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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책을 내면서 남조선의 한국신학대학 교수였으며 단군학회 회장이 였던 김상일교수는 2008년 남조선사회를 휩쓸었던 반미초불 시위때에 쓴 글 백두밀림 우등불은 세기와 더불어 광화 문초불로 오늘도 타오른다 를 통하여 내외에 잘 알려져있 는 학자이다. 본사 편집부는 김상일교수가 미국 클레어몬트대학 과정사 상연구소에서 연구활동을 하면서 집필하여 현지동포사회의 인터네트신문 민족통신 과 남조선의 통일뉴스 에 련재 (2007년 9월부터 2009년 6월까지)한 많은 분량의 글을 입 수하였다. 김상일교수의 글은 한마디로 민족의 한 성원으로서의 그 리고 정의와 진리에 공정한 한 지성인으로서의 위대한 수령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에 대한 독후감이 아 닌가고 본다. 편집부는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에 접 하여 학문적견지에서 그리고 애국애족의 립장에서 오늘날 우리 민족이 부딪치고있는 많은 문제들을 주제로 하여 지 론을 편 김상일교수의 글을 지면에 옮겨 책으로 출판하는

2 (2) (3) 바이다. 필자와 마주앉을 기회를 가지지 못하였기에 원고에 충실 하는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회고록인용문은 본문에 기초하 여 색인하였으며 내용상 중복되거나 부분적인 표현들을 다 듬는 방법으로 정리하였다. 고령임에도 정력에 넘쳐 북과 남이 다같이 읽을수 있는 유익한 글을 펴낸 김상일교수의 뜻에 비추어 책이 겨레의 통일운동사에 뚜렷한 생의 흔적으로 찍혀지길 바라마지 않 는다. [주체98(2009)년 12월] 본사 편집부는 주체99(2010)년에 출판되였던 초본을 다 시 재판발행한다. 주체103(2014)년 2월 편집부로부터 차 례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쨩즈궈즈가 맺어준 세기와 더불어 와의 인연 8 간삼봉에 울려퍼진 아리랑 그리고 아리랑 공연 년 대황구사건과 2007년 정상회담의 대차대조 21 아는것을 알지 못한 밀정 최용빈 년 만주사변으로 본 핵페기 먼저 라는 오유 37 유격구를 수라장으로 만들어놓은 좌경분자 들 44 민생단 사건은 일제의 모략극 54

3 (4) (5) 너 거기 있었는가 그때에 보도 련맹사건을 회억하며 64 주체료법(Juche Therapy) 과 장포리를 살린 경우 71 사생결단하여 구원한 한봉선의 생명 80 극좌좌경론리를 꺾은 해학 89 랭소주의를 랭소한 조선의 별들 , 우리의 최대약점을 로출시킨 날 107 배움의 천리길, 책속에 길이 있다 117 계승과 혁신의 원리 그리고 실용주의 125 항일유격활동은 거짓말과의 싸움이였다 130 사립문을 나서며 새날안고 돌아오리라 140 람스펠드와 거짓말변명의 론리 153 항일유격대의 색, 계 와 공화국 헌법 63조 160 조국광복회10대강령과 취임사 172 체 게바라, 혁명의 진정성은? 180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92 락천가가 세운 나라 락관한다 206 아직 회고록을 안 읽었다면 215 망국론 5대리유 일깨운 회고록 225 비핵, 개방, 3 000, 게임리론이 비웃는다 240 일본을 혼쭐낸 전설 은 인민적성격 248 동족 잡아먹겠다는 상호주의 는 구루광우병의 일종 (1) 264 동족 잡아먹겠다는 상호주의 는 구루광우병의 일종 (2) 275 미국 믿지 말라 했건만 못 말리는 MB사대주의 285 항일유격대 일행천리전략식으로 재협상하라! 295 백두밀림 우등불은 세기와 더불어 광화문초불로 오늘도 타오른다 308 집단지성과 헌법 63조의 집단주의원칙이 웹 3.0을 창조할 때가 온다 320

4 (6)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墾 島 에 가다 看 島 에 살다 間 島 에 죽다 332 평등사회에서만 바로 본다 343 밀림이 설레인다, 장군님 오신다고!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운하( 運 河 )를 파랴? 은하( 銀 河 )를 쏘랴? 371 미, 일에 부화뢰동, 손원금은 통곡한다 387 은하, 광명성 은 지구촌의 묵시록 402 주체사상과 은하 의 비밀 411 빨리 망하려면 사대주의를 해라 423 잃어버린 10년 의 반을 잃어버린 2MB의 위기 429 부엉이바위의 나비효과 가 두렵다 434 핵미싸일은 대동강문화론의 자존심발로이다 450 MB식 실용주의 알고보니 사대주의 460

5 (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9) 쨩즈궈즈가 맺어준 세기와 더불어 와의 인연 내가 처음으로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를 알게 된 것은 2004년 문익환목사 방북 15주년 북과 남 학자들의 통일토론회 차로 중국 연변에 가서 만난 북에서 온분들로부터이다. 북측대표단 단장이였던 안경호선생 등 일행들과 호텔 아침식사를 하는 식탁에 만주에서 흔히 겨울에 많이 먹는 음식이 올라있었다. 나는 만주에서 나서 4~5살때 그것을 먹고는 한번도 먹어본적이 없 어서 너무 신기하였다. 어떤이들은 내가 그 어릴 때 일을 어떻게 기 억하느냐 하겠지만 나는 다는 아니지만 몇가지 중요한 장면들은 생 생히 기억하고있다. 그가운데 이 음식을 먹던것, 그 크기며 모양이 며 색갈이며 자세하게 기억하고있다. 그런데 무려 60여년만에 아침 식탁에 올라있으니 그 이름을 알수는 없었다. 북에서 오신분들이 그 이름을 알것 같아서 우연히 물어보았다. 안경호선생이 쨩즈궈즈라고 하면서 자기도 주석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에 그 이름이 나와 알게 되였다고 했다. 즉 주석이 손정도목사집에 머물 때에 그 댁 따님 인실이 가 사달라고 하여 사준 기억을 더듬어 쓴 글의 내용속에 이 음식 이 등장한다는것이다. 북에서 온분들은 그러면서 앞으로 회고록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남쪽에서는 책을 구하기도 힘들었고 회고록이 어떤 력사 적진실성이 있겠냐는 선입견과 그런 책을 읽는다는 거부감도 앞서 읽지를 못(않)했었다. 그러나 북에서 오신분들이 이 책의 중요성을 그렇게 강조한데 대하여서는 늘 생각은 하고있었다. 그러다가 2006년 미국 UCLA대학 동양학도서관 챨스 영도서관 서가에서 세기와 더불어 전 6권이 나란히 선반에 꽂혀있는것을 보고 바로 그 회고록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나 있는듯 하였다. 책갈피를 보니 아직 아무도 읽지 않은것 같은 새 책이 였다. 2006년 겨울부터 2007년 5월까지 나는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전 6권과 계승본 7, 8권도 모두 읽고 색인작업 까지 해놓았다. 쨩즈궈즈에 대한 어릴적 추억과 그리고 안경호선생일행의 진심어 린 회고록을 권하던 기억을 잊지 못해 첫권을 읽기 시작하자 그만 모든 일을 접어놓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까지 회고록에 빠져 들기 시작하였다. 인간이 진실을 알고싶어하는 욕구는 그 어느것으 로도 막지 못하기때문이다. 회고록은 한권이 평균 500여페지 혹은 그이상 되다보니 그 량이 수천페지나 되였다. 우선 회고록을 읽어나갈 때에 선입견과는 달리 글이 담백하며 읽기 편하게 씌여진데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과 장이나 자기 선전용정도를 벗어난 글임을 차차 알게 되였다. 홍동근목사님이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는 어떤 면에서 조국해 방과 혁명투쟁과정에 희생된 동지들에 대한 증언이며 그 묘비명이 다. 김주석은 수백명 동지들의 이름을 불러 조국광복에 바친 선구 자들의 령혼을 위로한다. (홍동근, 1997, 151페지)고 말한대로 장 마다, 절마다 제목자체가 리제순, 리관린, 박인진과 같은 동지들의 이름들로 붙여져있다. 이들, 먼저 간 동지들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가지고 쓴 글들이다.

6 (1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1) 영화나 소설이 력사의 생생한 현장을 그대로 다 담아낼수 없듯 이 회고록 역시 항일유격대원들의 그 고난의 길을 다 적어낼수 없 었을것이다. 과장이라도 다 묘사해낼수 없는것이 그들의 행적일것이다. 그러나 회고록은 과장이란 포장없이 글이 매우 담백하여 누구나 읽는 사 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회고록은 한갖 과거를 회고하는 차원의 글로 보면 안된다. 나는 회고록을 통하여 오늘의 북을 어떤 방법으로보다도 정확하 게 읽어낼수 있다고 확신한다. 지금 북에서는 회고록의 독본까지 나 와 주민교육용으로 리용한다고 한다. 마치 회고록은 이스라엘민족 사인 구약성서와도 같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만큼 회고록은 북을 바로 알기 위한 필독의 글이다. 그리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청량제로 회고록을 읽어보아야 한 다고 본다. 자본주의에 찌들리고 사대주의에 찌들려 자기도 모르 게 정신병환자가 된 우리에게 회고록은 정신을 맑게 해주고 인간이 민족을 사랑하고 애국애족하는 길이 얼마나 신성하고 고귀한가를 일깨워줄것이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만인에 만인의 싸움장으로 되여버렸고 그리 하여 우리는 사대주의만은 절대로 못 버리는 이 병을 회고록을 읽음 으로써 고칠수 있을것이다. 남을 자기보다 더 사랑하고 남을 신뢰하고 사는 공동체의식, 이 를 사회정치적생명유기체 라고 한다. 시카고대학의 G. 스토크는 이를 미래에 나타날 인간형 즉 메타인간(metaman)이라고 했다. 나는 주석주위의 사람들이 항일유격대활동을 통해 이런 인 간상을 몸에 배도록 체득하였다고 본다. 이런 인간상이 오늘 북의 체제를 유지시키는 원동력이라고 본다. 이런 인간상의 원형을 나는 회고록에서 읽을수 있었다. 만약 북을 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북을 알기 위해서도 회고록을 읽어야 할것이다. 맹목적인 반공 은 그 결과가 부메랑으로 용 공 이 된다는 사실을 남 한 당국자들은 알아야 할것이다. 한마디 로 말해서 오늘 북의 모든것을 알기 원한다면 회고록부터 읽어라, 반공 을 위해서도, 용공 을 위해서도 읽으라는것이다. 주석은 회고록을 6권까지 쓰다 갑자기 1994년 7월 8일 서거 한다. 그러나 다행히 메모용지에는 나머지 분량들을 정리해놓은것 이 있었다. 이 나머지 분량들이 북의 학자들의 손으로 간접집필되 여 계승본으로 7권과 8권이 나왔다. 물론 UCLA도서관에는 없다. 부득이 김현환박사가 소장하고있다 는 소식을 듣고는 2007년 5월 LA근교 다우니에 사는 김박사댁에 서 계승본 두권을 구할수 있게 되였다. 이렇게 나는 2007년 상반기를 회고록과 함께 만주벌과 옛 쏘련 땅을 누비며 지냈다. 항일유격대가 누비며 일제에 타격을 가 하던 마을과 도시와 산과 들, 그곳은 내가 어릴 때 자란 곳이 아 니던가? 나는 또 늦게 고 홍동근목사님께서 1997년에 <세기와 더불어> 를 읽고 라는 글을 남쪽지면에 낸것을 알게 되였다. 사모님 홍정자 녀사를 5월말에 만나 보관하고있던 한부를 구해 읽게 되였다. 완전히 나는 2007년 겨울과 봄 그리고 초여름동안 미국땅 서부 에서 매니아가 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학교를 은퇴하고 사는 마당에 누구의 말이나 글 에 쉽게 부화뢰동한것이라 단정하지도 말아주기 바란다. 나는 나의 주관을 가지고 회고록을 읽었으며 그중 주체사상과 련관되는 부분 에서 내가 지금까지 해온 과정사상에 련관하여 글을 만들어보려고

7 (1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3) 이 글을 쓴다. 다시말해서 다른 책들을 읽을만큼 읽었고 한국 에서 교수생활 하다 은퇴까지 한 지식분자라면 지식분자이다. 이런 내가 회고록을 액면그대로 수용하고 그대로 내것으로 맹목적으로 받아들일 일도 만무하다. 나도 내가 알고 배운 지식과 회고록과 한판 그 진실성을 놓고 씨름을 하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지금도 남쪽의 인터네트에 들어가보면 회고록이 조작이라는 자료 가 쏟아져나온다. 나는 이에 대해서 용납할수 없다.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든 진실을 조작하고 이를 정치수단으로 사용하는 마타도어 방법을 용납할수 없다. 이런 방법은 모두 남북에 상처만 입히는것 이며 나아가 서로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것을 인정해주지 않을 때에 쌓이는 증오와 불신은 하늘에 사무칠것이고 이것은 남북이 하 나 되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것이다. 나는 남으로부터와 남의 립장에서 이 글을 쓴다. 자기비판만큼 아름다운것은 없다. 이 말은 내가 남에서 왔기때문에 남을 앞장서 더 비판해야 한다는것이다. 이렇게 전제를 달고 나오는것은 내 글이 북을 많이 리해하려고 하고 북을 인정해주려는 의도가 짙다고 느낄수 있는분들에게 사전 에 립장을 밝히기 위함때문이다. 아무튼 세기와 더불어 를 읽지 않고 현대사를 말하지 말라, 아니 나아가 통일을 말하지 말라고 감히 말하고싶다. 력사적진실된 보고가 아니라는 선입견이 앞서면 일단 하나의 다큐정도의 력사소 설정도로 치부하고라도 필독하길 권한다.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종교경전을 읽을 때에 정신이 맑아지고 정화 되는것을 느끼듯이 누구든지 우리 민족의 구성원이라면 주석 의 회고록을 읽고나면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될것이다. 지금 주석의 령구가 안치돼있는 금수산기념궁전(당시)에는 년 100만명이상이 방문하고 평양시민들은 1년에 평균 3~4회 이 곳을 방문한다고 한다. 북의 한 인사는 머리가 복잡할 때에 기 념궁전을 다녀가면 개운해진다. 고 했다고 한다.( 조선일보 2007년 7월 9일) 왜 그럴가? 왜 북주민들이 한두사람들도 아니고 그렇게 집단적으 로 주석에 열광하는것일가? 그 리유를 알자면 바로 회고록을 읽어보라는것이다. 회고록을 읽 고나면 금수산기념궁전을 다녀오는것과 같이, 마치 종교적인 경전을 읽는 이상으로 정신의 정화와 경건함 그리고 마음의 정숙함을 갖게 되는 리유를 바로 알게 될것이다. 그것은 우상에 의한 효과때문이 아니고 바로 한 고난받는 인간의 모습에서 즉 우로부터가 아니고 아래로부터 오는 풀뿌리의 향기때 문이라는것을 알게 될것이다. 이를 외면하고 남에서 아무리 반공교육을 하고 보안법 을 철 통같이 만들어 각을 세우더라도 반공교육은 허사일것이다. 그것은 과거 반세기가 증명하고있지 않는가. 주석의 진면목을 알면 알수록 속았다는 생각만 갖게 한다면 남 한 의 반공교육은 실패 한것이다. 알것을 알게 하고 읽을것은 읽게 하여 독자들이 스스로 북을 판 단하게 하라. 나는 그리스도교인으로 이스라엘민족사인 구약을 여러번 읽었 다. 나는 주석의 회고록을 읽을 때에 이것이 우리 민족 출 애급기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그 리유는 다른 나라와 민족이 아닌 바로 우리 력사가 가장 어려울 때 모세나 여호수아같이 민 중들과 사선을 넘는 생사고락을 같이한 우리의 기록, 바로 그것이

8 (1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5) 회고록이기때문이다. 나는 장준하의 돌베개 를 읽었을 때 그리고 백범일지를 읽었 을 때에도 똑같은 칸트가 말하는 숭고미같은것을 마음속에 느낄수 있었다. 남쪽의 친일행위를 한 기득권자들은 자기들의 원죄를 속죄 하기는커녕 국민들이 북과 주석의 진실을 알가보아 전전긍긍 하고있다. 이들의 협박과 위협을 용납하는 한 우리에게는 정말 희 망이 없다. 그러나 내가 이러한 거창한 리념적상황을 떠나서 회고록에 관심 을 갖는 리유는 우에서도 말한대로 민중과 민족을 그렇게 애절하게 사랑한 한 인간과 그 주변 민중투사들의 절절한 령혼을 회고록속에 서 어떻게 담아내였는가를 한번 보라는것이다. 남을 죽이고라도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개인주의 와 항상 남이 나대신 해줄것이라 의지하며 살아온 사대주의근성에 지금 우리 령혼은 자기도 모르게 병들어있다. 우리는 정치, 교육, 문화 모든 령역에서 천민자본주의와 사대주의근성에 찌들고 병들어 있다. 이 두가지 병을 치료함이 없이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수 없 을것이며 나라다운 나라를 세울수도 없을것이다. 나는 적어도 회고록을 읽고 완전히는 몰라도 건강한 내 모습을 다시 찾을수 있었다. 그래서 나와 같은 병에 걸려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신과 령 혼의 치유를 위한 길잡이역할을 하기 위해 글을 써내려가려 하는 바이다. 간삼봉에 울려퍼진 아리랑 그리고 아리랑 공연 영화 디-워 (룡의 전쟁)의 마지막장면은 아리랑으로 끝난다. 미국에서 관람객에 따라서는 상영이 끝나자 일제히 서 박수를 쳐 주기도 한다. 이 장면을 본 나는 영화도 영화지만 아리랑 이란 노래때문이라고 생각해보았다. 우리 나라 최초의 영화도 라운규의 아리랑 이다. 혁명가 김산의 생애를 그린 책의 이름도 아리랑 (Song of Arirang)이다. 그리고 지금 북에서 공연하고있는 대집 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세상의 많은 노래가운데 슬플 때도 기쁠 때도, 남자도 녀자도 그 리고 로인도 어린아이도 함께 부를수 있는것은 아리랑이 유일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나라를 잃고 망국의 한을 안고 조국을 떠날 때 도 아리랑을 불렀고 해방이 되여 환희에 젖어 귀국선을 타고 돌아 올 때에도 아리랑을 불렀다.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황해도아리랑 등 팔도강산 어디에도 아리랑가락이 있다. 서편제로도 부를수 있고 동편제로도 부를수 있는 곡, 심지어는 리념의 장벽을 넘어 남북이 함께 부를 수 있는 이 아리랑.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공연은 노래곡 아리랑 으로 시작한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남부녀대 혹은 가장이 홀로 조 국산천 뒤에 두고 두만강, 압록강을 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물론

9 (1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7) 애환에 젖은 아리랑이다. 그러나 공연의 마지막부분은 경쾌하고 환 희에 넘치는 아리랑으로 막을 내린다. 우리 민족을 아리랑민족 이라 하면서 지구상에 수많은 나라 와 민족이 있지만 우리는 반만년력사속에 함께 살아온 문화민족, 항상 새것을 창조하며 살아온 아리랑민족이다. 그러나 강도 일제 는 우리를 노예로 삼았고 외세는 우리를 갈라놓고말았다. 아, 어 찌 슬프지 않는가. 라고 비탄에 젖은 멘트가 나오면서 아리랑 공연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러한 아리랑 공연을 두고 조선일보 (2007년 9월 28일)는 아리랑 공연의 유래를 이전 쏘련에서 모방해온것이라고 하며 비방하였다. 아리랑 공연을 어떻게 보는가는 각자의 자유에 맡기고 지금으 로부터 만 70년전 1937년 6월에 간삼봉마루에 울려퍼졌던 아리 랑 으로 돌아가 아리랑 공연을 생각해본다. 1937년 6월 4일 보천보전투는 실로 항일유격대의 활동에서 기념비적인것이였다. 그러나 보천보전투만을 전부라고 해선 안된다. 주석은 비유해 말하면 간삼봉전투와 구시산전투는 보천 보전투의 메아리라고 볼수 있었다.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6권 222페지)라고 회고하고있다. 간삼봉전투는 무적황군 일본군의 신화를 완전히 깨뜨려버리고 백두산지구에 진출한 항일유격대의 혁명활동의 전성기를 마련하는 하나의 중요한 전투였다. 바로 이 전투에서 주석은 일본의 야마도정신 과 우리 민 족의 아리랑의 얼 을 대비시키고있다. 다시말하여 부정의를 정의로 알고 악을 선으로 착각하는 천 치들, 총구앞에 부나비처럼 뛰여들어 보람없는 개죽음을 당하면서 도 그것을 무사도라고 자부하는 청맹과니들, 타민족의 시체더미우 에서 축배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야수들, 자기가 죽으면 천조대 신의 혼이 자기를 굽어살피고 천황이 자기 명복을 빌며 일본국민이 자기를 영원히 기억할것이라고 망상하는 정신불구자들 (6권 218페 지)의 정신, 이것이 야마도정신 이다. 일본군벌과 대신들은 야마도정신 으로 죽은 장병들을 잠간 피 였다지는 사꾸라꽃에 비긴다. 그리고 이것이 황군의 정신 이라고 미쳐날뛰면서 적들은 간삼봉마루에 개미떼같이 기여오른다. 보천보전투에서 참패를 당한 적들은 이것을 설욕하려 조선주둔군 에서 최정예라고 하는 함흥 74련대를 이 전투에 동원하였다. 간삼봉은 13도구와 8도구에 이르는 1백여리 대지우의 서강고원 북쪽에 솟아있는 세개의 봉우리이다. 1937년 6월 30일 안개가 자 욱한 간삼봉마루로는 2 000여명의 적들이 기여오른다. 비는 억수 같이 쏟아지고 적아간에 하루종일 전투가 진행되는 가운데 육박전 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이때에 산마루중턱에서 난데없이 아리랑 노래가 울려 퍼지지 않는가? 젊은 녀성유격대원들이 이 와중에 아리랑 을 합 창하고있는것이다. 1절은 우리가 다 아는 가사에다 3절에서는 아 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저기 저 산이 백두 산이라지/ 동지섣달에도 꽃만 핀다 로 이어진다. 간삼봉너머엔 원시림이 끝없이 펼쳐있고 그우로 백두산이 흰구름 우에 떠있다.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아리랑이 울려퍼지자 최정예를 자랑하던 74련대는 어떻게 표현할수 없을 지경으로 허물허물 무너지기 시작하 면서 병사들은 스스로 투항해 기여들기 시작하였다. 간삼봉전투에 서 생긴 가보쨔 란 용어 하나가 황도일군의 참패를 그대로 말해

10 (1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9) 주고있다. 호박 이란 뜻이다. 죽은 일군의 시체를 가마니에 넣어 실어나르는데 마을농민들이 달구지에 싣고 가는것이 무엇이냐고 물으 니 일본장교가 하는 말이 가보쨔 라고 대답했다는것이다. 농민들은 이를 놀리기 위해 금년엔 호박풍년이라서 좋겠수다. 라고 했다고 한다. 간삼봉전투이후 일본놈들을 두고 호박대가리 라는 은어마저 생겨날 정도였다. 주석은 야마도정신 에 아리랑얼 을 대치시키면서 녀대원들이 싸움을 하면서 부른 <아리랑>이 전 대오에 퍼지였다. 격전장에서 노래를 부르는것은 강자들만이 할수 있는 일이다. 간 삼봉전투장에 울린 <아리랑>은 혁명군의 정신적종심을 비쳐보이고 락천주의를 시위하였다. 적들이 <아리랑>을 듣고 어떤 기분에 잠 겼겠는가 하는것은 그닥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것이다. (6권 218 페지)라고 하였다. 잡힌 포로들이 이 노래를 듣고 느낀 감상에 대하여 고백하기를 그 노래를 듣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졌고 다음순간에는 공포에 잠 기였으며 나중에는 인생허무를 느꼈다고 하였다. 부상자들중에는 신세를 한탄하며 우는자들도 있었으며 한쪽에서는 도망병까지 났 다는것이였다. 적들은 겨우 200여명의 패잔병을 이끌고 도망치고 말았다. 이는 마치 일본사람들이 겨울련가 를 보고 지금 그 이상한 매 력에 빠져드는것과 같다. 남녀로소를 막론하고 욘사마 는 하나 의 정신적치료역할을 한다고 북규슈대학 김봉진교수는 연구발표하 였다. 인간의 마음은 희로애락의 요구가 조화된 존재이다. 이런 조 화에 균렬이 생겼을 때에 정신질환을 앓게 된다.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너무나 서구의 균렬된 자아에 매몰되여있다. 일본이 우리 민 족의 얼에 빠지는 리유는 아리랑에서 보는바와 같이 이 곡에 인간 의 온갖 감정이 다 아우러져있기때문이다. 막상 북의 아리랑 공연을 보면 선군정치를 내세우는 총검술같 은것만 있는것이 아니다. 아니, 그것은 극히 한부분이다. 공연내 용속에는 농사의 종자혁명, 나아가 환경생태보존적인 친환경적인것 도 있다. 주석은 류달리 간삼봉전투를 정신 대 정신의 싸움으로 규 정하고있다. 즉 야마도와 아리랑의 싸움말이다. 그런데 독자들이여 놀라지 말라. 이 전투에 최악질적으로 기여오 른 인물이 다름아닌 조선사람 김석원(1893년-1978년)임을, 아니 가네 야마( 金 山 錫 源 )임을. 생존년대를 보면 85살까지 그는 최근까지 산 인물이다. 그는 해방후 수도사단장과 3사단장까지 지냈으며 지금의 성남중고등학교 설립자로서 얼마전까지 그의 동상이 뻐젓이 교정에 서있었다. 이 사람에 대하여서는 따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김석원에 대하여 회고록에는 이렇게 씌여져있다. 간삼봉에서의 패전은 일본의 사무라이들에게 있어서 씻을수 없 는 치욕으로 되였고 김석원이라는 이름은 그 치욕의 대명사로 되 였다. (6권 222페지) 해방후 38 선에서 숙적 김석원과 다시 조우한다. 당시 북의 최현항일투사가 김석원을 복수하고말겠다고 할 때에 주석은 이를 강력하게 만류했으며 지금은 최현도 김석원도 이 세상에 없다. 나는 북과 남의 모든 새 세대들이 민족의 피 줄을 두토막으로 동강낸 인위적인 그 장벽을 하루속히 제거해버리 고 자주적인 통일조국에서 화목하게 살기를 바란다. 김석원도 말년 에는 이런 념원을 품고있었을것이다. (6권 223페지)라고 용서의 념 을 회고록에서 애틋하게 담고있다. 나는 이 말을 진실한것으로 믿 고싶다.

11 (2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1) 회고록은 북주민들의 바이블과 같은것이다. 그렇다면 북녘동포들 도 김주석의 이 말을 유언으로 삼아 원쑤를 끌어안고 살아야 할것 이다. 이것이 오늘도 평양에서 아리랑 을 공연하는 진정한 의미 가 아닐가? 만약에 이런 김주석의 큰마음을 리해하지 못하고 공 연의 지엽적인것을 헐뜯거나 체제선전용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간삼 봉마루에서 울려퍼진 아리랑의 의미를 무색케 하고말것이다. 이는 참으로 이 땅에 살아갈 새 세대들에겐 불행한 일이라 아니할수 없 을것이다. 아리랑 공연을 엄연한 하나의 문화콘텐츠로 생각하기를 바란 다. 우리는 6.25전쟁과 일제식민지통치 40여년 같은 엄청난 력사 적소재를 가지고있다. 아마도 보안법 같은것이 없었더라면 우 리 나라 문인들은 지금쯤 노벨문학상을 받고도 남았을것이다. 나 는 남북 우리 나라 문인들의 천재적인 재능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보안법 은 이 모든것을 가로막고있다. 이젠 이런 법은 페 기처분해야 한다. 그리고 사법부에 바란다. 미래는 문화의 시대이다. 제발 소아병 적자대로 문화콘텐츠를 란도질하지 말기 바란다. 소설은 소설일뿐 이고 공연은 공연일뿐이다. 가상세계를 현실세계와 구별하지 못하는 것을 마술적(magical) 이라고 한다. 쟝글의 토인들이나 할법 한 이런 혼동을 지금 한국 보수정객들과 사법부가 자행하고있다. 세 계가 웃을노릇이다. 이 지구상 인류의 병들은 정신을 치료할 아 리랑 그리고 그것을 담지하고있는 아리랑민족, 저 태고적 대흥안 령산맥을 넘으면서 불렀다고 하는 이 아리랑이 있는 한 우리는 아 리랑의 민족혼으로 통일을 이루어내고말것이다. 1933년 대황구사건과 2007년 정상회담의 대차대조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국방위원장이 보여준 말과 행동은 마치 전위 무용가 머시 커닝햄이나 전위 음악가 케이지가 무대우에 서 연기를 보여주는것을 방불케 하였다. 커닝햄은 사전에 아무런 안무도 없이 아니, 안무를 했다고 하더라도 무대우에서 즉흥적으로 춤을 추고 춤을 추는 과정에서 안무를 해나간다. 그리고 춤을 추 다가도 흥이 나지 않으면 그만두기도 한다. 케이지 역시 피아노앞에 서 즉흥작곡을 하고 어떤 때는 피아노뚜껑을 덮고는 무대뒤로 아 무 말도 없이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주석의 회고록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것은 비정상도 아니며 차라리 그럴만한 력사적맥락마저 있다는것을 알게 될것이다. 북을 방문하면 거리에서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라는 구호 를 자주 접하게 될것이다. 이 구호가 나오게 된 배경은 다름아닌 동녕현성전투이후에 얻은 뼈저린 교훈때문이다. 북은 언제나 현재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바로 1930년대 항일 유격대시기와 일대일 대응을 시킨다. 다시말해서 1930년부터 1945년 까지는 력사의 모형이라는 사실이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에서 보는바와 같이 이때를 이데아로 한 혹은 모형으로 한 련상작용을 해나가는것이 북의 현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것이다. 그래서 이 원형적모형 즉 이데아를 알지 못하면 북을 바로 리해하지 못하

12 (2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3) 고만다는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국방위원장이 로 대통령 에게 한 말의 모형은 1933년 9월 6일 밤부터 9월 7일 낮까지 있었던 동녕현성전 투이후 대황구에서 있었던 13인병사 유격대원들이 희생된 사건이 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북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란 말의 진정한 의 미를 전혀 알지 못할것이다. 다시말해서 대황구사건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민주주의라는 말이 우리와는 다르다는것을 알게 해준 다는것이며 이번 국방위원장의 대통령 이 결심하면 모든것 이 되지 않느냐고 묻는 맥락이 바로 이 사건에 련관이 되여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것이다. 동녕현성전투는 엄청난 수적렬세에도 불구하고 난공불락의 이 성 을 공격하여 수백명의 적을 섬멸했다는것 이외에 이 전투를 치른 이후 그동안 적대관계에 있던 구국군을 유격대편으로 돌려세웠다는 큰 의의가 있는 전투였다. 크게 부상당한 구국군 사충항려단장을 부대가 구해주어 전 투이후 두 부대사이의 우의가 한결 두터워졌으며 이 전투를 통해 두 부대사이에 항일공동전선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호사다마 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 동녕 현성전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왕청에 돌아와 쉬고있을 때에 훈춘 현 대황구에서 전투에 참가했던 병사 13명이 일본 토벌대 의 습 격을 받아 총 한방 쏘아보지 못하고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13명가운데는 사령관이 그렇게도 아끼던 오빈이 들어있었다. 오빈을 잃은 슬픔과 아픔에 대해서는 여기서 글로 다 전달할수 없 을 정도이다. 회고록을 읽지 않고는 그 표현을 다 전할수 없다. 그날은 추석 다음다음날이였다. 외딴집에서 그날 보초를 세우고 쉬고있는데 일본 토벌대 가 이 외딴집을 포위하고 불의의 습격을 하여 방안의 유격대원 13명을 죽이는 사건이 벌어진것이다. 우리는 이 사건과 이번 국방위원장의 발언을 일대일 대응시키지 않 을수 없다. 말의 배경과 진의를 전달하고 조선 민주주의 의 모형 을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이 다급하고 아찔한 정황에서는 적의 약한 고리를 치고 일단 포위망을 뚫고 재빨리 방안을 빠져나오는것이 상책이였을것이라고 주석은 이때를 회고하고있다. 그러자면 지휘관이 정황을 똑똑히 포착하고 제때에 결단을 내 려야 한다. (3권 210페지) 이것은 국방위원장의 대통령 이 결단하면이란 표현과 정 확하게 일대일 대응이 된다. 그러나 대황구 외딴집안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방안에는 백일평 같은 유능한 군사지휘관도 있었고 우에서 말한 오빈도 있었다. 오빈 은 룡정 동흥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산포대를 점령할 때에는 작탄을 안고 돌격로를 헤쳐나간 위기탈출의 경험이 있는 명장이였다. 이런 그가 죽었다는것은 청천벽력같은 충격을 주었다. (3권 214페 지)고 회고록은 쓰고있다. 그런데 던져지는 질문은 그럼 왜 그들이 방안에서 고스란히 앉 아 죽을수밖에 없었느냐? 이다. 바로 그 사연이 기가 막히다는것 이다. 바로 여기서 극단적군사민주주의가 그 원인이였다는것이다. 사령관의 활동은 이런 극단적군사민주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이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극단적군사민주주의에 물젖은 사람들은 적들이 집을 완전포 위하고 일제사격을 가하며 옥조여오는 마당에 민주주의 라는 이 름으로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반드시 회의에서 토의되여야 하며 다수 결의 원칙에 의하여 집체적으로 결정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3 (2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5) 이것은 군대의 지휘와 관리에서 그 누구도 어길수 없는 철 칙으로 되여 지휘관들의 손발을 꼼짝달싹할수 없게 비끄러매놓았 다. 지휘관들이 결론을 내리지 못한것은 무능의탓이 아니라 극단적 군사민주주의의 중압으로부터 온 기능마비의 병페였다. (3권 210페 지)고 회고록은 쓰고있다. 싸울것인가 말것인가, 포위망을 뚫을것인가 말것인가. 마치 햄리트의 고민을 방불케 하는 토의를 진행하면서 일부 대원들이 공론만 하다가는 다 망할수 있으니 일단 싸움부터 시작 해놓고보자고 제기하였으나 극단적군사민주주의에 물젖은 사람들은 회의결정도 없이 어떻게 전투를 하는가 하면서 그 제의를 일축해버 리였다. (3권 210~211페지)고 회고록은 쓰고있다. 마치 대선 을 코앞에 두고 신당 대선 주자들과 당지휘부가 경선방법을 놓고 벌리는 작태와 비슷해보인다. 다수결원칙에 의한 서구식민주주의의 종말이 지금 한국 뿐만아니라 전세계 도처에서 나타나고있다. 미국의 경우 일반투표에서는 지고도 부쉬가 대통령 이 되는 이런 모순이 바로 극단적민주주의의 한계인것이다. 이것을 두고 장 마리게노는 민주주의의 종말 이라고 하였다. 그 당시 시체더미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오 빈은 복부에 관통상을 입고 나는 지금 동무에게 명령할 권한이 없 소, 그러나 당원으로서 부탁하는것이니 하면서 처절한 부탁을 남긴 다. 그 내용을 회고록에서 읽기 바란다. 오빈은 당시 좌경바람에 지 휘관의 자격을 모두 박탈당하고 평당원으로 백의종군할 때이다. 극단적군사민주주의의 최대희생자의 이름으로 그는 기록될것이다. 극단적군사민주주의자들의 다수결의 결정방법을 여기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가령 ㄱ라는 도시를 친다고 할 때에 1. 당소조회의를 연다. 여기서는 도시이름은 비밀에 붙이고 그 도시의 지도를 놓고 그 도시를 칠 필요가 있는가 없는가, 있다면 그 방법은 무엇인가를 토론한다. 2. 다음은 지부총회에서 같은 문제를 놓고 같은 방법으 로 토론을 반복한 다음 거수가결로 결정한다. 3. 다음은 전대회의 에서는 앞서 진행한 소조회의와 내용과 방법에 있어서 같으나 다른 점이 있다면 비당원군인들도 토의에 참가할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 주석은 호수에 돌을 던지듯이 의제를 던져 놓고는 여럿이 모여앉아 결론을 도출해내기 위하여 하자 하지 말자, 된다 안된다, 이길수 있다 없다는 식으로 끝없는 론쟁이 펼 쳐지군 하였다. 군사민주주의의 덕으로 모두가 평등한 발언권을 가 지고 개개명창이 되여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는 론쟁은 무한정 시 간을 끌었다. (3권 216페지)라고 회고하고있다. 이를 재미있는 속담을 들어 소뿔도 각각 념주도 몫몫 이라고 한다. 자칫 생각하면 가장 리상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있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이다. 신당에서 지금 20만명을 상대로 휴대전화여론 을 펴겠다는듯이 말이다. 현대 포스트모더니즘은 객관의 부정과 객체의 해체에서 출발한 다. 그런 점에서 철학에서는 오래동안 고대그리스철학에서부터 론쟁 이 되여오던 거짓말쟁이역설 이 러셀역설 로 둔갑되여 19세기 말부터 수학에 나타난다. 거짓말쟁이가 거짓말을 하면 참말이다. 와 같이 결국 참말이면 거짓말, 거짓말이면 참말 이 성립하게 되 였다. 그리고 수학자 괴델은 증명의 문제에 있어서 이다도 증명 이 가능하고 아니다도 증명이 가능하다. 를 1932년 증명하여 이를 괴델증명 이라고 한다. 사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해부터 시작되 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다 아니다. 된다 안된다. 는 모두 결정불가(undecidability) 일뿐이다. 객관적진리의 부정 그리고 객체의 해체와 함께 주체(subject) 의 문제가 등장한다.

14 (2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7) 북의 주체사상이 등장하는 맥락도 결코 여기서 말하는 포스트모 더니즘의 등장배경과 과히 멀지 않다. 주석은 이렇게 철저한 군사민주주의에 의하여 내려진 결론 이라 하더라도 그러는 사이에 적정에는 변화가 생기고 각급 회의 들에서 모처럼 토의결정된 작전방안은 무용지물이 되군 하였다. 설 사 그 방안대로 싸움을 하는 경우에도 혁명군은 정황조건의 변화때 문에 막대한 희생을 당해야 했다. (3권 216페지)고 회고하였다. 최근에는 건축에 있어서도 청사진을 먼저 만들어놓은 다음에 집 을 짓는것이 아니고 집을 지어나가는 과정에서 청사진도 만들어져 간다고 한다. 지도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경우는 지도를 만들 어가면서 려행을 해야 할것이다.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방법을 과정적(process) 이라 하며 이러한 경영기법을 과정경영 이라 고도 한다. 기성품과 같은 객관적진리는 없으며 주체의 참여에 의해 만들어져가는 과정이 결국 객체를 형성한다. 이런 점에서 주체사상 은 항일유격대의 투쟁방법에서 뚜렷이 나타난다고 본다. 주석은 대황구사건에서 아까운 동지들을 잃은 충격이 보통 이 아닌것 같았다. 극단적인 군사민주주의에 대하여 전률에 가까운 감정으로 역겹게 대하였으며 혐오감과 경계심을 가지고 그것을 반대 한것은 그것이 유격활동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을뿐만아니라 백해무익했기때문이라고 술회하고있다. 아마도 이것은 지금 북이 서 구사회의 민주주의 라는 제도를 혐오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 일수도 있고 국방위원장이 하루 더 묵어가라고 할 때에 로 대통령 이 경호책임자와 의전책임자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고 했을 때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것이다. 대통령 이 결정하면 될 일을 심지어는 의전과 경호책임자에게까지 물어보느냐 하는 의아심 의 발로일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글을 쓰는 나의 추측이지만 타 당성이 있는 추측이라고 본다. 그러면 극단적인 군사민주주의를 이렇게 혐오하고 경계하는 북에 서 최고지휘자의 위치와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것인가? 전원 참가에 의한 토론과 다수결원칙을 극단주의라고 배척할 때에 어떤 선택의 여지가 있느냐이다. 그것이 바로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 다! 이다. 이 구호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지 않다. 여기서 문제시되 는것은 당이라는것이 무엇이며 어떤 존재이냐 하는 질문일것이다. 그리고 당은 어떻게 결정하느냐이고 당원은 누구이냐 하는 질문이 제기되지 않을수 없다. 당의 의사결정에 대중이 참여할수 있는 공 간은 있느냐 하는것이다. 회고록 첫권의 서두는 혁명하는 사람은 언제나 인민을 믿고 인민 에 의거하면 백번 승리하지만 인민의 버림을 받게 되면 백번 패한다 는 진리를 삶과 투쟁의 좌우명으로 삼아야 한다. 로 장식하고있다. 그러면 인민대중의 직접적인 참여에 의한 의사결정 즉 극단적민주 주의와 이 좌우명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것인가? 극단적인 민주주의자인 프랑스의 소부르죠아사상가 프루동으로부 터 로씨야의 바꾸닌이나 크로뽀뜨낀 등은 진실로 인민적이고 민주 주의적인 새 제도, 새 생활을 꾸릴수 없게 하는 백해무익한 조류의 사상가들로서 엄정한 력사의 판정을 받은 퇴물이라고 혹평을 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민주주의는 무제한한 자유에 대한 환상을 조성시 키고 따라서 그것은 자본주의적대공업이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소 부르죠아적, 농민적사상근성이 지배적인 지역과 나라들에선 일정한 정도 파급을 보게 되였다고 한다. 즉 무정부주의가 일정한 몫이라도 차지하게 된 리유가 있는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극단적민주주의가 갖는 이러한 효과도 있기때문에 무정부주의를 끌어들인 례도 있다는것이다. 쏘베트정권이 공민전쟁

15 (2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9) 시기 우크라이나의 무정부주의집단인 마흐노일당과의 합작을 실현했 던것이 그 례이다. 이러한 례들때문에 극단적인 군사민주주의가 항 일유격활동초기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던것이다. 극단적인 군사민주주의는 무정부주의와도 일맥상통한다는것이다. 민주주의 라는 이름밑에 무절제, 무질서가 조장되여 사회적혼란 과 방종을 야기시키고말았다. 주석은 이런 리치를 념두에 둘 때 우리는 극단적부르죠 아민주주의와 무정부주의사이에는 사상적공통성이 존재한다는 결론 을 내리지 않을수 없다. (3권 225페지), 항일전쟁초시기 극단적 군사민주주의를 철저히 극복하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해방후 그처 럼 짧은 기간에 인민군대를 불패의 대오로 강화할수도 없었을것이 며 (3권 228~229페지)라고 회고록에서 술회하고있다. 선군정치 의 기틀을 리해할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그러면 지휘관과 인민대중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서는 모든 문제를 일단 당조직에서 토의하는 것을 절대적원칙으로 삼고있으나 대중의 창발적인 의견이 당조직을 통하여 군사작전수립에 반영되는것을 환영한다. 그러나 그런 집체성 이 지휘관의 권한을 침해하는것은 용인하지 않는다. 항일유격대의 복무조례는 군인집단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한 다음 지휘관들이 먼 저 그 복무조례를 자각적으로 지키도록 요구한다는것이다. 이것이 관병일치를 생명으로 하는 항일유격대의 복무조례이고 생각키로는 오늘 북의 선군정치에도 그대로 유효한것이라고 본다. 관병일치란 군대에서 전사는 지휘관을 위해 방패가 되고 지휘관 은 전사들을 위한 육탄이 되는것이다. 이런 고결한 동지애와 사상의 지만이 만사람이 한목소리로 말할수 있고 한걸음으로 걸으며 한숨 결로 호흡하는 그러한 강철같은 통일체를 꾸릴수 있다는것이다. 지 휘관과 병사를 방패와 육탄의 관계로 비유하면서 서로 방패가 되고 육탄이 되여 하나가 여럿을 위하고 여럿이 하나를 위하는 정신, 이 것이 지금 북의 헌법 63조의 정신으로 나타난것이다. 아리랑 공연을 볼 때에 일부 남쪽사람들은 집단주의의 기계화 된 인간의 표현으로 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서양사상의 고질적 인 전체우에 하나가 군림하는 one over many 가 아닌 하나와 여럿이 상호융화된것이 바로 북을 지탱하는 정신이라는 사실을 바 로 알아야 할것이다. 상하일치, 군민일치,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정 신은 핵보다도 강하고 어떤 강대국도 당해낼수 있는 힘이라고 북 은 믿고있는것이다. 주석은 회고록에서 수정주의가 우리의 체내에 침습하 는것을 결단코 용납하지 않고있다. 우리는 우리 당이 극단적민주주 의로 하여 구락부화되고 장마당화되는것을 바라지 않는다. 극단적 군사민주주의로 하여 강요되였던 항일전쟁당시의 진통과 동구라파 의 교훈이 그렇게 하라고 부르짖고있다. (3권 229페지)라고 지적 하고있다. 로무현 대통령 이 개혁, 개방 을 말했을 때에 북이 발끈한 리유도 이제야 알것 같지 않은가? 회고록을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정신으로 선군정치를 하는 북을 향해 개혁, 개방 을 말하 는것은 너희들이나 가서 퇴물이 된 서구식민주주의나 제대로 하라 는 메아리가 되여 되돌아오는것과 같다. 지금은 서거한 주석이 남긴 회고록의 의미를 새기는 우리 의 마음은 착잡할수밖에 없다. 지금도 먄마에선 민주화시위가 계속 되고있고 이 글을 쓰는 오늘 홍콩에선 840명만 투표할수 있는 권 한을 대중의 직접투표로 돌려달라고 시위를 하고있다. 그리고 남쪽 의 신당의 경선도 불투명한 상태이다.

16 (3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31) 아는것을 알지 못한 밀정 최용빈 인류력사상 지구촌 최초의 제국이 된 미국, 이러한 미국도 아킬 레스건이 있다. 국제정치학자들은 남북 그리고 미일 4자간에는 이상한 고양이-쥐 력학관계가 있다고 한다. 미국-일본, 미국- 한국, 북-미국이 서로간의 고양이-쥐관계라는것이다. 코대높은 나라 미국이 유일하게 사과하고 무릎꿇는 대상이 바로 북이다. 푸에블로 호사건때 죤슨대통령이 북에 사과하고 승무원 들이 무릎꿇는 모습들을 보았을것이다. 판문점 미루나무사건때도 경우는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국제정치상식으로 리해 못할 일이다. 북이 강대국의 코를 끌고다니고 지금도 건재할수 있는 비결을 나 는 지도자의 지도력때문이라고 본다. 그 한 단면을 왕청지구에서 사령관이 옛 동지였던 최용빈 이 변절자가 되여 앞에 나타났을 때에 그의 위장전술(오그랑수)을 간파한데서 엿볼수 있다고 본다. 오그랑수란 꼼수 혹은 속셈을 두 고 하는 말이다. 정보화시대는 과거 소박하던 때와는 다른 가상공 간속에 정보가 류통되고있다. 소위 신종범죄 라는것이 모두 이런 정보화때문에 생긴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상대방의 속셈을 미리 알아차리는 속셈학(subliminal) 이 등장할 정도이다. 우리는 지금 아직 너무나도 농경사회 혹은 굴뚝산업화시대의 의 식구조를 가지고 정보화시대에 림하고있다. 그러다가 당한것이 바로 IMF이다. 정보화사회의 특징은 메타화이다. 눈에 대해 눈치, 말에 대해 말귀 를 구별할줄을 알아야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말 은 살린다 인데 말귀는 죽인다 이다. 마치 호랑이가 어머니한 테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할 때에 말은 안 잡아먹는 다 이지만 말귀는 잡아먹는다 이다. 해님이, 달님이 오누이가운 데 동생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였지만 누나는 알아들었다. 이 설 화는 우리 민족이 강대국틈속에 살아남자면 아는것(known) 만 으론 안되고 아는것을 알아야 함(known known) 이라는 교훈 을 주고있는것이다. 왕청지구 유격대중대장 최용빈의 사례를 통해 아는것을 알지 못 한 사례를 하나 생각해보기로 하자. 최용빈은 힘이 장사이고 한다 하는 싸움군이였다. 그러나 그는 얼마후 민생단 으로 몰리게 되 자 처자식을 버리고 일본의 적통치지구로 내려가버린다. 최용빈은 그후 5년이 지나 사령관유격대를 다시 찾아온다. 그는 사령부천막에 들어서자마자 곤두박질을 치며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최용빈은 유격대에 다시 돌아오기 위해 산중에서 고생하던 얘기를 묻지도 않는데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그런데 이제부터 그의 언행에서는 그가 아는것을 알지 못하는것 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드디여 그가 밀정이라는 정체가 밝혀진다. 사령관이 식사를 했는가고 묻자 그는 요 아래에서 밥을 끓 여먹고 오는 길이라고 하면서 산중에서 혼자 얼마나 고생했는가를 보여주려는듯 배낭속에서 쌀자루, 말린 가재미, 술을 꺼내놓는다. 그런데 유격대를 찾느라고 산중을 오래 헤맸다는 사람의 쟁개비 가 그을음 하나 묻지 않고 새것대로 있으니 이상한 일이였다. 최용 빈은 자기가 하는 말과 행동을 알고있지 못하였던것이다. 회고록에는 이렇게 씌여있다.

17 (3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33) 최용빈은 내가 자기를 어떻게 본다는것도 모르고 고뿌에 술을 가득 붓고나서 다시 만난 기념으로 마시자고 하였습니다. 내가 그 청을 거절하자 그는 갑자기 술고뿌를 쥔 손을 덜덜 떨 었습니다. 내 목소리가 노기에 차있었으니까 아마 자기 정체가 다 드러났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8권 64페지) 우리는 종종 철없는 아이들에게서 이런 사례를 발견하군 한다. 자기가 거짓말을 하고있다는 사실을 어른들은 알고있는데 자기자신 만은 자기가 하는 거짓말을 어른들이 눈치채지 못할것이라 생각한 다. 이를 오그랑수라 한다. 최용빈은 토벌대 3개 부대로 유격대가 있는 골안을 포위해놓 고 이렇게 나타나 오그랑수를 쓰다 정체가 들통이 난것이다. 이러한 포위망속에서 오그랑수의 속셈을 간파해야 아니, 그것을 꿰뚫어볼수 있는 안목을 가진 지도자만이 자신과 자신이 이끌어가 는 대중을 불행하게 하지 않는다. 그래야 살아남는다는것이다. 만약 사령관이 최용빈의 수에 속아넘어갔다면 그 순간 일 이 나고말았을것이다. 토벌대 3개 부대라면 유격대의 수에 비교 해 적지 않은 수였다. 용기만으로 안되는 리유가 여기에 있다. 용 장보다 지장이 더 중요한 리유가 여기에 있다. 리순신장군이 전쟁에서 불패의 신화를 남긴 리유도 다름아닌 일 본의 오그랑수를 먼저 간파하고 더 높은 수로 대처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원균은 일본의 오그랑수에 빠져 넘어가 칠천량전 투에서 수천명의 군사를 몰살시키고 자기도 죽고말았다. 리순신이 그렇게 만류했는데도 불구하고 원균은 대군을 이끌고 일본이 파놓 은 함정속에 스스로 기여들어가고말았다. 중국 통화성일대와 랑림산맥의 호랑이라 불리던 량세봉사령도 밀 정의 말귀를 못 알아듣고 눈치를 채지 못해 죽었다. 1934년경 일 경은 배신자 왕가를 량사령에게 보내여 중국항일군이 독립군을 원 조하기 위하여 사령을 만나려고 한다. 고 회유하였다. 이때에 량사령은 왕가 말의 말귀와 눈치를 신속히 파악했어야 했 다. 지푸래기라도 잡고싶던 다급한 상황에서 중국항일군이 원조를 약속한다는 말에 그만 앞뒤를 분별하지 못하고 왕가를 따라 항일 군이 기다리고있다는 대립자로 향하였다. 결국 량세봉사령은 로상에 서 일제에게 살해되고말았다. 그렇게도 반공을 하던 량사령도 마지막 죽을 때에 나는 죽어서 항일을 할수 없지만 너희들은 살아서 사령을 찾아가라. 살길 은 그 길밖에 없다! 는 유언을 남겼다. 드디여 4년후 량사령의 마 지막부대는 유격부대와 합류를 한다. 량세봉사령이 비록 반공을 하였지만 주석은 그를 렬사릉에 안치하였고 그의 자녀들은 지금 북에서 건재하다. 1948년 김구선생 이 평양에서 량사령의 자녀들을 만나고는 놀랐다고 한다. 반공주의 자의 자녀를 돌보아주는 주석을 다시 보게 된것이다. 중국항일운동의 거봉이라 할수 있는 양정우도 밀정 정빈의 배신 과 그의 고발로 죽고말았다. 1938년 일본은 항일유격대를 힘으로 는 이길수 없다는 판단아래 은사의 대조 란 말을 만들어 항복귀 순자들을 처형하지 않고 후히 대접한다고 공포한다. 그래서 국내에 서도 이무렵에 많은 비겁분자, 신심이 허약한자들이 귀순하여 밀 정으로 활동하였다. 양정우는 자기의 오른팔 정빈이 안내하여온 일본군의 손에 죽고 말았다. 그가 죽을 당시에 그의 곁에는 조선인유격대원이 끝까지 그 를 호위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 35살, 배신자 정빈도 결국 배신에 의해 비참하게 죽고만다. 해방후 김구선생도 밀정 안두희의 손에 죽었다. 안두희가 찾아왔

18 (3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35) 을 때에 김구선생은 처음부터 그의 언행을 수상하게 여겼어야 할것 이다. 그의 눈치를 살피고 말귀를 알아들었어야 할것이다. 실로 눈 치와 말귀는 핵폭탄보다 큰 힘을 갖는다. 남을 믿는 덕 하나만으로 는 위대한 지도자가 될수 없을것이다. 항일유격대가 지참해야 될 4대필수품은 식량, 성냥, 신발, 소금 이라고 한다. 이 사실을 안 일본 토벌대 는 소금단속에 나서고 소 금이 유격대안으로 반출되는것을 적극 차단하고 모략을 꾸민다. 소 금에 독을 넣으면 온 부대가 몰살한다는 사실을 안 적들이 소금을 리용 안할리가 없다. 1936년 유격대가 장백지구에 들어와 첫 싸움 을 한 뒤 마순구란 곳에서 추석준비를 하고있을 때에 적들은 독소 금을 유격대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러나 무명의 한 로인이 이 사실 을 알려주어 위기를 모면했다. 1939년 봄에도 소금이 바닥이 났다. 유격대원 김봉록이 마을에 내려가 아버지를 만나 사정을 말하니 아버지는 친구의 친구의 친구, 세 다리나 건너 겨우 소금을 구해가지고 왔다. 그런데 이 세번째 로 인의 아들이 밀정이였다. 그 과정에서 이를 안 일본경찰이 소금에 독을 넣은것이다. 그러나 김정숙녀사가 비상용으로 늘 가지고 다니던 식초를 소금에 넣으니 소금의 독이 금방 반응을 보였다. 김정숙녀사가 사령관과 그 부하들을 위기에서 구원한 사실 들가운데 하나이다.(7권 209페지) 실로 뛰여난 지혜를 가지지 않고 는 살아남기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였다. 조조와 류비가 술좌석에서 영웅론 을 전개한다. 조조의 3대영 웅론은 걸작이다. 가슴에는 큰뜻을 품고 옷섶에는 우주의 기틀 을 숨기고 배에는 꾀를 가진자 라고. 이 말을 들은 류비가 술잔을 떨어뜨리고말았다. 자기의 정체를 알아본 적장이 두려웠기때문이다. 류비는 덕장이지 지장은 아니였다. 결국 중원을 통일한것은 꾀많은 조조였다. 영웅의 3가지 조건가운데 꾀란 바로 말귀를 알아듣고 눈 치를 파악하는 힘이다. 그런데 덕이 없는 꾀란 잔꾀가 되고 이를 오그랑수라 한다. 꾀가 없는 덕은 썩은 고목이다. 정체가 드러난 최용빈은 이제 사령관을 회유, 설득하기 시 작한다. 그의 회유의 내용은 이렇다. 만주천지는 일본군대가 쫙 깔 려있다, 김장군은 할만큼 다했다, 당장 귀순한다 해도 허물을 묻지 않을것이다, 지금 당장 산에서 내려오면 길림성 성장자리를 주겠다 고 하더라고 최용빈은 주어섬기였다. 이를 두고 주석은 사람이 자기만을 생각하면 결국 이렇 게 됩니다. (8권 65페지)라고 하였다. 주석은 높은 의식수준이 결코 하늘로부터 주어진것도 아니 고 타고난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민대중속에서 나 온다고 했다. 인민들보다 현명하고 똑똑함은 없다는것이 주석 의 기본인민관이고 철학이였다. 철두철미 인민대중속에, 군중속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거기서 지혜를 구했던것이다. 사대주의와 자기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한자들만이 눈이 멀고 귀 가 멀어 강도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속임수에 그대로 속아넘어갔다. 인민이 현명한 리유는 지능지수가 높아서도 아니고 똑똑해서도 아니 다. 다만 그들이 가진것이 없는 사심없는 마음때문이다. 주석은 이런 마음을 애국, 애족, 애민이라 한다. 인민들이 야말로 눈에 비늘이 가리지 않는 마음이 가난한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눈을 자기가 볼줄 안다. 이것만이 답이다. 해방이 되자 이미 대중들은 미국 믿지 말고 쏘련에 속지 말 고 일본이 일어난다 조선아 조심하라. 했건만 사대와 매국에 물 젖은자들은 사대예속적의식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주권을 송두리채 미국의 손에 넘겨주고말았다. 자주( 自 主 ) 가 생명같이

19 (3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37) 중요한 리유는 다름아닌 사대주의야말로 의식의 수준을 한없이 떨 어뜨려버리기때문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의존하기만 하면 생존할수 있으니, 이를 심리학에서 부모-아이(parent-child) 게임 이라 한다. 자신의 독자적인 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는것과 같다. 지금 남쪽의 당국자와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이 정도이다. 강대 국들이 호시탐탐 자기 리익만을 노리고있는 마당에 자기의 운명을 이들의 손에 내맡기고있으니 이만큼 위험한것은 없다. 하루속히 우 리의 자주권을 회복하고 사대주의를 청산해야 할것이 급선무가운 데 급선무이다. 회고록속을 면면히 흐르는 주제는 인민과 함께 이다. 인민대중과 함께 할 때에 그속에서 무궁무진한 힘과 지혜가 나왔다는것이다. 우리는 항일유격대의 사령관과 그의 동지들 이 보여주었던 모습에서 미일의 오그랑수에 결코 속아넘어가지 말 아야 할것이다. 1931년 만주사변으로 본 핵페기 먼저 라는 오유 촘스키교수와 슬레에보철학자 지젝 등이 한결같이 주장하는바는 만약에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와 핵무기가 있었더라면 부쉬가 절대 로 이라크를 침공하지는 못하였을것이라는것이다. 그리고 이라크침 공전에 이라크에 그런것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먼저 안것은, 아 니 정확하게 안것은 부쉬와 체이니와 펜타곤 즉 국방성이였다는 점 이다. 그러나 부쉬정부는 대량살상무기와 핵때문에 이라크를 침공 한다고 대국민 아니, 전세계를 상대로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조사 결과 이 두가지 무기는 이라크에는 없었다. 전혀 없었다. 이라크는 점령당했고 후쎄인은 죽었고 무고한 민간인이 수십만이나 죽었으며 미군병사들도 전사자가 수천명에 이르고있다. 인간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앞뒤 안 맞는 말을 하는 것은 심리학자 프로이드의 풍자가 일품이 아닌가 한다. 즉 빌려 온 항아리 라는 풍자말이다. 지젝은 부쉬와 그의 푸들 블래어가 이라크침공을 앞두고 늘어놓은 앞뒤 안 맞는 언행을 이라크, 빌 려온 항아리(The Iraqi Borrowed) 에서 잘 고발하고있다. 우리 말로도 번역된 이 책을 이미 읽은 독자들도 있을것이다. 내용은 이 러하다. (1) 나는 당신에게 항아리를 빌린적이 없다. (2) 나는 항 아리를 깨지지 않은 상태로 돌려주었다. (3) 당신에게 항아리를 빌 렸을 때에 그건 이미 깨져있었다. 이는 비일관된 주장으로 라렬된

20 (3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39) 것 같지만 나는 깨진 항아리를 돌려주었다. 를 부정을 통해 승인 하고있는것이다.(지젝, 2004, 8) 한마디로 말해서 프로이드가 부쉬 를 두고 해둔 말 같다. 지젝이 책을 쓴 다음, 2007년 미 중간선거에서 부쉬 공화당정부 는 상하원에서 과반수의석을 잃었다. 그리고 전쟁주범인 람스펠드는 사임했다. 이렇게 전세계 소수의 비정치적인 철학자와 언어학자들의 예언의 소리가 적중하고있다. 그래도 우리에겐 이런 지식인들이 있 어서 희망이 있는것이다. 만주사변이후 국내외 지식인들이 이젠 동북아천지가 일본세상이 다되였다고 허무주의와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비관에 빠져있을 때에 이런 시류에 역행하여 일본패망이 반드시 오고야말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항일유격대를 꾸린 인물이 있었다. 그 인물이 주석이다. 주석은 리념과 사상을 떠나서 앞날을 볼줄 아는 혜안을 가지고있었던것이다. 미국 클레어몬트대 과정사상연구소의 데이비드 그리핀교수는 9.11이 완전히 미국의 자작극이라는것을 폭로하는 두권의 책으 로 유명하다. 그리핀교수는 부쉬의 행동을 두고 미국의 위장기발 (false flag) 흔들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대사에서 3가지 대표적 인 위장기발흔들기로 주석이 회고록 2권에서 절절히 언급하 고있는 1931년 일본의 9.18만주사변과 일본의 진주만공격 그리고 1968년 윁남에서의 바크보만사건을 꼽고있다. 그러면서 9.11은 미국이 하와이 진주만에서 흔든 위장기발의 제 2탄으로서 신판 진주만공격사건(New Pearl Harbor) 이라고 했 다. 그리핀교수는 이어 미국이 건국초부터 메히꼬전쟁에 이르기까 지 건건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빌미로 앞뒤가 일관하지 않 는 행동을 저질러왔다는것이다. 회고록에서 사령관이 알리는 사건의 진면모는 우리가 력사에 서 배운 내용과 일치한다. 력사의 복습을 위해 이 사변을 회고록을 통 해 다시 요약하면 1931년 9월 18일 밤 심양 북대영 서쪽 류조구에서 일본만철회사소유의 철도가 폭파되였다. 일제는 장학량군이 철도를 폭파하고 일본수비대를 공격했다는 터무니없는 구실을 내걸고 불의의 침공을 개시하여 일거에 북대영을 점령하였으며 19일 아침에는 봉천 비행장까지 차지하였다. (2권 214페지),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진상을 오도하여 중국측에 사건의 책임을 전가시켰지만 세상사람들은 누구도 그들이 내돌리는 여론을 믿지 않았다. (2권 214페지)와 같다. 물론 사건을 꾸민 장본인은 관동군특무기관의 심양특무기관장 도 히하라 겐지대좌이다. 이자의 9월 18일이후 행각을 보면 그것이 위장기발임이 금방 드 러난다. 그는 만주에서 일을 저질러놓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같은 날 서울에 나타나 자기와 이 사건은 아무런 상관이 없 는것처럼 능청을 떤다. 그는 큰일을 낸자치고는 너무나도 여유작작 하게 조선주둔군사령부 고급참모 간다 마사다네를 만나 서울에 온 리유를 신문기자들이 시끄러워 왔다고 에둘러 설명하였다. 그날 서 울 백운장이란 술집에서는 일본 항공본부장 와다나베 죠따로대장 이 찾아와 조선주둔군사령관 하야시 센쥬로대장과 기생파티를 하고 있었다. 모두가 만주사변과는 일본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주석은 이런 일본의 행동을 조선전쟁당시 미국의 트루맨의 행동과 너무나 일치된다고 했다. 이 력사기록을 읽게 되면 어째서인지 조선전쟁이 발발하던 때에 트루맨이 별장에 가서 지내던 일을 상기하게 된다. 우리가 9.18사변과 조선전쟁이라는 서로 다른 두개의 전쟁에서 일맥상통한 점을 찾아보

21 (4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41) 게 되는것은 두 전쟁 다 선전포고없이 돌발적으로 개시되였다는 거기 에만 있지 않다. 그 두 사변을 도발한 인간들의 면모에서 제국주의 자들에게 고유한 교활성과 파렴치성, 다른 나라들에 대한 침략성과 지배주의적본성을 다같이 찾아보게 되기때문이다. (2권 215페지) 나는 2006년 여름 미국 로스안젤스에 사는 38 선도 6.25도 미 국의 작품이다 의 저자 하리마오 박선생을 윌셔호텔 식당에서 친구 들과 함께 만난적이 있다. 그는 고급 미국첩보장교였다. 당시 미8군 사령관이 6월 24일 아침 4시까지 8군장교구락부건물락성식 축하파티 에 참가하고 일본으로 떠난 사실에 대해 하늘나라에 가서라도 그냥 두지 않겠다고 하면서 38 선도 6.25도 모두 미국의 사전 씨나리오에 지나지 않는다고 박선생은 증언하였다. 브라운의 행각이 만주사변을 저지른 일본장교들이 벌린 그것과 같아도 너무 같다. 부쉬도 9.11테 로날 어디 가 있었는가? 그가 백악관에 없었던것은 분명하다. 그리핀 교수주장에 의하면 이미 다 아는 사실, 그러나 자기는 몰랐다는것을 국민들한테 보여주기 위한 위장행각에 불과하다는것이다. 여기서 주석의 력사관이 나타난다. 보통 자연은 반복 그리 고 력사는 반복하지 않는 비반복적( 非 反 復 的 )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주석은 력사를 비반복적인 사건들 의 루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개개의 사건들사이에 존 재하는 류사성과 공통적인 경향성을 우리는 또한 전혀 무시할수가 없는것이다. (2권 215페지)라고 회고록에서 쓰고있다. 자연과학은 같은 실험을 반복해 할수 있지만, 력사과학에서는 임 진왜란 같은 력사적사건을 반복시킬수는 없는것이다. 그러나 주석은 력사에도 반복적인것이 있는것이 아닌가 반문 한다. 다시말해서 만주사변과 조선전쟁사이에는 류사성이 있다는것이 다. 그렇다. 제국주의자들의 위장기발흔들기의 반복성이 있는것이다. 주석이 여기서 말하고있는 터무니없는 구실 이라는 말이 바로 그리핀교수의 위장기발 에 해당한다. 가해자이면서 오히려 피해자로 둔갑하기 위해 흔드는 기발말이다. 일본의 본성 이란 그 력사가 오래다. 임진왜란당시 명나라를 치겠으니 길을 내라고 구실 을 붙인것도 이에 다르지 않다. 사실 동북아에서 일본의 이러한 피 해자둔갑변신술은 만주사변이 처음이 아니다. 만주철도부설을 위한 장작림렬차폭파사건, 만보산사건, 관동군참모본부소속 나까무라대 위의 실종사건 그리고 그 무엇보다 1937년 중일전쟁의 도화선이 된 로구교사건 등등 그 수를 손으로 다 헤아릴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만보산사건은 장춘에서 서북으로 70~80여리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두 민족 농민들사이에 보물때문에 생긴 작은 일이였는데 일본은 이를 민족간 문제로 비화시켜 두 민족사이에 리간질을 시키 고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의 피해를 가져오게 하였다. 이에 대하여 주석은 농촌에서 흔히 있을수 있는 지방 적인 분쟁을 민족리간책략에 솜씨있게 리용한것이다. (2권 216페 지)라고 한다. 그러나 조중농민들은 일본의 간계에 완전히 빠져 서로 두들겨패 고 죽이기까지 했다. 주석은 농민들가운데 선각자가 단 한사 람이라도 있었더라면 일본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을것을 안타까워하 고있다.(2권 216페지) 이렇게 미일 두 제국이 전혀 달라짐이 없이 같은 수법을 사용하 고있는데 대하여 우려하지 않을수 없다. 일본이 랍치문제를 계속 꺼내고 미국이 북핵문제, 위조화페문제 그리고 인권문제, 나아가 종교의 자유문제를 꺼내는 등 모두가 결국 9.18만주사변의 재판과 9.11테로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력사는 반복되고있는것이다. 여 기서 우리가 정신차리고 알아야 할 사실은 미국이나 일본이 꺼내는

22 (4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43) 것은 핵이나 인권 그자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위장기발은 그것이 기 발이 아니고 사실은 카드 라는 점이다. 놀음판에서 카드란 자기 의 리해득실에 따라서 꺼내드는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야정치인들은 이러한 일본과 미국의 카드놀음 에 놀아나지 말아야 할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사정은 정반대이 다. 지금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리명박은 핵 먼저 페기 없이 경 제지원없다는 론리를 대선 정책으로 결정해놓고있다. 문제는 핵이 해결되면 다음 인권카드가 나올것이고 그러면 리명박은 분명히 인권 먼저 해결 을 구호로 내걸것이 분명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호랑이가 떡장수어머니에게 그러하듯 카드는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나올것이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리명박의 이러한 행동은 한국 수구보수 의 전가의 보도와 같다. 지금 유력 대권 후보자 하나가 미일의 위장 기발을 다시 흔들고있으니 력사는 반복되는것이 분명한것 같다. 주석이 이야기한대로 력사는 비반복적이 아니고 비비반복 적( 非 非 反 復 的 ) 이다. 다시말해서 반복적 이다. 지금 우리는 과 거 춥고 배고픈 시절이 다시는 오지 않을것이라 착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력사는 비비반복적이다. 같은 말이지만 반복적이라 하지 않 는 리유는 생각의 생각을 깊이 한번 해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주석도 회고록에서 력사는 과연 비반복적인가 묻고있지만 내가 여기서 비비반복적이라고 말하고싶은 리유가 여기에 있다. 만보산사건이 있던 날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무엇때문에 서로 주먹질을 하면서 피투성이싸움을 해야 하는가, 항일이라는 대전제밑에 두 나라 민족이 손을 굳게 잡고 공동투쟁에 나서야 할 때 물길 하나를 놓고 서로 악에 받쳐 <골육상쟁> 을 하니 이것이 도대체 무슨 꼴인가. (2권 216페지)고 사령관 은 한없는 비탄에 잠기였다고 한다. 번민과 고민으로 밤을 새운 날 새벽 이 사건이 미리 꾸며진 연극으로, 박두해오고있는 어마어 마한 사변의 전주곡으로 느껴졌다. (2권 216페지)고 한다. 만보산 농촌마을에서 생긴 사소한 보물사건에 장춘령사관이 끼 여들면서 조선사람들의 리권을 옹호하여나온것이 미심쩍었던것이다. 언제 일본이 조선인민과 농민들을 위했다고, 토지조사령 같은 법 령으로 조선농민들을 략탈해오던 일본이 갑자기 옹호자로 둔갑한것 이다. 장춘의 경성일보 지국은 본사에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도록 하였으며 심지어는 호외로 배포까지 하였다. 무기는 다음이다. 우리 민족이 살아남는 길은 미일의 속셈 위장 기발에 속지 않는것이다. 그러자면 지도자가 현명해야 한다. 아무도 아직 판단하고있지 않을 때에 주석은 나는 그때 일제의 만주침략은 시간상문제라고 판단하였다. 조선을 먹은 다음에는 만몽을 먹고 만몽을 먹은 다음에는 중국 을 먹으며 중국을 먹은 다음에는 아세아를 제패하려는것은 <다나까 상주서>에도 규정되여있는바와 같이 일본의 기본국책이였다. (2권 217~218페지)고 쓰고있다. 그러나 안타까운것은 당시 지도인물로 자처하는 사람들중 대부분 이 이 사실을 모르고 아니, 자기 기득권때문에 알고도 일본의 장 단에 춤을 추는것이였다. 다시 강조한다. 력사는 비비반복적이다. 력사는 되풀이되고있다. 적어도 동북아는 자연과학자들이 같은 실험을 되풀이할수 있는것 같이 력사를 되풀이 시험할수 있는 장소이다. 오직 한가닥 희망이 있다면 우리끼리이다. 남북민 우리 민족끼리 단결하는 길만이 력사 의 반복을 막을수 있는 오직 단 하나의 해답이다. 나는 남북민이 합심한 선군정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고구려의 상무정신이 지금만 큼 필요한 때는 없을것이다.

23 (4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45) 유격구를 수라장으로 만들어놓은 좌경분자들 주석은 생전에 해외동포대표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일본은 경계해야 한다, 일본의 제국주의는 이 세상 제국주의가운데 가장 퇴매한 제국주의이다(홍동근, 1997, 153)고 하였다고 한다. 일본이 9.18만주사변을 조작해낸것은 결코 그자체에 목적이 있었 던것이 아니다. 사변직후 일본은 두가지 큰 사건을 만들어낸다. 그 하나가 1932년 만주국 만들기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해 간도조 선인들을 상대로 한 민생단 꾸미기이다. 만주국 과 민생단 은 만주사변의 후사건과 같은것으로 일제가 만주사변을 조작한 진 정한 동기가 드러나는 사건이라 할수 있다. 이 지구상에 력사가 시작된이래 이만큼 억울한 일도 있을가? 나 는 미국에서 공부할 때에 매년 8월초가 되면 일본이 히로시마와 나 가사끼 원폭피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는것을 보고 력사의 피해주장 도 강자만이 할수 있구나 하고 생각한적이 있었다. 홀로코스트 (제2차대전시기 도이췰란드의 유태인대학살), 그것도 이젠 유태인들 의 점유물이 되였다. 이 지구상에는 유태인보다 더한 학살을 당하 고도 힘이 없고 돈이 없어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알릴수도 없는 경우가 많다. 일본인녀류작가가 쓴 요꼬이야기 는 해방후 일본녀 인이 조선사람들에 의해 강간폭행 당했다는 이야기가 그 줄거리 이다. 이 소설이 미국 중, 고등학생들의 교과서로 채택되였다. 우리 교민들이 이에 항의해보지만 력부족이였다. 일본의 원폭도, 유태인들의 홀로코스트도 모두 그들의 적들로 부터 당한것이다. 그런데 여기 1930년대초 동만( 東 滿 )일대에서는 기이한 사건이 하나 벌어진다. 그것은 소위 반 민생단 사건이다. 회고록 4권전체에 검색어를 치면 아마도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이 민생단( 民 生 團 ) 일것이다. 주석은 항일유격대 전 활동과정가운데 이만큼 괴롭힘을 당 한적이 없었다고 회고한다. 오늘의 북조선의 인맥과 로선 그리고 주체사상의 기원을 파악하 는데도 민생단 이란 말을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그리고 내가 그 이름을 바로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것을 느낀것 도 민생단 사건때문임을 밝혀둔다. 1936년경 극단적인 좌경분자 들은 마안산이란 산골짜기에 앞으로 민생단 으로 몰아 처형할 사 람들을 모아놓고있었다. 1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리고 거기에 는 10살 전후의 어린이들도 있었다. 사령관이 인솔하는 부대 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그들은 사람에 대한 경계심과 공 포에 가득차있고 며칠을 굶어 피골이 상접해있는 상태였다. 죽음을 앞둔 이 사람들은 무표정 그자체였으며 사령관일행 을 또 자기들을 해치러 온 부대로 볼 정도였다. 그런데 사령관은 도착하는 즉시 민생단 자료들을 모조 리 모아 불태워버리고 이들을 모두 해방시켰다. 마치 노비문서를 불태워버린것과 같다. 그리고 집을 떠날 때에 어머니 강반석녀사가 준 돈 20원으로 무명광목을 사다가 헐벗은 아동들에게 모두 새옷 을 해입힌다. 장편소설 아리랑 의 주인공 김산(장지락)마저 극좌좌익들에 의 해 민생단 으로 몰려 죽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민생단 으로 몰

24 (4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47) 려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해방후 마안산에서 사령관에 의하여 구원된 사람들가운데 살아돌아온 사람들이 오늘 북조선을 움직이는 인맥이 되였다. 그 때에 살아난 사람들이 죽을 목숨을 살려주고 먹을것과 입을것을 준 사령관을 어버이라고 하는것이다. 어버이수령이란 말이 거기 서 유래했다는것을 안다면 세뇌에 의해 억지로 붙여진것은 아니라 는 사실을 리해하게 될것이다. 회고록 4권은 반 민생단 사건회고라 할 정도로 그 내용으로 가 득차있다. 그 첫절 제목이 사나운 회오리 이다. 반 민생단 사 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1932년을 전후로 하여 사령관은 신 변주변에서 있었던 일들, 착잡했던 심경들 그리고 고달팠던 시절을 라자구등판에서 겪은 시련이 크다고 하지만 반 민생단 사건에 비 하면 약과라고 할수 있다고 했다. 라자구등판의 시련은 1930년대 말 고난의 행군에 버금가는 유격활동초기의 최대시련기를 두고 하 는 말이다. 그런데 그 시련보다 민생단 이 더 큰 괴로움을 주었다고 주석은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있다. 시련의 나날들은 꿈결처럼 지나갔다. 우리의 앞길을 막아서던 중중첩첩한 설령들은 저 멀리로 사라지고 피와 고뇌로 얼룩진 원정 은 승리적으로 종결되였다. 조선공산주의자들앞에는 그 승리에 기 초하여 혁명을 심화시킬수 있는 새로운 전망이 열리였다. 병마에 지 친 몸을 끌고 로야령산정에 오른 나는 대원들과 함께 왕청의 산발 들을 굽어보며 환성을 올렸다. 수개월동안 초연과 혹한속에서 겹쌓 인 피곤이 순간에 다 가셔지고 고향의 뒤동산에라도 와닿은것 같 은 희열로 마음마저 구름처럼 부풀어올랐다. 하지만 나는 왕청으 로 돌아온 다음에도 며칠동안 침상에서 고열과의 싸움을 하지 않 으면 안되였다. 원정에서 얻은 촉한의 후유증이 또다시 나를 쓰러 뜨리였던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숙반>바람에 유격구가 만신창이 되 였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의 침상에까지 날아들어왔다. <간호병>들 도 유격구를 수라장으로 만들어놓은 좌경분자들의 죄상을 분노에 차서 고발하는것이였다. 몇달전까지만 하여도 혁명을 하느라고 왕청골안이 좁다 하게 뛰여 다니던 당원들과 공청원들, 부녀회원들이 광란적인 살인각본의 작성 자들과 그 집행자들에게 저주를 보내며 자기자신들이 피로써 개척하 고 사수해온 유격근거지를 버리고 동서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가는것 같은 전률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우주의 모든 움직임이 한순간에 죄다 정지되고 세상만물 이 빙하에 짓눌려 종말을 고하는것 같은 무서운 절망과 좌절감을 느끼였다. 16명밖에 안되는 대오를 이끌고 촉한에 걸린 몸으로 천교령을 넘을 때의 난관 역시 모진것이기는 하였으나 <민생단>문제때문에 당 해야 했던 고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였다. (4권 1~2페지) ( 숙반 이란 지금의 숙청 그리고 촉한은 장티브스 같은 열병을 두고 하는 말) 나는 몸도 마음도 다 고통으로 시달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4권 3페지) 주석은 스스로 자신은 타고난 락천가라고 8권에서 말하고 있다. 이러한 락천적성격때문에 그 시련의 시절을 견디여낼수 있었 다고 한다. 그러나 민생단 문제에 있어서만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 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회고하고있다. 사실 인간이 견디기 어려운 것은 외부의 적에서 오는것이 아니고 내부에서 생긴것이다. 적이 적 이 아니고 동지가 적으로 변신할 때 인간은 참을수가 없는데 이를

25 (4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49) 두고 베이트슨은 이중구속(double binding) 이라고 했다. 바로 이런 이중구속적상황으로 끌려들어가 결국 좌경분자들로부터 모해 를 당했던것이다. 드디여 이 사건으로 다홍왜회의에서 결말을 짓기 까지 그 전 과정을 우리는 회고록 4권을 통해 읽을수 있다. 민생단 사건의 분수령을 이룬것은 1931년 9월 18일에 있었던 9.18만주사변이다. 이는 세계력사상 손꼽힐만 한 일본이 자행한 위 장기발사건이다. 진주만, 바크보만 그리고 만주사변 이 3대사건은 미일이 흔든 3대위장기발이라고 그리핀교수는 이미 지적한바이다.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위장기발, 그러나 그 후과는 실로 엄청난것이였으며 동만에서 좌경분자들이 견실한 혁명가들과 무고 한 군중을 죽이는, 이 피해를 고스란히 조선의 열혈혁명가들이 떠 안았다. 주석의 회고에 의하면 민생단 혐의가 있는자들은 불과 몇명정도였다. 그 소수의 밀정들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였 다. 그것도 김산 같은 인물들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우리는 교과서 에서 배우지 못한 이 력사를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한다. 민생 단 사건은 9.18사변의 전후관계를 유기적으로 련관시켜야만 바로 리 해할수 있음을 거듭 강조해둔다. 1932년 2월 만주 간도에는 아직 봄이 올 소식은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훈춘과 연길, 오늘날 우리가 가장 자주 찾는 이 고장이 바 로 민생단 이라는 꿈에도 생각할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동만안에 있던 조선동포들은 9.18사변의 최대희생자가 될 운명이 였다. 일본군대는 조선족 한교만 보면 자기들을 피해 도망온것이라 보고 즉 부정선인( 不 呈 鮮 人 ) 이라 하고 체포총살하였다. 일본 측 적구로 오지 않는 부락은 방화략탈하였다. 반대로 극좌좌경분자 들은 그들대로 조선족을 소귀자( 小 鬼 子 ) 라 하여 일본의 주구 로 취급, 한교부락을 습격방화략탈 그리고 살상하였다. 일본에 대 한 분풀이를 조선족에게 하였던것이다. 이것은 아리아인들이 유태인 들에게 퍼부은 분풀이와 류사한것이다. 부정선인 과 소귀자 사 이에 적의 적도 적인 이중구속적사건이 벌어진것이다. 민생단 에 대하여 주석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있다. <민생단>의 조작은 조선에 대한 일제식민지통치의 지능화의 산 물이였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민생단>을 내온 속심은 모략과 권 모술수의 방법으로 조선혁명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자는데 있었다. 총칼정치를 해도 안되고 <문화통치>의 비단보자기를 쓰고 <내선일 체>며 <동조동근>을 부르짖어도 안되니 조선사람들끼리의 골육상 쟁으로 혁명세력을 숙청소멸함으로써 치안유지에서 당하는 고충을 해결하려는것이였다. (4권 10페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에 나타난 민생단 읽기 (아래 글은 회고록 4권 10~14페지 글을 그대로 옮겨놓은것임.) 9.18사변후 만주지방에서의 혁명정세의 급격한 발전에 커다란 우려를 느낀 사이또총독은 간도시찰반 성원으로 동만지방에 파견된 박석윤과 연변자치촉진회의 거두 전성호, 연길주재 만주국군 군사 고문 박두영, 수급반공특무 김동한을 비롯한 친일적인 민족주의세 력을 내세워 1932년 2월에 연길에서 <민생단>을 조작하게 하였다. <민생단>은 외형적으로는 <민족으로서의 생존권확보>라든가, <자 유락토건설>이라든가, <조선인에 의한 간도자치>의 허울좋은 구호 를 들고 마치 조선사람의 민생문제를 해결하는것이 최고의 경륜인 것처럼 떠들었다. 하지만 이 조직은 실제상에서는 조선민족의 반일 의식을 마비시키고 조선공산주의자들을 모해하여 인민들로부터 고

26 (5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51) 립시키며 조중인민사이에 쐐기를 박아 혁명대오를 내부로부터 와해 시킬것을 목적으로 일제가 만들어낸 간첩모략단체였다. <민생단>의 반동적본질은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의 <생활의 산업 화>를 조선민족이 나아갈 <유일한 활로>라고 설교한 이 단체의 <조 직취지>나 <강령>과 같은 문건들을 보아도 잘 알수 있다. 적들은 조선과 만주에 대한 저들의 식민지통치기간을 <생존권의 확보와 확 충>을 위한 가장 좋은 <절대적시기>로, 식민지통치질서의 기반밑에 서 암흑의 세계로 변한 조선과 만주를 <자유>와 <자률>의 <대지> 로 묘사하는 한편 간도일대에 조선인에 의한 <자유의 락토를 건설 해야 한다.>고 떠벌이면서 마치도 조선사람들이 일제의 만주강점과 식민지통치를 환영하며 간도일대에 대한 령토적야심이라도 가지고있 는듯 한 인상을 조성함으로써 조중인민과 조중공산주의자들사이의 선린관계와 혁명적뉴대를 깨뜨려버리려고 획책하였다. <민생단>이 철저한 반공주구단체라는것은 그 발기인이라는 사람 들과 창립후 단장, 부단장, 리사의 자리를 차지한자들의 경력만 보 아도 쉽사리 가늠할수 있다. 이 조직의 발기인들로서 그 성립을 위해 전력을 다해온 경성갑자 구락부 리사 조병상이나 <매일신보> 부사장 박석윤, 연변자치촉진 회의 전성호, 김동한 등은 다 애국애민을 부르짖는 민족주의자, 혁 명가로 자처하였으나 례외없이 일제가 오래전부터 손때를 묻혀 길 들여온 반역아들이였다. 16살에 일본류학을 가는것으로써 친일의 첫걸음을 뗀 박석윤은 도꾜제국대학 법과와 제국대학연구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등 일 류급의 대학들에서 여유있는 수학생활을 하였다. 영국에서 류학을 할 때에는 매해 총독부 학무국으로부터 3 000여원에 달하는 거액 의 학비까지 받았다고 한다. 해외류학후의 그의 직함은 그보다 훨씬 더 화려하였다. <동아일보> 기자, <매일신보> 부사장, 일본외무성촉탁 만주국 외 교부 참사관, 뽈스까주재 만주국 총령사 등 귀국후 그가 력임 한 직무들과 후날 쏘일중립조약체결시 일본측 단장으로 그 조약문 에 수표했던 외상 마쯔오까 요스께가 이끄는 일본대표단성원으로 1932년 제네바에서 열렸던 국제련맹총회에까지 참석한 현란한 경력 은 그가 일본지배층으로부터 얼마나 두터운 신임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게 한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민족주의 자로서의 박석윤의 체면을 세울수 있게 그로 하여금 저들의 식민지 통치를 비난하는 사설도 쓰게 하고 창씨개명을 반대하여 총독과의 정면대결도 하게 하고 태평양전쟁말기 려운형이 주관한 건국동맹에 도 관여하게 하였지만 <민생단>과 관련된 원한도 있어 간도지방의 조선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를 곱게 보지 않았다. 해방직후 박대우란 이름으로 변성명을 하고 양덕에 숨어살다가 적발되여 민족반역자로서 준엄한 심판을 받은 박석윤은 재판정에 서 일제통치하 조선사람의 <민족자치>가 자기의 정치적리념이였다 는것, 조선도 영국의 식민지들인 카나다나 남아련방과 같은 정치발 전의 코스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는것, 바로 이런 정치리념으 로부터 사이또총독과도 가깝게 지냈고 일본의 이름있는 세계제패론 자이며 동아련맹의 정신적고취자의 한사람인 이시하라 간지도 숭배 하였다고 실토하였다. 그는 또한 <민생단>의 창립취지가 공산당과 유격대의 괴멸에 있 었다는것을 애써 부정하면서 <민생단>의 초기목적은 순수한 <생존 권확보>에 있었다는것과 이 조직이 일제의 지령을 받는 간첩주구 단체로 전락된것은 자기가 간도를 떠나간 후의 일이라는것, 반<민 생단>투쟁과정의 혹심한 피해상황에 대한 소식을 듣고 놀랐다는것,

27 (5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53) 자기는 일본인들의 조종을 받는 하나의 인형에 불과하였다는것 등 을 진술하였다. 박석윤의 고백에 어느 정도의 진실이 담겨있는가 하는것은 력사 만이 판정할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사실여부는 어떠하든지간에 그 가 일제의 충견이며 심복이였다는 사실은 그 어떤 론거로써도 부 정하지 못할것이다. <민생단>창출의 산파역을 논 박석윤이 일본물을 많이 먹은 사 람이라면 <민생단>모략공작의 현지하수인이였던 김동한은 로씨야의 물을 많이 먹은 사람이였다. 김동한의 인생은 공산주의운동으로부 터 시작되였다. 그는 10월혁명직후에 벌써 로씨야에서 공산당에 입 당하였으며 고려공산당 군사부 위원과 장교단장직을 력임하면서 사 관학교졸업생으로서의 기질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그러나 1920년 대초에 연해주에서 일제에게 체포되자 인차 급전향을 하여 반공일 선에 선 친일특무가 되였다. 김동한은 <민생단>이 해체된 후 관동군의 승인을 얻어 그 후신인 <간도협조회>를 조작하였으며 100여명의 반동들로 의용자위대라는 것까지 무어가지고 다니면서 혁명군<토벌>에 극성을 부리였다. 그 는 자기를 조선에서 태여난 일본인이라고 착각할만큼 일본인으로 철 저히 동화된자였으며 조선민족은 일본을 조국으로 하여 성심성의를 다하여야 한다고 고창할 정도로 매국배족근성이 골수에까지 사무친 수급역적이였다. <만선일보>가 전하는 자료에 의하더라도 그가 귀순 시킨 공산주의자는 자그만치 3 800명이나 된다고 하였다. 김동한이 죽은 후 일제는 연길서공원에 그의 동상과 <간도협조 회>의 현창기념비라는것까지 세워주었다. 일제의 <간도치안전략>에 따르는 사상모략시책으로 <간도성내의 조직의 전모를 밝히고 약 4 000명을 체포하고 그들을 지지하고있던 사회적기반을 붕괴하는데 성공>했다고 하는 이른바 <민생단전략>의 실상을 잠간 파헤쳐볼 필요가 있다. <민생단>이 민족주의자들에 의한 간도민생해결을 목적으로 조 직된것이 아니였다는것은 처음부터 명백한것이였지만 일제침략자 들은 그 당시 그 단체에 민족주의적허울을 씌우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일본사람들은 <민생단>의 간판을 민생고의 해결이라는 구슬로 현 란하게 장식하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나 동만의 혁명조직들은 그 단체의 우두머리들이 일본령사관의 뒤문으로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을 인차 간파하였다. 적들은 만인의 예리한 시선앞에서 <민생단> 의 정체를 오래 숨겨둘수가 없었다. 우리는 혁명적출판물들과 구 두강연을 통하여 그 정체를 제때에 발가놓는 한편 반<민생단>투쟁 을 전군중적운동으로 벌리도록 하였다. 간판에 현혹되여 멋도 모르 고 <민생단>에 들었던 사람들이 이 조직을 인차 탈퇴하였으며 주 구로 전락되여 암해공작에 나섰던자들은 군중의 손에 의해 적발처 단되였다.

28 (5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55) 민생단 사건은 일제의 모략극 남쪽의 어느 대학교 교수는 민생단 사건을 두고 상처받은 민 족주의(wounded nationalism) 라고 했다. 이는 그의 박사학위 론문제목이기도 하다. 아마도 민생단 을 주제로 영문으로 나온 (1999년 미워싱톤대학) 최초의 론문인줄로 안다. 단행본으로는 연 변대 김성호교수의 1930년대 연변민생단사건 연구 외에 수권이 있 다. 김교수는 1998년 남쪽에서 이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나는 김교수를 서울에서 만난적이 있다. 그는 지금 주석의 항일유격활동에 관한 저술을 집필중이라 고 한다. 그리고 작년에는 여러 학자들과 함께 사령관 항일유 격지 현지답사를 15일간 하였다고 한다. 내가 김교수를 만나 확인하 고싶었던것은 회고록에 쓰인 주석의 민생단 기록내용이 얼 마나 사실인지를 확인하고싶어서였다. 김교수의 대답은 대부분의 내용이 사실과 같다고 했다. 약간의 다른 점이 있다면 수치상의 차이일뿐 사건자체의 기록내용은 사실 그대로 회고록이 담고있다는것이다. 그러면서 곁들여 유격대원들의 어려웠던 참상들을 증언해주기도 했다. 한 대원은 전투때에 총상 에 창자가 흘러나오자 자기 손으로 움켜쥐면서 끝까지 총을 쏘았다 고 한다. 최근 소말리아해적들을 물리친 북의 선원들의 용기가 과 연 우연만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해보았다. 김성호교수는 9.18사변은 조선민족성원들의 동향과 본심을 식별 하는 시금석과도 같은 작용 (김성호 47페지)을 야기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작용을 프랑스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사건적(eventual) 이라고 했다. 주체가 객체의 한 부분이 되고 객체가 주체의 한 부 분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런 사건적상황을 두고 리강훈은 나는 10년간 삭북의 황야에서 내나름대로 동분서 주하다가 9.18사변을 계기로 발붙일 곳조차 없게 되고 수많은 혁명 동지들은 사면초가로 궁지에 몰리게 되였고 라고 술회하고있다. 이런 상황을 견디여내지 못한 조선족은 9.18이란 시금석으로 자 기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기 시작한다. 주석은 이에 대하여 회고록에서 애국과 매국, 반일과 친 일, 자기희생과 보신을 가르는 착잡한 분해과정이 9.18의 포성과 함 께 민족내부에서 빠른 속도로 진행되였다. 각자가 자기의 인생관에 따라 양극에도 가붙고 음극에도 가붙었다. 만주사변은 민족의 매 성원들의 동향과 본심을 식별하는 하나의 시금석과도 같은 작용을 하였다. (2권 224페지)고 언급하였다. 일본의 영악한 위장기발은 그 효과를 백번 내기에 충분하였다. 9.18이후 일본측의 자체평가에 의하면 친중파는 공황에 빠져들 었고 민족파는 유야무야 속수무책 랑패하였으며 친일파는 과연 일 본은 위대하다 찬양했으며 그중 중공당계렬만이 무장대오를 창건하 였다. 와 같다. 이미 일본의 이러한 영악스러움에 사령관은 올것이 왔다고 생각했을뿐이다. 일본이 9.18사변을 조작한 단 8일만인 9월 26일, 기다리기나 했 다는듯이 조병상과 박석윤 이 두 인물이 민생단 건설작업에 직 접 나선다. 이들은 40만 조선족인구가 살고있는 간도땅에 민족자유천지

29 (5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57) 나 간도독립 이란 명칭을 사용한 단체를 하나 만들려고 일본총 령사관에 신청을 했으나 총령사관은 전자는 일본정부로부터 민 족독립 이란 오해를, 후자는 중국당국으로부터 오해를 받을 리유 가 있다고 하여 거부한다. 두 이름모두가 민족모순과 관련이 된것 이기때문에 일본과 중국모두로부터 반대를 받을수 있다는것이 일 본령사관의 판단이였다. 박이나 조는 일말의 민족정신은 남아있었 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이 찾는 민족정신이 아무리 훌륭한 민 족주의 라 하더라도 일본의 재가를 받고서야 가능한것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다음차선으로 구상한것이 중국관헌의 조선인차별대우에 대항하는 민중운동으로 방향전환을 해보는것이였다. 그러나 민중운 동 역시 중국당국이 민족문제로 볼것은 명약관화했다. 이를 잘 아 는 사람들가운데 민중운동에 막상 나서려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형 편이였다. 민족운동도 민중운동도 거부한 일제는 매의 발톱을 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동만조선친일파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였 다. 아는것을 알지 못하고있는것이다. 이를 간취한 일제는 간도에 있는 조선사람들의 자각을 촉진하 고 자위상 서로 단결하며 산업인으로서의 생존권확보 즉 요약하 여 민생단( 民 生 團 ) 이란 단체조직에 박차를 가한다. 친일조직단체 조선인민회는 일제의 속셈을 빠르게 간파하고 이에 적극 부응하여 민생단 건설에 일사천리. 당장 그해 9월 20일 밤 10시 룡정 국자가에 있는 일본인보통학교와 민회에 방화( 放 火 )를 한다. 다시한번 자기들이 피해자라는 위장기발을 흔들기 위해서이 다. 이는 구국단 민회 회장 리강재와 구국단 단장 김택환이 공모해 일본군의 간도출병을 유도하기 위해 저지른 조작이다. 이렇게 조선 족친일파들은 일본과 중국사이의 리간질에 앞장섰으며 일병의 간도 진출이야말로 자기들이 학수고대하던바였다고 떠벌인다. 드디여 10월 7일 조병상, 박석윤, 리강재 등 8인이 발기인대표로 재간도 일본제국총령사관에 민생단 조직결성허가신청서를 낸다. 신청서의 내용은 재간도 40만 조선인들의 활로는 오직 인류의 기 본권인 자유, 자주, 자률만이 있을뿐. 여기에 자유락토를 건설하여 야 한다. 오직 생활의 산업화만이 유일한 활로이다. 는것으로, 여 기서 민족독립이나 간도독립 같은 말은 사라지고 생활산업화 가 설립목적으로 부각되였다. 그리고 총독부는 간도에 있는 조선사람들의 생활을 안정시키 고 나날이 향상되게 한다. 라는 명분으로 민생단 조직설립을 허 가한다. 10월 24일 다시 조와 박은 간도로 돌아와 제 단체들의 협조를 구 한다. 이 4개 단체들(조선인민회, 중공당, 자진촉진회, 민족주의독 립운동단체)이 이에 대하여 보이는 태도는 각각이다. 민족파는 합 류하나 공산파는 탈퇴한다. 여기서부터 공산파에 대한 반 민생단 사건은 싹이 트기 시작한다. 자진촉진회는 친중, 반일, 반공 에 서 친일, 반중, 반공 으로, 민족파는 자진흡수되여 소멸하는 등 실로 걷잡을수 없는 현상이 나타난다. 12월 24일 일본령사관의 최종허가는 조선인들의 생활안정과 산 업진흥을 획책 한다는 명분으로 민생단 건설의 최종인허가 내 려진다.(김성호 55페지) 12월 28일 발기준비위를 소집하여 참가자 64명중 11명을 대표로 선출한다. 놀라운것은 국내의 박영호, 최남 선, 윤치호, 송지우 등 90여명이 이 민생단 건설에 대찬성의 축 하를 보냈다는 점이다. 이렇게도 자기가 하는 일을 자기가 알기란 어려운가? 이 민생단 은 길림, 왕청, 화룡, 훈춘에 거주하는 20살이상

30 (5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59) 남자들만 참가가 허락되는 제한된 단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해 를 넘겨 1932년 1월 7일 발기준비위 구성, 2월 9일 오전 10시 룡 정 공회당에서 발기인총회를 연다. 전성호의 사회, 리인구의 개회사 그리고 발기인명단이 발표되였다. 일사천리로 같은 날 3시 반 일본 총령사관의 참석하에 창립대회가 열렸으며 박석윤은 그동안 불법 행위에 억눌려 눈물을 삼키며 살아왔는데 이제부터는 합법적으로 활동하게 되여 감개무량하다. 고 인사말을 한다. 민생단 의 단장 은 류보하고 부단장에 한상우를 선출한다. 당시 간도신보 의 보 도에 의하면 40만 동포의 생활확보를 기하는 민생단, 산업의 자유자치의 대기를 추켜든 민생단 이라고 대서특필하고있다. 매일 신보 는 각개 단체를 총 망라한 조선사람의 자위자립단체라고 평하고있다.(김성호 62페지) 창립을 하고 같은 날 밤 8시 12시사이에 제1차 민생단 회의가 소집되였다. 이렇게 민생단 이 생겨나게 되였다. 이 신생아 민 생단 은 불과 생겨난지 수개월만에 해체되였지만 우리 조선족공동 체에 끼친 영향은 실로 심대하다고 할수 있다. 이때부터 조선족사회는 친일과 반일로 량분되였으며 민생단 창 단을 지켜보고있던 민족배타주의자들은 당장이라도 민생단 을 단 칼에 베여버릴 자세였다. 그래서 좌우가 하나가 되여 조선족을 적 대시하게 만든 사건이 민생단 사건이였으며 바로 이 점을 노리고 일제는 민생단 건설을 서둘렀던것이다. 이런 민생단 건설에 국내에서 이름난 인사들이 찬성을 하고 나 왔다니 이렇게도 일본의 속셈을 간파하지 못할만큼 우리는 어리석 었단 말인가? 역설적이게도 민생단 설립이후 도리여 조선족의 자치와 자률 그 리고 생활의 안전은 간 곳이 없이 사라지고 즉각 좌경분자들은 반 ( 反 ) 민생단 활동을 전개하여 민생단 에 관계되였다고 혐의가 조금만 있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 학살하는 실로 만주판 홀로코스트 가 자행되였다. 아마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 대학 살극을 왕청산하만 알고있을것이다. 요약하면 민생단 은 생겨나서 인차 사라지고말았지만 문제는 민생단 이 해단된 다음 전개된 반 민생단 사건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민생단 이 친일우익들이 조직한것이라면 반 민생단 은 좌경분자들이 주도한 사건이다. 반 민생단 사건을 일명 숙반운 동 이라 하며 공산주의자의 탈을 쓴 김성도, 송일, 김권일 등이 앞 장서 같은 조선혁명가들을 민생단 으로 몰아 죽인다. 죽은 사람들은 모두 조선사람들뿐. 나중에는 김성도일행도 민 생단 으로 몰려 처형되였으며 이들에 대하여 다 좋은 사람들 이였으나 주체를 세우지 못하고 상급에 맹종맹동하다나니 본의아닌 과오를 범하였다. (4권 22페지)고 주석은 회고하고있다. 우스운것은 반 민생단 투쟁이 민생단 해단이후 무려 3년간이 나 계속되였다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 주석은 <민생단>이 없는 반<민생단>투쟁 (4권 15페지)이라고 했다. 민생단 보다 반 민생단 이 6배나 긴 기간동안 지속된 그 근본적인 원인을 주석은 일본제국 주의자들의 모략에 있었다. (4권 15페지)라고 단정하고있다. 민생단 은 사라져도 일제의 음모자체는 계속되였기때문이다. 민생단 은 하나의 상황(situation)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반 민생단 은 상황이 아닌 사건(event)이다. 사건이 상황과 다른 것은 후자는 주객의 구별이 분명한 경우이고 전자는 그것의 구별이 불분명한 경우이다. 다시말해서 반 민생단 은 적의 적도 적이 되는 경우이다. 보통 정상의 경우는 적의 적은 동지이다. 그러나 사건은

31 (6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61) 주객이 구분 안되고 적과 동지의 구별을 할수 없는 경우를 두고 하 는 말이다.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는것은 상황이지만 반대로 개구리 가 뱀을 잡아먹으면 사건이 된다. 이는 철학자 바디우의 정의이다. 일본제국주의는 민생단 이란 상황을 교활하게 사건화시킨것이다. 혁명이 혁명을 타도하고 공산당이 공산당을 무리로 죽이도록 모략 한것이다. 당나라 측천무후의 이이제이 전술전략을 그대로 사용하 였고 좌경분자들은 이 모략에 그대로 휘말려든것이다. 일제는 1934년 9월에는 투항자들을 일괄처리하기 위하여 귀순자 의 배후관계, 위장귀순유무 확인, 세뇌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 기관으로 간도협조회를 만들어내였으며 여기에 민생단 을 통합한 다. 일제의 모략가들은 중국인간부들이 조선인들을 신용하지 않고 부단히 감시하고있으니 조선인들은 들고일어나라고 조선민족주의를 선동하고 조장하였다. 그래서 조중 두 나라 공산주의자들사이에 쐐 기를 박으려고 하였다. 누가 들어도 그럴사한 감언리설임에 분명하다.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조선사람이 만주에서 피를 흘리는것은 조국의 독립과 민족해방 과는 전혀 인연이 없다, 그런데 그대들은 무엇을 위해 기를 쓰고 싸우는가, 왜 력량상 우세한 조선사람들이 중국사람들에게 매워 무 의미한 싸움에서 피를 흘리는가, 빨리 각성하라, 투항귀순의 길은 열려있다, 이러한 사상을 열심히 주입시키는것을 <민생단> 사상모 략공작의 주요한 선전요령으로 삼았다. (4권 16페지) 일제는 민생단 을 10명씩 조를 무어 유격대안에 들여보냈으나 다 붙잡혀 죽게 되니 더이상 침투시킬수 없게 되자 조선사람과 중국 사람, 로동자와 농민, 상부와 하부간에 호상 믿지 못하게 하고 서로 리간시키는 전술을 써서 공산주의자들끼리 싸우게 하였던것이다. 회고록은 그 수법을 이렇게 밝히고있다. 혁명대렬을 내부로부터 와해시키는 교란작전에서 일본의 모략 가들이 발휘한 솜씨는 실로 놀랄만 한것이였다. 그 술책가운데는 이런 수법도 있었다. 가령 동만특위에서 어떤 간부가 지방에 순시 를 나가게 된다면 그 사람이 오가는 길에다 이전에 지도사업차로 그 지방을 왕래하던 현급간부나 구급간부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떨어뜨리였다. 그러면 특위순시원이 그 편지의 수신인들을 어떤 인간들로 보겠 는가. (4권 17페지) 이런 비렬한짓까지 한 리유를 두고 형형색색의 일부 좌경기회주의자 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의 불순한 정치적야망때문이라고 주석 은 평가하고있다. 좌경기회주의자들이 공산주의대렬안에서 지도적지 위를 독차지하고 상승일로의 길로 전진하고있던 조선공산주의자들 의 혁명투쟁을 자기들의 정치적야망을 실현하는데 종속시키려고 하 였다면 파벌근성에서 해방되지 못한 사대주의자들은 그들의 지지 와 묵인속에서 종파적목적달성에 장애가 되는 모든 사람들을 대오 로부터 사정없이 제거하고 자파세력을 확대하는데 이 투쟁을 악용 하려고 하였다. 남들이 차지하고있는 방석을 가로타고앉을 구실을 마련해준것이 바로 민생단 이였다. 너는 <민생단>이니 자리를 내놓거나 죽어 야겠다고 선언하면 다였다. 이런 판결에는 상소가 있을수 없었으 며 또 상소를 해보았자 통하지 않았다. 일제가 류포시킨 민생단 침투설은 당과 대중단체, 군대의 모 든 책임있는 자리를 모두 자파일색으로 갈아치우고싶어하는 사람 들의 패권주의적이며 출세주의적인 욕구에 불을 붙여주는 인화물질 과 같은것이였다. 그들이 민생단 의 이름을 걸고 올리는 천정부

32 (6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63) 지의 숙반 (숙청)실적은 유격구의 혁명력량을 모조리 교살해치우 려는 모략가들에게 끝없는 리득을 가져다주고말았다. 결국은 적아가 합세하여 유격구를 마구 짓뭉개놓은셈이다. 이 런 기괴한 결탁은 세계의 어느 혁명전쟁사에서도 찾아볼수 없을것 이다. 앞으로 보겠지만 주석은 엠엘파나 화요파 같은 공산주의자 들을 혐오했으며 그들과 싸우는것이 항일유격활동보다 더 어려웠다 고 술회하고있다. 이들 좌경기회주의자들은 만주일대에서 5.30폭동을 통해 신망을 잃어가고있던 상태였다. 5.30폭동이란 극단좌경분자들이 조그마한 땅과 재산을 가지고있던 사람들도 무턱대고 투쟁의 대상으로 삼은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주석은 돈이 있고없고의 여부를 가지고 사람을 보 아서는 안된다고 한다. 사람을 중심으로 보라는것이다. 애국, 애족, 애민이 있으면 지주라도 한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것이다. 그래 서 주석은 돈있는자는 돈으로, 지식있는자는 지식으로라는 구호를 제창한것이다. 그래서 사령관의 주변에는 장울화, 김정부 같은 갑부들도 있었고 그들의 도움도 받았던것이다. 나는 주체사상의 사람중심사상 이 여기서도 유래한다고 본다. 2004년 나는 만주 연길에서 문익환목사님 방북 15주년기념 학 자들의 통일토론회를 북측대표들과 함께 치른적이 있다. 우리 일 행은 룡정 일송정에 올랐다. 그런데 선구자 비석의 비문은 모두 회로 덧칠되여있었으며 바위에 새겨진 고향의 봄 역시 마찬가 지였다. 사연을 물어보니 남쪽의 친일청산단체의 소행이라고 한다. 선구자 작사, 작곡가 윤해영과 조두남이 친일행위를 했기때문이 라는것이다. 가장 궁금한것은 같이 간 북측인사들이 이런 행위에 어떻게 생 각하느냐였다. 그분들의 의외의 대답은 북에서는 이미 인민대중에 게 익숙해진 노래에 대해서는 리념과 사상의 여부를 떠나 그대로 부르게 한다는것이다. 나는 회고록을 읽으면서 이런 북의 태도가 사령관이 민생 단 사건에서 보여준 태도와 먼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남쪽의 진보진영의 친일청산이 옳은것이지만 그것이 교조적이 될 때에는 반 민생단 사건과 같은 과오를 범할수 있다는것이다. 서로 남의 방석 빼앗아 차지하기에 급급한 인사들, 그래서 통일 운동한다는 단체가 갈가리 갈라지는 이 반복되는 력사의 현실앞에 서 우리는 착잡해지지 않을수 없다. 미일은 전보다 더 교활한 수법으로 우리 남북민족을 리간질하고 이에 자기 하나밖에 모르는 안일에 눈이 어두운 무리들이 놀아나 고있다. 하나도 달라진것이 없다. 그래서 민생단 사건은 먼 후 날의 어제된 일 이기도 하다. 여기 적의 적마저 적이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과감하게 자르고 자신마저 이 악순환의 고리속에 몸을 던지며 민생단 이란 십자가 를 지고 훈춘, 연길의 골고다길을 걸어 왕청법정에 우뚝 서 민족과 민생의 상처난 량날개를 감싼 한 거인이 있었다.

33 (6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65) 너 거기 있었는가 그때에 보도련맹사건을 회억하며 1932년 7월 14일 민생단 은 해체되였지만 향후 3년간 반 민생 단 투쟁은 계속되였다. 나는 회고록 4권에 실린 반 민생단 사건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것이 이 땅에 살아온 녀성들의 운명이였다. 아마도 인류력사 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생단 으로 몰려 죽음을 당한 사람들 의 운명이 녀성들의 그것과 어쩌면 같기때문이다. 우리 말 속담에 녀자는 잘나도 욕먹고 못나도 욕먹는다. 가 있 다. 이 속담은 남성가부장적사회에서 녀성들이 남성들한테 당하면 서 살았던 구속적상황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있다. 같은 녀성끼리도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두고 밥을 안 주면 굶겨죽이려 한다 하고 밥 을 주면 독약을 넣었다. 고 하는것과 같은 경우, 녀성이 관능적이 면 요괴라 하고 똑똑하면 여우라고 하는 경우, 이를 두고 이중구 속적 이라 한다. 일본어의 이지메 같은것이 이에 해당할것이다. 쟝느 다르크는 나라를 구하고도 마녀로 몰려 죽게 되였다. 리유 인즉 녀자같은 존재가 애국심이 있다는것은 마녀라는 증거가 된다 는것이다. 중세기동안 똑똑한 녀성수학자들이 수없이 이렇게 수난 을 당하였다. 피타고라스의 바지 란 책이 이런 주제를 다루고있 다. 녀성이 당했던 이런 상황도 이중구속적 이다. 당시 민생단 으로 몰린 사람들의 이중구속적상황을 주석의 회고록을 통하여보면 유격대의 식사를 보장해주는 작식대원이 밥을 설군것도 민생단 으로 몰릴수 있는 리유가 되였고 밥에 돌이 섞 이거나 물에 밥을 말아먹여도 유격구의 인민들을 병들게 하려 한 증거로 되였으며 민생단 의 작용이라는 어마어마한 감투를 쓰는 조건으로 되였다고 한다. 주석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쓰고있다. 설사를 하면 전투력을 약화시킨다고 <민생단>, 한숨을 쉬면 혁 명의식을 마비시킨다고 <민생단>, 오발을 하면 적들에게 유격대의 위치를 알려주는 신호라고 <민생단>, 고향이 그립다는 말을 하면 민족주의를 고취한다고 <민생단>, 일을 잘하면 정체를 숨기려는 수 작이라고 <민생단> 그야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 이식이였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민생단>으로 걸려들지 않을 사람 이 한명도 없었다. (4권 18페지) 민생단 사건이 있은지 근 40년이 지난 1969년 미국의 그레고리 베이츤은 정신병리학과 의사소통리론에 이중구속론을 적용하여 노 벨상을 받는다. 그리고 그는 촘스키와 함께 미국대학에서 가장 존 경받는 학자가 되였다. 나는 주석의 회고록을 읽으면서 많은 감사의 념을 갖게 되 였다. 내가 지금까지 공부해온 리론들을 적용해볼수 있는 무궁무 진한 소재들을 거기서 발견할수 있었기때문이다. 그동안 학자들, 예술인들에게 보안법 이란 족쇄를 풀어 마음대로 회고록을 읽 게 해주었더라면 수많은 문화콘텐츠를 거기서 발굴해 국익에 보탬 을 주었을텐데. 베이츤은 이중구속이 성립하기 위한 요인들을 6가지로 손꼽고있 다. 이중구속은 (1) 둘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상호 련관되여 만 들어지며 그중에 희생자가 있어야 한다. (2) 반복적경험에 의하여

34 (6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67) 희생자는 그것이 정상적인 관습처럼 느껴지고만다. (3) 일차적부정 형금지명령 어떠어떠한것을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벌을 주겠 다. (4) 이차적부정형금지명령 내가 벌을 주더라도 그것을 벌로 생각하면 안돼. 가 따른다. (5) 희생자가 현장에서 도저히 피할수 없도록 삼차적부정형금지명령 어떤 벌이라도 그것은 너를 위한것 이니 감사해야 해. (6) 희생자가 드디여 자기가 구속을 받고있다 는 사실도 모르게 됨. 반 민생단 사건으로 희생된 희생자들의 례 를 들면서 이상 6가지 요소들이 어떻게 해당하는지를 그리고 다음 에는 사령관이 이 구속적과제를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알아 보기로 한다. 안도, 훈춘, 연길, 화룡 네곳가운데 반 민생단 처형이 가장 극 심한 곳은 화룡이였다. 고도라는 별명을 가진 화룡현의 반제동맹위원회 책임자는 재인강 에 나가서 정치공작을 하다가 자위단원들에게 체포되여 30여명의 애국자들과 함께 사형장으로 끌려나갔다. 자위단원들은 그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한사람한사람씩 목을 쳐서 죽였다. 고도도 물론 그 런 형벌을 면할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도의 목은 땅에 굴 러떨어지지 않았다. 그대신 목의 살과 가죽이 훌렁 벗겨져서 등에 가붙고 온몸이 피범벅이 되였다. 이것은 죽음 그자체보다도 더 고 통스러운 치명상이였다. 고도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이에 적들은 사형장을 떠나가버리였다. 밤중에 정신을 차리고 형장에서 가까스로 일어난 그는 이를 악물 고 아픔을 참으면서 등에 가붙은 살가죽을 목에 끌어다붙이고 옷 을 찢어 동여맨 다음 60여리의 험산준령을 배밀이로 기고 굴러서 마침내 어랑촌유격구로 무사히 돌아왔다. 그러나 고도의 상처가 완치되기도 전에 좌경분자들은 그를 군중 심판장으로 끌어내였다. 그가 적의 주구로서 혁명대렬내에 깊숙이 잠복하려고 일부러 목에 상처를 내가지고 유격구로 돌아왔다는것 이다. 좌경분자들은 고도의 죄행 을 장황하게 늘어놓았으나 심 판장에 끌려나온 군중들은 그들의 판결을 한사람도 찬성하지 않았 다. 결국 심판의 조직자들은 고도를 살려두고 일정한 기간 검열을 통해 그의 정체를 밝힌다는 판결을 내리였으나 뒤에 돌아가서 그 를 암살해버렸다. 극좌좌경기회주의자들은 난다는 싸움군들만 골라서 처형해나간 다. 호미긁개 별명을 가진 안태옥, 새별눈 박현숙 모두 민 생단 희생자들이다. 유격대원들에게 붙는 별명은 적들과 싸우다가 생긴 무용담에서 유래한다. 호미긁개란 총이 격발이 안되자 호미로 쳐서 격발시켰다 고 붙여진 별명이다. 새별눈이란 춤과 노래를 잘 부르고 눈이 새별 같이 빛나기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호미등으로 격발기를 쳤으니 격발기가 손상을 입을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것이 원인이 되여 민 생단 으로 몰렸다. 귀중한 무기를 손상시키려 들어온 일본의 밀정 이라는것이다. 무지한 살륙으로 하여 왕청의 강들과 고동하의 물이 선혈로 걸 어지고 간도의 어느 골짜기에서나 통곡소리가 그칠 날이 없었다. 무의식군중들은 자연히 혁명을 버리고 적구나 무인지경으로 도 주하게 되였다. 혁명을 하려고 왔다가 혁명한테서 구박을 당하고 허 공중에 뜬 신세가 되였으니 그들이 깃을 붙이고 살아갈 곳은 과연 어데란 말인가. 혁명이란 살기 위해서 하는것이지 죽기 위해서 하 는것은 아니다. 살아도 사람답게 잘살기 위해서 하는것이 혁명이며 죽어도 정의를 위해 한몸을 아낌없이 바치다가 싸움터에서 값있게 죽어 영생을 얻는것이 혁명이다. (4권 25페지)

35 (6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69) 독백같이 들리는 한 인간 혁명가의 자조어린 이 말은 그의 가슴 에서 피고름이 터져나오는 울음이다. 이처럼 처절할수 있을가? 어느 혁명사에 이런 기록이 다 있단 말인가? 호지명의, 체 게바라의 평전 어디에서도 읽을수 없는 차라리 한갖 소설의 한구절이였으면 좌경기회주의자들이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학살처형하던 처절한 현 장들을 회고하면서 주석은 이렇게 쓰고있다. 만사를 <민생단>의 작간으로 보는 불신의 감시경밑에서 자기를 건져낼수 있는 최대의 보신책은 사실 아무 일에도 참견하지 않으며 보고서도 못 본척 하는것이였다. 그러나 나는 그른것을 보고서도 그 르다고 말할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그것은 살아도 죽은 목숨과 같 고 구태여 살 필요조차 없는 생명없는 생명이라는 제나름의 배짱을 가지고 우리가 불의라고 보는 모든것을 향하여 반기를 들었다. 일 신의 안위만을 걱정한다면 그것이 무슨 혁명가이겠는가. 나는 <숙 반>의 회오리가 아무리 기승을 부린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 이며 우리가 한몸을 내대고 투쟁한다면 반드시 그것을 밀어제낄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4권 39~40페지) 흑인 령가가운데 우리에게 깊은 령감을 주는 곡인 너 거기 있 었는가 그때에 가 있다. 예수의 수난절기간에 가장 많이 불리는 곡가운데 하나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힐 때에 너 거기 있었는 가? 그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언덕을 올라갈 때에 너는 너 일신 상의 안전때문에 외면하지 않았는가? 하고 량심의 고동을 치게 하 는 곡이다. 사령관이 만약에 그 현장을 외면하고 고개를 딴 방향으 로 돌렸더라면 그는 결코 나라를 세울수도 없었고 세웠다 하더라도 50성상을 이끌어올수도 없었을것이다. 우리에게 새삼 알려진 보도련맹은 좌익인사 교화 및 전향을 목적 으로 1949년에 조직된 단체이다. 1949년 좌익운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로 조직한 반공단체로 정식명칭은 국민보도련맹이다. 한국정부 절대지지, 북정권 절대반대, 공산주의사상 배격, 분 쇄, 남, 북로당의 파괴정책 폭로, 분쇄 등의 내용을 주요강령 으로 삼았다. 1949년말에는 가입자수가 30만명에 달했고, 서울에만 도 거의 2만명에 이르렀다. 주로 사상적락인이 찍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였고 거의 강제적 이였으며 지역별할당제가 있어 사상범이 아닌 경우에도 등록되는 경 우가 많았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정부 와 경찰은 초기후퇴과정 에서 이들에 대한 무차별검속과 즉결처분을 단행함으로써 6.25전쟁 중 최초의 집단민간인학살을 일으켰다. 력사는 반복되고있다. 그런데 바로 반공우익단체인 국민보도련맹 이 리승만의 우익에 의하여 약 30만명이 학살당했다. 6.25발발 3일 후부터 보도련맹가입자들을 모조리 잡아 학살을 하기 시작한다. 이 는 최근 1950년 전쟁발발당시 헌병대 6사단 상사로 보도련맹원처형 과정에 참여했던 김만식(84살)씨의 증언으로 리승만의 직접명령에 의 하여 자행되였다는것이 확인됐다. 당시 보도련맹원처형과정에 직접 참여한 헌병대초급간부의 첫 증언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보도련맹사건은 반 민생단 사건과 일란성쌍둥이와 같다. 하나 는 극좌좌경들이 좌익을 학살한 사건이라면 보도련맹사건은 그 반 대로 우익이 우익을 죽인 사건이다. 그 혐의마저 비슷하다. 김씨의 증언에 의하면 보도련맹원으로 끌려가 죽은 사람들중에는 아주 순박하고 어진 평범한 시민과 농민들이 많았다. 며 하지만 국가명 령에 따라 처형집행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고 말했다. 그런데 놀 라운것은 리승만과 김창룡 등 수하들이 이 수법을 일제강점기 사 상탄압에 앞장섰던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련맹 체제를 그대로 모

36 (7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71) 방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반 민생단 사건과 한가지 다른 점도 있다. 한 사건은 지도자가 있어 억울하게 죽어가는 인민들을 가슴으로 끌어안아주었 지만 다른 한 사건은 반세기가 지나가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앞장 서 진실자체도 구명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글을 마감하는 날 아침 아버지가 보도련맹사건으로 죽었다고 간첩루명을 쓰고 5년간 옥살이를 한 그의 아들 김양기씨의 무죄가 군과거사우에서 밝혀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같은 날 1991년에 있었 던 강기훈씨의 유서대필루명도 벗겨졌다. 금년 12월 19일에도 이중구속의 올가미에서 우리를 풀어줄 지도자 가 나타날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반공( 反 共 ) 은 한갖 공념불이 되고말것이다. 종교인사 강증산은 모기 한마리라도 억울하게 죽으면 한이 맺힌다. 고 했다. 해방정 국의 최대과제는 바로 이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한을 푸는 과 정이여야 했을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우리 력사는 한을 겹겹이 쌓이게 하는 력사였다. 맺힌 한은 고스란히 우리 후손들이 짊어져야 할 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것이다. 주체료법(Juche Therapy) 과 장포리를 살린 경우 단 한목숨이라도 살리려고 회고록 4권 전반부는 사령관이 민생단 으로 몰려 죽어가 는 동지들의 생명을 살리려고 심신을 다 바치는 장면들로 점철돼있 다. 어제까지 같이 싸우던 동지들이 하루아침에 일본밀정으로 몰려 피투성이가 되도록 두들겨맞고는 결국 처형되고마는 장면앞에 정면 대결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결론하고 행동으로 나선다. 사령관은 1932년 10월 어느날 왕청에 체류하는 동안 민 생단 혐의로 구류된 리종진이 무자비하게 구타당하는 현장을 목격 하고 당장 중지를 명령한다. 연길, 훈춘일대의 사람들속에서는, 그 사람이 무슨 화 를 입으려구 그런 참견을 했을가. 물불을 모르는구만. 하고 걱정 하는 사람들, 아직 왕청맛을 잘 몰라서 그래, 어쨌든 담은 큰 사 람이야. 하고 수군거린다. 결국 좌경분자들은 사령관을 민생단 으로 볼수 있는 증거를 찾으려고 검질기게 애를 썼다. 다름아닌 1933년 겨울 도문 지주를 통하여 군복 500벌을 만들수 있는 군복천과 면화를 해결해 그것으로 구국군의 군복을 새로 해입힌것을 두고 지주와 내통했으 니 이것은 민생단 작용이 분명하다는것이다.

37 (7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73) 주석은 그때를 두고 구국군과 같은 우군의 협력이 없이 혁명군의 힘만으로 고군독전해서는 유격구를 유지해나가기가 곤난 하였다. (4권 33페지)고 회고하고있다. 사령관이 이와 같이 지주와 통하면서 반 민생단 투쟁을 잘하지 않기때문에 유격구안에 민생단 이 많이 있다는것이다. 그러나 사령관은 단 한사람이라도 살릴수 있다면 이런따위 의 위협이나 협박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이 내 이름까지 걸고들며 그 무슨 책임을 운운한것은 사실 동만땅에서 발언권이 있는 조선족출신 간부들을 마지막 한사람까지 다 제거해버리려는 속심으로부터 출발한것이였다. (4권 33페지) 사령관은 이렇게 그들의 말귀와 눈치를 다 꿰뚫어보고있 었던것이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강하다 교회당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복달라고 비는것은 종교 가 아니다. 력사의 현장에서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분노에서 나온 감정에서 진정한 종교는 시작한다. 에짚트황실에서 황태자같 이 자란 모세가 어느날 거리에서 에짚트인이 자기 동족을 구타하는 것을 보고 그 에짚트인을 돌로 쳐 모래에 묻고 미디안으로 도망친 다. 진정한 의미에서 유태교 유일신신앙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그 가 시온산에서 신을 만난것은 력사를 신비화시킨 후 사건에 불과 하다. 만약에 주체사상이 종교라면 그 시원은 사령관이 반 민생 단 사건에 정면대결하는 분노에서 시작한다고 나는 주장하고싶다. 그렇다면 주체사상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본다. 반 민생단 사건에 정면대결해나선 사령관은 극좌좌경분자 들에게 이렇게 추궁한다. <민생단>을 잡아내려면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똑똑히 잡아 낼것이지 하필 왜 이 산속에서 배를 곯으며 혁명을 하느라고 고생 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제껴버리는가. 이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4권 34페지) 이에 대한 극좌좌경분자들의 반응은 사령관이 민생단 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것이였다. 여기에 사령관은 길림으로 공부하러 떠나던 이후 인생의 두번째 모험을 한다. 좋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혐의자들을 만나보 겠다, 그것도 당신들의 립회하에 그렇게 하겠다고 도전장을 낸다. 이러한 사령관의 제의에 현간부들도 별 이의를 제기할수 없었 다. 인간은 견디지 못할 공포앞에서는 그만 질려버리고만다. 동물들 도 천적앞에서 충분히 도망을 칠수 있는데도 대부분의 경우 잡혀죽 는것은 자기의 공포에 자기자신이 져버리기때문이다. 그래서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데 대부분 그것을 못 하고만다. 밀림에서 살아남는 동물들이란 결국 공포자체에 도전하 는것들이다.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생명체만이 경험할수 있는 이런 역설적인 도전법을 아는 민족은 지구상에서 그렇게 많지 않다. 외 인부대가 철수하면 죽을듯이 비굴한 민족은 이 지구상에 살아남 을 자격이 없다. 적과의 정면대결, 그것은 1930년대 사령관이 남긴 위대한 정신적유산이다.

38 (7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75) 의미치료법 (logo therapy) 사령관은 자신도 민생단 밀정은 반대한다. 그러나 밀정이라고 단정하는데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사령관의 지론이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적근거라고 하 는것을 현대심리치료법으로 볼 때에 죽음의 수용소에서 의 저자 유태인학자 빅터 프랭클이 개발한 의미치료법(logo therapy) 에 해당한다고 본다. 나는 사령관이 과학적근거하에 동지들을 반 민생단 마녀 사냥에서 한사람한사람 살려내는 기법을 의미치료라는 관점에서 한 번 살펴보려 한다. 2차대전이후 유태인들은 자기들의 력사적인 산 경험들을 콘텐츠 화하여 노벨상도 타고 그것을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삼고있다. 노벨 문학상을 탄 베이유의 밤(Night) 이란 소설은 나치스수용소의 산 경험을 토대로 한것이다. 그리고 홀로코스트 는 유태인의 고 유문화유산이 되여버렸다. 미국회의사당옆에 있는 유태인 홀로코스 트박물관은 가장 관광객이 많은 곳가운데 하나이다. 그 무엇보다 여기서 소개하려고 하는 빅터 프랭클의 의미치료법 은 그 심리치료법이 탁월하여 우리 나라에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 고 그의 저서들이 다수 번역소개되였다. 의미치료법은 죽음의 수용 소 같은 곳에서 극한경험을 하지 않으면 창안해낼수 없는 창의적인 리론이다. 프랭클자신이 수용소에서 겨우 살아남았기때문에 그의 리 론은 한결 생동감을 주고있다. 의미치료의 기법을 한마디로 쉽게 말하면 역설 을 치료법에 도 입하는것이다. 두려워하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하도 록 부추기는 기법이다. 위험은 피해야 하는데 오히려 달려들라는것 이다. 다시말해서 고양이목에 방울을 달라 하고 호랑이굴에 들어가 라고 권하는 치료기법말이다. 사람들이 반 민생단 투쟁을 말하기조차 두려워할 때에 그것의 부당성을 과감하게 지적하고 나오는것, 드디여 호랑이가 우글거리는 굴속으로 들어가는것을 두고 말하는것이다. 1935년 민생단 문제로 회의가 열리는 다홍왜에 사령관이 모든 사람들이 만류하는 그곳을 향해가는것이 바로 프랭클이 말하 는 의미치료법이다. 지네라는 동물은 여러개의 발을 가지고있는데 천적을 만나 어 느 하나의 발에 마비가 오면 그만 나머지 발들이 전부 얼어붙고만 다는것이다. 그 다음차례는 죽음이다. 이러한것을 두고 프랭클은 지레짐작 겁먹기 혹은 예비불안(anticipatory anxiety) 이 라고 한다. 2차대전전야에 가장 많은 병사들이 자살한것이 이에 해 당한다. 지레짐작 겁먹기 란 몇단계로 발전하는데 (1) 공포의 징후가 생기면 (2) 공포증을 불러일으키고 (3) 공포증은 다시 징후를 유 발하고 (4) 이 징후의 재발은 공포증을 강화한다. 무서운 적을 만 났을 때에 인간이나 동물이 모두 같이 느끼는 과정이다. 벌레가 새를 만나면 피할수 있는데 질려버리면 그만 잡혀죽고만다. 그래 서 현대갈등리론의 최첨단론은 대결(confrontation) 이다. 이것 이 문제를 푸는 첩경이 될수 있다는것이다. 무기에는 무기로, 말 에는 말로.

39 (7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77) 장포리의 경우와 주체료법 사령관은 민생단 으로 몰린 동료부하들을 살리려고 그들 을 만나볼 때에 조성된 정황을 피하는것이 아니라 이에 정면대결한 다. 장룡산이 우선 심사의 대상이였다. 리수구골안의 민생단 감 옥에 갇혀있던 수감자들중에 장포리 (본명 장룡산)라는 별명을 가진 중대장이 있었다. 장룡산은 밀가루반죽을 해놓고 밖에 나가서 한꺼번에 노루 8마리를 잡아다가 수제비국을 해먹을 정도로 사격술 이 높아 이런 별명이 붙은것이다. 그가 소왕청방위전에서 혼자 쏘 아잡은 적만 해도 아마 100명은 넘을것이라 한다. 그는 사령관이 가장 아끼고 사랑해온 지휘관들중의 한사 람이였다. 그러나 사령관을 당황하게 만든것은 그에게 민생단 이 옳은가고 물었을 때에 그렇다. 라고 대답한데 있다. 이런 대답을 한다는것은 사령관의 립장을 난처하게 만드는것은 물론 생명 까지 위협하는것이였다. 장포리, 똑똑히 대답해보라. 너 정말 <민생단>인가? (4권 35페지) 장포리는 머뭇거리는 기색도 없이 <민생단>입니다. 하고 대 답을 한다. 대원군은 경복궁을 짓기 위해, 당백전( 當 百 錢 )을 모으기 위해 공 포분위기를 조성한다. 4대 문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붙들고 새 가 찍하고 우느냐, 짹하고 우느냐 묻고는 앞사람이 찍 하 니 죽이고 그래서 뒤사람은 짹 하니 그래도 죽였다. 여기서 찍, 짹 이란 말이 생겨났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걸 무슨 대답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극도의 공포에서 나온 대답일것이다. 의미료법의 기교로 볼 때에 징후가 공포가 되고 다시 공포가 징 후가 되여버려 징후가 공포를 재강화한 상태이다. 이 정도가 되면 악순환고리의 반복으로 이다, 아니다 가 같아져버린다. 이를 두고 프랭클은 되물림기제(feedback mechanism) 라 한다. 의미료법 에서도 이런 기제를 푸는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가운데 하나이다. 여 기서 우리는 상담자로서의 사령관의 솜씨를 볼 차례이다. 프랭클은 환자가 두려워하고있는 바로 그 일을 환자가 하도록 한 다. 또한 일어나기를 소망하도록 고무하라고 한다. 지레짐작의 겁먹 음을 찔러버리라고 권한다. 밤에 잠이 안 올 때에 잠자려 하지 말 고 잠 안 자도 좋다고 해버리라는것이다. 사령관은 민생단 이란 되물림기제에 걸린 부하동지들을 구해내려 정말 안깐힘을 쓴다. 다시 장포리에게 묻기를 그럼 <민 생단>노릇을 하면서 무엇때문에 왜놈새끼들은 수태 쏴죽였는가? (4권 35페지)라고 한다. 장포리의 진술을 들어보려고 감옥까지 따라와 사령관을 모 해하려던 좌경분자들은 모두 댕댕한 표정으로 사령관을 지켜 보고있었다. 사령관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장포리를 조리있게 타일렀다. 이것 보라. 장포리, <민생단>이라는거야 일본놈들을 옹호하는 것이고 또 일본놈들이 만들어낸 반동조직인데 네가 <민생단>이라 면 그놈들을 100명이상이나 쏘아잡았다는게 이상하지 않는가? 목 에 칼이 들어와도 말이야 바른대로 해야 할게 아닌가. 솔직하게 말 해보라. (4권 35페지) 장포리는 그제야 사령관의 손을 붙들고 오열을 터뜨리면서 목이 꺽꺽 메는 하소연을 하면서 나야 무슨 까닭으로 <민생단>이 되겠소. 아니라고 대답해도 들어주지 않고 자꾸 두드려패니 다른

40 (7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79) 수가 없어 <민생단>이라구 했소. 대장얼굴에 먹칠을 해서 죄송스 럽소. 한다. 징후에서 공포에로 그리고 공포가 다시 징후가 되는 4단계의 과정을 역으로 거스르면서 장포리로 하여금 공포에 과감하 게 도전하도록 하여 공포에서 해방되도록 한것이다. 사령관은 장포리가 공포에서 해방된것을 확인한 다음 내 얼굴에 흙칠을 하건 먹칠을 하건 그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네가 주리를 트는 폭군들앞에서는 <민생단>이라고 대답하고 내앞에서는 아니라고 하는 주대없는 인간이라는데 있다. 나에게는 한입으로 두 가지 말을 하는 겁쟁이가 필요없다. (4권 36페지)라고 선언한다. 사실 이것은 사령관이 장포리의 마음을 위로한 후 그가 용기를 다시 회복했다는것을 확인하고 주위사람들이 들으라고 한 말일수 있다. 그때의 분위기에 대해 주석은 이렇게 회고했다. 내가 얼마나 노기등등해서 <감옥>문을 나섰던지 좌경분자들은 감히 말도 붙이지 못하였다. (4권 36페지) 장포리석방에 기선을 잡은 사령관은 동만특위의 반 민생 단 투쟁을 주도하고있던 동장영을 찾아가 내 보기에는 당신들의 사업에 문제가 있다. 반<민생단>투쟁을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된 다. 어떻게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민생단>으로 몰아 함부로 잡 아가둘수 있는가? 반<민생단>투쟁은 민주주의적으로 해야 한다. 상 층에 있는 몇몇 권력자들의 독단이 아니라 대중의 토의를 거쳐 적 아를 정확히 식별해내야 한다. 고문과 위협의 방법으로 없는 <민생 단>을 만들어내서는 안된다. (4권 36페지)고 한바탕 항의를 한다. 지금 이 왕청에서 장포리를 <민생단>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당 신들밖에 없다. 장포리는 내가 목숨을 걸고 보증하니 당장 석방하 는것이 좋겠다. (4권 36페지) 그후 사령관은 좌경분자들에게 정치부의 승인이 없이 유격 대안에 있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다치지 못한다고 선포한 다음 부대 에 돌아와 장포리를 숙반 지휘부에 제멋대로 넘겨준 지휘관을 처 벌하였다. 그날 동만특위에서는 사령관의 요구대로 장포리를 석방하였다. 장포리는 그후 녕안현 주지툰이라는 곳에 파견되여 식 량공작을 하면서 마지막까지 잘 싸웠다. 의미치료와 주체료법 의 비교 나는 사령관의 이러한 문제해결방법을 주체료법(Juche Therapy) 이라고 학명화할것을 제의한다. 사령관은 반 민 생단 사건이 발생한 근본원인이 주체를 세우지 못했기때문이라 단 정하고있다. 1928년 조선공산당이 해체된 이후 중공당에 기대여 방 석이나 하나 차지하려는 출세주의자들의 주대없는 행동에서 반 민 생단 이 생겼다고 본것이다. 나라잃고 주권마저 잃은 가련한 겨레의 가슴속에 엄습해오는 공포의 징후를 피하지 말고 도전하는 모습을 장포리를 통해 보여준것이다. 오늘 북조선이 정치, 외교 모든 분야에서 강대국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과 감한 태도를 보여주는것도 모두 주체료법과 멀지 않다고 본다. 북의 인 민들이 모두 주석의 주체료법에 의해 주대있는 자아관을 가지고있 으며 너도나도 앞다투어 고양이목에 먼저 방울을 달겠다고 나선다. 반면 남에는 미군이 나가면 당장 보호자잃은 유아같이 행동하는 인간군상들도 있다. 이들은 지금 모두 치료받아야 할 깊은 중증의 병에 걸려있다. 공포와 그 징후사이에서 되감기를 반복하는것은 분 명히 병이다. 우리 사회의 지도급인물들가운데 그 누구도 이를 치 료하지 않았다. 아니 지도급인물들이라는 사람들자신이 이 병에서 해방되지 못하고있다.

41 (8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81) 사생결단하여 구원한 한봉선의 생명 경강증에 걸린 인간군상들 아무리 강심장의 인간이라 하더라도 극도의 공포분위기속에 갇히 게 되면 사소한 일에도 불신을 하고 의심을 하게 된다. 이런 인간 군상들이 모인 사회를 경강증에 걸린 사회 라고 한다. 해방후 이런 증상이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난것이 마을 공동우물 에 누가 약을 쳤다는 소문이였을것이다. 그 당시를 살았던 지금의 60대이상은 이런 소문을 한두번은 들었을것이다. 그럼 누가 우물에 약을 쳤는가? 이때에 경강증에 걸린 사람들은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 민생단 공포에 질려 극도의 심리적인 불안상태에 있던 동만조 선인부락에 례의 이런 희생자가 하나 생겼다. 사령관의 유격부대가 가야허라는 곳에 주둔해있을 때의 일 이다. 도문부근에서 끌고 온 소를 잡아 군인들과 마을사람들에게 먹 인적이 있는데 그 소고기를 먹고 많은 사람들이 설사에 걸려 고생 하였다. 사령관의 숙소로 사람들이 몰려와 민생단 이 우 물에 독약을 쳐서 전부 중독되였는데 무리죽음을 하게 되였다고 야단법석이였다. 사실이라면 부대전원이 전멸될수도 있는 상황이 였다. 주석은 그때 일을 이렇게 회고하고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아무리 시간이 경과하여도 내자신은 전혀 배가 아파나지 않는것이였다. 응당 있게 되리라고 예측했던 적의 출동도 없었다. 얼마후 마을을 순찰하던 소대장이 우물에 독약을 친 <민생단>을 찾아냈다고 하면서 키가 장총기장만큼 되는 아이를 나한테로 데려 왔다. 그 아이가 바로 문제의 박창길이였다. (4권 37~38페지) 소대장이 하는 말이 그가 마을사람들앞에서 자기 죄를 솔직히 인 정했다는것이였다. 나는 창길이와 몇시간동안 담화를 하였다. 창길이는 내앞에서 도 자기의 <죄>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울면서 그것을 부 정하였다. 그가 처음에 마을사람들앞에서 자기 <죄>를 시인한것은 자기에게 독약을 쳤다는 험턱을 억지로 들씌우는 마을아낙네들에 대한 반발이였다. (4권 38페지) 진정한 울음과 웃음은 그 구조가 같은것이다. 우리 말은 이와 같 이 역설을 표현하기 알맞는 구조를 가지고있다. 울음이 없는 웃음 은 진정한 웃음이 아니다. 사령관은 이렇게 선언한다. 이애는 약을 치지 않았다. 그러면 누가 약을 쳤는가? 여러분들 가운데는 약을 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약을 먹은 사람도 없다. 있 다면 설사를 만나서 하루이틀 고생한 사람들이 있을뿐이다. 배앓이 를 한것은 오래간만에 소고기를 너무 많이 먹은탓이다. 그러니 여 기에 <민생단>문제라는것은 있지도 않거니와 있을수도 없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당신들이 <민생단>이라고 몰아주던 창길이를 유격 대에 받아들인다는것을 선포한다. (4권 38~39페지)

42 (8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83) 마을사람들은 모두 사령관의 연설을 듣고 울음바다가 되였 다. 박창길이를 민생단 으로 몰아주던 녀자들까지도 다 흐느껴 울었다. 이와 같이 사령관의 주체료법은 집단적인 효과를 내 여 그동안 민생단 공포에 사로잡혀 경강증에 걸려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내면의 세계를 스스로 들여다보고 통곡을 하였다. 박창길은 그후 유격대에 입대하여 소왕청방위전투에서 영용하게 싸웠다. 고 주석은 회고하고있다. 경강증이 변하면 그것이 령혼의 정화작용(카타르시스)이 된다. 위대한 령혼의 치유자야말로 진정한 종교인이다. 주체료법이란 궁극 적으로 인간령혼의 정화작업을 하여 주대인간으로 살아갈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료법이라 할수 있다. 주석은 이와 같이 정치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의 상처난 령 혼을 치유하는 치료자였다. 너는 의미있는 존재, 사랑받기 위해 태여난 존재 우리 인간들은 자기자신자체를 모르는 존재이기때문에 자기의 슬픔 이나 기쁨 그자체를 모른다. 바로 그것자체를 아는것을 두고 의미 를 안다고 하는것이다. 불안이나 공포 그자체가 병이 아니라 그것의 의 미를 모르는것이 병이고 그 의미를 아는 순간 병은 해소된다는것이 의 미치료의 기법이다. 아는것을 다시 아는것 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때에 다시 아는것은 처음 아는것과는 정반대일수 있다. 례를 들면 인생의 쓴맛의 의미를 파악하면 쓴것이 아니고 단맛이라는것 을 알게 되는것과도 같다. 그래서 의미치료를 일명 역설알기 라 고도 한다. 프랭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당하는 고통의 의 미를 파악하지 못해서 자살까지 한다는 사실을 알고 역설알기치료 기법을 통해 인생의 새 삶을 살게 하였던것이다. 의미치료법은 그래서 역설적의도 라고 한다. 사실 이런 역설적 의도는 죽음의 수용소라든지 민생단 감옥 같은 극한상황을 경험 한 곳에서만 가능해진다. 극즉반( 極 卽 反 ) 이란 역의 론리도 여 기서 나온것이다. 앞에서 다뤘던 장포리와 박창길 량자의 공통점은 나는 <민생단> 이다. 라고 자백한 점이라고 할수 있다. 만약에 이 두사람이 나 는 <민생단>이 아니다. 라고 했더라면 사령관이 이들을 살리 기가 더 어려워졌을것이다. 다시말해 사령관이 립회한 동만특 위 간부들을 설득시키기가 아주 어려워졌을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이 민생단 이 아니라는 증명을 해내야 할 과제가 남기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사람이 현명하게도 자신이 민생단 원이라고 말해버린 것은 자포자기에서 나온 말일수도 있겠지만 민생단 이라고 가정 할 때에 오히려 그것을 뒤집기가 더 쉽기때문이다. 그리고 장포리와 박창길에게는 너는 귀중한 존재라는 의미 를 부각시킨것이다. 너는 조국의 부름받은 자랑스런 항일유격대원, 100명이나 왜놈들을 답새긴 명포수, 너는 우리가운데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의미를 발견하게 만든것이다. 그 의미를 발견하는 순 간 가슴깊은 곳에서 북받치는 울음이 터져나온것이다. 온 인민이 이런 감격속에 산다면 그런 인민은 행복하다. 한봉선에 주효한 세번의 주체료법 어느날 모간부가 사령관을 찾아와 동만당 조직부장이 보 내는 편지를 하나 전해주었다. 편지를 뜯어보니 한봉선이라는 대원

43 (8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85) 이 민생단 노릇을 크게 해 사령관까지 해치려 하였는데 죄 상으로 보아 마땅히 체포하여야 할 대상이니 당장 잡아내야 한다 는 내용이였다. 사령관자신이 한번 민생단 혐의자를 처단하는것을 보자 고 음모를 꾸민것이다. 그러나 좌경분자들의 이러한 속셈마저 읽어버린것이 사령관 의 남과 다른 점이다. 지도자는 항상 이러한 간신배나 모략군들의 속셈에 넘어가지 말아야 하고 속셈의 속셈을 읽을줄 알아야 한다. 사령관은 한봉선의 죄상 은 엄청난것이였으나 편지를 읽어 보니 어째서인지 거기에 씌여진 사연들에 믿음이 잘 가지 않았다. 우선 그가 <민생단>책동을 크게 벌린다는 사실이 몹시 허황해 보이였다. 지금껏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움을 잘해온 한봉선이 무 슨 망녕이 들어 <민생단>에 가담한단 말인가. 인격상으로 보더라도 그는 자기 상관을 모함하거나 살해하는것과 같은 악행을 할수 있는 포악한 성격의 사나이가 아니였다. 오히려 남들이 시샘을 하리만치 선량하고 례절이 밝은 미남자였다. 평상시 나와의 친분도 이만저만 두텁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자기를 그토록 사랑해준 상관을 해치려고 한다는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였다. 그렇다고 하여 편지에 씌여진 사연들을 무턱대고 부정할수도 없 었다. 조직부장이 아무려면 나에게 그런 거짓말을 꾸며내겠는가. 내 심중은 이래저래 불쾌해졌다. (4권 40~41페지) 사령관은 편지를 가지고 온 간부에게 자기가 직접 더 검열 해보고 처리할테니 안심하고 돌아가라고 한다. 주위사람들은 한봉 선이 언제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마당에 그를 당장 잡아 처리해야 한다고 야단이다. 이 시각 사령관의 뇌리에서는 복잡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 고 일어난다. 한봉선이 정말로 나를 죽이려고 했을가? 그가 무엇때문에 나를 죽이자고 할가? 나를 해칠 건덕지가 없지 않는가. 그를 특위에 보 내지 않은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그를 둬두었다가 정말로 후환 이 생기면 야단이 아닌가. (4권 41페지)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사령관은 생각한 끝에 한봉선을 검열해볼 결심을 한다. 며칠후 한봉선이 부름을 받고 지휘부에 나타난다. 그러나 한봉선 은 여느때나 다름없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사령관에게 물었다. 이때 오고간 대화를 여기에 옮겨적자. 대장동지, 무슨 일로 저를 불렀습니까? 혹시 적구공작에 내보 내자고 그러시는게 아닙니까? 맞혔소. 오늘 당장 삼차구에 가서 밀정 한놈을 붙잡아와야겠 소. 동문 참 후각이 예민한 사람이구만. 후각이고 뭐고가 있습니까. 지난밤 꿈에 도문구경을 좀 했는데 우리 중대 친구들이 해몽하기를 적구공작에 나갈 징조라고 하지 않 겠습니까. 그 친구들이 해몽을 멋있게 해낸셈이지요. 그럼 내가 호신용권총을 한자루 줄테니 그걸 가지고 떠나도 록 하오. 총은 거치장스러워서 두고 가겠습니다. 입으로 구슬려서 데리 고 올테니 념려마십시오. 그럼 총은 묻어두었다가 돌아올 때 가지고 오시오. 한봉선은 사령관이 시킨대로 싸창 한자루를 중도에 묻어두 고 삼차구시내에 들어가서 사령관이 지명한 밀정을 만났다. 그 밀정을 구슬려서 유격구에 데리고 들어왔다. 사령관은 밀정이 돌아갈 때에도 한봉선을 불러 그를 삼차

44 (8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87) 구까지 데려다주라고 하였다. 물론 한봉선은 그 임무도 훌륭히 집행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 사령관은 동만특위의 간부들을 질책 하였다. 한봉선을 검열해보느라고 총을 주었는데 이 사람이 뛰지 않았 다. 일본놈 개를 잡아오라고 했는데 개도 잡아왔다. 총과 탄알을 다 주었으니 나를 해치려면 얼마든지 해칠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짓은 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과연 <민생단>이겠는가? (4권 42페지) 이에 대한 동만당 간부들의 대답은 기가 막힌다. 동만당의 간부 들은 <민생단>도 그런 흉내는 낼수 있다. 그가 총을 가지고서도 도망치거나 당신을 해치지 않은것은 간부들의 신용을 얻어가지고 대 렬에 더 깊이 침투하여 <민생단>작용을 큼직하게 해보자는것이다. 그러니 그를 믿을수 없다. 고 하였다. 정말 찍해도 짹해도 죽이기 로 작정한것이 이 대화속에 여실히 나타나있다. 그래서 사령관은 한봉선에게 두번째 과업을 준다. 동만당 간부들의 완고한 마음을 다시한번 돌려보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도 가선철길에 가서 폭발물을 묻고 오라는것이다. 한봉선은 이번에도 싱글벙글 웃으면서 서슴지 않고 공작지로 떠나갔다. 그는 모험심이 너무 강한것이 탈이였다. 사령관이 잡히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였더니 그는 잡히면 잡히고 까짓것, 그런건 꿈만 합니다, 잡혀도 변절은 하지 않을테니 나를 믿어주십시오, 기껏해서 총살을 당하는 것밖에 더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그는 이 일도 잘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아직도 동만간부들은 트집을 건다. 세번째 검증은 한봉선을 돌격조에 망라시키는것이다. 만약에 한 봉선이 민생단 이라면 동만당 간부의 말대로 이번만은 속일수 없 을것이였다. 사령관부대는 그때 왕청주변의 어느 집단부락 을 습격하였는데 그 전투가 아주 치렬했다. 돌격조를 책임진 한봉 선은 선두에서 포대를 들이치다가 불행하게도 그만 한쪽손을 잃고 말았다. 사령관은 이렇게 세차례의 검열을 통하여 한봉선이 민생 단 이 아니고 혁명에 충실한 사람이라는것을 보여주었다. 그때 사령관이 한봉선을 검열해보지 않고 그들에게 보냈더 라면 그는 영낙없이 반동분자의 감투를 쓰고 처단되였을것이다. 실로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사령관은 신변의 위험도 아 랑곳하지 않고 내기를 하지 않을수 없었다. 조선이 일본에 먹히는 것은 당연하다는 발언을 한 주일공사 스티븐스를 저격한 전명운렬 사의 법정통역을 부탁받자 리승만은 그가 테로범이라는 리유로 외 면하고말았다. 알량한 그리스도교신앙을 내세워 전명운렬사를 살인 자로 몰기까지 했다. 다홍왜로 갈 준비는 끝났다 사령관이 좌경분자들의 주장을 물리치고 한봉선을 구원해 준것은 사실 생사를 건 아슬아슬한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주석은 만일 그때 한봉선이 총을 가지고 어느 간부를 살해했거나 적구로 달아났더라면 나는 그를 신임한 책임에서 벗어 날수 없었을것이다. (4권 43페지)라고 아슬아슬했던 순간을 회고 하고있다. 그러고보면 사령관자신도 자신을 내던지면서 한봉선구출작 전에 나섰던것이다. 이것은 장포리와 박창길에 이어 세번째 모험이였다고 말할수 있 다. 이런 모험은 그후에도 계속되였다. 한마디의 명령이나 한번의

45 (8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89) 손짓에 따라 수십수백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는 험악한 계급투쟁의 마당에서 혁명가의 랭철한 리성과 분별력은 고사하고 초보적인 인정 이나 의리마저 저버린 목석같은 인간들의 도전을 순간마다 당하면서 도 그 어떤 압력에도 굽어들지 않고 자기 신념에 따라 끝까지 정정 당당하게 행동할수 있었던것은 사령관의 깨끗한 경력과 유격 대지휘관으로서의 전투성과와 리론적뒤받침의 덕이라고 할수 있다. 이와 같이 사령관은 일본제국주의늑대들과도 싸우는 마당 에 내부의 적들과는 더 어려운 싸움을 해내지 않으면 안될 이중삼 중의 난관을 헤쳐나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1933년 1935년사이에 왕 청을 중심으로 한 동만땅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나라를 세운 후 내우외환속에서도 인민들 을 이끌어갈수 있는 좋은 자산이 되였다. 나는 주체사상의 기원을 정치적으로만 찾는것에 찬성하지 않는다. 나는 주로 민생단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사령관 이 보여준 철학, 그속에 심리치료료법 같은것도 있고 론리학과 같은것도 있다고 본다. 이런 다양성속에서도 한가지 공통된것은 주체를 세우는것이라고 나는 보고싶다. 이제 생사를 각오하고 다홍왜로 가야 할 결단의 시각이 앞에 다 가섰다. 사령관이 동만당 간부들에게 사면초가같이 포위되여 내뿜 는 열변은 민생단 으로 몰려 사지에 있는 동족들을 구하기 위한 불같은 정열 그자체였다. 극좌좌경론리를 꺾은 해학 님이여 강을 건느지 마시라 반 민생단 투쟁의 사나운 회오리가 동만의 유격구들을 한창 휩 쓸고있을 때인 1934년말 1935년초는 사령관이 병석에서 앓 고있을 때였다. 1935년 2월 일명 동만당단특위련석대회라고도 하고 다홍왜회의라고도 하는 회의가 소집되였다. 민생단 문제가 주안 건이였다. 만주성당 파견원 위증민을 비롯하여 왕윤성, 주수동, 조 아범, 왕덕태, 종자운 등 거물급 동만당특위 간부 20여명이 대거 참석한 력사적인 회의였다. 다홍왜는 왕청부근의 지명으로 연길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서 뻐 스로 가면 약 2시간 반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그 당시에 교통 편도 없는 마당에 아픈 몸으로 그곳에 간다는것은 여간 어려운 일 이 아니였다. 사령관은 다홍왜로 떠날 차비를 하였다. 주석은 이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수십일간이나 내처 앓던 몸이여서 회의에 참가할만 한 기력은 없었으나 내가 요구한 회의이니 반드시 가야 하였다. 그런데 4중대 장과 정치지도원을 비롯한 군대내의 많은 동무들이 내가 다홍왜로 떠나는것을 한사코 반대하였다. (4권 44페지) 4중대 정치지도원이 사령관에게 대장동지, 만주성당에서 도 파견원이 오고 공청만주성위에서도 파견원이 왔다는데 어쩐지

46 (9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91) 심상치 않습니다. 진리가 아무리 대장동지편에 있다고 해도 어쨌든 대장동지는 혼자이고 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있지 않습니까. 라고 극구 참가를 반대한다. 20대1, 그야말로 사면초가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극좌좌경분자들과 정면대결하 려는 사령관의 앞길을 막지 못하였다. 이러한 정황에 대해 주석은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다홍왜회의가 우리에게 미소를 보내고 축복의 인사를 보내주 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나를 고무해주는 락천가는 단 한명도 없 었다. 그들이 나의 출발을 앞두고 그처럼 불안해한것은 무리가 아니 였다. (4권 45페지) 1935년 2월, 그때 동만일대의 험악한 분위기를 두고 주석은 이렇게 회고하고있다. 만주성당이 동만 각급 당부와 전체 당원들에게 전당을 볼 쉐비크화하기 위하여 숙반공작과 좌우경을 반대하는 량조전선의 투 쟁을 강하게 전개하여 당내에 침입한 반혁명분자들을 모두 제거하 고 파쟁주의, 민족주의, 사회개량주의를 청산구축할데 대한 비밀지 령을 하달한 뒤였다. 이 지령이 하달된 후 동만 각급 당조직들에 서는 반<민생단>투쟁이 더욱 극좌적으로 무자비하게 전개되였다. (4권 45페지) 사령관과 동지들이 나누는 대화의 장면은 우리 나라 고가 사 공무도하가 ( 公 無 渡 河 歌 )를 련상케 한다. 공무도하가 는 고조선시대의 작품으로 가장 오래된 가사문학가운데 하나이다. 사 지를 향해 떠나려는 님을 말리며 녀인이 부른 노래이다. 여기 소개 한다. 공무도하가( 公 無 渡 河 歌 ) 님아 님아 내 님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님아 님아 내 님아 그예 물을 건너시네아 (기어이 물을 건너시나이까) 물에 휩쓸려가시네 아 가신 님을 장차 어찌할고! 이 고가사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사지로 가는 영웅남편과 이 를 말리는 녀인간의 슬픈 노래와 시는 그리스신화와 중동일대의 신 화에서도 나오기때문에 이 가사는 오래된것이기는 하지만 세계적인 특징을 가지고있다. 백수광부( 白 首 狂 夫 )로 알려진 남편이 물을 건 너 사지로 가는 모습을 보고 그의 안해가 강가에서 부른 노래이다. 이 노래가 하도 슬퍼서 당시의 녀류음악가인 려옥( 麗 玉 )에 의해 공후인 으로 다시 창작되여 세상에 널리 전해지게 되였으며 사람 들이 따라부르게 된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있다고 한다. 민생단 문제와 관련한 사령관과 좌경분자들사이의 론쟁 은 그때까지 비공식적인 장소에서 자연발생적인 여러 형태로 있어왔 다. 그러나 1935년 당과 군대, 공청의 주요간부들이 다 모이는 다 홍왜회의에서 있은 민생단 과 관련한 론쟁은 공식적인 형태를 띠 고 첨예하게 벌어졌다는 점에서 이전에 있은 론쟁들과 다르다. 주석은 이러한 론쟁이 벌어지게 될 다홍왜로 가는것이 얼 마나 어렵고 위험천만한 길이였던가에 대해, 그러나 단호히 그 길에 올랐던 때를 감회깊이 회상한다. 좌경을 반대하는 세력이 나 하나라면 나를 반대하는 세력은 10이나 20명도 넘을수 있다. 나는 좌경의 포위속에서 전체를 향

47 (9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93) 해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할것이다. 론쟁은 나를 단죄하는 성토장으 로 되고 회의장은 나를 매장해버리는 재판장으로도 변할수 있다. <민생단>이라고 하면서 나를 정치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매장해버리 려는 극단한 시도도 있을 우려가 없지 않았다. (4권 45페지) 전우들은 바로 그 점을 제일 걱정하고있었다. 그들은 <숙반> 을 주관하고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인정사정없는 돌심장들인가를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래서 전우들은 사색이 되여 다홍왜로 가지 말아달라고 애걸하 였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길을 떠났다. (4권 45~46페지) 동무들, 이 길은 죽든지 살든지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길이 다. 내가 만일 다홍왜로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멸을 가져올뿐이다. 대결은 피할수 없고 흑백은 반드시 갈라져야 한다. (4권 46페지) 주체를 세우려 기어코 다홍왜로 떠나다 사령관은 오대성과 다른 한명의 전령병의 부축을 받으며 회의가 시작된지 이틀만에야 다홍왜에 도착하였다. 인민혁명군대원 들의 엄한 경호조치가 실시되고있는 제8구 농민위원회 사무소에서 만주성당 파견원 위증민과 동만당단특위의 간부들이 사령관 을 맞아주었다. 이 너렁청한 사무소건물에서 바로 중국사람들이 동 만당단특위련석대회라고 규정한 회의가 진행되고있었다. 흔히 다홍 왜회의라고 부르고있다. 한때 일부 력사가들이 조선인민혁명군 군정 간부회의라고도 하였다. 다홍왜회의는 약 10일가량 진행되였다. 회의도중 들락날락하는 사 람들도 있어 출석자의 수자는 고르지 못하였다. 대부분은 중국사람 들이였고 조선족출신으로는 사령관과 송일, 림수산, 조동욱 을 비롯한 몇몇 간부들뿐이였다. 조동욱은 회의 전기간 중국말을 잘 모르는 조선족간부들을 위해 통역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사령관은 동만당 특위위원의 자격으로 이 회의에 참가하였다. 론쟁이 열기를 띠기 시작한것은 만주성위 순시원 종자운이 보고 에서 동만에 있는 조선사람들의 70%, 조선혁명가들의 80~90%가 민생단 이거나 그 혐의자들이며 유격구가 민생단 의 양성소라 는 종래의 견해를 되풀이한 순간부터였다. 회의분위기는 종자운의 보고를 지지하는데로 기울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숙반공작위원회를 강화해야겠다는 발언을 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민생단 숙청은 혁명으로 대내의 반혁명을 포위섬 멸하는 특수전이라는 미사려구를 늘어놓았으며 어떤 사람들은 민 생단 이 뿌려놓은 씨종자들을 보다 철저히 무자비하게 뿌리채 뽑 아내야겠다고 하였다. 사령관은 이들의 론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진 다. 여기서 질문에 대하여 질문으로 대응하는 론법이 동원된다. 질 문에 답을 하면 반드시 그 답에 대한 반론이 나올수 있기때문에 사령관은 상대방의 질문자체에 질문을 던져 그 질문자체가 답 이 되도록 하는것이다. 상대방이 주장하는 론법이 스스로 자기모순 에 부닥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동만에서 활동하는 조선혁명가들의 대부분이 <민생단>이라면 이 회의에 참석하고있는 나와 기타 조선동지들도 다 <민생단>으로 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당신들은 지금 <민생단>과 마주앉아 회의 를 하는가? 우리가 <민생단>이라면 무엇때문에 감옥에 가두거나 죽 이지 않고 여기에 불러다놓고 정치를 상론하는가? (4권 47페지)

48 (9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95) 해학( 諧 謔 )은 세기적 종자운의 론리대로라면 민생단 아닐 사람이 없으며 여기 당 신들과 자리를 같이하고있는 사람들도 민생단 이고 그러면 민 생단 과 같이 앉아서 회의를 하고있는 꼴이라는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론리인가? 사령관은 종자운의 론리자체가 자기모순에 빠지도록 말을 이끌어간다. 이것은 그의 여유있는 인성에서 자연히 나온것이다. 민생단 과 마주앉아 민생단 을 규탄한다는것은 웃음거리라 는것이다. 사령관은 유모아의 명수였고 그의 이런 론법이 그로 하여 금 평생 락천가로 살게 한것이며 항일혁명 20년을 이끈 비결이라고 나는 보고싶다. 얼마나 사령관의 말이 종자운일당들의 자기 리탈을 일으키 고있는지를 보자. 동무들이 찍어놓은 그 수자속에는 싸움터에서 전사한 혁명가들 도 포함되는가? 만일 포함된다고 가정하면 그들이 항일전쟁에서 목 숨을 바친것을 무엇이라고 설명할수 있겠는가? 그러면 일본놈들이 자기편 사람들을 수없이 죽인것으로 되는데 그들이 모처럼 키워놓 은 <민생단>원들을 그렇게 죽일 필요가 있었겠는가? 이 회의장을 호위하고있는 1중대의 80~90%도 <민생단>으로 보 는가? (4권 47~48페지) 이 질문으로 하여 술렁거리던 회의장안에서는 갑자기 우리자신 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수 없는 차거운 정적이 깃들었다. 사람 들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집행석에 앉아있는 위증민의 얼굴만 쳐다 보았다. (4권 48페지) 사실은 차거운 정적이지만 으스스 자기 의식을 하면서 일어나는 내면의 웃음인것이다. 사령관의 해학은 거침없이 이어진다. 다 알다싶이 어떤 물질이든지 본래의 구성요소와 다른 요소가 80~90%이상을 차지하게 되면 그 물질은 다른 물질로 변하게 된 다. 이것은 과학이다. 동만에 사는 조선사람의 70%가 <민생단>이라는것은 로인들과 아 녀자들을 제외한 조선족청장년들전부가 <민생단>이라는 말과 같은 데 그렇다면 동만에서는 <민생단>이 혁명을 하고있으며 <민생단>이 자기 상전을 반대하는 혈전을 벌리고있단 말인가? 어떤 사람들은 동만에서 활동하고있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대 부분이 <민생단>이라고 공공연히 말하는데 이것 역시 리치에 맞지 않는 소리이다. 그들이 만일 <민생단>이라면 무엇때문에 3년동안이 나 만성적인 봉쇄상태에 놓여있는 유격구들에서 엄동설한에 집도 없이 입을것도 입지 못하고 먹을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적들과 힘에 겨운 싸움을 하여왔겠는가. 조선혁명가들의 80~90%는 고사하고 그 십분의 일인 8~9%만 <민생단>이라고 하여도 우리는 이 자리에서 마음놓고 회의를 할수 없을것이다. 왜냐하면 이 회의장주변에서는 지금 조선사람들로 편 성된 1중대가 완전무장을 하고 우리들에 대한 경위임무를 수행하고 있기때문이다. 이 자리에는 몇해째 적들이 소멸하지 못해 애를 쓰 는 동만지방의 이름난 혁명가들과 지도핵심들이 다 모여있다. 당신 들의 주장이 옳다고 한다면 1중대 성원들도 거의나 <민생단>이겠는 데 그들이 좋은 총기를 가지고있으면서도 우리를 습격하여 일망타 진하지 않는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4권 48~49페지)

49 (9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97) 모두가 민생단 이라는 생억지의 제창자들은 이 물음에도 역시 함구무언이였다. 보고에서는 유격구를 <민생단>의 양성소라고 하고 당, 단조직 도 <민생단>조직이라고 하면서 리용국은 <민생단> 왕청현당 책임 자, 김명균은 <민생단> 왕청현 조직 및 군사책임자, 리상묵은 <민 생단> 동만당 조직책, 주진은 인민혁명군 1사 <민생단> 책임자, 박 춘은 인민혁명군 <민생단> 참모장이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동만당 이나 왕청현당이나 인민혁명군 1사를 모두 <민생단>조직으로 보아 도 되겠는가? 동만당 간부들을 <민생단>의 조종자, 지도자들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는가? (4권 49페지) 사령관의 론리는 동만 온 바닥이 전부 민생단 이라면 지 금 다홍왜회의자체도 성립할수 없다고 한다. 다시말해서 민생단 분자들이 포위한 상태에서 회의를 하고있다는것이다. 이것은 자가당착이다. 웃음거리이다. 이러한 론리앞에 할 말을 잊 을수밖에 없다. 지금도 북의 지도자들이 전개하고있는 론리는 자세히 분석해보 면 모두 다홍왜에서 사령관이 전개한 론리에서 과히 멀지 않 다. 다시말해 상대방의 말자체가 자어상위에 걸리도록 만들어버린 다는것이다. 이런 론리를 펴자면 이렇게 말하는 자신이 자어상위에 걸리지 않아 야 하는데 그것은 화자자신의 도덕적청렴성에 의해서만 가능해진다. 도덕의 기원은 바로 이런 역설적상황에 있다. 청중은 이 물음에도 침묵으로 대답하였다. 탁월한 론리로 동만당 지도부의 론리가 억지임을 단숨에 보여준것이다. 성당파견원으로서 이 투쟁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종합분석하고 평 가할 사명을 걸머진 위증민은 당, 단조직자체를 민생단 조직으로 보는것은 착오이며 부분과 전체는 반드시 구별해보아야 한다는 견 해를 발표하여 장내에 조성된 긴장도를 약간 늦추어놓았다. 사령관은 동만인민의 대부분을 민생단 이라고 락인찍는 것은 조선사람들에 대한 모독이며 이 견해는 이번 회의에서 당장 시정되여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 주장은 즉석에서 조아범의 반격을 받았다. 당신은 무턱대고 <민생단>이 없다고만 하는데 그것은 주관이 다. 감옥들에는 지금 수백명의 <민생단>혐의자들이 갇혀있다. 그들 이 자기 입으로 <민생단>에 들었다고 자백하고있고 자기 손으로 자 백서까지 쓰고있는데 그 자백과 자백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래 당신은 이런 증거자료들을 인정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에 대하여 사령관은 당신들이 <민생단>이라고 몰아대 는 혐의자들의 대다수는 <숙반>의 집행자들에 의해 가해지는 육체 적고통에 견디지 못해 가짜자백을 한 사람들이다. 당신들은 지금 <민생단> 아닌 <민생단>을 마구 만들어내고있 다. (4권 50페지)고 반격을 가한다. 자기 인민을 지키지 못하는 손금없는 지도자는 가라 이상이 다홍왜회의에서 사령관이 론박한 내용의 요약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저작집 의 다홍왜회의 연설문을 참고하 면 될것이다. 다홍왜회의에서 사령관이 보여준 태도는 강한 동족애의 발로라는 범위를 초월하며 조선공산당도 사라진 마당에 남의 집 안방에서, 동만간부들앞에서 과감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쳐 보였다는 점이다. 특히 종자운은 만주성위 순시원으로서 사실상 최

50 (9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99) 고실력자라고 할수 있는 존재이다. 12월 19일 대선 을 앞두고 력대 대통령 후보들이 미국 눈치 보고 미국을 찾아가 검증절차를 먼저 통과하려 앞을 다투었다. 최근 유력후보는 뒤구멍통로로 부쉬를 만나러 가려다가 불발탄이 된적이 있다. 어느 후보는 상승일로에 있다가 미국을 갔다온 후 지 지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후보시절이나 당선이후에라도 손금이 다 닳도록 빌고 조아 려야 대통령 이 될수 있다는 생각이 유전인자가 되여있을 정도이 다. 우리는 대선 후보들의 손금을 한번 검증해보아야 한다. 관상 보다 더 중요한것은 손금이다. 손금이 다 닳아없어진 후보를 지도자 로 뽑는 국민들은 자기들자신도 손금이 다 닳아없어졌기때문이다. 후위의 가경흥( 賈 景 興 )은 늘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내가 너를 저버리지 않았느니, 그것은 내가 고관에게 절하지 않았기때문 이다. 라고 했다. 요즘은 의자생활을 해 무릎굽혀 절할 기회는 없지만 대신에 량 손을 하도 비벼대며 힘있는자에게 아첨을 하여 손금이 없다. 로 바뀐것 같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사대아부굴종 그자체가 사라 진것은 아니다. 랭소주의를 랭소한 조선의 별들 어떤 거짓도 거절했던 1974년 겨울 어느날, 나는 감방벽에 기대앉아있었어요. 한없는 괴로움에 시 달리고있었어요. 끝없는 분노에 몸을 떨고있었어요. 내 피를 부른다 거절하라고 그 어떤 거짓도 거절하라고 거절하라고? 그래요. 거절이죠. 어둠속에 감추어진 진실을 빛속 에 드러내라고? 거절하라고? 그래요. 휄드린의 시에 있어서의 그 빛 의 수수께끼, 그것이 바로 이 거절이였어요. 정말 그래요. 우의 글은 시인 김지하가 옥중에서 쓴 저 유명한 고행, 1974년 의 한구절이다. 34년이 지난 2007년 12월에 그의 글을 다시 읽는 기분은 감회가 새롭다고 해야 마땅할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 아무리 BBK 진실이 대낮의 해보다 명명백백해 도 거짓을 거부하기는커녕 그 후보의 지지률은 고공행진을 하고있 다. 김지하시인의 글이 전혀 뇌수를 치지 못하고있다. 어떤 거짓도

51 (10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01) 거절하라는 휄드린의 시도 넉두리같이 들리기만 한다. 도무지 어찌 된 영문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휄드린과 같은 도이췰란드의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와 그의 출세작 랭소적리성비판 (1983년)에 있다. 그 는 우리 시대는 랭소의 시대가 됐다. 고 했다. 랭소주의란 어떤것이 옳지 못하고 거짓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용인 하고 심지어는 행하는자의 태도를 가리킨다. 랭소주의, cynical 이란 말은 고대그리스철학 학파가운데 견유학파, Cynicism 에 서 유래한다. 견유학파란 이름은 개와 같은 생활 때문에 유래한것이라고 한 다. 견유학파는 원래 외적조건에 좌우되지 않는 생활을 하며 강 인한 의지로 욕망을 억제하는것에 의하여 달성될수 있다고 주장하 는것이 이 학파의 가르침이다. 이 학파는 후에 스토아학파에 영향 을 주었다. 오늘날 랭소주의를 의미하는 시니시즘(cynicism) 이라는 말 은 일반적으로 세론, 습속, 통상적인 도덕 등을 무시하는 생활태 도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랭소주의자들은 진실에 대해 쓴웃음을 짓는 태도 를 취하는자들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자신도 모르게 이런 랭소주의 자들이 되여있다는것이다. 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는 우리 시대의 이러한 랭소주의를 가장 잘 반영하는 선거가 되였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시대정신에 장단과 박자를 맞추며 가고있는것인가? 이젠 김지하의 오적 도 타는 목마름 도 더이상 우리의 시적상상력을 자극할수도 사생취 의( 捨 生 取 義 )적도덕감각에 충격을 줄수도 없다. B.C. 6세기경 크레타섬사람들이 온통 나라가 전부 거짓말쟁이 가 되여버려 주위나라 사람들로부터 모든 크레타사람들은 거짓말 쟁이 로 불리워지게 되였으며 하여 이 격구가 지금 전 지구적인것 으로 남았다. 그래서 지금 철학을 하지 않는 사람도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만약에 12월 19일 그 후보가 당선이 되는 날 세계언론들은 모든 코리언들은 거짓말쟁이 라는 세기적신격구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떤 언론들은 남쪽사람들은 랭소주의시대에 살아 가고있는 대표적인 세계인들로 보도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랭소주의에 마싸지당하고있다 랭소주의시대에선 악이 무엇인지 선이 무엇인지 당황하게 된다.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교도소에서 자행된 미군의 만행이 내 부 고발자에 의해 적라라한 사진들과 함께 외부에 공개되자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해 9월 만행의 중심인물 칩 프레더릭하사를 만 난 필립 짐바르도 스탠퍼드대학 심리학과 교수는 당시 37살의 칩이 지극히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랐고 2주일에 한번씩은 꼬박꼬박 남부 보수 침례교회에 나갔으며 스스로를 도덕적이고 령적인 사람이라 생 각하고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심리학자들은 그가 자신의 근무환경에서 아무런 죄의식없이 학대 행위를 저지를수 있는 정신병적성향의 증거를 전혀 찾을수 없었다. 정신분렬증, 우울증, 히스테리를 비롯해 주요심리학적병리학과 관련 해 그는 정상적이고 건강한 범위 에 속했다. 이렇게 랭소주의는 인간을 랭혹하게 만드는것이다. 남쪽사람들중 40대가 지금 그 후보에게 기만당하고있는 리유가 분명해졌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질가?

52 (10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03) 우리는 지금 랭소주의에 마싸지당하고있기때문이다. 그래서 그것 이 병이라는 증상을 모르고있는것이다. 아는것을 알지 못하는 이것 이 병이다. 지금 남쪽사람들중 절반이 이런 증상에 걸린 상태에서 선거를 치르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있다. 칩 같은 인간상은 미국의 대표적인 인간상이다. 소위 청교도정신 으로 무장된 평범한 인간이기는 하나 자기가 하는 일을 자기가 모 르는 랭소주의자이다. 그리고 이들은 남을 학대하는 랭소주의자들 이다. 나는 미국이, 대통령을 비롯한 3억 인구들이 이 가학적랭소 주의란 병에 걸려있다고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1930년대 동만 땅 극좌좌경분자들도 가학적랭소주의자들이다. 랭소주의는 아편보다 무서운 독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한국 사회의 풍경에서 이 랭소적리성 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시종 둘러대고 잡아떼고 모른체 하는 행태에 사법기관이 나서서 결백의 성의를 입혀주는것이 랭소주의의 한 모습이라면, 사법기관의 그런 행위에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도 그 렇게 면죄부를 받은 후보를 눈 딱 감고 지지하는것이 랭소주의의 다른 모습이다. 슬로터다이크는 이 랭소주의를 현대의 불행한 의 식 이라고 칭하면서 이 불행한 의식이 파시즘의 터전이 됐다고 말 한다. 2008년은 한국 파시즘 원년이 될것인가? 하는 가학증-사디즘으로 변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학증-마 조히즘으로 변한다. 전자의 경우가 바로 동만일대에 등장한 반 민 생단 투쟁이다. 자학적랭소주의가 조선의 지식인들을 엄습한것은 주로 1930년대 말이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의 배웠다 하는 식자들은 이젠 일본천하가 다되였다고 자포자기하고 술집과 기생집을 돌아다 니면서 랭소주의에 빠진다. 최남선, 최린, 리광수, 윤치호 등 3.1독 립선언문을 기안작성할만큼 반일을 외우던 지식인들이 하루아침에 돌변한다. 최남선은 일본의 발흥은 아시아의 신기운이라 했고, 최 린은 내선일체 로 국민적적성을 발휘하자 했고, 윤치호는 조선과 일본은 같은 배를 탔다고 했다. 이 당시 자학적랭소주의를 대변하는 노래가 희망가 이다. 나 는 어릴 때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저녁식사만 잡수시고는 사랑 채에 누워 이 노래를 불렀기때문에 지금도 가사와 곡을 다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그런데 희망가 인 이 노래는 제목이 희망가 란것 이외에 가 사내용속에는 희망이 전혀 없는 노래여서 항상 이상히 여겼다. 그렇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이 노래는 그자체가 랭소주의이다. 비 웃음과 쓴웃음을 겸한것이 바로 랭소( 冷 笑 ) 이기때문이다. 그러 나 이렇게라도 나라잃은 한을 승화시키지 않고는 못 견디겠기때문에 당시 그리고 지금까지도 널리 불리우는 노래가 되였을것이다. 1930년대 랭소주의지식인들과 친일행각 희망가 랭소주의는 랭소주의 그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무서운 이 차적증상으로 변하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그 하나는 남을 학대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가/ 푸른 하늘 밝은 달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53 (10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05) 세상만사가/ 춘몽중에 또다시 꿈같도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 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가/ 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 몰하야/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가 2절 끝에 세상만사를 잊는것이 어찌 희망인지 도저히 리해가 안 간다. 정말 저절로 랭소가 나올 정도이다. 최남선 등은 랭소주의란 병에 걸려 이 나라 젊은이들을 대동아전쟁 으로 내몰았다. 2007년 12월 19일, 그날이 끝나면 이 땅의 지식인들이 어떤 태 도를 보일지는 자못 궁금하다. 희망가 나 다시 꺼내부르며 주색 잡기에 침몰할것인가? 새 대통령, 경제 대통령 이 만들어주는 행복속에 부귀영화나 누릴건가? 12월 19일은 음력으로 동지달 열흘이 되는 날이다. 아직 보름은 아니지만 달은 제법 커있을것이다. 푸른 하늘 밝은 달아래 곰곰히 앉아 무엇을 생각할것인가? 가학적랭소주의자가 될것인가, 자학적랭 소주의자가 될것인가?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 1930년 6월 30일 카륜의 진명학교, 주변에는 작은 강이 하나 흐 르고있었다. 여기에 나라잃고 절망과 시름을 달래며 그래도 잃은 조국 다시 찾고 모든 인간들이 평등하게 잘사는 새세상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모였다. 카륜회합이후 사령관은 첫 당조직과 조선혁명군을 결성했다. 이것은 희망없는 시대에 진정한 희망을 창조하려는 이 나라 청 춘의 피가 분출할수 있는 오직 한길이였다. 1930년대에 혁명과 조 국해방의 이 한길이 랭소주의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였을것이다. 가학도 자학도 모두 극복한 이 한길이 바로 주체의 길이였다는것이 다. 지금 이 나라 젊은이들이 랭소주의라는 병을 치유하는데 참고 가 될 경험이라고 할수 있다. 이보다 앞서 사령관은 화성의숙 재학시절인 1926년 10월 17일 이미 타도제국주의동맹 즉 ㅌ.ㄷ 를 결성했다. 그후 김혁, 차광수들과 함께 밤이 이슥해져가는 들에서 들려오는 개구리울 음소리 들으며 새벽이 오는줄도 모르게 이야기꽃을 피운다. 드디 여 먼 동틀무렵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는것을 바라보고 부둥 켜안고 감격하며 눈물을 흘린다. 김혁은 즉석 작사작곡을 한다. 아리랑 공연의 앞부분 장면에 나오는 조선의 별 장면의 세 젊 은이들이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랭소주의마저 랭소해버림으로써 랭 소주의를 극복했다.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 삼천리강산을 밝게도 비치네 짓밟힌 조선에 동은 트리라 2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캄캄한 밤하늘 바라다보니 신음하는 조국산천 어리여오네 변치 말자 혁명에 다진 그 마음 2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간악한 강도 일제 쳐물리치고 삼천리에 새별이 더욱 빛날제

54 (10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07) 조선아 자유의 노래 부르자 2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서구식민주주의, 이젠 끝 서양에서 도입한 민주주의는 지금 이 민족, 이 겨레의 가슴속에 큰 상처를 남기고있다. 오손도손 수천년 살아오던 마을공동체가 이 당, 저 당 하면서 아들과 아버지가 원쑤가 되고 이웃사촌끼리도 칼 부림하는 선거판이 되였다. 손바닥만 한 땅덩어리가 갈가리 찢기여 한뽐도 안되는 섬진강폭이 천리만리같이 되여버렸다. 이런따위 민주주의를 더이상 하다간 정말 희망없다. 희망없는 희망가 를 다시 부를것이다. 세상만사를 다 잊고 주색잡기에 침 몰하며 사느냐, 아니면 저 만주벌판으로 달려가느냐. 어떻게 사는 길이 남은 선택의 길이냐. 이 길도 저 길도 다 가기 어려운것이 조 선땅에 태여난 운명이냐 저주냐 , 우리의 최대약점을 로출시킨 날 일본이 MD를 날리던 날, 우리는? 2007년 12월 18일 일본은 MD(미싸일방어)미싸일을 하늘에 날 렸다. 그런데 바로 그날 우리 대선 주자들은 자기 밭에 표갈이 만 열중하고있었다. 하늘에는 독수리가 날고있는데 땅을 파는 두 더지 같아보였다. 우리자신들은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있는것 같았다. 강토는 마치 보초병없이 곤한 잠에 든 군영같았다. 이 순 간 외적이 쳐들어오면 속수무책일것 같았다. 경제만 살린다면, 이 구호아래 모든것이 매몰되고마는 정지점과 같은 순간이였다. 1933년 9월 동녕현성전투직후 유격대원들이 어느 산간집에서 쉬 고있을 때 일제 토벌군 이 공격하여 거의 희생당한 악몽이 되살아 났다. 그때 방안에서는 일부 지휘관들이 극단한 군사민주주의 에 발을 묶이워 전부대원들의 완전합의가 이루어져 투표로 결판이 난 다음에야 전투를 할수 있다고 고집하였다. 결과는 불보듯 하지 않았는가? 이는 은유적으로 보아 밖에서는 우리의 적국인 일본이 미싸일을 쏘아올리고있는데 안에서는 서구식민주주의란 국민직접선거에 란장 판이 되여있는것과 무엇이 다른가? 미국마저 이젠 자기들이 만든

55 (10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09) 선거제도에 대해 회의적이다. 지난번 고어는 일반투표에서는 이기고 도 대법원판결에선 졌다. 이를 두고 부쉬는 선출된것이 아니고 선 택되였다고 했다. 과연 우리 당선자도 검찰에 의해 선택된자라고 말 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12월 19일은 리완용이 나타나도 경제살리기만 약속한다면 대 통령 이 될수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온 세상에 로출시켰다. 뉴 욕 타임스 마저 이번 선거를 두고 한국 사람들이 경제를 택할것 인가 륜리를 택할것인가를 고민하는 선거라고 했다. 우리는 전자를 택하고말았다. 나는 이 선택이 우리의 약점을 그대로 최대한 로출시킨 선택이라 고 평가하고싶다. 그렇다. 우리 주변국가들에게 한국 인들은 경 제적동물이고 이 나라는 잘살게 만 해주면 무엇이든 통하는 나라 라고 알리게 되였다. 그러면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만약에 주변국가들이 우리의 이런 약점을 잡고 흥정을 하려고 할 때라든지, 급소를 찌르는 경우 우리는 그 자리에서 급살을 당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당한것이 바로 IMF위기였다. 경제가 나쁠 수록 우리는 륜리를 선택했었어야 쟝글의 법칙에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을것이다. 리명박당선자가 만들어놓은 경제살리기 라는 무대우에 모든 후 보들이 다 기여올라가 서로 자기가 경제1인자라고 22일동안 목청을 높였다. 나중에는 리명박당선자가 하는 몸짓까지 따라하면서 다른 후보들이 흉내를 낼 지경이였다. 나는 오늘 북을 지탱하는 힘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력에 있다 고 본다. 강한 주체의 힘말이다. 이것을 보지 못하고있는 자본주의 경제동물들은 마치 북이 금방이라도 무너질것 같이 예단 아닌 예 단을 한다. 지구상에서 사라진 민족과 나라들은 정신력의 붕괴때문이지 경제 력때문이 아니였다. 로마도 부귀영화를 누릴 때에 망하고말았다. 이 엄연한 력사의 법칙을 우리 국민들은 외면하고말았다. 그래서 지금이 위기가운데 위기라고 나는 판단한다. 우린 가난한 쏘크라테스가 아닌 살찐 돼지가 되길 선택했는가? 매트릭스 란 영화는 쏘크라테스의 이야기를 개작한것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윌리엄 어윈이 지적한 말이다.(어윈, 2003, 27) 궤변론자들이 퍼뜨린 거짓이 아테네사회를 엄습하고있을 때에 쏘 크라테스는 대낮에 초불을 들고 진실을 찾아 방황하였다. 사기군 정 치인들, 장사군들 심지어 곡학아세하는 지식인들마저 쏘크라테스의 이런 행동에 량심의 가책을 받아 그가 눈에 가시같이 여겨졌다.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는 궤변론자들의 눈에 가장 거슬리는 쏘 크라테스의 말은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나는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known unknown) 였다. 영화 매트릭스 가 쏘크라테스의 삶을 재조명한 리유는 바로 이 두 말때문이다. 영화의 주인공 네오는 거짓에 대해 진실을 추구하는 쏘크라테스 의 화신으로 자처한다. 쏘크라테스는 대다수 사람들의 찬성속에 잡 혀 사형을 당하고말았다. 도덕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배부른 돼 지보다는 배고픈 쏘크라테스가 되는것이 낫다. 고 했다. 매트릭스 는 쏘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의 철학도 원용한다. 매트릭스란 동굴 이다. 인간들은 동굴속에 갇혀 전혀 밖에 참다운 세계가 있다는것 을 모른다. 동굴벽에 비친 그림자를 통해 밖을 알수 있을뿐이다.

56 (11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11) 불교는 이를 꿈에 비유하여 인간은 꿈속에선 그것이 꿈이라는것 을 모른다고 했다. 현대판으로 말하면 인간이 싸이버세계속에선 현실세계를 모른다 는 뜻이다. 그래서 참인지 거짓인지를 전혀 분별하지 못하고만다는 것이다. 혹시 이번 대선 을 우리 국민모두 이런 동굴속에서 혹 은 꿈속에서 치른것은 아닌지? 쏘크라테스는 바로 아테네시민들이 이 꿈에서 깨여나기를 바랐던것이다. 말로써 안되여 그는 죽음으 로 대신하였다. 2007년 12월 19일, 포스트모던의 원년? 폴 쟁크스는 1972년 7월 15일 오후 3시 32분에 정확하게 포스트 모던이 시작하였다고 했다. 이날에 모더니티를 상징하는 푸르트 아 이고 주거단지 건물들이 해체폭파되였기때문이라는것이다.(웨버먼, 2003, 261)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에서 포스트모던이 시작 된 날은 2007년 12월 19일 오후 6시라고 본다. 아마도 력사는 나의 말에 동의하여 그렇게 기록할것이다. 그 리 유는 다음과 같다. 반리명박후보들은 유세기간 내내 이번 대선 을 진실과 거짓 의 싸움이라고 했다. 다른 후보들도 리명박후보의 비도덕성을 닉슨 과 비교하기도 하고 엔론사 사장을 비교하기도 했지만 먹혀들지 않 았다. 왜 도덕과 륜리가 쟁점화되지 못했을가? 그 리유는 이렇다. 서양사상사는 동양과 달리 류달리 쏘크라테스 이후 진리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져왔다. 그러나 1932년 괴델은 수학에서마저 참이란 증명될수 없다는것을 증명하였다. 그 이후부 턴 진실게임을 더이상 수학에서 벌리지 않았다. 남는것은 불확실성과 비결정성뿐이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 후보는 리명박후보였다고 나는 본다. 이런 점에서 그는 이 시대가 어느 시대란걸 알고 그렇게도 자기가 자기를 두고도 거짓말을 할수 있었던것이다. 자기가 한 말을 두고도 자기가 한 말이 아니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것을 개의치 않았다. 포스트모더니티, 바로 이것이 그렇게 만든 리유이다. 우리 동양고전에는 진위( 眞 僞 )란 말이 거의 없다. 주역 64괘가 운데 진괘도 위괘도 없고, 선괘도 악괘도 없다. 그래서 서양은 동 양을 보고 진위, 선악에 무디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판 단이다. 인간의 본성을 너무 모른 판단이다. 거짓말도 3천번만 하 면 참말이 된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거짓말이 참말로 변해버리는 리유이다. 리명박은 이 런 점에서 이런 인간의 본성을 잘도 파악하였다. 자꾸 거짓말해라, 그러면 끝내 사람들이 믿게 될것이다. 참이란 생각자체는 참이 아 니다. 도가도, 비상도( 道 可 道, 非 常 道 )를 주문같이 암기하라. 그러 면 참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참이 된다. 엘리엇 애런슨은 거짓말의 진화 (추수밭, 2007)에서 부정직한 자들, 악인들, 위선자들이 어떻게 살아갈수 있는가? 질문을 던진 다. 거짓말이 참말이 되고 참말이 거짓말이 되는 과정이 겹겹이 뒤 섞여가면서 거짓말은 진화의 진화를 한다. 우리는 지금 대선 을 치르면서 거짓말이 대진화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해야 할것이다. 앞 으로 거짓말은 진화하여 더 큰 거짓말이 생겨날것이다. 쉐익스피어는 잘못을 변명하면 그 변명때문에 또 다른 잘못을 범하게 된다. 한가지 과실을 범한 사람이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되는것은 그때문이다. 현실을 현실그대로 받아들이고 처리하는것이

57 (11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13) 가장 유익하다. 고 했다. 2008년초부터 특검이 시작될것이다. 리명박당선자가 국민들앞에 쉐익스피어의 이 말을 그대로 수용할지는 의문이다. 이젠 당선자 신분이기때문에 그의 거짓말이 우리모두의 거짓말이 될것이다. 그 의 거짓말이 지금은 대통령 이란 선물을 안겨다주어 그는 길하였 다. 그러나 그의 거짓말이 특검에서도 이어져버린다면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불행 즉 흉을 안겨다줄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포스트모던의 시대, 일차적인 참과 거짓을 묻지 않는 시대이다. 싸이버와 현실이 상호 되먹임을 하면서 무엇이 참이 고 무엇이 거짓인지 큰 혼돈속에 빠진 시대에 우리가 살고있다. 거 듭 말해 리명박후보는 이 시대정신을 가장 잘 알았고 이를 활용하 여 지금 대통령 당선자가 되였다. 그러면 그의 부도덕성은 이런 탈현대란 시대정신과 함께 합리화 될수 있는가? 그렇다. 단 그의 거짓말이 만인에게 흉보다 길을 안 겨다준다면. 미국사람들은 거짓말이 더 진화하기 전에 닉슨의 거짓 말을 초장에 차단하고말았다. 그럼 우리도 초장에는 실패했지만 특 검에선 가능할지? 독재자의 동굴속에 다시 기여든 코리언들 매트릭스안에 갇혀있는 주인공은 자기가 자신을 알지 못한다. 동 굴안에 갇혀있으면서도 자기가 동굴안에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있 다. 싸이버중독에 빠지면 싸이버세계를 실제세계라고 생각해버린 다. 마음의 감옥에 갇혀있으면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므로 당연히 그 감옥으로부터 탈출하고저 하는 충동조차 느끼지 못한 다. 그러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이 자유로운지 아닌지 자각할수 있 는가? 개인으로는 이를 두고 자페증이라 한다. 자페증환자는 앉으라 하면 말을 따라서 앉으라 하지 행동으로 앉지를 못한다. 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기때문이다. 자기가 자기 의식에서 차단당해 있기때문이다. 지금 우린 무엇을 선택했는지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 고있다. 고대그리스사람들은 이와 같은 동굴속에 갇혀살면서 자기들을 아 무리 거짓말로 조작을 해도 조작을 당한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2007년 한국 사회가 바로 이런 동굴과 같은 사회로 보아 한점 틀림이 없다고 나는 본다. 아무리 진실과 거짓을 비교해도 그 비 교를 할수 있는 의식자체를 상실하고있기때문이다. 앞으로 특검이 남아있지만 이런 의식을 가진 인간군상속에서 큰 기대를 할수 있 을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40여년간 독재의 동굴 매트릭스속에 살다가 나와 겨우 10년간 자유를 맛보고 다시 이 프롬이 말하는 자유로부터 도피 (escape from freedom) 를 감행하였다. 다시 그 동굴속으로 들 어가기로 결행을 한것이다. 이것이 2007년의 선택이다. 독재자가 만 들어내는 인공프로그람의 행복한 무지속에서 사는것이 더 좋다고 동굴속으로 다시 들어간것이다. 매트릭스영화에서 네오는 모피어스 등의 도움으로 이 동굴로부 터 탈출한다. 그러나 매트릭스속에서 무지의 행복속에 살 때와는 상상도 못할 고통을 겪어야 한다. 자유를 향유한다는 대가가 얼마 나 심각한가를 안 네오는 동굴속으로 되돌아갈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렇게 고민을 하는것을 본 모피어스는 한때 그를 구출한것 을 후회하기도 한다. 네오보다 먼저 탈출한 사이퍼는 끝내 동굴밖의 자유세계에 적응

58 (11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15) 하지 못하고 동굴로 되돌아가고만다. 사이퍼의 모습이 오늘 우리 의 자화상이 아닌가. 자기를 매트릭스속에 가둔 그 독재세력에 다 시 무릎을 꿇고만것이다. 동굴안에서 네오가 참이라고 믿었던것이 밖에서는 모두 거짓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일수 없다. 쏘크라테스 의 너자신을 알라, 그리고 모른다는 사실을 알라는 말은 바로 이 런 네오나 사이퍼같이 동굴속에서 나온 사람들을 바깥자유세계에 잡아두려는 몸부림이다. 그러나 자신을 아는 순간 닥쳐오는 고통을 견딜수 없어서 자기를 구출해준자를 원망한다. 그래서 아테네사람들은 쏘크라테스를 극형 에 처하는데 동의한다. 파란 알약을 선택한 코리언들 영화에서 이런 자기가 갇힌 이 구조속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주인공에게 알려주는자는 네오이다.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을 주 면서 네오가 할 임무는 아는것을 알지 못하는 무의식속에 갇혀있 는 인간을 해방시키는것이다. 그래서 네오는 쏘크라테스의 화신으 로 등장한다. 쏘크라테스는 변명 이란 글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이 누구라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 하루종일 멈추지 않고 사람들사이를 옮겨 다니며 그들을 찔러 행동하게 하고 그들 각각을 설득하는 말파리같 이 되고싶다. 고 했다. 쏘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성가신 질문을 고 의적으로 던져 귀찮게 구는 말파리같이 행동하더라도 사람들의 의 식을 일깨우려 했다. 물질적인 향락에 안주하여 쾌락에 빠진 삶이 결코 지복이 아니라고 일깨운다. 영화에서 빨간 알약을 집으면 자신이 모르는것을 알고 자기자신 을 의식하게 된다. 파란 알약은 그 반대이다. 새로 당선된 대통령 은 지금 우리 손에 무슨 색의 알약을 쥐 여주었는가? 의식을 일깨워 거짓과 참을 구별할수 있게 하는 약인 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미국의 부쉬와 그의 정부는 미국사람들에게 파란 알약을 먹이였 다. 그래서 그의 거짓말을 전혀 구별할수 없게 만들어 두번이나 대 통령에 당선되였다. 그러나 미국사람들은 네오같이 자기 의식을 회 복하고 부쉬의 정체를 알아차리기 시작하여 금년선거에서 부쉬에게 패배를 안겨다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데는 7년이 걸렸다. 부쉬가 자기들을 속였다 는것을 아는데 그만한 시간이 걸린것이다. 다시 빨간 알약을 집어들기까지 7년이 걸렸다. 우리 국민들은 얼 마나 걸릴지 모른다. 아마 동굴속의 무지의 행복의 잠에서 깨여나 지 못하면 영원히 동굴속에 갇혀버릴지도 모른다. 사실 매트릭스에 갇혀있는 사람들은 수십억이였지만 겨우 깨여 밖으로 나온자는 네 오와 사이퍼 등 소수이고 그중 사이퍼는 다시 되돌아가고말았다. 국민성공시대 100만명 일자리 창출 이 기다리고있는 동굴속으로 다시 들어가고만것이다. 동굴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아무 상관 이 없다는것이다. 주체를 세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된다 장황한 말들의 잔치가 남긴 결론은 주체의 문제이다. 거짓은 진 화를 거듭하기때문에 관념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머리속으로는 참, 거짓을 분간할수 없다. 수학자들도 철학자들도 당연히 도달할수밖 에 없는 종착역이다. 불확실성이란 종착역이다.

59 (11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17) 여기서 주체의 개입없이는 결국 거짓말은 끝없이 진화할수밖에 없 고 거짓은 불행 즉 흉으로 갈수밖에 없다. 여기서 길을 선택하느냐 흉을 선택하느냐는것은 주체의 문제라는것이다. 항일유격대는 그 어느 시기, 그 어느 장소에서도 없었던 참 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참이 되는것을 경험하였다. 특히 하루아침 에 민생단 원으로 몰려 죽는것을 보고 진실과 거짓은 이미 객관 적으로 있는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한것이다. 반 민생단 투쟁을 체험하면서 사령관은 주체를 더욱 철저 히 세워야 한다는 결심을 굳게 다진다. 주체를 세우는것이 사람중심이며 경험에도 관념에도 사로잡히지 말고 그것을 함께 담지한 인간이 중심이 된다는것이다. 사람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에 량세봉 같은 극우와도 손을 잡을 수 있었고 도문지주한테서도 도움을 받을수 있었던것이다. 그러나 극좌들은 관념에 사로잡혀 객관적인데 기준을 두고 민족주의와 지 주들을 맹목적으로 배격했던것이다. 배움의 천리길, 책속에 길이 있다 두 장로 대통령 의 나라망친 추억 일본의 저명한 학자가 한국 이 일본을 따라잡는 세가지 관건 을 제시한적이 있다. 첫째 부동산문제, 둘째 남북문제, 셋째 그리스도교가 바로 그것 이다. 그런데 이 세가지 문제에 다 깊이 관련이 된 후보가 대통 령 에 당선되였다. 이 학자는 이 세가지가 잘못 풀리면 구한말의 위기를 다시 맞을 것이라 경고까지 하고있다. 일본인학자이지만 한국 의 현실을 투 명하게 바라보고있는것 같다. 벌써 들먹이는 부동산값 폭등, 그는 소망교회 장로, 인수위 구 성 주요인맥이 거의 같은 교회교인들, 뉴 라이트 같은 그리스도교 정치단체의 지원, 미국 그리스도교 보수강경파에 적극 후원을 받아 경색될 남북관계, 어쩌면 일본학자의 지적은 오늘의 한국 을 두 고 한 예언같아보인다. 우리는 3명의 그리스도교 장로출신 대통령 을 갖게 되였다. 리 승만, 김영삼 그리고 리명박이다. 력대 대통령 가운데 리승만과 김영삼은 최악의 대통령 이였다. 리승만은 정치를, 김영삼은 경 제를 망친것이 망국의 수준에 이르도록 망쳤다. 5년후 리명박은?

60 (11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19) 우리가 그리스도교를 경계하는 리유는 간단하지 않다. 과연 소망교 회에 소망이 있을가? 이 학자는 말하기를 이 세가지 문제를 잘 해결하지 않으면 구한 말과 같은 위기를 맞을것이라 했다. 남북문제 하나만 보면 리회창보 다는 최악의 선택은 아닌것 같지만 이 세가지를 모두 고려하면 리 명박은 최악의 선택인지 모른다. 적어도 리회창에겐 나머지 두가지 우려는 덜수 있었기때문이다. 분하고 억울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개표후 열흘이 지나가고있지만 우린 지 금 정신적공황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있다. 다른 선거때와는 달리 몇가지 생각들이 번갈아 가며 우리의 뇌리를 짓누르고있기때문이다. 원통하다. 거짓말앞에 진실이 여름철 얼음고물보다 더 쉽게, 허무 하게 녹아내린것이 원통하다. 세조의 잘못을 알고도 그것을 바로잡 지 못하고 죽은 사륙신의 원통함같은것이 가슴속을 쓸어내린다. 분하다. 친일매국노들에 뿌리를 둔 수구세력들에게 정권 을 다 시 내준것이 분하다. 나라잃고 비분강개 자살한 민영환의 분함같은 것이 머리끝까지 치민다. 한스럽다. 문, 정, 권, 리 소위 범여권 주자들이 끝까지 단일화 하지 못한것은 두고두고 한으로 남을것이다. 그래서 이 4인에 대한 국민들의 원망은 갈수록 쌓일것이다. 억울하다. 진보도 아니고 좌파도 아닌 로 정권 이 저질러놓은 잘못을 다 덤터기로 뒤집어쓰고 말 한마디 변명도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진보가 주저앉는것이 억울하다. 이건 완전히 루명을 뒤집어쓰 고 꺾인것이다. 로무현을 위한 변명? 한나라당 은 마치 훈련소에서 사격술을 배울 때에 목표물을 정 조준하기 전에 가상목표물(가늠쇠)을 먼저 겨냥하는 조준선정렬을 하는 론리를 기가 막히게 구사하였다. 가상목표물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좌파정권 그리고 잃어버린 10년 등 구호였다. 로 무현 정부 가 좌파라고? 이건 허구로 만들어놓은 가공물이다. 그 러나 이 가공물이 과녁을 겨누는데 리용된것이다. 로무현 정부 는 한국 정치사에 기이한 존재로 기록될것이다. 선 거패인을 놓고 진보진영에서는 신자유주의정책으로 인해 로무현정 부의 실패는 예정된 결과 라고 평가한다. 반면, 보수진영은 로무현 정부의 반시장적규제가 경제파탄을 초래했다. 고 주장한다. 실패 라는 결과는 한목소린데, 원인진단은 역설적으로 일치한다. 적의 적마저 적인 기이한 현상을 로무현 정부 가 만들었으며 이 를 두고 이중구속적이라고 한다. 다시말해서 적군으로부터도 적이 고 우군으로부터도 적인 이런 기가 막힌 상황속에서 진보진영은 선 거를 치른것이다. 이런 증상을 아마 사가들은 로무현증상(Roh s Syndrome) 으로 기록할지 모른다. 나는 이 증상을 어중이떠중이증상 이라고 재정의하고싶으며 대통령 이 이 지경까지 될수밖에 없는 원인을 꼭 로무현자신에게 서만 찾고싶지 않다. 아무리 반미자주외교를 하고싶어도 할수 없는것이 한국 의 운 명이다. 이라크파병 그리고 한 미FTA 등 한국 의 대통령 이 자의

61 (12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21) 로 결정할수 있는 권한이란 극히 제한적이다. 우리의 자주권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로무현을 위한 변명 아닌 변명이다. 리명박은 아예 이 자주권포기를 전제로 하고있기에 이런 문제로 어중이떠중이증상 은 나타나지 않을것이다. 계속 미일예속관계만 을 유지해도 그는 얼마든지 할 말이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로무현 은 대미문제를 두고 후보자시절과 그 전후가 서로 상반되였기때문에 이런 증상이 나타난것이다. 패인을 두고 이런 대미자주권의 시각에 서 바라보지 않는 우리의 시각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학도가 를 다시 부르자 그럼, 변속기에로 어떻게 발을 옮길수 있는가? 진보에게 길도 있 고 방법도 있다. 지금 총선출마차비를 할것이 아니다. 지금 나가면 공멸을 하고 회복불가능상태에 직면하고말것이다. 안된다. 다시 분 렬의 분렬만 자초할뿐이다. 내공을 길러야 한다. 그것은 다시 손에 책을 드는것이다. 공부를 하고 배우는것이다. 좀 진부해보이는 제안일지는 몰라도 책을 읽는 길만이 희망이라 는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소개한다. 책을 읽는 길만이 지금 원통하 고 분하고 억울한 가슴을 위로할수 있을것이다. 지금 보수가 제일 무서워하는것이 진보가 다시 공부하는것이다. 80년대 보수가 독재 권력에 젖어 골이 비여있을 때에 진보는 책을 읽었던것이다. 그 힘 으로 10년을 이끌어왔다. 빼앗긴 10년 을 다시 찾자면 가속기를 다시 밟아서는 안된다. 변속기로 발을 옮겨 기틀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에 우리 진보는 다시 성공할수 있을것이다. 책을 읽어 내공을 길러 라. 이 길만이 다시 살길이다. 시골에서 밭갈이를 하면서 친환경적생활태도를 몸에 익히고 밤이 면 주경야독하는 심경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 김인식( 金 仁 湜 )이 작 사작곡한 학도가 를 다시 부를 때이다. 학도가 는 1905년 평 양서문밖 소학교에서 련합운동회를 열 때 발표되였다. 학도가 학도야 학도야 청년학도야/ 벽상의 계종을 들어보아라/ 소년이로 ( 少 年 易 老 )에 학난성( 學 難 成 )하니/ 일촌광음( 一 寸 光 陰 )도 불가경 ( 不 可 輕 )일세/ 청산속에 묻힌 옥도 갈아야만 광채나고/ 락락장송 ( 落 落 長 松 ) 큰 나무도/ 깎아야만 동량( 棟 粱 )되네/ 공부하는 청년 들아/ 너의 기쁨 잊지 마라/ 새벽달은 넘어가고/ 동천조일( 東 天 朝 日 ) 비쳐온다 북의 책읽기운동에 공감하며 통일뉴스 에 실린 북의 책읽기운동을 소개한다. 국방위원장은 학습에서 기본은 책을 많이 읽는것이라 강조하였다. 책읽기가 학습에서 기본으로 되는 세가지 리유를 북의 로동신문 은 11월 9일호에서 소개하면서 국방위원장은 지 식수준을 빨리 높이자면 누구나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하였다. 그러면서 책을 많이 읽는것이 왜 학습에서 기본으로 되 는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책읽기가 폭넓고 깊은 지식을 습득할수 있게 하는 가장 훌 륭한 학습방법이기때문이라는것이다. 폭넓고 깊이있는 지식은 끊임 없는 탐구와 독서를 통하여서만 습득할수 있는데 책에는 인류가 오

62 (12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23) 랜 세월 이룩해놓은 방대한 정신문화적재부들이 기록되여있다는것이 다. 력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들과 유명한 과학자, 발명가들은 례외 없이 책을 많이 읽은 정열적인 독서가들이였다고 강조했다. 둘째, 책읽기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높은 지식의 탑을 쌓을수 있게 하는 대중적인 학습방법이기때문이라는것이다. 즉 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유치원어린이로부터 늙은이까지, 남자이건 녀성이건, 그 가 학생이건 군인이건 로동자, 농민, 사무원이건 관계없이 책은 다 읽을수 있기에 책을 많이 읽고 정력적으로 탐구하면 누구나 현대과 학기술의 요새를 점령할수 있다는것이다. 셋째, 책읽기가 시간과 장소의 제한을 크게 받지 않는 합리적인 학습방법이기때문이라는것이다. 일생동안 시간을 최대한 효과적으 로 리용하여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열심히 읽는다면 참으로 많은 지식을 쌓을수 있다는것이다.( 통일뉴스 ) 평생 책을 사랑한 지도자와 배움의 천리길 일제는 학령기에 접어든 우리 청소년들에게서 배움의 기회를 앗아 가고말았다. 어린시절의 주석도 례외는 아니였다. 조선을 알 아야 애국자가 된다고 아버지 김형직선생은 12살 된 주석을 혈혈단신으로 천리길, 팔도구에서 만경대로 돌려보낸다. 1923년 봄 창덕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투옥소식을 듣고 눈보라천 리길을 다시 걸어 팔도구로 되돌아온다. 이를 두고 배움의 천리길, 광복의 천리길이라고 한다. 그러나 배움의 길은 또 단절되고만다. 1926년 6월 아버지가 고문 후유증으로 서거하자 1926년 여름 가을사이에 화성의숙에서 수학 한다. 화성의숙에 실망, 다시 1927년 길림육문중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끝내 졸업은 하지 못하였다. 사령관은 유격활동 내내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화성의숙시 절엔 김시우선생의 서가에서 리념서적들을, 육문중학교시절엔 상월 선생의 서가에서 문학서적들을 빌려다 거의다 읽었다고 한다. 회고록에 딱 한번 꿈얘기가 나온다. 1940년대 대일작전회의에 참 가하러 모스크바에 갔을 때 김정숙녀사가 큰방에 책을 가득 가져다 놓고 주석에게 이 책들을 마음대로 골라보십시오, 이만한 책 이면 사령관동지께서 일생동안 보아도 다 못 보실것입니다라고 말하 는 꿈이였다. 이 꿈이야기를 김정숙녀사에게 들려주니 녀사가 웃으 면서 좋은 꿈이라고 하였다고 한다.(8권 페지) 사령관의 독서는 후날 나라를 세운 다음 큰 재산이 되였다. 사령관은 주체사상을 창시하였으며 직접 피바다 연극대 본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대원들에게는 직접 전투후 쉬는 틈을 타 글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이것이 오늘 북의 전 주민 독서운동으로 련결되는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지금 저 새로 등장하는 보수세 력들이 가장 무서워하는것이 독서이다. 바로 이것을 해야 우리가 저 들을 이길수 있다. 독서를 하면 리명박의 허구가 눈에 보일것이다. 그리고 내공을 기르는데는 책만큼 첩경은 없다. 부동산, 그리스도교, 남북문제를 하나로 묶어 연구하라 거듭 강조해 책속에 살길있고, 책속에 희망이 있다. 안중근의사 의 마지막유언도 조선사람아 배우라 이였다. 무덤의 비석에 가면 망자 이름앞에 모두 학생 이 씌여있다. 무덤속에서도 배우라는 뜻일것이다. 신년에 우리가 할 제일 처음과제는 책을 읽는것이다.

63 (12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25) 아는것이 힘, 배워야 산다. 책속에서 원통함도 분함도 억울함도 한 꺼번에 씻어낼수 있다. 1980년대와 같이 편향된 지식의 섭취는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하 다.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이란 말그대로 인문, 자연, 사회과학 을 망라한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그래야 평등파니 자주파니 하는 시대에 뒤진 넉두리가 사라질것이다. 우리의 독서는 먼저 우리의 력 사를 바로 알고 나아가 세계력사를 아는것으로 시작하여 리명박의 공약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비판해나가는것이여야 한다. 그에게 두번 다시 속지 않자면 책을 읽어야 한다. 앞으로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같은 연구단체가 많이 나 와 리명박의 부동산, 그리스도교 그리고 남북관계정책을 하나로 련 결하여 파고들어 비판적인 대안을 제시해나가야 할것이다. 그 길만 이 승리를 담보하는 첩경이다. 이 배움의 길로 나갈 때에 승리의 순간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올것이다. 계승과 혁신의 원리 그리고 실용주의 북의 신년공동사설은 신선한 충격을 우리에게 던져주고있다. 2008년 공동사설에서 언급된 력사적전환의 의미는 그 폭과 깊이 가 다르다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말그대로 세기적사변이 예 고되고있다. 는것이다. 신년사의 기조는 계승성과 원칙성을 지키자이다. 주석은 이미 맑스의 원칙주의와 그것의 적용 그리고 국제 주의와 민족주의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경험했으며 이 산 경험속에 서 원칙과 계승성이란 철학의 탄생 즉 주체사상의 탄생과 구현을 보게 된다. 북의 공동사설이란 조선로동당, 조선인민군, 청년동맹의 기관지가 함께 사설을 내는 형태로 지난해에 대한 총화와 새해에 대한 기조 를 밝히는것을 의미한다. 2008년에 발표된 공동사설은 다분히 남의 대통령 당선자 리명박의 실용주의 로선에 대한 정치철학적대응이라고 할수 있다. 회고록 3권 제7장 1절의 보금자리 에서 주석은 계승 과 혁신의 원리 (3권 2페지)란 말을 사용하고있다. 원칙을 지키 면서 어떻게 상황에 변화해나갈것이냐는 정치철학인것이다. 이에 통일뉴스 가 소개한 공동사설의 요지를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64 (12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27) 같다. 정세의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계승성과 원칙성을 중시하는 북의 특징이 잘 드러나고있다. 올해에도 위대한 당의 령도따라 줄 기차게 전진하여온 우리의 강성대국건설위업은 새로운 력사적단계에 들어섰다., 당의 선군령도따라 력사의 모진 풍파와 시련을 헤쳐 온 우리 식 사회주의는 끝없는 생기와 활력에 넘쳐 승승장구하고있 으며 우리앞에는 강성대국건설의 승리의 날이 마중해오고있다. 고 밝히는 등 원칙을 강조하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 변화된 환경에 대한 상황의 중요성을 천명한 다. 오늘의 현실은 6.15통일시대의 흐름은 그 무엇으로써도 가 로막을수 없으며 민족이 하나가 되여 힘차게 싸워나갈 때 조국통 일위업을 반드시 실현할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주고있다., 미 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을 끝장내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 하며 남조선에서 침략적인 합동군사연습과 무력증강책동을 저지 시키고 미군기지들을 철페하여야 한다. 며 남북, 북미관계에 대 해서는 원칙적인 립장을 강조하고있다. 이는 북미협상, 남에서의 정권 교체와 같은 예측하기 어려운 정세를 반영하여 일단 원칙적 인 립장을 천명하면서 변하는 상황에 이 원칙을 계승적응하자는것 이다. 1933년 2월경 사령관은 일제와 싸우는것과 동시에 좌경분 자들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주석은 회고록 3권에서 이렇게 쓰고있다. 공산주의운동대렬내에는 처음부터 공산주의길을 걸은 사람들도 있었고 처음에는 민족주의를 신봉하다가 사상개조과정을 거쳐 점차 공산주의자로 된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런 주의에도 관계하지 않은 말쑥한 새 사람들만을 가지고 공산주의운동을 한다는것은 불가능 한 일이다. (3권 2페지) 이것이 바로 혁명발전에서 우리가 지침으로 삼고있는 계승과 혁 신의 원리이다. 공산주의사상이 인류사상사에서 최고봉의 사상이고 공산주의운동이 모든 형태의 혁명운동가운데서 최고단계의 혁명운 동이라고 하여 이 운동이 아무것도 없는 빈터에서 발생발전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3권 2페지) 그러나 좌경분자들은 구체적인 실정은 고려함이 없이 선행리론을 그대로 적용하여 쏘베트 라는 집단공동체를 만든다. 회고록을 통하여 그들이 한 일들을 한번 들어보자. 사회주의의 실현이라는 극좌적인 구호밑에 사유재산철페 를 선포하고 토지와 식량으로부터 낫, 호미, 걸이대와 같은 농 쟁기에 이르기까지 개인들이 소유하고있던 모든 동산, 부동산들 을 공동소유로 만들어버린 때부터였다. 쏘베트정부는 재산의 공 유화를 일사천리로 강행한 다음 유격구안의 모든 주민들이 남 녀로소를 막론하고 공동생활, 공동로동, 공동분배의 새로운 질 서밑에서 움직이도록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쏘베트급진론자들 이 념불처럼 외우고 다니던 <아르쩰리>생활이라는것이였다. (3권 59페지) 유치원생이 소학, 중학, 고등학교도 거치지 않고 대학으로 직행 한셈이였다. 쏘베트정부는 또한 큰 지주, 작은 지주, 친일지주, 반일지주를 가리지 않고 유격구역안에 있는 모든 지주들과 부농의 토지를 무상 으로 몰수하였으며 마소와 량식까지도 일률적으로 수탈하였다. 동 만땅이 소위 적색구역과 백색구역으로 분리된 후 적구(일본통치지 역)로 내려가지 않고 유격구역에 남은 지주들은 대체로 반일감정이 강한 애국적인 지주들이였다.

65 (12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29) 좌경분자들은 중국녀자들이 전족을 하고 귀걸이를 하고 다니는 것까지 투쟁대상으로 삼았다. 1930년대 전반기는 동만지방에서 좌 경의 전성기였고 좌경의 전횡속에서 신성한 혁명적원칙들이 시련을 겪고있던 시기였다. 주석은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있다. 좌경을 경계하고 용납하지 말아야겠다는 나의 결심은 간도땅에 와서 더 굳어졌다. 나는 그때부터 일생동안 좌경과의 투쟁을 하여 왔다. 간도시절의 체험은 해방후 우리가 좌경을 예방하고 관료주의 를 청산하는 투쟁에서 큰 도움으로 되였다. (3권 63페지) 쏘베트좌경로선에 맞설수 있는 결단과 새로운 테제가 필요 하였다. 내가 종파주의를 청산하고 혁명대오의 통일단결을 강화할 데 대한 론문을 소책자로 발표했던것이 바로 이무렵이였다. (3권 67페지) 아래에 중공당 만주성위 동장영과 사령관이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동장영: 인류가 지금까지 발견한 로동계급의 정권형태는 꼼뮨과 쏘베트라는것밖에 없지 않습니까. 사령관: 실정에 맞는 형태를 우리 힘으로 만들어봅 시다. 동장영: 우리가 만든다구요? 슬프게도 나는 그럴만한 천재가 못됩니다. 맑스주의고전에도 없는것을 어떻게 만들겠습니까? 그 어떤 문제를 고정불변의것으로 절대화하고 거기에 자기를 얽 매려는 그런 부류의 견해와 립장에 사령관은 동감을 표시할 수 없었다. 사령관: 동장영동지, 프랑스로동계급이 꼼뮨을 내올 때 그 무슨 고전을 참고했던가요? 로씨야의 쏘베트가 맑스주의창시자 들의 고전에서 명시된 정권형태였던가요? 쏘베트를 어찌 한 천재의 두뇌가 낳은 산물이라고만 하겠습니까? 인민이 요구하지 않고 로씨 야현실이 요구하지 않았다면 쏘베트는 력사무대에 등장하지도 못했 을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3권 73페지) 원칙과 상황, 계승과 혁신의 두 수레바퀴는 동시에 굴러야 하고 작동을 해야 한다. 어느 하나만으로 빨리 간것은 결코 성공이 아 니다. 지금 우리 민족은 병자호란때 남한산성안의 절박함같은 민족분 단이란 위기속에 있다. 이런 절박한 상황속에서 살아남는 비결은 바로 원칙과 상황을, 계승과 혁신의 원리를 동시에 생각하는 지혜이다. 이 귀감을 무시할 때 그 피해는 모두 우리 국민에게로 돌아 온다. 부디 새해엔 남북이 만나 이런 정치철학을 함께 토의하여 민족 의 진로를 개척해주기를 바란다. 오직 리념을 넘어 애국애족 이 란 한마음으로.

66 (13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31) 항일유격활동은 거짓말과의 싸움이였다 로망( 老 妄 )인지 기망( 欺 妄 )인지 항일유격대의 싸움은 실로 거짓말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1930년대에 들어와 일제가 조작한 만주사변을 비롯하여 민생단 사건, 만보산사건, 중일전쟁 등 거짓말에 거짓말의 련속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의 속임수에 속아넘어가고 변절하는 마당에 실로 거짓말의 정체를 밝혀내지 않고는 견디여낼수 없는 상 황이였다. 항일유격활동은 총과 총과의 싸움이기 전에 거짓말과의 싸움이였 다. 끝없이 만들어내는 일제거짓말쟁이들의 속셈을 빨리 알아내는 지도자의 지혜없이 유격활동은 거의 불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다. 그리고 그런 지도자는 존경을 받는 지도자로 남을것이다. 해방후에 우리 민족은 일제의 속임수에서는 벗어났다고 하지만 세계를 제패한 미국의 속임수 즉 위장기발흔들기 에 우리뿐만아 니라 전세계가 지금 거덜이 날 지경이다. 실로 력대 미대통령가운 데 최대의 거짓말쟁이는 부쉬로 기록될것이다. 거짓말, 그것도 지도자의 거짓말 한마디가 그 지도자 한사람뿐만 아니라 당대에 같이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심대한 피해를 주 는가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미 우리는 만주사변의 후과가 어떠하였 던가를 고찰한바이다. 미 그리핀교수는 바크보만공격사건, 진주만공격사건, 9.11테로 는 미국이 저지른 현대사의 3대위장기발 이라고 그의 책 The New Pearl Harbor 에서 지적하고있다. 이와 같이 미국의 의식있 는 학자들은 자기 지도자의 거짓말을 낱낱이 책을 통해 고발하고있 다. 그중 최근에 나온 엘리엇 애런슨의 거짓말의 진화 (추수밭, 2007)는 부쉬를 비롯한 거짓말연구의 대미를 장식하고있다. 최근에는 1968년에 있었던 푸에블로 호사건도 미국이 이미 알고있으면서 저지른 사건으로 판명되였다. 1994년에 맺은 케도 (KEDO, 한 반도에네르기개발기구)의 위약, 다시 불궈진 미국과 북사이에 핵진실 등등 이렇게 생각하면 거짓말연구는 모든 연구에 선행하는 연구라 해 도 과언이 아니며 그래서 이미 외국에서는 상대방의 거짓말을 파악 하는 속셈학(subliminal) 이 개설될 정도이다. 지도자의 거짓말을 철저히 밝히고 규명하여야 할 리유는 그렇게 하지 않을 때에 대중과 국민들이 그 피해를 떠맡을수밖에 없기때문 이다. 이에 지난번 대선 과정에서 불궈진 리명박당선자의 말들의 진위여부를 밝힐 특검자체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우리스스로라도 최 선을 다해 력사의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 거짓말에 대한 연구를 철저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 미국 믿지 말고, 쏘련에 속지 말고, 해방후 현명한 인민들이 만든 길이 남을 경구이다. 지도자가 늘 이러한 인민과 같이 있으 면 어떤 거짓에도 속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에 이런 인민이 속는다 면? 이것이 문제이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 국민은 로망( 老 妄 )이 아니라 기망적( 欺 妄 的 )이 되지나 않았는지? 다시말해 거짓말을 판별하는 기억을 상

67 (13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33) 실하고말지는 않았는지? 해방후는 한없이 가난할 때인데도 국민들 이 이런 판단을 할수 있었는데 국민소득 2만불시대 에 건망증은 더 심해졌는지? 강자의 거짓말에 잘 속는 존재는 살아남기 힘들다. 이런 마당에 한국 교수들이 선택한 사자성어 자기기인( 自 欺 欺 人 ) 은 귀감이 된다. 눈치와 말귀 전통술을 밀주라고 하여 개인가정에서 술을 못 담그게 하자 각 가정은 몰래 명절이면 술을 빚었다. 그러면 경찰들이 나와 가가호 호 방문하여 밀주독을 찾아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술독을 광 깊숙 한 곳이나 땅속에 묻기도 한다. 나는 어릴 때에 시골에서 이런 장 면을 숱하게 많이 보았다. 그런데 한 현명한 부인이 술독을 사람들 이 가장 잘 보이는 장독대옆에 가져다 놓았다. 결국 발각되지 않았 다. 그러나 경찰이 부인의 이런 속셈까지 읽었다면? 이같은것을 소위 메타화 라 하는것이다. 결국 메타의 구조가 높은자가 낮은자를 이긴다고 할수 있다. 자주 쓰는 말가운데 한 수 우이다 혹은 높다라고 하는것이 바로 이런 메타화를 두고 하 는 말이다. 메타화는 정보의 량이 많고 적음과는 상관이 없다. 아무리 정보 가 많아도 그것이 일차적인 차원에서 처리되면 정보가 적더라도 한 수 높은자앞에 질수밖에 없다. 란중일기를 자세히 읽어보면 리순신 장군이 백전백승할수 있었던 리유는 바로 그의 수가 항상 일본장 수보다 높았기때문이다. 한산대첩에서 리순신은 일본군을 먼바다로 끌어내기 위해 공격하 는 정보를 정확하게 주고는 그 정보대로 공격을 하여 일군을 견내 량으로 이끌어낸다. 보통 전략에선 정보를 흘리고는 그 반대로 하 는것이였지만 리순신은 일장들이 안다는것을 다시 알고 그것을 다 시 아는 수를 사용했던것이다. 눈에 대하여 눈치라는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보고있는 눈을 다시 보는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후자를 눈에 대하여 눈이라고 한다. 말도 마찬가지이다. 말에는 말귀가 있다. 말은 참말을 하고있는것 같은데 말귀를 알아들으면 완전히 거짓말을 하고있는것을 잡아낼수 있다. 현대가 오관으로 느끼고 리성으로 판단하는 시대라면 탈현대 는 본다는것, 듣는다는것을 다시 보고 듣는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검찰과 리명박후보가 참말을 하고있는지 거짓말을 하고있 는지는 그들의 말로써는 판단할수 없다. 그들의 눈치를 보고 그들 의 말귀를 알아들으면 금방 쉽게 판단할수 있다. 현대의 참말은 탈 현대에서는 거짓말 이 된다. 그래서 나는 전자의 거짓말에 대하 여 후자를 거짓말 로 구별하려 한다. 이런 기제장치에 넣어보면 BBK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지검 김홍일 3차장검사와 리명박의 거짓 말을 잡아낼수 있을것이다. 항일유격대를 이끈 사령관이 여우같이 교활하게 거짓말을 하는 일제와 싸워온 비결을 나는 지략에 있었다고 본다. 일제가 안 다는것을 알고 그것을 또 아는 지략말이다. 이런 지략은 유격전 술에서 그대로 나타나있다. 이런 탈현대적인 사고발상때문에 부하 들이 사령관을 따르고 존경했던것이다. 나라를 세운 후에도 이런 능력때문에 주변강대국들의 어떤 모략도 슬기롭게 타고넘을 수 있었던것이다. 주석이 회고록에서 가장 많이 강조하고있는것은 인민이 가 장 현명하며 자신은 수많은 어려운 고비를 인민들의 지혜로 극복하 고 살아남았다고 술회하고있는것이다. 회고록에는 수많은 로인들이

68 (13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35) 등장한다. 우리가 로인들을 존경해야 할 리유가 이들은 젊은이들보 다 정보의 량은 적을지 몰라도 메타화가 잘되여있기때문이다. 이들 의 말 한마디가 사지에서 살아나게도 할수 있게 한다. 사령관은 첫 북만원정을 하고 돌아올 때에도 한 로인의 도 움으로 사경에서 벗어난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 늙은이들 은 대부분이 일제시대 향수병에 걸려 거짓말 변별력이 마비되여 말 그대로 로망에 걸려있는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가장 현명해야 할 그 들이 이 지경이 되였으니 걱정이다. 검찰의 거짓말 알아내는 법 검찰은 12월 25일 BBK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한점 부끄럼없는 수사를 하였으며 리명박은 혐의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면서 바로 김경준의 누나 에리카 김을 국내로 소환할 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그런데 에리카는 다음날 검찰수사결과를 반박하는 성명문을 미국 에서 내기로 해놓은 상태였다. 검찰로선 반길 일이다. 왜냐하면 그 들이 만약에 공정한 수사를 할 의지가 있었다면 그녀의 성명은 수 사에 많은 도움이 될것이기때문이다. 그러나 에리카는 돌연 기자회견을 취소하고말았다. 짐작키로는 검 찰의 말이 협박으로 들렸기때문일것이다. 이 사건 하나로 검찰은 대 국민 거짓발표를 하고있음이 드러나고도 남음이 있는것이다. 검찰은 김경준 기획입국에 눈독을 들이고있다. 신당의 모변호사 가 김경준을 정치적목적으로 기획입국시켰다는것이다. 만약에 검찰 이 객관적조사자료가 진정으로 필요하다면 김경준의 입국은 그들의 조사에 엄청난 도움을 주는것일것이다. 그런데 김경준의 입국자체가 기획이든 자진이든 이는 문제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것이 아 닌가? 그런데 왜 검찰은 기획입국조사에 열을 올리는가? 이것이 바 로 검찰의 말귀에 신경이 쓰이게 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하여 한겨레 신문은 사설( )에서 김경준의 메모류출건과 기획입국설에 관해 검찰이 오해살만 한 일을 하지 말 라고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있다. 검찰이 메모가 류출된 경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해도 꼭 지 금 해야 하는지는 더욱 의문이다. 검찰은 BBK 수사와 관련해 국민 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결국 특별검사가 도입됐다. 이른바 <리명박 특검법>은 김씨의 메모내용이 사실인지를 특별검사의 수사대상으로 해놓았다. 특검이 이를 밝힐것이다. 검찰은 떳떳하다면 특검의 수사 결과를 기다렸다가 메모류출경위를 조사해도 늦지 않다. 검찰은 <기획입국설>에 대한 수사도 <한나라당>의 수사의뢰에 따라 사실을 확인하는것이라 해명한다. 하지만 어떤 위법이 있었는지 륜곽조차 없는 상황에서 무료변론을 맡았다고 변호사를 조사하겠다 는것은 지나치게 앞서나간것이다. 어차피 진실은 다 밝혀야 하지만, 검찰이 지금 나서는것은 특검수사에 영향을 끼치려 한다는 오해를 부를뿐이다. 검찰은 뒤골목을 걷지 말고, 큰길을 걸어야 한다. 우의 한겨레 사설은 검찰이 지금 분명히 떳떳하지 못한 길을 가고있음을 잘 지적한것이다. 기획입국수사와 메모류출사건조사는 검찰이 제발저린 행위라 아니할수 없다. 검찰이 객관적립장에 있었 다면 두 사건은 모두 검찰수사에 엄청난 도움이 되는 사건이다. 그 러나 검찰은 지금 자기들의 수사발표의 진실이 드러날가봐 두려워하 는듯 한 인상을 너무나 강하게 우리앞에 내비치고있다. 거짓말은 남을 속이기 전에 반드시 자기를 속이고야 가능하다. 여기서 자기를 속일 때에 인간은 자기를 자기가 볼수 없기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것만큼은 감추기가 힘들다. 우린 어린아이에

69 (13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37) 게서 쉽게 이를 발견할수 있다. 방에 사람없다고 아버지가 말하 라고 했어요. 와 같이. 리명박 말귀 알아듣기 리명박당선자는 수없이 말을 바꾸었기때문에 우리는 지금 어느것 이 진실인지 알수 없다. 앞으로 특검을 통해 밝혀질지 특검자체가 성립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우리는 특검까지 가지 않아도 그의 거짓말을 잡아낼수 있다. 리명박의 거짓말을 잡아내는데는 포우의 소설과 함께 엘리엇 애 런슨의 책 거짓말의 진화 가 도움이 된다. 우리 시대는 거짓말 의 시대라 할만큼 거짓말이 홍수를 이루고있어서 학자들이 거짓말 잡아내기 책을 많이 펴내고있다. 범부들도 하루에 14번정도는 거짓 말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지도자, 그가운데 미국 같은 나 라의 지도자가 하는 거짓말은 말 한마디가 수천, 수만명의 생명을 죽이기도 한다고 하면서 거짓말은 반드시 잡아내야 한다고 애런슨 은 책에서 강조하고있다. 리명박은 특검에서 무혐의가 드러나면 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책 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이 말이 우리를 더욱 혼 란스럽게 한다. 왜냐하면 광운대 강연에서 BBK 실소유자는 자기자신 이라고 했기때문이다. 그래서 만약에 특검에서 혐의없음이 드러나면 광 운대에서 그가 거짓말을 한것이 된다. 명함도 거짓명함인것이 된다. 다시말해서 특검에서 무혐의는 곧 자기자신을 거짓말로 만드는것 이 된다. 혐의가 드러나야 광운대의 발언이 거짓말이 아닌것이 된 다. 이것은 완전히 크레타섬의 거짓말쟁이 역설과 구조가 같다. 탈 현대의 론리가 이 거짓말쟁이 역설에서 객관이 해체되면서 나타났 듯이 나는 앞에서 한국 탈현대는 2007년 12월 19일 오후 6시부 터 시작됐다고 한것이다. 리당선자는 소망교회례배에서 어제 로무현대통령이 고맙게도 특 검을 받아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게 됐다. 고 했다. 이는 문제 제 기한 사람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과는 앞뒤가 안 맞아보인다. 이 런 증상들은 전형적으로 거짓말쟁이가 자기만은 자기 말이 거짓말 임을 아는것을 나타내보이는 증상이다. 그래서 리명박거짓말은 그 구조가 그리 복잡해보이지 않는다. 우선 BBK 진실여부에 관한 1차적인 사실의 진위를 떠나 2차적 인데에서 리명박당선자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고 자기 정당화를 하고 있는지를 보자. 광운대발언이 알려지자 그는 여야가 대치하고있는 국회 를 방문한 다음 여의도식정치풍토를 방치해선 안된다고 생 각해 특검을 수용하게 되였다. 고 했다. 그리고 한나라당 은 이 말을 받아 리명박식의 통큰 정치라고 했다. 그러나 리명박당선자의 이 말은 거짓말이다. 거짓말이 아니자면 광 운대사건이전에 이런 발언을 했더라면 그것은 진실이고 통큰 정치이다. 그러나 광운대건으로 진퇴량난에 직면하자 위기타개책으로 특검을 수 용하겠다고 나온것이다. 그의 말귀를 눈치채면 금방 거짓임이 드러난 다. 그리고 당선후 특검을 향한 엄포는 자기 정당화이며 나아가 자기를 속이는 행위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기 정당화는 위선자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그의 행동에서 위선을 알아볼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당선직후에 이런 발언이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한번 거짓말을 하면 사건이 지나면서 기억의 자기 위주 외곡이 작용함에 따라 우 리는 과거의 사건을 잊거나 외곡하고 그 결과 차츰 자신의 거짓말 을 믿게 된다. 잘못을 저지른것을 알면서도 점차 자신만의 허물이 아니였다고 하는데 상황은 늘 복잡해져간다.

70 (13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39) 2007년의 한국 사회를 가장 잘 반영하는 사자성어로 자기기 인( 自 欺 欺 人 )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인다는 뜻)이 선정됐다. 교 수신문은 23일 종합일간지 칼럼니스트, 주요학회장 등 4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43%가 사자성어로 자기기인 을 꼽았다고 밝혔다. 주자의 어록을 집대성한 주자어류( 朱 子 語 類 ) 등에 등장하는 이 사자성어는 자신도 믿지 않는 말이나 행 동으로 남까지 속이는 사람 또는 도덕불감증세태를 풍자하거나 망 언을 경계하는 의미로 널리 쓰인다. 제발 리 대통령 이 이런 확신범이 되지 않기만을 바라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부쉬의 거짓말 한마디는 수십만 이라크인들과 수천명 자 국병사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최근 내가 내린 결정이 옳은 결정이였음을 지금만큼 강하게 확신한 때는 없었다. 라고 말했다. 그는 아마 무덤에 들어갈 때에도 이런 확신에 차있을것이다. 그의 그리스도교신앙은 이런 확신을 더욱 강화시키고있는것이다. 우리는 BBK 진실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에 대하여 거짓말 하는 거짓말은 잡아낼수 있다. 지금 한나라당 과 심지어는 로무 현 정부 의 법무부마저 특검의 위헌성을 주장하면서 특검자체를 무 위로 만들려 하고있다. 그러나 주요외신들은 이번 대선 은 도덕 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선거였다고 꼬집고있다. 당선자가 알아야 할 사실은 특검을 제기한 당사자는 바로 우리 국민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국민들의 대다수가 검찰수사 를 믿고있지 않기때문에 진실을 알고싶어한다. 그래서 국회 의원 160명의 찬성으로 특검법 이 통과된것이다. 도대체 누굴 향해 책 임을 지라는것인지 모르겠으며 그의 이런 발언은 검찰의 에리카 협 박발언과 그 구조가 완전히 같다는것이다. 자기기인( 自 欺 欺 人 ) 과 2008년의 희망 자기기인( 自 欺 欺 人 ), 남을 속이기 전에 먼저 인간은 자기를 속인 다. 자기기만은 거울을 보고 자기 주체를 다시 객체로 만드는 론리 에 기초하고있다. 그런데 자기에게 거짓말을 오래 많이 하다보면 자 기 주관이 객관이 되여 거짓말이 참말같이 보인다. 그래서 거짓말 도 100번 하면 참말이 된다는 론리가 가능한것이다. 만약에 유격활동 전기간에 걸쳐 지도자가 이런 자기기만자들을 잡아내지 못하였더라면 자기도 살아남지 못하고 유격활동을 이끌어 나갈수도 없었을것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최용빈의 경우이다. 옛 동지 최가 변절하여 사령관을 해하러 유격대에 다시 나 타났을 때이다. 산밑에서 밥을 지어먹고 왔다고 하는데 쟁개비에는 그을음 하나도 없는것을 보고 거짓말을 하는 최의 거짓말을 잡아내 여 위기를 모면한 일화는 이미 앞에서 소개한적이 있다. 함께 소개한 소금사건도 마찬가지의 경우이다. 거짓말하고있지 않다 고 최가 강조하는 그 태도가 그대로 거짓말임을 드러내고말았다. 이는 말을 듣지 말고 말귀를 들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거짓에 눈 이 어두워지면 이런 들을 귀가 없어지고만다. 콩과 콩 을 일치시킬수 없어지고만다. 그래서 예수도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라고 했다. 2008년 우리의 선택은 무엇인가? 그것은 2007년에 듣지 못하던것 을 듣는것이다. 이런 들을 귀가 없는 국민은 지구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자기기인 을 2007년의 사자성어로 선택한 400여 교수들 이 있다는것은 아직 우리 사회에 애국이 통하고있다는 증거이며 그 나마 한해를 희망을 가지고 넘어갈수 있는 리유이다.

71 (14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41) 사립문을 나서며 새날안고 돌아오리라 공백 의 상실은 가장 큰 상실 도대체 이 나라 경제 어디가 잘못되여 온갖 거짓말도 못 본체, 통 일조국도 외면한채, 나라의 주권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제살리기 이 말 한마디에 다 껌벅하고말았는가? 정말 국민들이 로망을 했나. 잃어버린 10년, 좌파정권, 경제 꼭 살리겠습니다. 이런 말앞에 그만 우리의 온 뇌리는 마비되고말았다. 체 게바라의 말 의 힘 이란 시가 생각난다. 나는 깨달았다/ 단 한사람이나/ 단 한사람의 말이/ 순식간에 우 리를/ 지옥으로 떨어뜨릴수도/ 그리고/ 도저히 불가능해보이는 정 상으로/ 올려놓을수도 있다고/ 있다는것을 말의 힘이 그를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의 말이 얼마나 수 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떨어뜨릴지를. 우리도 그를 이기려면 새 말 을 만들어내야 한다. 사람을 살리는 말을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를 살릴 말 한마디가 전광석화같이 뇌를 스쳐간다. 공백(void) 이란 말이. 그렇다. 거짓말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열광한 리유는 우리가 지금 공백을 상실했기때문이다. 프랑스철학자 알랭 바디우(1937년- )는 수학의 공집합의 기호 Φ에서 그의 정치철학을 시작한다. 불법체류자, 집시, 유태인들같이 모든 공민권을 박탈당하고 생존권이 절대적인 위협을 당한 부류의 인간들을 공집합이라고 전제한다. 우리도 그러한 때가 있었다. 나라잃은 40여년 우리의 삶이 공집합에 속하는 시기였다. 아리 랑 공연의 첫 장면 눈물젖은 두만강 은 우리 민족이 공백으로부 터 탈출하기 위한 행렬이다. 사령관이 동만일대에서 이 행렬을 무어내며 유격활동을 한 것은 바로 공백으로부터 다시말해 무로부터 유의 창조를 위해서 이다. 그러나 탈출(exodus) 은 그자체가 고난의 련속이였다. 나는 회고록을 읽으면서 북은 분명히 이 공백의 고난의 기간을 력사의 모형으로 기억하고있는것을 보았다. 백지에서 어떻게 새 나라의 그 림이 그려질수 있는가를 보았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이 에짚트노예생활에서 탈출의 전승 소위 출애급전승 을 최대의 민족사로 기억하면서 이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 유월절을 지키며 누룩없는 빵을 먹는것과 같다. 나는 이번 대선 에서 우리가 지금 이 공백을 상실했다는것을 확인했다. 그 러면 공백, 그 공백의 한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건전하던 한 가정이 어떻게 철저하게 공백으로 환원되고말았는가를. 사령관의 가정 사령관의 생가인 평양 만경대집에는 대가족이 함께 살고있 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두 삼촌 그리고 동생 둘

72 (14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43) 이다. 김성주( 사령관의 본명, )의 할아버지는 김보현( ), 할머니는 리보익 ( ), 아버지 김형직( ), 어머니 강반석( ), 삼촌 김형권 ( ), 삼촌 김형록, 동생 김철주( ), 김영주 등이다. 이렇게 일가성원들의 생년월일 을 밝히는것은 만경대가문의 가정사가 우리 민족 현대사와 련관이 되기때문이다. 사령관의 집안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삼촌 한분만 남겨두 고 온 집안이 나라를 찾겠다고 새벽아침 사립문을 나서 먼길을 떠 난다. 주석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술회하고있다. 그러나 그들가운데서 조국으로 돌아온것은 나 하나뿐이였다. (1권 11페지) 끌끌하던 자손들이 스무해사이에 다들 이렇게 낯선 산천에 한 줌 흙으로 뿔뿔이 흩어져 널리였다. 해방이 되여 고향에 돌아왔을 때 할머니는 사립문밖에서 나를 부 둥켜안고 <아버지, 어머니는 어데다 두고 이렇게 혼자 왔느냐, 같 이 오면 못쓴다더냐!> 하며 내 가슴을 두드리였다. (1권 12페지) 실로 일제는 우리 2천만 조선민족 하나하나 구성원들의 정상적인 삶을 다 파괴하고말았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극소수의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을 제외한 조선민족모두를 정상적인 생활궤도에서 사정없이 밀어냈다. 국권의 상실과 함께 민족고유의 풍토우에서 이어오던 생활은 박산이 났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초보적인 자유와 권리, 생존 조건, 전통적인 풍습들은 여지없이 초토화되였다. 공부할 나이 의 아이들이 학교로 가지 못하고 거지와 류랑민들이 거리에서 방 황하며 시집장가를 가야 할 처녀총각들이 생활고때문에 혼기를 놓 쳐버리며 안해와 남편들이 부부생활을 하지 못하고 산중에서 고생 하건만 그들은 조선사람이야 어떻게 되건 상관하지 않았다. (6권 117페지) 1930년대 중반시점에 와서 일제는 내선일체 를 내세우며 우리 젊은이들을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혹은 군속으로 사정없이 내몰았 다. 그리고 이때는 우리 고유문화말살획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때이다. 그래서 우리의 토속적인 문화전통이 상당부분 류실되여가 고있었다. 여기 일제의 문화말살정책과 우리의 고유한것을 송두리채 짓밟아 버리는것에 안깐힘으로 맞서 시( 詩 )로써 이에 항거한 백석( 白 石 )이 있었다. 그의 시는 해금에서 풀려나지 못해 최근까지도 읽을수 없 었다. 지금 시중에는 수권의 그의 시집이 나와있고 그의 시에 관한 학위론문과 단행본도 여러권이 있다. 백석 시가운데 명절날 일가친 척들이 모여 단란했던 가족분위기를 섬세하게 전하는 시는 여우 난골( 族 ) 이다. 여우가 나오는 고을의 가족이란 뜻이다. 내 나라, 내 땅에서 정상적으로 살았더라면 주석의 집안도 여느 다른 집안들같이 명절이면 집안식구들 모여 아이들과 쥐불놀 이하며 숨박곡질하며 지냈을것이다. 그리고 좋아하던 책도 읽고 희 망이던 문학도가 되였을것이다. 주석의 어린시절 정상적인 가 족들의 풍경 특히 관서지방의 풍경을 백석시인만큼 잘 그려낼수는 없을것이다. 이 정상적인 삶의 모습을 알아야 일제가 우리한테 무 엇을 앗아간줄을 알기때문에 백석의 여우난골( 族 ) (여우가 나오 는 고을의 가족)을 여기 소개한다.

73 (14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45) 여우난골( 族 )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매 진할배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배나무 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엄매 사촌누이 사촌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매 할배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오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 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바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기를 하고 가마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오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릇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오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선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롯목싸움자리 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로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1935년 11월 발표) (진할매 진할배-친조부님, 토방돌-집채의 락수물 고랑 안쪽으 로 돌아가며 놓은 섬돌, 오리치-평북지방 토속적인 사냥도구, 야생 오리 잡는 도구, 반디젓-밴댕이젓, 안간-안방, 숨굴막질-숨박곡 질, 아릇간-아래방, 조아질-평안도에서 아이들이 노는 공기놀이, 쌈방이-주사위, 바리깨돌림-주발을 돌리며 노는 아이들의 놀이, 오박떼기-아이들의 놀이, 제비손이구선이-흔히 다리를 마주 끼고 손으로 다리를 치며 세는 놀이, 화디-등잔을 얹어놓는 도구, 사 기방등-흙으로 구운 등, 홍게닭-새벽닭, 텅납새-처마의 안쪽 지 붕의 도리에 얹힌 부분, 동세-동서, 무이징게국-민물새우에 무를 썰어넣고 끓인 국) 이 시기의 고유한 가족분위기와 어린 날의 놀이분위기를 세세하 게 작품으로 남긴 시인이 백석이다. 전통음식이름, 놀이이름들, 무 엇보다 당시 관서지방의 토박이언어들. 리효석 같은 문인도 백석 시 를 통하여 잃었던 고향을 다시 찾았다고 감탄했다. 우리는 그나마 백석의 시를 통해 주석이 어렸을 때 살았던 관서지방의 고유 언어와 단란한 그리고 표준적인 가정의 행복한 분위기의 단면들을 엿볼수 있다. 여기 백석 시를 소개하는 리유는 우리의 행복했던 삶

74 (14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47) 의 분위기를 부분적으로나마 복원함으로써 일제가 파괴시켜버린 비 정상적인 삶이 무엇인가를 대조시키기 위해서이다. 사립문을 나서며. 사랑하는 어머니 부디 안녕히 이 땅의 젊은이들은 이미 파괴된 가족 그리고 대들보가 허물어진 집에 더이상 둥지를 틀고 살수 없게 되였다. 이들은 삼삼오오 자기 집 사립문을 나와 먼길을 떠날 차비를 하고있었다. 오직 일념은 잃 어버린 나라 다시 찾고 단란하고 행복했던 정상적인 가족의 삶을 다시 복원하기 위해서였다. 주석은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그때부터 남의 집 사립문에 들어설적마다 이 사립문으 로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은 몇이며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얼마 일가 하는 생각을 하군 하였다. 이 나라의 모든 사립문들에는 눈물에 젖은 리별의 사연이 있고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혈육들 에 대한 목메인 그리움과 뼈를 에이는 상실의 아픔이 있다. (1권 12페지) 혁명가극 피바다 는 한 녀성혁명가의 생을 그린 작품이다. 요 즘 대통령 이 되겠다는 집안의 자식들마저 병역을 기피하고 원 정출산을 떠나는 마당에 지금 북의 혁명렬사릉에 안장되여있는 항일유격대원들, 그들의 집안에서는 부모가 자식들을 혁명에 내 보내고 자식들 심지어는 11살 소년들마저 앞다투어 유격대를 자 진지원해 따라나섰다. 먼동트는 아침 어머니와 아들은 서로 잃 은 나라 다시 찾고 돌아오라, 그리고 그날까지 부디 안녕히 란 말 한마디 남기고 리별하였지만 살아서 돌아온 경우는 거의 없 었다. 혁명가극 피바다 에 광복의 새날안고 돌아오리라 는 곡이 있 다. 이 곡은 먼동이 트는 이른새벽 혁명의 먼길 떠나는 아들과 어 머니가 사립문을 사이에 두고 주고받는 곡이다. 저 산너머 먼동이 밝아오는데/ 아들아 내 아들아 어서 떠나거 라/ 나라찾는 한길에서 목숨바쳐 싸우거라/ 광복의 새날안고 돌아 오너라 사랑하는 어머니 부디 안녕히/ 굳세게 그날까지 싸워주세요/ 이 한목숨 바쳐서도 내 나라를 다시 찾고/ 어머니의 품속으로 돌아 오리라 우리 생활속에서 사립문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리별과 상봉, 헤여짐과 만남의 경계선이 바로 사립문이다. 우리 농촌의 사립문은 안과 바깥세계의 경계가 불분명한, 그래서 그 사립문너머 그 집의 마루와 안방까지도 다 들여다볼수 있다. 사립문은 사람의 키보다 낮아 보내는자와 떠나는자가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눈물을 서로 씻 어주고 닦아줄수 있는 간격의 공간이다. 항일유격대원들과 독립운동가들가운데 대부분은 적령기에 결혼 하지 못한 청춘남녀들과 학령기에 학교에 가지 못한 소년병들이 였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사립문앞에서 어머니와 마지막작별을 한 후 두번다시 그 사립문을 통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산골 짜기의 전장에서, 강가에서 죽어 지금은 그들의 흔적조차 찾을수 없다. 과연 누구를 위해 해방의 종은 울렸는가? 마땅히 그들이 하루속 히 조국으로 돌아오라는 신호의 종이였어야 하는데 영원히 사립문

75 (14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49) 은 그들을 기다리고있었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집을 나선 이 시대, 이 땅에 살았던 항일유격대원들의 고향집은 만경대고향집 사립문이 상징이 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만경대를 찾는다. 만경대에 있는 소박한 농가 인 이곳에 사람들이 찾아가는 리유는 그곳에 가면 무엇을 생각하 고 돌아오기때문이다. 조국을 그리고 민족을 생각하고 나아가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워 하는 마음으로 간다. 강정구교수가 말한 만경대정신 이란 이런 소박한것일것이다. 거기에 리념의 덧옷을 입히는것은 반공 론리 에 익숙한 판검사들의 시대착오적인 론리일뿐이다. 풍찬로숙하며 눈서리 날리는 만주벌판, 백두산 굽이굽이마다, 압 록강 줄기줄기마다 잃은 조국 찾기 위해 떠돌던 이 나라 젊은 항일 유격대원들은 사향가 를 부르며 향수를 달래였다. 1.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 문앞에서 눈물 흘리며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 아 귀에 쟁쟁해 2. 우리 집에서 멀지 않게 조금 나가면 작은 시내 돌돌 흐르고 어린 동생들 뛰노는 모양 아 눈에 삼삼해 3. 대동강물 아름다운 만경대의 봄 꿈결에도 잊을수 없네 그리운 산천 광복의 그날 아 돌아가리라 망국은 순간이요 복국은 천년 주석은 회고록 8권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망국은 순간이요 복국은 천년이라는것이 항일혁명 20년의 로정 을 걸으면서 내가 얻은 하나의 중요한 교훈이였습니다. 잃기는 헐 해도 찾기는 힘든것이 바로 조국이라는 뜻입니다. 순간에 잃은 조 국을 찾느라고 수십년, 지어는 수백년의 고생을 해야 하는것이 이 세상의 준엄한 리치입니다. (8권 489페지)라고.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200여년만에 독립했다는것은 잘 알려져있는 사실입니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는 300여년, 알제리 는 130여년, 스리랑카는 150여년, 윁남은 근 100년만에야 각각 나 라의 독립을 성취할수 있었으니 망국의 대가란 실로 얼마나 비싼것 입니까. (8권 489페지)라고. 그러기에 나는 지금도 종종 젊은 사람들에게 조국을 잃으면 살 아도 죽은 목숨과 같다, 망국노가 되지 않으려거든 나라를 잘 지 키라, 나라잃은 설음으로 통곡하기 전에 조국을 더 부강하게 하고 막돌 한개라도 더 주어다가 성새를 높이 쌓으라고 말해주군 합니 다. (8권 489페지)라고. 기고만장한 일본 우파들과 이 땅의 부자들 일본 극우파 국회의원들은 지난해 12월 19일 오후 6시 한국대 통령 의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일제히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고 한 다. 리명박 대통령 당선에 왜 이들이 이렇게 기고만장일가. 강덕 상 시가현립대 명예교수는 남북통일저지가 일본 우파세력의 전후

76 (15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51) 기본전략 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서경식교수는 일본 우파세력은 리명박 대통령 의 출현을 진심으로 환영 하고있다, 희열속에 뭔 가를 잔뜩 기대하고있다고 했다. 극우 산께이 신문은 거기에다 한국 의 과거사청산작업중단도 고대했다. 그러나 이들이 우리 생 활의 정상을 모두 앗아간 장본인들이 아니던가. 아니 또 한 반도 진출의 기회는 왔다고 기고만장하는것인가. 그러면 이 땅의 젊은이 들은 또 사립문을 나서야 하는가? 또 하나 이 땅의 진풍경은 2008년 1월 1일 아침에는 새해 부자 가 되는 기운 받자 고 삼성창립자 리병철회장( 년)이 태 여난 집이 관광객들로 붐비고있는것이다. 개방 40여일만에 1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가는 등 경남 의령군 최고의 관광지로 부상했 다. 새해 첫날에도 400여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았다. 방문객들은 안채에 선 중심기둥을 쓰다듬거나 가슴으로 안아보기도 하고 집 뒤 편 바위에 손을 얹고 눈을 감는 등 갖가지 정성을 보이며 부자 기 ( 氣 )를 받으려고 노력했다. 분명히 우린 지금 공백을 상실하고있다. 그 상실의 현장을 나는 이 집에서 보고있다. 이들에게 과연 희망이 있을가? 과연 이런 인 간들에게 삼성비리 특검이 무슨 의미가 있을가. 고난의 행군은 과학적 공백을 상실하면 력사는 죽는다. 어느 민족이 고난의 시기를 회 고하고 기억하지 않으면 바로 그 순간이 무덤으로 가는 순간이다. 그 리유는 이렇다. 수학자들은 수천년동안 수자 1과 그 다음의 자 연수 2, 3, 4 가 왜 생기는줄을 몰랐다. 19세기말 칸토어가 집합 론을 창안하면서 수 1이 공백에서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공백을 Φ으로 표시할 때에 그것의 집합 즉 공집합은 {Φ}으로 표 시한다. 그러면 괄호안에 Φ이란 1개가 생겼다. 바로 이것이 1이 탄 생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공집합이 없으면 1 그리고 그 다음의 어 떤 수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것이다. 물리학에서도 진공 혹은 령의 중요성은 토리첼리의 실험으로 립 증되였다. 진공으로 된 구를 말 8필이 잡아당겨도 떨어지지 않았다 는 실험은 여기서 첨언을 할 필요가 없다. 토리첼리실험이후 진공 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으며 20세기에 들어 와 0 즉 령점 장리론 이란 우주만물의 작용하는 힘이 모두 0에 서 나온다는 리론이다. 이런 수학과 물리학의 진공 혹은 공백에 대한 새로운 리해는 인 문, 사회과학에도 그 영향을 아니 미칠수 없다. 이미 동양의 도 덕경은 만물은 유에서 나오고 유는 무에서 나온다고 했다. 불 교 반야심경은 만물이 모두 공이라고 했다. 이를 허무주의라고 서 양은 리해했지만 공백의 리해와 함께 동양사상은 다시 재조명되 였다. 우리가 회고록을 읽어야 할 리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여기서 어 떤 정치적 그리고 리념적리유를 말하고싶지 않다. 회고록을 읽을 때에 정신적위로와 힘을 얻는 리유는 사령관과 유격대원들 이 얼마나 철저한 공백의 상태에 있었던가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 할수 있기때문이다. 오늘의 북으로부터 나오는 힘의 원천은 과연 어디에 있고 무엇 인가? 나는 그것을 공백으로부터라고 본다. 1990년대초 그 지독한 역 경에도 견딜수 있었던것은 1930년대말 그 고난의 행군의 추억때문 이라고 본다.

77 (15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53) 백지상태에 대한 기억이 없는 화가는 그 백지우에 작품을 만들 수 없는것과 같다. 백지자체가 그림이듯이 공백자체가 삶자체이기때 문이다. 그런데 혹자들은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 망하고말것이라고 상호주의 를 부르짖고있다. 저들이여 공백의 철학을 공부나 하라. 0에서 1의 탄생은 창조성때문이고, 그것은 인간의 의식성으로 가 능해진다. 0을 의식하는 그것을 바로 1이라고 수학자들은 생각하기때 문이다. 공집합 {φ}에는 오직 단 하나의 요소를 갖는다. 이를 유 일자(singleton) 라 하며 공백의 가장자리 라 한다. 이는 자주 성이다. 여기서 모든 사건이 발생하고 삼라만상이 유래한다. 이것 이 바로 어느 존재가 자주성없이는 되는 일이 없는 리유이다. 자 주성, 창조성, 의식성 이 3대원리는 고난의 행군을 통해 얻은 산 경 험 그자체였다. 그래서 주체사상의 이 3대원리는 고난의 행군의 과 학적결실이라 나는 본다. 람스펠드와 거짓말변명의 론리 부쉬의 거짓말목록 부쉬가 임기중에 만든 거짓말목록은 다음과 같다. 이 거짓말 한 마디가 수천수만의 생명을 앗아갈 정도이고보면 우리는 한 지도자 의 진실과 거짓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1. 싸담 후쎄인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있다. 2. 싸담이 알 카에다와 유착돼있다. 3. 미군이 들어가면 이라크인들이 거리에 쏟아져나와 대환영을 할것이다. 4. 분쟁이 곧 끝날것이다. 5. 침공 6주후 임무완수라 쓴 기발아래서 이라크에서 주요한 작전은 끝났다. 고 기자회견 6. 약속한 전비를 지금 훨씬 넘어섰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부쉬는 보수주의 칼럼니스트들을 초 청한 자리에서 내가 내린 결정이 옳은 결정이였음을 지금만큼 강 하게 확신한 때는 없었다. 고 뻔뻔스럽게 말했다. 촘스키나 그리핀교수 같은 학자들이 부쉬의 9.11음모를 폭로해 궁 지에 몰리자 즉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자 전 람스

78 (15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55) 펠드국방장관은 아래와 같은 교묘한 론리적주제를 들고나왔다. 나 는 그의 론리학실력에서 랭소주의를 읽는다. 그래도 대국의 장관답 게 람스펠드는 학교에 다닐 때에 론리학은 좀 공부한것 같다. 그 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1. 알려진것을 아는것 known knowns(kk) 이 있다. 이는 우리가 알고있음을 알고있는것들이다. 2. 알지 못하는것을 아는것 known unknown(ku) 이 있다. 이는 알지 못한다는것을 아는것들이다. 3. 하지만 알지 못하는것을 알지 못하는것 unknown unknow ns(uu) 이 있다. 이는 알지 못함을 알지 못하는것이다. 물론 람스펠드의 이 아리숭한 아는것(known) 과 알지 못 하는것(unknown) 이란 두쌍을 조합시킨것은 자기 잘못을 변명 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정치문제를 론리적인것으로 각색한 리유는 미국이 자행한 이라크전쟁은 세번째 알지 못하는것을 알지 못한 (uu)것의 소행이라고 말하기 위함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알지 못하 고 저지른 오유전쟁이라는것을 에둘러 시인하는것이다. 알지 못하고 일을 저지르고말았으니 용서를 구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람스펠드는 예수가 십자가우에서 림종직전에 남긴 7언가 운데 하나를 외곡해가면서 거의가 그리스도교인들인 자국민의 머 리를 혼란스럽게 만들면서 위장용서를 구하고있다는 사실을 간과해 서는 안된다. 우의 람스펠드의 말가운데 문제점은 무엇인가? 그의 위장된 론리 의 오유를 간파한 사람은 정치학자가 아니고 차라리 슬라에보의 철 학자 지젝이다. 삼척동자라도 두쌍을 조합했으면 4개가 나와야 한 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것 하나를 람스펠드는 고의적으로 제외하고 있는것이다. 바로 람스펠드가 제외한 그 하나가 예수의 말, 네번째인 아는 것을 알지 못하는것(unknown known) (uk)이다. 예수는 자기 를 죽이려는자들을 향해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they do not know what they do(know) (루가 23:34)라고 자기의 아버지 하나님에게 자기를 죽이는 저자 들의 죄를 용서해주기를 빈다. 그리고 이 구절은 지젝의 저서명이 기도 하다. 람스펠드는 2개 쌍의 조합의 4가운데 왜 이 하나를 빼고 말했을 가? 그 리유는 간단하다. 이 네번째것이야말로 부쉬정부자신에게 해 당하는 목의 가시와 같은것이기때문이다. 예수의 적들은 자기가 아 는것을 알지 못한것이기때문에 일차적인 아는것에는 책임이 있는것 이다. 그러나 아예 일차적인것마저 무지였다고 말함으로(uu) 아예 원초적인 면죄부를 받으려는 심사일것이다. 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실 을 알고도 무지의 소치로 이라크침공을 한것이 아니라 원초적인 앎 자체도 없었다는것이다. 제 잘못은 모르고 예수를 비난하는 강도 그리고 예수를 죽이는 자들이야말로 아는것을 알지 못하는(unknown known) 자들 이다. 미국이 이런짓을 하고있다는것을 시인하는것은 성경을 아는 그리스도교인들이라면 이는 마치 미국이 예수를 죽인자들과 같은 반렬에 서있는것과 같은 행동을 이라크에서 하고있다는것을 보여주 는것이 될것이다. 그래서 람스펠드는 아는것을 알지 못한다.(unknown known) 고 말하지 않고있다.

79 (15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57) 람스펠드의 거짓말과 탈현대의 론리 그러나 국방장관이 이 정도의 론리학실력을 가지고있었다는 사실 은 경하할만 하다. 대국의 국방장관감은 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 좋은 두뇌를 좋은 방향으로 굴렸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러나 드디여 미국국민들이 람스펠드의 론리에 문제가 있다는것을 안것은 5년이나 지난 2007년이였다. 람스펠드의 론리를 안 미국민들은 지난 번 총선에서 부쉬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다. 2007년 12월 대선 에 서 한국 은 미국의 5년전 상황이다. 거짓말쟁이를 대통령 으로 당선시킨 후 국민들은 아는것을 알지 못했다고 할것이다. 랭소주의 자는 잘 아는자들이다. 그러나 그 아는것을 알지 못한자들이다. 지젝은 이 네번째는 프로이드의 무의식과 같은것이며 라깡의 안 다고 하는 그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앎 이라고 했다. 이는 우리자신에 달라붙어있는것조차 우리가 알지 못하는것이다. 속담의 등잔밑이 어 둡다. 와 같은것이다. 그러나 현대포스트모던학자들은 이 2차적 알지 못하고 한 행위에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이 론리대로라면 한국 재벌들의 모르쇠 작전에 면죄부를 줄수 없다는것이다. 모르고 한 행동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것은 사실 서양철학 특히 데까르뜨이후 근대철학의 근간이 되는 문제이다. 리성적이고 합리적 이란 사실상 생각하는것은 의심할수 없다. 는 즉 데까르뜨의 생 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란 준칙에서 나 온것이다. 다시말해서 데까르뜨는 인간은 합리성이라는 의식에 반영 되는것만이 책임적이라는것이다. 한국 재벌과 정치인들에겐 복음 과 같은 소리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따위의 합리성을 용납하지 않는다는것이 탈현대의 론리이다. 빨간 알약과 리명박의 위기 미국사람들이 부쉬의 거짓말에 속은것을 아는데 7년이 걸렸다고 했다. 모르는것을 아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리명박의 위기는 그것보 다 빨리 올지도 모른다. 그의 당선은 마치 그네작용의 반작용으로 가능했기때문이다. 다시말해서 로무현에 대한 반작용때문이라는것이 다. 그래서 로무현이 사라지는것이 곧 리명박의 위기가 된다는것이 다. 반작용이 없는 그네가 제자리를 찾는것과도 같다. 이러한 위기는 2차적이다. 가장 큰 위기는 독재세력의 과거 동굴 속에 기여든 국민들이 그래도 밖의 자유가 그리워질 때에 다시말해 서 사람들이 빨간 알약을 손에 드는 순간 이것은 리명박의 최대위 기가 될것이다. 이 순간은 몰랐던것을 아는 순간이다. 그 순간 리명 박의 허상은 마치 땀흘린 다음 랭기를 느끼는것과 같을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리명박의 위기는 곧 우리들의 위기라는 사실이다. 그를 통해 우리의 최대약점은 이미 온 천하에 알려졌다. 코리언들은 경제동물이라는 최대약점말이다. 그리고 나 라의 정신적인 기초인 정신력이 경제앞에 물거품이 됨으로써 이것 은 구한말이후 최대위기가 될것이다. 그동안 독재세력에의 회귀로 결국 코리언들은 들쥐 라는 미군 8군사령관의 말이 참이라는것 이 다시 재증명될것이다. 이런 국민신선도의 퇴락은 위기가운데 위 기라 아니할수 없다. 여기 또 하나 위기는 리명박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지지층은 경상 도, 령남 그리고 강남부유층이다. 신라 천년사대주의가 다시 살아 나 대미, 대일외교가 굴종적이 될것이다. 그리고 경제살리기란 경우 겨우 5% 인구에 혜택이 돌아가는 경제살리기가 될것이다. 그가운

80 (15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59) 데 가장 우려되는것은 대북관계이다. 그의 한가닥 희망은 실용주 의 로선이다. 그러나 그의 실용주의 는 수구보수세력의 볼모에서 얼마나 자유로울지는 두고볼 일이다. 거짓말도 쓸모있을 때가 있을가 리명박당선자가 앞으로 미국의 부쉬대통령을 만나러 갈것이다. 외 교는 거짓말의 경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MB의 거짓말이 부쉬를 이기기만 한다면 그것도 실용적으로 보아 국익이 될것이다. 누가 상 대방의 말귀를 빨리 알아듣고 누가 상대방의 눈치를 빨리 파악하느 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날것이다. 그러나 거짓말쟁이가 거짓말쟁이의 말이 거짓말이라는것을 분간 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 그 리유는 거짓말을 감별하는것 은 거짓말이 아니고 참말이기때문이다. 자기 눈을 자기가 볼수 없 듯이 거짓말쟁이는 거짓말을 분간하지 못한다. 정직한자만이 거짓말 을 분간할수 있는 기준을 자기속에 가지고있다. 맑은 거울만이 얼 굴의 허물을 볼수 있는것과 같다. 그렇다면 거짓말의 수가 높은것 을 기대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당선자의 거짓말은 우에서 보는바와 같이 그 수가 2단정 도밖에 안되는것 같다. 필부도 잡아낼수 있는 거짓말을 하고있기때 문이다. 1차적인 BBK의 진실을 나는 모른다. 그러나 한나라당 과 당선자가 보이고있는 2차적인 말과 행동이 거짓말을 하고있음이 드러나고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를 당선시켰다면 그의 거짓말은 우 리자신의 거짓말이 되고만것이다. 드디여 당선이 발표된 다음날 외신은 한국인들은 빵과 빠다를 선택했다. 라고 했다. 거짓을 덮고 먹고 사는데 급급했다는 풀이 일것이다. 이제 특검에서 거짓과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면 전세계적으로 코 리언들은 거짓말쟁이 라는 락인이 찍힐것이다. 왜냐하면 거짓말쟁이 를 대통령 으로 선출하였기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거짓말을 하 는 한에서만 참말로 인정을 받고 반대로 참말을 하면 거짓말하는 것이 될것이다. 이를 저 유명한 거짓말쟁이역설이라고 한다. 이것은 가치관의 대혼란을 가져올것이다. 양치기소년같이 말이다. 나는 이 역설이 탈현대의 론리라고도 하였다. 그럼 이를 합리화 하자는것이냐? 그렇지 않다. 인간은 관념적존재이기때문에 거짓말은 어쩌면 불가피하다. 콩을 두고 콩의 관념은 콩 이 아니다. 콩이 란 글자도 콩이 아니다. 그 글자를 먹을수 없기때문이다. 그러면 내 가 콩 을 두고 콩이 아니라 하여도 이것은 거짓말하는것이 아니 다. 먹을수 있는 콩의 립장에서 보면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있는것 이다. 그래서 관념작용을 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한 거짓말은 불가 피하다고 하는것이다. 그래서 2차, 3차 거짓말이 진화한다고 한다. 그러면 이런 거짓말의 혼란을 어떻게 막을수 있는가?

81 (16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61) 항일유격대의 색, 계 와 공화국헌법 63조 중국 젊은 혁명가들의 색, 계 이완감독의 영화 색, 계 를 본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동시에 주석의 회고록을 함께 읽은 사람들이라면 량자사이에 비교와 대조를 아니 느낄수 없을것이다. 영화의 주된 배경은 일본통치하의 중국에서 갓 대학생인 왕 치아즈(탕웨이)가 스파이가 되여 일본군 앞잡이인 양조위를 죽이기 위해 미인계를 써서 그에게 접근한다는 것이다. 1930년대 상해를 배경으로 하여 전개되는 장면들은 동만의 항일유격대의 력사적배경과 별반 차이가 없어보인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생길수 있는 적장을 살해하기 위한 미인계 등도 모두 평범 해보이는 배경이다. 그러나 이완감독이 이런 평범함속에서 예술성을 살려내려 한것은 바로 색과 계사이에 쉼표(,)를 찍었기때문이다. 다시말해서 영화의 제목 색, 계 에서 보는바와 같이 색( 色 lust)과 계( 戒 caution)사이는 쉼표(,) 하나로 련결돼있다. 마침 표(.)가 아니고 콤마이다. 즉 색과 계사이가 단절도 아니고 련결 도 아닌 애매한 관계, 이것이 이 영화의 생명력을 살려내고있다. 신인녀배우 탕웨이와 로련한 양조위 두사람이 열연하는 이 영화는 한국 에서 지방공연에서 성공하여 서울의 대형극장에는 늦게 재 등장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내가 이 영화를 본것은 1월초 대한 극장 에서였다. 혁명이라는 계와 인간의 본능이라는 색사이가 그렇게 단절도 련 속도 아니라는것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현대와 탈현대사이에서 중 국의 젊은 남녀들이 고민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있다. 색과 계가 마침표면 현대이고 쉼표면 탈현대라는, 그러나 그렇게 쉽게 단정할 수 없는것을 보여주는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탕웨이가 끝까지 혁명에 충실하고 조직내의 남자친구를 끝까지 사 랑하려 했지만 양조위의 성적매력과 자기를 마음깊이 사랑하여 다 이아몬드 6카라트를 선물하는 진정어린 그 마음앞에 그만 계를 어 기고만다는 이 영화는 탕웨이의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 잘못이였는 지는 쉽게 단정할수 없다. 탕웨이는 자기 남자친구에게 양조위의 성적에네르기가 자기의 심장속을 파고들 때에는 자기자신도 조직이 내린 명령을 감당할수 없을지 모른다고 고백한다. 색과 계의 경계 선이 어딘지 자신도 몽롱해진다는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녀자친 구를 미인계의 제물로 바친 이 젊은 혁명아도 탕웨이의 말앞에 침 묵할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영화화한것이다. 탕웨이는 결국 양조위의 명령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양조위의 슬픈 눈빛과 함께 영화는 끝난다. 서로의 정체를 알았을 때 양조위는 탕웨이를 끝까지 지키지 않았으며 탕웨이가 형장에서 뒤를 돌아보는 장면은 색과 계가 콤마로 련결되는것을 상징하는것이 아닐가? 이 영화의 이런 내용을 두고 지금 네티즌들가운데는 두사람에게 다 색과 계를 적용하여 누가 누구의 색과 계를 이기고 졌나를 론쟁하고있다.

82 (16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63) 북의 예술영화 생의 흔적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줄곧 회고록에 나오는 조선의 항일유격 대안에서 활동한 녀성유격대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북의 예술영화 생의 흔적 을 색, 계 와 대 조해보기도 했다. 회고록 1권은 주석의 길림시절에 관한 기록들이다. 여기에 김주석이 리광수의 소설 혁명가의 안해 를 읽은 독후감얘기가 나 온다. 김주석의 길림시절은 마치 영화 색, 계 의 배경과 아주 같 아보인다. 중국과 조선이 일본에게 주권을 강탈당하고 이를 다시 찾 으려는 젊은이들이 모여 소설도 읽고 토론회도 갖고 연극도 한다. 주석은 항일유격대를 창건한 다음 부대를 인솔하여 남 만으로 가는 도중 무송에 잠간 들렸을 때에 이 소설을 읽었다고 회고하고있다. 김주석은 독후감에 대하여 소설 <혁명가의 안해>는 한 공산주 의자가 병치료를 하고있을 때 그의 안해가 남편의 병치료를 해주러 다니는 의학전문학교 학생과 치정관계를 맺는 추잡한 생활을 그린 작품으로서 공산주의자들을 모독하고 공산주의운동을 헐뜯는 사상 으로 일관되여있었다. (1권 214~215페지)고 적고있다. 김주석의 이러한 평가는 계로서 색을 억제하지 못한 혁명가의 안 해에 대한 질책인것으로 리해된다. 주석의 이러한 소설평에 대하여 탈현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평가할지는 자 기나름이라 할수 있을것이다. 여기서 김주석의 말은 색과 계사이를 강한 마침표로 련결시키려는듯이 들리기때문이다. 김주석이 분명히 지금 이완감독의 영화를 본다면 여전히 공산주 의에 대한 모독 그리고 추잡한 생활을 그린 작품으로 볼것인지도 궁금하다. 리광수가 색과 계사이를 쉼표-콤마로 처리하고있는것이 이완감독의 처리와 같다. 헐리우드풍의 전형적인 예술성이다. 아마 도 이런 콤마처리하는따위의 영화를 아무리 개방이 되였다 하더라 도 현재 중국본토에서 만들기에는 시기상조같다. 평양에서는 더욱 그럴것이다. 1980년대에 탈출기 에서 녀주인 공의 젖가슴을 처음 로출시킨것도 그 당시엔 큰 사건인것을 보면 혁 명이란 계앞에 색은 아직 개방을 보류해야 할 대상인것 같다. 이러 한 계에 대한 강조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별로 달라진것이 없 어보인다. 2003년 3월 로동신문 의 다음 사설은 이를 잘 반영 하고있다. 우리는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으로 심장을 뜨겁게 불태우는 숭고한 인생관을 지닌 혁명가들에게서 그 대답을 찾게 된다. 혁명 가에게 있어서 보람없이 보낸 백날, 천날보다 혁명을 위하여 심장 을 불태우며 산 하루가 더 값있고 귀중하다. 예로부터 약을 100첩 써야 할데 99첩을 쓰고 한첩을 쓰지 못한다면 약효가 나지 않는다 는 말이 있는것처럼 사람도 당에 충실하다가 하루나 반나절, 그보 다 어느 한순간이라도 반역하면 결국 그 사람은 나라와 민족을 배 반한 반역자로 되고만다. 회고록속에는 탕웨이같이 녀성으로서 항일혁명에 뛰여든 인물들 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7권에는 녀투사들의 혁명절개 라는 절을 따로 마련하였다. 김정숙, 리관린, 한영애, 안순화, 조옥희, 한주애, 리계순, 장길부 등 항일혁명녀투사 최희숙에 대하여 주석 은 회고록에서 일본군에게 두눈을 빼앗기고도 혁명의 승리가 보인 다고 웨치자 이에 질겁한 일본 토벌대 들은 혁명가의 심장이 어떻 게 생겼기에 그처럼 지독한가를 보자고 하면서 그의 심장을 도려냈

83 (16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65) 다고 적고있다. 회고록에 등장하는 유격대원가운데 가장 처참한 죽 음의 장면이 바로 최희숙의 죽음일것이다.(7권 256페지) 탕웨이가 변절아닌 변절을 하는 장면과 대조가 되면서 나는 극 장을 나오면서 조선녀성들은 그렇지 않을것이지 하고 혼자말을 해 보았다. 그러나 현대평론가들은 작품성은 역시 색과 계는 쉼표로 련결되여야 한다고 할것이다. 그렇다면 북의 예술적작품성을 어떻 게 평가해야 할것인가? 사실주의문학예술로 취급하고말것인가? 아 니면 그 이상인가? 예술영화 생의 흔적 은 주석이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영화가운데 하나이다. 전투근무수행중 전사한 남편의 넋을 이어 어 느 한 농장에 진출하여 영웅안해의 신분을 숨기고 성실하게 살아 가는 서진주의 삶을 다룬것이 생의 흔적 이다. 영웅의 안해로서 한 남자를 끝까지 사랑하고 동시에 남편이 사랑한 조국을 위해서 한생을 사는것이 진정한 생의 흔적 을 남기는것이라는것이 이 영 화의 내용이다. 서진주의 대중연설에서 나는 두개의 사랑하는 님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고있습니다. 하나는 죽은 나의 남편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남편이 사랑한 조국입니다. 라고 한다. 그러면서 사람이 진 정으로 생의 흔적을 남기자면 자기가 살고있는 사회와 집단을 위 해 한생을 바치는것입니다. 라고 한다. 그러면서 죽은 남편의 무덤 에 찾아가지 않는데 대해 주위사람들로부터 변심했다는 오해를 감 내하면서 농장에서의 로동을 통해 남편의 령혼이 사랑한것을 사랑 하는것, 그래서 개인과 집단이 같아지는것이 생의 흔적이 된다는 것이다. 주석이 생의 흔적 을 보면서 자신께서는 아직까지 영화 를 보면서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보기는 처음이라고, 이 영화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정확한 대답을 주었 다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저런 영화는 나오지 못한다고, 조선에 저런 훌륭한 녀성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고, 인간의 한 생을 아주 잘 그렸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고 전한다. 무장소조투쟁방식의 한계 회고록에는 어디에도 미인계를 써 적장을 살해하려는 장면을 읽 을수 없다. 우리 민족사에 새겨진 일제와의 싸움방식을 세가지로 볼 수 있다. 첫번째는 무장소조활동 또는 개인테로의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대규모전면전을 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이상 량자 의 장점을 보합한것으로 중대, 대대규모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적을 공격하고 후퇴하는 등 유격전의 방식이다. 첫번째 테로방식은 김구 등 민족주의독립운동가들이 하던 방식이다. 이는 안중근, 윤 봉길, 리봉창같이 개인 혹은 소규모의 테로조직을 만들어 일제의 요인을 저격하고 건물 등을 파괴하는 방법이다. 두번째 방법은 그 당시 여건상 거의 불가능한 방법이다. 대규모군대를 인솔해다니자면 그들을 먹이고 입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기때문이다. 나라를 잃 은 마당에 당장 소대규모의 병력을 재우고 입히기도 어려운 사정이 였기때문이다. 여기서 세번째 방법을 택한 부대가 바로 항일 유격대라 하는것이다. 후에는 항일련군 등으로도 불린다. 영화 색, 계 에서 사용한 미인계를 이 세가지가운데 하나로 구 태여 분류하면 소조방식이라 할수 있을것이다. 한 개인이 적의 우 두머리를 처치하는 방식말이다. 항일유격대는 이런 방식에 가치를 별로 부여하지 않는다. 이것은 무장투쟁방식의 문제가 아니고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보느

84 (16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67) 냐의 문제이기때문이다. 집단을 떠난 개인에게 그렇게 신빙성을 둘 수 있느냐의 문제인것이다. 즉, 만약에 개인이 탕웨이같이 색과 계 사이의 경계가 분명해지지 않는 순간에 도달했을 때에는 적보다는 아군에 더 큰 피해를 줄수 있기때문이다. 결국 탕웨이의 순간적인 변절이 그만 조직의 성원들을 모두 죽음으로 내몰고말았다. 그래 서 사령관이 유격대방식을 취한 리유는 개인이 전체라는 즉 개( 個 )와 전( 全 )사이의 소통없이는 개인의 도덕성이나 의지에 높 은 점수를 줄수 없다는것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문제이기때문 이라고 본다. 금세기에 이러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로는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인간의 본성과 그 운명 이 일러진다. 개인인간은 원죄에 물들어있기때문에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본성을 아무리 깊이 들여다 보아도 거기서는 건질것이 없다는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가 자본주 의인간관을 극복하지 못한것은 개인과 사회집단과의 력동적관계성을 보지 못했기때문이다. 사서삼경가운데 하나인 시경 에서도 인간의 본성은 희미하고 위태롭다고 했다. 그래서 이완감독의 영화를 보면 서 우리는 인간의 본성이 개인으로 있을 때 얼마나 걷잡을수 없는 가를 보는것이 더 타당할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성선도 아니고 성악도 아니다. 정다산은 선한 마 음과 악한 마음이 한마음안에서 서로 소송을 한다고 하여 인성 자 송론( 自 訟 論 )을 주장하였다. 개인으로서 인간의 본성이 이렇게 불 안정한 리유는 인간이란 개인이면서 동시에 전체이기때문이다. 그래 서 인간개인의 본성을 론하기 전에 인간의 개( 個 )와 전( 全 )의 관계 를 먼저 론하여야 한다. 북헌법 63조에 지적되여있는 하나는 전 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는 바로 이 점을 반영한것이 라 본다. 개인이 철저하게 자기 개인을 사회나 당 등 집단과 일체화시키 는 기제장치가 안되여있는 한 개인적인 인간본성은 그것이 색과 계의 사이이든, 권력과 계의 사이이든, 재물과 계의 사이이든 확 고할수 없다는것이다. 그래서 주체사상은 개인과 전체의 관계설정 을 제일목적에 두고 이를 헌법에까지 반영하고있다. 개와 전이 조 화가 된 인간을 우리는 메타인간(meta-man)이라 부른다. 집단주 의사회에서 개개의 존재는 독자적이지만 집체적존재이다. 이를 생명 유기체라고 한다. 어떤 생명체이든지 이런 유기체속에서 자기 존재 를 확인하는 길만이 개인으로서 존재를 확인하는 길이다. 이런 리 론적배경과 함께 북의 영화예술뿐만아니라 사회전반을 리해해야 한 다고 본다. 이렇게 개와 전의 관계는 사( 私 )와 공( 公 )의 관계이기도 하다. 멸 사봉공( 滅 私 奉 公 ), 이것은 유교의 가장 큰 덕목가운데 하나이다. 유교에서 녀자와 아이를 소인이라 한것은 녀성과 아이들은 쉽게 색 과 돈의 유혹에 빠질수 있기때문에 이 두 존재에겐 공공성을 인정 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개와 전의 조화의 담지자 즉 대인 혹은 군자는 남성의 몫이다. 대인이나 군자는 계로서 색을 억제할줄 아 는자이다. 사생취의( 捨 生 取 義 ), 살신성인( 殺 身 成 仁 )할수 있는것은 모두 남성군자상으로나 가능하다. 녀자는 처음부터 색을 억제할수 없는 색의 노예로 보는것이 전통유교륜리였다. 어떤 면에서 이완감 독의 이 영화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반영하는것 같지만 사실은 이런 유교륜리의 경계선상을 넘지 못하고있다고 결론지을수도 있을것이 다. 이런 녀성에게 혁명의 계를 맡긴것자체가 잘못이라는듯이 말이 다. 이 얼마나 구시대적인 발상인가? 이런 결론과 함께 나는 북의 예술을 돋보게 된다.

85 (16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69)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주석의 회고록속에는 남성들 변절자는 여럿이 등장해도 녀 성유격대원의 변절이야기는 없다. 더 나아가 사령관은 1936년 4월 항일유격대내에 박록금을 중대장으로 하는 녀성중대를 편성 한다. 고려사의 설죽화, 조선조의 행주산성녀인들, 진주의 론개, 평양의 계월향의 례를 들면서 조선녀성들의 강인한 힘의 례를 든 다. 18살 처녀 김수복과 그의 짝패처녀는 일본경관을 빨래방치로 쳐죽이고 무기를 빼앗았고 재봉대책임자 박수환도 역시 빨래방치 로 적병을 까눕히고 무장을 빼앗아냈다. 김정숙, 김확실, 박록금 은 탁월한 사격수들로서 사령관을 사선의 위기에서 여러번 직접 구출하기도 한다. 특히 김정숙녀사의 사격솜씨는 유명하다. 사령관이 위험에 처했을 때에 김정숙녀사는 한몸으로 이를 막아내였다. 사령관은 개인영웅담으로 이어지는 테로운동의 한계를 일찌 기 알고있었다. 도덕적인 개인과 비도덕적사회(Moral Man Immoral Society) 라는 신학자 R. 니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개인의 도덕성이 사회의 도덕을 보장하는것은 아니라는것을 알았 기때문이라 본다. 그래서 사령관은 개인의 도덕적힘이든 능 력이든 그것에 그렇게 큰 비중을 두지는 않는다. 상해를 중심으 로 한 림시정부의 개인테로방식이 결국 그 지구력을 상실할수밖 에 없었던 리유가 바로 인간의 본성때문이라고 보는것이 옳을것 이다. 그래서 미인계를 포함한 요인암살같은것이 강한 폭발력이 있음에 도 불구하고 결국 개와 전의 변증법적통일을 이루지 못할 때에 그 의미를 상실하고만다. 여기에 색과 계의 관계설정은 개와 전의 관계 설정을 먼저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는것이 회고록에 흐르고 있는 일관된 주장이다. 개적자아에서 녀성들을 집단적자아로 무어 낸 녀성중대편성은 이런 의미에서 각별하다 아니할수 없다. 회고록 제5권 13장 4절은 특히 녀성중대편성이야기와 녀성유격대 원들의 피눈물어린 일화들로 가득차있다. 항일혁명은 그 모든 액운과 부조리의 근원을 송두리채 쓸어버 리는 폭풍이였으며 이 나라 녀성들을 혁명의 길로 인도해준 세기 적인 사변이였다. 조선의 녀성들은 펜이 아니라 선혈로써 대지우에 자기의 새 력사를 쓰기 시작하였다. (5권 69페지) 녀성들이 개인이나 가정의 존재의 한계령역을 뛰여넘어 군복을 입고, 군화를 신고, 군모를 썼을 때에 그리고 허리에는 수류탄을 차고 어깨에는 개인소총을 메고 나섰을 때에 이 땅의 녀성은 새로 운 존재로 의식이 다시 태여나는것을 경험하였던것이다. 차광수는 우리 민족의 강인한 모계사회전통을 거론하면서 녀성참군은 그들자 신의 요구일뿐아니라 시대의 부름이라는걸 알아야 한다고 력설하 였다. 이러한 조선녀성들은 개가 전으로, 전이 개로 재귀적작용(recursive operation)을 하면서 항일유격활동 전기간의 경험과 새로운 자아를 안고 조국으로 입성했던것이다. 그래서 해방후 곧 북은 바 로 남녀평등권법령을 발포할수 있었다. 이에 대하여 북의 어느 한 글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오랜 세월 정치적무권리와 사회적질곡으로 온갖 불행을 겪어온 녀성들의 지위와 역할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안아온 력사적사변이였 다. 주체적인 녀성운동사상과 업적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끝없이

86 (17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71) 빛내여나갔다. 녀성동맹안에 당의 령도체계를 철저히 세울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녀성운동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혔으며 녀성들 속에서 혁명화, 로동계급화를 다그쳐 모든 녀성들이 혁명과 건설의 믿음직한 역군으로 자라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었다. 정치생명유기체사상과 녀성 실로 녀성을 개인적자아에서 사회적 그리고 집단적자아로 무어내 여 녀성중대를 독자적으로 편성한것은 모택동부대에도 호지명부대에 도 없었던 항일유격대의 독자적인 모습이였다. 현대군부대에 서도 간호병, 위생병, 행정병 등 특수병과에서만 녀군부대가 허용될 정도이다. 미국도 이라크전에서 최초로 중동에 녀성전투부대를 파견 했을 정도이다.(홍동근, ) 우리는 부쉬가 어느 녀전사의 무용 담을 조작해 선전하다 망신당한 일을 기억할것이다. 그러나 회고록에는 이런 녀전사들의 무용담이 장마다, 절마다 나 온다. 이는 최근에 발생한 문명사적근원을 떠나서는 생각할수 없다. 만 약에 차광수가 지금 살아있다면 최근 중국 료하류역에서 발굴된 소 위 홍산문화는 황하강류역의 앙소문화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대규모 녀신전이 나온 사실에 놀랐을것이다. 바로 고조선이 존재했던 지역 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환인, 환웅, 단군까지도 모두 녀성들이였다 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있는 실정이다. 차광수가 살아있었더라면 해방후 고고학자가 되였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에 리광수의 혁명가의 안해 나 이 완감독의 색, 계 는 이미 개인주의화한 자본주의시대의 녀성상 그리고 성을 인간의 본질로 파악한 프로이드의 세계관이 그대로 반 영된 전형적인 헐리우드판작품임에 분명하다. 우리는 바로 프로이드가 가져다준 세계관속에서 살고있기때문에 이런 작품을 두고 작품성이 뛰여나다고 한다. 그래서 북의 예술영 화를 이에 대비하여 색과 계에 마침표(.)를 찍고있는것으로 단정하 고싶어한다. 생의 흔적 은 전형적인 사회주의문학의 전형 즉 사실주의예술 이라 할것이다. 나는 북의 예술을 볼 때마다 우리 미래세계가 지향하고있는바, 개와 전이 조화된 전체가 하나를 위하여, 하나가 전체를 위해 사 는 기제장치가 그 어느 사회보다 잘되여있는 문화예술이라고 본 다. 메타인간을 예견하고있는 작품들로 평가하고싶어한다. 다시말 해서 색과 계 그리고 개와 전이 쉼표와 마침표가 함께 이어지는 세미콜론(;)으로 구태여 명명하고싶은 문학이라 평가하고싶다. 색 과 계의 관계는 결코 개와 전의 관계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기때문 이다. 인간은 정치적인 생명유기체적관계로만 파악될수 있다는것이 북의 헌법 63조의 정신이고 주체사상의 인간관이 아닌가 한다.

87 (17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73) 조국광복회10대강령과 취임사 리명박 대통령 의 취임사 는 그 진위문제로 하여 어느때보다 도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대통령 자신의 정 치철학 인 동시에 국정의 근간이 되기때문이다. 조국광복회10대강령은 1936년 유격활동기간동안에 만들어진것으 로 북의 정치철학인 동시에 그대로 국가의 리념이다. 그래서 여기서 량자를 비교해보는것은 지금 남북의 현주소를 그대로 한눈에 파악 할수 있는 첩경이라 할수 있을것이다.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력사적배경 회고록전반에 걸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은 민생단 과 조 국광복회10대강령 (혹은 10대강령)이 아닌가 한다. 북에서 조국광 복회10대강령노래가 널리 불리우는것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중요시 되는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북의 정신적 그리고 건국의 정초가 되는것이 10대강령이다. 주석은 일제타도와 조국광복을 위하여 1936년 5월 길림성 무송현 동강에서 조국광복회를 창건하고 조국광복회창립선언과 조 국광복회10대강령을 발표하였다. 이 사건이 중요한 리유는 조국광 복회결성을 력사상 최초로 전민족적혁명조직이 만들어진것이며 10대 강령은 그 당시 조선의 현실에 나머지수자 하나없이 맞아떨어질 정 도로 정당성과 적합성을 지닌것이기때문이다. 다시말해 10대강령은 조국광복회의 활동방향을 제시했을뿐만아니 라 당시 조선민족해방운동의 정치로선, 그 전모를 말해주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평가받고있다. 나아가 10대강령이 발표된 이후 사령관은 1936년말 1937년 초 최초로 백두산을 발판으로 주변일대를 근거지로 삼아 본토진출의 획기적인 전기를 만들었다. 드디여 1937년 6월 4일 사령관이 이끄는 항일련군 제6사는 국내에 조직된 조국광복회와 련계하여 최 초로 국내침투전투를 단행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보천보전투이고 같 은 달 말(6월 30일)의 간삼봉전투였다. 조국광복회는 조직의 발판을 확대하여 결국 김주석이 1945년 귀국 했을 때에 새 조선 건국의 발판이 되였던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10대강령의 중요성은 여기서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정도이다. 취 임사 이든 10대강령이든 그것이 시의적절한것이라면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이렇게 파급효과를 가져야 한다. 그래서 하나의 미사려구가 아닌 력사와 함께 살아남게 되는것이다. 아무튼 10대강령은 지금까 지도 그대로 유효하며 오늘의 북의 현실 그대로이다. 조국광복회폄훼에 대하여 남 한 의 학자들이 주석과 그의 혁명활동을 폄훼함에 있 어서 몇가지 씨나리오가 있다. 그 하나가 10대강령과 주석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는것이다. 그들은 조국광복회 회장과 10대 강령작성자가 주석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김준 엽, 김창순, 림은, 리정식, 서대숙, 와다하루끼 등의 국내외학자들 의 연구에 의하여 불식된지 오래이기때문에 이젠 거론조차 되지 못

88 (17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75) 하는 실정이다. 주석이 이끈 항일혁명사외곡행위는 당시의 일본측 자료와 그 당시 국내신문들마저 대대적으로 보도한 자료가 있는 마당에서 설득력을 잃고만다. 최근에는 신진 젊은 학자들이 석사, 박사론문 을 통해 항일혁명사외곡을 모두 부정하고있는 실정이다. 특히 연변 대 조선족학자 김성호교수는 주석 항일유적지를 몇차례 답사 한 후 회고록의 기록이 사실 그대로라고 말해주었다. 주석이 자신의 회고록에서 가장 비중있게, 가장 많은 회수 로 언급하고있는것이 조국광복회결성이다. 조국광복회에 대해 처음 으로 언급하기 시작한 곳은 회고록 제3권이다. 3권 제7장 3절 쏘베트냐, 인민혁명정부냐? 에서 이날의 모임 에서는 인민혁명정부는 참다운 인민의 정권이라는 내용의 나의 연설 이 있었고 10개 조항에 달하는 정부정강내용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그 정강내용은 후날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 거의 그대로 반영되였 다. (3권 76페지)고 쓰고있다. 쏘베트냐 인민혁명정부냐 그러면 우리의 관심의 요체는 여기서 말하는 이날의 모임 (1933년 3월 18일)이란 무슨 모임이였느냐이다. 쏘베트란 맑스주 의리론을 원리원칙대로 적용하여 인위적으로 만든 공동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전 쏘련의 10월혁명이후 이를 리상화한 맑스주의 교조주의자들은 가가호호 찾아다니며 개인재산을 몰수하고 심지어 는 숟가락까지 몰수해가 공동분배한다는 쏘베트집단공동체를 만들 려 했다. 동만유격구에도 쏘베트바람이 불어닥쳤다. 이들 좌경분자들을 두고 사령관은 좌경적편향은 교조주 의, 사대주의, 모험주의에 중독된 사람들의 소부르죠아적조급성의 산물 (3권 55페지)이라고 단정한다. 교조주의를 비판하는것은 맑스주의원리원칙이 현실에 맞지 않는 다는것이다. 사대주의라 하는것은 쏘련에서 분 바람을 그대로 우리 현실에 적용하는것은 주체가 없는짓이란것이다. 결국 이런 실용성이 없는 교조주의는 인민으로부터 일탈을 가져왔으며 유격활동에 심대 한 손실을 초래하였다. 유격구가 갑자기 쏘베트로 변하면서 사람들 은 하나둘 일제통치구역으로 떠나는 현상마저 생겼다. 여기서는 숨이 막혀 더 살수가 없어서 가 주민들의 원성이였다. 그러나 극 좌좌경분자들은 이런 원성에 아랑곳하지 않고 맑스주의원리원칙을 고수하고 적용하는것자체가 목적이였다. 사령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장영을 만났지만 그 역시 벽창호였다고 회고하고있다. 사령관은 여기서 결단을 내린다. 왕청5구를 시범으로 쏘베트를 청산하고 인민혁명정부를 세우기로 결단을 한다. 이는 사령관이 민생단 사건때 내린 결단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큰것이였 다. 그 리유는 여기서 말하는 인민혁명정부란 다름아닌 조국광복회 의 효시였으며 나아가 해방후 정권수립의 최초의 단서가 이에서 모 두 비롯하기때문이다. 1933년 3월 18일(이날은 모쁘르기념일이였다. 모쁘르란 국제혁명 투사위원회 략칭이다. 1923년 코민테른집행위에서는 희생된 혁명투 사유가족들의 후원을 목적으로 이 조직을 내오게 하였고 3월 18일 을 국제적인 모쁘르날로 정하였다.) 5구 조창덕의 집에서 20여명이 모여 인민혁명정부의 탄생을 선포한다. 그리고는 쏘베트가 몰수해간 개인의 재산을 모두 본인들에게 되돌려주었다. 심지어는 소비해버린

89 (17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77) 것은 보상까지 해주었다. 인민혁명정부는 가야허마을에서 사수평마을로 급속히 확산되여 3년후 1936년 5월 5일 조국광복회탄생의 모체가 되였다. 그리고 조국광복회는 국내로까지 조직이 확대되여 혜산과 갑산 등 지의 조직원들이 항일유격대와 협조하여 보천보전투를 성공적 으로 치르게 했던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북의 정부탄생은 이 조국 광복회와 그리고 그 정신없이는 리해할수 없다고 하는것이다. 10대강령이 지금도 유효한 리유가 여기에 있다. 조국광복회10대강령 5. 일본 및 그 주구들의 인민에 대한 채권, 각종 세금, 전매제 도를 취소하고 대중생활을 개선하며 민족적 공, 농, 상업을 장애 없이 발전시킬것. 6.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전취하고 왜놈의 공포정책 실현과 봉건사상장려를 반대하며 일체 정치범을 석방할것. 7. 량반, 상민 기타 불평등을 배제하고 남녀, 민족, 종교 등 차 별없는 인륜적평등과 부녀의 사회상대우를 제고하고 녀자의 인격 을 존중히 할것. 1. 조선민족의 총동원으로 광범한 반일통일전선을 실현함으로써 강도 일본제국주의의 통치를 전복하고 진정한 조선인민정부를 수립 할것. 8. 노예로동과 노예교육의 철페, 강제적군사복무 및 청소년에 대 한 군사교육을 반대하며 우리 말과 글로써 교육하며 의무적인 면 비교육을 실시할것. 2. 재만조선인들은 조중민족의 친밀한 련합으로써 일본 및 그 주 구 만주국 을 전복하고 중국령토내에 거주하는 조선인의 진정한 민족자치를 실행할것. 9. 8시간로동제 실시, 로동조건의 개선, 임금의 인상, 로동법안 의 확정, 국가기관으로부터 각종 로동자의 보험법을 실시하며 실업 하고있는 근로대중을 구제할것. 3. 일본군대, 헌병, 경찰 및 그 주구들의 무장을 해제하고 조선 의 독립을 위하여 진정하게 싸울수 있는 혁명군대를 조직할것. 4. 일본국가 및 일본인소유의 모든 기업소, 철도, 은행, 선박, 농 장, 수리기관 및 매국적친일분자의 전체 재산과 토지를 몰수하여 독 립운동의 경비에 충당하며 일부분으로는 빈곤한 인민을 구제할것. 10. 조선민족에 대하여 평등적으로 대우하는 민족 및 국가와 친 밀히 련합하며 우리 민족해방운동에 대하여 선의와 중립을 표시하 는 나라 및 민족과 동지적친선을 유지할것.

90 (17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79) 취임사 와 10대강령의 대차대조 강령의 대강의 1항-5항은 반제(반일본), 6항-9항은 반봉건(남녀 평등, 계급평등), 10항은 국제친선에 관한것으로 크게 분류된다. 오 늘날 평등파와 자주파가 반드시 읽어야 할 대목이다. 북에서는 왜 이런 때늦은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지도 리해하게 될것이다. 이 10개 조항들은 탁상공론으로 쓰인것이 아니다. 민생단 과 쏘베트사건과 같은 력사의 현장에서, 생명을 내건 싸움에서 얻어진 산 교훈에서 나 온것이다. 극좌좌경과 민족주의와 일제라는 삼각파도를 헤치면서 풍 파속에서 피를 먹물삼아 쓴것이 10대강령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오늘 남 한 사회의 운동권에서 자주파와 평등파가 저렇게 피투 성이가 되여 싸움을 하는것을 이미 북의 지도자들은 1930년대 만 주에서 경험한것이다. 그리고 이를 10대강령속에 용해하여 1945년 해방을 이룩하였다. 더 거슬러올라가 생각할 때에 동학혁명 역시 10대강령의 정신과 과히 멀지 않다. 반제반봉건이란 점에서 일맥상 통하는 점이 없지 않은것이다. 나는 리명박 대통령 의 취임사 가 이 시대와 사회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강력한 힘과 타당성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래 야 우리모두가 다시는 불행해지지 않기때문이다. 이런 생각과 함께 남북은 지금 너무나 딴 길로 가고있다고 느끼게 되였다. 어느쪽이 바른 선택을 했는지는 력사가 판단할것이다. 여기서는 그 차이점만 말해놓자. 그리고 이 글을 읽는분들 선택의 자유에 맡겨놓자.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8항은 우리 말과 글로써 교육하며 라고 했다. 그런데 리 대통령 은 영어몰입교육을 강조했다. 우리 어린 아이들의 혀를 더 자르라는 소리같이 들린다. 혀를 더 자르는 경 우 인간의 언어기능자체가 말살되고만다는 사실을 알기 바란다. 모 국어로 시를 쓰고 모국어로 수필을 쓰고 소설을 쓰는것은 수치스 럽게 되여가고있지나 않나. 일본에 대해서 과거를 묻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일본에 대하여 물을것도 많고 요구할것도 많다. 정신대 할머니들 의 한은 깊어만 가고있다. 대통령 의 말이 이들의 한에 덧상처를 주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 문화재도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있 다. 무엇보다 분단의 궁극적인 원인은 일본때문인데 어째서 일본에 게 물을것이 없다고 하는지 리해 못하겠다. 그리고 남북을 하나로 생각한다면 북은 아직 일본과 배상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은 아직도 독도를 자기들 령 토라 우기고있다. 이건 완전히 재침략의 야욕이 있다는 소리가 아닌 가. 이런 일본에 과연 물을것이 없고 요구할것이 없다고 할수 있는 가? 10대강령 1항-5항은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하다. 남쪽은 리념과 산업화를 넘어서 선진조국 의 시대로 가자고 했 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이 박정희의 근대화 의 연장선상의 언어로만 들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말은 과거 산업화시대로 되돌아가자는 말로만 들린다. 선진국/후진국이란 이분법으로 지금 우리를 아직 후 진에 있다고 보고 한 말이 아닌지. 오래된 미래 란 말이 있다. 에네르기절약을 최소화하고 초롱불 켜도 온 세상과 한몸같이 되 는 작으나 아름다운 나라를 건설하는것이 선진사회로 가는 길이 아 닐가. 그런 면에서 북은 남보다 훨씬 선진사회로 가로질러가기 쉽 지 않을가. 그런데 리명박은 선진조국을 7.4.7에 련관시켰다. 경악 을 금할수 없다. 아마 그 어느 지성도 선진을 그렇게 정의하지는 않 을것인데 말이다. 최소한 바라건대 10대강령 6항-9항에 위배되지 않은 선진화가 되기 바란다.

91 (18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81) 체 게바라, 혁명의 진정성은? 나무사이로 감자밭이 보인다 더이상, 탈출구가 없다 감자꽃 체 게바라의 달빛 은 그가 적에게 포위당해 최후의 순간을 기 다리며 쓴 시 같다. 달빛비친 나무사이로 보이는 감자밭은 주석의 회고록에도 비슷한 장면으로 나온다. 피바다 초연을 하고 백두산아래 첫 동네 무송현 남단 만강을 항일유격대원들이 지나갈 때 달 빛아래 때늦은 자주빛감자꽃이 들을 가득 메워 피여있었다. 때는 1936년 8월. 체 게바라가 생의 마지막순간 바라보던 1967년 10월 의 감자밭. 이 두 영상이 하나로 포개여지면서 나는 이 지구의 량 극단에 있는 두 감자밭을 민중 이란 이름으로 아로새기고싶어 이 글을 쓴다. 달빛 만강은 만주 어느 지역보다도 감자가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주석은 피바다 공연을 끝내고 만강을 지나가던 추억을 이렇게 회고하고있다. 동강에서 무송현성전투승리를 총화하는 반일부대지휘관들과의 련합회의를 끝낸 다음 나는 주력부대를 데리고 백두산의 서쪽 위성 구역인 만강으로 향하였다. 만강은 드넓은 고원우에 올라앉아있는 백두산아래의 첫동네이며 무송현 남단의 마을이다. 여기서 남쪽으로 되골령을 넘으면 장백땅 이고 서남쪽으로 로령을 넘으면 림강땅이다. (5권 48~49페지) 감자밭사이로 구름에 달가듯 유격대원들이 일렬종대로 행군하는 모습은 한폭의 그림같다. 마찌니의 님은 이딸리아 아래 시는 한룡운 님의 침묵 서시 군말 이다. 이른 저녁 희미한 달빛아래 숲속 은신처에 포위된 우리는 이제 37명뿐이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철 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찌니의 님은 이딸리 아이다/ 님은 내가 사랑할뿐만아니라 나를 사랑한다 여기서 말하는 님 은 하나로 고정된 의미가 아닌 다양한 뜻으

92 (18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83) 로 해석된다. 긔룬것 은 다 님이라는것이다. 긔룬 은 그리움 과 길음 의 두 말의 의미를 합성한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만 해의 시는 군말의 군말을 이어갈 여지를 우리에게 남겨놓고있다고 볼 수 있다. 긔림은 봄비와 장미 같은 자연속에도 있고, 중생과 석가 같은 종교속에도 있고, 칸트의 철학 같은 사상속에도 있고, 이딸리 아와 마찌니와 같은 력사와 혁명속에도 있다. 더우기 인간은 그 어느 존재보다 누구에게나 나름대로 긔루는것이 있기때문이다. 님을 긔 린다는것은 랑만을 넘어 자기의 목숨까지 바칠수 있는것이다. 1920년-1930년대 조선의 문인들은 한결같이 님을 절규하였다. 소 월은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하 면서 님을 향해 절규하다 요절하였다. 육사는 흰말 타고 광야를 달 려오는 님을 긔리였다. 님이 되는데는 조건이 있다. 내가 님을 긔 룰뿐만아니라 님도 나를 긔리면 모두 님으로서 성립되기에 필요 충분한 조건이다. 그런데 소월의 시는 님을 절규하다 부정이 부정 으로 끝나고마는데 만해의 시는 부정을 통해 긍정에 이르고 그것 을 다시 부정함으로써 보다 큰 긍정으로 나아가게 하는 존재로서 부재( 不 在 )한 상태로만 존재한다. 식민지지배하에서 존재하지 않는 님은 조국이 존재함으로써만 드 러난다. 일제식민지현실속에 시인자신이 추구하고 민족이 갈망하는 진정한 조국(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부정) 그러나 현실의 관점에서 는 식민지조국을 어쩔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다. 일본제국주의와 싸워 조국의 해방으로 님을 만났다 하더라도(긍정) 그안에 품고있는 모순(례를 들면 분단과 같은)과 싸우기 위하여 님과 다시 리별하지 않으면 안된다(부정)는 론리가 이뤄진다. 이처럼 만해에게 있어서 님 이란 끊임없는 부정을 통하여 더 큰 긍정으로 나아가는 살아움직이 는 개념으로 식민지시대에만 국한된 고정불변한 개념은 아니다. 민족과 혁명이란 두 개념은 어떤 점에서 불가상용적개념이다. 그 런 두 대립되는 님을 한꺼번에 같이 가슴에 안고 산 혁명가가 있는 가 하면, 억눌린 민중의 해방만을 님으로 사랑한 혁명가들이 있는 가 하면, 민족의 해방만을 님으로 사랑한 혁명가도 있다. 마찌니는 1831년 이딸리아가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고있을 때에 청 년당을 만들어 외세로부터의 독립과 국가통일을 위한 운동을 전개 한 이딸리아민족주의의 화신이다. 그의 님은 민족과 그 민족의 해 방이였다. 그러나 남아메리카의 체 게바라의 님은 민족이 아니고 민 중과 계급만의 혁명이였다. 그래서 그는 아르헨띠나에서 태여나 꾸 바에 가 혁명을 성공시켰으나 볼리비아혁명을 위하여 투쟁하다 죽었 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서 마찌니 같은 민족이란 님은 없었다. 그 의 님은 민중이요, 혁명이였다. 체 게바라가 사랑한 꾸바 체 게바라(Che Guevara, )는 아르헨띠 나에서 태여났다. 원래 이름은 에르네스또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 르나(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 문화어: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이다. 그가 남긴 주옥같은 시어들은 그가 긔린 님이 무엇 인지 그리고 그 님을 그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림같이 전한다. 꾸바 나는/ 꾸바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것을/ 만져보고싶었고/ 모든것을/ 느끼고싶었고/ 그리고/ 모든것을 알고싶었다

93 (18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85) 사랑 민중에 대한 사랑 인류에 대한 사랑 정의감 그리고 인간에 대한 관대함없이는 진정한 혁명가가 될수 없다 참된 삶 북아메리카의 백만장자가/ 되는것보다는/ 차라리/ 문맹의 인디안 이/ 되는것이 낫다 유언 난/ 지금/ 혁명의 불멸성을/ 생각하고있다 혁명은 결코 혁명으로부터 시작하는것이 아니다. 사랑할줄 알고 춤출줄 알고 자연속에서 자기를 잃을줄도 아는 인간만이 진정한 혁 명가가 될수 있다. 세상을 싫어하고 인간을 기피하는 염세주의자가 혁명가가 되였다는 얘기는 없다. 젊은 남아메리카의 혁명가 체 게 바라는 의학도로서 원래 새로운것을 찾아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랑만적인 려행가였다고 그의 자서전에서 말하고있다. 모터찌클을 타 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놀기 좋아하던, 바람기마저 있던 풍류객같 은 인물이 체 게바라였다고 그의 친구들은 그를 회고하고있다. 그 의 바람기, 그것이 바로 혁명의 불씨일것이다. 자서전 첫장에 있는 첫 려행을 하던 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애 초에는 코르도바지방의 두세곳만 돌아보려 했다. 그런데 어쩌다가 싼띠아고와 투쿠마, 카타마르카, 라 리오자, 싼 후안, 멘도자, 싼 루시스, 부에노스아이레스, 미라마르까지 가보자는 충동적인 시도 로 발전하게 되였다(자서전 28)고 쓰고있다. 그가 첫 려행을 떠날 시기의 나이는 23살이였다. 이 려행은 그가 누구를 만나기 위해 어 느곳을 특별히 가고싶어서 떠난 려행은 아니였다. 그의 표현대로 하 면 자서전 첫장의 제목그대로 충동적인 시도 에 불과했다. 이 첫 려행은 체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떠나 넓은 세계를 향해 떠나가 는 첫 충동적려행이였다. 오토바이를 타는 재미 그리고 처음 보는 남아메리카의 아름다 운 자연환경에 처음에는 황홀했을것이다. 그의 친구 까를로스 페 레르 소리쟈(73살)에게 인디안처녀들의 아름다움으로 그가 동행하 기를 유혹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려행은 계속될수록 단순한 려 행이 아니고 목격자가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소리쟈의 기차 려행회고에 의하면 당시 호주머니에는 7 000페소정도가 전 재산 (당시 환률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지만 현재시세로 1 000US$가 채 안된 금액정도)이였고 가방에는 옷가지보다는 책이 더 많은 자 리를 차지하고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레띠로역을 떠난 우리는 볼리비아의 라빠스 에 머물다 뻬루와 에꽈도르로 들어갔다. 에꽈도르에 도착한 후 나 는 베네수엘라의 까라까스에 머물게 되였고 그는 과떼말라를 거쳐 메히꼬로 건너가 라울 까스뜨로를 만나게 된다. 이것이 그의 인 생을 바꾼 려정이 된것이다.

94 (18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87) 려행자에서 목격자로, 배움의 천리길 주석이 1923년 3월에 걸은 배움의 천리길은 어떤 의미에 서 성년식과 같았다. 김주석의 아버지 김형직선생은 조국의 현실을 알아야 한다고 12살 어린 자제를 천리길을 걷게 한다. 이것을 두고 배움의 천리길 이라 하여 금년에는 이에 대한 기념우표까지 발행되였다. 중국 팔도구를 떠나 압록강을 건너 조선의 포평에서부터 고향 만 경대까지의 천리길을 걸으면서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 조선인민들이 겪고있는 비참한 처지에 대한 생활체험을 한다. 북의 청소년학생들 은 해마다 3월이면 수천명규모의 배움의 천리길답사행군대를 조직하 여 천리길로정을 밟고있다. 어린 김주석의 진정한 배움은 목적지 고향에서 있었던것이 아니 고 천리길을 걷는 이 과정속에 있었다. 혁명도 결국 끝없이 진행되 는 과정이 아닐가? 그러나 우리는 혁명의 결과를 늘 기대하고 실망 하기도 기뻐하기도 하지 않는가? 체 게바라가 집을 떠난 모터찌클려행은 이에 비하면 훨씬 랑만적 이였다. 그러나 랑만으로 시작한 려행이 점점 현실로 변한다. 같이 려행한 그의 친구의 말에 의하면 그라나도와 함께 한 모터찌클려 행이 젊음을 발산하는 랑만적인 려행길이였다면 우리의 기차려행은 중남아메리카빈민들 특히 토착원주민들과 호흡을 함께 하며 고단 한 그들의 삶을 직접 체험하는 경험이였다. 랑만적인 청년 체를 혁 명가로 변신하게 만든 려행이였다는 말이다. 체의 일생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할수 있다. 그의 유년기는 랑만적인 젊은이들의 삶의 표상이라고 한다면 그의 꾸바투쟁은 혁 명가로서 승리자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볼리비아투쟁은 비록 실 패했지만 20세기 저항의 상징으로 우리곁에 살아숨쉬고있다는것이 다. 그러나 주석의 경우는 10대 초반의 나이부터 혁명의 길 에 나섰으며 이와 같은 랑만은 없었다. 그 나이부터 고난의 행군 은 시작되였다. 체가 처음 목격한 대상은 작은 다리밑에서 지내는 떠돌이남자였 다. 이 남자는 차코지방에서 면화따는 일을 하다가 싼 후안으로 가 서 포도수확일을 할것이라는 남자였다. 체 게바라는 려행을 계속 할수록 이런 인간군상들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되였으며 그래서 그 의 려행은 그의 인생교육장이 되였다. 수렁속에 빠져사는 민중들의 바다를 지나면서 그는 드디여 26살때에는 제국주의자와 싸우기 위 해 과떼말라에서 총을 들고말았다. 28살때에는 꾸바로 떠나는 혁 명가들의 배를 타게 하였다. 드디여 31살때에는 꾸바혁명을 성공 시킨다. 마침내 39살때에 볼리비아밀림에서 미제와 싸우다 전사한 다. 이러한 체를 싸르트르는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 이라 부 른다. 싸르트르의 이 말도 전세계혁명사를 다 읽지 못한 단견의 결 과가 아닐가? 주석과 호지명주석 마찌니와 체 게바라와는 달리 민족주의와 국제주의라는 두개의 님을 가지고 평생을 산 인물이 김성주소년, 주석이다. 주석은 진정한 공산주의자도 참다운 애국자이며 또 진정 한 민족주의자도 참다운 애국자라고 보는것은 나의 변함없는 신조 이다. (4권 462페지)라고 주장하고있다. 당시에나 지금이나 서로 불가상용적인 이 두개의 님을 하나의 님

95 (18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89) 으로 묶어낸것이라 할수 있다. 이밖에도 국제주의와 지역주의를 하 나로 엮어내여 주체를 세워나갔다. 주석의 독특한 종합주의 때문이라고 믿는다.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전편에 흐르고있는 기본틀은 이런 종합주의에 있다고 보는데서 크게 벗어나있지 않는 다고 생각한다. 나는 마오이즘 (Maoism)에 대하여 이를 키미 즘 Kim-i-sm(KIm Il Sung의 initial) 이라고 국제화해야 한 다고 본다. 키미즘이 마오이즘보다 우월함은 1970년대 일부 학자들 에 의하여 연구발표된바도 있다.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 기회에 차 례로 소개하려 한다. 이러한 두개의 님을 동시에 긔룬 혁명가 주석을 가장 닮 은 혁명가는 윁남의 호지명주석이였다. 분명 호지명의 님은 윁남이 였다. 서양제국주의로부터 민족의 해방과 계급의 해방이란 두 님을 동시에 긔루었다는 점에서 조선의 주석과 닮은 점이 있다. 두사람은 운명적으로 반제, 반식민지투쟁에 생애를 바친 아시아의 대표적인 혁명가이다. (홍, 1997, 149) 호지명의 본명은 구엔 신 군 이다. 이라는 명함처럼 혁명이 붙여준 이름이다. 주석과 호지명주석은 일제와 미제 뿐만아니라 같은 공산국가들로부터도 자기 민족과 국가의 존엄성과 자주를 지키려 했었다. 외국군대의 남부윁남침입을 반대하고 윁남 문제는 윁남인스스로 결정, 해결해야 한다는 호지명의 투쟁은 조 선사람은 조선을 잊지 말아야 한다. 는 주석의 신념, 투쟁 을 닮았다고 볼수 있다. 이들의 님은 조국과 혁명이였다. 만고의 애국자는 누구인가를 꾸바의 까스뜨로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에 서로 고생한 후일담을 나눈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까스뜨로가 주석에게 유격활동 기간중 식량문제와 피복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느냐고 묻는다. 김주석의 고생담을 다 들은 까스뜨로는 탄복을 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고생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꾸바는 중국 동북지방이나 조선과는 달리 기후가 매우 더운 나 라입니다. 그리고 먹을것도 많습니다. 사령관부대가 항일유격활동을 한 북위 43 훨씬 상위지역 인 동만과 북만일대는 한해의 반이 동토로 변해버리는 곳이다. 주석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술회하고있다.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하여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친 사람 들만이 조국이 얼마나 귀중하고 조국에로 다시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하고 시련에 찬 길인가를 진정 뼈에 사무치게 느낀다고 말할수 있다. (3권의 머리글) 나는 한평생 민족의 존엄을 위하여 싸워왔다. 나의 일생은 민 족의 존엄과 자주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력사였다고 말할수 있다. 우리 민족을 해치거나 우리 나라의 자주권을 건드리는 놈들을 나 는 한번도 용서하지 않았다. (4권 115페지) 남아메리카는, 그리고 호지명이 싸운 윁남의 경우는 자연환경자체 가 혁명가들로 하여금 추위와 배고픔으로 시달리게 하지는 않았기때 문에 까스뜨로가 그렇게 말한것이다. 체는 미국이라는 제국주의와 의 싸움 그리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세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 데 투쟁을 했기때문에 상대적으로 그의 이름도 쉽게, 빠르게 국제

96 (19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91) 적이 될수 있었을것이다. 체를 두고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 이 라 한것도 그의 투쟁 전 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나있었기때문이다. 력사가들은 꾸바혁명의 성공은 쟝글과 도시의 결합이라고 했다. 체 게바라가 뉴욕 타임스 기자를 유격구아지트로 불러 기자회 견을 두번이나 한것은 꾸바 국내와 전세계에 혁명을 확산시키는데 기여하였다. 1950년말 세계의 이목은 꾸바에 집중돼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 다. 그리고 꾸바 국내여론을 사로잡는데 언론이 큰 역할을 했었다. 그리고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어내는데 3~4년이면 족했다. 그러나 사령관이 이끄는 항일유격대는 외로운 투쟁을 하였 다. 추위와 배고픔은 말할것도 없고 심지어는 같은 공산권들로부 터도 아무런 지원이 없는, 그리고 세계의 주목도 받지 못하는 동 북아 밀림과 황야에서 15년이란 그렇게 긴 세월을 싸워 살아남은 것이다. 홀로코스트 만 하더라도 유태인의 그것은 잘 포장되여 세상에 널리 알려져 동정도 받고있지만 우리는 고난의 력사마저 차별을 받 고있다. 위안부문제만 하더라도 이제야 겨우 국제적으로 알려지고 인정을 받아가고있는 실정이 아닌가? 이에 세계사의 한장에 진실을 남겨놓기 위해서라도 주석의 한생이 장백산 줄기줄기마다, 압록강 굽이굽이마다에 그와 그의 유격대가 흘린 피가 묻어있는 곳을 찾아 확인하고 세계혁명사를 다 시 써야 할것이다. 과연 만고의 애국자 가 누구인지를 알려야 할 것이다. 지금 체 게바라는 완전히 세계혁명사의 하나의 브랜드가 되였다. 상품화가 되여 그의 얼굴이 있는 티샤쯔판매수입만 하여도 엄청날 것이다. 우리도 리념을 진정으로 초월한다면 우리의 혁명예술의 결정판 아리랑 공연을 국제적으로 브랜드화시켜야 할것이다. 체 게바라 서거 40주기행사는 국제적이 되였다. 나는 회고록을 읽으면서 공비 란 말이 일제가 만들어붙인 이 름이란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아무리 항일유격대가 눈에 가시같더라도 일본놈들이 붙인 이름만은 사용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을가? 이는 량식있는 사람들 의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혁명은 영원히 긔리는것으로 남을지도? 글을 맺으며 달빛속 볼리비아의 산골짝 어느 감자밭과 함께 왜 이 렇게 만강이 영화의 한 장면같이 가슴을 처연하게 하는것일가? 지금도 철이 되면 감자꽃은 피고지건만 이 두 혁명가들이 그리 던 세상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청춘도 삶도 다 버리고 사랑했던것은 무엇이였는지? 그들은 과연 누구를 위하여 무엇때문 에 혁명을 했는지? 혁명이란 영원히 긔리는것이 아닐지? 혁명의 진 정성은 혁명가가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이 혁명가를 사랑하는, 그래 서 서로 긔리는 정념이 남아있는 한 성공한 혁명이라고 정의할수 있지 않을가 한다.

97 (19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9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룡비어천가와 명비어천가 룡이 하늘에서 내리샤 가 룡비어천가의 첫 구절인것은 누구나 다 안다. 룡비어천가 는 리성계의 건국을 하늘에서 룡이 내린것 에 비유하여 나라의 정통성을 확고히 굳히기 위하여 세종대에 쓰인 것이다. 그래도 3대나 지나서 나온 글이다. 그러나 리명박 대통령 의 당선과 동시에 명비어천가 란 신조 어가 나돌았다. 좌파정권청산 그리고 잃어버린 10년 을 다시 찾은 기분이였으니 가히 당선과 동시에 룡비어천가를 쓰는 기분이 였을것은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남 한 의 력대 대통령 들은 리명박뿐만아니라 당선이 되기가 바쁘게 자기자신으로부터 나라가 새로 건국되는듯이 룡비어천가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룡비어천가를 쓰네 라는 류행어까지 나 돌 정도이다. 우에서 좌로 바뀔 때 김대중 대통령 은 제2의 건 국 이라고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를 두고 강준만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는 원조경쟁 이라 하 면서 한국사회의 독특한 풍경이라 할 치렬한 <원조( 元 祖 )>경쟁 은 비단 음식점들사이에서만 벌어지는건 아니다. 지도자들사이에서 도 벌어진다. 자신이 새시대를 여는 원조로 기록되고싶어하는 지도 자들의 야망경쟁은 한국정치의 익숙한 모습이다. <문민정부>, <국 민의 정부>, <참여정부>, <실용정부>라는 딱지가 바로 그런 야망을 웅변해준다. ( 한국일보 2008년 2월 20일부)고 하였다. 이어지는 글에서 강교수는 지도자의 이런 심리상태를 원조콤플 렉스 라 한다. 우리 지도자들의 <원조콤플렉스>는 과거와 단절의 자세를 취함으로써 이전 정부들의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으면서 모든걸 정치화하려는 특성이 있다. 바로 이게 성공을 어렵 게 만드는 주요리유다. 뭐든지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의욕은 과거를 부정하면서 기존질서를 때려부시는걸로 시작한다. (같은 글) 원조콤플렉스 란 외래어를 쓸 필요없이 원조병( 元 祖 病 ) 혹 은 원조걸신병( 乞 神 病 ) 이라고 하면 된다. 그러고보면 원조병은 보수뿐만아니라 진보에도 다 걸린 병이다. 진보와 보수간 정권이 바 뀌는것을 한 나라안의 정권차원의 변화가 아니고 나라정체성이 완 전히 바뀌는 정도라고까지 생각하는것 같다. 누군가 권력만 잡으면 스스로 단군이나 되는것처럼 자처해 건국의 아버지가 되려 한다. 진보든 보수든 이런 증상을 비슷하게 보인다는것은 어딘가에 근본 적인 문제가 있기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강교수의 글은 이 근 본적인 원인을 진단해내는데는 실패했다고 본다. 즉 강교수는 어떤 정부가 들어서느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과 가 문의 영광이 좌우되는, 수천에서 수만에 이르는 엘리트가 사는 나 라 가 한국 이고 이런 나라이고보면 서로 자기가 원조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것이다. 강교수는 원조병을 지도자의 권력야망에 돌 리기까지 한다. 즉 원조콤플렉스 가 나쁜건 아니다. 야망이 없 었다면 어찌 지도자의 자리에 오를수 있었겠는가. 중요한것은 야망 을 옳은 방향으로 발휘하는 지혜이지 야망자체는 탓할게 못된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한국 의 원조병은 지도자 개인의 권력욕이나 인생과 나

98 (19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95) 아가 가문의 영광이상의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이는 나라가 성립하 는 건국의 단서와도 관계가 있는, 그래서 이 원조병의 진상을 파악 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론리적인 분석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다 시말해 원조병은 콤플렉스라는 한갖 개인적심리증상이상이라는것 이다. 그래서 필자는 원조병의 원인이 건국이라는 론리에 있다는데 서 다음과 같이 진단해보려 한다. 다산의 원정 과 알랭 바디우의 집합론 정다산은 원정( 原 政 ) 에서 조선조말 같은 삼정의 문란, 관료들 의 가렴주구 등 같은 현상을 바로 보고 한 나라가 어쩌면 이렇게 될수도 있을가 회의하면서 도대체 나라가 어떻게 밑바닥에서 성립하 는가를 보기 위해 원정 을 썼다. 지금 읽어도 왕조시대에 어떻게 이런 글을 쓸수 있었는지 실로 대담한 글이라 아니할수 없다. 다산에 의하면 자고로 한 나라란 임금부터 있고 나라부터 있어 생긴것이 아니고, 인간들이 흩어져 살다 모여 촌락을 만들고 촌락 을 운영하는데 불편한것이 생기니 촌장을 뽑고, 범죄자가 생기니 그 촌장이 나서서 시비를 가리다보니 법이 생겨 이렇게 연장되여 나라 가 되였다는것이다. 원정 의 기본정신은 백성으로부터 백성이 주 인이 되여 백성에 의한것이 나라가 세워지는 리유라는데 있다. 우리는 일제에 의하여 이런 조선 이라는 나라가 완전히 없어지 고 그것을 다시 찾아 건국을 하려고 했을 때는 사실상 다산의 이러 한 원정 의 정신에 의하여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나라다운 나라를 세울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것이다. 대승적으로 보았을 때 이를 두 고 위기는 곧 기회라 하는것이다. 봉건잔재를 청산하고, 수천년 때 묻은 계급을 타파하고,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 힘으로 자주적인 나 라를 세웠더라면 이것이 진정한 건국이지 않았을가 한다. 우리 한번 다산의 이러한 국가관을 현대프랑스정치철학자 알랭 바 디우의 수학적존재론에 립각하여 재검토해보자. 알랭 바디우는 수학의 집합론을 리용하여 백성들을 구성요원 혹 은 요소(element) 로 보았을 때에 이런 구성요소들은 집합에 귀속(belonging)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1차적인 요소들의 귀속에 의하여 만들어진것을 상황(situation) 이라고 한다. 학 생이라는 구성요소들은 학급 을 만들고 이때에 학급은 요소가 아니고 부분(part) 이라고 한다. 그런데 부분은 학교라는 집합 에 귀속한다고 하지 않고 포함(inclusion)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부분들이 포함되는것은 상황에 대해 상황의 상태(state of situation) 라고 한다. 이런 몇가지 중학생정도의 집합론적용어만 으로도 우리는 그의 정치관을 충분히 리해할수 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해두면 현대의 국가는 상황이 아니고 상황의 상 태라는것이다. 국가의 지도자는 상황의 구성요원들 즉 국민들에 의 해 선출되지만 국가가 경영하는것은 부분들이지 요소가 아니다. 아 니, 국가는 자기를 선출해준 구성요원들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존 재로 돌변한다. 여기에 상황과 상황의 상태사이에 긴장관계가 발 생하고 상황의 요원들인 인민, 국민, 민중들이 볼 때 국가는 더이 상 친근한 존재가 아니다. 요소들로부터 권력이 나오는데 요소들 이 오히려 착취와 억압을 당하는 이러한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그 것은 모두 집합론상의 론리적구조에서 불가피하다는것이 바디우의 주장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요소와 부분 그리고 귀속과 포함을 구분하는 것 그리고 나아가 그들간의 관계를 파악하는것은 너무도 중요하고 국가라는 개념을 만드는데 신기원을 만들수 있을것이다. 이러한 구

99 (19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97) 분을 하는데서 바디우의 정치철학이 각광을 받고 주목을 받는 리 유가 있다. 아직 살아있는 프랑스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2008년 남쪽에서 열 리는 세계철학자대회(7월 30일-8월 5일)에 주제강연자로 되여있다. 그는 지금 탈현대이후 서양철학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인물이다. 그 가 영미분석철학과 현상학 그리고 탈현대의 제 철학을 모두 종합할 수 있는 대안의 철학자로 부상하는 리유는 그가 단단한 수학적기반 우에 철학을 전개하고있기때문이다. 그는 한때 마오이스트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도 초기사상에서 는 상황의 상태를 억압구조로 보고 이를 제거의 대상으로 겨냥, 마 오이스트가 되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러면 왜? 원정 에 서 보는바와 같이 상황으로 되돌아가 건국을 하려는 이 정치적본 능, 이것이 맑스주의국가관이였으나 바디우는 상황과 상황의 상태 는 불가분리적이며 그래서 긴장관계라 보고 맑스주의같이 상황에서 상황의 상태를 분리시키는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것이다. 그가 맑스 주의와 결별하는 리유이다. 일반선거와 당원선거를 분리하는 리유 우선 해방이후 건국 이라는 화두에 이 집합론의 간단한 개념 들을 적용해보고 원조걸신병의 원인을 진단해내자. 서양에서 국 가(nation 혹은 state) 라는것이 처음 생긴것은 프랑스혁명이후부 터라는데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 왜 하필이면 프랑스 혁명후부터인가? 이것은 수학적인 질문이다. 다시말해 집합론적질 문이다. 그 리유는 프랑스혁명이후에 처음으로 시민사회가 생겼고 이 시민 사회란 혁명이전에는 구성요소로 있던 개인들이 하나의 집합을 만들 어 시민단체가 생겨났고 이것이 발전하여 정당이 된다는것, 이는 집 합론적으로 보아 요소가 모여 부분이 되였다는것을 의미하며 그리 고 국가는 다름아닌 이런 부분들의 집합(set of parts) 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의 국가는 정당을 전제하고 정당의 대표에 의한 의회정치를 전제한다. 이런 국가관이 지금까지 유효한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봉건시대의 개인이란 구성요소가 집합을 만들 었으며 이는 곧 더이상 요소가 아니고 부분이다. 정당이다, 단체 다 하는것이 바로 이런 부분에 해당한다는것이다. 여기서 리념 (idea) 이라는것이 부분을 만드는데 중심역할을 한다. 다시말해 혈연 그리고 지연에 의한 봉건시대의 집합은 리념에 의해 모인 집 합이 아니기때문에 이런 혈연, 지연에 의한 부분들의 집합을 두고 국가라 할수 없다는것이다. 이는 공동체와 사회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다시말해서 리념에 의하여 개인이 재구성되여 부분이 만들어지면 이 부분의 집 합이 바로 국가라는것이다. 프랑스혁명이후에 비로소 리념에 의한 부분이 만들어졌다는것이다. 집에서 개인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처 음으로 학급에 편승되였을 때 그리고 교복을 입었을 때의 기분 같은 것을 프랑스인들은 혁명이후 경험할수 있었다. 몇학년 몇반의 구성 요원들이 교복이란 유니폼을 입고 부분으로서 학교에 포함되는것을 느끼게 되는것과도 같은 의식변화말이다. 개인이 요소에서 부분이 된다는것은 엄청난 의식의 변화이다. 귀 속하는 존재가 아니고 포함되는 존재라는것을 의식하는 순간 그 개 인은 국가를 위해 죽을수도 있다는 각오까지 하게 된다. 자기의 주 검이 있는 관우에 국기가 덮이고 애국가가 연주되는 순간 조국을 위해서 란 명예를 자랑스러워한다.

100 (19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99) 그렇다. 국가란 상황이 아니고 상황의 상태이다. 이것이 현대의 국가개념이다. 그런데 문제는 요소가 부분을 만들고 그 부분이 전 체집합에 포함이 된다면 이를 바디우는 정상(normal) 이라고 한 다. 그런데 귀속은 되나 포함이 안되는 경우나 포함은 되나 귀속 을 안하는 경우가 생긴다. 여기서 부분과 전체의 관계가 복잡해지 고 국가와 개인간의 조화도 갈등도 함께 증폭된다. 현대국가에서 상황과 상황의 상태간의 긴장관계는 지난번 대통 령선거 에서 후보를 경선하는 과정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여당과 야 당이 모두 당원대의원투표와 일반국민투표를 동시에 하였다. 박근혜 같은 경우 당원대의원선거에서는 이기고 일반선거에선 패배했다. 손 학규는 그 반대였다. 그럼 왜 이 두가지 방법을 같이 병행해야 하 는가이다. 그 리유는 현대국가란 상황과 상황의 상태란 이중구조로 되여있기때문이다. 다시말해서 국가의 지도자가 상황의 요소들로부 터(일반선거)와 상황의 상태(정당대의원)의 두곳에서 동시에 표를 얻어야 진정한 대표성을 갖기때문이라는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선과정의 선거제도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있다는 것은 상황과 상황의 상태의 긴장관계가 단순하지 않다는것을 단적 으로 보여주는것이다. 지금 미국대통령예비선거에서도 당원대의원선 거와 일반선거를 동시에 치르고있는것은 잘 알려져있다. 그리고 본 선에서도 직접선거와 선거인단선거를 병행한다. 현대국가개념에선 불 가피한 현상이다. 상황과 상황의 상태의 관계를 한눈에 일별해 리 해하기 위해 례를 든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정치공부하기 앞서 론리 학과 수학을 공부해야 할 리유가 있다. 한국 에 온 빌 게이츠가 미국의 미래는 수학과 과학교육에 달려있다고 하는 말에 귀기울여 들어야 하는 리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는 상황의 상태의 부분들을 포함하기때문에 상황속에 있는 개인 하나하나에 대하여 공권력의 이름으로 억압을 하고 통제수단 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들은 자기들의 국가의 권력은 자기들 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국가에 대하여 주장 하려 한다. 영국의 경험주의철학자 대비드 흄은 힘은 언제나 피 지배자인 민중에게 있지만 민중은 지배자에 종속한다. 고 했다. 민 중들이 투표를 해 지도자를 선출하지만 지도자는 언제나 민중을 탄압한다. 이에 대하여 촘스키는 지배받기를 거부하고 정의롭지 못한 행위 를 비난하는 민중과 그들을 부당하게 지배하려는 세력간의 갈등이 인류의 력사이다. 라고 했다.(촘스키, 129) 맑스주의가 그렇게 국 가를 타도의 대상으로 본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촘스키 도 맑스주의도 수학에 무지했다. 레닌과 모택동도 림종순간까지 국가가 사라지지 않는데 대하여 그 비밀을 알지 못하고 궁금해하였다. 공산주의와 아나키스트가 다 른 점은 후자는 상황의 상태를 전적으로 부정하는데 있다면 전자 는 국가대신에 당으로 이를 대치하려는데 있다. 부분이 당이며 그 이상은 구차한 혹같은 돌출적인것에 불과하다는것이다. 그러나 혹 떼려다 혹붙인다. 그 리유는 상황의 상태는 제거의 대상이 아닌 불 가피한것이라는것이 바디우의 답이다. 그럼 해방후 우리 나라의 건 국은 정상적으로 되였는가? 원조병의 원조는 리승만이다 이런 리론적배경은 남북의 건국과정과 왜 남에서 원조걸신병이 생 기는지 그 리유를 잘 설명해낼수 있다. 답은 간단하다. 남은 상황 없이 상황의 상태로만 나라를 세웠다. 이 말은 인민이든, 국민이든,

101 (20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01) 백성이든 개개 구성원들의 의지도 힘도 반영 안된 리승만이 미국 에 앉아 사귄 친구들과의 외교적활동을 통해 끌어들인 유엔, 궁극 적으로는 미국의 힘으로 상황의 상태에서부터 건국을 한것이 대 한민국(Republic of Korea) 이라는것이다. 나라의 구성조건의 두 가지 즉 상황과 상황의 상태가운데 전자가 전적으로 결여된 건국 을 하였다는것이다. 바디우는 이런 상황이 없는 상황의 상태를 돌 출(excrescence) 이라고 했다. 물론 정당도 있었고 단체도 있었고 선거도 있었고 그것이 지금도 있 다. 그렇지만 이것은 모두 상황에 귀속한것으로 된 부분으로 된것이 아니고, 아니 이것이 전적으로 배제된 상황의 상태에서 나라가 세워졌 다는것이다. 건물로 말하면 기초가 없는 기둥과 지붕으로만 집이 만 들어진 격이다. 그래서 남 한 은 폴 틸리히란 신학자의 말대로 흔 들리는 터전(shaking foundation) 이다. 리승만의 방식은 일본에 의하여 잘 교육받은 인재들을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전 분야에서 풀가동하였고 이들 관료들의 공급을 받아 건국하는것이였다. 다시말해 상황의 상태의 전문 정객들(statesman) 이 세운 나라 가 대한민국 이다. 이들 정객들은 말그대로 상황의 인간들이 아 니고 상황의 상태의 인간들이란 뜻이다. 이런 정객들은 최고통치자 가 되는 순간 결여돼있는 상황으로 가 나라를 세우려는 콤플렉스 에 걸리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콤플렉스로 끝나고만다. 그렇게 하 기에는 이미 외세와 기득권자들의 장벽이 너무 크기때문이다. 혹같 은 돌출이 이젠 몸의 한 부분이 되여버렸기때문이다. 이것이 원조 병의 원인이고 그 원조병의 원조는 결국 리승만이다. 그러나 우리도 프랑스같이 상황의 요원들에 의해 부분이 만들어 지고 상황의 상태에 의한 나라를 세울수 있었던 기회가 없었던것은 아니다. 그 기회가 바로 동학농민혁명이였다. 이 혁명은 전국에 포 접을 만들고 집강소를 두어 당이나 시민단체형태의 부분을 만들어 나갈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고말았다. 해방이후 한국 정치인들이 걸린 원조병은 다름아닌 동학혁명이 놓친 상황으로 되돌아가 나라를 세우려는 무의식의 발로이상도 이 하도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봉준같이 피를 흘려야 하고 정치지 도자자신이 그 변혁의 한가운데 서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렇게 할만 한 용기도 의지도 없다. 원정을 동경은 하면서도 실현 할만 한 능력은 없었다. 그래서 원조병 이란 다산이 말하는 원정허증세( 原 政 虛 症 勢 ) 라고 할수 있다. 상황의 받침이 없는, 그래서 항상 그것에로 재귀하려는, 그러나 그렇게 할 능력이 없는 정치인들이 걸리는 전 형적인 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정치적원조병은 일종의 성병과 같 은 발기부전증(impotence) 에 해당하는 심각한 병증세이다. 이 런 병증상의 원조가 바로 리승만이다. 원조병의 원조자체가 리승만 이란 뜻이다. 이런 원조병은 우리 정치현실에 하나의 원죄와 같이 대를 이어 유전되고있다. 그러나 문제는 상황의 요원격들인 인민대중 혹은 민중들은 자기 들로부터 유리된 상황의 상태에 저항하고 청산의 대상으로 삼는다. 여기에 근본적인 남 한 사회의 갈등의 구조가 있는것이다. 그리고 리승만이후 그것이 좌파든 우파든 자기가 상황에서부터 시작한 원 조라고 자처하려 한다. 결국 리승만이 끼운 첫 단추에서부터 원조 콤플렉스가 시작된것이다. 그러나 어떤 대통령 도 자기들자신들 이 민중속에, 인민속에 들어와있지 않기때문에 콤플렉스는 콤플렉 스로 끝나고만다. 근본적인 원인을 모르기때문에 좌파는 우파에, 우파는 좌파에 실 패의 원인을 책임전가한다. 문민, 참여, 실용 등 아무리

102 (20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03) 이름을 붙인다고 하더라도 이름은 이름일뿐이다. 이름은 상황에 가 닿을 때에 그 진정성을 갖는데 이를 바디우는 충실성(fidelity) 이라고 한다. 상황과 상황의 상태의 련계성은 충실성으로 가능해 진다는것이다. 지역감정과 철새가 생기는 리유 이렇게 원정허증 으로서의 원조병의 후유증은 심각하다. 서구 식민주주의를 도입한지도 반세기가 넘는다. 그러나 정당정치도 의회 정치도 제대로 안되고있다. 지역감정만 독버섯같이 번지고 이 정당 에서 저 정당으로 오락가락하는 철새정치인들만 량산되고있다. 그 리유는 간단하다. 상황에서 리념을 같이하는 인간들이 모여 정당이란 부분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안되기때문이다. 안되는 리유는 바로 그 리념이란것으로 상황의 구성원들을 법적으로 구속 해놓고있기때문이다. 즉 반공 이란 틀을 전제해놓고 그속에 그 리고 그 한계내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리념이 생길수 없기때문에 정 당도 있을수 없다. 정당이 없는 곳에 지역감정에 의한 사이비집단 이 부분의 역할을 대신하고있다. 이렇게 변태적이고 비정상적인 부분들이 자생적으로 생길수밖에 없다. 소위 의회민주주의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란 이름으로 반세기이 상 지나오고있지만 한걸음도 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는 리유가 바로 여 기에 있다. 정당이 성립하지 않으니 정치인들이 있을수 없고 나라는 자기 생존을 위해 철따라 날아다니는 철새의 서식처가 되여버렸다. 이러한 분석과 함께 원조병의 기원과 리유와 유래는 분명해졌다. 바로 상황이 결여된 한국 에서는 누구든지 대통령 이 되는 순간 자기들의 무의식속에 리승만이 생략한 상황에 구성요원들이 귀속되는 그리고 자기가 거기에 귀속하는 그러한 나라를 세우고싶어한다. 한마 디로 말해서 인민과 대중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가 바로 자기자신이라 는 확신을 갖고싶어한다. 바로 이것이 원조병의 기원이라는것이다. 그럼 김구였다면? 그럼 리승만이 아닌 김구가 건국을 했더라면 하고 가정을 세워보 자.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사정은 별차이가 없었을것이다. 리승만 이 미국에 앉아서 상황의 상태에서부터 나라구상을 했다면 김구는 상해에서 독립군을 양성하고 무장소조를 통해 리봉창, 강우규 등 렬사들을 통해 일제의 요인암살 같은 테로의 방법으로 투쟁하였다. 그러나 그는 인민대중들을 묶어내여 현대국가의 전제가 되는 부 분들을 조직화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독립군들은 일제 말기가 가까 워오자 대중적기반이 없어서 존속기반마저 어렵게 되였다. 식량과 무기가 거의 바닥이 날 지경이였다. 그의 투쟁은 한번도 국내에 총 성을 울리지 못하였다. 그는 국민들의 추앙은 받았지만 인민대중속 에 깊은 뿌리를 내리지는 못하였다. 그렇다고 그는 리승만같이 전 승국인 미국과의 외교적연줄도 맺지 못하였다. 즉 그는 상황도 상 황의 상태도 갖추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가 지금 화페의 인물도안으로 추천받을만큼 국민의 숭 앙을 안고있는것은 무시할수 없다. 그는 상황의 유리한 고지를 가 지고있었지만 상황의 상태를 장악하고있는 리승만에게 그것은 차단 될수밖에 없었다. 즉 그의 대중적기반은 그 강한 의지와 열정에도 불구하고 조직화되여 정당으로 발전하여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김구가 나라를 세웠더라면 지금과 같이 원조병이 심각하지 는 않았을것은 분명하다.

103 (20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05) 주석이 세운 나라 DPRK는? 이렇게 건국의 론리적배경을 말하고나면 답은 간단하다. 다시말 해서 나라를 어떻게 상황과 상황의 상태가 하나로 일관성있게 련 관이 되는 방법으로 건국할수 있겠느냐. 이다. 우리는 이러한 론리 적배경과 함께 회고록 전권을 통해 상황과 상황의 상태라는 상관관 계적립장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 어떻게 건국되는지 고찰해보는것이 여러가지로 남과 비교가 되는것을 발견할수 있다. 혈연과 지연에 의한 공동체라는 부류를 타승하고 새로운 리념(설령 그것이 사회주의리념이라도)에 의한 부분집합이 만들어져가는 과정 을 상세하게 회고록을 통해 볼것이다. 1917년 김형직선생에 의한 조선국민회-1926년의 타도제국주의동 맹-1927년 공청-1932년 항일무장유격대 창건-1936년 조국광복회 창건-1946년 8월 29일 북조선로동당 창설-드디여 1948년 9월 9일 DPRK 창건 혹은 건국. 주석은 맑스와 같이 국가없는 공산주의를 생각하지 않았 다. 바디우와 같이 상황의 상태는 불가피한것으로 생각하였다. 개인 이 평등한 세상과 개인은 사회화되여 집단적이 되여야 한다고 생각 하여 우와 같이 끊임없이 조직을 만들어나갔다. 그것은 현대국가가 성립하기 위한 불가피한것이기때문이다. 공산주의와 민족과 국가는 얼마든지 병행할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조국광복회10대강령속에는 바로 상황과 상황의 상태의 련계성을 지적해놓고있으며 단위국가는 국제관계도 잘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항일혁명 20년을 이끌어올수 있었던것이 바로 인민대중들속에서 즉 상황속에서 고난의 행군을 하였기때문이다. 해방과 함께 살아 같이 돌아온 유격대원들이 로동당요직과 최고 인민회의 대표가 되여 상황의 상태를 만들었다. 상황에서 상황의 상태로 이어지는것은 바디우의 말을 빌리면 자연적이였다. 이것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의 론리적구조이다. 주체헌법 63조의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 여 라고 할 때에 이 조항에는 분명히 집합론적개념을 그대로 표현 하고있다. 상황과 상황의 상태의 련관성은 건국을 위해 필요한 조 건인 동시에 국가를 경영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이 말은 끊임없이 상황과 상황의 상태는 련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충실성만이 그렇게 한다. 이를 회고록에서는 지도자와 인민들사이에 반드시 있어야 할 신뢰와 사랑이라고 했다. 프랑스혁명의 자유, 평 등, 박애 같은것도 혁명이후 사건이 만들어져가기 위한 충실성이다. 그러나 바디우는 경고한다. 하나와 전체사이의 귀속과 포함의 문 제 그리고 요소와 부분의 관계성은 항상 우리를 비결정, 불완전, 무작위성으로 내몰고있다고. 혁명은 한번 하는것보다 그것을 계속 진행형으로 해나가는것이 더 어려운 리유는 바로 전체와 부분사이에 서 항상 이런것들이 기다리고있기때문이다. 라고. 그러나 인민과 지도자사이에 사랑과 신뢰가 있는 한 혁명은 영원할것이다. 라고. 결국 원조병이란 지도자와 인민대중사이에 신뢰와 사랑의 고리가 없을 때에 지도자는 항상 상황에서 원조를 확인하려 하지만 그렇게 할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서 생기는 발기부전증과 같은 병이라 할수 있다. 그러나 치료제가 없는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주체를 세우 는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 지도자가 리승만과 같이 외교로만 모 든것을 풀려고 하는것은 상황의 상태에서만 문제해결을 하려고 하 는 또 다른 부전증이라 할수밖에 없다.

104 (20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07) 락천가가 세운 나라 락관한다 1940년 봄 과 2007년 여름 지난해 북이 40여년만에 맞은 큰물피해속에서도 아리랑 공연은 그대로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건 좀 객기가 아닌가 하고 남 한 사 람들은 생각했을것이다. 지난번 수해때에 로무현 대통령 이 외유 를 했다가 호된 여론의 화살을 받은것을 기억할것이다. 이런 론리로 북을 보면 서로 북남은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있는 렬차와 같 아보인다. 수해는 비극 그리고 공연은 사치라고 생각하는 남의 론 리식대로라면 북을 도저히 리해하지 못할것이다. 그러나 항일 유격대원들은 가장 어려울 때에 아니, 그럴 때일수록 항상 연예공 연을 했다. 이렇게 역발상을 해야 북의 아리랑 공연강행을 바로 리해할수 있을것이다. 북의 이러한 남과는 다른 발상법을 우리는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8권 22장 2절 미래에 대한 락관 에 서 읽을수 있을것이다. 1940년 봄, 주석은 회고록에서 말이 났으니 말이지 그 해 봄에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시련을 겪었습니다. (8권 20페지)라 고 술회하고있다. 회고록에서 이런 표현을 쓰는것은 례외라고 할 수 있다. 여간 어려워도 어렵다 소리 안하는것이 주석의 생 활태도이고보면 그해 봄은 여간 어렵지 않았던것 같다. 그해 봄, 사령관과 유격대원들이 백두산동북부일대, 안도와 화룡부근 에서 유격활동을 벌리고있을 때이다. 제일 어려운것은 일제의 파 도식토벌 이였다. 수백명 혹은 수천명이 무리를 지어 마치 바다의 파도같이 사방에 서 덤벼드는 토벌 방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토벌대장 은 노 조에였으며 그는 여러차례 전투에서 항일유격대의 타격을 입 고 약이 오를대로 올라있었다. 주석은 그가 봉천과 통화에서 증원군을 긁어모아 쏘만국경의 국경수비대까지 합세시켜 항일유격 대에 대한 복수의 칼을 빼들고 덤벼들 때여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였다고 회고하고있다. 2007년 큰물피해속에서도 아리랑 공연을 강행하는 북을 리해 하기 위해서는 양초구란 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해보아야 할것이 다. 하도 배가 고파서 산과 들판에 나가 산나물을 뜯어 허기진 배 를 채우기 위해 강위룡소대장에게 전령병들이라도 데리고 나가 나물 을 뜯어오라고 하였다. 강위룡은 전령병 전문섭, 리을설 그리고 한 창봉을 데리고 산나물을 뜯으러 나갔다가 저녁늦게야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 이들 네명은 하루종일 나물을 한바구니도 채 못 뜯어왔다. 그런 데 그 사연이 이러하다. 전문섭과 리을설은 당시 나이어린 소년병 들이였다. 책임을 추궁당하자 이 어린 전령병들은 천진란만하게도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꽃향기가 진동하는데다가 폭신폭 신한 잔디밭을 보니 고향생각이 절로 나고 봄동산에서 즐겁게 뛰놀 던 어릴적 생각이 나서 저도 모르게 씨름으로 한나절을 보내게 되 였다는것이였습니다. (8권 23페지)라고 주석은 회고한다. 전문섭과 한창봉은 나이도 비슷하고 힘도 비슷하여 씨름을 하다 보니 승부가 나지 않아 하루해를 다 보내게 되였다는것이다. 부대의 식량이 어려울 때에 산나물해오라고 보낸 대원들이 씨름

105 (20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09) 으로 시간을 다 보냈다고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였다. 물 론 임무를 소홀히 한 이들 네 부하들에게 면피는 줄수 없었다. 평 소에 남달리 임무수행을 철저히 해온 이들이 오늘따라 상상밖의 행 동을 한데 대하여 사령관은 엄히 꾸중을 하였다. 그러나 그날 밤 사령관은 잠자리에 누워 네사람들의 얼굴 들과 나물바구니를 생각하며 이 험한 판국에서도 우리 대원들 이 비관을 모르고 배포유하게 씨름까지 해가며 락천적으로 살아가 는구나 하는 깊은 생각을 하게 되고 흐뭇한 웃음이 저절로 피여오 르는것이였습니다. (8권 24페지)라고 그때를 회고하고있다. 이들은 해방후 주석과 함께 돌아와 해방정국 북의 건국, 건군에서 핵심이 되였다. 지금은 80고령이 되였을 그들의 당시 나 이는 10대 초반이였다. 비관주의만큼 무서운 적은 없다; 혁명가의 3대특질은? 1937년 중일전쟁이후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제는 동양천지는 모두 일제의 마수에 다 삼키운다고 애국지사들 심지어는 열혈동지들마저 자포자기하고 비관주의에 빠진다. 국내의 최남선과 윤치호 같은 지 사문인들이 변절한것도 바로 이무렵이다. 주석주변의 ㅌ.ㄷ 의 동지들중 심지어는 카륜회의에서 피로 맺은 동지들속에서도 배 신자, 변절자가 나왔다. 특히 림수산 같은 인물이 투항하여 토 벌대 의 앞잡이로 돌아다니면서 유격대의 위치를 찾아내주고있는 실정이였다. 이것은 식량난보다 유격대를 더 어렵게 하는것이였다. 간도에서는 조선인들로 된 토벌대 를 만들었으며 남에서 국방 군 창군의 핵심인물인 김석원 등이 토벌대 의 선봉장으로 설치 고있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공격으로 전쟁이 남양군도까지 확산되 고 일본이 후방으로부터 군수물자조달 등 전선확대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있을 때가 1940년대초이다. 일제가 단말마적으로 동 북아의 항일유격대에 달려들 때이다. 이를 보고 비관주의자들은 이 젠 일본세상이 다되였다고 생각하고 유격대를 리탈하기 시작한다. 주석은 우리 대오에서 도주한자들을 보면 례외없이 미래 에 대한 신념을 잃어버린 비관주의자들이였습니다. (8권 30페지), 그래서 1940년대는 우리 대오에서 혁명적랑만과 락관주의가 무엇 보다도 소중한 때였습니다. 라며 항일유격대원의 3대특질은 신념, 의지, 락관이라고 정의한다. 평양을 방문한 외신기자들이 언제인가 주석께서 80에 50대 의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장수의 비결은 락 천적으로 사는데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는 북이 생존하는 비 결이 바로 이 말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을 알았 으면 용공 하는자들도 북의 이 특질을 알고 용공 을 할것이며 반공 하는자들도 이 특질을 알고 반공 을 해야 할것이다. 북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알고나 찬성도 반대도 하라는것이다. 외부에서 볼 때 북을 그저 빈곤국가 로, 불행한 나라 로 단정하지 말고 정말 그런지는 안으로 들어가서 보아야 진실을 알게 될것이다. 주석은 평소에 이렇게 자신을 타고난 락천가라고 했지만 이 말을 두고 그것이 개인성품으로만 리해한다면 큰 오산이다. 김주석의 락천주의는 리성적판단에 근거한것이란 사실을 알아야 할것이다. 일본은 반드시 망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있었던것은 물론이다. 이런 신념이 없었더라면 초기유격대활동기간의 라자구등 판우에서 꿈을 접고말았을것이다. 이제 남은 대원들은 수십명에 불

106 (21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11) 과, 촉한으로 신음하며 눈덮인 설령을 넘을 때 그들의 창자속에는 풀뿌리, 나무껍질 하나 없었다. 그때에도 김주석과 동지들은 일본 은 반드시 망한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1937년 중일전쟁을 두고도 주석은 일본이 망하는 전주곡을 보았지 최남선 등과 같이 일본세상이 되는것으로 판단하지 않았었 다. 일본이 왜 망하는가? 일본이 이렇게 전선을 확대할 때에 후방으 로부터 보급물자가 조달이 안될것이고 이러한 수순은 도이췰란드가 쏘련을 침공할 때에도 세계전쟁사 어디서도 쉽게 찾아볼수 있는 사 례들이다. 과연 이러한 락관론은 그대로 적중, 중일전쟁후 10년이 채 못되여 일본은 망하고말았다. 리광수와 최남선의 비관론이 틀린것이 였다. 적보다 우리안의 비관주의자들을 경계해야 할 리유가 바로 여 기에 있다. 사실 비관주의는 지독한 리기주의 혹은 편의주의와 련관 이 되여있기때문에 언제나 대렬에서 리탈할 우려가 있는것이다. 주석은 일본이 승승장구하는 순간이 바로 일본이 스스로 족쇄를 차는 순간으로 사리판단을 한다. 이런 사리판단을 하는 주 인공이 락관주의자가 되는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김주석 의 락관주의는 타고나기도 타고났지만 현명한 상황판단에 근거한 과 학적인것이였다. 이는 주석자신이 그렇게 자신의 락관주의를 설명한것이다. 회고록에서 그렇게 증언하고있다. 얼간이같은 배웠다 는 당시 지식인분자들의 배신과 배반은 모두 사리판단을 제대로 못 한데 근거한것이다. 이런 지식은 무지보다 더 해악적인것이다. 사회주의건설 반세기가 지나가는 지금 사회주의는 실패했다고 비 관하는자들도 있다. 그러나 반세기전과 똑같이 지금 북은 자본주 의가 갈데까지 다 갔다고,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사회주의가 성공 할 날이 다가왔다고 락관한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여 승승장 구 바그다드를 점령할 때에 이제 세계가 미국의 단극체제로 가는 것이 아닌가 우려했었다. 그러나 이카루스같이 고공비행을 하던 미 국의 다크호스 미싸일은 지금 사방에서 날개가 꺾이고있다. 미 국은 망한다, 반드시 망한다고 보는것이 지금 락관주의자들이 보 는 견해이다. 락천주의는 문예활동이 지탱시켜준다 이런 락천주의를 지탱시켜주는것은 문과 예 즉 문예( 文 藝 ) 라 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2007년 대수해에도 불구하고 아리랑 공 연을 진행하는 진정한 리유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재난의 시기에 공연 같은것을 하다니가 아니고 그렇기때문에 더욱 해야 한다는것이 북과 남의 다른 론리인것이다. 그것은 객관을 바라보는 락관주의와 인간의 주관적락천주의야말로 인간이 역경을 이길수 있는 길이라고 북은 생각한다는것이다.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대원들에 대한 신념교양, 락관주의교양에서 중요한 수단으 로 된것은 문예활동이였습니다. 혁명적인 문화오락을 떠나서는 항 일유격대의 생활을 론할수가 없고 혁명적인 노래와 춤을 떠나서 는 조선인민혁명군이 걸어온 승리의 로정에 대해 말할수가 없습 니다. (8권 33페지) 북을 방문하면 군데군데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 으로! 란 구호를 볼수 있다. 여기서 유격대식이란 그것이 결코 전 투적인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것이다. 이를 보고 온 남 측 사람들이 북의 호전성 을 흉보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나는 유격대식이란 어느 절박하고 험난한 순간에도 락천성을 잃지 않는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유격대식이라고 정의하

107 (21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13) 고싶다. 악은 반드시 망하고 선은 반드시 승리하고말것이라는 신념 과 확신에 근거한 락천주의말이다. 비관주의는 결국 인간력사의 선이 승리할것이라는 확신의 부족에서 나오는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치스치하의 안나의 일기 마지막구 절 나는 인간의 선함을 믿는다. 야말로 락천의 정의이다. 락천 ( 樂 天 ) 이란 말그대로 하늘의 선함을 믿는 확신에서 나온 즐거움이 다. 이런 락천은 오랜 고난의 경험을 통해 얻을수 있는 선물이다. 피바다 는 사령관이 행군도중 쉬는 시간을 리용해 직접 쓴것이다. 김주석은 길림육문중학교에 다닐 때에 상월선생으로부터 문학을 배웠으며 그의 서가에 있던 문학서적들을 거의 빌려 읽었다 고 한다. 그리고 세월만 잘 만났으면 문학을 공부했을것이라고 술회 하고있다. 문학에 대한 조예와 관심은 생의 마지막날까지 이어진다. 사령관이 피바다 를 쓴 동기가운데 하나가 리광수의 혁 명가의 안해 를 읽고 이는 혁명에 대한 모독이요, 인간의 본성을 비관주의로 바라보는 잘못된 소설이라 보았기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남 한 문인들은 순수문학 운운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사령관의 이러한 문예에 대한 조예는 끊임없는 독 서에서 나온것이다. 1940년 5.1절을 개구리고기로 끼니를 이어도 사령관은 독립 이 되면 평양에 가서 숭어국도 먹고 랭면도 한그릇씩 먹고 모란봉 에 올라가 대동강구경을 하자고 부하동지들의 아픈 마음을 달랜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대부분의 부하들은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 고말았다. 그중 박길송은 최후의 순간 조국이여! 나는 그대를 자 랑한다. 공산주의! 이것은 바로 세계의 청춘이다. 조국의 광 명한 미래를 키워내는 요람이다. 우리는 이것을 너무나 똑똑히 알고 있기때문에 이처럼 웃으면서 죽는다. 고 하였다. 그들은 영원한 청 춘을 살다 갔으며 그들은 죽음마저 락천적으로 받아들였다. 일제는 최희숙녀성유격대원의 두눈을 뽑아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 고 했다. 리계순은 단두대에 올라서면서 조국의 광복은 멀지 않아 온다. 고 락관적인 미래를 바라보았다. 특히 리제순은 서대문형무소에서 면회온 안해에게 세계지도를 가져 다 달라고 하였다. 사형수가 세계지도공부를 하다니. 아니다, 그 는 해방된 조국의 세계적판도를 그려보기 위해서였다. 스피노자는 래일 세계의 종말이 와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 는 경 구를 남겼고 해월 최시형은 수배자신세로 피해다니면서도 가는 곳 마다 과일나무를 심었다. 아침은 빛나라 영원까지 회고록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다. 세계에 이름난 군대도 많고 빨찌산도 많았지만 조선인민혁 명군만큼 혁명적랑만과 열정으로 약동하는 생기발랄하고 전도가 양양한 군대는 없었을것입니다. 역경을 웃음으로 다스리고 화를 복으로 전환시키는 사람들, 이 세상이 통채로 꺼져도 솟아날 구 멍이 있다고 믿는 락천가들의 집단이 바로 조선인민혁명군이였습 니다. (8권 24~25페지) 사령관은 사람됨됨을 그가 끝까지 싸움을 해나갈 인물인지 아닌지를, 성격이 락천적인지 아닌지로 판가름했다는것이다. 전문섭 도 외형을 보면 조용하고 얌전해보이지만 실상은 락천가라고 하였다. 안길을 특별히 총애한 리유도 그의 타고난 락천성때문이라고 한다. 요즘 환경론자들은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너무 비관적으로 그려 내며 유토피아에 대하여 디스토피아(DISTOPIA) 라고 한다. 결

108 (21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15) 코 이들이 진정한 환경주의자들이 될것이라 믿지 않는다. 환경단체 들이 재벌이 집어주는 황금에 쉬이 넘어가는것도 그들의 비관주의 때문이다. 회고록은 도주자들, 변절자들을 보면 한결같이 상승할 때 그 기류를 타고 우연히 혁명대오에 뛰여들다가 고난이 중첩되고 정세가 불리해지자 옛다, 모르겠다, 혁명이고 뭐고 나만이라도 살고 보자 하고 달아나버린 의지박약자들이였다고 쓰고있다. 주석과 주석이 세운 나라의 사람들은 리념을 론하기 전에 락천가들이였다는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 김주석으로부터 배운 락 천성, 이것은 북의 힘의 원천이다. 이는 마치 삼손의 머리털과 같 다. 북의 힘은 미싸일도 핵도 아니요, 강고한 락천주의라는 사실을 알라. 큰물피해속에서도 아리랑 을 공연하는 락천성말이다. 혁명이란 사상의지나 규률만을 가지고 하는것이 아닙니다. 사 상의지, 도덕의리와 함께 랑만적인 감정정서를 가지고 하는것이 혁 명입니다. (8권 37페지) 회고록의 문구이다.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 하는 한 그들은 절망하 지 않을것이며 이런 나라의 미래는 락관해도 좋을것이다. 우리는 회고록을 통하여 한가지 역설을 공부하게 되였다. 인간이 역경일 때 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락관적이 될수 있다고. 내가 2004년 개천절 행사차 동명왕릉을 방문하고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앞에 도착했을 때에 시간은 저녁 5시경, 어디선가 울려퍼지는 브라스 밴드 장백 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고난의 행군을 이 한구절처럼 잘 그 려낼수도 있을가? 젊은 항일투사들은 역경속에서도 미래를 락관하 여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은금에 자원도 가득한 삼천리 아름다 운 내 조국 을 노래부를 그날을 그리며 웃으면서 영원으로 사라졌 다. 이 순간 역설은 차라리 숭고하기까지 하였다. 아직 회고록을 안 읽었다면 반드시 회고록을 읽으라 우의 제목에서 말하는 회고록 이란 주석의 회고록 세 기와 더불어(With the Century) 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이 글의 첫머리에서 회고록을 알게 된 경위에 대하여 그리고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하여 밝힌바 있다. 나는 이 회고록이 읽기가 금 지된, 그래서 읽는자에게는 보안법 이 적용되는지 안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는 인터네트에서 전문을 다운받을수도 있고 심지어는 영문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 은 특권상 회고록을 접하는것이 아무 문 제되지 않을것이다. 혹시 아직 회고록을 안 읽었다면 한번 읽길 간 곡히 부탁하는바이다. 그 리유는 다음과 같다. 인간관계에서도 서로 만났을 때에 상대방이 가장 궁극적으로 관 심을 가지고있는것을 리해해주고 인정을 해주는것만큼 대화의 분위 기를 좋게 하는것도 없을것이다. 북은 생각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 으로 하자는것이 거의 전부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우기 국방위원장은 조국광복의 서광이 비쳐오던 1942년에 항일무장투쟁의 본거지인 백두산에서 태여났으니 항일혁명의 총서 와도 같은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는 북의 지도자 들뿐만아니라 인민들의 필독서와도 같다. 나는 남쪽에서 통일운동

109 (21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17) 을 하는 사람은 물론이지만 특히 앞으로 북과 대화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반드시 회고록을 먼저 읽으라고 권하고싶다. 대통령 에게도 그가 이에 가장 대표적인 위치에 있기때문에 감 히 권고를 하는바이다. 그러나 혹시 이미 읽었다면 나의 사족같은 글이 무시되여도 좋다. 나는 2004년 문익환목사 방북기념행사가 중국 연변에서 개최되였 을 때에 북의 안경호선생일행들과의 아침식사때 식탁에 오른 쨩즈궈 즈가 화제가 되였고 이것은 주석이 손정도목사의 딸 손인실 에게 어릴 때에 사주었던것, 그리고 이 기록이 회고록 2권에 나온 다고 하여, 이 대화가 인연이 되여 회고록을 읽게 되였다고 했다. 내가 쨩즈궈즈에 관심을 갖게 된것은 내가 어릴 때 만주에서 먹던 추억때문이였다. 그후 미국 UCLA 챨스 영도서관에서 전 6권 책 을 구입했으며, 그리고 계승본 2권은 김현환목사를 통해 구해다 읽 게 되였다고 했다. 아마 주석의 회고록 하면 일부 사람들은 그 신빙성에 대하 여 먼저 거부감을 갖게 될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나는 대학 에서 은퇴한 후 회고록을 접하게 되였고 그리고 철학을 공부했으니 문헌에 대한 비판적사고와 그 론리적오유와 문장의 일관성에 대하여 서는 할만큼 하였다. 그리고 철학을 한다는것은 의심으로부터 시작 하기마련이다. 그래서 온갖 통로로 회고록에 대해 여러가지 방법으 로 검증해보았다. 그리고 연구를 깊이하여온 서대숙교수의 강의도 UCLA에서 청강을 통해 듣고.(2007년 가을학기) 항일유격활동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연변대 김성호 교수를 만나서 회고록을 검증해보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확신을 가 지고 이런 글을 쓴다. 주석의 항일혁명활동 20년은 지울수 없는 력사적사실이다. 그리고 선입견으로 자칫 개인자랑의 장광설을 늘어놓은것이 회고록 의 내용일것이라 생각할것이다. 그러나 세기와 더불어 는 그렇지 않다. 내용의 80%이상이 모두 지금 평양 대성산혁명렬사릉에 묻혀 있는 수많은 렬사들에 관한 회고 그리고 그들의 행적 하나하나에 대한 련민의 정들로 가득차있는것이 회고록의 주된 내용이다. 개인 우상화는 찾을 구석이 없다. 아니, 동지들에 대한 애틋한 신뢰와 사랑이 무엇인가를 한눈에 보여주고있다. 그래서 회고록을 읽어야 오늘 북이 지도자를 중심으로 철옹성같 이 뭉쳐있는것을 리해할수 있고 미국과 같은 강대국도 이 철옹성앞 에서는 백기를 들수밖에 없는 리유를 알게 될것이다. 1994년 7월이 후 세계는 북이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질것으로 진단했다. 그 러나 그러한 모든 예측이 빗나간 진정한 리유가 모두 회고록속에 담겨있다고 본다. 다시말해서 하다못해 북과 가슴튼 대화를 위해서는 물론이지만 반공 을 하려고 한다면 그러한 리유로도 회고록을 읽어야 한다 는 말이다. 이 방법이외의 모든것은 모두 헛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석의 진면모를 아는것이 두렵고 그래서 거짓으로 조작하고 엄페하려고 하는 방법은 반공 을 위해서도 용공 을 위해서도 모두 실용적이지 못하다. 비핵, 개방, 을 맹비난하는 리유는? 우선 리 대통령 과 직접 련관하여 례외적으로 취임이후 무려 2개 월여이상을 북이 침묵한 리유와 비핵, 개방, 에 대하여서 그렇게 강하게 반발한 리유도 모두 회고록을 읽으면 알수 있다. 우 리 민족끼리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것이 주석의

110 (21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19) 지론이였다. 북에서는 이를 두고 피의 교훈 이라고 한다. 김주석이 내놓은 련방제통일방안을 두고 대남적화 를 위한 수 단 혹은 속임수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적어도 련방제통일 방안을 내놓을즈음에는 남북이 이젠 서로의 체제와 리념을 인정하 고 공존해서 통일을 해나가야 한다는것이 불변하는 김주석의 정치 철학이였다고 본다. 적화통일 도 애국애족의 길이 아니라는것을 뼈저리게 느끼고있었다는것을 믿어도 좋다고 나는 확신한다. 회고록속에서 이미 주석은 량세봉 같은 극우사령과도 만 나려 했으며 그의 자녀들은 지금 북에 건재하다. 이 하나를 보아 서도 북은 당분간은 련방제로 하다가 어느 체제로 통일될것인가는 우리 후손들에게 맡기자는것이 주석의 생전생각이였다는것을 나는 믿어의심치 않는다. 량세봉사령이 주석과 손잡는것을 거 부했는데도 주석은 그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민족이란 어떤 리념이나 사상보다 우선이라는것이 김주석의 회고록 구석구석에 나타나있다. 애국애족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 누구도 만 날수 있고 하나가 될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그 사례를 다 렬거할 수 없는 내용들이 회고록에 실려있다. 그리고 주석의 이러한 평생지론은 지금도 북에서 그대로 유 효하다. 외세의존이야말로 가장 비실용적이고 우리 민족끼리 하나되 는 길이야말로 쓸데없는 군비경쟁을 줄이고 상호부강하는 그런 의 미에서 가장 실용적이라고 생각했다. 북이 가장 좋아하는 말과 싫어하는 말은? 그래서 회고록에는 주석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사대주의이다. 리 대통령 은 아마 부쉬미국대통령을 만났을 때에도 그가 가장 좋아하고 싫어하는것이 무엇이고 말인지는 사전 에 공부를 하였을것이다. 마찬가지로 북의 지도자를 만날 때에도 그렇게 해야 할것이다. 그런데 지난 선거기간동안에 내놓은 선거구 호 비핵, 개방, 은 모두가 민족자주에 어긋나는 사대주 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것이 북의 주장이다. 2008년 4월 1일 로동신문 론평문형식으로 내놓은 글에서 비핵, 개방, 에 대하여 조목조목 비판한 리유도 바로 그 내용속의 사대주의적 요소때문이다. 대선 기간동안 침묵한 리유는 한갖 선거공약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이였을것이다. 그러나 인수위기간동안 그리고 취임 2개월동안 이 말이 대통령 의 변하지 않는 주장이란것을 확인한 다음부터 태도가 일변한것 같고 앞으로 이러한 주장은 당분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만약에 리 대통령 이 회고록을 읽었더라면 이런 상대방이 싫어 할 말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아야 할것이다. 북이 가장 싫어하는 말 이 사대주의라면 가장 좋아하는 말은 자주이다. 그래서 앞으로 실 용외교를 하자면 반드시 자주를 강조해야 할것이다. 그래야 대화가 되기때문이다. 우리 민족끼리는 가장 실용적 김대중 전 대통령 은 남이 앞장서 북을 지원하지 않으면 북의 중국이나 로씨야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높아질것이라고 했다. 역설 하여 남이 어려울 때에 북이 도와주지 않으면 외세의존도는 같은 수준으로 높아지고말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번 한미정상회담 이 과거 어느때보다 이러한 수준을 높여놓은 회담이 아니였는지 우려

111 (22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21) 하지 않을수 없다. 이것은 민족장래의 비극가운데 비극이다. 실용주의 는 경제적인것도 있지만 력사적인것도 있다. 력사를 위한 실용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남북 어느 한쪽이 잘되 는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본다. 외세의존해 덕보는 실용주의 는 력사에 가장 위해적인것이다. 나는 그 어느쪽이든 동족에게 손을 내미는것은 가장 아름다운것 이고 가장 애국애족적인 행위라고 믿어의심치 않는다. 이것이 바로 회고록에 나타난 주석의 신념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절대로 핸들을 양보하지 않는다 부쉬가 골프장 카터운전을 대통령 에게 하라고 할 때에 무슨 생각을 했는가? 한번 미국이 자기들 주권을 포기하고 우리에게 그 들의 운명을 내맡기려는 상징적행위로 비유해 생각해보지는 않았는 지. 마치 내주는척 하는것으로 보지는 않았는지. 왜 미국이 농업주 권을 끝까지 지키려 하는지 그 리유를 한번 생각해보았는지. 과연 그들의 머리가 우리보다 모자라 우리 차를 수입하고 농축산물을 지 키려 했겠는가. 미국이란 나라는 건국이후 지금까지 자기 나라 국 익을 위해선 할짓, 못할짓을 다한 나라라는것을 생각한다면 진정으 로 운전대를 우리에게 넘겨주지는 않는다. 등소평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에 디즈니랜드에서 어린이장난감차 를 직접 운전하던 장면과 상징적으로 대조가 된다. 어린아이라도 장 난감차를 어른이 태워주는것보다 자기가 한번 핸들을 직접 잡아 운 전해보기를 원한다. 경제는 부의 축적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경제행 위의 주체가 되는것이 더 중요하기때문이다. 이것은 맑스주의의 지 론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에 부쉬의 행동은 얄밉기만 하다. 그 의 행동은 마치 인간의 이런 경제주체로서의 욕구를 리 대통령 에 게 채워주는척 하는 행위같이 보였기때문이다. 대통령 이 부쉬의 이런 속셈을 파악했을것인가. 리 대통령 이 부쉬를 만나기 전에 남북의 화해분위기를 조성해 놓고 나아가 국방위원장부터 만나고 갔더라면 협상력은 최고 조에 달했을것이다. 미국은 아마도 앞으로 우리 로동자들이 만든 제품을 수출하여 벌어온 돈을 결국 미싸일방어망 등 무기구입비로 다 빼앗아갈것이다. 마치 인디안보호구역의 인디안들에게 매월 생 활비를 주고 다시 다 빼앗아가듯이 말이다. 이것이 무슨 실용적인 가. 우리에게 주권을 주는척 하면서 결국은 다 앗아가는것이 과연 실용적일가. 진정한 CEO가 되는 길도 회고록속에 있다 모두에서 말한대로 리 대통령 이 회고록을 읽었다면 이러한 제 안이 부질없고 외람된것이겠지만 만약 지금이라도 읽지 않았다면 국 정의 최우선순위로 시간을 내여 필독을 권하는바이다.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는것은 물론이지만 더없이 훌륭한 CEO가 되기 위해서라 도 도움이 될것이라 보기때문이다. 회고록은 인간의 개인과 사회, 나아가 국가관, 아니 더 나아가 종교관 그리고 사후의 인간령혼의 문제까지 거론 안한것이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읽은 다음에 각료 들에게 모두 필독을 권하는것이 필요하다. 리념은 비록 달라도 반 드시 읽어 후회하지 않을 내용들로 가득차있기때문이다. 전 연희전문 백남운교수는 1937년 보천보전투소식을 듣고는 평생 겨울에도 랭방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항일유격대원들이 전사하였 을 때에 그들의 위속에는 산의 풀뿌리쪼각밖에 없었다고 한다. 눈

112 (22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23) 속을 행군할 때에는 신발이 없어서 맨발로 행군하는것이 다반사였 다고 한다. 회고록의 수많은 장과 절 그리고 단어 하나하나는 피로 얼룩져있다. 그들에게는 아직 일본이란 잊혀질 대상이 아니다. 남에서는 반일은 실용적이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북은 그 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은 북이 우리보다 잘살던 1960년 중반 일 본에 굴욕적인 국교정상화 를 하였다. 자주정신없는 영어교육은 비실용적이다 회고록을 읽은 다음부턴 나는 외식을 할 땐 값비싼것을 하고싶 지 않아졌다. 항일유격대원들의 그 고생앞에 머리숙여 숙연해질수밖 에 없었다. 애국애족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나름대로 생각하게 되였 다. 지금 영어몰입교육에 열중인데 학생들이 왜 영어를 배워야 하 는지 그 정신부터 심어주어야 할것이다. 만약 그것에 투철하면 당 국이 구태여 그렇게 장려하지 않아도 개인 하나하나가 영어에 몰 입할것이다. 년전에 북의 어느 한 대표단이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북의 청년 들의 영어발음과 문장구사력에 미국관리들도 우리 교포들도 혀를 차게 한적이 있다. 나는 그 이전에 북에서 과연 영어교육을 하고있 는지조차도 의심하고있었는데 말이다. 애국애족의 정신만을 주입하기에 몰입하면 언어는 그 다음에 따 르는 부차적인것에 불과할것이다. 시키지 않아도 외국어열풍이 일 어날것이다. 앞으로 재미교포학생 500명을 데리고 와 영어교사로 현장에 투입 할것이라 하는데 그러하기 전에 그들에게서 애국애족의 정신을 검 열하라. 공연히 조국에 와 사대주의바람이나 불어넣으면 이것은 안 하느니만 못할것이다. 왜 그럴가. 그동안 외국어를 구사하는 인물들이 무슨짓을 했는 지 보라. 외세의 앞잡이노릇이나 하고 자기 돈벌이수단으로나 영어 를 사용하지 않았는가. 지금도 한국 류학생들이 모여앉으면 누가 영어를 더 잘하느냐 자랑이나 하지 않는가. 그럴수록 모국어는 수치 스럽게 되여버린 이런 주인공이 영어를 잘해 무엇하는가. 지금 대 통령 은 앞으로 5년간의 첫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늦지 않았다. 인간의 자주성은 가장 경제적이다. 시켜도 인간스스로 행동하지 않 기때문에 제도와 법이 생기고 이것을 운용하는데 막대한 경제적손 실이 따른다. 이것은 실용이 아니다. 줄잇는 일본인 리순신추모객은 반면교사 매년 7월이면 일본에서 리순신추모객들이 거제도를 방문한다고 한 다. 아무리 적장이라도 리순신의 애국애족의 정신만은 본받을만 하 기때문이고 결국은 민족과 리념을 초월한 그 숭고한 정신은 바로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되기때문이라고 생각한것 아니겠는가? 일본 이 로일전쟁에서 승리한 비결이 리순신이 한산대첩에서 사용한 학익 진을 구사했기때문이란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적장의 위대성에서 배 우지 않는 장수는 졸장에 불과하다. 하물며 같은 민족 그리고 그것도 우리 민족사에 최대의 피해를 준 일본에 대항하여 항일투쟁을 한 주석의 생애를 깡그리 무 시하고 외면하려고 하는것은 그것을 아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생적 공산주의자들로 되게끔 량산했을뿐이다. 이것이 남에서 보수주의자들이 아무리 좌파척결 운운하지만 성 공하지 못하고있는 진정한 리유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 은

113 (22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25) 보수학자들을 엄단해야 할것이다. 이들이야말로 진실을 외곡해왔고 그래서 이들이야말로 민족화해를 저해하여온 민족공동의 적이기때 문이다. 인류의 보편적가치와 지혜가 있다면 그것을 존경하고 배워야 진 정으로 지도자일수 있다. 그리고 이것만큼 큰 국익은 없다. 이런 점에서 리 대통령 은 부 디 력대 어느 대통령 과도 다른 용단을 내리길 바란다. 우리 민 족이 과거의 잘못된 력사를 청산하고 동북아평화와 지구촌의 환경 생태문제까지 걸머지고 나갈 선두주자가 되려면 과거의 협소한 마음 가짐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동안의 가슴아팠던 분단의 력사 를 보상하는 길은 반공법 의 쇠사슬을 과감하게 걷어치우고 대 승의 큰 수레우에 올라타는것이다. 실용주의마저 소승적인것과 대 승적인것이 있다. 가장 큰 실용은 바로 민족공조이다. 망국론 5대리유 일깨운 회고록 왜 이렇게도 그리스도교와 탈북자 들은 궁합이 잘 맞을가? 넘 어왔다 하면 탈북자 들은 그리스도교인이 되고 심지어는 목사까 지 된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상투적구호가 하나 있다. 남은 잘살 고 북은 굶어죽는다. 라는. 탈북 하여 그리스도교인이 되는것도 있지만 오늘 남쪽의 교회는 선순환고리를 만들어 북주민들의 탈 북 을 알선, 유도하고있다. 이렇게 량자간의 선순환고리 혹은 궁합에는 그럴만한 교리적리유 도 있을법 하다. 즉 북을 생지옥같은 죽음의 세계 그리고 그리스 도교는 그 지옥에서 생명을 구하는 구원자, 이 관계는 마치 세상 과 예수의 관계와도 같다는것이다. 이 정도면 그리스도교인들은 순 교를 각오할만 하다. 지난번 아프가니스탄인질사태에서 샘물교회가 보여준 태도를 보 면 이런 도식은 결코 무리한 발상이 아니다. 살아돌아온 인질교인 들이 지금 해외순방을 하면서 자기들의 신앙무용담을 간증하며 돌 아다닌다고 한다. 왜 이들이 국내에서는 떳떳하게 활동을 못하면 서 숨어서 이럴가. 그러나 이런 탈북자 들과 그리스도교사이의 궁합의 엉터리론 리를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1970년대이전까진 북이 더 잘살았는데 그때는 하나님이 북을 축복했는가. 그리고 1998년 IMF는 장로 대통령 이 초래했는데 그때는 하나님이 어디 있었는

114 (22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27) 가? 이런 치졸한 론리를 구사하기때문에 리처드 도킨스는 그리스도 교의 신을 조작된 신 이라고 한것이 아닐가. 한 반도에선 문명사의 시계바늘이 반대로 돌고있는가? 막상 그리스도교가 발생한 서구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녀보라. 도시의 가장 중심가 명당자리에는 교회가 들어서있다. 얼마나 큰지 한번 들어가 그안에서 길을 잃을 지경이다. 그리고 주일 낮례배시 간에 가보면 수천명 좌석에 많아야 30~40명, 그것도 뒤에서 보면 백사장같다. 그래서 목사의 역할은 주로 병원심방 혹은 장례식 치 러주는것이 주된 업무이다. 이렇게 지금 서양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썰물같이 퇴조하고있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 밀물같이 밀려들어오는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한국 이민교회이다. 어떤 곳에는 한 장소에 교회가 두개 동시에 례배보는 곳도 있다. 물론 꼴불견일것은 불문가지이다. 한주일 한 번 례배보는데 한달 월세는 2천불(2백만원정도)이다. 다른 한편 한국 안을 보자. 고소령 가운데 하나인 소망교 회 는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교의 상징언어가 되였다. 대형교회 에는 수천명 앉는 좌석에 주일례배의 경우는 적어 3부례배이다. 거 두는 헌금은 평균 한주 2억이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지난주 광화문에 있는 한 대형교회에서 주보를 입수하여 조사해보았다. 경 제론리로는 리해할수 없다. 그리고는 세금 한푼 안내는 곳이 교회 이고보면 목사직업은 이제 선망 1호가 되였다. 지금 한국 교회는 리명박 대통령 따라하기 새벽기도가 류행이라고 한다. 이 장로가 성공한 비결은 새벽기도때문이라고 그런 교회에는 새벽도 아닌 밤 중 2시에 가도 자리잡기 힘들 정도이다. 그 리유야 어떻든 지금 종교에 있어서 한국 만은 지구촌의 시계바늘의 반대방향으로 돌고있는것이 분명하다. 그리스도교는 2005년 통계청자료 에 따르면 개신교와 카톨릭을 합쳐 국내에 1천 400만명이 넘는 신자가 있다. 이처럼 다수의 신자를 가진 한국 교회는 전세계적으로 교회가 사라지는것을 두고 종말이 가 까워온 징조이고 이제 희망은 한국 밖에 없고 한국 민은 하 나님의 선민이며 한국 은 하나님의 새 이스라엘(God s New Israel) 이라 설교한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마귀의 시험에 들지 말 라고 교인들을 교육하고있다. 그러나 정말 그럴가. 아니라고 본다. 지구촌의 시계가 변하고있 고 종교도 낡은것이 물러가고 새것이 오는것을 기다리는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는 시대인것을 모르는 착각증상이 지금 한국 의 현주소가 아닐가. 반그련( 아십니까 며칠전에 어떤 목사가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한국 교회를 고 발한다는 책을 썼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잘못 건드렸다가 맞아 죽을수 있는 대상은 조직깡패이상으로 무서운것이 한국 교회이 다. 나 역시 1985년 한국 굴지의 교단 신학교에 교수로 들어갔다 가 여러가지 리유가운데 하나가 그리스도교와 그 신학교출신 33인 가운데 변절자들의 이름을 거론했다가 임용 1년만에 재임용에 탈락 한 경험이 있다. 어디 나 하나뿐이 아니다. 한국 교회의 비리를 폭로했다가 몰매당한 신문, 방송은 우리가 지금 보고있기때문에 더 여기서 말할 필요가 없다.

115 (22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29) 그러나 한국 의 젊은이들은 그리스도교를 두고 개독교, 먹사, 똥경 이라고 비하하면서 인터네트를 중심으로 이른바 안티그리스도교 운동을 펼치고있다. 안티그리스도교운동의 중심에 있는 반그리스도교시민운동련합 반그련( 이 2003년 출범할 때 내건 창립 선언문은 이 사회에서 그리스도교가 더이상 패악질을 일삼지 못하 도록 그리스도교를 박멸하겠다. 고 밝히고있다. 안티그리스도교운 동을 하는 네티즌들사이에 그리스도교는 마치 모기나 바퀴벌레처럼 우리 사회에서 박멸해야 할 해충처럼 여겨지고있는것이다. 한국교회언론회 가 개최한 안티그리스도교관련 토론회에서 반 그련회장은 신의 정의를 부르짖고 공의의 하나님을 이야기하면서 신의 심판을 설교하는 종교엘리트의 부패가 그들보다 더 교육기회 가 없었던 신도들보다 더 치졸하고 야비하다. 면서 우리는 그리 스도교가 자정능력이 아예 없거나 상실했다고 판단한다. 고 안티그 리스도교운동의 배경을 밝혔다. 회장은 물질적축복과 기복을 파 는 종교업자들이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예수천당 불신지옥>으로 협박하고, 공룡화된 교회는 거대한 기업처럼 돌아간다면서, 천 민자본주의가 판을 치고 교회의 외적성장과 신도의 량적팽창이 목 사의 성공으로 치부되는 현실에서 신도들은 결국 현금지급기노릇만 죽어라고 하고있다. 고 지적했다. 이어 그리스도교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교리로 다른 문화와 다른 종교에 대한 멸시와 폄훼를 일삼는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 다. 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망사건을 순교로 미화하는 현실은 문화의 상대성과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그리스도교의 모순을 극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 덧붙였다. 그는 불상과 단군상을 부시고 장 승을 훼손하며 수만의 신도가 모여 모든 사찰이 무너지라고 롱성기 도를 했던 사례 등 타종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배타성을 지적하면 서 존중받기를 원하면 먼저 존중하라. 고 주장했다. 2002년 월드컵대회때 개신교계는 붉은 악마 를 사탄의 무리로 단정, 반대캠페인을 벌렸다. 이것이 안티그리스도교가 등장한 직접 적인 리유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패악은 이것 이외에 더 있다. 나는 그것을 그리스도교망국론 5대리유라 한다. 그리스도교망국론 5대리유 나는 5대 그리스도교망국론을 1980년대초부터 글로, 말로 펴왔 다. 1980년 5월 27일 새벽(미국시간) 광주가 무너지는 순간 미국에 대한 증오와 내가 미국에 속아 그리스도교인이 되였고 신학을 전 공하였고 미국이 좋아 미국까지 왔다고 자탄을 하였다. 광주에 보 낼 피를 헌혈받으러 10일간 로스안젤스 적십자병원에서 밤잠을 못 자던 그날 새벽, 그래서 미국공수부대가 광주를 구해줄것이라고 철 석같이 믿었던 허망했던 신념이 무너지면서 나는 그리스도교망국론 을 5가지로 정리하였다. 이 5대리유는 우에서 소개한 안티그리스도 교의 창립취지문에 일부 나타나있지만 내 직장과 바꾸면서라도 포 기할수 없는 나의 지론이다. 1. 우리 민족에게는 전래 고유한 민족종교의 전통이 있었다. 이 를 신채호는 선교, 신교 혹은 랑교 라고 했다. 그우에 차 례로 불교, 유교 그리고 그리스도교라는 외래종교가 들어왔다. 그 런데 불교의 경우는 고유종교에 접목을 가장 잘한 종교가운데 하 나이다. 불교의 대웅전이 원래는 환웅전이였다고 한다. 지금 환웅 전은 삼성각과 같은 형식으로 웃자리에 밀려났지만 지금 한국 불 교사찰경내에 엄연히 존재하고있다.

116 (23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31) 유교의 경우는 공자를 높이고 중국을 훼손하지 말라. 는 원칙 에 의해 단군이 요순보다 먼저일수는 없는 사대주의사관을 유지하 기는 했어도 각 지방에는 부군이라는것을 두어 관리가 지방에 내 려가면 이곳을 먼저 들렸고 하늘에 천제지내는 풍습을 지켜왔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 문화전통을 뿌리채 도 려내려 하고있다. 한국 그리스도교는 우리는 아브라함자손이 다. 곰자손 물러가라 고 현수막을 교회밖에 내걸고 단군목을 치고 있다. 불교는 신라와 고려 1 500여년의 우리 력사를 지켜온 우리의 저 력이다. 유교도 500년 조선조를 지켰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우리 땅에 들어온(1884년)지 20년이 채 못되여 우린 나라를 잃고말았다. 오비이락일가. 나라 망한 원인과 그리스도교가 상관관계가 있는것일 가? 나는 있다고 본다. 나라를 나무에 비교할 때에 그 뿌리가 잘 린 나무가 성할리가 없을것이기때문이다. 다시말해서 그리스도교가 우리 문화전통의 뿌리를 뽑은것이 우리의 힘을 상실하게 했고 이것 이 망국의 원인이 된다는것이다. 2. 한국 에 그리스도교를 소개한 미국선교사들은 청교도들의 후예들로서 극단적인 개인구원과 종말론에 집착하였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이란 구호는 모두 선교사들의 입김때문이다. 1907년 1월 장대현교회에서의 대부흥회는 실로 초대교회의 오순절운동을 방불 케 했다. 2007년 한국 교회는 장대현교회의 부흥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 교회가 재부흥의 도약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부정적이다. 그런데 보라. 장대현교회의 부흥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거의 일제 에 굴복, 신사참배를 하였다. 실로 한국 교회에 이름났다는 지도 자치고 신사참배 안한 사람 나와봐라. 과연 몇이나 되나. 장대현교 회부흥때 그렇게도 열광적이던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어떻게 그 렇게 쉽게도 신사참배를 하게 되였는지 리해가 가지 않는다. 3.1운 동지도자 33인가운데 그리스도교인들이 15명이나 되지만 거의다 변 절하고말았다. 내가 처음 부임한 신학교의 동문들도 5명이나 33인 에 들어있었지만 다 변절했다.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고 내가 해임 당하고말았다. 그리고 내 연구실에 단군초상화가 걸려있다고 구체적 인 빌미를 잡아 목을 치고말았다. 33인가운데 한사람 그리고 장대현교회부흥의 주인공인 길선주목 사는 독립선언문에 서명은 하고 3월 1일 그날 양평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고있었다. 나라 구하는 일보다는 개인령혼 구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국가보다 교회가 더 중요하다는것이 그의 불참의 변이다. 이렇게 선교사들이 우리 몸에 놓은 주사는 아편주사였다. 이런 아 편쟁이들이 국가관과 력사관을 바로가지고있을것이라 생각하는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것이나 마찬가지일것이다. 나중에 해방신 학자들은 이런 아편주사를 위로주의(pacification) 그리고 이 런 신앙의 개인화를 사물화(privatization) 라고 했다. 이런 그 리스도교가 나라 망하게 하는데 일조를 하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 할수 있겠는가? 여기에 고소령 은 속물주의를 하나 더 첨가하고 있다. 3.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은 원래 인간이 자기 과오를 회개하지 않 으면 신의 심판이 내리는것은 마치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인것과 같 이 시간문제라는데서 유래한다. 교만은 그 인간의 종말이라는것이 종말사관의 본뜻이다. 그러나 후대그리스도교는 가만히 앉아 하늘 에서 예수가 올라간 모양그대로 다시 올것이라는것으로 변질시키고 말았다. 만약 종말론이 이렇게 해석된다면 그 패악은 이루 말로 다할수

117 (23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33) 없다. 세상의 종말이 곧 오는데 독립운동은 해 무엇하고 세상나라 는 다 없어지고 신의 나라가 곧 건설되는데 해방은 되여 무엇하느냐 말이다. 얼마전 휴거 라는것이 얼마나 사회병페를 조장했는가는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이 끼친 나쁜 영향이다. 선교사들은 독립운동 에 참가하는 한국 청년들에게 이렇게 신국을 기다리라고 타일렀 다. 불교의 승병( 僧 兵 ) 그리고 유교의 의병( 義 兵 ) 같은것이 그리스 도교에 없었던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회안에서는 십자가군 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라. 고 목청을 높이면서 말이다. 4. 선교사들이 심어준 사대주의, 이것은 또 다른 망국의 원인이 다. 불교도 유교도 경전과 사상이 먼저 들어왔다. 그리스도교선교 사 같은 포교자들이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곧 사라지고만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선교사들은 무슨 카나 다선교부, 오스트랄리아선교부, 남감리교선교부, 남침례교선교부 하 면서 미국에 있는 선교본부의 복사판 같은것들을 한국 에 설치하 고는 이 좁은 나라를 갈가리 찢어 자기들 선교봉토로 삼았다. 그리 고 서울의 가장 명소에 그들의 선교본부건물을 지어놓았으며 그들 이 사는 주거지는 그야말로 호화별장같았다. 과연 이들이 우리 민 족과 고통을 함께 나누러 들어온 사람들일가. 그들 집에서 일하던 하우스보이들은 영어를 남보다 잘해 선교사들의 주선으로 류학을 가 출세를 해 돌아와 우리 문화를 말살하고 우리 언어를 압살시키 는데 하수인노릇을 하였다. 실로 그리스도교사대주의는 유교사대주의를 뺨칠 정도였다. 이런 선교사앞잡이 목사들은 신사참배선봉장들이였으며 나중에는 친일매 국노들과 결탁하여 언제나 독재자의 최대지원세력이 되였다. 지금 은 뉴라이트란 이름으로 우리 력사까지 제 입맛대로 외곡, 반민족 적 그리고 반통일적 최대세력이 되였다. 그 뿌리는 모두 한국 초 대그리스도교 그자체에 있었다. 5. 미국을 동맹국 이라고 하는 신화를 만드는 장본인이 한 국 그리스도교이다. 셔먼 호를 타고 대동강에 처음 당도한 토마 스목사를 강의할 때엔 한국 교회사 교수는 강의실에서 눈물을 줄 줄 흘린다. 그러나 토마스는 엄연히 완전무장을 한 군인이였다. 그 무엇보다 그가 군함속에서 장사군들과 군인들과 한배를 탔다는 그 자체가 정당하지 못하다. 그리스도교가 이런 식으로 전세계를 복음 화하려 했기때문에 백인선교사들은 지금 제3세계 그 어디도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있다. 그 오유의 전철을 지금 한국 교회가 밟고있다. 진정으로 아프 가니스탄을 복음화하고싶을진대 한국군 파병과 때를 맞추지 말 았어야 할것이다. 그 정당하지 못한 전쟁에 선교사는 선교사가 아 닌 전교사일것이다. 미국은 1905년 일본과 뒤거래를 하면서 한일 합방 을 허락하고 자기들은 필리핀을 삼켰다. 그러면서 선교사들을 시켜 우리앞에서는 일본압제자와 우리를 위해 싸우는양 하였다. 그 리고 해방군 으로 1945년에 들어와 중앙청에 자기들 성조기 를 올리고 영원히 지배하려 했다. 그리고 우리 국토를 자대 하나로 그어 갈라놓고말았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자기들 경제적리익을 위해 신무기거래판매처로 만들어놓고 우리 민족의 통일을 끝까지 방해하 고있다. 이런 나라가 동맹국일수 없다. 그런데 이런 민족의 최대가 해자를 천사로 둔갑시키고 우리가 바른 판단을 못하도록 하는것이 바로 한국 그리스도교이고 고소령 의 가운데글자이다. 이 땅의 피끓는 젊은이들이 개독교 라고 하는 리유가 여기에 있다.

118 (23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35) 한국 교회 종교의 자유 말할 자격 있나? 수순으로 보아 미국과 이 나라 정부는 핵, 인권 문제에 이 어 앞으로 종교의 자유 문제를 들고나오면서 북을 압박할것이다. 종교의 자유 란 모든 종교가 아니라 그리스도교라는 특정종교를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 회고록 제1권에는 주석과 그리스도교의 관계를 비교적 자 세하게 기술하고있다. 1권 1장 6절의 나의 어머니 제목의 절에 서 우리는 우리의 관심인 주석과 그리스도교의 관계를 상세 히 읽을수 있다. 회고록에서 그대로 읽으면 다음과 같다. 어느 일요일날 나는 할머니가 달여준 콩엿을 먹으면서 아버지 에게 말했다. <아버지, 오늘은 례배당에 안 갈래요. 례배를 구경하는게 재미 없어요.> 아버지는 아직 철부지라고 할수밖에 없는 나어린 나를 앉혀놓고 이런 말씀을 하였다. <가고 안 가는거야 네 마음대로지. 사실상 례배당이라는데는 아 무것도 없다. 그러니 안 가도 좋다. 너는 예수보다도 자기 나라를 더 믿고 자기 나라 사람들을 더 믿어야 한다. 그리구 나라를 위해 서 큰일을 할 생각을 해야 한다.> 이런 말씀을 들은 다음부터 나는 례배당에 잘 다니지 않았다. 칠 골에서 학교를 다닐 때에도 례배당에 다니지 않는 학생들을 통제하 였지만 한번도 가지 않았다. 나는 예수의 복음이 우리 인민이 겪 고있는 비극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였다. 예수의 교리 가운데 인도주의적인것도 많았으나 민족의 운명을 두고 깊은 고뇌 에 빠져있던 나에게는 구국에로 부르는 력사의 웨침소리가 그보다 더 절박하게 들리였다. 사상으로 보면 아버지도 무신론자였다. 그러나 신학을 가르치던 숭실중학교출신이였기때문에 아버지의 주위에는 교인들이 많았고 따라서 나도 교인들과의 접촉을 많이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성장과정에 기독교적인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는가고 묻는데 나는 종교적영향은 받지 않았지만 기독교신자들에게서 인간적으로 도움 은 많이 받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상적영향도 주었다. 온 세상 사람들이 평화롭고 화목하게 살기를 바라는 기독교적정 신과 인간의 자주적인 삶을 주장하는 나의 사상은 모순되지 않는다 고 나는 생각한다. (1권 103~104페지) 주석은 회고록 여러곳에서 자신과 그리스도교 그리고 특 히 천도교의 관계에 대하여 많은 언급을 하고있다. 결론은 이러하 다. 애국애족이 앞서지 않는 그 어떤 가치도 그것을 릉가하거나 앞 설수 없다는것, 종교이든 사상이든 이 나라를 사랑하고 이 민족을 위한다면 자기는 반대하지 않는다는것, 그래서 김주석은 해방후 조 선그리스도교련맹을 설립했으며 애국애족의 정신과 그리스도교신앙 을 겸비한 인물들을 모두 건국에 참가케 했다는것이다. 이를 두고 남에서는 어용이니 운운하지만 그것은 자기들의 친일이라 쓴 모자 를 돌려쓰고 하는 말에 불과하다. 1980년대에 해외로부터 전 숭실대총장이였던 김성락목사가 주석을 방문했을 때에 김목사에게 식사기도를 부탁한것은 유 명한 일화이다. 아마 공산주의혁명가가운데 주석만큼 그리스도교에 관대한 인물도 없을것이다. 그런데 북이 교회를 파괴하고 교인들을 다 죽였

119 (23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37) 다고 남 한 교회는 선전하고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주석은 그리스도교인이냐 아니냐가 결코 기준이 아니였다. 애국애족만이 오직 기준이였다. 어떤 그리스도교인도 그가 이 기준 만 가지고있다면 친구가 될수 있다고 했다. 문익환목사와의 만남이 바로 그 한 례이다. 오늘 한국 교회는 분명히 알라. 북에 진정 으로 선교하고싶으면 우에서 지적한 5대망국리유를 청산하고 애국 애족의 선봉에 서라. 너희 교회를 포기할 때에 그 순간 교회가 살 것이란 사실을 명심하라. 신천대학살의 주범은? 자기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를 다 폭격한 미국 어제날의 그리스도교가 어린 김주석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리 유가 바로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교가 젊은 세대를 포섭하지 못 하고 그들로부터 개독교 소리를 듣는 진정한 리유이다. 삐까쏘의 게르니까 와 함께 그가 미군의 신천량민학살소식을 듣고 그린 작품 은 전세계 유명화랑에 다 걸려있다. 신천주민 3만 5천여명을 미군이 그 지역 반동들과 합작해 자행한 황해도 신천대학살사건은 단위장소 에서 일어난 최대의 사건이다. 삐까쏘는 이 소식을 듣고 손에 붓을 들고 떨었다고 한다. 필자도 2004년 신천을 방문하였을 때 구월산 밑 이 작은 마을은 미제를 용서하지 않을것이라 확신하였다. 북엔 전쟁전에는 엄연히 교회가 있었다. 그러나 미군은 하나 성 한 곳없이 교회를 폭격했으며 이북전역을 쥐구멍까지 모조리 황무 지로 만들 지경이였다. 오늘 북에서 미국과 교회를 증오하는 원인 제공을 한 장본인은 바로 이 땅에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 미국자신 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할것이다. 미국이 그렇게 잔인하게 주 민을 학살하지 않고 교회를 파괴하지만 않았어도 북이 그렇게 그 리스도교에 대하여 태도를 취할 아무런 리유가 없다. 다른 공산주 의국가들이 교회를 박해하고 말살하는 그런 정책을 주석은 하지 않았다. 북은 천주교와 개신교회를 각각 세워 례배를 보고 있다. 김주석은 언제나 리념의 자대로 판단하지 말고 사람나름대로 판단 하라고 했다. 지주라도 사람나름대로 애국애족할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지금 남쪽의 교회목사들은 바리새인들같이 률법과 리념으로 판단하고있다. 그래서 공산주의를 도매가격으로 매도하고있다. 생명의 은인이다싶이 한 손정도목사, 김주석의 아버지가 다닌 숭 실중학교 그리고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를 김주석이 반대할 아무런 리유가 없었다고 본다. 그리고 교회가 조금이라도 애국애족하는 태 도를 보였더라도 김주석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을것이 다. 김주석이 지금 생존해있는 손정도목사가족들에게 보여준 따뜻 한 애정 하나만으로도 나의 주장이 옳다는것을 립증하고도 남을 것이다. 김주석의 가슴속에 자리잡은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교인들에 대 한 애정은 남달랐다. 이런 김주석의 나라에 종교의 자유 운운하는 것은 몰라도 너무 모른 소리이다. 지금 평양을 방문하면 셔먼 호가 침몰한 흔적을 그대로 볼수 있다. 과연 그리스도교가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들어올 때에 어 떤 손짓을 했는지, 그리고 그때 그 몸짓을, 아니 그 버릇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있는지 한국 그리스도교는 곰곰히 생각이나 하고 북을 향해 종교자유 운운해야 할것이다. 개도 웃을짓을 하고, 말을 하고, 북의 인권 이니 종교의 자유 운운하기때문에 그리스도 교는 개독교 대접밖에 못 받고있는것이 아닐가.

120 (23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39) 그리스도교는 안티 정도가 아닌 국법으로 금해야 할지도 일본인학자가 한국 이 일본을 앞서는 3대조건을 제시한적이 있다. 부동산, 남북문제 그리고 그리스도교이다. 그의 생각으로 는 이 셋을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거리로 본것 같고 남북 은 통일을 그리고 부동산은 안정을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우의 5대 망국적요소를 청산해야 한다는 의견이라고 본다. 그런데 새로 선 출된 장로 대통령 은 이 세가지에 대해 기대했던 방향으로 나가 지 못할것 같다. 그렇다면 한 반도는 일본에 뒤지게 되고말고 어쩌면 구한말 같은 꼴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교는 안티 정도의 대상이 아니라 국법으로 금해야 할 종교일것 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장로 대통령 을 셋이나 선출하였다. 리승만, 김 영삼, 리명박이다. 앞의 둘은 모두 불행한 행적을 남기고 갔다. 벌 써부터 리명박 대통령 에게 달라붙어 따라다니는 강부자, 아니 인젠 청부자 그리고 고소령 모두 이 땅의 그리스도교의 앞날 을 어둡게만 하고있다. 날이 갈수록 속물화되여가는 한국 교회, 속물들은 잘 속는게 특징. 이런 속물들에게 투표권을 맡겨놓는다 는것은 망국을 스스로 자초하는 첩경이다. 리완용이 나와도 뉴타운 공약하면 표 안 준다는 보장이 없는것이 오늘 남의 현실이다. 이런 속물화를 그리스도교자체가 지금 조장하 고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교를 망국적종교라고 단언할수 있게 되였다. 일본과 손잡고 북을 치겠다고 내놓고 설교하는 목사들, 이 들을 국법으로 안 다스려도 된단 말인가? 오늘날 남 한 의 그리 스도교는 예수의 정신을 포기한지 오래다. 1907년 대부흥이란 민족 이 어려울 때 그 약점을 파고든 가장 위험한 마취제역할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2008년현재 마라난타, 이 민족의 통일을 선도 해나가고 한 반도의 평화를 념원하는 참예수의 정신을 구현할 메 시아가 나타나기를 기원한다. 초대교회도 리상적으로 실현하려다 실패한, 같이 일하고 같이 나 누어먹는 평등한 세상을 북은 근 반세기이상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 고있다. 자본주의패권국가들의 눈에 북은 가시같을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북의 대문을 밖에서 빗장을 치고는 한푼도 그 세계로 들어 가지 못하게 만들어놓고 이 리상향을 추구하는 국가를 고사시키려 한다. 그러나 북은 항일유격대의 그 강한 사랑과 신뢰의 힘으로 버 티여내고있다. 나는 이런 세상이 인류지구촌이 구현해내야 할 하나 님의 나라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강한자가 약한자의 골수까 지 등쳐먹는 이런 세상이 곧 종식될것도 믿어의심치 않는다. 가난 하나 인간답게 살고 내가 그리스도에게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 민족을 위하는바 라고 고백한 바울 같은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참크리스천을 이젠 평양에 가서야 만날수 있다고 확신하는바 이다.

121 (24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41) 비핵, 개방, 3 000, 게임리론이 비웃는다 어부지리 의 어부는 미국이다 리명박 대통령 의 대북정책 비핵, 개방, 을 가장 비 웃을 사람들은 아마도 지금 세계적인 각광을 받고있는 게임리론 가들(game theorists)일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리론으로 보았 을 때에 한국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상호주의 는 가장 어 리석은 정책이기때문이다. 만약에 리명박 정부 가 통일을 진정으 로 원한다고 전제할 때에 상호주의 는 가장 바람직하지 않는 정 책이라는것이다. 그것에 대한 증명을 게임리론을 통해 고찰해보기로 한다. 게임리론이란 적대하는 두 대상이 서로 공존해 살아남는 소위 win-win을 제시하는 리론이다. 리해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각 참 가자들이 최적의 결과를 얻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 한 수학의 한 리론이란 뜻이다. 쉽게 말해서 너도 살고 나도 살자 는 론리를 제공하는것이 게임리론의 골자이다. 우리 집옆에는 식 당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옆에 차량출입구마저 같은 식당 이 또 하나 생겼다. 먼저 있던 식당에서는 지금 전에 없던 행사 를 하나 하고있다. 봄철랭면 50% 할인행사 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자 옆식당에서는 이에 맞서서 갈비 50% 할인행사 를 하고 있다. 소비자립장에서 볼 때에는 반가운 일이라 아니할수 없다. 그러나 한편 생각할 때에 이 두 식당이 담합을 하면 서로 살터인데 왜 저 렇게 무한경쟁을 할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내 주요주유소들은 서 로 담합을 하여 우리 소비자들만 허리를 휘게 하기도 한다. 대기 업간의 담합, 즉 카르텔이 쉽게 이루어질것 같지만 그것만큼 어려 운것도 없다. 이를 남과 북의 문제, 즉 통일의 문제로 비하하여 생각해보면 세 계가 볼 때에 저 나라는 남북이 서로 담합을 하면 통일을 바로 할 터인데 왜 저렇게 반세기가 넘도록 서로 싸우고있을가 할것이다. 이 것은 내가 우리 동네 두 식당을 두고 바라보고있는것이나 별다름이 없는것이다. 과거 10년 김대중 그리고 로무현 두 정부 기간동안 좀 담합이 되여가는듯 하더니 지난 대선 에서 한나라당 이 이 를 잃어버린 10년 이라, 퍼주기 라 하는 말에 국민들이 공감 을 했음인지 또 원점으로 되돌아가고마는것 같다. 황새와 조개가 서로 물고 안 놓아주다 어부에 다 잡히고만다는 어 부지리( 漁 父 之 利 ) 란 말이 결코 무지한 동물의 세계에만 해당되 는 말이 아니다. 남북사이에서 어부지리를 챙기는자는 누구인가? 바로 주변강대국들, 그중 미국이 아닌가? 우리 민족이 이렇게 어 리석은가? 김대중과 악셀로드의 협력리론: 통일은 밑져야 본전 리론 게임리론이 처음 나온 이후 1980년대에 와서 재검토를 하기 시작 하였다. 다시 나온 리론을 반복게임리론 이라고 한다. 그때 갓 등

122 (24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43) 장한 PC가 반복리론에 큰 공헌을 한다. 악셀로드(Robert Axelrod)라는 교수가 이 게임을 콤퓨터로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다. 시뮬 레이션을 하면서 여러가지 전략을 실험했다. 실험결과 반복게임후에 가장 낮은 수치를 얻어낸 전략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 ( 눈눈 이이 전략 )이였다. 이것이 상호주의 이며 반복리론에서 상호주의는 나쁠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눈눈 이이 전략 은 협력리론으로 가기 위한 전 단 계에 불과하기때문에 이것자체가 목적이 되여서는 안된다는것이 악 셀로드의 리론의 골자이다. 악셀로드가 리명박의 상호주의 를 볼 때에 통탄해한다면 그 리유는 바로 상호주의자체를 목적으로 삼고있 기때문이다. 이것은 미국의 전략 그자체이다. 끝까지 남북이 눈눈 이이 전략 을 펴도록 하는것, 그래서 어부지리를 얻자는것. 악셀로드가 이렇게 콤퓨터실험을 반복한 결과 내놓은것이 협력 리론 이다. 협력리론은 리활웅선생의 통일리론인 밑져야 본전 이란 리론과 류사하다. 남북이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반복(이 이 눈눈)하다보면 결국 협력하면 밑져야 본전이란 결론이 나오게 된다는것이다. 우리는 반세기동안 1950년-1960년대 리승만의 멸공통일 에서 1972년 남북공동성명, 1992년의 기본합의서, 드디여 2000년 6.15공 동선언, 2007년 10.4선언 등등 서로 신뢰와 불신을 교차반복하면 서 지금에까지 왔다. 리명박 정부 의 비핵, 개방, 은 멸공통일 에의 반복에 불과하다고 보고싶다. 결코 오래가지 못하 고말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 은 과 감하게 6.15시대를 열어 민족을 위한 획기적인 사변을 마련하였다. 김대중의 해볕정책 은 남의 보수주의자들을 무마하기 위한 용어 이고 사실은 악셀로드의 협력리론과 같다고 할수 있다. 이런 협력 리론을 로무현 대통령 은 임기초기에 대북송금특검법 을 만들 어 페기시켜보려는 유혹을 받았다. 마치 리명박과 같이. 그만큼 죄 수의 딜레마는 빠져나오기 힘든 유혹에 걸리게 하는 마력을 지닌 것이다. 2008년 리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우리는 50년전으로 회귀하는 듯 한 대결구도로 가고있다. 다시말해서 북을 끝까지 밀어붙여라, 그러면 결국 백기 들고 나올것이다. 나오면 그때 또 다른 조건 붙여 라, 그래서 그로기상태로 밀어붙이면 흡수통일 은 된다는것이다. 김대중과 로무현이 퍼주기 안했으면 북은 벌써 백기 들고말았을것 이다, 이것이 한국 보수주의자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펴는 수사학 이다. 결국 리승만때부터의 멸공통일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는것이다. 그러나 결론은 분명하다. 북을 죽이는것이 곧 남이 죽는 길이라는 사실, 이 사실만은 분명하다. 리명박 대통령 이 임기중 에 이 사실을 알고 끝날지는 아무도 지금으로서는 알수 없다. 그러 면 도대체 한 반도에서 반복의 게임리론이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 는 리유, 그래서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을수밖에 없는 진 정한 리유는 무엇인가? 게임리론이 한 반도에서 안 통하는 리유는? 2007년 로무현 대통령 은 판문점을 걸어서 넘어 국방위원장 과 더불어 6.15시대의 장을 더 활짝 열고 물러갔다. 그런데 우리 가 이렇게 다시 딜레마에 빠져드는 리유는 민족의 바줄을 잡고있는 남( 南 )의 손은 사실은 남( 南 )의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말해서 바줄을 잡고있는것은 미국이고 목은 우리것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123 (24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45) 그러니 북( 北 )을 죽이려는것도 미국이고 남( 南 )을 죽이려는것도 미 국이라는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미국이 바줄은 자기들이 잡고 우리 민족생존의 놀이를 지금 하고있는것이다. 그래서 게임리론이 한 반도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것이다. 작전권회수반대 그리고 미싸일방어망구축참가 등등으로 인해 미 국이 우리 민족을 공멸의 길로 내몰고있음에도 리명박 정부 는 지 금 쌍수로 환영하고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전개한 게임리론이 우리에겐 페기처분될수밖에 없는 리론이라는것과 조금이라도 이 리 론이 타당성을 갖자면 우리 민족이 서로 공조를 먼저 하여야 한다 는것이다. 나는 통미봉남 이란 말을 누가, 언제 만들어냈는지 모 르겠다. 게임리론으로 볼 때에 과연 북이 남을 봉쇄하고 미국과 통 할 때에 그것이 북이 살수 있는 길이라고 북이 생각하리라고는 보 지 않는다. 1948년 4월 평양에서 있었던 남북련석회의에서의 3대결의사항은 실로 우리 민족이 서로 협력해나갈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수 있었던것이다. 3대결의란 1. 미군철수, 2. 평화통일, 3. 단선단 정 반대이다. 세번째가 문제이다. 바로 상대방을 죽이고 나만 살겠다는 그 꼼 수가 바로 단선단정 의 론리인것이다. 리승만이 기어코 이를 해 내고말았다. 그 이후 6.25 등이 이어지지만 그 첫 단추는 단선 단정 강행에 있었다. 단선단정 강행의 주동자는 유엔을 앞세운 미국이다. 그래서 남의 바줄을 잡고있는자는 남이 아니고 미국 이다. 이때 북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남의 바줄을 대신 잡고있는 미국 을 몰아내여야 우리끼리 되든 안되든 협력여부를 결정할수 있다고. 그래서 북이 2008년 4월 1일에 내놓은 론평문에서 리명박 정부 의 비핵, 개방, 에 대하여 심한 어조로 반대하고있는 리유도 1948년 그때에 있었던 3대결의사항과 다른것이 없어보인다. 게임리론의 대가는 과연 누구? 다시말해서 1948년 남북련석회의는 실로 우리 민족이 서로 협력 의 길로 갈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다. 전후과정으로 볼 때에 이 련 석회의를 알선, 주선한쪽은 북이라는것이 제반 자료들을 통해 분명 해지고있다. 그리고 단선단정 으로 몰고간측도 어디였다는것도 분 명해졌다. 북이 단선 을 반대하고 3대결의에 의하여 통일정부를 세우려 했던 진심은 지도자의 진면모에서 분명해진다고 본다. 리승만의 단선단정 은 꼼수가운데 꼼수라고 본다. 북이 남북련석회의에 집착한 리유는 회고록에 나타난 지도자의 지도력을 떠나 생각할수 없다. 주석이 백두광야, 만주벌판에서 20년을 싸울수 있었던 리 유는 그 당시 국제정세에서 중국과도 쏘련과도 협력관계가 잘 이루 어졌기때문이고, 내부적으로는 김주석이 보수우익과도 같은 민족주 의자들과도 갑부지주들과도 협력을 잘하였기때문이다. 도문지주와의 협력때문에 주석은 민생단 작용이라는 말 까지 돌리기도 했다. 그것은 실로 생명을 거는 모험이였다. 중국인 갑부의 아들 장울화와의 협력은 실로 다윗과 조나단의 관계와 같다 고 홍동근목사는 평하고있다. 김주석은 실로 꼼수의 정치가가 아니 였다. 북이 말하는 통큰 정치 란 바로 이런것을 의미한다. 지난 대선 때 남의 김만복정보원장과 북의 김양건통일전선부장 사이에 나눈 밀담이 화제가 된적이 있다. 아무리 밀담이라 하더라 도 그 대화내용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나는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124 (24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47) 는 아름답기까지 했다. 김양건통일전선부장의 말속에는 어떻게든 협 력을 해나가려는 실로 간절함과 바람이 있기에 차라리 밀실에서 나 누어졌기때문에 진실이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이 한토막의 대화에서 우리는 주석이 남긴 통큰 정치 의 한 단면을 보는것 같았다. 김구도 통큰 인물이였다. 리승만의 사시적인 시각을 아랑곳하지 않고 38 선을 넘던 그런 용기에 인물됨의 크기를 보게 된다. 김대 중도 통큰 인물이다. 그 대소의 차이는 있어도 협력의 진가가 무엇 인가를 안 정치인이기때문이다. 이런 통큰 정치의 결산물로 나온것이 바로 1980년 10월 평양에 서 나온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이다. 북과 남이 사상과 제도 를 그대로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우에 남과 북이 동등하게 참가 하는 민족통일정부수립이 이 통일방안의 골자이다. 민족통일정부밑 에서 남과 북이 같은 권한과 의무를 가지고 각각 지역자치제를 실 시하자는것이다. 실로 네가 사는것이 내가 사는 길 이라는것이 이 통일방안속 에 담겨져있는 내용이다. 이는 련방제로 알려져있으며 김대중 정 부 에 의해서도 련방제는 받아들여졌다. 드디여 2000년 6월 15일 6.15공동선언에서는 낮은 단계의 련방 제 를 남북이 같이 수용하였다. 주석의 련방제통일방안은 김주석의 회고록속에서 볼 때 에 이미 항일유격대시절부터 견지해온 협력리론의 한 연장선상에서 리해될수밖에 없다. 이 말의 진정성은 믿어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본다. 리명박 정부 의 비핵, 개방, 이 상대방을 죽이고 얻을 지도 모르는 꼼수정치의 결과가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북이 안타까워하는것은 리명박 대통령 이 그동안 남북이 쌓아 온 신뢰의 과정 그리고 반복을 통해 얻은 교훈을 알기나 하는가 하 는것이다. 아마츄어 정부 운운하는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준비 안된 상대를 처음 만난것이 북이 난감해하는 리유 이다. 우리가 지금 꼼수나 펴고있을 때가 아니라는것이다. 민족이 과감하게 공조를 하지 않으면 우리 민족이 공멸하고만다는것, 남 의 안정과 경제성장에 북이 일조를 하고있다는것을 인정하라는것 이다. 과연 북을 목졸려 죽여버린다면 남인들 성할수 없다는 론리자체 를 같이 공부하자는것이다. 북의 의도에 상관없이 바줄을 놓으면 우리 민족은 공멸할수밖에 없다는것 그리고 주변강대국은 모두 우 리 민족이 그런 어리석은짓을 하도록 유도하고 부추기고있다는것을 알자는것이다. 이 땅의 보수주의우익들은 이런 장단에 맞추어 춤 을 추고있다는것을

125 (24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49) 일본을 혼쭐낸 전설 은 인민적성격 소리의 래력 전설의 진원지 요즘 1970년대 김지하의 담시 오적( 五 賊 ) 을 다시 꺼내 읽는 다. 또 다른 담시 비어( 蜚 語 ) 에 나오는 소리의 래력 대목에 자꾸만 신경이 간다. 서울장안에 언제부턴가 쿵-, 쿵- 하 는 이상야릇한 소리가 들려오니 원한에 사무친 안도( 安 道 )가 머 리와 팔다리가 없는 몸뚱이를 굴려 벽에 부딪치는 소리였던것. 그 소리에 겁먹은 지배층은 안도( 安 道 )를 사형시키지만 쿵-, 쿵- 하는 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밤낮으로 끝없이 들려와 돈있 고 힘있는자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는 이야기가 이 담시의 내용이다. 요즘 괴담이라는것이 어쩌면 비어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한번 모였다 하면 만명이 기본인 미친소광풍이 지금 리명박 정 부 주변사람들을 안절부절하게 만든다. 들어선지 불과 3개월만 에 서울장안에 괴담이 돌기 시작하니 그 소리의 래력을 찾아 허둥 대지 않을수 없다. 경찰은 괴담의 진원지를 철저히 찾아 엄벌하겠 다고 한다. 소리래력( 來 歷 )은 세 부분으로 묶인 담시 비어( 蜚 語 ) 의 첫째 대목이다. 시골에서 올라온 작고 힘없는 민중 안도( 安 道 )는 열심히 뛰여 서울에서의 삶을 꾸려가고저 하지만 돈없고 학벌없고 빽없 는 그는 어느 한 모퉁이 발붙일 곳을 찾을수가 없다. 부와 권력이 지배층에 독점되여있는 암담한 현실이 안도( 安 道 )의 발길을 곳곳에 서 막았던것이다. 지치고 지쳐 내뱉은 에잇, 개같은 세상 한마 디때문에 류언비어류포죄로 독재권력에 체포된 안도는 5백년간의 금 고형( 禁 錮 刑 )에 처해져 목과 팔다리가 모두 잘린채 독감방에 갇힌 다. 오래전에 이미 사형시킨 이 안도의 몸뚱이가 벽에 굴려 부딪치 는 소리이기때문에 소리의 래력을 종잡을수 없다. 신기한것은 보통 사람들 귀에는 들리지 않는데 장안에 사는 오적들 귀에만 밤, 그것 도 한밤중만 들려온다. 소리의 래력을 찾을길 없으니 수사를 하는 경찰도 난감할수밖에 없다. 을사오적과 무자오적 오적( 五 賊 ) 은 70년대초 한국 사회의 지배계층들, 재벌, 국 회 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는 짐승스런 몰골의 다섯 도둑들이 서울장안 한복판 도둑소굴에서 벌리는 부정부패의 술수경 연과 호화사치, 방탕한 생활을 시인의 통렬한 풍자를 통해 그 흉폭 하고 타락한 실상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또한 부정부패를 척결한답시고 나선 포도대장(경찰 또는 사법부 의 비유)은 무고한 민초( 民 草 ) 꾀수 만 닥달할뿐 정작 오적의 주 구( 走 狗 )임이 적라라하게 폭로된다. 그러나 시인은 어느 맑게 개인 날 오적의 무리들이 벼락을 맞아 급살하고, 륙공( 六 孔 )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부패권력의 비극적종언을 무 섭고도 통렬하게 경고하고있다. 을사오적에 이어 2008년 무자오적도 등장했다. 고, 소, 령, 강부 자, S라인이 무자오적인것 같다. 5월 2일 첫 청계천집회는 누가 봐

126 (25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51) 도 놀랄 정도였다. 주최자측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 원인에 대하여 리 정부 주변인물들이 내놓는 말들은 너무 구태의연하다. 다시말해서 배후세력이 있다는것이다. 물론 있다. 그러나 당신들이 말하는 그런것이 배후세력은 아니다. 먼저 서울시 교육감은 전교조가 배후세력이라 했다. 그러나 이것 은 너무 빗나간 판단이였다. 다음으로 연예인 이라고 언론은 대 서특필했다. 지난번 대선 때는 더 인기있는 연예인들이 리명박후 보를 지지했는데 그럼 그때 중고등학생들이 란리가 났을것 아닌가? 다음으로 인터넷. 휴대전화 라며 검찰이 지금 학교교문앞까지 찾아가 배후를 찾아내려 한다고 한다. 두고볼 일이다. 회고록속의 전설들 은 백발이 성성한 산신령같은 로인으로 축지법을 사용 해 하루밤에 천리길도 가고 둔갑술을 사용해 하루에도 얼굴을 수 십가지로 바꾼다는 일화정도는 이미 우리 귀에 익숙하다. 그런데 해방후 평양공설운동장에 나타난 사령관은 그런 신비로운 존재 가 아니였다. 연구 의 대가인 서대숙교수는 당시 이란 이름 을 가진 인물이 13명정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의 행적을 다 조사해보니 항일유격활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인물들로 판명 되였다 한다. 그는 연구 로 필생을 바친 학자이고 만주일 대를 수십차례 방문하여 자료를 모아 연구하였다. 그는 강의실에서 입버릇처럼 아무튼 주석은 대단한 인물이였다고만 반복하였 다. 아마도 정치학자로서 주석의 업적과 행적을 다 그려낼수 없는 한계인것 같았다. 그래서 력사를 그런대로 잘 쓰자면 문학작가들이 동원되여야 할 리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희로애락의 감정을 정치학자나 력사학 자가 그려내는데는 한계가 있기때문이다. 사령관주변에 여러가지 전설과 설화가 생겨난것은 1936년 말부터였다. 소덕수전투에서 유래한 둔갑술 과 신출귀몰 이란 말 주석은 전설의 유래를 두고 우리가 둔갑술 을 써서 승 천입지 하고 신출귀몰 한다는 소문이 국경지대에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한것이 소덕수전투가 있은 때부터였던것 같다고 회고하고있다. 소덕수전투에서 일본은 얼마나 희생을 많이 당했던지 집집마다 문짝을 다 뜯어다가 저들의 시체를 거두어 담아가지고 황황히 도 망을 쳤다고 한다. 두번째로 신출귀몰이란 말이 퍼진것은 도천리전투 다음이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항일유격대를 처음에는 공비괴수, 비적수괴 라고 하다가 도저히 당해낼수 없자 자기들도 우로부터 책임을 면피 하기 위해 신출귀몰, 승천입지 란 말을 사용하지 않을수 없었 다. 인간같지 않고 귀신같아서 도저히 잡지 못한다고 해야 전투에 참가한 책임자들이 책임을 어느 정도 면할수 있었기때문이다. 여우 가 높은 가지우의 포도를 따먹지 못하자 신 포도 라고 해야 마 음이 위로가 되듯이. 그럼 소덕수전투와 도천리전투는 어떤 전투였고 거기서 무슨 일 이 생겼던가? 두 마을은 백두산 남동쪽 장백지구에 위치해있다. 1936년 여름부터 항일유격대가 백두산에 근거지를 창설하고 국내

127 (25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53) 진공을 준비할 때이다. 여름도 지나고 산에는 산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리는 9월, 장백현 대덕수와 소덕수에서는 바로 일본군인들이 떼 죽음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자기들끼리 무려 3시간동안 교전하는 일이 벌어졌다. 김주석은 하도 오래 전투가 계속되여 구경군들이 지루할 정도 였다. (5권 96페지)고 회고한다. 소덕수와 대덕수는 모두 지도상의 이도강부근의 작은 마을들이다. 주석은 신출귀몰 이란 전설이 퍼진 정황을 다음과 같이 소상하게 회고하고있다. 소덕수등판에서 숙영한 이튿날 우리는 부대를 마등창수림속 에 이동시키고 대원들을 휴식시켰다. 나도 풀밭에 누워 책을 보다 가 굳잠이 들었는데 총소리가 났다. 15도구방향과 이도강방향에서 밀려온 적들이 남북 량쪽에서 거의 동시에 달려들었다. 무성한 숲 은 적아를 구분하기 어렵게 하였다. 만일 우리가 감쪽같이 빠져나 가면 적들의 협공을 저들끼리의 골육상쟁으로 역전시킬수 있는 절 호의 기회였다. 우리는 마등창수림에서 슬쩍 빠져나와 15도구골등판으로 올라 갔다. 그 등판에서 적들끼리 싸우는 꼴을 구경하였다. 그것이 세칭 소덕수전투라고 하는 마등창망원전투이다. 그날 적들끼리의 맹렬한 싸움이 서너시간쯤 실히 걸렸던것 같다. 구경군들이 지루할 정도였다. 적들은 이렇게 장시간 싸우다가 이 도강쪽패가 정 못 견디겠던지 먼저 퇴각나팔을 불었다. 그 나팔소 리를 듣고서야 15도구쪽패도 제편끼리 싸운줄 알았는지 사격을 중 지하였다. 수백명의 유격대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가? 온데간데없으니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노릇이 아닌가? 이 불가사의한 문제에 대한 해명을 적들은 우리의 <둔갑술>에서 찾은것 같다. 우리가 <둔갑술>을 써서 <승천입지>하고 <신출귀몰> 한다는 소문이 국경지대에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한것이 이 소덕수 전투가 있은 때부터였던것 같다. (5권 96페지) 사령관은 적들이 이도강방향과 15도구방향에서 협공해오는 것을 알고는 그사이를 빠져나와버리는 전술을 사용했다. 그러니 마 주보고 오던 적들은 서로 총질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3시간을 무 려 교전하다보니 유격대는 온데간데없고 자기들만 숲속에 죽어 너 부러져있었다. 그런데 이런 교전에서 피해를 본것은 그사이에 있는 감자밭이였다. 신창동의 한 농민은 감자밭은 결딴났지만 악귀같은 왜놈군대들 이 저렇게 죽탕이 되여 나딩구는걸 보니 풍년든 감자밭을 보는것 보다 더 기쁘오다. 라고 했다. 대덕수, 소덕수전투는 유격대의 국 내진출 발판을 마련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 장백지구일대의 인민들 의 열렬한 지지를 확인할수 있었고 그 일대의 여러 청년들이 너도 나도 자원입대하는 기회가 되였다. 또한 다음해 보천보전투의 승기 를 여기서 잡은것이다. 한해를 넘겨 1937년초에 있었던 도천리전투의 결과부터 말하면 적의 시체를 실어나르는데 24필의 소가 하나씩 9구의 시체를 싣고 날라서 전투후 주민들사이에는 소발구 하나에 아홉개씩 스물네발 구면 모두 얼마요? 하는 말이 류행할 정도였다. 인민들의 답답하 던 속이 얼마나 후련했으면 뻔히 아는 답을 질문형식으로 류포시켰 을가? 직답을 하면 위험천만하니까. 이와 같이 부대는 전투가 하나하나 끝날 때마다 신화가 생겨났다. 일본신문들은 도천리전투이후에도 신출귀몰 그리고 승천입지 라며 전법은 라와전법 이니 이 전법에 걸리기

128 (25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55) 만 하면 누구도 빠져나올수 없다고 했다. 라와 란 라망 의 중 국식발음인데 하늘과 땅 그 어디에도 빠져나갈수 없는 천라지망 즉 포위망, 함정이라는 뜻이다. 회고록에서도 라와전법 은 대표적인 유격전법이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없다 라와전법 이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없다. 란 전 법인것 같다. 바로 귀신이 아니고야 어떻게 인간이 이런 전법을 구 사할수 있단 말인가? 옛부터 백두산은 온갖 신화와 전설이 가득찬 고장인데 장백지구에서 벌어진 두개의 전투에서 은 사람 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도 도 저히 믿겨지지 않는 현상에 그만 정신적대공황(panic)상태에 빠져 들기 시작했으며 자기들 입으로 신출귀몰, 둔갑술 을 운운하 지 않을수 없었다. 도천리전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사령관을 마치 단군할아버지같은 도인 아니면 산신령같은 존재로 상상하게 되였다. 그러나 그는 20대의 젊은 청년사령관이였다. 당시 일제의 정신적공황에 대하여 주석은 이렇게 회고하 고있다. 인민혁명군의 장백진출과 군사적위세앞에서 적들은 대경실색하 였다. 장백지방 경찰기관들에서는 경찰들이 집단적으로 사직서를 내 고 공직을 회피하는 리직은퇴바람이 불었다. 적들의 통치체계에서 는 심한 혼란이 일어났다. 이도강에서는 집단부락출입도 앞문으로 가 아니라 뒤문으로 한다고 하였다. (5권 97페지) 1936년말 1937년초의 백두산지구 겨울에 퍼진 전설 전설이 누군가에 의하여 만들어져 퍼진 시기는 소덕수전투 가 끝난 1936년말경부터이다. 전투가 끝나자마자 장백지구일대에는 전설이 들불같이 퍼져 나갔다. 회고록 5권에는 전설이 퍼져나간 유래가 자세하게 대 담형식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돼있다. 김평유격대원과 안덕훈주민사이에 나눈 대화는 한폭의 그림같고 나중에 안덕훈도 유격대에 참가했다 희생당하고만다는 이야기는 애 처롭기마저 하다. 회고록의 해당 부분을 그대로 옮긴다. 1936년말-1937년초의 백두산지구 겨울은 우리의 기억속에 지금도 인상깊게 아로새겨져있다. 그 기억의 한쪽모퉁이에는 장백현 19도구의 안덕훈농민도 있다. 안덕훈을 만나던 당시는 장백현일대에서 우리에 대한 신화같은 전 설들이 파다하게 퍼져 김일성이 솔방울을 만지면 정말로 총알이 된 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안덕훈은 그런 기담들에 류다른 호기심을 가지고 우리가 자기 집 문턱을 넘어서기 바쁘게 대답하기가 매우 난처한 질문을 연거퍼 들 이대였다. 다행히도 주인이 아래방에 있는 김평을 대장으로 알고 그 하고만 상대하였기때문에 나는 거기에 끼여들지 않아도 되였다. 그 들의 대화가 아주 해학적이였다. <장군은 3일천기만이 아니라 훨씬 더 먼 앞날까지 환히 내다본

129 (25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57) 다는것이 사실입니까?> 안덕훈이 김평에게 던진 첫 질문이였다. <사실이구말구요.> 김평은 시치미를 떼고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안덕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그리고는 또다시 새로운 질문을 들이댔다. <웃마을 령감들이 그러는데 장군은 일이 있을 때는 눈을 뜨고 일이 없을 때는 눈을 감는다고 하더구만요. 그것도 사실이라고 믿 어야 할가요?> <네, 사실로 믿어도 됩니다. 장군은 일이 없을 때는 눈을 감지 만 일단 눈을 뜨면 아예 큰 변이 나지요.> <장군이 축지법을 쓴다는것도 사실입니까?> <사실이지요. 장군은 산을 주름잡아가지고 사방으로 훨훨 날아다 니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지요.> <들리는 소문에는 김장군이 옛날의 홍길동이도 무색케 하는 신 출귀몰의 장수라더니 과시 그렇구만.> 하나같이 어처구니없는 물음이고 또 그 물음에 못지 않게 어처 구니없는 대답이였으나 주인이 하도 정색해서 질문하고 손님이 또 한 그에 못지 않게 정색해서 대답하는 바람에 나는 그 일문일답 을 제지시킬 엄두도 내지 못하고 듣기만 하였다. 더우기 나를 놀 라게 한것은 평소에 그렇게도 솔직하고 고지식한 김평이 그런 엉터 리없는 대답을 연방 둘러대면서도 전혀 어색해하거나 면구스러워하 지 않는것이였다. 안덕훈은 김평에게 당신은 장군을 몇번이나 만나보았는가, 지금 김장군이 우리 마을에 와있는가고 물었다. 김평은 이번에도 자주 만나본다, 지금 김장군이 당신네 마을에 와있다고 주저없이 대답하였다. 주인이 잠시 밖으로 나간 사이 나는 김평에게 그런 싱거운 소리 를 무엇때문에 하는가고 가볍게 나무랐다. 김평은 웃으면서 인민들이 전설을 믿으면 그 전설을 100% 긍정 해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인민들이 우리 조선에 하늘이 낸 신비로 운 장수가 있다고 말하는것은 그런 장수가 나와서 나라를 찾아주었 으면 하는 념원으로부터 출발한것이고 그런 천출장수가 정말로 있 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면 빼앗긴 나라를 꼭 되찾을수 있다는 신심 을 안고 우리를 따라 반일성전에 더 기운차게 떨쳐나설수 있을것이 기때문이라는것이였다. <우리 동포들은 지금 일본놈들이 아무리 너덜거려도 우리 민족 가운데는 신술에 도통한 장군이 있다, 그러니 왜적을 무서워할것도 없고 두려워할것도 없다, 김장군을 따라 싸우면 능히 조선을 독립 시킬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사령관동지 일 개인에 대한 숭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이고 기대이지요. 인민이 그러기를 바라는데 굳이 아 니라고 해서 맥을 떨구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나는 김평의 말을 듣고 앞으로 군사작전을 더욱 대담하고 령활하 게 벌려 인민의 기대와 신임에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김평의 말과 같이 우리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들에서 인민들은 큰 힘을 얻었다. 조선에 왜놈들을 쩔쩔매게 하는 장군이 있다는 말 을 듣고 심신을 가다듬은 수많은 열혈청년들이 앞을 다투어 인민 혁명군에 참군하였다. 털어놓고 말해서 우리는 이 민간설화들의 덕 을 많이 본셈이였다. 그후 안덕훈도 인민혁명군에 입대하였다. 그는 다른 대원들 못지 않게 잘 싸우다가 몽강의 어느 전장에서 희생되였다. 리치호는 가

130 (25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59) 랑잎과 눈으로 그를 안장해주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때의 일을 두고 두고 가슴아프게 추억하였다. (5권 페지) 덕수골일대에서는 그후 여러명의 청년들이 입대를 탄원하였다. 그들의 입대는 장백지방에서 혁명군대오를 급격히 확대시킨 대대적 인 참군운동의 서막으로 되였다. (5권 97페지) 백두산주변의 곳곳에 생겨나기 시작한 그 조직들은 새로 창설 되는 근거지의 믿음직한 정치적지반으로 되였다. 우리는 소덕수전투가 있은 다음에도 압록강연안의 여러 마을들 을 돌면서 장백현 15도구 동강, 13도구 룡천리, 20도구 이종점 등 곳곳에서 련속 전투를 벌렸다. 압록강연안일대는 벌둥지를 쑤셔놓 은것처럼 소란스러웠다. (5권 97페지) 그러나 신화는 없다. 이민위천 예수가 죽자 온갖 괴담들이 민중속에 퍼져나간다.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괴담은 로마정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부활 한 예수가 엠마오라고 하는 작은 마을로 가는 도상에 두 행인에게 나타났다. 예수는 자기 얘기를 하는 두 행인과 동행을 한다. 장백 산기슭의 한 작은 동네에서 한 유격대원과 주민이 나눈 대화의 한 토막과 너무나 대조가 되는것 같다. 힘없고 희망을 잃은 인민들은 그들의 가슴속에서 희망의 언어를 만들어낸다. 그것을 힘있는자들은 괴담이라고 한다. 그러나 괴담 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하고 그래서 하나가 되고 빛을 찾는다. 이렇게 괴담이든 전설이든 그속에는 우리 민중들의 참소망과 진 담이 담겨져있는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분명히 론리가 있다. 그것은 한 지도자가 인민 을 위하고 인민이 그 지도자를 위하는 론리 말이다. 그래서 그것은 과학이 된다. 이런 구조속에서 신화가 탄생한다. 지도자와 인민대 중이 유리되여 서로를 객관화시킨것이 력사이다. 그래서 력사는 어 찌 보면 가짜이다. 신화가 력사보다 더 오랜 지구력과 생명력을 갖 는 리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모든 신들은 B.C. 2000년 전후의 실제 력 사적인물들이였으며 이들이 후대의 전설이 되고 괴담이 되고 괴담 이 신화가 된것으로 연구보고되고있다. 그래서 신화는 끝없이 력사가 되고 력사는 신화가 된다. 단군, 환웅, 환인도 례외는 아니다. 구약성서의 그 수많은 신의 이름들 엘로힘, 엘 샤다이, 엘 베델, 야웨 등 이들은 모두 력사적부족의 족장이름들 이였다. 이를 상세하게 알려면 Tribes of Yahweh 를 참고하 기 바란다. 주석은 장백지구에서 벌린 전투에 대하여 이렇게 회고하 였다. 나는 우리가 장백에서 벌린 싸움들이 세계를 들었다놓은 규모 가 큰것들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세계전쟁사에는 수천수만, 지어 는 수십만의 사상자를 낸 요란한 전역들과 대결전들이 얼마나 많은 가. 우리가 한 전투에 투하한 병력은 불과 수백명, 적살상도 백이 나 천단위를 헤아릴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싸움들에 대하여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돌 이켜본다. 우리가 중시하는것은 간고한 싸움에서 발현된 혁명군의 넋이다. 인민혁명군의 의지는 적들을 압도하였다. 적을 정신적으로 압도하면 승리는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우리가 장백땅에서 벌린 혈전의 자취들을 소중히 여기는 까닭이

131 (26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61) 여기에 있다. (5권 346페지) 신화는 량의 규모가 결정하지 않고 사건자체의 정신이 좌우한다. 사령관은 소덕수전투승리의 비결을 처음부터 끝까지 인민 들의 힘에 덕을 입었기때문이라고 한다. 례를 들어 전투가 끝난 다 음에 감자밭이 완전히 쑥대밭이 되였는데 만약에 인민들이 유격대 에게 피해보상을 요구했더라면 이런 생각을 해본다. 오늘날 친일매국노들이 뻔뻔하게 소송을 걸고 달려드는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것이 무리는 아닐것이다. 만약에 항일유격대가 인민들로부터 유리돼있었고 그들에게 기생 충같은 존재였다면 도저히 신출귀몰하는 신화는 생길수조차 없었 다. 유격대원들이 둔갑술을 쓴것이 아니고 인민대중이 그들의 치마 폭속에 그리고 그들의 다락속에, 장속에 이들을 숨겨주었기때문이 다. 유격대원들도 인간이고 그들도 제한된 육체의 힘을 가지고있고 하늘을 날수 있는것도 아니다. 이민위천, 이 말 한마디는 항일유격대의 기본정신이다. 그 들은 인민을 하늘같이 여겼기때문에 하늘우로 날수 있었다. 혁명군의 의지는 적들을 압도하였다. 적을 정신적으로 압도하면 승리는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러면 그 정신은 어디서 나 오는것인가? 인민대중으로부터 나온다는 바로 이것이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 고 전체는 하나를 위하는 정신 말이다. 도천리전투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적들은 자기들 소굴 에서 내려와 도천리마을에 머물고있었다. 이들이 황급하게 자기들의 굴로 돌아가려고 하는 눈치를 채고 주 민들은 이를 사령관에게 통지한다. 그런데 부대가 마 을에 도착하자면 2시간이 걸린다. 그러면 이 적들을 마을에 붙잡 아두어야 한다. 이때에 사령관은 주민들에게 이들의 식사시간을 질질 끌게 하라는 통지를 한다. 적들은 식사를 빨리 내놓으라 독촉하지만 지 하조직 구장인 정동철은 적들에게 오랜만에 마을에 왔는데 식사대 접을 잘하려고 하니 시간이 걸린다고 하면서 닭도 잡고 쌀을 찧는 시늉을 하면서 지연작전을 쓴다. 밤중이나 되여서야 식사가 준비되 였었는데 그때는 이미 부대가 마을입구에 당도해있었다. 적들은 밤중에 봇나무, 자작나무, 가시나무와 키가 넘는 갈대 들, 새초풀들이 얼기설기 뒤엉킨 소로길로 유도되여 완전히 소탕되 고말았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신이 없는것이 아니라 인민이 신이라고 생각 하며 인민과 함께 하는 거기에는 언제나 기적이 일어난다고 산 경 험으로 믿게 되였다. 이것은 신종교의 탄생을 예고하는것이며 복덩 이 방망이같이 초월적 신비적힘으로 기적이 일어난다는 종교를 청 산하는것이다. 그리스도교는 똑똑히 알라. 당신들을 넘어설 종교가 이미 탄생하였다는 사실을. 백두산자락 작은 동네에서 하나님은 그 곳 나무숲속에 나타나 기적을 행한 사실을. 여기서 인민대중이 함 께 하지 않고는 기적이 불가능하다. 유격대 잠행조례속에 신출귀몰 론리있다 인민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대하며 인민의 리익을 진정으로 옹호보위하고 인민의 생명재산을 진정으로 지켜주는 군대만이 인민 들로부터 아낌없는 지지와 성원을 받을수 있다. (5권 405페지) 회고록의 한 대목이다. 인민이 군대를 위하고 군대는 인민을 사랑하는것을 옹군애민

132 (26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63) 이라고 한다. 이를 또한 인민적성격 이라고도 한다. 이런 인민적 성격이 드디여 조선인민혁명군 잠행조례속에 다음과 같이 정리되여 나타난다. 잠행조례에서 특별히 주의를 돌린것은 군민관계와 관병 관계에 관한 문제였다. 그것은 잠행조례의 모든 조항에서 우리 혁명군의 인민적성격을 강조하고있는 점을 보아도 알수 있다. -본군은 일본제국주의와 그 주구들을 반대하여,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투쟁하는 조선인민혁명군이다. 이것은 조례의 첫 조항이였다. 우리 인민혁명군의 조직원칙을 규제한 조례의 두번째 조항에서도 본군은 조선인민의 우수한 아들딸로써 조직된 진정한 조선인민의 혁명군대라고 밝히였다. 군민관계에 대해서는 이렇게 명시하였다. -본군은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다.>는것을 깊이 명심하 고 인민의 생명재산을 옹호보위하며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면 서 군민이 일치단결하여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해방을 위하여 투 쟁한다. 관병일치에 대한 조항은 아래와 같았다. -본군의 지휘성원들과 대원들은 옹간애병, 관병일치의 정신에서 전쟁당시 어느 나라 군인들이 들어가는 마을마다에서 하루밤 성 욕을 채우려 부녀자를 내놓으라고 하면 동네 리장, 동장들이 허둥 대던 모습을 기억할것이다. 세계전사에 찾아볼수 없는 위안부를 끌 고 다니던 부대가 바로 일본제국주의군대이다. 도덕성이 없는 군대 이기때문에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어 그것을 대신하려 한다. 그러나 무기가 정신을 이겼다는 전사를 들어본적이 없다. 웰남전 에서 그 월등한 무기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호지명군대에게 패망할 수밖에 없었던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국민과 함께 하지 않는 어느 정부는 지금 자기 나라 10대의 청 소년들이 괴담에 홀려 끌려다닌다고 단정하고 괴담의 진원지를 찾 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있는 모습이 가관이다. 지도자의 지지 도가 20%대로 떨어지는것과 무관하지 않다. 1930년대말 일본제국주의자들의 패망의 순간이 다가오는것과 신 출귀몰 전설 이 퍼진것은 무관치 않다. 민중은 새로운 메 시아를 기다리고있으며 이들은 전설을 통해 자기들끼리 의사소통을 해나갔던것이다. 장백지구 어느 작은 마을에서 한 유격대원과 주민 사이에 나눈 한토막의 대화가 이렇게 민간전설이 되여 들불같이 퍼 져나갔던것이다. 군기와 풍기를 자각적으로 준수한다. (5권 419~420페지) 소설 남부군 에도 그대로 나타나있다. 지리산빨찌산들은 맞 아죽고, 굶어죽고, 얼어죽는 엄혹한 산속에서도 인민의 아들, 목 숨보다 더 귀중한 동지의 사랑, 변절은 최대의 치욕 등 규률을 고 수하였다고 한다. 이런 남부군의 행동강령은 이미 1930년대 잠행조례속에 있었던것 이고 인민적성격 그 점에서 같았다.

133 (26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65) 동족 잡아먹겠다는 상호주의 는 구루광우병의 일종 (1) 들어가는 말 소가 소를 먹을 때에 생리적광우병이 생기고 동족이 동족을 잡 아먹을 때에 정신적인간광우병이 생긴다. 리명박 정부 의 상호주 의 와 비핵, 개방, 은 바로 이런 동족잡아먹기의 론리이 며 그래서 광우병의 론리와 같다. 이것이 이 글의 요약이다. 이러 한 위험한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광우병을 병리적현상 혹은 사 회현상으로만 파악해서는 그 전모를 다 알수 없다. 론리적인 구조 의 파악만이 광우병이 얼마나 우리 민족의 생존권전반의 문제에 직 결된다는 사실을 바로 파악하게 할것이다. 미국은 지금 우리에게 미국소가 위험하다는 과학적근거를 제시 하라는 마지막카드를 던져놓고있다. 이 글은 먼저 광우병의 위험성 은 과학적근거 에 있는것이 아니고 론리적근거 에 있다는것을 제시하고 후자가 전자보다 얼마나 더 심각하고 더 포괄적인가를 보 여주기 위해 마련되였다. 그리고 광우병의 론리적근거는 리명박 정 부 와 한국 보수우익들이 주장하는 상호주의 와 그 구조가 같 다는것을 보여주자는데 글의 궁극적인 목적을 두고있다. 론리는 그 보편성때문에 과학과 사회현상에 공통으로 적용할수 있기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광우병은 소가 자기 살을 자기가 다시 먹는, 즉 자기언급적(self-reference) 인데에 그 론리적근거가 있으며 이 를 두고 생물학에서는 동종개체 라고 한다. 이는 동족이 동족을 말살하고 죽이려는 더 극단적으로 표현해 잡아먹으려는 보수우익들 의 상호주의 와 론리적으로 일치한다고 본다. 그래서 보안법 에 의한 색갈론 은 우리가 우리자신들을 끝없이 파괴해들어가 뇌송송 구멍탁 해 죽고마는 정신적으로는 광우병에 이미 다 걸려 있다는것이다. 우리는 이미 정신적으로 광우병적증상을 보이며 살 아가고있기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은 뉴기니아원시인들에게 서 광우병단백질 프리온이 처음 발견되였으며 이를 구루(Kuru) 라 하여 인간광우병의 병명이 되였다. 그래서 한국 보수우익들 은 구루들이며 보안법 은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을 때 구루사 제들이 읊는 사육제의 주문이라는것을 론리적으로 증명해나갈것 이다. 걸렸다 하면 100%치사률. 아직 치료제 전무. 세균이나 비루스 가 아닌 단백질변형에 의한 발병. 600 에도 병균이 죽지 않음. 좁 쌀만 한 크기로도 감염속도가 기하급수적. 감염경로는 수술, 음 식 등 다양함. 4~5년 잠복기간. 발병전까지 증상 전무. 광우병발 병률이 미국인 35% 그리고 한국 인은 95%라고 함.(이에 대하 여 과학적설명을 할수는 없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렇다는 론리 적인 결론을 제시할것이다.) 우리들이 즐겨 먹는 대부분의 음식이 광 우병발병부위와 관련된것이라서 광우병에 가장 취약한 나라가 한 국 이라 함. 이상이 광우병에 관해 세간에서 론난이 되고있는 내 용의 간단한 명세서이다. 그런데 한국 의 대통령 이 취임하자 마자 한 첫 작업이 바로 미국에서 광우병위험이 있는 소고기를 수 입하자는 결정이였다. 련일 이어지는 대규모초불집회에 당황한 나머지 대통령 은

134 (26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67) 미국에서 광우병 발생하면 즉각 수입중단 을 발표했다. 이에 맞장 구치듯 미국의 무역대표부 수전 슈워브는 14일 한국정부 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하면서 하나 단서를 달았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으면 이라고. 오늘 우리의 담론은 여기서부터 시작을 한다. 다시말해서 과 학적근거보다 더 중요한것은 론리적근거 라고. 그래서 과학적근거라 는 단서에 우리가 다시 속지 말아야 할 리유와 론리적근거를 생각할 때에 이번 광우병파동은 우리가 동족에 대한 사랑과 나아가 인류공 동체, 더 나아가 모든 생명체들이 서로 애정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는 중대한 교훈을 던져주고있다는 사실을 알리려 이 글을 쓴다. 광우병은 과학적근거 보다 론리적근거 가 더 중요 우리 학계는 아직 과학적 이란 말엔 절대적인 신뢰를 두고있는 수준을 넘지 못하고있다. 그러나 이미 탈현대화(포스트모더니즘)와 함께 이 말이 탈색한지는 오래다.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구조 에서 과학도 하나의 기틀(paradigm)에 불과하다고 발표한것이 1950년대 초이다. 다시말해서 과학적지식도 절대적인것이 아니고 인간이 생각 하는 틀에 따라 변한다는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과학적인 근거 라고 제시하는것도 결국 과학자들이 어느 사고의 틀로 보느냐에 따 라 달라질수밖에 없다는것이고, 이를 빤히 아는 미국이 과학적근거 를 운운하는것은 우릴 우롱하는 발언이라고밖에는 볼수 없다는것이 다. 우리가 아무리 과학적근거를 제시한다고 해도 미국은 얼마든지 그것에 대한 반증의 반증을 제시할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과학적 인 근거 라는 말을 두번다시 입밖에 내지 않는것이 좋다. 한마디로 말해서 시대착오적인 발언이라 일축해버리라는것이다. 소가 걸린다고 해서 광우병이라고 하는데 사람에게도 감염이 되 기때문에 같은 병명을 사용하지만 원래는 크로이츠펠트 야콥병 이라 한다. 그래서 여기서는 흔히 일반화되여 사용되는 광우병 이란 말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 물론 광우병의 병명도 한가지 가 아니고 여럿이 있는것이 사실이다. 파푸아뉴기니아인들속의 광 우병을 특히 구루 라고 한다. 병에 무슨 론리적근거가 있느냐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광우병 이 생기는 원인을 보면 그것은 완전히 론리적인 문제라는것을 알게 된다. 다시말해서 광우병은 소가 자기가 자기를 먹는 데서 생기 는 병이다. 소가 죽은 자기 동족과 같은 소의 살과 뼈를 사료로 먹 는데서 생기는 병이다. 소는 원래 풀을 먹는 채식동물이다. 그런데 소에게 자기 골육을 인간들이 먹이므로 생긴 병이다. 그러면 왜 인간이 채식동물에게 육식을 시켰는가? 여기에 자본 주의론리가 있다. 다시말해서 소를 빨리 기르기 위해서이다. 인간 도 육식을 하면서 키가 배이상 커졌다는것을 인류학이 증명하고있 다. 미국축산자본가들이 빨리 소를 길러 시장에 내보내 리윤을 남 기기 위한 무한한 자본에 대한 욕심, 이것이 바로 광우병발병의 근 본원인이다. 다시 왜 소를 30개월이상 기르느냐의 문제도 도축상인 들의 상업주의가 그 배경이다. 이를 알자면 22/36/50개월을 리해 하면 쉽다. 소가 자라 첫배 새끼를 낳는데 22개월, 두번째는 36개 월, 세번째는 50개월 걸린다. 그렇다면 어느 도축상인이 22개월 소 를 잡으려 하겠는가? 쉽게 리해하자면 택시기사가 돈 많이 벌자면 기본료금거리만 탈 손 님만 하루종일 이어서 모실수만 있다면 가장 수지맞는것과 같은 론리 이다. 그러나 도축상인은 택시기사와는 반대여야 수입을 올릴수 있다. 첫배는 22개월, 두번째는 14개월, 그 다음도 14개월 걸려 새로 새끼를

135 (26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69) 낳는다면 소를 오래 기를수록 좋다는 결론이 나온다. 빨리 길러 팔 아야는 하는데 빨리 팔면 소의 증식을 할수 없고 증식을 하자니 광 우병위험이 있고. 이것이 미국축산업계의 꿩 먹고 알 먹으려는 계산인 데 바로 이 계산법에 한국 의 대통령 이 즉답을 주었다는것이다. 그럼 리명박 대통령 은 왜 이런 계산법을 그대로 수용하였는가? 여기에 정치지도자들의 권력욕과 미국자본가들의 리익추구가 맞 아떨어지면 이번과 같은 사태가 발생한다. 리명박 대통령 은 지금 경제살리기 747공약 지키기에 고심, 밤잠을 설친다고 한다. 경제 성장의 방법가운데 하나가 빨리 FTA를 성공시켜 일자리를 창출하 는것이다. 당선이 되자마자 리 대통령 은 한나라당이 앞으로 자꾸자꾸 정권을 잡아야 한다. 고 했다. 좌파에게 정권 을 다 시는 넘겨주어서는 안된다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고기수입으로 이 어진다. 이렇게 자본과 권력의 한없는 욕망과 욕구충족의 사슬고리 가 국민건강권을 팽개치고말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광우병에 관한 전모를 알수 없다. 다시말해 서 다른 병이 발생하는 배경과의 관계 그리고 광우병과 같은 증상 이 국가사회전반에 걸쳐 벌어지는 사건화된 문제성에 대해서 다 알 기는 력부족이다. 광우병에 대한 위험성 그리고 광우병증상에 대한 전반적인 대응은 이제부터 말하려고 하는 론리적근거에서 재고해보 자는것이다. 우리는 광우병에 관한 수많은 담론을 지금 내놓아야 한다. 광우병이 발생하면 이란 말만큼 잘못된 말도 없다. 그때 에는, 발견되였을 때는 이미 광우병의 원인이 되는 프리온이란 단 백질이 온몸에 만연돼있을 때이다. 들판에 벼이삭이 하나 폈을 때 는 이미 온 들에 모든 벼이삭이 다 펴있다. 그때는 이미 늦는다. 미국소고기가 이대로 수입되였을 때 우리 민족은 갑자기 지구상에 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에이즈 와 광우병 의 상관성은 자기언급 이란 론리 1981년 미국 쌘프런씨스코에 거주하는 한 동성련애자에게서 당시 까지 보지 못한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다. 인류최대의 역질로 알려진 에이즈가 등장했다.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2천 1백만명이 사망했고 현재 3천 6백만명이 에이즈에 감염된 상태다. 열이 나고 마른기침이 나는 페염이였는데 페에서 흔히 보는 비루스나 세균이 아닌 주페포자 충이 발견됐다. 주페포자충은 정상인은 걸리지 않고 만성질환을 오래 앓아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에게나 나타나는 보기 드문 기생충이다. 인류는 에이즈의 공포가 가시기나 할무렵 또 하나의 복병 광우 병을 만나 앓고있다. 1986년 영국에서 소들이 체중이 감소하며 안 절부절 못하다가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부르르 떨다가 주저앉아 죽 는 현상이 나타났다. 초불집회에 나가보면 학생들이 뇌숭숭 이란 표말을 들고 다닌다. 광우병에 걸리면 뇌에 스펀지같이 구멍이 숭 숭 난다는 뜻이다. 소의 뇌조직이 녹아내려 마치 스펀지처럼 구멍 이 뻥뻥 뚫려있는 기괴한 현상이 관찰됐다. 광우병의 의학적용어는 BSE(Bovine Spongiform Encepalopathy)로 이를 우리 말로 옮 긴다면 우해면양 뇌병증 이다. 그러면 에이즈와 광우병사이에 무슨 상관관계라도 있는것일가? 생 물학적으로나 병리학적으로 보면 서로 아무런 관계가 전혀 없는것 같 이 보인다. 그러나 철학이나 론리학으로 보면 량자사이에는 일란성쌍 둥이같이 류사한 정도가 아니라 같다. 에이즈는 같은것이 같은것과 성교를 할 때 에 그리고 광우병은 같은것이 같은것을 먹을 때 에 생기는 병으로 정리할수 있다. 광우병은 소가 자기 살을 사료로 먹

136 (27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71) 을 때에 그것이 원인이 되여 생긴 병이라는것에는 지금 이의가 없다. 이를 론리학이나 철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하나 가져와 표현하면 자기언급(self-reference) 혹은 자기지시 라 하는것이다. 셀프서비스 란 자기가 자기를 접대한다는 의미이며 광우병과 에이즈는 모두 이런 자기언급적현상에서 생긴 병이라는 점에서 같다 는것이다. 다시말해서 에이즈와 광우병은 서로 병리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론리적으로는 같다. 과학자들은 이 론리를 모르기때문에 에 이즈와 광우병은 다른 종류의 병으로 본다. 그러나 철학을 전공하 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 그 두 병의 론리는 같다. 론리학에서는 인간사고를 괴롭히는 역설(paradox) 이 바로 자기언급에서 발생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인간사고속의 병과 몸의 병이 모두 이 역설 과 상관이 있을것이라 추리해볼수 있게 된다. 에이즈는 비루스가 옮기는 질환이라면, 광우병은 프리온 (prion) 이란 단백질립자가 원인이 된 질병이다. 프리온은 단백질(protein)과 비루스인자(viron)의 합성어이다. 그래서 번역하면 단백 질균 이라고 할가. 생물체가 아닌 단백질립자임에도 불구하고 세균 이나 비루스처럼 인간에게 전염되기때문에 광우병치료약은 아직 없 다. 서양의학에서 치료(curing) 라는 개념은 비루스를 죽이는것 인데 프리온은 비루스가 아닌 단백질이기때문에 서양적치료개념을 아직 적용할수 없다는것이다. 리해를 돕기 위해서 우선 프리온이 무엇인지부터 더 자세히 알아 보면 다음과 같다. 1957년 미국립보건원의 가듀섹(Carleton Gajdusek)박사는 파푸아뉴기니아원주민에게 류행하는 풍토병을 조사 하던중 프리온의 존재를 처음으로 규명해냈다. 이곳 원주민들은 친 지가 생명을 잃게 되면 장례후 친지의 뇌를 파내여 먹는 식인풍속 이 있었다. 그는 이들의 풍토병이 식인( 食 人 )풍속에서 비롯됐음을 밝혀내고 죽은 사람의 뇌속에 들어있는 단백질립자가 원인임을 찾 아냈다. 그는 이 공로로 7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같 은 사람, 그것도 친척의 골수를 먹는 풍속, 좀 으스스하지만 론리 적으로 표현하면 자기언급적이다. 그러나 프리온을 실제 분리해내고 이들의 생물학적성상( 性 狀 )을 구체적으로 밝혀낸이는 미국 UCSF대 의대의 스탠리 프루시너 (Stanley Prusiner)교수였다. 그는 인간에게 전염되는 질병을 유 발하는 단백질립자를 프리온 이라 명명하고 이들이 인간의 체내 에서 원래모양을 뒤바꿈으로써 뇌신경 등 정상세포의 손상을 초래 한다고 밝혔다. 프리온, 이것이 우리 인체에서 자기언급적현상을 조 장하고있다. 아니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기때문에 프리온이 생겼다 고 역으로 생각할수 있다. 프리온과 자기언급의 론리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기로는 생명체는 종을 뛰여넘으면 생식을 할 수 없다. 수간이 있기는 하나 생식을 하는것은 아니다. 이렇게 생 각하면 소에게 생긴 병이 어떻게 인간에게 전염이 될수 있느냐는 질문을 하지 않을수 없다. 콜레라의 경우 쥐가 병균을 전달할뿐이 지 쥐가 콜레라에 걸리는것이 아니다. 그러나 광우병의 경우는 소 가 걸린 병을 인간이 걸린다는 론리를 비약하면 종이 다른데 생식 이 가능하다는 말과도 같다. 그래서 우리는 광우병을 일으키는 단 백질이 어떻게 종을 뛰여넘어 사람에게도 광우병과 같은 질병을 일 으킬수 있을가라는 질문을 갖게 된다. 도대체 프리온단백질이 어떻게 종의 장벽을 뛰여넘어 서로 다른 두종에서 질병을 일으킬수 있도록 그 구조가 변할수 있는것일가?

137 (27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73) 앞으로 성에도 이런 단백질이 생기면 이종간의 생식이 가능하다는 결론도 미리 내릴수 있지 않겠는가? 전세계 신화의 공통적인것은 반 인반수들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외계인 ET를 비롯하여. 앞으로 신인종은 아마도 이렇게 진화되여 나타날지도 모르며 변종 단백질 프리온이 지금 기존의 단백질을 파괴하고 광우병을 야기하 듯 이런 신종들은 현존인간들을 삽시간에 추방, 우리칸에 집어넣고 도륙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상상도 해보면서 프리온이 어떻게 사 람과 소사이를 련관시키고있는지를 알아보기로 한다. 생명체의 기준은 자기속에 반드시 량립하는 두종의 인자를 가지 고있어야 한다는데 있다. 쉽게 말하면 생명이 되는 기본조건은 하나 가 양(+)이면 다른것은 반드시 음(-)인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것이 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의 기본은 유전자안에 DNA와 RNA를 량립적 으로 반드시 갖는다. 그러나 프리온은 생물과 무생물을 가늠하는 가 장 중요한 이 기준이 되는 유전자가 없다. 심지어는 가장 하등생물체인 비루스도 자신과 닮은 개체를 만들기 위해 유전물질인 DNA나 RNA를 갖고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프리온은 생명체가 갖는 론리와는 다른 론 리를 가지고있다는것을 의미한다. 특이한 론리인 자기가 자기를 분리시키 지 않는 자기언급의 론리를 가지고있는것, 이것이 바로 프리온이다. 단백질임에는 분명한 프리온이 인체내에 들어왔는데 면역체계가 이를 감지해 파괴시키지 않는 리유도 분명해졌다. 다시말해서 프리 온은 단백질이기는 하지만 우리 인체의 단백질과는 다른 론리를 가 지고있는 단백질이기때문에 침투당시 프리온은 우리 몸에서 만들어 낸 단백질처럼 면역계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게 위장전술을 쓸수 있다. 변형류사단백질이기때문에 위장전술은 성공할수 있다는 것이다. 사이비단백질 프리온이 인체에 들어오면 자기의 신분을 위 장하고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일정한 온도에서 특정한 모양을 갖추는 형상기억합금처럼 뇌신경에 독성을 미치는 구조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광우병이 발생하는 병리적구조이고 론리적구조이다. 자기가 오직 자기 인 단백질 아닌 단백질, 이것이 프리온이다. 다시말해서 프리온은 스스로 복제하고 복합체를 형성하며 유전자 의 관여없이도 사람과 소에게 질병을 유발할수 있는 특징을 나타 내는데 이와 같은 자기언급적특성을 갖는 물질이 프리온이다. 그리 고 가장 처음 발견된 경우이기도 하다. 자기언급을 통해 새로 생성 된 단백질 프리온은 기존의 단백질을 잠식해들어가 드디여 뇌에까 지 가 뇌의 구멍을 숭숭내여 스펀지모양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렇게 자기언급이라는것이 무서운 괴력을 발휘한다. 프리온의 자기언급적인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다른 단백질이 보조적인 역할을 하고있는것은 아닐 가 하는 가설을 세워보는것이다. 이 가설에 근거하여 A와 B라는 두 종류의 효모를 사용하기로 한다. A는 빨간색이고 B는 파란색이다. 대부분의 포유동물의 프리온단백질과 마찬가지로 효모 역시 정상적 인 한 효모종은 다른 효모종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A는 B에, B는 A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A와 B의 효모의 일부 분으로 구성된 융합단백질을 리용하여 한종의 프리온이 다른 종에서 질병을 일으키기 위해 어느 정도의 류사성이 필요한지 관찰하였다. 이 융합단백질이 서로 감염을 일으킬수 있다고 할 때에 그 감염이 한 종에만 제한될것으로 추측한다. 그 리유는 프리온단백질에서 정상 적인 단백질을 변형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은 한쪽끝에만 있기때문이다. 즉 그들이 만든 융합단백질은 두종의 프리온의 절반씩 (빨강+파랑)을 가지고있어서 단 한종의 활성부위만을 가지고있다는것 이다. A와 B가운데 어느 한쪽끝만 활성화된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융합단백질은 두종의 효모에서 모두 프리온단백질을 변형시킬수 있는것

138 (27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75) 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 종류의 프리온단백질이 한가지이상의 구조를 채택함으로써 두종에서 모두 활성을 나타낼수 있음을 의미한다. 쉬운 계산으로도 리해할수 있는 다시말해서 하나의 종이 두개로 동시에 활 성화될수 있다는것이다. 둘이 하나이고 하나가 둘이라 는 선방의 화 두로나 통할만 한 론리가 프리온안에서 벌어지고있는것이다. 이것은 프 리온단백질은 구조적으로 상당한 융통성을 가지고있어서 다른 단백질 의 도움이 없어도 종의 장벽을 뛰여넘을수 있다는것을 시사해준다. 모든 생명체에는 서로 다른 DNA와 RNA가 있어야 활성화되는데 프리온은 하나자체가 두가지로 나뉘여 활성화될수 있다는것이다. 그 래서 얼마든지 자기 생식할수 있는 론리를 가질수 있다는것이다. 자 기자신이 수동이고 동시에 능동이기도 하다. 구약성서는 신이 자기 이름이 스스로 있는자라 했는데 프리온이 바로 그러하다. 그래서 앞 으로 만약에 생식에도 이런 프리온 같은것이 나타나면 얼마든지 이종 교배와 성교가 가능해 지금과는 다른 인종이 출현할수 있다고 예견 하는것이다. 변종단백질이 기존의것을 괴롭혀 광우병 같은 질환을 야 기하듯 인종간에 대규모충돌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신인종이 등장 하는것이 바람직한것인지 아닌지의 가치판단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이제 우리는 소가 자기가 자기를 먹을 때에 왜 그것이 병으로 되 는가를 알게 되였다. 우리는 광우병이 발생하는 론리를 소에서만 발견할수 있는것이 아니고 인육을 먹은 인간에게도 같을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다시말해서 프리온의 자기언급적인 구조가 결국 자기가 자기를 먹는 모든 생명체에게는 다같이 나타날수 있다 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것이다. 파푸아뉴기니아원주민에서 발견된 프 리온이 광우병에도 그대로 나타나는것은 구루(Kuru)라고 하는 한 례에 불과하다. 하나는 인간이고 하나는 소의 경우이지만 거기에 작 용하는 병리학적론리는 자기언급인것으로 결국 같다고 할수 있다. 머리말 동족 잡아먹겠다는 상호주의 는 구루광우병의 일종 (2) 22일 대통령 담화내용은 내가 만든 청계천에서 너희들이 괴 담을 만들어 어린 학생들까지 동원해, 김대중, 로무현이 경제 망쳐놓았고, 내가 다시 경제 살리자니 FTA가 필수다. 로 요 약된다. 나는 그와 그의 당 이 지금 광우병증상을 보이고있지 않나 의 심하지 않을수 없다. 광우병증상은 이러하다. 인간의 경우 초기에 는 쓸데없이 잘 웃다가 잠잘 때는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른다. 자 기가 하는 말의 의미를 자기가 모르고 혼자 중얼거린다. 남을 원망 하고 시비를 건다. 중기에는 손과 발을 움직이지 못하고 고함 지 른다. 말기에는 일어서지도 먹지도 못하다 죽고만다. 소의 경우는 1. 축사입구나 착유장 등 좁은 문을 통해 들어가기 를 꺼려하고 착유중 뒤발로 차는 등 외부자극에 민감하다. 2. 침울 하고 매우 불안한 상태를 보인다. 3. 이 병이 진행되면 투명한 침 을 많이 흘리며 이를 갈기도 한다. 4. 가려움증을 보이며 자그마한 소리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5. 제대로 서있지 못하고 뒤다리 를 절고 잘 넘어지며 6. 심한 경우 후지마비증상을 보이다가 기립 불능상태로 되여 결국 페사하게 된다. 신경세포의 공포변성과 중추

139 (27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77) 신경조직의 해면상변화가 특징으로 2~5년의 다양하고 긴 잠복기와 불안, 보행장애, 기립불능, 전신마비 등 림상증상을 보이다가 결국 은 100% 페사되는 치명적인 만성진행성질병이다. 한 나라 대통령 이 이런 병증세를 보여서는 안되는 리유가 그 의 질병은 곧 우리 국민의것이 되기때문이다. 우리는 리명박 대통 령 이 경제 꼭 살리겠다. 고 했을 때에 경제 CEO로서 특별비방 이 있는줄 알았었다. 그런데 담화내용을 보니 광우병 소고기수 입-FTA 가 그의 비방의 전부인것 같다. 그렇다면 이건 아니다. 이건 국민을 완전히 속이고 대통령 된것이다. 다른것도 아니고 먹거리는 먹는 주체인 국민들이 싫다고 하면 당 장 그만두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우기고 고집을 하면서까지 강 행하는데는 다른 속셈이 있지 않나 의심하지 않을수 없다. 요즘 간 간이 흘러나오는 개헌-내각제-장기집권 (이것이야말로 괴담일지 도)소문은 국민 먹거리와 맞바꾸자는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갖지 않 을수 없게 한다. 드디여 24일 밤 초불집회에서부터는 년대에 부르던 노 래 아침이슬, 그날이 오면, 광야 등이 등장하기 시작했 다. 그때 상황과 맞아떨어져가는 국민정서가 그대로 반영된것이다. 그럼 애써 우리가 대외적으로 자랑하던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공시킨 이 나라가 물건너가는것은 아닌지? 청계천변에 서 나의 대학 노트우에, 나의 책상과 나무우에, 모 래우에 그리고 눈우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자유여 엘뤼아르의 시를 되뇐다. 이런 글도 앞으로 얼마나 더 쓸수 있을지 하면서. 자기언급의 론리와 빅뱅리론 우주는 신의 힘의 개입이 아니라 자기 조직을 하면서 빅뱅에 의 해 생겨났다는것은 로마교황청도 지금 인정한터이다. 다만 빅뱅설가 운데서도 초기발생시작(singularity)이 있었다는 펜로즈의 립장과 그것이 없다는 스티브 호킹스의 순환론(circularity)이 맞서고있을 뿐이다. 물론 교황청은 전자의 립장을 취한다. 우주의 발생이 자기 조직을 한다는것은 자기언급의 론리가 얼마 나 방대하다는것을 립증하는것이다. 에짚트의 아톰이란 신은 유일 신으로서 배우자가 없는 상태에서 우주를 창조할 때에 자위행위를 통할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광우병의 원인이 되는 프리온단백질인자 도 이런 아톰과 같이 자기 생성을 하는 힘을 가지고있다. 그러고보 면 프리온은 빅뱅의 원초적생성론리를 그대로 가지고있다는것이다. 그래서 프리온자체로 볼 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것은 현존생명체와는 그 체계가 달라 이 프리 온이 소나 인간의 몸안에 들어왔을 때에 기존의 유전인자와 다르기 때문에 프리온이 그것을 파괴해 광우병이 발생하는데 문제가 있다. 다시말해서 기존의 면역체계를 프리온이 망가뜨리고있다는데서 현존 생명체의 위기가 있다는것이다. 우선 우리는 여기서 자기언급이라는것이 막강한 힘(power)의 원인 이고 그 힘은 빅뱅을 가능하게 할 정도라는것을 확인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모두가 자동의 시대이다. 그리스도교의 초월신이 힘을 잃고 스스로의 깨달음을 강조하고있는 자력적불교가 교리적으로 탄력을 받는 리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그리스도교도 자력신앙을 강조하는 도마 복음서 같은 경전을 통해 다시 태여난다면 한가닥 희망이 있을것이다.

140 (27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79) 교차감염 과 자기언급; 프리온의 론리 교차감염 이란 소의 살이나 내장을 사료로 먹은 돼지나 닭을 다시 소가 사료로 먹었을 때에 감염되는것을 의미한다. 이것 역시 위험하다는것이다. 자기언급이란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인간에 그 리고 인간이 동물에, 동물이 식물에 먹는것에 있어서 언급을 한다. 타자언급을 하지만 그것이 다시 자기언급으로 돌아와도 같은 병이 생긴다는것이 교차감염의 론리이다. 종이 다른 동물이 먹은 자기 살을 다시 그 동물이 먹으므로 생기는 감염이 교차감염이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것은 채식이다. 설령 자기와 같은 동족끼리의 살 을 먹지 않더라도 동물이 다른 동물을 먹이로 하는것도 자기언급의 일종이다. 채식주의자들보다 육식주의자들이 병이 많은 리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지금 육식을 하더라도 지금의 의학으로는 어느 정도 치 료가능하다. 그러나 생물이 자기와 같은 종을 먹이로 먹었을 때에 치 료방법이 없는 리유는 바로 생명의 본질은 자기언급을 금하고있기때 문이다. 자기언급에 의해 생긴 병일수록 치료수단이 없다는것이다. 프리온은 열에 매우 강하다. 열에 약해 쉽게 변성이 생기는 일반 적인 단백질과 달리 300 이상의 고열에서도 수십분이상 버틸 정도 다. 자외선이나 방사선, 화학약품에도 매우 강해 사람을 죽일수 있 는 수천배의 강도와 용량에서도 파괴되지 않는다. 소고기를 완전히 태운다면 모를가 끓는물에 익히거나 살짝 굽는 정도로는 감염을 막 을수 없다는 뜻이다. 광우병이 조류독감과도 다른 리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인들이 시식으로 위험성을 국민들에게 홍보도 할수 없는 것이 광우병이다. 그래서 광우병이 만연했을 때 대통령 이 시식 할 용기가 있을지 상상해보았다. 광우병을 옮기는 프리온은 비단 소고기를 먹어야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소의 뼈나 내장에서 추출되는 기름을 리용해 만든 공업 용아교나 젤라틴속에도 프리온립자가 얼마든지 함유되여있을수 있다. 물론 이들을 그냥 만지는것만으론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재 료로 만든 의료용구라면 곤난하다. 충치치료후 치아의 빈 공간을 채우 기 위해 사용하는 치과용충전재료중 유럽산 소에서 비롯된 원료를 리 용해 제조된것이 있다면 광우병에 걸릴수도 있다. 화장품, 라면, 과자 등 소고기가 들어가는 모든 음식은 위험하다. 광우병은 수술후 모든 수술장비를 버려야 한다고 한다. 그만큼 전염이 심각하기때문이다. 그래서 광우병은 동물카니발리즘의 결과 파푸아뉴기니아원주민뿐만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인간사회에는 원 시시대 한때에는 인육을 먹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 류행한 적이 있었다. 문명이 오래된 곳에서는 전세계적인 현상이였다. 문명 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지 못한 곳에서는 지금도 이를 유지하는 곳 이 있다. 파푸아뉴기니아는 그러한 곳가운데 하나일뿐이다. 주로 그리스도교가 들어간 곳에서 이런 풍습이 사라진것도 사실이 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의식인 성만찬에서는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고 한다. 이것때문에 그리스도교도 로마정부로부터 사육제를 한 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카니발리즘의 의식을 물려받기는 했으나 그것을 상징적으로 해석했을뿐이지 실제로 인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는 않았다. 그만큼 카니발리즘의 뿌리가 깊기때 문에 초대그리스도교는 이교도의 의식을 상징적으로 수용하지 않을수 없었다. 인간이 이 카니발리즘을 그만둔 리유가운데 하나가 지금 소에 서 보는바와 같은 병리적현상때문이였을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141 (28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81) 그런데 이러한 인간 카니발리즘이 위험한것이라는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그리스도교국가들에서 동물에게 그 동물의 살과 뼈를 먹 이는 동물사육제를 하고있다. 30월령이든 20월령이든 이것은 소의 나 이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채식동물에게 동물사육자체를 금해야 한 다. 미국은 지금이라도 변명의 여지없이 모든 목장에서 동물사료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월령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언급자체 를 금해야 한다. 모든 생명있는것에 이런 론리를 적용해선 안된다. 그런데 지금 소고기협상의 쟁점이 되는것은 이런 론리적인 문제가 아니고 2005년보다는 2008년 4월 관보에서 미국의 사료정책이 완 화되였다느니, 이것을 우리 관료들이 영어번역을 잘못하였다느니 그 리고 미국이 우리를 기망했다느니, 하지만 이 모든것이 부차적인것 이라고 본다. 미국이 동물사료를 사용하지 않는 그날까지 기다렸다 소고기수입을 하여야 하는것이 순리에 맞는 태도이다. 한국 사람들 광우병에 약한 리유도 자기언급때문이다 미국사람들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35%이고 한국 사람들은 95%라고 한다. MM유전인자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를 처음 발 표했던 교수도 지금 와선 검증된것이 아니라고 미온적인 태도를 보 이고있다. 식생활에 있어서도 한국 사람들은 소의 뼈를 먹는 식 생활관습이 광우병에 취약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전문의학적인 문제에 관하여 지금 말한 아무런 지식도 자료도 나는 없다. 그러나 우에서 전개한 론리적립장에서 볼 때에 우리 민족은 다른 민족과 달리 한곳에서 오래동안 같이 살아온 단일민족이 다. 단일민족이란것은 자기언급성이 강한 민족이라는것을 의미한다. 이런 론리로 볼 때에 자기언급적인 프리온이 몸속에 들어왔을 때에는 이는 마치 기름에 불을 붙이는것과 같은 결과가 나타날것이다. 다른 어느 민족보다 우리 민족이 광우병에 약한 리유가 차라리 론리적인데 있다고 결론짓고싶다. 이는 유전인자상의 문제도 아니고 병리적인 문제도 아니고 순수 사고적추리의 문제인것이다. 이것은 과학적인 추리방법이상의 추리방법이다. 우에서 주장해온 광우병의 론리적인 모든것을 종합해볼 때에 결코 이것은 무리한 결론이 아니 라고 본다. 우리 민족의 단일민족성은 그만큼 자기언급이라는 취 약성을 가지고있지만 그만큼 상극이 아닌 상생으로 다시말해 사랑 으로 서로 응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론리가 성립하며 이런 사랑의 응집체로서의 우리 민족이 곧 세계평화에 기여할수 있는 체질이라 는것을 다음에 말하려고 한다.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으로서 자기언급의 강점을 살리면서 타자 언급을 하며 현명하게 처리하면서 살아왔다. 그것은 사람관계를 촌 수( 寸 數 )로 결정함으로 어느 촌수안에서는 결혼을 못하도록 하고 그 촌수안에서는 어떤 륜리도덕을 가져야 한다는것을 가르치고있다. 동성동본의 경우도 8촌이상은 결혼을 허용하고있다. 아마도 우리가 지금 이렇게 광우병소수입을 반대하는것도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살아온 지혜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다시말해서 우리 민족은 다른 어 떤 민족보다 자기 살 먹은 소를 먹어서는 안된다는 지혜말이다. 상호주의론리 와 교차감염 의 론리 우와 같은 추리에 의하여 문제는 정치, 경제 혹은 국제외교상에 서 이런 광우병의 론리 다시말해 자기언급의 론리가 작용을 한다 면 보통문제가 아닐것이다. 소가 자기 살을 자기가 먹는다는것은

142 (28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83) 같은 동족이 동족끼리 잡아먹는다는 점에서는 론리상 한치의 차이 도 없다. 다시말해서 만약에 같은 동족이 동족상잔을 할 때는 광 우병과 똑같은 병에 걸리고만다고 추리할수 있다. 동족상잔, 이것은 같은 동족끼리 죽이자는 말이 아닌가? 그 런데 이런 론리를 한국 보수우익집단들이 가지고있다. 소위 이 들이 전가의 보도와 같이 사용하는 말이 상호주의 이다. 같은 동족을 고사시켜 사육제를 지내자는 론리가 상호주의 론리이다. 상호주의 는 비핵, 개방, 이란 허울을 쓰고 결국은 같 은 동족을 고사시키고말자고 하지 않는가? 만약에 우리 민족이 상호주의 에 사로잡혀 북을 어떻게 해서 든 집어삼키려 한다면 결국에는 광우병증상을 나타내다 다우너 가 되고말것이다. 상호주의 의 위험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상호주의 를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5년동안을 고집한다면 우리 한 (조선)민족은 결국 다우너(DOWNER) 가 되여 땅에 고꾸라져 일 어서지 못하고말것이다. 그리고 세계사에 다우너 코리아(DOWNER KOREA)로 한줄 력사기록으로 남고 영원히 사라질것이다. 우리 민족끼리와 련방제해야 할 리유 북은 6.25를 말로든 행동이든 조국해방전쟁 이라 한다. 그리고 피의 교훈 이라 하여 같은 동족끼리는 피를 흘리지 말아야 한다 는 큰 원칙을 세워놓고있다. 그리고 핵은 결코 같은 동족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루루이 강조하고있다. 사실이야 어떻든 표현자체로는 동족끼리 죽이는것은 위험하다는 론리같다. 그러나 조, 중, 동 언론과 이 땅의 보수집단은 입만 열었다 하 면 사육제때 부르던 주문을 늘어놓는다. 걸핏하면 좌파빨갱이, 이것이 이젠 체질화되여버렸다. 여기에 보안법 은 동족말살의 광우병민족 을 재촉하는 역할을 단단히 하고있다. 동족만은 잡아 먹고보자는 이 카니발리즘앞에 전률하지 않을수 없다. 미국이 북을 잡아먹고 그 살고기를 우리가 또 먹으면 그것은 곧 제 살을 제가 먹는 꼴이 된다. 이것이 바로 교차감염의 원리이다. 그 러나 미국이 지금 핵문제해결과 함께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려 하고있 다. 남은 이를 두고 북의 통미봉남 정책이라 반발하고있다. 만약에 북이 이런 정책을 펴는것이 사실이라면 누구도 찬성을 할수 없을것이 다. 그것은 우리 민족끼리의 원리에 어긋나는것이기때문이다. 낮은 련방제 혹은 앞으로 있을 높은 련방제 혹은 어중간 한 련방제 등 어떤 련방제이든 그것은 우리 민족이 인간관계를 촌수 로 매기는 지혜의 발로이다. 느슨한 관계로 촌수를 매겨놓았다가 점차 로 그것을 조여가는 방법으로 통일방안을 모색해나가야 할것이다. 늙은 세대가 가면 누가 통일을 주도할가 걱정한 기성세대의 우려가 기우였음을 나는 청계천에서 확인할수 있었다. 우리 대통령 이 미국 에 대해 좀더 당당해지라는 압박, 이것이 10대 젊은 세대의 진정한 요구 였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우리에게 사돈의 팔촌이고 북은 이웃사촌 이다. 사촌이면 할아버지가 같지 않는가? 우린 그것보다 더 가까운 촌 수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주장은 반미라기보단 1965년도 청학동 갓쟁이들이 데모할 때의 구호였던 원미( 遠 美 )인것 같았다. 보수우익은 21세기 구루들이고 보안법 은 카니발리즘의 주문이다 사육제를 행할 때에 사제는 사람을 죽이면서 신에게 바치는 주 문을 독송한다. 이 땅의 극우보수사제들은 보안법 주문을 독송

143 (28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85) 하면서 이 땅의 어린 중고등학생까지도 좌익빨갱이 라고 내몰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이들에 잡혀 그들의 식욕을 만족시킬지 모르 겠다. 그들은 흡혈귀같이 동족의 피를 빨아먹고 살을 뜯어먹어야만 생기가 도는 족속들이다. 먄마와 중국의 재해에는 구조대를 보내라 고 하면서도 동족에게는 절대로 보내서는 안된다고 시청앞에 모여 사육제를 벌리고있다. 아마 몇사람 또 그들의 식탁에 오를것이다. 이들은 정말 21세기 구루(Kuru)들이다. 파푸아뉴기니아구루들이 인육을 먹다가 몸안에 프리온이 생기고 드디여 광우병증상을 일으 켜 뇌숭숭 탁 하고 쓰러지고말듯이 그들의 앞날이 그렇지 않으 리란 아무런 보장이 없다. 인간은 아직 여러가지로 진화가 덜된 지구상의 존재이다. 이런 불완전한 존재끼리는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지 않으면 안된다. 상극 에 직면했을 때에 광우병이나 에이즈 같은 무서운 병이 생겨난것이 다. 우리는 같은 동족끼리 사랑해야 하고 나아가 같은 인류끼리 사 랑해야 하고 같은 동물끼리 사랑해야 하고 같은 생명체끼리 사랑해 야 할 리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에 이런 사랑의 원리를 지키지 않 을 때에 우리속에는 우리도 모르게 프리온인자가 만들어져가고있다 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것이다. 지난 반세기 리념의 포로가 되여 지금 우리속에 얼마나 무시무시 한 프리온이 형성되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광우병파동이 제발 우 리속의 프리온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이렇게 생각할 때 에 이번 광우병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교훈은 돈을 주고 살수 없 는 막대한것이라 할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교훈을 다만 미국과 한국 사이의 통상마찰로만 보려 하고 병리학적으로만 보려고 하 기때문에 그 한계를 지적하려고 철학도의 한사람으로 이 글을 쓰 게 되였다. 미국 믿지 말라 했건만 못 말리는 MB사대주의 MB의 단 하나 남은 출구 사대주의 리명박(MB) 정부 에겐 지금 오직 하나의 탈출구밖에는 없이 모 든 출구가 다 막혀버렸다. 교육, 경제, 사회, 외교, 통일의 출구는 지금 다 막혀버렸다. 누가 막은것이 아니고 MB스스로 막았다. 그 에게 지금 단 하나 남은 출구는 사대주의 이다. 출구를 막은 바 위는 사대주의이기때문에 사대주의자체는 남기때문이다. 이제 5년동 안 MB는 이 사대주의 하나만은 붙들고 버티여야 한다. 그래서 사 대주의는 방어의 수단인 대상이다. MB자신도 괴롭고 우리 국민들도 고달프게 됐다. 보수우익들은 사대주의가 체질화되여있으니 사대주의그늘밑에서 한세상 잘 지낼것 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어린 세대들이다. 월드컵신화와 헌법 제 1조 를 노래부르는 이 세대는 지금 MB가 펼치는 사대주의시대를 가장 견디여내기 힘들어하고있다. 우리는 지금 대통령 이 미국에 왜 저렇게 나가야 하는지 리해를 못하고있다. 나라의 현주소가 과 연 이 정도밖에 안되는지 하고 자괴감에 시달리고있다. 지금 나라형편은 미국과 협상을 할 주제가 아니다. 협상이란 대 등한 관계일 때에도 힘이 딸리는 법인데 정치군사적으로 완전히 미 국에 매여있는 마당에 경제 하나 가지고 대등한 협상을 한다는것

144 (28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87) 은 정말로 미친소도 웃을짓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협상을 미국과 한번 하려면 먼저 정치군사적인 주권부터 찾아놓고 하려면 해야 한 다. 힘이 있는 곳으로 쏠리는 삼투작용은 물리학의 법칙이다. 그래 서 힘있는자 앞에는 스스로 힘을 기르기 전까지는 가까이 가지 않 는것이 상책이다. 가보았자 사사건건 손해만 보기때문이다. 위장기발과 미국의 기망행위 5월 30일 장관고시가 있던 날 미국을 다녀온 검역관들이 줄줄이 미국소 이상없다고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묻고싶다. 당신들 보고 미국소가 웃지 않더냐고. 당신들이 우릴 검사하겠다고 웃지 않더냐고. 오렌지발음에 웃지 않더냐고. 제발 대통령 부터 미국을 알고 미국력사의 단 한줄이라도 알 고나 나서라고 당부하고싶다. 오죽하면 해방정국에 우리 민초들은 미국 믿지 말고 쏘련에 속지 말고 라 했겠는가. 미국은 건국초기 부터 한가지 술수가 있다. 그것은 자신이 가해자이면서 마치 피해 자인것처럼 자신을 위장하는 술수말이다. 이런 술수로 그 많던 인 디안들을 거의 멸종시키고 그들이 살던 땅을 다 빼앗고 지금 미국 이란 나라를 세웠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양 위장하는것, 이를 위장기발(false flag) 흔들기라고 한다. 현대사에서 진주만공격, 바크보만사건 등 이 그 대표적인 례이다. 미국은 심지어 자기들과 같은 수준의 정치 의식을 가진 유럽국가들에게도 이 수법을 사용할 정도이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의 모든 주권을 한손에 거머쥐고있는 미국과 대등한 협 상을 할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것이 상책이다. 이런 미국의 위장기 발을 두고 기망( 欺 罔 ) 이라고 한다. 이런 미국의 기망행위가 벌써 미국관료들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 작한다. 이번 소고기협상에서 자기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것이다. 미국은 협상파문에 대하여 우리는 길게, 철저하게 협상하려 했다. 그런데 한국이 서둘렀고 우리가 충분히 양보할수 있는 사안도 자 신들이(한국대표단들이) 먼저 양보해버렸다. 이제 와서 그 화살이 왜 우리에게 와야 하나. 이것이 워싱톤발이다. 우리는 이 워싱톤발이 사실이라고 본다. 우리가 지금 냉큼 효순 이, 미선이때와 같이 반미로 나가지 못하는 리유도 워싱톤발그대로 MB가 잘못했기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잘못했다고 하더라 도 미국의 기망행위자체가 용서받을수 있는것은 아니다. 환자가 의 사에게 고통을 덜기 위해 아편주사를 놓아달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그래서는 안되는 리치와 같은것이다. 미국이 정상국가라면 자기들의 국익이 중요하더라도 도덕적으로 기망행위를 해서는 안되는것과 같 다. 30개월이상 월령의 소와 SRM(광우병특정위험물질)부위는 우리 에게 독약과 같은것이기때문이다. 그래서 우의 워싱톤발은 위장기발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가해자가 피해자인양 위장하는 말이다. 그렇 다고 MB와 관리들의 잘못에 면죄부를 주자는것은 아니다. 아래글에서 나는 지난번 메히꼬와 필리핀을 기망한것에 이어 미 국이 이딸리아와 도이췰란드에서 위장기발을 흔든 사례들을 소개하 므로 우리의 타산지석으로 삼으려 한다. 위장기발은 미국의 기망행위 데이비드 그리핀교수는 9.11테로가 알 카에다의 소행이라는 사 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9.11은 미국안에 있는 알 카에다조직 이 테로를 하도록 방치한 상태에서 저질러진것으로 이런 경우를 두

145 (28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89) 고 위장기발(false flag) 로 정의하고있다. 다시 정의하면 공격 자가 자기 령역안에 있는 적을 공격해놓고는 바로 그 적국의 국기 를 휘날리는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면 공격자는 피해자가 되 고 피해자는 공격자가 되는 역설적상황이 벌어지도록 만드는것을 두 고 하는 말이다. 그러면 9.11테로의 경우 미국민들은 자국의 지도 자들은 절대로 그런 저렬한짓을 안할것이라 확신을 하게 되며 적(아 랍)에 대하여 적개심을 갖게 된다. 그러면 자국의 지도자들은 전쟁 을 유도할수 있는 명분을 쌓게 된다. 이런 도식이 바로 위장기발의 리론적배경인것이다. 그리핀은 미국아닌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3대 대표적인 위장기발 에 의한 사건을 소개하고 다음은 미국민들이 믿겨지기 어렵지만 미 국이 자행한 위장기발을 소개한다. 미국밖에서 자행된것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9.18만주사변이고 나머지 두개는 도이췰란드가 자행한 라 이프찌히방화사건(The Reichstag Fire)과 히믈러작전(Operation Himmler)이다. 라이프찌히방화사건은 1933년 2월 도이췰란드의회 본부건물인 베 를린 라이프찌히를 방화한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사건은 나 치스가 권력을 장악한지 불과 1개월이 채 안되여 일어난 사건인데 이 라이프찌히사건은 게링그와 겝벨스가 합작하여 일으킨 사건으 로 잘 알려져있다. 그러나 나치스는 도이췰란드공산당이 방화를 했 다고 선전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한 증거자료란 단지 뽈스까 에서 온 한 유약한 좌익청년 하나뿐이였다. 그런데 이 청년은 바로 겝벨스의 부하가 그 장소에 데리고 온 사 람이다. 이 방화사건을 구실로 나치스는 공산당, 사회민주당원, 로 동자, 지식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다. 모든 좌익신문은 페간 당했으며 와이마르공화국헌법에 의하여 선언된 개인과 결사의 자유 는 모두 무효화되고말았다. 나치스가 자행한 두번째 위장기발은 1939년 9월 1일 도이췰란드 가 뽈스까를 침공하기 위해 자행한것이다. 8월 31일 밤 량국의 국 경지대에 뽈스까군복을 입은 도이췰란드군인들이 나타나 도이췰란드 군인들에게 사격을 하도록 한다. 히틀러는 다음날 이를 구실로 뽈 스까공격을 명령한다. 이 침공은 제2차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즉 단 2일후에 프랑스와 영국이 전쟁을 선포한다. 많은 미국사람들은 절대로 미국의 지도자들은 이런 위장기발을 흔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그리핀은 지 적한다. 그리고 한국 의 그리스도교인들은 미국은 말그대로 아 름다운 나라이기때문에 그리고 그리스도교국가이기때문에, 하나님 을 믿기때문에 미국이 이런 저렬한 위장기발을 사용할것이라고는 절 대로 믿지 않는다는것이다. 그러나 다음 그리핀은 례를 통해 미국 은 이미 19세기 중엽부터 이런 위장기발을 사용했으며 그런 의미 에서 위장기발의 원조는 바로 미국이라는 사실을 다음 사례를 통하 여 립증하고있다. 이딸리아에서 흔든 미국의 위장기발 2005년 스위스력사가 겐서(Daniel Ganser)가 지적한바에 의하 면 미국은 지난 랭전시기에 심지어 유럽에서도 엄청난 테로를 자 행해왔다고 보고하고있다.(NATO s secret armies: Operation Gladio and Terrorism in Western Europe) 이 보고서에 기초하여 대표적인 위장기발의 사례를 소개하려 한 다. 우선 력사적배경부터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이 유럽에서 기망행위를 한 때가 바로 한국 에서 정

146 (29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91) 부 요인들이 암살될 때와 시기적으로 일치하기때문에 우리의 각 별한 관심을 요한다. 1947년 미 트루맨대통령은 National Security Act(NSA)의 지원을 받아 종전의 첩보기관이던 OSS를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로 바꾸어 창설한다. 이렇게 새로운 기구들을 탄생시킨 목적은 유럽에서 선거를 통해 거세게 발 흥하고있는 공산당박멸을 겨냥하기 위해서이다. 그 첫번째로 겨냥한 나라가 바로 이딸리아이다. 미국이 이딸리아에서 한 행동을 보면 같 은 시기에 한국 에서 한 행동을 거의 완벽하게 리해할수 있을것 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기망행위를 한 수법이 동일하기때문이다. 한국 에서도 정부 수립을 위해 선거가 진행되던 때 이딸리아 에서도 1948년 총선이 있었다. 미국은 즉각 CIA에 명령 NSC4-A를 내려 공산당원들의 당선을 막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 고 한다. 이 명령이 성공적이자 미국정부는 명령이름을 NSC10/2로 바꾸어 이번엔 전세계에 있는 CIA에게 지령을 내린다. 이 명령속에 는 선전, 경제전쟁, 사보타쥐, 폭파, 적대정부전복, 학살 이 들 어있다. 이 명령과 관련 한국 에 해당하는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구태여 여기서 지적하지 않아도 될것이다. 김구, 려운형, 송진우 등 등 조금이라도 좌익혐의가 있는 요인들은 모조리 저격, 학살하라는 내용이 NSC10/2속에 포함돼있지 않았다고 할수 있을가. 우리는 미국이 발한 이 명령에 대하여 더 자세한 고찰을 여 기서 할 필요가 있다. 1949년 나토창설과 함께 이 작전명령은 CPC(Clandenstine Planning Committee)로 바뀌였으며 이 명 령을 미국 CIA와 국방성이 완전히 장악하고 주도했다. 이때에 나 토사령관이 미국군인이란 사실은 이를 더욱 분명하게 한다. 1966년 프랑스 드골대통령이 나토본부를 추방하자 벨지끄의 브류쎌로 옮기 기는 했으나 여전히 실권은 모두 미국국방성이 좌지우지했었다. 이 CPC가 하는 역할을 보면 극우단체 심지어는 히틀러나치스의 SS까 지 포섭하여 비밀군대를 만드는것이였다. 이 비밀군대를 두고 공식적으로는 한발 물러서있는 군대(staybehind-armies) 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왜 이런 명칭을 붙이게 되였는가를 아는것은 더욱 흥미롭다. 한발 물러서있기란 요인암살 같은데 미국이 직접 개입하지 않고 뒤에서 조종만을 한다는것이다. 그래서 결국 미국은 점령자에게 쏟아지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수 있다. 김구를 비롯한 정부 요인들의 암살자들이 아직까지 밝혀 지지 않고있는 원인이 바로 미국의 한발 물러서있기 작전때문이 아 니라 할수 있을가. 미국은 전세계 도처에서 공산당박멸을 할 때에 이 작전을 례외없이 사용하였다. 이런 미국의 작전에 희생된 나라 의 수는 손가락으로 다 셀수 없을 정도이지만 그 대표적인 례만 여 기서 들어볼가 한다. 리챠드 닉슨대통령시절 이딸리아에서 전개한 소위 글라디오작 전명령(Operation Gladio)은 실로 가관이라 아니할수 없다. 글라디오란 반공극우단체 비밀첩보기관이다. 1969년 12월 12일 로 마와 밀란의 피자에서 4개의 폭탄이 터져 16명이 죽고 80여명이 부 상을 입었다. 이 사건을 피자 폰타나 대학살사건이라고 부른다. 물 론 좌익들이 사건을 자행했다고 대서특필 선전하였다. 1972년에는 이딸리아국회 경비경찰이 페타노에서 자동차폭파사고로 죽었다. 닉 명자가 제보하기를 Red Brigades의 소행이라고 했으며 결국 이런 미확인된 정보에 근거하여 공산주의자들 소탕작전이 벌어져 200여 명의 공산주의자들이 체포되였다. 1978년은 이딸리아공산당이 국회의원선거에서 대승을 한 해였다. 수상인 알도 모로(Aldo Moro)는 드디여 워싱톤의 의사에 반하여 공산당을 양성화시키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랍치되여

147 (29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93) 살해되였다. 또다시 이것마저 공산당의 소행이라고 책임전가를 하였 다. 알도 모로살해는 마치 우리 나라 해방공간에서 려운형이 암살 당한것과 류사한 사건이라고 할수 있다. 1980년 볼로냐 기차역에서 대규모폭발사고가 일어나 무려 85명이 죽었다. 이 사건도 공산당의 소행으로 그동안 알려졌었다. 미국의 이러한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기망행위는 끔찍하다 할만 하다. 미국의 이러한 상습화된 기망적행동은 그들의 태생적한계이 다. 다시말해서 미국의 건국이라는것이 이런 야비한 거짓말이 없었 더라면 그자체가 불가능했을것이라는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정체를 간파한 우리 민초들은 미국 믿지 말라 고 한것이다. 나는 지금 으로부터 무려 반세기나 전에 어떻게 이런 고도의 정치의식을 우리 민중들이 갖게 되였는지 리해하기가 힘들다. 지금 전세계에서 일방적인 힘을 구사하고있는 미국의 이런 기망 행위앞에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자주의 길뿐이다. 이것은 오직 하 나의 길일뿐이다. 자주의 반대인 사대주의는 미국앞에 나라를 통채 로 가져다 바치는것과 같다. 그런데 우리 교과서에서 자주 라는 말이 사라진지 오래됐고 자주를 말하는것은 좌파빨갱이 와 등식 이 되고말았다. 자주, 이것은 지금 남 한 사회에서 금기 1호이 다. 그렇다면 우리앞에는 자멸의 길밖에는 없다. 우리는 살아남아 야 한다. 그래서 사대주의청산과 자주를 련습하는 학습을 안깐힘 을 써서라도 해야 한다. 그러면 어디서 우리는 자주학습의 교과서 를 발견할것인가? 사대주의는 허무주의발로이고 망국의 첩경이다 회고록 전 8권 모두에서 주석은 나라를 빨리 망하게 하려 면 사대주의부터 하라고 경고하고있다. 각 권마다 사대주의에 대한 리해배경은 조금씩 다르다. 제1권에서는 나라가 망하는 근본적인 원 인이 사대주의라고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력대로 사대주의를 일삼아오던 부패무능한 봉건통치배들은 나 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있는 때에조차 큰 나라들의 조종밑에 당파 싸움만 하였다. 그러다나니 오늘 친일파가 득세하면 일본군대가 왕 궁을 지키고 래일 친로파가 득세하면 로씨야군대가 임금을 호위하 고 모레 친청파가 득세하면 청나라군대가 대궐의 파수를 서는 판 이였다. (1권 3페지) 나라가 망한 가장 큰 원인이 사대주의이며 나라를 잃고도 정신 을 못 차리고 그 습관이 그대로 남아 사대주의방법으로 구국활동 을 했다는것이다. 주로 국내민족주의진영의 독립운동방식에 대한 비 판이다. 헤그밀사사건은 봉건통치배들의 뿌리깊은 사대의식을 잡아흔드 는 하나의 힘있는 경종이였다. 만국평화회의장을 붉게 물들인 리준 의 피는 후대들에게 세계의 그 어떤 강대국도 조선독립을 선사하지 않는다는것과 남의 덕으로는 나라의 독립을 성취할수 없다는것을 똑똑히 경고해주었다. (1권 41페지) 민족주의운동의 상층부가 이 교훈을 명심하지 않고 또다시 미 국과 <민족자결론>에 기대를 건것은 그들의 머리에 숭미사대주의사 상이 그만큼 뿌리깊이 남아있었기때문이였다. 무능한 봉건통치배들

148 (29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95) 은 지난날 나라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큰 나라들을 쳐다보면서 그 들의 힘을 빌어 국운을 타개해보려고 하였다. 이 버릇이 민족주의 운동상층에도 그대로 이식되였다. (1권 42페지) 3권-4권에서는 주로 공산주의자들안의 사대주의를 지적하고있다. 맑스주의를 교조적으로 받아들이는것도 사대주의라고 보았다. 특 히 여기서 주체사상이 등장하는 배경이 된다. 1930년대초 동만일 대에서 반 민생단 사건이 진행되면서 주석은 좌파내 사대주 의를 혐오한다. 5권-6권에서는 외세에 기대려는 사대주의에 대하여 통렬하게 비 판한다. 회고록 전편에는 사대주의를 다방면에 걸쳐 지적을 하고 우리 글, 우리 말을 지켜야 하고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 라고 한다. 그러면 왜 사대주의를 하면 나라가 망하는가? 그 리유를 두고 사 대주의는 허무주의로 가는 첩경이라고 한다. 주변의 수많은 변절자 들이 한결같이 사대주의자들이였고 사대주의자들은 쉽게 허무주의 에 빠진다고 한다. 그래서 적의 무기보다 더 무서운것은 허무주의 로 직결되는 사대주의라고 했다. MB가 임기 3개월만에 지지도 20%로 추락한것은 그의 말리지 못 하는 사대주의때문이다. 초불집회뒤에서 사람들이 모여앉아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은 광우병소리라기보다는 주로 그가 미국과 일본에서 보여준 태도이다. 대통령 으로서 영어실력을 발휘하려 한것이라든 지, 일본에서 국왕앞에 고개숙인 태도 같은것들이 모두 국민들의 수치심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광우병파동이 쉽게 가라앉기가 힘들것으로 판단한다. MB가 근본적으로 자주정신으로 돌아와 국정을 운영하기 전에는. 항일유격대 일행천리전략식으로 재협상하라! 2MB의 별수 없는 꼼수 자고로 전쟁마당에서나 협상술에서나 심지어 바둑판에서마저 상 대방을 이기려면 상대방보다 한수( 數 ) 높아야 한다. 그런데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협상술에서 MB 정부 는 별수 없는 꼼수만 내 보이고있어서 우리를 실망시키고 나아가 불안케 하고있다. 계속 거 짓말만 하다가 국민들의 초불앞에 무릎을 꿇고 내놓는 수란 업자 들간의 자률규제 에 기대하자는것이 고작이다. 2008년 6월 7일에는 부쉬한테 전화까지 해 월령 30개월 소고 기가 수입되지 않도록 리해를 구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이 정도면 2MB의 수량( 數 量 )은 다했다고 할수 있다. 일개 국가 가 미국의 장사군들의 자률에 의지해 국민들의 건강권을 내던지고있으면서도 스스로 창피한줄도 모르고있는것이 지금 대통령 의 용량이다. 문 서로 작성해두어도 불리하면 사문화시키는것이 미국인데 전화통화 하나로 부쉬의 말을 믿어달라고. 사대주의극치라 아니할수 없다. 실로 한국 호는 다시 위기에 처해있다. 왜 하필이면 그리스도 교장로 대통령 때마다 이런 위기가 오는지 모르겠다. 2MB는 6일 소고기재협상론난과 관련, 지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소고기) 재 협상얘기를 해서 경제에 충격이 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수 있다.

149 (29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97) 고 말했다. 정말 가슴이 답답하다. 도대체 더 큰 충격이란 무엇인 가? 국민의 건강권이상 더 큰 충격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거리의 한복판 차나 다녀야 할 길에 젊은 학생들이 밤과 낮을 구 별하지 않고 도로를 메우고있는데 대통령 의 입에서 이런 수밖에 나오지 않는데 실로 걱정이 앞서지 않을수 없다. 지금의 경제위기를 두고 불가항력 이라고 했다. 불가항력이 올것으로 생각하고 우리 국민들은 그를 대통령 으로 선택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의 입에서 지금 이런 말이 나온다는것은 보통일이 아니지 않는가? 불 가항력적상황에서도 리순신은 아직 신에게는 13척의 배가 남아있 나이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번 일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명 명백백한 대통령 개인의 잘못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하지 못하겠다면 그가 취해야 할 선택은 분명하지 않는가? 그래도 우리는 지혜와 용기로 이 위기를 슬기롭게 탈출해나가야 한다. 거기에는 한가지 귀감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 귀감을 오늘 1937년 초여름 항일유격대의 소탕하전투에서 있었던 일행천리의 전 술전략에서 찾아보려 이 글을 쓴다. 동성서격( 東 聲 西 擊 )과 서성동격( 西 聲 東 擊 ) 유격전술 지금 일방적힘을 구사하고있는 미국이 오직 한 나라 북(조선)앞 에서는 백기를 늘 들고말았다. 리비아의 가다피도 굴하고말았다. 그 러나 도대체 북미간에 무슨 징크스가 있어서 이런 결과가 생겨나는 것일가? 나는 그 비결을 항일유격대의 전술과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고록은 항일유격대가 일본과 벌린 크 고작은 전투에 대한 서술로 점철돼있다. 사령관과 같은 나이의 중국유격대장들은 거의 죽었다. 양 정우, 위증민, 진한장 등이 잡혀죽고 병사했지만 사령관만은 건재하였다. 그 비결은 다름아닌 뛰여난 전략전술에 있었다고 사 려된다. 그리고 해방이후 북이 대외적으로 특히 대미협상에서 항 상 우위의 자리에 설수 있었던것도 사령관의 유격전술전략의 연장에서 매사에 림하기때문이라고 판단되여 여기에 한 사례를 소 개한다. 실로 한 나라 지도자의 지략과 지혜 그리고 용기와 결단 은 그 개인뿐만아니라 국가의 행불행과 운명을 좌우할만큼 중요 하다. 항일유격대의 전술가운데 대표적인것이 적을 교란시키는것이다. 매복전, 유인전, 기습전, 야간습격전 등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전 술을 구사하여 적을 우선 피동으로 몰아넣는것이다. 이를 두고 동 에 번쩍, 서에 번쩍이라고 한다. 동에서 소리를 내면서 서에서 치 고 서에서 소리내면서 동에서 치는 전술말이다. 이를 동성서격( 東 聲 西 擊 )과 서성동격( 西 聲 東 擊 )이라 한다. 일제도 항일유격대의 이런 전술에 맞서서 오가작통( 五 家 作 統 ), 십가련좌법, 보갑제도수법을 사용하였다. 이는 일제가 항일유격대와 인민들을 격리시키기 위하여 사 용한 수법으로 5가정단위로 조직을 만들어 서로 감시하도록 하고 만약에 어느 한 가정이라도 유격대원을 숨겨주면 10가정을 련좌법 으로 처형하는 제도이다. 그리고 견벽청야( 堅 壁 淸 野 )는 토성을 쌓 고 들에는 집 하나 없이 깨끗이 불태워버리는것이다. 이 수법은 지 난 전쟁중 공비토벌 이라 하여 산간벽지의 집들을 소개시키고 불 태워버린것과 같다고 할수 있다. 이에 맞서 유격대는 이정화령 그리고 이령화정의 전술을 구사한다. 있는것 같은데 사라지고 없는것 같은데 갑자기 나타난다

150 (29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299) 는 뜻이다. 이를 두고 신출귀몰이라고 한것이다. 백전백패한 일본은 사령관의 이름만 들어도 혼쭐이 나 도망치고 막대한 현상금 까지 걸었다. 그러나 사령관은 신출귀몰하는 전술과 전략으로 건재하였고 동지들도 살아남아 해방과 함께 그들은 조국에 들어왔 다. 이렇게 세운 정부와 외세에 의존한 사대주의근성이 바탕이 된 정부 하고는 질적으로 다른것이다. 우선 외교전략과 협상술에서 그 차이는 심대하다. 협상하는 대상국을 사대하고 무슨 협상이 제 대로 되겠는가. 차라리 그것은 협상이 아니고 조공이지. 일행천리 이신작칙 1936년 6월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국경지역에로의 진출을 앞두 고 사령관은 그 백두산서북부일대의 적을 제압하기 위하여 무송현쪽으로 진공을 명령한다. 이 전략을 두고 이정화령, 이령화 정이라고 한다. 대원들은 모두 왜 느닷없이 북행길이냐고 의아해한 다. 그러나 만약에 남행길을 앞두고 남으로 바로 내려가면 그곳으 로 적의 병력이 몰릴것은 명확하지 않는가? 결국 적의 주의를 분산 시키기 위해서 남행길을 위한 북행전략을 세운것이다. 사령관 의 이런 전략은 적중하여 장백지역에 결집돼있던 적의 병력은 사방 으로 분산되였고 초점을 잃고말았으며 이 일대에 있던 지하조직들 은 조직망을 단단히 다져 후일 유격대가 왔을 때에 큰 힘이 되였 다. 이런 전술전략을 두고 이정화령이라고 한다. 1937년 춘삼월 만주에도 봄이 들어 버들이 싹을 틀무렵. 이름도 양목정자, 버들이 많은 고장이라 하여 이런 이름이 붙게 되였다. 만 강부근의 양목정자에는 동서로 나뉘여 두개의 밀영이 있었다. 주석의 유격활동가운데 이곳을 잊을수 없는것은 이곳에서 가장 사랑하던 동지들을 잃어버렸기때문이다. 리동백, 리달경동지 를 모두 이곳에서 잃어버렸다. 오른팔, 왼팔하던 동지들이 모두 이 곳에서 산화하였다. 일명 소탕하전투라 하는 전투가 바로 이 양목정자밀영부근에서 있었다. 너무나도 많은 적들이 포위하여 하늘에 나는 새가 아니고 야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정도였다. 적들이 피운 우등불불빛이 가 히 바다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고 한다. 이 마당에 나올수 있는 전술이란 누구나 한번 싸우다 죽는 결사항전( 決 死 抗 戰 )뿐이 였다. 이것은 일종의 자포자기에 가까운것으로서 유격활동의 력사 를 여기서 막내리고마는 절박한 순간이였다. 적은 대략 수천명, 유 격대원은 고작 수백명에 지나지 않았다. 련대장 손장상이 주장한 전략이 결사항전이였다. 그러나 사령관은 동무들, 살아남는다는것은 죽는것 보다 더 힘든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죽을것이 아니라 모두가 살 아서 혁명을 계속해야 한다. (6권 28페지)고 상상밖의 제안을 한 다. 많은 동지들이 자루안에 든 쥐와 같은데 마지막 죽기 전에 결 사항전이나 하고 죽자고 하는 마당에 사령관이 한 말은 그들의 생 각과는 달랐다. 이 순간 사령관은 기발한 하나의 전술을 구 사하고있었던것이다. 그러면 사령관이 구상하고있었던 전술은 도대체 무엇이였던 가. 그것은 일행천리( 一 行 千 里 )였다. 전광석화같이, 아니 령감같이 머리속을 스친 이 생각은 유 격대가 적의 포위망을 뚫고 그것도 큰길을 통해 한사람의 희생도 없이 말그대로 일행천리로 내닫게 하였다.

151 (30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301) 큰길을 택한 정공법은 이렇게 성공했다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나는 크고작은 우등불로 가득차있는 골안을 굽어보며 포위망 을 뚫고나갈 묘책을 궁리하였다. 문제는 어느쪽으로 어떻게 뚫고나가 적의 포위를 멀리 벗어나겠 는가 하는것이였다. 만일 소탕하골안에 널려있는 <토벌대>의 병력 이 수천명으로 추산된다면 적의 후방은 지금 텅 비여있을것이다, 적들은 우리가 포위환을 벗어나는 경우 분명 더 깊은 산속으로 빠 지려 할것이라고 생각할수 있다, 이런 조건에서는 적의 포위가 비 교적 약한 큰길쪽에 붙어서 살짝 빠져나가는것이 상책이다, 그 다 음에 큰길을 따라 일행천리하자, 이러한 생각이 내 머리에 떠올 랐다. (6권 28~29페지) 여기서 사령관은 적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할것인가를 먼 저 추리한다. 즉 적들은 유격대가 깊은 산속을 빠져나가리라 생 각할것이라고 적의 머리속에 먼저 들어간다. 유격대가 대로행한다 는것은 유격대전술의 기본을 어기는것이기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령관은 적이 이렇게 생각할것이니 그 반대의 선택 다시말해 서 큰길로 대로행한다는것이다. 적의 머리속에 들어가 한번 생각하 고 다시 내가 생각하고 다시 그것을 적이 어떻게 생각할것인가를 생 각하고 바로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수가 높아져가는것이다. 지휘관들은 <큰길>이라는 말에 일제히 고개를 쳐들었다. 이동 할 때 은밀성을 보장하는것은 유격대의 활동에서 철칙으로 되여있었 다. 그런데 적들의 대병력이 우리를 둘러싸고있는 때에 주민지대에 나가 대도로를 따라 행군하라고 하니 그들이 놀랄수밖에 없었다. 손장상이 내곁에 다가와 지나친 모험이 아닌가고 불안스럽게 말 했다. 그가 나의 탈출작전을 지나친 모험이라고 우려한것은 공연한 것이 아니였다. 어느모로 보든지 그것은 모험이라고 단정할수밖에 없는 아슬아슬한 작전이였다. 왜냐하면 적들이 큰길을 지키고있을 수도 있고 또 저들의 후방에 일정한 병력을 남겨놓았을수도 있기때 문이였다. (6권 29페지) 소탕하의 장대우에서 결심한 주민지대로의 탈출과 대로행군전술 은 승산이 확실한 모험이였다. 사령관이 승산이 확실하다고 본것은 바로 그 모험속에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키고 피동에서 주 동으로 넘어가려는 투철한 공격정신이 깃들어있고 적의 약점을 최 대한으로 리용하기 위한 과학적인 타산이 깔려있었기때문이다. 싸움 이란 결국 지혜와 지혜의 대결인 동시에 신념과 신념의 대결, 의지 와 의지의 대결, 용기와 용기의 대결이기도 하다. 적들은 소탕하 수십리골안에 우등불의 바다를 펼쳐놓음으로 써 자기들의 력량이 얼마만큼 된다는것과 어떤 전술로 인민혁명 군을 섬멸하려 한다는것을 죄다 로출시키였다. 그것은 그들이 우 리에게 작전문건을 탈취당한것과 같은 실수를 한것이나 다름없었 다. 그런 실수로 하여 그들은 벌써 우리에게 주도권을 빼앗긴셈이 였다. (6권 30~31페지) 다시말해서 사령관은 적들이 지금 여기 다 모여있고 큰길 을 지키고있지 않을것이라 판단한것이다. 그리고 이 판단은 적중했 다. 적들은 자기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다 로출시키고있었고 이 로 출된 모습을 사령관은 본것이다. 그때의 상황을 주석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쓰고있다. 먼저 8련대가 골짜기로 내려갔다. 그뒤를 경위중대가 따르고 7련대가 따랐다. 행군종대는 불무지들을 피해가며 큰길쪽으로 소리

152 (30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303) 없이 움직이였다. 집단의 생사를 판가리하는 복잡한 정황이나 위기 가 조성되였을 때 지휘관이 취하는 자세와 개개의 언행이 전 대오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그때 나는 크게 절감하였다. 지 휘관이 태연하면 전사들도 태연하고 지휘관이 당황해하면 전사들도 당황해하는 법이다. (6권 31페지) 예견했던바대로 신작로에는 개미 한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마을어귀에 불무지자리만 남아있을뿐이였다. 우리는 궤도우를 질주 하는 급행렬차처럼 여러개의 마을들을 거침없이 통과하면서 동강으 로 행군하였다. 우리는 총 한방 쏘지 않고 텅 빈 적구를 무사히 통과하였다. (6권 31~32페지) 소탕하에서 실현한 대로행군전술을 우리는 후날 조국에 나와 서 베개봉을 떠나 무산지구로 진출할 때에도 적용하였다. 그 전술 을 일행천리전술이라고 한다. (6권 32페지) 적들은 소탕하전투때 일본, 만주국, 도이췰란드 등 3국의 기자들 로 구성된 기자단까지 끌고 왔다고 한다. 이 과연 인간인지 신 인지 보여주려고 작심을 하고 지금으로 말하면 언론플레이를 하려 했던것이다. 철심 에 실린 동변도토비행 이라는 기사에 의하면 그때 모인 기자단은 일본의 주요신문들인 도꾜니찌니찌신붕, 요 미우리신붕, 호찌신붕 의 기자진과 함께 신경방송국 국원들과 만주국의 외교부관리들, 나치스도이췰란드의 국가통신사 통신원인 요한 네벨로 구성되여있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일, 독, 만 출판보도계와 언론계의 련합진에 외교관 들까지 합세한 어마어마한 참관단이였다. 아마도 적들은 무송지구 <토벌>작전을 전세계에 자랑할만 한 시범작전으로 판단하고 이 작 전에서 달성하게 될 저들의 <혁혁한 전과>를 만천하에 널리 소개하 고싶은 열의로 퍼그나 들떠있었던것 같다. (6권 33페지) 회고록의 글이다. 제갈량을 찜쪄먹을 도사라야 미국에 이긴다 항일유격대가 수천명에 달하는 대병력의 포위를 성과적으로 돌 파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는 통보를 받은 적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적들은 혁명군의 행방을 가늠하지 못하여 갈팡질 팡하였다. 적사병들속에서는 여러가지 괴담들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유격대의 전술은 귀신도 곡할 전술이다., 조선빨찌산에는 제갈 량을 찜쪄먹을 도사가 있다. 이런 말들이 민간에까지 흘러나와 농 촌 마실방에 모여드는 늙은이들의 화제거리로도 되였다. 주석은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이 행군을 통하여 우리 부대에 대한 민화와 전설은 더욱 풍부 해졌다. (6권 35페지) 제갈량이 얼마나 수가 높은 전략가인지는 삼국지 에 잘 기록돼 있다. 여기 제갈량과 조조사이의 두뇌싸움의 경우를 한번 례로 들 어보자. 삼국지 에서 화용도로 조조가 반드시 지나갈것인가 안 지나갈것인가를 놓고 관우와 제갈량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자. 제 갈에게 관우가 화용도로 조조가 반드시 오느냐? 묻자 제갈: 반드시 온다. 관우: 화용도의 한켠엔 산길이 또 한켠엔 평지가 있다. 오면 어느쪽으로 오느냐? 제갈: 내가 말한대로 조조가 오지 않으면 목숨을 내놓겠다. 관우: 두갈래중 어느쪽으로 오느냐? 제갈: 산길로 온다. 조조가 오게 하자면 산길쪽에서 연기를 올

153 (30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305) 리라. 그러면 조조가 틀림없이 산길쪽으로 온다. 관우: 될말이냐? 연기를 올리면 조조는 군대가 있는줄 알고 평 지로 갈것이 아니냐? 제갈: 그것이 병법의 허허실실이란것이다. 제갈량의 허허실실이란 상대방의 아는것을 아는것을 의미한다. 연기가 있으니 군대가 있다., 그러니 적이 연기있는쪽으로 오지 않을것이다. 아주 초보적인것이다. 다음 단계는 연기가 있다는것은 군대가 없다를 위장한것일수 있다. 그러니 연기가 나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것이다. 바로 조조가 여기까지 생각한것이다. 그러나 제갈량 은 그 다음단계의 높은 사고를 하여 그러니깐 조조의 이런 사고를 하는것을 리용하여 사로잡는다는것이다. 조조는 메타적사고를 했지 만 제갈량은 메타의 메타적사고를 한것이다. 연기가 있으니 군대가 있다. 연기가 있으니 군대가 없다. 량자가운데 상대방이 후자를 생 각하도록 만들어 연기도 있게 하고 군대도 있게 한다는것이다. 결 국 허의 허는 실이 되는 전법인것이다. 제갈량이 이렇게 전략을 세운것은 조조의 사고구조를 훤히 파악 하고있었기때문이다. 뇌가 단순한 사람의 경우 즉 일차원적사고를 하는 사람의 경우는 연기가 있는 곳에 군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 람의 수준에 맞게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일제가 우리를 지배할 때에 사용한 만주사변이나 중일전쟁은 모두 이 정도 차원으로도 우릴 속 일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대중들과 지도자들은 일본의 이 정도 속 임수에도 모두 속아넘어가고말았다. 그러나 조조의 머리구조는 그렇 게 단순하지 않았다. 연기가 있으니 군대가 없다고까지 사고한것이 다. 이는 상대방이 자기를 속인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경우이다. 우 리가 이 정도의 사고만 했어도 일제에 당하지는 않았을것이다. 제갈량은 조조의 사고구조를 다시 파악하여 연기를 피우고 군 대도 머물게 한것이다. 제갈량은 산에 불을 피우면 조조가 이렇게 생각할것이라 생각한것이다. 산지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기 때문에 불을 피우고 사람이 있는것처럼 위장한다. 그것에 속아 평 지를 택하면 적은 습격을 할것이 뻔하다. 조조가 여기까지 생각 을 한다는것이다. 이에 제갈은 그러므로 불을 피워 사람이 있는 것 같이 보이면 도리여 그켠으로 온다. 는것이다. 관우가 당신 말이 틀림이 없느냐? 고 하니 제갈은 틀림없다. 틀리면 내 목을 베라. 고 한다. 그런데 만약에 조조가 제갈의 이런 사고구조를 아는 경우라 면 사정은 달라진다. 다시말해서 산으로 오지를 않고 평지로 가고 말것이고 제갈의 목은 달아나고말았을것이다. 이 두뇌싸움에서 제 갈이 이겼다. 이와 같이 무기들의 전쟁보다 더 무섭고 중요한것은 의식의 전쟁이다. 유격대가 련전련승할수 있었던 비결은 모두 의식의 전쟁에 있어서 한수우에 있었기때문이다. 주석은 이런 높은 의식의 수준이 하늘로부터 주어진것도 아니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민대중 속에서 나온다고 했다. 인민들보다 현명하고 똑똑한것은 없다는것 이 기본인간관이고 철학이였다. 이렇게 철두철미 대중속에, 군중속 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거기서 지혜를 구했던것이다. 일행천리전술과 탈현대의 론리 인간은 의식의 수준이 한단계 높아지면서 지금까지 진화해왔다. 탈현대 란 현대보다 한수가 높은 의식구조를 그대로 반영한다. 원시-봉건-근대-현대-탈현대로의 발전은 그대로 의식수준의 진 화라고 할수 있다.

154 (30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307) 여기에 탈현대철학자들이 그들의 론리가 현대와는 다름을 말할 때에 약방의 감초같이 사용하는 례가 하나 있다. 그것은 에드거 앨 런 포우의 유명한 소설 잃어버린 편지 (일명 도둑맞은 편지 )이 다. 이 편지가 범죄의 단서이기때문에 수백명의 경찰을 동원하여 범 인의 집에서 이 편지를 수색했으나 찾지 못했다. 그 리유는 머리좋 은 범인은 그 편지를 거실책상우 눈에 잘 띄는 다른 편지나 서류속 에 그냥 내버려두었기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은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은 범죄자의 이런 수법마저 눈치채 고 잃어버린 편지를 찾아냈다는것이다. 수사관과 범죄자사이의 머리싸움에서 수사관이 찾기 어려운 곳에 편지를 숨긴다. 그러나 수사관이 이 사실을 안다. 여기까지가 모던 (modern)의 론리이다. 그러면 범인은 수사관이 안다는 그 사실을 알고 눈에 잘 띄는 아무 곳에 편지를 둔다. 그런데 수사관은 범 인이 안다는 그것을 알고있다. 이는 안다는것을 아는것을 다시 아 는 구조이다. 이 3중구조가 바로 탈현대의 론리이다. 그러면 범인 은 수사관의 안다는것을 알고 그것을 다시 알고 그리고 다시 그 안 다는것을 아는 4중구조를 가져야 할것이다. 물론 수사관은 5중구 조를 가져야 하고. 항일유격대의 일행천리전략식으로 재협상하라 먼저 미국은 4월 18일 협상에서 자기들이 양보하려고 한것까지 2MB가 양보하였다고 하면서 자기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나오고 있다. 이 마당에 우리가 할수 있는 선택은 무엇인가? 그것은 큰길로 일행천리하는 전술적비법을 꺼내드는것이다. 이 전략이 먹혀들자면 대통령 과 국민들이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리 국민들 은 다 준비가 되여있다. 대통령 과 여당지도부가 문제이다. 먼저 미국은 우리가 소고기재협상하자고 하면 FTA비준거부라는 카드를 들고나올것이다. 그 다음 카드는 우리의 안보를 문제들고 나올것이다. 즉 주 한 미군철수 운운하며 겁을 줄것이다. 여기서 부터는 지도자의 결단과 용기의 문제가 따른다. 과연 리명박 대통 령 이 미군철군하면 해보라고 당차게 나올 용기와 결단이 있느냐 가 문제이다. 우리가 이렇게 나와도 생각키로는 100% 미국은 상상 이외의 반응을 보일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꼬리를 내리고말것이다. 왜냐하면 주 한 미군은 우리의 안보가 아닌 자기들 목적과 필요 에 의해 존재하고있기때문이다. 미국은 지금 우리를 궁지에 몰고 완전포위하고있다고 자신만만해할것이다. 우리를 내몰면 산골짜기로 밖에는 퇴로가 없다고 압박할것이다. 마치 1937년 초봄에 항일유 격대가 겪었던것 같이. 그러나 여기에 대담하게 큰길로 일행천리하 는 전술을 펴보라는것이다. 거듭 말해 미군철수가 미국이 던질 마 지막카드인데 이에 대해 해볼테면 해보라고 말할수 있는 용기있는 지도자의 태도가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그러나 이것이 불가능한것 이 우리 현실이다. 미국의 여야는 자기들의 기득권보다 국가의 리익이 항상 앞선다. 그래서 우리는 오바마의 말도 부쉬의 말도 믿어서는 안된다. 그들 은 국내에선 싸워도 대외정책에선 언제나 짜고 고스톱친다. 그러나 우리 나라 보수우익들은 국가리익보다 자기 집단의 기득권이 앞서 는데 체질화돼있다. 우리의 정부 와 국민이 일심단결 일행천리할 수 없는 진정한 리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도 광화문에서 민초들의 초불은 애타게 타들어가고있다.

155 (30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309) 백두밀림 우등불은 세기와 더불어 광화문초불로 오늘도 타오른다 찢기는 가슴, 이 땅에 피울음 안고 우린 다시 모였다 2008년 5월 2일 처음 초불집회가 열리던 날 나는 과연 성사나 될 수 있을가, 그래도 MB 정부 등장이후 답답하던 마음이나 달래 려, 그리고 자리나 채우려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가기 시작하여 벌써 40여일이 지나가고있다. 집이 청와대뒤 세검정이라서 비오던 날은 사 방에 길이 막혀 밤자정까지 탈출구를 못 찾아 생비를 그대로 맞으 며 헤맨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이번 경우 경찰들이 이상한 방법으로 막아 빠져나가는 사람도 못 나가게 한다. 전두환, 로태우시절은 개 구멍을 만들어 한두사람은 새나가게는 했는데. 아마 이렇게 불편을 느끼게 하여 데모대에 혐오와 증오를 갖게 하려는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오산이다. 아마 서울시내 택시기사들한테 물어 보면 과거같이 데모대를 원망하는 기사들은 찾아볼수 없다. 거리상 인들도 식당가주인들도 불평하지 않는다. 이것이 지금 초불집회를 보 는 평균적인 정서이다. 리문세 (리명박 대통령 이 문제라는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라는 류행어가 이상할것 없다. 집회에 나가면 오 래동안 만나지 못하던 얼굴들도 보게 되고 무엇보다 나이어린 학생 들 특히 10대 중고등학생들의 재롱은 귀엽기가 이루 말할수 없다. 첫날 청계천 하늘광장에서 모임이 시작되던 시간, 난데없이 학교 에서 갓 하교한듯 한 아직 중3, 고1정도밖에 안돼보이는 주로 녀 학생들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나오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광장은 불꽃바다가 되였다. 하늘의 별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광장은 별빛 바다가 되였다. 한편 안타까운것은 지금 학교에서는 0교시 수업 그 리고 우렬반을 나누어 공부를 하고있는 마당에 저렇게 밤이 이슥 하도록 밖에 있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한 마음도 앞섰다. 주최 측이 빨리 끝내 돌려보냈으면 하는 생각이 정말 간절했었다. 자식 둔 부모들은 누구나 나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그러나 이 작은 별들이 일을 냈다. 큰일을 해냈다. 며칠째부터는 이 작은 책가방부대수자가 줄어들다 6월 10일 전후가 되자 다시 이 젠 열명, 스무명씩 같은 학교 교복입은 학생들끼리 무리지어 대렬의 주류를 이루고있다. 후날 력사가가 이날을 력사에 기록한다면 무명의 이들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그러나 력사가 어떻게 기록될지는 아무 도 지금 모른다. 6월 10일 같은 날 보수단체집회에서는 주로 이 학생 들의 배후가 누구다 누구다 하는것 그리고 그 배후를 성토하는것이 주류였다. 북이 배후세력이라는것이 그날 조갑제발언의 골자였다. 그러나 우리에겐 배후가 없다. 다 MB에게 상처받은 찢기는 가슴 안고 한자리에 모였다. 어린 중고등학생들, 저 생기발랄한것들이 도시 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시계에도 없는 0시에 일어나 0시에 돌아간다. 화이트헤드란 철학자는 저 나이에는 아이들에게 랑만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단에 올라가 MB가 갈가리 짓이겨놓은 감정을 서슴없이 토로한다. 내 경우 다 치유돼가 는 분단의 병이 다시 도지여 아픔을 견딜수 없어 나간다. 이렇게 구 석구석 리명박에게 상처 안 받은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배후 는 리명박이고 그가 문제인것은 개와 소들도 다 알고있다. 그래서 우 리 10대들의 랑만은 찢기는 가슴 안고 피울음으로 피여오르고있다.

156 (31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311)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나는 그동안 몇차례 여름감기가 왔다갔다하였다. 밤중에 길가에 서 걷다보니 온몸에 땀이 났다가 식으니 찬 밤공기에 한기를 견디 지 못해 몸이 성할리 없다. 그러나 초저녁만 되면 마치 아편중독쟁 이같이 초불중독증에나 걸린듯이 광화문으로 나간다. 밤 10시가 넘 으면 갑자기 집에 돌아갈 걱정이 나기 시작한다. 의례 길이 또 막힌 다. 그러면 온몸은 땀에 목욕을 한듯 하고 몸은 다시 식고 아침이 면 기침이 나고 그러면 동네 보건소에 가 감기약을 벌써 네차례나 지었다. 의사가 이젠 보건소에 오지 말고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그 러나 나는 초불에서 난 병, 초불만이 약이라고 본다. 6월 10일 길은 다 막혀 서대문을 지나 홍제동을 통해 집으로 가 는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독립문을 지나 서대문형무소 앞길을 지 나 무학재고개를 넘는 순간 나는 만주벌에서 긴긴 행군을 하던 항 일유격대원들 그리고 이 형무소에 갇혔던 박달과 리제순을 생각하 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죽은, 수많은 독립운동하다 죽은 령혼들, 고난의 행군동안 얼마나 고생들을 했을가. 라자구등판에서, 무송원 정에서 고생한 젊은이들, 감기에 걸려도 따뜻한 국 한그릇 제대로 끓여주는 사람 있었을가. 약은 어디서 구해먹고. 상상의 이런 비교 마저 외람돼보이고 부끄럽기만 하다. 인류력사상 이런 어려운 고난 의 행군은 없었을것이다. 남아메리카나 동남아 쟝글에서나 유격활 동을 하지, 북위 40 가 넘는 한벌판에서 유격활동이란 있을수 없 는 일이다. 그것도 15년이란 성상이 지나는 동안. 그나마 이 나라 력사는 이들을 아직도 공비 의 력사, 비적 의 력사로 기록하고 가르치고있다. 아마도 오늘 밤 이 초불의 력사 도 그렇게 기록될지도 모른다. 뉴라이트, 그들은 지금 우리 현대사 를 완전히 다시 쓰고있다. 김구는 테로리스트 그리고 일본의 식민 지통치를 조국근대화 로 다시 쓰고있다. 이런 력사책이 바로 우 리가 모이는 옆 대형서점가에 진렬돼 뻐젓이 팔리고있다. 그리고 이 들이 지지한 사람이 이 나라 대통령 이 되였다. 그러나 아니다. 이것은 아니다. 이것만은 아니다. 우리 력사가 이 렇게 되여서는 안된다. 절대로 안된다. 생각속에 화가 나고 가슴속 에 분노가 치밀면서 온몸은 열기가 다시 나기 시작한다. 거역해야 한다. 이들의 손에서 권력을 다시 찾아와야 하고 이들의 손에서 붓 을 다시 빼앗아야 한다. 이것은 새로운 유격활동의 시작이고 연장이 다. 이에 생각이 미치면서 며칠째 날인가부터는 항일유격대가 밝힌 백두밀림의 우등불과 광화문의 초불이 하나로 겹쳐지기 시작한다.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한달이상 웨치고 부르짖었건만 우리앞에는 항만 부두에서나 본 이상한 물체가 솟은듯이 나타났다. 명박산성. 6.10시청앞 광장 한구석에 보수의 무리들이 다시 모여 초불을 든 우리를 모두 사탄 의 무리들이니 이들로부터 장로 대통령 지켜달라고 손발 다 흔들 며 새벽 3시까지 빌었다. 나는 하루에 두곳을 오가며 볼것 다 보 았고 들을것 다 들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 력사가 옳을것인가를 판 단하였다. 내가 설 땅이 어디이고 내가 지킬 력사가 무엇인가를 똑 똑히 판단하였다. 그러면서 남북의 두 노래가 뒤범벅이 된채 입밖으로 나오지 못 한 음들이 내홍( 內 訌 )이 되여 목구멍속에 남은 가래와 함께 목 을 메운다.

157 (31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313) 장백산 줄기줄기 피울음 운다/ 압록강 굽이굽이 피줄기 흐른다/ 만주벌 눈바람아 이야기하라/ 밀림의 긴긴 밤아 이야기하라/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청진동 해장국집 마지막불 꺼지고/ 보신각 종도 울지 않을 때/ 이 땅에 새벽을 깨우는자가 누구인가를/ 만고의 애국자가 누구인가를/ 절세의 애국자가 누구인가를/ 오늘 밤 다시 이 거리 초불 켜지고 하늘 의 별은 다시 뜨리라/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부둥킨 두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에 피줄기 있다 감기에 목이 잠겨 나오지 않는 음들을 대신하여 내 눈앞에는 항 일유격대의 갈길을 밝혀주던 우등불과 광화문의 초불, 이 두 불빛 이 간섭( 干 涉 )하면서 제3의 새로운 불빛이 되여 내가 가는 북한산 보현봉 밤하늘을 어지럽힌다. 간섭하는 불빛이 서로 동조를 하지 못하고있기때문이다. 한국 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광화문네거리, 낮이면 자동차경 적소리만 요란하던 거리가 해가 넘어가기가 바쁘게 여기저기서 초불 이 뜨기 시작한다. 갑자기 숙연하고 애잔한 거리로 변한다. 언젠가 귀전에서 사라졌던 애잔한 노래 아침이슬 그리고 광야에서, 님을 향한 행진곡. 도저히 낮의 이 거리하고는 어울리지 않을듯 한, 이런 때늦은 곡 들이 진혼곡같이 들린다. 민주주의가 죽어가고있기때문인가. 통일 이 멀어져가고있기때문인가. 6월 11일 밤에는 리병렬선생행렬 지나 가는 상여소리도 들렸다. 왜 이 나라의 저항곡들은 이렇게 슬프고 도 애잔할가? 내가 좋아하는 곡은 광야에서 이다. 특히 이 노래 속에 있는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이란 가사때문이다. 만주땅,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이 그리고 독립군들이 고난의 행군을 하고 피를 뿌린 곳. 나는 이 가사와 함께 성내운선생의 시 민족 이 부르는 소리 를 함께 좋아한다. 동포의 배를 가르고 지나간/ 분계선 날카로운 철조망에 찔린 가 슴/그 피토하는 호남벌의 아픔이 있는 한 민중들의 웨치는 소리 찢기는 가슴안고 사라졌던 이 땅에 피울음 있다/ 부둥킨 두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에 피줄기 있다/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 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이젠 노래방 가사책에나 실린 박물관가락인가싶더니 차경적소리 사라진 광화문대로에서 밤이면 다시 울려퍼진다. 사랑도 명예도 이 름도 남김없이 한 령혼이 또 이 거리에서 산화했다. 산자여 따르란 웨침도 없이 또 한 령혼을 보낸다. 우등불은 세기와 더불어 탄다 우리 귀에 익숙하지 않는 우등불 이란 말을 국어사전은 화로 불 혹은 모닥불 로 풀이하고있다. 그러나 우등불 은 주로 야 영지에서 추위를 막기 위해 나무토막이나 땔나무를 쌓아놓고 피우 는 불을 말하며 우등불모임은 우등불을 피워놓고 갖는 모임을 뜻한 다. 남 한 에는 강원도 삼척 전기가 안 들어가는 산간지대에 아직 우등불이 남아있다고 한다. 방안에 굴뚝같이 솔가지를 지펴 만들어 조명용으로도 난방용으로도 쓰이는것이 우등불이다. 겨울이면 우등 불앞에서 아낙네들이 모여 길쌈도 함께 삼고 정담도 나눈다.

158 (31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315) 그러나 북에서 우등불은 이와 같은 사전적의미보다는 주로 항일 혁명시기 유격대원들이 우등불가에서 투쟁의 결의를 굳게 다진것을 본받아 어떤 일을 기념하거나 대중의 정치적열의를 높이려고 할 때 갖는 모임 의 뜻으로 쓰인다. 따라서 북에서는 주민들의 결속을 도 모하고 당의 정책수행을 위해 수시로 개최하는 각종 결의를 할 때에 이를 일반적으로 우등불모임을 통해 그 효과를 극대화하군 한다. 그래서 우등불노래도 있고 영화도 있다. 다시말해서 모두 항일유격 대시절 갖고있던 각별한 의미가 각색이 되여 말의 기표보다는 기의가 풍부해진것이다. 남에서는 사라져간 우등불이 이렇게 북에서는 각별 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우등불은 사라진것이 아니고 초불로 다시 살아나고있으며 둘은 같은 의미를 찾아가고있다고 본다.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전 8권 모두에 이 말이 나온다. 모두 60회나 나오는 말이다. 1권에 1회, 2권에 6회, 3권에 2회, 4권에 2회, 5권에 15회, 6권에 18회, 7권에 8회, 8권에 8회 나온다. 5권과 6권에 33회나 나오니 반이상이 집중돼있다. 5권-6권은 1936년- 1937년 유격활동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이고보면 우등불 과 유격 활동과는 밀접한 관계를 갖는 말이라 할수 있다. 회고록 5권에는 우등불피우는 법 이 자세하게 적혀있다. 장작 을 밑에서부터 5개, 4개, 3개로 피라미드형으로 쌓고 우에서 불 을 지피는 방법이다. 이것은 유격대가 개발한 특이한 방법인데 밀 림속에서 귀틀집과 우등불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아남을수 있었다 고 하니 우등불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고 할수 있다. 항일 유격대의 우등불피우는 법은 국제적으로 유명해져 중국인 위증민 이 장군부대에 가면 우등불피우는 법부터 배우라고 할 정도 였다고 한다.(5권 231페지)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회고록속에는 우등불에 얽힌 많은 일화들이 실려있다. 우등불 피우다 불빛이 적에게 새여 위기를 당하던 일, 김성국이 우등불에 언 발을 쪼이다가 적이 들이닥쳐 맨발로 기관총을 쏘다 발이 동상 에 걸릴번 한 일, 소탕하전투때는 적들이 세를 과시하기 위해 피운 우등불이 오히려 적들의 전략을 로출시켜 지난 회에 소개한 유격대 가 일행천리 대로행하게 만든 일은 특히 이를 두고 우등불지도 라 불리우게 되였다. 그 무엇보다 유격대원들이 모여앉아 정담을 나누고 지휘관과 부대원사이에 격의없는 형제애를 돈독하게 만들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는 문예활동의 한마당이 우등불주변에서 이 루어진것이다. 해방후 북의 그 수많은 연예와 문예활동이 모두 우 등불주변에서 유래했다고 보면 될것이다. 피바다 그리고 아리 랑 공연도 이 우등불없이 생각할수 없고 이것은 우리 민족 고유한 마당에서 피우는 모닥불문화와 멀지 않다. 그렇다. 지금 서울 한복 판에서 매일 밤 이 모닥불이 지펴지고있는것이다. 그러나 백두밀림의 우등불과 광화문초불사이에는 류사점도 있고 차 이점도 있다. 한국 에서 시작된 초불집회는 지금 전세계적으로 전 파되여 저항과 평화의 상징이 되였다. 그러나 사실은 초불문화에 공헌 을 한것은 초가 아니고 종이컵이다. 종이컵이 없었더라면 과연 초불집 회가 가능했을가. 어지간한 바람에도 그 약한 초불을 보호해주는것은 종이컵이다. 우등불지피는 법과 함께 초불을 서로 붙이는 법. 이것 역 시 기술이 필요하다. 불을 서로 붙이자마자 빠르게 초를 종이컵속으로 집어넣지 않으면 안되는 이 기술은 집회참가회수와 비례한다.

159 (31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317) 초불을 서로 붙여줄 때에 무언에 전달되는 감정, 그것은 련인간 의 에로스와 친구간의 필리아를 포개놓은것과 같다. 북에서 부르는 노래중에 우등불노래가 있다. 나는 이 노래속에서 광화문초불집회 에서 느꼈던 에로스와 필리아사랑이 하나되는것을 보았다. 달밝은 숙영지에 우등불이 타는 밤/ 사향가 부르네/ 아 우등 불, 우등불불빛에 떠나온 고향산천 어려왔어라/ 만경대이야기에 이 깔숲은 설레고 겨레의 눈빛처럼 별들도 반짝이네/ 아 우등불 우리 들의 우등불/ 우등불타는 밀림의 밤은 깊어가고/ 우리들의 대화 는 끝이 없어라 광화문에서 우리도 초불을 서로 붙여주면서 우리 어찌 가난하 리요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하고 노래불렀다. 우등불과 초불은 하나되면서도 하나가 되지 않는다. 두 불빛이 서 로 만나 간섭을 하면서 동조를 하다가도 안된다. 이것이 내 눈앞에서 반복에 반복을 한다. 빛의 파장은 서로 간섭을 할 때에 골과 골이 만나면 더 낮아지고 봉우리와 봉우리가 만나면 더 높아진다. 골과 봉우리가 만나면 동조가 되여 이를 동조성빛(coherent light) 이 라 한다. 우리의 통일도 이렇게 동조가 될 때에 어느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닐가. 그런데 리명박 정부 등장이후 이 땅의 보수우익들은 골을 더 패이게 했고 봉우리는 더 높아지도록 만들어버렸다. 리근교수(서울대)는 이번 초불집회는 한국민족주의 라고 하면서 인터네트를 통해 상호수평적으로 련계된 우리 민족주의의 발로라 고 한다.( 프레시안 6월 14일)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우리 어찌 주저 하리요 라고 할 때에 우리 는 북을 아우르는것이 아닐가? 리근교 수는 남도 북도 아닌 제3의 우리 생활민족주의 라고 하면서 먹는 음식에 걸린 생활에서 형성된 우리 라고 한다. 그럼 과연 생활민족 주의속의 우리 는 과연 남과 북이 하나되는 우리가 아닌가? 과연 초불이 갖는 의미가 우리 한국민족주의 에만 해당되는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생활건강권을 넘어선 우리 민족주의는 민족 자주권과 맥락을 같이하는것이라고 나는 본다. 양초에 처음 불을 붙인 10대들의 가슴속에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아직까지 확 인이 되지 않고있지만 그들은 자기 나이또래였던 효순이, 미선이를 생각하고있는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장갑차와 소고기는 그들에게 별 개의것이 아니라고 보고있는것 같다. 매일매일 이렇게 초불은 색갈 을 달리하면서 타고있다.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이렇게 우등불과 초불은 서로 동조가 되였다 안되였다 하였다. 그 럴 때마다 들고있는 초불은 바람에 견딜수 없어 흔들린다. 나는 14일 밤에 나가 그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자주적, 바로 이 말이다. 그렇다. 이번 광우병파동은 차라리 미국 NYT가 12일 정확하게 지적한대로 소고기이상의것이 있다. 그것은 리명박 대통 령 이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이것에 분노하고있다는것, 한 국 이 왜 강대국 미국에 휘둘려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 미국 이 이것을 리해해야 한다는것, 효순이, 미선이때도 두 녀학생을 장 갑차에 깔아죽이곤 재판을 하는척 하고는 살인범인 미병사를 미국 에 빼돌려 보냈다. 우리의 분노는 그 이후 부쉬의 사과와 한 미 관계 재정립을 통해 그나마 개선되는듯 하였다. 효순이, 미선이때 겨우 회복하는듯 하던 자존심의 상처를 리명박 정부 는 소고기협 상으로 덧나게 한것이다. 추가협상, 추가의 추가를 백번 해도 소용없다. 우리의 찢겨진 자존심 을 대통령 이 치유하고 회복시키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

160 (31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319) 는다. 이 자존심회복과 MB가 자주적이지 않는 한 이번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것이다. 이 덧난 상처를 더 아프게 하는 존재들이 뉴라이트 이다. 이들의 력사외곡과 민족문화에 대한 모독적발언은 대통령 과 한통속이 되여 우릴 지금 더 괴롭히고있다. 우리는 지금 이 덧난 상처 를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오늘 밤에도 광화문으로 나가고있는것이다. 그러나 우린 다시 섰다. 이 땅의 뜨거운 흙을 움켜쥐고 다시 섰다.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6월 13일 보수신문들은 집회군중도 지쳤고 10일 대형집회다음이라 서 초불도 시들해질것이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래서 보수단체들 이 떼거지로 몰려나왔다. 그러나 이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조금 도 줄지 않은 집회군중들의 주류는 서대문을 통해 KBS 로 향하고 광 화문에 남아있던 모임은 주로 10대련대 가 주도했다. 이번 초불은 10대들이 처음 달군것이다. 효순이, 미선이 죽을 때 초등학교 다니던 학생들이 이제 벌써 고등학생들이 되여 이들이 만든것이 10대련대 이고 이들이 이번 집회의 주인공들이다. 7명이 들고있는 피켓에는 미군없는 세상에서 고운 넋으로 피여나소서 였다. 자기들이 작사작 곡한 곡들이 수없이 많았으며 이것들을 모두 광장에서 선보일 때에 관광온 외국인들도 함께 춤추지 않을수 없도록 만들었다. 나는 이 10대들에게서 그 어느 가치보다 자주 라는것을 피부로 느낄수 있었 다. 미친소고기 기성세대나 먹어라, 우린 못 먹겠다 는것이다. 이들 의 구호가운데는 차라리 부쉬의 똥이 더 안전하다 도 있었다. 1930년대 항일유격대원들가운데는 10대소년병들이 있었다. 그래 서 소년중대까지 만들 정도였다. 그런데 남 한 보수들은 10대들이 어떻게 유격활동을 하느냐며 이를 조작이라고 한다. 지금도 같은 소리를 한다. 이들 배후에는 분명히 검은손이 있을것이라 한다. 그 리고 지금 그 배후찾기에 혈안이 되여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들 보 수들이 자기들 장신년령을 맞추어 평가절하하고있는 일고의 상대할 가치가 없는 발상이다. 기성세대는 차라리 이들의 놀이에 구경군들 이고 이들로부터 자주를 학습하고있다. 나는 이들 10대들에게서 희 망을 발견하였다. 자존심있는 자주정신의 지킴이가 이들에게 싹트 고있고 우등불과 초불은 그래서 만날수 있고 서로 두 불빛이 동조 하여 어떤 광풍앞에서도 꺼지지 않을것이라 나는 믿는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작고 약한 초불이 지금 세계를 움직이고있 다. 오스트랄리아방송국은 알콜과 마약에 중독이 된 오스트랄리아청 소년들을 향해 한국 의 청소년들을 배우라 하고 미국시민들은 자기 들이 먹는 소고기에 문제가 있다고 의식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 초 불집회를 찾는것은 외국관광의 필수코스가 되여가고있다. 이렇게 우리 는 지금 세기와 더불어 살아가고있다.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나라 들이 있지만 청춘이 그 나라를 이끌어나가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이것 은 남북이 마찬가지이다. 영원한 청춘인 겨레가 바로 우리이다. 철없고 어린것들이라 하지만 이들에게 모든 세대가 갖지 못하 는 감수성이 있다. 이 감수성은 벌레의 촉각과도 같으며 이 촉각 은 우주의 변화를 감수할만큼이나 강하다. 감수성은 신경의 중추 에서 생기며 이 중추는 자주성 없이 발달하는 법이 없다. 괴로 운것은 이 자주성은 청춘의 비애(tragedy of youth) 를 통해 서만 가능하며 이 가능성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 가 되고있는것이다. 그래서 고난의 행군과 세기와 더불어 는 다 른것이 아니다. 이 땅의 뜨거운 흙을 움켜쥐고 우리는 이렇게 지 금 하나가 되였다. 광화문초불들이 긴 밤 지새우고 백두밀림 풀잎 마다 아침이슬로 맺히리.

161 (32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321) 집단지성과 헌법 63조의 집단주의원칙이 웹 3.0을 창조할 때가 온다 나는 2008년 6월 21일(토) 오후 3시부터 서울시청광장에 나가 배 회하기 시작했다. 4시에 정부 가 소고기추가협상결과를 발표하기 로 되여있고 전날에는 대통령 비서진 물갈이가 있었다. 과연 그 결과가 초불에 어떤 영향을 주고있는지 확인하고싶어서였다. 하늘은 장마비를 머금은 검은구름을 잔뜩 이고있고 정부 는 비만 내리기를 기다렸을것이다. 토요일 오후 4시에 발표를 하면 저 녁초불모임은 한풀 꺾일것이라 생각했던것 같다. 그러나 하늘도 도 왔고 시민들은 정부 발표는 보나마나라는듯 4시무렵에는 이미 광 장을 그득 메운 상태였다. 4시이전부터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든 리유는 무엇일가. 나는 그 리유를 지금 사람들의 마음깊은 곳에는 소고기이상의것을 담고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것을 MB의 잘못된 대전제 다시말해서 안보를 지키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시급히 서두르지 않 을수 없다. 라는 MB의 전제아닌 착각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것을 이심전심으로 다 알고있었기때문이라 생각했다. 소고기는 차라리 이런 감추어진 감정이 표현되는 출구에 불과하 다. 그래서 백두밀림의 우등불은 오늘도 여기서 다시 타고있는것이 아닐가? 그러나 우리는 다시 좌절할수밖에 없고 억울함을 안고 집 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여럿이 모였지만 그것이 하나가 되지 못 하고있다. 이 초불상황이 전체를 하나로 그리고 하나를 다시 전체 로 만드는 력동적인 작용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웹 2.0이 만들 어낸 소위 집단지성 을 락관할수만은 없다. 몰 의 구조를 한 서울시청광장 서울시청광장은 지하철 1호선, 2호선, 3호선, 4호선, 5호선에서 걸어서 10분안에 있는 공간이다. 1호선 시청역과 종각역, 2호선 시 청역과 을지로입구역, 3호선 경복궁역과 종로3가역, 4호선 서울역 과 회현역, 5호선 광화문역 출구에서 오후 5시만 되면 사람들이 빠 져나와 서울시청광장으로 모여든다. 그것도 하루이틀이 아닌 50여 일가까이. 서울시청광장은 큰길이 사방으로 나있다. 광화문방향, 서울역방 향, 정동방향, 을지로방향, 서소문방향, 안국동방향, 서대문방향으 로 큰길이 나있다. 지하철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초불을 들고 지상 에서 이런 방향으로 무리지어 행진을 한다. 그것도 수만에서 수십 만씩이나 같은 구호를 웨치며 행진한다. 그러나 가다간 막힌다. 이 것이 수십번 반복의 반복을 거듭한다. 탈현대의 상징으로 몰(mall) 을 들고있다. 몰은 건축구조에 있어서 들어오는 입구(entrance)와 출구(exit)가 다른것이 아니고 사방에 출입구가 있고 다시 들어온 문으로 다시 나갈수 있다. 차를 지하에 주차하고 승강기타고 우로 올라가면 원형으로 된 광장에는 온갖 잡화상과 식당, 영화관, 서점 등이 있다. 이런 몰의 구조를 두고 탈현대적이라고 한다. 어쩌면 서울시청광장은 이런 몰의 확대 판이라고 할수 있지 않을가? 그렇다면 우린 지난 50여일간 탈현대 적구조속에서 이를 체험하면서 살아왔다고도 할수 있다.

162 (322)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323) 1960년대말 하비 콕스가 쓴 세속도시(Secular City) 는 선 풍적이였다. 콕스는 세속도시의 형태(shape)는 클로버 립(Clover leaf)과 전화교환대(Switch board)와 같다고 했다. 마치 도시의 고속도로가 클로버 립 같다고 하여 이를 기동성이라고 했다. 그리고 도시인들은 마치 전화교환원이 누구에게 서로 련결해주는줄도 모르 고 일하는것처럼 살아간다고 하여 이를 두고 닉명성이라고 했다. 서 울시청광장 지상과 지하는 교통망이 클로버 립과 같으며 서로 모인 사람들은 서로 누구인지 모르고 누구인지 묻지도 않는다. 와이브로로 무장한 신유목민 2008년 광화문시위현장에 유난히 눈에 띄는것은 3인조 와이브로 개인인터네트신문 기자들이다. 한사람은 노트북을, 한사람은 카메라 와 장비를, 다른 한사람은 마이크를 들고 다니면서 촬영도 하고 인 터뷰도 한다. 이렇게 하여 즉각즉각 인터네트상으로 현장의 생생한 장면이 전송된다. 그러면 전세계 누구나 안방에서, 서울 한복판에 서 일어나고있는 일들을 시시각각 접할수 있다. 이것이 이번 초불 집회를 성공시킨 비결이다. 여기에 현장과 독자간에 쌍방향소통을 가능하게 만든것이 웹 2.0 이다. 웹 2.0이라는 말은 지난 2004년 이름을 얻은 후 바야흐 로 사회문화적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웹 2.0에 대한 관심이 높다. 웹 2.0은 이제 인터네트평론가에서부터 개발자 그리고 매스미디어에 이르기까지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단어가 되였다. 쌍방소통이란 량방향이 동시참가함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 개방 체계를 의미한다. 그래서 개방, 공유, 참여가 웹 2.0이 가지고있는 의미라 할수 있다. 이제 이 말은 사회비평가들까지도 2.0이라는 단어 를 사회문화적현상을 비유할 때 즐겨 사용한다. 리뷰 2.0, 쇼 핑 2.0, 토론 2.0 까지 등장할 정도이다. 이번 광화문시위는 1987년 6.10항쟁과 류사한 점도 있으나 그 방 법에 있어서 큰 차이는 바로 이런 웹 2.0의 특징유무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0년전 항쟁에는 이런 개방된 참여가 없었으며 언론이 철 저하게 통제된 상황에서 류비통신 에 의해 최루탄과 화염병만이 의사소통의 전부인 투쟁이였다. 이런것을 두고 웹 1.0 이라고 한 다. 이런 비교는 20년사이에 얼마나 투쟁문화가 변했는가를 알수 있게 한다. 20년전에는 배후세력만 찾아내 검거 혹은 일망타진하면 조직이 쉽게 무너지고 운동의 기동력이 감소하기마련이였다. 그러나 2008년 의 경우는 쉽게 배후주동자를 찾아낼수 없고 찾아냈다 해봐야 주 동자의 영향력이란 미약하기마련이다. 지도부가 제시한 구호와 행 동지침, 일사불란한 대오 그리고 대오의 응집력과 물리력으로 전선 을 유지하던 시위 1.0 시대는 당시의 폭압적인 정치상황과 맞물 려 아쉽게도 개방되여있지도 않았으며 참여하기도 공유하기도 어려 웠다. 자발적참여에는 배후가 없다. 배후세력을 알고싶어하지만 배 후세력을 알수 없는 리유이다. 여러 단체와 조직이 배후세력으로 지목받았지만 결국 사실이 아 님이 드러났다. 시위 2.0 의 배후세력은 누구인가? 초불시위가 벌 어지는 광장은 누구에게나 개방 되여있으며 성별, 년령, 직업과 무관하게 참여 할수 있다. 그리고 모든 이슈에 대해서 동등한 발 언권을 가진다.(공유한다.) 80년대시위는 진압경찰의 립장에서는 다루기 편했다. 확성기를 들 거나 유인물을 뿌리는 주동자의 색출이 용이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아이를 태운 유모차와 젊은 부부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163 (324)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325) 까지 3대가 모두 나온 가족들, 데이트삼아 찾은 젊은 련인들을 흔 히 볼수 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를 주동자로 삼기 어렵고 미디어 다음 아고라를 배후세력으로 몰수도 없다. 웹 2.0이나, 시위 2.0이 나 사람 을 리해하는 사회학적, 인문학적관점을 가지지 않으면 온 전히 해석할수 없음이 그 까닭이다. 이러한 웹 2.0을 두고 집단지성 이라고 한다. 상호 웹으로 련관 이 되여 같이 지식을 공유하고 같이 생각하고 쌍방향소통을 하므로 누구나 동시참여도 할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집단지성의 상징성을 동학군에서도 그리고 항일유격대를 통해서도 그 단면을 엿볼수 있 다. 그리고 여기서 집단지성인 웹 2.0의 문제점도 지적하려고 한다. 애동학군 같기도 하고 6월 21일 저녁 초불집회를 현장에서 바라보면서 서울시청광장이 마치 전라도 정읍에 있는 백산( 白 山 )과 그 영상이 겹쳐지는것을 발 견하였다. 1894년 3월 21일 고부관아를 점령한 동학군은 3월 25일 밤 홰불을 들고 태인에 있는 백산에 모여들었다. 허허벌판가운데 있 는 낮은 야산에 7천여명의 농민들이 산지사방에서 모여 올라왔다. 마치 사방이 터져있는 서울시청광장과 같은 곳이다. 이들은 3정의 문란과 봉건지주의 억압에 견디지 못해 자발적으 로 참가한것이다. 대장은 전봉준, 총관령은 김개남, 손화중이였다. 이들은 1. 사람을 죽이지 말것, 2. 충효를 다할것, 3. 일본오랑캐 를 몰아내고 왕의 정치를 깨끗이 할것, 4. 군대를 몰고 서울로 올 라가 권세가와 귀족을 모두 없앨것을 결의하였다. 이를 두고 후대 학자들은 반봉건, 반외세라고 한다. 민생과 민족문제가 모두 포함 된 결의문이였다. 동학군은 사발통문이라 하여 사발을 엎어놓고 그 주변에 주모자들 의 이름을 적음으로써 스스로 주모자가 없다는것을 통해 정부군을 속 이려 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동학의 조직자체가 위계적이지 않는 수평 관계였으며 이를 그물망식이라 하며 포접( 抱 接 )이라고 했다. 각 포마 다 접을 두고 접에는 접주를 두어 그물망과 같았다. 이는 실로 탈현 대적인 조직방식과도 같았으며 이는 우리 민족의 심성구조에 맞는것이 였다. 동학이 삼남일대에 그렇게 급속하게 퍼져나갈수 있었던것은 이 런 탈현대적포접구조때문이다. 이런 구조에 의한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결국 청일외세에 의해 좌절되고말았지만 우리의 유목민적탈 현대는 동학으로부터 시작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학농민혁명의 1단계가 조병갑관아습격이고 2단계가 백산봉기라 면 3단계는 동학군이 집강소를 설치하여 지방자치를 시행하며 농민 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는것이다. 그리고 이때는 이미 청군과 일군이 개입하여 조선침략이 시작된 단계이다. 그해 5월 8일부터 9월 12일 까지 실시된 집강소가 갖는 의의는 대단한것이였다. 집강소를 통해 농민의식이 깨여났고 이를 통해 4단계 즉 일본과 청을 몰아내기 위 한 반외세투쟁이 전개된것이다. 봉기를 동학에서는 기포( 起 泡 )라고 하며 이는 재기포라 할수 있다. 공주 우금치에서 동학군은 좌절되 기는 했지만 실로 동학농민전쟁은 반봉건, 반외세 그이상도 이 하도 아니였다. 한세기도 지나가고있지만 2008년 서울시청광장 현주소가 반봉건, 반외세에서 가히 먼것이라 보지 않는다. 한국 의 재벌들이 돈벌 이하여 그것을 국민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사리사욕채우기와 재벌 2세, 3세들에게로의 경영권인수는 온 나라를 재벌공화국으로 만들 고있다. 국민들은 재벌사가의 머슴군으로 변해가고있는 이 현실이 100년전과 하나도 다른것이 없다고 본다.

164 (326)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327) 이번 소고기파동은 제국주의의 경제침략의 마수가 신자유주의란 허울을 쓰고 총칼없는 침략을 해오는것이다. 아직도 우리에게 동학 혁명이 유효한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우린 여기서 우 금치의 수모를 다시는 당해서는 안된다는 각오를 해야 할것이다. 지금 서울시청앞에 모이는 우리는 죽창과 홰불대신 초불을 들었 다. 그러나 우리들의 현실상황만은 100년전과 다른것이 없으며 그래 서 우리들의 정신무장 역시 동학혁명에서 유래한것이다. 그래서 우 리는 동학군의 후예 애동학군 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애 란 새 로운 혹은 신선한 어린 등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 초불시위 는 어린 소녀들로부터 시작되였다 하여 이런 발상을 해보는것이다. 동학이란 기표( 記 表 )가 갖는 반외세 그리고 반봉건의 기의( 記 義 ) 는 오늘의 초불광장으로 그대로 이어지고있는것이다. 유목민( 遊 牧 民 )과 유격대( 遊 擊 隊 ) 일정한 장소에 집착하지 않고 여러곳을 떠돌아다녀야 한다는 점 에서 유격대와 유목민은 외양적으로 같아보인다. 그들은 과거의 가 치에 좀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을 가지고 그런 꿈을 현실로 바꾸려 고 하는 점에서 혁명의 정치학과 상통한다. 우리의 신체와 삶을 사 로잡고있는 권력과 대결하며 새로운 창조적삶을 창안하며 살아가려 는 몸부림, 유격대와 유목민의 철학은 같아보인다. 유격대 역시 누 구의 배후도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그것은 어떤 강요에 의한것 이 아니였다. 현재의 초불집회는 1 700여개 시민, 사회단체로 구성된 광우 병위험 미국산 소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이하 국 민대책회의) 가 주도하고있다. 시위주최가 국민대책회의로 단일화 됐지만 현장의 초불문화제는 학생, 주부, 직장인 등 시민들의 자 발적참여형식으로 이뤄지고있다. 참석자들사이에 온건한 초불문화 제를 고집하는 국민대책회의와 이를 비판하는 여론이 조성되고있 는것이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리명박 대통령 의 5월 22일 대국 민담화이후 여론이 더 악화되였고 24일 밤부터 가두시위가 전개 됐다. 경찰은 5월 24일부터 격화되고있는 거리시위에 대해 특정세력 이 지휘하고있다. 고 밝혔으나 명확한 물증을 내놓지 못하고있다. 게릴라성시위가 치밀한것 같다. 는게 전부다. 그러나 게릴라성(유 격대) 거리시위행태자체가 지휘부부재를 보여주고있는것이란 분석이 다. 경찰관계자는 지도부가 있어 이리 가고 저리 가고 하는것보다 시민들이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가고있는것 같다. 고 말했다. 여기서 단순비교를 하면 항일유격대는 안창호류의 비폭력 저항도, 대부대에 의한 전면전도, 김구의 요인저격위주도 아닌 유 격대전술을 선택한다.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유격대는 지휘관마저 보초와 경비를 담당했으며 사령관에 대한 경위부대가 생긴것 은 유격활동의 전반기를 훨씬 넘어선 이후부터였다. 유격대장이 보 초를 서다 위기를 당한 기록들이 회고록에 그대로 나오는것을 보 면 이는 마치 동학의 포접구조와 같이 수평적그물망과 같지 않았 나 한다. 이들의 호칭인 동무 라는것이 이를 잘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집단지성과 집단주의원칙 초불시위에 대한 앞으로 우려는 바로 이러한 탈현대적인 탈중심 그리고 집단지성의 등장이라고 할수 있으나 이러한 장점이 바로 가

165 (328)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329) 장 문제점이라는것이다. 혹자는 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등장한 이 후 인류문명사상 최초로 수만명이 모여 지금 직접 민주주의를 실험 하고있다고 초불집회를 평가하고있다. 그러나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 여에 의한 상황은 집단화되여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 프랑스혁명 이후 많은 시민단체가 나왔고 이것이 정당으로 발전하여 현재의 시 민민주주의가 탄생되였다. 사실 이번 초불집회이후 가장 피해를 볼 대상은 기존의 여야정 당들이다. 한나라당 과 민주당 등 정당전체가 이런 상황의 힘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을 갖지 못하였다. 이것이 21년전 6.10항쟁과 근 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21년전은 정치제도의 민주화가 목표였다면 21년이후 오늘은 정치문화의 변화자체에 있다. 21년전에는 김대중 같은 권위주의적지도력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신뢰의 지도력이 필요 하다.(일요시사 6.20) 우리에게는 신뢰받는 지도자도 없고 지금의 초불집회에서 새로운 조직이 탄생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근 80년전의 항일유격대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주석은 항일유격대에서 지휘관과 대원사이를 묶는 힘은 신뢰와 사랑이라고 회고록에서 루루이 강조하고있다. 사령관 은 유격활동과정가운데서도 부단히 조직을 일구어나간다. 1926년 타도제국주의동맹, 1926년 새날소년동맹, 1927년 조선공산주의청년 동맹, 1936년 조국광복회, 1937년 조선민족해방동맹, 1945년 10월 10일 북조선공산당창건, 1946년 북조선로동당합당,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이상 년대표가 보여주는바와 같이 항일유격활동은 적과의 투쟁 과 함께 조직을 일궈내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과 정이 1948년 9월 9일 공화국창건의 이전과정이 되였다. 인민대중을 상황속에 있는 요소들이라 한다면 조직이란 요소들의 집합을 부분 으로 하는 새로운 집합이다. 그래서 국가는 집합의 집합인것이다. 이러한 집합의 집합을 하나의 생명체 즉 사회정치적생명체라고 볼 때에 이런 생명체의 수뇌부가 바로 수령이다. 그래서 수령은 지배적 구조속에 있는것이 아니고 자기자신이 수뇌부이면서 동시에 조직속 의 한 부분이 되는 그러한 수뇌부이다. 그래서 수령은 조직을 위해 있고 조직은 수령을 위해 존재한다. 북의 헌법 63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공민의 권리와 의 무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 원칙에 기초한다. 에서 말하는 집단주의원칙 이란 하나와 전체가 력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런 집단주의원칙 이 집단지성이란 웹 2.0과 어떤 상관성이라도 있는것인지? ㅌ.ㄷ 를 다시 생각한다 이번 초불집회를 통하여 우리는 전에 듣지 못하던 새로운 말들을 듣게 되였다. 여당대표의 입에서 나온 사회적시장경제 와 초불광장 에서 나온 집단지성 이란 말이다. 두 말이 나온 배경은 달라도 집 단 그리고 사회적 이란 말은 모두가 지금까지 남에서 금기시되 던 말이고보면 놀라운 일이다. 아직 말만 있을뿐 이 말이 함의하 고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두 말이 모두 이번 2008년 투쟁의 현장에서 나온 자연발생적인것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웹 2.0에 의한 직접민주주의는 북의 헌법 63조의 집단 주의원칙과 일치할수 있는가? 헌법 63조는 웹 2.0이 발전한 웹 3.0이라 할수 있는가? 우리는 아직 웹 2.0의 집단지성에 완전히 익숙한것이 아니다. 그렇게 보편 적인것도 아니다. 광장에서 우리는 갑자기 우리의 그러한 모습을 발

166 (33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견한것이다. 집단지성의 구조는 하나와 전체의 력동적인 작용이다. 그러한 력동성을 발견한 우리스스로의 모습에 우리는 지금 놀라고 있을뿐이다. 그러나 북은 유격대활동을 통해 남보다 먼저 유목민적 삶으로 이동하였으며 거기서 집단지성을 먼저 경험한것이다. 과연 북의 체제와 사상이 앞으로 나타날 웹 3.0의 전형인지 아 닌지는 속단할수 없다. 그러나 전자매체만 가미될 때에 북이 남보 다 훨씬 빨리 웹 3.0차원으로 쉽게 진입할것은 명약관화하다. 우리 의 통일은 결국 이러한 문명의 새로운 진입으로 남북이 동시에 진 입할 때에 갑자기 밀려올것이다. 나는 이러한 가능성을 이번 초불 집회를 통하여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확인하러 오늘도 현 장으로 나간다. 그러면서 ㅌ.ㄷ 를 다시 생각한다. 남북청년들이 다같이 함께 타도제국주의동맹의 첫 발걸음을 다시 내딛는것이다. 그것은 이미 이 땅의 동학농민들이 내딛던것과 가히 먼것이 아니다. 이렇게 우리 는 동학농민혁명의 위대한 정신적유산을 남북이 공유하고있으며 북 의 유격대의 집단주의원칙과 남의 집단지성이 하나가 되여 함께 웹 3.0을 창조해나갈수 있을것이다.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167 (332)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33) 墾 島 에 가다 看 島 에 살다 間 島 에 죽다 글을 시작하며 지금 룡산철거민유가족들은 망루에 살려고 올라갔다가 죽어서 내려왔다. 고 절규하고있다. 한세기전 우리 민족은 간도에 살려 고 갔다가 죽어서 돌아왔다. 이 글은 墾 島 에 가다 看 島 에 살다 間 島 에 죽다. 로 요약된다. 이 세가지 간도의 이름속에 왜 우리가 그곳에 살려고 갔다가 죽어서 돌아왔는지의 리유가 다 담겨져있다. 적어도 간도에 대한 이 세가지 이름을 설정해놓지 않고는 간도에서 겪었던 우리 민족의 운명과 수난을 바로 리해할수 없다. 룡산참사 와 일제에 의한 간도에서의 대학살, 그것은 우리 민족의 은유적비교 이다. 이런 세가지 간도의 각기 다른 의미는 1791년 제라미 벤담이 구상한 판옵티콘을 일제가 간도라는 땅에 침략야욕을 성취하려 그 대로 적용한 결과이고 룡산참사는 대재벌의 리익추구에 힘없는 민중 을 희생시킨 결과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민생이고 복지인가? 소설 북간도 의 첫 장면은 조선인인삼장사군들이 간도땅에서 서로 싸움을 하다 일제순경과 중국관리가 서로 끌고 가려는 장면으 로 시작한다. 그곳에 왜 갔느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잘살기 위해서 라고 대답할것이다. 이렇게 비옥한 반달모양의 땅(fertile crescent)의 이름 <팔레스티나> 같은 우리 민족의 젖과 꿀이 흐르는 민생복지의 땅으로 우리는 간도에 墾 島 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반대 할 사람은 없을것이다. 1881년 두만강바닥에 흙모래가 쌓여 길이 5리가량의 모래톱이 만들어져 여기서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이 런 개척의 땅을 墾 島 라 한다. 1903년 조선관원 리원범은 땅을 조 선사람이 개간하였으니 조선땅이라 하였다. 이에 청은 동의하지 않 았다. 1904년 청은 조세를 바치고 조선사람들이 농사를 짓도록 했다. 1907년 일본은 사이또를 우두머리로 룡정에 총감부 파출소를 설치 하고 간도한인의 생명재산보호소 를 설치, 간도의 범위를 연길, 화룡, 왕청 등지로 확대한다. 그리고 주요교통로에 14개 헌병분주 소를 둔다. 이런 보호와 보살핌 의 대상이 된 간도를 看 島 라 할 것이다. 이렇게 일본이 우리를 중국에 대하여 보호하고 생존권을 보장해준다. 는 민생단 이 看 島 에서 출현한다. 이제 더 나아가 1909년 9월 4일 중조도문강변무조항 즉 간도 협약을 체결한다. 이 조약에 의해 일제는 길회철도부설권과 조선인 에 대한 령사재판권을 얻어내고 청나라는 룡정, 국자가, 훈춘, 백 초구, 이도구 등 5개 지역을 일본의 통상지로 개방하고 통상지에 일본령사관 분관을 세운다. 이제 간도는 완전히 정치적으로 일본 과 중국사이에 끼여있는 間 島 가 된다. 모래톱으로서 간석지인 사이 섬이 아닌 정치적분쟁지역이 되였다. 이제부터 마치 가자지구의 팔 레스티나사람들같이 처참함을 우리 민족은 경험하게 된다. 반 민 생단 마녀사냥에 휘말렸던 땅으로서 間 島 는 우리에게 더이상 墾 島 도 看 島 도 아니다.

168 (334)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35) 간도라는 이중감시탑속의 조선인 1931년 9월 18일에 일본은 자해공갈단같이 가해자이면서 피해자 로 둔갑하는 소위 만주사변을 조작한다. 이는 근현대사에 손꼽힐만 한 일본이 자행한 위장기발사건이다. 진주만, 바크보만 그리고 만주 사변 이 3대사건은 미, 일이 조작한 위장기발 이라고 미국 그리 핀교수는 이미 지적한바 있다. 이 조작극에 놀아나 혁명이 혁명 을 타도하는 피해를 고스란히 조선열혈공산주의자들이 떠안았다. 회고록에 의하면 민생단 혐의가 있는자들은 고작 8~9명정도였다. 그 소수의 밀정들때문에 수많은 애국자들이 학살당한다. 1932년 2월 만주 간도는 봄을 기다리고있었다. 조선족 100만은 9.18사변의 최대희생자가 될 운명이였다. 일본군대는 조선족 한교 만 보면 자기들을 피해 도망온것이라 보고 즉 부정선인( 不 呈 鮮 人 ) 이라 하고 체포총살하였다. 일본측 적구로 오지 않는 부락은 방화략탈하였다. 현대프랑스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주저 존재와 사건(Being and Event) 에서 사건(event) 을 다음과 같이 간단히 정의하고있 다. 여기 공백인 0이 있다고 할 때 이를 (0)으로 표시하면 이것은 사건이 된다. 0은 완전공백이지만 이것을 일단 두개의 괄호사이에 넣어버리면 한개 라는 개수가 되여 1 이 된다 년동안 수 학자들이 1을 사용하면서도 1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몰랐다고 하 면서 (0)은 공백인 무이면서 동시에 1이라는 유라는것이다. 이를 공백의 가장자리 혹은 사건적장소 라고도 한다. 그런 의미에 서 간도에 살고있던 조선사람들은 공백의 가장자리 그리고 사건적 장소속에 있었던것이다. 일본과 중국이 이런 사건속에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가장자리에서 생긴것이 바로 민생단 이며 이는 분명한 하나의 사건으로 조건을 갖추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이를 민생단 사건으로 부르기로 하는 리유이다. 간도의 조선인청년들은 자신이 어느 세계에 속한것인지 극심한 정 신적혼돈을 겪지 않을수 없었다. 그 모호함은 가장 견결한 항일투 사를 일제의 개인 민생단 특무로 몰아죽이는 그 순간마저도 삼 켜버렸다. 부정선인 혹은 소귀자 라는 이름이 우리한테 붙게 된것은 0과 같은 존재가 사건적이 될 때에 공백의 가장자리에서 따 르는 불가피한것이였다. 이러한 사이로서의 間 島 를 한홍구교수는 희망의 땅, 비극의 땅 간도 그리고 빛과 어둠 그리고 운명과 의지 라고도 했다. 그 것은 동원인 동시에 참여였고 혼돈인 동시에 진보였으며 어둠인 동 시에 빛이였다. 오가작통법과 십가련좌법 룡정에 일본령사관이 생기고 만주철도가 부설되고 드디여 1930년 만주국이 건국되면서 墾 島 는 間 島 로 심화되면서 변하기 시작하였다. 1930년도 5.30폭동, 곧 이은 백색테로사건, 공산주의자들의 주 구청산투쟁 등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살아오던 우리들에겐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격랑의 세월을 안겨다주었다. 일본은 토벌대 를 간도에 보내 반일 혹은 항일유격대를 비 적 혹은 공비 라 명칭하고 이잡듯이 마을을 불사르고 사람들을 집단으로 죽였다. 드디여 1932년 일본은 조선군으로 가장된 군대를 간도에 보내여 조선인을 그리고 중국인들을 토벌하게 하였다. 여기 서 진정한 의미의 사이적존재의 비극이 시작된다. 그래서 중국인이

169 (336)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37) 볼 때에 조선사람들은 자기들과 같이 일본의 피해자인 동시에 일본 과 같은 가해자로 보게 된다. 조선사람은 이렇게 가해자로서, 피해 자로서 간도에 살게 된것이다. 이를 두고 墾 島 에 살러 왔지만 間 島 로 살아가게 된것이라 한다. 間 島 가 우리를 그렇게 만든것인지 우리 가 그렇게 이름을 붙인것인지 간도의 밤만이 알고있을것이다. 이밤의 노래를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있다. (아래 글은 회고록 4권 140~142페지의 내용을 요약한것임.) 간도의 항일근거지들은 1935년에도 물샐틈없는 봉쇄상태에 놓 여있었다. 이해에는 적들의 봉쇄가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가 로선을 바꾸어 혁명에서 대단원을 이루어보려고 결심하였다면 그들은 봉쇄 망을 최대한으로 조이여 <공비>숙청에서 결정적승리를 달성해보려 고 시도하였다. 일제는 수천수만명에 달하는 정예무력을 동원하여 유격구를 겹겹이 포위하고 매일같이 항일근거지의 모든 생물체들을 지상에서 쓸어버리기 위한 <토벌>작전을 감행하였다. 혁명군과 인민들사이의 련계를 끊어버리기 위한 적들의 책동중에 서 기본으로 된것은 바로 집단부락정책이였다. 이 정책에 따라 인민 혁명정부의 관할밖에 있는 모든 행정구역의 주민들은 싫건좋건 토 성과 포대로 둘러싸여있는 밀집부락에 들어가서 오가작통법이나 십 가련좌법과 같은 악법들과 중세기적인 질서의 지배밑에서 두더지같 은 생활을 해야 하였다. 적들이 만주 각지에 널려있는 수천수만개의 산재부락들과 가가 호호들에 불을 지르고 최후통첩적인 철거령을 내리고 그 주민들을 벌방의 토성촌들로 무자비하게 이주시킨 목적은 군대와 경찰, 무장 자위단이 상주하고있는 <안민촌>들에 올방자를 틀고앉아 편안한 통 치를 하자는데도 있었지만 주요하게는 토성, 포대, 물홈, 울타리, 탐조등, 철조망과 같은 인공적인 장벽들로 <공비박멸>에서 가장 큰 장애로 되고있던 군민일치의 피줄기를 영원히 끊어버리자는데 있었 다. 유격대가 인민의 보호자이고 인민이 유격대의 후방이며 중요한 정보원천이라는것은 적들도 잘 알고있는 상식이였다. 인민을 토성속에 모조리 걷어넣으면 도로건설과 군사시설의 설치 를 비롯한 여러가지 부역에도 집단적으로 동원시킬수 있었고 그 비 밀도 철저히 보장할수 있었으며 로력과 자금, 물자의 징발도 어느 때나 용이하게 할수 있었다. 적들은 집단부락건설을 계기로 반공선전을 강화하였다. 너희들이 정든 고장에서 살지 못하고 집단부락으로 가게 된것은 다 공산당 때문이고 혁명군때문이다, 그들이 너희들과 내통하면서 치안을 교 란시키기때문에 당국은 부득불 산재부락들을 없애고 백성들이 <공 비>나 마적들의 성화를 받지 않고서도 살수 있는 <안민촌>들을 건 설하게 된것이다라고 지껄이였다. (필자주: 이것이 바로 看 島 의 의미가 아 니겠는가.) 적들은 토성을 네모나게 쌓고 한 토성안에 100호 또는 200호 의 집들을 밀어넣었다. 집은 군경들의 감시에 편리하게 현대공장지 구 사택들처럼 줄을 맞춰 지었다. 한동네에서 온 사람들도 집단부 락에만 들어가면 서로 추녀를 맞대고 살지 못하게 갈라놓았으며 친 척친분관계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앞뒤집이나 아래웃집에 있게 하지 않고 동서남북에 각각 분산시켜 배치하였다. 그것은 뜻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치안유지에 방해되는 모의를 하거나 비밀결사를 시도하 지 못하게 하자는 조치였다. 적들이 집단부락안의 주민들의 분렬과 리간을 얼마나 꾀하였는가 하는것은 오가작통법 한가지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 적들은 다섯

170 (338)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39) 집으로 한개 조를 뭇고 그중 한집이라도 유격대와 내통한 사실이 드러나면 조안의 모든 세대들에 꼭같은 처벌을 주었으며 심한 경우 에는 그 다섯집의 주민들을 전부 학살하군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악명높은 오가작통법이다. (필자주: 이것이 바로 판옵티콘의 구조이다.) 집단부락을 통치하는 행정관리들과 무장군경들은 인민혁명군의 수중으로 한되박의 쌀이라도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식량에 대한 통 제를 무섭게 하였다. 그들은 주민들이 토성밖으로 일하러 나갈 때 마다 <공비>들에게 줄 여분의 밥이 담겨있지 않는가 하는것을 조사 하려고 점심보따리까지 헤쳐보았다. 점심그릇도 한사람몫이 넘으면 무턱대고 빼앗아냈다. 집단부락의 농민들은 밭일이 묵어서 새벽작업 을 하고싶어도 날이 밝기 전에는 성밖으로 나갈수 없었고 날이 저 물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혁명군은 집단부락인민들의 식량 상방조를 거의나 기대할수 없었다. (필자주: 지난 전기간에도 공비토벌 이란 말은 그대로 적용되였으며 같은 방법으로 초토화 내지 토벌 을 하였다.) 유격구에서 재배하는 곡식으로는 군민에게 필요한 식량을 충당 할수 없었다. 게다가 적들이 줄곧 농사를 방해하였다. 그들은 사람 과 함께 농작물도 초토화대상으로 삼았다. 싹이 돋아나는 곡식은 군화로 짓밟았고 성장기의 작물은 불을 질러 태워버리였으며 다 익 은 낟알은 무장대가 우마차를 끌고 와서 모조리 실어갔다. 이것은 총과 대포로써도 멸살시킬수 없는 유격구역의 군대와 인민을 완전 히 굶겨서 죽이기 위한 비렬하기 짝이 없는 기아작전이였으며 목을 조이는 봉쇄작전이였다. <민생단>은 해체되였지만 혁명대오를 안팎으로부터 분렬와해하 기 위한 적의 파괴작전은 종전보다 더 악랄한 양상을 띠고 전개되 였다. 투항을 권고하는 삐라들에는 미인들의 라체사진이나 추잡한 남녀 관계를 그린 눅거리춘화들까지 나타났다. 돈에 매수된 미녀들이 로 자 룩셈부르그나 쟝느 다르크의 탈을 쓰고 우리 대오에 침투하여 군정간부들의 넋을 마비시키고 그들을 경찰서나 헌병대로 데려가기 위한 부식공작을 열심히 벌리였다. 이 모든것은 간도의 유격구들을 인간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절해고도의 세계로 만들어버리고 그것을 철저히 초토화하고 질식시 키기 위한 대살인광대극이였다. 스낭제염소마을과 프렌감옥 그리고 간도( 看 島 ) 그러면 일제는 어디에서 오가작통과 같은 방법을 배워왔을가? 우 리는 이미 일본은 명치유신직후부터 판옵티콘을 도입하여 일본내 에서 성공한 사례를 소개하였다. 서구에도 오가작통과 같은 구조 로 마을을 건설하려는 생각이 없었던것은 아니다. 벤담보다도 먼저 1775년-1779년 왕립제염소를 위해 세운 아르케 스낭마을이 그 례라 할수 있다. 정중앙에 관리자의 집은 토대가 높게 망루같이 설계되 였고 내부에 교회가 있고 눈을 상징하는 둥근 창을 내였다. 이는 마치 성경 창세기속의 에덴동산같은 구조이다. 동산의 중앙에 생명 나무가 하나 있고 그 둘레에 다른 과일나무들이 서있다. 생명나 무 가 원어로는 모든것의 모든것(all of all) 이라고 한다. 두말 할것없이 신이 거주하는 곳이고 신의 두눈은 동산안의 모든것을 간 호, 감시한다. 인간이 죄를 짓는지 않는지, 인간이 다른 존재에 의 해 상해를 당하는지 안 당하는지 등등. 스낭마을은 설립목적이 이런 에덴동산같이 리상향을 만들기 위한 것이였다. 그러나 스낭마을은 원래 원형으로 건설하려는 취지가 다 이루어지지 못하고 반원이 되고말았다. 사실 벤담의 판옵티콘은 그

171 (340)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41) 시대를 그대로 반영한다. 즉 18세기 유럽의 합리주의사상과 인간의 도덕성이 완성되면 인간사회는 저절로 리상향이 이루어질것으로 믿 었다. 판옵티콘이 이런 리상향의 반응이라 할수 있다. 19세기말에 와서는 원형판옵티콘이 사라지고 중앙탑이 없는 프렌감옥은 중앙공 간축에 수직으로 수용실건물을 배치하였다. 건축가 푸생이 1898년 설계해 프랑스 빠리근교에 세운 프렌감옥은 넓게 정착된 방사형평 면과 함께 지금까지 널리 사용되고있는 평면이다. 생각키로는 일제가 간도에 만든 오가작통마을구조는 프렌감옥의 변형된 판옵티콘에서 유래한것이 아닌가 한다. 일제가 명치유신이후 판옵티콘을 생산로동현장에 적용하여 효과를 본 결과를 역으로 악 랄하게 우리에게 적용한것이 오가작통방법이라고 본다. 그것도 조선 사람들을 공비 로부터 돌본다는 미명하에 말이다. 벤담은 수감 자들이 어떻게 로동을 생산적이고 효률적으로 하도록 할것인가? 어 떻게 수감자들을 유용하게 만들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다가 감옥안 에서 무엇보다 필요한것은 수감자들을 분류, 구분하는것이라 생각 하게 되였다. 지금까지 감옥안에서 효과를 보지 못한 리유는 수감 자를 무작위로 가둠으로 효과적인 로동조직을 하지 못하였고 통제 도 어려웠다는데서 착안한것이다. 이 정도면 일제가 간도땅에서 유격구해체이후 오가작통구조를 만 든것이 얼마나 판옵티콘과 닮았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것이다. 벤담은 통제를 위해 인구조사만큼 유용한것은 없다고 보아 극빈 자분류표 를 만들어 년령, 성별, 건강의 등급 등을 포함한 47렬의 분류표모델을 작성하였다. 그래서 인구의 분류에 따라 일의 종류도 분류하여 그 사람에게 알맞는 일을 무엇이든 분담시킨다. 례를 들 어 앉아서 일어설수 없는 수감자에게는 실뜨개같은 일을 시키면 된 다. 벤담은 이를 모든 팔을 사용하는 원리 라고 했다. 모든 팔 이란 신의 팔같은것이 아닌가. 불교의 돌봄의 자비의 손 천개와는 정반대인 감시의 천수가 간도에 마수같이 뻗치고있었다. 감옥의 죄수를 개인고립화할것인지 아니면 집단화할것인가는 아 직 론난거리이다. 전자의 방식이 펜실베이니아모델이라 하고 후자를 어번모델이라고 한다. 벤담은 물론 이 량자를 종합한 제3의 방식을 취하였다. 일제의 오가작통법도 제3의 모델이다. 일제는 집단화된 유격구내 사람들이 집단행동하는데 위협을 느꼈으며 그렇다고 개인 별로 고립화시킬수도 없었다. 관리와 비용이 엄청나기때문이다. 이 런 제3의 모델을 악리용한것이 회고록이 전하는 일제의 오가작통같 은 집단부락정책 인것이다. 그안에서 일제가 저지른 만행은 벤담 이 선의로 구상한 판옵티콘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것이였다. 드디여 間 島 에서 우리는 죽어가고있었다 이렇게 벤담의 판옵티콘이 역기능으로 진화할줄은 그자신도 몰랐 었다. 19세기말-20세기에 들어 18세기 합리주의와 도덕주의는 빛 이 바래고 권력의 성격과 구조자체가 변했기때문이다. 이에 착안한 푸코는 판옵티콘의 감시와 처벌의 기능만을 엿본것이다. 그리고 그 의 감시와 처벌의 리론은 일제의 식민통치론리를 보기에 더 적합한 것이였다. 벤담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은 오늘날 신자유시대에 최대소수의 최대행복 으로 변한것에 대해 그는 지하에서도 놀라 고있을것이다. 여기에 간도락토의 꿈은 산산이 무너지고 墾 도가 看 도로 그리고 다시 間 도로 변하면서 우리 배달조선족은 서서히 죽 어가고있었다. 이런 구조속에서 발생한것이 민생단 사건이다. 사이적존재로서 의 기구한 운명은 간도에서 표본같이 나타났다. 거듭 말해 마치 팔

172 (342)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43) 레스티나안의 가자지구같이 말이다. 만주땅안에서 이런 일본이 만들어놓은 마을과 같은 처지와 신세 는 다름아닌 우리 민족자체 그리고 국가라는 그자체의 신세와 같 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들자신의 힘으로 나라를 세울수 없 었던 그것이 이것과 무엇이라도 한점, 다른 점이 있단 말인가. 우 리는 지금 또 다른 오가작통, 십가련좌라는 구조속에 들어있지 않 다고 장담할수 있는가? 사이적존재로 강대국들사이에 끼여 이쪽저 쪽에서 감시와 감독을 받아야 하고 의심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어 제가 아닌 현재 우리의 민족적운명이다.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 에서, 윁남에서 우리의 의사에 상관없이 요청만 하면 파병을 해야 하고 모든 경제주권은 미국딸라의 힘앞에 맥을 쓸수 없는 우리는 지금 국제적으로 혐오와 의심과 증오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자각해 야 할것이다. 항일유격대는 여기서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유격구지역을 이렇 게 오가작통방식으로 전환시키려 달려드는 일제의 대규모적인 침 략에 대처하여 새로운 조치를 취할수밖에 없었다. 유격대는 협소 한 지역에서 벗어나 광활한 지역에 진출하여 일제와 전면대전하는 한편 유격구해체문제를 상정시켜 새로운 론쟁을 하지 않을수 없었 다. 사령관의 이에 대한 결단은 또 하나의 력사적기록이 되 지 않을수 없었다. 평등사회에서만 바로 본다 흉악범얼굴 공개할건가 말건가 련쇄살인범의 얼굴을 공개할것인가 말것인가? 한국 언론재단이 2월 9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쎈터 12층에서 언론의 범죄피의자얼굴 공개와 인권에 관한 토론을 벌렸다. 조, 중, 동 등 한국 의 보수신문들은 강력범들의 얼굴공개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진보성향 의 언론 및 방송들은 이를 반대하고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에선 이런 론쟁이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 흉 악범들자신들이 자기들 얼굴이 언론에 공개되는것을 개의치 않기때 문이다. 한국 에서는 피의자자신이 먼저 얼굴을 들지 않고 혹은 못하고 스스로 감추려 하는데서부터 문제의 원인이 생긴다. 얼굴공 개반대에 대한 가장 큰 리유는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서라고 한다. 그리고 흉악범과 인상착의가 같은 사람이 선의의 피 해를 입을수도 있기때문이라고 한다. 이 두가지 리유모두가 한국 과 서양에서 얼굴을 본 다 는데 대한 인식차이때문이라는것이 분명해진다. 즉 동양 에서는 흉악범을 개인으로 보지 않고 가족공동체와 동일시하거 나 같은 인상착의의 모든 인간을 같은 동류로 보는 이것, 모두 가 결국 나 라는 개인의식이 우리 라는 공동체의식에 제압 당하기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문제의 관건은 근본적으로 본 다는 말의 의미의 차이에서 생각을 정리하는것이 순서일것이다.

173 (344)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45) 동양의 본다 와 서양의 본다 의 차이 서양에서 흉악범들이 자기 얼굴공개를 꺼리지 않는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말에 그대로 나타나있다. 영어의 see나 look나 watch 등은 모두 주객이 선명하게 나뉜 상황을 전제한다. 보는쪽과 보이 는쪽이 분명하게 나뉘여져 그사이의 혼동이란 있을수 없다. 그래서 내 얼굴이 네 얼굴일수 없고 네 얼굴이 내 얼굴일수 없다. 판옵티콘 은 옵티콘 의 본다 와 모두(pan) 의 합성어 이다. 서양철학에서 본다는 기능은 지금 혐오와 청산의 대상이다. 그리스의 에이도스(eidos) 로서 이 말에서 플라톤의 idea 즉 관 념이란 말이 유래한다. 옵티콘은 눈이 대상을 일방통행적으로 보 는 행위로서 이 말은 결국 서양철학을 주객이원론의 함정에 빠지 게 한 장본인이다. 사실 푸코의 판옵티콘에 대한 강한 거부감도 서양철학의 이러한 본다는 행위의 감시자기능때문이다. 다시말해서 감시자가 피감시자를 일방통행적으로 본다는, 다시말해서 감시한 다는데 그 리유가 있다. 이에 대하여 프랑스의 녀류신학자 일리가 리는 보는 시각 을 촉각 으로 대치할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서양의 이러한 본다에 대하여 한문의 본다에는 견( 見 ), 시 ( 視 ), 관( 觀 ), 망( 望 ), 간( 看 ) 등이 있다. 한 의사가 환자 의 얼굴을 바라보고 진단하는것을 망진( 望 診 )이라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본다는 말이 한문에 많은것은 인간이 보는 시야의 범위와 차이때문이다. 견은 주견이나 견해에서 보는바와 같이 보는 주체에 방점을 두는것이고 시는 주시나 감시같이 보이는 대상에 방점을 두 는것이다. 바로 판옵티콘의 본다에 해당하는것은 시이지 견이 아니 다. 그러나 견이나 시모두 일방통행적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주에서 객으로 향하든 그 반대이든 비대칭적일방통행적이다. 서양에서는 본다에서 주객을 상호교통시킬수 있는 본다라는 말이 없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를 본다고 할 때에 본다는 말의 비대칭적인 구조라 한다. 범시가 진화를 하면서 대칭적구조로 바뀌 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생긴다. 대칭성이란 보면서 동시에 보이는것 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감옥에서 간수가 죄수들을 보는 동시에 죄수 들에 의해 간수가 보인다는것을 두고 대칭적이라고 한다. 이제 범 시 혹은 판옵티콘이 벤담과 푸코를 넘어 또 다른 진화를 할 리유 가 여기에 있는것이다. 그런데 동양에는 본다는 의미의 관( 觀 )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시와 견을 상호련관을 시켜 비대칭적구조를 파괴하는 구조를 암시 하고있다. 불교 반야심경 첫 구절인 관자재( 觀 自 在 ) 라고 할 때 에 이 말은 스스로의 자기를 본다. 를 의미한다. 여기서 견이나 시를 사용하지 않고 관이라고 한것이다. 관은 시와 견과 달리 자기 가 자기자신을 본다는것이다. 그럼 객관적대상을 보지 않는다는 뜻 인가? 그렇지 않다. 자기가 자기를 먼저 대상화하여 먼저 보고 다 시 그렇게 본 자기를 대상과 겨냥하는것을 두고 관이라고 한것이다. 시와 견과는 달리 중층구조를 가지고있는것이 관이다. 이러한 관은 360 전체 방향을 다 보는것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시와 견은 그 반정도의 시야를 갖는 말이다. 시와 견은 자기자신의 봄, 자기 공동체안의 봄이라는 내재화를 할수밖에 없다. 이러한 내 재화는 범시의 의미를 벤담이나 푸코를 넘어서게 한다. 지금까지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판옵티콘이란 말은 범시( 凡 視 ) 라고 하는것이 적합하다고 본다. 판옵티콘은 다 봄 이라는 뜻이지만 비대칭적으로 보는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174 (346)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47) 렇게 서양언어의 본다는 말의 일방통행적비대칭성은 판옵티콘의 진 화를 불가피하게 만든다. 즉 범시로서 판옵티콘은 1990년대이후 감 시로서의 판옵티콘이 전자통신의 혁명과 함께 초( 超 )-범시(super-panopticon), 등( 等 )-범시(syn-panopticon) 그리고 역 ( 逆 )-범시(reverse-panopticon), 탈( 脫 )-범시(post-panopticon) 등으로 진화한다. 이렇게 말을 비교해놓고보면 우리가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 못하 는 리유도 분명해졌다. 그것은 다름아닌 저 흉악범의 얼굴이 다름 아닌 나자신의 얼굴이라는 주객비분리적관의 립장에서 보면 흉악범 얼굴공개는 나자신의 얼굴공개와 같기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관이 없는 서양에서는 나-너의 분리가 분명하기때문에 너를 나와 동일시할 아무런 리유가 없다. 심지어는 아버지와 아들의 얼굴이 아무리 닮았다 하더라도 서양에서는 아들이 범인이라고 해서 아버 지도 그럴것이라 동일시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아무리 친한 가족이 라도 범죄를 저질렀을 때에는 같은 가족성원이 고발한다. 동양은 이미 일찌기 주객이 쌍방향적으로 보는 역-범시와 등-범시에 익 숙해져있었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탈-범시의 순 간에 서있다. 자본주의사회에 먼저 찾아온 1984년 오웰이 1948년 소설을 쓴 곳은 먄마였고 당시 먄마는 사회주 의 체제였다. 그래서 그는 먄마 사회주의 체제를 눈으로 목격하 면서 이 1984년 을 썼다고 한다. 1984는 1948을 뒤집은 수자이 다. 소설에 나오는 태형(Big Brother)은 공산주의사회의 독재자라 고 하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오웰이 예언한 1984년 은 자본주의사회에 더 먼저 찾아왔다. 그의 예언이 적중한 곳은 차 라리 자본주의국가에서였다. 소설을 쓴 직후인 1950년대부터 콤퓨 터에 의한 자료감시(dataveillance)라는것이 가능해졌고 이런 감 시망은 자본주의정부, 기업, 은행 등에 적용되였고 심지어는 상용 화까지 된다. 미국의 경우는 이런 전자감시망을 FBI가 리용하기 시작한다. 이런 콤퓨터에 의한 감시이외에 1984년의 원거리감시경 (telescope)에 근접한것은 전자기기에 의한 감시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페쇄회로감시 CCTV이다. 지금 우리는 거리의 CCTV가 련쇄살인범을 잡는데 수훈을 세운 이후 더 많이 설치해야 한다고 공감대를 이루고있다. 이에 정부 여당은 박차를 가하고있다. 지금 리명박 정부 의 독재가 성공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그 반대로 성공할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지금 거리데모현장은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소위 채증이 라는것이 있어서 시위군중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감시카메라에 잡 힌다. 채증에 의해 불법시위고지서가 집에 날아올 때에는 시민들이 앞이 캄캄해진다고 한다. 100만원 내지 200만원은 보통이고 단체 같은 경우는 수천만원의 고지서에 시달리고있다 년대 시위는 차라리 랑만적이였다. 공산주의사회가 아닌 자본주의사회에서 오웰의 예언은 적중하고 말았다. 2001년 남한정부 는 한 개인의 혈액형을 포함한 거의 모 든 정보가 다 들어있는 전자건강보험증을 만들려 하다 거센 여론에 직면하여 포기하고말았다. CCTV란 일명 페쇄회로TV이다. 1967년 포토스캔회사에서 발명했다. 한자리에 고정돼있으면서 근거리를 감 시하는 TV이다. 그러나 GPS 즉 위치추적장치는 24시간 지구주위 를 도는 24개의 위성으로 우리가 어느곳에 있든지 모두 감시할수 있어서 2002년 3월 미국 남가주에서는 처음으로 성폭행 가석방범을

175 (348)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49) 24시간동안 이 항법장치가 감시할수 있었다. 거기에 대하여 어느 누 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언젠가 자기도 당할지도 모른데도 말이다. 영국에서는 500개이상 도시에 모두 2백만대이상의 CCTV가 작동중이다. 9.11이후 미국은 지하철과 학교에만 500만대이상의 CCTV를 설치하였다. 이제 남 한 에는 뻐스기사의 삥땅까지도 감 시할 정도이고 병원은 간호원의 손놀림까지도 감시하고 공장에서는 RF(Radio Frequency)라는것을 도입해 50m이내에서 인간이 움직 이는 모든 행동을 감시할수 있다고 한다. 벤담이 꼭 중앙감시탑이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필요없다. 례를 들어 기동순 찰경찰은 길거리에서 차량번호만 입력을 하면 그것이 도난차량인지 아닌지를 그자리에서 확인할수 있다. 모든 곳이 중심이 되여버린 범 시가 등장한것이다. 이 정도면 서울이 아닌 평양을 가야 더 자유를 만끽할수 있다는 소리가 나올법 하게 되였다. 역-범시의 등장과 초-범시 조지 오웰도 예측하지 못했던것은 그의 텔레스코프가 적어도 3단 계로 진화하고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의 미래가 그렇게 디스토 피아적인것만은 아니라는것도 암시하고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감 시를 당하면서 감시를 해달라고 자기 정보를 감시자에게 스스로 주 고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벤담도 푸코도 알지 못했던 점이다. 지 금 휴대전화나 인터네트를 사용하자면 가입등록을 해야 하는데 그 때에 나의 많은 정보를 주어야 한다. 그러다가 해킹을 당할수도 있 지만 말이다. 이렇게 감시당하는 사람이 감시에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주는것, 이것을 소위 수퍼-판옵티콘 혹은 초-범시라고 한다. 초-범시는 벤담과 푸코의 판옵티콘개념을 획기적으로 바꾸어놓 는다. 두사람은 모두 감시자의 립장에서 보는것에만 관심을 기울 였지만 1960년대이후부터 전산 그리고 전자산업의 발달로 피감시 자의 립장에서 보는 혹은 감시하는 기능도 함께 발달 등장하기 시 작한다. 거듭 말해 피감시자가 자발적으로 감시행위에 참가하는것 이다. 감시를 즐겨 받음으로써 돌려받을 리익이 더 크다고 생각하 여 자기에 관한 신상정보모두를 감시자에게 즐겨 넘기는것이다. 이 런 초-범시를 정의하면 보는것에 심취한 나머지 보이는것에 신 경쓰지 않음 과 같다. 디즈니랜드놀이터나 유명연예인을 보기 위해 깔려죽을 각오를 하고도 모여드는 리얼리티 쇼 같은것이다. 이 를 중인환시( 衆 人 環 視 ) 혹은 스펙터클(spectacle) 이라 하 며 초-범시라 번역한다. 오웰이 못 본것가운데 하나가 인간은 스스로 감시당하고 보이기 를 원하는 본능이 있다는것이다. 이런 감시당하고싶은 본능에서 스 펙터클이 가능해진다. 연예인들일수록 중인환시에 환장이 날 정도 이다. 그래서 사생활을 고의로 언론에 흘리기도 한다. 푸코는 18세 기말에서 19세기초에 들어 스펙터클사회가 감시사회로 변했다고 했 다. 그런데 20세기에 와서는 전자, 전산사회로 변하면서 스펙터클 과 감시의 사이가 불분명해지고말았다고 한다. 둘이 하나로 뭉개지 면서 범시는 등-범시가 된다. 등-범시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나타 난것이 바로 역-범시이다. 이번 룡산참사에서 용역깡패의 살수장면촬영은 역감시의 좋은 례 이다. 백인경찰의 로드니 킹이란 흑인구타장면을 촬영한 장본인은 일개 시민이였다. 이 사진 한장이 없었더라면 이 사건은 덮여지고 말번 하였다. 역감시의 좋은 례이다. 청와대에서 이메일발송발각도 모두 역감시의 덕분이다. 벤담도 쇠관을 통해 간수가 죄수와 통화

176 (350)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51) 하는 통로를 만들려 했지만 역으로 죄수가 간수에게 말할수 있다 는 사실을 알고는 이를 페기하였다. 벤담의 판옵티콘은 결코 이런 역감시를 허용하는것이 아니기때문이다. 감시는 있어도 역감시는 없 다. 그러나 전자산업은 역감시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그만큼 그의 판옵티콘은 비대칭적일방통행적이였다. 역감시는 언 론이 권력을 감시하려 출발했지만 지금 조, 중, 동 은 오히려 감 시의 대상이 되고말았다. 조, 중, 동 을 감시하는 언론이 등장 하는 배경이다.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서프라이즈 등 전자매체언론은 역감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한국 의 참여련 대나 경실련 같은 시민단체의 역감시역할은 세계적이다. 리명박 정 부 와 한나라당 은 이 역감시장치의 뿌리를 뽑으려고 지금 서두 르고있다. 우리가 오히려 당신 태형(Big Brother)을 감시하고있다 범시가 감시자에서 피감시자에로 향하는 일방적감시라면 역감시 는 그 반대로서 일방적이다. 여기서 쌍방향적보기와 감시가 자연 히 대두될수밖에 없다. 이런 쌍방향적인것을 바로 신-판옵티콘 (syn-panopticon) 혹은 등-범시 라고 한다. 역감시는 공개 되는 정보에 한에서만 감시를 할수 있다. 힘과 권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역감시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2001년 정보공개법 개정안을 놓고 론난이 된적이 있다. 그러나 정부 는 이에 찬성할 리 없었다. 미국 FBI의 도청장치를 카니보어나 에쉘린이라고 하는 데 시민들은 이의 공개를 강력히 요청했지만 FBI가 말을 듣지 않자 1999년 10월 22일을 에쉘린파괴의 날 로 정하고 전세계해커들이 총동원하여 인터네트을 마비시키고 주요정보를 파괴하고말았다. 한국 에서 리명박 정부 가 지금 시도하고있는 정보통신법 이 얼마나 성공할지는 미지수이다. 앞으로는 한국 내뿐아니라 전 세계전자시민들(네티즌)이 공동으로 등-범시를 만들어나갈지는 큰 과제가운데 하나이다. 등-범시는 결국 힘의 균형과 권력과 경제력 등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가 평등해야 하고 평균적이여야 함을 전제 한다. 다시말해서 서로 쌍방향으로 감시하자면 감시도구와 장치조 직력 등이 균등해야 하는데 지금 실용정부 는 이를 파악, 시민 단체들에게 돌아가던 모든 예산을 삭감 내지 페기하고있다. 그리고 초불시위에 참가하였다고 하여 무려 1 400여 시민단체들을 불법집 단으로 규정하고있다. 쌍방향감시의 균형이 엄청나게 무너져내리고 있는 순간이다. 2009년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역-감시를 해낼수 있느냐의 시금 석의 해이다. 지금 MB가 점점 태형으로 변해가고있다. 1998년 메 히꼬에서 반군지지자들은 우리는 당신 태형을 감시하고있다. 라는 구절로 정부전자집을 해킹해버렸다. 시위현장에서 경찰들의 한무리 는 시위자를 채증한다. 시위자들도 역으로 채증을 한다. 그러나 한 쪽은 힘을 가지고있지만 다른쪽은 그렇지 않다. 이런 힘의 불균형 속에서 쌍방향감시가 제대로 이루어지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결국 범시의 문제는 한 사회의 평등과 균등의 문제로 귀착되고만다. 중인환시속 아리랑 축제 여기까지 와 우리는 벤담이 18세기말에 좋은 의미로 구상한 판 옵티콘이 결국 본다 는 철학의 근본문제와 우리 사회의 구조문 제와 련관이 되는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오웰의 1984년 은 사

177 (352)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53) 회주의국가가 아니고 차라리 자본주의국가에 해당되는 예언이라는 것도 새삼 알게 되였다. 우리는 지금까지 1984년 의 영사라는 사 회는 북사회, 태형(Big Brother)은 수령 그리고 평양거리에는 텔 레스코프로 치장되여있을것이라 생각했을것이다. 그러나 사정은 반 대로 되여가고있다. 이 마당에 북의 생각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이란 말을 판옵티콘 과 련관시켜 한번 생각해보자. 감시와 처벌이 가장 심한 사회는 군 대병영사회일것이다. 병역기피를 하려는 가장 큰 리유는 아마도 개 인의 사생활이 감시당하고있는것이 싫어서일것이다. 그러나 보라. 항일유격대원들은 징병도 모병도 아닌 본인들스스로가, 남녀로소 가 자진해서 참가한 대원들이다. 심지어는 10살전후의 소년대원들 은 부모의 만류와 유격대장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유격 대에 합류한 대원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항일유격대는 초-범시 혹 은 수퍼-판옵티콘의 사회였다. 해방후 이런 유격대원들이 입국하 여 이들이 주축이 되여 나라를 세웠다. 그런 의미에서 초-범시적 대스펙터클사회이다. 이들이 만드는 정치는 그래서 리얼리티 쇼 와 같았다. 깔려죽 을 각오를 하고 공연장에 몰려드는 젊은이들같이 인민대중들은 나 라세우는데 신명나있었다. 아리랑 축제에 어린아이들을 강제동원 했다고 하지만 이들은 공연을 초-범시적으로 자기 정보를 주고 스 스로 관람하고 공연도 하는 중인들의 환시속에 있다고 보아야 할것 이다. 이들이 과연 감시속에서 공연을 하는 벤담의 원형감옥 혹은 판옵티콘속에 있는 광대라고는 보지 않는다. 마치 서커스단의 단원 같지는 않다고 본다. 정치생명공동체와 탈-범시 그리고 수령과 인민대중은 얼마나 쌍방향적인가? 하나는 전체 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에서와 같이 전체와 하나는 서 로 상호교호작용을 하면서 서로 바라보는 수평적관계이다. 하나는 전체를 하늘같이 여기는 이민위천의 정신으로 그리고 전체는 하 나를 태양같이 여기는 그래서 등-범시 혹은 신-판옵티콘이 이루 어지도록 한다. 전체와 하나를 묶는 띠는 일심( 一 心 ) 이다. 일심 단결, 그것은 전체와 하나가 다시 하나의 마음을 가지고있는 단위 생명체라는것이며 이를 두고 정치생명체 라고 한다. 본다 의 문제로 결국 다시 돌아왔다. 감시이든 주시이든 환시 이든 본다는 문제는 이미 주관에 중점을 두는 견과 객관대상에 중 점을 두는 시사이의 관계도 애매하고 확정을 지을수가 없다. 그리 고 감시주체와 감시대상의 한계도 결정지을수 없다. 전산, 전자시대 의 본다 의 의미가 이렇게 만들어버렸다. 이것이 감시와 스펙터 클의 관계도 서로 불가분리적이게 만들어버렸다. 결국 본다의 구조 는 전체와 하나의 관계로 귀결되고만다. 벤담은 자기의 판옵티콘구상이 실현되지 못함을 비분강개하면서 생을 마쳤지만 푸코는 말년에 와서 자기의 감시리론의 한계를 절감 한 나머지 주저 감시와 처벌 이후 결국 문제는 인간의 주체문제 라는 착안, 자기 개발(technologies of the self) 에 열중하다 생을 마쳤다. 그래서 푸코는 자기의 기술을 통치의 기술(technologies of government) 과 조화시키려 노력했지만 결론을 보 지는 못했다. 여기서 말하는 푸코의 자기 개발 은 고대밀교에 해 당하는 령지주의에서 영성개발하는 기술과 류사한것으로 결국 본

178 (354)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55) 다 는 문제가 자기를 본다는 내면화와 대상을 본다는 외면화와 분 리될수 없음을 발견하고 주객합일의 자기 개발없이 통치의 기술이 불가능함을 깨닫는다. 이는 결국 공자가 이룩하려는것이고 수신제 가 치국평천하 로 요약될수 있을것이다. 수신제가(자아의 기술)와 평천하(통치의 기술)를 조화시키는 요체는 이민위천( 以 民 爲 天 ) 이다. 이것을 두고 푸코사상의 전진인지 후퇴인지는 속단할수 없다. 다 만 그의 사상에 잘못이 있었던것이 아니라 이 글의 모두에서 본바 와 같이 본다 의 감각이 가지고있는 구조적인 숙명이라고 할수 있다. 본다의 애매성은 판옵티콘 그자체를 해체시키고만것이다. 그 러나 이 해체의 자리는 공백이지만 거기서 주체가 움터올라오고있다 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어떻게 자아의 기술과 통치 의 기술을 조화시킬것인가. 인간내면의 주체를 개발하는 기술과 천 하국가통치의 기술을 어떻게 련관시킬수 있을것인가? 평등해야 건강하다 평등해져 감시하는자와 감시받는 그자체가 없어져 판옵티콘자체 가 무용지물이 된 상태를 사회학자 보인은 탈-범시 혹은 포 스트-판옵티콘(post-panopticon) 이라 했다. 탈-범시가 나오는 배경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근본적으로 힘의 불균형 과 불평등을 전제로 해야 하기때문에 결국 등-범시를 이룬다는것 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벤담이 구상한 판옵티콘은 이러한 자본주 의사회구조를 그대로 전제하고야 가능한 구조이다. 거의 250여년간 그 수명을 유지해오면서 지금 해체에 직면한 리유도 쌍방향적감시가 가능한 전자매체때문이다. 판-범은 전체와 하나의 관계의 문제 그리고 옵티콘-시는 전체 와 하나사이의 관계작용이다. 그래서 판옵티콘의 철학적문제성은 전 체와 하나사이의 작용의 문제이다. 판옵티콘이 문제가 되는것은 다 름아닌 하나와 전체가 분리되여 서로 객관시하면서 보고있기때문이 다. 하나가 전체를 감시하는 범시 그리고 그 반대인 역-범시 그리 고 서로 쌍방적인 등-범시로 진화했다. 결국 하나와 전체가 력동적 상호작용을 하는 관계는 전체가 하나를, 하나가 전체를 위하는 작 용관계이다. 이는 이미 본다는것자체도 없어진 작용 그자체만 남는 관계이다. 이를 탈-범시라 한다. 이러한 탈-판옵티콘은 유격대가 고기라면 인민은 바다 라는 한마디 말로 요약될수 있다. 이러한 사상을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이민위천>, 인민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이것이 나의 지론이고 좌우명이였다. 인민대중을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 믿고 그 힘에 의거할데 대한 주체의 원리야말로 내가 가장 숭상하는 정치적신앙 이며 바로 이것이 나로 하여금 한생을 인민을 위하여 바치게 한 생 활의 본령이였다. (1권 머리글 2페지) 1937년 천도교 교령 박인진은 사령관에게 장군도 숭상하 는 대상이 있느냐? 고 묻자 물론 나에게도 신처럼 숭상하는 대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민이다. 나는 인민을 하늘처럼 여겨왔 고 인민을 하느님처럼 섬겨오고있다. 나의 하느님은 다름아닌 인민 이다. (5권 369페지)라고 대답한다. 남 한 보수들과 세계렬강들이 알아야 할 사실은 북의 진정한 힘 은 핵무기도 미싸일도 아닌 지도자는 한없이 낮은 곳에 림하고 인민 을 하늘같이 모시라는 이 이민위천, 통치기술 이라는 사실이 다. 여기에 주체사상은 다름아닌 자아의 기술 이며 이민위천

179 (356)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57) 은 통치기술 이다. 이러한 이민위천 과 주체사상의 결합은 인 민과 지도자가 일심동체가 되게 하여 이 지구상의 무적함대로 등 장하고있다. 로작 주체사상에 대하여 에서는 인민대중이 력사의 주체로서 의 지위를 차지하고 역할을 다하자면 반드시 지도와 대중이 결합되 여야 합니다. 인민대중은 력사의 창조자이지만 옳은 지도에 의하여 서만 사회력사발전에서 주체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역할을 다할수 있습니다. 라고 했다. 여기서 지도자의 통치기술과 인민의 주체간의 력학적관계가 설정 돼있으며 이에 대한 규명이 주체사상연구의 근간이라고 할수 있다. 지도자와 인민사이는 결코 감시와 처벌이란 판옵티콘적관계가 아니 다. 인민과 지도자는 상호작용 그자체만의 관계이다. 통치의 기술과 자아의 기술의 어우러짐,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의 눈의 가시이다. 벤담의 범시이든 전자시대의 등시이든 그자 체가 이미 인민과 대중으로부터 유리와 괴리를 전제한것이다. 하 나 와 전체 사이의 균렬을 전제한것이다. 그 균렬자체가 없어진다 면 이미 그것은 범시자체가 없어진 탈-범시이다. 인민대중을 하늘 같이 여기지 않고 소모품같이 여기고 선거철만 되면 여론조작의 수 단으로 당선만 되면 공권력의 이름으로 인민대중을 폭압하는 구조 속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그런 곳은 감옥의 구조이다. 감옥이 없는 곳엔 사회자체가 감옥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할것이다. 차별자체를 인정하지 않고는 생명유지가 불가능한 자본주의는 병 든 사회이다. 리처드 윌킨스는 평등해야 건강하다 (후마니타스, 2005년)에서 인간의 평등과 불평등은 수명과 질병의 종류까지 결정 한다고 하면서 평등하지 않으면 건강한 사회가 될수 없다는것을 주 장하고있다. 끊임없이 감시하고 감시받아야 하는 구조속에 우리는 지금 로출돼있다. 누가 누구를, 어느 나라가 어느 나라를 두고 지 옥같은 동토의 나라, 감옥이라고 하는가? 인민대중이 지도자와 원 쑤지간이 되고 나아가 이것이 내면화되여 인민이 인민을 서로 감시 하는 그곳이 지옥이고 감옥이다. 그래서 북의 사회는 초이든 역이든 공이든 판옵티콘자체를 적용 하는것이 무의미하다. 하나와 전체의 경계가 사라진 사회에서는 누 가 누구를 감시한다는것자체가 없기때문이다. 그곳에서 감시와 처 벌의 대상은 이런 정치생명체 그자체를 파괴하려는 그 모든 외부세 력과 내부세력이다. 그래서 북에서 말하는 감시라는 말자체가 남과 는 다른것이다. 남에서 지도자가 국민들을 감시하거나 국민들(시민 단체)이 당국자를 감시하는것으로서의 역-감시로서의 감시이지만 북에서는 그런 감시가 아닌 생명체로서의 정치공동체를 지켜내는 의 미의 감시이다. 범시자체를 감시하는 메타-범시같은 CCTV가 평양 에 없으라는 법은 없을것이다. 이를 체제유지라고 비난하는것은 자 본주의가 보는 또 다른 눈일뿐이다. 이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 한 최소한의 조건일뿐이다.

180 (358)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59) 밀림이 설레인다 밀림이 설레인다, 장군님 오신다고! 민생단 문제는 국제주의와 민족주의를 함께 그리고 동시에 바 라보는 안목이 없는 그 누구도 풀수 없는 성격의것이였다. 회고록전반에 흐르고있는 주요내용의 하나는 사령관의 국 제주의와 민족주의의 량면성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민생단 혐의 자들을 조금만 동정을 해도 마녀사냥의 겨냥이 되는 마당에 이 혐 의자들을 변호한다든지 심지어는 갇혀있는 이들을 일거에 풀어 해방 시킨다는것은 자기 목숨을 내놓지 않고는 할수 없는 일이였다. 주석이 1935년 2월말-3월초 다홍왜회의(일명 동만당단특위 련석대회)에 달려가 담판을 지은것은 이미 앞에서 소개하였다. 이번 은 마안산으로 달려가 민생단 혐의로 잡혀있던 아동단원들을 모 두 풀어 한품에 안고 가는 그 장엄한 행진에 관한 기록을 소개하려 한다. 회고록에 담겨있는 수많은 장면가운데 가장 멋있고 감격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날을 기억하여 아마 밀림이 설레인다 (리범 수 작/유명철 곡)가 지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실로 그날은 백두 밀림이 설레였고 밀림의 긴긴밤은 밤새도록 노래하였다. 그리고 마 안산은 만주벌 눈바람아 이야기하라, 만고의 이런 영웅이 또 있느 냐고 울음울었다. 회고록에 적혀있는 그 이상의 표현을 할수 없어서 애쓰다 결국 그대로 여기에 전재할수밖에 없었다. 1936년 초봄 아직 마안산에는 눈이 무릎까지 쌓여있었지만 밀림 은 설레기 시작하였다. 마안산밀영에는 민생단 혐의로 몰려 이름 도 얼굴도 없는, 그래서 인격이 없는 어린 아동들을 포함한 사람 들이 있었다.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마안산 서쪽밀영에서 좌경분자들이 <민생단>보따리를 뒤적거리 고있을 때 새봄의 눈석이조차 시작되지 않은 마안산 동쪽밀영의 음 달밑에서는 수십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병마와 기한에 떨며 울고있 었다. (4권 354페지) 이 소식이 장군이 이끄는 유격대에 알려진것은 4월 상순이 였다. 유격대일행이 온다는 소식을 알리기라도 하듯이 백두밀림은 파도쳐 설레기 시작하였다. 장군이 다가오고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밤부터 낮까지 끝없이 밀림은 설레였다. 사령관의 유격대일행이 밀영에 도착하자마자 제일먼저 달 려나온 아동들은 장군님! 하고 부르며 앞을 다투어 귀틀집에 서 쏟아져나왔다.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밀영의 하늘에 부딪쳐 은방울처럼 굴러가는 아이들의 웨침소리 를 듣는 순간 나는 불길처럼 확 타오르는 격정에 온몸과 마음을 송두리채 내맡기며 아이들앞으로 바삐 걸어갔다. 저 아이들, 저 아 이들이다. 적에게 맞아죽고 찔려죽고 불타죽은 부모형제들의 원쑤 를 갚으려고 천산만악과 림해설원을 지나 천신만고의 가시덤불길을 헤치며 혁명군을 따라온 아이들, 바로 저 아이들이 철조망없는 수

181 (360)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61) 용소와도 같은 이 몰인정하고 을씨년스러운 산중에서 <민생단>련루 자의 억울한 감투를 쓰고 겨우내 설음속에서 우리를 기다려온 아 이들이다. (4권 364페지) 당시 마안산에는 조선인민혁명군의 한 부대에 의하여 건설된 밀 영이 있었다. 이 마안산밀영에는 유격구가 해체되면서 갈데올데 없이 문전걸식하다 찾아온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찾아온 아 이들을 좌경기회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유격활동에 부담이 된다고 귀찮게 여기면서 돌봐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아이들을 민 생단 원련루자로 몰아 박해하였다. 이를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인민의 리익우에 초혁명적인 <원칙>의 구호, <계급성>의 구호 를 올려세우고 대중을 우롱하고 학대하는데 습관된 민족배타주의 자들과 좌경기회주의자들은 혁명군의 짐이 된다고 하면서 아이들을 외면하였다. 그 아이들이 가까이에 있으면 적들에게 밀영의 위치가 드러날 위험성이 있다고 자기들만의 보신을 위한 소왕국을 따로 짓 고 깊은 수림속에 들어가 별거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 수림언저리에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그 이붓아버지같은 사람들은 아이들이 엄동설한에 풀뿌리를 우려먹으며 기한에 떠는것을 보면서 도 쌀 한토리 가져다 주지 않았고 의복 한벌 해입히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련민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 아이들의 상 처에 고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는 사람들, 아이들의 언손과 언 볼을 입김으로 녹여주는 사람들, 아이들이 귀엽다고 쓰다듬어주는 사람들, 아이들이 설음에 겨워 울 때 함께 붙안고 우는 사람들은 례외없이 <민생단>명부에 오르고 박해를 받았다. (4권 364~365페지) 이 아이들을 돌본 녀성유격대원이 바로 김정숙녀사였다. 김정숙녀사는 자기 몫으로 돌아오는 밥을 먹지 않고 남겨두었다가 이 아이들에게 밤에 몰래 먹이군 하였다. 김정숙녀사는 해방후 그 때를 기억하며 자주 눈물을 흘리군 하였다 한다. 조국에 돌아온 이 아이들은 이미 장성하였지만 김정숙녀사를 어머니 라고 불렀 다. 그런데 남쪽에서 혹자들은 이를 김정숙우상화라 한다. 진실은 만주벌 눈바람과 백두밀림만 알고있다. 밤은 노래한다. 무엇이 거 짓인가를. 마안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이 산만이 진실을 알 고있을것이다. 밀림이 설레인다 폭풍처럼 분노에 설레인다 눈덮인 마안산밀림은 폭풍처럼 분노에 설레였다. 좌경사대주의자 들은 이 아동들에게 조금의 동정의 련민을 보내면 민생단 으로 몰아 가차없이 처단해버렸다. 윤창범이 죽은 후 대리련대장이며 명 사수인 김락천은 아동단원들을 데리고 마안산으로 들어오다가 아 이들의 헐벗은 몰골을 보다못해 련대후방부 일군들이 간수하고있 던 군복천으로 그들에게 옷을 해입혔다.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련대장에게 감사를 드리였다. 그러나 이런 선행으로 하여 김락천은 민생단 의 모자를 쓰고 처형되였다. 아이들을 동정하는것이 죄가 되고 랭대하는것이 오히려 공으로 되는 이 밀영에서는 참다운 인간 적향취, 공산주의적향취를 느낄수 없었다.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주먹을 부르쥐고 내앞으로 밀물처럼 육박해오는 수십쌍의 눈물 에 젖은 눈동자들은 인간성을 저버리고 초보적인 인간적도리마저 저 버린자들의 죄상을 낱낱이 고발하고있었다. (4권 365페지) 나는 아이들의 옷차림에 주의를 돌리였다. 옷이란 명색뿐이였

182 (362)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63) 지 사실 그들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나 다름없었다. 불 에 타고 찢겨지고 닳아떨어진 그들의 옷은 옷이라기보다도 차라리 넝마나 걸레짝에 가까운것이라고 말할수 있으리만큼 람루하였다. 수 개월동안 생존의 위협을 받으며 주림과의 싸움을 부단히 벌려온 아 동단원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백지장처럼 창백하였다. (4권 366페지) 그런데 혁명을 하겠다고 이 산중에까지 따라온 아이들에게 어 떻게 <민생단>의 껍데기를 함부로 뒤집어씌워놓을수 있단 말인가. 그래 그 모지락스럽고 얄미운 인간들한테는 저 아이들이 <민생단> 이 아니고 <민생단>일수도 없다는것을 판단할 능력조차 없으며 그 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돌보아줄 한가닥의 자비심이나 동정심마저 없 단 말인가. 인간해방을 위해 죽음까지도 불사할 결심이라고 맹약한 사람들이 인간중에서도 가장 연약하고 자립성이 약한 어린이들을 어쩌면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방임해둔단 말인가. (4권 367페지) 밀림이 설레인다 폭풍쳐 설레인다/ 백두의 밀림이 폭풍쳐 설레인 다/ 수령님 품에 자란 억만의 대오처럼/ 대지를 뒤덮으며 장엄하게 설레인다( 밀림이 설레인다 3절중에서) 밤이나 낮이나 끝없이 설레인다! 밀림은 고발한다. 몸속에 피 한방울 없는 좌경사대주의자들을 고 발한다. 어른은 아이의 아버지 인것을,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하 는 저 자칭 공산주의자들은 혁명할 자격이 없다고 고함친다. 저런 자들이 공산주의자들이라면 저런자들과는 혁명은커녕 한상에 밥도 같이 먹지 않을것이라 다짐한다. 이것이 바로 사령관이 다른 공산주의와도 스스로 차별화 하는 진정한 주체사상의 유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아이들이 없는 세계는 태양이 없는 세계>라고 한 명언속에는 후대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격조높이 고동치고있는가. (4권 368페지) 인류가 기억하고있는 동서방의 모든 위인들은 누구나 다 후대 들에 대한 사랑을 미덕중의 미덕으로 간주하여온 아이들의 진정한 벗이였고 스승이였고 어버이였다. 그런데 귀족도 아니고 부르죠아지도 아닌 마안산의 주인들, 입 만 벌리면 인간성을 운운하고 인간해방을 념불처럼 외우는 이 밀 영의 공산주의자들은 어찌하여 아이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는 단 말인가! 나는 치미는 분노를 걷잡을수 없었다. 혁명 그자체를 생명보다 도 더 신성시해온 어린것들의 깨끗한 신념이 망울채로 저렇게 무참 히 짓밟힌다는것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일이였다. 나는 저 아이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사람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저 어린 것들이 처창즈에서 어른들과 함께 어떻게 기아를 이겨냈고 내도산 에서 인민혁명군을 도와 어떻게 주먹밥을 날랐고 어떻게 철야보초 를 섰는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었다. 아이들이 엮어온 그 개개 의 자서전은 소설의 줄거리처럼 내 머리속에 죄다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4권 369페지) 큰 아이들의 겨드랑이밑에서 비에 젖은 햇병아리처럼 온몸을 오들 오들 떨며 언 손으로 무르팍의 살을 가리고 서있는 백초구출신의 아 홉살내기 리오송의 경력만 보아도 마안산의 아이들이 겪어온 천신만 고의 준엄성을 능히 판단할수 있을것이다. 그 아이는 벌써 처창즈에 있을 때 집단적인 아사를 체험하였다. 다른 아이들처럼 리오송도 배 가 고플 때마다 동면중의 개구리를 잡아먹든가 봄파종을 한 밭들을

183 (364)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65) 돌아다니며 씨종자를 파먹었다. 김정숙녀사는 그때에도 처창즈현장에 서 이 아이들과 같이 있었다. 하도하도 먹을것이 없어서 처창즈일대 의 식물이든 동물이든 살아있는것은 다 잡아먹었다고 한다. 처창즈 산하의 풀뿌리를 후벼잡고 흘린 눈물은 강물이 되여 흘렀다. 리오송의 아버지도 처창즈에서 아사로 인생을 마쳤다. 오송이가 밭에서 보리이삭을 잘라다가 거스러미를 비벼없애고 줌에 채 차지도 않는 낟알을 아버지의 입에 놓아드리였지만 죽음을 막아내지 못하였 다. 리오송은 어린 누이동생과 함께 초근목피로 보리고개를 넘기다 가 내도산으로 철거하는 인민혁명군을 따라 처창즈를 떠났다. 그러나 그도 김락천의 처남이라는 리유로 민생단 혐의를 받고있었다. 밀림이 설레인다 폭풍처럼 설레인다 백두의 밀림이 폭풍쳐 설레인다. 대지를 뒤엎으며 장엄하게 설레 인다. 손명직을 단장으로 하는 14명의 아동단원들은 내도산으로 가 는 수백리 로정에서 조직생활을 통하여 부단히 련마해온 백절불굴 의 투지와 혁명에 대한 충실성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앞에서는 허 리를 치는 눈무지와 가파로운 산고개들이 길을 막아나서고 뒤에서 는 토벌대 의 무리들이 발목을 물고늘어졌다. 행군의 첫날에 먹을것은 바닥이 나고말았다. 배고프면 솔잎을 뜯 어 씹든가 눈빵을 빚어 그것을 한입씩 떼먹으면서 허기를 달래군 하 였다. 강냉이떡 한개를 가지고 14명이 한끼를 굼때는 날은 그래도 잘 먹는 날이라고 할수 있었다. 밤에 야숙을 할 때마다 손명직, 주 도일, 김태천을 비롯하여 체통이 큰 상급반 아이들은 10살미만의 나이어린 아동단원들을 엄지닭처럼 품고 앉아 몸으로 바람을 막아 주며 잠간씩 눈을 붙이고는 교대로 주변을 감시하군 하였다. 이들 은 여기서 동지애를 길렀으며 조국이 해방된 후에도 이때에 안은 동 지애는 동포애로 변하였고 민족애로 승화되였다. 우리 민족끼리 가 결코 한갖 관념에서 지어낸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죽어도 혁명군을 따라다니다가 죽겠다고 언 손을 입김으로 녹이 며 이 깊은 산중에까지 찾아온 아이들, 부자집 아이들이 자개를 박 은 밥상에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풍청거릴 때 우등불옆에서 가랑잎 을 덮고 쪽잠을 자면서도 광복된 조국을 그려온 이 아이들에게 죄 가 있다면 과연 무슨 죄가 있겠는가. 이 귀여운 꽃봉오리들에게 금 의옥식은 마련해주지 못할망정 왜 수수한 광목옷 같은것이야 못해 입히며 콩죽 같은것이야 못해 먹이겠는가. 회고록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얘들아, 얼굴을 들어라. 너희들이 헌옷을 입고있는건 너희들 의탓이 아니다. 어서들 이리 오너라!> 나는 두팔을 크게 벌리면서 아이들앞으로 다가갔다.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수십명의 아이들이 올망졸망 나를 둘러싸고 엉엉 소리를 내며 목놓아울었다. 나는 우는 아이들을 데리고 병실로 들어갔다. 며칠째 병에 걸려 침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한다는 네댓명의 아이들 이 모포도 없이 방 한쪽구석에 쪼그리고 누워있었다. 무슨 병인가 고 물었으나 아이들은 하나같이 대답을 피하였다. 밀영을 지키고있 던 대원들도 골병이라고만 하였지 정확한 병명은 대주지 못하였다. 그것이 마음속의 병이라는것을 아는 사람은 박포리밖에 없었다. 아 무 죄도 없는 청옥같은 아이들에게 <민생단>이라는 표쪽을 달아놓 았으니 무슨 병을 앓는다고 대답하겠는가. 나는 전령병을 불러 배낭에서 모포를 꺼내라고 하였다. 그것은 왕청시절에 일본군수송대를 치고 로획한 나의 단매모포였다. 그 한

184 (366)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67) 장이나마 앓고있는 아이들에게 덮어주면 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것 같았다. 나의 의도를 알아챈 대원들이 저마다 자기의 모포를 꺼 내느라고 부산스럽게 배낭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포들을 임자들의 앞으로 밀어놓았다. (4권 371~372페지) 대지를 뒤엎으며 장엄하게 설레인다 나는 오늘 여기서 혁명가의 가치관을 두고 다시한번 심각한 음 미를 하지 않을수 없다. 우리가 무엇때문에 혁명을 시작했고 지금 도 무엇때문에 만난을 무릅쓰고 혁명을 계속하고있는가. 우리는 그 무엇을 파괴하고싶어서가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기때문에 혁명의 길 에 들어선 사람들이다. 온갖 불의와 페습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고 인간적인것을 옹호하며 인간이 창조해낸 모든 부와 아름다움을 지 켜내기 위하여 우리모두가 이 저주로운 세상을 향해 반기를 든것이 아니겠는가. 학대받는 계급에 대한 동정이 없고 망국의 설음속에 울고있는 민족에 대한 련민이 없고 가난과 무권리속에서 헤매는 부 모처자들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곤난을 하루도 참아내지 못하고 따뜻한 온돌방으로 돌아갔을것이다. (4권 372~373페지) 후대들은 계급의 꽃이고 민족의 꽃이며 인류의 꽃이다. 이 꽃 을 잘 가꾸는것은 공산주의자들의 신성한 임무이다. 후대들을 어떻 게 키우는가에 따라 혁명의 장래가 결정된다. 혁명은 한세대에 끝나 는것이 아니라 여러대를 두고 완성되게 된다. 오늘은 우리가 혁명을 담당한 주인으로 되고있지만 래일은 저애들이 자라서 혁명을 떠메 고나가는 주력군으로 될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선혁명에 끝까지 충실하기 위해서는 혁명의 피줄기를 이어갈 후비대를 튼튼히 키워야 한다. 더구나 저애들은 우리의 전우들이 남기고 간 유자녀들이 아닌 가. 우리는 그 전우들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도 저 아이들을 아끼고 따뜻이 돌보아주어야 하는것이다. (4권 373페지) 밀림의 긴긴밤아 이야기하라 나는 지금이야말로 어머니가 림종을 앞두고 나에게 유산으로 남긴 그 20원을 소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였다. 금전이 없이는 도저히 뚫고나갈수 없는 역경에 처했을 때에만 쓰라고 당부하시던 20원이였다. 손끝에 피가 나도록 삯일을 하여 한푼두푼 힘겨웁게 벌어들인 로력의 열매였다. 나는 어렸을 때 돈을 모르고 살았다. 우리 아버지는 한평생 자 식들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학습장이나 연필을 사는것도 어머니에 게 맡기고 나를 상점이나 장마당 같은데 드나들지 못하게 하였다. 어려서부터 돈맛을 알기 시작하면 사람이 자라서 수전노가 되고 조 국도 모르고 민족도 모르는 속물로 될수 있다는것이 돈과 관련된 아버지의 지론이였다. (4권 377페지) 나는 어머니의 풍랑세찬 일생이 몇장의 지전으로 압축된것 같은 감을 느끼며 그 돈을 소중히 받아안았다. 20원, 그것은 나에게 있 어서 호신부와 같은것이였다. 그 돈을 품고있으면 배고프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항상 내곁에 계시 면서 온몸과 넋으로 나를 지켜주는것 같았다. 내 개인을 위해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쓰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던 20원이였다. 가능하 다면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의 표적으로 영원히 남기고싶었던 돈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준엄한 현실은 이 결심을 여러번 뒤흔들어놓았다. 나는 그 돈을 쓰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뺐다하며 동요한적이 한두번

185 (368)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69) 이 아니였다. 우리에게는 돈을 쓰지 않으면 안될 정황이 수없이 생 기였다. (4권 380페지) 그 돈으로 헐벗은 아동단원들에게 옷을 해입힌다면 어머니도 기뻐하실것이다. (어머니, 이 돈을 가지고 어머니의 곁을 떠난지도 네해가 되였습니다. 그동안 딱한 고비를 여러번 겪으면서도 장래를 생각해서 그럭저럭 보존해왔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이 20원을 소비 해야 할것 같습니다. 세상에 살붙이가 하나도 없는 저 불쌍한 아이 들에게 옷을 해입혀야겠습니다. 장차 이보다 더 험한 고비가 있을 수 있으리라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마음먹고 택한 결심이니 어머니 도 지지해주십시오. 아이들을 류달리 좋아하는 저의 성미를 어머니 야 잘 아시지 않습니까.) 멀리 토기점골의 차디찬 산등성이에 홀로 누워계시는 어머니를 향해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뇌이였다. (4권 381페지) 밀림에 차고넘쳐 소리높이 설레인다! 사령관은 어버이 라고 사실 20원이 무슨 큰돈이기야 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때 후 련한 심정을 금할수가 없었다. 이렇게 한 다음에 우리는 마안산을 떠나갔다. 새옷을 입고 기뻐서 어쩔줄 모르던 밀영의 아이들이 모두 따라가 게 해달라고 졸라댔다. 나는 여러 사람의 반대를 물리치고 아이들 의 그 청을 쾌히 받아들이였다. 나이가 너무 어려서 우리를 따라다 닐수 없는 유년기의 아이들과 병든 아이들 약간명을 내놓고는 대부 분이 남하하는 우리 대오와 함께 간고한 장정의 길에 들어섰다. 유 격전으로 동분서주하는 혁명군이 10대의 아이들을 집단적으로 데리 고 다닌다는것은 일종의 모험이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비록 유 격전의 력사에 없고 상식에 어긋나는 처사라 하더라도 아이들을 데 리고 다니면서 불길속에서 단련시켜 그들전부를 강철같은 인간들로 키우려고 결심하였다. 제일 힘든것은 진대나무를 넘고 강을 건느는 것이였다. 그래서 우리는 싸움할 때와 행군할 때 아이들을 보호할 데 대한 분공을 따로 주었다. 우리 대원들은 실로 아이들을 눈동자 와 같이 보호하였다. 진대나무는 안아 넘기고 강물은 업어 건늬였 으며 적들의 총알은 몸으로 막아주면서 그들을 자래웠다. 그때 나를 따라 백두산지구로 나왔던 아이들은 그후 빠짐없이 혁 명군에 입대하였고 가렬처절한 유격전을 통해 훌륭한 군정간부들로 성장하였다. 종군이 허락되지 않아 얼마간 대첨창밀영에 가있던 9살 내기의 리오송까지도 손장상의 전령병으로 복무하다가 후에는 장백 에 나와 나의 전령병으로 되였다. 1939년 5월에 우리가 부대를 이 끌고 무산지구로 진공할 때 그의 나이는 겨우 12살이였다. 그는 물이 깊어 강을 건느지 못하였다. 그래서 내가 그를 안고 강을 건 네주었다. 그때 그렇게 병아리처럼 품에 안아 키운 아이들이 지금 은 우리 당과 국가와 군대에서 핵심적역할을 수행하고있다. 마안산에서 헐벗은 아이들을 보고 울분을 참지 못했던 그때의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나는 조국이 해방되면 어떻게 하나 아이들에 게 국가가 무료로 옷을 해입히는 제도를 세워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전쟁으로 파괴되고 령락된 나라를 재건하던 1950년대 후반기에 벌 써 우리는 국가가 옷을 지어 공급하는 력사를 창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안산에서의 고뇌를 체험한 조선공산주의자들만이 창조할 수 있었던 하나의 기적이였다. 우리는 해마다 아이들의 옷을 해입 히는데 수천수억원의 돈을 지출한다. (4권 382~383페지) 그래서 한홍구교수는 민생단 사건이 남긴 트라우마는 주체사상,

186 (370)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71) 어버이수령과 인민들간의 독특한 혈연적뉴대관계, 자주로선, 정치적 생명론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고 한것이라 본다. 2004년 개천절행사로 평양에 가 우리일행은 보통강호텔에 머물렀 다. 호텔에는 다른 호텔과 달리 노래방이 있었다. 우리가 아침이 슬 을 부르고 북도우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곡을 한곡 불러달라 고 하니 장군님 찬 눈길 걷지 마시라 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 노래말은 다음과 같다. 1. 눈오는 이 아침 우리 장군님/ 그 어데 찾아가십니까/ 찬눈을 맞으며 가시는 길에/ 이 마음 따라섭니다/ 이 땅의 눈비는 우리가 다 맞으리니/ 장군님 장군님 찬 눈길 걷지 마시라 2. 우리를 잘살게 하여주시려/ 수령님 한생 맞으신 눈/ 오늘은 장군님 헤쳐가시니/ 이 가슴 젖어옵니다/ 충효를 다하여 맡은 일 더 잘하리니/ 장군님 장군님 눈바람 맞지 마시라 3. 장군님 찬 눈비 맞으시면서/ 험한 길 더는 걷지 않게/ 날마 다 기쁨을 드리는 길에/ 이 한몸 바치렵니다/ 우러러 바라는 간절 한 소원입니다/ 장군님 장군님 부디 안녕하시라 마치 교회에서 찬송가 71장을 부르는듯 한 착각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진정성을 의심도 하였다. 노래말그대로 한 정치 지도자에 대하여 이렇게도 진정어린 생각을 가질수 있을가 하고 의 심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정치인들은 다 사기군들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그러나 회고록은 정확한 답을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노래 말이 차라리 모자랄 정도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였다. 운하( 運 河 )를 파랴? 은하( 銀 河 )를 쏘랴? 평화는 총대에서 나온다 19세기는 바다의 세기였다. 바다를 점령하는자가 온 세계를 지배 했다. 우리는 19세기 병인양요, 신미양요 그리고 운양 호사건 등 모두가 바다를 건너온 군함앞에 무릎을 꿇고말았다. 그러나 20세기 는 공중을 지배하는자가 땅을 지배하였다. 일본도 원자폭탄을 실어 나른 B-29 앞에 맥없이 항복하고말았다. 지난 6.25전쟁당시 미 국이 보여준 공중전앞에 우리 땅은 초토화가 될 지경이였다. 그러면 21세기는 무엇이 세계를 지배할것인가? 그것은 우주공간 을 지배할 무기 즉 미싸일이다. B-29 없이도 무인승유도탄이 장 거리로 핵을 실어나른다면, 이런 가정하에 만들어진것이 미싸일이 다. 중간에 주유공급을 받을 필요없이 대륙간을 횡단할수 있는 무 기, 그것이 미싸일이다. 대륙간뿐만아니라 우주공간까지 올라갈수 있는것이 유도탄(미싸일)이라고 한다. 드디여 21세기는 우주별전쟁(star war) 의 세기라 할수 있다. 2차세계대전이 아시아의 경우 미, 일전쟁이였다면 앞으로 세계대전 은 북, 미간의 전쟁이 될것이다.(만약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러 나 앞으로의 전쟁은 어느 한쪽이 이기고지는 전쟁이 아니다. 인류가 지구상에서 공멸할지도 모르는 전쟁이다. 그래서 전쟁이 절대로 일

187 (372)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73) 어나지 않도록 막아야 하는, 그러한 전쟁을 해야 한다. 역설적이라 할수 있다. 이를 두고 북은 평화는 총대에서 나온다. 고 하면서 미국과는 다른 목적으로 미싸일을 1970년대부터 개발하였다. 미국은 천하무적의 핵과 미싸일대국이라고 스스로 뽐내고 이 지구 상에 자기들을 당할자는 없다고 오만하다 못해 방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2003년 8월 1일 펜타곤에서는 북미가상미싸일전쟁을 실험하 였다. 결과는 우리는 참패하고만다. 였다. 우리는 처음에 엄살인 줄로만 알았다. 지구상에 경제대국으로 자처하는 나라가 기아선상 에 있다고 선전해온 북에 진다는것을 그 누구도 믿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이 만약에 사실이라면 그럴만한 리유라도 있 어야 할것이 아닌가? 구한말에 그렇게 믿고 사대해온 중국이 서양 렬강앞에 련전련패하는것을 보고 입술이 무너지니 이가 시리다. 고 했다. 한국 의 보수들은 지금 아마도 미국이 북에 힘없이 끌 려다니는것을 보고 같은 심경을 느끼고있으리라. 믿고싶지 않아도 펜타곤의 실험결과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 야 할가? 그 리유에 답하는것이 이 글을 쓰는 목적이다. 지금 북이 개발한 미싸일은 미제의 그것을 릉가하고있다는 이 엄 연한 한가지 사실, 쉽게 이 사실을 믿는 방법은 이란을 비롯한 제 3세계나라들이 왜 북의 미싸일을 사들이느냐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할것이다. 두번째로는 그렇게도 코대높던 부쉬가 왜 말기에(2006년 7월 4일) 협상탁에 나타났느냐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할것이다. 세번 째로는 북이 미싸일을 발사하면 공중요격하겠다고 해놓고 왜 슬그 머니 뒤꽁무니 찾느냐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할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여기서 일일이 하지 않아도 알만 한 사 람들은 말귀를 파악했을것이다. 미국이 지금 지구상 그 어느 나라 에 대해서도 이런적이 없었다는것은 누구나 다 알고있지 않는가? 력사가 200년 겨우 되는 나라가, 160여번 남의 나라를 침략한 력사 를 가진 미국이 이렇게 순한 양같이 된적은 없었다. 여기에는 북의 미싸일에 무슨 의미소가 있기때문이다. 천하무적 백두산호랑이는 웃을줄 안다 북이 2009년 2월 24일 발표한바에 따르면 4월 4~8일사이에 쏘아 올릴 발사체를 은하-2 호라 하고 거기에 탑재할 위성을 광명성 -2 호라 명명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 이름에서부터 왜 북이 미싸 일을 개발했고 그것을 어디에 쓰려고 한 리유를 다 발견하고도 남 음이 있을것이다. 백두산은 민족의 령산이요, 백두산호랑이는 웃을 줄 아는 령물이라 하지 않았던가. 사나우면서도 해학적인 령물, 그 것이 백두산호랑이이다. 백두산 도 그렇게 맹수와 같으나 평화로 운것일것이다. 북측은 1998년 8월 31일 무수단리에서 3단형위성발사체인 백두 산-1 호를 쏘아올렸다. 백두산-1 호에 달린 인공위성은 광명성 -1 호이다. 2008년 8월 31일, 평양방송은 우리 나라는 마음만 먹으면 목적한 실용위성을 성과적으로 임의의 시각에 쏴올릴수 있 는 수준에 있다. 고 했다. 백두산-2 호와 광명성-2 호를 예 고한것이다. 백두산-2 호는 몇단이 될지 모르지만(아마도 4단이 상) 1호보다는 훨씬 향상된것이 되지 않을가 여겨진다. 그런데 백두산-2 호의 명칭을 두고 미국, 일본과 남측은 대 포동-2 호라 고집, 선전하고있다. 자연히 무수단리것은 대포 동-1 호가 될것이다. 그러나 대포동 이 아니고 백두산 이란 명칭이 정확하다. 백두산 을 대포동 이라 명칭을 바꾸려 하는

188 (374)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75) 것은 그 성능이나 전술적가치에 있어서 폄훼 내지 실패작으로 돌 리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이소프우화의 신 포도와 여우정도로 보 면 될것이다. 그러면 북측은 왜 백두산 이란 이름을 발사체에 붙였을가? 이 름에 있어서 남다른 의미가 있을것이다. 항일유격대는 1936년 5월 조국광복회를 조직하고 보천보전투를 신호탄으로 백두산진격을 본격화하였다. 백두산은 민족의 어머니산이기때문이다. 조국광복회 10대강령을 발표한 후 끊임없이 조국진출교두보로 백두산진격을 최 대의 목표로 삼고 드디여 백두산밀영을 건설하였다. 그래서 백두산 은 북으로서는 민족의 자존심의 상징이다. 이렇게 북에는 그 어 느 하나의 이름에도 력사와 철학이 없는것은 없다는 사실을 알아 야 할것이다. 삼국유사 에 의하면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도 삼위 태백 산 혹은 백두산이다. 그래서 백두산은 민족의 령산이다. 만약에 백두산-2 호가 4단이라면 이것은 보통으로 생각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이 지금 개발에 사용하고있는 위성발사체가 4단짜리 이기때문이다. 서로 맞먹거나 더 우월할지도 모르기때문이다. 북이 미국과 같은 성능의 발사체를 개발했다는것을 의미하며 이는 미국의 자존심을 넘어선 미국의 생존에 관련되는 문제이다. 부쉬가 2006년 북의 미싸일발사소식을 듣고 밥상머리에서 잡은 포크를 놓을만 한 일이다. 최근 2007년 4월 24일에 미국이 발사한 최신형정찰위성을 실은 미노터(Minotaur)-1 호가 4단형위성발사체라는 사실은 신 문지상을 통해 널리 잘 알려졌다. 그러나 놀랄 필요는 없다. 조선의 백두산호랑이는 웃을줄 알기때문이다. 까치를 희롱할줄도 아는 동 물이 백두산호랑이다. 민화에 나타난 우리 호랑이는 백두산에서만 볼수 있는 온 세계의 명물가운데 명물이요, 평화의 상징이다. 백두산 은 백두산일것이다 미국이 지금 북의 미싸일과 핵에 안절부절 못하는 리유는 나 변에 있는것이 아니다. 2차대전이후 미국은 UN, IMF, GATT, NATO와 같은 수도 없는 국제기구를 만들어 세계를 한손에 주물러 왔는데 그 비결은 막강한 군사력때문이였다. 전세계군사비의 46% 를 미국이 차지하고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만약에 어느 나라가 미국에 맞설 만 한 미싸일과 핵만 갖는다면 이 많은 군사비를 하루아침에 무 용지물로 만들어버릴수 있다. 구축함, 순양함, 전차, 잠수함, 비행 기를 아무리 많이 갖는다고 하더라도 미싸일 몇대만 있으면 이 많 은 재래식무기들을 쓰레기로 만들어버릴수 있다. 그러나 지금 북 이 겨냥하는것은 어떤 인명도 재산도 살상하거나 파괴하지 않으면 서 전쟁을 막는, 바로 그러한 호랑이 백두산 을 개발하려 한것 이다. 북이 미국과 같이 지구촌을 지배하고 장악하고 착취하려고 미싸 일개발을 했느냐고 하면 그것은 미국이 범한 잘못을 같이 범하는 것이며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아 마땅할것이다. 이것은 백두산 이 란 이름에 걸맞지 않는것이다. 바로 이렇게 북을 몰고가려고 이름 에 있어서 백두산 대신에 대포동 을 지금 미국, 일본과 남측 은 고집하고있는것이다. 비렬하고 야비한 여우가 포도를 쳐다보는 빈정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시 우리는 삼국유사 로 돌아가서 민족의 령산이요, 우리 민 족의 어머니산인 백두산이 갖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환 인의 아들 환웅은 여러차례 아버지에게 땅에 내려가고싶다고 하니

189 (376)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77) 땅에 弘 益 人 間 (홍익인간) 할수 있는 땅을 찾다가 그곳이 바로 백두산아래 땅이였다고 한다. 홍익인간 이란 인간세계를 널리 리롭게 한다. 는 뜻이다. 그래서 환웅의 아들 단군의 통치리념은 홍익인간 그리고 在 世 理 化 (재세리화) 였다. 재세리화란 세상을 다스리되 리치로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단군자손 배달민족의 심성 이요, 통치자의 통치리념이다. 이 원리를 어기면 그것은 백두산 이란 이름을 어기는것이다. 즉 백두산 은 역시 백두산일것을 믿 어의심치 않는다. 조선이 없는 지구는 없다 북은 1994년에 평양근처 대박산기슭에 단군릉을 건립하였다. 가 시적인 릉건립이 그렇게 중요한것은 아닐것이다. 단군이 세운 조선의 건국리념인 홍익인간과 재세리화 그것이 더 중요할것이다. 북에서 개발한 백두산 발사체는 첫째도 둘째도 홍익인간리념 에 충실한것이여야 할것이다. 이것이 북남 혹은 남북민모두의 념원 이다. 북은 조선이 없는 지구는 없다. 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 이 지구상에 조선이란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며 핵으로라 도 지도상에서 싹 지워버리고싶어한다. 일본 도꾜의 도지사란자가 한 반도에 핵을 사용해서라도 인구의 반을 몰살시키면 한 반도 가 영구히 일본땅이 된다고 공공연히 말했으며 최근 이시하라란자 는 북을 궤멸시켜 중국에 합병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남 한 의 어느 누구도 일본에 항의하지 않았다. 지구상에 없어져야 할 당 연한것으로 남의 정치인들은 여기고있기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북에서 하는 말이 있다. 주먹이 약하면 그 주먹 으로 눈물을 닦을 날이 올것이다. 라고. 그렇다. 우리 배달민족은 한번도 남의 눈에 먼저 눈물을 흘리게 한적은 없다. 수나라가 고구 려를 침략했을 때에도 고구려의 을지문덕장군은 수양제( 隋 煬 帝 )를 쫓아낸 다음 도덕경의 다음 말 그칠줄을 알아야 한다.( 知 止 也 ) 고 하면서 어느 선에서 공격을 멈출줄을 알았다. 욕심이 과하면 죽 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주먹을 쓸데 쓸줄 아는 용기야말로 참된 용기이다. 주먹 한번 안 쓰고 그 주먹으로 눈물이나 닦는 그러한 민족은 이 지구상에 살 자격이 없다. 그러나 그 주먹을 멈출줄 아 는것이야말로 참된 지혜이다. 그러나 저 미제국주의의 본성을 보라. 전세계 방방곡곡 돌아다 니며 커피재배하는 곳에선 커피를, 설탕을 재배하는 곳이면 설탕 을 닥치는대로 FTA 운운하면서 국제조약을 체결하곤 공룡같이 집 어삼켰다. 그러나 지금 가슴에, 위에, 대장에, 소장에 모두 고장이 났으며 드디여 항문이 막혀 진드기같이 스스로 피가 터져 죽게 생 겼다. 금융위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칠줄을 알았어야 할것이다. 미 국에 건국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카우보이 쌍권총밖에 없었다. 이는 미국의 운명을 예고한바다. 약소국가를 침탈하지 않고는 직성이 풀 리지 않는, 그래서 모든 제조업은 제3세계에 떠넘기고 마우스 하나 로 금융만 굴리다가 저 꼴을 당하고있는것이다. 금융에 금융을 퍼 붓는다고 경제가 살아나는것은 아니다. 경제가 파탄난 마당에 미국이 만약에 미싸일앞에 군사적으로도 북에 밀리게 되면 세계를 지배착취할 도구는 단 하나도 남지 않게 되고만다. 얼마나 초조하고 답답하겠는가? 그래도 이런 가련한 존 재에 친구가 되여줄 유일한 존재가 있으니 역설적이게도 그것도 우 리 배달민족이다. 남 한 말이다. 다 낡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 기 사주고 광우병소고기 사주고 거기다 전쟁하라면 전쟁까지 대신 해주니 이것도 홍익인간정신인가?

190 (378)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79) 그러나 남은 알아야 한다. 이것은 절대로 재세리화가 아니다. 리 치에 당치않은 홍익인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할것이다. 홍 익인간과 재세리화는 항상 칼의 량날과 같이 가야 한다. 남 한 의 단군을 찾는 보수우익들이 재세리화없는 홍익인간 운운하며 웨치는 것이 설득력없는 리유가 여기에 있다. 헌법조항에 재세리화는 없으 면서 홍익인간만 있는것이 문제란 뜻이다. 리치에 맞지 않는짓 하 는 미국에 대해 한마디 말도 못하는 남 한 의 단군족들이 정신차 려야 한다는 뜻이다. 왜 백두산 에서 은하 로 북이 이번에 새로 발사할 발사체의 이름을 백두산-2 호에서 은하-2 호로 바꾸었고 탑재할 위성의 이름은 광명성-2 호이 다. 왜 이름을 바꾸었을가? 그 리유는 무엇일가? 주행거리가 길어 진때문일가? 속도가 달라진때문일가? 그 모든것일수도 있고 아닐수 도 있다. 평양에서 워싱톤까지 거리는 1만 1천 70km이다. 이만 한 거리라면 대포동-2 호로도 미국전역 어디든 갈수 있다. 그렇다 면 구태여 은하 라 이름을 변경할 필요가 없다. 지금 개발한것만 으로도 미국전역이 사정권안에 들어오는데 말이다. 다른 유색인종 의 생명을 개, 돼지보다 못하게 여기는 저들이라면 얼마든지 이 정 도의 미싸일개발에 만족했을것이다. 이라크에서 수십만명을 죽여놓 고도 눈섭 하나 움직이지 않던 미국이 자기 군사 하나 죽을 때마 다 언론이 대서특필하는것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는가? 우리자신의 피부가 백색이라고 착각이라도 하지 않았나? 여기서 북의 배달민족 단군자손들은 을지문덕장군과 같은 고민 에 빠지지 않을수 없었다. 과연 핵무기를 인구가 밀집한 대형도시 에 사용하여 인명을 살상하는것이 옳으냐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일본에 락하한 그 핵폭탄을 상상만 해보아라. 과연 인간 이 인간에게 그런짓을 할수 있을것인지를. 그러나 미국은 한다. 했 다. 유색인종은 인간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기때문에 같 은 전범국가인 도이췰란드에 사용하지 않고 일본에 사용한것이다. 같은 종교(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 인간들은 사탄이기때문에 그 런짓을 한것이다. 우리 단군배달민족의 피속에는 이런 흡혈귀적본능은 없다. 무고 한 미국시민을 한사람도 다치지 않고 심지어는 재산의 피해도 전혀 주지 않고 다만 미국의 그 잘못된 제국주의근성만 고쳐주는 방법이 없을가? 핵이든 미싸일이든 인공위성이든 상관없이 이 지구상에 이 런 기술을 개발하는 고민을 먼저 했어야 한다는것이다. 여기에 답은 나왔다. 미국, 저 워싱톤과 펜타곤에 앉아있는 전쟁 광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것이다. 그 방법이 나왔다. 그 방법이 나왔기때문에 백두산 에서 은하 로 변한것이 아닌가 한다. 2차 원공간(백두산)안에 있던것을 3차원공간(은하)으로 변화시키는것이 다. 그것도 순수한 우리 말 그대로 은하-2 호로 바꾼것이다. 미 국은 구태여 영어로 GALAXY-2 라고 한다. 대륙간을 횡단하여 인구많은 어느 도시의 한복판에 핵을 떨어뜨 려 대량으로 인명을 살상하자는것이 아니고 미국의 저 전쟁광들의 눈과 귀만을 잠시 멀게 하자는 그러한 역할을 하는 발사체와 탑재 물을 고안한것이다. 그것은 저 우주공간속에 있는 미제인공위성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그러한 방법이다.

191 (380)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81) 섬멸적타격 은 홍익인간사상의 발로 한 반도상공에는 404개의 인공위성이 돌고있다. 초저녁 남동 쪽하늘을 보면 전에 보지 못하던 별 같은, 그러나 유난히 밝은 발 광체를 육안으로도 확인할수 있다. 남 한 의것 4개를 포함하여 미 국것이 140개, 로씨야것이 90개, 일본것이 28개, 중국것이 16개 하 여 무려 400여개의 인공위성이 돌고있다. 이 위성을 통해 통신, 자 원탐사, 기상예보 등을 할수 있다. 무엇보다 군사작전상 통신교환 도 모두 이 위성을 통해서이다. 지금 하고있는 키 리졸브 도 인 공위성없이는 불가능할 정도이다. 바로 북이 겨냥하는것이 이 기능 을 마비시키는것이다. 미국의 눈과 귀와 같은 우주공간에 있는 이 반도를 위협하고있는 통신망을 마비시키자는것이다. 핵탑재물을 땅 에 떨어뜨리는것이 아니고 공중에서 폭발하면 인명을 전혀 해치지 도, 환경도 파괴하지 않고 통신시설만을 마비시키는 기술을 개발했 다는것이다. 이 기술은 훨씬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들어가고 주행거리도 멀어 야 한다. 지금 있는것을 두고 예산에 상관없이 이 기술을 개발하여 은하 라고 한것은 우리 민족의 피속에 흐르고있는 홍익인간정신 아니고는 다른 생각을 할수 없을것이다. 백두산은 땅별 지구에 있 는것이고 은하는 우주공간속에 있는 별들이다. 그렇다면 우주에서 땅으로 그리고 땅에서 우주로 자유자재로 왕복하는 천지를 관통하 는 우리 민족의 천지인합일의 큰 정신적틀의 반영일수 있는것이다. 우리의 신들은 땅이 그리워 하늘에서 내려오고 다시 하늘로 돌아 가는 천지왕복하는 신들이다. 단군이 3월 15일에 하늘에 다시 돌아 갔다고 하여 어천절을 지낸다. 땅으로, 우주로 종횡무진하는 유도 탄이 있다면, 그래서 우주공간에서 깡패짓 하는자들을 잡아 눈귀를 멀게 한다면 이것은 일종의 신들의 전쟁일것이다. 강증산은 신들의 전쟁이 먼저 있고 인간들의 전쟁들이 있다고 했다. 파괴의 서양신 과 홍익인간하는 우리 하느님과의 전쟁, 이것이 21세기전쟁의 본질 이다. 그래서 맥아더도 미래의 전쟁은 신학적이라고 했던가. 은하-2 호는 그것에 무엇을 탑재하느냐에 따라서 그 기능이 달라진다. 은하-2 호에 탑재되는 광명성-2 호라는 시험통신위 성이 탑재되느냐 아니면 핵탄두가 탑재되느냐가 지금 초미의 관심사 가 되고있다. 후자일 경우는 한마디로 말해서 미국의 눈과 귀를 멀 게 하는 위성미싸일이 된다. 이런 위성미싸일의 경우를 두고 북은 지금 섬멸적타격 이라고 한다. 다시말해서 은하-2 호는 대기권을 벗어난 우주공간에서 핵폭 발을 함으로써 사람을 죽이지 않는 비살상무기(nonlethal weapon)이다. 그리고 방사능으로 지구환경도 오염시키지 않는다. 이런 섬멸적타격 은 미국의 통신위성과 항법위성을 일시에 마비시켜버 려 그 결과로 미국군은 작동을 멈춘 위성방송을 할수밖에 없게 된 다. 히틀러가 대국민방송을 라지오를 통해 하듯이 그렇게 1930년대 로 되돌아가고만다. 이 얼마나 멋진 신세계 인가. 10년만에 다시 은하 를 쏘아올리는 준비기간은 다름아닌 인류 에 대한 무한책임과 자연에 대한 최상의 배려를 하는 기간이였다. 어떻게 하면 미국이 이 지구상에서 그 어느곳에서도 자의적으로 전 쟁을 도발하지 못하게 하고 만약에 전쟁을 도발한다고 하더라도 일 시에 눈귀를 멀게 하여 전쟁을 중지시킬수 있는 방도와 방법을 강 구한것이다. 그 결과 나온 전략이 바로 섬멸적타격이다. 단군의 후 예들이 아니고는 그리고 고구려 을지문덕의 상무정신이 아니고는 상 상도 할수 없는 전략전술이라고 할수 있다.

192 (382)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83) 이 땅에서는 한사람의 생명도 다치지 않고 전쟁은 종식되고 핵우 산은 철거될것이며 풀 한포기 다치지 않는 인류력사상 류례없는 전 쟁이 될것이다. 미합중국 대통령이 자기 군대를 스스로 자기 집으 로 귀가시킬것이라는 담화를 듣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신나는 일이 다. 그리고 한 반도뿐만아니라 지구촌은 영구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섬멸적타격은 전세계인들뿐만아니라 평화를 사랑하 는 미국사람들까지도 대환영을 하고 북조선에 대하여 감사해할것이 다. 일본의 도죠( 東 條 )나 미국의 부쉬 같은 전쟁광들은 하시 하처 에 있기마련이다. 이런 사이코 패스 전쟁광들을 이 땅에서 축출해 내는것은 우리 민족만이 해낼수 있다. 1998년 8월 31일 백두산-1 호가 발사된지 만 2년만에 클린톤 정부가 북미최고위급회담을 추진한것을 보아도 북의 미싸일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6년 7월 4일(미국시간)에 미싸일발사이후 부쉬가 즉각 태도를 바꾼것을 보아서도 섬멸적타격 작전이 한갖 허풍이 아닌것을 알수 있다. 지금 실용정부 는 일본 의 아소 다로와 손을 잡고 유엔안보리 운운하며 대응에 고심하고있 다. 그러나 이것은 헛수고이다. 하루속히 마음을 고쳐먹고 북의 미 싸일전략을 옳바로 파악하는 길만이 정답이다. 한 반도를 재더미 로 만들고 영구정복을 꿈꾸고있는 일본에게 리명박 정부 는 그들 의 전령사같은노릇을 할것인가. 섬멸적타격이 성공하는 순간에 우리 민족의 통일은 순간적으로 온다. 우리는 지금 은하-2 호가 무엇을 탑재할지를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이 지구 촌평화를 깃들이게 하는것이고 미국의 잘못된 제국주의전략을 포기 하게 하는것이다. 이같은 포기는 곧 미국과 전세계가 이전과는 전 혀 다른 새로운 공동체 다시말해서 홍익인간, 재세리화를 실현하 는 세계가 실현되는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진화정도가 아닌 후천개벽이 될것이다. 천부인 3개와 우리 민족의 슬기 지금까지 론의에서 우리에게 남겨진 최대의 의문은 도대체 북이 어디서 이 엄청난 핵과 미싸일개발기술을 얻었느냐이다. 우리는 지 금 구약 에스겔서의 환상과 다니엘서의 묵시를 보는것과 같은 착각 에 빠져든다. 즉 네발바퀴달린 이상한 비행체가 하늘을 날고 그것 이 사방 자유자재로 움직이는것을 보는 환상말이다. 이 환상을 본 에스겔은 사막의 골짜기에 묻혀있던 해골들이 생기를 얻어 다시 살 아나고 메마른 광야에 생수가 흘러내리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러나 이것은 환상도 묵시도 아니다. 현실 그대로이다. 은하-2 호를 타고 우주공간으로 올라가는 광명성-2 호는 조선의 밤하늘과 온 누리를 밝게 비추이는 큰 별 즉 한별 일 것이다. 크다, 높다, 밝다, 넓다, 가득차다 와 같은 20여가지의 의미를 지닌 한 이란 말은 이 별을 명명하기에 가장 적합할것이 다. 그리고 고구려고분벽화에서 우리는 섬멸적타격의 정체를 한눈 에 볼수 있다. 고분벽화가운데 수박도는 두 씨름군이 서로 마주보 고있는 그림이다. 막 씨름을 하려는 자세이다. 서로 눈만 마주보고 있다. 서로 몸을 부여잡고있지 않는 자세이다. 다시말해서 수박이란 무예는 씨름을 하기 전에 상대방끼리 마주보면서 기싸움을 하는것 이다. 여기서 지면 씨름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것이 바로 섬멸적 타격작전이다. 전쟁을 하기 전에 전쟁을 끝내는 끝내기작전이다. 그 래야 서로가 피해가 없고 기의 소모가 없다. 지금 북이 쏘아올리려는 은하-2 호의 전략적의미는 수박도에

193 (384)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85) 그 비밀이 모두 담겨져있다. 제발 싸움하지 말고 이쯤에서 서로 화 해하자는것이다. 이 눈치와 말귀도 못 알아듣고 이 민족의 철천지원 쑤 일본을 들고나오지 말라는 신호이다. 서로 마주보고 눈에서 나 오는 정기로 승부를 결판짓자는것이다. 고구려고분벽화의 다른 그림은 말을 타고 가면서 맹수를 사냥하 는것이다. 사수는 고정된 자세에서만 정조준을 할수 있지만 우리 민족은 사수가 움직이면서 움직이는 물체를 겨냥하는 그야말로 대 궁( 大 弓 )의 민족 즉 동이( 東 夷 )족이다. 북이 개발한 미싸일과 핵은 바로 이런 대궁의 겨레슬기의 산물이다. 그러면 움직이면서 움직이는 물체를 정조준하는 기술은 어디서 온것일가? 그것은 다름아닌 삼국유사 로 되돌아가 다시 생각해볼 때에 환웅이 하늘에서 가지고 내려왔다고 하는 천부인 3개, 거울, 칼, 방울에 있다고 본다. 모두 주술적도구인 이들 천부인 3개가 현 대첨단기술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하고 물을것이다. 그러나 있 다. 거울은 인간이 자기 의식을 자기스스로 반성하는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칼은 인간이 타자와의 관계에서 자기를 타자와 구별하고 분 별하고 차별하는 도구이다. 그리고 방울은 하늘과 땅을 련관시키는 도구로서 이는 인간이 신기성을 만들어내는 도구이다. 이를 인간의 자주성, 창조성 그리고 의식성이라고 련관지을수 있다. 주체사상의 3대원리가 바로 거울, 칼, 방울로 련관되는것으로 련관지어본다. 그 래서 위성발사체 백두산 의 의미소를 더 심화시켜본다. 북이 미싸일을 개발하기 시작한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라 하지 만 회고록을 한번쯤 읽어본다면 특히 3권의 밀림속의 병기창 을 읽어보면 1930년대 유격활동기간에 숲속의 밀림에서 이미 줄칼 과 같은 원시적인 도구로 온갖 병기와 화약을 만들어낸 기록을 읽 을수 있을것이다. 이를 주체병참병기 라 할수 있다. 최첨단미싸 일과 핵기술의 발달은 다름아닌 밀림속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 는 주체적삶속에서 싹트고있었던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원 리가 바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다. 그래서 북이 개발한 은 하 계렬의 미싸일은 우리 민족의 정신적원형에서 나온것 이상도 이 하도 아니다. 그래서 남인들 이를 못하란 법이 없다. 그런데 너 무 엇하고있는가? 운하( 運 河 )를 팔것인가, 은하( 銀 河 )를 쏠것인가 우리 민족은 지금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남도 인공위성 을 개발했다고 하지만 발사체가 없어서 그것을 들고 로씨야로 온데 돌아다녀야 한다. 부속품의 80%를 비싼 지적소유권을 주고 외국에 서 사와야 한다. 그러면서 앞으로 4년간 60조의 예산을 들여 운하를 파겠다고 한 다. 남도 다 같은 단군자손인데 지능지수가 북과 다를리 없다. 그 러나 한가지가 없는것이 있다. 지금 최첨단산업은 모두 핵과 미싸 일개발의 부산물이다. 휴대전화, 콤퓨터 심지어는 화장품마저 핵 개발과정의 부산물이다. 미국이 지금 핵확산을 방지하고 중국과 로 씨야 등 핵보유국가들이 다른 나라들의 핵개발을 저지하는 진정한 저의는 다름아닌 군사적인것은 부차적이고 모두가 경제적이고 상업 적인데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북은 지금 최첨단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킬수 있 는 잠재력을 가지고있으며 2012년이면 모든 면에서 강성대국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하고있는것이다. 2006년 공동사설에서 북은 이를 두 고 경제의 단번의 비약 이라고 했다.

194 (386)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87) 최근 MB 정부 는 일본의 미쯔비시중공업을 아리랑-3 호위성 발사사업자로 선정했다고 한다. 미쯔비시는 우리의 고혈을 빨아먹 고 성장한 기업이 아닌가? 제국주의침략전쟁을 수행해온 일본최대 의 군수업체이란 사실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아니면 알고도 그러 자는것인가. 수많은 조선녀성들을 근로정신대 의 이름으로 강제 동원한, 그리고서는 뻔뻔스럽게 무직소녀들에게 일자리 만들어주었 다고 사과나 배상 그 어느 하나도 하지 않는 기업체가 아닌가. 주 체, 이것이 바로 남이 하나 가지고있지 않는것이다. 우리는 주체적 으로 핵도 미싸일도 개발할수 없다. 끝까지 시대착오적인 운하나 파면서 외세와, 그것도 일본이란 가 장 악랄한 외세와 결탁하여 북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앞서 나 아가는것을 저지하고 방해만 할것인가? 아니다. 우리 민족은 서로 공조를 해야 한다.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꿈의 지구촌을 건설 해야 한다. 발사체는 북의것으로, 거기에 탑재한 위성은 남의것으 로, 아니 그 반대로도 서로 협조를 해나가면 그리고 그 목적을 홍 익인간, 재세리화정신에 헌정한다면 그 순간 신천지가 열리고 후천 개벽의 새날이 우리앞에 쉬 올것이다. 누가 이 길을 막을것이며 방 해할것인가. 우리는 끝까지 마주 손잡고 이 험난한 길을 헤쳐나가 야 할것이다. 미, 일에 부화뢰동, 손원금은 통곡한다 북의 핵, 미싸일문제를 두고 정부 여당과 진보신당이 한목소리 를 내고있다. 언젠가는 합당을 할 징조라고밖에는 볼수 없다. 리명 박 대통령 은 G-20회의참가차 영국으로 떠나기 전 어느 나라가 보호무역을 하는지 그 명단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북의 운반로 케트발사에 대해서는 군사적대응은 반대한다. 고 했다. 우리 국 민들은 갈피를 못 잡고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미국에서 무슨 말이 나올 때마다 말이 달라지고있어서 이런 경우를 두고 부화뢰동이라 하지 않는가 걱정스럽다. 한 나라 지도자가 중심을 잃고 이렇게 부화뢰동하면 온 국민들이 불안할것은 당연하다. 경제문제에 있어서 그렇게 큰소리 한번 하자 면 그것이 정치군사문제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거늘 미국의 군사적패 권주의에서 해방되지 않고 어떻게 경제적굴레에서 벗어날수 있단 말 인가? 바로 북의 핵, 미싸일은 미국의 군사적패권주의를 단번에 무 력화시키는것이거늘-이를 섬멸적타격 이라 함-그렇다면 북의 핵 과 미싸일은 미국으로부터 경제적주권을 세우고 지키는 지레대가 될 것은 명약관화하지 않는가? 그렇게 북이 신호를 보내고있건만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부화뢰동하고있다니. 이번 려행을 하고 돌아올 때 에는 중심을 한번 잡아서 오기 바란다.

195 (388)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89) 강도 일제 타도만이 이 민족의 지상명령이다 한나라당 과 진보신당이 북의 핵과 미싸일문제에 대하여 같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극하면 반한다고 하더니 한국 의 보수 와 진보는 어쩌면 이렇게도 같아져버렸는지? 한나라당 은 미, 일 에 공조하며 UN안보리에 간다고 하다가 세종 함까지 동해에 파 견해 요격이나 할 자세이다. 한수 더 떠 진보신당은 북에 대해 모 욕적인 말까지 대변인을 통해 서슴없이 발표하였다. 종북( 從 北 )주의 론난끝에 민주로동당과 갈라선 진보신당이 심각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수천억이 들어가는 인공위성을 발사 한다는것은 납득할수 없는 일 이라며 북의 미싸일발사움직임을 정 면비판했다. 진보신당은 3월 27일 북이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는 광명성-2 호발사가 림박한것과 관련, 북은 자신들의 인공위성 발사주장이 (국제사회에)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직시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진보신당 대변인은 이날 발표한 론평에서 북 의 경제상황이 매우 어려운것이 주지의 사실인데 수천억으로 추정되 는 발사비용을 들여가면서까지 인공위성을 발사한다고 했을 때 이를 납득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 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대변인은 또한 이미 북이 핵무기보유를 공언한 상태에서 발사 하는 운반로케트에 대하여 이것이 순수한 우주기술개발을 위한것이 라는 말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는 나라가 몇이나 되겠느냐. 며 우 리는 이런 점에서 북의 강경립장은 합리적설득력을 잃고있다고 생 각한다. 고 밝혔다. 이 정도라면 한나라당 보다 더 강한 론평이고 미일보다 더한 시각이라 아니할수 없다. 더이상 진보라는 말도, 신당이란 말도 포 기하고 조갑제를 차라리 당수로 맞아들이는것이 나을것이라 본다. 필자는 여기서 진보신당의 막 나가는 남북문제진단에 더이상 할 말 을 잃어버릴 정도이지만 마지막까지 의도적이 아니라면 북의 무기개 발은 1930년대 강도 일본놈들 때려잡기 위해 피눈물 흘리는 고난 의 과정속에서 오늘까지 왔다는것을 먼저 리해하기 바란다. 저 일 본제국주의는 반드시 다시 부활하고 언젠가는 우리 남북민족이 강 한 무기를 갖지 않으면 또 당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진보신당은 알 아주기 바란다. 항일유격대가 만든 무기앞에 떼죽음을 당한 악몽이 있어서 일 본이 저렇게 발광에 가깝게 광분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진보신당 이 저런 성명서는 발표하지 않았을것이다. 먼저 북의 핵, 미싸일 은 1932년 마촌의 병기창에서 소리폭탄-고추폭탄-연길작탄-핵, 미싸일이라는 진화선상에서 탄생한 사실 하나만이라도 바로 리해하 기 바란다. 여기서 연길작탄이 얼마나 간고한 고난끝에 만들어졌는지를 한번 보자. 유격대원들은 눈을 잃고 팔다리를 다 잃고 드디여 20대 젊 은 나이에 부모처자식 다 먼저 보내고 마지막에는 자기 몸까지 산 화하면서 조국을 위해 희생한 피눈물의 씨앗이라는 사실앞에 옷깃 을 모두 여미기를 바란다. 진보신당은 일루의 민족적량심으로 돌아 오든지 진보의 기발을 내리든지 금명간 결단을 해야 할것이다. 아니 면 차라리 울산에서 한나라당 과 단일화를 하는것이 나을것이다. 북은 이보다 더 간고할 때도 일본놈 때려잡는 무기를 만들었고 그 래서 이 나라를 찾았다. 가난하기때문에 무기를 만들수 없다는 아 니, 해서는 안된다는 론리야말로 모든것을 자본주의론리로 보는 실 로 진보답지 않은 목소리가 아닌가?

196 (390)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91) 미국무성 불문률 자기 조국을 배신하는 놈은 인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한나라당 보수들에게도 한마디 하지 않을수 없다. 한사람의 철학은 그의 인생을 결정하지만 한 국가대통령의 통치철 학은 그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 이 말은 NO라고 말할수 있 는 한국 (1996년)의 저자의 말이다. 저자는 미국방성산하 륙군성 에서 20년간 근무한 UC버클리대 박사출신이다. 책을 자세히 읽어 보면 저자는 미국통으로 북에 대한 남 한 의 체제적우월성을 주 장하는 학자인것 같다. 우의 인용구는 그의 책 첫 구절이다. 그는 이어 서슴없이 남 한 이 핵을 개발하지 못한 리유는 정통성없는 전두환 정권 이 미국으로부터 정통성윤허를 얻기 위해 그 대가로 핵과 미싸일을 포 기했기때문이고 그것은 민족의 운명에 치명타를 안겨주었다고 한 다.(21페지) 전두환 정권 은 미국의 눈치를 보는것을 넘어 알아서 기는 정권 이였다고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13년이 지난 지금 MB는 선거에 의해 당선된 정통성 있는 대통령 인데 왜 저렇 게 눈치보고 기고있는지 리해할수가 없다. 이렇게 미국과 북에 질질 끌려다니게 된 우리 외교의 맹점은 바로 핵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도 대북정책과 마찬가지로 한국 을 쉽게 무시할수 없는 상대로 대할것이며 북도 <벼랑끝외교>, 소 위 <막판외교>정책으로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넘보지 못했을것이 다. 실제로 북은 항공, 우주, 통신분야의 기술만은 한국을 릉가 한다. 핵개발은 엄청난 최첨단과학기술발전을 부차적으로 낳기때문 이다. 전두환 대통령 의 정통성없음이 결국 핵과 맞바꾸게 되였고 그 결과 미국의 엄청난 압력에 못이겨 약소국의 설음을 국민과 함께 억누르며 살게 되였다는것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의 통치철학은 그래서 중요한것이다. 미국에 대해 대통령이 <NO>라고 말할수 없 을 때 우리의 운명은 캄캄한 밤길을 걷는것과 마찬가지가 될것이 다. (같은 책 23페지) 무슨 리유인지 최근 백락청교수는 현대사에 경륜을 가진 대통 령 은 박정희와 김대중 2인뿐이라고 했다. 아마도 박정희는 나름 대로 핵을 개발하려 했기때문이고 김대중은 남북의 물고를 처음으 로 텄기때문이라고 본다. 김대중은 핵개발은 하지 않았어도 6.15정 신속에 우리 민족끼리 해나가는 민족공조정신에 의한 낮은 단계의 련방제를 말함으로 북의 핵, 미싸일은 경제적인 차원에서 볼 때에 민족공유의 자산이 될수 있을것이란 점을 암시하고있다고 할수 있 을것이다. 지금 북의 로케트발사를 앞두고 리명박 정부 는 미일과 공조하 여 UN안보리에 이 문제를 상정하려 하고있다. 앞의 글에 의하면 핵이 없는 국가는 캄캄한 밤길을 걷는것과 같다. 이 말은 장님 이 길안내자 손을 잡지 않고는 대로를 걸을수 없는것과도 같다. 는것을 의미한다. 민족공조의 길을 걷지 않고 미일공조하는듯 한 정부 여당의 태도는 한마디로 말해서 부화뢰동( 附 和 雷 同 )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미정보기관에는 하나의 불문률이 있다. 년전에 어느 청와대 수석이 조국을 배신하고 미국에 망명을 하려 했을 때에 미국이 NO라고 하면서 망명신청을 받아주지 않은적이 있다. 그 리유는 미국무성의 불문률 자기 조국을 배신하는 놈은 인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는 리유때문이다. 이 불문률은 동양

197 (392)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93) 의 고전 삼국지 에도 나오는것이다. 조국과 민족을 배신하고 미 일에 부화뢰동할 때에도 이 불문률이 여지없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같은 민족을 배신하고 부화뢰동할 때에 미국 으로부터 점수를 딸것이라 생각하는것은 오산이다. 하루속히 인간답 게, 지도자답게 대접받고싶으면 민족적량심과 자존심부터 찾아라. 최무선의 후예 손원금 앞의 글의 필자가 비록 민족공동체정신을 저버리고 북을 적대시 하는 시각에서 글을 쓰기는 했지만 그가 북의 핵, 미싸일의 실체 는 정확하게 인식하고있었으며 나아가 항공, 우주, 통신 같은 최 첨단산업에서 북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한것은 놀랍다. 북은 2012년에는 도약적비약 을 한다고 장담을 하고있다. 북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것을 립증하는것이다. 만약에 그가 북의 핵, 미싸 일을 민족공유의 자산으로만 리해했더라면 탓할것이 없고 하자도 없는 바른 진단이라 할수 있다. 그가 글을 쓴 때가 1996년이고보 면 아직 그때에 6.15도 없었을 때이다. 진보신당의 무지를 질타하 지 않을수 없다. 지금 북핵, 미싸일에 대하여 가장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자는 일 본이다. 이지스 함을 동해에 급파하고 요격 운운하며 나오고있 다. 역설적으로 일본우익들이 동북아전쟁분위기를 조장하며 자기들 내부의 결집의 수단으로 이만큼 좋은 기회는 없다고 한다. 북이 핵, 미싸일을 개발하는것의 의미는 섬멸적타격 과 2012년 경제적대도약 에 있다고 했다. 섬멸적타격이란 핵이 공중에서 폭파 하여 미일의 인공위성을 마비시켜 전쟁을 수행할 능력을 섬멸해버린 다는것이다. 그래서 인명과 재산에 피해를 주지 않고 전쟁을 사전 에 방지하여 평화를 지키겠다는것이고 대도약은 핵, 미싸일을 통해 최첨단기술을 개발한다는것이다. 북핵, 미싸일의 태생적비밀 우리는 북의 핵, 미싸일개발의 주역들이 누구인지 확실히 모른 다. 그러나 자기 몸 하나 내던지고 이름도 빛도 없이 오직 한 (조선)반도를 지키려는 과학자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것은 이미 1932년에 소왕청 마촌밀림에 병기창을 만들어놓고 자체병기를 생산 해낸 력사적유래때문이다. 북이 무기를 만들어낸 목적과 수단은 여 기서 명백해졌다. 미국과 강대국들은 약한 나라를 협박해 경제적 으로 착취하고 정치적으로 지배하자는것이 목적이지만 북은 그 태 생적비밀에 있어서도 강도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국을 해방시 키자는 그 일념 하나에서 무기생산을 자체적으로 하였을뿐이다. 세 살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모든 일들은 그 태생적한계를 벗어나지 못 하는 법이다. 북핵, 미싸일의 태생적비밀은 조국해방, 강도 일제타도, 바로 그것 이다.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라는것이 북의 지도자의 정치철학이고 인민들의 생활철학이다. 이 비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것이 일본이다. 이 민족의 진정한 지도자라면 이런 일본에 절 대로 부화뢰동해선 안될것이다. 집안으로 쳐들어오려는 강도가 무기 가 없으면 안 들어오겠다는 말을 믿는 천치바보는 이 세상에 후쎄 인 하나로 족하다. 1992년 나라안에 핵도 미싸일도 대량살상무기도 없다고 후쎄인이 자기 집무실까지 다 열어젖혀 보여준 결과는? 미 일강도가 황야의 무법자같이 종횡무진하는 쟝글의 세계에서는 총대 에서만 평화가 나올수밖에 없다.

198 (394)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95) 손원금의 후예들 유격구에는 손원금이란 고려시기의 최무선에 버금가는 화약제조의 귀재가 있었다. 회고록에 의하면 사령관은 손원금을 직접 만 나지는 못한것 같다. 그러나 최근 연변대학 리광인과 림선옥이 펴 낸 이 땅에 피뿌린 겨레장병들, 항일편 (2007년) 달라자유격 대 장을 보면 손원금에 대한 얘기가 상론돼있다. 화룡현 달라자에 는 김호철을 중심으로 달라자유격대가 조직되였는데 금곡의 손원 금, 박영순을 협조하여 사수평아래 수리봉동굴에 가서 병기공장을 꾸리도록 하였다. 양철운의 주요과업은 물자공급이다. 그는 집의 놋대야, 놋숟가 락, 놋잔 아무것이든 놋자 들어가는 그릇은 모두 가지고 가 작 탄제조용으로 쓰게 하였다. 일제놈들을 혼쌀내준 연길작탄인 소리 작탄, 고추가루작탄, 돌쪼박작탄, 쇠쪼박작탄 등은 이렇게 이들의 자그마한 병기공장에서 만들어졌다. (리광인, 2007년, 22~23페지) 이렇게 항일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은 주고받는 혼연일체가 되여 온 갖 병기를 자체생산하였다. 자력갱생 말 그대로였다. 리광인교수의 현지답사조사보고서는 회고록과 일치를 한다. 우리는 실패에 주저앉지 않고 실험을 거듭하여 끝내 리상적인 배합비률을 얻어냈다. 그때 화약제조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잊을수 없다. 손원금이도 그 중의 한사람이다. 원래 나는 손원금이와는 별로 인연도 없고 서로 만나서 통성을 한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손원금의 경력이며 활동내용 을 십년지기 못지 않게 잘 알고있었다. (3권 271페지) 손원금을 항일유격대에 소개한 사람이 박영순이다. 마촌에 와 박영순은 사령관과 마을 사랑에서 숙식을 같이하면서 손 원금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고 한다. 박영순의 보증하에 손 원금은 유격대에 가입을 하게 된다. 여기서 주석은 사람이 유명해질수 있는 3가지 비결을 사 람은 업적으로써도 유명해질수 있고 재능으로써도 유명해질수 있으 며 사건으로써도 유명해질수 있다. (3권 271페지)는 덕담을 회고록 에서 남기고있다. 아마도 손원금은 이 3가지모두를 다 갖춘 인물 인것 같다. 손원금은 사건으로 유명해진 인물이다. 1932년 손원금은 약장사 로 가장하여 바이올린을 들고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통신 련락임무를 수행하다가 경찰서에 잡혀가 온갖 고문을 당해 만신창 이 된 몸을 이끌고 경찰서를 탈출한다. 구정물이 허리를 치는 하 수도구멍으로 빠져나와 하루낮을 강물속에서 보내다 경비가 철통 같은 적의 소굴을 탈출한 놀라운 사건으로 널리 유명해진 인물이 다. 피가 뚝뚝 떨어지고 살점이 떨어져나간 몸으로 어떻게 하루해 를 꼬박 물속에서 보냈는지 사람들은 원금의 강철같은 인내심에 놀 라지 않을수 없었다. 손원금은 재능으로 유명해진 인물이다. 그는 맨손, 맨주먹으로 저 유명한 연길작탄을 만드는데 참가하였다. 금곡촌의 신성덕 수 리바위골 장대는 박영순이 책임진 화룡병기창이 자리잡고있던 곳 이다. 리광인교수의 글 역시 회고록과 일치한다. 달라자유격대는 산이 높고 수림이 무성한 알미대, 서리골, 사수평일대를 근거지로 삼고 그곳 병기공장에서 만들어낸 연길작탄은 그 위력이 대단하 였다. (25페지) 이에 대하여 회고록은 이 병기창 일군들이 처음으로 만든 작탄

199 (396)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97) 을 소리폭탄이라고 하였다. 소리폭탄은 그후 고추폭탄으로 발전하였 다가 연길폭탄이라는 위력한 작탄으로 완성되였다. (3권 272페지) 고 기록하고있다. 폭탄이라는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것이 아니다. 실험과정에 서 오랜 시행착오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북의 핵, 미싸일도 우연스런것이 아님은 여기서 말하는 폭탄의 진화과정을 살 피지 않고는 결코 오늘의 그것을 바로 리해할수 없을것이다. 벌 한겨울 밤에 나이많은 로인이 눈을 맞으며 솥가마를 머리에 이 고 들어온것을 본 병기창사람들은 감격하지 않을수 없었다. 늙은이 의 돌발적인 출현은 일군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이 할머니는 원 금이가 지어준 약을 먹고 며느리병이 나은 감격때문에 이런 돌출행 동을 한것이다. 이렇게 인민들의 숨은 협조속에 렬악한 환경속에서 도 당시 유격대가 사용하고 남을만큼의 연길작탄을 자유자재로 만 들어낼수 있었다. 연길작탄이란? 연길폭탄을 제작하는데 많은 자재가 들어갔다. 이 자재를 병기 창에서 일하는 사람들자신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지 않을수 없었다. 한번은 소리폭탄을 만들다가 큰 난관에 봉착한 일이 있습니다. 장약함을 만들 종이와 천이 거덜났거든요. 모두가 방도를 찾느라고 머리를 썩였지요. 그런데 원금동무는 어느새 마을로 뛰여내려가 자 기 집 문창호지와 하나밖에 없는 이불을 뜯어오지 않았겠습니까. 재밤중에 헐떡거리며 병기창으로 돌아온 그를 보니 어쩐지 부끄러 운 생각이 들겠지요. 손원금은 철사가 모자라 작탄제작이 중단상태에 빠졌을 때에 수 십리 밖에 있는 남양평에 가서 300m나 되는 전화선을 끊어왔다. 류 황도 무쇠쪼각도 양철판도 손원금이 구해왔다. 눈보라가 세차게 휘 몰아치는 어느날 밤 양철판과 무쇠를 한짐 지고 병기창으로 돌아온 손원금의 뒤로는 주소도 이름도 알수 없는 생면부지의 할머니 한 분이 무쇠가마를 이고 따라들어왔다. 이 할머니는 자기 집 솥가마 를 머리에 이고 와 병기창에 바친것이다.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만주 두눈을 잃은 손원금 손원금은 안타깝게도 폭탄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그만 두눈을 잃 고말았다. 마촌작탄강습을 계기로 손원금은 전 동만이 다 아는 인물로 유 명해졌다. 화약을 제조하는 과정은 항상 위험을 동반하였다. 경우 에 따라서는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제일 위험한것은 작탄이 나 총탄에 화약을 재우는 일이였다. 박두경, 박영순, 강위룡은 다 같이 화약을 제조하다가 중상을 당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곤경을 겪으면서도 작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손원금이도 실명의 쓰라린 아픔속에서 락심하거나 비관에 잠기지 않고 동지 들, 슬퍼말라. 비록 두눈은 잃었지만 나에게는 심장이 남아있지 않 는가. 두팔이 있고 두다리가 있지 않는가! 라고 하면서 오히려 동 지들을 위로하였다. 그리고는 손더듬으로 쇠줄을 자르고 작탄을 조 립하면서 항상 코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한많은 세월의 바람받이에 아버지를 묻고 형을 묻고 누이를 묻 고 이제는 또 자신의 광명마저 잃은 손원금! 그는 아직 반생에 이르지도 못한 젊은 나이였다.

200 (398)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399) 손원금은 유격구가 해산되자 전우들의 짐이 되지 않으려고 부대 를 떠나 금곡촌으로 내려갔다. 그의 귀에는 날마다 유격대를 헐뜯 고 공산당을 헐뜯는 적의 념불소리가 들려왔다. (3권 275페지) 원금이가 앞을 못 본다고 친일매국노들은 그를 의기저하시키려고 온갖 말을 늘어놓았다. 마치 오늘날 북의 핵, 미싸일을 험담하듯이 유격대는 산에서 전멸되여 한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 근거지사람 들도 다 굶어죽었다. 처창즈에 가보라. 백골뿐이다. 라고. 그러나 손원금은 지팽이에 의지하여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오히려 열변을 토했다. 아니다. 유격대는 살아있다. 살아서 더 넓은 지역으로 나갔다. 지금 남북만 도처에서 적들을 치고있다. 몇십명으로 출발했던 유격 대오가 지금은 대포와 기관총을 가진 수백수천명의 대오로 자라났 다. 동포들, 형제들! 적들의 선전에 속지 말고 항일유격대를 더 잘 원호하자. 항일전쟁은 반드시 우리의 승리로 끝날것이다! 손원금의 발자국은 금곡촌의 범위를 벗어나 수백리 밖에 있는 연 길과 룡정에도 찍혀갔다. 이전날처럼 바이올린을 둘러메고 막대기로 땅을 두드리면서 더듬더듬 걸어가는 이 소경걸인 을 군경들은 거 들떠보지도 않았다. 로상에서 보천보전투소식을 들은 그는 연길의 거리거리와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목멘 목소리로 웨쳤다. 조선동포 여러분, 6월 4일 장군이 부대를 거느리고 보천 보를 습격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압록강을 건너 오매에도 그리던 조국으로 진출하였다. 혁명군의 위력앞에 혼비백산한 적들은 지금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고있다. 일제의 멸망은 확정적이다. 그의 불같은 연설에 연길시가는 죽가마처럼 들끓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손원금은 일제경찰에 체포되여 화형을 당하였다. 화형을 당 하기 직전 손원금은 여러분, 나에게는 눈이 없습니다. 그러나 해 방된 조국산천이 환히 보입니다. 승리의 날까지 굳세게 싸워주십시 오! 조선혁명 만세! 라고 웨쳤다. 이것은 그가 사형직전에 남긴 마 지막말이였다. 당년 25살의 자력갱생의 선구자 손원금은 이렇게 한 생을 마쳤다. 박영순은 손원금을 추억할 때마다 원금이는 장가도 못 가보고 이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라고 말했다. 만일 손원금이 지금까지도 살아있다면 후대들앞에서 자력갱생을 두고 좋은 말을 많이 할것이 다. 그의 경력자체가 자력갱생의 산 교과서로 되고있을것이다. 남 한 의 진보신당사람들은 들어라. 진보의 기발을 내리든지 북 공부를 제대로 하든지 하기 바란다. 당신들의 머리속에는 진보의 유전자가 아예 없다. 먹을것이 없으니 미싸일도 만들수 없다는 그 정신이야말로 썩은 자본주의정신이 아닌가. 모든것이 돈 아니면 되 는것이 없다는 그런 정신이야말로 딴나라당사람들의 소리이지 너희 들이 차마 할 소리가 아니다. 자력갱생의 정신이란 자본주의와는 거 리가 먼것이다. 너희들은 진보할 자격없다. 조선의 정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것이다 단군사상의 진수인 천부경의 첫 구절에서는 무에서 하나가 나 온다. ( 一 始 無 始 )고 했다. 밀림에서 무기생산은 자력갱생의 생활력 을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에 지나지 않는다. 자력갱생은 이처럼 우 리 민족의 민족해방투쟁사에서 처음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새 로운 시대를 열어놓았다. 자력갱생은 투쟁과정에서 주체를 세우는 가장 중요한 방도의 하나였으며 자력갱생을 떠나서는 주체에 대해 서 생각할수도 론할수도 없다. 주체사상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

201 (400)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01) 는것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사상이다. 먹을것이 없으니 미싸일도 만 들지 못한다는 저 사대주의에 찌들린자들이 진보의 탈을 쓰고있다 는 사실에 격분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 자력갱생만이 우리 민족이 근대정신생활에서 큰 질곡으로 남아 있던 사대주의를 궁극적으로 추방하고 자주, 자강, 자립의 리념밑 에 민족재생의 활로를 성공적으로 개척해나갈수 있게 한다. 이와 같이 자력갱생은 주체가 선 인간과 주체가 서지 못한 인간을 가르 는 시금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일전쟁을 개시하는 첫날부터 자력갱생의 혁 명정신으로 대중을 꾸준히 교양하였다. 남들이 도와주면 좋고 설사 도와주지 않아도 자기 힘으로 나라를 찾아야 하며 또 찾을수 있다 는 사상, 우에서 해결해주면 좋고 해결해주지 않으면 자신의 지혜 와 힘으로 만사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사상은 대중을 쉽게 공감시키 였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 힘을 믿지 않거나 과소평가 원들이 자체생산한 무기가 얼마나 무서운줄을 1937년 6월 30일 간 삼봉전투에서 체험을 했기때문이다. 이 전투에서 죽은 일본군머리 가 하도 많아 마차에 시체를 실어나르다 창피하여 시체라 하지 않 고 호박 이라고 했다고 한다. 간삼봉전투에서 일본최정예라 자랑 하던 74련대는 거의 전멸을 당해 죽은 시체를 가마니에 넣어 실어 나르는데 동원된 한 농민이 달구지에 싣고 가는것이 무엇이냐고 물 으니 일본병사가 하는 말이 가보쨔 (호박)라고 대답했다. 농민은 이를 놀리기 위해 가보쨔농사가 대풍이군요. 좋은 국거 리니 많이들 자시우. 라고 했다고 한다. 간삼봉전투이후 일본놈들 을 두고 호박대가리 라는 은어마저 생겨났다. 호시탐탐 재침략의 기회만을 노리고있는 일본이 지금 북의 핵, 미싸일앞에 저렇게 날 뛰는것도 그 리유를 알만 하다. 이런 일본에 부화뢰동하는것은 매 국노나 할짓이 아닌가? 하는 낡은 사상잔재를 그대로 가지고있었다. (3권 283페지) 핵, 미싸일을 민족공유의 자산으로 이를 지레대로 평화와 통일로 단숨에 가야 한다. 리명박 대통 령 이 북의 운반로케트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하자 한국 의 보수 언론과 단체들은 지금 벌집이다. 한발 더 나아가 핵, 미싸일을 민 족공유의 자산으로 삼아 이를 토대로 최첨단기술을 개발하여 늘 말 해온 선진화의 날을 앞당겨야 할것이다. 발사체는 북의것으로, 거기 에 장착할 인공위성은 남의것으로 아니, 그 반대로도 하여 저 멀리 은하의 세계로 함께 날을 생각만 해도 가슴벅차다. 저 강도 일본놈들이 이렇게 발광인것은 이들이야말로 항일유격대

202 (402)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03) 은하, 광명성 은 지구촌의 묵시록 팍스 로마나 와 팍스 아메리카나 4월 12일은 전세계그리스도교인들의 최고절기인 부활절이다. 죽 은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식이 온 사방에 퍼지자 가장 당황한자들 은 그를 죽이는데 공모했던 무리들이다. 로마제국은 말할것도 없고 빌라도와 헤롯당들 그리고 가야바와 산헤드린에 속한 바리새인들 과 세리 사두개인들이 그들이였다. 물론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기 뻐 어쩔줄을 몰랐다. 2009년 4월 5일 오전 11시 20분 은하/광명성-2 호가 하늘우로 치솟아올랐다. 북의 위성발사에 놀라하는자는 누구이고 기뻐하는자 는 누구인가? 예수의 부활에 놀라 기절초풍한 인간군상들의 무리들 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것이 없어보인다. 당시 지중해연안 온 천하 는 로마제국우산아래에서 평화를 누렸다고 하여 팍스 로마나(Pax Romana) 라고 한다. 로마제국은 예수가 군중들을 선동하여 권력을 잡을것이라는 두려움때문에 예수를 잡아 처형했다. 그래서 죽은 예수 가 부활했다는 소문은 그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헤롯당들은 이런 로마제국의 앞잡이노릇을 하며 팔레스티나 유다 지방을 통치하던 분봉왕 헤롯의 무리들이다. 이들은 사대주의자들 이며 자기들의 배와 자기들의 기득권지키기에 급급한 매국노집단이 였다. 헤롯당들이 정치적야욕때문에 동족을 배반했다면 사두개인들 은 경제적인 리익때문에 로마제국의 앞잡이노릇 하며 세금을 갈취하 던자들이다. 바리새인들은 유태교라는 종교적인 제국이 예수때문에 위협받고 무너질것이 두려워 예수를 처형하는데 가장 앞장섰다. 2000년이 지난 지금 지구촌의 지형변화는 거의 달라진것이 없는 것 같다. 로마제국은 미국제국주의이고 그래서 미국은 팍스 아 메리카나(Pax Americana) 를 구축해놓고 전세계를 지배하고있고 헤롯당들은 이런 미제국주의앞잡이 사대매국노국가와 정권들이고 사두개인들은 신자유주의덕분에 미국을 등에 업고 돈벌이하는 재벌 들이고 바리새인들은 한기총-뉴라이트무리들이다. 이렇게 상호 대 차대조표를 만들어 이 한 (조선)반도에 옮겨놓으면 2000년이 지 난 지금 그 세력판도는 하나 달라진것이 없어보인다. 헤롯당들의 일란성쌍둥이 사대매국노들 북의 위성이 발사되자 이들 신판권력자들이 보이는 반응마저 같 다. 그동안 숨겨져 나타나있지 않던 이들 무리들의 속셈들이 적라 라하게 드러났다는 점에서 우리 민족은 이번 위성발사로 위기의 조 기진단을 받는 소득을 얻었다. 로마제국은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식 을 전하는 그리스도교인들의 입을 틀어막고 사정없이 박해하지 않 을수 없었다. 이것은 미국이 북의 위성발사를 두려워하는 리유와 한치의 차이도 없이 같아보이는 점이다. 북의 운반로케트가 하늘로 올라갔건 바다에 추락했건 사정거리가 이 정도라면 백악관은 긴 탄식을 하지 않을수 없다. 지금까지 누려 오던 제국의 꿈은 앞으로 물거품이 되고도 남음이 있기때문이다. 상상만 해도 미국으로서는 소름이 끼칠만 한 일이다. 온 지구주위

203 (404)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05) 에는 404개의 위성이 돌고있지만 북이 이번 쏘아올린 광명성-2 호는 미제국의 위상을 근본적으로 흔들어놓고있다는 점에서 예수 가 부활해 하늘우로 올랐다는것과 진배 다를것이 없어보이는 효과 를 내고도 남음이 있다. 일본은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을 일으킨 효과를 이번에 도 얻어보려고 발광수준이였다. 가해자가 피해자인양 둔갑하여 위장기발(false flag) 을 한번 흔들어대보았다. 일본은 여러번 이 런 위장기발흔들기에 성공하여 제국주의의 기초를 닦은 재미를 붙 인자들이다. 이러한 미일의 전략과 전술앞에 헤롯당 같은 이 땅의 지도자들이 이번에 보여준 태도는 여기서 할 말을 잃게 한다. 우왕좌왕, 부화 뢰동, 오락가락, 거기다 정보전시대에 어느 하나도 자기스스로 파악 한 정보도 없이 미일이 발표하는대로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차라리 측은하다 할 정도였다. 미일의 야욕이 우와 같거늘 어찌 이들이 주 는 정보에 의존해 수족같이 움직일수 있단 말인가? 북의 위성발사가 그렇게도 중요하다고 추호라도 생각했었다면, 하 물며 저들은 성상납이나 받으며 밤새는줄도 모르고 주지육림속에서 헤매고있지는 않았을것이다. 헤롯당들과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는 독사의 자식들 이라고 했다. 이런 말에 미움을 사 예수는 처형당했고 이런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문은 이들을 사시나 무떨듯 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었다. 사대주의는 길러지는것이다 지금은 작고한 장공 김재준목사가 미국 인디안보호지역의 학교를 방문했을 당시의 회고담은 늘 머리속에 남는 일화가운데 하나이다. 미국백인선생들이 백인들과 인디안추장들이 싸우는 영화장면을 보 여주자 인디안아이들이 모두 백인을 응원하는것을 본 장공은 큰 충 격을 받았다고 회고하고있다. 자기들의 추장들이 백인들의 총칼에 맞아 쓰러질 때마다 손벽을 치고 환호성을 지르더라는것이다. 그 리 유를 알고보니 백인선생들의 종교와 교육덕분이였다는것이다. 백인교사들이 인디안아이들에게 너희 조상들은 모두 악마 사탄 의 종교를 믿었고 백인들이 모두 잘해주려 했는데도 은혜를 배신한 너희 조상들이 이를 거부하고 백인들을 학살했기때문에 인디안들을 죽일수밖에 없었다는것이라고, 죽어 마땅하다고 교육했기때문이라 는것이다. 소수의 너희 조상들의 이러한 악질적행동때문에 너희들도 지금 어려움을 겪고있다고 가르친 결과였다는것이다. 무엇 하나 다른가?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교인들이 교회안에서 설교하고 교육하는것과 무엇 하나 다른가? 그리고 학교에선 교사, 교수들이 가르치고 강의하는것과 무엇 하나 다른가? 북 하나에 미 일이 달라붙어 달려드는것을 보고 지금 한국 의 그리스도교와 장로 대통령 은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가? 김재준목사는 인디안학 교방문에 평생 충격을 받고 살았던것 같다. 장공은 돌아가기 불과 6개월전 로령에 강화도 마니산에 있는 단 군제단에 올랐고 말년에는 그의 신학이 한국 중심적이 되여 그리 스도교의 기원은 수메르 이고 수메르 는 한국 에서 간 문 명이라고 주장하였다. 그가 세운 교파가 그리스도교 장로교회 이 고 그가 세운 한신대학교 에서 문익환목사와 같은분이 나온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번에 이 나라 정부 가 보여준 태도는 미국백인들에 의해 세 뇌된 인디안들과 하나 다른것이 없어보인다. 위성발사가 실패했다는 헛소문에 저렇게 박수갈채를 보내는것이나 세뇌된 인디안아이들이

204 (406)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07) 하는짓이 무엇 하나 다른가? 지구촌의 수많은 나라들이 남 한 이 같은 동족인 북의 위성발사에 미일과 같이 저렇게 한타령인것에 대 하여 의아하게 생각할것이다. 마치 김재준목사가 인디안아이들을 그 렇게 생각했듯이. 이렇게 사대주의는 길러진것이다. 예수가 부활했는가? 은하가 은하수로 갔는가? 예수가 부활하던 장면을 목격했다는 루가라는 제자는 구름이 그를 가리여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있는데 흰옷입은 두사람이 그들곁에 서서 이르시 되 (사도행전 1장 9절)라고 기록하고있다. 이런 목격담이 소문이 되여 사방에 퍼져나가자 사실여부에 관한 시비가 일기 시작했다. 예수부활은 거짓말이다. 사실이 아니다. 라고 로마제국은 사방에 방을 붙여놓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치 위성발사이후에 성패여부에 시비가 생기듯이. 심리학자들이 말 하는 잉크자욱(INKBLOT) 이란 이런 시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벽에 잉크를 뿌려놓고 무엇같이 보이느냐 물으면 다 다르다. 우의 성경기록도 자세히 읽어보라. 예수가 부활했다는것인지 아닌 지 확실하지 않다. 구름이 가리여 보이지 않았다 해놓고는 제자들 이 자세히 보니 흰옷입은 두사람이 그들곁에 서있었다고 한다. 서로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초대그리스도교회가 예 수의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었더라면 절대로 오늘과 같은 그리스도 교가 될수 없었을것이라는 점이다. 그럼 예수부활이 객관적사실이냐 아니냐, 이 질문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아니, 앞으로도 끝나지 않고 남겨지고말것이라는것을 의미한다. 남겨지기때문에 그리스도교 는 생명력있는 종교로 되여갈(becoming Christianity)것이다. 그래서 부활의 객관적사실여부는 영원히 확인할 길이 없다. 다 빈치 코드 라는 소설은 예수는 육체적으로 부활하지 않았고 예수 는 자연사를 했으며 그의 후손들이 지금까지 이어지고있다고 주장 한다. 그렇다고 그 어느것도 그리스도교의 종교성을 훼손할수는 없 다. 주관의 개입이 없는 객관은 아무 소용이 없기때문이다. 은 하-2 호의 성공여부는 그 객관적성공여부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예수의 부활과 같이 지금 성공하고있다. 우리는 지금 그 성공을 부 활절을 맞아 말해야 한다는것이다. 다시말해서 우리는 은하-2 호의 성공여부를 증빙하려 할 필요 가 없다. 할만 한 능력도 정보도 없다. 그러나 중요한것은 하늘에 있는것이 아니라 땅에 있다. 다시말해서 미일제국주의적근성과 그밑 에서 신음하는 이 지구상의 모든 민중들의 가슴속에 은하는 영원 히 저 멀리 은하수깊숙이 날을것이라는 점이다. 예수의 부활이 력사가 끝나는 날까지 시비거리로 남아야 그리스 도교의 생명력이 계속되듯이 은하/광명성-2 호 역시 그렇게 되 는것자체가 결코 실망스런것만은 아니다. 은하에 대한 관심자체가 사라지는것보다는 한 미일 저들이 자꾸만 시비거리를 만드는것자 체가 은하를 더욱 성공스럽게 만들것이다. 과연 달속에 계수나무와 토끼가 있는가? 그렇다고 없는가? 우리 민족의 가슴속 깊은 곳의 잉크자욱은 이렇게 노래한다. 달속에 계 수나무가 있건없건 이렇게 노래한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그루 토끼 한마리

205 (408)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09)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나라로 새 하늘과 새땅 요한계시록을 쓴 요한이란 제자는 예수부활의 소문을 퍼뜨리다 체포되여 밧모라는 섬에 갇히게 되였다. 그는 환상속에서 글을 남겼 는데 이를 요한계시록(Revelation) 혹은 묵시록( 默 示 錄 ) 이 라고 한다. 성경속에 있는 묵시문학의 글들은 세상의 처음과 끝을 말하고있는 글들이다. 그중 요한묵시록은 백미를 장식한다. 그런데 지난 년대 한국 그리스도교인들이 민주화투 쟁을 할 때에 가장 많이 읽힌 글이 바로 요한계시록이다. 그 리유 는 요한이 로마제국에 대해 저항하는 독설들을 모두 은유적인 표현 을 빌려서 말하고있기때문이다. 례를 들어 네로황제를 수자 666이 라 한것도 바로 이 묵시록에 나온다. 그래서 묵시록 이란 책제명 과는 달리 가장 정치적인 글이다. 이 글속에서 요한은 만국이 그 빛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 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계시록 21장 24절)고 했다. 로마제국 하나만 있고 모든 나라들은 그밑에서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할 때에 요한이 이런 글을 쓴다는것은 자기 목숨과 맞바꾸는것과 같았다. 모든 나라가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 어갈것이라는 말은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로마제국의 우산아래 에 있는것이 아니고 자기나름대로 자주권을 가지고 살수 있다는것 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러한 세계는 새 하늘과 새땅 에서만 그러 할것이라는 묵시이다. 보라. 지금 미국과 강대국만이 미싸일과 핵을 만들수 있고 미국 이 허락하는 한에서만 그렇게 할수 있다는것은 로마제국이 하던 소 리짓과 무엇 하나 다른것이 있는가. 이런 판도에서 예수가 부활을 했다는 소식은 만국이 평등해지는 새 하늘과 새땅을 선포하는 정 치적선언이였다. 이 지구상의 그 어느 나라도 그 나라의 고유한 영광이 있는 법 이다. 자기 나라의 말, 자기 나라의 언어, 자기 나라의 풍속, 자기 나라의 힘, 그 무엇이든 자기것을 가지고 자립, 자강, 자력으로 살 수 있고 이것은 천부의 권리이다. 이런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것 은 천부의 권리를 포기하는것이요, 신의 지상명령을 어기는것이다. 이런 자주권이 없는 나라는 나라자격이 없으며 자살이 죄인것처럼 이런 나라들도 죄를 저지르고있는것이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땅을 보니 처음하늘과 처음땅이 없어 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것이나 곡하는것이나 아픈것이 다시 있 지 아니하리니 처음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 (계시록 21장 1-4절) 요한은 그 새 하늘과 새땅에 들어갈수 있는 조건을 갖춘 나라와 사람들은 반드시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 나와야 한다고 한다. 모 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 란 말이 이를 증명한다. 과연 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고난을 받은 백성은 누구일가? 이란이 같은 미싸일을 발사했을 때에 전세계가 이렇게 란리는 아 니였다. 왜 이번 북의 미싸일에 대해서는 이렇게도 야단법석인가? 거기에는 리유가 있다. 그 리유는 은하/광명성-2 호가 단순한 운반로케트가 아닌 그것을 초월한 이 지구상의 모든 한맺힌 민중 들과 약소민족의 한( 恨 ) 을 한몸에 담고 하늘높이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이 마당에 은하의 성패를 론하는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예수가 과연 부활해 하늘에 올라갔느냐 안 올라갔느

206 (410)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11) 냐가 그렇게 중요한것이 아니라는것이다. 고난의 터널을 지나온 사 람들의 한의 잉크자욱은 분명히 예수가 흰옷을 입은채로 하늘구름 속으로 올라간것으로 가슴속깊이 심어진것이다. 이 확신과 믿음은 물리적로케트보다 미싸일보다 더 강한것이다. 그래서 유엔결의를 천 번만번 해도 이 지구촌 민중의 뇌리속에 심겨진 은하/광명성 은 지워질수 없을것이다. 그래서 미일이 무서워할것은 이 억압받는 민중들의 한이다. 이 한이 광명성으로 부활했다는 사실을 무서워해야 할것이다. 로마제 국이 아무리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리고 부활의 소식 을 사방에 퍼뜨리는 사람들을 잡아죽여도 결코 로마제국은 성공하 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313년 꼰스딴찐황제는 그리스도교에 굴복 하고말았다. 힘없던 민중들의 가슴속에 환히 비추이던 광명성을 결 코 지울수는 없었던것이다. 그러나 더러운것은 아무것도 그 도성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흉 측한짓과 거짓을 일삼는자도 결코 들어가지 못할것이다. (계시록 21장 27절) 불의를 행하는자는 불의를 행하도록 내버려두고 더러운자는 그 냥 더러운채로 내버려두어라. (22장 11절) 여기서 불의한자들, 더러운자들이란 우에서 말한 로마제국, 헤롯 당들, 사두개인들, 바리새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저들은 앞으로 올 환란을 견디여내지 못하고 자멸하고말것이라는 환상을 보고 요한 은 글을 끝맺고있다. 이것이 2009년 부활절 아침의 명상이다. 주체사상과 은하 의 비밀 시작하는 글 주체사상없는 북을 생각할수는 없다. 그런데 남 한 일각의 주체 사상에 대한 편견과 그 리해의 부족함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 이다. 상대방이 가지고있는 정신세계의 진수도 파악하지 못하고있는 남 한 보수우익들이 당장이라도 주체탑은 무너지고 자기들 세상이 곧 올것이라 망둥이들같이 날뛰고있는 모습을 보고 철학을 공부한 한몫으로 이들을 교양학습시키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였다. 어디 까지나 필자가 리해한 한계내에서 주체사상의 내용을 검토해보는것 이기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과 자유로운 토론을 환영한다. 최근 우리의 최대화두는 은하/광명성 이다. 여러 시각에서 주체 사상을 리해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지만 우리 관심의 표적이 되는 쟁점으로부터 시작하는 리유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감대의 폭을 넓게 하려는 의도때문이다. 쉽게 말하여 로케트/미싸일의 생명력은 사정거리에 있고 사정거 리는 무게와 속도에 달려있다는 이 간단한 공식에서 이 무게(m)와 속도(v)를 조절하는 제3의 요소를 발견하는 비밀이 그 나라의 과 학기술과 국력에 달려있다는것이며 무게와 속도만을 생각하는 과학 을 2수분화적 그리고 여기에 조절자를 첨가하여 생각하는것을 3수

207 (412)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13) 분화적이라고 한다. 주체사상의 핵은 바로 3수분화적인데 있다는것이며 이런 3수분화 적인 사고방식과 문화는 우리 민족 고유한것이라는것, 그래서 주체 사상은 우리 민족공유의 3수분화의 문화적뿌리에 근거해 발전한 사 상이라는것이 아래 글의 요약이다. 그리고 이런 문화의 뿌리는 주석의 가문에 전승된것이라 고 본다. 로케트의 역설 아직 빛보다 빠른것은 없다. 빛이 가장 빠른 리유는 빛은 자기 자체의 질량 혹은 무게를 전혀 가지고있지 않기때문이다. 그러면 자연히 생기는 의문은 자기 무게가 없는것이 어떻게 움직일수 있 느냐이다. 그런데 빛만은 그렇게 할수 있다. 질량없이 움직이는것 이 있다면 그것은 귀신이나 도깨비일것이다. 우리는 빛을 통해 속 도는 질량과 관계된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달리기에서 뚱보가 뒤지 는 리유도 이와 통하는 말이다. 질량이 큰 뚱보로케트는 빨리, 멀 리 날수 없다. 여기서 질량과 속도의 관계가 과학자들의 최대관심사가 될수밖에 없으며 량자간의 관계는 반비례적이다. 다시말해서 어느 실체가 무 거울수록 속도가 늦어질수밖에 없다. 만약에 골프공을 빛의 속도 만큼 빠르게 치면 어떻게 될가? 이런 실험을 할수만 있다면 속도가 점점 줄어진다고 할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골프공의 질량은? 질량이 커지면 속도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남겨두고 로케트의 무게와 속도의 관계를 알아보는것을 통해 이 문 제를 주체사상을 리해하는 지름길로 삼아보기로 하자. 우리가 차에 넣는 가솔린(혹은 기름, 에네르기 라고도 함)가운데 막상 차가 달리는데 소모되는것은 겨우 0.02%밖에 안된 다. 나머지 대부분은 차를 달리게 하는데 소모된다. 즉 차의 몸무 게가 대부분의 에네르기를 다 사용한다는것이다. 여기에 자동식창 문여닫이 등에도 가솔린이 소모된다고 생각하면 이 말이 리해될수 있을것이다. 그렇다면 에네르기절약을 위해서는 차의 몸무게를 줄여 야 할것은 당연한 리치이다. 경차가 나오는 리유이다. 1970년대 중반 에네르기파동때 미국은 베가(Vega) 나 핀토 (Pinto) 라는 소형차를 만들었다. 그러나 결국 실패하고말았다. 당 시 가난한 한국 류학생들이 이 소형차를 샀다가 모두 손해를 보 고말았다. 물론 필자도 례외는 아니였다. 실패한 리유는 무게를 너 무 적게 하려 차체를 알루미니움으로 한 결과 엔진의 틈새에서 기 름류출이 너무 심했기때문이고 접촉사고시 운전자의 피해가 컸기때 문이다. 로케트나 미싸일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이번 북에서 발 사한 은하-2 호는 무게 79t, 길이 35.8m, 지름 2.2m다. 그런 데 광명성-2 호의 무게는 비공개이다. 그 리유는 광명성-2 호의 무게(질량)는 로케트의 속도를 말하는것과 같기때문이다. 만 약에 타자가 속도와 발사시점 그리고 장소만 안다면 요격은 쉬워질 것이기때문이다. 다만 트럭 한대가 실을수 있는 짐의 무게가 4t정도이고보면 이 번 로케트의 무게를 짐작할수 있다. 과연 이만 한 자기 무게를 가 지고 초속 7.3km의 속도로 어떻게 궤도에 진입할수 있을것인가? 진입에 성공하려면 아무리 적어도 250~300t정도는 될것이라 짐작 이 된다. 그래서 로케트의 사정거리를 늘이는 기술은 곧 로케트의 무게를

208 (414)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15) 줄이는 기술이라 할수 있다. 물론 빛과 같이 빠르게 하자면 질량을 전혀 없게 해야 하지만 말이다. 은하의 질량을 아무리 적게 해도 광명성-2 호를 실을만큼의 질량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발사의 목적을 달성할수 있기때문이다. 은하는 수단 그리고 광명성은 목적, 그렇다면 질량과 속도의 관계는 수단과 목적의 관계로 또 변한다. 이 정도면 벌써 로케트발사의 철학적인 문제가 등장한것이다. 자체권과 소유권의 문제 아무리 은하 의 질량을 줄여도 광명성 을 싣고 갈 정도의 질량은 있어야 한다. 로케트의 무게를 좌우하는 결정적인것은 바로 로케트를 나르게 하는 연료자체이다. 여기서 미싸일전문가들은 무게 가 적은 연료개발에 열을 올리지 않을수 없다. 이번에도 고체연료 냐 액체연료냐 하는것도 바로 여기에 그 리유가 있다. 차도 마찬가지로 가솔린자체는 차를 달리게도 하지만 자기자체의 무게때문에 차를 달리지 못하게도 한다. 여기서 차가 달리는것을 자체권(ownship) 이라고 한다면 달리는것자체는 질량을 소유해 야 한다. 이를 소유권(ownership) 이라고 하자. 하이데거는 전자를 존재자체(Sein) 그리고 후자를 개별존재 자(Seiendes) 라고 했다. 이제 철학의 본령인 존재론의 문제로 비 화되였다. 있다고 존재하는것가운데 이 두가지 문제에 걸리지 않는 것은 없다. 서양에서 존재한다 를 ex-istere라고 한다. ex 는 밖 이란 뜻이고 istere 는 있다 라는 뜻이다. 밖에 있다는 의미가 존재한다는것의 의미이다. 무엇이 무엇의 밖에 있다는 뜻인 가? 쉽게 말해서 존재권은 소유권밖에 있다는것이다. Sein(이데아 같은)은 개별존재자(Seiendes)밖에 있다는 뜻이다. 이를 순수와 불순으로 나누어 순수한 존재권으로 존재자체는 불순한 개별사물들을 소유하고있는 사물들의 밖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속에는 있다 혹은 존재 한다는것은 오직 존재 자체일뿐이다. 그리고 이런 존재자체는 우리의 관념속에 있다. 이를 두고 맑스는 관념론이라 하며 이런 존재자체가 밖에 있으면 객관적 관념론이고 주관안에 있으면 주관적관념론이라고 한다. 여기서 자체권과 소유권의 량자를 심각하게 분리시키는 철학인 이 원론적철학 즉 플라톤철학이 등장하게 되고 이런 철학이 2 500여 년간 서양사상계를 지배하였다. 자체권과 소유권을 매개하는 제3의 것은 아예 없고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그 결과가 전자를 중요시하는 관념론과 그 반대인 유물론이 갈라지게 되였으며 그 분렬의 최대희생자가 바로 우리이다. 관념론과 유물론의 동시극복의 과제와 함께 현대철학자의 고민이 있다. 현대철학의 알랭 바디우는 in-ex-istere 라는 신조어를 만든다. 안에 그리고 밖에 동시에 있는 존재자란 뜻이다. 이는 관 념론과 유물론의 동시조화, 극복하려는 시도라고 할수 있다. 국방위원장은 저서 주체사상에 대하여 라는 글에서 세계를 관념이나 정신의 세계로 보는 관념론자들은 더 말할것 없 고 지난 시기 세계를 물질의 세계로 본 유물론자들도 사람을 중심 으로 세계에 대한 관점과 립장을 밝히지는 못하였던것입니다. 라 고 했다. 이는 당마크에 나타나있는바와 같은 다른 공산권에서 볼수 없는 낫과 마치가운데 붓대가 함께 있는것으로도 상징된다. 그리고 이 는 바로 상해림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관념론적철학과 동만일대에서 엠엘파 그리고 화요파와 같은 극좌맑스주의를 동시에 극복해나가는 투쟁과정에서 얻어진 행동적소산이라 할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209 (416)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17) 때에 주체사상의 기원은 1930년대 전후가 옳다고 본다. 북의 과학 기술 역시 이런 주체사상적구조를 떠나 리해할수는 없다. 철학자들의 고민과 과학자들의 고민 추진체가 가벼우면 연료가 적게 드나 멀리 날수 없고 무거우면 멀리 갈수 있으나 연료가 많이 들고. 여기서 말하고있는 로케트를 하나의 실체(substance) 라고 한다면 발사체의 무게 그리고 연 료가 액체냐 고체냐 하는것은 실체에 대한 속성(property) 이라 고 한다. 실체는 속성없이 운동할수 없고 운동을 하면 속성이 운 동을 방해하고. 그래서 실체와 속성은 서로 상보적관계이면서도 서 로 상반적관계이기도 하다. 다시말해서 속성없이 실체가 운동을 할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속성들때문에 실체가 운동을 할수 없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로케트를 만들자면 실체와 속성의 관계를 잘 조절되도록 해야 하는 중간적요소를 발견해야 한다. 이런 역설적관계는 뉴톤 물리학의 거시세계속에서도 발견되는것이다. 그러나 둘사이를 조절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였다. 위치와 열량의 역설과 프랑크상수 20세기 현대물리학은 미시세계에서 이런 역설이 나타나는것을 알 게 되였다. 만약에 빛이란 실체의 속성을 알기 위해 다른 빛으로 빛을 비춘다고 하자. 그러면 비추는 빛의 열량이 너무 크면(너무 밝으면) 관찰하려는 대상을 파괴시켜버리고(보이는 대상보다 보는것 이 너무 커서) 그렇다고 열량을 줄이면(너무 흐리면) 어두워져 위 치를 관찰할수 없게 된다. 그래서 관찰위치(position)와 열량(energy)은 서로 상반적이면서 상보적이다. 이는 뉴톤이 알지 못하던 것으로서 여기서 1927년 닐스 보아에 의하여 상보성리론이 나오고 하이젠베르그에 의하여 불확정성리론으로 발전한다. 이는 대립물의 갈등이 지배하는 맑스의 세계관이나 이분법이 지 배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과는 거리가 먼것이다. 이를 두고 쿤은 과학혁명이라고 했다. 구쏘련의 붕괴의 중요원인이 고르바쵸 브가 이런 신과학의 량자력학의 리론을 도입했기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신과학의 리론은 맑스의 모순률을 쓰나미같이 휩쓸기에 충분 했기때문이다. 현대과학의 3대과학혁명은 상대성리론, 량자력학의 불확정성리 론, 카오스리론이라고 할 때에 이 3자는 모두 전통서양의 이원론 혹은 이분법적사고와는 상반되는것들이다. 그러나 20세기 과학 심 지어는 로케트발사의 리론까지 망라하여 이런 현대과학의 리론없이 는 불가능하다. 북조선에서는 사찰과 평양의 단군을 모신 숭령전 등이 모두 복원 및 복구되였다. 주체사상이 갖는 붓대정신때문이다. 여기서도 주체사 상의 사람중심사상이 구별되게 나타난다. 주석의 주체사상은 1930년대에 유격현장에서 체험으로 획득했던것이다. 빛의 위치와 열량의 관계를 조절하는 상수가 1900년 12월 14일 도 이췰란드의 과학자 막스 프랑크에 의하여 발견되였다. 20세기 성탄 절선물이라고까지 알려지게 되였으며 우의 3대과학혁명모두 이 상수 혹은 프랑크상수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이다. 빛과 열량과 위치를 조절한다는것은 옛 도공들이 빛의 밝기정도를 육안으로 구별하여 도자기를 굽는것과 같다고 할수 있다. 이 제3의 요소인 프랑크상수는 물질의 질량과 속도의 관계를

210 (418)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19) 설명할 때에도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즉 질량 m, 속도 v, 물질파 L, 에네르기 E의 관계로 이 상수를 리해한다고 해보자. 아인슈타 인은 1914년에 공식 E=hmv로 노벨상을 탔다. 에네르기와 질량과 속도는 비례하며 이 비례를 조절하는것이 h이다. 빛의 공식덕분에 자동문이 발명되였다. E를 m으로 바꾸면 m=hv도 가능하다. 이는 또한 로케트가 자기 질량과 속도를 조절하는 문제이기도 하며 h= m/v라고 할 때에 로케트가 자기 몸무게와 속도의 관계를 조절할 때에 사용되는 공식이다. 그후 1929년 L=h/mv란 공식으로 드 브 로이로는 노벨상을 탔다. 이 공식덕분에 어떤 물질속에 불순물유무를 확인할수 있고 이는 공항검색대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고있다. 드디여 1929년 하이 젠베르그는 적당한 운동량 x와 위치 p의 곱은 프랑크상수보다 같 거나 커야 한다는 공식으로 노벨상을 탄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20세 기 과학혁명을 가능하게 한것은 프랑크상수( erg/sec) 이다. 뉴톤과학이 질량과 속도 그리고 위치와 속도의 2수분화적관계만 으로 관찰한 과학이라면 20세기 신과학은 바로 여기에 프랑크상수를 첨가한 3수분화적과학이라고 요약할수 있다. 그래서 토마스 쿤의 과 학혁명적구조란 2수분화에서 3수분화로 달라진것이라고 요약할수 있 다. 량극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에 제3의 수(h) 같은것이 나타나 이를 중화, 조화시키는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를 두고 3수분화문화 혹은 2수분화문화라고 한다. 이번 하늘을 날은 은하-2 호도 이 3가지 법칙가운데 어느 하 나도 빠짐없이 적용되여 수행된것이다. 이 3가지 법칙은 블랙홀주 변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례를 들어 블랙홀에서 화이트홀로 에네르 기가 빠져나갈수 있는 리유는 프랑크상수만큼의 빈틈은 블랙홀 같 은것속에도 있기때문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수 있는 빈 공간 이 바로 이 상수이다. 여기서 실체와 속성의 관계만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2분법적사고이 다. 그리고 여기서 둘을 조절하는 요소까지 생각한다면 3분법적사 고가 된다. 소위 말하는 데까르뜨-뉴톤적세계관이란 이런 2분법적 사고방식이 철학과 과학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전형을 두고 하는 말 이다. 서구에는 오래동안 이런 2분법적사고가 발달하여 사물을 실 체와 속성의 관계로만 파악해왔다. 이것은 오랜 서구전통속에 고질 적으로 있어온 사고방식이다. 플라톤의 이데아와 사물의 관계를 량 분화시켜놓은이래로 그 피해는 지금 우리 한 반도에 와 병목현 상을 만들어내고있다. 상수는 주체에서 나온다 우리는 주체사상을 읽는 가운데 맑스사상에서 일탈하는것을 실체와 속성의 관계에서 읽을수 있다. 실체와 속성은 운동과정속 에서 변해나간다는것이며 이 과정자체가 속성을 변화시키고 그래서 실체도 바꾼다는것이다. 그래서 어느 물질도 고정된 고유한 실체와 속성을 가질수는 없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상론할것이다. 문제는 자연과학의 발달과 창의성이 결코 인문사회과학과 별개의 것으로 생각할수 없다는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자연과학의 사회과 학적배경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는다. 례를 들어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리론만 하여도 이미 19세기 중엽 기하학 특히 비유클리드기 하학자들에 의하여 발견된바이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교통수 단의 발달과 함께 지구촌이 서로 상대적인 관계속에 있다는 사회 적현상에 힘입어 아인슈타인이 이를 1914년 일식때에 상대성리론을

211 (420)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21) 증명, 발표하게 된것이다. 불확정성리론도 보어나 하이젠베르그 등이 동양사회를 려행한 후 동양의 역리론 같은데서 확신을 얻어 상보성리론을 확정, 발표하게 된다. 그래서 보어가 노벨상을 탈 때에 음양마크를 들고 시상식에 나 타난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이와 같이 과학리론이 정치사회 그리고 문화환경적요소와 별개인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조선의 은하/광명성-2 호발사라는 독창적인 최첨단과 학기술앞에 모두 놀라워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것은 사회 구조의 변화가 자연과학을 앞지르고 인간의 내면적주체의 세계가 자연과학의 현상을 앞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리학자인 카프 라나 쥬커브 같은 물리학자들이 결국 동양의 정신세계에 몰입해버린 리유도 바로 자기들 필생의 과학기술이 인간의 의식세계를 결코 앞서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광명성에 나타난 첨단과학을 기계기술에서 찾기 이전에 북의 주체사상속에서 그 비밀을 찾아야 할것이다. 주체사상을 다방면으로 말할수 있지만 가장 쉽게, 가장 보편적으로 정의해 일단 말해본다면 필자는 3수분화라고 해두고싶다. 우에서 물질의 운동량과 위치 그리고 질량과 속도 등에는 반드 시 제3의 상수가 그사이에서 작용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 수( 常 數 )에 해당하는것이 바로 주체(Juche) 이다. 그래서 주체 가 없거나 바로서지 못하면 아무 일도 안된다. 마치 프랑크상수가 없이는 아무 작용도 불가능해지는것과 같이 말이다. 주체의 담지자 는 사람이며 사람은 변화를 주도하는 주인공이다. 운동의 주인이 사람이다. 관념이나 물질에 노예적삶을 살아왔기때문에 사람이 주 인행세를 하지 못한것이다. 3수분화 혹은 3원주의는 북의 사회주의헌법(1998년)에 잘 반영 되여있다. 주권은 로동자와 농민 그리고 근로인테리에게 있다.(제 4조와 제8조) 각급 주권기관은 일반적, 평등적, 직접적원칙에 따 라 비밀투표를 한다.(제6조)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벌리며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한다.(제 9조) 특히 이 제9조의 경우는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의 구호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외정책에 있어서는 자주, 평화, 친선으로 한다.(제 17조) 그리고 주체사상의 3대원리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3수 분화의 대미이다. 북의 한의학자 지만석과 지성광은 고려의학원 리 (2002년)에서 인체에서 이러한 3수적조화의 원리를 부반결합 조절 이라고 했다. 3수분화의 유래는? 그러면 이러한 3수분화의 구조가 어디에서 유래했느냐이다. 이 질 문에 대한 대답 역시 회고록에서 찾아야 할것이다. 주석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은 두말할것없이 선친 김형직선생이다. 회고록 1권에서 김형직선생은 김주석에게 혁명가의 3대각오라고 하면서 혁명가는 어디 가나 항상 3대각오를 가져야 한 다, 아사, 타사, 동사 다시말하여 굶어죽을 각오, 맞아죽을 각오, 얼어죽을 각오를 가지고 처음 먹은 원대한 뜻을 버리지 말아야 한 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주석은 회고록에서 나는 아버지의 이 말씀을 깊 이 새겨들었다. (1권 126페지)고 썼다. 김형직선생의 지원( 志 遠 )사 상에 기초한 3대각오, 동지획득에 대한 사상, 두자루의 권총을 두 고 유산이라고 한다. 주석은 회고록에서 <지원>의 사상, 3대각오, 동지획득에

212 (422)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23) 대한 사상, 두자루의 권총, 이것이 내가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유산 의 전부였다. 그것은 모진 고생과 희생을 전제로 하는 유산이였다. 그 렇지만 나에게는 그보다 더 훌륭한 유산이 없었다. (1권 129페지)라 고 술회하고있다. 이런 유산은 화성의숙시절 천도교의 3수분화문화에 접목이 된 다. 최동오선생은 중국의 3민주의에 류사한 국본, 민본, 인본의 삼본주의를 강의했다. 그리고 천도교는 3대개벽인 정신개벽, 민족 개벽, 사회개벽을 말한다. 그리고 조국광복회를 조직할 때에도 3명 정도이면 1개의 분회를 만들고 3개의 분회가 상위조직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을 취하였다. 이 모든 3수분화의 정신을 백두정신으로 요약하면서 항일유격대는 백두산을 향해 나아가고있었다. 백두산이야말 로 우리 민족의 령산이고 3원철학의 본산지가 아니던가? 빨리 망하려면 사대주의를 해라 단군릉이 우상화를 위한 급조물인가? 남 한 학자들은 단군릉건설을 두고 허구 혹은 우상화 운운하며 헐뜯는것이 학자되는 자격이 되는양 하고있다. 백두산을 민족의 종산이라고 한것은 바로 우리 시조 단군이 이곳에서 나라를 처음 펴신 곳이기때문인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것이다. 1993년 1월 주석은 평양시 강동군 대박산에 있는 단군 묘를 발굴할것을 지시하였다. 단군묘의 년대가 1993년 기준으로 5011±267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무덤근처에 고구려 장군총과 모양이 같은 피라미드모양의 무덤을 건설하였다. 기본무덤을 보면 밑단 한변의 길이 50m, 높이 22m이다. 초대형단군릉은 1994년 준공되였기때문에 1 994개의 화강암을 사용하였다. 그러자 남 한 의 력사 그리고 종교학계는 총동원되여 즉각 단 군 이란 책자를 만들어내여 단군릉에 대해 총공격 내지 반격을 가 하기 시작하였다. 공격의 내용인즉 왜 조사방법에 있어서 방사성탄 소년대측정법을 사용하지 않고 전자상자공명법을 사용했느냐의 과학 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하여 왜 단군릉을 고구려식무덤으로 만들었 느냐, 관대의 주인공은 누구냐에 이르기까지 고고학전문가가 아니면 쉽게 알아들을수조차 없는 문제들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213 (424)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25) 필자는 2001년 금강산에서 있었던 주년 기념행사에서 사회 과학원 허종호박사와 고 김시민박사 등 북의 력사학자들을 만나 남 한 의 단군학회와 함께 개천절행사를 공동주최할것과 우리 고대사서인 규원사화 와 한단고기 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를 할것을 제의하였다. 다음해에 개천절 공동행사와 단군관련 학술대회가 대박산 단군릉 앞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개최되였다. 당시 북측학자들은 한결 같이 단군릉의 력사성과 그리고 고대사서들의 력사적가치성에 대하여 긍정적인 발표를 하였다. 주석은 서거 이틀전인 1994년 7월 6일 단군릉건설 최종 형성안을 검토하면서 남과 해외동포들이 볼수 있는 단군릉이 속히 건설될것을 독려하였다. 그 이전에도 무려 수십회이상의 독려를 직접 할 정도였다. 이렇게 단군릉건립이 주석생애의 마지막 마무리업적이 되고말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단군릉을 남 한 학자들은 단 한마디의 말로 폄하 부정하고있다. 국방위원장은 주석서거직후 7월 13일에 개천절전 완공지시를 하여 그해 10월 11일에 준공되도록 하고 10월 29일 개건된 단군릉을 찾아 민족의 대경사라고 치하했다. 서울 중앙박물관은 사대주의 교양교육관이다 그러나 이러한 남 한 학자들의 단군릉과 고력사사서에 대한 비 판은 리병도 일제식민사학자들의 제자들의 렬등감에 가득찬 반민족 사대주의 비학문적주장에 불과하다. 이런 매국노적사관이 서울대학 교에 그 진원지를 두고있다는것은 천추에 씻을수 없는 대과인 동시 에 어쩌면 력사가 계속되는 날까지 지속될지도 모르는 우리 력사의 악수가운데 악수이다. 이런 식민지사학의 후예들이 둥지를 틀고있는 서울대학교에서 리영훈과 안병직 같은 뉴라이트 주동인간군상들이 배여나온다는것은 결코 이상하지 않다. 일본의 이시하라 같은 인물이 저런 망언을 하는데는 이런 원군들이 주리를 틀고 남 한 구석구석에 박혀있 다는것을 누구보다 그가 더 잘 알고있기때문이다. 그의 망언배경의 원인제공은 우리 국립대학교에서 제공하고있는것이다. 이들 남 한 력사학자들이 얼마나 비학문적이고 사대매국노 적인가는 룡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확인 할수 있다. 필자는 이 박물관이 개관되던 날 감격에 차 첫 방문을 하였다. 그러나 입구에서 더이상 보지 않고 돌아서 나오고말았다. 단군고조선력사는 겨우 한줄정도로 있는둥마는둥 눈을 비비고야 겨우 찾아볼수 있었고 우리 력사는 삼국시대 중엽부터 시작하는것 처럼 기술을 해놓았기때문이다. 그 이후 필자가 회장으로 있던 단군학회와 시민단체들의 항의로 단군고조선이 복원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또 반가와 금년 4월 중순 에 다시 찾았다. 그러나 이것은 고조선복원이 아니라 마지못해 가 져다 찍어발라놓는 정도였다. 그래도 참고 더 안으로 들어갔다. 록음안내의 말을 들어가며 원 삼국앞까지 갔다. 그러나 또 더 볼수 없어 돌아오고말았다. 리유인 즉 거기까지 소개하는 안내말들에 의하면 우리 문화유산이 대부분 중국에서 온것이고 자생적인것은 없는것처럼 되여있었기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문앞 입구에서 방문소감을 적는 글에 당시에는 중국이란 나라이름자체가 없었는데 어떻게 이럴수가 있느냐고 적고

214 (426)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27) 돌아왔다. 박물관측에서 며칠후에 전화를 주었다. 그리고 자기들 나름대로의 변을 설명하였다. 설명내용인즉 지금 압록강이북의 땅이 모두 중국이란 나라에 속해있으니 그렇게 하였다는것과 국제외교 정치관례상 지금 국호를 사용해야 되지 않느냐 하는것이다. 이런 주 장이 얼마나 잘못되였는가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상식적으로도 쉽게 판단할수 있을것이다. 만약에 이런 식의 설명이라면 설명을 듣는 모든 외국인들이 당시 에도 중국이란 국호가 있었고 우리 문화와 력사는 모두 중국에서 건너온 아류격이며 파생적인것에 불과한것으로 리해하게 된다. 그 리고 우리 2세아동들도 그렇게 우리 력사를 리해하게 되고 그렇게 알게 될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런 력사는 차라리 알지 않는것 이 옳고 좋다고 본다. 미국에서 자란 한 인2세학생들이 여름방학때 국제학교에 와 국사강의를 듣고는 어깨가 모두 축 처져 되돌아간다는것은 이미 보편 화되였다. 미국에 있는 아이들의 부모들이 매우 실망한다고 한다. 이렇게도 우리 력사가 모멸스런것이였나 하면서. 2004년 개천절행사로 평양을 방문하였을 때 우리일행은 평양 중 앙력사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입구에서부터 100만년전 검은모루유적 에서부터 시작하여 덕천사람 그리고 우리 첫 조상인 승리산인간유 물을 비롯하여 우리 력사와 문화가 이동한것이나 류입된것이 아니 라는것과 고조선과 고구려가 모두 동북아일대를 차지하고있었다고 설명전시되여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고대사서인 규원사화 나 한단고기 의 문헌적가치를 인정한 후 이에 근거하여 단군 49대왕들의 이름을 모 두 도록을 만들어 전시하고있었다. 이 얼마나 대조가 되는가? 그리 고 이런 력사관의 대조가 지금 어떤 작용을 하는가? 지금 서울에 있는 중앙박물관은 사대주의교양교육관으로 딱 알맞는 곳이다.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실감날것이다. 빨리 망하려면 사대주의를 해라 회고록의 대종을 이루는 력사관은 망국의 첩경이 사대주의라는 것이다. 종파주의, 사대주의, 교조주의는 주석 필생의 극복 과제였다.(2권 163페지) 망국의 원인이 바로 이 3대악페때문이라고 판단했기때문이다. 주석은 회고록에서 력대로 사대주의를 일삼아오던 부패무 능한 봉건통치배들은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있는 때에조차 큰 나라들의 조종밑에 당파싸움만 하였다, 그러다나니 오늘 친일파가 득세하면 일본군대가 왕궁을 지키고 래일 친로파가 득세하면 로씨야 군대가 임금을 호위하고 모레 친청파가 득세하면 청나라군대가 대궐 의 파수를 서는 판이였다고 하면서 이렇게 술회하였다. 그래서 한 나라의 왕비가 궁궐안에서 외국테로단의 칼에 맞아죽 고(1895년 <을미사변>) 왕이라는것이 다른 나라 공사관에 가서 1년 동안이나 갇혀있는가 하면(1896년 <아관파천>) 임금의 당아버지가 외국에 랍치되여가서 귀양살이를 하여도 오히려 사죄를 해야 되는 판국이였다. 왕궁을 지키는것도 남의 나라 군대에 맡겼으니 이 나라는 누가 지켜주고 돌보겠는가. (1권 3페지) 북이 지금 남에서 하는짓가운데 가장 꼴보기 싫어하는것이 사대 주의행각이다. 리명박 정부 가 지금 당장이라도 북과 대화를 하려 면 사대주의하는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행동을 하면 백번 말하는것보다 효과가 있기때문이다.

215 (428)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29) 주석이 사대주의에 대하여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였는가는 회고록 초반부부터 토로를 하는것을 보아서도 알수 있다. 남북의 혹은 북남의 동질성회복은 사대주의청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아무리 좋은것이라도 북에서 하는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것이 철칙이고보면 이런 말이 소귀에 경읽기인것을 모르는바 아니다. 일본이 우리를 삼킬 때에도 세계앞에 내놓은 명분이 조선은 큰 나라에 의존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나라라는것이였다. 조선 조 500년의 명과 청에 대한 사대주의행각을 확대재생산한 각본이 다. 1945년 해방을 전후하여 얄따와 까히라에 모인 4대국 정상들도 한결같이 조선은 독립을 바로 시킬수 없기때문에 신탁을 할것인가 말것인가 토론을 하였으며 신탁을 하는것은 모두 동의를 하되 그 기간을 얼마나 할것인가만을 토론하였다. 지금도 변한것이 있는가. 지난 전쟁기간에 리승만은 아예 국군 통수권 을 미국에 통채로 내주고말았다. 그 여파는 60여년이 지 났지만 점점 더 큰 파장을 만들어내고있다. 아예 사대예속에 습관 화되여버렸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젖떼기 두려워하듯 미국에 매달리 고있다. 그렇다. 빨리 망하려면 군을 포기하고 더 빨리 망하려면 사대주 의를 해라. 그렇지 않고 우리 력사, 우리 땅을 지켜내려면 사대주 의부터 먼저 포기해라. 사대주의는 적의 손바닥안에서 적과 싸우자 는것과 같은것이기때문이다. 잃어버린 10년 의 반을 잃어버린 2MB의 위기 정치가의 생명력은 잘 만들어진 구호와 그것을 통한 대중선동에 있다. 다시말해서 한 정치가의 선동적인 구호는 그 정치가의 생명 과도 같다. 한나라당 과 리명박 대통령 (아래 리명박 으로 통 일)이 지난 대선 때에 만들어낸 잃어버린 10년 이란 구호만큼 성공적인것도 없었을것이다. 1950년대말 못살겠다, 갈아보자 고 한것만큼의 효과를 낸것이 바로 이 구호였다. 로무현 전 대통령 (아래 고 로무현 으로 통일)의 죽음의 가까운 원인은 검찰조사이지만 먼 원인은 잃어버린 10년 이란 구호에 있었다고 진단해본다. 김대중과 로무현 두 전직 대통령 의 통치기간을 잃어버린 10년 으로 규정하고 그것의 청산과 부정이 이 구호에 담긴 의미였다. 리명박과 한나라당 은 정권 을 잡은 다음에도 이 구호를 약방의 감초처럼 사용하면서 구여권세력들을 사정의 칼날앞에 줄세우기 시작했다. 물론 그 앞줄에는 고 로무현 이 서있었다. 재벌들앞에서는 그렇게도 무디던 검찰의 칼날이 전직 대통령 과 그 가족들앞에서는 말그대로 서슬이 시퍼랬다고 하는 것이 적당한 표현일것이다. 그런데 리명박은 지금? 로무현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잃어버 린 10년 의 반을 잃어버리게 되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더이상 로 무현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아 지지세력을 결집시킬 대상을 상실하

216 (430)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31) 고말았다는것이다. 그래서 이번 로무현의 죽음에 가장 큰 손실을 입은 사람은 바로 리명박자신이다. 로무현이 죽지 않고 살아 버티여야 구호의 약효가 발할터인데 그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는 격이 되고말았다. 로무현이 해놓은것을 생이뽑듯이 하나하나 뽑아내는 일환으로 검찰조사라는 전가의 보도를 하나 꺼내들었으 나 인간 로무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말았다. 리명박은 자기 지지 층을 결집시키던 수단이 하나 없어진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이제 남은 임기동안 잃어버린 남은 5년의 보도를 휘둘러야 할 판이 되 였다. 고 로무현의 죽음은 지금 몇가지 기대하지 않았던 효과를 내고 있다. 먼저 로무현의 승부수는 늘 적중했고 그의 승부수에 그의 적들은 번번이 당하고말았다. 지난번 탄핵때에도 그의 적들은 로무현을 권좌에서 끌어내릴줄을 알고 행동을 했는데 오히려 반대로 줄줄이 당하고말았다. 이번에는 자기 몸을, 아니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던지는 승부수를 두었다. 승부수치고는 너무 큰것 이였다. 삼손이 마지막카드를 빼들었을 때 건물의 기둥이 빠져 건물안에 있던 사람들이 몰살을 당하고말았듯이 지금 로무현 의 적들도 혹시나 삼손의 효과가 나지나 않을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다음으로 이번 추모행렬이 보여주는 효과는 대외적으로 지 대하다. 미국과 껄끄러운 관계에 있었던 대통령 이 이렇게 한 국민들에 의해 존경을 받고있는 모습을 추모행렬을 통해 가시적으로 확인한 미국, 나아가 일본으로서는 한 국민들의 진정한 정치의식 내지 력사의식의 현주소가 어디에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고있다. 고 로무현은 10.4선언을 성사시켰고 군사분계 선(MDL)을 자기 발로 걸어서 넘은 첫번째 대통령 이였다. 추모 행렬의 모두가 그의 정치적견해를 지지하는것은 아니지만 적어 도 그의 죽음이 가져오는 효과에서 이 점을 빼놓을수는 없을것 이다. 실로 이번 로무현의 승부수는 머리털이 잘린 삼손이 자기도 죽 음을 각오하고 적들과 함께 죽음을 선택한것과 비교할수 있을것이 다. 그의 유서에는 일언반구도 담기지 않은 자기의 시체를 밟고 넘어 산자여 따르라 는 숨은 언어는 지금 전국 방방곡곡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살아 퍼져나가고있다. 봉하마을의 추모인파는 어디 로 발길을 돌릴지 모른다. 리명박은 지금 전전긍긍하고있다. 서울 광장을 열지 않는것이 바로 그의 초조한 마음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의 초조한 이 심사가 그대로 반영된것은 두말할것도 없이 26일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전면참여라는 급작스런 결정에 서 여실히 나타나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선택이고 결정 이다. 왜냐하면 그가 결정해야 할 일은 다른데 있었기때문이다. 그것 은 잃어버린 10년 이 얼마나 잘못되였는가에 대한 대( 對 )국민사 과와 반성 내지 성명을 먼저 발표하는것이였어야 했다. 지난번 초 불정국때와 같이 이번 조문기간동안에 이를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또 한번의 기회를 놓치는것이 될것이다. 정녕 사과를 하지 않을진 대 초불이 아니라 홰불을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살길을 제 시해주는 말도 벌써 쓸데없을줄로 안다. PSI참가선언자체가 10.4선 언을 깡으로 무시하고 나가겠다는 신호이기때문이다. 전혀 반성하 지도 않고 진단도 제대로 하지 않고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있다는 말이다. 27일 추모제의 열기는 정동골짜기를 가득 채우고 타고넘쳤 다. 북핵시험에 랭기가 돌고 추모발길은 줄어들줄 알았는데 전혀 약효가 나지 않고있다. 그래서 여당 원내대표는 국민들이 안보불감

217 (432)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33) 증에 걸려있다고 했다. 리명박의 눈에는 로무현의 죽음이 잃어버린 10년 하나 청산 한것으로 여기고있는것 같다. 그래서 그의 죽음을 청산의 일환으로 보는지 고인의 뜻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취하였다. 리명박은 지금 잃어버린 10년 이란 말이 자기에게도 해당된다 는 사실을 망각하고있다. 한국 이란 나라는 정권 이 바뀔 때 마다 과거정책이 송두리채 뿌리뽑힌다는것을 외국이 이젠 다 알 고있다면 리명박의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이 구호는 자기를 위해서도 국민을 위해서도 위험 천만한것이라 아니할수 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 나라 지도자 로서 력사관과 시간관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낸 처사라 아니할수 없다. 오죽하면 공자마저 온고이지신( 溫 故 而 知 新 ) 이라고 했겠 는가? 이런 사실을 조금이라도 모를리 없는 리명박이 지금 이렇게 막 나가는것은 리유가 있을것이다. 다시말해서 자기부터 한국 의 력 사는 다시 쓰이고 나라는 새로운 건국을 해야 한다는 바로 그것이 다. 그런데 문제는 이자체에 위험성이 있는것이 아니라 리명박 정 부 를 난공불락의 성으로 만들고 이를 지켜 다시말해서 자꾸자꾸 정권 을 재창출해야 한다는 아집과 고집에 사로잡히지 않을수 없 게 하는것이 바로 구호에 담긴 화두이다. 우려된다. 이 나라의 하늘에 재앙의 먹구름이 몰려오고있지나 않 는지 우려가 된다. 단군이래 나라의 최고통수권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으로 생을 마무리한 인물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나 라가 빼앗겼을 때에도 고종은 자살을 하지 않았다. 단종도 자살을 하지는 않았다. 신하들과 대신들이 그랬을망정 왕자신이 그러지는 않았다. 아무리 퇴임한 대통령 이라 하더라도 한 나라의 통수권 자가 후임자의 압박에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것은 상스러운 일은 아니다. 말을 바꾸어 정치적타살에 의한 자살이란 말이 지금 별별 의혹을 야기하고있다. 대한문앞 조문행렬가운데 있는 자라나는 이 나라의 어린 눈망울 들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부디 이 못난 어른들의 선택이 불행한 결과 로 돌아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뿐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10년 의 반을 잃어버린 리명박에게도 더 잃을것이 없는 대통령 이 되기를 바란다. 그의 불행이 곧 이 나라의 불행이라는것을 안다면 부디 온고이지신의 교훈을 잊지 말아주기를 바란다. 29일 영결식이 끝난 다음에도 깨닫지 않는다면 인간 로무현의 죽음은 실로 이 땅에 불행을 불러올것이다.

218 (434)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35) 부엉이바위에 선 우리모두들 부엉이바위의 나비효과 가 두렵다 서양에서는 새가 노래한다 고 하지만 우리는 운다 고 한다. 울어도 청승맞게 우는 새가 부엉이이다. 내가 자라던 시골 고향마 을에서는 부엉이가 울 때면 동네사람들이 이렇게 따라불렀다. 시작하는 글 한 나라의 전직 대통령 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한 사건이 그 나라에 어떤 후과를 가져올지 상상하기조차 두렵 고 무섭다. 일본의 자객에 의하여 타살당한 명성황후의 죽음과 그 결과를 우리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있다. 베이징하늘우의 나비 날개가 일으키는 바람이 대서양을 지나가는 허리케인의 진로를 바 꾼다고 하여 이를 현대과학에서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 라고 한다. 심지어는 그러하건대 일국의 전직 대통령 의 비명의 죽음이 어떤 나비효과를 만들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렵다. 명성황후서거이후 망국과 같은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케 할지 아니면 나라의 앞날에 오 색령롱한 무지개가 떠오르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불안하고 두렵기만 하다. 나는 2009년 나비효과를 부엉이바 위 나비효과 라 이름붙여 우리 현실을 짚어 생각해보려 한다. 부엉 부엉 부엉 지집* 죽고 자식 죽고 논밭 천지 다 팔아먹고 부엉 부엉 부엉 (* 여기서 지집 이란 강원도 남부지방의 계집 의 방언이다) 이 노래말이 고 로무현 대통령 의 사망과 함께 다시 나의 뇌 리속을 맴돌고있다. 하필이면 로무현 전 대통령 이 마지막삶을 정리한 바위가 부엉이바위 라고 하니 이 노래말이 다시 귀전을 울리며 가슴저미게 한다. 시골동네사람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처량한 자기 삶의 처지를 이 노래에 투사하고있었다. 어떤 불행한 사나이 가 계집 잃고, 자식 잃고, 가지고있던 논밭마저 다 팔아먹고 이제 하루 세끼 풀칠도 못하는 신세를 한탄하며 이 노래를 불렀던것 같다. 그런데 이런 인간군상들이 한두사람이 아닌 마을, 동네 온 사람들이 비슷한 처지가 아니였나 하고 추억해본다. 부엉새는 우리 대중가요가운데 천둥산 박달재 그리고 울고 넘는 고모령 등의 노래말에도 등장한다. 우리 서민대중이 가장 애 창하는 가요속엔 빠짐없이 부엉새가 등장한다. 5월 29일 서울광장 에 모여 로제를 지내던 날 추모인파가 모여 구성지게 우는 모습을 보면서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진 로무현 전 대통령 의 처지와

219 (436)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37) 지금의 자신의 처지를 동일시하는것만 같았다. 마치 서글픈 부엉이 우는 소리를 자기 신세에 대응시키듯이 말이다. 이에 대하여 김근태 전 의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로 전 대통령 을 조문한 배경과 관련, 국민들이 로 전 대통령모습에서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때문 이라며 끊임없는 구조조정과 일자리 조차 몽땅 비정규직인 상황 등에 내몰린 국민의 처지와 로 전 대 통령이 처한 상황이 다르지 않아서 눈물을 흘린것 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부엉이바위에 선 로 전 대통령의 짙은 외로움이 바 로 국민의 마음 이라고 했다. 6월 5일 낮 쌍룡자동차 평택공장앞에서 한 로동자의 안해는 서 럽게 울었다. 그는 도로 한복판에 털썩 주저앉아 품에 있던 갓난 아이를 꼭 끌어안은채 흐느꼈다. 아기도 엄마를 따라 울었다. 또 다른 안해도 드러누웠던 길바닥에서 일어나 눈물을 훔쳤다. 다른 10여명의 안해들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안해들은 <일한 죄밖에 없다>, <정리해고를 철회해달라>고 웨쳤지만 박영태관리인은 용역 의 힘을 빌려 안해들을 뿌리치고 공장을 떠났다. 이 모습을 지켜 보던 쌍룡차로동자들은 안해에 대한 미안함과 회사에 대한 분노에 긴 한숨을 내쉬였다. (오마이뉴스 6월 5일) 이것은 이 사회의 한 단면 에 불과하다. 부엉이바위앞에 선 우리모두의 사회적성격 김대중 전 대통령 도 김 전 의장과 비슷한 말로 사람들은 지금 자기들의 처지와 신세를 부엉이바위 낭떠러지앞에 서있는것 같이 여기고있다고 했다. 이러한 사회심리적현상을 에리히 프롬은 사회적성격(social character) 이라고 했다. 그렇다. 앞으로의 우리 력사는 이 사회적성격이 어떻게 방향을 잡느냐에 따라서 나비 효과가 다르게 나타날것이다. 즉 나라의 운명이 비참한 비극으로 끝날지 아니면 희망으로 승화 될지는 바로 지금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사회적성격이 어떤 방향으 로 머리를 돌리느냐에 달려있다. 로무현 대통령 이 자기의 죽음을 선택하기 전에 자기의 죽음이 어떤 나비효과를 이 나라에 가져올 지를 생각하지 않지는 않았을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말이 없다. 그의 유서에도 미래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운명이라고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언제나 그의 선택은 이 나라를 건강하게 만들었다는것을 믿기때문에 그의 부엉이바위우의 나비효과는 건강한 날개짓을 할것을 믿어의심치 않을뿐이다. 락관 적인 미래는 바로 우리의 사회적성격에 대한 옳바른 진단과 선택에 달려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회적성격의 두 얼굴 다시말해 프롬은 력사변혁은 개인적성격이 사회와 일치할 때 가능 하며 이를 사회적성격(social character) 이라고 했다. 만약에 어느 영웅이 력사를 바꾸어놓았다면 그것은 그 영웅의 사회적성격 때문이라고 말할수 있다는것이다. 로무현은 희대의 풍운아인가 영웅 인가? 이 나라를 지키는 바다의 룡으로 남을것인가 아니면 소에 갇 혀있는 이무기로 남을것인가? 점쟁이에게 점이라도 쳐보고싶은 심정 이다. 프롬은 사회적성격에 관해 그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의 부록 성격과 사회과정(Character and Social Process) 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사회적성격은 개인이 지니고있는 특성속에서 어떤것을 빼낸것으

220 (438)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39) 로서 한 집단의 성원이 대부분 가지고있는 성격구조의 본질적인 핵 심이며 그 집단에 공통된 기본경험과 생활양식의 결과로 발달된것 이다. (프롬, 1984, 245페지) 개인마다 태여난 출생신분에 따라 이질적요소가 있겠지만 일정 한 상태에서 인간의 에네르기가 하나의 생산적인 힘으로서 어떻게 형성되여 작용하는가를 리해하려면 그때에 사회적성격은 우리의 주요한 관심사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성격이 야누스의 얼굴과도 같이 사악한 면과 선량한 량면성을 가지고있다는 점이다. 전자에 해당하는것이 히틀 러의 사회적성격이고 후자에 해당하는것이 루터나 최제우 등의것이 다. 그렇다면 로무현의것은? 히틀러의 사회적성격과 나치즘의 등장 어떤 사상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수 있는가를 알려면 그 사상의 담지자자신의 사회적성격이 사회에 부응하는가를 고찰해보아야 한다. 례를 들면 도이췰란드에서 나치즘이 등장하는 배경도 히틀러 라는 개인의 사회적성격을 규명하지 않으면 리해될수 없다. 당시 도이췰란드의 로동자들은 좌익에 속해있었지만 결국 히틀러의 나 치즘에 끌려들고말았다. 그 리유는 그들의 사회적성격이 고립된 권위주의를 뿌리깊게 갈망하고 그것을 존경하고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히틀러의 강력한 지도력에 매료되고말았다. 그리고 히틀러의 사회적성격이 이들의 성격에 부합될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사상이 강력해질수 있는것은 그것이 어떤 일정한 사회적성격 에서 현저하게 보이는 어떤 특수한 인간적욕구에 부응하는 한에서 이다. 프롬은 도이췰란드인들이 나치즘에 빠져든 요인들을 다음과 같 이 렬거했다. 1918년에서 1923년에 걸쳐 그 정신적상태가 울분에 가득차있었 고 사디즘으로 된 중하층계급이 존재했다는것, 1929년초 사회민주당 지도자들에 의하여 묵인되였던 도이췰란드군국주의적세력의 힘의 증대, 반자본주의적운동의 발달에 따른 중공업자본가들의 두려움,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그들의 적으로 삼은 공산주의자들의 전술, 재능은 있었지만 반미치광이이고 기회주의자인 선동가가 있었다.(프롬, 1992, 205페지) 이것이 나치즘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며 당시 대다수 도이췰란드인 들의 사회적성격은 히틀러의 사회적성격과 일치했다는것이다. 개인 히틀러의 성격은 그 당시 도이췰란드의 중하층계급의 성격에 일치했으며 이런 합치점에서 도이췰란드나치즘은 등장한다. 륙군 하사라는 경력이외에 특별하게 내세울만 한 학력도 경력도 없었 던 히틀러가 칸트와 헤겔을 낳은 3 500만명 게르만민중의 지도 자로 떠오를수 있었던 리유는 20세기의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 이다. 그러나 사회적성격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불가사의도 리해할만 한 것으로 여겨진다. 즉 제1차세계대전패망이후 베르사이유조약에서 도이췰란드에 부과된 가혹한 배상금에 대한 부담으로 고통을 겪고 있던 도이췰란드인들은 히틀러를 통해 옛 게르만의 영광 을 다시 찾을수 있다고 착각했다. 이는 마치 우리 나라에서도 IMF사태이후 박정희향수가 되살아나는 현상과 같으며 이것이 바로 2007년 리명 박의 경제살리기 구호에 빠져버린 리유이다. 히틀러는 그 당시 도이췰란드인들의 심리상태를 샅샅이 읽을수 있었고 이를 리용하여 그는 집단최면을 걸었으며 도이췰란드인들은 그 최면속으로 스스로

221 (440)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41) 걸어들어갔던것이다. 이러한 독재에 대한 향수를 마조히즘적인 현상 이라 하며 이를 또한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서구식민주주의의 관건이라고 할수 있는 다수결의 원칙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933년 히틀 러는 그의 나이 겨우 44살때에 최면에 걸린 대다수의 지지속에 다 수결원칙에 의해 합법적으로 총리자리에 오른다. 리명박의 어린시절 의 고생담 그리고 TV화면의 그의 로동자다운 험한 손 등은 서민 들로 하여금 어떤 최면에 걸리도록 하는데 주효하였다. 나치즘보다 더 원초적인 최면이다. 박정희는 이 최면으로 정권 을 18년동안 이나 유지할수 있었고 지금도 이 최면에서 깨여나지 못한 대중들은 리명박에게로 접목되였다. 이렇게 1929년에 도이췰란드인들은 히틀러와 사회적성격이 일치 하여 나치즘에 빠져들게 할만 한 요소들이 있었다. 히틀러는 주로 사람들이 흥분하기 쉬운 밤 8시이후 집회를 열었으며 그의 카리 스마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는데에 주력했다 년사이에 도이췰란드 중하층계급은 사디즘적울분과 분노로 가득차있었다. 잃어버린 10년 그리고 경제 꼭 살리겠습니다 라는 구호는 로무현에 대한 분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으며 드디여 투표에 의한 다수결로 일을 내고말았다. 지난 5월 29일 대한문앞에서 어떤 한 시민은 리명박을 찍은 이 손가락을 잘라버리고싶다고 할 정도였다. 로무현의 죽음이 집단최면에서 해방돼나오기 시작하는 한 장면이 였다. 도이췰란드의 중하층계급의 사회적성격에 대하여 히틀러의 그것은 잘 어울릴수 있었다. 즉 히틀러의 모험성과 투쟁성은 1930년대 중하층 도이췰란드인들의 사회적성격과 리상적으로 들어맞았다. 히틀러의 사회적성격은 중하층계급의 가치관과 변화된 가치관사이를 비집고들어가 설자리를 찾았던것이다. 이것이 나치즘이 발생한 배경이다. 히틀러는 젊은 시절에 페병 등 온갖 질환을 앓았으며 또한 극심한 가난과 사병생활의 경험을 통해 개인적성격이 과도 하게 투쟁적이며 모험적으로 변했다. 그의 사디즘적인 성격은 유태인학살로 이어졌으며 그의 이러한 광적인 성격마저도 그 당시 평균적중하층 도이췰란드인들의 사회적성격과 부합되여 정치적으로 그 격이 올라갈수 있었다. 히틀러의 성격은 일반대중에게는 상식적인것이였고 합리적인것으로 통해있었다. 이를 사악한 사회 적성격(malicious social character) 이라 할수 있으며 이러 한 사악한 사회적성격이 2007년 한국 사회에 팽배해있었던것 이다. 다시말해서 2007년 대선 때에 이런 집단최면에 걸려있었으며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단행했던것이다. 독재를 해도 좋으니 경제만 살려라 하는것이 특히 자영업자들사이에 확산돼있었고 이 집단최면 적사회적성격은 지금도 유효하여 리명박다음은 박근혜이다. 로 이 어지고있다. 진보진영이 이런 대중집단을 최면에서 풀어내는 작업, 이것이 운동의 최대과제이다. 그러나 여기서 두말해 군말이 될 그것은 로무현 전 대통령 의 부엉이바위에서의 투신은 이런 집단최면상태를 일시에 씻어내기에 충분했다는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2007년 집단최면에서 풀려나 자 기를 최면에 걸게 한 주인공들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기 시작한다. 속았다. 라는 말 한마디로. 그래서 그의 죽음의 나비효과는 일단 이 나라를 건강하게 할것이라 진단하게 된다.

222 (442)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43) 선량한 루터의 사회적성격 사회적성격이 매우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산하여 력사발전에 크게 공헌한 례도 있다. 에릭 에릭슨의 청년 루터 는 이런 점에서 필 독의 양서이다. 루터 역시 어린 성장기에 엄격한 아버지밑에서 성 장하였고 루터는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에 대한 저항심과 반항적인 성격으로 일관된 시절을 보냈다. 이러한 그의 개인적성격이 그 당시 새로 등장하던 계급인 중소상인들의 성격과 완전히 일치했 다는것이다. 다시말해서 상인들은 로마카톨릭의 권위에 압살당해 사회적인 모든 리익과 권리를 박탈당하였다. 당시 교회의 권위 에 맹종하면서 리권을 누리던 계급은 상인들이 아니고 농민들이 였다. 이러한 신흥상인들의 성격은 루터의 성격과 합의점을 찾게 되여 종교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끈 원동력이 되였다. 카톨릭의 립장에서 볼 때에 종교개혁을 보는 시각이 다르겠지만 세계력사에 루터의 종 교개혁이 차지하는 신선한 충격은 무시할수 없다. 루터의 아버지 라는 상징은 바로 카톨릭교회였으며 이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에서 루터의 성격과 상인들의 성격은 일치되였다. 루터의 아버지에 대 한 개인적저항이 중소상인들의 카톨릭교회에 대한 저항과 일대일로 대응하여 종교개혁이 가능하게 되였다는것이다. 그래서 이들 상인 들은 루터를 특별보호하고 은신처에 숨겨 생계비를 도와주고 심지 어는 성경을 도이췰란드어로 번역하는데 모든 비용을 부담하였다. 당시 이들 상인계급이 없었더라면 종교개혁은 공념불이 되고말았 을것이다. 종교개혁을 성공시킨 이후 루터가 농민들을 그렇게 박해 하였고 그 리유로 도이췰란드에서 농민전쟁이 발발한것으로 보아서 도 사회적성격이 력사변화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가를 짐작할수 있다. 구한말 조선의 최제우의 사회적성격은 당시 농민들의 그것과 일 치하였다. 어린시절 조실부모하고 살던 집마저 갑자기 화재로 소실 된다. 나라안은 삼정이 문란하여 민중들은 도탄에 빠져있고 국운 은 말그대로 풍전등화와 같았다. 이때에 수운의 개인적처지는 당시 민중들의 그것과 합일되여 동학농민혁명을 가능케 했던것이다. 이 와 같이 루터의 종교개혁과 그리고 수운의 동학농민혁명은 모두 한 개인의 사회적성격이 그 사회의 어느 계층과 일치하여 사회변혁을 건강하게 유도한 례들이라 할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성격을 히틀러 의 그것과 대조하여 선량한 사회적성격(virtuous social character) 이라 할수 있다. 력사와 사회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사 회적성격이라고 할수 있다. 인간 로무현이 자신의 몸을 던지는 투신을 통해 이룩해놓은 사회 적성격은 누가 지울수 있는 성격의것이 아니며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은 새로 형성된 사회적성격과 함께 만들어져나갈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후-사건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있다. 스스로 기발이 된, 바보 로무현 지금 보수우익들은 한편으로는 가장 두려워하면서, 다른 한편 에서는 부러워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렬등감을 가지고 로무현 전 대통령 의 사망을 바라보고있다. 이들은 봐라, 좌파 대통령 이 란것이 이렇게 비도덕적이였으니 좌파나 우파 갈아보았자 똑같다. 그러니 아예 좌파 대통령 뽑을 생각하지 말고 정권 교체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말라는 대국민경고장을 보내기 위해 소위 로무현

223 (444)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45) 가족비리를 들추어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들은 자기들자체의 도덕 성을 내세울 근거도 리론도 없이 국민들이 정치허무주의에 빠져들 기만을 정치생명줄로 삼고있다. 그들은 1997년과 2002년 두차례나 좌파 대통령 이 선출되는것을 보고 아예 정권 교체란 희망자체를 절단시켜버리려 했었다. 그러 나 이번 로무현 대통령 앞에 모여드는 추모행렬을 보고 자기들에게 는 왜 저런 인물이 하나 없나 하는 렬등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전 두환, 로태우, 김영삼장례식에도 저렇게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룰 가 상상적비교도 해본다. 이 보수우익들은 민중민초들과 사회적성격 이 같은 지도자를 갖기란 앞으로도 절대 불가능하다는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다. 이렇게 서울광장은 실로 세기와 더불어 영광스런 사회 적성격의 현장이였다. 세계 어느 혁명보다 못지 않은 인파가 운집하 였다. 만약에 로무현 대통령 이 살아서 기발을 들고 리명박 정부 를 향해 정면승부를 거는 싸움을 한판 벌렸다면 과연 어떤 효과를 내였을가? 어느 정도의 효과를 낼수 있었을것인가? 나비효과는 유 기체적구조를 전제하지 않으면 리해 안되는 측면이 있다. 과연 모든 베이징하늘의 나비날개짓이 대서양을 지나는 허리케인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이라도 할수 있단 말 인가? 이 증명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있는 콤퓨터를 여는 순간 알수 있게 된다. 만약에 전산망에 들어가 인터네트를 사용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전자편지를 보낼 때에 상대방주소의 점 하나, 철자법 단 한자만 틀려도 전혀 련결이 안된다. 바로 이것이 나비효과이다. 전산망속에서는 점 하나가 온 세계이고 우주이다. 전산망이 그 만큼 하드나 쏘프트가 모두 유기체적이기때문이다. 이 말은 전산 망같이 빈틈없는 유기체적이 아닌 곳에서는 나비효과가 일어나지 않는다는것이다. 그래서 모든 나비날개짓이 효과를 내는것은 아 니다. 답은 주어졌다. 부엉이바위우에서의 대통령 의 투신이 나비효 과를 내자면 전산망 같은 유기체적구조속에서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로 대통령 의 죽음이 지금까지는 검찰총장 하나 자진사퇴 케 하는 효과를 내고있을 정도이다. 그러면 언제 어떻게 이런 유기 체적현상 즉 나비효과가 일어나는것일가? 다시 우의 질문으로 돌아가 만약에 로무현 전 대통령 이 서 울광장에 나타나 혁명아로 자처하면서 기발을 흔들고 우리를 향해 자기를 따르라고 했다고 해보자. 과연 수백만의 군중을 그가 동 원해낼수 있었을가? 생각건대 불가능했을것으로 보인다. 사회적성 격을 형성하기 힘들었을것이 분명하다. 그렇다. 그가 이렇게 많은 군중을 동원할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기발을 흔든것이 아니라 자 기스스로가 기발이 되였기때문이다. 이를 두고 자기 귀속적 (self-belonging) 이라고 한다. 완전한 유기체적세계는 이렇게 기 발흔드는자가 기발자체가 되여야 그것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혁명 자체만을 사랑한 혁명아는 종종 자기자신이 기발을 흔드는것이 아 니라 자기자신이 기발이 되여버린다. 6일 세상을 떠난 강희남목사 의 자결도 이런 맥락에서 리해되여야 한다. 자기 조직하는 우주나 유기체적생명체에 필수적인 조건은 바로 자기 귀속이다. 그런데 우리 시위현장에는 기발이 너무 많고 기발을 흔드는자만 있을뿐이다. 그래서 안 변한다. 자기 귀속이 없는 곳에 나비효과는 일어나지 않 는다. 알랭 바디우는 이러한 자기 귀속적일 때만 사건(event)이 발생 한다고 했다. 사건이란 부엉이바위에서 자기자신의 몸을 던짐으로

224 (446)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47) 써 자기자신을 사건속에 스스로 귀속시키는 행위를 두고 하는 말이 다. 이것은 개인에게 엄청난 희생을 의미한다. 혁명적영웅이 기발을 흔들다가 자기자신이 스스로 기발이 되여버리는것을 두고 사건이 발 생한다. 쉽게 말해 고양이목에 방울을 달기 위해 쥐가 고양이의 밥 이 되지 않고는 불가능한것과 같다고 할수 있다. 혁명의 영웅들은 이렇게 자기자신이 기발자체가 됨으로써 혁명을 성공시킨다. 성공한 혁명은 이런 자기 귀속으로만 가능하며 이를 두고 사건화라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4.19와 5.18 모두 사건화되였다. 로무현 대통령 은 스스로 사건의 객체이면서 주체가 되였다. 이것이 사회적성격이 형성되는 배경이다. 여기서 사악한 사회적배경과 선량한 사회적배경의 차이가 분명해 졌다. 전자의 경우 히틀러에게서 보는바와 같이 자기 귀속없는 군 중우에 군림하는 사회적성격은 력사의 큰 오유를 남기게 된다. 리 명박 정부 가 집단최면을 통한 위장된 사악한 사회적성격은 바로 약자속에 자기 귀속을 못하였기때문에 실패로 끝날것이 명약관화 하다. 비즈니스 프랜들리, 이 한 말로 리명박의 모든것은 종말 을 고하였다. 국민우에 군림하는 경찰통치는 이의 자연스런 연장 이다. 이제 남은것은 산자의 몫이다. 기발이 된 로무현의 뒤를 얼마나 따를것이냐, 이것이 남겨진 우리의 화두이다. 그리고 그가 원망하 지 말라, 슬퍼하지 말라 고 한것은 자기자신이 기발자체가 되였기 때문에 더이상 너희들은 기발이 되지 말라는 말이다. 기발인 자기 자신을 마음껏 흔들어 좋은 세상 만들라는 신호이다. 혁명의 기발은 흔들어도 자신이 기발이 되지는 않는것이 현명 할지 모른다. 그러나 로무현은 락선을 각오하고라도 지역주의타파 를 위해 부산에서 3번이나 출마를 했다. 이를 두고 바보라고 한다. 자기 귀속을 하는것을 두고 바보라고 한다. 아감벤이 말하는 례외 자가 되여야 하는데 즉 남더러 하라고 하고는 자기는 빠지는것이 현명한 태도인데 로무현은 정말 바보였다. 보수우익이 하나 하지 못 하는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 귀속이다. 절대로 자기희생을 치 르려 하지 않는것이 우익의 특징이기때문이다. 그래서 로무현과 강 희남의 선택은 좌파만이 할수 있는 선택이다. 자살과 자결과 자진 도 구별 못하는 우파종교인들은 이들의 죽음을 훼손하는 네거티브 전략밖에는 무기가 없다. 북부조선의 등장과 사회적성격 지금 남 한 의 보수우익들은 로무현 전 대통령 의 사망을 통해 좌파를 리해할수 없듯이 북측인민들이 그렇게 주석의 서거에 애도하는 분위기를 리해할수 없다. 역시 분노와 두려움과 시기의 눈으로 바라보고있다. 왜 자기들에게는 이런 지도자가 없는가 하고 탄식도 해본다. 역시 마찬가지 론리이다. 사회적성격은 나비효과의 일환이며 결국 자기 귀속이라는 기발을 흔드는 주체가 아니라 기 발자체가 되여버리는 리유이외에 아무 다른 리유가 없다고 했다. 하나가 전체가 되고 전체가 하나가 되는 유기체적인 집단생명체란 리유때문이다. 집단생명체란 바로 사회적성격이 있은 다음에 따르는 현상이다. 이렇게 사회적성격이라는 관점에서 우리는 북의 현대사도 바라 보지 않을수 없다. 주석은 평양 만경대에서 태여나 어린 10대, 20대에 이미 부모를 다 잃고 삼촌과 동생들이 모두 일제에 의하여 희생당한다. 외가도 모두 같은 경우를 당하였다.

225 (448)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49) 김주석의 사회적성격은 당시 나라잃은 인민대중들의 그것과 같았 으며 이러한 사회적성격은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이라는 량날을 동시 에 성공시키는 원동력이 되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성격이 지금 까지 북조선사회를 추동시키는 원동력이다. 떠밀릴대로 떠밀린 당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은 10대의 김주석의 사회적성격과 하나였다. 이룩한 업적은 실로 혁명적이였다. 토지개 혁과 반민족친일행위자들에 대한 완벽한 청산은 이러한 사회적성격 없이는 불가능했었다. 단군이래 고착된 계급을 한순간에 뒤집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을것이다. 병안에 고인 물은 자주 흔들어주어 야 썩지 않듯이 고착화된 계급 역시 력동적인 힘을 주기 위해서는 뒤집기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어느 한 개인의 사회적성격이 당시 억압받던 계급과 합일점을 찾아야 그것이 가능해진다. 김형직선생은 나라를 독립시키지 못할바에야 살아서 무엇하겠 습니까. 내 몸이 찢기여 가루가 될지언정 일본놈들과 싸워 이겨야 하겠습니다. 내가 싸우다 쓰러지면 아들이 하고 아들이 싸우다 못 하면 손자가 싸워서라도 우리는 반드시 나라의 독립을 성취하여야 합니다. 라 했다. 대를 잇는다는 말이란 자기자신은 물론 자기 자 손들까지 자기 귀속을 하겠다는 말이다. 남이 해주기를 바라는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기발이 되는것을 의미한다. 북에서의 사회적성격은 이렇게 대를 이어 전승된다고 본다. 그래 서 단순히 권력승계나 왕통을 이어가는 세습과는 다르다. 대를 잇 는다 는 말은 일본이라는 외세와 대를 이어 싸운다는것을 의미하며 아직도 이 땅에서 외세가 물러가지 않는 한 대를 이어서라도 싸워 이겨야 한다는 말은 유효하다는것이다. 김형직선생은 일본형사들의 고문과 그 후유증으로 3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바디우는 프랑스혁명이 성공할수 있었던것은 그것의 계승에 있었다 고 본다. 이를 후-사건(after-event) 이라고 했다. 력사속에는 수많은 혁명이 있었지만 후-사건 이 만들어지지 않았기때문에 혁명이 성공하지 못하고 짧은 시간안에 끝나고말았던 례도 있다. 예 수도 자기 귀속을 통해 하나의 사건을 만들었으며 바울이란 인물이 후-사건 을 만들어내였기때문에 오늘의 그리스도교가 가능하게 되였다. 바디우의 바울 이 이를 웅변적으로 말해주고있고 카톨릭 교회의 교황제도 같은것도 모두 혁명의 후-사건 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대를 잇는다 는 말의 의미란 바로 이런 후-사건 화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제 남북은 모두 이런 후-사건 을 만들어 내는 중차대한 기로에 서있다. 선거에 의해서건 아니면 대를 이어서건 문제는 후-사건 이다. 그러면 어떻게 로무현의 사망에 대한 후-사건 을 만들어나갈 것인가? 여기서 한가지 당부는 부디 뜻을 멀리 잡아보라는것이다. 항상 락관적으로 생각하고 불의는 반드시 망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시선을 멀리 두고 발밑을 보라는 당부이다.

226 (450)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51) 평화는 총구에서 나올뿐이다 핵미싸일은 대동강문화론의 자존심발로이다 시작하는 글 이 글은 북의 선군정치 그리고 핵미싸일이 갖는 문명사적리유와 그 리유의 타당성을 고찰한 글이다. 미국을 비롯한 추종세력들은 벼랑끝전술 혹은 체제안정 운운하면서 핵미싸일문제를 거론 하고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북이 선군정치를 내세우는 리 유를 아래 다이어몬드박사의 총, 균, 쇠 에서 그 설득력을 얻게 될것이며 결국 북핵은 지구촌의 무기의 비대칭성을 허물고 상호간에 대등한 대칭구도를 만들기 위한 다시말해서 지구촌의 영구평화를 이룩하고저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이에는 미국의 문명사관에 맞설수 있는 나름대로의 사관이 있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단군릉건립에 이어지는바 대동강문화론이라고 할수 있다. 4대문명권이외에 그것과 같거나 더 오래된 문명권이 대동강류역에 있었다는것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더이상 상전을 모시고 살 아무런 리유도 없고 종살이는 우리 당대에 종지부를 찍고 우리 후손들에게는 자랑스런 주인의식을 심어주어 당당하게 살도록 해야 한다는것이 핵미싸일 갖는 의미라는것이다. 주먹이 약하면 그 주먹으로 눈물을 닦을 날이 올것이라는것을 각오하라는것이다. 2009년으로 넘어와 벌써 반을 보냈다. 금년 지구촌의 3대화두는 핵, 돼지독감, 금융 이다. 제라드 다이어몬드는 인류를 불평등하게 만드는 요소가 총, 균, 쇠 라고 했다. 이 세가지 단어는 그의 책제 목이기도 하다. 즉 그는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 (1997년)(김진준 역, 1998년)로 1997년도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나는 이 세가지 단어를 핵, 돼지플루, 금융 으로 바꾸어 놓으면 그대로 2009년 금년의 지구촌의 담론을 도출해낼수 있다고 본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는 왜 이렇게 불평등하고 비대칭적인 가? 다이어몬드박사는 현대세계의 불평등의 기원을 1500 C.E.년을 기점으로 지금의 유라시아인들과 아시아인들이 남북아메리카인들, 아프리카인들 그리고 오스트랄리아원주민들을 복속시켜 지배하는 소위 비대칭적으로 지배해왔다고 하면서 왜 그 반대는 아니였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그 리유로서 무기 즉 총을 꼽는다. A.D. 1500년경부터 철제무기를 가진 제국들이 아직 돌과 나무로 만든 무기를 가진 부족들을 정복하거나 몰살시킬수 있었기때문이 라고 한다 년전까지는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이 수렵채집을 하였지만 B.C 년-A.D. 1500년사이에 대륙마다 그 발전속도가 천차만 별로 차이가 나게 되였으며 드디여 1500년은 무기의 차이에 엄청난 불균형을 낳게 되였다는것이다. 다시말해서 이때부터 유럽인들과 나머지 국가들사이에 월등한 무기의 차이가 나도록 만들어버렸다 는것이다.

227 (452)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53) 1592년 일본이 유럽에서 수입한 조총을 들고 임진왜란을 일으 켰을 때에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당한 례를 생각하면 다이어몬드박 사의 주장에 동의할수 있을것이다. 미국은 지구촌무기의 불균형을 만들기 위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이란 그럴사한 자기중심적조약을 만들어놓고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무기의 불균형 내지 비대칭적구조 를 즐기고있으며 미국의 이러한 엉터리론리에 반기를 들수 있는 나 라는 이 지구상에 북뿐이다. 평화는 총구에서만 나올뿐이다. 다 망해가는 일본에 항복문서를 받기 전에 한번 실험해본것이 다. 이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앞으로 세균은 퍼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 보급된다는것을 의미한다. 한 인종을 멸종시 키기 위해서는 흔적없이 사용할수 있는 무기가 바로 균이다. 그래서 균도 총의 일종이다. 아이슬랜드 라는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미국의 음모가 얼마나 소름끼치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것 이다. 병균은 이제 만들어지고있다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대륙에 건너갔을 때에 유럽인들은 원주민 들의 병원균에는 견디여낼수 있었지만 반대로 원주민들은 유럽인들 의 병원균에는 약했다. 그래서 인디안원주민들이 멸종해가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총 다음으로 병원균이라는것이다. 2009년 돼지 독감이 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아시아인들에게 급속히 전파되는 리유도 병원균이 지구촌의 불균형을 만드는 리유가운데 하나인것은 두말할것 없다. 병원균에 따라 강한 인종이 있고 약한 인종이 있다. 병원균마저 지구촌을 비대칭적이게 하는 원인이 된다 는것이다. 이제 미국은 네바다에서 핵시험을 한 후에 원주민들을 시켜 말을 타고 핵시험지역을 달리게 하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핵오염이 인체에 미치는 생체학적실험을 하기 위해서이다. 마샬 비키니군도에서는 이웃섬에서 핵시험을 하고는 옆의 섬에 사는 원주민들을 실험용으로 사용하였다. 미국은 지금 이들 원주민들로부터 900건이상의 피해 보상소송에 걸려있다. 1945년 일본투하핵폭탄도 모두 인체실험용이 였다. 마우스 하나로 세계를 주름잡는 이 재미 총과 균으로 세계를 제패한 미국은 마지막무기인 월가의 금융 으로도 세계를 미국의 지배하에 넣어두었다. 그것이 바로 딸라를 기 축통화로 만들어 세계금융을 장악하고있는것이다. 지금 미국의 흔 들림 즉 비대칭구조의 흔들림은 금융에서부터 시작되였다. 이제 만 약에 총 다시말해서 무기에서마저 밀리면 자기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3가지가운데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총은 물론 미싸일과 핵이다. 그 이전의 모든것은 재래식무기라 한다. 한때 기마족인 몽골인이 세계를 정복할 때에도 말타는 안장기술 하나가 그렇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당시 유럽 인들은 말을 타고도 발을 거는 기술이 없었지만 몽골인들은 그것 을 알고있었다. 이 기술 하나로 성길사한( 成 吉 思 汗, 칭기스한)은 세계최대의 영웅이 될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북핵문제를 세계문명사라는 관점에서 볼 때에 그 것을 1500년이후 구축된 지구촌의 축을 흔드는것이며, 궁극적으로 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존립을 그 기반에서부터 흔드는것이라 할수 있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북핵 그리고 미싸일문제는 단순한 동북

228 (454)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55) 아평화라는 차원을 넘어선 문명사의 대전환을 의미하는것이다. 북의 선군정치는 총, 균, 쇠가운데 처음것의 중요성을 간파한것이라 할수 있다. 단순한 호전성에서 나온것이 아님을 먼저 직시해야 할것 이다. 북의 김인옥교수는 그의 저서 장군 선군정치리론 에서 사대주의가 극심했던 조선봉건왕조 말기에는 남의 나라 군대만 믿고 자체무기를 준비해놓지 않아서 망국의 길을 갈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선군정치의 배경을 조선봉건왕조의 전철을 다시는 밟지 말아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있다. 당시 군제도인 령장제도는 령을 단위로 한개 령에 1만 5천~1만 6천의 군사가 소속되였는데 전국에 5개의 령이 있었다. 이 5개 령에 속한 군대가 약 10만정도였다. 그 10만도 직업군인이 아니고 농사를 짓다가 순서가 되면 지적된 장소에 가서 일정한 기간동안 복무하는 군인들이였다. 상시적으로 복무하는 군인들은 고작 3천명 정도였다. 정미7조약이 날조되고 1907년 8월 1일 일본 조선주둔군 사령관 하세가와에게 군통수권을 모두 내줄 때에 병력은 고작 9천명이 였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것은 병력수가 아니였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땅크나 군함 같은것은 생각조차 할수 없었고 고작 가지고있는 무기란 창과 칼, 활이 전부였고 화력무기는 화승대가 고작이였다. 1875년 <운양>호를 끌고 일본이 영종도앞바다에 나타났을 때에 조선군은 사거리가 700m밖에 안되는 구식소구경포 몇문뿐이였다. 이를 안 일본은 700m 밖에 군함을 세워놓고 함포사격을 한 다음 쳐들어와 마구 살상을 일삼아도 속수무책이였다. 1905년 우리 나 라는 해군 한명, 함선 한척도 없었다. 선군사상의 제1성은 바로 사대주의때문에 나라가 망했고 사대주의 때문에 남에게 자기 운명을 맡겨놓고있다가 고스란히 당하고말았다 는데서 비롯된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상전을 모시고 살아서는 안된 다는것이다. 상전을 안 모시고 살려면 총을 앞세워 지구상에 당할자 없는 무적함대를 편승해나가야 한다는것이 바로 선군사상의 취지라 는것이다. 그러면 사대주의가 결국 망국의 제1원인이라면 이 사대주 의를 어떻게 청산할것이냐가 문제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찬란한 문화와 뿌리를 발견하고 발굴하는것이다. 대동강문화론과 선군사상 미싸일개발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주권국가의 자주적권리이 다. (최한욱, 전영호 5)라고 한다. 그리고 북의 미싸일개발은 인류 문명사를 변화시켜온 3대요소를 간파한것이며 이렇게 간파할수 있는 혜안은 바로 북의 력사관 내지 문명사관에 근거를 두고있다. 북은 1998년 대동강문화론을 발표했으며 1994년에는 단군릉을 발굴, 건 립하였다. 그것은 인류문명사에서 우리 민족이 처해있는 위상과 사 명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기 위함이다. 그리고 우리 고대민족사서 즉 우리 고대사를 인류문명의 려명기와 그때를 같이하는것으로 기술 해놓은 규원사화 나 한단고기 같은 고사서들의 력사적가치를 인정하고 이에 관한 론문들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남 한 학자들가운데 권오영( 한신대 국사 학과)은 이를 두고 연구방법론의 파탄이다. 그동안 위서로 간주 되여온 <규원사화>와 <단기>고사를 사료로서 인용할뿐만아니라 고 조선고유문자라는 신지글자(창힐글자)의 존재를 주장하는데 이르러 서는 력사연구방법론에서 최소한의 과학성과 실증성마저 포기한 남 <한>내 재야국수주의사학자들과의 차별성을 확인하기 곤난할 정도

229 (456)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57) 이다. ( 북한 력사연구 50년, 98페지)라고 혹평을 한다. 이에 대하여 북의 학자들은 단군이 실재한 인물로서 밝혀지 고 단군조선이래 조선민족이 단일한 민족으로 문화를 발전시키면 서 꿋꿋이 살아온 사실이 확증됨으로써 단군의 후예로서의 한 피줄을 이은 동포들이 조국통일의 성업을 이룩하는 길에서 더욱 굳게 뭉쳐 싸울수 있게 되였다. 고 한다. 북의 주장은 단군이 민족 의 피줄을 이어주고 통일을 이룩하는데 필요충분조건임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 남북학자들의 력사관 내지 연구방법론의 차이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크다고 할수밖에 없다. 우선 우의 문제에 있어서 북의 학자들은 규원사화 와 한단고기 등을 력사기록속에 신비 로운 요소들이 있지만 력사성을 부정할수는 없다는 견해인 반면 우의 권오영교수의 글에서 보는바와 같이 연구방법론의 파탄이라는것과 최소한의 과학성과 실증성도 없다고 단언한다. 이에 대하여 북의 허종호교수는 가뜩이나 연구사서들이 부족한데 있는것마저 이렇게 부정하면 우리 고대사를 어떻게 복원할것이냐고 개인적으로 필자에게 말하였다. 권오영교수의 주장은 개인의 주장인 동시에 지금 남 한 력사 학계의 통념적인 주장을 반영하고있다. 이러한 주장은 주로 서울 대학 력사학과로부터 만들어진 교조적인 주장이다. 그럼 이들의 주장에 무엇이 잘못되였는가? 권오영교수의 주장은 매우 감정적이 라는 점이다. 재야에서 주장했기때문에 소위 위서라는 사서는 연구 가치조차 없다는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그리스 도교에는 성경이외에 수많은 위서들이 있다. 그러나 현재 성서신학 의 주류는 이들 위서들을 중심으로 예수의 생애를 복원하는 추세 이다. 연구방법론을 달리하면 이들 위서속에서 참력사가 나타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그리스도교에서 중세기적으로 이들 위서에 대한 접근자체를 금지했더라면 이런 성과는 나오지 못했을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금 남 한 학자들은 중세기적사고방식을 하고 있는것이다. 위서라는 말자체가 그리스도교의 경우 정통이 이단을 막기 위해 만든 용어이며 한국 의 경우 일제가 자기들이 만든 식민사관에 대하여 만든 용어이다. 그렇다면 이런 위서속에 우리 력사의 진수가 실려있을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6월 6일 자결하신 강희남목사님은 만년에 한단고기 를 비롯 한 고대사서들에 대하여 새롭게 주석한 책들을 펴내셨다. 북이 핵 과 미싸일을 통해서만 문명전환 내지 비대칭성을 극복하려 한것이 아니다. 북의 학자들은 고고학과 력사연구를 통해서 같은 시도를 하고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것이다. 이제 통일운동이 기존학계의 식민사관을 극복하는것도 중요한 한 과제로 삼을 때가 왔다. 그 리고 실증성과 과학성이라는것도 얼마나 전근대적인 용어인가? 현 대과학에서마저도 객관적실증성은 부정되고있고 더우기 과학적이란 말도 모두 불확정성, 비결정성이란 말로 변하고있다는 사실을 이들 남 한 력사학자들은 지금 모르고있는것이다. 주체의 개입없는 실 증성, 과학성이란 잠꼬대에 불과하다. 북의 학자들은 1997년 드디여 대동강류역에 인류 4대문명발상지 보다 더 오래된 문명권이 있었다는 대동강문화론을 제시하였다. 1998년 고고학 50년력사를 전망하는 글에서 대동강문화는 세계 5대 문명중 하나로 정립될뿐만아니라 지난 50년간 북의 고고학이 정립한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하였다. 이를 뒤받침하여 조선고고학연구 (1999-1호)가 발간되였다. 리순진 등 11명의 교수들이 동원되여 특집호로 발간된 글들의 내용은 한결같이 대동강류역은 고조선의

230 (458)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59) 중심지일뿐만아니라 민족의 발상지이고 세계최초의 고대문명의 발상 지로 립증되였다고 주장하고있다. 이 방면의 전공자들이 아닌분들이 이러한 북의 주장을 선뜻 납득하기란 어려울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여기서 우리 한 반도와 동북아일대가 보통 중요한 곳이 아니라는 단서를 쉽게 리해할수 있는 한가지만 지적하고싶다. 그것은 다름아닌 고인돌이다. 고인돌은 한 반도에만 무려 3만개가 있으며 만주일대에만 있고 만리장성만 넘어서면 고인돌은 점점 사라져버린다. 고창고인돌을 비롯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고인돌이 평양 대동강류역에 밀집돼있는것은 다 아는 사실이고 심지어는 호태왕릉우에도 고인돌이 확인돼있지 않는가? 그러면 고인돌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사실 지금 세계문명의 시초 라는것은 청동기의 등장부터이다. 전세계신화의 천지창조설화는 모 두 신석기에서 청동기로 넘어오는 그 과정을 려명기로 그려놓은것이 다. 청동기는 수많은 문화코드를 가지고있는데 남신-가부장제-도 시국가 등 지금의 거의 모든 문화코드가 이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남신들이 신석기시대의 녀신들을 몰살시키고 하늘에서 내 려왔다고 하면서 도시국가를 건설한 시기가 바로 B.C. 2000년경의 청동기시대의 등장이다. 단군 고조선이 B.C. 3천년이라는것은 결코 이런 문명코드와 별개의것이 아니고 별도로 생각할수 없다. 환웅 그리고 단군이란 남신의 등장과 사용한 무기와 도구가 청동거울이나 칼이라는 점, 이 모든것이 세계문명코드와 일치한다. 그리고 이 모든것들을 총칭 하는것이 바로 고인돌이다. 고인돌이란 거석을 운반하는데는 엄청난 인원이 동원되였어야 하며 그것은 이미 주종의 계급사회가 형성되였 다는것을 의미하며 인간이 죽어 영생한다는 래세를 생각했다는것은 의식이 지금과 같은 수준에까지 올라와있었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무덤과 무덤속에서 나오는 청동비파형단검 등은 당시의 철학과 종교관이 지금과 같았다는것을 한눈에 보여준다. 그래서 고인돌은 주요문명발상지가 어딘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다. 물론 고인돌은 유럽에서까지 확인되는 전세계광역지역을 포함 하고있다. 그런데 문제는 무려 3만개이상 되도록 고인돌이 최밀집돼 있다는것은 례사로운 일이 아니다. 북의 력사학자들이 대동강문명론 을 말할 때 이 고인돌을 빼놓을수 없는것은 물론이다. 대동강문화론은 결코 우상화도 아니고 아닌 밤에 홍두깨같이 갑자기 나온 주장도 아니다. 북의 종합대학과 사회과학원의 력사고고학학자들은 1930년대 항일유격대원들의 정신에서 출발하고 시작을 한것이다. 다시말해서 민족의 종산을 향해 진군할 때에 밀림 에서 밤을 지새우며 은하를 바라보았고 종산마루우에 뜬 광명성을 바라보았으며 평양일대의 땅을 파 그속에서 또 다른 광명성을 바라 본것이다. 그것이 금년 4월에 발사된 은하/광명성 이다. 김인옥교수는 남쪽의 력사외곡을 두고 이렇게 결론한다. 기둥이 뽑히고 서까래 무너져내린 집에 성한 그릇 없다. 고.

231 (460)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61) MB식 실용주의 알고보니 사대주의 리명박 정부 1년 반이 지나가는즈음 그의 국정시책의 지표였던 실용주의 가 그 정체를 거의 드러내고있다. 즉 그가 말하고있는 실용주의 란 사대주의의 다른 표현임이 분명해졌다. 잃어버린 10년 을 실용주의 로 되찾겠다던 그의 약속은 미국에 퍼날 리기외교 로 그 전모가 드러나고있다. 그가 적용한 실용주의 는 어느 하나 제대로 된것없이 그 모습이 드러나고있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을수 있는 남북경협을 파산 내지 파탄지경으로 내몰고는 걸핏 하면 미국에 전화하고 일본에 전화하고, 전화하다 안되면 안달박달 달려가고, 실로 이것이 그의 실용주의 외교방식이라면 우리는 참담함을 금할수 없다. 백남주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원의 리명박 정부 의 대결정 책이 부른 한국 경제손실에 의하면 남북경협이 완전차단되면 한 국 경제가 입을 손실이 무려 7조 4천억원에 달하고 8천 800명이 일자리를 잃을것이라고 했다. 개성공단사업이 중단되면 총 손실이 1조 3 600억원이라고 한다. 이것은 직접적인 손실이고 간접적인 손실 역시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외신인도추락은 말할것 없고 미국이 강요하는 군수물자를 사들이자면 국방비를 증액해야 하는데 만약에 남북화해협력을 하면 총 181.6억원을 줄일수 있다. 중소기업이 입을 손실은 여기서 계산도 안한것이다. 여기에 남북철도를 련결했을 때에 가져올 리익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계산에 누구보다 밝을 리명박은 왜 이 엄청난 효과를 내는 남북교류에 그의 실용주의 를 적용하지 않는것인가? 삼척 동자도 의문을 가지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리유는 있었다. 그의 실용주의 의 적용대상이 딴 곳에 있었기때문이다. 다름아닌 리명박 정부 는 자꾸자꾸 정권 을 재창출하고 다시는 좌파빨갱이 들 에게 정권 을 넘겨주지 않으려면 보수우익지지층을 차돌같이 단단하게 묶어놓아야 하고, 그 방법은 북에 강경대응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미국과 일본에 철저하게 매달리는 사대주의외교를 펴는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리명박의 실용주의 는 헛발질을 하고 있는것이 아니라는것이 분명해진다. 그의 실용주의 는 서민경제를 위하자는것도, 민주주의를 지키자 는것도, 남북화해를 하자는것도 아닌 철저한 자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것임이 그 용도가 분명해졌다. 우리는 지난 1년동안 바로 이것 을 확인한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실천과제는 무엇인가. 강 희남목사님의 유언말씀 리명박을 내치자. 대로 하는것이다. 우리 나라 대통령 의 외교는 어떤 면에서 간단하면 간단하다. 그것은 일본이 하자는 그 반대로만 하면 되고 민초들이 퍼뜨린 미국 믿지 말고 쏘련에 속지 말라, 일본이 일어난다. 이다. 이 한구절만 머리속에 명심하고 실천에 옮기면 그것이 우리 외교의 전부이다. 그 러나 리명박 정부 는 사사건건 그 반대로만 하고있다. 도대체 그 지독한 사대주의가 어디서 유래한것일가? 삼국사기 에는 류명 환-리명박 조 와 일란성쌍둥이같은 조가 있었으니 바로 김유 신-김춘추 조 다.

232 (462)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63) 류명환-리명박 조는 김유신-김춘추 조와 닮았다 류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참가를 해낸것이 무슨 큰 공로나 세운것처럼 자랑하고있다. 그리고 한수 더 떠 유엔안보리결의안을 성사시킨것도 자기 실력때문이라고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아마도 리명박주변에서는 이런 일들이 모두 수훈과 전 공감으로 여겨지는것 같다. 대부분의 우리 국민들은 류명환-리명 박을 한심하게 보고있는데도 말이다. 지금 리명박과 류명환이 한조 가 되여 노는 꼴은 마치 김부식이 써놓은 삼국사기 에서 김춘추 와 김유신이 한조가 되여 노는 꼴과 너무 흡사하다. 삼국사기 와 삼국유사 에 기록돼있는 김유신과 김춘추의 사 대주의행각을 류명환-리명박의 그것과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한번 읽어보자. 625년 당태종이 즉위할무렵 신라는 김유신과 김춘추가 모든 실권을 한손에 거머쥐고있을 때이다. 김춘추는 진평왕의 외손 으로 나중에 태종무렬왕이 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조 에 의하면 김춘추는 나이 60이 되였는데도 중국황제앞에 무릎을 꿇고 백제와 고구려를 칠것을 요구했는데 그 모양이 측은하기 그지 없다고 기록하고있다. 신라는 임금을 당나라 황실친척으로 바꾸라 는 요구까지 수용하면서 당의 군대파병을 간청한다. 이 사대주의의 DNA가 1 500년이 흐른 지금에도 수시로 출몰하고있는것이다. 그러자 당은 두가지 조건을 내건다. 고구려를 칠 경우는 료동지 방을 당에 내주고 백제를 칠 경우에는 신라의 임금을 당나라황제의 친척으로 바꾸고 동시에 당나라군대의 신라파견이 이루어져야 한다 는것이였다. 648년 김춘추는 직접 당태종을 찾아가 고구려뿐만아니 라 백제까지 치도록 애걸한다. 이에 둘사이에 비밀협정이 이루어져 평양이남 백제땅은 신라가, 그 나머지 모든 땅은 당이 차지한다는 밀약이 이루어졌다. 나라를 분단해서라도 단독정부 를 세우려는 오늘날 보수우익들 의 유전자가 이렇게 1 500여년전에 만들어졌던것이다. 한 반도분 할통치의 력사는 사실상 이때부터 거론되지 않았나 여겨진다. 옷을 바꿔입고 스스로 사대를 청해 참으로 되돌아볼 때에 이 모든 하나하나의 사건이 모두 오늘 우리 후손들이 짊어지고있는 수난의 씨앗이 되고말았다. 당태종이 죽고 그의 아들 고종이 황제가 되자 사대주의외교는 더 극성을 부 린다. 법흥왕이후 115년간 사용돼오던 년호를 당의것으로 바꾸고 옷도 당의것을 착복하기 시작한다. 복종, 복속, 항복 등 모두가 옷 에 관계되는 말이고보면 옷을 바꾼다는것은 굴종을 의미하는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김춘추는 당나라를 찬양하는 사대주의의 극치인 오행시 태평송 을 지어바친다. 태평송 의 내용은 당나라황제의 위업을 훼손하는 고구려를 오랑캐 라 지칭하며 단칼에 쳐물리쳐달라는 내용이다. 651년 김춘추는 모든 제도를 당나라의것으로 바꾸고 지명도 순 우리 말에서 한자로 바꾸는 동시에 유교를 적극 도입하여 국학이란 교육 기관을 세운다. 성균관의 전신과 같은것이다. 유생들이여, 이런 력 사를 알고있는가? 드디여 당고종은 소정방을 최고지휘관으로 하여 10만대군을 이끌 고 660년 백제를 향한 대공격을 단행한다. 김유신은 신바람났으며 이에 대하여 삼국사기 는 내가 지금 죽기를 서슴지 않고 험난한

233 (464)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65) 판에 달려온것은 큰 나라(당)의 힘을 빌려 두 나라를 없애버리는데 있다. ( 삼국사기 42권 김유신렬전)라고 의기를 토하고있다. 진평왕은 원광법사에게 출사표를 지으라고 했다. 그러나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을 없애버리는것은 승려의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대왕 의 나라에 살면서 어찌 명을 어길수 있겠습니까. 하면서 지식인의 고뇌를 토로한다. 원효는 회삼귀일( 會 三 歸 一 )을 주장하며 신라만이 아니라 세나라가 같이 살아 평화공존을 해야 한다고 력설한다. 저 유명한 원효의 불난 집의 비유 는 집에 불이 났는데도 방안에서 어린아이 셋이 철모르게 놀고있다면 수레를 사준다고 소리쳐 다 밖 으로 나와 위기를 피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원효의 이 말을 듣지 않고 자기만 살겠다고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만을 방에 남겨두 고 뛰쳐나왔고 그래서 나머지 두 친구는 불에 타죽게 하고말았다는 비유이다. 그렇다. 류명환-리명박은 들어라. 파산당하는 배안에서 축배의 잔을 드는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민족앞에 대오각성하라. 이러한 김춘추와 김유신을 두고 현대 한국 의 학자들은 천추에 남을 명외교관 그리고 충신으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양에 찬양 을 하고있다.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는 속담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660년 소정방의 10만대군은 백마강을 타고 올라와 무방비상태에 있던 백제를 단숨에 함락시켰다. 고구려도 668년 9월 이 땅에서 사라지고말았다. 그후 당은 백제에 웅진도독부, 고구려 에 안동도독부 그리고 심지어는 신라에까지 계림도독부를 설치하려 한다. 김유신과 김춘추는 사대주의의 결과가 빚어낸 뼈저린 교훈을 그제야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막상 당나라군대를 몰 아내는데 선봉장이 된 사람들은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들이였다. 대 당 10년 항전끝에 고작 찾은 땅이란 대동강이남의것이였다. 그조차도 신라의 령토령유권이 인정된것은 60년후인 736년이였다. 사대주의는 민족의 존립을 위협 이 얼마나 생각하고싶지 않고 한줄의 글로 남기고싶지도 않은 우리 력사의 처참한 시기인가. 어찌 이 시기를 통일신라시대 운운하 면서 칭송할수 있단 말인가? 그때 우리 피속에 만들어진 사대주 의 DNA는 지금 온몸에 퍼져있다. 전직국방장관들이 지금 늘어 놓고있는 장광설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주를 중심으로 신라가 물려준 한국 사대주의세력의 잔재가 1 500여년의 세월이 지나갔 어도 조금도 수치와 모멸을 느끼지도 않으며 자랑스럽다는듯이 기 염을 토하고있다. 신라사대주의는 두 이웃친구를 불사른데 그치지 않았다. 고구려유 민들이 세운 발해는 신라에게 목구멍의 가시와 같았다. 계모에게 전처 의 자식은 자기의 정통성을 비웃는 존재일것이다. 해동성국 발해는 신 라로부터 721년 그리고 733년 공격을 당하였으나 의젓하게 물리쳤다. 결국 사대주의는 우리 한 민족을 종자까지 말리고마는 독소이 다. 지금 한 반도정세가 과연 1 500년전과 무엇이 다른가? 사대 주의는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자주권은 한 나라의 생명 줄과 같은데 이를 되찾는 일을 반대하는것은 사대주의가운데 극치 이다. 물론 전작권 을 갑자기 되돌려주겠다는 미국의 속셈이 무 엇인지는 지혜롭게 간파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전작권 제발 다시 가져가달라고 애걸복걸 작년 전시작전통제권 ( 전작권 )환수론의 중단을 요청하기 위 해 미국을 방문한 한나라당 2차방미단 단장 리상득부의장(리

234 (466) 2. 세기와 더불어 의 세계화 담론 (467) 명박당선자의 친형)은 2007년 9월 20일 워싱톤특파원들과 가진 기 자간담회에서 우리가 옛날에 중국에 죽지 않으려고 조공도 바치 고 책봉도 받아가면서 살아남지 않았느냐. 면서 (미측 인사들이 만나기)귀찮다고 해도 국익에 필요하면 귀찮게 할것 이라고 말했 다. 난형난제란 말이 이런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이는 마치 김춘추와 김유신이 당나라에 구걸외교를 한것과 다를바 없어보 인다. 한나라당 방미단의 한 의원은 미국과 동맹관계인 나라가운 데 야당이(당시) 이처럼 미국에 찾아와 외교를 하는 경우가 있느 냐. 는 한 기자의 질문에 일본이나 오스트랄리아에는 로무현대통 령이 없기때문 이라고 답변했다. 로무현은 가고 없다. 이렇게 쓸만 한 말하는 사람들은 비극이라는 유전인자를 갖고 이 땅에 태여난 다. 1949년 6월 26일 김구선생도 그 유전자때문에 죽었다. 김원웅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당시)은 2007년 10월 24일 21세기판 모화( 慕 華 )주의자들이 동맹과 예속을 분별하지 못하는 서글픈 사대 주의로 나라망신시키고있다. 고 비판했다. 김원웅위원장은 지난날 사대주의에 찌든 지배층이 조선의 안 위와 중국의 안위를 분별 못하고 자주적인식을 결여해 병자호란을 자초했다. 며 자국국익에 충실한 외국군 장성 등에게 <전시작통 권>을 되받아가달라고 애원하는건 력사의 평가를 두려워않는 태도 라고 비판했다. 그는 리상득부의장의 우의 조공외교 발언에 대해 그러면 고구려의 을지문덕과 연개소문도 바보짓을 했단 말이냐. 며 살아남기 위해 일본의 식민지배를 환영한 리완용도 지하에서 <나도 당시 같은 생각이였다.>고 할것 이라고 비꼬았다. 리명박은 리명박문 을 자처하고있는가? 조선 민씨일가 수구세력들이 청나라에 통수권을 청하자 일본이 상관하며 간섭하기 시작하였고 드디여 1894년 청일전쟁이 이 한 반도에서 벌어지고 동학군은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에 의해 궤멸 당하고만다. 일군( 日 軍 )은 총구를 남에서 북으로 돌려 조정으로 올 라와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결국 우리 국군통수권은 모두 일본군에 넘어간다. 그 다음 결과는? 1905년 을사5조약, 1910년 한일합 방, 1919년 고종사망(고종도 일본의 시해라는것이 정설임). 외세를 끌어들인 최대피해자는 결국 민씨일가와 고종자신이다. 고종과 명성 황후는 앞다투어 외세를 끌어들였지만 그들은 결국 그 외세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마치고말았다. 류명환-리명박은 지금 이 사실을 애 써 외면하고 자기들 기득권수호에 급급하고있다. 정권 만 유지 내지 재창출만 하자. 이것이 구한말 민씨일가들과 무엇이 하나 다른가? 회고록은 말한다. 국망의 제일원인이 사대주의이고 사대주 의는 청원외교로부터 시작한다고. 류명환-리명박 조는 들어라. 과연 미국과 일본이 통일을 시켜준 다음에 그 통일을 우리에게 선물로 안겨줄것이라 믿고 이런 언행을 하고있는가? 다시 말한다. 일본이 하자는 그 반대로만 하면 틀림 없이 외교는 성공한다. 진정으로 북을 이기고싶은가? 몸속에 있는 사대주의유전인자부터 제거수술해라. 그엔 절대로 못 이긴다. 아니 이겨서는 안된다. 정권은 순간이지만 민족은 영원하기때문이다. 김유신-김춘추 조는 그래도 당나라를 몰아낼 의지라도 있었다. 나 라의 주권을 통채로 가져다 내바치고있는 리명박은 리명박문 을 자처하고있는가?

235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제2판 필 자 박사 김상일 편 집 박사 김인옥, 오현철 리영철, 서광원 편 성 오 영 옥 장 정 김 영 일 교 정 정 윤 우 낸 곳 평 양 출 판 사 인 쇄 소 평 양 인 쇄 공 장 1판 발행 주체99(2010)년 2월 5일 2판 인쇄 주체103(2014)년 3월 10일 2판 발행 주체103(2014)년 3월 15일 ㄱ-1189ㄷ c Pyongyang Publishing House DPR Korea ISBN

160215

160215 [ 진경준, 대한민국 검사의 민낯! ] 진경준 검사 정봉주 : 진경준 검사장 사건이 충격적인가 봐요.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얘기도 나오는 걸 보니까. 왜 그래요, 느닷 없이? 김태규 : 공수처는 여러 검찰개혁안 중의 하나였죠. 검찰의 기 소독점주의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공수처를 도입해야 한다 는 얘기가 오래 전부터 나왔고. 그런데 지금 정권이 레임 덕에 막 빠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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