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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축 사 이러한 체험들이 교육 현장에 역동적인 생명의 힘을 불어 넣고, 새로운 변화의 물길을 열어줄 수 있기를 기대하며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 김 신 일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간혹 시간의 흐름을 잊곤 합니다. 목표를 향해 오로지 전진만을 생각하며 혼신의 힘을 쏟을 때는 더욱 그러합니 다. 한 단계 한 단계 마무리 짓는 시점, 또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시점이 되면, 뒤를 돌아보며 가슴 벅찬 보람을 새삼 느끼기도 하고 잘못한 일이 나 후회스러운 일들을 반성하기도 합니다. 지난 일에 대한 반성과 후회 는 분명 새로운 앞날의 거름이 되겠지요. 이것이 바로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체험 의 가치입니다. 우리 교육 현장에도 이러한 소중한 체험들이 있습니다. 학교와 가정 에서의 방황, 고민, 갈등 등을 현명하게 헤쳐나가면서, 또 가시밭길처럼 험한 사회생활 속에서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부단한 노력을 통해 당당 히 성장해나가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고 비와 포기의 유혹이 있었겠습니까?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이러한 교육현장에서의 체험들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서로 나눔으로써 교육을 통한 아름다운 도전과 성취의 감동 을 국민과 함께하고자 매년 교육현장체험수기를 공모해왔습니다. 올해 로 벌써 열한 번째를 맞지만 매년 느끼는 감동은 더욱 깊어가는 것 같습 니다. 창의적이고 다양한 교수법을 개발해내고 학생들의 성취의욕을 불러 일으켜 즐겁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만들어가는 선생님, 올바른 교육관 교단수범사례 축사

7 과 자녀관을 바탕으로 자녀와 함께 배움의 기쁨을 나누는 부모님, 그리 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용기 있는 도전과 최선의 노력으로 성취의 기쁨 을 이야기하고 있는 개개인의 글 속에서 우리는 진한 감동을 느낍니다. 똑같은 상황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줄 수 있다는 진리를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들이 교육 현장에 역동적인 생명의 힘을 불어 넣고, 새로 운 변화의 물길을 열어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아무쪼록 이 체험수기 수 상집이 보다 많은 사람들의 꿈을 실현시켜나가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 대합니다. 감사합니다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 김 신 일 교단수범사례 축사

8 발 간 사 교육은 어느 특정한 계층이나 특정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세상 어느 곳에서나 이루어지고 있는 보편적 현상입니다. 한국교육방송공사 사장 구 관 서 교육현장은 교단뿐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사회도 포함되는 개념입니 다. 교육현장에서 교육과 관련한 많은 일과 사연이 있습니다. 그 많은 일과 사연 중에는 우리가 함께 공감하면서 교육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 하도록 해 주는 내용 또는 많을 것입니다. 교육인적자원부와 EBS는 2007 교육현장체험수기를 공모를 통해 교 육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모으고, 우리가 함께 공감하며 귀감으로 삼 을 만한 내용을 선정하였습니다. 교육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서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화두입니다. 그리고 교육은 어느 특정한 계층이나 특정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현상 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세상 어느 곳에서나 이루어지고 있는 보편적 현 상입니다. 그만큼 교육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고 중요합 니다. 따라서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기회를 갖는 것은 우리 교육과 삶을 더 알차고 풍요롭게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제 2007년을 정리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때입니다 교육현장 체험수기 공모에 참여한 우수한 교단수범사례, 자녀교육사례, 자기능력 개발사례를 엮어 만든 이 책은 올 한해 우리 교육현장을 진솔하게 되돌 아보면서 미래의 밝고 희망찬 우리 교육을 준비하는 데 소중한 자료가 교단수범사례 발간사

9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EBS는 교육인적자원부와 함께 우리 교육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리며, 2007 교육현장체험수기 공모에 참여해 주신 교육현 장의 여러분과 이 책 발간을 위해 노력하신 교육인적자원부와 EBS의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한국교육방송공사 사장 구 관 서 교단수범사례 발간사

10 심 사 평 열명이 들 수 없는 것, 천명이 들 수 없는 것을 이런 분들은 혼자들어 저 하늘 높이에 걸은 사람들이다. 소설가,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신 달 자 올해도 만만찮은 양의 원고를 심사했다. 다른 종류의 심사도 마찬가 지지만 교육에 관한 이 원고들은 보다 늘 긴장하고 보다 더 성의를 다하 게 된다. 인간을 위한 인간을 향한 그리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일으킨 불 굴의 정신을 여기서 만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원고들 속에 우리나라 의 교육현실과 교육의 미래가 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희망과 교육이 가야할 길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절로 가슴떨리게 하는그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역시 이 원고들속에는 우리 들의 희망과 꿈 교육에 대한 이상이 있는가 하면 버릴것과 찾아야할 것 그리고 세상에 드러나게해서 모두가 박수를 보내야하는 고무적인 원고 들이 있었다. 교육부와 EBS가 이런 글잔치를 여는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인데 하 기만 하면 대단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 우리들의 절 망을 희망으로 뻗어 오르게 하는 일도 바로 이런 체험담을 세상에 알리는 이유가 되는 일인지 모른다. 인간의 힘을 그리고 사랑을 우리는 여기서 보 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지금 이것이 절실하고 절박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주저앉지 않고 일어서는 법을 우리는 지금 더 알아야 할 때인 것이다. 이번 대상을 받은 하태완 선생님은 아무도 반가워하지 않는 외진 초등 학교로 발령을 받으면서 취약한 여건을 네탓으로 돌리지 않고 바로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교육철학으로 심신을 다해 버려진 학교를 최고의 학교로 재창조해 낸 기적을 일으킨 교감선생님이야기다. 가능하지 않다 는 사람들의 돌을 맞으며 포기하지 않고 학생마다 3개 외국어를 하게 만 교단수범사례 심사평 10

11 들고 학원이 무엇인지 모르고 공교육만으로 일등학생과 일등 학교를 만 들어 학부모와 사회로부터 신뢰를 얻어 낸 이야기다. 체험을 통해 자연을 통해 인성교육과 화합의 인간적 힘을 스스로 깨닫게 한 한 교감선생님의 이야기는 감격 그 자체였다. 자녀교육의 박혜균, 능력개발의 김후진, 교단체험의 이승우, 이 모두 무 를 유로 만들어 낸 기적의 인물들이다. 자녀교육최우수상은 흔히 사회에 서 문제삼는 재혼가정의 자녀문제를 다룬 이야기다. 새엄마와 전부인의 딸사이의 딱딱한 돌덩이같은 관계를 부드러운 화해의 관계 함께 사는 동 반자와 가족의 관계를 이루어 내는 새엄마의 적극적인 사랑공세는 놀라 운 창작품으로 박수를 보낼만하고 능력개발의 최우수상은 빈털터리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던 처지를 전액 국비 장학생 용접기능공자격증 대입검 정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그리고 6권의 저서간행 이어 몇 개의 자격증을 따 내는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자기개발을 이뤄 낸 드문 인물이었다. 포 기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 없다는 것을 이 사람은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교단최우수상도 놀라움은 마찬가지다. 폭력과 흡연과 쓰레기가 난무하 는 학교를 학무모와 학교 교사 학생이 한마음으로 노력하게 해서 3무운동 을 완결하는 성공사례도 눈물겨운 이야기였다. 체벌보다 칭찬으로 흡연 제로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차라리 할 말을 잃고 눈을 감아야했다. 눈물은 황금의 성공을 그들의 손에 쥐어 주었던 것이다 높은 사람들, 세상을 호령하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변화하는 것은 아 주 적은 것일 수 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정신적 대 부호들이라고 부르 고 싶다. 이런 정신력의 스타들이야말로 나라를 변하게 하고 인간을 변하 게 하는지 모른다. 열명이 들 수 없는 것, 천명이 들 수 없는 것을 이런 분 들은 혼자들어 저 하늘 높이에 걸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지금 현재 우리는 이들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지 않은가. 이 글들을 보면서 그래서 내 내 숙연했다. 소설가,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신 달 자 11 교단수범사례 심사평

12 차 례 01 교단 수범사례 017_ 박종현 詩 創 作 소프트로 꽃피운 진정한 특기적성교육 029_ 신기주 아름다운 동행 (만남, 대화 그리고 사랑의 나눔..) 043_ 이규인 우리들의 소중한 이야기 055_ 이덕정 인생 최고의 소리 069_ 이수진 내 이름은 줄넘기 선생님 079_ 이승우 누가 우리를 믿으려 할까? (흡연율0%, 우리들의 이야기) 095_ 이원수 원수야, 스승이 되어라! 113_ 임경진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영어교육, 그 편견의 벽을 넘어 02 자녀교육 수범사례 131_ 김광경 자랑스러운 내 아들 141_ 김인자 걸어 다니는 도서관, 책 읽어주는 엄마, 김인자 153_ 박동환 행복은 우리 집 처마 밑에 167_ 박혜균 희망으로 가는 대화의 힘 교단수범사례 차례 12

13 181_ 배현미 고맙습니다, 대촌중앙초등학교 193_ 신진숙 아이들과 함께 꿈을 키워가는 엄마 205_ 오세주 우리 아이의 행복한 웃음 219_ 전희식 두 아이를 다 대안학교에 보내다 03 자기능력개발 수범사례 231_ 김진욱 노를 계속 저어갑시다 245_ 김태종 떨어진 학사 모를 다시 주워 쓰고 261_ 김후진 배우는 기쁨이 내 삶의 원동력 279_ 남도현 몸으로만 스포츠 하나? NO! 나는 펜(Pen)으로 스포츠 한다 295_ 신경용 절망을 딛고 30년 전의 꿈을 이룬 억척 인생 313_ 신경택 눈물의 아침밥 323_ 최성화 평생학습을 통한 능력중심사회 구현 339_ 최진규 아름다운 그대, 당신은 선생님 13 교단수범사례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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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박종현 詩 創 作 소프트로 꽃피운 진정한 특기적성교육 017 신기주 아름다운 동행 (만남, 대화 그리고 사랑의 나눔..) 이규인 우리들의 소중한 이야기 이덕정 인생 최고의 소리 이수진 내 이름은 줄넘기 선생님 이승우 누가 우리를 믿으려 할까? (흡연율0%, 우리들의 이야기) 이원수 원수야, 스승이 되어라! 임경진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영어교육, 그 편견의 벽을 넘어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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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교단 수범사례 詩 創 作 소프트로 꽃피운 진정한 특기적성교육 며칠 전, 시아리(문풍지) 회원으로 활동했던 어느 졸업생(주순진 양)의 결혼식에 주 례를 선 적이 있다. 주례 설 나이도 아직 멀었고, 경험도 거의 없다는 핑계로 사양 을 했지만, 자기에게 시의 길을 열어주었으며 삶의 방향을 바꿔놓은 사람이 '선생 님'이라면서 하도 간곡히 부탁을 하는 바람에 청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주례 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 눈가에 한참 동안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시를 지도하는 그 순간만 사제지간의 관계가 유지되고, 졸업하면 대체로 서로를 잊고 살아가는 게 다반사다. 주순진양처럼 詩 作 할 때의 초심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 썩 드물기 때문에 더욱 나를 감동케 했 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무늬를 오래오래 간직한 제자를 만날 때 학생들에 게 시를 가르치는 보람을 느낀다. 수많은 사람들이 利 害 에 의해 만남과 헤어짐의 관계를 만든다 해도 시로 맺어진 아름다운 인연을 오래오래 제자들과 나누고 싶다. 그것이 곧 시 창작교실을 계속 하게 하는 힘이 되고,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길이라 믿는다.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박 종 현 경상남도 진주시 삼현 여자중학교 교사

18 우리 교육의 현실이 교육의 본질에서 자꾸만 멀어져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필자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진실로 우리 교육 이 닿아야 할 본질은 뒤로 한 채 진학과 지식중심의 교육으로 치닫고 있 는 듯해 몹시 안타까울 때가 많다. 개인의 소질과 능력을 계발할 수 있 게 도와주고, 건강하고 민주적인 인간으로 육성하는데 애쓰다 보면 진 학과 성적은 덤으로 성취할 수 있는 교육 현실이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 음으로 필자가 실행한 시 창작 교육 체험 사례를 밝히고자 한다. 선진국에서는 지적능력 계발 못지않게 개인의 특기 계발이나 신체적 발육 등을 위한 특기적성교육에 매우 적극적인 정책을 펴고 있는 것으 로 안다. 우리도 하루빨리 지식 주입과 문제풀이 식 입시 교육에서 벗어 나 선진국처럼 사회인이 되어서도 실용화할 수 있는 특기 계발이나 스 포츠, 레저 활동 등을 위한 특기적성교육에도 힘을 기울일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필자는 학생들 내면에 잠재한 특기나 능력을 계 발하기 위해 시아리 라는 이름으로 시 창작교실을 운영하게 되었다. 그 런데 시 창작교실을 하게 된 더 큰 이유가 하나 있다. 그것은 아마도 필 자 자신이 시에 미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에 빠져 있기 때문에 아무 런 보상을 받지 않으면서 시 창작 특기적성을 13년 동안 한결같이 해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1994년 필자가 삼현 여자중학교에 오기 전에는 삼천포고등학교에서 약 10년 정도 근무한 적이 있다. 사실 입시 지옥에 빠진 고등학생들에게 문예지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입시 부담이 적은 중학교로 옮긴 뒤부터 본격적으로 시 창작 지도를 하기 시 작했다. 감수성이 풍부한 여학생들이라 그런지 몹시 잘 따라 주었고, 시 작 활동에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용기를 얻은 필자는 시 창작 동아리 시 아리 를 만들어 학생들로 하여금 문학의 꿈을 키우게 하는데 일조하기 로 마음을 먹었다. 매주 토요일 실시하는 계발활동 1시간만으로는 부족 해서 인터넷 카페와 메일을 통해 시 창작교실을 운영했다. 그리고 시아 리 활동을 하다 졸업한 학생들 중에 문학특기생에 뜻을 두고 있거나 시 교단수범사례 詩 創 作 소프트로 꽃피운 진정한 특기적성교육 18

19 창작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을 모아 2주일에 한 번씩 토요일 오후에 학교 상담실에서 본격적인 시 창작 지도를 했다. 그 결과 문학사 상사 주최 청소년문학상에 대상 2회, 최우수 4회를 비롯해 무려 31회나 수상했으며, 대산문화재단 주최 대산 청소년문학상에도 금상 1회를 비 롯해 15회나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문학특기 생으로 고려대학교를 비롯해 총 16명이 합격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단 순히 문학상 수상과 대학입학을 목적으로 시 창작교실을 연 것은 아니 지만 지도하는 필자가 시에 미쳐 있고, 학생들 또한 큰 관심을 가지고 시 창작에 임한 결과, 덤으로 좋은 결과가 나온 듯해 몹시 기쁘다. 특히 시론 공부만 하면 지겨워하고 이탈하는 학생들이 생길 것 같아, 여름 방학 때는 주로 문학캠프, 겨울 방학 때는 문학 기행을 실시해서 학생들로 하여금 시 창작에 대한 흥미 도를 높일 수 있도록 나름대로 기 획을 하기도 했다. 문학캠프와 문학기행에 들어가는 경비는 신문, 잡지 등에 발표한 칼럼이나 시의 원고료, 진주산업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시 창작 강의를 해서 받은 강의료로 충당했으며, 학교에서도 일부를 지원 해 주어서 행사를 원활하게 잘 이끌어올 수 있었다. 시아리 를 통한 시 창작 특기적성교육이 13년 동안이나 꾸준히 이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시에 미친 필자의 열정과 학생들의 관심, 학교의 지 원 등이 3위 일체가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19 교단수범사례 詩 創 作 소프트로 꽃피운 진정한 특기적성교육

20 시 창작교실에 참여할 수 있는 시아리 회원을 선발하는 기준은 먼저 지원하는 학생 중에서 시적 재능이 있다고 판단되는 학생을 뽑고, 다음 으로 본교에서 매월 1회 둘째 화요일에 실시하는 문장연습 시간을 통해 운문과 산문 형식의 글을 번갈아 쓰게 하여 그 중, 운문은 전교생(전교 생 1,400여 명)의 글을 필자가 직접 읽고 시적 재능을 가진 학생을 시 아리 회원으로 선발하여 본격적으로 시 창작 지도를 실시했다. 시 창작지도 방법은 필자가 체험을 통해 얻은 <체험론적 시 창작 소프 트>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지도했다. 시 창작 소프트는 기본 단계인 시 창작기초이론과 소재 채집 단계,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실제 시 창작 소프 트, 마지막 단계인 시 창작 과정 단계 등 4단계로 나누어서 학생들을 지 도했다. 이론 공부만 하면 너무 딱딱하고 지루할 것 같아 기존 시의 패 러디, 사투리 버전으로 시 쓰기, 모둠 시 쓰기, 마지막으로 대중가요 개 사하여 따라 부르기와 같은 양념 코너를 끼워 넣어서 학생들로 하여금 시 창작 활동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기획을 했다. 시 창작교실 진행은 중학생들은 매주 토요일 계발활동 시간과 필자의 카페인 <체험 시 창작교실>과 메일을 통해 시도했고, 고등학생들은 한 달에 두 번씩 토요일마다 본교 도서실에 모아서 시 창작 지도를 했으며 시험을 치르는 달은 1회만 실시했다. 물론 고등학생들도 필자의 카페 와 메일을 이용해 첨삭지도를 받았다. 그런데 카페는 열린 공간이라서 그런지 자기들이 쓴 시가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꺼려 요즘엔 주로 메일을 통해 첨삭지도와 조언을 해 주고 있다. 중학생들에게는 기 초이론단계인 시 창작 소프트 1과 소재 채집단계인 시 창작 소프트 2, 그리고 필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실제 창작과정을 그대로 소개한 시 창작 소프트 3을 중심으로 지도하고, 고등학생들에게는 한 단계 높은 시 창작 과정의 3단계(시적 재능 단계, 시적 인식 단계, 시의 형상화 단 계)인 시 창작 소프트 4를 통해 지도했다. 이렇게 체험론적 시 창작 소프트 1~4단계까지가 끝나면 그때그때 활 동한 학생들의 시들을 모아 첨삭지도를 하거나 주제와 소재 바로잡기, 주제의 통일성 등을 지적해서 시의 방향을 바로잡아 준다. 이렇게 반복 교단수범사례 詩 創 作 소프트로 꽃피운 진정한 특기적성교육 20

21 적으로 학습하게 되면 학생들의 시 창작 능력은 괄목상대할 정도로 비 약적인 발전을 보인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얻는 즐거움이 이보다 더 할 때가 없을 것이다. 이 즐거움 때문에 필자는 시 창작교실을 운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발전한 모습과 더불어 덤으로 전국 규모의 백 일장이나 공모전에서 입상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 그것 또한 지난날의 고생을 씻어주는 비타민제 역할을 한다. 때론 필자 자신이 문단에 등단 했을 때만큼이나 기분이 들뜬다. 시 창작교실을 더욱 활성화하고 학생들의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여 름 방학과 겨울 방학 동안 문학캠프와 문학 기행을 실시했다. 주로 1박 2일 동안 실시하는 문학캠프는 처음엔 고정된 공간이 없어 필자와 친분 이 두터운 사람들의 재각(산청군 한빈, 고성군 학동 등)에서 시행했으 나 그분들께 너무 큰 불편을 끼쳐서 최근에는 산청군 덕산에 있는 덕천 서원(남명 조식 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곳)에서 캠프를 한다. 캠프 진 행 방법은 첫날에 소재와 문학, 문학의 밤 을 중심 행사로 짠다. 소재 와 문학은 들꽃 이름 알기, 나무와 곡식 이름 알기, 새와 곤충 이름 알기, 등 주로 시 창작을 위한 소재 획득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밤에 실시 하는 문학의 밤 시간에는 마음열기(자기 영혼과 만나기)에서 시작해서 초청강사의 문학 강연, 시낭송, 3행시 경연대회, 자기의 꿈을 켜는 촛불 잔치, 마지막으로 밤을 잊은 그대에게 로 끝맺는다. 밤을 잊은 그대에 게 순서에서는 모둠별로 나누어서 선배들과 문학에 대한 꿈을 이야기 하는 시간으로써 이때 초대되는 선배들은 주순진(고려대 국문학과 졸 업, 대한교과서주식회사 근무), 이효진(한국외국어대학 석사과정), 진 민재(KBS근무), 최건아(고려대 재학), 장은혜(고려대 재학) 등이다. 선 배들과 대화를 나누는 재미에 짧은 여름밤이 새는 줄도 모를 때도 있다. 문학캠프 둘째 날은 극기훈련, 백일장, 시 창작강의, 모둠별 합평회 등 이 주된 내용으로 채워진다. 문학 기행은 교과서에 나오는 문인을 중심으로 해서 시인과 작가의 생가나 작품 활동 공간 등을 답사했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의 공간적 배경이 되었던 벌교, 김승옥의 무진 기행 의 무대였던 순천만 갈대숲, 김동리의 역마 의 화개장터와 섬진강, 유치환의 고향인 통영과 남망산 공원, 중1 국어교과서에 시 바다가 보이는 교실 을 쓴 정일근 21 교단수범사례 詩 創 作 소프트로 꽃피운 진정한 특기적성교육

22 시인의 삶터인 울주군 은현리,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고향인 옥천 등을 직접 답사하면서 문학의 향기를 맡으며 시의 꿈을 키우게 했다. 자칫 싫 증 내기 쉬운 교실 수업에서 벗어나 현장 체험을 함으로써 학생들로 하 여금 문학에 대한 흥미도를 높이고 새로운 꿈을 다지게 하는데, 큰 도움 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삶이 때론 역풍 속에서 항해를 해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시 창작교실을 운영하는데도 순풍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역풍 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중학생들은 입시에 대한 부담이 적었기 때문에 비교적 잘 따라 주었지만 상대적으로 입시 부담이 큰 고등학생 들에겐 크고 작은 장해물들이 있었다. 고등학교에 따라 조금씩 달랐지 만 어떤 학교는 토요일 오후에도 자율학습을 했다. 그래서 담임교사들 이 학생들을 못 가게 했다. 필자가 직접 선생님께 전화해서 학생의 자 율학습 불참을 양해해 달라는 부탁을 했더니 대입 수능 준비 때문에 보 내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거듭 부탁을 하면 그럼 대학 진학을 당신이 책임진다면 보내 주겠다. 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 소중한 시간과 열정을 쪼개어 학생들의 시 창작을 지도해 주었는데, 고맙다는 말 대신 이런 망발을 들었을 땐 몹시 불쾌했다. 토요일 오후에도 학생들에겐 자 유가 주어지지 않는단 말인가? 꼭 문제풀이와 암기만이 대학으로 가는 지름길이란 말인가? 이것이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란 말인가? 참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수록 필자는 절망하지 않고 더욱 이를 악 물고 학생들을 지도했다. 그러나 스스로 얻은 분노와 고민, 갈등을 극복 하지 못해서 그런지 끝내 만성 간염이 악화되어 병원 신세를 지고 말았 다. 이때 주변에서 사서 고생 좀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나에겐 시작 활 동과 시 창작지도는 삶 그 자체였기 때문에 건강이 회복된 뒤부터 또다 시 시 창작지도에 미치기 시작했다. 반짝거리며 응시하는 학생들의 눈 망울이 곧 나에겐 약이고 꿈이었던 것이다. 교단수범사례 詩 創 作 소프트로 꽃피운 진정한 특기적성교육 22

23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이 청소년문학 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는데 교장 선생님이 상장을 건네주면서 하는 말 이 걸작이었다. 다음부터는 글쓰기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공부에만 전 념해라. 그래야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지. 라고 말했다고 한다. 학 생 본인도 큰 충격을 받았겠지만 이 말을 전해 들은 필자에겐 더 큰 분 노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 학생은 끝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말았 다. 소위 문학도라면 누구라도 가고 싶어하는 대학인 고려대학교 국문 학과에 문학특기생으로 당당히 합격했던 것이다. 그때야 그 교장 선생 님이 그 학생을 다시 불러 그래, 자네가 이렇게 큰일을 해낼 줄 미리부 터 알고 있었다. 장하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시 창작교실을 하는데 걸림돌 역할을 한 것은 시 창작에 대한 교사와 일부 고등학교의 견해 차이뿐만이 아니었다. 둘째, 넷째 주 토요일마다 실시하는 시 창작교실 시간에 먹는 간식과 여름 방학 때 하는 문학캠프, 겨울 방학 때 하는 문학 기행 때 들어가는 경비 조달도 큰 문제가 되었 다. 필자가 신문 칼럼이나 문예지에 보낸 작품 원고료(합해 봐야 얼마 안 되지만), 이곳저곳 다니면서 했던 문학강연에서 받은 강의료, 백일장 심사비, 시집 해설 원고료 등으로 충당했지만 태부족이었다. 그때 마침 23 교단수범사례 詩 創 作 소프트로 꽃피운 진정한 특기적성교육

24 진주산업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개설한 시 창작강좌를 맡게 되어 그 강 의료를 적립해서 경비로 충당할 수 있어서 큰 행사들을 계속할 수 있었 다. 몇 년 뒤 시 창작강좌를 그만두면서 또다시 어려움을 겪을 때, 학교 에다 동아리 활동비 지원을 신청했더니 기꺼이 활동비 일부를 지원해 주었다. 학교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94년부터 지금까지 13년 동안 시 창 작교실을 계속 이끌어오기란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도움을 준 학교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학부모와 다른 사회단체에서 스폰서를 해 주겠다고 했지만 일절 사절 하고 말았다. 심지어 어떤 학부모는 특정대학에 합격만 시켜준다면 거 액의 사례비를 주겠다고 한 적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과감히 그 유혹을 물리쳤다. 시를 통해 사제 관계를 만들고, 시를 통해 삶의 즐거움을 나 누고 싶은 게 필자의 바람이지 시를 미끼로 장사를 하고자 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부모의 도움을 받는 일을 결코 바람 직한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필자는 스스로에게 더 뿌듯함 과 당당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교단수범사례 詩 創 作 소프트로 꽃피운 진정한 특기적성교육 24

25 평론가이면서 연세대 교수인 정과리 님은 청소년기인 고등학교 3년 동안 밤새워 대입 수능시험 공부를 하는 것보다 이 시기에 좋은 책 한 권 을 읽는 것이 참되고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더 큰 영향을 줄 수 도 있다. 라고 말했다.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미국의 기업가 빌 게 이츠는 어린 시절의 독서가 현재 기업가로서의 도덕성과 참된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했고, 영화 쥐라기공원 의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또한 청소년기의 독서가 불후의 명작을 만들 수 있는 창의적 상상력을 길러 주었다고 한 말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시 창작교실에 임하는 학생들에게 시 창작만큼이나 독서도 강 조했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오래된 미래, 미쳐야 미친다., 월 든, 우린 숲으로 간다. 등 영혼을 아름답게 하고 참된 가치관과 우주관 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들을 많이 읽게 했다. 이처럼 독서와 아름다운 정서를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 시 창작지 도는 마침내 그 꽃을 피우게 된다. 삼현 여자중학교에 온 1994년부터 시작한 시 창작교실에서 함께 공부한 학생들이 전국 규모의 청소년문 학상과 공모전, 백일장 등에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문학사상 사 주최 청소년문학상에서는 95년 이후 11년 동안 대상 2회(장은혜, 윤 진영)을 비롯해 최우수 4회(김민경, 양서영, 주순진, 황은진), 우수 5회 (류지은, 정양희, 강민정, 황은진, 박준영), 장려(가작) 20회 등 총 31회 를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전국 중, 고등학교 중에 서 그 해에 가장 많은 수상자를 낸 학교에 주는 단체 으뜸상도 무려 3회 (1999년, 2000년, 2002년)나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 부상으로 200만 원 상당의 도서를 3번(합계 600만 원)이나 문학사상사로부터 기 증받아 본교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즐겁게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청소 년문학상만큼이나 전통 깊고 권위가 있는 대산 청소년문학상에도 금상 1회(박예슬)를 비롯해 동상 14회 등 총15회를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 다. 청소년문학상과 대산청소년문학상은 공모전을 통해 예심 통과자를 뽑아 본심에서 다시 백일장을 치른 뒤 공모작품과 백일장 작품의 점수 를 합산하여 최종 등위를 정하는 매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문학상제도 25 교단수범사례 詩 創 作 소프트로 꽃피운 진정한 특기적성교육

26 이다. 예심을 통과한 학생들이 서울까지 가는 경비 일체를 본교에서 지 원해 준 것도 지도교사와 학생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개천예술 제 학생백일장, 김달진 문학상, 김유정 문학상, 각 대학 백일장에서 큰 상을 수없이 많이 수상했다. 문예지도에 열성을 다했다며 경상남도 교 육감상 1회, 진주시 교육장상 2회, 국민연금공단 1회 등의 지도교사상 을 받은 적이 있다. 필자 자신이 즐거워서 학생들에게 열성을 다했기 때 문에 필자에게 있어 지도교사상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다. 시 창작교실에서 문학을 배운 학생들 중, 문학특기생으로 또는 청소 년문학상 수상 등에 힘입어 수시 입학에 합격한 학생 수가 꽤 많다. 이 또한 시창작교실의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고려대학교 5명을 비롯해 경상대학교 9명, 이화여자대학교 1명, 한남대학교 1명 등 합계 16명이 합격한 것도 필자에게 시 창작교실을 지속적으로 하게 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 이스라엘에서는 남의 집 자녀가 피아노를 잘 쳐서 경연대회에 나가 입상을 하고 자기 자녀가 탈락했을 때, 자기 아이를 꾸짖거나 부족한 재 능을 탓하지 않고 대신에 너는 하모니카를 잘 불지 않니. 하고 격려를 해서 자기 자녀의 남다른 가능성을 인정함과 더불어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고 한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어떻게 할지 궁금해진다. 혹시 그 래, 너는 더 좋은 과외 선생님한테 배워서 다음 대회에선 꼭 네가 1등 해. 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진 않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타고난 재능과 특기가 있기 마련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방과 후에 실시하 는 <특기적성교육>시간에 획일적인 지식중심교육이나 문제풀이 식 교 육에서 벗어나 학생 개인의 재능과 특기를 발굴, 계발하도록 하는 선진 국형 교육으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지식 이라는 편식만 해서 지식 비만증 에 걸려 자 기 내면에 잠재한 가능성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일생을 살아가야 하는 교단수범사례 詩 創 作 소프트로 꽃피운 진정한 특기적성교육 26

27 경우가 너무나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우리 교육도 문학적 재능뿐 만 아니라 예능적 재능, 기타 여러 재능을 계발하여 그것을 심화시켜 보 다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힘을 기울여야 할 때 가 왔다고 본다. 그래서 성적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학생들에게 진정한 특기적성교육을 통해 아름다운 정서를 길러주고, 개인의 숨은 재능을 찾게 해 주고, 그들에게 자연을 즐기고 사랑할 줄 아는 풍류를 찾아주 고, 또 나를 남에게 나눌 줄 아는 배려와 인정을 몸에 익히도록 해 주는 교육도 학교에서 앞장서서 실행한다면 우리 교육에도 바야흐로 <아름 다운 혁명>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먹고, 입고, 자는 일로 고민하는 것 외에 창작의 고 민, 즉 자기 계발을 위한 고민을 하나 더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 교육 자들은 미래 사회의 주인공들에게 그런 행복의 밥상을 마련해 줄 의무 를 실천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사회는 지식의 높낮이에 의해 한 줄로 서야하는 학벌 중심의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고, 개인의 다양성이 존중받는 모두가 최고 인 아름다운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그것이 어쩌면 한국 교육이 닿아야 할 목적지가 아닐 까 하고 생각한다. 필자는 시 창작교실 을 통해 진정한 특기적성교육을 실천함으로써 21C 대한민국 교육의 선진화에 일조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런 뜻에서 앞으로도 열성을 다해 시 창작교실을 계속 운영할 것을 다짐해 본다. 27 교단수범사례 詩 創 作 소프트로 꽃피운 진정한 특기적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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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교단 수범사례 아름다운 동행 (만남, 대화 그리고 사랑의 나눔...) 저는 올해 여름 창의적 리더십을 위한 해외연수 및 장애우를 위한 고구려 문화기 행에 다녀왔습니다. 정신지체 장애우 10명과 영훈고등학교 학생 30명이 함께 한 해외여행이었습니다. 장애우들과 함께 먹고 자고 목욕하고 관광지를 안내하면서 6박 7일을 보냈습니다. 학생들은 처음에는 힘들어했지만 장애우들을 배려하고 여 행을 도와주면서 많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고구려 문화기행을 다녀온 후 저는 체 험수기집 '아름다운 동행'을 발간했습니다. 장애우를 섬기며 정상인인 내 안의 장 애가 함께 일어나고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장애우들이 먼저 웃고 먼 저 인사하고 즐거운 대화를 하려 노력했습니다. 서로 가진 작은 것을 나누며 사랑 과 겸손으로 함께 한 여행이었습니다. 아침이면 하루의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의 동반자와 아름다운 동행이 될 수 있도 록 다짐을 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큰상을 주신 교육부총리님과 EBS사장 님께 감사드리고 지금까지 함께 한 제자들, 그리고 장애우들, 동료교사 최관하 선 생님, 그루터기 장애인여가학교의 변상오 선생님, 마지막으로 특히 저의 곁에서 항상 힘이 되어주는 아내 김창희에게도 이 영광을 돌립니다. 신 기 주 서울특별시 영훈고등학교 교사

30 인생이라는 여행은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고 서로 마음이 통하여 친구 들이 생기면 함께 가는 길이 더욱 유쾌하고 하루하루가 아름다운 동행 으로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 교직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 학 생들과 함께 즐거운 대화 그리고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드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하루를 보람되고 기쁘게 살아간다면 인생의 열매는 자연스럽게 열릴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려 생각하니 경험과 실력이 부 족한 새내기 교사로서 두려움이 앞서 있었다. 교직의 경험이라곤 4주간 의 교생실습이 전부였는데 존경받는 교사로서 학생들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더불어 새로운 얼굴을 보게 될 거라는 설렘이 있 었다. 대학에 입학하여 당시 빈민촌인 삼양동 꼭대기에 방을 얻어 공부 방 모임을 통해 가난한 가정의 아동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하고 성당 의 주일학교에서 성경과 영어를 가르친 적은 있었다. 1990년 교사로 처음 부임한 인천의 S고등학교에 출근하는 날 교무 실에 일찍 출근하여 긴장된 표정으로 첫 수업을 기다리고 있던 기억이 난다. S고등학교는 인천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만 지원하여 선발하 는 특기 학교였고, 첫 수업에 들어가는 순간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 울과 환한 미소에 응답하여 열심히 가르치고 대화하는 교사가 되겠다 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수업시간에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수 업에 열중했으며 영어와 개인 고민에 대한 질문을 자주 했다. S고등학 교는 교사와 학생이 모두 학교에 7시까지 도착을 해서 0교시 보충 수업 을 해야 하므로 적어도 6시에 집에서 통학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해 야 했으며 정규수업을 마치면 8교시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이 11시까지 있었다. 학생들은 반복되는 수업과 자습으로 인해 지쳐 있었고 여러 명 의 학생이 두통을 호소했다. 나는 상담실에 근무하고 있어서 밤늦게까 지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곤 했다. 학교에는 학생들의 지루한 일상과 운동부족 등을 해결하는 방법이나 시설이 없었다. 그래서 즐거운 학교 를 위한 체육대회와 영어연극과 영시 낭송회를 하고 싶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성적 올리기와 경쟁 속에서 건강이 나빠질 뿐만이 아니라 공 동체 의식이나 창의력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나는 가을 운동회의 응원 전을 계획하고 반별로 학생들에게 준비하도록 독려도 하고 직접 시범 교단수범사례 아름다운 동행 30

31 을 보이며 가르치기도 했다. 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손뼉도 치며 경 기에 몰두하고 땀이 나도록 응원을 했다. 오랜만의 즐거운 체육제였다 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다. 내가 나누어진 준 노래 프린트와 율동 그 리고 손뼉치기가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영어 시간에는 three wishes라 는 영어연극과 영시 짓기를 가르치고 생활관에서 공연을 해보았다. 청 명한 가을에 운동회도 즐기고 영어 연극을 하면서 학생들은 즐거워했 다. 학생들을 한 반에 4개조로 나누고 스태프와 배역을 주고 준비를 시 켰더니 능동적으로 만족스럽게 준비를 하고 연극과 영시 낭독을 즐겼 다. 그때 교장선생님과 연구부장님 그리고 여러 선생님께서 관람한 후 학생들의 창의성과 생동감에 감동을 받았고 교장선생님께서는 S 학교 에서는 원칙적으로 동아리를 허용하지는 않지만 영어 연극반만은 허락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교장 선생님께서도 영어교사 출신이어서 초임 교사인 나에게 많은 기대를 거시고 많은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때 부터 교실에서는 지식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학교생활을 통해 학생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함께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31 교단수범사례 아름다운 동행

32 1991년 3월 나는 서울에 있는 사립학교 H 고등학교로 전근했다. 새로 운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하는 계기로 삼아 학생들에게 어린이 영어 노래 (American kid song)와 팝송(Pop song)도 가르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즐거운 영어수업을 만들었다. 졸리지 않는 영어 시간을 위해 음 악을 통해 영어를 암기시키고 국외펜팔을 통해 실생활에서 영어를 사용 하도록 지도했다. 학생들은 쉬운 영어 노래를 통해 단어도 외우고 미국 의 문화와 역사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영어교육에 대한 제언 이라는 글을 서울시교육청에 올려 수업개선을 위한 논문집에 실리기도 했다. 그다음 해에 첫 담임을 맡으면서 학생들을 위한 학급프로그램을 만 들기로 했다. 우선 학급 MT를 통해 학급의 단합과 대화를 통해 서로 이 해하고 도와주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1학년 담임이면 더욱더 효과를 발휘했다. 대성리의 1박 2일의 캠프를 가서 장기자랑과 게임, 야 간에 암호문을 통해 지형지물을 알아내고 조원끼리 단합을 유도하는 추 적놀이, 캠프파이어 촛불의식을 통해 고등학교를 설계하고 좋은 인간관 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촛불의식이 끝나고 평소 내성적인 J라는 학생이 어머니에게 한 잘못을 고백하고 자신의 키가 작 은 것에 대한 콤플렉스를 어머니가 키가 작아서라고 괴롭힌 일에 대해 반성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나서 열심히 공부하여 명문 K대에 진학하고 어머님께도 항상 감사하는 훌륭한 아들이 되었다. MT를 통해 느낀 것은 바쁜 학교생활에 대화할 대상이나 시간이 부족 하다보니 학생들의 영혼은 외롭고 그늘진 면이 있어 학교생활에 부적 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학급에서는 모둠 일기를 써 보았다. 모둠별로 하루에 한 번씩 자신의 마음을 일기장에 그리거나 쓰 는 것이다. 모둠 일기를 통해 무의식 중에 친구들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고 나의 고민을 털어놓음으로써 자연스럽게 담임교사와 친구들 에게 상담하게 되고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사회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 모둠 일기의 최대 장점이다. 체육대회에서 학급의 응원지도를 통해 단 합과 즐거움을 유도하고 점심시간에 깜짝파티를 통해 분임 별로 준비 해온 음식을 함께 나눔으로써 공동체 의식을 깨닫게 하였다. 생일파티 를 통해 존재의미를 깨닫고 부모님께 감사하는 편지를 쓰도록 했다. 그 교단수범사례 아름다운 동행 32

33 리고 학년이 끝날 무렵 학급 문집을 만들어 한 해를 정리하고 반성하면 서도 새로운 설계와 결심을 유도하고 학급과 친구를 이해하게 되는 과 정을 통해 올바른 공동체 의식과 사회성을 기를 수 있었다. 이러한 학급활동과 더불어 핸드볼을 하는 우리 학교의 우승을 위해 응원 반을 조직했다. 당연히 응원 반을 조직하고 이끄는 데에는 젊은 교 사인 나와 학생들이 함께했다. 아침 조회시간에 응원을 가르치고 응원 반을 조직하여 대회가 있는 날에는 학생들의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었 고 대회에서 우승하는데 기여하여 애교심을 기여했으며 경찰의 날 행 사에서 응원경연대회에서 대학교 팀을 제치고 최우수상을 받았다. 3개 월 동안 학생들과 거의 매일 남아서 운동을 하고 응원연습을 하면서 얻 은 결실이었다. 학교에서 동아리에 지원되는 돈이 없어서 겨우 자비를 포함하여 돈을 마련해서 응원단장과 부단장의 응원 복을 마련할 때는 눈물이 났다. 학생들은 그 응원 복을 입고 경기장과 축제 시에 다른 학 교의 초청을 받아 신나게 응원을 가르쳐주었다. 학교의 인기동아리인 응원 반을 이끌면서 건전한 청소년 문화를 이끈다는 자부심이 있었고 실적도 좋았지만 응원 반원이 되면 학습시간이 부족해져 성적이 떨어 지고 집에 늦게 들어온다는 몇몇 부모님들의 항의가 있었고 입시와 관 계가 없는 동아리라는 점에서 지적을 받기도 했다. 더욱이 응원 반장을 하고 있던 H군이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 가 나서 6개월간 대수술을 받고 살아난 것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그래 서 응원 반을 해체했다. 응원 반 선배들과 학생들의 건의도 있었지만 나 의 결심은 단호했다. 학생들을 위한 동아리는 학생다워야 하고 학생들 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응원반이 해체되고 학생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새로 시작한 일이 영 어 연극이다. 학교생활이 무미건조한 것은 학교 수업이 생동감이 없어 서라고 생각했고 수업시간에 영어연극을 시도해본 것이다. 학교의 축제 도 3년에 한번이지만 거의 형식적으로 치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학 생들의 참여도 적었다. 그래서 5월 15일 스승의 날을 위해 약 2주 정도 준비를 해서 시청각실에서 연어 연극을 공연했다. 춘향전 과 백설공주 33 교단수범사례 아름다운 동행

34 와 7난쟁이 그리고 포레스트 검프 였다. 학급에 있는 학생들을 4개조 로 나누어 학급전원이 참석하도록 했고 맡은 역할을 최선을 다해 노력 을 했다. 대성공이었다. 시청각실의 초라한 간이 무대에서 이루어진 연 극치고는 학생들의 호평과 선생님들의 감탄으로 인해 학교의 즐거운 화 제가 되었으며 춘향전에서 춘향을 맡은 학생은 학교의 인기스타가 되었 다. 영어로 대사를 암기하고 팝송으로 노래하는 뮤지컬 형식인데 학생 들이 흥미를 느끼고 열심히 해준 덕택이었고 이렇게 3년간 영어연극은 5월 15일에 계속되면서 학교생활에 즐거움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것을 계기로 학교에서 연극반을 창단하게 되고 축제를 담당하는 업 무를 맡게 되었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만족하는 동아리를 만들고자 했 던 나의 의도와 맞아떨어졌고 학생들의 호응과 관심도 대단했다. 축제 도 매년 열기로 하였고 다양한 학생들의 끼를 보여줄 수 있는 장을 마련 하였다. 전시회와 공연을 분리하여 다양한 동아리의 전시와 더불어 공 연문화를 만들기로 하여 방송제와 문학의 밤을 더욱더 화려하고 다양 하게 기획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시공간을 넓히고 공연마당을 다 양화함으로써 학생들의 참여도를 높이고 청소년 건전문화를 활성화하 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었다. 교단수범사례 아름다운 동행 34

35 그러나 학교에는 공연하기에 충분한 장소도 없고 강당이나 체육관은 전혀 없었고 겨우 교실 두 개 정도를 붙인 시청각실 하나를 여러 동아리 가 공연장소로 번갈아가면서 사용하는 상황이었다. 초라한 장소를 개조 해서 겨우 공연을 해야만 했으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다. 동아리 도 활성화 되어 있지 않았지만 학생들을 독려하여 학생과 학부모가 어 우러지는 훌륭한 축제를 이끌었다. 축제에서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끼와 재능을 발굴하고 키워줄 수 있 는 동아리의 활성화에 있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1996년 연극반 광대 도깨비 를 창단하게 되었다. 지도교사 혼자서 창단을 위한 기획과 면접 까지 보고 나니 연극에 열정이 있는 10명의 단원을 선출할 수 있었다. 연습실이 없어서 교실에서 남아서 기초이론 및 실기를 연습하며 대본 읽기에서 연기지도에 이르기까지 함께 땀을 흘리며 작품을 만들어나갔 다. 창단 원년이므로 선배도 전혀 없는 처지이므로 지도교사인 내가 선 배의 역할과 지도교사의 역할을 하며 함께 하나가 되었다. 드디어 전국 청소년 연극제의 서울예선에 처녀 출전하게 되었다. 물론 실수와 준비 부족이 예견된 일이었지만 우리는 첫 대회 출전을 위한 준비의 어려움 과 이겨내고 연극을 다 공연한 것에 대한 감회로 함께 울었다. 매년 애 써서 연극 작품을 만들었으나 학교의 축제 때에는 학교에 공연을 할 시 설이 있는 장소가 없었다. 그래서 대학로의 인켈아트홀을 빌려서 공연 을 하였다. 관람 학생들의 반응은 좋았고 연극반학생들에게는 환상적 인 경험을 제공했다. 연극반 맡은지 첫 해에 대학로의 공연장에서 공연 한 것은 대범한 시도였다. 공연장 대여료를 마련하는 것도 어려웠고 무 대장치를 만드는 데에도 개인비용이 만만치가 않았다. 연극반지도교사 로서 연극 지도와 더불어 돈과 시간이 많이 지출하게 되었지만 아깝지 가 않았다. 연극반 광대 도깨비의 공연은 열정 그 자체였고 학생들과 관 객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광대 도깨비라는 이름으로 서울연극제 출품 및 첫 공연과 더불어 인켈아트홀에서 굿 닥터를 공연하였고 창작 극인 빈자리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여 대호평을 받았고, 수업료 를 돌려주세요, 태 등을 통해서도 연극반의 실력을 증명해나갔다. 연극 반 학생들의 연극에 대한 열정은 서울청소년 연극제에서 우수 연기상 35 교단수범사례 아름다운 동행

36 을 수상하고 동국대학교 전국 연극제 최우수 작품상, 품청소년 연극제 최우수상, 사랑의 전화 연극제 대상, 우수지도교사상 3회 수상 등 여러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게 되었다. 연극반 반장인 L 학생은 성적이 전 교에서 끝에서 일등인 학생인데 연기에는 실력이 있었다. 그래서 서울 의 S대 연극과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부모님의 말씀이 믿을 수 없는 일 이라며 앞으로 연극반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내놓겠노라고 말하기도 했다. 학교의 공부에는 전혀 흥미가 없어 학교에서 문제아로 찍힌 학생 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연극을 통해 심리적인 문제를 치료하는 효과 가 있었고 연극을 사랑하면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연극과에 진학하거 나 러시아와 일본으로 유학하는 학생들도 생겨났으며 학부모님들의 감 사 말씀이 이어졌다. 이렇게 연극반의 전통이 생겨나고 계속적인 연극 활동을 통해 대학에 진학한 연극반원들이 학생들이 KBS 탤런트시험에 최우수로 합격하였고 신인가수, 모델, 코미디언 등으로 TV에서 연극반 학생들의 활동을 보면서 기쁨을 느꼈다. 연극반 지도교사와 축제담당교사를 하면서 관심을 가진 것은 봉사 활동이었다. 그런데 획기적인 변화를 준 것은 2학년 3반 담임을 하던 1997년 학급의 한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께서 학생들에 게 공부보다는 사람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도대체 어떻게 인간을 만든단 말인가? 집에서 가정교육을 하고 학교에 잘 다니면 그게 전부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던 나에게는 어 머니의 말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이어서 어머니께서는 자신이 다니는 강원도 철원의 서울시립 은혜요양원에 자신의 아들과 학급 아이들을 데 려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었다. 그것도 강원도 철원까지 토요일이나 일 요일 날 시간을 내서 데려가라니 평소에 학교와 가정에서 할 일도 많은 데 봉사활동까지 해야 한다니 라고 생각하고는 시간이 없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께서는 꼭 선생님께 부탁드린다는 말을 덧붙이시고 는 공부만 하라는 이 세상은 잘못된 인간을 많이 만들어낸다는 말씀과 더불어 자신이 은혜요양원에 갔다 와서 늘 감사와 기쁨 속에서 살고 있 다고 말씀하셨다. 학생들에게 삶의 진정한 가치가 감사할 줄 알고 늘 기 뻐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진리이다. 나는 순간 호기심이 났다. 그곳 교단수범사례 아름다운 동행 36

37 이 어떤 곳 이어서 어머니께서 그렇게 감동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었다. 그 후 나는 마음속으로 고민을 많이 했다. 나의 시간과 정열을 이 일에 바칠 것인가? 젊은 교사로서 한 번쯤 의미가 있는 일을 해보자 지 금도 학교에서 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고 개인적으로 가정에서 해야 할 일도 많지만 학생과 학부모를 위한 새로운 봉사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 고 결심했다. 강원도 철원의 은혜요양원에 나는 우선 다섯 번의 현지답사를 통해 학생들의 안전을 점검하고 요양원의 현황을 파악했다. 은혜요양원은 그 당시 560여 명의 원생들이 있었고 전국의 요양원에서 버림받은 정신지 체아, 자폐아, 다발성 경직환자, 기형아, 고아 등을 수용한 곳이었다. 처 음에 갔을 때에는 자원봉사활동이 활성화 되어 있지 않아 원생들이 햇 볕을 쬐지 못해 얼굴이 창백하고 피부병에 진물이 나기도 했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언어로 엄마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버림받은 자신의 상처 가 그대로 남아있는 외로운 영혼이었다. 그리고 자폐증에 걸린 아이들 은 자신의 몸을 벽에 치거나 자해행위를 해서 손발을 묶어놓기도 했다. 절로 눈물이 났으며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 로움과 슬픔 속에서 병마에 시달리다가 시한부로 죽는 아이들을 보았 다. 개보다도 못하게 쓸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이고 무덤도 없이 화장 해서 강에 버린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미혼모가 낳아서 기형아거나 정 신지체 등 다양한 장애를 갖고 있어서 버린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인간 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 권리와 기쁨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우선 요양원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강완흠 원장님께 물었다. 아무것도 필요가 없고 사랑과 관심이라고 말씀하시고 봉사활동에 있어 서 주의사항과 장애우의 특성을 설명해주셨다. 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사제동행 봉사활동이라는 제목으로 강 원도 철원에 은혜요양원에 대한 홍보를 했다. 자원봉사학생이 178명이 지원을 했고 선생님들은 17명(원어민 교사 제이슨 포함)이었다. 일주일 간의 홍보가 잘 되었고 교장선생님께서도 직접 가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위문품과 위문금 등 약 100만 원 상당을 가지고 새벽 6시 반에 1박 2일 로 11월 28일에 출발하였다. 도착하자마자 학생들은 당황해있었다. 아 37 교단수범사례 아름다운 동행

38 침도 못 먹고 2시간 30분을 달려 온 학생들이 낯선 시골의 산기슭에 세 워진 큰 건물에 도착하여 장애우 원생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 르는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은 심각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러나 선생 님들 먼저 원생들의 방에 들어가 학생들과 함께 봉사활동은 시작되었 다. 각방의 직원 어머님들이 8명 정도를 담당하고 있어서 각방에 학생 들을 배치하고 준비한 과자를 나누어주고 함께 노래하고 춤도 추면서 오락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식사보조를 하고 일광욕 을 즐기고 나서 1인 3조로 원생들을 목욕시키는 봉사였다. 학생들은 하 루종일 원생들을 돌보느라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숙소 특유의 소독약 냄새를 견디며 밥을 먹이고 손잡고 돌아다니고 원생들의 알 수 없는 말 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은 천사의 모습이었다. 학생 중에는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아 밖에 서 있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어려움을 견디 고 원생들을 위해 봉사를 계속했다. 점심시간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은 밥을 먹지 못하는 학생이 많아졌다. 낯선 환경과 장애가 심한 원생들을 돌보느라 지치기도 했고 속에서 음식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 이었다. 그래서 컵라면이라도 먹으라고 격려하고 간식을 가지고 인근 초등학교로 레크레이션을 하러 갔다. 그해 철원지역에 무장간첩 침투사 건이 있어서 인근지역에 비상이 걸린 상태여서 육군 중령이 우리의 캠 프파이어장에 와서 불을 끄라고 경고했지만 교장 선생님께서는 책임지 고 학생들을 인솔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계속해서 간식을 먹으며 게임 도 하고 즐거운 캠프파이어와 촛불의식을 하며 봉사활동의 의미를 되 새겼다. 밤하늘의 별이 유난히 빛나고 있었고 11시가 되어 숙소인 원생 들의 모임방으로 이동하였다. 특유의 냄새 속에서 그리고 버림받은 장 애우 원생들의 울음소리는 엄마를 잃은 야생동물의 비명과도 같았다. 학생들은 두려움 속에 피곤함에 지쳐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식사 도우미, 목욕시키기, 일광욕, 청소 등의 봉사활동을 하고 오후 늦 게 서울에 도착했다. 그해 서울시교육청 학교 우수사례로 선정되었고 정기적인 봉사활동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그래서 1977년부터 지금까 지 매년 4회 이상 봉사활동을 실시하고 바자회에서 조성된 기금과 기부 금을 정기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요양원에 방학 중에도 가고 있다. 나는 특별활동부 기획을 맡으면서 학생들의 자원봉 교단수범사례 아름다운 동행 38

39 사체험수기를 쓰게 하고 자원봉사대회에 참가하게 하여 수많은 학생들 이 봉사상을 수상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를 찾는 체험학습도 되었 고 남을 배려하고 돕는 마음을 갖게 되었으며 나도 누군가를 위해 좋은 일을 했다는 긍지를 갖게 되었다. 은혜요양원과 더불어 상계동의 양지 동산 보육원에 정기적으로 학급 봉사활동을 사제동행으로 갈 수 있도록 계획했는데 교사와 학생과 학부 모가 함께 정기적으로 참여하였다. 상계동 산기슭에 있는 허름한 고아 원은 습기가 차고 겨울에는 난방비가 없어 춥고 나뭇가지와 낙엽 등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어 깨끗이 청소해주고 고아들의 점심식사를 준비해 주며 함께 놀아주는 일을 했다. 엄마를 잃은 귀여운 어린아이들과 중고 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그리고 정신지체 할머니와 아주머니 등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는데 점심은 보통 라면 하나로 때우는 것이 보통 이고 시설이 열악하여 목욕시설이나 화장실이 지저분하였다. 나는 5년 간 나의 학급과 다른 반의 학생들을 데리고 정기적으로 방문하면서, 책 과 라면, 쌀, 의류 등을 기부하며 어느 날 그 보육원 땅의 주인이 내쫒아 서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보육원이 사라져 버렸다.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고아원에 있는 고아들과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뿔뿔이 흩어졌다는 것이다. 아직도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돌보지 못 하는 어려운 이웃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은혜장애인요양원과 양지 동산 봉사활동들은 강북, 도봉 지역 방송인 큐릭스 방송에서 방영된 적이 있었고 YTN 및 EBS 등에서 사제 동행 봉사활동에 대한 News를 방영했는데 아는 제자들과 친구 그리고 동료교사들이 좋은 일을 한다고 격려해주었고 학교에서도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고 인성교육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요즈음 사제동행 봉사활동은 그루터기 장애학교의 정신지체 장애우 들과 도봉산 등산 도우미 활동과 국외여행을 같이 가는 것이었다. 그중 에서도 그루터기 장애인 여가학교와 함께 한 해외연수는 학생들에게 배 움과 변화를 주었다. 2000년부터 2주에 한번 시행되는 도봉산에서 자 39 교단수범사례 아름다운 동행

40 원봉사학생들 함께 장애우 도우미로 봉사활동을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자원봉사학생들은 함께 산에 오르고 산에 올라가서는 장애우들 과 함께 장기자랑도 하고 팔씨름도 하고 여러 가지 게임도 하며 장애우 들의 여가활동을 도왔다. 장애우들의 부모님께서는 진심으로 감사한다 고 말씀하셨으며 그루터기 여가학교의 활동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그 때부터 그루터기 장애인 여가학교의 기획실장이신 변상오 선생님과의 만남은 즐거움이 되었다. 그러나 자원봉사활동으로 정착하게 하기 위 해서는 지도교사로서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교육하는데 오랜 시간과 열 정이 필요했다. 토요일에 시간을 내서 도봉산에 사제동행하여 장애우 들 여가활동의 하나인 등산을 돕고자 도우미로서 참여하는 것과 매년 자원봉사학생을 추천하여 장애우의 국외여행의 도우미가 되어 주로 정 신지체 장애우의 식사보조와 목욕 그리고 관광지 안내, 화장실 동행 그 리고 안전지도 등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참여한 학 생들은 봉사활동의 어려움 속에서도 장애우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부모 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래서 2005년 4월 장애인의 날에 교장선생님과 학생회장 그리고 그루터기 변상오 기획실장님과 장 애우들이 도봉산에서 자매결연을 맺고 정기적인 봉사활동과 국외연수 에 함께 참여하기로 했다. 2005년의 여름 국외여행에는 지도교사로 참 가하여 옌타이 지역으로 4박5일 간 자원봉사 지원 학생인 2학년 20명 과 정신지체 장애우 18명이 장보고 문화기행을 갔다 왔는데 학생들은 오히려 장애우들에게 정직함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정신을 배웠 으며 장애우들과 대화하고 배려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2007년에는 영훈고등학교 주최의 창의적 리더십을 위한 해외연수 및 봉사활동의 프로그램을 3월 초부터 기획하여 지도교사로 참가하여 영 훈고 학생 30명과 정신지체 장애우 10명과 함께 고구려 문화기행 6박 7일을 다녀왔다. 비가 쏟아지는 8월4일(토)에 인천항을 출발하며 하느 님께 안전과 보람을 함께 할 수 있도록 기도드렸다. 자원봉사학생 4인 이 1조로 장애우 1인을 돌보며 고구려 문화지역을 돌아보는 여행이었 는데 정신지체가 약간 심하고 똥오줌을 구분하지 못하는 장애우가 있 어서 학생들이 당황했으나 목욕을 시키고 옷을 입혀주면서 장애우들과 정신적으로 가까워졌다. 물론 광개토대왕비와 장군총, 그리고 고구려 교단수범사례 아름다운 동행 40

41 의 첫 도읍지인 오녀산성에서 고구려의 기상과 번영을 둘러보면서 고 구려 문화기행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중국 의 동북공정에 대한 현실을 느낀 역사기행도 했다. 이러한 체험수기와 소감문을 책으로 엮어 아름다운 동행 이라는 문집을 발간했고 9월8일 (토)에 학교의 소강당에서 그루터기 장애우들을 초대하여 고구려 문화 기행 보고회를 가졌다. 다시 만난 학생들과 그루터기 장애우 친구들은 지나간 추억을 비디오로 감상하며 행복해했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맑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정신지체 장애우들과 함께 장애우들을 일주일 간 돌보며 어려움을 이겨내는 극기의 정신을 배우고 돌발상황에 대한 위기대처능력도 배웠다. 올바른 인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랑과 겸손이라는 덕목을 갖추고 다 양한 봉사체험활동을 통해 사회성과 책임감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깨 달았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위하여 동료교사와 학생 그리고 나는 함께 아름다운 동행을 했다. 삶의 즐거움은 서로 가지고 있는 작은 것들 을 나누는 데 있다는 것을 배웠다. 지금까지 나와 즐거운 여행에 기꺼이 아름다운 동행이 되어준 학생들과 장애우들 그리고 동료 선생님들 감 사드린다. 41 교단수범사례 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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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교단 수범사례 우리들의 소중한 이야기 어릴 적 제 꿈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학교가 좋았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예회 시간에는 배우도 되고, 음악 시간에는 가 수도 되는 학교가 마냥 좋았습니다. 지금 저는 "좋은 선생님"이 되기를 간절히 소 망합니다. 아이들의 미술 시간에 그려 놓은 작품을 여기저기 걸어 놓다 보면, 교실은 어느 덧 멋진 화랑이 됩니다.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퍼지면 교실은 어느덧 멋진 공연장 이 됩니다. 아이들과의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온몸은 뻐근하지만, 마음 하나 만은 행복합니다. 며칠 전 걸려온 당선 소식은 좋은 선생님이 되고픈 제 꿈을 비 춰 줍니다. 저에게는 소중한 보물상자가 있습니다. 이 보물 상자 안에는 여러 빛깔을 가진 보 물들이 있습니다. 같이 달리고 같이 땀 흘리던 운동회, 멋진 춤 솜씨를 선보이던 학 예회, 재잘재잘 하하 호호 즐겁기만 한 현장학습! 이런 일 년의 과정을 거쳐 우리들 은 멋진 빛을 발하는 보석들이 되어 갑니다. 아이들과의 일상은 소중한 추억이 되 고, 추억들은 보석이 되어 우리 마음을 밝혀 줍니다. 교육수기 당선의 기쁨은 소중 한 보물상자 속에 담겨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규 인 대전광역시 문창초등학교 교사

44 김 정 호 선생님, 오늘 정호 학교에 오지 않았어요. 정호는 자주 결석을 한다. 아파서 결석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가기 싫 거나 공부하기 싫은 날이면 PC방이나 다른 곳에 가서 노느라 학교에 나 오지 않는다. 어쩌다 학교에 나와도 책상 위에 엎드려 있거나 책은 아예 펴 놓지도 않는다. 선생님, 저는 학교가 재미없어요. 따분한 수학 문제 풀거나, 못 알아 듣는 영어 공부하는 것보다 바깥세상이 더 재미있어요. 어릴 때부터 학교가 좋아서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나에게 공부 도 싫고 학교도 싫다는 정호의 말은 큰 충격이었다. 선생님, 오늘 한솔이가 학교에 안 왔어요. 평소 착실하던 한솔이가 아무 말 없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한솔이네 집에 전화를 걸어 어머님께 한솔이가 아픈 것은 아닌지 여쭈어 보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솔이가 아침에 학교 간다고 집을 나 섰다고 하셨다. 결국, 그날 한솔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다음 날 한솔이가 학교에 왔다. 한솔아! 너 어제 학교 간다고 하고 어디에 갔었니? 학교 가기 싫어서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서 놀았어요. 정호는 공부하기 싫은 날은 학교에 오지 않았다. 학교에 오더라도 쉬 는 시간이면 자신이 학교에 나오지 않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아이들에게 무용담처럼 이야기 했고, 아이들은 정호의 그러한 행동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문창초등학교는 나의 두 번째 학교이다. 전교생이 300명 정도인 대전 의 소규모 학교다. 우리 반 아이들의 여섯 명이 생활보호대상 학생이고, 한 부모 가정의 학생들도 7명이나 된다. 그나마 부모님이 새벽에 출근 하여 밤늦게 퇴근하시다 보니 엄마 아빠 얼굴을 보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정호 역시 어려운 가정 형편과 바쁘신 부모님 때문에 학교생활 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교단수범사례 우리들의 소중한 이야기 44

45 새 학기가 시작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정호의 생활은 달라지지 않 았다. 연락 없이 결석하는 일도 잦았고, 학교에 나와도 수업은 영 뒷전 이다. 정호야, 너 선생님이랑 놀러 갈래? 책 펴라, 공부해라 잔소리만 듣던 정호도 놀러 가자는 말에 귀가 솔깃 했던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학교 끝나고 6시쯤 조회대로 와. 선생님이랑 놀러 가자. 그날 오후 정호와 몇몇 아이들이 운동장 조회대에 모였다. 아이고, 선생님 오셨슈? 이 꼬마 아이들은 뭐래유? 연세가 높으신 어르신들이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우리가 찾은 곳은 그 동안 내가 퇴근 후 몸담던 봉사단체 <대전한밭 향토야학>이다. 야학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학업을 마칠 수 없었던 아버지, 어머님들 을 위한 야간학교다. 저녁 7시가 되면 1교시가 시작 되고 늦은 밤 10시 가 되어야 하루 수업을 마치는 어른들을 위한 공부방이다. 학교에선 세상에 둘도 없던 개구쟁이 녀석들도 낯설었던 탓인지 한밭 야학에서는 묵묵히 어른들의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공부 열심히 혀. 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공부가 재미없겠지만,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단다. 45 교단수범사례 우리들의 소중한 이야기

46 5학년 실과 시간!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리 실습시간이다. 감자와 달걀 삶기 시간이 다가오자, 모처럼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했다. 감 자 샐러드, 감자튀김, 감자전, 달걀 오므라이스, 으깬 감자와 달걀로 만 든 샌드위치 등 아이들의 아이디어로 만든 음식들이 다양했다. 학교생활에 영 재미를 못 느끼던 정호도 이 날 만큼은 싱글벙글한다. 우리 정호도 잘하네! 헤헤! 엄마가 늦게 오실 때면 혼자 라면도 끓이고 밥도 하다 보니 저 도 요리 잘해요. 선생님! 야학 또 언제 가세요? 아저씨, 아주머니께서 일 하시고 공부하시려면 저녁도 못 드실 텐데, 저희가 가서 간식을 만들어 드리면 어떨까요? 나는 뜻밖의 제안에 놀라 정호를 바라보았다. 며칠 후 우리는 정호의 제안대로 간식을 만들기 위해 학교가 끝난 오 후, 운동장에 모였다. 함께 장에 가서 과일도 사고 채소도 사고 나니 양 손이 무거워졌다. 야학 가족들이 오시기 전에 멋진 솜씨를 보여 드리고 싶은 생각에 아이들의 손길이 바빠졌다. 서툰 솜씨로 감자의 껍질도 벗 겨 내고 툭탁툭탁 도마에 썰어 내어, 지글지글 프라이팬에 볶아 내고... 오늘의 메뉴는 감자전과 달걀 오므라이스였다. 아유! 웬 맛있는 냄새여. 우리가 잘못 찾아온 거 아니여? 매일 배가 고파, 선생님 말씀도 잘 안 들렸는데, 오늘은 공부도 잘 되 겠어. 먹성이 좋아 볼 살이 두둑하고 덩치도 좋은 정호는 학교에서와는 달 리 야학 어르신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아이쿠, 고놈 장군감이여. 복스럽게 생긴 거 봐. 공부도 잘 허지? 하하하! 아니에요. 정호가 선생님 말을 제일 안 들어요. 그럼 못 써! 선생님 말씀도 잘 들어야 혀. 너희 선생님이 얼마나 좋으 신 분인데, 우리들 공부도 이렇게 가르쳐 주시고... 교단수범사례 우리들의 소중한 이야기 46

47 야학 어른들의 말씀에 힘을 얻은 것일까?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불신이 많던 정호는 점차 학교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아이구! 우리 야학에 우렁각시들이 생겼구먼! 우리 몰래 나타나서 밥 도 허구 청소해 주네. 어린 아이들이 기특하기도 하지. 그날 이후, 아이들은 시간이 날 때면 야학에 들러 청소도 하고 간식도 만들어 드리며 어른들을 기쁘게 해 드렸다. 그렇게 야학가족들과의 인연이 깊어질 무렵이었다. 추운 겨울, 어느 날 야학에 들러 청소도 하고, 신나게 요리 삼매경에 빠져 야채를 다듬던 중 은주가 소리쳤다. 선생님, 바닥에 물이 자꾸 생겨요. 처음에는 우리 중 누군가가 바닥에 물을 흘린 거라 생각했지만, 점차 물이 차올라 무릎에 이르렀다. 바지를 둥둥 걷고 쓰레받기와 물동이로 물을 퍼냈다. 뒤늦게 도착한 야 학 선생님과 어르신들도 외투를 벗고 물을 퍼내느라 안간힘을 쓰셨다. 때 아닌 물난리의 원인은 폭한과 폭설로 수도관이 터져서 생긴 일이었다. 선생님, 전기난로는 꺼야 하지 않을까요? 전기가 물에 통하면 감전 될 수 있어서 위험해요. 듬직한 반장 경현이의 충고대로 난로를 끄고, 야학 복구 작업에 힘을 모았다. 처음에는 추운 겨울 날씨에 난로도 켤 수 없고 물을 퍼내기 위 해 바지까지 걷어 올려 물속에 몸을 담고 있으려니 으슬으슬 춥고 떨렸 다. 하지만, 지하에 위치한 야학에서 현관 입구인 1층까지 물을 퍼 나르 다 보니 어느새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시간이 너무 늦었어! 아이구, 옷과 양말이 다 젖었구먼. 우리 아그들, 이러다 감기 들겠네. 가지 말고 잠깐 기다려 봐. 47 교단수범사례 우리들의 소중한 이야기

48 한참이 지나고 어머니 학생 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검정비닐 봉투를 내미셨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가게 문이 다 닫었더라구! 요즘 신세대들 맘에 들지 모르겠지만, 이거라도 신고 가! 감기 걸리면 큰일이어. 평소 말씀이 적으신 어머니 학생 분이 내민 양말과 스타킹에 우리들 의 마음이 뜨거워졌다. 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라 나는 아이들을 집집마다 바래다주었다. 시간이 늦어서 어쩌니, 부모님들이 걱정을 많이 하시겠다. 너희들 오 늘 고생 많았어. 학교 가기 싫거나 공부하기 싫을 때는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많이 와서 학교에 안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야학 교실이 물에 잠기 니까 속상했어요. 어른들이 공부하는 곳인데 물에 잠겨 버리면 안 되잖 아요. 평소 학교 오기 싫어 무단결석이 잦았던 정호가 학교의 소중함을 알 게 되었다며 말을 꺼내자 우리는 그날의 피곤함과 고단함을 잊을 수 있 었다. 그날 이후, 정호는 이유 없이 학교에 빠지거나 지각하는 일이 없었다.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싸우는 일도 많이 줄었고, 공부시간에 교과서도 챙겨와 우리를 기쁘게 했다. 야학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렸다. 전부터 야학의 교실을 옮기자는 의견 은 많았지만, 예산문제로 지금의 지하 교실에서 수업을 계속해 왔다. 물 난리 사건이 터지자, 야학의 가족들은 야학 이전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 했다. 결국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햇볕이 잘 드는 2층의 학교로 옮겨 갔다. 이 소식을 듣고, 우리들은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들을 모아 <알뜰 시장>을 열었다. 다 읽고 난 동화책이나 위인전을 모아 <행복 서점>을 교단수범사례 우리들의 소중한 이야기 48

49 열고, 키가 자라서 입지 못하는 작은 옷을 모아 <멋쟁이 옷가게>을 열 었다. 가지고 놀다가 싫증 난 장난감을 모아 <사랑의 장난감 가게>를 열 어 우리들의 정성을 모았다. 수익금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문제집을 사 고, 야학 이전 선물로 축하 떡을 준비했다. 백설기 위에 올린 콩들은 운 동장 텃밭에서 우리들이 직접 키운 것이라 더욱 감격스러웠다. 드디어, 야학 이전식이 있는 날이었다. 우리들은 영어 시간에 배운 비 틀스의 I WILL 을 한마음 한뜻으로 불렀다. Who knows how long I ve loved you, Do you know I love you still Will I wait a lonely lifetime If you want me to -- I will 우리들은 어른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문창의 작은 천사들에게... 어제 우리들은 작은 천사들을 만났습니다. 지치고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늦은 시간 공부를 시작할 때면 배도 출출하고 마음도 지쳐 오늘 하루 쉬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어느 날 기적이 생겼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하늘에 계신 누군가 천사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야학 곳곳을 청소해 주어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꼭 꼭 눌러 쓴 예쁜 편지는 우리들의 마음을 달래 줍니다. 여러분이 들려준 어여쁜 노래는 제가 지금껏 보아온 그 어떤 공연보다 감동적인 무대였습니다. 야학은 여러 가지가 부족한 곳이지만,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가득 찬 어른들의 공부방 입니다. 여러분이 보내주신 문제집은 어르신들이 공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입니다. 문창의 천사 친구들! 언제나 건강하고 지금의 맑고 순수한 마음을 간 직해 주세요. - 한밭 향토야학 교감 올림 - 49 교단수범사례 우리들의 소중한 이야기

50 아주머니는 이제 공부 안 해도 되는데, 왜 힘들게 야학에 다니세요? 아줌마 어릴 때는 먹고사는 게 힘들어서 학교 다니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지...어릴 때부터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공장을 다녔고, 교복을 입 고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어. 봄이면 김밥 싸들고 소풍도 가고 싶고, 가을이면 운동장을 맘껏 달리는 운동회도 해 보고 싶었지. 그 때 나는 이다음에 커서 어른이 되면 다시 학교에 다닐 거라 다짐했단다. 선생님! 선생님 얼굴이 신문에 났어요. 문예행사 때 야학 가족들과 함께 율동을 하는 모습이 신문에 났다. 야학에서는 일 년에 한 번 야학 연합으로 문예행사를 한다. 학업을 마 치지 못한 어르신들은 공부뿐만 아니라, 참여하지 못했던 운동회나 학 예회에 대해 애틋함이 있다. 체육 활동과 학예 활동을 함께하는 문예행 사는 야학 가족들의 축제이다. 나는 이번 학예행사에서 무용 프로그램을 맡았다. 아기염소 노래에 맞춰 안무를 짜고 흥을 돋울 수 있는 무용 도구도 준비했다. 신나는 동 요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다 보면 우리들의 마음은 어느새 동심으로 돌 교단수범사례 우리들의 소중한 이야기 50

51 아가 있었다. 드디어 문예행사 날! 나와 아이들은 걸레자루와 빗자루를 재활용하여 만든 플래카드와 응원 도구를 들고 소리쳐 파이팅을 외쳤다. 연세가 높으신 어르신들에게 동요에 맞춰 율동을 하는 것이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호응과 박수 속에 우리들 은 당당히 2등을 수상했다. 연습은 많이 했지만, 막상 무대 위에 올라가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 고 눈앞이 캄캄하더라... 너희들의 우렁찬 응원 목소리에 용기도 얻고, 무대 아래에서 동작을 알려주는 너희들의 정성 덕분에 자신감 있게 율 동 할 수 있었어. 사실 안무를 짜는 것도 우리 아이들의 도움이 컸다. 학예행사에서 율 동을 맡았다는 나의 말에 아이들은 신나는 노래도 선곡해 주고, 입장곡 과 퇴장곡, 노래 가사에 맞춘 안무까지 아이디어를 내 주었다. 문예행사 날 한밭 야학 가족들이 무대에서 아기염소 노래에 맞춰 춤 을 추고 있을 때, 우리 아이들은 무대 밑에서 율동을 따라 하며, 어른들 을 응원했다. 예상치 못한 수상 소식에 우리들은 서로 얼싸 안으며 기뻐 했다. 그해 겨울 4명의 야학의 가족들은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꿈에 그리던 졸업장을 갖게 되셨다. 그 중 두 분의 어머니는 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하 시고, 수능에 응시하셔서 당당히 대학생이 되셨다.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못 뵙게 되어 서운해요. 어머니. 한 번 야학 가족은 영원한 야학 가족이지요. 저는 이제 학생이 아니 라 한밭야학 선생님으로 남기로 했어요. 선생님들 덕분에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대학생도 되었으니,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 요. 제가 받은 사랑 베풀며 살기로 마음먹었어요. 다음 주부터 초등부 51 교단수범사례 우리들의 소중한 이야기

52 수업 들어가요. 대학생 새내기가 되신 어머니께서는 초등부 교사로 한밭 야학에 남기 로 하셨다. 대학생 어머니는 교사가 부족한 야학의 어려움을 덜 수 있었 고, 학생분들에게는 나도 열심히 하면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가 되 어 주셨다. 공부가 지겹다고 생각했던 우리에게 야학 어르신들은 배움의 소중함 을 알려주셨다. 땡볕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힘들게만 느껴졌던 운동회, 똑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연습해야 하는 따분한 학예회! 늦은 밤 고단한 하루 일을 마치고 모이신 어르신들이 피곤함도 잊은 채, 율동이나 노래 를 준비하시는 모습을 보며 힘들게만 느껴졌던 학교 행사가 먼 훗날 우 리들의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을 알게 해 주셨다. 무엇보다도, 지금 내 곁 에 있는 친구들! 함께 공부하고 함께 뛰어놀 수 있는 이 친구들이 먼 훗 날 그 어떤 보물과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은 소중한 가르침이 되었다. 야학 봉사 활동을 함께했던 정호와 아이들은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는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다. 나 역시 아이들을 더 열심히 가르치겠다는 욕심으로 정든 야학을 떠 나 대학원에 진학했다. 전공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 상담교육을 선 택했다. 정호와 함께 했던 1년을 통해 진정한 교사란 공부를 잘 가르치 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해 주는 것이 먼저 라는 것을 깨달았다. 선생님! 공부하기 싫어요. 라는 정호의 말은 나에게 항상 커다란 숙 제처럼 느껴졌다. 결국 작년에 나는 레크레이션 지도자 과정에 도전하 여 자격증을 땄다. 지금은 수업 내용을 놀이나 마술과 접목하여 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들이 불렀던 비틀스의 노래가사처럼, 오늘도 나는 진정으로 아이 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배워나가고 있다. 교단수범사례 우리들의 소중한 이야기 52

53 Love you forever and forever! Love you with all my heart! I will! <언제나 사랑할게요. 내 마음을 다해 아이들을 사랑하겠어요. 꼭 그러겠어요. I will> 53 교단수범사례 우리들의 소중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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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인생 최고의 소리 교사로서 드림을 만나고 지금까지 함께 하게 된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늘 행운이 라고 생각해왔는데 당선소식까지 듣고 나니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와 뜨거 운 눈물을 삼키고 말았습니다. 이번 당선의 기회로, 드림의 아름다운 성장과 그것을 지켜보면서 제가 느꼈던 가 슴 뭉클함을 많은 분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또 한 앞으로도 소외된 많은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세상과 소통하고, 꿈을 찾는 그 길 에 제가 함께하는 것이 저의 행복한 의무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주셨기에, 이번 작품 공모의 기회와 당선의 영예를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덕 정 서울특별시 여의도중학 교사

56 2001년 서울 가산중학교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한 천사 같은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 특수학급 학생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3년 전 발 달장애 학생들에게 요들송을 지도하면서, 일반학생들을 가르치며 느낀 것과는 또 다른 감동을 받게 되었다.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에 임하 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던 선생님은 다른 학교에 가서도 특수학급이 있 으면 꼭 맡아주세요. 아이들이 무척 좋아할 거예요. 라며 사기를 북돋 워 주었다. 2006년 여의도중학교로 발령을 받자 그 학교에는 서울시에 서 유일하게 약시학급이 있는데 특수교육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교사들 이 담임을 교대로 하고 있을 거라며 도움말을 주시던 선생님의 목소리 가 마음에 와 닿아 2007년 약시학급 담임을 자원하게 되었다. 왜 문을 열어 놓으세요?. 정상반 친구들이 쳐다보잖아요. 개학식 날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온 소리다. 교단수범사례 인생 최고의 소리 56

57 왜 이렇게 교실 불을 꺼놓고 있니? 눈이 부셔서요. 밖에서 우리 교실을 쳐다보기도 하고요. 나는 다음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확대경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일 반학생들과 함께 교육을 받지 못하고 교실의 반 정도 크기에서 별도교 육을 받고 있는 남학생과의 첫 만남에서 나눈 대화이다. 내가 담임을 맡 은 3학년 약시학급 학생은 2명으로 후천적 시각장애를 갖게 된 여학생 한 명과 유난히 어두운 조명을 필요로 하는 남학생, 바로 드림(별칭)이 었다. 드림은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각막과 망막의 손실로 인한 심한 난시 와 좁은 시야로 인해 물체 인식이 어려워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 한 저시력 시각장애인이다. 이런 신체적 장애의 굴레에 자신을 감추고 외롭게 지내와서인지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어두운 표정으로 자리만 지 키고 앉아 있었다. 내가 교실에 자주 드나드는 것을 어색해했고 막상 함 께 있을 때 대화가 오가지 않으면 몹시 불안해하였다. 그래서 나는 틈만 나면 교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했다. 또한 일 반학급을 정상반으로, 특수학급을 비정상반으로 생각하는 드림에게 정 상반 친구들 대신 다른 반 친구들이라는 말을 하도록 지도해 주었다. 드림의 일상은 일단 학교에 오면 컴퓨터를 켜고 어렴풋이 보이는 모 니터 앞에 바짝 다가앉아 게임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일반학급 친 구들이 자유롭게 떠들고 뛰어다니는 쉬는 시간에도 드림은 눈을 지그 시 감은 채 운동장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특별실 수업이 있는 날에는 다른 반 친구들이 모두 교실에 앉아 수업이 시작되어 조용해지면 그제 야 살금살금 들어갔다.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가고 싶다면서도 휴지만 손 에 들고 머뭇거리며 다른 반 친구들이 교실에 들어갈 때까지 참았다가 갔다. 점심시간에는 더듬더듬 반찬을 집는 모습이 부끄러워 식당에 가 는 것을 꺼려해 집에서 가져온 김밥을 먹곤 했다. 57 교단수범사례 인생 최고의 소리

58 아버지는 재단을 어머니는 재봉틀로 의류자영업을 하시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드림은 집이 장충체육관 근처지만 약시학급이 있는 우 리학교로 1학년 학기 초에 전학하여 3년째 아버지와 함께 등하교를 하 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오면 할 일도 없고요, 집에 빨리 가 고 싶어요. 한 달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색소폰 학원에도 가야거든요 라고 말하며 서둘러 학교를 나서는 드림을 따라가 보았다. 걸어 나오는 아들을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의 급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빨리 타, 아빠 엄청 바빠. 드림과 대화를 나누던 중 정상반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아보는 게 꿈 이라는 말을 듣고 3학년 일반학급 학생 5명을 선발하여 특수학급 학생 들과 1:1 Good friend를 만들어 주었다. 생일잔치, 계발활동, 환경미화, 공연활동을 함께 함으로써 서로 어울릴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였다. 드림은 그동안 친구가 없었고 일반 학생들과는 달리 닫힌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친구 대하기를 어색해하고 두려워하여 정상반 친구 들이 우리와 함께 놀아줄까요? 라며 걱정을 하였다. 나는 마음씨가 고 운 친구들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안심시켰다. 친구들의 얼 굴을 자세히 볼 수는 없지만 목소리로 파악하고 한 명 한 명에 대해 느 낌을 설명하며 그들과 가까워졌다. 다음 날 Dream, Peace, Sky, Wish, God로 팀 이름을 정하고 서로 자기 팀 이름이 좋다며 자랑하였다. 떠나 갈 듯이 크게 웃고 장난치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 이들과 뭔가 할 수 있 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Good friend와의 만남 이후 드림은 묻지 않아도 먼저 말을 하기 시작 했다. 지금은 일반학급에서 수업을 받고 있지만 2학년 때 약시학급에서 함께 생활했던 친구가 악기를 배운다는 얘기를 듣고 부럽기도 하고 호 기심도 생겨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악기가 낯설고 가격 이 부담스러워 걱정이 되었지만 부모님께서 마련해주어 도전해 보았으 교단수범사례 인생 최고의 소리 58

59 며 악보를 못 보기 때문에 어려웠지만 지금은 박자와 멜로디만으로도 연주가 가능해졌다는 등 많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 는 그동안 드림이 하고 싶었던 말들을 가슴 속에만 담아두고 있었구나 싶어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시각장애는 현실일 뿐 한계는 아니다. 장애를 극복하고 희망차게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삶을 그린 휴먼다큐 멘터리 죽마고우 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말이다. 특수학급에 관심을 갖 게 되면서 장애라는 말에 귀가 열려 있던 나는 교육방송 죽마고우 다큐 멘터리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되었고 특히 감동이 오는 프로그램을 보 면 다시보기 를 하여 특수학급 학생들과 함께 보기도 했다. 드림에게는 장면을 설명해주고 내용을 듣게 하였다. 그 중 소아마비를 극복한 성악 가 최승원 씨의 다큐멘터리를 볼 때는 제법 진지해 보였다. 넘어지기를 반복하면서도 배드민턴을 치는 모습, 시각장애 연주가들과 팀을 이루 어 희망으로 라는 음악회를 열어 장애학생들과 함께하는 장면을 본 드 림은 어느 날 저도 죽마고우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그 팀에 색소폰 연주자는 없었죠? 하며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학생들과 하나 되는 기회를 만들고자 요들송 반주용으로 사용했던 포 크 기타와 소 목에 다는 종이라는 Cow Bell을 방과 후에 가르쳐 주기로 하였다. 여학생 2명에게는 카우벨을, 남학생 3명에게는 기타를 처음 시 작하던 날 아침 어제는 기타를 배울 생각을 하니 잠도 잘 안 오더라고 요. 2학년 후배는 꿈도 꿨대요 라며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새 59 교단수범사례 인생 최고의 소리

60 로운 시도에 대한 걱정과 설렘이 아이들과 서로 마음이 통했나 싶었다. 손을 잡고 도레미파솔라시도 부터 가르쳐 주었다. 드림은 색소폰을 배 우고 있어서인지 금방 이해하고 따라 했다. 그날 이후 기타 실력이 빠르 게 향상되어 후배들을 가르치는 조교 역할까지 하게 되었고 가끔 색소 폰 연주도 들려주곤 했다. 방과 후 학교 교육활동을 통해 서로 친해지자 급한 일이 생겨 아버지 가 못 오시는 날에는 후배들이 지하철로 집 근처 색소폰학원까지 데려 다 주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동생들도 색소폰을 접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다며 음악으로 이끌어 주고 싶은 깊은 속내를 드러내기 도 했다. 방과 후 학교 수업을 마친 후 남학생들끼리 할 얘기가 있다며 소곤거리더니 늦은 밤 밝은 목소리로 후배들도 악기를 시작하기로 했 다며 이 말을 내일까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전화를 했다고 하였다. 끊 자마자 드림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 주었다. 앞으로 함께 할 음악친구들을 찾았구나, 축하해. 넌 진정 훌륭한 선배야.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좀 더 좋은 결과로 이끌어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 할머니 할 아버지들을 위한 공연을 마련하였다. 자신 없어하는 드림에게 연주하다 가 틀리거나 멈춰도 좋으니 열심히 하자고 힘을 주면서 악기는 혼자 연 주하고 만족하는 것도 좋지만 무대에서 많은 청중과 함께 호흡할 때 더 아름답다며 작은 무대부터 시작해 보자고 제안하였다. 마음속으로는 오 늘을 계기로 매월 무대에 서는 기회를 주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실 로암의 작은 방 은빛 둥지에서 어르신들과 건강체조를 한 후 만남, 사랑 해 당신을, 꼬마인형, 칠갑산 등을 연주하였다. 제대로 볼 수 없어 비록 듣기만 하면서도 박자와 음정을 무시하고 흥겹게 따라 부르시던 한 할 머니께서 앙코르를 요청하고는 드림의 얼굴을 어루만져 주셨다. 학생들 교단수범사례 인생 최고의 소리 60

61 만 연주하기로 계획되어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분위기에 동화되어 요들 송을 부르며 박수를 유도하였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저시력 장애인이자 여의도 선배인 실용음 악 선생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길에 드림은 오늘 연주를 들으신 어르신 분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감이 생겼어요. 열심히 하여 나중에 사회에 봉사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 어요. 라며 기특한 다짐을 하는 드림에게 나는 또 다른 목표를 주었다. 오늘 너 무 좋은 공연 보여줬으니 다음에는 우리학교 강당에서 연주 한 번 할까? 라는 제안에 애들 앞에서는 좀 긴장될 것 같은데... 연습해보고 잘 되 면요. 참, 아까 실로암 복지관에서 만난 선배가 음대 가려면 점자악보를 배우라고 했는데 어쩌죠? 라며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특수학급 학생들과 함께 한강시민공원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 후 꽃길을 따라 63빌딩에 갔다. 눈이 어두운 아이들은 넘어질까봐 불안하여 정답게 손을 꼭 잡고 다녔으며 전망대에 올라가서는 서로 도 와가며 소원의 벽에 우리 모두 희망카드를 적어 걸었다. 훌륭한 연주가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아름다운 세상이 보고 싶어요. 드림의 진심 어린 소원이었다. 61 교단수범사례 인생 최고의 소리

62 드림은 자신의 생일이기도 한 6월 15일 공식적인 데뷔 무대인 교내 합창대회에 찬조 출연하게 되었다. 혼자 무대에 올라갈 수 없다며 주저 하기에 연습만 열심히 하라며 토닥여 주었고 학기 초부터 친하게 지내 온 Good friend 스카이(별칭)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연주를 하게 하 였다. 행사의 마지막 찬조 출연자로서 무대에 발을 내딛는 모습에서부 터 무대 중앙을 찾아 스카이와 손을 잡고 가는 모습, 어렴풋이 보이는 강당 시계 불빛을 찾아 더듬더듬 위치를 파악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조 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또래 친구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시작된, 비틀스가 부른 Let it be 연주를 듣는 순간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아름다운 색소폰 소리가 강당 안에 울려 퍼지자 심사결과를 기다리며 웅성대던 학생들에게 조 용히 하라는 주의도 필요 없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학생, 학부모, 교직 원 모두 한마음이 되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몰입하는 시간 이었다. 아들의 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손수건으로 땀과 눈물을 닦 아내는 어머니 아버지, 틀리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노심초사 지켜보 는 음악학원 선생님이 뒷좌석에서 조용히 응원하고 계셨다. 일반학생들의 소리만 들려도 교실 문을 닫고 화장실과 식당에 드나드 는 것조차도 꺼려했던 드림이 약 600명의 친구들 앞에서 연주하는 모 습을 보며 나 또한 가슴 벅찬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긴장을 한 탓에 땀 을 비 오듯 흘리며 무대에서 내려온 아들의 얼굴을 닦아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또 한 번 찡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행사가 끝난 후 소감을 들어보자는 나의 말에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 던 드림은 쉼 없이 얘기했다. 제 차례가 되어 무대 위에 섰을 땐 아무 생각 없이 악기를 입에 물었 어요. 처음엔 너무 긴장해서 출발이 조금 빨랐고 함께 피아노 반주해주 던 친구까지 연주 패턴을 놓쳐서 처음엔 혼란스러웠어요. 하지만 마음 을 가다듬고 2절을 연주하면서는 점차 순조로운 느낌이 들더라고요. 연 주 중간에 객석에서 박자에 맞춰 박수를 쳐줄 땐 정말 좋았어요. 여러 번 실수를 했지만 열심히 한 만큼 후회는 없어요. 앞으로 수많은 무대에 교단수범사례 인생 최고의 소리 62

63 서겠지만 오늘 이 무대만큼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무대를 선다 는 게 이렇게 신나고 가슴 뛰는 일인지 처음 알았어요. 정말 이걸 선택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 좋아하는 소리가 생겼는데 그 소리 는 바로 연주가 끝난 후 터지는 사람들의 박수소리와 함성소리예요. 제 인생의 최고의 소리죠! 그 공연 이후 1학년 여학생들이 선생님이 말씀하신 약시반 색소폰 오빠 때문에 우리 담임선생님도 우셨어요. 정말 잘 하던데요. 잘 생겼어 요. 팬이에요. 라며 드림에 대한 호감을 드러냈다. 다음 날 약시반 교실 문을 살짝 열어보고는 쑥스러워 달아나는 1학년 여학생들을 향해 던지 는 드림의 한마디 저 보러 왔어요? 약간은 수줍게, 약간은 우쭐해 하며 웃는 드림의 모습에서 이제 교실 문을 활짝 열어놓아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생겼다. 선생님, 이번 주 토요일 시간 있으세요? 6월 30일에 우리 학원생들 이 모여 연주하는데 오실 수 있나 해서요. 라는 드림의 말에 모든 일을 접고 한 아름 꽃다발을 안고 공연장을 찾았다. 예전에 몇 차례 찾아가 학원선생님과 드림의 진로문제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기에 더욱 궁금하 고 관심이 갔다. 학원생들은 어린이부터 학생과 어른에 이르기까지 다 양했다. 연주회는 따뜻한 가족 음악회 분위기였다. 연주하는 모습을 보 면서 부모님과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드림이 눈이 안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이를 더 이상 갖지 않았다는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어머니 께서 선생님이 엄마네요 라고 말씀하시며 눈물을 글썽이는 바람에 나 는 순간 당황하여 손을 꼬~옥 잡아 드렸다. 63 교단수범사례 인생 최고의 소리

64 푸른 메아리 어린이합창단과 요들 트로이카 연주단이 매월 병원을 찾 아 공연하는 사랑의 병원 음악회 에 찬조출연 하고자 노력한 결과 드디 어 기회가 왔다. 7월 25일 일산 국립암센터 로비에서 연주 봉사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드림은 공연을 위해 Kenny G 의 Miracle(기 적) 을 연습해 오던 중이었다. 암환자들에게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는 생각에서 택했다고 하였다. 속 깊고 재치 있는 드림이 대견스러웠다. 환자복에 휠체어를 타고 링거를 맞으며 환자들이 로비로 모여들기 시 작하였다. 드림은 소리로 모든 분위기를 파악했다. 축구 중계방송 있는 날인데 그래도 많이 모여드네요. 정말 병원에 와 보니 저는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요. 눈이 안 보여 불편하긴 하지만 제 가 좋아하는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힘이 있잖아요. 이런 무대에 섰다는 게 꿈만 같아요. 제가 연주한 곡처럼 기적이 일어나 환자들의 암세포가 다 죽었으면 좋겠어요. 이제 무대에 설 때는 떨리지 않는데 연주를 마친 순간 가슴이 쿵쿵거려요. 박수 소리가 어느 정도 나올지 궁금해서요 독주뿐만 아니라 합창단과의 합동연주, 객석에 앉아서 박수를 함께 치는 모습을 보면서 드림이 이제 공연 분위기에 잘 적응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마두역에서 동대입구역까 지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무대연주에 욕심이 났다며 다음에 또 출연시 켜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다가 갑자기, 어린이 합창단원 엄마들이 선 생님을 엄마로 알고 있더라고요. 오늘은 환자위문공연이라 그런지 기 분이 좀 다르네요. 오늘 저 때문에 너무 힘드셨죠? 하며 많은 대화를 나 눴다. 드림이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피곤함이 사라지고 다음 무대를 계획하게 되는 것을 보면 나도 어느새 드림의 고정 팬이 되어가 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단수범사례 인생 최고의 소리 64

65 지난 5월 삼성 고른 기회 재단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가능성이 있는 청 소년을 선발하여 지원해주는 꿈끼 장학생 선발 공고를 보고 바로 드림 이 적합하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멘토가 되어 음악가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 추천서를 냈다. 그리고 7월 확정통보를 받는 행 운을 얻었다. 내가 장학생이라도 된 것처럼 뛸 듯이 기뻤다. 은근히 기 대는 했지만 장학생 명단을 확인하려는 순간엔 어찌나 마음이 떨리던 지 마우스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드림에게 장학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자 너무 좋아하였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저는 부모님도 계시는데 더 힘들게 사는 학생들이 저 때문에 떨어진 거 아닐까요?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글솜씨 좋은 선생님 덕분에 된 것 같아요. 이제 음악 학원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요. 학원비 낼 때 부모 님께 늘 죄송했었거든요 이제 겨우 중학생인 드림이 어떻게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할 수 있을 까... 다시금 마음이 한없이 예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더 욱 열심히 하라는 의미에서 주어진 행운이니 훌륭한 연주가가 되어 봉사 활동을 통해 스스로 베푸는 사람이 되라며 다시 한 번 격려해 주었다. 드림은 장학생이 되었다고 친척, 친구들에게 자랑하면서도 자신과 비 슷한 상황의 약시반 후배들도 장학금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여 또 한 번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장학생으로 선발된 것을 축하하고 드림의 설득으로 색소폰을 함께 배 우고 있는 남학생 2명도 격려할 겸 학원을 방문하였다. 3명이 마치 색 소폰 형제처럼 섬집아기와 고향의 봄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니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습을 마치고 아이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드림은 10월에 후배들과 함께 하고픈 학교 축제 공연, 고등학교 진학 65 교단수범사례 인생 최고의 소리

66 문제와 군악대에 입단하고픈 소망 등을 얘기하며 식사를 하던 중 갑자 기 맛있게 먹던 갈비를 내려놓으며 사뭇 진지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선생님, 선생님을 만난 2007년은 죽어도 못 잊을 행운의 해인 것 같 아요. 그래서 부탁드릴 말씀이 있어요. 내년에도 약시반 꼭 맡아 주실 거죠? 제가 졸업하면 후배들 걱정이 돼요. 선생님이 계시면 제가 찾아 오기도 좋고 후배들도 악기를 그만두는 일이 없을 것 같아서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드림이 불과 몇 달 만에 훌쩍 성장했음을 실감했다. 또 드림은 갑자기 농담 하나 해도 돼요? 저 집에서 일찍 장가가래요. 선생님이 주례 서 주세요. 선생님이 주례서면 하객들이 졸지 않을 것 같아요. 라며 우스갯소리를 하는 바람에 함께 앉아 있던 학생들과 배꼽을 잡고 웃었다. 8월 삼성 고른 기회 장학재단에서 마련한 멘토 워크숍에 참석했다. 멘 토링에 대한 강의와 더불어 교하중학교 사물놀이패의 공연이 있었다. 태평소를 연주하는 학생을 보는 순간 드림의 색소폰 연주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함께 색소폰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을 내년 멘토 워크숍 찬조 출연 무대에 세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워크숍을 마치고 오는 도 중 걸려온 드림의 전화에 힘주어 말했다. 내년 찬조출연은 우리 색소폰 삼 형제가 해야지? 2007년은 나의 25년 교직생활에 있어 또 다른 의미를 갖게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빨리 학교에 가고 싶다. 제법 진지하게 음악을 감상 하고 있는 드림과 사랑스런 아이들이 다음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기다 리고 있기 때문이다. 2학기 개학과 동시에 자매학교인 일본 다카세 중 학교 환영 공연,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사랑을 담는 그릇이라는 청 소년 봉사동아리 다솜바리 주최의 장애인을 위한 제8회 희망페스티벌 교단수범사례 인생 최고의 소리 66

67 찬조출연이 있었다. 이를 시작으로 국립의료원 위문공연, 학교축제, 남 부예술제, 서울학생 동아리 한마당, 진로의 날, 송년음악회 등 각종 행 사에 설 아이들을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즐겁다. 그런데 걱정이 앞서는 행사가 하나 있다. 바로 드림의 졸업식 공연이 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감동의 도가니가 될 졸업 연주장 면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저려온다. 앞으로 드림이 훌륭한 연주 가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 아이의 든든한 정신적 버팀목이 되 어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몇 년 후에 멋지게 성장한, 미소가 아름다 운 청년의 연주 팸플릿을 들고 드림 콘서트에 가는 날이 기다려진다. 내 인생 최고의 소리는 박수소리 라고 했던 드림의 말을 떠올리며 힘 찬 박수를 마음껏 보내고 싶다. 67 교단수범사례 인생 최고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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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교단 수범사례 내 이름은 줄넘기 선생님 예상치 못한 입상 소식에 놀랐고 기쁨이 앞섭니다. 우선 저를 교직의 길로 인도해 주신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줄넘기와 소중한 인연을 맺은 지 5년째! 아직 부족한 점도 많지만 줄넘기를 통해 아이들과 하나 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아이들의 머릿속에 씨앗을 심어주는 교육이 아닌 씨앗들이 자라나는 교육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더욱 많 은 학생들이 줄넘기를 통해 더욱 건강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수 진 대구광역시 내서초등학교 교사

70 올해로 교직에 첫발을 내디딘 지 5년째가 된다. 5년 전 나는 대구 경 운초등학교에 첫 발령이 났고 설레는 마음과 부푼 꿈을 앉고 반 아이들 을 만났다. 모든 신규교사가 그렇듯 나 또한 잘하려는 의욕은 앞섰지만 36명의 아이들 앞에서 목소리만 컸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다. 발령난 지 한 달 만에 목은 쉬여서 개미만 한 소리밖에 안 나올 정도 였고 벌써 선생님을 파악한 아이들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아이들을 너무 격 없이 대하면 전체를 이끌어나가기 힘들다는 선배 선생님의 말을 따라서 나는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으로 돌변하기로 했 다. 물론 첫인상에 무섭지 않은 선생님으로 낙인 찍혀있었지만 거울을 보 며 인상 쓰는 법도 연습하고 목소리도 군인처럼 굵직하게 연습을 하고 나서야 아이들도 제법 나를 어려워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친구 같은 선생님은 내가 이상으로 여겼던 것이고 선생님은 자 고로 무섭고 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모두가 아이들의 잣 대가 아니라 교사의 기준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기에 편한 기준에서 생 각한 것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2년의 학교생활이 지나갈 때쯤 이제는 어느 정도 교직 생활에 익숙해진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익숙해진 만큼 발령 전 열심히 하려던 나의 모습은 사라지고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나의 모습이 싫었다. 그리고 무언가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는 생각도 들었다. 대구교육대학교 체육심화과정을 졸업한 나는 대학교 시절 때부터 운 동이라면 정말 좋아하였다. 사실 운동에 소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 등학교 때까지 공부만 하느라 운동을 못했던 것이 한이 맺혔던지 대학 교에 가서는 테니스, 수영, 탁구 등 온갖 스포츠에 매진했고 결국 전공 도 체육심화과정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초등학교에 체육 전담 교사가 따로 있어서 담임 선 교단수범사례 내 이름은 줄넘기 선생님 70

71 생님이 반 아이들과 운동을 할 경우는 운동회 날이나 전통놀이 행사 등 특별한 날 뿐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TV채널을 돌리다가 한 프로그램에 시선이 멈췄다. 포 항의 지곡 초등학교 학생들이 음악 줄넘기를 하는 모습이었는데 단순 히 줄을 넘는 것이 전부라고 알고 있던 줄넘기를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신기해하면서 줄을 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다가 나도 우리 반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음악 줄넘기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우선 인터넷으로 음악 줄넘기에 대한 모든 자료를 수집했다. 다양한 줄넘기 자세 중에서 되돌리기 라는 기술이 제일 신기했는데 뛰는 것도 아니지만 줄을 이상하게 꼬아서 풀어 넘는 그 기술이 마치 마술과도 같 아 보였다. 혼자서 줄넘기를 가지고 이리저리 돌려봤지만 팔과 다리에 채찍에 맞은 듯 줄만 생길 뿐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부산에서 음악 줄넘기 지도자 연수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침 여름 방학 중이어서 나는 매일 기차를 타고 대구에서 부산으로 5일간 연수를 받으러 다녔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대단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새벽같이 일어나 기차를 타고 좌석이 없어 1시간 이상을 기차를 타고 내려서 또 버스를 타고 1시간을 더 걸려 부산에 있는 금정초등학교 체육관에 도착했다. 그래도 피곤한 기색 없이 궁금했던 기술들을 배울 수 있다는 기쁨에 폭 71 교단수범사례 내 이름은 줄넘기 선생님

72 염이 내리쬐던 여름날 하루에 1.5 L 이상의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줄 을 돌렸다. 연수를 받은 지 3일째 되던 날은 발목에 무리가 왔는지 걸을 때도 바 로 못 걷고 절뚝절뚝 거리다가도 신기하게 줄만 손에 잡으면 또 뛰는 것 이었다. 이렇게 5일간 태어나서 흘린 땀 중에 가장 많은 땀을 쏟고 나는 자신 감을 얻었다. 그리고 빨리 2학기가 되어 반 아이들을 만나 아이들에게 새로운 줄넘 기법을 지도할 생각을 하니 다시 2년 전으로 돌아가 신규발령을 받은 듯 가슴이 뛰고 설레였다. 물론 5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수많은 줄넘기 스텝을 다 체득할 수는 없 었지만 줄넘기 지도에 있어서 기초가 되는 바른 자세 법부터 함께 즐겁 게 할 수 있는 긴 줄넘기 지도법 등 다양한 방법을 전수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드디어 2학기가 되어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나의 검게 그은 얼굴 과 밝은 미소를 보더니 선생님 방학 동안 여행 많이 다녀오셨나요? 라 면서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나는 그럼, 선생님이 방학동안 줄넘기 여행에 푹 빠졌다 왔단다. 라 고 대답하니까 아이들은 어리둥절해했다. 하지만 처음 아이들과 줄넘기 수업을 하면서 예상치 못했던 변수들 이 생겼다. 개학은 했지만 아직 여름처럼 무더운 날씨에 운동장에서 줄 넘기를 하니까 돌들이 튀었고 땡볕에서 하기에는 무리였다. 또 체육관 이라고 하기엔 무색한 조그마한 다목적실에서는 36명이 한꺼번에 줄을 돌리기에 너무 협소했다. 그것도 감지덕지 하면서 학생들을 반반 나누어서 다목적실에서 반 전 체 학생 중 절반의 학생이 교대로 줄넘기 연습을 하였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우려와는 달리 몸을 움직이는 동적인 활동을 좋아하는 학생들 은 땀을 뚝뚝 흘려가면서도 열심히 줄넘기를 했다. 점심시간이면 시키지도 않았는데 밥을 먹자마자 줄넘기를 손에 쥐고 뒤뜰로 나가서 줄넘기 연습을 했다. 햇볕이 내리쬐는 운동장보다 건물 교단수범사례 내 이름은 줄넘기 선생님 72

73 의 그늘이 드리워지는 뒤뜰에서 아이들이 너무 열심히 연습을 한 탓으 로 나는 전교에 계신 선생님들께 사죄를 드려야만했다. 왜냐하면 주차장에 주차해놓은 차들이 줄넘기 줄에 맞아서 손상된 것 이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혼내기 보다는 점심시간에도 다목적실을 개방 해둘 테니까 연습을 하도록 독려했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완전히 나의 말이라면 깜빡 죽는 시늉도 했다. 숙 제를 안 해오거나 수업태도가 좋지 않으면 앞으로 줄넘기 수업을 하지 않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니 아이들도 그 말이 겁났던 모양이었 다. 이렇게 3개월 정도 연습을 하고 나서 한 달에 한번 있는 학급 장기 자 랑이 있었다. 방송부 학생들이 와서 그 반의 장기자랑을 녹화하여 토요 일 아침 방송시간이면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줄넘기를 하자고 했고 나는 간단한 에어로빅 안무 와 줄넘기의 스텝들을 섞어서 가요 1곡에 맞춰 음악줄넘기를 만들고 약 2주 동안 방과 후에 아이들과 열심히 연습을 했다. 아이들과 함께 줄에 맞아가며 땀을 흘리니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과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연습을 하고 드디어 방송으로 우리 반의 학급자랑을 보여주었다. 교내 방송이었지만 호응은 뜨거웠다. 특히 저학년 아이들 은 쉬는 시간이면 우리 반을 찾아와서 아이들에게 질문을 해댔고 다른 반 선생님들도 정말 줄넘기 기술들이 신기하다며 개인적으로 배우고 싶 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교감선생님께서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 점심시간마다 아이들이 줄넘기 연습을 많이 하는데 학교 전체에 점심시간동안 음악을 틀어줄 테니까 모든 아이들이 더욱 열심히 줄넘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 해주자고 하셨다. 교감선생님의 말씀대로 학교 전체에 신나는 음악이 흐르자 식사 후 운동장에서 술래잡기를 하면 놀던 아이들 하나, 둘씩 모두들 어느샌가 줄넘기를 손에 쥐고 신나게 뛰고 있는 것이었다. 73 교단수범사례 내 이름은 줄넘기 선생님

74 나 또한 더 많은 아이들에게 줄넘기를 지도해주고자 식사를 빨리 끝 내고 조회대로 나와서 아이들에게 되돌리기를 비롯해 다양한 줄넘기 스 텝들을 지도해주었다. 그리고 그해 11월 초에 학생들의 장기를 뽐내는 경운 예술제가 있었 다. 40학급이 넘는 우리 학교에서는 강당이 없어서 서구문화회관 대강 당을 빌려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공연을 기다리면 우리 반 아이들은 더욱 열심히 연습에 매진했다. 시 키지도 않았는데 30분이나 일찍 오고 방과 후에도 스스로 남아서 연습 에 참여했다. 그렇게 처음 예술제 무대에 음악 줄넘기 공연이 올랐다. 처음 보는 다양한 줄넘기 기술들과 신나는 음악에 학생들을 비롯한 많은 학부모님들이 성원을 해주셨고 유일하게 앙코르까지 받으며 성황 리에 공연을 마쳤다. 또 때마침 학부모님 중에 공연 관련 일을 하시는 분의 소개로 대구 약 령시 축제 행사에 초대되어 그해 말에는 대구의 동성로 거리 한 복판에 서 음악줄넘기 공연까지 하게 되었다. 물론 아이들이 긴장하여 실수도 있고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보내주는 큰 박수소리에 힘을 내어 더욱 열심히 공연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공연까지 하게 된 우리 반 아이들은 1학기 때와는 사뭇 달리 매 사에 적극적이었다. 하루 종일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했던 준혁이도, 친구들 앞 에만 서면 얼굴이 빨개지던 미현이도 이제는 제법 큰 목소리를 내고 자 신감 있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 껴졌다. 예술제 공연을 하기 전까지는 오해도 있었다. 아이들이 나에게 하는 말이 선생님, 부모님께서 혹시 선생님께서 회초리를 드시느냐고 물으셨 어요. 라고 말했다. 순간 당황했는데 바로 하는 말이 그래서 제가 대답했죠. 선생님은 회초리를 가지고 계시지도 않은데 교단수범사례 내 이름은 줄넘기 선생님 74

75 줄넘기가 자꾸 나를 때린다구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하는 아이의 말을 그제야 이해한 나는 그제야 웃음이 났다. 열심히 줄넘기 연습을 하다 보면 간혹 줄을 팔이나 다리에 맞게 되는 데 꼭 회초리에 맞은 것처럼 줄이 빨갛게 서더라구요. 어느 날은 출근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줄넘기 선생님 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겠지라고 짐작하며 가고 있 는데 더 가까워진 소리가 계속 줄넘기 선생님 을 애타게 외치고 있었 다. 무심결에 나를 부르는 건가 싶어서 고개를 돌렸는데 2학년 학생 한 명 이 나를 보며 씩 웃는 것이 아닌가? 나의 이름을 몰랐던 그 아이는 내가 줄넘기를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 나를 줄넘기 선생님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후로도 나는 우리 반이 아닌 많은 학생들에게 줄넘기 선생님이라 는 별명을 들었다. 줄넘기 선생님, 줄넘기 선생님,,, 혼자서 몇 번을 되내여보니 머쓱해 서 웃음이 나다가 과연 내가 줄넘기 선생님이 될 자격이 있는지 반문해 보았다. 물론 줄넘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유명하신 줄넘기 선생님들처럼 그 렇게 실력이 우수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면 땀 흘리고 웃게 만들어주는 줄넘기가 좋고 그 줄넘기를 더 많은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렇게 첫해 맡은 아이들을 졸업시키고 다음해부터는 학교에서 하는 방과 후 학교 교육에 음악 줄넘기 수업을 개강했다. 방과 후 학교는 영어, 음악, 미술 등 외부 강사를 초청해서 유상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이지만 우리 학교에서 최초로 무상 특기적성 수업을 만 들었다. 음악줄넘기 강의를 일주일에 2번씩 무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많은 학생들의 호응이 있었고 학부모님들 또한 좋아하셨다. 특히 작년에 졸업한 우리 반 아이들의 경우에는 다른 반 아이들보다 75 교단수범사례 내 이름은 줄넘기 선생님

76 평균 키가 3센티미터 이상이 컸고 뚱뚱한 아이들도 체중감량을 많이 해 서 특히 학부모님들께서 음악 줄넘기 수업 참여를 적극 희망하였다. 1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신청을 했지만 너무 많으면 수업이 곤란해서 실력순으로 우선 50명의 학생을 선발했고 신학기부터 수업을 실시했 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여했고 50명 학생 중에 또 다시 줄넘기 시범단을 20명 선발해서 대구 약령시 축제 를 비롯해서 대구 樂 페스티벌 등의 행사에 초대되어 학교의 이름을 드높이기도 했다. 그렇게 4년을 함께하고 작년에 대구 내서초등학교 전근을 오게 되었다. 첫 발령지이기도 하지만 내가 지도했던 많은 학생들이 선생님이 가시 면 이제 어떻게 줄넘기를 하냐며 눈물 지었을 때는 나도 괜스레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한번 배운 줄넘기 기술을 자전거 타기와 같아서 꾸준히 연습 하면 계속 잘할 수 있다면서 아이들을 격려하고 중학생이 되더라도 줄 넘기 계속해서 체력관리를 잘해야지 공부도 잘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 다. 올해도 나는 6학년을 맡게 되었다. 처음 학교를 옮기고 이전 학교 생 교단수범사례 내 이름은 줄넘기 선생님 76

77 각도 많이 나고 적응도 안 되어서인지 마치 시집 온 것처럼 낯설고 어렵 게 느껴졌던 학교도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것 같다. 빨리 익숙해질 수 있었던 것은 새롭게 시작한 줄넘기가 한몫을 하였다. 아직 전근 온 지 1년이 채 안 되지만 학생들은 벌써 나를 줄넘기 선생 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나는 주말이면 조용한 산을 찾아가서 등산을 즐긴다. 고요한 산속에 들어서면 산사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듣는이의 마음까지 맑게 해준다. 그 맑은 종소리 때문에 나는 산을 더 좋아한다. 나도 학생들에게 이런 종소리가 되고 싶다. 나의 이러한 노력이 학생들의 성장에 자그마한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 는 바람이다. 77 교단수범사례 내 이름은 줄넘기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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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교단 수범사례 누가 우리를 믿으려 할까? (흡연율0%, 우리들의 이야기) 수기 당선소식을 듣고, 가을의 정취가 가득한 교정을 바라다봅니다. 학생들의 맑 은 눈망울 속에 비친 하늘은 더 푸르고 높습니다. 청소년들의 활기찬 생활을 위하여 담배 없는 학교가 하나 둘 늘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응모했던 수기인데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금연에 성공 한 우리 학교 멋쟁이 녀석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흡연율 0%"는 우리 모두가 노력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 "선생님"이라고 말씀하신 김철식 이사장님을 비롯 한 안종환 교장선생님과 우리 학교 임직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항 상 지도편달을 해 주신 교육청장학사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승 우 충청북도 충주시 충주대원고등학교 교사

80 지방 소도시(충주시), 비평준화 지역에 속한 우리 학교는 1000여 명 의 남학생들이 다니는 인문계 고등학교다. 학생들의 학력 수준은 중학 교 내신 중하위권 집단으로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남고( 男 高 )의 흡연율은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2004년 당시 우리 학교 학생들의 흡연율은 전교생 37%에 이를 정도로 인근 학교보다 낮 은 수준이 아니었다. 화장실에는 늘 담배 연기가 자욱하고,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은 환기가 되지 않아서 복도가 굴뚝이 되는 학교였다. 변기는 꽁 초로 막혀서 일 년이면 한 두 차례 공사를 하느라 어려움을 겪었다. 흡 연 문제와 아울러 학교 폭력이나 절도 사건에 연루되어 경찰서에 출입 하는 학생들도 줄어들지 않았다. 동네 주민들은 흡연하는 우리 학교 학 생들이 꽁초를 아무 데나 던지는 것에 대하여 학교에 항의 전화를 했지 만, 학생들이 하교하는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광경은 이제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잘못된 시대의 흐름같이 느껴졌다. 또한 교직원들 중에는 화장 실 화재 발생이 우려된다고, 양동이에 물을 부어서 재떨이를 만들어 주 자고 하는 의견도 내놓았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우 리 학교에 보낸 것을 부끄럽게 여겼고, 또한 자신들이 우리 학교 학부모 인 것을 감추고 싶어했다. 학생이나 학부모 모두 학교에 대한 자긍심이 매우 약한 것이 사실이었다. 오랜 시간 생각 끝에 얻은 결론은 '이대로는 안 된다'였다. 이러한 상 황을 언제까지 수수방관만 할 것인가? 교사로서 할 일을 다 하지 못하 고 있다는 심한 죄책감을 느낌과 동시에 무언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함 을 절실히 느꼈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학생들에 게 교사가 아이들의 생활 전반을 관리해 주지 못한다는 것은 떳떳한 일 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폭력이 없는 안전한 학교, 담배가 없는 건강 하고 깨끗한 학교를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학부모님들이 자녀를 안심하고 학교를 보낼 수 있을까? 체벌과 징계와 같은 강제적인 방법 이 과연 교육적 효과를 얼마나 얻어냈는가를 되돌아보면, 매우 회의적 인 생각뿐이었다. 학생부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머리를 맞대고 개선책 교단수범사례 누가 우리를 믿으려 할까? 80

81 을 고민한 결과, 지금은 학교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새로운 생활지도 방법의 실천이 필요한 때라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나아가 좀 더 세부적으로 학교 폭력과 흡연율 0% 달성을 목표로 사 랑과 신뢰가 가득한, 따뜻한 학교 를 만들기 위한 천사(1004)지킴이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청소년의 흡연은 매우 사소한 동기에서 시작된다. 또래 친구들과 어 울리기 위해서 또는 약간의 호기심이 작용하여 처음 손에 대는 것이 보 통이다. 이렇듯 멋모르고 담배를 가까이한 결과가 나중에 큰 해악을 가 져온다는 사실을 청소년들이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청소년 시절의 흡 연은 더욱더 해롭다. 15세 이전에 담배를 피운 사람은 폐암 사망률이 20배나 높다고 한다. 청소년 흡연은 신체 건강의 해로울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비행, 학습 능력 저하, 유해 물질 사용과 관련된 다른 문제의 야기 등등, 그 피해는 실로 엄청나다. 청소년의 세포, 조직 그리고 장기 는 아직 완전하게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 있다. 따라서 담배와 같은 해로 운 물질과 접촉하는 경우, 성숙한 세포나 조직에 비해 더 큰 손상을 입 게 된다. 또한 청소년의 흡연은 니코틴 중독을 더욱 심화시킨다. 담배는 소리 없이 우리 청소년들을 파멸로 몰아가는 주적이다. 그러므로 청소 년의 흡연은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막아야 할 하나의 과제다. 학생 생활지도 성공의 관건은 학생 사안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느냐 에 달려 있다. 학생들의 사안을 한눈에 파악할 수만 있어도 생활지도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학생 사안을 효율적으로 파악할 81 교단수범사례 누가 우리를 믿으려 할까?

82 수 있을까? 어떤 방법으로 사전에 학생 사안을 파악하여 예방할 수 있 을까? 이러한 고민으로 얻은 하나의 아이디어가 휴대전화기를 이용하 여 실시간으로 학생 동향을 파악하는 방법이었다. 학교 학생들의 휴대 전화기 소지율이 80%를 넘는다는 점에 착안한 이 방법은 학생 중심의 참여형 생활지도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휴대전화기 문자를 이 용하여 학생들 스스로 학교 안팎에서 일어나는 폭력, 흡연, 등 부적절한 행위를 한 친구들을 선생님에게 알려서 지도를 받게 하는 것이다. 이때, 문자 발신번호는 1004 로 정했다. 익명성을 보장해 주기 위해서이다. 교사와 학생 간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신뢰감이 회복된 바탕 위에서의 생활지도라면, 고자질 이란 비난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 은 지적한 학생이나 지적당한 학생이나 서로 함께 발전해 나가는 분위 기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며, 이를 통해 친구의 잘못을 일깨워주어 결과 적으로 그 학생이 잘못된 사고와 언행에서 벗어나 바른길로 나아가도 록 돕자는 것이다. 처음 추진하는 과정에서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실 패를 두려워해서는 성공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꼭 성공할 수 있다 는 확신을 갖고, 전교생 전원 (단 한 명도 담배를 피우지 않기) 모두 금 연에 성공하기 위하여 흡연율 0% 달성이라는 목표를 설정했다. 우선은 교사의 솔선수범 과 학생들과의 대화 가 있어야 했고, 교사-학생 간의 공감대 형성이 시급한 과제였다. 공감대 형성은 머리와 말보다는 가슴 으로 하였다. 아이들에게 마음을 열어 놓고 다가갔다. 교단수범사례 누가 우리를 믿으려 할까? 82

83 요즘 학생들은 하지 마라 라고 하면 잘 따르지 않는다. 대신 하는 대 로 따라하는 성향이 강하다. 학생들은 하지 마라 고 하면, 반항적인 태 도로 아니요, 몰라요, 그냥요 이렇게 3요로 대답한다. 학생들의 이러 한 배타적 성향을 고려하면 교육이 말 몇 마디로 간단히 이루어지지 않 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교사와 학생들이 서로 의사소통 창구(휴대전화기 번호 1004)를 이용 해서 학교를 바꾸려는 의지를 공유하는 것이 천사 프로그램 성패의 중 요한 관건이라고 생각하였다. 천사 활동이 친구들( 비행을 저지른 학생 들 )의 잘못을 지적해서 친구를 처벌 받도록 유도하는 감정적 처신이 아니라, 그 친구를 진정으로 돕는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행위이어 야 한다는 점을 교육하였다. 교사는 학생들을 믿고 학생들은 교사를 신 뢰하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연대의식이 필요함을 강조하였 다. 그리고 우리의 노력이 반듯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을 함께 갖자고 호소하였다. 83 교단수범사례 누가 우리를 믿으려 할까?

84 이를 위해 매일 아침 궂은 날씨에 개의치 않고, 7시 20분에 출근하여 교통지도를 실시하였다. 학생들이 혼잡한 아침 등굣길에 안전사고를 예방하자는 이유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선생님께서 먼저 하시는구 나 하는 것을 학생들에게 느끼고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교통지도가 끝나면 교내를 빗자루로 쓸고 잡초를 뽑는 등 환경정리를 하여, 교사가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인문계 고등학교의 특성상 일 과 시간 중에는 수업시수가 많아 활동이 어렵기 때문에 담임선생님들은 야간자율학습시간을 이용하여 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 시간 을 이용하여 각 학급에 들어가 교사의 휴대전화기 번호를 알려주면서, 천사(1004)지킴이의 취지와 방법을 설명하고 동참을 유도하였다. 매일 아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교통지도, 환경지도를 하고 야간자율 학습시간을 이용하여 학생들과 대화를 한 결과, 굳게 닫혀 있던 학생들 의 마음이 차차 열리면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 었다. 드디어 우리들은 천사(1004)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애들이 담배 피우고 지금 후문으로 오고 있어요. 기철이가 담배를 피운 것 같아요. 끊게 도와주세요. 임정환, 임정국 형제가 소심해서 말도 안하고 친구도 없어요. 상담해 주세요 1학년 10반 권성욱이가 복숭아를 서리해서 먹어요 본관 2층 계단 올라가는 곳에서 폭행이 이루어질 것 같아요. 도와주세요 선생님 개구리 소리 때문에 공부가 안돼요. 개구리 좀 잡아 주세요 3학년 3반 교실에서 말싸움 났어요. 이러다가 싸울 것 같아요. 도와주세요 천사(1004)지킴이 프로그램을 시작한지 한 달쯤 지났을 때, 매일 30 여건의 메시지가 휴대전화기 문자 칸에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학생들 이 천사(1004)지킴이 프로그램의 취지를 알고, 동참하기 시작한 것이 다. 처음엔 담배를 피운다는 메시지와 학교 폭력 메시지가 주를 이루었 교단수범사례 누가 우리를 믿으려 할까? 84

85 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잡상인 출현, 생활고민 상담을 요청하는 메시지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해 나갔다. 첫 달엔 매일 30여건, 두 달째는 그 절반 인 15건, 천사(1004)지킴이를 시행한 지 석 달째가 될 무렵, 담배와 폭 력 메시지가 교사들의 휴대전화기 문자 칸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믿기 어려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 교사들은 학생들이 보낸 천사(1004)메시지를 통해 교내에서 발 생하는 학생 사안을 세세히, 그리고 가장 빨리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중 학생들의 심각한 흡연문제를 어떠한 방법으로 지도할까? 하는 것 이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담배를 피워 학생부에 불려온 학생들에게 징계와, 체벌의 방법으로 지도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일시적으로 담배를 끊게 하는 미봉책에 불 과한 것이다. 그런 방법으로는 흡연율 0%의 목표를 결코 이룰 수 없다 고 보았다. 따라서 시대가 변하고 학생들이 변하고 교육현장의 환경이 변하는 상황에서 징계와 체벌이 아닌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고 판단 하였다. 새로운 방법은 다름 아닌 사랑 과 관심 의 금연지도 방법이었 다. 즉, 학생 스스로 금연을 하겠다는 의지를 심어주는 교육을 실시하였 으며, 학생들에게 자신의 의지로 담배를 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였다. 우선 흡연한 학생들은 금연일기를 쓰도록 했다. 금연일기는 매일 쓰 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내용은 금연을 하면서 느낀 점, 몸의 변화, 앞으 로의 각오 등을 자유로운 서술하도록 하였다. 학부모, 담임선생님의 확 인을 받고, 학생부로 내려와 최종 확인을 받는다. 학생들이 쓴 일기를 꼼 꼼히 읽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조언을 세심하게 써 주었다. 그리고 칭 찬과 격려를 잊지 않았다. 85 교단수범사례 누가 우리를 믿으려 할까?

86 금연-- 힘들지? 하지만 너와 네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더욱 굳은 의지를 보 여줘라. 네가 담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네가 담배를 피워서 혼 나고 있다는 것을 부모님이 아시면 얼마나 마음 아프시겠니? 넌 할 수 있어. 우 리 한번 해보자! 힘을 내~ 다음으로 책이나 신문 잡지 등에서 평소 스크랩해 두었던 좋은 글을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다. 학생들은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좋은 이야기, 일테면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면 숙연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러한 교육은 체벌 등과 같은 강경한 방법보다 오히려 교육적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번으로 끝나는 교육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지속된 관심이 학생들의 마음의 문을 열게 만드는 것이다. "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고 하였다. 흡연한 학생에게 꾸지람과 체 벌보다는 금연에 성공한 학생과 학급에 대해 격려와 보상으로 계속적인 금연을 실천할 수 있게, 굳은 의지상 을 신설하여 표창하였다. 굳은 의 지상 은 학생들의 굳은 의지를 격려하는 시상으로 다름 아닌 금연상 이 다. 담배를 피웠다가 금연에 성공한 학생과, 담배를 피우는 학생이 단 한 명도 없는 학급을 대상으로 공식적으로 표창하였다. 부상으로 소액 의 도서상품권을 지급했지만, 학생들을 칭찬하고 격려한다는 측면에서 교육적 효과는 매우 컸다. 담배를 끊기 매우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실로 찾아가는 친구야 도와줘 행사를 실시하였다. 이 행사는 담배를 피웠던 학생이 교단수범사례 누가 우리를 믿으려 할까? 86

87 금연할 수 있도록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행사이다. 이 행사 시행 후, 교실로 찾아가 일산화탄소 측정을 통해 금연한 사실이 확인되면 교 사와 학생이 함께 박수를 쳐 주면서 칭찬과 격려를 하였고, 그 자리에서 친구야 고맙다 행사를 개최하여 서로를 아끼고 격려하는 마음을 갖도 록 하였다.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무료 금연침 시술을 하였다. 금연침을 맞음으 로써 나타나는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선생님과 학생이 함께 한의원을 가는 동안, 대화의 시간이 금연지도에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금연침 을 맞는 것보다 더욱 효과적인 금연지도 방법은 교사와 학생 간의 대화 를 통해 마음의 벽을 허물어 가는 것이었다. 금연침을 맞으러 한의원에 가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족이야기, 진로문제, 친구문제 등 청소년기에 고민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대화하면서 자연스 럽게 금연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도록 지도하였다.. 또한 우리들은 천사(1004) 활동을 시행하면서, 학생 흡연율과 학교 폭력 사안이 크게 감소하여 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천사(1004)지킴이를 통한 선생님과 학생 간의 의사소통 창구의 개설만 으로는 학교 폭력 및 흡연율 0% 달성이라는 목표 도달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학교와 지역사회를 연계한 다각적인 생활지도 활 동이 학교 폭력 및 흡연율 0%의 목표 달성을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방 법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천사(1004)지킴이를 시행한 2005년 3월부 터 2007년 현재까지, 여러 가지 형태의 학교-지역사회가 연계한 학교 폭력 및 흡연 예방 활동을 꾸준하게 전개하고 있다. 첫째, 학교폭력추방 의 날 행사와 담배 추방의 날 행사로 지역주민과 학부모, 학생들에게 나 누어 줄 유인물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교사-학생 간의 친밀 감이 형성되는 부차적인 효과도 얻게 되었다. 둘째, 학교 폭력 및 흡연 예방 문예활동을 실시하였다. 표어 짓기, 포스터 그리기, 글짓기로 나누 87 교단수범사례 누가 우리를 믿으려 할까?

88 어 공식적으로 공모전을 하고, 우수작품을 출품한 학생들에게는 상장과 함께 부상으로 도서상품권을 나눠 주었고, 학교 축제 때 전시회를 열어 함께 공유하도록 하였다. 셋째, 경찰, 판사, 금연전문가를 초청하여 전 문적인 교육을 실시하였다. 정성스레 만든 가정통신문을 각 가정에 주 기적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또한 학생과 학부모와 함께하는 감동캠프를 실시하여, 교사, 학생, 학 부모, 지역사회 등 다양한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과 대화 과정을 통한 천 사(1004)활동의 참여를 유도하였고, 교사 위주의 지도에서 탈피하여 학생, 학부모 중심의 자정활동이 되도록 하였다. 천사(1004)활동을 시행한 결과, 학교에서 담배꽁초가 완전히 사라지 는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늘 담배꽁초가 어지럽게 널려 있 던 매점 뒤에도, 화장실에도, 학교 앞 폐가에도 담배꽁초가 보이지 않았 다. 종종 발생하던 괴롭힘이나 왕따 같은 학교 폭력 현상들도 자취를 감 추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희를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멋집니다. 늘 감사합니 다 선생님 노력하시는 모습 멋지세요. 감사하구~사랑합니다 항상 바른 길로 갈 수 있게 지도해 주시고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선 생님을 만나서 감사합니다.- 종복이 엄마- (학부모의 편지) 교단수범사례 누가 우리를 믿으려 할까? 88

89 흡연율 0% 라는 목표는 시도 자체가 무모한 것이라고 주장했던 교사 들도 흡연율 0% 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동료 교사들의 호응은 큰 힘이 되었다. 골초로 불리는 몇몇 교사들도 금연을 시도했고 금연이 한 달, 두 달 이어지면서 서로 격려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또한 학부모님들 과의 공감대도 형성되었다. 때를 맞추어 전자문서로 공문이 하나 도착 했는데, 보건복지부에서 전국의 중ㆍ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최우수금연 실천학교를 선정한다는 내용의 공문이었다. 현 상황에서 흡연율 0%임 을 자부하기에 이를 더 발전된 학교로 만들기 위한 좋은 기회로 생각하 고 이번엔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번 해보자 는 강력한 의지를 북돋아 주 며. 자발적으로 참여한 학생들과 교사들의 동참으로 결국, 우리 학교는 2005년에 이어 2006년에도 2년 연속으로 전국 최우수 금연실천학교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학교에 대한 더 많은 긍지 와 자부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전국 최우수 금연실천학교 대상 수상을 계기로 우리학교 구성원 모 두는 더욱더 똘똘 뭉쳤다.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하여 선생님과-학 생 간의 생활지도 토론회를 개최한 결과, 2006년도부터는 3 無 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3 無 운동은 폭력, 담배뿐만 아니라, 쓰레기가 없는 학교를 만들자는 것이다. 쓰레기 없는 학교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쓰 레기봉투 실명제라는 작은 아이디어가 만들어졌다. 쓰레기봉투를 나누 어 줄때 사용처를 써서 나누어 주는 간단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 작은 변화는 아이들로 하여금 쓰레기 분리수거 교육이 철저히 이루어졌으며 쓰레기봉투 사용량이 현저히 감소하는 놀라운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 89 교단수범사례 누가 우리를 믿으려 할까?

90 한 학생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교사들의 솔선수범이 계속 된다 면, 어떠한 일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3 無 운동 의 성공도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 낼 수 있었다. 또한 학 부모들의 성원과 동참도 3 無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3 無 운동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스 티커를 제작하여 학생들이 늘 볼 수 있는 곳에 부착하였다. 자주 보고 시각적으로 느끼면서 홍보가 되도록 하였다. 학생지도의 방법과 관점 차이로 동료교사들과의 갈등이 있기도 했다. 지도하는 방법을 이해하지 못한 동료교사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이야 기하였으며, 일부 교사들은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였다. 회의가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은 반 드시 있다는 믿음을 갖기로 했다. 선생님들과 일과 후 소주도 한잔하면 서 이해와 협조를 요청하였다. 지속적인 노력으로 관심이 적었던 동료 교사들도 뜻이 같이 하기로 했다. 정말 희한해 어떻게 담배가 없어졌 지? 나도 금연을 시도해야겠어 이렇게 말하는 교사들 앞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대 답하면서 동참을 호소했다. 또 다른 문제는 학생들과의 갈등이었다. 담배를 피워서 입에서 분명 히 담배 냄새가 나는 데도 피우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뗄 때에는 난감해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때로는 매를 들고 싶었지만 인내하면서 담배 피운 학생을 데리고 보건소를 가기도 하였다. 보건소까지 같이 가 면서 흡연한 사실을 확인하자고 할 때도 당당하게 안 피웠다고 잡아떼 는 아이들을 보면서 걱정이 앞섰다 세상에 이렇게 마음을 잘못 쓰는 녀석이 과연 나중에 건전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보건소 정문 앞에 이르러서야 담배를 피웠다고 인정할 때는 정말 화가 났지만, 한숨 을 몇 번 내쉬고 돌아와야만 했다. 감정은 교육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 에 참고 또 참았다. 교단수범사례 누가 우리를 믿으려 할까? 90

91 매일 콩나물에 물을 주면 물이 죽죽 흘러내려 언제 콩나물이 클까 싶 어도 콩나물은 어느새 잘 자라고 있듯이, 반복되는 교육 속에서 학생 들은 바르게 자라난다. 천사(1004)활동이 하루 이틀로 끝나는 것이 아 닌 매일 같이 이루어지게 됨에 따라 학생들과는 친구의 잘못을 천사 (1004)메시지를 눌러 교사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또한 분기별로 실시되는 어머니회나 학부모 시험감독기간을 통 해 반복적으로 학부모를 설득하고, 함께 천사(1004)활동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한 결과, 교사-학부모 간에도 신뢰감을 형성해 나갔다. 결국, 우리들의 뭉쳐진 힘은 친구들과 부모님, 선생님들의 의식의 변 화가 생겼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전국에서 가장 건강하고 깨끗한 최고의 학교로 발돋움 하게 되었다. 2005년 3월부터 2007년 현재까지 추진한 천사(1004)지킴이 활동으 로 나타난 변화를 보면, 1,053명의 남학생이 단 한 사람도 담배를 피우 지 않는 믿기 어려운 결과를 가져왔으며, 학교 폭력이 사전에 예방되어 발생하지 않았으며, 쓰레기 없는 학교 만들기 3 無 운동 결과, 깨끗한 학 교문화의 조성이었다. 깨끗한 학교로 변화하여 자연스럽게 면학분위기가 조성되었고, 학생 들의 학력이 신장되어 2007년 대학입시에서 서울대를 비롯한 우수대 학에 많은 학생을 진학시켰다. 또한 교사-학생-학부모 간의 신뢰감 회 복으로 지역사회에서의 학교 이미지가 크게 높아지게 되었으며, 신입 생의 입학 성적이 향상되고, 구성원들이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 었다. 이로 인하여 학생 사안이 줄어들었고, 그것에 비례하여 선생님들 의 업무도 줄어들었다. 91 교단수범사례 누가 우리를 믿으려 할까?

92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천사(1004)활동의 시행으로 교사-학생-학부 모 간의 상호 공감대가 형성되어 마침내 학교 폭력 및 흡연율 0% 를 달성하였다. 이것을 바탕으로 우리 학교에 교사는 연구하고, 학생은 공 부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또한 지역사회로부터 우리 학교가 신뢰 감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생활지도의 모델로 제시되어 충청북도 및 국가청소년위원회를 비롯한 전국의 많은 학교에 사례로 발표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말도 안 듣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더욱 강해져, 교육 이 힘들다고들 한다. 가정교육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교사까지 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말 이 있다. 이제 교사들이 변화를 시도해야할 차례다. 교사가 변화를 두려 워해서야 어떻게 참교육을 이룰 수 있겠는가?. 교사들이 앞장서서 근본 이 되는 교육을 실천할 때, 학생들을 감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전 교직원이 솔선수범하여 학생들에게 근본이 되었으며, 사랑으로 보듬 어 만들어낸 결과이다. 앞으로 우리 학교는 교사-학생-학부모-지역사 회와 연계한 천사(1004)활동을 통한 3 無 운동의 적극 추진을 통해, 지 속적으로 학교 폭력과 담배와 쓰레기가 없는 학교를 만들어 갈 것이다. 우리학교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청소년 폭력 및 흡연 예방 활동의 표 본으로 확산시켜 나가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무엇 무엇을 하지 말자 고 하는 無 운동에서 무엇 무엇을 하자 고 하는 行 운동으로의 긍정적인 변화ㆍ발전을 꾀할 것이다.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 학교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계 교단수범사례 누가 우리를 믿으려 할까? 92

93 속될 것이며, 우리 학교 교정에서는 21세기를 열어갈 주역들이 밝고 활 기차게 쉬지 않고 성장해 나갈 것이다. 교육은 관심입니다. 사랑입니다. 93 교단수범사례 누가 우리를 믿으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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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교단 수범사례 원수야, 스승이 되어라! 부족함이 많은 저가 이런 상을 받아서 부끄럽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채 찍으로 알고 스승이 되도록 더욱더 노력하여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에게 인생의 모 델이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저에게 헌신하여 큰 힘이 되어준 사랑하는 아내와 아 이들과 저를 경제적으로 도와주고 격려해준 많은 분들과 지금도 경주에서 저를 위 해서 기도하시는 어머니께 이 상을 고개 숙여 바칩니다.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이 원 수 대구광역시 경운중학교 교사

96 나는 올림픽의 꽃을 마라톤이라고 한다면 교사의 꽃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많은 고민을 했다. 옆에 동료들은 승진하여 교장이 되는 것이라 고 했다. 그러나 고민 끝에 교사의 꽃은 교장이 되는 게 아니고 담임을 하여 학생이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난 두뇌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자 연의 이치 를 깨닫는 능력을 갖게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서불안치료, 시험불안치료, 두뇌의 한계를 넘는 비법 등을 가르쳐 교 사의 꽃을 피워 왔다. 2005년, 학교에서 부장교사를 권유했지만, 올해도 담임을 해서 내 능 력을 발휘해보고 싶다고 했다. 3월 2일(수), 2학년 12반, 이름 이원수 별명은 또래이라고 소개했다. 또래이란? 또래(같은 나이)+이( 異 ) 즉, 나와 나이가 같은 다른 선생님과 비교해 볼 때 너무 다른 방법을 가지고 학생들을 대한다며 학부모님들께서 지어준 별명이다. 학생들은 올해 담임은 나에게 편하고 호흡이 맞을까? 등 모두 자기에 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원했다. 먼저 이런 스승이 되고 싶다는 글을 낭독 했다. [자로 잰 것 보다 손으로 잰 것처럼 조금 허술한 면을 가지면서 거의 확실한 시간에 문을 들어서서 수많은 눈빛과 정겨운 인사를 나눈 다음, ⅓은 지식을 ⅔는 지혜를 베푸는 자가 되며, 무엇이든지 친절하게 가르 쳐 주며, 성실한 자가 되며, 뛰어난 유머를 가진 자가 되며, 기분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며, 공과 사가 분명하며, 석차로 대하지 아니하고, 편견을 갖지 아니 하며, 한번 잘못을 두 번 다시 거론하지 아니 하며, 10대들의 삶에 한 번쯤 고민을 하며 실수했을 때 이것을 뱀이 담 넘어 가듯 넘어 갈 줄 알며, 화가 났을 때 이일로 관계없는 학생에게 화를 내지 아니하며 언제나 학생을 존경하는 자가 되련다. (3월 4일 金, 담임 이원수 올림)] 학생들은 머뭇거리더니 긴 박수로서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정서불안을 앓고 있다는 지환이 등 몇 명이 먼저 눈에 들어왔지만 그 런 내색은 하지 않고, 나에게 특기나 재롱을 보여 감동을 받아 이름을 빨리 외우게 했다. 내가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학생은 오후에 남겨 청소 를 시켰더니 자신을 담임에게 알리려고 노력했다. 정말 '또래이'다 면서 수군거렸지만 학생의 특성과 성격을 빨리 파악했다. 교실 분위기는 내 교단수범사례 원수야! 스승이 되어라! 96

97 마음과는 달리 말대꾸하고, 교실에 침을 뱉고, 실내화 등의 분실이 자주 일어났다. 또 점심급식에서 우유를 서로 가져가려는 모습을 보고 충격 을 받았다. 한편, 경쟁만 강조하고 아직 남을 배려해서 즐거움을 느껴보 지 못한 학생으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치료를 하고 싶 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상담이란 개념을 넘어서 치료란 개념을 도입했다. 의사가 병을 치료하듯이 학생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 주어 정서불안에서 정서안정으로 행동변화가 일어나게 해주는 것이 치 료라고 생각했다. 못함 평균 잘함 (정규분포 곡선: 이 곡선에 넣어서 생각을 하면 행동이 이해가 되어 부적응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매일 흰 가운을 입고 의사가 되어 학생을 치료한다. 치료를 하기 위해서 몇 가지의 철학을 갖고 있다. 상담철학은 모든 자연의 이치는 정 규분포곡선을 이룬다. 이것은 학생이 잘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못하 는 것도 있다는 나의 이론이다. 즉, 신( 神 )은 학생에게 한 가지 잠재능력 은 주었다. 그것을 개발한다.담임철학은 학교성적, 가정환경, 외모, 성 격 등으로 편견을 갖지 않는다. 교육철학은 칭찬을 먹고 자란 학생은 일 생동안 가슴에 존경하는 스승을 가질 수 있다. 행복철학은 남을 배려해 서 감동을 주면 최후의 인생은 1등이 되고 먹고사는 것은 저절로 해결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선비철학은 보리밥과 시래기 국으로 배를 채 우면 얼음처럼 맑고 옥( 玉 )처럼 순백한 사람이 되어 무소유를 실천하는 선비정신을 가진다. 독서철학은 독서는 지혜를 터득해 인생에서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치료를 하기 위한 기초 진단으로 첫째, 선입견을 가지고 학생을 보는 것을 싫어해 부모님의 직업 등을 강제로 조사하지 않고 자기소개서를 스스로 쓰게 했다. 둘째, 직업선택지로 직업 선호도를 조사했다. 셋째, 상담실에 가서 1학년 때 실시한 심리검사를 개별로 분석하여 부족한 부 97 교단수범사례 원수야! 스승이 되어라!

98 분을 어떻게 채우는지 방법을 제시하기 위하여 준비를 했다. 넷째, 1학 년 성적과 독서량을 조사하여 지식과 지혜를 받아들이는 속도의 능력 을 분석했다. 위의 진단에서 38명중 내가 무관심 해야 할 학생은 1명(2%), 내성적 이고 소심해서 관심 을 가져야 할 학생은 14명(36%), 칭찬 해 주면 자 신감을 갖는 호르몬이 평소보다 많이 분비되어 행동변화가 급격히 일어 날 학생은 17명(47%), 평소 모범을 보여 내가 존경 해야 할 학생은 6명 (15%)이었다. 이 무관심, 관심, 칭찬, 존경의 4단계 분류법은 개인 수준 에 맞추어 잠재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다. 나의 관심은 마 음을 일으키고, 칭찬은 감동하게 만들고, 존경은 학생의 인생진로를 바 꾸었다. 나는 1975년도에 경주중학교 2학년이었다. 학교 뒤에 있는 고적지 분황사에 청소를 하러 자주 갔다. 한번은 스님이 3층 석탑 사각 모서리 에 있는 돌사자를 설명하면서 다리가 잘려 있는 그 이유를 물었다. 대답 을 못하자 스님께서 일본이 일본 쪽으로 보고 있는 돌사자가 힘을 못 하도록 잘랐다 면서 이 돌사자의 아픔을 치료하는 방법은 너희같이 어 린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나라의 힘을 기르는 것이라는 훈화를 들 었다. 어린 마음에 일본을 이기고 싶었다. 그때의 충격으로 30년이 지났 지만 아직도 일본제품은 가급적 쓰지 않는다. 그 때의 영향인지 나도 제 자들에게 평생 가슴에 남는 훈화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연구를 했다. 개인 치료는 123전법 을 사용했다. 이것은 학생과 만날 때 내가 한번 얘기 할 때, 학생이 두 번 얘기하도록 하고, 내가 학생의 얘기에 세 번 고 개를 끄덕이며 으, 응, 그래 등 맞장구를 쳐주는 방법이다. 학생을 인 정해 줄 때 치료가 쉬웠다. 개인의 잠재능력 수준에 따라 열린 공간에서 는 조언과 상담을 하고, 치료하는 학생은 반드시 비밀을 지켰다. 가난은 학생이 해결 할 수 없기에 가난으로 인하여 정서불안을 앓는 학생은 경 제적으로 도와 용기를 주었다. 내성적인 학생은 먼저 장점을 찾아서 칭 찬을 적은 쪽지를 주었다. 이것은 전 담임도 나에게 관심이 없고 잘 못 보더니 역시 이번 담임도 그렇구나! 라는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인간의 성격은 쉽게 변할 수 없다. 나는 교무수첩에 행동변 교단수범사례 원수야! 스승이 되어라! 98

99 화를 기록하고 출근하면 칭찬의 쪽지를 적어 하루를 시작했다. 이 쪽지 는 학생들에게 평소 행동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구분하 는 능력을 스스로 깨닫게 했다. 학급 치료는 3월에는 기초진단 자료를 참고로 5명 정도 그룹상담을 먼저 해서 개인의 장점만 공개적으로 칭찬하여 먼저 자신감을 갖게 했 다. 급훈을 위로는 하늘을 보고 아래는 땅을 보아 한 점 부끄럼 없는 행 동을 하자! 로 하고 학급운영의 목표는 학생이 자기의 두뇌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한다."에 두었다. 두뇌의 한계 란 미성숙인 인간이 태어나서 보고, 배우고, 학습으로 인하여 이해하고 생 각할 수 있는 한계라고 정의했다. 나는 두뇌의 한계를 넘는 비법으로 머 리로 생각하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쓰고, 입으로 왜 그런가를 설명하게 했다. 이것은 아인슈타인 박사 가 "당신 이 아는 것을 할머니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 정으로 아는 게 아니다."라고 하면서 두뇌의 창조성은 남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에서 개발되고 길러진다고 제자에게 강조한 것을 응용 한 것이다. 99 교단수범사례 원수야! 스승이 되어라!

100 공부는 모두가 1등을 할 수 없지만 적성에 맞고 관심이 많은 분야는 1등이 가능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두뇌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지 연 구를 해서 학생에게 적용했다. 학생에게 적용한 두뇌의 한계 뛰어넘기 모형도는 다음과 같다. (원 O 은 창의성 문제 입니다) 1 전혀 출발 못하는 단계 : 동기부여 미래 방향 제시 출발 유도 (문제출발) (목표도달) 2 출발은 했으나 나가지를 못하는 단계 : 나가는 방법을 제시 (문제출발) (목표도달) 3 도움을 받아서 반쯤 나가다가 중단 단계 : 집중력과 끈기를 기르는 방법 제시 (문제출발) (목표도달) 4 도움을 받아 목표에 도달 단계 : 나의 두뇌의 한계의 비법이 필요함 (문제출발) (목표도달) 5 두뇌의 한계 뛰어넘기가 시작되는 단계 : 도움 없이 문제해결력의 방향을 인지 (문제출발) (목표도달) 6 두뇌의 한계 뛰어넘기가 진행형인 단계 : 무서운 집중력 진행 중임 (문제출발) (목표도달) 7 두뇌의 한계 뛰어넘기가 완성단계 : 자기의 적성과 취미가 맞는 분야 에서 잠재능력을 100% 발휘하여 1인자가 되어 인생에서 성공함 (문제출발) (목표도달) 교단수범사례 원수야! 스승이 되어라! 100

101 모형도를 설명하면 문제출발에서 목표도달까지는 지식과 지혜의 양 이 많아지면 직선에서 타원형으로 점점 커져서 원이 된다. 4단계는 목 표는 도달했으나 조금만 벗어나면 문제해결이 안 된다. ( O 이 문제는 해결을 못함) 5단계에서 자기소개서, 직업선호도, 심리검사, 어휘력, 독서량, 집중력, 침착성, 적성, 국어, 수학 등 도구과목의 성취도를 참고 로 지식과 지혜를 받아들이는 속도의 능력을 분석하여 학생수준에 맞 는 방법을 제시하면 두뇌의 한계 뛰어넘기가 시작된다. 6단계에서 잠 재능력이 발휘하기 시작하여 7단계에서 두뇌의 한계를 넘는다. 나는 우주만물의 완성을 원 으로 보았다. 그동안 가정방문을 해서 공부방을 많이 꾸며 주었다. TV를 없애고 집 의 벽면에는 대형 칠판을 설치했다. 스스로 교사가 되어 칠판에 적어 가 면서 남에게 설명하는 것처럼 입 공부를 하게했다. 연습장에 세 번 쓰는 것보다 칠판에 한번 쓰는 것이 더 효과가 있었다. 공부방에는 독서실 책 상으로 개인공간을 마련하여 집중하게 하고, 벽면에는 책장을 만들어 언제든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고, 공부방 중간에는 네모난 큰 책상위 에 컴퓨터, 사전, 옥편 등을 두어 궁금한 것은 모두 사전을 찾고 EBS방 송을 보도록 했다. 이 EBS 방송은 시간이 절약되고, 반복해 들을 수 있 고, 그림을 곁들인 설명으로 이해가 쉬웠다. 그래서 EBS 강의를 들어보 고 학원을 끊는 학생도 있었다. 어휘력을 기르기 위해서 신문을 보면서 하루 5개정도 단어를 국어사전을 찾아서 뜻을 적고, 옥편으로 반드시 부수를 찾아 획순에 의해 한자를 찾아 다시 적게 했다. 힘들게 찾는 순 간 어휘(단어)의 뜻과 한자를 익혔다. 어휘력은 모든 공부의 기초이고 배경 지식이 풍부해져 학교 수업에 집중할 수 있다. 어휘력이 부족하면 자기의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하지 못해 발표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독 서보다 어휘력을 먼저 가르쳤다.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강연에서 어휘 력을 왜 길러야 하는지 설명하면 자기 자식부터 먼저 해야겠다고 했다. 또 책을 읽되 1주일에 1권 정도는 반드시 독후감을 쓴다. 독후감을 쓰 는 요령은 만약, 김동리의 무녀도 를 읽는다면 학생이 쓴 독후감을 내 가 읽고 받는 느낌이나, 내가 무녀도를 다 읽고 받는 느낌이 비슷하면 된다고 했다. 101 교단수범사례 원수야! 스승이 되어라!

102 영어회화는 EBS 방송으로 영어듣기를 하루 1회씩 시험을 쳐서 정확 한 발음과 듣기를 점검한다. 현재 학생들이 영어회화를 못하는 이유가 귀에 영어 노출량이 절대 부족하다. 귀에 노출량을 늘여야 한다. 그래서 원어민이 녹음한 재미있는 영화를 거실에 계속 틀어 놓아, 알던 모르든 상관없이 6개월쯤 듣다가 거기 나오는 모르는 단어를 공부해 내용을 완 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다. 또, 학교에서 배운 영어 교과서를 이번 주는 1과 그 다음 주는 1, 2과 이런 식으로 누적하여 소리 내어 암기한다. 이 것은 4가지 언어기술인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이런 나의 독특한 방법은 외국에 가지 않고도 외국인 보다 더 영어회화 를 잘하는 제자가 생겼다. 학생들은 한 가지씩 하고 나면 O표를 하여 목표도달을 스스로 체크 했다. 이 세상에는 나무가 수없이 많지만 나의 제자들은 제일 큰 나무는 1개란 자연의 이치를 알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이런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나의 방법은 산만한 학생에게 침착성과 집중력을 길러주었다. 소문이 나서 오래전부터 많은 학부모님이 집에 상담을 하러 오셨다. 이런 나의 정성들은 학부모님을 감동시켜 이원수 를 돕는 후원자가 되어 20년 가까이 학생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여 용 기를 주었다. 4월이 되었다. 생기발랄한 15세 학생의 가슴을 짓누르는 것은 시험이 었다. 먼저 나는 공부에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나는 공부가 재 미있다., 내가 보고 듣고 배운 것은 전부 다 기억되어 필요할 때 정확 하게 떠오른다., 나는 열심히 공부해 성공하여 부모님께 효도하고 내 가정과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인물이 된다. 라며 이것을 기초로 하여 각 자 자신에 맞게 공부 암시문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시험! 시험을 기다 리자! 시험이란 생각을 바꾸자! 시험아! 나에게 다가오라! 최선을 다한 뒤에 하늘의 도리를 기다리자! 며 시험에 대한 기대불안을 없앴다. 많은 학생이 집념이 부족했다. 팔공산의 흙을 가지고 수성 못을 메워 라! 란 제목으로 집념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나는 수성 못이 지저분하 여 흙으로 메워버리기로 했다. 차 스푼을 가지고 팔공산에 가서 스푼으 로 흙을 떠다가 수성 못으로 가져다 날랐다. 계속 날랐다. 시간이 흘렀 교단수범사례 원수야! 스승이 되어라! 102

103 다. 남들은 나를 비웃었다. 계속 차 스푼으로 흙을 떠다 날랐다. 쓰러졌 다. 며칠 쉬었다. 또 계속 날랐다. 포기 할 수 없었다. 힘이 들고 지쳤다. 그러기를 많은 세월이 흐르고 꽃이 여러 번 피고 지고했다. 그러나 수성 못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무 변함이 없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 흙을 떠다 날랐다. 지칠 대로 지쳤다. 쓰러졌다. 꿈을 꾸었다. 백발 을 휘날리며 신( 神 )이 나타났다. 내가 너의 정성과 끈기를 지켜보고 있 었다. 너를 도와주리라 하고는 사라졌다. 계속 꿈을 꾸며 잠을 잤다. 일 어나 보니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팔공산의 흙은 수성 못으로 떠내려갔 다. 얼마 후 수성 못은 메워져 봄이 되어 꽃이 피었다. 존경하는 학생여 러분!, 인생의 목표를 향해 도전하라!, 휴대전화, 컴퓨터게임.등 을 버려라!, 지식과 지혜를 습득하기 위해서 청춘을 바쳐라! 그러면, 운명의 신( 神 )은 너에게 달려가서 도와주리라! ]라고 자주 웅변을 했 다. 학생들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자기 능력과 상관없는 OMR카드에 대한 작성 미숙으로 우 는 학생이 많았다. 나는 OMR카드를 연구해서 불안감을 없애 주어 신뢰 를 얻었다. 지금 사용하는 카드 판독기는 대부분 일본과 미국에서 개발한 것인데 센스감지기가 카드 아랫 부분에 있는 검은 막대를 통과시 각 문항마다 마킹한 부분을 빛을 발산하는 하는 양을 측정하여 채점하는 2진법 방 식이다. 이 2진법 방식은 한번 마킹하면 수정할 수가 없어 학생을 불안 하게 만들었다. 이것을 개선한 5초를 남겨도 수정이 가능한 다면적 인 식방식 이란 OMR 카드를 개발하는데 참여하여 나는 2진법 방식의 문 제점을 설문 조사하고 분석해서 신 개념의 새로운 답안지인 OMR카드 를 도안하였다. 이 원리는 1997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25회 국제발명 대회에서 금상(수상자:김택진)을 받았으며 꾸준히 연구를 하여 처음으 로 내가 근무한 학교에서 테스트를 거쳐 미비점을 보완해 제품을 출시 하여 지금은 대구 소선여중 등 30여개 학교와 기타 많은 기관에서 사용 하고 있다. 다면적 인식방식은 답란이 동심원으로 되어 있어 먼저 안에 있는 원에 정답을 마킹했다가 수정하고 싶으면 바깥 원까지 더 크게 마 킹하면 판독기가 면적이 큰 것을 정답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2진법 방식 103 교단수범사례 원수야! 스승이 되어라!

104 의 문제점을 모두 없앴다. 지금 미국, 러시아, 중국, 방글라데시, 대만에 서 특허 등록을 했다. 또 2진법 OMR카드는 수입품이고 1시간 시험 시 한 반에서 평균 8장정도 교환하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보면 낭비가 많 다. 그러나 다면적 인식방식 OMR카드는 수정이 되고, 이물질이 묻어도 판독이 가능해 언젠가는 수출하여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 고 있다. 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답안지 OMR카드를 만들어 서울 한국교육 과정평가원에 학생들의 시험불안을 없애자고 요청을 하기도 했다. 또, 2004년 3월 17일 대구 MBC TV에서 한번 쓰면 수정할 수 없는 OMR카 드를 수정할 수 있도록 한 벤처사업가(김택진)와 현직교사(이원수)가 공동 개발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고 방송했다.( com 으로 방송을 볼 수 있음) 5월이 되니 교실은 몇 개의 또래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성훈 ( 男 )이는 아무 데도 끼지 못해 흥미를 잃었다. 3월에 자기소개서를 보고 관심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외모만 본다면 과묵하고 아무 문제가 없었 지만 내성적이고 약간 장난 섞인 행동을 해도 얼굴이 붉어지고 심리적 으로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나의 정서불안 치료가 소문이 나서 담임을 맡아 달라며 꽃을 사들고 교장실 문을 두드리는 학부모님도 있었다. 그러나 매년 학생의 내면의 세계를 먼저 다 파악한다는 것은 쉽지 않 았다. 그래서 내가 걱정한 것은 호기심이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교실에 교단수범사례 원수야! 스승이 되어라! 104

105 서 한 학생을 따돌리는 것이었다. 성훈이는 내가 모르는 사이 고민하다 가 5월 24일 결석을 했다. 따돌려서 즐거움을 얻는 학생은 선진이와 그 친구들이였다. 먼저 성훈아! 용기를 가져! 심한 장난을 쳐도 그냥 받 아줘, 힘내! 라고 다독였다. 성훈이 어머니께서는 성훈이에게도 원인이 있다며 검도를 배워 자신감을 갖는 마음을 닦기로 했다. 여러분은 장 난일지 몰라도 장난이 폭력으로 느껴지는 친구도 있다 면서 도와달라 고 호소했다. 또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다. 면서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인생은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냥 자연스러운 장난을 쳐도 성훈이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된다. 며 선진이를 설득했다. 또 선진아! 너는 건강해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라는 아주 작은 장점을 찾아 적은 칭찬의 쪽지를 주었다. 칭찬의 힘은 대단했 다. 선진이의 태도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긍정적으로 다 가와 마음을 열었다. 언제부터인가 선진이와 그 친구들은 눈빛은 변했 고 친구도 괴롭히지 않았다. 꾸중보다는 칭찬을 택해 정서불안의 원인 을 찾아 싹을 자른 결과였다. 2학기 들어서 성훈이는 점심을 더 먹으려는 친구들에게 먹는데 욕심 을 내지 말라며 목소리가 커지며 잘 어울렸다. 성훈이는 아버지가 안계 셨다. 할머니께서 고맙다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나는 1997년도에 담임을 하면서 20년 뒤인 2017년에 우리 다시 만 나요! 란 주제로 학생들의 꿈을 타임캡슐에 묻어두었다. 이것을 체험수 기로 써서 2005년 5월 13일 대전에서 금상(1위)을 받았다.(상금:50만 원) 평송 청소년 수련원 대강당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대전광역시 시장, 교육감, 교사, 학부모등 1, 2층을 가득 메운 가운데 학생의 정서불안 진 단과 치료방법이란 주제로 강연을 했다. 나는 정서 란 지식과 지혜가 행동하는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심리적인 느낌이고, 정서불 안 은 어떤 환경이나 사건을 계기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 진 심리상태가 계속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심리상태가 계속될 때 학교폭력, 집단따돌림, 가출 등이 생겨 이것으로 인해 생기는 사회적 손 실이 너무 크다고 했다. 또 정서불안의 원인을 지식과 지혜를 받아들이 는 속도, 학교 성적, 이성문제, 친구문제, 가난, 건강, 가족문제, 인터넷 105 교단수범사례 원수야! 스승이 되어라!

106 게임ㆍ음란물 중독, 부족함이 없는 생활에서 오는 자신감 결여, 진로 및 진학, 미지의 영역인 성( 性 )에 대한 호기심으로 분류했다. 정서불안 과 정신질환 을 구분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정신질환은 병원에서 약물치 료가 필요하지만 정서불안은 학생의 잠재능력을 정확히 파악하여 미래 에 희망을 제시하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강조했다. 긴 박수를 받으며 내려오는데 스승존경운동 회장께서 악수를 청하면서 전국적으로 상담강의를 해 볼 생각이 없느냐면서 서울 MBC TV 100분 심야 교육 토론에도 나가보았지만 이런 방법은 처음이라며 일반화 시 켰으면 좋겠다고 했다. 6월이 되었다. 지환( 男 )이는 부모님이 이혼을 했다. 학교에 적응을 못 했다. 3월 기초 진단에서 무관심 으로 분류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을 판 단하는 능력을 갖기 전에는 잘못하는 것에는 가급적 무관심하고 잘 하 는 것에는 관심을 가져 자신감을 갖게 하자는 뜻이었다. 3월 14일 교실 에서 실외화를 신고 있었다. 문구점에 같이 가서 실내화를 사주면서 힘 들지만 노력하자! 너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라고 용기를 주었다. 자주 부적응 행동의 모습을 보였지만 학생부장님께 치료할 시간이 필요하니 나에게 맡겨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6월 13일 날 다른 선생님께 꾸중 을 듣고 가출했다. 다행히 찜질방서 고민하다가 학교에 왔다. 아버지께 스승의 날 쓴 편지를 보여주며 화는 나지만 15살로 돌아가서 이해해야 치료 가 된다며 설득했다. 너 고민을 해결해 줄 테니 생각을 바꾸자., 선생님이 초등 5학년 이후 어머니를 볼 수 없었다면 나는 너처럼 이렇 게 반듯한 중학생이 될 수 없었어. 등 지환이의 입장에서 다독였다. 나 의 꾸준한 관심에 행동의 변화가 보이드니 2학기 들어 스스로 점심 배 식당번을 자청했다. 나는 평소 학급의 열쇠를 행정실에 두지 않고 교무 실 내 책상위에 두었다. 가지러 오는 학생에게 칭찬을 하기 위해서였다. 10월 12일 날 이 열쇠를 가지고 가는 학생에게 평생 동안 행운을 드립 니다. 상금은 만원입니다. 란 격려의 뜻이 담긴 쪽지를 열쇠에 붙여 놓 고 퇴근했다. 나의 정성을 신( 神 )이 도왔는지 13일 아침 지환이가 이 행 운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너무 기뻐했다. 돈 만 원을 주면서 많은 대화 를 나누었다. 10월 모범학생으로 추천하여 상을 주었다. 결국, 옳고 그 교단수범사례 원수야! 스승이 되어라! 106

107 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길러져서 열심히 공부하여 (1년 뒤) 인문계 고에 진학해 집안에 웃음꽃이 피었다. 7월초, 가난으로 정서불안을 앓는 학생을 치료한 나의 체험담이 여름 휴가인 7월 29일에 고개 숙인 아이 란 제목으로 KBS TV TV 동화 행 복한 세상 에 방송된다고 연락이 왔다. 반에 가서 얘기했더니 믿지 않았 다. 이 사실을 전교생과 교육청에 알렸다. 8월 개학해서 수업 들어가는 반 모두 TV동화를 보여주며 진실한 인생의 삶 은 누구나 남을 감동시 키는 기회가 온다며 집념은 기적을 낳고, 노력을 성공을 낳는다. 는 주 제로 훈화를 했다. 방송은 감동도 주었지만 학생들이 더욱더 나를 신뢰 하는 계기가 되었다. 9월이 되었다. 부적응 학생은 미래에 희망을 주면 치료가 쉬웠다. 그 래서 주문식 교육으로 취업이 거의 100%가 되며 전국대학의 성공모델 이 되고 있는 영진전문대학을 소개했다. 적성과 흥미를 철저히 분석한 후 전문계고에 진학하는 것이 왜 성공하는지 상세히 설명했다. 직업선 호도와 그동안 상담하고 관찰한 것을 분석해서 푸름( 女 )이는 초등교사, 태희( 女 )는 유치원교사, 유리( 女 )는 여자 경찰관 등 모든 학생에게 진로 방향을 제시했다. 10월이 되었다. 금남( 禁 男 )ㆍ금녀( 禁 女 )의 벽을 깨어라! 며 양성평 등이라는 주제로 학급 회의를 했다. 피부미용관리사, 114안내원.등 여자만 해오던 일에 남자가 뛰어들고, 남자의 직업이던 군인, 경찰 관.등에도 여자가 직업을 갖는다고 했다. '배고픈 박사 공장가다' 등 성공과 실패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미래는 남, 여 구분이 없는 무한 경쟁 시대를 강조했다. 또 결혼하면 가사 일을 반씩 부담하고 서로가 격려하 고 존경을 해야 진정한 양성평등이 이루어져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며 생각을 바꾸자고 했다. 이 결과인지2006년 6월 교육부에서 주최한 전 국 학생 양성평등 글짓기 대회에서 소현이 가 삼촌의 당당한 직업, 미 용사 란 제목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나는 실내화를 분실하면 새것을 사 주었다. 지수( 女 )가 찾아와 선생 107 교단수범사례 원수야! 스승이 되어라!

108 님! 돈이 아깝지 않느냐 고 물었다. 돈을 남 주는 것 이 내 취미라고 했 다. 4월초 선생님은 18년째 연습장등에 칭찬의 쪽지를 넣어서 주고 있 습니다. 왜 그렇게 하는지? 이유를 맞추면 장학금 십만 원입니다 면서 퀴즈 문제를 냈다. 많은 학생이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학부모님께서도 궁금해 했다. 그런데 12월 28일 날 민수( 男 )가 받을 때의 느낀 작은 감 동을 행동으로 옮겨 남을 감동시킵니다! 라고 대답했다. 잠시 침묵이 흘 렀다. 나는 너무 기뻐 정답입니다 며 큰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환호 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학생들은 평생을 남을 배려해서 감동시키겠 다고 했다. 그동안 모든 부모님과 전화로 상담을 했지만 민수 어머니와 는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 통장에 십 만원을 입금하고 민수를 칭 찬하려고 또 전화를 했으나 바꾸어 주지 않아 너무 궁금하여 가정방문 을 해보니 어머니는 청각장애자이어서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경제적 으로 돕고 싶다고 했으나 더 어려운 학생을 도우라며 사양을 해서 마음 이 아파 집을 나올 때 울고 말았다. 민수는 생활보호대상자로 평소 얼굴 이 어두웠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더 효도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2005년, 대구 서부 도서관에서는 학생들의 독서를 권장하기 위해 각 학교마다 독서 골든 벨을 실시했다. 겨울휴가가 되어 연말 결승전 왕중 왕전을 하면서 소현( 女 )이와 하나( 女 )가 출전했다. 소현이는 우리나라 는 자원은 유한하지만 너의 잠재능력과 창조력은 무한이야! 너는 나라 의 장래를 좌우해 라는 칭찬의 쪽지에 감동을 받아 나를 만난 3월부터 무엇이든지 집중하기 시작했다. 초절정 꽃 미녀! 박소현, 김하나 종 울 려라! 라고 쓴 플래카드를 흔들며 응원을 했다. 경상여중 3학년 학생과 25번부터 접전이 벌어졌다. 3시간 가까이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었다. 소현이의 잠재능력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38번부터 혼자 풀어 명예 의 전당 에서 마지막 40번 문제를 맞추어 골든 벨을 울렸다. 축제분위 기가 절정에 다 달았다. 나도 모르게 뛰어나가 얼싸안았다. 담임 인터뷰 에서 독서가 인생을 바꾼다. 고 강조했다. 서대구 케이블 TV에서는 독 서문화 확산을 위해서 몇 번 방송하고, 서부도서관에서는 학교 도서관 에 책장을 기증했다. 2006년 2월 20일 우등생의 기초는 책 읽기죠! 란 제목으로 소현이의 두뇌의 한계를 넘는 비법이 영남일보에 나의 사진 교단수범사례 원수야! 스승이 되어라! 108

109 과 함께 전면에 크게 실렸다. 서울의 어느 기자가 신문내용을 검색하다 가 너무 감동적이어서 바로 인터넷 Naver에 올려 첫날 소현이의 홈페 이지에 전국에서 1,200명이 접속하였다. 많은 분들이 자녀 교육에 도움 이 되었다며 감사하다는 글을 남겼다. 소현이는 직업선호도에서 생물학 자를 원했는데 꿈을 이루기 위해 (1년 뒤) 대구 과학고에 진학했다. 학년말이 되었다. 승현, 재용, 민수 집에 가정방문을 하고 학부모님과 2회 이상 전화 상담 또는 학교에 오셔서 내가 치료하는데 도움을 주셨 다. 1학년 때 친구들에게 몰매를 맞아 부적응 모습을 보인 화영이는 끊 임없는 칭찬에 용기를 얻어 태권도를 배우고 웃음을 찾아 (1년 뒤) 인문 계 여고에 진학하는 등 3월에 고민했던 많은 부분에서 치료가 되었다. 3월의 기초진단은 교무수첩 상단 좌측에 적었지만 1년 동안 치료한 결과는 우측에 적어서 비교를 해 보았다. 무관심은 1명(2%)에서 0명, 관심은 14명(36%)에서 4명(10%), 칭찬은 17명(47%)에서 21명(56%), 존경은 6명(15%)에서 13명(34%)이었다. 이 결과는 요즘 학생들은 옳 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져 비 오는 날도 꽃밭에 물을 주는 학 생이 있다. 비 오는 날은 꽃밭에 물을 주지 맙시다! 며 지혜를 가르친 2005년 한해 나의 성적표이다. 2006년 2월 15일 마지막 시간 인생을 살아가면서 선생님처럼 남을 칭찬하고 배려해 감동을 주세요! 라고 하니, 학생들은 선생님! 비 오는 날 꽃밭에 물주지 마세요! 라고 크게 외쳤다. 그 소리는 옳고 그름을 판 단하는 능력이 길러졌음을 의미해 너무 기뻤다. 그동안 내가 학생을 만나는 방법은 기존의 교육학이나 상담사례에는 나오지 않아 소문이 나서 구미 경북연수원등 많은 곳에서 강연을 했다. 나는 호르몬 분비를 원활하게 하는 척추청소 란 이름을 붙인 체조를 연 구해서 키가 안 커, 편두통, 비만, 변비. 등으로 고민하는 학생을 치료하 고 있다. 상담에서 연구를 많이 해서 걸어 다니는 사전이라고 가끔 듣는 다. 또, 대구 매일신문에 교단일기 란 코너를 만들어서 비 오는 날 꽃밭 에 물주지 맙시다. 등 나의 치료방법을 써서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교 도소에서 이 글을 읽고 참회의 눈물을 흘린 편지를 하나 소개하고 싶다. 109 교단수범사례 원수야! 스승이 되어라!

110 존경하는 이원수 선생님께 올립니다. 선생님께오서 저를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으나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을 전 해 드리고자 용기를 내어 부족한 글을 써 내려 가고자 합니다. 저는 중리중학 교 2001년도에 3학년 1반에 재학 중이던 조용주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매일 신문 8월 21일자 교육 섹션에 선생님의 글을 읽고서 이렇게 글을 드리게 된 것 입니다. 부끄럽고 면목 없지만 저는 현재 수용생활 중입니다. 중학교를 중퇴하 고 그 다름 해에 구속되어 5년이라는 형을 선고받고 내년 출소를 앞두고 있습 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어 보고서 학창시절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그때 선생님 의 말씀을 듣고서 학업에 열중하였다면 저도 지금쯤 다른 동기들처럼 사회인으 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여보니 새삼스레 후회가 많이 됩니다. 학 교를 그만두고서 조직 폭력배가 되어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교도소라는 곳에 오게 되어 선생님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울러 늦 었지만 학창시절 선생님 속을 썩여 드려서 송구하다는 마음도 함께 전해드립 니다. 선생님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훗날 반드시 성공한 모습으로 선생님 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이글을 쓰면서도 선생님께 보내야 되는지 고민이 되지만 그래도 저의 마음을 전해 드리고 싶어 결정하였습니다. 실례지만 주소 는 적지 않겠습니다. 제가 찾아 뵐 때까지 저를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선 생님 앞으로도 변함없으신 모습으로 학생들을 이끌어주시고 올바른 길로 갈수 있도록 지도하여 주시기를 바라며 이만 부족한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무 더운 날씨에 건강 유념하시길 바라며 항상 좋은 일들만 가득 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울러 앞으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2007년 8월 22일 조 용주 올림) 나는 2006년 4월 4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교육부에서 발행하 는 교육마당 21 에서 5월 스승의 날 특집으로 우리시대가 원하는 스 승을 말한다 란 좌담회에 교사 대표로 참석했다. 좌담을 하면서 지금 실명으로 쓰고 있는 교무수첩을 원탁중간에 놓고 많은 예를 들었다. 패 널로 참석한 분들이 학생을 분석하고 치료한 교무수첩을 보고 놀라면 서 서울 교원연수원에 강사로 한번 초빙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 1명의 스승은 교도소를 1개 줄이는 역할 을 하고, 하루에 1명의 학생을 칭찬할 수 있다면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생 각했다. 나는 퇴직 시 경력으로 주는 훈장을 신청하지 않는다. 그러나 학 생들에게 훈장을 받기 위해서 오늘도 중얼거린다. 원수야! 잠재능력을 찾아서 칭찬하라!, 원수야! 칭찬은 교육에 있어서 모든 문제의 해답을 교단수범사례 원수야! 스승이 되어라! 110

111 알고 있단다. 그래서 원수야! 스승이 되어라!, 스승이 되어라! 그동안 부족함이 많은 저에게 격려와 경제적 지원, 치료를 위해 도와 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이 수기를 바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 겠습니다. 111 교단수범사례 원수야! 스승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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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교단 수범사례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영어교육, 그 편견의 벽을 넘어 (잉클(English Club)과 함께한 1년) 처음 나의 교육체험수기가 당선되었다는 개별 통지를 받았을 때 꿈인지 생시인지 놀랍기만 했습니다. 짧은 교사 경력 기간이었지만 힘들게 경험했던 일들과 노력 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분명히 저는 끊임없이 도전했습니 다. 처음 내가 뿌린 씨앗은 밀알처럼 작았지만 이렇게 큰 기쁨의 열매로 다시 돌아 오다니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노력하고 학생들을 진심으로 사랑 하는 대한민국의 영어교사가 되라는 하늘의 뜻으로 생각하고 지금의 모습, 초심 을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먼저 이렇게 끊임없는 용기로 세상에 도전하고, 항상 샘처럼 솟아나는 사랑을 가 질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신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법과 "실천력"이란 것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줌으로써 가르침을 준 지준오빠에 게도 깊은 경의를 보냅니다. 또한, 모든 영어 관련 활동을 하는데, 아낌없는 도움 으로 용기가 꺾이지 않도록 지지해준 영어과 동료교사이자 제 평생을 함께할 친 구 이현창 선생님에게도 가슴깊이 감사를 전합니다. 임 경 진 경기도 부천시 상동고등학교 교사 마지막으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잉클 Forever"를 외치며 함께 해준 English Club, 우리의 자랑스러운 리더 이건호를 포함한 27명의 친구들에게 선생님이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사랑한다. 상동고 잉클 Forever!"

114 1장. 내가 배운 영어 - 원어민이 두렵다! 경북에 있는 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영어교육과에 입학해 첫 회화 수업을 듣던 날, 수업에 들어온 교수님의 이름은 Ivy였다. 원어민을 처 음 보았던 나는 마냥 신기하여 두 눈을 떼지 못하고 교수님의 얼굴을 뚫 어져라 바라보았다. 갑자기 짝과 함께 영어로 자신을 소개하라는 말에 더듬더듬 겨우 영어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름 소개, 졸업한 고등학교 이 름을 말하고 나니 더이상 영어로 말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영 어 잘한다고 영어교육과 에 입학한 것이었는데 겨우 내가 영어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이름뿐이란 말인가. 가슴 속으로 깊이 한탄하며 다른 친구 들을 바라보았다. 왜 이리 영어권 나라에서 살다 온 친구들이 많은지 모 두들 모국어로 말하듯이 영어를 써서 자기소개를 유창하게 해나갔다. '이게 6년간 배운 영어의 한계이구나!' 가슴을 치며 기숙사로 돌아가 목 놓아 울었다. 억울했다. 이런 영어와 외국인에 대한 공포감 은 대학교 를 졸업하는 4년 내내 사라지질 않았다. 문서로 되어있는 영어 서류를 읽으면 편안했지만 외국인과 대화를 하는 것은 나에겐 요원한 일처럼 느껴졌다. 대학에서 영어교육과 학생회장도 하고 영어 연극반에도 참여 하며 나름 열심히 그 공포감을 극복해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과는 계속되 는 허탈감뿐이었다. 교단수범사례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영어교육, 그 편견의 벽을 넘어 114

115 2장. 내가 좋은 영어교사가 될 수 있을까? -시작되는 고민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영어 교수법에 대한 공부를 끊임 없이 했지만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는 고민은 나도 제대로 못하는 영어 를 학생들에게 평생 가르칠 수 있을까? 란 것이었다. 자신감이 없던 나 에게 임용고사 에 대한 부담감 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 자신의 영어능 력에 대한 불신 이었다. 나와 똑같은 이유로 영어를 두려워하고 부담스 러워하는 아이들을 내가 자신감 있게 가르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 았다. 그렇지만 자연스레 대학원 과정 중 남들이 하듯이 임용고사에 원 서를 내고 시험을 보았다. 2차 시험이 원어민과의 면접이었지만 그 과 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소위 임용고사 학원에서 '찍어주는' 문제 들에 대한 영어모범 답안을 충실히 암기했다. 합격했다. 항상 망설였지 만 막상 '영어교사'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기뻤다. 그러나 합격 의 기쁨도 잠시! 곧 펼쳐질 교직생활, 특히 영어교사로서 내가 잘해낼 수 있을 지에 대한 불안과 긴장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나에게 배우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만족감을 줄 것인가?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질 문의 답을 찾아 난 또다시 깊은 고민에 빠져야했다. 1장. 교사가 된 나 - 현장의 자화상들 첫 발령이 난 곳은 부천의 상동고등학교란 신설학교였다. 2002년 3월. 개교멤버로 아직 유리창도 끼워지지 않은 학교에 발령을 받아 영 어교사로 부임한 첫날. 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영어를 싫어하고 못하는 지 뼈저리게 깨달아야했다. 그 전날 밤새워 외웠던 영어 첫인사와 아이 들에게 질문하려고 빼곡하게 써 두었던 내 메모지가 무색하게끔 아이 들은 나를 동물원 원숭이 바라보듯이 했다. 처음 개교하는 학교의 특성 이라고 선배교사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상업계나 공업계 고등학교에 서 떨어지는 학생들이 다 이 학교로 오는 것이라는 말에 내 열정이 모두 땅속 깊이 가라앉는 듯 느껴졌다. 학생들은 내가 말하는 영어를 전혀 알 115 교단수범사례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영어교육, 그 편견의 벽을 넘어

116 아듣지 못했다. 내가 하는 질문에 응답해 주는 아이들은 장난치려는 의 도 외에는 다른 의도는 전혀 없어 보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무런 의 미도 없다는 듯 나의 질문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과연 내 가 이런 아이들에게 영어 시간에 무엇을 어떻게 의미 있고 재미있게 가 르칠 수 있을까? 현장에서 마주친 나의 자화상들, 난 이 아이들에게 무 엇인가를 꼭 해주고 싶었다. 2장. 해보자. 한번! - 영어 연극반 UNI와 함께 골몰히 생각에 잠겨있던 내가 아이들을 위해 내린 결정은 영어 연극 반 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내가 대학시절에 했던 영어 연극 이 나에 게 주었던 용기를 떠올린 것이다. 대자보처럼 홍보물을 교실 벽에 붙이 고 오디션을 보기로 한 날, 전교의 100여명이 넘는 학생들이 영어 연 극반 이 되고자 교실로 모여들었다. 학생들의 열정을 보고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어 연극대사 중의 일부분을 읽어보는 형식으 로 오디션을 본 후에 30명의 영어 연극반 학생들을 선발했다. 대학교 때 영어교육과 연극 동아리 이름이었던 UNI를 그대로 이어받고 학생들에 게 대본을 써서 연극을 연습하도록 지도해보았다. 그 결과는? 완전 엉망진창이었다. 학생들은 절대 대본을 창작적으로 쓰지 못했고 영어는 고사하고 한국어로조차 글을 쓰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학생들의 부진한 능력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원어민도 어학실 도 없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무슨 영어 연극반이냐는 비판의 목소리 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성적이 중요하지 말하는 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외국어영역 모의고사 1개를 더 맞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 비판의 목소리들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난 신규교사였고 내공이 부족했 다. 학생들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했고, 시설도 지원도 없는 신설 고등학 교에서 그런 활동을 밀고 나갈 만큼의 용기도 능력도 없었다. 그렇게 나 의 첫 시도, 영어 연극반 UNI는 1년 만에 사라져버렸다. 3장. 포기는 없다. - 수업경선이 나에게 가져다 준 기회 그렇게 UNI를 포기하고 나서 학생들에게 뭔가 특별한 방법으로 의미 있게 영어를 가르치겠다던 나의 다짐은 잠시 잊혀졌다. 그렇게 3년차 교단수범사례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영어교육, 그 편견의 벽을 넘어 116

117 교사가 되었을 때 경기도 영어교사 심화연수를 위해 평택 안중연수원으 로 한 달간 합숙을 들어갔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외국어과 수업경선'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교사들은 수업경선을 통해서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새로운 교수학습방법을 시연해 보임으로써 자신의 수업개선 노력을 평가받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도전하자! 라는 욕구가 마구 치솟아 올랐다. 심화연수를 다녀온 뒤 여러 서적을 살펴보고 연구하여 4년차가 되었 을 때 수업경선 을 신청했고 참여했다. 수업경선 주제는 프로젝트학 습을 활용한 영어의 통합적 기술 능력 향상을 위한 수업-한국 문화 유 적지 소개를 중심으로 였다. 이 수업경선을 준비하면서 내가 몸으로 부 딪쳐 느낀 것이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교사가 먼저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 다는 것, 두 번째는 학생들과 실전에 나가 함께 부딪쳐봐야 한다는 것이 다. 학생들과 한국 유명 유적지를 돌아다니며 영어로 소개하는 프로젝 트를 수행하고 동영상을 만들었다. 힘들었지만 정말 보람 있었다. 수업 경선에 용기를 내서 참가한 나는 그 다음 해 생각지도 않았던 인생의 전 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수업경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기에 얻게 된 선물 같은 기회. 그건 바로 교원대학교 6개월 파견 연수 였다. 4장. 새로운 영어를 배우다. - 6개월이 내게 준 희망 2006년 3월, 청주에 있는 한국교원대학교에서 6개월 연수를 시작했 다. 6개월 연수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다. 그저 6개월 동안 학교에서 수 업을 안 해도 되고 각 시,도에서 오신 선생님들과 함께 6개월간 연수를 함께 받는 것 자체가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평생 단 한 번도 영어권 나라에 가본 적이 없는 내게 한 달 동안 미국 연수 기 회가 생긴다는 게 정말 감사했다. 6개월 과정이 시작된 이후 매일 원어 민 선생님들께 하루 6시간 이상의 집중적인 영어수업을 받고 아침마 다 EBS 회화프로그램 귀가 트이는 영어, Easy English, Power English, Morning Special 을 들었다. 재미도 있었고 조금씩 커지는 나의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영어선생님들과 함께 스터디그룹 을 조직하여 아침마다 모여 회화프로그램에서 배운 주요 표현들을 함 께 정리하고 암기했다. 정리한다고 바로 외워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 117 교단수범사례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영어교육, 그 편견의 벽을 넘어

118 늘 공부했던 표현이 며칠 뒤 다른 프로그램에서 다시 나오면 새록새록 기억도 나고 보람도 느껴졌다. 이렇게 5개월의 생활을 하고 전체 중등 교사를 대표해서 무대 위에서 연구수업을 했다. 이런 기회가 나에게 주 어진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미시건 주에서 한 달의 생활을 하면서 나는 내 안에서 크고 있는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영어를 잘 하기 위해 영어권 나라로 유학을 가는 것은 정말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왜 중국으로 가려던 원효대사가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어 중국으로 가던 발 걸음을 멈췄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에서 있더라도 나의 의지만 강하다면, 방법만 올바르게 찾는다면 분명 영어를 두려워하지 않고 마 스터할 수 있으리란 희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희망을 다시 학교에 돌아갔을 때 아이들에게 반드시 심어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1장. Spring의 귀환 - 희망의 씨앗을 뿌리다. 희망에 부풀어 상동고등학교 현장에 돌아온 나, 어느덧 임경진이란 이름보다 6개월 연수에서 썼던 Spring 이란 이름이 본명처럼 느껴 졌다. 처음 수업시간에 들어가 멋들어진 영어 소개를 한 후 나를 그냥 Spring 이라고 불러 달라고 한 뒤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려 했다. 그리 고 얼마 가지 않아 커다란 장애물이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절망스럽게도, 학생들은 5년 전과 다른 점이 전혀 없었다. 아이들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영어 를! 그리고 영어 를 잘하는 선생님을.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것이 얼마나 이상이었던 것인지 새삼 깨달아 졌다. 어느덧 학교 현장에 복귀한 지 1주일이 지나고 6개월 동안의 나 의 희망은 조금씩 절망과 타협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냥 예전에 했던 그대로 가르치고, 희망을 조금씩 지워나가고 있는 내 모습이 내 스스로의 눈에 보였다. 그렇게 2주일이 되어갈 때 이렇게 주 교단수범사례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영어교육, 그 편견의 벽을 넘어 118

119 저앉을 수는 없다는 외침이 선명히 내 안에서 울려 퍼졌다. 내가 교원대 에서 어떻게 공부했었지? 어느덧 가물가물해지는 기억의 끝을 되짚어 보았다. 그렇다. 비결은 그룹스터디와 집중과정이었다. 난 이미 답을 알 고 있는데 이렇게 주저할 틈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 다. 상동고에는 원어민교사, 어학실도 없고 영어에 대한 관심도 거의 부 재한 학교이다. 학생들은 영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싶어도 그 기회조 차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교원대 연수에서 스터디그룹을 만든 것처럼 아이들과 함께 스터디그 룹을 만들자! 당장 전교생을 대상으로 할 수는 없지만 영어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과 처음 시작한다면, 비록 그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성 해질 것이라 믿었다. 용기를 내어 교무부장, 교감, 교장선생님께 '영어 동아리'를 만들어 그룹스터디를 하겠다는 나의 의견을 말씀드렸다. 모 두 흔쾌히 나의 의견에 동의해 주셨고 나는 영어로 홍보물을 각 반에 붙 인 뒤에 영어 인터뷰를 통해 총 10명의 제 1기 잉클(잉글리시 클럽의 준 말) 회원을 모을 수 있었다. 2장. 잉클의 태동 - 꿈은 이루어진다. 얼떨결에 잉클 회원이 된 아이들과 나는 일주일에 2번씩 아침에 모여 그룹스터디를 시작했다. 처음 잉클이 사용하도록 학교에서 내어준 공 간은 예전 사회과 교과실 로 보통 교실의 1/6도 되지 않는 정도의 작은 곳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동아리실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기뻐 우리는 각종 영어 자료들을 가지고 방을 예쁘게 꾸며 나갔다. 아침마다 모여 영어로 말하는 것이 처음엔 얼마나 쑥스럽고 어려웠는 지 모른다. 아이들은 긴장하면서도 영어로 말하는 자신의 모습을 서서 히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자신들의 의견을 한 두 단어 수준으로 표현하다 점차 문장으로 말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진정한 영어교육이다'란 생각을 했다. 누가 강제로 시키지 않아도 아이 들은 자발적으로 잉클 교실로 모여들었고 우리는 자부심을 가지고 매 일 매일 우리 잉클노트 에 EBS 회화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중요표현을 정리했고 잉클교환일기 에 자신의 일상을 적어나갔다. 이렇게 그룹스터디를 하면서 겨울이 다가왔고 학교에서 2년에 한번 119 교단수범사례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영어교육, 그 편견의 벽을 넘어

120 씩 출판하는 교지 에 우리 잉클 의 글을 쓰기로 했다. 우리는 학교교지 의 10페이지 분량을 잉클에 관련된 기사와 재미있는 영어 내용으로 가 득 채웠다. 바쁜 일상과 부족하기만 한 학교 지원 속에서도 시간을 내어 잉클 로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우리에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인문계 고등학교 라는 현실! 영어를 맘껏 공부할 만큼의 시간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영어를 더 많이 오랜 시간 동안 공부하고 싶었다. 아니, 더 오래 공부해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는 겨울 방학 보충수업 대신 영어집중 과 정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꾸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이 생긴다 면 좋겠다고 모여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 3장. 겨울 방학 영어집중 과정(English Intensive Course) - 80시간의 대장정 아이들은 보충수업이 싫다고 말한다. 재미도 효과도 없다며 방학 때 보충수업을 빼달라고 우는 소리로 말하고 담임교사는 그런 학생들을 어 르고 달래면서 아무리 싫어도 학교에 나와서 공부하라고 타이른다. 그 게 흔히 방학을 앞둔 인문계 고등학교 교무실에서 자주 보이는 광경이 다. 상동고등학교는 아직 터가 잡히지 않은 신설교여서 그런지 그런 현 상은 더욱 심하다. 이런 학교에서 영어 80시간 수업을 한다면 하겠다는 학생들이 과연 있을지 처음엔 그 점이 더 두려웠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무모할 정도의 용기가 때론 필요한 법이다. 그냥 밀어붙였다. 영어집중 과정을 개설하기 위한 과정은 정말 지루할 정도로 힘들고 복잡했다. 방과 후 학 교 담당자, 영어과 교사 협의회, 학년부장, 연구부장, 교무부장, 교감선 생님, 교장선생님,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쳐 겨우 영어집중 과정 개설 허 락을 받았다. 영어집중 과정에 대하여 다른 영어교사 를 배려해 주지 않고 혼자 너무 앞장서 나가는 처사라는 비판도 들었고 영어만 80시간 을 가르치겠다는 발상 자체가 타 교과목 에 대한 배려가 적어서라는 쓴 소리도 들었다. 그렇지만 꼭 한번 집중과정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 내가 교원대 연수에서 느꼈던 것 같은 영어에 대한 친숙함 과 자신감 을 아 이들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교단수범사례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영어교육, 그 편견의 벽을 넘어 120

121 떨리는 마음으로 가정통신문을 만들고 영어집중 과정 에 대한 계획 서를 학생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과연 몇 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이 집중 과정에 들어오겠다고 할 지 불안하기만 했다. 만약 신청학생이 20명이 안된다면 과정을 개설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가정 통신문을 나눠주고 결과를 기다렸다. 초조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무려 70여 명의 아이들이 영어집중 과정을 희 망했다. 그 중 20명의 학생을 선발하였고 80시간 영어집중 과정의 대장 정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진정한 영어능력 향상을 위한 수업과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으로서 좋은 영어 성적을 받기 위한 수업을 병행해 나갔 다. 동시에 내가 교원대 집중과정에서 배웠던 좋은 수업이나 과제, 가령 개인 영어 발표나 다양한 게임 등을 적절히 모방하여 학생들에게 적용 하기도 했다. 하루 5시간 16일 동안의 시간표는 주로 다음과 같았다. 겨울방학 Intensive 과정 수업 모형 교시 1교시 2교시 3교시 4교시 5교시 언어 기능 Conversation Listening Speaking, Presentation Grammar, Vocabulary 내신,모의고사 대비 Test 준비 교재 EBS 회화교재 Easy English, 해커스토익사이트, Randall s ESL, 웰컴영어카페 Small group Discussion, Handout Grammar Zone 종합편, Duo Select 모의고사 기출문제집 활동 중요표현 정리하기, Role-Play 받아쓰기, 응용문제 풀기, 요약하기 지문 읽기, 지문에 대한 질문 토론하기, 개인 발표하기 주요 문법내용 정리, 응용문제 풀이, 매일 단어 학습 모의고사 실전 연습 및 정답 해설과 풀이 이러한 수업과 활동들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의 노력이 중 요했다. 매일 5시간의 새로운 수업을 하기 위해서 지난 겨울 방학 보충 기간 중에 밤 10시 전에 집에 간 적이 거의 없었다. 다음 날 하게 될 5시 간의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서 내가 먼저 공부해야 했고, 많은 유인물을 제작해야만 했다. 비록, 나에겐 영어집중 과정이 매일 매일 도전이고 힘 든 순간의 연속이었지만 결국 집중 과정은 내 인생 가장 행복하고 보람 있는 보충수업 시간이 되었다. 학생들의 결석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학 121 교단수범사례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영어교육, 그 편견의 벽을 넘어

122 생들의 사전-사후 시험 점수 차이는 기대를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설문 조사 결과 역시 이 과정에 대해 매우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 이 영어집중 과정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무엇이냐고 물어봤 을 때 대부분 자신이 쓴 글로 했던 개인 영어 발표와 동료평가였다고 했 다. 남들 앞에서 5분 이상 영어로 처음 말해보았다는 학생들은 태어나 서 처음으로 보충수업을 밤새워 준비하고 공부했다고 했다. 또한 이러 한 집중과정이 앞으로도 계속 생겼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음 은 학생들이 영어집중 과정이 끝나던 날에 받았던 집중과정 인증서, 영 어발표 개인점수표와 개인종합 성적표이다. 아쉬움 속에 영어집중 과정을 끝내며 잉클활동과 영어집중 과정을 앞 으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고 활성화시키리라 마음으로 굳게 다 짐했다. 나에게 가장 용기를 준 것은 상동고등학교 학생들의 변화된 모 습이었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들에 게서 나는 무한한 잠재력을 본 것이다. 4장. 잉클 공식 개관식 - 잉클 포에버~!! 영어집중 과정을 끝낸 이후 잉클 학생들과 남은 겨울 방학 중에 해야 할 미션이 생겨버렸다. 새로운 잉클 교실을 꾸미는 것이었다. 예전 학생 부실로 쓰던 두 교실을 합친 크기의 교실을 잉클이 쓰라는 명령(?)을 받 았다. 예산은 30만원. 교실에 처음 들어간 순간 느낀 점은 교실이 전반적으로 폐허 같다는 것이었다. 물이 새는 천장, 몰래 들어온 학생들 이 남겨 둔 낙서들, 아무 것도 없이 더러운 얼룩만 남아있는 황량한 벽 들, 바닥에 널려있는 쓰레기들! 이걸 어디부터 어떻게 건드려야 한단 말 인가? 한숨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무한 도전 정신으로 임 했다. 방학이어서 시간을 내긴 어려웠지만 학생들은 최대한의 시간을 내서 잉클을 꾸미는데 열정을 다했다. 돈이 부족하고 시간이 없었지만 우리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고 아름다운 잉클 스페이스 (잉클의 얼굴, 잉클의 공간이라는 뜻)로 탄생했다. 방학 내내 열정을 다해 만든 우리의 잉클 스페이스! 그곳에서 우리는 교단수범사례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영어교육, 그 편견의 벽을 넘어 122

123 예전처럼 그룹스터디도 하고 새로운 1학년 후배들을 제2기 잉클 멤버 로 뽑았다. 복도 쪽의 큰 게시판에는 매일 매일 다양한 원서 서적의 자 료들과 EBS 회화 교재 내용, 주니어 헤럴드 신문 내용을 게시했고 잉클 의 카페 ( Enclespace)를 개설하여 다양한 자 료를 업로드 했다. 2007년 3월 30일에 우리는 공식개관식을 했다. 잉클 을 더 많은 학생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본교 선생님, 다른 학교 교 장 선생님들 뿐만 아니라 학부모님들까지 참여하여 우리가 만든 잉클 스페이스를 보면서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개관식에서 학생들은 자신들이 만든 부분들에 대해 영어로 설명했다. 학부모님들은 학생들이 영어로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미국 아나운서 같 다면서 자랑스러워하셨다. 개관식이 끝나고 잉클 학생들의 자부심과 자 신감은 더욱 커졌다. 누군가 한 학생이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잉 클 Forever~!!. 나도 마음속으로 외쳤다. 잉클 포에버~!! 123 교단수범사례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영어교육, 그 편견의 벽을 넘어

124 5장. 잉클 활동의 클라이맥스 - 제 1회 잉클 공연회 우리 학교는 점심, 저녁을 급식소에서 학년별로 급식을 실시한다. 작 은 급식소에서 전교생에게 급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1학년과 2학년 학 생들의 식사 시간이 다르다. 1학년 신입생이 들어온 이후 잉클에 또 다 른 문제점이 생겼다. 함께 그룹스터디를 할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 잉클 활동 1년 계획서를 만들어 학년부장님들께 들고 가 보았지만 잉 클 이 먼저 식사를 하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오히려 이런 활동을 왜 하 는가에 대한 비판을 들어야했다. 궁극적으로 학부모님과 교육청이 원 하는 것은 이런 활동이 아니라 모의고사에서 학생들이 1등급을 더 많이 맞도록 교사가 잘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열심히 일하고 있기 때 문에 지금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학생들에게도 시간을 빼앗았다 는 비판을 들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학교에 없었던 제1회 영어 말 하기대회, 제1회 단어왕 선발대회, 제1회 잉클 공연 계획, 첫 영자신문 발간에 대한 계획 등 내가 세운 계획이 유치하다, 인문계 고등학생들에 게 어울리지 않는다, 영어특성화학교도 아닌데 왜 이렇게 일을 벌이느 냐는 쓴소리를 계속 들어야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무 지원도 없는 곳에서 이런 일들을 하기에 얼마 나 더 힘들지 왜 이해해주지 못한단 말인가? 신규교사였던 첫 해, 영어 연극반을 없애야만 했던 그 때가 떠올랐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버거운, 인문계 고등학교에 존재하고 있는 거대한 편견의 벽 을 느꼈 다. 정말 학생들이 영어를 잘하게 하고 싶은 것 맞단 말인가? 이게 한해 1조 5천억 이상을 영어 사교육에 쏟아 붓고 있는 나라의 모습이란 말인 가? 나와 같이 영어를 어려워하고 두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영어에 대한 관심을 더 가질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렇지만, 5년 전과 달라진 것이 있었다. 나의 용기와 잉클 학생들이 었다. 분명 학생들은 이 모든 활동들을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아침 자습시간이나 급식시간에 모여서 그룹스터디를 할 수 없다면 놀토(노 는 토요일)에 학교에 나오면 되는 것이었다. 학생들과 놀토에 학교에 나와 영어토론도 하고 다양한 활동도 하면서 전국 말하기 대회 준비도 함께 해나갔다. 전국 대회에 처음 나가봤기 때 문에 정말 어렵고 미로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렇 교단수범사례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영어교육, 그 편견의 벽을 넘어 124

125 지만 우리는 정말 열심히 해냈다. IYF 전국 고등학생 말하기대회, 국제 통역사절단 말하기대회, 세계예능협회 말하기대회, 파주영어마을 영어 연극대회 등에 참여하면서 우리들의 능력을 갈고 닦았다. 서서히 우리 는 잉클 첫 발표회의 초석을 다져나갔다. 그렇게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잉클 제1회 발 표회를 준비했다. 준비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영어 연극을 해 본 학 생들도 없었고 부족한 것도 많았지만 그래도 하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정신이었다. 시간도 없고 예산도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언제는 그런 조건들이 충분한 가운데 활동을 했었던가? 힘들어도 이를 악물고 도전했다. 지금까지 전국 대회를 나갔던 작품들과 겨울방학 영어집중 과정에서 개인 발표했던 것들, 창작 연극 2편을 무대 위에서 선보였다. 총 90여분 의 긴 공연을 피땀 흘려 준비했고 우리는 마침내 해냈다! 우리의 공연 소식을 듣고 드림시티에서 촬영을 나왔다. 아이들은 공 연이 끝나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관객들은 박수를 쳐주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한국의 영어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모두 불가능하다 고 말해도 누군가 노력한다면 어학실조차 하나 없는 인문계 고등학교 에서도, 외국어 특성화 학교가 아니어도, 원어민이 없어도, 예산이 없어 도 진정한 영어를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상동고등 학교를 떠나더라도 제 2의, 제 3의 잉클을 앞으로도 계속 만들리라. 조 용히 다짐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기회를 주어야겠다고 생각 했다. 자신 있게 영어를 배우고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말이다. 1장. Spring과 잉클이 가야 할 길 - 초심을 잃지 말자. 125 교단수범사례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영어교육, 그 편견의 벽을 넘어

126 잉클 제1회 발표회가 끝난 뒤 여름방학 중에 우리는 상동고 최초의 영자신문 발간을 위한 정기모임을 가졌다. 영화, 뮤지컬, 전시회 등을 함께 다니면서 영자신문 기사를 작성했다. 학생 설문을 위한 영어설문 지도 작성하고 교장 선생님과의 인터뷰 문서도 만들었다. 무더운 여름 이었지만 Spring선생님과 잉클이 함께하기에 정말 보람 있었다. 영어 로 글을 쓴다는 것, 우리 모두에게 큰 도전이었고 쉽지는 않았지만 잉 클 포에버 의 정신으로 열심히 노력했다. 그 무렵, 경기 인터넷방송에 서 잉클 활동에 대한 제보를 받고 인터뷰를 요청해왔다. 어느덧 잉클이 신문이나 방송에도 여러 번 소개되는 상황이 되었다. 자부심도 가득했 지만 한편으로 무거운 책임감도 느껴졌다. 이제 잉클 은 우리만의 단순 한 그룹스터디 동아리가 아니라 영어 를 함께 공부하며 다양한 시도로 영어공부의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견본으로서 학교를 대표하는 동아리 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영자신문과 전국 영어말하기 대회를 준비하고, 그룹스터디를 하기 위해 점심시간을 쪼개어 잉클 회원들은 자주 모인다. 우리가 해낸 일이 많아질수록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초심이다. 우리가 작고 쓰러져가는 교실에서 영어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모여 함께 공부를 시작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의 초심이 영원히 변하지 않길 바란다. 잉클 포에버!! 2장. Spring의 숙제- 나는 편안하고 재미없는 삶보다 힘들고 보람 있 는 삶을 선택했다! 지금도 교원대 6개월 연수가 정말 감사하다. 그때 내가 그룹스터디의 힘을 배우지 않았다면, 집중적인 영어교육의 효과를 느끼지 못했다면 지금 상동고등학교에 잉클과 영어집중 과정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잉클과 영어집중 과정이 장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부딪쳐야 할 많은 한계점과 편견들이 존재한다. 가장 큰 한계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학생의 숫자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더 많은 학생들 에게 이렇게 살아있는 영어를 배울 기회를 줘야하는데 잉클이나 영어집 중 과정에 학생들이 들어올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적다. 또한 잉클의 활동 교단수범사례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영어교육, 그 편견의 벽을 넘어 126

127 이 많아지고 영어집중 과정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학생들은 다른 과목 의 점수가 떨어지면 어떻하나? 는 고민을 하고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학원갈 시간을 빼앗기면 어떻하나? 란 걱정을 한다. 학교 안에서는 언급 한 바와 같이 영어교육에 있어 거대한 편견 의 벽이 도사리고 있다. 혹 은 이러한 모든 활동과 노력들이 단순히 교사 개인의 승진이나 명예욕 만족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치부되어 비판받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그러한 한계와 비판들이 아니다. 엊그제 경기도 수업실기대회 2차 수업을 끝냈다. 코퍼스(말뭉치) 프 로그램들을 활용하여 학생들에게 문법을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수업실 기가 끝난 뒤, 정말 많이 준비했는데 준비한 것에 비하면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아마 잉클 아이들도 전국대회에 나가면 나처럼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할 것이다. 그래! 맞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끊임없는 도전! 실패 는 있어도 포기는 없다. 마지막으로 나의 삶의 신조를 떠올린다. 나는 편안하고 재미없는 삶보다 힘들고 보람 있는 삶을 선택했다. 나에게 남은 평생 남겨진 숙제! 나는 대한민국의 영어교사로서 앞으 로도 변함없이 제 2, 제 3의 잉클 안에서 학생들이 즐겁게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무한도전의 정신으로 끝까지 매진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데 도움을 준 상동고등학교 잉클 멤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 다. 또한, 모든 활동을 하는데 아낌없는 도움으로 용기가 꺾이지 않도록 지지해 준 영어과 동료교사 Sean에게도 가슴깊이 감사를 전합니다. 2007년 9월 19일 상동고 잉클을 사랑하는 지도교사 Spring (임경진) 127 교단수범사례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영어교육, 그 편견의 벽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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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김광경 자랑스러운 내 아들 131 김인자 걸어 다니는 도서관, 책 읽어주는 엄마, 김인자 박동환 행복은 우리 집 처마 밑에 박혜균 희망으로 가는 대화의 힘 배현미 고맙습니다, 대촌중앙초등학교 신진숙 아이들과 함께 꿈을 키워가는 엄마 오세주 우리 아이의 행복한 웃음 전희식 두 아이를 다 대안학교에 보내다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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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자녀교육 수범사례 자랑스러운 내 아들 자식을 기르는 부모의 입장이 되고 보니 특히 자녀교육에 관한 한 할 말이 참 많아 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흔을 넘긴 나이에도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이렇 듯 글쓰기를 다 해보곤 합니다. 한때 문제아였던 우리 아이는 그 후 다행히 새사람이 되어 모범적으로 잘 생활 하고 있습니다. 실은 아이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문제가 있었 던 것이지요.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어린 자녀들의 잘못은 결국 부모에게 대부분 의 원인과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부모들이 가정에서 평소 모범적으로 처신하고 자녀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보살폈다면 자녀들이 비뚤게 나가는 일이란 거의 없 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저의 부끄러운 이야기가 다른 부모님들 의 자녀교육에 있어 다소나마 참고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시는 상은 한때 자녀교육에 소홀하고 태만했었던 저의 잘못에 대하여 무거운 벌과 호된 질책으 로 내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달게 받겠습니다. 미흡한 글을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김 광 경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132 강산이가 같은 반 아이를 때려 코뼈에 금이 갔어요. 강산이가 어느 애 다리를 분질렀어요. 강산이가 교실문짝을 부쉈어요. 강산이가 무서워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 오기 싫대요.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 거의 일주일이 멀다 하고 우리 아이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내용들이다. 난 전화를 받을 때마다 학교로 달려가 아이가 저질러 놓은 이런저런 사 건들을 수습하느라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때로는 상대 측 학부모들로 부터 욕을 얻어먹기도 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기도 하면서 학교에서 병원으로 병원에서 다시 학교로 급하게 쫓아다니곤 했다. 하지만 난 사 실 그때까지만 해도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끼리 서로 치고받고 싸우다 보면 실수로 한 대 잘못 맞아 코뼈에 금이 갈 수도 있고 발목이 부러질 수도 있는 것이라고 내심 생각했었다. 단지, 그것이 고의와 악의에서 비롯된 행동만 아니라면 아이들에게 있 어, 특히 한창 힘자랑할 나이인 그 또래의 사내아이들에게 있어 가끔은 일어날 수도 있는 일로 안이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다시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강산이 아버지 되십니까? 난 직감적으로 이 녀석이 또 무슨 사고를 쳤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습니다만... 여기 강남경찰서인데요, 지금 좀 오셔야겠습니다. 가슴이 덜컥해서 부리나케 경찰서로 달려갔다. 내용인즉, 우리 아이가 어느 주차장에서 남의 자동차 키를 몰래 가지 고 나오다 직원에게 붙잡혀 경찰서로 넘겨진 것이었다. 그러나 어린 학 생인데다 다행히 별다른 피해가 없어 훈방조치로 끝났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나오면서 물었다. 너 뭐 하려고 남의 자동차 키를 훔쳤니? 아이가 대답했다. 고속도로를 한번 달려보려고요. 나는 순간 너무 큰 충격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자녀교육수범사례 자랑스러운 내 아들 132

133 생전 운전이라곤 해 본 적 없는 녀석이 만일 그때 주차장 직원에게 들 키지 않고 그대로 차를 몰고 내달렸더라면 어찌 됐을까. 참으로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아찔했다. 나는 그제야 이거 뭐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되 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 와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가끔 TV에서 폭주족이나 학교폭력배 등 비행청소년들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그저 남의 얘기려니 여겼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아이가 그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그 당혹감과 충격이란 실로 컸 다. 또한 나는 비행청소년들의 문제 역시 단지, 아이들 자신의 탓인 줄 로만 알았었다. 하지만 그 근본원인은 부모들의 그릇된 교육방식과 문 제가 있는 가정환경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 다. 특히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무관심과 과잉보호야말로 아이들을 잘 못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우리 아이의 경우만 해도 그랬다.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사업에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 교육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고 그저 밖으로만 나돌았다. 아 이에 대한 가정교육은 자연 제 엄마가 도맡아 했다. 하지만 그 교육방식 에 크게 문제가 있었다. 아내는 무슨 일이든 아이에게 스스로 하게끔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 라 하나에서 열까지 일일이 대신 해주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연필 깎 는 일에서부터 숙제하고 시간표 챙기고 책가방 싸고 심지어는 초등학 교 6학년이 된 아이를 아침이면 손수 깨워 세수까지 시켜서 학교에 데 려다 주곤 했다. 아이의 자립심이 없어진다고 아무리 말려도 막무가내 였다. 자연 가정불화가 잦아졌고, 나는 결국 아내와 다투다 지쳐 아이 교육 에 대해선 아예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정리정돈, 예 의범절, 질서의식 등등 모든 생활습관이나 태도에 있어 한마디로 품행 제로인 상태였다. 게다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행동 또한 크게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133 자녀교육수범사례 자랑스러운 내 아들

134 툭하면 친구들에게 폭력을 일삼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역시 어릴 때부 터 집안에서 부모들이 자주 다투는 모습을 보며 자란 데서 비롯된 행동 이 아니었나 싶다. 아이는 결국 학교에서 문제학생으로 낙인찍혀 자의 반 타의 반 학교 를 그만두게 되었다. 중2 때의 일이었다. 담임선생님은 전학을 종용했 고, 다른 학생들 역시 우리 아이와 어울리기를 기피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부터인가 녀석은 아예 학교를 가지 않고 딴 길로 새버리는 것이 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를 억지로 붙잡아다 학교에 다시 보내본들 별 소용이 없을 것임은 당연했다. 어찌할 것인가? 부모로서 정말 난감하고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뒤늦게나마 아이에 대해 내가 그동안 너무 무심했었고 태만했었 다는 것을 깊이 후회하고 반성했다. 그리고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지도 하고 키울 것인가에 대해 매우 심각히 고민을 하게 되었다. 자녀교육수범사례 자랑스러운 내 아들 134

135 나는 결국 궁여지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비록 늦었지만 아이의 아버 지로서 그동안 교육을 잘못시킨 책임을 지고 내 힘으로 직접 한번 아이 를 제대로 교육시켜보리라 마음먹었다. 학교 측에는 당분간 휴학처리를 해 달라고 얘기했다. 나는 내 나름대로 교육프로그램을 짜서 본격적으로 아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마침 경영난으로 회사를 정리하고 집에 있을 때라 시간도 많 았고, 또한 그로 인해 가정과 아이 문제 등에 대하여 이런저런 깨달음과 느끼는 점도 많을 때였다. 나는 아내에게 아이 교육에 관한 한 일체 간 섭하지 못하도록 거듭거듭 엄포를 놓았다. 아내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더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나는 우선 아이의 생활태도부터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주로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아이는 이내 집을 나가버렸다. 며칠 만에 겨우 아이를 찾아 집으로 다시 데리고 들어왔다. 나는 화가 나서 온갖 모진 말을 해가며 심하게 때려주었다. 그러고 나니 또 마음이 몹시 아팠다. 잠시 후 방문을 열자 아이는 혼자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서럽 게 울고 있었다. 나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아이가 저렇게 된 것 이 다 부모들이 교육을 잘못 시킨 탓이라는 생각이 차츰 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아이가 잘못할 때마다 화를 내고 야단만 쳤지 한 번도 진지 하게 아이의 얘기를 들으려거나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고민과 문제 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었다는 사실에 대해 반성했다. 아이의 생활태도 를 바꾸기 전에 우선 아이를 대하고 가르치는 나의 태도부터 고쳐야겠 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튿날 아이와 단둘이 마주 앉았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고 진 심으로 애원하고 호소했다. 아빠가 평소 너를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하고 너에게 올바른 생활태 도를 보여주지 못한 점을 이해하고 용서해 달라. 고. 그리고 지금이라 도 부디 새사람이 되어 달라. 고. 그때의 내 행동은 단지, 아이를 가르치기 위한 목적과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아비로서 진정 어린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135 자녀교육수범사례 자랑스러운 내 아들

136 나는 부모들 역시 잘못을 했을 경우 자식에게 그 잘못을 솔직히 인정 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소 부모들은 형편없이 행동하 고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만 이런저런 훈계와 질책 을 늘어놓아 봐야 그저 잔소리로 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생각 한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를 대하는 나 자신의 언행 하나하나를 주의하고 바꿔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하는지에 대해서는 별 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는 정말 진심으로 그동안 자식 교육에 소홀 했던 나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는 마음과 자세로 아이를 대했다. 사소한 말 한마디를 해도 최대한 부드럽고 따뜻하게,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과 표정에도 깊은 사랑을 담아 건넸으며, 자주 손을 잡거나 안아주기도 했 다. 아이를 완전한 인격체로서 인정하고 존중해 주었으며 어떠한 강요 나 질책도 하지 않았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모범적인 생활태도를 보이 려고 노력했다. 한동안 그리 생활하다 보니 아이의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 선 나 자신의 마음과 자세부터 크게 달라지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아이 생각만 하면 그저 머리가 아프고 화가 나고 한심하고 답답하고 그랬었 는데, 언제부터인가 아이를 바라보면 진즉 좀 더 따뜻하고 자상하게 신 경 써 줄 걸 하는 마음에 그저 미안하고 측은하고 안쓰럽게만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 후 나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가지려고 노력했다. 아이를 데리고 등산도 자주 갔으며 헬스장에도 같이 다녔다. 전에는 거 의 없던 일이었다. 그러면서 아이와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아이 역시 나에 대해 예전의 무섭고 냉정하고 가정에 소 홀하기만 했던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을 위해주고 사랑해 주는 존재로써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같은 남자로서 의리를 가지 고 누구보다도 자신을 믿어주고 이해해 주는 존재로 인식하고 따르기 시작했다. 아빠가 하는 말은 가능한 긍정하고 수용하고 이행하려고 노 력하는 태도를 보였다. 나는 그런 아이를 보면서 정말 너무도 고맙고 대 견하여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자녀교육수범사례 자랑스러운 내 아들 136

137 부자지간에 이런 돈독한 신뢰와 정이 쌓이자 나는 아이에 대해 한 가 지씩 교육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애초부터 꼭 무슨 전략을 세우고 그리 한 것이 아니라 아이에 대한 애정이 깊어질수록 자연 아이의 장래문제 에 대해서도 더욱 많은 염려와 고민을 하게 되고 또한 지금 무엇을 어떻 게 가르쳐 주는 것이 아이가 앞으로 성장하고 활동하는 데 있어 보다 도 움이 될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생각하다 보니 절로 여러 가지 아이디어 와 방법이 떠오르게 된 것이었다. 나는 우선 아이의 메마르고 거친 정서를 교정, 보완해 주기 위해 노력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산으로 강으로 아이와 함께 다니면서 자연의 모 습들을 보여주려 애를 썼다. 또한 틈틈이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시나 문 장들을 메모했다가 읽어주곤 했다. 다행히 아이의 내면에는 감성적인 면이 많이 잠재해 있었다. 성격이나 말투, 행동 등이 차츰 온순해져 가 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방문을 열었을 때 저 혼자 열 심히 책을 읽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감동했다. 남들이 들으면 잘 이해가 안 되겠지만 적어도 그때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그러한 장면 은 감동 그 자체였다. 다음으로 나는 아이에게 사람이 정녕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고 바 람직한 삶의 자세인가? 를 알려주는 인생관, 가치관에 대한 교육을 시 작했다. 여기에 일일이 다 옮겨 적을 수는 없지만 예컨대, 사람은 왜 사 는 것인지, 무엇을 추구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사람으로서 지 켜야할 최소한의 도리와 의무, 책임은 무엇인지 등등 그 나이 또래에 흔 히 가질 법한 아주 기초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삶의 의문과 주제들에 대 137 자녀교육수범사례 자랑스러운 내 아들

138 해서 틈틈이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함께 토론도 했다. 아이를 가르치면 서 나 역시 새롭게 깨닫고 느끼고 배우는 점들이 적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나와 아이는 아주 자연스럽게 모든 인간은 결국 선량하 고 성실하고 예의 바르게 사는 것이 최선( 最 善 )의 삶이란 것에 의견을 같이했다. 또한 현실적 여건과 상황 등을 감안, 백 퍼센트 선량하게 살 지는 못하더라도 악하지는 않게, 백 퍼센트 성실하게 살지는 못하더라 도 불성실하지는 않게, 백 퍼센트 예의 바르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무례 하지는 않게 사는 것이 차선( 次 善 )의 삶의 방식이라는 데에도 합의했다. 그리고 나와 아이는 앞으로 그렇게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을 서로 에게 다짐하고 약속했다. 그다음 학교공부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나는 아이에게 사람이 의무교육인 중학교 과정조차 제대로 마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기본교양을 쌓는데 있어서는 물론 앞으로 사회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문제와 애로가 따를 것 이라는 점을 얘기 해 줬다. 그리고 가능하면 공부를 계속하여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할 계획을 가질 것과 그것의 필요성, 방법론 등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설명 해 줬다. 아이 역시 전적으로 공감했고, 앞으로 능력개발을 위해 공부 또한 열심히 해서 새사람이 되겠다. 고 다짐했다. 나는 아이에게 너와 나는 남자 대 남자로서 서로에게 한 약속들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 하자. 고 재삼 당부했다. 그 후부터 아이는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마음먹기에 따라 서는 하루아침에도 전혀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실감했 다. 때로는 너무 점잖고 의젓하게 변한 아이의 모습이 마치 다른 아이인 듯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무관심과 과잉보호, 그릇된 가정환경 등 이 자녀들이 자라는 데 있어 얼마나 나쁘게 작용하는지를, 또한 아이들 은 결코 저절로 바르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정성어린 가르 침과 부단한 보살핌에 의해서 비로소 제대로 된 사람으로 길러지는 것 이라는 이치를 절감했다. 자녀교육수범사례 자랑스러운 내 아들 138

139 나는 아이를 다시 학교에 보낼 준비를 서둘렀다. 학교를 그만 둔 지 어느덧 1년이 지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나름대로 직장을 알아본 뒤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있었 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다루는 기술에 있어서만큼은 뛰어난 재 능이 있었던 터라 당시 만 15세의 나이로 웹에이전시 회사에 컴퓨터 프 로그래머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아이는 그곳에서 1년 남짓 근무한 후 마침내 작년 여름, 중학교 졸업 자격은 물론 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에도 합격했다. 또한 금년 봄 엔 사이버대학인 한국디지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 어엿한 법대생으로 써 학사과정을 공부함과 동시 현재 열여덟 살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 하고 대졸사원 이상의 높은 연봉을 받으며 유명 인터넷 기업의 R&D 요 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은 나중에 사업을 하게 될 것에 대비, 경제 감각을 익히려 증권투자도 하고 있고, 틈틈이 각종 자료들을 뒤적 이며 이런저런 공부를 하느라 열심이다. 나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바라 보면서 정말 한없이 기쁘고 기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남들 앞에서 자식자랑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었는데 나는 지금 새사람이 되어 저렇듯 의젓하고 당당 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내 자식의 모습이 참으로 장하고 자랑스럽 게 느껴지는 것이다. 남들은 뭐 고작 그 정도 일로 그러느냐? 고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이 문제로 한때 너무나 많은 속을 끓였던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지금 우리 아이가 남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아무 문제없 이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저 대견 하고 자랑스럽고 가슴이 뿌듯하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것이다. 139 자녀교육수범사례 자랑스러운 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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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자녀교육 수범사례 걸어 다니는 도서관, 책 읽어주는 엄마, 김인자 영국 철학자 칼 포터는 "누군가 세상을 망쳐 놓을 수는 있지만 세상을 좀 더 나 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 다"고 했다. 어떤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교사가 세상을 변화시킬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처럼 나 또한 학부모로 내 아이와 온 세상 아이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 들에게 좋은 책을 알리고 읽어주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다 큰 어른에게 그림책을 읽어준다고, 약간은 설렁설렁 웃어가며 만나는 어른들이 그림책 읽기를 통해 수 다스러워지며 생각이 많아지고 책에 한 걸음 다가서는 어른들로 변하는 걸 볼 수 있는 건 굉장한 즐거움이다. 교육수기 당선을 통해 김인자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졌으니 이참에 대한민국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어주어 '책 읽어주기의 즐거움'에 모두들 동 참했으면 좋겠다. 김 인 자 인천 계양구 계산동

142 우리 집은 고물상이다. 멀쩡한 가전제품이 하나도 없다. 내가 12살이 니까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이 물건들은 적어도 13살은 되었을 거다. 세탁기는 뚜껑 날아간 지 오래고, 냉장고는 고무가 닳아 문이 자 꾸만 열려 스카치 테이프로 붙여 쓴다. 압력밥솥 뚜껑은 고무가 헐거워 져 제 구실을 한 지가 언젠지도 모르겠다. 식탁의자는 성한 게 없고 가 스레인지는 불 세 개 중 두 개는 점화가 안 된다. 그래도 엄마는 태연하 다. 새로 사자고 하면 불 하나는 나오니 아직 괜찮다고 한다. 초인종이 고장나 택배 아저씨가 문 두드리다 전화하기 일쑤고, 소파 는 가죽이 다 벗겨져 너덜거려도 엄마는 이불 껍데기 씌우듯 이불 천으 로 덮었다 씌었다 한다. 우리 집이 아주 어려운 것도 아닌데 우리 엄만 목욕물도 모았다 변기에 버린다. 이런 엄마가 애지중지하는 게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책이고 다른 하나 는 책상이다. 어릴 때 어렵게 자랐다는 엄마는 할머니와 둘이 살았다는 방에 책상을 놓을 수 없어 엎드려 공부한 게 한이 되어 우리 집 책상만 큼은 아주 큰것으로 샀다. 하긴 우리 집에 책 빼면 값나가는 살림살이는 별로 없다. 나랑 내 동생 민지 옷도 위층 가영이 언니 옷을 물려 입은 지 오래고 할머니한테 매번 혼나면서도 얻어 입히고 나면 우리에게 책 두 권씩을 꼭 사준다. 투덜거리지 않고 곱게 입어주는 상이라나. 엄마 이렇게 절약해서 그 돈 다 뭐 할 건데? 하고 물으면 이담에 도서관 만들 거야. 한다. 그럴 때 엄마 얼굴을 보면 우리 교실에 와서 아이들에게 책 읽어줄 때 의 얼굴 같다. 무척 신이 나신 얼굴. 그런 엄마를 보고 있으면 새 옷 입 고 싶은 마음이 잠깐은 없어진다. 자녀교육수범사례 걸어 다니는 도서관, 책 읽어주는 엄마, 김인자 142

143 요즘 우리 엄마는 밤에 잠을 거의 못 잔다. 어제도 밤을 샜나 보다. 얼 굴이 퉁퉁 부은걸 보니. 우리 엄마는 컴퓨터를 잘 못한다. 손가락으로 톡톡 치는 걸 보고 있으면 어느 세월에 저 많은 목록을 다 칠까 걱정된 다. 유치원 수녀님께 도서관에서 사야 할 그림책 목록을 보내야 한다며 어젯 밤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엄마의 얼굴이 노랗다. 엄마, 내가 좀 쳐줄까? 그럴래? 여기서부터 치면 돼. 거의 다했어. 에고 컴퓨터는 너무 어려워 컴퓨터는 잘 못하지만 우리 엄마는 책에 대해선 참 많이 안다. 나를 뱃 속에 가지면서부터 책을 읽어주었기 때문인가. 우리 학교 도서관, 유치 원, 어린이집, 지방의 학교도서관에서 책을 살 때면 엄마에게 추천목록 을 보내 달라고 한다. 엄마, 이거 해주면 수녀님이 돈 주셔? 딸아, 나누는 건 좋은 거야. 돈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란다. 뭐가 좋아? 매일 잠도 못자면서 내가 가진 걸 다른 사람한테 나눠주면 내가 좋아. 내가 기쁘잖아. 내 가 즐거우면 우리 딸들도 기쁘고 안 그래? 으하하 우리 엄마가 저렇게 아빠처럼 웃으면 진짜 즐거울 때다. 다른 사람들 이 엄마 웃는 게 예쁘다고 하는데 저래서 그런가 보다. 나도 엄마가 즐 거우니 좋다. 내가 떡볶이 먹으며 몽실언니 읽을 때가 가장 행복한 것처 럼 밤을 새어 좋은 책 목록을 골라 권하는 엄마도 행복한가 보다. 엄마가 우리 반에 와서 책 읽어주면 안돼? 너희 반에는 인영이 아줌마가 들어 갈 거야. 143 자녀교육수범사례 걸어 다니는 도서관, 책 읽어주는 엄마, 김인자

144 우리 엄마는 매주 목요일 아침 8시 40분부터 9시까지 수업이 시작되 기 전에 4학년, 5학년, 6학년 교실에 가서 책을 읽어준다. 우리 학교 도 서관을 만들고 내가 1학년 때부터 도서관회장으로 선생님들을 도와 도 서관 운영을 한 지 5년이 되었다. 그런 엄마가 내가 1학년 때부터 교실 에 들어가 아침 시간에 책을 읽어준 지도 5년이 되었다. 하긴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읽어주었다니까 엄마가 매일 밤 우리에게 책 읽어 준 것까지 합치면 13년 동안 책을 읽어주었다. 그래서 엄마 목소리가 저 렇게 큰 걸까? 엄마는 우리 학교 뿐만이 아니라 복지관에 가서 장애우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계양도서관에 가서도 책을 읽어준다. 책 읽어주러 가는 날이 아닌 날 엄마랑 계양도서관에 가면 유치원 아이들이 엄마 옆으로 와서 앉는다. 그러면 엄마는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또 책을 읽어준다. 엄마한테서 책 냄새가 나나? 하긴 나도 우리 엄마를 닮나 보다. 친구들은 나를 녹색 벌레 라고 부 른다. 책벌레하고 녹색 옷을 많이 입는 나를 합쳐서 부르는데, 한 학년이 끝나고 나한테 친구들이 써주는 편지를 보면 다 나보고 책벌레 책이 그렇게 좋으냐? 책 좀 그만 봐라. 등 다 책과 관련된 얘기다. 엄마 뱃속 에서부터 책과 함께였던 엄마 딸이어서 그럴까 난 책이 좋다. 떡볶이 먹 으면서 책 볼 때가 가장 행복하다. 사실 난 학원도 안 다니고 학습지도 안 한다. 어릴 때는 잘 먹고 잘 노 는 게 최고라는 게 우리 엄마 생각이다. 그 덕분에 난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스트레스는 안 받는다. 도서관에서 책도 보고 볕 좋은 곳에서 자기 도 하고 그냥 멍하니 앉아 있으러 가기도 한다. 하루라도 도서관에 안 가면 뭔가 할 일을 다 못한 거 같아 매일 난 도서관에 간다. 우리 학교 도 서관이 책과 함께 노는 놀이터라는 엄마 말처럼 도서관은 내 놀이터고 책이랑 노는 게 나는 좋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기특하다. 나는 학원도 안 다니고 학습지도 안 하지만 공부는 열심히 한다. 아빠는 대학입시생이냐며 어린이는 일찍 자 고 일찍 일어나야 키도 크고 예뻐진다는데 난 아무래도 엄마를 닮은 모 양이다. 아빠가 불 끄고 나가면 몰래 일어나 불을 켜고 책을 본다. 할머니 말로는 우리 엄마도 자라자라 해도 안자고 늦게까지 책을 봤다고 한다. 자녀교육수범사례 걸어 다니는 도서관, 책 읽어주는 엄마, 김인자 144

145 나는 혼자서 교과서를 읽고 무슨 말인지 모르면 전과를 읽고 그래도 모르면 도서관에서 교과서와 관련된 책을 찾아 읽는다. 엄마 말처럼 백 번을 읽으면 뜻이 통할까? 수학이랑 과학은 어렵지만 난 엄마 말을 믿 는다. 책 읽어주는 엄마 딸이라 나도 큰 소리로 책을 읽는 게 좋다. 옛날 아 이들은 서당에서 큰 소리로 책을 읽었다는데 참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내 소리를 내가 들을 수 있으니 좋고, 이렇게 연습해서 난 우리 외할머 니에게 책을 읽어준다. 엄마는 전화비를 나보고 내라고 할 정도로 난 매 일매일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우리 할머니는 시골에 혼자 사시는 데 난 우리 할머니가 엄마보다 더 좋다. 난 우리 엄마 말처럼 엄청 구두 쇠인데, 우리 할머니 사탕 사드리는 것과 전화비 내는 건 하나도 안 아 깝다. 우리 할머니가 좋으니까. 난 할머니들은 다 좋다. 우리 아파트에 도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시는 할머니가 있는데 나만 보면 물 떠다 달라, 커피 뽑아 달라 하신다. 손주가 다 커버려서 심심하다는 할머니에게 책 을 읽어드리려고 했더니 할머니가 웃으며 괜찮다신다. 귀가 잘 안 들린 다고. 그래서 난 우리 할머니에게 책을 읽어드린다. 우리 집에 오면 그 림책으로, 전화로는 옛이야기 책으로 할머니에게 매일 매일 2쪽씩 책을 읽어준다. 내 전화비 내려면 돈 많이 벌어야겠다고 우리 아빠는 말씀하 시는데 사실 전화비가 많이 나오긴 한다. 돈이야 이다음에 내가 다 갚으 면 되고 학원도 안 다니니까 나는 당연히 이래도 된다고 생각한다. 엄마, 또 만두야? 요즘에 엄마처럼 생일상 차려주는 사람 없어. 생일날 다들 햄버거가게에 가서 햄버거 먹고, 피시방 가고, 노래방 가고 그래 그런 집 딸 하고 싶으면 그 집 가 살어. 내가 차려줄 생일상이니까 내 맘대로 할 거야. 내 생일은 12월 20일인데 우리 엄만 내 생일 날 우리 반 아이들을 다 145 자녀교육수범사례 걸어 다니는 도서관, 책 읽어주는 엄마, 김인자

146 불러서 만두도 만들고 책도 읽어준다. 내 생일 며칠 전부터 손으로 일일 이 초대글도 쓰고 한 명도 빠트리지 말고 다 주라고 한다. 초대장을 안 받는 아이가 있으면 서운해 하니까 꼭 그래야 한다면서. 엄마는 냉장고에서 신 김치를 꺼내 손목이 시큰거린다면서도 다져서 짜고 재래시장 가서 손두부도 사오고 밀가루를 제일 큰 것으로 사서 만 두피도 홍두깨로 직접 민다. 산 만두피는 씹히는 맛이 없다고 엄마는 꼭 밀가루 반죽을 해서 만두피를 만든다. 그럴 때 엄마는 영락없이 채인선 선생님의 그림책 손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에 나오는 손 큰 할머니 다. 우리 엄만 구두쇠면서 책 사는 것, 남 책 사주는 것, 그리고 먹는 것 에는 돈을 안 아낀다. 엄마는 청량음료도 절대 못 먹게 한다. 엄마는 청량음료 대신 직접 식 혜를 만들고 케이크도 떡 케이크로 한다. 나물도 콩나물, 시금치나물, 도라지나물 이 세 가지는 꼭 해야 하고 배달시키는 후라이드 치킨 대신 엄마가 닭도리탕을 만든다. 약식도 압렵밥솥에 찌고 맛탕도 한다. 김치 도 배추김치에 물김치에 깍두기에 순무김치에 엄마가 차려 놓은 생일 상을 보면 우리 할머니 생신상 같다. 그래도 우리 반 아이들은 내 생일 잔치에 오는 걸 좋아한다. 생일 음식 은 함께 만들어야 더 맛있다며 생일에 초대받아온 아이들과 만두도 만 들고 책도 읽어주고 그러고 나면 집은 엉망이 되지만 엄마는 행복해 한 다. 주인공인 나보다 엄마가 내 친구들과 더 신나게 논다. 말은 그렇게 해도 나도 엄마의 생일상이 좋다. 예쁘게 컴퓨터로 만든 초대장이 아니 어도 밤새 내 친구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러가며 연필로 써주는 초대장 도 좋고 음식도 못하면서 열심히 생일 음식 만들어주는 엄마가 좋다. 우리 아빤 엄마 음식 별로라고 하지만 난 우리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 음식 맛은 정성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엄마가 열 심히 만들어준 음식을 먹으며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보는 즐거움을 누 릴 수 있으니 난 행운아다. 나도 이다음에 내 아이들에게 엄마처럼 해줄 수 있을까? 지금 마음으론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중에 좀 더 커 봐야 알겠다. 자녀교육수범사례 걸어 다니는 도서관, 책 읽어주는 엄마, 김인자 146

147 엄마, 좀 더 자면 안 돼? 일요일인데 늦잠 좀 자자. 엄마만 가. 안돼, 가서 동생들도 돌보고 친구들과도 놀고. 오늘은 일본아줌마들 하고 책 이야기도 해야 해서 서둘러야 해. 일요일에 우리 엄마는 일본아줌마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러 간다. 우리 나라 아저씨들한테 시집온 일본 아줌마들은 한국말은 서툴지만 자 식들 사랑은 우리 나라 엄마들 못지않은 것 같다. 우리 엄마는 일요일마 다 그 아줌마들의 아이들 130명에게 책을 읽어준다. 처음엔 시끄럽게 떠들던 아이들도 엄마가 책을 읽어주기 시작하면 금세 조용해진다. 나 랑 민지도 일요일마다 엄마랑 함께 이곳에 오는데 처음엔 늦잠을 잘 수 없어서 귀찮았는데 엄마가 읽는 책을 들으러오는 재미에, 그리고 수현 이, 온정언니랑 놀 마음에 따라나선다. 기무라 아줌마나 나까노 아줌마 는 책을 읽지 않던 아이들이 엄마가 책을 읽어준 덕분에 집에서도 책을 본다고 좋아하신다. 엄마는 밤새 앓다가도 아침이 되면 언제 아팠냐는 듯이 벌떡 일어나 나간다. 얼굴은 하얘가지고서. 얼굴이 하얗게 떠서도 책은 꼭 읽으러 간 다. 아이들에게 책 읽어줄 때의 우리 엄마는 밤새 아팠던 사람이 아니 다. 정말 내가 생각해도 우리 엄마 목소리는 타고났다. 기계 소리를 싫 147 자녀교육수범사례 걸어 다니는 도서관, 책 읽어주는 엄마, 김인자

148 어해 마이크도 쓰지 않고 책을 읽어주는데도 목소리가 참 크다. 엄마가 읽어주는 책은 재밌다. 동화구연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우리 엄마는 일본말도 못하면서 일본 <숲속의 도서관>에 가서 으악 도깨비 를 일본 아이들과 부모들한테도 읽어 주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 과 골판지로 장승 만들기도 했다. 우리 엄마가 읽어주면 옆에서 다른 아 줌마가 일본어로 통역해 들려주었다는데 그곳에 온 일본 아이들이 엄청 좋아했다고 한다. 엄마 덕분에 미야자키에 있는 숲 속 도서관에는 한국 책 코너를 따로 만들어 우리나라 그림책 작가들의 책을 전시하고 우리 나라 그림책 작가들도 많이 초대해서 원화전시도 한다고 하니 우리 엄 마는 책 읽어주는 애국자다. 우리 엄마는 좋은 책을 찾아 읽고 아이들에게 권하는 책 문화운동가 이다. 그래서 도서관을 만들라고 부추기고 엄마가 그동안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던 좋은 책을 골라 목록을 만들어 새로 도서관 만드는 곳에 도 움을 준다. 우리 엄마는 우리 나라 유치원 최초로 인천 노틀담 유치원에 그림책 도서관을 만들었고 안산 대덕 시립어린이집에도 그림책 도서관 을 만들었다. 십정동과 안산 들꽃 피는 학교에는 청소년 도서관을 만드 는 일을 하는 중이다. 돈을 버는 일도 아닌데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쁜 우리 엄마는 내가 다 니는 신대초등학교 도서관 꿈마루 를 이끌어가는 어머니 도서위원회의 위원장이기도 하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도서관을 만들어 도서위원장을 맡았으니 올해로 5년째다. 우리 꿈마루 는 교육청과 학교의 지원을 받아 엄마들이 앞장서서 만 든 도서관이다. 우리 꿈마루에는 의자가 없다. 책과 함께 노는 놀이터라 는 우리 엄마의 생각대로 평상이 놓인 도서관에서 우리는 뒹굴거리며 책도 보고 볕 좋은 곳에서 졸기도 하고 친구도 만난다. 도서관은 책만 자녀교육수범사례 걸어 다니는 도서관, 책 읽어주는 엄마, 김인자 148

149 보는 곳이 아니라 우리들의 쉼터이고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는 우리 엄 마 말에 난 전적으로 동감한다. 실제로 우리는 도서관 아줌마들이 틀어 주는 영화도 보고 인형극도 보고 교장 선생님의 옛 이야기도 들으러 꿈 마루에 간다. 우리 꿈마루 가 도서관을 새로 꾸미려는 사람들에게 견학장소가 될 만큼 유명해진 것은 우리 엄마를 중심으로 자기 시간을 쪼개어 도서관 을 운영하는 아줌마들 덕분이다. 엄마, 아줌마들 중에서 회장하고 싶어하는 사람 없어? 해마다 엄마 가 하면 아줌마들 중에서 서운한 사람 없을까? 그러게 엄마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은데. 해마다 총회를 하고 만장일치로 엄마가 다시 회장이 되는 걸 보면 엄 마가 일을 잘 하나보다. 내가 볼 때는 우리 엄마처럼 도서관에 미친 아 줌마가 없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미쳐야 미친 다( 及 ) 는 말대로 우리 엄마는 책에 미쳤다. 도서관쟁이 엄마, 책에 미 친 엄마 김인자 화이팅!! 우리 엄마는 좋은 책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좋은 공연을 보는 일에도 앞장선다. 아이 업고도 발레를 보고 싶은 사람은 꼭 보게 해주어야 한 다며 인천 최초로 동화발레를 기획하여 계양문화회관에서 보여주었다. 900석 자리에 통로까지 앉아 발레를 봤던 엄마들과 아이들은 너무 기 뻐했다. 계양문화회관이 생기고 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온건 처음 봤 다는 수위 아저씨말처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왔다. 정작 우리 엄마는 발 레를 처음 본다는 어떤 아줌마의 우는 아이를 업고 있느라 보지 못했는 데도 리허설 할 때 다 봤다며 또 아빠처럼 웃는다. 유명한 줄인형 콘서트 도 모셔다 보여주고 애기똥풀 이라는 인형극 149 자녀교육수범사례 걸어 다니는 도서관, 책 읽어주는 엄마, 김인자

150 도 보여주고 우광혁 교수님과 함께하는 세계악기여행 이라는 악기공연 도 보여주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 사람들은 그 좋은 공연을 가까 이서 봤다고 무척 행복해했다. 혼자서 섭외하고 포스터 만들고 티켓 만 들고 홍보하는 엄마를 보면서 참 대단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 우리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 같다. 상상만 하던 일 을 진짜로 눈앞에 펼쳐놓고 씩 웃는 토토로 같다. 겁도 없이 티켓팅만으 로 섭외할 생각을 했냐는 우광혁 교수님에게 삼고초려를 한 엄마의 용 기가 대단하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진심 이라는 우리 엄 마, 나도 엄마처럼 되고 싶다. 우리 엄마는 인형을 직접 만들어 우리 학교 전교생에게 팥죽 할머니 와 호랑이 라는 인형극을 보여주었다. 우리들에게 책의 또 다른 모습을 인형극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엄마는 도서관 아줌마들 32명 모두에게 배역을 주어 아줌마들 모두가 참여하도록 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함께 하는 과정에서 아줌마들 자신이 기뻤으면 좋겠다는 게 엄마의 생 각이었다. 처음엔 처음 해보는 거라고 겁내던 아줌마들도 하루에 3번씩 일주일을 공연하면서 힘들텐데도 얼굴을 보면 너무도 즐거운 표정이었 다. 즐거운 일을 하면 다들 저런 얼굴이 되나 보다. 엄마가 읽어주는 팥 죽 할머니와 호랑이 책은 그렇게 인형극으로 공연되어 우리들 맘속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새겨졌다. 꿈마루 의 성공과 열정적인 활동을 인정받아 인천시 교육청 학부모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우리 엄마는 아버지가 함께 참여하는 부모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책을 읽어줌으로써 아이들과 가까워지 게 하기 위해 엄마는 시 교육청 강사를 하는 거라고 한다. 아버지가 함 께 참여하는 부모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엄마, 아버지가 책을 읽 어줌으로써 아이들과 가까워지게 하는 것이 엄마의 교육 목표이다. 아 자녀교육수범사례 걸어 다니는 도서관, 책 읽어주는 엄마, 김인자 150

151 무리 좋은 일을 한다지만 맞벌이를 하는 것도 아닌데 늘 바쁜 우리 엄마 를 이해해주는 우리 아빠. 처음에 우리 아빤 엄마 일을 많이 반대했다. 엄만 일에 미치면 엄마 몸을 돌보지 않는다. 엄마 건강 걱정에 느는 게 한숨이라는 아빠도 엄마한테 전염이 됐나 보다. 아빠 말로는 포기라고 하는데 난 안다. 우리 엄마를 내심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을. 책 읽어주기가 영혼의 스킨십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엄마, 엄마가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아이들은 행복하다고 믿는 우리 엄마, 우리 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엄마 자신이 더 신나하는, 책 읽어주는 우리 엄 마 김인자. 목욕한 물도 아까워 걸레라도 빨아야 비로소 변기에 버리는 우리 엄마. 이담에 도서관 만들어 그곳에서 책읽어주는 할머니 되어 느 릿느릿 살 거라는 우리 엄마. 그래서 지금은 바빠도 즐겁고 행복하단다. 나는 그런 엄마를 닮아가는 게 자랑스러운 책 읽는 초록 벌레 김민정이 다. 151 자녀교육수범사례 걸어 다니는 도서관, 책 읽어주는 엄마, 김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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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자녀교육 수범사례 행복은 우리 집 처마 밑에 나름 주변의 부러움 속에서 아이들을 챙기고는 있지만 아이들 장래를 위해서 제 대로 하고 있는 건지 마음 한구석에 불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수기공모 한번 해볼까 하고 가족들에게 물었더니 꿈도 꾸지 말라한다. 내 글 솜씨가 부족해서 떨 어지면 모를까 내가 지금 아이들과 해 오고 있는 상황이야 충분히 수상감이 된다 고 우기면서 어느 일요일에 혼자서 써서 올렸는데... 지금은 오후 2시20분... 학교에 갔다 온 딸아이와 옆집 아들이 사회 문제집을 풀고서 답지를 확인하고 있 다. 이 아이들을 보면서 오늘이 힘들고 부끄러워도 꿋꿋이 살아보련다. 부족한 글 뽑아주신 교육인적자원부와 EBS 관계자 분께 감사드립니다. 박 동 환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칠전리

154 지나온 삶에 대한 회한과 부끄러움 속에서 죽음을 생각했다. 결혼생활 10년째였으니 큰 아이가 10살, 작은 아이가 7살 때 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교통사고를 가장한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아내와 아이들에게 빚의 고 통이라도 덜어주면 아빠로서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했 다. 며칠 동안 고민에 또 고민을 했다. 애들에게 아빠가 없더라도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사는 게 나을지 빚에 허덕이더라도 아빠가 있는 게 나을지???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것들을 두고 간 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던지 어른들 말씀에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못 죽는다더니 아이들을 두고 갈 수는 없었다. 몇 날 며칠을 아내와 울면서 살아갈 방도를 궁리해 봤 지만 딱히 길은 없었다. 그즈음, 내가 세상 살면서 깨달은 게 있으니 죽으란 법은 없다, 세월 이 가면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불안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낸 세월이 3년을 지나가고 있다. 난 이곳 진도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어릴 적부 터 제법 공부를 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특출나지는 않았고 어려운 가 정형편 때문에 대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 후로 상경하여 가난한 시골자식들이 다 그렇듯 신문배달, 우유배 달, 유흥업소 써빙 등 닥치는 대로 해 보지만 도저히 서울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나름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농사를 짓기 위해 시골로 내 려왔다. 그때가 91년 말이었으니 약 7년 만에 귀향한 셈이다. 학교 졸업 후부터 부모님께서는 공무원이 되기를 원하셨지만 난 돈을 벌어야지 무슨 월급쟁이냐면서 안 한다 했지만 농사를 짓는 것도 땅이 나 돈이 있어야 할 일 그 또한 막연하여 다시 상경하여 공무원 시험 준 비를 했다. 서울에 올라가 학원등록을 하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데 그때가 고 등학교를 졸업한 지 8년 되던 해였으니 학교 다니면서 배운 공부가 머 자녀교육수범사례 행복은 우리 집 처마 밑에 154

155 릿속에 남아 있을 리가 없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 다. 그렇게 3달을 학원을 다니고 그해 전라남도 지방행정 9급 공채시험 에 응시를 했는데 운이 좋았던지 합격하여 8월에 수습을 시작하여 11월 에 진도군청에 정식발령을 받았으니 부모님께는 그런 경사가 없었다. 92년에 공무원을 시작하여 94년에 간호직으로 보건소에 근무하던 집 사람을 만나 결혼생활을 시작하지만 결혼하자마자 장모님이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3년 만에 돌아가시고 결혼 1년 후 아버님이 사고로 몸져누 워 3년간 투병생활을 하시다 돌아가시고 1년 후 어머님마저 돌아가시 게 된다. 공무원에 재직하면서도 양가 부모님 병 수발과 격무에 지쳐 평소 꿈 이었던 농장을 경영하기 위해 퇴직하고자 했으나 부모님의 강력한 반 대에 부딪혀 그 꿈을 접었다가 부모님께서 돌아가시자 곧바로 퇴직을 하고 임야 7만m2를 개간하여 농사를 시작했으니 나의 불행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경험부족과 농산물 가격하락으로 3년 만에 자금압박에 못 견뎌 결국은 부도가 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 무엇이든 해야 했기에 1년여 직장생활을 하다 다시 평소 하고 싶었던 전원카페를 손수 꾸며 해 보지만 술장사 또한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1년 만에 카페는 친구에게 넘기고 생수사업을 시작했다. 맨바닥에서 시작했지만 지인들의 도움으로 단기간에 어느 정도의 거 래처를 확보하고 충분치는 않지만 조금의 수입을 올리면서 남는 시간 에 아이들 돌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사업 한답시고 도움을 받고 피해를 주고 있는 지인들에게 매월 원금 까지 갚아 나가면서 생계까지 꾸려 나간다는 것이 벅차지만 나를 믿고 도움을 준 분들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되고 내 아이들에게까지 빚을 물 려줄 수는 없기에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다행히 아내는 계 속 공무원을 하고 있어서 함께 노력하면 큰아이 대학가기전까지는 빚 도 청산될 것 같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살아온 내 인생이 아이들에게 성공하는 법 을 가르치진 못해도 적어도 실패하지 않는 법을 가르칠 수는 있을 것 155 자녀교육수범사례 행복은 우리 집 처마 밑에

156 같음에 위안을 삼고 남은 인생은 고스란히 아이들을 위해 바치려고 한 다. 2006년 11월 큰아이 5학년 기말고사가 끝났다. 아내와 난 서로 미루다 아이들 학원비 2달치를 밀렸더니 100만 원이 넘는다. 당시 큰 아이는 보습, 영어, 논술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작은아 이는 보습, 영어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여전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아이들 공부만큼은 중단할 수 없어 근 근이 학원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100만 원을 준비 하려니 난감할 일이었다. 어렵게 밀린 학원비는 준비하여 해결했지만 더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애들 학원을 중단하여야만 했다. 보습이야 내가 도와주면 되었지만 영어 학원만큼은 학원의 도움을 받 았으면 했는데 마침 그동안 다니던 학원 원장님께서 학원비는 내지 않 아도 되니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달라는 간곡한 부탁과 배려로 결국 한 명의 학원비로 두 아이를 보낼 수 있게 되었고 논술은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6학년까지만 다녀보기로 했다. 작은 아이 피아노도 1학년 때 배우다 형편 때문에 중단한 상태였다. 다행히 내 직업이 생수 배달이어서 오후 시간이 많이 남아 아이들 학 과 공부는 내가 시켜보기로 했다. 4학년 때 몇 달 시도했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다시 학원에 맡겼던 터라 가족들은 반대를 했지만 선택의 여지 가 없었다. 영어 학원 원장님의 도움으로 다음 학기 전과를 얻어 와서 겨울 방학 내내 두 아이 선행학습을 시작했다. 나름대로 나도 열심히 했고 아이들 도 잘 따라줘서 방학을 충실히 보낼 수 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자 동아출판사에서 나온 큐브문제집을 준비해서 학 교진도에 맞추어 함께 공부를 해 나갔다. 드디어 중간고사를 치른 결과 큰 아이는 사회 한 문제만 틀려서 전교 자녀교육수범사례 행복은 우리 집 처마 밑에 156

157 1등을 할 수 있었고 작은 아이는 2문제를 틀려 반에서 공동 1등을 했 다. 큰 아이는 그동안에도 꾸준히 95점 이상은 받아왔지만 3, 4학년 때 각 각 1번씩만 반에서 1등을 하고 줄곧 반에서 1등도 못해 왔는데 첨으로 전교 1등을 했으니 아이나 나나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시험을 볼 때마다 늘 1등은 못해도 좋으니 국수사과 과목당 1문제씩 해서 4문제만 틀리자고 격려하곤 했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잘보다 못보 다 들쭉날쭉 한데 반해 비록 1등은 못해도 꾸준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 어 조금만 노력하면 잘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갖고 있었다. 작은 아이 야 아직 저학년이니 오빠 하는 대로 따라 하다 보면 잘 되리라 믿고 있 다. 겨울 방학과 중간고사까지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해 오면서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공부뿐만이 아니라 생활하는 모든 면에서 아빠에게 의지하고 아빠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 어 다른 방법을 궁리했다. 적정한 시기가 되면 아이들 스스로 공부를 해 나가도록 할 계획이었 지만 시골지역의 형편상 공교육이나 사교육이 도시지역에 미치지 못하 는 현실을 감안할 때 아직은 아이들 스스로 공부를 해 나가기에는 이른 감이 있어서 인터넷 강의를 대안으로 생각을 했다. 여러 유료 홈페이지들을 둘러보았지만 적지 않은 수강료도 부담이 되 었고 강의수준도 EBS가 제일 나은 거 같아 중간고사가 끝난 후부터는 학교진도에 맞춰 인터넷으로 교육방송을 듣고 철저히 복습을 한 다음에 모르는 것만 아빠에게 물으면 함께 풀어보는 방법으로 하기로 했다. 큰 아이는 거의 질문이 없을 정도로 잘 해 나갔고 작은 아이는 아직 스 스로 다 해 나가기에는 무리일 것 같아 매일 30여 분씩 챙겨 주었다. 157 자녀교육수범사례 행복은 우리 집 처마 밑에

158 그동안 나도 점점 사업이 확장되어 일이 많아져서 전처럼은 챙겨주질 못했지만 아이들은 잘 해 주었고 기말고사에서는 국어, 수학, 사회, 과 학, 영어에서 3문제를 틀려서 전교 4등을 했지만 과정이 소중했기에 결 과에는 만족할 수 있었다. 이제 여름 방학을 준비해야 했다. 아이와 의논 끝에 2학기 과정은 개학해서 열심히 하기로 하고 방학 동 안에는 중학과정 공부를 해 보기로 했다. 우선 영어는 EBS 한일기초영문법 3 스텝을 구입해서 하루 1~2강씩 공부를 한 결과 총 60강 중 40강을 공부했고 수학은 2006년도 교재를 구입해 1학년 1학기 과정을 끝냈다. 과학 또한 2006년도 교재로 1학년 1~2학기 과정을 모두 끝낼 수 있었다. 짧은 여름 방학 동안 주말에는 광주 무등 경기장으로 프로야구를 보 러가고, 가까운 곳에 있는 해수욕장 두 번가고 영화관람(디 워, 화려한 휴가, 다이하드4)도 세 번가고 나름대로 아이들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주일은 사이버 영재교육원에서 주관한 과학캠프를 다녀왔으니 실제 공부한 날은 15일 정도였는데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자녀교육수범사례 행복은 우리 집 처마 밑에 158

159 공부를 해내는 아이를 보면서 그 더운 여름날 물 배달하면서도 힘들었 던 것을 이겨낼 수 있었다. 중학교 수학은 아직 아이에게 버거운지 힘들 어해서 종종 내가 챙겨 주었고 영어와 과학은 혼자서도 잘 해 나갔다. 2학기 들어서는 방과 후 6시까지는 학교진도에 맞춰 교육방송과 함 께 내신관리를 하고 밤 시간에는 영어와 수학을 공부하고 있다. 영어는 한일기초 영문법이 끝나는 대로 한일 선생님의 기초영작문 강의를 듣 도록 할 것이다. 수학과 과학은 진도는 나가지 않고 방학 동안 했던 중 학교 과정을 계속 복습할 것이다. 2학기 학기말 시험이 끝나면 12월부터 2월까지 열심히 해서 중학교 입학 전에 수학과 과학은 중학교 전 과정을 공부하고 영어는 토플에 도 전을 해 볼까 한다. 물론 모든 공부는 진도 나가는데 급급해하지 않고 복습을 철저히 하고 아이가 소화를 해내는 범위 내에서만 할 것이다. 1학기 중간고사에서 내 큰 아이가 전교 1등을 하고 기말고사에선 집 사람 직장동료의 아이가 내 작은 아이와 같은 학년이라 함께 공부를 시 켰는데 뜻밖에 전 과목 100점이 나왔다. 그래서인지 집사람의 직장동료 3명이 5학년인 자기 아이들 공부를 봐달란다. 내 아이들이야 부담 없이 했지만 남의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엄두도 나질 않고 내 아이들에 게 소홀해 질까 봐 망설였으나 가르친다는 것이 재미도 있고 해서 해 보 기로 했다. 학교가 끝나면 오후 3~4시에 3명이 모이면 역시 EBS 교육방송으로 강의를 듣고 각자 복습 후 문제를 풀어보고 틀린 문제에 대해서 함께 공 부하는 방법이다. 7시에 함께 저녁을 먹고 30분간 근처 초등학교 운동 장에서 운동을 한 후 9시까지 공부를 하고 각자 집으로 간다. 결국, 여섯 아이의 아빠가 된 셈이다. 159 자녀교육수범사례 행복은 우리 집 처마 밑에

160 아이들 엄마는 직장에 나간다는 이유로 아이들 유치원이나 학교 행 사에 못 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다른 아이들은 다들 엄마 아빠가 왔는데 내 아이만 혼자라는 것이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난 아이들 행사에 거의 한 번도 빼먹지 않고 갔다. 심지 어는 유치원 자모회까지 내가 참석했으니 주변에선 극성이라 놀리기도 하고 부러워도 하지만 중요한 건 부모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반드시 있 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기념일은 가족간의 정을 돈독히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생일, 입학, 졸업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시험 보고 나면 격려파티, 시험결과에 따라 축하파티, 위로파티를 한다. 운동회 소풍 파티, 상 받으면 축하파티 파티를 할 땐 꼭 아이들 외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하거나 아이들 고 모, 고모부와 함께 한다. 외할아버지는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안 계 시기 때문에 어른의 상징이고 고모는 아이들 태어나서부터 키워주신 분 이기 때문에 아빠 엄마와 다름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물론 외할아버지댁 기념일이나 고모댁 기념일도 반드시 챙긴다. 우리 가족만 함께 하는 것보다는 친지들과 함께함으로써 사람 살아가는 정 을 느끼도록 해 주기 위해서이다. 자녀교육수범사례 행복은 우리 집 처마 밑에 160

161 어느 날인가 신문을 보다가 TV 안보기 운동과 관련된 기사를 보았 다. 그래! 이거야 눈을 뜨면 TV를 켜서 밥 먹으면서도, 대화하면서도, 공부하면서도, 잠들 때까지 TV를 보고, 채널가지고 싸우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 었다. 그날 밤 가족회의를 했다. 주제는 TV 없애기. 회의결과 아빠와 아들은 찬성, 엄마와 딸은 반대. 모든 아빠들이 그렇듯이 아내에겐 이길 수 있어도 딸은 이길 수 없다. 강압적으로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아 TV 없 애기에 실패했다. 우리가 사는 집은 읍내에서 4km 떨어진 곳이라 유선방송이 연결되지 않아 옛날처럼 집밖에 세운 안테나에 의지해 정규방송만 볼 수 있다. 그 런데 하늘의 도움이 있어 회의 후 얼마 되지 않아 태풍이 지나가면서 그 안테나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당연히 TV는 먹통이 되어 버렸다. 난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아내와 딸은 안테나 고쳐 달라 고 날마다 아우성이지만 난 돈이 없다는 핑계로, 바쁘다는 핑계로, 힘들 다는 핑계로 하루하루 버티기를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TV 없이 사는 것에 익숙해져 가는지 아우성은 줄어들고 TV 없는 효과가 나 타나기 시작한다. 161 자녀교육수범사례 행복은 우리 집 처마 밑에

162 어른이고 애들이고 심심해 죽을 지경이어서 자연히 서로 대화도 많이 하고 장난도 많이 치고 그러다 지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손에 책을 든다. 하루는 새벽에 농장에 나가 일을 하고 집에 들어오니 가족들은 다 아 침을 먹고 직장으로 학교로 가고 당시 유치원에 다니던 딸아이만 아빠 와 함께 가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가 밥상을 차려두고 가서 밥 을 먹으려는데 딸아이가 내 옆에 앉아 반찬도 챙겨주고 이런저런 말을 건다. 만일 TV가 있었다면 TV 앞에서 넋을 놓고 앉아 있었을 텐데 말 이다. 지금도 가끔 아내는 이제 TV 좀 보고 살자 한다. 하지만 난 단호히 말한다. 내가 살아오면서 가족들을 위해 제일 잘한 것이 TV 없앤 것이라 생 각한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우리 집에 TV가 없을 것이고 당연히 애들 혼수에도 TV가 없어야 한다. 라고 지금도 다른 집에 가면 TV 앞에 넋 놓고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큰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작은 아이 유 치원 때부터 약 3년여 동안 TV 없이 잘 보내 준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난 진돗개 농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홈페이지를 개설해 매일 밤 컴퓨 터 앞에서 한두 시간은 보낸다. 대신 진돗개 관련 홈페이지와 카페에서 의 활동과 뉴스 검색만 하지 게임이나 오락은 하지 않는다. TV도 없으 니 큰 아이가 게임을 하고 싶어 늘 안달이다. TV 안 보는 대신 게임하는 것은 허락해 주고 있었다. 당시에는 보습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라 학교와 학원 숙제만 다 하고 나면 게임을 할 수 있었다. 큰 아이는 어릴 적부터 욕구에 대한 절제가 비교적 잘 되는 아이였고 아직은 공부보다는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게 자녀교육수범사례 행복은 우리 집 처마 밑에 162

163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한 관찰을 한다. 아이가 게임을 하기 위해서 숙제를 대충 하는 게 내 눈에 띈 것이다. 바로 아이를 불러 대화를 했다. 아빠 생각에는 네가 크면 공부하느라 게임할 시간도 없을 텐데 지금 게임을 하면서 보내는 한두 시간은 아깝지 않다. 하지만 아빠가 지금 중 요한 사실을 발견했는데 네가 게임을 빨리할 욕심에 숙제를 대충 끝내 는 것 같다. 숙제를 공부라 생각하고 해야지 그냥 빈칸만 채워 가면 된 다고 생각해서는 숙제를 하는 의미가 없다. 공부를 하는데 게임이 방해 가 된다면 안해야 되지 않겠냐? 했더니 제가 생각해도 그래요, 게임이 하고 싶어서 공부가 잘 안돼요 한다. 그럼 평일에는 게임을 하지 않고 주말에만 하면 어떻겠니? 하니 그럴게요. 한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1년여 동안 평일에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 오 늘도 일요일이라 아이에게 PC는 양보하고 난 사무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사업실패 후 친구들 만나는 것도 뜸해지고 일종의 대인기피증이 생겨 사람 만나는 것이 싫어져 집에만 있는 시간이 많아 자칫 우울증에 걸리 지 않을까 걱정도 했었다. 아이 또한 집이 시골이라 또래 아이가 없어 같이 놀아줄 친구가 없다. 그래서 우린 자연스럽게 둘이 친구가 되었다. 지난여름 내내 오후 해질녘에 아이와 난 야구 글러브를 들고나가 둘이 서 야구를 했다. 프로야구 중계도 함께 보면서 즐긴다. 둘이서 공유할 수 있는 취미가 생긴 것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아이들을 귀여워 할 줄도 모르고 직장생활 하느라 피곤에 지쳐 아이들과 제대로 놀아주지 못했는데 이제라도 아 163 자녀교육수범사례 행복은 우리 집 처마 밑에

164 이들과 함께 해 줄 수 있는 시간이 많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또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이들이 내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어렸을 적 교과서에 실렸던 파랑새 이야기가 있다. 파랑새가 행복을 찾아온 세상을 헤매다가 결국은 찾지 못하고 지쳐 돌아왔는데 바로 자기 집 처마 밑에 행복이 있더라는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부부 공무원이었지만 더 큰 욕심을 내다 결국 은 모든 것을 잃을 뻔하고 가까스로 찾은 내 행복들 내 아이들 만큼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그것 이 행복임을 느낄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행복들을 접하면서도 그것이 행복임을 느끼지 못하고 잡을 수 없는 꿈만을 쫓는 불행을 겪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내겐 소망이 있다. 그건 내 손자를 내가 기르고 가르치는 것이다. 거기에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따른다. 첫째는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 자녀교육수범사례 행복은 우리 집 처마 밑에 164

165 어야 하고 둘째는 심성 고운 며느리를 얻어야 한다. 그날까지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면서 아이들과 함께 최선을 다할 것 이다. 165 자녀교육수범사례 행복은 우리 집 처마 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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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자녀교육 수범사례 희망으로 가는 대화의 힘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보낸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지난 3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종내에는 제 삶 을 풍족하게 한다는 것도 알게 된 3년이었습니다. 물론 앞으로는 더 많은 시간을 그렇게 살게 되겠지요. 군말 없이 저와 동행해 준 딸아이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또한 말없이 저와 딸아이를 지켜봐 준 남편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이제 딸아이는 스무 살의 성년이 되었습니다. 세상과 정면으로 만날 준비를 하게 된 딸아이의 어깨가 무거워 보여 이전보다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됩니다. 다행스럽 게도 딸아이는 모든 것을 잘 알아서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의 어깨가 조금 가 벼워졌습니다. 언제나 밝게 웃는 모습으로 우리 가정의 소담스런 행복을 만들어 온 딸아이가 더 밝은 삶을 살아가게 되길 바라며 쓴 글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열 심히 살아가겠습니다. 박 혜 균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용흥동

168 엄마가 나중에 제 아이를 키워주시면 좋겠어요. 엄마라면 정말 잘 키 우실 거니까요. 기대해도 되죠? 여름휴가가 끝나던 날,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이제 설거지를 하 자 며 일어서는데 딸아이가 나를 잡고 말했다. 나는 일어서다 말고 다시 앉았다. 그걸 보고 거실에 앉아 있던 남편이 혀를 찼다. 또 시작했네. 또 점심때까지 수다로 시끄럽겠구먼. 나와 딸아이는 둘 다 그리 좋지 않은 습관이 하나 있다. 다행인 점은 남편이 그런 우리의 습관을 흐뭇하게 바라본다는 점이다. 일요일 아침 이면 늦은 아침상을 물리고서도 한참 동안 수다를 떠는 우리. 그러나 생 각해보면 이 수다가 우리 둘을 끈끈하게 연결해준 연결고리였다. 수다 로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었고, 인생을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지 에 대한 해답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 또한 딸아이로부터 배운 점이 많았다. 시행착오가 있었던 것은 고칠 수 있게 되었고, 나의 시행착오를 경험 으로 삼아 딸아이에게 이렇게 살면 좋지 않겠니? 라는 조언을 할 수 있 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우리는 반듯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는 하나의 가족 구성원이 되었다. 2004년 가을. 내게는 고등학교 1학년인 딸이 생겼다. 서로의 존재도 모른 채 살아온 17년 세월을 살아왔던 우리 모녀. 남편과 결혼을 함과 동시에 내 딸이 된 딸아이는 이혼 가정의 자녀들 이 겪는 혼란기를 고스란히 겪어온 아픈 가슴을 갖고 있었다. 자녀교육수범사례 희망으로 가는 대화의 힘 168

169 그래서였을까? 처음부터 나는 딸아이에게 새로운 가족으로 인식되지 못했다. 결혼을 하기 전부터 딸아이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남편과 나는 딸 아이를 유화하기 위한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자존감이 강한 아이들 이 불행 앞에서 자신을 다그치는 행동, 즉 안으로만 자신을 중무장하며 타인을 향해서는 손톱만큼의 마음도 열지 못하는 닫힘을 딸아이도 갖 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딸아이의 마음을 완전히 유화시키지도 못 하고 우리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것이 낫겠다는 주변의 충고도 한몫을 했다. 이런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딸아이의 얼굴에는 항상 차가운 얼음이 덮여 있었다. 잘 다녀왔니? 학교에 다녀온 아이에게 말을 걸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자기 방에 쏙 들어가면 저녁 식사 때까지는 나올 생각을 않는 아이였다. 친구도 없는지 등하교 시간이 컴퓨터처럼 정확했다. 그런 아이를 두 고 남편은 그냥 지켜보라고 했다. 이전에는 친구가 있는 듯했는데 이혼을 한 후에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아. 부모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친구들이 알까 봐 두려운가 봐.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남편의 말처럼 딸아이의 침묵은 자연스러워보였다. 남편과 대화하는 모습을 옆에서 봐도 예 또는 아니요 라는 대답조차도 없었다. 그저 고 개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남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제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전부였다. 거기에다가 자신의 방에는 그 누구도 들어오 지 못하게 했다. 하다못해 방 청소도 하면 안 될 정도로 딸아이는 자신 의 물건에 다른 사람의 손이 닿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 딸아이를 보면 서,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일정한 틀 속에 가둬놓는 폐쇄성이 너무 안타 까웠다. 딸아이가 하는 일은, 좋아하는 가수들의 CD를 사 모으고 노래 를 듣는 일이 전부였다. 실업계 학교인 덕분에 공부에 대한 압박감은 그리 없어 보였다. 집안 의 친척끼리 모여도 말 한마디 없는 딸아이는 침묵 그 자체로 성장해버 169 자녀교육수범사례 희망으로 가는 대화의 힘

170 린 것 같았다. 친척들도 원래 저랬는데, 엄마 아빠가 이혼 후에 더 그러 네! 하면서 제쳐놓는 형상이었다. 결국 딸아이는 집에서든 어디에서든 나 홀로 족이었다.저러다가 후일 에 사회생활은 어떻게 할 지, 결혼생활은 또 어떻게 할지가 걱정이 되었 다. 그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위치가 새엄마인 나의 자리였다. 어중간한 가족으로 3개월이 흘러 겨울 방학이 되었다. 그동안은 어중간할망정 아침이면 등교를 하고 저녁이면 하교를 하는 생활이라 서먹함의 부담이 없었는데, 방학을 하고 보니 걱정이 앞섰다. 하루종일 말 한마디 없는 아이와 서먹하게 어떻게 지내야 하나 싶었다. 그리고 그 첫날이 되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남편이 출근을 한 후에 방으로 들어가는 딸아이를 식탁에 앉혔다. 방학이네? 두 달간 쭉 같이 있어야 하는데 이제 말 좀 트고 살자. 그 렇지 않으면 너도 서먹할 테고 나도 서먹하지 않겠니?. 딸아이가 배시시 웃었다. 긍정의 답변이었다. 그런데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랐다. 결국 나온 말이 대학이 었다. 무슨 과를 가고 싶니? 네? 저는 그냥 취직할 건데요. 빨리 돈 벌어 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래요. 왜? 성적이 괜찮은 편이잖아? 아 그거요? 우리 학교는 시험범위를 좁게 주니까 그냥 벼락치기를 해도 되거든요. 그리고 성적도 중간인데 뭘요. 그럼 네가 하고 싶은 것은 뭐지? 노래요. 노래는 자신 있어요. 실은 제 꿈이 가수가 되는 거예요. 그때서야 나는 딸아이가 날마다 이어폰을 끼고 살면서, TV에 좋아하 는 가수가 나오면 눈이 뚫어져라 화면을 쳐다보던 일이 이해가 갔다. 딸 아이는 일요일이면 주로 음악 케이블 방송(m-net)에 채널을 고정해놓 고 종일 소파에 누워 TV를 시청했다. 그때마다 왜 저럴까? 했던 의문 자녀교육수범사례 희망으로 가는 대화의 힘 170

171 점이 해소되면서, 딸아이가 너무 늦어버린 꿈을 꾸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감도 들었다. 그래도 처음으로 자신의 꿈을 얘기했는데 싶어 의견 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날 저녁, 가수의 꿈을 밀어줘도 될까 하는 기대로 딸아이와 함께 노 래방에 갔다. 노래를 한 번 불러볼래? 딸아이는 노래를 꽤 잘했다. 하지만 가수가 될 정도의 재목은 아니었다. 남편에게 딸아이의 꿈을 얘기했다. 안 될 거야. 솔직히 내 딸이지만 외모부터 안 되잖아. 너무 늦었기도 하고. 그러니까 다른 재능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지만 딸아이는 자기 고집을 내세우며 말문을 다시 닫아버렸다. 가수가 될 것이다. 다른 꿈은 없다. 겨우 나와 말을 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방학 내내 남편이 출근한 직후면 늘 딸아이와 식탁에 마주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살아가는 이야기. 이성 이야기. 직업의 종류에 관한 이야기. 어떤 것이 가장 참되게 사는 것인가에 대한 토론도 이루어 졌다. 딸아이가 살아왔던 이야기. 좋을 때보다 싫을 때가 더 많았다는 이야기 속에는 딸아이의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살아 온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도 살지 않니? 하는 말로 딸아이를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얘기하다 보면 점심때가 되었고, 우리는 또 점심을 먹고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 집안일은 늘 오후로 밀려났다. 그렇 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딸아이는 아주 자연스럽게 설거지와 청소를 거 들 줄 알게 되었고, 내 의견을 신뢰하는 눈빛을 보여주었다. 아빠께도 자연스럽게 존댓말도 사용하고, 이웃 사람을 만나면 안녕 하세요? 라는 인사말도 건네게 되었다. 171 자녀교육수범사례 희망으로 가는 대화의 힘

172 가수가 되겠다! 는 말도 더이상 하지 않았다. 그러나 CD를 사 모으고 음악전문 케이블 방송을 보는 것은 여전했다. 그걸 보니 아직도 내가 파 악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듯했다. 나는 딸아이에게 내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한 번 적어달라고 했다. 이튿날, 가수가 되고 싶지만 다른 것도 해보고 싶어요 라는 내용의 편 지가 화장대위에 놓였는데 거기에서 딸아이의 재능이 발견되었다. 글쓰 기였다. 나는 딸아이에게 굳이 가수의 꿈을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냥 더 나은 선택을 위해 대화를 계속하기로 하고, 자신이 글쓰기에 재 능이 있음을 알게 해주려 했다. 우리의 대화 내용은 좀 더 발전하는 내가 되기 위한 것 으로 바뀌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에 딸아 이도 의견의 일치를 보여주었다. 글쓰기도 괜찮죠. 한 번 해볼래요. 라 는 딸아이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추천 도서 목록을 만들어 독서를 하 게 하였다. 화장실에도 책을 비치해두고, 침대 머리맡에도 협탁을 두 어 책을 얹어 두었다.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KBS의 역사스페셜을 녹화하면서 같이 시청했고, EBS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장르를 불문하고 함께 시청했다. 영화를 보러 다녔고, 손을 잡고 쇼핑을 하러 다녔으며, 박물관과 미술관 탐방도 휴일이면 함께 하 게 되었다. 딸아이는 처음에는 생소함에 어리둥절해했지만, 점점 세상을 알아가 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공부에는 취미가 없는 듯하여 굳이 공부를 해라 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스스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했다. 딸아이는 학교 특성상 상업 과목이 많았다. 상업 용어는 한자를 모르면 자녀교육수범사례 희망으로 가는 대화의 힘 172

173 헷갈리기 좋아 이해가 어렵기에 한자 공부를 하게 했다. 집에서 딸아이 가 책을 들고 와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할 때 한자의 훈을 풀면서 가르쳤 다. 가령, 賣 買 라면 팔 賣 와살 買 이니까 팔고 사는 행위 라는 식으로 하 는 거였다. 굳이 음만 외우게 하기보다는 이해가 훨씬 빠른 것 같았다. 같이 손을 잡고 다니면서 가게의 간판을 읽는 재미도 들였다. 한자로 된 것은 훈을 풀어 말했고, 영어로 된 것은 핸드폰의 사전으로 단어를 검색하게 하여 유사 단어까지 찾아보게 유도했다. 신문에서는 경제면 과 행정에 관한 기사를 주로 읽게 하며 전문 용어를 설명해 주었다. 물 론 내 의견을 덧붙이며, 딸아이의 의견도 물어보았다. 처음에는 미적거 리다가 대답이 나오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의견을 또렷하게 말 하게 되었다. 보름에 한 번씩 발행되는 신문사의 정보지인 맛있는 공부 로 자기 스 스로 공부의 요령을 찾을 수 있을 만큼 되자, 성적은 자연스럽게 올라갔 다. 물론 글쓰기 공부가 병행되었다. 짧은 글짓기에서 시작하여 살을 붙이다 보면 장문이 되는 과정을 거 치면서 딸아이의 글쓰기 실력은 조금씩 늘어났다. 독후감을 쓰게도 했 고, 박물관 견학을 다녀오면 탐방기도 짧게나마 쓰게 했다. 나중에는 무 슨 일이든 짧게 메모를 하는 습관이 생겨 굳이 글쓰기를 하라고 말할 필 요가 없게 되었다. 그때부터 딸아이의 인생 행보에는 가속도가 붙게 되 었다. 실업계 고교에 다니면서도 그냥 조그만 사무실에서 경리를 할 건 데 자격증을 왜 취득해야 해요? 하며 정색을 하던 딸아이에게 워드 프 로세서와 전산회계 자격시험을 치르게 했다. 딱 일주일 동안 가르쳤음 에도 딸아이는 워드 프로세서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실업고교생으로 서는 당연한 자격증이었지만, 그동안 세상에 나갈 준비가 전혀 없이 살 던 딸아이에게는 좋은 촉매제가 되어 주었다. 그 일을 기회로 하면 된다! 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 듯했다. 그와 동시에 우리 모녀는 아주 자연스러운, 애초부터 모녀였던 사이 로 발전했다. 남편을 제쳐놓고 쇼핑을 가는 것도 다반사였고, 영화관이나 음악회를 가기도 했다. 그런 우리 모녀를 두고 남편은 에이. 왕따네! 하면서도 흐 뭇한 표정이었다. 173 자녀교육수범사례 희망으로 가는 대화의 힘

174 그때가 기회였다. 나는 거실을 공부방으로 만들어버렸다. TV를 안방으로 보내고 거실 의 2개 면을 책으로 꽉꽉 채웠다. 거실 중앙에는 커다란 교자상 2개를 놓아두었다. 논술 지도사 공부를 해야 하는 나와 학교 공부를 하는 딸아 이. 그 통에 남편도 퇴근하면 자연스럽게 신문을 읽거나 책을 읽게 되었 다. 딸아이는 그동안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집으로 데려왔다. 딸아이의 친구들은 거실이 도서관인 우리 집이 꽤나 생경한 듯했고, 딸아이는 아 주 자랑스럽게 우리 집은 공부하는 집이야 하며 자랑을 했다. 대학을 가야겠어요! 고 3을 목전에 둔 2005년 10월. 드디어 나와 남편이 바라던 대답이 딸의 입에서 나왔다. 대학입학을 결정하기에는 조금 늦은 감은 있었지만, 스스로 공부를 하겠다는 각오였기에 무척 기뻤다. 나중에 아이를 잘 키우려면 저부터 공부를 좀 해야죠. 저는 아기를 정말 훌륭하게 키우고 싶거든요. 저처럼 미래의 계획도 없이 살아가는 아이로 키우기는 싫어요. 늦었지만 내신점수를 관리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딸아이에게는 따 로 과외를 시키거나 학원을 보낼 필요가 없었다. 내 자신이 상과를 전공 했기에 딸의 공부를 모두 봐줄 수 있는 이점이 있어서였다. 그러나 내신 을 관리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어, 공부보다는 딸아이가 긍정적인 삶의 방식을 갖게 되는 것에 더 많은 비중을 두면서 공부를 봐주게 되었다. 공부를 가르치면서도 절반의 시간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라는 방식으로 딸아이에게 자신감을 갖게 하도록 노력했다. 자녀교육수범사례 희망으로 가는 대화의 힘 174

175 그리고 다른 사람과 융화하며 살아가는 방법도 이론적으로나마 알도 록 했다. 그것은 딸아이에게 삶의 자신감을 준 듯했다. 그 자신감은 성적 향상으로 이어졌다. 물론 글쓰기도 부지런히 했고, 발표력을 향상시키는 훈련도 했다. 이 때부터 딸아이가 노력한 성과물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엑스포 관 람 후기 공모전 수상을 필두로 딸아이는 각종 공모전에서 시상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조용하게 있는 듯 없는 듯하던 아이가 학교에서도 주 목받는 대상이 되었다. 친구들이 집으로 찾아오는 일이 잦아졌고, 성적 도 상위권에 진입하게 되었다. 물론,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어느 정도 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적극성이 생겨났다. 무엇보다도 다행인 점은 언 제 어디서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고, 여러 사람들과도 융화를 한 다는 점이었다. 대학을 가기 전에 딸아이의 성격이 밝고 적극적으로 바 뀐 것이 너무나 다행이었다. 이제 대학을 선택해야 할 때가 되었다. 딸아이의 적성을 고려해야 했고, 어려운 집안 형편을 감안하여 졸업 후에 바로 취업을 할 수 있는 학교와 학과를 선택해야 했다. 딸아이의 장래가 걸린 일이었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딸아이와 진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한 술 더 떠 가정 형 편상 지방으로 이사를 해야 했지만, 딸아이만을 수도권에 두고 이사를 할 수는 없었다. 대학 선택은 이사를 갈 지방에 있는, 그러면서도 딸아이의 성적과 적 175 자녀교육수범사례 희망으로 가는 대화의 힘

176 성을 고려하여 선택해야 했다. 수능 시험을 치르기에는 딸아이의 국어, 영어, 수학 실력은 그리 높지 못했다. 특별전형으로 입학할 수 있는 수 시전형을 선택하기로 했다. 나는 학교로 찾아가서 딸아이의 적성 검사 표를 건네받았다. 두 번에 걸친 딸아이의 적성 검사 결과서는 [색채 감각과 미적 감각이 뛰어남]으로 되어 있었다. 집에서 곱살 맞게 카드를 그리는 것을 보고 감탄한 적은 있었지만, 우리 부부가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딸의 또 다른 재능이었다. 딸의 진로에 대한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늘 바쁜 남편은 이 문제를 내게 일임해주었다. 그동안 딸아이와 쌓은 유대 감이 자신보다 내가 더 많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또다시 딸아이와의 대 화가 길게 이어졌다. 각 대학의 전형 요강과 딸아이의 성적, 그리고 적 성과 취업 여건을 모두 비교ㆍ분석하였다. 그리고 한 곳의 대학에 의견 의 일치를 보았다. 대구에 소재한 영진전문대학 시각디자인과 였다. 특별 전형 요건도 괜찮았고, 취업률은 전국 전문대학 1위였다. 전년도의 합격선을 보니 딸아이의 성적으로는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거기에다가 우리가 이사 를 할 경북 포항에서 1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도 매력적이었다. 또 한 내 학창 시절을 고스란히 보낸 곳이 대구여서, 딸에게 대구라는 지역 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좋을 듯했다. 친정의 친척들이 대부분 대구에 살고 계셔서 딸아이의 정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를 안고 영진전문대학에 특별 전형의 원서를 제 출했다. 그동안 받은 상장의 복사본을 모두 챙겨 원서에 첨부했다. 상장 이 많다며 대학 측에서 일부러 전화를 해주셨다. 면접 보러 꼭 오실 거죠? 다른 대학에 가지 않을 거죠? 딸아이에게 이 말을 전했더니 자긍심이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대학교에서 저를 존중해 주나 봐요. 기분 좋다! 면접을 치르기 위해 대구를 왕복하면서 우리 모녀는 첫 기차여행을 했다. 나는 딸의 든든한 보호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분 좋은 여행이 었다. 수시 1차 시험은 8월 5일에 합격자 발표가 났다. 딸아이는 학교전체 자녀교육수범사례 희망으로 가는 대화의 힘 176

177 에서 가장 먼저 합격 통지서를 받은 수험생이 되었다. 친구들의 축하에 응답하는 의미에서, 딸아이와 친한 친구들을 불러 집에서 삼겹살 파티를 해주었다. 그때부터 우리 모녀의 이야기 주제는 더 발전하게 되었다. TV에 나온 연예인의 스캔들, 신문에 나온 가십거리도 우리들의 주제 가 되었고, 어떤 남자가 진정한 남자인가? 라는 주제로까지 토론을 할 정도가 되었다. 맨 처음, 딸아이와 말문을 시작할 때와는 달리 딸아이는 자신의 의견 을 조리 있게 말하는 일이 익숙해졌다. 덕분에 토론이라는 명제에 맞을 만큼의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알찬 시간을 갖게 해주었다. 9월, 우리는 포항으로 이사를 했고 딸아이는 전학을 했다. 수시 1차에 합격한 덕분에 전학은 홀가분하게 이루어졌고, 그간 밝아진 성격 덕분 에 딸아이는 기숙사 생활도 원만하게 치러냈다. 전학 후, 단 2개월의 학 교생활에도 불구하고 딸아이는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다. 졸업식에서 딸아이는 3년 개근상과 함께 성적 우수자에게 주는 기관 장 상을 수여받았다. 무엇보다도 기뻤던 것은,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친 구를 많이 사귀어 졸업식장의 시끌벅적함을 딸아이도 즐겁게 누린 것 이었다. 제가 지난달에 얼마를 벌었는지 아세요? 졸업을 앞둔 방학기간 동안 딸아이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80만 원 받았어요. 뭐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사 드릴게 요. 그날 나와 남편은 딸아이가 마련한 특식을 먹었다. 딸아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나는 친정아버지의 갑작스런 투병 생활로 간병을 하느라 딸아이에게 큰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 177 자녀교육수범사례 희망으로 가는 대화의 힘

178 구하고 딸아이는 바쁜 나를 대신하여 저녁밥을 짓고 청소를 했으며, 빨 래를 했다.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일을 솔선하여 하는 버릇이 생긴 것이 다. 가끔은 친정아버지께도 할아버지 라는 다정한 호칭을 붙이며 병실 에서 말동무를 해줄 때도 있었다. 그 다정함으로 새롭게 생긴 낯선 외가 집 친척들과도 잘 지내는 딸이 고마웠다. 지금 딸아이는 대구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경제 형편상 혼자서 지낼 수 있는 원룸을 구하지 못하고, 룸메이트와 함께 지내도록 했다. 남편은 난생처음 만나는 룸메이트와 딸아이가 잘 지낼 수 있을지를 걱정했지만, 나는 딸아이가 그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음을 믿었다. 나의 믿음대로 딸아이는 잘 지내고 있다. 네 것, 내 것을 따지지 않고 융화하며 함께 지내는 일이 익숙하게 된 덕분이다. 한 달에 한 번, 집으로 내려오는 딸아이는 수다쟁이가 다 되었다. 학교 생활, 친구들 이야기, 대구의 번화가인 동성로에 가 본 이야기. 이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어났던 일까지 소소하게 얘기를 한다 그 얘기들을 듣다 보면 딸아이의 변화된 모습을 새삼 느끼게 된다. 밝 고, 착하고, 자신의 할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 조화 로운 성격의 딸아이를 보는 일은 즐겁다. 가끔은 딸아이를 지켜보면서 후회를 할 때가 있다. 공부를 좀 하라고 할 걸. 하는 후회이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사람답게 사는 법 을 스스로 터득한 것만도 황감 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딸아이를 남들이 명문대라고 일컫는 곳에 입학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니 좋은 엄마였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딸아이의 말 덕분이다. 엄마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왔잖아요. 적어도 이룰 수 있는 꿈을 꾸 었고, 그 꿈에 맞추어서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이게 중요하죠. 자녀교육수범사례 희망으로 가는 대화의 힘 178

179 그러면서 딸아이는 내가 살아가는 힘이 되는 말을 곧잘 해준다. 나중에 제 아이는 엄마가 키워 주시면 좋겠어요. 대화의 기술을 아는 대한민국 최고의 자녀교육 전문가시잖아요. 179 자녀교육수범사례 희망으로 가는 대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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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자녀교육 수범사례 고맙습니다, 대촌중앙초등학교 연락을 받고도 꿈인지 생시인지 실감이 나질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소감 글을 보 내달라고 해서 그제야 화들짝 정신이 났지요. 세월~ 참 살아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운하게 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처럼 기분이 좋습니다. 가을의 청명이 맘 을 설레게 하네요^^ 사랑하는 남편이 곁에 있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번 교육 수기는 우리 아이들 때문에 쓸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엄마를 지 켜봐 준 아이들에게도 사랑을 전합니다. 저를 채찍질해 주신 분들께, 그리고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배 현 미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182 가을이 오려는지 계절이 몸살을 합니다. 이제 곧 마당의 감나무 잎에 도 단풍이 들겠지요. 나뭇잎에 드는 단풍은 일종의 멍이라고 하는데 붉 디붉은 단풍은 멍이 심하게 든 것이며 단풍이 잘 든 것은 그만큼 고통이 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생 자녀를 둔 제 마음에도 감잎 한 장 크기의 멍이 들 어 있습니다. 6년 전 처음 큰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 시키고 대촌중앙 초등학교의 학부모가 되기 위한 몸살 속에 생겨난 멍인데 아이가 초등 학교를 졸업할 만큼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는 그 멍이 단풍이라는 예쁜 이름으로 간직되길 바라며 이 글을 씁니다. 제가 사는 마을은 시골지역으로 아담한 규모의 초등학교가 있었습니 다. 도심에 지친 사람들이 자녀를 전학 보내고 싶어할 만한 정겨운 학교 였지요. 큰 아이가 그 학교 병설 유치원 3년을 다니고 초등학교 입학하 던 해에 마을의 초등학교가 폐교 되었어요. 폐교 직전 유치원 졸업식 때 불렀던 마지막 노래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아침마다 모여서 재미있게 지내던 사랑하는 유치원을 떠나가게 되었네. 우리우리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어깨동무 내 동무 잘 있거라 또 보자. 풍물놀이를 잘하는 학교라는 학교 현관의 단정한 간판을 뒤로하고 안 타까워 할 새도 없이 아이는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스쿨버스를 타고 과 거 대촌면의 소재지에 위치한 대촌중앙초등학교로 등교를 했습니다. 40명 정도가 그 학교로 통학하게 되었고 새로 찾아간 학교는 전교생이 200명 남짓 되는 학교였어요. 학교가 통폐합이 되다 보니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반이 두 반으로 나누어 지지 않아서 1학년 선생님과 아이들이 겪게 된 어려움을 학부모로서 학교에 건의해야 했습니다. 소탈한 성격의 우리 마을 학부모 손에 이끌려 난생처음 초등학교 교 장실에 들어갔을 때 새로 발령받아 오신 교장선생님께서는 걱정스러워 하시면서 학부모님들 어쩌죠, 장학사에게 들었는데 이 학교가 시에서 가장 낙후된 학교라고 하네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초보 학부모 로서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학교에 대한 서글픈 소식이었습니다. 그후 무슨 일이 있을 때 학부모 개인으로서는 학교에 의사전달하기가 자녀교육수범사례 고맙습니다, 대촌중앙초등학교 182

183 어렵다는 것을 느낀 후 폐교된 마을 학부모 중에 저는 학교운영위원회 에 들어갔고 다른 한 사람은 학부모회 임원을 맡게 되었습니다. 2002년 3월 학부모 총회에서 학교운영위원회 후보 소견 발표를 하 면서 저는 운영위원이 된다면 우리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그 시기 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책을 가까이할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습 니다. 또한 초보 학부모의 순수한 열정으로 여러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내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는 치기 어린 한마디도 덧붙 였습니다. 첫 아이를 학교에 입학 시킨 후 각인되었던 학교에 대한 인상을 지우 려는 소박한 발상이었나 봅니다. 운영위원과 학부모회 임원이 된 후 우리는 마을의 폐교된 학교와는 여러모로 다른 대촌중앙초등학교에서 그곳의 학부모님들과 선생님들 과 부딪치기 일쑤였습니다. 저는 소심한 성격에 부끄럼을 타는 사람인데 그 당시 난생처음 접해 보는 학교운영위원회 회의 자리도 부담스러웠고 무슨 말이든 가벼운 마 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원칙을 내세운 저는 지금으로부터 6년 전 큰 아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학부모회 임원 네 명중의 한 사람인 우리 마을 학부모에게 그곳 학부모회에서 20만 원을 내라고 했는데 전 화를 받고 임원을 포기해야 할지 돈을 내야 할지 그 학부모는 힘들어 했 습니다. 시골 형편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학교운영위원회에 들어가서 그런 분위기 속에 어찌해야 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렇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제가 인터넷 상담실에 올린 글 을 어느 기자가 읽고 해마다 학기 초가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불법 찬조금 뉴스 보도에 몇몇 학교와 함께 대촌중앙초등학교를 포함시킨 것입니다. 그 일로 저는 공개석상에서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 니다. 세상에 자기 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방송에 나오게 하다니! 학교운영위원회, 선생님들, 학부모님들... 특히 대촌은 혈연과 지연으 183 자녀교육수범사례 고맙습니다, 대촌중앙초등학교

184 로 연결된 농촌지역사회였기 때문에 그 사건의 여파는 무척 컸습니다. 왼쪽 옆구리가 심하게 아파왔고 새벽 3시가 되도록 잠을 못 이뤘습니 다. 소심한 성격이 일을 벌인 후 수습을 못 한 것입니다. 종합검진을 받 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소진되었습니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대상 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낀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한없이 쓰러져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시 털고 일 어나야 했습니다. 어쨌든 내 아이가 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3월 학부모 총회에서 운영위원 후보 소견 발표를 할 때 했던 말 을 기억해냈습니다. 어린이 책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학교 아이들이 좋은 책을 읽 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겠습니다.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미 벌어진 상황을 견디면서 교장선생님께 한 달에 한 번씩 학교도서관에서 학부모 독서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허 락해주시길 건의 드렸습니다. 그때는 마침 광주의 각 학교마다 학부모 독서회가 꾸려지는 시기였고 광주시교육청에서도 특수 시책으로 독서 의 생활화 정책을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5월 이 되자 우리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2002년 5월 대촌중앙초등학교 제1회 학부모 독 서토론 모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햇빛이 비춰주는 학교 도서관에서 우 리 학교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권해주기 위해 매달 한 권의 어린이 책을 읽고 토론하기로 정했습니다. 독서토론회가 끝나고 그냥 헤어지기 아 쉬워서 장소를 옮긴 후 2부 순서로 인형극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인 형극 하는 분에게 부탁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다음에 또 공 자녀교육수범사례 고맙습니다, 대촌중앙초등학교 184

185 연하느냐는 아이들의 말을 들으면서 시골에 위치한 지역 특성으로 문 화적 혜택을 못 누리는 아이들에게 학교도서관이 문화 공간으로 활용 되어야 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학부모 독서회가 해야 할 일도 분명해 졌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너그러운 성품으로 당시의 그 언론보도 사건이 있 었음에도 학부모 독서토론회 일로 매달 우리들이 모일때 마다 학교급 식을 꼭 먹고 가도록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가 통폐합될 때 약속했던 일들은 문서화 되어 있 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켜지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학부모회 임원이었 던 우리 마을 학부모는 2학기 때 생계 문제로 이사를 갔습니다. 소탈하 고, 사람 가리지 않고, 선생님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낼 줄 알고, 인정이 많은 그 학부모가 떠난 빈자리는 컸습니다. 혼자 남겨져서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공공도서관에 가서 어린이 책 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들이 읽으면 좋겠다 싶은 책들의 목록을 작성하 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그 목록을 학 교에 드리면서 반영해주시길 건의했습니다. 매달 독서회 모임을 갖는 한편, 봄과 가을에는 독서회에서 주관하는 학부모 강좌를 실시하고 가 을이면 어린이 교육문화운동을 펼치는 시민단체에서 여는 가을 책문화 잔치에 회원들과 아이들이 함께 다녀왔습니다. 그곳에 가서 인형극과 빛 그림, 연극 등을 무료로 관람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학교 스쿨버스를 대절해서 연 1회, 어린이와 함께 떠나는 독서 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연말이 되자 학부모 독서회의 한 해 동안의 활동을 정리, 회원들의 글 과 어린이들의 글도 실어서 독서회 문집을 만들었고 300부를 인쇄해서 전교생에게 배부했습니다. 첫 아이를 입학시킨 후 벌어진 일련의 일들이 가라앉기만을 바라며 다음해에도 학교운영위원회와 학부모 독서회 활동을 계속 했습니다. 학부모 독서회 활동 3년째인 2004년이 되자 독서회는 회원이 늘어나 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이와 함께 떠나는 독서기행에 40명이 넘게 참여 해서 스쿨버스 자리가 비좁을 정도가 되었고 독서토론 모임 때는 15명 185 자녀교육수범사례 고맙습니다, 대촌중앙초등학교

186 의 학부모님들이 나와서 책을 읽고 열띤 토론을 했습니다. 토론이 끝나 면 인근에 있는 고경명 의병장을 기리는 사당 포충사에서 문화해설을 진행했고 어린이들 놀이마당도 펼쳤습니다. 버스 편이 불편해 바깥으 로 나갈 수 없는 형편을 고려해서 집을 개방해 여름 방학 전 어린이 체 험마당을 열기도 했습니다. 2004년 10월, 독서회 활동 보고서를 쓰다가 우리 학교 학부모 독서 모임이 이 지역 어린이들에게 언제나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을 담아 독서회 이름을 풀씨독서회 로 정했습니다. 지난 3년 동안의 햇살과 바람과 비...이것들이 드디어 단단한 풀씨 한 톨을 만들어 낸 것 입니다. 독서회 대표로 일해 온 지 3년이 되자 인수인계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입학한 해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나름의 책 임감으로 소임을 다했으니 이제는 한 사람의 독서회원으로 돌아가서 쉬 고 싶었습니다. 2005년에 일할 새로운 풀씨 독서회장이 선출되었습니 다. 그동안 학교 참여를 하면서 줄곧 저를 괴롭혀 온 생각은 보통 학교에 서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의 부모님들이 학교 참여를 하는데 그렇지 못 하면서도 자청해서 학교 참여를 하고 있으니 제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는 것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태어난 지 21일째 되던 날 뇌수막염을 앓아서 커오는 동안 내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성장이 늦은 둘째 아이를 더 많이 보살피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앞가림 도 못하고 쥐뿔도 없으면서 오지랖 넓게 학교 일에 대해 왜 그리 관심이 많을까 하는 자조 섞인 마음으로 2005년부터는 슬슬 활동들을 접기 시 작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흘러갔습니다. 2006년이 되어 둘째 아이가 초등 1학년을 마치고 2월 종업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아이의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재홍이가 다쳤는데 놀라지 말고 oo의원으로 오세요. 차분한 선생님의 목소리에 저는 별일 아닌가 보다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자녀교육수범사례 고맙습니다, 대촌중앙초등학교 186

187 그런데 병원에 가서 진료 대기실에 앉아있는 둘째 아이의 얼굴을 보 고 놀라고 말았습니다. 마치 권투 선수에게 심하게 얻어맞은 듯 퉁퉁 부 은 상처투성이 얼굴에 특히 코 밑 인중 부분은 피투성이였습니다. 그 얼 굴을 보고 몹시 화가 나서 저는 아이에게 누가 그랬어? 얼굴이 왜 이 렇게 됐어? 물었지요. 옆에 앉아 계시던 담임선생님은 재홍이가 먼저 놀렸어요. 하고 재차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 한 마디에 그래, 우리 학교에 오셔서 4년 동안 애쓰시다 가 올해 3월 드디어 다른 학교로 떠나시는데 종업식 며칠 안 남겨두고 이런 일로 선생님이 마음 쓰지 않으시도록 해야겠어. 그래서 어떤 상황 이었는지 여쭤보지도 않고 내 선에서 이 일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습 니다. 그렇지만 그날 오후 아이의 얼굴을 본 남편은 화가 나서 114로 학교 전화번호를 물어 담임선생님에게 학교에서 이렇게 심하게 다쳤는데 보험 처리는 해주셔야 하지 않나요? 하고 따졌습니다. 그 전화 통화 이후 저녁에 가해자 부모님들이 찾아왔는데 한 분은 굉 장히 화가 나 있었습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학교에 쳐들어갈 태세였습 니다. 저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정말 치료비를 받기 원해요? 그렇다면 당신이 아닌 내가 내일 아침에 학교에 가겠어요. 대신 저, 앞으로 학교 운영위원회 활동을 다시 해야 할 거예요. 사고 경위는 수업 끝나고 스쿨버스를 기다리던 재홍이와 아이들이 잡 기 놀이를 하다가 재홍이가 도망가는데 뒤에서 잡았고 아이가 돌로 넘 어져 코밑을 찍었는데 뒤에서 겹쳐 넘어지는 바람에 큰 사고가 난 것이 었답니다. 알고 보면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는 놀다가 생긴 사고였습니다. 문제 는 스쿨버스 기다리는 동안 이렇게 종종 사고가 난다는 것이었죠. 그 일로 저는 집에 있으면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내 아이를 남부럽지 않게 잘 키우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깨달았습니 다. 학교 참여를 했던 3년 동안 아이들이 사고 한 번 나지 않았다는 사 실도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1년 휴식에서 깨어나 2006년 3월에 풀씨독서회 회원들과 함 187 자녀교육수범사례 고맙습니다, 대촌중앙초등학교

188 께 다시 운영위원 후보 등록을 했고 학부모회 대표도 출마하기로 했습 니다. 이왕 피할 수 없게 된 마당에 늘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뛰어들 엄두를 못 냈던 일을 자청한 것입니다. 2006년 3월, 학부모 총회가 있던 날 남편은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 원 중이었습니다. 내 속 어디에서 이토록 독한 마음이 나오는지 저는 주 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회장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치료비를 타낸 사 건 으로 이미 한바탕 이야깃거리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지요. 선거를 통해 운영위원과 학부모 대표로 당선이 되자 어느 학부모님이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평소에 돈을 걷지 말자는 의견을 주장하는 것 으로 알고 있는데 이제 회장이 되었으니 어떻게 할지 계획을 말해주세 요. 저는 사면초가라는 말이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학부모회 도 뭔가 일을 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임원회비라는 강제적 각출은 안 되 니 임원회비 폐지와 함께 1구좌 1만 원의 후원을 해주시면 좋겠노라고 했습니다. 이로써 큰 목돈이 만들어지던 학부모 총회의 추억은 사라지 고 소박하다 못해 앞으로 이 모임이 지속될 수 있을지 모두에게 의구심 을 자아내게 하는 학부모회가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저와 함께 학 부모회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을지 걱정했지만 고맙게도 세 분의 학 부모님이 함께 활동하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수년 전 처음 이 자리에 섰을 때처럼 올해 계획을 말했습니 다. 작년 학부모회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여름 방학 때 우리 학교 어 린이들을 대상으로 체험교실을 열겠습니다. 돈이 없는데 무슨 배짱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스스로도 참 대책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장 급한 일은 여름 체험 교실에 쓸 자 금을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우선 급한 대로 집에서 부업으로 하는 일 을 토대로 학부모회 수익사업을 했습니다. 수익 사업을 통해 여름 체험 교실을 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방학 1주일 전 여 름 방학 체험교실 알림장을 학교 안내문을 통해 전교생에게 배부했습 니다. 일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7/26 : 손수건 천연 염색하기 (홍화, 치자, 잿물, 황토) 자녀교육수범사례 고맙습니다, 대촌중앙초등학교 188

189 7/27 : 강령탈춤 중 팔목중이 추는 춤 배우기 7/28 : 도자기 만들기 체험교실 자료집을 만들고, 재봉틀로 어린이들이 염색할 때 쓸 손수 건을 만들고 염료를 준비하고, 외부 강사를 섭외하고, 도자기 만들 흙을 사왔습니다. 체험교실 주제가 우리 문화 였기 때문에 날마다 전시할 전시물품도 수집해왔습니다. 체험교실 때 학교도서관의 빔 프로젝터를 이용하기 때 문에 관련 자료를 디카로 찍는 작업도 했습니다. 알림장을 보낸 후 과연 아이들이 체험교실에 몇 명이나 참가할지 마 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9시 학교 도서관에 갔더니 벌써 선착순 정원 40명이 넘게 접수되어 있었습니다. 사서 선생님께 여쭤보니 5학년을 맡고 계신 두 분 담임선생님께서 반 아이들에게 좋은 프로그램이니 빨리 접수하라고 하셔서 알림장을 배부 하자마자 아이들이 접수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40명을 넘어섰 지만 접수증을 내미는 아이들에게 차마 접수가 끝났다고 할 수 없어서 들어오는 대로 접수를 받은 결과 모두 57명의 어린이가 등록했습니다. 5학년 두 분 선생님께 감사했고, 처음 여는 학부모회 체험교실에 참가 하겠다고 도서관을 찾아온 어린이들이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사흘 동안의 체험교실을 통해 변변한 문화센터 하나 없는 이 지역에 서 학교 공간이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장소인지 다시금 절감했 습니다. 한편, 2006년은 저에게 몹시 힘든 해였습니다. 남편이 장폐색으로 1차 수술을 받은 후 분당에 있는 서울대학교병원에서 2차 수술을 받아 야 했습니다. 수술 후 한 달 동안 남편은 음식을 먹지 못하고 미음과 같 은 영양제를 맞으며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저는 분당과 광주를 오 가는 고속버스 속에서 기약 없는 미래에 대해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을 어렵게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나라는 깨달음은 나의 성격과 행 동거지를 다시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189 자녀교육수범사례 고맙습니다, 대촌중앙초등학교

190 그래 올해는 나에게 공부의 해야. 매듭을 푸는 공부, 거친 마음을 정 화시키는 공부,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공부... 남편은 더디지만 서서히 회복을 보이기 시작했고 겨울이 될 무렵에는 네 식구가 오순도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학부모회를 생각할 때 항상 가슴이 아팠지만 여름체험교실을 했던 것으로 아쉬우나마 마음 정리를 하기로 했습니 다. 교육의 한 주체인 학부모의 설 자리는 학교 안에 너무 미약하며 우등 생이나 임원 위주로 진행되는 풍토를 바꿔보기 위한 작은 시도는 많은 사람의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아이나 잘 키워라. 그런데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오는 걸까요? 두 번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리라는 제 예상을 뒤엎고 2007년 올해 학부모회는 기사회생을 하 기 시작했습니다. 자생적으로 학부모 회의가 결성되었으며 저학년 학 부모님들이 카페도 만들었습니다. 그에 힘입어 우리도 대촌중앙초등학 교 학부모회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카페가 생기니 반년이나 묵혀두었던 작년 여름 체험교실 사진들이 드디어 환한 방으로 나왔습니다. 올해는 5월의 쉬는 토요일에 학교 숲 체험 이라는 주제로 토요문화 체험을 신설해서 실시했습니다. 접수창구를 마련하기 무섭게 학교도서 관으로 달려오는 아이들 등살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며 우리는 행복한 엄살도 피웠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이어 2년째 실시하는 여름 방학 체험교실을 올해는 방 학 마지막 주간에 실시했습니다. 첫날은 도자기 만들어 가마에 굽기, 둘 째 날은 강령탈춤 사자춤 배우기, 셋째 날은 조각보로 핸드폰 고리 만들 기, 넷째 날은 밀짚으로 여치집 만들기 체험을 했습니다. 접수 74명, 참 가자 65명이 4일 동안 비가 오는 것도 아랑곳없이 성실히 참여했습니 다. 모둠활동을 위해 도우미 선생님으로 참여한 학부모님들이 15명이 었습니다. 학교에 출근하신 선생님들께서는 시간마다 오셔서 둘러보시 고 아이들을 격려해주셨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라는 말밖에는 달 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은 여름 방학 체험교실이었습니다. 선생님과 학 자녀교육수범사례 고맙습니다, 대촌중앙초등학교 190

191 생들과 학부모님들이 한마음이 되어 함께 하니 우리들의 고민이 헛되 진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첫 마음이 담겨있는 학부모독서회 풀씨도 올해 6살이 되었습니 다. 한 때는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여겼던, 마음속으로만 그려보았던 그 림들이 어느덧 현실이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도 이 제는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대촌중앙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아이를 둔 학부모로서 6년여라는 시 간동안 마음에 들어야 했던 멍 자국이 올가을에는 고운 단풍으로 피어 나기를, 그렇게 간직되기를 이 밤 간절히 빌어봅니다. 191 자녀교육수범사례 고맙습니다, 대촌중앙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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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자녀교육 수범사례 아이들과 함께 꿈을 키워가는 엄마 주일 날 아이들과 함께 교회를 다녀오면서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를 보고,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돌아왔었는데 정말 좋은 일이 생겨 서 기쁩니다. 나의 하나님께 먼저 감사드리며, 불만이 있어도 엄마 의견에 따라준 아이들과 곰처럼 14년간 한 학원에서 가족과 학생들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남편 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돌아 가신 아버지께서 약주를 좋아하셔서 가정환경이 좋지 못했지만 3남매를 위해 언 제나 열심히 생활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제가 마음을 더 아프게 해드릴 때가 많았던 것 같아 지금도 어머니 생각만 하면 눈시울이 뜨 거워집니다. 부족한 저의 글을 선정해주신 '교육인적자원부'와 'EBS 교육방송'에 감사드리며 저를 믿고 도서관을 맡겨 주신 '이사석 교장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 사드립니다. 신 진 숙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

194 저는 부산에서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주부입니다. 작년까지는 집안 일과 가족들 챙기는 일이 주된 일이었지만, 지금은 학교 도서관 일을 하 는 도서관 엄마가 되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도서관 엄마 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저를 믿어주시고 도서관 일을 맡겨 주신 교 장 선생님과 여러 선생님들의 배려도 계셨지만, 저의 세 아이들이 아니 었다면 아니 엄마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이룰 수 없는 꿈이었습니다. 엄마가 될 아무런 준비와 지식도 없이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버렸습니 다. 첫 아이 때는 잠자기 전이라도 동화책을 읽어 주곤 했는데, 둘째 아 이 이후로는 동화책 테이프를 틀어주는 정도 밖에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이 흘러 막내가 어린이집을 다니고 둘째가 유치원을 다닐 때, 유치원의 부모교육 프로그램에서 푸름이에 대한 비디오를 보 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도서관에서 푸름이 이렇게 영재로 키웠다. 라는 책부터 시작해서 ABC 밖에 모르는 엄마가 현수를 영어 천재로 키운 이야기, 유대인의 천재교육 등 자녀교육서 위주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주 말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필요한 책은 빌려왔습 니다. 저와 아이들을 위해서 피곤한데도 항상 함께해준 남편 덕분에 우 리 가족은 2005년 구포도서관의 책 읽는 가족 에 선정되기도 했습니 다. 북구에 있는 디지털 도서관의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여 독 서 대학 수료증 과 자녀 논술지도 수료증 도 받게 되었고, 2년 정도 참 여했던 독서 토론회 모임도 엄마들과 좋은 정보를 주고받는 유익한 시 간이 되었습니다. 독서 교육을 받으면서 아이들에게도 독서 토론회 가 유익한 시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비용이 드는 곳을 보낼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에 초등학교 독서 토론회가 있는지 알아보았 지만, 요즘 아이들이 거의 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모임이 제대로 운영되 지 않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저의 전화 한 통화로 구포 도 서관의 사서 선생님께서 초등학생 독서 토론회 를 만들어 주셔서 그때 6학년이었던 큰 딸아이도 독서 토론회 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녀교육수범사례 아이들과 함께 꿈을 키워가는 엄마 194

195 그렇게 구포 도서관과 인연을 맺어 버스로 30분 정도 걸리지만 한 달에 두 번 정도 즐거운 마음으로 구포 도서관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사서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그해 범시민 독후감 대회 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의외로 아이들이 아닌 제가 교육감님이 주 시는 최우수상 받게 되어 아이들이 저보다 더 즐거워하였습니다. 그 후로 글을 쓰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계속 글도 써 보 게 되었고, 다음해에는 원 북 원 부산 독후감 공모 에서 구포도서관 관 장님이 주시는 상도 받는 기쁨을 얻었습니다. 구포 도서관의 초등학교 독서 토론회 모임도 지금은 새로 도서관을 지어서 시설이 넓고 좋지만, 2년 전만 해도 오래된 건물에 장소가 없어서 관장님께서 관장실을 빌려 주셔서 아이들이 토론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관련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보니 학부모 교 육원 이라는 곳도 알게 되었고, 학부모 가르치미 1기 로 독서지도과정 을 60시간 수료한 뒤, 토요 휴업일 날 학교로 독서지도 봉사 활동도 다 니게 되었습니다. 봉사활동도 의미가 있었지만 제 아이들과 함께할 수 없어 18시간의 봉사활동으로 가르치미 활동은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 만 학부모 교육원 에서 했던 봉사활동의 경험으로 지금 아이들의 학교 도서관에서 토요휴업일 날 책 읽어 주는 시간 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 교 도서관을 활용한 토요 체험학습 프로그램으로 한 학기 동안 진행했 으며, 1학기가 마치는 마지막 수업에는 디지털 도서관에서 책 읽어 주 기 를 하고 계시는 이야기 수레 선생님 들이 오셔서 그림 동화, 옛 이야 기, 영어 동화까지 3편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셔서 우리 아이들에 게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름 방학 동안에는 4학년인 둘째와 2학년인 막내와 함께 출퇴근을 함께하며 도서관에서 마음껏 책도 읽고, 영어 체험실에서 영어 공부도 하며 방과 후 프로그램인 컴퓨터까지 모두 다 학교에서 할 수 있어서 행 복했습니다. 큰 아이는 중학교 2학년인데 아빠가 다니는 학원에 다니고 있어서, 학원에 가지 않는 날을 이용해서 학교 도서관을 함께 갔습니다. 세 아이 195 자녀교육수범사례 아이들과 함께 꿈을 키워가는 엄마

196 중 큰 딸이 책을 제일 좋아하고 잘 읽는 편인데, 그래도 첫 아이라서 잠 자기 전 몇 권 안 되는 책이라도 읽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아침 세수를 하고 나면 어린이 신문 부터 읽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어린이 신문을 받아 보았고, 6학년 때는 어린이 기자 로 활 동하며 기사를 자주 올려 공로상도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방송부 활동 을 하며 아나운서 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고, 중학생이 되어 교육연구 정보원의 청소년 방송부 활동을 하면서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가 되겠 다'는 야무진 꿈을 가진 딸입니다. 엄마들이 보편적으로 그러하듯이 큰 아이에게 기대감이 많은 것이 사 실입니다. 저 역시 작년에 박원희가 쓴 공부 9단 오기 10단 이라는 책 을 읽고, 민족 사관학교 에 관심을 가지는 딸아이를 위해서 민사고 입 시 설명회 에도 다녀왔었고, 올해는 국제고등학교 입시 설명회 에도 다 녀왔습니다. 아이를 위해서 대신 공부를 해줄 수는 없더라도 필요한 정 보라도 주고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었습니다. 민족 사관학교에 더 관 심이 많아 보이지만 냉정하게 민사고에 갈 성적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리고 실력이 되더라도 덕고 장학생 의 혜택이 아니라면 생각지도 못할 일입니다. 그래서 며칠 전 국제고 입시 설명회 를 다녀오면서 그 학교 방송부로 활동하고 있는 언니의 전화번호도 알아오고 궁금한 점 이 있으면 연락해 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얼마 전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 라는 김현근 학생의 글 을 읽어보니, 현지에서 유학생활을 먼저 하고 있는 선배들에게 받은 정 보들이 도움이 되었다는 말이 생각이 나서였습니다. 시험기간인 지금도 책이 옆에 있으면 동생들 책까지 읽어 버리는 덜렁이 큰 딸이지만, 아파 트에서는 개그맨 언니 로 불리는 유머와 재치가 많은 딸입니다. 독서도 꾸준히 해야겠지만 글도 자주 써보아야 한다는 제 생각 때문에 글쓰기 도 학교에서 만들어 주신 생각의 날개 라는 독서활동지에 꾸준히 기록 하여 초등학교에 이어 중학생이 된 작년에도 다독자 로 선정되어 대표 로 상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독서지원시스템을 이용하여 독서 퀴즈도 풀어보고, 구청 신문에 글을 자녀교육수범사례 아이들과 함께 꿈을 키워가는 엄마 196

197 올려 보기도 하였으며, 신문을 활용한 글쓰기 교실에도 참여하였습니 다. 그런 노력 덕분에 작년에는 동사무소의 마을문고에 원고를 내어 대 통령기 독서경진대회 에서 중등부 북구 우수상 을 받게 되었고, 부산시 에서 10가족을 선정하여 다자녀 모범 가족상 을 주셨을 때, 글을 보내 다른 가족의 이야기와 함께 대추나무에 걸린 행복 이라는 책까지 내게 되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어제는 저와 큰 아이가 쓴 글이 함께 부산광역시 교육청에서 발행하 시는 비전 21 부산교육 이라는 책에 실려 아빠에게 자랑도 했답니다. 저희 둘째 딸은 장래 희망이 너무 많아 아직 정하지도 못했지만, 얼마 전 교내 영어 말하기 대회 에서 장래 희망을 가수 겸 배우로 발표를 해 서 우수상 을 받았습니다. 저는 아이들 영어 교육을 위해서 부유한 사 람들처럼 해외 연수 나 영어 학원 을 보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학습지 와 학교 영어 체험실을 활용하며 최대한 아이들에게 테이프를 자주 들 려주고 있습니다. 식사를 할 때와 간식을 먹을 때 아침에 아이들을 깨울 때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항상 테이프를 자주 들려주기 위해 노력하 고 있습니다. 큰 아이 때부터 영어는 EBS 프로그램을 이용해 도라 도라 영어나 라 와 Go Go giggle 같은 아이들이 재미있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보여주었더니 재작년부터는 잉글리시 카페 도 함께 즐기며 보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프로그램이 종료가 된다며 아쉬워하고, 한번 출연해보지 못한 것에 더욱 아쉬워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습관이듯 식 탁에 앉을 때마다 테이프를 틀어 주었더니 어느 날 제가 잊어버리고 테 이프를 틀지 않자, 막내가 알아서 테이프를 틀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습관 때문인지 큰 아이는 학교 영어급수제 에서도 4급까지 합 격하였고, 3급은 교육청으로 시험을 치러 갈 예정입니다. 4급까지 딴 학생이 전교 400명 중에 5명 정도이니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막내도 어린이집을 다닐 때부터 혼자서 영어 테이프를 틀 어 놓고 어린이집에서 사용하는 영어 동화책 듣기를 좋아하더니, 책 내 용을 외워서 읽는 것이었습니다. 저 또한 아이들을 위해서 집안에서 한 두 마디의 영어를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아이들을 깨울 때 197 자녀교육수범사례 아이들과 함께 꿈을 키워가는 엄마

198 나 잠자리에 들기 전, 음식을 권할 때나 신호등을 건널 때 등 쑥스럽지 만 아이들과 함께 학습지로 공부한 내용을 복습하고 활용하도록 노력 하고 있습니다. 4학년인 둘째딸은 학교 CD도 주말이면 동생과 함께 듣고, 중학생 큰 아이의 테이프를 아침 식사 시간에 틀어 놓았더니 동생들도 어느새 언 니, 누나와 함께 외우게 되었습니다. 올해부터는 아이들이 다니는 신덕초등학교가 1,2학년 영어 연구학 교 로 선정되어 Sinduk English Station 이라는 영어 체험실이 생겼습 니다. 그래서 영어로 영화도 보고, CD로 영어 동화도 들으며 여러 가지 영어 체험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 큰 대회에서 상을 받은 경험은 없지만 막내도 교내 영어 말하기 대회 에 참여하여 누나와 함께 상을 받으니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이가 방학 때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오며 하는 첫 마디가 아, 구수한 책 냄새. 라고 이야기 합니다. 어느덧 아이들은 책과 친구가 되 었고, 우리는 매일 도서관에서 보물찾기 를 하고 있습니다. 무슨 보물 을 찾느냐고요? 책 속에 들어 있는 지식의 보물 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활동성 있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라 차분히 앉아 공부하고 책 읽기가 힘 든 것 같아 보이지만, 그래도 언니가 하는 것을 보고 언니를 이어 어린 이 기자 활동도 하고 있으며, 북구 신문에도 글을 올려 보기도 하였습 니다. 신문에 반 아이들이 공개 수업한 내용과 친구들 사진이 실려 선생 님께서 교실 뒤에 기사를 붙여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세 아이 중 제일 정도 많고 애교도 많으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는 열 심히 집중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유치원 때 언니가 하는 줄넘기를 배우 더니 작년과 올해 같은 학년의 줄넘기 대회 에서 1등을 하는 결과도 얻 었습니다.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를 풀 때도 답지의 해설을 보고 풀어보 라고 해도, 몇 번 더 스스로 풀어 본 다음 그래도 풀리지 않으면 그때서 야 해설을 읽어보며 푼답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여름 방학 때는 숙제로 짧지만 창작동화 한 편도 지었습니다. 조금 더 보충하고 수정한다면 꼬마 작가가 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자녀교육수범사례 아이들과 함께 꿈을 키워가는 엄마 198

199 둘째 딸의 일기를 살짝 소개하겠습니다. 2007년 7월 7일 토요일 날씨: 맑음 제목: 느낀 일 엄마가 한자, 영어책, 지구본을 도서실에 갖다 놓자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반대를 했다. 도서실에 놔두면 아이들이 부수고 망가트리기 때문이다. 잠시 뒤, 저녁밥을 먹고 감기약을 주시며 엄마가 말씀하셨다. 무지개 물고기도 처음엔 자기에게 있는 반짝이 비늘을 나누어 주기 싫었지만 나중에는 한 개만 가지고 친구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잖아. 엄마는 다른 사람들 에게 베풀면서 같이 쓰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같이 쓰는 좋은 일 을 많이 해야겠다. 고 생각했다. 오늘 하루가 나에게 좋은 교훈을 얻게 해 주는 하루였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똑똑한 아이로 자라는 것도 좋지만, 예의 바르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길 바랍니다. 아이들을 위한 기도를 할 때는 건강하고, 착하고, 슬기롭게 자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를 빠트리지 않습니다. 막내인 아들은 위로 누나가 둘이라서 그런지 성격도 여성스럽고, 마 음이 여려서 걱정입니다. 하지만 막내도 막내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습 니다. 막내는 책에 있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합니다. 요즘은 만화책의 그 림을 모방해 그리기를 즐깁니다. 요즘은 이런 상상도 해봅니다. 딸아이들이나 제가 글을 적고 막내가 그림을 그려서 예쁜 동화책을 내는 상상 말입니다. 아직은 꿈같은 상상 이지만 이 꿈도 계속 노력해나간다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희 집은 평일에는 교육방송을 보는 것 외에는 거의 텔레비전을 켜 지 않습니다. 그리고 컴퓨터 역시 숙제를 하거나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누나들이 공부하는 시간에 책 을 보거나 책에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더니, 언제부터인가 A4용지 를 붙여서 책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199 자녀교육수범사례 아이들과 함께 꿈을 키워가는 엄마

200 아들의 꿈은 우주에 가보고 싶은 것입니다. 아들의 글도 소개합니다. 제목: 나의 꿈 나의 꿈은 우주에 가보는 것이다. 우주에 정말 가보고 싶다. 왜냐하면 태양이 지구보다 몇 배정도 되는지 보고 싶고, 목성도 얼마나 큰지 여러 가지 거성, 항 성, 행성을 많이 보고 싶다. 우주선을 타고 꼭 가보고 싶다. 큰 딸의 꿈은 아나운서, 작은 딸의 꿈은 가수 겸 배우, 막내아들의 꿈은 우주인 입니다. 정말 다양하지 않습니까? 이런 꿈을 가진 아이들 의 엄마인 제 꿈은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에서 꿈을 키워가는 것 입니 다. 도서관에는 아이들의 미래와 저의 미래도 함께 있다. 라고 믿기 때 문입니다. 저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아이들과 함께 책을 보는 시간입 니다. 이런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제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경제적인 문제와 집안일을 남편이 도와주기 때문이라 고 생각합니다. 결혼 초부터 돈 관리는 남편이 하기로 해서 아직까지 제 지갑에는 카 드가 없습니다. 단지 도서관 카드와 서점카드가 있을 뿐입니다. 작년까 지 혼자서 세 아이와 철없는 딸 같은 아내를 챙기느라 남편은 구두쇠가 되어 버렸습니다. 자녀교육수범사례 아이들과 함께 꿈을 키워가는 엄마 200

201 요즘 사교육비가 많이 들어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는데, 저의 집은 큰 아이가 아빠가 다니시는 학원에 다니고 있는 것과 영어 학습지와 학교 방과 후 수업의 컴퓨터를 배우고 있습니다. 큰 아이도 작년에는 학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스스로 공부를 했었 지만, 아이 셋을 제가 다 챙기기도 벅차고 초등학교 동생들과 함께 시간 관리가 되지 않아 1학년 겨울 방학 때부터 아빠가 계시는 학원에 다니 게 되었습니다. 아빠가 학원에 계셔서이기도 하지만 학원을 다니면서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도 가진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 니다. 학원수업에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부분은 체크해 두었다가 교 육방송을 이용해 보충해가고 있으며, 듣기평가도 EBS의 자료를 활용해 얼마 전 실시한 듣기평가에서 만점을 받았습니다. 많은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알찬 교육을 할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체험학습도 꾸준히 다니고 있습니다. 농업 기술 센터에서 진행하는 감자 캐기 에도 참여하여 아이들과 감자 꽃도 눈으 로 직접 보며 호미로 감자도 캐어 보고, 부산건축문화대전 에도 참여하 여 자연과 함께 하는 마을 만들기 라는 주제로 아이들과 힘을 모아 마 을 만들기도 해보았습니다. 재작년 식목일에는 시청에서 실시하는 나무 심기 에 참여하여 저희 아이들과 제가 나무 심는 모습도 텔레비전에 나오고 인터뷰하는 내용 도 방송되어 아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영광도서에서 하고 있는 시 낭송회 에 참여해 본 경험으로 올해는 큰 아이가 청소년 문화제 행사로 실시하는 시 낭송회 에 직접 참여도 해보 았습니다. 언니가 하는 모습을 보고 둘째 아이도 중학생이 되면 꼭 시 낭송회 에 참여해보겠다고 합니다. 저는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시청이나 구청에서 실시하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습니다. 작년 광복절 기념식 을 다녀온 이후로 태극기가 현관 앞에 꽂혀 있어 우리 가족은 모두 애국자가 된듯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해외로 여행을 가거나 공부를 하러 간다고 하는데 저 201 자녀교육수범사례 아이들과 함께 꿈을 키워가는 엄마

202 희 가족은 아직 서울도 함께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가족들보 다도 더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딸은 방학이 되면 즐겁다고 합니다. 학교를 가지 않아서가 아니 라 아빠가 일찍 퇴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말이면 아빠 퇴근 시간에 맞추어 둘째 딸이 문자를 보냅니다. 안마해 드릴테니 빨리 오세요. 라 고 말입니다. 도서관에 가서 졸더라도 피곤한 몸으로 저와 아이들을 위해 항상 함 께 해주는 남편 덕분에 지금의 저와 아이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부터 학부모 교육원 에 아버지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생겨 반가운 마 음이 듭니다. 세상의 모든 아빠들이 자녀교육을 엄마들만의 몫으로 생 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컴퓨터의 황제 빌 게이츠 도 어릴 때,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마을 도 서관을 다녔고, 발명왕 에디슨도 처음부터 천재였던 것이 아니라 디트 로이트에 있는 도서관의 책을 거의 다 읽은 것이 바탕이 되어 발명왕 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다음에 할머니가 되더라도 도서관에서 책 읽어주는 할머 니 로 남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이들이 다니는 도서관에서 함께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도 더 많이 노력해야 할 것 같습 니다. 저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는 말을 믿고 좋아합니 다. 내일이 토요휴업일 이라서 학교 도서관에서 동화 속 우리들 세상 이 라는 책 읽어주기 프로그램을 합니다. 며칠 있으면 추석이라서 내일 읽 어 줄 동화 제목은 솔이의 추석이야기 와 떡 잔치 라는 책입니다. 나름 대로 질문지도 만들어 놓았는데 아이들에게 우리나라의 명절과 우리 음 식을 알게 하는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희 교장선생님께서는 직원 종례를 하시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 다운 사람은 즐겁게 일하는 사람 이라고 항상 강조하셨습니다. 이제부 자녀교육수범사례 아이들과 함께 꿈을 키워가는 엄마 202

203 터는 세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704명의 도서관 엄마의 역할을 다 하 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에서 꿈을 키우며 공부하는 엄마가 되겠 습니다. 교육이란, 모난 부분을 깎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 을 채워 나가는 것 이라고 말씀하신 어느 장학사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704명의 도서관 엄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3 자녀교육수범사례 아이들과 함께 꿈을 키워가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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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자녀교육 수범사례 우리 아이의 행복한 웃음 먼저 아주 작은 자에게 이 영광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어릴 적 부터 무척이나 책을 읽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아이들이 마 음껏 책을 선정할 수 있는 때가 아니어서 환경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서 우리 아이들에게 '책 읽는 문화공간을 만들어주자'고 생각하고 제 나름대로 실 천하고 대화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본 것이 오늘 이렇게 저에게 큰 상을 수 상하게 된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이 상을 계기로 더욱더 저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꿈을 키워나갈 것입니다. 아울러, 저를 위해 늘 기도로 힘써 주신 사랑하는 가족(유석, 민석, 현숙님)과 부모님 그리고 이천교회 성도님들께 이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린이세상! 화이팅! 오 세 주 경기도 이천시 증포동

206 안녕하세요. 전국에 계시는 EBS를 사랑하시고 지금도 아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계시는 모든 분들께 이 글을 통하여 도움이 되었 으면 하는 바람에서 몇 자 적어 봅니다. 저는 경기도 이천시에 살고 있는 평범한 40대 가장입니다. 초등학교 에 다니는 두 사내아이의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키워주기 위해서 지금까지 아이들과 함께 해 온 저의 소박한 자녀 교육을 몇 자 적 어 봅니다. 흔히들 사람들이 자녀교육 하면 거창하게 생각합니다. 집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솔직하게 대화하고 아이들의 궁금함을 풀어주면 서 가정의 화목과 더불어 자녀들이 올바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길 잡이 역할을 해 주는 것이 바로 자녀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 해서는 부모가 먼저 자녀들 앞에서 모범을 보이는 삶이 필요하리라 생 각합니다. 밖에서의 생활과 가정 안에서의 생활이 다르다면 어떻게 자 녀들에게 [올바른 인성]을 심어 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글을 쓰기 전에 '조금이나마 더 일찍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나, EBS 방 송을 통하여 이러한 작은 소망의 수기를 올릴 수 있게 됨을 먼저 감사를 드리며 글을 시작합니다. 제가 아이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자녀교육)을 하게 된 때는 우리 큰 아이 6살 때(1999년)입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삼성출판사에 근무하면 서 많은 사람들에게 책을 소개하고 직,간접적으로 자녀교육에 대해 설 명하는 이론식 자녀교육을 전달하는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출근해서는 직장 생활에 얽매이다 보니 자연히 퇴근해서도 가정에서 생활 역시, 아이들과의 시간과 대화는 참으로 먼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 졌습니다. 집안에 있는 책을 보면서도 피곤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책 한 권 제대로 읽어주지 못하는 그런 아빠였습니다. 아이들은 계속 놀 아달라고 떼를 쓰지만, 아빠인 저의 모습에는 직장이 우선이었나 봅니 다. 그런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유치원에 다니던 큰 아이가 제가 살며시 말 을 건넸습니다. 자녀교육수범사례 우리 아이의 행복한 웃음 206

207 아빠! 우리 유치원 선생님이 그러는데, 아빠는 왕이래...왜?... 아빠가 집에서 책을 읽어주면 사자왕처럼 아빠가 자랑스럽게 보인데... 이 말을 하는 아이를 보면서 그 순간에는 바짝 긴장한 아빠가 되리라 마음을 먹었는데, 어느새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때로는 직장 생활에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교육]도 하곤 했지만, 저 의 머릿속에 늘상 생각하는 것은 직장에서는 하하호호 웃지만, 집안에 들어오면 왠지 모르게 아이들하고 놀아 줄 시간과 공간을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래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회한과 번민이 항상, 아이 들을 보면서 들곤 했습니다. 그러던 큰 아이 6살 될 쯤 1월 겨울에 하늘에서 하얗게 내린 눈 덮인 아파트와 그 사이에서 열심히 일하는 청소부 아저씨를 보면서 저 아저 씨는 얼마나 추울까? 눈 덮힌 아파트를 청소하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 지 않는 아저씨의 얼굴 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문득, 이런 생각이 제 머 리 가운데 스쳤습니다. 내가 명색이 많은 이들에게 책을 소개하는 직업인데, 그 책 속에 있 는 [교육적인 포커스]를 왜!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을까? 이것을 우리 아 이들에게 접목시키면 어떨까? 하는 나름대로의 후회와 비전을 앞세우 고 이제는 아이들을 실망시키는 아빠의 모습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새롭 게 도약하자고 마음으로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집안에서 지금도 아빠 가 퇴근해 들어오기를 기다릴 아이들을 떠올리며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지금까지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지난날의 미안함과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며 가정의 변화를 온 가족과 함께 적용해 보기로 다짐했습니다. 사실, 저보다는 저의 아내의 내조가 참으로 컸습니다. 아내는 결혼하기 전에 미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였습니 다. 그런 아내의 마음 한 구석에는 내 아이를 잘 가르치고 어려서부터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는 작은 희망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가정의 변화가 누구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 니기에 참고 기다려 온 것 같았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위해서 [가정의 환경을 바꾸자]라고 제안했을 때, 아 207 자녀교육수범사례 우리 아이의 행복한 웃음

208 내는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무척이나 기다려 온 목마른 사슴처럼 아 내는 너무나 기뻐했고, 저의 말 한마디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평소에 아내는 매우 검소하고 가정의 변화를 원했고, 아이들을 대하 는 모습도 남달랐습니다. 저희 집에 찾아오는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은 사랑을 주고 간식과 함께 책을 읽어주기를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그 아내의 바람이 오늘 이렇게 8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지난날을 회상 하며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 자신 있게 [자녀교육]에 대해 어느 정도는 말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를 아는 모든 분 들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우리 아이들에게 적용한 [자녀교육 방법]은 크게 3가지입니다. 첫째는, 가정에서 거실의 환경을 바꾸자. 둘째는, 아이들과 함께 책 읽는 아빠가 되자. 셋째는, 다양한 체험적인 문화공간과 역사탐방을 통해 아이들에게 풍부한 삶의 지혜를 주자. 위의 3가지 목표를 정해두고 아내와 함께 본격적으로 가정을 바꾸어 보기로 했습니다. 자녀교육수범사례 우리 아이의 행복한 웃음 208

209 아내와 함께 밤을 세워가며 아이들과 가정의 안정 에 대해 고민하고 '앞으로 우리 자녀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야 할까?' 를 생각해 보며 서로 의 마음을 주고받으며 과감히 하나씩 실천해 보기로 했습니다. 자녀교 육에 관한 책을 읽어 가면서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보고자 노력하기 도 했고, 나름대로 열정을 갖고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큰 아이가 6살 전까지만 해도 저의 집안 거실에는 대형 텔레비전과 오 디오, 그리고 소파가 동그랗게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외 관상 남이 볼 때는 편안하게 보일지 몰라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자녀교 육)적인 측면에서는 무용지물 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TV를 들여다보며 한창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울 나이에 거의 중독성에 가까울 정도로 소파에 앉아 비교 육적인 프로그램까지 TV를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아이 들의 사회성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저의 마음 또 한,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상의하여 우리 거실에 책을 읽는 공간으로 꾸며보면 어떨까? 라고 힘차게 파 이팅! 을 외친 후 거침없이 거실의 분위기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거 실 안 중앙에 자리 잡고 있던 대형TV는 베란다로 내어다 놓고 소파와 오디오 또한, 거실에서 치워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에 책장을 비 치해 온통 사면에 책을 꽂아 두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거실문화의 공 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거실 중앙에는 사각 모양의 테이블을 준비해 아이들이 책을 읽을 공 간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모습의 그림을 아이들이 볼 수 있도록 꾸며 주었으며 책꽂이에 책을 꽂을 때도 '어떻게 하면 아이들 이 효과적으로 책을 잘 읽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3단의 책장을 준비해 상단에는 주로 아이들의 감성을 키워주는 [창작동화]를 비치하 209 자녀교육수범사례 우리 아이의 행복한 웃음

210 고, 중앙에는 무한한 꿈과 희망의 세계를 모험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상상력을 키워주는 [명작동화,전래동화, 상상동화,철학동화]를 비치해 주고, 마지막 하단에는 주로 아이들의 사고력과 관찰력을 증가시키는 [수학동화,원리과학동화,자연관찰,한자동화,경제동화,탈무드동화]등 을 비치해 주었습니다. 거실의 환경을 우리 부부의 생각으로 멋지게 책 으로 바꾼 후에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들! 이제 환상의 동화 속 으로 여행을 떠날까요? 아빠가 도와줄테니까 마음껏 책을 읽자 알겠 지! 하고 말한 뒤 아이들의 행동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시간만 허락되면 하루에 3권씩 책을 분야별로 읽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이 아빠 가 동화책을 읽어주는 순간에는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저 또한, 흥 미를 갖고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자녀가 바뀌면 온 세상이 바 뀌는 것처럼 마음속에 흥분이 서려 있었습니다. 그게 저만의 일일까요? 아닐 겁니다. 우리네 부모들의 공통된 관심사임에는 틀림 없다고 생각 합니다. 한동안,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던 아이들의 모습이 거실을 바꾸고 난 지 2주가 지날 무렵부터 몰라보게 아이들의 책을 읽는 습관이 개선되었 습니다. 큰 아이 6살, 둘째 아이 4살 때, 처음으로 우리 집에 책 읽는 가 족의 풍경이 그려졌습니다. 매일 퇴근해 집에 들어오면, 거실 중앙에 있는 탁자에 책이 열, 두세 권씩 수북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아이들이 대견스러웠습 니다. 욕조에 들어가 잠깐 세수를 하고 나와서 아이들과 함께 오늘 읽었 던 책의 내용을 살펴보고 질문도 하는 [독서지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아이들이 책 읽는 모습에 얼마나 기쁘고 흐뭇하던지 아이들과 함 께 케이크를 사다 놓고 기념으로 파티를 열어 주었습니다. 너무나 아이 들이 기뻐했습니다. 자신의 생일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아이들은 소 리를 버럭 질러대곤 했습니다. 우리 아빠,엄마, 최고! 라고 하면서 맛 있게 케이크를 먹으며 책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1달이 지난 후, 어느 날이었습니다. 새벽 6시 30분쯤, 잠에서 깨어서 아이들을 보니 방 안에 없고 이상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 자녀교육수범사례 우리 아이의 행복한 웃음 210

211 디 갔을까? 생각하다가 눈을 비비며 거실을 살짝 들여다 보니, 두 아이 모두 조용하게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정말, '왜! 아이들에 게 이런 공간을 열어주지 못했을까?' 생각하며 한편으로 하나님께 감사 를 드렸습니다. 지금도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책을 좋아합니다. 틈만 나면, 책을 통해 질문하고 대화하기를 좋아합니다. 가정의 환경을 바꾸고 나서 가장 뚜 렷하게 변한 것이 있다면, 부부간의 대화의 시간이 많아졌다 는 사실 입니다. 하루의 일상에 지쳐서 그저 저녁에 퇴근하면 아이들과의 대화 는 물론, 피곤에 지쳐 일정 시간 동안 TV를 쳐다보다가 잠을 자고 아침 이면 또다시 출근하는 피상적인 생활에서 이제는 아침을 보다 활기 있 게 해 주는 가족 간의 책을 통한 대화와 토론 을 통해 보다 '긍정적인 사고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포부 를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책은 아이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고 더 나아가서는 삶의 원동력 을 심어 준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자녀교육의 책 읽기 는 [편독하지 말자]입니다. 편독은 우리 아이들이 일상생활에서 즐기는 음식을 가리는 것과 같 습니다. 또한, 편독을 하다 보면 아이들의 올바른 인성 형성에도 장애가 올 수 있습니다. 제가 우리 집 아이들에게 거실의 환경을 바꾸고 아이 들의 책 읽는 모습을 보면서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모습이 아이들에게 골고루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처럼 책도 읽을 때,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분야별로 학습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책 읽는 재미를 느끼자. 였습니다. 요즈음 제 주위를 돌아보면 책을 선정하는 기준이 엄 마에게 기울어 있는 모습을 봅니다. 제가 운영하는 어린이서점에서도 엄마들과 상담을 하면, 거의 대부분 211 자녀교육수범사례 우리 아이의 행복한 웃음

212 자녀들의 책을 선정할 때에 아이들의 생각과 의견을 물어보기 전에 엄 마들의 관점으로 책을 선정하는 경우가 많고 이 기준이 바로 아이들의 편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참으로 많이 있음을 주위에서 보게 됩니다. 저도 아이들을 지도하기 전에는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제가 책을 읽어 보고 아이들에게 재미있겠다. 라고 생 각되면 그 책을 아이에게 권해주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 께 책을 읽어가면서 알게 된 사실은 아이들은 모든 책을 소화시킬 수 있는 준비된 아이 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예를 들어) 창작동화는 0-4세, 명작동화는 5-6세, 원리과학동화는 7-8세, 철학, 경제동화는 초등학교 입학해서... 이런 식으로 엄마들이 일정한 기간을 정해놓고 아이들에게 책을 권해주는 모습을 보게 됩니 다. 그러나 저의 아이의 경우를 보면, 이미 6,7세 때 거실의 환경을 바 꾸고 나서 현재, 기존에 나와 있는 출판사별 책 중에서 분야별로 아이에 게 (창작,전래,명작,철학,원리과학,경제,한자,탈무드,위인,사탐,영어,자 연관찰,읽기그림책,미술,음악 등) 이미 전 출판사에서 검증되어 나온 책 들을 아이에게 시범적으로 확신을 가지며 비치해 주었습니다. 그런 이후, 아이들의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들어 보았습니다. 아빠! 이 책은 감동적이구요... 이 책은 주인공이 착하구요... 이 책을 읽으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알 수 있어요... 좋아요 너무 기뻐요. 하 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들은 결코 편독하지 않는데 우리네 부모들이 책을 선정하는 데 있어 잘못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 게 되었습니다. 또한, 가정에서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을 때에는 먼저 부모가 앞장서 서 읽어가는 모습이 아이들의 눈가에 비칠 때, 아이들에게 책을 읽고자 하는 욕구가 가장 강하다는 것을 우리집 아이들을 통해 교훈으로 얻었 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자녀교육수범사례 우리 아이의 행복한 웃음 212

213 어떻게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릴까요? 우리나라가 일본이나 독일, 미 국, 호주,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이라고 칭하는 나라들과 다른 점은 [아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자]에 있습니다. 선진국은 어려서부터 아이들에 게 우리나라처럼 전집 문화가 발달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전집은 없 고 대신 어려서부터 과학이나 지리분야의 책을 보여 줍니다. 우리나라 엄마들이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창작과는 대조 적입니다. 그래서 선진국의 아이들은 호기심과 더불어 과학에 흥미를 갖는 어린이들이 많이 배출되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습니다. 아울러, 거실의 문화공간 활용도 대단합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서는 분명한 매개체가 필요합니다. 이 매개체는 아이들이 병에 걸리면 바이러스라는 항생제를 투여해 병을 완치시키는 것과 같이 아이들에게 는 [책 속]이라는 매개체가 분명히 자녀의 마음을 헤아리는 열쇠임을 기억해 주시길 부탁합니다. 아이들은 꿈을 먹고 자랍니다. 보통 엄마들이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아이가 방에서 책을 들고 읽어 달라고 했을 때, 얼마나 좋은 호응을 보일까요? 대부분 엄마들은 대화가 이렇습니다. 엄마 바쁘거든... 이따가 읽어줄게? 하고 아이를 안심시키거나 돌려보냅니다. 그러나 선진국의 엄마들은 자신이 어떤 일 을 하고 있더라도 대부분 아이들의 입장에서 자신의 일을 멈추고 그 일 을 해결한 뒤에 자신의 일을 마저 합니다. 이런 점이 우리나라와 선진국 간의 자녀 교육의 차이입니다. 심리학적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자]는 이렇습니다. 아이들은 호기심의 천국이기에 무엇이든 알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그 알고 자 하는 욕구는 책을 통하여 가장 강하게 표출됩니다. 무엇인가 알고 싶 어서 엄마에게 다가갔는데, 그 부분을 엄마가 알려주지 않고 뒤로 미루 거나 묵살해 버린다면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굉장한 스트레스와 함께 큰 충격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제가 매일 엄마들과 함께 상담하면서 주고받는 일상의 용어입니다. 지역 사회에서 조그마한 서점을 운영하 면서 제가 가장 마음 중심에 새기고 사는 것은 [정직과 겸손]이라는 단 어입니다. 비록, 넉넉하지 않아 서점을 운영하면서 많은 빚을 지고 살아 가지만,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보면 힘이 나고 무언가 해주고 싶은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그 소망이 이루어질 때까지 겸손한 자세로 아이들을 섬기는 종이 되겠습니다. 213 자녀교육수범사례 우리 아이의 행복한 웃음

214 저는 아이들과 함께 퇴근하고 나면 언제나 책을 읽습니다. 심지어 신 문이라도 읽습니다. 어려서부터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어 온 지도 벌써 큰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니까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 과 정을 거치면서 저의 생활도 몰라보게 물질적인 축복 보다는 더 뜻깊은 사랑의 축복이 다가왔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통해 대화하면서 저 자신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조그마한 서점을 통해 지금은 우리 고장 이천시에 [어 린이 책 읽기운동]을 하고 있으며, 병원과 관공서를 비롯해 178곳을 책 읽는 곳으로 지정해 그곳에 무료로 책장을 비치해 주고 책을 주기적으 로 신간을 교체해 주면서 어린이들에게 책 읽는 풍토를 조성하고자 하 는 취지에서 지금도 후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 신문인 [이천신문 사]에 [어린이칼럼]을 연재한지도 벌써 3년이 되어갑니다. 우리 집 아이들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하다 보니, 요 즘은 작년부터 이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개인적으로 [역사탐방]을 실 시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두 번씩 현장체험을 하면서 아이들의 밝 은 미소와 역사에 대한 관심을 지켜보면서 뿌듯한 기쁨을 느껴봅니다. 이처럼 아이들과 함께 집안에서 책을 함께 읽는 습관은 매우 중요합 니다. 부모가 자녀들 앞에서 책을 보면서 다양하게 이런저런 대화를 통 해 책 속에 나오는 주인공을 그려준다면 아이들이 얼마나 즐거워할까 요? 사실, 저 개인적으로도 하고 있는 일에 얽매이다 보니 아이들과 함께 쉽게 [역사체험]을 떠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라나는 아이들 에게 꿈과 희망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적어도 초등학교 시절에는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유적지나 문화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학습 자녀교육수범사례 우리 아이의 행복한 웃음 214

215 효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두 아이를 먼저 이곳저곳 전국에 있는 [역사 탐방지]을 데리고 다니 면서 두 아이 모두 역사에 관한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큰 아이 (6학년)의 꿈이 (역사학자)라고 말할 만큼 아이들에게도 직접적으로 역 사수업의 의미를 알게 해 주는 계기가 됨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요즘 은 한 달에 두 번씩, [역사유적지 탐방]을 아이들과 함께 떠납니다. 아 침 7시 정도에 출발해서 저녁 6시 정도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학교에서 쉬는 날인 (토요일 휴무일)에 아이들과 함께 상쾌한 기분으로 이천에 서 출발해서 전국을 즐거운 마음으로 피곤을 뒤로 한 채, 누비고 다닙니 다. 정말,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이제는 아이들의 즐거운 표정과 기대감 때문에 자녀교육의 일환으로 유적지에서 자세한 설명과 함께 호기심 어 린 눈망울로 동참하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매우 인생에서 아이 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고 흐뭇합니다. 역사, 문화 체험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과 함께 오늘 하루 보고, 듣고, 체험했던 부분을 현장 체험란에 기록하면서 다시 한번 우리 문화의 훌륭함과 조상들의 유구한 역사에 깊은 감명을 받곤 합니다. 요 즘은 주 5일 근무제가 일상화되어서 아빠들의 시간이 주말이면 대부분 쉬게 됩니다. 이러한 시간을 자녀들과 함께 [교과서 속의 역사탐방]을 떠나 체험하면서 자녀들과 깊은 대화를 나눈다면 분명 대한민국의 어린 이들은 희망과 미래가 살아 숨 쉴 것입니다. 역사는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직접 가서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요? 21세기 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어쩌면, 우리 한국사는 서양의 인터넷 문화에 비해 너무나 무관심하고 초라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뿌리와 전통을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 면 이 아이가 커서 나중에 국가의 일을 관장하는 업무를 맡고 있을 때, 크나큰 혼선을 가져올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두 아이의 아 빠로서 자라나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만큼은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를 바라는 마음이 최근에 들어서 많이 듭니다. 215 자녀교육수범사례 우리 아이의 행복한 웃음

216 위의 3가지를 기본으로 제가 우리 집 자녀교육을 소개함에 있어서 여 러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8년 전에 아이들과 함 께 회의하고 시작했던, [가정에서의 변화]가 이제는 사춘기가 되어버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정말, 하기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큰 아들 (유석)이는 현재 초등학교 6학년으로 역사에 관심이 참으로 많은 아이로 잘 자라주었고, 둘째 아이 역시, 초등학교 4학년으로 과학 영재반에서 활동하며 우리나라 역사뿐 아니라 세계사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는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큰 아이는 자신의 꿈이 (지리학자)인 만 큼,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어려서부터 거실의 환경변화에 따른 [책 읽는 거실]로 분위기를 조성해 준 것이 크나큰 계기가 되었다고 자부합 니다. 지금은 자신의 무한한 꿈을 위해서 스스로 공부하는 성실한 아이 로 성장했습니다. 각종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도 안정되어 있으며, 제가 보기에 사회성이나 대인관계 면에서도 안정 감을 갖고 있습니다. 발표를 잘하는 아이며 질문과 학습태도가 올바른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큰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의 심정으로 기뻤던 것은 초등 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평가하기를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알고 있는 아이 라고 통지표를 통해 평가해 주었을 때가 가장 보람 있었습니다. 모든 부모가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매 한가지 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자녀교육을 함에 있어서 가장 선행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첫 번째가, [가정의 환경을 바꾸는 것]입니다. 현재의 가정의 모습에서 아이들이 학습할 수 있는 [독서공간]으로 바꾸어 주 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가 함께 책놀이처럼 자녀들과 함께 놀아주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러한 환경이 될 때에 거의 90%이상 이 책과 친해지며 정서적으로 학습과 더불어 안정감을 갖고 학교생활 에 적응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최근 들어 각종 신문이나 매체에서 '책 읽는 가정'을 모티브로 소개하 는 것을 자주 봅니다. 제가 시작한 8년 전만 해도 거실의 환경과 책 읽 는 가정이 모티브가 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불과 이러한 변화가 자녀교육수범사례 우리 아이의 행복한 웃음 216

217 3-4년 전부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자녀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10월 27일, 강원도 강릉으로 [역사탐방]을 떠납 니다. 오죽헌을 비롯해, 시립박물관, 참소리 박물관, 선교장, 함정 박물 관 을 견학해 보고 올 예정입니다. 이번 견학에는 신사임당의 발자취를 찾아서...라는 주제를 갖고 떠납니다. 분명, 떠날 때 우리 집 아이들이 그럴 것입니다. 아빠! 오늘도 즐거운 역사체험이 되겠죠! 하고 말입니다. 평범한 40대 가장으로서 어려서부터 시골에서 자라서 아무것도 자녀 에게 해줄 수 없을 거라고 결혼 초기에 생각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 쳐 지나갑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참으로 아이들과 함께 한 세월이 흐뭇하고 인생 의 보물이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전국에 계시는 EBS 가족과 자녀교 육을 위해 지금도 그 무언가를 열심히 시도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진실한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자녀들과 함께 웃음꽃 피는 생활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217 자녀교육수범사례 우리 아이의 행복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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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자녀교육 수범사례 두 아이를 다 대안학교에 보내다 부족한 저의 자녀교육 경험을 높이 평가해 주신 것이 기쁘고 감사합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응모를 했지만 지금껏 잊고 있었습니다. 제가 쓴 자녀교육 사 례는 제도권의 정규교육과정이 아니라서 당선작은 어려울 것으로 여겼던 거지요. 학교 너머의 학교인 대안학교마저 그만두고 세상을 큰 학교 삼고 세상 만물을 스 승 삼아 살아가는 우리 아이에게 격려가 되기를 빕니다. 자녀교육으로 고심하시는 많은 부모님들에게 또 다른 길이 얼마든지 있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전 희 식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

220 꼭 작년 이맘때였다. 우리 집 작은 아이가 중3이었는데 전북 부안에 있는 변산공동체에서 1주 동안의 체험학교를 마치는 날이었다. 공동체 를 일구신 윤구병 선생님도 오랜만에 뵐 겸 아이를 데리러 갔었는데 나 를 만난 아들은 다짜고짜 고등학교 진학문제에 대해 중요한 결심을 했 다면서 농업고등학교를 가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껄껄 웃었다. 철없게만 보이던 아이가 가업을 잇겠다고 하니 어 찌 감격스럽지 않으랴만 변산공동체에서 뭘 보고 느꼈기에 농부가 되 겠다고 할까 몹시 궁금하였다. 아이 말을 종합 해 보면 변산공동체의 열 가구쯤 되는 식구들이 각자 자유로우면서도 협력노동하는 모습이 인상 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농기계나 트럭은 공공의 재산으로 공유하고 개인적 삶의 영역은 서로 존중하며 보호되는 모습을 우리 아이는 이상적인 삶의 형태로 이해한 것이다. 공공 소유와 개인 소유의 영역을 어떻게 구획하느냐 하는 것은 오랜 쟁투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한 역사적 과정은 모르지만, 변산공 동체 1주일의 삶을 통해 우리 아이가 새로운 삶의 유형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안적인 공동체 생활을 우리 아이들이 처음 접한 것은 큰 애가 초등 학교 2학년 때니 작은 애는 유치원 다닐 때로 기억된다. 경기도 화성군 발안면에 있는 야마기시공동체 유년 낙원촌에서 1주 일 동안 지내게 되었다. 이미 야마기시 공동체의 주요한 과정을 다 끝내 고 회원활동을 하고 있던 나는 우리 아이가 그곳에서 마음대로 가게, 마 음대로 식당, 마음대로 놀이를 경험하면서 의식의 저 깊은 곳에 걸림 없 는 자유로움이 자리하기를 바랐었다. 아니나 다를까 낙원촌을 갔다 온 아이들은 더이상 과자와 아이스크림 에 매이지 않게 되었다. 과자건 아이스크림이건 뭐든지 원하는만큼 다 자녀교육수범사례 두 아이를 다 대안학교에 보내다 220

221 집어다 먹을 수 있는 체험은 스스로를 과자와 아이스크림에 얽매인 욕 망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다. 물론 다시 일상으로 회귀하는 데는 한 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이 때의 체험은 엄청난 충격으로 의식의 저변에 남게 되었으리라 본다. 함 께 나누어 먹는 것을 익히고 서로 도우며 사는 법을 몸에 생활로 배이게 하는 것이 자식에 대한 최고의 선물이 된다고 우리 부부는 믿었고 그렇 게 행동했다. 큰 아이를 실상사 작은 학교 라는 이름의 대안 중학교에 보낼 때의 일이다. 2002년이었는데 그해부터 중학교과정이 의무교육이 시행되던 때였다. 초등학교 담임은 물론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의아해하며 걱정부 터 했다. 정상적인 아이를 왜 그런데 보내냐는 것이었다. 인가도 안 난 중학교를 보내서 고등학교는 어쩌려고 그러냐는 사람도 있었다. 더구나 시골에서 농사지으면서 무상교육인 정규 중학교를 마 다하면 월 40여만 원이나 되는 교육비를 어떻게 감당할 거냐는 경제적 인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 옳은 말이었고 그 때문에 안전한 제도권학교에 아이를 보내놓고 안도하는 많은 학부모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만 아이나 우리 부 부가 이런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다. 그렇기에 둘째 아이도 대안중학교 를 보냈고 이어, 고등학교도 둘 다 대안 고등학교를 갔다.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교실붕괴니 학교붕괴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우리 부부는 지식보다 삶이 교육에 있어서 제일 중요하다 고 생각했다. 삶은 식의주 문제에서 시작된다. 의식주가 아니라 식의주 라 하는 것 역시 옷보다 먹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본 때문이다. 지리산 골짜기 산골마을의 3월은 추위가 살벌했다. 작은 가정 이라 하여 농가를 빌려 남녀 학생 4-5명이 함께 생활했다. 요일별로 정해진 순번 따라 새벽 6시에 일어나 먼저 솥에 물을 데우고 그 물로 쌀을 씻고 221 자녀교육수범사례 두 아이를 다 대안학교에 보내다

222 반찬을 만들어 스스로 밥상을 차리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고 이를 학 교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교육과목으로 여겼다. 책상을 차리기에 앞서 밥상부터 차리는 학교였다. 축제 때는 대안 생리대 만들기 시간이 있었고 남학생들이 여학생들과 생리대를 같이 만들었다. 면 생리대가 마당 빨랫줄에 깃발처럼 펄럭이 면 남학생들은 그 밑으로 오갔다. 여성성에 대한 교육이 이렇게 생활 속 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학부모들은 여러 통로로 삶을 공유했다. 학교의 최고 의사결정은 식 구총회라고 불리는 단위에서 했다.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가 식구총회의 구성원이었다. 한 학년이 열 세 명 내외였으니 식구총회가 열리면 30여 명에서 50여 명이 모였다. 전국 각지에서 다양하게 살아가는 소신 있는 분들이었다. 학부모는 의무적으로 학교에 나와야 하는 날들이 많다. 우선 작은 가 정에 한 학기에 두어 번은 1주일씩 나와서 학생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 작은가정 회의, 학년별 회의, 건축과 재정과 문화 등의 각종 소위원회 회의 등등. 학생보다도 학부모들이 먼 길을 오가느라 고달프지만 사실은 새로운 삶을 익히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누구도 간섭 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성찰해 볼 겨를을 갖기 힘 든 게 사실이다. 자녀교육에 대해서도 시대적 흐름을 읽고 안목을 넓히 기보다 기존의 고정관념에 의존하여 자식을 대하는 게 고작이었다. 대안학교의 학부모가 되면서는 늘 배우는 자세를 가지게 된다. 학교 운영 자체가 그렇다. 매 학기마다 교사/학부모 연수가 2박 3일로 진행 되어 교육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찬을 하게 된다. 학부모 공부모임도 만들고, 방학 때는 학부모회 주관으로 4박 5일의 공동연수를 하기도 했다. 마음공부도 하고 교육이론을 놓고 토론도 한 다. 모두 아이들을 제대로 이해하여 부모 노릇을 바로 하자는 취지다. 자녀교육수범사례 두 아이를 다 대안학교에 보내다 222

223 나름대로 진지하게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다 보니 다들 주장이 견고하고 논리가 정연했다. 그러면서도 대개 시민단 체나 사회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조화를 이루 고 이견의 접점을 찾아내는 현실적인 지혜들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쉽게 합의에 도달하는 경우도 있었고 오랫동안 논란을 거듭하는 것도 있었다. 학교에서 시험을 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아예 토론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논란거리조차 되지 않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시험이라는 것이 학생들에게 학습 동기를 부여한다는 논리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얼마나 엉터리 논리인지 다 안다는 것이 된다. 작은 아이가 다닌 대안중학교에서도 시험을 전혀 안 치는 문제를 가 지고 논란이 된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험이라는 것은 필연적으 로 순위를 가리게 된다. 몇십 개의 문제를 놓고서 풀고, 못 풀고를 가지 고 우열을 정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 갖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과 소질 에 대한 부정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력과 능력이 점수로 차별화될 수 있다는 인식을 어린 학생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도리어 더 큰 시험의 폐해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사람을 볼 때 늘 1등과 꼴찌가 있는 것으 로 세상을 단순화할 위험이 있다. 시험이 없는 학교는 세상 사람은 1등 223 자녀교육수범사례 두 아이를 다 대안학교에 보내다

224 과 꼴찌로 차별되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자꾸 하다 보면 잘하게 된다는 것, 잘할 때와 못할 때가 있을 뿐이라는 가치관을 아이들이 갖게 된다고 본다. 학교 교칙을 학생들이 만든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이것은 너무도 당 연한 일인데도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은 학생들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 이고 학생들은 세상이 자기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기 때 문에 그에 걸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안학교에서는 대부분 학생들이 교칙제정 등 학생들에게 관 련되는 중요한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한다. 믿고 그만한 대접을 해 주면 아이들을 또 거기에 맞게 행동하는 법이 다. 작은 아이가 다니던 대안중학교는 마리학교 라고 하는 곳인데 신입 생 면접관으로 재학생이 참여한다. 신입생과 신입생 학부모가 이제 갓 중 2의 면접관 앞에서 면접을 보는 것이다. 큰 애가 중학교 1학년 때 아주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고 알려 준 적 이 있다. 그 충격은 자기 삶의 큰 기둥이 바뀌는 체험이었다고 했다. 국어시간이었다고 한다. 글쓰기 시간인데 아이들이 아무도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글 쓰라고 하고는 아무 말이 없어서 다. 침묵을 깨고 우리 아이가 어떤 글을 쓰라는 거냐고, 주제가 뭐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이 도리어 놀라면서 맘대로 쓰세요. 라고 했다는 것이 다. 그래도 아이들은 글을 못 쓰고 있었는데 한 학생이 질문을 했다고 한 다. 몇 장을 쓰냐고. 원고지 몇 매 분량으로 쓰냐고 물었는데 역시 선생 님은 맘대로 쓰시면 됩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 번도 맘대로 해 본 적이 없고 누군가가 이미 정해 놓은 대로 살아 온 아이들이기에 그때의 충격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여덟 살이 되 자녀교육수범사례 두 아이를 다 대안학교에 보내다 224

225 면 초등학교 들어가는 것도 어른들이 정해 놓은 것이고 담임도 학생들 이 고른 것이 아니다. 45분 수업하면 15분 쉬는 것도, 국어시간 끝나면 산수책 펴 놓고 국어공부의 맥을 끊어버리게 하는 것도 다 어른들이 정 해놓은 것들이었다. 작은 아이가 방학을 맞아 집에 와 있을 때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자 주 어울려 놀다가 어느 날 이런 말을 했었다. 자기가 중학교 가서 많이 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 는 호기심에 뭐가 바뀐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친구들이랑 놀다가 한 친 구가 발밑에 지나가는 개미를 괜히 비벼 죽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친 구를 밀었는데 이번에는 친구가 놀랐다는 것이다. 모기도 때려잡지 못하게 하고 쫓게 하는 학교에서의 생명존중 생활이 어느새 몸에 밴 자기가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보니 그게 엄청나게 달라 진 모습임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지극히 천박하게 이해하고 있었 다는 사실을 작은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하는 명상수련을 다녀와서 깨닫게 되었다. 이 말은 자기 처지를 바로 알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지금 이 순간에 뭘 하고 있는지 항상 자각하라는 엄청난 말이다. 항상 깨어 있으라는 이 말을 작은 아이 학교에서 하는 간화선 수련을 다 녀와서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논리와 이성에 선행하는 직관을 깨우치는 학습이 바로 명상수련이다. 합리적 사고와 논리적 이치를 깨우치되 거기에 머물면 안 된다는 것이 참선공부다. 공부 중에서 가장 큰 공부를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집중적으로 하게 한다. 논리로서 닦아갈 수 없는 세계가 엄청나게 많다. 직관과 감성의 세계 는 이성의 세계를 이루는 밑바탕이다. 이런 앎은 제도권 학교 어디에서 도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225 자녀교육수범사례 두 아이를 다 대안학교에 보내다

226 마리학교에서 학부모로서 직접 접촉한 드넓은 앎의 세계는 학생들과 똑같다. 간화선, 물수련, 동학수련, 위빠사나 수련, 북미원주민 성년식 수련, 장틀수련, 선화 그리기 등이다. 학생들의 수련시간에 학부모들도 함께 한다. 덕분에 어린 아이들의 세계를 밀착해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자식과 사사건건 부딪치고 언성을 높이면서 서로 외면하는 시기가 아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다 닐 때다.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기회들이 대안 학교 학부모 생활을 하다 보면 무수히 주어진다. 남의 아이들을 자식처 럼 품고 지내야 하는 생활관 생활과 공동수련시간이 그런 때이다. 고등학교 역시 둘 다 대안학교로 갔다. 역시 언젠가 물어 봤었다. 대안학교를 가서 후회하거나 실망한 적 없었냐고 물었는데 둘 다 당 연히 대안학교 가는 것으로 알았다고 대답했다. 집안 분위기가 그랬던 게 사실이다. 고등학교는 큰 아이는 홍성에 있는 풀무학교 에 갔고 작 은 아이는 담양에 있는 한빛고등학교 에 갔다. 대안학교가 일반학교하 고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더니 뭐든지 대화로 다 해결한다는 것, 선생이 나 학생이나 다 똑같은 사람으로 만나다는 것, 자율적이고 스스로 알아 서 하는 학교라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학교라는 것 등을 말했 다. 어떤 사람들은 대안학교 다니는 것은 좋지만 어차피 사회에 나와야 할 텐데 적응을 제대로 못하면 어떡하냐고 한다. 그 사람의 머릿속에는 이중화된 가치관이 있다고 판단된다. 그 사람이 말하는 적응 이라 필경 경쟁하고 앞서는 것을 말하는 것일 텐데 모든 상대를 경쟁자로 대하면 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파괴하는 사회현실을 걱정하면서도 그 대열 에서 탈락할까봐 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자녀교육수범사례 두 아이를 다 대안학교에 보내다 226

227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랑 같이 사흘간 부안 핵폐기장 찬 반 주민투표에 자원봉사자로 갔었다. 트럭을 타고 부안 전역을 다니며 포스터도 붙이고 투표소와 개표소에서 안내일을 했었다. 그 부안을 중 3이 되어 다시 가서 변산 공동체 체험학습을 했던 것이 다.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아이는 당시의 부안 모습을 거의 기 억하고 있지 못했다. 교육은 기억하고 암송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의식의 저 밑바닥에 체 험으로 만들어지는 좋은 기운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리라. 이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생활의 원기소가 될 것이고 스스로 세상을 바르게 살아 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227 자녀교육수범사례 두 아이를 다 대안학교에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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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김진욱 노를 계속 저어갑시다 231 김태종 떨어진 학사 모를 다시 주워 쓰고 김후진 배우는 기쁨이 내 삶의 원동력 남도현 몸으로만 스포츠 하나? NO! 나는 펜(Pen)으로 스포츠 한다! 신경용 절망을 딛고 30년 전의 꿈을 이룬 억척 인생 신경택 눈물의 아침밥 최성화 평생학습을 통한 능력중심사회 구현 최진규 아름다운 그대, 당신은 선생님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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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자기능력개발 수범사례 노를 계속저어갑시다 우선 부족한 글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여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상 을 받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어떤 조건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조건은 선택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조건에서 어떤 사람은 나쁜 조건에 서. 서로 다른 조건에서 태어났지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이 러한 불평등한 조건을 원망하기보다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필요하 다고 봅니다. 그리고 제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자기 계발을 위하여 앞으로 나아가 려는 의지도 필요합니다. 근면성실하게 뼈를 깍는 고통을 감내하며 노력한 사람 과 노력 없이 적당히 산 사람의 결과는 같지 않습니다. 결과가 같다면 이것이 불평 등이고 진리가 아닐 것입니다. 저 자신이 어려운 환경을 원망만하고 자포자기 하 였다면 오늘 나의 위치는 어디일까? 회고하게 됩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김 진 욱 경기도 군포시 대야미동

232 내일은 학교 가지 말고 동편 골 혁기내 밭에 동생 업고 세참 때, 점심 때 늦지 않게 와라. 학교에 가지 말고 동생 보라는 것이 당연하게 혁기 엄마가 저녁에 다녀간 후 명령조로 말씀하셨다.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 나 탄광사업에 참여하였다 실패하고 보따리 두 개를 가지고 도망치다 시피 이사한 부모님을 따라 세 살 때 충청도 제천의 천등산 아래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농사라야 국유지인 천등산의 벌목지로 비탈진 돌 서렁 밭이라 쟁기도 사용할 수 없어 새밭괭이로 밭을 일구고 옥수수, 콩, 감 자를 심는 화전민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입학시험을 위한 진학반과 비 진학반 을 만들면서 진학반으로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데 기대도 안 하면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지금 어떻게 중학교에 진학하겠느냐 하시며 당 연한 것처럼 말씀하셨다. 비 진학생은 어차피 졸업 후 농사를 지어야 하 니 오전수업만 하고 오후에는 집에 와서 소 풀을 베거나 농사일을 도왔 다. 어른 지게를 지면 끌리므로 지게 목발을 잘라 초등학교 5학년부터 지게질을 하며 농사일을 하였다. 초등학교 졸업 3년 후 동생이 다시 초 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여 부모님 형님 나와 동생 이 산전 밭뙈기를 보고 매달릴 형편은 아니었다. 부모님 말씀은 옥수수 농사라도 지으면서 어떻게 같이 살아보자는 것이었지만 사실 떠밀리다 시피 18세에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서울에 와서 취직한다는 것은 아는 사람이 없으면 어 려웠다. 마침 고향 선배가 대전에서 공구판매 회사에 근무하다가 군대 에 입대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를 소개받아 대전에 취업하기 위하여 갔 는데 사장이 하는 말은 어제 사람을 채용했다면서 무책임한 말 한마디 남기고 자기 일을 하였다. 난감하였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도 희망이 없 다고 판단하고 내친김에 그야말로 대전발 0시 50분차를 타고 새벽에 영등포역에서 내렸다. 영등포역까지 오는 차비가 전부였는데 당장 먹 고 자는 것이 문제였다. 전날 점심 저녁 오늘 아침을 굶고 신길동 주변 을 헤매다가 신문배달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간 곳이 영등포시 장 앞 천일 약국 4층에 조선일보 지국이었다. 보급소에서 합숙을 하며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노를 계속 저어갑시다 232

233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신문 간지를 끼워서 영등포역 주변과 문래동 일 대에 250부의 신문을 안고 뛰면서 배달하고 나면 아침 6시 정도가 된 다. 신문배달의 수입은 밥 먹고 용돈 쓰면 그만이다. 집을 나올 때는 돈을 벌어 부모님께도 효도하고 동생들 공부도 시키 고 나도 못한 공부를 해보겠다고 하였으나 세상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취직자리를 몇 군데 알아보았지만 마땅치 않아 어릴 때 부터 농사일로 훈련되었던 터라 건축공사장의 미장 잡부 일을 시작하였 는데 나이에 비해 일을 잘한다고 서로 자기와 일하자고 하여 성실함을 인정받았다. 그러면서 세참과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미장기술을 배우겠 다고 남의 흙손을 잠깐 쓰다가 호통을 당하기가 여러 차례. 그러던 어느 날 미장 책임자가 기능공이 일할 수 있게 열심히 준비하 여 주고 내가 쓰는 흙손으로 틈틈이 초벌을 발라보라는 것이었다. 미장 일의 특성상 초벌이라도 잘못 바르면 일을 망치게 된다. 초벌이 울퉁불 퉁하면 정벌을 위해서 깨 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야단과 눈치를 보아 야 했지만 어려웠던 시절을 되새기며 기술을 배우기 위해 참았다.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배달하고 건설현장에 7시까지 출근하여 잡부 일을 하며 건축기술을 배우고 저녁에는 영등포 시립도서관에서 고입검 정고시 공부를 하였는데 정말 힘들었다. 현장에서 코피를 몇 번이나 흘렸는데, 나는 혈관이 약하여 자주 코피 를 흘린다고 둘러대고 신문사에서 먹고 잔다는 것은 숨겼다. 이렇게 하 면서 1년을 버티었으나 체력의 한계를 느꼈고 현장이 수원의 세류동으 로 옮기게 되어 신문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현장 일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였다. 누구에겐가 들었던 기억을 되살려 영등포구 문래동 법원 옆에 서울시 에서 운영하며 수백 명을 수용하는 합숙소를 찾아 입소하게 되었다. 합숙소의 사람들은 성실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일하기 싫어하는 부랑아 등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침저녁 식권을 매일 사도록 규정되었고, 한 끼 식대가 35원으로 기억되는데, 일하기 싫어서 식권 값 을 연신 꾸어달라는 사람, 식당의 밥이 정부미 밥이다, 반찬이 맛이 없 233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노를 계속 저어갑시다

234 다, 등등의 불평으로 식당에서 가끔 식판이 날라 다니기도 하였다. 그러 나 이러한 불평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고생을 경험하려면 아직 멀었다 고 생각했다. 현장에 나가서 하루만 잡부일하면 한 달 식대를 벌고도 남는다. 점심 은 일터에서 먹으라고 합숙소에서 주지 않는데 라면도 없어 굶는 사람 들을 보고 한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런 천국 같은 곳이 있는 가!' 생각했다. 현장에서 돌아오면 샤워를 할 수 있고 겨울에는 연탄난 로가 따뜻하였으며 아침에 일어나면 새벽 5시부터 밥을 주니 밥 먹고 현장에서 일할 수 있고 저녁에는 책을 볼 수 있고 신문 배달하지 않아도 되니 이것이 천국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러나 한방에 8명이 있다 보니 전과 8범 6범 등의 전과자가 있었고 노가다 주재에 공부한다며 노골적인 말로 버터를 먹는다고 양놈 되냐 고 비누통을 던지며 시비를 하는 이도 있었다. 그런 소리 듣기 싫어 커 튼을 치고 몰래 공부를 하였다. 나는 일요일도 없이 현장 일을 하였다. 생전 처음으로 100만 원짜리 적금을 들고도 여유가 있어 식권을 못사는 같은 방 사람들에게 말만 하 면 꾸어 주고 가끔 빵이나 라면도 사서 같이 먹었다. 식권 값 빌려준 것 은 갚을 마음도 없었지만 받을 생각도 안 했다. 한 달 두 달 지나더니 그 들도 미안한 생각이 들던지 내가 하는 일에 잔소리가 없었다. 나는 하루 일당이 당시 기억에 6,000원 정도 되었으니 매월 적금 8만 원을 넣고 남 는 돈이 그들의 식권 값 70원정도 씩 대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3개월이 되니까 이제는 내 눈치를 보게 되었고 저녁에 공부를 하는데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오히려 조심을 하였다. 합숙소의 규정이 6개월 동안 있을 수 있고 그동안 사글세 보증금이라 도 벌어서 자립하라는 목적으로 운영되었고, 퇴소 후 1개월 지나면 다 시 입소자격이 되는데 몇 년씩 있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6개월 만기가 되었으니 나와야 했다. 이런 사실을 알고 하청업자 동생이 현장을 관리 하고 있었는데 기술을 더 가르쳐 주겠으니 자기와 같이 현장에서 숙식 을 하자고 하여 낡은 패널로 숙소를 만들어 자며 새벽마다 미장용 모래 8톤씩을 채로 쳤다. 기술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일을 부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노를 계속 저어갑시다 234

235 릴 작정이었다. 그러나 미장기술을 가르쳐 준다는 것 때문에 모든 것을 감수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온몸이 근육으로 뭉쳤고 외부 비계 틀에 거미처럼 다 니며 일을 했으니 남에게 무언가 주어야 내가 무엇인가 바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수원현장의 일이 마무리 될 무렵 다른 기능공들을 따 라 작업복을 싸들고 나섰더니 평소에 대하던 태도와는 달리 너도 가려 느냐? 너는 나와 일하자며 연장 보따리를 빼앗았다. 현장에서는 보통 그 정도로 사람을 잡지 않는다. 내가 잘나서 잡는 것 은 아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모래를 온종일 사용할 양을 모두 쳐놓 으면 기능공들이 와서 준비 시간 없이 바로 일을 하니 도급업자는 굉장 한 이익이고 상승기에 있는 기능공으로 능률을 많이 올리니 자기에게 도움이 되니 잡았던 것이다. 건설현장에서는 기능공이 일을 하면 마감상태를 검사하여 합격하여 야 통과가 된다. 그런데 가끔 실랑이가 벌어지는데 나이 든 기능공이 일 한 것을 검측기사가 재시공을 요구하면 내가 노가다 수십 년에 데나오 시(재시공)는 없었다고 서로 옥신각신하지만 결국은 재시공을 해야 했 다. 그때 그 검측기사가 무척이나 부러워 나도 공부하여 건축기사가 되 어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저녁에는 검정고시공부를, 출. 퇴근시간 휴식시간에는 건축 일반 시 공책을 열심히 보았다. 현장 사람들은 빈정대었다. 기사가 되겠다니 말 도 안 된다 노가다 하는 미장이 대학을 나오고도 떨어지는 기사시험 을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어떻게 합격하겠느냐 는 것이다. 미장일이 나 잘해라 그럼 기능사 자격부터 따고 보자! 마음먹고 기능사 보 시험 에 응시하여 합격하고, 1980년도에 기능사 2급 시험에 무난히 합격하 였다. 그 당시만 해도 미장기능사 자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 안 되 었다. 그 당시 중동건설 현장에 취업하기 위하여 기능공들이 몰려들어 취업 사기도 많았는데 미장 기능사 자격증이 있다는 것만으로 간단한 면접을 거쳐 럭키개발 사우디 킹사우드 대학교 신축현장에 취업하였 다. 그곳은 건물 전체를 공사하는 것이 아니고 공사종류별 235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노를 계속 저어갑시다

236 로 여러 나라에 발주되어 19개국 사람이 한 현장에서 뒤섞여 일을 하였 는데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그야말로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때로는 오해가 있어 싸움이 일어난 경우도 몇 번 있었다. 이런 것 이 모두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그래도 당시에 제3국 근로자들 의 영어실력이 우리나라 기능공보다는 월등하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자네가 영어공부를 계속 하니 제일 낫지 않냐 는 말에 속마음은 뒤집 힐 정도로 답답하였다. 중동에서 일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시간당 1불 25센트에 계약되었는 데 1984년도에 월급을 100만~120만 원을 받았으니 잔업과 도급 일을 얼마나 했었는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아침 여섯 시 반에 출근하여 저녁 먹고 9시는 일찍 퇴근하는 것이고 12시까지 하는 작업이 보통이고 철야 작업을 한 달에 12번을 한 적이 있으니 힘든 정도가 아니고 혹사였다. 낮에 콘크리트를 타설하면 제물 치장 마감이라고 적당히 굳은 후에 하는 작업인데 여건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너나 할 것 없이 당연한 것처럼 불평 없이 일을 하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침대 머리에는 항상 영어 참고서 영어사전 한 영사전이 있었고 현장에서 의사소통관계로 어려웠던 단어를 찾아 암기 하였다. 한 달에 일요일 두 번은 쉰다. 쉬는 일요일이면 회사에서 리야드 시내에 쇼핑 차를 제공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사러 나가는데 우리 팀은 나를 앞세운다. 물론 나도 영어를 한 다고 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ABCD라도 아니 미리 메모장에다 약국 이나 전자상가, 슈퍼마켓에서 살 물건의 이름을 한영사전에서 찾아 미 리 적어놓고 읽거나 보여 주어 물건을 사는 통역관 역할을 하였다. 나이 드신 분들을 안내하는 자부심도 있고 보람도 있었다. 킹사우드 대학현장의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이맘 대학교 현장으로 옮 겼는데 그곳에서 미장 반장을 하던 사람이 만기가 되어 귀국하게 되면 서 뒤를 이어 반장업무를 할 사람을 찾다가 후임으로 추천되었다. 미장 기능사가 있으니 도면 보는 것 등 리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던 것 같다.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노를 계속 저어갑시다 236

237 나이 27세에 그야말로 노가다라고 하는 경력 수십 년의 현장 사람들 40여 명을 인솔하여 일을 하려니 두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일에 대한 자 신이 있었고 건축시공이론 공부를 했으니 담당 기사들과 말이 통하였고 외국인 감독관의 말을 알아들으니 현장을 리더 하는데 쉽게 적응을 하 였다. 1년을 연장하라, 6개월, 안되면 3개월, 그나마도 안 되면 1개월, 연장하라 하였으니 회사에서 필요한 사람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만기귀국 후 1986년 8월 기다리던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하였다. 정말 감격스러웠다. 그때야 연로하신 아버님도 우리 애가 중학교 졸업장을 땄다. 하시며 친척들과 온 동네에 자랑하셨다. 중학교에 보내지 못한 미안한 마음의 위로가 되셨던 것으로 생각한다. 다음해에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격주 일요일마다 출석하는 학교생활이지만 즐겁게 하였다. 혼자서 공부하다 누가 가르쳐 주는 공 부는 몇 곱절 빨리 알아듣고 소화할 수 있었다. 일요일도 출근하여 열성으로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들께 이글을 빌어 감사를 드린다.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에 입학하면서 많은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법학과 과목을 이수하면서 몰랐던 부분과 뭘 알아야 더 잘살 수 있다 는 확신이 서기 시작했다. 중동에서 번 돈으로 고향에 땅을 구입했다가 1990년에 동생에게 팔고 무심코 있었는데 양도소득세가 터무니없이 많이 나와 기가 막혔다. 산전 밭이었는데 장비를 동원하여 농로를 내고 경지정리를 하여 투자한 금액도 많은데 감당하기 어려운 세금을 내라 니 원망스러웠다. 다행히 세법강의에서 농사를 짓는 형제ㆍ자매 직계 존비속에게 양도한 경우 5년 동안 한시적으로 양도세가 비과세 된다는 237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노를 계속 저어갑시다

238 사실을 공부하게 되었고, 세무서에 이런 사실을 이야기하며 비과세처리 하여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하여 한시법 조문을 복사하여 보여주자 아무런 말없이 비과세 처리하여 주었다. 방송통신대 학교에서 공부하지 않았다면 고스란히 양도세를 냈을 것이다. 이런 것 을 법 앞에 잠자는 자는 보호하지 않는다. 라고 하였던가! 낮에는 건설 현장 기능공으로 밤에는 학생으로 방송대학교를 7년 만에 졸업하였다. 방송대학교공부를 하면서도 건축시공기능사 1급 시험에 응시하여 합 격하였고, 민법과 건축을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주택관리사 시험에도 합격하였다. 둘째 동생이 안산의 모 아파트 관리사무소 전기담당자로 당직 근무 를 하고 있었는데 승강기 고장으로 아이 업은 할머니가 추락하여 할머 니는 돌아가시고 아기는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승강기 관리 업체의 보험으로 보상은 되었으나 피해자 측에서 관리사무소에 책임을 물었는데 전적으로 동생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 보호자를 만나 그동안의 퇴직금 전액을 위로금으로 지급하겠다 며 선처를 호소하였으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여 수일이 지난 후에 안 산경찰서에 연행되어 유치되었다가 수원구치소로 이감되었다. 난감한 일이었다. 지인이 소개한 변호사를 만나 보았으나 인사사건이므로 400만 원 이 상 비용이 들어야 하며 결과는 장담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수원구치소 로 처음에 면회를 가 상황을 말하였더니 돈이 없으니 살고나가겠다 담담히 말하였다. 그런가 하고 재판날짜나 기다리자고 생각하고 3일 만 에 다시 면회를 하는데 보자마자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흐느끼며 어떻 게라도 나갈 수 있게 해달라는 말만 하고 면회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들 어가 버렸다. 늙으신 어머니는 아들의 구속 소식에 쓰러지셨고 가슴만 답답하고 앞 이 캄캄하였다. 방송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니 무슨 방법이 없느 냐는 가족들의 따가운 눈총도 피할 수 없었고 변호사 비용을 내가 부담 할 형편도 못되었다. 그래 7년 동안 공부한 실력을 모두 동원해보자! 방송대학 형법교제를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노를 계속 저어갑시다 238

239 밤새워 읽어도 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구속적부심 신청을 하기로 하고 영장사본, 현장사고 상황, 그동안의 관리체계 및 상태, 관리일지 등을 첨부하여 구속적부심 신청서를 접수하여 보석금을 납부조건으로 석방되었다. 온몸에 맥이 쭉 빠졌다. 주변에서 보는 눈이 달라졌다.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아는 것이 힘이다. 하면 된다. 이런 금싸 라기 같은 진리의 말씀을 우리는 너무 쉽게 간과한다. 방송대학교 교재는 혼자 공부하기 좋게 참 잘되어 있어 지금도 백과 사전으로 한 권도 버리지 않고 필요할 때 사전처럼 사용한다. 이 교제는 독학에 훈련된 나의 스승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불모지에 서 혼자 검정고시 공부를 했던 것과 비교하면 방송대학은 정말 보물과 같은 곳이다. 이 보물을 누가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빚보증을 잘못 서 신용불량은 물론 파산까지 간 동료를 금융감독원에 의뢰하여 연대채무를 해결하여 정상 인으로 살 수 있도록 해주었던 것도 큰 보람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영원한 건축기능인이다. 건축기능인의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건축 일반 시공기능장시험에 응시 하여 우리나라에서 11번째 합격자가 되었다. 기능사 1급과 기능장자격을 취득하며 현장기능공으로 일하고 있는데 우연히 신문광고에 한솔그룹사인 한솔흥진(주)에서 경력사원 모집을 한다고 하여 응시를 하였다. 쟁쟁한 사람들과 경쟁을 하여 경력사원으 로 입사하였다. 한솔흥진은 부동산 개발 임대 등을 하는 회사였다. 입사 당시 서초동에 현재는 KTF 빌딩이지만 당시는 한솔 원샷 018 건물 신 축공사의 발주자 입장에서 관리감독 및 인수자로 업무를 시작하였다. 세상을 살면서 열심히 노력하였더니 이런 결과도 있구나! 처음에 현 장에서 검측하는 현장기사가 그렇게 부럽더니 이제 나는 시공사가 공 사를 잘하는지 현장기사. 건축과장 들을 감독 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말 이다. 시공사는 포스코 건설이었고 건축주의 입장에서 철저히 감독하였다. 239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노를 계속 저어갑시다

240 그 공사가 준공되면서 강남구 역삼동에 한솔그룹사옥 신축현장에 투입 되어 건축담당 감독자 업무를 하였다. 이곳은 한솔건설에서 시공을 맞 고 구조설계 감리는 외국회사인 모비스에서 하였다. 이곳 역시 건축주 의 입장에서 관리 감독을 하여야 하니 책임감도 무거웠다. 설계사, 감리사, 시공사가 잘하는지 감독해야 했다. 그룹사 최고인 고 문님은 눈으로만 보고도 몇 mm 오차까지 지적하는 굉장히 꼼꼼하신 분 으로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관리자나 기능공들에게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 안 된다. 할 수 없다. 어렵다. 는 변명들을 한다. 그 래도 강요하면 잘하면 "당신이 해보시오? 이론만 배워가지고 현장 일 도 모르면서 잔소리한다"고 대들며 화를 낸다. 그럴 때면 슬그머니 그 가 쓰던 공구를 빼앗아 "이렇게 하면 되는데 왜 안 된다고만 하십니까?" 하며 직접 작업을 하여 보이면서 조용히 말하면 얼굴이 붉어지면서 요 구대로 작업을 한다. 또한, 도면에 표기된 대로 작업이 안 되었을 때도 책임자에게 재작업을 명확하게 요구했다. 그 후부터는 기능과 이론을 겸비한 기능장으로 철저하다고 현장에 소 문나 큰소리를 치지 않고 돌아만 다녀도 일이 잘되었다. 이 빌딩은 24층 으로 로비 층에 기둥이 없는 아치 라운드구조로 우리나라의 최초 공법 으로 실무자 및 학생 등 견학을 많이 하는 특수구조이다. 나는 여기서 머물지 않았다. 공부를 계속하기 위하여 대학원을 가기로 결심하였다. 45세에 용기를 내어 건국대학교 산업대학원 건축공학과에 입학하였 다. 두려움이 많았다. 방송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사람이 대학원에 서 건축공학공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입학하여보니 건설회사의 중역, 건축계에서 알 만한 유명한 건축사,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사람, 개인 건축사업을 하는 대표 등 연 령대도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늦었다고 생각할 때 시작하는 것이 제일 빠르다고 하였던가! 정상적인 코스로 공부하여 대기업의 중역이 된 사람이 무엇이 아쉬워 밤늦게 까지 돋보기를 쓰고 공부하려고 하는가! 많은 위안이 되었다. 지도하는 교수님과 경영자, 기술사, 건축사, 기능장 들이 낮에는 현장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노를 계속 저어갑시다 240

241 에서 밤에는 함께 어울려 연구하고 토론하여 나온 결과야말로 건설 산 업 발전과 나라발전의 초석이 되리라 믿는다. 또한 대학원에서 밤늦게까지 자상하게 지도하여 주셨던 교수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나는 현장에서 기능인으로 평생을 살았고 최고의 기능 인이 목표였으니 석사논문도 한식 미장기법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사라져가는 전통 미장기법을 계승하고 도제 방식에 의해서 전수되었 던 기법을 이 연구 자료만 보면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주 먹구구식의 기법이 아니라 정량적이며 규격 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연구하였다. 크게 의의를 갖는 것은 수천 년 만에 최초 연구자로서의 자 부심을 갖는다. 졸업 때는 우수논문으로 선정되어 우수논문상을 수상 하였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내가 석사학위와 우수논문상을 받는 순간 감회의 눈물을 참기는 정말 어려웠다. 노는 계속 저어야 한다. 나의 철학이다. 노를 젓지 않으면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어디론가 밀려간다. 숲 속의 나무를 보라! 하늘을 향해 모두 올라가려 하지만 올라가지 못 한 풀이나 나무는 고사하고 만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무한경쟁시대에 남과 같이 먹고, 놀고, 자 고 남보다 더 나은 대접을. 남보다 더 잘 살기를 원한다면 착오일 수밖 에 없다. 세상은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2003년 7월에는 월간노동에 스스로 업그레이드한 기능인으로 소개 되었으며, 국가기술자격 시험위원, 지방 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국가 기술 자격정책 세부직무 분야전문위원, 국가기술 자격직종별 전문위원, 준. 고령자 직업훈련 프로그램 검토위원, 건설 산업 교육훈련의 노. 사 정 참여 확대방안 자문위원 등 국가정책발전에 기여하고 있으며 건국대 학교 건축재료 및 시공연구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서울대학교 지질 공학과에서 한옥벽체의 내진력 실험에도 참여 하였다. 또한, 보물 810호인 경복궁 자경전 굴뚝의 십장생도가 원형을 잃어가 는 것을 복원. 재현하여 덕수궁 석조전에 전시한 문화재 기능인 작품전 에서 수상하기도 하였다. 241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노를 계속 저어갑시다

242 2007년 근로자의 날 행사에서 대통령표창을 받았으며, 대통령께서 참석한 건설 산업 60주년 기념식에서 한양대학교부총장, 삼성건설 전 사장 등과 함께 나는 180만 건설기능인을 대표하여 건설 산업 발전 공 로패를 받았다. 문화재청에서 시행하는 문화재기능인 시험에 합격하였 던바 현재는 문화재기능인협회이사로 활동하며, 전통건축기법의 계승 발전에 기여 하고 있다. 또한, 황토를 이용한 환경친화적 시공기법을 개발하여 실내마감재로 사용하여 건축 자재에서 발생하는 환경문제해결의 시공기법을 보급하 고 있으며, 전통의 맥을 잃어가는 한옥 미장기법에 대하여 사단법인 한 옥문화원에서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경기도 지정 노숙자 자활공동체 짜로사랑 두부공장설립에 봉사하여 감사패를 받기도 하였고, 빚진 자들의 집 사랑의 집 수리봉사자로 활동 중이다. 요즘은 자주 뒤를 돌아본다. 지난날의 어려운 시련을 극복하지 않고 자포자기하였다면 기능장, 특 급기술자 등 13개의 국가기술자격취득과 공학석사인 오늘의 내가 있었 겠는가! 나는 자부한다. 우리나라의 한식 전통미장과 현대건축의 미장 전문가 라고. 아니 세계에서 혼자일 것이다. 요즘 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대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중소기업 이나 건설현장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하고도 일손이 모자란다. 일 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안 하는 건 아닌지... 자기의 환경을 원망하지 맙시다. 이미 환경은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 다. 원망은 마음만 괴롭고 자기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 회는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하여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노를 계속 저어갑시다 242

243 자! 희망을 품고 힘차게 시작합시다! 그리고 넓은 바다를 향해 끊임없이 노를 저어 갑시다! 어기여차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노를 계속 저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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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자기능력개발 수범사례 떨어진 학사 모를 다시 주워 쓰고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번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 집어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행복했던 순간들, 가슴 저미는 아픈 기억들, 후회 되는 아쉬움들이 많이 있을 꺼 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러한 모든 느낌을 가지고 있고 때로는 남에게 들어내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번 수기 공모전에 응모를 하면서 내가 살아온 지난 일들을 한번 되돌아보고 차분 히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진 것 같아 좋았습니다. 또한 지금에 나의 일과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땀으로 이루어진 것인 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힘든 시간을 잘 참고 견뎌낸 내 자신에게도 칭찬에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이루 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삶이란 먼 여정을 통해 때론 거친 풍랑으로 길 을 잃고 방황하거나 포기하고 싶거나 좌절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혼신의 힘을 기울여 노력한다면 반드시 자신이 목적한 곳에 도달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 들에게 저의 글이 작은 위안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지금의 제가 있기 까지 저를 믿고 인내해준 어머님과 사랑하는 아내, 유찬이, 채연이, 아끼는 제자들 에게 깊은 감사들 드리며, 수상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김 태 종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

246 나는 어릴 적 나의 어머님이 꾸신 꿈을 기억한다. 어머니께서 동네 아 주머니들과 작은 언덕을 넘어 일하러 갈 때 자꾸 누군가 뒤에서 당신을 쫓아오는 것 같아 뒤돌아보니 어떤 어린 학생이 교복을 입고 모자를 쓴 채 자꾸 자기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무서워 왜 따라 오냐고 물 었고 그 학생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다면서 계속 달려오다가 그만 머 리에 쓴 학사모를 바닥에 떨어뜨렸다고 한다. 그 어린 학생은 다시 바닥 에 떨어진 학사모를 머리에 다시 주워 쓰고 어머니를 따라오며 어머니 와 함께 살자고 했다. 한편으론 너무 안 돼 보이고 한편으론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지르면서 꿈에서 깨어났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내가 태 어난 직후 어머니가 꾸신 꿈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어머니와 나의 고되고 힘든 삶의 과정을 극복하고 다시 나의 꿈을 되찾아 가는 과 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꿈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린 시절 나는 경상북도 영일군 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 다. 내가 태어날 무렵 우리 집은 소 10마리를 가지고 있는 그래도 좀 사 는 집이었다고 한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니기에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 러나 그런 행복도 잠시 아버지가 이름 모를 지병으로 조금씩 쇠약해지 시다가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그만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온 식구가 슬퍼할 겨를도 없이 어머니께서는 자식들 밥을 굶길까봐 동네 이집 저 집 다니며 농사일 품앗이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셨다. 그러나 시골에서 하루 몇만 원 받는 돈으론 우리 4남매를 모두 입히고 먹이고 가르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누나들은 모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였고, 어머니는 바로 위 초등학생인 누나와 나를 그 음산 한 시골집에 남겨 두고 도시로 돈을 벌기 위해 나가셨다. 어머니는 식당에서 그릇 닦는 일부터 물불을 가르지 않고 하셨다. 그 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굶어야 했기 때문이다. 시골에 남은 누나와 나 는 정말 힘겹게 살았다. 난 그때 부모가 곁에 없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게 되었고, 배고픔과 외로움을 알게 되었다. 난 너무 어린 나이에 겪지 않아도 될 너무 많은 일을 겪게 되었다. 초등학생인 누나와 난 어머니가 떠난 뒤로 집안에 모든 일과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다. 너무 벅차고 힘이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떨어진 학사 모를 다시 주워 쓰고 246

247 들었다. 어머니가 도시로 간 뒤 우리는 한 번도 점심 도시락을 싸간 적 이 없었다. 점심시간엔 늘 교문 밖을 서성거려야 했고. 그런 모습을 누 가 볼까 감추었다. 쌀이 없을 땐 라면 한 봉지를 둘이 쪼개 먹으며 배고 픔을 달래야 했다. 더 힘든 건 외로움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학교를 마 치고 집에 가면 엄마가 따듯하게 안아주고 간식도 챙겨주는데 내 집은 항상 빈집이었다. 혼자 밥을 먹고 TV를 보다 방에 쓰러져 자는 게 일상 이었다. 외롭고 허전했다. 특히나 추운 겨울날 땔감이 없어 누나와 단둘 이서 얼음장 같은 냉방에 이불 하나 깔고 잠을 잘 때면 엄마가 너무 그 립고 보고 싶었다. 이런 나의 외로움과 힘겨움을 알아 준건 바로 6학년 때 담임 선생님 이셨다. 우연한 기회에 나를 벌주게 되었고 벌 받고 난 후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나의 처지를 다 알게 되셨다. 처음엔 무척 자존심 상하고 부끄 러웠지만 선생님의 따뜻한 말씀에 이내 마음이 풀리고 나는 있는 모습 그대로 선생님께 모두 보여드렸다. 그런 나를 선생님은 많이 챙겨 주셨 다. 부모 없이 누나와 함께 생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의 도시락을 챙 겨 주셨으며 참고서가 없음을 알고 선생님이 가지고 계셨던 전과를 내 게 건네주셨다. 지금도 그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누구야, 이건 전과다. 비록 힘들지만 참고 열심히 공부해라. 넌 잘할 수 있을 거 다. 그 말씀을 듣고 한 손에 전과를 들고 교문 밖을 나오며 하염없이 울 었던 기억이 난다. 뭐가 그리 서럽고 서글펐는지 한참을 울었다. 그 후 나의 장래 희망은 선생님이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나도 선생님 같은 멋 지고 훌륭한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뚫어져라 선생님 을 쳐다보고 선생님 말씀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듣고 선생님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성적도 상위권으로 올라가고 학교 모 든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어머니가 옆 에 없는 외로움과 힘겨움을 선생님의 사랑과 관심으로 채우며 하루하 루를 보냈다. 이렇게 내 초등학교 시절은 선생님 덕분에 무사히 마치고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중학교에 진학해 나는 더욱 학교생활에 충실 하려고 247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떨어진 학사 모를 다시 주워 쓰고

248 애썼다. 왜냐하면, 난 나의 꿈이 있었고, 나를 위해 밤늦게까지 식당에 서 일하시는 어머니를 보면 항상 미안한 마음에 어떻게 해서든 열심히 해서 빨리 힘든 어머님의 짐을 덜어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욱 학업에 매진하여 결국 1학년 때부터 항상 전교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그런 나를 어머니는 무척 자랑스러워 하셨고 나 자신도 조금 씩 안정된 기반을 잡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운명은 내가 행복해 지는 걸 시기라도 하듯 가혹한 시련을 내게 주었다. 내가 한창 공부에 전념하 고 혼신에 힘을 기울일 때쯤 어느 날 갑자기 아침에 일어났더니 나의 팔 다리가 힘이 조금씩 빠지더니 움직이질 않았다. 정말 믿기지 않을 만큼 멀쩡했던 내 다리와 팔이 움직이질 않았다. 곧 바로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해 봤지만 의사도 알 수 없다고 하며 경과를 그냥 지켜만 보자고 하였다. 병명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나의 팔과 다 리는 조금씩 힘이 빠지고 늘어져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내시며 식당에서 그릇을 닦으셨다. 이 제 좀 기반을 잡고 안정을 찾을 만하니 또 이런 시련을 주니 어떻게 살 아야 할지 막막하였다.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데 이 병원 저 병원 다니 며 검사받을 형편도 되지 않았다. 하루는 어머니가 작은 봉투에 병 하나를 들고 오셨다. 바로 농약이었 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같이 죽는 게 났다고, 이건 해도 너무 하다고 신이 있다면 이럴 순 없는 거라 하시며 하염없이 분노에 찬 모습으로 우 셨다. 나도 울었다. 너무 기가 막히고 무섭고 두려웠다. 이 세상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난 말했다. 난 하고 싶은 게 있고, 꼭 이 병 고칠 수 있다고 그러니 제발 죽지 말자고 하였다. 그러고 나와 어머니는 붙잡 고 한참을 울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경북 영천에 있는 모 한의 사가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어머니와 나는 그 곳으로 향했다. 그 한의사는 진찰해보고 자신도 처음 보는 증세지만 일 단 치료를 해보자고 했고 수많은 한약을 처방해 주셨다. 그 약을 먹고는 기적같이 나의 몸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떨어진 학사 모를 다시 주워 쓰고 248

249 정말 끝날 것만 같았던 나의 삶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 너무 기뻤다. 그 후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게 회복이 되었고 결국 난 3달간 몸조리 후 다 시 학교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학교로 돌아온 후 나는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심과 무엇인가 내 삶에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아 주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 나를 낮게 해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난 마음이 바빴고 할 일이 너무 많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소중한 하루하 루를 부족한 공부를 매우며 열심히 생활했고 절망에 고비에서 다시 일 어난 나는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 그 결과 아프기 전보다 오히려 학 교 활동도 더 열심히 하게 되었고 공부에 열중하여 알찬 학교생활을 보 냈다. 이렇게 2학년을 보내고 드디어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는 3학년이 되 었다. 난 내가 목표한 학교에 갈 충분한 능력과 실력을 갖추기 위해 열 심히 노력했기에 인문계 진학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건 나만의 욕심이 되어버렸다. 그 당시 어머니는 60에 가까운 나이로 나의 힘든 병간호로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거기다 자정까지 계속되는 고된 식당일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된 나는 무거운 심정으로 어머니의 힘든 모습을 눈으로 매일 지켜 봐야 했고, 그 일은 네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온몸에 통증을 물파스 하 나로 견디며 돈을 버시는 모습을 보고, 도저히 어머니께 일반 고교 진 학을 하겠다는 말을 하기 힘들었다. 더 이상 어머니에게만 무거운 삶에 249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떨어진 학사 모를 다시 주워 쓰고

250 짐을 지게 할 순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당시 실업계 학교 중에서 국립학교로 입학하기만 하면 3년간 등록금 전 액 면제와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으며, 졸업 후 취업이 바로 가능한 구 미의 전자 공고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사실을 담임선생님과 어머님 께 알렸을 때 선생님은 너무 놀라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왜 그런 결정 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며 나를 다그쳤다. 충분히 인문계 가고도 남 을 실력인데 왜 네가 실업학교를 진학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며 나무라셨다. 그리고는 어머님을 학교로 부르셨고, 너무 고생하셔 늙어 버린 우리 어머니는 초라한 모습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교무실로 들어 오셨다. 선생님과의 대화를 난 교무실 밖에서 들을 수 있었고, 한참 후 담임 선생님이 날 부르셨다. 왜 진작 그렇게 힘든 걸 얘기하지 않았느 냐고 너의 마음을 알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그러나 난 괜찮다며 언젠가는 다시 기회가 올 거라고 잠시 미뤄 둘 뿐이라고 말했 다. 그러자 선생님은 원서를 그 자리에서 바로 써 주셨다. 그날 어머니 는 긴 한숨을 내 쉬며 아무 말 없이 운동장을 걸어 나가셨고 난 그 뒷모 습을 보며 내게 용기를 달라고 신에게 기도했다. 그렇게 나는 실업계 고등학교 전자과에 입학하게 되었고 3년간 기숙 사 생활을 하며 중학교 때와는 전혀 다른 공부와 생활에 적응해야만 했 다. 처음엔 호기심과 기대로 모든 것이 좋아 보였고 잘할 수 있을 것 같 은 마음으로 시작했다. 새로 만난 친구들 새로운 교과목, 선생님 모든 것들로 나의 마음은 부풀어 있었다. 더구나 그 학교는 전국에서 공부 꽤 나 한다는 우등생 중에 가정 형편상 인문계 진학은 어렵고 빨리 사회 진 출해서 자리를 잡기 위해 입학한 학생들이 대부분 이여서 나름 그 친구 들과 공감대도 형성되고 서로에게 위안이 될 수 있어 정말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생소한 과목들 엄격한 학교생활, 노력하지 않아도 정해져 있는 우리의 진로 이 모든 것들에 조금씩 지쳐갔다. 모든 것이 권태로워지기 시작했고 의욕을 잃어 갔으며, 이러다간 나 자신을 포기해 버릴 것 같은 느낌 이였다. 더욱이 다른 중학교 때 친구들은 대 학 진학을 목표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입시 준비에 매진하는데 나는 지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떨어진 학사 모를 다시 주워 쓰고 250

251 금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남들처럼 좋은 대학 가 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멋진 삶을 살고 싶었는데 지금 이렇게 아무 생 각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으니 너무 답답하고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정 말 우리 어머니 꿈처럼 나의 학사모는 여기서 바닥에 떨어지는 건가 하 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학창 시절은 이렇게 끝이 나는 건가 하는 생각 에 너무 괴로웠다. 하지만 이미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되돌릴 순 없었다. 그래서 이왕 시작한 거 끝을 보자는 마음으로 공부에 집중했으며, 그 후 틈나는 대로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학과목이며 전자 기술 과 관련된 자격증을 따는데 도움이 되는 모든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 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잡념도 사라지고 덕분에 4개의 자격증도 취득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이 흐트러지지 않고 내 꿈을 포 기하지 않기 위한 어설픈 몸부림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2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3학년 2학기가 되었고 비로소 그 토록 바라던 취업을 하게 되었다. 내가 취업한 곳은 오디오를 만드는 전 자 회사였는데 회사 시설도 좋고 분위기도 괜찮은 편이였다. 무엇보다 이제 나 스스로 일을 해 돈을 벌 수 있고 어머니를 편히 모실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가슴 뿌듯하고 기뻤다. 나는 회사에서 주, 야간 2교대를 하 며 열심히 일했다. 처음 야간 근무를 할 때 코피가 많이 날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나의 첫 월급봉투를 받고 기뻐하시던 어머니 모습을 떠올리며, 그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근무했으며 기기를 만지는 기술도 선배들을 쫓아다니며 열심히 배워 선배들로부터 인정도 받았다. 그래서 다른 동료들보다 훨씬 빨리 좋은 부서에 배정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인생을 바꿔 놓은 작은 일이 있었다. 하루는 야간 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기숙사로 가는 도중 그날은 왠지 혼자 숙소로 들 어가기가 싫었다. 집에 가서 혼자 놀자니 너무 심심하고 그렇다고 딱히 갈 때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촌놈이 서울 구경이나 한번 해 보자는 마 음으로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종로에 갔다. 왠지 종로에는 볼거리가 많 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그래서 여기저기 구경을 하다가 우연히 종로 3가 역 근처에 있는 작은 서점 앞을 지나게 되었다. 진열대에 차곡차곡 251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떨어진 학사 모를 다시 주워 쓰고

252 쌓여 있는 책을 보니 왠지 들어가고 싶었다. 서점 안에서 이런저런 책을 보고 난 후 별로 마음에 드는 책이 없이 출입문을 열고 딱 나오려는 순 간 내 눈앞에 어마어마하게 큰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내 눈에는 정말 너무 크게 분명하게 눈에 확 들어왔다. 그 책은 이름하여 금성 교과서에 서 나온 일반 수학 책이었다. 바로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사용했던 교과서였다. 그 책을 보는 순간 내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고 너무 감회 가 새로웠다. 그래서 그 책을 기념으로 500원을 주고 샀다. 공부를 할 목적으로 산 책은 아니었다. 그냥 샀다. 그리고 기숙사 책꽂이에 꽂아 놓았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고 난 그 책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야간 근무를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숙사 로 와서 잠을 자고 일어났다. 막상 일어나서 딱히 뭐 할 게 없었다. 너무 심심했다. 그래서 책상 앞에 앉아 이것저것 만져보다 우연히 책꽂이에 꽂혀있는 그 일반 수학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혼자 씩 웃으며 책을 펴고 볼펜을 돌리며 문제를 풀어봤다. 근데 신기하게도 학교 다닐 땐 그렇게 안 풀리고 싫던 수학이 너무 잘 풀리고 재밌었다. 한 문제 한 문제 풀 때 마나 뿌듯한 무언가를 가슴 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너무 재밌었다. 그 래서 같은 동료한테 그 얘길 했더니 너 드디어 미쳤구나. 라고 말했다. 공감이 안 간다는 말투였지만 상관없었다. 너무 재밌고 신기한걸. 난 그 때 순간 번쩍하고 떠오르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바로 지금이 아닐까. 다시 한번 해 보자. 바로 지금이 나의 떨어진 학사모를 다시 주어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사람은 살면서 세 번의 기회는 온다는데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주간이나 야간 근무를 하고 남는 시간을 쪼개어 틈틈이 수학 문제 를 풀었다. 공부를 위한 것도 있지만 그 자체가 즐거웠다. 문제 푸는 게 재밌기에 더욱 열중했다. 그러는 동시에 여러 과목의 교과서도 함께 읽 었다. 학교 다닐 땐 그토록 싫었는데 혼자 공부하니 정말 가슴 깊이 공 부가 되었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 나는 자신감을 갖게 됐고 대학수학능 력 시험을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잃어버린 나의 꿈을 다 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부푼 기대를 안게 되었다.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떨어진 학사 모를 다시 주워 쓰고 252

253 사실 회사에서 근무하면서도 대졸과 고졸 학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여전히 존재했고 우리는 늘 생산직에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승진이나 직급이 올라가기 무척 어려웠고, 그런 상황 속에서 좀 더 나은 삶에 대한 열망을 가지게 되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공부에 열정 을 쏟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하루하루를 혼신에 힘을 다해 생 활했다. 그러나 직장 일과 공부를 병행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 고, 또한 학원에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열정이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올까 하는 마음에 최선을 다했다. 마침내 나는 2004년 말에 수능 시험에 응 시할 수 있었고 기대 이상의 좋은 점수를 받게 되었다. 어떤 대학 무슨 과를 갈까 고민도 하다가 정말 내가 하고 싶고 적성에 맞는 공부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영어과를 지원하게 되었다. 그래서 난 마침내 그토록 가고 싶었던 4년제 대학 입학의 꿈을 이루 게 되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누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연히 들어가는 대학이었지만,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기회이고 피나는 노력 의 결과였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합격자 발표하는 날 전화로 합격 자 확인을 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고, 고진감래라 고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너무 행복했다. 제일 253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떨어진 학사 모를 다시 주워 쓰고

254 먼저 어머니께 소식을 전했을 때 어머니는 많이 우셨다. 그렇게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인문계 학교도 못 보내고 실업계 학교에 가서 힘들게 고생하며 학교를 졸업하고, 졸업 후 직장 생활하며 밤낮을 공부해서 이 룬 결과였기에 더 많이 대견해 하시고 힘이 되어 주지 못한 것에 미안 해하셨다. 어머니는 나의 합격 통지서를 액자에 넣어 방안 제일 잘 보이 는 곳이 걸어 두셨다. 그리고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 을까 하며 그 액자를 쓰다듬으며 많이 우셨다. 이렇게 힘든 여정을 거처 난 드디어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은 정말 달 랐다. 넓은 캠퍼스, 자유로운 분위기, 멋진 강의실, 수많은 책이 쌓여 있 는 도서관 정말 여기저기 둘러보는 곳마다 새롭고 가슴 뿌듯했다. 나는 이곳에서 나의 못다 한 열정을 불태우고 꿈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했 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생활했다. 어렵게 얻은 기회였기에 네겐 너 무 소중한 시간 이였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영어를 전공하게 되어 학과 공부에도 큰 무리 없이 잘 따라갈 수 있었고, 사회생활을 한번 해봐서인 지 사람들 사귀는데도 큰 무리 없이 어울릴 수 있었다. 나의 대학 생활은 너무 순조롭게 순항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고 민은 바로 학비와 생활비 문제였다. 직장에서 모은 돈은 얼마 가지 못 해 다 바닥이 나고 연로한 어머니도 소소한 일로 조금 생활비를 버셨지 만 학비와 생활비를 대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난 고민 끝에 일단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타는 것을 기본 계획으로 세우고 더 불어 여러 가지 개인 과외부터 아르바이트까지 뭐든 닥치는 대로 다했 다. 아침에는 신문 배달을 하고, 수업 후에는 개인 과외를 하고 방학 때 는 공장이며, 공사 현장이며, 학원 아르바이트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다. 그렇게 하다 보니 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너무 힘들어 직장 다닐 때보다 더 힘들었다. 주위 사람들은 겉보기엔 평범한 집안에서 귀하게 자란 사 람처럼 보이는데 뭐 저렇게 열심히 뛰어다니는지 잘 모르겠다며 의아 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주위 사람 시선에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이렇 게 발 벗고 뛰어다니다 보니 교수님 이하 주위 좋은 분들을 알게 되고 그분들의 도움이 나에겐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난 경제적인 문제들을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떨어진 학사 모를 다시 주워 쓰고 254

255 장학금과 노력으로 한해 한해를 버텨 나갔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나의 꿈이 있고,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계셨기에 더더욱 열심히 해야만 했다. 이렇듯 치열한 몇 년이 지나가고 학교생활에 조금씩 적응이 되어 갈 때쯤 난 졸업 후 장차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내 스스로에 게 진정 네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묻게 되었다. 그때 문득 교사가 되고 싶 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옆에서 시키거나 얘기한 적도 없는데 문득 그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내 초등학교 시절 가련한 네게 너무나 큰 사랑과 용기를 주셨던 담임선생님이 기억났다. 내가 받은 사랑과 관심을 나와 비슷한 학생들을 가르치며 보답하는 것이 너무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 이라 생각되었으며 내 적성에도 잘 맞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을 하니 정 말 너무나 가슴 뿌듯하고 설렜다. 그래서 난 교직과정을 이수하기 시작 했다. 교직과정은 무척 힘들고 어려웠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 었고 나의 관심이나 적성에도 잘 맞아 다른 전공과목보다 더 많은 시간 을 투자해서 공부했다. 교직과정을 이수하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깊 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 어느덧 4학년 마지막에 교생실습을 나가게 되었 고 실습 후 교직이 나의 적성에 확실히 맞는다는 걸 더욱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나의 결심은 확고해져 실력 있고 인간적인 멋진 교사가 되고 자 결심했다. 그 후 본격적인 임용 고사 준비에 들어갔다. 보통 임용 고사 준비는 대학에서 공부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므로 학원에 가서 교육학이나 전공 과목 강의를 듣고 그룹 스터디를 하는 등 매우 치열한 과정을 거치며 몇 년을 준비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나는 힘든 경제적 여건상 학원에 다닐 형편이 못되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혼자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조 금은 무모하고 용감한 도전이었지만 잘해낼 자신이 있었다. 전공이나 교육학을 혼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좋다는 도서관을 이곳저곳 돌아다 니며 전공 분야에 관한 필수적 이론서들을 수소문해서 찾고 중요한 내 용을 복사하고 내용을 정리하며 성실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궁금한 것 255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떨어진 학사 모를 다시 주워 쓰고

256 은 주위 선배나 교수님들께 일일이 찾아다니며 묻고 고민하며 하루하 루를 공부해야 했다. 조금은 힘들고 피곤했다. 왜냐하면, 임용 고시 준 비를 하면서도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기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낮에는 짬을 내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외를 했고 밤에는 주로 공부에 몰두해야 했다. 남들보다는 좀 불리한 여건 이였지 만 나의 이런 노력들이 좋은 결실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확신이 내 마음 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난 혼자 공부했지만 전혀 두렵거나 걱정되지 않 았다. 그러던 99년 말에 드디어 내가 교사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 당시 난 중등 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기에 중등 임용 고사를 공부 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초등에서 중등 교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대 상으로 초등학교 교사를 선발하는 공개 임용 고사가 전국적으로 시행되 었다. 이런 시험은 수십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그런 시험이라고 소 식을 들었다. 난 고민이 되었다. 계속 공부해서 중등 임용 고사를 볼 것 인지 아니면 초등에 응시할 것인지 그러나 그 당시 우리나라는 IMF를 겪고 있었으며 취업이 거의 되지 않아 대량 실업 사태가 벌어지는 등 좋 지 않은 상황이었고, 나 개인적으로도 연로하신 어머님을 모시고 생활 을 하고 있는 터라 경제적 어려움과 더불어 심적인 부담감이 컸다. 그래 서 결국 나는 서울 지역에 응시를 하기로 결심했고 다행히 초등 임용 고 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하게 되었다. 합격 후 주변 교수님이나 선. 후배들로부터 많은 격려와 칭찬을 받았 다. 정말 어려운 시기에 큰일을 해냈다고 고생하면서 대학을 다닌 보람 있다고 말이다. 난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무엇보다도 어려운 현실에서도 잘 참고 견뎌낸 나 자신이 무척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했다. 남들은 쉽게 이루었을지 모를 꿈이지만 나는 길고도 먼 길을 돌아서 여기까지 왔다. 고진감래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생각했고 드디어 그토록 꿈꾸던 교사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가슴 뿌듯하고 설레었다. 하마터 면 놓쳐버리고 영원히 잡지 못했을 나의 꿈을 다시 잡고 우뚝 일어선 것 이다. 잠을 자지 않고 밥을 적게 먹어도 배고프지 않을 만큼 좋았다.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떨어진 학사 모를 다시 주워 쓰고 256

257 이렇게 나는 합격 후 초임 교사 연수를 거처 서울에 한 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아서 근무하게 되었다. 내가 발령받은 초등학교는 주변 환경 이 그다지 좋지 못한 곳으로 결손 가정이나 조손 가정을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어렵고 바쁜 사람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교실 안에 학생들도 조금 안 정감이 없고 산만한 경우가 많았으며 특히 가정환경이 좋지 못한 아동 들은 굉장히 반항적이거나 학교생활에 재미를 못 붙이고 방황하는 경 우가 많았다. 또 어떤 아이들은 의기소침하고 자신감 없어 우울한 모습 으로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아이들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마치 과거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굉장히 마 음이 아팠다. 그 순간 그래 이곳이야말로 내가 근무하기에 가장 좋은 곳 이야 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그만큼 힘든 아이들이 많다는 건 내가 힘이 되고 도와줄 수 있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교사가 모든 학생에게 고른 관심을 두어야 하지만 나는 이런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쏟자고 나는 내 스스로 다짐했다. 마치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의 담임선생님께서 나에게 그렇 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우선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뭔가 학교생활 에 재미를 붙일 수 있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 각했다. 그래서 그런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장점을 찾기 시작 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그 아이들에 모습에선 과연 어떤 것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의외로 아이들은 미술이나 체 육 혹은 글쓰기나 수학 쪽에 꽤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나 는 그런 좋은 점과 잘하는 것들을 수업 시간을 활용하여 칭찬해주고 체 육대회나 학예회 등의 학교 행사 때 다른 아이들 앞에서 발표하는 기회 를 주어 학생들이 자신감을 찾도록 도와주었다. 처음에는 소극적인 자 세로 인해 무척 힘이 들었다. 자신들이 다른 아이들 앞에서 무엇을 한다 는 자체를 굉장히 생소하고 낯설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 이 갈수록 한번 두 번 자신을 장점을 들어내고 친구들이나 교사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자 굉장히 빠르게 변하였다. 그래서 학교의 여러 대회나 행사 때 스스로 참가해 보겠다고 한 학생도 있었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257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떨어진 학사 모를 다시 주워 쓰고

258 입상한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학교 공부에 자신감이 생기고 활동적으 로 변하자 평소의 외면했던 친구들도 다시 모여들고 교우 관계에서도 무척 발전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 반항적이고 삐딱선 을 타던 아이들도 나의 진심을 알았는지 조금씩 마음에 문을 열기 시작 했다. 그리고 나의 충실한 편이 되었다. 나는 가슴 뭉클하고 뿌듯했다. 내가 누군가에도 힘이 되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행복했다. 이렇게 나는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하루하루를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 고 있다. 가끔 지치고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교실에서 아이들과 수업 하며 뒹굴 때가 가장 행복하다. 난 나의 꿈을 이룬 것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좀 멀리 돌아와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신념 하나로 모든 역경을 이 겨내고 이루어 냈다. 만약 내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문계 진학을 포 기해야 했을 때, 공장에서 일하며 밤낮으로 공부할 때, 몹쓸 병으로 쓰 러졌을 때, 돈이 없어 배고파 힘들었을 때 모든 걸 내 운명 탓으로 돌리 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더라면 지금 내가 교실에서 느끼는 이런 행복감 과 즐거움은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다행이었던 것은 여러 가지 힘들고 다양한 환경에서 생활하 면서 겪었던 사회 경험들은 내 자신이 진정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나의 특기와 장점이 무언지 깨닫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 이런 경험이 없었다면 난 지금 나의 적성과는 전혀 맞지 않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힘들게 했던 모든 것들 에 감사하고 싶다. 끝으로 삶을 살면서 누구나 어렵고 힘든 상황을 겪게 된다. 어떤 이는 이를 자기 발전의 밑바탕으로 생각하여 배우는 자세로 임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큰 형벌이나 저주라고 생각하여 좌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 지만 어떠한 경우이든 자신의 꿈을 잃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깨닫는 자세를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떨어진 학사 모를 다시 주워 쓰고 258

259 가진다면 이 세상에서 당신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말하 고 싶다. 259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떨어진 학사 모를 다시 주워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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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자기능력개발 수범사례 배우는 기쁨이 내 삶의 원동력 나는 미래를 기다린 적이 없다. 나는 언제나 그 시대의 미래였다. 서재에서 나는 내가 살지 않은 생을 살았다. 학습의 또 다른 즐거움은 내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 는 것이었다. 한 순간도 허튼짓을 하지 않았다.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건, 타고난 재능이나 행운이 아니라 청춘과 같은 열정과 도전이었다. 무엇인가 목표를 정하 고 나면 나는 꼭 이루고야 말았다. 생각하는 대로 살아라 그러하지 않으면 머지 않 아 사는 대로 생각한다. 김 후 진 경상남도 창원시 대방동

262 입지전적인 인물의 화려한 프로필 뒤에는 대개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 극하는 시련 극복기가 숨어 있기 마련이다. 성취해 낸 것이 많으면 많을 수록 도달한 곳이 높으면 높을수록 지나온 삶의 어느 고비에서 나를 좌 절하게 했던 고난의 기억은 슬픈 드라마의 배경음악처럼 쓰라린 가락 으로 재생되어 감동을 더욱 고조시킬 것이다. 한 사람이 반평생 동안 성 취해 낸 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화려한 이 프로필의 주인공은 예 상했던 것보다 실제 만나 보았을 때는 뭔가 정곡을 찔린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미래를 준비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나에게 언제까지 계속 공부와 학습만 할 것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도 묻는다. 나는 직장인으 로서 급변하는 시대에 학습으로 안목을 넓혀 나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 라 생각하여 실천하고 있을 뿐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불혹의 나 이를 지나 지천명의 나이에 접어든 내가 늘 학습과 공부를 한다고 하니 신기한 모양이다. 평생학습을 통한 청춘(Youth)의 열정과 끊임없는 도전정신은 오늘날 의 나를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신분을 드높여준 소중한 가치와 수단으 로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젊음과 건강과 건전한 정신을 유 지하는 비결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경기도 용인이라는 시골마을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는 집안의 장 남으로 태어나 남부럽지 않은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 나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칠 즈음 나는 인생의 대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 다. 방앗간의 안전사고로 직원이 부상을 당하여 피해보상 등으로 가세 가 기울게 되어 결국에는 가업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그해 추운 겨울 우리 가족은 시골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이사를 하여 힘겨운 도시 생 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마친 후 고 등학교는 검정고시로 마쳐야만 했다. 어렵게 원서를 제출한 서울 성동 기계공고 입시에서 낙방하여 처음으로 냉담한 인생의 고배를 맛보아야 만 했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친구들의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모습을 볼 때마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배우는 기쁨이 내 삶의 원동력 262

263 다 나는 한없는 좌절감을 곱씹어야만 했다. 이때 서울에서 사귄 친구들 이 불량서클에 속해 있었는데 걔네들과 어울리면서 주먹질까지는 아니 었지만 하여튼 좀 터프가이였다. 청바지에 기타를 들고 청량리역에서 경춘선을 타고 강촌이나 춘천으로 놀러다니기 바빴다. 좌절과 고통으 로 방황의 날을 보내며 영화 친구의 주인공과 흡사한 생활을 2년여 계 속하였다. 그때 생계를 위해 어머니께서 머리에 이고 다니며, 떡과 김밥 행상을 하시고 계실 때, 나는 타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어머니의 실망스런 눈빛과 얼굴 속에서도 이런 행동은 일정기간 계속되었다. 그때 몸져누 워 버린 아버지로 인해 집안은 더욱 풍비박산이 되어 가고 있었다. 병원 비와 수술비가 없는 다급한 상황에서 친척들의 도움으로 겨우 대수술 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운명과도 같은 큰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1977년 인생의 역전 드라마가 펼쳐지는 신문 공고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것은 천 리 먼 곳에 있는 경남 창원의 한백 창원 직업훈련 원에서 전액 국비로 직업훈련생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현실 도피보 다는 이제 철이 들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 당시에는 사회 통념상 학연 과 지연이 지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부족한 학력과 검정고시 출신 으로는 장래에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기술을 배우기로 작정을 하고, 당시에는 도서 벽지인 이곳 창원으로 내려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훈련원의 생활은 군대의 훈련소보다 더욱 혹독하고 강도가 높은 스파르타식 용접실습과 고된 훈련의 연속이었다. 오늘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3D 직종이다. 그러나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직종이기에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하였다. 나는 그때 용접기술을 익히면서 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선수 후보에 선발되어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계속되는 지옥의 특수훈련 과 실기지도를 받았다. 그 결과 경남지방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하여 은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듬해에는 경남대표선수로 선발되어 전국기 능경기대회 용접직종 에 출전하여 2위로 입상하여 은메달을 목에 걸었 다. 또한 용접기능사2급 자격증도 취득하였다. 263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배우는 기쁨이 내 삶의 원동력

264 특수훈련 담당교사의 특별한 소개로 대우중공업(주)에 예비사원으로 발탁되어 1978년 한백 창원 직업훈련원 졸업과 동시에 대우중공업(주) 창원공장으로 발령을 받아 정식 사원의 자리에 올랐다. 학교에서 배운 기술을 바탕삼아 밤낮없이 열심히 일을 하였다. 그러나 선수 시절을 마감하고 회사로 돌아왔을 때 나는 비로소 현실 의 차가운 실체를 마주하게 되었다. 공장의 현장에는 남들이 3D 라고 기피하는 용접일이 기다리고 있을 뿐, 영예의 메달도 시상식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없었다. 사무직과 현장직 사원의 월급은 말할 것도 없 고 유니폼부터가 달랐다. 그 푸른 작업복을 입고는 어딜 나서도 뽀대가 나질 않았다. 나는 단지 용접공일 뿐, 자랑스러웠던 기술이 하잘 것 없이 느껴졌다.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자존심이 뭉개지는 경험을 해 본 일이 없었다. 방앗간 집 개구쟁이 아들로 자란 어린 시절, 동네친구들과 동창 들 사이에서 카리스마 있는 친구로 통했던 학창시절 나팔바지와 통기 타와 고고 춤을 즐겼던 청년기의 어느 때를 돌아보아도 뽀대가 났었다. 심지어 몽둥이 세례를 맞으며 군대식 교육을 받았던 한백에서도 기능경 기대회에 나갈 재목으로 선발된 엘리트 그룹에 속해 있었으니 몸은 힘 들어도 자존심이 뭉개지는 경험은 있을 리 만무하였다. 그러나 대우중 공업(주)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 학력 위주로 돌아가는 냉담한 사회 현실을 깨달았을 때, 이 나팔바지 청춘의 시퍼런 자존심은 한없이 구겨 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학에 들어간 친구들하고는 격차가 생기기 시 작하고 나는 현장에서 차별을 당하는데 친구들은 낭만적인 대학생활을 이야기하니까...누가 봐도 상심의 상처가 깊었지만 나의 시선은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아니, 나는 이미 이러한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동안 방황을 하다가 독한 마음을 먹었다. 아! 배워야겠다. 그 때부터 평생에 걸친 공부길이 시작되었다. 일단 목표를 정한 뒤부터는 피나는 훈련과 고행의 연속이었다. 퇴근 후에도 새벽까지 공부하면서 책과 씨름을 한 끝에 1981년 대입 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계속하여 파김치가 되도록 현장에 근무하면서 용접 전반에 관한 기술서적을 뒤적이며 공부를 하는데 마음 을 썼다.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배우는 기쁨이 내 삶의 원동력 264

265 특히, 알루미늄용접 및 특수용접에 흥미를 갖고 공부를 하였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알루미늄 용접과 특수용접 기술자가 가뭄에 콩 나듯 희 소하였기 때문이었다. 1982년 우리나라 최초의 자주국방을 위한 정성어린 무기를 만드는 특수산업 분야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붙잡았다. 그곳에서 알루미 늄용접과 특수용접을 체득하기 시작하였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하면서 기술과 노하우 를 익혀 나갔다. 그러나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이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기능인이 되겠다고 열정을 쏟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깊은 고민에 빠 졌다. 기능계 최고의 요람인 창원기능대학에 들어가기로 결심하였다. 오늘 날 한국 폴리텍 7대학이다. 1984년 3월 창원기능대학에 진학하여 뜻한 바 공부에 매달렸다. 용접분야의 권위자인 교수님으로부터 차원 높은 기술교육을 받았다. 교수님의 강의를 귀담아들으면서 한마디라도 놓칠 세라 열심히 노트에 필기를 하였다. 수업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 밤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피곤함을 달래며 복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얻었 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능과 기술이 향상되었다. 때로는 어려운 문 제를 풀기 위하여 교수님을 찾아가 실례를 무릅쓰고 해답을 구하기도 하였다. 265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배우는 기쁨이 내 삶의 원동력

266 교수님께서는 언제나 자상하게 가르쳐 주셨다. 교수님들의 열성적인 가르침에 힘입어 내가 바라던 알루미늄용접과 특수용접 기술을 터득하 게 되었다. 또한, 기능대학의 전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기술을 향한 집념과 늦깎이 배움에 대한 나의 열정에는 주변 사람들 모두 혀를 내둘렀다. 이론 서적을 탐독하다 궁금한 게 있으면 실제 업무와 접목시켜 보고 싶 어 앉아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기도 하였다. 특수용접 관련 미국 원서 를 보려고 영어 공부를 했는데 그 덕분에 이제 영어에는 자신이 생겼다. 교수님들이 가르쳐 주신 은혜로 1989년에는 국가기술자격인 산업 안 전기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고, 1991년엔 용접분야의 기능계 최고 자격인 용접기능장 자격을 획득하여 국가로부터 공인받는 영광을 안았다. 박사, 기술사와 동등한 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함으로써 명실 공히 국 내 용접기술에 있어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일인자가 된 것이다. 그때의 기분은 마치 높게 나는 새가 넓게 바라본다는 기쁨이었다. 기능의 기 자도 모르던 내가 어느 새 뜻을 이루어 정규대학 졸업을 앞 서는 자격과 능력을 갖추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무엇인지 모르는 소명감과 사명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 었다. 나의 발전은 물론, 사회와 국가를 위하여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1992년에는 금속기술지도사 자격을 따냈고, 1993년엔 직업훈련 교사면허 를 손에 거머쥐었다. 일일 일진( 日 日 日 進 ) 한다는 장인정신 ( 匠 人 精 神 )에 기인한 소득이라 하겠다. 이 모든 것은 정하여진 표 순에 따라 잠자는 시간을 빼고 늘 머리로 생 각하며 손발로 실천 하는 기능장 근성의 수확이라 믿어진다. 나는 언제나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늘 생각한다.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배우는 기쁨이 내 삶의 원동력 266

267 내가 항상 어떠한 일에 당면하였을 적에 당황하지 않고, 곧 처리하는 것은 미리 여러 가지 경우에 대하여서 잘 생각하여 두었던 까닭이지 내 가 천재여서 그런 것은 아니다 라는 나폴레옹 의 말을 교훈으로 삼고 있음에서였다. 나는 언제나 현장의 최 일선에서 일을 하였다. 현장의 관리자로서 나 의 힘이 곧 회사의 힘이 된다는 인식 속에 신념을 가지고 모든 일을 밀 어 나갔다. 그래서 내가 속한 부서는 늘 1등을 차지하곤 하였다. 한 번도 1등 자 리를 남에게 내어준 적이 없다. 이 같은 실적에 따라 1994년엔 대우중공업(주)에서 최고로 알아주는 최고 권위의 현장기능부문의 장인 상 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1997년에는 경상남도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경남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자랑스러운 경남도민 100인 에 첫 번째 로 선정되어 도지사 표창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이 회사 어르신의 특별한 배려와 격려, 그리고 오랫동안 내 곁에서 지지하고 성원하고 인내로서 기다려준 아내의 말 없는 도움이 라 생각한다. 아내와 아이가 나에게 쏟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었다. 퇴근 후 밤늦은 시간까지 자격증 취득과 학위 취득을 위한 공부를 하면 아내도 잠자지 않고 일을 하였다. 옆에서 온갖 심부름을 하기도 하였다. 아이도 따라 자기의 공부를 하고 아내와 아이는 내가 쉬는 날에도 남 들처럼 놀러가자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잘 참아 주었다. 맑은 휴일 날 도서관으로 향하는 나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아내와 아이를 생각할 때, 나는 마음속으로 미안한 생각이 들었으나 내일의 행복을 위하여 모른 체하면서 나의 할 일만을 계속하였다. 한편,, 5년 전부터 내가 밟아 온 길을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전하여 도 움을 주고자 글을 쓰고 있다. 마음속에 담고 있었던 노하우를 여러 사람 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서다. 적은 힘이 나마 회사와 국가 산업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라구나 할까. 267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배우는 기쁨이 내 삶의 원동력

268 아니 책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사람을 만드는 것이 책이라 했 던가. 여전히 사람만이 미래임을 우리 사회에 알리고 싶어 하는 젊은 열 정과 차분한 열정으로 실천하고 싶어서였다. 나는 퇴근 후 내 할 일을 한 뒤에 일일 보고서, 실무보고서 형식으로 하루에 1 2장의 원고지를 채우고 있다. 이 일을 위해 인근에 있는 대 학 도서관에 몰래 들어가 원고를 정리하곤 하였다. 때로는 회사의 휴게 실 등을 이용하여 글을 썼다. 집필한 지 3년쯤 되었을 때 350쪽 정도의 원고가 되었다. 나는 원고 보따리를 손에 들고 서울의 유명한 몇몇 출판사를 찾아 갔 다. 출간을 의뢰하였으나 시장성과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 당하였다. 그러나, 언젠가는 빛을 볼 날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 속에 계속 원고를 썼다. 나는 650쪽 분량으로 마무리를 하고, 원고를 정리하였다. 이 원고에는 이론의 나열뿐 아니라 현장 실무경험에 의한 기술의 노 하우를 담아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려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도 록 엮어 놓았다. 나의 몸과 마음을 한데 묶어 집필한 이 원고는 현재 책자로 출판되었다. 대학이나 연구소에 몸담고 있는 학자, 교수가 아닌 평범한 직장인의 한 사람으로서 열심히 노력하며 내가 걸어온 30년의 역사를 한 권의 책 으로 펴냈다는 데서 크나큰 자부심을 갖는다. 이 책자는 용접기술 가운데서도 특히 어렵고 까다로운 알루미늄용접, 로봇용접, 스테인리스용접을 다룬 특수용접의 이론과 실제 로서 국내 최고의 기술서적으로 인정받아 이미 전국 7개 대학의 대학교재로 채택 되어 학문적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산업현장 에서 가장 낙후되었던 이 분야의 품질혁신은 물론, 생산성 향상에도 크 게 기여를 하고 있다. 30년의 노하우, 이 분야 국내 최초 출간, 현장인이 쓴 대학 교 재 국내 최고의 기술서적 등으로 불리며 숱한 화제를 뿌리면서 팔리 고 있다.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배우는 기쁨이 내 삶의 원동력 268

269 학계는 물론, 산업현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유로 그동안 조선일 보 등 11개 일간지와 주간조선 등 3개 잡지, 그리고 KBS, MBC, SBS, EBS 등 4개 TV방송에서 방영되어 각계 각층의 호응을 사고 있는 것이다. 정규학교를 졸업하지 않고도 검정고시와 직업훈련원, 기능대학, 학점 은행 등 힘겨운 과정을 통하여 끝없는 도전과 희생과 노력으로 드디어 한 권의 저서를 출간하게 된 것이다. 현장에서 혼자 터득하고, 이론적으로 접근하고 보완시킨 그 용기와 집착력, 탁월한 이론에 대한 정리 등 이 모든 것들은 혼신의 힘으로 하 나하나 숨은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학력사회에서 지식기반에 의한 능력중심의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전문가로 성장하는 모습을 실력으로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후에도 계속하여 용접기술사, 정보처리기술사, 특수용접, 돈 을 캐는 사람들, 에세이집 도전하는 인생은 아름답다 등 6권의 저서를 집필 출간하고, 지식기반을 상품화하여 모든 사람들과 함께 노하우와 지식을 공유하고 전파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전국 유명서점에서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 으며, 늘 공부하는 사회를 만드는 학습 분위기 조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또한, MBC, KBS, EBS TV 방송과 전국의 신문과 언론 매체에 총 64회나 출연하였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 인재(60분 방송)라는 TV방영에서는 능력개 발에 대한 성공사례와 도전정신을 전국에 전파하고 홍보하여 모든 사 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앞서 가는 자가 아름답다. 라는 말이 있다. 먼 앞을 내다보는 사람, 거기에 실천 하는 힘을 가진 사람이 빛난다. 고 하였다. 그리고 꿈을 생 생하게 상상하고 간절하게 소망하고 진정으로 믿고 열정적으로 실천하 면 무엇이든 반드시 이루어진다고도 하였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에는 많은 분들의 도움과 희생이 있었음을 생각 할 때 영원토록 그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한백 창원 직업 훈련원과 창원기능대학을 모체로 하여 30년의 세월 을 앞만 바라보며 달려 온 오늘 기능계와 기술계 최고의 거인이 되었다 269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배우는 기쁨이 내 삶의 원동력

270 는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남들이 나에게 인간승리자 라고 칭찬하지만, 나는 아직 모든 면에 서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오늘도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고 있다. 나의 능력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어 죽게 된다. 는 생각에서이다. 나의 경쟁력이 가 정과 회사의 경쟁력이고 곧 국가의 경쟁력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불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약 2년간에 걸친 각고의 주경야독으로 기술 계의 최고 국가기술자격이며 박사학위와 동등한 등급의 용접기술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부족한 학력이지만 각고의 노력과 기술력으로 보완하고 실무능력을 인정받아 학력사회를 능력사회로 바꾸는 일에 앞장서는 장인정신의 최 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한 결과이다. 나는 지금 당당하 게 그리고 보람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매일 오전 6시는 나의 꿈을 생생하게 실현한 시간이었으며 이러한 과 정을 통해 내가 이루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많은 답이 있을 것입 니다. 그 가운데 내가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사람으로 더욱 성장하고 발 전하며 하는 일을 올바르게 전개하여 모든 사람이 바라는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76년 중졸검정고시 전 과목 합격 81년 고졸검정고시 전 과목 합격 78년 창원 직업훈련원 졸업 86년 창원 기능대학 졸업 89년 산업안전기사 1급 91년 용접기능장 92년 기술지도사 93년 직업훈련교사면허 95년 특수용접의 이론과 실제 저서출간 99년 대한민국명장 01년 신지식인 02년 용접기술사 취득 04년 학점은행으로 기계공학사 학위 취득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배우는 기쁨이 내 삶의 원동력 270

271 (한국교육개발원장 및 교육인적자원부장관 명의) (학위 등록 번호 : 학점-2004-학-07312) 05년 국립창원대학교 산업정보대학원 석사과정 입학 05년 화약관리보안책임자 면허 06년 특허청 발명특허출원 등록 (출원번호: 출원등록일: ) 07년 국립창원대학교 산업정보대학원 석사학위 취득 (학위 등록 번호 : 창원대 2006(석) 0433 등의 수많은 국가공인 기술자격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취득하 면서 끊임없는 도전을 자전거의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듯이 오늘 도 계속 정진하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겪은 데이터베이스를 기초로 한, 노하우와 실무경험을 산업사회와 공유하고 비전과 미션에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함께 그 가치를 점진적으로 실현하는데 앞장서 고 있다. 용접기술사, 용접기능장 자격을 취득하여 기술계와 기능계의 최고자 격을 모두 석권하였으며, 끊임없는 능력개발과 기술, 기능을 연마하여 1999년 11월 정부로부터 대한민국명장으로 선정되었다. 대한민국 역 사상 최연소 명장으로 선정된 것이다. 드디어 기능공에서 시작하여 명 장의 반열에 오르는 순간이다. 2000년도에는 산업자원부 신지식인 1호로 선정되었으며 이후에도 계속된 도전적인 학습으로 기술지도사, 직업훈련교사면허, 2005년 화 약관리보안책임자면허, 2007년 품질경영체제 인증심사원 자격을 연속 하여 취득하였다. 배움의 갈증은 나를 목마르게 하여 야간에는 주경야독과 학점은행을 통하여 기계 공학사를 취득하고 정식으로 국립 창원대학교 산업정보대 학원에서 공학석사 학위를 획득하여 명실공히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독 보적인 전문가가 되었다. 끝없는 도전정신과 장인정신의 실천 귀감으로 정부와 각계각층에 대 한 초청강의 및 정부혁신 아카데미와 워크숍에 참여하여 많은 사람들 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271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배우는 기쁨이 내 삶의 원동력

272 이와 같은 명장 선정 이후의 변화와 대변신으로 2001년도 직업능력 개발 촉진대회에서 국가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상 을 수상 하는 영광을 안았다. 또한, 2005년 12월에는 공부벌레가 되어 평생 동안 학습하고 획득한 지식을 국가사회에 환원하고 공유한 공로로 제1회 평생학습대상 을 수상하였다. 이듬해인 2006년 11월에는 국무총리상 을 수상하는 영 광을 누렸다. 이러한 결실들은 오늘날 평범한 기능인에서 출발하여 사회적으로 명 성을 날리는 특급 대우 초빙강사와 유명인사로 완성되어 가고 있다. 이 와 같은 노력의 대가는 언젠가는 충분한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진리를 터득하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관심을 두고 발명 특허 등록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국내최초의 3차원 정밀장비에서 운용할 수 있도록 고안한 신기술개 발에 성공하여 종래기술이 전무하였던 기술에 대하여 창안하여 특허 청에 발명특허를 등록 출원 하였다. 이 발명은 산업재산권 보호는 물론 해외시장 진입으로 연간 500억 원 의 수입대체 효과와 측정기술 분야를 획기적인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발명이었다. 이듬해 국내 최초의 대체 에너지용 알루미늄 재질의 전기자동차 프레 임을 개발하였을 때는 값비싼 가솔린을 대체할 수 있다는 들뜬 마음에 밤잠을 설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이라크에 파병된 최첨단 장갑차를 제작하는데 참여하여 귀 중한 병사들의 보호는 물론 국가방위산업 발전에도 앞장서고 있다. 고 속전철(KTX) 개발을 위한 알루미늄용접의 참여는 이 분야 일인자라는 자부심으로 피곤한 줄도 모르고 일을 하였다. 특출한 기술수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사회 전체가 수혜의 대상이 되었다. 내가 만든 고속전철을 타고 멀리 출장을 갈 때면 보람과 성취감으로 달리는 속도만큼 이나 들뜬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멀고 긴 여정에 모처럼 편안한 안식의 잠을 청해보지만 어느덧 고속열차는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착하고 말았다. 동서고금의 과학과 예술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반드시 대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배우는 기쁨이 내 삶의 원동력 272

273 학에 다니거나,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의 편의를 본 사람이 아니며, 위대 한 기술자와 발명가 역시 반드시 기계공학을 전문적으로 가르쳐 주는 학교에서 배운 사람은 아니었다. 발명의 모체는 편의보다 곤궁이었으며 인재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은 고난 이라는 학교였다. 궁즉통( 窮 則 通 )이라는 말이 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반드시 해 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조직을 책임지는 훌륭한 리더도 일반의 기대를 넘어서는 탁월한 상상력도 곤궁 과 고난 이라는 학교에서 생성 되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성공은 부러워하면서도 성공하는 사람들의 끝없는 노력과 고통 그리고 뜨거운 열정은 애써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요즘 고려대, 건국대, 제주대, 전북대, 대불대, 신라대, 경주대, 영 산대, 상지대 등 전국 11개 대학에서 연간 1,500여 명의 이공계 대학생 을 대상으로 겸임교수 및 초빙교수로 출강하면서 후진양성과 청년실업 해소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어릴 적 꿈이 대학교의 교수가 되는 것이 었는데 지금의 이 현실이 환상적인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이 모든 것은 학습을 통한 청춘(Youth)과 같은 열정과 도전정신에 기 인하여 기능공에서 교수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정부기관의 산학 연 프로젝트 기술평가위원과 기술전문위원으로 한국 산업 단지공단, 중 소기업청, 중소기업진흥공단, 소상공인지원센터, 국립창원대학교 누리 사업단, 포항공대 가속기연구소, 벤처기업 혁신능력평가, 그리고 모교 인 한국 폴리텍 7대학에서 그동안 성취한 기술과 학습을 사회에 환원하 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또한, LG 이노텍, 동양기전 등 전국 40여 개 기업체를 대상으로 현장 실무 적용사례와 원가절감에 대한 교육과 기술지도, 시험평가를 실시 하고 있다. 정부기관과 단체인 식품의약 안전 청, 은행연합회, 대한용접 학회, 한국표준협회, 자동차기술연구소 등 각계각층의 초청강의에 참여 하고 있다. 강의는 평생을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으로 살아온 나에게는 쉬어가면서 하는 일이다. 일한 대가로 얻은 휴식은, 일한 사람만이 맛보는 쾌락이다. 일하고 난 후가 아닌 휴식은 식욕이 없는 식사와 마찬가지로 즐거움이 없다. 가 273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배우는 기쁨이 내 삶의 원동력

274 장 유쾌하면서 가장 크게 보람되고, 또 가장 값싸고 좋은 시간의 소비 법 은 항상 일하는 것이다 라고 주장한 힐티 의 말처럼 나는 앞으로도 열 심히 배우며 일하는 사람이 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소명을 다할 것 이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힘든 일에도 그저 묵묵히 견디고 자신의 자리 를 찾아갈 것이다. 모두 팽개치고 그냥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는 용기와 도전으로 앞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람, 이겨내고 견디어내고 끝내 든든히 일어나 고야 마는 그 사람의 모습, 진정한 삶의 모습을 계속 보여줄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후배들에게 전수하면서 사랑하는 후배들에 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3D를 피하려 들지 말고 당당하게 도전하라. 부 족함과 아쉬움을 내 것으로 만들면 훗날 큰 영광을 안겨 줄 것이다. 고난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고생 끝에 낙이 있다. 는 말을 실감하면서 나는 오늘도 도전할 것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전 과목 합격한 것을 디딤돌로 하여 기술사, 기술지도사, 기능장, 신지식인, 대한민국명장, 기계공학사 등 수많은 국내최고 권위의 국가기술자격 취득과 평생학습을 통한 산 업시스템 공학석사 학위를 취득하였지만, 산업정보대학원에 진학하여 박사학위에 도전하고 있다. 이제 기나긴 학습을 통한 만학의 종착역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다. 우리나라의 국가기술자격 체계에서는 기술계와 기능계의 최상위 자 격을 모두 취득하여 더 이상 획득할 자격이 없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국가로부터 국가 기술자격 검정 시험위원과 출제위원 그리고 기술사 면 접위원으로 위촉되어 국가자격 검정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30여 년간 계속되는 평생 학습은 청춘과도 같은 열정과 도전 정신의 꿈을 실현시키는 도구가 되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학계의 최상위 학위인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3관왕 아니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여 직업을 통한 기능인 기술인 그리고 학습 인의 위상과 능력중심사회 구현의 기상 그리고 프론 티어 정신을 보여 줄 것이다. 또한, 이러한 학습결과를 토대로 하여 특수용접의 이론과 실제 등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배우는 기쁨이 내 삶의 원동력 274

275 6권의 저서를 통하여 국가와 사회에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는 등 지식기 반을 상품화하였으며, 학습 분위기 전파에도 앞장서고 있다. 과거 약관 20대의 청소년 시절에 이루지 못하였던 국제기능올림픽대 회의 출전과 메달 획득에 대한 꿈을 대신하여 이제는 전국기능경기대 회 심사장과 금속분과장으로 활약하며 청소년들에게 공정하고 정직한 심사위원으로 모범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때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위로 하고 있다. 대리 만족이라고나 할까. 기능과 기술연마를 통한 직업능력개발은 업무능률의 향상과 함께 학 력에 대한 콤플렉스를 해소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결국은 자아실 현과 자기개발 차원에서 학습을 시작해서 업무와 연계한 지식향상 수단 으로 평생 학습을 하게 되었으며 편안함의 유혹을 뿌리치고 마라톤처럼 달리고 도전한 결과이다. 기능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일하며 배우는 학습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도전한 수많은 결과물들이 많은 사람들의 표상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순간의 쾌락과 현재의 안주보다는 미래를 위해 꿈을 키우며,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지속적으로 상승시킨 결과이며, 수많은 시간과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언젠가는 인정받고 보상받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다."라고 늘 주장하고 강 조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 변화 속에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평생학습 을 하는 것이 보편화하고 있는 추세에서 직업과 연계된 개인의 학습력 이 절실하며, 지식의 획득과 창출 그리고 이용의 과정은 기본적으로 도 전과 학습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아니 직장과 사회와 국가에서 필요로 하 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그것을 지금부터 또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 꿈은 내 마음속에 있으며 마음먹기에 달려 있을 것이다. 영어로 하면 I have a dream! It s a mind( 心 ) = It s my dream 이 될 것이다. 앞으로 5년 후, 10년 후의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어떤 모습으 로 살고 있을 것인가를 상상하면서 되고 싶은 바라는 마음을 현실화시 키는 준비와 노력을 하면서 지금까지 그랬듯이 지금보다 더 열심히 생 활하고 정진할 것이다. 275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배우는 기쁨이 내 삶의 원동력

276 50세의 젊은이 김 후진. 나에게 육체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꿈의 나이였다. 나는 지금 나의 실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것 인지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꿈을 위해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로 하루가 빠듯하다. 공자가 논어 위정편에서 말한 50세는, 진정으로 하 늘과 땅에 부끄럼 없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나이 지천명( 知 天 命 )이었 다. 나를 지탱하는 꿈의 날개 가운데 오른쪽은 지식의 습득이고, 왼쪽은 지식의 재창출이다. 이 두 날개를 힘차게 저어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좋은 세상이다. 대가 없는 노력은 없다 = 노력하면 반드시 대가가 돌아온다. 는 진 리를 믿고 실천할 것이다. 이제 몇 년 후에는 또 다른 목표를 실현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인 사드리는 기회가 있기를 희망한다. 여기, 힘들 때마다, 편안함의 유혹이 찾아올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나 자신을 채찍질한 Key-World 가 있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 나는 미래를 기다린 적이 없다. 나는 언제나 그 시대의 미래였다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미래를 준비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다. 배움의 고통은 잠시지만, 못 배운 아픔은 영원하다. 시계는 살 수 있지만 시간은 살 수 없다. 지금 현재가 가장 소중한 때이다. 나는 어쩌면 바보처럼 평범함을 채찍질하며 열정을 기반으로 한 나의 배움 나의 삶의 도전 가도에서 영원히 머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 속적으로 싸워야 한다. 길들여지는 나와 타협하려는 나와 포기하려는 나와 싸워야 한다. 모든 순간은 인생에서 가장 다이내믹하고 창조적인 중요한 시기에 있기 때문이다. 한발 앞서 갈 준비가 되었습니까. 앞서가는 사람은 새로운 변화를 거 부하지 않고 늘 앞서 갈 준비를 하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내 몸값을 디자인하여 스스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입니다. 늘 미래를 준비하고 남들보다 먼저 깨어있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과 의 만남 못지않게 간접경험의 장인 책이 꼭 필요했으리라. 그리고 이 책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배우는 기쁨이 내 삶의 원동력 276

277 들의 도움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치들을 발견하고, 그러한 가 치들을 나의 삶에 차곡차곡 담아가면서 제3의 인생도 밝을 것임을 확신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알루미늄용접과 특수용접 기술의 국내 일인자라는 칭 호를 받고 있지만 학력에 대한 냉대와 편견을 극복하고 도전정신을 실 천한 모델과 본보기가 되어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귀감 이 되고 모범이 되고 표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늘 공부하는 능력중심사 회를 구현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현자( 賢 者 )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사람이고, 강자( 强 者 )는 자 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쉽게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읽지 않고, 세상을 보고 배우기 위해 돌아다니 지 않으며, 전문가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음을 거듭 되새기며, 나의 길 청춘(Youth)의 길인 도전의 가도를 거침없이 달 려가려고 한다. 훗날 더 큰 영광을 안겨 줄 것으로 믿는다. 그런 날이 오면 슬그머니 이야기 속에서 유난히 자주 등장하였던 도 전과 시간이라는 단어와 취미로 수집하는 시계들을 떠올리며 지금 현 재를 더욱 채찍질하게 되지나 않을까. 여러분! 모험을 하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용기 있는 사람만이 가슴 뛰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가능성, 그것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Change the Life! Driving Tomorrow! From I 277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배우는 기쁨이 내 삶의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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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 자기능력개발 수범사례 몸으로만 스포츠 하나? NO! 나는 펜(Pen)으로 스포츠 한다 처음에 이 수기를 쓸 때에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에 초점을 맞추어 이 래저래 고민했던 것이 생각난다. 하지만 이 수기를 쓰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그 누군가가 아닌 '나 자신'에게 가장 먼저 유익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 수기를 작성하고 편집하는 기간 동안 지나온 과정들을 되짚어 봄으로써, 내게 무엇이 부 족하고 무엇에 미숙한지를 알게 되었다. 이 수상은 20여 년간 만난 적지 않은 사람들과의 교감과 인생 곳곳에 있었던 연단 의 과정들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믿는다. 아직도 부족하고 미숙한 나에게 이러한 수상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새삼 고개가 숙여질 따름이며, 이 수기를 작성하기까지 만난 소중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남 도 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280 -지난 10년간 경험했던 후보선수 시절, 대학생활 그리고 KOICA(국제 협력단)을 돌이켜 보며- 흔히들 후보생이라고 하면 비참함, 소외감 등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 은 아마도 주전급 선수가 주연으로 활약하는 소설에서 조연으로 출연하 는 후보생들의 존재가 독자들(제3자)에게 그렇게 비칠 수밖에 없기 때 문일 것이다. 이 스토리의 뒷면에서 많은 후보생들이 눈물을 흘리고 좌 절하는 것을 나는 수없이 보아왔다. 지난 10년여 동안의 운동선수, 대 학, KOICA(국제협력단)에서의 경험들이 적게는 절망적인 선택의 기로 앞에 서서 고민하고 있을 우리나라 체능계의 많은 운동선수들에게 귀감 이 되고, 크게는 진로선택에서 근심하는 모든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 움이 되고자 이 수기를 작성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나에게 처음으로 꿈이라는 것이 생겼다. 그 꿈은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는 허~참 왜 그렇게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고 걱정하듯 말할 수 있는 길이기도 했으며, 그 누군가에게는 에이~ 그 길은 가지마라. 라고 말하며 안타까운 눈으로 내가 꿈을 접기를 간 절히 바라는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밤새도록 가슴을 두근두 근하게 할 정도로 뜨거운 일이었다. 체육 실기시험을 계기로 배드민턴을 광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 서 새벽 5시만 되면 아직 잠에서 채 깨지도 않은 친구네 집 초인종을 누 르며 배드민턴을 치러가자고 졸라댔다. 그리고는 동작대교 아래에 위 치한 배드민턴 코트로 달려가서는 기본기가 잡히지도 않은 폼이었지만 꽤나 열심히 운동을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왜 그렇게 배드민턴 을 하고 싶어 했을까?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우리 형제들을 불러다 놓고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몸으로만 스포츠 하나? NO! 나는 펜(Pen)으로 스포츠 한다! 280

281 인생에서 밤새도록 무언가에 몰두해도 질리지 않은 것을 찾는다면 그 것만 한 보물은 없다."라며 습관처럼 말씀하셨다. 나도 질리지 않은 인 생의 보물 을 찾게 된 것이었을까? 어린 나이었지만 그 다음 해에 어머 니에게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배드민턴을 배드민 턴 선수가 되고 싶어요! -고만고만한 키, 길게 늘어진 옷, 5대 5 가르마를 탄 운동선수의 꿈 -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얼마 후, 나는 신명길 선생님(당시 한산초 등학교 배드민턴 팀 감독)의 추천으로 마포에 위치한 아현 중학교에 입 학하게 되었다. 아현 중학교는 우리나라 배드민턴 팀 중에서도 저명이 나 있는 팀이라 중학교 배드민턴 팀 중에서도 명문에 속하였다. 지금 돌 이켜 보면 배드민턴을 시작하고 싶다고 온 내가 팀원들에게 얼마나 우 습게 보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 당시만 하여도 운동을 시작한다는 것이 자신이 하고 싶어서 시작하는 경우 보다는 스카우트 (scout)'나 추천 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고만 고만한 키, 길게 늘어진 옷, 적당하게 찐 살, 5대 5 가르마로 넘긴 머리 281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몸으로만 스포츠 하나? NO! 나는 펜(Pen)으로 스포츠 한다!

282 등등 지금 생각만 해도 지긋이 웃음이 나오는 모습이다. 나를 본 코치 선생님은 당시의 내 모습을 훑어보고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고 하셨 다. 뭐, 또 이상한 녀석이 한 명 왔다가 금방 힘들어서 나가겠지. 하고 말이다. 참 운이 없었던 것일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가 처 음으로 배드민턴 코트에 나간 날은 체력훈련 이 있는 날이라, 운동장 100바퀴를 돌아야만 했다. 여태까지 힘든 일이나 지루하거나 짜증나는 일들을 만나게 되면 여지없이 그만두고 다른 데로 도망치기 바빴던 내 가, 이번에는 좀 달랐다. 토할 것 같고, 심지어는 마포지구에만 산소가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숨이 찼지만 포기하지 않았 다. 왜냐하면 현재 그곳은 나의 꿈의 자리 였기 때문이다. -나를 후보생으로 밀어낸 잊지 못할 팀 내 평가대회 - 누군가가 꿈에 대해 말을 하면 굉장히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자리 즉 말 그대로 달콤한 것을 연상하고는 한다. 그렇지만 내가 간 꿈의 자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달콤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았다. 코 치선생님이 쉴 새 없이 주문하는 고된 훈련과 선배들의 눈치, 동료들 간 의 인간관계, 주전자리 싸움 등은 나를 때로는 절망적이게 하거나 심지 어는 눈물까지 나게 만드는 요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아이들보다 약 2~3년 정도 늦게 배드민턴을 시작했던 나는 그 격차를 줄이는 것이 굉장히 힘겹게 느껴졌다. 한번은 우리 중학교 팀 내 에서 공식 배드민턴 평가전을 치른 적이 있었는데, 이 평가전은 앞으로 1년 동안 팀 내에 소위 잘나가는 A팀에 속하게 될 것인가, 후보들만 모 아놓는다던 B팀에 속하게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합이었다. 나 와 같은 학년(중학교 3학년)의 동기들은 모두 다 A팀을 확정 지은 상태 에서 나는 한 학년 아래의 후배 녀석과 A팀의 마지막 한 자리를 놓고 시 합을 하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 한 해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합이었던 만큼 남들 잘 때 일어나서 뛰고, 남들 쉴 때 또 뛰면서 준비해야만 했고, 그리고 마지막 문턱에서 이 후배 녀석과 만나게 된 것이다. 결과는 세트 스코어 1:2. 패배하였다. 그리고 기대가 워낙 컸던 터라 시합이 끝나자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몸으로만 스포츠 하나? NO! 나는 펜(Pen)으로 스포츠 한다! 282

283 마자 볼을 타고 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점수(score)로 누군가 를 평가하고 평가를 받는 것이 너무나 서러웠고 한편으로는 같은 학년 의 아이들은 전부 A팀에 있는 상황이었기에 창피했다. 그리고 그것으 로 나는 만년후보생 이라는 별명이 따라 붙게 되었다. 후보생 이라는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누구도 가기 싫은 자리이다. 주목받지 못하는 자리, 자존심을 구겨야 하는 자리, 인 정받지 못하는 자리가 바로 운동선수 후보생 의 자리인 것이다. 아현 중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 나는 여전히 후보생이었지만 배드민턴에 대 한 애착이 매우 컸기 때문에 서울 체육고등학교 로의 입학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번 입학 또한 배드민턴을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스카우트 (scout) 나 추천 을 통해서 진학했기 보다는 전적으로 내가 하고 싶어서 간 길이었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기대 받지 못하는 수많은 후보생들의 아픔-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3년 동안 많은 후보생들을 만나보게 되었다. 온 갖 전국 대회에서 입상하며 주목받던 한 유도 선수가 허리 부상으로 인 해서 후보생 자리에 오게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무릎부상으로 인해 서 더이상 뛸 수조차 없는 유망했던 배드민턴 선수도 있다. 또 3년 내 내 오로지 전국체전대회(1년 중 가장 크고 권위 있는 시ㆍ도 대항체육 대회)를 위해서 전력을 다해 훈련에 임했던 어떤 선배는 막판에 후배에 게 주전 자리를 내주어서 결국 단 한 게임도 뛰지 못하고 고등학교 생활 283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몸으로만 스포츠 하나? NO! 나는 펜(Pen)으로 스포츠 한다!

284 을 마쳐야만 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사연이 선수 나름의 인생에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 당시만 해도 성적 이라는 것이 없으면 존재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웠던 것이 운동선수의 길이었기 때 문에 자신의 신체 결함으로 인해 후보생이 되었든, 실력이 없어서 후보 생이 되었든, 여타 기대 받지 못하는 운동선수이기는 매한가지였다. 물 론 재기에 성공한 후보생들이 있었지만 약 3~5%의 선수들로서, 거의 기적에 가까운 수치를 제외한 대다수의 후보생들이 재기하기란 거의 불 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때문에 나는 마냥 후보생 에 머물 수만은 없다 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배드민턴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은 정말 누구보 다도 크다고 자신했지만 마음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선수 의 길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체능계 SYSTEM 과 선택의 기로- 우리나라의 체능계의 교육 SYSTEM은 실패하거나 탈락한 선수들 에게 그렇게 너그럽지 못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까지 운동을 하면 서 선수들은 소위 자신들의 몸값 을 올리는 데에 주력하게 된다. 그리 고 부상이나 성적부진 외의 기타 등등의 사유로 인해 자신의 가치를 올 리는 것에 실패한 후보생 들은 오로지 운동 하나만을 바라보며 달려왔 기 때문에 대학 진학의 길도, 앞으로의 운동선수의 삶도, 심지어는 생 계를 유지할 수단마저도 불확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또 한편으로 는 우리나라 체육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 중에 하나이 기도 했다. 오직 입상성적 이라는 눈가리개에 가려진 채, 고등학교 때 부터 그러한 불확실성에 대한 염려를 안고 생활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 겨운 일이다. 따라서 운동선수로서의 삶을 걷기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선수들은 좋든 싫든 자신의 진로를 선택해야만 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마냥 주저앉을 것인지, 자신이 지금까지 애착이 있었던 운동선수 외의 (당시에는 잘 몰랐던) 스포츠계에 현존하는 더 많은 분야에 대해 비전 (Vision)을 갖고 걸어갈 것인지를 말이다. 후보생이었던 나에게도 역시나 선택의 문턱이 기다리고 있었다. 운동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몸으로만 스포츠 하나? NO! 나는 펜(Pen)으로 스포츠 한다! 284

285 을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분야에 비전을 보고 걸어갈 것인가를 결정해 야 하는 문턱 말이다. 불확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 가 다른 길을 볼 수 없도록 가려졌던 눈가리개가 풀어지기 시작했던 것 일까? 그때 분명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체육 교육 이 라는 분야에 또 다른 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이 당시에는 구체적이 지도 않았으며,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알지 못했지만 지금에는 그 꿈에 대한 비전을 보는 것 자체가 장래 진로 선택에 큰 씨앗 이 되며, 꿈을 이 룰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 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확신할 수가 있다. 운동선수만 스포츠를 한다는 의식에서 벗어난 나에게 교육 이라는 비전은 다시금 나에게 열정을 불어넣어준 힘이자, 나의 존재가치에 확 신을 심어주는 굳건한 단어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교육에 대 한 불확실한 꿈을 가지고 과감하게 운동선수의 길을 접었을 때, 모두들 285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몸으로만 스포츠 하나? NO! 나는 펜(Pen)으로 스포츠 한다!

286 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학교의 분위기상, 크게는 우리나 라 체능계의 통념상 내가 가는 길(운동 쪽이 아닌 다른 방향의 길)은 어 색하고 요상한 길로 밖에 비춰질 수 없었던 것이었다. -라켓(Racket)대신 펜(Pen)을 잡던 날- 그러한 분위기를 나 또한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운 동선수의 길에서 다른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대다수의 운동선수들이 경 험하지 못하는 길을 가는 것이기에 먼저는 나 자체로도 겁이 났다. 실패 할까봐 두려웠고 결국에 가서 그 길에서도 조차 나의 자리를 찾지 못할 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라켓을 놓고 펜(Pen)을 잡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도 고등학교 때 배드민턴 팀 감독선생님은 내가 운동선수 외의 또 다른 꿈을 갖고 가겠다고 결정하기도 전에 미리 그 길을 예견하고 지지해 주는 분이셨다. 그래서 내가 라켓 대신에 펜을 잡고 다른 진로로 향하기를 바라셨는데, 한번은 내가 운동을 하려고 코 트에서 몸을 풀고 있는데, 내가 가지고 있던 라켓들을 모두 빼앗으시면 서 교실로 돌아가서 공부해! 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지금에야 감 독선생님의 큰 뜻이 이해가 되고 고마울 뿐이지만 그때에는 그것이 어 찌나 서럽고 창피한 일이었던지 배드민턴 부실의 세면대에서 약 1시간 동안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배드민턴 선수가 라켓을 빼앗긴다 는 것은 운동선수로서는 이제 끝이라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운동했던 시간들이 무의미하게만 보였다. 감독선생님이 원망스러 웠으며, 다른 팀원들이 바라보는 눈빛들도 자격지심이 있어 그런지 값 싼 동정의 눈길로만 보였다. 그렇게 한참 마음을 달래고 돌아간 교실에 는 실로 마음을 달래줄 사람이 한 명도 없는 텅텅 빈 교실이었기에 더욱 서럽게 느껴졌다. 현재 교실에 홀로 있는 시간이 이전에는 언제나 운동 하는 시간이었기에 매우 어색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수학정석 책을 열 고 펜을 잡는 순간, 책장 위로 뚝뚝하고 쉴 새 없이 눈물이 떨어지기 시 작했다. 문제를 푸는 와중에도 계속 흐르는 눈물을 제어할 방법이 없었 다. 예전부터 줄곧 해왔었던 고된 훈련들과 수많았던 배드민턴 대회들,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몸으로만 스포츠 하나? NO! 나는 펜(Pen)으로 스포츠 한다! 286

287 그리고 팀원들 등 배드민턴과 관련된 모든 것이 내게서 멀어져 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그렇게나 좋아하고 그려왔 던, 또 나를 설레게 하는 단 하나의 꿈이었던 배드민턴 이 이제는 나를 매우 초라하게 만드는 하나의 장식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머릿속에 심히 어지럽혔던 이런저런 생각들 가운데 다 행히도 나에게 굳은 결단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 운동에 재능과 실 력 있는 다른 동기들이 운동선수의 길을 가는 것에 너무 신경 쓰지 말 자. 그렇다면 이제 나는 펜(Pen)으로 스포츠를 해보는 거야. 하고 말이 다. -큰 기대와 절망 그리고 발전의 장( 場 ) 대학 - 텅 빈 교실에서 추우나 더우나 홀로 공부하면서도 언제나 공부를 시 작하기 전에 내가 나 자신에게 했던 굳은 다짐들을 되새기게 되었다. 원 래 결단력이 없고 의지가 약했지만 외롭다고 느끼거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마다 내가 라켓 대신 펜을 잡던 날 을 떠올 렸기 때문이다. 공부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초반부터 수많은 어려움도 따랐던 시간이었다. 지난 20여 년간 공부한 시간보다 훨씬 더 많았을 법 한 1년이 그렇게 지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후 결국 원하던 연 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03년도)에 입학하게 되었다. 원래 입학을 하고 나서는 긴장이 풀리고 목표가 흐지부지해지기 마련 이지만 내게는 대학이라는 곳이 또 하나의 꿈의 자리 였기 때문에 쉽게 흐려지지는 않았다. 하나의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가 있는 곳, 그리고 스 포츠를 진짜 펜(pen) 으로 할 수 있는 곳이 대학 이었기에 나에게는 인 생의 큰 기쁨이기도 했다. 그동안 몸 담아왔던 스포츠와 운동선수 라는 영역 외에 다른 연계학문에 대해 접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학교 안에서 287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몸으로만 스포츠 하나? NO! 나는 펜(Pen)으로 스포츠 한다!

288 배우는 모든 것이 흥미롭게만 느껴졌다. 스포츠와 연계된 역학, 생리학, 심리학, 교육학, 경영학부터 시작해서 다양하게 짜여 있는 운동 커리큘 럼까지, 대부분의 스포츠 분야를 폭넓게 경험해볼 수 있을뿐더러, 고등 학교 때와는 달리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설레던 1학년 초 였다. 하지만 이내 나는 또다시 이곳에서도 커다란 벽 이 있음을 실감해야 만 했다. -또 하나의 벽 열등감 - 학기 초에 듣는 수업들은 대부분 암기 위주의 수업이 많아서 어느 정 도 따라갈 수는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이해와 창의력을 요구 하는 수업들이 늘어만 갔다. 새로운 학습방법을 접해보지 않은 나로서 는 대학에 대한 호기심의 장막이 걷혀지고 자신과 대학의 수준 차이를 알게 되었을 무렵(1학년 2학기), 곧 대학생활이 힘겨워지기 시작하였 다. 학점은 점점 바닥으로 내려가고 있었고 같은 학과 안에는 나를 제외 하고 모두 똑똑한 친구들만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설상가상으 로 교육이라는 분야가 언제부턴가 지루해지기 시작하였으며, 흥미 또한 점점 없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교육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라기보다는 자신감을 잃었다 라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절망적인 순간 (라켓을 놓았던 날)에 잊지 않고 찾아왔던 그 이름 모를 녀석은 마음속 에서 다시금 나에게 이곳에서 안주할 것인지, 노력해서 뛰어넘을 것인 지에 대한 질문을 날카롭게 하기 시작했다. 내면의 자존심은 바닥을 치 고 있었다. 학문의 길이라면 운동선수 때와 같지는 않을 거야. 하고 내 심 굳게 믿고 있었던 터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또한 포기하는 길은 너무나 쉬워 보였다. 그냥 현재 성적에, 지금까지 달려온 것에, 맘 편히 만족하면 그만이었다. 대학교 2학년 1학기 때까지의 나의 삶은 말 그대로 열등감 과 씨름하 던 시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문제의 원인은 오만하게도 나의 밖 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했었다. 주위에 있었던 머리 좋은 친구들로 인해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몸으로만 스포츠 하나? NO! 나는 펜(Pen)으로 스포츠 한다! 288

289 생기는 열등감 을 인정할 수가 없었던지, 자신의 한계 를 인정하기까 지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만 했다. -모든 것 앞에 겸손한 자세- 이 시기에 힘들어 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절친한 친구가 말해 주었던 소중한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자신의 밑바닥을 알고, 또 자신의 한 계가 어디인지를 알게 되면 그 때부터는 올라가는 길 밖에 남지 않은 거 야. 지금 돌이켜 보건데 대학교 2학년 중반까지는 나의 바닥을 처절하 게 배워가는 시기였다. 하지만 이 바닥을 한번 짚고 나서는 내 내면에 많 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변화들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겸손 정도 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었기에 모든 것에 겸 손해야 했다. 학문 앞에서 그리고 사람 앞에서 말이다. 학문 앞에서 겸 손하게 되면 오만하지 않고 꼼꼼하게 된다. 모르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 고 하는 진취적인 자세로 바뀌어 간다. 사람 앞에 겸손하게 되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뿐 더러, 내가 가는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소중 한 동업자들을 만나게 된다. 이제 와서 알게 되었지만, 모든 것에 겸손한 자세는 약하기 때문에 낮 추는 것이 아니다. 아래는 크게 감명을 받았던 연설문 중에 한 부분으 로 2006년 10월 13일 우리나라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던 반기문 씨가 UN의 사무총장으로 당선 되었을 때(제8대 유엔 사무총장 임명 연설, 뉴욕)세계를 대상으로 연설한 내용이다. 아시아는 겸손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겸손은 행실에만 국한 됩니다. 비전과 목표에서는 아닙니다. 겸손은 결코 헌신이나 리더십의 부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팡파르 없이 과업을 완수 하는 조용한 결단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겸손이라는 것은 자신감의 결여를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능 력을 과소평가하는 비굴한 말도 아니다. 오히려 안으로는 자기 자신을 289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몸으로만 스포츠 하나? NO! 나는 펜(Pen)으로 스포츠 한다!

290 돌아볼 수 있는 날카로운 거울이며, 밖으로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과업을 달성하기 위한 조용하고 묵묵한 결단력인 것이다. 학문과 사람 앞에 겸손하고자 노력했던 2학년 2학기 때, 성적이 몰라 보게 좋아지게 되었다. 또한 3학년 1학기 때에는 같은 학과에서 장학생 으로 선발되어 성적 우수상 을 받기도 하였으며, 다음해 교육 에 대한 관심을 실제 적용시키기 위해 참여했던 미래교육 아이디어 공모전(대 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2007년 3월) 에서 대학부 최우수로 입상, 최 근에는 교육인적자원부 총리 1주년 기념을 맞이하여 열린 김신일 교 육부 총리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 공모전(교육인적자원부, 교육마당 21, 2007년 8월) 에서 당선된 바 있다. -교육이라는 Vision에 날개를 달아준 KOICA(국제협력단)- 대학교에서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어느 정도 교육 에 대해서 관 심이 점점 깊어질 무렵, 아는 선배를 통해 우리나라 외교통상부 산하 KOICA(국제협력단) 이라는 곳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 기관은 우리나 라 공적개발원조(ODA) 정책을 추진하는 핵심기구 중의 하나이자, 동시 에 능력 있는 인재들을 선발하여 해외 각국에 봉사단 및 전문가들을 파 견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대외 정책기관 중 하나이다. 교육에 대해 서 현장 경험을 쌓고 싶었던 나는 그 해 KOICA에서 교육 분야(체육교 육) 의 협력요원(2명)을 선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총 4차까지 가 는 지원 절차 끝에 베트남 파견 교육 분야의 국제협력요원으로 선발되 었다. 베트남의 빙딩성, 뀌년(Binh-Dinh, Quynhon) 이라는 곳에 파견되어, 현재 빙딩성 내 스포츠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빙딩성 체육국(Binh- Dinh Sports & Physical Culture Department) 이라는 곳에서 근무하 고 있다. 이곳의 주요업무는 빙딩성에서 가장 큰 도시인 뀌년(Quy- Nhon) 지역에 배드민턴이라는 종목이 일반인들에게 시합이나 시범을 통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동시에 엘리트 선수들을 육성하여 결과적으로 빙딩성 지역전체에 배드민턴 붐(Boom)을 일으키는 업무라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몸으로만 스포츠 하나? NO! 나는 펜(Pen)으로 스포츠 한다! 290

291 고 정리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거창한 업무 뒤에도 베트남에서 생활하고, 현지 학생들 을 지도하면서 또는 현지 사람들을 대하면서, 언어와 문화가 달라 어려 움을 겪을 때도 많이 있다. 우스운 예로 베트남에서는 발음이 비슷한 경 우가 많이 있는데, 한번은 같은 기수의 어떤 형과 식당에서 밥과 해물 국 을 시켰는데, 밥과 해물 죽 이 나와서 당황한 적도 있었다. 어떤 때 는 한국과의 예의범절이 달라 서로 어색해지거나 심할 경우에는 얼굴 을 붉힐 때도 있다. 문화적인 차이(Gap)가 삶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바 꾸어 놓는지 몸으로 깨닫게 된 시간이 바로 이곳, 베트남에서의 1년이 었다. 베트남에서 알게 된 또 다른 깨달음 중에 하나는 신체의 언어 를 통 해 소통할 수 있는 스포츠 문화 가 이질적인 문화를 하나로 묶을 수 있 는 무한한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이곳에 와서 이전에는 몰랐던 스포츠의 또 다른 측면(외교적, 문화적인 측면)을 좀 더 넓은 시 각으로 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장래의 직업이나 진로에 대해서도 더 많은 가능성들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외에도 한 번의 말과 사진보다도 한 번의 경험이 더 값지다는 격언 이 있듯이, 엘리트 선수들을 지도할 때에도 예전에 후보생으로 있을 때 의 경험을 최대한 살려서, 선수들 중 운동은 좋아하지만 운동선수 로서 는 무리라고 판단되면 그 학생을 따로 불러서 스포츠의 여러 분야와 진 로에 대해 진지하게 상담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체육교육이라는 나의 꿈의 분야 에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는 것 외에도 현재 하고 있는 일을 통해 국가와 국가 간의 외교관계 개 선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자랑스럽게까지 여겨질 때도 있다. 물론 여기서도 넘어지거나 또 다른 선택의 기로에 설 때도 수없이 많이 있지 만, 현재도 역시나 이 가슴 뛰는 자리에서 또다시 더 넓은 꿈의 자리 를 향해서 도전하고 있는 중이다. 291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몸으로만 스포츠 하나? NO! 나는 펜(Pen)으로 스포츠 한다!

292 운동선수의 길에서 돌아선 사람들의 대부분이 자신들의 능력과 Vision에 대해서 불신하거나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대다수의 스포츠 지도자들과 주전 선수들의 시 선에서 생기는 고정관념에 의한 것일 수도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선수 자신의 한 번의 실패경험 으로 인한 자신감의 결여 에 기인한다. 하지 만 거기서 멈춰 서서 나는 안 돼. 하고 되뇌며 패배 의식 속에서 사는 것 은 매우 괴로운 일이다. 그것은 오히려 나는 할 수 있어. 하고 힘차게 발 을 내딛으며 이리저리 부딪치고 고난을 겪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어 려운 길임에 틀림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꿈이 없이 그저 정체되어 있는 삶은 죽은 인생(Noting)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위의 격언은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말조 차도 할 수 없었던 헬렌 켈러(Hellen. A. Keller)가 했던 유명한 말이다. 인생은 모험이며,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4장(#4)에서도 언 급했듯이 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라켓을 놓은 날 이다. 그때 후보생이라는 제목 하에 그저 주저앉아서 울며불며 누군가를 원망만 하고 있었다면 나에게는 아 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아 니기 이전에 무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도 충분 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현재까지의 모습이 대단히 모범적이라거나 다른 누구와 비교해서 잘 되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은 아니다. 다만 혹 나와 같은 과정 을 거쳐 갈 우리나라 많은 운동부 학생들 및 앞으로 체육계에서 활동할 모든 이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역시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몸으로만 스포츠 하나? NO! 나는 펜(Pen)으로 스포츠 한다! 292

293 다는 사실을 같이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에 나 역시 이 분야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알 수 없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체된 길보다는 언제나 모험 쪽을 택할 것이다. 이 글을 읽 는 모두가 장래에 힘찬 모험에 동참하고 나아가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도 주저함없이 전진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하며 글을 맺을까 한다. 293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몸으로만 스포츠 하나? NO! 나는 펜(Pen)으로 스포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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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 자기능력개발 수범사례 절망을 딛고 30년 전의 꿈을 이룬 억척 인생 사실 수기를 공모하기 전 나의 보잘 것 없는 학벌, 어려웠던 가정사 등이 공개된다 고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앞섰다. 하지만 남몰래 가슴 깊숙하게 묻어두었던 것들 을 수기로 적어 내려가면서 하나 둘 정리가 되어갔고, 어두웠고 감추고만 싶었던 과거들이 수기공모에 당선된 계기를 통해 이제는 나에게 자랑스러운 일부분으로 기억될 것 같아 기쁘기 그지없다. 그동안 묵묵히 나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함께 길을 가준 아내, 나의 목표를 이루 기 위해 세세하게 돌아보고 챙겨주지 못한 나의 아들, 딸에게 감사하고 싶다. 또한 나의 꿈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진행 중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고 앞으로의 내 삶의 초석이 될 것 같아 너무 기쁘다. 신 경 용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296 오늘도 나는 늘푸른 유치원 자연학교에 나와 있다.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어 잘 가꾸어진 동 식물들을 바라보노라 면 새삼 그동안 내가 꿈꾸어 오던 일들이 하나 둘 현실로 뿌리내려 가는 것에 대한 감회에 젖게 된다. 젊은 시절 어두컴컴했던 섬유공장에서 기계들의 정교한 움직임과 섬 유 특유의 냄새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뇌리에서 잊혀지 지 않고 있다. 경사(4500)와 위사(실)가 한 가닥 한 가닥 교차하면서 원 단이 만들어질 때 한 올의 실만 끊어져도 베틀은 움직이지 않고 멈춰버 린다. 경험이 부족한 터라 어쩔 줄 몰라 쩔쩔맬 때쯤 숙련된 여직원들의 재빠른 도움으로 베틀은 다시 움직인다. 나는 그 시절 쓸쓸했던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 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곤 하였다. 어쩌면 오히려 나의 이상과는 거리 가 먼 섬유계통의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언젠가 유치원을 운영하겠다 는 생각은 늘 가슴속에 품고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 후 빨래집게 공장, 장난감 공장, 목수, 철공소, 섬유 공장 현장 등 수많은 곳의 직원으로부터 내가 꿈꾸었던 교육 사업을 이 루기까지의 세월 속에서 어느새 꿈을 이룬 억척 인생을 보낸 30년. 이 과정 속에서 경험한 수없이 많은 고통과 좌절을 어찌 이루 말할 수 있을 까? 특히 유년시절의 아픔... 헤어진 엄마를 돈을 벌면 꼭 찾겠다는 남모 를 외로움과 상처를 간직한 채 지나온 유년시절은 지금도 나에게는 말 못할 아픈 기억이라 하겠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신념을 갖고 어떠한 고난이 닥쳐도 이 를 악물고 참아내기를 수십 번,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목표가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열심히 돈을 벌어 회사의 사장이 되어야 유아교육을 전공한 아내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 이었고 많은 유혹과 좌절을 극복한 결과 꿈을 이루었다. 2002년 5월 6일, 2003년 5월 6일에 중ㆍ고등 검정고시를 거쳐 50세 에 계명대학 사회복지과 4학년이 된 지금 주마등같이 지나간 땀과 고 뇌의 30년 세월을 회상할 때면 조금만 더 일찍 삶을 헤쳐나가는 지혜를 깨달았더라면 인생의 기로에 섰을 때 많은 기회들을 놓치지 않았을 것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절망을 딛고 30년 전의 꿈을 이룬 억척 인생 296

297 을...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잡으면 성공해야만 한다는 생각 때문 에 정작 물러서야 할 때 지혜롭지 못해 잃은 것도 많았지만 오히려 그것 이 나의 삶의 원동력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더욱 일에 몰두하기 도 하였다. 오히려 그러한 일과 성공에 대한 집념으로 인해 힘들고 괴로 웠던 유년시절의 기억들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순간의 열정만으로 인생을 가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만을 목표로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바라보며 미래를 위한 꾸준한 노력이야말로 성공으로 돌아오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 문이다. 지난 시절의 힘들었던 과거를 돌이키기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얻 은 경험을 통해 내가 꿈을 꾸어 만든 유치원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내 지난 과거의 노력과 땀이 결코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앞으로도 늘 처음처럼 유치원을 운영해 나갈 것이다. 나는 1958년 경북 영덕 금호에서 태어났다. 기억조차 하기 힘든 어린 시절, 부모님은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이 혼을 하면서 나는 어머니 고향인 충남 논산에서 6살까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나를 데리러 왔고 어린 나는 어머니와 헤어 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며 한없이 울었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 손에 질질 끌려가는 나를 멀리서 보다 못한 어머니는 버스 타는 곳까지 나를 업고 가시며 하룻밤만 자면 온다는 말로 나를 다독였다. 그 말만 믿고 나는 영덕 금호에 아버지를 따라갔고 그때부터 어린 시 절을 할머니 댁에서 할머니 보살핌 속에 지내야 했다. 아버지는 새어머니를 만나 부산에서 살고 계셨고 그 이후로 친어머니 의 소식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할머니에게 조금씩 듣 는 것으로 부모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었고 20살 되던 해 돌아가시기 297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절망을 딛고 30년 전의 꿈을 이룬 억척 인생

298 전 할아버지로부터 친엄마의 고향이 충남 논산에 있는 노성이라는 사 실까지 확인해 두었다. 영덕 강구 초등학교 5학년 때 할머니는 좀 더 나은 형편에서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목적으로 아버지가 살고 계시던 부산으로 나를 보내셨 다. 새어머니와 배다른 두 형제가 있는 부산에서의 서먹서먹한 생활은 도회지에 가서 공부해야 성공한다는 할머니의 생각과는 다르게 특히나 어린 나에게는 너무도 적응이 힘든 하루하루였다. 부산 성북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공부보다는 오히려 공장에서 일하며 하루하루를 보내 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원치 않았던 가정생활에 대한 반항심이고 현 실도피를 위한 피난처였는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한동안 방황을 하며 불확실한 앞날 을 걱정하였고 일단 돈을 벌어 성공하고 연후에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 심했다. 어쩌면 이런 엉뚱한 생각이 지금껏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도록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부산에서의 나의 생활을 보다 못한 할아버지께서는 대구에 있는 고모 부에게 나를 부탁하였고, 1973년 내 나이 16세 때 집 떠나 생활하던 종 이 가는 기계를 만드는 공장인 삼양 특수기 제작소의 기숙사 생활을 정 리하고 단돈 1만 5천 원을 가지고 인생이 전환 될 대구 가는 버스에 올 라탔다. 나는 당시 고모부가 근무하고 계시던 대구 동촌 용계동에 있는 섬유 공장 서도산업 에 취직, 현장에서 기계에 기름을 치는 일부터 하기 시 작했다. 그곳은 손수건을 제조하는 공장이었는데 섬유공장 특성상 온 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여름에는 찜통더위의 열악한 조건에 다 먼지와 소음까지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다. 어린 나에게는 하기 싫고 힘든 일이 태반이었지만 그때마다 믿고 의지할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 다는 생각을 하며 버텨 나갔다. 특히 그곳은 24시간 기계가 멈추지 않 는 주ㆍ야근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그래도 부산에 있을 때보다 제법 큰 회사에 취직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했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그 시 절은 아는 사람이 없으면 취직이 힘든 시절이라 여기서 돈도 벌고 기술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절망을 딛고 30년 전의 꿈을 이룬 억척 인생 298

299 도 열심히 배워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언제나 내 마음속에는 성공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현장에서 남 들은 걸어다닐 때 비좁은 기계 사이로 뛰어다니면서 기계를 고쳐주었 고, 야간작업 때 고장이 없는 한 대부분 구석진 곳에서 잠시 졸음을 피 할 때 나는 여직공을 도와 베틀을 돌려주고, 그사이 틈틈이 시간을 내어 미래에 대한 공상의 글을 적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곤 하였다. 그 당시 여직공들 속에 몇 안 되는 남자 기사들의 생활은 대부분이 의 례적으로 여직공과 동거하거나 결혼하고 살았다. 또한 여기저기 공장 에서 일할 사람들이 부족한 시절을 보내면서 기사들은 일할 사람을 데 리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특히 가족이 많은 여자를 사귀면 자기 자리는 그만큼 대우받는 시절이었다. 그래서 더욱이 그러한 유혹을 뿌리친다 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나는 이 시절에도 성공해서 결혼한 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후 일찍이 나는 성서에 있는 세양 섬유 의 공장장까지 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는 24시간 기계가 돌아가는 곳이기에 공장에서 직원들과 몸을 부대끼며 일을 더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로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하기 도 하였던 나의 생활은 모두 나의 일에 대한 열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숙사에서 잠을 자는 중에 내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 게 된 결정적인 꿈을 꾸게 되었다. 내가 교사가 되어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꿈을 꾼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 이 학벌의 전부였던 나에게는 더 많이 배우지 못한 아쉬움이 가슴 속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미련이 만들어낸 꿈이 아닐까도 생각했다. 이때부터 나는 가장 훌륭한 유치원을 건립하고 운영해야겠다는 목표 를 세우게 되었다. 그날 이후 교육사업과는 전혀 거리가 먼 섬유 일을 하면서도 언젠가 는 꿈을 이루겠다는 포부를 가슴속에 늘 간직하고 생활했다. 299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절망을 딛고 30년 전의 꿈을 이룬 억척 인생

300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 라디오 프로에서 유아교육의 귀감이 되고 있는 독일의 한 유치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곳 유치원은 어 린이들이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꿈을 키우는 이상적인 유치원으 로 들려왔다. 이제껏 막연하게 꿈꾸어오던 유치원의 모습이 명확하게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바로 그런 유치원을 만들어야겠다는 뚜렷 한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그때부터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는 일마다 늘 최선을 다했고 월급 또한 헛되이 쓰지 않고 꼬박꼬박 저축을 했다. 그러던 중 드디어 나의 꿈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사건이 있었다. 내 나이 26세 되던 해, 운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던 (주)동건섬유에 지 사장으로 스카우트되었고 그곳에 근무하면서 회사 설립 이후 입사 3개 월 만에 최고의 생산량을 기록했고 그때부터 나는 그 분야에서는 최고 의 실력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나는 누구보 다도 열심히 했다. 오직 성공해야 한다는 목표로 일하던 어느 날, 1년 6개월쯤 동업으로 이루어지던 회사가 갈라지게 되면서 공장은 내가 인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모아온 돈과 부족한 돈을 빌려 전세이지만 직기 40대에 내가 고용하고 가르쳐온 직원을 모두 떠안은 채 공장을 인수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내 목표 중 하나였던 한 회사의 사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월배 대천동에 위치한 광영섬유 라는 상호의 대표가 되어 인생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게 되었다. 당시 나는 중고집기를 1대당 20만 원에 매입했는데, 인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의 섬유 기기 자동화 시책이 선포되었고 이에 따라 헌 기계 4대를 부수면 자동 기계 1대를 교체할 수 있도록 대출을 해준다는 것이었다. 이에 얼마 후 내가 20만원에 매입한 중고 집기가 대당 100만 원까지 인상되는 행운 까지 얻으며 나의 사업은 승승장구해갔다. 2년 뒤 대구 인접의 달성군 옥포에 부지를 매입하고 드디어 나의 공 장을 건립했다. 사장이 되어야 좋은 아내를 만날 수 있다는 목표를 이룰 시점이 온 것이다.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절망을 딛고 30년 전의 꿈을 이룬 억척 인생 300

301 난 한 회사의 사장이 되면 한평생 꿈이었던 유아교육을 맡아줄 여성 과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고 마침내 그 꿈은 32살이 되 어 사회학을 전공한 아내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으면서 이루어졌다. 결혼 후 차츰 사업이 안정되면서 나는 아내에게 유치원을 운영하고 싶은 꿈을 이야기하였고 함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아내에게 유아교육 을 다시 공부하도록 권유했다. 주부로서 두 아이를 키우며 대학을 다시 다닌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아내는 나의 꿈을 이해하고 흔쾌 히 다시 유아교육을 전공하였다. 그리고 미래에 설립될 유치원을 위해 두 아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과 놀이기구, 무선전화기까지 버리지 않 고 차곡차곡 모으며 미래를 준비하였다. 하지만 그 시절, 목표를 위해 너무도 바빴던 그때를 돌아보면 누구보 다 미안했던 것은 우리 두 아이들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공 장 사택에서 생활하던 때 작은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이 왔다. 큰아이가 5살, 작은 아이가 4살 때였다. 황급히 집으로 가보니 빈집에 동생은 누 워 있고 옆에는 5살 된 큰아이가 바가지에 물을 떠다 놓고 물수건을 짜 동생 머리에 얹어주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그 때의 뭉클한 감정이 기억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목표는 점차 현실화되는 듯했지만 운명의 신 ( 神 )은 가혹하리만큼 험난한 고난을 또다시 안겨 주었다. 아내가 겨우 1학년을 마쳤을 무렵인 1995년, 번창하던 회사가 부도 를 맞게 된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세상의 달콤한 유혹을 모두 뿌리 301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절망을 딛고 30년 전의 꿈을 이룬 억척 인생

302 치고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차곡차곡 쌓아온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 에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이었기에 누구보다 나에게 있어 이 고통은 견디기 어려울 만큼 가혹했다. 사실 부도의 아픔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어쩌면 내 꿈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단지 목표를 이루기까지의 시간이 조금 더 필 요할 뿐이라고 나 자신을 독려하며 재산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갔다. 부 도로 안은 부채는 다시 일을 해서 갚기로 하고 1996년 법정관리 회사인 논노 와 거래를 시작했다. 그러나 법정관리 회사라 안전한 줄만 알았던 논노 마저 다시 부도가 났다. 내 미래가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래처 부 도 이후 나는 무덤에까지 모르고 갈 많은 어려운 일들을 짧은 시간 안 에, 그것도 쓰디쓴 인생 공부를 하여야 했다. 그 시절 나는 내 생애에서 가장 큰 좌절감을 맛보았고 그때에 흘린 눈물은 그동안 흘린 땀 만큼일 것이다. 이러한 고난의 상황에서도 마음속의 희망을 잃지 않고 아내만은 계속 공부를 하게 하였고 졸업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그해 말 국가적 위기인 IMF마저 도래했다. 한 올의 희 망마저 산산이 꺾어 놓는 듯 했다. 모든 것을 포기해야할 절벽의 막바 지. 운명의 신 또한 내 인생의 열정과 목표가 안쓰러워였을까? 나에게 한 가닥 행운이 찾아왔다. IMF 당시 1달러에 900원이던 환율이 1,800원까지 배로 오르고 땅값 은 최저로 하락하였다. 때마침 일본의 급한 물량주문을 봉제업체로부 터 받은 것이 50만 불 정도 있었고 그것을 열심히 하여서인지 일본에서 의 물량주문은 갈수록 늘어나면서 이것이 회사가 다시 살아나는 기회 로 이어졌다. 일본에서는 우리나라 원화는 하락하고 일본 엔화의 강세 로 한국에서 더 싼 값으로 구매가 가능하였기 때문에 회사의 주문량이 날로 많아졌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했기에 죽을 힘을 다해 퀵데리오더(급한 오더)를 모두 소화해냈다. 이러한 험난한 인생역전을 반복, 밀레니엄 시대가 시작된 2001년에 드디어 나에게 있어 제2의 인생문이 열렸다.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절망을 딛고 30년 전의 꿈을 이룬 억척 인생 302

303 젊은 시절 꿈에 그리던 유치원을 드디어 화원 명곡에 건립하게 된 것이 다. 여기에 오기까지 30년이 걸린 인고의 세월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예정보다 조금 늦었지만 나의 꿈은 마침내 현실로 다가왔다. 유치원이 건립되는 동안 섬유사업을 병행하면서도 나는 내가 원하는 유치원으로 완성하기 위해 열정과 기대로 꿈에 그리던 유치원의 모습 을 갖추어 갔다. 2001년 중순이 지나면서 드디어 8개월간에 걸친 공사가 끝나고 그 해 11월 27일 달성교육청으로부터 5학급 인가를 받았으며 이듬해 3월 2일 대망의 제1회 입학식을 가졌다. 1년이 지나 교육청으로부터 또다 시 3학급 증설인가를 받아 현재 총 8학급의 유치원생 280명에 이어 지 금은 교직원 29명의 늘푸른 미술교실, 영어교실을 포함하는 지금의 늘 푸른 교육랜드를 이룩했다. 이 꿈을 이루기까지 장장 30년 세월이 걸렸다. 나를 힘들게 했던 온갖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남모르는 땀과 눈 물을 흘리며 혼과 정성을 담은 어린이들의 꿈의 궁전 늘푸른 유치원을 포함한 늘푸른 교육랜드 는 이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다. 유치원을 개원할 때 빈손으로 왔다며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사라고 현 금을 주고 간 원장님이 있었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그 유치원을 방문하 였다. 원장님은 유치원 운영의 여러 부분들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 고 무엇보다 시범유치원 운영을 통해 힘은 들었지만 교사의 질이 향상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는 교사의 질이 향상되었다는 말에 귀 가 솔깃해졌다. 한 가지 특색 있는 주제를 선정하여 교육청 지도하에 같이 연구하며 유치원을 개방하고 공개수업을 통해 모든 학교들이 보다 나은 교육 정 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이 제도가 더없이 좋게 생각되었다. 303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절망을 딛고 30년 전의 꿈을 이룬 억척 인생

304 나는 우리 유치원도 꼭 시범 운영을 해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것이 야말로 유치원의 환경을 더욱 개선시킬 수 있고, 교사의 능력 개발을 위 한 더 없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일을 추진하려면 무엇보다 교사들의 동의가 제일 중요했으므로 회 의를 소집하였다. 회의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개원 2년째에 시범 유치 원을 운영한다는 것은 역부족이며 무엇보다 유치원이 오래되어 자료가 많이 축적되어 있어야 하는데 2년밖에 안 된 우리 유치원에 무슨 자료 들이 있는가, 또한 누가 신설 유치원에 배울 게 있다고 오겠는가 하는 근본적인 것부터 교사들의 밤 근무, 퇴근 등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여러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나는 선생님들을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살아오며 많은 일들을 겪었으며, 때론 이보다도 더 어려운 일들을 이겨내어 남들이 모두 불가 능하다는 일도 이루어 왔다. 신념을 갖고 도전하면 이룰 수 있다는 희망 을 가져달라 고 말하였다. 급기야 나는 선생님들에게 모든 교육상의 문제점은 전공 교수를 초빙 하여 지원할 것을 약속하였고 늦게 귀가 시 택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 는 등 사소한 일들까지 책임을 지고 지원할 것을 약속하고 시범 유치원 운영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단지 그것뿐 아니었다. 설립 2년차 유치원이 겁도 없이 시범 운영을 한다고 유치원 밖 또한 시끄러웠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주변의 시선이나 말에 휘둘려서는 안 되었다. 나의 목표는 오직 좋은 유치원을 만드는 것이었다. 나와 우리 선생님들이 힘을 합해 다른 사람들의 편견 을 불식시키고, 능력 있는 교사로 가득한, 어린이를 위한 좋은 유치원 만들기에 정성을 쏟았다. 기본 생활습관 형성이란 주제를 잘 실행하기 위하여 어린이들에게 전통 예절을 더 잘 가르치고자 다도실과 예절실 도 꾸몄다. 시범운영 준비가 진행되어 갈수록 교사들은 점차 발전하였다. 많은 의견을 나누고 문제점을 찾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후반기에 와서는 거 의 매일 밤늦도록 연구하고 일하였다. 나는 교사들에게 있어 이 일이 유치원 교사로서 더욱더 발전할 수 있 는 기회이고, 자신의 힘이 유치원을 더욱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절망을 딛고 30년 전의 꿈을 이룬 억척 인생 304

305 점을 항상 부각시켰다. 나 역시 이 일이 관리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이라는 신념으로 그들을 독려하고 솔선수범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시범공개를 앞두고 나와 여러 선생님들의 마음은 초조하고 걱정이 앞 섰다. 마침 교육청에서 마지막 점검 차 학무과장님과 장학사님이 오셔 서 시설을 둘러보며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고 얼마 전 시범 공개 수업을 화원초등학교를 일러주어 둘러본 후 그곳 환경 등을 참고 할 수 있었다. 또 시범 운영 내용 또한 점검한 후 부족한 점을 보완하도록 실질적인 도 움을 주었다. 그제야 우리는 다소 안심할 수 있었다. 드디어 2002년 10월, 시범 공개를 하게 된 당일 우리 교사들이 밤잠 을 설쳐가며 열심히 준비한 것들이 어떤 평가를 받게 될는지, 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우리가 정성껏 준비한 것들을 어떻게 봐줄 것인지, 그 밖에도 이런저런 것까지도 다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공 개 결과에 대한 평가와 상관없이 우리가 애쓴 만큼 발전하였다는 자부 심도 가졌다. 인사에 앞서 나는 우리 유치원이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단순한 2년이 아님을 역설하였다. 이사장인 내가 젊은 시절부터 꿈꾸고 준비하여 오 랜 세월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음을 알리고, 회사 경영 관리를 교육에 접 목시키고자 노력했던 과정을 담담하게 설명하였다. 이런 점이 교육 관 계자들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았던 것 같다. 앞으로도 나는 이런 좋은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않고 우리 교사들이 스스로 능력을 개발하여 발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좋은 교육 환경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힘들었지만 꿈만은 뚜렷했던 시절 우연히 한 라디오 프로에서 들었던 독일의 자연과 더불어 꿈을 키운다는 유치원. 그 이상적인 유치원을 만 들기 위해 나는 먼저 산과 밭이 있는 곳을 물색하여 2001년도 옥포 야 305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절망을 딛고 30년 전의 꿈을 이룬 억척 인생

306 산 밑의 밭을 빌려 늘푸른 자연학습장 간판을 걸었다. 발도로프의 이 론처럼 교사, 학생, 학부모들 사이의 유대를 중요하게 생각하였기에 원 아 모집 기간에 텃밭 분양을 홍보하고, 일부 학부모들에게는 현장을 보 여주기도 하였다. 나는 그때 자연학습장을 통해서 우리 유치원과 부모, 어린이 모두에 게 소중한 인연과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어린이들과 선생님들은 자연 속에서 그림도 그리고, 텃밭을 분양하여 주말이면 가족들이 음식을 준 비하여 자연학습장으로 나들이 나와 직접 채소를 가꾸면서 추억을 만 들어 가는 곳을 꿈꾸었다. 그러나 당시 유치원 실정에 대해 너무 몰랐던 탓에 이 모든 것을 다시 수정해야 했다. 어린이들이 자연과 함께 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산에 는 뱀, 벌레, 낙석 등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고 또한 유치원의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시간상으로 부족한 면이 많았으며, 어린 이들이 걸어서 이동하는 것을 감안하여 차가 마음대로 드나드는 곳이 어야 했는데, 그러한 점도 불편하였다. 그 밖에도 화장실, 식수 등의 시 설을 갖추기 위한 장소로서도 그곳은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학부모님들과의 첫 약속이기에 나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섬유공장 앞마당에 2번째 텃밭을 조성하였다. 약 700평 되는 땅 에 좋은 흙을 덤프차로 3차나 실어 부은 다음, 거름을 넣어 조성하였다. 8학급의 우리 아이들이 고구마를 심을 수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약속 대로 희망하는 가족 등에게 분양하였다. 나는 각자의 텃밭에 가족의 푯 말을 만들어 붙이고, 가족들이 열심히 텃밭을 가꾸는 모습을 보며, 많은 기쁨과 행복, 보람을 느꼈다. 또 텃밭이 공장 앞마당에 있어 앞으로 주 말이면 여러 가족들이 찾을 거라는 생각에 공장의 주변 환경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큰 나무를 심어 그늘을 만들고, 그곳에서 가족들 이 맛있게 식사할 수 있는 시설과 함께 수도 시설과 화장실 등 모든 시 설을 정비하였다. 나는 매일 새벽 텃밭에서 풀도 뽑아 주고, 물도 주며, 바쁜 일상에 있 는 학부모들을 대신하여 밭 가꾸는 것을 도와주었고 매일같이 내가 가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절망을 딛고 30년 전의 꿈을 이룬 억척 인생 306

307 족들의 텃밭을 내 텃밭처럼 가꾸는 모습을 보고는 부모님들도 퇴근하 면서 들리기도 하였고 주말이면 어린이들과 함께 찾아와 텃밭을 가꾸 기도 하였다. 점심때면 직접 가꾼 상추와 쑥갓, 고추 등을 따서 단란하 게 식사를 하는 가족들의 모습도 많이 보게 되었고 유치원에서는 수시 로 가정 통신문을 통해 농장에 관한 소식 등을 보내어 더욱 관심을 고조 시키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바쁜 일과 탓인지 학부모들의 텃 밭에 대한 관리와 관심이 소홀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밭을 돌보는 모 든 일들이 차츰 나의 몫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지만 그럴수록 나는 예전 에 보았던 가족들의 그 단란한 모습들을 생각하며 더욱 열심히 텃밭을 돌보았다. 때로는 사람을 사서 풀을 메기도 하고 스프링클러를 설치하 여 자동으로 물을 줄 수 있게도 하였다. 그리고 유치원 몫으로 가꾼 채 소를 나누어주며, 자연스럽게 학부모들과 가까이 대면하여 유치원 설 립 취지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및 꿈들을 이야기하고 학부모들의 조언을 듣기도 하였다. 자연 속의 교육이 여러 학부님들과의 좋은 인연도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유치원을 개원 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었 지만, 그때마다 가정과의 연계를 통해 슬기롭게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 다. 이런 좋은 인연은 언제나 서로에게 믿음을 주었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기도 하였다. 307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절망을 딛고 30년 전의 꿈을 이룬 억척 인생

308 나는 예전에 시행착오를 겪었던 점들을 보완하여 유치원 근처에 언제 든지 야외수업을 할 수 있도록 3번째 자연학습장을 구축하였다. 여러 동물들을 직접 사육해보는 경험과 농작물을 심어 수확도 해보 고, 마음껏 자연 속에서 뛰며 어우러짐을 통해 유아들에게는 창의성이 싹트고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이 향상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아이들의 자연 놀이터를 마련한 것이었다. 그러나 공간적 협소함의 한계에 부딪 히며 자연 속에 유치원과 같은 교실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새로 운 장소를 물색, 설화리에 지금의 자연학습장을 마련하였다. 기존의 잠 시 왔다 가는 자연학습장 개념에서 실내ㆍ외 수업이 사시사철 이루어 질 수 있는 실내교실과 푸른 잔디밭, 동물사육장, 넓은 텃밭 등 어떻게 보면 유치원보다 더 자연 속에서 배움이 깊을 수 있는 학교 개념으로 승 화시켰고 이름도 늘푸른 자연학교로 명명하였다. 늘푸른 자연학교에 온 유치원 아이들은 넓은 잔디밭을 보며 축구선수 를 꿈꾸고, 늘 보살핌을 받다가 오히려 자신보다 나약한 동물들을 돌보 면서 사랑과 보살피는 마음을 배우며, 곳곳에 열린 수확들을 보며 조그 만 노력과 애씀이 풍성한 열매 맺힘으로 돌아옴을 경험하면서 지금은 자그맣지만 자라서는 큰 결실로 돌아올 꿈을 키운다. 그 외에도 자연학교에서는 평생교육의 의미로 학부모들 교육 또한 이 끌어 나가려 한다. 학부모 다도교실이며, 공동으로 김장하기 등 유치원 과 가정의 연계교육도 도모하고 학부모들의 여가를 의미 있게 보내도 록 돕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자연학교에 가을을 맞이하여 늘푸른 교육랜드의 모든 학부모 를 초대하여 가을 축제를 진행하게 되었다. 학부모들이 직접 허수아비를 만들어 농장에 세우고 고구마 줄기도 따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었다. 유아 생태교육의 중요성을 현장에 전하고 있는 교수님이 직접 방문하 여 앞서가는 유아교육을 실천하는 늘푸른 자연학교의 공간적인 준비,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절망을 딛고 30년 전의 꿈을 이룬 억척 인생 308

309 원장의 마인드에서 교사들의 단결된 모습으로 유아 생태교육을 시작하 고 있는 우리 늘푸른 유치원은 정말 선택받은 곳이 아닌가 하고 격찬을 금치 않는 모습에서 아! 이제야 나의 꿈 앞에 내가 서 있는 구나! 하는 실감을 해본다. 자연학교가 있기까지 경제적인 투자와 또한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땀방울. 하루도 쉬지 않고 그늘막 밑으로 자리한 자연학교의 평상이며 잔디, 모든 구성품 하나하나를 일꾼들과 함께 손수 만들었던 순간들이 필름처럼 스쳐가며 이것이 과연 앞으로 나의 사명이구나 라고 생각되 었다. 우리 어린이들이 자연학교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즐거운 경험 을 많이 하여 생명을 존중하고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이 나라의 일꾼으로 자라나도록 30년 꿈을 넘어 또다시 유아 생태교육의 목표를 향한 계속적인 열정으로 노력의 땀을 흘리고자 한다. 회사경영에서는 대표자의 능력만으로도 생산력을 향상시킬 수 있고 나만의 노하우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은 경영만으로 이루어지 는 것은 아니었다. 교사가 자신이 교육하고자 하는 내용을 올바로 인지하고 가르치도록 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교사 개개인이 확고한 교육관을 가지고 교 수방법의 효과적인 능력을 터득할 때까지 대표자인 나에게는 많은 기다 림이 필요했다. 나는 그런 부분을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깨닫게 되었다. 그 후로부터 나는 항상 교사들을 주시하며 교사가 교수법을 터득할 때까지 기다려 주고 있다. 교육기관인 유치원이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 는 질 높은 교육과 꾸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유치원을 계 속 발전시키기 위하여 아내를 유아교육 대학원에 보냈고, 졸업 후 많은 교육 정보와 자기발전을 위해서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원 운영에 있어 서도 모든 업무를 분산하여 학교의 운영체제로 변화시켰다. 309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절망을 딛고 30년 전의 꿈을 이룬 억척 인생

310 이 가운데에서도 젊은 시절 목표를 이룬 후에 공부를 하기로 결심한 나와의 약속을 잊지 않았고 그 꿈은 46살이 되서야 실천하게 되었다. 대구시내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해서 공부를 했고, 도저히 진도를 따라 갈 수가 없어 학원 인근에 빈 사무실을 얻어 강사를 불러 개인지도까지 한 결과 4개월 만에 중등 과정을 합격하고 바로 고등학교 과정을 합격 하여 47살에 계명대학 사회복지과에 들어가게 되었다.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은 숨겨둔 자신의 치부와 가슴에 묻어둔 설움 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핵폭탄과 같은 기쁨이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어렵게 살아온 인생의 보람 을 뒤늦게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아이들과의 생활을 스스로 선 택하였다는 것을 자각하고 앞으로도 끊임없는 어려움이 뒤따를 수 있 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다. 또한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포 기하지 않고 자기 변신을 해야 된다는 신념으로 지난 과거의 노력과 땀 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나 자신을 끊임없이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 유치원 및 교직원 표창 장학 활동 교육장 표창 우수 교원 표창 경찰 행정 발전 감사장 우수 유치원 교육감 표창 우수 교원 교육감 표창 우수 교원 교육장 표창 경찰의 날 감사장 우수 교원 교육장 표창 선행모범시민 대구시장 표창장 소방동요 경연대회 대상수상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절망을 딛고 30년 전의 꿈을 이룬 억척 인생 310

311 소방동요 경연대회 지도자상 교육감상 소방의 날 행정자치부 장관상 우수 교원 교육장 표창 영진전문대학 공로상 대구광역시 유치원교사 동화구연대회 교육감상 수상 제3회 창의성 교육 실적물 전시회 우수상 수상 우수 교원 교육장 표창 대구광역시 유아교육교재 전시회 우수상 수상 제24회 대구광역시 유아교육교재 전시회 단체 우수상 수상 2006 ~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상(감사장) 311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절망을 딛고 30년 전의 꿈을 이룬 억척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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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자기능력개발 수범사례 눈물의 아침밥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신 오중수 선생님이 먼저 생각이 납니다. 전라북도에서 최상위권인 내가 전주공업고등학 교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우리나라의 이공계를 위해 큰 인물이 될 것을 당부하시면서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아버지 께서 공업고등학교 교사(이리공고 교무부장)로 근무 하실 때 많은 학부형들하고 상담하는 내용을 들을 수 있었습니 다. 입시철만 되면 양극화 현상이 빚어지는 사회적인 현실 때문에 마음고생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 었기 때문에 이공계로 진학할 결심을 하였습니다. 3년 동안 인성 좋은 친구들과 공부를 즐기면서, 단편적인 지식과 내신 성적 위주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학교가 전주공업고등학교입니다. 수능 준비를 하면서 교 육과정상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인터넷과 교육방송을 통해 꾸준히 준비하였고 모의고사를 통해 인문계 고등학생 들과 간접적인 평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수학 과목은 항상 1등급으로 거의 만점을 맞았습니다. 서울대학교 건설 환경과 1단계 합격을 한 나에게 수학을 잘하는 것은 큰 장점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각종 논술대회와 백일장대회에 참가하여 여러 차례 입상한 것은 자신감을 갖게 하였고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 었습니다. 장세진 국어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년퇴임하신 윤여병 교 장선생님의 격려 말씀과 영어의 눈을 뜨게 지도하셨던 국사 선생님이신 윤여성선 생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김종원, 남상팔, 정병노 선생님 담임선생님을 떠나 자 식처럼 생각하시면서 격려해주신 은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세상의 이치를 깨우 치게 강의 하셨던 토목과 선생님들과 야간 자습 때 격려해 주셨던 최영목, 양승기, 구자상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2학년 때 우리학교로 오셔서 휴일을 모두 반납하시고 나를 포함한 몇몇 학 생들에게 손수 밥을 지어 주셨던 사감선생님이면서 아버지이신 신진규 선생님께 모든 수상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말없이 응원해준 토목과 급우들과 3년동안 기 숙사에서 남자다운 면모를 갖출 수 있도록 도움주신 사감선생님들(오창록, 이상호, 임병하. 임창권, 남상팔선생님)께도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전북대학교 성형외과 양 경무 교수님의 잊지 못할 특강 또한 저를 우뚝 서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 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수능 2일전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서울대 마지막 단계까지 합격하여 우리나라의 토목 환경 분야의 큰 일꾼이 되겠습니다. 신 경 택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

314 친구들이 `너, 미쳤냐? 는 소리를 많이 했어요. 복도에서 마주치는 선생님들도 `참 아깝다 라고 했어요. 우등생인 전주 풍남중 3년 신경택(15. 愼 京 澤 )군이 인문고 대신 전주 공업고교에 지원하자 주위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군은 3년 내내 학급에서 1-2등을 놓치지 않았고, 최근 몇 차례 치러 진 모의고사에서도 180점 만점에 평균 174점을 맞을 정도로 학교에서 도 줄곧 최상위권에 속한 영재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또래에서 선 망의 학교로 통하는 자립형 사립고나 과학고, 외국어고 등을 제쳐두고 전주공고 토목과에 지원서를 내민 것은 신선한 파격으로 받아들여진 다. 신군의 공고행( 行 )은 이리공고 건축디자인학부 교사인 아버지 진규 (44)씨의 영향도 컸다. 전주공고 출신인 진규씨는 자식이 소위 잘 나가 는 인문고교에 들어가 내로라하는 명문대학에 진학했으면 좋겠다는 생 각을 어느 부모인들 하지 않았겠느냐 면서 아들의 꿈과 실업계 고교 의 부흥을 바라는 나의 소망이 맞아 떨어진 셈 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에서 이공계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데도 이공계 대학 진학의 기피 현상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현장에서 뼈저리 게 느꼈다 면서 공학도가 꿈인 아들의 소망이 실현되면 침체된 실업계 고교도 희망을 찾을 것으로 본다. 고 덧붙였다. 물론 신군의 공고행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어머니 이경이(42)씨는 아들의 공고 진학 결심에 충격을 받아 식사를 거르고 자리에 눕기까지 했다. 해결사로 나선 진규씨는 궁리 끝에 아내 를 전주공고로 직접 데려가 인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5-6명의 재 학생들을 만나게 했다. 아들의 확고한 결심과 남편의 설득, 공고 학생들 의 열의를 눈으로 확인한 경이씨도 이제 더는 인문고 진학을 고집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뭔가를 보여 달라 며 오히려 아들을 격려하고 있다. 종합학원에 다닌 것을 제외하고는 과외 한번 받지 않고 내내 최상위 권을 유지해온 신군은 명문 대학에 진학, 나라에 보탬이 되는 훌륭한 공학도가 되고 싶다 면서 선택에 후회는 없다 며 밝게 웃었다. <2004년 11월 11일자 연합뉴스에 나온 나의 기사를 그대로 옮겨 왔다.>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연합뉴스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경찰청 상황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눈물의 아침밥 314

315 근무를 하는 중이라면서 인터뷰를 하자고 뜻을 밝혀왔고, 등교 전 아버 지와 30여 분정도 짤막하게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2장을 찍었다. 등교 후 1시간쯤 지났을까? 학교 전체가 난리가 났다. 인터넷 뉴스에 나의 기사가 났다면서 학교에서도 일부만 알고 있었던 나의 진로에 대 해 모든 이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그 후 한동안 엄청난 스트레 스를 받았다. 생방송 출연요청, 학교를 찾는 각 방송사별 취재 경쟁 등 은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기자가 쓴 글 중에 추측기사가 많이 있었다. 민주적으로 부모님들과 의논해서 결정했는데 어머니가 충격을 받아 식사를 거른다는 등의 기 사는 어린 나를 많이 힘들게 했다. 나의 매니저 역할을 했던 아버지께 더 이상 방송출연을 그만하게 해 달라고 하였다. 아버지께서는 3년 후 우리 경택이가 뜻한바 큰 꿈을 이 룬 뒤에 다시 찾아 달라. 고 말씀하셨다. 마지막으로 경기도 시흥의 한국 산업기술대학 최홍건 총장님이 나와 아버지를 초대하여 다녀왔다. 산업자원부 차관이었던 총장님은 우리나 라의 큰 일군이 되어 달라면서 격려의 말씀과 함께 장학금도 주셨다. 나의 진로 선택에 있어서 이처럼 사회의 이슈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인터넷 댓글에서 나의 진로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많았지만 따가 운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느 방송사 인터넷 검색어 1위를 차지했던 기사였을 정도였다. 3년 후 다시 한 번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 려 주겠노라고 다짐하면서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교장선생님과 동창회장님 앞에서 482명을 대표해서 입학식 날 선서 를 하였다. 우리학교 교정에 세워진 동상의 주인공이신 유기정 할아버 지 선배님이 나의 후원자이셨고 3년 동안 학교생활에 필요한 모든 학비 를 지원해 주신다는 내용의 증서를 받으면서 나는 이미 전주공고의 한 일원으로서 새 만금 갯벌에서 다짐했던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기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벌써 3년이 지났다. 내가 의도했던 것처럼 원만한 교육과정은 아니었 지만 나는 3가지의 것들을 충실히 준비했다. 315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눈물의 아침밥

316 하나는 내신 관리였다. 공부는 나보다 못하였지만 인성이 착한 급우 들 덕분에 좋은 분위기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전문계 고등학교에 대한 편견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방과 후에는 인터넷 강의와 EBS 교 육 방송을 통해 대학 수학능력 시험에 대비하여 꾸준히 공부하였다. 전 문계 고등학교이기 때문에 모의고사를 자주 볼 기회가 없었지만 인터 넷으로 모의고사를 스스로 풀어보면서 다른 학교 학생들과 간접적으로 비교를 할 수 있었다. 토목과에서의 역학과목은 수학과 과학과목과 밀 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수학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였다. 기숙 사에서 아침마다 들려주는 영어 듣기 방송은 부족한 영어 시간을 보충 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두 번째는 각종 글짓기 및 논술대회에 참가하여 창의력을 키웠고 세 상을 바라보는 넒은 안목을 키워나갔다. 학과와 관련 있는 대회에는 여 러 번 참가했다. 학교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공학 외에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출전한 대회는 각 지역 예선을 통과한 학생들만 참가자격을 주었다. 광주대학교 전국고교 백일장대회에서 산문부문 소리-할아버 지에 관한 추억 이란 제목으로 차하상을 받았다. 처음으로 외부기관에 서 상을 받은 기쁨은 상상외였다. 나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 감을 갖 게 하였고 가족에 대한 소중함도 일깨우게 하였다. 14식구의 대가족이 함께 살았던 초등학교 시절이 있었기에 소재도 얻었고 어필 할 수 있는 내용의 글을 쓸 수 있었다. 이 후 여성주간에 실시한 양성평등 글짓기 대회에서 교육감상을 수상하였고, 2학년 때는 경기대학교에서 주관하 는 고교 글짓기 대회에서 경기대학교 총장상을, 세계 환경의 날에 실시 한 환경 백일장대회에서 교육감상을 받았고 학생의 날에 실시한 청소년 문학상에 도전하여 수필부문 가작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입학하 면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건축을 전공한 공업고등학교 건축 과 교사이시면서 틈틈이 글을 쓰셨던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 가고 있었 다. 한 달에 한번 꼴로 가족끼리 본 영화도 글짓기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눈물의 아침밥 316

317 신문(전북일보)에 기고를 했다. [젊음!]이공계가 살아나려면 이라는 주제로 글을 보냈는데 편집국장님이 메일로 답글을 보내주셨다. 경택 군, 우리는 경택군의 글을 받고 만장일치로 오피니언이라는 코너에 글 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공계가 경택군의 생각처럼 발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연소자로 우리 신문에 채택된 글을 축하드 립니다. 2005년 5월 26일자 우리 신문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느낌을 세상에 처음으로 전하는 메시지였다. 입학 전 사 람들의 잘못된 생각과 편견들을 바로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그 글은 스크랩하여 잘 보관하고 있다. 인문계 고등학교 친구들은 엄두도 못 낼 일들이었다. 상대적으로 많 은 시간들을 내가 하고 싶은 공부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 이 전문계 고등학교의 장점이었고 나는 그 장점을 최대한 이용하였다. 공부를 즐기다 보니 공부만큼 쉬운 것이 없었다. 남들이 어려워하는 수 학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과목이 되었다. 다른 암기과목처럼 생각 하고 수학을 접했던 간단한 나의 논리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모의고사와 학교 정규고사에서 수학은 거의 만점을 맞았다. 공학을 전 공하고 있는 나에게는 큰 장점이라고 스스로 자부 하고 있다. 수학경시 대회에서 3년 동안 최우수상을 차지한 것이 실적이라면 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학과 공부와 수학능력시험을 병행하면서도 봉사활동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가족이 함께하는 봉사활동은 가족의 끈끈함을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땀의 소중함을 일깨우게 해주었다. 목욕봉사며 음식을 제공하 는 봉사활동은 봉사활동 점수를 위해서가 아니고 삶에 대한 진지한 부 317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눈물의 아침밥

318 분을 느끼게 하기 위한 아버지의 배려였던 것이다. 지역에서 칭찬이 자 자한 아버지는 청년대상과 봉사대상, 눈높이 교육상을 수상하시면서 가 장 가까이 있는 나와 내 동생에게 큰 감동을 주셨다. 나의 아들들이 스스로 알아서 잘해 주기 때문에 사교육비를 아낄 수 있어서 아버지가 사회에 봉사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다 너희들 덕이다. 라고 작년 눈높이 교육상 수상 소감을 밝히셨다. 역시 상금 천만 원도 대부분 장학금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시는 것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 았고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우리 학교 건축과로 학교를 옮기셨 다. 한학기가 지날 무렵 내가 꿈을 펼치고 있는 기숙사 사감으로 발령 을 받으셨다. 사감 선생님이 아버지라는 것을 80여 명의 학생들도 대부 분 알고 있었다. 나의 꿈을 펼치는데 결정적으로 아버지의 역할이 있었 다. 사감 첫날 우리에게 소감을 말씀 하실 때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줄 것 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여러분의 선배이면서 오늘부터 정식으로 사감 선생님의 자격 으로 섰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나와의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내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을 여러분들 것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토요 휴무일에 어떻게 보내느냐가 고 등학교 학창시절을 결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학교에 남아서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을 위해 토요일, 일요일도 기숙사를 개방하겠습니다. 작년 9월부터 지금까지 우리학교 기숙사(청솔관)는 365일 개방되고 있다. 주말, 휴일마다 7-8명, 많을 때는 10명 정도가 남아서 공부를 한 다. 식당 아줌마들이 퇴근하고 없기 때문에 사감선생님께서 직접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 주신다. 집에 가면 엄마와 동생하고 보내는 기쁨도 있지만 여러 가지 유혹들이 많이 있다. 공부를 즐기는 나에게도 분명 10대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기숙사 개방 이 후 학습 효과도 극대화되고 더 많은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마 음이 통하는 선후배들과 운동하는 즐거움 또한 발걸음을 기숙사에 멈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눈물의 아침밥 318

319 추게 하였다. 기숙사 앞의 족구장은 우리들의 유일한 놀이 공간이었지 만 말없이 네트를 교환해 주시는 분이 나의 아버지 사감선생님이라는 것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가끔 상대편 팀에 아버지께서 함께 족구를 하 니 힘든 줄 모르게 휴일이 지나가곤 했다. 나는 고3 수험생으로서 올 여름방학을 우울하게 보냈다. 전문계 고 등학교 교육과정은 3학년 때 전부 전문 과목으로 편성되어있기 때문에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지만 더 이상의 진전이 더디게 진행되었다. 방학 끝 무렵 기숙사 학생들 중 1,2학년들이 참가하는 극기 훈련에 참가하였다. 넓게 펼쳐진 갯벌체험 과 새만금 현장방문은 내 마음을 추스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내가 공부해야할 분야를 확실하게 정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수 능 핵심단어를 코팅해서 목욕탕 벽면에 붙이고, 땀구멍이 크게 이완되 어있는 상태에서의 영어 단어 암기효과는 일반 학생들에게 널리 알리 고 싶은 내 노하우다. 다른 시련은 내가 직접 만든 일주일 단위의 하루 15분 계획표로 극복할 수 있었다. 수험생들에게 공개하고 싶은 것들이 다. 시련을 극복하는 것도 공부밖에 없었다. 장마철도 아닌데 지루한 비가 20여일 내렸다. 달력에 추석연휴라고 빨간 숫자가 연이어 5일이나 있다.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50여 일 앞둔 고3 수험생의 눈에는 검은 숫자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포함 한 3학년 3명, 2학년 1명, 1학년 2명은 사감 선생님께 메일을 보냈다. 추석연휴에 기숙사에 남아서 공부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처음 에는 추석 만큼은 집에 가서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다녀오라고 하셨다. 민족 고유의 명절 추석이다. 여학생 2명, 남학생 5명은 고요한 적막을 느끼고 있다. 보고 싶은 가족을 뒤로 한 채 지금 공부를 하고 있다. 마음 한구석에는 아니라는 생각이 있지만 조상님들도 우리들의 절박한 마음 을 이해해 주리라고 믿었다. 간식 준비하는 냄새가 방 틈 사이로 들어온 다. 우리들을 위해서 사감 선생님도 기꺼이 추석을 반납하신 것이다. 우 리나라의 최고의 공학도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쉽지 않은 일들이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시 319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눈물의 아침밥

320 간이면 우리의 생각이 일치함을 느낀다. 눈빛만으로도 통할 수 있는 친 구들이 있어 힘들어도 인내한다. 동이 틀 무렵 문틈사이로 하얀 쪽지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서류 봉투 가 함께 있었다. 경택아! 아침밥하고 점심까지 준비해 놨다. 아빠는 부 안 할머니 댁에 가서 차례지내고 할아버지 성묘하고 돌아 올 테니까 아 이들 깨워서 같이 밥 먹어라. 그리고 공부하다가 힘들면 대 봉투 열어봐 라. 대 봉투 속에는 2007교육현장체험수기 - 꼴찌들의 반란 이라고 적 힌 내용의 글이 있었다. 우리 기숙사의 일상을 그린 내용 중에 이 세상 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일까?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수험생 들에게 직접 밥을 해 주는 선생님이 또 있을까? 추석날 아침을 내손으 로 밥을 해준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라는 내용을 읽다가 울 컥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느끼기도 전에 눈물이 맺혔다. 항상 우리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신 선생 님의 큰 사랑을 이 아침에 다시 생각하면서 지금 눈물의 아침밥을 먹고 있다. 그것도 추석날 아침에 주변 사람들은 의과대학이나 한의대를 가라고 한다.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눈물의 아침밥 320

321 나는 고등학교 입할 할 당시부터 훌륭한 공학도가 되겠다고 말했다. 신문에서도 방송국 생방송에서도 그랬다. 변한 것은 없다. 서울대학교 지역균형 선발 전형에 지원했다. 건설 환경 공학부는 새로 개편된 학과 의 명칭이다. 반드시 합격하여 3년 전 약속을 지키고 싶다. 그리고 갈수 록 심화되고 있는 이공계 기피 현상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며 칠 전 제주도에 태풍으로 인해 큰 피해를 주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피해 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내가 전공할 학과와 관련해서 생각해 보았다. 해 마다 거듭되는 자연재해는 갈수록 큰 피해를 남긴다. 고등학교 과정에 서 수리학과 토질학을 배웠다.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도 배웠 다. 이제 남은 기간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야겠다. 우 리나라의 건설 환경 분야에서 더 큰 공부를 하기위한 준비는 끝났다. 내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에 대학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 하는 것이지만 공업고등학교 토목과 3년 과정이 큰 도움이 될 것을 확 신한다. 내가 선택한 길을 가기위해 나는 오늘도 눈물의 아침밥을 먹으 면서 새롭게 다짐한다. 추석연휴 5일간의 검은 숫자는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긴 시간이었다고. 아버지! 사감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 랑합니다. 한가위 점심에 추석 특식을 기다리면서 쓰다. 10월 5일 서울대학교 지역균형 선발 1단계 합격자를 발표했습니다. 전주공업고등학교 신경택의 이름도 건설 환경과의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 습니다. 2단계도 꼭 합격할 것을 확신하면서 오늘도 수능 40일을 카운트 다운 합니다. 321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눈물의 아침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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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자기능력개발 수범사례 평생학습을 통한 능력중심사회 구현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나의 배움에 대한 열망은 끝이 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나를 위한 길이고 곧 내 학생, 내 이 웃을 위한 길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만학의 꿈을 계속 이어가서 모든 이의 부러움을 살 수 있는 평생학습의 실천가 로서 모범이 되는 인생을 살고 싶다. 공부의 즐거움은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실감하기 힘들 것이다. 누군가 공부는 삶이고, 새로움이고, 즐거움이자, 깨달음이라고 했다. 또 아무리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경치라도 책 속의 깊은 사 상과 맛있는 표현을 곱씹어 보는 것만큼 감미롭지 않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오 랜만에 책을 보니 마치 보석처럼 환히 빛나는 것 같았다고 말하며, 한 편의 논문을 완성했을 때는 아이를 낳을 때의 성취감을 맛보았다고 말한다. 공부가 즐거움 자 체였던 것이다. 지관스님에게 공부는 깨달음이었다. 그는 참선 대신 공부로써 깨 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선승들이 화두를 놓지 않은 것처럼 그 역시 '행주좌와( 行 住 坐 臥 ) 십이시중( 十 二 時 中 )'에 공부를 챙겼고 차 마시고, 밥 먹고, 대면하고, 잠자는 중에도 공부를 했다고 한다. 왜 공부해야 되는지를 깨닫는 순간 공부는 즐거워진 다. 이렇게 공부의 맛에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 세상에는 두 가지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논어의 '배우고 때로 익히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學 而 時 習 之 不 亦 說 乎 )'를 조용히 되뇌어 본다. 공부를 하며 '나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춤을 추고 발로 뛰며( 不 知 手 之 舞 之 足 之 踏 之 )'즐거워하는 경지에까 지 이르렀으면 하는 개인적인 간절한 바람이다. 능력은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내 자식들 에게, 그리고 자라나는 제자들에게 몸소 실천을 통해 보여 줌으로써 그들에게 희 망을 불어 넣어 주겠다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최 성 화 경상북도 안동시 태화동 e @yahoo.co.kr

324 나는 가난한 농부의 5남매 중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가정형편 으로 중, 고등학교 과정을 겨우 마치고 대학진학을 포기해야만 할 사정 이었으나 형제 자매들의 양보와 부모님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당시 영 주집에서 가까운 2년제 안동교육대학에 가까스로 진학할 수 있었다. 당 시엔 어느 가정 할 것 없이 형편이 어려운 가정이 많았다. 나는 당시 4년 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실력은 되었으나 비싼 등록금문제로 감히 생 각도 못 해 볼 형편이었으며 비록 2년제 대학이었지만 꿈에도 그리던 대학생이 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일이었다. 입학식 전날 에는 기뻐서 잠을 제대로 못잤던 기억이 생생하다. 평소 나의 적성이 교직에 적합하다는 것을 알고 교사가 되어 나와 같 이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을 위해 열심히 가르쳐 보는 것이 어렸 을 때부터의 나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의 학업을 위해 배움의 기회를 양보해 준 나의 형제 자매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며 또한 나의 학 업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신 부모님들께 보답하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당시엔 교육대학에 입학하게 되면 재학 중의 학군단훈련(RNTC훈 련)으로 군 입대가 면제되는 병역 특례제도가 있었으며 싼 등록금과 2년만에 졸업하여 초등학교 교사가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하숙이나 자취를 안 하고도 집(영주)에서 안동의 교육대학까지 통근기차로 통학 이 가능한 점 등 여러 가지로 좋은 점이 있었다. 대신 어머니께서는 추 운 겨울 날씨에도 새벽 일찍 일어나셔서 나의 등교를 위해 아침밥을 지 어 주셨다. 당시 하숙이나 자취를 할 형편이 못 되었기 때문에 영주에서 새벽 통근 기차를 이용해서 통학을 했기 때문이었다. 동생들은 상급학 교 진학도 나 때문에 포기하고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모든 가족들의 헌신적인 뒷받침 덕분에 그토록 그리던 대학을 1976년 에 졸업을 할 수 있었다. 평소 독서를 좋아하여 틈나는 대로 열심히 독서 를 한 결과 안동교육대학 재학시엔 독서주간을 맞아 학장으로부터 다독 상을 수상한 바도 있다.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평생학습을 통한 능력중심사회 구현 324

325 나는 1976년 2월 안동교육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임용적체로 2년여 간 임용되지 못한 기간을 활용하여 영주 재건중학교(영주 새마을청소 년학교)에서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정규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학생 들을 위해 무보수로 1년 6개월간 학교에서 학생들과 같이 기거하며 불 철주야 지도하여 상당수의 학생들이 검정고시에 합격, 상급학교에 입학 하여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며 희망을 심어주었다. 영주시 가흥동에 소재한 (현재의 영주 서부초등학교 뒤편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현재는 폐교되고 없음. 당시 교장 : 전동호 교장 선생님) 영주 재건중학교에서 그 당시 교대를 같이 졸업하고 발령을 받지 못한 동료 들 몇몇과 함께 무료 봉사하였다(이들도 현재 초등학교에 근무 중임). 무보수였지만 힘드는 줄 모르고 주야로 늦게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지 도했다. 밤엔 교실의 책상 위에 촛불을 켜 놓고 숙식을 같이하고 격려해 가며 공부를 가르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가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보람 있었다고 여겨 진다. 그 당시의 제자들 중엔 현재 초등학교 및 중등학교에서 교사로 재 직하고 있는 제자도 있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며 열심히 공부하도록 격려해 주었다. 아울러 어려운 환경속에서 비뚤어진 성격을 가진 학생을 인성교육을 통해 바른 길로 이끌어 주었다. 학생 및 부모 상담활동, 가정방문 활동 등을 통해 학생 인성교육을 시키는 한편, 어려운 형편으로 학업을 포기 하려는 학생과 부모들을 설득시켜서 학업을 계속 이어 가도록 독려했 다. 인내하는 자만이 도전할 수 있고 도전하는 자만이 정복할 수 있다고 격려하며 가르쳤다. 검정고시에 합격해야만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던 불우한 환경의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발령을 받을 그 때까지 이 학생들을 열과 성 을 다해서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배움만이 살길이라는 가르침을 심어 주었으며 자칫 비뚤어지기 쉬운 환경의 학생들에게 나름대로 올바른 길 로 안내하기 위해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지냈다. 325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평생학습을 통한 능력중심사회 구현

326 지금 생각해도 그 때가 정말 행복했었다고 생각되어지며 그 때를 회 상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것이 곧 나의 학업을 위해서 양보해 준 형님들과 동생들의 고마움에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하며 정말 최선 을 다해서 가르쳤다고 자부한다. 1978년 3월 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은 나는 나 자신을 계발하기 위 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였다. 지금까지 자기계발을 위한 각종 직무연수도 남달리 열심히 이수한 결 과 현재 직무연수실적만 무려 260학점 이수하였다(15시간 : 1학점). 아 마도 나만큼 연수학점을 받은 사람도 드물 것이라 확신한다. 앞으로도 자기 계발을 위해서, 또한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교사가 되기 위해서 각 종 연수를 해마다 열심히 받을 것이다. 각종 교육활동부문에서 타의 모범이 되는 우수교사로 2001년 5월 15일 스승의 날에는 교육인적자원부장관 표창을 수상하였으며 2004년 1월에는 경북 통일교육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통일교육부 문에서 우수한 활동을 인정받아 마찬가지로 교육인적자원부장관 표창 을 수상하였다. 그 외에도 청소년선도 및 유해환경 감시단 활동 유공교 사로 선발되어 도지사표창을 수상한 것을 비롯하여 모범교사 및 수업 선도교사, 수업 관찰팀(도) 및 영어수업지원단 모범단원으로 수년간 활 동한 공적을 인정받아 교육감 표창을 4회 수상하였다. 2세들을 교육하기 위한 자기연찬에도 힘을 기울여 각종 연구대회에 서 지금까지 32회 입상하였으며, 각종 자격증 취득에도 최선을 다해 지 금까지 초등학교 1급 정교사, 중등학교 사회과 2급 정교사, 대한상공회 의소 주관 워드 3급 자격증 및 워드 2급 자격증, 한자능력 국가공인 3급 자격증, 축구심판자격증(3급), 탁구심판자격증(2급), 정보소양인증, 평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평생학습을 통한 능력중심사회 구현 326

327 생교육사 2급 자격증, 전문상담교사 1급 자격증, 보육교사 1급 자격증, 컴퓨터 활용능력 3급 자격증을 취득하였으며,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현 재도 영어 TEPS 시험과 한자능력검정 국가 공인 2급 시험, 컴퓨터 활 용능력 2급 실기시험, 청소년 지도사 2급 자격시험 준비를 열심히 하며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자기 계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나는 어려운 가정 사정으로 2년제 교대 졸업으로 학사학위를 받지 못 한 학업의 한을 풀기 위해서, 또한 자라나는 2세들을 위한 교육에 밑바 탕이 되며 모든 사람들에게 평생학습의 모범을 보여 주기 위해 학업을 계속하기로 마음먹고 1984년 당시 5년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제학 과 3학년에 편입학을 하였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나 자신의 힘 으로 학사과정을 이수한다는 생각에 나 자신 마음속으로 굉장히 뿌듯하 였다. 그 때의 감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으며 나의 학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해 준, 나를 거듭나게 해 준 국가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대해 진심으로 깊이 감사를 드리며 죽을 때까지 그 고마움을 잊지 않을 것이 다. 재학시에 출석수업을 받으러 멀리 대구 계명대학교에까지 갔어야 했 지만 2년제 대학 졸업 후 8년 만에 대학교수님의 강의를 받는다는 즐거 움과 그토록 바라던, 전에는 감히 엄두도 못 내던 4년제 대학에서 강의 를 듣는다는 기쁨으로 출석수업기간 내내 힘들거나 피곤하다고 생각해 본 일이 조금도 없었다. 강의기간 내내 교수님의 강의를 한 순간이라도 놓칠까봐 정신을 집중하며 그토록 열심히 들었던 강의는 아직껏 경험하 지 못할 정도였다. 졸업시험을 위해서는 서울지역대학에까지 가서 시험 을 보았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결과 1987년에는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학사학위를 받아 든 순간 나는 너무나 감격에 겨워 나의 잠자리 옆에 졸업장을 두고 잤으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졸 327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평생학습을 통한 능력중심사회 구현

328 업장의 내 이름 석 자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아 직도 새롭다. 그 후로 2개의 석사학위와 4개의 학사학위를 더 받았지만 그토록 바라던 최초의 학사학위였기에 그 어떤 학위보다도 더 감격스 러웠던 것이다.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로도 학업에 대한 열망을 계속 이어 나가기 위 해 나는 1988년에 다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3학년에 편입하였 다. 3학년 1학기를 공부하던 중 우연히 교육신문을 보던 나는 경희대학 교에서 계절제로 교육대학원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여름 및 겨울 방학 중에 운영되는 계절제인데다 학사과정에서 이수한 전공과 동 일한 전공을 이수하여 석사학위를 받으면 중등학교 2급 정교사를 취득 할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순간 나의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석사학위취득에다가 중등학교 교사자격증까지 취득할 수 있 다는 기대감, 그리고 예전엔 학비가 없어서 감히 생각도 못했던 서울의 대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설레임으로 나 자신을 진정시키기 힘들 정도 였다. 나는 곧바로 경제학과와 동일전공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일반사 회교육전공 시험공부를 아무런 정보도 구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열심히 했다. 시험 당일 시골에서 서울의 시험장을 어렵게 찾아 가 보니 정말 눈 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으리으리한 건물에다 상상하지 못한 아름다 운 캠퍼스였다. 첫눈에 기가 푹 죽은 시골 촌놈에게 2대 1이 넘는 경쟁 률이라는 힘든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수험생 이 중등학교 일반사회전공 교사였다. 문제지를 받아 든 나는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고 문제를 읽어 내려갔다. 두 문 제 중 한 문제는 경제학과에서 공부하며 배운 것이라 비교적 쉽게 답안 을 써 내려갈 수 있었으나 나머지 한 문제는 정말 난감한 문제였다. 다 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생각하며 지금까지 내가 즐겨 읽은 여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평생학습을 통한 능력중심사회 구현 328

329 러 권의 책들을 종합하며 시대상황에 맞추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써 내려갔다. 답안을 다 작성하고 난 뒤에 시험지를 제출할 때는 손에 쥐가 날 정도였다.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한 것이었다. 면접을 앞 둔 쉬는 시간 에 다른 수험생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다른 수험생들도 그 문제 때문 에 무척 힘들었다고 말했다. 면접시험을 무사히 잘 마치고 시험장을 나 와 집으로 향했다. 발표를 기다리는 며칠이 1년은 되는 것 같았다. 운이 좋게도 나는 합격이었다. 너무 좋아서 나는 집 앞 둑을 단숨에 내달으며 소리쳤다. 합격이다! 나는 합격했다! 나도 이젠 대학원생이다! 라고. 대학원 공부관계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를 자퇴할 수밖에 없 었다. 그 후 3년 동안 나는 대학원 공부에만 매진했다. 서울에 있는 동 서 집에서 40여 분 시내버스를 타고 나와서 다시 지하철 기차로 50여 분 타고 내려서 다시 20여 분 걸어 가야했던 먼 길이었지만 그저 배운 다는 즐거움으로, 나도 이제 대학원생이라는 기쁨으로 조금도 힘든 줄 모르고 다닐 수 있었다.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틈나는 대로 책을 읽으며 열심히 공부했다. 주 말과 휴일, 강의가 없는 날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아침 일찍부터 밤 늦 게까지 배고픈 줄도 모르고 논문 준비로 시간을 보냈다. 밤늦은 시간 하 늘의 별을 보며 배고픈 줄도 모르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가던 시절이 지 금 생각해도 행복했다고 생각된다. 329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평생학습을 통한 능력중심사회 구현

330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결과 나는 1991년 제때에 졸업논문심사를 통 과할 수 있었으며 전과목 평균 A학점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꿈에도 그 리던 중등학교 교사 자격증과 석사학위를 동시에 취득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내가 석사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이면에는 남모르는 희생으로 나의 뒷바라지를 해 준 나의 사랑스런 아내가 있었기에 가능 했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항상 아내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 아내의 고마움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석사학위를 받고 난 나는 다시 한번 배움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되었 다. 그냥 시간을 보내기가 너무 아까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마음을 유혹하는 신문기사가 있었으니 바로 한국교원대학교 박사과정 안내 기 사였다. 그런데 문제는 시험과목에 제2외국어까지 치뤄야 한다는 것이 었다. 그래서 나는 제2외국어로 중국어공부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한 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해서 공부하면 박사과정 시험 에 응시할 수도 있고 한문공부와 문학공부도 할 수 있다는 여러 이점이 있다고 판단해서 중어중문학과 1학년에 입학했다. 그런데 1학년에 막 상 입학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 1, 2학년에 편성되어 있는 교육과정 중 에서 중국어와 관계되는 과목만 집에서 책을 구해서 독학으로 공부해도 되겠다 싶어 자퇴를 하고 집에서 독학을 했다. 그러나 막상 집에서 독학 으로 중국어를 공부하기란 정말 힘들었다. 3년여를 중국어 기초과목들 을 독학으로 공부하고 난 뒤 1994년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 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1, 2학년 과정을 독학으로 보내고 3학년에 편입하여 공부해 보니 역 시 기초가 부족하여 너무 힘이 들었다.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며 슬럼프 에 빠졌다가 헤어나기를 여러 번, 정말 힘들게 공부하여 1999년 2월에 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늦게 졸업을 했어도 성적은 좋은 편이었으며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평생학습을 통한 능력중심사회 구현 330

331 힘들게 공부한 만큼 보람도 있었다. 그 중 李 白 과 杜 甫 를 만날 수 있었 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李 白 과 杜 甫 의 주옥같은 詩 는 평소 문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나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했으며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한 나는 한국교원대학교 박사 과정 입학을 생각해 보았으나 박사과정은 석사과정과 달리 계절제가 없 는데다 학교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휴직을 하지 않고는 다닐 수 있는 방 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휴직을 해 가면서 박사과정을 이수 할 만큼 가정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처자식을 거느린 가장으로 서 넉넉한 형편도 아닌 지금의 나의 형편으로서는 사치라는 생각을 하 게 되었다. 그래서 박사과정은 후일을 기약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는 1999년 3월 다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영어는 중,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과목 (고등학교 재학 시엔 영어 사전을 늘 갖고 다니며 공부했었다)이었기 에 영어 공부도 계속할 수 있으며 또한 내가 좋아하는 문학공부도 계속 할 수 있고 다음에 기회가 닿을 때 치룰 박사과정 입시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작용한 것이었다. 영어영문학과에 다니는 동 안 영어공부와 英 詩, 영미희곡, 미국소설 등에 흠뻑 빠지며 즐겁게 공부 했다. 原 文 은 번역된 영시를 읽었을 때와는 완연히 다른 새로운 감동을 나 에게 불러 일으켰다. 정말 편입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공부 하여 2002년 2월에 나는 두 번째 문학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331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평생학습을 통한 능력중심사회 구현

332 영어영문학과에 다니던 2001년, 나는 대구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 초 등윤리교육전공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학사과정과 석사과정을 동시에 공부하는 과감한 결단이었다. 대학원과정이 계절제였기에 가능한 것이 었다. 석사과정은 두 번째인 셈이었다. 휴직을 전제로 하는 박사과정을 이수하지 못하는 한을 달래기 위한 나름대로의 위안이었다. 두 번째 다닌 대학원은 첫 번째 보다는 감격이 덜 했으나 윤리철학을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에 열심히 공부하였다. 모처럼 대학교수 님과 직접 대면하여 받는 수업에 대한 감회가 새로웠다. 훌륭하신 교수 님들의 인품에 많은 감화를 받은 것도 나에겐 큰 수확이었다. 지금까지 앞만 바라보고 달려 온 나 자신을 반추해 볼 수 있는 좋은 기 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여러 교과목 중에서 특히 동양철학을 공부하 면서 나 자신을 많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앞만 보며 급히 달려 온 나였기에 내 영혼이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지를 점검해볼 수 있 는 알차고 보람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 과정 또한 전과목 평균 A학점이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2004년 제때에 석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이때의 석사학위 논문 주 제가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던 통일교육에 관한 것이었다. 감격적인 생 애 두 번째의 석사학위 취득이었으며 아내에게 마음속으로 두 번째 큰 절을 올리는 졸업이었다. 대학원과 영문학 공부를 병행하던 나는 영문학과를 2002년 2월에 졸업하고 한달 뒤인 3월에 다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육과 3학년에 편입학했다. 교육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교육학 이론에 대한 재충전이 필요하다는 판단과 주어진 교과과정을 이수하면 평생교육사자격증 (2급)도 취득할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게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평소 평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평생학습을 통한 능력중심사회 구현 332

333 생교육에 관심이 있던 나에게 평생교육사자격증 취득은 앞으로의 나의 인생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 것이었다. 교육학 이론 공부는 교육현장에 몸담고 있는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 었다. 그래서 나는 졸업을 일부러 1년 늦추면서 교육학과 관련된 다양 한 교과목을 이수했다. 졸업 가능 학점보다 훨씬 많은 학점을 이수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2005년 2월, 교육과를 졸업에 필요한 학점보다 훨씬 많은 학점을 이 수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함과 동시에 평생교육사 2급자격증을 취 득할 수 있었다. 평생교육사 자격증은 앞으로 내가 정년퇴직하고 난 뒤 사회교육기관에서 무료봉사하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 확신하기에 지금 도 잘 했다고 생각한다. 교육과를 졸업한 나는 배움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리고 평생학 습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 2005년 3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에 편입학했다. 교사로서의 학급경영기법과 장래 관리직이 되었 을 때를 대비한 학교경영기법을 체계적으로 습득하기 위해 경영학과에 편입학한 것이다. 열심히 공부한 결과 경영학과를 올해(2007년) 8월에 졸업을 했다. 생 애 5번째 학사학위를 받은 것이다.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난 후 2학기엔 전에 대학원 입학 때문에 자퇴했던 법학과에 재입학하여 법을 몰라서 불이익을 받는 외롭고 어려운 이웃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법 공부 를 열심히 하고 있다. 법학과를 졸업한 뒤엔 나 자신의 교양을 쌓기 위 한 노력으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에 다시 편입, 평생학습 을 계속해 나갈 작정이다. 이런 나의 공부에 대한 애착은 2년 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장이 수 여하는 제3회 방송대 기네스상(최다학위부문)을 수상하는 계기가 되었 다. 나의 이러한 평생학습 태도는 자라나는 나의 두 자녀, 내가 가르치 는 학교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부모, 지역사회인들에게까지 귀감이 되 리라 여겨진다. 이 모든 것이 한국방송통신대학교가 있었기에 가능했 던 만큼 평생학습의 길을 열어 준 국가에 감사하며 정년 퇴직후엔 그 동 333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평생학습을 통한 능력중심사회 구현

334 안 배운 지식을 어려운 환경으로 배우지 못한 불우한 이웃들에게 베풀 어야겠다고 항상 다짐하며 실천하고 있다. 모범공무원으로 1996년에는 국외 어학연수(미국 북가주대학교)를 국비로 1개월간 다녀온 뒤 거기서 배운 어학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학생 들 영어지도를 열심히 하여 영어수업심사에서 1등급 2회, 3등급 1회 수 상하였으며, 청송초등학교 재직시엔 과학분야에서 학생들을 열심히 지 도한 공로로 2004년에는 창의성 과학교육 국외연수(미국 조지아대학 교)를 국비로 다녀와서 지금까지 2세들의 과학교육을 위해 더욱 노력하 고 있다.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주왕산 기슭의 산간 벽지학교에서 지금까지 내 가 축적한 지식을 어려운 벽지학생들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지도하였 다. 벽지학생들의 인성교육에도 힘써 인성교육실천사례연구발표(도)대 회에서 1등급 3회, 3등급 1회 수상하였으며, 어려서부터 독서하는 습관 을 길러주기 위해 독서 학습장 을 활용한 학생들의 독서교육에도 힘을 쏟았다. 주왕산 기슭 산간 벽지학교 학생들을 위해 내가 그 동안 한국방송통 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면서 익힌 한자를 활용하여 특기적성 교육 한자부를 편성, 열심히 지도하였다. 그리고 과거 재건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 경험과 한국방송통신대 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배운 영어와 국비로 미국어학연수를 다녀 온 경 력을 활용하기 위해, 또한 영어 수업지원단 및 영어수업 관찰팀으로 활 동하고 영어수업심사에서 1등급을 2회 수상하며 쌓은 노하우를 활용하 기 위해 특기적성교육 영어부를 편성하여 성심껏 지도한 결과 지역사 회인들과 학부모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다. 발령적체로 인한 2년여의 기간을 제외한 2007년 8월 현재까지 29여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평생학습을 통한 능력중심사회 구현 334

335 년간 교직에 몸담아 오면서 나는 오직 2세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해 왔 다고 자부한다. 그것이 곧 내가 대학을 졸업한 이유였으며 부모님, 형제 자 매들, 그리고 나를 길러낸 국가에 보답하는 길이라 다짐했기 때문이 다. 지금까지 29여 년 동안 교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시 소재학교에는 근 무하지 않고 읍 소재학교 5년, 면 소재학교 16년, 벽지학교 8년을 근무 하고 있다. 도시학교 보다는 교육환경이 열악한 면 소재학교 및 산골 벽 지학교를 주로 다니면서 그 동안 축적한 지식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그 것은 지금까지 내가 국가의 혜택으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낙후된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교육적 혜택을 받지 못한 불우한 학생들 을 위한 교육 활동을 함으로써 조금이나마 사회에 환원할 수 있다는 뿌 듯한 자부심과 긍지로 살아가고 있다. 작년까지 집(안동시 소재)에서 홀 로 따로 떨어진 주왕산 기슭 산골 벽지학교에서 손수 밥을 해 먹는 사택 생활을 하며 장래 훌륭하게 자라 줄 2세들을 바라보며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고 살아왔으며 3년 만기인 벽지학교 근무를 마치고 현재는 면 소재 학교로 옮겨 근무하고 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육과를 졸업하면서 보육교사 자격증과 평생 교육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도, 현재 다시 법학과에 재입학하여 법 공부 를 하며 청소년 지도사 2급 자격취득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것 도 장래 정년퇴임 후에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평생교육과 우리 나라 의 장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을 올바르게 지도하는 교육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퇴직 후에도 지금까지 본인이 국가로부터 받은 혜택을 어려 운 이웃들과 청소년들에게 환원시켜 줄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기를 진 심으로 기대한다. 작년(2006년)에는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운영하는 전문상 담교사 양성과정(1급 과정)을 수석 졸업하며 1급 전문상담교사 자격증 을 취득하였다. 전문상담교사 양성과정에 입학하여 공부해 보니 지금 까지 내가 몰랐던 새로운 상담이론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훌륭한 교 수님들의 강의는 학교현장에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내가 지금 335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평생학습을 통한 능력중심사회 구현

336 까지 오랫동안 쌓아 온 노하우에다가 배운 이론들을 접목시켜서 학생 들을 지도하니 정말 좋은 지도방법이 도출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배운 이론을 바탕으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위해 열심히 상 담에 임할 생각이다. 그것이 내가 배운 지식을 자라나는 2세들에게 조 금이라도 혜택이 가도록, 도움이 되도록 하는 길이라 확신하기 때문이 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나의 배움에 대한 열망은 끝이 없이 계속될 것이 다. 그것이 나를 위한 길이고 곧 내 학생, 내 이웃을 위한 길이라 확신하 기 때문이다. 만학의 꿈을 계속 이어가서 모든 이의 부러움을 살 수 있 는 평생학습의 실천가로서 모범이 되는 인생을 살고 싶다. 공부의 즐거움은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실감하기 힘들 것이다. 누군 가 공부는 삶이고, 새로움이고, 즐거움이자, 깨달음이라고 했다. 또 아 무리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경치라도 책 속의 깊은 사상과 맛있는 표 현을 곱씹어 보는 것만큼 감미롭지 않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오랜만에 책을 보니 마치 보석처럼 환히 빛나는 것 같았 다고 말하며, 한 편의 논문을 완성했을 때는 아이를 낳을 때의 성취감을 맛보았다고 말한다. 공부가 즐거움 자체였던 것이다. 혹자는 공부하는 것이 노는 것이요, 노는 것이 공부하는 것이다. 그래 야만 공부도 재미있어 지속적으로 할 수 있고, 노는 것도 건강하게 할 수 있다 고 한다. 학이유 유이학( 學 而 遊 遊 而 學 ) 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지관스님에게 공부는 깨달음이었다. 그는 참선 대신 공부로써 깨달음 을 얻었다고 한다. 선승들이 화두를 놓지 않은 것처럼 그 역시 행주좌 와( 行 住 坐 臥 ) 십이시중( 十 二 時 中 ) 에 공부를 챙겼고 차 마시고, 밥 먹고, 대면하고, 잠자는 중에도 공부를 했다고 한다. 왜 공부해야 되는지를 깨닫는 순간 공부는 즐거워진다. 이렇게 공부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평생학습을 통한 능력중심사회 구현 336

337 의 맛에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 세상에는 두 가지 선택만이 있을 뿐이 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논어의 배우고 때로 익히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學 而 時 習 之 不 亦 說 乎 ) 를 조용히 되뇌어 본다. 공부를 하며 나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춤을 추고 발로 뛰며( 不 知 手 之 舞 之 足 之 踏 之 ) 즐거워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으면 하는 개인적인 간절한 바람이다. 능력은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 을 내 자식들에게, 그리고 자라나는 제자들에게 몸소 실천을 통해 보여 줌으로써 그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 주겠다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 가고 있다. 337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평생학습을 통한 능력중심사회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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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 자기능력개발 수범사례 아름다운 그대, 당신은 선생님 온 종일 아이들과 함께 씨름하는 아내에게 모처럼 행복한 소식을 전해줄 수 있 게 되어 감사합니다. 아직은 학습보조원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제가 보기 에는 정식 선생님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하나하나를 자식 처럼 여기고 걱정하는 그 애틋한 마음을 보며 교사인 저도 많이 배우고 있습니 다. 오늘은 아내에게 제가 쓴 시의 주인공이 바로 당신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야할 길이 거칠고 험해 채이고 넘어지고 상처입어도 마음의 한자락을 그나마 놓치지 않고 온전히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을 그릴 수 있는 여백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최 진 규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 -최진규 시집 당신이 있어 내가 있습니다 中 에서 -

340 도대체 집안 꼴이 이게 뭐야.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여보, 어렵더라도 조금만 참아달라고 부탁 했잖아요. 참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힘들어하지 나는 아이 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바쁘지. 가족 모두가 힘들어하는데 당신은 매번 조금만 참아달라고 하니 도대체 언제까지 참아야 하느냐고 이번 기말고사 치르고 내년 1년만 더 하면 끝나는데 아내는 마치 무슨 죄인이라도 된 듯, 목소리는 점점 약해지고 화를 내 고 있는 남편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아예 마음 속에 담아두엇던 말을 털어놓기로 했다. 하고 싶은 공부해서 졸업했으면 그 정도에서 그쳐야지 또다시 시작 해놓고 매번 여러 사람 어렵게 하니 미안하지도 않아 아내가 시험 준비에 들어가면 장모님이 오셔서 아이들을 챙겼기 때문 에 크게 마음 쓸 일은 없었지만, 농사일이 겹쳐 못 오실 때면 집안일은 고스란히 내 몫으로 돌아왔다. 이번 주말이 바로 그런 날이다. 새벽부터 도서관으로 떠난 아내를 대신하여 온 종일 장난꾸러기 삼 남매와 씨름 했으니 저녁에 돌아온 아내에게 화풀이부터 한 것이다. 여보, 미안해요 당신이 직장을 갖고 싶어 하고 또 그 방법이 공부라는 것은 익히 알 고 있으나 그렇다고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 친구들도 직장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데 그게 가능하겠어? 괜한 고생하지말고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아. 복받친 감정을 참지 못한 채 함부로 내뱉은 말은 이미 예리한 칼날이 되어 연약한 아내의 가슴에 상처를 내고 있었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돌어서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아내는 충청도에서도 오지로 불리는 안면도의 가난한 농가에서 다섯 남매 중 맏딸이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 덕택(?)에 아내는 고등학교를 졸 업하고 곧바로 직장생활을 했다. 이미 대학생인 오빠의 등록금과 고등 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동생들의 학비를 대기에도 빠듯한 살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마저 대학 간다는 말을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 고 한다. 대학진학을 포기한 아내는 안면도에서 차로 1시간쯤 걸리는 서산 시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아름다운 그대, 당신은 선생님 340

341 내로 나와 한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어 캠퍼스를 거니 는 꿈은 사라졌고 간호사로서 아픈 환자들을 돌보는 고된 현실이 기다 리고 있었다. 힘들게 번 돈은 꼬박꼬박 집으로 송금했고 적은 액수지만 오빠나 동생들의 학비를 마련하는 데도 보탰다. 운동을 하다 다친 것이 계기가 되어 아내와 만나게 되었다. 석 달 가 까운 긴 시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단 한 번도 환자에게 짜증을 내거나 힘들어 하는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오로지 환자의 아픔은 마치 내 아픔 이라도 되는 양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누군가 환자를 치료하는 데는 몸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그랬듯이 그처럼 성심을 다하는데 아픈 상처가 오래갈 리 없었다.예상했던 것보다 한 달 정도 앞 당겨 치료가 끝났다. 아팠던 몸은 예전의 상태로 돌아갔지만 마음은 오 히려 깊은 열병을 앓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나를 치료해줬던 그녀 가 어느새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그녀와 나는 부부의 연을 맺고 아이 셋을 낳아 지 금까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결혼하고 그 이듬해에 첫딸을 얻었고 그로부터 이태 뒤에 아들 녀석 이 태어났다. 여느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아내는 두 녀석을 기르는데 온 정성을 다했다. 첫째가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이 되자 아내는 아이들 도 어느 정도 성장했으니 이제 마음 한 구석에 깊게 간직하고 있었던 공 부에 대한 소망을 드러냈다. 병원에 근무한 경험을 살려 이론적인 공부 를 하고 싶다며 한국방송통신대학 보건위생과에 지원할 뜻을 내비쳤다. 물론 두말할 필요도 없이 찬성했다. 아내의 대학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일반대학과는 달리 방송통신 대학은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의 매체를 활용하기 때문에 출석에 대한 부담은 없었고 다만 한 학기에 한 두차례 출석수업에 참여하고 시험 때 면 대학에서 지정한 장소에서 시험을 치르면 그만이었다. 고등학교를 341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아름다운 그대, 당신은 선생님

342 졸업하고 그토록 가고 싶었던 대학을 포기했던 아픈 기억 때문인지 아 내의 공부에 대한 열정은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집안 살림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전공서적을 붙들고 놓지 않았다. 과제 또한 꼼꼼하게 준비했 고 제출 날짜가 임박하면 남편한테 주제에 맞게 썼는지 자문을 구하기 도 했다. 그런 노력 덕택인지 아내는 그리 많은 액수는 아니었지만 꼬박꼬박 장학금을 받으며 한 학년씩 진급하고 있었다. 물론 아내가 공부를 시작 하면서 전보다는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더 많아졌다. 퇴근을 하고 저녁식 사를 마치면 방송강의를 듣고 있는 아내를 대신해서 아이들과 놀아줘 야 했고, 주말이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침 일찍 도서관으로 떠난 아내의 빈자리를 메워야 했다. 특히 시험 때가 되면 내 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졌다. 아내도 짐짓 미안한 눈치였지만 달리 묘 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드디어 4학년이 되었고 학과 공부외에 별도의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 던지 위생사 시험에 도전하여 무난히 자격증(제17938호)을 취득하게 되었다. 졸업 논문을 준비하는 두 달 동안은 자정을 넘어서까지 각종 자 료를 찾아 분석하고 정리하느라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보다도 더 바쁘게 보내는 듯싶었다. 그런 모습이 안타까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너 무 원리원칙대로 하려는 모습이 답답해 보여서 그랬는지 때로는 학부 논문인데 뭐 대충하지 그래 라고 하면, 오히려 대충이라니요, 당신도 학부 때 그랬어요. 라면서 그런 말을 꺼낸 남편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대학원 논문에서나 할 수 있는 각종 설문조사 등을 활용하여 통계를 낸 후, 연구 주제와 관련시켜 객관성을 높이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내가 머 쓱해지는 느낌이었다. 비교적 까다롭다는 방송대의 논문 심사도 무사히 통과하고 아내는 꿈에도 그리던 학사모를 쓰게 되었다. 물론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학업의 시기를 놓친 사람들이 방송대를 통하여 못다 했던 꿈 을 이루는 경우는 주변에서 더러 찾아볼 수 있다. 일반대학과는 달리 사 실상 혼자서 방송을 활용하여 공부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그리 쉬운 것 은 아니다. 그래서 처음에 의욕을 갖고 방송대에 발을 디뎌 놓은 사람들 도 이런 어려움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 아내의 졸업식은 나와 아이들뿐만 아니라 처가 어른들과 형제들까지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아름다운 그대, 당신은 선생님 342

343 참석하여 그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더욱 행복했다. 멋진 학사모 를 쓰고 나타난 아내의 모습을 보며 그간의 어려움을 묵묵히 참고 이겨 냈을 모습이 떠올라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 현재는 대법원 에 근부하는 집사람의 오빠는 더욱 감격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사법고 시 공부하느라고 오랫동안 장남 역할을 못했고, 또 힘들었던 고시생 시 절에는 직장 생활을 하던 동생이 자신도 어려울텐데 용돈까지 보내줬 으니 얼마나 미안했겠는가. 어쩌면 동생이 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요인 가운데 하나는 당시 대학생이었던 오빠를 배려한 속 깊은 결단이었다 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 한 구석에 담아두었던 무거운 짐을 조금이 라도 풀어놓은 듯 집사람보다 더 기뻐하는 것 같았다. 행복한 졸업식은 그렇게 마쳤다. 아이들도 초등학교에 다닐 만큼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아내도 마음만 먹으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셋째 녀석을 갖게 되었다. 물론 아 이를 가진 것은 축복이었지만 나와 아내는 그리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개구쟁이 두 녀석을 키우며 힘든 일도 많이 겪었기에 셋째를 갖는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첫째와 둘째 때와는 달 리 아내의 입덧도 무척 심했다. 일자리를 갖고 가정에 조금이라도 보탬 이 되겠다던 아내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셋째 녀석을 키우고 초등학생인 두 아이를 뒷바라지하느라 삼 년이 바람처럼 훌쩍 지나가 버렸다. 자식이 둘도 많다는 시대에 셋이나 되었 으니 드러내놓고 자랑하기도 그렇고 어쨌든 걱정스런 부분도 많았다. 특히 아이들 가르치는데 들어가는 교육비가 한두 푼이 아니니 녀석들 을 제대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내 수입만으로는 벅찬 것이 사 실이었다. 그래도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씀씀이를 더 줄일 수 밖에 없었다. 343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아름다운 그대, 당신은 선생님

344 셋째 녀석의 새 돌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조촐한 이벤트를 마친 후, 아 내는 차마 꺼내기 어렵다는 듯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레 자신의 생각을 꺼냈다. 셋째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나면 자신이 할 일을 찾고 싶다 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의 교육비를 생각해서 자신이 그냥 집에만 있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또다시 방송통신대학에 들 어가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몇 년 전에 요리에 관심이 많다고 하면서 조 리사 자격증(제 F)을 따기에 마음 속으로는 무슨 식당에라 도 가서 일자리를 구하겠다는 것으로 지레 짐작을 했는 데 보기 좋게 빗 나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지 이제 불과 삼 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같은 대학에 다시 들어가겠다니 순순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천성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하는 아내인지라 이번에는 유아교육과 를 전공하겠다는 것이다. 마음 속으로는 내키지 않았으나 그래도 그렇게 자꾸 공부해보려는 의욕만은 칭찬해주고 싶었다. 친하게 지내는 직장 동료 가운데 한 사람은 가정 살림만 하는 아내에게 자극을 주고 싶어 방 송통신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하라고 간청을 해도 손사래부터 친다는데 그런 점에서 아내의 열의는 남다른 점이 있었다. 고등학교 내신성적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방송대의 전형 방식 덕택 인지 아내는 방송대에서도 경쟁률이 가장 높다는 유아교육과 에 무난 히 합격했다. 그리고 결코 쉽지만은 않은 4년이라는 과정이 시작되었 다. 두 아이 때도 아내의 공부는 남편인 나에게도 여러 가지로 부담이 많았지만 이제 갓 젖먹이를 면한 셋째까지 있으니 아내의 수고로움뿐 만 아니라 남편의 역할도 더 많아지게 되었다. 비싼 대학교재를 구입하는 비용은 그렇다쳐도 기십만 원 하는 등록금 만은 가정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장학 금에 대한 욕심도 컸다. 어쩌다 전액 면제가 아니라 평점이 약간 모자 라 수업료 면제에 그치기라도 하면 남편에게 오히려 더 미안해하기까 지 했다. 아내의 그런 오기만큼이나 남편도 많이 참고 기다려야만 했다. 특히 고3 담임을 맡고부터는 새벽별 보고 출근하여 자정 가까울 무렵에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아름다운 그대, 당신은 선생님 344

345 퇴근하니 아내를 도와줄 여력이 없었다. 게다가 주말에도 쉬지 않고 자 율학습을 하는 아이들 곁을 지켜야 하니 아내가 마음 편하게 혼자 공부 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나도 아내도 참으로 많이 지쳐갈 무렵, 결국 내가 먼저 참지 못하고 마음 속에 담아둔 말을 내뱉고 만 것이다. 눈물을 훔치고 있는 아내에게 그제서야 미안하다는 말을 꺼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는 없 었다. 아내의 말대로 지금까지 잘 해왔는 데 앞으로 1년만 더 참으면 아 내도 졸업할 수 있는데 왜 내가 조금만 더 참지 못했는지 뒤늦은 후회가 가슴을 쳤다. 당신이 힘들어 하는 것은 아는데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그, 그, 그럽시다. 당신을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내 감정만 너무 앞세 운 것 같소 굳이 제가 유아교육과를 선택한 것은 당신처럼 멋진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어요. 물론 이젠 나이가 들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단 며칠만이라도 교실에서 아이들과 생활해볼 수 있다면 그로 서 만족입니다. 유아교육과를 선택한 아내의 뜻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보잘 것 없는 남편이지만 그래도 아이들 가르치는 모습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부 럽기까지 한 모양이었다. 그저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다시 방송대 에 입학한 줄 알았는데 그렇게 깊은 뜻이 숨어있는 줄은 몰랐다. 물론 오늘같은 충돌(?)이 없었다면 아내의 마음 속에 담긴 그 소중한 뜻은 모 르고 지나갈 수도 있었다. 아내의 눈물과 남편으로서의 미안함이 교차한 날을 뒤로하고 얼마 후 에 정말 힘든 시간이 다가왔다. 유아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 면서 예년과는 달리 학사 규정이 더 엄격해졌고, 한 달간의 어린이집 실 345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아름다운 그대, 당신은 선생님

346 습을 거쳐 다시 한 달 동안 정규 유치원에서 교생실습을 해야만 했다. 아내가 실습에 들어가는 5월과 10월이 고비였다.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첫째와 둘째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유아방에 다니는 셋째가 문 제였다. 아침에 유아방에 뎌려다주면 점심 때 돌아왔는데, 이제 저녁 때 까지 있어야 하니 그 어린 것을 온종일 떼어놓은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흘러갔다. 실습을 하는 어린이집(서원 어린이집)이 시내에서 한참 벗어난 변두리 교외에 있던 터라 마땅한 교통편이 없어서 아이들이 학교가는 것도 제대로 챙 겨주지 못하고 아내와 나는 출근길에 올라야 했다. 아내를 어린이 집까 지 데려다주고 다시 가던 길을 되돌아 나와 학교로 와야했기 때문에 아 침 시간이 여유가 없어졌다. 저녁에는 자율학습이나 야간수업이 있었 기 때문에 아내를 데리러 갈 수는 없었고, 아내는 어린이집에서 한참을 걸어나와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아내가 집에 있을 때는 먼지 하나 없을 만큼 깨끗했던 집안은 이제 각종 옷가지와 책들이 널려있고 설거지통에는 씻지 않은 그릇들로 넘쳐났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힘든 시간이었다. 아내는 처음 경험하는 실습 인지라 입술이 부르텄고 아이들도 그전처럼 엄마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기에 짜증내는 일이 늘어났다. 환경이 인간의 의식 을 좌우한다는 말처럼 이런저런 어려움들도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안 정을 찾기 시작했다. 평소 설거지통에 물도 묻혀보지 않았던 첫째 녀석 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싱크대에 쌓인 그릇들을 깨끗이 씻어 정리했고, 둘째 녀석까지도 집안 청소를 도왔다. 물론 셋째는 언니 오빠가 열심히 치워놓으면 어질러 놓는 것이 일이었다. 그래도 항상 얼굴에 미소를 띄 며 쉽지 않은 상황을 잘 이겨나가고 있었다. 어린이집의 실습이 끝나고 한숨 돌릴 여유도 없이 곧바로 논문 준비 가 시작되었다. 그 해 여름은 아내에게는 무척 뜨거운 시간이었다. 논문 을 쓰느라 한 달 내내 방안에 틀어박혀 앉아 각종 자료와 씨름했다. 이 전에도 그랬듯 아내는 논문을 형식적으로 제출하기보다는 자신이 지금 까지 공부한 것을 확인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한 과정으로 여겼다. 그러니 다름 사람보다 정성과 노력이 몇 배는 더했다. 그런 정성 덕분이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아름다운 그대, 당신은 선생님 346

347 었는지 논문 심사도 무사히 통과했다. 이제 마지막 학기만 남았다.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아내의 교생 실 습이 시작되었다. 마침 어렵게 허락을 맡아 실습하기로 되어있었던 학 교(성연 초등학교)가 학구 조정 문제로 학생들의 등교가 정지되면서 교 생 실습까지 차질을 빚게 되었다. 사나흘 동안 텅빈 교실에서 아까운 시 간만 보내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더니 마침 이를 딱하게 여긴 선생님의 소개로 다른 학교(언암 초등학교)로 옮겨 교생 실습을 하기로 한 것이 다. 다행스럽기는 했지만 그 학교는 자가용으로도 30분 정도 걸리는 먼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실습을 할 수 있었으니 원거리쯤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어린이집과는 달리 학생들을 관리하고 실제로 수업까지 맡아야 했기 때문에 아내도 집에 오면 교안을 준비하느라 새벽까지 매달리기 일쑤 였다. 게다가 마침 옮겨간 학교의 유치원이 이번에 연구학교로 지정되 어 관내에서 많은 손님을 모시고 발표회를 갖기로 되어 있었다. 아내는 교생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큰 역할은 없었지만 그래도 준비하시는 선 생님들을 옆에서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임에 틀림없었다. 디지 털 카메라로 수업 장면이나 각종 교구들을 촬영하고 이를 자료로 축적 하여 언젠가는 현장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되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차곡자곡 미래에 대한 준비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분들이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탓인지 연구학교는 성공리 에 끝났고, 이젠 아침저녁으로 제법 찬바람이 불어오고 기온도 영하로 떨어지는 때가 많았다. 하루는 아내는 졸업 예정자의 신분으로 도교육 청에서 주관하는 유치원 교사 임용시험에 도전해 보겠다고 했다. 이제 막 졸업하는 젊은 친구들도 통과하기 어렵다는 임용시험이었다. 취업 난을 반영이라도 하듯 경쟁률은 보통 수십 대 일을 넘었고, 한두 번 응 시해서 합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시험이었다. 아내의 나이는 어 언 사십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방금 전에 본 것도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는 나이인데 그런 결심까지 한 것을 보면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할 지 경이었다. 교생 실습만으로도 어려운데 얼마남지 않은 임용고사까지 준비한다 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더라도 아내는 포기하지 않았 347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아름다운 그대, 당신은 선생님

348 다. 드디어 시험날이 다가왔고 아내는 시험장인 천안으로 떠나면서 소 풍 다녀오듯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올테니 마음쓰지 말라고 했다. 시험 을 끝내고 저녁 늦게서야 도착한 아내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아 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며 쑥스러운 듯 가벼운 미소를 띠며 한 참 동안 기다렸을 가족들을 위로했다. 시험이 끝난 뒤부터 사나흘쯤 지나자 아내의 교생 실습 날짜도 꼬박 채워졌다. 사실 교생 실습이 끝나던 날은 아내보다도 내가 더 홀가분했 다. 학교에 오면 맡고 있는 학급의 아이들을 관리하느라 다른 데 신경쓸 여력이 없었기에 집에 있는 자식들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아내 도 이젠 기말고사만 치르면 모든 과정을 마치고 다가오는 새 해에 다시 한번 학사모를 쓸 일만 남았다. 모든 사람의 기대감 속에 쌍춘년 복돼지 해가 시작되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큰 아이는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중 3으로 진급하고 둘째는 중학교 진학을 앞둔 초등학교에서 가장 높은 학년이 되며 귀염둥이 막 내는 초등학교에 첫 발을 들여놓게 된다. 아내는 큰 기대를 안했지만 못 내 임용시험에서 떨어진 것이 아쉬운 모양이었다. 언감생심, 젊은 사람 들도 몇 차례씩 떨어질 만큼 합격하기 어렵다는 임용시험에 응시한 자 체만으로도 합격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누차 위안의 말을 건넸으나 그 래도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듯 했다. 막내까지 학교에 들어갔으니 이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 다며 분주히 정보를 수집하고 연락도 했으나 딱히 마땅한 일자리를 찾 기가 쉽지 않았다. 어차피 임용시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에 앞 으로도 공부는 계속하겠지만 일단 기간제 선생님이라도 자리만 있으면 경험을 쌓아볼 작정이었다. 말이 그렇지 일반대학을 졸업하고 교원자 격증을 취득한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방송대 출신을 써 줄 수 있는 학교는 거의 없었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마 기간제 교사 자리를 놓고도 수십 명 심지어는 수백 명이 몰리는 상황에서 아내가 기간제 교 사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아름다운 그대, 당신은 선생님 348

349 2월 졸업을 앞두고도 아내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셋째가 태어났다는 피치못할 사정은 있었어도 대학을 졸업하고 변변한 일자리를 얻지 못했 는데 이번마저 또 그렇게 된다면 그간 자신을 믿고 도와준 남편에게 면 목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싶었다. 이리저리 알아보고 원서도 넣 었지만 선발하는 인원이 워낙 적어서 그런지 기대하는 전화는 오지 않 았다. 마침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부춘초등학교)의 병설 유치원에 학습 보조원 자리를 뽑는다는 공고가 나왔다. 물론 기간제 교사는 아니지만 학생들과 함께 한다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지원자의 숫자 도 만만치 않았다. 아내는 여러 가지로 불리했다. 유치원 아이들의 응석을 받아들이는 것은 젊은 사람들도 힘겨워할 만큼 강한 체력이 필요했는데 나이 사십 이 다 된 사람을 받아들이려는 곳은 없었다. 또한 일반대학 출신자들도 넘쳐나는 상황에서 방송대 출신은 그만큼 선택의 과정에서 제외될 가 능성이 컸다. 게다가 같은 학교에 두 명의 자녀를 둔 학부모니 학교 입 장에서볼 때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요소는 한 가지도 없었다. 그러나 천 성적으로 부지런한 아내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던지 학습보조교사로 채 용되었으니 출근하라는 전화가 왔다. 물론 정식 교사가 아닌 계약직 교 사의 신분이었지만 아내와 나의 기쁨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아내 가 교생실습을 했던 학교의 선생님이 마침 전근을 오게 되었고, 아내의 근면성과 아이들을 다루는 솜씨를 눈여겨보았던 것이 윗분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는 후일담도 듣게 되었다. 개학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는 곧바로 출근을 했다. 이미 어 린이 집과 유치원 실습 때 경험했던 일이기에 아내가 직장에 나가더라 도 집안 살림은 나눠서 하면 될 일이었다. 오히려 전보다 가정 내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조금 더 늘어났지만 그래도 어느 누구 하나 불평하 지 않았다. 비록 계약직이기는 하지만 아내는 그토록 꿈꾸었던 선생님 의 꿈을 이룬 것이다. 출근 날짜와 졸업식 일자가 겹치는 바람에 아내는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아내는 서운해하는 눈치가 역력했지만, 직장을 가진 것만으 349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아름다운 그대, 당신은 선생님

350 로도 큰 선물이라며 오히려 가족들을 위로했다. 며칠 후, 졸업식에 참석 하지는 못했지만 졸업장과 보육교사 1급 자격증과 유치원 2급 정교사 자격증이 우편으로 도착했다. 그간 아내가 남모르게 흘린 땀의 결실이 나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마음속에 꿈으로만 그칠뻔했던 아내의 선생님에 대한 소망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물론 지금은 유치원에서 하루하루 아이들과 함께 시간가는 줄 모르게 생활하고 있다. 저녁 시간이면 아내와 나눌 얘깃거 리도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아내가 주로 얘기하고 나는 듣는 편이었다. 송아지만한 녀석들(고등학생)과만 생활하다 아내로부터 강아지만한 아 이들(유치원생) 얘기를 들으면 신기하기도 했고 또 배울점도 있었다. 얘 기의 주된 소재가 학교와 관련된 것이고 보면 이제 아내에게서도 어엿 한 선생님 티가 느껴졌다. 아내는 아직 정식 교사는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보조라는 꼬리표 를 떼고 정식 교사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 아이를 구김살 없이 키운 어머니로서 그리고 8년 동안이나 방송통신대학을 다니며 두 개의 졸업장을 딴 저력과 할 수 있다는 신념까지 보태진다면 또 어떤 일 을 해낼 수 있을 지 모른다. 문제는 어떤 자리나 위치보다도 할 수 있다 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방송통신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굳이 아내의 사연을 소개하고자 결심한 것 은 아직도 공부에 대한 미련의 끈을 놓지 못한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자 극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소개했다. 얼마전, 아내와 함께 본 영화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이 글을 마무리하 고자 한다. 정체성의 위기에 처한 주인공에게 여자 친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어김없이 비가 온대. 왜인 줄 알 아? 인디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거든. 자기능력개발수범사례 아름다운 그대, 당신은 선생님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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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첨 부 보고서 Ⅰ. 조사 개요 1. 조사 배경 및 목적 o 문화적 여유가 생기면서 만화영화 주인공이나 연예인 등의 캐릭터를 넣어 개발한 캐 릭터상품이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데, 앞으로 도 계속해서 신세대의 소비문화 를 창출해 나갈 것으로 예상됨. - 그동안 어린이들 사이에 유행했던 캐릭터로는 미키마우스, 세일러문, 아기공룡 둘 리, 바비, 헬로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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