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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취성쇠기( 仁 取 盛 衰 記 ) - 미곡거래소 仁 川 米 豆 取 引 所 의 흥망성쇠 - 원저자 : 鳥 栖 忠 安 편역자 : 김 명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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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취성쇠기 편역자 해제 ① 인취성쇠기(仁取盛衰記) 편역자 해제 김 명 수 (계명대학교 일본학과) 1. 인취성쇠기(仁取盛衰記) 의 배경과 필자 도스 다다야스(鳥栖忠安)에 대하여 본서는 인취성쇠기(仁取盛衰記) 라는 이름으로 8월 18일부터 10월 31일까지 총 57회에 걸쳐 조선신문(朝鮮新聞)에 장기 연재 된 것을 모아 편역한 것이다. 조선신문은 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인천에 있던 두 개의 신문, 즉 나카무라 츄키치(中村忠 吉)가 경영하는 조선신보(朝鮮新報)와 구와노 료타로(桑野良太郞) 등이 경영하는 조선타임즈가 1908년 합병하여 생긴 신문으로(본 서의 인취성쇠기12 참조), 1919년 12월부터는 경성으로 이전하여 발간되었다. 1920년 1월부터는 마키야마 고조(牧山耕藏)가 인수 하여 경영했다. 이후 조선에서 손꼽히는 전국지로서 발전하게 되 는데 인취성쇠기 가 연재된 1931년에는 이미 발행부수에서 경 성일보 및 부산일보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1) 태생부터 인천과 각별한 관계에 있던 조선신문이 인천미두취인소(이하 인취 )의 동향에 관심을 보인 것은 당연했다. 인취성쇠기 의 필자는 도스 다다야스(鳥栖忠安)라는 인물인데 그 행적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2) 도스가 1) 장신, 한말일제초 재인천 일본인의 신문 발행과 조선신문, 인천학연 구 제6권, 2007년, 쪽. 2) 도스의 글로 현재 확인이 가능한 것은 朝鮮時論 1(2), 1926년 7월에 실린 素人の見た朝鮮に於ける兵隊さん 과 朝鮮及滿洲 226호, 1926 년 9월에 남긴 수필 カフヱ 情調, 그리고 저서로 鳥栖忠安, 小運送

4 ② 미곡거래소 仁川米豆取引所의 흥망성쇠 1926년에 집필한 小運送の硏究 의 서문을 쓴 조선총독부 철도국 이사 도다 다다오(戶田直溫)에 의하면,3) 도스는 일본전보통신사 (日本電報通信社)의 기자였다. 도쿄(東京)에 본사를 둔 일본전보 통신사의 경성지국에 속한 기자였던 것이다. 일본전보통신사 경 성지국은 원래 마키야마 고조(牧山耕藏)가 경영하고 있었는데, 1920년 7월경에 본사 직영으로 조직이 변경되었다.4) 1922년 7월 에는 경성지국의 업무를 확장하면서는 도쿄 본사로부터 요시카와 (吉川) 지국장을 비롯하여 몇 명의 사원을 지원받았다. 확장 당시 경성지국은 내외의 신문기사를 조선 내 각종 신문에 공급하고 일 본의 미곡, 주식, 삼품(三品) 시장의 시세를 신속히 조선의 취인 시장에 공급하는 조선에 있는 완전한 통신사 를 표방하였다.5) 요컨대 도스는 마키야마가 경영하던 일본전보통신사 경성지국 의 기자로서 일본 내 취인소의 미곡 및 주식 시세를 조선 내 취 인소에 공급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취의 사정에 밝았던 것이다. 도스가 인취성쇠기 를 집필하던 1931년 8월부 터 10월까지는 인취와 경취(京城株式現物取引市場)의 합병에 관 한 최종 결정을 놓고 회사 측 합병파와 인천부민들을 중심으로 한 반대파가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던 시기였으나 결국 인취와 の硏究, 朝鮮鐵道協會, 1926년 정도이다. 한편 도스는 1944년 3월 18 일 현재 반도식산주식회사(半島殖産株式會社)의 취체역에 이름을 올리 고 있었다. 官報 호. 3) 鳥栖忠安, 위의 책, 서문 2쪽. 4) 일본전보통신사 경성지국은, 내외전보를 각 방면에 공급하는 동시에 조선 내에 발생한 중요사건을 일본 전국에 전보통신 하는 것을 주요 업무로 하였다. 본사 직영이 되면서는 본사로부터 河邑光城이 지국장 으로 파견되었던 것 같다. 東亞日報 <電通支局組織變更>. 참고로 일본전보통신사 창립 20주년 기념식이 1921년 4월 7일에 일본 도쿄의 제국극장에서 개최되었는데, 여기에는 당시의 原敬 수상, 澁澤 榮一 자작을 비롯하여 각 성의 대신들이 다수 참가하였다. 일본전보통 신사의 위상을 알 수 있다. 東亞日報 <電通二十週年祝賀>. 5) 東亞日報 <電通支局業務擴張>.

5 인취성쇠기 편역자 해제 3 경취의 경제합병으로 귀결될 것이 확실시되었다. 이러한 때 도스 는 인취의 흥망성쇠를 역시 마키야마가 경영하던 조선신문에 연 재하게 된 것이다. 2. 인취성쇠기( 仁 取 盛 衰 記 ) 가 그 동안 이용되지 못한 이유 인취성쇠기 는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신문 스크랩 자료로 역사정보통합시스템에서 원문검색이 가능하다. 쉽 게 접근이 가능하지만 인취성쇠기 는 자료로 이용되기 어려운 문제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 해당 자료는 원본이 스 크랩된 채 그대로 스캔되어 있을 뿐이고, 스크랩 자체가 이미 84 년이 지난 상태라 여간한 해상도가 아니면 쉽게 읽을 수 없다. 기사에 따라서는 판독 자체가 어렵거나 심지어 불가능한 부분도 발견된다. 원문의 연재순서 또한 다소 혼란스럽게 되어 있어 독 자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예컨대, 12회로 표시된 부분이 2회 연 속 나오지만 날짜와 내용으로 판단할 경우 1931년 9월 2일자는 13회가 되어야 한다. 36회(9월 30일)와 41회(10월 9일)도 2회 연 속 나오지만 역시 날짜와 내용으로 판단할 경우 두 번째는 각각 37회(10월 1일)와 42회(10월 11일)가 된다. 54회(10월 28일)의 경 우도 역시 2회 발견되지만 그 중 하나는 45회(10월 15일)가 잘못 표기된 것이다. 64회로 표기된 것은 46회(10월 16일)이며 74회로 표기된 것은 47회(10월 17일)이다. 또한 56회(10월 30일)도 2회 표기되었는데, 이 경우 앞의 56회는 53회(10월 27일)의 오기이다. 사용되고 있는 일본어도 지금 사용되는 일본어와 많이 달라 일 반 독자뿐만 아니라 일본어에 친숙한 역사 전공자 또한 그 독해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또한 인취성쇠기 에는 당시 쓰이던 관용구 표현이 많이 등장하며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일본 속요( 俗 謠 )

6 4 미곡거래소 仁 川 米 豆 取 引 所 의 흥망성쇠 나 고사( 故 事 )도 더러 등장한다. 예컨대 인취성쇠기 (3) 말미에 등장하는 노래는 오오이타현( 大 分 縣 ) 하사마마치( 挾 間 町 )에서 불렸 던 자쿄우타( 座 興 唄 ) 十 錢 節 이다. 인취성쇠기 (24)에 등장하는 기노쿠니야 분자에몽( 紀 伊 國 屋 文 左 衛 門 )은 에도시대에 활약했던 상 인으로 귤 전설 로 유명하다. 교토와 에도 사이의 지역 간 가격차 를 이용해 거액의 이익을 보았다는 내용의 귤과 소금에 절인 연어 이야기를 모르면 이해할 수 없다. 특히 인취성쇠기 의 독해가 어 려운 이유는 시종일관 등장하는 취인소(거래소) 관련 용어들이다. 예컨대 인취성쇠기 (35)에 등장하는 50전 앙꼬 의 앙꼬 란, 기 존의 물량에 대해 100% 헷지 물량을 만들어 가격변동의 영향이 없는 료다테( 両 建 て)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팔자와 사자 양쪽 모두 를 동시에 취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익숙하지 않은 용어들이 연속해서 등장하기 때문에 역시 이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요컨대 인취성쇠기 가 담고 있는 생생하고 풍부한 내용이 자 료로 이용되기 위해서는 신문 원문을 정확히 판독함으로써 다시 활자화할 필요가 있으며, 원문에 대한 독해를 돕기 위해 각종 관 용구, 용어, 고사에 대한 설명을 역주로 담은 편역서( 編 譯 書 )가 필요하다. 편역자가 인취성쇠기 에 주목하고 기사들을 모아서 번역하게 된 이유이다. 3. 인취성쇠기( 仁 取 盛 衰 記 ) 의 연구사적 의의 인취성쇠기 는, 그 기사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주로 인취( 仁 取 ) 즉, 인천미두취인소( 仁 川 米 豆 取 引 所 )의 영고성쇠를 다루고 있 다. 그에 더하여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역사적 정보들 을 많이 담고 있다. 인취는 1896년에 일본영사의 인가를 받아 설 립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1932년 1월 경취( 京 取 ) 즉, 경성주식현 물취인시장( 京 城 株 式 現 物 取 引 市 場 )과 합병하면서 조선취인소( 朝 鮮

7 인취성쇠기 편역자 해제 5 取 引 所 ) 인천지점이 되었다. 인취는 미두취인소로서 일종의 선물 거래인 청산거래가 이루어지던 곳인데, 미가의 변동성이 높은 리 스크를 동반하며 막대한 이익을 가능하게 했다. 인취 주변에 중매 인뿐만 아니라 투기를 일삼는 미두꾼들과 그들과 선이 닿아 있는 권력자들이 모여 든 이유였다. 막대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으 니 그로 인해 인취가 인천부에 납부하는 영업세 또한 으뜸이었다. 따라서 1920년대에서 1932년까지 경취와의 합병 및 경성(서울)으 로의 이전을 인천부민과 재계가 극렬 반대한 것은 당연했다. 개항 이후 인천과 인취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으며, 인 취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이합집산이 곧 인천재계의 움직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인취성쇠기 는 인 취를 중심으로 살펴본 개항 이후 인천의 재계사 라 할 수 있다. 인천이라는 도시 자체가 일본의 경제 침략과 식민지화 과정에서 근대도시로 발전해 왔다는 역사성을 갖고 있으며, 그로 인해 다 른 어떤 지역보다 조선인/한국인의 애환이 민족적 갈등과 협력이 라는 형태로 두드러져 나타났다. 이른바 식민지의 회색지대가 일 찍부터 형성되었던 것이다. 한국 근대의 형성과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동전의 양면처럼 인천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음을 감안한다 면 인천재계가 어떤 인적 네트워크로 형성되어 움직이고 있었는 지 역사적 시각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인취성쇠기 는 경제사 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사적 측면에서도 학계의 연구 공 백을 채워줄 수 있는 자료라고 생각되는 이유이다. 인취성쇠기 가 평이한 언어로 편역되어야 하는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4. 인취성쇠기( 仁 取 盛 衰 記 ) 관련 근대인천경제사 연구 장신은 인천 지역에서 이루어진 일본인의 신문 발행을 조선신 문( 朝 鮮 新 聞 ) 을 중심으로 검토했다. 조선신문은, 전술했듯이, 1908

8 ⑥ 미곡거래소 仁川米豆取引所의 흥망성쇠 년 조선신보(朝鮮新報) 와 조선타임즈가 합병되어 설립되었는데, 이후 인천을 발판으로 1919년 12월까지는 중앙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1920년대와 30년대에는 그 발행부수와 수입에서 경성일보, 부산일보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6) 시기적으로 볼 때 1931년 8월부 터 10월까지 3개월에 걸쳐 연재된 인취성쇠기 는 전국적인 독자 층을 갖고 있었고, 따라서 그 기사의 신뢰도가 높다 하겠다. 한말일제하 인천재계에 관한 연구는 양준호와 문영주에 의해 서 이루어졌다. 양준호는 식민지기 인천상공회의소의 설립과정과 그 역할에 대해 제도주의적 관점에서 고찰했는데, 이를 통해 인 천상공회의소가 시장 확대 기구에서 종합적 경제 자문통제 기 구로 재편되었음을 밝혔다.7) 또한 양준호는 1926년 전후 인천에 거주했던 재조일본인을 중심으로 식민지기 인천의 기업가를 정리 하여 자료로서 제공하였다.8) 문영주는 인천상업회의소에 관여했 던 재조일본인들을 중심으로 인취 이전 문제 등 다양한 경제현안 에 대해서 인천재계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밝히고, 이 과정에서 조선인 자본가들이 식민지 권력인 조선총독부뿐만 아니라 재조일 본인 자본가라는 지역 권력과 직면해 있었음을 보여주었다.9) 인취성쇠기 가 주로 그리고 있는 인천미두취인소에 대한 연 구는 아직 일천하다 할 수 있으나 김도형이 갑오개혁 이후 인천 의 미곡유통구조를 분석하면서 인취의 설립과정을 검토했으며,10) 6) 장신, 앞의 글, 쪽. 7) 양준호, 식민지기 인천상공의의 설립과정과 역할에 관한 제도주의적 고찰 시장확대 기구에서 종합적 경제 자문통제 기구로의 재편 -, 인천학연구 제14권, 2011년, 쪽. 8) 양준호, 식민지기 인천의 기업 및 기업가, 인천학연구원, 2009년. 9) 문영주, 20세기 전반기 인천 지역경제와 식민지 근대성, 인천학연구 제10권, 쪽. 10) 김도형, 강보 이후 인천에서의 미곡유통구조; 仁川米豆取引所 의 설 립을 중심으로, 擇窩許善道先生停年紀念 韓國史學論叢, 일조각,

9 인취성쇠기 편역자 해제 ⑦ 홍성찬은 경성현물주식취인시장의 경영변동과 관련기관들의 동향 을 다루면서 인취와의 합병 문제를 개괄적으로 검토하였다.11) 한편 이형진은 투기와 수탈의 현장이라는 문학적인 필체로 사회 사적 시각에서 경취 및 인취 주변을 분석하고, 투기로 얼룩진 양 취(인취와 경취)의 거래구조가 결국 일제의 미곡수탈메커니즘에 다름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12) 상기의 인천 및 인천재계와 인취에 관한 선행연구들은 인천상 업회의소(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인천 지역의 기업가 네트워크 를 검토하였으나 구체적인 인물들의 활동을 담고 있지 않아 추 상적인 제도 분석과 자료 정리에 머무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인취 이전 문제 등의 특정 문제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고 1920년대와 30년대 초라는 제한된 시기를 대상으로 한 점에서 한말일제하 인천의 성장과정을 통사적으로 제시하는데 한계가 있다13). 인취성쇠기 의 번역과 출판은 이러한 연구사적 한계를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5. 인취성쇠기(仁取盛衰記) 의 시기구분과 내용 인취성쇠기 는 그 내용에 따라 총 네 개의 시기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제1기는 1875년부터 1899년까지로 강화도조약 이 1992년, 쪽. 11) 홍성찬, 1920년대 京取 의 경영변동과 관련기관들의 동향, 연세경 제연구 8(2), 2001년, 쪽. 12) 이형진, 일제하 투기와 수탈의 현장-미두증권시장, 역사비편 18 호, 1992년, 쪽. 13) 인천학연구원에서 정리하고 번역하여 발간한 자료집들은 근대인천경제 사 연구에 많은 참고가 된다. 인천미두취인소와 관련해서는 다음의 책 들이 참고가 된다. 정혜중 역, (譯註) 仁川米豆取引所 沿革 (인천역사 문화총서 48),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2008년(원문: 1935년 株式會 社仁川米豆取引所沿革 ) ; 仁川府廳編. 仁川府史, 仁川府, 1933년 등.

10 8 미곡거래소 仁 川 米 豆 取 引 所 의 흥망성쇠 후 인천의 변화상과 인취의 탄생과 해산명령, 그리고 부흥운동을 통해 영업이 재개될 때까지이다. 제물포라는 작은 어촌이 한일무 역의 무역항 인천으로 약진하게 되는 과정이 일본상인의 활약과 함께 그려지고 있다. 인천에 있던 일본상인들이 1888년 조선의 흉작과 1889년 일본의 흉작으로 인한 미가의 차이를 이용한 미곡 의 반출과 반입을 통해 큰 이득을 얻게 되면서 미곡을 중심으로 한 한일무역이 인천을 무대로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이다(인취성 쇠기3). 일본은 청일전쟁을 전후하여 중국 상인을 인천으로부터 구축( 驅 逐 )해 가는데, 인취의 탄생 또한 중국 상인의 구축과 관련 이 있었다. 미곡반출을 막기 위한 조선정부의 방곡령이 청국 미 곡상의 암약과 관련이 있다고 인식했기 때문이었다(인취성쇠기4). 인취 설립의 법적 근거를 찾을 수 없었던 당시 인천의 대리영사 였던 하기와라 모리이치( 萩 原 守 一 )의 인가만으로 설립이 추진되었 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외무성이 이를 허가하게 된 것 은 경제적 이유라기보다 오히려 지나 상인 세력의 구축이라는 외 교적 의미에서였다. (인취성쇠기5). 인취는, 당시 사에구사상점( 三 枝 商 店 )의 지점장 가쿠 에이타로( 加 來 榮 太 郞 ) 및 모리나가구미( 守 永 組 )의 지배인 나가이 후사키치( 永 井 房 吉 )의 제창과, 당시 인천 상의( 仁 川 商 議 ) 회두로 다이이치은행( 第 一 銀 行 ) 지점장 니시와키 쵸타로( 西 脇 長 太 郞 ) 및 부회두 미즈타 사다시치( 水 田 定 七 )의 찬동 을 얻어 발기인 14명을 중심으로 설립사무를 진행하여 1896년 5 월 5일에 개업했다. 그러나 시장의 분규로 1898년 10월 인취에 해산명령이 내려졌으나(인취성쇠기7), 이사장 가쿠를 중심으로 인 취 부흥운동을 전개하고 인천상의가 지원하면서 1899년 6월 다시 재개인가의 통고를 이끌어 냈다(인취성쇠기11). 제2기는 1899년 6월부터 1919년 5월까지의 시기로 이른바 인 취의 기초가 정비되는 기간이다. 이 기간에는 경인철도가 완공되 었고, 군사적 목적에서 상수도가 인천까지 설치되는 등 인프라의

11 인취성쇠기 편역자 해제 9 정비가 이루어졌다(인취성쇠기13). 1903년에 인천에 거주하던 미 국인 데시우라의 사자 출동이 주목을 끌었다. 1904년에는 러일 전쟁의 발발과 함께 2월 10일 인취시장이 일시 폐쇄되었다. 러 일전쟁 중 인취는 자본금을 3만원에서 4만 5천원으로 증자했으 나 러일전쟁 이후 영업은 크게 쇠퇴했다(인취성쇠기12). 이러한 쇠퇴양상은 이후 호전되지 못하고 결국 1908년 7월 휴업에 들어 갔다가 1910년 3월 총회를 통해 영업을 다시 재개했다. 그 사이 1909년 5월 당시의 이사관 시노부 쥰페이( 信 夫 淳 平 )의 양해를 얻 어 영업기간을 연장했다(인취성쇠기13). 이 시기 주목되는 거래 는 1911년에 있었던 임영환( 林 泳 煥 )의 매점 사건인데, 임영환의 전주( 錢 主 )는 왕족 이해승( 李 海 昇 ) 후작이었다(인취성쇠기15). 결 국 임영환의 사자 출동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으나 이 거래에 관 여된 네 명의 중매인이 사사로운 장외거래의 혐의로 감옥에 투 옥되는 사건도 있었다(인취성쇠기16). 임영환의 사자 출동 이후 에는 조선의 권신이었던 이봉래( 李 鳳 來 )의 아들 이용문( 李 容 汶 ) 의 사자 출동이 있었는데, 인취 최초의 위약처분이 발생한 원인 이 된 거래였다(인취성쇠기17;18). 1912년에는 오오사카 도지마 취인소( 大 阪 堂 島 取 引 所 )의 이사에서 중매인이 되었다가 뒤에 위 원장을 지낸 경력의 소유자 마츠오 츠루오( 松 尾 鶴 男 )가 경영권을 장악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1913년 5월에는 일본 취인소에서 조 선미 및 대만미의 대용제( 代 用 制 )가 실시되었고, 이를 위해 조선 미의 이입세가 철폐되었다(인취성쇠기19). 인취는 오오사카( 大 阪 ) 도지마( 堂 島 )에서 행하던 중매인들의 불안정한 지위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채택했는데, 이것이 인취 호황의 한 원인이 되었고 전시호황의 조류를 타고 10할 배당이라는 호성적을 냈다. 이러한 호성적은 가다 긴자부로( 賀 田 金 三 郞 )나 하기와라 쵸기치( 萩 原 長 吉 ) 등 거물들의 관심을 끌었다. 1918년경에 25원을 불입한 주 식이 450원에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는 내용은 당시의 인취 의 번영을 말해준다(인취성쇠기20). 그러나 1918년 8월 일본 도

12 10 미곡거래소 仁 川 米 豆 取 引 所 의 흥망성쇠 야마현( 富 山 縣 )에서 시작된 미소동( 米 騷 動 )의 영향으로 조선의 미가도 앙등하자, 이러한 미가앙등의 원인으로 조선총독부는 취 인소에서의 매점 행위를 지목하면서 인천, 부산, 군산의 미곡시 장에 대한 조사를 단행했다(인취성쇠기21). 이 조사를 통해 인취 의 증거금 관련 손실이 총 180만원에 달하는 것이 판명되어 조 선총독부를 중심으로 한 인취 개혁이 단행되었다. 그 결과 부정 에 관련된 인취 역원들이 물러나고 인취 사장에 부산부윤 와카 마츠 우사부로( 若 松 兎 三 郞 )가 영입되었으며, 다른 역원에도 아라 이 하츠타로( 荒 井 初 太 郞 )이나 덴니치 츠네지로( 天 日 常 次 郞 ) 등 총독부 추천 인사들이 포진하게 되었다(인취성쇠기22). 제3기는 1919년 5월 이후부터 1926년 5월까지이다. 이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전후 반동공황으로 경기가 침체하기 시작 하여 1920년대 내내 장기불황을 겪게 되는 시기이다. 이 사이 인 취도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데, 인취 관계자들은 그 주요한 원인으 로 조선취인소세령의 실시와 연시장의 영업 침해를 꼽았다. 이를 위한 대책으로 인취 관계자들은 세금 경감을 주장하나 총독부의 강력한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또 다른 방편으로 중매인 고바야 시 도우에몽( 小 林 藤 右 衛 門 )은 경취와의 합병 및 경성으로의 이전 을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고바야시의 이전합병 제안에 귀 기울이 는 이는 드물었다. 인취의 기세가 아직 대단했기 때문이다. 육덕 풍만한 처녀를 추레해진 노인과 결혼시키는 것과 같다는 비유는 경취와의 합병 제안에 대한 당시 인취 관계자들의 인식을 잘 보 여준다(인취성쇠기38). 한편, 이 사이 1922년 4월에 제령 6호로 조선취인소세령( 朝 鮮 取 引 所 稅 令 )이 발포되어 4월 20일부터 실시되 었고, 그 보다 조금 앞선 2월에 총독의 인가를 받아 300만원으로 증자했다. 취인소세령의 실시에 대해 인취의 역원 및 중매인들은 세령( 稅 令 )을 실시한다면 취인소령을 시행하는 것이 선결문제가 아닐까, 실태법규가 시행되지도 않고 세령만 시행하게 되면 취인

13 인취성쇠기 편역자 해제 11 소 유사 시설에 대해 단속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피력하 며 총독부에 조선취인소령의 제정 및 실시를 요구했다(인취성쇠기 32). 그 사이에 인취 시장을 뒤 흔든 매점이 여러 번 있었다. 다 소 시기가 앞이기는 하지만 가다 긴자부로의 매점 사건이 있었고 (인취성쇠기25), 오오사카 사람 고니시 다츠지로( 小 西 辰 次 郞 )의 매 점 사건(인취성쇠기26), 그리고 불이흥업( 不 二 興 業 )에 의한 대두 매점 사건(인취성쇠기34)과 조선의 수리왕( 水 利 王 ) 으로 유명한 후지이 간타로( 藤 井 寬 太 郞 )의 일본 내지미 수도( 受 渡 ) 사건이 있었 다. 특히 후지이의 일본 내지미 수도 사건은 불이흥업이 내부개혁 을 하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인취성쇠기37). 제4기는 1926년 5월부터 1931년 말까지로 인취와 경취의 합병 문제가 전개된 시기이다. 시모오카 츄지( 下 岡 忠 治 )와 유아사 구라 헤이( 湯 淺 倉 平 ) 정무총감과의 교감을 거쳐 경인 재계의 중진인 도 미타 기사쿠( 富 田 儀 作 ), 구기모토 도지로( 釘 本 藤 次 郞 ), 와타나베 사다이치로( 渡 邊 定 一 郞 ) 3명이 인취의 와카마츠( 若 松 ) 사장과 경 취의 덴니치( 天 日 ) 사장에게 합병을 촉구하는 문서를 보냈다. 1926년 5월말의 일로 이로부터 본격적인 인취와 경취의 합병문제 가 대두되었다(인취성쇠기41). 그러나 와카마츠 사장이 아무런 사 전설명 없이 합병안을 발표함으로써 대주주들의 반발을 샀고, 여 기서부터 합병반대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인취성쇠기42). 이에 경인재계의 중진 아라이 하츠타로( 荒 定 初 太 郞 )와 고죠간도( 古 城 管 堂 )가 각 취인소의 그 동안의 성적에 바탕을 둔 중재안을 마련하 여 중재에 나섰으나 이번에는 인천부민들이 경성으로 이전이 전 제가 된 합병안에 반대하며 운동을 전개하였다. 인취와 경취의 합병 과정에서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해산을 앞 둔 권신( 勸 信 ), 즉 조선권업신탁이 소유한 인취 주식을 둘러싼 합 병파와 반대파의 쟁탈전이었다. 결국 합병파인 회사 측이 권신 소유주를 모두 인수하며 쟁탈전을 승리로 이끌었다(인취성쇠기

14 12 미곡거래소 仁 川 米 豆 取 引 所 의 흥망성쇠 43). 합병안을 의결하기 위한 총회가 예정되자 인천부민들 반대 파는 반대표를 던질 주주들의 위임장을 모았고, 실제로 1927년 3 월 31일에 개최된 총회 또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무산되고 말았 다(인취성쇠기47). 이후 합병 논의는 영업기간이 만료되는 1929년 까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1929년 초부터 다시 재연된 합병 문제는 야마나시 한조( 山 梨 半 造 ) 총독의 부임과 함께 취인소령의 제정이 본격화되면서 더욱 심화되었고, 인천부민의 반대운동 또한 격렬하게 전개되었다(인취성쇠기50). 반대파는 조선신탁의 사장이 면서 인취의 주요 주주 중 한 사람인 우즈타카 히로시( 堆 浩 ) 일 파와 손을 잡고 중역 개선을 통한 인취 장악을 노렸고, 우즈타카 는 경영상 자금조달의 문제를 인취 장악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었 다(인취성쇠기51). 1930년 봄에는 합병파와 반대파가 인취의 사망 한 대주주 우츠미 슈쿠로( 內 海 叔 郞 )의 인취 주식을 둘러싼 쟁탈전 이 벌어졌다. 회사 측, 즉 합병파는 이 쟁탈전 또한 도지마의 시 오자키 후지타로( 潮 崎 藤 太 郞 )에게 부탁하여 인수하게 함으로써 승 리로 이끌었다(인취성쇠기53). 이런 상황에서 1930년 12월에 인 취 총회가 개최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합병파의 승리로 귀결되었 다(인취성쇠기54). 본격적인 합병 작업이 시작되었지만, 이때부터 양파( 兩 派 )는 1931년 5월에 조선취인소령이 실시될 때까지 법령 에 영향을 미치려는 운동을 전개했다. 합병파는 운동의 방향을 조금 틀어 임시총회의 결의가 용인될 수 있는 법령이 되도록 하 는데 맞추어졌다. 즉, 인취의 이전, 기설회사의 합병, 회사조직의 취인소가 허용될 뿐만 아니라, 동일( 同 一 )한 시장에서 미곡과 주 식이 상장될 수 있어야 한다, 미곡취인소는 중앙집중주의가 되어 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한편 반대파는 경제합병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인취의 경성 이전만은 양 보할 수 없는 문제였다. 결국 조선취인소령에서는 인취의 경성 이전을 금지했다(인취성쇠기56). 이후 인취의 경성 출장소였던 미 구락부( 米 俱 樂 部 )가 폐지되고, 경성 연시장이 부활하면서 인취에

15 인취성쇠기 편역자 해제 13 커다란 타격을 안겨주었다. 또한 대구, 군산, 부산, 진남포의 연 시장이 취인소로 승격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인취 또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인취성쇠기57). 이후 인취와 경취는 각각 해산한 후 조선취인소를 신설했으며, 인취는 1932년 1월 12일부터 영업 을 개시한 조선취인소 인천지점이 되었다. 6. 주요 참고 문헌 및 자료 김도형, 갑오 이후 인천에서의 미곡유통구조; 仁 川 米 豆 取 引 所 의 설립을 중심으로, 擇 窩 許 善 道 선생정년기념 한국사 학논총, 일조각, 1992년, 쪽. 문영주, 20세기 전반기 인천 지역경제와 식민지 근대성, 인천 학연구 제10권, 쪽. 양준호, 식민지기 인천상공의의 설립과정과 역할에 관한 제도주의 적 고찰 시장 확대 기구에서 종합적 경제 자문통제 기 구로의 개편-, 인천학연구 제14권, 2011년, 쪽. 양준호, 식민지기 인천의 기업 및 기업가, 인천학연구원, 2009년. 이형진, 일제하 투기와 수탈의 현장-미두증권시장, 역사비 편 18호, 1992년, 쪽. 장 신, 한말일제초 재인천 일본인의 신문 발행과 조선신문, 인천학연구 제6권, 2007년, 쪽. 정혜중 역, ( 譯 註 ) 仁 川 米 豆 取 引 所 沿 革 (인천역사문화총서 48),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2008년(원문: 1935년 株 式 會 社 仁 川 米 豆 取 引 所 沿 革 ). 홍성찬, 1920년대 京 取 의 경영변동과 관련기관들의 동향, 연 세경제연구 8(2), 2001년, 쪽. 仁 川 府 廳 編. 仁 川 府 史, 仁 川 府, 1933년. 仁 取 盛 衰 記 ~ 朝 鮮 新 聞 연재기사

16 14 미곡거래소 仁 川 米 豆 取 引 所 의 흥망성쇠 일 러 두 기 1. 본서에서는 편역과 함께 인취성쇠기 의 일본어 기사 원문을 입력하여 독자가 직접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2. 원문을 입력할 때에는 현대 일본어 표기를 위주로 했으나, 판 독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으로 처리했다. 는 글씨가 있어 야 할 자리에 글씨가 보이지 않을 경우 표시했다. 3.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기사를 이해하는데 문맥상 크게 지장이 없을 경우 직역을 위주로 했으나 독자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 고 판단할 경우 의역했다. 4. 인명은 예외 없이 일본어 읽기에 충실했으나 기타 고유명사 의 경우 편의에 따라 한자음을 한국어로 그대로 읽은 경우도 있다. 5. 널리 알려진 인물이나 사실에 대해서는 역주하지 않았으나, 자료가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역주에 충실하려고 애썼다. 6. 미곡거래나 투기와 관련된 생소한 용어의 경우 최대한 한국 어로 번역하려고 노력했으나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한 경우 그냥 일본어로 읽은 경우도 많다. 그러나 독자의 이해를 돕 기 위해 역주를 통해 해설을 적어두었다. 7. 일본 연호의 경우 서력을 바꾸었다. 예컨대 메이지( 明 治 ) 29 년은 1896년으로 바꾸었다.

17 목 차 목 ⑮ 차 1 인취성쇠기(仁取盛衰記) 편역자 해제 14 일러두기 인취성쇠기(1) 제물포가 인천으로 약진, 채색되는 강화도사건 1 인취성쇠기(2) 임오군란에 대한 회상 4 7 인취성쇠기(3) 청일전쟁의 발단 인취성쇠기(4) 청일전쟁 직전 인천의 대두(擡頭) 12 인취성쇠기(5) 지나 상인의 몰락과 인취의 탄생 15 인취성쇠기(6) 창업 당시의 난센스 인취성쇠기(7) 시장의 분쟁으로 해산명령 인취성쇠기(8) 시데하라(幣原)의 부임과 인취 부흥 운동 30 인취성쇠기(9) 부흥 운동의 건의서 제출 34 인취성쇠기(10) 일한무역에 위대한 공적 39 인취성쇠기(11) 보기 드문 미국인의 사자 출동, 일본의 총 45 팔자 연합 인취성쇠기(12) 일러전쟁으로 인취 폐쇄, 전후에는 크게 49 쇠퇴 인취성쇠기(13) 통감정치와 영업기간 연장, 창고 매각 대금으로 부지 매수 54 인취성쇠기(14) 영업 재개 후에도 여전히 한산, 2만석의 58 총거래량 인취성쇠기(15) 일본 아낙네가 경매 손짓, 임영환의 사자 62 출동 인취성쇠기(16) 임영환의 사자 출동과 지역 총 팔자, 하기와라(萩原)의 중재 68 인취성쇠기(17) 구와노(桑野)의 분주로 겨우 해합(解合), 72 중매인 네 명 하옥 사건

18 16 미곡거래소 仁 川 米 豆 取 引 所 의 흥망성쇠 인취성쇠기(18) 인취 최초로 위약처분 발생, 10월한의 대격전 77 인취성쇠기(19) 오오사카 자본의 진출과 마츠오( 松 尾 )의 시대, 일본 의 취인소에서 조선미 대용 인정 81 인취성쇠기(20) 인취 번영책과 중매인 보호, 10할 배당 출현 87 인취성쇠기(21) 조선 내 미곡상도 위축, 미소동( 米 騒 動 )과 조선 91 인취성쇠기(22) 만원의 큰 구멍 발견, 기둥뿌리가 흔들리다 96 인취성쇠기(23) 만원으로 증자 결정, 부흥을 위한 진용 정비 100 인취성쇠기(24) 도지마( 堂 島 )를 상회하여 공전( 空 前 )의 높은 시세, 인취의 열광시대 104 인취성쇠기(25) 가다 긴자부로( 賀 田 金 三 郞 )의 매점, 조전( 早 電 )의 시작 109 인취성쇠기(26) 미소동과 인취, 고니시( 小 西 )와 사이토( 齋 藤 )의 사자 출동( 買 出 動 ) 113 인취성쇠기(27) 밑천 1만원으로 이익 50만원, 전 조선을 상대로 나카토시( 中 利 )와 오하라( 小 原 )의 사자 강행 117 인취성쇠기(28) 모리( 森 )와 우츠미( 內 海 )가 필사적으로 사자 강행, 전 조선을 상대로 121 인취성쇠기(29) 쌀장수의 아이돌보미가 일약 벼락부자로, 호사스러운 결혼 피로 125 인취성쇠기(30) 두 사람의 대성공자, 우츠미( 內 海 )와 히로사와( 廣 澤 ) 129 인취성쇠기(31) 우츠미( 內 海 )히로사와( 廣 澤 )의 연합 사자 출동, 아사노( 淺 野 ) 혼자서 팔자 포지션 133 인취성쇠기(32) 만원을 들여 설비 정비, 세령( 稅 令 ) 실시 137

19 목 차 17 인취성쇠기(33) 스스로 무덤 파는 중매인들, 당국의 공약( 公 約 )은 유녀의 서사( 誓 詞 ) 141 인취성쇠기(34) 불이흥업( 不 二 興 業 )이 대두 매점, 수도( 受 渡 )에 곤란 144 인취성쇠기(35) 진재( 震 災 ) 전후 유타카( 豊 ) 의 투매( 投 賣 ), 중매인들 모두 사자 포지션 148 인취성쇠기(36) 사자 쪽 연합에 개선가, 무네( 宗 ) 중매점 몰락 151 인취성쇠기(37) 후지이 간타로( 藤 井 寛 太 郞 )의 내지미 수도( 受 渡 ), 불이흥업( 不 二 興 業 )의 개혁 154 인취성쇠기(38) 시장 진흥 문제로 합병 대두, 그냥 웃어넘기다 159 인취성쇠기(39) 취인소는 관리의 귀문( 鬼 門 ), 시모오카 츄지( 下 岡 忠 治 )의 망설임 162 인취성쇠기(40) 세 사람이 읽은 시모오카( 下 岡 )의 속마음, 은밀한 상담 165 인취성쇠기(41) 각서 교환으로 마침내 합병 구체화, 제일보에 차질 168 인취성쇠기(42) 부족했던 사전 설명, 와카마츠( 若 松 )의 실수 171 인취성쇠기(43) 아라이( 荒 井 )와 고죠( 古 城 )가 조정안 작성, 인천 측의 반대 174 인취성쇠기(44) 예기( 藝 妓 )의 입을 통해 드러난 음모, 권신( 勸 信 ) 주식 쟁탈전 177 인취성쇠기(45) 권신( 勸 信 ) 소유주 인수 경위, 와카마츠( 若 松 ) 사장의 발표 181 인취성쇠기(46) 위임장에 얽힌 여러 진담( 珍 談 ), 벌벌 떨었던 사람들 184 인취성쇠기(47) 의결하지 못하고 결국 산회, 분규한 총회 187

20 18 미곡거래소 仁 川 米 豆 取 引 所 의 흥망성쇠 인취성쇠기(48) 요네다( 米 田 )의 조정으로 일시 합병 논의 보류, 인천 측 축배 189 인취성쇠기(49) 장어덮밥( 鰻 丼 )으로 꼬리 밟혀 합병문제 재연 192 인취성쇠기(50) 총독 야마나시( 山 梨 )의 양해, 아라이( 荒 井 ) 오마( 尾 間 )를 경계 195 인취성쇠기(51) 야마나시( 山 梨 )의 사임과 사이토( 齋 藤 )의 재임, 덴니치( 天 日 )와 아라이( 荒 井 ) 와병 198 인취성쇠기(52) 우즈타카( 堆 )파와 악수하며 합병 반대열 고조, 중역 개선을 앞두고 201 인취성쇠기(53) 우츠미( 內 海 )의 주식을 시오자키( 潮 崎 )가 인수, 극비리에 진행 205 인취성쇠기(54) 대혼란의 인취 정기총회, 천왕산( 天 王 山 )의 중역 개선 208 인취성쇠기(55) 합병파의 운동도 방향 전환, 법령에 대해 맹운동 211 인취성쇠기(56) 미구락부 폐지와 경성연( 京 城 延 )의 부활, 인취에는 대타격 214 인취성쇠기(57) 합병결의의 성립과 신시대 전개 217 (원문) 223 (자료1) 인천미두취인소의 정관 및 세칙 (1903년 3월) 395 (자료2) 조선취인소세령( 朝 鮮 取 引 所 稅 令, 1921년 4월) 414 (자료3) 조선취인소령( 朝 鮮 取 引 所 令, 1931년 5월) 418 색인 429 편역자 후기 441

21 인취성쇠기(仁取盛衰記) 1 仁取盛衰記 1 제물포가 인천으로 약진 채색되는 강화도사건 鳥栖忠安 인취1)가 생겨난 지 만 35년이 되었다. 사내라면 이제부터가 한참 일할 나이이지만, 인취는 이제 겨우 취인소령(取引所令)이 공포되어 제구실을 할 수 있는 의젓한 사내가 되었다. 겉으로는 취인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었음에도 근거할만한 법규가 없어, 떳떳하지 못한 것도 아닌데, 시장령(市場令)에 의한 연취인(延取 引)에서부터 취인소 유사의 청산취인(淸算取引)으로 업무범위를 함부로 잠식당해도 속울음을 삼길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2) 하지 만 이제부터는 가슴을 펴고 쌀과 관련해서는 조선 내 유일한 주 식조직의 취인소로서 활약하고자 한다. 따라서 원래대로라면 크 게 축하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사실은 수년 동안 현안이었던 경취와의 합병이 윤곽도 잡히지 않아 축하하려고 해도 축하할 수 없는 고뇌의 절정에 있어 곤란했다. 이 문제가 정리되지 않 는 이상 인취 또한 안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그렇 1) 인취(仁取)는 인천미두취인소(仁川米豆取引所)를 일컫는다. 1920년 8월 에 설립되는 경성주식현물취인시장(京城株式現物取引市場)은 경취(京 取)라 불렀다. 2) 취인(取引)은 일본어의 とりひき 로 거래라는 뜻이며, 따라서 취인소는 거래소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뒤에 많이 등장하는 각종 거래소 관련 용어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 혼돈을 막기 위해 여기서는 그 냥 취인으로 쓰고, 각주의 형태로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기로 한다.

22 2 미곡거래소 仁川米豆取引所의 흥망성쇠 다 치고, 취인소령이라는 호적법이 생겨 지금까지 사생아인지 무 엇인지 모르던 무적자(無籍者)가 취인소로서 정식대우를 받게 된 오늘, 과거 35년간에 걸친 포말 같은 자취를 돌이켜보는 것도 결코 의미 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1896년 5월 5일 개업 당시 자본금 3만원이라는 영세한 자본으로 시작하여 현재 300만원의 대회사가 되기까지 그 여정에는 변천해 가는 시대상을 담은 흥 미진진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이름 하여 인취성쇠기(仁取盛衰 記)라 한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인취 개설 전후 인천의 모습을 대 충이라도 이해해 둘 필요가 있다. 인천은 원래 제물포(濟物浦)라 불리는 쓸쓸한 어촌에 불과했 다. 제물포로부터 인천으로 인천의 번영사(繁榮史)는 거의 내지인(內地人)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좋을 만큼, 우리나라 (일본: 번역자)가 인천과 인연을 갖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부 터였다.3) 애초에 그 계기가 된 것은 이태왕 15년(1878년)4) 영종 도사건이라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일명 강화도사건이라고도 불 3) 이 인취성쇠기는 철저하게 일본인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다. 다소 거 북할 수 있으나 자료적 가치를 부각시키기 위해 그냥 내지인 을 일본 인 으로 바꾸지 않고 쓰기로 한다. 따라서 여기서 이야기하는 우리나라 는 일본을 가리킨다. 4) 실제로 강화도사건은 1875년 9월 20일에 발생했다. 조선 해안 지역의 측량을 핑계대고 있지만 사실은 운요호(雲揚號)에 의한 포함외교 시도 로 운요호사건(雲揚號事件)이라 불리기도 한다.

23 인취성쇠기(仁取盛衰記) 3 리는데, 당시 우리나라는 우라가(浦賀)에서 페리에게 당한 수법 을 따라 조선에 수교를 강요했다. 이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파 견된 우리 군함 운요호(雲揚號)가 강화도 근해를 측량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국 측이 포격을 가해왔다. 다른 나라의 영해를 불 문곡직하고 측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분개하기도 했겠지만, 당시의 조선은 대원군의 집정으로 배외사상이 넘쳐흐 르는 상황에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혈기왕성한 일본해군이었다. 함장 이노우에 요시카(井上良馨)는 이에 응전하여 결국 영종도를 함락시켰다. 당시 지나(支那)는 조선을 속방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강화도사건을 지원해 온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기세가 등등하여 당시의 물불가리지 않던 우리 일본의 외교에 걸려서는 그 대단한 지나도 초장부터 기세가 꺾여 결국 조선은 지나의 속 방이 아니라며 도망갈 궁리를 했다. 이때 일본은 전권대사로 구 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 부사에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를 임 명하여 한국 정부에 엄중하게 밀어붙인 결과, 그 다음해(1876년: 역자) 2월 16일에 화친조약이 성립되었다. 이것이 소위 일한수교 조약(日韓修交條約)이다.5) 이 조약에 의해 부산, 원산, 인천을 개항하여 일본과 한국은 서로 교역을 하게 되었고, 당시 외무대 승(外務大丞)이었던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가 제1대 공사로 부임해 왔다. 당시의 공사관은 성내(城內)에 두는 것이 허락되지 않아 서대문에 설치되었다. 5) 정확히는 1876년 2월 26일에 체결된 강화도조약을 의미한다. 강화도조 약 제1조에서 조선은 자주국으로서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고 규 정되어 있으나, 이 규정의 목적은 조선에 대한 청(淸)나라의 종주권을 배격함으로써 청나라의 간섭 없이 조선에 대한 침략을 자행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데 있었다.

24 4 미곡거래소 仁川米豆取引所의 흥망성쇠 仁取盛衰記 임오군란에 대한 회상 鳥栖忠安 몇 년 뒤인 1882년, 우연히 대사건이 발발했다. 이른바 임오군 란이다. 이전 민비에게 쫓겨나 실각한 대원군 이하응(李昰應)6)은 다시 민비를 비롯한 그 일족을 궁정에서 몰아내어 그 세력을 뒤 엎고 섭정으로 군림했다. 더구나 이 음모는 군정개혁에 의해 발 생한 불평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감행되었다. 호위(扈衛), 훈련(訓 練), 금위(禁衛), 여영(御営), 총융(總戎)의 오영(五営)을 폐하고, 새롭게 무위(武衛), 장위(壯衛)의 이영(二営)이 설치되었다. 의식 (衣食)을 얻지 못하게 된 구식병사는 룸펜이 되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들의 불평은 예기치 않게 고조되어 갔는데, 이 기회를 틈타 대원군이 교묘하게 선동하여 결국 폭동으로 변했고, 우리 거류민에 대한 학살과 일본공사관에 대한 습격이 이루어졌다. 당 시 우리 공사관은 서대문 밖에 있었다. 이 정황에 대해 호소이 하지메(細井肇) 씨는 여왕민비(女王閔妃) 7)에서 다음과 같이 쓰 고 있다. 지금은 물도 말라버리고 절반쯤은 매워져 물억새가 우거질 6) 원문에는 이응시(李應是)로 되어 있는데, 오기이다. 7) 細井肇, 女王閔妃, 月旦社, 1931년. 이 책은 2000년 6월에 페리칸사 (ぺりかん社)에서 메이지인에 의한 근대조선론 영인 총서(明治人による 近代朝鮮論影印叢書) 제9권으로 다시 발간되었다.

25 인취성쇠기(仁取盛衰記) 5 대로 우거졌으며, 부근에 향상회관(向上會館) 건물이 보인다. 서 대문 밖의 연못(蓮池), 그것은 노론지(老論池) 라고도 고서지(古 西池) 라고도 불렸는데, 고래(古來)로 보통 한발(旱魃)에 기우(祈 雨)하면 효험이 있다고 하여 알려진, 이 나라 역사에 유서 있는 명승 중 하나이다. 연못가에 청수관(淸水館), 그것이 1880년부터 1882년 임오변란까지 일장기를 나부끼며 게양했던 일본공사관이 었다. 그 무렵 관내의 정면을 서상헌(西爽軒)이라고 하였고, 공 사가 그곳에 살고 있었다. 서상헌 왼편에는 천연정(天然亭)이라 불리던 네 동(棟)짜리 건물이 있었다. 수행원으로서 서기관 곤도 마스키(近藤眞鋤), 어용계(御用係) 아사야마 겐조(淺山顯藏), 오오 바 에이세이(大庭永成), 이시하타 테이(石幡貞), 경부(警部) 오카 헤이이치(岡兵一), 서기생 가와카미 다테이치로(川上立一郞)를 비 롯하여 어학생 3명, 순사 15명 및 관원을 합쳐서 40여 명이 이 네 동에 주재했다. 폭도의 한 무리에 의해 일본 공사가 주재하는 청수관이 화재 에 휩싸였다. 하나부사 공사를 중심으로 공사관원은 위용당당 흰 칼을 앞세우며 똘똘 뭉쳐 결사의 외침과 함께 욱일기(旭日旗)를 휘날리며 폭도를 공격한다. 아이고! 폭도는 기가 꺾여 우왕좌왕 뿔뿔이 흩어졌다. 공사 일행은 때마침 내리는 폭우를 이용해 남 대문으로 향했지만, 성내(城內)가 굳게 닫혀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길을 양화진(楊花津)으로 틀어 한강을 넘어 인천으로 향했다. 일행이 수렁논(泥田)과 같은 진탕에 고생 하면서 인천에 도착한 것은 변란 다음날인 7월 24일, 해가 떨어 지려 할 무렵이었다. 인천에 도착한 일행은 부사(府使)를 찾아가

26 6 미곡거래소 仁川米豆取引所의 흥망성쇠 부사의 후의(厚意)로 술과 밥으로 공복을 채웠지만, 잠시 눈 붙 일 틈도 없이 다시 폭도의 공격을 받았다. 허를 찔려 악전고투 하다가 몇 명의 희생자를 낸 일행은 제물포로부터 작은 배를 이 용해 앞바다에서 한참 떨어진 곳까지 도망갔다. 향한 곳은 수일 전부터 남양만에 계류(繫留)하고 있던 영국의 측량선 플라잉피쉬 (Flying Fish)호였다. 하루 밤낮의 고투 뒤에 구사일생으로 망망대해로 피난한 일행 은 정말 감개무량했다. 월미도에서 출선(出船)한 것은 25일 밤중 이었다. 바다 위를 표류한지 열 몇 시간, 26일 오후 남양만 어귀 에서 마스트가 세 개 달린 플라잉피쉬호를 발견했을 때, 일행은 저도 모르게 모두 일어나 환호했다. 영국 배는 일행을 매우 정성스럽게 대했다. 일체의 사정을 청 취한 선장은 지체 없이 출항하여 일본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 이하를 나가사키(長崎)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때 이미 경성의 변 란은 진정되었고, 민비는 그 일족과 함께 쫓겨나 국왕부(國王父) 대원군에게 집정(執政)을 허용하고 말았다. 하나부사 공사는 7월 29일 저녁 나가사키에 상륙하자마자 육로로 출발하여 8월 1일에 는 바칸(馬關)8)으로 가서 명령을 기다렸다. 사건의 상보(詳報)가 도쿄(東京)에 전해졌을 때, 화전(和戰) 즉 전쟁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조야 상하가 비등했다. 당시의 외무경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는 군함 겐부마루(玄武丸)에 탑승하여 바칸으로 내려가 하나부사 공사에게 대책 안을 전하고, 우선 일본인 보호 8) 바칸(馬關)은 시모노세키(下關)의 옛 이름이다.

27 인취성쇠기( 仁 取 盛 衰 記 ) 7 를 위해 군함 공고( 金 剛 ), 닛신( 日 進 ), 후쇼( 扶 桑 ), 기요테루( 淸 輝 ) 의 네 척이 해군소장 니레 가게노리( 仁 禮 景 範 )의 지휘 하에 인천 으로 향했다. 이 군함에는 데라우치( 寺 內 ) 소좌가 이끄는 고쿠라 병( 小 倉 兵 ) 한 개 대대도 육군소장 다카시마 토모노스케( 高 島 鞆 之 助 )를 사령관으로 하여 같은 배에 타고 있었다. 仁 取 盛 衰 記 (3) 청일전쟁의 발단 鳥 栖 忠 安 공고( 金 剛 ) 이하 4척의 군함이 인천에 들어간 것은 1882년 8 월 12일이었다. 그러자 곧 그 배후에서 청국 수수( 水 師 =해군) 제 독 정급창( 丁 汲 昌 )이 이끄는 위원( 威 遠 ), 양무( 揚 武 ), 초용( 超 勇 ) 등 북양함대 수척이, 원세개( 袁 世 凱 ) 등의 지휘를 받는 육군 병 사 5천을 가득 싣고 인천에 입항했다. 그것은 민비파의 비약( 飛 躍 )에 의한 것이었는데, 일본 및 대원군에 대비하기 위해 대군을 파견하기로 한 결과였다. 이로써 대륙 지나와 섬나라 일본은 이 제 정말로 동양분국( 東 洋 紛 局 )의 무대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대치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 뒤 이 대립이 첨단화하여 결국 청일전 쟁에 이르게 되었는데, 실은 그 발단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이 리하여 하나부사 공사는 인천에 상륙, 우리 육해군의 보호를 받 으며 경성에 들어간 것이 8월 16일, 곧바로 한국 정부와 교섭에

28 8 미곡거래소 仁川米豆取引所의 흥망성쇠 돌입하였다. 대원군은 청국의 계략으로 천진(天津)으로 구송(拘 送)되어 그 뒤 수년간 유폐를 당하게 되는데, 그러한 불우한 처 지가 목전에 다가온 사실도 모르고 왜국(倭國)이 상대할만하다며 특유의 미소를 흘렸다. 그러나 기세등등한 일본 정부를 화나게 하는 것이 좋은 계책이 될 수 없음은 당연했다. 그래서 (일본의역자) 심기를 해치지 않는 정도로 그 요구의 대부분을 수용했기 때문에, 이 사건은 8월 30일에 일단 마무리되었다. 제물포조약은 이렇게 해서 성립했다. 이 조약 성립으로 인천에 우편국이 창설 되었다. 즉 1882년 12월에 우선 급한 대로 영사관 내에 두었다 가, 1896년에 독립하여 나카쵸(仲町)9) 일각으로 이전했다. 그 후 1884년에는 김옥균, 박영효 등 친일파 독립당과, 청국의 비호 하에 유안(愉安)을 꿈꾸는 사대당 사이의 갈등으로 마침내 갑신정변이 일어났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이홍장(李鴻章) 사이에 천진조약(天津條約)이 체결되는 국면 전개는 근세동양사 9) 현재의 관동(官洞) 일대이다. 관동은 인천광역시 중구에 있는 동으로, 인천항이 개항하기 이전에는 인천부 다소면 선창리(船倉里)에 속하였 고, 각국 거류지(居留地) 설정에 따라 조계(組界) 지구에 편입되었다. 1912년 거류지 구역이 폐지되고 부내면이 새로운 정명(町名)을 만들 때 중정(仲町)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중정1 3정목으로 개정되었다. 1946년 일본식 동명 변경에 따라 관동1 3가 동으로 개칭하였다. 1977년 중앙동에 통합되었고, 1998년 중앙동이 신포동에 통합되었다. 법정동인 이 동은 행정동인 신포동에서 관할한 다. 관동(官洞)이라는 지명은 일본인들이 개척한 지역으로 관청이 많은 데에서 유래되었다. 일본 거류지의 일부였으며, 일본 영사관, 인천부관 리청, 인천헌병분유소, 인천전기주식회사, 인천부청 등이 있었다. 지금 의 인천광역시청인 인천부청은 1985년 남동구 구월동으로 신축, 이전 하였다. 두산백과 인터넷판 doopidia.

29 인취성쇠기(仁取盛衰記) 9 의 가장 화려한 페이지이다. 더구나 인천은 동양의 형세에 중대 한 변화를 초래한 저기압의 중심지로서 그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다해 왔다. 돌이켜 보건대 1883년 1월 개항 당시(개항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의미인 듯: 역자)의 인천 정세는 어떠했던가. 인구는 겨우 내지인이 350명, 우편은 매달 12회 나가사키(長崎)에서 오 는 배편(便船)을 통해 전해지는 데 불과했던 빈약한 상태였다. 인천도, 개항을 전기(轉機)로 하여 거주자도 점차 증가했다. 1885년에는 동본원사(東本願寺) 지원(支院) 내, 지금의 은수(銀 水) 부근에 소학교가 창설되었다. 일본인의 상업회의소도 설치되 었다. 거주자가 증가함에 따라 소학교 학생도 늘어났다. 스님의 여가시간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게 되어 1890년에는 전임 교장 을 두었다. 이렇게 인천은 반도에 있어서 정책의 중심으로서 (일 본: 역자) 정부도 중시하였고 민간의 의욕도 상당하였다. (인천 은) 완전히 내지인의 알통을 미천 삼아 쑥쑥 팽창해 갔다. 이렇게 써 나가다 보니 취인소와는 꽤나 동떨어진 것이 되고 말았다. 한편 1896년에 인취가 생겨나기 이전의 미계(米界)는 어 떤 지위에 있었던가, 적어도 조선과 내지 사이의 미곡 관계는 어 떤 상태에 있었던가, 잠깐 살펴보도록 하자. 1888년의 조선은 엄 청난 흉작이었다. 그와 달리 일본은 대풍작으로 정기(定期)10)의 10) 여기서 정기(定期)는 정기취인(定期取引)을 의미한다. 정기취인이란,

30 10 미곡거래소 仁川米豆取引所의 흥망성쇠 최저치가 4원 71전을 시현(示現)하는 상태, 쌀의 홍수는 근년의 현상이 아니라 옛날부터 있었다. 그래서 거류민 사회의 미곡상 중에는 석당 3원 80전의 일본 하등 현미를 가져다 5원에 팔아 치움으로써 상당한 이득을 본 사람들도 있었다. 다음해인 1889년에는 전년의 대풍작과 달리 일본이 대흉작이 었다. 9월 11일에 불어 닥친 폭풍으로 벼농사(稻作)가 완전히 망 해 버린 탓에 5백만 석 감탈미(減脫米)의 홍수로 고심했다. 일본 은, 이번에는 공복을 걱정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1890년에 미 가는 폭등에 폭등을 거듭하여 정미(正米)11)가 6월에 들어 최고 11원 85전, 평균 11원 50전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의 최저치 4 원 71전과 비교할 때 일약 2배 이상 뛰어 오른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년 일본에서 쌀을 수입했던 인천이 이번에는 반대로 수출하는 주객전도의 형세를 보였다. 즉, 당시 수출된 인천 백미 (白米)는 석당 5원 45전이었는데, 이것이 실제로 조선미가 내지 에 수출된 최초의 일이었다. 이때 내지의 정기(定期)가 최고 9원 60전까지 올랐었지만, 수도(受渡)에 외국미의 대용을 허락함으로 일정한 겐게츠(限月) 또는 기일(期日)에 수도(受渡)하는 것을 약속한 매매거래이다. 경매매(競賣買) 방법으로 매매를 약정하고 수도기일 전 에는 전매(轉賣)나 되사기(買い戻し)를 통해 매매차익을 수수하여 결 제를 종료하는 거래(取引)을 지칭한다. 일반적으로 선물거래(先物取 引) 또는 청산거래(淸算取引) 이라 부르고 있다. 여기서는 정기취인 (定期取引)에서 형성된 미가(米價)를 의미한다. 겐게츠(限月)이란, 선 물거래에 있어서 매매약정을 최종적으로 결제해야 하는 달을 지칭하 여 기한(期限) 달(月) 의 약칭이다. 또한 기월(期月) 이라고도 한다. weblio 辭書. 11) 정미(正米)는 실제 현물로 거래의 대상이 되는 쌀을 의미한다.

31 인취성쇠기(仁取盛衰記) 11 써 시세는 결국 둔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1890년의 내지에 확실 한 풍작이 예상되면서 고가행진은 3, 4, 5월의 3개월로 끝났다. 즉 그해 내지의 정기(定期)가 고가행진을 했던 것은 전년(1899 년)의 흉작으로 현물거래에 소용될 정미(正米)가 결핍되어 있었 기 때문이었다. 1890년 전후 일본의 외미(外米) 수입고를 보면 1889에 2만 1,700만석에 불과했던 것이 1890년(교육칙어 환발의 해)에는 일약 193만 569석을 기록하였고, 그 다음해인 1891년에 는 다시 감소하여 70만 4,763석이 되었다. 1890년의 폭등은 우 리나라 국민생활에 쌀의 위협을 심각하게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널리 알려진 米が十錢すりやヤツコラサのサ唐米や臭いネ働かに や九円と書いてある 12)이라는 속요(俗謡)가 유행한 것도 1890년 그해였다. 12) 오오이타현(大分縣) 하사마마치(挾間町)에서 불렸던 자쿄우타(座興唄) 十錢節 을 옮긴 것 같다. 자쿄우타는 좌중의 흥을 돋우기 위한 노 래이다. 米が十錢すりゃヤッコラヤノヤ 唐米ゃ九錢 ナー千代さん 辛抱せにゃいかれんと書いてある サイナ トッチンチンリン トッチ ンチンリン 일본 민요의 가사를 그대로 옮기기 어렵지만, 대충 옮기 면 쌀이 10전(錢) 하면, 얼씨구, 외국에서 온 쌀은 9전, 치요 씨! 참 지 않으면 안 돼요 여기서 이야기하는 당미(唐米, とうぐみ)는 메이지(明治)나 다이쇼(大正)기에 아와모리(泡盛)의 원료미로서 널리 이용된 수입 외미(外米)를 말한다. 경질(硬質)의 인도종. 메이지, 다이 쇼기에 아와모리양조조사(泡盛醸造調査)에는 아와모리의 원료미는 당 미(唐米), 지나미(支那米) (1901년), 당산쇄백미(唐産砕白米) (1913 년), 당분미(唐粉米) ( 년)이라고 되어 있어 당시 지나미를 중심으로 한 외미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890년대의 조사에서 조선 혹은 지나미를 도구미, 즉 당미(唐米)라 했다는 설명도 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당미(唐米)는 수입외미(輸入外米)의 총 칭으로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weblio 辭書.

32 12 미곡거래소 仁 川 米 豆 取 引 所 의 흥망성쇠 仁 取 盛 衰 記 (4) 청일전쟁 직전 인천의 대두( 擡 頭 ) 鳥 栖 忠 安 1892년에는 이태왕 친정( 親 政 ) 하에 한국 정부는 폐제개혁( 幣 制 改 革 )을 단행하게 되어 전환국(조폐창)을 용산과 인천에 설치 하였고, 그 회변( 會 辨 =고문: 역자)에 오오미와 쵸베에( 大 三 輪 長 兵 衛 )씨가 취임, 주화기( 鑄 貨 機 ) 6대를 구입하여 화폐주조를 개시했 다. 이 전환국은 1905년 8월 메카다 다네타로( 目 賀 田 種 太 郞 ) 남 작이 재정고문으로 조선에 부임하여 신화주조를 일본 정부에 위 탁하면서 폐쇄되었다. 인천 전환국의 건물은 그 후 고등여학교 교사로 쓰였는데, 1927년에 헐린 뒤 후시미( 深 見 )의 주조창고가 되었다. 1893년 한국 정부는 갑자기 방곡령을 내어 미곡의 국외수출을 금지해 버렸다. 당시 미가는 현미 기준으로 5원 50전 내지는 6원 이었다. 이 방곡령은 다음해 1894년 3월 당시 일본공사 오오이시 마사미( 大 石 正 己 )가 엄담( 嚴 談 )으로 응한 결과 결국 한국 정부는 (방곡령을) 해제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당시의 청 국공사 원세개( 袁 世 凱 )의 암중비약( 暗 中 飛 躍 )이 있었다. 즉 흉작 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조선에 방곡령의 공포를 강요하였고, 반면 에 자국 쌀의 무관세수입( 無 關 稅 輸 入 )을 획책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3월경부터 청국 미곡상의 대활약에 힘입어 호남미( 湖 南 米 )의

33 인취성쇠기(仁取盛衰記) 13 대수입(大輸入)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수입 총량은 여섯 말(斗) 들이 약 10만 섬(俵)으로 추산되었다. 당시 방곡령은 지방 도처에 서 이루어진 것으로, 한국 관리들은 자신의 사정에 따라 마음대 로 방곡령을 내려서는 상인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반도를 무대로 하는 일본 대 청국의 관계는 시시 각각 험악한 정도를 더해갔고, 동학당의 난을 계기로 결국 1894 년에 전쟁에 돌입하였다. 청일전쟁 이전의 조선은 완전히 지나의 속국과 같은 지위에 있었고, 더구나 국내에서도 고관 사이에 그 에 기대려고 하는 사대주의자가 적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일본은 먼저 이토 히로부미로 하여금 근세 지나의 대걸물(大傑物)로 추 앙되는 이홍장(李鴻章)과 천진에서 절충하여 조선은 지나의 속방 이 아니라는 뜻을 인정하게 하였다. 하지만 지나 일류의 속임수 외교는 산초의 열매와 같은13) 일본의 신경을 건드릴 뿐이었다. 청일전쟁도 결국 이 속임수 외교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들어 올린 주먹이었다. 그 결과 일본은 조선의 지위를 확보하는 동시 에 지나는 조선에서 발을 빼게 되었다. 그 사이 인천은 반도에 있어서 군사외교는 물론, 일본의 경제적 발전의 토대로서 중요한 지점이 되어 있었다. 따라서 내지인 거류자도 점차 그 수가 늘 어나 1883년의 개항 당시 인구 350명, 75호에 불과했던 것이, 13) 산초(山椒)의 열매와 같다는 의미는 山椒は小粒でもぴりりとからい 에 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산초는 작은 알맹이라도 꽤 맵다 고 직 역되는데, 우리의 작은 고추가 맵다 라는 속담과 상통하는 뜻을 가지 고 있다. 여기서 일본을 산초의 열매와 같다고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 이라고 생각된다.

34 14 미곡거래소 仁 川 米 豆 取 引 所 의 흥망성쇠 1888년에는 134호에 1,171명이 되었고, 청일전쟁이 돌발한 1894 년에는 159호에 1,298명이었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상세( 商 勢 )도 점차 활발해져 갔다. 그 당시 유행의 중심은 완전히 인천이었다. 따라서 무역액도 증가하 여 1883년 개항 당시의 58만 5천원에서 1894년에는 502만 4천 원으로 약 10배의 팽창을 보였다. 그런데 인취가 생겨난 1896년의 인천을 1897년 조선신보사( 朝 鮮 新 報 社 )가 발행한 인천사정( 仁 川 事 情 ) 이라는 소책자에서 발 췌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상황이었다. 일본거류지 호수 176호, 인구 1,140명 거류지외 호수 595호, 인구 2,764명 즉 거류지 인구의 비율로 보면, 일본은 2할 8푼(28%), 지나가 5 푼 5리(5.5%), 조선 마을이 1할 3푼(13%), 기타 각국 거류지가 5 할 2푼(52%)의 상태였다. 무역 방면에서는 수입이 370만 9천원이 었고 수출이 191만 3천원이었다. 수출 화물 중에서 일본으로 수출 된 것이 154만 5천원, 지나로 23만원, 러시아로 1만 9천원이었다. 수입이 어떤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는지는 유감스럽게도 쓰여 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1893년의 수입이 일본상인 84만 5천원에 대 해 지나 상인이 158만 9천원이었음을 고려할 때, 청일전쟁을 계기

35 인취성쇠기(仁取盛衰記) 15 로 우리나라의 (조선에 있어서: 역자) 상업적 세력도, 이미 당시에 반도에 있어서 외교정치상의 세력이 지위를 전도(顚倒)하고 있었 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이 지나를 대신하고 있었음은 상상할 수 있다. 사실적 문제로서 일본상인은 청일전쟁 후 지나 상인의 구축 (驅逐)에 전력을 올리고 있었다. 인취의 출현 또한 이런 노력의 산물이었다. 仁取盛衰記 지나 상인 몰락과 인취의 탄생 鳥栖忠安 청일전쟁 후의 일본상인의 활약은 인천에서 지나 상인 세력을 급속도로 구축해 갔다. 한편, 청일전쟁을 중심으로 하여 1894, 95, 96년의 내지 미작은 어떤 상태였을까? 1894년은 4,181만 5,714석의 실수(實收)를 보였고, 일본군도 파죽지세로 진군하였으 며, 쌀도 대풍작이었다. 다음해인 1895년에는 3,992만 882석이었 고, 인취가 설립된 1896년에는 3,619만 9,771석으로 감소해 버렸 다. 즉 1896년은 병신(丙申)의 해에 해당했기 때문에14) 예전부터 14) 음양오행에 의하면, 10간(干)의 병(丙)은 陽의 火, 12지(支)의 신(申) 은 陽의 金 으로, 서로를 토멸(討滅)해 가는 음(陰)의 관계이다. 즉, 상극(相剋)의 관계로 불은 금속을 녹일 수 있다(火剋金). 따라서 옛부 터 병신(丙申)의 해가 되면 흉작이 나타난다고 전해진 듯하다.

36 16 미곡거래소 仁 川 米 豆 取 引 所 의 흥망성쇠 작황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말들이 전해져 왔는데, 정말 사실로 나타났다. 이러한 환경에서 인취 설립 계획이 당시 사에구사상점 ( 三 枝 商 店 ) 지점장이었던 가쿠 에이타로( 加 來 榮 太 郞 )와 모리나가 구미( 守 永 組 ) 지배인 나가이 후사키치( 永 井 房 吉 ) 두 사람의 제창 으로, 당시 인천상의( 仁 川 商 議 ) 회두로 다이이치은행( 第 一 銀 行 ) 지점장 니시와키 쵸타로( 西 脇 長 太 郞, 뒤에 본점 지배인으로 옮겨 간다) 및 부회두 미즈타 사다시치( 水 田 定 七 )의 찬동을 얻어 발기 인 14명과 함께 당시 대리영사 하기와라 모리이치( 萩 原 守 一 )의 양해 하에 추진되었다. 외무성이 이를 허가하게 된 것은 경제적 이유라기보다 오히려 지나 상인 세력의 구축이라는 외교적 의미 에서였다. 이렇게 해서 창립사무소를 모리나가구미( 守 永 組 )에 두 고 창립위원에 가쿠 에이타로, 나가이 후사키치, 마츠타니 세이 이치( 松 谷 淸 一 ), 다나카 사시치로( 田 中 佐 七 郞 ), 이케다 세이지( 池 田 誠 治 ), 야마시타 신타로( 山 下 新 太 郞 ), 후쿠다 토라타로( 福 田 虎 太 郞 )의 7명을 선출했다. 취인소 설립 출원의 요점을 들면, 취인 의 종류는 쌀( 米 )과 대두( 大 豆 )의 취인, 연취인( 延 取 引 ), 정기취인 ( 定 期 取 引 )의 세 종류, 자본금은 5만원, 1주 25원으로 2천주를 발행하기로 했다. 이러한 내용으로 1896년 인가신청서를 제출하 였다. 이 인가신청서에 첨부한 설립이유서는 다음과 같다. 주식회사 인천미두취인소 설립이유서 제1, 본 취인소의 설립을 요하는 사유는 다음과 같다. 1 인천항은 조선국 평안, 황해, 경기, 충청의 4도 및 전라도 일부에서 산출되는 미두의 집합지로, 당항을 통해 수출하

37 인취성쇠기( 仁 取 盛 衰 記 ) 17 는 물품의 종류가 상당히 많지만, 오직 미두 취인 여하만 이 당항의 영고( 榮 枯 )에 관계될 뿐만 아니라 일한무역의 성쇠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그 품질이 균일하지 못하 고 가격이 같지 않아 그 표준을 정하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 따라서 취인의 방애( 防 碍 )를 초래하는 일이 많다. 이 러한 폐해를 막고자 하는 것, 이것이 본 취인소의 설립을 요하는 첫 번째 사유이다. 2 미두의 품질 및 가격의 표준이 일정할 때는 제국 내지에 거주하는 사람들까지 그 품질 및 가격의 표준을 알게 되 고, 따라서 미두 수출에 지대한 편리를 주게 될 것이다. 이것이 본 취인소의 설립을 요하는 두 번째 사유이다. 3 몇 해 전, 당항 무역상조합에서 수출미의 개량을 도모하기 위해 검사원을 두었지만 결국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는 데, 지금에 와서 유감스럽다. 가격의 높고 낮음을 정해 일 반 생산자로 하여금 조악미( 粗 惡 米 )의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을 명지( 明 知 )시킴으로써 품질개량을 꾀하고자 한다. 이 것이 본 취인소의 설립을 요하는 세 번째 사유이다. 4 근래 백미( 白 米 )의 품질이 매우 조악한데, 특히 수분을 함 축한 것이 많아 이것이 부판( 腐 販 )을 초래한다. 이외에도 손실을 발생시키는 일이 많다. 만약 이 폐해를 교정하지 않게 되면 그 손실을 입는 자 장래 점점 많아질 것이기 때 문에, 본 취인소를 설립하여 그 폐해를 방지하고자 한다. 본 취인소의 설립을 요하는 네 번째 이유이다. 5 근래 오지( 奧 地 )까지 가서 행상( 行 商 )하며 미두의 매집을 행하는 자 매우 많다. 그런데 가격의 추세를 정확하게 알

38 18 미곡거래소 仁 川 米 豆 取 引 所 의 흥망성쇠 수 없어서 마음대로 구매하여 손실을 초래하는 자가 적지 않다. 그 때문에 본 취인소를 설립하여 가격의 추세를 알 게 하면 오지 행상자에게 상당한 편익을 주는 동시에, 이 를 장려하는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본 취인 소의 설립을 요하는 다섯 번째 사유이다. 6 당항에서 미두취인소를 설립하고 매매상 편익을 주게 되면, 각도의 미두가 당항에 집합하게 될 것이고, 당항의 상품 또한 각도로 산포( 散 布 )될 것이기 때문에, 당항의 집산( 集 散 )이 증가하게 될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바이다. 따 라서 일한 무역상 일층 진보를 볼 수 있다. 이것이 본 취 인소의 설립을 요하는 여섯 번째 사유이다. 제2, 매매 취인하게 될 미두 집산의 연혁 및 현황 당항에 집산하는 미두의 상권( 商 權 )은 1889년 이래 완전히 우리 나라 상인이 독점하게 되었다. 미두와 같은 것은, 처음에는 산출 액이 정말 근소했지만, 우리 제국에 수출하는 길이 열리게 된 다 음부터는 그 산출이 특히 증가하였다. 매년 풍흉에 따라 증감이 있기는 하나 이전 3년간의 미두 매매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893년 매매고> 단, 한인( 韓 人 ) 상호간의 매매고는 생략한다.(이하 같음) 쌀( 米 ) 6만 3,938석, 그 가격 32만 8,882원 대두( 大 豆 ) 5만 5,624석, 그 가격 19만 4원 <1894년 매매고> 쌀( 米 ) 16만 6,658석, 그 가격 100만 3,199원 대두( 大 豆 ) 6만 161석, 그 가격 27만 91원 <1895년 매매고>

39 인취성쇠기( 仁 取 盛 衰 記 ) 19 수출 백미 7만 5,613석, 그 가격 42만 4,900원 수출 현미 3만 4,588석, 그 가격 18만 2,346원 수출 대두 9만 3,114석, 그 가격 37만 5,699원 이외에 일단 당항에 모였다가 다시 부산이나 경성 기타 각지로 흩어지는 쌀( 米 )의 대략적인 양 현백미( 玄 白 米 ) 대략 18만석, 그 가격 대략 100만 6,200원 제3, 본 취인소의 미두 취인 중매인이 될 수 있는 상인의 대략 적 수는 미두상( 米 豆 商 ) 각 80명으로 한다. 仁 取 盛 衰 記 (6) 창업 당시의 난센스 鳥 栖 忠 安 1896년 3월 출원된 인취는 동년 4월에 들어 설립인가의 지령 을 접하고, 중매인 9명의 인가를 얻어 개업 준비에 착수했다. 그 런데 드디어 설립되는구나 하는 시점까지 도달했을 때 한 가지 난관에 봉착했다. 그 난관이라는 것이 이렇다. 최초의 계획에 의 하면 자본금이 5만원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발기인은 이 안을 따라 1주 25원으로 (2000주-역자) 모집을 시작했다. 그런데 응모 주는 약 3배에 달하는 성황을 이루었고, 2원만 지불하면 되는 증거금이 7, 8원이나 하는 엄청난 인기였다. 발기인 측은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불입과 함께 마침내 개업하려는 단계에 달했을

40 20 미곡거래소 仁川米豆取引所의 흥망성쇠 때, 칙령 제74호의 규정에 의해 반액 이상 불입하지 않으면 개 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개업 준비가 일시 중지되었 다. 이에 지금까지 에비스 얼굴을 하고 있던 관계자들은 순식간 에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했지만, 결국 일이 이렇게 된 상황에서 더 불입할 수도 없고 해서 자본 금을 3만원으로 감액하고 총 주수를 1,200주로 줄임으로써 반액 불입의 형식으로 변경하여 5월 5일에 개업했다. 창립 당시의 가옥은 일본거류지 제53번지(현재의 혼마치[本町] 2정목에 해당, 미즈타씨 소유지로 되어 있다)로 정하고, 회사의 정관이나 영업세칙은 회두인 니시와키 쵸타로(西脇長太郞)15)가 직접 붓을 들어 오오사카(大阪) 및 시모노세키(下關) 취인소를 모방하여 기안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인천미두취인소 초대 이 사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았다. 이사장 미즈타 사다시치(水田定七) 이 사 마츠타니 세이이치(松谷淸一), 나가이 후사키치(永井房吉), 미키 유이치(三木雄一), 다나카 사시치로(田中佐七郞) 감 사 가쿠 에이타로(加來榮太郞), 이케다 세이지(池田誠治) 심사역 마츠타니 세이이치, 나가이 후사키치, 미키 유이치, 다 나카 사시치로, 이케다 세이지, 시바타 마고베(柴田孫 兵衛), 구와노 료타로(桑野良太郞)16), 야마시타 신타로 15) 원문에는 西脇長次郞으로 되어 있으나 오기이다. 西脇長太郞로 바로잡 는다. 16) 원문에는 桑野長太郞으로 되어 있으나 오기이다. 桑野良太郞로 바로잡 는다.

41 인취성쇠기(仁取盛衰記) 21 (山下新太郞), 가와노 고시치로(河野小七郞), 하야시 이 치로지(林市郞治) 이상 모든 역원은 무보수였다. 그 후 개업 직전에 미즈타 사다 시치(水田定七)가 사임했기 때문에, 다나카 사시치로(田中佐七郞)17) 가 이사장이 되었다. 다나카의 이사장 취임은 얼굴마담격으로, 실 질적인 업무는 나가이 후사키치(永井房吉)가 이사장대리의 자격으 로, 구와노 료타로(桑野良太郞)가 전무이사가 되어 도맡아 처리했 다. 최초의 중매인은 스스키다 시키조(薄田式造), 와타나베 토모타 로(渡邊友太郞), 야스오카 도쿠헤이(安岡德平), 하야시 쵸타로(林 長太郞), 히사마 젠스케(久間善助), 기무라 다케오(木村健夫), 고모 리 토라키치(小森虎吉), 아라이 간지로(新居歡次郞), 나카가와 코 지로(中川好次郞)의 9명이었다. 시장대리인(市場代理人) 신고는 1 명이었지만, 대리인이 아니라도 매매할 수 있는 주먹구구의 방식 이었다. 더구나 이들 중매인들은 아무도 경매수화를 할 줄 몰라, 도대체 어떤 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중매인이 되었기에 그 무모함도 상상이 간다. 여러 가 지로 지혜를 강구한 끝에, 그 무렵 인천에 있던 나카츠(中津) 사 람으로 이토조에(糸園) 모(某)라는 자가 (경매수화를: 역자)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사람을 선생으로 삼아 개업 전에 입회(立 會)연습을 했다고 한다. 엉성한 아저씨들이 열심히 경매수화를 연 17) 원문에는 田中作七郞으로 되어 있으나 오기이다. 田中佐七郞로 바로잡 는다

42 22 미곡거래소 仁川米豆取引所의 흥망성쇠 습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면, 아내나 아이들에게 거들먹거리며 큰 소리치는 모습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개업 까지는 불충분하지만 경매수화를 흉내 낼 수 있게 되었다. 창업 당시의 장부(場帳)는, 지금과 같이 완비된 것이 아니라, 야 마토쵸(大和帳)라는 것으로 위탁미대장(委托米臺帳, 元帳에 해당)과 고객별 테아이쵸(客先手合帳, 仕譯帳=分介帳에 해당)의 두 가지가 있었는데, 테아이쵸(手合帳)는 남경부호(南京符丁)라는 일종의 독특 한 부호로 기장하는 것이라 매우 어려웠다. 아주 어려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보면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증거금18)은 100석에 대해 50원으로, 그 중 20원은 취인소로부터 보관증을 건네받았다. 수수료는 석당 3전(=100석에 대해 3원: 역자)이었는데, 히지마이 (日仕舞)는 100석당 1원 50전이므로 절반은 회사가 취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창업 당시의 중매인 신원보증금은 500원이었는데, 이와 는 별도로 증신원보증금(增身元保證金) 규정이 있어 다테마이(建 米)19)를 1천석 늘릴 때마다 300원의 증보증금(增保証金)을 필요로 했다. 이는 1906년 1월의 개정으로 폐지되기까지 10년간 계속된 18) 증거금이란, 계약 성립 및 그 이행을 보증하기 위해, 한편이 다른 한 편에게 제공하는 담보금을 의미한다. 주식신청증거금, 취인소에 관한 위탁증거금이나 매매증거금 등이 있다. weblio 辭書. 19) 다테마이(建米)는, 에도시대의 경우 장부상에서만 이루어지는 거래(帳 合い米の取引)로, 당일 중에 전매(轉賣)나 다시 사들이기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미곡취인에서 사든 팔든 동업자들 사이에 계약이 성 립한 것의 총칭이다. 가격이 하락할 것을 예상하여 매물을 내어 계약 이 성립하게 되면, 우리다테(賣建=賣玉)가 된다. 한편 가격이 상승할 것을 예상하여 취인소에서 사들임으로써 계약이 성립하면 가이다테 (買建=買玉)이라고 부른다.

43 인취성쇠기(仁取盛衰記) 23 제도였다. 그 당시의 다테마이의 단위는 50석이었다. 이러한 상태였기 때문에 창업 당시에는 여러 가지 난센스가 속 출했던 것 같다. 그 무렵 기장(記帳, 장부 기입)은, 반지(半紙)20) 를 겹쳐 쌓고, 그 네 귀퉁이에 붓으로 쓴 것이었는데, 이를 담당 하는 이의 급료가 50원이었다.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높은 봉급 이었다. 기장하는 일이 화려했던 직업이었던 만큼, 밤에는 홍등 녹주(紅燈綠酒)의 거리에 틀어박혀 헤어날 줄 몰랐으니, 돈이 아 무리 있어도 부족했다. 더구나 끝이 많이 닳아 뭉툭해진 붓으로 기장(記帳)하고 있었기 때문에 틀리는 일이 많았다. 잘못 적혀 있어도 경매수화를 하는 쪽이 초보자여서 어, 내가 틀렸나 라는 식으로 마치 여우에 홀린 것처럼 되는 일이 많았다. 이러한 허 점을 이용하여 기장(記帳) 선생이 한창 발호하여 유탕자금(遊蕩 資金)을 벌었던 것이다. 그 무렵 중매인 중에 나카하라 다이치로 (中原太一郞)라는 조금 멍청해 보이기는 해도 사람 좋은 통쾌한 남자가 있었다. 기장 선생 이 사람의 선량함에 주목하여 나쁜 수법을 써 놓고는, 나중에 아무도 몰래 그 사람에게 부탁하여 해 결했다. 나카하라는 특별히 나쁜 얼굴도 하지 않고 그래 그래 라며 모조리 도맡아 처리해 주었다고 한다. 요즈음 같이 각박한 세상과 비교하면 거짓말 같은 이야기이다. 몇 대째 이사장 때였던가, 시바타 겐페(柴田源兵衛)라는 남자 20) 주로 붓글씨를 연습하는 일본 종이를 가리킨다.

44 24 미곡거래소 仁川米豆取引所의 흥망성쇠 가 있었다. 이 남자 형세가 불리해지면 단상에서 뛰어 내려서는 마치 토끼가 도망가듯 민첩하게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려 이 사장이 직접 (경매)수화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사장이 직접 (경매)수화를 한 것에 대해 인취의 경우만을 두고 비웃을 수 없 다. 1893년에 개정될 때까지 내지에서도 자주 일어났던 일이기 때문에. 仁取盛衰記 시장의 분쟁으로 해산명령 鳥栖忠安 초보자들이 한 데 모여, 밤중에 손을 더듬어 물건을 찾듯, 미 덥지 못한 취인을 계속한 것은 아주 잠시 동안에 불과했다. 조 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중매인들도 요령을 터득해 갔다. 그리고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거래(相場)의 맛을 알게 되면서 야심도 고 개를 들었다. 1, 2년 지나자 이번에는 오기(意地)나 과욕과 같은, 투기꾼(相場師)이면 으레 따르는 기분이 인취에도 스며들었다. 그 영향으로 1898년 인취에서는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해합(解 合)21)이 이루어졌다. 즉, 1898년 햅쌀이 나올 무렵인 단경기(端 21) 거래(取引)에서 시세가 격변했을 때, 사는 쪽과 파는 쪽이 협의하여 일정한 가격을 정해 차금결제(差金決濟)를 함으로써 매매계약를 푸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천재지변이나 큰손들에 의한 매매전의 격화

45 인취성쇠기(仁取盛衰記) 25 境期)를 중심으로 점차 (결제를 동반하지 않는 거래의: 역자) 계 약고(取組高)가 격증한 결과, 사자 쪽(買主)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서 결국 총해합(總解合)을 하게 되었다. 이때 사자 쪽(買主)의 대장은 이오이 쵸(五百井長)와 요시카와 사타로 (吉川佐太郞) 두 명으로, 10월한(十月限)22)으로 매점(買占)했지만, 결과적으로 보기 좋게 실패했던 것이다. 중심인물인 요시카와 사 타로(吉川佐太郞)는 대담한 투기거래를 벌일 만큼 패기 넘치는 남자로, 월미도(月尾島)를 당시 한국정부로부터 500원에 불하받 아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조그만 섬에 별천지를 만들고 왕처 럼 생활한다는 통쾌한 계획을 세워 활발하게 암중비약했던 일도 있었다. 총해합(總解合)은 사자 쪽(買方)이 모두 무릎을 꿇으면서 불완 전하게나마 수습이 되었지만, 그 뒤에 일어난 일들의 결과가 아 주 좋지 않았다. 다시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대패(大敗)한 요시 카와 사타로(吉川佐太郞)는 분풀이로 밤에 몰래 영사관의 뒷문을 두드리고는 취인소해독론(取引所解毒論)을 뛰어난 언변을 통해 주 장했다. 당시 영사는 이시이 기쿠지로(石井菊次郞)였다.23) 지금이 등으로 인해 시장 수습이 어려워졌을 때, 취인소나 당국에 의해 이루 어지는 비상조치를 의미한다. 포지션(position)의 일부 또는 전부에 대해 일정한 조건을 정해 강제적으로 결제하게 한다. 거래의 룰을 정 해, 투자가를 평등하게 경쟁시킴으로써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취인소 의 거래인데 도케아이(解合)는 시장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는 초법규적 조치에 해당한다. 따라서 쉽게 발령되지는 않는다. 여기서 번역할 때는 해합(解合) 라 쓰기로 한다. 22) 시월한(十月限)은 :10월에 결제와 현물의 수도(受渡)를 완료하는 거래 를 일컫는다.

46 26 미곡거래소 仁川米豆取引所의 흥망성쇠 야 명실 공히 우리 외교계의 대선배로 추앙받는 그이지만, 당시 취인소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기능을 가진 것인지 외교통인 그 로서는 일체 알지 못했다. 요시카와 사타로(吉川佐太郞)가 투기 거래(相場)에서 진 원한을 세치 혀를 놀리며 (앙갚음 하고자 했 는데, 이시이는 요시카와의: 역자) 유창한 변설에 완전히 말려들 어 취인소는 백해(百害) 있을지언정 일리(一利) 없다 고 결정해 버렸다. 태풍이 지난간 뒤의 해합(解合) 성립으로 한숨 돌린 그 해(1898년) 10월 7일, 인취로서는 청천벽력이라 할 만한 해산명 령이 내렸다.24) (인취) 관계자들로서는 마치 아닌 밤중의 홍두께 격으로 멍하고 있는 사이 갑자기 뒤에서 뒤통수를 딱 하고 가격당한 것처럼 놀랐다. 당시 이사장인 가쿠 에이타로(加來榮太 郞)가 (일본 내지로 일시: 역자) 귀국(歸朝) 중이었기 때문에, 시 바타(柴田) 이사가 이사장대리를 맡고 있었는데, 이사들을 비롯 하여 중매인들은 해산명령을 접하고 멍한 상태로 어쩔 줄 몰랐 다. 그때까지는 그래도 괜찮았을지 모른다. 직접적인 관계자들에 이어 인천시민의 공황상태가 극에 달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23) 이시이 기쿠지로(石井菊次郞, )는 외교관이자 정치가 로, 1912년에 프랑스대사, 1915년 10월 성립된 제2차 오오쿠마(大隈 重信) 내각에서 외무대신에 임명되었다. 1917년에는 특명전권대사로 미국에 파견되어 중국문제에 관한 미일간의 합의 랜싱-이시이협정 (The Lansing-Ishii Exchange of Notes, 1917) 을 체결하였다. 1920년에는 프랑스대사에 재임되었고, 동시에 국제연맹 설립 당시에 일본대표를 지냈다. 1929년에는 추밀고민관이 되었다. 이시이가 인천 일등영사로 부임한 것은 1896년 10월 8일이었고, 1898년 11월까지 재임했다. ja.wikipedia.org/wiki/石井菊次郞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참조. 24) 韓國近代史資e集成 6권 한일경제관계1, 四. 米豆取引所再設方元株 式會社仁川米豆取引所株主惣代ヨリ出願ノ件 明治三十二年五月, (1) 仁 川米豆取引所解散ノ件, 1898년 10월 20일.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참조.

47 인취성쇠기(仁取盛衰記) 27 인취의 설립에 대해 일본 공사는 당초부터 반대였다.25) 그럼 에도 불구하고 인취의 설립이 인가된 것은 당시의 소장(少壯) 외 교관 하기와라(萩原) 영사대리의 전단(專斷) 때문이었다.26) 이러 한 내부(內部) 경위로 생겨난 인취였기 때문에, 그 후에도 공사 관에서는 눈에 불을 켜고 폐지시킬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인취 측이 순조롭게 운영해 오다가 도중에 위와 같은 총해합(總解合)에 직면하게 된 것이었다. 공사관에서는 요 시카와 사타로(吉川佐太郞)의 선동도 있고 해서, 이런 시장의 분 란을 기화로 기다리고 있었다 는 듯이 영사 이시이 기쿠지로 (石井菊次郞)로 하여금 해산명령을 내리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맛들인 사람에게 있어서 투기거래는 아편중독과 같은 것 으로 쉽게 그만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막 재미 붙여 (투 기심이) 분출하고 있던 인취로서는 그만두려고 해도 그만둘 수 없는 일이었다. 솥이 끓는 듯한 소란 중에 인취 존속을 위한 운 동이 전개되었고, 먼저 존립애원서(存立哀願書)라는 형태로 그해 25) 원문에는 일본 영사로 되어 있으나, 문맥상 일본 공사가 맞는 듯하다. 일본 공사(관)은 반대했었고, 당시 인천 영사대리였던 하기와라가 전 단으로 인취 설립의 인가를 내 준 것이다. 따라서 분쟁이 발생하자 공 사관에서 당시 인천 영사인 이시이에게 해산명령을 내리도록 한 것으 로 이해할 수 있겠다. 26) 하기와라 모리이치(萩原守一, )는 1895년에 제국대학 을 졸업하고 외무성에 들어가 1895년 11월 13일에 일본 인천영사대 리로 부임했다. 1896년 10월 17일까지 인천에 근무한 하기와라는 1897년에 독일 공사관에 근무했고, 그 후 벨기에, 한국, 미국의 공사 관 서기관을 역임했다. 러일전쟁 후인 1906년에는 봉천(奉天, 현재의 瀋陽) 총영사로 부임했고, 뒤에 외무성 통상국장을 지냈다. 國民的對 韓策 (1896년 12월)을 남겼다. weblio 辭書 참조.

48 28 미곡거래소 仁 川 米 豆 取 引 所 의 흥망성쇠 10월 10일자로 이시이 기쿠지로( 石 井 菊 次 郞 )에게 제출되었다. 주식회사 인천미두취인소 존립애원서 당 미두취인소는 설립이유서에 상세하게 기록한 대로, 메이지 29년(1896년) 4월 중 설립 인가를 얻은 이래, 영업년수( 營 業 年 數 ) 아직 연한( 年 限, 최초 정한 영업기간: 역자)의 3분 1에 달하 지 못했지만, 제반 설비도 점차 경험을 쌓고 업무도 겨우 착수하 여 앞길에 조금씩 호황을 보이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번 달(10월: 역자) 7일자로 갑자기 해산명령을 접하고, 역원과 주주는 말할 것도 없고, 중매인들에 이르기까지 실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곧바로 역원회 및 임시주주총회를 열 고, 중매인들도 열석하게 하여 오로지 그 대책마련을 놓고 여러 가지로 협의했습니다. 회의 결과에 의하면, 일반의 희망은 부디 관대한 법적 조치가 이루어지기를 열망하고 있어 다음과 같이 애원( 哀 願 )하는 사정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애당초 취인소는 창업 이래 여러 곤란을 극복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고, 일한인( 日 韓 人 )의 취인( 取 引 )도 조금씩 번성을 향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날 한인( 韓 人 )의 취인은 일본인의 거의 세 배( 三 倍 )에 달하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이와 직간접적 인 관계를 갖는 자도 적지 않은데, 당 취인소에서도 종래의 관계 상 이번의 해산명령을 접하고서는 주주의 곤란은 물론 십여 명 의 소속 중매인들도 벌써 앞으로의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 습니다. 특히 한인 고객과의 관계상 여러 가지 말씀드릴 수 없 는 곤란한 사정도 있습니다.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참상에 이 르게 된 사정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으니, 부디 계속해서 영

49 인취성쇠기( 仁 取 盛 衰 記 ) 29 업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취인소의 제 규칙 및 영업상 불비한 점이 있을 시에는 명령을 존봉( 遵 奉 )하여 적절치 못한 부분이 없도록 하겠으니, 부디 배려하시어 특별한 법적 조치로 계속 영업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려주시기 바랍니 다. 주주 총대 및 중매인 총대가 각자 연서하여 이와 같이 애원 합니다. 이 수소애원( 愁 訴 哀 願 )한 탄원서는 주주 총대 나가토미 이치노 스케( 長 富 一 之 祐 ), 시바타 마고베( 柴 田 孫 兵 衛 ), 가쿠 에이타로( 加 來 榮 太 郞 ), 다나카 사시치로( 田 中 佐 七 郞 ), 히구치 헤이고( 樋 口 平 吾 ), 노비타 가메타로( 延 田 龜 太 郞 ), 고오리 긴자부로( 郡 金 三 郞 ), 이상 7명 이외에 중매인 총대 아오야나기 소이치로( 靑 柳 壯 一 郞 ), 나카하라 다이치로( 中 原 太 一 郞 ), 츠나기 센키치( 綱 木 千 吉 ), 이구 치 사다시치( 井 口 定 七 )의 연명으로 제출되었다. 그러나 이시이 기쿠지로( 石 井 菊 次 郞 )는 고집스럽게 응하지 않고, 탄원 내용이 터무니없어 인취 존속은 결코 허락할 수 없다 는 차가운 인사 뿐이었다.

50 30 미곡거래소 仁川米豆取引所의 흥망성쇠 仁取盛衰記 시데하라(幣原)의 부임과 인취 부흥 운동 鳥栖忠安 광기에 휩싸인 인천 거류민이 사정하기도 했고, 울고불고 애원 하기도 했으며, 방법을 바꾸어 설득해 보았지만 이렇다 할 반응 이 없었다. 이시이(石井) 씨는 여전히 냉랭하게 대답할 뿐, 좀처 럼 해산의 이유조차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결국 운동은 지구전 이 되고 말았지만, 취인소로서는 해산명령 직전 잔무정리위원을 선정해야 했기 때문에, 가쿠 에이타로(加來榮太郞), 다나카 사시 치로(田中佐七郞), 이케다 세이지(池田誠治), 히구치 헤이고(樋口 平吾), 시바타 마고베(柴田孫兵衛), 나가토미 이치노스케(長富一 之祐)27) 등 6명을 선정했다. 이 6명은 명의는 정리위원이었지만 실제로는 존속운동의 중심인물이었다. 머지않아 이시이 기쿠지로 (石井菊次郞)는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그의 후임으로 외무대신으 로 현재 유명한 시데하라 기주로(幣原喜重郞)가 영사관보로 외교 관의 첫 무대를 밟기 위해 영사대리에 임명되었다.28) 이 시데하 27) 원문에는 永 一之祐라고 되어 있으나 長 一之祐의 오기이다. 28) 시데하라 기쥬로(幣原喜重郞, )는 외교관으로 유명하다. 1915년 외무차관이 되어 워싱턴회의에서 전권위임으로 임했다 년 가토 고메이(加藤高明) 내각에서 외무대신에 임명되었고, 이후 4회 에 걸쳐 외무대신을 지냈다. 1920년대 군부의 군확자주노선(軍擴自主 路線)인 다나카외교(田中外交) 아 대립한 국제협조노선 시데하라외교 로 유명하다. 시데하라가 인천 일본영사대리로 부임한 것은 1898년 11월 14일로 1899년 5월 11일까지 재임했다. ja.wikipedia.org/wiki/ 幣原喜重郞와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참조.

51 인취성쇠기(仁取盛衰記) 31 라는 지금도 의회의 답변으로 체면을 구기거나 국민의 일부에게 는 그 연약외교로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젊은 시절의 그도 그렇게 태도가 분명한 사람은 아니었고, 인천에서는 이렇다 할 만큼 눈에 띄는 업적을 남기고 있지 않다. 그가 만약 미츠비 시(三菱) 가문의 부인을 만나지 못했더라면29) 외무대신은 고사하 고 대사도 겨우 될까 말까 했을 것이라는 것은 그의 인천시대를 잘 알고 있는 노인의 말이다. 시데하라 기주로(幣原喜重郞)가 인천에 부임해 온 이후 인취 부흥 운동은 점점 맹렬해 지고, 관계자는 소위 여론의 환기나 진 정을 통해 외무당국을 움직이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계속해 갔 다. 1898년 11월 2일, 나가토미 이치노스케(長富一之祐)30) 이하 17명은 연서로 다음과 같은 건의서를 당시의 상업회의소 회두 니시와키 쵸타로(西脇長太郞)에게 제출했다. 건의(建議) 주식회사 인천미두취인소는 지난 1896년 4월 중에 당항(當港) 재류시민 대부분의 일치 찬성 하에 다수 주주를 얻어 당국으 29) 시데하라의 부인 마사코(雅子)는 미츠비시 재벌의 창업자 이와사키 야 타로(岩崎彌太郞)의 4녀였다. 야타로의 장녀인 슌지(春路)는 가토 고메 이의 부인이었고, 차녀 이소지(磯路)는 기우치 쥬시로(木內重四郞)의 부인이다. 따라서 이 셋은 동서지간이다. 한편 시데하라의 형 시데하라 다이라(幣原垣, )는 조선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 1900 년 12월에 관립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했었고, 1904년 1월 체결된 한일 의정서에 입각한 고문정치의 일환으로 8월 학부참여관에 임명되기도 했다. ja.wikipedia.org/wiki/幣原喜重郞와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참조. 30) 원문에는 長 一之裕라고 되어 있으나 長 一之祐의 오기이다.

52 32 미곡거래소 仁 川 米 豆 取 引 所 의 흥망성쇠 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아 창업했다. 창업된 지 또한 얼마 되지 않은 오늘날 어떠한 이유에서인가 돌연 해산명령을 받게 되었 고, 그 때문에 당항 거류민 중 다수의 주주 및 중매인 등의 곤란이 여간 아니며 그 관계 되는 바 무엇보다 넓어 보인다. 또한 앞의 취인소 존속 건은 일한무역상 현재와 장래 모두 좋 지 않은 관계도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실로 본 문제 와 같은 것은 당항 상업계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사건이며 수 수방관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귀소( 貴 所 )에서 신속하게 임시회( 臨 時 會 )를 열어 앞의 이해득실을 심의한 후 의견을 건의하거나 혹은 관계 상민( 商 民 )에게 교시해 주셨으면 하여 이에 건의합니다. 이 건의에 따라 개최된 상업회의소의 임시총회에 영사대리 시 데하라 기주로( 幣 原 喜 重 郞 )도 출석하여 취인소폐해무용론( 取 引 所 弊 害 無 用 論 )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결국 대다수가 취인소의 존재 를 인정하여 다음과 같은 건의서를 제출했다. 애초에 취인소를 공설( 公 設 )한 중요한 이유는 물가의 표준을 명확히 함으로써 화물의 집산을 편하게 하는 데 있다. 따라서 상업이 발달한 장소 치고 이것이 설치되지 않은 곳이 없고, 우리 정부가 취인소법을 발포( 發 布 )하여 매매취인이 번성한 지 구( 地 區 ) 내 상인에게 정부 면허를 주어 일종( 一 種 ) 혹은 수종 ( 數 種 )의 물건( 物 件 )을 다루는 취인소를 설립하게 한 것 역시 이러한 취지에 다름 아니었다고 믿는다. 돌이켜 보면 이 인천 항의 상업은 개항 이래 해마다 번성을 더하고, 특히 1894년의

53 인취성쇠기( 仁 取 盛 衰 記 ) 33 전역( 戰 役, 청일전쟁) 이후 갑자기 현저한 발달과 진보를 이루 기에 이르렀다. 당시 재류 본방( 本 邦 ) 상인은 여기에 취인소를 설립할 필요를 느끼고, 1896년 4월 중에 인천미두취인소의 설 립인가를 신청하였다. 당시의 영사는 해당 신청을 받아들여 그 설립이 인가되었다. 이후 계속해서 영업을 해 왔는데 올해 10월 7일에 돌연 해산 엄령( 嚴 令 )을 접했다. 그러나 해산의 이 유에 대해서는 아직 들을 수 없었지만, 본 회의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미두취인소의 존재는 당항에 있어서 오히려 그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그 이유를 개진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거슬러 올라가 인천미두취인소 설립 당시의 경황을 생각 하면, 그 매매에 종사하는 자는, 일부의 일본인에 그치고 따라 서 그 매매취인고도 매우 근소하여 해당 취인소의 수지가 맞 을 것인지 아닌지조차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뒤에 한국 상인 으로 이 취인에 종사하는 자가 점차 증가하고, 특히 올해 3월 이후 한국 상인의 취인고가 현저하게 증가했다. 경성 상민( 商 民 )은 말할 것도 없고 각 지방에 있는 한상( 韓 商 ) 또한 이 취 인소에서 취인하기에 이르러 결국에는 그 취인고 10 중의 7푼 ( 分 )(70%: 역자)은 한상( 韓 商 )이 점하기에 이른 것도 미두취인 소의 실황( 實 況 )이다. 나아가 이 추세는 점점 진보하여 미두 취인은 한상을 고객으로 하여 수만의 이익 즉 매매수수료를 취하게 됨은 필연이어서 해당 취인소가 본방( 本 邦 )에 있어서 제2신( 第 二 信 )이 전하는 취인소의 번영을 보게 됨은 필지( 必 至 )의 추세라고 인정해 틀림이 없다, 이렇게 예언하는 것도 실

54 34 미곡거래소 仁 川 米 豆 取 引 所 의 흥망성쇠 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고 믿는다. 생각하건대 당초 당항에서 최다수를 점하는 본방 상인이 해당 취인소를 설립한 목적은 이것을 통해 한상( 韓 商 ) 취인의 편의를 제공하고자 함에 있고, 조금도 소수 일본 상인 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당초의 목적이 점차 달성되 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해산 명령을 접했다. 이것이 주주인 자의 손실은 도외시하더라도 당항에 있어서 일대( 一 大 ) 이원 ( 利 源 )을 매설하게 되는 결과로 유감을 금하기 어렵다. 이에 간절히 귀하의 세찰( 細 察 )을 청하고자 함이 첫째 이유이다. 仁 取 盛 衰 記 (9) 부흥 운동의 건의서 제출 鳥 栖 忠 安 둘째, 무릇 당항의 상업을 발달시키고자 하면 화물의 집산고 ( 集 散 高 )를 늘리는 궁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미두 집산의 소 장( 消 長 )과 당항의 상업발달과 많은 관계가 있음을 실례를 통 해 증명하면 다음과 같다. 당국( 當 國 )에 있어서 미두 무역은 작년 부작( 不 作 )의 여향( 餘 響 )으로 전년보다 부진한 상황에 빠 졌고, 장소에 따라서는 양식의 부족을 호소하는 자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항에 있어서 흡집력( 吸 集 力 )은 용케도 각 지로부터 쌀이 모이는 것( 廻 米 ) 31) 을 촉진했다. 창고의 재고미

55 인취성쇠기(仁取盛衰記) 35 (在米)가 항상 윤택할 수 있었던 것은 미두취인소의 존재에 힘 입은 바 크다. 또한 대저 물가에 고저 있음은 상계(商界)에는 항상 있는 일이고, 때때로 손익이 발생함은 상업가(商業家)를 자처하는 자가 각오해야 하는 바이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 고 저의 추세를 살펴서 능숙하게 손실을 피하는 것이야 말로 상 업가의 비결(秘訣)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평소 가장 투기를 혐기(嫌忌)하는 상실자(商實者)라 하더라도 어떤 경우, 즉 다수 의 미곡매매를 약정하게 되는 경우에는 몸소 미곡취인소의 정 기매매법을 이용하게 된다. 이 많은 양의 취인에 수반되는 위 험과 손실을 예방하기 위한다고 하여, 그 실례를 들면, 실로 열과 백을 헤아려도 부족할 것이다. 이제 이런 점에서 간찰(看 察)하면, 당항에 미두취인소가 존재하는 것은 당업자(當業者) 에게 있어 가장 편의(便宜)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당업자가 지방의 생산지로 가서 미두(米豆)를 매입하는 데 종 사하게 될 경우, 부당한 가격 폭락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 실을 예방하기 위해 미리 취인소의 정기(定期)에 팔고, 혹은 가격 고저의 추세를 살펴서 매입할 필요를 느낄 경우에 미리 취인소의 정기(定期)에 사서 이익을 거두게 되는데, 이와 같은 편의는 취인소가 있고 나서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편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취인소의 가장 편의한 점은 즉 취인소의 폐 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인정하는 것에 있다. 그렇지만 원래 상업이라는 것은 장래에 수요공급의 관계를 예찰(豫察)하고, 31) 회미(廻米)란, 에도시대, 막부나 여러 번(藩)들이 연공미(年貢米)를 주 로 에도(江戶)나 오오사카(大阪)으로 회조(回漕)하는 것, 즉 선박으로 화물이나 여객을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또는 그 대상이 된 연공미 (쌀) 자체를 지칭기도 한다. weblio 辭書.

56 36 미곡거래소 仁川米豆取引所의 흥망성쇠 그에 따라 능숙하게 매매하는 것에 묘미가 있는 것이다. 따라 서 취인소는 그 기관으로서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일폐(一弊) 가 있다고 하여 완전히 이것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오히려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게 된다. 두말할 필요 없이 그 폐해라는 것을 예방하고, 그것을 교정하는 데 반드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니, 이 또한 회의소가 취인소 존재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까닭으로 역시 귀하의 세찰(細察)을 청하고자 하는 두 번째 이유이다. 셋째, 미두취인소가 당항에 설립된 이래, 당항 산미(産米)의 질이 현저하게 개량된 사실은 이 또한 특필할 만한 사실이다. 무릇 미질(米質)의 개량은 종래부터 점차 행해져야 했음에도 미두취인소의 창설 이후에야 비로소 현저한 개량32)이 이루어 졌고, 소위 기미(氣米) 등의 조악미가 거의 시장에 나타나지 않게 됨은 이 또한 완전히 미두취인소에서 표준미를 마련하여 엄하게 조악미의 대용을 배척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인이 조악미를 인천에 수송하는 것이 불리하고 부득책(不得策)이라 는 사실을 느끼게 했고, 그 결과 미질에 현저한 개량이 이루 어지게 된 것으로 이 또한 미두취인소가 무역시장에 끼친 현 저한 이익인 것이다. 이로써 생각건대 미두취인소가 존재하여 종래의 방침대로 진행하게 되면 미질의 개량은 머지않아 우리 희망대로 이루어지고, 무역상 지대한 이익을 낳게 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귀하의 세찰 32) 원문에는 수량(收良) 이라고 되어 있으나 문맥상 개량 의 오기인 듯 하다.

57 인취성쇠기( 仁 取 盛 衰 記 ) 37 을 청하는 세 번째이다. 넷째, 가만히 살피건대 취인소의 존재는 재류 본방인의 근검심 ( 勤 儉 心 )을 빼앗고 무모한 투기심을 장려하여 일한무역 전체에 불리유해( 不 利 有 害 )의 영향을 낳게 될 우려가 있다는 설이 없 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취인소의 취인은 원래 투기적 성질 을 갖기 때문에 함부로 자신의 자력( 資 力 )을 넘어 무모한 투기 적 매매를 행하는 자 왕왕 없지 않지만, 이는 아마도 이런 취 인소의 이( 利 )에 수반되는 폐해로 단지 그 폐해만을 착목하여 취인소의 이해( 利 害 )를 논하면 그 결론은 일언지하에 부정하게 될 것이지만, 이해( 利 害 )가 서로 수반되는 것이 사물의 상태 ( 常 態 )이기 때문에 천하에 절대적인 이( 利 ) 없으면 절대적인 해( 害 ) 또한 없다. 취인소의 이해를 논하는 자는 부디 그 폐라 고 생각되는 바를 세찰심고( 細 察 深 考 )하는 동시에 그 이( 利 )가 있는 바를 숙시심구( 熟 視 審 究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본 회의소가 조사는 바에 따르면, 취인소의 존재에는 전술한 바와 같은 이익이 있고, 그 폐해에 대해서는 스스로 방어의 길이 없지 않다. 즉 취인소의 취인법에 충분한 개량을 가하여 당사 자로 하여금 엄밀하게 무모한 투기적 매매를 방지하게 하는 방침을 찾게 하면 결코 그 폐를 극복하지 못할 리 없다. 그렇 지만, 지금 가령 한 발 양보하여, 상술한 바와 같은 폐해를 쉽 게 방어할 수 없다고 하면, 이때 가장 귀하의 숙려( 熟 廬 )를 청 하고자 하는 것은 공적인 취인소의 취인을 금지하는 것이 과 연 일반의 투기를 절멸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에 있다. 좀 더 적실( 適 實 )하게 말하면 공적인 취인소 영업을 금지한 결

58 38 미곡거래소 仁川米豆取引所의 흥망성쇠 과는 공교롭게도 음밀(陰密)한 사이에 일종의 도박을 행하게 하는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게 되지 않을까 한다. 본 회의 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오히려 우려할 만한 경향이 없지 않 은 듯하다. 즉 전보(電報) 편(便)이 있어 앉아서 멀리 오오사 카의 미곡취인소로 승패를 시도하기 위해 순고(純固)한 공미 (空米)33) 매매에 탐닉하게 되는 폐해를 낳게 되고, 이 또한 음 밀(陰密)하게 이루어져 그 폐해는 쉽게 방어할 수 없다. 비단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천미두취인소가 해산하게 되면 1895년 이후 근절되어 없어졌던 통화를 대상으로 한 일종의 투기적 매매도 행해지게 될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되면 인천미두취인 소의 해산은 일반의 투기심을 부채질하는 음밀(陰密)한 취인으 로 향하게 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 다. 그리고 공설(公設)의 장소에서 행하는 바는 이러한 취체를 엄히 할 수 있고, 따라서 그 폐해도 적게 하여 방어할 수 있 지만, 음밀한 장소에서 행해지게 되면 이 취체 방법 때문에 고생할 것이고 아울러 그 폐해를 적게 하여 방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일반의 투기심을 오히려 취체가 편 리한 공설의 장소로 집중시키는 것이 폐해를 적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말할 것도 없이 취인소에는 그밖에도 충분한 이익이 있고, 또한 이 투기라는 말은 착실한 실업가가 꺼려하 는 바이지만, 구극(究極)하면 이 일종의 어폐(語弊)에 기반한 혐기(嫌忌)로 원래 상업이라는 것 자체로 투기적이 아닐 수 없 33) 공미(空米)란 공매매(空取引)의 대상이 되는 쌀, 또는 현물 없이 하는 미곡 거래를 지칭한다. 공매매(空取引)란, 주식의 신용거래나 상품의 청산거래로, 현물의 수도(受渡)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가격 변동에 의한 차익금을 취하기 위해 매매하는 것을 뜻한다.

59 인취성쇠기( 仁 取 盛 衰 記 ) 39 다. 따라서 취인소는 이 투기심을 이익이 있는 길로 응용하게 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이것을 잘 이용하게 되면 상업의 발달 에 기여하는 바 매우 막대할 것이다. 仁 取 盛 衰 記 (10) 일한무역에 위대한 공적 鳥 栖 忠 安 (건의서 계속) 다음으로 또 귀하의 숙려( 熟 慮 )를 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다. 다름이 아니다. 본방인이 설립한 취 인소를 금지하더라도 당항( 當 港 )에 반드시 취인소가 설립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이미 서술했듯이, 인천미두취인소 창립 당시에는 한국 상인이 취인소의 취인을 양지하지 못하거 나, 동소( 同 所 )에 대해 취인을 시도한 자도 없었지만, 그 이후 취인소의 이편( 利 便 )에 대해 한국 상인이 모두 아는 바 되었 고, 결국에는 그 취인고의 10중 7푼( 分 )은 한국 상인에 의한 것이다. 일단 그 이편을 모두 알게 된 그들이 이것을 망각할 수 없는 것은 인지상정으로 인천미두취인소가 해산되자 벌써 그들 손으로 취인소를 신설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릴 지경 이다. 만약 과연 한국 상인의 손에 의해서 취인소가 설립되게 되면 확실히 다음과 같은 불리불편( 不 利 不 便 )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60 40 미곡거래소 仁 川 米 豆 取 引 所 의 흥망성쇠 첫째, 1년 거만( 巨 萬 )의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사업을 허무하게 한국 상인의 손에 맡기고 떠나는 것은 우리의 이원( 利 源 )을 빼 앗아 그들에게 주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 둘째, 취인소가 한국 상인의 손에 의해 설립되게 되면 그 사 이 어떠한 폐해를 낳게 되더라도 우리 당국자가 직접 그에 대 한 취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만반의 취체를 하는 데 있어 종래보다 비상( 非 常 )한 불편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 이 두 가지는 오늘날 무엇보다 숙려해야 하는 요점으로, 과연 본 회의소가 판단하듯이, 인천미두취인소가 해산되더라도 다른 취인소가 설립되지 않는다고 반드시 보장할 수 없다고 한다 면, 적당한 범위 내에서 취인소의 공설( 公 設 )을 본방인에게 허 가하고, 그것으로 본방인에게 이익을 얻게 하고, 또 취체상의 편의를 얻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귀하의 세찰을 구하 는 네 번째 이유이다. 이상 진술( 陳 述 )한 바를 개괄하면, 당항 상업상의 기관으로서 취인소가 필요하다는 사실, 인천미두취인소를 해산하더라도 그 것으로 취인소의 설립이 없을 것인가 하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 사실, 때문에 이러한 이익이 되는 사업을 본방인에게 허가하여 적당한 취체 내에서 그 이익을 진척( 進 陟 )시키는 것 이 유리한 점은 있어도 어려움은 겪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이것이 바로 본 회의소가 취인소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까닭 이다. 또한 인천미두취인소 주주의 경우에는 해외 천리의 이 역에서 신산( 辛 酸 )을 맛보며 그렇게 얻은 재산을 많게는 수천 원, 적게는 수백 원을 투입했지만, 갑자기 소유권의 일부를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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