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B9AEC3A2B0FA5FC3A5C0DA2E687770>

Size: px
Start display at page:

Download "<5344555FB9AEC3A2B0FA5FC3A5C0DA2E687770>"

Transcription

1

2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 공모 주최 : 서울디지털대학교(SDU) 주관 : SDU 문예창작학부 문학 계간 시작 후원 : 디지털문화예술아카데미 서울디지털대학교는 21세기 한국문학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신인작가를 발굴하 기 위해 <제2회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을 공모합니다. 한국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어갈 참신한 상상력을 기다리며,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1. 응모요령 접수기간 : 2007년 월 일 ~ 2008년 월 일 보낼 곳 1 : 서울 강남구 신사동 윤당빌딩 2층 문예창작학부 사이버문학상 담당자(우편번호 ) 보낼 곳 2 : [email protected] 입상작 발표 : 2008년 월 일 서울디지털대학교 홈페이지 유의사항 : 이미 발표된 작품이나 표절로 밝혀진 작품은 입상 결정 후에도 취소 됩니다. 원고 첫 장에 주소, 성명(필명일 때는 본명을 필히 기입), 연락처(전화번호) 등을 반드시 써야합니다. 원고가 든 봉투에도 사이버문학상 응모작' 이라고 써주시 기 바랍니다. 이메일 역시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원고는 보낼 곳 1과 보낼 곳 2 중에서 한 곳을 선택하여 보내주십시오.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 습니다. 2. 공모부문 시 : 5편 이상 3. 공모대상 문단에 등단하지 않은 전 국민 4. 당선 상금 및 특전 당선작 - 5백만원, 계간 시작 에 작품 게재, 등단시인으로 인정 가 작 - 2백만원, 계간 시작 에 작품 게재, 등단시인 인정 여부 작품 심사 후 결정

3 SDU 디지털 문학 창간호 2007

4

5 차례 창간사 학부장 오봉옥 8 교수문단 시 이재무 깊은 눈 13 온다던 사람 오지 않았다 15 오봉옥 할머니 16 말 17 배용제 봄날 18 부레옥잠 21 소설 이명랑 우리들의 화장실 23 평론 임헌영 다원화 시대의 한국문학 49 엄경희 상상력을 억압하는 교조적 목소리 63 - 시인들이 쓴 어른을 위한 동화 - 학생문단 시 곽미영 사막이 생기는 이유 79 가마우지 80 구현미 흰색의 캔버스 81 권혁임 밤의 울안에서 82

6 김경훈 비가( 悲 歌 ) 83 장미에게 84 김유석 말뚝 85 김형출 씨앗냄새 86 김후진 흔적 87 닫히는 것의 초상 88 노운미 도편수에게 보내는 90 진실과 허상사이 91 류제희 소금창고 93 개복숭아 두 알 94 민수임 손님 95 박 경 눈 속에 핀 동백꽃 96 눈 오는 날 98 박유홍 어머니 100 이순지 갓바위 102 마니 103 정건우 설거지를 하면서 104 언 강( 江 ) 105 최무선 겨울풍경 107 목각오리 108 담쟁이 109 소설 김현경 낭만고양이 113 이승현 탈피 120 정명자 버티고 133 정혜련 트라이앵글과 원 149 수필 강 훈 크리스마스의 추억 167 김수남 나는 캐나다 공무원이야 SDU 디지털 문학

7 마이 쮸쮸, MY 쮸쮸 172 꿈이 크는 씨앗 176 김형출 천 개의 입 천 개의 눈 182 박인숙 기차 안에 나를 던지고 184 유영희 늙은 호박에게 배운다 187 간 없는 남자 190 이미화 결혼 193 이희순 때죽나무 아래서 196 전종수 이기주의와 집값 199 절름발이 오리와 허니문 피리어드 202 골프와 등산이야기 205 정주호 莊 子 의 세 가지 칼 208 큰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211 동화 구현미 여러 빛깔 조각들의 이야기 나라 217 시나리오 이영현 하얀 소나기 223 평론 김형출 기형도 작품에 나타나는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의 미학 267 문현영 <구렁덩덩 신선비>를 통해서 본 정신분석적인 시각 284 <근대문학의 종언> 평론에 대한 나만의 주장 293 7

8 창간사 세상은 지금 숨 가쁘게 변화하고 있다. 어제의 관념으로 오늘을 바라 보면 청맹과니가 되기 쉽다. 토지 자본 노동 등의 기초 자원이 생 산과 성장의 기본이 되는 세상에서 지식이 생산과 성장의 기본이 되 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고, 기술적으로는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 대로 변하고 있다. 핸드폰과 인터넷 등이 실시간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지금 국경 이라는 개념 역시 낡은 개념이 되어가고 있다. 교육의 개념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제의 교육 개념으로는 오늘날의 교육 을 담보하지 못한다. 날로 변화 발전하는 생명공학은 인간의 수명을 두 배로 늘려놓았다. 평균 수명이 50살 정도일 때에는 공급자 중심의 교육만으로도 충분했 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두 배로 늘어난 지금 교육의 가치는 전혀 다 르게 변화하고 있다. 세상의 변하는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끊임없 이 배워야만 한다. 배우고 연구하는 자만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주체 적으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더구나 인생 100년형 시대에 는 직업이 세 번은 바뀐다고 한다. 평생교육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 다. 나이가 들면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적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호구지책으로서의 직업이 아니라 새롭게 일어나는 개인적 요구를 만 족시키는 차원에서의 직업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부는 이와 같은 요구에 부응하고자 만 들어졌다. 학생들의 분포도를 보면 살아온 과정과 연령층도 다양하게 8 SDU 디지털 문학

9 나타나지만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문학이라는 또 하나의 세계 를 자기 안에 간직하고 싶어 한다는 점만은 다르지 않다. 그 뿐인가.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며, 창 작의 희열을 느끼기 위해서는 약간의 고통도 감수해야 하는 법이건만 그와 같은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의지 역시 공통적으로 보여주 고 있다. 문학의 길을 일컬어 흔히들 자아찾기 또는 길찾기 에 다름 아니라고 한다. 진정한 자아, 온전한 자아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 리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혼미한 시대, 지향점을 잃은 채 속도 의 바다 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마는 시대일수록 길찾기 의 존재 로서 문학인의 역할은 증대된다. 삶의 비본질적인 것들이 세상을 혼탁 하게 만들수록 삶의 본질을 향한 문학인의 욕구는 증대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도 우리 자신을 탐색하고, 갈기갈기 찢고, 그래 서 전혀 새로운 살이 돋아나게 하면서 어디론가 나아가는 것이 아니 런가. 오늘 우리는 작은 문집 한 권을 <디지털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출간 하고자 한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지난 일 년 간 온라인을 타고 서 로 간 넘나들며 다듬어온 것들이다. 밤잠 설치며 쓴 뒤 수업시간에 슬 쩍 내민 것들도 있고, 오랜 시간 투자하여 졸업논문의 형식으로 발표 한 것들도 있다. 앞으로 우리는 <디지털 문학>을 공적인 매체로 발전 시키고자 한다. 지금은 비매품으로서의 문집 형태에 불과하지만 머잖 아 공식 매체로 발돋움 할 것이다. 공식 매체로 힘 있게 출발하고자 했지만 책임 있는 매체 를 만들기 위해 잠시만 뒤로 미루고자 한 것이다. 우리는 그날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것이다. 기대해 주시기 바란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이 문집은 1부를 교수들의 작품 및 논 문으로, 2부부터는 학생들의 시, 소설, 아동문학, 수필, 비평 등으로 장르별 분류하였다. 2007년 2월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부 학부장 오봉옥 9

10

11 교수문단 이재무 (시) 오봉옥 (시) 배용제 (시) 이명랑 (소설) 임헌영 (평론) 엄경희 (평론) 敎 授 文 壇

12

13 교수문단 깊은 눈 外 1편 이재무 마을 회관 한 구석 고물상 기다리며 한 마리 늙고 지친 짐승처럼 쭈그려 앉은, 흙에서 멀어진 적막과 폐허를 본다 젊어 한때 쟁기가 되어 수만 평의 논 갈아엎을 때마다 무논 젖은 흙들은 찰랑찰랑 얼마나 진저리치며 환희에 들떠 바르르 떨어댔던가 흙에 생 담궈야 더욱 빛나던 몸 아니었던가 논일 끝나면 밭일, 밭일 끝나면 읍내 장터에, 잔치집에, 떡방앗간에, 예식장에, 초상집에 공판장에, 면사무소에, 군청에, 시위 현장에 부르는 곳이면 가서 제 할 도리 다해온 그였다 눈 많이 내렸던 그해 겨울밤은 만취한 주인 실고 오다가 멀쩡한 다리 치받고 개울에 빠져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저 또한 팔 다리 빠지고 어깨와 허리 크게 상하기도 했던 교수문단 13

14 돌아보면 파란만장한 노동의, 그 오랜 시간을 에누리 없이 오체투지로 살아온 그가 오늘은 바람이 저를 다녀갈 때마다 저렇듯 무력하게 검붉은 살비듬이나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몸의 기관들 거듭 갈아 끼우며 겨우 오늘에까지 연명해온 목숨 아닌가 올 봄 마지막으로 그가 갈아 만든 논에 실하게 뿌리내린 벼이삭들 달디 단 가을 볕 쪽쪽 빨아 마시며 불어오는 바람 출렁, 그네 타는데 때 늦게 찾아온 불안한 안식에 좌불안석인 그를 하늘의 깊은 눈이 내려다보고 있다 이재무 : 시인, 1983년<실천문학>통해 작품활동시작 시집 위대한 심사 外 다수, 계간 시작 편집주간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창학부 교수 14 SDU 디지털 문학

15 교수문단 온다던 사람 오지 않았다 온다던 사람 오지 않았다. 밤 열차 빈 가슴에 흙 바람을 불어넣고 종착역 목포를 향해 말을 달렸다 西 山 삭정개비 끝에서 그믐달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주먹의 불빛조차 잠이들었다 주머니 속에서 때묻은 동전이 울고 있었고 발끝에 돌팍이 울고 있었다 온다던 사람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오지 않았고 내 마음의 산 비탈에 핀 머루는 퉁퉁 젖이 불고 있었다 교수문단 15

16 교수문단 할머니 外 1편 오봉옥 할머니는 쌍것이었다. 죽어도 쌍것이었다 논이 되어 밭이 되어 허리 구부리고 살았을 뿐 시집은 시집이어서 하자는 대로 살림은 살림이어서 하자는 대로 절대로 쌍것인갑다, 여자인갑다 했을 뿐 그건 안 되겠어라우 한마디 못하셨다 하긴 전쟁터에 지아비 보낼 때도 곧 오마 하는 소리 들었을 뿐 감히 나가볼 생각 못했다 하긴 혼자되어 깔 비고 손 비고 똥장군까지 질 때에도 감히 재가는 꿈도 꾸지 못 했다 할머니는 여자였다 죽어도 여자였다 하나 있는 손녀 시집 가는 길 위에서 오늘도 남편 말에 복종 잘하고... 하신다 두 번 세 번 눈물 찍으며 당부하신다. 16 SDU 디지털 문학

17 교수문단 말 운명처럼 만나고 헤어진 말들이 있었다 어떤 말 앞에서 난 막무가내로 흔들렸다 그것은 전생에 잊어버린 말이었다 어느 말 앞에서 오래오래 서성거리기도 했다 거기엔 잃어버린 마음이 새겨져 있었다 어느 말 앞에선 그만 주저앉기도 했다 거기엔 내일이면 흩어질 내 쓸쓸한 영혼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뿐인가, 어느 낯선 말 앞에선 입술을 깨물며 다시 일어서기도 했다 그것은 내가 저 세상까지 지고 가야 할 말이었다 요즘 난 억지 말을 퍼 나르다가 버리곤 한다 오늘은 무지렁이,를 써놓고 버렸다 못묘,를 쓴 뒤 몇 줄을 더 긋다 버리기도 했다. 책상머리에 앉아 땅강아지처럼 흙에 붙어 사는 말만 찾으니 그것은 죽은 말 어울리지 않아서 이내 튕겨져나갈 말이었다 나 죽어서도 지게사전 지고 가야 한다 아직은 못다 한 말 너무도 많다 핏빛 지문 더 찍어야 한다. 오봉옥 : 시인, 1985년 창비 신작시집으로 등단, 시집 나 같은 것도 사랑을 한다 外 다수,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창학부 교수 교수문단 17

18 초대작품 봄 날 外 1편 배용제 1 마침내 꽃들이 피어났고 친구의 심장이 멎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듯이 황폐한 숲으로부터 한꺼번에 뒤덮인 화사한 꽃빛은 또 어떤 주검의 낯빛을 꾸미려 쏟아져 내려오는지, 이 도시에 저들을 맞이할 죽음은 모두 마련되어 있는지 거리에 버려진 캔이며 술병들은 이상하리만치 반짝였다 허리가 굽은 노인은 확신에 찬 모습으로 그것들을 주워 담고 있었다 꽃들은 황폐한 내부에서 돌출된 마지막 숨결처럼 정직하게 차례대로 목을 꺾기 시작했다 거리는 처음인 듯 활기가 넘쳤다 18 SDU 디지털 문학

19 2 가령 이렇다면 어떨까? 단지 우리는 바람의 두런거림을 듣지 못했노라고 친구가 긴 그림자를 끌며 겨울의 모퉁이를 돌아설 때, 혹은 싱싱한 꽃을 보러 황폐한 숲으로 들어설 때, 나는 지나간 한 여자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공중에 가득한 뿌연 먼지 속을 뒤적거리고 있었을 때, 그것들은 너무도 명료한 시간들이어서 우리는 잡담 같은 바람의 수다를 전혀 듣지 못했노라고 그때도 낡은 덤프트럭은 언덕을 오르며 경적을 울렸다 막 커피 배달을 끝내고 돌아가는 아가씨의 하얀 다리는 여전히 탐욕스럽게 싱싱했다 결국 한줌의 햇살 속에서 우리가 꺼낸 이미지들은 어떤 것도 평범했다 양지바른 곳에서 노는 아이들은 가끔 어른들이 모르는 어떤 이유 때문에 울었다 그러고도 지루한 봄날의 오후는 철물점 안주인의 그림자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제각기 다른 포즈로 진열된 상점주인들 사이 나는 친구가 흘리고 간 그림자를 주우러 거리를 헤매었다 순댓국밥집을 지나고 교수문단 19

20 정육점을 지나는 동안, 내 표정은 아무런 저항 없이 비워졌다 그러고도 견디는 시간이 있다면 그러고도 호기심을 갖는 풍경이 있다면, 가령 약간은 더럽혀져도 좋을 우리의 주소록 같은 것 3 세상은 무서우리만치 침착했다 어김없이 밤이 가고, 새벽은 찾아오고 왜냐하면, 바람의 흔적은 언제나 한 번이었고 따뜻한 햇살 아래 졸음처럼 지나버리는 날들 뿐, 황혼 무렵이면 건물들은 거꾸로 쳐박혔던 그림자를 뒤집어쓰고 빈 창문을 통해 천천히 한낮을 추억하는 그림을 그렸다 도시 밖으로 쏜살같이 몰려가는 햇살의 흔적과 어디선가 밥 짓는 냄새가 풍겨왔다 식탁에 덩그렇게 놓여있는 가고 없는 날들 뿐. 20 SDU 디지털 문학

21 교수문단 부레옥잠 제 몸속에 가둔 바람 한 움큼으로도 지탱할 수 있는 생이 있다 뿌리를 갖고도 평생 떠다니는 몸들 옹기에 띄워둔 부레옥잠이 꽃을 피웠다 그저 고요한 수면 위 바람을 품고 떠있는 것이라 여겼는데 흰 꽃, 이파리들 속에 퍼렇다 못해 자줏빛으로 멍든 꽃잎 하나 그 멍, 한가운데 점처럼 박힌 달 저 달을 잉태하기까지 가슴에 품은 바람의 독기는 오래 싱싱하게 윤 기가 흘렀을까, 알몸의 뿌리를 드러냈을까 다섯 살 이후 내가 품은 것들은 모두 바람이었고 病 이었다 그것들이 등짝에 뿌리를 내리는지 자주 앓아누웠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탕에선 病 의 뿌리조차 허우적거렸다 그때마다 가슴에서 차갑거나 뜨거운 것들이 가슴에서 울컥울컥 솟구 쳤다 교수문단 21

22 간혹 달 같은 누런 알약들이 손바닥 위에 떠 있었다 그러나 내 슬픔은 고요했고 유리창에 고인 날들은 늘 잠잠했다 부레, 그것은 멍든 바람의 씨앗과 病 을 매단 것들의 유일한 이름이었 다. 그 이름으로 날마다 눈물의 바탕에 뿌리를 내리고도 한 생을 고요하 게 떠돌 수 있으니 식물의 날들은 언제나 윤기가 흐르고, 꽃이 피고. 배용제 : 시인,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계간 시작 편집주간 시집 이 달콤한 감각 外 다수,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창학부 교수 22 SDU 디지털 문학

23 교수문단 우리들의 화장실 이명랑 "작은언니? 나 좀 꺼내줘! 빨리! 늦은 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온 막내의 울부짖음은 모골을 송연하게 했다. 자다 놀란 내 가슴은 방망이질을 멈추지 않았고, 빨간 내복에 잠바만 달랑 하나 걸치고 달음박질을 치는 동안에도 귓전에서는 목놓 아 언니를 부르던 막내의 절규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대체 무슨 변 인가? 이 야밤에, 그것도 공중화장실에서? 시골서 물건 싣고 올라온 뜨내기 트럭기사가? 어떤 술 취한 놈이 해코지라도 하고 있는 거 아 냐? 에잇, 이런 방정맞은 년. 하필이면 그 따위 망측한 생각을 하다 니. 아니지, 아냐.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없어. 우리 막내가 어떤 앤 데? 초등학교 다닐 때, 그때 말고는 누구한테 뺨 한번 맞고 온 적이 없는 왈가닥 여깡패가 아닌가. 어떤 놈이든지 건드리기만 하면 그냥 죽어라, 자지를 물어버려! 우리 막내는 어려서는 등에 멘 가방이 땅 에 닿을 정도로 키가 작았고, 만만하게 본 아이들한테 하루가 멀다 하 고 터지고 들어왔다. 막내가 매를 맞고 돌아온 날이면 엄마는 그렇게 하루 온종일, 자지를 물어뜯어버리지 그랬냐고, 앞으로는 누가 때리면 그냥 자지를 물어버리라고, 남자는 제 아무리 천하장사라 해도 거기만 물려버리면 꼼짝없이 설설 기게 되어 있다고, 가르쳤다. 중학교에 들 교수문단 23

24 어가 갑자기 키가 훌쩍 커버린 막내는 엄마의 가르침을 인생의 좌우 명으로 삼아 그 뜻을 받들더니, 나아가 다니던 중학교에서 '여자 짱' 까지 했던 아이다. 공중화장실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설사 어떤 놈이 우리 막내를 상대로 무슨 해괴한 짓거리를 하려고 해봤자 우리 막내가 순순히 당하고만 있을 리가 없다고, 나는 그 순간처럼 그렇게 막내의 우악스러움과 한다하는 주먹의 힘을 고맙 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화장실 문을, 똥할매가 지키고 서 있었다. 뿌연 불투명 유리창너머, 화장실 안쪽에 서 있는 사람은 우리 막내가 틀림없었다. 똥할매와 막 내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문 열어, 할머니. 화장실 안쪽에서 들려오는 막내의 목소리는 예상 외로 담담했다. 똥 할매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어쩌면 정말로 못 들은 건지도 몰랐다. 똥 할매는 벌써 옛날에 가는귀가 먹었으니까. "문 열라고, 할머니. 막내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한 옥타브 높이 올라갔다. 이번에도 역시 똥할매는 별이 번쩍번쩍 빛나는, 정신이상자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똥 할매 특유의, 그 빛나는 눈으로 막내의 얼굴을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 었다. "문 열라니까! 안 열어? 진짜 안 열어? 이제 막내는 한계에 달해 있었다. 화장실 안쪽에서 문고리를 붙잡고 흔들어대다가 발길질을 하다가 그도 안되니까 문 위쪽에 달려 있는 유리창에다 얼굴을 대고 똥할매를 향해서 뭐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혀까지 낼름거렸다. 아마도 막내는 똥할매를 향해 메롱메 롱, 혀를 내밀고 약을 올리면 똥할매가 열 받아서라도 문을 열고 안으 로 뛰어 들어올거라고 생각했나본데, 똥할매는 약이 올라 문을 열기는 고사하고 유리에 잔뜩 짜부라져 있는 막내의 입과 콧구멍을 들여다보 고는 배를 움켜잡고 웃는 것이었다. 내 눈에도 웃겼다. 막내 하는 꼴이 너무 웃겨서 나는 내가 거기로 왜 달려왔는지도 깜빡 잊고 정신없이 웃고 있었는데 어느 틈에 나를 봤 24 SDU 디지털 문학

25 는지, 내 입이 함지박만큼이나 찢어져 있는 걸 목격한 막내는 화장실 안쪽에서 나한테 삿대질을 하고 난리였다. 나도 이게 지금 뭔가 심각 하긴 심각한 상황인 건 알겠는데, 화장실에 갇혀서 온갖 '쇼'를 다하 고 있는 막내와 막내가 처해 있는 상황이 나로 하여금 사태의 심각성 을 잊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내가 문은 안 열고 웃고만 있으니까 막내는 아주 얼굴까지 빨개져서 씩씩대더니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내 핸드폰으로 거는 것 같았다. 핸 드폰을 들고 나오지 않았으니 내가 전화를 받을 리가 없었다. 막내는 다시 핸드폰을 집어들고 어딘가로 또 전화를 걸었다. 밖으로 나오기 위해, 막내는 필사적이었다. 이미 잔뜩 웃은데다 막내의 하는 양이 너무나도 절박해 보여서 나는 얼른 뛰어가 문을 열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똥할매가 어떤 할망군가? 똥할매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눈에 뵈는 게 없는 노인네다. 잘못 걸렸 다가는 뼈도 못 추리게 될 뿐 아니라, 완전히 '똥 밟았다'가 되는 거 다. 나는 똥할매 등 뒤에 서서 똥할매의 눈치를 살폈다. 똥할매가 잠 시 딴 데를 쳐다보거나 화장실 문에서 조금이라도 비켜서면 그때를 노려 문을 열어줄 생각이었다. "멍멍! 멍멍! 으르릉, 멍멍! "이런, 개새끼가! 똥할매의 애견이 어느새 내 다리 밑에 와 있었다. 이 개는 제 주인을 꼭 닮아서 노상 보는 사람들한테도 송곳니를 세우고 달려든다. 짖을 때도 얼마나 지랄맞게 짖어대는지 입에서 절로 "개새끼!" 소리가 나온 다. "물어! 뜯어! 물어! 뜯어! 내가 자기 등 뒤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똥할매, 애 견에게 급히 지령을 내렸다. 눈앞의 적을 물어뜯으라고. 가뜩이나 포 악한 이 개는 주인의 명령이 사방에 울려퍼지자 곧장 사냥에 돌입했 다. 난데없이 사냥감이 된 나는 처음 몇 초 동안은 맞짱을 떠보겠다고 과용을 부려보기도 했지만, 곧 모든 사냥감들이 그렇듯이 공포에 질려 도망치기 바빴다. 정신 나간 개에게 쫓겨 무작정 뜀박질을 하고 있다 보니 뒤에서 쫓아오고 있는 개가, 내 다리에 와서 박힐지도 모르는 개 교수문단 25

26 의 송곳니가, 점점 더 두려워져만 갔다. 이마 위에 땀방울이 맺혔다. 이마 밑, 뇌 속에는 공포가 영글었다. 그 순간에 나는 쫓기는 자, 죄 진 자, 위협받는 자, 공포에 억눌린 자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단 한 가지의 열망, 우선은 살고 보자는 그, 당연한 본능에 따라 체면이고 뭐고 다 던져버리고 내복바람으로 야채 판장 안을 미친년처럼 뺑뺑 돌고 있었다. 한 년은 내복바람으로 뺑뺑이를 돌고 있고, 한 년은 유리에 얼굴을 갖다붙인 채 잔뜩 찌그러진 입술로 붕어처럼 뻐끔거리고 있고 똥 할매는 나 한번 쳐다봤다, 막내 한번 쳐다봤다, 우리 두 자매를 번갈 아 바라보면서 손뼉을 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아주 재미있어 죽었다. 남편이 달려와 똥할매의 정신 나간 개를 발길질로 몇 번 걷어차 줄 때까지, 나는 발바닥이 얼얼할 정도로 뛰어다녀야 했고, 막내는 입술 이 부르틀 정도로 욕을 해야 했고, 똥할매는 웃느라고 목이 쉬어야 했 다. 정신 나간 개의 입에서 "깨갱!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나오고, 똥할 매가 딴 척을 부리며 화장실에서 물러나 한쪽 구석에 놔둔, 찢어진 3 인용 가죽 소파에 가서 누워버린 뒤에, 막내는 비로소 밖으로 나올 수 가 있었다. 화장실 바깥쪽에 달아둔 고리에 똥할매는 자물통 대신 숟 가락을 꽂아놨었는데, 남편은 그 숟가락을 휘어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냅다 집어던졌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막내는 땅바닥에 떨어진 그 숟가락을 주워들고 똥할매한테로 달려갔다. "할머니! 뭐야, 이게? 빨랑 눈 떠. 쇼, 하지 마. 자는 척하면 누가 그 냥 갈 줄 알구? 왜 그래? 왜 그러는 거야? 나한테만 왜 그래! 막내는 똥할매가 쓰러져 누워 있는 3인용 가죽 소파 앞에 털퍼덕, 주저앉아 땅바닥을 숟가락으로 두들겨댔다. 똥할매는 눈꺼풀 한번 깜 빡거리지도 않았다. 막내는 제가 당한 일이 억울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나 역시 아닌 밤중에 악취 풀풀 풍기는 개와 똥줄 타게 뛴 건 생각할수록 분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똥할매를 두들겨 팰것인가, 어 쩔 것인가. 분해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제 성질에 제가 못 이겨 꺼이꺼이, 울음 을 터트려버린 막내를 달래어 일으켜 세우고, 그 안에 오래 들어가 있 26 SDU 디지털 문학

27 고 싶지 않은 공중화장실을, 지긋지긋한 똥할매 곁을 떠나올 수밖에 는, 우리에게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제는 아예 맛을 들인 게 분명했다. 똥할매는 우리 막내를 화장실 안쪽에 감금한 것을 시작으로 해서 이제는 번번이, 낮이고 밤이고, 상 대를 가리지 않고 이 방법을 우려먹고 있다. 그러면 똥할매는 왜, 어째서 이런 짓을 하게 됐나? 물론 정신이 약간 돌았기 때문이다.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 누가 이런 짓을 하겠는가? 진짜? 정말로 똥할매는 돌았나? 사실, 잘 모르겠다. 야채 판장 귀퉁이 에 자리잡고 있는 공중화장실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똥할매의 얼 굴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똥할매의 그 번쩍거리는 눈빛이라든지, 초 점이 없는 시선은 미친 사람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미쳐도 참 더 럽게 미쳤지, 하고 내가 똥할매를 측은하게 바라볼라치면 똥할매는 어 느새 벌떡 일어나 지금 막 화장실로 들어간 사람을 쫓아 들어간다. 오 줌 마려운 사람을 붙들고 몇백 원이라도 기어이 뜯어내는 것이다. 그 럴 때보면 미치기는커녕 말짱한 사람보다도 더 영악하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오줌 마려워 죽겠는데, 그 순간에 돈 안 주고 배겨낼 놈이 누 가 있겠는가. 우리 막내를 화장실에 가둔 것도, 그것도 다 돈을 뜯어 내려고 그런 거였다. 막내한테 돈 내라고 했는데 막내가 돈을 안 주고 그냥 들어가니까 어디 너 한번 당해봐라, 문을 걸어 잠근 게 분명했 다. 똥할매는 화장실 문 앞을 지키고 앉아 하루에도 몇 차례씩이나 오 줌, 똥 누러 갈 때마다 돈 내라고 난리다. 우리 집은, 형부네 가게에 서도 화장실 사용료를 꼬박꼬박 갖다바친다. 엄마도 똥할매가 삼오식 당에 막걸리 먹으러 오면 돈 안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물론 돈 내 려는 시늉도 안 하는 똥할매지만). 화장실 사용료인 셈이다. 그런데도 똥할매는 나나 우리 막내만 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또 돈을 뜯어낸다. 명백한 이중착취다. 몇 년 전만 해도 똥할매는, "백 원 내놔! 그랬다. 이제는 백 원 주면 땅바닥에다 내동댕이를 친다. 이백 원도 안 받는다. "더 줘라. 더 줘. 교수문단 27

28 눈앞에다 들이민 손바닥 위에 백 원짜리 동전을 최하 다섯 개 이상 은 올려놔줘야 부릅뜬 눈을 치우는 똥할매다. 백 원만 내놓으라고 할 때는 그래도 애교로 봐줄 수 있었다. 애교치고는 참 징글징글한 애교 이기는 해도. 오백 원은 문제가 다르다. 오줌 한 번 싸는데 오백 원이 라니! 하루에 두 번만 싸면 천 원이다. 들어갔을 때 똥도 싸고 오줌도 누고 나오면 그래도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고 치자. 똥 싸러 들어갔다 가 똥은 못 싸고 겨우 오줌 한 번 찍 갈기고 나온 날은 얼마나 부아 가 치밀어오르는지 모른다. 언젠가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누가 태국을 다녀와서 하는 말이, 거기는 공중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돈을 낸단다. 오줌은 십 바 트, 똥은 이십 바트, 그렇다는 거다. 그 사람은 오줌 눈다고 십 바트 내고 들어가서 똥까지 싸고 나왔다고, 그렇게 해서 돈을 얼마나 절약 했는지 모른다고 자랑이 대단했다. 나는 그때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그 사람을 참 부러워했었다. 똥할매는, 이거는 뭐 똥이고 오줌이고 상관 없이 무조건 돈만 내라고 성화에다, 오줌 누러 간다고 들어가서 똥 누 고 나오는, 속여먹는 재미도 하나 없으니, 생각할수록 성질만 나는 일 이다. 번쩍거리는 눈알을 굴려대며 초점 하나 없이 멍하니 앉아 있다 가도 누가 화장실에 들어가기만 하면 쫓아 들어가서 돈을 뜯어내는 똥할매를 보고 있으면, 요즘은 똥할매가 저게 다 돈 뜯어내려고 일부 러 미친 척하는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장터길 사람들 대부분은 불쌍한 사람한테 적선하는 셈치고 똥할매한 테 몇백 원씩 집어주고 그랬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똥할 매가 화장실 문을 밖에서 걸어 잠그는 짓에 아주 재미를 들였기 때문 이다. 삼오식당 일대에 모여 사는, 화장실 없이 사는 사람들이 요사이 삼오식당에 모여 앉아 떠들어댄 얘기를 한번 자세히 들어보자. 먼저, 구멍가게 영석이 엄마가 한 말이다. "대낮이었다니까. 안으로 들어가는데 누가 등짝을 후려치는 거야. 얼 마나 아프던지 눈물이 핑 돌더라고. 누군 누구야, 똥할매지. 바로 엊 그저께 사용료 냈잖아, 근데 또 돈 내라니까 열받지. 그래서 내가 그 랬지. 할머니, 돈 드렸잖아요.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그 할매가 뭐 말이 통해, 막가파가. 하필 주머니에 동전이 하나도 없잖아. 천 원짜 28 SDU 디지털 문학

29 리만 몇 장 있고. "그래서, 천 원을 줬어? "봉투 같으면 천 원을 주겠냐? 모르긴 몰라도 영석이 엄마가 천 원을 줬다고 했으면 봉투 아줌마, 속으로 되게 고소해했을 거다. 봉투 아줌마는 누가 '무궁화마트'가 어 쩌고 하면 "마트는 무슨 얼어 죽을 놈의 마트야! 저딴 거 다 쓰러져가 는 구멍가게를!" 하고, 괜히 성질을 내는 사람이다. 봉투 아줌마는 영 석이 엄마를 부를 때도 꼭, "구멍가게! 구멍가게 하고 낮춰 부르는데, 그 덕에 영석이네 무궁화마트는 버젓한 상호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 태도 그냥 구멍가게다. "똥할매가 목소리는 또 좀 커. 에라, 모르겠다, 나중에 주겠다고 그러 고는 화장실로 들어가버렸지. 그랬더니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근 거야. 황당하지. 거기서 소리를 어떻게 질러? 안 그래도 사람들 쳐다볼까봐 걱정돼서 죽을 판에. "근데 어떻게 나왔대? "그런데 하필 그때 그 사람이 나타났다니까. "그 사람? 그 사람 누구? "있잖아, 요새 길 건너에 새로 사철탕집 낸 사람. 거, 왜, 위아래로 양 복 깨끗이 입고 다니고. 세상에 하필이면 그때 그 사람이 나타나서는 이러는 거야. 할머니, 내가 돈 드릴 테니까 앞으로는 우리 예쁜 아줌 마 괴롭히지 말아요. 그러면서 천 원짜리 두 장을 탁, 내더라고. 세상 에, 화장실에서 그게 무슨 망신이야? 아유, 난, 이제 다신 거기 안 가. 내가 차라리 똥을 안 싸고 말어. 그나저나 창피해서 이제 그 사람을 어떻게 보냐? 똥할매한테 당해서 분했다는 건지, 하필이면 똥 누러 갔다가 그 남자 를 만나서 속이 상했다는 건지 분간이 안 가는 얘기지만, 어쨌든지 영 석이 엄마 말은 그랬다. "망신은 염병, 누군 뭐 똥 안 눠? 하여간에 똥할매만 수지맞았구먼. 나는 어땠는줄 알어? 영석이 엄마에 뒤이어, 봉투 아줌마가 화염을 내뿜기 시작했다. "똥할매가, 그 노인네가 정신없다는 거, 그거 다 말짱 뻥이여. 글쎄, 교수문단 29

30 그게 아니래도. 그 할매가 뭐 돈 때문에 그러는 줄 알어? 재미 붙었 다니까. 나는 돈도 줬다니까. 그런데도 밖에서 문을 잠갔더라고. 일부 러 그런다니까 그러네. 나는 그래도 핸드폰이라도 있었지. 맞어, 혹시 모르니까 핸드폰 꼭 들고 가. 휴지는 안 들고 가도 핸드폰은 꼭 챙겨 야 되겠더라고. 그거야 모르지. 사람 가둬놓고 자기는 들어가서 자빠 져 잘지 누가 알어? 그 할매가 뭐 언제는 이유 있는 짓거리를 했냐? 이번 참에 구멍가게도 핸드폰 하나 사. 야! 영석아! 너는 아들이 핸드 폰도 하나 안 사줬냐? 우리 성철이는 싫다는데도 이렇게 사다가 안기 는데. 자식이라도 다 같은 자식이 아녀. 안 그래, 삼오? 여기서 잠깐, 똥할매 얘기는 중단되고 봉투 아줌마의 핸드폰 자랑이 길게 늘어졌다. 본인이 그러면 또 몰라도 남이 잘난 척하는 꼴은 눈에 흙이 들어와도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는 장터길의 요설가, 김 여사(나 이는 마흔 후반으로 0번 앞자리를 얻어 과일 소매 장사를 하고 있다) 가 그 자리에 없었더라면 우리는 봉투 아줌마의 새로 산 핸드폰의 내 장을 마냥 들여다보고 있어야 했을 거다. "내 생각엔 너무 우스운 것 같아요. 여기 있는 사모님들은 그런 생각 안 하셨어요? 우리가 왜 똥할매한테 이렇게 당하고만 있어야 되는 건 데요? 엄격히 말하자면, 똥할매는 그냥 공중화장실 관리인 아니겠어 요? 주인은 아니잖아요. 관리인이야 갈면 되는 거 아닐까요? 이 부분에서, 거기 모여 있던 아줌마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해졌다. 0 번 앞자리, 김 여사처럼 장터길에 터전을 잡은 지 얼마 안 되는 아줌 마들 몇몇은 진작에 그렇게 할 걸, 그동안 괜히 생고생을 했다고 난리 였다. 봉투 아줌마와 구멍가게, 영석이 엄마는, 똥할매가 화장실 주인 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관리인만은 아닐 거라고, 애매하게 말끝 을 흐렸다. 그 기회를 노려 장터길의 요설가, 김 여사는 똥할매의 퇴 출을 다시 한번 주장하려고 했으나, 그 순간 삼오식당의 여주인, 우리 엄마가 물 먹던 양재기로 테이블을 냅다 후려치는 바람에 얼른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게 다 뭔 헛소리들이여? 밥 처먹고 할 일들이 없으니까 벼락맞을 소리만 지껄이고 있네. 그럼, 똥할매가 화장실 주인이 아니면 그럼 누 가 주인인데? 내가 여기서만 얼추 40년이여. 지금이야 똥할매 화장실 30 SDU 디지털 문학

31 자리가 야채 판장 안에 들어가 있지만, 거가 원래부터 야채 판장이었 어? 풀 쪼가리 하나, 아무것도 없을 때부터 거기는 똥할매 화장실이었 어. 똥할매가, 여자 혼자 땅 파고 보로꾸 쌓고 만들어서 똥 차면 똥지 게를 져다 날라서 오늘날의 화장실이 있는 건데, 똥할매가 주인이 아 니면 누가 주인이여? 꼴보기 싫으면 거기 안 가면 그만이지, 어디서 구르는 돌이 굴러들어와서는 박힌 돌을 뽑을라 그래! 삼오식당 여주인의 이와 같은 반응은 모두들 예상 밖이었는지, 주위 는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장터길의 요설가, 김 여사는 슬그머니 일어 나 삼오식당 출입문 옆에 붙어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가 또 슬그머 니 나와서는 자기네 가게로 내뺐다. "지금 오줌 누고 나오는 거지? 우리한테는 안 받아도 저 여자한테는 꼭 오물세 받어야 돼. 삼오식당 가겟방 안쪽에 있는 세탁기 옆자리의 수챗구멍에다 대고 오줌을 누고 나온 김 여사의 뒷덜미를 바라보며 봉투 아줌마는 삼오 식당 여주인의 비위를 맞춘다고 안 봐도 될 흉까지 봤건만, "저거는 순 입만 나불거릴 줄 알지, 오줌 누고 물도 제대로 안 뿌린다 니까. 하기는 봉투도 똑같지, 뭐. 자네들도 죄다 마찬가지여. 진짜 열 받으면 수도세 걷는 수가 있으니까 오줌 싸고 물이나 잘 뿌려. 뒤이어 이어진 엄마의 따끔한 한마디가 봉투 아줌마의 그 쫑알거리 는 입을 후려쳤다. 거기 모여 있던 아줌마들은 괜히 멋쩍어져서 가만 히 앉아 있다가, 봉투 아줌마가 일어서자 하나둘씩 따라 일어섰다. 김 여사마냥 방 안쪽 세탁기 옆으로 가서 수챗구멍에 오줌 한 번씩 누고 는 자기들 있을 곳으로 가버렸다. 나는 혹시나 무슨 좋은 수가 생기나, 이번엔 어떻게든 해결이 나려 나, 아줌마들 옆에 붙어 앉아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도로아미타불이었다. 하기야, 장터길 사람들이 언제는 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들고일어났던 적이 있던가! 이 골목에서 태어나 여기서 단 한 발자국도 옮겨보지 않고 서른 해를 사는 동안에도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장터길에 서 있는 대부분의 건물(사실 말이 건물이지, 철근 빔 박혀 있는 건물도 하나 없고, 베니어판 몇 개 이어서 붙여놓 은데다가 슬레이트 지붕을 얹어놓았을 뿐이다)은 그 소유자가 같은 교수문단 31

32 사람이다. 우리들의 건물주인은, 홍수가 나서 지붕이 내려앉아도, 꽁 꽁 언 수도가 동파( 同 派 )되어도 수리를 해주지 않는다. "아쉬우면 아 쉬운 대로 너희들이 고쳐서 살든지, 아니면 나가라! 가 이 남자의 경 영철학이다. 이 남자는 심지어 우리가 우리 돈 들여 정화조를 묻고 화 장실 하나 만들겠다고 했을 때도, 내 땅에 손가락 하나 건드렸다가는 다 쫓아내버린다고, 지금까지도 화장실 없이 잘들 살아왔던 것들이 이 제 와서 화장실은 무슨 화장실이냐고, 길길이 날뛰던 위인이었다. 그 때도 우리 장터길 아줌마들은 그저, 눈만 멀뚱멀뚱 뜨고 앉아 건물주 인의 입에서 뿜어져나오던 게거품을 오래도록 올려다보고만 있어야했 다. 아줌마들이 다 나가버리고 텅 빈 홀에 홀로 앉아 있자니, 화장실에 얽힌 온갖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는 아예 친구를 데려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화장실이 없 으니까. 당연히 내게는 초등학교 때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 중학교 에 들어갔다. 반장인 나를 선생님처럼 따르는 친구 몇 명이 생겼다. 집에 데려왔다. 여기서 집이란, 삼오식당을 일컫는 말이다. 친정 엄마 의 삼오식당은 우리 가정의 밥벌이 터전이자 동시에 살림집이었고 지 금도 그렇다. 참고로 밝히자면, 결혼을 하고 내 살림을 꾸리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일반 가정집에서 살게 되었다. 근데, 어떤 애가 놀기도 전에 화장실부터 찾았다. 오줌 마렵다고 해서 세탁기 옆, 수챗구멍에 다 싸라고 했더니 친구들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뒤 한동 안,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세요. 지선이네 졸졸졸 따라왔더니 나 한테 아무데나 오줌 싸래요! 가 우리 반의 유행송(song)이 되었다. 그 노래 부르고 다닌 애들을 이 잡듯이 찾아다녔다. 목숨 내걸고 싸워 서 다들 반쯤 죽여놨다. 그 사건 이후, 나는 반장'에서 미친개'라 는 새로운 닉네임을 얻었고, 나의 닉네임에 걸맞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다. 반장을 따르는 모범생 대신 악만 남은 날라리들, 영등포 미 친개들이 나와 한 무리가 되었다. 커피장수 차씨 아줌마 딸, 정희도 그때 사귄 미친개 중의 한 마리다. 나는 그 미친개들을 사랑했다. 늘 우리 집에 데려와 밥을 먹였다. 어느 미친개가 "지선아! 똥은? 하고 물으면, 나는 "똥도 그냥 싸!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었는 32 SDU 디지털 문학

33 데, 이 질문과 대답은, 나에게는 우정의 정도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 었다. 미친개들은 대부분 여상에 들어갔다. 나만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내가 다니던 여고에는 연희동과 그 근방에 사는 부잣집 애 들이 많았다. 그애들은 우리 집에 놀러와서 양변기가 아닌 수챗구멍에 다 오줌 한번 싸고는 자기네들이 무슨 엄청나게 큰일을 해낸 것처럼 야단들이었다. 나는 가끔씩 그애들을 우리 집에 데려와 수챗구멍에다 오줌을 싸게 해주고 가난과 불우함을 체험하게 해준 대가로 그애들로 부터 간식과 우유, 회수권 등을 제공받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쌀 밥만 먹는 애들이 어쩌다 보리밥 한번 먹어봤다고 해서 식성이 달라 지지는 않는다는 거다. 쌀밥 먹는 애들은 얼마 안 가 다시 쌀밥 먹으 러 갔고,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하여 나의 여고시절은 불우했다. 어울려 놀 친구가 없으니 책만 끼고 살았다. 책만 끼고 살다 보니 어 쩌다 중학교 때 함께 어울려 다녔던 미친개들을 만나도 나는 그 미친 개들과 온전히 하나가 되지 못했다. 미친개들의, 언제나 현재뿐인 삶 에 책'이란 건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내가 사랑했던 미친개들 은 과거와 미래가 그 알맹이의 주종을 이루는 책'이란 걸 무던히도 싫어했다. 그때부터 나는 고독해졌다. 언제나 외로웠다. 정에 굶주린 아이가 되어 친구를 목말라하기 시작했다. 가끔 생각해본다. 그러면 나의 이 외로움은 화장실에서 비롯되었나? 아마도. 나는 지금도 예전의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운명의 장난으로 인문계 고등학교를, 그것도 부잣집 애들이 많이 다니기로 소문난 여고에 다니 게 되면서부터 시작된 나의 불행은 책'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지 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당연히 화장실' 때문이다. 요 새도 나는 글 쓰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 가서도, 도서관 식당에 앉아 딱딱하게 굳은 도시락밥을 혼자 먹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 을 가지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주변 사람들을 찬찬히 훑어본다. 내 옆에 앉아 있는 이 사람들 중에 과연 내 친구는 없을까 하고. "지선 아! 똥은? 하고 물으면, "똥도 그냥 싸! 하고 아무 거리낌 없이 대 답할 수 있는 내 친구가 그래도 여기 어딘가에 한 사람쯤은 있지 않 을까 하고. 그러나 아무도 내게 "지선아, 똥은? 하고, 묻지 않는다. 교수문단 33

34 묻지 않으니까 나도 대답을 안 한다. 아, 너무나 외롭다 그 시절 의 미친개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디다 똥을 누고 있을까. 우리 집에 화장실이 있었다면, 그랬다면, 나는 이런 질문과 대답으로 우정의 정도를 판가름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나온 날들 은, 거기 새겨진 세월의 무늬들은 알량한 지우개 따위로는 잘 지워지 지 않는 법이다. 아참, 생각해보니 성인이 되어서도 나한테 "똥이면요? 하고, 물은 사람이 있기는 있었다. 첫 장편소설을 출간하고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삼오식당에서 가진 날이었다. 그 전날 밤, 잠도 못 자고 우려한 대로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었다. 내 책의 해설을 해주신 평론가 한 분과 초고부터 내 원고를 꼼꼼히 읽었던 기획위원은 내가 따로 설 명을 하지 않았어도 눈치껏, 알아서 용변을 해결한 듯했다. 문제는 내 원고를 안 읽은 출판사 직원들이었다. "저기요, 선생님! 화장실이 어디예요? 여직원 한 명이 물었다. 나는 못 들은 척했다. 아무 대답이 없으면 그냥 슬그머니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우리 엄마한테나 물어볼 것이지, 그 여직원은 끈질기기까지 했다. 밥 먹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 중됐다. 정말로 화장실이 어디 붙어 있나 궁금해졌거나, 자기들도 덩 달아 오줌이 마려워졌거나, 그랬던 모양이다. 모두들, 말 한마디 없이 내 대답을 기다렸다. 할 수 없이, 나는 입을 뗐다. "똥이에요, 오줌이에요? 그날 이후로, 그 여직원은 나하고 말도 안 한다. 똥이면 어떻고, 오 줌이면 어쩔 거냐고, 얼마나 무섭게 화를 내던지. 나는 단지, 똥이면 똥할매 화장실로, 그냥 오줌이면 세탁기 옆, 수챗구멍으로 데려가려고 했을 뿐인데.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화장실에 얽힌 일들을 하나둘씩 떠올리고 있 다 보니 괜스레 울적해졌다. 화장실 없는 집에서 꽃다운 청춘을, 한평 생을 보낸 것도 억울하건만 이제는 똥할매까지 우리한테 설움을 주다 니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똥할매를, 아니 똥할매가 안 되면 똥할매 가 늘상 누워 있거나 앉아 있는 그, 거지발싸개 같은 3인용 가죽 소 파라도 북북 찢어놔야 다시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34 SDU 디지털 문학

35 "엄마! 가서 똥할매 가죽 소파라도 북북 긁어놓을까? "얼구, 이 화상아. 할 지랄이 없으면 가서 때나 밀고 잠이나 자빠져 자. "언제는 또 누가 때리면 자지를 물어버리라며? 괜히 성질이야. "으이구, 이 돌멩아. 그거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너는 그걸 대가리라 고 달고 다니냐? 어떻게 된 게 글 쓴다는 년이 은유랑 상징도 몰라요, 안 배운 나도 아는디. 쓸데없이 똥할매 일에 참견하고 나섰다가 양재기로 머리만 한 대 쥐 어박혔다. 엄마 옆에 더 붙어 있어봤자 나올 거라곤 욕밖에 없었다. 나는, 엄마가 테이블 위에 집어던진 목욕표를 집어들었다. 사실 이건 너무나 공공연한 비밀인데, 노조에서는 하차반들의 편의를 위해 실제 목욕비보다 싼 값에 목욕표를 팔고 있다. 하차반들 중에는 이 목욕표 마저도 아껴두었다가 돈 대신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차반 박씨가 그 대표적인 예다. 하차반 박씨는 막걸리 값도, 밥값도 전부, 목욕표 로 지불한다. 돈은 절대로 안 가지고 다닌다. 피우는 담배도 목욕표랑 맞바꾸는 거라는 소문이 있다. 그런 까닭으로, 삼오식당의 밥 쟁반 밑 에는 언제나 목욕표들이 수북이 깔려 있다. 이런 얘기 했다고 설마 노 조에서 단속 나오는 건 아니겠지? 나는 목욕표를 들고 장터목욕탕으로 걸어갔다. 엄마 말대로 때나 밀 고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장터목욕탕 탈의실 정 중앙 에 놓여 있는 마루에 앉아 이제 막 발에서 덧버선을 벗겨내고 있는 노인네는 바로, 똥할매였다. 내가 들어서자 똥할매는 윗도리를 벗다 말고 고개를 홱 돌려 나를 쳐다봤다. 똥할매는 예의 그, 번쩍번쩍 빛 나는 눈으로 나를 빤히 노려봤다. 나는 지은 죄도 없으면서 괜히 주눅 이 들어 얼른 눈을 내리깔았다. 내리 깔은 눈으로도 나는 똥할매가 여 전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가르마 부분이 따끔거 릴 정도였으니까. 나는 가능한 똥할매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 면서 사물함 앞으로 걸어갔다. 위에서부터 하나씩 옷을 벗었다. 어쩐 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팬티를 내리다 말고 쳐다봤더니 똥할매가 나를, 내 탱탱한 젖가슴에서부터 다리까지를 염치없이 바라보고 있지 교수문단 35

36 뭔가. 얼마나 빤히 들여다보는지 내가 다 민망할 정도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팬티마저 훌렁 벗어버렸다. 내 머릿속에는 빨리 탕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나는 탕을 향하여 몸을 돌렸다. 그렇게 번쩍거리는 눈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 순간의 똥할매의 눈 은 너무 번쩍거리다 못해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똥할매는 이상하리 만치 빛나는 눈으로, 나의 두 다리를, 다리 사이의 중요부분을, 그곳 을 뒤덮고 있는 나의 거웃을 유심히도 들여다봤다. 나는, 나의 풍성한 거시기 털을 바라보며 그렇게 깜짝 놀라는 똥할매를 보고 오히려 더 깜짝 놀랐다. 꼴에 자기도 여자라고 나의 젊음을 시기하나? 질투에 못 이긴 나머지 갑자기 달려들어 내 털을 다 뽑아놓는 거나 아닐까? "똥할매가 언제는 뭐 이유 있는 짓거리를 했냐? 봉투 아줌마의 말 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머리털이 다 하늘로 솟구쳐오르는 기분이었다. 나는 목욕 바구니를 가슴에 와락 부둥켜안았다. 잽싸게 탕으로 튀었다. "돈 주고 가라이! 내 등 뒤에다 대고 똥할매는 또 뭐라고 전혀 엉뚱한 말을 내뱉고 있 었다. 이럴 때는 진짜로 돈 사람 같다. 평일 대낮이라 그런지 탕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온탕 한쪽 가 장자리로 가서 목욕바구니를 내려놨다. 비누칠도 하지 않고 곧장 온탕 으로 들어갔다. 뜨듯하니, 하루 온종일을 이러고 있으라고 해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팔다리를 쭉 뻗고 늘어지게 하품도 해보다가 몸을 뒤집어 배영도 해보다가, 혼자 누리는 목욕탕은 말 그대로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할매! 할매! 안 된다니까! 빨래감이 가득 든 세숫대야를 들고 들어오는 똥할매를 뒤좇아오며 때밀이 아줌마가 소리를 질러댔다. 때밀이 아줌마는 똥할매가 들고 있 는 세숫대야를 낚아채려고 했는데 때밀이 아줌마의 손이 세숫대야를 붙잡는 순간, 똥할매는 세숫대야에 든 빨랫감들을 전부 온탕 속에 쏟 아부었다. 팬티, 버선, 무릎에 큼지막한 구멍이 하나 뻥 뚫려 있는 자 주색 내복바지, 너무 빨아서 너덜너덜해진 레이스가 가슴 앞부분에 흉 측하게 매달려 있는 분홍색 내복 윗도리, 안에 털을 댄 몸빼, 물에 던 36 SDU 디지털 문학

37 져넣자마자 스펀지처럼 물을 쫙 빨아들이고 온탕 바닥으로 잠수해버 린 털스웨터에 조끼까지. 나는 똥할매의 누더기 옷들에 쫓겨 온탕 밖으로 뛰쳐나와야 했다. 때밀이 아줌마는 온탕 안으로 급히 허리를 구부리고 온탕 속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똥할매의 옷가지들을 건져내려고 했지만, 똥할매가 첨 벙첨벙 물소리를 내며 온탕 속으로 뛰어들어와 애인 껴안듯 옷가지들 을 끌어안고 잠수를 해버리는 바람에 뜻하던 바를 이룰 수가 없었다. 똥할매는 때를 불리려는 건지, 빨래를 물에 불리려는 건지, 아니면 그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전부 해치워버릴 생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하 여간에 그렇게 하고 있었다. "할매! 나 좀 살려줘. 때밀이 아줌마는 똥할매의 어깨를 끌어당겨도 보고, 똥할매의 겨드랑 이 밑에 두 손을 집어넣고 "영차, 영차 힘도 써보고, 어떻게든 똥할 매를 끌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똥할매는 꿈쩍도 안 했다. 온탕 속에 푹 들어가 있다가, 자기 딴에도 이만하면 때가 다 불었겠지, 하고 생 각될 만큼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드디어, 똥할매는 일어섰다. 똥할매의 다리 밑으로는 똥할매가 온탕 속에 쏟아부은 옷가지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똥할매는 그 옷가지들을 두 손으로 바짝 움켜 쥐었다. 온탕 속에다 대고 마구 뒤흔들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물이 튀 겼다. 온탕은 삽시간에 세탁기가 됐다. "진짜로 내가 못살아! 오늘은 팔도 아파 죽겠는데 할매! 이번이 마지막이야! 담엔 국물도 없다구요! 때밀이 아줌마의 입에서 알았다고, 내가 빨아줄 테니 할매는 어여 목 욕이나 하라는, 절규와도 같은 외침소리가 터져나오고 나서야 똥할매 는 온탕 밖으로 옷가지들을 하나씩 집어던졌다. 때밀이아줌마는 똥할 매의 옷들이 수북이 쌓여 있는 곳으로 걸어가서 타일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열심히, 비비기 시작했다. "으이구, 내 팔자야. 내가 우리 시어머니 빤스도 한번 안 빨았던 년인 데, 다 늙어서 이게 웬 일이야. 내가, 미쳐, 미쳐! 때밀이 아줌마는 연신 궁시렁댔다. 그러나 그렇게 쉴새없이 입을 놀 리면서도 똥할매의 누더기들을 열심히 비벼 빨고, 땟물이 쪽 빠질 때 교수문단 37

38 까지 헹구고, 한증막으로 들어가 그것들을 쫙쫙 잘 펴서 널었다. "할매! 오늘이 끝이여, 끝! 때밀이 아줌마는 허리에 양손을 갖다대고서 똥할매를 향해 버럭, 소 리를 질렀다. 이번에도 역시 똥할매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노인네라고, 손사래를 치며 탕 밖으로 나가는 때밀이 아줌마 의 이마에는 큼지막한 땅방울들이 참 많이도 맺혀 있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왔다. 나는 오른손에 끼고 있던 때 수건을 손등 위로 바짝 끌어올렸다. 똥 옆에 더 있다가는 무슨 구린 똥맛을 볼지 몰랐다. 얼른 나가는 게 상책이야.' 나는 서둘러 때를 밀기 시작했다. "짝! 소리는 내 등짝에서 울려퍼진 소리였다. 나는 내 등짝을 후려치고 타일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때수건을 내려 다봤다. 내가 시선을 떨구고 그 때수건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이에 똥 할매는 앉은뱅이 의자를 내 앞에다 끌어다놨다. 의자 위에 엉덩이를 내리고 앉았다. 나는 똥할매가 집어던진 때수건과 내 앞에 버티고 앉 아 있는 똥할매를 번갈아 쳐다봤다. 어쩌라는 거냐? 등을 밀라는 거다. 밀 수밖에 없다.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때수건을 주워들었다. 내 때수건을 벗겨내고 똥할매의 때수건을 손에 꼈다. 열심히, 아주 박박, 등을 밀었다. 내가 똥할매 등을 반쯤 밀었을 때였다. 똥할매가 벌떡 일어났다. 일어서면서 똥할매의 엉덩이가 내 코를 스쳤다. 물론 똥냄 새는 나지 않았지만 똥할매 엉덩이는 왠지 불결하게 느껴졌다. 나는 똥할매의 엉덩이가 닿았던 자리를 얼른 물로 씻어냈다. 똥할매는 출입문 옆에 붙어 있는, 때 미는 플라스틱 침대 위에 가서 누워 있었다. 저기는 돈 내고 때 미는 사람들만 눕는 덴데, 거기는 왜 올라가서 누웠나? 나는 멍하니 똥할매를 쳐다보고 있었다. 똥할매는 침대에 배꼽을 대고 가만히 누워 있다가 내가 손에 끼고 있던 똥할매 의 때수건을 손에서 벗겨내려고 하는 순간, 발딱 일어나 앉았다. 똥할 38 SDU 디지털 문학

39 매의 두 눈이 나를 향해 경찰차의 경광등처럼 붉은 불을 내뿜기 시작 했다. 어쩌라는 거냐? 와서, 등만 말고, 몸을 전부, 다 밀라는 거다. 밀 수밖에 없다. 나는 세숫대야에 던져뒀던 내 때수건까지 왼손에 꼈 다. 양손에 푸른 때수건을 끼고서, 똥할매가 누워 있는 때 미는 침대 로, 때밀이 노릇을 하러 갔다. 플라스틱 침대 앞에 섰다. 밀다 만 똥 할매 등을 마저 밀었다. 몸통 옆으로, 찢어진 날개처럼 축 늘어져 있 는 팔뚝 하나를 침대 위로 들어올렸다. 똥할매의 팔뚝은 딱, 우리 조 카 아라의 팔뚝만했다. 나는 내 손아귀에 쥐어져 있는 똥할매의 팔뚝 을 가만히 눌러봤다. 똥할매의 팔뚝은 내가 누르는 대로 안으로 깊숙 이 눌려 들어갔다. 똥할매는 온몸을 탄성이 조금도 없는 살점으로 휘 감고 있었다. 갑각류가 자신의 몸을 딱딱한 껍질로 휘감고 있듯. 탄성 이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누르면 누르는 대로 찌그러지고, 때리면 때 리는 대로 멍이 든 채 그저 그 자리에서 가만히. 그가 누구든, 그 것이 무엇이든 그저 묵묵히 견뎌내는 일이다. 나는 가만히 숨을 들이마셨다. 똥할매의 팔뚝을 꽉 부여잡았다. 팔뚝 을 밀고, 거기 몇 점, 되지도 않는 살점에서 수북이 밀려나오는, 새까 맣게 타버린 숯덩이처럼 손끝에서 부서져내리는 때를 손바닥으로 훔 쳐냈다. 이제 똥할매의 넓적다리 하나를 붙잡았다. 똥할매의 두 다리 는 바깥쪽으로 심하게 뒤틀려 있었다. 너무 앙상하거나 기형적으로 뒤 틀려 있는 나무를 보게 되면 우선은, 그 나무의 뿌리가 온전한지를 먼 저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나는 똥할매의 발목부터 내려다봤다. 저 가 는 발목 안에는 과연 어떤 발목뼈가 숨겨져 있나? 무언가를 확인하듯 이 나는 똥할매의 가는 발목을 몇 번이고 만져보고 만져봤지만 '앙상 함'이라는 단어말고는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때를 밀며, 똥할매의 앙상한 몸과 뒤틀린 다리를 바라보며, 나는, 똥 할매의 이 앙상함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누가, 어떤 바람이 불어와 이 나무의 줄기를 이렇게 뒤틀어놓았는지를 묵묵히 곱씹어야 했는데 그것은, 똥할매는 일부러, 내가 자기를 미워한다는 것까지 간파하고 서 이런 식으로 나를 고문하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해야 했을 정도로 교수문단 39

40 나에게는 싫고, 괴로운 일이었다. 똥할매가 앞으로 돌아누웠다. 나는 너무 눈이 부셔 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떴다. 똥할매의 목에는 24K 순금 목걸이들이 과실나무의 열매들 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목욕탕의 노란 전구 아래서 그것들이 내뿜고 있는 빛은 울고 싶어질 만큼 현란했다. 똥할매의 팔목에 매달 려 있는 다섯 개의 순금 팔찌들과 할매의 목을 칭칭 감고 있는 금 목 걸이의 값을 전부 합치면, 그 값은 아마도 똥할매의 말라비틀어진 몸 뚱이와 저 형편없는 공중화장실을 전부 합친 값보다도 비싼 액수이리 라. 배꼽 위에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똥할 매는 더 없이 행복하고 편안해 보였다. 온기가 없는 금덩이로 자신의 지나간 생( 生 )을 위로받으려고 하는 똥할매의 모습은 그러나, 영원히 썩지 않는 관속에 갇힌 채로 아직까지도 입가에 미소를 띠고 서 있는 미라만큼이나 스산하기도 했다. "사탕 사먹어라이! 탈의실 마루에 앉아 머리에 묻은 물을 털어내다 말고 똥할매는 때밀 이 아줌마를 불렀다.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내밀었다. 아까 빨래해 줬다고, 고맙다고 주는 돈인 듯했다. "요새 누가 사탕 먹어요! 때밀이 아줌마도 자존심이 있지, 나 같아도 저까짓 거 오백 원, 안 받고 만다. "우유 사먹어라이! 때밀이 아줌마가 사탕 안 먹는다니까 똥할매는 그럼, 우유를 사먹으 란다. 똥할매랑 더이상 실랑이를 벌이는 것도 지겨웠는지 때밀이 아줌 마는 똥할매가 내민 오백 원을 받아들고 텔레비전 앞으로 가버렸다. "너도 사탕 사먹어라이! 똥할매가 나한테도 오백 원을 내밀었다. 군말 없이 그 돈을 받으면 왠지 체면이 깎일 것 같다고 판단한 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할매! 이게 뭐야? 줄려면, 이런 목걸이나 하나 주면 또 몰라. 똥할매의 목에 걸린 금 목걸이 하나를 슬쩍 건드렸다. 똥할매는 공처럼 튀어올랐다. 때밀이 아줌마가 한증막에서 걷어다 옆 40 SDU 디지털 문학

41 에 놔준 옷가지들을 와락 부둥켜안았다. 사물함 구석으로 뛰어갔다. 몸을 한껏 웅크리고 쪼그려 앉았다. 숨도 내쉬지 않았다. 바들바들 떨 리는 손으로 목에 걸려 있는 금 목걸이를 꼭 쥐었다. 자신과 금 목걸 이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나를,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노려봤다. 나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똥할매는 내복 윗도리의, 끝이 다 닳아빠 진 소맷부리를 끌어당겨 금 팔찌를 가리고, 늘 목에 두르고 다니는 고 동색 마구라로 목을 칭칭 감아 금 목걸이들을 감쪽같이 숨기고 나서 야 아주 조그맣게 가느다란 한숨을, 휴우 내쉬었다. 뒤집혀져 있는 몸빼를 그대로 입은 채로, 덧버선도 신지 않고서 똥할 매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자기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자기도 모르겠 다는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탈의실을 둘러보다가, 두려움으로 희 번덕거리는 눈으로 나와 내 너머의 저 어딘가를 노려보고 나서. 나는 똥할매가 뛰쳐나간 비상구를, 그 위에 앉아 똥할매가 머리에 묻 은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내고 있었던 탈의실의 마루를 바라봤다. 할매! 할매는 언제부터 화장실에서 살았어? 화장실엔 왜 왔구? 할매! 화장실 앞에, 그렇게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 지겹지 않어? 거기서 한 평생 뭘 보고 있었는데? 누구,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 할매 눈은 또 왜 그렇게 반짝거리는 거고. 뭘 보면, 누굴 보고 있으면 그렇 게 반짝거리는 눈을 갖게 되는데? 할매! 할매는 거기서 정말 뭘 본 거 야, 응? 할매? 나는 똥할매한테 묻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똥할매는 그러나 내가 그 옆에 다가가 앉아보기도 전에 아주 멀리, 달아나버렸다. 나는 내 유년의 기억 속에서마저 아스라한 풍경으로 자리잡고 있는 똥할매, 그녀가 앉아 있던 마루 위에 가서 앉았다. 거기 놓여 있는 오 백 원짜리 동전을 주워 손바닥 위에 올려놨다. 아주 잠깐이지만, 이 은빛 눈동자에는 여기 아닌 다른 데말고, 내가, 똥할매 당신이 살고 있는 지금, 이곳이, 분명, 똑똑히 어려 있었다. 똥할매가 내던지고 나간 오백 원짜리 동전, 어느 늙은 여인이 어쩌다 그렇게 영영 잃어버리고 만 은빛 눈동자 하나가 내 얼굴을 빤히 올려 다보고 있었다. 교수문단 41

42 "봉투 말대로 핸드폰 하나 살까봐. 하루 이틀도 아니고. 구멍가게 영석이 엄마가 핸드폰 타령을 했다. 공중화장실에 가려면 아쉬운 대로 핸드폰이라도 하나 장만해야겠다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크구먼. 아니, 똥 싸려고 핸드폰 산다는 얘기는 내 가, 살다 살다 또 첨 들어보네. 그러지 말고, 오늘 저녁부터는 나랑 공원으로 달리기나 하러 가. 평소 영석이 엄마를 며느리 대하듯 하는 우리 엄마다. 이번에도 엄마 는 영석이 엄마를 며느리 혼내듯이 혼냈다. "달리기? 영석이 엄마는 똥 싸는 거랑 핸드폰이랑 달리기가 대체 무슨 상관인 지, 영문을 몰라하면서도 언제나 그렇듯이 삼오식당 여주인, 우리 엄 마를 따라나섰다. 똥할매가 공중화장실 문을 밖에서 걸어 잠그기 시작하면서 장터길에 사는 여자들, 그중에서도 화장실 없는 건물에 세들어 살고 있는 여자 들은 삼오식당 가겟방 안에 있는 세탁기 옆자리의 수챗구멍에다 대고 수시로 용변을 보고 있었다. 장터길 여자들이 세탁기 옆, 수챗구멍을 찾는 횟수가 빈번해지면서부터 엄마는 난데없이 저녁운동을 시작했 다. 날도 추운데 갑자기 웬 저녁운동이냐고 식구들이 묻자, 엄마는 관 절염엔 슬슬 걷는 게 최고라고, 관절염 고치려면 세상에 좋다는 약도 다 필요 없고, 그저 살 빼는 게 우선이라고, 우리 엄마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말을 했다. 평소 엄마는, "걷기는 뭘 또 걸 어? 그거야 팔자가 좋아서 하루 왼종일 자빠져 있던 사람들한테나 맞 는 얘기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루 왼종일 뛴 사람한테 뭘 또 걸으 랴?" 거나, "다이아트? 뱃심으로 사는 사람한테 먹지도 말라고 하면 그게 죽으라는 소리지, 살라는 소리여? 하고, 의사 말은 다 개가 멍 멍 짖는 소리로만 흘려 듣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의 입에서 다이어트가 어쩌고, 슬슬 걷는 게 어쩌고 하는 말이 줄줄 흘러나오니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더욱 신기한 일은, 엄마의 이 난데없는 저녁운 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하루하루 늘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다. 좀전에 말한 대로, 엄마의 저녁운동에 맨 처음 따라나선 사람은 구멍 42 SDU 디지털 문학

43 가게, 영석이 엄마였다. 영석이 엄마는 우리 엄마를 따라서 저녁운동 을 한 번 갔다오더니 그뒤로는 매일같이 따라나섰다. 그뒤로 영석이 엄마는 핸드폰의 '핸'자도 꺼내지 않았다. 그 다음엔 봉투 아줌마였다. 저녁운동을 시작한 뒤부터는 봉투 아줌마의 입에서도 역시, "다른 건 몰라도 이 핸드폰은 꼭 들고 가야겠더라고 등등의 말이 쑥, 들어가 버렸다. 그 다음엔 삼오식당 배달부 독산동 아줌마, 그 다음엔 당진상 회 할머니, 어쩌다 한두 번 들르는 커피장수 차씨 아줌마까지. 이제 저녁이면, 장터길의 웬만한 아줌마들이 다 삼오식당 앞으로 모 여들었다. 몸집 좋은 이 아줌마들이 옆으로 길게 늘어서서 걸어가는 걸 보고 있으면 장터길 골목이 다 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줌마들은 같이 우르르 몰려갔다가 한 시간쯤 지나서 또 다들 우르르 몰려왔다. 아줌마들이 다시 돌아오면 장터길 안은 썰물 때 밀려나갔던 물이 다 시 밀려들어왔을 때의 갯벌처럼, 한동안은 소란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삼오식당 테이블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실컷 재재거리다가 양 재기에 물 한 대접씩 따라 마시고 나가는 장터길 여자들의 얼굴은 어 쩌면 그렇게도 한결같은지 몰랐다. 다들, 오래 묵은 변을 방금 막 뽑 아내고 나온 사람들처럼 개운한 표정이었다. "어뗘? 오늘은 자기도 운동 한번 해볼 거야? 어느 날 저녁, 마침 엄마가 운동하러 가는 시간에 0번 앞자리, 김 여 사가 수챗구멍을 찾아 삼오식당으로 들어왔다. "운동요? 저는 괜찮은데 아줌마들이나 재밌게 다녀오세요. 0 번 앞자리, 김 여사가 순순히 따라나설 리가 없었다. 김 여사에게 는, 장터길 안에서라면 또 몰라도, 시장 여편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 고 길거리를 활보할 생각 자체가 없었던 거다. 어찌어찌해서 지금은 영등포 시장바닥까지 밀려왔지만 그래도 나는 시장 여편네들하고는 격이 다르다. 살려고 하다 보니 내 비록 지금은 당신들 같은 무지렁이 들하고 어울려 밥도 먹고 한식구처럼 지내고 있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나는, 나 놀던 물로, 말만 들어도 벌써부터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저 무도장으로 다시 돌아갈 사람이다, 이상이 0번 앞자리, 김 여사의 속내라는 것을 장터길 사람들 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본인들 말 로는 동대문 어디에서 옷장사를 하다가 아이엠에프(IMF) 때 망해서 교수문단 43

44 여기까지 흘러들어 왔다고 하지만 장터길 사람들은 그들 부부의 말을 곧이 듣지도 않는다. 여자 손님만 들어왔다 하면 허리가 90도로 굽은 꼬부랑 할머니든 여중생이든 노소를 가리지 않고 눈웃음을 살살 흘리 며 어떻게 한번 후려볼까, 눈을 희뜩거리는 그 남편이나,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고 해봤자 과일 짝이나 들었다 놨다 할 뿐인데도 무슨 사 교모임에 나가는 귀부인처럼 귀걸이, 목걸이, 반지에 팔찌까지 악세서 리도 아주 세트로만 달고 나와서는 시장놈들 혼을 쏙 빼놓으려고 하 는 그 여편네나, 부부가 모두 싹수가 노래도 한참 노랬다. 배운 게 도 둑질이라고, 장터길 사람들은 0번 앞자리 부부의 전직이 제비와 꽃뱀 이었음을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려? 그럼 집이는 핸드폰 하나 장만해서 똥할매한테나 가야겠구 먼. 삼오식당 여주인의 의미심장한 한마디. 김 여사는 혼자 뭔가를 곰곰 이 생각하더니 삼오식당 여주인의 뒤를 쫓아갔다. 장터길 아줌마들과 한데 나란히 엉겨 걸어가고 있는 김 여사의 얼굴은 그야말로 똥 씹은 표정이었다. 싫다는 김 여사까지 구태여 끌고 간 이유는 뭘까? 나는 바람난 남편을 미행하는 여자처럼 마음 졸이며 장터길 아줌마 들의 뒤를 밟았다. 아줌마 부대가 멈춰 선 곳은, 장터 공원 안, 구립 어린이집 앞의 미 끄럼틀 주변이었다. 아줌마들은 손을 맞잡지는 않았지만 손을 잡은 것 보다도 더 일사불란하게 발까지 맞춰가며 미끄럼틀 주변을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입으로는 "헛둘! 헛둘!" 제법 달리기하는 것처럼 구령 을 붙이고 있었지만 정작 뛰는 것처럼 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 끄럼틀 주변으로 동그란 원을 그리며 그저 슬슬 걷고 있을 뿐이었다. 세 바퀴쯤 돌았나, 삼오식당 여주인, 우리 엄마가 먼저 무리를 이탈해 나와 어린이집 반대편 쪽에 우르르 몰려 서 있는 나무숲 뒤쪽으로 걸 어갔다. 누가 분명하게 경계를 그어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쪽은 원래 거지들 전용이었다. 우리 동네 장터 공원은, 내 아들 현이가 다니고 있는 구립 어린이집 앞의 미끄럼틀 주변은 동네 조무래기들과 노인네 들이 주로 애용하고, 어린이집 반대편으로 제법 커다란 나무들이 줄지 44 SDU 디지털 문학

45 어 서 있는 나무숲 뒤편, 등나무 벤치 쪽은 영등포 일대의 거지들의 숙소로 이용되고 있다. 거지나 노숙자가 아닌 다음에야 웬만해선 그쪽 으로 가지 않는다. 십 분 남짓한 시간이 흐르고, 나무숲 뒤편으로 사라졌던 엄마가 미끄 럼틀 앞으로 되돌아왔다. 삼오식당 여주인이 다시 무리에 합류하자, 이번엔 봉투 아줌마가 빠져나왔다. 봉투 아줌마 역시, 좀 전에 삼오식 당 여주인이 사라졌던 나무숲 뒤편으로 걸어갔다. 그 사이에 아줌마들 은 미끄럼틀 주변을 두세 바퀴 돌았다. 봉투 아줌마가 다시 합류하고 독산동 아줌마가 빠졌다. 독산동 아줌마 역시, 앞의 두 여자가 갔던 곳으로 걸어갔다. 독산동 아줌마 다음에는 커피장수 차씨 아줌마, 차 씨 아줌마 다음에는 영석이 엄마, 그 다음에는 당진상회 할머니. 저편 나무숲으로 사라졌던 당진상회 할머니가 되돌아오자, 아줌마들 의 뺑뺑이돌기'는 잠시 중단되었다. 아줌마들은 가쁜 숨을 고르며 0 번 앞자리, 김 여사를 둥그렇게 에워쌌다. 모르는 사람이 멀리서 보 면, 할머니들이 젊은 여자 하나를 에워싸고서 무슨 행패라도 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일 판이었다. 장터길 아줌마들이 저마다 뭐라고 한마디 씩 하고 있었다. 김 여사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무숲 뒤편을 손가락 끝으로 가리켰다. 김 여사의 얄쌍한 손가락 끝을 바라보며 아줌마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김 여사는 터벅터벅, 나무숲 뒤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장터길 아줌마들이 뒤따랐다. 김 여사를 앞장 세우고 장터길 아줌마들이 전부, 나무숲 뒤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저 뒤에 대체 뭐가 있나? "어뗘? 내 말대로만 하믄 감쪽같겠지? 나무숲 뒤쪽에서 삼오식당 여주인의 걸쭉한 목소리가 들리고 뒤이어, "누가 아니래. 하여간에 삼오식당 머리 따라갈 사람 없다니까. 공부만 좀 했으면 삼오식당이야말로 진짜로 뭐 하나는 했을 사람인디. 봉투 아줌마의 아부 비슷한 발언이 있고, 그뒤로 또 곧장, "그동안은 왜 이 생각을 못했나 몰라. 안 그래 봉투? 바께쓰가 그게 보기에만 둥글넓적하지 세상에 불편한 게, 그게 바로 바께쓰야. 쑥쑥 잘 빠져나올 때는 그래도 그렇다고 쳐. 안 나올 때는 정말 사람 미친 다고. 바께스 위에 올라타고 오래 쪼그려 앉아 있으면 엉덩이가 얼마 교수문단 45

46 나 아픈 줄 몰라. 일어나서 보면 엉덩이에 빨갛게 바께쓰 자국이 나 있다니까. 구멍가게 영석이 엄마가 바께스에 얽힌 구구한 경험담을 털어놨다. 밤이면 플라스틱 바께스를 변기로 이용하며 살고 있는 장터길 아줌마 들은 영석이 엄마를 향해 일제히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아줌마들의 대화가 이쯤에 이르자, 나는 미행이고 뭐고 궁금해서 더 는 참을 수가 없었다. 플라타너스 나무 뒤에 숨어 있다가 내가 갑자기 확, 나타났는데도 아줌마들은 나한테는 눈길도 한번 안 줬다. 아줌마들이 그 앞에 모여 서 있는 곳은, 공원 화장실 앞이었다. 말이 화장실이지 허허 벌판에 합판 몇 개 맞대어놓고 그 안에 양변기 하나 들여다놓았을 뿐이었다. 꼴에 그래도 그 안에 양변기가 들어가 앉아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나는 아줌마들을 헤치고 들어가 화장실 앞에 섰다. 양변기는 양변긴데 물 내리는 손잡이가 안 달려 있었다. 어디 천장에 달렸나? 천장에도 역시 물 내리는 끈은 안 달려 있었다. 물 내리는 끈은 없고, 벽에 벽보가 하나 나붙어 있었다. 친환경적인 소멸식 화장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공원녹지과> 친환경적인 소멸식 화장실이 뭔가? 나는 화장실 안쪽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양변기 안을 자세히 들여 다봤다. 밑바닥이 뻥, 뚫려 있었다. 양변기 바닥은 깜깜한 낭떠러지였 다. 그러니까 친환경적인 소멸식 화장실이란, 무늬만 수세식 양변기지 실상은 푸세식 화장실에 다름 아니었던 거다. "어뗘? 내 말대로 내일은 타이루 가게에 한번 가보자고. 우리도 세탁 기 옆으로다 이렇게 밑 뚫린 양변기를 하다 들여놓는 거야. "그런 다음에는요? 땅을 파고 고무 다라이라도 하나 묻겠다는 거예 요? 0 번 앞자리, 김 여사가 삼오식당 여주인의 말에 삐딱허니, 토를 달기 도 했지만, "구멍은 왜 파? 머리는 뒀다 뭐 혀? 수챗구멍 위로다가 바로 요 밑 46 SDU 디지털 문학

47 뚫린 변기를 올려놓으면 되지. 그러면 땅 파고 어쩔 것도 없어. 그냥 쭈그려 앉아서 싸고 물 붓나, 요기, 요 위에 엉덩이 척 걸치고 앉아서 편하게 싸고 물 붓나, 물 붓는 건 마찬가지여. 어디, 내 말이 틀려? 내가 양변기를 갖다놓으면 자네들도 인제는 다리 안 아프고 좋지 뭘 그려. "맞어, 맞어. 거기 모여 있던 장터길 아줌마들은 삼오식당 여주인의 말에 모두들 일절 다른 이견이 없었다. "이까짓 거, 밑 뚫린 양변기가 이게 얼마가 됐든지 간에 이번 참에 하 나 들여놓자고. 삼오식당 여주인의 목소리가 사뭇 비장하고, "그라믄, 그라믄. 하나 사. 얼른 사잉. 삼오식당은 관절염도 있잖어. 다른 데는 아껴도 이런 데는 돈 아끼는 게 아니라니께. 원님 덕에 나 발 분다고 우리도 인자는 낼부텀 수세식 화장실 쓰게 되뿌렸네!" 커피장수, 차씨 아줌마는 노래 부르듯 말을 뽑아내며 어깨춤마저 덩 실거렸다. "좋다고 또 들어가서 엉덩이 걸치고 앉아서 한나절 있다 나오고 그러 면 안 돼. 특히, 김 여사, 자기 말이야. 장터 공원 안쪽에 새로 생긴, 친환경적인 소멸식 화장실 앞에는 한떼 의 아줌마들이 몰려 서서 그네들이 살면서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화장실 건설의 계획을 세우고 있고, 아줌마들의 등 너머, 등나무넝쿨 밑의 벤치 위에는 얇은 겉옷을 걸친 거지들 몇이 신문지를 덮고 누워 서, 자정의 추위가 몰고 올 불면에 대비해 벌써부터 이른 잠을 청하고 있었다. 거지들이 누워 있는 벤치 옆으로, 허리 휜, 잎 다 떨어진 등나무 하 나가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네 개의 쇠기둥 중, 제 앞에 서 있는 쇠기 둥 하나를 꼭 끌어안고 있다. 온기가 없는 쇠기둥을 부둥켜안고 있는 등나무는, 단지 겉모양만 저와 꼭 닮아 있는 그 쇠기둥을 제 온몸 으로 끌어안고 있는 그 등나무는, 그러나 몸통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온전한 몸통으로 곧게 서서 제 한 몸 버텨내기를 관두고 누군가를 향 해 허리를 구부린 그 등나무는, 몸통을 찢어 팔을 만든 그 등나무 교수문단 47

48 는, 그러나 그 가는 두 팔로 제 앞에 놓여 있는 쇠기둥을 으스러지게 껴안고서 쇠기둥 너머 저 너른 하늘 위로 제 가지를 아득히 넓게 뻗 어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 한 그루의 등나무가 억세게 껴안고 있는 쇠기둥으로 다가가 입술을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아, 하늘의 별처럼 아득히 먼 곳에 떠 있는 우리들의 화장실이여! 쇠기둥 위로 온기가 닿았던 자리만큼 뽀얗게, 사람의 입김이 서려 있 었다. 이명랑 : 소설가, 1997년 새로운 제1호를 통해 등단 산문집 위로 外 다수,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창학부 교수 48 SDU 디지털 문학

49 교수문단 다원화 시대의 한국문학 임헌영 1. 무엇이 21세기 문학의 특징인가 21세기는 여러 의미가 있으나 노마드(nomade)시대의 본격화(가타리 와 아타리. 그리고 들뢰즈의 분석)란 견해도 강하다. 도시 유목민 화 속의 인간상(가벼움, 자유로움, 환대, 경계심, 접속, 박애), 7백만 이상 도시가 지구 위에 5백 개 탄생, 3백여 국가, 청소년 30억(전인류 80억), 평균수명 120여세를 전망하는 엄청난 변화는 문학조차 이대로 일 수는 없도록 압박한다. "1만 년 전에 정착된 (농경)문명은 머지않아 유목(노마디즘)을 중심 으로 재건될 것이다 는 선언은 "지난 30년 전부터 인류의 5%가 유 목화하였다. 대표적인 경우가 외국인 근로자, 정치적 망명자, 자신들 의 땅에서 쫓겨난 농민들, 하이퍼(초상류) 계급의 구성원들이다. 미국 에서는 주민 5명당 1명이, 유럽에서는 10명당 1명이 매년 이사를 다 닌다. 30년 후에는 적어도 인류의 10분의 1이 부유하든 가난하든 유 목민이 될 것이다. (자크 아탈리 <<21세기 사전>>)는 말로 노마드의 개막은 입증된다. 해외 동포가 7백만, 연도별 해외 여행자 1천만, 연간 외국인 입국자 5백만, 약 20개국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 50만 명을 감안하면 한국 사 교수문단 49

50 회구조는 노마디즘의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마드 현상으로 말마암아 최근 한국문학은 기행체 소설, 기행시, 기 행수필이 대유행을 하고 있다. 이런 노마디즘 현상은 문학에서 다음과 같은 몇가지 중요한 변모 현상을 나타낸다. 첫째 가족 분해와 해체를 기본적인 정서로 삼는다. 세계 문학사에서 서사구조의 가장 큰 요인은 가족 갈등'이었다. 권지예의 소설은 노마디즘의 공식에 너무나 들어맞는 작품들인데, 여 기서 주인공들은 고착된 가족관을 초탈한 채 애정을 추구하다가도 다 시 가족으로 회귀한다는 점에서 윤대녕과 다르다. 윤대녕의 인물들은 만난 지 3시간 만에 러브호텔에 들어갈망정 사랑 한다거나 결혼하자는 말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데, 권지예의 주인공들 은 어떤 강력한 애정도 동거 형태의 삶'(보통 사람들의 가치관에 의 한 결혼이란 개념과 동일시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으로 회귀하 는 서사구조를 갖추고 있다. 어디 해방을 꿈꾸지 않는 영혼이 있으랴만 권지예는 그 숱한 인간상 가운데 유독 창백한여인' 들의 처지에서 그 아픔과 고뇌를 증언하는 데 작가의식을 소진한다. 바로 이런 상처를 드러낸 전형적 여인상으로는 <나무 물고기>의 한 미아를 들 수 있다. 40세이면서도 전혀 나이를 짐작 못하게 만드는 이 백조' 여인은 " 오랜 세월 프랑스에서 살았으며, "남편은 고고미술사학을 공부 해... 교수가 되었고, 자신은 가끔 번역이나 하고 지내는, 겉보기 에는 행복한 이 여자. 수영 강습 기초반에 다닌지 "보름이 넘었건만 물에 뜨지를 못 하는 한미아를, "10년 전 고향에서 올라와 전문대를 겨우 다니다 만 남자 수영 코치의 시선으로 기록한 게 이 작품이다. 이쯤 하면 눈치 빠른 독자들은 대뜸 아, 유부녀와 수영코치의 불륜을 상기할 테고 사실 그 예측은 빗나가지 않는다. 감기로 일주일간 결석 하자 남자는 여자에게 연락해서 만나게 되고, 그녀의 초청으로 집에까 지 가서 "남편이 아프리카 조각에 관심이 많아 파리 있을 때 모두 사 모은 탈과 가면, 목조 전신상 중 유독 어느 부족들이 모시는 목 어( 木 魚 ) 곧 작품 제목인 나무 물고기'에 시선이 머문다. 달마의 오 50 SDU 디지털 문학

51 묘한 전설이 스며있는 이 나무 물고기를 여주인공은 "생물을 깨우치 기 위해서 와 "영혼을 좋은 곳으로 천도하기 위해 서라고 남자에게 풀이해 주는데, 바로 여기에 그녀의 원죄의식이 숨겨져 있다. 그녀는 일곱 살 때 낮잠에서 깨어나 홀린 듯이 물로 걸어들어 가버 려 오빠가 구출하러 따라 들었고, 놀란 어머니가 그 뒤를 이었으며, 나중엔 아버지가 뛰어들어 나'(한미아)를 구해 놓곤 다시 물로 들어 갔으나 셋이 다 익사한 죄의식에 젖어있다. 그녀의 별명은 '물귀신'이 나 정작 물에만 들어가면 허우적대기만 해서 "두려워하는 것에 도전 해 보자고 수영을 배우 려 했다는 내력이 밝혀진다. 여인은 남자가 요구하는 돈 3천만원을 선뜻 주선해줄 뿐만 아니라 남편이 해외로 나간 틈을 타 여행을 주선했다. 그러나 정작 바닷가 호 텔에서 "밤을 기다려왔던 달떠 있던 여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꼼짝 않고 잠에 빠져들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행방불명이었다. 작가는 여기서 또 반전을 시도한다. 그녀의 남편이 찾아와 전한 말로 는 이런 행불이 "이번이 세 번째 로, "없어지긴 물가에서 모두 없어 졌는데, 엉뚱한 데서 찾지요. 첫 번째는 결혼 전이었는데, 강원도의 절에서 찾았구요. 두번째는 대구에서 찾았어요. 찾으면 술래에게 들킨 어린애처럼 얌전하게 돌아오지요. 난 이제 찾지 않을 거요. 지쳤어 요. 이번엔 어쩐지 내게 돌아올 것 같지도 않구요. 라는 것이다. 이 여인, "천형의 긴 그림자 (작가의 <창작 노트>)에 끌려 다니는 창백한 여인, "지상에 잘못 올라온 인어 같은 여인이 곧 권지예의 소 설을 관통하는 한 전형성을 이루고 있으며, 그런 여인을 위해 남자들 이 아무리 나무 물고기(목어)를 두드려줘도 그녀의 영혼은 구원받지 못한 채 중음신으로 헤맬 뿐이다. 그게 바로 권지예의 여인상들이다. 인생이란 화려하지도 않고, 더군다나 장엄하지도 않으며 다만 뱀장어 의 몸부림과 같은 격정을 조용히 끓여내는 것이 아닐까. 스튜 냄 비의 밑바닥처럼 뜨거움을 견디고 살아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조용히 스며들기 때문이다. 신이 조절한 타이머에서 종소리가 날 때까지 말이다. 하긴 꼭 뱀장어 스튜가 아니면 어떤가. 삼계탕이나 곰 탕, 뭐 이런 것들도 조용히 끓고 있는 것이다. <뱀장어 스튜> 교수문단 51

52 <뱀장어 스튜>는 우리시대의 황량한 윤리의식의 부표다. 탕녀와 정 절녀의 구분법이 효력 상실해버린 후기산업사회의 사랑법은 여기서 그 이정표가 다시 세워질 것이다. 주제에 걸맞 게 형식도 잘 짜여진 정치한 액자소설이다. 그것은 불륜이 있으면 가정은 파탄한다는 뻔한 윤리적 결말이나, 이 런 지경이면 가족을 버리고 애인을 따라가야 한다는 농경적 낭만주의 의 가치질서를 파기한다. 불륜 이후에도 떳떳하게 남편에게 회귀하는 엘리카 종의 <<날기가 두렵다>>가 미국적 노마드의 출발이라면, 불륜 이 가족 해체가 아니라 도리어 가족 수호의 바탕이 되었다는 <<매디 슨 카운티의 다리>>는 미국적 노마디즘의 절정이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다성욕(polysexuality)'으로 이름 부친 이 시기 의 노마디즘은 개인들만큼 많은 성'을 인정하는 단계를 뜻한다는 점 에서 페미니즘과 직결된다. 노마디즘의 문학은 이런 초보적인 작품 성과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정작 한국사회는 이미 노마드화로 깊숙하게 빠져들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현대홈쇼핑의 캐나다 매니토바주 이민상품 판매가 80분만에 175억 원을 올렸다는 신화와, 이민 희망 이유로 한국사회에 대한 불만을 거 론한 게 50%란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상층 노마드 계급에 속하는 이런 통계수치의 참모습을 파헤쳐 주는 문학이 아직도 없다는 사실은 그만큼 우리 문단의 조망대가 낮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문학의 왜소화를 느끼는 대목이기도 하다. 노마드 문학이 놓지고 있는 게 또 있다. 하층 노마드에 작가들의 시 선은 아직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19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늘어난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은 대략 30여만 명으로 추산하는데, 세계적으로 는 1억 5천 만 명에 이르고 있다. 주로 제3세계 나라의 유이민으로 이뤄진 이런 외국인 노동자 급증현상은 노마드 사회가 상류층이 주도 하지만 하류층도 피할 수 없는 숙명임을 일깨워 준다. 이런 국제적 노마드와 결부해서 국내적 노마드 현상도 지나쳐서는 안될 것이다. 국내에서는 1998년부터 쓰기 시작한 '홈리스족'(중앙일 보 1.20.)이란 술어가 극빈층만이 아닌 30-40대의 화이트 칼러 근로 52 SDU 디지털 문학

53 자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은 하류층 노마드화 현상을 가속화시킨다. 세계화란 곧 노마드의 다른 한 측면이며, 21세기의 신제국주의의 출 현은 이를 가속화한다는 점에서 노마디즘은 환경생태계 문제와 함께 가장 중요한 문학적 주제로 부상할 전망이다. 이런 현상을 다룬 작품 이 박범신의 <<나마스테>>이다. 노마드 시대는 무엇이나 불확실하다. 갈브레이스의 술어인 불확실성 의 시대란 21세기에 적중할지 모른다. 어떤 재벌도 역사의 부침 속에 서 불확실하여 1세기 동안 지속된 기업이 거의 없다.(미국은 제너럴 엘렉트 릭 뿐). 문학도 다양화, 단명화하여 최근에는 베스트 셀러의 단명화가 현저하다. 2. 불륜의 폭증과 사랑 부재. 가족의 분해. 줄리아 클리스테바는 <<사랑의 정신분석>>에서 현대인은 사랑의 결 핍에서 모든 병이 생기기 때문에 이 치유법은 에로적 사랑에서 아가 페적인 사랑으로의 전환이 절실하다는 진부한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후기 산업사회의 타성적인 사랑은 이미 로버트 제임스 월러 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처럼 일상화된 사랑, 사랑 때문에 인생을 바꾸지 않는 보통 사랑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5년 결혼 생활 뒤 9년 전에 아내와 헤어진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는 보통 여자 프란체스카 존슨과 열렬히 사랑했지만 그 어느 쪽도 자기 인생의 행 로를 바꾸진 않았다. 모순은 이런 점이야. 만일 로버트 킨케이드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오랜 세월을 농촌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 같지 않구나. 나흘 동안, 그 는 내게 인생을, 우주를 주었고, 조각난 내 부분들을 온전한 하나로 만들어 주었어.(프란체스카의 말). 이전 시대의 소설이라면 당연히 가정이 파탄 나야 하지만 오히려 반 대현상이 나타난다. 공지영의 <조용한 나날> (단편집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수록)도 바로 이런 변모를 담아낸다. 첫 애인을 다른 여인에게 보내주고, 결혼 교수문단 53

54 한 남편 역시 또 다른 여인에게 가게 한 뒤 결혼한 여주인공은 36세. 나는 옷을 벗고, 강물이 베란다 밑에서 찰랑이는 모텔 방에서 김대리 와 익숙한 섹스를 했다. (...) 남편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 나는 눈을 내리깐 채, 수첩을 꺼내 오늘자 일기를 메모한다. 아무 일 도 없었다. 오늘도 조용한 하루였다, 라고. 한국 소설에서 사랑의 변천은 아줌마 세대의 반항 혹은 순응으로 투 영된다. 통상 38-59세 사이를 지칭하는 중년이란 단어에 묶일 수 있는 게 전체 여성의 23%를 넘을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고 보면, 그리고 이 계층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독서인임을 감안한다면 중년 여 성의 문학은 그리 안이하게 넘길 화두가 아니다. 중년 여성의 위기를 첫째로는 "인생의 목표와 성취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자신이 늙어 가고 있으며 결국 죽으리라고 인식 하는 것, 둘 째는 "세대간의 간격, 셋째는 "육체의 변화, 넷째는 "가족 속에서 의 역할 변화 를 들고 있다(여성을 위한 모임 지음 <<제3의 성 - 중 년 여성 바로 보기>> 현암사 1999, 제1장 참고). <<아줌마는 야하면 안되나요?>>(양은영 지음, 다솔, 1995)나 <<주부 가 말하는 성 이야기>>(이재경. 김영미, 지성사, 1995) 등등의 노골성 을 드러내면서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한 격이 되어 버렸다. 유부녀의 애인 신드롬에 대한 설문조사. "애인이 있으면 좋겠다 에 대한 응답 ; 정말 그렇다(1.2%), 그렇다 (15%), 그렇지 않다(39.1%), 전혀 그렇지 않다(22.5%), 잘 모르겠다 (22.2%). "만족스런 성생활이 없다면 결혼생활은 행복할 수 없다 에 대한 응 답 ; 정말 그렇다(3.1%), 그렇다 (29.9%), 그렇지 않다(26.8%), 전혀 그렇지 않다(7.3%), 잘 모르겠다(33%). "현재 남편과의 성생활에 만족한다 에 대한 응답 ; 정말 그렇다 (6.6%), 그렇다(47.3%), 그렇지 않다 (11.6%), 전혀 그렇지 않다 (3.9%), 잘 모르겠다(30.5), 친정 식구와의 불화(1%), 성격 차이 54 SDU 디지털 문학

55 (52.6%), 시집 식구와의 불화(13.9%), 경제적 문제(11.9%), 혼외 성 관계(3.6%), 남편의 음주.도박.외박(10.8%), 성생활(3.1%), 기타(3.1%). 위와 같은 책 <<제3의 성>> 제4장 <중년 여성의 성과 사랑, 신기루는 없다> 세상 사람들의 선입관처럼 성문제가 중년여성의 모든 것이라는 통념 에 대한 반론이자, 왜 작가들은 진솔한 중년 여성들의 고뇌를 그려내 지 않고 오로지 섹스에만 승부를 거는가 라는 반문을 던지고 싶기 때 문이다. 결코 성문제의 도외시나 외면이 아니라 다른 많은 요인을 껴 안으면서 성문제에 접근해야 바람직한 중년여성의 모습이 나오지 않 을까 싶다. 사랑은 문학의 영원한 주제였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1970년대 이 후 한국의 대중문학은 사회변천에 따라 초점이 확연히 움직여 왔음을 느낄 수 있다. 호스티스문학으로 불려졌던 최인호. 조선작. 조해일의 소설이 접대부의 남성 편력에 주안점을 뒀다면, 페미니즘 세례 이후 세대의 소설들(이경자. 양귀자. 공지영 등)은 여성의 평등권 획득을 위 한 투지가 돋보였었다. 이제 세기가 바뀌면서 여성문제 소설들은 원초적이자 전위적인 성문 제로 그 초점을 바뀌고 있다. 30대가 대중소설의 주류를 형성하는 이유는 비단 이 연배(30-39 세)가 전체 이혼 중 51.5%라거나, 결혼 기간 2-5년 사이가 이혼자 의 46.6%며, 배우자 부정이 그 원인의 40.7%라는 따위의 통계 말고 도 20대의 호스티스문학이나 40대의 중년부인 문학에서 소외 당해왔 던 여성과 성 문제의 원점 회귀란 시각으로 볼 수 있다. 내 몸은 변했다. 나 자신마저도 낯설어 깜짝 놀라는 위험한 관능이 그 속에 은닉되어 있었다. 그건 참으로 낯설어서 어떻게 다루어야할지 불안한 것이었다. 생을 가장 어둡고 질척한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동 물적인 몰입. 이것은 평범한 여자에게 무상으로 주어진 선물일까, 혹 은 극복해야할 재앙일까. 규와 섹스를 할 때면, 더 이상 먹지도 말고 교수문단 55

56 잠들지도 말고, 낮이 되지도 말고, 밤이 되지도 말고 그 순간이 영원 히 계속되었으면 하는 꿈에 빠진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146쪽. 전경린의 장편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의 서사구조는 남 편의 외도에 화가 난 아내의 맞바람으로 가정이 파탄하는 이야기다. " 대학 강사직을 그만두고 인쇄 편집 사무실 일을 하는 남편(효경)에 게 크리스마스 날 "근처 지업사에서 일했던 아가씨(정영우)가 집으 로 와 "내가 오빠를 통째로 빨아 당긴대. 내가 조이는 그 순간을 오빠 는 영원히 못 잊을 거라고 했어 라면서 33세의 아내 이미흔에게 이 렇게 쏘아붙인다. "내가 아기를 긁어내고 마취에서 깨어날 동안 오빤 꼼짝 않고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렸어. 우린 장난을 한 게 아니야. 오빤 나를 분명히 사랑했어. 당신같은 안전주의자가 평생을 나누어도 못 나눌 양의 사랑 을 우린 나누었어(이 대목은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의 모방처 럼 느껴진다). 넌 나에게 가라고 하면 안 돼. 미안하지 않냐고? 전혀. 나에게도 너만큼의 권리는 있어. 부부는 냉전 속에서 "한적한 바다를 낀 지방 도시의 서점 일을 찾 아 내려 갔고, 거기서 이미흔은 "긴장이 지속되는 4개월 동안만 " 서로를 허용하는 "구름 모자 벗기 게임 을 요구하는 유뷰남에다 재산도 가진 플레이 보이 우체국장 규와 열애에 빠진다. "누군가가 상 대방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 게임은 끝 나는, 육체만을 교환하는 이 놀이에서 둘 다 패자가 되어 사랑을 느껴 버렸고, 이 불륜은 탄로되지 만 그 와중에도 만나 교통사고를 당하여 이별이 강제된다. 그들은 이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자신의 사랑을 찾은 제로 섬 게임 법칙대로 순순히 헤어지게 되는 결말은 효경보다는 이미흔의 육 체적 자아 발굴에 초점이 모아져 있다. "가정이란 구역질 아니면 공 포 며, "행복이란, 무지한 상태의 다른 말 로 인식되는 이미흔에게 규와의 관계는 육욕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모 든 조건이 충족된 실존적 자아의 확립에 다름 아닐 것이며, 그녀에겐 일생에 특별한 날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56 SDU 디지털 문학

57 이런 심각성에 반비례하여 우리문학은 노인문제를 심각한 주제의 하 나로 부상시키기 보다는 외면하는 쪽이어서 1985년부터 1994년 까지 10년 동안 발표된 1200여 편의 소설 중 노인이 등장인물로라도 나오 는 작품이 119편(약 10%), 노인 주인공은 54편이라고 서정자는 <하강 과 상승 그 복합성의 시학 - 최근 10년의 노년소설에 나타난 노인의 식과 서사구조>에서 밝혔다. 고작해야 1990년대 후반부터 성행하기 시작한 한국의 노인 주제 소설은 주인공들의 연령 하강 추세와 에로 티시즘에 밀려 정년 퇴직을 당한 듯이 독자대중의 시선을 끌지 못하 고 있다. 3. 분단과 통일에 대한 문학적 인식 변모 분단문학은 2000년 6.15 남북 정상의 역사적인 만남 이후 분단극복 통일 지향문학이 새로운 단계에로 도약해야 될 처지였는데, 공교롭게 도 황석영의 <<손님>>(창작과 비평 )과, 손석춘의 <<아름다운 집>>(들녘 )이 불과 보름 간격으로 출간되면서 새로운 양상 을 보여준다. <<손님>>은 신천 박물관의 형성 배경을 민족 주체적인 작가의 시선 으로 분석 평가한 통일지향 문학의 커다란 성과이다. 북한이 대외적으 로 한국전쟁 시기 미국의 만행을 규탄하는 표본으로 거론하는 황해도 신천의 미제 학살기념 박물관이란 무엇인가. 이 현장을 방문한 인사는 바로 신천 찬샘골 출신의 재미 동포 류요 섭 목사이다. 류요섭의 형 류요한 장로는 청년단 부단장으로 반공 투쟁에 앞나섰 다가 중공군 개입으로 후퇴 때 아내 안성댁이 출산으로 거동을 못해 아들 다니엘(단열)의 이름을 지어주곤 단신 월남, 재혼, 두 아들을 얻 어 196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뉴저지 백인 주택가에서 만년을 보내 고 있다. 과격한 폭력적인 반공투사로 자행하지 않아도 되었던 비인간 적인 살육을 저지른 형과는 달리 동생 요섭 목사는 14세 때 전쟁을 체험하면서 비인간화를 절감코, 남북 화해와 통일을 염원하는 목자로 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는 20년 전 미국으로 이민, 형과는 달리 교수문단 57

58 빈민가인 브루클린의 허술한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다. 형제는 얼마나 다른가. 아우 요섭 목사가 "우리의 고향을 차지하고 남아있는 저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영혼이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회개 하여야 합니다 며, "형님, 하나님께 용서해달라구 기도를 드리세요. 그러면 죽은이들두 눈을 감을 겁니다 고 말하면 형은 이렇게 단호히 대꾸한다. "내가 왜 용서를 빌어? 우린 십자군이댔다. 빨갱이들은 루시퍼의 새 끼들이야. 사탄의 무리들이다. 나는 미카엘 천사와 한편이구 놈들은 계시록의 짐승들이다. 지금이라두 우리 주께서 명하시면 나는 마귀들 과 싸운다. <<손님>> 22쪽 류요섭 목사의 방북 3일을 앞두고 형 류요한은 죽는데, 며칠 전 형 은 장로 신분에 걸맞지않게 아우에게 "너 구신을 어떻게 생각하니? 라고 묻고는 "난 구신을 수없이 봤다 고 실토하는데, 이 소설은 생자 와 사자의 대화를 넘나들면서 역사적인 사건의 실체를 부각시키는 형 식을 취하고 있다. 귀신의 등장은 단순한 사건의 객관적 접근만을 위 한 게 아니라 생자(가해자)와 사자(피해자)의 화해의 상징이자, 살아남 은 자를 향한 생명에 대한 외경심의 경고이기도 하다. 어떤 명분으로 든 살인은 그 피해자의 귀신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위하력을 작 가는 강조하고 싶었을 터이다. 허망하게 죽어간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큰죄를 짓고도 축복받은 것처럼 버젓이 잘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노라 면 과연 신은 있는가 라는 회의론에 앞서 만약 귀신이 없다면 공명정대한 역사적 판관으로서의 존재인 신 을 새로 만들어내기라도 해야지 않을까 싶기도 할 판이 아닌가. 잔혹상을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코뚜레를 해서 끌고 다니기도 했던 이 야만적인 살육행위는 어떤 구실이나 명분 또는 이념으로도 정당성 을 입증할 수 없는 인류의 죄악사일 다름이다. 여맹원 교사를 집단 폭 행하는 기독교도들, 앳된 여학생이 문화공작단으로 월북 중 길을 잃자 동생 요섭이 숨겨주고 있는 걸 형 요한이 잔혹하게 죽이는 장면 등 58 SDU 디지털 문학

59 죽음은 이 소설도처에 흔하디 흔하고 하나같이 비극적이다. 그 중 가 장 인상적이며 작가 황석영의 탁월한 형상성이 돋보이는 장면은 아마 요한이 순남을 연행해 가다가 처치하는 대목일 것이다. 요한아, 말 좀 하자우. 나는 대답 않고 고개만 돌려서 그를 바라 보았어. 읍내까지 갈 거 머 있갔나. 나 여기서 쥑여다우. (중략) 담배나 피우라요. 순남이가 덥석 물더니 주욱 빨아 연기가 코루 나오두만. 나두 한 대 를 붙여물었어. 목지 쳐들구 댕기더니 꼴 좋다. 누가 빨갱이 놀음 하래? 순남이는 말없이 담배만 빨구 섰더니 반쯤 타다 만 것을 입술 끝으 로 뱉어냈지. 한숨을 하, 내쉬고 하늘로 얼굴을 쳐드는데 얼굴에 눈물 이 두줄 주르르 흘러내리데. 나는 그를 바로 쳐다보지 않고 곁눈질 하 며 말했어. 울긴 와? 연기 까탄에... 일행들이 재촉을 했다. 날래 처치하구 가자우. 바로 둑방 위에 전봇대가 보였지. 나는 일행들에게 말했다. 저기 달아매라우. 단오날 그를 따라 냇가에 가서 개 잡던 생각이 났을까. (중략) 요한아, 부탁 하나 하자우. 머요? 우리 식구덜 한군데 묻어달라. <<손님>> 217-8쪽 직후부터의 혼란, 6.25로 더 가혹한 대립, 인천 상륙작전 정보 에 따라 후퇴하는 인민군의 허약한 틈새를 헤집고 미리 봉기한 반공 십자군 게릴라전에 의한 잔혹한 보복, 이 소식을 접하고 후퇴하던 인 교수문단 59

60 민군이 돌아와 다시 보복, 그에 대한 재보복, 이렇게 잔혹의 거울영상 반응이 끝날 무렵에야 미군이 들어갔고, 그들은 이 미군 진입이라는 상징성으로 더욱 잔혹해질 수 있었던 셈이다. 곧 손님을 주인으로 모 셨고, 그것도 못 미더워 한반도를 떠나 아예 미국으로 보금자리를 옮 겨버렸다. 그리고 세기가 바뀌자 이제 화해를 청한다. 바로 새로운 손 님의 모습으로. 이 손님을 맞는 쪽은 도도한 자존심이 누그러진 채 초 라한 손을 내밀고 달러를 요구하기에 바쁘다. 대체 한반도의 주인은 어딜 가버렸는가. 감히 <<아름다운 집>> 한 권으로 손석춘은 이미 훌륭한 민족문학 작 가로 발돋음 했다고 답하리라. 소설은 일기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진선이란 주인공 이 1938년 4월 1일 연세대 철학과 학생 시절부터 1998년 10월 10일 평양 고층 살림집에서 78년간의 생애를 "이현상 동지가 준 권총 으 로 자결, 타계할 때까지의 일기장이다. 매일매일 쓴 것이 아니라 간헐 적으로 중요한 사항이 있을 때마다 쓴 일기는 중간중간 빠진 기간이 있는데 그건 아래와 같다. 1943년 3월 2일부터 1945년 2월 4일까지, 1949년 10월 2일부터 1950년 6월 27일까지, 1950년 9월 21일부터 1951년 9월 14일까지, 1957년 9월 20일부터 1960년 2월 12일까지, 1976년 1월 1일부터 1980년 1월 말까지, 이상 기간은 기록이 누락되 어 있는 것으로 소설은 처리하고 있다. 구성은 작가가 이 기록을 중국 연변에서 주인공의 애인 최진이가 위 험을 무릅쓰고 원고를 국외로 반출, 작가에게 전수시킨 경위 설명에 이어 일기를 소개해 나가다가 기록이 중단되거나, 작가가 원고를 정리 하면서 유난히 감회가 깊은 대목에서 작가 자신의 삶을 소개하며 기 록과 대비시켜 준다. 이진선의 외형적인 이력서를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다. 충주에서 태어 나 연희대 철학과 재학 중 사상연구회에 가입, 활동하면서 평생의 연 이이자 동지인 신여린을 만난다(1934년). 투옥, 출감과 지하투쟁, 일본 중앙대 철학과 편입(1940.3), 자퇴(1942)했으나 조기 졸업장 받음, 방 랑과 투쟁으로 금강산에서 수계 받고 법명 법전( 法 田 ) 얻음, 용산공작 60 SDU 디지털 문학

61 영등포 공장조직 탄로(1945.2), 그간 여린은 여성노동자 및 문화운동, 광주 벽돌공장으로 피신, 지리산 입산 생활 중 광복 맞음, 연희대 교 수 초청 사양, 해방일보 근무, 남북 연석회의 박헌영 수행으로 월북 (첫 월북은 , 이어 에 재 월북), 해주. 평양 등 지서 활동하다 노동신문 입사, 여린은 평양여학교 교사, 노동신문 종 군 기자(한국전쟁), 부상, 아내 여린과 아들 폭격으로 잃음, 모스크바 유학( ), 민주청년 근무( ), 남북회담 때 서울 취 재(1972.9), 퇴임(1980.2). 철학 전공에 직업이 언론인이었던지라 관심분야는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있기에 교제가 있었던 실존인물 중에는 이현상. 박헌영. 김삼룡. 이재유 같은 일제 치하 사회주의 운동가, 백남운. 윤동주. 손진태. 만 공 같은 민족주의 인사, 그리고 황장엽과는 일본유학 중 만난 이후 모 스크바 시절에도 다시 만나는 등 빈번한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 난다. 그는 언론인으로 돌아가 남로당 사건을 객관적으로 봤을 테지만 당 의 노선에 충실한 것으로 기록은 이어진다. 그랬다, 나는. 당을. 믿기로 했다. 그것은 처절한, 아름다운 선택이었다. 여린과 서돌(아들. 아내와 아들을 폭격으로 잃었다)에 이어 박(헌영) 선생마저 혁명의 제단에 바쳤다고 정리했다. 당에 대한 불신은 결국 내가 걸어온 조선혁명에 대한 배신이 아닌가. 책상 앞에 조용히 앉아 향을 피웠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박헌영 선생을, 잊기로 했다. 그렇다고 이진선은 한 번 빈말로라도 남한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서 울 취재를 다녀온 뒤 그 충격을 헤어나지 못하면서도 "전형적인 일본 군인 으로서의 "박정희에게 구역질을 느낀다 ( )고 격노 했다. 교수문단 61

62 허전한 듯 진이가 물었다. "우리가 젊은 시절 사회주의를 선택한 것이 잘못이었을까요? 어떻게 말할까 잠시 고심했다. 저 옛날의 깊숙한 곳에서 어느 한 순간 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래서 진이에게 자신있게 말했다. "그렇지는 않지요. 모두 고루 잘 살자는 것이 뭐가 잘못된 선택이었겠 소. 더구나 당시는 사회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 만의 문제는 아니었잖 소. 민족을 배신한 친일파들을 청산하자는 것이 우리였어요. 당시 그 누가 마음 깊숙이 자본주의가 모두에게 좋다고 생각했겠어요. 자본이, 돈이 주인 되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 사회일까? 그건 분명 아니지 요. 그렇게 저 먼 어느 날 여린은 내게 속삭였다. 그날의 여린의 눈빛이 살아 오늘 진이에게 옮겨온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혁명이 무엇인지 진이 동무는 아세요? 뜬금없다는 듯 진이는 빙긋 웃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잘살게 아름다운 집을 짓는 거예요. 서돌이의 음성 그대로 진이에게 들려주었다. 1998년 6월 13일 한 혁명가, 이진선이란 혁명가의 일생은 비극적인 최후란 점에서 님 웰즈의 <<아리랑>>이 준 감동과 다를 바 없다. <<아리랑>>의 장지락 이 아들이나마 남겼다면 이진선은 혈육으로서의 아들이 아니라 민족 의 혁명 후진으로서의 민중을 남겼을 뿐이다. 임헌영 : 문학평론가, 저서 문단시대의 문학 外 다수, 한국평론가협회회장,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창학부 교수 62 SDU 디지털 문학

63 교수문단 상상력을 억압하는 교조적 목소리 - 시인들이 쓴 어른을 위한 동화 - 엄경희 1. 왜 어른을 위한 동화 인가? 대부분의 시인들이 남긴 산문 가운데 가장 많은 빈도를 차지하는 것 은 아마도 수상록이나 수필 형태의 글일 것이다. 시인들이 남긴 수상 록은 자신의 경험과 사물에 대한 감각취미, 인생관 등을 고백적 양식 으로 기록함으로써 철학적 담론과는 달리 정서적이고 감성적인 글맛 을 전달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간혹 지나치게 도취적인 감정의 과잉 상태를 드러내는 것 또한 시인들이 쓴 산문의 한 성향이라 할 수 있 다. 이러한 글들은 시보다 쉽게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철 학적 담론보다는 부드럽다는 점에서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용이한 반 면, 시에 비해 풀어져 있기 때문에 그 농도 면에서는 엷게 느껴진다는 한계를 지닌다. 많은 시인들이 남긴 기존의 산문들이 당대를 지나면 거의 읽히지 않거나, 아니면 시인 연구를 위한 참고 자료 정도로 사용 되는 이유는 그것이 깊이 있는 사상으로까지 접목되지 못하고 대부분 엷은 감상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의 수필, 서정주의 자서전을 비롯한 산문, 김수영의 산문, 김춘수의 독자적 시 론 등은 시적 묘미와는 또 다른 산문의 맛을 담보해낸 경우라 할 수 교수문단 63

64 있다. 수상록이나 수필 형태의 산문적 경향이 90년대 중반에 이르면 동화 장르와 합류하게 되는데 특히 시적 기량을 널리 인정받고 있는 정호 승과 안도현은 어른을 위한 동화 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운 여 러 편의 동화를 출간하고 있는 대표적 시인들이라 할 수 있다. 정호승 은 장편동화 연인 을 비롯하여 단편 동화 모음집 항아리 와 모 닥불 을, 안도현은 연어 관계 사진첩 짜장면 증기기관 차 미카 등을 왕성하게 출간한 바 있다. 동화는 일반 소설과는 달리 환상과 모험, 스토리와 그에 부가된 삽화의 재미 그리고 무엇보다 어 린 시절 간직했던 순수 라는 정신적 아우라를 내포하고 있는 문학 장르이다. 이와 같은 동화적 성격은 손쉽게 독자를 끌어들이는 요인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화는 어린이를 위한 글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하기 때문에 그 독자층은 자연히 어린이에 국한되곤 한다. 따라서 어른을 위한 동화 라는 타이틀은 동화의 독자층이 어린이라는 고 정관념을 깨고 그 저변을 확대하고자 하는 전략으로 판단된다. 책읽기 에 부담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나 순수성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어른을 위한 동화 라는 타이틀은 매혹이 되기에 충분한 요건이다. 더욱이 시인들이 쓴 동화라면 그 순수성 의 아우라는 시너지 효과 까지 기대해볼 만하다. 일반 대중에게 책에 대한 친근감을 심어 주고 이 척박한 삶 속에서 다시 동심의 세계를 되찾게 해줄 수 있다면 어른을 위한 동화 는 나름대로 의의를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정호승이나 안도현이 쓴 어른을 위한 동화 는 지나친 교조 적 교사 역할을 감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미적 가치를 되묻지 않을 수 없는 경우라 할 수 있다. 2. 사랑 을 강요하는 잠언적 목소리 - 정호승의 연인 사랑이라는 테마는 가장 많이 반복되어왔던 문학적 주제 가운데 하 나이다. 사랑이 관계로 이루어진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근원적 에너 지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누구나 최고의 가치로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물질적 이익이 우선하는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그것은 종종 망각되거 나 그 가치를 상실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살벌하고 잔인한 경쟁의 64 SDU 디지털 문학

65 논리에 휘말려 있는 도시인들에게 사랑의 가치를 되찾아주는 것은 매 우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정호승은 그의 시에서만이 아니라 어른을 위한 동화 에서도 사랑을 문학적 화두로 내세운다. 그는 단 편동화집 항아리 (열림원, 1999년)와 모닥불 (현대문학북스, 2000년)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저는 이 동화를 쓰는 동안 결국 서 로를 이해하면서 사랑하는 가운데에 나 자신의 존재적 가치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사랑을 원하고 인간이기 때문에 고통스럽습니다. 이 동화는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진정한 사랑에는 무엇이 숨어 있는지 고통 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보고 싶어서 씌어진 동 화입니다 라고 각각 밝히고 있다. 이에서 정호승이 사랑의 가치를 일 관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항아리 나 모닥불 보다 먼저 씌어진 연인 (열림원, 1998년) 또한 사랑 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이 동화는 운주사 법당의 풍경 에 매달려 있던 물고기가 비어( 飛 魚 )가 되어 세상을 여행하면서 겪는 이야기다. 주인공 푸른툭눈은 반대편 처마 끝에 매달려 있는 검은툭눈 이의 덤덤한 사랑의 방식과 한 곳에 매달려 사는 삶에 대해 회의를 품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날아간다. 바다와, 도시, 붕어 요릿집, 강물, 시장, 역 등의 공간을 돌아다니며 푸른툭눈은 사랑, 배신, 죽음의 고 비를 경험하게 된다. 여행을 통해 푸른툭눈이는 진정한 삶과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다시 운주사 처마 밑으로 귀의한다. 이와 같은 스토리 전개 과정은 고난과 성숙이라는 성장 소설의 플롯을 기저로 한다. 풍 경에 달려 있던 물고기가 비어가 되어 세상의 먼 곳을 여행하며 사랑 의 의미를 깨닫는다는 이 동화의 근본 구조와 모티프는 참신하고도 시적이다. 연인 에 대해 시인 김용택은 나는 이 동화를 읽으며 마치 저 푸른 하늘에서 이 세상에 처음 울리는 풍경소리를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한참씩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어야 했다. 어른이 읽 는 동화 연인 은 우리들 가슴 어딘가에 감추어져 있는 진정한 사 랑의 풍경소리를 찾아가는 주인공 푸른툭눈의 이야기이다 라고 그 감동을 이 책의 발문에 적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전개 과정 속에서 정호승은 지나치게 반복적으로 사랑과 삶의 의미를 설교함으로써 동 화의 참다운 맛을 삭감시키고 있다. 교수문단 65

66 ㆍ우리의 삶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진다. 삶은 만 남과 헤어짐의 모자이크다.(15쪽) ㆍ만남도 신비하다. 그리고 사랑도 신비하다. 만남을 통해서 누구나 삶의 신화를 쓰기 시작한다.(16쪽) ㆍ사랑은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 사랑한다는 지금 이 순간의 마음 을 소중히 여기는 슬기가 필요하다.(19쪽) ㆍ분명 사랑도 노력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분명히 노력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랑은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22쪽) ㆍ사랑이란 오래 갈수록 처음처럼 그렇게 짜릿짜릿한 게 아니야. 그냥 무덤덤해지면서 그윽해지는 거야. 아무리 좋은 향기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면 그건 지독한 냄새야. 살짝 사라져야만 진정한 향기야. 사랑 도 그와 같은 거야(24쪽) ㆍ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거야.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느냐에 따 라 사랑의 깊이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어.(25쪽) ㆍ이웃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야.(26 쪽) ㆍ이 세상에 완성된 사랑이란 없어. 사랑을 완성시키려는 과정만이 있 을 뿐, 그 과정의 연속이 바로 사랑이야.(30쪽) ㆍ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일은 마음속에 등불을 켜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34쪽) ㆍ난 사랑의 본질을 희생이라고 생각해. 희생 없는 사랑은 없어. 많은 이들이 희생할 줄 모르니까 사랑할 줄 모르게 되는 거야.(55쪽) ㆍ삶에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의 모두를 바치는 것이 가장 중요 해. 사랑이야말로 삶의 전부야.(56쪽) ㆍ사랑은 이렇게 평범한 일상 속에서 희생을 수반하는 것임을, 희생이 바탕이 되지 않은 사랑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깊 게 생각했다.(71쪽) ㆍ사랑은 말하기 쉽고 노래하기 쉽지만 실천하기 쉽지 않다.(77쪽) ㆍ사랑해야 할 이들을 항상 즉시 사랑하라.(77쪽) ㆍ울지 마라. 분노 때문에 너 자신을 다치게 하지 마라. 네가 그를 사 66 SDU 디지털 문학

67 랑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 사실만으로도 사랑은 족하다.(122쪽) ㆍ고통 없는 삶은 없다. 살면서 고통 없기를 바라지 마라. 고통이란 밥먹고 잠자는 것처럼 일상적인 것이다.(122쪽) ㆍ상처 없는 아름다움은 없다. 진주에도 상처가 있고, 꽃잎에도 상처 가 있다. 장미꽃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그 상처 때문이다.(123쪽) ㆍ비록 답습된 형식적인 삶이라 하더라도 그속에 진실된 사랑만 있다 면, 그것이 곧 창조적인 삶이라는 걸 나는 몰랐어.(134쪽) ㆍ어떠한 사랑이든 사랑에는 실패가 없는 거야.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야. 모든 사랑에는 성공만 있어. 내가 진정 사랑을 했으면 그것이 곧 성공이야.(134쪽) ㆍ열심히 살아라. 열심히 살아야지 삶이지, 열심히 살지 않으면 삶이 아니다.(136쪽) 보여지는 것처럼 작가는 사랑, 희생, 상처와 고통, 실천 등의 가치를 끊임없이 강조함으로써 독자에게 희생적 사랑의 실천으로 삶을 살아 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은 작가가 직접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푸른툭눈이를 통해서 보여주기(showing) 로 드러나 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이 동화가 사랑을 강요하는 글처럼 읽히는 것 은 이 때문이다. 작가는 사랑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듯 강한 노파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설파하고 있 는 그의 문구들은 식상할 정도로 들었던 통속화된 구절들이 대부분이 라는 점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식상한 것의 반복은 그것 이 진실일지라도 진부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처럼 주제를 지나치게 강요하는 것은 독자의 수준을 무시하는 처사이기도 하다. 주제를 강요하는 방식 이외에도 이 동화는 몇 가지 맹점을 그 안에 내포하고 있다. 동화가 꿈과 환상을 제공해줄 수 있는 양식이라는 점 을 전폭적으로 의식하더라도 거기에는 그 나름의 리얼리티가 확보되 어야만 한다. 그런데 푸른툭눈이의 여행담 가운데 과도하게 주제와 연 결시키고자 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러한 부분은 억지스러운 느낌까 지 자아낸다. 예를 들면 푸른툭눈이는 정다솜이라는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집 근처에 잠시 머물면서 다솜이와 친한 친구가 된다. 그런데 어 교수문단 67

68 느 날 도로 한가운데 피어 있는 민들레를 향해 뛰어간 다솜이는 차에 치어 죽게 된다. 이때 작가는 푸른툭눈이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 한다. 다솜이는 한 송이 민들레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 거였다. 달려오는 자동차에 민들레가 깔려 죽게 되는 것을 다솜이는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다솜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흰물떼새가 나 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쳤듯이 다솜이도 한 송이 민들레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거였다.(70쪽) 작가는 사랑은 상대를 위해서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위대한 것임 을, 그리고 다솜이의 행동을 통해서 풀꽃 하나도 귀중한 생명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 의미는 심오하지만 이 내용은 분명 지나치다. 한 송이 민들레의 아름다움에 아이가 이끌렸다면 몰라도 그것을 살리 기 위해 몸을 던졌다는 것은 아무리 동화지만 리얼리티가 없다. 이 부 분 마무리에서 작가는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 대요. 사랑을 위해서는 자신의 모두를 바쳐야 된대요. (70쪽)라고 다 시 한번 주제를 강조한다. 사랑이 연인 의 주요 테마라면 죽음은 사랑과 연관되어 등장하는 중요한 내용 가운데 하나이다. 처음 바다로 간 푸른툭눈이는 흰물떼새 의 희생으로 죽음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때 푸른툭눈이는 운주사 와불님의 별빛을 불러 죽음에 대해 묻는다. 와불님의 별빛은 바람과 파도의 비유를 통해 죽음에 대해 설명한다. 한번 바람이 불지 않으면 다시는 바람이 불지 않더냐? 아닙니다. 곧 다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것 봐라. 죽음도 그런 것이다. 잠시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해서 바람이 죽은 것이 아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다지? 네, 바다를 보았습니다. 바다의 파도를 보았는가? 네, 파도를 보았습니다. 68 SDU 디지털 문학

69 파도가 부서지던가? 네, 절벽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졌습니다. 파도가 부서졌다고 바다가 없어지던가? 아닙니다. 바다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것 봐라. 죽음도 그와 같은 것이다. 바다의 파도와 같은 것이다. 파도가 스러져도 바다는 그대로 있다. 죽음이 있다고 해서 삶이 없는 것은 아니다. 파도가 바다의 일부이듯이 죽음도 삶의 일부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대자유를 찾아 길을 떠나라. (49 50쪽) 선문답에 가까운 이 대화는 자세히 따져보면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말 외에는 알 수 없는 얘기로 이루어져 있다. 바람의 소멸과 생성은 곧 생명의 윤회를 비유하는 것인가? 그리고 파도가 스러져도 바다는 그대로 있다는 것이 죽음 뒤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의미를 함의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삶은 누구의 삶인가? 이러한 대화는 죽음에 대한 치열한 사유를 차단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 사건 이후 푸른툭눈이는 붕어찜을 하는 곤지암 식당 에서 다시 한번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되는데 이때 와불님의 별빛과 나눈 죽음에 대한 과거의 대화는 상기 되지 않는다. 이는 죽음에 대한 작가의 태도가 유기적으로 드러나 있 지 않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또한 플롯이 긴밀하게 짜여져 있지 못함 을 뜻한다. 이와 더불어 이 동화의 주인공인 푸른툭눈이의 성격이 모순되어 있 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푸른툭눈이는 밀레의 만종은 알면서 붕 어빵과 어탁은 모르는, 넓은 세상을 꿈꾸면서 죽음 앞에서는 수동적인 일관성 없는 성격의 주인공이다. 이는 주인공의 성격 창조에 실패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푸른툭눈이 외에 이 동화에는 몇몇 인물들과 새들이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 정호승이 가장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시인, 혹은 시집을 읽는 다솜이 엄마이다. 반면 작가는 도 시의 살벌함을 드러내기 위해 노숙자를 끌어들인다. 노숙자들은 푸른 툭눈이를 보고 저 놈 잡아서 회쳐먹으면 좋겠군 (60쪽)이라고 말한 다. 시인이나 다솜이 엄마, 노숙자 등은 잠시 등장하는 인물들이지만 이러한 대비는 도식적일 뿐만 아니라 시인 자신에 대한 우월 의식이 나 나르시시즘으로 읽혀질 혐의를 갖는다. 교수문단 69

70 3. 부정 의식을 촉구하는 계몽적 교사 - 안도현 연어 와 증기기관차 미카 안도현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그의 연시집 그대에게 가고 싶다 (푸른숲, 1991년)와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 (문학동네, 1996년) 때문이다. 안도현을 시인이기 이전에 연어 의 작가로 기 억할 정도로 연어 는 지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동화이다. 연 어 는 그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연어의 모천 회귀 본능을 모티 프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 만큼 이 동화는 모천을 향해 가는 연어의 생태를 기본 골격으로 하면서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첨가된 형태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연어 를 통해서 정호승처럼 단일한 주제를 실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자신의 의도를 포함시킴으로써 온당한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동화에서 옆으로 보기 로 표현되 고 있는 평등의 문제, 사랑과 희생, 고통, 삶 속에서의 자기 정체성, 환경과 생태, 공동체의 의미 등은 안도현이 내세우고 있는 의도들이 다. 이들은 안도현 특유의 서정적 문체, 예를 들면 연어, 라는 말속 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7쪽), 바다는 제 가슴에다 푸른 잉크를 알 맞게 풀어놓고 있다. 그러고 나서 바다는 착한 짐승처럼 순해져서 건 드리기만 해도 시원한 울음소리를 낼 것 같다 (27쪽), 강물은 아래 로 흐르면서 자신의 물살과 체온을 연어들에게 가르친단다 (56쪽)와 같은 감성적 문장과 혼합되어 연어 의 맥락을 구성하는 주요 인자 들이다. 그러나 작가의 시적 상상력에도 불구하고 이 동화에는 작가의 교조적 목소리가 포진되어 있다. ㆍ물 속에 사는 연어는 땅 위에 사는 인간들을 두려워한다. 인간은 물 고기를 옆에서 보려고 하지 않고 위에서 내려다보니까! 연어를 위에서 내려다본다는 것, 그것은 연어를 위해서 불행한 일이다.(11쪽) ㆍ연어는 연어의 욕망의 크기가 있고, 고래는 고래의 욕망의 크기가 있는 법이다. 연어가 고래의 욕망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이미 연어가 아닌 것이다. 고래가 연어의 욕망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면 그 는 이미 고래가 아닌 것처럼.(30쪽) 70 SDU 디지털 문학

71 ㆍ혼자라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연어 무리는 특히 그렇지. 연어가 아 름다운 것은 떼를 지어 거슬러오를 줄 알기 때문이야.(55쪽) ㆍ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이치를 안다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자연의 일부임을 안다는 뜻이다. 다만,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자연을 얕보는 지상의 인간들만이 그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68쪽) ㆍ인간들은 사람이 죽으면 무덤 앞에 비를 세우기를 좋아한다. 인간들 이 살아 있을 때 품은 헛된 욕망의 크기와 비석의 크기가 비례한다는 것을 연어들은 알고 있다. 심지어 인간들은 살아 있는 자의 비석까지 세우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한다.(102쪽) 위의 문장들은 타자를 지배하려 하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와 인간의 이기심, 자만심, 허영심 등을 비판하고 있는 예들이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과 인간의 과도한 욕망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것은 올바른 삶 의 지향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계몽적 목소 리는 동화의 묘미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그것이 교조적으로 느껴지 는 순간 거부반응을 유발시킨다. 인간에 대한 부정적 의식은 안도현의 동화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연어 에서 긍정적 의미로 상 징화되고 있는 인물은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어린 인간뿐이다. 그 외는 물수리나 곰과 같은 포식자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상징적 역할을 할 뿐 사건의 중심에 닿아 있지 않다. 이 동화의 중심 사건은 연어들이 폭포를 오르는 과정과 주인공 은빛연어와 그의 짝 눈맑은연어의 사랑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직 접 강조하고 있는 것은 연어의 생태가 아니라 인간의 부정적 삶의 태 도이다. 궁극적으로 이 동화가 은빛연어의 여행을 통해서 인간의 삶에 대한 정당한 방식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인간에 대한 부정적 측면을 설교할 것이 아니라 연어와 인간을 긴밀하게 연결시킬 수 있 는 사건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인간에 대해 반복적으로 나타 났던 부정 의식은 이 동화의 말미에서 갑자기 반전됨으로써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여태 강물과 땅을 두 개로 나누어 생각했다. 강물 속에 연어가 살고 땅 위에는 연어의 적인 인간이 산다고 생각했다. 자연과 인간, 교수문단 71

72 그리고 인간과 연어를 구분지어 생각했다. 그건 너무 경솔한 생각이었 다. 나를 감고 흐르는 이 시냇물은 높은 산 위에서부터 수천, 수억 개 의 물방울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다! 이 시냇물이 더 큰 강이 되고 나 아가 바다가 되는 것을 나는 왜 모르고 있었던가!(120쪽) 모든 것이 하나로 화해하는 조화로운 삶은 작가가 지향하는 꿈의 세 계일 것이다. 그러나 이 동화의 맥락에서 이는 유기성이 없는 비약이 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과 어린 인간을 통해 이 세상에 믿을 만 한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은빛연어가 알게 되는 장면이 나오지만 은 빛연어가 정작 자연과 인간이 하나임을 깨우치는 것은 물과 강바닥이 하나임을 발견하고 나서이다. 그로부터 은빛연어는 자연과 인간도 하 나라는 논리에 도달한다. 이는 플롯의 허약함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교조성과 더불어 연어 에서 보여지는 또 하나의 한계는 통속성이 다. 연어 를 이끌어 가는 문맥 속에서 예를 들면 세상을 아름답 게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연어만이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거야 (47 쪽), 꿈이랄까, 희망 같은 거 말이야. 힘겹지만 아름다운 일이란 다 (55쪽)와 같은 상투적 어구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유행가 가사에나 나올법한 얘기들도 나오는데 내가 지금 여기서 너 를 감싸고 있는 것, 나는 여기 있음으로 해서 너의 배경이 되는 거 야 (67쪽)와 같은 문장이 그것이다. 배경 을 강조하는 맥락은 별이 빛나는 것은 어둠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죠? 그렇 지. 그리고 꽃이 아름다운 것은 땅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고 요? 그렇지. 그러면 연어떼가 아름다운 것은 서로가 서로의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인가요? (68쪽)로 장황하게 이어진다. 진부하고 통속적인 이러한 문장들이 그의 동화를 읽히게 하는 요인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최근에 씌어진 증기기관차 미카 (문학동네, 2001년)는 일평생 증 기 기관차를 몰던 어느 노인과 철도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의 증 기 기관차 미카와의 만남을 통해서 현대의 삶을 비판하고 있는 장편 동화이다. 빠른 것만이 미덕인 이 세계의 기계주의적 폭력을 비판하고 있는 이 동화는 현대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이 72 SDU 디지털 문학

73 와 더불어 북녘 땅을 누비고 다녔던 미카의 행적을 제시함으로써 우 리의 통일 의지를 암시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 동화의 가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증기기관차 미카 또한 연어 가 내포하고 있는 한 계와 대동소이한 점들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작가는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이 동화의 주제를 여러 번 반 복한다. ㆍ나도 달릴 때는 잘 몰랐어요. 이렇게 한자리에서 오직 한군데만 바 라보고 있으니까 오히려 모든 게 다 보이더라구요.(25쪽) ㆍ점점 빨리 달리다 보면 사람들은 모두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될 지도 몰라. 빨리 달리는 데 취해 있으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사 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게 될 거야. 그건 정말 비극이지.(69쪽) ㆍ꽃들은 바람을 좋아해. 하지만 모든 바람을 다 좋아하는 건 아니야. 네가 만약에 바퀴로 바람을 일으키며 유채꽃밭 사이로 달린다면 꽃잎 들이 새파랗게 질려 눈도 뜨지 못할 거야.(81쪽) ㆍ제가 포크레인을 전국 곳곳에다 실어 놓았어요. 그들은 모든 걸 한 꺼번에 파괴하지 않고 야금야금 갉아먹는 벌레거든요. 나무를 죽이는 못된 벌레가 이 세상의 모든 나무에 한 마리씩 붙어 있다고 생각해보 세요. 그리하여 전쟁보다 더 무섭게 계속, 나무를 한 그루씩 죽여간다 고 생각해보세요.(87쪽) 그리고 빠름과 기계주의적 삶에 대한 작가의 부정 의식은 곧바로 인 간에 대한 강한 부정으로 이어진다. ㆍ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곧잘 용기를 내지만, 낯선 어린아이 하나한테 용기를 내는 데는 아주 인색하거든요. 위급한 전쟁 상황이었 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그래요.(32쪽) ㆍ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산보다 더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 는 소리는 아니겠지?(58쪽) ㆍ아주, 아주 오래 전 옛날에 고래는 육지에서 살았단다. 그런데 인간 들이 땅을 차지하고부터 고래는 육지에서 사는 데 질려버린 거야. 인 간들은 칼이며 망치와 같은 도구들을 만들면서 함부로 육지의 주인 교수문단 73

74 행세를 했던 거지.(75쪽) ㆍ우리는 끊임없이 파도를 수평선 너머로 보내고 또 보내곤 하지. 인 간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이 어디에 또 있는지 파도를 보내 찾아보 고 있는 거야.(76쪽) 문제는 이러한 내용들이 사건으로 구체화되지 않고 대부분이 말하 기 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사건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주제와 작가의 의도를 유추하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방 식은 곧 독자를 가르치겠다는 교조적 태도와 맞물린다. 물론 기계 문 명과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 자체를 지적하는 것은 아니 다. 사건화되지 않은 것들을 거듭 강조할 때 그가 주장하는 당위는 독 자의 상상력을 억압하는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간혹 그 논리가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는 경우도 보여지는데, 이는 이 동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빠름 의 문제점을 설파하는 부분 에서 발견된다. 바다에서 나는 생선만 해도 그래. 한꺼번에 많은 물고기들을 인간에 게 빼앗기게 되는 바다의 마음은 생각해보지 않았니? 그리고 중요한 것은 기관차가 내륙으로 생선을 실어나른 뒤에 그냥 화물칸을 비워둔 채 다시 바다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거야. 나는 여기서 열차에 실린 화물들을 죽 지켜보고 있었어. 생선을 실어다준 열차는 내륙에서 나는 곡식이며 목재며 석탄들을 또 그만큼 실어가는 것 말이야. 그래서 빠 르다는 게 문제가 되는 거야. 빠르다는 것은 서로 더 많은 것을 빼앗 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밖에 되지 않아.(66 67쪽) 빠름이 곧 자연을 수탈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는 이 논리는 너무 소박한 견해가 아닌가. 이왕에 어른을 위한 동화 라는 타이틀 을 내세운 바에야 좀더 깊이 있는 얘기들을 진행시켜도 되지 않을까. 이러한 단순성은 인간과 자연을 대립적 관계로 도식화함으로써 자연 과 인간의 진정한 친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차단시킨다. 여기에 작가가 강조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혐오감이 겹쳐질 때 단순성은 아 예 고정관념이 될 수도 있다. 74 SDU 디지털 문학

75 교조성과 논리의 단순성 이외에 증기기관차 미카 는 등장인물의 성격에도 문제점이 발견된다. 이 동화를 이끌어 가는 노인은 책에 정해진 규정을 한치도 어기지 않고 나는 기관차를 운행해왔다 (29쪽) 고 자부하는 성실한 노인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 그가 목마름을 참지 못해 역이 아닌 곳에 기차를 세우는 일화(18쪽)가 나오는데 이는 완전 히 모순된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터전을 빼앗긴 늑대가 등장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때 늑대는 석탄을 몸에 묻히고 개 행세를 하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런 늑대를 보 고 미카는 늑대가 마을로 무사히 들어갈 수 있기를 빈다(59쪽). 이 부 분은 동물들의 터전을 빼앗은 인간을 비판하기 위해 삽입된 것이지만 한편 자기 정체성을 잃은 늑대를 무조건 긍정할 수만도 없다는 문제 를 남긴다. 등장인물들에게서 보여지는 이러한 허점 외에도 엉뚱한 비 유, 예를 들면 수십 년 동안 노인의 손길이 닿지 않아 삭아 부스러진 미카의 나사못을 보면서 우리의 전통 설화인 신랑을 기다리다 재가 된 신부 이야기 ( 쪽)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든지, 별 이유 없이 대미를 노인의 죽음으로 마친다든지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허약한 산문성을 드러내는 예라 할 수 있다. 4. 어른들의 상상력을 열어주는 미래의 동화를 위하여 90년대 이후 시의 산문화 경향과 더불어 시인들이 쓴 산문이 유행처 럼 다수 출간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 가운데 특히 어른을 위한 동화가 두드러지게 대중의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동화가 일반 수필에 비해 이야기를 매개로 한 재미와 흥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앞서 말했듯이 꿈과 환상, 순수라는 아우 라가 함께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을 위한 동화의 대표 작가로 정호승과 안도현을 꼽는 것은 이들이 어른을 위한 동화를 연속적으로 출간하고 있음과 동시에 이들이 쓴 동화가 대중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의 호응과 작품의 질이 언제나 비례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정호승과 안도현의 장편동화에서 두드러지 게 발견되는 것은 교조적인 목소리이다. 이들의 교조적 목소리는 동화 의 참된 묘미를 드러내기보다는 독자를 가르치고 개도하려 하는 작가 교수문단 75

76 의 의도를 더 부각시킨다. 작가들이 창작의 권한을 쥐고 있는 것은 사 실이지만 독자의 상상력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 또한 독자에 대한 예의는 아니라 생각한다. 아울러 가르치는 동화가 아니라 어른들에게 삶 속에서 잃어버린 상상력을 되찾아주는 동화가 더 바람직하다는 생 각을 해보게 된다. 교조성 외에도 이야기 구조상 많은 맹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 고 이들의 어른을 위한 장편동화가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여기에는 분명 작품을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만든 어 떤 전략이 숨어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우선 유명한 시인들이 썼다는 것 자체가 독자에게는 매혹일 수 있으며,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동화 장르라는 점, 더욱이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타이틀이 아동 물과의 변별성을 기대하게 한다는 점, 교조주의적 태도를 통해 주제를 쉽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정호승과 안도현의 글에서 발견되는 달콤한 서정적 문체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이러한 전략이 독자를 진 정한 문학의 영토로 이끌 수 있다면 그것은 더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전략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작품의 질적 수준 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작품의 질적 수준은 차선이 되고 전략만이 앞선다면 이는 상업주의에 영합했다는 혐의를 낳는 일이 될 것이다. 엄경희 : 문학평론가, 200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저서 빙벽의 언어 外 다수,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창학부 교수 76 SDU 디지털 문학

77 학생문단 시 곽미영 구현미 권혁임 김경훈 김유석 김형출 김후진 노운미 류제희 민수임 박 경 박유홍 이순지 정건우 최무선

78

79 시 사막이 생기는 이유 外 1편 곽미영 남북 회귀선 부분의 고압대 비가 오지 않는 곳이나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어 수분을 공급받지 못하는 대륙의 계속되는 맑은 날들이 사막을 만들지 산다는 건 어차피 빗줄기와 바람에게 맨몸 내어놓고 맞짱 뜨는 일 그러나 그 비 바람은 삶을 살찌우고 키워주는 달콤 쌉사름한 영양제 비오는 어두운 골목 길 우산도 없이 나는 걸어가네 마음 속 사막이 쓸려 내려가네 젖은 어깨 쓰다듬는 가로등의 손길 따스하네 시 79

80 시 가마우지 방금 물 속으로 머리를 박고 들어가 붕어 한 마리 잡아먹고는 불룩해진 배 툭,툭 치며 젖은 바바리자락 확 펼치고 햇살에 몸둥이 말리고 서 있는 저 능청스런 녀석 좀 보세요 호수에 줄 지어 놀던 천둥오리들 대체 뭘 보았는지 머리 맞대고 킥,킥 웃고 있네요 이제 막 시작 된 봄이 학교 울타리 옆에서 노랗게 웃던 날 새로 산 교복 이쁘게 차려입고 병아리처럼 재잘거리며 지나가는 여고생들 앞을 턱, 막고 선 한 남자 베이지색 바바리자락 확 펼치자 보였던 그 맨살이라도 보았는지 80 SDU 디지털 문학

81 시 흰색의 캔버스 구현미 백호의 캔버스에 몇 달을 색을 넣고 덮어가며. 색을 찾기 위해 덮어진 색들은 다시 만들 수 없는 색들로 묻어나고. 빛으로 비추어진 색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다 멈춘 그 자리에. 두터운 색감의 깊이는 그와 길게 하던 키스의 감촉으로. 갑자기 울린 진동소리에 쏟아진 커피의 얼룩은 그를 그리고. 흰색의 천을 움켜쥐어 생긴 어둠과 밝음의 선과 면. 그가 묻는 그림의 설명이 되었는지 따라하는 그. 오랫동안 그를 그리며 찾아오던 시간은 흰 눈이 되어 차를 덮어주고. 차 안에 있는 캔버스를 눈 위에 옮겨 그를 놓는다. 시 81

82 시 밤의 울안에서 권혁임 모두 잠들어 있었다. 두 다리 사이에 머리를 파묻고 백구는 고향 진도를 꿈꿀 시간에 뜰 어디에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애끓어 할 겨를도 없이 쏜살같이 박히는 어둠을 가르는 미명의 고성은 관능의 접점에 이른 듯 하다. 인간 사랑이 우리만 하냐? 발정 난 암고양이 약올림에 백구도 잠을 설치나 보다. 82 SDU 디지털 문학

83 시 비가( 悲 歌 ) 外 1편 김경훈 얼마 만큼 울어야 얼마 만큼 가슴을 태워야 영정에 피어나는 향불의 가치를 되살릴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아야 하는 영혼들에게 어떻해야 위안이 되는 힘이 되는가 죽음의 선율에 실존의 가치는 작은 무덤가에 영문도 모른 채 갓 피어난 할미꽃 얼마 만큼 살아야 진정한 인생을 알고 얼마 만큼 땅을 파헤쳐야 흙의 진리를 알며 얼마 만큼 사람들을 속여야 이 땅에 우뚝 솟는가 사람은 죽음이 가까워지면 너도 나도 인생을 뒤돌아 볼 수 있는 눈이 트이지만 그땐 이미 허탈과 후회가 넘쳐 바로 볼 수가 없지 그래서 죽을 때는 눈망울이 빛나지가 않아 빈소를 찾는 사람들의 입담으로 주검 앞에 피어나는 향내음은 서서히 잠이 들고 영혼은 다시 살아나 멀리 아주 멀리 사람이 살지 않는 산골짜기에서 외로이 할미꽃이나 될른지. 시 83

84 시 장미에게 오오! 당신이 바로 우리가 아름답다 여기어 오던 꽃의 여신이던가요 그러나 한낱 만찬의 도가니에서 자태를 뽐내던 그 사치들은 햇볕 잘 들던 축제의 나날 속으로 황혼이 필 무렵 산산이 부서지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았지요 화려한 비너스와 촉촉한 입술은 메말라 먹다버린 생선가시로 언 땅을 비집고 힘겹게 서려하는 당신의 애처로운 뒷모습에 아름다움도 한순간임을 보고야 말았지요. 84 SDU 디지털 문학

85 시 말뚝 김유석 말뚝에 목이 묶인 소 한 마리가 원을 그리고 타원을 그린다 열심히 예술 활동을 하던 소 한 마리가 배가 고파 풀을 뜯는다 주위의 풀들을 모두 뜯어 먹은 소 한 마리가 만족스러운 미소 지으며 엎드려 잠에 든다 지구에서 튀어나온 아주머니가 둥근 가슴으로 지구를 감싸 안는다 아주머니의 미소따라 생겨난 주름에서 소 세 마리의 미소가 보인다 아주머니의 손등 위 갈라진 틈 사이로 뜨거운 욕망의 핏줄이 서 있다 말뚝에 묶여 있는 소 한마리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 시 85

86 시 씨앗냄새 김형출 어젯밤 천둥소리 벼락 떨어지는 소리에 고막 찢기고 어둠의 창가에서 아들냄새가 난다 마른 눈물 쥐어짜기 싫어 꿈나무 열매 속을 파고드는 알 수 없는 침입자 조여오는 공포에 술잔을 마시는 젊은이 빈방엔 침묵뿐, 허연 눈에 고인 주삿바늘 나는 씨앗 꿈을 접고 너를 보듬어 한 몸이 되리라 웅성웅성 모인 혈구 무리, 다시 태어나 가까이 웃으리라 외출에서 돌아오는 발걸음 소리에 귀 여미며 컴퓨터 액정에서 아들냄새가 난다 아들냄새를 모아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았다 가슴에 닿은 얇은 냄새를 안고 빠끔히 현관문을 연다 아들이 아침 일찍 빗방울을 맞으며 돌아왔다 눈으로 끙끙대며 아들냄새를 확인한다. 86 SDU 디지털 문학

87 시 흔적 外 1편 김후진 낡은 것 부풀어진 사이에 익숙함이 녹아 있다 거추장스러운 뿌리는 이미 없던 자리다 자국을 없애는 것도 흔적이다 상처도 기억도 추억도 흔적이다 내 생의 흔적 낡은 동안만, 낡고 있는 동안만 산 것이다 새 것은 없다 이미 낡아지고 익숙함과 낯섦만이 구분되는 놀이터 속 부풀어진 익숙함 사이에 낡은 공기 쉼 없으면 낯선 상처도 기억도 추억도 이미 의식한 그때 흔적이다 존재는 흔적을 남길 뿐 흐름 속에 있지 않다 시 87

88 시 닫히는 것의 초상 스치는 것 하나도 쉽게 넘기지 못하고 하나하나에 대답하듯 안정적인 것을 꿈꾸며 완전한 것을 위하여 열리고 채워진 다른 것을 위하여 넘치는 한 잔의 그것처럼 미끄러지듯 지나쳐 들어오는 경계를 위하여 불완전한 것을 위하여 열린다 생생한 소리 공간을 누비면 아침인 듯 다시 88 SDU 디지털 문학

89 공간을 연결하고 단절하지만 소리만이 그것을 보여주고 변하는 것은 오직 그림자들 뿐 넌 무엇을 위하여 분주한가 묵직한 바람이 공간을 채워가면 거추장스러운 발 하나 바닥에 놓는다 촛불의 흔들림은 자취도 없지만 삐걱거림은 숨소리인 냥 새근거린다 시 89

90 시 도편수에게 보내는 外 1편 - 전등사 나부상의 전서( 傳 書 ) 노운미 꽃은, 아무 때나 피고 지는 법이 없지요 술이 넘치고 웃음이 넘치는 주막이라 해서 주모의 연정( 戀 情 )까지 넘 치는 것은 아니 옵지요 뭇 사내들이 헐값으로 흘리고 가는 정을 다 품을 수는 없지요 도편수 당신의 사랑, 당신의 것이기에 흐르고 넘치 는 것 또한, 내 알 바가 아니었지요 어찌, 사내들은 없는 사랑을 짜내 라* 떼쓰는 어린아이와 무에 다른지 웃음을 판다 하여 분명, 속도 지 조도 없는 여인네라 판단치 마시라 당부 드렸는데 허투루 들은 탓을 내게 돌리시다니, 내 떠난 것은, 도편수 당신의 마음을 알았기에 상 처 될까 심려한 배려였거늘 그 순수했던 사랑을 처마 밑에 걸어두고 욕보인 당신의 어리석음이 벌거벗겨진 내 몸뚱이, 내 마음이 걸린 것 보다 더, 안타까울 뿐이지요 사 백년을 처마 밑, 허울 좋은 하눌타리 사랑으로 버텨! 야 하다니요 * 염상섭의 만세전 * 나부상은 강화도 전등사의 대웅보전 건축을 지휘하던 도편수와 사랑하던 그 마을 주모가 배신을 하자 그에 대한 배신감으로 대웅보전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도록 나부상( 裸 婦 像 )을 만들었다고 함 90 SDU 디지털 문학

91 시 진실과 허상 사이 귀신을 본 적 있니 무덤을 파 내어 지은 집 땅 속에서 숨바꼭질 하던 흰 뼈들을 잘도 잡아 내었지 술래는 골반뼈, 두개골, 정강이, 끊어진 손가락 뼈까지 꼭꼭 숨어 있던 것들이 줄줄이 잡혀 올라왔어 몇 해를 집없이 떠돌던 우리는 그 곳에 집을 지었지 밤 열두 시 탑돌이 하듯 자박거리며 집을 돌던 발자국 소리 분명 집주인일거라 엄만 말했지 이겨야 산다고 했어 준비 단단히 해야 한다고 그믐달 방랑자처럼 떠 돌던 날 아버진 끌려 나갔어 분명 주인이었을 거야 흰 눈 뽀얗게 내려 앉은 밭으로 나뒹굴며 내 집이라고 소리 질렀지 밭엔 온통 아버지 발자국으로 북새통을 이뤘어 시 91

92 엄만, 가지 말라고 했어 해 낼거라고 얼마나 지났을까 아버진 밭에 고꾸라지듯 쓰러졌지 내가 열 살 되던 해에 나는 꿈에 자주 무덤을 보지 무덤 속에 누워있는 나를 만나지 아무도 내 위에 집을 짓지 못하도록 내 골반뼈와 두개골 정강이 끊어진 손가락뼈들이 하얗게 눈뜨고 지키지 아직 오지않은 내 죽음을 밤마다 나는 무덤 속에서 기다리지 92 SDU 디지털 문학

93 시 소금창고 外 1편 류제희 땅 가까이 기울어 목발 짚고 버텨보지만 갈대밭의 침묵보다 숨소리가 더 무겁다. 썩은 이처럼 빠져나간 널빤지 사이로 밀고 들어온 빛 낮은 자리로 내려올 줄도 다른 출구로 꺾여나갈 줄도 모른 채 짠내 나는 허기만 골수 깊이 쌓였다. 한때는 뼈도 없이 희디흰 살로 채워지던 부유한 창고 비린 것들 안아 키우고도 비린 기척 하나 없이 하얗게 꽃으로 피어나 다시, 살이 될 수 있을까? 폐경기 지나 껍질뿐인 몸 백중사리 갯내음이 발끝부터 더듬어 오지만 바다를 잊은 지 오래다. 시 93

94 시 개복숭아 두 알 그 볕 좋은 여름 날 단맛 하나 가두지 못하고 빛깔만 익은 벌레 먹은 개복숭아 바람도 없는데 파르르 솜털이 털린다. 말초신경까지 새파랗게 진저리친다. 비 그치면 미련 없이 줄기를 놓아버릴 개복숭아 두 알 오래 전부터 내 안에서 익고 있다. 94 SDU 디지털 문학

95 시 손님 민순임 한밤중 철문 밖 무겁게 눌린 손님을 보았습니다 안방 문을 들어 고개 를 디밀어 봅니다 야드르르한 뉴똥 이불이 한가히 들썩입니다 조용한 밤입니다 한밤중 철문에서 낮은 쇠 울림 소리가 들렸습니다 고개를 길게 빼어 식탁을 들여다 봅니다 요구르트 공병 두 개가 엎드러져 놀고 있습니 다. 조용한 밤입니다 한밤중 철문 자물통이 반쯤 열려 있었습니다 놀라 숨 죽이고 방으로 돌아갑니다 방바닥에 옆구리를 바싹 붙이고 귀를 기울입니다 쿵쿵 쿵 콩콩 콩 맞잡이 긴 세월은 소피도 같이 마려운가 봅니다 해 뜨면 열 쇠장사 아저씨를 찾아 봐야겠습니다. 시 95

96 시 눈 속에 핀 동백꽃 外 1편 박 경 늦은 여름부터 동백나무는 꽃봉오리를 만든다 단단히 뭉쳐진 꽃봉오리들 새들이 쪼아도 다람쥐가 건드려도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언제 피려나 늦은 가을인데도 꽃봉오리는 입을 꼬옥 다문다 단단히 뭉쳐진 꽃봉오리들 된서리 진서리 맞으며 모진 풍파 이겨낸 꽃봉오리들 추운겨울 눈이 내린다 눈보라 속에서 겨우 날개짓을 해본다 모든 슬픔을 이겨내고 창공에 비상하듯 그렇게 날개짓 한다 96 SDU 디지털 문학

97 동백꽃은 피어난다 따뜻한 날 시원한 날 다 마다하고 매서운 바람 속에서 눈보라 날리던 날 가느다란 햇볕 받으며 비로소 온 몸을 펼쳐 보인다 이 정열을 보란듯이 붉디 붉은 동백꽃은 그렇게 피어난다 눈 속에 핀 동백꽃 세상에 모든짐 벗어던져 버리고 잠시 나를 따라 오란다 하얀 눈 위에 붉은 발자국을 하나 하나 남겨둔 채 추운겨울 자태를 뽐낸 동백꽃은 그렇게 나를 따르란다. 시 97

98 시 눈 오는 날 아들은 날씨가 춥다고 언제 눈사람 오냐고 성화다 더 추워지면 하나님이 예쁜 눈사람들 보내줄 거야 아들을 살짝 달래본다 춥지도 않은 날씨에 하늘에선 은색 꽃잎들이 떨어진다 아들녀석 눈사람 온다고 펄쩍펄쩍 "엄마! 눈-따-담, 만-드-뎌-요 아들은 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얼른 밖에 나가잔다 어느새 헐벗은 나무는 흰옷을 두텁게 걸쳐입고 지층은 솜이블로 포근히 덮어주어 하얀눈은 온 세상을 모두모두 품안에 넣고 있다 엄마는 큰 눈덩이 아들은 작은 눈덩이 데굴데굴 굴리면 금새 살이 쩌 온다 아빠만큼 볼록한 배 아들만큼 터질듯한 볼 나뭇잎으로 모자를 씌우고 막대기로 손을 만들면 눈사람 탄생 98 SDU 디지털 문학

99 아들은 신나서 눈덩이를 자꾸자꾸 굴린다 붉게 물든 단풍같은 손으로 추운줄도 모르고 만들고 또 만들고 나의 겨드랑 속으로 아들손을 넣어준다 차가운 체온이 나의 온몸에 퍼지고 나의 따뜻한 체온이 아들에게 전해진다 아직도 하늘에선 눈사람들이 날아다닌다. 시 99

100 시 어머니 박유홍 어머니, 오늘 밤은 밝은 달이 하늘 가득 합니다. 한 점 티조차 찾을 수 없어 더욱 깨끗한 달빛입니다. 그리고 방안에는 침묵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어머니 방안의 침묵은 침묵이 아닙니다. 가슴을 도려내는 날 선 아픔의 언어가 보이지 않는 무게로 수 없이 떠다닙니다. 나는 작은 꿈을 꾸고 있었어요. 당신이 밤마다 저를 위해 꾸어주시던 손끝 아린 조각들을 찾아 끝 간 데 없는 미로를 달리는 꿈이예요. 100 SDU 디지털 문학

101 잘 드는 칼로 당신의 가슴을 저미듯 도려내고 아직은 두려움마저 모르는 철부지 어린애가 되는 꿈이 었어요. 그래도 어머니 당신은 표정 한 번 일그러뜨림 없이 작은 나의 등을 다독이면서 붉은 피가 철철 흐르는 가슴을 늘 마다 않으셨지요. 마디를 몇 개나 잘리워진 지친 발로 걷는다면 아득한 곳에 당신은 계시겠지만 밝은 달이 하늘 가득한 오늘은 너무도 가까이 당신이 계십니다. 용서하세요, 어머니 그래도 또 잠이 오는 걸요. 어머니. 시 101

102 시 갓바위 外 1편 이순지 갓바위 불 갓을 쓴 바위 부처 천년의 미소와 위엄이다. 수많은 사람들 이곳 불상 앞무릎 꿇는다. 무슨 소원인지 모두 다 아는 듯 내려쓴 갓 허겁지겁 숨을 쉬며 올라온 갓 바위산 내가 바라는 소원 갓바위 부처도 모른다. 102 SDU 디지털 문학

103 시 마니 Money 주세요. 마니 주세요. 많이 주세요 한국에는 항상 Money 달라고 누구에게나 부탁한다 그래서 하늘에서 Money를 주는지 언어의 뉘앙스 정말 이상하기도 심마니도 역시 심이 돈이 되게 심봤다고 하는 걸까? 마니는 Money, Money 해도 Money가 최고다. 황금만능주의( 黃 金 萬 能 主 義 )인가? 많이많이 복 받으세요 Money 많이 복( 福 ) 받으세요 시 103

104 시 설거지를 하면서 外 1편 정건우 아내가 잠든 사이 설거지를 해본다 덩그마한 개수대 한중간에 압력밥솥 바닥부터 층층이 쌓인 식기들 간장종지는 밥그릇 안으로 파고들고 밥그릇은 국그릇 위에 얹혀지며 젓가락은 쭈뼛하게 돛대처럼 꽂힌 채 난파선으로 기울어 있는 우리 삶의 밑천 큰 것은 오로지 작은 것을 수용하고파 켜켜이 속을 덮어 쌓이고 싶은 체적의 질서 해무( 海 霧 )빛 뽀얀 세제의 거품을 일어 오염된 삶의 부속을 씻긴다 내 문패같이 오종종한 이 작은 한쪽 공간에 바다가 있었다니 아내는 바로 한 끼 앞에서 난파된 배의 키를 거두어 하루 세 번을 십수 년 동안 바다를 건사하듯 삶의 밑천을 닦고 널어 말렸구나 준설하듯 밑바닥을 수도 없이 매만졌겠구나 생의 동력이 따뜻한 밥을 보듬어 안은 주발처럼 식지도 깨지지도 않기를 소망하면서 갑문같이 젖은 손을 열고 닫으며 하루 세 번 바다를 비우고 다시 담아두려 하였겠구나. 104 SDU 디지털 문학

105 시 언 강( 江 ) 필시 저것은 강의 등일 것이다 세상천지에 흐르는 것엔 반드시 곰곰한 생각이 있어 가는 걸음에 보조하며 앞서기도 하고 뒤따르기도 하다가 무겁게 가라앉는 것이니 강은 바닥에 등을 대고 느리게 흘러가며 사날같이 펄펄거리다 침전되는 가슴들을 보듬었다 추우면 어는 것이다 얼어 붙는 것이다 낙수( 落 水 )가 진저리나도록 투명한 빛깔이어서 먼저 얼듯이 시 105

106 물속에서 쉼 없이 씻기며 드맑게 가라앉은 생각의 결정( 結 晶 )들이 쩍쩍 갈라지듯 가슴이 시려오기에 강은 몸을 뒤집었으리라 하얗게 얼어붙으며 반듯하게 정리된 표면에서 강은 또다시 침잠되는 가슴들이 가서 닿을 그곳의 수심을 가늠하고 있을 것이다. 106 SDU 디지털 문학

107 시 겨울 풍경 外 2편 최무선 그대 품에선 차가운 바람이 분다 먼산 거쳐 여기까지 불어온듯한 바람냄새 추운 나뭇가지 흔들어 놓고 다시 달아나는 바람냄새가 난다 그대 품에선 눈 냄새가 난다 꿈이 부서진 가슴에도 내리는 눈처럼 조금은 향기롭고 그러나 금방 녹아버리는 그런 눈 냄새가 난다 그대의 품은 황량한 벌판처럼 메마른 바람에 몸을 맞긴 나무처럼 텅- 비어서 넓고 넓다 겨울 풍경은 정결하고도 순결하다 그리고 나를 향해 손 흔드는 풍경이다 시 107

108 시 목각오리 언 호수 위에 떠 있는 목각오리 두 마리 주둥이 서로 모아 입김 나누고 있다 움직일 수 없는 날개죽지 운명처럼 접고 슬프고 서러운 호수 위에서 바람에 몰려 서로에게 다가가 있다 이 겨울이 다가기까지 호수가 얼었다 녹았다 하는 동안 그들은 서로에게 다가가기도 하고 등을 돌리고 혼자서 얼음과 찬바람을 견디기도 하겠지 발이 묶인 목각오리의 가슴은 매일 날개짓 한다 아직은 먼 강을 향하여 그래도 돌아올 봄을 향하여 108 SDU 디지털 문학

109 시 담쟁이 세상에 모든 기댄 것들 기대지 않은 것은 없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아프도록 밟아오르는 것들 기다려 주는 벽 한여름 지나 붉게 나부낄 자식들 나부끼던 것들 돌아간 후 휘청거리는 홀로된 벽 바람 견디느라 하늘에 기댄다 시 109

110

111 학생문단 소설 김현경 이승현 정명자 정혜련 小 說

112

113 소설 낭만고양이 김현경 딸랑~ 언니. 안녕하세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인사를 건네며 들어오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안녕하며 식상한 인사를 건넨다. 아침 8시 출근해서 오후 2시까지, 6 시간을 일하고 나가는 그 행복감에 발걸음이 가벼운 것은 역시 비닐 봉지에 그득하게 챙겨 넣은 음식들 때문이다. 겨우 몇 분 차이로 유통 기한을 넘긴 삼각 김밥과 샌드위치, 우유들은 내일 이 시간까지 일용 할 양식이 되어주는 것들이니까.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절약했다는 사실보다는 그저 공짜라서 좋은 거지. 한참 햇살이 내리꽂히는 한낮은 당연히 밝고 환해서 괜시리 발걸음 이 경쾌해진다. 보는 눈만 없다면야 8살 어리던 때 마냥 폴짝폴짝 뛰 며 광년이 흉내를 내고 싶은데 말이지. 절로 킬킬거리며 흘러나오려는 웃음을 틀어막으며 일그러져 있을 얼굴근육을 추스른다. 편의점에서 나온 지 삼십 초도 지나지 않아 우울하던 기분이 하늘을 팔딱팔딱 날 소설 113

114 아다닌다. 행복하다. 아 이런, 또 얼결에 베실베실 웃어버렸다. 뭐, 상 관없어. 이상한 여자 하나 지나가는 모양이라 생각하겠지. 근처 공사장에서 일하며 아침부터 찾아와 소주 한 병을 꿀떡꿀떡 삼 키곤 하는 누런 이빨의 인부가 꼬깃한 천 원짜리를 건네며 얄딱구리 한 음담패설을 건낼 때의 불쾌함도, 오랜 기다림 끝에 오픈한 편의점 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고작 시급 천팔백 원을 주면서 모모 대기업의 회장이 신입사원을 훈계하듯 땍땍거리는 여사장의 그것도 모두모두 햇살에 부서져 날아가 버린다. 여러분! 오늘도 아름다운 날이에요!!! 낡은 페인트가 벗겨져 녹이 슬어 있는 촌스러운 파랑색 철문을 끼긱 거리며 열고 사랑스러운 나의 집 문을 딸각 따고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배를 발라당 까고 방바닥에 몸을 부비적거리는 양이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눈을 맞춰온다. 니야옹~ 니야옹~ 다녀왔습니다. 니양~ 니야아아아앙~ 우리 양이 집 잘 보고 있었어? 능수능란한 손놀림으로 턱 아래를 쓱쓱 긁어주며 오른손으로 엉덩이 를 팡팡 두드려주자 엉덩이를 들어 올리며 만족스레 골골거리던 녀석 이 그새 자기 볼일은 다 봤다는 듯 팽 돌아서서 가뿐하게 책장 꼭대 기로 올라가 엎드려 눈을 감아버린다. 저 얌체같은 년. 뽀록거리며 올라오는 심술에 책장 위에 누워 있는 녀석을 끌어다 침 대에 훌쩍 던지자 다음 행동을 취할 새도 없이 샤샥거리며 침대 밑으 로 숨어버린다.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침대 밑을 빼꼼 들여다보자 쩍 114 SDU 디지털 문학

115 하품을 하며 눈을 감는다. 그래도 귀족의 혈통이라는 페르시안과의 사 이에 태어난 잡종이니 그 우아함을 반쪽이라도 물려 받았을텐데 하는 짓은 완전히 도둑고양이다. 챙겨온 양식을 냉장고에 대강 챙겨 넣고 침대에 폴짝 뛰어올라 낮잠 을 청하자 살금살금 다가와 머리맡에 몸을 둥그레 말고 잠을 청하는 녀석의 부드러운 털을 몇 번 쓱쓱 쓰다듬어 주고는 눈을 감았다. 침대 와 책상 하나만으로 가득 들어차버려 한 사람 겨우 지나갈 통로만 남 는 좁은 방. 채광도 전혀 되지 않아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작은 방에 색색 울리는 양이의 숨소리가 마냥 정겹다. 겨울이면 찬바람이 틈새로 솔솔 들어오는 대문이라고 부르기에도 민 망한 나무문을 열자 엄마가 어설픈 미소를 띄며 서있다. 도중에 깨어 버린 낮잠 덕분에 인상을 확 찡그린 모양이다. 들어가도 되냐고 조심 스레 묻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곤 등을 돌린다. 주섬주섬 신발을 벗고 는 올라서는 표정을 보니 마땅찮은 기분이 그대로 느껴져 평화롭던 기분이 금새 바닥을 치달린다. 양이는 낯선 사람의 그것에 침대 밑에 기어들어가 버린지 오래다. 워낙 좁은 탓에 올 때마다 앉을 자리를 찾아 헤매던 눈길에 이내 침 대에 머무른다. 앉을 곳이라고는 침대밖에 없다는 걸 알텐데도 왜 저 리 매번 헤매는지. 두 명이 서면 가득 차 버리는 작은 부엌에서 제일 깨끗하고 예쁜 컵에 보리차를 따라 가져다주자 한참 망설이다 한 모 금 꼴깍 마시는 모양이 참 우스워서 소리 나지 않게 베실 웃어버렸다. 작고 조용한 도시에서 그나마 변호사와 의사들만 모여 산다는 동네 아파트에 살며 나름 우아한 생활을 하는 여자에게는 그녀의 집 화장 실만한, 곰팡이 내음이 물씬 풍기는 이 방이 꽤나 혐오스러운 모양이 다. 한 달에 한번쯤 찾아오면서도 매번 저렇게 표정을 드러내니 말이 다. 소설 115

116 잘 있었지? 그냥 그렇지 뭐 하며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가만히 방바닥을 내려다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죄라도 지은마냥 할 말을 찾지 못하는 모 양이 답답하면서도 묘하게 안쓰러워 애써 배에 힘을 주고 발랄한 목 소리를 드높였다. 애들 잘 지내지? 응. 잘 지내지 뭐. 매일 따라다니면서 챙겨주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 어. 어색하던 차에 나온 말이 반가웠는지 금새 웃으며 어린 동생들의 애 기를 늘어놓는 것이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별 관심도 없고 이렇게 낮 잠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아까울 뿐이지만 한 달에 한번 찾아와 몇 분 간 얼굴을 맞대는 것으로 나에 대한 죄책감을 희석시키려는 여자의 몸부림이 빤히 보여 마냥 웃어준다.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느껴졌 는지 양이가 빼꼼이 고개를 내밀고 니양거리자 엄마의 표정이 금새 심각해진다. "고양이는 요물이라는데... 이 작은 방에 고양이까지 키우면 기관지에 안좋을텐데. 웅얼거리며 작게 꺼내는 애기를 말없이 듣고 있자 거기에 힘을 얻었 는지 주섬거리며 말을 이어나간다. 고양이는 귀신을 보는데다, 어두울 때보면 눈이 번뜩거려 소름이 끼쳐. 우는 소리가 어쩜 그렇게 갓난 애 기랑 똑같은지... 은혜는 모르고 복수만 아는 요물이라더라.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 엄마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본다. 눈도 똑같 이 생겼고, 살짝 튀어나온 뻐드렁니도 똑같고, 키도 똑같고, 미간에 잡히는 주름도 똑같다. 다른 거라면 코 정도일까. 누가 봐도 모녀간임 116 SDU 디지털 문학

117 을 눈치 챌 정도로 닮은 꼴이다. 그런 여자의 얼굴을 뜯어보며 그냥 웃었다. 있잖아요. 고양이가 허공을 노려보는 건 떠다니는 먼지나 작은 벌레 를 보는 거구요, 앵앵거리며 우는 건 발정이 날 때만 잠시 우는 거구 요, 실수로 꼬리를 밟거나 하면 며칠쯤 삐져서 본체도 안하지만 이쁘 다 이쁘다 해주면 금새 풀려서 부비적거리며 애교를 부려요. 파리 사 냥을 좋아해서 우다닥거리며 잡아다 제 발밑에 선물하고, 아르바이트 마치고 집에 오면 냥냥거리며 마중 나와서 애교를 부려요. 가끔 잠자 다 가위에 눌려 허우적대면 어떻게 알아채고 야옹거리며 깨워주는 퇴 마묘기도 하거든요. 속으로 웅얼거리며 양이를 변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 달에 삼십 분을 할애해 죄책감을 희석시키는 여자에게 장단을 맞춰주는 것은 꽤 나 지루한 일이니까. 부드러운 응대에 힘을 얻은 여자는 점점 애기의 범위를 넓혀간다. 출장 간 남편이 바빠서 한 달에 한 번 얼굴보기도 힘들어. 차라리 잘됐어. 난 자식새끼들만 키우면서 사는 게 좋거든. 아파트 평수가 작아서 집에 가구를 줄이던지 이사를 가던 지 해야겠 어. 이번에 산 진주귀걸 인데 겨우 이백만원 주고 샀는데 옆집 변호사 와이프가 색깔이 곱다면서 천만원은 나가겠다며 부러워하더라. 그녀는 내가 독립하고 나서부터 꽤나 행복한 모양이다. 하긴 전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라는 것은 꽤나 부담스러운 존재였을테니. 학교 를 마치고 귀가한 고등학생 딸에게 이십만원을 집어던지며 제발 좀 나가달라며 고함지르던 히스테릭한 여자는 가뿐한 마음으로 잘 살아 가고 있다. 한참 수다를 떨어대던 여자가 핸드백에서 주섬거리며 선물 이라며 건낸 14K 금발찌를 고마워하며 받았다. 뭔가 주고 간다는 만 족감에 웃으며 고급승용차를 몰고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 집으 로 들어왔다. 생일선물로 누군가에게 받아와 이런 싸구려를 선물했다 고 투덜댄 여자가 서랍장 구석에 대강 던져 넣었던 기억이 난다. 쯧 하며 잠시 혀를 차다 자질구레한 악세사리함에 챙겨 넣었다. 귀찮은 소설 117

118 손님 하나를 잘 치러내고 나니 잠이 달아나버렸다. 침대위에 앉아 털 을 정리하는 양이를 덮쳐 마구 간지럽혔다. 참다못한 녀석이 하악거리 며 손등을 할퀴어놓고는 책장 위로 도망간다. 전 주인에게 학대받다 구조된 녀석이라 난폭한 행동에 민감한 양이 는 조금만 위협적인 상황이라 판단되면 사나워진다. 애묘인의 제보로 동호회인들에게 구조될 당시 해골마냥 깡말라서는 눈만 동그레 뜨고 는 비척거리며 사람들을 피했다. 독립 아닌 독립을 하고 겨우 사글세 방을 마련해 살던 내가 무슨 생각으로 녀석을 데려왔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양이는 작은 내 방으로 옮겨져 동호회 기부금으로 한참동안 병원을 다녀야했다. 뱃속에 가득한 기생충과 심각한 영양부 족, 탈수, 그리고 엉망인 마음의 상처로 참 많이도 아픈 녀석이었다. 정말이지 그저 그런 우연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몇 달 앞두고, 몇 박스의 짐과 이십만원을 손에 쥐고 쫓겨나 감사하게도 불러준 콜택시 를 멍하니 기다리며 느낀 절망감과, 친구 집을 전전하며 느낀 수치감 에 내도록 흠뻑 젖어있던, 가장 불행했던 내가 불행한 양이를 가족으 로 들인 것은. 많이도 아팠던 양이는 세상에 나자마자부터 당해야 했던 학대와 상 처를 금새 극복해냈다. 병원진료를 마칠 때 즈음에는 간식을 달라고 냥냥거리며 졸라대고, 머리맡에 누워 함께 잠을 청했다. 외로움과 상 실감으로 뼛속까지 시린 어둠 속에서 홀로 잠을 청하던 때, 살금거리 며 기척없이 베개 맡에 와서는 몸을 말고 잠을 청하는 양이의 모습에 그냥 울음이 터져 나왔다. 불행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시간이 참 바보 같았다. 어느 때던가. 동네에 사는 노란 줄무늬 고양이를 본 적이 있다. 마른데다 꼬리가 짜리몽땅한 그저 그런 도둑고양이였다. 밤길에 부스 럭거리며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모습이나, 출근길에 차 밑으로 슬그머 니 숨어들어가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던 도둑고양이. 동네 초등학교 118 SDU 디지털 문학

119 남자아이들이 구석에 몰아넣고 돌맹이를 던지면 이리저리 피하며 구 석으로 숨어들기도 하고, 혹은 돌맹이에 맞아 머리에 핏줄기를 달기도 했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머리에 나는 피를 앞발로 싹싹 닦아내던 초 라한 도둑고양이는 다음 날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담장 위에 앉아 햇 볕을 쬐며 평화로운 한 때를 보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한가롭고 행 복해보여 야옹아~하고 부르면 게슴츠레 눈을 뜨고 잠시 바라보다 다 시 눈을 지긋이 감고 낮잠을 청하던 도둑고양이. 어느 날 엉망으로 찢 겨진 쓰레기봉투를 보며 이를 갈던 아줌마들이 뭔가 모의를 하고, 며 칠 뒤에 영영 사라져버린 도둑고양이. 침대에 누우면 늘상 그 녀석이 떠오른다. 돌팔매질에 상처를 입고 절뚝거리며 안쓰럽게 있다가도 다음 날이면 담장 위에서 행복한 듯 따스한 햇볕을 쬐던 노랑 줄무늬 도둑고양이 가. 음식과 함께 뿌려진 쥐약과 무시무시한 덫을 잘도 피해서 어디론 가 살랑살랑 놀러간 것이 틀림없을 그 낭만 고양이를 생각하며 나른 히 하품을 하고 침대에 누웠다. 모자란 낮잠을 좀 더 보충해야겠다. 눈을 감자 니양거리며 양이가 베개 맡에 자리를 잡는다. 살짝 피가 베 어 나오는 손등으로 복수하듯 양이의 엉덩이를 퉁퉁 쳐주고는 한 번 만 봐주마 하며 중얼거렸다. 어둡고 작은 방 안에 다시 평화가 내려앉 는다. 잠과 함께. 소설 119

120 소설 탈피 이승현 "다 왔어요, 일어나요. 버스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그를 깨웠다. 그는 한숨을 푹쉬곤 자리 에서 일어나 나오면서 말했다. "아 왜 이렇게 빨리 도착하는거야. 잔 거 같지도 않고 말야. 이거 출 근시간인데 차도 안막히나. "허허 푹자면 여관비 받아야지. 그가 투덜거리자 머리 희끗한 기사가 대답했다. "여관비 받으려면 돈들여 버스부터 좀 바꿔야죠. 그래야 푹 잘 거 아 냐. 그러니까 처음 버스살 때 한 삼천 더 들여서 크고 좋은 거 사라니 깐. "아니 이사람, 땡전 한 푼이라도 주고 그런 소리해, 이 사람아." 그는 웃으며 인사를 하곤 버스에서 내렸다. 내려서 고개를 들어 앞을 보자 푸른 하늘과 침침한 붉은 벽돌건물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 다. "날씨 조오타! 그는 기지개를 켜며 힘차게 말해보았지만 공장을 보자 벌써부터 지 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발걸음은 저도 모르게 힘이 빠졌고 그 120 SDU 디지털 문학

121 렇게 공장의 그늘 안으로 들어서자 마음까지 그늘져 버리는 것 같았 다. 십 년 동안 그런대로 성실하게 일했다는 이유로 조장자리에 올랐 다. 그 조장 직함의 대가는 수당 이만원. 그 이만원을 더 받으며 조원 열두 명의 온갖 불평불만을 다 들어주고 달래며 일을 시켜야 했다. 그 자신이 라인의 일원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거기다 이 허울도 시원찮 은 조장직함은 아파도 아프단 소리도 못하게 했다. 무거운 권태가 마 음을 짖눌렀다. 그는 습관적으로 늘 하던 생각을 했다. '오늘도 내일도 똑같겠지.' 그는 느릿하니 탈의실로 걸어 들어갔다. 그때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강조장님! 안녕하세요! 문득 그의 안색이 밝아졌다. "오 그래 한직이 왔냐. 공고 3학년으로 2학기에 실습을 나온 이한직이란 녀석이었다. 강조 장은 조원들 중 한직이를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 한직이는 늘 불만없 이 일했으며 조금도 게으름을 부리지 않았다. 게으름을 부리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생산물량이 부족하면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이었다. 부리는 사람 입장에선 참으로 기특한 성격이었 다. 주위사람들은 그런 한직이를 억지로 라인에서 끌고 나오기도 했고 작업시간 중간중간에 일부러 화장실로 데리고 가 입에 담배를 물려 주기도 하였다. 그런 식으로 몇 번 데리고 나오면 나중엔 알아서 농땡 이를 쳐줘야 할텐데 한직이는 그렇지 않았다. 그때 뿐이었다. 그런 한 직이 덕분에 그도 어지간히 큰소리 쳐가며 일을 시킬 수 있었던 것이 었다. "애도 저렇게 일하는데 어른들이 나이살 쳐먹어가지고 뭐하는 거 야? 사실 그래봐야 조원들은 좀 쉬어가면서 하자고' 라며 능글맞게 미 적거릴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에 겐 어느 정도 스트레스 해소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한직이의 등을 탁 탁 두드려주곤 탈의실로 들어가 작업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곤 곧바로 생산과 사무실로 갔다. 오늘의 작업지시를 받기 위해서였다. 칸막이로 나눠져 있는 사무실엔 철제 책상과 의자들이 구획에 맞춰 소설 121

122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김대리의 자리를 찾아가며 생각했다. 그냥 움직이는게 낫지.' 사무실은 조용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간에서 쇠를 깍는 시끄러 운 기계가 돌아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시커먼 쇳가루 는 당연히 찾아볼 수 없었다. 먼지도 없이 희멀건 이 공간이 그는 왠 지 불편하게 느껴졌다. 구획을 나누는 칸막이들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김대리의 자리까지 찾아가니 그는 커피를 마시며 컴퓨터 모니터를 보 고 있었다. 강조장이 오자 그는 왔어?' 라고 하듯 흘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오늘은 여덟 파레트 정도만 맞추면 될 것 같아. 재고가 자꾸 쌓여서 말이야. "그런가? 그럼 오늘은 잔업 안해도 되겠구만. 강조장은 문득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벌써부터 시원한 맥주 생각이 났다. 비디오 신프로가 뭐가 나왔던가도 떠올려 보았다. "근데 요즘 본사에서 오피탈 불량이 많다고 자꾸 지적 나오더라고. 검사 좀 확실히 해줘. 생산과장한테 닦이는 것도 한두 번이지 정말 짜 증난다고. "그래 알았어. 확실히 할게. 김대리와 강조장은 입사동기였는데 김대리는 대학 졸업자라는 이유 로 3년정도 생산직에서 일하다가 사무직으로 올라갔고 강조장은 현장 에서 오래 일한 경력으로 조장이 되었다. 처음에 강조장은 내심 그가 부럽기도하고 질투도 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무실은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가 슴이 막히는 것 같았다. 거기다 매일 숫자와 씨름하며 골머리를 앓는 김대리의 모습을 볼 때마다 또 사무실에서 고성이 터질 때 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계속해서 되뇌었다. 그는 자신이 이곳에서 컴퓨 터 모니터를 보며 숫자와 씨름하거나 혹은 상사에게 욕을 얻어먹으며 고개 숙이고 있는 모습을 떠올려 보니 벌써부터 골이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물론 자신이 반장이나 공장장에게 깨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 만 그 빈도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사무실에 있다니. 있지도 않은, 있지도 않을 일인데 말야.' 122 SDU 디지털 문학

123 그는 그런 기분을 털어버리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휙휙 흔들었다. 오 늘은 기분 좋은 날이니 나쁜 생각은 빨리 떨쳐버려야 할 것이었다. 오 늘은 다섯시 반이면 마치고 퇴근할 것이다. 통근버스에서 내려 집에 가는 길에 비디오 대여점에서 신프로 두어 개를 빌린 다음 집 앞 구 멍가게에서 맥주 두어 병을 살 것이었다. 그는 벽에 등을 비스듬이 기 대고 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리모컨을 만지작 거리는 자신의 모 습을 상상해 보았다. 별것도 아니지만 설레였다. 일을 시작하는 아침 부터 그는 끝마친 후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프레임 2반, 회의 있습니다! 모여 주세요! 강조장은 조원들을 불러모았다. 언제나처럼 그는 아침마다 사람들을 불러모아 조회를 했다. 간단한 지시사항 전달 및 조원들 의견을 듣기 위해 하는 회의였다. "오늘은 여덟 파레트 정도만 채우면 작업종료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은 잔업이 없습니다. 이 말이 끝나자 나이 많은 이들은 아쉬운 탄성을, 젊은 사람들은 흐 뭇한 미소를 지었다. 기혼자와 미혼자의 차이는 그렇게 나타나곤 했 다. 조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안씨는 잔업을 해야 돈이 되지' 라 며 투덜거리다가 빙글빙글 웃고 있는 젊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신 경질이 나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임마들아! 너거 젊을 때 돈 부지런히 안 벌문 난제 후회한데 이!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소리치는 안씨의 모습이 우스운지 서로 쳐다 보며 더욱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젊은 사람들의 모습에 안씨는 얼굴을 찡그려 보았으나 이후에 또다른 토를 달진 않았다. 그 무례함 을 따지고 들 법도 했으나 더 할말이 생각나지 않는지 아니면 더 따 지고 들기가 겁이 나는지 안씨는 항상 그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었다. 거기다 안씨가 하는 말은 기혼자들에게도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 일쑤 였다. 언젠가 강조장의 선임자가 일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안씨는 마 주치는 사람들마다 은근슬쩍 지나가는 말로 날 조장을 시키문 잘할 텐데' 하는 것이었다. 차라리 노골적으로 윗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사 소설 123

124 를 차렸다면 경멸 받더라도 무시당하진 않았을 테지만 그는 그런 정 도의 배짱도 없이 그저 자기 주위 사람들에게만 그렇게 말하고 다니 니 비웃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사람들은 듣다 못해 그를 윽박지 르기까지 했다. "우리한테 카지 말고 저 위에 가서 말해보소! 그러면 안씨는 그래보이 되겠나?' 하며 고개를 흔들흔들 하다가 또 다음날이 되면 날 조장을 시키문 잘할텐데' 하며 다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강조장이 임명되기 전까지 계속 되었다. 강조장도 그런 안씨의 모습을 보며 빙긋 웃다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너무 일찍 끝내지 마세요. 끝내고 놀다가 반장이나 공장장에 게 걸리면 깨지는 건 접니다. 그러니까 적당히 시간 맞춰서 하시구요. 오피탈 불량이 많다고 본사에서 지적이 자꾸 나온다고 그럽니다. 그러 니까 그라인더 끝나고 오피탈 칠 때 그라인더 자국 안 남도록 깨끗이 치도록 하세요. 그거 남으면 도색할 때 그라인더 자국 그대로 드러나 는거 아시죠? 자, 그럼 오늘도 수고합시다. 그들은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프레임 2반은 자동차 문짝의 창틀 부분만을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이곳 전의 공장에서 창틀부분의 철재 를 일직선으로 쭉 뽑아낸다. 그 원자재를 이곳에 보내면 벤딩기라는 기계로 철재를 창틀모양으로 굽히고 네 개의 프레스를 거쳐 문짝에 끼워넣을 수 있는 모양으로 찍어내는 것이었다. 이후 용접을 통해서 버티칼이라 불리는 창틀의 직각부분을 붙이고 그 용접비드는 그라인 더로 깨끗이 깍아낸 다음 오피탈 - 사포를 회전하는 장치에 붙여놓은 기계 - 공정을 통해 그라인더 자국을 없앤 후 불량검사를 통과하면 하나의 프레임이 완성되는 것이었다. 이 작업이 저녁 다섯시 반까지 계속 되면 하루 일과가 끝나고, 여덟 시까지 계속되면 잔업, 열시까지 계속되면 연장, 다음날 아침까지 계 속하면 철야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대부분 지루해 했다. 똑같은 일을 여덟 시간에서 스물네 시간까지 반복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길다란 철 재를 벤딩기에 넣고 스위치를 누르는 따위의, 굽혀진 자재를 프레스에 넣고 스위치를 밟는 따위의, 버티칼과 굽혀진 자재를 자동용접기에 끼 우고 스위치를 툭 치는 따위의, 윙윙 기압으로 돌아가는 그라인더로 124 SDU 디지털 문학

125 용접 비드를 깍아내는 따위의, 쇳가루 휘날리며 그 자욱을 없애는 따 위의, 그리고 그중에 한 가지만, 그 한가지만을 계속해서. 그렇게 일하다가 가끔씩 사람들은 망가지곤 했다. 움직임은 기계처럼 반복되지만 그래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자꾸만 딴생각을 하게 되는 것 이었다. 안전교육 때마다 강사는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일에만 집중 하라고 말했다. 그래야 안전사고가 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강사일지라도 막상 현장에 데려다 놓으면 아마도 별 수 없을 것이었다. 가장 짧은 근무 시간인 여덟 시간일지라도 아니 그 반일지 라도 정말 아무 잡념없이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있 다면, 그 사람은 초인이거나 미친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었다. 그래서 여러가지 안전장치들이 생겨났을 것이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미친 사람이거나 초인은 아닐테니까. 사람이 완전히 일 만 생각할 수 있다면 그런 건 필요 없을 테니까. 하지만 거기에도 미 묘한 헛점은 있었다. 인간이 만들어서 그런지 그것들도 불완전한 모양 이었다. 그래서 가끔씩 사람들의 몸이 망가지는 것이었다. 그는 아침조회때 한 번 말하긴 했지만 검사원에게 불량검사를 철저 히 하라고 또다시 당부했다. 지속적으로 그런 불량이 생기면 김대리도 김대리지만 결국엔 자신에게 불똥이 튈게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작업은 시작되었고 똑같은 작업이 네 시간 동안 반복되고 나니 점심 시간이 되었다. 그는 식당으로가서 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차례를 기 다렸다. 그런데 앞줄에서 갑자기 고성이 터졌다. "이게 뭐꼬! 이것도 반찬이라고 주는기가? 고기를 줘야 될꺼 아이가, 고기를! 사람이 고기를 무야지 힘을 쓴다아이가? 영양사라고 있는기 이런거 안하고 뭐하노! 안씨였다. 언제왔는지 배식구 앞줄을 차지하고 있던 그는 뜬금없이 강짜를 부리고 있었다. 어차피 직원식당의 예산은 회사에서 정하는 것 이고 영양사는 거기에 맞춰서 식단을 짜는 것일 뿐이었다. "먹기 싫으면 먹지 마세요! 우리보고 어쩌란 말이에요! 영양사 중 한 명은 안씨같은 사람들에게 어지간히 시달렸는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흥분도 잘하지만 누군가 마음먹고 윽박지르면 소설 125

126 금방 잦아들곤 하던 안씨는 상대가 여자여서 그런지 이번엔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그 둘의 싸움 때문에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점점 늘 어났고 이윽고 뒤쪽 줄에서 불만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X발' 같 은 막말부터 시작해서 쳐먹기 싫으면 곱게 꺼지든가' 같은 실현가능 한 말 그리고 영감쟁이 망령났나' 와 같은 안씨의 정신상태를 의심 하는 말들이 쉼없이 이어졌다. 강조장은 가만 보고 있으니 놀랍기도 했다. 저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윽박지르는데도 계속 버티고 있기 때문 이었다. 상대가 여자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아마도 여자에 겐 질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안씨가 자존심 때문인지 계속 버티 고 있자 결국 몇몇 안씨를 아는 사람들이 나서서 그를 데리고 나왔다. 그러자 안씨는 투덜거리면서 못 이기는 척 밖으로 나왔다. 망할 영감탱이.' 강조장은 짜증이 치밀기 시작했다. 초조감 때문이었다. 점심시간 삼 십 분에 안씨가 실랑이를 벌인 시간 십 분, 줄서서 기다리는 시간 십 분, 밥과 반찬을 담아 자리에 앉기까지 이십 분이 흘러버렸다. 안씨는 나오면서도 뭔가 또 아쉬움이 있었는지 한마디 더 소리를 질렀다. "에잇 안 묵는다 안 묵어, 내 디럽어서 안 묵는다! 젠장 밥먹고 소화시킬 시간도 없겠군. 할 말이 있으면 회사에다가 직접 할 것이지. 높은 사람 앞에선 찍소리도 못할거면서.' 그는 나중에 안씨가 배가 고파 매점에서 빵 혹은 라면을 사먹으며 지금 순간을 후회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먹어야 일한다' 가 거의 철칙인 안씨가 끼니를 거르고 일할리는 없을 것이었다. 우스 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안씨 때문에 날린 시간을 생각하자 또 슬그머니 짜증이 치솟았다. 강조장은 밥을 국에 말아서 마시듯이 먹었 다. 그리곤 밖으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이곤 급하게 피우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근무시간이 이 분 정도 지나 있었다. 그는 연달아 담배를 몇 모금 더 빨곤 현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곤 다시 일을 시작했 다. 라인을 둘러보며 벤딩이 밀리면 벤딩으로, 프레스가 밀리면 프레 스로, 용접이 밀리면 용접으로, 그라인더가 밀리면 그라인더로, 오피 탈이 밀리면 오피탈로, 검사가 밀리면 검사로. 그러다 퇴근시간이 가까워 졌을 때 그는 무척 허기가 짐을 느꼈다. 126 SDU 디지털 문학

127 잔업을 하게되면 이 시간이 저녁식사를 할 시간이었다. 그는 회사에서 근무를 시작하고부터 지금까지 오늘 같은 날을 제외하곤 거의 잔업을 해왔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바로 삼십 분 전만 해도 식사에 대해선 생 각지도 못하다가 퇴근시간이 가까워지자 곧바로 공복감을 느낀 것이 었다. 습관이 무섭긴 무서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그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통근버스에 올랐다. 그리곤 늘 그러 한 습관으로 눈을 감았다. 퇴근 때 자다가 깨는 것은 그다지 아쉽지 않을 것이었다. 오히려 푹 잠들면 낭패일 것이었다. 내일 또 출근할 생각을 하니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는 통근차가 빨리 달리 길 바랬다. 퇴근 시간이라도 길이 막히지 않길 바랬다. 그렇게 똑같은 하루하루가 계속해서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똑같은 지루함을 계속해서 느끼고 있었고 똑같은 스트레스를 계속해서 받고 있었다. 어떤 날은 즐거웠고 어떤 날은 보람을 느꼈으며 또 어떤 날은 괴로웠다. 그 모든 것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 새로운 자동차 모델이 출시되었다. 라인은 바빠졌다. 아무리 쉬지않 고 만들어도 물량은 항상 부족했다. 매일 조회 때마다 생산성 향상에 대해 말이 나왔다. 평소엔 얼굴도 잘 볼 수 없을 뿐더러 그 이름도 잘 모를 높은 직급의 사람들이 라인 시찰을 다녔다. 라인에 빈자리가 있 으면 저 자리는 왜 비었냐고 관리자를 불러다 묻기도 했다. 인원이 부 족해 생긴 빈자리가 아니면 거의 날벼락 수준의 질책이 떨어졌다. 강 조장도 그런 벼락을 맞았고 그 벼락을 세 번째인가 맞았을 땐 그도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폭발은 당연히 조원들을 향한 것이 었다. 조회 때도 언성이 높아졌고 근무시간 중에 몰래 담배피러 다니 는 사람들을 발견하면 그 나이의 고하를 막론하고 자리로 돌아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심하면 아예 관두라며 막말까지 했다. 그의 질책도 자 신이 받은 날벼락 수준으로 변해갔다. 사람들은 더러워 죽겠다고 말하 면서도 점차로 라인에만 붙어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정말 쌀 것 같지 않으면 근무시간 중엔 절대 화장실에 가지 않게 되었다. 소설 127

128 어느날 주문이 밀려 철야작업을 할 때였다. 2번 프레스에 이상이 있 다는 한직이의 말을 듣고 강조장은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것은 프레임 의 곡선모양을 잡아주는 프레스였다. 한직이는 하루종일 일하다가 잠 깐 멍해졌던 모양이었다. 금형에 프레임을 완전히 집어넣지 않은 상태 에서 그만 습관적으로 스위치를 밟았다는 것이었다. 프레임은 금형에 꽉끼어 있었고 그 때문에 프레스의 위쪽 금형이 내려간 채 꼼짝않고 있었다. 아마도 다른 조원 같았으면 그동안 붙은 습관으로 정신 안차 리냐고 한바탕 성질이라도 부렸을 것이나 그것이 한직이라서 그런지 그는 그다지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강조장은 그 모양을 보더니 씩 웃기까지 하였다. 그리곤 안절부절 못하는 한직이를 향해 슬쩍 농담을 했다. "짜식, 이 프레스가 얼마짜린줄 알아? 이거 고장냈으니 너는 이제 이 기계값 갚을 때까지 여기서 일해야 된다. 알겠냐? 한직이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강조장이 뭔가 방법이 있으니까 저 렇게 농담을 건네지 정말 방법이 없을 때는 저런식으로 말하지도 않 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쨌튼 빨리 해결을 해야했다. 이런식으로 연 결이 되는 작업은 한 곳에서 이상이 생기면 라인전체가 멈춰지기 때 문이었다. 강조장은 굵은 대못 댓 개와 망치를 가지고 와서는 금형과 프레임이 끼인 공간 사이에 못을 대고 망치로 툭툭 치기 시작했다. 조금씩 사이 가 벌어지더니 그런식으로 못을 세 개 정도 박아넣었을 때 철컹 소리 와 함께 프레스가 원래 상태로 되돌아왔다. 의외로 간단한 일이었다. 한직이가 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요령이 없었던 탓이었다. 그는 찌그 러진 프레임을 꺼내고 프레스 안을 들여다보며 이상이 없는지 살폈다. 그러면서 한직이에게 말했다. "짜식, 괜찮아. 다음에 또 이러거든 이렇게 하면 된다. 엇! 무엇에 놀랐는지 강조장은 순간 소리를 질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 이었다. 여상스레 프레스는 강조장의 오른손을 찍고는 원상태로 되돌 아갔다. 그 프레스는 백 톤 짜리였다. 그것은 프레스 중에선 작은 종 류에 속하는 것이었다. 고통을 못 느끼는 것처럼,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는 듯한 눈으로 자신의 으개진 손을 바라보던 강조장은 잠시 128 SDU 디지털 문학

129 후 그제서야 눈치챘다는 듯 이상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 목소 리는 가수들이 내는 가성과 언뜻 비슷하게 들렸다. "우어어어어어어어어! 강조장의 비명소리에 조원들이 급히 달려왔다. 한직이는 얼굴이 시퍼 렇게 변해서 소리쳤다. "어어, 저는 아니에요! 저는 아니에요! 프레스가 그냥 갑자기 내려왔 어요! 강조장은 자신의 손을 보았다. 그건 더 이상 손의 형태가 아니었다. 마치 필요없어 버려진 고기덩이 같았다. 피가 뿜어져 나왔고 그 사이 로 살인지 뼈인지 구분되지 않는 으개진 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젠 끝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이젠 끝났다 이젠 끝났다 이젠 끝났다. 그의 목구멍에서 나오던 비명은 들 릴 듯 말 듯 한 신음으로 잦아들었다. 그의 손으로 빠져나온 피가 작 은 웅덩이를 이루자 구급차가 왔다. 강조장이 병원으로 이송된 후 그 날 당직이었던 김대리가 라인으로 내려와 조원들을 추스렸다. 당황해 서 어쩔줄 모르는 한직이는 달래서 집으로 보내고 남은 이들에게 다 시 작업을 지시했다. 작업을 지시하자 안씨가 투덜거렸다. "아니 사람이 저래 다쳤는데도 이래 일을 시킨단 말이가? 원래 큰 사고가 났을 때 원칙대로 한다면 라인은 완전히 정지시켜야 했다. 그렇게 볼 때 안씨의 투덜거림은 정당한 것이었으나 그것은 다 른 이들의 눈엔 일하기 싫어서 하는 투정처럼 들렸다. 또한 크게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어쨌든 라인이 돌아가야 하는 주요한 이 유는 납품물량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과 납기일이 임박했다는 것이 었다. 안씨는 사람이 죽어도 이 공장은 돌아겠다고 투덜거려보았으나 더이상 누구도 그를 신경쓰지 않았다. 쇳가루 냄새와 피비린내가 섞여 라인으로 퍼져나갔다. 강조장이 만든 작은 피웅덩이는 자신의 영역을 넓히려는 듯 슬금슬금 퍼져나가고 있 었다. 누군가 헝겊뭉치를 가져와 피웅덩이 위에 던졌다. 그러자 몇몇 이 헝겊뭉치에 피가 잘 스며들도록 발로 밟기 시작했다. 프레스는 아 무도 손대려 하지 않았다. 결국 김대리가 가는 작대기 하나를 들고와 소설 129

130 서 끝에 헝겊을 감은 다음 멀리서 닦아내었다. 금형에 기름칠이 잘 되 어 있는 덕분에 피나 살점이 굳어서 붙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피나 살 로 인한 불량은 없을 것이었다. 프레스엔 아무도 붙으려는 사람이 없 어 결국 김대리가 대신하게 되었다. 밀린 업무나 보며 자다깨다 할 생 각이었던 그는 재수에 옴 붙었다고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이 이 프레 스에 익숙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작업을 진행하였다. 생산목표 따위는 그냥 잊고 있는 게 나을 듯 싶었다. 작업이 느려서 뒷공정의 사람들이 멀뚱히 쳐다보고 있자 그는 대뜸 소리를 질렀다. "내가 현장일을 안한지가 칠년이야! 칠년! 누구 할 사람 있으면 와! 당장 바꿔 줄테니! 김대리가 그렇게 소리치며 사람들을 하나하나 쳐다보자 그들은 몸을 돌려 뭔가를 하는 척했다. 기계 사이에 끼인 오물을 닦아 낸다든지, 자석을 가지고 와서 쇳가루를 모은다든지. 강조장의 오른손은 잘라내어야 했다. 완전히 으깨져 버린 손은 어떤 수단으로도 다시 복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프레스는 한직이가 스 위치를 밟은 것이었다. 사고조사위원이 조사를 처음 시작할 때 한직이 는 자신이 스위치를 밟지 않았다고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나 조사위원 들이 이 질문은 그저 사고의 원인파악과 재발방지를 위해서 하는 것 일뿐 실제로 아무런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고 설명하며 다독이자 그 제야 한직이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머리가 멍해져 강조장의 손이 있는 지 없는지 보지도 않은 채 프레스를 시험해 보느라 밟았다고 했다. 적 외선 안전장치는 조사결과 각도가 묘하게 틀어져서 작동은 했으되 감 지는 못하는 무용지물의 상태로 있었다고 했다. 회사는 조사위원들이 말한대로 한직이에겐 책임을 묻지 않았다. 직원도 아닌 실습생이었고 또 직원이라고 하더라도 실제 회사 안에서 일어난 사건은 모든 것이 회사의 책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제조업체의 관례였다. 사람들은 그나마 한 손만 금형 안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수근거렸다. 양손이 다 있었으면 어쩔 뻔 했냐고들 했다. 강조장은 산재보상금으로 삼천만 원 을 받았다. 회사는 그에게 환경관리부로 갈 것을 제안했다. 한 손에 갈고리를 달면 청소정도는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오히려 쓸모없이 모 130 SDU 디지털 문학

131 양만 내는 의수같은 것 보단 여러가지 종류로 갈아끼울 수 있는 갈고 리가 훨씬 실용적이라고 덧붙여 주면서. 한직이는 한 달 정도 더 일하다가 그만두었다. 얼마 후 군대에 지원 했다는 말이 들렸다. 프레스에 발로 밟는 스위치는 없어졌다. 자재를 끼워넣고 양손으로 스위치 두 개를 눌러야 작동하도록 수정되었다. 이 제 그 프레스에 손을 다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했다. 월례전체조회 에서 대표이사는 연설을 하며 무재해 천일 달성에 십 여일을 남겨놓 고 사고가 난 사실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했다. 사람들은 프레스의 생 산성이 떨어진 게 더 안타까울 것이라고 수근거렸다. 다음에 천일을 달성하면 포상이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말은 대략 천일 정도 전에 도 있었으며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또 삼 년이야?' 하며 농들을 하였다. 강조장은 예전의 동료들과 술을 마셨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행동했으나 사람들은 점점 그를 만나는 것을 불편해 했다. 그런 그들 을 보니 그도 불편해졌다. 그는 결국 혼자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 는 환경관리부에 몇 일 동안 출근 하다가 어느 날부턴가 아무런 말도 없이 결근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선 그의 결근을 한 달 정도 지켜보다 가 결국 퇴사 시키고 말았다. 나중에 문제가 되더라도 그의 사정을 봐 주었다는 여지를 남기기 위해서였다. 원칙은 무단결근 삼일이면 퇴사 였다. 방 안에는 빈 소주병들이 뒹굴고 있다. 그는 방바닥에 백지를 놓고 뭔가를 쓰고 있다. 그는 몇마디 적다가 갑자기 종이를 찢어발기듯 힘 주어 뭔가를 적는다. 얼마나 힘주어 적는지 잠시 후 볼펜이 뚝' 소 리를 내며 부러져 버린다. 그는 부러진 볼펜을 부여잡고 종이를 응시 하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 준비한 가방을 챙겨들고 집을 나선다. 다음 날 그는 인근 야산에서 목 맨 시체로 발견된다. 그 죽은 모습이 굉장히 특이하다. 양팔로 오금을 끌어안고 마치 아기같이 웅크린 상태 로 대롱거리고 있다. 왼손으로는 오른손목을 꽉 부여잡고 있다. 눈은 하늘을 뚫어 보려는 듯 위로 치켜뜨여져 있지만 실제론 눈꺼풀도 벗 어나지 못한다. 게다가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소설 131

132 경찰은 그의 방에서 유서 비슷한 종이를 발견하지만 별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종이엔 잘 살던데 없어도 잘 살던데, 지겹다 모든 것 이' 라고 적혀 있고 마치 어린아이가 쓴 듯 글씨는 삐뚤삐뚤하다. 그 아래는 무엇을 했는지 종이가 찢어져 있다. 연고자가 없어 경찰은 골 치아파한다. 누구도 그의 시신을 수습하려 하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죽음은 신변을 비관한 자살로 종결된다. 그리 고 그것은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사실이다. 그의 집 방바닥에 탈피' 라는 글자와 비슷한 모양으로 긁혀있는 자욱은, 다른 사실들과는 아무 런 상관도 없는 그저 그 하나의 사실일 뿐이다. 132 SDU 디지털 문학

133 소설 버티고 정명자 오빠는 사진이 붙어 있는 벽 앞에 앉아 있다. 벽을 하늘로 바꾸기 위 해 나는 108장의 사진을 프린트했다. A4 크기로 조각난 하늘을 배경 으로 모형 비행기들이 흔들린다. 오빠의 몸도 시계추처럼 좌우로 흔들 린다. 뭐 해? 오빠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벽을 가리킨다. 한 곳이 비어 있다. 파 란 하늘에 난 사각 구멍. 41번 하늘 조각 자리다. 떨어진 조각은 방바 닥에 구겨져 있다. 내일 퇴근하면 다시 프린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다. 방에는 많은 비행기 관련 자료들이 있다. 너무 많이 봐 해진 책과 사진들. 나는 가끔 낡은 자료를 새로운 것으로 교체한다. 그러나 오빠 가 앓고 있는 정신분열증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시간이 지 나면서 오빠의 병이 나에게도 조금씩 옮겨오는 것 같다. 가슴에서 끈 끈한 것이 솟아나 숨구멍을 메우는 듯하다. 가끔 피부의 어느 한 부분 이 가려운 듯 느껴진다. 손목을 긁는다. 작은 돌기들이 도돌도돌 일어 난다. 나는 오빠의 항공 자료들처럼 이곳 태백에서 낡아가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 우주비행사가 되는 게 꿈이었던 오빠는 많은 것을 잃 은 채 돌아왔다. 짐을 정리하다 표지에 바람과 모래와 별들 이라고 소설 133

134 쓰여 있는 노트 한 권을 발견하였다. 생떽쥐베리의 소설 바람과 모 래와 별들 중 마음에 닿는 문장을 적어놓은 것이었다. 문장 옆에 가 끔씩 오빠의 생각이 메모되어 있었다. 노트의 마지막 부분을 펼친다. 버티고 현상. 군에서는 나의 실수를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날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지상에서 떨 어져 있었고 동료들로부터도 멀어졌다. 갑작스럽게 고독이 엄습했고 우주의 한 틈인 조종실에 홀로 고립되어 있는 것 같았다. 수많은 환영 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갱도의 한 틈에 웅크리고 있 는 아버지를 본 듯도 했다. 아버지는 나였고 나는 아버지였다. 기체가 불안정하다고 귀환하라는 통신을 들은 것도 같았지만 이번 시험비행 에서도 실패하면 미국 나사로 교육을 받으러 갈 기회는 영영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만 떠올랐다. 동생 영은이와 엄마. 그들을 사랑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내게 지워진 짐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 죄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일까? 내가 잃고 온 전투기는 단순히 하 늘을 나는 기계가 아니었다. 그건 나의 일부고 내 미래였다. 아버지가 지상으로 올라가는 통로를 잃었듯, 나도 지상으로 내려가는 통로를 잃 었다. 나는 징계실에 웅크리고 앉아 출구가 막힌 어두운 갱도를 보고 있다. 오빠가 사고의 책임으로 조종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징계를 받을 때 썼던 것 같다.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간 병원에서 만난 군 담당자는 말했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아직 모르겠습니다. 김 대위가 목숨을 건진 것 만도 천만다행입니다. 천만다행이라고 몇 번 말했지만, 그의 표정은 장례식장을 방문한 사 람 같았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오빠는 의식이 없었다. 얼굴은 퉁퉁 부었고, 다리와 가슴에는 부목이 대어져 있었다. 의사는 다리 골절이 심해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의 손이 떨렸다. 오빠는 F15K 야간시험비행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F15K는 국산 전 투기 생산을 위해, 기술을 이전받기로 하고 미국 보잉사에서 구입한 134 SDU 디지털 문학

135 전투기였다. 국내에 단 네 대뿐이었다. 네 대가 한조로 비행하다 오빠 의 전투기만 홀로 떨어졌던 모양이다. 바로 비행장으로 귀환해야 했지 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오빠의 전투기는 하늘에 더 머물렀다. 순간적으 로 비행불능 상태에 빠졌던 것 같다. 연료가 떨어진 전투기는 바다로 곤두박질하였다. 충돌 직전에 오빠는 비상 탈출하였지만 뒷좌석에 탔던 동료와 전투기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공군 사고 대책본부에서는 사고의 원인은 버티고(vertigo) 현상 때문인 것 같다고 발표했다. 병상을 지키는 엄마는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 구리 빛을 띠던 얼굴은 오래된 흙벽처럼 곧 허물어져 내릴 것 같았다. 먹을 것을 권하면 뿌리 치며 나에게 화를 냈다. 엄마의 정성 때문이었는지 오빠는 며칠 뒤 깨 어났다. 다리 수술결과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군 담당자가 다시 병 실을 찾았다. 엄마와 나는 병실 밖에 나와 있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돌아가고 난 뒤부터 오빠 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져 갔다. 방학 동안은 엄마 대신 내가 병실을 지켰다. 잠결에 눈을 떠 보면 오 빠는 창가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주 낯설어 아득 히 먼 곳에 가 있는 것만 같았다. 몸은 점점 회복돼가고 있었지만 다 른 무엇인가가 대신 손상돼가고 있었다. 몇 달 뒤, 오빠는 완치되어 부대에 복귀했지만 사고에 대한 책임으로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위병제대를 했다. 사유는 정신분열증이었다. 정신과 의사 는 안정을 취하면 좋아질 거라고 말했지만 오빠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검색 창에 버티고 현상 을 친다. 버티고 현상이란 비행중의 착시현상을 말한다. 비행기 가속도 때문에 기압이 높아지면 눈의 실핏줄이 터지고 평형감각을 잃게 된다. 심리적으로 불안해진 조 종사는 순간적으로 비행기의 계기판보다 자신의 감각을 믿게 되고, 결 국 실수를 하게 된다. 특히 전투기 조종사의 경우에는 빠른 속도로 비 행을 할 때가 많기 때문에 일반 항공기 조종사보다 버티고 현상을 일 으킬 가능성이 높다. 버티고 현상이 일어나면 낮엔 바다에 비친 하늘 을 진짜 하늘로 착각해 거꾸로 날기도 하고, 밤엔 해상을 지나는 선박 의 불빛을 별빛과 동일하게 보고 하늘로 날아오른다는 게 바다 속으 소설 135

136 로 들어가기도 한다고 한다. 고 설명되어 있다. 오후 6시. 강원랜드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차 안은 소란스럽다. 버 스가 큰 길을 벗어나 오르막길로 들어서자 플래카드가 보인다. 아름다 운 태백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 옆에는 꿈의 공간 강원랜드 500m 라고 쓰인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많은 것들이 낡아가는 태백 에서 금속 표지판이 반짝인다. 뒷좌석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너 얼마 가져왔어? 30만원. 너는? 40만원. 배낭여행자금만 따면 바로 나오는 거다. 뒤를 슬쩍 돌아본다. 남자는 찢어진 청바지에 브이 자로 파인 면 셔 츠를 입었고 여자는 반바지에 끈 티셔츠를 입었다. 대학생인 듯하다. 아직 앳돼 보이는 그들의 얼굴은 스러지는 햇살 속에서도 맑다. 고개 를 돌리고 창밖을 본다. 톤을 낮춘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돈을 많이 따면 어쩌지? 소곤거렸지만 그 소리는 붕 떠 차안에 퍼져나간다. 버스 안 여기저기 서 웃음소리가 들리다가 곧 잠잠해진다. 창밖에 산들이 보인다. 주변 탄광이 폐쇄될 때 황폐한 산 중 몇 곳에 나무를 심었다. 몇 년이 지났 지만 아직도 초록보단 검은빛이 더 진하다. 뿌리를 튼튼히 내리기에는 땅이 너무 메마르고 건조한 듯하다. 비닐에 뒤덮인 산도 보인다. 산사 태를 막기 위해 덮어 놓은 황색 비닐이 보기 싫게 빛바래 있다. 바람 에 들뜬 흙먼지가 마을로 향한다. 버스는 강원랜드를 향해 달려간다. 창유리에 뒷자리의 아이들 모습이 비친다. 70만 원으로 그들은 카지 노에서 얼마나 머물 수 있을까. 햇살의 힘이 약해지자 황색 비닐 산과 녹색의 산이 어두운 회색 톤으로 비슷해져 간다. 사물의 경계가 흐릿 해지면 강원랜드에 불이 켜진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불빛은 별처럼 반 짝일 것이다. 차가 멈춘다. 계단을 올라가려다 입구에 피어 있는 하얀 마가렛꽃을 본다. 오빠가 동굴에서 보았다는 돌꽃 같다. 사고가 난 뒤에 동료들을 보는 것이 괴롭다. 나는 F15K 전투기와 동료를 잃었다. 그리고 조종사 자격과 희망도 잃었다. 언젠가 환선동 굴에서 본 돌꽃이 생각난다. 친구들은 광석이 자라 꽃 모양을 만들다 136 SDU 디지털 문학

137 니 신기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 꽃이 왠지 끔찍했다. 어둡고 침침한 곳 에서 향기도 없이 자라는 돌꽃. 메모는 노트에서 빠져나와 머릿속을 수시로 헤집고 다닌다. 꿈에서 나는 어둡고 침침한 동굴에서 자라는 돌꽃이 된다. 가위에 눌려 숨을 쉴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 오빠는 가끔 발작을 한다. 심할 때는 소리 를 지르며 높은 산을 헤매기도 하고 지붕에 올라갈 때도 있다. 사고를 당한 시점을 기준으로 점점 많은 것을 잃어가는 것 같다. 이웃, 가족, 자신까지도. 오빠가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가고 조종사가 되면서 활짝 피어나던 엄마의 웃음은 오빠의 잃어가는 기억처럼 사라져간다. 사고가 난 뒤 나는 몇 살의 나이를 더 먹었고 엄마 얼굴은 먹는 나이 의 배로 늙어갔다. 건강하던 구리 빛 얼굴은 빛을 잃고 누렇게 바랬 다. 가끔 엄마도 오빠처럼 발작을 일으켰다. 엄마의 발작은 막걸리를 마시는 것으로 시작하여 목놓아 우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울음이 긴 날은 막걸리 기운을 빌어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중얼거 렸다. 재수 없는 년. 어렸을 때처럼 그 소리에 상처받지는 않았다. 엄마는 힘든 상황을 견 디기 위한 도구로 가장 가까운 나를 선택한 것뿐이었다. 주변에서는 임신 중이던 엄마가 아버지 사고 때문에 충격을 받아 예정일보다 일 찍 나를 낳은 것이라고 했지만, 엄마는 내 팔자가 드세서 아버지가 사 고를 당했다고 여겼다. 술에서 깨어나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척 했지만 얼마간 나와 눈을 맞추려 하지 않았다. 들어서자마자 객장 안을 두리번거린다. 습관적으로 J의 모습을 찾는 다. 수요일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다. 흡연구역 23번, 룰렛 테이블을 향해 걷는다. 테이블에 가까워지자 담배 연기에 눈이 맵다. 이곳에서 일하는 것은 흡연금지구역에서 일할 때보다 두 배쯤 힘들다. J의 유니폼이 보인다. 순간 시야에서 모든 사람들이 사라지고 J의 뒷 모습만 남는다. 들리던 소음이 뚝 끊기고 나의 심장박동만 크게 느껴 진다. 자석에 끌리 듯 몇 걸음 뗐을 때 J가 돌아선다. 사라졌던 소음 이 일시에 다시 밀려오더니 거칠게 가슴을 때린다. 그는 새로 온 객장 소설 137

138 책임자다. 떠난 지 한 달. 아직도 J가 없는 객장은 낯설다. 슬롯머신 앞에 낯익은 사람이 맥을 놓고 앉아 있다. 낯에 시장에서 본 남자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허겁지겁 일어나 도망친다. 그가 앉아있던 슬롯머 신 옆에 비닐봉투가 떨어져있다. 이주 전 슬롯머신이 요란스레 울려댔다. 한 남자가 환호성을 지르며 주변 사람들을 끌어안았다. 당첨금 1,200만 원. 구석에 있던 기계라 그리 큰 금액은 아니었다. 처음 카지노에 들렀다는 그는 햇볕에 그을 린 얼굴로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는 당첨금을 받은 뒤에도 태백을 떠나지 않고 카지노 주변을 전전했다. 나의 테이블에도 몇 번인가 앉 았다. 한 번 카지노에서 많은 돈을 땄거나 잃어본 사람은 쉽게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 그의 안색은 점점 창백해졌고 눈은 충혈되어 갔다. 낮에 시장에서 만났을 때, 그는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차비가 없다며 2만 원만 빌려달라고 했다. 그냥 지나치려 할 때 그가 들고 있는 비닐봉투 속에 들어 있는 동화책이 보였다. 남자에게 돈을 빌려 주자 나중에 갚겠다며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에게 이름과 전화 번호를 적어줬다. 칩을 색깔별로 나누어 쌓으며 고객들 표정을 살핀다. 테이블엔 세 명 이 앉아 있다. 젊은 커플 중 20대 여자, 40대 남자, 50대 남자. 커플 로 온 사람들에 비해 혼자 온 사람들은 무분별하게 게임에 빠져들고 는 한다. 룰렛에서 고객이 고를 수 있는 번호는 1번부터 36번까지다. 그러나 실제는 0번과 00번이 더 있기 때문에 38번까지 있는 셈이다. 룰렛 번호를 맞추면 35배의 칩을 받는다. 두 번호 사이에 걸쳐 놓을 수도 있는데 이 경우에 당첨되면 17배, 네 번호 사이에 걸쳤다가 맞 추면 6배를 받는다. 테이블의 고객 쪽 방향으로 1st 12, 2nd 12, 3rd 12, 라고 쓰여 있는 칸이 있다. 그 곳에 칩을 걸었다가 맞추면 걸었던 금액의 2배를 받을 수 있다. 각 번호마다 칩을 걸어 확률을 높이면 받는 금액은 줄어든다. 전체 번호 3분의 1 이상엔 걸 수 없다. 모든 게임은 알게 모르게 카지노 측에 유리하게 되어 있다. 게임을 하러 오 는 고객들도 대부분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확률보다 자신의 운을 더 믿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한다. 138 SDU 디지털 문학

139 고객들이 자신이 선택한 번호에 칩을 건다. 룰렛을 돌린다. 순간 테 이블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몇 개의 번호에 칩을 올려놓는다. 이번 게 임에선 더 이상 칩을 걸 수 없다고 설명한다. 룰렛이 돌아가는 동안 마지막에 칩을 건 남자를 본다. 손엔 천 원짜리와 만 원짜리 칩이 20 개 정도 들려 있다. 그는 고객들 뒤에 서서 시선을 한 곳에 집중시키 지 못하고, 다른 테이블을 흘깃거린다. 룰렛이 멈추기도 전에 옆의 바 카라 테이블로 옮겨간다. 룰렛이 멈춘 번호는 번에 걸린 칩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앞의 구멍에 쓸어 넣는다. 그 중에는 남자의 것도 섞여 있다. 테이블에 앉은 고객들의 표정이 엇갈린다. 딴 사람의 얼굴 엔 웃음이 번지고 잃은 사람의 얼굴은 일그러진다. 두 게임 정도 더 지나갔을 때 옆 테이블로 갔던 남자가 다시 돌아온다. 손에 든 칩은 더욱 줄어 있다. 그의 시선은 초점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린다. 자정이 넘자 객장에는 스모그 현상처럼 뿌연 담배연기가 출렁인다. 피곤이 몰려온다. 슬롯머신 소리가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와 생각의 연 결고리를 끊는다. 두통이 밀려오며 눈앞이 침침하다. 억지로 웃느라 긴장시킨 입가의 근육에서 경련이 나려 한다. J는 말했다. 착시현상은 사막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야. 일상에서도 흔히 일 어나. 특히 이곳 카지노에서는 게임을 하는 사람이나 딜러나 모두 조 심해야 해. 많은 돈이 오고 가는 걸 보면 중심을 잃게 될 수도 있거 든. 잠시 테이블에서 고개를 들고 객장을 둘러본다. 오빠는 강한 척했지 만 마음이 여렸던 듯하다. 노트에는 가족에 대한 부담감이 메모되어 있었다. 처음 오빠가 여자 친구인 보경 언니를 집에 데려왔을 때였다. 엄마는 맛있는 반찬을 오빠 앞으로 밀어놓았다. 보경 언니는 어리둥절 한 표정을 지었다. 손님 앞에서까지 감추지 못하는 엄마의 집착에 기 가 질린 듯했다. 누추한 집을 보이면서도 엄마가 그리 당당할 수 있었 던 것은 공군 조종사가 된 잘난 아들을 둔 때문이었다. 엄마가 알고 있는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오빠는 빛나는 존재였다. 보경이 오늘 떠났다. 정해진 일정에 따라 단체로 움직여야 하는 군대 생활이 몹시 힘든 날이었다. 마음은 죽은 듯 움직임을 멈췄는데 몸은 소설 139

140 습관에 의해 하루를 견뎌냈다. 이제 나를 무리에서 분리하여 고독 속 에 둔다. 어떤 틀 속에 갇힌다는 것은 자아가 죽어가는 것이기도 하 다. 나를 얽어맨 질긴 그물이 몸을 조이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만난 날, 보경은 말했다. 끔찍하게 귀한 아들은 부담스러워. 며칠 연이어 내리던 비가 멈췄다. 마당의 물웅덩이에 비친 풍경은 실 제보다 어둡게 보였다. 화창한 날에는 사라진 것 같지만 비가 내리면 다시 생겨나는 물웅덩이, 그곳에는 늘 어둡고 칙칙한 주변 풍경이 잡 혔다. 나도 웅덩이에 갇혀있는 것 같았다. 날씨가 흐리면 오빠의 병은 더 심해졌다. 약을 먹였지만 비가 오는 이틀 동안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서성였다. 눈은 빨갛게 충혈되고 동공 은 더욱 커져 있었다. 중얼거리며 마당을 오락가락하는 오빠의 손에는 모형비행기가 들려 있었다. 집밖으로 나가려는 오빠의 팔을 잡아끌어 보았지만 혼자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다. 잡고 늘어지는 나를 오빠가 홱 뿌리쳤다. 쾅 소리와 함께 머리에 통증이 몰려왔다. 뒤를 쫓아가려고 급히 일어나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열린 문틈으로 엇박자로 기우뚱거 리는 오빠의 등이 점점 멀어졌다. 그 모습이 영원히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냥 앉아 있었다. 산 쪽 에서 눅눅하고 습한 바람이 불어왔다. 갑자기 엄마의 목소리가 머릿속 을 울렸다. 재수 없는 년. 등줄기로 한기가 스쳤다. 어쩌면 엄마 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급히 오빠가 사라진 방향으로 뛰어가는데 울창하게 자란 억새들이 다리를 거칠게 할퀴었다. 허벅지 안쪽이 쓰라 렸다. 두 시간 동안 산을 헤매다가 돌아와 보니 오빠는 집에 있었다. 몸이 흙투성이였다. 씻기기 위해 목욕탕에서 옷을 벗겼다. 두 배로 먹 인 약 때문인지, 오빠는 자신을 무방비로 내어놓고 앉아 있었다. 여동 생 앞에서 알몸을 내놓고 있는 모습은 서른세 살 젊은 청년이라고 보 기 어려웠다. 식탐으로 부풀어 오른 배아래서 오빠의 그것이 축 늘어 져 있었다. 몸에 비누칠을 해도 반응이 없었다. 목욕을 끝내고 방으로 데려가자 바로 잠이 들었다. 목욕탕 거울에 비친 여자의 눈가엔 어느새 거뭇한 기미가 번지고 있 었다. 이제 스물세 살. 기미가 끼기에는 이른 나이였지만 너무 오래 140 SDU 디지털 문학

141 살아온 듯 지쳐 보였다. 비누칠을 하자 스물세 살의 유두가 꼿꼿하게 일어섰다. 오빠의 육체와 대조적인 몸 때문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샤 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서 있는데 가슴 속에서 뭔가 치받으 면서 목까지 차올랐다. 나는 바라던 미래로부터 너무 멀리 떠밀려와 있었다. 버스를 타고 민둥산 입구에서 내려, 산으로 이어진 길을 걸었다. 길 가 밭에는 연보라색 깨꽃이 습기를 머금고 축 처져 있었다. 산등성이 부근에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잡초가 무성한 쪽으로 얼마를 더 걸어가자 부드러운 풀들이 깔린 공터가 나타났다. 한쪽은 억새와 잡초 가 우거졌고 다른 한쪽은 깎아지는 벼랑이었다. 맑게 갠 하늘을 배경으 로 수백 마리의 잠자리 떼가 솟구쳤다가 내려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갑자기 춤이 추고 싶어졌다. 잠자리 떼의 움직임을 따라 천천히, 그리 고 빠르게, 더 빠르게 움직였다. 숨쉬기가 힘들어져서야 멈춰 섰다. 벼 랑가로 다가갔다.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스커트가 항아리처럼 부풀 었다. 그곳에서 날아오르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것 같았다. 어릴 때 눈에 비친 태백은 칙칙했다. 엄마의 어두운 얼굴, 검은 바람 과 냇물. 특히 오빠가 공군사관학교에 진학하여 집을 떠난 뒤, 더욱 어둡게 느껴졌다. 어느 날 내가 그린 그림을 본 오빠는 왜 그렇게 색 깔을 어둡게 칠하느냐고 물었다. 머뭇거리기만 할 뿐 대답할 수 없었 다. 그날 오빠는 나를 민둥산에 데려갔다. 능선에 오르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산 정상이 온통 하얀 억새꽃으로 덮 여 있었다. 잠시 뒤 노을빛에 억새꽃이 붉게 물들었다. 예전에 아버지와 여기 온 적 있어. 영은아, 누워 봐. 무슨 소리 들 리지? 억새가 우는 거야. 이렇게 많은 억새가 대신 울어주니까 우린 웃기만 하면 돼. 억새가 울다니, 그 소리가 우스웠다. 재밌어하는 나를 보며 붉은 억 새 속에서 오빠가 활짝 웃었다. 억새의 울음보다 그 웃음이 좋았다. 억새들 사이에 누우니 오빠 목소리가 들렸다. 영은아, 들어봐, 억새의 울음이 들리지? 억새들이 사락거리며 울 때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휴식 시간을 마치고 바카라 테이블로 자리를 옮긴다. 딜러는 보통 하 소설 141

142 루에 두 종류의 게임을 진행한다. 잠시 카드를 섞으며 테이블을 정리 한다. 60대 노인과 40대 여성이 앉아 있다. 객장을 두리번거리던 부 부가 테이블에 앉는다. 바카라는 딜러와 플레이어의 게임이다. 룰이 단순해 보여 초보자들이 많이 시도한다. 처음 온 고객을 위해 규칙을 설명한다. 테이블 위에 플레이어와 뱅커 영역이 나뉘어 있다. 고객은 패를 받은 뒤에 둘 중 한 곳에 칩을 걸면 된다. 점수 계산은 화투 섰다 와 같은 방식으로, 들고 있는 카드 두 장을 더해 9끝 이하만 계산한다. 플레이어 쪽 점수와 뱅커 쪽 점수 중 높은 쪽이 이긴다. 카 드 중 10, J, Q, K는 모두 0으로 계산한다. 두 장을 받고 난 뒤에 고 객 카드가 5끝 이하면 무조건 한 장을 더 받는다. 6끝이나 7끝이면 더 받을 수 없다. 뱅커 측에 걸었다가 이기면 5퍼센트를 수수료로 내 야 한다. 무승부에 걸었다가 맞으면 건 금액의 9배를 받을 수 있다. 부부가 천 원짜리 칩 두개를 플레이어영역에 건다. 60대 노인은 뱅 커 쪽에 만 원짜리 칩을 놓는다. 부부의 표정에 호기심이 서려있다. 가끔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는 것으로 보아 다른 일행들이 있는 것 같 다. 40대 여성이 망설이다 플레이어 칩을 건다. 손을 떼지 못하고 연 신 칩을 만지작거리는 손에는 확신이 없다. 카드를 더 나누어 주려는 순간, 여자가 칩을 뱅커 쪽으로 급히 옮긴다. 뱅커 쪽은 5끝, 플레이 어 쪽은 6끝, 플레이어가 이겼다. 부부는 기쁨의 탄성을 지르고 40대 여성은 어두운 얼굴로 일어섰다가 앉는다. 노인의 표정엔 변화가 없 다. 그는 단골고객이다. 가끔 호텔을 찾아와 객실을 예약하고 이틀 정 도 게임을 즐기다가 돌아간다. 바카라 게임은 계속 한쪽에만 걸면 손 해 보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함정은 어디에나 있다. 어 느새 40대 여자의 손은 비어있다. 여자가 백만 원을 가방에서 꺼낸다. 칩으로 바꿔주자마자 무승부에 만 원짜리 칩 열개를 놓는다. 객장 입구에서 거친 욕이 들려온다. 고객들 얼굴이 일제히 입구를 향 한다. 누군가 도박에 빠진 이를 찾으러 왔을 것이다. 가끔 있는 일이 다.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가까워지자 40대 여자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곧 빈자리는 다른 고객이 채운다. 내가 일하는 테이블을 찾아 다니며 귀찮게 하는 남자다. 고객 중에 딜러를 접대부로 여기는 사람 이 있다. 그들은 호텔에 묵으며 돈을 모두 잃고도 카지노를 떠나지 못 142 SDU 디지털 문학

143 하는 여자의 몸을 사기도 한다. 남자도 그런 사람이다. 연신 말을 걸 며 느물거린다. 그의 목소리가 슬롯머신 소리와 합쳐져 머리를 쿡쿡 찔러댄다. 무시하고 싶지만 고객이므로 미소지을 수밖에 없다. J는 말 했다. 딜러는 늘 냉정해야 한다고. 하늘로 높이 올라가면 도시가 얼마나 좁은 공간인지 보이지만, 지상 에 내려서면 도시에 사는 사람들 사이가 얼마나 먼가를 느끼게 된다. 처음부터 보경과의 사이에 좁혀질 수 없는 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 었다. 가볍고 여린 날개를 지니고 태어난 그녀에게 나의 삶은 너무 무 거워 보였을 것이다. 그녀가 떠난 뒤 외로움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해 보지만 쉽게 적응되지 않는다. 구름 위로 날아오르면 그녀가 있을 미 국 하늘에 좀 더 다가선 것 같은 느낌이다. 영은아, F15K 전투기야. 활주로를 이륙한 전투기는 산 쪽을 돌아 관람대 앞으로 날아왔다. 상 어처럼 날렵한 동체에 꼬리날개 두 개를 달고 있는 전투기는 순식간 에 하늘로 솟구치더니 하얀 구름꼬리를 남기며 사라졌다. 오빠의 시선 이 먼 하늘을 더듬었다. 보잉사의 F15K 전투기가 마하 2.5의 속도로 날아오르고 있다는 해설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오빠는 말했다. 마하 2.5로 날아오른다는 것은 그만큼의 힘에 더 당겨지고 있는 거 야. 잠시 뒤에 전투기는 빙글빙글 돌며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가슴 이 조여드는 듯했다. 지상에서 멀지 않은 곳까지 내려오자 언제 위태 로웠냐는 듯이 호를 그리듯 회전해 수평으로 날아갔다. 에어쇼를 할 때면 매년 만났던 오빠의 여자친구, 보경 언니는 보이지 않았다. J는 티니안 섬에 있는 월드 카지노의 객장 책임자였다. 강원랜드 카지 노가 자리잡힐 때까지 도와주기 위해 일 년 계약으로 와 있었다. 가늘 고 긴 눈에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늘 어깨에 힘을 주고 고개 를 약간 기울인 채 종업원들이 일하는 것을 살폈다. J의 이마에 주름 이라도 생기면 카지노 직원들은 자신이 뭔가 실수하지 않았을까 두려 워했다. 소설 143

144 어느 날 퇴근하는데, J가 개량한 오프로드용 뉴 무소를 세우더니, 집 까지 태워다주겠다고 했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이 그의 낯설었다. 유니폼을 벗어서인지 객장에서 볼 때보다 인상이 부드러워 보였다. 차에 올라서기 위해 버둥거리는 내 모습을 보더니 J가 웃었 다. 눈가에 잔주름이 부챗살처럼 잡힌 얼굴을 보자 왠지 마음이 훈훈 해졌다. 오빠가 심하게 발작을 일으킨 날 밤 처음으로 J의 숙소를 찾아갔다. 퉁퉁 부은 눈을 봤을 텐데도 J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방에는 스탠 드와 침대, 몇 개의 옷이 걸려 있는 행거뿐이었다. 한쪽 구석에 여행 용 가방이 놓여 있었다. 군더더기 없는 방에서 그가 오래 머물지 않으 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스탠드에 시선 을 고정시켰다. 가는 쇠기둥 끝에 달린 둥그런 등이 꽉 차오른 달 같 았다. J가 침대에 앉히더니 손목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이 손목을 떠나 어깨를 지나더니 목 뒤쪽 척추 뼈 부분에 오랫동안 머물 렀다. 나의 어색함이 누그러질 때까지 목과 어깨 주변을 어루만지며 J 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티니안엔 별 모양의 모래가 깔려있는 줄루비치란 해변이 있어. 햇볕 을 받으면 유난히 반짝여. 그곳 사람들은 손바닥을 모래에 댔다 떼었 을 때 많은 별모래가 붙으면 사랑과 부귀영화,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해. 벼랑에서 다이빙을 해 푸른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형광으 로 반짝이는 별모래가 물고기의 유영에 따라 하얗게 일어났다가 가라 앉아. 마치 별의 군무 같아. 그걸 보고 있으면 꿈을 꾸는 것 같지.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마음이 느슨하게 풀어졌다. J는 잠시 말을 끊더니 내 얼굴을 보고 말했다. 예전에 나는 별모래를 모으러 세계 여러 곳을 떠돌아다닌 적이 있 어. 나도 갈 수 있다면, 별모래를 매일매일 손바닥으로 찍어 모아 영원한 행복을 얻고 싶었다. 별모래를 만져봤을 J의 손을 잡아 가슴에 대었 다. 따뜻했다. 그 손길이 가만히 나를 쓰다듬었다. 경직되었던 몸이 나른해졌다. 발목에서 무릎을 지나 허벅지로 올라오던 손길이 갑자기 멈췄다. 허벅지 안쪽에 S자 모양으로 붉은 색의 상처가 길게 나 있었 144 SDU 디지털 문학

145 다. 이 상처는 뭐야,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오빠에 대해 말을 하려다 멈추고 몸을 움츠렸다. 그의 얼굴이 상처 가까이에 다가오더니 입술의 감촉이 느껴졌다. J의 숨결이 상처의 벌어진 부분으로 스며들 어 온기를 불어넣은 듯 몸이 따뜻해졌다. 입김이 느껴질 때마다 몸속 의 찌꺼기들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가끔은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생각될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은 구름을 뚫고 하강하다 만나는 새떼처럼 위험하다. 갑작스레 만나는 새떼는 순 간적 판단력을 잃게 한다. 사람들이 무너져 내린 갱도를 파고 들어가 아버지를 발견했을 때 그는 어두운 갱도의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처럼 어두운 구석에서 누군가 찾아주길 기다리다 삶 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 어둡고 습한 갱도에서 벗어나 높은 하늘로 비상하고 싶다. 이제 중급과정을 마치고 고급과정에 들어갔다. 구름을 뚫고 올라가려고 할 때 지상에서 잡아당기는 힘도 거칠어진다. 순간적 으로 높이 솟아오르기 위해서는 중력의 아홉 배를 견뎌야 한다. 새벽 한 시. 곧 퇴근할 시간이다. 남은 30분이 가장 힘들다. 엄마는 몰랐지만 오빠는 사관학교에 들어간 뒤 훈련을 받는 내내 힘들어했다. 훈련생의 50%가 첫 훈련에서 탈락하고 통과한 이의 50%가 중급에서 탈락했다. 오빠는 다른 사람보다 몇 배 더 노력하여 초급과정과 중급 과정을 통과하였다. 그러나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는 꼭 통과해야 하는 고공 적응 훈련의 결과가 좋지 않았다.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은 오빠 앞에는 고급 과정과 또 다른 훈련이 남아 있었다. 고급과정까지 통과 할 수 있는 이는 전체의 5% 정도뿐이라고 했다. 누가 찾아왔다고 해, 사무실에 들어서니 경찰이 기다리고 있다. 경찰 이 사진을 내밀며 말한다. 김영은씨, 이분 아시죠? 슬롯머신 앞에서 도망친 남자다. 환선동굴에서 도둑질을 하다가 잡혔 는데 그의 주머니에서 나의 연락처가 나왔다고 한다. 환선동굴. 금을 캐던 갱도와 자연동굴을 연결하여 관광객들에게 공개하는 테마 동굴이 다. 카지노에서 멀지 않다. 남자는 그곳에서 열리고 있는 황금유물전 소설 145

146 전시품을 훔치려 했다고 한다. 경찰이 사무실을 나가며 중얼거렸다. 바보 같으니라고, 금도금된 이미테이션인 것도 모르고. 퇴근하려고 옷을 갈아입는데 사물함에 넣어둔 비닐봉투가 눈에 띤다. 안에는 동화책과 편지봉투가 들어 있다. 편지지를 펼쳐보니 연필로 그 림이 그려져 있다. 어른과 아이가 낙타의 등에 올라 오아시스를 향하 고 있는 그림이다. 한쪽에 아이가 아빠에게 쓴 편지가 적혀 있다. 아빠가 보내준 신밧드 그림엽서 무척 좋았어요. 다른 아이들이 모두 부러워했어요. 이젠 보육원 아이들도 내가 자기들과 다르다는 걸 알아 요. 저에게는 아빠가 있으니까요. 제가 늘 기다리고 있다는 것 잊지 마세요. 보고 싶어요. 아빠가 계시는 환타지아에 저도 가고 싶어요. 비닐봉투를 가방에 넣고 문을 나선다. 신밧드. 가족 단위로 강원랜드 를 찾는 고객들을 위해 6개월 전부터 공연하고 있는 아동극이다. 공 연장 입구에는 아이들을 위해 만든 그림엽서가 놓여있다. 신밧드가 낙 타를 타고 사막을 배경으로 서있다. 엽서에 쓰인 강원랜드 환타지 아 란 글씨가 큼직하다. 밤 풍경은 무릉도원처럼 몽롱하다. 멀리 초 승달 아래 겹겹이 겹쳐진 산들이 어스름히 보이고, 도랑을 흐르는 물 이 반짝인다. 스커트 및을 파고드는 밤바람에 흉터 부위가 시리다. 떠나기 전날 밤, J는 나의 손에 별모래가 담긴 유리병을 쥐어주며 말 했다. 영은이는 내게 이 별모래 같은 사람이야. 나는 지금 별을 보고 있지 만 그 별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건지도 몰라. 지금 보이는 하늘의 별 빛은 과거의 어느 순간의 모습이거든. 오랜 시간 우주를 유영해 지구 까지 날아와 지금 내 눈에 포착된 과거의 환영일 뿐이야. 아름답지만 손에 쥘 수는 없는 거야. 나는 유리병을 매만지며 어둠을 응시했다. 고도가 높아지면 문득문득 두려움이 몰려온다. 지표면에서 한없이 멀 어져 작은 비행기의 좌석에 홀로 고립된 느낌이 들곤 한다. 그럴 때면 기요메가 생떽쥐베리에게 말한 농가를 생각한다. 언제 어디서나 내게 등대가 되는 불빛, 엄마와 영은이가 있는 태백의 시골집, 지표면을 덮 고 있는 검은 구름을 뚫고 나의 등대를 본다. 146 SDU 디지털 문학

147 햇살이 벌써 기울고 있다. 야간근무를 한 다음날은 하루가 아주 짧은 듯 느껴진다. 별모래를 검은 종이 위에 쏟는다. 흰종이 위에서는 잘 보 이지 않는다. 손바닥으로 찍어 하늘을 향해 들어올린다. 손바닥에 붙은 많은 별모래가 햇살에 반짝인다. 엄마가 흥분한 얼굴을 하고 대문을 들 어선다. 항상 누렇게 떠 있던 엄마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있다. 영은아, 오빠는 어디 갔니? 엄마의 물음에 답이라도 하듯 방 안에서 오빠가 중얼거린다. A1, T37, F16, F15 또 비행기를 조종하고 있는 모양이다. 방문을 열 자 흔들거리는 오빠의 등이 보인다. 엄마가 갑자기 나의 손을 잡으며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손에 전달되는 엄마의 체온이 따스하다. 얼마 전부터 시장 입구에서 점치는 할아버지 있지. 원래는 교회 목 사였데. 그이가 그러는데 네 오빠가 마흔한 살이 되면 정신이 멀쩡해 진다더구나. 교회에서는 41이 구원의 숫자래. 얼마 동안 엄마는 숫자 41에 집착할 것이다. 41이 실제 구원의 숫자 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엄마는 사진첩을 꺼내온다. 요즘 시간 만 나면 등을 구부리고 앉아 사진을 본다. 그 앞에 마주 앉는다. 맨 뒷장을 펼친다. 공군 장교복을 입고 활짝 웃는 오빠 사진에 엄마의 시 선이 오래 머문다. 사진은 앞쪽으로 넘어갈수록 점점 더 색이 바래있 다. 다시 엄마의 시선이 한 사진에서 오래 머문다. 검푸른 광부 옷을 입은 마흔 정도의 남자 사진이다. 아버지다. 아버지는 어깨를 축 늘어 뜨리고 어색하게 웃고 있다. 그 웃음은 곧 사라질 저녁 햇살 같다. 변 색된 컬러처럼 입고 있는 옷도 낡고 해어졌다. 눈가 주름은 살짝 올라 간 입 꼬리만 아니라면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모습은 병원 복 도에서 내 머리를 쓰다듬던 오빠 표정과 비슷하다. 엄마가 사진 속 아 버지를 따라 웃는다. 이때가 아마 네 아버지 나이가 서른다섯 살 때 일거야. 엄마의 눈빛은 사진 속 통로를 따라 먼 곳에 가 있다. 엄마와 나는 사진을 오래 들여다본다. 아버지의 웃음은 오빠와 J의 웃음을 닮아 있 다. 콧등이 맵다. 엄마, 오빠, J 그리고 나의 시간이 바래가고 있다. 갑자기 엄마가 말한다. 영은아, 너 컴퓨터로 오래된 사진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지? 소설 147

148 엄마는 아버지의 사진에서 옷에 묻은 얼룩을 지워달라고 한다. 사진첩 에서 사진을 떼어낸다. 컴퓨터 옆에 남자의 비닐봉투가 놓여있다. 아 이의 그림도 스캔 한다. 포토샵 프로그램을 열어 아버지의 옷에 묻은 얼룩을 지운다. 구멍 나고 해진 곳을 스탬프로 메운다. 너무 먼 곳의 색을 옮겨 오면 얼룩이 남고 만다. 조심스럽게 아주 가까운 곳의 색을 옮겨 온 뒤 색을 보정한다. 사진 속 아버지의 모습이 화사해진다. 오 빠의 방문을 연다. 모형비행기와 함께 오빠의 몸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다. 오빠, 뭐해? 대답이 없다. 구멍 난 41번과 아래로 있는 조각들의 번호를 적는다. 41번 이미지를 열어 산봉우리를 그리고 이웃한 조각들을 열어 산의 능선과 산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길을 그린다. 길은 활주로처럼 넓어진 다. 하늘과 땅 사이에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농가와 노란 돼지감자꽃 을 그린다. 길가에 대신 울어줄 억새도 그린다. 아이의 그림에도 컬러 를 입힌다. 맑은 물이 사막의 모래 사이를 흐른다. 초록의 나무에 야 자가 풍성하다. 아이와 남자는 낙타의 등에서 웃고 있다. 메뉴에서 프린트 를 누른다. 모두 프린트 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다. 프린트가 되는 동안 오빠의 노트에 적는다. 인생의 사막을 만난다면 나는 신기루를 만들 것이다. 풍요로운 오아 시스를 향해 몇 발자국이라도 더 걷기 위해. 148 SDU 디지털 문학

149 소설 트라이앵글과 원 정혜련 멜라니가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짐짓 외면하고 집으로 들어가려던 참이다. 그러면서도 고개부터 끄덕인 나는 지호 손을 거머쥔다. 우두 커니 주차장 저편 하늘을 보던 아이가 헝겊 인형처럼 비척비척 딸려 온다. 그녀 아파트로 가면서도 나는 쭈뼛거리지 않는다. 여태 그녀와 맞닥뜨리지 않으려 애쓰던 것이 거짓 같다. 말을 걸까 두려웠던 것이 다. 우리 집 층계를 지나치자 지호가 깡충거리기 시작한다. 소파 끝에 엉덩이를 걸친다. 원두 분쇄기 돌아가는 소리에 상체가 곧 추 선다. 그녀가 간 커피를 거름망에 떠 넣고 커피 메이커에 물을 붓 는다. 물 눈금을 확인하려 허리를 수그리자 금발이 어깨 아래로 출렁 쏟아진다. 스위치를 올리는 손놀림이 리드미컬하다. 난생 처음 외국 영화를 볼 때처럼 넋을 잃은 나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코끝 으로 구수한 커피 향이 훅 끼친다. 숨을 들이마시자 절로 눈이 감긴 다. 천천히 숨을 뱉으며 그제야 영어가 서툴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려 면 어떤가, 아무려면.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는 나는 이미 긴장이 풀어져 있다. 지호가 거실 카펫 위에 주저앉아 블록을 맞추고 논다. 나이에 맞지 않는 커다란 것인데도 신기한 듯 탄성을 지른다. 지호에 게 집 밖의 것은 모조리 그럴 것이다. 멜라니가 곧 아이가 일어날 시 소설 149

150 간이라고 한다. 제스처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계속 하는 그녀 표정이 화사하다. 나는 땅에 떨어뜨릴 뻔하다 겨우 주워든 몇 개의 단어를 부 지런히 조합한다. 진작 인사하고 싶었다는 뜻 같다. 그녀가 옆 동 일층으로 이사를 온 건 한 달 전이었다. 그 뒤로 나는 이층 내 집 창가에서 그녀를 지켜보곤 했다. 미국에 온 지난 일년 동 안 낮에는 젊은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다 눈에 띄는 사람이라 곤 집 앞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있는 노인들이 고작이었다. 젊은 사람 들과 아이들이 직장과 학교에 가고 없는 아파트 단지는 음이 소거된 듯 적막했다. 가끔은 슬리퍼를 끌며 걷다 주변을 두리번거릴 정도였 다. 나는 딸아이를 앞세우고 걷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장 아장 걷는 금발의 아이는 태엽을 감은 인형 같았다. 그녀 혼자 나올 때도 있었다. 길게 늘어선 이층짜리 아파트 건물과 야자수 사이에서 머리를 날리며 걷는 그녀는 평화로운 한편 고적해 보였다. 막상 그녀가 보이면 서둘러 집으로 달려갔다. 우편물을 찾거나 쓰레 기를 버리러 갈 때면 주위를 살폈다. 조금 전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 면서도 애써 외면했다. 마침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아파트 앞길을 달려가고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오던 그녀도 고개를 늘였다. 교통 사고나 범죄가 발생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부부 싸움하는 소리를 참을 수 없었거나 폭행을 목격한 이웃의 신고를 받은 건지도 몰랐다. 남편 의 차가 출발하자 지호가 꽁무니를 쫓아갔다. 이내 멈춰 서긴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건전지가 죽은 인형 같으면서도 지호 등에서 하염없 이 하늘을 바라보는 어른의 모습이 보였다. 길고 긴 시간의 지루함에 지레 기가 죽은 탓이었다. 갓 두 돌을 넘기고 미국으로 와 지호는 줄 곧 집에 갇혀 지냈다. 또래 친구는 고사하고 사람 구경도 쉽지 않았 다. 지호와 내가 온종일 집을 나서는 일이라곤 우편물을 찾으러 가거 나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 뿐이었다. 저물녘이면 타박타박 아파트 단 지를 산책하기도 했다. 남편은 한국 본사와 합작 관계인 미국 전자 회 사에 이년간 파견 근무 중이었다. 그를 위해 감옥에 갇혔다고 생각했 지만 나는 시간의 허허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일쑤였다. 그래서였 을까. 커피를 마시자는 그녀 말에 망설이지 않았다. 식탁으로 가자 그녀가 머그잔에 커피를 따른다. 자리에 앉으며 자신 150 SDU 디지털 문학

151 을 소개한 뒤 내 이름을 묻는다. 잠깐 망설이다 선자, 라고 천천히 발 음한다. 그녀가 선자라는 이름이 얼마나 촌스러운지 알 리 만무한데도 한국사람 앞인 듯 몹시 쭈뼛거린다. 거실 안쪽 방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난다. 잠시 후 아이가 거실로 나온다. 막 잠이 깬 표정이 어리둥절하다. 가까이서 보니 멜라니처럼 눈이 파랗다. 그녀가 아이를 안아 입을 맞추고 이마를 비비며 아침 인 사를 한다. 기저귀를 갈러 가면서 시작된 이야기는 방에서도 끊이지 않는다. 아이도 옹알거리며 대꾸한다. 그들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둘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거실로 나간다. 지호는 여전히 블록에 열중해 있다. 아이를 안고 나온 그녀가 우유를 꺼낸다. 막 컵으로 우유를 마 시기 시작했다는 아이가 쏟지 않도록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한다. 알 아듣긴 할까 싶지만 그녀는 서두르지 않는다. 우유를 마시고 나자 거 실로 나온다. 지호에게 이름을 묻고 아이를 캐시라고 소개한다. 캐시 에게 지호를 소개하는 그녀를 보자 웃음이 난다. 식탁으로 돌아온 그 녀는 딸이랑 둘이 산다고 한다. 아이 아빠는 어디 있냐고 묻자 얼마 전 이혼했다는 것이다. 공연히 남의 사생활을 캐려한 것 같아 미안하 다고 한다. 잠깐 표정이 어둡던 그녀가 괜찮다며 손을 젓는다. 일어서며 다음에는 내가 초대하겠다고 한다. 캐시와 놀고 있는 지호 를 일으켜 세우자 도로 털썩 주저앉는다. 다시 일으킨다. 싫어, 노 오. 품을 벗어나려 버둥거리는 지호를 더욱 세게 안는다. 문을 나서 려는데 급기야 아래로 쑥 미끄러져 내린다. 집에 가자니까. 노 오, 싫어.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시뻘건 덩어리가 머리 위로 솟구친다. 강제로 지호를 안으며 엉덩이를 때린다. 울음을 터뜨린 지 호에게 버럭 소리가 올라간다. 입 다물어. 또다시 힘껏 엉덩이를 때린다. 캐시를 꼭 끌어안은 멜라니가 뭐라고 지껄이고 있다. 무슨 말 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종일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본다. 사람들이 연신 입을 벙긋거린다. 눈으로 그들의 입과 움직임을 쫓는다. 소리가 나지 않는 움직임은 지 나치게 과장되거나 비탄에 빠져 있어 우스꽝스럽다. 애써 이야기의 아 귀를 맞추려 노력 하지도 않는다. 볼륨이 죽은 텔레비전은 움직이는 그림책일 뿐이다. 텔레비전을 보며 영어 공부를 하겠다던 결심이 사라 소설 151

152 진지 오래다. 그 사이 거실이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다. 일어나 앉으며 장난감 좀 치우자고 한다. 다시 한번 말해도 지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블록을 맞추기만 한다. 좀 치우자니까. 엄마 말 안 들려? 그럴 작 정은 아니었지만 어느새 소리가 올라가 있다. 철썩 소리 나도록 등을 때리자 울음소리가 자지러진다. 시끄러워. 손에 잡히는 장난감을 던진다. 그때 현관 벨이 울려 시계를 본다. 조용히 하라는 낮고 다급 한 소리가 허둥거리며 빠져 나간다. 현관문에 열쇠 꽂는 소리가 나기 무섭게 남편이 들어선다. 지호는 더욱 자지러진다. 왜 울어, 왜 우는 거야. 너, 지호 때렸어? 지호를 끌어안는 남편 의 음성이 올라간다. 대체 왜 이래. 얘가 지금 몇 살이라고. 제발 애한테 짜증 좀 부리지 마. 지호에 대한 남편의 정은 유난스럽다. 말썽을 부리거나 떼를 써 엉덩이 한 대만 때려도 냉큼 달려와 감싸 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호 문제로 곧잘 다툰다. 남편은 내가 집 에서의 무료한 시간 때문에 짜증이 심하다는 거였다. 그런 일로 다투 기 시작한 건 미국에 오기 전부터였다. 지호는 자박자박 걸으면서부터 다루기 힘들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손을 댔다. 뒤늦 게 얘가 뭘 안다고 싶었지만 사소한 말썽에도 지나친 적이 없다. 잘 타일러야지 싶던 생각을 깡그리 망각한 뒤였다. 스스로도 납득되지 않 는 일이었다. 지호에게 손찌검을 할 때마다 그것이 온전히 내 의식이 나 행동 같지 않은 최면에라도 걸린 듯한 느낌을 받으며 나는 괴로워 하곤 했다. 남편과 다투고 나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아직도 혼전 임신의 수치스러움이 남아 있는지 궁금했다. 임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기어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나는 진작 독신을 선언했지만 임신 때문에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다. 친구들이 나에게 적금을 들었다고 했다. 결혼한 지 일년 만에 지호 백 일잔치를 열자 요즘은 약이 좋아 애도 빨리 낳는다고도 했다. 그렇다 고 지호에게 손찌검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듯싶지만 당장은 짚이는 게 없다. 내 속에 돌이 박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긴 했다. 멜라니를 피해 종종걸음을 치던 일이 떠올랐 다. 우편물을 찾아오던 길이었다.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면서 무릎을 찧었다. 습자지에 물감이 떨어지듯 선홍색 꽃이 피어올랐지만 우편물 152 SDU 디지털 문학

153 부터 추슬렀다. 무릎을 싸안고 신음할 새도 없었다. 그녀가 막 아파트 모퉁이를 돌아서고 있을 거였다. 쭈그리고 앉은 내내 허벅지에 눌린 가슴이 격하게 뛰고 있었다. 멈출 듯하던 그녀가 우편물을 들추는 내 앞을 지나갔다. 화단 앞으로 비어져 나온 돌멩이가 보였다. 힘껏 걷어 찼다. 팽그르르 원을 그리던 그것이 몇 발 앞에 멈춰 섰다. 촐랑촐랑 뛰어가다 돌아서 혀를 쑥 빼무는 것 같았다. 집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희뜩 돌아보았다. 그것이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팽팽하게 맞서다 고 개를 돌렸다. 얼굴이 달아올랐던 것이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남편이 계속 지호를 안고 있다. 눈을 돌 리며 낮게 한숨짓는다. 시선이 밖으로 나가며 우편함이 눈에 잡힌다. 야자수 사이에 서 있는 그것이 비둘기 집 같다. 식탁을 차려놓고 키를 챙긴다. 가봤자 광고지뿐이겠지만 다음 날로 미루고 싶지 않다. 동생 에게서 항공 우편이 와 있다. 천천히 걸으며 봉투를 뜯는다. 어머니가 신경성 질환이 심해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내용이다. 전화를 걸까 하다 그렇게 위중한 상태도 아니어서 편지를 쓴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입원을 나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했다던 어머니의 당부도 적혀 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오도카니 쭈그려 앉는다. 병실에 누워 있을 어머니를 생각하자 마음이 무겁다. 어머니. 불현듯 울컥 울음이 올라온다. 어머니에 대한 가엾음이면서도 공연히 내 턱 끝을 치고 오 르는 서러움의 일종이리라. 그리고 그때 기억의 한 부분이 긴 잠을 깨 며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잃어버렸던 퍼즐 맞추기의 조각을 찾아내 제 자리에 끼워 넣을 때처럼 서서히 그림이 완성되고 있다. 지난 세월과 함께 잊고 있던 기억이었다. 그것은 지금의 나를 조종하는 끈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새 나는 아파트 앞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 다. 곧은 길 옆으로 자리 잡은 주택가를 따라가다 멈춘다. 숲 뒤편 하 늘로 급격히 노을이 내려앉고 있다. 느닷없이 낯선 그림 속에 들어와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처럼 나는 하염없이 고개를 늘인다. 또르르 실 뭉치가 굴러 나오듯 속수무책으로 지난 시간이 풀어지고 있다. 나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있다. 막 지게를 둘러메고 집을 나서던 아버 지가 냅다 소리를 지른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향해 달려가며 새끼줄을 내리친다. 허공을 휘돈 그것이 어머니 몸에 척척 감긴다. 나는 피하거 소설 153

154 나 비명도 없이 고스란히 매를 맞는 어머니를 목도하고 있다. 마당으 로 달려가 아버지 허리춤을 붙들고 늘어지지 않는다. 어머니에게 달려 들어 까닭 모를 설움에 북받쳐 울음을 터뜨리지도 못한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걸 아이들이 팽이채를 휘두르는 것쯤으로 생각했던 걸까. 나는 꼼짝 않고 툇마루에 앉아 물끄러미 그 광경을 내려다 볼 뿐이었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지게를 낚아채 집을 나섰다. 마당 가운 데 주저앉은 어머니는 여전히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의 다음 동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어머니가 벌떡 일어서 마 당 빗자루로 나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매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빗 자루로 흠씬 두들겨 맞으면서도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고스란히 매 를 견뎠다. 빗자루를 내던진 어머니가 호미와 소쿠리를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혼자 남은 나는 그제야 꺽꺽 목 놓아 울었다. 대나무 빗자루 에 쓸린 자리가 쓰리고 화끈거렸다. 딱히 그래서 만은 아니었다. 아무 리 울어도 울음이 멎지 않았다. 서러운 덩어리들이 끊임없이 자맥질하 며 목구멍 위로 차고 올랐던 것이다. 그 후로도 나는 심심찮게 매질을 하는 아버지를 목격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이 싸우는 원인을 캐고 따질 정도로 나이를 먹은 게 아니었 다. 다만 그들이 싸울 조짐만 보여도 바짝 긴장해 슬금슬금 눈치를 살 폈고 몸을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을 터득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언 제나 나에게 분풀이를 했다. 내가 맏이였기 때문이었다. 약간 나이가 들어서야 그 사실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어머니를 이해한 것은 아니었 다. 아버지는 싸움 막바지마다 어머니에게 곧잘 금정골로 가버리라며 패악을 부렸다. 금정골은 우리 형제들의 외가였다. 부농인 외가에서 어머니는 어려움 없이 자랐다고 했다. 그들 싸움의 원인은 가난한 살 림 탓만은 아니었다. 그걸 안 것도 초등학교 저학년을 넘어설 때쯤이 었다. 남들은 너희 엄마가 연애를 했다고 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다. 언감생심 넘볼 수 없는 걸 너희 애비란 인간도 알긴 알았던 게야. 암, 알아도 너무 잘 알았겠지. 욕심은 나는데 단념을 못하겠으니까 나 누 구누구랑 연애한다고 온 동네에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녔어. 그때 오가 던 혼담이 보기 좋게 틀어지고 나니까 여기저기서 들어오던 중신이 뚝 끊기더구나. 그러니 어쩌겠냐. 꼼짝없이 너희 애비한테 시집보낼 154 SDU 디지털 문학

155 수밖에. 온 동네에 퍼진 헛소문만 아니었어도 그런 결혼 어림없다, 어 림없어. 외할머니는 세상을 뜨기 전까지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혀를 찼다. 가끔 외할아버지가 우리 집 마당에 쌀가마니를 부려놓고 갔지만 집안 형편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의 매질은 더했 다. 멜라니에게 초대하겠다고 한 게 후회가 된다. 어차피 이 나라에서 달 랑 차 한 잔 내놓는다고 실례될 일도 아니지만 좀처럼 부담을 떨칠 수가 없다. 모르긴 해도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려놓고 대접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우리네 관습 탓일 것이다. 남편에게 의논하자 멜라 니를 식사에 초대하자고 한다. 내 집에 온 멜라니가 케이크를 내민다.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한다. 안 으로 들어서다 말고 남편과 내 맨발을 번갈아본다. 편한대로 하라고 하 자 그녀가 신발을 벗는다. 인사가 끝나고 식탁에 둘러앉자 남편이 음식 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잠깐 직접 설명하지 못하는 자괴감에 빠졌지만 색을 조화시켜서 싼 김밥이 아름답다며 감탄하는 멜라니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녀는 잡채도 잘 먹는다. 식사 도중 나는 어눌한 여자아 이처럼 서투르게 한 마디씩 할 뿐이다. 남편과 그녀의 쉴 새 없는 이야 기에 밀려 부엌으로 오간다. 거실에서 장난감을 쏟아 놓고 노는 아이들 머리도 쓰다듬어 준다. 멜라니가 돌아가자, 피로가 엄습한다. 멜라닌 지금 직장을 구하는 중이래. 남편이 그들의 대화를 다 알 아듣지 못한 나를 배려하고 있다. 그 여자는 아이와 있는 시간이 최 고의 행복이래. 그런데 직장은 구해야 하고 다른 사람 손에 아일 맡길 일이 영 안타까운 모양이야. 남편과 이혼하면서도 아이는 자기가 키우 겠다고 고집했대. 다행이네. 이혼했다고 그 남자와 관련된 것에 모조리 적의를 품을 것 까진 없잖아. 설거지를 마치고 거실로 나간다. 발길에 채는 장난감을 한쪽으로 민 다. 멜라니처럼 아이와 있는 시간을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해 봐. 오랫동안 벼르던 말이었던지 남편은 간곡하다. 처음 만났으면 서 그 여자를 속속들이 안다고 생각 마. 그 여자만 대단한 모성을 지 닌 건 아니라구. 짐짓 태연한 척 하려 해도 노여움이 밀고 올라온 다. 목이 뻐근하다. 하지만 난 네 말을 완전히 믿을 수가 없어. 아 소설 155

156 일 때리는 일만 해도 그래. 내가 보기엔 아이한테 네 짜증이나 스트레 스를 풀려고 들어. 말 다 했어? 한 번쯤은 하고 싶은 말이었 어. 아직까지 네 인생에 그렇게 미련이 남아? 너무 아이 탓을 하지 마. 주섬주섬 장난감을 주워 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아랫입술을 깨 문다. 눈물이 흘러내려 찝찌름하다. 방문 너머에서 남편이 지호를 데 리고 노는 소리가 들린다. 그립고 아슴푸레한 추억을 돌아보듯 나는 밖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몸이 편치 않다. 간밤의 무거운 기운이 종일 미열처럼 감돌고 있다. 부엌 창으로 우편배달부를 내다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동생의 편지를 받은 지 여러 날이 지났다. 어머니의 입원 소식을 듣고도 전부터 있던 증상이려니 하고 무심히 넘긴 탓일까. 답장을 쓸 수 없다면 전화라도 걸어야 했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다. 남편에게 편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언젠가 남편이 그랬다. 어머니와 내가 싸운 뒤 끝내 화 해 못한 사이 같다는 거였다. 그렇듯 어머니와 나는 그다지 살가운 사 이가 아니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오다 우편함을 열면 웅크리고 있던 남편의 말이 불쑥 튀어 나왔다. 광고지 한 장 없는 빈 우편함을 여는 날도 있었다. 광고지라도 꺼내면 정면으로 맞닥뜨린 당혹감을 수습할 수 있었지만 빈 우편함을 닫는 날이면 더욱 허둥거렸다. 우편함 키를 들고 나간다. 멜라니가 내려오고 있다. 아이는 잠들었다 고 한다. 서투르게 어떤 직장을 구하냐고 묻는다. 자신은 간호원 자격 증이 있다는 그녀는 취직이 되면 아이와 종일 같이 있지 못한다며 안 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아이에 대한 그녀 사랑이 과장은 아닐까 의심 이 간다. 미국인 특유의 숨김없는 표현 때문인지도 가늠할 수 없다. 그녀가 내게 아이를 더 낳을 생각이 없냐고 묻는다. 원치 않는다고 잘 라 말한다. 망설이지 않는다. 이혼만 하지 않았다면 아이를 둘은 더 낳을 생각이었다는 그녀 얼굴에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멜라니는 남편 이 직장 동료와 사랑에 빠져서 이혼했다고 한다. 묻지 않은 말이었다. 지호가 빈 주차장을 뛰어 다닌다. 몇 번이나 집에 들어가자고 해도 듣 지 않는다. 손바닥이 아프도록 엉덩이를 때린다. 멜라니가 그러지 말 라며 내 팔을 잡는다. 놔, 놓으란 말야! 별안간, 가슴 속에서 불덩 이 같은 게 끓어오른다. 한국말이 튀어 나온 것이다. 목구멍이 화끈거 156 SDU 디지털 문학

157 린다. 왜 아일 때리냐며 그녀가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다. 당신이 뭔 데 이래? 선자를 이해할 수 없어! 자꾸 이러면 경찰을 부를 수도 있어. 명심해. 이건 경고야. 경찰이라고? 또 이러고 말았구나. 경찰 이라는 소리에 차마 당신이 뭔데 남의 일에 참견이냐는 소리가 나오 지 않는다. 품속으로 지호를 끌어당긴다. 경찰에게 아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집을 향해 뛴다. 지호가 내 품을 벗어나려고 버둥거린다. 뛰 면서 속으로 그나마 아이가 하나이길 천만 다행이라고 중얼거린다. 아 일 더 낳을 생각이 없냐고? 천만에. 남편의 말처럼 아이가 짜증이나 스트레스를 풀 대상일 수는 없다. 등 뒤에서 멜라니의 소리가 따라오 고 있다.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다. 문을 잠근 나는 지호를 내려놓 지 못한다. 곧 경찰이 들이닥칠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생활이 지긋지긋해 진저리를 치면서도 자식을 넷이나 낳았 다. 그런 어머니는 늘 이율배반적인 존재였다. 아버지에게 매를 맞으 면서 어떻게 꼬박꼬박 그의 자식을 품을 수 있었을까 싶었다. 끝내 지 호가 품을 벗어난다. 나는 도망치듯 방으로 달려 들어가 침대 위에 엎 어진다. 알아들을 수 없던 멜라니의 말이 귓가에서 쟁쟁 운다. 나는 그 말에서 벗어나려 손으로 귀를 감싼 채 몸을 웅크린다. 그러다 까무 룩 잠이 든다. 나는 어둑한 땅 그림자가 내리도록 동구 밖에 앉아 있 다. 저녁 어스름이 성큼성큼 내려와 산골 마을을 점령하고 있다. 나는 마을 초입 다리 끝에 쭈그리고 앉아 눈물 마른 눈을 슴벅인다. 더는 어둠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오도카니 어둠 속에 앉아 있으면 안락하 기까지 하다. 언제부턴가 어머니에게 쫓겨나면 부러 다리로 달려갔다. 이십여 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에는 비밀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았다. 어머니 아버지 싸움 끝에는 내가 매를 맞거나 집 에서 쫓겨날 차례라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 쯧쯧, 너희 집도 참 큰 일이구나. 일을 마친 어른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내 손을 끌고 집에 데려다주던 사람들이 그냥 지나갔다. 차츰 남의 집 싸 움에 눈을 감았다. 설마하니 제 새끼를 죽이기야 하겠어. 그러나 저러나 맨날 제 에미한 테 콩 볶이듯 들볶이기나 하고 선자 년이 고생이지 뭐야. 함석 물동이 를 이고 우물에 가면 동네 여자들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인기 소설 157

158 척을 느낀 그들은 화들짝 놀라는 척을 하며 물 길러 왔냐고 상냥하게 굴었다. 입을 닫은 그들은 황급히 채소를 씻거나 팔에 힘을 올려 보리 쌀을 씻었다. 내가 물동이를 이기 무섭게 그들은 또 이야기꽃을 피웠 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물이 출렁이며 쏟아졌다. 어머니가 지정해 준 통을 다 채우고 나면 나는 온 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아이들과 공기 놀이에 빠져 있다 허겁지겁 물을 여다 나르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어 머니는 이년아, 하고 앙칼지게 고함을 질렀다. 아이들과 놀면서도 나 는 늘 불안하고 초조했다. 사람들의 출입이 끊기도록 나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어머니나 아 버지, 동생 중 누가 데리러 올 때까지 태연하게 버텼다. 오기가 생긴 나는 울먹이며 싸리문간에서 서성이지 않았다. 그러면 어머니는 동네 사람 다 듣겠다며 손목을 낚아채 집안으로 끌어들였지만 더는 자비를 구걸하지 않았다. 매질도 두려운 게 아니었다. 물을 여다 나르는 일이 나 어머니가 이른 일을 마저 하지 못해도 발을 구르지 않았다. 어느덧 내 나이 열 살을 넘고 있었다.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는다. 아침 밥 먹다 혼잣말로 한국에 갔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종일 목에 걸려 있다. 공연한 소리를 했다고 후회한 다. 딱히 한국에 가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정리하지 않은 이부자리처 럼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다. 현관 벨이 울지만 무시한다. 다시 벨이 울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다. 멜라니가 캐시를 안고 내 집 앞에 서 있다. 놀란 나머지 도로 문을 닫는다. 똑똑. 노크 소리가 물러설 수 없다는 듯 단호하다.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문을 열자 잠시 이야 기 좀 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옆으로 비켜서자 멜라니가 안으로 들어 온다. 차라리 잘 됐다 싶다. 언제까지 우편배달부가 오는 시간을 피하 고 한밤중에 쓰레기를 들고 나갈 수는 없다. 커피를 끓이며 무슨 이야 기든 하겠다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나는 금세 풀이 죽는다. 서투른 영 어로 제대로 내 마음을 표현할 자신이 없다. 식탁에 와 앉은 멜라니가 조심스럽게 남편을 사랑 하냐고 묻는다. 의외였지만 나는 그와 결혼한 걸 후회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못 알아듣는 기색이었지만 이내 멜라니 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남편에게 문제가 있냐고 묻는다. 문제가 있다 면 그건 나라고 대답한다. 멜라니는 그럼 왜 결혼했냐고 묻는다. 잠시 158 SDU 디지털 문학

159 멈칫거리다 내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랑하지 않았냐고 다 시 묻는다. 모르겠다고 한다. 나는 내 일을 잘 하고 싶었고 결혼은 원 치 않았지만 임신이 돼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왜 결혼할 생각이 없었냐고 묻는 멜라니의 표정은 진지하다. 그래서였을까. 한결 마음이 누그러진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결혼을 원치 않았던 건 아마 내 어머니의 영향일 거라고 한다. 기실 그랬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 한 겹 한 겹 옷을 벗어 던지면서도 나는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떤 친구는 옷을 벗으며 결국 이 남자 의 여자가 되는구나, 이 남자와 결혼해야겠구나, 결심했다며 털어 놨었 다. 삼십일 주기의 생리 날짜가 지난 지 삼주 만에 산부인과 진찰용 침 대에 기어 올라갔다. 더는 버틸 일이 아니었다. 임신이라는 의사 말에 새삼 아연했다. 병원에 다녀오자 입덧은 더 심해졌다. 넌 이제 진짜로 임신한 거라며 노골적으로 대드는 것 같았다. 직장 동료인 그의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런 내가 친구보다 훨씬 야비하게 느껴졌다. 멜라니는 그래서 아일 사랑하지 않는 거냐고 묻는다. 다시 말해 달라 고 했지만 역시 그대로다.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 묻자 그렇게 느껴지 더라는 것이다. 가슴이 답답하다. 말은 계속 입안에서만 맴돌기만 할 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내 아이를 사랑한다는 말조차 나오 지 않는다. 난 선자를 친구라고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네가 아일 때리는 걸 보고도 경찰을 부르지 않았어. 그런 문제까지 경찰이 나서 는 게 반드시 옳다고 생각진 않아. 그녀가 돌부리처럼 불쑥 일어서 내 발을 건다. 넘어지면서 무릎을 찧는다. 나는 발을 거는 게 그녀가 아님을 알고 있다. 오래 전부터 내 속에 그런 게 있었던 것이다. 손을 뻗으면 그걸 만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원치 않는 사람과 결혼한 어머 니의 심정을 조금은 알 듯도 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머니에게 가난 은 별것 아닐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랑 없이 결혼한 것도 문제가 되 지 않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왜 어머니와 함께 사랑을 가꾸지 못했을 까. 결혼을 했어도 그는 자격지심 때문에 어머니 앞에서 떳떳할 수 없 었던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어머니를 차지하려고 폭력을 행사했을 거 였다. 그런 결혼 생활이 종래 어머니 속에 돌을 자라게 한 것이다. 어 머니에게 매를 맞으며 자라는 동안 나는 나도 모르게 그걸 물려받았 소설 159

160 던 모양이다. 멜라니에게 속의 것을 들키지 않으려 몸을 웅크리고 버 둥거린다. 숨기려 애쓰지만 그녀 앞에서는 이미 틀린 일이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돌이 박힌 자리가 세월의 내압을 견디다 못해 염증을 일 으킨 것이리라. 간신히 일어서려는데 그녀가 나직하게 속삭인다. 어 머니 때문에 결혼을 원치 않았다는 네 말 조금은 알 것 같아. 그녀 가 애써 웃음 짓고 있다. 나는 선뜻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 사 실 엄마가 되는 고통은 누구에게나 있어. 나도 두려웠던 적 많아. 나 도 내 어머니처럼 아일 책임지지 못하면 어쩌나 두려웠거든. 한동안 그녀가 말을 잇지 못한다. 두 손으로 머그잔을 감싸 쥐고 있다. 커피 를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입을 연다. 내 어머닌 무책임하게 임신했 고 또 그렇게 날 버렸어.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아이에게는 책 임을 다하고 싶어. 눈을 치떠 그녀를 마주 보며 살래살래 고개를 젓 는다. 나는 이혼하고 혼자 아이 키우는 그녀의 고통은 보려하지 않았 던 것이다. 그녀의 성장 배경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거대한 나라에서 살면 상처도 없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선자를 돕고 싶어. 네 남편이 랑 이야기를 해 봐도 되겠니? 안돼. 그러지 마. 나는 비명을 지 르듯 다급하게 외친다. 해야 할 말은 끝내 나오지 않는다. 내 아이조차 사랑하지 않는 엄마가 되어 버린 나는 안절부절못한다. 멜라니가 돌아갈 때까지도 말이 나오지 않는다. 처음으로 말이 얼마나 빈약한 의사 전달 수단인지 알 것 같아 서글프다. 결국 우리의 언어가 다른데서 오는 불편함일 텐데 나는 엉뚱한 탓을 하고 있다. 탓을 해야 한다면 바벨탑을 쌓았던 구약 시대 노아의 자손들이리라. 그들이 하늘 에 닿는 탑을 쌓지만 않았어도 하나님이 계획을 수포로 돌리기 위해 언어를 갈라놓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남편이 퇴근했을 때는 기분이 쳐질 대로 쳐져 있다. 종일 뚱딴지같은 말이 명치를 치고 올라와 넌 네 아이도 사랑하지 않는 엄마라고 조소 한다. 처음에는 그녀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골똘했지만 그건 중요 하지 않다. 내가 멜라니의 눈에 비친 그대로 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 일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의 표정도 무겁다. 한국 가고 싶으면 잠깐 다녀 와. 내가 아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일 있었어? 멜라니가 왔었어. 뭐? 너 혹시 멜라 160 SDU 디지털 문학

161 니 보는 데서 지호 때린 거 아냐, 그렇지? 그 여자가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우리 집에 경찰이 들이닥치면 어쩔 거냐구. 정말 아일 빼앗기고 싶어? 남편이 내 어깨를 쥐고 흔든다. 어깨가 비스 킷처럼 바스러질 것 같다. 무서워 입이 벌어진다. 남편을 볼 수 없어 눈을 감는다. 너 정말 아일 사랑하긴 하는 거야? 아이 이전에 네 자신은 사랑하니? 말해 봐. 그래. 난 아이도 내 자신도 사랑하지 않아. 나는 흥분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러자 엉뚱한 말이 툭 불거진다. 나는 내 속에서 명주실 같은 말을 뽑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멜라니 앞에서 하지 못한 말을 늦게라도 하고 싶었다. 엄습한 감옥에 갇혀있던 음성이지만 낯설지 않다. 그러고도 네가 엄마야? 넌 엄마 도 아냐. 그래, 맞아. 난 엄마도 아냐. 그 역시 하려는 말은 아 니다. 그런데도 나는 서슴없이 소리친다. 그 말까지 뽑아내고 나자 속 이 후련하다. 오랫동안 쌓인 내부의 침전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더없이 몸이 정갈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커다란 바위가 짓누르고 있던 자리 에서 맑은 샘물이 솟아나는 것 같다. 나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마 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샘물과 함께 여태 한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음 성이 첫 발을 디디려 하고 있다. 그때,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진다. 집을 삼킬 듯 달려들었다 가는 옆으로 비켜선다. 가슴을 싸안는다. 남편도 표정이 얼어붙는다. 사이렌 소리가 멈춰 선 곳은 썩 멀지 않다. 그것이 언제든 내 집으로 들이닥칠 것만 같아 조마조마하다. 아파트 끝에 무슨 일이 있는 모양 이다. 나는 제발 누가 아이를 때린 일이 아니기를 바란다. 사이렌 소 리가 집 앞을 거쳐 아파트를 빠져나갈 때까지 숨을 쉴 수조차 없다. 그런 후에도 소리는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어쩌면 영원히 나를 따라 다닐 소리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비로소 그날의 어머니를 이해할 것 같다. 그날은 초등학 교 사학년 종업식을 하던 날이었다. 봄방학을 한 아이들은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갔다. 더는 학교에 있을 수 없어 나는 마을 어귀 방죽에서 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집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엉덩이를 털고 일어 섰다. 배가 고팠다.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가슴에서 쿵 무너지는 소 리가 났다. 아버지의 고함 소리가 터지며 조악한 집이 들썩거렸다. 뒷 소설 161

162 걸음치려 했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뛸 수 없는 꿈처럼 그 자리에 얼 어붙었다. 방안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취기 어린 음성에 붙들려 꼼짝 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가고 싶으면 가버려. 누가 잡을 줄 알고. 가라면 못 갈 줄 알 아! 득달같이 어머니의 음성이 튀어나왔다.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 기였다. 이봐. 자네에겐 날개옷도 없어. 설령 있다 해도 자넨 벌써 아 일 넷이나 낳았으니 그 아일 다 안고 하늘나라로 올라 갈 수나 있는 가? 그 즈음, 그들 싸움의 막바지에는 언제나 나무꾼과 선녀가 등장했 고 아버지는 재미있어 하며 낄낄 웃었다. 누가 줄줄이 끌고 갈 줄 알 았어, 어디. 다시 어머니의 음성이 폭발하며 방문이 벌컥 열렸다. 어 머니가 마루도 거치지 않고 마당으로 내려서듯 날렵하게 뛰어 내려왔 다. 놀란 나머지 휘청거렸다. 이년아, 왔으면 들어가지 추운데 왜 그 러고 섰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 음성에 얼 어 바들바들 떨었다. 퍼붓듯 말을 마친 어머니가 싸리문을 열고 집을 나갔다. 얼른 가서 네 에미 다리라도 붙들지 않고 뭣하고 섰어. 열린 문틈으로 아버지가 비틀대며 기어 나왔다. 얼른 가. 가서 다리라도 붙 들고 늘어지라니까. 나는 그제야 어머니가 집을 나간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 의 명을 따르지 않았다. 아버지의 음성이 취기 어려서는 아니었다. 어 머니가 집을 나간 걸 알면서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 집을 나갔어도 아 버지가 입버릇처럼 들먹이던 금정골 외가로 갔다고 믿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움직이지 못했다. 왔으면 들어가지 추운데 왜 그러고 섰냐던 어머니의 말이 오래도록 귓전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어머니의 가출은 이삼일 정도에서 끝이 났다. 나는 그 기간이 짧아 두 고두고 아쉬웠다. 어머니가 없는 동안, 아버지는 끼니로 라면을 끓이 기도 했다. 나는 오래오래 라면을 먹을 수 있기를 바랐다. 다시는 매 를 맞지 않을 것 같아 기뻤다. 그러나 어머니는 방안에 둘러앉아 라면 을 먹는 우리 형제 앞에 불쑥 나타났다. 나는 이 기막힌 맛도 끝이라 며 속으로 아쉬움을 새겼다. 그해 봄, 우리 가족은 인근 도시로 이사했다. 외가에서 주선해 준 방 직 공장에 아버지가 취직을 한 것이다. 이사를 했다고 그들의 싸움이 162 SDU 디지털 문학

163 그친 것은 아니었다. 횟수나 정도가 덜한 만큼 나는 차츰 나이를 먹었 다. 어머니와는 늘 거리가 벌어져 있었다. 부쩍 말수가 줄어든 나는 그들이 싸울 때면 어머니의 가출을 떠올렸다. 유심히 어머니를 관찰하 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어머니의 가출이나 난 엄마도 아니 라는 고백이 전혀 다르지 않은 것임을 알 것 같다. 오래 입고 있던 무 거운 옷을 벗은 듯 몸이 가볍다. 이제는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다. 그러자,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 싶 다. 어머니가 보고 싶긴 난생 처음이다. 우편함에 키를 꽂는다. 제법 많은 광고지가 들어 있다. 그것들을 꺼 내는데 아래에서 묵직한 게 잡힌다. 항공권이 든 우편물이다. 계속 어 머니의 입원을 숨기고 있었지만 남편이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남편은 처가에서의 내 입장을 생각해 봤냐며 겨우 진정했다. 비행기 티켓은 지호 것까지 두 장이다. 날짜와 노선을 확인하자 비로소 한국으로 간 다는 실감이 난다. 부랴부랴 항공권을 예매할 때도 한국에 간다는 것 이 믿어지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생전 처음 가져본 그리움 앞에서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그걸 내색할 수 없어 내 가 무슨 도움이 될 것도 아닌데 꼭 가야 할 필요가 있겠냐며 버텼다. 선자! 멜라니가 금발을 출렁이며 걸어오고 있다.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들떠 보인다. 드디어 직장을 구했다며 그녀가 활짝 웃는다. 처 음으로 그녀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웃으며 축하한다고 한 다. 항공권을 보며 한국에 가냐고 묻는다. 어머니가 입원했다고 하자 내 손을 잡는다. 이제부터 아이 맡길 곳을 알아 봐야 한다는 그녀 표 정에 안타까움이 어려 있다. 망설이던 질문을 하려다 그만 둔다. 나는 궁금증을 제대로 표현할 자신이 없다. 아이에게서 전 남편의 흔적을 느끼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던 것이다. 그럴 때도 아이가 사랑스러우냐 고 묻는 것은 또 얼마나 잔인한 짓인지 알고 있다. 영어가 서툴기 다 행이다. 가방을 고르기 위해 붙박이장을 연다. 아직 시간은 충분했지만 미리 조금씩 준비하고 싶다. 일주일 정도면 천천히 가방을 싸고, 내가 정말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지 생각해 보고, 아직도 어머니를 피하는지 스스 로에게 질문할 시간은 될 것이다. 그리고 멜라니에게 할 말도 다듬어 소설 163

164 야 한다. 나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녀가 돌부리가 되어 내 발을 걸 지 않았다면 나는 속에 돌이 박혀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훗날 지호가 잃어버린 퍼즐 맞추기의 조각을 찾아 내부를 뒤적이다 나와 흡사한 낡은 그림을 찾게 할 수는 없다. 내 속의 것을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 그건 정녕 안 될 일이다. 카펫 위에 주저앉은 나는 손가락으로 삼각형을 그린다. 맨 위 꼭짓점 을 찍으며 어머니, 왼쪽에 나, 오른쪽에 멜라니라고 쓴다. 그래놓고 보니 우리 셋은 불가분의 관계에 묶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무슨 복제 인간처럼 어머니를 닮아 있었고 그것은 멜라니의 내부에 웅크리 고 있는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멜라니는 어머니와 내가 서툴렀던 사랑을 외면하거나 물리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계속 카펫 위 삼각 형을 따라 그린다. 어느새 손가락은 각진 모서리를 무너뜨리며 원을 그리고 있다. 그 안으로 어머니와 나와 멜라니가 함께 들어갈 수 있을 까. 간절한 염원 때문인지 좀처럼 손을 멈출 수 없다. 계속해서 원을 그리다보면 내 안에 박혀 있던 돌멩이의 각도 무뎌질 것이다. 삶에서 그런 것이 아주 사라질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조금은 부드러워지고 싶다. 불현듯 커피 생각이 간절하다. 지호 손을 잡는다. 벌써부터 혀끝에서 구수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이 감돈다. 나는 멜라니에게 간다. 164 SDU 디지털 문학

165 학생문단 수필 강 훈 김수남 김형출 박인숙 유형희 이미화 이희순 전종수 정주호 김수남 隨 筆

166

167 수필 크리스마스의 추억 강 훈 태어날 때부터 교회에서 자라다시피 했으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나는 매년 크리스마스와 크리스마스 이브를 교회에서 보냈다. 우리 교회에서 는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성탄예배를 드리고 조용하게 성탄절을 보냈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성탄 행사를 벌였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는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교회 청년들과 함께 온 동네를 돌면서 찬송가와 캐롤을 부르는 행사였다. 그때 열정 적으로 기타를 연주하며 캐롤을 불렀던 청년들의 모습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거리에는 2~3주 전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 한 달 전부터 성탄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구세군들은 자선냄비를 놓았고 거리의 가게에서는 고 요한 밤 거룩한 밤'이 울려 퍼졌다. 교회에서 밤늦게까지 벌이는 행사 때문에 항상 잠을 설치는 통에 크리스마스를 항상 즐겁게 보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축제를 벌 이는 즐겁고 경건한 날이라는 생각에는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축제 분위기로 들떠있던 크리스마스는 해마다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가 코앞에 다가와도 거리에서는 예 전처럼 캐롤이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고, 교회에서 벌이던 성탄 행사는 수필 167

168 규모도 줄고 행사 수도 많이 줄어들었다. 청년들이 산타클로스 복장 을 하고 동네를 돌며 캐롤을 부르던 행사도 중단되었다. 크리스마스가 조용해지면서 사람들의 마음도 많이 메말라 가는 것 같았다. 뉴스에서 는 연신 경제 위기, 청년 실업률 급증, 북한의 도발로 인한 전쟁 위 기, OECD가입국 중 자살율 1위 같은 우울한 소식만 전해주었다. 부 모님은 돈 때문에 항상 걱정이 많았고 나 역시 중학교에 진학하고 공 부를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성적으로 과연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와 같은 문제로 고민하느라 크리스마스를 예전처럼 즐겁게 보내지 못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삶이 힘들고 어려워지자 크리스마스를 예전처럼 지낼 수 없게 되었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침울할 정도로 가라앉았다. 다른 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지낼까 생각하며 무심히 신문 을 보니 비단 우리나라의 크리스마스만 조용한 것은 아니었다. 독일 에서는 상술에 오염된 현재의 크리스마스를 비판하면서 조용한 크리 스마스'를 보내자는 운동이 진행 중이며, 영국에서는 타종교인 들의 반발감을 해소시키기 위해 크리스마스'란 명칭을 비종교적인 다른 것 으로 대체하자는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다고 한다. 물론 보수층과 기독교인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있지 만, 크리스마스가 거리에 이미 크리스마스'가 아니게 된 판국에, 거리 에 캐롤조차 들려오지 않는데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을 고수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한다. 게다가 상업주의에 찌들어 크리스마스는 더 이상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날이 아니게 된 것 같다. 물론 비기 독교인들 에게 크리스마스는 단순히 휴일 그 이상은 아닐 것이고 그들 에게 크리스마스는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이니 세속적인 것을 배척하 고 무조건 경건하게 지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 만 크리스마스를 노려 각종 상업적인 광고와 술수로 크리스마스가 더 이상 예수의 탄생을 기념했던 순수했던 과거의 크리스마스가 아닌 상 업주의와 세속적인 것에 오염되어 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세월이 거꾸로 흘러갈 수는 없으니, 나의 어린 시절 속 기억에 남아 있던 크리스마스는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갈수록 캐롤 송조차 들려오지 않는 썰렁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며, 그 옛날 교회 청년들과 함께 캐롤을 불렀던 옛 성탄절의 추억이 다시 한 번 떠올라 나에게 과거의 향수와 아쉬움을 안겨다준다. 168 SDU 디지털 문학

169 수필 나는 캐나다 공무원이야 外 2편 김수남 2006년 7월 13일 목요일, 맑고 너무도 더운 날. 수남 - "권사님 잘 지내시지요? 박권사님 - "그럼, 너무도 잘 지내지 수남 - "권사님도 혹시 캐나다 효자가 주는 용돈을 받으실 때가 되셨나요? 박 권사님 - "물론이지, 그런데 나 안 젊어 벌써 칠십이 다 되어 가는데? 수남 - "그러세요? 권사님, 머리카락 하나 안 쉐시고 너무 젊으세요 박권사님 - "아~이 염색을 해서 그렇지 안그라면 흰머리야, 나 지금 캐나다 공무원이야, 매 달 꼬박꼬박 정부에서 돈을 주니까 말이야 수남 - "정말 그렇네요, 캐나다 효자라는 말은 들어 보았어도 캐나다 공무원이란 말은 처음 들었어요. 권사님과 나는 같이 한참을 웃었다. 정말 좋은 나라다 싶다. 65세 이상 되신 분에게 젊었을 때 소득과 낸 세금에 따라서인지 정 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1,000불은 받으시고 사람마다 차이가 있 수필 169

170 다고 한다. 내가 아는 우리 손님은 매달 4,000불을 받는다고 했다. 자 식들한테 따로 손 벌리실 일 없으시고 당당하시고 오히려 자식들 손 주들한테 용돈을 주시는 여유를 갖고 사시는 이곳 어르신들이 참 좋 아뵌다. 우리 부모님도 속히 오실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연세 높으신 부모님을 캐나다서 반갑게 받아 주지를 않고 부모님 초 청이민이 쉽지가 않다. 캐나다 공무원처럼 매 달 정부에서 주는 돈을 받으시는 이곳 어르신들을 뵐 때면 한국에 사시는 우리 시부모님 생 각이 많이 난다. 어머님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데 최근에 너무 무리하 시고 쉬시지 못하셔서 병이 나신 것 같아서 우선 편히 쉬시길 간곡히 부탁드렸다. 자주 가지도 못하고 넉넉하게 용돈도 많이 못 보내드렸기 에 혹시라도 편찮으실까? 사실 많이 염려가 되는데 부모님께서 늘 더 욱 건강하시며 평안하시길 간절히 기도드리게 된다. 우리 시부모님 도 이곳에 영주권자이셨으면 참좋았겠다.'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갑자기 편찮으셔도 병원비 걱정 안하셔도 되고 매 달 두둑히 용돈을 주는 캐나다 효자가 부모님을 캐나다 공무원으로 대우해 주겠기에 말 이다. 우리나라에도 속히 이런 노인 복지가 되어서 연세가 드셔도 더욱 자 식 앞에 당당하신 노후를 즐기시면서 보낼 수 있는 어르신들이 모두 되실 수 있게 되면 참 좋겠다싶었다. "나는 캐나다 공무원이야 라는 말씀을 유머있게 하시는 박권사님을 뵈면서 정말 멋진 노후를 보내시고 계심이 아름답게 전해졌다. 나도 그런 노후가 오겠지만 시부모님과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니 내가 그 분 들을 정말 안정된 공무원 생활로 지낼 수 있으시게 더 풍성한 재정적 인 자유를 얻게 되길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린다. 나는 할 수 있다. 아직은 넉넉할 만큼은 아니지만 매 달 우리의 사랑 과 정성을 드리기에 머잖아 정말 고급 공무원과 같은 안정된 수입이 매 달 같은 날에 통장에 척척 들어가게 해 드리는 아름다운 노후의 공무원 같은 부모님의 생활이 되게 꼭 해드리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 늘도 그런 내 꿈들을 이루기 위해 기쁨과 감사로 내 일들을 할 수가 있었다. 너는 내 것이라'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나를 더욱 열정 이 넘치게 해 주심이 감사했다. 170 SDU 디지털 문학

171 그리고 오늘 유년부와 유치부 여름 성경 학교가 시작되었다. 둘째는 발런티어로 교회 아이들 돌보는 봉사를 함께 하러 갔다. 코카콜라 딜 리버리가 왔기에 뒷창고에 채우도록 일러 주고 은행도 다녀왔고 여러 가지 바쁘게 움직이느라 점심 식사를 도우려고 마음을 썼지만 오늘은 교회 봉사를 전혀 하지를 못했다. 다행히 둘째가 아이들을 돕고 있어 서 그나마 덜 미안했다. 내일은 꼭 잠시나마 여름성경학교에 시간을 드릴 수 있길 기도하면서 감사함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나는 캐나다 공무원이야! 라는 박권사님의 유머 속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면서 내가 우리 시부모님과 친정어머니께 캐나다 정부 같은 역 할을 해드릴 각오를 단단히 해 보았다. 수필 171

172 수필 마이 쮸쮸, MY 쮸쮸 2005년 1월 11일,눈이 내릴 것 같은 화요일 오후 2시 45분에. 남편과 막내가 사랑스럽게 싸우는(?) 대화가 너무도 재미있어서 나는 가만히 두 사람의 모습을 즐겁게 쳐다보았다. 이번 주일에 쓰나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지역에 보낼 헌금과 함께 의류도 모으기에 여름 옷들을 다시 꺼내 보낼 것들을 정리하느라 오전 시간이 금방 지났고 오후 1시에 헬퍼가 와서 집에 온 남편 식사 준비를 제대로 못했기에 우동을 급히 끓여서 밥을 말아서 막내도 같이 셋이서 맛있게 먹었다. 막내는 우동이 맵다면서 우유를 많이 마셔서 엄마 기분이 좋았다. 엄마, 아빠가 먹는 중에 막내는 충분히 먹었는지 엄마 의자로 옮겨오더니 목덜미 쪽으로 해서 가슴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172 SDU 디지털 문학

173 늘 쮸쮸를 만지고 싶을 때 하는 소리인 "쮸쮸 손 이라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손을 넣는 모습을 보고는 식사를 하던 남편이 한 마디 한다는 것이 "진경아, 아빠 쮸쮸야! 라고 했다. 아빠의 그 소리에 막내는 "아니에요, 마이 쮸쮸에요 - 아빠 : " 노오우 마이 쮸쮸 - 진경 : " 노오우 마이 쮸쮸 - 아빠 : "마이 쮸쮸 - 진경 : "마이 쮸쮸 라면서 몇차례나 똑 같은 말로 부자가 싸움(?)을 했다. 나는 모른척 하면서 긴 우동 가락을 순식간에 쏙 입으로 집어넣었다. 속으로 들으면서 얼마나 웃음이 나던지 수필 173

174 한참 그러던 남편이 결론 지은 것이 - 아빠 : "그래 맞다. 우리 진경이 쮸쮸 맞다. 그럼 낮에는 진경이 쮸 쮸, 밤에는 아빠 쮸쮸한다. 라는 말에 진경이는 공평하다고 생각이 들었던지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여전히 기분이 참 좋아보였다. 그러고는 아빠와 아들은 침대에 올라가서 무슨 그리 재미 있는 이야기가 많은지 슈렉2'랑 리틀 머메이드(인어공주)'를 아빠에게 들려주는 막내의 이야기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정말 저렇게 자기 생각 주머니에 있는 것들을 조리있게 꺼내어 사용할 수 있는 정도로 컸구나! 싶은 감사가 컸다. 두 돌이 될 때까지 엄마 젖을 먹은 막내여서 그런지 지금 세 돌이 한 달 전에 지났는데도 엄마 가슴팍이 그리도 좋은가보다. 엄마 곁에 오면 자연스레 "쮸쮸 손 하면서 귀엽고 자그마한 손을 쑥 집어넣는 어린 막내가 있어서 엄마는 참 좋다. 이제 조금 더 자라면 자기 생각 주머니에 있는 지식과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지혜들로 인해 엄마 가슴에 손을 넣고 싶은 마음도 절제하고 조절할 수 있어지고 더 관심을 쏟을 좋은 것들이 많아져서 엄마 가슴에 손을 넣고 싶은 마음도 해결될 것을 알기에 막내의 지금 행동과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알 수가 있다. 174 SDU 디지털 문학

175 아빠랑 막내의 모습이 참 보기가 좋아서 잠시 스케치를 해 두고싶어 컴퓨터에 들어 왔더니 어느 사이 막내가 엄마를 찾는다. 나의 작은 손길이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어른과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바라면서 정리하던 옷들을 마저 정돈해야겠다. 사랑이란 것은 참 힘이 되고 따뜻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새삼 해보 았다. 우리 가게에도 KBA(한인비지니스협회)에서 함께 동참하자고 모금함에 붙일 적십자사에서 만든 스티커와 포스터를 보내와서 통을 만들어 카운터에 비치를 해 두었고 온 세계가 한 마음이 되어 이 일에 동참함이 참으로 귀하게 느껴진다. 오늘 딸도 학교에서 있는 모금운동에 책을 사려고 모아 두었던 저금통을 다 털어서 가지고 갔다.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것을 요즘 온 세계 사람들을 통해서 느낄 수 가 있다. 그리고 마이 쮸쮸, 마이 쮸쮸'라면서 오가는 어린 아들과의 대화 속에서 오전 내내 가게에서 쌓인 피로를 쏵 푸는 남편을 보면서도 따뜻한 사랑을 찾을 수가 있어 감사했다. 수필 175

176 수필 꿈이 크는 씨앗 누구나 사과 나무에 달린 사과 숫자는 헤아릴 수 있지만 그 사과 씨 안에 들어 있는 수없이 많은 사과는 헤아릴 수가 없다 라는 말이 생각난다. 사과 속에 든 작은 씨앗 하나!. 보잘 것 없는 작은 씨 하나가 제대로 움이 트고 자라서 탐스런 많 은 열매를 정말 맺게 될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작은 씨앗이 큰 일을 바로 이루어가는 생명체라는 것은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과수원 집 딸이다. 누구보다 사과에 대한 정이 깊고 또 좋아한 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물론 사과이고 많은 사과 종류들도 척 척 알아 맞추고 빛깔만 보아도 맛을 알 정도로 조금은 사과 박사 측 에 낄 수가 있다. 40 중반에 가까운 내 피부가 아직도 곱다면서 아마 사과를 많이 먹 어서 그런것 아니냐?며 내 어릴 때 사과 농사를 지은 집 딸임을 아는 176 SDU 디지털 문학

177 분들은 물으시기도 한다. 정말 그런가 봐요 라고 나도 기분 좋게 대답하곤 한다. 아주 어릴 땐 큰 댁에만 과수원을 했었다. 큰아버지는 욕심이 좀 많 으셔서 막내 동생인 아버지한테도 많이 인색하셨다. 우리가 가난한 어 린 시절을 보낼 때 큰 집은 동네에서 가장 부자인 가정이었다. 사과를 비롯한 넉넉한 것들을 함께 나눌 줄 모르는 큰 아버지가 어린 내 마 음에도 큰 상처가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막내셨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살으셨다고 하 신다. 내가 태어났을 땐 이미 조부모님께서 떠나신 상태여서 뵙지를 못해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계신 친구들이 늘 참 부러웠다. 힘든 살림이어도 어머니의 바느질 솜씨가 많은 힘이 되셨다고한다. 어머니 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늘 자랑스러워하는 착한 며느리였다고 이웃 아 주머니들이 들려 주셨다. 부모님께서 성실하신 덕분에 우리가 성장하는 중 조금씩 살림이 나 아져갔고 드디어 우리도 동산 밭에 사과 나무를 심게 되었다. 어린 사 과 나무에 불과 했지만 그 나무를 심을 때 우리 온 가족은 얼마나 신 났었던지 모른다. 신기하게도 사과 나무는 매 년 얼마나 잘 크는지 심 은 지 3년째부터 수확을 조금씩 하게 되었다. 그 때 가장 인기 있는 사과인 후지 사과를 대부분 심었는데 그 맛은 정말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꿀맛이었다. 넓은 밭 에 사과 나무가 커 가면서 초등학교 4학년 경부터 나도 이 젠 맛있는 사과를 실컷 먹을 수 있는 사과 과수원 집 딸이 된 것이다. 큰 아버지가 한 두개 전해 주던 그 인색한 사과가 아니라 이젠 내가 먹고 싶은 만큼 실컷 먹고도 넘치는 과일이 되어져 있었다. 어린 나이 수필 177

178 였지만 나는 우리 큰아버지를 참 안타깝게 생각했다. 큰 어머니를 일 찍 여의시고 자식들 키우시느라 악착같으셨던 것은 이해하지만 할아 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전답을 혼자서 그렇게 욕심내어 큰 집 식구들 만 챙기셨던 놀부 아저씨로 전해져왔고 우리 아버지는 넉넉지 못한 생활에서도 착하게 부모님을 모시고 사시면서 여러 자식을 키우는 흥 부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꿈은 예나 지금이나 시간과 함께 영글어 가는 것 같다. 해마다 사과 열매는 더욱 많이 그리고 더욱 탐스럽게 결실이 되어져갔다. 여러가지 농사 품목 중에서 사과가 가장 큰 우리 집의 수입원이 되었고 나 역 시 그 사과 나무 아래서 뛰어 놀면서 늘 마음 가득 부자가 되어 있었 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과 나무 아래 떨어진 좋은 사과들을 주어서 꼭 이웃들과 나누셨고 지나 가는 길 손들도 그냥 보내시지 않고 여름엔 시원한 물, 겨울엔 따뜻한 물 한 모금이라도 드시게 대접을 하곤 하셨 다. 나는 이런 마음이 따뜻한 부모님이 참 자랑스러웠다. 분명 박씨를 든 제비가 우리 부모님께 찾아 올 거란 기대를 항상 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가 많이도 성장을 했다. 사과 나무의 소출이 나아져 가면서 우리들의 생활도 조금씩 나아져갔다. 부모님께 분명 제비가 날아 와서 박씨를 주었다는 생각이 내겐 들었 다. 그 사과 씨앗이 다름 아닌 우리 가정에 날아 온 행운의 박씨 같은 것이었다. 농사짓는 시골이라 가난한 살림과의 싸움에서 우리 가정을 이기게 한 것이 바로 이 사과 나무였기에 나는 늘 사과만 보면 사랑과 감사 와 특별한 정을 느끼게 된다. 178 SDU 디지털 문학

179 이곳 캐나다에 와서도 나는 사과를 늘 즐겨 사먹는다. 코스트코에 가 면 각양각색의 싱싱한 많은 과일들이 즐비하다. 한국에서 안 먹어 보 았던 망고와 씨 없는 포도와 블루베리 등과 한국서도 먹었지만 그 때 와 또 다른 맛으로 전해져 오는 배를 비롯한 모든 싱싱한 것들 중에 서도 나는 단연 사과를 제일 좋아한다. 사과는 내 몸에 좋아서 먹는 과일이라기보다는 정말 오랜 친구를 만 나는 정다움과 반가움으로 내겐 전해져온다. 우리 과수원에서 농사지어 따먹던 그 꿀이 들어 있는 것 같은 아삭 아삭 맛있는 후지 사과 맛은 아니어도 넉넉지 못했던 어린 시절과 모 든 면에 풍성한 지금의 나를 연결해 주는 아름다운 다리처럼 사과는 내게 정말 특별한 사랑으로 늘 전해져온다. 가을에 한 번씩 이곳서 그리 멀지 않은 외곽 사과 단지로 아이들과 사과 따기를 하러 가곤 한다. 입장료를 내면 그 안에서 먹는 것은 실 컷 먹고 나올 때 농장에서 준 봉지에 한가득 담아 올 수 있는 넉넉함 이 있는 과수원 나들이를 즐거움으로 삼곤 한다. 작년에 막내가 3살인 가을 날 사과 따러 갔다가 엄마, 하나님이 이 사과 따지 말라고 했잖아요 라고 해서 얼마나 놀랐던지 모른다. 아담 과 하와 이야기를 들었던 때라 아이는 선악과를 이 사과와 연결이 되 었던 것 같았다. 혹시 뱀이 사과나무 위에 감겨 있지는 않나도 염려하 면서 엄마가 들려 준 성경 이야기를 정말 정확하게 적용하면서 말하 는 아이를 보면서 사과 나무에 관련된 재미있고 유익한 많은 이야기 들을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난 것이 내 생의 가장 큰 가치관의 변환점이 되었 기에 하나님 은혜를 늘 감사드리게 된다. 그리고 내 어린 시절 어려운 우리 가정의 삶의 전환점이 되어 점차 넉넉함으로 옮겨 가게 해 주었 던 사과를 생각할 때도 정말 고마움이 절실히 전해져온다. 수필 179

180 가뭄이 들 때면 강변의 물을 긴 호스로 끌어 올리느라 나는 그 노오 란 고무 호스가 사과 나무에 걸리지 않게 뛰어 다니면서 옮겨 주었고 수시로 약을 칠 때마다 그 때 역시 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약 호스가 나무에 걸리지 않도록 신나게 뒤 따라 다녔던 기억이 새롭 다. 나를 닮아서인지 유독 사과를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나는 "사과는 아침엔 금메달, 점심엔 은메달, 저녁엔 동메달이란다. 라는 말을 하면서 가능하면 효능이 더 좋은 아침에 많이 먹으라고 권 하곤 한다. 그 사과 밭을 누비시던 아버지가 많이도 그립다. 어느 사이 우리와 사시는 곳이 다른 천국에 계시지만 아버지만 생각 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사과를 자식 키우듯 가꾸셨던 80세를 맞으신 어머니! 그 사과 곁에서 얻으신 에너지 덕분으로 늘 건강하신 어머니로 인해 서 아버지의 그리움에 위로를 얻는다. 어머니께서 언제까지 더욱더 건 강하시면서 오래오래 사시길 기도드린다. 자식들에게 꿈의 씨앗을 심어주신 아버지, 어머니가 늘 감사하다. 어린 사과 묘묙을 심으시면서 우리들에게 꿈을 담아 주셨던 부모님 의 은혜가 가슴 가득 감동으로 전해져온다. 그 사과 속에 들었던 작은 씨앗에 불과했던 우리 7남매가 이젠 정말 수 없이 헤아릴 수 없이 많 은 열매들을 다양한 분야에서 주렁주렁 맺어가고 있음을 볼 때 작은 씨앗 속에 들어 있던 생명을 알고 위해서 기도해 주고 아껴주고 사랑해 주었던 부모님과 가족과 친척과 이웃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게 되고 내가 받은 사랑과 은혜를 이젠 나도 함께 주변에 나누어 가면서 내 주변에 생명을 갖은 내 도움이 필요한 작은 씨앗들이 어디 180 SDU 디지털 문학

181 에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도와주어야 될지?를 관심있게 돌아보아야 겠다. 아침에 식탁에 사과를 올리면서 아련한 추억과 사랑으로 전해져 오 는 나의 사과 이야기를 잠시라도 적어 두고 싶었다. 이 글을 쓰면서 가슴 깊숙이서 전해져 올라 오는 감사가 내 눈을 통 해 흠뻑 흘러 내리고 있다. 꿈이 담긴 씨앗이 꿈을 이루어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수필 181

182 수필 천 개의 입 천 개의 눈 김형출 인간과 늘 함께하는 언어(말과 글) 중에는 우주처럼 오묘하고 진주와 같은 아름다움도 있다. 반면에 그 저쪽에는 지저분하고 역겨운 언어 (말과 글)도 활개를 친다. 이 수 많은 언어 중에서 아름다운 언어만 생각하고 싶다. 짧은 가을은 스멀스멀 떠나가고 가장 나이 많은 겨울 이 두툼하게 서 있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집과 세계>에서 집에 관한 이미지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멋진 언어창조를 하였다. 계절들 가운데 겨울은 가장 나이 많은 계절이다. 겨울은 추억 속에 연륜을 넣는 것이다. 그것은 오랜 과거로 우리를 되돌려 보냈다. 눈 밑에서는 집도 나이가 많아진다.' 이와 같은 느낌은 적대성을 한껏 나타내고 있는 겨울풍경을 기발하 게 묘사한 번득임은 언어의 연금술사이다. 이 짧은 말 한 마디에 멋과 맛을 만끽하면서 분에 넘치는 생각은 겨울풍경 속으로 말려들곤 한다. 그럼 가을은 어떤 집일까? 고갯길을 넘어가는 빈집일까? 곳간에 차오 르는 살찐 집일까? 아니면 폭풍에 비틀거리는 검정 집일까, 그러면 나 의 곳간은 욕심만큼 비어있는 종이쪽보다도 더 얇은 가벼움일까? 이상 李 箱 의 에세이<산촌여정>에서 맛깔스런 문장 하나를 발견하고 분을 못 이겨 까무러쳤다. 182 SDU 디지털 문학

183 청석 얹은 지붕에 별빛이 내리쪼이면 한겨울에 장독 터지는 것 같 은 소리가 납니다.' 이 맛깔스런 문장에서는 시리도록 외로운 한 인간의 몸부림이 밀물 처럼 와르르 밀려온다. 오늘, 북한산에서 얻은 언어의 마술은 웃음꽃 이었다. 뽕짝~ 뽕짝~ 뽕 짜~짝, 낙엽도 햇살과 함께 춤을 춘다. 행복 속에 서글픈 것은 천 개의 말과 천 개의 눈이 언 言 에 말 馬 을 타고 세상을 무작정 달린다는 환청이다. 달려서 도착한 곳은 언어가 우글거 리는 창자 속 메탄가스 장치이다. 편리함에 따라 춤추는 언어의 마술 앞에 달팽이관은 안경테를 연주하고 있다. 이것은 전통적인 예술의 첨 병이다. 문학저널 발행인 김창동 소설가는 <문학저널>시월호에 기고한 글에 서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의 오감을 자극하는 가을이 설핏한 우 수를 삼키며 고즈넉하게 깊어 간다면서 창조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문인의 자궁에서는 신비의 시와 소설과 수필들이 잉태되어 꿈틀거 린다. 참 듣기도 좋고 격조 높은 살가운 언어이다. 문인의 길은 창조를 위 한 각고의 운명론이 맞는가? 이 가을이 떠나기 전에 격조 높은 외면 일기와 내면일기에 기절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품위를 갖춘 고량진미 膏 梁 珍 味 의 멋과 맛을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모든 텍스트는 상대방에 의해서만이 결론에 도달한다는 여유이겠지만, 천 개의 입 천 개의 눈을 숨기고, 반 개의 입 반 개의 눈을 찾고서는, 천 개의 입 천 개의 눈을 똘망똘망' 의식한다. 이것은 삶의 샘물이요, 삶의 지혜요. 그리고 나의 행복이다. 수필 183

184 수필 기차 안에 나를 던지고 박인숙 끝없이 누워 있는 레일 위를 거침없이 달리는 기차에 나의 몸과 마 음을 실었다. 예전처럼 추억과 낭만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 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어린아이의 소풍가는 기분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세상 속으로 맨 앞에 서서 달려가지는 못해도 바짝 뒤따라 가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일 생활권에서 반나절 생활권으로 접어 든 지도 어느덧 일년이 지나갔다. 처음 KTX가 작년 4월에 개통될 때 만 해도 모든 이들이 기대와 희망을 가지게 하였다. 부산까지 두 시간 삼시분이라는 경이적인 숫자가 사람들에게는 꿈같은 일이었지만, 지금 은 시속 삼백 킬로미터로 달리는 것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들여지고 있다. 다소 의자의 간격이 좁아 불편하고 역방향이 낯설지만, 시간을 되돌 려 받을 수 있는 큰 효과라고 생각한다. 이제 새로운 초고속 기차 문 화가 정착 화됨으로써 추억의 문화가 더욱더 그리워지는 것은 세월의 흐름을 쉬워어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 도 기차 안에는 밀차를 밀며 과자와 과일 등을 파는 아저씨가 계시고, 여자 승무원의 단아한 미소와 깔끔해진 기차의 내부, 짧은 시간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문화생활도 누릴 수 있다. 184 SDU 디지털 문학

185 지난 시간을 돌려 통일호, 무궁화호 열차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려 한다. 김밥을 사라고 다투듯 소리를 지르며 지나가는 사람들, 천안 명 물 호두과자가 왔노라고 목소리를 길게 끌며 지나가는 아저씨, 찐 계 란이며 처음 보는 여러 가지 먹을 것들을 잔뜩 가지고 올라온 장사꾼 들. 입석이라 자리가 없어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아주머니, 기차 입구 에 몰려 앉아 기타를 치고 동네꼬마 녀석들 추운 줄도 모르고 언덕 위에 모여서 할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신 연을 날리고 있네. 흥을 돋우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회상히니 그 노랫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또 렷이 들리는 듯하다. 추억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고 짙어지는가 보다. 마치 묵은 김치의 감칠맛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요즘에는 어디 가서도 그런 추 억을 찾아볼 수 없어 서운한 마음뿐이다. 달리는 기차에서 보는 밖의 경치는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나뭇가지에 살포시 앉아 있는 눈꽃과 산을 하얗게 덮은 그림 같은 정 경이 마음을 여유롭고 감성에 젖게 만든다. 그리고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미지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기차의 속도감에 내 가슴의 맥박이 함께 빠르게 움직인다. 철길 옆의 개나리가 춤을 추며 반기는 봄, 시원한 바람을 선물하는 여 름, 분위기를 한창 더해 주는 가을 단풍, 세상을 하얗게 덮어주는 겨 울, 네 가지 색깔을 한눈에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곳도 바로 기차여 행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에 춘천의 청평사로 MT를 간 적이 있었다. 기차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무척 컸다. 정월이라 주위는 눈 덮 인 산과 살얼음이 있는 듯 차가운 강뿐이었다. 기타와 먹을 것을 챙기 고 우리는 성북역에서 노래를 부르며 젊음을 만끽하였다. 두 시간 삼 십 분을 경춘선을 타고 짙고 푸른 북한강을 따라 강촌을 지나는 아름 다운 철로로 게임도 하고 눈도 마주치며 서로에게 친근함과 편안함을 느꼈다. 사각의 빌딩 숲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간다는 것과 집을 떠나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뛸 듯이 기뻤다. 남춘천역에 도착해 서 덜컹거리고 먼지로 뒤덮인 시골 직행버스를 갈아타고 사십 분쯤 가니 선착장이 나왔다. 한 시간을 기다려 조그만 통통배를 타고 십 분 수필 185

186 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목적지 청평사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허름하지 만 친근한 노부부의 농가에서 민박을 하였다. 방바닥의 따뜻함이 시골 의 인심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하였다. 남자둘, 여자 둘씩 묶어 조를 짜서 식사 당번도 정하고 조별로 산행을 하게 되었다. 겨울 산이라 미 끄럽고 위험하지만 반듯한 구성폭포, 고려시대의 인공 연못인 영지 등 을 지나 청평사에 닿게 되었다. 청평사에서 걷는 거리는 약 사십 분 정도로 산책하기에 적당한 거리 였다. 서로 도와주고, 챙겨 주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 다. 깜깜한 밤에는 담력을 키워 주는 훈련도 하였다. 낯선 곳에서 그 것도 어두운 밤에 의지할 곳이라고는 옆에 있는 친구밖에 없다. 그 상 황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힘이 되어 주고 무사히 임무를 완수했을 때 의 그 쾌감은 겪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기막힌 성취감이요 뿌 듯함 그 자체였다. 돌아올 때도 우리는 기차를 타는 즐거움으로 피곤함을 잊고 스쳐 지 나가는 경치를 보며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키웠었다. 그때를 생각 하며 감상에 젖어 문정희님의 <한계령을 위하 연가>를 음미해 보았 다.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도 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 한맥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작품) 186 SDU 디지털 문학

187 수필 늙은 호박에게 배운다 外 1편 유영희 그 미모를 보는 사람마다 "참 잘 생겼네! 라는 찬사를 빠트리지 않 는다. 윤기가 반지르르 흐르고 옆으로 턱 퍼진 꼴이며, 모난 구석이라 곤 한 곳도 없이 둥그스름한 모습이 전형적인 호박 본래의 모습이다. 결론은 호박이 호박답게 생겨서 칭송을 받는다는 점이다. 작년 11월 초 전남 담양의 명옥헌'에 들렀다가 길에서 팔고 있는 것이 유난히 탐스러워 사다 놓은 호박이다. 가끔은 입술에 분홍 립스틱도 발라보는 내 얼굴을 보고 잘 생겼다느 니, 예쁘게 생겼다는 말은 씨 알맹이도 없건만 우리 집에 들어선 호박 이 들은 찬사는 숱하다. 지 미모가 아무리 잘생겼어도 호박일 뿐이라 며 오며가며 발로 건드려 보건만 그 호박의 태도는 묵직하게 자리를 지키며 흐트러짐이 없다. 넉넉하고 푸짐한 등치에 여유가 넘치는 미모 로 사람의 조급함을 비웃는 듯 겨우내 나를 지켜보고 앉아있다. 잘생 겼다는 호박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 이다. 못난 외모를 비유할 때 곧잘 등장하는 것이 호박이다. 호박꽃도 꽃이 수필 187

188 냐는 말도 그에서 나온 것이리라. 하지만 만개한 호박꽃을 가만히 들 여다보면 그만큼의 아름다움을 지닌 외모는 드물지 싶다. 경남 통영 모 리조트의 식당 입구에는 호박꽃을 그려놓은 풍경화가 한 점 걸려 있는데, 그 소박하고 토속적이며 친근한 아름다움에 식당을 들어서는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춘다. 가여울 정도로 여린 덩굴손은 억센 가시를 부여잡고 기어올라 햇빛, 바람, 벌, 나비의 시선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에 꽃을 피운다. 땅에서 막 솟아 오른 떡잎을 보면 도무지 푸짐한 호박의 시작이라고 봐주기가 어렵다. 여린 싹은 고개를 내민 곳의 환경이 아무리 열악하 여도, 거침없이 넝쿨을 뻗어 푸짐한 열매를 맺고 만다. 줄기가 뻗어가 고 떡잎이 손바닥 크기만한 잎으로 피기 시작하면 호박은 그 가치를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한다. 구수한 호박잎 된장국도 되고 푹 쪄진 잎에 된장을 얹어 밥을 싸먹으면 입맛이 절로 도는 호박잎쌈이 된다. 꽃이 시들면서 열리기 시작하는 애호박은 나물이 되고 부침개가 되기 도 한다. 튼실한 것으로 골라 늙힌 호박의 가치는 가장 높은 깃발을 단다. 잘 익은 늙은 호박은 한 겨울 추위를 녹이며 배를 불리는 달콤한 호박죽 이며 호박범벅이 된다. 뿐만 아니라 그가 지닌 특유의 성분은 보신이 나 치료를 목적으로 한약재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 집 거실에 자리 잡은 늙은 호박의 자태며 낯빛이 이 모든 쓰임을 만족하게 할 미모로 서 한 점 부족함이 없는지라 보는 사람마다 칭찬과 함께 욕심을 내곤 한다. 말라버린 호박의 꼭지와 몸뚱이를 어루만져 본다. 푸르던 시절의 옛 모습을 떠올리면 어디에 그런 강인함이 숨겨져 있어 이렇게 단단함을 과시하는지 싶다. 늙은 호박의 껍질을 벗겨 내기가 쉬웠다면 아마도 진즉 호박죽이라든가 다른 무엇을 위해 그 흔적이 사라져 버렸을 것 이다. 열어 보지 않아도 늙은 호박 속에는 새로운 생명을 숱하게 품고 있을 것이다. 그의 단단함은 후 세대를 이어갈 새 생명을 지키기 위한 188 SDU 디지털 문학

189 억척임이 분명하다. 말려진 호박씨를 까 먹어보면 고소한 맛이 일품인 데 어쩌다가 내숭이 심한 사람을 향하여 호박씨 깐다는 말이 붙게 되 었는지 알 수가 없다. 사계절 내내 변화되는 몸을 고스란히 사람들에게 내어 주면서도 그 를 위한 변변한 헌시하나 받지 못하는 호박. 헌시는 고사하고 못난 사 람 비유하는데 들먹여지는 그 이름. 우리 곁에 가장 흔하고 편안한 모 습으로 존재하는 호박이기에, 거부감 없이 평범하고 다가가기 좋은 외 모를 호박에 비유한 것은 아닐까? 호박이 지닌 진득한 아름다움에 자꾸만 마음이 간다. 남을 위해 줄 수 있는 것은 다 내어주는 넉넉한 마음. 쉽게 마음을 홀리는 값싼 향 기나 아름다움은 아니라도 은은하고 토속적인 진한 황토빛깔의 아름 다움. 내면에 온갖 좋은 것들을 품고 있으면서도 겉을 치장하지 않는 순수. 잘난 호박은 여전히 거실 한 쪽을 지키고 있다. 애면글면 살아가는 나를 보며 좀 더 당당하고 느긋하며 자신감 있는 삶을 살아가라고 몸 짓으로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호박은 호박다워야 하고 사람은 사람다워야 한다는 그런 말을. 일의 성패는 환경 탓이 아니고 잘 못 뻗었던 덩굴손의 방향이었음을 잘난 호박이 가르치는 듯하다. 수필 189

190 수필 간 없는 남자 우리 교회 목사님께서 건강검진을 받던 중 의사에게 묘한 질문을 받 으셨다고 한다.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많이 드십니까? 목사를 향하여 술을 얼마나 많이 마시느냐는 의사의 도발적인 질문에 목사님은 황당하기도 하지만 간에 심각한 질환이 있나보다고 멋대로 짐작하며 간이 철렁 내려앉았을 것이다. 저는 술을 한 잔도 안 마시는데요.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다른 사람에 비해 간의 크기가 작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은 아내에게 너무 주눅이 들어 살다보니 간이 작 아졌다며 은근히 아내를 향한 구박의 눈짓을 보내셨다. 온 교인들은 요즘처럼 험난한 세상에 간이 작은 목사님 밑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슬픔(?)을 견뎌야 했다. 문득 내 남편의 간은 얼마나 큰지 궁금해졌다. 평소의 행동을 대충 짚어 보아도 결코 작은 간이 아님은 분명하다. 달력에 빨간 글자가 두 개가 이어져 있는데도 감히 자신만의 시간을 멋대로 즐기고 있다. 새 벽운동을 간다며 아내가 주무시는데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전화를 걸 190 SDU 디지털 문학

191 어댄다. 친정 오빠랑 저녁식사를 하고도 손위 처남이 밥값을 내도록 자리를 지키는 모습도 간이 작은 행동은 결코 아니다. 처가식구들 앞 에서 서슴없이 아내의 흉을 보기도 한다. 더우면 더워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등 별의별 이유를 내세우며 술과 친구와 시간을 보낸다. 기 다리지 못하고 잠들어 버리는 아내는 남편의 귀가시간을 제대로 알 턱이 없다. 이 정도면 그래도 간이 보통 크기라고 말할 것이다. 밖에서 시간을 보낼 만큼 다 보내고 나면 아내를 호출한다. 우리 데이트 좀 해야지? 차 가지고 나와. 부르는 시간이 빨라야 밤 열한시, 아니면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니 자 다가 불려 나가는 아내는 간 큰 남자의 행동에 부아가 치민다. 모시러 오기 전까지 귀가하지 않겠다는 숱한 전화협박에, 눈앞에 없는 남자에 게 온갖 삿대질을 해대며 대문을 나서면 집 아래 화단에 퍼질러 앉아 서 전화번호를 눌러대고 있다. 보통 사람보다 간의 크기가 두 배 이상 은 되어야 할 수 있는 행동이 분명하다. 토고 와 월드컵 축구 첫 경기가 열리던 날, 간 큰 남자는 친구들 과 길거리 응원을 나갔다. 집에서 혼자 축구경기를 봐야하는 아내는 안중에도 없었다. 빨간 티를 꺼내 입고 태극기까지 꺼내서 챙기는가 싶더니 간식으로 족발까지 배달해서 유유히 들고 나갔다. 해도 너무 한다. 누군 족발 먹을 줄 모르나? 그리고 그 즐거움을 아내와 나눌 생각은 꿈에도 안 들지? 간이 작은 아내는 감히 입 밖으로 불만을 표출하지도 못하고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이왕 가는 길 즐겁게 다녀오란 인사까지 바쳤다. 그 런데 경기가 끝나가는 시각에 전화가 울렸다. 여보! 여기 고속터미널 앞인데 택시를 도저히 잡을 수 없거든. 차 가지고 빨리 좀 와. 토고 전이 끝난 시간이 도대체 몇 시였던가? 간 큰 남자의 명령 앞에 졸음이 머리 꼭대기까지 찼는데도 차를 몰고 부르는 장소를 향 해 달려간다. 혼자도 아니다. 함께 있던 친구들을 전부 집 근처까지 수필 191

192 배달(?)해야 한단다. 침묵의 외로운 1인 시위를 하며 아내는 자신의 작은 간만 탓할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편의 간 크기에 분명 문제가 있지 싶다. 날마다 하루도 거른 적 없이 아침밥을 챙겨달라고 하질 않나, 음식의 간이 짜 다 싱겁다고 투정까지 한다. 우리 목사님처럼 간이 작은 남자라면 절 대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집에선 부지기수로 일어나고 있다. 아 내를 혼자 두고 하는 외출에는 허락이나 결재가 필요 없이 통보만 해 도 되는 간 큰 남자. 그러면서 본인이 집에 있는 시간 아내가 외출할 라치면 누구를 만나며 언제 들어오는지 시시콜콜 묻고 끝내 불만스런 표정을 짓는 커질 대로 커져버린 남편의 간. 손이 닿는 위치에 있다면 어떻게 크기를 조절이라도 하겠는데 그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엄청난 돈을 들여서 수술로 간의 크기를 줄일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 아닌가. 평생 간 큰 남자와 살며, 간이 작아질 대로 작아져버린 나는 이미 오 래 전에 포기한 상태이다. 냉수를 원하는 남자에게 얼음까지 동동 띄 운 컵을 내밀며 있는 힘껏 간의 크기를 부풀려 말을 꺼낸다. 여보! 나는 당신이 너무 부러워. 당신은 어쩌면 그리 복이 많을 까?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아내의 안색을 살피는 남 편. 당신은 뭔 복이 그리 많아서 나 같은 아내를 만났고, 나는 지지리 복도 없어 당신 같은 남편을 만났는지 몰라. 그래서 나는 복 많은 당 신이 너무 부러워. 간 큰 남자는 변명도 못하고 간이 작은 아내가 건네 준 컵을 두 손 으로 받쳐 들고 가장 공손한 자세로 물을 마시더니 아주 웃기는 고백 을 했다. 나는 당신이랑 살면서 간이 다 졸아버려서 간이 아예 없는 남자라 고. 192 SDU 디지털 문학

193 수필 결혼 이미화 결혼은 정말 현실이었습니다. 결혼을 하기 전에 엄청난 갈등을 했었 습니다. 결혼 날짜를 잡아 놓고도 마음이 편하질 않았습니다. 그렇다 고 남편될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서도 아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사랑 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고 그의 인생을 그냥 보고 만 있을 수 가 없었습니다. 제가 아니면 아무한테도 구제 당하지 못하고 꼬질꼬질 늙어 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그래 용기를 내자 왜? 사랑하잖아. 그런데 막상 결혼 날짜가 하루 이틀 다가오니 평소땐 신랑보다 못생 겼던 사람들이 갑자기 다 멋있어 보이고 신랑될 사람보다 훨씬 더 능 력 있어 보이는 것 이었습니다. 게다가 주위의 친구들이나 결혼을 한 선배 들이 결코 밝지 않은 얼굴을 들이대며 "살아봐라 맛을 봐야 맛 을 알지 라는 묘한 말들로 가뜩이나 불안한 제 가슴에 불을 싸지 르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남편도 저와 같은 생각으로 머리를 쥐어뜯었 을 겁니다. 결혼 생활! 정말 그랬습니다. 결혼 전의 풋풋했던 감정들은 놀랍게도 빠른 속도 수필 193

194 로 식어 버리고 현실의 여러 고충들이 하나하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 었습니다. 정말 결혼은 나와 남편의 문제만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시댁식구와의 갈등, 경제적인 어려움, 가사노동의 분할 우리는 현실 의 벽에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점점 지쳐만 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힘든 역경이 휘몰아 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남편을 왜 사랑 했었고 왜 이 길을 그와 함께 가려 했는지 우리는 서로가 사랑 한다는 것을 확인 한 후 내가 그가 되고 그가 내가 되었 었습니다. 그의 아픔과 기쁨, 슬픔, 모든 것이 내 것 이었습니다. 또 나의 아픔과 삶의 고난도 그가 덜어 주었기에 나는 여기 까지 올 수 가 있었던 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하는 사람과 꼭 결혼을 해 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건을 따져서 하는 결혼! 물론 현실과는 적 당히 타협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슴 깊은 곳에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현실은 결국 머지않아 끝이 나 버리고 상처가 되어 돌아 올 것입니다. 쫓기듯 하는 결혼, 조건이 우선인 결혼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 입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거나 억지로 라도 사랑을 만들고 싶다면 일단 사람을 만나기보다 자신을 가꾸는 일이 우선일 거라 생 각합니다. 그래서 어느날 갑자기 사랑 하곤픈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 땐 정말 온 영혼을 다 태워 사랑 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 정서 가 득 채웠으면 합니다. 사람을 많이 만나봐야 사랑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슴 속에 많은 것들이 들어 있을 때 제대로 된 만남도 이루어지며 배려와 이해가 기본이 되는 사랑도 만들어 질 거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살아오면서 처음에 가졌었던 사랑에 대한 마음가짐이 많이 식고 퇴색해 버렸습니다. 사랑했던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실망도 많 았고 굴곡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할 말이 없을 때 만남에서 출 발한 그 시작점에서의 서로를 떠올립니다. 사랑하며 함께 한 삶의 여정의 흔적들이 너무나 많고 깊기에, 그것은 누구에게도 없는 이 세상 우리 둘만이 가진 보석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마다 가슴 깊은 곳에 숨겨둔 그 보석을 꺼내어 닦아 봅니다. 194 SDU 디지털 문학

195 이 세상에 나를 사랑해 주고 내가 사랑한 누군가를 만나 긴 인생의 여정을 함께 한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입니다. 이 험한 세상의 한 켠에 서 무사히 견디고 술 한 잔에 한숨을 들이키고 돌아온 남편을 위해,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하루를 힘겹게 버틴 아내를 위해 내 자신이 먼 저 손을 내밀어 차갑게 식은 상대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수필 195

196 수필 때죽나무 아래서 이희순 골짜기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저수지 옆 언덕배기에서 국수나무가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토끼풀, 찔레나무, 산딸기나무, 마삭줄, 아카 시나무도 덩달아 오월의 한가운데에 하얀 향기를 아로새긴다. 제법 세 찬 바람에 저수지 방죽 위 토끼풀밭에선 꿀 냄새가 자지러진다. 그윽 한 속삭임에 이끌려 얼굴이 닿을 만큼 바짝 다가가면 어느 결에 숨을 죽이는 마삭줄 꽃 무리는 한낱 필부필부처럼 소박하건만 그 부드러운 유혹에 취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큰 무리를 지어 일제히 피어난 찔레 꽃 향기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강렬하다. 뇌수( 腦 髓 )를 정화해주는 듯 한 찔레꽃 향기에 사로잡혀버린 나는 장미꽃을 더는 안중에 두지 않 는다. 아카시나무는 거동이 불편하여 동구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이웃 을 위해 기꺼이 우체부가 되어 여름의 서곡을 배달해준다. 한 주일을 기다려 찾아가보니 오월은 막바지에 이르렀고 때죽나무에도 가지마다 흰 꽃이 가지런하다. 땅을 내려다보며 피어난 때죽나무 꽃은 아미숙인 소녀의 흰 목덜미에 살포시 내려앉은 부끄럼이다. 오월을 신록의 계 절 이라 명토를 박은들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 행간에선 끊임없이 흰 꽃들의 노래가 들려온다. 한 떨기 낯익은 오월이 되어버린 내 목소 리도 그 속에 녹아들어 정겨워진다. 196 SDU 디지털 문학

197 모처럼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인데 더러는 이름이 선뜻 떠오르지 않 는다. 산천을 게을리 하여 벗님들과 자주 만나지 못한 탓이다. 내 딴 에는 벗님네들 이름깨나 안다고 은근히 자부하고 있건만 아예 처음부 터 이름을 모르는 이들도 부지기수이다 보니 숲 속이나 길섶에서 홀 로이 열없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오늘도 도리 없이 욕심이 앞서 초피나무인지 산초나무인지 헷갈리는 가지를 조금 자르고, 아카시와 싸리를 닮은 풀을 뜯어 챙긴다. 책을 뒤지고 인터넷을 훑어 초피나무 에 이름표를 달고 땅비싸리 와 좀싸리 를 몇 번이고 되뇐다. 그 러나 그들과 사겨보지도 않은 채 억지로 이름만 외우고 있으니 기억 에서 사라지는 건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 번에는 다행히 그들의 이름을 잊어버리기 전에 재회의 인연이 생겼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번갈아 어루만지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덩굴식물들은 대개 질기다. 그런데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사위 질빵 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허망하게 끊어지거나 꺾어지기 일쑤다. 사위질빵 은 어느 장모의 사위사랑에서 비롯한 이름이라고 한다. 내 어머니는 소멍넝쿨 이라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마디를 지을 때 마다 절도 있게 둔각을 이룬 모습하며 덩굴의 옅은 갈색이 소의 멍에 를 연상케 한다. 쇠무릎(우슬초) 줄기야말로 영락없는 황소의 앞무 릎이다. 밤중에 활짝 피어나니 달맞이꽃 이요, 꿩이 즐겨 먹는다하 여 꿩의밥 이라던가. 상사화 잎은 볼품없이 시들어가고 팔월에는 망각의 저편에서 예고 없이 꽃대가 불쑥 솟아올라 연분홍 상사화 를 피워 떠나간 임을 그리워하리라. 온갖 풀과 나무는 천만년을 이 땅에 살아 내 할아버지 할머니와 할 아버지 할머니 선대 조상님의 사연과 심정을 그대로 이름 받았을 터 이다. 하여 그들의 이름을 알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조상님의 피땀과 눈물, 사랑과 원망, 해학과 여유, 기다림과 그리움 등등 오욕 칠정( 五 慾 七 情 )이 아로새겨진 이 땅의 살아있는 역사를 몸으로 따라 배우는 또 다른 뿌리 찾기 이리라. 그들과 내가 스스럼없는 대화를 나누는 벗이 될 때에 비로소 나도 자연인이 되고 이 산천의 일부, 참 다운 주인 가운데 하나가 되는 거라고 생각해 본다. 그들은 이 땅의 수필 197

198 터줏대감이니 내가 감히 함자( 銜 字 )를 여쭐 수는 없다. 더구나 이름을 대라고 윽박지르는 짓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패역( 悖 逆 )이니 족보를 살 피고 앞사람을 통해 배우고 익혀서 가슴에 새길 따름이다. 사람과 사 람이 서로 어깨를 부딪고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세상의 친교는 통성명으로 싹이 트고 이름 부르기 로 성장하다가 사랑으로 결실 하는 과정이라 여긴다. 말 못하는 풀과 나무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을 터라 산과 들, 길섶과 냇가에서 조상님들과 함께 누천년을 숨쉬며 생 명을 나누어 온 그들의 이름을 알아내어 만날 때마다 일일이 정다운 이름을 부르는 순간에 벌써 대화가 시작되었으니 그곳에서 사랑이 자 라 어찌 탐스러운 열매를 맺지 않으랴. 때로 그러한 상념에 잠길 때마 다 나는 공연히 흐뭇해진다. 질경이 에선 끈질긴 생명력이 전해져오고 씀바귀 라는 이름만 들어도 쓴맛을 떠올리게 된다. 비록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해도 우 산나물 과 삿갓나물 이 어떻게 생겼을지 어림짐작은 할 수가 있 다. 촌아이였던 나는 나무하면서 참꽃을 따먹었으며 동생한테 줄 삘기 를 뽑아 모으고 그 해에 자라 물이 오른 참솔 우듬지를 잘라내어 송 기를 해먹기도 하였다. 찔레나무 졸가리와 배추장다리, 산딸기와 머 루, 괴불과 개암과 청미래덩굴 열매, 칡과 잔대와 하수오 뿌리, 천문 동과 돼지감자 따위는 철철이 안성맞춤 먹을거리였다. 나는 그 속에서 절로 자연의 변화를 배우고 나무와 풀들의 체취에 젖어들었으나 세월 이 가도 겨우 고만고만한 나무와 풀의 이름을 알 뿐이었다. 그토록 얕 은 지식을 자랑으로 내세워도 통할 만큼 현실은 안타깝다. 어린 시절 부터 달래, 냉이, 씀바귀나물 캐오자. 라는 노래를 즐겨 불렀건만 막상 씀바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만나본 이가 별로 없다. 비워둔 텃밭에 쇠별꽃과 질경이가 세력을 떨치고 있는데 지칭개와 뽀리뱅이도 한자리 차지했고 어저귀와 환삼덩굴도 기회를 엿보고 있 다. 그러나 나는 텃밭을 점령한 죄를 물어 못된 잡초 를 모조리 뽑 아 다시 살아나지 못하도록 뿌리에 붙은 흙을 매매 털어내고 땡볕에 내던진다. 나중에 쓸모가 있을 듯한 익모초 몇 그루와 맥문동은 남겨 두었다. 198 SDU 디지털 문학

199 수필 이기주의와 집값 外 2편 전종수 요즘 들어 서민들의 경제가 말이 아니다.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은 옛 말이 되었고 11.15부동산 대책을 비웃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근 검절약은 사전에서나 찾아봐야 하고 정직하게 살아왔다는 것이 바 보처럼 느껴진다. 는 소시민의 투정어린 말투가 현실을 대변하고 있 는 듯 하다. 뉴타운 발표로 부동산 경기는 곱절을 뛰었고 지금도 멈출 줄 모르고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으니 저축으로 내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허황된 꿈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는 집단 이기주의산물인 셈이다. 이기주의는 다른 말로 님비(NIMBY)현상이라 고 하는데 핌비(PIMFY)의 반대말이다. 님비란 Not in my back yard. 의 줄임말로 직역하면 우리 집 뒷마당에는 절대 안 된다는 말 이다. 풀이해 보면 참 재미있는 말이다. 우리나라처럼 인구가 많고 땅 이 비좁은 나라에서 특히 심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혐오시설에 대해 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유치하기를 꺼려하는 것을 말한다. 반 대로 핌비(PIMFY)는 Please, in my front yard. 의 줄임말로, 해석 하면 우리 집 앞마당에 부탁한다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서 이 단어는 나에게 이득이 되는 시설은 유치하고자 하는 집단행동을 의미한다. 매 일 쏟아 내는 일간신문들의 기사를 보더라도 님비현상에 관한 기사들 수필 199

200 이 많이 보도되고 있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집단 이기주의로 병들어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1970년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석 유가 90%이상 치우쳐져 있던 에너지원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70년대 말에 원자력에너지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럼으로 써 1980년대와 1990년대 경제발전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이 러한 발전에서 나온 가장 큰 문제가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폐기물 을 관리하는 문제였다. 원자력폐기물은 방사능물질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인체에 굉장히 유해할 뿐만 아니라 각종 질병은 물론이고 생 명까지 앗아갈 수 있을 만큼 그 위력이 굉장하다. 그래서 정부는 이 폐기물을 최대한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생각하는 것 이 상으로 안전한 방법을 개발했다. 하지만 처리방법만 개발되었다고 모 든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폐기물처리장을 설치할 곳이 우리나라 에는 없었고 아무도 그것이 자기 고장에 설치되는 것을 찬성하는 사 람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이기주의란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의 권리를 돌보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좀 더 쉽게 얘기 하면 남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이득에만 관심을 두는 몰지각한 행동을 말한다. 이런 이기주의는 그 범위에 따라서 크게 두 가지로 분류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개인 이기주의이고 두 번째는 집단 이기주의이다. 개인 이 기주의는 그 사안이 개인에 국한 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제일 바쁘다는 이유로 새치기를 한다거나, 남들의 이목은 신경 도 쓰지 않고 공동주택에서 애완동물을 기른다거나 하는 행동 등이 있다. 개인 이기주의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느낌처럼 그 효과도 미미 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경우가 많은 반면에 집단이기주의는 집단의 이 득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권익을 무시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그 범위 와 파급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 는 문제 중에 하나이다. 요즘 부동산 문제가 시끄럽다. 버블세븐이니 세금폭탄이니 하면서 집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시작했다. 어떤 재화의 가격은 수요 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시점에서 결정되기 마련인데 지금 우리나라 200 SDU 디지털 문학

201 의 집값은 어떤 초월적인 능력에 의하여 타의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르고 있다. 정말 초월적인 능력에 의해서 오르고 있는 것일까? 물론 지역마다 다르지만 전국 곳곳에서 집단적으로 집값을 올리고 있는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이들의 목적은 단순히 집값상승을 통한 재산축적에 있다. 원인을 생각해 보면 공통적 인 배경에는 집단적 이기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전체적인 영향은 고 려하지 않고 단순히 나의 이득, 우리 동네의 이득을 위해서 집단적으 로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날이 갈수록 개 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해지고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 자. 자기 자신도 이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 중에 한 명이고, 이기적인 사회를 만드는 장본인이다. 오늘부터라도 당장 실천해보자. 이웃에게 인사한 번 더 하고, 남에게 도움 한 번 더 주고, 이익보다는 보람 있 는 행동을 해보자. 조금씩이지만 차츰차츰 변해가는 우리의 모습을 느 끼게 될 것이다. 수필 201

202 수필 절름발이 오리와 허니문 피리어드 언제부터인가 외래어가 우리생활의 일부가 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기관장의 임기 말이면 튀어나오는 단어가 레임덕 이란 단어가 아 닐까 생각한다. 레임덕(Lame Duck)이란 대통령이나 지도자의 임기 만료가 가까워 오고 새 지도자가 취임하기 전까지의 기간을 말하는데 그 어원은 절름발이, 불구라는 뜻의 레임(Lame)과 오리(Duck)의 합 성어이다. 원래 오리는 뚱뚱한 체구로 인해 걸음걸이가 뒤뚱거려 보이 고 물갈퀴가 있어 걸음을 빨리 걷지 못할 뿐만 아니라 행동이 느려 보는 이도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데 절름발이로 걷고 있으니 되는 일 이 없고 지도력이 저하되며 영( 令 )이 서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레임덕현상은 아무에게나 적용하는 것은 아니고 눈치를 보며 일하거 나 피동적인 행동, 책임감이 결여되었거나 이완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 에게 사용하는 말이다. 최근 우리사회는 정보화 사회로 잰걸음하고 있고 유비쿼터스 시대를 달리고 있으니 요즘의 시대와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하지만 요즘도 레임덕이라는 단어를 매스컴이나 주위로부터 종종 듣고 있는 것을 보니 의미는 그대로임이 틀림없다. 레임덕이란 단어가 처음 사용 된 것은 미국의 남북전쟁 때부터라는데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당이 중 202 SDU 디지털 문학

203 간선거에서 다수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대통령의 정책이 의회를 통 과하지 못함에 따라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게 되자 오리와 같 이 뒤뚱거림에 비유해 나온 말이다. 최근 미국에서도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가 추락하고 있고 지지도가 추락하다보니 재 보선에서 참패로 이어지고 있다. 참패는 곧 내분으로 이어지는 레임덕 현상의 사이클을 겪게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5.31지방선거에서와 같이 집권당의 낮은 지지율로 인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지방의회의원 선거에서도 참패로 이어졌고 선거가 끝나면서 당 내분으로 이어져 총체적인 위기 를 맞고 있는 것과 같이 미국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어 심각성 을 더해가고 있다. 집권당의 낮은 지지율로 인해 공화당은 내년에 있 을 상하원 및 주지사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고 반대 로 민주당은 역전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우호관계에 있고 북핵문제를 비롯한 주한미군의 재배치 등 현안사항을 안고 있어 국민들이 우려하는바가 큰 가운데 지방선거에서 참패함에 따라 중앙당의 해체론과 위기론이 불거지고 있고 내분과 지휘체계가 흔들리는 것은 물론 해체론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제3대 민선자치단체장 선거 때에도 이와 같은 사례는 여기저기 서 찾아볼 수 있는데 부산시장에 출마하였던 집권당의 후보가 당선을 장담할 즈음 국민의 여론이 좋지 않을 시기에 지원유세를 나갔다가 오히려 지지도가 땅에 떨어지는 바람에 낙선한 사례는 우리에게 너무 도 잘 알려져 있다. 정치는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당연하고도 평 범한 진리를 거슬리는 행동은 국민들의 마찰을 불러오고 국정이 순조 로울 수가 없다. 요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선거 결과에 따라 단체장이 교체되거나 재선됨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당선자 측에서는 그 동안 자치단체의 사무를 인수받기 위해 인수기획단을 구성하여 운영 해 왔는데 인수기획단을 인수위원회라고도 하고 인수기획단이라고도 하는데 당해 자치단체의 업무를 당선자가 신속히 파악하는데 목적이 있고 취임하기 이전에 현황과 업무를 파악해 둠으로써 취임일부터 정 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게 되는데 이 또한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수기획단에 대한 법적 지위나 구성방 법, 운영체계, 업무지원한계 등이 명문화되어있지 않고 현직 자치단체 수필 203

204 장의 예우에 준하여 지원한다는 행자부의 인수 인계요령에 한 줄의 글 귀만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집행부에서는 업무지원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지원해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법적으로 제재를 가하거나 처벌을 요구할 수도 없다. 문제가 이렇다보니 레임덕 현상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지 않나 생각한다. 레임덕의 반대말은 허니 문 피리어드(honeymoon period)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대통령이나 수상이 취임초기부터 중반까지 권력의 누수 없이 의회관계나 국정운 영을 원활히 수행하는 기간을 말하는데 지방자치시대의 연륜이 쌓여 가면서 행정의 공백은 줄어들고 있으나 제도적인 시스템이 갖추어지 지 않은 이상 레임덕현상은 기억될 수밖에 없다. 204 SDU 디지털 문학

205 수필 골프와 등산이야기 삼일절 날 골프를 쳤다 해서 말썽이 되었던 이해찬 국무총리의 이야 기가 아침방송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골프를 마음껏 치기위해 총리 가 되었다느니, 장관 떨어질 때 이젠 골프를 마음껏 못치 게 되었다느 니, 총리에 대한 이야기가 줄을 잇고 있다. 왜 총리는 골프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각종 사건이 터질 때마다 흘러나오는 총리의 골프사랑은 대단한 모양이다. 평상시에는 아무 이야기가 없다가도 사건이 터질 때 마다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총리가 골프를 치면 사건이 생긴다는 방 정식이 성립되는 것 같기도 하고 매일같이 골프를 치기 때문에 언제 든지 사건과 마주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정치인에 대한 믿 음도 땅에 떨어지다 못해 파 뭍인지 오래고 보면 신경이 둔해질 만도 한데 재임기간동안 내내 골프와 관련한 불미스런 모습으로 국민들에 게 비춰지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도 없지 않다. 총리께서 스트레 스를 많이 받으시기 때문에 원활한 국정수행을 위해 스트레스해소를 위해 골프를 치신다는 선의의 이해를 해보지만 국민의 정서와는 동떨 어진 골프사랑이다 보니 스트레스를 풀기위한 골프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골프를 치기위한 총리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 이유 는 정치의 안정이나 경제의 안정은 물론이요 경제 불황에 따른 사회 수필 205

206 의 안정도 그 어느 하나 내세울게 없다는 게 작금의 현실임에도 고위 공직자들은 골프를 치고 있고 서민들은 사활의 전선에서 생업을 영위 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고 있다. 아침방송에서는 식당을 경 영하던 사업가가 사업의 실패로 채권자들로부터 빚 독촉을 받아오다 견디지 못해 차를 몰고 저수지로 돌진하여 일가족 3명이 숨졌다는 우 울한 아침방송을 함께 접하면서 정치도 잘되고 경제도 잘되어야지 하 는 기우를 해본다. 국민도 알고 있다. 골프가 대중화되었고 생활체육 이라는 것을, 그러나 아직까지는 사치성 운동이라는 게 국민들의 인식 일 뿐만 아니라 경제가 어렵고 살기 힘든 요즘 세태에 고위공직자는 국민의 뜻을 헤아리지 않는다는 게 서민들을 열 받게 하고 있다. 김영 삼 정부시절에는 골프금지령을 내린 적이 있고, 이름 있는 골프장의 회원권 하나만 하여도 서민들의 주택가격을 훨씬 뛰어넘는다. 이런 와 중에서 교육부총리의 항변은 골프와 등산이 뭐가 다르냐고 대변하고 있으니 국가의 녹을 먹는 사람으로서 교육부총리의 처신 또한 비난받 아 마땅하다 하겠다. 최모 의원의 성희롱사건으로 한동안 매스컴을 요 란스럽게 하더니 이번에는 집권여당 수뇌부의 골프회동으로 역공이 시작되고 있다. 국민의 정부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문제는 이뿐 만이 아니다. 부산 아시아골프장에서는 검찰에 담합행위로 공정거래 위로부터 고발 조치되어 있던 영남제분의 R회장과 함께하는 자리였다 는 게 밝혀졌고 R회장은 두 번이나 주가조작으로 구속된바 있을 뿐만 아니라 시기도 적절치 않고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시 각이다. 전직 총리였던 모 인사는 공직시절에 극심한 가뭄에 골프를 치러 가다가 잘못을 깨닫고 돌아와 가뭄대책상황실을 설치하여 20여 일간을 사무실에서 철야 근무하였고 그 이후에는 한번도 골프채를 잡 아본 적이 없다는 회고를 한 적이 있다. 목민관의 자세는 이러해야 하 지 않겠는가? 재해비상상황에서 제주도에까지 내려가 19세 소녀 프로 골퍼와 골프를 쳤다 해서 문제가 된바있고 양양일대의 화재참사 시에 도 골프를 쳤던 것으로 밝혀져 국회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신 하겠다 고 사과한 적이 있었다. 공직자라고 해서 골프를 치면 안 된다거나 문제 삼을 일은 아니지만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골프를 친 것은 총리의 처신으로 맞지 않다는 국민적 여론이 지배적일 뿐만 206 SDU 디지털 문학

207 아니라 특히, 양양군의 대화재 참사 때에도 골프를 쳐 물의를 빚기도 하였는데 보고를 받은 즉시 골프회동을 중단하고 집무실로 돌아와 관 계부처 긴급대책회의를 소집하고 초기진화에 만전을 기했더라면 천년 고찰 낙산사까지 소실하는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라는 게 지나가는 생 각이다. 낙산사에서 들려오는 뒤 얘기도 공직자의 안이한 생각과 태도 가 큰 참사를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공직자들의 올바른 처신을 기대해 본다. 붙임 : 낙산사 동종의 현재 터 모습 사진 1부. 낙산사 동종이 있던 자리 화재현장 수필 207

208 수필 莊 子 의 세 가지 칼 外 1편 정주호 사람은 누구에게나 나름대로 칼을 지니고 산다. 선의 칼이든 악의 칼 이든 어떠한 形 態 로든지 그 사람을 代 辯 하고, 인간의 本 質 的 意 味 에서 그 사람이 지닌 自 我 의 형태에 따라 칼의 效 驗 및 用 途 가 달라진다고 본다. 옛날 조나라 문왕은 칼을 무척 좋아했던 것 같다. 전국에서 내로라하 는 검사들이 삼 천 여명이나 모여 들었는데, 밤낮으로 서로 칼 치기에 죽고 상하는 사람이 한 해에 무려 백 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럼에 도 임금은 칼 치기를 즐겼으니 나랏일이 꼴이 아닐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일 것이다. 나라는 쇠하여졌고, 다른 諸 侯 들은 조나라를 치려 고 꾀하는 동안 태자 회( 悝 )는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누가 능히 임금의 뜻을 기쁘게 하면서 검사들을 못 오게 할 수 있 겠는가? 내 그에게 千 金 을 주리라. 신하들은 대답했다. "장자 같으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태자는 곧 사람을 시켜 천금을 가지고 가서 장자에게 바치게 했다. 영문도 모르 면서 그 천금을 받을 리 없는 장자가 다시 태자에게 물었다. "태자는 내게 무엇을 시키려고 천금을 주셨습니까? 태자의 설명을 듣고 난 장자는 자기도 칼을 잘 쓸 줄 안다고 답하였 208 SDU 디지털 문학

209 다. 그리고 사흘 후, 장자는 태자와 함께 임금을 만났다. 임금은 장자 에게 물었다. "너는 내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태자의 소개를 받았는가? 장자는 임금님은 칼을 좋아하신다고 하기에 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고 왔다고 했다. 임금은 다시 물었다. "네 칼은 몇 사람이나 상대할 수 있는가? 장자는 열 걸음에 한 사람씩 천 리를 가도 막을 사람 이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은 매우 기뻐하면서 "천하의 적은 없구 나. 하였다. 사람은 한 가지 재능 정도는 타고 난다고 한다. 그 재능을 최대한 살 려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못한 경우를 왕왕 보게 된다. 너무 지나치면 주변에 피해를 주고, 너무 모자라면 스스로 도 힘겨워하는 것이 우리네 세상이다. 장자가 임금 앞에 선 것은 진정 검사들과 칼 치기를 하려고 온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임금은 장 자의 칼의 길고 짧음에 관심을 갖고 있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 가. 장자는 말한다. 임금은 劍 은 알아도 道 를 모르는 庶 人 과도 같다. 고 했다. 자기의 위치와 자리를 모르고 妄 覺 하며 사는 문왕과도 같은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천하를 다스리는 일보다 제 몸을 귀히 여 기는 사람이면 천하를 부탁할 수 있고, 천하를 다스리는 일보다 제 몸 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천하를 맡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君 子 는 총명을 휘두르지 않는다면, 신주처럼 앉아 있어도 龍 처럼 움직이고, 깊은 못처럼 잠잠하게 있어도 우뇌처럼 이름이 울린다고 했으니 잃고 얻음은 세상밖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장자는 내게는 세 가지 칼이 있는 데, 그 칼에 대해서 이야기 한 뒤 에 시합함이 어떻겠냐고 임금에게 묻는다. 天 子 의 칼은 제후를 바로잡고 천하를 항복하는 임금 된 자의 德 目 의 칼이라면, 제후의 칼은 지혜 있고 용기 있는 선비 된 자의 칼일 것이 다. 그럼에도 임금은 서인의 칼을 즐기시니, 庶 人 의 칼은 마치 닭싸움 수필 209

210 과 같은 것이어서 한 번 목숨이 끊어지면 다시는 나랏일에 쓰일 바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대왕은 천자의 지위에 있으면서 서인의 칼을 즐 기시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임금의 그릇됨을 지적하였던 것이다. 그 후 장자는 문왕의 好 劍 癖 (호검벽)을 고쳐 주었 다는 說 劍 의 예다. 장자는 검술의 지극한 도는 먼저 적에게 허( 虛 :틈)로써 보이고, 이익 으로써 유혹하며, 적보다 뒤에 움직이고, 적보다 먼저 치는 데 있다 하였다. 우리에겐 각자의 劍 이 있다. 검은 善 意 의 劍 으로 거듭나야 진 정한 검으로써의 신비함과 正 道 가 배어있는 것이다. 天 子 의 지위에 있 으면서 庶 人 의 칼을 즐긴 문왕은 섣달동안 궁전 밖을 나가지 않았다. 자성과 자숙의 모습이었으리라. 서인의 자리에 있으면서 천자의 칼을 즐기는 서인이 있다면 그것은 無 知 이며 어리석은 자다. 그러므로 누구 나 이름을 위해서 일어나고, 이익으로 나아가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 이다. 자기의 위치와 자리를 바로 알고 살아가는 지혜야말로 우리들이 지녀야할 德 目 중의 하나가 아닐런지 생각해 본다. 210 SDU 디지털 문학

211 수필 큰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큰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흐르되 소란하지 않으며 주어진 자기의 길 을 묵묵히 갈 뿐이다. 흐르면서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므로 해서 근 심하거나 실망하지 않는다. 일명, 대하무성( 大 河 無 聲 )이 그것이다. 계 곡의 물은 맑고 깨끗하지만 조용히 흐르는 법이 없다. 좁고 가파른 수 로( 水 路 )가 주요인이기도 하겠지만 적은 양의 물의 흐름도 이유가 될 것이다. 이처럼 계곡의 물은 그 흐름이 요란하다. 가만히 삼라만상( 森 羅 萬 象 )을 감상하려 해도 협곡( 峽 谷 )의 요란함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 나 강으로 나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강폭과 강심은 잠잠하던 가슴을 일깨워준다. 구비 구비 휘돌아나간 강줄기가 그러하고, 하늘 구름이라 도 끌어내릴 듯한 포근함은 강을 찾는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세 태에 찌든 복잡한 마음은 강어귀에서 정리되곤 한다. 밀어내지 않아도 저 혼자 흘러가는 강물처럼, 강물은 한꺼번에 큰물이 흘러가면서도 소 리 없이 흐르는 지혜가 있다. 그래서 노자( 老 子 )는 물은 도( 道 )에 가 깝다. 고 했는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이어갈 줄 아는 지혜와 덕목( 德 目 )을 강물에게서 배우니 말이다. 우리 인간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언행의 표 현은 자신만의 고유 영역이 아니다. 지위라는 것은 아래( 下 )가 있고 수필 211

212 위( 上 )가 있기 마련이지만, 말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고 해서 막말을 한다거나 구분 없는 비인격적인 언행은 모든 이에게 실망을 준다. 상 대방의 인격을 무시한 채, 찍어 누르기식의 일방적인 대화는 해결의 의미는 없다. 설사 상대방이 제아무리 큰 잘못을 하였다 하더라도 진 정한 고언( 苦 言 )의 방법은 상대방의 인격존중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겸허히 수용할 수 있기 때문 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고 했다. 다시 말해, 모욕적인 언사( 言 辭 )는 상대방의 마음에 비수( 匕 首 ) 가 될 수 있다. 감정이 좀 상한다고 해서 삼사일언( 三 思 一 言 ) 하지 못 하는 소인배의 마음으로는 고품격 인격체가 될 수 없다. 그 또한 인정 받지 못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다만, 지위의 높고 낮음에 순응할 뿐, 불쌍하고 공허한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다. 큰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사람의 인격도 이와 같아야 한다. 많은 물 을 포용하고 함께 먼 길을 가면서도 다투지 않는 물의 상생( 相 生 )처 럼, 여유와 포용의 자세로 우회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세상 살아가면 서 사람이 자기감정대로만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아마도 이 세상에는 단 한 사람도 온전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큰 나무가 큰 그늘을 만들 어 내듯이, 사람의 생각도 크고 깊어야 벗이 많은 법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생각하는 바가 자기 신분에 벗어나지 않으며, 말 함에 있어서는 더디하고 행함에 있어서는 빠르게 함이 군자의 본분 ( 本 分 )이 아닌가. 학문으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서 인( 仁 )을 향상시 키는 마음이야말로 꼭 필요한 덕목( 德 目 )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세상에는 여러 분류의 사람들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가 자기 개인의 특성과 성품에 따라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필요 이 상으로 과대 포장하거나 말하는 사람들은 실속이 없다. 껍데기일 뿐이 다. 현대 사회가 아무리 자기 PR시대라고는 하나 도가 지나치면 그르 치는 법이다. 인정( 認 定 )과 대우( 待 遇 )는 분명 상대방으로부터 나온다. 자신이 아무리 잘났다고 한들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이 또한 자신에게서 문제점을 찾아야 한다. 남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내가 인정 받기는 쉽지 않다. 자신이 마치 최고인양 자만( 自 慢 )에 빠져 사는 사 212 SDU 디지털 문학

213 람들은 하루속히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들에게서는 고 언( 苦 言 )의 포용력이 없거나 부족하다. 빈 들판이 바람이 많은 법이다. 빈 들판의 바람은 조금만 불어도 세게 느껴진다. 방풍림( 防 風 林 )이 없 기 때문이다. 그러나 된 사람의 가슴은 그늘을 만들어 내는 힘이 있 다. 생각이 짧거나 편견이 강한 사람은 늘 자기주장만 한다. 옳고 그 름은 관심도 없다. 자기 생각이 마치 절대적인 것처럼 착각 속에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긴 세월 동안 강물은 끊임없이 흘러갔다. 흐 르면서도 단 한번도 가던 길을 되돌아오거나 반항하지 않는다. 묵묵히 자기 길을 갈 뿐이다. 큰물이 흐르면서도 소리 없이 흐르는 저 겸허한 강물처럼 우리들의 일상도 행하되 요란하지 않으며, 흐르되 소리 없이 흘러갈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분( 區 分 )과 분별력( 分 別 力 ) 이 있어야 한다. 역사의 흐름처럼 강물은 끊임없이 흘러갔다. 소리 없이. 묵묵히 앞만 보고 또 그렇게 흘러갔다. 더 낮은 곳으로 흐르기 위해 강물은 오늘도 흘러간다. 수필 213

214

215 학생문단 동화 구현미 童 話

216

217 동화 여러 빛깔 조각들의 이야기 나라 구현미 "선생님, 아이가 밤에 잠을 못 자요. 눈을 감으면 여러 빛깔의 조각 들 때문에 눈이 아파 잠을 잘 수가 없대요. 선생님은 유 빛의 눈을 보고 또 보셨어요. "어머니, 유 빛의 눈은 정상입니다. 제 생각에는, 아이가 상상력이 많은 것 같아요. 아이들은 밤에 눈을 감으면 무서워하기도 하지만, 자 기만의 세상으로 빠져들죠. 어머니, 유 빛이 평소에 말을 많이 하나 요? "아뇨, 아! 아니 제가 잘 들어주지 못해요. 전 회사에 다녀요. 저녁 먹으면서 하루의 일을 들어주는 정도예요. 저는 아이가 눈에 이상이 있거나 아니면, 같이 자고 싶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겁도 많아요. 혼자 집에 있지도 못하고 들어가지도 못해요. "아이들은 많은 생각을 하고 말하고 싶어 해요. 어머니들은 소아정 신장애와 안과 질환을 구분하지 못하고 바로 안과로 오시죠. 어떤 아 이는 계속 눈을 깜박거려서 병원에 왔어요. 눈이 따갑다고 말하지만 그 아이의 눈도 정상이었어요. "그럼, 유 빛이 소아정신장애라는 거예요? "그런 것 같아요.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노력해 보세요. 그러 동화 217

218 면서 아이를 잘 지켜보면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유 빛 엄마의 눈은 점점 커지다가 눈물을 흘리셨어요. 가만히 앉아 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유 빛의 손을 잡고 같이 회사로 갔어요. "유 빛, 여기가 엄마가 다니는 회사야. 유 빛이 학교와 학원에 있을 때 엄마는 여기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한단다. 엄마 일하는 곳 보 여줄까? "네, 같이 들어가도 돼요? "그럼 유 빛, 여기가 엄마 자리야. 잠깐만 앉아 있어. 금방 올게. "네. 유 빛의 엄마는 휴가 신청을 하고 오셨어요. "유 빛, 엄마가 시간이 아주 많다면 뭐하고 싶니? "와, 엄마가 정말 시간이 많아 졌어요? "그래. "엄마, 제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엄마가 또 읽어 주세요. 유 빛의 엄마는 몇 권의 책을 읽어 주셨어요. 유 빛은 그림을 그리 면서 듣고 있어요. 유 빛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요. 엄마는 유 빛 의 책상에 많은 그림이 그려진 스케치북이 쌓여 있는 걸 보셨어요. "유 빛, 이거 다 언제 그린 거야? 정말 잘 그렸네. "엄마, 책 읽으면서 그린 거예요. 엄마한테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리면서 생각했던 것 이야기해 드릴게요. 며칠의 휴가를 유 빛과 엄마는 집과 공원에서만 보냈어요. 먼 곳을 여행할 필요가 없었어요. 유 빛의 이야기는 더 먼 곳도 갔다 오게 했 고, 더 신나는 여행도 할 수 있었거든요. 이번 달에는 학예회가 있어요. 유 빛은 바이올린 연주를 하기로 했 었는데 바꾸었어요. 엄마가 가장 많이 웃으셨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도 들려주고 싶었어요. 유 빛은 큰 도화지에 이야기와 어울리는 그림 도 준비했어요. "오늘은 학예회 하는 날이예요. 각자 준비물은 다 가지고 왔죠? 11 시에 시작할 거예요. 떨지 말고 잘하세요. 유 빛은 천천히 손을 올리면서 생각해 보았어요. 신발을 신으면서 218 SDU 디지털 문학

219 말아놓은 큰 도화지를 내려놓고 안 가져 온 거예요. 오늘, 유 빛은 그 림과 함께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었거든요. "선생님, 그림을 안 가져 왔어요. "유 빛, 11시면 부모님들 오시거든. 빨리 집에 가서 가져 올 수 있 겠니? "네 대답은 했지만 유 빛은 한 번도 집에 혼자서 들어간 적이 없었어요. 유 빛의 아빠는 혼자 외국에 계세요. 아빠께서는 외국에서 3년간 공부도 하고 일도 하셔야 해요. 유 빛이 10살이 되면 오실 거예요. 유 빛은 초등학교 2학년 이예요. 지금은 엄마와 유 빛, 둘이서 살고 있어 요. 그래서 집은 철저한 방범 시스템으로 되어 있어요. 유 빛은 집에 들어가기 위한 복잡한 절차를 다 외울 수가 없었어요. 외울 필요도 없 었죠. 유 빛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원에 있다가 엄마가 퇴근하실 시 간에 맞추어 집에 같이 들어가거든요. 이런 복잡한 사정 이야기를 유 빛은 선생님께 말씀드릴 수가 없었어요. 선생님은 무척 바빠 보이셨거 든요. 유 빛은 집 앞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어요. 며칠 전에 읽었던 책 에서는 주문을 말하면 문이 열렸는데, 우리 집은 여러 가지 번호를 눌 러야 하고, 기호도 그려야 하고, 현관 앞에서는 암호를 말해야 되 요. 내가 다 할 수 있을까? 엄마 하실 때 알아 놓을 걸.' 유 빛은 집 앞, 큰 나무 밑에 앉아서 엄마가 문을 열 때 하셨던 것을 생각해 보았 어요. "유 빛, 엄마는 네가 태어난 날을 가장 감사 들이고 있어. 엄마는 널 낳아 키우는 일이 정말 행복하단다. 네가 얼마나 소중한지 늘 기억 하렴. 엄마가 말씀하셨던 것이 조금씩 생각났어요. 아! 내 생일이 번호였어. 생일날을 누르면 돼.' 그 다음에는 기호인데 무엇일까?' 유 빛은 떨어진 나뭇가지를 가지고 그림을 그려 보았어요. 유 빛은 동화 219

220 해바라기 꽃을 가장 좋아해요. 미술학원에서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고 그렸는데 엄마는 정말 기뻐하셨어요. 유 빛은 땅바닥에다가 나뭇가지 로 웃는 해바라기를 그려 보았어요. 정말 하하하' 하는 소리가 들려 와요. 유 빛은 자신 있게 소리쳤어요. "맞아! 큰 동그라미 안에는 작은 동그라미 7개를 그리고, 테두리에는 ㄷ자 로 9개를 붙여서 그리면 돼. 엄마 회사 건물은 9층 건물에 7층이었어. 엄마는 해바라기를 보면 유 빛의 미소가 떠오른다고 하셨어. 엄마 회 사에 갔었을 때 책상 위에 조그마한 해바라기가 있었지. 암호는 왠지 쉬울 것 같아. 엄마는 문을 열 때 나를 바라보며 "사랑 해. 유 빛. 하셨으니깐. 그것이 맞을 거야. 유 빛은 침착하게 생각한 대로 차례차례 문을 열기 시작했어요. 대문을 열고, 전실 문을 열고 현관문까지 다 열었어요. 와! 내 생각이 다 맞았구나. 빨리 그림을 갖고 학교에 가야지' 학교에 가면서 유 빛은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엄마는 벌써 학교에 오셨어요. 복도에서 선생님과 말씀을 나누고 계세요. "유 빛, 집에 갔다 왔니? 엄마에게 전화하지 않고, 우리 유 빛, 정 말 많이 컸구나! 어떻게 문을 열었니? "처음엔 엄마에게 전화해서 갖고 오시라고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엄마는 회사에서 직접 학교에 오시잖아요. 엄마, 1학년 학예회 할 때 늦게 오셨었어요. 아침에 회의하시면 전화도 받지 못하고. 걱정돼서 제가 갔다 왔어요. "잘했구나. 유 빛, 오늘, 학예회도 긴장하지 말고 잘하렴. 유 빛은 엄마에게 들려 준 것보다 더 재미있게 이야기했어요. 유 빛은 그날 밤에도 여러 빛깔의 조각들을 보았어요. 하지만, 눈은 아 프지 않았어요. 그 조각들은 유 빛을 이야기 나라로 가게 해 주었어요. 220 SDU 디지털 문학

221 학생문단 시나리오 이영현 戱 曲

222

223 시나리오 하얀 소나기 이영현 강민혁 / 강은혁 / 서채미 / 서은미 # 1 아파트 안 놀이터 (극중 강민혁의 집)-<가을 밤> 바람이 세차게 불고 소나기가 억수같이 퍼 붇는 어느 가을 밤, 어느 아파트 안 어린이 놀이터에 성인인 서채미, 서은미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마주 보며 서있다. 서채미가 서은미를 바라보는 눈빛은 매섭기를 이미 떠나 독살스럽기까지 하고. 어 린이 놀이터와 서채미의 눈빛은 더욱 대조되게 느껴지고... 서채미의 매섭게 보이는 두 눈에 어느새 눈물이 맺히고. 그러나 결코 눈물을 흘리진 않는다. 다만 두 큰 눈에 그렁그렁 맺혀있을 뿐. 서채미가 보면 서은미는 그 자리에 그냥 털썩 주저앉아 버리곤 서러운 듯 흐느끼며 울기 시작한다. 서채미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돌아서선 화면에서 점점 멀어진다. 서은미는 여전히 주저 앉아 울고 있고 서은미에게 화면 클로즈업하면서 암전된 화면, 그 위에 MAIN TITLE(시퍼런색으로) 화이트 화면, (자막) (하늘색) 사랑이 그리운 날들에... 시나리오 223

224 # 2 인천의 어느 평범한 주택 거실(어린시절로 돌아가고) 대학강당-부엌<여름 아침> 거실에서 행복하게 뛰어노는 두 여자아이! 아버지는 대학강당에서 열심히 강의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는 부엌에서 아이들을 위한 요리를 만들고 있다. 모두 행복한 얼굴인데... # 3 초등학교 교문앞 <여름 낮 2-3시경> 채미가 학교 교문을 나선다. 교문을 지나 문구 옆에는 동생 은미가 걸어간다. 채미 : (동생 은미를 발견하고) 은미야! 은미 : (깜짝 놀라 돌아보며) 어! 언니! 채미가 은미 곁으로 다가가는데... 은미 : (씽긋 웃으며) 일찍 마쳤네. 채미 : (밝은 표정) 응. 은미야. 맛난거 사줄까? 은미 : (반가워하며 놀라서) 진짜? 언니 돈 많아? 채미 : (괜히 튕기며) 그냥... 조금... 왜 싫어? 은미 : (얼른 대답하며) 아니! 좋지! 음... 어! 저 아이스크림 사줘! 불량식품이라고 엄마가 먹지 말라고 하지만 맛있잖아.! (좋아서 웃는) 채미 : (밝은 표정) 그래. 맛있겠다. # 4 길을 걸어서 집앞 <여름 낮> 둘은 다정스레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걸어가다 집에 도착한다. 채미 : (급한 마음에) 다왔다. 빨리 먹어 엄마한테 들키면 혼난다니깐. 은미 : (아쉬워서) 알았어. 음.. 맛있다. 아껴먹고 싶은데. 채미 : (불안한 마음) 나중에 또 사줄게. 얼른. 은미 : 응. 우리 언니가 최고다. (확답을 얻고 나서야 빨리 먹어 치우는) # 5 집안 <여름 낮> 채미, 은미 : (고개 숙여 인사하며) 다녀왔습니다. 엄마 : (반가이) 어! 그래. 잘 갔다왔니? 동생이랑 같이 오네? 오다가 만났니? 채미 : 응. 엄마 배고파! 엄마 : 알았어. 좀만 참아. 채미, 은미 얼른 씻고 오고. 어?. (채미, 은미를 위아래 훑어보는) 은미 : (이유를 모르는) 왜? 엄마. 엄마 : (심문하듯) 뭐... 먹었니? 은미 : (왠지 불안한) 어? 아무...것도. 엄마 : (얼굴을 가까이 보며) 정말? 채미는 이미 아무말 못하고 망부석이 되고. 은미 : (자신없는) 응 SDU 디지털 문학

225 엄마 : 거짓말하면...알지? 은미 : (오히려 더 큰소리 내며) 응... 안 먹었어 정말이야! 채미는 이미 죄인이 되어 있고. 엄마 : (입을 한번 앙다물고서야 이유를 말하는) 옷에 묻은 거 뭐야? 채미와 은미의 온몸이 전류가 흐르듯 몸둘바를 몰라하고. 먹었던 아이스크림이 흘러 옷의 밑에 까지 묻어 있다. 채미 : (손을 빌고는) 잘못했어요. 그러자 은미는 울기 시작한다. 엄마는 은미보고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손짓하고는 채미를 따로 안 방에 데리고 간다. # 6 안 방 <여름 낮> 채미 : (서러워 흐느끼며) 엄마는 왜 나만 혼내? 항상!...같이 먹었는데. 엄마 : (얼굴을 무섭게 쳐다보며) 넌 언니잖니. 은미가 뭘 알겠어? 채미 : (대성 통곡하며) 엄마 미워. 맨날.. 맨날 나만 미워하고. 엄마 : (그제야 달래며) 널 미워하는 게 아니야. 넌 언니잖아. 은미는.. 채미 : (여전히 울고 있는) 나랑 한 살차이야.. 엄마 : (다시 무서워지는 엄마) 엄마한테 계속 대들거야? 채미 : (서럽고 억울한 눈물) 아...앙... 엄마 : 잘못했어? 안했어? 채미 : (결국 인정하는) 잘못했어..아..앙. # 7 채미와 은미의 방(같이 쓰는 방) <여름 늦은 낮> 침대에 누우면 서로 마주 보게 되어 있다. 은미 : (침대에 앉아 미안한 표정으로) 언니 미안! 채미 :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괜히 더 미안해서) 아니야. 은미 : (씩 웃어 보이며) 언니. 다음엔 옷에 흘리지 말자. 채미 : 뭐? (얄밉다는 표정으로 보다가 같이 씩 웃는) 채미 은미가 마주보며 웃는다. 동화속 한 장면처럼 둘의 미소가 너무 예뻐 보인다. # 8 집앞 거리 <여름 저녁> 아빠가 두 팔에 한아름 빵을 안고 행복한 미소로 집앞을 걸어온다. # 9 집안 거실 <여름 저녁> 아빠는 쇼파에 앉아 있고, 채미와 은미는 아빠의 오른쪽, 왼쪽 다리를 차지하고 있다. 시나리오 225

226 둘은 아빠의 뺨에 양쪽으로 뽀뽀를 하고는 다리를 떠나 빵을 맛있게 먹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와 아빠의 미소는 너무도 평온해 보인다. 암전된 화면 # 10 중학생이 된 채미의 교실-은미의 교실 <여름 아침> 학년, 반 표지판이 보이고 그 건너로 교복을 입고 각자의 3학년, 2학년 교실에서 공부하는 채미, 은미의 모습이 교대로 보이고 학우들과도 즐겁게 얘기하는 모습이 정답게 보인다. # 11 중학교 교문 앞 <여름 저녁> 채미는 교문을 나와 학원버스에 올라 타려다가 건너편 팬시점 앞에 있는 은미를 발견한다. 그리고 은미옆에는 어떤 화려한 옷을 입은 젊은 여자도 있다. 멀리서 보는 채미의 눈에 젊은 여자와 은미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채미는 왠지 걱정스러운 듯 은미를 바라보고. 그 이야기는 쉽게 끝나지 않는데. 그 여자는 은미를 쓰다듬으며 무언가를 손에 쥐어 주기도 한다. 채미 : (놀란 표정과 불안한 표정 내래이션) 누구지? 이상한 사람인가? 혹시 유괴범! 채미는 잠시 지켜보다 은미쪽으로 달려간다. 은미옆에 있는 그 여자는 채미를 보자 무어라 말하며 손을 흔들고는 그냥 가버린다. 채미 : (다급히) 은미야! 은미 : (평소와 같이) 어. 언니. 채미 : (바로) 그 사람 누구야? 방금 얘기하던 그 사람. 은미 : (아무렇지 않은 듯)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나한테 괜히 친절히 대해주더니 이것까지 주던데. 채미 : (뺏어 들고는) 그게 뭐야? 은미 : (포장되어 있는 물건을 보며) 글쎄. 포장이 되어 있어서 잘은 모르겠지 만.. 채미 : (답답한) 그걸 니가 왜 받아? 바보야. 그 사람 유괴범일지도 모르잖아? 은미 : (그제야 겁이 나는) 유괴범! 채미 : 조심해 너! 아! 나 학원 가야 돼. 너 집으로 곧장 들어가. 엄마한테 말씀드리지 말고 괜히 걱정하시니깐. 알았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채미의 몸은 이미 학원 버스쪽으로 가고 있다.) 채미는 얼른 학원버스 쪽으로 달려가서는 재빨리 올라탄다. # 12 학원 차안 <여름 저녁> 학원 차 중간쯤 오른쪽 좌석에 가방을 안고 앉아 있는 채미. 채미의 표정은 뭔가 가 께름칙한 표정이다. 채미 창밖으로 고개 돌려 보다 좀전의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226 SDU 디지털 문학

227 젊은 여자의 희미한 얼굴과 지나치게 화려하던 옷과 장신구들. 은미와 얘기하던 모습.. 채미는 고개를 저으며 가방에 얼굴을 파 묻는다. # 13 집앞 골목 <여름 밤> 채미는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멘 채 집쪽으로 골목을 뛰어 온다. # 14 집안의 입구- 거실 - 부엌 - 안방 <여름 밤> 채미는 집안으로 들어와 가방을 여전히 한 쪽 어깨에 멘 채 제자리에 서서 집안을 쭉 둘러본다. 거실에서 은미는 TV를 보고 있고. 채미는 얼른 부엌으로 가본다. 채미의 시선에 음식을 준비하시는 엄마의 모습이 보이고. 그리고 안방으로 가본다. 아빠가 들어오신 흔적을 찾다가... # 15 부엌 <여름 밤> 채미 :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는) 엄마. 아빠 아직 안 오셨어? 엄마 : (간식 준비하다가 흠칫 놀라 뒤 돌아보는) 그래. 근데 언제 왔어? 들어오는 소리도 못들었네... 채미 : (열쇠 보여주며) 이게 있으니깐.. 아! 배고프다. # 16 욕실 <여름 밤> 채미는 어느새 옷을 갈아 입은 상태이고 욕실에서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채미 : (거울 보며 혼자 말하듯) 아무일 없겠지? 그래 그럴꺼야. (씩 웃는) # 17 중학교 채미 교실 <여름 저녁> 채미교실에선 선생님이 종례를 하고 계신다. 학생들은 이미 가방을 다 챙겨 책상위에 올려 놓고 이윽고 종례를 마치고 하나 둘 교실을 빠져 나간다. 채미도 역시... # 18 중학교 운동장 <여름 저녁> 채미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친구와 얘기를 하며 걸어간다. # 19 중학교 교문 <여름 저녁> 화려한 옷차림의 그 젊은 여자가 교문 밖을 서성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시나리오 227

228 채미 : (친구를 보며) 먼저 갈래? 나 교실에 다시 갔다와야겠어. 친구1 : (장난 어투로) 기다려 주지 뭐. 채미 : 오래 걸릴 것 같아... 미안. 담에 떡볶이 쏠게. 친구2 : 오늘 학원도 안 가는데, 무슨일이야? 채미 : 해결되면 얘기해줄게... 미안해.. 채미는 친구들과 손을 흔들며 작별을 하고 교문 뒤에 숨어 그 여자를 지켜 본다. 채미 : (그러다 조심스레) 저기.. 아줌마! 젊은 여자는 깜짝 놀라하며 걸음을 딴 쪽으로 돌릴려다 채미를 쳐다 본다. 채미는 순간 당황하지만 안 그런척 당당한 척 보이려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본다. 채미 : 혹시 저 아세요? 아님 제 동생을 아세요? 젊은 여자는 아무말 없이 그냥 채미를 바라보고만 있다. 채미 :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금 입을 연다) 여기에 아줌마 자식이라도 다녀요? 젊은 여자는 입을 열려다 그냥 만다. 어린 채미를 무시하는 표정! 채미의 표정도 썩 좋지 않다. 채미가 서 있는 교문 바로 옆 문으로 은미가 교문을 나서고 있다. 은미가 나오자 여자와 채미의 눈길은 동시에 은미를 보고. 채미는 얼른 은미 옆에 선다. 여자는 그런 채미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서서히 아주 천천히 은미에게 다가간다. 그 응시하는 눈빛에 채미와 은미는 그 자리를 떠날 수도 없다. 여자는 은미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드디어 입을 연다. 여자 : (부드럽고 지나친 오바톤으로) 학교 끝났니? 배고프지? 아줌마가 맛있는 거 사줄게. 그럴 시간은 있지? 가자. 그리고 옆에 있는 학생도 같이 가도 괜찮아. 말을 끝 마치자 여자는 먼저 앞장 서서 걷기 시작한다. 채미와 은미는 너무나도 당당한 그 여자의 뒤를 자연스럽게 마법에라도 걸린 듯 따라간다. # 20 패스푸드점 <여름 저녁> 채미, 은미는 각자 먹을 것을 시키곤 햄버거 세트를 받아 자리에 앉고, 자연스레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흐른다. 여자 : (잠시후, 오바로 상냥하게) 많이 놀랬겠지? 내가 누군지도 알고 싶기도 하 겠고. 이 아줌만 너희들 이름을 다 알고 있어. 채미 : (확인하려는 듯 생뚱맞게) 뭔데요? 여자 : (약간 비웃음) 채미... 그리고 그 옆엔 서은미. 228 SDU 디지털 문학

229 (은미의 성을 강조하며 말하고) (차분히) 자세히 다 설명할 순 없지만 너희들 부모님은 나에 대해서 다 알고 계 셔. 너희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될거고 받아들이게 될거야. 채미와 은미는 두려운 표정이다. 여자 : (친하려는 듯) 맛있게 먹으렴. 또 사 줄 수도 있어. 은미 : (터트리듯 눈을 또렷이 쳐다보며) 왜 그렇게 잘 해 주실려는 건데요? 너 무 그러지 마세요. 낯선 사람한테 이런 식으로 받는거 기분 별로 안 좋아요! 여자 : (진지하게) 친해야 하니깐.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어. 특히 은미 너는 말이야. 난 니가 너무 좋거든. 은미는 소름 끼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 21 집안 거실 <여름 늦은 저녁> 채미, 은미 : (힘 없이) 다녀왔습니다. 엄마 : (역시 가라앉은 지친듯 한) 어... 그래... 채미와 은미는 서로를 쳐다보다 같은 마음인 것을 확인한다. 채미와 은미는 엄마곁으로 조심히 다가가서는 양쪽에서 엄마를 꼭 껴안는다. 엄마 : (좋지만 귀찮은 듯) 어머.. 얘들이 갑자기.. 채미 : (작은 목소리로) 그냥. 엄마가 오늘따라 되게 보고 싶드라구. 그냥 왠지. 이유는 나도 몰라. 엄마 : 그냥? 그래. 엄마도 오늘 너희들이 보고 싶더라. 은미 : (놀라는 척) 엄마도? 엄마 : (꼭 껴안아 주며) 그래. 우리 채미... 은미... 너무 보고 싶더라. 채미와 은미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그러나 얼른 눈물을 훔치고는 밝게 웃어 보인다. 엄마 : (의미 심장한 말투로) 채미, 은미야. 너희들 엄마가 모두 사랑하고 무슨일이 있어도 너희들 지켜주도록 할게. 혹시 만약에... 만약에 그러지 못하면... 그렇더라도 너희들 엄마가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잊지마. 알았지? 채미 : (불안한 목소리로) 왜 그런 소릴 해? 지켜줘야지. 아니 우리가 엄마 지켜 줄게. 약속해. 은미 : (마음속으로 다짐하 듯) 나두. # 22 집밖 거리 <여름 늦은 밤> 촉촉히 내리던 이슬비가 갑자기 억수같이 무서운 소나기로 변해 퍼붓는다. 하늘도 시꺼멓고 거리도 번쩍거려 지나가는 행인하나 없다. # 23 채미와 은미의 방 <여름 늦은 밤> 은미 : (이불을 꼭 잡고는) 언니. 소나기가 너무 세게 내리니깐 겁난다. 꼭.. 비가 땅 속까지 다 뚫고 집까지 무너지게 할 것 같애. 채미 : (무섭지만 안 그런 척 달래며) 무슨 그런 소릴해. 괜찮아. 시나리오 229

230 은미 : 나 무서워서 밖에도 못나갈 것 같애. 내일 아침엔 그쳐야 할텐데. 무서운 빗소리 속에서 둘은 애써 잠을 청한다. 잠이 겨우 들 무렵, 갑자기 아래층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린 너무 구슬프게 들리는 엄마의 울음소리이다. 채미와 은미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깬다. 은미 : (놀라며 걱정스러운 듯) 엄마... 엄마 소리 아냐? 채미 : (불안해 하며) 그런 것 같은데... # 24 거실로 내려오는 계단 <여름 늦은 밤> 채미와 은미는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온다. # 25 안방 <여름 늦은 밤> 엄마 : (애절한 듯) 여보... 제발요. 아빠 : (역시 애절하게) 제발.. 여보. # 26 안방 바깥문 <여름 늦은 밤> 채미와 은미가 안방 문에 기대어 어느새 엿듣고 있다.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 27 안방 <여름 늦은 밤> 엄마 : (매달리듯) 여보 좀더 노력할께요. 정말 전 당신과 아이들을 너무 사랑해요. 아빠 : (설득하며 달래 듯) 당신에겐 미안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그 사람도 얼마나 많이 힘들었겠냐고. 저번주에 그 사람 만났을 때 얼마나 애처로워 보이든지 아직 결혼도 안하고 그러고 있는거 당신도 알잖아. 엄마 : (반박하듯) 내가 모르는 줄 알아요? 그 사람 언제 당신 버릴 줄 몰라요. 단물만 빼 먹고 버릴거라구요. 당신 정신차려요 아이들을 생각해요. 아빠 : (큰소리내며) 어차피 그러면 마찬가지 아냐? 당신이 아이들을 생각해 봐. # 28 안방 바깥문 <여름 늦은 밤> 채미와 은미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채미가 먼저 안방문을 열어 제친다. # 29 안방 <여름 늦은 밤> 채미 : 아빠! (갑작스런 채미의 등장에 아빠와 엄마 모두 놀라고) 230 SDU 디지털 문학

231 엄마는 채미를 보자 그냥 고개를 돌릴 뿐. 채미 : (울부짖듯) 아빠! 어떻게... 그땐 우리가 너무 어려서 아무말도 못했을지 몰라도 이젠 아니에요 그 여자가 와도 난 절대로 못 들어오게 할거예요! 아빠 : (아주 큰소리로) 말 조심해!! 아빠의 큰소리에 모두들 다 놀라고. 그때 은미도 방으로 들어온다. 은미 : (벌써 울기 시작하며)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우리 엄마. 너무 힘들게 하지 마세요. 아빠도 엄마 많이 사랑하시잖아요. 그러지 마세요 아빠 제발요. 아 빠.. 은미의 등장에 주위는 갑자기 조용해지고 한쪽에서 엄마는 울고 있다. 은미 : (엄마를 한번 보고는 악에 바친듯 한) 그 여자! 죽을 때까지 증오할 꺼예 요. 그리고 못 들어오게 할꺼예요. 그 여자 정말 나쁜 여자네요. 아빠 : (무슨 말이라도 급히 하려는 듯) 은미야! 엄마 : (다급히) 여보! 아빠 : (결심한 듯) 말해야겠어. 엄마 : (말리며) 여보. 아직은 아니에요. 그만해요! 은미 : (어리둥절 한 엄마 가만히 보며) 엄마... 아빠 : (얘기를 시작하려는) 니가 말하는 그 여자... 엄마 : (떨며 미친 듯이 말리는) 여보! 그만해요. 제발.. 제발.. 아빠 : (엄마를 한번 보고는) 니...친 엄마다. 엄마 : (비명에 가까운 절규로) 여보! 순간 은미는 바르르 떨면서 아무말 못하고, 두려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화이트 화면(자막)(하늘색) 낙화( 落 花 ) 中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30 거실 계단 <여름 새벽2-3시경> 채미는 은미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간다. # 31 채미와 은미의 방 <여름 새벽 2-3시경> 은미는 아무 말 없이 잠자리에 들고. 채미는 그런 은미가 눈을 감은 것을 확인하고 옆 침대에 눕는다. 은미는 소리내지 않고 곰돌이 인형으로 입을 틀어 막고는 흐느끼듯 눈물만 계속 흘린다. # 32 채미와 은미의 방 <여름 새벽 6시 30분경> 침대에서 둘은 교복으로 갈아 입고 있다. 은미의 두눈은 퉁퉁 부어있고. 표정이 어둡다. 시나리오 231

232 채미도 은미 못지 않게 어두워 보인다. # 33 집안 현관문 <여름 아침 7시10분경> 채미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은미와 집을 나선다. # 34 채미의 교실 <여름 아침-낮-저녁> 선생님이 수업을 하고 계신다. 채미의 시선은 창밖만 향하고 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자 아이들 모두 도시락을 꺼내 먹는데 채미는 그냥 엎드려 버린다. 그리고 마칠 시간이 되어 선생님은 종례를 하고 있다. # 35 은미의 교실 <여름 저녁> 채미는 은미의 교실을 들여다 보고 있다. 그러나 교실엔 아무도 없다. 채미 : (갑자기 떠오르는) 양호실! # 36 양호실 <여름 저녁> 은미는 양호실 침대에 누워있다가 채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일어나 앉는다. # 37 중학교 교문 <여름 저녁> 젊은 여자가 교문 앞에 서 있다. 채미는 그 여자를 보고 은미의 시선을 돌리려고 했지만 이미 은미는 보고 있다. 그런 은미를 본 여자는 살며시 미소짓고 있는데. 여자 :(다가와 수선을 떨며) 은미야. 얼굴이 안 좋아 보여. 어디 아프니? 병원가자. 채미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 여자를 여전히 유괴범처럼 쳐다본다. 은미 : (차분히) 됐어요. 저 그냥 언니랑 있을래요. 가세요! 아..줌마는!! 그 말을 하고는 고개를 돌리는 은미. 그리고 그 말에 충격을 좀 받은 여자. 채미는 은근히 기분이 좋은 표정이다. # 38 집안 안방-거실-부엌 <여름 늦은 저녁> 집에 들어가자 채미의 시선으로 엄마는 안방에서 짐을 챙기고 있고 거실 탁자 위에는 이혼서류가 놓여 있다. 그리고 도장까지도 찍혀 있는데. 한편 부엌에선 아빠가 식탁에 앉아 찬물만 들이키고 있다. 232 SDU 디지털 문학

233 엄마 : (안방에서 들리는 소리) 채미야, 안방으로 들어와라. 채미는 안방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 39 안방 <여름 늦은 저녁> 엄마 : (차분하게) 채미야. 미안하다. 어쩔 도리가 없구나. 아빠랑 갈라서기로 했다. 선택은 너에게 맡기마. 채미 : (흐느끼며) 엄마! 엄만 나 아님 아무도 없잖아. 그리고 나도 엄마 아님 아무도 없어. 이제 난 아빠도 없고 엄마 밖에 없어. 난 엄마 원망 안해. 안방문에 기대어서 그 얘기를 가만히 듣던 은미는 울면서 엄마에게로 온다. 은미 : (조심스럽게) 엄마.. 힘들겠지만 미안하지만 나도 가면 안돼? 나도 엄마가 더 좋아. 편할대로 살다가 온 엄마. 하나도 안 반갑다고. 우리 엄마는... # 40 집안 현관 <여름 늦은 저녁> 집안 현관문이 열리며 여자가 들어온다. # 41 안방 <여름 늦은 저녁> 은미가 방안에서 하는 소리를 들은 여자는 안방 문 앞에 우두커니 선다. 여자 : 은미야.. 넌 갈 수 없어. 내가 니 엄마야. 이제 엄마가 지켜줄게. 은미 : (결심이 확고한) 아니요. 전 갈꺼예요. 엄마 : (가슴 아프지만 바로) 넌 갈 수 없어. 은미 : (눈물이 한 없이 흐른다 애달프게) 엄마, 나도 데려가. 나도... 엄마 : (매정한 듯) 니 엄만 바로 저기에 계시잖니. 친 엄마에게 이제는 가렴. 나는 널 키울 능력이 없으니깐. 은미 : (한번 더 매달리듯) 날 사랑 안 해? 엄마!... 엄마 : 이젠 그러면 안될 것 같구나. (떨리는 목소리를 억지로 참으며) 솔직히 니가 미운적도 많았어. 너를 보면 니 엄마가 보이니깐. 채미야. 그만 가자. 채미는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저 은미를 애달프게 한 번 보고는 엄마를 따라 나선다. 은미는 망부석처럼 그대로 가만히 서 있다. 서서히 암전되는 화면 화이트 화면(자막)(하늘색) 그렇게 슬프고 그렇게 생생하구나 다시 오지 않는 날들은... 시나리오 233

234 # 42 인천의 작은 동네 새로운 집안 <가을 아침> 화면에 집이 전체로 보이고 집안에 들어가보면 새로운 학교의 새 교복을 입고 아침밥을 엄마랑 채미가 먹고 있다. 식탁 분위기는 조용하다. # 43 새로운 집안 <가을 저녁> 가방을 메고 채미가 현관문을 들어오다가 안방에서 나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여자 : (짜증내며) 간다고 하던 것이 고작 여기예요? 형님도 참 답답하시네요. 여기서 좀 멀리가줘요. 우연히라도 만나지 않게. 나는 아주... 엄마 : (쳐다보지도 않고) 그럼 여기는 왜 왔나? 여자 : (답답한 듯) 그러니깐 좀 멀리 사라져 달라구요. 여기... 이거 얼마안되요. 애들 아빠는 모르니깐 괜히 고맙다고 전화하지 말고. 섭섭다 생각지 말고 좋은게 좋은거라고. 엄마 : (기가 찬 듯) 그렇게 불안한가? 걱정말게 그럴 일 없을테니깐 그리고 이 돈은 들고 가게. 내 몸 다 성하니깐. 나야 말로 자네 보고 싶지 않으니 깐. (참다 폭발하 듯) 빨리 나가!! 여자 : (안 놀란 척) 형님 참 성미 여전하시네요. 이거 그냥 받아요. 그냥 깨끗하게 하자구요. (자신이 재수없게) 그리고 솔직히 재수없으니까 제발 딴데로 가주세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방문을 열고 나온다. # 44 새로운 집 현관 <가을 저녁> 채미는 바깥에서 꼼짝 않고 나오는 그 여자를 가만히 바라본다. 여자 : (다정한 척) 채미야. 오랜만이다. 잘 지네? 엄마 이사가신다니까 짐 빠뜨리지 말고 잘 챙겨가라. 그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현관문을 나서려 하고. 채미는 현관문을 나서는 그 여 자에게로 달려가서 등을 확 밀어 버리고는 현관문을 세게 닫으며 잠궈 버린다. # 45 새로운 집 현관 밖 <가을 저녁> 그 여자는 용캐도 넘어지지 않고 뭐라고 욕을 실컷하고는 침을 탁 뱉는다. # 46 새로운 집 안방 <가을 저녁> 엄마 : (채미 방에 들어가자 얼굴을 가리고는) 밥 줄게. 배고프지? 엄마는 방을 나가고 채미는 방 한구석에 떨어져 있는 돈봉투를 가지고 일어난다. # 47 분식점 <가을 늦은 저녁> 234 SDU 디지털 문학

235 분식점에 채미와 은미가 마주보며 앉아 있다. 은미 : (반가이) 언니? 오랜만이야. 연락하기 힘들다. 나 안 보고 싶었어? 채미는 예전보다 초라해진 반면 은미는 예전보다 더 화려해진 것이 화면에 대조적으로 보인다. 채미는 왠지 거슬리는 데. 채미 : (반갑다가 기분이 안좋은) 어...그렇지. 아! 이거 받아. 은미 : (봉투를 받으며) 뭔데? 채미 : (말을 높이려다 말을 내리는) 니 엄마가 주신... 준거야. 은미 : (순간 긴장되는) 우리 엄마가? 은미의 부드러운 엄마라는 소리가 왠지 거슬리는 채미. 채미 : (작정한 듯 다 퍼붓는) 니 엄마... 예전부터도 알았지만 여전히 매너 꽝이 더라. 우리 보고 떠나라고 얼마나 으름장을 놓는지 정말 왕 재수더라. 은미 : (참다가 같이 퍼붓는) 언니... 우리 엄마... 너무 한거는 알겠어. 하지만 말을 너무 심하게 하는 거 아냐? 그래도 우리 엄마야. 우리 엄마 욕하면 나한테 욕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채미 : (배신감이 느껴지는 마음) 그래 너도 그 여자 딸이라 이거지? 그래 애초부터 알았어. 뭐? 우리 엄마 따라오겠다고? 넌 결코 그럴 수 없었던 거야. 왜? 시험해봤니? 그럼 그렇지 그 여자의 그 딸인데. 은미 : (발악하며) 그 여자라니? 말 너무 심하지 않아? 채미 : (반박하듯) 심하다고? 넌 나보다 더 심했어. 기억 안나? 평생 가만히 안둘 것처럼 얘기해 놓고선. 은미 : (소리 지르며) 그땐 몰랐잖아. 채미 : (실망한) 그래. 이젠 아니까 그 여자가 어떤 짓을 해도 다 잘났다 이거지? (말을 비비꼬아서) 별거 아닌 아빠 뺐어서 잘 해봐라. 꼭 잘 먹고 잘 살아라. 꼭! # 48 거리 <가을 밤> 채미는 거리로 나와 뛴다. 그러다 천천히 걷는다. 사람들이 많이 없는 골목으로 들어서자 울기 시작한다. 너무 마음 아픈 눈물이다. 비가 내린다. # 49 반대쪽 거리 <가을 밤> 은미도 거리로 나온다. 그러다 눈물을 한 없이 흘린다. 은미 : (후회하며) 바보야, 넌 이제 정말 엄마, 언니를 잃어 버린 거야. 이젠... 볼 수 없겠지? 엄마... (은미도 비를 맞고 있다) 시나리오 235

236 # 50 거리- 반대쪽 거리 <가을 밤> 은미의 눈물 그리고 채미의 눈물이 번갈아 화면에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만날 수 없는 반대쪽 길을 가고 있다. 암전된 화면 화이트 화면 (자막)(하늘색) 가시나무 中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외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 51 서울의 채미집 안방 <겨울 아침> 성인이 된 엄마 : (기뻐하며 종이를 들고) 이번에는 힘들 것 같다고 하더니 장학금 받았네. 채미야, 엄마는 너 땜에 산다. 엄마, 앞으로도 열심히 채미를 위해서 살게. 채미 : (엄마 안아주며) 나야말로 엄마 땜에 살지. 사랑해. 엄마! 하늘만큼 땅만큼... 아! 나 과외 알바 약속있는데... 오늘 만나기로 했거든.. # 52 달리는 버스 밖 하늘과 거리<겨울 저녁> 버스에 채미가 타고... 갑자기 소나기가 세차게 내리는...거리는 더욱 어두워졌다. # 53 달리는 버스 안 <겨울 저녁> 채미 : (놀라며) 갑자기 웬 소나기야! 우산도 안 가져 왔는데... 어떡해?... 소나기 오면 웬지 불안해... 항상... 못 간다고 전화할까? (휴대폰 보며) 휴대폰도 꺼지기 일보 직전이네... 내려서 공중전화나 찾아 봐야 겠다. # 54 버스 정류장 <겨울 저녁> 채미는 정류장에 내려서 이리 저리 둘러 본다. 어디에도 공중전화는 보이지 않고. 채미 : (단념하며) 할 수 없지! 일단 가자. 감기 다 걸리겠네... (가방이고는 달리는) # 55 서울의 한 동네 골목 <겨울 저녁> 채미는 계속 뛰고 있다. 채미의 옷이 다젖고 머리마저 다 젖고 있었지만 쉬어갈 만한데도 보이지 않는다. 그때 갑자기 비소리가 약해지더니 비가 멈춘다. 채미는 너무 놀라 하늘을 쳐다보 니 깜깜하기만하고 뭔가가 가로막힌 듯한 느낌이 든다. 그때 SDU 디지털 문학

237 민혁 : 어디까지 가세요? 하늘에서 들리는 듯한 소리가 나고. 그것은 민혁이 채미에게 걸은 말이다. 민혁은 어느새 채미에게 우산을 씌어주고 있다. 채미는 너무 놀라서 우산 바깥으 로 몸을 피한다. 그랬더니 또 억수같은 비는 채미를 감싸고. 민혁 : (우산을 다시 씌워주며) 감기 걸려요. 저 나쁜 사람 아니거든요. 지나가는 행인이니까 너무 부담가지시지 마세요. 참! 어디까지 가시냐니까요? 채미 : (조심스레) 사실 이 동네 처음이거든요. 저... ** 아파트가 어딘지 아세요? 민혁 : (다정히) ** 아파트. 알죠. 이리로 오세요. # 56 ** 아파트 앞 <겨울 저녁> 민혁은 채미를 아파트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민혁 : 여기에요. 그리구요? 그 다음 주소는? 채미 : (부담스러워서) 괜찮아요. 여기서 부턴 그냥 혼자갈께요. 경비 아저씨한테 물어봐도 되고. 가시 던 길 가세요. 저 때문에 여기까지 오셔서... 민혁 : (의아해하며) 무슨 말씀이세요? 채미 : (또박 또박) 그러니까 제 말은 이제 가셔도 된다구요. 민혁 : (황당해하며) 여기 우리 동네에요. 저는 **아파트 살구요. 채미 : (민망해하며) 아... 그러세요. 그래도 가세요. 이제 저 혼자 갈께요. 민혁 : (멋쩍어하며) 그럼.. 그래요. 친절하기도 힘드네요. 그럼. 민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쑥쓰러워 하면서 뒤돌아 아파트 다른 동으로 사라진다. 채미는 피식 웃음이 나온다. # 57 ** 아파트 안 **동 **호 복도 <겨울 저녁> 채미는 경비실의 아저씨에게 물어봐서 동, 호를 찾아 올라간다. 딩동 딩동 민혁 : 누구세요? 문을 열고 보니 조금 전에 쑥쓰러워하던 그 남자다. 너무 놀라 인사도 못하고 있다. 민혁 : (놀라서 버벅대는) 어? 그...저...어...와!... 그리고는 괜히 민망해질 정도로 크게 막 웃는다. 채미도 그냥 씩 웃는다. # 58 ** 아파트 안(민혁의 집의 거실) <겨울 저녁> 거실에 앉자 민혁은 드디어 말문이 틔인다. 민혁 : 그러게 제가 같이 가준다고 했잖아요. (크게 웃는) 채미 : (수건으로 머리를 닦는, 쑥쓰러운) 그러게요. 이럴 줄 알았으면... 시나리오 237

238 민혁 : 아! 그럼 오늘 과외 선생님이시라는 분이. 채미 : (둘러보며) 근데 학생은.. 설마 그 쪽은 아닐테고. 가르칠 학생 치고는 좀... 민혁 : 그럼 좋겠네요. 근데 전 학교도 다니고 있거든요. 아! 아직은 아니지만. 채미 : 무슨 말이에요? 민혁 : 저... 군대 갔다왔거든요. 그러니 이제 다시 다녀야죠. 저.. 몇 학년이세요? 채미 : 저...2학년 되죠. 이젠. 민혁 : 저는 늙은 3학년이에요. 이제 벌써 25이네요. 채미 : 저는 스물 하나예요. 민혁 : 네...제 동생 저 오고나서 슈퍼에 잠시 갔어요. 남자아이인건 아시죠? 채미 : 아니요. 아무것도 모르고 왔어요. 민혁 : 그래요? 남자아이라 보통이 아니죠. 20살이구요. 재수준비하고 있어요. 1살차이 난다고 말안들으면 저 부르세요. 제가 가만히 손을 봐드리죠. 채미 : 고마워요.! (웃는다) 그때 현관 문이 열리더니 은혁 : (들어오자 마자) 선생님 왔어? 민혁 : 그래 임마. 은혁 : (반가이) 아! 안녕하세요!! 저는 강은혁이라고 합니다. 들으셨나요? 채미 : (일어나서 인사하며) 예. 안녕하세요. 저는 서채미라고 해요. 2학년이에요. 은혁 : (나이 비슷한 것에 기뻐하며) 아! 그럼 혹시 21살이세요? 채미 : 네... 은혁 : (쑥쓰러워 하며 밝게) 잘..부탁드립니다. 채미 : (영문모르고) 네... 민혁 : (눈치 챈) 야 임마! 갑자기 더 깍듯해진 이유가 뭐야? 은혁 : (오바하는) 깍듯해도 불만이야? 아! 그리고 내 선생님이니까 30센티 접근 금지야! 알지? 민혁 : (장난투로) 알긴 뭘 알어. 두 형제의 입씨름이 채미는 재미있게 느껴져 웃는다. 채미 : (조심스레) 저...그럼 공부는 언제부터가 좋을까요? 은혁 : 오늘은 첫날이니까 서로 대화의 시간을 갖고 다음부터 하죠. 밖에 비도 그쳤는데 나가실래요? 민혁 : 어. 이 자식 봐라. 죄송합니다. 선생님 얘가 좀 철이 없어서 그냥 이쁜 여 자만 보면. 강은혁! 너야 말로 30센티 접근 금지야! 은혁 : 공부 열심히 할려면 힘들지. 형도 공부해봐서 알잖아. 형 서한대는 어떻 게 들어갔어? 다 그런거 아냐? 채미 : (순간 깜짝 놀란다) 저... 그 학교 다니세요? 민혁 : 네. 왜요? 채미 : (반가이) 저도... 그렇거든요. 민혁 : (반가이) 어.. 진짜요. 저 혹시 과는? 저는 영문학과요. 채미 : 아...저는 신방과요. 민혁 : (아쉬워하며) 아쉽네요. 은혁 : 형! 아쉽기는 뭐가. 감사한거지. 형이랑 같은 학교 다니는 것도 애처로워 죽겠는데 같은 과면 불쌍해서 어떻게 봐! 민혁 : (신경쓰이는 듯) 야! 조용해! 아! 제 이름 아직 모르시죠? 성은 강, 이름은 민혁입니다. 은혁 : 혹시.. 우리 형 이름... 금혁으로 아신거 아니예요? 제가 은혁이니까. 다들 제 이름만 들으시면 그렇게 생각하시더라구요. 238 SDU 디지털 문학

239 채미는 그 말에 웃는다. 민혁 : (장난투로) 죄송합니다. 제 동생이... 다음엔 꼭 손을 보겠습니다. # 59 버스 정류장 <겨울 밤> 채미는 민혁의 배웅으로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고, 채미 : 오늘 재미있었어요. 앞으로 과외 일이 즐거울 것 같아요. 민혁 : 그럼 다행이네요. 제 동생은 뭐 말할 것도 없죠. 아까 보셨죠? 앞으로 난 처하시더라도 애교로 봐주세요 그리고 정 힘들면 저한테 SOS치시구요 채미 : (웃으며) 그럴께요. 민혁 : (조심스레) 아! 저... 앞으로 학교에서 보거나 집에서 볼 일이 많을 텐데 편안하게 말을 놓으면 어떠세요? 채미 : 그러죠. 저도 그러고 싶네요. 민혁 : 그럼. (목 가다듬고는) 안녕 서채미! 채미 : 안녕! 강민혁! (실수다) 아! 오빠!! 민혁 : 기분 나쁠려고 하다가 좋아지네... (웃는다) 채미 : 그럼.. 나 갈게. 저기 버스도 오네. (손을 흔들며) 안녕! 채미는 그렇게 버스에 올라탄다. # 60 채미집의 현관 <겨울 늦은 밤> 채미 : (현관에 들어서며) 다녀왔습니다. 엄마 : (맞이하며) 힘들지? 니가 고생이 많구나. 채미 : (기분 좋아서) 아니. 엄마! 재미있을 것 같애. 좋은 사람들이더라고 # 61 채미집의 안방 <겨울 늦은 밤> 엄마와 채미, 안방에 잘 준비 다하고 앉아서... 엄마 : 그 쪽 부모님도 봤니? 채미 : 참! 아니 안 계시던데. 엄마 : 다음에 뵈면 인사도 잘하고. 채미 : 네! 어마마마!! 엄마와 채미는 그렇게 안방에서 다정스레 같이 잠든다. # 62 채미의 대학교 강의실<겨울 아침>-은혁의 방<겨울 저녁> -학교 식당<봄 낮>-민혁의 강의실<여름 아침>-채미의 강의실<여름 아침> 계절(겨 울-여름) 채미가 강의실에서 수업을 열심히 듣는 것이 보이고 은혁의 방에서 과외하는 모습 그리고 학교에서 민혁과 만나 점심 먹는 모습(즐거워 보인다.) 그리고 강의실에서 수업듣는 민혁의 모습과 채미의 모습이 차례로 보인다. 시나리오 239

240 # 63 은혁의 방 <여름 저녁> 은혁은 문제를 풀고 있고 채미는 학교 과 책을 보고 있다. 은혁 : (조심스레) 누나! 저기... 채미 : 뭐? 잘 안풀려? 은혁 : 그게 아니고. (뜬끔없이) 누나 생일 언제야? 내가 이번년도 별자리 본게 있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나서. 채미 : (의아해하며) 응? 은혁: 몇 개 외웠는데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채미 : (황당하지만 웃으며) 난... 9월 2일이야. 은혁: (생각난 듯) 아! 그래. 처녀자리네. 맞다. 좋은 일이 있다고 한 것 같애! 채미 : (진짠가 싶어서) 정말? 좋은 일이 뭐지? 은혁: (기억해 내려는 듯) 뭐 남자친구가 생길 수도 있고... 근데 나이차이가 별 로 안나는 사람인데 정말 풀 코스로 행복하다네. 채미 : 의심스럽긴 하지만 한번 믿어볼게. 근데 그날이 언제야? 행운의 날이? 은혁 : (생각하는 척) 음...9월달. 아직 몇 달 남았네. 지금이 7월이니. 채미 : (한술 더 떠서) 그러네. 빨리 좀 오지. 하긴 생일이 행운의 달이라고 하기 는 하더라. 기다려보지. 은혁은 뛰는 가슴을 어찌할 수가 없다. 거짓말이 들통날 까 괜히 눈치만 살핀다. # 64 학교 식당 <여름 낮> 민혁과 채미가 밥을 먹고 있다. 민혁 : (역시 뜬끔없이) 채미야. 너... 생일이 언제지? 채미 : (또 황당해서) 생일? 갑자기 왜? 민혁 : (눈치보다) 어... 그냥.. 너 사주 봐줄려고. 아니 내 친구 중에 희안하게 잘 보는 애가 있거든. 언젠데? 채미 : 9월 2일... 근데 은혁이랑 내기라도 했어? 얼마전엔 은혁이가 물어보던데.. 민혁 : (놀라서) 은혁이가 물어봐? 채미 : (웃으며) 별자리 운세 봐 준다고. 민혁 : (황당해하며) 뭐? 참 내 동생이야. (웃는다 대충 알 것 같다) 채미는 어리둥절하다. # 65 민혁이네 부엌-현관-부엌 <여름 저녁> 채미는 민혁이네 부엌에서 혼자 물을 마시고 있다. 그때 현관문 열고 민혁이 들어온다. 문소리에 현관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채미. 채미 : (반가이) 오빠! 민혁 : (채미에게 다가오며) 어! 그래. 왔니? 내가 빨리 올려고 했는데. 채미 : (장난투로) 왜? 난 은혁이 선생님인데... 오빠 나한테 뭐 배울거 있어? 민혁 : (민망해서) 어? 아니 그냥... 인생 공부 좀 할려고.. 채미 : (웃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아! 전에 사주 어떻게 됐어? 봐준다면서. 민혁 : (생각난 듯) 그랬지.. 그거 만사형통이래. 좋은 사람 만난다는데. 기대하래. 240 SDU 디지털 문학

241 채미 : (놀라며) 정말?.. 참 신기하네. 민혁 : 뭐가? 채미 : 아니... 그냥 나 그만 들어가 볼게. 민혁 : 그래... # 66 은혁이의 방 <여름 저녁> 채미는 은혁의 방으로 들어와서 은혁 옆 의자에 앉는다. 채미 : 은혁아! 너가 말하던 그 운세 맞나봐. 은혁 : (거짓말한거라 깜짝 놀라며) 어? 채미 : 누가 그러는데 비슷하게 얘기하더라고. 은혁 : (더 오바하며) 그래... 그것봐. 내가 확실하다니깐. 좋겠네. 채미 : (조금 믿어지는) 그러게. 이제 정말 남자친구 한번 사귀어보나봐. # 67 채미의 집의 식탁 <가을 아침> 채미의 생일이 왔다. 채미는 식탁에서 엄마와 마주 앉아 따뜻한 미역국을 먹는다. 채미 : (먹으며) 엄마, 고맙습니다. 저를 이쁘게 나아주시고 길러주셔서. 엄마 : (좋으면서 괜히) 얘는 간지럽게 채미 : (더 애교로) 엄마, 뭐 어때. 내가 이만큼 끝까지 엄마를 사랑하는 걸. 앞 으로도 건강히 오래오래 저의 곁에 계셔주세요. 엄마 : 꼭 내 생일 같구나. 채미 : 엄마 생일도 같이 할까? 엄마 : 애도 참. 얼른 먹어. 미역국 식겠다. 채미 : (오바하며) 옛솔. 음... 맛있네... 엄마와 채미가 마주 보며 웃는다. # 68 레스토랑의 창가 쪽 테이블 <가을 저녁> 민혁이 먼저 와서 앉아 있다. 민혁이 준비한 선물을 보고 있으면 저쪽에서 채미가 다가온다. 민혁 : (얼른 선물을 숨키고 쳐다보며) 왔니? 채미 : (다가와 자리에 마주 앉으며) 오늘 맛난거 사준다고? 민혁 : 그래. 너 먹고 싶은거 다 시켜. 아! 나 선물도 있어. (선물을 주는) 채미 : (선물을 받으며) 뭔데. 이건... 뭐야? 민혁 : (뿌듯한 표정) 열어봐 그 안엔 커플링 반지가 들어 있다. 민혁 : (진지하게) 내 마음이야. 그때 너 생일 물어봤던거는 오늘 프로포즈할려고. 나 이제 군대도 다 갔다왔고 니 곁 떠날일 없을꺼야. 채미 : (감격해서)...고마워. 그랬었구나. 민혁 : 나야말로 고맙다. 난 원래도 비오는 날을 좋아하는데 너랑 만나던 날이 비오는 날이라서 더 좋아하 게 될 것 같아. 비가 많이 오면 속이 다 시원해지잖아. 근데 정말 행운의 날이네. 이제 비만 오면 춤춰야 겠다. 채미 : (미소짓다) 난... 그렇게 소나기 오는 날은 별로 안 좋아해. 난 그런 날에 아주 나쁜 기억이 있거든. 근데 그 날이 이렇게 행복한 날이 될줄은 몰랐어. 시나리오 241

242 둘은 커플링을 같이 끼고 서로를 바라본다. 갑자기 민혁의 휴대폰이 울린다. 은혁 : 나야 형! 지금 채미누나랑 같이 있어? 민혁 : 그런데 왜? 무슨일 있어? 은혁 : 나 채미누나랑 할말 있는데 자리 잠깐 좀 비켜줘. 제발 묻지 말고... 민혁 : 알았어... 채미야. 은혁이가 너한테 할 말 있다는데. (채미 한번 쳐다보고는) 은혁아. 알았대. 여기가 어디냐면... 민혁, 채미 음식 먹고 즐겁게 얘기하고 있으면 저쪽에서 은혁이 걸어온다. 그걸 본 민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채미에게 인사하고 비켜준다. 은혁, 민혁 자리에 앉고... 채미 : (궁금해서) 무슨 일 있니?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은혁 : (잠시 망설이다 선물을 내놓는) 이거.. 채미 : (선물 받으며) 이거.. 내 생일 선물이니? 은혁 : (조심스레) 응.. 그리고 내 프로포즈 선물이기도 해. 채미 : (놀라서) 프로포즈? 은혁 : 응.. 많이 놀랐겠지? 전에 내가 별자리 봐준다고 했을 때 사실은... 채미 : (이제야 모두 알겠는.. 하지만) 그...랬구나. 은혁아. 은혁 : (진지한) 부담가지지마. 나는... 은혁 채미의 손에 끼어진 반지를 발견한다. 채미도 그것을 본 은혁을 알아차린다. 채미 : (마음 아픈) 고마워.. 나 좋아해줘서. 앞으로도... 은혁 : (작은 목소리로) 형 프로포즈 받아 들였어? 그랬어? 채미 : (괜히 미안한) 은혁아, 나도 예전부터 민혁오빠 좋아했어. 나 좀 이해해줘. 은혁 : (착잡한) 그래.. 축하해.. 내가 너무 바보같이 굴어서 많이 한심해 보였겠다. 채미 : (달래주고 싶은) 아니야. 나도 너 좋아해. 먼저 민혁오빠 안 만났음 너 더 좋아했을지도 몰라. 앞으로도 너랑 잘 지내고 싶어. 은혁 : (화가 난다) 형 동생이라서? 아니었음 만나지 말자 그러지 말라고 했겠지. 채미 : (조심스러운) 은혁아.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너랑 정말 좋게 친하게 지내고 싶어. 나 안 미워할꺼지? 은혁 : (이성을 찾은) 어떻게 미워하겠어?... 나 갈게. 형 한테 다시 전화해서 데 려다 달라고 그래. 밤길 위험하니까. 은혁은 그렇게 돌아서 가버린다. 서서히 화이트 화면(자막)하늘색 지금 이 어둠이 나에게 얼마나 벅찬지 그대는 조금이라도... # 69 채미의 집 현관 <가을 늦은 밤> 채미가 들어오고, 채미 : (힘없이 고개 숙이며) 다녀왔습니다. 엄마 : (맞이하는) 그래. (걱정스러운) 왜? 기분이 왜그래? 무슨 일 있었니? 채미 : (힘없는 미소) 아니. 아무것도. 그냥 너무 행복해서 잠시 뻔뻔스러워졌나봐. 엄마 : 참 얘도 SDU 디지털 문학

243 # 70 안방 <가을 늦은 밤> 잘 준비 다하고 앉아 있는 엄마와 채미. 엄마 : 채미야. 너 은미하고 연락 한 적 있니? 채미 : (놀라며) 난데없이 은미라니? 갑자기 은미가 왜? 엄마 : 니 아빠가 서울 왔다는 얘기를 들어서... 혹시 연락했나 싶어서. 채미 : (신경질적으로) 그래? 다시는 안보고 싶어. 아마 길거리에서 만나도 서로 모른 척 할꺼야. 엄마도 잊고 살어. 내가 엄마 백배, 천배 행복하게 해줄게. 약속해! 엄마 : (괜히 꺼냈다 싶은) 물론 나야 너 믿고 살지. 채미 : 그럼 됐네. (화제 돌리려는) 아! 나 남자친구 생겼어. 나중에 인사하도록 할게. 엄마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야. 같은 학교 선밴데. 군대도 갔다왔고 착하고 좋은 사람이야. 더 재밌는건. 엄마 : 더 재밌는건? 채미 : (웃으며) 내가 과외하는 아이 형이라는 거야. 엄마 : 그래. 그런 인연도 다 있구나. 필연인지 모르니 꼭 잡아라. 채미 : (웃으며) 네 그럴께요. 채미는 엄마랑 꼭 안고 편안히 잠이 든다. # 71 수능 시험장 교문-교실 <추운 겨울 아침> 시험치는 학교 교문에서 은혁은 부모님과 민혁과 채미의 응원을 받는다. 은혁의 표정은 오히려 담담해보이며 응원해주는 사람에게 손을 한번 흔들어 주고는 시험장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은혁은 교실에서 수능을 치룬다. # 72 **대학교 정문 <겨울 아침> 민혁과 채미는 **대학교 정문앞에 있다. 벽보를 쭉 살펴본 둘은 소리를 지르며 서로 껴안고 기뻐한다. # 73 **레스토랑 <겨울 저녁> 채미 마주보고 은혁 앉아 있다. 채미 : (기뻐하며) 은혁아! 합격 축하해! 이제 미팅 한다고 만나 볼 시간도 없는 거 아냐? 은혁 : 미팅은 무슨. 내가 어린애야. 관심 없어. 그리고 누나... 고마워. 다 누나 덕분이야. 채미 : 뭘.. 니가 다 잘나서 그렇지. 앞으로도 가끔씩 만나줄거지? 은혁 : 형하고 있는 게 더 행복한 사람이 무슨 그런 말을 해? 채미 : 나 너하고 있어도 얼마나 행복한데? 그때 민혁, 뒤늦게 도착하여 이쪽으로 걸어오고. 은혁 : (걸어오는 민혁보며) 어! 저기 형 오네. 나 이만 가볼게. 즐거운 시간 보 내. 데이트 방해하기 싫어서 난 간다. 시나리오 243

244 채미 : 은혁아!! 은혁은 그냥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흔들고는 다른 쪽으로 가버린다. 민혁 : (다가와서 앉는) 은혁이 왜 가는 거야? 채미 : (알지만 모르는 척) 잘 모르겠어. 아니 기분이 좀 안 좋은 가봐. 오늘은 은혁이가 주인공인데. 오빠가 오늘은 은혁이랑 둘이서 축하주라도 해. 난 그냥 빠 질래. 어서 가. 은혁이 사라지기 전에. 민혁 : (가기싫은) 약속 있겠지. 채미 : (다그친다) 형이라는 사람이 얼른. 민혁 : (마지못해) 아.. 알았어. 하여튼 나보다 더 극진하다니깐. 갈게. 채미 : (손 흔들고) 응. 잘가.. 채미도 잠시후 그곳을 나선다. # 74 학교의 도서실 - 강의실<따뜻한 봄 아침> 민혁과 채미는 각각 도서실에서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필요한 책을 꺼내 공부하고 둘은 각자 바쁘게 지내고 있다. 강의실에서 시험을 치르는 둘의 모습이 번갈아 보인다. 시험이 끝나고 둘은 똑같이 기지개를 편다. # 75 학교 안 벤취 <봄 낮> 친구1 : (멀리서 뛰어오며) 민혁아! 민혁 : 어. 시험은 잘 봤냐? 친구 1 : 야! 시험 얘기는 하지도 마. 끝났을 땐 깨끗이 있는 거야. 민혁 : (웃으며) 엄청 망친 모양이군. 너 어떡할래? 친구 1 : 아유. 설교 그만. 딴게 아니고 너 미팅 안할래? 민혁 : (황당해하며) 어? 얘봐. 나 여자친구 있는 거 알면서. 친구 1 : 알어. 근데 갑자기 펑크가 나서. 너 준태 알지? 그 자식이 갑자기 교수님 부탁으로 딱 붙잡혔잖아. 학점 잘 주겠다고 하니까 거절 도 못하고 그냥 저러고 있어. 민혁 : 그래도 그렇지. 그리고 난 그리고 넌 군대까지 갔다왔는데 미팅도 하냐? 친구 1 : 그쪽도 1학년에서 4학년까지 다양하게 나온대. 그리고 군대가면 기다리기 싫으니깐 요즘은 빨리 갔다온 사람 선호하는 거 몰라. 그리고 난 그리고 넌 좀 어리게 생겼잖아. 특히 나! 민혁 : 헛소리 그만 하고. 그럼 내가 채미한테 물어볼게. 친구 1 : 자식, 너 마마보이, 파파보이 이후로 걸프랜드 보이냐? 그냥 가자. 지금 가야돼. 시간도 없어. 채미 착하다며 이해해주겠지? 그거 이해 안해주면 그냥 헤어 져. 민혁 : 야. 지 여자친구 없다고. 완전히 막 밀어붙이네. 친구 1 : 내가 글치뭐. 어때 가는 거지? 민혁 : 오늘뿐야. 알지? 친구 1 : 알어. 그리고 너 제일 이상하게 하고 앉아있으면 아무도 안 뽑을테니까 너무 심각하게 걱정하지 말고. 민혁 : (장난투로) 알았어 임마. 물론 내가 너무 잘생겨서 왠만해선 빛이 안 사그 러들지. 친구 1 : 이 자식. 그래 너 잘났다. 야! 빨리가자. 244 SDU 디지털 문학

245 # 76 ** 커피숖 <봄 저녁> 커피숖에 앉아 있는 민혁과 그 친구들... 그때 민혁의 휴대폰이 울린다. 채미다. 순간 흠칫 놀라는 민혁. 채미 : 난데. 어디야? 민혁 : (당황해서) 어... 여기... 넌 모를텐데.. 친구들이랑 시험 끝났다고 좀 모 였거든. 시험 잘 봤니? 채미 : 응. 그럭저럭. 그럼 오늘 만나기 힘들겠네. 술 너무 많이 먹지 말고 집에 조심해서 잘 들어가. 알았지? 민혁 : (괜히 찔려서) 그래...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채미 : (의아해서) 뭐가? 민혁 : (또 당황하는) 그냥... 걱정해줘서 고맙고 시험 끝났는데 같이 못 있어줘 서 미안하다고. 채미 : 뭘. 그럼 안녕. 민혁은 조심스레 전화를 끊는다. 그리곤 한숨을 쉰다. 민혁의 가슴은 쿵쾅쿵쾅 뛴다. 잠시후 미모의 여학생들이 들어와 남학생들과 마주 보며 앉는다. 주위는 갑자기 조용해진다.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은 눈인사를 하기에 바쁘다. 그리고 각자의 소개도. 미팅의 마무리는 진부하지만 복고로 여학생이 물건을 놓 고 남학생이 마음에 드는 물건을 집고. # 77 거리 <봄 늦은 저녁> 민혁은 상대 파트너와 그 장소를 나와 어색한 분위기에서 길을 걷는다. 은미(미팅녀) : 오빠. 원래 말이 없어요? 민혁 : 아... 원래는 말도 잘하는데요. 좀 어색하네요. 자연스럽게도 아니고 의도 해서 만나니깐. 은미 : 오빠. 원래 여기 나오실 때 기대 많이 하셨어요? 민혁 : 아뇨. 그냥 편안히 나왔어요. 은미 : 저도요. 여기 나오는 사람 그냥 그럴 거다 생각하면서 나왔어요. 근데 저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오빠는 원래부터 서울출신이세요? 민혁 : 네 저는 그래요. 그 쪽은요? 은미 : 저는 인천에서 살다가 대학 다니면서 서울로 왔어요. 민혁 : 제 여(자친구도)... 아는 사람도 거기서 살았었는데 똑같네요. 은미 : 동네가 어디였데요? 민혁 : 그건 잘 모르겠어요. 들었는데 모르는 동네라 잊어버렸거든요. 은미 : 네. 오빠는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민혁 : 부모님과 남동생 그리고 저. 은미 : 저는 저 혼자예요. 남들이 말하는 외동딸이죠. 하긴... 예전엔 언니가 있 었죠. 지금은 어디있는 지도 모르지만. 민혁 : 무슨 말이에요? 은미 : (조심스러운) 지금은 말해줄 수 없지만 나중에 아주 친해지면 제가 다 말 씀드릴께요. 지금도 물론 편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숨겨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럼 시나리오 245

246 나중에 할 얘기가 없잖아요. # 78 ** 라이브 카페 <봄 밤> 민혁과 은미는 라이브 까페에서 노래를 들으며 차를 마신다. 은미 : 오빠, 우리 영화 보러 가요. 민혁 : 그건 좀.. 너무 늦었고 이제 그만 데려다 줄께요. 은미 : (아쉬운) 난 아직 멀었는데. 민혁 : 그만 가죠. 밤늦게 다니면 집에서 걱정 안해요? 은미 : (왠지 말을 듣고 싶은) 하죠... 그래 가요.. # 79 은미의 집앞 <봄 늦은 밤> 민혁은 은미를 집앞까지 바래다 준다. 은미 : 근데 오빠. 왜 나한테 연락처 안 물어봐요? 제가 마음에 안드세요.? 민혁 : 사실 친구부탁으로 나와서...미안해요. 은미 : 그건 저도 그래요. 그냥 친구로 대해주세요. 여기요 제 전화번호. 민혁 : (난처한) 전... 은미 : (어떻게든 붙잡고 싶은) 친구요. 친구라니까요. 괜찮죠? 서은미예요. 서은 미!! 아셨죠? 잊지마요 민혁 : (그냥 돌아서는) 갈께요. # 80 민혁의 방 <봄 새벽2-3시경> 민혁은 침대에 누워서도 잠을 잘 수가 없다. 민혁 : 은미라고... 서은미! 서채미! 진짜 비슷하네... (은미모습이 떠오르는) 벌받지.. 민혁 채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채미야 오늘 여러 가지로 미안해. 사랑해 # 81 채미의 방 <봄 새벽 2-3시경> 책을 보고 있던 채미는 그 문자를 보고 답을 보낸다 미안할거 하나도 없네 이해해 # 82 대학교 식당- 캠버스 <봄 낮> 민혁과 채미는 만나서 식사를 하며.. 캠버스를 걸으며 데이트를 한다. # 83 은혁의 학교 강의실-학교 앞 커피숖 <봄 아침-저녁> 은혁이 강의실에서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다. 저녁이 되자 은혁과 남자, 여자친구들이 커피숖에 모여 있다. 246 SDU 디지털 문학

247 은혁은 별로 말은 없지만, 친구얘기를 잘 들어준다. # 84 은혁의 학교 본관 앞 <여름 아침> 은혁은 수업에 늦어 무거운 책들을 들고 뛰어가고 있다. 갑자기 비탈길을 올라오던 자동차와 충돌하고 만다. 은혁은 쓰러져 의식을 잃고. 그 차에 태워진다. # 85 병원 응급실 <여름 낮> 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은혁!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 허겁지겁 응급실로 달려오는 민혁과 부모님. 들어가지 못하고 진료 결과만 기다리고 있다. 그때 한쪽 모퉁이를 돌아서 나오는 사람이 있는데 가만히 보니 전에 미팅에서 만났던 은미다. 민혁은 너무 놀라 잠시 그냥 바라본다. 은미 : (놀라서) 오빠! 그럼 혹시... 죄송해요. 가족이셨군요. 아저씨, 아주머니 죄 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어요. 그때 간호사가 나온다. 아버지 : (걱정스러워) 어떴습니까? 간호사 : 다행히 큰 일은 없을 듯 합니다. 한 달 정도 목발하고 다니면 괜찮아 질겁니다. 어머니 : 휴...감사합니다. (한숨을 쉬며 감사합니다를 연신 되풀이한다) 은미 : 죄송합니다. 제가 초보운전인데 학교에 차를 한번 몰고 간다는게 그만. 어머니 : 됐어요. 우리 은혁이 아무일 없다니까 이제 됐어요. 앞으로 조심히 운 전 좀 해요. 은미 : (몸둘바를 몰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민혁이 부모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그 자리를 떠난다. 은미 : 오빤 왜 아무말씀 안 하세요? 화나실텐데. 민혁 : 화를 낸다고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다행히 목발하면 괜찮다니 감사해야죠. 이제 그만 가보세요. 은미 : 치료비 내 드릴께요. 민혁 ; 됐어요. 큰 일도 아닌데 저희가 알아서 하죠. 은미 : 오빠하고 만남이 좋게 되길 바랬는데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사실 저도 너무 놀랬어요. 정말 아무일 없기 다행이에요. 정말로요. 은혁이라고 했나요? 그럼 강은혁? 몇학년이에요? 과는 뭐죠? 같은 학교인 것 같은데. 민혁 : 1학년인데 나이는 같을거예요. 재수했거든요. 과는 경영학과예요. 은미 : 제 이름 혹시 기억하세요? 민혁 : (기억 못하는 척) 미안해요. 기억 못해요. 은미 : 서은미예요. 기억할때까지 계속 말해 줄 수도 있어요. 오빠한테 어울리는 사람 되도록 노력할께요. 그리고 은혁인 걱정마세요 다 나을때까지 제가 많이 도 와줄께요. 약속해요. 민혁 : 그래준다니 고맙네요. 근데 은혁이가 다 그 성의를 받을지는 모르겠네요. 그럼 전 그만 은혁이한테 가볼께요. 잘가요. (민혁은 그렇게 돌아서 간다.) 은미는 그저 한숨이 나온다. 시나리오 247

248 # 86 은혁의 학교 캠버스 <여름 아침> 은혁은 가방에 책을 넣어서 어깨에 메어 목발을 하고 가파른 길을 가고 있다. 은미 : (은혁 옆에 슬쩍 다가와서는) 안녕하세요? 은혁 : (낯선 여자의 등장에 의아해하는) 누구세요? 은미 : 전... 전에 이렇게 다치게 만든 사람인데요. 전 그쪽 얼굴 아는데 그쪽은 아마 모르실거예요. 그때 의식을... 잃으셨었거든요. 은혁 : (관심없다) 근데요? 은미 : 도와드리고 싶어서요. 은혁 : (고개를 돌리는) 됐습니다. 은미 : (답답해하며) 야! 너 나랑 동갑이라며. 말 놓을게. 괜찮지? 은혁 : (어이가 없어서) 벌써 말 놓았네. 은미 : 아... 그랬지. 싫다고 하지 말고 도와줄게. 은혁 : (짜증내며) 됐다고. 은혁은 그렇게 말하면서 높은 비탈길을 아주 느린 거북이 걸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가고 있다. 은미는 그런 은혁 옆에서 떨어지지 않고 계속 핀잔을 들으며 도와주고 있다. # 87 은혁의 강의실 <여름 낮> 이윽고 은혁은 강의실에 도착했고.. 은혁 : (귀찮은 듯) 이젠 오지마. 이제 됐어. 은미 : (더 달라붙으며) 그러지 좀 마. 미안하다고. 은혁 : (답답해하며) 화난게 아니고 난 모르는 사람 도움 받고 싶지 않아. 은미 : (궁시렁대는) 내가 생명의 은인도 아니고 생명의 위협까지 한 사람이지만 난 정말 진실로 뉘우치고 있다고. 너 나을 때까지만 도와줄게. 그후론 니가 부탁해도 내가 싫어. 은혁 : (단호하게) 그럴 일 없을꺼야. 은미 : 너 진짜 매정하다. 야. 은혁아. 은혁 : (놀라서 돌아보며) 내 이름 어떻게 알어? (기분나빠서) 함부로 부르지 마. 은미는 화가 나면서도 꿋꿋이 참고 있다. 은혁은 강의실에 들어가 자리 잡고 수업준비를 하고... # 88 은혁의 강의실 건물 밖 <여름 저녁> 은혁이 가방을 메고 목발 집고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건물 밖으로 나온다. 은미는 밖에서 초보운전 딱지가 붙은 자가용을 대기하고 그 앞에 서 있다. 은미 : (달라붙으며) 집 어디야? 내가 데려다 줄게. 은혁 : (짜증난 듯) 됐다고! 너 왜그래. 지겹지도 않냐? 짜증나지도 않냐고? 은미 : (한발 물러서며) 물론 짜증나고 열받고 너 한대 때려주고 싶기도 해. 248 SDU 디지털 문학

249 은혁 : (쳐다보며) 근데? 은미 : (다정스레) 자세한 이유는 니가 이 차를 타면 얘기해주지. 은혁 : (고개돌리며 관심없는) 됐어. 은미는 안타겠다는 은혁을 친구들과 동원해 억지로 태워 놓고 출발해 버린다. # 89 달리는 은미 차안 <여름 저녁> 은미 : 안전벨트 얼른해. 나 초보야. 아님 너 나 때문에 두 번 사고 날지도 몰라. 은혁 : 협박하냐? 은미 : (진지하게) 아니 천만에 안타깝게도 사실이야. 은혁은 안전 벨트한 상태로 잠자코 창 밖만 내다보고 있다. 은미 : (은혁 슬쩍 보고 웃으며) 이제 조용해 졌네. 은혁 : (겁나는 듯) 야. 너 나 쳐다보지 말고 운전이나 똑바로 해. 은미 : (장난투로) 죽기는 싫나 보지. 은혁 : (어이없어) 뭐? 나 참 은미는 그런 은혁이 귀여워서 맘껏 웃는다. 은혁 : 아! 근데 한가지 궁금한게 있어? 은미 : (약올리듯) 뭔데 은혁아? 은혁 : (발끈하며) 내 이름 부르지 말라고? 은미 : (장난 투로) 알았어 은혁아. 말해 은혁 : (포기한 듯) 어우 진짜. 너도 장난 아니다. 은미 : (여전히 장난투로) 그렇지 뭐. 은혁아. 정말 뭐야 궁금한게. 은혁 : (진지하게) 그 이유가 뭐야? 짜증나고 열받고 나를 때려주고 싶다면서 나를 도와주겠다는 이유가? 은미 : (장난 투지만 진지한) 슬픈 사연이 있어. 너 민혁이 오빠가 너 형이지? 은혁 : (다시 한번 놀라며) 우리 형까지 어떻게 알아? 너 혹시 형사나 탐정 딸이니? 은미 : (웃으며) 그런 건 아니고... (진지) 나 얼마전에 미팅했는데 민혁오빠 거기 서 만났거든. 근데 오빠가 날 별로 싫어하더라고. 난 민혁오빠가 너무 좋은데 말이 야. 그래서 점수 좀 딸려고 했는데 이렇게 사고까지 냈잖아. 그래서... 은혁 : (바로) 그래서 잃은 점수 아니 더 딸려고 나한테 봉사하기로 했단 말이지? 은미 : (웃으며) 너 보기보다 똑똑하다. (잠시 머뭇하다 진지) 그런거야. 은혁 : 근데 너 잘못 찍었어. 우리 형 여자친구 있어. 은미 : (그리 놀라지 않은) 진짜? 왠지 하는 말들이 그런 것 같더라니. 나한테 괜히 미안해서 말 못했던 모양이지? 은혁 : (고개 끄덕이며) 그런가보다. 우리 형이 좀 답답하면서 착하거든. 은미 : 어떤 여자애야? 은혁 : 너보다 언니야. 한 살더. 이쁘지. 착하지. 지적이지. 그냥 내 이상형이었지. 은미 : 너도 그 언니 좋아했니? 은혁 : (씁쓸한)...말하자면...지금은 그냥 이상형일뿐이야. 우리 형이 누구보다 도 잘난 거 내가 인정하니깐. 은미 : (진지한) 나 좀 도와줘. 솔직히 내가 누구 좋아해 본 남자는 니 형이 처음 이야. 은혁 : (믿을 수 없는) 거짓말. 은미 : (진지한) 정말이야. 내가 장난하는 애로 보이니? 넌 그 언니 몇번째 사랑 인데? 은혁 : (생각하다) 나야...첫번째.. 은미 : (희망을 찾으려는) 거봐. 너도 그러면서. 은혁아. 부탁이야 나 정말 어떤 시나리오 249

250 대단한 상대라도 오빠를 뺏기고 싶지가 않아. 너도 좋잖아. 그 언니가 너 싫어하는 건 아니지? 은혁 : (작은 목소리로) 그렇다고 하더라. 은미 : 그러니까 넌 그 언니랑 잘되고 난 니 형이랑 잘되면 좋잖아. 은혁 : (고개 흔들며) 말도 안돼. 누나가 행복하지 않을 꺼야. 은미 : 아니, 너가 잘해주면 금방 다 잊어 버릴꺼야. 너 평생 오랫동안 잘해줄 자신있지? 은혁 : (작은 목소리로) 그렇긴 하지. 내가 뭘 해서라도 기쁘게 해 줄 자신은 있지. 은미 : 그래. 그러니까 망설이지 말고 우리 협상하자. 아주 좋은 협상. 제발 좀 도와줘. 은혁 : (쓴 웃음 지으며) 도와줘도 너 힘들꺼야. 우리 형도 한번 좋아하면 아니 사랑하면 일편단심 민들레거든 은미 : 어쨌든 그 사랑도 변해서 그 언니한테까지 왔잖아. 그 다음엔 나야. 부탁해 은혁아. 너랑 나랑 이름도 비슷하고... 아! 난 은미거든. 뭔가 잘될 것 같지 않니? 시도 안해 본 것 보단 낫잖아. 우리 서 로를 믿자. 응? 은혁 : (쳐다보며) 너 그렇게 우리형이 좋니? 은미 : (여전히 앞을 보고) 넌? 너도 그렇잖아. 노력해보자. 난 어떤 생명의 은인이라도 민혁 오빠만큼은 포기 못하겠어. 은혁 : (진지한 목소리) 그래. 한번 생각해 볼게. # 90 민혁, 은혁의 아파트 앞 <여름 늦은 저녁> 은미의 차는 은혁의 아파트에 도착하고. 은미는 아파트 위를 보며 민혁 방이라는 쪽을 한번보고는 기분 좋아하며 돌아간다. # 91 은혁의 방 <여름 밤> 은혁은 잘려고 침대에 누워서도 잠을 자지 못하고, 은미의 말을 떠올린다. (소리) 은미 : 어쨌든 그 사랑도 변해서 그 언니한테까지 왔잖아. 그리고 시도 안해 본 것 보단 낫잖아. 평생 오랫동안 잘해줄 자신있지? 은혁 : 누나, 미안해 내가 별 생각을 다하네. 하지만 내가 누나의 마음을 얻을 수만 그래보고 싶기도 해. 나 참 못됐지? 그래서 그 여자 애의 마음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애 은혁은 베개에 얼굴을 파 묻는다. # 92 은혁의 학교 교문 <여름 아침> 은혁이 교문을 들어서자 은미가 한쪽에서 은혁을 기다리고 있다. 은미 : (다가오며) 생각해봤니? 밤새 잠도 못 잔 모양이구나? 결론은 어떻게... 났어? 250 SDU 디지털 문학

251 은혁 : (잠시 망설이다 결심한 듯) 어... 해보자. 그렇게 해보자. 시도도 그동안 못했었는데 하고 나면 후련은 할 것 같애. 은미 : (기뻐 미소지며 눈물 글썽거리는) 그래.. 고맙다. 학교 가파른 길을 같이 오르며 은혁 : 그렇게 우리 형이 좋니? 너도 참 안쓰럽다. 은미 : (아직 글썽거리는) 그래서 니가 내 맘을 더 잘 아는거겠지. 왠지 너도 친 구로서 좋아질 것 같다. 마음이 통하니까. # 93 민혁의 집 <여름 저녁> 은미는 민혁의 방에서 방정리를 해주고 있다. 문밖에선 은혁이 서있다. 민혁이 오자 시원한 물도 준비하고 민혁이 씻고 나오자 수건도 대령한다. 민혁 표정은 부담스러워 보이고. # 94 민혁, 채미 학교 식당 <여름 낮> 민혁은 학교 식당에서 은미와 식사를 하고 있다. 민혁 : 수업 없어? 오늘은 시간이 안 맞아서 그렇지 여자친구랑 원래 같이 먹 어. 은미 : (미소지며) 수업 없는 날은 이렇게 계속 올래요. # 95 채미 강의실 <여름 저녁> 은혁이 채미 강의실 앞에 서있다. 채미도 반가워한다. 채미 : (다리보며) 이제 다리 괜찮아? 다행이다. 걱정했는데. 은혁 : 누나 기도로 다 나았나봐.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채미 : 시험기간인데 괜찮아? 그리고 요즘 나 끝나는 거 기다린다고 친구랑도 만날시간 없겠다. 은혁 : 이때까진 다리가 아파서 몇일 걸러 왔지만 이제 매일 올건데. 채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 96 **커피숖 <가을 늦은밤> 은혁과 은미가 마주 앉아 있다. 은혁 : 몇달이 지났는데도 달라진거 없어. 그냥 내가 동생으로 밖에 안 보이나봐. 우리 형은? 은미 : 너의 형이야말로... 오히려 날 너랑 짝지어줄려고 하더라니깐. 은혁 : (실망스러운) 뭐? 형도 참 어휴... 어떡하지? 은미 :...은혁아 너의 형. 미팅한거 얘기해버려. 아직 모르고 있다면... 말하면 뭔가가 반응이 오지 않을까. 은혁 : (마음이 내키지 않는) 시나리오 251

252 알았어...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 97 **레스토랑 <가을 저녁> 식사하고 있다. 은혁 : (망설이다) 누나, 누나는 미팅...해본적 있어? 채미 : 아니. 대학 들어와서 아르바이트하고 그리고 2학년때 오빠만나서 그럴 겨를도 없었어. 은혁 : 나도 없어. 내 눈이 너무 높아서 그런지 그런 미팅에 나오는 애 치고 마음에 들 애는 없을 것 같더라고. 근데...형은 미팅 해 본적 있다고 하던데. 채미 : (대수롭지 않은) 언제? 군대가기전에? 은혁 : 형은 솔직해서 누나한테 다 말하지? 아마 이것도 알겠네. 채미 : (궁금한) 뭘... 은혁 : (조심스레) 형 1학기때 미팅했었어. 그래서 그때 만난 애 지금도 연락하 고 있어. 물론 그냥 오빠, 동생 사이겠지. (은혁의 얼굴이 화끈거리는) 채미 : (의외인) 그래?... 근데 오빤 아무 말 없었을까?...서로 거짓말 않기로 했 는데. # 98 거리 <가을 늦은 저녁> 은혁은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은혁 : (내래이션) 누나 미안.. 정말.. 내가 누나 너무 좋아해서 그랬다고 그렇게 생각해주면 안돼? 서서히 화이트 화면(자막)하늘색 당신을 보았습니다 中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 99 **학교식당 <가을 낮> 민혁과 채미는 식사를 하고 있다. 민혁 : 그동안 시험 때문에 만나지도 못하고.. 결과는 어때? 채미 : (어두운) 괜찮았어. 오빠는? 민혁 : 너 생각하면서 공부하니까 능률이 팍팍 오르더라고. 근데 너 무슨일 있니? 채미 : (숨기려고) 아니. 왜? 민혁 : (걱정스러운) 안색이 안 좋아 보여서.. 채미 : 근데... 오빠... 나 미팅하는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민혁 : 절대로 안되지. 부탁해도 절대로 안된다고 해. 불안해서 나 어떻게 보냐? 채미 : 오빠, 오빠는 나한테 절대로 거짓말 한적 없...지? 민혁 : 그렇지. 믿음이 최고 중요한 거 잖아. 그게 없으면 모든게 물거품이잖아 채미 : (마음 아픈) 그렇지...물거품...난 믿고 싶지 않지만 오빠 4월달쯤에 미팅 했었어? 민혁 : (당황해서) 어? 252 SDU 디지털 문학

253 채미 : (슬픈) 오빠 친구가.. 그러더라고. 미팅했던 애랑 아직도 연락한다고. 사실 이...야? 아니지? 믿음이 항상 중요하다고 그랬잖아. 아니지? 민혁 : (진지한) 사...실이야. 하지만 널 속이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 친구들이 너 무 부탁하는 바람에. 난 정말 나가고 싶지 않았어. 채미 : (글썽거리는) 나보고는 친구가 아무리 부탁해도 나가지 말라며? 오빠도 딴 남자애들이랑 다 똑같은 거야? 민혁 : (속상한) 아니, 난 널 아끼는 마음에서. 채미 : (실망스러운) 나도 오빠를 아껴. 나도 오빠가 날 생각하는 만큼 아니 그보 다 더 오빠를 소중히 생각한다구. 민혁 : 채미야... 내가 너에게 할 말은 없지만 애초부터 널 속일려고 했던 것 아 니었어. 채미 : (지친) 이제.. 어디부터 믿어야 할 지 모르겠어. 민혁 : (마음을 보이고 싶은) 다 믿어.. 정말이야. 채미 : (믿어지지 않는) 예전에도 그렇게 말했지. 난 정말 믿었는데.. 민혁 : (마음이 아픈) 채미야.. 채미 : 잠시 우리 만나지 말자. 너무 만난지 오래되서 그런가봐. 그러자 우리. 먼 저 갈게. 민혁 : (크게 부르지도 못하는) 채미야... 채미야...채미... 채미가 화면에서 멀어진다. # 100 민혁의 아파트 앞 포장마차 <가을 늦은 밤> 민혁은 혼자서 포장마차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은미는 민혁을 보고 포장마차로 들어와 옆에 앉는다. 은미 : (우연인 양) 오빠, 무슨일 있어요? 은혁이가 그러더라구요. 집에 놀러갔더 니 오빠 여기에 있다고. 민혁 : (보지도 않고) 그래...잘 왔다. 너도 마실래? 술 마실 줄 알아? 난 잘은 못 먹는데 오늘은 며칠동안 쌓인게 감당하기 너무 힘들어서 좀 마시고 싶어. 민혁은 은미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을 마신다. 하지만 은미는 술을 조금 마시고 옆에 살짝 버려가며 민혁의 넋두리를 들어가고 있다. 어느 순간 민혁은 거의 만취가 된 상태였고 은미는 그제서야 약간 취하게 된다. 그러자 은미는 어느새 자신의 얘기를 편안하게 하게 된다. 은미 : (취해서) 오빠, 전에 내가 그랬죠?.. 친하게 되면 그때...그때 나의 대해서 얘기를 해주겠다고. 나... 예전에 친언니가 있었어요. 그런데 너무 별나게도 엄마가 달랐죠... 난...그 사실 알고서도 언니랑 멀어지기 싫어서 나 찾아왔다는 엄마도 냉정하게 대했는데 결국엔 날 낳아준 엄마에게 가게 되더라구요. 결국엔 영원히 못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사이가 됐죠.. 지금 난 엄마랑, 아빠랑 같이 살고 있지만... 그리 행복하진 않아요. 그 속에서 난 힘들어서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을 때가 많아요. 시나리오 253

254 그때마다 보이지도 않는 만나도 반가워하지도 않을 언니를 부르며 울죠... 지금도 막 보고 싶어질려고 하네... 오빠, 들어요? 민혁 : (정확하지 않는 발음으로) 그래... 다..이...해..해... 은미 : (울며) 고마워요..오빠 밖에 없어요. 영원히 내 곁에 있어 줄거죠?... # 101 거리 <가을 늦은 밤> 은미는 만취된 민혁을 부축해서 조금씩 집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 102 엘레베이트 <가을 늦은 밤> 은미는 민혁과 엘레베이트를 타고는 10층을 누른다. 은미는 엘레베이트 안에서 민혁에게 은근히 안기어 너무 행복해한다. # 103 민혁집 <가을 늦은 밤> 채미는 거실에서 은혁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채미 : (초조해서) 은혁아! 오빠 나간지 오래 됐니?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 아냐? 너무 불안해... 내가 너무 했던 것 같애. 오빠... 제발 아무일 없어야 해... 은혁은 그런 채미를 보자 걱정스럽고 괴로운 표정이다. 은혁 : (슬픈) 누나, 걱정마. 다 잘될거야. 내가 장담할게. 형한텐 누나밖에 없어. 바로 그때, 딩동딩동 드디어 미리 예정된 초인종 소리가 울리고, 채미와 은혁은 동시에 문쪽으로 다가간다. 채미 : (한걸음에 다가가 반가이 문을 열며) 오빠야? 오빠!! 은혁 :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뒤에서 손을 모으로 있는) 형 제발 혼자 와야 돼. 제발 은미야, 지금은 안돼 제발! 삐익 드디어 현관문은 열린다. 그리고 그 앞엔 고개 숙인 채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민혁과 그에게 반쯤 안긴채 서 있는 은미가 있다. 순간 모든 사람들은 마치 세상이 정지된 듯이 움직이지 않고, 채미는 일단은 그 고개숙인 민혁에게 눈길이 갔으나 곧 그 옆에 있는 여자에게 눈을 돌린다. 왠지 낯설지 않는 얼굴... 채미는 순간 은미와 헤어질 때에 모습 (# 47 분식점 <늦은 저녁>) 이 떠오르며 곧 서은미를 알아본다. 서은미도 역시 채미와 헤어질 때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곤 온 몸이 얼어붙은 듯 254 SDU 디지털 문학

255 민혁이가 옆에 쓰러지는 것도 모른채 우두커니 서 있다. 은혁은 재빨리 민혁을 부축하며 들어가고. # 104 아파트 안 놀이터 (극중 강민혁의 집) <가을 늦은밤>-# 1과 같음 그때 밖은 조금씩 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니 어느새 세찬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아파트 안 놀이터에 채미와 은미가 마주 보며 서있다. 채미 : (어이가 없어서) 너니? 그 말하던 여자애가? 은미 : (당황스런)..그 사람이 바로 언니야? 민혁 오빠가 좋아한다던 그 사람 이... 채미 : (울분을 토하며)...너는 어떻게...그때 널 마지막으로 보고 나오면서 널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내가 찾은. 내가 조심스럽게 찾은 사랑까지 뺏으려고 할 수가 있니? 너한테 정말 질려버렸어 모든게 다. (발악하며) 제발... 제발.. 널 보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어 그런데... 은미 : (눈물을 흘리며) 나도 진심이었어... 언니가 사랑한 만큼 나도 진심이었다고. 나도 그동안 어느 누구도 이처럼 사랑한 적 없었다고. 정말...이야... 그러나 채미가 은미를 바라보는 눈빛은 매섭기를 이미 떠나 독살스럽기까지 하다. 어린이 놀이터와 서채미의 눈빛은 더욱 대조되게 느껴지고... 서채미의 매섭게 보이는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그러나 결코 눈물을 흘리진 않는다. 채미의 시선에 은미는 그 자리에 그냥 털썩 주저앉아 버리곤 서러운 듯 흐느끼며 울기 시작한다. 서채미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돌아서선 화면에서 점점 멀어진다. 서은미는 여전히 주저 앉아 울고 있고 서은미에게 화면 클로즈업하면서. # 105 거리 <가을 늦은 밤> 채미는 멍하니 거리를 걷고 있다. 소나기는 어느 정도 그쳤고, 흠뻑 젖어 걷고 있는 채미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본다. 서서히 화이트 화면(자막)(하늘색) 떠나고 싶습니다 내가 그의 마음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공허가 메워질 때까지.. # 106 채미의 집 <가을 늦은 밤> 채미 : (힘없이 신발 벗으며) 다녀왔습니다. 시나리오 255

256 엄마 : (방에서 나오는) 그래, 잘 갔다왔니? 민혁이랑 화해는 하고? 근데 왜 이렇 게 젖었니? 감기 걸렸겠다. 어서 씻고 오렴 채미 : (참을려다 눈물이 폭받친다) 네... 엄마.. 흑흑... 엄마 : (놀라서) 왜? 무슨일이니? 민혁이랑 잘 안된거야? 채미 : (고개 흔들며)...아니..그런거 아니야.. 하지만 나 헤어져야 한다면 그렇 게 할거야.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으니까 (다짐하듯)정말 그럴 수 있어. 엄마.. 누 구 사랑하기 참 힘든 것 같애.. 엄마도 그랬어? 엄마... 채미의 온몸은 다 젖어 축축하고 엄마는 우는 채미를 꼭 안아 준다. # 107 은미의 강의실 <가을 낮> 수업이 끝나 학생들이 다 빠져나오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은미 앞에 은혁이 선다. 은혁 : 할말이 있어. 중요한 얘기야. 은미 : (평소와 같이) 뭔데.. 좋은 방법이라도 생각났니? 은혁 : (어이없는) 너 정말 대단하다. 아직도 그런 말이 나오니? 은미 : (반박하듯) 난 민혁오빠 놓치지 않아. 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너 도 내 마음 몰라. 난 정말 진실하다고. # 108 은혁, 은미의 학교 안 벤취 <가을 낮> 은미는 눈물이 고인 채로 은혁과 벤취에 나란히 앉아 있다. 은혁 : 부탁이야 그만 채미누나 괴롭혀. 누나가 그렇게 힘들어하고 슬퍼하는 걸 본적이 없어. (슬픈) 넌 우리 형의 짝이 아니야. 나도 채미 누나 짝이 아니고 은미 : (눈물을 흘리며) 너가 왜 나에게 애원하는 건데?.. 왜.. 흐흑... 은혁 : (설득하려는) 너무 사랑하면 그런 거야.. 너도 우리 형이 힘들어하는 거 보고 싶진 않겠지? 아닐꺼야.. 그만 힘들게 해.. 은미야.. 부탁이야... 은미 : (고갤 돌리는) 니가 내 마음을 어떻게 다 알겠어? 그 언니가 누군지 알 아?... 은혁 :... 은미 : (힘없이) 나의 친 언니야.. 은혁 : (잘못들은 듯)...무슨..말이야? 은미 : (쳐다보며) 못 들었어? 내 언니라고.. 아빠만 같은.. 은혁 가만히 바라본다. 은혁에게 잠시 머물다가 은미에게로.. 은미 :...내가 그때 말은 못했지만 속으로 다짐 했었어. 다시는 언니를 힘들게 하지 않겠다고. 근데 내가 언니의 사랑을 뺏으려 했다는 거야. 근데 나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한 사람이었어. 하지만 난 결국... 또다시 나쁜 동생이 된거야... 은혁 : (작은 목소리로) 왜 나에게 진작... 그런 얘기들을 하지 않았던 거야? 은미 : 언젠가는 할 생각이었어. 이미 늦었지만 SDU 디지털 문학

257 은혁아. 난 왜 이렇게 악역만 해야 하는 거지? 하지만 어느 하나도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없었어. 이번도 난 그러고 싶지 않았 어. 근데 언니는 날 아주 차갑게 보고만 있어. 난... 은혁 : 채미누나도 너의 진심을 알면 너를 미워하지 않을 거야. 내가 도와줄게. 은미 : (고개 흔들며) 아니, 도와주지마. 나도 나의 진심이 뭔지 모르겠으니까. 단지 난 오빠를 사랑하고 있고 쉽게 놓치기 힘들다는거야. 나도 이런 사랑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서. 어차피 언니는 날 미워하고 있고 그래서 그 차가운 눈빛도 따뜻해지긴 힘들 것 같아. 은혁 : 은미야, 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야? 은미 : 은혁아, 너에겐 미안해. 너의 사랑을 힘들게 해서. 하지만 날 그냥 내버려뒀으면 해. 난 지금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다 힘들꺼야. 지키든 놓치든... 은혁 : 난 니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감정 추스려서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 은미 : 다음에도... 똑같을거야. 난 판단이 섰어. 나 그만 갈게. 은미는 일어나 딴데로 가버린다. # 109 버스안 <가을 저녁> 은미는 멍하니 앉아 창밖을 내다본다. 그러다 괜히 미소지어 본다. 눈물이 고인다. # 110 은미의 집 거실 <가을 밤> 은미 : (씩씩하게) 다녀왔습니다. 가정부 : (맞이하며) 오셨어요? 은미 : (둘러보며) 엄마, 아빠는 아직이에요? 가정부 : 네. 식사는... 은미 : (희미한 미소짓는) 됐어요... 아줌마, 저 바보같죠? 맨날 이 시간에 없는 엄마, 아빨 찾는다는 게. 가끔씩 집이 너무 허전해보여서 이런 말이라도 안하면 사라져 버릴 것 같아요. 아줌마 일 보세요. 올라갈께요. 은미는 자신의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간다. # 111 은미의 방 <가을 밤>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침대에 털석 엎드린다. 은미는 베게로 머리를 덮고는 막 소리를 지른다. 그리곤 그 음악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은미의 노래는 음정, 박자 모두가 무시된 하나의 울부짖음이다. 화이트 화면(자막)(하늘색) 시나리오 257

258 사랑한 후에 中 이젠 잊어야만 하는 내 아픈 기억이 별이 되어 반짝이며 나를 흔드네... # 112 채미의 집 <가을 밤> 채미가 열이나서 찬 수건을 머리에 이고 침대에 누워있다. 그 옆에서 걱정스러운 듯 채미를 보며 엄마가 앉아있다. 채미 : (힘없이) 엄마... 민혁 오빠한텐 절대 전화하지마. 절대! 의사와 간호사가 들어와서 진찰을 하자 엄마는 채미방에서 나온다. 엄마는 수화기를 놓았다 들었다 한다. 수화기 앞엔 민혁이 전화번호가 적인 쪽지가 있다. # 113 민혁의 방 <가을 밤> 민혁이 책상에서 공부하고 있고 은혁이 그 옆에 서 있다. 은혁 : (화가나서) 형, 그런척 하는거야, 아님 진짜 아무렇지 않은 거야? 며칠 전 만 해도 이렇지 않았잖아? 민혁 : (상관하지 않는 듯) 내가 뭘 어쨌길래? 그리고 너 그렇게 시간 많냐? 정신차려 임마. 요즘 취업하기가 얼마나 힘든건지 알아? 군대 갔다와서 생각하면 그땐 늦는 거야. 딴 사람들이 가만히 기다리는 줄 알아? 다 저만치 앞서 가 있다고. 은혁이 방에서 나가자 민혁 벌떡 일어나 침대에 누워 버린다. 그리고 괴로운 듯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 114 은미의 방 <가을 새벽> 은미가 침대에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누워있고 음악은 꺼져 있다. 그때 아빠, 엄마(예전의 젊은 여자)의 소리가 들린다. 아빠 : (큰소리로) 여자가 지금이 몇시야? 여자 : (만만치 않은 목소리) 당신은 뭐 이른 시간인가요? 아빠 : (더 큰소리로) 뭐, 어디 이 여자가 꼬박꼬박 말대꾸야? 그 소리에 은미 벌떡 일어나 앉는다. # 115 은미의 부모님의 방 <가을 새벽> 서로 지지않겠다는 듯 큰소리로 싸우는 부모 여자 : 이 여자 이 여자 하지 마요. 은미가 뭘 보고 배우겠어요? 아빠 : 채미 엄만 이러지 않았어. 얼마나 지고지순했다고. 여자 : 근데 왜 나랑 살아요? 그 여자처럼 나도 버리고 살아봐요. 위자료 넉넉히 258 SDU 디지털 문학

259 주면 당장 이혼해 드리죠. 서류 가져와요? 아빠 : 아니 근데... 나 참 기가 막혀서. 여자 : 나 이런지 모르고 살고 있어요? 새삼스럽게. 나도 오늘 기분 안 좋은 일 있어서 복잡하니까 신경 건드리지 마요. 알았어요? 아빠 : (버럭 화를 내며) 야! 여자 : 내가 당신 딸이우? 야! 하고 함부로 부르게. 그때 은미가 안방문을 열어 제친다. 시선은 은미에게 향하고. 여자 : 은미야, 잘 왔다. 니 아빠가 아직 그 여자를 못 잊고 있나봐. 못살겠다. 아이고. 내가 무슨 팔자를 타고나서... 아빠 : 그래도 이 여자가? 은미 : (소리를 꽥 지르며) 그만하세요! 그만하시라구요. 지겹지도 않으세요? 은미는 그렇게 말을 내 던진 채 돌아서 나온다. # 116 거리 <가을 새벽> 은미는 울면서 집에서 점점 멀어지며 뛰고 있다. 그리곤 한 기둥에 서선 주저 앉아 두 팔에 얼굴을 파묻고 운다. # 117 민혁의 아파트 앞 <가을 아침> 아파트 앞에서 은미가 밝은 미소로 민혁을 반긴다. # 118 민혁의 학교<가을 아침> - 강의실<가을 낮> - 학교 식당<가을 낮> - 민혁 의 집 <가을 밤> 은미는 민혁의 학교로 같이 등교한다. 은미는 도강하며 민혁과 수업을 같이 듣고, 점심도 민혁 학교 식당에서 같이 하고 저녁때가 되어 민혁의 아파트에 민혁과 나란히 들어가려고 한다. 민혁 : 너, 오늘 왜 이러는 건데? 은미 : 오빠, 이제부터 내가 쭉 함께 할거니까 이런 거 가지고 신기하게 생각하 지 마요. 민혁 : 학교는 안가? 은미 : 휴학할까 생각중이에요. 적성에도 안 맞고 돈이나 벌까? 민혁 : 돈은 아무나 버니? 그리고 난 앞으로도 변화없으니까 괜한 공들이지 마 라. 은미 : (미소지며) 그건 신밖에 모르죠. # 119 채미의 집앞 <가을 아침> 은혁은 채미의 집 앞에 있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아무 대답이 없다. 은혁은 실망하며 그만 돌아서는데... 아줌마 : (다가오며) 이집 손님이세요? 은혁 :...네.. 저 근데 어디 갔는 모양이죠? 아줌마 : (이상하다는 듯) 몰랐어요? 은혁 : 왜요? 시나리오 259

260 아줌마 : 이 집 딸 채미가 너무 몸이 안 좋아서 병원으로 옮겼어요. 갑자기 왜 그런지. 은혁 : (잠시 멈칫)...어느 병원인지 아세요? 아줌마 : 알긴 하는데. 가르쳐 줘도 되나? 은혁 : 친한 동생이에요. 제발요. 아줌마. 아줌마 : 거기가 어디냐뭔요. # 120 병원 <가을 낮> 은혁은 채미의 병실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다 그 앞에 선다. 들어가진 못하고 망설이는데... 엄마 : (채미 엄마가 다른 복도쪽에서 다가온다) 누구세요? 은혁 : (시선 마주치는) 강은혁이라고 합니다. 엄마 : 아. 은혁이...들은 적이 있네요. 은혁 : 근데 채미누나 많이 아픈가요? 채미 엄마의 표정은 갑자기 어두워진다. 은혁 : (조심스레) 지금 누나 만날 수 있나요? 엄마 : 채미는 지금 잠이 들었어요. 안정이 필요하다고 해서. # 121 민혁의 집 거실 <가을 밤> 민혁과 은미가 거실에 나란히 앉아 있다. 그때 은혁 들어오고, 다가오며 은혁 : 마침 잘 됐네. 둘다 알아야 하는 얘기야. 채미누나... 민혁 : (고갤 돌리는) 채미 얘기라면 그만해. 들어서 좋을 거 하나도 없어. 은혁 : 채미누나... 많이 아프대. 오늘 병원에 갔다왔어. 안정이 필요하다고 해서 만나보지도 못하고... 민혁 : (당황하며) 너 똑바로 말해. 그게 사실이야? 만약 너 나 시험하거나 놀리 는 거라면 너 가만두지 않을 거야. 사실이야? 사실이냐고? 은혁 : (화내며) 나도 농담이었음 좋겠어. 민혁은 그 자리에 주저 앉는다. 은미는 한마디도 못하고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다. # 122 병원의 진료실 <가을 저녁> 진료실에서 의사가 엄마에게 뭐라고 얘기한다. 엄마는 고개를 숙인다. 엄마가 진료실에서 나오자 민혁과 은혁이 서있다. 엄마는 조심스레 뭐라 얘기한다. (이 부분은 장면만 있을 뿐 대사없이 음악이 흐른다.) 잠시후 민혁 : 제가 검사를 받겠어요. 은혁 : 저도요. 은미가 멀리서 본다. 260 SDU 디지털 문학

261 # 123 채미 병실 <가을 저녁> 침대에 누워서 잠들은 채미. 이제 서서히 눈을 뜬다. 채미의 시선에 민혁과 은혁 그리고 뒤에 서있는 은미가 보인다. 그리곤 잠시 시선을 은미에게 멈춘다. 은미는 채미의 눈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어 나가 버린다. 민혁은 채미에게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두 손을 꼭 잡는다. 민혁 : (아픈 맘에) 많이 힘들지? 미안하다. 내가 널 이렇게 만든 것 같아서. 은혁 : 누나, 조금만 참아. 내가 이 병실에서 꼭 뛰어서 나가게 해줄테니까. 채미는 민혁과 은혁을 한번씩 쳐다보더니 가만히 눈물을 흘린다. # 124 병실 복도 <가을 저녁> 은미가 병실에서 빠져 나와 가려 할 때 복도에서 걸어오던 엄마와 마주친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은미는 그 자리를 얼른 피해 뛰어 가버린다. 그 모습을 보는 엄마의 표정이 슬프다. # 125 진료실 <가을 아침> 의사 : 아무래도 가족 중에 찾는게 빠를 것 같습니다. (엄마 아무말 못하고...) # 126 검사실 <가을 아침> 엄마도 검사를 한다. # 127 진료실 <가을 저녁> 진료실 밖에는 민혁과 은혁이 있고, 진료실에서 나오는 엄마의 표정이 밝지 않다. # 128 은혁, 은미 학교의 벤취 <가을 낮> 은혁과 은미가 벤취에 나란히 앉아 있다. 은혁 : 이제 너한테 모두가 희망을 걸고 있어. 부탁이야. 은미야. 은미 : 싫어. 난 내 몸에 칼 대는거 싫어. 생각 만 해도 무서워. 딴 사람들 중에 알아보면 있을거야. 그리고 언니도 내가 하는건 원하지 않을걸. 은혁 : 그런 말이 어디있어? 제발... 니 언니잖아. 남이 아니잖아. 은미는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나와 버린다. # 129 커피숖 <가을 저녁> 민혁과 은미가 마주보며 앉아 있다. 시나리오 261

262 민혁 : 부탁이야. 너가 도와줘야 해. 예전에 너가 술취해서 니 속마음 얘기했던 거 난 기억하고 있어. 언니를 많이 사랑한다는 얘기, 그리고 보고 싶다는 얘기... 이제 그 언니가 너 앞에 있는데 망설일 이유가 뭐니? 은미 : 제발 이러지마. 오빠가 그러면 그럴수록 난 더 오기가 생긴다고. 난 오빠를 사랑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들어줄 수가 없어. 나 이해하겠어? 난 그래! # 130 병실 복도 <가을 저녁> 은미가 채미의 병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대고 있다. 그러다 돌아서서 가려는데 복도에서 걸어오던 엄마와 마주친다. # 131 병원식당 <가을 저녁> 엄마와 은미 마주보며 앉아 있다. 그러나 은미는 시선을 돌린다. 엄마 : 얼마전엔 제대로 말도 못했구나. 오랜만에 내 딸을 만났는데. 엄마가 너 무 정신이 없었어. 은미 : (삐딱하게) 아직 내 엄마 맞아요? 전에 헤어진 이후로 남 된거 아니예요? 나 찾아온 엄마 때문에 내가 미운적도 많았다면서요? 엄마 : 아직도 그말 기억하고 있니?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구나. 하지만 나도 어 쩔수가 없었단다. 니 엄마앞에서 널 데리고 올 수가 없었어. 누가 뭐래도 그 사람 은 니 엄마니까 난 자격이 없었으니까. 그동안 난 널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어. 내 딸인데 어찌 널 잊겠어. 은미 : (삐딱하게) 그래도 난 친딸이 아니잖아요? 채미 언니랑은 확실히 다르겠 죠. 엄마 : 엄만 진심으로 너를 사랑한단다. 그 이유는 간단해. 내 딸이니까. 내가 소 중히 옥이야 금이야하며 키운 금쪽같은 내 딸이니까. 은미 : (울컥하는) 내가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는지 아세요? (눈물을 흘리는) 아빠, 엄마가 모두 계셨지만 전 언제나 혼자였어요. 그래서 더 씩씩해지려고... 정 말 외로웠어요... 엄마 : 미안하다. 내 딸아...(눈물을 흘리는) 너를 두고 온지 얼마 안되어서 정말 너를 데려올까도 생각했었어. 힘들어도 같이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서. 하지만... 은미 : (놀라운) 정말이에요? 전 엄마와 언니를 만나고 싶었지만 연락할 길이 없었어요. 엄마 : 너는 내 귀한 딸이야. 언제까지나.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은미 : (조금 부드러워진)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엄마 : 그건 엄마한테 질문할 것이 못된다고 생각되는데. 은미 : (눈물을 흘리는) 엄마... 엄마 : (눈물을 흘리는) 그래 난 니 엄마야. 그리고 앞으로도 그건 변함없을 거고. 은미 : 엄마도 내가 채미언니를 위해 검사받길 원하죠? 엄마 : 은미야. 난 엄마라서 내 자식들이 아프고 힘든 걸 보면 배가 더 슬프고 마 음이 아리단다. 그건 채미도 은미도 모두에게 마찬가지야. 그건 어찌보면 변하지 않 는 진리와도 같지... 밥은 먹고 다니니? 끼니를 거르고 다니면 건강 다 해친단다. 은미 : (펑펑 우는) 엄마...흑 SDU 디지털 문학

263 은미는 자연스럽게 엄마옆으로 가서 안기어 운다. 엄마도 그런 은미를 보고 마음 아파한다. 서서히 하얗게 사라지는 화면 # 132 회복실 <늦가을 저녁> 화면에는 회복실 표시판이 보인다. 그리고 회복실을 넘어 보면. 두 개의 침대 위에 채미와 은미가 나란히 누워있다. 잠시 후 은미가 먼저 깬다. 은미는 옆에 누워 있는 채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곤 손을 힘껏 뻗어 채미의 손을 잡는다.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아 힘껏 잡을 순 없어 가만히 대고 있는다. 이윽고 채미도 깬다. 채미도 아무말 없이 은미의 손에 살며시 대고 있다. 그리곤 서로를 가만히 바라본다. 은미는 채미를 보며 씩 웃어 보인다. 예전 어릴 때의 은미처럼. 그런 은미를 보고 채미도 어느새 밝은 미소를 짓고 있다. 예전 어릴 때의 채미처럼. (# 7 채미와 은미의 방) 의 미소와 교차로 화면에 보이고. # 133 회복실 밖 <늦가을 저녁> 화면은 서서히 회복실을 빠져나와 밖에서 지켜보는 엄마와 민혁과 은혁의 뒷모습이 보인다. 엄마와 민혁과 은혁은 돌아선다. 엄마 : 민혁군이라고 했죠? 앞으로 우리 채미 잘 부탁해요. 민혁 : 예. 예전처럼 앞으로도 행복하게 해 주겠습니다. 또 어머님도 행복하게... 엄마 : (징그러운 듯) 아니 나는 됐으니 채미만 행복하게 해줘요. (여기서부터 소리와 장면이 점점 희미해져 밖의 빗소리가 서서히 크게 들리며 병원 창 밖 너머로 소나기 내리고 바람이 무섭게 부는 장면이 보인다.) 민혁 : 아닙니다. 전... 어머님도.. 엄마 : 난 됐다니까. 민혁 : 그렇게 생각하시면 섭섭합니다. 엄마 : 아이고 고참! 그럼 나도 행복하게 해줘요. 민혁 : 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어머님. 엄마와 민혁과 은혁은 모두 함박웃음을 짓는다. (소나기 빗줄기는 점점 세어지고 어두웠던 밖의 모습이 점점 밝아지면서 화이트 화면이 된다. 여전히 빗줄기 소리는 세차게 들린다.) (화이트화면) (자막) 시나리오 263

264 (하늘색 글씨) 비오는 창 송욱( ) 비가 오면 하늘과 땅이 손을 잡고 울다가 입김 서린 두 가슴을 창살에 낀다. 거슴츠레 구름이 파고 가는 눈물 자욱은 어찌하여 쉴새없이 몰려드는가. 비가 오면 하늘과 땅이 손을 잡고 울다가 이슬 맺힌 두 가슴을 창살에 낀다.

265 학생문단 평론 김형출 문현영 評 論

266

267 평론 기형도 작품에 나타나는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의 미학 김형출 I. 머리말 기형도 시집을 펼칠 때마다 원망, 책망, 절망 그리고 죽음이 떠올라 마음이 착잡하다. 그의 유일한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 은 시제에 서부터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또한 죽은 시인들의 사회 에 등장하는 불운의 시인들(김민부, 임홍재, 송유하, 김용직 김만옥, 이경록 박석수, 원희석)의 죽음이 떠오른다. 생은 죽음 앞에 자유롭지 못하고 염라대 왕은 순번없이 생을 데리고 간다. 어떤 종교에서는 죽음을 부활이라고 도 하고, 영혼불멸이라고도 한다. 또한, 죽음은 문학의 주제로서 모든 문학인들의 연구대상이기도 하다. 모든 생명 있는 것은 빈손으로 왔 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다. 라고 규정하고 싶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젊은 천재시인 한 사람이 또 세상을 떴다. 염라대왕도 무심하시지, 순서대로 데리고 가 면 어디가 아프냐? 그도 시대에 따라 눈치 살피며 데려가는데 서열을 파괴하다니 너무하시다. 나는 언제나 죽음에 대한 상념에 여기서 멈칫 한다. 기형도는 서른을 채 못 채우고 삶을 마감했다. 그는 시단에서 평론 267

268 활동한, 시간적으로는 4년이 조금 넘고, 양적으로는 시집 한 권 분량 의 삶 속에 독창적이면서도 강한 이미지를 남겼다. 그의 시가 죽음을 보여주었다면 그 죽음, 시인의 삶과 죽음은 자율적인 어떤 가상적 구 성물 속의 죽음이라는 텍스트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90년대의 기형 도가 아니라 2000년대의 기형도의 시세계를 조명하기 위해서는 기형 도의 전기적 그림자를 그의 시에서 벗겨내 그의 실제 죽음에 대한 관 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시인의 죽음에 대한 가상 적인 텍스트에 죽음이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기형도 시세계를 이해 하는데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시인 기형도는 1960년 경기도 연평에서 출생하여 연세대학교 정외과 를 졸업하고 84년도에 중앙일보사에 입사 정치부, 문화부, 편집부에서 근무했다. 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 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한 그는 이후 독창적이면서 개성 강한 시들을 발표했으며 1989년 3월 종로 2가 파고다 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이 된 이 시집에서 기형도 시인은 일상 속에 내재하는 폭압과 공포 심리구조를 추억의 형식을 통해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의 시집 입속의 검은 잎 이라는 제목부터가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암시가 심상치 않았고, 무엇보다 나의 시선을 끌던 詩 作 메모 는 잊을 수 없 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시인에게 죽음이란 죽음이 아닌 영원의 화신일 수도 있다. 그는 생전에도 자신의 이력을 짧게 썼는데 그만큼 짧은 생을 보냈다. 죽음으로 인해 유명해진 시인, 불운의 시인이 기형 도이다. 요절이란 물리적 죽음과 의식의 죽음이 한 꼭짓점에서 만나 불꽃처럼 타오르다 소멸해 간 흔적이라는 것. 그 속에 시인 기형도는 아직 죽지 않았다. 기형도는 요절한 전도 유망한 시인으로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 해 5월 입속의 검은 잎 이 출간되었다. 1990년 3월에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 이 출간되었으며 1994년 2월에 그의 미발표 시와 추모 시가 실린 사랑을 읽고 나는 쓰네 가 출간되었다. 그가 시단에서 활 동한 기간은 불과 4년 남짓, 양적으로는 시집 한 권 분량에 불과한 삶 속에서 독창적이면서 강한 개성 이란 말을 붙일 수 있는 근거 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자신만이 가지는 독특한 시 세계가 병든 낭만 주의의 무책임한 빈정거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의 온 268 SDU 디지털 문학

269 몸을 통과했을 시대의 다른 목소리들은 그처럼 자기 파괴적이지 않았 다. 절망은 희망을 일으키는 큰 힘이었고, 슬픔도 힘이 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시인은 어떤 뜻밖의 사건, 안팎의 어떤 말썽을 통해 인간 속으로 깨어남을 알려 주었다. 워즈워드는 시란 고요 속에서 회상해 낸 감정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기형도는 고요 속에서 죽음이란 풍경을 그려냈다. 기형도 가 생존했을 당시에 많은 비평가들에게 내면적이고 비의적이며 무화 적인 독특한 색채의 시인으로 평가는 받았었지만, 나는 여기서 기형도 가 생전에 바라보았던 80년대의 시 대상에 관한 연구를 하고자 한다. 짧은 생애를 살다간 한 천재적인 시인의 죽음에 관한 새로운 발견이 될 수 있을 것이며, 혹은 진부한 궤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 다. 그의 작품만으로 그의 시세계를 평가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기형도에 관한 평가는 그의 사후에 더 많이 행해졌다. 김현이나 유종 호와 같은 문학평론가는 물론 그의 시에 매료된 많은 문학도와 독자 그리고 평론가들이 그의 작품들을 평가하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대부 분이 그의 작품론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진정한 평가는 작품론, 작가론 그리고 독자론의 관점에서 종합적인 평가가 요 구된다. 기형도는 분명 시인이지만 그는 자신의 독특한 시각으로 소설 과 수필은 물론 다른 작가들의 작품 평까지 내놓았다. 기형도의 기존 평론들 1) 은 한결같이 그의 그로테스크한 세계관과 불 길한 그러면서도 긴장감이 있는 시어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의 시 는 이전에 사회변혁을 지향하면서 민중해방을 구가한 시들이 오히려 낭만주의적인 환상으로 비칠 만큼 현실을 철저히 부정적이고 고통적 인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특성이 있다. 라고 김현 2) 씨는 밝히고 있다. 그의 삶은 짧게 끝났지만 그의 시세계는 지금도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으며 그에 대한 연구와 탐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평론가는 김현일 것이다. 그는 기형도의 시를 공격적인 허무감, 허무적 공격성과 부재한 현존, 현존하는 부재가 들어있는 그로테스크 리얼리즘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의 시가 그 로테스크(무덤 같이 어둡고 음침한)한 것은 괴이한 이미지들 속에, 밖 1) 1 김현의 그로테스크 리얼리즘 (비극의 세계인식), 2 김훈의 비극적 삶에 대한 냉엄한 인식 3 장석 주의 내면화된 비판주의 4 성민엽의 부정성의 언어 5 박철화의 집 없는 자의 길찾기. 2) 경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평론가 평론 269

270 에, 뒤에, 밑에 타인들과 소통할 수 없어져 자신 속에서 임종처럼 자 라나는 죽음을 바라보는 자신과 공간에 갇힌 자의 비극적 모습이 마 치 무덤 속의 시체처럼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말했다. 나는 본 논문에서 그의 죽음에 다가가는 허무주의 시세계가 현실에 대해 왜 그렇게 공격적이고 비핀적인 모습을 보였는가 하는 점과 부 재한 이미지 확장의 몇 작품을 통해 그의 죽음의 텍스트에 초점을 맞 추어 보고자 한다. 물론 그동안 많이 나온 기형도 시인과 관련이 있는 많은 평론자료와 시집 그리고 문학서적을 참조하여 그의 시세계를 이 야기기 하고자 한다. 기형도 시세계는 시류에 따라 많은 평론가에 의 해서 다양한 평가가 이루어지리라 본다.. 본론 1. 죽음에 다가가는 허무주의의 시세계 기형도의 시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부조리한 세상 에 대한 원망, 둘째 세상에 무관심한 사람들에 대한 책망, 셋째 무기 력한 자신에 대한 절망이 그의 시편을 이루는 의미소라고 생각한다. 우선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그의 원망을 살펴보자. 문학평론가 이명원 은 자신의 저서[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 기형도 편에서 부조리한 시대 의 절망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기형도의 시세계는 현실원리와 쾌락원리의 경계가 소멸되어 있다. 그러나 그 소멸된 경계는 정종현의 시에서와 같이 자아가 사물로 틈입 하여 몸 섞는 화해의 공간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중략,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 그것이 그를 고통스럽게 한다. 이때, 그는 절망한다. 이명원은 이러한 절망을 이해한다면 기형도의 병적 허무주의를 어렴 풋이나마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문학평론가 류신은 기형도 시세계에 대해서 거창하게 시인 기형도의 존재론을 거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를 검은 존재론(schwarze Ontologie)'의 화신 化 身 으로 부르고 싶다. 왜냐하면 그의 시세계에는 세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서부터 돌출 되어진 고통과 파괴의 흉터들이 즐비하고 젊어서 세상을 등진 불우한 운명이 자아내는 죽음과 쇠락의 이미지들이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270 SDU 디지털 문학

271 라면서 세 가지 원천을 들고 있다. 그 하나는 시인의 가난한 자전적인 경험, 즉 유년과 청년기의 상실 체험에 연관되는 셈이며, 다른 하나는 그의 도시적 일상에 대한 부정 적 인식과 실존의 부조리와 그로테스크를 우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표지로 이해하는 셈이며, 또 다른 하나는 그의 갑작스러운 죽 음과 연루되는 상징적인 진혼가의 잔영이다. 어쨌든 그의 돌연사 이 후, 독자는 폭발적으로 늘어 이제 그의 시는 시작 詩 作 을 꿈꾸는 문학 도들에게는 일종의 통과제의 의 성소가 되었다. 기형도의 시는 이미 신화의 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죽음을 통해 다시 신화로 환생하는 끈질긴 저력, 불사 不 死 의 시! 실로 끔찍한 아름다움 이다. 기형도의 시가 고통스런 유년의 기억 반추라는 사적인 체험의 진술에서 벗어나 완결된 한 편의 시를 가능하게 했던 점은 유년 시절 을 자연물을 통해 은유적으로 형상화하였다는데 있다. 기형도 시의 중 심적인 주제 의식은 유년의 기억 에 있다. 자연을 통해 나타나는 유년의 기억은 단지 순수성 혹은 잊혀진 낙원에 대한 향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적 자아의 근원적인 내면세계를 보여준다는 주제 의식 을 담고 있다고 평했다.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醉 客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중략(.) 3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평론 271

272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안개] -등단작품 전문일부 시인은 안개를 읍의 명물이라 말한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국 면을 우리는 안개 정국이라고 부른다. 세상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습조 차 안개에 쌓여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란 절망의 극치가 아닐까. 부조리 한 세상을 은폐하고, 어두운 현실을 직시할 수 없게 만드는 부정적인 상징의 안개 속에서 순진한 여직공이 겁탈을 당하고, 운이 나쁜 취객은 비명횡사를 하는 것이다. 그 안개는 아침저녁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자 욱하게 끼는 것이기에 삶 자체의 리듬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시인은 안개의 탓이 아니라고 능글맞게 얘기하지만 그것은 반어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상처입은 사내들이 폐수(폐수는 단지 환경오염의 측면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총체적인 부조리를 의미한다.)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누구도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들이기 때문이다. (대안이 없는 현실 도피는 죽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죽어서야 안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죽 기 전까지 그들은 안개 속을 습관처럼 흘러 다녀야한다. 세상에 무관심 한 사람들에 대한 책망은 같은 시 안개 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은 안개를 경계하지 만(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경계와 비판적인 의식을 의미한다.)곧 남들 (방관자 또는 안개의 끄나풀)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근묵자흑이라는 말이 있듯이 부조리 한 세상 속에서 부조리한 개인화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안개의 성역 이 되어버린 도시, 안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안개의 세계가 결코 행복하고 화창한 기억의 꽃밭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오히려 그 세계는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갇혀있을 느끼고 경악 하는 세계이 다. 안개는 추악한 현실을 은폐시킨 공간이다. 안개가 서서히 걷혀 가고 현실이 눈앞에 드러나게 될 때 긍정은 산산 이 깨지고 삶은 너무나 추악한 것이다. 그래서 환상은 깨졌고 현실도 272 SDU 디지털 문학

273 그를 억압한다. 기형도 시에 나타나는 하나의 중요한 현상은 깨진 현실 을 조립하거나 아예 조립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두 공간에서 떨 림을 모색한다는 데 있다. 안개는 도시의 거대한 안개의 강 에서 발 생한다. 안개의 강은 도시를 외부 세계와 구분 짓고 고립시킨다. 앞 서간 일행들 을 천천히 지워 버리는 힘을 지닌 안개는 도시의 안 으로 침투해 들어와 사람들의 일상을 위협한다. 보이지만 실체가 없는, 자신을 드러내는 만큼 다른 존재들을 지워버리는 안개는 소멸이 아니 라 실재의 실종을 확인하도록 만든다. 기형도 시에서 안개는 구름, 눈, 진눈깨비, 비, 물, 연기 등의 어두운 유사 이미지의 계열을 거느린다. 기형도 시세계에서 보이는 현실비판의식들은 대개 그의 직접적인 경 험에서 기인하고 있다. 기형도의 시세계는 도저한 허무주의의 세계이 다. 그러나 그의 시는 적극적인 의미에서는 허무로 읽혀져야 한다. 이 는 그가 자신의 시를 통하여 현실의 부조리에 절망하거나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헤매며 끊임없이 모색을 해왔다고 보기 때문 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그의 시세계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며 현실과의 긴장관계를 통하여 무엇을 드러내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명원은 그의 저서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 기형도 편에서 이런 문 제를 기술하였다. 나는 그의 시가 화해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고통 받는 한 자아가 환상으로의 진입을 통하여 불화를 극복하고자 하였으 나, 그마저도 불가능함을 깨닫고는 좌절하는 모습을 극명히 드러낸 데 그의 시의 본질이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는 부조리한 세계 에서 부조리한 방법으로 부조리를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자기해방의 한 해결 방식이 죽음이었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고통 속에서 살아남는 것은 죽기보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곳곳에 깔려 있고 자신의 몸을 누이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끝이기 때 문이다. 시인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일은 삶에서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 지 죽음을 통하여 삶을 확장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죽음으로써만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형도는 그의 유년 속에서 가장 가까웠던 누이의 죽음을 겪었다. 누이여 또다시 은비늘 더미를 일으켜 세우며 평론 273

274 시간이 빠르게 이동하였다 어느 날의 잔잔한 어둠이 이파리 하나 피우지 못한 너의 생애를 소리없이 꺾어갔던 그 투명한 기억을 향하여 봄이 왔다 (중략.) 봄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은 묻지 않는다 떠다니는 내 기억의 얼음장마다 부르지 않아도 뜨거운 안개가 쌓일 뿐이다 잠글 수 없는 것이 어디 시간뿐이랴 아아, 하나의 작은 죽음이 얼마나 큰 죽음들을 거느리는가 나리 나리 개나리 네가 두드릴 곳 하나 없는 거리 봄은 또다시 잡혔던 꽃술을 펴고 찬물로 눈을 행구며 유령처럼 나는 꽃을 꺾는다 [나리 나리 개나리]-전문 구름으로 가득찬 더러운 창문 밑에 한 사내가 쓰러져 있다, 마룻바닥 위에 그의 손은 장난감처럼 뒤집혀져 있다 이런 기회가 오기를 기다려온 것처럼 비닐 백의 입구같이 입을 벌린 저 죽음 (중략,) [죽은 구름]-전문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 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 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274 SDU 디지털 문학

275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제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 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 ) [ 詩 作 메모]-전문 아, 그는 어린애였다! 궁핍과 끔찍한 불행의 유년시절에서 한 발자 국도 벗어나지 못한 닫힌 세계를 살아간 것이다. 그가 그토록 두려워 한 바깥세상은 그에게 죽음의 형식으로 보였지만 나에겐 그의 세계가 죽음의 형식으로 보인다. 3) 가족으로서 사랑과 조화를 느끼게 해주 었던 누이의 죽음의 시 나리 나리 개나리 에서처럼 작은 죽음이 큰 죽음을 거느릴 만큼 그에게는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사건이었 다. 단순하고 위대한 이미지라면 어떤 것이나 하나의 영혼의 상태를 드러내게 마련이다. 유년의 계절의 체험과 함께 가족 공동체의 조화로 움에서 분열의 확장을 꾀한 시 병 에서 나타나는 가을의 이미지는 도시적 삶의 해체 내적 자아를 상실하고 방황하는 자아의 상처와 절망을 보여준다. 4) 시인에게 죽음이란 물리적 의미를 넘어 풍경 넘어 풍경 속으로 드리우는 의식의 문제이다. 초월이라는 시의 특성상 시인 으로 하여금 끝없이 죽음의 풍경을 몽상하게 한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무엇을 따 라간다는 말인가? 이데올로기? 희망? 절망? 황금시대에 대한 추억? 그것도 아니면 죽음?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마치 파피루스 신성문자 를 해독하듯이 반추해 보았었지만 궁극적 의미의 실마리를 도무지 잡 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알지 못한다. 시집의 겉표지에 실린 시작 메 모 중에 이런 구절들이 있다. 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 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지 위에 닿을 듯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 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3) 성석제, 기형도, 삶의 공간과 추억에 대한 경멸,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솔,1994.P ) 박철화, 집 없는 자의 길 찾기, 혹은 죽음,문학과 지성사,1989 가을호, P105. 평론 275

276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 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 속에는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 땅에 날씨가 나빴고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며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들 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에 흩어져 글을 쓰지 못하는 무 력감을 그때 알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평론가 김현은 이미 그때(기형 도 시인이 중앙일보 재직 시) [중앙일보] 문학월평을 통해 기형도의 시에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래서 기형 도를 그로테스크한 현실주의 시인이라고 부른다. 그는 어둠 속에 가려 진 어둠을 알고 있는(적어도 그 시절의 나에게는) 유일한 시인이었다. 전자가 부조리하고 희망 없는 세상이라면 후자는 그 안에서 고통받는 삶의 단면이다. 의도적인 것인지 무의식의 발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의 시편 대부분에는 어둠(어두운, 어두워지면 등의 품사변화와 가장 햇빛이 안 드는 곳, 시간은 0시, 눈을 감고 지나갔다 등의 이미저리도 포함)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15촉 알 전구의 시학이라는 말로 그의 시를 상징할 수 있을까. 아니다. 어찌 가시적인 빛의 촉수만으로 보이 지 않는 그의 어둠을 짐작할 수 있으랴, 2. 부재한 공간의 이미지 확장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는 시인, 현실주의 세계관을 모색한 허무주의 시인, 연시를 거부한 시인, 그의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절망은 여러 시 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빈집 을 살펴보자.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276 SDU 디지털 문학

277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집]-전문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라든가(혹자는 빈집을 연시로 오 해하는데 빈집은 결코 연시가 아니다.)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 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 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오래된 서적, 진눈깨비 쏟 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 불행하다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 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 진눈깨비 진눈깨비, 내 희망을 감 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정 거장에서의 충고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무기력한 존재의 절망은 부 조리한 세상을 구원하지 못하는 자책과 자기부정을 통해 더욱 심화되 어진다. 나는 그것을 변증법적 자기분열이라고 부른다. 희망과 절망은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체계 속에서 변증적인 분열 과 통합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극과 극으로 치닫는 희망과 절망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빈집 이란 공간은 세계를 인식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식의 단위라고 본다면 시인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면서 시적 화자를 세계에 가두어 놓고 있다. 기형도 시인의 시집 해설을 쓴 김현은 빈집 해설에서 빈 집에 가두어 있는 이상한 가연성에 의해, 사랑을 빈방에 가두는 행위 로 바뀐다고 서술하고 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81p)라고 말한 그는 망설임을 대신하는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라고 그녀를 향 한 열망의 소유권 주장을 포기한 뒤(.) 더듬거리며 문을 잠근다. 그 방 안에 갇힌 것은 그러나 놀랍게도 그가 아니라 가엾은 내 사랑 이다. 위 글에 대하여 김현 씨는 그 사랑은 이제 그의 눈물을 자아내는 사 랑이 아니라 그리움으로 되돌아보는 사랑이라 기술하고 있다. 또한, 평론 277

278 그가 영원히 닫힌 빈방의 체험'이라는 해설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기 형도 시의 아름다움은 가난이나 이별 등의 상처에서 독특한 미학적 의미'를 추출해내는 데 있다. 이 점, 서정시가 가장 쉽게 빠지기 쉬운 함정, 개인의 상처가 보편화하지 못하고 넋두리에 그칠 우려, 보편화 하지 못한 상처의 낯 뜨거움에 대한 경계를 말한 것이리라. 기형도 시 집 전편에 흐르는 주된 정조는 가난'이나 이별'등의 상처'이다. 이 시는 이별의 상처에 객관적 거리를 두면서, 그 이별의 체험에서 기 형도 다운, 차마(!) 아름다운 미학을 추출해낸다. 그 추억을 경멸하는' 힘으로 기형도는 사랑을 잃고' 무언가를 열 정적으로 쓴'다. 그것은 음울한 색채이지만, 그 음울함은 전적으로 독자가 느끼는 음울함이다. 정작 기형도는 그러한 상처도, 그러한 상 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도 저 홀로 없어진 구름'과 같은 우연 적인 것 진눈깨비'와 같은 순간적인 것'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 온 이길'과 같이 표류하는 것, 그리고 쓸데없는 것'이라는 전언을 해온다 그 빈집'은 영원히 닫혀 있는 것이어서 그가 들어가지 않는 한, 그 어떠한 것이 살아도 빈집 인 것이다. 그가 곧 죽음을 예감하는 초로 早 老 의 영혼에 대한 그러한 상처는 단지 치통처럼 욱신 거리는, 무좀처럼 가려운 아픔'일 뿐이다. 시인은 그러한 아픔을 치 료할 의사가 전혀 없다. 그러한 아픔 위에서 사랑을 잃고 쓰듯이' 음울하게 그러나 열정적으로 쓸'뿐이다. 그에게는 도통 상처를 치유 할 의사가 없다. 힘이 없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278 SDU 디지털 문학

279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엄마 걱정]-전문 이 시는 시적 화자의 순수한 슬픈 동심이 묻어나오는 동화 같은 이 야기를 담고 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어머니는 해가 진 지 오래되어도 돌아오시지 않고 홀로 남은 나는 어머니의 배춧잎 같 은 발소리에 귀 기울이며 빈방에서 훌쩍거린다. 혼자 훌쩍거리는 어린 나는 무섭지만 또 다른 나의 자아는 성장한 모습이지만,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은 나의 삶 의 차가운 윗목이 된다. 어린이에 게 빈집은 공포의 대상이다. 어린이가 그리는 불행한 혼자이다. 행복 한 집은 빈집이 아닌 연기가 지붕 위로 부드럽게 너울거리며 하늘로 올라가는 집일 것이다. 이 시에서 빈집 이라는 닫힌 공간과 유년시절 의 경험은 기형도 시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그의 유년 시절은 그의 시 위험한 家 系 나 위 시에서 드러나듯이 결코 언제나 돌아가고픈 순수의 세계도 인간적 삶도 아니었다. 그의 유년 시절은 가난과 아버지의 쓰러짐, 누이의 죽음으로 귀속된다. 그 러하기에 기형도 시는 비관적이었고, 그로테스크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다. 그의 초기의 시들이 자신의 그러한 비극적 유년 시절을 다루고 있 었다면, 후기의 시들은 현실과 자아 사이의 괴리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의 여러 작품 대학시절, 조치원, 안개 등에서 보여주었듯 그 는 소외되고 현실에서 변두리로 밀려나 방황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 기했다. 또한, 자아의 비애를 다루기도 했다. 밤 세시, 길 밖으로 모두 흘러간다 나는 금지 된다 장마비 빈 빌딩에 퍼붓는다 물 위를 읽을 수 없는 문장들이 지나가고 나는 더 이상 인기척을 내지 않는다 유리창, 푸른 옥수수잎 흘러내린다 평론 279

280 (중략.) 아버지, 비에 묻는다 내 단단한 각오들은 어디로 갔을까? 빈들거리는 검은 유리창, 와이셔츠 흰 빛은 터진다 미친 듯이 소리친다, 빌딩 속은 악몽조차 젖지 못한다 물들은 집을 버렸다! 내 눈 속에 물들이 살지 않는다 [물 속의 사막]-전문 물 속의 사막 에서 시적 자아는 모두 잠든 깊은 밤에 유리창에 투 영된 읽을 수 없는 문장 을 보면서 곤혹스러워 한다. 정체불명의 문장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일방적으로 괴롭힌다. 유리라는 단절의 매개에 의해 내부에 유폐된 나는 이질적인 의미 구 조의 지평 위에 떠오르는 그 문장들을 읽을 수 없는, 물이 없는 공간 이다. 물은 곧 생명을 의미한다. 생명이 없는 공간에 나는 금지된 다.' 우주에 존재하는 풍경은 유리창이라는 상징적 경계이며 그 경계 를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하는 가두어진 자아는 공간에 가두어 놓고 있는 것이다. 존재, 세계, 실재의 전환, 수정, 회복으로 금지된 나는 물들이 살지 않은 단절 5) 에서 탈피하기 위한 자아의 적극적인 모색이 다. 기형도의 시에서 나타나는 한 중요한 양상은 다른 시인들처럼 그 깨진 현실을 조립하려 하거나, 아예 조립을 포기하고 다른 세계를 만들어 가기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두 공간의 경계에서 떨림을 경험하는 데 있다. 6) 3. 비논리적인 텍스트 이튿날이 되어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간유리 같은 밤을 지녔다. (중략.) 5) 김수이, 타자와 만나는 두 가지 방식-기형도, 남진우외 시에 관하여, 계간 문학동네, ) 이명원,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 도서출판 새웅, P SDU 디지털 문학

281 하루 종일 나는 문지방 위에 앉아서 지붕 위에서 가파른 예각으로 울고 있는 유지 소리를 구깃구깃 삼켜넣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너는 아버지가 끊어뜨린 한 가닥 실정맥이야. (중략.) 아으, 칼국수처럼 풀어지는 어둠! 암흑 속에서 하얗게 드러나는 집, 이 불끈거리는 예감은 무엇일까, 나는 헝겊 같은 배를 접으며 이 악물고 언덕에 썼다. (중략.) 이제야 나는 어디에서 네가 불어오는지 알 것 같으다. 다음날이 되어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폭풍의 밤마다 오르는 일을 그만 두었다. 무수한 변증의 비명을 지르는 풀잎을 사납게 베어 넘어뜨리며 이제는 내가 떠날 차례였다. [폭풍의 언덕]-전문 이 시의 특색은 가난했던 삶과 가족이야기가 담겨있는 서술시라고 분류하고 싶다. 시 자체에는 이야기가 없겠지만 시 배경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야말로 폭풍이 몰아치는 언덕을 넘나드는 위험하고 무서운 공 간에 가족들이 기거한다.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가 부재한 가족의 삶은 궁핍과 가난에 찌들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암흑 속에서 하얗게 드 러나는 골동품이다. 무능한 아버지를 증오하고 미워하는 불만 속에서 누이의 무게, 어머니의 무게를 알게 되었다. 이 시의 특징은 산문적인 시이며 아버지를 배경으로 깔고 있지만 적절한 비유를 끌어들여 상징 적인 이미지화, 형상화를 시도하여 시의 멋과 맛이 달콤하다. 구부 러진 핀처럼 웃으며 누이는 긴 팽이 모자를 쓰고 언덕을 넘어갔다, 평론 281

282 유지 소리를 구깃구깃 삼켜넣었다.' 나는 헝겊 같은 배를 접으며 이 악물고 언덕에 섰다. 굶주림과 가난, 그리고 불안 공포가 눈앞에 생생하다. 가족사를 통해서 시적화자 자신이 성장하는 과정을 서술적 으로 잘 묘사해 주고 있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적절한 비유를 사 용하여 애매성을 증폭시켰다. 또한, 이 시는 함축적인 이미지를 통해 서 시적 긴장감을 증폭시켜 아름다운 시로 만들었으며 삶에 대한 정 의를 밖으로부터 안으로 승화시켰다. 모든 시라는 특징이 그러하듯이 기형도 작품도 비논리적인 텍스트가 애매모호하고 다양한 의미를 강 하게 작용시키고 있다. Ⅲ. 맺음말 한국문학사를 살펴보면 시대에 따라 시류를 이룬 것도 사실이다. 앞 으로 시류가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해서도 현재는 명확한 답이 없다. 기형도가 활동한 1980년대는 우리나라의 독재와 민주주의의 억압이 폭력성을 더해가는 시대였고, 자본주의의 가속화로 사회 전반에 걸쳐 갈등이 표출된 시기였다. 빈민 계층의 소외를 대변하는 민중시가 각광 을 받았었는데 기형도는 그 범주에서 머무르지 않고 자기만의 시세계 를 펼쳐나갔다. 70, 80년대 민중시는 한계가 있었다. 기형도는 그의 시세계에서 사회의 각종 부조리를 사랑과 희망의 상실, 죽음의 예감, 떠돎 등으로 노래하며 자신의 독특한 시세계를 펼쳤다. 그의 작품은 주로 유년기에 경험했던 일들에 대한 우울한 기억이나 회상, 그리고 현대의 도시인들의 살아가는 생활을 독창적이면서도 강 한 개성이 묻어나오는 시어와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그의 시에는 죽 음과 절망, 불안과 허무 그리고 불행의 이미지가 환상적이고 일면 초 현실적이며 공격적인 시인 특유의 개성적 문체와 결합하여 '그로테스 크 리얼리즘'이라 평가받는 독특한 느낌의 시를 이루어내고 있다. 동 일 이미지의 반복이 중첩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든지 돌연한 이미지와 갑작스런 이질적 문장의 삽입, 도치, 콤마에 의한 분리, 감정의 고조 등 시어 구성과 문체가 일관되게 지속된 그의 암울한 세계관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형상화 시키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유년 시절 불우한 가족사와 경제적 궁핍, 그리고 죽음에 대한 체험과 이에 282 SDU 디지털 문학

283 대한 강렬한 심미적 각인이 시 전체에 가득한 삶에 대한 부정적 영상 을 이끈 원인이자 그의 시적 모티브를 유발하고 있는 동인이며 시인 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닫고 비관적 세계로 침잠케 한 주된 이유로 이해되고 있다. 그의 시세계는 현실에 대한 역사, 즉 역사적 전망이 없으므로 그의 시는 퇴폐적이라 말할 수 있다는 비판이 있으나 초현실적 이미지를 추구하면서도 일상의 현실을 비판한 독특한 시세계는 주목할 만하다 하겠다. 하지만, 시류에 따라 그의 시세계를 연구하는 많은 평자는 어 떤 모색을 세상에 내놓을지 흥미롭다.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시는 그의 존재를 대변하고 있다. 그렇게 죽음에 다가간 그는 지금도 시를 쓰고 있을까. 검은 존재론의 화신, 그의 시 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내려지기를 기원해 본다. < 참고 문헌 >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입 시집 서울. 문학과 지성사, 기형도 기형도 전집 문학과 지성사 이선영 문학비평의 방법과 실제 서울. 삼지원, 2005 개정판. 이명원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 서울. 새움, 김수이 타자와 만나는 두 가지 방식-기형도, 남진우의 시에 관하여,문학동네, 성석재 기형도, 삶의 공간과 추억에 대한 경멸, 사랑을 읽고 나는 쓰네, 솔, 김 현 입속에 검은 잎,문학과 지성사, 박철화 집 없는 자의 길찾기, 혹은 죽음, 문학과 지성사, 1989년 가을. 우대식 죽은 시인들의 사회, 새움, 이부영 그림자 파주. 한길사, 2004 평론 283

284 평론 <구렁덩덩 신선비>를 통해서 본 정신분석적인 시각 문현영 I. 8개의 유화를 통하여 본 <구렁덩덩 신선비>의 구성 <구렁덩덩 신선비> 설화는 전형적인 옛이야기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데 놀랍게도 정신분석과 심리학적인 요소들이 모두 들어있다는 것이 다. 브루노 베텔하임의 <옛이야기의 분석 1,2>를 참고로 하여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았다. 우선 여러 개의 유화 7) 를 분석해본 결과 다음과 같은 10가지의 공통된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첫 번째, 혼자 사는 할머니가 구렁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한 다. 할아버지 혹은 아버지에 대한 언급은 어느 유화에서도 언급이 없 었다. 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나타낸다. 자 세한 내용은 다음에 하기로 한다. 두 번째, 사람이 구렁이를 낳았다는 것은 동물신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개구리 왕자>에서 성과 무의식 속에 개구리 또는 두꺼비가 환기시키는 끈적끈적하고 축축한 느낌과 성적 기관에서 느껴지는 촉감을 유사하다고 연관 짓는다. 8) 라는 베텔 7) 최운식의<한국의 민담>, 박종익의 <한국구전설화집>,임동권의 <한국의 민담>에서 8종류의 유화 참고. 8) 브루노 베텔하임 <옛이야기의 매력2> p.462~ SDU 디지털 문학

285 하임의 분석처럼 구렁이 또는 뱀의 상징 역시 남근상징이며, 남성적 창조력, 모든 여성들의 남편 이며, 뱀의 모습은 보편적으로 수정, 수태와 연관성을 띤다. 9)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세 번째, 이웃집 셋째 딸과 결혼한다. 이는 서양이나 동양이나 거의 비슷하게 셋째 또 는 막내가 주인공이 되는 것과 유사하다. 이 설화에서는 유독 3이라 는 숫자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 네 번째, 구렁이신랑이 허물을 벗고 사람이 된다. 동물의 형태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옛이야기마다 다양하 다. 옛이야기에서는 주로 여주인공의 사랑 이라는 여러 가지 장치 를 통해서 멋진 남자 로 변신한다. 10) <구렁덩덩 신선비>에서도 셋 째 딸과 결혼함으로서 허물을 벗게 된다. 다섯 번째, 아내에게 허물을 잘 보관하라고 약속을 받아낸 후 과거를 보러 떠난다. 그러나 두 언니 의 심술로 인하여 약속을 어긴다. 두 언니들이 허물을 태워버리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옛이야기를 보면 두 명의 언니 또는 형 이 많이 등장한다. 베텔하임의 분석에 따르면 이는 자신의 또 다른 모 습이라고 하였다. 즉, 자신의 호기심에 대한 충동을 두 언니라는 장치 를 끌어와 해결한 것으로 보인다. 여섯 번째, 남편은 허물태운 냄새를 맡고 지하세계로 떠난다. 유화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된 부분은 아래세계로 떠나는 것으로 되어있다. 대부분 강이나 용궁 등으로 표현 되어졌다. 일곱 번째, 아내는 남편을 찾아 역경을 헤쳐 나간다. 남편 을 찾기까지 3가지의 과제를 해결한다. 까치, 까마귀, 흰 빨래는 검게 해주고 검은 빨래는 희게 해달라는 아줌마의 도움으로 지하세계로 내 려간다. 남편을 찾아내는 과정에서도 역시 대부분의 옛이야기가 그렇 듯이 3이라는 숫자가 어김없이 나타난다. 이는 초자아를 찾아 떠나는 과정으로 보인다. 여덟 번째, 남편을 찾았으나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 해서 살고 있다. 이는 두 언니와 비슷한 장치로 보인다. 아홉 번째, 남편은 내기를 낸다. 이긴 사람과 살겠다고. 유화마다 다르지만 여기 에서도 역시 3이라는 숫자가 나타난다. 어려운 과정을 반복해서 겪을 수록 주인공의 초자아는 높아져간다. 열 번째, 본 부인은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드디어 사랑하는 남편을 되찾아 행복하게 산다. 모든 옛이야 기의 구조가 그렇듯이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구렁덩덩 신선 9) 진 쿠퍼/이윤기 옮김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p ) 브루노 베텔하임 <옛이야기의 매력2> p.454~455 평론 285

286 비>의 설화는 행복한 결말이 난다. 이렇게 내용을 나름대로 간추려 정리한 <구렁덩덩 신선비>의 10가지 로 내용을 요약해보았다. 처음 브루노 베텔하임의 <옛이야기의 매력> 을 읽으면서 어린아이들이 읽는 아름답고 예쁜 이야기들을 정신분 석 이란 이상한 장치로 왜곡시키는 것에 대하여 많은 혼돈을 느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옛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 게 되었다. 그것은 나도 모르게 성 이라는 것에 많이 억압 되어있 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스스로 무의식을 찾아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특히 <개구리 왕자>에서 나타난 베텔하임의 분석 중 <사람이 아직 성에 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성 이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며 시간이 지나면 바람직한 느낌 으로 바뀐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11) 라는 내용에 깊은 공감을 느낀 다. <성>에 대한 교육이 요즘은 잘 되어있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대단히 열악하였다. 간단한 예를 들면 그와 같은 사실에 더욱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살았던 시절의 성교육은 있지도 않았을 뿐 아니 라 여선생님이 중학생이 된 여학생들에게 <생리>에 대한 교육을 해 줄 때도 무슨 죄를 지은 양 교실 창문을 모두 닫고 조심스럽게 이야 기를 해주셨다. 그만큼 우리는 어릴 적부터 <성>은 혐오스럽고 나쁜 것이기 때문에 멀리해야 되므로 <성>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없다는 <원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같다. 그 <원죄의식>은 고스란히 <무의 식>속으로 숨어버렸다. II. <구렁덩덩 신선비>의 내용 분석 위의 간추려놓은 10가지의 내용을 기본 토대로 하나하나 분석해보고 자 한다. 혼자 사는 할머니가 구렁이를 낳았다는 이야기에 숨겨져 있는 의미 는 무엇일까. 8편의 유화 중 다른 이야기와는 달리 단 한 곳에서 할 머니가 구렁이를 낳기 전의 행적에 대해 적어놓았는데 내용은 이렇다. 11) 브루노 베텔하임 <옛이야기의 매력 2> p SDU 디지털 문학

287 할머니가 베를 메느란게 어떤 중이 와서나, 동냥 좀 주쇼 하는데 할머니가 속살을 내놓고 베를 메드랴. 중 왈, 아, 광문이 열렸습니다. 그런게, 어제 소 내갔은게 그렇지. 아이 그러문 거무접접허외다 그런게, 삼 멘게 그렇지 그러더랴. 중이 또 에이 붉으접접도 허외다 그런게, 수수푸레민게 그렇지. 그러더랴, 그런게, 지팽이로 팍 찔루구 도망갔어. 지팽이루 찔루구 도망간게, 아 그 다음부터 애가 뱄네... 12) 다른 유화에는 없는 내용이 이 유화에서는 성에 대한 이야기가 적나 라하게 나타난다. 아마도 다른 유화에서는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주기 에 적합하지 않아 의도적으로 이 내용을 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지나오면서 무의식의 내용으로 단순화 13) 된 것이 아니었을까? 나머지 7개의 유화에서는 한 할머니가 아기를 낳았는데 구렁이였다 라는 이야기로 무의식을 억압시키면서 환상의 형태로 남겨둔 것으로 보는데 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연관이 있 다고 본다. 14) <구렁덩덩 신선비> 설화에서는 어머니와 아들은 있지만 아버지는 아예 등장을 하지 않으며 이웃집의 세 자매의 아버지조차도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장으로서의 권력행사도 하지 않은 채 딸이 원 하므로 이웃집의 구렁이한테 시집을 보낸다. 이 민담에서도 아버지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로 비춰진다. 셋째 딸은 이 과정을 통하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해방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아버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이성으로 관심이 옮겨지는 과정 에 해당된다. 더구나 위의 두 언니들은 에구, 징그러워라. 구렁이 네 하고 혼비백산하여 도망갔지만 셋째 딸은 구렁이를 보고 놀라기 는커녕 구렁덩덩 신선비네? 라며 의인화까지 시키며 호감을 보인 다. 유화마다 표현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거의 동일한 표현으로 구렁이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이 설화는 <구렁덩덩 신선비>라는 제목이 제일 많은 듯하다. 셋째 딸의 눈에는 왜 구렁이가 선비로 보였 12) 박종익, <한국 구전설화집> p.334~335 구연자:충남 보령시 김종기(여.79) 13) 노제운 <아동문학과 상상력>2주차1교시 강의내용중 14) 노제운 <아동문학과 상상력>3주차1교시 강의내용중 평론 287

288 을까. 이는 어쩌면 첫째 딸이나 둘째 딸보다 셋째 딸의 초자아가 발달 되어 있기 때문에 언니들이 알아보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했을 것이라 고 본다. 할머니는 구렁이를 낳아 방에서 키우지 않고 굴뚝 15) 아래에 삿갓 16) 으로 덮어놓는데 왜 하필이면 굴뚝아래에 삿갓 으로 덮어놓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설화 내용 중 삿갓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설 명을 해놓은 부분도 있지만 사투리라 무슨 뜻인지 잘 몰라 다른 곳에 서 삿갓을 찾아보니 갈대를 짜개서 엮어 만든 것으로 중앙이 뾰족하 게 위로 솟아 있고 둘레는 6각으로, 속에 미사리를 넣어 머리에 쓰며, 큰 것은 비가 오는 날 이것만으로도 우산을 대신하였다고 한다. 17) 굴 뚝 아래에 놓여있다는 것은 구렁이가 곧 사람이 되어 환골탈퇴 할 것 이란 것과 삿갓으로 덮어놓은 것 역시 권위를 암시하고 있다. 즉 이 아이는 지금 구렁이지만 곧 추한 모습에서 탈피하여 귀한 사람이 되 리라는 것으로 무의식중에 잠재되어 있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또 다 른 의미는 엄마와 아들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젖떼기 또는 분 리불안기 18) 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구렁이는 이웃집 셋째 딸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분리불안기에서 벗어난다. 구렁이 아들은 자신 에게 호감을 보인 셋째 딸에게 장가가고 싶어서 여러 차례 부탁을 하 지만 엄마가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자 셋째 딸한테 장가 안보 내주면 한손에 불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내가 나왔던 곳 으로 다시 들어 간다 라고 협박을 한다. 여기서 구렁이는 젖떼기에 서 실패하자 다시 자기가 나왔던 자궁으로 퇴행을 하겠다는 것이 다. 19) 엄마와 완전히 분리되어진 구렁이는 드디어 이웃집 셋째 딸에 게 장가를 가게 된다. 이렇듯 <구렁덩덩 신선비>에서도 역시 옛 이야 기에서 흔히 나타나는 셋째 딸이 주인공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놀라 게 되는데 주인공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모두 막내 또는 셋째가 주인 공이라는 것이다. <아동문학과 상상력>의 수업을 듣던 초반에는 사실 15) 굴뚝의 상징적인 의미는 하늘로 탈출하는 통로, 태양으로 가는 문이다. 순간에서 영원으로, 공간에서 무한으 로의 탈출을 나타낸다. 진쿠퍼/이윤기 옮김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p.64 16) 삿갓 또는 차양이 있는 모자의 상징적인 의미는 권위, 힘이다. 머리에 쓰는 물건이기 때문에 사고를 내포하 고, 그래서 모자를 바꾸는 것은 태도나 의견의 변화를 의미한다. 진 쿠퍼/이윤기 옮김 <그림으로 보는 세계 문화상징사전> p ) Naver 포털사이트의 지식검색에서 찾음 18) 노제운 <아동문학과 상상력> 5주차2교시 헨젤과 그레텔 참고 19) 노제운 <아동문학과 상상력> 5주차2교시 헨젤과 그레텔 참고 288 SDU 디지털 문학

289 옛이야기의 내용을 너무나 동일시하고 같은 구조로 이끌어내는 것에 심리적인 부담과 압박을 느꼈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갈 즈음, 그리고 과제를 정하려고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민담을 찾아보면서 공통된 구 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셋째가 주인공이 되는 이유는 너무나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써 바로 옛이야기를 읽는 독자인 어린이들과 동일시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20) 결혼을 앞둔 신랑은 물을 데우라고 한다. 물속에서 휘휘 젓고 나오더 니 신랑은 곧 허물을 벗고 인물 좋은 훌륭한 선비가 되어 나타난다. 허물을 벗는 것은 생명과 부활의 상징 21) 을 의미한다. 구렁이는 허물 을 벗으면서 새롭게 탄생한다. 이는 <이드>의 형태에서 <초자아>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신랑은 자신의 허물을 아내에게 주며 아무에게도 보이지 말고 잘 간직하고 그 허물은 절대 타지 않도록 자 신이 돌아올 때까지 잘 보관하라고 한다. 만약 타는 냄새가 날 경우에 는 다시는 아내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며 신신당부를 하며 서울로 과거시험을 보러 떠난다. 그러나 두 언니에 의하여 신랑과의 약속은 깨지고 마는데 이는 이드적인 두 언니의 시샘으로 인하여 막내 동생 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여기에 등장한 동생의 행복을 배 아파하며 불행으로 몰고 가는 두 언니는 주인공의 또 다른 측면으로 보여 지는데 주인공 역시 허물의 의미가 몹시 궁금 했으리라고 본다. 여기에 또 다른 나. 원초적인 모습의 나 자신이 남 편이 신신당부한 일 에 대해 끊임없는 유혹을 받는다. 따라서 두 언니의 모습은 주인공의 또 다른 이드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궁금증을 풀어보려고 했지만 엉뚱한 국면을 맞이한다. 그 결과 남편은 주인공을 떠났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는 주인 공이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주인공은 이웃집 셋째 딸에서 <구렁덩 덩 신선비>의 참다운 아내가 되기 인격통합 22) 을 위한 과정을 겪는다. 주인공은 스스로 집 밖을 떠남으로써 이드에서 벗어나 자아, 초자아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남편을 찾아 떠나는데 여기서도 역시 3이라는 20) 브루노 베텔하임 <옛이야기의 매력 1> p.174 참고 21) 진 쿠퍼/이윤기 옮김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p ) 노제운 <아동문학과 상상력> 8주차1교시 오누이 참고 평론 289

290 숫자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3이라는 숫자에 대한 의미부터 찾아보아야 할 것 같다. <아동문학과 상상력>의 수업 중에서 <전래동 화에서 3이라는 숫자가 자주 등장한다. 3은 완전수를 의미하며 또한 뭔가를 이루어내기 위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숫자> 23) 라는 내용이 있는데 정말 놀랍게도 전래 동화가 약속이라도 한 듯 3이라는 숫자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베텔하임의 <옛이야기의 매력 1>에서는 정신분 석에서 말하는 마음의 세 가지 측면인 본능, 자아, 그리고 초자아를 뜻하며 <세 개의 깃털>이라는 옛이야기에서의 3은 인간 정신의 세 부 분의 분할을 상징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스스로가 무의식과 친근해 질 필요성을 상징함으로써, 무의식의 힘을 인식하고 그 자원을 사용하 는 방법을 배우게된다 24) 라고 하였는데 특히 후자부분이 <구렁덩덩 신선비>와 비슷하게 보여 진다. 그래서 더 확실한 의미를 찾아보고 싶어서 숫자 3에 대한 상징사전 25) 을 찾아보았는데 처음과 중간과 끝 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전체를 의미하는 숫자라고도 하였다. 이러한 뜻을 조합해보면 <구렁덩덩 신선비>에서 주인공이 남편을 찾는 과정 역시 완전한 사랑을 위하여 이드적인 삶을 버리고 초자아를 찾아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그렇게 세 개의 관문을 통과하 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관문은 유화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어지 나 세 번째 관문은 거의 동일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남편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는 사람의 요구는 <빨래를 흰 것은 검게 만들고 검은 빨래는 희게 만들면>가르쳐주겠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유화마다 사람으로, 혹은 아주머니로, 할머니로 나타나서 요구하지만 그 내용은 모두 흰 것을 검게, 검은 것을 희게 해달라는 것으로 동일 하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여기에 어떤 깊은 의미가 있을까. 흰 것과 검은 것은 많은 의미 중에 흰 것은 속죄의 의미 26) 가 있다고 하고 검 23) 노제운 <아동문학과 상상력> 8주차1교시 오누이 참고 24) 브루노 베텔하임 <옛이야기의 매력 1> p ) 진 쿠퍼/이윤기 옮김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p.306 3은 다수, 창조력, 성장, 이원성을 극복한 전 진운동, 표현, 통합을 뜻한다. 3은 모든 이라는 말이 붙을 수 있는 최초의 숫자이며, 처음과 중간과 끝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전체를 나타내는 숫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3의 힘 은 보편적이며, 하늘, 땅, 바 다로 이루어지는 세계의 3중성을 나타낸다. 또한 인간의 육체. 魂. 靈. 탄생. 삶. 죽음, 처음. 중간. 끝, 과거. 현재. 미래, 달의 세 가지 相 인 초승달, 반달, 보름달을 나타낸다. 3은 天 界 의 숫자이며, 4가 육체를 나타내는 데 비해 3은 영혼을 상징한다. 3은 4와 합해져 7이라는 성스러운 숫자가 된다. 또 3과 4를 곱하면 12가 되 는데, 그것은 <황도십이궁>, 일 년 열두 달을 의미한다. 3에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 神 性 > - <아버지>, <어머 니>, <아들> - 이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가족에게도 반영된다. 또한 3에는 중첩효과라는 권위가 있다. 즉 한 번이나 두 번은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지만 세 번이 되면 확실성과 강한 힘을 지닌다. 성취의 상징이기도 하다. p234~ SDU 디지털 문학

291 은 것은 혼돈을 의미하며 불교적으로는 삶을 이어주고 맺어주는 속박 의 의미 27) 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흰 것을 검게 검은 것을 희게 만들 어 달라는 것은 주인공의 속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흰 것을 검게 하고 검은 것을 희게 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수 행하면서 주인공은 무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는 속죄를 해결하는 것이 며 그것은 또한 남편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알아내는 것이다. 이렇게 주인공은 세 개의 관문을 통과하여 남편이 있는 용궁 또는 강 아래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아래의 세계로 내려간다는 것은 낮은 세계로 하강이다. 이는 무의식으로의 탐구로 나서게 된다. 28) 는 의미, 즉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이해하고 그것을 구원하는 의미 29) 를 지 닌다. 주인공은 어렵게 남편을 찾아내었으나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살고 있었다. 민담에서는 첩이라고 표현되어진다. 남편은 주인공에게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본처와 첩에게 내기를 내는데 이기는 사람 과 같이 살겠다고 한다. 여기서 나타난 첩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이 역시 주인공의 또 다른 면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본능적인 자신의 모습이 첩이라는 장치를 통해 보여 지는 것이다. 남편이 두 아내에게 내준 유화에서 나타난 공통적인 내기는 호랑이의 눈썹을 가져오는 것 과 물동이를 흘리지 않고 이고 오는 것이다. 호랑이를 의미하는 것은 불교에서 분노를 의미 30)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호랑이의 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눈썹을 뽑아오라고 하는 것은 남편의 분노가 아직도 남 아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분노의 대상이 왜 아무런 죄를 짓지 않은 26) 진 쿠퍼/이윤기 옮김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p.78 흰옷. 미분화 상태, 초월적인 완전성, 단순함, 빛, 태양, 대기, 계몽, 순수함, 무구, 정결함을 뜻하며, 성성, 성별화된 상태, 속죄, 영적인 권위를 뜻한다. 흰 색의 긴 옷은 순수함, 정결, 육체에 대한 영의 승리를 의미하며, 고대 오리엔트에서는 죽은 자를 애도하기 위 해서 잆었다. 흰 색은 생명과 사랑, 죽음과 매장의 양쪽과 연관된다. 27) 진 쿠퍼/이윤기 옮김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p.75 검은. 슬픔, 비애, 자기비하, 방기, 장중함, 지 조를 나타낸다. 세계가 창조되기 이전의 원초의 암흑,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 < 無 >,악, 죽음의 색은 또한 냉 엄하며, 무정하며 부조리한 <시간>을 의미하며, 혼돈의 색이다. 불교에서는 삶을 이어주고 맺어주는 속박의 어둠이다. 28) 브루노 베텔하임 <옛이야기의 매력 1> p ) 진 쿠퍼/이윤기 옮김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p.100 하강 : 冥 界 로 내려가는 것이나 명계의 보물 을 구하는 것은 신비한 지혜, 재생, 不 死 에 대한 탐구와 같은 뜻이다. 하강은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이해 하고 그것을 구원하는 것이며, 죽음을 극복하는 일이다. 하강은 자궁퇴행이며, 재생과 갱생 이전에 태초의 암 흑으로 내려가는 것, 부활하여 승천하기 전에 지옥으로 내려가는 일이다. 하강은 이니시에이션의 의례로 행 해지는 여행이며, 죽어서 소생하는 모든 신들이 하는 여행이다. 30) 진 쿠퍼/이윤기 옮김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p.362 평론 291

292 첩까지 포함된다는 말인가. 이 내기를 보더라도 첩은 주인공의 미완성 된 자아인 또 다른 모습임을 증명해준다. 즉, 첩은 잠재의식속의 주인 공인 것이다. 물동이이고 달리기 내기에서도 역시 첩과 주인공은 상반 된 모양으로 나타나는데 주인공은 첩과는 달리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나막신을 신고 달리면서 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초자 아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어느 유화에서도 첩이 어찌되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본 부인을 잘 데리고 잘 살았더래유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끝맺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본능적인 주인공 자신을 의미하는 첩과 이전의 역 경을 통하여 침작하고 잘 발달된 이성을 지닌 본부인은 남편이 내준 내기를 통하여 또다시 이드, 자아, 초자아의 과정을 거치면서 드디어 완성된 삶을 이루어낸다. 주인공 즉 여성이 완전한 의식과 인간다움으 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온갖 역경을 겪어야 하며, 상대방에게서 행복을 느끼려면 결코 어렵다고 회피할 일은 아니라고 31) 베텔하임은 말하고 있다. <옛이야기의 매력 1,2>를 읽으면서 서양이나 우리나라나 옛이야기의 구조는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구렁덩덩 신 선비>와 비슷한 이야기는 <옛이야기의 매력 1,2>의 내용 중 31장 <동 물신랑이야기>에 많이 실려 있는데 놀랍게도 너무나 유사하다는 것이 다. 대부분 세자매가 등장하는 모티프와 그리고 두 언니로 인해 겪는 고초의 내용 역시 매우 비슷하게 등장한다. 내용만 다를 뿐 이를 극복 해나가는 과정까지도 닮아있다. 아무튼 서양의 다른 이야기와 마찬가 지로 <구렁덩덩 신선비>도 행복한 결말을 맺음으로써 옛이야기의 전 형적인 모티프를 가지고 있다. <참고서적> 옛이야기의 매력 1,2 -브루노 베텔하임 한국의 민담 - 최운식 편저 한국구전설화집 13 충남편 I - 박종익 한국의 민담 - 임동권 엮음 그림으로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진쿠퍼/이윤기옮김 <그외 참고> 아동문학과 상상력 - 강의내용 31) 브루노 베텔하임 <옛이야기의 매력 1> p SDU 디지털 문학

293 평론 <근대문학의 종언> 평론에 대한 나만의 주장 문현영 근대문학의 종언 의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이제 막 문학공부를 시도하려는 문학도들에게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란 말인가 라는 심 정이 먼저 일어났다. 문학이 매우 커다란 의미를 가졌던 시대 는 지 금 문학을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변함없는 사실이다. 가라타니 고 진이 말하는 근대문학이란 소설 이 떠올려지고 소설 이 중요하 게 여겨진다고 하였다는 그 자체가 무척 편협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뜻은 말 그대로 근대문학 32) 이 종언되었다는 것이지 모든 문학 즉, 현대문학까지 종언되었다는 말이 아니라고 본다. 가라타니 고진이 말 하기 전에 이미 전통적 소설형식에서 벗어나 소설작법의 새로운 통로 32) 인터넷 검색 : 근대정신의 형성과 함께 발달한 문학. 15세기 르네상스 이후의 문학을 기원으로 보는데, 신 ( 神 )과 운명이 주제가 되던 중세기의 문학에 대하여 현실과 사회와 인간문제를 포착하여 사실주의에 의한 인 도적( 人 道 的 ) 내면의 생활을 탐구하고, 자아에 대한 자각을 하려고 하는 문학과 문학사조이다. 이러한 문학은 합리주의 고전주의 로맨티시즘 등을 거쳐 19세기 말엽의 모더니즘 운동으로 결실을 맺는다. 시기적으로는 보통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부터 제1차세계대전 또는 제2차세계대전까지의 시기에 일어난 문학을 가리키며, 고전주의 문학과 현대문학의 중간에 위치한다. 계급 정치 사회 경제의 문제를 문학속으로 끌어들였고, 인 간심리를 분석, 잠재의식을 작품에 표현하였다. 시 소설 희곡 비평 등 각 장르에 걸쳐 큰 성과를 거두었 는데, 소설은 위고 스탕달 C. 디킨스 E. 졸라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활약으로 특히 발달하였다. 한국의 경우에는 최남선( 崔 南 善 ) 이광수( 李 光 洙 ) 주요한( 朱 耀 翰 ) 등이 근대문학의 후기적 도입 작가들이며 현대문학과의 교량역할을 담당하였다. 평론 293

294 를 추구했던 앙티로망이 있었다. 그런데 고진은 에크리튀르라는 개념 을 끌어와서 앙티로망마저 근대문학으로서 소설이 끝났다고 하며, 새 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착오라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그는 문학을 더 넓은 시각으로 봐야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자신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자체를 잘 알기 때문에 <모든 문학의 종언>이 아닌 <근대문학의 종언>으로 한정지었는지도 모르겠다. 고진 은 근대문학이 1980년대에 끝났다고 보는데 1980대 이후에도 훌륭한 소설은 많이 등장했다. 왜 고진은 문학을 첨단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했을까. 그 첨단적이 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가 말하는 첨단적이란 문학의 지위나 영향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학의 범위는 넓다. 그런데 왜 문 학을 첨단적인 것으로 한정지어 보는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고진은 첨단적이어야 할 문학이 그 지위나 영향력이 낮아졌다고 주장 하는데 이것 또한 수용할 수 없는 주장이다. 문학에 지위 또는 영향력 을 부여한다는 자체가 모순이라고 본다. 물론 작가들의 사상이나 주관 이 작품 속에 응집되어 표출되기는 하지만 그것이 지위나 영향력을 결 정지을 수는 없다. 그럼 고진은 마이너리티 문학으로 되어가기 때문에 문학의 지위나 영향력이 낮아졌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아니면 창작 과 의 증가로 인하여 작가가 너무나 많이 배출됨으로써 그 지위나 영 향력이 낮아졌다는 이야기인가? 굳이 아메리카의 기준을 내세울 이유 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문학의 기준이 선진국이어야 하는가? 이것도 문 화사대주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대중문화 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TV의 확대보급과 영화의 발전이 지대 한 역할을 하였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문학부가 사라져간다는 것은 고 진의 지나친 염려라고 본다. 그러한 고진의 주관적인 주장은 마치 이 지구의 생물체는 이미 모두 죽었다. 라고 떠들어대는 것과 같이 우습 게 느껴진다. 그는 더 나아가 한국의 문학까지 끝이 났다고 떠들어댄 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고진은 정치운동이나 노동운동이 가능하게 되면, 학생운동은 쇠퇴하 기 마련이다...중략...한국에서의 문학은 학생운동과 같은 위치에 있었 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고진이 문학을 얼마나 편협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를 증명할 수 있는 글이라고 본다. 문학은 문학일 뿐이다. 문학은 학생운동을 통하여 그들의 의식을 표출해내는 것뿐이다. 문학 294 SDU 디지털 문학

295 은 한 시대를 반영한다. 학생운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사람들 은 왜 학생운동을 하는지 모른다. 학생들조차도 왜 같이 공부하고 같 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굳이 어려운 길을 가야하는지 이유를 모른 다. 그러므로 모든 학생들이 학생운동을 하지 않는다. 학생운동의 의 의가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 왜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과 연 몇%가 될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정치운동, 노동운동 역시 마찬 가지이다. 문학은 그래서 더 존재해야하며 오래도록 지속되어야 한다. 그것들과 문학은 별개이면서 동일하기 때문이다. 문학은 간접적으로 그들이 시사하는 바를 그러한 사실을 몰랐던 많은 독자에게 알려준다. 고진은 자신의 의견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하여 우리나라 작가 <김종 철>이라는 고명한 비평가를 끌어온다. 그가 문학을 그만두었다는 이유 로. 나는 <김종철>이라는 작가가 고명한 비평가인지는 알지 못한다. 물론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볼 수는 있지만 고진의 글을 읽어보면 굳 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가 소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문 학이 정치적 문제에서 개인적인 문제까지 온갖 것을 떠맡는다. 는 사실 땜에 문학을 떠나다니 말이 되는가. 문학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문학거리가 산재해 있는가. 이것은 문학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되지 않을까?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순조차도 떠맡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학의 매력이 더해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작가들은 고뇌를 통하여 빛나는 작품을 생산해낸다. 그런데 <김종철> 은 문학이 그렇게 협소한 범위로 한정되었기 때문에 그만두었다고 한 다. 문학이 협소한 범위로 한정되었다고 보는 것은 그렇게 보는 시각 때문이다. 다른 각도로 본다면 또 얼마나 무궁무진한 범위인가. 책을 읽어갈수록 고진의 억지 주장은 계속된다. 그가 만났던 1990년 대의 한국 문예비평가 모두가 문학에서 손을 떼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만난 문예 비평가는 과연 몇 명이나 되었을까. 모두 문학에서 손 을 떼었다면 지금 존재하는 수많은 비평가들은 무뇌아들이란 말인가? 일제히 그만둬버렸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발언인가. 어디에서 근거 한 내용인가. 그가 우리 문학계를 그렇게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는 말 인가. 물론 나는 문학계에 대하여 아직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 문 학계에 어떤 비리나 사건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산재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론 295

296 문학의 종언을 할 것이면 자기만 할 것이지 왜 우리 문학계까지 들먹 이는지 그 심중을 헤아릴 수 없다. 고진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들을 억 지로 우리에게까지 고착시키려한다. 한국에서 그와 같은 사태가 이렇게 빨리 진전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문 학의 종언은 사실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 문학계를 자기의 의견에 동참시키기 위하여 물귀신처럼 끌고 들 어가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마침내 라니 우리나라 문학계 를 자기랑 억지로 동참시켜놓고서는 그래서 마침내 라고 한다. 언 제부터 우리나라의 의견을 그렇게 존중해주었는지, 이 대목에서 어지 간히 자신이 없었던 발언임에는 분명하다고 보여 진다. 차라리 자신의 주장을 더 확고하게 사실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개진시켜나가는 것이 더 나을 뻔 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위하여 계속적으로 <사르트르> 를 인용한다. 그것 역시 고진에게는 현학적( 衒 學 的 )으로 보인다. 그는 끊임없이 근대문학, 소설이 그 역할을 완전히 다했다고 떠들어댄다. 고진은 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하여 지나치도록 심각하게 보고 있 다. 물론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예외일 수 있다. 고진말대로 문학과 정 치는 절대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산당의 권위가 없어진다 면 그 문제 역시 사라져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런데 고진은 그 과제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된다면 문학은 그저 오락이 된다고 하였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보다는 자신의 주장만 계 속되고 있다. 그는 끝내 다음과 같이 무책임한 발언을 한다. 그래도 좋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입니다. 자,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 뜻은 왠지 비꼬는 듯 들린다. 그리고 문학에서 윤리적인 것, 정치적인 것을 무리하게 구할 필요가 없다면 어디에서 구할 것인지 문학보다 더 큰 것은 무엇인가 궁금하다. 그는 확실한 해답을 피해가면서 자신 의 주장으로 근대문학을 만든 소설이라는 형식은 역사적인 것이라서 그 역할을 완전히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역사적이어서 그 역할을 다했다는 것은 근대소설이 역사적이어서 종언이 되었다는 뜻일까? 고진이 확실한 문화사대주의자라고 느끼는 것은, 서양의 언어체계와 일본의 언어체계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짙게 보인다. 지속적으로 서 양의 언어, 문학작품을 일본과 비교해가면서 공통점을 찾아내려고 애 쓰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33) 책의 내용 곳곳에서 자국의 우월 성을 은근히 내비치는 글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296 SDU 디지털 문학

297 고진은 일본작가들과 작품의 예를 들지만 그것들은 모두 근대문학 이전의 작품들이다. 그러한 예를 통하여 근대문학은 묵독에 의해 성 립되며, 리얼리즘적이고 낭만적 이라고 하였다. 근대소설이 음성이나 삽화에서 독립한 이유는 시청각적 미디어의 출현이라고 한다. 그러나 소설과 미디어는 엄연히 구분되어진다. 소설을 음성으로 듣는 다는 것 은 옛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고, 소설 속에 삽화를 넣었다는 것은 아직 소설이 독자들에게 개념화되지 않았을 때, 책이 활자로만 이루어졌다면 얼마나 심리적인 부담을 느낄 것이며, 책을 펴 기도 전에 덮어버릴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그리고 글을 아는 사람 들도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단 독자를 끌어들이 기 위해선 당연히 보기에도 좋고, 쉬워 보이는 삽화를 넣을 수밖에 없 었을 것이다. 글의 뜻은 모를지라도 그림으로 보면 훨씬 이해하기 수 월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책은 이제 독자들에게 친숙해졌다. 따라서 굳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삽화를 넣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것이 근대문학이라면 근대문학은 즉 고진이 말하는 근대소 설은 그제야 성숙기를 맞이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고진은 소설과 영화를 같은 범주에 넣어 보려고 한다. 그 장르의 차이가 얼마나 큰 가. 영화 같은 소설을 쓰고자 할 뿐이지 영화의 기술이 출현해졌다고 그 의미가 무의미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가 등장했다고 영화 같 은 소설을 쓰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 사람들에게는 상상력이라는 것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는 책과 연관된 영상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독자만이 느낄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고 무엇이든 가 능하게 할 수 있는 아주 즐거운 일인지 고진이 몰랐던 것은 아닐 것 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듯이 내가 읽은 책이 영화화되면 실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의 차이 때 문이다. 감독 역시 자신이 느낀 입장에서 영화는 만들어진다. <감독> 이라고 분류되지만 어찌되었든 그도 역시 인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의 등장으로 소설쓰기가 두려워졌다는 것은 하나의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고진은 소설과 영화의 차이를 사진의 출현으로 인한 화가들의 충격에 대한 이야기와 비교한다. 그러나 사진이 등장했다고 33)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 p.54~55, p.62뒤라스와 나카가미의 관계, p.64 아래에서 셋째 줄, p.66 아래에서 두 번째 줄부터 p.67첫 줄까지, p.72 전반적으로 p.84 중간부분. 일본의 정조개념을 프랑스의 백 작.공작부인과 비교하면서 합리화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아랫부분에서는 언어의 비교를 통하여 공통점 을 찾으려고 한다. 평론 297

298 미술계의 종언이 시작되었는가? 아니다. 고진 역시 사진이 등장한 이 후 현대회화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메이지 일본인들은 인상 파 이전 서양회화를 규범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하면서 소설 역시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어찌되었든 고진은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그가 우려 하는 것은 영화, TV, 비디오, 컴퓨터에 의한 영상이나 음성의 디지털 화라는 것이다. 따라서 활자문화 또는 소설의 우위가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친다. 그는 일본의 경우 만화가 널리 읽히는 것 은 바로 미술에서 말하는 서양회화로의 회귀와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 했다. 사람들은 머리로 읽는 것보다 눈으로 즐기는 것을 더 좋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진은 그 자체를 너무 고민하고 미리 걱정하는 것 은 아닐까? 그렇게 문학이 종언되었다고 말하기 보다는 미래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일이 더욱 시급하다고 본다. 고진이야말로 문학의 가치 를 한없이 떨어뜨리는 발언을 하고 있다. 현재 개발도상국에서 소설 이 씌어지고, 그것을 읽는 독자가 증가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습니 다. 설사 독자가 있다고 해도 그들은 해리포터 를 읽겠지요. 이 말은 그야말로 근대뿐 아니라 현대문학의 종언까지 한 셈이다. 순수종 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아일랜드인들이 케이블TV가 들여오자, 하룻밤에 모두가 아메리카화 되어버렸다는 예는 너무나 극단적이라고 보여 진다. 물론 그만큼 TV의 영향력은 크지만 그것을 활자문화가 아닌 시청각 쪽으로 몰고 간다면 현실 도피적인 사고방식이 아닐까? 할리우드 영화 역시 그의 주장대로 정치적인 색깔이 짙다. 우리에게 도 35여 년 전에는 TV의 <토요명화>라는 프로를 통하여 가슴 두근거 리며 영화할 시간을 기다렸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많이 방영되었던 것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영화, 서부극이었다. 그 영화를 통하여 인디언 은 나쁜 놈들이고 미국인 들은 정의를 위해 싸우는 멋진 사람들인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세뇌 당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의 할리우드영화가 국제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크다. 그만큼 정치 적인 목적의 효과를 확실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영화 또는 TV, 더 나 아가 인터넷을 소설이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들은 이미 그 영화 자체에서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고 있다. 옛날처럼 무 조건 세뇌되거나 무의식적으로 압도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정 치적인 면으로 문학이 변질될까하는 우려를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인터넷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파급효과가 얼마나 큰지 그가 아직 298 SDU 디지털 문학

299 모를 리 없다고 본다. 얼마 전 우리나라 영화 중 장진영이 주인공이었 던 <청연>은 친일영화라는 이미지로 인하여 잘 만든 영화임에도 불구 하고 네티즌들의 거센 반발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영화는 관객동원에 실패하였다. 문명을 잘 이용하면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갈 수도 있다. 인터넷이 바로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 넷을 통한 소설도 어느 정도 보급 되었다. PMP라는 멀티미디어 기기 를 통하여 전철이나 버스에서도 볼 수 있는 전자소설도 있다. 어떻게 독자에게 다가갈 것인가 노력만 하면 방법은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 다. 물질문명의 발달은 많은 것을 잃으면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때론 적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인간은 역경이 많을수록 더욱 지혜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어찌되었든 고진은 근대문학이 불가결, 불가피하지만은 않다고 한다. 다만 근대문 학이 종언되었을 뿐이다. 고진은 미래의 문학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문학은 계속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인도의 아룬다티 로이가 영국의 부커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설 을 계속 쓰지 않고 댐건설 반대운동, 반전운동 등으로 분주한 이유를 고진은 문학이 책임지고 있던 사회적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렇 다고 모든 작가가 로이처럼 하지 않는다. 또 로이가 모든 작가들의 대 표가 아니다. 그녀가 그랬다는 이유로 문학의 사회적 역할이 끝난 것 은 아니다. 그녀는 방법을 달리했을 뿐이다. 그녀의 작품이 베스트셀 러가 되었다면 그 다음 작품도 베스트셀러가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 에 댐건설에 대한 반대적 의견을 소설화하여 썼다면 더 많은 지지자 들을 이끌어낼 수도 있었다. 그렇게 행동한 것은 그녀의 성격이고 가 치관 때문이지 절대 문학의 사회적 역할이 끝났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본다. 그녀가 위기의 시대에 무사태평하게 소설 따위 라고 표현했다면 이미 그녀는 소설가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상실했다. 소설 쓰는 일이 무사태평해서 이루어질 일인가? 소설가들이 이 내용을 알 았다면 집단반발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의 발언이다. 그 렇듯 그녀가 되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을 고진처럼 자신의 의 견에 동조한 것이라고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도 문학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고립을 각오하고 해나가고 있는 소수의 작가였으면 좋 겠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그런 사람들을 격려해왔고 이후로도 그럴지 평론 299

300 모른다는 애매모호한 뜻을 비친다. 그리고 문학이 건재하고 있다고 말 하는 오늘날의 사람은 고립을 각오하고 해나가는 소수의 작가 아니라 문학이 죽었다는 것의 명백한 증거에 불과한 무리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는 역설을 한다. 이러한 역설은 고진이 자신의 주장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라고 본다. 그가 말 한 대로 우리나라에도 역시 신문에 커 다란 광고가 실리지만 책의 판매량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34) 또한 서점에 와서 직접 사가는 독자보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독자가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문학의 위기 시대가 맞기는 하지만 그것으로써 문학이 종언 될 정도라고 보지는 않는다. 한 시대가 변해가는 과정일 뿐이다. 고진이 현실을 제대로 비판한 대목은 소설이 팔릴 때는 문학 과는 상관없는 화제에 의한 것 이다. 영화 예고편과도 같은 것이다. 영화를 선전하기 위하여 주인공의 사생활 공개라든가, 염문설 등등 흥 행에 도움이 될 만 것은 영화방영되기 전에 미리 터트리는 것은 요즘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문학과 상관없는 화제라는 상술로 책을 판 다는 것은 그만큼 문학이 변질되었다는 뜻도 될 수 있지만 문학의 종언 이라고 떠들어대는 세상에서 그렇게라도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분명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본다. 고진은 현대 문학계를 계속 꼬집듯이 표현하고 있다. 열심히 잘 써서 세계적인 상품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문학작품을 상품 으로 비하하고 있다. 그리고 통속소설을 쓰는 작가가 잘난 척을 해서 는 안 된다고 일침을 가하고 있다. 이 역시 모든 문학계를 비하하고 있다는 뜻으로 보여 진다. 고진은 여기까지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가 주장하고 싶은 내용은 이 제까지의 내용으로 충분하였다는 뜻이라고 본다. 근대라는 개념은 매우 불명료한 개념이며 근대비판이나 포스트모 던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더욱 불명료해질 뿐이다. 이런 문제는 세계자 본주의의 전개 속에서 사고해한다고 한다. 라고 고진은 피력하면서 시대구분을 도표로 만들어 제시하고 있다. 도표를 보면 주요예술 항목에서 시대별(60년 주기)로 분류해놓았는데 이것은 문화가 변화되 면서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그 외 세계자본주 의 의 단계과정을 제국주의 적인 관점으로 보며, 자본 에 대하여 34) 교보문고에서 근무하는 친구의 말을 인용. 300 SDU 디지털 문학

301 서술하고 있다. 또한 사회심리 에서는 리스먼 의 학설을 인용하 여 전통지향형, 내부지향형, 타인지향형으로 분류하면서 세계적 자본 주의 경제가 종전의 전통지향과 내부지향을 송두리째 일소하고, 세계 적으로 타인지향 을 가져온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것으로 근대와 근대문학이 끝났다고 한다. 시대적으로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그러나 당연한 결과를 이렇게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진의 세계자본주의의 제단계 에 대한 설명은 에토 스 라는 항목으로 넘어 간다. 세속적 금욕 은 욕망실현의 지연이 고 이것은 중요하다고 한다. 또한 일본의 많은 작가가 기독교를 경유 하고 있으나 그 이전부터 근면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가져오게 하였는 데 그것이 입신출세주의라고 한다. 그는 입신출세주의에 대한 분석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우리나라 환경과 비슷한 부분이 많은 면에서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가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 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근대문학은 입신출세주의가 잘 되지 않을 때, 헛되다고 여겨질 때 나온다고 한다. 이 뜻은 어렵고 힘든 환경에 서 인간은 더 근본적인 것에 매달린 다는 것이 아닐까? 고진은 입신 출세코스로부터 탈락하고 배제됨으로 생겨나는 근대문학에는 내면성, 르상티망이 없으며, 나쁘지 않은 경향이라고 말하면서도 문학 따 위 는 하지 않아도 좋다고 한다. 다만 현실에서 좀 더 다른 삶의 방 식을 만들어주길 바란다는 경고성의 글을 남기고 있다. 이 글에서 고 진과 같은 고명한 학자에 대해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뜻을 너무 모호하게 표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어느 작가 가 유행시킨 <아님 말고>처럼 말이다. 고진은 세속적 금욕 이 뜻하 는 것은 성애라고 하는데 일본의 대중소설을 통하여 일본의 성문 화 에 대한 설명이 계속된다. 이런 경향이 짙은 일본의 대중소설이기 때문에 고진은 종언 까지 고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책들을 삼류저질 소설로 분류하지 않을까? 결 코 문학이라고 할 수 없는 대중소설이라고 본다. 일본의 성문화는 상 당히 개방적이라고 알고 있었다. 일부이긴 하겠지만 이 책을 보면서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예를 들어 섹스를 금전적으로 보는 관점, 즉 자신을 상품으로 보는 의식이 있었다. 라는 것은 바로 현실 그 자체 라는 말이 아닌가. 그냥 하도록 하는 것은 왠지 아깝다 그렇기 때문 에 유곽에서 일하는 것도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은 문란한 성문 평론 301

302 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런 문제들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프랑스 궁정을 무대로 한 심리소설에서도 백작부인이나 공작부인들 중에는 고급 창부 출신들이 적지 않다고 하면서 유럽의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라는 공통분모를 찾아내려고 애쓰고 있다. 이 부 분에서 왠지 고진은 참으로 어린애 같은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일본 대중소설을 이야기하다가 프랑스를 끄집어내 어 <고급 창부>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 일본어 <이키>와 프랑스어 <쉬크>를 대응시킨다. 일본의 성문화를 대중소설을 통하여 이야기 하 고 있지만 그것은 어쩌면 일본의 현실을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진은 그러한 현실을 비껴가기 위함 때문인지, 혹은 부끄러움을 느꼈 기 때문인지 <일본만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변명 같은 글 을 읽으면서 일본남자들이 매우 보수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고진은 계 속해서 일본의 대중소설인 <금색야차>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 내용 (성의가치)을 현실의 모든 여성들에게 동일시시키려고 한다. 역사의 반복은 현실적 근거이지만 문학에 대해서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하면 서 끝을 낸다. 이상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 내용이 그다지 유쾌 하지 않았으나, 문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부여한 것만은 사실이라고 본다. 왜 고진이 끝까지 문학을 부정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개념은 없어 보인다.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이야기하고 있지만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본다. 아니면 잘못 이해하면서 읽었을 수도 있다. 독자로서 느끼기에는 지나치게 걱정을 많이 하는 노인같이 보였다면 가라타니 고진이 화를 낼까? 문학뿐만 아니라 어떤 예술이든 끝은 없 다고 본다. 다만 변화해가는 것뿐이다. 앞으로 문학이 어떻게 변화되어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아있다고 본다. 그러기위해서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참고서적> 도서출판 b, 가라타니 고진/ 조영일 옮김 근대문학의 종언 문학동네, 조셉 칠더즈. 게리 헨치 엮음 황종연 옮김 현대문학.문화비평 용어사전 302 SDU 디지털 문학

303 SDU 디지털 문학 창간호 2007 발 행 인 편 집 장 편집위원 오봉옥 류제희 정혜련, 박 경, 구현미, 정명자. 문현영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부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TEL. (02) 인쇄 2007년 2월 발행 2007년 2월 편집 삼호인쇄 주소 서울 서초 양재 전화

304

Ⅰ. 머리말 각종 기록에 따르면 백제의 초기 도읍은 위례성( 慰 禮 城 )이다. 위례성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등 많은 책에 실려 있는데, 대부분 조선시대에 편 찬된 것이다. 가장 오래된 사서인 삼국사기 도 백제가 멸망한지

Ⅰ. 머리말 각종 기록에 따르면 백제의 초기 도읍은 위례성( 慰 禮 城 )이다. 위례성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등 많은 책에 실려 있는데, 대부분 조선시대에 편 찬된 것이다. 가장 오래된 사서인 삼국사기 도 백제가 멸망한지 고대 동아시아의 왕성과 풍납토성 - 풍납토성의 성격 규명을 위한 학술세미나 - pp. 46-67 한국의 고대 왕성과 풍납토성 김기섭(한성백제박물관) 목차 Ⅰ. 머리말 Ⅱ. 한국 고대의 왕성 1. 평양 낙랑토성 2. 집안 국내성 3. 경주 월성 4. 한국 고대 왕성의 특징 Ⅲ. 풍납토성과 백제의 한성 1. 풍납토성의 현황 2. 한성의 풍경 Ⅰ. 머리말 각종 기록에

More information

3232 편집본(5.15).hwp

3232 편집본(5.15).hwp 정태제 묘 출토 사초 사진 정태제 묘 출토 사초 상권 정태제 묘 출토 사초 상권 45 정태제 묘 출토 사초 하권(표지) 정태제 묘 출토 사초 하권 46 2 중기( 重 記 ) 중기( 重 記 )란 호조에서 각 관청의 회계를 감독하거나 경외( 京 外 )의 각 관청이 보유하고 있 는 국가 재산의 누수를 막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작성하도록 규정한 회계장부나 물품조사서

More information

<BFBEBEC6C0CCB5E9C0C720B3EEC0CC2E20B3EBB7A120C0CCBEDFB1E220C7D0B1B3202D20C0DAB7E1322E687770>

<BFBEBEC6C0CCB5E9C0C720B3EEC0CC2E20B3EBB7A120C0CCBEDFB1E220C7D0B1B3202D20C0DAB7E1322E687770> 놀이노래이야기 학교 자료집 1. 놀이, 노래 이야기의 재미와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을까? 2. 노래와 놀아요. 3. 재미있는 말놀이와 놀아요. 4. 이야기와 놀아요. 1. 옛 아이들 놀이, 노래 이야기의 재미와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을까? 편해문(옛 아이들 놀이노래이야기 연구소장) 얼마 전 유치원,

More information

참고 금융분야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 1. 개인정보보호 관계 법령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령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전자금융거래법 시행령 은행법 시행령 보험업법 시행령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자본시장과

참고 금융분야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 1. 개인정보보호 관계 법령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령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전자금융거래법 시행령 은행법 시행령 보험업법 시행령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자본시장과 Ⅰ 가이드라인 개요 >> 금융분야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 참고 금융분야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 1. 개인정보보호 관계 법령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령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전자금융거래법 시행령 은행법 시행령 보험업법 시행령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금융지주회사법

More information

종사연구자료-이야기방2014 7 18.hwp

종사연구자료-이야기방2014 7 18.hwp 차례 1~3쪽 머리말 4 1. 계대 연구자료 7 가. 증 문하시랑동평장사 하공진공 사적기 7 나. 족보 변천사항 9 1) 1416년 진양부원군 신도비 음기(陰記)상의 자손록 9 2) 1605년 을사보 9 3) 1698년 무인 중수보 9 4) 1719년 기해보 10 5) 1999년 판윤공 파보 10 - 계대 10 - 근거 사서 11 (1) 고려사 척록(高麗史摭錄)

More information

인천광역시의회 의원 상해 등 보상금 지급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의안 번호 179 제안연월일 : 2007. 4. 제 안 자 :조례정비특별위원회위원장 제안이유 공무상재해인정기준 (총무처훈령 제153호)이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 (행정자치부령 제89호)으로 흡수 전면 개

인천광역시의회 의원 상해 등 보상금 지급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의안 번호 179 제안연월일 : 2007. 4. 제 안 자 :조례정비특별위원회위원장 제안이유 공무상재해인정기준 (총무처훈령 제153호)이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 (행정자치부령 제89호)으로 흡수 전면 개 인천광역시의회 의원 상해 등 보상금 지급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인 천 광 역 시 의 회 인천광역시의회 의원 상해 등 보상금 지급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의안 번호 179 제안연월일 : 2007. 4. 제 안 자 :조례정비특별위원회위원장 제안이유 공무상재해인정기준 (총무처훈령 제153호)이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 (행정자치부령 제89호)으로 흡수 전면

More information

목 차 국회 1 월 중 제 개정 법령 대통령령 7 건 ( 제정 -, 개정 7, 폐지 -) 1.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 1 2.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 1 3.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 시행령 일부개정 2 4. 대

목 차 국회 1 월 중 제 개정 법령 대통령령 7 건 ( 제정 -, 개정 7, 폐지 -) 1.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 1 2.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 1 3.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 시행령 일부개정 2 4. 대 목 차 국회 1 월 중 제 개정 법령 대통령령 7 건 ( 제정 -, 개정 7, 폐지 -) 1.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 1 2.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 1 3.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 시행령 일부개정 2 4. 대도시권 광역교통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일부개정 3 5.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일부개정 4

More information

652

652 축 사 2003년 11월 5일 수요일 제 652 호 대구대신문 창간 39주년을 축하합니다! 알차고 당찬 대구대신문으로 지로자(指걟者)의 역할 우리 대학교의 대표적 언론매체인 대구대 신문이 오늘로 창간 서른 아홉 돌을 맞았습 니다. 정론직필을 사시로 삼고 꾸준히 언로 의 개척을 위해 땀흘려온 그 동안의 노고에 전 비호가족을 대표하여 축하의 뜻을 전하 는 바입니다.

More information

기사스크랩 (160504).hwp

기사스크랩 (160504).hwp 경향신문 / 2016.05.03(화) "갈등없는 성과연봉제 도입" 홍보하던 동서발전, 부당노동행위 정황 성과연봉제 노사합의안 찬반투표 당시 동서발전 울산화력본부 기표소 모습 공기업 발전회사 중 처음으로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에 대한 노사합의가 이뤄진 한국동서발전이 직원 들의 찬성 투표를 유도하기 위해 부당노동행위를 벌인 복수의 정황이 나왔다. 직원들에게 동의서를

More information

산림병해충 방제규정 4. 신문 방송의 보도내용 등 제6 조( 조사지역) 제5 조에 따른 발생조사는 다음 각 호의 지역으로 구분하여 조사한다. 1. 특정지역 : 명승지 유적지 관광지 공원 유원지 및 고속국도 일반국도 철로변 등 경관보호구역 2. 주요지역 : 병해충별 선단

산림병해충 방제규정 4. 신문 방송의 보도내용 등 제6 조( 조사지역) 제5 조에 따른 발생조사는 다음 각 호의 지역으로 구분하여 조사한다. 1. 특정지역 : 명승지 유적지 관광지 공원 유원지 및 고속국도 일반국도 철로변 등 경관보호구역 2. 주요지역 : 병해충별 선단 산림병해충 방제규정 산림병해충 방제규정 [ 시행 2015.9.9] [ 산림청훈령 제1262 호, 2015.9.9, 일부개정] 산림청( 산림병해충과), 042-481-4038 제1장 총칙 제1 조( 목적) 이 규정은 산림보호법 제3 장 " 산림병해충의 예찰 방제 에서 위임된 사항과 산림병해충( 이하 " 병 해충 이라 한다) 의 예방 구제를 위하여 병해충의 발생조사와

More information

김기중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인터넷 내용심의의 위헌 여부.hwp

김기중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인터넷 내용심의의 위헌 여부.hwp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인터넷 내용심의와 그 위헌 여부에 관한 소론 - 서울고등법원 2011.2.1.자 2010아189 위헌법률심판제청결정을 중심으로 한국정보법학회 2011년 5월 사례연구회 2011. 5. 17.발표 변호사 김기중 미완성 원고임 1. 서론 헌법재판소는 2002. 6. 27. 99헌마480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등 위헌확인사건에 서 불온통신 의 단속에

More information

- 2 - 정보 1 北 조평통, 박근혜 후보 대북정책 공약 비난 "이명박 대결정책과 다를 바 없어" 북한은 8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최근 발표한 대북정책 공약을 `전면대결공약'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기자

- 2 - 정보 1 北 조평통, 박근혜 후보 대북정책 공약 비난 이명박 대결정책과 다를 바 없어 북한은 8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최근 발표한 대북정책 공약을 `전면대결공약'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기자 - 1 - 북한구원 월요기도운동 주간국가기도소식 2012년 11월 2주 (11/11-11/17) 에스더기도운동 www.pray24.net 02) 711-2848 1. 대통령 선거(12/19)를 위한 기도 1. 대통령 선거(12/19)를 위한 연합금식기도회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More information

Ⅰ- 1 Ⅰ- 2 Ⅰ- 3 Ⅰ- 4 Ⅰ- 5 Ⅰ- 6 Ⅰ- 7 Ⅰ- 8 Ⅰ- 9 Ⅰ- 10 Ⅰ- 11 Ⅰ- 12 Ⅰ- 13 Ⅰ- 14 Ⅰ- 15 Ⅰ- 16 Ⅰ- 17 Ⅰ- 18 Ⅰ- 19 Ⅰ- 20 Ⅰ- 21 Ⅰ- 22 Ⅰ- 23 Ⅰ- 24 Ⅰ- 25 Ⅰ- 26 Ⅰ- 27 Ⅰ- 28 Ⅰ- 29 Ⅰ- 30 Ⅰ- 31 Ⅰ- 32 Ⅰ- 33 Ⅰ- 34 Ⅰ- 35

More information

7,560일간의 드라마 여행

7,560일간의 드라마 여행 7,560일간의 드라마 여행 흐르는강물처럼 소개글 로케이션매니저의 자전적 에세이 스크린 테마기행 목차 저 푸른 수평선 너머로(그대그리고나) 6 우도속의 섬, 비양도(올인) 10 길은 차밭으로 통한다(SK텔레콤) 14 빵꾸 똥꾸 산골소녀(지붕뚫고하이킼) 16 우포 강가에 앉다(사랑따윈필요없어) 20 떠나요 삐삐롱스타킹 23 왕초 따라가기(왕초) 27 가문의 영광이로소이다(가문의영광)

More information

°£È£ 1~8 1È£š

°£È£ 1~8 1È£š 협 회 2013년 5월 6일 월요일 5 사진으로 보는 제39차 정기대의원총회 2013년 3월 16일 개최된 제39차 정기대의원총회는 전국에서 올라온 대의원과 내외귀빈 등 300여명이 세종대학교 세종컨벤션센터를 가득 메운채 성황 리에 개최되었다. 보건복지부의 간호인력개편방향 발표로 그 어느 총회보다 보건의료 전문기자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파독간호조무사 선배들을

More information

래를 북한에서 영화의 주제곡으로 사용했다든지, 남한의 반체제세력이 애창한다 든지 등등 여타의 이유를 들어 그 가요의 기념곡 지정을 반대한다는 것은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는 반민주적인 행동이 될 것이다. 동시에 그 노래가 두 가지 필요조 건을 충족시키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래를 북한에서 영화의 주제곡으로 사용했다든지, 남한의 반체제세력이 애창한다 든지 등등 여타의 이유를 들어 그 가요의 기념곡 지정을 반대한다는 것은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는 반민주적인 행동이 될 것이다. 동시에 그 노래가 두 가지 필요조 건을 충족시키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제2 발제문 임을 위한 행진곡 의 문제점 임 과 새 날 의 의미를 중심으로 양 동 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1. 머리말 어떤 노래가 정부가 주관하는 국가기념식의 기념곡으로 지정되려면(혹은 지정 되지 않고 제창되려면) 두 가지 필요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그 가요(특히 가사)에 내포된 메시지가 기념하려는 사건의 정신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

More information

2008.3.3> 1. 법 제34조제1항제3호에 따른 노인전문병원 2. 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제1항의 규정에 의한 요양기관(약국을 제외한다) 3. 삭제<2001.2.10> 4. 의료급여법 제2조제2호의 규정에 의한 의료급여기관 제9조 (건강진단) 영 제20조제1항의 규

2008.3.3> 1. 법 제34조제1항제3호에 따른 노인전문병원 2. 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제1항의 규정에 의한 요양기관(약국을 제외한다) 3. 삭제<2001.2.10> 4. 의료급여법 제2조제2호의 규정에 의한 의료급여기관 제9조 (건강진단) 영 제20조제1항의 규 노인복지법 시행규칙 [시행 2010. 3. 1] [보건복지가족부령 제161호, 2010. 2.24, 일 보건복지가족부 (노인정책과) 02-2023-85 제1조 (목적) 이 규칙은 노인복지법 및 동법시행령에서 위임된 사항과 그 시행에 관하여 필요한 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1조의2 (노인실태조사) 1 노인복지법 (이하 "법"이라 한다)

More information

노인복지법 시행규칙

노인복지법 시행규칙 노인복지법 시행규칙 [시행 2012.2.5] [보건복지부령 제106호, 2012.2.3, 타법개정] 제1조(목적) 이 규칙은 노인복지법 및 동법시행령에서 위임된 사항과 그 시행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 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1조의2(노인실태조사) 1 노인복지법 (이하 "법"이라 한다) 제5조에 따른 노인실태조사의 내용은 다음 각

More information

4) 이 이 6) 위 (가) 나는 소백산맥을 바라보다 문득 신라의 삼국 통 일을 못마땅해하던 당신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더 커지는 것이라는 당신의 말을 생각하면, 대동강 이북의 땅을 당나라에 내주기로 하고 이룩한 통 일은 더 작아진 것이라는 점에서,

4) 이 이 6) 위 (가) 나는 소백산맥을 바라보다 문득 신라의 삼국 통 일을 못마땅해하던 당신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더 커지는 것이라는 당신의 말을 생각하면, 대동강 이북의 땅을 당나라에 내주기로 하고 이룩한 통 일은 더 작아진 것이라는 점에서, 1) ᄀ 2) 지은이가 3) (라)에서 학년 고사종류 과목 과목코드번호 성명 3 2009 2학기 기말고사 대비 국어 101 ( ) 일신여자중 ꋯ먼저 답안지에 성명,학년,계열,과목코드를 기입하십시오. ꋯ문항을 읽고 맞는 답을 답란에 표시하십시오. ꋯ문항배점은 문항위에 표시된 배점표를 참고하십시오. (가) ᄀ환도를 하고 폐허가 된 서울에 사람들의 모습 이 등장하던

More information

38--18--최우석.hwp

38--18--최우석.hwp 古 詩 源 < 顔 延 之 > 篇 譯 註 * 崔 宇 錫 1) 1. 序 文 2. 古 詩 源 < 顔 延 之 > 篇 譯 註 3. 結 語 1. 序 文 沈 德 潛 (1673-1769)의 字 는 確 士 이고 號 는 歸 愚 이다. 江 南 長 洲 (현재의 江 蘇 省 蘇 州 ) 사람으로 淸 代 聖 祖, 世 宗, 高 宗 삼대를 모두 거쳤다. 특히 시를 몹 시 좋아한

More information

<C0CEBCE2BABB2D33C2F7BCF6C1A420B1B9BFAAC3D1BCAD203130B1C72E687770>

<C0CEBCE2BABB2D33C2F7BCF6C1A420B1B9BFAAC3D1BCAD203130B1C72E687770> 해제 면양행견일기 沔 陽 行 遣 日 記 이 자료는 한말의 개화파 관료, 김윤식 金 允 植 (1835~1922)이 충청도 면천 沔 川 에 유배하면서 동학농민혁명 시기에 전문 傳 聞 한 것을 일일이 기록한 일기책 이다. 수록한 부분은 속음청사 續 陰 晴 史 의 권 7로 내제 內 題 가 면양행견일기 沔 陽 行 遣 日 記 로 되어 있는 부분 가운데 계사년 癸 巳 年

More information

교사용지도서_쓰기.hwp

교사용지도서_쓰기.hwp 1. 재미있는 글자 단원의 구성 의도 이 단원은 도비와 깨비가 길을 잃고 헤매다 글자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글자 공부를 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자칫 지겨울 수 있는 쓰기 공부를 다양한 놀이 위주의 활동으로 구성하였고, 학습자 주변의 다양한 자료들을 활용함으로써 학습에 대한 흥미를 갖고 활동할 수 있게 하였다. 각 단계의 학습을 마칠 때마다 도깨비 연필을

More information

민주장정-노동운동(분권).indd

민주장정-노동운동(분권).indd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노동운동사 정 호 기 농민운동 1 목 차 제1장 연구 배경과 방법 07 1. 문제제기 2. 기존 연구의 검토 3. 연구 대상의 특성과 변화 4. 연구 자료와 연구 방법 07 10 12 16 제2장 이승만 정부 시대의 노동조합운동 19 1. 이승만 정부의 노동정책과 대한노총 1) 노동 관련 법률들의 제정과 광주

More information

0429bodo.hwp

0429bodo.hwp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명단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이 명단은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의 후손 또는 연고자로부터 이의신청을 받기 위해 작성 되었습니다. 이 인물정보를 무단 복사하여 유포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전 파하는일체의행위는법에저촉될수있습니다. 주요 훈포상 약어 1. 병합기념장 2. 대정대례기념장 3. 소화대례기념장

More information

조선왕조 능 원 묘 기본 사료집 -부록 : 능 원 묘의 현대적 명칭표기 기준안 차 례 서 장 : 조선왕실의 능 원 묘 제도 11 제 1부 능 원 묘 기본 사료 Ⅰ. 능호( 陵 號 ) 및 묘호( 廟 號 )를 결정한 유래 1. 건원릉( 健 元 陵 ) 21 2. 정릉( 貞 陵 ) 22 3. 헌릉( 獻 陵 )

More information

과 위 가 오는 경우에는 앞말 받침을 대표음으로 바꾼 [다가페]와 [흐귀 에]가 올바른 발음이 [안자서], [할튼], [업쓰므로], [절믐] 풀이 자음으로 끝나는 말인 앉- 과 핥-, 없-, 젊- 에 각각 모음으로 시작하는 형식형태소인 -아서, -은, -으므로, -음

과 위 가 오는 경우에는 앞말 받침을 대표음으로 바꾼 [다가페]와 [흐귀 에]가 올바른 발음이 [안자서], [할튼], [업쓰므로], [절믐] 풀이 자음으로 끝나는 말인 앉- 과 핥-, 없-, 젊- 에 각각 모음으로 시작하는 형식형태소인 -아서, -은, -으므로, -음 . 음운 [ㄱ] [국], [박], [부억], [안팍] 받침의 발음 [ㄷ] [곧], [믿], [낟], [빋], [옫], [갇따], [히읃] [ㅂ] [숩], [입], [무릅] [ㄴ],[ㄹ],[ㅁ],[ㅇ] [간], [말], [섬], [공] 찾아보기. 음절 끝소리 규칙 (p. 6) [ㄱ] [넉], [목], [삭] [ㄴ] [안따], [안꼬] [ㄹ] [외골], [할꼬]

More information

E1-정답및풀이(1~24)ok

E1-정답및풀이(1~24)ok 초등 2 학년 1주 2 2주 7 3주 12 4주 17 부록` 국어 능력 인증 시험 22 1주 1. 느낌을 말해요 1 ⑴ ᄂ ⑵ ᄀ 1 8~13쪽 듣기 말하기/쓰기 1 ` 2 ` 3 참고 ` 4 5 5 5 ` 6 4 ` 7 참고 ` 8 일기 ` 9 5 10 1 11, 3 [1~3] 들려줄 내용 옛날 옛날, 깊은 산골짜기에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 이

More information

6±Ç¸ñÂ÷

6±Ç¸ñÂ÷ 6 6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과천심상소학교 졸업증서(문헌번호 03-004) 일제강점기 과천초등학교의 유일한 한국인 교장이었던 맹준섭임을 알 수 있다.

More information

時 習 說 ) 5), 원호설( 元 昊 說 ) 6) 등이 있다. 7) 이 가운데 임제설에 동의하는바, 상세한 논의는 황패강의 논의로 미루나 그의 논의에 논거로서 빠져 있는 부분을 보강하여 임제설에 대한 변증( 辨 證 )을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다음의 인용문을 보도록

時 習 說 ) 5), 원호설( 元 昊 說 ) 6) 등이 있다. 7) 이 가운데 임제설에 동의하는바, 상세한 논의는 황패강의 논의로 미루나 그의 논의에 논거로서 빠져 있는 부분을 보강하여 임제설에 대한 변증( 辨 證 )을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다음의 인용문을 보도록 과 임제 신해진(전남대) 1. 머리말 세조의 왕위찬탈과 단종복위 과정에서의 사육신을 소재로 한 작품은 남효온( 南 孝 溫 )의 (1492년 직전?), 임제( 林 悌 )의 (1576?), 김수민( 金 壽 民 )의 (1757) 등이 있다. 1) 첫 작품은 집전( 集

More information

<32303132BDC3BAB8C1A4B1D4C6C75BC8A3BFDC303530395D2E687770>

<32303132BDC3BAB8C1A4B1D4C6C75BC8A3BFDC303530395D2E687770> 조 례 익산시 조례 제1220호 익산시 주민감사 청구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 1 익산시 조례 제1221호 익산시 제안제도 운영조례 일부개정조례 3 익산시 조례 제1222호 익산시 시채에 관한 조례 폐지조례 12 익산시 조례 제1223호 익산시 시세 감면 조례 전부개정조례 13 익산시 조례 제1224호 익산시 행정기구설치조례 19 익산시 조례 제1225호 익산시

More information

cls46-06(심우영).hwp

cls46-06(심우영).hwp 蘇 州 원림의 景 名 연구 * 用 典 한 경명을 중심으로 1)심우영 ** 목 차 Ⅰ. 서론 Ⅱ. 기존의 경명 命 名 法 Ⅲ. 귀납적 결과에 따른 경명 분류 1. 신화전설 역사고사 2. 文 辭, 詩 句 Ⅳ. 결론 Ⅰ. 서론 景 名 이란 景 觀 題 名 (경관에 붙인 이름) 의 준말로, 볼만한 경치 지구와 경치 지 점 그리고 경치 지구 내 세워진 인공물에 붙여진

More information

<C1B6BCB1B4EBBCBCBDC3B1E2342DC3D6C1BE2E687770>

<C1B6BCB1B4EBBCBCBDC3B1E2342DC3D6C1BE2E687770> 권2 동경잡기 東京雜記 동경잡기 173 권2 불우 佛宇 영묘사(靈妙寺) 부(府)의 서쪽 5리(里)에 있다. 당 나라 정관(貞觀) 6년(632) 에 신라의 선덕왕(善德王)이 창건하였다. 불전(佛殿)은 3층인데 체제가 특이하다. 속설에 절터는 본래 큰 연못이었는데, 두두리(豆豆里) 사람들이 하룻밤 만에 메 우고 드디어 이 불전을 세웠다. 고 전한다. 지금은

More information

伐)이라고 하였는데, 라자(羅字)는 나자(那字)로 쓰기도 하고 야자(耶字)로 쓰기도 한다. 또 서벌(徐伐)이라고도 한다. 세속에서 경자(京字)를 새겨 서벌(徐伐)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또 사라(斯羅)라고 하기도 하고, 또 사로(斯盧)라고 하기도 한다. 재위 기간은 6

伐)이라고 하였는데, 라자(羅字)는 나자(那字)로 쓰기도 하고 야자(耶字)로 쓰기도 한다. 또 서벌(徐伐)이라고도 한다. 세속에서 경자(京字)를 새겨 서벌(徐伐)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또 사라(斯羅)라고 하기도 하고, 또 사로(斯盧)라고 하기도 한다. 재위 기간은 6 동경잡기東京雜記 권1 진한기辰韓紀 경상도는 본래 진한(辰韓)의 땅인데, 뒤에 신라(新羅)의 소유가 되었다. 여지승 람(輿地勝覽) 에 나온다. 진한은 마한(馬韓)의 동쪽에 있다. 스스로 말하기를, 망 명한 진(秦)나라 사람이 난리를 피하여 한(韓)으로 들어오니 한이 동쪽 경계를 분할 하여 주었으므로 성책(城栅)을 세웠다. 하였다. 그 언어가 진나라 사람과 비슷하다.

More information

<C3D6C1BE5FBBF5B1B9BEEEBBFDC8B0B0DCBFEFC8A32831333031323120C3D6C1BEBABB292E687770>

<C3D6C1BE5FBBF5B1B9BEEEBBFDC8B0B0DCBFEFC8A32831333031323120C3D6C1BEBABB292E687770> 우리 시의 향기 사랑하는 일과 닭고기를 씹는 일 최승자, 유 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강사/문학평론가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More information

초등국어에서 관용표현 지도 방안 연구

초등국어에서 관용표현 지도 방안 연구 80 < 관용 표현 인지도> 남 여 70 60 50 40 30 20 10 0 1 2 3 4 5 6 70 < 관용 표현 사용 정도> 남 여 60 50 40 30 20 10 0 4학년 가끔쓴다 써본적있다 전혀안쓴다 5학년 가끔쓴다 써본적있다 전혀안쓴다 6학년 가끔쓴다 써본적있다 전혀안쓴다 70 < 속담 인지도> 남 여 60 50 40 30 20 10 0 1 2

More information

177

177 176 177 178 179 180 181 182 183 184 185 186 187 188 (2) 양주조씨 사마방목에는 서천의 양주조씨가 1789년부터 1891년까지 5명이 합격하였다. 한산에서도 1777년부터 1864년까지 5명이 등재되었고, 비인에서도 1735년부터 1801년까지 4명이 올라있다. 서천지역 일대에 넓게 세거지를 마련하고 있었 던 것으로

More information

제주어 교육자료(중등)-작업.hwp

제주어 교육자료(중등)-작업.hwp 여는말 풀꽃, 제주어 제주어는 제주인의 향기입니다. 제주인의 삶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삶의 향기이고, 꿈의 내음입니다. 그분들이 어루만졌던 삶이 거칠었던 까닭에 더욱 향기롭고, 그 꿈이 애틋했기에 더욱 은은합니다. 제주어는 제주가 피워낸 풀잎입니다. 제주의 거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비바람 맞고 자랐기에 더욱 질박합니다. 사철 싱그러운 들풀과 들꽃향기가

More information

¸é¸ñ¼Ò½ÄÁö 63È£_³»Áö ÃÖÁ¾

¸é¸ñ¼Ò½ÄÁö 63È£_³»Áö ÃÖÁ¾ 정보나눔 섭이와 함께하는 여행 임강섭 복지과 과장 여름이다. 휴가철이다. 다 들 어디론가 떠날 준비에 마음 이 들떠 있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여행 매니아까지는 아니 지만, 나름 여행을 즐기는 사 람으로서 가족들과 신나는 휴 가를 보낼 계획에 살짝 들떠 있는 나에게 혼자만 신나지 말 고 같이 좀 신났으면 좋겠다며 가족들과 같이 가면 좋은 여행 눈이 시리도록

More information

01Report_210-4.hwp

01Report_210-4.hwp 연구보고서 210-4 해방 후 한국여성의 정치참여 현황과 향후 과제 한국여성개발원 목 차 Ⅰ 서 론 Ⅱ 국회 및 지방의회에서의 여성참여 Ⅲ 정당조직내 여성참여 및 정당의 여성정책 Ⅳ 여성유권자의 투표율 및 투표행태 Ⅴ 여성단체의 여성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운동 Ⅵ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향후 과제 참고문헌 부 록 표 목 차 Ⅰ 서 론 . 서론 1.

More information

<C3D1BCB15FC0CCC8C45FBFECB8AE5FB1B3C0B0C0C75FB9E6C7E228323031362D352D32315FC5E4292E687770>

<C3D1BCB15FC0CCC8C45FBFECB8AE5FB1B3C0B0C0C75FB9E6C7E228323031362D352D32315FC5E4292E687770> 총선 이후 우리 교육의 방향 당 체제에서 우리 교육의 전망과 교육행정가들의 역할 박 호 근 서울시의회 의원 교육위원회 위원 서론 년 월 일 제 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선거는 바로 민의 의 반영이기 때문에 총선결과를 살펴보고 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는가를 분석해 본 후 년 월 일을 기점으로 제 대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시 작되는 상황에서 우리 교육이 어떻게

More information

목 차 營 下 面 5 前 所 面 71 後 所 面 153 三 木 面 263 龍 流 面 285 都 已 上 條 367 同 治 六 年 (1867) 正 月 日 永 宗 防 營 今 丁 卯 式 帳 籍 범례 1. 훼손 등의 이유로 판독이 불가능한 글자는 로 표기함. 단, 비정 이 가능한 경우는 ( ) 안에 표기함. 2. 원본에서 누락된 글자는 [ ] 안에 표기함. 단, 누락된

More information

639..-1

639..-1 제639호 [주간] 2014년 12월 15일(월요일) http://gurotoday.com http://cafe.daum.net/gorotoday 문의 02-830-0905 대입 준비에 지친 수험생 여러분 힘내세요 신도림테크노마트서 수험생과 학부모 600명 대상 대입설명회 구로아트밸리서는 수험생 1,000명 초대 해피 콘서트 열려 구로구가 대입 준비로 지친

More information

교육 과 학기 술부 고 시 제 20 11-36 1호 초 중등교육법 제23조 제2항에 의거하여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다음과 같이 고시합니다. 2011년 8월 9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1.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은 별책 1 과 같습니다. 2.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별책

교육 과 학기 술부 고 시 제 20 11-36 1호 초 중등교육법 제23조 제2항에 의거하여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다음과 같이 고시합니다. 2011년 8월 9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1.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은 별책 1 과 같습니다. 2.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별책 교육과학기술부 고시 제 2011 361호 [별책 3] 중학교 교육과정 교육 과 학기 술부 고 시 제 20 11-36 1호 초 중등교육법 제23조 제2항에 의거하여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다음과 같이 고시합니다. 2011년 8월 9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1.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은 별책 1 과 같습니다. 2.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별책 2 와 같습니다. 3.

More information

시험지 출제 양식

시험지 출제 양식 2013학년도 제2학기 제1차 세계사 지필평가 계 부장 교감 교장 2013년 8월 30일 2, 3교시 제 3학년 인문 (2, 3, 4, 5)반 출제교사 : 백종원 이 시험 문제의 저작권은 풍암고등학교에 있습니다. 저 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전재와 복제는 금지 되며, 이를 어길 시 저작권법에 의거 처벌될 수 있습니다. 3. 전근대 시기 (가)~(라)

More information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체험합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집시다. 5. 우리 옷 한복의 특징 자료 3 참고 남자와 여자가 입는 한복의 종류 가 달랐다는 것을 알려 준다. 85쪽 문제 8, 9 자료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체험합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집시다. 5. 우리 옷 한복의 특징 자료 3 참고 남자와 여자가 입는 한복의 종류 가 달랐다는 것을 알려 준다. 85쪽 문제 8, 9 자료 통합 우리나라 ⑵ 조상님들이 살던 집에 대 해 아는 어린이 있나요? 저요. 온돌로 난방과 취사를 같이 했어요! 네, 맞아요. 그리고 조상님들은 기와집과 초가집에서 살았어요. 주무르거나 말아서 만들 수 있는 전통 그릇도 우리의 전통문화예요. 그리고 우리 옷인 한복은 참 아름 답죠? 여자는 저고리와 치마, 남자는 바지와 조끼를 입어요. 명절에 한복을 입고 절을

More information

상품 전단지

상품 전단지 2013 2013 추석맞이 추석맞이 지역우수상품 안내 안내 지역우수상품 지역 우수상품을 안내하여 드리오니 명절 및 행사용 선물로 많이 활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지역우수상품을 구입하시면 지역경제가 살아납니다.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 경기동부상공회의소 임직원 일동 - 지역우수상품을 구입하시면 지역경제가 살아납니다.

More information

::: 해당사항이 없을 경우 무 표시하시기 바랍니다. 검토항목 검 토 여 부 ( 표시) 시 민 : 유 ( ) 무 시 민 참 여 고 려 사 항 이 해 당 사 자 : 유 ( ) 무 전 문 가 : 유 ( ) 무 옴 브 즈 만 : 유 ( ) 무 법 령 규 정 : 교통 환경 재

::: 해당사항이 없을 경우 무 표시하시기 바랍니다. 검토항목 검 토 여 부 ( 표시) 시 민 : 유 ( ) 무 시 민 참 여 고 려 사 항 이 해 당 사 자 : 유 ( ) 무 전 문 가 : 유 ( ) 무 옴 브 즈 만 : 유 ( ) 무 법 령 규 정 : 교통 환경 재 시 민 문서번호 어르신복지과-1198 주무관 재가복지팀장 어르신복지과장 복지정책관 복지건강실장 결재일자 2013.1.18. 공개여부 방침번호 대시민공개 협 조 2013년 재가노인지원센터 운영 지원 계획 2013. 01. 복지건강실 (어르신복지과) ::: 해당사항이 없을 경우 무 표시하시기 바랍니다. 검토항목 검 토 여 부 ( 표시) 시 민 : 유 ( ) 무

More information

2

2 1 2 3 4 5 6 또한 같은 탈북자가 소유하고 있던 이라고 할수 있는 또 한장의 사진도 테루꼬양이라고 보고있다. 二宮喜一 (니노미야 요시가즈). 1938 년 1 월 15 일생. 신장 156~7 센치. 체중 52 키로. 몸은 여윈형이고 얼굴은 긴형. 1962 년 9 월경 도꾜도 시나가와구에서 실종. 당시 24 세. 직업 회사원. 밤에는 전문학교에

More information

화이련(華以戀) 141001.hwp

화이련(華以戀) 141001.hwp 年 花 下 理 芳 盟 段 流 無 限 情 惜 別 沈 頭 兒 膝 夜 深 雲 約 三 십년을 꽃 아래서 아름다운 맹세 지키니 한 가닥 풍류는 끝없는 정이어라. 그대의 무릎에 누워 애틋하게 이별하니 밤은 깊어 구름과 빗속에서 삼생을 기약하네. * 들어가는 글 파르라니 머리를 깎은 아이가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불 옆에 앉아 있다. 얼음장 같은 날씨에 허연 입김이 연기처럼

More information

ÆòÈ�´©¸® 94È£ ³»Áö_ÃÖÁ¾

ÆòÈ�´©¸® 94È£ ³»Áö_ÃÖÁ¾ 사람 안간힘을 다해 행복해지고 싶었던 사람, 허세욱을 그리다 - 허세욱 평전 작가 송기역 - 서울 평통사 노동분회원 허세욱. 효순이 미선이의 억울한 죽음에 대 해 미국은 사죄하라는 투쟁의 현장에 서 그 분을 처음 만났다. 평택 대추리 의 넓은 들판을 두 소녀의 목숨을 앗 아간 미군들에게 또 빼앗길 순 없다며 만들어 온 현수막을 대추초교에 같이 걸었다. 2007년

More information

歯1##01.PDF

歯1##01.PDF 1.? 1.?,..,.,. 19 1.,,..,. 20 1.?.,.,,...,.,..,. 21 1,.,.,. ( ),. 10 1? 2.5%. 1 40. 22 1.? 40 1 (40 2.5% 1 ). 10 40 4., 4..,... 1997 ( ) 12. 4.6% (26.6%), (19.8%), (11.8%) 23 1. (?).. < >..,..!!! 24 2.

More information

<5BC1F8C7E0C1DF2D31B1C75D2DBCF6C1A4BABB2E687770>

<5BC1F8C7E0C1DF2D31B1C75D2DBCF6C1A4BABB2E687770> 제3편 정 치 제3편 정치 제1장 의회 제1절 의회 기구 제2절 의회기구 및 직원 현황 자치행정전문위원회 자치행정전문위원 산업건설위원회 산업건설전문위원 제1장 의회 321 제3절 의회 현황 1. 제1대 고창군의회 제1대 고창군의회 의원 현황 직 위 성 명 생년월일 주 소 비 고 322 제3편 정치 2. 제2대 고창군의회 제2대 고창군의회 의원 현황 직 위

More information

120229(00)(1~3).indd

120229(00)(1~3).indd 법 률 국회에서 의결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을 이에 공포한다. 대 통 령 이 명 박 2012년 2월 29일 국 무 총 리 김 황 식 국 무 위 원 행정안전부 맹 형 규 장 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소관) 법률 제11374호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 공직선거법 일부를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 제21조제1항에 단서를 다음과 같이 신설한다. 다만,세종특별자치시의 지역구국회의원

More information

zb 2) 짜내어 목민관을 살찌운다. 그러니 백성이 과연 목민관을 위해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건 아니다. 목민관이 백성 을 위해 있는 것이다. 이정 - ( ᄀ ) - ( ᄂ ) - 국군 - 방백 - 황왕 (나) 옛날에야 백성이 있었을 뿐이지, 무슨 목민관이 있 었던

zb 2) 짜내어 목민관을 살찌운다. 그러니 백성이 과연 목민관을 위해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건 아니다. 목민관이 백성 을 위해 있는 것이다. 이정 - ( ᄀ ) - ( ᄂ ) - 국군 - 방백 - 황왕 (나) 옛날에야 백성이 있었을 뿐이지, 무슨 목민관이 있 었던 zb 1) 중 2013년 2학기 중간고사 대비 국어 콘텐츠산업 진흥법 시행령 제33조에 의한 표시 1) 제작연월일 : 2013-08-21 2) 제작자 : 교육지대 3) 이 콘텐츠는 콘텐츠산업 진흥법 에 따라 최초 제작일부터 5년간 보호됩니다. 콘텐츠산업 진흥법 외에도 저작권법 에 의하여 보호되는 콘텐츠의 경우, 그 콘텐츠의 전부 또는 일부 를 무단으로 복제하거나

More information

<BCBAC1F6BCF8B7CA28C3D6C1BE2933C2F72E687770>

<BCBAC1F6BCF8B7CA28C3D6C1BE2933C2F72E687770> 大 巡 대학생 하계 성지순례 자 료 집 宗 團 大 巡 眞 理 會 目 次 성지순례의 취지 11 행사 일정표 12 계룡산 동학사 13 천호산 개태사 31 반야산 관촉사 41 모악산 금산사 54 황토현 전적지 92 상제님 생가 시루산 104 모악산 대원사 115 종남산 송광사 126 진안 마이산 135-1 - 도 기 ( 道 旗 ) 우주 자연의 근원적 의미가 도(

More information

<C6EDC1FD20B0F8C1F7C0AFB0FCB4DCC3BC20BBE7B1D420B0B3BCB120BFF6C5A9BCF32E687770>

<C6EDC1FD20B0F8C1F7C0AFB0FCB4DCC3BC20BBE7B1D420B0B3BCB120BFF6C5A9BCF32E687770> . - 54 - - 55 - - 56 - - 57 - - 58 - - 59 - - 60 - - 61 - - 62 - - 63 - - 64 - - 65 - - 66 - - 67 - - 68 - - 69 - - 70 - Ⅰ 추진 배경 ISO 26000 등 사회적 책임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발전하고 윤리 투명 경영이 기업경쟁력의 핵심요소로 부상하면서 단순한 준법경영을

More information

망되지만, 논란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광주지역 민주화 운동 세력 은 5.18기념식을 국가기념일로 지정 받은 데 이어 이 노래까지 공식기념곡으로 만 들어 5.18을 장식하는 마지막 아우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걱정스러운 건 이런 움직임이 이른바 호남정서

망되지만, 논란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광주지역 민주화 운동 세력 은 5.18기념식을 국가기념일로 지정 받은 데 이어 이 노래까지 공식기념곡으로 만 들어 5.18을 장식하는 마지막 아우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걱정스러운 건 이런 움직임이 이른바 호남정서 제1 발제문 임을 위한 행진곡 은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노래다 -정부의 5 18 공식기념곡 지정에 반대하는 다섯 가지 이유- 조 우 석 (문화평론가, 전 중앙일보 기자) 운동권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을 둘러싼 시비로 한국사회가 다시 소모적 논 쟁에 빠져든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노래를 5 18 광주민주화운동(이하 5 18 광주 혹은 광주5 18)의 공식기념곡으로

More information

<33C6E4C0CCC1F620C1A63139C8A320B8F1C2F72E687770>

<33C6E4C0CCC1F620C1A63139C8A320B8F1C2F72E687770> 종친회 순례 ④ 忠節과 禮의 名門 : 김녕김씨(金寧金氏) 高興 貫祖墓 奉安으로 金寧史를 새로 쓰다 金寧金氏中央宗親會 篇 金鍾彬 중앙종친회장 VS 김녕김씨중앙종친회가 지난 2013년 4월 6일 전남 고흥(高興)에 새로이 조성한 김녕김씨(金寧金氏) 관조(貫祖) 김녕군(金寧君) 시호(諡號) 문열공(文烈公) 휘(諱) 시흥(時興)님의 묘역을 봉안(奉安)함으로써 김녕종사(金寧宗史)에

More information

2015년 2월 12일 사랑의 동삭교육 제 2014-4호 (2월) 5 2015년 2월 12일 사랑의 동삭교육 제 2014-4호 (2월) 6 겨울이 되면 1-4 박지예 겨울이 되면 난 참 좋아. 겨울이 되면 귀여운 눈사람도 만들고 겨울이 되면 신나는 눈싸움도 하고 겨울이

2015년 2월 12일 사랑의 동삭교육 제 2014-4호 (2월) 5 2015년 2월 12일 사랑의 동삭교육 제 2014-4호 (2월) 6 겨울이 되면 1-4 박지예 겨울이 되면 난 참 좋아. 겨울이 되면 귀여운 눈사람도 만들고 겨울이 되면 신나는 눈싸움도 하고 겨울이 2015년 2월 12일 사랑의 동삭교육 제 2014-4호 (2월) 1 2015년 2월 12일 사랑의 동삭교육 제 2014-4호 (2월) 2 제2014년 - 4호 ( 2월 ) 펴낸이 : 안 승 렬 교장선생님 도운이 : 박 명 덕 교감선생님 편집인 : 정 경 순 선생님 Tel. (031) 618-9671 학부모회장님 글 1 2월 동삭 교육활동 1.13 신입생 예비소집

More information

640..

640.. 제640호 [주간] 2014년 12월 25일(목요일) http://gurotoday.com http://cafe.daum.net/gorotoday 문의 02-830-0905 구로구 새해 살림살이 4,292억 확정 구의회 제242회 정례회 폐회 2015년도 세입 세출예산안 등 13건 처리 의원사무실 설치 예산 전액 삭감, 교육 복지 분야에 쓰기로 구로구의회(의장

More information

3) 지은이가 4) ᄀ에 5) 위 어져야 하는 것이야. 5 동원 : 항상 성실한 삶의 자세를 지녀야 해. 에는 민중의 소망과 언어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입니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가능성은 이처럼 과거를 뛰어넘고, 사회의 벽을 뛰어넘고, 드디어 자기를 뛰어넘 는

3) 지은이가 4) ᄀ에 5) 위 어져야 하는 것이야. 5 동원 : 항상 성실한 삶의 자세를 지녀야 해. 에는 민중의 소망과 언어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입니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가능성은 이처럼 과거를 뛰어넘고, 사회의 벽을 뛰어넘고, 드디어 자기를 뛰어넘 는 (가) 2) (가) 학년 고사종류 과목 과목코드번호 성명 3 2009 2학기 기말고사 대비 국어 101 ( ) 염창중 말할 수 있게 되어 어머니가 다시 주시거든 나에게 갚 아라. ꋯ먼저 답안지에 성명,학년,계열,과목코드를 기입하십시오. ꋯ문항을 읽고 맞는 답을 답란에 표시하십시오. ꋯ문항배점은 문항위에 표시된 배점표를 참고하십시오. (가) 우리 중에는 전쟁으로

More information

지 생각하고,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이 작업을 3번 반복 하는 것만으로 하루가 다 간다. 그들이 제작진에게 투쟁하는 이유는 그들이 원하는 재료를 얻기 위해서다. 그 이상의 생각은 하고 싶어도 할 겨를이 없다. 이 땅은 헬조선이 아니다. 일단

지 생각하고,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이 작업을 3번 반복 하는 것만으로 하루가 다 간다. 그들이 제작진에게 투쟁하는 이유는 그들이 원하는 재료를 얻기 위해서다. 그 이상의 생각은 하고 싶어도 할 겨를이 없다. 이 땅은 헬조선이 아니다. 일단 진짜 헬(hell)은 자유의지 가 용납되지 않는 곳 김 다 인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회나 성당을 다니지 않는 사람도 빨간 글씨로 적힌 12월 25일을 즐긴다. 일본인, 중국인 친구들이 한국은 왜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냐고 묻는 말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해 봐도 답이 안 나온다. 석가 탄신일도 공휴일이어서 공평하다는 말 만 되풀이한다. 느닷없이

More information

<312E2032303133B3E2B5B520BBE7C8B8BAB9C1F6B0FC20BFEEBFB5B0FCB7C320BEF7B9ABC3B3B8AE20BEC8B3BB28B0E1C0E7BABB292DC6EDC1FD2E687770>

<312E2032303133B3E2B5B520BBE7C8B8BAB9C1F6B0FC20BFEEBFB5B0FCB7C320BEF7B9ABC3B3B8AE20BEC8B3BB28B0E1C0E7BABB292DC6EDC1FD2E687770> 2013년도 운영관련 업무처리안내 개정사항(신구문 대조표) 분야 P 2012년 안내 2013년 안내 개정사유 Ⅱ. 의 운영 3. 의 연혁 Ⅲ. 사업 8 20 12년: 사회복지사업 개정 201 2년: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오타수정 13 사업의 대상 1)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 주민 2) 장애인, 노인, 한부모가정 등 취약계층 주민

More information

<3230313320B5BFBEC6BDC3BEC6BBE74542532E687770>

<3230313320B5BFBEC6BDC3BEC6BBE74542532E687770> 58 59 북로남왜 16세기 중반 동아시아 국제 질서를 흔든 계기는 북로남 왜였다. 북로는 북쪽 몽골의 타타르와 오이라트, 남왜는 남쪽의 왜구를 말한다. 나가시노 전투 1. 16세기 동아시아 정세(임진전쟁 전) (1) 명 1 북로남왜( 北 虜 南 倭 ) : 16세기 북방 몽골족(만리장성 구축)과 남쪽 왜구의 침입 2 장거정의 개혁 : 토지 장량(토지 조사)와

More information

194

194 May 194호 2015년 5월 15일(금요일) 07 (10) 경인지역 뉴스의 중심에 서다 - KBS 보도국 경인방송센터 KBS 보도국 경인방송센터 이민영 팀장 공영방송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수신료 이메일, 메시지 등을 통해 업무에 관해 소통을 하죠. 뉴스가 끝나고 업무를 마감하면 10시가 좀 넘어요. 를 납부하는 시청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More information

<3130BAB9BDC428BCF6C1A4292E687770>

<3130BAB9BDC428BCF6C1A4292E687770> 檀 國 大 學 校 第 二 十 八 回 학 술 발 표 第 二 十 九 回 특 별 전 경기도 파주 出 土 성주이씨( 星 州 李 氏 ) 형보( 衡 輔 )의 부인 해평윤씨( 海 平 尹 氏 1660~1701) 服 飾 학술발표:2010. 11. 5(금) 13:00 ~ 17:30 단국대학교 인문관 소극장(210호) 특 별 전:2010. 11. 5(금) ~ 2010. 11.

More information

11민락초신문4호

11민락초신문4호 꿈을 키우는 민락 어린이 제2011-2호 민락초등학교 2011년 12월 21일 수요일 1 펴낸곳 : 민락초등학교 펴낸이 : 교 장 심상학 교 감 강옥성 교 감 김두환 교 사 김혜영 성실 근면 정직 4 8 0-8 6 1 경기도 의정부시 용현로 159번길 26 Tel. 031) 851-3813 Fax. 031) 851-3815 http://www.minrak.es.kr

More information

삼외구사( 三 畏 九 思 ) 1981년 12월 28일 마산 상덕법단 마산백양진도학생회 회장 김무성 외 29명이 서울 중앙총본부를 방문하였을 때 내려주신 곤수곡인 스승님의 법어 내용입니다. 과거 성인께서 말씀하시길 道 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어울려야만 道 를 배울 수 있

삼외구사( 三 畏 九 思 ) 1981년 12월 28일 마산 상덕법단 마산백양진도학생회 회장 김무성 외 29명이 서울 중앙총본부를 방문하였을 때 내려주신 곤수곡인 스승님의 법어 내용입니다. 과거 성인께서 말씀하시길 道 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어울려야만 道 를 배울 수 있 2014 2 통권 342호 차 례 제목 : 백양역사의 초석 사진 : 모경옥 단주 2 7 8 12 14 17 20 30 32 34 36 38 42 45 곤수곡인법어 성훈한마디 신년사 심법연구 이상적멸분( 離 相 寂 滅 分 ) 59 경전연구 論 語 78 미륵세상 만들기 스승을 그리며/김문자 점전사 편 용두봉 음악 산책

More information

이용자를 위하여 1. 본 보고서의 각종 지표는 강원도, 정부 각부처, 기타 국내 주요 기관에서 생산 한 통계를 이용하여 작성한 것으로서 각 통계표마다 그 출처를 주기하였음. 2. 일부 자료수치는 세목과 합계가 각각 반올림되었으므로 세목의 합이 합계와 일 치되지 않는 경우도 있음. 3. 통계표 및 도표의 내용 중에서 전년도판 수치와 일치되지 않는 것은 최근판에서

More information

제1절 조선시대 이전의 교육

제1절 조선시대 이전의 교육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제2장 사천교육의 발자취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1. 근대 이전의 교육 가. 고대의 교육 인류( 人 類 )가 이 지구상에 살면서부터 역사와 함께 교육( 敎 育 )은 어떠한 형태로든 지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언제부터 이곳에서 삶을 꾸려왔는지는 여 러 가지 유적과 유물로 나타나고 있다. 그 당시 우리조상들의 생활을 미루어

More information

사진 24 _ 종루지 전경(서북에서) 사진 25 _ 종루지 남측기단(동에서) 사진 26 _ 종루지 북측기단(서에서) 사진 27 _ 종루지 1차 건물지 초석 적심석 사진 28 _ 종루지 중심 방형적심 유 사진 29 _ 종루지 동측 계단석 <경루지> 위 치 탑지의 남북중심

사진 24 _ 종루지 전경(서북에서) 사진 25 _ 종루지 남측기단(동에서) 사진 26 _ 종루지 북측기단(서에서) 사진 27 _ 종루지 1차 건물지 초석 적심석 사진 28 _ 종루지 중심 방형적심 유 사진 29 _ 종루지 동측 계단석 <경루지> 위 치 탑지의 남북중심 하 출 입 시 설 형태 및 특징 제2차 시기 : 건물 4면 중앙에 각각 1개소씩 존재 - 남, 서, 북면의 기단 중앙에서는 계단지의 흔적이 뚜렷이 나타났으며 전면과 측면의 중앙칸에 위치 - 동서 기단 중앙에서는 계단 유인 계단우석( 階 段 隅 石 ) 받침지대석이 발견 - 계단너비는 동측면에서 발견된 계단우석 지대석의 크기와 위치를 근거로 약 2.06m - 면석과

More information

새만금세미나-1101-이양재.hwp

새만금세미나-1101-이양재.hwp 새만금지역의 합리적인 행정구역 결정방안 이 양 재 원광대학교 교수 Ⅰ. 시작하면서 행정경계의 획정 원칙은 국민 누가 보아도 공감할 수 있는 기준으로 결정 되어야 관련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들의 분쟁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모 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신생매립지의 관할에 대한 지방자치단체 간 분쟁(경기도 평택시와 충청남도 당진군, 전라남도 순천시와 전라남도 광양시

More information

??

?? 한국공항공사와 어린이재단이 함께하는 제2회 다문화가정 생활수기 공모전 수기집 대한민국 다문화가정의 행복과 사랑을 함께 만들어 갑니다. Contents 02 04 06 07 08 10 14 16 20 22 25 28 29 30 31 4 5 6 7 8 9 10 11 12 13 15 14 17 16 19 18 21 20 23 22 24 25 26 27 29 28

More information

歯20010629-001-1-조선일보.PDF

歯20010629-001-1-조선일보.PDF 6. 29 () 11:00 ( ) 20 0 1. 6. 29 11( ).(397-1941) 1. 2. 3. 4. 5. 1. 28, 60() (,, ) 30 619(, 6. 29) () 6 (,,,,, ),,, - 1 - < > (, ), () < > - 2 - 2.,,, 620,, - 3 - 3. ( ) 1,614,, 864 ( ) 1,6 14 864 () 734

More information

<33B1C7C3D6C1BEBABB28BCF6C1A42D31313135292E687770>

<33B1C7C3D6C1BEBABB28BCF6C1A42D31313135292E687770> 제 1 부 제1소위원회 (2) 충남지역(1) 부역혐의 민간인 희생 -당진군ㆍ홍성군ㆍ서산군(2)ㆍ예산군- 결정사안 1950. 9ㆍ28수복 후~1951. 1ㆍ4후퇴경 충청남도 당진 홍성 서산(2) 예산군에서 군 경에 의해 발생한 불법적인 민간인 희생으로 진실규명대상자 33명과 조사과정에서 인지된 자 151명이 희생된 사실을 또는 추정하여 진실규명으로 결정한 사례.

More information

untitled

untitled 첨 부 보고서 Ⅰ. 조사 개요 1. 조사 배경 및 목적 o 문화적 여유가 생기면서 만화영화 주인공이나 연예인 등의 캐릭터를 넣어 개발한 캐 릭터상품이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데, 앞으로 도 계속해서 신세대의 소비문화 를 창출해 나갈 것으로 예상됨. - 그동안 어린이들 사이에 유행했던 캐릭터로는 미키마우스, 세일러문, 아기공룡 둘 리, 바비, 헬로키티,

More information

참여연대 이슈리포트 제2011-10호

참여연대 이슈리포트 제2011-10호 2016. 3. 23. 국민 위에 군림하고 권력에 봉사하는 검찰 박근혜정부 3년 검찰보고서(2015) 차례 일러두기 5 1부 박근혜정부 3년, 검찰을 말하다 1. [종합평가] 청와대 하명기구의 본분에 충실하였던 검찰 조직 8 [별첨] 2015 검찰 주요 수사 23건 요약 표 18 2. 검찰 윤리와 검사 징계 현황 23 3. 청와대와 법무부 검찰과의 관계 29

More information

<C1DFB1DE2842C7FC292E687770>

<C1DFB1DE2842C7FC292E687770> 무 단 전 재 금 함 2011년 3월 5일 시행 형별 제한 시간 다음 문제를 읽고 알맞은 답을 골라 답안카드의 답란 (1, 2, 3, 4)에 표기하시오. 수험번호 성 명 17. 信 : 1 面 ❷ 武 3 革 4 授 18. 下 : ❶ 三 2 羊 3 東 4 婦 19. 米 : 1 改 2 林 ❸ 貝 4 結 20. 料 : 1 銀 2 火 3 上 ❹ 見 [1 5] 다음 한자(

More information

96부산연주문화\(김창욱\)

96부산연주문화\(김창욱\) 96 1 96 3 4 1 5 2 ( ),, TV,,,,, 96 5,,,, 3, ), ( :,1991) ), ), 13 1 3 96 23, 41, 4 68 (1) 11, 1223, (3/18 ) ( ) 6, 1 (4/2 ) 16, ( ), 1 (5/3 ), ( ) ( ) 1 (2) 96 8 33 41 (4/25 ), (9/24 ), ( ) 961 (5/27 )

More information

???? 1

???? 1 제 124 호 9 3 와 신시가지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면 제일 먼저 이 도시에서 언제나 활기가 넘 쳐나는 신시가지로 가게 된다. 그 중심에 는 티무르 공원이 있다. 이 공원을 중심으 로 티무르 박물관과 쇼핑 거리가 밀집돼 있다. 공원 중심에는 우즈베키스탄의 영 웅, 티무르 대제의 동상이 서 있다. 우즈베 키스탄을 여행하다 보면 어느 도시에서나 티무르의 동상이나

More information

2005년 6월 고1 전국연합학력평가

2005년 6월 고1 전국연합학력평가 제 1 교시 2015학년도 9월 모평 대비 EBS 리허설 2차 국어 영역(B형) 김철회의 1등급에 이르게 해 주는 [보기] 활용 문제 미니 모의고사(문학편) 1 유형편 [1]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 를 참고하여 (가)를 이해할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가) 머리는 이미 오래 전에 잘렸다 / 전깃줄에 닿지 않도록 올해는 팔다리까지 잘려

More information

정 답 과 해 설 1 (1) 존중하고 배려하는 언어생활 주요 지문 한 번 더 본문 10~12쪽 01 2 02 5 03 [예시 답]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한 사 람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으며,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해쳐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04 5

정 답 과 해 설 1 (1) 존중하고 배려하는 언어생활 주요 지문 한 번 더 본문 10~12쪽 01 2 02 5 03 [예시 답]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한 사 람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으며,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해쳐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04 5 S I N S A G O 정답과 해설 채움 1. 마음을 나누는 삶 02 2. 효과적인 자료, 적절한 단어 11 3. 문학을 보는 눈 19 4. 보다 쉽게, 보다 분명하게 29 5. 생각 모으기, 단어 만들기 38 정 답 과 해 설 1 (1) 존중하고 배려하는 언어생활 주요 지문 한 번 더 본문 10~12쪽 01 2 02 5 03 [예시 답] 상대에게 상처를

More information

無爲旅行의 세상에 대한 삿대질 005

無爲旅行의 세상에 대한 삿대질 005 無 爲 旅 行 의 세상에 대한 삿대질 005 무위여행 소개글 목차 1 김정일의 붕괴는 북한주민들에게는 축복 8 2 善 의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 정책은 폐기되어야 9 3 정치인은 국민에게만 負 債 의식을 가져야 한다 11 4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다 13 5 침략의 원흉을 비판하고 단죄하는 게 순서다 15 6 김수해님께 다시 드립니다. 17 7 이런 개 풀 뜯어

More information

011°�³²°¡Á·½Å¹®-ÃÖÁ¾¼öÁ¤

011°�³²°¡Á·½Å¹®-ÃÖÁ¾¼öÁ¤ 011강남가족신문-최종수정 2011.3.11 7:8 PM 페이지 1 www.fggn.kr 발행처 : 순복음강남교회 발행인 : 최명우 편집인 : 오훈세 서울시 강남구 역삼1 동 833-6 02 ) 3469-4600 2011년 3월 나도 10명 전도해 10만 성도 만드세 리더십 영성아카데미 500여명 참석, 실제적인 전도 훈련 그동안 나가서 전도지만

More information

<34B1C720C0CEB1C7C4A7C7D828C3D6C1BEC6EDC1FD30323138292D28BCF6C1A4292E687770>

<34B1C720C0CEB1C7C4A7C7D828C3D6C1BEC6EDC1FD30323138292D28BCF6C1A4292E687770> 이 조사보고서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32조제1항 규정에 따라 2008년 7월 9일부터 2009년 1월 5일까지의 진실 화해를위 한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을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되었습 니다. 차례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김세태 등에 대한 보안대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사건 11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25 보안대의 가혹행위로

More information

<38BFF920BFF8B0ED2DC8F1BFB5BEF6B8B620C6EDC1FDBABB2E687770>

<38BFF920BFF8B0ED2DC8F1BFB5BEF6B8B620C6EDC1FDBABB2E687770> 통권 제67호 대구공동육아협동조합 http://cafe.gongdong.or.kr/siksikan 함께 크는 우리 아이 여는 글/03 교육평가 및 교육계획/05 터전소식/38 몸살림 체조 강좌 후기/43 단오행사 후기/44 게릴라 인터뷰/46 책 읽어주는 방법 찾기/50 특별기고/52 맛있는 인문학/55 편집후기/58 2010. 8 함께 크는 아이, 더불어

More information

160215

160215 [ 진경준, 대한민국 검사의 민낯! ] 진경준 검사 정봉주 : 진경준 검사장 사건이 충격적인가 봐요.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얘기도 나오는 걸 보니까. 왜 그래요, 느닷 없이? 김태규 : 공수처는 여러 검찰개혁안 중의 하나였죠. 검찰의 기 소독점주의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공수처를 도입해야 한다 는 얘기가 오래 전부터 나왔고. 그런데 지금 정권이 레임 덕에 막 빠지려고

More information

<C1D6BFE4BDC7C7D0C0DA5FC6EDC1FDBFCF28B4DCB5B5292E687770>

<C1D6BFE4BDC7C7D0C0DA5FC6EDC1FDBFCF28B4DCB5B5292E687770> 유형원 柳 馨 遠 (1622~1673) 1) 유형원 연보 年 譜 2) 유형원 생애 관련 자료 1. 유형원柳馨遠(1622~1673) 생애와 행적 1) 유형원 연보年譜 본관 : 문화文化, 자 : 덕부德夫, 호 : 반계磻溪 나이 / 연도 8 연보 주요 행적지 1세(1622, 광해14) * 서울 정릉동貞陵洞(정동) 출생 2세(1623, 인조1) * 아버지 흠欽+心

More information

시편강설-경건회(2011년)-68편.hwp

시편강설-경건회(2011년)-68편.hwp 30 /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경건회 (2011년 1학기) 시편 68편 강해 (3) 시온 산에서 하늘 성소까지 김헌수_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교장 개역 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 로다 20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피함이 주 여호와께로 말미암 거니와 21 그 원수의 머리 곧 그 죄과에 항상 행하는

More information

untitled

untitled 년도연구개발비 년도매출액 년도광고선전비 년도매출액 년도 각 기업의 매출액 년도 산업전체의 매출액 년도말 고정자산 년도말 총자산 년도연구개발비 년도매출액 년도광고선전비 년도매출액 년도 각 기업의 매출액 년도 산업전체의 매출액 년도말 고정자산 년도말 총자산 년도연구개발비 년도매출액 년도광고선전비 년도매출액 년도각기업의매출액 년도 산업전체의 매출액

More information

정 관

정         관 정 관 (1991. 6. 3.전문개정) (1991. 10. 18. 개 정) (1992. 3. 9. 개 정) (1994. 2. 24. 개 정) (1995. 6. 1. 개 정) (1997. 3. 14. 개 정) (1997. 11. 21. 개 정) (1998. 3. 10. 개 정) (1998. 7. 7. 개 정) (1999. 8. 1. 개 정) (1999. 9.

More information

VISION2009사업계획(v5.0)-3월5일 토론용 초안.hwp

VISION2009사업계획(v5.0)-3월5일 토론용 초안.hwp VISION 2009-1 - 2009년 전망 [1] 경제 전망 경제 위기 계속 -각종 연구소 2009년 경제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 마이너스 성장 예상 -주요 기업들 감산 및 구조조정, 중소기업 부도 -실업 증가, 비정규직 증가, 내수부진으로 인한 자영업 몰락 2009년은 경제위기가 정세전망을 원천적으로 규정하는 상수. 이를 둘러싸고 정 치사회의 공방이 진행.

More information

000000038348.hwp

000000038348.hwp 규범 폐쇄성 신뢰 호혜 < 그림1> 사회자본의 구조 D E B C B C A A 비폐쇄성 네트워크(a)와 폐쇄성 네트워크(b) 출처: Coleman, 1988. p. 106. 信 用 人 情 關 係 面 子 報 答 꽌시의 구조 지방정부 동향 공장장 공장장 청부책임제 향진기업 연변 백운(

More information

<B1B9BEEEBEEEC8D6B7C25FB9AEB9FDBEEEC8D63430302E687770>

<B1B9BEEEBEEEC8D6B7C25FB9AEB9FDBEEEC8D63430302E687770> 번호 단어 직관적인 이해 2/26(수) test 예정 예시 1 품사 성질이 같은 단어의 묶음, 명사 대명사 수사 조사 동사 형용사 관형사 부사 감탄사 2 체언 명사, 대명사, 수사 체언 : 사과,~것(의존명사), 그것, 하나, 둘, 용언:달리다, 먹자, 눕다, 젊다, 노는~ 3 불변어 활용하지 않는 단어 명사 대명사 수사 조사 관형사 부사 감탄사 4 가변어

More information

580 인물 강순( 康 純 1390(공양왕 2) 1468(예종 즉위년 ) 조선 초기의 명장.본관은 신천( 信 川 ).자는 태초( 太 初 ).시호는 장민( 莊 愍 ).보령현 지내리( 保 寧 縣 池 內 里,지금의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서 출생하였다.아버지는 통훈대부 판무

580 인물 강순( 康 純 1390(공양왕 2) 1468(예종 즉위년 ) 조선 초기의 명장.본관은 신천( 信 川 ).자는 태초( 太 初 ).시호는 장민( 莊 愍 ).보령현 지내리( 保 寧 縣 池 內 里,지금의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서 출생하였다.아버지는 통훈대부 판무 제11편 성씨 인물 579 제3장 인 물 1. 고려ㆍ조선시대 인물 강순 강열황 구계우 구상은 김감 김경상 김계백 김계환 김규 김광오 김광원 김극성 김극신 김근행 김낙항 김남호 김노기 김노영 김맹권 김명현 김문서 김백간 김상현 김생려 김선지 김성국 김성우 김수정 김수현 김숙 김시걸 김신행 김억 김여남 김영석 김영수 김영제 김용제 김우식 김위 김응순 김응의 김응정

More information

<C1DFB0B3BBE7B9FD3128B9FDB7C92C20B0B3C1A4B9DDBFB5292E687770>

<C1DFB0B3BBE7B9FD3128B9FDB7C92C20B0B3C1A4B9DDBFB5292E687770>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 거래신고에 관한 법령 제1장 공인중개사제도 제2장 총칙 제3장 중개사무소의 개설등록 제4장 중개업무 제5장 중개계약 및 부동산거래정보망 제6장 중개업자 등의 의무 제7장 중개보수 제8장 교육 및 업무위탁, 포상금 제9장 공인중개사협회 제10장 지도ㆍ감독 및 벌칙 제23회 완벽대비 제1장 공인중개사제도 1. 시험시행기관 (1) 원칙

More information

주택시장 동향 1) 주택 매매 동향 2) 주택 전세 동향 3) 규모별 아파트 가격지수 동향 4) 권역별 아파트 매매 전세시장 동향 1 4 7 10 토지시장 동향 1) 지가변동률 2) 토지거래 동향 12 14 강남권 재건축아파트 시장동향 15 준공업지역 부동산시장 동향

주택시장 동향 1) 주택 매매 동향 2) 주택 전세 동향 3) 규모별 아파트 가격지수 동향 4) 권역별 아파트 매매 전세시장 동향 1 4 7 10 토지시장 동향 1) 지가변동률 2) 토지거래 동향 12 14 강남권 재건축아파트 시장동향 15 준공업지역 부동산시장 동향 2 주택시장 동향 1) 주택 매매 동향 2) 주택 전세 동향 3) 규모별 아파트 가격지수 동향 4) 권역별 아파트 매매 전세시장 동향 1 4 7 10 토지시장 동향 1) 지가변동률 2) 토지거래 동향 12 14 강남권 재건축아파트 시장동향 15 준공업지역 부동산시장 동향 17 이달의 부동산 Focus 새로운 주택청약제도 27일부터 시행 - 국토교통부 - 18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