 복은 어느 정도인지 알면 기절할 걸! 5. 아부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은? 형님의 얼굴을 뵈오니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들으시면 얼마나 섭섭하실까? 그 렇게 뒤를 돌봐주고 함께 한 하나님은 아는 체도 안 하면서... 야곱과는 다소 이유가 다르지만 믿는 우리에게도 이런 재주는 필요하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분간 하는 자세가 발달되어 있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것만 따지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 신앙인 이라고 너무 무게 있는 말만 하고 윗사람에게는 아부하는 것 같아 말을 자제하는 것은 그리 좋은 버릇은 아니다. 친구나 동료, 후배뿐만 아니라 상사에게까지 교제를 위한 가벼운 아부성 발언도 절

110 창세기 성경공부 :1~20 대로 필요하다. 명절에 과일(진짜 과일) 한 상자는 뇌물일까? 인사일까? 분명히 말하건대 필요한 인 사다. 동료나 아래 사람에게도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지금은 섬기는 부리는 예쁘면 남자와 여자가 서로 싸우는 세대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야곱과는 다른 이유로 여전히 자세로 아부성 발언도 처신도 해야 한다. 특히 주일학교 교사라면 코를 찔찔 흘리고 말썽만 아이를 보고도 예쁘다고 자연스럽게 거짓말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런 아이가 진심으로 더 말할 것도 없고. 6. 야곱과 에서의 기질상 차이는 여기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에서의 활달함과 씩씩함이 드러나 는 말은? 야곱의 본래 모습 즉 어머니와 부엌에서 살림이나 살던 그 모습이 연상되는 말은? 12절: 우리가 떠나가자 내가 너의 앞잡이가 되리라 13-14: 짐승과 자식들의 행보대로 천천히 나아가리다: 외삼촌 집에서 자신의 본성과 달리 허겁지겁 살다가 이제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아무래도 사람은 본성대로 사는 것이 옳다. 너 무 성격을 바꾸어야겠다고 심각하게 고민하지 말라. 7. 어쨌거나 형님을 먼저 돌려보내고 천천히 세일로 가겠다고 말하지만(14) 야곱은 결코 세일로 가 지 않는다. 왜?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니다. 야곱의 최종 목적지는 아버지가 계시는 가나안 땅 헤브론이다. 세일로 굳 이 가야 할 이유는 없다. 그래도 그럴 때 말은 그렇게 해야 한다? 형님이 두려워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함부로 한 것일 뿐이다. 8. 야곱이 에서를 만났을 때는 르우벤이 기껏해야 13살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면 딸 디나는 그보다 훨씬 더 어렸는데 34장의 사건이 일어난 것을 보아 세겜에 도달하기 전 숙곳에서 오랫동안 머물 렀다는 말이다. 숙곳에서 오래 머물렀다는 흔적이 있다면?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다.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불렀다. 이 곳의 안주는 언뜻 보기에는 행복이었지만 사실은 불행이다. 하나님의 집(벧엘)보다는 세상에 안 주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사람들의 보편적인 습성이지만 그것이 결코 행복은 아니다. 전쟁 중인 군 인들은 야영지를 가급적 도시에서 먼 곳에 자리 잡는다. 민간인들이, 특히 여자들이 있는 곳에 주둔 하게 되면 군기가 빠져서 사고를 치게 마련이다. 9. 다음 구절을 보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만약 당신이 야곱이라면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에 이르러(18) 야곱 벧엘에서 행한 서원: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 요 (창 28:20-21). 우리말에 뒷간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 고 어려울 때 하나님께 드렸던 서원을 깨끗이 잊은 채 너무 오래 지났으니 이것이 또 다른 화를 부르는 것이다. 10. 세겜 성에 이르러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아주 신앙 적이지 않은가? 더구나 한 번도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던 야곱이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라고 표현했는데... 야곱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벧엘로 가는 것이다. 거기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그렇게 하 지 않고 자기 좋은 곳에서 자기 방식으로 하나님께 단을 쌓은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되 자신이 좋 아하는 방법이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엄청 난 복을 주셨는데 가만히 있으면 무슨 벌이 있을까 싶어서 체면치레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이 와 비슷할 것 같다. 효도도 부모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시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저 편안하게 집에만 계시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불효일 수 있다. 숙곳 - 세겜의 위치 확인 요망

111 창세기 성경공부 :1~31 창세기 34 장 1. 성경에서 성스럽지 못한 부분을 빼자면 34장도 그 대상이 될 것이다. 도대체 이 본문에서 무슨 은혜가 있을까? 위인전은 대체로 위인들의 위대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우리 말 속담이 바로 위인전의 기본 사상이다. 다행스럽게 근래에는 위인들이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까지 겪었던 어려움과 고뇌, 실패를 그대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쓸려고 많이 노력한다고 는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위인이라면 더욱 위인화 시키려는 무의식적인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사람들의 추한 점을 가감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에게 위로를 줄 때가 대단히 많다. 형이상학적인 교훈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형이하학적인 교 훈이 때로는 필요한 것이 인간 아닌가! 2. 다음 사람들에게 한 마디씩 해 주자. 그 중에 누가 가장 나쁜가? 왜? 세겜: 사랑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사랑에도 절차가 있는 거야! 비난받을 짓을 저질렀지만 진심 이 담긴 마음으로 인해 용서받을 여지가 있다. 시므온과 레위: 비록 피해자일지라도 복수심에 불타서 더 큰 잘못을 저질렀다. 리브가에 대한 라반 의 태도를 보면 누이의 경우 오빠에게 책임과 권한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할 상당한 책임이 있기는 하다. 야곱의 다른 아들들: 칼을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약탈에 동참했다. 야곱: 그렇게 재주 많더니 이번에는 왜 이렇게 무능해 보이는가? 디나: 어디를 그렇게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나? 이건 답답한 사람이 답답해서 해 보는 소리다. 하몰: 자식 좀 제대로 키울 수 없나? 돈이고 권력이면 다냐? 크게 보면 원인 제공자는 야곱이고 좁혀 보면 디나다. 거기다가 수습 과정에서 시므온과 레위는 비 난받아 마땅한데, 다른 아들들이 더 나쁘다. 아이고 골치야 답을 못 가리겠다. 잘못은 세겜이 저질 렀는데 결국 비난은 야곱과 그 아들들이 다 뒤집어쓰게 생겼다. 현명하게 처신하지 못해서 피해를 보고도 욕을 얻어먹지 않아야 한다. 복수심에 불타서 남도 망치고 자신도 망치는 일이다. 3. 한국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 디나를 보고 무엇이라고 야단을 치는가? 말만한 게 어디를 싸돌아다니나? 말만하다는 말은 올라탈 수 있다는 성적인 표현이다. 외모는 여성 답게 변했으나 생각은 여전히 어린애인 경우가 많아서 예측하지 못한 이런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이런 사고는 대부분이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잘 아는 사람에 의해서 일어난다. 외모와 생각의 차 이를 어른들이 의도적으로 메워주어야 한다. 네가 꼬리를 치니까 그렇지: 본인은 전혀 그런 적이 없는 데도 남자들이 그렇게 보는 경향이 강하 다. 늑대가 보기에 여우가 꼬리를 치는 것으로 보인다. 여우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는데... 여우는 자신의 모습이 늑대에게 그렇게 보인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특히 젊은 여자는 남자들의 이런 생각을 알아야 한다. 4. 동일한 행동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 디나가 당한 일을 무엇이라고 표현하는가? 강간, 연연(연애), 사랑, 더럽힘(5), 부끄러운 일 곧 행하지 못할 일(7): 세겜이 보기에는 사랑이었지만 야곱이 보기에는 있을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다. 5. 세겜이나 그 아비가 잘못을 시인했다는 내용이 있는가? 만약 없다면 사람이 이렇게 염치가 없 어도 되는가? 어쩌면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문젯거리가 될 수 없는 일일 수도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보자. 1) 막강한 권한을 가진 추장: 돈이던 권력이던 간에 힘이 있으면 스스로 찾아와서 바치는 사람도 있 게 마련이고 또 남의 것을 남의 것으로 여기지 않는 버릇이 있다. 그런 사람은 결코 여자를 농락했 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한다. 하룻밤 함께 자준 것을 영광으로 여기 라면서... 2) 성적으로 문란했던 가나안의 풍습: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가볍게 여길 수도 있고 사랑하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 아내를 빼앗길까 두려워했 던 것을 보면 디나가 혼자서 나간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책임지 겠다는 것(12)은 얼마나 인심을 베푸는 것인가! 반면에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야곱의 가족: 현재도 마찬가지로, 바람피우는 일이나 혼전 성관계가 당 연시되고 있는 사회 속에서 믿는 사람이 가진 사고방식은 고리타분하다고 할 정도를 넘어서 박물 관에나 있음직한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순결한 총각과 처녀를 가리켜서 천연기념물이라고 부 른 세태에서 그렇게 산다는 것이 어려우면서도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자녀들에게 이런 문제에 대해서 아무 말이 없으면 사회적 통념을 배우게 된다. 6. 세겜의 행위가 흔히 보이는 단순한 충동적인 행위만은 아닌 듯한 증거는? (삼하 13장을 참고) 결혼을 위하여 진심으로 노력한 점: 적어도 시므온과 레위가 데려오기까지 세겜 성에 머물러 있었 다는 점에서 다말조차 어느 정도 수긍한 게 아닐까? 삼하 13장에서 암논은 실제로 다말을 사랑한

112 창세기 성경공부 :1~31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렇다면 억지로 동침한 후에 어떻게 더 미워하게 됐을까? 남자의 사랑 고백 은 진실한 사랑일 수도 있지만 사랑없는 육체적인 욕망만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자신도 이것을 분 간하지 못한다. 육체적인 욕망에서 생겨난 사랑이라고 반드시 배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정신적인 단계까지 승화시켜 나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육체적인 사랑인 지 정신적인(인격적인) 사랑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7. 야곱의 가족과 세겜의 생각은 전혀 딴판이다. 전혀 타협이 불가능해 보이는 서로 다른 그들의 관점은? 세겜: 재물로 문제를 해결하려함, 서로 통혼하자. 자신과 사고가 다른 무리가 있음을 짐작하지 못한 것이 죽음을 초래한 원인이 되었다. 야곱: 있을 수 없는 수치로 여김, 융합될 수 없는 무리들과 너무 오래 거주한 것이 사고의 원인이 다. 시므온과 레위가 대단히 신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단순한 분노 때문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 다. (서로 통혼할 수 없다면 이 아들들은 누구와 결혼했는가?) 8. 단 두 사람이 한 성의 남자들을 다 죽이고 노략질을 할 수 있었을까? 전부 수술을 하고 누워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요단강을 건너 바로 적을 마주하고 있을 때 할례를 행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순종하기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해 보자(수 5장). 9. 박력있는 시므온과 레위에 비해 야곱은 피해를 당하고도 별 말이 없는 나약한 사람처럼 보인 다. 이런 일로 그가 가장 겁을 내고 있는 것은? 가나안 족속에게 전부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그렇게 무서워했던 형님에게 벗어나자, 더 큰 두려움 이 들이닥침. 12 아들의 장래사를 말할 때(창 49장) 이 사건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야곱이 얼마나 두 렵고 떨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10. 세겜과 그의 아비가 잘못을 했다 해도 그 결과가 너무 엄청나다. 다윗의 아들들에게는 비난받 을 일이 없는가? 1) 속임수를 써서 복수한 점(13), 2) 과도한 살육(25), 3) 노략질(27) 11. 이 일의 주동자가 된 레위와 시므온은 야곱이 유언을 할 때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복을 받는 다(창 49:7). 형제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나중에 시므온이 왜 하필이면 나 를 이라고 할 만한 무슨 일이 생길까? 요셉이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하면서 한 사람을 인질로 잡을 때 시므온을 결박함: 이스라엘에서 흩 어지고 나누어지리라는 야곱의 예언은 여호수아가 땅을 분배할 때 실제로 그렇게 된다. 레위 지파 는 12지파 속으로 흩어지고 시므온은 유다지파 내에 일부를 얻었다가 다른 지파로 흩어지고 만다. 12. 설교자에게 34장은 어떤 고민을 안겨 주는가? 이 본문을 가지고 하는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다. 본문으로 적합하지 못한가? 덕스럽지 못해서 설 교를 하지 않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인데 그래도 되나? 13. 고르반이라고 하면 하나님께 바친 것이라는 뜻이다. 바리새인들이 부모에게 드려야 할 것을 드 리기 싫을 때 고르반이라고 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도 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 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는 경우를 극히 조심해야 한다. 지난해인가 사고만 터졌다하면 교회 장로인 내가 감히 그랬겠는가? 라는 식의 말이 많았다. 본문에서 이와 비슷한 현상을 찾아보자. 자신들의 복수를 위하여 할례라는 수단을 이용함: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거나 교회 를 파는 짓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 14. 야곱을 지켜주신다던 하나님의 약속은 어디 가고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말씀에 어긋난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버려두신다(롬 2:24, 28): 우리 인생의 앞길에는 복의 씨앗도 있고 화의 씨앗도 있다. 어느 것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느냐는 것은 우리에게 달린 문제다. 그리 스도인이 자신의 책임 아래 최선을 다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예정 하셨다는 의미가 내가 할 일조차 없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신이 떠나고 나니 악신이 사울을 사로잡아 번민에 빠뜨려 버렸다(삼상 16장). 15. 세겜성의 남은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불만을 터뜨렸을까? 추장의 말에 속았다고 원망했을까? 세겜의 연애를 원망했을까? 이스라엘이라면 이를 갈았을까? 부 부간의 성적행위는 참으로 복된 것이지만 불륜의 관계는 평생 쌓은 노력을 일순간에 무너지게 하 기도 한다. 클린턴이 대통령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위대한 목사님도 단 한 번의 불륜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예는 너무나 많다.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잠 6:26) 16. 만약 우리의 가정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부모, 혹은 형제, 혹은 남편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113 창세기 성경공부 :1~31 여자에게 이런 일이 있으면 치명적이라고 생각하고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크게 잘못된 태도이다. 가해자가 나쁜 사람일 뿐이다. 어떻게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서 도와야 한다. 일이 터진 후에 치료하려는 것은 어렵다. 평소에 남녀의 성문제에 대한 그릇된 편견에서 평소에 벗어나 있어야 한다. 남자는 바람을 피우는 것이 자랑이고 여자는 억지로 당해도 용서할 수 없다는 이상한 사고방식이 존재하는 한 희생자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남녀 모두 깨끗하게 성을 누려야 한다. 도무지 성이라는 것과는 관계없는 듯한 자세도 대단히 위험하다. 인간 에게 있어서 성욕이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17. 함께 있는 사람들이 서로간의 생각이 다르면 큰 문제가 생긴다. 다음 사람들에게 어떤 문제에 관한 견해차가 있었는가? 다말과 세겜: 성에 대한 차이. 야곱의 아들들과 하몰의 백성들: 통혼의 문제. 야곱과 아들들: 안전이냐, 명예냐에 대한 문제. 야곱은 가족의 안전이 최우선인 반면에 아들들은 명 예가 더 큰 문제였다

114 창세기 성경공부 :1~29 창세기 35 장 1. 야곱의 딸 디나에게 이런 가슴 아픈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 근본 원인을 야곱은 무엇이라고 생 각했을까? 다음 질문들을 참고해서 생각해보자. 1) 이 때 디나와 그 오빠들의 나이가 얼마쯤 되었을까? 하란을 떠날 때는 몇 살 쯤 되었을까? 이 나 이 차가 의미하는 것은? 2) 사건이 터지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과 야곱의 행동을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야곱이 결혼하고 난 후에 14년 동안 외삼촌 집에서 일을 할 때 디나는 레아의 6번째 아들 다음에 태어났으니 하란을 떠날 때 너댓살을 넘지는 않았을 것이며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성숙한 처녀였 다면 최소한 16세 정도는 넘었다. 결국 숙곳에서 우릿간을 짓고 오래 거주하였다. 10년을 약간 넘는 정도? 마땅히 가야 할 곳, 있어야할 곳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벧엘에 거하며, 단을 쌓으라: 벧엘에서 한 서원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치 시는가? (마지막 질문으로) 2. 35:1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친히 야곱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이럴 때 아주 잘 어울리는 우리말의 관용적인 표현은 무엇일까? 엎드려 절 받기: 지방에 따라 옆구리 찔러 절 받기 라고 한단다. 하나님께서는 벧엘에서 야곱을 만 나기를 오래도록 소원하고 계셨다.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읽을 줄 모르는 야곱에게 얼마나 서운했 을까? 자기가 답답할 때는 그렇게 매달리고, 더구나 자신이 소원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복을 주었건만 깨끗이 잊어버리고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었으니... 우리에게 주어지는 많은 하나님의 명령이 엎드려 절 받기가 아닌지 생각해보자.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누 구를 위한 것인가? 여전히 엎드려 절 받기다. 거의 모든 명령이 그렇다. 답답한 것은 하나님, 무식 한 야곱의 후예들은 여전히 팔자가 좋다. 애들이 공부 안 하는데 부모가 답답한 것은 웬 일일까?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 느냐?(찬 185장) 믿으라는 말이다. 돈을 내라는 말이 아니라 믿으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찬송을 헌금 시간에 부르면 예수님의 희생을 너무 헐값으로 다루는 망령된 짓을 저지르는 셈이다. 3. 만약 여러분들이 수양회를 계획하고 있다면 수양회 주제로 사용하기 좋은 구절을 찾아보시오. 아니면 교회의 표어로 사용하거나. 벧엘로 올라가자: 과거에 나타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지 말자, 계속 교제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자는 의미이다. 우리의 삶은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어야 한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성경으로 돌아가자. 이런 의미로 벧엘로 올라가자 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 비교적 마음에 드는 성경교재가 Back To the Bible 이라는 것이다. 어느 장로님께서 쓰신 것 인데 쓰게 된 동기가 나와 비슷해서 발간된 것은, 기념으로 사다 놓았다. 그 분이 책 제목을 이렇게 붙인 것도 이 구절을 본 뜬 것이란다. 올라갈 벧엘이 없는 분은 어떡하지? 하나님을 처음 만나서 감격했던 시절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빨리 만들어야 한다. 말씀에 따라 어렵더라도 순종하는 것이 벧엘의 감격을 누리는 방법이다. 4. 벧엘로 가서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어떻게 준비를 하였는가? 1) 이방 신상을 버리고: 아직도 이방신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오래도록 하나 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에게는 버릴 것이 없는가 살펴보자. 성경의 원리대로 살지 않고 조상들의 전통 방식대로, 유교적인 관습이나 샤마니즘적인 원리대로 사는 것이나, 하나님보다는 자존심이나 돈이 더 중요한 것도 다 버려야 할 이방 신상이다. 2)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이스라엘의 결례법에 따르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몸과 마음을 정결케 해야 했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목욕재계보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을 정결 케 하는 것이다. 육체적인 정결은 마음의 정결함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3) 의복을 바꾸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는지 아니면 이방 풍속이 깃든 옷을 갈아입었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우리도 옷을 갈아입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들이다(롬 13:14). 어 린 양의 피에 씻은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다. 그에 비하면 걸치고 다니는 옷은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교회에 어떤 옷을 입고 가야할까? 결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형제를 배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5. 야곱은 거의 평생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거저 아버지의 하나님, 조상의 하나님이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으나 여기서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 조금 달라진 모습이 보인다.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는가?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3): 대단한 변화요 감동이다. 죽기 전(창 48장)에는 이보다 더 감동적인 표현을 쓰지만 그래도 지금 이게 어디냐고 하실 것만 같 다. 다만 이후의 삶이 그런 고백적인 삶인지가 분명하지 않은 점과, 환난 날에 이런 고백을 했기에 다소 값이 떨어진다. 잘 살면서 이런 고백이 나와야한다. 진정한 고백은 48장에 있다. 6.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은 것은 무엇인가?

115 창세기 성경공부 :1~29 이방신상과 고리들: 그게 다 보석으로 된 것일텐데? 값진 것임에 틀림없다. 차라리 녹여서 다른 용 도로 쓰면 될 것 아니냐? 이성적인 답이긴 하지만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때로는 감정까지 드려야 할 때가 있다. 꼭 기도소리를 크게 해야 하고 박수를 꼭 쳐야 하나?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 지만 그런 감정까지 실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하나님은 더 기뻐하실 것이다. 소중하고 값이 많 이 나가는 것이라도 버려야 할 때는 과감하게 버려야 할 것이 많다. 이성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때로는 감성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할 때도 많다. 7.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다른 가나안 족속에 의해 원수 갚음을 당하지 않게 지켜 주셨다. 그렇게 도와주시려면 차라리 디나 사건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도와주시면 안 될까?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못할 때 닥쳐오는 어려움은 시련의 성격이 있다. 이런 시련마저 생기지 않도 록 도와주시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큰 시련을 주실지도 모른다. 문제는 하나님의 뜻에 우리가 얼마 나 민감하게 반응하느냐의 문제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파멸이나 끝은 끝내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 8. 죽은 장소를 명시하고 특정한 이름을 붙였다는 점에서 드보라의 죽음을 특별하게 취급하는 셈 이다. 라헬이나 이삭의 죽음과 비교하면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을까? 모든 식구들이 슬퍼했다: 알론바굿(곡함의 상수리)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모두가 진정으로 슬퍼했 다는 말이다. 라헬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한 사람은 아마도 두 사람(야곱과 요셉) 아닐까? 이삭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한 사람은 아마도 야곱뿐일 것이다. 다른 식구들은 이삭을 만난지 겨우 몇 해 밖에 되지 않는다. 함께 산 적도 없다. 왜 드보라의 죽음이 이들 가족 전체에게 큰 슬픔이었을까? 오래 전 리브가가 이삭에게로 갈 때 유 모인 드보라가 따라갔다(창 24:59). 결과로 에서와 야곱을 키웠을 것이다. 추측컨대 야곱이 집을 떠난 후 리브가가 죽자 노구를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다시 야곱을 만났고 야곱의 자녀들을 돌보았을 것이다. 야곱이 밧단아람을 떠날 때 모시고 나왔을 것이다. 야곱이 벧엘에 이른 것을 보고 죽었을 때 온 식구가 슬피 울었다. 그저 단순한 유모가 아니라 구약의 교회를 잘 돌본 위대한 어머 니였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교회를 섬긴 분이었다. 요나단이 그랬고, 안디옥 교회를 세운 분들이 그랬다. 9. 이상하다? 야곱이 숙곳과 세겜에서 10여년을 지내다가 왔는데 어떻게 밧단아람에서 돌아왔다고 하는가? 숙곳과 세겜은 야곱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밧단아람으로 떠난 야곱이 돌아오기를 벧엘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늦었지만 이제야 돌아왔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말이다. 하 나님은 벧엘의 약속을 잊지 않고 기다리고 계셨지만 야곱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셈이다. 10. 얍복 강가에서 이름을 바꾸라고 했는데 여전히 야곱으로 살았던 모양이다. 또 바꾸란다. 이름 을 바꿔주면 행동도 그렇게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닌가? 이름에 걸 맞는 행동을 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현실은 야곱이 맞지만 먼 훗날을 내다보고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시겠단다. 이름을 미리 이렇게 바꿔주시는 것은 행위보다는 신분을 먼저 바꾸 셨다는 의미다. 열국의 아비라는 아브라함도 마찬가지다. 이름을 먼저 바꾸고 그렇게 기대하면서 차 츰차츰 그렇게 변해가는 것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을지라도 어른들이 믿어주는 대로 아이는 자라간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보고 말씀하신다, 네 하는 짓은 야곱이다 마는 성도라 하리라. 11. 어쩌면 이런 고난의 길이 없을 수도 있었는데... 야곱의 긴긴 외유가 여기서 끝이 날 모양이다 (11-12절). 야곱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 약속하신 말씀의 성취라고 보아야 하는가? 창 25:23(출생 전), 28:14-15(벧엘에서): 그 과정이 길어진 것은 순전히 야곱의 선택이다. 실제로는 아브 라함에게, 이삭에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구속의 역사를 진행시키신다. 12. 야곱이 잘나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돌보시며 따라 다니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그게 어울리는 이름이지만): 벧엘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이 이 루어짐을 경험하는 곳도 벧엘이다. 이런 놀라운 경험이 오직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 때문이었다. 13.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복의 내용이 무엇인가? 1) 개명하라. 2) 생육하고 번성하라. 3) 땅을 주리라. 14. 위에서 언급한 이런 복을 받기 위하여 야곱이 한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야곱이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오로지 하나님의 선택과 약속에 대한 신실하심이 있었을 뿐이다. 어느 누구와 의논함도 없이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가고 계실 뿐이다. 메시아를 보내시려는 고독한 계획 말이다. 15. 구속사의 가느다란 끈이 야곱의 때에 와서 아주 넓어진다.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예수님께 서 교회를 세우셔서 다시 온 세상으로 넓어진다. 야곱의 때에 생겨난 이 엄청난 변화는 무엇인가?

116 창세기 성경공부 :1~29 백성과 왕들이 나오는 것(11): 아브라함에게서는 오직 이삭만, 이삭에게서는 야곱만 아들로 인정하셨 지만 이제는 모든 아들이 야곱의 아들로 인정을 받았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의 다른 아들은 버림받 은 셈이다. 야곱의 경우에는 장자권을 받은 아들 뿐만 아니라 다른 아들들도 동일하게 아들로 인정 받은 것이다. 구원역사를 개인에서 민족으로 발전시키셨다. 이제는 개인의 영성이 아니라 공동체의 영성이 중요한 시대가 되는 것이다. 16. 처음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일과 비교하면 여기서는 어떻게 다른가? 처음 벧엘에서는 꿈에 나타나셨다. 여기서는 친히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13, 15): 그만큼 계시가 풍 성하게 임하셨다는 뜻이다. 이메일이나 홈페이지에서 만났던 사람이 실제로 나타난다면 어떤 느낌 일까? 그것보다 훨씬 더 큰 감격일 것이다. 17.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야곱에게는 아직도 고난이 끝나지 않았나보다. 야 곱의 아픔, 슬픔들을 정리해보자. 어머니의 대리인이었던 어머니의 유모가 죽었다. 가장 사랑했던 라헬이 먼저 죽었다. 야곱은 평생에 라헬을 잊지 못한다. 죽기 직전에 자신의 삶을 회고할 때 라헬을 만난 것과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을 말한다. 장자가 서모와 간통함: 합환채(사람의 성기를 닮았다고 함)를 얻어서 엄마에게 가져다 주었다는 것 은 르우벤이 성에 일찍 눈을 뜬 아이였다는 말이다. 까진 아이? 여러 엄마들 사이에서 자라면서 성 적으로 조숙한 아이가 된 셈이다. 야곱의 잘못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지만 이 땅에서 아무런 고통도 어려움도 없이 산다는 것은 기대하지 말자. 이런 고통 가운데서도 굳건한 신앙인의 자세를 흩트리지 않을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 는 훈련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도 있을 수 있고 때로는 범죄한 인간의 잘못으로 우리 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가장 나쁜 것은 우리가 잘못하여 징벌을 받는 경우이다. 18. 왜 하필이면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라헬이 먼저 죽을까? 목숨을 걸고 아버지의 우상을 훔쳐 나왔고, 야곱이 외삼촌의 신을 훔친 자는 살지 못할 것이라고 한 것(31:32)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좀 더 넓게 보는 것이 좋겠다. 하나님은 야곱 을 짝사랑하듯이 따라 다녔다. 그런데 야곱은 라헬에게 팔려서 하나님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러면 탈이 난다. 하나님께서 라헬을 치신 것이 아니라 내버려두었을 뿐이다. 과거에 여자들이 아 이를 낳다가 많이 죽었단다. 해산이라는 것이 그렇게 위험한 일이었단다. 야곱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더 사랑했더라면 라헬의 사랑도 더 오래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낳은 아 이를 벤-야민(=벤자민), 즉 오른 손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19. 산파도 웃긴다. 죽어가는 판에도 아들이면 괜찮다는 말인가? 아들을 하나 더 낳기를 몹시 소원했던 것을 염두에 둔 위로의 말 이었을 뿐이다. 이렇게라도 말해 야 한다. 위로의 말도 못할 정도로 곧이곧대로 말하는 것은 정직한 것이 아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가끔은 거짓말을 해야 한다. TV에 나오는 누구보다 훨씬 더 이쁘다고! 아내도 마찬가지다! 한나의 남편 엘가나가 열 아들보다 나은 남편이 있지 않느냐고 말한 것을 기억하자. 순전히 자기 생각? 그 렇게 말하다가 핀잔을 듣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 말해야 한다. 20. 야곱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른다. 그는 끝내 아무 말도 않았지만 죽기 전에 그 일을 언 급했다. 그 결과로 이 지파에서는 사사나 왕, 예언자가 전혀 배출되지 않았다. 누구 이야기인가? 르우벤(의 근친 상간): 장자권마저 빼앗겼다. 야곱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이럴 경우 후대의 법이 긴 하지만 율법대로는 두 사람 다 사형에 처했다. 그럼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징벌을 하나님 께 맡긴다는 의사인가? 21. 야곱의 열두 아들의 이름이 있는데 나이순으로 기록된 것인가? 아니면? 엄마 순으로: 첩의 자식임을 밝히는 것은 차별이 아닌가? 순서로 따지면 베냐민은 너무 새치기를 심하게 한 것 아닌가? 그러나 그 이후 역사 어디에도 차별이라고 볼 만한 일은 전혀 없다.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누렸다. 22. 아들이 12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 굳이 이렇게 정리해서 기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야곱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아들들의 이야기로 넘어가려는 준비작업 같다. 뒤이어 에서의 이야기 를 하고(36장) 아들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23. 야곱이 하나님에게 서원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런 벌(디나 사건, 르 우벤의 간통, 라헬의 죽음)을 내리셨다? (O, X) X: 인생(生)은 소(牛)가 외나무 다리(一)를 건너가는 것이라는 설명은 중국 사람들의 방식이다. 어쩌 면 인생은 지뢰밭을 뛰어 다니는 아이들이 아닐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선 삶을 살 때는 하나 님께서 친히 이런 위험에서 우리를 지키고 계시지만 내 욕심에 이끌려 내가 주인된 삶을 살 때는 하나님께서 버려두신다 (롬 1:24, 약 1:13-14). 그러면 이런 사고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그것을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벌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자신이 자초한 것이며 스스로 지뢰를 밟은 것이다. 버려두셨더라도 완전히 버리시지는 않는다. 문제가 크게 생기자 더 큰 일이 생기지 않

117 창세기 성경공부 :1~29 도록 막아주신다(5). 24. 이삭의 나이가 180이면 야곱의 나이는 얼마인가? 그러면 무슨 문제가 생기는가? 120: 이삭이 40세 때에 결혼을 했고, 20년 만에 쌍둥이를 얻었기 때문이다. 야곱은 이삭이 60세에 낳 았다. 요셉이 팔려가고 다시 가족들이 만나기까지 최소 23, 4년 이상이 걸린다. 요셉을 다시 만났을 때 야 곱의 나이가 130이었으니 요셉이 팔려갈 때 야곱의 나이는 백세를 갓 넘겼을 때 쯤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요셉이 태어날 때는 80세 후반, 외삼촌 집으로 도망갈 때는 70세 쯤이 된다. 요즈음에 비하면 40안팎의 노총각인 셈이다.) 그러니까 27절과 28절은 같은 시기가 아니라 상당한 시간적인 간격이 있다. 그러니까 야곱이 마므레로 가서 아버지를 만나고 가나안(헤브론, 37:14)에 정착한 얼마 후에 요셉이 팔려가는 일이 벌어졌다. 그 후에 이삭이 죽었다. 야곱의 생애에서 가장 충격적인 요셉 의 죽음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여기서 가정사를 간략하게 내용을 정리하고 그 얘기를 하려는 것이 다. 바로 앞에서 야곱의 12아들을 정리하는 것도 그렇고,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어 보이는 36장이 기록된 이유도 그런 시각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118 창세기 성경공부 :1~43 창세기 36 장 1. 에돔의 처에 대한 기록을 정리해 보면 다음 도표와 같다. 이름과 혈통이 전혀 다르다. 이러한 차이의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자료를 가지고 편집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창세기를 쓴 사람이 앞뒤가 맞지 않는 것도 모를 정도로 그렇게 무식한 사람이었을까? 이 글을 쓰는 저자가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는데 적어도 2, 3천년이란 세월과 환경의 차이 때문에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 그런 시각을 가지고 왜 이렇게 틀리는지 추측해 보자. 26:34, 28:9 36:1-14 혈통 이름 혈통 이름 아들들 헷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 헷족속 엘론의 딸 아다 엘리바스 헷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 히위족속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 여우스, 얄람, 고라 이스마엘의 딸 마할랏 이스마엘의 딸 바스맛 르우엘 1) 한 사람이 두개의 이름을 가졌거나(에서, 에돔) 2) 결혼 시에 새로운 이름이 주어졌거나 3) 문화와 혈통의 차이: 조용기 목사가 한 때 조 다윗이라고 불려졌다. 이유는 국내용과 국외용 이 름을 가진 탓이다.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다고 흔히 말하지만 사울은 히브리식 이름이고 바울 은 헬라식 이름일 뿐이다. 유대인으로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니 두 이름을 가진 것이다. 유 대인들과 살 때는 유대식 이름을 사용하고 헬라사람들을 상대할 때는 헬라식 이름을 사용하는 것 은 너무나 당연하다.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십여년이 지나서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함께 사역을 할 때에도 여전히 사울이라고 불린 점과 바울이란 이름이 선교여행을 시작할 때부터 사용된 점에 유의해야 한다(행 13). 마찬가지로 실라와 실루아노는 같은 사람이다. 이처럼 다민족 국가에서는 흔 히 이름이 여러 개 일수 있다. 한 종족에 대한 일반 명칭 및 고유 별칭, 다른 부족에 의해 불리는 별칭 등으로 혼용되어 일관성 없이 사용된 탓이 있을 수 있다. (7번 문제를 참고하시기 바람) 4) 시브온의 딸 아나의 소생 오홀리바마(2): 시브온의 딸과 오홀리바마가 동격이다. 그러면 오홀리바 마는 시브온의 딸이면서 동시에 아나의 소생처럼 보이지만 여기서 딸 은 손녀라는 뜻이다. 히브리 어에서 아들은 때로는 손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거듭되는 얘기지만 확실한 것을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아직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사실들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 문제는 믿을 것이냐 아니냐의 문 제이다. 2. 이삭이 에서에게 준 이상한 축복대로라면(27:39-40) 에서와 야곱이 함께 거할 수 없을 정도로 소 유가 풍부해진다(7)는 것은 틀린 것 아닌가? 그런 복은 아브라함이나 누릴 수 있는 복인데? 물질이 복이 진정한 복이 아니다. 형제가 누리는 복은 그 아비 이삭이 누릴 이삭의 복이다: 이삭에게 주시는 복이다. 에서의 복은 좀 더 시간이 지난 뒤에 나타나는 것이다. 에서도 한 민족을 이룰 것은 예언된 일이다(25:23). 3. 동생에게 땅을 물려주고 떠났으니 에서는 조카에게 땅을 양보한 아브라함 같은 사람 아닌가? 형이 떠난 이유를 굳이 말하라면 신앙과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취향을 따랐을 것이다: 목 축을 하는 평지보다는 산지를 선택하는 것이 자신의 취향 아닌가? 산이라고는 전혀 없는 끝없이 넓 은 평야지대에 가니까 답답해서 못견디겠더란다. 그러면서 아기자기한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 오니 까 숨통이 트인다는 사람처럼 에서는 그런 산지가 좋아서 떠났을 것이다. 4.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브라함 도 이삭도 야곱도 가나안 땅에 말뚝 박고(?) 살지 않았다. 그들의 삶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단어 는? 하숙도 자취도 아니라... 우거(7, 寓居): 일시적인 거주를 말한다. 우리 역시 이 땅에 잠시 머물렀다가 고향을 찾아가는 체류 자일 뿐이다. 나그네는 짐이 가볍습니다. 어느 선교사가 쓴 책 제목이다. 선교사가 일시 귀국하여 남이 쓰다버리는 가구를 모아서 살면서도 잘 사는 사람을 전혀 부러워하지 않는다. 자기 집이 여기 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에 에서는 세일 산에 거(정착)하게 된다(8). 5. 에서의 후손에는 족장도 많이 나온다. 야곱이 보면 얼마나 부러울까? 알만한 족장이 있는가? 아말렉 족장: 결코 부럽지 않다. 출애굽시에 이스라엘을 괴롭히다가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사울왕 시절에 끝내 멸족되어 버린다. 유독 첩의 후손인 것을 따로 언급하는 것(12)은 그가 첩의 후손으로 독립하여 한 부족을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 고생이나 서러움을 많이 당하면 이겨내기만 하면 아주 위대해진다. 홍길동처럼. 적자보다 더 자세하게 기록된 것을 보라. 인간적으로 말하면 자

119 창세기 성경공부 :1~43 수성가한 사람이다. 불우한 환경을 딛고 일어선 위대한 사람이었다. 하나님 없는 것만 빼고. 6. 에서의 후손에 대한 이야기가 장황하게 이어지는 것도 재미없는데 그 땅의 원거인에 대한 이야 기는 왜 또 하는가? 이것도 꼭 읽어야 하나? 이렇게 재미도, 의미도 없을 것 같은 것도 하나님께 서 주신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읽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을 것이다. 그것 이 성경이 독특한 책인 이유이다. 어쨌거나 원거인 호리 족을 언급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에서의 사돈 이야기이다: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가 에서의 아내이다. 7. 별로 중요하지 않으면서 골치 아픈 문제인데 20-30절에서 아나는 몇 사람일까? 에서의 사돈 아 나는 어느 아나일까? 두 사람인데, 24절의 아나이다: 에서의 처는 시브온의 (손녀)딸 아나의 소생 오홀리바마이다(2절). 25 절의 오홀리바마의 아비 아나는 에서의 처 오홀리바마의 삼촌이다. 꼼꼼한 사람이 아니면 이 부분 은 건성으로 읽고 지나가는 것이 좋겠다. 동명이인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확인해보려는 분은 20 절에 나오는 세일의 아들들이 22절부터 하나씩 소개되고 있음을 주목해 보라. 가령, 22절은 첫째 아 들 로단, 23절은 둘째 아들 소발, 24절 셋째 아들 시브온, 25절은... 이런 식으로 확인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동명이인이 세 쌍이나 있다. 오홀리바마, 아나, 디손. 8.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는 왕들이 있었다(31)! 놀라운 일이 다. 축복을 받지 못한 에서의 후손이 나라를 세우고 탄탄한 왕국을 건설하고 있을 때 축복을 약속 받은 이스라엘의 후손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애굽에서 종살이(?): 400년의 역사 중에서 종살이는 100년 정도이다. 유대인들의 고난이 시작됐을 때 모세가 태어났고 80세 때 출애굽이 있었으니 그 정도 쯤 될 것이다. 그 전의 300여년 기간 동안은 온실 속에서 보호받으며 애굽인들이 두려워할 정도로 거대한 민족으로 키우셨다. 하나의 민족을 이 룰 만큼 크게 번성시킨 다음 온실 밖으로 내놓을 때 잠시 종살이를 했을 뿐이다. 온실 밖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과정이며, 하나의 민족으로 뭉칠 구심점을 마련하기 위한 시련이었을 뿐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다. 비록 고향을 떠난 애굽에서의 삶이었을망정 하나님이 함께 하시 는 삶이 바로 복이다. 9. 본문에 등장하는 에서의 후손들의 역사를 지도자를 중심으로 요약해보자. 에서의 자손 중에 족장이 14명이 나왔다(15-18). 그 후에 왕이 8명 나온다(31-39). 세습은 아니었던 것 이 그렇게 강력한 왕권을 누리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아마 그 후에 다시 11 족장들이 힘을 발휘한 모양이다. 10. 예수 믿는 우리의 삶은 늘 고달파 보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삶은 잘 먹고 잘 살고 참으로 멋있어 보일 때가 대단히 많다. 우리의 신앙 때문에 억지로 인내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길게 보자. 우리의 눈이 너무나 현실적인 곳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 아닌가? 과거, 현재, 미래를 통 털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지 못할 때 우리는 에서 족속의 번영을 부럽게 바라보는 애굽의 야곱이 될 수밖에 없다. 불신자의 삶이 아무리 멋있어 보여도 부럽지 않은 이유는 에돔 족속의 조 상은 에서더라. 11. 에서는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제대로 받지 못했음에도 물질이나 후손이 엄청나게 번영하고 있 다. 그러나 역사가 말하는 바는 그 이후 에돔은 크게 번영하지 못했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다가(오 바댜서 참고, 헤롯의 등장)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슬픈 민족임을 보여준다. 마치 이것 을 암시하기라도 하듯 36장의 결론을 내려놓은 표현을 찾아보시오. 에돔 족속의 조상은 에서더라: 아무리 잘 먹고 잘 살고 잘 놀아도 결국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는 에서의 후손이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시간이 문제일 뿐이다. 하나님 없는 문화가 아무리 위대하게 보 여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악인이 잘 살고 번성해도 조상이 에서더라 는 말로 끝이다. 결국은 페 트라 유적만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에서는 어린 자를 섬기는 역할이었으므로(25:23) 야 곱의 그늘에 거했어야 옳다. 야곱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번영하는 길이 아니다. 느디님 사람들이 끝 까지 자신의 위치를 지킨 것처럼(스 8:15-20)! 12. 에서의 기록은 이야기의 진행상 현재의 이야기가 아니라 후대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진행에서 잠시 옆길로 샜다는 뜻이다. 성경 공부에 별로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 같은 이야기를 왜 하는가? 작별하기 위함이다: 더 이상 에서의 이야기를 하지 않기 위해서 마무리를 짓고 지나가려는 것이다. 부러워할 것 없다. 13. 우리는 창세기의 기록이 모세 시대에 이루어졌다고 믿는데 자유주의 신학자들 중에는 그보다 훨씬 후대, 즉 이스라엘에 왕이 있을 때 기록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설명과 대답을 하려면 성 경공부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비평학 공부를 해야 할 판이니 삼가자. 다만 본문에서 그들의 주장 의 뒷받침이 될만한 기록이 있다면?

120 창세기 성경공부 :1~43 31절: 모세의 기록이라고 믿는 것과 왕정시대에 어떤 이름 모를 선지자가 기록했다는 것은 시간상 으로도 천년 이상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31절처럼 사람을 유혹하는 듯한 구절이 있기도 하지만 모 세의 저작일 수밖에 없는 증거는 무수히 많다. 밥그릇에 돌이 하나 들어있다고 이게 밥이냐 돌이 지 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이 돌인지 아닌지조차도 확실하지 않다. 이런 구절이 기록되게 된 것 은 장차 이스라엘에 왕이 생겨날 것을 예견(창 17:6, 35:11, 신 33:5)하고 썼을 수도 있고 이 부분만 후대에 가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예는 12:6과 14:14의 단이라는 지명이 있다. 말하자 면 밥그릇에 돌이 세 개 들어있는 셈이다)

121 창세기 성경공부 :1~36 창세기 37 장 1. 37장 앞 부분에 부자연스런 설명이 있다. 찾아서 그 이유를 설명해보자.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한 후에 요셉의 이야기가 나오는 점. 약전(略傳, 톨레도트)이라고 번역된 말은 대략, 족보, 이야기, 내력 등으로 번역되는 말이다. 개정의 족보 는 오히려 약전 보다 더 잘못 된 번역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이 족보가 아니지 않은가! 이유: 요셉과 그 형제의 이야기가 바로 야곱의 후반부 생애이다. 그 후반부 생애의 시작이 바로 이 형제들의 이야기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야곱의 긴 이야기 속에 요셉과 그 형제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2. 일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가장 위대한 인물은 누구일까? 요셉: 용비어천가는 이성계의 조상들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이성계 때문에 그렇다. 북한에서도 김일 성 때문에 그 조상들의 위대함을 선전하는 것이다. 세속적인 지위를 생각한다면 요셉만한 인물이 없다. 요셉 때문에 그의 조상들이 다루어져야 하는 것이 일반(세속)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성경은 족 장들 중에 가장 작은 인물로 다루는 셈이다. 야곱의 일부로 다루어지는 것도 그렇고 하나님께서 스 스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라고 하셨지만 요셉의 하나님이라곤 하시 지 않은 것도 그렇다. 메시야의 직접 조상이 아니기 때문일까? 성경의 기준은 명백히 세속적인 기 준과 다른 측면이 있다. 3. 형님들이 요셉을 미워한 이유를 말해 보시오. 1) 아버지의 편애: 노년에 얻은 아들(사실은 다 그렇지만 끝에 낳은 아들이란 뜻), 가장 사랑했던, 아 쉬움이 많이 남는 아내의 아들, 아들들의 잘못을 고함, 채색옷을 입힘. 그래서 언사가 불평하였다(4) 니까 이것이 주원인이다. 특별히 편애하면 그 한 사람은 잘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첩의 아들과 저절 로 구별이 되어 버린다(2). 이렇게 티나게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권한이 절대적이었다는 말이다. 절대적 권한을 가졌다고 티를 내면 반드시 불상사가 생기게 마련이다. 왕처럼 군림하는 아 버지는 왕따가 되기 쉽다. 2) 고자질: 뒤집어본다면 성실하고 착했다는 뜻도 된다. 그렇다고 정의감이라고 할 것까지는 아닐 것이다. 굳이 좋은 의미로 해석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고자질하는 놈은 나쁜 놈이다. 아버지가 보기에는 이쁠지 몰라도. 3) 꿈 이야기: 형님들이 보기에는 요셉의 꿈 이야기가 개꿈이다. 눈치도 없이 그런 꿈을 다 이야기 하나? 덮어두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나 꿈 이야기가 주원인은 아니다. 꿈 때문에 더 미워하게 되었 다(5, 8)는 것은 다른 이유로 미워했다는 뜻이다. 요셉이 특별히 탁월한 사람은 아니었다. 비슷한 나 이의 다니엘이나 다윗, 마리아와 비교해보라. 하나님은 평범한, 미움을 받은, 버림받은 요셉을 들어 서 이 가족이 하나로 뭉쳐지도록 인도하신다. 4. 야곱이 요셉을 편애하게 된 원인이 있다면? 1) 가장 사랑했던 라헬의 아들: 얍복강을 건너서 형을 만나러 올 때 줄을 세운 데서 다른 형제들이 미워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이미 있었다. 2) 노년에 얻은 아들 3)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 4) 다른 형들의 잘못을 고함: 성실이라기보다는 그만큼 아버지하고 가까웠으니 이런 저런 얘기를 쉽 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형들의 잘못이라고 해봤자 양을 한 두 마리 팔아서 용돈을 썼거나 아니면 한 두 마리 더 잡아먹었거나 그런 것 아닐까? 정의롭다기보다는 막내다운 짓 아니었을까? 5. 어떻게 편애했는가? 1) 채색옷: 과거의 채색옷은 현재의 채색옷(색동옷)과 정도의 차이가 훨씬 크다. 형들이 멀리서도 요 셉을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18). 2) 집에서 소일케 함: 2절을 보면 함께 일하기도 했지만 멀리서 일할 때는 집에 있었던 모양이다. 6. 형들의 언사가 불평하였더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어떠했을까? 원어상으로는 샬롬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이다(대부분의 역본은 의미를 살려서 다정하게 말하지 않 았다로 역함): 즉 가장 흔하게 하는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 집안에서 아는 체도 하지 않을 정도라면 문제가 심각한 셈이다. 7. 5절에서 11절 사이에 생략할 수 있는 구절이 있다면 몇 절이며 왜 그런가? 5절: 전체 요약, 개략이기 때문이다. 전체를 한 마디로 요약한 다음에 다시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히 브리 문학의 한 표현방법이다. 이런 방식을 기록된 곳이 많기 때문에 익숙해야 할 필요가 있다. (참 고: 욘 3:5이 바로 요약이다. 5절을 빼고 읽으면 자연스럽다. 혹은 5절은 끝의 10절과 연결 지으면 된다) 8. 해, 달, 별이 어떻게 함께 등장하며, 절을 하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꿈에서는 가능하다. 꿈은 그렇게 논리적이지 않다. 계시록을 읽을 때 이

122 창세기 성경공부 :1~36 런 원리가 도움이 된다. 꿈이나 환상은 논리적이기보다는 비약적인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현실적이 지 않은 요소가 꿈에 하나 더 있다면? 돌아가신 어머니까지 절하는 것. 9. 요셉에게 있어서 꿈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우리도 요셉처럼 꿈을 꾸자(혹은 가지자)라 고 말한다면 어떤 모순이 있을까? 꿈을 꾸자 한다고 꾸어지는 것이 아니다: 요셉이 꾸려고 꾼 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꿈이 다. 오히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사모하자라고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런 의미로 꿈을 가지자라고 표현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자신이 늘 생각하는 것이 꿈으로 나타난다는 견해도 있 지만 요셉의 꿈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주신 것이다. 10. 그렇잖아도 형들이 미워하고 있는 판에 요셉이 꿈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했다. 부모까지 절하더 란다. 가장의 권위가 시퍼렇게 살아있을 때이니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혼을 내야지: 단순하게 꾸짖었다고 번역되었지만 이 말은 영어로 rebuke 에 해당하는 말인데 심하게 책망한 것을 나타낸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것을 말했을 때 베드로가 이런 자세로 예수 님을 책망한 것을 우리 성경은 간하매 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렇게 책망은 하면서도 한편으로 마음 에 새겨두었다고 한다. 잘 새겨두었더라면 고통이 덜했을 텐데 곧 잊어버렸나보다. 11. 요셉이 아버지의 말에 어떻게 순종적인가(12-17)? 형들이 미워하는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가 가라고 할 때 기꺼이 갔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대충 찾아 보고 돌아와도 될텐데 형들을 찾아서 방황한다. 도단으로 갔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또 찾아간 다. 형식적으로 순종하는 척한 것이 아니다. 12. 르우벤의 처신은 그래도 신중하고 맏이다워 보인다(21-22). 맏이로서 책임감도 있어 보인다(30). 그런데 이런 사람이 어떻게 서모 빌하와 통간할 수 있을까(35:22)? 건전한 사고와 성적인 실수는 별 상관이 없다: 성적인 실수는 평소의 행실과 별로 상관이 없다. 다 윗처럼 평소에 지극히 모범적인 사람이 이런 잘못을 저지를 확률이 더 높을 지도 모른다. 설마 교 장선생님이 그럴까? 이런 생각은 위험하다. 적어도 이런 문제에 관한한 모범생이 없다! 다윗만큼 위 대한 신앙을 지닌 자가 어디 있으랴마는 맥없이 무너졌고, 클린턴 대통령도 그 모양인 걸. 주의한다 고 되는 일도 아니다. 그런 환경에 접근조차 않거나 사전에 방비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이런 문 제에 있어서는 모든 남자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두자. 13. 요셉이 유다에 의해서 팔렸다는 것 때문에 유다는 가룟 유다와 동급으로 취급되기도 하는데 유다는 대단히 억울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 파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살리려고 중재한 것이다: 분명히 선한 의도에서 그렇게 했음이 분명하지 만, 더 나쁜 경우를 피하기 위한 일이었음에도 요셉을 판 유다라고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형들이 죽이려는 요셉을 유다는 팔았다. 혈육을 어떻게 죽이느냐? 죽이는 것보다 파는 게 유익이다. 직접 손대지는 말자. 14. 형들의 말을 보면 요셉이 죽음에 이르게 된 결정적인 실수는 무엇인가? 형의 과실을 일러바친 것보다 꿈을 꾸었더라도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했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꿈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자 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형들이 오기에 받혀있음을 알 수 있 다. 멀리서 요셉이 오는 것을 확인하고 도착하기 전에 형들이 합의를 본 것으로 보아서 시간이 많 이 걸리지 않은 것 같으니 전체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분위기 파악 을 못한 게 화근인가? 15. 요셉은 나중에 자신이 애굽으로 오게 된 것은 형님들이 팔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렇게 하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과연 그러한지 37장에서 그 근거를 말해 보시오. 결정적인 계기는 꿈 때문이고, 그 꿈을 꾸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 꿈 때문에 팔리기도 하지 만 어려운 때에 그 꿈이 오히려 자신을 지키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미리 주신 꿈이기 도 하다. 우리의 논리대로 하면 논리적 모순이지만 시공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은 그럴 수 있다. 16. 야곱만 꾀 있나? 아들들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아버지에게 아들이 죽었다는 이런 이야 기를 직접 하는 것은 전혀 득이 되지 않는다. 나쁜 소식을 전하고 좋은 말을 들을 턱이 없다. 어 떻게 했는가? 다른 사람을 통해서 피 묻은 옷과 말을 전했다: 32절의 보내어 와 가져다가 가 그런 의미를 나타낸 다. 가져다가 라고 번역된 말은 사역형이다. 굳이 의미를 살린다면 가져가게 하여 란 뜻이다. 17. 그래도 맏이는 동생을 살려서 아버지에게 돌리려한 점이 맏이답다. 유다도 어쨌거나 동생을 살 리려고 노력을 했다면 동생을 죽이자고 앞장 선 형은 누구일까? 물론 정확한 답이 있는 것은 아 니다. 짐작컨대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은 누구일까? 시므온: 세겜성의 사건도 그렇지만 나중에 요셉이 인질로 한 사람을 잡을 때 시므온을 결박한 일도 있다

123 창세기 성경공부 :1~ 야곱의 고난(연단)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런 아픔이 자신의 과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 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식들의 행위 중 어느 행위가 과거 자신의 행위와 닮았는가? 자기가 아버지를 속일 때처럼 수 염소를 죽여 도구로 사용한 점(27:9-16) 19. 가장 비정한 장면은 어느 장면일까? 옷을 벗기고 잡아 구덩이에 던지고. 그래놓고 음식을 먹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이 가장 거슬린다. 어떻게 동생을 죽이려고 구덩이에 던져놓고 음식이 넘어가기나 했을까?) 은 20을 받고 팔다. 헐값이다. 돈이 목표가 아니니 장물처럼 헐값에 넘긴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최 소한 30은 돼야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을 받을 정도로 인물 좋겠다, 건강하겠다. 더구나 보디발의 집에 팔렸다는 것은 좋은 물건(?)이었다는 의미다 장에서 요셉의 생애가 예수님과 닮은 점이 있다면? (열 가지 정도) 1) 은 20에 팔림, 2) 유다에 의해 팔림, 가까운 자가 배반함, 3) 아버지의 가장 사랑받는 아들, 4) 순종함, 5) 아버지에 의해 죽을 곳으로 보내짐, 6) 형제들을 찾아서 헤맴(15-17), 7) 형제들에 의해 핍박을 받음, 8) 아버지가 극한 슬픔, 9) 종이 됨, 10)아버지가 말을 마음에 둠(11-눅2:11, 51) (범위 밖에서) 11) 민족을 구하게 됨, 12) 그를 판 자가 수치를 당함, 13) 끈질기게 유혹을 당함, 14) 두 죄수와 함께 거함(하나는 살아나고 하나는 죽음), 15) 고난 후 크게 존귀하여짐, 16) 존귀케 된 후에 이방인 신부(교회)를 맞이함, 17)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함 기타) 저항하지 않았다. 질시를 받았다. 하나님에 의해 계획되었다. 미움을 받았다. 거침없이 확신을 표현했다. 21. 하나님께서 간섭하셨다는 표현은 전혀 없다. 그러나 틀림없이 간섭하고 계셨다. 어디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가? 2가지만 지적한다면? 요셉의 꿈, 보디발의 집에 팔았더라: 형님들이 요셉을 판 것이나 미디안의 상인들이 하필이면 그 때 지나간 것이나 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셉이 꿈 이야기를 한 것은 하나님의 간섭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입이 가벼운 실수라고 말해야 한다. 형님들이 동생을 판 것은 하나님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잘못한 것이다. 사람의 이런 실수나 잘못에도 하나님께서 자신 의 뜻을 이루어 가셨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리 자신의 실수나 잘못에도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 를 위해서 선을 이루실 것이다. 그렇더라도 우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자세를 우리는 가져야 한 다. 그것을 선하게 바꾸시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고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은 우리의 일이다. 하나님께서 간섭하신 것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하나님께 책임을 미루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흔히 저 지르는 큰 잘못이다. 형님들이 팔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 이라고 걱정이 되는 가?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님은 일을 이루어 가신다. 동생을 팔아먹은 형들의 죄는 분명히 용서를 빌어야 할 죄이다. 22. 맏이 르우벤은 아버지에게 큰 죄를 지은 사람인데 또 중한 죄를 지었다. 동생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이 결국은 자기에게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실상을 몰라서 책임을 묻지 않아도 고통은 자기의 것이다. 그런 심경이 담긴 독백은? 나는 어디로 갈까?: 나는 어떻게 살지? 와 같은 말이다. 아버지에게 지은 죄가 적지 않은데 또 이런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한다. 23. 현재 야곱의 가족이 우거하는 곳은 헤브론이다. 세월이 얼마나 지났기에 양을 치러 세겜에 갔 지?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데? 분명한 것은 알 수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임한 두려움이 아직도 그 땅을 덮고 있는 건지(35:5)

124 창세기 성경공부 :1~30 창세기 38 장 1. 유다의 행동에서 잘못을 찾아보시오. 1) 형제들을 떠남: (아둘람은 헤브론 북서쪽 약 20Km 정도 되는 거리의 가나안 성읍이다. 여호수아 가 점령해서(수 12:15) 유다의 분깃이 되었다. 다윗시대에 다윗이 이 곳으로 피했던 것은 블레셋과 유다의 접경지역이라서 사울의 영향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동생을 죽이려는 형제들에게서 환멸을 느껴서? 동생을 팔아버린 죄책감에서? 앞으로 실질적인 장남의 역할을 할 유다가 형제들을 떠났다. 교회에서도 가장 큰 일꾼이 될 사람들이 가끔은 다른 교회로 떠나기도 한다. 인간이 모인 곳에서 인간의 냄새를 풍기지 않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믿음 안에서 적게 냄새를 내고, 내더라도 극복 할 수 있어야 한다. 마땅히 죽일 사울을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이유만으로 끝내 죽이지 않은 다윗 의 모습에서 위대함을 발견한다. 떠나지 말아야할 곳을 떠난 결과가 이런 오명을 남겼다. 떠나서 결 혼하고 그 아이가 다시 결혼할 정도였으니 근 20년 가까이 그렇게 지낸 모양이다. 2) 가나안인과 통혼: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이다. 이런 일을 사전에 방비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 들이 애굽으로 이주할 필요가 있었다. 3) 셀라를 주겠다는 약속을 안 지킴: 약속을 조심스럽게 하고 했으면 반드시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 다. 우리는 약속을 너무 경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4) 창녀와 잠: 상처 후에 정욕이 문제가 된다면 사도 바울은 결혼하라고 했다(고전 7장). 이런 문제 까지 관심을 보여준 사울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2. Onanism이란 단어가 바로 이 오난으로부터 만들어졌으나 오난의 죽음은 단순히 정액을 땅에 흘 린(=땅에 설정한) 것 때문이 아니다. 오난이 죽임을 당한 이유는? 형의 아들을 얻게 함을 거부했기 때문: 땅에 설정하매 란 말의 의미를 아는 남자아이가 고민에 빠 질 수 있다. 자위행위와 유사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본문은 그런 자위행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남자아이들은 거의가 자연스럽게 자위행위를 경험하게 되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어느 정도는 자연스러운 행위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 행위가 지나치지 않도록 지도하 고 너무 심하게 자책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참고) 계대결혼, 혹은 수혼: 형이 자식이 없이 죽게 되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형의 대를 잇게 하는 제도로, 오난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아들을 그렇게 선호하는 이유 는 대를 잇는다는 점 때문인데 그것도 굳이 따지자면 제사를 지내주어야 한다는 사고방식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대를 잇는다는 사상은 우리나라보다 더하면 더했지 약하지 않다. 그 이 유는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메시아를 보내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아들 선호사상과는 판이하다. 심지어 땅마저도 희년이 되면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어서 기업이 끊어지 지 않도록 했다. 3. 오난은 왜 이런 위험한 짓을 했을까? 인간적인 욕심으로 본다면 형의 아들이 없으면 자신이 장자가 되는데 굳이 형의 아들을 낳게 해서 이 모든 권한을 상속하도록 할 이유가 없다. 4. 유다가 셀라는 장성하였음에도 왜 형수와 결혼시키지 않았을까? 엘과 오난이 죽은 것은 자신들의 죄악 탓이다. 그러나 유다는 다말의 탓으로 돌렸을 가능성이 더 크다. 우리나라에서도 며느리가 새로 들어오면 호, 불호를 막론하고 원인을 새 식구에게 돌리는 경 향이 있다. 바꿔야 할 생각이다. 5. 다말의 행위는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엄청난 죄악이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유다의 잘 못 외에도 가나안인들의 성적 문란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유다가 결국 다말이 자신보다 더 옳 다(26)는 결론을 내리는데 자신의 실수 외에 다말의 어떤 점을 인정했을까? 자신의 정욕 때문에 저지른 일이 아니라 대를 이어야 한다는 동기: 베레스가 예수님의 족보를 잇는 다(마 1). 6. 본문에 네 번 나오는 창녀라는 단어는 두 가지다. 내용상으로는 같지만 이름이 다르다. 하나는 (조나) 간음하다 라는 뜻을 지닌 매춘부를 가리키고 다른 하나는(케데솨) 거룩히 구별된 여자 라는 뜻을 지닌 음란한 행위로 여신을 섬기던 여사제를 가리킨다. 본문의 어느 창녀란 단어가 후자의 뜻으로 쓰였을까? 왜 그렇게 사용되었을까? 21, 22절의 창녀: 자신의 부끄러움을 덜기 위해서 그래도 좀 격이 높은 단어를 사용했다. 여객기를 격추시켜서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소련은 영공을 침범한 비행기의 비행을 정지시켰다 고 발표했으 며 성추문으로 온 세계의 망신을 자초한 클린턴은 부적절한 관계 였다고 시인했다. 원조교제란 말 을 처음 들었을 때 元祖곰탕과 같은 표현인가 했는데 나중에 보니 援助였다. 도와준다는 뜻인데 미 성년자 간음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원조교제라고 하면 죄책감이 훨씬 덜 하나보다. 아이고, 인간 아! 인간아! 7. 본문에서 가장 싱거운 사람은?

125 창세기 성경공부 :1~30 아둘람 사람 히라: 유다가 결혼할 때 아마 소개시켜주었을 것, 창녀에게 화대를 전해주는 심부름까 지 했다. 좋은 친구를 두었다! 자신이 이런 일에 일말의 양심이 있어서 나서긴 어렵고 이 친구는 평소 그런 일에 익숙하니까 좋구만! 나 대신 악역을 맡아줄 친구도 평소에 하나쯤 만들어두는 것이 좋겠구나! (추가의견) 산파: 태아를 보고 뭐라 한다고 알아 듣냐? 오난: 사나이가 칼을 뺐으면 찔러라도 봐야지! 8. 간혹 신문에 학교에서 아이를 낳았다거나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떠들썩하는 것을 보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숨길 수 있는 모양이던데 석달 만에 소문이 났을까? 본인이 소문을 냈다: 어차피 고의로 한 일이니까. 옷은 치렁치렁해서 숨기기에 더 좋았을 것이다. 입덧이나 쌍태라고 해서 그렇게 쉽게 표가 나는 것도 아니란다. 9. 사람은 대체로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한 이중 잣대를 지니고 있다. 유다에게서 이런 면을 찾는다면? 자신에 관한 일은 부끄러운 일을 당할까 쉬쉬하면서 며느리의 행음 소식을 듣고는 당장에 불사르 라고 함: 아내가 죽은 후에 창녀와 자는 것은 괜찮은가? 똥낀 놈이 성낸다는 속담은 이럴 때 적절 한 것이다. 10. 다시는 그를 가까이 아니 하니라 는 말은 무슨 뜻인가? 버렸다는 말인가? 육체적인 관계를 갖지 않았다는 뜻이다. 가족 관계는 유지한 것 같다. 또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유 다의 아들로 인정을 받았다. 이 아이와 다말을 볼 때마다 뼈저린 아픔이 그에게 있었을 것이다. 그 아픔을 느끼며 더 이상 범죄하지 않으려는 그의 진지한 회개의 자세가 결국은 그를 맏이 대신 집 안의 가장 노릇을 제대로 해내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11. 르우벤은 서모와 간통함으로 집안에서 맏이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판에, 유다는 이 일로 인하여 평생의 오점을 남긴다. 37장과 38장을 연계해서 생각해 보면 이것은 신약 시대의 무엇과 비슷한가? 예수를 판 유다가 목매어 자살하고 천추에 오점을 남긴 점과 유사하다. 다른 점은 유다는 오랜 시 간이 지난 다음 가정으로 돌아와서 위대한 조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12. 태아는 머리가 먼저 나와야 정상인데 손이 먼저 나왔다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위험한 일이기 도 하다. 그런데 다시 손을 들였다가 정상으로 출생을 했단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 다. 희귀한 예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누가 장자가 되어야 하나? 전에 쇼트트랙 선수 중에 발만 먼저 내밀어 우승한 예를 보면 일단 손을 먼저 내민 아이가 장자가 맞는 모양이다. 출생의 기준을 먼저 정해 두어야겠다. 무조건 몸의 일부가 먼저 세상에 나오기만 하 면 형이라던가. 실을 매서 그것을 확인하는 것을 보면 이들이 장자권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13. 베레스와 세라는 야곱과 에서보다 더 지독한 사이다. 왜? 터치고 나오느냐고 야단을 쳤는데 회음부가 찢어진 것을 가리킨다. 14. 며느리를 범한 시아버지라는 엄청난 충격 속에서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유다는 정신 을 차리고 결국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모든 것이 회복되는데 유다가 제 정신으로 돌 아온 장면이 어디일까? 다말이 내민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보는 순간(26): 자신의 잘못을 순간적으로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 을 것이다. 다말이 내민 것을 모르는 척하면 며느리만 죽게 되고 자신은 잘못은 묻힐 수도 있다. 그 런데 유다는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면서 그는 나보다 옳도다 고 말했다.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것이 결국은 집으로 돌아오게 하고 위대한 조상이 되게 했다. 믿는 자 에게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 성령훼방죄는 예수 믿지 않는 죄다. 15. 결코 자랑스럽지도 않은 이야기를 성경에 버젓이 기록해 놓은 이유가 무엇일까? 38장의 이야 기는 꼭 필요한 것일까? 이스라엘이 애굽을 이주해야 할 필요성: 음란한 가나안 백성과 함께 어울려 살다가는 가나안 족속 들이 심판을 받을 때 함께 당해야 할 처지가 될 것이다. 구속사적인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의 조상인 베레스의 출생이야기이다. 아울러 이방의 죄 많은 여자 다말까지도 예수님의 조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놀라운 구원의 초청이다. 더 죄 많은 자도 있으면 오라는 말씀이다. 유다의 입장에서 보면 부끄러운 일이요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부끄러운 조상의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인간사가 다 그런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굳이 빼야할 이유가 없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좋은 증거이다. 여러분들의 집안 이야기라면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을 것이다

126 창세기 성경공부 :1~ 시아버지로서 약속을 지키지 않으므로 의무를 다하지 못한 유다의 불성실한 태도, 상처(喪妻) 후의 음행,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씨를 보존하려는 다말의 욕심이 합쳐진 결과는 무엇인가? 예수님의 조상 베레스 탄생: 먹을 수 없는 재료만 가지고 멋진 음식을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 상적인 경우에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17. 홍사를 매면서까지 장자를 구별해서 세라가 장자임을 확인했지만 예수님의 조상은 베레스이다. 그가 영적인 장자였다는 말이다. 이렇게 장자권이 뒤바뀐 예를 찾아보고, 왜 성경에 이유없이 그 런 일이 많이 발생하는지 생각해 보자. 가인과 셋,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 르우벤과 요셉과 유다, (에브라임과 므낫세), (모세와 아 론), (솔로몬과 그 형들), 다윗과 그 형들: 유대인과 이방인의 입장이 뒤바뀌어질 것, 즉, 육적인 이스 라엘이 이스라엘이 아니요 영적인 이스라엘이 참 이스라엘이라는 것에 대한 예표이다(롬 2:28-29) 장의 제목으로 흔히 유다와 다말 이라고 한다. 차라리 유다의 가출 이 더 나아 보인다. 왜 가출했을까? 형제를 팔아먹은 아픔, 형제를 죽이려는 다른 형제들에 대한 미움, 가슴 아파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기 힘드는 것: 이런 가족에 대한 환멸감으로 집을 나가서 오랜 세월을 보냈다. 그 후에 자신의 가 정이 엉망진창이 되는 것을 보고 다시 돌아온다.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가룟유다같은 인생이 되었을 것이다. 19. 베레스는 다말을 어머니라 부르고 유다를 아버지라고 불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다말과 유다 는 무슨 관계가 되나? 그럼에도 유다는 다말과 부부로 살지 않았다: 그러면서 다말을 내어보내지도 않았다. 주위의 온갖 따가운 시선을 잘 견디고 아버지의 가정을 지킴으로 위대한 지파의 조상으로, 야곱의 실질적인 장 자로 세워졌다

127 창세기 성경공부 :1~23 창세기 39 장 1. 종으로 팔려간 요셉이 이 본문에서 어느 정도로 출세했는지 현대적인 용어로 표현해 보자. 종에서 가정총무가 되었는데 지금으로 말한다면 청와대 경호실장의 민정비서 정도 되지 않았을까? 그런 직책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대단하게 출세한 셈이다. 혹은 아무 배경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으로 말단 사원에서 기업의 이사가 된 셈이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기업의 이사는 사 장보다 더 대우를 받기도 한다. 2. 아버지의 집에서 귀하게만 자랐던 요셉은 거칠고 거친 풍파를 만난 셈인데 쓰러지거나 좌절하 지 않고 보디발의 집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 틀림없이 그렇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요셉의 고통을 우 선 짐작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으므로 아무런 고통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 무 책임한 발언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아버지에 대한 걱정, 형님들에 대한 분노...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시 105:17-18) 몸이라고 번역된 말은 네페쉬 즉 영 이라는 말이 다. 영혼이 쇠사슬에 매였다고 표현한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성실하게 종의 삶을 살았더니 하 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고 계심이 나타났다. 일시적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쓰러져 있을 수는 있어 도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일어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이들은 부 모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부모가 나빠서? 부모가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 존 재인지 모르는 철부지의 꿈이다.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 비록 힘들어 보여도 그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깨닫는 것은 정말로 귀한 복이다. 3. 종으로 팔려 온 요셉은 어떻게 해서라도 애굽을 탈출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애굽을 탈출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시도했는지 않았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기회를 노려서 탈 출하기로 한다면 어떤 방법이 있었을까요? 일반적인 경우라면 39장에 나와 있는 상황을 이용해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지 방법을 강구해 보세요. 보디발의 아내를 잘 이용해서: 영화에 이런 장면이 더러 나온다. 흔히 말하는 미인계인 셈이다. 이 여자를 이용해서 국경까지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보디발에게 부탁을 하면 어떨까? 충성했으 니 고향으로 보내달라고? 국가에 비교한다면 반역죄에 해당하는 일이다. 세상 천지에! 공을 많이 세 웠다고 종이 주인에게 해방시켜 달라고? 반면에 애굽을 탈출할 생각이나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것 같다. 꿈에 대한 소망을 간직하고 있었 기 때문인가? 4. 언제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으며, 언제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는지 생각해 봅시다. 종으로 팔려 갔을 때(2),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21) - 더욱 어려운 형편으로 떨어졌을 때 하나님 께서 함께 하셔서 조금 형편이 나아지고 또 다시 깊이 추락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 5.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매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한다(2-3). 이런 표현을 보면서 함 부로 은혜를 받으면 곤란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생각할 때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형통하게 해주시려면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든지 종으로 잡혀 오지 않 게 해주셔야지, 종으로 팔려온 뒤에야 함께 하시면 어떡하란 말이야? 형통하다는 것은 내 뜻대로 일이 다 잘 풀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일이 되어 가는 것이다. 종이 되건, 죄수가 되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것이 바로 형통이다. 흔히 우리는 하나님의 형통을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하나님의 형통이 때로는 내게 엄청 난 고통이기도 하다. 고통의 유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것이 바로 형통한 길이다. 6. 흔히 만사가 술술 잘 풀려나가면 복이 많은 사람이라거나, 운이 좋은 사람이란 표현을 쓴다. 이 럴 때 우리는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옳은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7. 그리스도인의 삶은 혼자 예수 믿고 혼자 천국 가는 것이 아니다. 종이 된 요셉의 삶에서 그리 스도인의 어떤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가? 내가 예수를 믿으므로 내 주변의 사람들이 복을 받는 삶이어야 한다(5): 그리스도인들이 이기적이라 는 말을 들을 때 교회는 힘을 잃어버린다. 빛과 소금의 구실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기적인 그리 스도인이 아니라 이타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가능하다. 믿지 않는 주변 사람들에게 온갖 욕을 다 들으면서 교회에만 충성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빛은 교회에서도 빛나지만 세상에서는 더 빛나게 마련이다. 8. 6절에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는 말은 히브리말로 로 야다 인데 직역하면 알지 않았다 이다. 나는 모른다. 네가 알아서 해라 는 식인데 일을 맡기려면 보디발처럼 이렇게 확실하게 맡겨 버려

128 창세기 성경공부 :1~23 야 한다. 그래야 밑의 사람이 일을 제대로 하는 법이다. 이런 해석은 밑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해 석이다. 위의 사람은 어떻게 해석할까? 요셉을 봐라, 하는 일마다 잘하니까 그렇게 맡기지: 이런 식으로 이유를 달면 끝이 없다. 서로가 신 뢰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일을 맡기려면 확실하게 믿고 맡기고 일을 맡으면 최선을 다해서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제로 해서. 9. 나이에 관계없이 남자가 극복하기 어려운 시험이 성적 유혹이다. 요셉이 이 시험에서 있었던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무엇일까요? 이길 수 여주인의 말을 듣지도 않고 함께 있지도 않는 것(1점): 이런 유혹을 뿌리치기는 정말 어렵다. 이러면 안 되는데 라면서 빠져들기도 한다. 자신을 이런 환경에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최상이다.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것은 오히려 극복하기 쉬울지 모른다. 그러나 존경합니다면서 진심으로 접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경계해야 한다. 남녀 사이의 존경은 너무나 쉽게 이성적인 유혹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셉의 이런 태도가 훌륭한 방법적인 요인이었음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을 가능케 한 더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요인은 신전의식(9, 하나님 앞에서, Coram Deo)이다(2점): 평소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행동하는 훈련이 되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작은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훈련이 평소에 필요하다. 주인을 섬기는 종의 위치를 잘 아는 것(1점): 이 정도 책임감도 귀하다. 이런 의식조차 없는 현대인 들이 너무나 많다. 여인의 유혹을 이런 식으로 거절하면 줘도 못 먹나? 라면서 바보 취급당하기 일 쑤다. 이 문구가 요즈음에는 아이스크림 선전에도 나온단다. 사실은 성적인 유혹을 거절하는 사람들 을 바보 취급할 때 쓰는 말이다. 10. 보통은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던데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기도 하는가? 힘이 있으면 어딘가에 써보고 싶은 유혹을 받는 법이다: 돈, 시간, 권력, 미모, 무기, 힘이 남아돌 정 도면 괜스레 엉뚱한 곳에 사용해 보고 싶은 것이다. 11. 요셉의 미모를 객관적으로 설명해보자. 이렇게 뛰어난 미모가 자신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 어머니, 할머니, 증조할머니가 전부 뛰어난 미인이었다: 빼어난 외모 덕에 출세하기도 하지만 때로 는 독약이 되기도 한다. 외모에 대한 자부심이 때로는 머리를 텅 비게 만든 결과 향락문화의 한 복 판에 서서 일생을 망칠 수도 있다. 잘 생긴 외모 때문에 그런 위험이 닥쳤다. 다소 위험하다. 잘 이 겨내었기에 복이 되었지. 12. 성경에서 성관계를 뜻하는 단어가 두 개 있다. 히브리 말로 야다 와 샤카브 이다. 야다는 안다 는 뜻이다. 아마 가장 내밀하게 상대를 알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사용되지 않았을까? 동침했다는 표현은 거의 야다이다. 반면에 샤카브는 눕다는 뜻이다. 친밀한 관계없는 성적인 관계에 사용되었 다. 본문의 동침은 어느 단어가 쓰였을까? 싸카브: 강간이나 간통이나 혼외정사를 야다 라고 하지 않았다. 디나가 강간당한 것이나 다윗이 밧 세바와 간통한 것도 샤카브이다. 야다가 아니다. 똑같은 행위라도 야다 는 복이지만 샤카브 는 저주 다. 부부간의 사랑이 담긴 행위는 하나님이 주신 하나되는 복이지만 한 칸만 비켜난 성관계는 독약 이다. 13.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사랑한 것은 사랑인가 아닌가? 이유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지 못할 때 상대방을 해롭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 다는 가수도 있었고, 사랑하기 때문에 죽였다는 어느 정신 나간 경찰도 있었다. (좋아하다와 사랑하다는 어떻게 다른가? 라는 질문에 고양이는 쥐를 좋아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만 사랑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 있다. 상대방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은 사랑이고 자신 의 이익만 생각하는 것이 좋아하는 것이라는 말인데 그렇게 본다면 우리 주변에는 거짓된 사랑이 너무나 많다.) 14. 주인의 처가 요셉을 유혹하는데 실패한 이유는 방법이 잘못되었다. 여자가 남자를 이렇게 무지 막지하게 유혹하면 실패한다(고급 꽃뱀은 청순가련형이다). 여자가 대담한 방법이나 직설적인 표현 으로 구애하면 대체로 실패하는 것도 비슷한 이치다. 그렇거나 말거나 실패한 주인의 처가 어떤 심경이었겠는가? 여자의 청을 이렇게 뿌리칠 때는 각오를 해야 한다: 어차피 주인이 그릇된 정욕에 사로잡힌 이상 어떻게 되었던 종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잘 생겨서 죄송한 경우이다. 15. 요셉이 여주인에게 대답하는 말 속에서 그가 여주인과 동침하면 누구에게 범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보디발과 하나님: 그의 대인관계와 대신관계가 분명함을 알 수 있다. 16. 보디발의 아내가 남편에게 요셉의 일을 고하여 요셉을 옥에 가두었으나 보디발이 아내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사실이라고 생각했더라면 즉결처분 감이다. 바로

129 창세기 성경공부 :1~23 죽이지 않고 옥에 가두었다는 사실이 보디발이 큰 은혜를 베푼 것이다. 그 외에 또 그럴 가능성을 찾아보시오. 옥에서도 중요한 일을 맡음: 전옥이라는 사람도 보디발의 사람이다. 보디발의 의사에 반한 채 요셉 에게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없다. 보디발의 입장에서는 아내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 옥 에 가두되 은혜를 베풀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17. 어느 영화인지 모르겠는데 보디발이 요셉을 심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요셉이 자신은 결코 이런 죄를 지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보디발은 왜 그런지 증명해보라고 한다. 요셉이 무슨 이야기를 하 면서 자신은 결코 이런 죄를 지을 수 없다고 설명했을까? 자기 누나 디나가 강간을 당하고 가족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던가를 설명하면서 보디발의 마 음을 움직인다. 영화도 소설처럼 있음직하게 만들어져야 설득력이 있는 법이다. 그랬을 가능성도 충 분하다고 생각된다. 18. 보디발이 요셉에게 맡기지 않은 것 두 가지는? 식료(음식)와 아내: 아내를 맡기지 않는 것은 자명하고 식료 문제는 창 43:32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19. 하나님께서 요셉의 일을 친히 간섭하고 계시다는 증거를 찾는다면? 1) 하필 보디발의 집에 팔려 가게 하신 일(감옥이라도 다른 감옥은 곤란하다) 2) 팔려간 그 집에 복을 주신 일 3) 감옥에서도 귀한 일을 맡은 것 20. 요셉이 나중에 총리가 되어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도록 미리 실습을 두 번이나 했다. 어 디서 했는가? 가정 총무, 옥중에서 제반 사무를 관장: 보디발의 집에서 2인자, 감옥에서도 2인자 노릇을 하더니 결국은 애굽의 2인자가 되었다. 21. 우리도 요셉을 닮은 삶을 살자고 한다면 무엇을 닮을 것인가?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도 우심을 믿고 낙심하지 말자? 좋은 꿈을 꾸자?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고 나중에 총리가 되는 원인이 요셉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있다. 따라서 무턱대고 우리도 요셉을 닮자는 주장보다는 하나님이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서 최선을 다 하자는 말씀이 옳다. 어떤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고 최선을 다 하자. 22. 결과를 알고 있는 우리는 요셉의 고난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있으나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는 요셉의 입장으로서는 스스로 인생을 포기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언제 받았을까요? 세 번 정도 지적해 보시오(한 번은 40장에서). 1) 형님들에게 팔렸을 때 2)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 3) 술맡은 관원장이 소식이 없을 때 (40장에서) 23. 요셉은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것이 가장 그에게 희망을 버리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고향에서 꾼 꿈: 어릴 때 이런 꿈을 간직하게 되었다는 자체가 큰 복이다. 24.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나 감옥에 있을 때의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 일을 완전히 맡겨버림 (최선을 다 하는 것) 일을 맡긴 사람이 완전하게 신뢰하는 것

130 창세기 성경공부 :1~23 창세기 40 장 1. 아무리 시위대장이지만 집 안에 무슨 옥이 있어? 이 옥을 다른 말로 무엇이라고 하더라?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39:20), 요셉의 갇힌 곳(3), 요셉의 주인의 집(7): 시위대장의 집이란 관저를 가 리키는 말이고 옥이란 말은 보호소 정도의 의미이다. 아무래도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니 시설이 나 분위기가 좀 다른 모양이다. 그러니까 요셉은 죄목에 비해서는 상당히 좋은 옥에 갇힌 셈이다. 잡범이나 갇히는 옥이었더라면 총리에 오르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르는데 술맡은 관원장과 떡맡은 관원장이란 직책이 그리 호락호락한 직책이 아니란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시위대장이 직접 요셉으로 하여금 수종들게 한 점: 관원장이라는 표현도 환관, 내시라는 정도의 의 미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술이나 떡을 맡은 관원장은 대단한 고위직이다. 목숨이 달린 일이니 만큼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자가 아니면 맡길 수 없는 직책이다. 단순한 주방장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수랏간 최고 상궁? 권력은 절대 권력자와 얼마나 독대할 기회가 많으냐에 달린 경우가 허다하다. 3.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는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하나님께서 간섭하 시는 일이 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하여 위대한 역사를 시작하시는 징조가 있다면 무엇인가 (세 가지)? 하필이면 요셉이 갇힌 곳에 관원장들이 갇힘(3), 요셉으로 수종하게 하니(4),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 을 꾸니(5): 어떻게 보면 아무 일도 아니다. 그러나 배후에는 차곡차곡 순서를 진행시키시는 하나님 이 계신다. 물론 사람이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다. 4. 자신에게 남다른 능력이 있을 때 나는 를 잘 한다 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요셉은 어떻 게 표현했는가? 해석은 여호와께 있다(8): 자기가 해몽을 잘 한다는 뜻이다. 같은 말이라도 자기중심적인 표현이 아 니라 하나님 중심적인 표현이다. 설교는 하나님께 속한 것일까 설교자에게 속한 것일까? 만약 하나 님께 속한 것이라면 왜 차이가 날까? 주일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칠 때 아이들에게 은혜를 끼 치는 것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일까? 자신에게 속한 일일까? 사람을 감화시키는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 위대한 설교, 위대한 가르침은 분명히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도록 최선을 다해서 길을 닦는 것은 우리의 일이다. 사람을 통 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어떤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는지 생각해보자. 무디가 구두수선공에 서 위대한 복음 전도자가 되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그는 구두수선공이 아니라, 직업은 구두수 선공이었을지라도 복음전파에 뜨거운 열정을 지녔던 사람이었는데 결국 하나님께서 크게 들어 쓰 신 것이라고 해야 옳다. 사도 바울도 그런 점에서는 예수를 만나서 크게 변한 것이 아니다. 단지 방 향만 틀었을 뿐,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특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5. 요셉이 총리라는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그러나 하나님 의 이런 인도하심이 게을러 터져서 가만히 누워있는 사람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 요셉은 인간적 인 측면에서 보아도 어느 누구보다 성실하고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본문에 있는가? 자기가 수종 들어야 하는 사람을 세밀히 살피는 것(6): 안색이 좋지 않음을 알아채고 안부를 묻는 데서부터 꿈 이야기가 시작된다. 맡은 아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는 것, 자신의 일에 누구보다 관 심을 더 가지는 것이 성실함의 기본이다. 6. 고대 로마에서는 출세를 위하여 수사학을 배웠다. 당시에 요즘 같은 과외가 있었다면 그것은 수사학이었고 그런 일을 전문으로 하던 사람들 중에 소피스트(궤변론자)들이 있었다. 다른 정치인 이 연설을 잘 했더라도 어떻게든지 깎아내리고 표를 얻으려면 그 방법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영어, 수학이 중요 과목인데 요셉이 애굽에 있을 때 요셉으로 말미암아 중요 과목으로 부 상한 과목은 무엇이었을까(nonsense quiz)? 꿈 해석: 여기에 등장하는 꿈은 전부 하나님의 특별계시다. 당연히 해석도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 만 가능한 것이다. 일반적인 꿈이 아니니 해몽능력이 아무리 탁월해도 소용없다. 7. 꿈을 해석할 때는 반대로 해석한다는 원리가 있다. 성경적인가? 요셉은 전혀 반대로 해석하지 않았다: 거의 문자 그대로 해석하였다. 반대로 해석하는 이유는 꿈을 꾸고 기분이 좋은 경우보다 께름칙한 경우를 대비해서 만든 사람의 지혜가 아닐까? 돼지꿈을 꾸었 다가 크게 재물의 복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비교해보라. 어느 정도의 확률이 나오는 가? 그리 신빙성이 높지 않다. 다만 몇 안 되는 사람이 돼지꿈을 꾸고 횡재한 사람의 이야기를 너 무 과장해서 전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 8. 요셉이 보기에는 모처럼의 기회가 온 것이지만 기대할 것을 기대해야지 그것은 전혀 쓸모없는

131 창세기 성경공부 :1~23 기대였다. 왜 그런가? 술 맡은 관원장이 지위가 회복된다 하더라도 자신이 살아난 것만 해도 감지덕지일 판인데 바로 앞 에서 억울한 개인의 사정을 아뢸 수 없다. 더구나 시위대장의 처를 농락한 외국인 종을 구하려고? 자신이 그의 억울함을 확신한다고 해도 함부로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9. 요셉이 갇힌 옥은 특별히 누군가가 기억해 주지 않으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곳이다. 기약 없이 갇혀 지내야 할 판인데 모처럼 기회가 왔다. 술 맡은 관원장에게서 소식이 오기를 얼마나 기 다렸을까? 얼마쯤 기다리다가 포기했을까? 아마 포기하지 않고 희망과 포기 사이를 왔다 갔다 했을 것이다: 아예 기대하지 않고 지내면 마음 이라도 편한데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고 기다리면 더욱 고통스럽다. 하나님 외에 다른 의지할 것이 있으면 일시적인 위로는 되지만 사실은 그로 인해 더 고통스러울 때가 많다. 10. 요셉이 꿈을 해석하는 것을 자세히 보면 어떤 점에 있어서 좀 당혹스러운가? 떡 맡은 관원장의 죽음을 너무나 직설적으로 표현한 점: 자칫하면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 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기보다는 특별한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 복음을 전할 때도 이렇게 충격적인 방식으로 전하기도 하는데 서로에게 좀 위험한 방식이다. 특별히 충격을 주어야할 필요가 있을 때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사용하기에는 다소 위험한 방식이다. 한 방에 끝을 보려하지 말고 꾸준하게 말씀으로 인도하는 방식을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예수 믿지 않 으면 지옥 간다 는 것을 확실하게 가르쳐 놓으면 아이들 사이에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 전략적 차원에서 그리 현명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기 때문에 좀 더 심사숙고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11. 요셉과 관련된 꿈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을 보여주신 꿈이다. 현재의 우리 가 꾸는 꿈과는 다르다. 하나님께서 내게만 특별히 또 꿈으로 말씀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자는 것은 그리 현명하지 않다. 대신에 무엇을 열심히 할까? 성경 공부: 하나님의 뜻을 잘 밝혀 놓은 성경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도 옛날 방식을 거의 사용 않 으신다. 그래서 성경을 특별계시라고 한다.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 설령, 계시를 주신다고 해도! 12. 별 의미는 없는 짓이지만 두 관원장의 꿈에서 결정적인 차이점은 무엇인가? 한 사람은 바로가 먹었고, 한 사람은 새가 먹었다: 이런 것을 잘 맞추는 사람은 꼭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만 잘 외우는 학생과 같다. 13. 떡 맡은 관원장은 왜 새를 쫓아버리지 않았는가? 꿈이 자기 마음대로 되나?

132 창세기 성경공부 :1~57 창세기 41 장 1. 만 2년 후에란 시간은 기다리다가 지칠만 한 때가 아닐까? 만약 술 맡은 관원장이 잊지 않고 바로 이야기를 해서 석방이 되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무척 기뻤겠지만 여전히 죄 없는 종, 누명을 벗은 종일 수밖에: 그래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 이 중요하다.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겠느냐? 는 믿음을 가지자. 2. 꿈이란 원래 허황하고 비논리적이다. 바로의 꿈에서 그런 점을 찾아보자. 소가 소를 먹었다거나, 이삭이 이삭을 먹은 점: 환상이나 묵시를 통한 의미 전달 방식은 이렇게 비 논리적이고 비약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특히 계시록이 그렇다. 문자 그대로 이해하려 하면 무리 가 생기기 쉽다. 전하려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창세기 앞부분을 신화로 보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자신의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신화로 치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3. 바로의 꿈에서 애굽의 특징이 드러난다면 어떤 점이? 1) 하수: 나일 강을 가리키는데 이 역시 신이다. 모세가 바로를 만나러 하수가로 간 것은 산보하는 바로를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수의 신을 경배하는 그를 찾아 신을 징벌한 것이다. 2) 살찐 잘 생긴 암소: 식용이나 노동력을 위한 소가 아니라 땅과 그 소출을 의미하는 신이다. 애굽 의 주신 오시리스는 농사하는 법을 발견한 신이며 숫소로 등장하는데 이런 소를 먹었다는 것은 신 이 죽은 상황이기 때문에 엄청난 사건이다. 소를 섬기는 나라에서 소가 길을 막는다고 돌을 던졌다 치자.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3) 동풍: 애굽의 동풍은 사막과 산지에서 불어와서 농작물에 피해를 많이 주는 건조한 바람이다. 4. 술 맡은 관원장이 말하는 나의 허물(9) 이란 예전에 바로에게 저지른 잘못이라고 볼 수도 있겠 지만 다른 가능성이 있다면? 요셉의 부탁을 잊어버린 것: 예전 일이 생각났습니다 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요셉을 만나서 그의 말 대로 석방되어 나온 일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의 부탁을 잊어버린 것을 의미하지 않을 까? 5. 해석을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셨나, 자기가 했나? 자기가 했음에도 하나님께서 하시리라고 답함(16): 일은 우리가 하는 법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하지 않고 일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 해야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대답하시 리이다 는 말이 나는 모른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이 고백이 한발만 삐끗 하면 책임회피용 발언이나 무능한 발언이 되고 만다. 6. 바로의 꿈 이야기가 두 번 기록되었는데(1-7, 17-24) 잘 비교해보면 무슨 차이가 있는가? 첫번 이야기는 그냥 내용만 기록되었고 두번째 이야기는 같은 내용에 자신의 느낌이 들어 있다 (19-21). 7. 이 꿈이 그렇게도 무서운 꿈인가? 별로 무서워 보이지 않는데 바로가 무서워하는 이유가 무엇 일까?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는 풍요로움을 안겨주는 여신 인데 신 이 깨끗하게 먹혀버렸으니 번민할 만하다. 출애굽시에 있었던 10가지 재앙이 애굽인에게 무서웠던 것은 애굽 신들에 대한 심판이었기 때문이다. 강물이 피로 물든 것은 강의 신에 하나님께 패한 것을 의미하고 태양이 어두워진 것은 태양신이 여호와께 패한 것을 의미한다. 8. 우리도 꿈을 해석해 봅시다. 다음 각각의 표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1) 아름답고 살진 일곱 마리 암소, 2)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 3) 먹었으나 먹은 듯 하지 아니함, 이전에 본 적이 없음, 4)꿈이 연이어짐 1) 7년 풍년, 2) 7년 흉년, 3) 흉년의 혹독함, 4) 계시의 확실성, 신속성 9. 바로가 원했던 것은 꿈의 해석이었다. 그런데 요셉을 만나서 횡재를 한 셈이다. 왜? 꿈 해석은 물론이고 흉년을 대처해야 하는 방법까지 얻게 되었으니까: 병으로 치면 진단뿐만 아니 라 처방까지 받은 셈이다. 에라, 아는 네가 끝장을 봐라! 10. 요셉이 꿈을 해석한 것 만으로 총리가 된 것이 아니다. 또 무엇이 있었는가? 대안: 이것은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던 요셉의 삶의 결과다. 이것이 없었다면 그냥 큰 상을 받는 것 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종이었건, 죄수였건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거기서 배운 교훈을 통해 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던 것이다. 11. 군에서는 대령이 별을 달게 되면 변하는 것이 50여 가지라든가? 요셉이 죄수에서 총리가 되자 변화된 모습을 있는 대로 찾아보자

133 창세기 성경공부 :1~57 1) 왕의 인장반지 - 최고의 결정권자 2) 세마포 옷 3) 금목거리 4) 버금수레(국가 2호차) 5) 노총각이 장가들다. 12. 일개 죄수가 순식간에 총리가 된다는 것은 낙하산 인사가 아니라... 이건 말도 안 된다. 모든 인사정책이 순식간에 마비가 될 핵폭탄인 셈이다. 다른 신하들이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이유 를 말해보자. 1) 추측이지만 바로의 권위가 확실했기 때문 2) 사실은 바로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고 있을 때 요셉의 대답(해몽과 그 대책)을 보라. 무 슨 할 말이 있었겠는가!(25-36) 요셉을 인정했다는 의미 13. 요셉이 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에 기절 초풍한 사람은? 보디발의 아내: 요셉이 좀 보자고 한다면 어떻게 할까? 의외로 여자는 이럴 때 냉정하다. 어쩌면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보았다 고 하지 않을까? 14. 나는 바로라 (44) 누가 그걸 모르나? 다 아는 사실을 왜 이렇게 선언하는가? 이런 비슷한 일을 또 누가 했을까? 권위를 가지고 무슨 일을 한다는 뜻이다: 흔히 나도 한다면 한다 는 뜻으로 내가 아니냐는 표 현을 사용한다. 성경에서 이런 표현을 가장 많이 쓰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스스로 존재하는 분(출 3)이라고 번역된 표현은 어쩌면 작정한 일(인류의 구원)을 반드시 이루는 분이란 뜻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타 당할 것이다(출 6장 참고). 15. 요셉의 안에 따르면 소득의 얼마를 세금으로 거두었는가? 오분의 일(20%): 옛날 우리나라에서 지주와 소작농은 50대 50이 일반적이었던 것 같다. 거기에 비한 다면 풍년에 이 정도면 많은 편이 아니다. 조세저항이 전혀 없이 더 이상 계수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곡식을 거두어 들였다. 오히려 곡식을 저장하는 일에 불평하는 사람이 있었을는지 모른다. 16. 우리도 승진하려면 요셉처럼 순식간에 올라가야 한다. 차례차례 단계를 밟아 올라가려면 얼마 오르지도 못하고 고생만 하다가 마는 수도 있다. 어떻게 하면 요셉처럼 승진이 되는가? 헛꿈을 버리자: 하나님께서 요셉에게는 특별한 임무와 사역을 주시기 위하여 섭리하신 탓이지 결코 자신이 원하여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 을 의지하는 것이지 요셉과 같은 방식으로 출세하기를 꿈꾸는 것이 아니다. 꾸준하게 노력하는 자 세가 필요하지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은 결코 성경적이 아니다. 17. 꿈 해석 하나로 죄수가 총리가 되고 가장 멋진 처녀를 아내로 얻고... 이런 부러움의 표현에 소감을 말해보자. 꿈 해석 하나라고 표현하는 것이 잘못이다. 단순한 꿈의 해석이 아니라, 그의 인생이 다 담겨있는 일이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그의 처절한 삶의 자세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지 빈둥거리고 놀다 가 꿈 해석 하나 잘한 덕분에 출세한 것이 아니다. 흔히 야구 선수가 방망이 한번 잘 휘둘러서 몇 백만원을 벌었다. 권투 선수가 주먹 한번 잘 휘둘러 몇 초 만에 몇 억을 벌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그 한 번의 휘두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소리 다. 18. 애굽에 팔려온 노예, 감옥에 갇힌 죄수가 전국을 다스리는 총리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변화 인가? 17세에 팔려와서 30세에 총리가 될 때까지 그가 겪은 세월, 좌절, 비참에도 놀라운 결실을 맺게 된 원인이 요셉에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 증거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잊지 않았다. 꿈을 해석할 때(세 번), 유혹을 뿌리칠 때, 아들의 이름을 지을 때. 19. 한 나라를 총괄하는 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행정력이나 사람을 어떻게 다스리고 지휘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식이 없이 덮어놓고 자리에 앉기만 하면 되는 일은 아니다. 배후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가장 큰 요인이지만 인간적인 면에서 본다면 요셉은 언제 어디서 이런 지식을 얻었을까? 보디발의 집, 감옥에서: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자신의 지혜와 이 하나를 가르쳐줄 수 있는 스승 이 그 감옥 안에 있었을 것, 자포자기하지 않고 감옥에서 열심히 노력했다면 왕의 신하를 가두는 감옥이었으니 좋은 선생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어떤 목사님이 너무 바빠서 성경을 제대로 못 보다 가 유신 시절에 감옥에 갇혀서 비로소 성경을 제대로 보았다는 고백을 들었다. 중요한 것은 좌절하

134 창세기 성경공부 :1~57 지 않고 노력하게 하는 그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신랑, 자식에게 실망하고 생의 의욕이 상실 되었을 때 우리를 붙잡아 주는 것이 무엇일까? 20. 요셉의 두 아들의 이름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1) 므낫세(모든 고난과 아비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심): 혹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요셉은 어려움 가운데서 큰 고통이 없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요셉은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막막함 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모른다(참고 시 105:17-18, 그 몸, 혼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그 모든 고난을 이제는 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아니, 하나님께서 잊으라고 하시니 잊을 수 있다는 말이다. 고향을 찾아볼 여유가 생겼을텐데 찾지 않은 이유를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잊으라 그리고 하 나님의 때를 기다리라는 말씀에 순종한 셈이다. 2) 에브라임(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케 함): 그런 고통스런 세월을 지나면서도 성실하게 살아왔음을 엿볼 수 있는 말이다. 애굽을 가리켜 이 망할 놈의 세상 이 아니라 나의 수고한 땅 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는 세상 자체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심이 있는 세상이기에 수고할 필요 가 있는 땅 이다. 2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성하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과정을 보여 주시는 의도로 출애굽 이라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준비한 것이 무엇인가? 칠년 풍년과 칠년 흉년, 요셉의 일, 6개의 꿈 22. 요셉은 흉년이 들자 정말로 바빴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서도 한 가지 일 만은 꼭 자기가 했을 것이다. 무슨 일일까? 외국에서 오는 손님 챙기는 일: 반드시 자신의 결재 하에서 팔았을 것이다. 언젠가는 형님들이 찾아 올 테니까

135 창세기 성경공부 :1~38 창세기 42 장 1. 복습인 셈인데, 37장은 요셉이 팔려가는 내용, 38장은 유다와 며느리의 이야기, 39장은 요셉이 감옥에 갇힌 이야기, 40장은 두 관원장의 꿈 이야기, 41장은 바로의 꿈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들 을 다 종합하면 누구의 이야기인가? 야곱의 약전(창 37:1): 여전히 야곱을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야곱의 이야기 에 끼여 있는 작은 부분들(엑스트라)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많은 시련을 겪고도 예전과 다름없이 살 고 있는 야곱의 이야기이다. 2. 야곱의 고생은 밧단아람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옴으로 끝난 게 아닌가? 1) 또 무슨 고난을 당 하는가? 2) 이런 고난이 아직도 그에게 필요한 이유를 본문에서 찾는다면? 1) 기근: 고대의 기근은 무서운 것이다. 우리나라의 IMF가 문제가 아니다. 몰살을 당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이럴 때 기근을 면하게 해준 고마운 식물을 특별히 표창하여 구황식물 이라는 훈장을 주 었다. 2) 여전히 문제의 해결책을 하나님에게서 찾지 않는다(2, 36).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2). 야곱 아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라. 결코 그렇게 죽지 않는다: 젊은 아들들이 있음에도 살아날 방도를 먼저 알아냈으며(2, 약삭빠름) 자식들을 다그치고 있다(1, 악착스러움). 베냐민을 보내지 못하는 것도 여전 한 편애요, 불신이다. 3. 기근이 닥쳤을 때 아브라함이나 이삭은 기근을 피하여 애굽으로 갔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반면에 야곱은? 애굽으로 가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창 46:3): 하나님의 뜻이 법률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다. 사람에 따라 상황의 변화에 따라 하나님의 뜻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4. 요셉이 총리인데 직접 곡식을 팔았을 리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형님들이 왔을 때 즉시 알아보 았을까? 올 것을 미리 예상하고 외국인, 특히 히브리인이면 따로 명령해 두었을 것. 5. 형들도 그렇지 아무렴 동생의 목소리를 그렇게 못 알아들었을까? 예상치 못하면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한부선 선교사님은 한국말을 사투리까지 구사하는 미국인이다. 미군부대에 보초를 서고 있는 카투사에게 안녕하세요 했더니 한국 사람이 한국말을 못 알아듣더란다. 당연히 영어를 예상하고 있는데 유창한 한국말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다. 외국어와 모국어의 다른 점 하나는 한 두 마디 말을 들으면 그 다음 말이 예상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차이다. 그 외에도 형들이 주눅 이 들었거나 요셉이 음성을 변조 했거나, 변성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다음, 요셉이 히브리말로 질문하는 것이 아니다. 통역을 세웠기 때문이다(23). 6. 요셉은 형님들을 보는 순간에 무엇부터 생각났는가? 아니, 무엇부터 생각나야 정상인가? 꿈(9): 나를 팔아버린 놈들! 이런 생각이 먼저 나지 않고 꿈이 먼저 생각났다는 것은 이 일이 하나 님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밉건 곱건 20여년 만에 형제를 만났는데 이렇게 냉정할 수 없다. 감정이 폭발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요셉은 꿈이 생각났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에 사로잡혀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평소에 말씀에 충실한 훈련이 되어있지 않 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7. 한 사람의 아들로서 독실하다(11)? 독실이 무슨 뜻이야?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실 혹은 정직 하다는 뜻이다. 8. 형들도 어리석다. 뭣하러 미주알고주알 다 얘기해서 스스로 무덤을 파는가? 다급하게 되면 무슨 말인들 못하랴! 다급한 상황으로 내몰면 엉겁결에 할 말 못할 말 다 뱉는 법이 다. 이런 점을 잘 이용하면 여러모로 잇점이 많다. 보기에 따라서는 악질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의 사도 그렇고 진학지도 하는 선생님도 그렇고 죄인을 다루는 형사도 그렇다. 의사는 잔병도 죽을병 처럼 이야기해서 치료에 매달리도록 겁을 주고(?) 선생님은 진학할 학교의 수준을 낮추었다가 조금 씩 상향조정을 해야 지도하기가 쉽다.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다고 했다가 낮추라면 말을 듣지 않는 다. 못 간다고 했다가 갈 수 있다고 하면 잘 듣는다. 쥐어짜면 나온다(9, 12, 13)! 그러다가 조금씩 풀 어주면 감사하게 여긴다(18-19). 매사를 사실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은지 어느 정도는 이렇게 작전 을 쓰는 것이 좋은 지 어렵다. 사실은 후자가 서로에게 유익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남용이나 악용 하지 않는 범위에서 상대방을 위한 기교로서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9. 형님들을 엄하게 대함으로(7, 16-17), 또 인정을 베푼다는 것(25)이 본의 아니게 형님들에게 고통 과 번민을 안겨 주게 되었다(28).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것은 형님들에게 어떤 계기로 작용하게 되 는가?

136 창세기 성경공부 :1~38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계기로 작용(21, 28): 긴 세월동안 가슴에 몰래 묻어두고 있던 아픔을 이제 야 드러내고 수술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야곱의 입장에서는 아들들을 믿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 으로 내몰린다. 10. 죄는 뿌리가 깊다. 죄지은 사람은 멀쩡해 보여도 허약한 사람이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지은 죄가 먼저 튀어나온다. 잊혀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가 일만 있으면 튀어나와서 사람을 약하게 만 든다. 형들은 완전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그 동안 편안했을까? 죄지은 사람은 결코 편안할 수 없다. 완전범죄는 없다. 발각되지 않아서 다행? 그만큼 고통의 세월 이 길 뿐이다. 형들이 범죄한지 20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다급한 상황이 닥치자 바로 동생을 팔아버 린 그 일을 되씹고 있다. 혹시 믿는 우리에게 이런 기억이 있다면 하나님께 회개하고 깨끗이 지워 야 한다. 언젠가는 되살아나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회개하고 다시는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11. 지도자는 최소한 두 가지 면은 있어야 한다. 형님들을 만났을 때 요셉이 취한 서로 다른 두 가 지 행동을 보면서 이 두 가지 요소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절제(감정을 통제함)와 인정(관용을 베풂): 형님들을 보면서 감정을 억제하기 어려웠다(24). 그러면서 도 자신을 그렇게 매정하게 팔아버린 형님에 대한 원한보다는 알게 모르게 인정을 베풀고 있다. 길 양식까지 주어가면서. 곡식 값을 도로 집어넣는 것은 무슨 생각일까? 그런 면이 하나님에게는 공의 와 사랑으로 나타난다. 12. 요셉은 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가? 단순하게 형을 애먹이려는 것은 아닐텐데? 좀 더 알아봐야 할 것이 있었을 것이다. 고향의 소식도 물어봐야겠고 동생을 팔아버린 것에 대해서 어떻게 반성하고 있는지, 등등. 이런 과정에서 누가 더 답답했을까? 갇힌 형들도 답답하겠지만 가둔 동생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맹세를 어기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18).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신뢰할만한 사람이란 뜻으로 하는 말이다. 13. 갇힌 형과 가둔 동생 중에 누가 더 답답한가(18)? 가둔 동생이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니까 더 답답한 셈이다. 스스로 맹세를 어기고 이실직고하니까. 해결책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 더 답답한 법이다. 갇힌 형들이야 대책이 없으니 답답지만 어쩔 수 없는 상태이고 명의 형님들 중에 하필이면 시므온을 결박하여 가두어 둔 이유를 생각해 보자. 아마도 요셉 을 죽이자고 한 주동 인물이 시므온일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를 설명해 보자. 난폭(세겜성 사건의 주동자) 르우벤을 제외하면 최고참 15. 곡식을 사러 갔는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계속 터지니 형님들은 죽을 지경이었다. 1) 어떤 이 상한 일이 계속 발생하는가? 2) 그 원인을 어디서 찾고 있는가? 1) 총리란 사람이 친히 나타나서 심문하는 일, 느닷없이 정탐꾼이라고 가두어 버림, 아우를 데려오 라는 것, 자루 속에 돈이 그대로 들어있는 것. 2) 20여 년 전에 동생을 팔아 버린 것. 16. 자루를 열었는데 곡식값이 그대로 들어있다. 그런데 혼이 나는가? 두려울 때는 사소한 일이 생겨도 놀라는 법이다: 그만큼 두려움에 잡혀 있었다는 뜻이다. 간첩혐의 를 간신히 벗어나려는 참에 도둑으로 몰릴 판이다. 17. 하나님이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 일을 행하셨는고(28)?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대답하실까? 요 앙큼한 자식들! 동생 팔아먹을 때는 하나님이 생각나지 않다가 자기들에게 위험이 닥치니까 하 나님이 생각나더란 말이지? 18. 야곱이 르우벤의 청을 듣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당분간 버틸 곡식이 있으니까. 베냐민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일찍 죽은 첫 부인과 요셉에 대한 미련까지 포함. 옛 일(빌하와 통간, 요셉을 잃어버림)을 생각하면 맏이가 미덥지 않음: 성적인 범죄 한번으로 모든 명성과 명예를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일은 흔하다. 그런 죄를 저지른 사람이 실제로 책임감도 없고 사악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모든 장점들을 한꺼번에 매장시켜버릴 힘이 있는 것이 바로 성적인 범죄다. 19. 르우벤은 아비에게 왜 이렇게 험한 말로 간청하는 것일까? 자식의 생사권을 아버지가 가지고 있었던 고대인들의 사고를 반영한 것(소돔에서 롯이 한 말, 드라 빔 사건 때 야곱이 한 말). 자신의 발언권이 약화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권위가 없고 근거가 없을수록 발언이 강해지고 목 소리가 커진다. 실수도 많았지만 다른 형제에 대한 맏이로서의 책임감도 있었다. 요셉을 살리자고 했던 것처럼

137 창세기 성경공부 :1~34 창세기 43 장 1. 어른이라고 꾸중할 일도 아닌데 꾸중을 막 하는 수도 가끔 있다. 야곱이 하도 답답해서 지나가 는 말로 꾸중처럼 해본 말은? 너희가 어찌하여 오히려 너희에게 아우가 있다고 하여...(6): 어려운 일이지만 가르치는 자나 부모 는 꾸중과 칭찬에 있어서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기분에 따라서 정도가 심해지면 안 된다. 답답하다 고 엉뚱한 사람에게 분풀이해서는 안 된다. 2. 아버지의 이 얼토당토않은 꾸중에 대하여 누가 대답을 했으며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간단히 한다면? 아들들 전부, 누가 그럴 줄 알았나요?: 유다가 혼자 대답한 것이 아니다(7). 아버지가 답답한 소리를 하니 아들들이 데모를 한 모양이다. 격해지는 분위기를 아마도 유다가 가라앉히고 다시 설득을 계 속한 것 같다. 3. 르우벤 대신에 유다가 나서서 아버지를 설득하는 장면을 잘 보면 이건 일종의 ( 다 혼자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이 합세해서 덤비는 형국이다(7). )이다. 유 협박, 혹은 공갈: 자식에게 이런 협박을 받는 아버지의 마음은 아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곱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4. 왜 4번 째 아들 유다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지 생각해보자. 1남 르우벤: 빌하와 간통, 1차 간청에서 실패, 2남 시므온: 애굽에 억류, 3남 레위: 세겜성의 학살사건의 주동자 5. 그래도 야곱이 유다의 말을 듣고 따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그 외에 다른 이 유는 없을까? 근 20년 넘게 집을 나가 있다고 엄청난 아픔을 안고 돌아온 아들이다(38). 이런 아들의 말은 함부로 거절하기 쉽지 않다. 6. 살아남기 위하여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알게 되자 야곱은 다시 자기 특유의 머리를 굴리기 시 작한다. 그것이 일을 해결하는 데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 전혀 소용이 없었음: 형을 만나기 전에, 삼촌 집을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방법과 문제해결과 는 전혀 상관이 없다. 결과를 아는 우리가 볼 때 야곱의 안타까움과 잔머리 굴리는 노력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야곱아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온갖 노력이 다 허사란다. 그런 후에 은근슬쩍 하나 님을 언급하는 것(14)도 그의 특기다. 우리도 이런 머리 굴리며 살지 않는가! 현실보다는 현실 너머 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있는 요셉의 고백과 비교해보라(45:5). 7. 자신의 경험과 지혜로 준비를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와 다른 어떤 면이 있는가? 14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 답답해지면 하나님을 찾기는 찾는데 완전하게 의지하는 것은 아닌 이런 어정쩡한 상태가 거의 대부분의 우리 모습 아닌가? 8. 야곱은 자기를 믿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가 의지하고 소중히 여긴 것을 포기하는 것이 바른 자세이다. 야곱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완전히 포기했을 때 비로소 야곱은 자유로워 질 수 있었다. 1) 야곱이 마지막으로 포기한 것은 무 엇일까? 끝까지 놓지 않으려 한 것이 무엇인가? 어떤 각오를 하면서 포기했는가? 2) 야곱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냄으로서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2번 질문은 문제만 기억하 고 45장에서 답할 것)? 그 만족감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베냐민(잃으면 잃으리로다. 14): 가장 사랑했던 여인 라헬을 먼저 잃었고, 그녀가 나은 요셉이 죽은 것을 생각하면, 그녀가 죽으면서 낳은 아들 베냐민을 포기하기란 죽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죽으 면 죽으리라의 원조는 야곱이다. 에스더가 더 유명해졌지만 이런 결단(어쩔 수 없는 결단이겠지만) 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야곱의 아픔을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 9. 자식을 잃어버린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야곱의 아픔을 보면서 어렴풋이 짐작을 할 수 있다. 남을 속이면서 살아온 그가 자식들에게 속임을 당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自業自得이며, 自繩自縛 이다. 반면에 야곱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비례하여 커지는 것이 무엇일까? 아버지의 고통을 지켜보고 있는 요셉의 형들의 찔림: 동생을 팔아먹은 일을 비밀로 한지 벌써 20여 년이 지났고, 형들은 모두가 공범인 채 비밀을 지켜왔다. 아버지가 요셉의 죽음 때문에 고통당하는 것을 다시 보면서 형들이 얼마나 죄책감에 사로잡혔을까? 10. 야곱과 그 아들들이 곡식을 사러 가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들의 고통 스러운 점을 뒤에서 서로의 패를 다 읽은 노름판 구경꾼의 입장 에서 설명해보자

138 창세기 성경공부 :1~34 실제로는 전혀 고민하거나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냥 가면 될텐데... 우리의 삶도 이들처럼 도무지 걱정하거나 염려할 문제가 아닌데 엉뚱한 것에 속아서 앓고 있지는 않을까? :21에는 자신들의 결백을 밝히느라고 과장된 점이 있다. 사실과 약간 다른 점은? 실제로는 한 사람의 자루만 풀었다(42:27). 물론 그 이후 다들 자기 자루를 풀고 확인해 보았을 수도 있긴 하지만. 12. 요셉이 청지기에게 이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인도하고 음식을 준비하라고 시키고 자기 집으 로 인도하는데 형들이 왜 두려워하는가? 양식 사러온 자기들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니까. 다른 용무가 있을 리 만무하므로 양식을 주어서 보 내주는 일 이외에는 모든 일이 다 불안하다. 더구나 총리가 청지기에게 시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니까. 13. 베냐민을 바라보고 요셉이 묻는 말 속에 정이 넘쳐흐른다.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 금 요셉의 나이는 39세이다. 팔려올 때 베냐민의 나이는 얼마였을까? (참고로 다른 모든 형제는 하 란에서 태어났으며 하란에서 돌아와서 세겜성 사건이 일어날 때만 해도 10여년 정도가 지났으며 베냐민은 그 후에 태어났다) 한 살 정도 아니면 조금 더: 이렇게 어린 동생과 헤어져 청년이 되어 나타나도 애틋한 정이 넘칠 까? 14. 長幼의 次序대로 를 쉬운 말로 고쳐 보세요. 나이 순으로. 15. 하나님의 백성인 야곱의 아들들보다 요셉의 청지기가 더 신앙적인 것 같다. 우째 이런 일이? 요셉의 영향력: 윗사람이 선한 모습을 보인다면 아랫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는 대단히 쉽다. 그런 면에서 신앙이 좋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자리에 앉는 것은 좋은 일이다. 16. 시므온이 갇혀 지낸 날 수가 적어도 몇 달은 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 동안 진짜 죄수 취급을 받았을까? 아니면 특별대우를 받았을까? 미리 시므온을 그 형제와 만나 게 하는 의도도 생각해보자. 1) 지체하지 않았으면 두 번 갔다 왔을 것이라고 함. 편도 열흘 정도의 거리이지만 사간 곡식을 다 먹었을 정도의 시간이라면 그리 짧지는 않았을 것이다. 2) 특별대우를 받았을 것이고, 형제들을 만나자마자 해를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을 것이 다. 형제들이 위로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17. 지금까지의 일이 한 개인의 가정 이야기인 것처럼 기록되었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에 의한 것이었음이 차츰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야곱이라는 한 개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관련된 일이라는 뜻에서 본 장에서부터 생겨난 작은 변화가 있다면? 43장부터 이스라엘이란 이름이 사용됨: 야곱이란 이름과 이스라엘이란 이름의 차이는? 야곱이란 이 름은 인간적인 측면을 나타내고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하나님과 관계된 측면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베냐민을 보내는 데서부터 하나님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18. 눈치 빠른 형이 있었더라면 총리라는 사람의 이상한 행동에서 그가 요셉인 것을 발견할 수 있 지 않았을까? 어떤 점이 그런가? 집으로 인도되는 것(17),청지기의 친절(23), 시므온의 구금생활에 대한 보고(짐작이긴 하지만 죄수 취급을 받지는 않았을 것), 융숭한 대접, 아버지의 안부를 물으면서 어머니의 안부는 묻지 않음, 베냐민에게 한 마디 하더니 급히 나간 점(30, 42:24에서도), 형제의 서열을 알고 있는 것(33), 베냐민에게 오배나 식물을 더 준 것(34), 처음에 정탐꾼으로 몰렸다가 전부가 갇혔을 때 사흘 뒤에 한 사람만 남고 돌아가라고 선처를 베푼 일(42:18). 19. 그런데 도대체 형들이 전혀 낌새를 채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요셉이 살아있으리라고는 상상조 차 못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이 총리라는 사람의 이상한 행동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44장 에 나오는 어떤 말 때문일 것이다. 점 잘 치는 사람(44:5, 15) 20. 형들이 동생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예수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 보아도 알지 못 하고 함께 식사하며 즐거워해도 정체를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없는 모습과 흡

139 창세기 성경공부 :1~34 사하다. 어떻게 해야 그가 자기들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가? 자신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야: 그래서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 시하셔야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있다. 그 계시의 하이라이트(특별계시)가 바로 성경이다. 차착(差錯): 착각, 실수, 빠트림 본수(本數): 본래 숫자대로 (여기서 숙제: 44장부터 끝까지 쉬지 말고 읽어서 눈물이 나는 곳 찾기, 그런 다음 의견을 나누어 볼 것, 아주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40 창세기 성경공부 :1~34 창세기 44 장 (전장의 숙제를 가지고 의견을 나눈 후에 시작할 것) 1. 요셉이 베냐민을 표나게 대우하고 있다는 것을 형들이 알아차렸더라면 마음 고생을 덜 했을 수 도 있었을 것이다. 베냐민을 특별하게 대우하고 있음을 청지기가 알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면? 베냐민을 가리켜 요셉이 그 소년이라고 말한 점(2): 청지기에게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주인의 마음 이 그 소년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면 형들도 낌새를 챌 수 있었을 것이다. 워낙 정신 이 없어서?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서 그러지 못했을까? 2. 도적질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형님들이 우선 제시한 증거는? 지난 번의 곡식값도 도로 가져 왔는데 어떻게 도적질을 했겠는가(8)! 3. 만약 형제간에 조금이라도 우애가 부족하다면 서로 갈라질 수 있는 유혹의 말은? 그것이 뉘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우리 종이 될 것이요 너희에게는 책망이 없으리라(10): 이 청지기 의 말은 형들이 예상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관대한 것이다. 종들 중 뉘게서 발견되든 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우리 주의 종이 되리이다(9).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도적질한 자만 종 이 되면 된다. 이렇게 관대한 법이 다 있나? 일행 중에 한 사람이 도적이면 나머지도 책임을 연대 하여 지는 것이 당연함에도 나머지는 돌아가라는 것이다. 4. 형님들은 자신이 있었다. 우리는 결코 도적질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런 짓을 하 는 사람이 아니니까(7). 그러나 세상일이 자기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만 깨끗하다고 되 는 게 아니란 사실을 어디서 깨닫게 되는가? 첫째 자루를 풀었을 때(12): 베냐민의 자루가 아니라 첫째 자루에서 경악했을 것이다. 자루를 풀 때 마다 꼼짝없이 도둑으로 몰릴 수밖에 없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은잔이 나온 것 이다. 세상일은 자신만 깨끗하다고 해서 깨끗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모함, 제도 적인 결함으로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쓸 수도 있다. 인간 세상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가장 근본적인 처방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의지하는 것이지만 개인적으로도 좀 현명하게 처신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오미자 맛과 같다고 할까? 단 맛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맛이 섞여 있 다. 신듯하면서 달고, 단듯하면서 신, 묘한 맛이 신앙생활이다.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수고와 평 화와 안식을 이라는 복음송 가사는 정말 신앙생활의 맛을 잘 표현한 것이다. 아픔은 없어야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은 어린 아이가 하는 생각이다. 5. 동생을 팔아먹고(37장) 온갖 망신스러운 일을 당했든(38장) 유다가 이번에는 아버지를 설득하고 (43장) 여행을 주도하고 있다. 위기의 때에도 유다가 형제들을 이끌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장차 이 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지파가 될 것을 예고하는 듯한 표현을 찾아보시오. 유다와 그 형제들(14): 영웅은 난세에 난다던가? 어려운 때에 앞장서서 어려움을 돌파하는 자가 위 대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교회든 개인적인 친목 단체든 이런 사람이 꼭 필요하다. 조금 어려워 지면 눈치껏 빠져나가는 사람이 단기전에는 승리할 수 있어도 인생이라는 장기전에서는 결코 승리 하지 못한다. 안디옥 교회가 파송한 선교단체 이름은 바나바와 사울 이었다. 그러나 곧 바울과 동 행하는 사람들 이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역할 때문이다 절에서 요셉과 형님들 중에 누가 어떻게 놀랐을지 생각해 보자. 요셉: 어? 형님들이 다 따라왔네! 당연히 베냐민만 잡혀올 것을 예상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 마 변해버린 형님들의 태도에 요셉이 더 놀랐을 것이다. 형님들: 어? 근무중일 텐데 왜 집에 있지? 왜 집으로 잡아가지? 7. 요셉이 어떤 의도로 자신의 신분을 감춘 채 형님들에게 자꾸 애를 먹였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베냐민만 따로 만나고 싶어서? 형님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고 싶어서?) 결과적으로는 좋은 결과 를 가져왔다. 형님들이 옛날에 비해서 많이 변했음을 보여주는 극적인 장면을 찾아보자. 예전에는 동생을 죽이려다가 팔아먹은 형님들이었지만, 지금은 베냐민 하나를 위해서 모든 형들이 함께 죽을지도 모르는 애굽으로 돌아가는 모습(13, 16). 8. 눈치도 없는 자식(형님)들! 그냥 베냐민만 남겨 놓고 돌아가라면 돌아갈 일이지! 어째 저렇게 말 끼(말귀)를 못 알아챌까? 이것이 요셉의 심정이었을지 모른다. 형들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동생만 그럴듯한 핑계로 붙들어 두었다가 반가운 해후를 맛볼 심산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형들의 입장은 어떤가? 아비의 생사가 달린 문제이며 동시에 자신들의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요셉의 입장에서 보 면 예전에 자기를 팔아버렸던 형들이 많이 변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때의 요셉 대신 에 베냐민을 그 역을 맡았지만 형들의 태도는 전혀 달랐다

141 창세기 성경공부 :1~34 9. 다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유다의 마음은 어떨까?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죽기를 각오하고 한 말씀만 더 드리려는 것이다. 이래서 살아난다. 10. 유다는 베냐민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았다. 길고 긴 변명을 늘어놓는 유다의 모습을 예전에 요셉을 죽이기보다는 팔아버리자고 했던 일과 그 이후 자기 가정에 닥친 불행한 모습과 비교해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시련을 겪으면서 철이 많이 들었다. 11. 유다의 긴 이야기는 구구절절이 요셉의 마음을 후벼 팠을 것이다. 어쨌거나 유다의 결론은 베 냐민을 돌려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요셉에게 결정적으로 먹혀들어간 이유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아이의 생명과 아버지의 생명이 연계되어 있다는 것. 12. 요셉은 유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흥분을 억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요셉이 흥분 가운데서 받 은 작은 충격은 몇 절이며 진짜 강한 충격은 몇 절에서 받았을까? 20절 그의 형은 죽고, 28절 아버지가 자신의 죽음을 언급하는 대목: 자신의 이야기가 언급될 때 충 격을 받았을 것이다. 13. 옛적에 요셉이 꿈 이야기를 했을 때 형님들이 분을 내면서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 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42:21)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본문에서 찾아보시오. 다 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16c, 18, 33). 14. 유다의 변명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을 찾아보자. 33절: 자신을 희생시키려는 모습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15. 참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서 형제가 극적으로 재회했건만 요셉은 형들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래서 요셉은 자신의 감정을 감추느라고 무진 애를 쓰고 형님들은 두려움과 고 통을 느낀다. 유다의 말을 듣고는 요셉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자신을 드러내고 마는데(45장) 형 제간에 막혀있는 이런 담이 어떻게 무너지는가? 무엇이 확인되면서 무너지는가? 형제간에 대한 사랑이 있음을, 동생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있음을 확인하고서, 옛날의 그 형들이 아님을 확인하고서. 16. 요셉과 그 형제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엄청난 충격과 감격에 사로잡혀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 는 이 일은 누구의 얘기인가? 야곱의 이야기(37:2): 단순히 형제들의 이야기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그 순간에도 가나안 한 쪽 병석에서 피를 말리고 있는 야곱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동시: As morning dawned (아침 햇살이 비칠 때) 수탐(搜探): 조사하여 밝혀냄

142 창세기 성경공부 :1~28 창세기 45 장 1. 울음 소리가 얼마나 컸으면 바로의 궁궐에서도 들렸을까? 소리가 컸다는 뜻이 아니라, 하도 심하게 우니 보고가 들어갔다는 뜻: 우는 것까지 시시콜콜하게 다 보고하는가? 애굽인들이 보기에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2. 그 동안 울음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애굽인 시종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물리치 고 난 후에야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이란 것도 누군가가 계기를 만들어 주어야 제대로 터진다. 울 고 싶은데 빰 맞은 격이라는 속담이 바로 그것이다. 반대로 그런 계기가 전혀 없으면 끝까지 울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럴 수도 있다: 울음이 터지기 전까지는 스스로 그렇게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터지고 나면 스스로 조절이 되지 않는다. 이런 유형의 것이 우리 삶에 더러 있으므로 그 시기를 잘 조절할 필요 가 있다. 가령, 사랑 고백이 그렇다. 속에 묻어 두고 있을 때는 내가 주인이 되어 속도를 조절할 수 있지만 일단 뱉어버리면 더 이상 내가 주인이 되지 못하고 그 말에 끌려다니게 된다. 감정, 말, 자 존심과 관련되어 이런 현상이 많이 발생한다. 3. 유다가 간절한 마음으로 사정을 얘기하는 동안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마음 졸이던 형님들 에게 갑자기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다. 세 가지 이유를 찾아보자. 총리가 통곡하다시피 우는 것, 히브리말이 튀어 나온 것, 나는 요셉이라는 말: 통곡소리에 영문을 알지 못하는 판에 형님들 이라는 히브리말이 튀어나왔을 것이고 곧 이어 나는 당신들의 동생 요셉 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그랬을 것이다. 순식간에 쓰나미가 세 번 때린 셈이다. 형님들 머릿 속에는 죽었다 이 생각 외에는 없었을 것이다. 4. 요셉의 방성대곡은 그가 국무총리의 자리에서 야곱의 11번째 아들로 돌아갔음을 의미한다. 그래 서 그 노인 이 변하여 ( )가 된다. 내 아버지 5. 요셉이 어느 때에 하나님의 섭리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는지 분명치 않으나 이 때까지 겪은 말할 수 없는 고초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라는 확신을 보여 줌과 동시에 형님들 의 죄를 전혀 죄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요셉의 말은 무엇이며 언제 형님들을 전부 용서할 마음이 생겼을까?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하나님이시라(8): 형님들이 나를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 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라는 고백. 베냐민을 살리기 위하여 형들이 한 마음으로 뭉친 것을 확인했을 때 (베냐민만 데려오라고 했음에 도 형들이 줄줄이 따라온 것과 유다의 설명을 들으면서): 요셉이 정작 궁금했던 것은 아버지와 베냐 민의 안부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알아보려고 이런 저런 일을 벌였는데 결과적으로 형들의 변화(형 제애, 회개함)를 확인케 되었다. 6.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하나님이시라. 이 말에 따르면 형님들이 동생을 팔아버린 것이 전혀 죄 가 아닌가? 형님들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일을 이렇게 만드신 것일 뿐 형님들의 죄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요셉의 입장에서 형님들을 모두 용서하겠다는 말이다. 형님들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게 된 것은 그럼에도 선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고 부수적이지만 형들의 변화 때문이다. 7. 요셉이 자신을 가리켜 바로의 아비 라고 말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 문자 그대로 바로의 아버지 라는 뜻은 아니다. 무슨 의미인가? 실제로 그만한 권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병렬구에 그 온 집의 주, 애굽 온 땅의 치리자 (8)와 같은 의미이다. 8. 요셉의 말을 다 듣고 난 후, 요셉이 베냐민을 안고 울면서 드디어 형님들도 말을 하기 시작했 다. 여러분이 요셉의 형이라고 한다면 요셉에게 첫말을 어떻게 했을까? 정말 미안하다 는 말 외에 다른 말은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마 첫 마디가 엄청나게 어려웠을 것이다. 현장에 없었던 르우벤이 가장 쉬웠을까? 아니면 유다가 쉬웠을까? 아무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요셉의 긴 말(4-15)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9. 아버지를 모시고 오라는 요셉의 말과 베냐민마저 잃어버릴까 안절부절하고 있는 야곱의 현실을 비교해보자. 야곱에게 엄청난 복이 준비되고 있음에도 걱정과 근심에 잡혀 병석에 누워있다: 우리 삶에는 이런 일이 없을까? 실제로 참으로 행복해야할 사람이 이런 걱정에 빠진 경우는 없을까? 눈을 조금만 넓 게 열면 엄청난 행복이 우리를 감싸고 있음을 볼 수 있을텐데. 아람군대는 보고 하나님의 군대를 보지 못하는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바로 그렇다. 반대로 바울은 보이지 않는 장차 나타날 영광을

143 창세기 성경공부 :1~28 미리 보는 바람에 세상의 아픔이 아픔으로 보이지 않았다. 10. 요셉은 자신을 온 세상을 다스리는 애굽의 총리로 보는가 아니면 가나안땅 야곱의 아들로서 잠시 타향에 일이 있어서 온 사람으로 보는가?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내게로 지체말고 내려오사(9): 내려가서 올라오라가 아니고 올라가서 내려오 라고 말하는 것에서 요셉은 자기 삶의 중심이 가나안임을 잊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삶 의 중심은 이 땅인가? 하늘나라인가? 이 땅에서 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곳이 천국인 가? 아니면 천국에서 이 곳으로 잠시 유배(?)를 왔는가? 아니면 잠시 훈련을 받고 돌아가야 하는 훈 련소인가? 11. 지금까지 시치미를 떼고 형님들을 닦달 했지만 속마음은 상당히 다급했음을 알 수 있는 말이 두 군데 있다면? 지체말고(9), 속히(9, 13) 12. 요셉의 처사가 얼마나 이뻤으면 바로가 요셉의 형들이 왔음을 이토록 기뻐했을까! 바로 뿐만 아니라 신하들마저 기뻐했음을 알 수 있다. 히브리 노예 출신이라고 천대받지 아니하고 그의 가족 을 진심으로 환대하는 그들을 보면서 우리가 불신자들에게 어떠해야 할지 생각해보자. 그리스도인들이 입만 까져서 비난을 받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교회에서는 유능할지 몰라도 직장에 서 유능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개선해야 할 점이다. 직장에서 맡겨진 일에도 전심으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 일이 우선이라는 핑계로 직장 일이나 직장동료들에게 적대감을 가지는 것은 결 코 옳은 일이 아니다. 순교자적인 정신으로 현명하게 노력해야 한다. 총리가 된지 7년째임에도 시기 와 질투보다는 개인적인 행복을 함께 기뻐하는 동료들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한다. 13. 바로의 말 중에 너희 기구를 아끼지 말라 는 뜻은(20)? 수레는 요즘 표현으로 바꾸면? 다 버리고 오라. 필요한 것은 다 제공할 테니까. 자가용을 공짜로 제공하는 셈이다. 14. 애굽으로 올 때 특별히 가지고 온 물건이 유향, 꿀, 향품, 몰약, 계자, 파단행, 배나 되는 돈이 다. 내려갈 때는 이것이 어떻게 변했는가? 수레(자가용), 길양식(보너스), 옷 15벌(엄청나게 귀한 것, 출애굽시에는 한 벌로 40년간 입었다. 지금 처럼 자주 바꾸는 것이 아니다), 은 300(요셉같은 종을 15명 살 수 있는 액수), 수나귀 열 필에 실은 물품(도로 가져와야 할 건데 뭣하러 보내나?), 암나귀 열 필에 곡식과 떡과 양식(애굽으로 올 때 먹 을 것)을 실었다: 싣고 갔다가 바로 내려와야 할지언정 내려가는 과정에서 형님들이 기분과 그것을 보고 힘을 낼 부친을 생각하면 이성적인 계산보다는 감정을 더 중요시하는 것이 옳다. 인간관계도 계산이 너무 앞서면 메마르다. 돈 없는 가장에게 아내가 분위기에 약한 것이 얼마나 좋은가? 15.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형들이 행렬이 이전에 비하여 대단히 화려해졌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무 엇일까? 나귀에 자루를 싣고 가던 행렬이 수레를 끌고 가는 행렬로 바뀜 (손수레 끌고 가던 모습에서 자가 용 트럭을 몰고 가는 모습으로) 16. 형들을 돌려보내면서 노중에서 다투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 요셉이 무엇을 예상하고 형들이 노 중에서 다투지 말라고 당부하는가? 동생을 팔아버린 일에 대해서, 아버지에게 고백해야 하는 일 17. 야곱이 모든 것, 베냐민마저 포기하고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냈을 때(43장에서)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그 만족감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완벽한 만족감, 잃어버릴까 두려워했던 아들뿐만 아니라 죽은 아들이 총리가 되어 나타남(족하도다) 아브라함이 바친 이삭(온 민족의 조상), 죽으면 죽으리라. 18. 다음 장에 보면 야곱은 애굽으로 가는 일을 두렵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쉽게 자리 를 털고 일어나 애굽으로 향한다. 왜 그랬을까? 어떤 위험성이 있을까? (46장의 1, 2번 질문을 참고 할 것)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가나안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보다 잃어버렸던 아들을 만날 수 있다는 인간적인 생각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렸을 것: 일시적인 흥분이나 감격으로 말미암아 하나 님의 뜻과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험 애굽으로 향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물었더라 면 노중에서 갈등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 19. 아버지는 여전히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은 줄로 알고 있는데 요셉을 만나게 되면 형들이 요 셉을 팔아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형님들은 사실을 고백하고 아버지께 용서를 빌어 야 한다. 어느 때 고백하는 것이 가장 유리할까? (정답없음)

144 창세기 성경공부 :1~34 창세기 46 장 1. 비록 흉년으로 어쩔 수 없고, 또 보고 싶은 요셉이 있다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머 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뒤늦게나마 기억했을 것이며 쉽게 거역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도중 에 어디에, 왜 들렀을까? 브엘세바: 조상들이 오랫동안 머물며 하나님을 섬겼던 곳. 뒤늦게나마 하나님의 뜻을 물었거나 작 별인사를 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 옛날 외삼촌 집으로 홀로 떠날 때 할아버지의 하나님에 대한 추억으로 벧엘을 찾았다가 뜻밖에 놀라운 복을 받았던 그 생각으로 아버지의 하나님에 대한 추억 이 담긴 브엘세바를 찾았을 것이다. 2. 흉년이 닥쳤을 때 아브라함과 이삭은 가나안 땅을 떠나서 애굽으로 갔다가 큰 시험에 빠졌다. 아들이 애굽의 총리로 있으면서 초청장을 보냈는데 야곱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은 어떠했는가? 야곱은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했으나(3) 하나님께서는 가라고 하심: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 의 생각을 넘어간다. 다리오 왕은 자신이 한 번 공포한 법령 때문에 자신의 뜻에 반하여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지고 만다. 자신의 법에 자신의 묶여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먹으라고 하는 것을 먹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내가 정하다고 하는 것을 네가 부정하다고 하지말라 는 말씀을 듣게 된다. 정해진 율법에 매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에 따라 얼마든지 수정(?) 변경 (?)이 가능한 분이시다.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는 주관자시다. 율법을 주셨다가도 때가 되면 새롭게 변경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가나안을 떠나지 말라고 하실 수도 있고, 떠나라고 말하실 수도 있는 분이시다. 3. 영어로 출석을 부를 때 대답 중에 Yes, sir. 는 괜찮은데 Here, I am. 은 어딘가 어색하다고 느꼈 다. 아마 그것도 성경에서 유래된 표현인가 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2절). 4.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왜 너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네 아비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가? 야곱이 그렇게 부르지 않으니까: 스스로 그렇게 부를 때까지 기다리신다. 내가 너의 하나님이라고 강요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도, 믿음도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다. 야곱의 형편을 잘 아 시면서 묵묵히 그가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때까지 아비의 하나님으로 행세하시면서 그를 돌보고 계시는 것이다.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야곱이 얼마나 섭섭했을까? 구약의 하나님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마구 심판하고 징계하시는 분이신가? 아니면 해도해 도 안 되니까 마지못해 심판하시는 분이신가? 홍수 심판을 120년간 미루었고(?창 6:3), 홍수 후에도 어릴 때부터 악한 인간이지만 다시는 심판을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하신 분이시다(창 8:21). 특 히, 역사서나 선지서가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은 끝까지 참고 인내하시며, 결국 심판을 행 하더라도 다시 회복의 길을 보여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무엇으로 세상을 정복하는가? 공갈? 협박? 오직 사랑으로 세상을 이기신 분이시다. 그런 하나님과 예수를 믿는 자들 중에는 공갈 협박을 무기로 삼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스스로 나의 하 나님이라고 부를 때까지 함께 동행하며 온갖 어려움을 다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나의 하나님이란 고백을 빨리 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내로 기다리시는데 우리는 사람을 너무 빨리 고치려든다. 버릇을 고치려드는 것 이나 남편이나 아내의 기를 잡으려드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하나님도 함부로 하지 않는 일을... (그 럼 어쩌란 말이냐? 사랑으로! 인내로! 지혜로! 사람 고치는 일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자식 버릇 을 고치려고 하지도 말아야 하느냐? 부모가 직접 나서서 부작용이 생길 일이라면 적당히 다른 사 람, 가령, 선생님이나 아이의 선배, 친구를 통해서 접근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일 수 있다. 부모가 강압적이면 효과가 있어 보이지만 그만큼 역효과도 감수해야 한다) 5. 야곱은 결국 애굽에서 죽었다. 그렇다면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4) 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되었는가? 야곱 개인보다는 민족을 염두에 둔 말씀이다. 개인적으로도 장례는 가나안 땅에서 가장 화려하게 치뤄졌으니 이루어진 셈인가? 6. 요셉을 인도하셨고 모든 지역에 7년간의 풍년과 7년간의 흉년을 통하여 이렇게 일을 벌이신 하 나님께서 단순히 흉년을 피하도록 야곱의 가족을 애굽으로 보내시진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 씀 속에서 하나님의 의도를 찾는다면? 큰 민족을 이루게 하려하심(3): 애굽이라는 온실 속에서 번성케 하시고 출애굽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의 민족을 이루려고 하셨다. 중다한 잡족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함께 나왔는데 출애굽이 라는 놀라운 경험을 통해서 하나의 민족을 이루었다. 훗날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기억하면서 하나님 에 대한 믿음과 민족의식을 다지곤 한다. 7. 하나님은 저 높은 곳 위엄스런 보좌에 앉아 계셔야 어울리는 분이시다. 그런 하나님께서 야곱

145 창세기 성경공부 :1~34 을 위하여 어디까지 가시는가? 애굽으로(4): 애굽도 온갖 잡신이 들끓는 곳이다. 하나님께서 결코 가고 싶은 곳이 아니다. 오직 야 곱과 택한 그의 백성을 위하여 그리로 가신다.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그런 사랑을 받은 그 분의 백성이다. 8. 병석에 누워서 골골거리던 야곱에게 새로운 소망이 하나 생겼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별로 구미 가 당기지 않는, 특히 야곱에게 새로 생긴 멋진 소망이 무엇인가? 요셉이 자신의 눈을 감기는 것(4): 노인들에게는 사랑하는 자식이 임종을 지켜주는 것이 그렇게 든 든한 모양이다. 봐야 할 자식을 보지 못해서 차마 눈을 감지 못하는 경우도 있단다. 바로 그런 희망 으로 인해 씩씩하게 길을 떠나는 모습을 발행 (1, 5)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직후에도 그랬다. 9. 야곱의 가족 명단 70명에 죽은 사람의 이름도 나오는데 자신의 이름이 나오지 않아서 섭섭하게 여길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자부들 10. 야곱의 며느리들은 아마도 전통대로 고향의 여인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애굽으로 이주하는 가족의 명단을 자세히 보면 이 사실을 암시해 주는 구절이 있다. 찾아봅시다. 가나안 여인의 소생(10절), 애굽인(20절): 모든 며느리들이 밧단아람에서 왔는지 여부는 알기 어렵지 만 가나안 여인이나 애굽인을 확실하게 밝히는 것은 나머지 여인들은 그렇지 아니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11. 애굽으로 이주하는 가족의 명단 중에서 가장 치욕적이거나 수치스러움이 생각나는 사람이 있 다면 누구인가? 엘, 오난, 베레스와 세라: 유다라고 하기에는 앞으로 유다가 너무나 중요한 일을 감당하게 되기 때 문에 좀 곤란하고 그 아들들이 하나같이 부끄러운 기록을 가지고 있다. 죽은 자식이라도 좀 지우 지! 디나는 정답에서 제외하는 것이 옳다. 그릇된 정조관념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폭력의 희생자였 음에도 부끄럽게 여기고 멸시를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힘이 없어서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을 뿐 이다. 그런 폭력 앞에 인생을 포기하거나 스스로 무너지는 것은 그릇된 인식의 포로일 뿐이다. 12. 이 가족들은 어떤 기준으로 분류되어 있는가? 모계에 따라 (15, 18, 22, 75) 13. 애굽으로 이주하는 야곱의 가족 명단을 자세히 살펴본다는 것은 재미없는 일이기도 하고 자세 하게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어려운 것은 접어두고 간단한 질문 한 가지, 야곱의 12아들 중에서 자 식이 제일 많은 아들은 누구일까? 왜 그럴까? 베냐민: 나이가 제일 어린 베냐민이 자식이 제일 많다는 것은 그만큼 야곱이 고통스러웠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겠다. 가장 사랑했던 라헬을 일찍 잃어버렸고 요셉마저 잃어버렸으니 어떤 강박관념에 잡혀서 베냐민을 아주 일찍 장가보내고 자식을 많이 보게 하지 않았을까?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부인을 여러 명 두었을까? 14.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으로 가게 된다는 사실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예고 된 일이다. 그 내용이 어디에 있는 지 찾아보자. 창 15:13-17: 어느 날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때 고통을 겪은 것마저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다. 적어도 수 백년 전에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15.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으로 가게 되리라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 말씀하셨다. 그러나 함과 이삭은 애굽으로 내려가는 일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야곱이 애굽으로 가는 것을 을 것이다. 반면에 야곱에게는 오히려 걱정하지 말고 가라하시고 심지어 함께 갔다가 함께 겠다고까지 약속해 주셨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우리의 의사 결정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가? 하나님의 뜻: 사람은 뭐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 채 이끌려 가고 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품임을 잘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누구는 가지 않으려 해도 친히 격려하시면서까지 가라고 하시는 것이다. 는 삶이어야 한다. 바로 그 때에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는 기쁨이 아브라 주저했 돌아오 무엇인 있다는 것은 성경이 인간의 작품 애굽으로 가면 안 되는데 누구는 우리의 평생은 이것을 찾으며 사 주어진다. 16. 아브라함과 이삭의 때에는 자식 낳기가 그렇게도 어려웠는데 이제는 약속대로 후손을 번창케 하시려는데 자식이 많은들 애먹이는 자식만 많으면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한 때도 많다. 애굽이라는 온실 속에서 후손을 번성케하되 애굽의 우상 숭배나 가증스런 것을 이스라엘이 배우지 않게 격리 시켜 두시려는 방법이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업(애굽인이 가증스럽게 여기므로 섞이지 아니함): 요셉은 자기 형제들의 업을 바로 앞

146 창세기 성경공부 :1~34 에서 분명히 밝히도록 한다. 오늘날 신자들의 삶에서도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임을 분명하게 밝혀두고 사는 것이 피차간에 유익이 될 것이다. 어느 분의 성함이 요섭 이었는데 군에 가서 신앙 을 잠시 접어두고 멋대로 살다가 오리라고 마음 먹었는데 이름 때문에 고참들이 아예 예수쟁이 취 급을 해버리는 바람에 타락(?)도 제대로 못해봤단다. 유정란과 무정란이 구별되듯, 모래 속의 철분과 석영, 돌이 자석을 갖다대면 분리되듯이 그리스도인들은 구별된 사람이다. 이것이 거룩이다. 17. 유다는 형님들(르우벤, 시므온, 레위)을 제치고 큰 공적을 세운 셈이다. 나중에 더 큰 복을 받게 되지만 여기서도 일단 상을 받은 셈이다. 어떤 상을 받은 셈인가? 아버지의 신임(가족의 대표로서 선발대에 뽑힘) 18. 야곱의 생은 어떻게 보면 속이고 속는 것으로 점철되어 있다. 인간적인 온갖 수단을 총동원하 여 노력했으나 그로 인해 더욱 많이 속는 삶을 살게 된다. 야곱이 속은 일 중에 가장 크게 속은 일은 무엇일까?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있는 것 은 제대로 된 답이 아니다. 정확하고 구체적 으로 말해보자. 총리가 된 아들을 죽은 줄 알고 22년간 아파함: 17세 때 팔려가서 30세에 총리가 되고 7년 풍년, 2 년 흉년 후에 만났다. 아들들에게 속음, 살아있는데 죽은 줄로 아는 정도가 아니다. 당대 최고의 자 리에 앉아 있는 아들을 죽은 줄로 알고 정말 오랜 세월 가슴이 아팠다. 자신의 꾀와 노력으로 얻은 모든 것이 이 한 번의 속임과 비교하면 남는 것 없는 장사인 셈이다. 그러나 결국은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위대한 인생의 승리자가 된 것이 바로 야곱의 인생이다. 그가 위대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19. 야곱의 가족이 애굽에서 고센 땅에 거하게 된다. 이곳에 거하게 된 것은 누구의 생각인가? 요셉의 생각이다(45:10): 28절은 요셉의 생각에 대한 야곱의 동의인 셈이다. 왕의 허락을 구하기 전에 미리 고센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갔다. 먼 훗날의 장래사를 요셉이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참으로 신 비로운 일이다. 20. 고센 땅에서 드디어 요셉이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29). 요셉이 아버지에게 한 첫 마디는 무엇이 며 야곱은 요셉에게 무엇이라고 말했을까? 정답은 없으니 상상만 해보자. 요셉은 우는 것 외에 달리 할 말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야곱은, 요셉을 만나기 전에 형들이 이실직 고했다면 그 동안 고생 많이 했재? 만약 하지 않았다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아닐까? 21. 아마 실컷 울었을 것이다. 요셉이 울음을 그치고 정신을 차리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 가? 고센 땅에 거하도록 허락을 받기 위한 인터뷰 연습(31-34): 이게 그렇게도 급한 일이었을까? 처음부 터 요셉은 가족들이 이 곳에 거하게 하려고 작심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있으면서 봉양하기 좋은 땅이며, 애굽인과 구별될 곳(34), 먼 훗날 떠나기 좋은 땅이다(50:25). 이런 이유로 요셉은 아버지와 형들을 만나자 마자 바로에게 이 땅에 거주하도록 대답하는 방법을 연습시킨다. (더 연구할 문제) 가족명단 70명: 행 7:14에는 75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만약 요셉의 가족을 빼고(먼 저 가 있었으니) 며느리를 포함시키되 죽은 유다의 처(38:12)를 뺀다면 그렇게 된다. 70명은 직계가족 만을 가리킨다. 동행한 전체 일행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종이나 일꾼들, 딸린 사병들도 적지 않 았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318명의 사병을 거느리고 있었고, 바로가 아브라함에게 노비를 주기도 했 던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70이란 숫자: 언약의 성취를 보증하는 상징수다. 7이란 하나님의 완전수, 10은 애굽의 완전수(10가지 재앙은 완전한 심판)

147 창세기 성경공부 :1~31 창세기 47 장 1. 요셉의 낯을 보아서라도 바로가 야곱 가족의 청을 괄세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상당히 조심스럽게 요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단어를 하나 찾아보자. 우거(4), 종(3): 영원히 살려는 것이 아니라 기근을 피할 정도로만 거주하겠다는 의사표시이다. 그냥 잠시 신세를 좀 지려고 왔습니다 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다보니 조금만 신경쓰면 상대방의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음에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솔직하고 꾸밈 없는 자세도 좋지만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해서 의사를 표시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잠시 거하려고 왔다고 해놓고 400년이나 머물렀으니 거짓말한 것 아닌가? 거짓말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신세를 좀 지겠다는 것을 부드럽게 표현한 것이다. 형들 5인을 뽑아서 바로에게 보인 것도 아마 애굽인들이 좋아한 숫자가 5이었을지 모른다. 자신들을 가리켜 종이라고 한 것은 당연한 표현이고(3). 2. 요셉은 바로에게 대단히 조심스럽게 대하고 있었지만 실상 바로는 요셉의 가족에게 대단히 관 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그의 말은? (3가지)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6): 어디든지 마음대로 하란 뜻이다. 땅의 좋은 곳에 거하라(6): 좋은 땅에 거하라. 내 가축을 돌보라: 절대 권력자가 내 옆에서 심부름이나 좀 하렴 이러면 엄청난 영광이다. 아니, 어마어마한 권력이 주어지는 셈이다.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이런 일을 맡긴 것은 엄청난 호의이다. 포철 모 회장의 찬모 일을 본 어느 할머니는 포철의 과장 대우를 받았단다. 그 할머니가 많은 사람 을 취직시켜 주기도 했단다. 음식 잘하는 것도 권력인가? 바로의 가축을 돌보라? 어마어마한 권력을 얻은 셈이다. 3. 에서, 외삼촌, 르우벤, 시므온과 레위, 디나, 요셉, 베냐민 이들과 야곱과의 관계에서 나타난 야 곱의 생애를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자신의 표현은? 짧지만 험악한 세월: 험악한 세월이라고 답해도 되지만 야곱이 길게 말하는 것은 자신의 생애가 결 코 긴 것이 아니었음에도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는 것이다. 4. 야곱의 가족으로 애굽에서 요셉만이 권력을 누린 사람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한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자연스럽게 가까운 사람이 주변에 몰리는 것이 권력의 생리이다. 야곱의 가족이 한 때 무시 못할 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음을 짐작케 하는 말이 출 1:8 이다. 본문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날 조짐이 어디에 보이는가? 그들 중에 능한 자가 있는 줄을 알거든 그들로 나의 짐승을 주관하게 하라(6): 재산을 담당하는 관 리로 등용하라는 뜻인데 당연히 이런 저런 요직을 차지하게 된다. 출 1장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 이란 적어도 요셉이 죽고도 3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다음의 왕이다. 그 전의 왕들은 요셉을 잘 알았다? 요셉의 영향권 내에 있거나 호의적이거나 요셉의 후손들과 함께 권력을 누렸던 세력이었다 는 뜻이다. 5. 사도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이라는 당당한 권리가 있었으나 자신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말 하면서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았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이 약속을 받았으나 어떻게 보면 당대에 이루어진 것은 별로 없다. 현실에 안착하기보다는 이렇게 약속을 믿고 평생을 살았던 그 삶을 가장 잘 나타낸 표현은? 나그네 길: 돌아갈 본향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노랫말에도 같은 표현이 있으나(하숙생: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허무와 불확실성(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에 성경의 나그네와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우리가 나그네인 것은 가야할 본향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6. 야곱의 간이 많이 커진 모양이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바로에게 축복함(7, 10): 나이가 많다고 왕을 축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이 없이는 야곱이 무슨 주제에 바로에게 축복할 수 있단 말인가! 년이면 적은 나이가 아닌데 조상들이 비하면 얼마 못 된다. 어느 조상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일까? 홍수 이전의 오래 살았던 조상들도 포함되었을 것: 홍수 이후에 단계적으로 줄어든 나이를 생각하 고 있었어도 야곱의 나이는 결코 많은 것이 아니다. 8. 험악한 세월을 살았단다. 얼마나 험악한 세월이었는가?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집을 떠난 이후 지금까지 속고만 살았다. 외삼촌, 에서와 재회, 자식들의 속 임...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마지막 17년은 그야말로 평온한 삶을 살게 된다. 9. 야곱의 생애 중 고비 때마다 나이를 짐작할 수 있는 자료가 많다. 완벽하지 않아도 대충 산수 공부를 좀 해보자

148 창세기 성경공부 :1~31 ① 요셉이 바로 앞에 섰을 때의 나이는? (41:46) ② 요셉이 가족을 이주시켰을 때의 요셉과 야곱의 나이는? (45:6, 47:9) 낳았나? (야곱의 나이에서 요셉의 나이를 빼면 된다) 야곱은 몇 세 때에 요셉을 ③ 야곱이 요셉을 낳은 때는 그가 외삼촌 집에 머무른지 몇 년째인가? (30:25, 29:18, 21, 27, 30) ④ 그러면 외삼촌 집에 갈 때의 나이는? ⑤ 외삼촌 집에 머무른 기간은? (31:41) ⑥ 애굽에서 지낸 기간은? (47:28) ⑦ 야곱의 나이 147에서 ④⑤⑥을 빼고 남은 숫자는 얼마이며 이것은 무슨 기간인가? ① 30, ② 39, 130, 91, ③ 14, ④ 77, ⑤ 20, ⑥ 17, ⑦ 33(가나안=헤브론에 머문 기간): 외삼촌 댁으로 갈 때 나이가 77세면 너무 늙은 것 아닌가? 그 당시의 나이가 지금보다는 조금 더 길었던 것으로 보아서 혼기가 좀 지난 노총각 정도가 아니었을까? 에서가 40세에 결혼한 것을 보면 40세가 결혼 적령기였던 모양이다. 10. 양식이 떨어진 백성들이 먹고 살기 위하여 판 것을 순서대로 정리해보자. 이런 모습이 바로에 게는 어떤 결과를 가져다 주는가? 돈(14, 15) 가축(17) 토지, 몸(18, 19) 왕권 강화: 부의 집중보다는 결과적으로 왕권이 더욱 탄탄해지는 것이 바로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 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TV 드라마를 보면 왕조시대의 최대과제는 왕권강화이다. 대원군이 민비와 다투면서 나라를 제대로 좀 세워놓고 물러나겠다. 용의 눈물에서 방원이 그렇게 많은 피를 뿌린 것 도 다름 아닌 왕권강화라는 명분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이 바로는 얼마나 행복한가! 요셉이 얼마 나 이뻤을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완벽하게 왕권을 세울 수 있었으니. 11. 성읍들에 옮겼으나 (21)라는 말은 백성들을 원활하게 배급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곡식이 있는 성 읍으로 옮겼다는 뜻 외에 노예로 삼았다 는 번역이 있다(RSV). 어느 쪽이 옳은 내용일까? 어차피 먹여살려야 했으니 결과는 같은가? 옮기다는 말은 히브리 말로 아바르( )אבר 인데 LXX역(70인 역 성경)이 이 단어를 (אבד 아바드, 종)으로 이해하여(두 단어의 끝 글자가 혼동하기 쉬움) 번역함으로 그 전통을 따른 성경들이 노예로 번역함 11. 일반적으로 극심한 흉년이 들면 임금님의 덕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함으로 왕권이 위험해진 다. 그것도 7년이나 계속되는 극심한 흉년이었으니 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다. 요셉의 훌륭한 처사 가 바로에게는 한없이 고마웠을 것이다. 이 흉년을 요셉이 잘 다스리므로 애굽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을까? 다음 세 구절을 역사책에 흔히 등장하는 용어로 설명해 봅시다. 1) 18-19, 2) 20, 3) 24 1) 18-19: 왕권 강화, 2) 20: 토지의 국유화, 3) 24: 조세제도 확립: 세금 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현대인이 보기에는 감동이 적을지 모르나 대원군 시절에도 양반에게 세금을 받는 것이 얼마나 결 코 쉬운 일이 아니었단다. 하물며 나라를 새로 세우고 세금을 제대로 거둘 수 있다면 탄탄한 반석 위에 선 셈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12. 요셉이 토지법을 세우고 소득의 5분의 1을 거두었는데 과한 것 아닌가? 아주 낮은 것이다: 옛날 소작농과 지주는 50대 50이 보통이었던 것 같다. 거기에 비하면 아주 낮은 것이다. 25절을 보면 자원하여 종이 되겠다는 표현이 보인다. 약탈자와 수탈자의 관계가 아니라 보 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 요셉이 온 세상의 목숨을 구해낸 것이다. 자원하여 종이 되겠다는 마음을 갖게 한 것이다(인성의 변화). 7년 풍년에도 겨우 2년 만에 양식이 다 떨어졌을까? 요셉은 5분의 1을 거두어 7년 동안 온 세상을 먹여 살렸는데? 풍년동안 그만큼 흥청망청 살았다는 말이다. 풍년의 때에 흉년의 때를 대비하지 못한 것이다. 13. 애굽과 가나안에 임한 기근은 극심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이런 기근을 보냈을까? 무슨 의도 로? 아니면 특이한 자연 현상일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만들고 특별한 임무를 부여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것이다. 70여명의 야곱 가족을 위하여 온 세상에 기근이 임하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 얼마 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각성케 하기 위하여 온 세상에 IMF를 불러 오실 수 있는 분이시다. IMF 가 터지기 전에 대형사고가 났다하면 장로가 책임자인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장로, 권사, 목사가 비 리를 저지르고 비난의 손길을 받는다면 이런 엄청난 재난이 닥치기 마련이다. 요나를 불러서 일을 시키시려고 한 배에 탔던 많은 사람이 모든 재산을 바다에 던지는 일을 저지를 수 있는 분이시다. 14. 선생님이 술집에서 인기가 있을 때는 불경기이다. 경기가 좋을 때에는 사업하는 사람이 활개를 치고 사람 대접을 받는다. 비슷한 현상이 극심한 기근이 든 애굽에도 있었을까?

149 창세기 성경공부 :1~31 극심한 가뭄이 들 때에는 농사짓는 사람은 어려워도 국가의 녹을 먹는 사람은 전혀 문제가 없다(22, 26). 직업마다 장, 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남의 직업을 너무 부러워하지 말고 자신의 직장에서 사명 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IMF이후 잘 사는 일부 계층에게는 더욱 좋은 세상이 되었다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 애굽에서도 일어난 모양이다. 다시 경기가 좋아지면 월 급쟁이들이 짜다고 외면받는 현상이 오기 마련이다. 자신의 직업에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하며 살자. 15. 이스라엘 족속이 생육하고 번성하였다는 말은 누가 들었으면 가장 감격하였을까? 하나님의 말 씀이 이제야 이루어지는구나라고 할 사람은 누구인가? 아브라함(12장에서 시작된 그 약속): 아브라함의 생전에 이 약속의 성취는 요원해 보였다. Dumb and Dumber 라는 영화가 생각날만큼 어리숙한 아들 하나와 바가지를 쓰고 산 무덤 딸린 땅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제 그 약속이 풍성하게 이루어져간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때에 풍성하게 이루어질 것이니 믿고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16. 선영에 장사하라는 말은 조상들이 묻힌 땅에 묻어달라는 것이다. 야곱이 다른 당부는 제쳐두고 이것을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가 조상 곁에 묻히고 싶다는 것 외에 또 있었을까? 이스라엘이 반드시 가나안으로 돌아올 것을 믿었다: 하나님께서 주실 땅은 가나안이다. 17. 중세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어 두신 지구는 반드시 우주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성 경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천동설이 지지를 받았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애굽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비교해보자. 누가 역사의 주체인가? 겉보기에는 애굽의 역사의 주체요 이스라엘은 그 곳에 우거하러온 나그네일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 께서는 이스라엘을 기르기 위한 도구로 애굽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믿는 우리의 삶이 세상의 변 두리 같아 보이는가? 세계사의 중심은 애굽이었을지라도 구속사의 중심은 이스라엘이었다. 변두리 에 초라하게 모인 그 무리들이 로마를 집어 삼켰다. 사람이 사는 지구를 중심으로 모든 별들이 회 전하지 않고 왜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도 돌게 하셨을까? 만약 지구를 중심으로 별들이 회전한다면 지구에서 보는 별들의 움직임은 너무나 단조로울 것이나, 지구가 공전하면서 그리는 별들의 움직임 은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것이다. 지구에 아름다운 밤하늘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 다면 나만의 독단일까? 18. 이스라엘이 어디서 경배하는가? 침상 머리에서(31): 히 11:21에는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히 브리서는 70인 역이 그렇게 번역한 것을 인용했기 때문이다(당시에는 필연적인 현상). 모음이 없는 글자여서 양쪽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우리말 성경이 구약은 히브리어에서 바로 번역이 되지만 신약을 70인역을 거쳐서 신약에 인용된 것을 번역해야 하기 때문에 인용된 구절이 때로는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150 창세기 성경공부 :1~22 창세기 48 장 1. 누구나 순탄치 않았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때는 나름대로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게 마련이다. 야곱은 무슨 사건이 자기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보는가? 벧엘사건: 가나안 땅 루스(나중에 벧엘이라 함)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건의 의미를 이제야 제대로 평 가한다(3-4). 당시에는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나님은 야곱을 자신의 자녀로 삼고 대우했 지만 야곱은 그냥 조건부로, 답답하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어달렸을 뿐이었다. 밧단아 람에서 돌아와서 바로 벧엘로 가지 않고 세겜에서 오래 거주 하다가 디나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벧엘로 올라간 것이 그 좋은 증거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약속할 때만 해도 하나님의 약속(28:13-15)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바빴지만(28:20-22) 지나고 보니까 여기서는 자신의 말은 어디로 사라 지고 하나님의 약속만 남아있다(4). 어려울 때 자신을 찾아와서 약속의 말씀을 주셨지만 전적으로 그 분만 의지하고 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더라는 것이다. 2. 요셉의 두 아들이 이 때 나이가 최대치로 얼마 정도였을까? 최대치 25세: 야곱이 애굽에 도착했을 때 130, 죽을 때 147의 차 17년 + 흉년 2년째에 애굽으로 이주 했다면 풍년 7년을 더해서 9년 - 요셉이 결혼하고 아들을 낳을 때까지 최소한 1년 = 25년 3. 요셉의 두 아들을 야곱이 내 아들이라고 선언하는 이유를 그 앞, 뒤 구절을 참고로 해서 설명 해보자. 하나님께서 많은 후손을 주시겠다고 했는데(4), 아들을 많이 낳지 못한 네 어머니를 생각해서(7): 그렇지 않으면 여기에 라헬의 장사지낸 이야기가 별로 의미가 없다. 그냥 안타까운 마음으로 회상한 것인가? 겨우 아들 둘을 남기고 일찍 죽은 네 어미를 생각해서라도 더 많은 후손을 남기겠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좋겠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 난 사건에다 네 어미를 만난 일을 회상하는 것은 이 두 가지 사건이 야곱에게는 가장 의미있는 만 남이었다는 증거다. 4. 나중에 나오는 일이지만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 요셉지파는 없다. 가끔 요셉 지파란 말은 있지 만 정식 지파명은 아니고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를 합쳐서 부를 때 쓰이는 명칭이다. 이렇 게 될 것을 암시하는 야곱의 말은?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5. 이 후에 만약 요셉이 아들을 낳게 되면 그 후손은 어느 지파에 속하는가? 에브라임이나 므낫세 (6절 그 형의 명의 하에서 함께 하리라): 요셉 지파는 없는 셈이다. 후대에 요 셉지파라는 말이 나오긴 하지만 별도의 지파가 아니라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를 함께 부를 때 사용하는 말로 쓰였다. 6. 이렇게 장성한 아들 둘을 12절에 보면 무릎 근처에 데려다 두었는데도 왜 야곱이 처음에 몰라 보았을까? 무슨 느낌이 드는가?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집안 내력인가? 충분히 자기 아버지를 속일 수 있었겠다. 자기 아버지도 비슷했을 테니까. 7. 하나님의 뜻이 때로는 사람의 뜻과 너무도 다를 때가 많다. 야곱이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너무 달라서 감사하는 말이 있다면? 11절: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뜻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소생까지 보이셨도다. 풍성한 하 나님의 은혜는 갚을 때는 확실히 생각보다 더 큰 것으로 갚으신다. 아니, 전혀 생각도 못했던 큰 복 으로 갚으신다. 이 땅에서 받는 복도 그러하지만 천국에 이르면 너무나 상상 밖의 복이 우리를 기 다리고 있을 것이다(롬 8:18). 야곱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복이라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 많 은 재물과 부인들을 얻은 것, 아무런 어려움 없이 형님을 만난 것, 요셉의 생환 8. 요셉이 아들 둘을 데리고 아버지 앞에 나가는 모습과 두 손자를 축복하는 야곱의 모습을 상상 해 보자(13-14). 팔을 자 형태로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왜 그럴까? 야곱: 하나님의 뜻을 아는 선지자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장자가 아닌 상태에서 장 자의 복을 받은 자신의 경험도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아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우수 좌수를 반 복해서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그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간단한 내용이다. 말 로 설명하면 복잡한 것을 그림으로 설명하면 아주 쉬워진다.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때 말보다 는 이런 그림을 사용해야 더 효과적이다. 9. 야곱이 이제야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평생을 따라다녀도 알아보지 못 하던 하나님을 이제는 잘 이해하고 감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야곱이 이제야 깨달은 그 하나님 을 한국의 어떤 분이 찬송시를 지었다. 무슨 찬송이 생각나는가?

151 창세기 성경공부 :1~22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양... 이 곡의 원조는 야곱이다. 나의 하나님 정 도가 아니라 나를 기르시는 하나님 이란 표현은 그 동안의 어렵고 힘든 모든 과정을 긍정적으로 인 정하는 태도이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기르시느라고, 사람되게 하시려고 나를 단련시킨 것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10. 이스라엘 사람들이 축복할 때 가장 즐겨 쓰고 싶어하는 속담 한 마디를 찾아보시오.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20):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 아라 하는 표현보다 얼마나 좋은가! 우리 교회 누구의 반만 닮아라! 이런 말도 좀 듣고 살자. 11. 야곱이 에서보다 더 큰 축복을 받게 된 과정과 야곱이 손자들을 축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상식 에서 벗어난 일이 있다면 무엇이며 어떤 느낌이 드는가? 맏이보다 차자를 더 축복한 일(이스라엘에서 맏이는 대단한 특권을 가지고 있다. 함부로 바꿀 수 없 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관습이나 전통, 의지보다 더 중요하다(다를 수 있다). 12. 야곱은 평생 동안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의 하나님, 조부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죽기 직전에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야곱은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이라고 불렀을까? 또, 그 많은 환란과 괴로움의 의미는 무엇 이라고 생각하게 됐나요?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기르기 위한 도구(과정, 기간) 13. 임종 직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제대로 고백하는 야곱의 모습이 새삼 감격스럽다. 그 만하면 충분하다싶지만 그래도 야곱의 그 고백에는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 야곱이 몰랐던 사실이 있다는 말이다. 별 관계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만 수정해보자.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이제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제대로 이해했지 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렇게까지 돌아보고 계심을 정말 몰랐을 것이다. 14. 야곱이 차자인 에브라임의 머리에 오른 손을 얹고 축복한 것은 에브라임을 장자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왜 이렇게 순서를 뒤집는 걸까? 자기가 그렇게 복을 받았기 때문에?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 22절의 내용이 야곱이 장래사를 내다보고 있음을 증명하는 셈 이다. 다음 장에서 모든 아들들의 장래사를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15.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 였다(히 11:21)고 한다. 본문에는 침상에 앉아 축복하였다고 하는데(2) 히브리서와 다른 이야기인가? 그게 무슨 믿음일까? 침상에 앉았느냐 지팡이를 의지하였느냐는 문제는 그리 따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비록 자기 아들이지만 총리라는 막강한 권력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소신대로 축복을 하는 것이 쉬운 일 이 아닐 것이며 그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음을 알고 마지막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룬 것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지팡이를 뜻하는 히브리말( )מתה 은 침상을 뜻하는 히브리말과 자음 이 같다. 모음을 붙이기에 따라 지팡이가 되기도 하고 침상이 되기도 한다. 70인역 성경(초대교회 당시에 널리 보급된 헬라어 성경)이 지팡이로 번역하였고 히브리 기자가 당시에 쓰이던 헬라어로 인용하였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겼다. 16. 야곱은 자신이 전혀 한 적이 없는 일을 마치 했던 것 같이 말하고 있다. 과거형으로 된 이 말 은 실제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될 일에 대한 확신을 말하는 일종의 예언이다. 어느 절인가? 22절: 세겜 땅을 말하는지 아니면 한 몫 을 더 주겠다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17. 길고 길었던 야곱의 생애가 드디어 막을 내린다. 험악한 세월이었고, 환란의 연속이었지만 그 런 고통 속에서도 그를 지탱해준 힘이 두 가지 있었다면 무엇이며 그 둘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나님의 사랑(벧엘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약속)과 라헬의 사랑: 전자는 영원했지만 후자는 일시적 이었고 많은 문제점을 야기시켰다. 전자는 받은 것이었고 후자는 주어야 하는 것, 요셉이 죽고(?)난 후 오랜 세월 베냐민을 의지하고 살았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라헬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힘이다. 물론 그것마저 버려야 하나님의 진정한 복을 받게 되었지만. 전자는 야곱이 전혀 추구하지 않았음 에도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풍성하게 부어주신 것이고 후자는 최선을 다해서 추구한 것이었지만 만족할 만큼 주어지지 않았다. 아내와 남편의 사랑도 이 땅에서는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그러 나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그 사랑을 오래 누릴 수 있는 비결이 된다. 하나님의 사랑 을 먼저 깨달아 알았더라면 라헬의 사랑도 오래 누리지 않았을까?

152 창세기 성경공부 :1~33 창세기 49 장 1. 성경은 사람이 기록했으므로 그 사람의 인간적 특성이나 문학적 소양을 여과없이 보여 주고 있 다. 동시에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되었기에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간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기록인 것이다. 야곱의 유언도 같은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자기 아들들에 대한 개인적인 축복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구속사에서 지파별 로 감당해야 할 예언이기도 하다. 다음 ( )에 알맞은 말을 넣어 보시오. < 야곱의 유언의 의미 = 각 아들들의 ( ) + 야곱의 ( ) + 하나님의 ( ) > 야곱의 유언의 의미 = 각 아들들의 (분량, 28) + 야곱의 (생각) + 하나님의 (豫知): 아들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복을 받건 저주를 받건 그것은 자신들의 행위에 따른 것이다. 복을 받을만한 그릇의 크기대 로 복을 받았다는 말이다. 동시에 그것은 야곱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미리 아심이기도 하다. 참으로 묘한 일이다. 2. 야곱의 아들들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2)? 이스라엘(2): 순전히 인간 야곱의 말만은 아니란 뜻이다. 이 이름으로 불릴 때는 자연인 야곱이 아니 라 하나님의 손에 잡힌 하나님의 사역자란 의미이다(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언약의 당사자). 불려온 아들들은 자연인 야곱의 아들들이지만 야곱이 하는 축복은 자연인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언자 로서 이스라엘의 말이다. 목회자를 대할 때도 이 두 면이 자연스럽게 교차되어야 한다. 거룩한 사역 을 맡은 하나님의 종이기도 하고, 친근한 이웃이기도 해야 한다. 둘 중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칠 때 문제가 발생한다. 3. 장자에게는 여러 가지 권리가 있었는데 제사장직을 물려받는 일, 다스리는 일, 두 배의 상속을 받는 일 등이다. 르우벤의 실수 때문에 이런 장자의 권리가 전부 다른 아들들에게로 넘어가고 말 았는데 제사장직은 나중에 레위지파에게 돌아간다. 나머지 두 가지는 각각 누구에게 넘어갔는가? 다스리는 일(9-10): 유다(사자, 홀, 실로=메시야, 치리자의 지팡이, 모든 백성이 복종) 두 배의 상속을 받는 일(22-26, 48:22): 요셉(무성한 가지, 하늘의 복과 원천의 복=자연의 혜택, 젖먹이 는 복과 태의 복=자손, 끝없는 산처럼) 대상 5:1-2에 따르면 족보상 장자는 르우벤, 명분상 장자는 요셉, 실질적인 장자는 유다로 역할이 나 뉘었다. 4. 단 한 번의 성적인 범죄는 평생 쌓아온 업적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릴 만큼 파괴력이 크다. 무서운 점은 고의나 계획적인 것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려운 형편에 처한 이성을 도와주려거나 위로하려는 선한 의도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이 더욱 경계해야 할 점이다. 르우벤만의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그런 분위기나 환경을 피하는 것 외에 달리 좋은 방법 은 없다. 그런 점에서 성적인 욕망을 무엇에 비유하는가? 물의 끓음: 99도까지는 괜찮다가 100도 되면 갑자기 넘치기 시작한다. 남자는 성적인 면에서 이럴 가능성(갑작스런 변화, 사람이 갑자기 늑대로 변함)이 크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고의가 아 니라 우발적으로 발생한다. 성적인 범죄가 모르는 사람 사이보다 아는 사람에게서 많이 일어나는 것을 바로 그런 연유이다. 넘쳐흐르면 감당하기 어렵다. 끓는 물은 갑자기 넘쳐흐른다. 이렇게 갑작 스럽게 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기회를 미리 피해야 한다. 5. 나중에 여호수아를 통하여 땅을 분배할 때 어떤 지파는 전혀 지파 이름으로 분배받은 땅이 없 었다. 여기에서 그 근거를 찾으면 어느 지파이며 왜 그렇게 되었는가? 레위(분노, 혈기, 잔혹):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7). 여호수아 때에 레위 지파가 땅을 얻지 못하는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심이었기 때문 이다(수 13:33). 여기서는 분명히 레위의 잘못으로 인한 저주 같은데 여호수아에서는 복이 아닌가? 레위의 잘못으로 그 후손들이 나누어지고 흩어지게 되었더라도 그것을 선하게 이용하시는 하나님 이시다. 벌을 줄 때 주더라도 그것을 유익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감사할 뿐이다. 시므온 지파는 유다지파 내에 얻어 지내다가 월북하여 다른 지파에 섞여버린다. 6. 요셉과 유다가 큰 축복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 요셉: 극히 어려운 때에 가족을 살려낸 점 (총리가 되었기 때문?) 유다: 어려운 때에 가족과 형제의 대표로서 일을 잘 감당했기 때문 (43장에서부터 맏이 역할을 해낸 것) 실로가 오시기까지: 원어의 이 표현은 간단한 것이 아니다. RSV는 until he comes to whom it belongs라 고 번역하고 있다. 자격을 갖춘 분이 올 때까지 라는 의미이다. 대개의 고대 역본들이 그렇게 번역 하고 있단다. 실로 란 단어가 지명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진 것이다. 어떻게 번역하든 메시야가 오기까지 로 이해된다. 지상에 유다의 왕국이 존재하고 뒤를 이어 영적인 유다 왕국, 즉 다윗의 자손 예수가 등장하게 된다

153 창세기 성경공부 :1~33 7.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평화의 왕이란 뜻이다. 나귀는 전쟁과 상관 없어 평화를 상징한다. 이런 나귀를 포도나무에 맨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포도나무가 아주 흔함: 유다가 받을 축복 중에서 가장 평화로운 모습을 나타낸다. 포도를 과일의 왕 이라고 한다. 크기로 따지자면 수박이 왕이 될런지 모르지만 밥 먹지 않고 과일만 먹고도 사람이 지탱할 수 있는 과일이 포도란다. 이런 포도가 지천으로 깔린다는 것은 양식이 풍부할 것임을 의미 하는 것이다. 포도나무는 풍족한 소산, 부와 평화를 상징한다. 곡물은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 포도는 즐거움을 위해 필요하다. 얼마나 많으면 먹고도 남아서 거기다 옷을 빠는가(10-11)! 8. 중간 중간에 후일에 당할 일 이 아닌 야곱의 느낌이 담긴 말이 있다. 어디에 있는가? 6절: 내 혼아, 내 영광아: 이런 잔혹한 일에 동참하지 말기를 바라는 염원이다. 18절: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단 지파의 후일을 말하면서 그들이 겪게 되는 그런 위험에서 구원을 바라는 무의식적인 기도이다. 9. 자식들의 장래사를 말하면서 이것이 전적으로 야곱의 생각만이라고 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1) 유언장에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내용 즉 축복대신 저주에 버금가는 내용이 들어있음: 자식들의 잘못에 대하여 지금까지 별 내색 없이 잘 지내온 야곱이 쌓였던 감정을 죽기 전에 풀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오히려 있던 감정도 죽기 전에 다 풀고 가는 법인데. 아무리 악한 사람도 자식에게 저주를 내리는 법은 없다. 2) 자신의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요셉에게 유다보다 더 큰 복(메시야, 왕의 출현)을 주고 싶었을 것이 다. 그렇게도 사랑했고, 잃었다가 다시 찾은 아들이니 오죽했겠는가! 10. 야곱이 하나님을 전혀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가 죽기 직전에야 진한 표현 나의 남으로부터 나를 기르신 하나님 이라고 불렀다. 이제 그런 표현에 익숙해지는 모양이다. 본 장 어 디서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는가? 24: 야곱의 전능자, 25: 네 아비의 하나님: 하나님은 줄기차게 야곱을 따라다녔지만 끝내 자신의 하 나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야곱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그런데 이제는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잘 부른 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어느 목사님은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한 번도 부르지 않는 사람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고 하셨다. 하물며 하나님 당신은 오죽 하실까! 11. 야곱의 축복이 조상들의 축복보다 낫단다(26). 야곱이 교만해진 탓인가? 아니면 진짜일까? 가령, 좋은 병원이나 맛있는 식당을 소개할 때 어떤 사람의 말이 가장 신빙성이 있을지 생각해 보라. 어떤 조상보다도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가령, 자잘한 병이나 기침 을 앓은 사람이 소개하는 병원보다는 진짜 중병을 앓은 사람이 소개하는 병원이 믿음직스럽고, 아 무 음식이나 잘 먹는 사람이 소개하는 식당보다는 음식 맛에 까다로운 사람이 소개하는 식당이 진 짜다. 야곱은 중병에다가 입맛은 지독히 까다로운 사람인 셈이다. 그러나 그로 말미암아 어느 누구 보다 하나님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12.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는 말은 요셉에게서 메시야가 난다는 말인가? 아니다. 메시야는 유다의 후손이다: 따라서 다른 해석이 가능한지 살펴보아야 한다(개정 참고). 원어 상 그로부터 는 거기에서부터 혹은 그 때로부터 이지 사람(요셉)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목자가 나도다 는 말도 기르다, 친구가 되다 는 말이다. 원문에는 목자라는 명사가 없는데 의역을 하느라 고 삽입한 것이다. 그러면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해진다. 1) 이스라엘의 반석이 하나님을 가리킨다 고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다 는 뜻일 수도 있고, 2) 이스라엘의 반석이 요셉을 가리킨다 고 보면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하나의 민족으로 성장시키는 일에 요셉이 막중한 사명을 감당한 것 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00년 내내 종살이를 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 100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만 종살이를 했고 그 이전에는 겨우 70여 명이었던 일가족이 거의 200만에 가까 운 숫자로 불어나는 폭발적인 성장에 요셉이 크게 기여하였다. 반석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는 말이 다. 13. 훗날에 다른 지파와 격렬하게 싸우다가 지파의 맥이 끊어질 뻔한 적도 있는 호전적인 지파를 야곱의 예언을 근거로 찾는다면? 베냐민: 물어뜯는 이리라니까(27). 14. 평화롭게 사는 민족을 만나서 멸절시키고 땅을 차지했으며(삿 18장), 훗날에 우상숭배의 근원지 가 되기도 하고(암 8:14), 구원의 반열에서 빠지기도한 지파(계 7:5-8)를 찾는다면? 단: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17). 단을 가리켜 독사라고 표현한 것은 적은 무리지만 강한 무리들과 싸워 이길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라이스 점령, 삼손이 블레셋과 싸움). 우상숭배의 중심지 가 된 것이나 구원의 반열에서 빠진 것을 독사 라는 표현에서 유추한 셈인데 그런 의미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고대에 그렇게 주장한 학자들도 있었다. 15. 각 아들별로 야곱이 축복한 내용으로 다음 빈칸을 메워보자

154 창세기 성경공부 :1~33 이름 (母) 축복(저주)의 상징 축복(저주)의 근거 결과 르우벤(레아) 아비의 침상을 더럽힘 탁월치 못함 시므온, 레위 분노, 혈기, 노염, 분기 나누어지고, 흩어질 것 유다 통치자의 복 스불론 해변에 거함 잇사갈 압제 아래서 섬기리라 단(빌하) 말탄 자를 넘어지게함 갓(실바) 박격 추격 아셀(실바) 왕의 진수를 공궤 납달리(빌하) 아름다운 소리를 발함 요셉(라헬)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 베냐민 전능자의 큰 복이 임함 빼앗고 움킴 르우벤(레아) = 끓는 물, 시므온, 레위 = 잔해하는 기계 유다 = 사자, 스불론 =해변의 배 잇사갈 = 건장한 나귀, 단(빌하) = 뱀과 독사 갓(실바) = 전사, 아셀(실바) = 기름진 식물 납달리(빌하) = 놓인 암사슴, 요셉(라헬) = 샘 곁의 무성한 가지 베냐민 = 물어뜯는 이리 16. 호상(好喪)이라는 말이 있다. 야곱의 이런 죽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의 인생 전체와 비교하면 정말 평안하게 죽음을 맞은 셈이다. 이런 죽음도 사실은 가나안을 떠나기 전에 하나님서 보장하신 것이다. 어디에 있었는지 찾아보자. 창 46:4 17. 야곱은 죽고 난 후에 왜 가나안 땅에 장사하라고 하는가? 먹을 것이 없어서 떠난 온 땅이 아 니던가?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땅, 후손들도 결국은 돌아와야 할 땅이기 때문: 위광(威光): 범하기 어려운 위엄 초등(超等): 뛰어나고 군박(窘迫): 몹시 군색함, 형편이 매우 급하게 됨 부여조(父與祖): 조상(같은데 사전에 없음, my fathers) 진수(珍羞): 진귀한 음식(부끄러울 수) 견강(堅剛): 굳세고 단단함 박격(迫擊): 바싹 덤비어 마구 몰아침 (박격포)

155 창세기 성경공부 :1~26 창세기 50 장 1. 고대 애굽에도 의사가 있었네? 이 의사는 무슨 전문의일까? 장의사! 지금은 장의사가 의사가 아니지만 고대 이집트에서는 미이라를 만드는 아주 중요한 전문직 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향 재료를 넣는다는 것은 미이라를 만든다는 뜻이다. 2. 야곱의 생애가 참으로 험난한 것이었을지라도 말년에는 그 어떤 조상보다 복을 많이 받았다고 해야겠다. 자식과 처복이 많았던 것 외에 또 무슨 복을 누렸는가? 조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성대한 장례식: 향 재료를 넣는 데 40일, 애곡하는 기간 70일, 장례 참석자 가 모든 고위관리 뿐만 아니라 마병과 기병과 무수한 무리가 따랐다. 국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 떤 포악한 왕(헤롯?)은 자신이 죽은 뒤에 울어줄 사람이 없을 것을 염려해서 자신이 죽을 때 많은 종을 생매장하기도 했단다. 다른 나라의 순장 제도에도 그런 깊은(?) 뜻이 담긴 것은 아닐까? 3. 창세기를 위시한 모세오경도 모세가 기록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1000년 정도 후에 이스라엘 의 어느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기록하였거나 편집하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본문에 나타난 야곱의 장례식을 근거로 그런 주장을 반박한다면? 애굽 왕의 장례 풍속을 잘 아는 사람이 쓴 글이다: 향 재료를 넣는 데 40일이란 말은 현대식 표현 으로 하면 미이라를 만드는 데 40일 걸렸다는 말이다. 김일성의 장례식 절차 중에 시체를 처리했던 과정(러시아 기술자들이 40일 걸림)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애굽의 장례 풍속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이렇게 정확하게 기록하지 못한다. 더구나 절대 권력자가 사라지고 로마의 식민지나 다름없 이 지내던 시절에 고대 애굽의 장례 풍습을 정확하게 알고 기록했다는 추정이 오히려 더 부자연스 럽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런 일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곡하는 기간 70일도 마찬가지다. 이 스라엘의 풍속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4. 다음 구절에 따옴표를 넣어보자. 혹은 다음 구절에서 각 사람이 말하는 부분을 정리하면? (창 50:4-5) 곡하는 기한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 면 청컨대 바로의 귀에 고하기를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서 둔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 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 곡하는 기한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청컨대 바로의 귀에 고하기를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서 둔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 리이다 하라 하였더니 요셉의 말: 내가 너희에게... 다시 오리이다 하라 아버지의 말: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서 둔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신하들이 전해야 하는 말: 우리 아버지가... 다시 오리이다. 5. 야곱의 장례 절차를 보다가 놀란 사람은 누구인가? 가나안 사람들(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애굽을 히브리말로 미츠라임이라고 한다. 가나안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으면 그 곳 이름을 애굽인의 곡함(아벨미스라임)이라고 붙였을까? 당시 그들에게 애굽인 은 가장 선진화되고 문명화된 민족이었는데 그들이 이곳 변방에 고급 승용차를 떼거리 몰고 와서 이렇게까지 곡을 하다니 신기하고도 놀라운 광경이었다는 뜻이다. 6. 야곱 사후에 형님들이 또 두려움을 느낀다. 죄라는 것이 얼마나 뿌리가 깊고 사람을 허약하게 만드는지 알 수 있다. 요셉의 용서를 구하면서 꾀를 부린 것은 무엇인가? 아버지의 유언이다: 진짜일까 조작일까? 아버지가 이런 부탁을 하고 싶었다면 요셉에게 직접 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아마 아버지는 이런 가능성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죄지은 형들 이나 이런 가능성을 두려워하지. 우리도 하나님의 종이다: 은근슬쩍 이렇게 흘린다. 나중에 요셉 앞에서는 말을 바꾼다. 당신의 종이 라고. 직접 말하지 않고 말을 전함: 요셉을 팔아버리고 아버지에게 말을 전할 때도 사용했던 수법이다. 7. 다음 구절(50:17)에는 여러 개 연속된 동사가 있다. 각 동사의 주어가 누구이며 대상은 누구인가?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1) 용서하라 2) 하셨다 3) 하라 4)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 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 이 을 용서하라. 2) 이 에게 부탁했다

156 창세기 성경공부 :1~26 3) 이 에게 전하라. 4) 이 에게 말씀하셨다. 1) 요셉이 형들을 용서하라. 2) 야곱이 요셉에게 부탁했다. 3) 형들이 요셉에게 전하라. 4) 야곱이 형들에게 말씀하셨다. 8. 죄는 참으로 뿌리가 깊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문득문득 나타나서 발목을 잡는다. 이런 저런 타 락을 경험하고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형들이 두려워하는 죄는 벌써 몇 년 전의 것인가? 39년 전의 일이다: 요셉이 팔려갈 때 17세, 총리가 된 때가 30세, 7년 풍년과 2년 흉년이 지난 때 (45:6) 만났으므로 22년이 지났고, 이 때 야곱의 나이가 130인데(47:9) 147세에 죽었으므로(47:28) 17년을 추가해야 한다. 9.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란 말을 한 사람은 요셉 외에 또 누구였을까? 야곱: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 형을 투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창 30:1)고 했다. 야곱은 답답하고 열 받아서 한 말이지만 요셉의 이 말은 아주 너그러운 말이다. 야곱의 표현은 내가 하나님이가? 인 반면에 요셉 의 표현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니 내가 무어라 하겠습니까? 이다. 우리 입에서도 요셉의 이 표현 이 애용되어야 할 것이다. 10. 죄가 많으면 일관성 있는 말을 하기 어렵다. 이랬다저랬다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죄인이다. 형 들이 무슨 말을 바꾸었는가? 하나님의 종이라고 했다가(17) 요셉 앞에 가서는 당신의 종이니이다(18). 11.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 니라(롬 8:28). 이 말씀의 창세기판(뜻이 똑 같은 말)을 써 보시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 하게 하시려 하셨나니(20): 로마서의 말씀은 참으로 은혜로운 말씀이지만 많은 성도들이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다. 그러면 성도가 할 일 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기만 하면 나머지 일은 하나님 이 하신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헌신하며 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자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 하셨잖아요 하고 하나님의 기억을 되살려 드릴 필요가 없다. 가령, 이번에 1등을 하면 무얼 사주 겠다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약속을 했다면, 아들이 할 일은 공부만 하면 된다. 아버지의 약속을 계속 확인하는 것은 선물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더 크다. 12. 형들이 요셉의 용서를 받은 원인은 무엇인가? 요셉의 신앙: 형들이 간절하게 회개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용서하려고 마음먹은 요셉 때문이다. 용서하려고 작정한 요셉의 변함없는 인격 때문에 형들의 회개가 소용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회개 도 하나님께서 그 이전에 용서하려고 작정하셨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13. 야곱의 마지막 당부와 요셉의 유언에서 공통적인 점은? 출애굽을 예상하고 있음: 요셉이 만약 후손들이 출애굽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더라면 장례식이 달라졌을 것이다. 어떻게? 바로 가나안 땅에 아버지처럼 묻어달라고 했을 것이다. 14. 요셉은 잘 우는 사람이었던가 보다. 우리가 아는 것만 해도 몇 번이나 울었는가? 6번: 형들을 만났을 때(3번 42:24, 43:30, 45:14-15), 아버지를 만났을 때(46:29),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50:1), 아버지 사후에 형들이 용서를 빌었을 때(50:17), 형들의 이 말을 듣고 울었다는 것은 더 이상 그 일에 대해서 전혀 감정이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그 문제로 인해 형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고 있는가를 알고 안타까워하는 눈물일 것이다. 15. 창세기는 이 세상의 시작을 알려주는 책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이야기이다. 하나 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면서 내리막길을 걷는 인생을 나타내고 있다. 그 길의 마지막이 무엇인 가를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49장과 50장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사건은 무엇일까? 죽음: 창세기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다가 인간의 죽음으로 끝나는 책이다. 하나님을 떠나 서 점점 멀리 갔던 인간의 슬픈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슬픈 이야기 속에 회복의 기운(출애굽 예상) 이 싹을 틔우고 있는 것이 창세기이다. 수종(隨從): 종, 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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