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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신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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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3 FORWARD '알리는 글' 이 에세이 모음집은 2012년도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국제자원 활동 (International Voluntary Services) 참가자 에세이를 정 리한 것입니다. 2012년도 국제자원활동에 성실히 임한 자원활 동자 여러분께는 지난 기억을 회상하면서 앞으로의 활동에 새로 운 활력소가 될 것을 기대하고, 향후 국제자원활동에 참여하고 자 하는 청년들에게는 이전 참가자들의 후기를 통한 간접경험이 참가 준비를 하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 에 세이 모음집을 통해 올 한해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유네스코한 국위원회의 국제자원활동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년도 국제자원활동 에세이 모음집은 각 국가별로 참가자 들의 에세이들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다만 모든 에세이를 정리 한 것은 아니며 기본적으로 선발된 에세이만이 정리되어 있습니 다. 기타 보고서들은 국제자원활동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에세이 모음집이 현재 한국 청년들의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 는 국제자원활동의 한 부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로 기 능하기를 바라며, 자료에 대한 문의나 도움말을 주실 분은 아래 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청년팀으로 연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이번 에세이 모음집의 내용이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공 식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님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청년팀
4 I. 개별파견 국가별 에세이 1. 그리스 남유진 _ 뜨겁게 아름다웠던 젊은 날의 그 여름 백수빈 _ 이토록 뜨거운 순간 2. 독일 김성용 _ 멘붕 캠프 주수진 _ 나의 길고도 길었던 2주 라오스 김기일 _ 낯선 곳에서 거울을 보다 리투아니아 고영탁 _ 내 인생 최고의 기억들 최진영 _ 아름다운 쿠르트베나이 국립공원에서의 2주 5. 벨기에 권순미 _ 나의 워크캠프 기행기 박현정 _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가 되다 6. 스위스 김민우 _ 내 인생에 꿈 같은 기회와 경험은 바로 워크캠프이다! 안건형 _ 알프스 산을 체험하다. 7. 스페인 이정서 _ 워크캠프? 그 이상.. 황유진 _ 시간이 빠르게 가기만을 바랐던 14일. 8. 아이슬란드 안다홍 _ 워크캠프 뜨거운 추억으로 박주현 _ 아이슬란드에서의 모험 9. 에스토니아 김기은 _ 넘치는 사랑 양기란 _ 히우마, 같이 있었기에 찾을 수 있었던 가치. 10. 영국 임희진 _ 익숙함에서 새로움이란 설레임으로 이승훈 _ 행복을 걸었던 순간 11. 우크라이나 홍가영 _ 서로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하기 이재우 _ 경험의 공유의 장, 국제워크캠프 12. 이탈리아 이성은 _ 워크캠프를 통해 처음 의 설렘을 느끼다. 김기열 _ RADIO ONDA DURTO 13. 인도 김종혁 _ 인도는 더럽다. 윤가연 _ 상상 그 이상의 인도, 그리고 워크캠프
5 5 CONTENTS 터키 김선미 _ 선물 홍샛별 _ 도전! 따뜻함 그 이상의 정을 느끼다 폴란드 김다솔 _ 폴란드는 프라하, 보다도 훨씬 아름다운 곳 이태호 _ 잊지 못할 14일의 기록들 프랑스 권태영 _ It was like a dream. 황지수 _ 포도나무 밭이 나에게 남긴 수많은 씨앗 II. 단체파견 국가별 에세이 1. 대만 강영정 _ 나의 대만 봉사활동 서주영 _ 마음으로 통해요 유준미 _ 대만, 그곳에서 나와 세상을 경험하다. 2. 라오스 강민준 _ somsak's diary 최민식 _ turning point in my life, LAOS 박갑준 _ 워크 캠프를 다녀와서,,,, 방글라데시 김보현 _ 방글라데시의 다양한 얼굴들과 마주치다 손석준 _ 벽을 넘어서, 가슴으로 베트남 김도희 _ 소중한 만남들로부터 얻은 변화의 에너지 최수진 _ 꿈 같은 도전이였던 국제자원활동을 마치고.. 이현정 _ 잊혀지지 않을 14일 간의 베트남 인도 곽다영 _ 멋진 아이들과 +α 11명 정지혜 _ 방갈로르에서 지낸 인도네시아 김밝은 _ 인도네시아에서의 무더웠던 어느 2월... 지성근 _ Memory in Indonesia 태국 김다솜 _ Volunteer Is Passion 과 함께한 2주간의 태국 봉사활동 필리핀 김용우 _ 무더웠던 아니.. 따스했던 필리핀 이시현 _ 내가 기억하는 CEBU
6 개별파견 국가별 에세이 1. 그리스 남유진,백수빈 2. 독일 김성용,주수진 3. 라오스 김기일 4. 리투아니아 고영탁,최진영 5. 벨기에 권순미,박현정 6. 스위스 김민우,안건형 7. 스페인 이정서,황유진 8. 아이슬란드 안다홍, 박주현 9. 에스토니아 김기은, 양기란 10. 영국 임희진,이승훈 11. 우크라이나 홍가영, 이재우 12. 이탈리아 이성은, 김기열 13. 인도 김종혁, 윤가연 14. 터키 김선미, 홍샛별 15. 폴란드 김다솔, 이태호 16. 프랑스 권태영, 황지수
7 7 I. 개별파견 국가별 에세이 1. 그리스 6 "뜨겁게 아름다웠던 젊은 날의 그 여름" 그리스_남유진 ELIX03 세종대학교 나는 새로운 자극과 변화, 그리고 새로운 인연을 꿈꾸며 워크캠프에 지원했다. 이제껏 한번도 해외 경험이 없던 나는, 해외에 나가서 생활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었고, 단순한 해외 여행이 아니라 낯선 외국인들과 함께 어울려 그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소통하고, 교감하는 워크캠프는 나 에게 살아있는 깨달음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낯선 상황과 새로 운 문화, 새로운 사람들을 접했을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떤 기분 이 드는지를 통해 이제껏 내가 몰랐던 내 자신의 모습을 알 수 있고 그 동 안 내가 만들어 놓은 내 세상과 가치관속에 살아가던 나에게 다른 시각을 갖게 해주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워크캠프를 통해 함께 생활하며 인연을 만들 새로운 사람들을 얻고 싶어 나에겐 워크캠프 가 간절했고 설렘, 그 자체였다. 외국에 한번도 나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떨리기도 했고, 혼자 찾아가는 것이었으므로 치안이나 언어적인 소통문제로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사전에 그리스를 다녀온 사람에게 현지 치안이나 주의점을 물어보 기도 하고, 그리스 워크캠프를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인터넷으로 찾아 보면서 열심히 준비했고 부푼 기대를 안고 뜨거운 여름, 아름다운 그리스 로 떠났다. 우리캠프는 낙소스라는 그리스의 섬으로, 캠프장소는 FILOTI라는 마을 의 college였다. 항구에 도착하여 버스를 알아보는데 끊겨서 택시를 타고 다행이 캠프 장소에 도착, 숙소 앞에 앉아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캠프 친구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제 진짜 캠프가 시작된다는 것에 흥 분되고 내가 여기에 와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8 나는 내가 캠프에 왜 오고 싶어 했는지를 잊지 않도록 그 이유를 내 자신에 게 계속 상기시켰다. 그래서 항상 오픈 마인드, 적극적인 자세, 즐겁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마음으로 캠프에 참여했다. 우리 캠프의 친구들은 보통 영어를 잘 구사하는 편이었는데, 나는 못하는 영어지만 그들에게 먼저 인사 도 하고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최대한 혼자 있기보다는 그들과 어울리고 함 께했다. 하루 이틀은 어색하고 언어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점점 친해지고,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곳에서의 생활이 점점 더 재 미있어졌다. 일은 그리스의 더운 날씨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시작했는데, 우리는 환경에 관한 캠프로 footpath를 만들고 정비하며, 쓰레기를 줍는 등의 일을 했다. 수 많은 가시와 나뭇가지들로 막혀있는 곳에 길을 내는 것이었는데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남자들까지도 일을 힘들어 할 정도로 체력을 요구하는 작 업이었지만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진 길을 보니 뿌듯했고 내가 이 먼 그리스 에 와서 이러한 흔적을 남길 수 있고, 한국에서는 해보지 못한 일들을 한다는 생각에 즐겁게 할 수 있었다. 또 일을 함에 있어서도 서로 도와가며 분업 식 으로 일을 했고, 함께 땀 흘리며 일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쉽게 가까워 질 수 있었다. 홈팀2명은 일을 나가지 않고 숙소의 청소와 식사를 담당하는데 각자 자신의 나라의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하여 각 나라의 다양한 음식들을 맛 볼 수 있어 서 좋았다. 처음엔 음식이 입에 안 맞았지만 바로 적응하여 나중에는 정말 맛 있게 먹었다. 지금도 가끔 벨기에 음식과 파스타, 그곳에서 먹었던 샐러드가 생각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워크캠프란 보통 20대의 대학생들이 가는 경우가 많지만, 이 캠프의 리더들은 30대 후반이었는데 워크캠프에 참가하고 있어 놀랐다. 외국 의 경우는 이런 자원활동에 있어 나이의 제약 없이 참여하는 모습이 부러웠 고 캠프 리더와 이것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들은 이것이 너무 자연 스러운 것이라 이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들의 자유로움과 여유 를 보면서 우리나라도 이런 활동이 나이 제약 없이 일반적으로 참여할 수 있 는 분위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양한 나라의 캠프 친구들이 있었는데, 문화가 다르고 배경이 다른 만큼 성격들도 저마다 달랐다. 처음에 놀랐던 것 은 표현에 있어서 굉장히 솔직하고 개방적이라는 사실이었다. 한국에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 주제들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에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점차적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함께 어울렸다. 또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은 다 른 사람들의 시선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생활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기 표현도 자유롭고 항상 자기 자신의 기분과 감정에 솔직하며 즐기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의 그런 마인드를 배우고 나 또한 그런 자세로 인생을 즐기며 살 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9 9 8언어적인 문제로 서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 때도 있었고 진지하게 말하는 것도 장난으로 받아들여 곤란한 적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이야기 함으로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갔다. 가끔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어서 답답한 적도 있었지만 나는 새로운 공간, 문화, 사람들 속에서 매일매일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런 당황스러움과 처음 해보는 경험들로 더 많이 웃고 즐길 수 있었으며 또 친구들이 많이 도와준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캠프를 마 칠 수 있었다. 첫 주는 느리게 가는 것 같았는데 그 다음주, 즉 마지막 주가 되니 시간이 정말 빨랐고 하루하루 가는 게 아쉬웠다. 낯선 동양인이었던 나를 반갑게 맞아주며 매일 인사하던 지역 주민들도, 하루 종일 함께하며 같이 생활했 던 캠프의 친구들이 지금도 너무 그립다. 마치 꿈처럼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지금도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다. 약2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서로 다른 국가에서 온 낯선 사람들이 이토록 교감하고 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신기하 다. 지금 이 순간도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이 보고 싶은 것을 보면, 사람이 서로를 사귀는데 있어서 국가, 언어, 시간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 것 같다. 이렇게 한국에서 외국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이 감정은 워크캠프가 아니었 으면 경험해 보지 못할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워크캠프는 한번도 외국에 나간 적 없던 내가, 이 친구들로 인해 유럽 이 가깝게 느껴지고, 그들이 보고 싶어 빨리 그들이 있는 나라에 가고 싶 어지게 만들어 버렸다.
10 나는 워크캠프를 다녀온 뒤 분명 더 행복해졌다. 그게 내가 워크캠프를 다녀 온 뒤 느낀 나의 가장 큰 변화이다. 생각하면 웃음이 번지는 추억을 갖고 있 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그 전보다 더 행복한 지금을 살고 있다. 그 때의 그 아름다운 기억은 힘든 순간에 나에게 힘이 될 것이고, 비록 워크캠프는 끝났 지만 그 추억과 사람들은 남아 앞으로의 내 인생을 함께 살아갈 것이기 때문 에 이 워크캠프가 분명 나에겐 긍정적인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워크캠프를 다녀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푸르른 나의 20 대, 청춘, 대학시절에 이런 경험을 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이 감사하다. 뜨겁게 아름다웠던 젊은 날의 그 여름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11 10 11 "이토록 뜨거운 순간" 그리스_백수빈 ELIX01 홍익대학교 눈물 나게 뜨거웠다. 사실 눈물 나게 더웠다. 지난 여름 방학 동안 나는 그리스의 외딴 섬으로 워크 캠프를 다녀왔다. work camp, 일정한 기간 동안 지역 공동체를 위해 다른 나라의 학생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일하 는 것이다. 홍익대학교는 유네스코와 손을 잡고 학우들에게 워크 캠프에 참가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나는 운 좋게 이러한 기회를 잡 을 수 있었다. 희망하는 나라를 하나 정해서 지원할 수 있는데, 나는 주저 없이 그리스를 선택했다. 그리스는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의 꿈의 나라였다. 역사책에 등장하는 문명의 시작 그리스. 장대한 아크로폴 리스와 신선하고 향기로운 그리스 음식, 푸른 지중해가 펼쳐져 있는 아름 다운 섬 산토리니까지. 이 모든 것들이 내 머릿속에서 환상적으로 조립되 어갔다. 그리고 기다리던 합격 발표 날, 나는 정말로 기뻐서 날뛰었다. 환 상을 재조립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앞으로 수일 뒤면 내가 밟고 있 을 땅과 그 곳에서 만날 사람들이 궁금했다. 나는 아무런 걱정이 없었고 너무나 자신만만했다. 출국 날, 드디어 비행기로 15시간을 날아 그리스에 도착했다. 첫만남 앞으로 내가 17일 동안 일하며 지낼 그리스의 섬 안드로스. 안드로스는 그리스 키클라데스 제도에 있는 섬이다. 캠프지는 안드로스 섬에서 두번 째로 큰 항구 도시 가브리오에 위치해 있었다. 항구에서 조금 걸어나와 가브리오 초등학교에 도착했다. 나는 제일 먼저 캠프지에 도착했다. 두 명의 캠프 리더가 나를 반겼다. -수빈? 넌 수빈이니? -맞아. 난 한국에서 온 수빈이야. 그들은 이번 캠프에 유일한 동양인 참가자로 한국 여학생이 두 명 있다고 했다. 그 중 하나가 나였다. 자신없는 영어와 낯선 그리스인 캠프 리더.
12 겁 먹은 채로 그들이 해주는 파스타와 그리스식 샐러드를 먹었다. 왜 지원 했니? 그리스는 처음이니? 나이가 몇 살이야? 전공이 뭐야? 처음 만난 사 이에 하는 의례적인 질문들이 오갔다. 그들은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작은 체 구의 나를 신기한 듯 쳐다봤고, 나는 파란 눈의 금발 곱슬머리를 한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세시간 쯤 지나자 모든 워크캠프 참가자들이 도착했다. 프랑 스,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벨기에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다양한 얼굴들이 만났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어색하게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저녁은 솔직히 맛이 없었다. 느끼한 파스타와 그리스식 치즈. 벌써부터 라면이 먹고싶었다 낯섦 다음날 아침, 나는 워크캠프의 워크 를 위해 무장을 했다. 몸빼 바지, 챙 있 는 모자, 등산용 팔 토시, 그리고 선크림과 선글라스. 예상대로 일은 정말로 힘들었다. 아침 일찍 산 위에 올라 도끼와 삽, 괭이로 잡초를 뽑고 산길을 냈 다. 그 곳의 잡초는 더운 날씨 때문에 대부분이 가시덤불이었다. 이리 저리 산 속에서 가시 덤불과 싸움하는 탓에 온 몸에 누군가가 할퀸 듯한 상처가 났 고, 뜨거운 햇볕과 흙먼지를 섞어 마셨다. 그렇게 주말을 제외하고 11일 동 안 이 산 저 산 다니며 길을 냈다. 종종 지역 주민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일을 도와주었다. 섬에는 젊은이들이 별로 없었다. 아마 일거리를 찾아 큰 육지의
13 13 도시로 떠났을 것이다. 지역 주민 대부분은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었고 그들은 우리보다 더 멋진 체력을 자랑했다. 일은 일대로 힘들었지만, 더 힘든 것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낯섦의 문제였다. 12 우선 음식이 가장 힘들었는데, 그들을 쌀을 파스타와 같은 면으로 생각 했다. 쌀을 삶아서 그 위에 소스를 뿌려 먹었다. 매 끼 그리스식 샐러드 는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규칙을 싫어했다. 시간약속을 잘 지키 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융통성 있게 하는 것을 좋아했 고, 나는 때때로 저건 융통성 있는 것이 아니라 느릿하고 게으른 것 이라 고 생각했다. 또한 그들은 자기주장이 강했다. 나도 한 목소리 하는 자기 주장 강하고 기가 센 사람이지만, 그 곳에서는 예의상 단체를 위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어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들은 달랐 다. 작은 불만이 생기면 그때 그때 이야기했고 말싸움, 즉 좋은 말로 토론 을 일삼았다. 하루는 그리스에서 온 이리니가 나에게 말했다. -수빈, 누구에게든 불만이 있으면 바로 이야기 해. 무조건 이야기 해야 하는거야. -그래도 우리는 단체생활을 하잖아. 나 때문에 상대방이 기분 나쁘면 어떡하니? -오 수빈, 그건 그들의 문제야. 그리고 아무도 너의 의견을 듣고 기분 나빠하지 않아. 이리니는 자신이 자신의 불만과 불쾌함을 숨기지 말라고 했다. 그건 오히 려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이라고. 캠프 리더중 한명인 코스타스는 나를 수빈아키라고 불렀는데, 그리스어로 little subin 이라는 뜻이었다. 그들은 내가 고작해야 14살 쯤으로 보인 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나 한국에서는 엄청난 노안이야. 기도 세고 한 성질 하는데. 나 무서 운 사람이야! 그러자 코스타스가 웃으며 말했다. -너는 수빈아키야. 그냥 영원한 수빈아키로 그리스에서 살아. 그들과 나 사이에 많은 것이 다르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고 매분 매초 느껴왔지만, 그 차이점은 점점 즐거움으로 변하고 있었다. 위기의 그리스 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생각. 경제 위기, 공황 상태, 유로존 탈퇴 내가 이 번에 그리스에 간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왜 하필 그 리스야? 지금 그 곳 분위기 안 좋다던데, 몸 조심하고 살아서 돌아와! 나
14 또한 걱정이 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어느 나라든 경제 상황이 힘들어지 면 타지에서 온 외국인들에게 친절하기 어렵다. 사람들의 마음의 여유가 없 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스도 당연히 그러겠거니 하고 긴장을 단단히 하 고 갔다. 복대를 차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주변을 살펴보고, 누가 말이라도 걸면 도망갔다. 하지만 안드로스에서 만난 사람들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너무나도 달랐다. 괜히 의심하고 경계한 것 같아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어느 날 저녁, 또다른 캠프 리더 디미트리스가 나에게 물었다. -한국에서는 선생님이 되면 한 달에 얼마정도 버니? -음, 정확하는 모르지만 처음 선생님이 되면 200만원 정도 벌거야. -그리스에서는 선생님이 되어도 100만원도 벌지 못해. 그 만큼 돈 벌기가 힘들어. 그렇다고 직장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 저기 전부 실업자야. 그렇다고 그리스의 물가가 싼 편도 아니었다. 유럽 중에서 그리스의 물가는 싼 편이었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한참 비쌌다. 내가 이번 워크캠프가 끝나 면 유럽 여행을 할 계획이라고 하자 디미트리스가 또다시 물었다. -부모님이 여행 경비를 주셨니? 여기 올 때 항공비도 많이 들었을텐데. -응, 부모님이 조금 주셨어. 하지만 우리 집이 그렇게 넉넉하지 못해서 내 가 돈을 모아서 왔지. 나는 한국에서 평소에 용돈을 벌기 위해 늘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이야 기하자 디미트리스는 자기 또한 그렇다고 했다. 그는 이번 캠프가 끝난 후에 돈을 벌기 위해서 다른 섬에 일하러 간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그리스가 요즘 많이 어려운 것 알지? 사람들은 쉽게 말해. 그리스 사람 들이 게으르고 일 하기 싫어해서 결국 경제 위기가 온 것이라고. 하지만 아 냐.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해. 세상이 뭐라고 떠들어대도 괜찮아. 우리는 슬프지 않아 행복해. 왜냐면 우리는 삶을 사랑하거든. 우린 괜찮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도 우리는 행복해. 과연 그들은 괜찮을까? 나에게 이야기하는 디미트리스의 눈빛이 흔들렸다. 늘 장난기 많은 얼굴로 웃는 그였지만 그 날 저녁은 달리 보였다. 나는 생각 했다. 많이 힘들구나. 그렇지만 행복하구나. 그러니까 그들은 이겨낼거야. 라고. 그리고 청춘 처음에는 무조건 다르다고만 생각했던 그들이 점차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느껴졌다. 친한 친구들 이야기를 할 때 그들의 표정, 자신의 여 자 친구 사진을 보여주며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 집안 사정을 이야기할 때 돈 걱정하며 짓는 한숨. 목소리, 머리카락 색, 식성, 야한 농담을 자주하는 문화 까지도 너무 다르지만 그들은 사실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같은 청춘이
15 15 었다. 밤에 항구에 떠 있는 나룻배를 몰래 훔쳐 타기도 하고, 초등학교에 있는 천체망원경으로 별을 보며 함께 탄성을 질렀다. 생긴 것은 분명 달 라도, 표정은 같았다. 오후 자유 시간에 벨기에에서 온 필립이 나에게 물 었다. -수빈 너는 무엇이 되고싶니? -나는 리포터가 되고 싶어. 글 쓰는 것이 좋아서 언론사에서 일하고 싶어. -왜? 너의 전공은 디자인이라고 하지 않았니? -글쎄.. 그냥 글 쓰는 것이 좋고, 그게 더 나한테 맞는 것 같아. 14 사실 내가 영어를 좀 더 잘했다면 나의 장래희망 변천사를 필립에게 구구 절절 말해주고 싶었다. 그들은 매우 흥미로워했다. 곧이어 열두 명의 꿈 들이 그들의 입속에서 뛰쳐나왔다. 의사, 교사, 물리학자, 간호사, 인테 리어 디자이너, 건축가 등 so interesting! 이라는 말을 그 날 스무 번 도 더 들은 것 같다. 잘 하지 못하는 영어, 발음도 다 달라서 한번에 알아 듣기 힘들었지만 각자의 꿈을 말하느라 우리는 정신이 없었다. 아마도 갓 스무살을 넘긴 청춘들이 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나의 꿈을 얘기하며 즐거웠고, 그들의 꿈을 들으며 설렜다. 우리 는 그렇게 꿈으로 소통했다.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한 후, 우리는 해변 으로 놀러갔다. 아름다운 지중해에서 마음껏 다이빙을 하고 수영을 했다. 뜨거운 햇볕에 온 몸이 그을렀지만 행복했다. 더운 날 산 속에서 땀 뻘뻘 흘리며 일하고 바로 해변에 뛰어드는 것은 정말이지 상쾌했다. 우리는 밤 에도 종종 해변에 나갔는데, 해변에서 일렬로 누워 별을 보고 맥주를 마
16 시면서 속옷 바람으로 밤바다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 어떤 것을 해도 즐거운 날들이었다. 어린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모든 것을 아무런 걱정 없이, 더 깊 고 복잡한 생각 없이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순수하게 표현하고, 순수하게 즐 거워했다. 행복했다. 그렇게 우리는 꿈을 이야기하고, 꿈을 꾸며 꿈같이 지냈 다. 이별 어색한 첫만남 이후, 내가 이들과 정말 친해질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도 잠 시 우리는 정말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바닷바람처럼 17일이 금방 날아가버 렸다. 앞으로 다시 볼 수 있을까? 다시 이 섬에 올 수 있을까? 헤어지는 날, 나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펑펑 울었다. 그들은 나의 볼에 키스를 해주었다. 키스와 함께 17일 동안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시원 섭섭했고, 너무 아쉽고, 서글펐다. 언제나 내가 있는 곳을 벗어나면 무 언가를 배우게 된다. 다른 것을 보고,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그 속에서 수용 하고 인정하는 법을 배우는 것. 나는 워크캠프를 통해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배우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한층 성숙해 진 마음으로. 그리고 앞으로 인 생에서 계속되어야 할 배움이다.
17 17 2. 독일 16 " 멘붕 캠프 " 독일 - 김성용 IJGD 2203 부산대학교 이번 캠프를 한 글자로 요약 하자면 바로 멘붕 이었다고 할 수 있다. 캠프 지역부터 나이, 했던 일, 언어,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어떻 게 이 다섯 가지의 멘붕을 이겨내고 2012년 여름을 아름답게 보냈는지 소개한다. 첫 번째 멘붕: 힐데스하임이 어디야? 힐데스하임은 독일 북부의 니더작센 주에 위치한 작은 소도시다. 물론 지원할 때부터 내가 힐데스하임으로 갈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떠나려 니 앞이 깜깜했다. 여행 책자는 물론, 인터넷에도 아무런 정보가 없는 도 시 힐데스하임! 직접 가보니 소박한 사람들과 그 안에서도 반짝이는 문화 를 가지고 있는 사랑스러운 도시였다. 하지만 하루면 둘러 볼 수 있는 작 은 도시라 그런지, 여과 시간이나 주말에는 딱히 둘러볼 곳도, 할 것도 없 는 것이 사실이었다. 대신 우리는 주말이면 근처에 위치한 하노버나 함부 르크로 여행을 다니며 대도시에서 캠프를 하는 것 못지않게 알찬 여가시 간을 보낼 수 있었다.
18 두 번째 멘붕: 내가 노땅이라니! 한국, 이탈리아, 러시아, 독일, 터키. 이렇게 다양한 국적을 가진 10명의 청 년들이 모인 자리에서 캠프 리더보다 내가 나이가 더 많았다는 사실은 나에 게 새로운 멘붕으로 다가왔다. 알고 보니 캠프지원 가능 연령대가 16세부터, 26세까지였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래도 제 나이 같아 보이지 않는 나의 외모(?) 덕분에(실은 아시아인 이였기 때문인지도!) 처음 2~3일을 제외 하곤 별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문화가 다른 만큼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 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두 열린 마음과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인지라 문제가 생겨도 침착하고 차분하게 어려운 상황들을 잘 해결할 수 있었다. 세 번째 멘붕: 오랜만에 잡은 붓! 고등학교 미술 시간 이후로 실제로 붓을 잡고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적이 처 음이 아니었을까.. 한 때는 미술학원을 다니며 미술학도를 꿈꿨던 나에게 다 시 잡은 붓은 나에게 여러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캠프에서 주로 했던 일 또 한 축제에 필요한 장식이나 광고 피켓, 여러 가지 설치 미술들을 도와주는 일 이었던 지라 미술을 아쉽게 관둬서인지 누구보다 열심히 예술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예술적 재능이 실제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다는 사실이 아주 즐거웠다. 지금은 신문방송학과에 재학중인 평범한 대학 생이지만 언젠가는 미디어와 예술이 접목된 일을 하리라 다짐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19 19 네 번째 멘붕: 독일어를 모른다! 2주 가까이 축제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Lyrik Park 2012 페스티벌이 시작되었다. Lyrik Park는 복합 문화 시설인 Kulturfabric이 주관하는 2 년에 한 번씩 열리는 시문학 예술 축제로 지역 아티스트들이 모여 자신들 의 작품을 전시하는 페스티벌이다. 다양한 설치 미술 뿐만 아니라 시 낭 송, 음악 공연 등 다양한 이벤트들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우리 캠프에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독일에서 온 두 친구를 제외하고는 아 무도 독일어를 할 줄 몰라 이 뜻 깊은 문화 이벤트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 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최측의 배려로 아티스트들을 영어로 인터뷰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면서 국제적으로 Lyrik Park를 알리고 우리 또한 이번 축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18 다섯 번째 멘붕: 이탈리아에서 온 편지 우여곡절 끝에 17일간의 캠프가 끝나고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뒤로하고 나는 독일을 떠나 유럽 여행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캠프 기간 내내 제일 친하게 지냈던 이탈리아 친구 프란체스카로부터 이 메일이 왔다. 프란체스카는 캠프 내 몇 안되는 20대 중의 한 명이었고 서 로 가고자 하는 진로와 성격이 무척이나 비슷했기에 나와 통하는 면이 참 많았던 친구였다. 이렇게 짧았던 캠프 이후에도 나의 안부를 물어 봐주고 나를 그리워해주는 친구가 생겼다는 것은 이번 캠프에서 얻은 경험 중에 서 제일 소중한 선물이었다. 나와 같은 사람을 알게 되어 참 고맙다고 말 해주는 나의 귀여운 이탈리안 친구! 나에게 유럽을 꼭 다시 가야 할 이유 가 생겼다!
20 " 나의 길고도 길었던 2주" 독일_주수진 IJGD2207 홍익대학교 워크 캠프 장소인 하노버에 하루 먼저 도착해 하루 숙박하고 다음날 아침부터 워크캠프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던 나에게, 워크캠프에 참 가하는 한국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인포싯이 잘못되었다고, 오늘 캠프 시작인데 어디냐고 물어보는 내용의 메시지가 어제시간으로 도착해 있었다. 하노버에 그 문자 시간에 있었던 나는 순간 매우 당황하여 나 는 인포싯에 적혀있는 날짜대로 왔을 뿐이라는 얘기를 했다. 결국 리 더가 나를 하노버 중앙역으로 픽업해 간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나는 갑 작스러운 만남과 캠프에 대해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리더를 기다렸다. 하노버 중앙역 저 멀리서 노랑머리의 리더가 도착해서 나에게 손을 흔 드는 모습이 보이자 문득 새로운 것, 새로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나 를 막막하게 했다. 리더가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니 캠프원들이 모여 있었고, 한꺼번에 많은 사람과 친해져야 했던 나는, 이미 친해져있는, 너무 다른 사람들의 무리에 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리더가 나에 대해 소개해주고 나머지 캠프원이 각자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내 앞에 손을 내밀었고, 악수를 하며 하나하나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노력했지만 얼 굴과 이름이 매치도 안되고, 이름이 기억나지도 않았다. 간단한 인사를 끝낸 후 우리는 강 주변으로 가 개별 관광시간을 가졌 다. 그 때 나는 중국인 소녀를 만났는데 그 아이가 나와 같은 방을 쓰 게 되었다. 나보다 2살 어린 중국인 소녀 릴리 는 영어를 매우 잘했 다. 처음 외국인과 제대로 얘기 한 것이 릴리였는데, 릴리는 영어를 쓰는 영국인이나 미국인이랑 프리 토킹이 가능할 정도로 영어를 잘해 서, 나는 처음에 기가 많이 죽었다. 그나마 동양인이라 영어를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편견이었다. 릴리와 대화하면서 나는 점점 작 아지는 나를 느꼈고 그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다. 릴리와 얘기 한 후 매우 작아졌던 나는 다른 캠프원들이 말하는 기초적인 단어조차도 알 아듣지 못했다. 말 그대로 패닉상태가 온 것이다. 평소에 토익 듣기를
21 21 잘 했던 나인데, 그때는 정말 한 단어 한 단어 듣기도 힘들었다. 토익공부 가 영어공부인가에 대해 문득 회의감이 들었다. 20 그렇게 어버어버 거리며 캠프원들과 자유시간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 나뭇가지에 불을 붙이고 앉아 있는데 내가 의기소침해져 있는데, 리더 4 명중 한명인 verena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때 나 는 베르나에게 나의 영어 실력에 대해 실망중이고 너무 어렵다는 말을 했 고 베르나는 그런 나에게 자신도 영어를 못하며, 영어 못하는 사람 많다 고 하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베르나의 말에 그나마 기분이 좀 나아진 나 는, 그 후로 캠프원들과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해보았다. 그랬더니 정말 영어를 나보다 훨씬 못하는 애들이 보였다. 프랑스에서 온 로만, 스페인 에서 온 안드레아와 다프나는 영어를 썩 잘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과 친 하게 잘 지내는 거 같았다. 물론 영어를 잘하면 친해지는 것이나 활동하 는 것이 훨씬 편해지겠지만, 영어를 못한다는 게 큰 문제는 아니라는 생 각이 들었다. 그렇게 정신 없이 첫날이 지나가고, 다음날 우리와 함께 일할 장애인 분 들이 숙소에 왔다. 나는 장애인에 대해 조금 겁이 났던 것이 있었는데, 우 리와 같이 일할 장애인 분들은 정말 장애인인 것이 처음에는 구분이 잘 안될 정도로 일반인 같았다. 리더에게 그분들은 몸은 성인이지만 아이같 이 생각을 한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나는 생각보다 장애인분들이 무섭지 않았다. 때로는 하는 행동이 어린아이 같아서 귀엽게 보이기도 했다. 예 를 들면 다니엘은 매일 밥 먹을 때 사람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면서 I love you를 크게 외쳤는데, 재미있었고 웃겼다. 장애인들의 가장 큰 문 제는 영어가 안된다는 것이었다. 영어가 안돼서 리더들이 독일어와 영어
22 를 통역해 주면서 일을 했다. 그런데도 딱히 불편한 것은 못 느꼈다. 장애인 분들과의 공사가 끝나고 마지막 굿바이 파티에서 헤어짐을 지켜보는 나의 눈 에서 눈물이 나왔다. 생각보다 너무 잘해주시고 그분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면 너무 좋아해주셔서 나는 캠프원들보다 장애인 분들에게 더 정이 갔던 것 같 다. 장애인분들과 헤어지고 캠프원들과도 헤어지면서 나의 길었던 2주는 끝 이 났다.
23 23 3. 라오스 22 "낯선 곳에서 거울을 보다." 라오스 - 김기일 AVAN 경북대학교 라오스 워크캠프를 지원하기 위해 선택 가능한 국가의 목록을 보며, 나 라의 이름을 속으로 읽다 어감이 좋아 잠시 멈칫했었다. 그때 까지만 해 도 라오스에 대한 나의 지식은 전혀 없고, 단지 못사는 나라,TV 여행 다큐에서 본적 있는 나라로만 알고 있었다. 어차피 어떤 나라에 지원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황이고, 난생 처음 자원활동을 해보는 거 못 사는 나라에 가서 열심히 도와주고 와야지 라는 오만한 생각에서 라오 스 캠프를 선택하게 되었다. 또한 아무것도 아는 정보가 없다는 사실 자 체가 나에겐 흥미를 주었다. 얼마 뒤 라오스 캠프 참가자로 선발이 되고, 그 사실을 가족과 주변 친구 들에게 알렸다. 이 소식을 전할 때마다 그들은 되물었다. 라오스는 어 디에 있는 나라지?, 어떤 나라니? 난 대답 할 수 없었다. 나도 아 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나는 라오스에 대해 나름의 조 사를 해보았고, 라오스에서는 공용어로 라오어를 사용하며, 인구 구성으 로 크게 3개의 종족으로 분류되는 다양한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문화 의 국가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라오어라는 그들 고유의 언어를 사용한다 는 것을 알게 되어 간단한 표현을 익혀가기 위해 서점에 회화 책을 사러 갔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라오스 주변의 태국어 회화책처럼 쉽게 찾을 수
24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라오어 관련 서적의 종류 가 적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절판되고 없었다. 결국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 서도 가장 큰 서점에서 겨우 구할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도 내가 구입한 책이 재고가 남은 한 종류의 책의 마지막 남은 한 권이었다. 이때 또 한번 라오스 와 우리나라의 아직은 서로가 낯설게 느끼는 거리감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렇다 라오스는 아직까지 대한민국과 친숙한 나라라고 할 수 없다. 분명히 라오스에 발을 붙이기 전까지는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그러나 첫날에 실제 로 마주친 라오스의 거리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던 자동차는 우리나라 기업 현대차의 승합차(스타렉스)였다. 이 때문에 나는 외국에 나와있다는 느낌보 다는 한국에서 한적한 시골로 여행을 온 기분이 들었다. 현대차의 인기는 수 도 위앙짠(비엔티엔) 뿐만이 아니였다. 나의 워크캠프 개최지인 왕위앙(방비 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과장하지 않고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차량이 한국산 중고차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버려졌다고 말 할 수 있는 차들이 한국에서는 잘 알지 못하는 라오스를 누비고 있었던 것이다. 워크캠프지인 왕위앙에 도착한 첫 주의 나의 활동은 왕위앙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위앙싸마이라는 한 마을에서 진흙벽돌을 만드는 일이었다. 내가 주로 활동했던 푸딘댕이라는 마을은 청소년센터가 운영되면서 지역의 아이들에게 놀이터이자 배움터로서 충실히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위앙싸마이의 어린 이들은 푸딘댕 마을보다 시내에서 좀 더 떨어진 지리적인 영향과 어려운 마 을의 형편 때문에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푸딘댕의 청소년 센터 같 은 곳을 위앙싸마이 마을에도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그 첫걸음이 내가 만드 는 진흙 벽돌이라고 생각하니 좀 더 사명감을 가지고 활동에 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진흙벽돌을 만드는 동안 위앙싸마이를 비롯한 지역의 청소년들이 일 을 도와주러 왔고, 그 기간 동안 많은 인연을 만들 수 있어 더욱 소중한 시간 으로 남았다.
25 25 활동 2주차부터 마지막 4주차까지는 청소년 센터에서의 활동에 집중되었 다. 여름방학 동안 센터를 찾은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다. 나는 한국어, 음악, 어린이들을 위한 영어 수업을 맡게 되었다. 한국 어 시간에는 간단한 문장을 익혀 대화를 나누는 수준으로 학생들과 고민 을 하여 학생들이 알고 싶어 하는 주제를 선정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4 나는 모국어로서 쉽게 사용하는 한국어를 외국인에게 가르쳐주는 일을 직 접 해보고, 그 와중에 나는 어렵게만 느껴지는 그들의 라오어를 배워보 니, 쉽고 어렵다는 것 같은 판단의 기준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우물 안 개구리로 살면서 편협한 나의 기준으로 세상 전부 를 보려고 했던 것이다. 라오스를 선택할 때도 나는 나의 기준으로 라오 스는 못사는 나라이니까 내가 도와줘야 하는 불쌍한 나라라는 식의 자기 중심적인 오만한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워크캠프 기간 동안 도움을 받고 무언가를 배우는 쪽은 나였다. 이 한국어 수업을 열고 이것을 깨달은 후의 나는 워크캠프 동안 내가 무 언가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친구가 되어 내 가 배울 만한 점은 배워가겠다는 자세로 활동에 임하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으로 활동에 임하게 되니 나의 취미였던 노래 부르기를 살린 음악시 간, 귀여운 꼬마들과 함께한 영어시간에서도 나는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시간 속에 뛰어들어 소중한 순간들을 즐길 수 있었으며 마침내 함께한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즐거운 기억들은 숙소였던 농장에서도 많이 있었다. 그곳은 마산출신 열 혈사나이 용구형님이 운영하고 계신 농장인데, 나는 그곳에서 팜스테이를 가장하여 즐겁게 빌붙어 살며 귀찮게 하기 를 했다. 그 농장에는 용구형 을 도와 현지 특전사 출신 누형, 나의 라오스 동생들이 된 위싸이, 따모, 뎅이 일을 하고 있다. 이 농장 식구들은 정말로 나를 가족처럼 대해주었 고 나도 라오스에 내 가족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때문에 낯을 가리는 편이었던 내가, 나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있거나 농장 일을 열 심히 하고 있는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 장난을 치고 농담을 하는 장난꾸러 기 남동생이자, 형, 오빠 역할을 한 건지도 모르겠다. 워크캠프 기간 동안 센터에서 일을 하는 시간 이외에도 이 농장 식구들 덕분에 나는 늘 즐거웠고 많이 웃으며 지냈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 었다. 그들과 헤어지는 게 너무도 아쉬웠던 나는 캠프기간이 종료하고도 이틀을 더 신세지고 돌아왔다. 그 이틀 동안 나의 라오스 동생들은 기꺼 이 나를 그들의 집에 초대해주었고, 그들의 집에 방문했을 때 느낄 수 있 었던, 이전의 오만한 나의 시각으로는 가난한 그들의 형편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탄산음료를 준비해 나에게 내어주었다.
26 나의 라오스 동생들은 정말로 나와의 인연을 중요하게 생각해주어 나를 초대 했고, 정말로 정성을 다해 나를 대접해준 것이다. 나는 큰 감동을 받았고 부 족한 영어와 손짓발짓으로 감사함을 표현했다. 또한 그들은 진심으로 훗날에 다시 만나기를 원한다는 말로 대답해주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생각해보면, 거리마다 보이는 한국차 때문에 친근한 첫인상을 준 라오스는 첫인상만큼이나 친근한 착한 마음씨의 사람들이 많았 다. 나의 워크캠프의 무대였던, 길을 걷다 눈이 마주치면 싸바이디 하고 인 사를 건내던 현지주민 분들이 그랬고, 푸딘댕 청소년 센터의 스탭들, 청소년 센터에서 나와 함께 웃고 뛰놀고 공부한 어린이들과 중, 고교학생들, 방학을 맞아 내가 머물던 숙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의 매 끼니를 준비해준 나 의 라오스 동생들이 그랬다. 나는 문득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한국의 모습이 떠올랐다. 같은 동네 심지어 한 아파트 단지의 같은 층에 살면서도 서로를 알 지 못하는 사람들, 지하철이라는 사람이 넘치는 공간에서도 손바닥안 스마트 폰 속으로 자신을 고립시키는 외로운 사람들. 그들이 떠올랐고, 내가 떠올랐 다. 나와 달리 그들은 남을 보고 인사를 건네는 방법을 알았고, 싱긋 웃어주 어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알았고, 이렇게 진짜 친구를 사귀는 방법을 알았다. 난생처음 해보는 나의 자원활동에서 이전의 내가 갖고 있던 자원 활동자는 내가 있는 곳 보다 못한 곳에서, 나보다 안 좋은 환경에 있는 사람을 위해 무 언가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해주었다. 또한 워크캠프 동안 낯선 사람들 속에서 따스함과 친근함을 느끼며 내 자신을 돌이켜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처럼 나에게 이번 여름은 소소하고 잔잔한 드라마 속에 살다 온 가장 기분 좋은 따뜻함을 느낀 계절이었고, 그 드라마를 나는 잠시 볼 수 없지만 아쉽지 않다. 나는 그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지금도 그들의 소소한 드라마를 계속 만들어 가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27 27 4. 리투아니아 26 "내 인생 최고의 기억들" 리투아니아_고영탁 CYVA 07 전남대학교 리투아니아로 워크캠프를 떠난다는 말에 내 지인들의 90%는 이렇게 말하 였다. 리투아니아? 그게 어디에 있는 나라야?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 이 이러한 반응을 보일 것이라 생각된다. 발트해에 위치한 리투아니아는 우리나라의 약 3분의 2크기이며 소련의 지배를 받다가 1991년 독립하였 다. 그래서인지 리투아니아에 도착한 첫 느낌은 약간 어두웠다. 뭔가 영 화에서나 접했던, 그런 동유럽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 마 도착한 날이 흐려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캠프지로 가기 위하여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버스를 타고 카우나스 로 이동하였다. 카우나스는 리투아니아의 제2의 도시로 빌뉴스 이전의 수 도였다고 한다. 카우나스에 도착한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일단, 영어 가 통했던 빌뉴스에 비해 카우나스에서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 이 거의 없다보니 너무 애를 먹었다. 더욱 당황스러운 건 캠프장소가 나 와있는 인포싯과 현지인들의 말이 정 반대였다. 말도 안 통하고 한참을 고민하던 중 터미널에서 동양인 친구가 걸어나오 는 것이다. 바로 우리 캠퍼 중 한명인 혜민이었다. 너무 반가워하며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누다가 결국 인포싯 내용을 따르기로 결정하고 버스를 타
28 고 이동하였다. 그런데 암만 버스를 타고가도 botanical garden은 나오지 않 는 것이다. 분명 인포싯에는 약 20분정도만 버스를 타면된다고 하였는데, 이 건 무슨 30분이상을 버스를 타도 목적지가 안 나온다. 당황한 우리는 다행히 영어를 할 줄 아는 여학생을 만났고, 그를 통해 우리가 버스를 반대방향에서 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믿었던 인포시트가 잘못되다니 어깨를 짓눌러 오는 배낭의 무게는 우리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뭐 어떠랴~ 남는 건 시간인데.. 우리는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에 앉아 맥주를 사 마셨다. 햇 살 좋고 한적한 곳에서의 맥주한잔.. 긴 여행의 피로를 달래주는 듯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캠프! 캠프에 도착하니 프랑스 친구 존폴, 독일 베지테 리언 커플 필립과 기스크, 리투아니아리더 이자벨라가 우릴 반갑게 맞이해주 었다. 남자 셋 여자 셋..다른 캠프에 비해 소규모 였지만 뭔가 재미있을듯한 예감이 들었다. 우린 서로 2주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필요로 하는 규칙등을 만들며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밤새 이야기 꽃을 피우다 잠이 든 우리.. 다들 단잠에 빠져있는데 갑자기 우 르르 소리가 들려온다. 뭐지 싶어 눈을 떠보니 우리의 숙소의 한쪽 벽면이 무 너져내려 버린 것.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일단 일어나서 피해야 하지만 우 린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냥 옆으로 살짝 이동하고 다시 잠들었다. 이 건물이 200년이 다 된 건물이라고 하니 무너져 내릴만도 했다. 그 당시에는 내장재 로 석탄을 썼었다고 한다.
29 29 다음 날 아침, 이를 치우는데 어찌 힘들던지.. 근데, 애들 삽질이라든지 치우는게 영 시원치 않아 보였다. 문득, 워크샵 때 워캠에서 한국 예비역 들을 좋아한다는 말이 떠올랐고, 조용히 삽과 걸레를 잡았다. 군대에서 갈고 닦은 삽질과 왁싱실력을 보여주니 외국 친구들 모두 감탄을 금하지 못하며 신기해 했다. 28 무너진 벽을 치우고 우린 사무실로 이동하여 botanical garden에 대한 간단한 오티 후 작업에 임했다. 우리는 2주동안 항상 남자팀과 여자 팀 두 팀으로 나눠 튤립캐기, 페인트 칠, 허브가꾸기등의 일을 하였다. 매일 5시간씩 일을 하고 우린 오후의 자유시간을 이용해 카우나스 주변의 강에 놀러가 수영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기도 하였고, 카약킹을 즐기기도 하였 다. 캠프를 하며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은 베지테리언들의 식단이었다. 2 명의 베지테리언 그리고 한명의 반베지테리언.. 그러다 보니 식단자체가 고기나 소시지류보다는 야채와 치즈 과일 위주의 음식을 먹게 되었다. 덕 분에, 한국에서 준비해간 불고기 소스나 미션 때 사용하려던 특제소스등 은 사용도 못하였지만, 2주간 웰빙음식을 경험한 덕분에 몸엔 더 좋지 않 았을까 생각한다. 우리 캠프는 다소 정적이었다. 술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아마 워크 캠프 역사상 이렇게 건전한 캠프는 처음일 것이다. 다른 캠프들의 말을 들어보면 캠프기간 내내 술을 먹고 놀았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런 적이 없었다. 6명중 술을 즐기는 친구는 나밖에 없었으니... 맥주가 먹고싶을 때면 언제나, 혼자 마트에 가서 사 마시곤 했었다. 비록 남들만큼 술을 많 이 마시지는 않았지만 알코올 없이도 즐거웠던 우리다. 캠프기간 동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치, 경제, 스포츠 연애 등 이러한 이야기를 외국친구와 나누고 있는 내 자신이 참 놀라웠다. 영어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배 려하였기에 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실제로 프랑스 친구 같은 경 우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지만, 우린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시도하며 같이 웃고 즐겼다. 2주라는 시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이 짧은 시간동안, 우리는 국적, 나이를 불문하고 너무도 친해져 버렸고, 헤어진다는게 믿겨지지가 않았 다.
30 앞으로 그 친구들을 다시 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아니.. 평생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학생활 마지막 방학을 함께 했던 다섯 친구들과 의 추억은, 절대 잊지 못 할 것이다. 이런 멋진 기회를 선사해준 기아자동차 와 유네스코 측에 다시 한번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31 30 31 "역사와 전통의 리투아니아, 아름다운 쿠르트베나이 국립공원에서의 2주" 리투아니아_최진영 CYVA06 홍익대학교 1. 리투아니아???어디 있는 나라야? 처음 리투아니아 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였을 때가 생각난다. 속마음은 독일이나 프랑스와 같은 유명한 나라에 방문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 았다. 그래서 처음 유네스코에서 주최하는 글로벌 워크캠프에 지원하고 자 했을 때 열심히 머리 속으로 계산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실질적으로 많 은 경쟁자를 뚫고 원하는 나라에 들어갈 확률과 이렇게 좋은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는 두 가지의 마음은 절충점을 찾아내기에 이르렀고 생 소한 나라는 경쟁률도 적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이 리투아니아로 지원을 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혹시라도 방문해볼지 모르는 나라에 대해서 관심 을 가지고 열심히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리투아니아가 어떤 나라인 줄 아냐고 물어보았지만 10 명중 7명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나머지 3명도 농구(리투아니아는 농구강 국이다) 등 국제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나라이름 정도만 간단히 아는 수준이었다. 관련 서적을 알아보아도 국내에는 발트3국이 그 렇게 인기 있는 여행지도 아니고 인터넷을 통해서도 생각만큼 많은 정보 를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 사이트에 한국 교민이 운영하고 있는 발트3국 전용 카페가 있어서 기본적인 정보부터 여행루트까지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혹시라도 발트3국에 워크캠프를 가게 되는 분이 있다면 꼭 검색해보시길 바란다.
32 리투아니아는 발트해 연안에 있는 발트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중 가장 큰 영토를 보유한 나라이다.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러시아, 독일 과 같은 강대국에 침입을 수차례 받기도 했고 비교적 최근까지는 소련의 지배하 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독립에 대한 열망과 끝없는 투쟁으로 결국 주권을 회 복하였고 지금은 시장개혁을 통해서 경제력 향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 다. 리투아니아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나라 역사와 상당수 닮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점이 리투아니아에 대해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한번은 꼭 가보고 싶다라는 열망이 생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2. 합격! 그리고 준비하기 합격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다른 해외 봉사도 다녀왔었지만 그 때와는 다르게 비행기표 끊는 것 부터 스스로 해야 했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일단 시간 이 지날수록 가격이 높아지는 항공권 예약이 먼저였다. 인기가 있는 여행지 가 아니었기 때문에 비행기표도 아주 싸게 구할 수는 없었지만 이왕 리투아 니아에 가게 된 마당에 발트3국은 다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에스토 니아 수도 탈린으로 들어가는 비행기 표를 구매했다. 발트3국간에는 버스가 수시로 운행되고 있기 때문에 국가간 3~4시간이면 이동이 가능하다는 정보 를 얻은 뒤여서 과감히 표를 예약할 수 있었다. 다음은 워크캠프를 위해 준비 를 해야 했는데, 사전에 캠프기관에서 가져오라고 한 필수 물품들 이외에 개
33 33 인적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했다. 다만 나중에 모기와 관련된 약품들 을 있는 데로 다 챙겨 올걸 그랬다는 후회를 했다. 현지에서 안티모기크 림을 구매할 수 있긴 하지만 번거롭기도 하고 챙길 수 있으면 챙기는 게 현명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우리 캠프 같은 경우에는 철저하 게 식사를 자충해야 했기 때문에 레시피도 필수적으로 필요했고 리투아니 아에서 한국 음식 재료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할 수 조차 없었는 데 역시 예상대로 리투아니아에 있는 3주정도의 시간동안 한국음식재료 파는 곳은 본적이 없었다. 다만 발트3국은 현재 스시 붐이기 때문에 간 장, 와사비와 같은 일식을 준비하는데 적합한 재료들은 쉽게 구할 수 있 다. 뛰어난 요리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간단하게 비빔밥과 주먹밥을 큰 틀로 정하고 고추장, 참기름, 가루 김, 부비또(밥에 비벼먹 는 양념) 등을 구입했고 국을 끓일 기회가 있을 것만 같아서 다시다 가루 도 따로 챙겼다. 쌀과 같은 것은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구매해서 가져가기 엔 무게도 상당하고 질이 다르긴 하지만 현지에서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 구매하지 않았다.(예상은 적중했다) 사전에 기아워크캠프참가자로 서 같은 워크캠프에서 일을 하게 될 재운이형을 만나서 서로 준비해야 할 것등을 조율했고 어느 정도 분담을 했는데 미리 같은 캠프에서 일하게 될 사람과 접촉이 가능하다면 훨씬 더 준비과정이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한 다. 기타 한국에서 가져온 질 좋은 목장갑, 그리고 외국인 친구들을 위한 소정의 선물 등을 챙겼다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에서 한류소녀를 만나다. 열흘 정도 일찍 출국해서 에스토니아로 들어가서 라트비아를 거쳐서 리투 아니아로 이동했다. 리투아니아에는 다섯군대 정도의 알려진 관광 도시가 있었는데 아마 많은 사람들이 제일 처음에는 수도 빌니우스로 이동할 것 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유명한 관광도시이자 교통편도 많기 때문에 워크 캠프장소로 가기 위해서도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관광을 하기 위 해서 빌니우스로 먼저 들어왔지만 라트비아에서 리투아니아로 들어오는 경우 워크캠프 장소인 샤울레이는 리투아니아 시내보다 라트비아 수도 리 가에서 가는 방법이 훨씬 가깝고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 다. 워크캠프장소로 이동하기 전날 같이 리투아니아를 여행하던 타 워크캠프 친구들과 어울리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우리가 한국말로 이야기 하는걸 유심히 쳐다보던 리투아니아 소녀가 있었다. 나랑 눈이 마주쳤었 는데 아직도 우리를 쳐다보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는 그 소녀에게 난 한국을 아냐고 물어봤고 그 소녀는 자신의 이어 폰을 내게 건내며 자기는 지금 슈퍼쥬니어와 엠블랙의 노래를 듣고 있다 고 답했다. 여러 매체를 통해서 한류가 열풍이라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34 진짜 이렇게 한국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에서도 한국을 자국민보다 더 좋아해주는 소녀를 만나니 신기하기도 했고 자부심도 느껴졌다. 이 소녀와는 따로 연락해서 워크캠프 가기전과, 워크캠프 후에도 만났었고 캠프를 마치 고 다른 나라로 떠나는 나에게 샌드위치와 편지까지 써준 고마운 친구였다. 편지의 내용중 주변에서 한국을 좋아하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해서 한국어를 전공으로 하고 싶다는 꿈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너를 만나고 나서 난 내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했어, 고마워 라는 구절은 스스로에게 많은 생각 을 하게 했다. 이 소녀와는 지금도 연락이 닿고 있고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의지가 확실해서 초급용 한국어 교본을 구매해서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4.쿠르트베나이 마을에 도착하다. 워크캠프장소인 쿠르트베나이 마을에 가기 위해선 리투아니아 네 번째 도시 인 샤울레이로 이동해야 했다. 수도 빌니우스에서 버스로 3시간30분 정도 걸 려서 샤울레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다른 도시 관광을 하고 온 재운이형하고 합류했고 쿠르트베나이 마을행 버스를 기다렸다. 마을로 가는 방법이 하나 뿐 이었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캠프 참가자인 에스토니아에서 온 나스티아를 만날 수 있었다. 나스티아는 영어가 굉장히 능숙해서 영어실 력이 짧은 우리들을 당황시켰는데, 알고 보니 이러한 워크캠프에 참가한 적 있는 경험자였다. 한국인 친구도 있다며 자랑했었는데 버스 안에서 나스티아 와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서 즐겁게 이야기 하면서 무 사히 캠프장소에 도착했다.(물론 가는 도중 내려야 할 곳을 몰라 인근 마을 주민의 도움을 받긴 했다.) 쿠르트베나이 마을은 거대한 쿠르트베나이 국립공원 안에 위치해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동화속에서나 나올법한 풍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도착해 보니 우 리와 함께할 나머지 워크캠퍼인 이자벨, 로만, 에밀 리가 미리 도착한 상태였 다. 로만과 에밀리는 날짜를 착각해서 2일전부터 와있었다고 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캠프원 상당수가 영어에 능숙하지 않았다. 이자벨, 로만, 에밀리 는 불어권 국가에서 왔기 때문에 세명이서 대화할 때에는 나머지 캠프원들은 쳐다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영어와 러시아어를 구사하던 나스티아는 이 런 상황에 대해서 못마땅했는지 계속해서 영어를 사용하도록 요구했고 처음 에는 나도 한국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몇 번 혼이 난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 해보면 이런 나스티아 덕분에 캠프원들이 좀 더 빨리 친해지지 않았나 싶다. 바르셀로나에서 온 제라드를 끝으로 캠프원은 나 포함 총 7명이었다. 다른 캠프와는 다르게 캠프리더 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고 관리를 해주는 유르 기타 라는 중년 여성분이 계셨다. 첫날은 서로 자기 소개를 하고 앞으로 일에 대해서 간단히 논의 한 뒤 친해지기 위해서 여러 가지 게임도 하고 밤에 한 텐트에 모여서 수다도 떨면서 시간을 보냈다.
35 35 5.작업 우리의 일은 오전 9시에 시작해서 12시까지가 오전타임이다 이후에 12시 부터 1시까지 점심식사를 하고 이후 오후 3~4시까지 오후타임 일을 하면 하루 일과가 끝났다.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임무는 옛날 방식 그대로 공원에 있는 화단에 식물을 심는 일이었다. 식물을 심 기 전에 잡초 등 각종 식물로 뒤덮여 있는 땅을 깨끗하게 정돈할 필요가 있었다. 꽤 깊이 박혀있는 잔디를 뽑기 위해서 삽으로 땅을 퍼서 뿌리 채 제거 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고 일은 간단해 보였지만 무엇보다 해 야 할 부지가 넓었다. 34 우리가 열심히 땅을 고르고 잡초를 뽑아 놓으면 정원사 로베르토씨가 기 계를 통해서 마구간에서 양분이 가득한 흙을 퍼온 뒤 작업한 땅에다가 부 으신다. 그렇게 흙으로 된 조그마한 언덕이 탄생하게 되는데 우리는 또다 시 그 언덕을 파헤쳐서 평평하게 땅에다가 고르게 펼쳐주어야 했다. 이러 한 작업이 몇 번 반복되고 그 뒤에 지정된 위치에다가 꽃을 심고 물을 주 면 되었다. 때로는 로베르토씨가 작업할 땅에 지주핀으로 길을 표시를 해 주시면 우리는 그 길을 따라 작업을 해 나갔고 그 결과 잔디 밭 위에 하나 의 멋진 화단길이 탄생하기도 했다. 작업은 대부분 유쾌한 분위기에서 진행이 되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여자아이들이 남자들 못지않게 힘을 잘 썼고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비교적 잘 준수하며 성실하게 작업했다. 일하는 도중 한국에서 귀한 장수 풍뎅이를 발견해서 같이 사진을 찍기도 하고 엄지손가락만한 작은 생쥐를 발견해서 즐거워하기도 했다. 다행히 2주동안 작업할 때 비가 내리는 일 은 없어서 훨씬 수월했다. 하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생태계도 잘 보존되어있고 숲과 같은 환경이다보니 수없이 많은 모기 때의 습격이 바 로 큰 일이었다. 지금까지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모기를 경험해 본적이 없었는데 마치 벌통을 잘못 건드렸을 때 벌들이 화가 나서 몰리는 것 마 냥 그와 비슷한 수의 모기들이 눈앞에서 소리를 내고, 기회만 되면 피를 얻기 위해 달라붙는 탓에 꽤 많은 고생을 해야 했다. 캠프원들은 각자 안 티모기크림을 뿌리면서 저항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별 효과는 없었 던 것 같다. 외부인인 탓인지 모르겠지만 유독 재운이형과 나한테만 모 기들이 몰려서 캠프원들 사이에서 모기는 코리안을 좋아한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6.여가시간 활용하기 일은 오후 3시~4시 사이에서 끝났기 때문에 많은 여가 시간이 있었다. 날이 좋을 때면 하이킹을 가기도 했는데 쿠르트베나이 국립공원자체가 자 연환경이 너무 좋기 때문에 걸어가다가 보는 풍경도 한 폭의 그림 같았
36 다. 근처 호숫가를 걷기도 하고 또 갈대밭 사이에 있는 오두막집에 일곱명이 앉아서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외국인 친구들이 수영하 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에 공원 안에 있는 호숫가로 자주 수영을 하러 가기도 했다. 이럴 때면 수영을 못하는 본인은 먼 발치에서 그들의 사진을 찍 어주며 나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쿠르트베나이 국립공원 중 쉬운 코스를 골라서 자전거를 타고 놀기도 했는데 호수가에서 수영을 하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던 도중 나스티아와 로만 이 충돌하는 사고가 있었다. 덕분에 캠프가 끝날 때까지 둘은 팔과 다리 등에 상당히 큰 멍자국을 가지고 있어야 했는데 당시에는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꾸 준한 치료덕분에 많이 상황이 호전되고 그 둘은 예쁜 상처가 아니냐며 장난 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건 뒤 자전거를 탄 일은 없었다. 비가 오거나 돌아다니기가 피곤할 때면 우리는 모여앉아서 각자 가져온 여러 가지 게임을 즐기기도 하였다. 재운이형은 특히 나스티아와 잘 어울렸는데 나스티아에게 베스킨라벤스31 이라는 술자리 게임을 알려주어서 서로 캠프 가 끝나갈 때까지 경쟁구도로 열심히 게임을 했었다. 흔히 한국 학생들이 어 디 놀러가거나 할 때 모여서 하는 마피아 라는 게임을 다른 캠프원들도 각자 의 나라방식으로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정말 놀랐는데 기본적인 룰이 아주 비슷해서 서로 즐겁게 게임을 하면서 어울릴 수 있었다. 나중에는 캠프리더 격인 엘피다로부터 여러 가지 게임을 받아서 밤 늦게까지 게임을 하기도 했 다. 우리의 일은 기본적으로 주중에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주말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캠프원들과 관리자인 유르기타가 상의를 해서 어디를 갈지 대화를 했고 리투아니아의 대표적 휴양지인 팔랑가 로 결정이 되었다. 아침 일찍 버스를 대여해서 출발하고 사람들이 붐비는 해변가에서 즐거운 시 간을 보내고 녹초가 되어서 다시 돌아왔었는데 대표적 관광지다보니 사람들 도 너무 많고 무엇보다 음식가격이 너무 비싸서 캠프원들 모두 불평했었다. 떠나는 날 전날에는 샤울레이 근처에 있는 십자가의 언덕 을 같이 관광하기 도 했었다. 어느 날 밤에는 댄스파티가 열리기도 했었는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몸이 피곤 해서 먼저 잠을 청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캠프원들이 보냈던 광란의 밤을 사 진으로 확인하니 일찍 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7.나스티아의 생일 러시아계 에스토니아인인 나스티아가 18번째 생일을 워크캠프 기간에 맞게 되었다. 사전에 이 정보를 알고 있던 우리는 조그마한 생일파티를 하기로 결 정했다. 때 마침 쿠르트베나이 마을에서 음악회가 열렸고 우리는 음악회가
37 37 열리는 사이 샤울레이로 나스티아의 생일파티 준비물을 사러 떠나기로 했 다. 재운이형과 나, 그리고 캠프리더격인 엘피다가 같이 샤울레이로 가서 케익, 풍선, 조그마한 선물 등을 사서 돌아왔고 나름대로 안들키려고 열 심히 준비하였지만 나스티아가 케익이 들어있는 냉장고를 열어버리는 바 람에 모든 게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름대로 그것도 좋은 추 억이었던 것 같다. 우리들이 어설프게나마 준비했던 조촐한 생일파티가 나스티아 본인은 티를 내진 않았지만 꽤 많은 감동을 받은 것 같았으니 절반의 성공이라고 치자 식사 및 먹을 것 해결 식사는 철저하게 우리의 자충으로 해결되었다. 유르기타가 식사당번 표를 만들어 주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전혀 다른 국가 친구들을 같은 날에 당 번으로 배정해 놓았다. 오히려 같은 나라 출신끼리 당번을 묶어놓아야 좀 더 제대로 된 음식이 나올 수 있을텐데... 유르기타는 오히려 더 흥미 로운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이런 식으로 배정했다고 말했다. 우리의 첫 식사는 바르셀로나 출신 제라드와 프랑스 출신 로만의 합작인 버터밥과 스파게티였다. 양조절이 잘못되었는지 스파게티는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았다. 다들 이것말고는 차선책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표정없이 맛있게? 먹었지만 지금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듯하다. 진짜 맛이 없 었다. 내가 당번이었을 첫날은 점심에는 같은 파트너인 스위스 출신 이자벨의 전통 튀김요리였다. 하지만 튀김요리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서 예상 시 간을 훨씬 넘어서 겨우 완성이 되었고 요리를 마치고 둘러본 주방은 정말 최악의 상태였다. 요리를 준비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기름이 범벅이된 주 방을 닦는 것이 더 힘들었다. 저녁에는 자신있게 비빔밥을 선보였는데 제한된 재료로 인해서 비빔밥에 많은 재료가 들어가지 못했고, 외국인 친구들이 매운맛을 굉장히 힘들어 했기 때문에 고추장도 소량이 첨가되었다. 원래 비빔밥은 고추장맛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맛있게 먹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당번일 때는 주먹밥을 한 뒤 계란옷을 덮혔다. 외국인 친구들의 입맛을 고려해서 스크렘블에그와 함께 케첩까지 첨가해주니 생각보다 반 응이 좋았다. 요리를 해보니 생각보다 재미도 있고 또 다양한 시도도 해 보고 싶어서 가지고 간 다시다를 이용해서 감자 양파 계란국을 끓여보기 도 하고 재운이형이 가져온 불고기 소스를 소세지와 볶아서 불고기맛 소 세지를 선보이기도 하고 다양한 음식들을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친구들이 많이 좋아해주었고 나중에 헤어질 때 서로에게 쓴 롤링페이퍼 비슷한 쪽
38 지에서 진정한 남자 요리사 라는 글귀를 많이 찾을 수 있었다. 특히 나스티 아는 레시피를 넘기라며 지금까지도 연락이 오고 있다. 내가 완성된 조미료 를 사용한 것을 알면 화를 낼까 조심스럽지만 인터넷 등을 찾아서 제대로 된 레시피를 번역해서 넘겨야겠다. 그밖에 간식거리는 마을에 있는 조그마한 슈퍼마켓 두 곳을 번갈아 가며 이 용했다. 그곳에서 맥주를 사기도하고 여자아이들 같은 경우 아이스크림과 쵸 콜릿을 주로 구입했다. 아무것도 없는 시골마을에서 슈퍼마켓에 가는 그 기 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고 우리의 보물창고나 다름없었다. 물론 유 료였지만... 9.카탈로니아 출신 제라드 처음 바르셀로나에서 온 제라드를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을 카탈로니아에서 왔 다고 소개했다. 캠프원들은 전부 어리둥절하면서 카탈로니아가 어디 있는 나 라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고 곳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유명한 도시 라는 결론을 냈다. 처음 안 사실이지만 스페인은 지금 지역갈등이 굉장히 심 한 상태이고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해안 인근 지역 영토들이 카탈로니아 라고 불리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 카탈로니아 지역 사람들은 자신들이 엄연 히 스페인과 구분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페인어와는 살짝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문화도 다르고 많은 것들이 스페인과는 차이가 있었지 만 카탈로니아를 아는 사람은 많지도 않고 어쨌든 대외적으로는 스페인의 일 부일 뿐이었다. 제라드는 자신이 카탈로니아 출신인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가끔 캠프원들이 제라드를 골려줄 때 스페인이라고 부를 때 면 불같이 화를 내면서 자신은 카탈로니안 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제라드는 특이하게 한국의 태권도 유단자였다.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를 배워 서 지금은 검정띠이고 태극 1장, 태극2장, 바깥다리, 안다리, 차렷, 경례 와 같은 한국어를 구사할 수도 있었다. 제라드가 태권도를 알고 상대적으로 한 국을 잘 알았기 때문에 재운이형과 나에게 거부감없이 접근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제라드와 재운이형이 가져온 세계지도를 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대화는 북한과 남한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난 내 가 알고 있는 데로 북한과 남한의 관계, 6.25 전쟁을 비롯해 미국과 일본 그 리고 중국 등 열강과 우리 한국의 현재 관계 정치적 문제 등을 어설픈 영어로 열심히 사전을 찾아가며 설명했다. 설명을 다 들은 제라드는 굉장히 흥미로 워 했고 유럽국가 어디에서도 이러한 것들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는 단순히 한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은 사이가 안 좋은데 왜 안 좋은 지 그동안 몰랐었는데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내가 카탈로니 아를 몰랐고 제라드가 한국역사를 몰랐던 것처럼 서로를 확실히 이해하려면 세계적으로 여러 국가의 역사에 대해서 기본적으로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깨 달음을 얻은 순간이었다.
39 사마고나 사건 캠핑장 관리인 달래의 초대를 받아서 달래와 그 남편, 그리고 그의 친구 와 술을 같이 마시게 되었다. 달래의 남편은 우리에게 리투아니아 전통주 를 권했는데 후에 알고 보니 사마고나 라는 러시아의 전통술로 기본 40도 는 훌쩍 넘어가는 아주 독한 술이었다. 권하는 것을 거절하기 그래서 한 잔씩 마셨는데 여자아이들이 상대적으로 잘 피해갔던 반면 나와 제라드는 붙잡혀서 계속 마셔야 했다. 여덟잔 정도를 마시고 도망가다시피 벗어나 서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돌아왔는데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서 다들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중 술을 덜 마신 나스티아와 로만, 그리고 재 운이형은 잠을 자러 텐트에 무사히 들어갔는데 문제는 과도하게 마신 에 밀리와 이자벨이 토하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토하는 이자벨과 에밀 리의 등을 열심히 두드려주고 챙겨서 텐트로 보냈는데 여자 텐트에서 나 스티아와 로만이 언제 토할지 모르는 이자벨과 어떻게 잠을 자냐며 제라 드와 나에게 항의했고 남자텐트에서 재우던지 아니면 부엌에서 재우라며 이자벨을 그녀의 침낭과 함께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순간적으로 화가 너 무 나서 친구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나스티아 로만과 말싸움을 하다 가 이자벨 본인이 남에게 피해가 되기 싫어하는 거 같아서 결국 부엌 구 석에서 자리를 마련해서 잠을 자게 했다. 한국에서는 술취한 친구가 있으 면 잘 챙겨주고 했었는데 서양 문화는 살짝 개인주의적 성향이 있어서 이 런 것에 있어서는 많이 다르구나 싶었다. 결국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이 자벨이 자는 부엌 옆 구석에 나도 침낭을 가지고 와서 같이 잠을 잤는데 다음날 모기로 인해 얼굴이 엉망진창이 된 이자벨을 보고 절대 술 마시지 말라고 한마디 해주었다.
40 다음날 로만과 나스티아가 좀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전날밤일에 대해서 사과 를 해왔다. 나는 별것 아니라며 괜찮다고 답했다. 이 사건 이후로 캠프원들을 나를 아빠 또는 삼촌 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독한 술을 많이 마셔놓고도 멀 쩡히 살아서 캠프원들 뒷정리를 다했다 는 사실에 대해서 크게 감동을 받은 듯 했다. 사실 술이 쎈 게 도움이 된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11.떠나는 날 및 마무리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 떠나는 날이 되었다. 서로 유난히 말이 없어졌고 각 자의 짐을 싸는데 집중했다. 재운이형은 자신이 가져온 선물과 엽서를 써주 었는데 그것을 보고 중간에 선물을 미리 줘버린 것을 후회했다. 캠프 중간 즈 음에 재운이형이 덥다고 부채를 캠프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보고 따라서 내가 가져온 황금으로된 한국전통문양 책갈피를 나누어줬었는데 재운이형이 마지막 선물도 따로 준비해놓았는지는 예상못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재 운이형한테 살짝 당했다는 우스운 느낌도 든다. 재운이형 혼자 너무 멋있었 다. 앞으로 워크캠프를 가실 분들이 있다면 선물은 꼭 마지막 날에 주는 걸 로. 캠프원 저마다 자신의 수첩에다가 각자 자신의 국가 언어로 글을 남겨달라고 했고 서로의 종이 혹은 수첩에다 편지를 쓰면서 버스 시간을 기다렸다. 특이 하게 제라드는 자신의 여행일정에 맞추어서 캠프를 떠나지 않고 한 5일가량 일하면서 머물기로 했다. 따라서 우리가 떠날 때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 나왔 는데 우리가 버스 타는 그 순간까지도 사진으로 남기려고 노력했다. 샤울레이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워크캠프중에 실질적인 리더로서 정말 열심 히 했던 나스티아가 먼저 떠나게 되었다 덕담을 하고 서로 꼭 연락하기를 당 부하고 버스시간이 가까워져서 서둘러 그녀를 보냈다. 재운이형, 로만, 에밀리, 이자벨,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명은 다음 행선지까 지 리투아니아의 두 번째 교통의 요지인 카우나스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따 라서 카우나스 버스터미널에서 서로 작별인사를 하고 각자의 목적지로 향했 다. 어떻게 보면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한 2주간의 워크캠프 기간이었다. 막연하게 외국을 나가고 싶었던 마음이 커서 신청한 워크캠프였지만 돌아올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꽉찬 마음을 안고 귀국했다. 7명이라는 적은 인원이여서 그 런지 모르겠지만 어느 캠프보다도 더 결속력이 좋았고 서로 대화한 시간이 많았다고 자부한다. 2주동안 지내는 과정에서 생활방식도 달라서 불편한 점 도 많았지만 조금씩 배려를 했고, 언어적인 측면에서도 처음에는 각자 나라 의 언어로 이야기 하다가 점점 영어를 쓰려고 노력해서 나중에는 서로 영어 로 농담까지 하면서 어울릴 정도였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스스로
41 41 가 영어를 못한다는 생각에 초반에 말을 잘 안하려고 했었는데 조금만 더 일찍 적극적으로 어울리려고 노력했다면 좀더 빨리 캠프원들과 친해져서 더 재미있는 시간을 많이 가졌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40 언어도 국가도 인종도 달랐지만 그러한 차이를 넘어서 우리는 2주동안 하 나였다고 생각한다. 서로 고민거리를 공유하고, 다쳤을 때 서로 치료해주 고, 때론 기분이 상하기도 했지만 같이 즐기고 웃고...내게는 분명 잊 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고 앞으로의 진로 설정에 있어서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함께 하면서 인종과 국가를 뛰어넘어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앞을 우리가 세계화시대를 살아가면서 추구해야할 목표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그 첫걸음으로 나는 언어를 배우고 싶다. 나스티 아에게 약속했듯이 나는 언어 마스터가 되기 위해서 영어를 시작으로 최 대 3개의 언어를 더 배울 생각이다. 열심히 생활하다보면 언젠가 다시 그 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훌륭한 기회를 제공해 주신 홍익대학교 관계자 분들과 한국 유네스코 관계자분들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42 5. 벨기에 " 나의 워크캠프 기행기 " 벨기에_권순미 JAVVA01 한국외국어대학교 워크캠프 합격 날! 이루 말할 수 없이 들떴다. 내가 워크캠프에 간다 니. 기쁘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했다. 나는 국내 여 행조차 단 한번도 혼자서 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내 가 비행기를 타고 14시간을 날아서 저 대륙 저편 유럽을 혼자 다녀와 야 한다니. 내가 원해서, 참가하기를 간절히 원했던 캠프였지만, 한편 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합격의 설렘을 만끽할 여유도 없이, 바쁘게 캠프를 준비해야 했다. 여권 발급받고, 백신도 맞고, 사이버 외교단에 신청해서 친구들 에게 줄 한국 홍보자료와 엽서도 받아놓고, 친구들과 캠프에서 만나게 될 아이들에게 줄 공기, 윷놀이도 사고 한국 과자도 샀다. 시간은 너 무도 빨리 지나갔고, 어느 새 출국 일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출국 날, 공항까지 바래다주신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앞으로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기대와 설 렘으로 가득했던 준비기간이 지나고, 캠프 시작을 목전에 둔 나에게 그제서야 두려움과 걱정이 엄습했다. 내가 워크캠프를 가고 싶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내 자신에게 변화 를 주고 싶어서였고, 또 하나는 내가 참가하려는 워크
43 43 캠프가 내 국제 기구에 대한 관심사를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나는 완곡히 표현하자면, 도전에 있어 신중한 사람이다. 여러 번 생각하 고, 가능성과 변수에 대해 사려 깊은 판단을 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 기 때문이다. 이런 신중함은 자연스럽게 나를 변화와 도전에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이에 워크캠프는 내 스스로 갈증을 느꼈던 이 부분에 있어 도 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42 또한, 나는 예기치 않은 변화에 대한 적응력과 순발력이 낮은 편이다. 스 스로 계획한 일이 마음 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데에서 쉽게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때문에 워크캠프에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새 로운 환경과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생활은 이러한 부분에 적 응력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내가 하는 캠프는 적십자사에서 운영하는 망명자 보호센터에서 하는 일 이었다. 대체로 다른 캠프들이 한 가지 일을 한다면, 내가 하는 캠프는 두 가지 일을 해야 했다. 하나는 망명자 가정 아이들의 놀이상대가 되어주는 일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센터의 규율에 동영상을 찍는 일이었다. 그곳에는 다양한 국적의 망명자들이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네팔, 방글라 데시아, 콩고, 토고. 약 120여명의 주민들이 있는데 얼마나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겠는가. 센터의 직원들은 주로 프랑스어나 영어를 썼 다. 따라서 주민들이 이 외의 언어를 쓴다면 서로 의사소통이 힘들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센터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센터의 규율은 어떤 것인지 설명해 주기 힘들었다. 따라서, 센터에서는 언어 를 모르더 라도 비디오를 보면 센터의 규율을 이해할 수 있도록 비디오를 제작하기 로 했다. 우리가 해야 하는 두번째 일이 바로 그 비디오를 만드는 것이었 다. 캠프 첫 날에는 센터를 둘러 보고 서로 인사하고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할 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날이 훌쩍 가버렸다. 우리는 오전에는 비디오를 제작하는 일을 하기로 하고, 오후에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일은 생각했던 거 보다 까다로웠다. 비디오를 제작하기 위해, 우리는 센 터의 규율을 숙지해야만 했다. 하지만, 똑같이 성문으로 금지된 행위라고 할지라도, 어떤 행위는 그대로 금지되는가 하면 또 어떤 행위는 그냥 관 습적으로 용인되기도 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정확한 기준을 정해야 했다. 또, 언어를 알아듣지 못해 도 비디오를 보고 내용을 이해할 수 하기 위해서,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 이 최대한 쉽고 단순하며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해야 했다. 우리는 장면 마다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촬영하는 게 좋을지 고민했다.
44 우리는 비디오 촬영을 할 때, 주민들이 연기해주길 바랐지만 어떤 주민들은 비디오에 나오는 걸 꺼려하기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흔쾌히 비디오 촬영을 도와주겠다고 해놓고 나중에 마음을 바꿔서 거절하기도 했다. 그럴 경우, 우 리는 또 다른 이들에게 비디오 촬영을 부탁해야 했다. 아이들과의 놀아주는 일도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캠프에 가기 전에는 아이 들과 노는 것이 막연히 재미있고, 즐거울 거라고 생각했다. 30여명의 아이들 이 나이대가 다양하므로 우리는 아이들과 다 같이 놀기 위해서 최대한 쉽고, 단순한 게임을 준비해야 했다. 또, 벨기에의 날씨가 변덕스럽기 때문에 날씨 가 맑을 때 할 활동과 비가 올 때 할 활동을 다 준비해야 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데에는 언어의 장벽도 있었다. 센터가 벨기에의 프랑스어 권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센터의 주민들 중 절 반 이상이 프랑스어를 했고, 거의 모든 아이들이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따라서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고, 같이 놀고 싶어도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 힘든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특히나 아이들끼리 싸웠을 때, 이를 말리고 상황을 정리해야 하는데, 프랑스어가 서 툰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나눌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캠프 참가자 중에 당찬 스페인 소녀가 한 명 있었다. 이름은 잇치(Itzi) 고 나 보다 두 살이 많았다. 잇치와 나는 같은 방을 썼었는데 하루는 수다를 떨다가 이야 기의 주제가 캠프에 왜 참가하게 되었는가 로 흘러 들어왔다. 이전에 워크캠 프를 두 번 참여해 본 경험이 잇치는 자기가 캠프에 참가하고 있을 때 행복함 을 느끼고 즐겁다고 했다. 그녀는 단순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그저 선택하 기 때문에 캠프에 또 참여하게 되었다고 했다.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의 태도에 놀라기도 했지만, 말의 내용도 놀라웠다. 단
45 45 순히 내가 좋아한다는 일을 한다니.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나는 잇치의 말을 듣다가 깨달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하려고 노력 하기보다는 내가 해 야 할 일 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것을 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는 것 을.사회가 나한테 요구하는 것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말이다. 잇치를 보면서 그녀가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44 내 마음을 먹먹하게 했던 사람은 또 있다. 망명자 거주민 중에서 남아프 리카에서 온 케바 라는 남자가 있었다.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케바는 망명 오기 전에 요리사였다고 했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제빵을 하는 액티비티를 계획한 적이 있었고, 우리는 그를 초청했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 하루 선생님이 되어서 빵을 만드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었다. 그 후, 캠프의 마지막 날 그와 몇몇 주민들은 우리를 자신의 거처로 초대 했다. 우리가 떠나기 전에 아프리카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는 이유에서 였다. 우리는 그 덕분에 여러 아프리카 음식을 맛 볼 수 있었다. 쌀과 닭 고기를 요리한 음식, 식혜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새콤한 맛이 강한 음식 등 예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 서 케바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가 처음 센터에 도착했을 때 자신을 비롯한 몇몇 주민들은 그 다지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저 며칠 있다 갈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댄다. 그러나 우리가 아이들과 노는 모습을 보면서 점점 생각이 바 뀌었다고 한다. 아이들을 위해 놀이를 준비하고, 아이들과 어울리는 모습 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자신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먼 곳에서 벨기에 의 이 작은 마을까지 와서 이렇게 있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케바 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여 나갔다. 케바는 망명을 한 뒤, 여태까지 쌓아 올려 왔던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 지는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그는 여태까지 해왔던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영점 에 서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고 했다. 자신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말하길, 자신은 전혀 스트레 스 받지 않으며, 다시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 모두를 응원한다고 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해야 겠다는 일이 있으면 자신을 믿고 해나가라고 했다.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좌절하지 말고 그 순간을 즐기라고. 언제나 희망을 잃지 말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자기 자신을 믿고 나아가라고 했다. 케바의 말을 듣고 있자니, 마음 한 쪽 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 쩌면 케바가 나에게 들려준 말은 스스로 느꼈던 부족함에서 워크캠프를 채우고자 했던 내가 가장 듣고 싶어했던 위로의 한마디였을 지 모른다는
46 생각이 들었다.. 워크캠프에 참가하기 이전까지, 나는 하고 있는 일이 잘 풀 리지 않거나 예상했던 대로 일이 잘 흘러가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예 민한 성격이라, 긴장을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 어느 한 구석이 쉽게 아 팠고 자주 피곤했다. 나는 나 자신이 자신감이 부족한 성격이라고 생각했고, 언제나 내 자신에게 자신감을 갖자 고 되뇌어 왔다.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어떤 진로를 선택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런 확신도 없 는 상태였다. 워크캠프에 참여하고자 했던 이유와도 관련된 것이었다. 나는 이런 내 자신에게 변화 를 주고 싶었다.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다 보면, 내 자신이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내 성격에도 변화가 있지 않을까하고 막연하게 기대 하고 있었다. 케바의 말은 문득 내가 어디에 와 있는 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센터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그리고 케바는 자신의 나라를 떠나 망명자 보호 센터에 와 있는 상태였다. 타국의 영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가 걸릴지 모 르는 시간을 센터에서 보내야 한다. 영주권을 신청하는 서류를 보내고, 정부 에게서 회신을 받고, 면접을 보고, 거절 받으면 다른 나라에 다시 서류를 내 고.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과 같았다. 센터에 앞으로 얼마나 더 머물러 야 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우리를 격려해준 이 아이러 니한 상황에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빨리 영주 권을 얻길 바란다고 응원해줘야 할 사람은 우리가 아니던가? 하는 생각이 머 리 속을 스쳤다. 그런데도 그는 우리를 응원해줬다. 농담을 잘 던지고 쾌활하 게 웃던 케바는 전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우리에게 열심히 살라고 따듯한 말을 남겨주었다. 케바의 말은 감동적이었지만, 프랑스어가 서툴렀던 나는 내가 그의 말을 듣고 느꼈던 감정을 잘 얘기해주지 못했다. 만약 내가 다시 케바를 만날 수 있다면, 그 때는 그런 멋진 말을 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고 전하고 싶다. 캠프를 떠나는 날이 밝아왔다. 나와 3명의 친구가 같이 브뤽셀로 가는 기차 에 탔다. 가장 먼저 기차에서 내린 건, 다른 기차로 갈아타야 하는 로리였다. 18살의 프랑스인인 로리는 호기심 많고 장난기가 많은 아이였다. 로리는 내 려서 그녀를 배웅하는 나에게 고마워, 순미. 너 덕분에 한국에 대해 많이 알게 됐어. 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 뭐라고 대답했던 거 같은데, 사실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그렇게 로리 가 가고 나서 나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는 사실이다. 그 때서야 진짜 우리가 헤어진다는 것을 실감했다. 한국에 산다면, 언젠가 만날 수 있겠지만 너무 멀 리 떨어져 사는 우리가 앞으로 또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났 다. 브뤽셀에서 내린 독일 소녀 알린과 나는 파리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 다. 역 안에만 있기는 답답해서 역 밖에 앉아 공기를 쐬고 있었다. 그녀와 나
47 47 는 캠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린은 캠프에서 만난 이란 소년이 자꾸 생각난다고 했다. 17살의 나이에 혼자 이란에서 벨기에까지 온 소 년. 그녀의 어머니는 이란에 있지만 지금 편찮으셔서 소년에게 계속 이란 으로 돌아오라고 연락을 한다고 했다. 그 소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 겠다고 했다. 프랑스어도 영어도 할 줄 모르던 그 소년. 센터의 직원들 중 에 영어나 프랑스어를 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 이외의 언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은 거의 없었다. 그 소년은 이란어를 할 줄 아는 친구를 통해서 만 다른 사람들과 얘기할 수 있었다. 알린은 홀로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 선 나라에 온 그 소년에게 제대로 작별인사를 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 다고 했다. 나는 나를 찾던 아이들이 자꾸 생각났다. 한 명 한 명, 아이들 의 얼굴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 없이 이제 방학을 보내야 할 아이들. 시골 마을에서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해 하던 아이들. 내가 마당을 가로질러 지나가면 창문에서 내려다보고 있다가 단숨에 3층을 뛰어내려 와 이름을 부르며 품에 안기던 아이. 형제가 있냐고 물어보자 언니가 한 명 있었는데 태어난지 3일만에 전쟁 때문에 죽었다고 아무렇지 않게 이 야기 하던 아이. 우리가 떠나기 전날, 우리에게 벌써부터 너희가 보고 싶 어 고 말해주던 아이 46 알린과 나는 그렇게 역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울고 말았다. 워크캠프의 3주가 언제나 신나고 즐겁고 새롭게 느껴지던 건 아니었다. 놀아달라는 아이들의 재촉이 힘겨워서 간절히 쉬고 싶었던 적도 있고, 언 어가 잘 통하지 않아 고생했던 적도 있고, 시골 마을에 있는 것이 지루하 게 느껴졌던 적도 있었다. 워크캠프 기간 동안, 누군가는 워크캠프에서
48 많은 것을 배우고 얻어간다고 하던데, 나는 무엇을 배우고 얻어가게 될까? 하고 궁금해했었다. 앉아서 알린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답을 찾게 된 것만 같았다. 열심히 일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던 센터 직원들, 호기심 있게 다가오며 우리와 친해지고 싶어 하던 망명자 주민들, 순수하고 예쁜 아이들, 어느 한 구석 모난 사람 없이 3주 동안 잘 지낸 우리 캠프 친구들, 그들과 함 께했던 즐겁고 재미있던 순간과 내가 힘들고 지루해했던 그 순간까지도 모두 가 경험이고 추억이었던 것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캠프를 시작하기 전, 내가 기대했던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깨닫고,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나는 기쁘기는커녕 눈 물이 차 올랐다. 캠프를 다녀오고 나서 나의 일상에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짧은 방학을 보 내고, 개강을 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으며, 진로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 중 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내적으로 크게 변화한 내 자신을 느낀다. 우선 새로 운 일을 시작하는 데 있어 긍정적이고 즐거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지 금 이 순간 함께하는 사람과의 인연이 매우 소중한 것임을 느낀다. 그리고 이렇게, 워크캠프가 나에게 남긴 족적은 앞으로의 내 삶에 있어 긍정적인 에 너지가 될 것임을 확신하다.
49 49 처음 경험한 해외봉사도 아니었고 나름 다양한 해외 경험이 있다고 자부 하였기 때문에 워크캠프를 가기 전 저는 자신감이 충만하였습니다. 하지 만 그 곳에서 그동안 저는 우물안의 개구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아직도 지구 구석구석에서는 상상치 못한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48 "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가 되다" 벨기에_박현정 JAVVA03 홍익대학교 제가 머물렀던 캠프는 벨기에 우아니 영 뜨에하슈 지역에 있는 레드크로 스(적십자)센터입니다. 이 센터는 불법이민자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센터 에선 레지던스들에게 숙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작지만 용돈도 정기적으 로 주고, 센터 내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며 그 사람들이 페이퍼(비자 나 서류 등)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캠프에 지원하였을 때는 아이들 봉사활동이었지만 막상 그 곳에서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레지던스들을 위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시골에 위치한 센터기 때문에 딱히 할 일이 없는 무료한 사람들을 위해 캠퍼들이 스스로 프로그램을 짜서 그들과 어울리고 함께 하는 것이 제가 하는 봉사 활동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곳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하여 게임이나 미술, 음악같은 실외 활동을 위주로 진행하였습니다. 아이들도 구체적으로 연령대를 나누어 초 등학생 정도의 아이들, 혹은 10대 후반의 아이들에 따라 각기 다른 활동 을 구성하고 진행하였습니다. 캠퍼들은 매일 저녁식사가 끝난 후 모여서 회의를 하며 그 날 하루 프로그램이 원활하게 돌아갔는지 그리고 레지던 스들이 좋아했는지 점검하고 다음날의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할 지 계획 했습니다. 물론 큰 활동틀은 매주 월요일 크게 일주일 치를 정하였고, 날 씨와 환경에 따라서 각각의 날에 진행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의 매 일 하는 회의의 요소였습니다. 캠퍼들은 회의 때 각자 아는 게임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주로 자신이 어린 시절에 친구들과 하는 게임을 말해줬는데 각각 이름은 틀려도 전체 적으로 비슷비슷한 게임들이었습니다. 이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캠퍼들 이 저 빼고는 전부 유러피안 때문에 친구들이 제가 이해 할 수 없는 게임 에 대하여 말하면 어떡해해야하나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 꼬맹 이들이 노는 것은 비슷하구나를 알게되었습니다. 저 역시도 어떤 게임에 설명하면 아! 그거 우리나라에서는 게임인데! 하면서 친구들도 제 게임에 대해 반응해줬습니다. 봉사활동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캠퍼들을 위한 숙소 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센터 내의 텐트에서 생활하고 레지던스들과 같 은 식당을 쓰기 때문에 일정하게 정해진 시간만 봉사활동을 한다고 하기 보다는 거의 하루 종일 그들과 함께 있으려 애썼습니다. 회의 때 프로그 램들은 주로 오후 6시, 저녁식사 이전까지였지만 자발적으로 오늘 저녁은
50 캠프파이어를 하자고도 하고, 다 함께 영화보자고 하며 포스터를 만들어 붙 여 홍보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가 오늘 저녁에 어떤 것을 할 것이니 와달 라고 말을 하고 다녔습니다. 매주 금요일 밤은 딱 우리 캠퍼들을 위한 시간으로 센터 내에서 주류가 안되 기 때문에 그 날 저녁식사 후에는 늘 가는 펍에 가서 술을 마시고, 파티를 하 며 놀았습니다. 그 펍에서 저희끼리만 놀았다기보다는, 그 지역 주민들이 펍 에서 술을 마시면서 같이 춤을 추고 어울리게되었습니다. 주민들은 아무래도 벨기에 사람들이고, 시골 지역의 특성 상 젊은 사람들 보다는 중장년 층이라 영어를 잘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필요할 땐 불어를 쓰는 친구들이 통역을 해 주어 대화를 하였고 블루스, 살사 같은 춤도 추며 재밌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첫 번째 주 주말에는 벨기에 내 다른 레드크로스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그룹과 우아니 엉 뜨에하슈 근처 나무르에서 만났습니다. 정해진 규칙 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캠프 리더가 그 캠프 리더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생긴 기회였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센터 상황에 대해서 공유하였고, 특히 저는 그 캠프에 한국 친구가 두명이 있어서 좀 더 생생하게 이야기를 전 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주 주말에는 브뤼셀로 가서 일박이일 동안 관광을 하였습니다. 딱히 투어코스가 있었다기 보다는 리더가 브뤼셀에 살기 때문에 리더의 친구들을 만나서 어울리고, 가고 싶었던 곳을 같이 다니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왔습 니다. 개인적으로는 브뤼셀이 처음이라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주말은 그 다음 월요일 날 떠나기 때문에 레지던스들과 함께 보내자 는 뜻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우리는 빌리아드 룸에서 작은 클럽을 열어, 디지털자키에 관심이 있는 레지던스 친구가 사운드를 담당하였고 레지던스 들과 춤을 추며 놀았습니다. 마지막 한 주는 우리에게 따뜻했던 그들을 위해 고맙다는 메시지가 담긴 노래를 만들어 그날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였습니 다. 처음 시작은 좀 부끄러웠지만, 쉬운 노랫말이라 다들 함께 부르며 좋아해 주어서 재밌었습니다. 다른 캠프처럼 언제까지 무엇을 완성시켜야 된다는 룰이 전혀 없었는데, 첫 주 회의 때 10대 친구들 건물 벽이 횡 하여서 우리 스스로 이 곳에다가 벽화 를 그리는 것을 목표로 잡았었습니다. 저는 디자인 전공을 하였고, 스위스 친 구 하나가 애니매이션 전공이라 둘이 함께 스케치를 하고 친구들에게 도색을 함께하자 부탁하여 마지막 날에는 벽화도 완성시켰습니다. 주중에 항상 센터 안에서만 봉사활동을 한 것은 아닙니다. 야외수영장과 미 니골프, 미니보트 등의 시설이 있는 리조트로 하루 날 잡아서 몇몇 레지던스 들과 다녀온 적도 있었고, 센터 근처의 캠핑장에 가서 바비큐파티를 하고 돌 아온 적도 있습니다. 사람들과 등산도하고 공원에도 다녀왔습니다.
51 51 제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너희들이 와서 너무 기쁘다. 요즘은 하루하 루가 즐겁다. 입니다. 무료한 그들의 삶에 작지만 따뜻하고 즐거운 마음 으로 함께 할 수 있어서, 그리고 저의 마음이 전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 어 보람있었습니다. 50 캠프를 떠나는 날이 가까워 질 수록 그 말은 앞으로 너희들이 없어서 심 심해서 어쩌지. 가 되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3주가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 지만 캠퍼인 우리는 우리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많은 커뮤니케이션이 이 루어졌고 정도 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르완다 친구와 했던 대화로 제가 캠프를 통해 성장할 수 있었던 이 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친구는 제 또래의 키도 크고 꿈도 많은 남자 입니다. 고등학교 때는 농구선수를, 대학은 르완다에서 가장 좋은 학교를 갔지만 독재정권 속 강제 군징용으로 그 친구는 꿈을 접고 군대를 가야만 했습니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모든 시민들이 잠재적으로 데모할 가능성 을 가진 반정권 시민들이기 때문에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위에서 시키는 데로 무고한 사람들을 총으로 쏴야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 친구는 그 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나라로부터 도망치는 일 뿐이었단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후 여러 나라를 떠돌다 벨기에 레드크로스 센터로 오게 되었다 합니다. 제가 캠프생활을 했던 센터에서는 특히나 10대 아프가니스탄 남자 아이 들이 많았는데, 아프가니스탄하면 테러리스트 집단이라는 고정관념 때문 에 처음에는 그 친구들을 멀리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의 큰 착각과 실수였습니다. 그 친구들 역시 제가 10대였을 때처럼 꿈이 있고 가고 싶 은 학교가 있고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 아이들이었습니다. 하루하루 그 곳 레지던스들과 가까워 질 수록 저는 제가 무지했던 부분과 세상이 얼마나 큰 지 깨달아나갔습니다. 불법이민자, 망명자 하면은 자국에서 못 사는 사람들이 도망쳐 나온 것이 라 생각하겠지만, 그 속에는 멀쩡히 은행을 다니던 아빠가 자신의 가족을 데리고 도망친 사연도 있었고 여러 나라에서 일을 하다가 다른 일을 찾지 못하여서 온 사람 등 제각각 자신의 사연이 있었습니다. 레지던스들이 페이퍼가 없기 때문에 센터의 오피스를 들어가면 사람들 의 증명사진과 그 옆에는 센터에서의 고유 넘버, 이름, 그 사람들의 출신 과 방의 호수가 적혀져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도소같은 느낌이었습 니다. 정해진 시간 외에는 밥을 먹을 수 없으며, 한달에 열흘 이상 외박이 있을 시 센터를 나가야되는 규칙. 그리고 일정 기간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생활용품들... 한국에 돌아와서도 센터의 레지던스들과 채팅을 할 때 다 들 프리즌 을 벗어나고 싶다 말합니다. 이 단어가 그들에게 이중적인 의
52 미를 띄고 있다 생각합니다. 정해진 규칙인 속박 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그리고 페이퍼 를 갖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 새삼스레 하고 싶은 일 마 음데로, 항상 든든하게 지원해주시는 부모님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 다.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레지던스들이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최악의 상황이라면 그들은 타국에서 동냥을 하며 길에서 나앉을 수도 있을 상황이지만 센터의 유용함을 알고 일찍이 컨택을 하여 영리하게 대처하 였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레지던스들은 대학교에 입학하기도 하고 직업을 구해서 페이퍼를 받는 등 평균적으로 3,4개월 후면 스스로 센터를 나 갑니다. 아프리카계 친구인 마노는 유럽정치외교학과가 있는 벨기에의 대학교에 가고 싶어 제가 캠프에 있는 동안 같이 에세이와 기타 서류들을 준비하였습니다. 한국에 와서 들은 가장 기쁜 소식은 그 친구가 대학교 입학에 합격하여 곧 합 법적인 사람이 되고 센터를 떠난다는 것입니다. 저는 센터에서 있었을 캠프 때 뿐만 아니라 한국에 돌아온 지금까지도 캠프 생활에 대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도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그들의 일상과 비자나 페이퍼가 생긴 좋은 뉴스를 듣게 됩니다. 이에 양면적인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센터에 들어오고 싶어 하며, 센터 측에 서도 역시 거주자들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정부로 부터는 비공식적인 곳이기 때문에 지원을 받지 못하는 실상인 것입니다. 캠프 첫 날 센터장에게 센터의 시스템 뿐만 아니라 예산 정책부터 향후 레지던스들의 행보 등 궁금한 것을 전부 물어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캠퍼 친구들은 궁금 한 것에 대해서 전부 물어봤습니다. 사실 저는 예산안이나 사람들의 포켓머 니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같은 질문은 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 는데 다른 캠퍼 친구들이 거리낌 없이 물어보았고 센터장도 숨김 없이 그 곳 의 상황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봉사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미팅을 하고 나 니 진이 빠졌습니다. 충족치 않은 상황으로 안타까운 마음에 마음이 무거웠 지만 이내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기간동안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여 사람대 사람으로 가까워지자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캠프를 다 마치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그들과 가까워졌다 생각합니다. 앞으로 언제 그들을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서든지, 항 상 그들이 잘 될거라 믿고 세상 사람 모두가 걱정없이 일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 날이 오길 소망합니다.
53 53 6. 스위스 52 " 내 인생에 꿈 같은 기회와 경험은 바로 워크캠프이다! " 스위스_김민우 WS12FR01 고려대학교 해외에 나간다는 것 설렘 그 자체인 것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해 서 훈련을 하기 위해 해외에 자주 나가곤 했다. 매년 해외에 나가지만 누 군가의 통제아래에 움직이고 틀에 박힌 생활과 힘든 훈련으로 해외에서의 그 설렘을 느껴 본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이번 여름에 드디어 나 혼자 가는 해외와 그곳에서 만날 여러 사람들 그 리고 새로운 경험을 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렘으로 밤잠을 설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캠프를 위해서 어떤 것을 준비 해야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고민 끝에 캠프를 잘하기 위해서는 우 선 언어와 캠프 사람들과의 어울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준비를 하지 못했는데 어느덧 나는 스위스에 도착해 있었고 드디어 캠프 지에서 캠프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지만 한국에서의 기대감과 설렘이 어색 함과 낯설음을 이기지는 못했다. 스위스 캠프는 청소년 언어캠프로 봉사 자들은 식사준비와 설거지 그리고 스포츠 활동을 함께하는 일을 했다. 처음엔 식사당번 계획표를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서 식사준비를 하고 설 거지는 모두 함께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아이들과 함께 스포츠 활동을 하 는 패턴으로 하루 일과를 보냈다.
54 아침은 보통 8시에 했으며 빵과 요플레 그리고 음료 등으로 먹었고, 스위스 는 저녁보다 점심을 더 푸짐하게 먹는 편이라서 점심은 항상 힘든 편이었다. 점심, 저녁 메뉴로는 닭고기나 파스타와 샐러드, 햄버거나 리조또 등으로 특 유의 유럽 음식들이었다. 내 입맛은 조금 까다로운 편이었는데 캠프지에서 2 주 동안 먹었던 음식들은 나에게 너무나 잘 맞았고, 맛있어서 항상 더 먹곤 했다. 스포츠 활동으로는 비치가 캠프지에서 멀지 않아 거의 매일 비치에 가서 수 영을 했고, 축구와 배구, 배드민턴 그리고 번외 활동으로 야구도 함께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야구를 할 때는 내가 야구선수였는지 몰라서 그런지 내가 야구하는 것을 보고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렇게 내가 캠프 사람들과 더 많이 친해질 수 있었던 활동이 바로 스포츠 활동이었다. 캠프에서 나는 캠프리더(스위스 남자 2명)와 체코, 우크라이나, 대만, 이탈리 아, 스위스 여자 7명으로 총 10명(나 포함) 정도와 함께 동고동락했다. 대부 분 나이는 18~25살 까지 있었고, 그 중 내가 나이가 가장 많았다. 숙소는 건 물 안에 있었으며 청소년들과 함께 자야 하기 때문에 침대가 부족해서 봉사 자 5명 정도는 텐트에서 자야 했다. 봉사자 중 남자는 나 혼자여서 엄청 큰 텐트에서 혼자 자게 되어 침대보다 편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샤워시설과 화 장실이 깨끗했고, 했던 일이 음식준비라서 그런지 배고프거나 목이 마를 때 자유롭게 부엌을 오갈 수 있어서 좋았다. 평일에는 아이들이 불어 수업을 들었고, 주말에는 가까운 지역으로 소풍을 갔었다. 소풍 가서 둘러 본 마을과 풍경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대부분 스위스를 보고 그냥 카메라만 갖다 대면 다 엽서라고 하는 말이 괜히 생긴 것
55 55 이 아닌 것 같았다. 너무 예뻐서 카메라 셔터를 멈추지 못했었다. 그리고 스위스에 있으면서 놀랐던 것은 밤 10시가 넘어서도 밖이 밝았다는 것이 다. 근데 그 시간에 캠프지 주변을 보면 너무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져서 눈을 땔 수 없을 정도였다. 54 캠프를 하면서 조금 놀랬던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한국의 박지성은 몰라 도 북한의 김정일, 김정은 그리고 북한 여자 아나운서는 거의 알고 있었 다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엔 나를 보고 South냐 North냐 물어보는데 기 분이 별로 좋지 않았었다. 2주라는 기간 동안 캠프 생활을 하며 힘들었던 것은 바로 언어였다. 간단 한 대화는 가능했지만 뭔가 진솔한 얘기들을 나누고 싶었지만 그 정도의 영어 실력은 안됐기 때문에 너무 아쉬웠었다. 그 때 결심한 것이 한국에 서 꼭 회화공부를 열심히 할 마음을 가졌었다. 약간 힘든 점도 있었고 아쉬움도 있었지만 2주라는 기간이 너무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인천 공항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무언가 꿈을 꾸고 깨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언젠가 꼭 다시 가고 만다" 라는 마음으로 인천 공항을 떠났다. 캠프 전에는 늘 빡빡하고 숨통이 막힐 정도로 어지럽게 살았다면 캠프 후 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침착하고 여유롭게 생각하고 생활할 수 있겠다 는 마음가짐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정말 평생 잊지 못 할 시간이었고, 인생을 살면서 지치거나 힘들 때 다시금 끄집어 내어 그때의 설렘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해줄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 있어 없어서는 안됐을 기회와 경험이었고, 내 인생의 터닝포인 트가 바로 워크캠프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56 " 알프스 산을 체험하다." 스위스_안건형 ws12sc 홍익대학교 알프스 산이 위치한 스위스의 다보스 플라츠 지역에서 저는 정원관리 를 했습니다. 빼어난 경관과 좋은 공기 및 좋은 환경 속에서 저는 각 국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로 하여금 다양한 국가의 문화를 간 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알프스 산에 오른다면 또 다시 다보스 플라츠에서 워크캠프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날씨는 일교차가 심하긴 했지만 두꺼운 옷들을 가져 가서 다행이었으며 문화적인 충격 또한 별다를게 없었습니다. 스위스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으며 다들 동양인인 저를 위하고 챙겨주는 문화 가 인상 깊었습니다. 워크캠프를 가기 전에는 단순히 처음 가는 해외여행이다보니 긴장했 지만 스위스 전역에서 돌아다니면서 불편함을 못느낄 정도로 사람들 은 매우 친절했습니다. 저는 친구들을 위해서 한국 부채를 선물로 들 고 갔으며 이들은 저의 선물을 받고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일은 아무래도 산악지형에서 하다보니 높은 고지라서 쉽게 피로감이 쌓였고 일 또한 매우 힘든 작업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환경 속에서 일을 하다보니 금새 적응 할 수 있었고 힘든 것보다는 좋은 경 험과 추억이 함께하는 것 같아서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시편강설-경건회(2011년)-68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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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2016.05.03(화) "갈등없는 성과연봉제 도입" 홍보하던 동서발전, 부당노동행위 정황 성과연봉제 노사합의안 찬반투표 당시 동서발전 울산화력본부 기표소 모습 공기업 발전회사 중 처음으로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에 대한 노사합의가 이뤄진 한국동서발전이 직원 들의 찬성 투표를 유도하기 위해 부당노동행위를 벌인 복수의 정황이 나왔다. 직원들에게 동의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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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國 中 語 中 文 學 會 2014 年 度 秋 季 聯 合 學 術 大 會 중어중문학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위하여 - 문화교류와 정체성 日 時 : 2014 年 11 月 08 日 ( 土 ) 11:00-18:00 場 所 : 숙명여자대학교 과학관 651호/607호/608호/609호/610호 [2권: 문화 문학 분야 발표자료] 한국중어중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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