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60일간의 드라마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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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560일간의 드라마 여행 흐르는강물처럼

2 소개글 로케이션매니저의 자전적 에세이 스크린 테마기행

3 목차 저 푸른 수평선 너머로(그대그리고나) 6 우도속의 섬, 비양도(올인) 10 길은 차밭으로 통한다(SK텔레콤) 14 빵꾸 똥꾸 산골소녀(지붕뚫고하이킼) 16 우포 강가에 앉다(사랑따윈필요없어) 20 떠나요 삐삐롱스타킹 23 왕초 따라가기(왕초) 27 가문의 영광이로소이다(가문의영광) 32 동강이 흐르는 젊은 날의 추억(라디오스타) 35 소광리 숲으로의 여행 (영웅시대) 38 무섬마을 강가에서(추노) 41 해협을 건너는 바이올린 44 주산지의 사계(봄여름가을겨울) 49 탄광촌 꼴두바우의 전설 (에덴의동쪽) 51 들리잖니! 보이잖니! 보길도 여행 54 아내와의 첫 만남과 신혼여행 59 농촌총각과 연변처녀 64

4 겨울 소나타 (겨울연가) 69 시린 강가의 추억 (엽기적인그녀) 71 계곡 트레킹, 산간 오지마을 74 옛 추억의 골목길, 8월의 크리스마스 77 타임머신 여행(빛과그림자) 83 첫사랑, 벚꽃향기 바람에 날리우고 89 순천만 안개여행 92 가을날의 동화 (가을동화) 97 무지개를 이은 왕비(대장금) 100 적벽을 찾아서(쌍화점) 102 한류 바람 부는 서울 골목길 106 남양만의 시린 풍경들 109 갱갱이( 江 景 ), 근대건축물 기행 113 설매재와 진돗개(왕의남자) 116 내 흐린 기억속의 섬 여행 118 내가 만난 경주 천년의 이야기(왕릉 편) 121 내가 만난 경주 천년의 이야기(마을 편) 125

5 경천호의 작은 학교 131 소나기, 비갠 오후 135 화순, 적벽을 찾아서(쌍화점) 137 잃어버린 아름다운 시절 141 산막이 옛길을 따라서(재빵왕 김탁구) 146 기차는 밤8시에 떠나가네 149 소설 마당깊은집 탐방 (꽃보다 남자) 153 예쁜 수목원 이야기 (미남이시네요) 156 천국으로 가는 길 159

6 저 푸른 수평선 너머로(그대그리고나) : 년 그해 여름, 난 해안길을 따라서 인천 서해안을 기점으로 남해안과 동해안에 이르기까지의 긴 여행을 했다. 보름간의 긴 여정이었지만 나의 시선이 멈춘 곳은 동해의 어촌마을인 강구 항이었다. 강구항은 경북 영덕에 있는 항 구로서 예로부터 울진, 영덕 앞바다에서 대게가 잡히면 이곳에 와서 집하되고 경매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갈 만큼 꽤 번성했던 항구였다. 그러나 근래에 교통중심의 변방으로 남아있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해 어두운 먹구름이 한국 경제를 짓누르는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국가 외환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국제적인 신인도 는 땅에 떨어졌다. 급기야 외국에까지 구원의 손길을 뻗치게 된 것이다. 가장들은 실직의 고통을 맛보았고 거리로 내 몰렸다. 취업을 앞둔 예비 대학생들은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이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나 규범들이 암 울한 현실 앞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당시 희망의 끈을 놓아야 했던 이런 현실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억 누르고 있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 가족이 해체 되고나면 결국 마지막 남은 것은 무엇일까! 꿈도 희망도 없 는 그 허망함이 마음을 억누르고 있을 때 눈앞의 펼쳐진 바다를 보았다. 그때 내가 만난 포구와 바닷가 마을들, 한 무리의 갈매기 떼들이 갑판 뱃머리를 맴돌고 있었고 넘실대는 파도가 뱃전을 움직이고 있었다. 수평선 저 멀리 작은 등대가 보이고 언덕 위 옹기종기 모여선 집들은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파도가 넘실대는 작은 배 위에서 꼼짝할 수 없는 것처럼 난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곳에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좀 더 가까이 아주 가까이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바다내음을 온 몸으로 맡으면서 조심 스럽게 발걸음을 항구로 내 디뎠다. 난 이곳을 알기 이전까지는 동해안 바닷가는 경포대의 아름다운 해변만을 생각했다. 또 내 기억 속에는 깡통을 매단 저 푸른 수평선 너머로(그대그리고나) 6

7 철책 분단의 상처 난 해안선만이 내 머릿속에 그려질 뿐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그간의 통념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 다. 그것은 삶의 활력이 넘치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과도 같았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바닷바람을 타고 이곳 항구의 생기를 불어 넣은 듯 풍만함으로 다가온 첫 만남이었다. 난 그들의 강인한 몸짓에서 어두운 현실의 장막이 걷 히고 밝은 햇살이 비칠 것으로 생각했다. 그해 MBC 주말연속극 그대그리고나 란 드라마가 기획됐다. 극중 주인공 재천(최불암 분)은 작은 배 한 척을 갖고 고기를 잡으며 사는 홀아비다. 그는 아들 3형제와 딸을 키우면서 고향 바닷가 마을을 지킨다. 큰아들 동규(박상원 분) 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고, 말썽꾸러기 둘째 아들 영규(치인표 분)는 군 휴가를 받아 고향마을로 돌아온다. 배 다른 막내아들 민규(송승헌 분)는 오늘도 도꾸(진돗개)를 데리고 등대로 나간다. 그리고는 끝없는 망망대해 푸른 바다 를 보며 고향을 떠난 어머니(이경진 분)를 그리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조그만 바닷가 동네에 동규와 결혼하겠다 며 수경(최진실 분)이 찾아온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바다는 낭만이 아닌 상심의 바다 그것이었다. 당시 외환 위기로 온 국민이 우울해 있을 때 주말 저녁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끈 드라마가 그대그리고나 이다. 시 놉 상, 극중 무대가 되는 바닷가는 원래 인천의 조그마한 어촌 정도로 설정했다. 왜냐하면 주말드라마 특성상 먼 거 리를 갈수 없다는 현실적인 계산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유명배우를 멀리 장기이동하면서 촬영하는 것에 대한 내부 반 발도 있었고, 현실적인 제작비도 또한 고려할 대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북 영덕에 가려면 최소한 다섯 시간 이 상을 길에 허비해야 한다. 가는 길도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동해안으로 연결되는 7번 해안 국도를 따라서 지겹도록 가야한다. 아니면 국 도를 따라 단양, 봉화를 거쳐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을 가야만 하는 곳이 경북 영덕인 것이다. 차 드라이브를 미친 듯 이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선 웬만한 사람은 좀처럼 가지 않는 그런 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을 촬영지로 선 택한다는 것은 애당초 무모하기 짝이 없는 선택이었다. 아무리 좋은 훌륭한 풍광이 있는 촬영지라 하더라도 바쁜 스 케줄로 움직이는 촬영현실을 감안한다면 이곳을 촬영지로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방송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 체력은 급격히 저하될 것이고 사기는 땅에 떨어져 드라마 제작환경이 먹구름 같을 것이 라고 누구든 쉽게 예단했다. 그러나 아무리 눈앞의 예측 가능한 현실이 있더라도 여러 가지의 변수와 의외성이 있는 것이 인생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 스스로 그렇게 자위하면서 앞으로 전개될 일들을 생각할 때 그것은 암울한 현실과 맞닿아 있을 뿐이었다. 난 여행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전국을 여행하면서 내가 느꼈던 바닷가 분위기를 연출자에서 생생하게 전달했다. 그는 내가 우려했던 것 이상의 고민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당혹해 하면서도 선뜻 나의 결정을 받아주었다. 내부적으 로도 많은 반발이 있었지만 우린 장고의 고민을 거듭한 끝에 촬영지를 경북 영덕으로 정했다. 그해 가을, 방송 개편에 맞혀 이 드라마가 안방극장에 전파를 타면서 실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동안 영덕대게 로만 알려져 왔던 작은 어촌마을을 순식간에 관광지로 만들어버렸다. 이 한 편의 드라마로 이곳이 알려지게 되면서 영덕은 때 아닌 호황을 누렸다. 시청자들은 아름답고 조용한 그러면서도 삶의 활력이 넘치는 풍광을 보며 환호했다. 그것은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오려는 우리의 희망과도 같은 열망이었으리라! 드라마 그대그리고나 는 영덕의 많은 곳에서 촬영되었는데 극중 재천(최불암 분)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장면 은 주로 강구 항에서 촬영했다. 지금도 강구 항에 가보면 당시 촬영했던 사진들이 기념비처럼 세워져 있어 이곳이 드 라마 그대그리고나 촬영지임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한다. 재천의 딸 상옥(서유정 분)이 가수가 되겠다며 아버지를 찾아와 생떼를 쓰던 장면도 눈에 선하다. 재천이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사람들의 축복 속에 뱃사람으로 돌아가던 장면과 합쭉이(양택조 분)가 재천에게 소주잔을 권하는 정감 있는 장면도 이곳 강구항 물양장에서 촬영했던 기억이 새롭다. 또 부잣집 딸인 시연(이본 분)이 바닷가 마을로 찾아 와 민규(송승헌분)의 아픔을 달래주며 추억을 만들던 곳도 강구항 오포 등대이다. 낮은 구릉이 있는 언덕에서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면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나란히 마주 보고 있고 항구 저편 배 갑판위로 갈매기 떼가 허공을 맴돌고 있다. 어느 날, 고향을 등지고 떠났던 민규의 친어머니(이경진 분)가 바닷가 마을을 찾았다. 그는 자식을 버린 죄책감에 차 마 집으로 가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그냥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옛 추억의 시린 눈 맞춤 하던 곳이 항이 내려다보이 는 강구 다리이다. 저 푸른 수평선 너머로(그대그리고나) 7

8 재천의 큰아들 동규와 수경(최진실 분)이 고향마을 언덕 억새밭에서 결혼을 약속하던 그 무덤가는 영해면에 있는 대 진항 뒷산이었다, 또 영규와 미숙(김지영 분)이 함께 새 출발을 다짐하던 장면도 이곳에서 촬영했는데 그들은 동해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억새꽃 만발한 친엄마 무덤 앞에서 미래를 다짐했던 것이다. 드라마가 성공리에 끝나고 난 스크린테마기행 을 기획했었다. 드라마촬영지를 로케이션매니저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었는데 울진 후포 항에 있는 재천(최불암 분)의 집과 무덤가를 포함한 영덕의 촬영지를 돌아보는 코스로 짜여 있었는데 그때의 여행객들은 이런 관광 상품에 무척 신기해했다. 이런 곳도 여행지가 될 수 있음에 허실한 웃음을 띠던 그 모습이 생각났다. 영덕 강구 항은 뱃사람 재천의 꿈과 희망과 좌절이 고스란히 베인 삶의 터전이다. 거센 파도와 폭풍우가 몰아친다 해 도 재천은 격랑을 헤치며 오늘도 먼 바다로 나갈 채비를 한다. 이것이 한국인의 끈질긴 생명력일 것이다. 내가 이곳 강구 항에 처음 발을 내딛었을 때의 느낌은 한마디로 삶의 치열한 역동성 그것이었다. 그 어떤 말로도 표 현할 수 없는 인간 생존의 근원적인 문제, 그 절실함으로 우린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린 탓에 우린 지금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 용광로와도 같은 뜨거운 열기로 우린 침체의 늪에서 헤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드라마 그대그리고나 는 영덕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촬영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촬영지는 울진이라고 해도 크 게 틀린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영덕과 울진 이렇게 양분돼서 촬영됐지만 중요도나 촬영 빈도에 있어서보면 울진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공개하면, 사실 그 당시만 해도 드라마가 갖는 관광자원으로서의 파급력을 별로 인식하지 못한 시기였다. 근래에는 지자체가 드라마나 영화를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서지만 그 당시의 상황과 인식은 그렇지 못했다. 그 당시 영덕군 공보실은 우리 드라마 촬영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움을 주었다. 차량을 제공하고 길 안내를 마다하 지 않았으며, 그 지역특산물로 가끔은 우리의 입맛을 즐겁게 해주었다. 울진에서의 촬영 빈도가 더 많았음에도 불구 하고 드라마 그대그리고나 촬영지의 공은 영덕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울진군은 드라마의 파급력을 간과하고 있었다. 금강송 군락지인 소광리 숲을 비롯하여 성류굴, 불영계곡, 사찰 불영 사. 행곡리 대나무숲 마을 등 수려한 자연경관이 훨씬 더 많았음에도 그 자리를 영덕에 빼앗겼다고나 할까! 드라마촬영지 영덕을 보기 위해 혹은 영덕대게를 먹기 위해 주말이면 7번 국도가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영덕은 호황 인데 울진은 파리만 날리고 있으니 그 지역 주민들로서는 어찌 울화가 치미지 않겠는가! 더구나 실제 극중 재천의 집 과 바닷가 월송정에서의 촬영이 대부분 울진 지역에서 이루어진 사실을 주민들은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해 지차제장 선거가 있었는데 군수가 재선에 실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드라마로 인해서 군수가 재선에 실패했다고는 말할 수는 없겠지만 울진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는 쉽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극 중 재천이 사는 언덕 위에 있는 집은 바다가 멀리 내려다보이는 울진 후포 항이다. 이 집 뒤편에는 등기산 등대공 원이 있고 이 집으로 가려면 96개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한참 오르다보면 힘도 들지만 이 집에서 내려다보이 는 후포항의 조망은 뛰어나다. 우린 이곳에서 많은 촬영을 했다. 원래 극중 재천의 집 설정은 합쭉이(양택조 분)가 오 토바이를 타고 재천의 집으로 찾아가는 장면이 많았다. 난 촬영장소를 물색하면서 이 같은 조건에 맞추려면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결론은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가는 역동적인 모습보다는 바다 풍경을 담을 수 있는 곳을 적극 추천했다. 그래서 이곳으로 촬영지가 정해졌는데 촬영스텝의 불만의 목소리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거운 촬영, 조명장비를 매고 무려 96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그 어디 쉬운 일이겠는 가! 그럼에도 촬영팀이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던 것은 이곳에서 바라보는 후포항의 모습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당시 이곳 후포항에 촬영 왔을 때 유명 연예인을 보기위해 이 지역 중고등학생 수 십 여명이 수업을 빼먹고 촬영장 으로 찾아와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이들을 찾느라 애태우는 진풍경이 벌어졌었다. 영규가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동생들과 함께 고향 앞바다에서 카세트를 틀어놓고 춤을 춰대던 곳은 울진 월송정이었 다.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손꼽혀지던 명승지인데 난 드라마 그대그리고나 가 끝나고 여행상품 스크린테 마기행 을 기획했을 때 첫 기착지로 이곳을 선정했다. 서울에서 출발한 관광버스는 국도를 따라 불영계곡을 거쳐 울 진 백암온천에서 여장을 풀게 된다. 저 푸른 수평선 너머로(그대그리고나) 8

9 다음 날, 동틀 무렵 떠오르는 일출 장면을 보기 위해 월송정에 오게 되는데 새벽안개에 휩싸인 들판은 한 폭의 수채 화 같다. 소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를 맡으며 갈대숲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안개 속에 수줍은 듯 모습을 드러낸 노란 창포가 물가에 피어 있다. 하늘의 여명이 움터오는 들판을 따라 걷다가 바닷가에 서면 붉은 해가 바다 한가운데서 쑥 떠오른다. 사람들은 떠오 르는 해를 바라보며 모두 저마다의 소망을 얘기한다. 그 눈빛엔 고향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새로운 마음으 로 첫 출발을 다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희망을 꿈꾸며 소박한 삶이 경건하게 이어지기를 소망했을 것이 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고 돌아오는 그 길엔 환한 미소가 뿜어져 나온다.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에 전혀 오염되지 않은 바다가 또 있을까 라고 말이다. 그렇다! 이곳은 길게 드리워진 철책 말 고는 사람들로부터 방해받는 그 무엇도 없다. 하늘을 날고 있는 갈매기와 파도와 소나무와 들꽃 그것이 전부이다. 아 름답다고 생각하는 자연의 그 모든 것들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곳 자연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병든 마음까지도 치유해 줄 것으로 굳게 믿고 싶었다. 극중 재천의 고향마을 앞바다인 월송정! 저 수평선 너머 갈매기는 하늘을 날고 있었고 넘실대는 파도는 이곳 월송정 과 맞닿은 평해천을 타고 넘쳐흘렀다. 그때 고향 앞바다에서 신나게 춤을 춰대던 이들의 모습은 갈매기 떼와 어우러 져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들의 몸짓에서 푸른 희망이 넘쳐흐르는 모습을 보았다. 드라마 첫 회가 방송될 때, 마지막 장면에 배경으로 흐르 던 루 크리스티 의 Beyond The Blue Horizon<저 푸른 수평선 너머로>음악이 내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 아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려는 듯했다. 저 푸른 수평선 너머로 태양이 떠오른다네! 우리의 희망이 넘쳐흐른다 네! 저 푸른 수평선 너머로(그대그리고나) 9

10 우도속의 섬, 비양도(올인) :56 그 어느 해, 감독으로부터 바다를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 같은 성당을 찾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한국의 크고 작 은 여러 해안 도시들과 시골구석까지 곳곳을 누비고 다녀 봤지만, 바닷가와 성당이 한 프레임으로 들어오는 성당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이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꿈이 아니면 환상일 것이다. 그 누가 자연 경관만을 고집해서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 그림 같은 성당을 짓겠는가 말이다. 드라마 촬영 목적을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니라면 애당초 그것은 기대할 수 없는 그림이었다. SBS 미니시리즈 올인 이 방송됐다. 이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버린 갬블러의 인생을 극화한 것인데 주인공인 인하 (이병헌 분)와 수연(송혜교 분)의 역할로 이들 두 사람이 내정되었다는 감독의 말과 함께 수연의 생활공간인 성당을 찾아 나섰다. 김포~제주간 비행기를 탔다. 구름 위를 떠가는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도박에 운명을 걸었던 그의 삶에 대해 생각해 봤다. all in.. 모든 것을 다 쏟아 붓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를 도박의 세계로 이끌었는지 난 시높시스를 보면서 심연의 밑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도박도, 사랑도, 인생 도 어쩌면 냉혹한 현실이 되고 그 모든 것에 대해 승부를 걸어야 했던 그의 세계에서 과연 내 인생의 승부라고 말할 수 있는 것, 내 인생의 그토록 갈망했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줄곧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학 교 다닐 때 틈만 나면 기타를 둘러메고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는 것 이외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는 항상 전교에서 밑바닥을 맴돌았고 난 커서 딱히 무엇이 되고 싶다는 포부와 이상은 그냥 꿈같은 이야기로만 남아 있 을 뿐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고교 진학문제로 엄마가 입시상담을 받으러 학교로 찾아왔다. 그때 내겐 고교진학 문제가 더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작고 볼품없는 엄마를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게 하는 것이 내겐 더 큰 관심사였다. 난 그렇게도 우도속의 섬, 비양도(올인) 10

11 철이 없었다. 당시 국내 산업계는 공업육성 정책을 목표로 정부에서는 실업계 고교 진학을 적극 장려했다. 공업계로 진학하면 곧 취직이라는 등식이 성립됐는데 엄마는 담임선생의 말을 듣고 별다른 저항 없이 나를 공업계로 보냈다. 그때 입시상담 받으면서 잊히질 않는 것은 담임선생 왈, 얘는 말 수가 적어 전기과가 적성에 딱 맞을 것이라는 그 말 이 떠올라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때는 정말 그런 것인가라고 난 생각했었다. 전기는 엄연히 도선을 따라 빛의 에너 지로 바뀌는 소통의 매개체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토당토하지 않은 무지몽매한 발언이라 생각했다. 난 그렇게 공업계 학교에 진학했고 적성에도 맞 지 않은 학교생활로 학업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졸업 후 공고를 나와 취직을 하려해도 찌질이인 내겐 그 어떤 기회 나 행운도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란 공장에서 용접하는 일이거나 건설현장에서 배선 파이프를 나 르는 말고는 없었다. 내가 좀 더 안정된 일터에서 꼬박꼬박 월급 받고, 또 조그만 회사에서 경리 일을 하는 여자를 만나 가정의 이루는 일이 내겐 꿈같은 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공고에 대한 선호와 사회적 인식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런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남 들보다 더 부지런히 더 열심히 일하는 것 이외엔 없었다. 그것을 외면하는 한 내가 가질 수 있는 선택이란 가혹하고 차디찬 현실 그것이었다. 내 젊은 날의 방황과 꿈! 이루고자하는 목표, 그것은 아무도 가지 않은 로케이션매니저로서 의 도전과 열정 바로 그것이었다. 잠시 후 이륙을 알리는 기내방송에 난 내릴 준비를 서둘렀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하면 그때 내려도 충분한대도 난 남들보다 빨리 내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행동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어차피 활주로에 비행기가 착륙해도 한참 을 기다려야 되는데도 말이다. 난 내게서 뿜어져 나오는 인상이나 말씨 억양을 보면 행동이 무척 느긋한 것 같지만 엘리베이터에서 타고내리는 일이나 커피자판기의 컵에 담기는 커피가 쏟아져 나오는 시간을 참치 못하고 답답해한 다. 공항을 빠져나와 제주의 먼 하늘을 바라다보았다. 먹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뒤덮고 금방이라도 한 차례 빗줄기를 퍼부 을 것 같은 기세다. 제주도 날씨는 내가 올 때마다 매번 그랬다. 맑은 하늘을 보고 싶다는 기대는 내가 제주도에 올 때 만 큼은 허용되지 않았다. 이것을 머피의 법칙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운이라고 해야 하는 지 나로선 도무지 알 수 없다. 걸어서 여행 하다보면 간혹 예고 없는 비를 만날 때처럼 당황스러운 것도 없다. 그 누가 여행 중 우산도 없이 허허벌 판에서 비를 맞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빗줄기는 시야에 가려져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비는 내 옷 속에 젖어들어 쓸쓸함이 배어나올 것이다. 난 벌판에서 혹은 산길에서 비를 만나야 했던 경험들이 제법 있다. 그래서 여름 우기 때 는 항상 배낭에 우비를 넣는 것을 잊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할까! 막상 어디로든 가야겠는데 방향을 정하지 못하는 것만큼 난감한 일도 드물 것이다. 난 제주도에 꽤 많이 왔다. 그럼에도 선뜻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는 것은 여행자의 오만함인가! 아니면 신중함인가! 차라리 초행길 이라면 내 직관에 떠밀려 마음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그냥 떠나면 그만인 것을. 성당이 세워지는 촬영지를 섭지코지로 할까! 아니면 제동목장의 숲길은 또 어떨까! 하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파편처 럼 튀었다. 제주도에는 실제 예쁜 성당이 여럿 있고 또 대충 그런 곳에서 촬영하면 그만인데 연출자는 왜 성당을 지 으려고만 하는지 그가 원망스럽기 조차했고 또 의아했다. 처음에는, 배를 타고 섬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성산포행 버스를 타고 스쳐가는 해안마을들과 이국적인 풍광의 새로 생긴 건 물들을 바라보았다. 제주도의 웬만한 도로들이며 명소들은 대개 낯익은 풍경들이다. 멀리 솟아있는 한라산이 희미하 게 보일듯하다가 이내 사라지고 하면서 난 성산포를 향해 가고 있었다. 성산포항에서 우도로 가는 배편은 15-20분 간 격으로 출발해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섬은 배가 출항해 접근하면서 섬의 실체가 드러내는 법인데 우도는 성산 항에서도 한눈에 들어올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다. 한눈에 소가 누워 있는 형상처럼 보여 붙인 이름임을 알 수 있었다. 우도 항에 도착했다. 섬은 한적했다. 그리고 조용했다. 복잡하거나 번잡함은 느낄 수 없었다. 길을 묻고 싶은데 사람 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우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도봉은 132 미터의 높지 않은 봉우리이지만 우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섬을 둘러싼 기암괴석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저 멀리 성산 일출봉과 일직선으로 마주하고 있는데 꼭대기엔 습습한 바람이 불어 겨울이 가시지 않은 마른 풀밭이 우도속의 섬, 비양도(올인) 11

12 바람결에 일렁이고 있었다. 우도봉 정상 한쪽에 멀리 보이는 하얀 등대가 눈앞에 보였다. 난 등대를 바라볼 때는 항상 경이로운 숭배의 대상이 된다. 그것은 막연한 그리움, 아련함, 향수 같은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열망은 절대자에 대한 맹신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컴컴하고 막막한 밤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에 있어 등대는 희망이요 든든 한 버팀목이다. 등대는 어두운 밤바다의 뱃길을 안내하는 친구요 반려자인 것이다. 난 등대를 부정적으로 표현한 글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등대를 바라보는 마음은 항상 아련한 그리움과 마주하 게 된다. 그래! 하얀 등대가 보이는 배경으로 예쁜 성당을 지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우도봉은 원래 조선시대부터 말을 풀어놓아 키운 곳 이었다. 이곳 우도봉에서 말을 관리하는 듯한 사내가 내 앞을 지 나갔다. 난 이곳 등대 말고 다른 곳에도 등대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여기 말고도 서넛이 있는데 등대를 중심으로 서편은 천진동이라 일러 주었고 동편은 영일동이라 했다. 맑은 날 여기서 보면 제주 전경이 까마득히 멀리 점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동편은 이곳 우도 사람들이 모여 사 는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난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이라도 거기에 인간이 없다면 그것은 그림엽서에 불과 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드라마는 어차피 인간의 삶을 그려내는 것이므로.. 내 발걸음은 당연히 해가 뜨는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검은 돌로 담장을 한 마을을 지나면서 어쩌면 돌담들이 그리도 앙증맞을까 라고 생각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 의 맑은 눈처럼 티 없이 수수롭다. 제주에 이런 소박함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라 생각했다. 제주는 천혜의 아 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지만 이런 돌담의 소박함, 투박함의 정서마저 없었다면 우린 제주의 허상을 본 것이리라. 돌담길을 따라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내 발길을 멈춰야 했다. 내가 그리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중에 주민들 을 통해 이곳이 우도 속의 섬인 비양도임을 알게 됐다. 마을 사람들은 이 앞바다에서 전복을 캐는데 많은 해산물이 이곳에서 잡힌다고 했다. 그것을 영등 할미의 축복이라고 도 했다. 마을과 바다를 있는 조그만 다리가 연결돼 있어 섬이라고 부르기엔 머쓱한 감이 있지만 섬 끝자락 붉은 색 깔의 등대 너머로 해가 솟구칠 때는 섬마을 전체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어 환상적이다. 마을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매일 보는 풍경이겠지만 나로선 생경하다. 아니 경이롭다. 이곳에 등대를 배경으로 성당을 지으면 환상적일거야! 수연(송혜교 분)이 성당으로 가기 위해선 마을 돌담길을 따라 걷고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눈다. 좁은 다리를 건너 성당이 있는 문으로 들어설 때의 모습을 상상해보 면서 내 마음속에 그 풍경을 담아 보았다. 우도가 제주 속의 섬이라면, 비양도는 우도 속의 섬이다. 우도에는 3개의 해수욕장이 있는데 나름대로 특징이 있다. 영일동에 위치한 검멀레 해안은 백사장이 검은 모래로 이뤄진 것이 특이하다. 백사장을 둘러싼 절벽도 검다. 그리고 해변을 따라 펼쳐지는 절벽의 경치가 주변을 압도한다. 거대한 바윗덩어리를 얇게 갈아 겹겹이 쌓아놓은 듯한 모습이 다. 석벽으로 가기 전에 모습을 드러내는 동굴은 커다란 고래 한 마리가 빠져나간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사람들은 동 안경굴 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우도 여행의 백미는 산호사 해수욕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름처럼 백사장이 산호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홍조류가 돌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생긴 것이다. 흰빛을 띠고 있어 산호로 착각한 셈이다. 산호사 해수욕장과 반대편에 있 는 하고수동 해수욕장의 백사장은 비양도와 가깝게 있어 더한층 친밀하게 느껴진다. 난 제주의 우도속의 또 하나의 섬인 비양도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감독에게 메일로 보내주었다. 다음날 난 우도에서 성산항으로 나와서 제주 서쪽 협재 해수욕장과 마주 보고 있는 같은 이름의 섬 비양도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우도 속의 섬 비양도와는 어떻게 다른지 어떤 차이가 있는 지 말이다. 한라산 정상에서 보면 두 섬이 이름처럼 양 날개가 되어 날아오르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말을 믿어 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 누가 이름을 갖다 붙였는지 놀라운 관찰력이다. 내 눈에는 그리 보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난 결코 이름처럼 날아가는 형상을 한 모습을 발견할 수 없을 것 같다. 이곳 사람들은 지금도 협재에서 바라본 비양도를 해지는 비양도, 우도측 비양도를 해 뜨는 비양도라고 구분해 부른다고 한다. 바다의 재앙을 막아준다는 영등할미가 음력 2월 뭍으로 올라올 때 가장 먼저 들어오는 곳이 비양도 이었다고 한다. 다음날, 연출자를 비롯한 촬영 스텝들이 우도 속의 섬 비양도를 방문했고 우린 모두 그 풍광에 매료됐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우도속의 섬, 비양도(올인) 12

13 아무리 이곳의 풍광이 뛰어나다고 해도 드라마 제작이 숨 가쁘게 돌아가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곳을 선택하기는 큰 모험이다. 만일에 풍랑으로 성당이 있는 우도로 들어가는 배를 탈 수 없다면 또 꼼작 못하고 섬 안에 갇혀 버린다면 우린 큰 낭패를 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비교적 촬영조건이 좋은 신양 해수욕장 부근 섭지코지에 성당을 짓 기로 했다. 제주도 방언처럼 바다가 보이는 해안 끝자락 섭지코지에 말이다. 드라마가 방송되면서 섭지코지는 관광명소로 부각됐다. 연일 관광객이 이곳을 찾았고 극중 주인공인 두 사람은 실제 연인이 되어 매스컴에 집중 조명 받았다. 그 어느 해인가 제주도 한라산을 등반하고 내가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때 섭지코지 언덕에 세워진 성당을 보려는 사람 은 별로 없었다. 다만 넓은 초지에 신혼여행객들에게 말을 태워주는 마부만이 때 아닌 호황을 누렸다. 비싼 입장료와 상품을 파는 성당 올인하우스! 너무 상업적인 것에만 치우치다보면 올인 이라는 드라마와 함께 우리 기억 속에 조 금씩 잊혀져갈 것이다. 우도속의 섬, 비양도(올인) 13

14 길은 차밭으로 통한다(SK텔레콤) :52 그 누가 앞서 가던 길! 난 그 길을 걷고 있네. 그리움 가슴에 안고 한숨에 달려가던 길 난 그 길을 혼자 걸었네. 바람이 나를 찾아와 준 길, 그 길에 흔들리는 갈대의 흐느낌이 남았네. 인생의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길! 그 누구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아픈 길! 난 그 길을 말없이 걷고 있네. 이동통신 광고회사에서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 <수녀와 비구니 편>광고 제작하는데 그 배경이 되는 장소를 찾아 달라는 연락이 왔다. 광고는 단 한 컷으로 끝장내야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장면이 필요하다. 드라마나 영화와는 달리 임팩트하게 한 컷으로 모든 것을 승부해야하는 광고는 그래서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난 감독을 만나보기위해 광고사무실을 찾았다. 그는 콘티작화 스토리보드를 내밀면서 미루나무가 길게 늘어선 포장이 안 된 흙길을 찾아달라고 했다. 과거 새마을운동이 일어나기 이전에는 미루나무가 있는 시골마을 길은 제법 많았다. 우리의 동요나 그림책에서도 보면 미루나무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주인공인 나무이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 있네, 찬바람이 몰고 와서 감춰놓고 도망갔어요!"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따라 부르던 동요 속에도 그려지는 풍 경이었다. 미루나무는 전형적인 농촌 풍경의 모습을 대신해주었다. 우리는 마을 입구 전봇대보다도 높게 솟은 미루나무를 보면서 고향마을을 떠올리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내 기억 속엔 이런 모습이 자취를 감추었다. 새마을운동 근대화과정에서 마을길, 초가집, 미루나무들이 모습을 감춘 것 이다. 난 이런 미루나무가 있는 흙길을 찾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시골 마을의 드문드문 몇 그루는 있을 수 있겠지만 길게 이어진 미루나무 길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리고는 여행을 떠났는데 경북 영덕으로, 충북 영동 으로, 경남 창녕으로 길이 있는 나 있는 미루나무가 서 있는 곳이 있다면 그 어디에도 내 눈과 마주쳤다. 그러나 기 길은 차밭으로 통한다(SK텔레콤) 14

15 대했던 풍광은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난 광고회사에서 제시한 이 풍경을 결국 포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광고회사로부터 다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광고주로부터 심한 독촉 때문에 제품이미지 광 고를 빨리 찍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촬영장소를 빨리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난 앨범을 뒤적거리다 오래된 빛바 랜 사진 한 장을 꺼내들었다. 다음 날, 난 광고회사를 찾아가서 그 사진 한 컷을 내밀었다. 감독은 의미심장하게 내가 찍은 그 사진을 뚫어지게 바 라보며 빙그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리는 답사 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이곳 보성 차밭으로 촬영지를 낙점했다. 길을 가던 비구니와 자전거를 탄 수녀가 길에서 서로 만난다. 그들을 함께 자전거를 타고 울창한 초록의 숲길을 지나 간다. 비구니와 수녀와의 만남. 자전거를 타고 가는 수녀와 비구니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환상적인 절묘함 의 극치이다. 이 장면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과의 소통이다. 서로의 마음과 생각들이 각기 다르지만 결국 소통해야 하는 것이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사람과 사람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이라는 카피문구가 나오며 종교를 초월한 만남과 마음의 연결을 잘 표현한 SK텔 레콤 수녀와 비구니 편이다. 이 광고는 그 해 한국방송광고대상에서 특별상을 받을 만큼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광고가 전파를 타고 세상에 나왔을 때 보성 차밭을 찾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길게 뻗은 삼나무 길을 따라 가다보면 온통 초록빛의 차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이른 아침 이슬을 머금은 안개 낀 차밭의 풍경도 좋지만 차밭 너머로 멀리 내려다보이는 검푸른 바닷가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곳을 배경 으로 광고가 나가고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가 됐지만 내가 이곳에 처음 와 본 것은 이보다도 훨씬 더 아주 오래전이 었다. 그 해가 아마 1994년도 여름이었을 것이다. 난 MBC기획으로 구한말 덕혜옹주의 삶을 그린 드라마를 준비 중이었다. 배경이 되는 장소가 일본 대마도였기 때문에 시대적인 건축물이 남아있는 곳을 찾아 전국을 헤매고 다녔다. 일본식 적산가옥이며 학교건물, 경찰서 등 구한말의 시대적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곤 했다. 경남 하동 악양면에 있는 일본강점기 산림조합 관사로 쓰였던 집을 찾고. 그다음엔 덕혜가 살았던 일본 대마도의 어 느 풍광 좋은 집을 찾아야 했다. 난 경남 하동을 벗어나 남쪽 득량만 바닷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때 내가 우연히 들른 곳이 보성의 차밭이었다. 사실 일본의 대마도를 연상케 하는 지형적 조건이며 집을 찾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것은 차밭 한쪽에 있는 창고를 개조해 일본식 창고를 짓고 멀리 내려다보이는 바다와 초록의 차밭을 담는 그것이었다. 그 배경 을 대마도에 있는 덕혜의 집으로 설정했다. 방송이 나가고 나서 시청자들은 일본에서 현지로케이션 한 장면인 줄 착 각했다. 방송 관계자들조차도 잘 몰랐다. 이곳 풍광이 당시로서는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감쪽같이 눈속임을 했다. 그 후에도 난 문근영이 주연한 영화 사랑따윈필요없어 를 이곳에서 촬영했다. 그만큼 이곳은 그 누가 보아도 자연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장소이다. 차밭은 서 있는 위치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등고선을 이루는 차밭 한가운데 위치한 전 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좋은 사진을 찍기에 적당한 촬영 포인트이다.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차밭과 짙은 녹색의 삼나무 숲은 인상적인데 이른 아침 안개가 살짝 드리운 고즈넉한 분위기의 차밭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이다. 따사로운 햇살이 길게 뻗은 삼나무 사이로 스며들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울 때 차밭의 연초록 잎은 더욱 짙푸르다. 이 동통신회사 광고에서 수녀와 비구니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장면은 이런 특징을 잘 살려 촬영했다. 차밭을 배경으로 S자를 그리는 삼나무 길을 화면에 넣으려면 길 건너 차밭이 촬영 포인트이다. 난 이곳을 이런저런 이유로 자주 찾아오는 편이다.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감흥은 예전만 못하다. 그만큼 여행자 들의 수도 늘어나 복잡함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럼에도 이슬을 머금은 차밭의 청아함 과 안개 낀 풍광은 이곳을 다시 찾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게 한다. 길은 차밭으로 통한다(SK텔레콤) 15

16 빵꾸 똥꾸 산골소녀(지붕뚫고하이킼) :47 강원도 깊은 산 속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외딴 집에 아빠와 화전을 일구며 살고 있는 두 자매가 있다. 아빠는 빚쟁이 들을 피해 중소 도시에서 이곳으로 도망 와 지금껏 살아온 것이다. 바깥세상과 동떨어진 삶을 산지 벌써 6년째, 먹을 것이 없어서 칡뿌리로 연명하지만 산골에서의 삶은 오순도순 행복했다. 어느 날 낯선 청년들이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중 우연히 신애와 마주친다. 원시적인 소녀의 모습으로 청년들과 마주친 신애는 그들이 건네준 콜 라를 마셔보며 그 맛에 황홀한 충격을 경험한다. 신애는 이들에게 하룻밤을 묵게 할 생각으로 이곳 외딴집으로 데려 온다. 외딴 집 텃밭에서 쟁기를 갈고 있던 아빠는 이들을 보며 황급히 도망가려 하지만 세경은 산속에서 길을 잃은 청년들이라면서 아빠를 안심시킨다. 다음 날, 이 산골 외딴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청년들은 떠나가고 헤어지면서 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유 포되어 전국으로 퍼져 나간다. 며칠 후 이 첩첩 산골에 빚쟁이들이 득달같이 들이닥친다. 이들 부녀는 서울로 도망치 기로 약속하고 자매는 방목 염소 트럭에 숨어 산속을 빠져나온다. 아빠는 빚쟁이들에게 잡히고, 절박한 순간에 아빠 가 외친다. 서울로 먼저 가 있어! 금방 갈게! 남산 시계탑에서 만나! 라고 외친다. 자매는 빚쟁이들에 잡힌 아빠를 애 처롭게 바라보며 염소 트럭에 숨어 서울로 상경한다. 우여곡절 끝에 상경한 스물두 살 세경(신세경 분)과 아홉 살 신애(서신애 분)는 극심한 문명적 충격을 겪는다. 서울의 네온 휘황찬란한 빌딩숲, 백화점, 초고층아파트, 지하철, 심지어 핸드폰 등 생전 처음 본 신애는 꿈같은 환상이면서 도 이해 못 할 일들 천지다. 두 자매는 처음에는 놀이시설에 온 것처럼 신났지만, 돈이 떨어지자 서울에서의 생활은 곤혹스럽다. 그러던 중 우연히 길에서 만난 지훈(최다니엘 분)의 도움으로 순재(이순재 분)의 집에 식모살이를 하게 된다. 산골 오지에서 살았던 자매에게 평창동 주택에 있는 컴퓨터, 벽걸이 TV, 냉장고, 가스레인지, 에어컨, 심지어는 좌변기까지 문명의 이기는 전부 생경하고 놀랍다. 또한 그 집에는 범상치 않은 가족들이 모여살고 있다. 빵꾸 똥꾸 산골소녀(지붕뚫고하이킼) 16

17 저물어 가던 삶의 어느 순간, 앞뒤 못 가리고 열애에 빠진 중소 식품회사 사장 순재, 아침마다 변비로 울부짖는 여덟 살 손녀 해리까지 이 집 식구들은 약간씩 뭔가 문제가 있다. 평창동에서 가장 무능하고 존재감 없는 사위, EQ가 한없이 낮은 의사, 변태 여선생, 이 드라마는 두 자매가 평창동 순재네 집 식모로 들어오면서 이 집 식구들과 벌이는 유쾌한 코미디를 담은 시트콤이다. 산골 소녀 두 자매가 사랑을 통해서 삶에 눈뜨는 성장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던 시츄에이션 드라마이다. 내가 이 작품에서 두자매가 생활하는 산골 외딴집을 찾으면서 가졌던 의구심은 과연 현재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 을이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전기가 배전반 두꺼비집을 타고 들어오는 순간 원시적인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 다. 빨래도 전기세탁기로 하고 밥도 전기밥솥으로 하고 TV를 보면서 또 세상과도 소통하는 매개가 된다. 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골 오지마을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은 경북 청송 내원 마을이 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제외하기로 했다. 주왕산이 꽤 여성적인 산이라서 깊은 산골짝의 느낌이 들 수 없을뿐더러 전기 없는 내원 마을의 집들은 꾸며 놓은 듯한 가공의 느낌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강원도 척박한 땅에 화전을 일구 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집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이다. 강원도 너와집의 묘미는 참나무 껍질과 굴피 또는 억새로 지붕을 잇고 자연과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데 있다. 방안 에서 올려다보면 송송 뚫린 구멍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무언가 미완성의 작품 같다. 언뜻 보기에 눈비가 내리면 천 장 곳곳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지만 너와 지붕은 강원도 산골의 환경에 적응된 건축법이다. 습기를 받으면 차분 히 가라앉는 성질 때문에 너와집은 비가 새지 않는다. 또한,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오고 가니 환기도 잘되고 적당한 습도도 유지되는 것이다. 강원도에는 아직 남아 있는 너와집이며, 굴피집, 샛집들이 제법 있다. 삼척 신기면 환선굴 주변에 관광 자원 목적으로 꾸며 놓은 몇 채의 너와집들이 있다. 이러한 집들은 아무래도 청송 내원마을의 집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과거 이곳은 화전을 일구던 첩첩산중 이었지만 지금은 향토음식점이 며 민박집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기 때문이다. 난 발길을 돌려 오래전 KBS-TV 인간시대 다큐멘터리에 소개되었고, 이동통신회사 광고에도 나왔던 영자네 집으 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집을 찾아가는 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현지 사람들조차도 영자네 집은 잘 알지 못했고, 시청 문화관광과에 전화를 걸어 겨우 그 위치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영자네 집은 삼척에서 도계역으로 넘어 가기 전 대평리 사무곡이라는 곳에 있다. 난 삼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태백 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운전기 사도 영자네를 잘 알지 못했고 다만 대평리 어느 시멘트공장 앞 다리 앞에 나를 내려 줄 뿐이었다. 시멘트로 된 다리 를 건너 길은 삼거리로 나 있는데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영자네 가는 길을 또 물어보았다. 그는 시멘트 공 장 쪽을 가리키며 그리로 가보라고 일러 주었다. 얼마 가지 않아 공장의 초소가 보였고 그 공장의 경비원인 듯한 사 내가 내게 다가와 어디에 가느냐는 묻는 것이었다. 난 영자네 집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 사내는 공장 사무실 옆길 소로를 따라 산으로 한참 올라가야 한다면서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 장마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인지 산길은 질퍽질퍽했고 개울물도 불어나 산길과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았다. 이 길로 들 어서면 영자네 집이 나올 것 같은데 여러 번 다른 길로 들어서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무성한 잡초들 사이로 지붕 이며 마당이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외딴 집을 발견했다. 나는 여기가 영자네 집임을 직감했다. 영자네는 산 계곡 비교적 평평한 지대에 있는 양철 지붕의 외딴 집이었다. 난 영자가 옷가지를 빨래했을 개울가에 서서 폐허가 된 영자네 집을 바라보았다. 무성한 잡초가 녹슨 양철 지붕 위며 마 당 툇마루를 무성하게 뒤덮고 있었다.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다. 개울가 주위에는 노란 달맞이꽃이 수줍은 듯 흩어 져 피어 있었는데 이 빨래터 개울가에서 친구가 되어준 영자를 목매어 기다리는 듯했다. 영자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 그가 비구니가 되어 속세를 떠났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아주 오래전의 일들로 기억된다. KBS-TV 인간시대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골 외딴집인 영 자네를 보여줬다. 이 방송을 본 많은 사람이 영자에게 관심과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고는 얼마 후에 모 이동통 신회사가 이곳에 사는 산골 소녀를 광고에 출연시켰다. 영자네 산골 외딴집은 친구나 혹은 가까운 친척에게 전화하려 면 마을로 내려가야만 했던 불편을 통신회사는 간파했고, 그들의 광고 전략과도 맞아떨어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유명세를 탄 산골 소녀 영자는 여러 후원인의 주선으로 흙냄새와 풀벌레 소리를 벗 삼던 산골을 떠 나 서울에 왔다. 산골의 애환을 소녀의 감성으로 담아낸 글을 모아 '꽃이 피는 작은 나라'를 펴내기도 했다. 검정고시 빵꾸 똥꾸 산골소녀(지붕뚫고하이킼) 17

18 를 공부해 대학에 갈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그것은 비극의 전초였음을 영자는 알지 못했다. 다만, 먼 훗날 세월이 그 것을 말해 줄 뿐이었다. 외동딸이 도시로 나가고 산골에 홀로 살던 아버지는 어느 날 숨진 채로 발견됐다. 누군가의 소행으로 타살된 흔적이 있고 아마도 범인은 딸이 받은 광고 출연료를 탐낸 강도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는 신문기 사를 읽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이번엔 아버지처럼 믿었던 후원회장이 소녀의 출연료와 인세를 횡령해 구속됐다는 소식 도 들려왔다. 소녀는 이 도시가 무섭다 며 속세를 떠나갔다. 이것이 당시 내가 아는 산골 소녀에 대한 실체이다. 누 가 이 소녀를 비극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는가!!. 알량한 문명과 만나지 않았다면 부녀는 산골에 묻혀 도란도란 살았을 것이다. 결국 TV가 소녀를 도시로 끌어내고, 통신회사가 상업목적에 이용하면서 인면수심의 추악한 인간들이 그들을 나락에 빠뜨린 것이다. 난 잡초더미 무성한 영자네 집을 바라보며 그를 생각했다. 순박한 산골 소녀 영자의 한 맺힌 사연을 훌훌 털어내고 마음의 고요함을 찾을 때까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길 바랐다. 그것이 진정 영자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영자네 집에서 개울 길을 따라 좀 더 오르니 문필봉 8부 능선에 굴피(투비)집이 들어서 있다. 집주인인 정씨 할아버 지는 30세의 젊은 나이에 이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는데 그 이유가 궁금했다. 굴피집 주변에는 작은 논밭이 있고. 탐 실한 자두 열매의 과수가 몇 그루 있었다. 그리고 잘 알지 못하는 식용작물이 있었는데 이 집을 지키는 노인은 어데 오간데 없고 길손인 내가 이 자리에 홀로 서 있었다. 난 삼척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후덥한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는지 한 밤에도 에어컨을 켜고 버스는 밤길을 달 리고 있었다. 한낮의 무더위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아침 일찍 서둘러 반지골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반지골은 양양군 서면 내현리에 있는데 예전에 화전민들이 살다가 모두 동네로 내려오면서 빈집들이 있었다 해서 반지골이라는 이름 이 붙여졌다. 이곳엔 아주 오래전부터 명맥을 이어온 굴피집이 한 채 남아 있다. 버스는 마을 경계를 이루는 다리에서 나를 내려놓았다. 난 계곡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계곡에는 근사하게 꾸며 놓은 민박집들이 빼곡하게 이어져 있었다. 피서철 이용하게 될 민박집들이다. 난 개울가를 가로 질러 나있는 작은 콘 크리트를 건너자 덩그렇게 양지바른 곳에 볼품없이 지어놓은 양옥집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내가 찾던 굴피집은 보이지 않았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질 않았다. 양옥집을 지나 조금 더 발길을 위쪽으 로 옮겼더니 한쪽 구석에 쓰러져 갈 듯한 굴피집이 버려져 있었다. 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서 조심스럽게 부엌문을 살며시 열어 보았다. 그곳에는 소가 여물을 씹고 있었다. 강원도에는 가축을 야생동물로부터 보호하고 혹독한 겨울에 도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소를 집안에 가두어 기른다. 현재 이 굴피집에는 어미 소와 집을 지키는 강아지뿐이다. 이 굴피집은 참나무껍질을 지붕에 엮어 만들어졌고 벽은 귀틀집 형태다. 굴피집은 겨울에는 소복하게 내린 눈이 지붕을 덮어 보온 효과도 있다. 장작을 때는 아궁이의 열기는 구들장을 돌고 돌아 방안을 따듯하게 한다. 그래서 혹한의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시트콤 지붕뚫고하이킥 극중 주인공 세경(신세경 분)이 사는 집을 난 이 굴피집으로 결정했다. 현재 노부부는 정 들었던 이 굴피집을 남겨두고 조금 떨어진 곳에 멋없게 보이는 양옥집을 짓고 산다. 할머니는 파킨스씨 병을 얻어 거 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양옥집을 새로 지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난 이곳 반지골 굴피집에서 시트콤 지붕뚫고하이 킥 을 촬영하면서 잠시 웃어른 뵙기 위해 이곳 양옥 거실에 들렀었다. 웃어른은 출타 중이셨고 할머니만 집을 지키 고 계셨는데 난 햇볕이 들어오는 거실 한쪽에 앉아 잠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가 예전에 이곳 굴피집에서의 생활이 어떠셨어요? 라고 물었는데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그것은 지난 옛일에 대한 알 수 없는 회한일 것으로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그때가 더 행복했었다는 그리움이 새록새록도 묻어나는 것이라 생각했 다. 그러다가 할머니는 잠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장롱에서 꺼내 온 것은 낡은 한 권의 사진첩이었다. 그 사진첩에는 젊은 시절 그들이 굴피집에서 살아온 애환과 꿈과 인생의 그 모든 것들이 녹아 있었다. 강원도 깊은 산골엔 눈이 펑 펑 내리면 며칠간 계속해서 내린다. 그러면 굴피집은 한순간에 고립된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굴피집에서의 어느 한 남자와 여자 그리고 엄청난 양의 눈과 살을 에이는 듯한 칼바람만이 있을 뿐이다. 집채만 한 눈을 치우고 아궁이엔 장작불을 지피고 기나긴 혹독한 겨울을 봄이 되어 눈이 녹을 때까지 이 굴피집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곰 이 겨울 동안 동면하는 것처럼...그것은 자연에 순응하는 삶 그 자체다. 무욕의 삶 바로 그것이다. 그때의 애환과 아 니 서정이 담긴 낡은 사진첩을 보니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난 생각했다. 어쩌면, 할머니는 삶의 고단함은 있을지 언정 단란하고 행복했던 그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빵꾸 똥꾸 산골소녀(지붕뚫고하이킼) 18

19 우리는 이곳 양양군 서면 내현리 반지골 굴피집에서 두 자매의 산골 집을 촬영했다. 과거 이곳은 화전을 일구던 오지 였지만 지금은 개울을 따라 잘 지어 놓은 펜션이 들어차 있다. 산 중 깊은 맛은 덜하지만 우리는 현실적인 상황을 고 려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원래 생각했던 신애와 세경 두 자매의 산골 외딴 집은 용대리 마장터의 샛집이었다. 이곳을 가려면 인제 원통을 지나서 용대리로 가야 한다. 예전에 이곳에서 군대생활을 한 사람들은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라 고 회자되던 아주 먼 오지이다. 난 원통터미널에 내렸을 때 휴가를 나와 귀대하는 군인들을 보고 전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만큼 교통이 편리해졌고 군대도 민주화 되었다고나 할까!! 용대리의 마장터는 이 곳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한다. 과거 말에 물건을 싣고 와 물물교환 하던 장터가 있었다는 유래로 마장터라 불릴 뿐이 다. 이곳은 진부령과 미시령 사이의 옛길인 대간령인데, 과거엔 사람들이 이곳에서 물물교환 하던 왕래가 잦았던 고개다. 비교적 산길 경사가 완만한데 인제 북면 용대리에서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로 연결되는 가장 짧은 길이다. 지금 이 길 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 됐지만 호젓하게 여행하기엔 안성맞춤의 길이다. 이곳은 결코 네 바퀴가 가는 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개울을 건너고 좁은 산길을 따라 구불구불 가야 하는 길이다. 개울을 건너면 이내 또 개울이 나타나 건너기를 반복하면서 한참을 걸어야 한다. 빠른 걸음으로도 산길을 40분 이상 가야 한다. 내가 대간령 고갯길 마장터 샛집을 찾아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장마가 끝나기도 전인 6월 중순이었다. 이곳에 처 음 도착했을 때 밤사이 내린 비로 계곡물은 불어나 있었다. 용대리에서 대간령으로 가려면 초입에 넓은 개울물을 건 너야하는데 물살이 빠르고 허리춤까지 물이 불어나 도저히 건널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옆길로 돌아가야 하는 길을 선택했는데 이 길도 만만찮은 길이었다. 수풀 더미를 헤집고서야 갈 수 있는 길이었다. 장맛비에 개울물이 불어나 조 심스레 신발을 몇 번씩 벗어가며 내를 건넜다. 한참을 걸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내가 찾는 외딴 집은 보이지 않았다. 울창한 전나무 숲을 지나고 산길을 잘못 들어섰음을 직감할 때 화닥닥 숲 속에서 커다란 물체가 움직였다. 멧돼지였 다. 난 멧돼지가 동작이 민첩한 동물임을 그때 처음 알았다. 더 늦기 전에 오던 길을 되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여행 중에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 만큼 세상에 지겨운 것이 더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되돌아가는 길은 익숙 해서 빠른 걸음으로 내달렸다. 생각해보니, 올 때 삼거리를 지나서 오른쪽으로 들어서야 했는데 그냥 지나쳐 더 깊은 산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 길로 계속 가면 고성 알프스 스키장으로 연결되는 길이라는 것을 나중에 그곳 주민을 통해 서 알 수 있었다. 울창한 숲길을 지나고 개울을 건너면서 세 갈래로 나누어지는 길에 도착했다. 왼쪽으로 조금 들어 서니 억새로 지붕을 얹은 샛집이 보였다. 부엌 아궁이에는 먹다가 만 음식 찌꺼기가 남아 있는 솥이 걸려 있었고, 방 문에 덕지덕지 붙인 창호지의 색깔이 벗겨져 있었다. 마당엔 긴 고무장화며 구멍 뚫린 운동화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전기 없는 산골 살림살이는 궁색하게 보였다. 확실히 부엌에는 여자들의 손길이 닿아야 윤택해진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 산골 외딴 집에 부부가 함께 산다면 그래도 버틸 수도 있는 힘이 된다고 생각했다. 난 언젠가 아 내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외딴 집에 나와 단둘이 살 수 있느냐 라고..아내는 단호하게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어떻게 그런 곳에서 살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병원도 없고 슈퍼마켓도 없고 학교도 없는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했다.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대답이었다. 하긴 내가 가 본 심산유곡의 주인 대부분은 남자 그것도 노인이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도시의 문명은 이글거리는 욕망의 활화산과 같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첩첩산중의 외딴 집 은 더욱 마음의 오아시스로 남아 있다. 빵꾸 똥꾸 산골소녀(지붕뚫고하이킼) 19

20 우포 강가에 앉다(사랑따윈필요없어) :31 밤이 이슥해지자 하늘에선 총총한 별들이 내 어깨위에 쏟아져 내렸다. 고요한 강위로 바람이 불어왔고 그 아래 물줄 기는 잠시 숨이 멈춰진 듯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난 우포 강가에서 촬영 팀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이곳 강둑에 나와 있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순수함이라는 것은 밤하늘 무수한 별을 바라보았을 때의 동경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생 각했다. 그리고는 태곳적 원시의 숨결, 순수와 생명의 원시성이 강하게 살아 숨 쉬는 곳은 어디일까! 라고 곰곰이 되 씹어보았다. 그런 곳이 있다면 지금 강둑에 나와 앉아 있는 이곳 창녕의 늪지대 '우포'가 아닐까! 내가 처음 우포를 찾았던 것은 드라마 왕초 촬영지를 찾아 나설 때였다. 그때 난 우연히 이곳 우포에서 영화 촬영 팀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촬영 중이던 이광모 감독을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 신분의 신예감 독이라서 그에 대한 존재감은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난 그가 우포 너른 공터에서 학교운동회 장면을 찍는 것에 대해 유독 관심을 갖고 먼발치에서 구경꾼처럼 그를 지켜보았다. 그 너른 공터는 양파 밭을 갈아엎고 만든 간이운동장인데 흔히 학교운동장이라고 하면 건물이 있고 철봉과 미끄럼틀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감독 은 일반적인 관념에 전혀 구애됨 없이 우포의 너른 공터를 주목했다. 이는 영화에 있어서 창조적 공간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난 그때 그렇게 해석했다. 로케이션 매니저란 이러한 시공간적 배경을 대신해서 일을 하는 어찌 보면 전쟁터 의 첨병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난 영화나 TV드라마, 광고 등에 나오는 여러 특징적인 장면을 이곳 우포를 통해 보여줬다. 워낙 많은 작품을 이곳 우 포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구석구석 많은 사진촬영의 포인트를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오만일 것이다. 우포 의 면적이 아주 방대하려니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의 숨결을 내 어찌 다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 광 활한 대자연 앞에 인간도 그 일부분이고 작은 개체의 하나일 뿐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그저 대자연 속의 엑스트 우포 강가에 앉다(사랑따윈필요없어) 20

21 라일 뿐인 것이다. 그 언젠가, 난 문근영이 주연한 영화 사랑따윈필요없어 에서 가장 로맨틱하게 그려질 수 있는 강가 분위기를 찾아 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곳 우포에 왔다. 이른 아침, 난 창녕읍에서 첫 차를 타고 이방면 장재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내 가 큰 강가에 다다랐을 때는 해가 막 솟아오르며 물안개가 강 위로 넓게 퍼져 있을 때였다. 난 강가를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왕버들 나무가 군락을 이룬 풍경에 시선을 뺏겼는데 그것은 가늘고 투영한 햇살에 안개가 걷히면서 왕버들 이 기지개켜며 잠에서 깨어난 모습이었다. 새벽안개에 휩싸인 왕버들의 실체가 조금씩 속살을 드러내며 발가벗게 되 는 모습은 모든 생명의 역동성을 알리는 서막인 셈이다. 난 강가를 따라 걸으면서 소목마을 주차장을 지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소목나룻터에 도착했다. 강가에는 배가 둥실 떠있는 것이 보였다. 몇 년 전, 이곳에 왔을 때 나무배를 얻어 타고 사진을 찍던 일이 생각났다. 그 배는 이곳 우포를 지키고 있는 환경감시원이 타고 다니는 자그마한 목선인데 그 옆에 가지런히 놓인 긴 나무로 노를 젓는다기보다는 물속을 내리눌리고서 움직이는 그런 배였다. 그는 이 배를 타고 자연환경 지킴이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는데 어찌 보면 우포의 침입자인 내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고 생각했다. 영화 사랑따윈필요없어 의 환상적인 장면은 이곳 소목마을 나루터에서 촬영했다. 극중 눈먼 소녀인 류민(문근영 분)은 가짜 오빠 행세를 하는 줄리앙(김주혁 분)의 손에 이끌려 어린 시절 그가 보았던 반딧불이를 찾아 이곳 우포를 찾아온다. 류민의 어린 시절 행복한 추억이 남아 있는 강가에서 줄리앙은 아름다운 풍경을 거짓으로 전하지만 그 순간 기적처 럼 반딧불이가 우포 강가를 아름답게 수놓는다. 류민의 엄청난 유산 상속을 노린 줄리앙은 류민에게 반딧불이를 선물하기위해 물가로 뛰어든다. 그러나 그것은 재산 을 노린 거짓 행동임은 류민을 알고 있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 슬픈 명장면 중의 하나일 것이다. 사랑따윈필요없어 라는 말의 의미는 누군가의 진실한 사랑을 간절히 원한다는 패러독스 한 표현일 것이다. 그 밖에도 난 이곳 우포에서 수많은 작품들을 촬영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깨끗함으로 표현되는 광고 칠성사이 다 개구리편 이었다. 이 장면은 미루나무가 병풍처럼 드리어진 사지포(모래벌)늪에서 촬영했다. 당시 허벅지 끼는 장화를 신고 물속 생명들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그들을 놀라게 했는데 꼭 그렇게 촬영해야만 하느지 알듯 모를 듯하 다. 맑고 깨끗한 이미지의 청량음료 사이다와 우포는 왠지 매칭 되지 않는 조합인 것 같은데 우포늪과 개구리는 더불 어 살아 갈만한 숨 쉬는 공간이다. 맑은 물에서는 고기가 살 수 없는 것처럼 뭔가 여러 생명들이 살아 꿈틀대는 것은 그 모든 힘의 원천인 것이다. 사지포 늪은 규모면에서 그리 크지 않지만 수생식물 물옥잠이 피어있고 이곳 제방에서 해 뜨고 해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드라마 영웅시대 서울1945 등도 우포 소목마을에서 목포(나무 갯벌)로 가다보면 붉디붉은 자운영 꽃이 장관을 이루는 곳에서 촬영 했는데 이 시기는 신록의 푸르름이 더해가는 5월 초에 촬영하면 더 없이 좋은 곳이다. 이곳 자운영 꽃이 붉은 색조를 띠면서 초록빛 신록과의 절묘한 풍광을 선사해준 다. 난 이곳 우포늪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다양성과 전혀 가공되지 않은 아름다움이 남아있어 이곳을 자주 찾게 되는 것이다. 난 주로 창녕 이방면 우만 마을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강가를 따라 걸으면서 사진을 찍는다. 그러면 가장 먼저 만 나게 되는 것이 물안개에 수줍은 듯 자태를 뽐내고 있는 왕버들 군락의 멋진 풍경이다. 가수 비 가 출연했던 화장 품 광고도 이곳 왕버들 나무에 화장품을 얹어놓고 그 배경으로 가수 비 가 서있는 장면을 촬영했다. 그 길을 따라 십 여분 걸으면 푸른우포지킴이 건물을 지나 소목마을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이동통신 철탑이 있는 산길을 따라 목포 제방과 쪽지벌로 갈 수도 있고, 또 좌측 강가를 따라 걸으면 소목나룻터를 지나 사지포를 거쳐 대대제방이 있는 우포 로도 갈 수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우포 전망대 길을 따라 가다보면 사초군락지를 지나 징검다리가 나오는데 이 길로 목포제방과도 연결된다. 그리고 쪽지벌로 연결되는 코스로 우포늪 생명길 탐방로가 짜여 져 있는데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반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주로 탐방로 시작점은 우포늪 생태관이 있는 곳에서 출발하는데 여행가방과 카메라를 들고 계절마다 찾는 우포의 얼 굴은 그 어느 코스를 택하든 언제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때로는 쓸쓸함이 묻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생명의 불꽃과 도 같은 역동성이 넘쳐나기도 한다. 어느 봄날, 이른 아침 짙은 안개 속에서 웅장하게 떠오르는 생명은 생장하고픈 욕망으로 가득하다. 하늘과 늪, 나무, 우포 강가에 앉다(사랑따윈필요없어) 21

22 온 세상을 짙은 초록으로 만든다. 따뜻한 빛을 쏟아내며 이 늪에 하루가 다르게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꽃이 피기 시 작하는 봄이 오고 초목이 무성해지면 자주색을 띤 자운영 꽃이 융단을 깔아놓은 듯 늪을 수놓는다. 좀처럼 모습을 드 러내지 않던 수생식물도 이제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고 물가 왕버들은 아름드리 자태를 뽐낸다. 잎의 지름이 1m나 되고 온몸에 가시가 나있는 가시연꽃은 이곳 우포의 지배자가 된다. 우포에 여름이 왔다. 온 세상이 푸르름으로 덮이더니 몰래 보게 녹음이 짙어져 갔다. 여름 한나절, 해가 우포의 하늘 에 높이 솟아오르면서 무시무시한 기세로 내리쬐고 있다. 한낮의 더위는 이곳 생명들을 늪으로 숨어들게 하고 쉬어가 게 했다. 그러면서 맹렬하게 성장한다. 비포장 도로 길을 따라 길게 뻗은 미루나무는 가지마다 잎사귀가 무성하게 자 라나 초록으로 짙어가며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냈다. 서쪽에서 미풍이 불어 왔다. 그 바람 속에는 부드러움이 듬뿍 실려 있었다. 새들은 땅 아래를 낮게 날고 있었다. 먹구 름이 몰려오고 우중충한 잿빛 하늘은 먹물로 뿌려 놓은 듯 했다. 그리고는 이내 후두둑 빗방울이 늪으로 떨어지며 원 형의 파문이 일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이슬을 머금은 수풀도 아름답다. 지리한 장마가 끝나고 연일 폭염이 지속되는 가 싶더니 일렁이는 갈대 잎에 한줄기 바람이 휑하고 지나간다. 계절이 어느새 성큼 가을로 접어들면 우포늪 제방을 따라 늪 주위에 피어난 갈대를 볼 수 있다. 가을의 전령처럼 갈 대는 이곳 우포에도 찾아오고 눈부신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갈대의 흐느낌이 나를 유혹한다. 초겨울로 접어든 어느 날이었다. 계절이 지나간 자리, 황량한 우포늪에 손님들이 찾아온다. 왜가리며 청둥오리와 같 은 철새들은 소리 없이 이곳을 찾아들고 벌레들의 생존을 위한 아우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강가 위를 미끄러지듯 날 갯짓 하던 청둥오리들은 밤이 이슥해서야 날갯짓을 멈춘다. 밤은 생명을 잉태하고 안개에 휩싸여 새벽을 맞는 이곳, 우포는 언제 그러했느냐는 듯 다시금 생명의 원시성에 빠져들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우포만이 갖는 진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이란 일상으로부터 스스로의 억누름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떠나는 것으로 생각했다. 여행길에 난 고독을 맛보았 고 자연의 숨결을 들었으며 또 자연과 교감하는 법도 배웠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자연의 세계에 귀 기울여 보면 그 아 름다움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태곳적 원시의 숨결과 강렬한 생명의 역동성 그 어떤 기운에 취해보고 싶다면 이 붉은 강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어도 좋을 것이다. 우포 강가에 앉다(사랑따윈필요없어) 22

23 떠나요 삐삐롱스타킹 :23 남해 미조항, 통통통 요란한 뱃고동을 울리며 출어를 나간 고깃배가 어판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갈매기는 고깃배 갑판 위를 빙빙 돌며 날고 있고, 어판장이 내려다보이는 길모퉁이에는 허름한 여관 금화장 이 있다. 주인공 수철 (김수근 분)과 철부지 누나 수경(장영남 분)은 중풍에 걸린 아버지 권씨와 여관을 운영하며 힘든 나날을 이어가고 있 다. 수경은 어린 시절 뇌수술로 정신지체 상태이고 권씨는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수철은 이런 답답한 현실에 힘들어 하지만 그를 더욱 짓누르는 건 누나와 아버지 권씨가 자신의 보살핌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수경은 서른 이 다 된 나이지만 말괄량이 삐삐와 같은 옷차림을 하고 나무를 타고 부엌에서 팬케이크를 만든다며 온통 난리법석 이다. 그래서 수철은 어디에 가든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수철은 다가오는 자신의 생일날 서울여행을 한 번 다녀오는 것이 그에겐 소원이다. 한편 진주(김혜나 분)는 마을 아 줌마들과 어판장에서 일을 하며 혼자 살아간다. 수철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진주가 부모 없이 어촌에서 젊음을 허 비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수철을 대하는 진주의 마음은 남다르지만 수철은 진주를 친동생으로만 대한다. 진주는 수철의 생일날 그가 서울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대신 여관 일을 맡아주겠다는 제의를 하는데, 경남 남해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촬영된 이 드라마는 극중 주인공의 단조로운 일상을 수채화처럼 그려냈 다. 이 작품은 MBC 베스트극장 떠나요삐삐롱스타킹 으로 황인뢰 PD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난 이 대본 을 읽으면서 내 젊은 날의 숨기고 싶은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것은 암울했던 내 젊은 날의 이지러진 자화상이기도하 다. 난 군에서 제대한 뒤 종로3가 뒷골목 두 평 남짓한 구멍가게에서 아버지 일을 도우며 지냈다. 아버지는 오랜 세월동 안 이 구멍가게에서 담배를 팔며 3남 1녀인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내가 군 제대 후에도 아버지는 이 일을 계속하셨는 떠나요 삐삐롱스타킹 23

24 데 난 제대하고 나서도 별다른 일도 없고 해서 이 구멍가게를 거들면서 지냈다. 그 담배가게 옆에는 리어카를 맡아주 는 보관소가 딸려 있었고 그 보관소 마당 한쪽에는 베니어판으로 임시로 꾸민 방이 있었다.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골방에서 난 아침을 맞고 구멍가게로 가서는 담배를 팔았다. 밤이면 리어카를 보관하는 일을 맡으면서 몇 년 간 이곳에서 보냈었다. 리어카 보관소가 있는 종로3가 부근에는 영화관이 많아 노점상하는 대부분의 상인들은 자정이 훨씬 넘은 늦은 시간 에 보관소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난 늘 설친 잠을 자기 일쑤였다. 벌이도 시원찮은 것은 물론이려니와 뜨거운 가슴을 가진 내가 보관소에서 이런 모습으로 젊음을 허비한다는 것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고통스런 생활이 하루하루 이어졌다. 이런 암울한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 인생은 온통 먹구름 같은 것이 었다. 내 젊음은 무기력하게 또 속절없이 흘러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암울한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꿈을 향한 도전이었는데 난 틈 틈이 시간을 내어 무조건 영어단어를 외고 수학문제를 풀면서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었다. 하늘 높이 나는 갈매기 처럼 허공을 멀리 날아 내 꿈을 펼쳐갔다. 이곳 담배가게에 딸린 보관소에서 그렇게 공부하면서 늦깎이 대학생이 되 었다. 대학에 진학하고서도 난 이곳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간다는 희망을 안고서 지냈다. 내가 참고 일하면 우리 가족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서 학업을 병행하면서 그 일을 지속해나갔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내 젊은 날의 신념과 용기는 찾아볼 수 없고 초라하기만 했던 패배주의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것이 내 젊은 날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때 일을 돌이켜보면 그것은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내게 큰 힘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난 그것을 값진 위장된 축복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기차는 어느새 종착역인 진주역을 도착한다는 안내멘트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난 읽고 있던 대본을 배낭에 주섬주섬 챙겨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 광장엔 벌써 땅거미가 내려앉아 짙은 어둠이 깔렸다. 난 경남 진주역에 서 남해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되도록 남해로 가서 여장을 푸는 것이 여러모로 낫 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해로 가는 버스는 좌석이 꽉 차 있었는데 버스 안은 사람들로 왁자지껄 했다. 난 버스 안에서도 짓눌러있던 마음을 좀처럼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내가 탄 버스는 한 시간 쯤 지나서야 남해읍에 도착했다. 난 또 다시 미조항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탔는데 남해읍에서 미조항까지의 거리도 꽤 멀었다. 차창 밖을 통해 멀리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왔고 바다의 차가운 밤공 기가 온 몸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버스는 네온사인 불빛이 희멀건 남아있는 미조항에 나를 내려놓았다. 난 좁은 골목길을 따라 어판장 부근으로 갔는데 삼거리의 허름한 여관 간판 불빛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작품 내용에 맞는 장소라는 것을 직감하고 난 여관 문을 들 어섰다. 난 이곳에 숙박하면서 여관 주인에게 이곳을 촬영지로 빌려 줄 것을 제안했는데 그 주인아주머니는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금화장이라고 쓰여 있는 여관은 실제로도 허름해서 극중 분위기와도 부합되는 곳이었다. 건물은 배네 통 칼라처럼 원색적으로 빨간색을 칠해 놓았는데 바닷바람에 페인트가 벗겨지고 탈색돼서 촌스러움이 물씬 풍겨나왔 다. 카운터 옆으로 난 복도 천정에는 백열전구룰 갈아 낀 지 오래된 듯 어두침침한 것이 여행객들이 묵는 여관이라기 보다는 배를 타고 먼곳으로 나기기 전 선원들이 임시로 묵는 그런 여관인 듯 했다. 난 대본 속의 내용을 상기하면서 여관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극중 주인공 수철은 여관방 카운터에 앉아서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상상한다. 겨울바다를 보러 온 신혼부부 행복해 보이고, 방학이라 친구들끼리 놀러온 여대생 들 행복해보이고, 부모님한테 거짓말하고 놀러 다니는 고등학생들도 행복해보이고, 수철은 여관이라는 작은 공간에 갇혀 있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여관 문을 열고 들어오면 곧 바로 여관카운터가 보였고 주인공 수철의 감정을 표 현하기에 내부 공간도 적당한 규모의 여관이었다. 다음날 아침, 난 해안도로를 따라 남해바다가 펼쳐져 있는 가천 다랑이 마을을 찾아갔다. 이곳 다랑이 논은 선조들이 벼농사를 짓기 위해 산비탈을 깎아 만든 곳인데 100 여 층 곡선형태의 논이 그 기하학적인 문양을 이뤄 검푸른 바다 와 조화롭게 펼쳐져 있다. 난 해안도로에서 탁 트인 바다와 기하학적 문양의 다랑이 논 풍경을 광각과 망원렌즈를 두 루 사용해 그 풍경을 화면에 담았다. 극중 진주가 사는 마을을 이곳 가천 다랑이 마을로 설정한 것은 순전히 다랑이 논 때문이었는데 일반적으로 평지에 직선으로 펼쳐져 있는 논은 별다른 특징이 없지만 곡선을 이루며 바다와 맞닿은 떠나요 삐삐롱스타킹 24

25 다랑이논의 구도는 미장센이 있다. 극중 주인공 진주가 다랑이 논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그려보며 난 이곳 다랑이 마을에서 보다 멋진 풍광을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극중 진주가 사는 동네 가천 다랑이 마을로 수철이 찾아온다. 수철은 진주에게 이집을 떠나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는데 진주는 여긴 엄마와 함께 살았던 추억이 있는 곳이라 말한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이곳으로 이사 와서 엄 마하고 처음으로 오순도순 재밌게 살던 집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 집을 떠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진주가 사는 이집은 가천 다랑이마을 느티나무가 있는 골목 초입에 있는데 이 길을 따라 바닷가로 가까이가면 가천 암수바위의 기묘한 형상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신령이 있다고 믿는데 그것은 종족보존과 마을의 풍요 를 위한 기원 그것이다. 극중 금화장 여관에 사는 수경은 서른이 다된 나이지만 외모는 말괄량이 삐삐 같다. 머리는 두 갈래로 따고 긴 스타 킹 양말에 남자구두를 신고 옆에는 작은 강아지 인형을 안은 닐슨씨가 있다. 어느 날이었다, 수경의 뗏목 사건이 발 생한다. 삐삐처럼 엄마를 찾으러 가겠다고 바지선을 타고 방파제 밖으로 나갔는데 해양경찰까지 출동하고 조용했던 어촌마을은 온통 난리이다. 결국 배를 동원해서 수경을 구조하지만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는 수경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날 밤 수철은 미조항 등대가 서있는 방파제에 앉아서 먼 밤바다를 바라본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막막한 현실을 괴로워하며 그 누군가에게 구원을 손길을 뻗친다. 그리고는 독백처럼 저는 남해바닷가에 있는 여관 금화장에 삽니 다. 제 생일은 12월23일 입니다. 그날 저는 기차를 타고 서울에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갈수가 없습니다. 당신 은 저를 구해줄 수 있나요. 당신은 저를 서울로 데려가 줄 수 있나요. 데려가 줄 수 있다면. 수철은 빈 소주병에 사 연을 적은 편지를 담고서는 칠흑 같은 밤바다에 멀리 내던진다. 그리고는 풀썩 주저앉아 하염없는 눈물을 흘린다. 다음날 아침, 바다 저편 태양이 떠오르고 아침 햇살이 여관 금화장에 퍼져나간다. 수철의 친구인 현두가 운전하는 봉 고차가 여관 앞에 도착한다. 밝은 캐쥬얼 차림의 가방을 멘 수철과 진주 그리고 휠체어에 앉은 권씨와 그의 친구 재 국이 두 사람을 배웅한다. 아침 햇살이 바다 속으로 부셔지는 남해대교, 바람처럼 스쳐가는 바다풍경들. 차안의 나란히 앉은 수철과 진주는 흐 뭇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생각난 듯 수경이 준 도시락을 풀어보는 수철. 그 안에는 갖가지 모양을 한 쿠키 들이 수북이 담겨 있다. 삐삐가 그랬던 것처럼 동물 모양 쿠키를 만들려고 했던 것 같은데, 모양이 하나같이 삐뚤삐 뚤 제멋대로다. 웃으면서 쿠키 맛을 보는 두 사람을 태운 봉고차가 남해 대교를 건넌다. 어판장이 내려다보이는 금화 장 여관 건물엔 어느새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조명불이 들어오고 하늘에선 눈송이 같은 흰 눈이 펑펑 내린다. 수철은 답답한 현실에 떠나려 했던 남해 바닷가 마을 미조항! 그 어느 해 난 문득 그곳이 가보고 싶어 안달이 났었 다. 그때 난 이틀정도 남해에 머물면서 곳곳을 여행했는데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던 곳은 남해 미조항이었다. 그 기 억의 흔적이 지금 나로 하여금 미조항을 다시 찾게끔 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등대가 나란히 먼 바다를 향해 서있는 항구는 옹기종기 모여선 마을이며 어판장으로 들어오는 고깃배의 모습, 그때 그 기억을 되살려 난 이곳을 촬영지로 결정한 것이다. 난 어판장 어느 후미진 뒷골목 한 식당에서 갈치회 무침을 매우 맛있게 먹던 기억이 남았다. 난 미조 항을 거쳐 금산 보리암을 찾아갔는데 보리암 정상에서 바라보는 상주해수욕장 검푸른 바다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그 리고 또 찾아갔던 기억중의 하나는 삼동면의 물건어부방조림이었다. 이곳은 오백여 년 전에 조성된 숲인데 울창한 고 목 사이로 검푸른 남해바다가 펼쳐진다. 오래전 태풍 미사가 남해안을 강타했을 때 피해가 가장 적은 곳이 이곳 물건 어부방조림이었다. 태풍의 위력에도 마을을 굳건하게 지켜주고 있는 방조림 후면으로는 산 아래 예쁜 집들이 옹기종 기 모여선 독일인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서 최근 MBC 드라마 환상의커플 을 촬영했다. 지금 이곳에는 나와 여러 작품을 하면서 알게 된 중견연기자 박원숙씨의 집도 이곳에 있다. 그는 빛과그림자 촬영스튜디오에서 녹화할 때 남 해에 오면 꼭 한 번 들러달라며 내게 말하면서 가천다랑이마을 입구에 또 커피전문점을 개업했노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어쩔 수 없이 남해를 자주올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태어난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내게 농담 삼아 말하곤 했다. 이 삼동면 물건어부방조림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남해도와 창선도 사이에 지족해협 원시어업죽방렴이 나타난다. 이 원시어업죽방렴은 참나무 말목과 대나무를 주재료로 발처럼 엮어 고기를 잡는 원시어업의 형태를 말한 다. 이것을 시야의 중심에 두고 지족해협 붉게 물든 해가 바다 속으로 빠져드는 광경을 바라보면 먼 훗날 더없이 소 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덧칠될 것이다. 그때 난 잠시 이곳에 머물면서 어디로 가야 할 지 잠시 머뭇거렸었는데 최 근에 남해 창선과 사천을 잇는 다리가 생겨 삼천포로 쉽게 갈 수 있다고 하니 다음에 이곳을 들르게 되면 어디 한 번 떠나요 삐삐롱스타킹 25

26 삼천포로 빠져 볼까나! 떠나요 삐삐롱스타킹 26

27 왕초 따라가기(왕초) : 년 방송되었던 MBC특별기획 드라마 왕초 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거지왕 김춘삼의 일대기를 극화한 것이 다.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거지란 육교나 전철 안에서의 구걸행위와 같은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들로 가득 채워진 것 이 전부일 것이다. 거지왕 김춘삼으로 알려져 왔던 실제 그의 이면에는 당시 소외되고 헐벗은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인간미가 있다. 거지왕 김춘삼은 해방이 되고 6,25전쟁 후 전쟁의 폐허더미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고아원을 세운 다. 또한 고아원 합심원 에 계속적인 조력을 아끼지 않던 영국여왕의 조카딸과도 염문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는 영국 왕실로부터도 공식초청을 받게 되고 그 후 정치 세력과도 친분을 맺게 되면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펼쳐진 다. 그의 어린 시절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강원도 장성 외가 집에 살던 어린 춘삼(안재홍 분)과 그의 누나는 길을 나선다. 재가한 엄마(선우은숙 분)를 찾아 대 구로 가는 두 남매는 산길을 걷다가 갑자기 나타난 괴한들에게 납치된다. 말을 탄 괴한들은 누나를 어디론가 끌고 가 고 춘삼은 호랑이 먹잇감으로 커다란 구덩이에 내던져진다. 드라마 왕초 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S#산길(어린 춘삼이 누나와 함께 산길을 걷고 있다), S#움막(어린 춘삼이 거지들과 함께 기거하는 곳) 드라마 대본상 엔 장소와 관련된 추상적인 표현은 장소를 선정하는 사람의 주관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난 춘삼과 그의 누나가 산길 을 넘어 엄마를 찾아나서는 장면에서 또 춘삼이 거지들과 함께 생활하는 공간인 움막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난감 했다. 드라마 공간상 인물의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느낌은 달라진다. 극의 리얼리티를 확보하기 위해선 구 도상의 미장센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길이 중심이 되는 이미지는 내게 풀리지 않는 수학공식처럼 어렵다. 길은 사람 들의 발길이 닿는 곳이라면 그 어떤 곳도 길이 되는 것이다. 또 길은 모든 정서의 중심으로 통하는 것이다. 어린 춘삼이 누나와 걷는 길은 나무 숲길일수도 있고 마을 신작로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난 사실적인 것보다는 동화 왕초 따라가기(왕초) 27

28 적인 이미지의 표현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내 스스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자칫 거지들 생활공간이 행여 어둡게 보여 더욱 부정적 이미지로 비치지 않을까라는 우려에서였다. 그래서 난 두 남매가 걷는 길은 억새가 햇빛을 받아 반 짝이는 실루엣으로 표현되는 이미지로 방향을 잡았다. 전국에는 꽤 여러 곳의 억새평원이 있다. 내가 드라마 왕초 의 대본을 들고 맨 처음 찾아간 곳은 강원도 정선 남 면에 있는 민둥산이었다. 난 청량리역에서 강릉으로 가는 영동선 기차를 타고 정선 증산역에서 내렸다. 증산역은 정 선선으로 갈아타야 하는 분기역인데 평일이라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난 증산역을 빠져나와 정선과 사북, 고한을 잇는 59번 국도를 따라 민둥산 방면으로 걸었다. 민둥산 등산은 삼내약수에서 갈림길을 거쳐 정 상에 올랐다가 증산으로 내려올 수도 있고, 아예 북쪽의 화암 약수에서 시작해 증산까지 산행할 수도 있는데 난 경사 가 완만한 밭구덕마을로 방향을 잡았다. 이곳 밭구덕마을은 석회암 지대에서 나타나는 카르스트로 지형으로 되어 있 어서 큰 구덩이의 땅이 움푹 꺼져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었다. 난 이곳 발구덕마을에서 왼쪽 등산로를 따라 8부 능 선부터 억새평원이 펼쳐진 능선을 따라갔다. 민둥산 정상에 오르니 드넓은 억새밭이 한눈에 들어왔다. 말 그대로 산 에 나무가 없이 둥그런 봉우리가 대부분 억새밭으로 덮여 있었다.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억새길을 따라 이곳에서 촬영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곳으로 쉽게 결정하기엔 다소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촬영장비 차량이 밭구덕 까 지는 접근할 수 있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무거운 촬영장비를 정상으로 옮기라고 한다면 스텝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 를 것이 뻔하다. 산 정상까지 장비를 실은 차량이 올라가는 경우란 그리 흔치 않다. 더구나 억새평원의 산꼭대기는 더더욱 그렇다. 난 다른 곳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민둥산에서 내려와 제천역에서 동대구로 가는 기차를 탔다. 다음 목적지는 경남 창녕으로 방향을 정했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화왕산 정상 일대 억새평전에서 달맞이와 억새태우기 행사가 열린다는 오래전의 신문기사가 얼 핏 생각났기 때문이다. 경남 창녕 화왕산을 가려면 동대구역에서 내려 서부터미널로 가서 또 다시 창녕으로 가는 버 스를 갈아타야만 한다. << 왕초가 그의 누이와 걷던 산길, 억새밭 >> 화왕산 정상으로 오르는 가장 빠른 길은 창녕 여자중학교 옆길을 거쳐 자하골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산길은 가파른 환장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난 이 길을 택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차량 접근이 애당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길이 비교적 완만한 옥천계곡을 따라 관룡사를 거쳐 올라가는 코스를 택했다. 옥천리 매표소를 거쳐 관룡사로 가 는 길은 경사가 완만해 산행하기에 별 무리가 없었다. 이 길로 차량을 충분히 이동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섰다. 하 늘은 티 없이 맑고 투명해 산행의 발걸음은 한층 가벼웠다. 관룡사에 이르렀을 때 절 마당에는 노란 은행잎이 수북이 쌓여 있었는데 햇빛을 받아 더욱 선명한 빛으로 물들면서 가을 정취가 물씬 묻어났다. 창녕 화왕산은 억새가 피어 있는 산길을 촬영하는데 최적의 장소다. 당시 우리는 촬영용 발전차량과 여러 필의 말을 끌고 와 이곳 화왕산 정상에서 촬영했다. 억새가 바람결에 나부끼는 산길로 말을 탄 도적 떼가 나타난다. 겁을 먹은 어린 춘삼과 그의 누나가 억새평원을 내달리는 장면을 우린 헬기로 고공 촬영했다. 산 정상은 밋밋한 분지로 되어 있 고 관룡산과 영취산이 아주 가까이 있다. 낙동강을 낀 평야와 영남알프스의 산들이 멀리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경남 창녕 화왕산은 억새 평원을 촬영하는데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해서 그 후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 됐다. 내가 기억하는 드라마나 영화만 해도 허준 상도 다모 조폭마누라 등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전국에는 크고 작은 억새평원과 갈대숲이 많다. 유행가 가사 중에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 가사 내용 중에 서 으악새는 경상도 방언 억새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만큼 억새는 우리의 생활 속에 친근한 대상물이면서 삶의 회한 같은 정서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우리나라의 산과 들판 강가에는 억새와 갈대들이 많다. 갈대는 주로 강이나 늪지 대에 주로 널리 분포되어 있고 억새는 산 능선에 넓게 분포되어 있는데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나로서도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국내의 대표적인 억새밭은 누가 뭐래도 영남 알프스이다. 울산과 경남의 경계에 있는 신불산 평원과 밀양의 사자평원 등이 여기에 속한다. 영남알프스와 인접한 양산 천성산 화엄벌이나 경기도 포천의 명성산, 전남 장흥의 천관산, 제주 도의 산굼부리 일대, 충남 홍성의 오서산, 충북과 경북을 가르는 황학산, 서울의 하늘공원 등도 억새밭으로 이름이 왕초 따라가기(왕초) 28

29 높다. 갈대로 유명한 부산 을숙도나 전남 순천만, 보성만, 충남의 천수만, JSA공동경비구역 을 촬영한 서천 금강 어귀도 갈대로 유명한 곳이다. 또한 영화 서편제 에서 바람 부는 갈대숲 길을 따라 유랑하는 장면을 촬영했던 해남 고천암 간척지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담양 대나무 숲과 거지들의 움막>> 담양 하면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대나무이다. 드라마 왕초 는 전남 담양 여러 곳에서 어린 춘 삼의 활약상을 주로 촬영했다. 시외버스는 순창 24번 국도에서 담양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차창 밖을 스치며 지나가는 메타세콰이어 나무는 햇빛 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이 나무는 전국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인데 지자체에서 오래전 이곳에 나무를 심은 건 미래를 내다본 혜안이라 생각했다. 나무는 무성하게 자라나 어느새 담양을 대표하는 나무가 되었기 때문이 다. 버스는 오후가 되어서야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주변엔 떡갈비며 대나무 통밥. 압뽕 순대 등 담양을 대표하는 간판 들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난 전라도 지방에 오면 왠지 맛있는 음식을 만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마음이 즐거워진 다. 때를 놓친 점심때라 여기저기 식당을 기웃거렸다. 외관은 볼품없지만 왠지 맛있어 보이는 식당으로 찾아 들어갔 는데 기대와는 딴판으로 차려진 음식 맛은 별로였다. 난 식당 문을 나와 길모퉁이를 돌아 버스를 타고 대전면 행성리 라는 마을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마을입구 돌담길을 따라 조금 들어서니 한빛학교 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 왔다. 대나무울타리 너머 앙증맞은 흰색 건물이 드러났는데 난 당시 편견의 눈으로 이 학교를 바라보았었다.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정서적으로나 학교생활에 많은 문제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우리 큰 애가 제도권의 학 교에 적응하지 못해 한때 나도 이런 대안학교를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난 그때 사물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편견의 잣대로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난 학교 건물을 뒤로한 채 마을길로 들어섰다. 길게 이어진 마을 담장 길을 따라 높게 솟은 대나무들이 담장 안으로 몸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어느 집 대나무 사립문으로 들어서니 어둑함이 밀려왔다. 어둑한 대나무 숲 사이로 간간이 한 줄기 빛이 새어들어 올 뿐, 한낮인데도 컴컴하고 냉랭한 기운이 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스산한 바람이 대나 무 잎사귀에 스며들어 바삭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대나무 숲은 바람이 심하게 불어 올 때면 윙윙 소리를 내며 운다. 그 소리는 비통한 현을 위한 아다지오처럼 들려오 는 것이다. 길게 뻗은 대나무 숲길은 미로처럼 나 있고 난 이 공간 그 어디쯤 거지들의 생활공간인 움막을 정해야겠 다고 생각했다. 난 비교적 햇볕이 잘 들고 카메라의 움직임이 자유로운 공간을 찾아 움막 지을 곳을 결정했다. 우린 드라마 왕초 를 촬영하면서 움막에 인공강우기로 비를 뿌리기도 하고 또 조명으로 대나무밭에 빛이 새어들 게 하면서 동화처럼 거지들의 생활을 그려냈다. 당시 방송됐던 드라마 왕초 는 시청자의 좋은 반응을 얻고 이곳에 서의 장면 또한 인상적이어서 그 후 많은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조선시대 여형사의 활약상을 그린 드라마 다모 첫 회에서 대나무 숲에서의 칼싸움 장면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세 상사 모든 인연을 끊고 나만의 세계로 빠져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나무 숲이다. <<왕초가 재가한 그의 어머니를 찾아 만나던 곳, 소쇄원>> 남면 지곡리에 있는 소쇄원은 어린 춘삼이 재가한 엄마(선우은숙 분)를 찾아가 마을 어귀 징검다리에서 만나는 장면 을 연출했다. 춘삼과 엄마와의 오랜 이별과 만남을 이 소쇄원 나무 징검다리에서 그 회한과 그리움을 노래했다. 이곳 에서 촬영할 당시 집주인은 촬영을 완강히 거부해 이를 설득하느라 꽤 애를 먹었다. 그래서인지 소쇄원 나무 징검다 리에서의 장면은 남달리 애착이 간다. 소쇄원은 1,500평 규모의 정원에 계곡, 작은 폭포, 연못, 정자, 누각, 꽃 등의 모든 요소가 갖춰져 있어 전형적인 한 국 정원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소쇄원의 창건자는 성리학의 대가 조광조 선생의 제자인 소쇄 양산보이다. 조선조 기묘사화 때 그의 스승인 조광조가 사약을 받자 낙향하여 이곳에 정자를 짓고 은둔했다. 풍수지리에 따른 간택, 팔괘 와 음양오행등 유교사상에 정통한 학자답게 수목과 건축물을 적절하게 배치한 놓았다. 소쇄원의 정자 누각에 올라 자 연의 시간에 내 몸을 맡기면 이곳 소쇄원의 매력에 푹 빠져들고야 만다. <<왕초가 짝사랑하는 연지를 기다리는 장면, 관방제림 >> 왕초 따라가기(왕초) 29

30 <<왕초가 짝사랑하는 연지를 기다리는 장면, 관방제림 >> 어린 춘삼과 앵무새(최상학 분)가 가마니로 덮은 친구의 시체를 손수레에 싣고 저자 거리를 벗어난다. 검은 하늘 비 내리는 시장 길을 비통한 마음으로 걷고 있다. 이 같은 장면을 이곳 담양시장에서 촬영했는데 이 부근엔 천변 관방제 림이 있다. 담양 읍내로 들어서면 시장 부근 제방을 따라 길게 뻗은 숲길이다. 이곳은 메타쉐콰이어 나무와 함께 담 양의 대표적인 숲길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관방제림은 담양읍을 감돌아 흐르는 담양천 북쪽에 제방을 보호하고 수해를 막기 위해 조성한 인공림이다. 관방제림 둑에 앉아 어린 춘삼과 앵무새가 춘삼이 짝사랑하는 연지를 기다린다. 여학생 연지는 거지 춘삼을 거들떠보 지도 않고 숲 속 길을 빠져나간다. 둑 길 양쪽으로 느티나무, 푸조나무, 벚나무, 팽나무 등의 오래된 고목이 숲길을 이루고 있다. 해가 추월산 마루에 걸리고 단풍은 이곳 관방제림을 타고 내려와 붉은 단풍으로 물들여 가고 있었다. 제방을 따라 길게 뻗은 숲길은 잎이 떨어져 아주 부드러운 빛깔을 띠고 있었는데 그 길을 따라 걸으면 구르몽의 낙엽 밟는 소리 와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 수필이 떠오를 것 같았다. 그렇게 가을의 서정이 관방제림 숲으 로 서서히 물들어 가고 있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그 지역의 특산물이나 맛있기로 소문난 식당들이 있어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데 관방제림 천 변에 있는 진우네 식당은 음식 맛이 색달랐다. 내가 국수를 유독 좋아하는 탓도 있지만 비빔국수와 진한 멸치 국물 맛이 일품이다. 또 멸치 국물에 푹 삶은 찐 계란은 내 미각을 자극했다. 난 제방 식당 한쪽 구석에 마련된 평상에 앉 아 관방제림의 나무들을 바라보며 국물을 곁들인 찐 계란을 먹었다. 국민학교 때 소풍을 가서 사이다와 찐 계란을 먹 던 기분으로, <왕초가 재가한 엄마를 찾아가는 돌담길, 창평 삼지천 마을 >> 담양 창평 삼지천마을은 전통 한과로 잘 알려져 있는 마을인데 소박한 돌담의 정겨움이 느껴지는 곳이다. 삼지천 마 을의 담장은 전형적인 토석담에 일부는 돌담인데 담쟁이넝쿨이 향토색 돌담에 싱싱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드라마 왕초 에서 어린 춘삼이 재가한 엄마 집을 찾아 마을 돌담길을 서성이며 담장 안을 기웃거리는 장면을 이 곳에서 촬영했다. 어린 춘삼은 막상 재가한 엄마를 찾아갔지만, 선뜻 대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한다. 그다지 높지 않 은 돌담장 안으로 얼핏 보이는 장독대와 졸린 듯 느릿느릿한 삽살개가 마당을 지키고 있다. 춘삼이 찾아갔던 재가한 엄마 집은 고재환 가옥으로 소박한 돌담길 따라 한가로이 거니는 뒷짐 진 촌로의 걸음처럼 느릿함이 느껴지는 곳이 다. 담양 창평 삼지천 돌담길 마을은 고풍스러운 옛 고가들과 낮은 돌담길이 잘 어울려 정겨운 그림 속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돌담길은 우리 민족의 미적 감각과 향토적 서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화유산이다. 경남 고성 학동마을 돌담은 마을 뒤편 수태산 줄기에서 채취한 납작 돌과 황토를 섞어 쌓은 돌담으로 마을 주변 대숲과 잘 어우러져 멋진 경관 을 보여 주고 있다. 전남 강진 병영마을 돌담길은 2m가량 되는 높은 담장이 직선을 이룬다는 점에서 이 마을이 계획에 의해 조성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경북 성주 한개 마을 돌담길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한옥과 어우러져 아늑한 느낌이 든다. 경북 군위 부계 한밤마을 돌담길은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는 특징이 있으며 규모 또한 방대한 것이 특징이다. 영.호남 지역 10개 마을 '돌담길'이 문화재로 등록됐는데 경남 거창 황산마을, 산청 단계마을,경북 군위 부계 한밤마을, 성주 한개마을 전북 무주 지전마을, 익산 함라마을, 전남 강진 병영마을, 담양 창평 삼지천마을, 대구 옻골마을 돌담길 등이다. 그 밖의 드라마 왕초 에서 거지들 세력다툼에서 패싸움 장면은 담양 고북면 어느 허름한 정미소에서 촬영했다. 또한, 왕초가 거지들의 두목인 발가락과 담력을 겨루던 철길은 경남 밀양 삼랑진 철교 부근이었다. 당시 우리는 서울에서 이곳 삼랑진역까지 증기기관차를 끌고 와 촬영했던 기억이 있다. 어린 춘삼과 거지들 우두머리인 발가락은 철길에 누 워 기차가 지나갈 때까지 그 자리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이기게 되는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어린 춘삼은 끝 까지 버텨 그 담력을 인정받아 거지 세계의 왕으로 마침내 등극하는 순간이다. 드라마 왕초 는 불우했지만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던 그의 삶을 집중 조명했다. 그의 어린 시절의 발자취를 따라 가며 아름다운 자연 경관만큼이나 절망에서 희망으로 승화되는 그의 삶에 난 경건한 마음으로 찬사를 보낸다. 거지왕 왕초 가 걷는 길은 어두운 그늘에서 밝은 내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희망의 길이었음을 난 기억한다. 왕초 따라가기(왕초) 30

31 왕초 따라가기(왕초) 31

32 가문의 영광이로소이다(가문의영광) :09 MBC 창사특별기획드라마 빛과그림자 에서 극중 빛나라쇼단 이 여수에 극장 공연하러 오는 장면이 있었다. 여 수지역 갑부 아들로 출연한 아이돌 그룹 빅뱅 의 승리가 사는 집을 헌팅하기 위해 난 여수를 찾았는데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다. 고교를 졸업하고 무전여행 비슷하게 찾아왔던 곳이 전남 여수였다. 누구나 그렇듯 관광버스를 타고 단체로 몰려와서 구경하는 곳이 향일암인 것처럼 나 또한 그때 별 느낌 없이 향일암에 갔었다. 또 그때의 기억 아니 미각이라고 해야 하나! 처음 먹어봤던 돌산 갓김치의 씁스름한 그 맛이 여수에서 떠오르는 것의 전부인데, 이번 드라 마 헌팅을 빌미로 여수를 제대로 한번 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설레었다. 여수에는 '봉소당 이라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있다. 난 영화를 통해서 이곳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영화 가문의 영광 에서 극중 쓰리제이 가문으로 나왔던 집이다. 여수로 오기 전날, 난 봉소당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그곳을 방문해도 괜찮은지 여쭤보았다. 그는 흔쾌히 허락하며 전 라도 사투리가 다소 섞인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나이가 칠십이 넘은 노인인데 여수 전 역인 순천역쯤에서 연 락을 하면 나를 마중 나오겠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난 기차가 순천역쯤에 도착할 때쯤 전날 그와 통화했던 그 말이 생각났지만 무심코 받아넘겼다. 종착역인 여수 엑스포역 내려 그 집을 찾아갔는데 소슬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선뜻 벨을 누르지 못하고 이리저리 배회하기를 십 여분! 난 휴대폰 다이얼을 눌러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휴대폰으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한 옥타브가 높아져 흘러나왔다. 자신이 지금 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 오느냐는 거였다. 오 마이 갓! 설마 그 가 기다리라고는 난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아뿔사! 이런 대단한 실례가 또 어디 있담! 그는 집에 전화를 해놓을 테니 먼저 집안으로 들어가서 기다리란다. 잠시 후 집안일을 봐주는 한 아줌마가 나와서 대문을 열어주었다. 그가 안내하는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봉소당의 가문의 영광이로소이다(가문의영광) 32

33 웅대함에 난 움츠러들었다. 그 집은 안채와 사랑채 별채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족히 수 천 평은 되어보였다. 마당 한 쪽에 있는 정자위로 올라가보니 여수항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자 난간에 걸터앉아 여수항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이윽 고 그가 나타났다. 그는 생각보다 훨씬 젊어보였다. 언뜻 보기에도 나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는데 그는 반가 이 나를 맞이하며 집안 곳곳을 안내했다. 그는 건물의 경계를 이루는 곳을 가리키며 예전엔 저 앞까지 자신의 땅이라 고 했다. 그리고는 영화 가문의영광 을 이곳에서 촬영하게 된 일화를 내게 들려줬다. 영화감독이 촬영장소를 물색하다가 우연히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을 통해 여수 지역에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감독이 봉소당을 방문했는데 처음엔 촬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기꺼이 촬영 장소를 빌려 주었는데 이게 웬걸, 한 마디로 난장판 또 다른 말로 아수라장이라는 것이다. 그 후에도 예능프로그램 인 1박2일 제작진이 이곳을 다녀가면서 또 장소섭외를 부탁했는데 그때는 단호하게 거절했다는 것이었다. 하긴 촬영 인원만 해도 거의 백 여 명 또 차량대수만 해도 수 십대가 넘는 촬영매카니즘을 모르는 그로선 조금 과장되게 표현 하면 생애 최대의 실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빌려줬다가 나중에는 얼굴을 붉히게 되는 것이 촬영 임차인과 임대인의 관계이다. 그렇기에 이 고래등같은 기와집을 흔쾌히 촬영장소로 빌려주는 것이 내게 그 저 눈물 나도록 고마울 뿐이다. 사실 대저택 소위 갑부들이 사는 집을 촬영장소로 빌리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실제 로 별 따기보다도 더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내겐 있었다. 오래전, MBC 드라마 이브의모든것 에서 극중 주인공(장동건 분)이 사는 고급빌라를 섭외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 빌라 거주자의 동의로 쉽게 촬영장소를 빌리는가 싶었는데 빌라를 대표하는 회장과 몇몇 주민들이 반대해 촬영장 소를 빌릴 수 없게 되었다. 촬영이 당장 코앞인데 느닷없는 상황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때 대표자를 설득하기 위해 빌라단지 앞에서 밤낮을 서성거렸다. 의도적으로 날 피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를 만나기 위해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그 빌라를 찾아갔다. 또 한 번은 이 작품의 공동연출자(제2연출)와 함께 빌라단지를 찾아가 제발 도와달라 고 읍소하러갔는데 그 대표자는 우릴 만나주지 않는 것이었다. 우린 빌라 입구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 었는데 삐삐 호출기에서 진동음이 울려왔다. 그 삐삐 무선 호출기의 내용은 나와 함께 기다리던 연출자의 부친이 돌 아가셨다는 부음소식이었다. 그는 자리를 뜨지 않고 계속 남아있으면서 내 등 뒤로 뒤돌아서서 울고 있는 듯했다. 두 뺨을 타고 하염없는 눈물이 흐르던 그 모습이 난 잊히질 않는 것이다. 내가 책임지고 장소 섭외해야 할 일을 그가 대 신하게 된 것이 내겐 평생 짐으로 남아있다. 그때 어둠속에서 울고 있는 그를 보며 도대체 촬영이 뭔지! 도대체 잘 사는 부류의 인간들의 논리란 것이 고작 자신의 프라이버시와 번거롭다는 이유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인지 난 밤 하늘의 별들을 보며 원망했었다. 그래서 난 살아가면서 그 절실함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에 그 누가 내게 손을 내밀 면 도와주려고 한다. 결국 우리는 양평에 있는 고급빌라를 빌리지 못하고 용인 전원주택으로 그 장소를 바꿨다. 그 전원주택에는 우연히 연기자 강부자씨가 그 단지 안에 살고 있었다. 대개 고급저택은 촬영장소를 빌리기가 워낙 까다로워 드라마를 보면 이전 드라마에 나왔던 집들이 또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 장소렌탈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작품 당 수천만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저택을 빌리기가 쉽지 않은 것을 알고 있기에 여수 봉소당 주인은 내겐 구세주와도 같 은 것이다. 봉소당 이곳저곳을 안내해주던 그는 점심시간이 다 되자 여객터미널 부근의 봉정식당으로 날 데려갔다. 이 식당은 허 름하지만 서대기 요리를 기막히게 잘하는 집이라면서 보통 서대기보다 몇 배나 큰 용서대 를 주문하는 것이다. 그 리고는 자신은 먹지 않고 일일이 생선가시를 발라 내 밥그릇에 올려놓는다. 자신은 따로 점심 선약이 있기 때문에 함 께 식사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내게 여수의 참 맛을 보여주려 이리로 데려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내게 선약 된 점심약속을 마치고나서 함께 자신의 벤츠 승용차로 여수를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그는 약속대로 한 시간쯤 지나 서야 내게로 왔다. 그리고는 맨 먼저 여수 향일암으로 날 안내했는데 솔직히 난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오래전에 가보았던 경험도 있고 또 드라마 내용상 불필요한 장소이기 때문에 굳이 갈 필요는 없었지만 그의 호의를 져 버릴 수는 없었다. 그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면서 향일암 말고도 오동도는 꼭 가보아야 할 곳이라 했다. 오동도는 봄날 흐드러진 동백꽃 을 볼 수 있는 섬인데 이 섬에 새로 비렁길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렁길은 가파르지 않고 다도해 풍광을 나란 히 하면서 걷는 길이라 그 어느 길보다도 아름답다고 했다. 가문의 영광이로소이다(가문의영광) 33

34 우린 향일암으로 가는 일주문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그리고 한 사람이 겨우 빠져 나올 만한 바위틈을 벗어나자 눈앞 에 화재로 소실된 대웅전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대웅전을 끼고 오르자 이내 관음전과 해수관음상이 보였다. 주변에 는 돌로 새겨놓은 수많은 거북상들이 바다를 향해있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이곳 향일암에 거북상이 많은 이유는 하 늘에서 보면 향일암은 거북이 엉덩이 부분이고 임포항이 머리 부분에 해당된다고 한다. 그리고 향일암이 있는 자리는 금오산인데, 금오는 쇠 금 자와 큰바위거북 오 자를 써서 황금빛 커다란 거북 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유래중 의 한 가지는 주변의 돌이 마치 거북껍질처럼 문양이 많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다른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기 동자 조각상들이 향일암에는 없다. 그 대신 거북상이 유독 많은 것이 향일암의 특징이다. 다음날에도 그는 자신의 영빈관에서 날 하룻밤 더 묵게 하면서 여수 곳곳을 안내해 주었다. 백야도 마을과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학교 또 그가 즐겨 찾는 손두부 집으로 나를 데려가며 내 입맛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는 아름다운 고장 여수를 자신이 운전기사가 돼서 날 안내해주는 것이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날 순천시외버스터미 널까지 바래다주는 것이었다. 난 여수에서 그와 그렇게 만났고 또 그와 순천에서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난 먼 훗날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와 함께한 소중한 시간들을 또 그가 내게 베풀었던 온정에 감사해할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와 같이 남에게 선행을 베풀며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난 여수를 떠올릴 때면 늘 그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며칠 후, 우린 여수항을 배경으로 드라마 촬영을 했다. 구 어판장과 여수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돌산공원에서 촬 영했는데 그 느낌은 새로웠다. 돌산공원에서 바라보는 여수항의 모습은 시야가 한 눈에 들어와 가슴이 뻥 뚫린 것 같 은 청량감으로 다가왔다. 바다 한 가운데 작은 고깃배가 통통통 연기를 뿜어내며 항구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발아래 펼쳐진 돌산대교 위에서는 차량들의 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오후의 눈부신 햇살아래 바다 수면으로 은 은하게 부셔지는 햇살이 역광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런 풍경들 어딘가에 따뜻하고 아늑한 향기가 바다바람을 타고 내 몸에 전해지는 것 같았다. 여수는 물빛이 고운 아름다운 이름의 고장이다. 난 여수라는 이름의 어감이 아련한 그리움의 향수처럼 느껴진다. 난 돌산공원에서 내려와 하멜등대로 발길을 옮겼다. 붉디붉은 색조를 띤 하멜등대는 하멜이 여수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 리기 위해 세워진 것인데, 사실 말이 방문이지 억류생활이 아니었을까! 난 이 하멜등대가 왠지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 가온다. 독창성이 있기보다는 왠지 우리 피부색과는 다른 코쟁이 외국인 같은 모습이어서 난 이곳에서의 촬영을 포기 했다. 그 대신 여수항이 내려다보이는 돌산공원으로 장소를 옮겨서 촬영했다. 네덜란드인 하멜은 하멜표류기 를 통 해서 조선을 유럽에 처음 알린 콜롬버스와 같은 인물이다. 난 그의 방문을 통해 조선이 유럽에 알려지게 된 긍정적 측면보다는 오히려 부정적이었다는 것에 더 무게를 둔다. 왜냐하면 조선이 유럽 열강들에게 알려지게 되면서 침탈의 역사과정을 겪은 것이 근대화과정이라 한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그의 방문을 기념한 하멜등대가 내겐 철거된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 동상과 같은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난 여수항을 보았다. 하늘에선 한 무리의 갈매기 떼가 천천히 태양을 가로질러 가는 것을, 투명한 햇살이 바다를 비 치고 있는 여수항은 더욱 눈부셨다. 난 멀리 봉소당이 보이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는 여수에 헌팅 왔을 때 그와 함께 한 기억들을 떠올렸다. 진심으로 가문의 영광이로소이라고 되뇌었다. 가문의 영광이로소이다(가문의영광) 34

35 동강이 흐르는 젊은 날의 추억(라디오스타) :02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잔뜩 찌푸려 사위는 어둑어둑했다. 벌거벗은 나무들은 시야에서 가까이 다가오더니 또 점점이 내게 멀어진다. 옹기종기 모여선 몇 개의 마을을 지나자 요선정, 요선암이라는 큼직한 관광안내 표지판이 휙 하며 스쳐 지나갔다. 몇 해 전 기묘한 바위들이 널 부려진 이곳 강가에서 드라마 촬영하던 때를 기억했는데 그때 마 을 주민으로부터 섶다리가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래서 영월에 오게되면 꼭 가봐야겠다고 내심 생각했던 터였 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섶다리가 있는 판운리 마을을 찾아가려면 주천면 소재지에서 내려야 한다. 주천방향으로 가다가 아침치 고개를 넘어 유목정 마을임을 알리는 표석에서 판운리 마을을 바라보면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 앞 섶다리가 원경으로 보인다. 판운리 마을 섶다리에 다다랐을 때 한 노파가 손에 지팡이를 의지한 채 다리를 건너는 것이 보였다. 절룩절룩 걷는 모습이 몹시 불안해 보였는데 노파는 익숙하게 다리를 건너간다. 고요함이 마을 전체를 감싸고 하늘에서 싸락눈이라도 흩날린다면 강변 마을 섶다리 풍경은 운치를 더할 것이다. 그 을씨년스러움이 눈발에 반쯤 드러낸 섶다리에 차곡차곡 쌓여 가면 환상적일 것으로 생각하면서 카메라를 꺼내 들었 다. 망원렌즈로 화각을 최대한으로 끌어당겨서는 눈발이 허공에 흩어지는 모습을 연상하며 30분의 1 느린 셔터속도로 한 컷 한 컷 셔터를 눌러 본다. 참 편리한 것은 디지털카메라여서 일일이 현상, 인화해야 하는 부담감으로부터의 해 방이기도 하려니와 예전 같으면 필름 가격이 너무 비싸 카메라 셔터를 쉽게 눌러 댈 수 없었는데 세상 참 격세지감 이라고 해야 할까! 아날로그보다는 디지털이 편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난 노파가 건넜던 섶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너가 보았다. 마을 입구에는 옹기종기 여러 집이 모여 있었는데 조금 전 다리를 건너갔던 노파가 커다란 나무 밑 평상에 걸터앉아 동강이 흐르는 젊은 날의 추억(라디오스타) 35

36 있는 것이 보였는데 잠시 쉬어가려는 듯한 자세다. 어디로 마실 다녀오셨느냐고 난 여쭤 보았는데 노파는 자식들은 모두 객지로 나가서 심심해서 마실 나갔다가 돌아오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내게 평상 한쪽 선뜻 자리를 내준다. 시골을 여행 하다 보면 노인들은 외지에서 온 낯선 사람을 가족처럼 따뜻이 맞아준다. 말벗이 필요하고 따뜻한 정이 그립기도 한 까닭일 것이리라. 난 방금 건너온 마을 앞 섶다리에 관해 물어보았다. 노파는 예전에는 여기 말고도 섶다리가 여기저기 많았다고 했다. 매년 장마에 물이 불어나 휩쓸려가면 가을에 또다시 다리를 놓는 임시 다리라고 일러주었다. 물에 강한 물푸레나무와 굵은 소나무로 다리를 만들었지만,장맛비에는 천하장사가 없다고 했다. 다리가 불어난 물에 휩쓸려 오도 가도 못할 때가 많았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이 마을에 섶다리가 있는 것을 노파는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라님 단종 이 묻혀 있는 장릉으로 영월 관찰사가 부임하게 되면 이 섶다리를 거쳐 간다고 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관찰사가 편하게 강을 건널 수 있게 합심해서 섶다리를 만들었다는 유래도 내게 들려주는 것이었다. 섶다리는 판운리 마을회관 앞, 평창강을 사이에 두고 밤나무가 많이 난다는 밤듸 마을과 건너편 미다리 마을을 하나 로 연결해주고 있다. 미다리라는 땅 이름도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여름 장마 때면 섶다리가 떠내려가 다리가 없다 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하니 그 이름이 정겹게만 느껴졌다. 콘크리트로 된 교량은 견고해서 통행에 조금도 불편함은 없겠지만, 이곳 섶다리에서 느껴지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물씬 풍기는 다리는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영월읍에 이르자 장릉을 에워싼 드높게 솟은 소나무가 이곳이 충절의 고장임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장 릉은 조선 6대 왕인 단종이 묻혀 있는 곳이다.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단종, 국사 시간에 태종태세문단 세...,라고 줄곧 외던 조선의 여섯 번째 왕인 단종애사를 떠올렸다. 이광수의 소설 단종애사 와 드라마, 영화의 사극 소재로도 널리 알려진 것처럼 그의 생애는 정말 극적이다. 세상 에 이보다도 더한 비극적 결말이 또 있을까도 싶다. 그래서 난 영월에 오면 으레 단종의 애사가 떠올라 만감이 교차 하곤 했다. 사실 영월만큼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 곳도 드물다. 래프팅을 즐기는 동강이 흐르고 또 그런가 하면 백룡 동굴을 비롯한 수많은 동굴이 있고 옛 탄광 마을의 흔적이 있는가 하면 선바위 산이라든가 장산 그리고 김삿갓 계곡 또 한반도 지형을 닮은 선암마을 등 볼거리가 무궁무진하게 펼쳐진 곳이 영월이다. 그런데 최근 또 하나의 볼거리가 생겼으니. 몇 년 전 라디오스타라는 영화가 영월에서 촬영되었다. 그동안 묵직하게 다가오던 영월이란 고장이 라디오스타 영화 한 편으로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시내 곳곳에 영화 라디오스타 촬영지임을 알리는 안내 표지판이 눈에 들 어온다. 옛 KBS방송국, 박양이 일하던 청록다방, 영월 벽화마을이라 할 수 있는 요리 골목을 쭉 둘러보았다. 영화 라디오스타는 한때 전성기를 구가하던 인기가수 최곤(박중훈 분)이 지방방송국 디스크자키로 내려오면서 벌어지 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왕년의 인기스타였지만 대마초와 폭행사건으로 그의 인기는 팬들에게서 날로 멀어진다. 최곤이 미사리 카페촌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생계를 연명하던 어느 날, 폭행사건에 휘말리면서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된 다. 그의 매니저 박민수(안성기 분)는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인인 영월 방송국에 있는 국장을 찾아간다. 최곤이 영월 방송국 디스크자키로 일하면 합의금을 내 줄 수 있다는 국장의 말에 뜻하지 않게 영월로 내려오게 된다. 지방 소도시인 영월에서 최곤은 디스크자키를 하면서 선곡은 제멋대로이고 방송 중에도 커피 배달을 시키는 등 모든 것이 제 마음대로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최곤이 들려주는 방송을 통해 영월 사람들은 잔잔한 감동이 전해지고 이를 계기 로 최곤이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되찾는다는 내용이다. 세상이 빠르게만 움직이는 최적화된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이 느껴지는 라디오 매체는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난 사춘기 시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심야 음악 프로그램인 '0시의 다이얼 밤을 잊은 그대에게 와 같은 음악 프로그램을 즐겨들었다. 늦은 시간에 방송되는 음악인데도 매일 밤 듣곤 했다. 어떨 때는 그것도 모자라 방송종료 시 그널이 울리는 새벽녘에야 잠이 들곤 했는데 그것은 어쩌면 음악에 대한 열정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병이 아니었을 까! 그 누군가가 젊은 날의 내 죄를 묻는다면 공부하지 않고 허구한 날 음악에만 몰두하고 소중한 시간을 허비한 죄 일 것이다. 그러나 소중한 시간을 별과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시간이었음을 또한 난 기억한다. 영월 봉래산 꼭대기에 있는 별마로천문대는 영화 라디오스타에서 축하공연이 열리던 장소이다. 별마로라는 이름은 별 과 산 정상을 뜻하는 합성어로 별을 보는 고요한 정상이라는 뜻이다. 별마로천문대는 도로 진입로에서 한참을 걸어 동강이 흐르는 젊은 날의 추억(라디오스타) 36

37 오르면서 영월을 감싸고 흐르는 동강이 등 뒤로 펼쳐지면서 걷는 길이다. 또 길게 뻗은 낙엽송 사이로 별빛들이 보일 듯하면서 이내 사라지는 길이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산 정상에 서면 유난히도 맑은 별빛이 쏟아진다. 별을 바라볼 때면 절대자에 대한 숭배의 대상처럼 순수한 마음이 된다. 시인 윤동주는 별 헤는 밤 에서 그리움의 대상을 하나 둘씩 별빛에 투영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동경과...별 하나에 시 와...별 하나에 어머니, 내게도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를 불러 볼 수 있는 대상이 있었다. 별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그리움을 노래했 다. 그 이름은 별 하나의 제니...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제니의 모습은 내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다. 그리고 별을 바라보는 마음처럼 제니를 향 한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오늘같이 별이 유난히도 반짝이는 밤에는, 가끔 난 별을 보면 알퐁소 도데의 별 마지 막 구절이 생각난다. 저 수많은 별 들 중에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별님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헤매다가 지친나머지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 있노라고. 어느 봄날, 우린 대학 캠퍼스에서 처음 만났다. 캠퍼스커플 이라고 하기엔 왠지 어색한 굳이 설명하자면 알퐁소 도데 별 에 나오는 목동과 스테파네트 아가씨와 같은 사이였다고나 할까! 그 소설 중에 나오는 목동처럼 제니를 향한 내 마음은 별처럼 순수했다. 그것은 내 젊은 날의 초상이었다. 난 종로 보신각 근처 대형서점에서 몇 권의 책을 사서는 광화문 우체국에 들르곤 했었다. 그리고 짤막한 사연을 적은 편지를 몇 권의 책과 함께 소포로 제니에게 보내곤 했다. 그렇게 소포로 보냈던 책은 책장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랄 정도로 난 오랫동안 광화문 네거리가 보이는 우체국 창가에서 그리움을 전했다. 유치환의 행복 이란 시에서 사 랑하는 것은 사랑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 오늘도 난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 에게 편지를 쓴다."서처럼 그 시 구절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것은 내게 행복이었고 마음의 평화였으며 샘솟는 기쁨 이었으므로. 난 별마로천문대에서 동강이 흐르는 영월 시내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 잠긴 동강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건물에 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형광등 불빛과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들이 멀리 점점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별마로천문대는 건물 자체의 조명이 너무 밝은 탓에 별을 관측하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많지만 그래도 별 볼 일 있는 여행을 하기에 는 좋은 곳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천체투영실을 통해 별자리를 볼 수 있는데 내가 태어난 별자리는 열두 개의 별자리 중의 하나 인 염소자리에 해당한다. 점성술에 쓰이는 별자리는 고대 바빌로니아 인들이 일 년 열두 달을 기준으로 삼아 만든 것 이라 한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점성술을 운세와 연결 지을 과학적 근거는 사실 없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난 성리 학에 기초해 만든 사주나 점성술에는 운명론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믿는 부류에 속한다. 별빛이 쏟아지는 별마로천 문대!! 고흐는 강렬한 색채와 거친 붓놀림으로 별이 빛나는 밤을 화폭에 담았지만 난 동강이 흐르는 내 젊은 날의 추 억을 가슴에 담았다. 난 영화 라디오스타 한 장면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라디오스타 최곤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곤 씨!! 별이 너무너무 아 름다운 밤이에요! 반 고흐의 영혼을 노래한 돈 맥클린의 빈센트 리퀘스트 합니다. 부탁해용용용..!. 그 목소리는 동강을 메아리쳐 흘렀다. 동강이 흐르는 젊은 날의 추억(라디오스타) 37

38 소광리 숲으로의 여행 (영웅시대) :15 MBC미니시리즈 최고의사랑 을 끝내면서 촬영중 힘들었던 상황을 떠올렸다. 연일 밥 먹 듯 해야 하는 밤샘촬영, 쪽 대본과 살인적인 촬영스케줄, 방송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꼭 내보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암묵적인 진리! 그렇기 에 드라마 촬영 현장은 총성 없는 전쟁터와도 같은 위기감이 늘 상존한다. 환부에 돋은 종기의 고름처럼 언젠가는 곧 터질 것 같은 고질적인 병폐의 모순을 안고 있다. 뿌리 깊은 나쁜 관행들이 여전히 촬영현장을 지배하고 여기저기에 서 불협화음의 소리가 들려온다. 거기다가 한 여름 내리쬐는 폭염과 살을 도려내는 듯한 추위도 촬영팀에게는 복병이 다. 촬영이 진행되는 순간에도 끄물끄물한 날씨는 촬영스텝으로서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날씨도 우리를 도와 주지 않고 연기자마저도 정해진 촬영스케줄을 변경하기가 쉽지 않아 촬영 스텝들은 매번 긴장하게 되는 것이 요즘 드라마 촬영장에서의 현실이다. 전날의 연기자와 짜 맞춘 촬영스케줄을 바꿔야만 원활한 방송 일정을 소화할 수 있으 련만 현실은 늘 녹록치않다. 드라마 야외 촬영장에서 무수히 반복되고 제기되는 어지러운 말들, 그것은 거친 불신의 소리이며 불협화음의 소리였다. 며칠 전, 한 여배우가 촬영 중인 드라마 제작을 거부한 채 출국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리고 인터넷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여러 의견이 오갔다. 방송가에서 들리는 무성한 소문만큼이나 본질을 외면한 채 드러난 현상만으로 실체를 논했다. 여배우가 그 자신이 쌓아 온 명성이나 신뢰를 내 던지고 이런 선택을 한 이면에는 드라마제작 관행의 고질적인 병폐가 숨어 있다는 것을 난 잘 알고 있다. 난 그것을 스무 해 넘는 세월 동안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봐왔던 터라 십분 이해가 갔다. 집 마당 조그만 텃밭의 고추를 갈아엎고 배추를 심을 때쯤에서야 난 여행을 떠났다. 아침에 눈이 깨어 창밖을 보니 텃밭의 땅이 촉촉이 적셔 있었다. 간밤에 비가 텃밭을 다녀간 모양이다. 달력을 보니 처서가 지났고 제법 서늘한 바 소광리 숲으로의 여행 (영웅시대) 38

39 람이 불어오는 초가을로 접어들었다. 아직은 무더웠지만 난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첫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듯 소광리 숲으로의 여행을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난 동서울시외버스터미널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는데 가을의 햇살은 투영하게 내 어깨를 비춘다. 난 동서울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울진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안은 이른 아침인데도 좌석이 꽉 차 있었는데 가을맞이 여행을 가려는 사람들로 생기가 넘쳐났다.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는 4시간 넘게 달려 울진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는데 긴 여행 탓에 몸은 기진맥진했다. 난 터 미널 부근 식당에서 대충 끼니를 해결하고는 소광리로 가는 군내버스를 탔다. 버스는 지방도로를 따라 불영계곡으로 가고 있었는데 계곡을 에워싼 숲에는 벌써 초록의 빛깔이 그 빛을 잃고 단풍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차 창밖을 보 니 졸졸졸 계곡의 물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콸콸콸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계곡 물도 이제는 지쳤는지 그 속도가 안단테처럼 느려지며 흘러갔다. 난 광천교 다리를 지나 어느 마을 지점에 이르러서 버스에서 내렸다. 난 금강소나무 군락지라는 이정표를 따라 좌측 으로 10km 정도를 들어갔는데 개울을 따라 포장이 안 된 도로가 이어졌고 어느 지점에서는 길이 좁아지면서 구불구 불 길게 나있었다. 그렇게 찾아들어간 곳에 경상북도 문화재 제 300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소광리황장봉계표석'이 보 였다. 그리고 우측으로 나 있는 갈림길에는 MBC 대하드라마 영웅시대 야외 세트장이 그 황량한 모습을 드러낸 채 서있었다. 세월의 무게만큼 퇴락한 모습이 허무하단 느낌보다는 감개무량했다. 왜냐하면, 내가 드라마 영웅시대 촬 영지를 찾아 헤매던 이곳에 야외세트를 지었는데 아직까지도 허물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십 여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도 말이다. 예전 내가 이곳에 왔을 때의 기억들이 스쳐갔다. 2003년도 무렵, 아마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난 드라마 영웅시 대 에서 극중 주인공 천태산(차인표 분)이 산림벌목장과 주막 등에서 고된 노동을 하며 꿈을 이뤄가던 장면을 이곳 소광리 숲에서 촬영했다. 드라마 영웅시대 는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축에 있던 현대그룹의 창업자인 고 정주영의 일 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이 곳 소광리 숲에 야외세트장이 들어서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당시 이곳은 소나무산 림보호구역이라 촬영허락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았음은 물론 출입 또한 제한되어 있었다. 더구나 이곳에 야외세트까지 짓는다니 산림관계자들은 곤혹스러워했다. 그런 우여곡절이 있었기에 지금껏 남아있는 야외세트가 첫사랑의 연인을 만난 것처럼 반갑기도 하려니와 지금껏 버텨 온 인고의 세월이 그저 고마울 다름이다. 울진 소광리 숲은 예나 지금이나 길이 좁고 울퉁불퉁한 산길이어서 이곳을 찾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소나무 숲이 원형대로 보존될 수 있었고 사람들 발길 또한 뜸해 언제라도 호젓한 여행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 다. 난 금강송 군락지 숲으로 갔다. 소나무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내가 코끝을 자극하고, 산길을 따라 걷는 발걸음 은 바람처럼 자유로웠다. 소광리 숲 초입의 우뚝 선 소나무는 수령이 500년도 더 되었는데 가까이 다가서니 그 높이 와 나무 둘레가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것보다 훨씬 위용 있어 보였다. 이러한 소나무 군락이 숲을 이뤄 빽빽이 들어차 있었는데 나무들마다 곧고 쭉 뻗은 미인송으로 첫사랑의 여인처럼 매끈했다. 그 자태가 흡사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장 을 방불케 했다. 소광리 숲은 사람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매력이 있다. 첫사랑 연인처럼 지친 나의 마음을 따 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뿜어져 나오는 솔숲의 향기는 다정한 연인의 밀어처럼 달콤했고 솔 잎 사이를 스치는 간지러운 바람은 부드러웠다. 소광리 소나무 숲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이른 아침이다. 길게 뻗은 소나무 사이로 아침햇살이 스며들면 숲 속 금강송 나무는 그 빛이 더욱 붉게 물든다.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와 바람이 솔잎을 스쳐갈 때 숲속에서는 아침 햇살아래 산 새들이 지저귄다. 곧게 뻗은 소나무 사이를 끼고 흐르는 계곡에는 단풍잎이 떨어지고 호랑나비, 쇠똥벌레 등과 같은 곤충들이 숲 사이를 여행한다. 가파른 숲 언덕길을 따라 길게 뻗은 나무는 한 폭의 수묵화를 펼쳐 놓은 듯 그 아름다 움을 뽐낸다. 난 옛 추억이 남아 있는 소광리 숲길을 걸으면서 오래전 드라마 촬영지를 찾아 숲속을 배회하던 일들을 생각하며 상념에 잠겼다. 이렇게도 아름다운 숲을 그땐 왜 미처 몰랐던가! 지나가면 아쉽고 그리운 첫사랑의 연인처 럼 난 숲에서 길을 잃고 그 풍경에 취해 있었다. 가을의 문턱으로 접어드는 숲의 향취는 그윽한데 호젓하게 걷는 발 걸음은 느릿느릿 이어지며 전망대까지 다다랐다. 소광리 숲 전체가 한 눈에 들어왔는데 산세와 금강송의 여백이 절묘 하게 배치되어 있는 그 모습에 탄성이 뿜어져 나왔다. 난 가을이 오는 소광리 숲에서 두 눈을 살포시 감아보았다. 첫사랑의 설렘처럼 가을바람이 나를 감싸고 흐른다. 난 소광리 숲으로의 여행 (영웅시대) 39

40 그것이 바람소리인지 가을이 오는 소리인지 잠시 머뭇거렸다. 소광리 숲으로의 여행 (영웅시대) 40

41 무섬마을 강가에서(추노) :57 무섬마을 강가에서(추노) 41

42 난 마을을 벗어나 외나무다리가 있는 강가에 홀로 앉아 있었다. 오후의 태양은 강가의 금빛모래를 반짝이게 했고 강 물은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모래와 흐르는 물살이 서로 조우하며 만들어내는 형상은 나를 강가 에 가두어 놓으며 생각에 잠기게 했는데 흘러가는 강물은 역광을 받아 구불구불 기어가는 뱀처럼 흐느적거렸다. 이 강물은 봉화, 영주 그리고 예천의 강줄기를 따라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뱀이 기어가는 모양을 닮은 사행천인 내성천, 무섬마을 강가에서(추노) 42

43 그 강변 제방 너머엔 수도리 무섬마을이 있다. 낙동강을 휘돌아가는 경북 예천 회룡포 마을은 산 위에서 바라보는 장 면이 일품인데 이곳 내성천은 외나무다리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시인은 무섬마을의 내성천을 찬미 했고 지친 여행자는 이곳 외나무다리에서 강물을 바라보며 심신을 달랬다. 또 이곳 내성천에서 뛰놀던 아이들은 행복 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마을이었을 것이다. 영주 문수면 수도리무섬마을은 수 백 년 된 고가가 그대로 보존된 전통마을인데 내성천이 마을 삼면을 감싸듯 흐르 고 있는 육지 속 섬마을이다. 낙동강이 휘돌아가는 안동 하회마을이나 예천 회룡포마을 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수수한 강줄기가 마음을 사로잡는 곳이다. 강가 물길은 기껏해야 정강이까지 물에 빠지는 정도이고 고운 모래가 무수히 깔려 있어 예로부터 모래 강이라고 불리던 곳이었다. 이곳에는 강을 건너기 위해 마을사람들이 통나무를 쪼개 기둥을 박고 상판을 깐 외나무다리가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 며 놓여 있었다. 그 느낌은 수수롭고 소박해 마을사람들의 정을 따뜻이 이어주는 듯 했다. 얼마 전 드라마 추노 에 서 이 외나무다리를 배경으로 추노꾼들이 노비를 잡으려 쫒고 쫒기는 장면을 이곳 외나무다리에서 촬영했는데 난 그 멋진 분위기에 압도됐다. 그 아름다움의 사연과 비경을 간직한 무섬마을 내성천 외나무다리에서 흘러가는 강물을 하 염없이 바라본다. 어쩌면 다시 못 볼 풍경이기에 눈에 익히 듯 난 한참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최근 이 일대가 영주 댐 건설로 곧 수몰될 위기에 처해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무섬마을의 아름다움도 그 빛을 잃게 될 것이다. 무섬마을 주된 풍광을 이루는 금빛모래가 탈색될 위기에 놓여있는 데 그것은 내성천 상류에 들어서 는 대규모의 영주 댐으로 인해서이다. 4대강 토목사업 일환으로 벌이고 있는 영주댐이 완공되면 무섬마을 금빛모래가 줄어들게 되고 물길 또한 줄어서 이곳 풍경은 볼 품 없이 변할 것이다. 4대강사업은 누구를 위한 사업인가! 댐이 건설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으련만, 댐이 건설 되고 강물을 인위적으로 가두고 흘러가게 하는 인간은 결코 자연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자연 앞에 그저 보잘 것 없는 피조물에 불과한 것이니까! 난 내성천 외나무다리를 벗어나 마을로 갔다. 어느 집 담장 안 감나무가 주렁주렁 매달려 마을을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이는 듯 했다. 마당 한쪽에 우뚝 서있는 감나무위로 햇볕이 쏟아지고 땅위로 감 잎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바 람이 살랑일 때면 감나무 이파리들은 어지러이 몸을 떨고 있고 바람이 나무 사이를 지날 때마다 그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머리 희끗한 노인은 긴 대나무로 감을 따고 있었는데 등황색의 큼지막한 감은 바구니에 쏙쏙 담겨지면서 가 을은 깊어가고 있었다. 난 내성천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오후의 햇살은 수그러지고 해가 서서히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마침내 태양이 서편 강가 속으로 사라졌다. 석양이 천지를 검붉은 색으로 물들였고 그러면서 땅거미가 마을을 천천히 감쌌다. 강기 슭 마른 나뭇잎은 바람이 부는 대로 바스락 소리를 내며 떨고 있었고 땅에서 먹이를 찾고 있던 까치가 소리를 내며 숲으로 날아갔다. 강위에서 저녁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왔다. 난 지친 몸으로 강가를 벗어나 버스 정류장으로 향해 가 고 있었는데 눈앞에 보이는 내성천 텅 빈 강위로 강물은 고요하게 흐를 뿐이었다. 밤이 이슥해져 강가에는 이름 모를 벌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밤바람이 휙 불어올 때쯤 밤하늘엔 초생달이 강가를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난 강가 언덕을 벗어나 버스를 기다리며 강물을 바라보고 서있었는데 강가의 모습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아득하기만 했다. 생각할수록 난 왜 이곳 무섬마을이 4대강 개발로 왜 사라져가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정부의 논리로는 국책 치수사업이라던데 과연 그 말이 진실일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강물은 제 스스로 흘러가게 놔두어야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거늘, 작은 물방울이 모여 실개천 지나 강으로 흘러들 고 바다로 합류하면서 유연하게 흘러가야 하는 것이다. 난 늘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나의 생각도 나의 인생도 강물처럼 유연하고 자유롭게 흘러가기를 소망했다. 어둠이 삼켜버린 마을은 고요했고 멀리서 이따금 멍멍멍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영주 시내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무섬마을 강가에서(추노) 43

44 해협을 건너는 바이올린 : 년 한국의 시골 마을이다. 마을 장터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 창현(김석 분)은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며 빵모자를 눌러 쓴 약장수의 바이 올린 켜는 소리를 신기한 듯 쳐다본다. 처음 보는 바이올린의 신기한 소리, 생김새,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음색! 그 것은 마법이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약장수는 바이올린을 켜며 마을 숲을 벗어나고 아이들은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닌 다. 날이 저물어 아이들은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창현만이 남아 그의 연주를 듣고 있다. 영원히 연주가 끝나지 않았으면 했는데 약장수는 연주를 멈추고는 이내 어디론가 사라진다. 휙 하니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숲 전체가 몸을 떨며 소용돌이 같은 바람이 창현을 감싼다. 우두커니 서 있는 창 현, 그의 나이 다섯 살이었다. 바이올린이라는 그 아름다운 이름조차 몰랐었다. 1942년 봄이었다. 소학교에 다니는 창현(김석 분), 어느 날 창현의 집 별채에 일본인 아이까와 선생이 묵게 된다. 그가 묵은 별채엔 바 이올린이 짐짝과 함께 놓여 있었다. 손을 뻗어 바이올린을 만져보는 창현, 그때 등 뒤에 서 있는 아이까와 선생, 놀 해협을 건너는 바이올린 44

45 라 당황하는 창현! 아이까와 선생은 창현에게 바이올린을 만져 보라고 건네준다. 창현은 바이올린이 생각보다 훨씬 가볍다고 생각했다. 아이까와는 창현에게서 바이올린을 넘겨받아 황성의 달 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창현의 어렸던 그 시절, 약장수의 바이올린에 얼마나 마음을 빼앗겼는지! 그리고 지금 선생님과 바이올린이 내게 다가온 우연이 그 얼마나 놀랍고 또 얼마나 기쁜지 선생님께 전해드리고 싶었다. 고향 마을 하늘엔 뭉게구름이 흘러가고 창현과 아이까와 선생은 마을어귀를 벗어나 강둑에 앉았다. 아이까와는 창현 에게 네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뭐냐고 묻는다. 창현은 어두운 방안에 한줄기 새어 들어온 빛, 그러고는 잠시 머뭇거리다. 선생님이 가진 것 중에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이올린이었다. 아이까 와 선생은 창현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창현의 얼굴이 활짝 빛났다. 강 언덕에 마주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아이까와 선생은 말한다. 창현아! 봐. 이 나라는 아름다워! 듣고 보 니 산이 숲이 꽃이 풀이 갑자기 빛나 보인다. 창현의 귀에 지금까지 들리지 않았던 새 소리랑 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 리가 들려왔다. 마법 같았다. 선생님의 손에 쥐어지면 세상은 다른 것으로 변했다. 아이까와는 미소를 지으며 시 낭독 을 시작한다. "설마 당신을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이 즐거운 강둑에서 둘이 함께 서 있던 걸". 워드워즈 라는 사람이 지은 시라고 했다. 선생님이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아름다웠고, 선생님은 그것을 아낌없이 모 두 나에게 전해주려 하는 것 같았다. 아이까와는 창현의 손을 잡고 바이올린을 잡는 법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는 한 소절씩 켜본다. 창현의 어린 시절의 마지막 여름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계절은 늦여름. 소학교 요시노 교장이 창현의 집에 찾아왔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붉은 색의 징병장 이었다. 창현은 아이까와 선생 이 있는 강둑으로 내 달린다. 강 언덕에 앉아 있는 아이까와.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다본다. 오렌지 빛깔의 석양은 강 물 위로 부서진다. 아이까와는 말없이 품속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낸다. 많이 읽어서 너덜너덜해진 워드워즈의 원서 시집이었다. 창현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를 가르쳐 줄까? 창현을 고개를 끄덕인다. "한때 그렇게 찬란한 빛이었건만, 이젠 영원히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고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그것이 돌려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서러워 말지니. 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힘을 얻으소서 초원의 빛이여. 그 빛! 빛 날 때 그대 영광 빛을 얻으소서." 아이까와는 시집을 조용히 덮고 창현에게 건네준다. 석양이 산언저리로 기운다. 주변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아 이까와 선생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창현은 다 큰 남자가 우는 걸 처음 보았다. 사흘 후, 아이까와 선생은 출정하셨다. 그리고 그 해 말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창현은 엄마에게 아이까와 선 생님처럼 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일본에 가겠다고 했다. 엄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엄마는 후회되지 않도록 네 가 원하는 대로 살라고 하셨다. 그런 격려에 힘입어 창현은 일본행을 결심한다. 마을 어귀를 벗어난 소달구지는 집과 멀어져 가고 있었다. 엄마는 손을 흔들며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이 달려온다. 마 해협을 건너는 바이올린 45

46 지막 순간까지도 동요를 보이지 않던 엄마가 눈물을 훔치며 소달구지를 쫓아오고 있다. 엄마는 어린 창현을 멀리 떠 나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논 사이로 숨 가쁘게 뛰어오는 엄마는 작아 보였다. 창현은 자신도 모르게 소달구지에서 내리려 한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굳게 고쳐먹고 마부에게 어서 가자고 말한다. 고향 마을과 멀어져 가는 소달구지!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창현은 꾹 참았다. 지금 엄마의 모습을 보러 다시 돌아간다면 남의 나라에서 혼자 살아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창현은 고향을 떠났다. 그의 나이 열네 살, 길고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고향을 등지고 엄마와 이별을 해야 했던 황금 들녘은 영암 월출산 자락이 우뚝 솟아 있는 영암 장암 마을에서 촬영 했다. 아들 창현이 일본에서 바이올린 명장으로 성공하고서 고향 마을을 찾았을 때 마을 어귀에 나와 아들을 기다리 는 두 사람의 해후 장면도 이 곳 장암 마을 들녘에서 그려졌다. 집을 떠날 때 마을 황금 들녘과 흘러가는 저 뭉게구름, 어린 창현에게 있어 엄마와 헤어지던 고향의 황금 들녘은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그 곳에는 엄마의 품 안처럼 그리움이 묻어난다. 영암 장암 마을에는 수백 년 된 버드나무와 팽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 고목나무는 유구한 세월만큼이나 이 마을의 역사를 가늠케 한다. 남평 문씨가 모여 사는 마을 입구 장암정을 뒤로하고 골목길로 접어들 면 영암 문창집 가옥이 있다. 이 집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팔작지붕으로 된 정면5칸의 고택으로 제법 형체가 있어 보 인다. 집이며 들판 그리고 유구한 세월을 버텨 온 고목까지 조화롭게 마을을 감싸고 있는 것이다. 한일 합작 드라마 해협을건너는바이올린 의 강가 언덕에서 워즈워드의 시를 읽어 주던 장면은 경남 창녕의 우포늪 이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장면은 화왕산꼭대기 갈대숲 길에서 그리고 창현이 살고 있는 집은 아산 외암리 민속마을에서 촬영했다. 아이까와 선생님이 창현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주던 곳은 안동 하회마을의 낙동강 가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였다. 그리고 경주 계림 숲에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마을 숲의 이미지를 표현하며 보름 정도의 기간 동안 전국의 여러 곳을 찾아다니면서 촬영했다. 몇 해 전, 난 일본 후지TV 개국 45주년 특집드라마 해협을건너는바이올린 의 한국 로케이션 헌팅을 제의받았다. 감 독은 스기타 시게미치 인데 그는 자그마한 체격으로 다소 왜소해 보였지만 짙은 눈썹을 한 그의 눈동자는 유난히 빛 나보였다. 그는 일본에서도 꽤 알려진 드라마 거장이었다. 한국은 첫 방문이고 이 작품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고 내게 말했다. 그러고는 동양의 "스트라디바리우스"라고 불리는 바이올린 제작 명장인 재일교포 진창현의 일대기를 진솔하게 그리 고 싶다며 내 손을 굳게 맞잡았다. 난 이번 여행의 기착지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했다. 왜냐하면 그가 살았던 과거의 행적, 마을 어귀며 돌담 길, 냇가 등은 이미 존재하지 않은 먼 기억 속의 풍경으로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가 살았던 고향마을은 벌써 예닐곱 번은 족히 바뀌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이 번 여행길은 첼로의 묵직한 선율처 럼 다가왔다. 계절은 가을을 향해 무르익고 있었다. 이른 아침, 난 카메라며 낡아버린 지도 등 온갖 잡동사니를 여행 가방에 쑤셔 넣고 집을 나섰다. 딱히 바쁠 것도 또 정해진 목적지도 없었지만 기차를 타고 되도록 먼 곳으로 여행하리라 생각했 다. 뿜어내는 도회지의 열기와 분주함을 벗어나 티 없이 맑은 하늘과 강과 마을 돌담길을 보고 싶었다. 붐비는 용산역 기차대합실엔 많은 인파들로 붐볐다. 저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어디론가 제갈 길 해협을 건너는 바이올린 46

47 로 떠난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은 탓인지 대합실엔 사람이 꽤 많았다. 사람들은 이맘 때 쯤 이면 고향을 찾아 기차 에 몸을 싣는다. 객지에서 마음 고생하다가 그 누군가 따뜻하게 반겨 줄 그리운 이가 있는 고향을 찾는 것은 동물적 인 본능에 가까운 것이리라! 그래서 생겨난 말이 수구초심 아닐까 생각했다. 기차에 몸을 실은 것은 호남 행이었다. 실제 진창현이 살았던 고향은 낙동강이 흐르는 경북 김천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호남선을 타고 가는 것은 이곳 전라도 지역이 과거 정부로부터 개발대상에서 소외 당해왔던 터라 왠지 내가 찾 고자하는 보물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언젠가, 아내가 유흥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 3권을 사다 준 것을 기억했다. 내가 늘 상 좋은 여행 책을 한 번 내겠다는 타령만 하고 있으니 아내가 한심하다는 듯 사다 준 것이 바로 그 책이다. 행동은 안하고 생각만으로 십 년을 버텨 온 남편에 대한 일종의 반란이라면 반란이랄까! 그 책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었다. 남도 여행의 기착지는 해남, 강진인데 무위사의 절이 어떻고, 그 절의 개가 어쩌고 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래서 일단 그가 말한 절의 소 박함이란 무엇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영암을 찾았다. 강진 성전면에 있는 무위사로 가려면 영암을 거쳐야 한다. 영암에 처음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기암괴석으로 수놓은 듯한 월출산이었다. 그때 갑자기 머릿속 을 스치는 기억 하나. 십년 전, 광고 백두대간 하이트맥주 촬영지를 찾아 이곳을 찾은 기억이 났다. 광고제작사에서 내게 촬영할 장소를 주문한 내용은 술(주류)은 광고심의규정에 의거, 산에 술을 가져갈 수 없으니 멀리 불쑥 솟은 산이 보이는 촬영지를 찾아 달라는 것이었다. 여러 곳을 승냥이처럼 이리저리 온 산과 들판을 헤집고 다니면서 찾아낸 곳이 바로 이곳 월출 산이었다. 광고에는 한 남자(차승원 분)가 멀리 월출산이 보이는 산 초입에서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동안 얼마나 많 은 사람들이 산에 가서 음주가무를 했으면 이 같은 규정이 생겨났을까! 아니 대한민국 국민은 술집에서만 술을 마셔 야하는 근거는 또 무엇인가 하고 따졌었다. 최근에 모 가수가 술에 관한 노래 가사가 들어있는 곡을 금지시킨다는 여 성부의 방침에 가지가지한다 라는 그 말이 화제가 됐는데 그 의미가 내게 새롭게 들려왔다. 난 무위사로 가기 전 그때 촬영했던 영암의 한 마을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다시 찾은 이곳에 도착했을 때 뭉게구름 은 하늘에 저만치 걸쳐 있었고 가을 햇살에 누렇게 익은 너른 들판의 벼 이삭은 바람에 출렁이고 있었다. 가을걷이가 한창인 들녘을 걸으면서 수확을 앞둔 농부의 마음처럼 넉넉함이 묻어 나오는 것을 느꼈다. 삶의 포만감. 여유.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들녘 허수아비는 두 팔 벌려 참새 떼들을 쫓고 있다. 뛰노는 동네 꼬마 녀석들의 간드 러진 웃음소리는 들판에 메아리친다. 저 멀리 옹기종기 모여선 마을에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저녁 바람은 부 드럽게 나를 감싼다. 고즈넉한 들녘엔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처럼 정겨움과 그리움이 묻어난다. 아주 가까이 한 눈에 들어오는 월출산 전경 은 장암 마을 들판 한복판에 마치 금강산을 빼다 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신이 정성스럽게 꾸며 놓은 수석 전시장 같았다. 그 아름다운 풍광이 마음에 스치듯 다가왔다. 기기묘묘한 형상을 한 월출산이 품안에 들판을 보 듬고 냇가와 마을을 감싸고 있다. 그래서 월출산과 어우러진 그 어떤 대상도 보석처럼 빛나게 한다. 월출산과 무위사 월출산은 영암군 영암읍과 강진군 성전면 경계에 있는 산이다. 그리고 영암의 월남리에서 강진 쪽으로 3km가다 보면 무위사라는 절이 있는데 늦가을 절 마당의 낙엽이 수북이 깔릴 때면 이 절의 소박함에 더욱 운치가 묻어난다. "무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절의 본래 뜻만큼이나 한가롭고 소박하기만 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도 남도 답사 일번지 첫 기착지로 이 곳 무위사를 택할 만큼 충분한 이유가 있 다고 생각했다. 소박하고 질박한 아름다움이 때로는 그 어떤 화려함의 치장보다도 더 아름다운 법이다. 무위사가 빛 나 보이는 것은 내 이웃과도 같은 편안함으로 명산 월출산이 포근히 감싸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리라. 그리고 이곳 무위사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 10만평 정도 이르는 넓은 초록의 차 밭은 밤과 낮의 온도차가 크고 안개 가 많아 차 재배에 적당한 곳이다. 사람들은 차밭이라고 하면 으레 보성 차 밭을 떠올리곤 하는데 이 곳 월출산 남쪽 해협을 건너는 바이올린 47

48 기슭의 산비탈 구릉 아래 펼쳐진 장원 다원은 색다른 느낌이 들게 한다. 서리를 방지하기 위해 세워둔 팬이 차 밭 곳 곳에서 바람개비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이 이국적 정취를 자아낸다. 이곳에서도 창현 아버지(정동환 분)의 상여 를 맨 운구 행렬이 지나가는 장면을 촬영했다. 영암 월출산 주변의 무위사와 월남사지는 차밭과 연계해서 둘러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여행지다. 월출산 영산강과 왕인박사 일본 스기타 시게미치 감독이 이곳 영암에 현지 촬영확인답사를 왔을 때, 난 그를 월출산이 보이는 들판과 월출산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는 풍광을 차례로 보여주었다. 그때 내가 그를 안내한 곳은 서호면에서 바라본 영산강 이 흐르는 월출산 풍경이었다. 우리는 강가 제방에 서서 월출산을 바라다보았다. 그는 월출산의 또 다른 모습에 매우 흡족해하면서 우린 강가제방을 따라 주차되어 있는 버스로 갔다. 일본 감독은 농로 한 모퉁이에 다 쓰러질 듯 버려져있는 재각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저것이 뭐냐고 내게 묻는 것이었 다. 난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도 부근에 있 는 영암 왕인박사 유적지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백제 근초고왕 때 왕인박사는 논어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 에 건너갔고 일본 아스카 문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존경과 찬사를 아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 서인지 그는 영암에 대해 깊은 인상과 함께 황금 들녘 장암마을을 감싸고 있는 월출산, 그리고 왕인박사의 유적지가 남아있는 영암의 모습들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 그의 메시지를 일본에 전하려는 듯이 보였다. 영암 장암 마을 농촌 들녘은 눈부신 햇살에 황금빛 화려함을 뽐낸다. 마을 기와집 담장 감나무위로 햇빛이 쏟아지고 땅위로 감 잎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바람에 물결이 일듯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장암마을 들녘의 풍경을 음미하면 서 난 생각했다. 그리움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지난날의 향수와 추억, 그것은 어쩌면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 알 수 없는 그리움에 대한 목마름일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리움이 아니다. 볼 수 없어서 더 간절한 것이 그리움의 실 체가 아닌가 싶다. 세월은 가고 계절에 따라 시간의 흐름 따라 월출산은 또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것을 감싸고 있는 장암마을 황금 들녘엔 세월이 가도 언제나 변하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어머니의 따뜻한 품속과도 같이 소록소록 묻어나 는 그리움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내가 탄 버스는 어느새 월출산을 뒤로한 채 영암을 벗어나고 있었다. 해협을 건너는 바이올린 48

49 주산지의 사계(봄여름가을겨울) :39 영화 봄여름가을겨울은 순환되는 사계절의 의미를 동자승 인생을 통해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진다. 신비로운 호숫 가 암자를 배경으로 천진한 동자승이 소년기, 청년기, 중년기를 거쳐 장년기에 이르는 통과의례와도 같은 인생이 주 산지 사계를 통해 펼쳐지는 것이다. 주산지는 경북 청송에 있는 인공저수지로 그 아름다움이란 여행객의 넋을 잃게 한다.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을 통 해 이곳이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게 됐지만 예전 이곳은 그저 잠깐 스쳐가는 주왕산의 길목일 뿐이었다. 주왕산 이 워낙 산세가 아름다워서 여행객이 맨 먼저 들르는 곳이 주왕산인데 주산지가 영화를 통해 보여 지면서 언제부터 인가 이곳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 주산지 왕버드나무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몽환적인 분위기 혹은 단풍이 곱게 물든 저녁 호숫가에 나뭇잎이 원형의 파문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늦가을 정취는 이곳으로 발길을 돌리게 한다. 이러한 비경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어느 봄날의 주산지는 겨우내 얼었던 눈이 녹아 내려 만물은 마치 딱딱한 껍질을 벗듯 생기발랄한 몸뚱이를 드러냈 다. 주산지에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고 메마른 나뭇가지에 생명의 싹이 움텄다. 종달새는 즐겁게 지저귀며 한가로이 하늘을 난다. 꽃들은 만발하고 향기로운 봄바람은 나뭇잎에 입맞춤한다. 간간이 불어오는 싱그러운 꽃샘바람은 여전 히 세찼지만 그 바람 속에는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듬뿍 실려 있었다. 주산지를 에워싸고 있는 산과 호숫가는 연한 초 록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 생명의 힘을 불어넣고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의 힘이며 열정인 것이다. 그리고 여름이 찾아 오면서 주산지엔 하루가 다르게 녹음이 짙어져 갔다. 한낮의 태양은 생명이 생장하고픈 욕망으로 가득하다. 무시무시 주산지의 사계(봄여름가을겨울) 49

50 한 기세로 햇볕을 쏟아내면 주산지엔 열기로 가득 찼고 불꽃이 튀는 듯 했다. 그러다가 한낮 뜨거운 태양의 열기에 주산지 왕버드나무는 맥을 못추고 잠에 빠져든다. 한줄기 바람이 휙 하고 지나갔다. 검은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천둥 과 함께 후두둑 빗방울이 호숫가에 파문이 일듯 떨어졌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천둥이 울리고 번개를 비치더니 주산지의 생명을 모두 쓸어버릴 듯한 기세로 비를 뿌려댔다. 비는 대야로 퍼붓듯 쏟아지기도 하고 부슬부슬 내리기도 하면서 주산지엔 며칠 햇빛 한줌 내비치지 않았다. 우중충한 잿빛 하늘은 주산지를 찾지 못한 여행자의 마음에 답답 한 공기를 가득 채우고 만다. 난 까마득히 먼 곳까지 날아 가버린 같은 허허로움이 밀려왔다. 계절이 바뀌고 고운 옷 을 갈아입은 주왕산의 단풍은 주산지까지 내려왔다. 청명한 가을 하늘은 주산지 수면위에 어리고 붉게 물든 단풍잎이 뚝 떨어지며 흘러간다. 먹이를 찾고 있던 산새는 석양 속을 미끌어지듯 날아서는 잠시 머물 수 있는 숲으로 향했 다. 주산지엔 저녁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왔다. 태양은 기울고 마침내 서쪽 저 산마루로 사라졌다. 사라진 석양은 하늘을 온통 검붉은 색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이내 어둠이 찾아들었다. 달빛은 고요히 주산지에 잠기고 왕버드나무에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고독하고 아득한 신비한 색채를 띠고 있었다. 이른 아침 안개는 주산지에 찾아들었다. 수면 위로 피어나는 이른 아침 물안개는 자연의 경이로 움에 넋에 빠지게 한다. 초겨울로 접어든 주산지엔 하늘에서 가느다란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빗발 사이로 눈이 섞여 내리기 시작했다. 흰 눈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내리면서 주산지로 스며들었다. 초겨울로 접어들면서 북풍이 점점 더 거세어지더니 내 눈앞에 겨울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날씨가 급격하게 흐려지며 무겁게 내려앉아 주산지의 생명 이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얼리고 굳혀 버릴 것만 같았다. 주산지 왕버드나무는 매섭게 몰아치는 세찬 바람에 몸을 바 르르 떨고 있다. 윙윙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소리처럼 큰소리를 내며 을씨년스러움을 더했다. 주왕산은 침침한 얼굴 로 동면에 들어갔고 주산지 연못은 내 마음에 긴 여운을 남긴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어둡고 긴 나날을 보내는 동안 흰 눈에 묻혀있었다.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은 청송 주산지를 통해 그 작품 영광의 빛을 얻은 것처럼 난 계절마다 찾는 청송 주산지에 서의 기억들은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 자양분이 된다. 그 자연의 아름다움은 내게 특별한 감흥을 주며 긴 여행에서 오는 피로감과 권태에서 해방된다. 계절마다 찾는 주산 지에서의 기억들은 단 하루도 잊을 수 없는 시간들로 내게 각인 될 것이다. 청송 주산지는 태고의 숨결과 자연의 경 이로움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세계였다. 왕버드나무, 하늘. 갈대. 숲, 나무, 저수지 등 그곳에는 봄여름가을겨울 계절 이 흐르고 있었다. 주산지의 사계(봄여름가을겨울) 50

51 탄광촌 꼴두바우의 전설 (에덴의동쪽) :38 얼마 전 강원도 태백을 다녀왔다. 태백시청에 들러 이번에 준비 중인 작품이 강원도 태백 탄광촌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라고 소개하면서 장소와 관련된 많은 행정적인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담당공무원은 태백이 탄광도시에서 친 환경 중심도시로 변모를 꾀하려는 과정에서 과거 부정적인 탄광도시로서의 이미지를 애써 부각시킬 수 없다며 적극 적인 지원을 하기엔 다소 부담이 된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이 드라마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은근한 속내를 내비치기 까지 했다. 드라마를 현실속의 실제인 양 인식하는 담당자의 말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드라마를 접는 경우란 또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방송 드라마의 파급력은 간혹 이해단체의 부정적인 이야기가 방송에 나오기라도 할 때면 방송국 사무실로 전화가 빗발치곤 한다. 드라마 에덴의동쪽 은 1960년대 강원도 황지(지금의 태백)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랑과 야망, 복수를 그린 대서사 시이다. 여하튼 난 부정적이든 긍정의 힘을 믿든 간에 드라마에서 나오는 장소의 이미지들을 하나 둘씩 카메라에 담 아야 한다. 사실 강원도 태백엔 내가 화면에 담아야 할 몇 개의 탄광을 빼고는 실제 탄광과 관련된 이미지는 별로 남아 있지 않 았다. 탄광 인부들이 살던 사택을 재현해놓은 광부사택촌과 석탄박물관이 있을 뿐 과거 탄광도시였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실제 탄광으로서의 명맥을 잇고 있는 곳도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와 경동광업소, 태백광업소 세 곳뿐이 었다. 난 이 작품을 하면서 강원도 태백, 정선, 영월, 삼척을 중심으로 탄광촌 이미지가 남아 있는 동네며 사택, 학교 등 여 러 곳의 장소를 두루 돌아다녔다. 광부들은 삶처럼 고되지는 않았지만 탄광 이미지를 찾아나서는 일 또한 쉽지는 않 탄광촌 꼴두바우의 전설 (에덴의동쪽) 51

52 은 일이었다. 광부들은 고단함으로 막장인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지만 난 장소를 찾아 이곳저곳 찾아다니는 떠돌 이 인생인 것이다. 꿈을 찾아 탄광촌으로 흘러들어온 사람들, 그들의 삶의 이야기의 흔적들을 찾아서 난 여행길을 나 선다. 모운동 마을 난 탄광마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옥동광업소가 있던 모운동 마을을 찾아가기로 했다. 모운동은 강원도 영월군 만경산 자락 중턱에 있는 전형적인 산골마을이다. 이곳으로 향하는 길은 구불구불 가파른 길로 산속 깊숙이 이어진다. 이런 산골에 마을이 있을까라는 의구심은 해발 1,087m 망경대산의 7부 능선까지 올라서야 비로소 사라진다. 내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잿빛 하늘과 시꺼먼 탄으로 뒤덮인 동네를 연상했는데 언뜻 보이는 건 마치 동화 속 그림 처럼 앙증맞은 집들로 예쁘게 단장된 모습이었다. 과거 첩첩산중 모운동마을의 부귀영화를 이끈 건 땅속 깊숙 가득한 석탄이었다. 1960~70년대 이곳엔 극장이며 우체 국, 미장원, 세탁소 등 시내와 별 반 다름없는 마을이었다. 그러다가 그 화려했던 마을의 번영은 1989년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엔 새롭게 변신한 마을이 하나 생겨났다. 그 어디에도 탄광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고 석탄을 운반하던 고철더미로 변한 케이블카가 유일한 그 당시의 흔적일 뿐이다. 난 이곳 모운동마을에서 영월읍으로 나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 마을 노인과 잠시 얘기를 나눴었다. 그는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옛날 모운동엔 광부만 이 천명이 넘었드랬어! 월급날이면 영월시장보다 더 큰 장이 마을에 섰드랬어! 라 며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난 과거 탄광촌 아이들이 뛰어놀던 학교 운동장이 있던 곳에서 조금 벗어나, 포플라 나무가 서 있는 발아래의 까마득 히 먼 아랫동네를 내려다보았다. 구름이 모인다는 동네 모운동에서 과거 이곳 탄광마을에서의 광부들의 삶을 어떠했 으리라는 상상을 했다. 이제 이 마을에서 잿빛 탄광촌을 떠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구름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모 운동마을의 동화속의 집들이 꿈결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난 구름이 모여 있는 동네 모운동 마을에서 내려와 다시 영월 상동읍 구래리 마을로 갔다. 꼴두바위와 서낭당 상동읍에 도착하니 대한중석광업소로 가는 길목 우측 골짜기에 삼각형 모양의 뾰족하게 솟아있는 큰 바위가 보였다. 상동 구래리 마을사람들은 이것을 꼴두바우라 불렀는데 조선 선조 때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이 이 바위를 보 고 "먼 훗날 이 큰 바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 바위를 우러러 볼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송강 정철 그의 예언처럼 현재 상동리 대한중석은 희귀광물인 텅스텐 매장량 가치로 미국의 투자자 웨런버핏이 이곳에 거액을 투자했다고 하니 그 예언은 정확히 맞춘 셈이다. 이곳 상동은 동쪽으로는 태백산이 버티고 서있고 북쪽으로는 함백산, 서북쪽으로는 백운산이 있는 곳으로 태백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한때 대한중석이 성업이었을 때 상동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는데 이 꼴두바위를 보며 상 동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한다고 한다. 우린 이곳 상동마을 꼴두바위 부근 건물에서 드라마 에덴의동쪽 을 촬영 했다. 극중 탄광마을 병원으로 사용했던 이곳은 대한중석 옛 사무실과 관사가 있는 건물로서 우린 이 건물을 병원으 로 둔갑시켜 촬영했다. 탄광촌 소장으로 근무하는 신태환(조민기 분)은 불륜관계였던 간호사 미애(신은정 분)의 아기를 강제로 유산시킨다. 그러던 중 병원에 근무하는 미애는 복수의 일념으로 병원에서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신태환과 기철(이종원 분)의 아 기를 서로 바꿔놓으면서 엇갈린 운명이 시작되는 비극적인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영월 장산과 선바위 장산(1408m)은 상동읍 구래리와 천평리 사이에 위치한 산인데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산이다. 휴일에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적은데 산이 볼품없어서가 아니라 가까운 곳의 함백산과 태백산이 버티고 선 까닭이다. 난 이곳 영월 장산에 오르면서 편안하고 부담 없는 산행이 즐거웠는데 정상에서 바라보는 태백산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소나무 군락을 이룬 눈 덮인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서 특징 있는 촬영 포인트를 연신 카메라에 담으면서 정상으로 향 해 갔다. 눈 덮인 정상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태백산 위용을 바라보았다. 눈에 쌓여 희끗한 태백산 모습이 아름답 다고 생각하면서 난 방한복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그만 카메라를 잃어버린 것을 알았다. 산 정상에 오르는 도중 그 어디쯤에서 카메라를 빠트린 것이 분명했다. 탄광촌 꼴두바우의 전설 (에덴의동쪽) 52

53 난 눈앞이 캄캄했다. 이 카메라는 아내가 딸아이의 여고입학 기념으로 사준 카메라인데 내가 잠시 빌려서 가져왔던 것을 공교롭게도 잃어버린 것이다. 난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서 차근차근 눈길을 살폈는데 그 카메라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난 체념하며 산 중턱의 바위에 걸터앉아 허탈한 마음을 달랬는데 등 뒤에서 나타난 등산객이 혹시 카메라를 잃어버 리지 않았냐는 것이었다. 난 너무도 기쁜 나머지 그에게 연신 머리 숙여 고마움을 표시했다. 세상에는 양심 있는 사 람들이 제법 많이 있음을 실감했는데 내가 만약 산길에서 아주 새것의 카메라를 주었다면 난 어찌했을까 라는 의문 이 들었다. 그는 내게 MBC 드라마 선덕여왕 에 나왔던 동굴이 자신이 운영하는 석회공장 땅굴에서 촬영했다고 말 했는데 그가 더없이 고맙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난 이곳 영월 장산에서 등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태백산을 배경으로 드라마 에덴의동쪽 을 촬영했다. 해가 태백산 저 산마루에 뉘엿뉘엿 걸린다. 광부 기철(이종원 분)은 아들 동철을 목말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기철은 태 백산을 마주보며 아들아 너는 세상을 향해 태백산을 가슴에 품은 것처럼 넓은 마음을 가진 큰 사람이 되라 는 말 을 한다. 또 광부 기철이 죽고 온 가족이 탄광마을을 떠나는 장면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그때 동철의 어린동생 역으 로 출연했던 기순(진지희 분)이 훗날 시트콤 지붕뚫고하이킥 에 출연하면서 우린 다시 만났다. 빵꾸똥꾸 대사로 유명해진 지희를 만나 당시 함께한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반가움의 손을 내밀었다. 다음날 난 뭔가 신령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한 선바위산(1,042m)을 찾아갔다. 이곳 선바위는 마을사람들이 신성시하 는 바위로 노송과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은 기묘하다. 아니 신령스럽다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이 선바위를 보며 탄광으로 일하러 가는 그들 가장의 안녕과 무사태평을 기원 했을 것이다. 광부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고단하다. 막장에서 일하면서 그들은 꿈을 키우며 가족을 돌보았으리라! 그렇기에 탄광 촌 꼴두바위와 선바위는 그들을 지켜주는 그 힘 그 이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선바위 뒷길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가다보면 높게 솟은 참나무 군락 사이로 두위봉과 백운산이 하늘금을 이루는 아름다운 산이다. 그 밖의 탄광지역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는 강원도 삼척 도계인데 이곳에서 영화 꽃피는봄이오면 이 촬영됐다. 삼척 도계는 태백과 맞닿아 있는데 이곳 도계역과 태백 통리역 사이는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고도 차이가 435M나 된 다. 석탄을 가득 채운 열차가 스위치백되는 구간인 나한정-흥전역사이의 1.5KM 구간을 지나 삼척 도계역에 닿으면 석탄을 가득 실은 화물열차가 역 주변에 즐비하다. 삼척 도계는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가 남아 있고 광부 사택의 흔적이 대규모로 남아 있으면서 사람들은 아직도 그 곳에 기거하며 살고 있다. 마을은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거무티티한 그 모습은 을씨년스러운 풍경으로 내게 다가왔 다. 난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에 들러 탄광과 관련된 장소이야기를 광부와 나눴는데 그는 어디선가 날 많이 본 듯하다 며 혹시 전날 예능프로그램에서 나오지 않았냐는 것이었다. 난 빙그레 웃으며 갑자기 유명인사라도 된 것처럼 으쓱했 다. 다음날 난 만항재를 넘어 정선 삼척탄좌 동원탄좌를 찾아갔는데 폐광된 지 하도 오래돼서 우린 부분적으로나마 이 탄광건물을 배경으로 탄광 이미지를 담아냈다. 드라마 에덴의동쪽 의 주 무대인 황지읍은 전남 순천 오픈세트에서 황지읍을 재현했고, 탄광촌 병원과 신태환의 집 탄광사택은 영월 상동읍 대한중석의 건물을 일부 사용했다. 생생한 탄광 장면은 주로 태백 경동탄좌에서 촬영하면 서 난 준비기간을 포함한 약 2년이라는 긴 시간을 드라마 에덴의 동쪽 과 함께했다. 그 기간은 내게 꿈결 같은 에 덴의 시간이었다. 탄광촌 꼴두바우의 전설 (에덴의동쪽) 53

54 들리잖니! 보이잖니! 보길도 여행 :35 모처럼 아내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일 년에 한두 번쯤 촬영장소 헌팅을 빌미로 함께 여행을 떠 나곤 한다. 이번에 우리가 함께 찾아가는 목적지는 국토최남단인 땅끝마을 해남이다. 새벽에 눈이 깨어 창밖을 보니 하늘은 잔뜩 구름이 끼어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은 날씨였다. 아내는 우산을 챙겨서 내 배낭 속에 넣고는 부랴 부랴 호남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주말이라 터미널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난 번잡한 것을 매우 싫어하는 탓에 주로 평일을 이용해 여행하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피해갈 수 없었다. 우린 해남으로 가는 첫 차 7시 20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안 좌 석은 사람들로 꽉 차 있어 답답해보였는데 내가 우려했던 히스테리칼한 반응은 첫 번째 휴게소에서 시작되었다. 버스 는 대전 부근에 이르러서 처음 쉬어갔는데 휴게소는 여행객들로 초만원을 이뤘다. 난 화장실로 볼 일을 보러 들어갔 는데 내 눈을 의심케 하는 광경이 벌어졌다. 화장실 안에는 수십 명의 용감무쌍한 아줌마들이 줄서서 급한 용무를 보 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혹시 여자화장실로 잘못 찾아 든 것이 아닌지 화장실 표시판을 연신 확인했다. 남자화장 실이 분명했다. 씨!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아줌마들은 저렇게 뻔뻔해도 되는 거야! 체면이고 뭐고 다 필요 없는 거냐 고 아줌마인 아내를 싸잡아 공격했다. 아내도 웃으면서 사람들 사는 것이 다 그런 것인데 뭘 그렇게 민감하냐고 내게 맞받아쳤다. 짜증나긴 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너그러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번에 는 또 내 앞좌석의 젊은 부부가 의자를 길게 뒤로 젖히고서는 서로 몸을 기대고 떠드는 것이 영 볼 성 사나왔다. 난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주말을 피해 여행 하는 이유를 지금 스테레오로 현장 생중계하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은 황량함을 드러냈다. 계절은 늦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길목! 회색빛 하늘 에서 간간이 뿌리는 이슬비가 차 창가에 흩어진다. 왠지 멜랑코리한 느낌이 들어 난 아내에게 귓속말로 나지막한 목 들리잖니! 보이잖니! 보길도 여행 54

55 소리로 말했다. 어쩌면, 이번 작품을 끝으로 일(헌팅)로서의 여행에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선전 포고라도 하는 듯 단호했는데 의외로 아내는 그동안 고생 많이 했으니 좀 쉬라고 한다. 한 평생 뜨거운 열정과 혼신 을 다해왔던 일로부터 당당히 굿바이 해야 하는 시점임을 아내도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은 퇴를 앞둔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은 마음을 옥죄게 한다. 경제적인 것으로부터의 독립도 물론 절실한 것이지만 남은 제 2의 인생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도 내겐 중요하다. 내 젊은 시절, 불모지와도 같은 로케이션의 세계를 개척하며 쌓아왔던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예측 가능하지 않은 미래! 이런 저런 생각들이 끝없이 펼쳐지는데 아내가 창밖을 바라보며 저 들판에 우뚝 솟은 산이 무슨 산이냐고 내게 묻는 것이었다. 우리가 탄 버스는 영산포를 지나고 들판을 가로질러 영암 월출산을 지나가고 있었다. 아내는 말로만 듣던 월출산이 참 예쁘다고 했고 멀리 오니까 이런 풍경을 보게 된 것이라며 어린애처럼 마냥 즐거워했다. 난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에서 유흥준 교수가 극찬한 무위사를 지나고 곧 해남 땅에 도착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아내는 장거리 여행에 배가 고팠는지 점심은 한정식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내게 물었다. 전라도지방에 오면 으레 근사하고 푸짐하게 잘 차려진 밥상을 생각해서였을 것이리라! 아침에 출발한 버스는 두 번의 휴게소 지나고 우린 6시 간 만에 드디어 국토 맨 끝 땅에 내렸다. 아내와 난 터미널에 내려서 천변 쪽으로 걸어갔다. 해남에 오면 촬영팀과 종종 들르곤 하던 천일식당으로 아내를 데 리고 갔다. 점심시간이라 식당 각 방안의 좌석은 꽉 차 있었고 우린 마당에서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후 빈자리가 생겨 우린 방안으로 들어갔는데 뒤늦게 아기를 업고 온 부부와 함께 동석했다. 주문한 상이 들어왔고 맛있 게 식사를 하려는데 옆 테이블의 칭얼거리는 아기 울음소리에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고상한 분위 기의 근사한 식탁을 기대했건만 한 순간의 날아간 꿈이 돼버렸다. 우는 아기는 그렇다 치고 밥상은 가격에 비해 영 아니올씨다 이다. 한마디로 NG이다. 큰마음 먹고 들어온 음식 값이 여간 부담되는 것이 아니었는지 아내는 식당 문 을 나서면서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했다. 떡갈비 1인분에 이만 오천 원 둘이 합해서 오 만원! 2003년도에 1만 6천 원 하던 것이 지금 현재 2만 5천원이면 너무 많이 오른 것이라고 했다. 소고기 값이 그때보다도 많이 오르지도 않았는데 왜 비싼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최근 치솟는 물가 탓에 주부로서의 시장바구니 물가를 감안한 호사라고 생각하 는 것 같았다. 난 모처럼의 나들이에 기분을 망치고 싶진 않아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그것이 전부 아파트(집 값) 때문이라고 에둘러 대답했다. 두륜산 대흥사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우리는 버스터미널로 다시 갔다. 대흥사로 가는 길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금방 대흥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대흥사 절 입구로 가고 있는데 큰길은 모두 대형버스 차지여 서 우린 숲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걸었다. 대흥사 절 입구에는 유선관 이라는 이름의 여관이 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이곳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장군의 아들'로 유명세를 탔고 그 뒤 '서편제' 그리고 최근 TV 예능프로그램 '1박2 일'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장소이다. 유선관에 들어서니 전통가옥이 주는 여관의 느낌이 색달랐다. 난 유선관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주인을 불 러 이곳에서 촬영을 하고 싶다고 했다. 주인은 흔쾌히 촬영장소를 제공하겠다고 내게 말했다. 난 여관 유선관을 나와 대흥사경내로 들어갔다. 아내와 난 이리저리 경내를 둘러보았는데 아내는 절을 에워싸고 있는 두륜산이 멋져 보인다 고 말했다. 난 내친김에 두륜산으로 갈까 생각도 했지만 왠지 망설여졌다. 시간이 너무 늦은 오후인 것도 그렇지만 아침부터 비를 뿌려 산길이 미끄럽지 않을까하는 우려에서였다. 그렇지만 우리 부부는 용감했다. 한마디로 부창부수 다. 가끔 아내와 난 독립문 부근의 도서관에 갔다가 밤길에 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 올 때가 많다. 어떨 때는 시청광 장에서 열리는 밤 공연 행사를 보고 한 두 시간쯤 걸어서 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우린 그런 것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웬만한 산의 밤길은 주저함이 없다.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는다. 우린 산행에 앞서 가장 짧은 코스를 선 택하기 위해 등산이정표(지도판)를 바라보았다. 표충사에서 일지암-천년수- 만일재를 지나고 구름다리를 건너고 두륜봉으로 해서 진불암으로 내려오는 것이 가장 짧 은 코스였다. 대략 3시간 쯤 소요된다고 지도판에는 적혀있었다. 우린 출발에 앞서 표충사를 삼거리를 어떻게 가야할 지 표지판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는데 도무지 표충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우물쭈물 하고 있었는데 우리 들리잖니! 보이잖니! 보길도 여행 55

56 가 서있는 곳이 바로 표충사 삼거리라는 푯말이 보였다. 젠장! 갈 길이 먼 데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다니!! 서산대사의 유적지인 표충사는 생각보단 평범했다. 그래서 이곳이 표충사인줄은 차마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일지암으로 가는 길은 비가내린 뒤라 온통 젖어있었고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었다. 그래서 더욱 숨이 가빴다. 아내도 한마디 거들었다. 참 재미없는 길이네! 왜 산길을 콘크리트로 포장해야 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난 이게 다 산 사를 찾는 사람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게 일부러 잘 닦아놓은 길이라구! 스님들도 차를 타고 다니면 또 얼마나 편하 고 좋아! 라고 비아냥댔지만 씁쓰레한 뒷맛은 어쩔 수 없었다. 난 구도자의 묵상이란 실존을 에돌아가서 길의 종착점에 더 확실히 이르기 위해 걷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는 걷는 것은 고독한 것이며 자유의 경험 그리고 관찰과 몽상의 무궁무진한 원천인 것이다. 우리는 길을 통해서 뜻하지 않는 만남과 예기치 않은 놀라움이 가득한 길을 행복 하게 즐기는 행위라고 난 생각했다. 두 발로 흙을 밟으며 걸어야 하는 길을 차를 타고 가면 구도자가 취할 길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일지암을 지나고 천년수로 가는 길부터는 울퉁불퉁한 흙길로 이어지는데 산길은 가팔랐다. 11월 관측사상 25도를 육 박하는 여름을 연상케 하는 무더운 날씨 탓에 땀은 비 오듯 했다. 괜히 산에 올랐나 하는 후회가 엄습했다. 우린 가 파른 산길을 조심스레 걷고 또 걸었는데 아내는 가져온 우산을 지렛대 삼아 잘 따라와 주었다. 헉헉헉 숨을 몰아쉬며 경사가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만일재 가 나타났다. 운무에 반쯤 가려진 반야봉 밑으로 수 줍은 듯 속살을 드러낸 다도해의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됐다. 다도해의 올망졸망한 섬들이 점점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가 이 광경을 보고는 입이 쫙 벌어지며 하는 말이 참을 인자 를 꺼내며 걸어서 참고 오길 잘했다며 흡족해했다. 그리고는 내게 다도해를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어주겠다고 했 다. 난 순순히 포즈를 취했는데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다가가서 카메라 화면 창을 들여다보았다. 흐릿하게 찍힌 사진 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후레쉬를 터트려서 찍어야지 제대로 나오지 이게 뭐냐고 하면서 막 화를 내려다 땀에 젖 어 몰골이 말이 아닌 내 얼굴을 탓 하리오! 했더니 아내는 깔깔대며 웃는다. 우린 구름다리를 지나고 두륜봉 정상에 서자 어둠이 찾아왔다. 우린 서둘러 산을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길은 미 끄러워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딛고 두 손은 밧줄을 꽉 움켜잡고 산길을 내려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자 곧 포장된 산길 이 나왔다. 진불암에 이르자 안심이 됐는지 긴장이 풀어져 피로가 몰려왔다. 우리는 인적 없는 대흥사 버스정류장에 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갔다. 숙박 장소를 찾으려는데 아내는 시내에 있는 숙소보다는 땅끝 마을 바닷가에 있는 숙박 지로 가자고 한다. 다음날 아침, 땅끝 마을에 있는 편의점에서 간단히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주변을 한 번 돌아보기로 했다. 별다른 특징이 있는 곳이 아닌 그저 땅끝 마을이라는 것 때문에 볼 것도 없고 특별하지도 않은 곳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 화가 치밀었다. 아내는 전망대에 올라 땅끝 바다를 보자고 성화이다. 난 그곳에 올라가봤자 뻔할 뻔 자인데 오르면 뭐 하냐고 대꾸했 다. 그리고는 미황사를 가 보자고 했다. 그리고 영화 서편제 에 나왔던 고천암 갈대숲 철새들의 도래지도 함께 가 보자고 제의했다. 그렇게 결정하고 방향을 정했는데 이때 뿌웅 하는 요란한 경적음과 함께 배가 막 출항하려는 것 이 보였다. 보길도로 향하는 여객선이다. 언젠가 꼭 한 번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한 터에 바로 지금이 그 기회인 듯싶 었다. 난 아내의 손을 부여잡고 서둘러 표를 끊고는 배편에 올랐다. 섬으로 가는 뱃길은 짙은 검은 구름에 가려져 간 간이 섬이 보일 듯 말 듯 하면서 지나갔다. 우리는 잠시 후 노화도 선착장에 내려 보길도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보길도로 가는 차편은 시간이 일정하 게 짜여진 것이 아니어서 버스가 언제 올지 몰랐다. 그렇다고 버스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보길도까지 걷기에 는 제법 먼 길이었다. 아내와 난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기로 했다. 아내와 여행할 때면 가장 곤혹스러운 점이 바로 남의 차를 얻어 타는 일이다. 왠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서지만 차를 얻어 타서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었 다. 때마침 시내까지 가는 용달차를 얻어 타고 노화읍 이목항까지 우린 편안하게 왔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은 우 리를 보길도로 연결되는 보길대교 앞까지 우리를 태워다주었다. 우린 마음씨 좋은 그 분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며 다리를 넘어 윤선도 명승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완도군 보길도라는 지명이 눈에 띄었다. 여기서부터는 행정구역 들리잖니! 보이잖니! 보길도 여행 56

57 이 완도에 속하는 지역이라서 그런지 기후며 풍광들이 조금은 다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윤선도명승지인 세연정으로 들어가는 표를 끊고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오래된 원림과 거대한 바위들이 환 상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정자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환상적이었다. 카메라 셔터를 어느 각도에서 눌러대도 선 과 면의 절제된 조형미가 가히 예술적이라 해야 할까!세연정은 두 못 사이에 세운 정자가 세연정 으로 세연이 란 주변경관이 매우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 이라는 뜻으로 주로 연회와 유희의 장소였다. 우린 세연정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는데 돌담 탱자나무 울타리에 앙증맞은 집들이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보 였다. 이곳은 부용리마을인데 마을 텃밭 한가운데에는 시기가 지났는데도 아직도 상추가 자라고 있었고. 무우 씨앗을 뿌려 놓았는지 씨앗이 파랗게 자라나고 있었다. 이곳은 다른 지역보다 기후가 훨씬 온화해서 만물은 생기가 넘쳐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부용동마을을 지나 동백나무 숲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는데 이곳 동백나무에도 꽃이 피어있는 것 이 보였다. 우린 윤선도가 기거했던 낙서재와 곡수당을 둘러보았는데 한창 공사 중이라 발길을 되돌려야했다. 그리고 는 걸음을 옮겨 부용리마을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동천석실로 갔다. 십 여분 쯤 산길을 따라 오른 동천석실에서 바라 다 본 안개 낀 부용리 마을은 고즈넉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우리는 동천석실에서 내려와 예송리 몽돌해변으로 가기위해 발길을 옮겼는데 하늘에서 빗방울이 한 두 방울씩 툭툭 떨어졌다. 우리는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탔는데 그 차는 보길면사무소 부근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우리는 버스를 기다 리다 지쳐 택시를 타고 예송리마을을 찾아 가보기로 했다. 택시기사는 그리로 가면서 예송마을은 귀를 즐겁게 하는 해변이라고 일러주었는데 왜 그런지 궁금했다. 그리고는 눈이 즐거운 해변을 보려면 다시 택시를 탔던 곳으로 나와 보옥마을로 가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우리는 택시에서 내려 예송리 갯돌해변을 걸었다. 울창한 상록수림과 천연의 갯돌이 바다와 어우러져 절로 탄성을 자 아냈다. 왜 이곳이 귀가 즐거운 해변인지 눈을 감고 귀를 쫑긋하며 그 소리를 음미했다. 해변으로 밀려드는 쏴 하 는 파도가 자갈에 부딪치며 내는 소리인데 그 소리는 구슬처럼 맑고 투명했다. 하이든의 소나타를 듣는 것 같은 착각 을 불러일으킨다. 택시기사가 말해주었던 귀를 즐겁게 해준다는 그 의미를 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내는 해변을 거닐면서 몇 개의 조약돌을 줍기도 하고 소라를 캐면서 동심으로 돌아간 듯 해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시 보길면사무소 부근으로 가서 노화도 선착장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버스는 아무리 기다려 도 오질 않았다. 지나가는 마을 아낙에게 여쭤보았더니 이미 버스가 끊겼다고 말해주었다. 세상에 오후 2시뿐이 안되 었는데 버스가 끊겼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우린 때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타고 읍내로 나갔는데 갑자기 이곳에 올 때 택시기사가 말한 눈을 즐겁게 해준다는 바다를 가보고 싶어졌다. 우리는 택시 방향을 돌려 보옥리마을로 가는 해변을 따라 달렸다. 멀리 보이는 바다를 가득 메운 곳은 전복양식장이라고 기사가 말해주었다. 그리고는 이곳 주민 들의 생활은 전복양식으로 비교적 윤택하다고 귀뜸했다. 해변을 달리는 택시는 선창마을을 지나고 도로 한쪽에 피어있는 동백나무 앞에 차를 세웠는데 우리더러 내려서 사진 한 장을 찍으란다. 우리나라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백동백나무라고 말하면서 보길도 동백꽃은 여수 오동도보다도 동백 나무가 더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길도엔 유자나무도 많아 아무도 유자에 손을 대지 않아 보길도에 오면 떨어진 유 자를 마음껏 담아 갈 수 있다고 허풍 쳤다. 택시는 보길도 서쪽끝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망끝전망대를 지나자 보죽산(뾰족산)이 눈에 들어왔는데 탄 성이 절로 나왔다. 그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짙은 안개에 가려져 선명하게 자태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뾰족한 삼각형 모양의 산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를 태워 준 택시기사는 맑은 날 보족산에서 보면 제주도 추자도가 구름에 떠 있는 듯이 보인다고 하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보려면 하루 더 머물다 가라고 했다. 우리는 보족산이 보이는 공룡알 해변을 걸었다. 조약돌이 공룡알 같다는 해변에서 두 사람만의 오붓한 시간을 갖고 오랫동안 더 머물고 싶었지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택시기사 때문에 아쉽게도 그곳을 벗어나야했다. 택시기사는 보길도에서 운전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이곳에서 자신이 모는 택시를 안 타 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 이라고 자랑하면서 보길도는 천혜의 아름다운 비경을 간직한 섬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는 청산도에 얽힌 속담 그 속을 모르면 시집을 가지마라 했던 척박한 환경의 청산도를 비교하며 그곳에는 꾸미지 않은 마을길이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경관만을 따지고 보면 이곳 보길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들리잖니! 보이잖니! 보길도 여행 57

58 우리는 노화도에서 배를 타고 땅끝마을로 다시 되돌아왔다. 서울로 가려면 완도에서 몇 번의 교통수단을 이용해 가는 것보다 이곳 해남 땅끝마을에서 서울로 가는 것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광주로 가서 KTX 고속열차를 타 고 서울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는 표를 끊고는 광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가 해남읍 터미널이 가까워오자 휴대폰 진동음이 울렸다. 통화 내용은 촬영스케쥴로 인해 목포에서 촬영지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난 맥이 풀려 아무 말로 하지 못했다. 아내와 함께 오붓이 서울로 귀경할 수 없을 것 같은 허탈감이 마음을 짓눌렀 다. 그보다도 아내 혼자 먼 길을 태워 보내는 것이 여간 안쓰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게 주어진 현실은 어쩔 수 없다. 난 방향을 북북서로 돌려 목포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만 했다. 밤이 이슥하고 명멸하는 해트라이트 불빛들이 도로를 비치며 달려가고 있었다. 어둠이 사방을 까맣게 물든 밤! 아내 는 제대로 열차를 타고 갔으려나! 열차가 없다면 무작정 대합실에 앉아 무료하게 기다려야 하는데! 그러 저나 오늘이 일요일이라서 좌석이 남아 있으려나! 고속버스를 타고 가면 늦은 밤 서울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가야하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난 아내에게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귀가 즐거운 예송리해변도 보았고 눈이 즐거운 보족산 해변도 보았고 또 입이 즐거운 맛도 즐겼지만 당신과 함께한 이번여행은 그중에서도 정말 최고였다고!! 조금 있다가 붕 하고 문자 메시지가 떴다. me too... 들리잖니! 보이잖니! 보길도 여행 58

59 아내와의 첫 만남과 신혼여행 :55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에 온통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상념을 시원스레 싹둑 잘라 버리고 싶 었다. 그래야만 뭔가 일이 잡힐 것 같기에. 지구촌의 축제인 88 하계올림픽이 한국에서 끝난 뒤 내게도 뭔가 좋은 일자리가 생기겠지 하는 희망은 그저 환상에 불과했다. 난 영화사 이곳저곳을 여전히 기웃기웃 했다. 내겐 꿈도 비전도 없는 일상이 나를 지배했다. 집에서는 넌 장남이니까 빨리 결혼 하라는 성화가 빗발친다. 그러나 누군 빨리 결혼하고 싶지 않은가! 누가 가난한 집안의 장남에 게 그것도 변변한 직업조차 없는 내게 시집 올 여자가 어디 있느냐고 내심 항변했다. 꽃은 피고 지는데 또 다시 힘겨운 하루를 이어가는 내겐 분노의 시간들이었다. 동네 어느 집 담장 안 피어있는 살구 꽃이 바람에 흩어지면서 내 젊은 날의 무기력하고 나른한 봄날의 오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첫째 날. 난 무작정 청량리역에서 강릉으로 가는 마지막 무궁화호를 탔다. 기차는 짙은 어둠을 뚫고 강릉으로 향해 갔는데 어 느 틈엔가 난 잠들었다. 기차는 한참을 달려 태백 통리역에 섰을 때 기차선로를 바꿔야만 오를 수 있는 스위치 구간 에서야 덜커덩 하는 소리에 난 잠이 깼다. 눈을 떠보니 기차는 강원도 삼척 도계를 막 지나갔다. 난 잠시 창밖을 보다가 다음 역인 동해역에서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여행도 아니라서 난 동해역에서 내린 다음 아내와의 첫 만남과 신혼여행 59

60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정하지 못했다. 애국가 첫 소절에 배경으로 나오는 동해 추암 촛대바위를 찾아갈까도 생각해 보았는데 이른 새벽부터 바다로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난 동해 역에서 비교적 가까운 무릉계곡을 찾아 가기로 했다. 버스는 동해역을 조금 벗어나자 희뿌연 석회가루가 버스 차창으로 날아들었다. 석회공장이 무릉계곡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피할 수는 없다. 얼마 지 나지 않자 버스는 나를 무릉계곡 입구에 내려놓았다. 이른 아침의 공기는 상쾌했고 기분이 좋았다. 이따금 새들의 지 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청옥산과 두타산을 사이에 두고 무릉계곡은 부채꼴 모양으로 이어졌는데 무릉도원을 연상할 만큼 경관이 수려했다. 산행하는데 심심하다 싶으면 뾰족뾰족 솟아 있는 기암괴석이 눈을 즐겁게 했다. 주차장에서 계곡을 따라 가다보면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 무릉반석이다. 이 장대한 바위 위에는 내가 다 알 수 없는 한자로 쓰여진 글들이 많았는데 과거 이곳을 찾은 시인이나 묵객이 새겨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 한 것이 조선 4대 명필가인 봉래 양사언의 글씨체이다. 그는 이곳에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 이란 글을 남겼 다고 한다. 무릉반석을 지나서 돌다리를 건너자 절 입구에 삼화사라고 쓰여 있는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 절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흑연대 란 이름으로 창건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그런데 난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 이 이곳에서 촬영했다는 것 이외엔 별 관심이 없었다. 당시 이 영화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호평을 받았는데 그가 왜 이 절을 찾아와 촬영했는지 궁금했다. 난 절 안으로 들어 가 보았는데 그다지 특별한 느낌은 받지 못했다. 감독인 그가 삼화사에 온 까닭은! 내가 이곳은 찾은 까닭은 또 무엇일까! 달마가 그 까닭을 말해 주려나! 절의 뒤편으로 가니 울창한 나무들로 뒤덮여 평평한 숲길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서 500미터쯤 가다보니 길이 두 갈래 로 나뉘는데 왼쪽은 학소대, 오른 쪽은 관음암으로 가는 길이다. 난 학소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좁은 산길을 따라 한 참을 걷다보니 징검다리를 나타났다. 그리고는 또다시 갈림길이 나타났는데 오른쪽은 쌍폭, 용추폭포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두타산성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난 무슨 퍼즐게임을 맞히기라도 하려는 듯 둘 중의 하나인 길을 선택해서 계속 발길을 옮겼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쌍폭포를 거쳐 나란히 선 장군바위와 병풍바위의 기암괴석을 만나게 된다. 얼마 후, 바위절벽 사이 맑은 물줄기가 쏟아지는 선녀탕이 나왔다. 마치 이름에서 느껴지듯 선녀와 나무꾼 동화 를 떠올렸다. 혹시, 동화에 나오는 나무꾼처럼 선녀의 옷을 감추면 나도 장가갈 수 있으려나! 선녀탕 그 위로 쌍폭포의 우렁찬 물소리가 들려왔다. 뽀얀 물보라를 날리며 물줄기는 쌍폭포를 흘러내리는데 그 소리 는 힘차고 우렁찼다. 쌍폭포 오른 쪽으로는 무릉계곡 최고의 절경인 용추폭포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난 가파른 철제 계단을 따라 위쪽으로 가서 폭포를 내려다보았다. 용추폭포의 밑은 둘레가 30m나 되는 깊은 웅덩이로 이뤄져 있었는 데 땀으로 젖은 몸을 씻고 싶은 유혹에 빠졌다. 폭포아래는 별유천지 라는 글자가 아로 새겨져 있는 것이 내 눈 에 들어왔다. 둘째 날. 두타산에서 내려와 난 추암 바닷가 마을을 찾았다. 동해에서 삼척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경계지점인 북평 마을입 구에서 내렸다. 비 포장된 좁은 도로를 따라 걷다보니 개울 양옆으로 아직 갈색 옷을 벗어 던지지 않은 갈대들이 무 성하게 자라 있었다. 아내와의 첫 만남과 신혼여행 60

61 한참을 걷다가 보니 철길 다리 밑이 보였는데 제법 너른 공터가 버스가 회차하는 곳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굴다리 를 지나자 바로 해암정이 보였다. 기암괴석을 등 뒤로 서있는 정자가 특이했다. 난 하룻밤을 묵어야 하는 민박집을 찾으러 온 마을을 둘러보았다. 아직 피서철이 아니라서 마을은 비교적 한산했고 텅 빈 바다는 평온했다. 이곳을 찾은 사람은 나 이외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난 되도록이면 바다와 가장 인접한 민박집을 찾았다. 그래야만 파도소리를 자 장가 삼아 잠을 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찾은 민박집은 촛대바위 바로 옆에 붙어있는 양철 지붕의 허름한 민박집이었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어야겠다 고 생각하고 하룻밤의 숙박료를 흥정했다. 오천 원이었다. 어둠이 밤바다에 찾아들었다. 난 민박집 방안에서 파도소리를 들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파도소리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리듬감 있게 내 귓전을 쟁쟁하게 울렸다. 전날, 밤기차 안에서의 불편했던 선잠 그리고 두타산 산행, 금방이라도 잠 들 것 같았는데 좀처럼 잠 못 드는 밤이 다. 너무 생각이 많아서일까! 사실 이번 여행은 마음을 억누르는 일상에서 벗어나 아무런 구속도 없는 곳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파도소리는 내 마음을 파고들었고 또 그렇게 파도소리를 듣는 가 싶 더니 난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다. 어둠이 채 가지지 않는 새벽녘, 내가 묵고 있는 민박집주인 아저씨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려는 부산함에 난 눈 이 깼다. 동녘에서는 어둠을 깨고 서서히 아침이 밝아 오고 있었다. 난 자리에서 벌썩 일어났다. 민박집 아주머니는 부엌에서 나오며 내게 잘 잤느냐고 물었다. 난 편안한 잠자리였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했다. 민박집을 나와 좁은 계단을 따라 촛대바위가 보이는 언덕에 올랐다. 바다 한 가운데 기묘한 형상을 한 촛대바위를 보 며 난 애국가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닮도록.. 시작되는 애국가에 동해 추암의 촛대바 위를 삽입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동해바다에 있기 때문에!.. 아니면 지명이 동해라서!.. 또 정말 아름답고 애국가처럼 장엄하게 보이니까!.. 그러나 그것은 애국가 영상화면을 만든 사람만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난 군부대 초소가 있는 절벽 철책 길을 따라 해암정으로 내려왔다. 해암정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게 문이 굳게 잠겨 져있었는데 멀리서 민박집 아주머니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가 잡아온 생선찌게로 아침식사를 준비했으니 와서 들라는 것이었다. 난 아주머니가 차려준 밥상에 고마움을 표시하며 고기를 많이 잡았냐고 여쭤봤다. 별 신통치 않다고 했다. 배를 타고 멀리 나갈 수 없으니 고기가 많이 잡히 지 않는다고 했다. 난 아침식사를 맛있게 먹었는데 이제부터는 내가 가져온 쌀과 부식으로 스스로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내겐 돈이 별로 없었기에. 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민박집 방안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책을 꺼내 들었다. 페이터의 산문집이었는데 너무 잡생각이 많은 탓인지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셋째 날. 점심때가 다 되었다. 나는 가져온 쌀을 씻고는 석유버너에 코펠을 얹어 놓았다. 그리고는 고추장을 풀은 물에 꽁치와 김치, 양파를 넣고 식사준비를 했다. 밥과 찌게 달랑 두 가지였지만 내 배고픔을 해결해 줄 주 메뉴였다. 난 수저를 꺼내 맛있게 허겁지겁 먹고 있었는데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난 흠짓 당황하며 위를 쳐다보았는데 삐쩍 마른 몸 매의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여자가 그의 친구와 함께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기분이 나빴다. 왜 하필 밥 먹고 있는 데 지나갈 게 뭐람! 입을 딱 벌리고 맛있게 먹으려던 그 찰나에 내 눈과 딱 마주칠 게 또 뭐람! 하면서 난 남은 음식 아내와의 첫 만남과 신혼여행 61

62 을 마저 먹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운명은 동해역으로 가는 시내버스에서 이루어졌다. 난 민박집에서 짐을 챙기고는 기차 굴다리가 있는 버스 종점으로 갔다.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시계는 곧 도착할 시간을 알린다. 기차선로를 따라 한 손에는 살구를 담은 비닐봉지 그리고 어깨에는 가방을 둘러맨 여자가 걸어왔다. 바닷가 민박집에서 내가 식사할 때 마주친 그 여자였다. 그는 가볍게 내게 눈인사를 하고는 식사중인데 그 앞을 지나가게 돼서 미안하다고 했다. 난 괜찮다며 개의치 말라고 했다. 그때 우린 동해역으로 가는 버스에서 두 번째 마주쳤다. 동해역에서 서울 청량리로 가는 기차를 우린 함께 탔다. 우리는 서로 자리를 마주보고 앉았는데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내가 특별히 내세울만한 또 자랑할 만 한 그렇다고 특별한 유머러스한 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내가 뚝 던질 수 있는 말이 취미가 뭐지요? 집은 어 디냐? 는 정도였다. 난 이 공간의 서먹함을 깨어야 한다고 느끼면서 배낭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들었다. 여행 와서 읽으려 했던 페이터의 산문집이었는데 그 책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녀는 다 읽으면 어떻게 돌려주어야 하느냐고 내게 물었다. 난 책 뒤에 다가 영화사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그렇게 청량리역으로 오는 긴 시간을 별 반 얘기 없이 서울로 왔다. 우리는 그 렇게 만났고 또 그렇게 헤어졌다. 그렇게 한동안은 그녀에 대한 기억은 내게는 없었다.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난 영화 조감독 일을 하면서 정신없이 바쁜 어느 날 그녀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빌려갔던 책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됐다. 그리고 우린 결혼했다. 결혼 첫날 밤. 우린 처음 만났던 바닷가 추암으로 배낭을 메고 민박집으로 신혼여행을 왔다. 민박집 아주머니는 우리의 기막힌 인연 에 놀라워하며 우리를 반가이 맞이해 주셨다. 우린 신혼 첫날밤을 이곳에서 보냈다. 난 옛날 일을 회상하며 그때 왜 이곳을 지나갔냐고 따져 물어보았다. 단순히 촛대바위만을 보기 위한 목적이었냐고 재차 따져 물었다. 아내는 촛대바 위를 보러 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 가야하는 길목에 당신이 있었노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당신의 먹는 모습은 원초 적이랄까! 마치 아프리카 초원에서 먹이를 먹는 하이에나 같아서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가을의 햇살이 따사롭게 비쳐지는 오후 우린 무릉계곡을 찾았다. 언젠가 이곳을 여행할 때 보았던 커다란 바위에 쓰 여 있는 한자들을 보면서 두타산을 산행했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혼자 걸었던 쓸쓸한 이 길을 오늘 당신 과 함께 온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 커다란 반석위에 마음의 커다란 하트 문양을 그려 넣 었다. 다음 날 아침, 햇살이 민박집 방문 사이를 강하게 비추자 우린 서둘러서 짐을 챙겼다. 묵호항에서 을릉도로 가는 배 를 타기 위해서였다. 우린 마중 나온 민박집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며 다음에 꼭 다시 들르겠다고 했다. 난 그 약속 을 10년이 훨씬 지난 어느 겨울날, 아내와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추암바닷가를 찾아와 그 아주머니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결혼 둘째 날. 우린 을릉도로 향하는 배를 탔다. 긴 항해로 약간의 멀미를 느꼈지만 파도는 비교적 잔잔했고 햇살은 눈부셨다. 저동 항에 배가 닿자 우리는 숙박한 장소를 찾았다. 우리에겐 충분한 여행경비가 마련되지 않아 숙박할 좋은 곳을 찾는 것 은 애당초 힘들었다. 아내는 또 민박집에 묵는 것에 대해 싫은 내색은 안했지만 입은 저만치 나와 있었다. 우리는 민 아내와의 첫 만남과 신혼여행 62

63 박집에 여장을 풀고 나리분지로 가기로 했다. 우리가 저동 항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날씨가 화창했었는데 나리분지를 가는 도중 먹구름이 까맣게 몰려왔다. 9월 중순경인데 비가 오면 얼마나 올까 생각하면서 우린 나리분지로 거침없이 돌격 앞으로 했다. 그런데 하늘은 금방 어 두워졌고 찬 공기가 폐부를 찌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이내 후루룩 빗방울이 스쳐 지나갔다.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나뭇잎은 땅에 떨어져 굴러가고, 비에 젖은 억새는 오들오들 떨고 있는 듯 했다. 넓게 펼쳐진 나리분지에 도착하면 너와집에서 잠시 비를 피할 수도 있으련만 아직도 우리에게 갈 길은 멀다. 우린 큰 나무 아래서 바르르 떨면서 비에 젖은 생쥐 모양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웃음이 피식 흘러나왔다. 우리 는 을릉도가 눈이 제일 많이 오는 지역이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우리는 나리분지 꼭대기까지 가는 것을 포기하고 고 깃배가 묶여 있는 저동항 민박집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결혼 셋째 날 비가 언제 왔냐는 듯이 을릉도 아침 하늘은 맑았다. 우린 저동항으로 나가 오징어잡이 나간 고깃배를 기다렸다. 갑판 위에서는 오징어가 나무 상자 위로 가득 쏟아지고 흥정을 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우리는 살이 많이 오른 오징어를 한 마리 당 천 원에 사서 민박집으로 가져와서는 회 쳐 먹고 초 쳐 먹고 끓여 먹고 별 짓 다했는데 아내의 볼멘소리 가 터져 나온다. 내가 신혼여행에 와서까지 요리를 해야 하냐는 것이었다. 우린 그때 처음으로 크게 싸웠다. 다음 날, 폭풍우에 배가 묶이고 두 사람의 냉랭함이 민박집 공간을 지배할 때 아내가 내게 불쑥 던진 한 마디! 오징어 두 축 사서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하지! 난 그러지 뭐! 라고 대답했다. 드라마 겨울연가 에서 유진(최지우 분)과 준상(배용준 분)이 함께 떠나 온 이별여행. 두 사람은 추암 바닷가 빨간 지붕의 민박집에서 이별을 고하지만 난 아득히 먼 옛날 바로 이 민박집에서 소중한 내 아내를 처음으로 만났다. 난 이곳 추암 바닷가에서 소중한 인연을 얻었으며 사랑을 배웠고 또 소중한 삶의 의미를 되새겼다. 아내와의 첫 만남과 신혼여행 63

64 농촌총각과 연변처녀 :56 연변처녀 홍매(허영란 분)와 약혼한 농촌총각 정호(김국진 분)는 그녀가 한국에 입국하는 대로 결혼식을 올릴 참이 다. 그런데 어느 날 정호에게 그가 어릴 적 짝사랑한 선아(조은숙 분)가 나타난다. 결혼을 앞두고 갈등에 휩싸인 정 호! 정호는 선아가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 치는 여자인줄 모르고 그녀와의 결혼을 꿈꾼다. 한편 연변처녀 홍매가 한국 으로 정호를 만나러 왔다. 정호는 결혼을 앞둔 홍매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에겐 짝사랑했던 선아가 있기에, 정호는 홍매에게 서울 구경시켜준다면서 괜한 시간을 끌면서 홍매에게 파혼할 것을 얘기하려하지만 차마 입이 안 떨 어진다. 이야기의 기본 골격과 핵심은 이것인데 이 작품에서 극 정점을 이루는 요소는 예기치 않은 홍매 감정의 반전 에 있다. 홍매가 먼저 파혼의 빌미를 제공한다. 중국 연변에 있는 친정집으로 매달 십 만원씩 부쳐달라고 예비남편 정호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정호는 그러면 그렇지 하고 쾌재를 부르며 돈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냐며 파혼 이유를 홍매에게 뒤 집어씌운다. 그리고는 극의 클라이맥스에서 농촌총각 정호와 연변처녀 홍매는 갈등을 통해 극적인 화해를 한다. 드라 마 내약혼녀이야기 는 이야기 구조의 결말이 자연스럽고 시청자의 감정이입을 잘 이끌어 낸 단막극의 수작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극 후반에 홍매가 얘기한 십 만원을 부쳐달라는 말은 극중 리얼리티를 극대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는데 이것은 당시 농촌총각과 연변처녀 64

65 조연출이었던 이윤정 PD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나중에 드라마 커피프린스 로 대박을 낸 연출자인데 새내기 조연 출시절 그의 참신함이 엿보인다. 정유경작가가 쓴 내약혼녀이야기 는 짜임새 있게 잘 써진 대본으로 이 작품 연출자인 김진만 PD가 첫 선을 보인 작품이다. 그는 입봉작으로 인터넷 포털상 많은 게시물수와 이틀 만에 지상파 재방송 그리고 DVD 발매까지 거의 센 셔이션널한 주목을 받았었다. 드라마 내약혼녀이야기 극중 정호가 사는 마을은 짧은 분량의 시퀀스라 제작비 절감차원에서 되도록 서울에서 가까운 곳으로 찾아달라는 주문이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지도상 경남의 끝자락으로 촬영 팀을 이끌고 간 것은 내 나 름대로의 원칙이 있었다. 그것은 농촌풍경을 담을 수 있는 마을 돌담길과 벼가 자란 들녘을 한 프레임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대본의 짧은 시퀀스인 농촌총각의 정서를 제대로 담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런 나름 대로의 판단을 갖고 촬영 팀을 이끌고 간 곳은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마을이었다. 드라마 엔딩 장면, 버스가 지나간 뒤 넓게 펼쳐진 들판을 사이에 두고 정호와 홍매가 들판에 서 있는 장면은 매우 인 상적이었다. 바람결에 춤추는 보리밭 들녘을 배경으로 농촌총각과 연변처녀의 섬세한 감정을 배경에 담아내는데 성공 했는데 나중에 연출자는 내게 말했었다. 이까짓 장면을 찍는데 여기까지 데려오면 어찌하자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이 곳 경관이 작품분위기에 딱 맞는 훌륭한 촬영지임을 달리 표현한 말이었다. S# 가로수길 (새벽) 급정거하는 버스. 차에서 뛰어내리는 정호. 양 어깨에 짐을 주렁주렁 매달고, 저만치 숨차게 걸어오는 홍매. 주소 적 힌 쪽지를 한 손에 들고 도로 이정표를 여기저기 살피고 있다. 달려가는 정호. 정호 ; 홍매씨...! 홍매, 놀란 듯, 두려운 듯 바라보더니 몸을 움츠린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다. 홍매 ; (주저하다가)...십 만원!! 안 부쳐주셔도 됩니다. 마침내 와락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 어깨를 떨면서 참았던 눈물을 철철 흘리기 시작한다. 목이 메어오는 정호. 떨리는 손으로 홍매의 두 손을 덥석 잡는데,,... 정호의 시선에 들어오는 그녀의 빨간 구두,... 이윽고 함께 울기 시작하는 정 호. 극중 이 장면은 악양 평사리 들판에서 촬영됐는데 이 들판 한가운데는 동정호가 있고 부부 소나무가 그 아름다운 자 태를 뽐내며 서있다. 서풍이 불어오는 들녘, 보리가 춤추고 있는 모습은 루이 암스트롱 What a Wonderful World 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바람결에 출렁이는 보리밭 장면의 오래전 맥주광고를 연상케 했는데 우린 이 장면을 앵두가 빨갛게 영글어가는 계절 오월, 이곳에 와서 촬영했다. 이 시기는 평사리 들판의 보리가 절정을 이루고 그 옆 의 자운영 꽃이 벌판을 붉게 수놓는다. 또 비가 내린 다음 날 아침 이곳에 와서 촬영하면 안개에 휩싸인 들녘의 풍광 을 화면에 담아낼 수가 있다. 난 홍매를 태운 정호의 자전거가 힘차게 페달을 밟고 지나는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하면서 평사리 들녘 저 푸르른 부 부소나무처럼 그들이 사랑이 오랫동안 변치 않기를 바랐다. 정호가 사는 마을은 지리산 자락이 펼쳐져있는 악양 평사리 마을이다. 이 마을은 지리산 자락이 품에 안긴 듯 포근히 감싸있고 발아래 너른 들판을 끼고 섬진강이 고요히 흘러간다. 농촌총각과 연변처녀 65

66 내가 이곳에 처음 왔던 당시에는 토지 최참판댁과 마을 세트가 들어서기 훨씬 이전이어서 고즈넉한 농촌분위기 를 연출하기에 더없이 좋은 분위기였다. 새벽안개를 품은 들판은 떠오르는 아침햇살에 투영한 빛을 만들어낸다. 저 멀리 들판 사이 길을 따라 경운기를 몰고 들로 나서는 촌로의 모습은 정겹다. 사실 이곳 평사리 들판은 박경리 소설 토지 의 배경이 될 만큼 흡인력이 있는 마을이다. 언젠가, 소설가 박경리가 어느 잡지에 쓴 기고문에서 지리산 자락 평사리 마을에 토지 세트장이 들어서는 것에 본 인에게는 영광된 일이긴 하지만 자연이 훼손되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만큼 악양 평사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온 몸으로 느껴지는 곳이다. 강과 산 그리고 들판 모두가 한데 조화롭게 어우러진 풍경은 그 어디에서도 흔히 볼 수 있 는 풍경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중국의 낙양을 이곳과도 견주었을까!! 또한 농수산특산물도 풍부해 지리산 일원에서 생 산된 녹차 대봉감을 비롯해 섬진강의 맑은 물과 남해바다에서 자라는 재첩 참게 참숭어 등이 하동을 대표하는 특 산물이다. 이곳은 1987년~1989년에 걸쳐 방영되었던 KBS 대하드라마 토지 의 주 무대이기도 하다. 당시 이곳 마을을 촬영 하면서 최참판을 대신할 만한 곳은 평사리 마을 근처 조씨 고가뿐이었는데 이 건물은 워낙 쇠락해서 전체적인 화면 의 톤을 담아내는 데에는 다소 미흡했다. 하지만 지리산 형제봉이 보이는 산자락 아래의 조씨 고가는 실제 박경리 소 설 토지 의 최참판댁의 실제 모델이 되었던 곳이다. 이 집안의 연못에는 배롱나무가 있는데 지금 평사리에 지어 놓은 것도 이와 유사한 연못 구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악양면 정서리에 있는 조씨 고가는 구전에 의하면 16년에 걸쳐 지어졌는데 동학혁명과 6,25전쟁 등으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복원해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당시 드라마 토 지 를 촬영할 때 최참판댁은 따로 함양에 있는 정여창 고택에서 촬영되었다. 악양 평사리 마을은 지리산 자락을 끼고 앞에는 들판과 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배산임수의 전형을 보여주는 마을이 다. 그 언젠가 내가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때 너무 변한 모습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예전에 느꼈던 감흥은 빛바 랜 기억으로 남아있다. 오래전 난 평사리 들판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저녁바람을 안고 지리산자락으로 황혼이 저무 는 풍경에 매료되었었다. 바람은 강가에도 불고 대나무 사이를 끼고 돌면서 강가에서 뉘엿뉘엿 황혼이 저문 모습은 농촌 풍경의 진수를 엿보 게 한다. 악양 평사리 마을 지붕굴뚝에선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섬진강변으로 땅거미가 찾아들면 그것은 한 편의 서정시이다. 그처럼 아름다운 마을이다. 마을을 이어주는 동네 집 마당 뒤편으로 대나무로 둘러싸인 집들이 많았는데 소담한 돌담이 마을길을 이어주고 있었 고 우물가의 앵두나무도 먹음직스럽게 빨간 빛을 띤 채 알알이 열려있었다. 지금의 섬진강은 인공적인 제방을 쌓아 예전만큼 그 분위기가 덜하지만 섬진강가의 곡선을 이루는 밭이며 대나무 숲은 은빛 물결이 반짝일 때마다 춤을 춘 다. 이곳 악양 평사리 마을을 벗어나 산을 끼고 오르면 악양 형제봉 기슭의 고소산성이 보인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섬진 강의 모습은 또한 시원하다. 섬진강을 따라 구례방면으로 걷다보면 쌍계사 십리벚꽃을 만나고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 로지르는 곳엔 화개장터가 있다. 지금의 화개장터의 풍경은 내게 전혀 감흥이 없는 이벤트성 모습의 장터로 둔갑했지 만 예전 화개장터의 모습은 재래시장 특유의 정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서로 뒤섞인 사투리로 물건을 흥정하는 모습은 흥에 겹다. 양철 함석지붕 가판대에서 물건 을 팔던 사람들은 이제 이곳을 찾지 않는다. 초가지붕으로 꾸며놓은 화개장터는 마치 축제 분위기 를 연상케 하는 이 벤트성의 상흔만이 남아 있다. 이곳에 와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은 없고 다만 단체 관광객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농촌총각과 연변처녀 66

67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내겐 못내 아쉽기만 하다. 화개장터, 십리벚꽃길, 평사리 최참판댁, 쌍계사의 가을, 지리산 불일폭포, 하동포구 백사청송, 청학동 삼성궁 등 하 동 8경을 비롯해 섬진강변의 경치 좋은 풍광을 카메라에 담는다. 느림과 여유의 상징인 박경리의 토지길과 섬진강변길 그리고 지리산 둘레길 등 자연 속에 내맡겨진 하동은 아름다운 고장이다. 농촌총각과 연변처녀 67

68 겨울 소나타 (겨울연가) :43 첫사랑의 기억은 그 누구에게나 달콤함으로 남는다.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소중했던 사람과의 지난 옛 일들이 눈꽃 처럼 피어난다. 젊은 날 그 아름답고 순수한 맑은 영혼이 가슴속에 오래토록 남아 있는데 젊은 남녀의 플라토닉한 사 랑을 그린 드라마 겨울연가 는 통속적인 멜로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들 주인공의 만남이 아름답게 채색된 곳이 눈 쌓인 남이섬이다. 연출자인 윤석호 PD 의 작품들은 대개 스토리 중심의 리얼리티를 보다는 한 편의 영상시와도 같은 서정이 물씬 풍겨 나는 작품 세계를 지향한다. 일련의 작품들이 그러했는데 그가 한때 광고회사에 몸담았었던 이력이 남아서인가 생각 했다. 드라마 겨울연가 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겨울이라는 계절이 주는 풍부한 영상이미지를 슬픈 이야기로 채색해 보여 줬는데 그의 심미적 영상스타일은 독특하다해야 할 것이다. 오래된 학교며 설원, 눈 내리는 호수, 안개, 산장, 앙상한 가로수와 스키장 등이 아름다운 이미지로 채색된다. 그것은 마치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제2악장의 바이올린 선율처 럼 쨍쨍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 작품이 처음 기획되었을 때 난 드라마 겨울연가 제작진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한 번 만나서 작품에 대해 의논하고 함께 작품을 해 줄 것을 간곡하게 제의받았는데 난 바쁘다는 핑계로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기억이 난 다. 그때 만약 내가 이 드라마 겨울연가 를 했었다면 그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했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 여 싯구처럼 내게도 이 작품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남아 있다. 그렇지만 난 운명론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 기에 그리 큰 아쉬움도 내겐 별로 남아 있질 않다. 어차피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 아니 겠는가! 사실 난 작품 제의가 왔을 때 어찌 보면 고객인 연출자에게 내가 갖고 있는 노하우를 서비스해야 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거절했던 것은 내 알량한 자존심 이었는지도 모른다. 난 학교 다닐 때 연출을 전공했고 내가 추구했던 작품 세계는 리얼리즘 성격이 강한 빅토리아 제시카 감독의 자전거도둑 혹은 강대진 감독의 '마부 같은 작품들이 내게 끌렸는데 윤석호 감독의 작품스타일은 이들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점도 있었지만 까다롭기로 소문난 그와 굳이 작품 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거절했던 것이었다. 드라마 겨울연가 눈 덮인 메타쉐콰이어 숲에서 두 사람이 눈싸움하던 장면의 남이섬은 내겐 그리 매력적이지도 않 다. 빼어난 자연 경관이라고 하기엔 왠지 2% 부족하다. 더구나 남이섬 입장료와 선박운송료 거기다가 인근 식당의 서비스도 98% 함량 미달이다. 많은 인파가 몰리는 남이섬은 번잡한 것이 딱 질색인 나로선 피해갈 수밖에 없는 장소 이다. 그럼에도 비교적 사람들의 발길이 적은 계절이나 시간을 피해 여행한다면 이곳은 또 다른 나름의 매력이 있다. 배를 타고 들어가 남이섬을 한 바퀴 뺑 돌고나면 서울 도시근교에 이만한 호젓함이 묻어나는 곳도 없을 것이다. 남이 섬은 홀로 여행하는 것보단 마음에 맞는 친구나 연인끼리 담소를 나누면서 호젓하게 걷기엔 최상의 코스이다. 호숫가 를 따라 걷는 길은 외국의 자연공원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연인끼리 호숫가 섬 주위를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누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이곳 남이섬엔 여러 시설물도 많지만 꼭 둘러보아야 할 곳이 있다면 길게 호숫가를 따라 이어진 숲길을 걷는 것이 좋다. 걷다보면 햇빛에 반사된 역광이 호숫가와 나무숲을 아름답게 함은 물론 데이트 하는 상대방의 얼굴도 훨씬 멋있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피사체의 사진을 찍을 때 역광에서의 장면은 멋진 풍경을 그 려내기도 한다. 남이섬 숲에서 사진 찍기에 좋은 시간은 이른 새벽이나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아침이다. 해가 들어오기 전의 새 겨울 소나타 (겨울연가) 68

69 벽은 푸르스름한 숲의 느낌을 잘 살릴 수 있다. 또 메타쉐콰이어 나무가 있는 곳의 촬영 포인트는 햇살이 나무사이에 강하게 들어오는 늦은 오후 역광일 때 보다 더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일본 NHK 방송을 통해 드라마 겨울연가 (겨울소나타)가 안방극장에 소개되면서 일본 열도는 숨죽이고 이 드라마를 지켜보았다. 흰 눈에 쌓인 남이섬을 배경으로 그려진 이 장면에서 인간 내면의 잠재된 첫사랑의 그리움이 순백처럼 녹아든다. 순수하고 따뜻한 영혼을 가진 준상의 모습은 메마른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힘이 되어준다. 배용준이 국내에서 스타이긴 했지만 일반대중의 관심은 미미했다. 그런데 유독 일본에서의 반응만큼은 가히 폭발적이 라 할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일까! 물론, 가상의 현실을 그린 드라마이지만 주인공 준상이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 과 겸손 또 그 부드러운 인상에서 오는 다정다감한 모습이 일본 전역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을 것이다. 그 다정 함이란 사랑이라는 것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그것이 첫사랑과 같은 순백의 느낌처럼 순수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그의 인기와 한류가 지속되었는지 모른다. 그동안 한국인들에 대한 일본인 시선은 그저 무관심이거나 또는 비하하는 수준의 감정이었을 것이다. 오래전, 일본 신오쿠보 역 기차 플랫폼에서 한국인 유학생의 의로운 죽음이 일본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 있었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한 행인을 구하려 달려오는 전동차에 제 몸을 던진 것인데, 아무도 용기 내지 못한 것 을 한국인 청년이 자신의 몸을 불태워 기차선로에 뛰어든 것이다. 그것도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당시 일본인은 한국인 고 이수현 군의 죽음 앞에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 의로운 죽음의 청년, 그 이름은 이.수.현이었다. 그 의로운 죽음 앞에 일본에서는 한국인을 새롭게 바라보는 희망의 싹이 움텄다. 이 사건의 발단을 계기로 한류바람 의 열풍이 불지 않았냐는 생각이 난 들었다. 고 이수현 군과 배용준이란 배우를 단순 비교하기에는 논리적 비약이 있지만, TV라는 가상공간의 현실에서 일본인은 또 한 번 한국인 청년에게 매력과 호감을 갖게 된 것은 분명하다. 이것이 한류의 열풍의 진원을 알리는 서막이었음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같은 본질의 중심은 인간에 대한 사랑인데, 그것은 어쩌면 드라마 겨울연가 에서 보여준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 는 아련한 첫사랑의 지고지순한 그 마음일 것이다. 한류의 열풍이 섬나라 일본에서 대륙으로 열사의 나라 사막에까지 들불처럼 번져나갔는데 그 중심에 드라마 겨울연 가 가 있다. 드라마 속의 그 명장면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이곳 남이섬을 찾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남이섬이 아름답 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는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마음이 그곳에 남아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그곳으로 발길을 향 하는 것이리라. 겨울 소나타 (겨울연가) 69

70 시린 강가의 추억 (엽기적인그녀) :12 태백선 강릉행 무궁화호를 타고 집을 나선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기차가 북한강 양수철교 위를 달리고 있을 즈음 물 끄러미 차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강물위로 어른거리며 파르르 떨고 있는 나뭇잎은 이내 회색빛 겨울을 맞이할 태세 이다. 늦가을의 서정은 내 안의 또 다른 세계로 감쳐져 있었는데 그것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이 아니라 묵직한 첼로 현과도 같은 것이었다. 자연의 현상이건 인생 세상만사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그 모습에서 왠지모를 감정이 강물위 로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아내의 갱년기 우울증이 어느 날 갑자기 생리적인 변화를 겪게 되는 현상처럼 나 또한 이 계절을 앓는다. 숨 가쁘게만 달려온 일상이었다. 갓 태어난 딸아이의 우유 값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이 일이 벌써 스무해를 넘겼으니 이제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준비해야 하는 일들이 내겐 남아있다. 차창밖 겨울로 향해가는 풍경에 젖다보니 기차는 어느새 영월을 지나 목적지인 예미역에 정차했다. 난 역 개찰구를 빠져나와 한 시간마다 운행하는 함백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다가 그냥 걷기로 했다. 함백 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데 탄광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마을을 지나야한다. 마을 한쪽으로 나있는 기 차 선로를 따라 조금 걷다보면 그 당시의 분위기를 재현해놓은 간이역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전혀 새로울 것도 없고 감흥도 없는 함백역이다. 지금 이 역은 그 어떤 구실도 하지 못한다. 단지 관광용으로 지어진 것 말고는, 이 마을 삼 거리에는 조그만 약방을 하고 있는 두 내외분이 살고 계셨다. 이들은 서울에서 살다가 십 수십 년 전 이곳 탄광마을 에 와서 정착하신 분들이다. 그들은 도회지가 싫어 이곳에 정착하셨다고 했고 제법 알려진 연기자의 장모, 장인인 마 음씨 좋은 분들이다. 이들은 내가 이곳을 지나치다 인사드리면 냉장고에서 박카스를 선뜻 꺼내주시곤 했다. 가끔은 택배로 강원도 옥수수를 보내주시곤 했는데 난 이들의 따뜻한 배려에 감사해하면서도 이곳을 지나칠 때면 괜한 미안 시린 강가의 추억 (엽기적인그녀) 70

71 한 마음이 앞서곤 했다. 그들이 베푼 만큼 나도 그들에게 베풀어야하고 또 그 누군가에게도 베품을 나눠주어야 하는 것이 세상사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탄광마을 삼거리 약국에서 목적지인 고랭지 채소밭에 있는 엽기 소나무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어가야 한다. 그 어느 해에도 난 이곳 예미역에 내렸다. 내 업무의 특성상 인상적인 풍경이 있는 장소는 여러 번 오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날도 지금처럼 걸어서 이곳 세비재 고개를 넘었다. 산꼭대기의 바람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세찼다. 허기진 배를 비상식량인 건빵으로 대충 때우면서 온종일 산속에 묻혀 있었다. 고랭지 채소밭인 세비재에 땅거미가 찾아오고 난 지친 몸을 이끌고 산에서 겨우 내려 왔는데 내 몸은 고드름처럼 꽁꽁 얼어 있었다. 그때 예미역 대합실 한쪽에 놓 인 난로는 볼품없고 낡아보였지만 무척 따뜻했던 기억이 난다. 세비재라 불리는 고랭지 채소밭에는 드문드문 소나무 가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그중 촬영지였던 엽기소나무는 영화 공간상의 주요 모티브이다. 영화 엽기적인그녀 에서 견우(차태현 분)와 그녀(전지현 분)가 편지와 목걸이를 타임캡슐에 담아 2년 후 만나기로 약속하던 그 장소이다. 이곳은 백운농장 초입에 있는데 그 소나무가 있는 산 아래 겹겹이 펼쳐져 있는 고산준령은 한 겨울에 눈이라도 내릴 때면 파도가 일렁이듯 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이곳엔 최근 영화촬영지를 알리는 푯말이 붙어있고 공원처럼 조성해놓았는데 영화 속의 원형을 잃어버려 여간 아쉬운 것이 아니었다. 난 다시 발길을 돌려 신 동읍 삼거리에서 유문동 고개를 넘어 동강으로 갔다. 길 옆 말라비틀어진 옥수수 더미는 밭 한쪽에 황량함을 드러냈 다. 이따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촌노의 모습이 비디오 슬로우 모션처럼 시야에 들어왔다. 동강을 따라서 가다보면 입구에 동강매표소를 만나게 되는데 외지인에게 입장료를 받는 것이 나로선 잘 이해되지 않 는다. 이 매표소 입구에서 좌측 길로 접어들어 몇 번의 고개를 넘으면 영화 '선생김봉두' 에서 산내분교로 나왔던 연 포분교가 나온다. 지금은 폐교되어 아이들은 간 데 없고 빈 건물만 덩그러니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그렇지만 고요히 흐르는 동강의 깎아지른 절벽에 위치한 연포분교는 묘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학교 뒤편에는 십 여 채의 농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토벽으로 된 담배건조막은 강가마을의 운치를 더해준다. 마을농가 부엌아궁이에서는 연기가 모락 모락 피어나고 주인을 따라 나선 황소는 강가의 마른풀을 뜯고 있다. 동강 강가마을의 모습은 정겨움이 묻어난다. 동강을 따라 래프팅하면 금방 갈 수 있는 길을 아니 사륜구동 지프차만 있어도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난 동강을 따라 한참을 걸어야만 했다. 신동읍 고성리에서 운치리로 넘어가는 나리재 고개에서 강 아래쪽을 바라보면 천혜의 비경인 나리소가 있다. 동강의 물결이 벼랑에 막혀 휘돌면서 큰 소를 이루어 놓았는데 강변의 기암절벽 그리고 백운산 자락 의 소나무 숲이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곳이다. 동강에서도 상류 쪽인 이곳은 유난히 물색이 맑아서 푸르다 라는 표현 이 더 어울릴 듯싶다. 몇 해 전, 난 고 정주영 회장의 일대기를 극화한 드라마 영웅시대 를 이곳 나리소에서 촬영했다. 극중 태산(백성현 분)이 아버지(임현식 분)를 따라 강원도 통천마을인 그의 고향집으로 가는 장면이었는데 험준하면서도 그림 같은 풍 광이 살아 쉼 쉬는 곳이다. 또 동강 나리소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는 석축산성인 고성산성이 있는데 이곳에 오르면 휘몰아 굽이쳐 흐르는 동강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으로 가려면 고성분교 정문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조금 오르다보면 볼 수 있다. 시린 강가와의 만남, 겨울이 시작되는 동강에는 많은 풍경이 숨겨져 있다. 순박한 동강 사람들의 투박하지만 따뜻한 온정이 남아있다. 동강 가수리마을에서 가리왕산으로 가는 동강을 따라 걷다보면 아침 햇살에 속살을 드러내지 않은 갈대가 추위에 떨고 있다. 정선의 깊은 골짜기와 높은 산, 첩첩한 산봉우리를 끼고 흐르는 동강의 마을은 그 어느 곳 보다도 겨울이 빨리 찾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속에 파묻히듯 숨어 있는 동강의 강가마을은 고요함과 적막함이 감 돈다. 한때 이곳은 동강댐 건설 계획으로 수몰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과 자연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 들이 반기를 들어 그 계획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그때 동강마을이 수몰되었다면 지금의 강가마을의 정겨움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집과 학교를 떠나 읍으로 가야 했을 것이고 먼 훗날 그가 살았던 정든 집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동강을 따라 걷다보면 오래된 풍경을 만난다. 강가 언덕에 있는 오백 살이 넘은 가수리 느티나무, 그 옛날 이곳 강가 마을을 오갔을 수많은 사람들의 비밀을 간직한 채 유구한 세월을 버텨 서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곳 느티나무가 있는 운동장 한쪽에는 아주 오래된 목조건물인 가수 분교가 있었다. 느티나무 시린 강가의 추억 (엽기적인그녀) 71

72 만큼이나 오래된 이 학교에서 난 많은 드라마를 촬영하곤 했다. 목조건물로 된 그 가수 분교 옛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지만 재잘대며 강가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해맑은 아이들 의 웃음소리는 여전하다. 난 느티나무 아래에서 언제 올지도 모를 버스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강변마을의 오래된 풍 경 속에 내 몸을 맡기며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시린 강가의 추억 (엽기적인그녀) 72

73 계곡 트레킹, 산간 오지마을 :47 강원도는 산이 험준해 첩첩산중 오지마을로 남아있는 곳이 많다. 이들 마을 대부분은 좁은 계곡을 끼고 가다가 평평 한 둔덕에 몇 채만 듬성듬성 모여 있는데 밭을 갈기에도 햇볕이 조금밖에 들어오지 않는 척박한 곳이다. 3둔4가리 라 불리는 오지마을이 있는데 홍천군의 살둔, 월둔, 달둔과 인제군의 아침가리, 적가리, 연가리, 명지가리 가 그곳이다. 모두 산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데 둔 은 둔덕. 즉 언덕을 일컫는 말로 산기슭에 평평한 땅이 있어 사 람이 살 수 있는 곳임을 이르는 말이다. 가리 는 계곡가에 사람이 살 만한 곳을 말한다. 조선시대 예언서인 정감 록에는 십승지가 나온다. 전쟁이나 전염병, 흉년 등에도 끄떡없이 견딜 수 있는 명당을 말하는데 그 책에는 전국의 길지가 나와 있다. 살둔마을은 사람들의 피난처 7곳 중 한 곳으로 전해져오는 오지마을이다. 강원도 홍천 살둔마을은 산과 산이 맞닿고 굽이치는 물줄기는 마을을 끼고 흘러간다. 이 마을이 외부에 널리 알려지 게 된 것은 한 출판사가 선정한 한국의 살고 싶은 100대 집 에 살둔산장이 소개되면서부터이다. 또 그 옆에는 폐교 된 지 수십 년도 더 된 나무목재로 된 학교가 있다. 이 앙증맞은 폐교는 시간이 멈춰 선 듯 과거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반공방첩의 푯말이 건물에 그대로 남아있다. KBS 대하드라마 서울1945 를 이곳 폐교를 배경으로 드라마촬영을 했던 기억이 있다. 현재 살둔마을에 있는 이 폐교는 오토캠핑장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승용차로 쉽게 찾는 장소가 됐다. 하지만 과거에는 이곳에 이르는 길 은 멀고도 험한 여정이었다. 도로가 뚫리기 전 이 마을은 두메산골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 곳에 오기란 결코 만만치 않는 그런 길인 것이다. 구불구불 산허리를 돌고 돌아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계곡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야 했던 마을이다. 오지마을인 아침가리골을 찾은 것은 11월 달력 하루만을 남긴 날이었다. 강원도 인제읍에 도착하니 겨울비가 부슬부 슬 내렸는데 금방 옷을 적실만한 양은 아니었지만 빗줄기는 제법 굵었다. 대합실 안으로 들어서자 먹구름 하늘에선 갑자기 후루룩 빗줄기가 쏟아졌다. 이런 젠장! 폭설이 내려도 시원찮을 판 에 11월의 하루만을 남긴 날 강원도에 웬 비라니! 그나저나 온종일 비를 맞아가며 산행한다는 것이 왠지 꺼림직 했다. 대합실 창밖 빗줄기는 좀체 수그러질 기미가 보 이질 않는다. 기린면 현리로 바로 가는 버스는 내가 도착하기 전 이미 15분전에 출발한 뒤라 난 할 수없이 윗길로 한 참을 돌아서가야 하는 현리행 버스를 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차피 결행한 산행이라면 되도록 일찍 도착하는 것이 낫다 싶었다. 버스는 두 서너 명의 노인을 태운 채 비에 젖은 산과 계곡을 끼고 달렸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산과 계곡 그리고 드문드문 나타나는 농가와 군부대가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의 전부였다. 버스는 귀둔리 마을입구에서 등 굽은 할머니를 태우고는 터미널을 출발한 지 한 시간 만에 현리에 도착했다. 현리는 3군사령부가 바로 코앞에 있는 지역이라 아침 일찍 휴가를 떠나려는 군인들이 눈에 더러 띠었다. 현리에서 버스를 타고 진동리 마을회관에 앞에 내린 것은 오전 10시 반이었다. 서울에서 서둘러 출발했는데도 벌써 반나절을 이동하는데 다 까먹은 셈이다. 난 방태천 다리를 건너 아침가리골 계곡으로 들어갔는데 빗줄기는 여전히 수그러지지 않았다. 헐벗은 나뭇가지에는 물방울이 대롱대롱 맺혀있고, 계곡 물웅덩이에는 빗방울이 떨어져 파문이 일었다. 비 오는 산행 길이 무리인 줄 알면 서도 이곳 아침가리골을 다시 찾은 것은 몇 해 전 시트콤 지붕뚫고하이킥 헌팅할 때의 앙금이 남아서이다. 그것은 뭔가 채워지지 않은 목마름 같은 것이었다. 난 극중 세경(신세경 분)이 사는 첩첩산중 오두막집을 찾아 이곳까지 왔었다. 그때는 방동리를 거쳐 조경동 다리까지 왔는데 이 지점에서 다시 방동리로 발길을 되돌려 내려갔다. 계곡 트레킹, 산간 오지마을 73

74 아침가리골 하이라이트는 분명 진동리로 내려가는 계곡인줄 뻔히 알면서도 난 발길을 되돌려야했다. 장마철에 불어난 계곡물 때문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복병이 날 기다리고 있었으니, 겨울산행은 누구에게나 위험하다. 비 오는 날엔 더욱 그렇다. 눈 덮인 산은 미리 준비한 아이젠을 착용해서 오르면 되는데 비 올 때는 별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다. 우산 받쳐 쓰기도 그렇고 아이젠을 착용할 수도 없다. 그저 미끄러운 산길을 조심해서 헤쳐 나가는 것 이외엔 다른 방도가 없다. 이끼 낀 돌 징검다리를 곡예 하듯 건너는 것이 여간 만만치 않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닌 수십 번을 그렇게 헤쳐 나 간다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과 같다. 난 계곡을 따라 걸으면서 혹시 풀 섶에 버려진 나무 막대가 있는 가를 살펴보 았다. 두 발만으로 걷는 것으로는 부족해 몸을 지탱할 스틱이 내겐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은 내 신체의 두 다리와 하 나가 되어 험한 길 동반자가 되어 줄 것이다. 난 좁은 산길계곡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계곡은 그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함에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두서 너 번의 휘돌아 가는 계곡을 따라가면서 이런 생각은 금세 바뀌었다. 계곡모퉁이를 돌 때마다 뒤를 돌아보면서 걸었 는데 그 모습은 제각기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거세게 뿌려댔고 윗옷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 다. 으스스한 한기가 온 몸에 배어져 나왔다. 난 계곡을 따라 걷다가 개울물을 만나면 미끌어 넘어지지 않으려고 온 갖 신경을 곤두세웠다.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길을 따라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조금 위험하다 싶으면 오던 길 을 되돌아서 건너가기를 수 백 번, 이런 모습을 CC-TV로 확인해 방송한다면 난 시련과 역경 그리고 도전과 모험에 찬 인간승리의 모습일 것이다. 그렇게 조심하고 신중을 기했건만 계곡의 중간지점에 이르렀을 때 난 물웅덩이에 풍덩 빠져버렸다. 신고 있던 등산화에 물이 새어 들어오면서 양말을 홍건하게 적셨다. 난 계곡을 따라가면서 몇 차례 더 물에 빠지곤 했는데 기분이 완전 잡쳤다. 비는 또 줄기차게 계속해서 퍼붓는데 배낭에 가져온 빵을 꺼내기조차 어려 웠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다가 비를 간신히 피할 수 있는 어느 커다란 바위틈을 발견했다. 난 그 리로 다가가서는 바위 밑에 쪼그리고 앉아 배낭 안의 빵을 꺼내 먹었다. 갑자기 서글픔이 느껴졌다. 집을 떠나올 때 만류하던 아내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됐다. 따뜻한 방구석에 앉아 아내가 끓여주는 수제비를 먹으면서 예능프로그램이나 보면서 지낼 걸! 난 비 올 때 아내가 끓여 주는 수제비를 먹는데 난 항상 최진실 표 수제비를 끓여달라고 한다. 얼큰하게 고추장을 풀 어서 하는 수제비인데 지금은 고인이 된 최진실이 방송에 나와서 힘겹고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수제비 를 끓어 먹던 일을 소회했는데, 난 최진실과 여러 작품을 함께 했다. 우리가 흔히 짠순이로 통하는 국민요정은 실은 마음씨 좋은 인심이 너그러운 연 기자이다. 가난했던 시절의 기억들이 그를 검소함이 몸에 배어 있어서 알뜰하지만 한 턱 낼 때 확실하게 쏘는 것이 최진실이었다. 가끔 회식을 할 때나 스튜디오에서 스텝들에게 통닭이며 떡 등등 여러 간식거리를 제공했던 것도 그녀였다. 늘 밝은 웃음으로 스텝들을 챙겨주곤 했다. 그녀가 가난했던 시절 즐겨 먹던 수제비는 나에게도 비오는 날의 주메뉴가 되었 다. 난 가던 길을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몸의 중심을 잃고 그만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숨이 턱 하고 일순간 에 멈췄지만 그리 큰 부상은 아니었다. 한 순간의 방심이 화를 자초한 것인데 세상만사가 그렇듯 불운은 늘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생긴다. 인간의 길흉화복이 한 순간의 선택과 방심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만약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보 이지 않는 이 깊은 계곡에서 다리라도 부러져 고립된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런 생각이 미치자 난 더욱 조심해서 계곡 을 따라 걸어들어 갔다. 내 발길이 닿을 때마다 계곡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며 내 발 아래에 있었고 또 저만치 멀어지 며 계곡은 내 발 위에 서 있었다. 이끼 낀 바위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는 골이 한 번 휘어지는 곳에서는 천천히 그 속도를 조절하며 안단테처럼 흘러가 기도 했다. 굽이치는 계곡 골짜기는 구절양장이 심했는데 곡선을 이루며 새롭게 펼쳐지는 풍광에 탄성을 자아내게 했 다. 그러기를 한참을 계곡을 따라 갔는데 어느 지점에 이르러 하늘이 시야에 넓게 들어왔다. 그리고 멀리 조그맣게 다리가 보였는데 이전에 방동리에서 올라올 때 보았던 그 조경동 다리이다. 내가 예상했던 시간보다도 배 이상 넘게 걸려 이곳에 도착했다. 예전에 보았던 민가가 두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개들이 짖는 것을 보니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계곡 트레킹, 산간 오지마을 74

75 난 이제 하산할 방향을 정해야 하는 기로에서 고민했다. 체력이 고갈되고 온몸이 비에 흠뻑 젖어 곧장 방동리로 내려 갈까 생각했다. 그러나 내겐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난 조동교 삼거리에서 다른 방향으로 좁은 산 길을 따라 걸어갔다. 10분쯤 걸었을까! 계곡 평평한 곳에 자리 잡은 폐교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폐교가 있다는 것 은 학생이 있었다는 것인데 오래전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폐교 가까이 다가서자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며 서있는 인기척이 느껴졌는데 산길 계곡을 걸으면서 처음 만난 사람이다. 난 폐교로 다가가서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예닐곱 명의 아낙들이 마른 약초를 봉지에 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책임자인 듯 몸이 다부진 텁수룩한 수염을 한 사내가 내게 다가왔다. 그는 성우 같은 굵직한 목소리로 이곳은 차량출입도 사람출입도 할 수 없 는 통제 구역이라고 했다. 이곳을 지나가는 것은 위법이라서 되돌아 내려가라고 했는데, 난 순간 여긴 엄연한 대한 민국 국토이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세금이 어떻고 하다간 일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난 머리를 조아리며 그 의 말에 순순히 동조했다. 그랬더니 그는 이번 한 번만 봐 줄 테니 이 길로 빨리 내려가라는 것이었다. 이 길로 쭉 가면 명지가리를 거쳐서 홍천 광안3리로 빠져나가는 길이라고 알려주었다. 마을까지는 약 4시간쯤 걸리니 까 마을에 도착해 버스를 타려면 어서 빨리 내려가라는 것이었다. 난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폐교를 벗어났다. 폐교를 조금 벗어나자마자 낙엽송과 자작나무 숲길이 나타났다. 그리고 또 조금 지나자 평평한 평지에 농가 한 채가 서있었고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저만치에서 들려왔다. 평범한 계곡길이 길게 이어졌는데 계곡을 가로지른 곳에는 콘크리트 다리가 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계곡을 걸으면 또 콘크리트 다리가 보이고 계곡은 아침가리골에서 보 았던 감흥보다는 느낌이 덜 하였다. 한참을 걸었다고 생각했을 때 멧돼지 한마리가 후다닥 숲 속으로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내가 계곡을 따라 걸으면서 살아있는 생명체를 본 것은 털보 사내와 멧돼지 둘 뿐이었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는 졸졸졸 이라는 표현보다는 시끄럽게 느껴졌다. 어느 지점의 산길 계곡으로 접어들자 그 소리 는 멀어지면서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는 사위는 어두워져 컴컴해졌다. 비는 아직도 그치질 않고 줄기차게 내렸는데 구룡덕봉으로 가는 길목엔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산 휴식년제로 출입을 통제시킨 이 길로 내려가면 홍천 월둔리 로 내려가는 길이다. 산길 언덕을 넘자 또다시 계곡의 물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는 멀리 희미하게 한 점의 불 빛이 보였다. 마을이 가까웠음을 직감했는지 내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한 숨에 달려온 길에는 예닐 곱 가구가 모여 있는 곳이 보였다. 난 임시 비닐로 덮은 간이 주차장에서 비를 피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몸은 가누기 힘들 정도로 피곤함이 밀려왔고, 비에 흠뻑 젖어 추위에 바슬바슬 떨었다. 난 버스를 기다리며 한참을 그렇게 서있었는데 도저히 서서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이따금 해트라이트 불빛을 비취며 지나가는 차량을 향해 히치하이킹을 시도해보았다. 그렇지만 나를 구원해 줄 구세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쯤 기 다리다 홍천 내면으로 가는 버스를 잡아탔다. 그 버스는 바로 원당삼거리를 지나갔는데 순간 난 이리로 우회전해서 곧바로 가면 살둔마을로 이어지는 것을 알았다. 살둔마을과 아침가리골은 서로 행정구역은 달리하지만 산과 골이 만 나는 공간에 서로 맞닿아 있었다. 내가 계곡트레킹으로 찾아간 살둔마을과 아침가리골은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계곡 이라는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내겐 절절이 탄성이 뿜어져 나오는 길이었다. 그것은 수수로움이 묻어나는 자연의 숨결이 느껴지는 아름다움이었다. 계곡 트레킹, 산간 오지마을 75

76 옛 추억의 골목길, 8월의 크리스마스 :32 대부분의 사람들은 군산하면 항구도시를 기억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여행 중에 금강 하구 둑을 지나면서 허름한 창 고가 널려있는 낙후된 군산을 생각할 것이다. 또 야구광 팬이라면 한때 고교야구 전성기 명승부를 펼쳤던 역전의 명 수 군산상고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일제 강점기 수탈의 현장을 기억해 낼 것이 고, 문학도라면 군산이 배경인 채만식의 장편소설 탁류 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난 영화 8월의크리스마스 배경지인 군산 옛 골목의 정취를 떠올렸다. 어느 날 문득 예고된 죽음에 대하여, 인생의 쓸쓸함에 대하여, 한때 사랑했던 사람에 대하여 가슴 저민 기억속의 편 린! 죽음에 직면한 삶을 관조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인생의 기쁨을 노래할 수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 을 기약할 수 있다면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가슴에 고이 간직하고 담아 둘 수 없기에 다만 추억의 이름으로 불러볼 뿐이다. 영화 8월의크리스마스 의 애틋한 기억이 남아있는 군산 옛 골목길을 찾아 추억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극중 정원(한석규 분)은 서울의 변두리에서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노총각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상태이지만 그의 일상은 지극히 담담할 뿐이다. 하루하루 죽음에 다가서고 있는 것을 예감한 것일까! 한 여름의 무더 위가 찾아든 어느 날. 정원이 운영하는 초원사진관에 생기발랄한 주차단속원인 다림(심은하 분)이 찾아온다. 그녀는 옛 추억의 골목길, 8월의 크리스마스 76

77 매일 비슷한 시간 사진관 앞을 지나면서 단속한 차량의 필름을 맡긴다. 그리고는 주차 단속 중에 있었던 불쾌한 일들 을 털어놓는데 정원은 그런 다림이 마냥 예쁘기만 하다. 정원은 다림을 만난 후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느끼지만 결코 다가설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이제 막 삶을 시작하는 스무 살 초반의 그녀와 긴 얘기를 엮어갈 수 없음을 알고 있기 에. 초원사진관 옆 플라타너스 나뭇잎은 어느새 찬바람에 흩어져 보도 위를 나뒹군다. 그러던 어느 날 초원사진관에 다림 이 찾아온다. 그러나 사진관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정원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상심한 표정으로 쓸쓸히 발길을 돌 려야만 하는 다림, 계절은 또다시 바뀌어 초원사진관 쓸쓸한 거리엔 흰 눈이 소복이 쌓인다. 정원은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진열된 사진관 한쪽에는 예쁜 미소를 짓고 있는 다림의 사진만이 빛바랜 추억으로 남는 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는 군산 월명동을 중심으로 촬영되었다. 영화적 공간에서 초원사진관이 있는 동네는 설정 상 서울 변두리인데 만약 이 영화가 답십리 어느 후미진 동네이거나 또는 기자촌 신시가지 아파트 상가 지역이었다 면 이 영화의 분위기는 또 어떠했을까! 이 영화에서 주인공 배우의 탄탄한 연기력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지만 작품전 체 컨셉을 이끄는 배경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 난 로케이션매니저로서 영화 8월의크리스마스 는 작품 분위기에 딱 맞는 로케이션(야외촬영장소)이었다고 생각한 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로케이션매니저로서의 역할이란 야외 촬영지를 물색하는 일이다. 그것은 작품 전체의 분위기 를 이끄는 것으로 마치 흰 종이 위에 어떤 색깔로 덧칠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씨를 뿌려 좋은 열매를 맺 기까지의 과정처럼 야외촬영 현장에서 촬영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만 하는 일이다. 군산은 낡고 오래된 것에 대한 단상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있는 도시이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한의원, 술 집, 다방, 적산가옥, 중국음식점 등 대부분의 건물을 구성하는 공간적인 요소들이 낡고 오래됨으로서 오히려 생경한 이미지로 부각된다. 난 군산을 수십 번도 더 와봤다. 왜냐하면 이곳은 시대적 배경을 담는 드라마에 있어서 결코 소 홀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시대극 드라마촬영에 있어서 논산 강경, 김제 만경, 목포 유달동, 나주 영산포, 동인 천 부근 등이 주로 선호되는 지역인데 그중에서도 군산의 특징은 여타 지역보다도 다감한 배경을 담을 수 있는 최적 의 장소이다. 난 MBC 창사50주년으로 기획된 드라마 빛과그림자 촬영지를 찾아 이번에도 군산을 찾았다. 난 극중 주인공 정 혜(남상미 분)의 생활공간인 서울 달동네 분위기를 찾아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는데 나의 발길이 멈춘 곳은 군산 금광 동 산기슭 동네였다. 이곳은 채만식의 탁류 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둔뱀이 산꼭대기에 있는 정주사집과도 아주 가 까운 거리에 있다. 한참봉 쌀가게도 이 콩나물 고개 바로 아래 있었는데 지금의 창성동에서 선암동으로 넘어가는 고 갯길이다. 이 콩나물고개는 마치 초가집지붕이 시루같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인데 과거 일제 강점기 때부터 조선인들이 몰려 살던 곳이다. 극중 정혜가 사는 동네는 좁은 계단을 따라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동네 시장입구에는 꽤 오래된 듯 보이는 방앗간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세월의 더께가 물씬 풍겨났다. 난 방앗간에서 벗어나 우물이 놓여 있는 좁은 동네 를 끼고 언덕 위를 올랐다. 동네언덕 위에는 교회인 듯한 빨강 벽돌로 지어진 지붕이 뾰족한 낡은 건물이 보였는데 내가 사진을 몇 장 찍으려니까 웬 사내가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이 건물을 새로 보수하려는데 그 건물 안의 구조 를 바꿔야 할지 고민이라며 이 건물이 일본식 건물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난 잘 모르지만 이 건물은 일본식이 아닌 옛 추억의 골목길, 8월의 크리스마스 77

78 독일의 고딕 건축양식이라고 말해주었다. 난 그가 왜 그 건물을 일본 건축물로 인식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군산에는 일본식 가옥이 많이 남아있어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교회 모퉁이를 돌자 동네 텃밭엔 가을배추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이 보였는데 난 여행할 때 으레 텃밭에 내가 가꾼 농작물과 비교해보곤 하는 습관이 있다. 잘 자란 농작물을 보면 잘 가꾼 그 사람의 놀라운 신통력에 절로 머리 숙여지곤 한다. 난 한눈에 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에서 몇 장의 사진을 찍고는 다시 골목길을 돌아서 시장으로 내려왔는 데 어디선가 뻐꾸기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야옹야옹 고양이 소리, 멍멍 개 짖는 소리, 호랑이, 말, 귀 뚜라미 등 온갖 종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내 귀를 의심하며 뒤를 돌아보았는데 오른 손에 지팡이를 짚 고 갈 之 자로 걸어오는 한 노인이 보였다. 마스크로 입을 가린 채 그 노인이 골목길을 따라 걸으면서 내는 소리였 다. 그 소리는 계속해서 또 다른 동물 울음소리로 변해 시장 한 복판까지 따라오면서 울렸다. 그렇지만 시장 상인들 은 그 소리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 무감했다. 다만 나 홀로 신기하고 놀라워서 그 노인에게 다가가 TV 프로그램 스타킹 에 꼭 나가보라고 일러주고 싶었다. 난 그 노인처럼 탁월한 소리를 흉내 낼 순 없지만 여행 중에 좀 적적 하거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흘러간 팝송이나 옛 가요를 따라 부르곤 한다. 가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 집으로 가는 촌부라도 마주치게 되면 머쓱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또 어디서 내 소리를 들었는지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짓는 소리는 내 노래 소리와 절묘한 환상의 하모니를 이룬다. 나는 그 소리가 내가 걷는 길의 정령에 대한 친근감과 찬미의 소리라고 생각했다. 난 시장을 빠져 나와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일본식 사찰 동국사로 갈지 아니면 구 군산세관본관 건물이 있 는 해망동으로 방향을 정할 지 망설였다. 그러나 내 발길은 직감적으로 해망동으로 따라 걷고 있었다. 십여 분 쯤 걸 었을까! 난 한국전쟁 때 군수품을 사고팔면서 시장이 형성된 양키시장을 지나갔는데 그 어느 지점이 있어야 할 군산 역이 보이질 않았다. 눈을 씻고 살펴봐도 역은 온데 간데 흔적이 없었다. 난 느티나무 벤치에 앉아 잡담을 즐기고 있 는 나이 지긋한 노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군산역이 어디 있냐고 여쭤보았더니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군산역 이 있던 자리라고 일러주었다. 난 그 오래된 역사가 왜 헐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자리엔 휑한 큰 길이 길게 나있고 한쪽엔 고층아파트가 높이 솟아있어 낯선 거리의 이방인처럼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난 목재소가 길게 늘어선 길가를 따라 걸었다. 목재소가 끝나는 지점의 한쪽엔 허름한 건물의 호떡집이 눈에 들어왔 는데 중동호떡집 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한눈에도 오래된 집임을 알 수 있었다. 난 그 안으로 들어가서는 한 개에 칠 백 원인 호떡 세 개를 사먹었는데 그 맛은 담백했고 달콤했으며 질리지도 않는 그런 맛이었다. 난 해안길을 따라 계속해서 걸어갔다. 간간이 불어오는 해풍은 다른 항구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궤궤함이 풍겨 나왔 다. 내가 구 군산세관 본관 건물에 이르렀을 때 그 건물이 주는 단아함에 매료되었다. 세련된 디자인과 색감, 백년도 훨씬 넘은 건물인데도 견고함이 돋보였다. 그 옆에는 새롭게 단장한 근대역사박물관 건물이 보였는데 그 건물 벽면현 수막엔 시민의 힘으로 역사의 힘으로 새롭게 태워났습니다 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난 그 말이 뜻하는 의미를 공감할 수 없었다. 대도시의 근대역사박물관 목포, 부산, 대구, 인천 등을 두루 다녀봤지만 대개 박물관은 근대건축물을 리모델링한 것 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소도시인 군산에 이 같은 초현대식 건물이 들어서야 했는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 다. 왜냐하면, 근대역사박물관 바로 옆에는 구 군산세관 건물이 있고, 또 그 건물 옆으로는 새로 보수하고 재건축 되 는 구 조선은행과 일본 제18은행 건물의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옛 추억의 골목길, 8월의 크리스마스 78

79 전국최대의 근대문화중심도시로서 더욱 빛나 보일 절호의 기회를 이 초현대적인 건축물인 근대역사박물관이 가로막 고 있는 꼴이다. 난 공간건축에 문외한이지만 내가 만약 설계했다면 이곳에 1920년대 평양역과 흡사했던 그 당시 군 산역의 외양을 재현했을 것이다. 또 그 옆으로는 소설 탁류 의 상징인 미두장 건물을 설계했을 것이다. 난 누구를 위한 건축물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근대문화중심도시를 표방한 취지와는 맞지 않는 행정의 발상이 참 아이러니 하다고 생각했다. 난 박물관 건물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건물 로비 한쪽에는 어청도 등대모형이 있었고 전시관이 복층으로 나눠져 있었다. 난 앙증맞게 생긴 등대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안내를 도우려고 내게 다가온 해설자에게 난 이 같은 불만을 토로했다. 프랑스나 이태리, 스페인과 같은 국가를 여행하다 보면 잘 보존된 오래된 도시가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어놓는다. 그 행정의 중심에는 옛 것의 대한 소중한 가치들을 지켜나간다는 명제가 깔려있다. 그것은 역사의식이고 문화이고 환경 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시절부터 현대화라는 미명아래 옛 건물이 이곳 군산에도 많이 헐려져나갔다. 철저 한 자본논리에 의해 대한민국은 아파트공화국으로 탄생했으며 각 지역의 도시들은 획일적이고 차가운 도시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언젠가는 이곳 군산도 고층아파트 숲으로 변해갈 것을 생각하니 왠지 씁쓸했다. 난 근대역사박물관을 빠져나와 해안가로 갔다. 아직 썰물인지라 갯벌엔 선체가 드러났고 그 옆엔 부잔교가 바다를 바 라보고 서있었다. 부잔교는 일제강점기 총 6개가 만들어졌는데 현재는 3개만 남아있다. 서해안의 조수간만의 차를 극 복하는 구조물로써 물 수위에 따라 다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여 뜬다리 부두라고 한다. 이 다리를 통해 호남의 비 옥한 평야에서 생산된 쌀과 소금이 일본으로 수탈되었던 것이다. 고종의 외교 전략과 국제 정세에 발맞춰 1899년 5월1일 군산은 개항을 맞이한다. 그리고 개항 직후인 1899년 6월2일 한국대표와 일본, 영국 등 각국 대표단에 의해 조계장정이 체결된다. 조계지라 함은 개항장에서 외국인이 자유로이 통상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지역이다. 조계지는 군산 내항을 중심으로 격자형 도로망이 구축되었고, 군산진이 위치했던 자리엔 일본 영사관이 들어섰다. 또 본정통(혼마찌)을 중심으로 관공서 및 은행, 회사 등 상업 업무지구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군산역 부근에는 정미업을 중심으로 공업지역이 형성되면서 군산항(내항)은 항구로서의 기반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당시 미곡으로 많은 돈을 벌었던 일본인들은 신흥동을 중심으로 모여 살았다. 그리고 군산항에 운반되어온 쌀의 하역작업을 했던 조선인 들의 거주지는 조계지 밖의 산기슭에 모여 살았다. 군산은 지형적인 특징이 금강과 만경강, 동진강 물줄기가 한데 모이는 곳에 위치해 줄곧 해상교통의 중심 역할을 했 다. 그래서 군산은 교통의 중심이자 전라도의 조세가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예로부터 상업이 발달하고 객주가 많았 다. 그로인해 발생되는 한국인의 몰락과 이를 극복하기위한 힘겨운 삶의 모습을 그린 탁류 같은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작가 채만식은 군산 임피에서 태어나 일제식민지 시대를 살면서 이 같은 삶의 애환을 몸소 체험했을 터이다. 소설 탁류 는 1937년 12월부터 1938년 5월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된 채만식의 장편소설이다. 원 도심을 배경으로 식민 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풍자와 냉소로 엮었는데 이 배경이 되는 무대가 바로 쌀이 거래되는 미두장인 것이다. 거래 되는 곡식이 주로 쌀과 콩이었기 때문에 미두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미곡취인소를 미두장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곳 은 원래 이층 목재건물로서 치외법권이 미치는 영역이고 또 군산의 상징이었다. 이곳에서 곡식을 사고팔면서 생기는 옛 추억의 골목길, 8월의 크리스마스 79

80 시세차이를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일종의 노름이었다. 소설 탁류 에서 곱추 장형보의 꾐에 빠져 미두에 손을 댄 하주사는 미두에서 하마꾼으로 전락한다. 빈손으로 하마를 하다가 돈을 갚지 못하면 봉변을 당하기 일쑤고 그러자 면 끼니를 거를 때가 많았다. 하마꾼은 미두에서 전락한 사람들이 하는 일종의 갓사리 같은 것이다. 미두는 일본대판 의 미곡 시세를 놓고 사고파는 증권시장과 같은 곳인데 일제가 호남의 농촌자본을 노린 식민정책의 표본으로 탁류의 소설 무대는 바로 이곳 미두장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미두 열풍은 전국을 휩쓸었다. 쌀의 시세는 하루에 17번 변동했는데, 조선산 쌀의 가장 큰 소비지였던 일본의 오사카 의 시세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취인소에서는 오사카의 시세를 전화로 전달받아서 공지하였다. 마치 지금의 주식거래 소와 비슷한 구조였다. 미두꾼들은 미두장 주변의 중개점은 대리 거래인으로 삼아 미두거래를 했다. 군산의 미두장에 는 충청도, 전라도 갑부들이 몰려왔지만 일본인에 비해 정보와 자본이 부족했기 때문에 대부분 돈을 잃고 절치기꾼 (일명 하마꾼)으로 전락하였다. 절치기꾼이란 미두장 안으로 들어갈 돈이 없어 바깥에 머물며 변하는 시세를 알아맞 히는 내기를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소설 탁류 의 주인공 정주사는 바로 이 절치기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 이다. 난 부잔교를 벗어나 해안을 따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앞을 가로 막고 서있는 진포해양테마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는 삥 둘러 울타리가 쳐져 있고 또 탱크와 군함이 전시 배치되어 있었다. 하필 왜 이곳에 전쟁테마 공원이 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념분쟁의 역사적 현장을 보여주려 함인가! 고철더미에 불과한 전쟁 부산물 인 탱크를 갖다 놓음으로서 반공의식을 고취되리라는 발상은 그야말로 전근대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난 내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울타리를 벗어나 월명동으로 발길을 돌렸다. 난 월명공원 꼭대기에 올라 바닷가 선창사이 비탈에 들어선 해망동 마을을 보았다. 적층식 가옥 구조와 미로와 같은 골목길을 따라 지붕들의 선이 하늘과 맞닿아 이어졌다. 곧 헐린 모양인지 마을은 인적이 끊겨 을씨년스러웠다. 이제 이곳은 역사의 뒤안길로 곧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은 그가 뛰놀던 옛 추억의 골목길을 회상할 것이다. 그리고는 아련한 기억과 함께 이내 잊혀져갈 것이다. 난 발길을 돌려 영화 8월의크리스마스 가 촬영된 초원사진관을 찾았다. 사진관 문은 셔터로 굳게 닫혀있었고 반 쯤 지붕이 헐려나간 이미지는 초라했다. 담벼락에는 스크린테마여행지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바람에 나풀거리고 있었 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초원사진관은 그다지 좋은 인상을 주지 않았지만 그 옆 플라타너스 나무는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영화 8월의크리스마스 에서 초원사진관이 있는 거리에 눈 오는 장면은 실제 눈이 아니라 엄청난 양의 소금을 뿌 려서 표현한 것이다. 그 많은 염분에도 플라타너스 나무가 말라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을 보고 놀라운 생명력이라 생 각했다. 그 당시 촬영이 끝나고 거리에 뿌렸던 소금을 퍼 담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난 사진관을 벗어나 히로쓰 일본가옥을 찾아갔다. 이 집에서 영화 타짜 를 촬영했는데 이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 른 모습이었다. 건물의 외양은 말끔하게 칠해져있었고 또 낡은 곳은 새롭게 보수한 흔적이 역력했다. 정원 한쪽에는 일본인 관광객 두 서명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 히로쓰 가옥이 있는 신흥동은 당시 미 곡유통업으로 많은 돈을 축적한 일본인의 조계지로서 군산 시내 유지들이 살던 부유층 거주 지역이었다. 난 그 집을 나와서 한일옥이라는 식당 앞을 지나갔는데 영화 촬영 팀과 군산에 답사 오면 으레 이곳에 들러 무국이나 시래기 국 을 먹곤 했던 기억이 새로웠다. 난 큰 길로 빠져나와 마치 홍콩에나 있을 법한 내부 구조가 눈길을 끄는 중식당 빈혜원을 찾았다. 빈혜원은 중화요리 옛 추억의 골목길, 8월의 크리스마스 80

81 전문점으로 오랜 역사와 함께 독특한 내부 공간으로 치장 되어있다. 드라마 빛과그림자 에서 복층 구조의 긴 복도 를 따라 기태(안재욱 분)가 중국집 안으로 들어온다. 방안 구석진 곳에서는 마작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데 이때 마작 현장을 급습하는 기태의 멋진 액션장면을 우린 이곳에서 촬영했다. 이집 주인은 우리가 이틀 밤을 꼬박 새워 촬영할 때도 싫은 내색 없이 홀 안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앉아 꾸벅꾸벅 졸면서 함께 밤을 지새웠다. 빈해원은 중국 산둥성 에서 태어난 왕조석은 해방 전 이십 대의 꿈을 가지고 서해를 건너와 인천에 음식점을 냈다고 한다. 그 뒤 6.25동란 때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다시 이곳 군산으로 옮겨왔다는데 왕조석은 이집 주인의 고모부인 것이다. 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이 있는 이성당 빵집을 찾았다. 몇 개의 단팥빵을 사서는 배낭에 집어넣었는데 난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은 단팥빵이라고 생각한다. 지천명의 나이에도 그 입맛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내 기억 속에 머물고 있다. 그 옛날 내가 뛰놀던 동네 골목길이 그리운 것처럼. 옛 추억의 골목길, 8월의 크리스마스 81

82 타임머신 여행(빛과그림자) :50 타임머신 여행(빛과그림자) 82

83 영상테마파크가 있는 경남 합천을 방문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한국영화사에 기념비적인 천만 관객 돌파라는 흥행은 영화의 한 장면이 있는 곳으로 내 발길을 향하게 했다. 당시 이곳에는 폐허더미의 평양시가지 야외세트가 세 타임머신 여행(빛과그림자) 83

84 워져 있었는데 곳곳에는 부서진 탱크며 증기기관차 그리고 군 트럭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영화 태극기휘날리며 가 당시 최고의 흥행성적에도 불구하고 쓰레기하치장을 연상케 하는 시가지야외세트장을 지 자체가 발 벗고 나선 것에 대해 난 의구심을 가졌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이 같은 야외세트장을 조성한 것이 나 로선 납득하기 힘들었는데 그것은 전쟁물과 같은 제한된 장면에만 사용될 것이 뻔해서였다. 오죽하면 이것으로 관광 상품화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겠냐는 식의 일종의 비아냥이었다. 지자체의 두둑한 배짱에 무모한 도전을 앞세운 치 기로 밖에 안보였다. 난 그 후에도 드라마 왕초 영웅시대 등 전쟁으로 폐허가 된 장면을 촬영하러 이곳 경남 합천을 방문하곤 했 다. 내가 합천을 본격적으로 방문하게 된 것은 KBS대하드라마 서울1945 를 통해서였고 그 후에도 드라마 에덴의 동쪽 등 수많은 시대적 특징을 담아야 될 장면에는 어김없이 경남 합천을 방문해야했다. 집 문지방이 마르고닳도록 난 이곳을 들락거렸다. 전국에는 여러 곳의 시대극 세트장이 있는데 그중 대표할 만 곳은 전남 순천 조계동 세트장과 수원 KBS야외세트장, 그리고 경남 합천영상테마파크 이 세 곳뿐이다. 몇 군데 더 시대극 세트장이 있기는 한데 관리가 잘 되지 않아 거의 폐허수준이거나 혹은 곧 허물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래서 촬영팀들은 서울에서 지리적으로 먼 거 리임에도 불구하고 합천영상테마파크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이곳은 시대극촬영의 메카이다. 영화 태극기휘날리며 의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평양시가지를 조성한 것을 시작으로 해서 일제식민지시대의 경성 거리, 또 1960,70년대 소공동 거리 등 시대를 관통하는 건물들이 들어서있어 명실상부한 시대극촬영장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최근 영화 모던보이 써니 등 많은 장면들이 모두 이곳에서 촬영됐다. 내가 이곳을 다시 찾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수년이 지나면서였는데 MBC 창사50주년 특별기획드라마 빛과그림 자 배경이 되는 장소를 찾아 합천을 들렀다. 드라마 빛과그림자 는 지방 소도시인 순양에서 극장사업을 하는 아 버지의 죽음으로 집안이 몰락하면서 겪게 되는 주인공 강기태(안재욱 분)의 성공스토리이다. 서울로 상경한 기태가 쇼 비즈니스의 거물이 되기까지 그의 활동무대는 주로 극장을 중심으로 유흥가가 밀집해있는 서울 소공동 일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배경이 되는 소공동 거리는 드라마 에덴의동쪽 을 통해 전국의 여러 특징 있는 건축물을 헌팅하면서 내가 연출자와 미술감독과 협의해 재구성한 야외오픈세트이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 마 빛과그림자 컨셉에서 작품 분위기에 맞는 또 다른 곳을 찾기란 실로 무모한 짓에 가깝다. 다만 문제는 먼 거리 까지 매주 이동해서 촬영해야 하는 체력 그것이 바로 문제이다. 일반인이 알고 있는 것보다 드라마 촬영 노동 강도는 가히 살인적인 수준이다. 그 요령을 터득할 때까지의 과정은 실로 험난한데 그것은 틈만 나면 눈을 감고 숨어서 잠을 보충해야 하는 그것이다. 난 합천영상테마파크 단지 내에 있는 조선총독부, 서울역, 경교장이 있는 1930년대 경성거리를 둘러보았다. 시대적인 건축물의 특징을 재현해놓은 것이지만 전혀 낯설지 않은 세련된 감각이 눈길을 끌었다. 예전에 KBS 대하드라마 서 울1945 를 촬영 했을 때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내가 드라마 서울1945 작품에 참여했을 당시 연출자는 낡고 구질구질하다는 시대극의 통념에서 벗어나 현재의 시 점에서 본 조형미, 색감 그리고 현대성이라 불러도 좋을 감각을 말했었다. 그런 건물의 조합이 1930년대 일제식민지 경성거리 세트장에 스며있다. 난 발걸음을 옮겨 극장, 백화점, 환구단, 경찰서 등 1970년대 모습들이 그대로 재현해 놓은 소공동 거리로 갔다. 옛 기억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건물들을 바라보며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코흘리개 시절, 내가 살았던 환경에서 경험한 기억들이 부유물처럼 물위를 둥둥 떠다닌다. 전차를 타고 동대문에 갔 던 일, 종로 네거리 극장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일, 온 가족이 매달려서 우동가게로 생계를 이어가던 일, 학교 가는 길에 비를 흠뻑 맞고 울면서 되돌아오던 일 등 그때의 모습들이 아련한 추억과 함께 이 건물들과 덧칠되며 감상에 젖어드는 것이다. 서대문 영천에서 동대문까지 운행하던 전차는 과거 내 기억속에서도 존재했고, 어쩌면 다시 먼 미래에 존재할 지도 모를 일이다. 또 내가 다녔던 학교건물은 다시 복고적인 형태로 내 눈앞에 또 나타날 것이다. 난 그것을 현대성이라 는 이름으로 불러본다. 내가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속의 건물을 바라보며 말하려고 하는 현대성이란 무엇인가 라고 곰곰이 생각했다. 구한말 타임머신 여행(빛과그림자) 84

85 개화기 서구문물이 들어 올 때도 사람들은 현대성을 얘기했고, 한국 공업화 과정의 유신체제에도 현대성과 그 문화는 있었다. 2012년 현재 합천야외세트장에서도 과거와 현재라는 공존의 시간을 넘나들며 나를 이곳에 붙잡아 놓는 것이 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현대성(과연 현대성이라 이름 붙여도 좋을지 모르겠다)의 파편들을 끄집어내며 타임머신 을 타고 과거 속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어렸을 때, 난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 부근의 적산가옥에서 살았다. 방 안 한쪽 놓인 장롱 서랍 속의 낡은 흑백사진 한 장, 짧은 머리에 기름(포마드)을 바른 하얀 반팔 와이셔츠 차림을 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요즘으로 보면 잘 생긴 훈남이다. 엄마에게서 들은 얘기다. 아버지는 하얀 빽구두를 신고 극장에서 카사블랑카 를 관람했다. 땅콩과 오징 어를 씹으며 험프리보카트 눈빛에 열광하는 모습은 그때의 모던뽀이였다. 가난한 집안 살림에도 룸펜과 같은 현대적 삶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1960년대 말, 월남전에 참전했던 삼촌이 제대하며 TV며 온갖 C-레이션(비상군용식량)을 가져왔다. 흑백 브라운관 TV 지만 온 동네가 시끌벅적했다. 사람들은 우리를 부러워하며 집으로 하나 둘씩 몰려들었다. 당시 백색전화기는 초등학 교(그때는 국민학교였다) 전교생 중 겨우 한두 대 있을 정도였고, 흑백 TV도 흔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현대적이라 일 컫는 TV가 우리 집 안방을 점령하면서 사람들은 우리를 유행의 최첨단을 걷는 집으로 인식했다. 난 그때를 기억한다. TV에서는 미국이 시금치를 팔아먹으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뽀빠이 만화영화가 유행하고 있었고, 박치기왕 김일 선수의 레슬링 경기에 사람들을 모두 열광케 했다. 사춘기가 막 시작될 무렵, 관능적인 춤을 추며 노래 부르는 김추 자 월남에서돌아온김상사 는 어린 내 혼을 빼앗았다. 농촌에는 낡은 초가집을 허물고 슬레이트로 된 지붕이 얹어 졌다. 마을길은 넓혀졌고, 서울 신촌 노고산동에서는 현대주택의 상징이던 와우 시민아파트가 붕괴됐다. 1970년대 초, 한국경제의 공업화가 시작되고 사람들은 농촌에서 도시로 마구 몰려들었다. 대중예술 가요계에서는 남 진과 나훈아를 좋아하는 팬들로 양분됐고 남진은 주로 속칭 공순(돌)이라고 불리는 공단근로자들에 인기가 많았고, 나훈아는 좀 배운 사람에게 인기가 있다는 식의 대립과 편견이 있었다. 암울한 유신시대가 찾아왔고 빨갱이 민청학련 사건 등 반공이데올로기가 한국사회를 지배했다. 영화 하길종 감독 바보들의행진 과 김민기 아침이슬 은 이념의 허울로 덧칠됐다. 1970년대 말 조용필의 돌아와요부산항에 노래가 전국을 강타했고 그 이듬해 그가 짧은 머리로 TV앞에 섰을 때 그 모습에 생경함을 느꼈었다. 1980년대 초, 10,26과 함께 유신정권이 몰락하고 신군부 세력이 등장했다. 광주사태, 삼청교육대, 미문화원방화사건 등 세상은 온통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정의와 진실 규명을 위해 학생들의 반정부 투쟁이 격화되 고 화염병이 거리를 수놓는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았다. 내 안의 현실은 없었다. 오직 영화만이 내 삶의 전부였다. 1990년대 초, 난 로케이션매니저 일을 하면서 드라마 까레이스키 왕초 영웅시대 서울1945 등 수많은 시대극을 했다. 시대극은 그 당시 생활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현재의 눈으로 재현하는 일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건 축물, 의상, 소품 심지어는 연기(언어, 몸짓, 말투)까지도 고증을 통해 현대성에 대해 논의한다. 예를 들어 전기가 있 었으니 없었느니,..지붕과 창문의 형태는 이렇게 생겼다는,..등 온갖 시시콜콜한 얘기들이 난무하다. 그러나 정작 중요 한 것은 과거의 배경이미지를 그 어떤 틀에 고착화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드라마 서울1945 에서 당시 데카 당, 룸펜이 다니던 사교클럽은 지금의 특급호텔에 버금가는 세련미가 있다. 그 시대의 의상 또한 유행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세련된 감각은 오늘날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난 그것을 현대성이라 불러도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2012년 5월 15일 현재 오늘의 시점에서 과거를 유추해보면 1960년대 모던뽀이였던 아버지가 자주 가던 극장 우미관과 단성사 극장은 지금 없어지거나 복합상영관으로 바뀌었다. 자유부인이 드나들던 딴스홀 사교클럽은 지금의 영등포시 장 부근 카바레와 별반 차이가 없다. 1970년대 고교생들이 찾던 종로거리의 분식집과 무교동은 없어졌지만 1980년대 젊은이들은 바람 부는 날엔 압구정으로 갔다. 그곳엔 오렌지족이며 야타족으로 불리는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종로 국 일관 같은 고고 장은 1990년대 물 좋은 강남의 호텔 나이트클럽에 그 자리를 넘겨줬다. 2012년 현재 홍대나 강남 클럽에서는 힙합 춤을 추는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대중화된 의식의 소비패턴이 분식집에서 맥도널드 가게로.. 빽구두를 신고 영화를 보던 극장은 멀티플럭스 극장으로 바뀌었다. 그 극장의 룸펜 청년은 이제 팝 콘을 먹으면서 매트릭스 같은 영화에 빠진 것이다. 관능적인 몸짓의 김추자는 김완선에서 걸그룹 소녀시대로 바뀌 타임머신 여행(빛과그림자) 85

86 었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은 이효리, 손담비 같은 가수의 춤에 빠져든다. 아니 이들도 지금은 유행의 뒷전이 다. 지금은 현란한 춤과 알 수 없는 랩으로 무장한 감각적 유행을 좇는 아이돌 스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다 가올 미래는 영화 제5원소 에 나오는 인조인간 제니퍼가너 가 부르는 도니제티의 오페라 광란의 아리아 에 열광할지도 모르겠다. 길게 내린 장발머리는 이제 패션의 끝에 머물러 있고 한때 노랑머리를 물들인 젊은이들로 거리 에 넘쳐났다. 1970년대 현대적으로 지어졌던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전국의 아파트들 은 현대화라는 미명아래 획일화하고 몰개성적인 형태로 남아있다. 난 옛날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소공동 거 리에 있는 극장을 바라보며 한참을 그렇게 서있었다. 난 아직도 지난 일들이 어제인 것만 같다. 세월이 흘러 머리 희끗한 반백의 신사로 날 만들어놨지만 어린 시절 내가 꿈꾸던 동심의 세계는 아직도 이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난 합천영상테마파크 1970년대 소공동 거리가 재현되어 있는 국도극장 앞 건물에서 어릴 적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영화관에 찾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어렸을 때 내가 살던 동네엔 낡고 오래 된 왜색풍 건물의 극장이 있었다. 비가 오면 질퍽질퍽한 황톳길로 변하는 극 장으로 가는 길은 소년의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영화관을 찾곤 했던 유 년 시절의 기억은 거부할 수 없는 숙명처럼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나를 영화의 마력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사춘 기 때 우수에 찬 강렬한 눈빛의 제임스딘과 청순한 올리비아 핫세의 사진은 내 책상 한 귀퉁이를 장식하기도 했다. 영화 속 대사를 외우고 동네 뒷골목에서 이소룡의 무술을 흉내 내던 고교시절 애수 벤허 와 같은 영화의 명장 면은 빛바랜 흑백 사진처럼 내 기억 속에 오래토록 자리 잡고 있다. 난 합천영상테마단지를 벗어나 마주보이는 합천호 조정지 댐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멀리 강가에 피어오른 물안개 가 서서히 걷히는 것이 뷰파인더를 통해 들어왔는데 그 풍경은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다가왔고 난 그것을 자연이 베푼 아침의 성찬이라 생각했다. 난 길게 이어진 벚꽃 가로수 길을 따라 걸으면서 합천호 주변을 바라보았다. 황매산 모산재 산봉우리와 다락논 그리 고 합천호가 한데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마을이 수몰돼 댐이 생겼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지 아니면 아름다운 마을이 있는 곳에 댐을 건설해서 아름다운 것인지 난 통 헷갈렸지만 그 경관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 다. 내가 가 보았던 댐 대부분은 하나같이 아름다운 경관으로 남아 있는 곳이 참 많다. 그런데 합천댐의 경우 다목적 댐으로서의 제구실을 못한다는 군청관계자들로부터 얼핏 들었던 그 말이 생각났다. 합천호 담수율이 매우 낮은 것은 댐의 설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이 댐이 홍수를 막기 위한 기능도 이미 상실했다고 했다. 결국 댐 축조와 수몰지 환수에 엄청난 국고만 낭비한 것인데, 제기랄! 4대강 사업하고 별 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 면서 난 가던 발걸음을 황매산으로 향했다. 영화 태극기휘날리며 의 촬영지인 황매산 정상은 차량 접근이 수월해 많은 드라마를 촬영하곤 했는데 이곳을 다시 찾은 난 그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경남 합천 황매산 정상은 넓게 펼쳐진 평원에 억새가 자라나고 봄이면 산 전체 철쭉꽃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그런데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인조 보도길이며 산 정상으로 오르는 나무테크 심지어 는 벤치까지 갖다 놓은 것이 영 눈엣가시이다. 자연은 결코 인공적으로 꾸며지는 것이 아니다. 원래의 형태가 더 아 름다울 수 있는 것인데 우린 그 뭔가를 새로 짓고 만들고 옛 것을 부수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합천영상테마파크 같은 것이 생겨나는 것 아니겠는가! 황매산 정상에서 산청방면으로 눈길을 돌리면 또 내 눈엣가시처럼 야외 영화세트를 지어놓은 성곽이 보인다. 자연을 배경으로 서있는 그 모습이 늠름한데 이곳의 키포이트는 단연 멀리 산세가 겹겹이 쌓여 펼쳐져 있는 모습이다. 이 성 곽을 따라 나무테크로 조성된 길을 따라 내려가면 산청 영화주제공원인 영화 단적비연수 세트장이 나온다. 난 산 아래 펼쳐진 세트장을 보면서 최근 드라마, 영화의 촬영지를 찾는 여행 상품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그곳을 찾는 발길 도 많아 졌지만 자연을 훼손하면서까지 영화, 드라마 세트장을 짓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되물었다. 내가 생각하 는 가장 좋은 여행의 출발점은 자연 속에 내 몸을 맡기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오래전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사막을 거닐었던 기억이 난다. 비 갠 후 사막 한가운데 영롱한 무지개가 펼쳐졌고, 밤벌레 울음소리를 들으며 철길을 따라 걷던 그 길에 무수한 별들이 내 어깨 위에 쏟아지고 있었다. 자연의 경이로움 에 난 그만 숨이 막혀 버릴 지경이었다. 이 거대한 우주 앞에 나란 존재가 그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일깨워 준 타임머신 여행(빛과그림자) 86

87 소중한 추억이었다. 그 여행 이후 나는 자연을 벗하며 교감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 난 내 아이와 함께 자연 속을 거 닐며 그 아이가 양지 바른 곳에 피어난 작은 들풀의 의미를 배우게 하고 그 속에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것이 그 얼마나 소중한 가치임을 느끼게 하고 싶다. 그것이 여행의 첫 출발점이자 참 기쁨이므로. 여행길에 사진을 찍는 법도 알려주고 자연과 대화하는 법도 가르쳐주고 싶다. 그 옛날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영화 관에 간 것처럼, 내 아이에게도 자연 속 마법의 품으로 데려가 주고 싶다. 타임머신 여행(빛과그림자) 87

88 첫사랑, 벚꽃향기 바람에 날리우고 :51 슈퍼마켓 안주인으로 사는 30대 주부 미경(권민중 분)에게 어느 날 첫사랑이 나타난다. 고시에 일곱 번 낙방한 채 누 나 집에 얹혀사는 영희(손현주 분)가 미경의 슈퍼를 찾은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미경 앞에 나타난 첫사랑!! 삶의 권 태로움에서 벗어나고픈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면서 과거 연애하던 장소로 찾아간다. 그들은 한껏 기분을 내며 일상 으로부터 벗어나려한다. 누구나 한번쯤 꿈꾸게 되는 일탈을 코믹하게 그린 이 드라마는 1999년 4월23일 방송되었던 MBC 베스트극장 첫사랑 이다. 난 연출자로부터 주인공 남녀의 첫사랑 감정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를 찾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난 대본을 읽으면서 첫사랑의 감정을 화사한 느낌으로 다가왔다가 바람에 한순간에 사라지는 벚꽃이미지와 연관시켰다. 그리고 는 연출자에게 경남 진해에서 드라마 첫사랑 을 촬영할 것을 제의했다. 때마침 진해에서는 벚꽃축제 마당인 군항 제가 열리고 있었다. 군항제로 많은 인파가 몰리는 탓에 촬영장소를 진해로 결정하기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또한 진해에서 본격적으로 촬영이 이루어진다 해도 벚꽃이 다 떨어져 좋은 그림을 담을 수 없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 럼에도 난 오히려 진해가 작품이미지에 가장 적합한 장소임을 부각시켰다. 바람에 벚꽃이 흩날리는 이미지는 주인공 남녀의 첫사랑 감정을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도구임을 강조하면서, 난 서둘러 여행 가방을 매고 진해를 찾았다. 그리고는 작품에 표현될 촬영장소의 이미지들을 찾아 나섰다. 극의 중심 이 되는 장소는 미경의 동네슈퍼마켓이다. 이 동네슈퍼 앞 그 거리에는 반드시 벚꽃나무가 있어야했다. 그래야만 극 첫사랑, 벚꽃향기 바람에 날리우고 88

89 적인 효과를 화면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벚꽃이 만개한 진해 곳곳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내가 찾아낸 곳은 여좌천이 흐르는 조그만 동네슈퍼였다. 여좌천을 따 라 길게 늘어선 벚나무가 터널을 이룬다. 그 개천에는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이 물위를 수놓는다. 봄볕이 눈부시게 따 사로운 날, 동네슈퍼 앞 벚꽃은 눈꽃처럼 날리고 여좌천 다리가 보이는 골목어귀에서는 미경과 영희가 밀어를 나눈 다. 불륜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코믹한 터치와 벚꽃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희화화 한다. 이곳 여좌천 다리의 눈꽃처럼 날리는 벚꽃을 화면에 담아보았다. 눈부신 봄날의 기억과 몽환적인 벚꽃의 느낌을 햇빛 이 쏟아지는 하늘을 역광으로 잡고 광각렌즈를 활용해 촬영했다. 그 언젠가 난 진해에 와서 다시 이곳에 잠깐 들른 적이 있다. 그때 촬영지로 소개되었던 슈퍼마켓 건물 한쪽에는 베스트극장촬영지 를 알리는 간판이 벽모서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이곳 여좌천 다리는 그 후 MBC미니시리즈 로망스 를 통해 명소로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일명 로망스다리 라는 이름으로 연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미경이 사는 동네슈퍼 문을 나서면 도로를 사이에 두고 대각선 방향으로 진해내수면 연구소와 마주하게 된다. 내수면 연구소는 저수지 길을 따라 호젓하게 산책하기에 적당하다. 작은 규모의 저수지 제방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는데 극중 주인공인 두 남녀는 사랑의 언약을 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이루지 못할 사랑 아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느티나무아래 저수지 수면으로 벚꽃이 흩날리며 꽃잎을 떨구고 있다. 이곳 내수면연구소는 진해군항제 기간에만 일반 인에게 개방되는 곳인데 촬영 팀에게는 특혜 아닌 특혜로 이곳에서의 촬영이 자유롭다. 이밖에도 해군사관학교, 해군기지사령부 등도 군항제기간에만 일반인의 출입이 개방되는데 이곳에서 꼭 눈여겨보아 야 할 곳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별장과 정자이다. 30여 종의 정원수로 가꾸어진 정원에는 수령 100년이 넘은 배롱 나무, 벚나무, 동백나무 등이 눈에 띈다. 또한 해군기지사령부 본관건물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빨간 벽돌의 건축물 인데 흰색 벚꽃과의 컬러가 조화롭다. 그리고 사령부내의 진해선 종착역인 통해역 선로 주변의 벚꽃도 꽤 인상적인 곳 중의 하나이다. 국내 최고의 벚꽃 축제가 열리는 4월 진해에 오면 무려 33만 그루나 되는 벚나무들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린다. 군 항제가 열리는 진해 시가지가 온통 벚꽃으로 뒤덮여 새하얀 눈을 뿌려 놓은 듯 아름다운 꽃동네가 된다. 꽃잎 흩날리는 기찻길 선로를 따라 난 경화역을 찾아갔다. 오래전, 내가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고딕 양식의 역사가 눈길을 사로잡았었는데 지금은 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자리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오직 기차선로를 따라 터널 숲을 이룬 벚꽃나무뿐이다. 경화역 주변의 벚꽃 풍경은 특별하다. 곧게 뻗은 기찻길을 따라 만 개한 벚꽃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선로를 따라 기차가 휙 지나가면 벚꽃이 바람에 날리면서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풍 경을 만들어 낸다. 간이역, 기차선로, 벚꽃 터널 숲, 바람에 흩날리는 황홀한 꽃눈, 그 모든 풍경들이 마치 드라마 한 장면처럼 첫사랑의 아련함과 설렘이 내 마음에 전해져 오는 것이다.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추억의 선물을 안겨다주고 바람에 떨어지는 벚꽃처럼 소리 없이 사라진다. 어느 화사한 봄날, 달 밝은 벚꽃 나무아래에서 사랑을 노래한다. 또 봄비에 하늘하늘 떨어지는 벚꽃을 보고 이별의 아픈 마음을 달랠 것이다. 첫사랑은 늘 그렇게 마음 졸이며 아련함으로 내 기억을 스쳐가는 것이다. 해가 질 무렵, 난 진해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안민고개를 찾아갔다. 산책로를 따라 벚꽃이 피어있는 벤치에 앉아 진해 시가지를 바라보았다. 시가지를 수놓은 불빛은 하나 둘씩 어둠을 삼켜버렸는데 그 빛은 빌딩 네온사인과 차량의 헤드라이트 불빛과 섞이면서 벚꽃은 진홍색의 야경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곳 안민고개는 벚꽃 산책로를 따라 첫사랑, 벚꽃향기 바람에 날리우고 89

90 벤치가 놓여있는데 탁 트인 진해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드라마 첫사랑 에서 안민고개 산책로 벤치에 앉아 영희가 미경을 기다리고 있다. 약속시간이 다되도록 미경이 나 타나지 않자 상심하는 영희, 미경은 남편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느덧 소원해지는 정점을 맞는다. 벚꽃이 길게 뻗은 산책로를 따라 쓸쓸하게 걷는 그 길엔 흰 눈처럼 벚꽃이 날리고 영희는 미경의 뒤 를 따라간다. 난 안민고개에서 경화동 방향으로 내려와서는 중원로터리로 향했다. 벚꽃을 구경하려는 상춘객들로 시가지는 시장처 럼 난장판이었다. 난 배가 고파 중원로터리 부근의 한 중국음식점을 찾아 들어갔다. 50년 전통의 영해루 라는 간 판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 내부는 옛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창틀이며 식탁 그리고 벽면 장식들이 독특했는데 이곳에 서 짜장면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왁자지껄했다. 이곳 중식당에서 영화 장군의아들2 가 촬영되기도 했고 과거 대만 장재석 총통이 이곳을 다녀갔다고 유명세를 치룬 곳인데 현재 상호 특허권 분쟁으로 중국집 간판이 원해루로 바뀌었 다. 옛 도심 중원로터리 부근에는 구 우체국을 비롯한 여러 건물들이 세월을 비껴간 듯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많다. 일제 식민지시대 진해에 사령부가 설치되고 바둑판과 같은 도시 형태를 띠게 되면서 거리 가로수를 벚꽃으로 심어 놓았다. 벚꽃은 일본인이 찬미하는 국화로 원산지가 일본이다! 아니 한국이다! 라는 논점은 내겐 중요치 않다. 벚꽃은 시나 소설 등 문학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로서 누구나 만개한 벚꽃을 보면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첫 눈에 콩깍지 씌운 첫사랑의 연인들처럼 말이다. 봄이 찾아온 길목, 진해 거리 곳곳에는 벚꽃을 구경하려는 상춘객들로 들 끓게 한다. 고궁 길에서, 어느 사찰에서, 마을회관 앞에 화사한 모습으로 피어있는 벚꽃은 그 얼마나 고운가! 봄에 소 생하는 만물을 온통 맑고 순백한 이미지로 다가오게 한다. 다양한 벚꽃의 모양과 색깔 그리고 결박, 정신의 아름다움 으로 상징되는 꽃말을 알게 되면서 난 벚꽃을 좋아하게 됐다. 진해 벚꽃이 피는 시기는 대개 3월 하순경에서 4월 초순인데 꽃이 피고 지기까지 약 10여 일간의 화려한 축제를 벌인 다. 그리고는 6, 7월경 무더운 여름날 검은 빛깔의 탐스런 버찌 열매가 맺는 것이다. 봄볕이 따사로운 햇살 절정에 달한 벚꽃은 화사하기 이를 데 없다. 그 눈부신 빛깔의 벚꽃이 비바람에 눈 내리듯 떨 어지는 꽃잎은 더욱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첫사랑과도 같은 아련함이 그 안에 숨어 있는 것이다. 젊은 날, 뜨겁게 불타오른 첫사랑도 한 순간에 피고 지는 벚꽃 같은 것이리라. 내 첫사랑의 기억도 그렇게 소리 없이 화사한 얼굴로 다가왔다가 바람같이 사라졌다. 내 젊은 날의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이 생각나면 화사한 벚꽃이 만개한 진해를 찾아 그리움을 마음에 담는다. 첫사랑, 벚꽃향기 바람에 날리우고 90

91 순천만 안개여행 :53 어느 날 문득 생의 한가운데서 느끼는 회한과 그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 그리고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내 안의 현실 그것은 분명 내 인생의 안개와 같은 것이리라! 난 실존적 삶의 방식에 있어 과거 인식의 틀 안에서 늘 불 안해했고 층계를 오르내리는 어린아이처럼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그 어떤 문제에 있어서 명쾌함이라든지 자신만만한 충만함으로부터 난 자유롭지 못했다. 내 스스 로 존재에 대한 부정과 내면의 허무의식, 내 젊은 날의 번민과 고통이라는 내면적 공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고독 한 존재인 '나, 나의 젊은 날은 바로 안개와도 같은 것이었다. 무릇 현개를 살아가는 사람들 대개는 안개 속에 휩싸인 생을 이어가는 것은 아닐까! 장사꾼의 셈법만이 가득한 회색빛 아파트, 쪽방촌 독거노인들과 노후문제, 폭력교실과 입시지옥, 88만원세대와 청년 실업, 연일 터져 나오는 정치권의 행태와 불신, 심화되는 사회양극화현상과 신자유주의의 파고는 가계의 어두운 그림 자를 만들어 낸다. 욕망이라는 물질문명이 뿜어내는 도시는 삭막하고 허무했다. 현대화라는 허울의 기능적 측면만이 강조된 건축물의 도시공간은 삭막하다. 그 안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과 허무의식 순천만 안개여행 91

92 은 나를 병들게 한다. 난 이 시대 이 공간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지진아로 남아있는 것이다. 가끔 도회지에서 생활 하다보면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의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살고픈 충동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럴 때면 문득 떠오르는 영상이 안개에 휩싸인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이다. 내 마음의 허허로움이 자리 잡고 있을 때 난 순천만 안개여행을 떠난다. 물안개가 피어나는 춘천호나 창녕 우포, 청 송 주산지도 물안개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뿜어내지만 이곳 순천만 안개는 내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것은 소 설 무진기행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안개가 단순히 자연 현상으로서의 안개가 아닌 것처럼 내 자신도 그 의미 이상 의 여행인 것이다. 이른 아침 순천만 갈대밭에 잔잔하게 피어나는 물안개를 거닐다보면 삶의 근원적인 해법들이 풀릴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것은 마치 수도승이 동안거에 들어가 수행에 힘쓰는 것처럼 나 또한 안개 속을 헤매며 삶 의 근원적인 물음에 답을 구하는 것과 같다. 도시 일상에서의 단조로움과 권태 그리고 무기력한 공간으로 벗어나 안개에 휩싸인 갈대숲을 걷다보면 내 상념의 끝 에서 안개는 그 어떤 대답도 없다. 그러나 아침의 일출을 맞고 한줄기 빛이 갈대 사이를 스며들면서 서서히 안개가 걷히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러면 왠지 마음이 편해져 옴을 느끼는 것이다. 안개 가득한 갈대밭에서 보낸 시간들 은 단 1초도 잊을 수 없는 시간으로 내게 남을 것이다. 안개 속에 휩싸인 공간은 하늘, 갈대, 고독, 근심 이 모든 것 이 혼미하고 막막하지만 깨달음도 느끼게 하는 매개체로 안개는 있는 것이다. 김승옥의 무진기행 은 1960년대 한 지식인의 자화상을 통해 암울한 시대의 내면적 심리를 드러낸 작품이다. 무진 이라는 가상의 읍내를 뒤덮고 있는 안개는 인간의 허무의식을 드러내는 상징물로서 기능한다. 그것은 주인공의 내면 의식에 깊숙이 관여하는 소설적 장치로 자아의식이 희미한 상황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안개는 인간의 일탈과 욕망 이라는 원초적 세계를 상징하고 있고 무진이라는 소읍의 안개가 자욱한 공간은 불확실한 현대인이 처한 상황을 암시 한다. 안개의 이미지로 표상되는 무진의 삶은 인간의 내부에 은밀히 웅크리고 있는 일탈과 욕정의 끈질긴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인간성이 사라진 삭막한 공간이다. 그 사이에 살고 있는 우리는 끊임없이 양자를 오가는 존 재들이다. 이 두 개의 삶에서 방황하고 있는 한 지식인의 내면이 작품 무진기행 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올드 팬이라면 1960년대 김수용 감독의 '안개'를 기억할 것이다. 당대 최고 스타였던 신성일과 신인 윤정희가 주연을 맡은 영화인데 이들은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장식했던 배우들로서 이 작품은 그들이 남긴 대표작이 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안개 는 김승옥 작가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안개가 가득한 가상의 장소 '무진'을 배 경으로 여자를 도피처로 생각하는 남자주인공 윤기준(신성일 분)과 남자를 탈출구로 생각하는 여주인공 하인숙(윤정 희 분)의 심리를 몽환적인 분위기로 탁월하게 표현했다. 소설 무진기행 은 감각적이고 섬세한 언어구사와 문체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무진이라는 안개로 뒤덮은 공간을 배경으로 설정하여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무너진 혼돈의 세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이나 삶의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안개라는 상징적 장치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 김승옥은 순천만 안개가 있는 순천에서 자랐다. 그가 작품 '무진기행' 속에서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와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라고 묘사한 것처럼 순천만의 안개는 그 어떤 의미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가 직접 보고 느꼈을 순천만의 안개는 이 책의 주요한 모티브가 된다. 순천만 안개여행 92

93 최근 순천만에 김승욱의 무진기행 문학관이 조성됐다. 순천만 대대동 무진교에서 갈대길을 따라 이십 여분 정도 걷다보면 낭트공원을 지나 문학관이 나온다. 이곳에는 동화작가 정채봉과 소설가 김승옥을 기념하기 위해 초가로 된 기념관이 꾸며져 있다. 작가는 순천만 안개를 창작의 모티브로 삼았다. 김승옥 기념관에는 작가가 유년기를 보냈던 순천의 공간을 재구성해 탄생시킨 무진기행 을 만나게 되는데 그의 작품 활동과 영화 안개 에 관련된 전시물이 들어차 있다. 이곳으로 가려면 갈대 사이로 난 길을 달리는 간이 꼬마 열차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도 좋지만 걷는 발걸음은 상쾌하다. 난 순천만에 오면 갈대사이에 놓인 나무테크를 따라 안개가 걷힐 때까지 걷곤 하는데 그 느낌은 경이롭다. 짙은 어둠 을 뚫고 서서히 여명이 움틀 무렵, 안개 사이로 수줍은 순천만은 새색시처럼 제 모습을 드러낸다. 여수반도와 고흥반도에 둘러싸인 순천만은 드넓은 개펄과 갈대밭 그리고 섬과 산으로 이루어진 연안습지다. 희귀조류 와 짱둥어 등 갯벌 생물이 공존하는 생명의 땅으로 지난해에는 국제습지협약인 람사협약에 등록되기도 했다. 동천과 이사천이 합류하는 대대포구의 아침은 역동적이다. 대대포구에서 용산 전망대까지는 2.3km로 약 40분을 걸어야 한다. 가파른 나무계단을 10분쯤 오르면 평탄한 등선길이 이어진다. 전망대에 오르면 순천만의 빼어난 경관이 한눈에 들어 온다. 물 빠진 개펄을 수놓은 S자 수로와 크고 작은 원형의 갈대밭이 스펙터클한 장관을 연출한다. 무엇보다 안개 낀 분위기 못지않게 석양의 아름다움 역시 일품으로 황금빛으로 물든 순천만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일 몰 1시간 전에 도착해야 한다. 해룡면 상내리 와온마을은 드넓은 갯벌을 무대로 펼쳐지는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포인트이다. 땅거미가 길손처럼 찾아오고 달빛이 교교하게 쏟아지는 개펄에서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밤공기를 가른다. 이곳을 찾은 철새들이 갈대숲을 허허롭게 날아오른다. 이내 무진의 안개는 서서히 이곳 순천만을 점령하기 시작한다. 순천만의 하루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다. 대대포구에서 갈대숲 길을 따라 호젓하게 걸어 보는 것은 어떨까.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안개 낀 무진교 위를 걸어 보는 것은 여행 의 색다른 감흥을 안겨 줄 것이다. 하구의 갈대밭 저편 똥섬에는 불그스레한 칠면초 군락지가 들어서 있다. 순천 갈대 군락지 갈대밭에 파묻히다시피 한 대대동은 선착장을 중심으로 가장 넓은 군락지를 이룬다. 15만평에 이르 는 규모가 실로 방대할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생물군도 다양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며, 안개에 휩싸인 포구, 황금노을의 석양녘, 유유히 하늘을 나는 겨울철새 등 시시각각 계절마 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순천만의 진한 감동은 마치 한편의 서정적인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난 오랜 세월동안 드라마 촬영지를 찾아 나서면서 여행길에서 내 안에 숨겨져 있는 그 어떤 의미를 찾고자 애를 썼 다. 그것은 안개 낀 갈대숲 바람이 전하는 사연일 수 있고, 햇살에 반짝이는 은물결의 작은 움직임일 수도 있다. 이러 한 나의 관찰이 여행길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배우게 될 것 이다. 여행을 통해서 내 안의 고독과 허무를 맛보았고 그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고 말할 수 있다. 무릇, 여행에 있어서 의 즐거움이란 여행을 하며 만나는 다양한 대상과의 교감,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생각된다. 마치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서 안개가 상징하는 표면적 의미, 그 이상인 것처럼. 순천만 안개여행 93

94 순천만 안개여행 94

95 순천만 안개여행 95

96 가을날의 동화 (가을동화) :18 어슴프레한 새벽녘 트럭 위의 소들을 끌어내리느라 한바탕 소란을 벌어진다. 끌려나온 소들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 발버둥 친다. 음메 하는 소리가 새벽공기를 가르며 시장 안에 울려 퍼진다. 아침이 동틀 무렵, 절반 이상의 소 가 팔리거나 축사로 되돌아가는데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간 모습이 황량함을 드러낸다. 드라마 올인 에서 극중 인하(이병헌 분)가 우시장 장터를 배경으로 도망가던 장면을 이곳 경북 예천 용궁 우시장에 서 촬영했다. 내가 이곳을 촬영지로 결정한 것은 화면의 역동적인 그림을 담아내기 위해서였지만 이곳 주변엔 제법 가 볼곳이 여럿 있다. 그중 하나가 회룡포이다. 용궁우시장을 벗어나 용궁역이 보이는 철길 건널목을 건너자 황금들녘이 펼쳐져 있는데 이 길로 이 길로 차로 십 여 분 가다보면 강변마을 회룡포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KBS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극중 은서와 준서가 어린 시절 뛰놀던 장면들이 펼쳐진 곳이다. 예천 회룡포와 삼강나루(은서, 준서의 유년시절의 추억) 경북 예천 회룡포는 육지 속 섬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회룡포 마을을 감싸고 흐르고 있다. 맑은 물과 은빛모래 그리고 겹겹이 둘러싼 산세가 마을을 감싸고 있는데 마치 강 위에 뜬 섬과 같은 형상이다. 이 마을엔 10여 가구가 모여 살고 있는데 난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 대신 회룡포 마을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비룡산으로 향했다. 장안사를 거쳐 도착한 회룡대는 회룡포마을의 아름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육지속의 섬 회룡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곳은 물줄기가 마을을 끼고 돌아가는 경관으로 치자면 안동 하회마을보 다 더 나은 듯싶었다. 고요히 흐르는 강물과 은빛물결 백사장, 황금빛 들녘, 병풍처럼 들어선 산세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난 이러한 풍광을 한 프레임에 담아보았다.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니 오래전의 일들이 생각났다. 난 이곳 예천 낙동강 가에서 8,15특집극 낙동강 을 촬영할 때를 떠올렸다. 1993년, 우린 예천 낙동강 가에서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는 전갈 이 왔다. 당시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어떤 경로로 내게 소식이 닿은 것인지 궁금했는데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손아 래 동서의 본가가 이곳 예천이었다. 그래서 촬영팀이 묵고 있는 여관과 군청을 수소문해서 내게 연락을 해온 것이다. 난 급히 예천 비행장으로 달려갔던 그 때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촬영 팀은 일 년 열두 달 밤낮이 없다. 심지어는 명절 때도 촬영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아내 가 애 낳는다는 것을 빌미로 촬영현장을 벗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핑계거리에 불과하다. 내가 일하는 방송현장은 늘 총성 없는 전쟁터와도 같다. 폭염과 혹독한 추위에도 촬영팀은 늘 고달프다. 난 이십 여 년 넘게 일해 오면서 두터운 방한복 속의 내복을 매년 4월 말경 이전에 벗어 던진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유독 추위에 약하고 더위에도 약한 체질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이곳 예천 회룡포와 지척에 있는 삼강나루터는 서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삼강나루터는 예천을 지나는 낙동강 과 내성천 그리고 금천이 서로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데 이 물 세 줄기가 모이는 곳이 삼강주막이다. 오래전, 이곳엔 소금배가 다니고 나룻배로 예천읍내와 문경으로 오가던 사람들이 많아 이곳에서 사람들이 잠시 쉬어 가는 구실을 했던 주막이다. 삼강나루터는 경남 김해에서 올라오는 소금배가 경북 안동 하회마을까지 가는 길목이었 다. 또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가기 위해 꼭 지나쳐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사람들의 왕래도 잦았 다. 지금은 나룻배가 끊긴 지도 수 십 년도 더 됐고, 또 이곳에 새로 다리가 놓이면서 그 오래전의 정취를 느낄 수 없게 됐다. 삼강주막 한쪽의 200여년 된 회화나무가 그 옛날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우뚝 서 있었다. 가을날의 동화 (가을동화) 96

97 속초 동명항과 청호동아바이마을(은서네 집) 강원도 속초는 호수와 산과 바다를 안은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속초 동명항에 내려 바다를 구경하는 것으로부터 여행 은 시작된다. 동명항을 기점으로 설악산이나 영랑호, 청초호로 가곤 하는데 내가 등대가 내려다보이는 횟집에서 매콤 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인 곰치국을 처음 먹어 본 것도 동명항이었고 또 수평선 너머 펼쳐진 우뚝 솟아있는 설악산의 또 다른 모습을 본 것도 이곳 동명항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갯배를 타고 청호동 아바이 마을로 들어갔던 것이었는데 청호동 갯배는 사공이 따로 없다. 배를 탄 승객들은 저마다 쇠 갈쿠리를 들고 호수 바닥 에 가라앉은 쇠줄을 끌어당기면서 건너게 된다. 이것이 속초 청호동 아바이마을의 진정한 숨은 매력이다. 청초호와 바다로 둘러싸인 아바이마을로 가기위해선 갯배를 타고 건너는 것이 시간을 보다 단축한다, 뿐만 아니라 여 행의 즐거움도 배가된다. 청호동에서 동명항이나 영금정으로 가려면 차를 타고 한참 청초호를 한 바퀴 돌아야 하는데 이 갯배를 타면 불과 이 삼 분이면 닿을 수 있다. 속초 청호동 아바이마을은 6,25 동란 1.4 후퇴로 피난 온 실향민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시대를 비껴간 듯 낡은 집들 이 서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드라마 가을동화 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극중 은서(송혜교 분)가 생활하던 공간 이 이곳에 있는데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 덕에 아바이마을은 활기가 넘치는 마을로 변모했다. 아바이 마을에는 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지임을 알리는 현수막과 출연배우 사진이 곳곳에 걸려있어 여행자를 맞이한다. 난 드라마의 영향으로 청호동 아바이마을이 상업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왠지 달갑지 않다. 왜냐하면, 개발의 바람은 호 수와 산과 바다의 도시 속초의 모습을 기형적으로 변하게 할 것이다. 산의 허리를 깎아낸 고층 건물은 불어오는 바람 을 가로막을 것이다. 또 바닷가를 따라 우후죽순 생겨나는 술집과 음식점, 펜션등은 낭만적인 여행의 즐거움을 빼앗 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삼양대관령 목장(은서, 준서의 밀월여행지) KBS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극중 은서(송헤교 분)와 준서(송승헌 분)의 밀월 여행지는 강원도 삼양대관령목장이다. 두 사람만의 오붓한 은서의 생일파티 또 준서가 은서에게 청혼하는 장면 등이 이곳에서 촬영됐는데 이들에겐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넓게 펼쳐진 초지로 난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이국적인 풍광이 펼쳐지는데 산행하는데 별 무리가 없다. 산행이라 는 표현보다는 산책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싶다. 그래서 눈 덮인 겨울장면을 촬영하러 이곳에 자주 왔었다. 재작년, 난 작품 헌팅관계로 오대산에 간 적이 있었다. 산 전체에 눈이 쌓여있었는데 난 희미하게 남은 발자국을 따 라 정상 부근 산장에까지 왔었다. 촬영장소가 산장이라 이곳까지는 힘겹게 걸어왔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등산화에 눈이 들어와 발을 적셨고 세찬 바람은 옷깃에 스며들었다. 산길을 내려오면서 그만 길을 잃고 산속을 헤맸던 기억이 있다. 하산하면서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쳐 나오면서 119구조대에 도움을 요청했다. 눈 올 때는 산행을 피해야 하는 것이 기초적인 상식인데 난 그것을 무시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삼양대관령목장은 눈 오는 날이라 하더 라도 산행하는데 있어서 별 무리가 없다. 잘 포장된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보면 목장 1단지 입구에 KBS 드라마 가을 동화의 은서 준서 나무 가 나란히 서있다. 그리고 또 위쪽에는 영화 연애소설 나무가 있어 탐방객의 눈길을 사 로잡는다. 그 길로 계속해서 오르면 동해전망대가 나오고 해돋이를 볼 수 있는데 목장 전체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 다. 또 까마득히 강릉 경포대가 보인다. 삼양대관령 목장 2단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원앙새서식지인 삼정호를 만나게 된다. 이 길로 계속해서 가면 드넓 은 초지가 나오고 소황병산 정상에 이르게 된다. 상운 분교(준서의 작업 공간) 가을날의 동화 (가을동화) 97

98 지방의 여러 곳을 다니다보면 폐교로 남아 있는 곳이 제법 많다. 이 폐교를 용도에 맞게 활용해서 리모델링한 경우가 많은데 강원도 양양군 서면에 있는 상운 분교도 그런 경우이다. 이곳에서 드라마 가을동화극중 준서(송승헌 분)의 작 업하는 공간으로 촬영되었다. 은서와 준서가 함께 생활했던 이곳은 소설 국화꽃향기 의 배경이 되기도 한 곳인데 은서방, 준서방, 나무벤치, 수돗가, 철봉 등 두 사람의 추억이 곳곳에 서려 있다. 드라마 가을동화 에서 준서의 작업장으로 소개돼 이미 관광명소로 이름난 곳이지만 실제 이곳은 도예가 정재남씨 의 작업장이다. 건물과 실내 장식 모두가 동화 속 학교를 연상케 하는 도예가의 혼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드라마 가을동화 에서 메인타이틀 곡인 로망스의 선율이 아직도 내 귓가에 쟁쟁하게 울려 퍼진다. 젊은 남녀의 애 틋한 사랑이야기. 꿈, 향수. 추억이 남아 있는 촬영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내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티 없 이 맑고 순수한 사랑은 내 영혼의 목마른 갈증을 해소시켜 줄 것이다. 드라마 가을동화는 아름다운 사랑이 샘처럼 솟 아나는 동화 같은 우리의 이야기이다. 가을날의 동화 (가을동화) 98

99 무지개를 이은 왕비(대장금) :57 일본 촬영팀과의 수차레 작업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대충 알 수 있는 요령이 생겼다. 그들은 세밀하 게 촬영지의 진행상황 심지어는 의상, 소도구까지 꼼꼼히 체크하는 것이 몸에 밴 모습이었다. 특히 촬영장소 섭외와 관련된 불확실성에 대해선 꽤 민감하게 반응하곤 했다. 자국에서 찍을 수 없는 장면을 해외에서 꼭 찍어야 하는 입장 에서 그들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또한 긴장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이 내게 보여준 대본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이은과 이방자 여사의 일대기를 다룬 일본 후지TV 드라마 '무지 개를이은왕비 이다. 한일 간 문화교류 차원에서 기획된 드라마이긴 하나 다분히 역사적인 관점에서 서로의 충돌을 예견했다. 한일합병 전후의 역사적 배경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이고 보니 은근히 걱정이 앞섰다.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고종황제 에 대한 얘기도 다루어지고 있고, 또 영친왕이 일본에서의 볼모생활에 대해서도 동정심을 가질만한 작품구성으로 되 어 있었다. 그 외에도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에 의한 조선인 학살사건이라든지 일본의 조선민족말살 정책에 대해서도 비교적 역사적 사실을 가감 없이 다루고 있었다. 오히려 한국인의 시각으로 제작되었어야 할 작품이 아닌가도 생각됐 다. 한일합작 드라마 무지개를 이은 왕비 는 고종 황제의 아들이자 순종의 이복동생인 영왕 이은과 일본 황족 나시모 토 마사코(이방자)의 결혼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1920년대 국경을 초월한 부부애를 그린 다큐멘터리 드라마인데 2006 년도 일본 후지 TV를 통해 일본 전역에 방송됐다. 12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와 격동의 시대, 비운의 생을 마감한 황태자 이은 역은 일본 인기그룹 'V6'의 멤버 인 오카다 준이치가 맡았었다. 그리고 이방자 역은 일본배우 칸노 미호가 맡았는데 한국 전통의상이 퍽 어울려 보이 는 배우였다. 극중 티 없이 맑게 자란 마사코(칸노 미호 분)는 일본의 왕녀이다. 어느 날, 그녀 부모에게서 혼담이 들어오는데 당시 일본에 볼모로 와있던 조선의 황태자 이은(오카다 준이치 분)과의 결혼이었다. 일본의 정계에 의한 정략결혼. 마사코 의 아버지는 나라의 뜻에 따라 이들 혼담을 받아들인다. 어쩔 수 없는 혼사를 받아들인 마사코의 부모는 내심 걱정을 한다. 그리고 마사코 자신도 그 혼담에 당혹해한다. 그러나 처음 이은과 대면한 마사코는 그의 인품에 호감을 느끼고 마음속에 사랑을 키워나간다. 이들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지만 고종황제의 승하, 장남 진의 사 망, 간토 대지진, 태평양 전쟁 직후의 황적( 皇 籍 )무효 등 잇단 불운이 이들을 찾아온다. 그렇지만 더욱 깊어만 가는 이들 부부의 사랑은 한일 간의 무지개를 잇는다. 드라마 무지개를이은왕비 는 한국의 수원 화성행궁과 창덕궁 후원(일명 비원) 그리고 안산에 있는 명휘원과 남양 주시에 있는 영원(홍유릉)에서 촬영했다. 이 작품의 배경지 창덕궁은 금천교 다리에서 촬영했는데 현존하는 궁궐 안 돌다리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그 아름다 운 문양과 견고함이 그 특징이다. 창덕궁은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정궁 역할을 했던 곳으로 내겐 이곳의 촬 영허가를 받아내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당시 일본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독도 영유권주장 등으로 한국의 배일 감정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창덕궁의 촬영허가의 문을 열기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견고했다. 한일 간의 미묘한 감정의 골과는 서로 다르다는 문화적인 관점에서 호소했다. 그렇지만 전혀 설득력이 없는 상황으로 일이 전개되고 있었다. 곧 일본 촬영팀이 도착해 촬영이 진행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2개월이 다 되도록 촬영 장소로 빌리는 일은 요원했다. 설득의 실마리를 찾지 못해 포기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 고심 끝에 궁여지책 선택한 카드는 문화재 전문위원들로 구성된 그들에게 한일문화교류 차원에서의 도움을 요청하는 일 외엔 달리 방법 이 없을 것 같았다. 무지개를 이은 왕비(대장금) 99

100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이 사실을 알았는지 방송국 사무실로 창덕궁에서의 촬영을 포기하라는 민원전화가 걸려왔다. 한마디로 창덕궁에서의 일본 드라마촬영을 결코 좌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일합작드라마 무지개를이 은왕비 는 소재의 민감함으로 대한제국의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는 것에 대한 우려였다. 그렇지만 또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 것 같은 명분에 휩싸인 일들도 세상엔 또 많지 않은가! 문화재 전문위원 그들 내부에서조차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반대 여론이 비등했지만 반전의 결과를 얻게 된 것은 당시 사극 작가이기도 했던 신봉승 문화재 자문위원장의 공이 컸다. 과거엔 궁궐에서 사극을 촬영하면서 많은 문제점 이 노출되기도 했었다. 요즘처럼 궁궐 야외세트장이 없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라 촬영허가 문제도 별 어려움이 없 었다. 그래서인지 야간 촬영하면서 극중 횃불을 켜는가 하면 궁궐 문루에 화살을 꽂는 등 한마디로 상식 이하의 행동 을 했었다. 문화를 창출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문화를 파괴하는 아이로니컬한 역사문화의식이라 할 수 있었다. 일본감독은 이곳 창덕궁 후원에 와서 촬영하게 된 것에 무척 고무된 표정이었다. 그는 창덕궁을 돌아보면서 궁궐의 아름다움에 연신 놀라움을 표시하며 촬영하게 될 날 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난 그에게 창덕궁은 어릴 때 내가 뛰어놀 던 동네 놀이터였다고 일러줬더니 그는 날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일본 촬영팀이 한국에 와서 첫 촬영 하던 곳은 수원 화성행궁 봉수당이다. 첫 촬영이 있던 날 일본스텝들이 무거운 촬영용 크레인 장비를 옮기던 중 봉수당 마루에 크게 흠집을 냈다. 이를 지켜보며 어찌할 바 모르던 칸노 미호의 모 습이 떠올랐다. 오카다 준이치(이은 역)와 간노 미호(이방자 역)가 황제에게 결혼을 보고하는 장면에서는 화려한 궁중의상을 입고 등 장한 간노 미호의 모습은 눈이 부셨다. 왕비가 결혼의식을 할 때 쓰는 '대수'라는 가발을 쓴 간노 미호는 지금까지 써 본 가발 중 가장 무겁다고 했다. 한국 의상팀의 도움으로 가발을 쓴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들여다보며 연신 웃음을 띠어보였다. 화성 행궁 봉수당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지로 지정된 1796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이곳은 정조가 화성을 행차할 때 마다 기거하던 별궁이다.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대왕은 즉위 후 경기도 양주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으로 옮기고 정약용으로 하여금 과학적 설계를 토대로 최초의 신도시 화성을 건설했던 인물이다. 화성 행궁 신풍루 앞마당에서 정조가 친히 참석하여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주고 굶주린 백성에게는 죽을 끓여 먹이 는 진휼 행사가 벌어졌다. 정조가 그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만년의 수를 받들어 빈다는 뜻에서 붙여 준 이름 인 봉수당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재현해 놓은 것이 눈길을 끈다. 화성행궁은 봉수당과 장락당이 들어서 있는 국내 행궁 중 그 규모가 가장 큰 행궁이다. 궁궐규모는 그리 큰 편은 아 니지만 궁 뒤편으로 둘러있는 화성과 연계해서 감상할 수 있는 장소이다. 이곳 화성행궁은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 장소로도 꽤 알려졌는데 이곳에는 드라마 대장금 과 관련된 많은 전시물 이 들어차 있다. 대장금이 생각시에서 최고 상궁이 되기까지의 변화과정이 의상을 통해 보여 진다. 또 한쪽에는 궁중 악기들이 전시되어 있고 주말이면 무술시범과 왕의 옷을 입고 사진 찍는 행사가 마련되기도 한다. 일본 촬영팀은 한국에서의 로케이션 촬영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갈 때 이방자 역을 맡았던 간노 미호는 촬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내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드라마 극중 주인공의 깊은 사랑처럼 한일 간의 우호관계도 그랬으면 좋 겠다는 말도 전했다. 난 그들에게 내가 오래전에 했던 드라마 덕혜옹주 을 얘기하면서 이 상황과 정반대인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 옹주와 일본 남자 다케유키와의 결혼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방자 여사는 그래도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지만 덕혜옹주는 비운의 결혼생활이었음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일본 촬영팀이 창덕궁에서 촬영할 때 그 옆에 있는 낙선재 에서 시누이와 올케 사이인 이방자 여사와 덕혜옹주가 그곳에서 말년을 사이좋게 보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국에서의 촬영이 좋은 추억으로 간직되길 바란다면서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일본 말인 굿바이 사요나라 라고 인사했다. 무지개를 이은 왕비(대장금) 100

101 적벽을 찾아서(쌍화점) :03 광주를 찾은 건 늦은 여름이었다. 난 전남 장흥 천관산을 가기 위해 잠시 광주에 들렀다. 광주는 주로 내게 있어 담 양이나 나주 또는 화순을 거쳐 가는 경유지로만 인식된다. 그만큼 드라마나 영화 촬영의 주요 장소로 이곳을 찾기란 가뭄에 콩 나듯 하다. 광주는 광주항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도시로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고 드라마 모래시계의 사례처럼 광주시민 과 관청이 발 벗고 나서서 적극적인 촬영지원을 아끼지 않는 도시로만 각인됐다. 물론 광주항쟁을 다룬 드라마에 한 해서이지만. 광주역에 내린 난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장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눈부신 태양은 그리 높지 않은 건물들과 무 성한 가로수 잎에 스며들어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유독 광주의 햇살이 눈부시도록 강렬하게 다가오는 건 무슨 이유일까? 난 광주에 올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광주의 지명이 빛 고을 광주라서 그런 것일까! 찌는 듯한 한낮의 무더위로 대합실은 비교적 한산했다. 에어컨을 틀었지만 넓은 대합실엔 별로 소용없는 듯이 보였 다. 강렬한 햇살이 대합실에도 스며들어 텁텁한 공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난 장흥으로 가는 표를 끊기 위해 일어섰다.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친 건 쏟아지는 햇살에 숨을 쉬는 무등산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마치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 때 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까뮈의 소설(이방인)에 나오는 뫼르소 처럼 그 어떤 강한 햇살의 이끌림이라고나 할까! 무등산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광주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올라가 봤을 무등산을 난 이번 기회에 밟겠노라 다짐 하면서, 무등산으로 가기위해 증심사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아직 햇살은 많이 남아 있었지만 산행을 하기엔 다소 무리가 따르는 시간이기도 했다. 광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무등산 입구인 증심사 까지는 아주 가까웠다. 버스가 종점에 다다 적벽을 찾아서(쌍화점) 101

102 랐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미 산에서 내려와 시내버스를 타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해는 조금 전보다는 그 빛이 더 많 이 줄어든 것 같았다. 증심사에서 대충 사진을 몇 장 찍고는 난 급히 서둘렀다. 산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은 잘 정리되 어 있지 않아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올라가다 아주 큰 느티나무를 만났다. 기분 좋은 산행의 출발이라고 생 각했다. 산이나 혹은 마을 입구에 멋지게 생긴 나무를 만나면 그 주위가 빛난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난 쉬지 않 고 정상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내달았다. 한낮 오후의 태양은 수그러져 조금은 더위가 가셨지만 여전히 무더웠다. 생 수를 꺼내 마시지만 갈증이 쉬 가시질 않는다. 짙은 갈색의 티셔츠는 땀에 젖어 수건처럼 홍건 했고 몸에선 땀 냄새 가 진동했다. 날파리들이 이런 냄새를 어디서 맡고 왔는지 쫓아오면서 괴롭힌다. 장불재를 거쳐 정상에 생각보다 빨 리 다다랐다. 아주 빠르게 내친걸음이다. 해는 이미 서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산꼭대기에는 통신기지가 멀리 보이고 오가는 등산객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 다. 이제부터 나의 판단에 따라 결정을 해야 한다, 편한 길로 또 오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길로 방향을 정할 것인가가 그것이다. 가까운 거리로 하산해 내일 아침 일찍 산의 북쪽인 담양 소쇄원과 식영정을 볼 것인지 아니 면 자연경관이 수려하다는 화순 적벽을 보러 갈 것인가의 문제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하게 되면 어쩌면 날이 어 두워 길을 잃고 헤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경험으로 알고 있다. 초행길은 앞서 간 발자국을 따라 걸으면 안 전하다는 것을, 몇 해 전, 난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었다. 난 그 여느 때처럼 외딴 곳에 있는 산장을 찾기 위해 점봉산에 갔 는데 그때도 지금처럼 늦은 오후의 산행이었다. 산장을 이리저리 찾다가 내친김에 정상까지 밟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점봉산엔 아직도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꽁꽁 얼은 개울을 건너고 눈이 채 녹지 않은 등산로를 따라 걸었다. 산의 중턱에 이르렀을 때 군락을 이룬 주목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을 때 어디선가 이름 모를 산새가 날아들었다. 그 작은 새가 나를 조금도 경계하지 않는 것에 난 의아했다. 그 새는 나의 손등이며 어깨에 내려 앉기라도 하려는 듯 나를 쫓아 왔다. 겨울 산에 먹을 것이 없어 내게 구원의 손길을 보낸 것이라 생각했다. 난 배낭 속에 있는 건빵을 꺼내 이름 모를 새에게 줬다. 그 건빵 한 알 으로도 사람과 동물이 교감할 수 있고 친해질 수 있음 을 그때 처음 알았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아직 산 정상까지는 절반가량 남아 있는 것 같은데 갑자기 세찬 강풍이 몰아쳤다. 몸 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의 거센 바람이었다. 오던 길은 눈보라에 지워져 보이지 않았다. 겨울 산행의 무서움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휴대전화로 긴급구조대에 구원 요청했다. 허가를 받지 않고 산에 올랐다는 핀잔과 함께 날이 저물었으니 즉시 오던 길로 내려오라는 것이었다. 순간 난 당황했지만 선택은 무조건 하산이다. 산에서 내 려오면서 몇 번이고 허벅지까지 눈 속에 빠지곤 했다.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눈길을 헤치면 서 내려와야 했던 기억이 있다. 뼈아픈 기억이 있음에도 난 화순 쪽으로 내려가야겠다는 무모한 결정을 했다. 난 계 속해서 앞만 보고 내달렸다. 빠른 걸음으로, 산 밑으로 내달리면서 어둠에 가려져있는 서석대, 입석대 는 볼 수 없었 고, 다만 산 중턱 저만치 어디에선가 풍경소리가 들려왔다. 난 그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기니 병풍처럼 둘러싸인 바 위에 아담한 암자가 눈에 들어왔다. 절 입구 계단위에는 규봉암이라는 글씨가 어둠 속에 희미하게 보였다. 고요하고 적막한 암자엔 어둠이 깃들었다. 암자에 딸린 부엌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는데 인기척에 스님은 부엌문 을 나와 합장하며 나를 맞는다. 난 스님에게 화순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알려 달라고 했다. 스님은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서 오른쪽으로 가다보면 작은 나무푯말이 보일 거라 했다. 길은 험하지만 가장 빨 리 마을에 닿을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는 마을에 버스가 끊겼기 때문에 원한다면 택시를 불러 주겠다 고 했다. 난 망설였다. 그리고는 고맙지만 괜찮다고 했다. 난 여행을 하면서 그 어떤 예정된 일에 대해 일종의 알레르 기 같은 반응을 보인다. 마을로 내려가서 버스를 탈 수 없다면 그냥 걸을 것이고, 또 걷다 지치면 지나가는 차량을 세워서 시내로 나갈 요량이었다. 산에서 내려 왔을 때 마을은 완전히 어둠에 가려져있었고 마을을 오가는 버스는 끊긴 지 이미 오래였다. 무등산이 바 로 뒷산인 영보마을이라는 마을표석이 흐릿하게 눈에 들어왔다. 초생달이 밤길을 비추는 한적한 도로를 따라 난 터덜 터덜 걸었다. 한참을 걸었다고 생각할 때 집 채 만 한 트럭이 내 앞을 스쳐지나갔는데 난 재빨리 손을 뻗어 애처로운 표정으로 태 워 달라고 했다. 트럭 안의 젊은 부부는 차를 세우더니 운전석 옆에 자리를 기꺼이 내 주었다. 남자는 웃통을 훌렁 적벽을 찾아서(쌍화점) 102

103 벗은 채 운전하고 있었고 그의 아내인 듯한 여자는 차 안 여기저기 널 부러진 그릇들을 치우고 있었다. 비료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을 봐서는 동물성 비료를 운반하는 차량 같았다. 그 악취가 텁텁한 더위와 섞이면서 그다 지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차를 얻어 탄 것에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그 젊은 부부는 집이 나주이고 돼지 비료 를 싣고 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읍내를 거치지 않고 외곽으로 난 길을 거쳐서 갈 것이라 했다. 화순 읍까지 가는 길은 꽤 멀었다. 그 트럭운전수는 능주 이정표를 지나고 나서야 나를 마을 초입에 내려 주었다. 오래전 난 이곳 능주에 왔던 기억이 있다. 읍내 동헌 맞은편에 제법 큰 오일장이 섰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다. 다음날 아침, 난 산에서 내려왔던 그 마을을 다시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화순 읍에서 이양으로 가는 버스를 탔 다. 버스는 어제 밤 트럭으로 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 잠시 후 버스는 영보마을 입구에 나를 내려놓고는 사라졌는데 마을을 휙 둘러보니 무등산이 마을 전체를 포근히 감싸고 있었다. 문중 소유인 듯한 소나무 숲도 꽤 인상적이었다. 마을 입구 초등학교는 무등산과 어우러져 마치 그림엽서를 보는 것 같았다. 마을 앞 정자에서는 노인들이 모여 부채질하며 시끌벅적 떠들고 있었는데 그들은 외지에서 온 듯한 나를 보 고는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난 사진을 찍으려고 서울에서 왔다고 했다. 그들은 영보마을의 내력을 자랑스 럽게 얘기하더니 이곳에서 조금 더 가면 적벽 노루목이 경치가 아주 좋다고 자랑했다. 적벽 화순의 적벽을 보러 가기 위해 난 마을 농로 길을 따라 이서면 소재지를 향해 걸었다. 하늘에선 먹구름이 몰려 왔고 시원스레 한 차례 소낙비가 쏟아졌다. 난 황급히 비를 피하려고 농로 처마 밑으로 찾아들었다. 하늘을 보니 비가 곧 그칠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이럴 때 내리는 비를 여우비라 하는데 내리는 비만큼이나 여우스러운 표현이라 생각했다. 먹구름이 비켜가고 속살을 드러낸 하늘에선 이따금 이슬처럼 비가 투명한 빛에 반사되어 간간히 내렸다. 난 걸음을 옮겼는데 얼마가지 않아 면사무소가 볼품없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면사무소치고는 내가 다녀 본 것 중 가장 규모가 작아 보였다. 개천을 따라 마을 입구에는 수 백 년은 족히 되었을 법한 은행나무가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는데 이 곳 수몰지역 마 을의 전설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마주 보고 있는 가까운 거리에도 또 한그루의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이 나 무도 수령이 사백 년이 넘었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이곳에 모여 당제를 지낸다고 한다. 폐교가 된 학교 운동장 한가운데 덩그렇게 놓여 있는 느티나 무 옆에는 사당이 있고 길은 삼거리로 나있다. 화순 적벽을 가기 위해선 마을 초입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얼 마 지나서 언덕 좌측으로 따라 오르니 동북댐을 보호하기 위해 입구엔 초소가 세워져 있었다. 난 영화 촬영장소를 보 러 이곳에 왔다고 했다. 관리인은 쉽게 출입을 허용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번 간곡하게 사정해 겨우 동북호를 따라 걸 어 들어갈 수 있었다. 병풍처럼 펼쳐진 웅장함과 푸른 물을 담고 있는 동북댐을 거쳐 망향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화 쌍화점 에서 강 렬한 햇살이 내비치는 오후, 왕과 왕후가 야외에서 풍류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자객들이 나타나 왕과 왕후을 살해 하려 한다. 이때 왕의 친위부대인 건룡위 (조인성 분)가 나타나 왕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반격에 나선다. 그 장면에 나왔던 곳이 바로 화순 적벽의 망향정이다. 눈앞에 펼쳐진 풍광은 탄성을 지를 만큼 아름다웠다. 노루목 적벽은 동북 댐이 만들어지기 직전까지 수려함과 웅장함 으로 예로부터 알려진 관광지다. 그 누군가 이곳의 절경을 보고 중국 적벽에 버금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름 지었을 법도 하다. 광주와 화순 지역에 식수 공급을 위해 동북댐이 생기면서 이곳 마을 주민들이 모두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 물에 잠긴 마을 사람들은 고향 잃은 아픔을 달래기 위해 이곳에 정자가 만들었는데 지금도 명절이나 고향이 그리울 때 이곳을 찾아와 마음을 달랜다고 한다. 정자 앞 망배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고향은 부노들을 공경하고 죽마고우와 살던 곳 하늘가 땅 끝으로 모두가 흩어졌을 지라도 어찌 지난날의 그리운 얼굴 잊혀질까 해마다 이곳에 모여 푸른 눈빛으로 엣 정을 나누리라. 고향은 내가 생장하고 조상의 송추가 있는 곳 적벽을 찾아서(쌍화점) 103

104 푸른 파도에 묻히고 막혔을 지라도 어찌 마음속의 고향마저 지워질까 해마다 이 곳 찾아 망배로써 고향 생각 달래리라. 그 누군가가 썼을 글귀가 마음에 다가온다. 이런 연유로 해서 수몰되어 고향을 버려야 했던 크고 작은 댐들이 참 많 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파로호, 합천댐. 충주호, 옥정호 등 하나같이 아름다운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이런 곳 에 꼭 댐이 필요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모두 너무도 아름다운 비경을 간직하고 있기에, 난 망향정을 벗어나 물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자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송악정이 눈에 들어왔다. 난 정자 위에 서서 물가를 바라보았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물가에도 대나무 숲 사이에도 내 마음에 도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적벽을 찾아서(쌍화점) 104

105 한류 바람 부는 서울 골목길 :42 커피 프린스1호점 에 나온 집 알아! 삼순이도 여기 살았대!(내이름은 김삼순) 찬란한 유산 에서 은성이 (한효주 분)집도 여기고! 지붕뚫고하이킥 에서 정음이 남자친구가 세 들어 살던 집도 종로 부암동이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예전 같으면 낯설기만 한 풍경들인데 카메라를 둘러메고 삼삼오오 골목길을 찾아다니며 사진 찍는 사람들이 그리 낯 설지도 않다. 개중에는 일본인들도 제법 많고 어느 골목길에선 중국말이 섞인 목소리도 간간이 들려오기도 한다. 내 가 드라마를 제작하는 스텝의 일원으로서 TV 매체 전파의 영향력을 간과한 것은 아니지만 실생활에서 한류열풍은 보 다 가까이 있다. 몇 해 전, 촬영을 하면서 알게 된 일본인 스미에리코와 그의 어머니를 보면서 난 한류열풍을 보다 더 가까이 실감할 수 있었다. 그들의 한국방문에서 국내 드라마 촬영현장과 또 한류촬영지를 직접 안내해 주었는데 놀랍던 사실은 나보 다도 더 많은 배우(한류배우)이름과 출연한 프로그램명, 촬영지에 관해서 훤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스미에리코의 어 머니는 한류드라마에 열광하는 팬으로서 웬만한 한국드라마는 일본에서 거의 다 녹화해서 시청할 만큼 그 내용을 전 부 알고 있었는데 오히려 드라마를 제작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난 사실 드라마를 잘 안 보는 편이다. 더 구나 우리 집엔 TV 수상기조차도 없다. 그러니 드라마 정보 차원에서 게임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내가 완전한 KO패 다. 며칠 전, 난 그녀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이메일의 전문을 소개하면, 이운수님에게 안녕하세요? 스미 에리코 입니다. 바쁜 날들을 보내고 계시십니까? 요전날은 짧은 체재 였으므로 만날 수 없었지만 전화로 건강해 보인 소리를 들을 수 있어 기뻤습니다. 10월 13일부터 어머니와 함께 서울에 갈 계획이 있습니다. 또 임페리얼.팰리스 호텔에 체재하기 때문에 시간이 있으면 만나고 싶습니다. 20일까지 체재합니다. 서울에 도착하면 전화합니다. 또 만나 인사할 수 있으면 기쁩니다. 어머니는 변함 없이 매일 TV로 한국 드라마를 보고 즐기고 있습니다. 또 드라마의 촬영을 견학할 수 있으면 기쁘겠 습니다. 이전 이야기하고 있던 감독님에게 만나뵐 기회가 있으면 또 기쁩니다. 서울도 매우 좋은 기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몸을 조심하고, 외출이 되어 주세요. 감사합니다. -스미 에리코- 일본인 스미에리코는 40대 초반의 여성으로서 꽤 한국말도 잘 하고 영어에도 능통하다.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도쿄에 한류 바람 부는 서울 골목길 105

106 살고 있는데 매년 서너 차례 한국을 방문하곤 한다. 이른 아침 집을 나와 난 일본인 스미에리코와 그의 어머니가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갔다. 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목적지까지 오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 내가 그들을 데리려 숙소로 찾아간 것이다. 난 그들과 함께 전철을 타고 는 경복궁역에서 내렸다. 그들도 경복궁은 처음 방문한 것이 아니었기에 우린 경복궁 경회루를 한 바퀴 대충 둘러봤 다. 점심때가 되자 근처에 전직대통령이 자주 갔다는 토속삼계탕 집으로 그들을 안내하려하니까 웬걸 삼계탕은 잘 못 먹 는단다. 일본인은 무조건 다 삼계탕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우린 점심 식사를 일단 늦추기로 하고 삼청동을 거쳐 가회동 북촌마을에 있는 시트콤 지붕뚫고하이킥 에 나왔던 정음의 하숙집을 찾아갔다. 거기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는 드라마 겨울연가 에 나오는 중앙고등학교 교정 나무벤치에 앉아 서툰 영어를 섞어가며 이런 저런 얘길 나누었다. 한류배우, 드라마 프로그램, 촬영했던 장소 등 대충 이런 큰 틀에서 얘기하니 의사소통에 별 무리가 없었다. 난 스미에리코 어머니가 드라마 내이름은삼순이 에 나오는 삼순이 집을 보고 싶다고 하자 그들 을 그리로 안내했는데 부암동은 내게 무척이나 친숙한 동네라고 일러주었다. 이곳이 언론에 노출된 지는 꽤 오래전의 일이다. 1994년 당시 난 MBC주말연속극 가슴을열어라 에서 주 촬영장소 를 이곳으로 선정했었다. 이십여 년 전, 사람들은 로케이션매니저란 직업을 가진 내가 하는 일이 도대체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도 잘 알지 못했다. 방송관련 기자들조차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잘 알지 못한 그저 방송스텝 정도로 생각하는 수준이었다. 당시 드라마 첫 야외촬영을 하면서 이곳 부암동에 많은 기자들이 초대됐다. 그들은 취재하면서 서울도심 한복판에 이 토록 정감 있고 아름다운 동네가 남아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그리고는 이곳을 찾고 촬영장소를 선정한 사람이 누 군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난 졸지에 일간신문 동아일보 기사에 났었다. 헌팅맨 감( 感 )으로 사는 분위기 사냥 꾼 이라는 타이틀로 신문기사가 나가면서 내가 하고 일과 종로구 부암동이 그때 처음 소개되었었다. 종로구 부암동은 인왕산 자락에 자리 잡은 동네이다. 성곽을 끼고 청와대와 가깝게 자리하고 있어 고도제한에 묶이면 서 개발의 사각에서 빗겨나 있었다. 그래서인지 야트막한 지붕의 개량한옥들이 앙증맞게 골목길로 이어지며 인왕산이 감싸고 있다. 난 그 후에도 여러 편의 작품을 이곳에서 촬영했고 또 여러 촬영팀이 이곳에서 촬영하면서 이 동네가 드라마촬영의 명소로 부각됐지만 동네주민들은 촬영팀을 별로 달가워하질 않는다. 종로구 부암동은 드라마 속 삼순이네 집도 있고, 은성이네집도 있고, 정음이네 집도 있지만 현진건의 생가 터는 좀처 럼 눈여겨보질 않는다. 난 현진건의 단편소설 운수좋은날 의 제목과 내 이름과 같아서 그의 생가터에 유독 관심을 가졌다. 한국 사실주의 단편소설의 기틀을 다진 그의 집터가 이렇게 방치돼도 괜찮은 것인지 궁금했다. 커다란 느티 나무 그늘에 버려진 듯 허물어진 기와집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부암동에서 또 한 군데 꼭 눈여겨보아야 할 곳이 있다면 백사실계곡과 석파랑이다. 부암동주민센터를 지나 백사실로 가는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동양방앗간 앞 삼거리가 나온다. 그곳에서 윗길로 따라 가다보면 길모퉁이에 카페가 나 오는데 이집이 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 에 나오는 집이다. 이 찻집에서 계속해서 길을 따라 가다보면 백사실계곡 이 나온다. 백사 이항복이 별서를 짓고 살던 계곡이라해서 백사실 이란 이름이 붙은 곳으로 추정되는데 계곡 그 별당 자리가 아직도 남아 있다. 서울 도심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아름다운 계곡을 끼고 살아가는 부암동 주민들에겐 축복인 셈 이다. 한류 바람 부는 서울 골목길 106

107 난 부암동에서 택시를 타고 창신동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창신동은 한국의 몽마르뜨 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곳 은 성곽을 끼고 언덕길을 따라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데 그 기하학적인 모습이 눈길을 끈다. 성곽을 낀 언덕을 따라 빽빽이 이어진 독특한 동네와 치열한 삶의 현장이 느껴지는 쇄락한 가옥 또 도심빌딩숲이 아주 가까이 내려다 보이는 공간구조는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과 견줄만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난 파리 몽마르뜨에 가본 적이 없 으므로!!,, 이러한 특징이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이곳 또한 꽤 많은 촬영팀이 이곳을 다녀갔다. 드라마 파리의연 인 시크릿가든 등도 이 동네에서 촬영됐는데 도심빌딩이 바라다 보이는 이곳의 조망은 뛰어나다. 특히, 스카이 라인 그리고 야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풍광은 그 어느 곳에서도 좀처럼 보기 드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곳에서 야 간촬영을 할 때면 동네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하자. 왜냐하면 하루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밤새 촬 영하면 대낮같이 훤한 인공조명에 의해 숙면에 방해되는 일이 많아 주민들과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곤 한다. 이곳에서 의 뷰는 아주 굿인데 촬영여건은 노굿이다. 난 스미에리꼬 에게 아름다운 성곽을 둘러싼 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것은 낙산이라고 말해주면서 한국은 산이 아름 다운 나라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도 산을 끼고 있는 동네인데 계절마다 느끼는 감흥이 새롭다고 말해주었다. 안산엔 자작나무숲, 메 타쉐콰이어 숲도 있고 봄이면 왕벚나무 군락지에 벚꽃들이 바람에 날려 온통 꽃동네 분위기가 난다고 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을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이곳은 내가 드라마 촬영 장소를 찾다가 이곳에 둥지를 틀 었다고 했다. 그것이 이십 여 년 전의 일이라고 말해주면서 집을 나서면 바로 코앞에 천년 사찰인 봉원사도 있고 연 세대학교 캠퍼스와도 가깝다고 일러 주었더니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기회가 되면 초대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최근에 내가 로케이션 했던 드라마 최고의사랑 도 이 동네에서 촬영했는데 극중 구애정(공효진 분)이 사는 집 마 당에 활짝 핀 목련꽃이 아름다운 집이 그곳이라고 소개했다. 일본인 스미에리코와 칠순이 넘은 그의 노모는 여러 동네를 나와 함께 다니느라 기진맥진했다. 내가 너무 무리하게 일정을 잡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린 오후 늦은 시간이 다 되어서야 산동네에서 내려왔고 늦은 점심을 함께 했다. 난 창신동에 있는 낙산냉면집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메뉴판에는 매운 것 맵지 않은 것으로 구분해놓았는데 그들은 매 운 냉면을 생각보다 잘 먹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들은 각자 돈을 꺼내려 했다. 그렇지만 난 더치페이가 익숙하지 않아 내가 음식 값을 지불했더니 그들은 내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다. 우린 이 동네에서 서로에게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다음날, 스미에리코는 한국의 아름다운 동네 여러 곳을 안내해 준 것에 깊은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방문 길에도 꼭 연락하겠노라 전해왔다. 그리고는 전날 노모가 무리하게 걸어 다녀서 그만 몸져누웠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는데 난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랐다. 한류 바람 부는 서울 골목길 107

108 남양만의 시린 풍경들 :35 끝없는 지평선에서 점점이 다가오는 트럭들의 행렬 또 광활한 갈대밭 사이로 활을 찬 무사가 말을 타고 초원을 질주 하는 모습 등 흔히 영화나 TV를 통해 보게 되는 이 장면은 대개 경기도 화성 송산면의 형도나 우음도에서 촬영한다. 사극이나 전쟁 씬과 같은 스펙터클한 장면은 인공적인 구조물에 전혀 방해받지 않는 조건이 가장 우선인데 이곳은 이 같은 촬영조건에 부합하다. 형도와 우음도는 원래 남양만을 대표하던 섬이었다. 시화호 간척이 시작되면서 섬이 육지와 비포장으로 연결되면서 섬이 아닌 육지로 남아있다. 이곳은 향후 신도시 송산그린시티가 들어설 계획에 있다. 아직까지는 본격적인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아 광활한 벌판으로 남아 있어 우린 이곳에서 많은 장면을 촬영했다. 드라마 다모 계백 을 비롯하여 수백 편의 영화와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됐는데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분위기가 연출된다. 형도에는 야트막한 동산이 뾰족하게 솟아있고 그 산의 중심부에는 움푹 잘려나간 흔적이 보인다. 이곳의 석산이 시화 호 방조제를 위한 토취장으로 사용되어졌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해서 벌을 드러낸 간척지엔 무성하게 자란 갈대가 끝 없이 펼쳐진다. 낭만적이라기 보단 거칠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이곳의 풍경은 겨울의 황량함이 마음을 파고든 다. 이곳 형도에 와서 둥지를 틀거나 먹이를 찾는 철새들도 없고, 폐허처럼 남아있는 마을은 더욱 쓸쓸함이 묻어난다. 세 남양만의 시린 풍경들 108

109 찬 바람에 흙먼지 날리며 갈대를 흔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시리다. 난 가끔 마음 한 구석 왠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날 때 카메라를 어깨에 달랑 메고 이곳을 찾는다. 몇 해 전, 난 케이블 TV에서 방송되었던 원스어펀어타임인 생초리 에서 극중 무대가 되었던 지방증권사 건물 야 외세트를 허허벌판인 이곳 형도에 세웠었다. 그 분위기는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는데 감독은 내가 추천해준 이곳을 대 단히 흡족해했다. 드라마 원스어펀어타임인 생초리 는 극중 본사에서 쫓겨나 지방 증권사로 좌천되면서 벌어지는 유쾌한 코미디로 다소 비현실적인 무대설정이 눈길을 끌었던 작품이다.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 끝없이 펼쳐져 있는 허허벌판에 달랑 허 름한 건물이 서 있는 풍경은 강한 페이소스를 느끼게 한다. 과거에도 난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소지섭이 주연한 영화 도둑맞곤 못살아 에서 허허벌판에 야외세트인 저택을 짓고 촬영했던 기억이 있다. 여인네의 앞가슴처럼 볼록한 화석지를 배경으로 세트를 지었는데 그 당시 지어졌던 건물 은 온데간데없고 지금 그 자리엔 나무 테크로 된 다리가 길게 놓여 있다. 그리고 한쪽에는 화석공룡박물관이 새로 들 어서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박물관엔 공룡과 관련된 전시물이 들어차 있었는데 이곳 건물옥상에서 끝 없이 펼쳐진 습지를 배경으로 해가 넘어가는 장면을 촬영하기에 적당한 포인트이다. 공룡알화석산지는 2000년도 천연 기념물 제414호로 지정되었다. 1억 년 전 백악기 때 공룡들의 집단 서식지로 추정되는 곳인데 이 길로 계속 가다보면 우음도가 나타난다. 우음도는 섬 생김새가 소[ 牛 ]를 닮아서 혹은 육지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우음도로 가는 길은 흙을 실어 나르는 공사 차량들로 내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차량이 지나간 자리에는 뿌연 흙먼지가 바람 에 날리고 하늘빛은 잔뜩 찌푸려 금방이라도 눈을 날릴 것 같은 날씨이다. 길게 뻗은 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니 이 내 마을이 나타났다. 섬 주민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 듯 마을은 폐허처럼 변해 있었다. 파평 윤씨가 처음으로 들어 와 살기 시작했다는 이 마을은 지금 현재 몇 몇 주민만이 이주 보상 문제로 마을을 지키고 있을 뿐 쥐 죽은 듯이 고 요했다. 송산그린시티로 개발되기 불과 몇 년 전만해도 학교마당 고목나무에는 마을사람들이 모여 당산제를 지내곤 했다는데 이제 그 모습을 다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폐허가 된 마을을 끼고 좌측으로 들어서니 야트막한 언덕위에 우음분교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학교 마당에는 잡풀들이 자라 있었고 지난 해 태풍으로 부러진 고목이 마당 한가운데 방치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띠었다. 그리고 운동장 한쪽에 는 우물이 놓여 있었다. 난 낡은 콘크리트 기둥 뼈대만 남아있는 학교정문을 빠져나와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을 따라 걸어갔다. 세찬 바람이 코끝에 스며들어 더욱 한기가 느껴졌는데 이 갈대 길을 따라 걷다보면 형도와 마주하게 될 것 이다. 형도와 우음도 이 광활한 지역에 먼 훗날 고층아파트와 대형위락시설이 들어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송산그린시 티라는 신도시가 들어서고 길은 넓게 뚫려 자동차가 씽씽 달릴 것이며 우리가 촬영하던 그 자리를 커다란 빌딩숲이 대신할 것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나 영화 촬영 팀에게는 황량하지만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줬던 우음도, 그 드넓은 벌판은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개발의 논리로 우리 곁을 떠난 아름다운 풍경들이 그 얼마나 많았던가! 이런 생각들이 물밀듯 밀려오니 마음 한구석 쓸쓸함이 배어나왔다. 남양만의 시린 풍경들 109

110 송산읍 사강시장 입구에서 버스를 타고 서신면 매화리 마을을 찾아간 것은 때 늦은 시간이었다. 언젠가 꼭 한 번 들 러 사진을 찍어야겠다던 화성 매화리 염전풍경은 날씨 탓에 오늘역시도 고전해야 할 것 같다. 매화리 마을은 겨울의 황량함과 쓸쓸함이 옹기종기 모여선 집들이며 바다 쪽으로 나있는 염전에 묻어났다. 하늘은 온 통 잿빛이었고 태양빛은 수그러져 자연에 내맡긴 염전은 아득히 먼 기다림을 안고 펼쳐져있었다. 그것은 이글거리는 여름 한낮의 폭염을 갈망하는 나르시시즘같은 것이었다. 논과 밭 사이 경계를 이루는 제방 언덕을 따라 서있는 염전 창고에는 쓸쓸함이 가득 묻어났다. 난 카메라로 회색빛 하늘과 짙은 검은 색조의 창고 건물들을 큰 사이즈로 렌즈에 담아보았다. 염전창고는 모든 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남루하고 허름한 형체를 띠고 있지만 선과 면을 이어지는 공간구성 요소는 보다 실용적이다. 바람과 공기와 적당한 햇볕만이 이 공간을 지배한다. 검은 콜타르의 목재들은 색이 바래지고 나무 들이 뒤틀리면서 풍화되는 속살을 드러내는데 이 기학적인 구조가 너른 염전에 경계를 이루며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전국의 대표적인 염전은 안면도 두산염전, 부안 곰소염전, 고창 삼양 염전, 영광 백수염전, 신안 염전 등이 있다. 지 금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염전은 소금 생산량이 감소해 점차 사라지는 추세지만 염전창고들은 근대문화유산으 로 보호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 염전은 서해안을 중심으로 발달했는데 이곳 경기만, 남양만의 염전은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 소래염전, 오이도염전, 군자염전, 시흥염전, 마도염전은 모두 대규모 공단이나 간척지로 바뀌었다. 남양만의 염전은 경기도 서신면 백미리와 이곳 매화리 바닷가에 겨우 남아있을 뿐이다. 난 화성 남양만에 오면 왠지 우울하고 멜랑코리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많다. 황량함이 공간을 지배하는 계절 에 이곳을 찾는 횟수가 많아서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풍경은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그 무언가가 있어 내 발길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 화성 남양만 바다가 주는 매력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 또한 나의 편견일 것이다. 적어도 화성 남양만 자연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섬들을 다녀 보면 그러한 생각들은 또 금세 바뀔 것이다. 여타 다른 지역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편안함으로 또 포근함으로 신이 인간에게 주는 자연의 선물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자연그대로의 수수로움과 여유 그것은 화성 남양만의 섬들이 갖는 양면성인 동시에 매력 바로 그것일 것이다. 난 서신면 궁평항에서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수평선 너머 엷은 구름에 감춰진 붉은 해가 하늘을 진홍빛으로 물들이 고 있었다. 바다 끝 저 멀리 아주 작게 보이는 섬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곳 궁평항에서 배를 타고 40분 쯤 가다보면 국화꽃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떠있는 섬 국화도이다. 국화도는 서해바다에 아름다운 꽃처럼 피어난 섬 이라는 뜻이다. 또 이곳에서 많이 채취되고 있는 조개의 껍질인 조 가비가 국화꽃을 닮았다고 해서 섬 이름을 국화도로 불러왔다고 한다. 행정구역으로 화성시 우정면에 속해 있는데 오래전, 난 당진 장고항에서 배를 타고 그 섬에 갔었다. 그 당시 MBC 프 로그램 토요일에떠나볼까 에 출연하여 여행지를 소개하는 코너(이운수와 함께 떠나는 다큐로드)가 있었는데 그때 내가 리포터로 출연하여 소개했던 곳이 바로 국화도였다. 그때 섬을 한 바퀴 돌면서 국화도의 여러 곳을 소개하다가 난 그만 밀물이 들어오는 바람에 섬에 고립될 위기에 처 했었다. 파도가 무릎까지 빠지는 상황에서 마을로 빠져나오는 장면이 카메라에 그대로 생생하게 잡혔는데, 그때 방송 남양만의 시린 풍경들 110

111 된 장면은 의도된 연출이 아니라 돌발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도 난 이 프로그램에서 여러 지역을 소개하며 프로그램을 이끌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장고항이나 왜목 마을에서 바라보면 국화도와 형제처럼 나란히 토끼섬이 떠 있다. 500m 쯤 되는 국화도와 토끼섬 사 이에는 썰물 때 갯바위와 모래밭이 드러나 걸어서 건너갈 수 있다. 국화도 선착장 마을에서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서면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바위투성이인 동쪽 해안과는 달리 조 개껍질과 모래가 적당히 어우러진 천혜의 해수욕장이 활처럼 동그랗게 펼쳐져 있다. 이 해수욕장의 서쪽에는 매박섬 이 있는데 이곳도 토끼섬과 마찬가지로 썰물 때에는 바닷길을 통해 걸어갈 수 있다. 국화도 해수욕장의 동쪽 끝은 바위지대이고 부근의 산자락엔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서 운치를 더한다. 국화도는 5시간 이면 걸어서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섬이지만 일출과 낙조가 장관을 이우는 아름다운 섬이다. 또 남양 만에는 화성을 대표하는 제부도가 있다. 하루에 두 번씩 바닷길이 열리는 모세의 기적 현상으로 유명한 신비한 섬이 다. 12km 해안선엔 등대와 산책길이 바다를 향해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제부도의 명물인 매바위가 환상적 인 자태로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내 일상의 번잡함과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상념이 나를 지배할 때 남양만 바닷가에서 만난 시린 풍경들이 가슴에 와 닿는 매력이 있다. 염전창고에서 보는 건축의 단순성과 소금이 생성되기까지의 원초성 그리고 갯벌, 끝없이 펼쳐져있 는 바람에 느끼는 갈대의 장관은 나를 그곳으로 발길을 향하게 한다. 때로는 복잡다단한 것으로부터의 탈출은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자양분이 되어 내가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 될 것이다. 그것은 남양만 염전의 소금과 같은 것이리라. 남양만의 시린 풍경들 111

112 갱갱이( 江 景 ), 근대건축물 기행 :37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경부 축을 중심으로 아파트 빌딩숲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우후죽순 생겨난 아파트가 우 리 주거생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혹자는 아파트는 주거환경으로 쾌적하고 자산증식의 수단에도 유리하다고 들 말한다. 그러나 난 전적으로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전국의 여러 곳을 다녀보면 아파트나 상가 건물들이 획일화 혹은 몰개성화되어 우리 주거환경을 심히 망쳐 놓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난 살아오면서 아파트를 소유 하려는 계획이나 꿈을 꾼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과거 돈이 없을 때나 생활 형편이 더 나아진 지금에도 아파트에 들 어가 사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아내와 난 그렇게 언약을 했다. 우리에게 아파트란 무엇인가! 아파트는 우리가 살던 동네를 허물어 공동화하고 고층화한 형태이다. 낡은 것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신자유주의의 산물인 것이다. 그것이 인식의 오류일지라도 난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 이다. 우리는 개발논리에 의해 그동안 많은 것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 갔다. 옛것은 그저 낡은 것이라는 도식적 틀에서 크게 벗어나려 하질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충남 논산 강경읍에 가면 옛 것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느끼게 하는 그 무언가 가 있다. 강경에 남아 있는 옛 건물들을 보노라면 오랜 친구처럼 친숙하다. 진한 포도주처럼 그윽한 향이 난다. 강경은 근대건축물의 보고로서 그 흔적들이 다른 지방에 비해 제법 남아 있다. 개발의 바람이 불지 않은 탓에 보기 갱갱이( 江 景 ), 근대건축물 기행 112

113 드문 근대건축물의 잔류지로 남아 있는 것이다. 한때 김영삼 정부 시절, 근대 건축은 치욕의 역사로 생각해 중앙청을 비롯한 많은 옛 건물이 허물어졌었는데 참 안타 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우리 삶의 흔적들인데 그것을 없앤다고 해서 과거가 청산되고 치유될 수 있겠는가! 일제 강점기 일본식 가옥과 관공서 등 건물이 갖는 역사성, 희소성 그리고 예술적 가치를 감안할 때 근대건축물은 치 욕의 상징물이 아닌 우리 문화의 일부분일 뿐이다. 이슬람 건축문화는 아시아 인도 타지마할에서 유럽 이베리아반도 스페인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까지 그 문화가 서 로 융합하고 예술적 경지의 찬란한 건축문화를 꽃피우지 않았던가! 일제 식민지 시절 건축되었던 건물들이 한국 건축 문화와 융합하며 발전해야 하는 것인데 우린 그동안 너무 옛 것을 홀대한 측면이 분명 있는 것이다. 문화란 그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것이고 공간적으로도 교류를 통해 영향을 받으며 진화되어 가는 것이다. 난 이곳 강 경읍에서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이러한 생각들을 참 많이 했다. 난 드라마 '빛과그림자' 에서 70년대 배경을 카메라에 담을 장소로 이곳에 들렀었다. 충남 논산 강경은 시대극을 촬영 해야 하는 입장에서 반드시 찾아야 하는 곳이다. 강경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난 시장 한복판을 가로질러 읍사무소 방향으로 걸어갔다. 직선으로 길게 뻗은 거리에는 오 래된 건물들이 제법 눈에 띠었는데 이 동네가 중앙동이다. 이 동네를 중심으로 영화나 드라마 시대극 세트장으로 써 도 될 만큼 옛 모습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 길로 100m 쯤 가다보면 논산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근대식 교육기관인 강경중앙초등학교가 나온다. 이 학교 건물 운동장 옆으로는 강당이 있는데 1937년 준공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 고 있다. 천장이 높은 단층 건물로 근대교육시설 중 강당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맞은편 골목길에 위치 한 국내 유일의 한옥 예배당인 북옥감리교회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건물이다. 1918년 지어진 이 교회는 유교 풍 습에 따라 정문에 2개의 문을 따로 내어 남녀의 출입을 구분했다. 예배당 중간에도 커튼을 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남녀평등을 구현해야 하는 종교에서 이 같이 따로 구분해 놓은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생각했다. 강경에는 1905년 지어진 한일은행, 1925년 건축된 강경노동조합, 또 수많은 조합원이 소속돼 있던 마차조합 건물, 호 남 제일의 병원으로 개업했던 호남병원, 용도에 맞게 변신을 거듭해왔던 해운장 건물 등은 19세기의 건축물들이다. 건물외관의 창틀이며 빛바랜 색들이 시간이 정지된 듯 남아 있는 것이다. 강경엔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건물들이 다수 남아있지만 기실 수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등록문화재로 지정할 만 한 명분과 가치가 있는지의 여부가 그것이다. 특정 건축물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는 기준은 참 모호한데, 단순히 건 물외관의 형태, 색감, 재료 또는 시대적인 상징성 더 나아가서는 주변과의 적절한 조화가 그것인데 내 기준으로 보면 이에 못 미치는 것이 더 많다. 난 시대적인 드라마를 꽤 많이 해 온 편이다. 가끔 난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어느 특정한 건물을 놓고 촬영스텝들과 옥신각신 다툼이 벌어지곤 한다. 작품속의 특정한 건물과 소도구를 놓고 "넌 시대극을 얼마나 해봤는데! 네가 알고 있으면 또 얼마나 알아! 혹은 넌 그 시대를 살아봤니! 등등 온갖 치졸한 싸움이 벌어지곤 한다. 그래서 시대극은 늘 논점의 정점에 서 있는 것이다. 사실 그 논쟁의 씨앗은 그 시대를 경험해보지 않은 이상 우린 그저 관념적인 수준에 머물기 때문이다. 강경읍내 중심부인 강경역에서 대흥시장과 강경초등학교 그리고 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서 언덕길을 따라 오르면 강 경 읍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옥녀봉이 나온다. 이곳에는 느티나무 군락이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카메라 갱갱이( 江 景 ), 근대건축물 기행 113

114 앵글을 그 어디에 들이대도 멋진 풍경을 담을 수 있다. 느티나무 옆의 구멍가게는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 눈에 걸렸는 데 현대화라는 허울이 이곳에도 찾아왔구나 생각하니 조금은 씁쓸했다. 옥녀봉에서 남쪽 계단을 따라가면 강경포구가 나온다. 황산포구 제방을 따라 고깃배가 전시되어 있는 모습이 보이고, 흐르는 물줄기 한쪽에 서있는 등대가 희미한 옛 추억을 자극한다. 강경으로 흘러드는 황산리 금강 줄기는 곡창지대의 젖줄이자 교통 인프라였다. 조선시대에는 여각, 객주, 상선을 갖 춘 거상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원산항과 함께 2대 포구였고 평양, 대구와 함께 조선말 전국 3대 시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봄에서 여름으로 접어드는 시기에는 하루에 백여 척의 배가 드나들었다. 민어, 홍어, 새우 등 서해의 각종 해산물이 이곳으로 입하되고 또 전국으로 공급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농산물과 포목시장도 호남 제일의 규모를 자랑했는데 1960년대까지만 해도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전국에서 모여든 상인들로 생기가 넘쳤다. 금강하굿둑이 건설되고 물길이 막힌 지 오래됐지만 지금도 국내 최대 젓갈시장으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강경읍을 일컫는 사투리로 갱갱이 라는 말이 있는데 이 지역 사람들이 함께 모이면 우리 갱갱이 사람들이라고 부 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야트막한 산과 평야를 가로질러 굽이치는 강의 경치가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 다. 갱갱이라고 불리는 강경은 근대 건축물과 젓갈시장으로 세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강경은 일찍이 수산물 도매상을 하는 일본인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자녀를 위한 소학교를 세우는 등 근대화에 박차 를 가해 강경을 변모시켰다. 1902년 우편취급소가 충남에서 최초로 설립되어 우체국 고유번호가 충남 1번이었다. 법 원, 면사무소, 상업학교, 전매서, 경찰서 등 대부분의 관공서가 이미 1910~20년대를 전후해서 세워졌다. 1920년대 도 내에서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고 이 지역만을 위한 화력발전소가 대흥리에 세워질 정도였다. 상하수도도 이때 놓였고 호남지역 최초로 강경극장도 세워졌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 지리적인 교통 사각지대로 남으 면서 예전의 활력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이곳을 보기 드문 근대 건축물의 잔 류지로 만들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이 논산 강경은 다양한 형태의 건물이 많이 남아 있어 관광 자원으로서의 가치도 크다. 영화나 드라마에 있어서도 시대적 배경을 표현하는 공간으로서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MBC미니시리 즈 내 마음이 들리니 촬영도 이곳 쌀가게가 있는 시장에서 그 시대 상징성을 드라마의 배경으로 표현됐다. 근대문화유산은 그 대상과 영역이 확대되어 주택, 학교, 교량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강경시장 오일장도 무형의 우리들의 유산이다. 전국의 근대건축물이 남아 있는 지역을 다녀보면 우리가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들이 눈에 많이 띤다. 근대건축물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은 중요하다. 또한 그 대상과 주변과의 관계를 고려 하여 적절하고도 미적 기능이 가미된 공간을 형성해야 할 것이다. 각 지역의 특수한 환경이나 여건을 고려하여 문화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풀어가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언젠가, 난 서울역사박물관 현관에 전시되어 있는 수도 서울의 1930년대의 사진을 보면서 서울이라는 도시가 참 아름 답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전통과 현대성 건축물이 가미된 배치였고 자연의 품안에 안긴 모습이었다. 유럽 중세 도시 의 고풍스러움이 여행객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듯 난 이 사진을 보며 충남 논산 강경읍이 오버랩 되었었다. 여행 중에 강경에서 보았던 근대건축물이 오래토록 내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 있기를 기대해보는 것이다. 갱갱이( 江 景 ), 근대건축물 기행 114

115 설매재와 진돗개(왕의남자) :15 내게 있어 여행이란 흔들리는 갈대숲을 지나 개울을 건너고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서 소낙비를 만나고 하루에 두 서 너 번 밖에 다니지 않는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의 기다림을 배운다. 한낮 이글거리는 태양은 어느새 그 빛을 잃어 코 발트 색채를 띨 때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 단 둘이 남아 있는 촌로와의 어색한 눈 마주침 여행은 늘 낯선 것으로부터 새로운 만남을 통해 진정한 여행의 참뜻을 깨닫게 한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 에서처럼 여행길은 늘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남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의 미련과 회한 같은 것이리라! 그래서 난 때로 는 길 위의 고독한 방랑이고 여행자이다. 올해 들어 나의 첫 여행지는 설매재에서 시작되었다. 이곳은 양평 용문산 장군봉을 마주하고 있는데 여름이면 산 전 체를 소금을 뿌려놓은 듯 개망초 꽃이 산 전체를 감싸고 있는 곳이다. 몇 해 전, 한국영화 사상 천 만명이 넘는 관객 을 동원한 왕의 남자 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난 그 여느 때처럼 드라마 촬영지를 찾아 여행길을 나섰다. 드라 마 에덴의동쪽 에 나오는 산속 외딴 집을 찾아 나섰는데 난 우연히 설매재 중턱의 다 쓰러져가는 농가 한 채를 발 견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주인은 온데간데없고 마당 한구석엔 진돗개와 그 새끼인 강아지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 고만 있을 뿐이었다. 참 이상한 것은 그 집의 낯선 침입자인 나를 보고도 짖지 않고 경계심 또한 전혀 갖지 않은 것이었다. 가끔 시골 길을 걷다 보면 간혹 심심하고 무료할 때 mp3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을 따라 부르며 길을 걷곤 한다. 내 좋 아하는 음악을 따라 부르며 나만의 자유를 만끽할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면 그것은 멍멍멍 개 짖는 소 리였다. 내 안의 자유를 방해받고 있다는 그것만으로 개들은 항상 내게 적이 되는 것이다. 드라마 촬영스태프 중에 한여름 매미소리를 가장 증오하는 팀이 있다면 촬영현장 연기자의 섬세한 목소리를 담아야 설매재와 진돗개(왕의남자) 115

116 하는 동시녹음기사일 것이다. 그들은 무조건 매미를 싫어한다. 타협과 용서도 없다. 그들은 대자연의 악연으로 만난 숙명적인 절천지 원수인 셈이다. 나 또한 여행 중에 나만의 자유를 방해하는 자 있다면 그 대상을 좋아할 리 없지 않 은가! 멍멍멍' 나도 따라 '멍멍멍' 워우워 따라 부르는 팝송과 '멍멍멍' 개 짖는 소리의 절묘한 부조화의 하모니! 바 로 그것이었는데 그 고정관념의 공식이 깨진 느낌이다. 내가 그 외딴집을 나와 산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을 때 그 진돗개는 나를 따라나섰다. 조금도 경계의 눈초리를 갖지 않고 진돗개는 먼 길 산행의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진돗개가 왜 나를 따라왔는지 참 알 수 없는 이상야릇한 일 이었다. 순간 아둔한 내 머릿속을 스치는 것은 내 배낭 속의 감춰진 식량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배낭을 풀어 헤쳐 강아지에게 먹을 것을 건네주었다. 강아지는 허기진 듯 개걸(?)스럽게 먹어댔지만, 어미 진돗개 는 전혀 입에 대지 않고 따라 온 길 흔적을 남긴 채 따라오고 있었다. 한참동안 그 개는 먼 길을 따라왔는데, 그 외 딴 집에서 너무 멀리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은근히 진돗개가 걱정 되었다. 난 몇 번이고 진돗개를 쫓아 버리 려 애썼지만 진돗개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왜 나를 따라왔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를 졸졸 따라왔던 어린 진돗개는 내 배낭 속에 든 식량 때문이었을 것이 고, 그 어미 개는 어린 새끼가 염려돼서 따라온 듯싶다. 그렇게 한참을 설매재 정상을 따라나섰던 진돗개도 이제는 안 되겠는지 어린 새끼를 데리고 내 시야를 벗어났다. 난 진돗개와 그 어린 새끼가 간 길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그 어미 진돗개와 새끼는 자기의 집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는 것일까? 아주 먼 길인데! 나의 시선은 자꾸 멀어 진 그 길 진돗개를 향해 있었다. 난 설매재 정상에서 드라마 바람의화원 세트장인 초가집을 둘러보고 중미산이 보이는 도로를 나와 양수리 두물머 리를 찾아갔다. 두물머리는 북한강과 남한강 두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곳에는 수령 4백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강을 바라보며 서있는 모습이 무척 서정적인데 이른 아침 안개 낀 강가에서, 석양 빛에 물들어가는 강물에서, 눈발이 강위로 날리는 모습에서, 별과 달이 강물에 어릴 때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오랜 세 월 함께 했으리라! 난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이 같은 장면을 셀 수 없을 정도로 촬영했다. 드라마 에덴의동쪽 에서도 극중 주인공 동철 (송승헌 분)이 양수리 두물머리 나룻배에서 유골을 뿌리는 장면을 촬영했다. 유골뿌리는 장면은 이곳이 상수원보호구 역이라서 원래 이 같은 행위가 금지되어 있는데 우린 이 규정을 무시하고 촬영을 감행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드라마 제작 특성상 보편적인 상식의 틀에서 벗어날 때가 참 많다. 그렇기에 촬영팀은 시장 잡배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리한 촬영스케줄과 밤샘촬영 그리고 쪽대본, 방송스텝의 열악한 처우 등은 한국 드라마의 현주소이다. 불편부당한 제작환경은 그 언제쯤 개선될 수 있으려나! 이곳 두물머리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절집인 수종사가 있는데 수종사 계단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가다보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은행나무이 다. 벌거벗은 은행나무 가지에서 봄이 움터오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데 안내판을 들여다보면 수령이 오백 년도 더된 나무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세조가 이곳에 와서 식수한 것이라는데 모진 비바람을 맞으며 버텨온 인고의 세월이 놀랍기만 하다. 계단을 따라 해탈문으로 들어서면 아담한 대웅전 처마 밑에서는 짤랑짱랑 하는 풍경소리가 귀전을 울린다. 절집 마당은 한가로움이 묻어나는데 한쪽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다원 삼정헌 이 보인다. 꽁꽁 얼었던 강 물이 풀리고 매서운 바람도 한결 부드러웠지만 아직은 봄을 말하기엔 이르다. 강물이 금빛 햇살에 하얗게 부서지는 모습이 저 멀리 보인다. 양수대교를 건너는 차량이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난 이제 어디로 가야 겠는데 방향을 정하 지 못한 채 절집 마당을 서성거렸다. 내겐 찾아야 할 헌팅장소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고 또 찾아내야하는데,... 양수리 두물머리의 강물은 저녁 햇살에 은빛물결로 부서진다. 난 여기에 그대로 남아서 저녁 해가 강물 속으로 빠져 드는 것을 바라볼 수 있으면 했다. 부드러운 저녁바람이 나를 감싸는 절집마당에서 총총 별이 내 어깨위에 내려앉는 풍경을 난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난 그 풍경을 마음속에 그리며 이곳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여행에서 느껴지는 자유와 여유로움 그리고 행복의 순간을 느끼기도 전에 발걸음을 재촉해야 하는 서글픔! 낭만적인 여행은 내게 한 여 름 밤의 꿈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양수리 두물머리가 내려다보이는 수종사 절집 마당에서 난 봄이 오고 있음을 난 느끼고 있었다. 설매재와 진돗개(왕의남자) 116

117 내 흐린 기억속의 섬 여행 :33 가끔 바다가 그리울 때면 낡은 작업복 바지에 쥐색 티셔츠를 걸쳐 입고 인천을 찾곤 했다. 한참을 먼 바다를 바라만보다가 쓸쓸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인천 자유공원 근처 담쟁이넝쿨 드리워진 창문에서 흘러 나오는 피아노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추곤 했다. 늦은 밤 전철에서의 달콤한 선잠, 애틋한 그리움과 동경이 남아있는 인천으로 난 발길을 향하는 것이다. 전철 1호선 종착역인 하인천에 내려 북성동 차이나타운을 지나 낡고 오래된 집들과 빨간 벽돌창고들이 남아있는 만석부두로 갔 다. 닻에 정박되어 있는 작은 배는 넘실대는 파도에 흔들리고 있었고 갈매기는 허공을 맴돌았다. 난 음울한 회색빛깔 의 바다와 공장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퀴퀴한 냄새가 짠 공기와 섞이면서 인천을 방문할 때마다 그리 기분이 유쾌 하지는 않았다. 그 어느 해 무더웠던 여름방학, 친구 몇몇이서 덕적도 서포리해수욕장에 갔던 기억이 있다. 덕적도 서포리해수욕장은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꽤 먼 거리의 섬이었다. 당시 어린 나로서는 심한 뱃멀미로 고생했는 데 그때 경험한 첫 번째 기억 하나는 여행이란 결코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바로 그것이었다. 우린 첫날 태풍이 심하게 불어 덕적도로 가는 배를 타지 못하고 인천연안부두 근처 어느 허름한 여관에서 잠을 자야 했다. 태풍으로 인해 발이 꽁꽁 묶인 채 낡은 TV수상기를 통해 간간이 들려오는 태풍속보에 귀를 기울였다. 이튿날 아침 태풍은 수그러져 우린 배를 탈 수 있었지만 넘실대는 파도 탓에 선박에서의 긴 여행길은 여간 고통스런 것이 아니었다. 긴 항해로 인한 심한 뱃멀미와 지치고 배고픈 기억들, 그러나 우리가 배를 타고 너 댓 시간 걸려 도 착한 덕적도 서포리해수욕장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게 했다. 길게 뻗은 해안선 수평선 너머 붉은 낙조가 바닷물 에 붉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바닷가 갯벌엔 가족들이 함께 조개잡이 모습이 영화의 실루엣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것 은 인천의 섬들을 여행하면서 떠올리는 첫 번째 인상이다. 또 내가 인천 앞바다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백령도를 한 번 간적이 있었는데 인천이 고향인 벗이 내게 들려준 말이 생각나서였다. 그녀는 인천에 살면서 배를 타고 섬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회가 되면 나와 함 께 백령도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던 그 말이 내 귓가에 쟁쟁하게 울렸다. 그 친구는 학교 졸업을 다 마치지 못한 채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백령도는 서해 최북단의 섬으로서 왕복 10시간이 더 걸릴 정도로 아주 먼 뱃길이었다. 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내겐 큰마음 먹고 떠나온 여행길이었다. 이른 아침 인천 연안부두에서 백령도로 출발한 배는 5시간 만에 용기포에 닻을 내 렸다. 난 길게 뻗은 해안가 도로를 따라 걸어갔다. 간간이 지나치는 군용트럭과 해안초소가 눈에 자주 들어왔는데 북 방한계선에 인접한 탓인지 여행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꽤 먼 거리를 걸어서 도착한 곳은 두무진이라는 해안이었다. 난 회색물빛 흰 파도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불어오는 바람을 안고 해안을 바라보았다. 수 천 년을 이어져 온 바람에 닳고 파도에 깎이면서 기묘한 형상을 한 자연이 만들 어놓은 예술품을 보면서도 마음의 동요조차 없는 내 모습이 안타까웠다. 아니 쓸쓸함을 노래하는 내 젊음을 오히려 내 흐린 기억속의 섬 여행 117

118 한탄했다. 백령도 두무진의 해안절경 그것은 내게 묵언의 바다였고 상심의 바다였다. 내 젊은 날의 모습은 그토록 슬픈 애가였 다. 쓸쓸함이 배어있는 해안선, 바다는 말이 없고 허망한 잡념들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허허로움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는데 난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바다를 향해 서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길게 늘어선 코끼리바위, 선대 암, 장군바위, 형제바위 등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을 바라보면서 난 그 이름을 새롭게 갖다 붙였다. 이젠 굿바이, 이젠 아듀, 이젠 작별... 난 파도에 부셔지는 그 이름을 실어서 하나 둘씩 바람에 날려버렸다. 그 소리는 파도와 어우러져 장엄한 교향악처럼 두무진 해안가에 울려 퍼졌다. 백령도는 그런 추억이 남아 있는 인천의 섬들을 여행하면서 떠올리 는 두 번째 인상이다. 내가 인천을 자주 찾는 또 다른 이유는 드라마적 공간이 많이 남아서이다. 내겐 보물 상자와도 같은 이곳은 세월을 비켜간 흔적의 모습들이 많이 남아있다. 허름한 항구도시로서의 면모와 바닷가 장면을 표현하는데 이곳만큼 최적인 장소도 드물다. 서울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주로 인천에서 자주 촬영하곤 한다. 이곳에서 촬영된 드라마는 수 없이 많은데 주로 항구를 배경으로 한 폭력물이거나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다룬 바닷가 장면의 멜로가 주류를 이룬 다. 내가 기억하는 작품만으로도 피아노 천만관객을 돌파한 영화 실미도 그리고 시월애 또 TV를 통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천국의계단 풀하우스 등 헤아릴 수 없다. 최근에 드라마 꽃보다남자 도 인천 을왕리 해수욕장에서 촬영했다. 난 을왕리 해수욕장 주변에 오면 어지러운 입간판의 음식점과 볼품없어 보이는 건물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 곤 한다. 세상에 이처럼 자연적인 경관과 인공적인 부조화가 극명하게 남아있는 곳이 또 있을까 싶다. 배를 타고 들어가서 촬영해야 하는 섬인 무의도, 실미도는 비교적 서울과 인접해 있어 촬영팀이 자주 찾는 촬영지이 다. 이곳 역시도 바다풍광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비교적 촬영하기에 무리가 없고 적당한 분위기의 풍광을 두루 갖추 고 있어 이곳을 찾게 된다. 무의도 하나개해수욕장에서 하나개는 큰 개펄 이라는 뜻이다. 썰물 때 백사장 바깥으로 개펄이 넓게 드러나는데 이 곳에서의 일몰 장면은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또 무의도는 하나개해수욕장과 실미해수욕장으로 유명한데 천만관객 동 원에 성공한 영화 실미도 군부대 세트가 이곳에 들어섰었다. 영화가 끝난 뒤 이미 철거가 된 뒤라 내겐 아쉬움이 많이 남아있다. 환경이냐 혹은 관광산업적인 측면의 자원을 놓고 각자 판단의 몫은 자유이지만 영화 속의 장소를 보 려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군부대세트장 철거는 아쉽기만 하다. 드라마 천국의계단 에서 극중 어린 정서(최지우 분)와 아버지가 함께 살던 바닷가는 무의도 하나개해수욕장이다. 정서가 어렸을 때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골을 바다에 뿌리는 장면도 이곳에서 촬영됐었다. 또 정서의 아버지가 지은 집인 세트장이 이곳에 세워져 있는데 드라마 첫 회에서 송주(권상우 분)가 피아노 치는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드라마 천국의계단 극중 주인공인 연기자 최지우를 알게 된 것은 그녀의 초창기 무명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MBC 공채탤런트 출신으로 큰 키에 말라깽이인 최미향이라는 본명을 가진 그녀가 혼신을 다해 연기하는 모습이 내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그녀와 함께 했던 드라마 전쟁과사랑 신귀공자 작품에서 연기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한류배우로 자리매김할 줄은 난 예전에 미처 몰랐었다. 인천 옹진군 북도면에 위치한 신도, 시도, 모도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연인' '풀하우스' '슬픈 연가'의 촬영 무 내 흐린 기억속의 섬 여행 118

119 대이다. 3개의 섬이 연도교로 연결돼 있는데다 서울에서 영종대교를 건너면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촬영팀들이 이곳을 찾는다. 섬의 맏형격인 신도에는 드라마 '연인'의 세트장이 있는데 영종도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섬 북서쪽 야산에 위치하고 있다. 신도와 모도 사이에 위치한 시도는 다리가 놓여 있어 섬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이곳에는 하얀 별장처럼 보 이는 드라마 '슬픈 연가' 세트장이 북쪽 해안 소나무 숲에 자리하고 있다. 이 세트장에서 왼쪽 솔숲 사이로 난 나무계 단을 따라 내려가면 아담한 해변이 나온다. 또 이곳에서 드라마 '풀하우스' 세트장까지는 해안선을 따라 약 700m 거 리에 있는데 드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다. 그 너머로 강화도 마니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풀하우스' 세트장이 있는 수 기해수욕장은 고운 모래해변과 드넓은 소나무 숲이 인상적이다. 극중 작가 지망생 지은(송혜교 분)과 한류스타 영재 (정지훈 분)의 사랑 이야기가 곳곳에 남아 있다. 삼형제 섬의 막내인 모도는 70여 가구가 사는 작은 섬인데 바다 건너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가로등과 분주하게 이착 륙하는 비행기들의 불빛이 보인다. 어둠 속에서 이 불빛들을 보고 있노라면 낯선 세상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아득히 먼 수평선 너머엔 고요만이 남아 있고 고깃배들이 켜놓은 불빛들이 아늑하게 펼쳐져 있다. 어두컴컴한 밤바 다, 배를 인도하는 등대불빛을 바라보며 난 우두커니 그 자리에 한참을 서있었다. 낯선 곳으로의 섬 여행! 내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여행을 통해 기쁨과 위안을 얻는다. 인천 앞바다에서 지난날 아련 했던 젊은 날의 추억과 드라마 속 이야기를 따라 여행하다 보면 새롭게 느껴지는 여행의 참 묘미가 있다. 드라마 천 국의계단 에서 송주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난 이렇게 바꿔 불러본다. 여행은 새로워지는 거 야! 내 흐린 기억속의 섬 여행 119

120 내가 만난 경주 천년의 이야기(왕릉 편) :31 천 년 고도의 도시 경주를 누구나 한번쯤은 방문해 보았을 것이다. 수학여행 혹은 신혼여행이든 나름 테마가 있는 여행지로서 손색이 없기 때문에 이런저런 이유로 찾게 되는 곳이 경주이다. 중학교 2학년 때, 경주로 수학여행 답사 왔을 때를 기억했다. 수학여행을 앞둔 설렘과 기대감은 한껏 부풀다 어느 순 간 펑 하고 터져버린 고무풍선처럼 씁쓰레함이 내 마음 한구석 자리 잡고 있다. 학교 울타리를 벗어난 해방감은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한껏 고무되어 단체 답사코스인 불국사나 첨성대 따위는 애당초 관심이 없다. 오로지 몇 몇 녀석들과 작당해서 잠자는 친구 얼굴에 치약을 잔뜩 묻혀놓고는 킥킥대며 재밌어 하던 일들이 내겐 더 진한 추억 으로 다가오는 것인데, 하긴 여행지의 추억이 별것이겠냐 만은 그래도 경주 불국사를 보긴 봤는데 그 느낌이 새롭지 않다거나 전혀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없었다면 그 수학여행에서 허상을 본 것이리라! 문화재를 구경하는 친구 녀석들 개중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수첩에 빼곡히 나름 유물에 대한 설명을 적어 넣는 녀석이 있는가하면, 한참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녀석도 있었다. 그렇지만 난 어떤 태도로 구경했는지 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찬란했던 신라시대의 유물들을 바라보아도 별다른 감흥이나 느낌이 없었기에 그에 대한 추억 또한 내겐 있을 리 없 다. 문화재에 대한 호기심을 떠나 여행자로서의 답사태도로 보면 난 거의 절망적인 수준에 가까웠다. 그렇기 때문에 경주는 너무도 재미없고 따분하고 의미 없다는 인식이 내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경주는 늘 그런 모습으로 내게 남아있었다. 그 기억 속에는 경주의 찬란한 문화유산들은 그저 관념으로만 머물다 연기처럼 사라질 뿐이었다. 그 허 내가 만난 경주 천년의 이야기(왕릉 편) 120

121 망함이 마음을 짓누른다. 그 후 난 이런저런 이유로 경주를 여러 번 와보았고 올 때마다 문화유적, 유물을 바라보는 그릇된 선입견은 오랫동안 나를 지배하고 억압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경주를 다시 찾은 것은 지난 늦가을이었다. MBC 창사50주년특별기획 드 라마 빛과그림자 촬영지를 찾아 경주로 다시 오게 된 것이다.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렸을 때 길가 가로수 나뭇잎들은 바람에 떨어져 보도 위를 나뒹굴고 있었다. 늦가을의 서정 이 물씬 풍겨나는 길을 따라 걸었는데 어느새 내 발길은 성동시장 이라고 표시된 이정표를 따라가고 있었다. 시외 버스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제법 오래된 시장이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난 지방을 여행할 때 꼭 바쁜 일이 아니면 시장을 먼저 둘러보는 습관이 있다. 그 시장을 돌아다니다보면 눈요깃거리가 있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물건을 흥정하려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내 나름대로 그 지역의 특징을 가늠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장이 활기차고 침체된 정도의 차이는 각 점포마다의 색깔과 톤 그 시장의 형태와도 연관되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곧 마을과 읍내 그리고 도시를 형성하는 단초가 된다. 난 시장좌판에서 두 서너 개의 풋풋한 사과와 커피를 사면 왠지 내가 부자인 것처럼 기분이 환해지는 것이다. 난 시장을 벗어나 시내 한복판을 가로질러 걸었는데 중앙로의 화려한 상점 간판들이 도회지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했다. 어느 상점 길모퉁이를 돌아서자 길게 뻗은 도로 양 옆으로 커다란 몇 기의 고분들이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띠었다. 가까이 다가서니 관광안내판에는 노동리 고분 그리고 길 건너편에 있는 것은 노서리 고분임을 알리는 글귀가 적혀있 었다. 노동리 고분은 봉황대라고도 부르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 무덤에는 고목들이 자라고 있는 것이 보였는데 마치 신라왕이 면류관을 쓴 것처럼 찬란했던 신라 천 년의 영욕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 같았다. 비밀을 간직한 채 수 백년의 풍파를 견뎌낸 고목나무는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에 신비한 색채를 띠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예전에도 난 이곳을 스쳐지나갔을까! 과거에도 지금의 모습처럼 남아 있던 것이 오늘에서야 새삼 내게 새롭게 다가오 는 의미는 무엇일까! 시대를 거치면서 사람들마다 느껴왔던 수많은 기억들 그리고 역사의 흔적! 난 처음 보는 생경한 풍경 속으로 블랙홀처럼 빠져들었다. 백제 사람인 내 몸 안의 백제사람인 유전자 DNA는 그대로 남아 있어 경주를 방 문한 낯선 이방인처럼 이 거리를 분명 서성거렸을 것이다. 난 큰 도로 횡단보도를 건너 대릉원으로 갔다. 대릉원 안에는 미추왕릉을 비롯하여 천마총과 황남대총이 있었는데 천 마총에 이르러서는 5~6세기에 축조된 어느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그 무덤의 위용 앞에 넋을 잃는다, 이 무덤에서 금관을 비롯한 많은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하는데 난 출토된 유물을 복제품으로 만들어놓은 무덤의 내부를 들어 가 보았다. 그 내부에는 여러 가지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내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진짜가 아닌 이미테이 션용이라서 그랬을까! 난 무덤전시관에서 나와 대릉원의 여러 무덤들을 보면서 큰 무덤과 작은 무덤의 배치, 간격, 선과 선을 이어주는 곡 선, 겹겹이 둘러싸인 산세를 품안에 안은 고분을 보면서 그것은 유물이기이전에 하나의 미술품으로 단정 지었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가 4각형 토대에 측면은 3각형을 이루도록 돌이나 벽돌을 쌓아올려 한 정점에서 만나도록 한 장제형 건축물이라면, 신라고분은 대자연의 품안에 안긴 곡선의 미학이라고 해야 할까! 엄마의 젖가슴을 물고 있는 갓 난 아기의 표정처럼 아주 편안한 느낌으로 내게 다가오는 것이다. 난 저녁 때 쯤 연출자와 앞으로 촬영해야 할 장소를 들러보고는 경주시내에 있는 노서리 고분이 내려다보이는 모텔 내가 만난 경주 천년의 이야기(왕릉 편) 121

122 에 여장을 풀었다. 창문을 열고 밤공기를 들여 마시며 가로등 불빛에 은은하게 모습을 드러낸 왕릉을 바라보았다. 어 찌 보면 이곳은 신라왕족이 묻힌 공동묘지라서 으스스해야 할 테지만 마음은 이상하게도 편해져 옴을 느낀다. 난 경 주에 온 첫날! 신라 왕족의 무덤 옆에서 그렇게 세상모르게 편안한 잠을 잤노라! 아침에 눈이 깨어 창밖을 보니 엷은 구름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왕릉이 신비감을 더해주었다. 난 시내버스를 타고 남 산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산으로 가는 코스는 여러 길이 있지만 난 포석정에서 가까운 삼릉으로 갔다. 삼릉입 구에 내리니 아침햇살에 소나무 숲 사이로 새어드는 빛줄기가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난 예쁘게 놓인 돌다리를 지나 소나무 숲길을 따라 경애왕릉으로 갔다. 이 왕릉을 중심으로 해서 소나무 숲이 삥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 우아한 기품 에 난 매료되었다. 난 경애왕릉을 벗어나 신라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 무덤이 한데 모여 있는 삼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삼릉은 매력적인 여성의 젖가슴처럼 뾰족하게 솟은 것이 눈길을 끌었다. 내가 경주에서 보았던 왕릉들은 하 나같이 제각기 다른 모습을 띠고 있었는데 보는 이의 입맛으로 보면 한마디로 산해진미가 따로 없다. 진수성찬이 아 닐 수 없다. 난 삼릉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남산에 올랐다. 남산은 신라의 왕도였던 경주 남쪽에 솟아 있는 금오산과 고위산 두 봉우리를 비롯하여 도당산, 양산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통틀어 남산이라고 부른다. 남산은 발길 닿는 곳마다 수많은 불적이 산재되어 있는 곳이다. 삼릉계곡을 따라 산길을 조금 오르면 불상이 보였고 또 조금 더 가면 또 암각화 된 불상이 보였고 또 바위에 새겨진 불상이 또 나타났는데 그 누군가의 말대로 진기한 보 물들이 널려있는 야외박물관이라는 말이 하나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난 암각화 된 불상을 원경으로 촬영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풍경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치렁치렁 귓전에 울려 퍼 졌고 상선암 지붕굴뚝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난 상선암 옆으로 난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오봉 정상이 보였다. 산은 그리 높지 않았지 만 경주 시내가 멀리 한 눈에 들어왔다. 난 발걸음을 옮겨 남산에서 계곡이 가장 길다는 용장골을 따라 걸었는데 갑 자기 돌풍이 몰아쳤다. 회오리바람이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있는 삼층석탑에도 불어왔는데 천년의 위용을 간직한 삼층석탑은 미동조차 없었다. 이곳 용장사삼층석탑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뛰어났다. 난 계속해서 용장사터로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하산한다는 것에 마음이 걸렸다. 그래서 오던 길을 되돌아 갔는데 그 때 마침 산 정상 갈림길에서 용장사삼층석탑 가는 길을 물어보았던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이들은 반석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내게도 커피 한 잔을 권하는 것이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우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 데 그들은 TV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 때문에 이곳 남산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산 칠 불암은 꼭 가보라고 내게 일려주었다. 그들이 일러 준대로 난 칠불암으로 향해갔는데 가는 길은 멀고 지루했다. 그런 생각이 미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개 한 마리가 내 뒤를 졸졸졸 따라왔다. 이 높은 곳까지 그 개가 어떻게 올라왔는지 또 왜 이곳까지 왔는지 난 의아했 다. 난 개한테 다가서며 너 왜 날 따라오는 건데! 너 혹시 칠불암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니! 알고 있다면 날 그리로 안내해 줄래! 했더니 그 개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것이었다. 난 이영재에서 고위봉으로 가는 산길을 따라 걸었다. 1.5km 쯤 되는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걸었더니 나무푯말 로 조그맣게 쓴 신선암 이정표가 보였다. 아슬아슬한 벼랑길 모퉁이를 돌자마자 커다란 바위에 조그맣게 암각된 마애 보살반가상이 보였다. 신선암에서 굽어보는 칠불암은 형체가 아주 작게 보여 어떤 모습인지 분간할 수 없었지만 기암 내가 만난 경주 천년의 이야기(왕릉 편) 122

123 절벽사이로 숨어 있는 듯한 모습은 멋져보였다. 난 산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다가 어느 순간 대나무 숲길을 빠져나오 자마자 곧 칠불암이 나타났다. 고색창연한 암자일 것이라는 내 추측은 벗어나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암벽에 새겨진 칠불암마애불상군은 말 그대로의 보물이었다. 불상의 조형미와 선으로 이어지는 곡선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거기에다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상을 바라보니 경외감 마저 들었다. 이곳 칠불암을 찾은 신도들이 방안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온 듯 절 마당은 왁자지껄했다. 난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러고 보니 난 오늘 하루 종일 먹은 것이 없었다. 등산객 부부가 내게 건넨 커피이외에는. 난 칠불암에서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평평한 길이 곧 나타났는데 난 개울가에 돌을 쌓아 만든 탑에 돌을 한 개 올려 놓고는 통일전으로 발길을 옮겼다. 산에서 거의 내려왔을 때 저만치 마을이 보였다. 마을 어귀 텃밭에는 농부가 일하 고 있었고 산에서 보았던 그 개가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난 그 개에게 넌지시 말했다, 넌 등산이 취미로 구나! 그 마을을 벗어나자 두개의 탑이 보였다. 이 남산리 삼층석탑은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형식을 달리하는 두 탑이 동서를 마주하고 서 있었다. 난 두 탑이 서있는 불탑사 절 안으로 들어가 보았는데 스님은 간데없고 객이 홀로 남아 있다. 이 절을 벗어나자 연못 한가운데 이요당이라는 소박한 정자가 눈에 들어왔고 소나무와 배롱나무로 에워싼 정자는 그 빛이 퇴색되고 연못안의 연꽃들은 말라 삐틀어져 있어 쓸쓸함이 배어져 나왔다. 이곳은 까마귀가 신라 소 지왕의 목숨을 구한 전설이 서려 있는 연못이다. 어느 날 소지왕이 궁 밖으로 거동하니 쥐가 나타나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라 하였다. 왕이 그 말대로 따라가 이 못에 이르렀을 때 한 노인이 나타나 거문고 갑을 쏘시오 라는 쓴 글을 바쳤다. 이에 왕이 궁으로 돌아와 활로 거문고 갑을 쏘았다. 그랬더니 그 속에 숨어있던 궁주와 승려가 화살을 맞고 죽었다. 그 뒤로 이 못을 서출지라 하고 정월 보름에 까마귀에게 찰밥을 주는 오기일 이라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마치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서출지 주변의 마른나무가지 위 전봇대에는 까마귀들이 칵칵칵 소리를 내며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이 까마귀들은 천 년 전에도 이곳 서출지에서 소리 내며 울고 있었을 터이다. 난 통일전 버스정류장에서 불국사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내가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와서 아무 느낌 없이 바라보았던 불국사를 다시 찾는 것이다. 그리고 토함산에 올라 먼 동해를 바라보며 내 기억 관념 속에 머문 천년 고도 경주의 그 이름을 천천히 불러보리라. 불국사여! 봉덕사의 신종 이여! 그리고 천마총이여! 그리하여 경주 찬란한 문화유산과 같은 오래된 풍경들이 새로운 의미로 내게 다가오는 것 이리라! 내가 만난 경주 천년의 이야기(왕릉 편) 123

124 내가 만난 경주 천년의 이야기(마을 편) :30 난 경주 교동으로 가기위해 대릉원 돌담길을 따라갔다. 미추왕의 위폐가 모셔진 숭혜전으이 보였는데 그 숭혜전 주 변에는 기와집 형태의 민박집이 여럿 눈에 들어왔다. 우린 그 중 하나인 민박집 사랑채 에서 드라마 빛과그림 자 를 촬영했다. 극중 신나라쇼단 단원들이 극장공연을 위해 지방에 내려와 숙소로 이용하던 장면을 촬영했던 곳 인데 그 마당 한가운데는 펌프가 놓여 있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내가 어렸을 때, 한 여름 뙤약볕에 땀 흘리고 집에 오면 엄마가 펌프 밑에 엎드려뻗쳐 시키며 내 등짝을 찰싹 때리면서 시원하게 물을 뿜어내주던 펌프였다. 그 물건을 바라보니 정겨움이 묻어났다. 내가 이곳 사랑채 를 드라마촬영지로 선정하게 된 것은 한옥 구조로 된 전통식 여관이 이곳을 중심으로 많이 남아 있는 곳도 드물기 때문이다. 이곳 황남동은 동네 상점이며 집들이 돌담을 끼고 예스럽게 남아 있는 곳이 많았는데 어 릴 적 내가 서울 도심에 살던 동네의 전형이 이곳에 그대로 남아있어 정겨움이 그대로 가슴에 전해지는 것 같았다. 난 첨성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신비스런 계림 숲의 고목을 바라보았다. 신라천년의 찬란했던 역사의 비밀을 알고 있는 듯 고목은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며 그대로 서있었 다. 난 언덕길을 따라 드라마 선덕여왕 에서 미실과 사다함이 사랑을 나눴던 반월성으로 갔다. 성벽 터를 따라 걷 는 오솔길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호젓했는데 성벽 한쪽 겨울에 얼음을 채취하여 여름까지 보관하던 석빙고가 눈에 내가 만난 경주 천년의 이야기(마을 편) 124

125 들어왔다. 신라 파사왕 22년에 만들어진 신라시대의 궁궐이 있었던 반월성은 현재 석빙고만이 남아있어 아쉽기는 했지만 소나 무 숲길을 따라 걷는 발걸음은 호젓했다. 이 호젓함이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무와 숲과 옛 성터가 주는 자연의 선 물인 것이다. 난 반월성에서 안압지를 거쳐 경주박물관에 있는 곳으로 가서 에밀레종을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경주 향교와 월정교 복원공사가 한창인 그 옆의 최씨 부자가 운영하는 한 음식점을 찾았다. 이곳에서 우린 드라마 빛과 그림자 를 촬영했는데 극중 기태(안재욱 분)가 자주 드나들던 기생집으로 나왔던 장소이다. 이곳은 요석궁 이라는 전통한정식 집인데 드라마 모래시계 와 영화 취화선 에도 나왔던 촬영지이다. 집 안채로 들어가는 입구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소나무가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70년대 초 까지 만 해도 이곳은 실제 우리의 이지러진 밤문화 꽃인 기생집으로 운영하던 곳이었다. 이곳 관리인은 당시 기생집을 드 나들던 유명 인사들을 하나 둘씩 거명하며 내게 자랑삼아 말해 주는 것이었다. 조선시대 말엽 경주 최씨일가가 터를 잡은 교촌한옥마을 일대가 신라시대에는 요석궁터였다고 전해진다. 요석궁은 신 라 29대 무열왕의 첫째 딸인 요석공주와 원효대사와의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남아있다. 원효는 어느 날 비틀거리며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빌리겠는가, 나는 하늘 떠받칠 기둥을 찍으리. 태종무 열왕이 이 노래를 듣고는 원효가 필경 귀부인을 얻어 귀한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 나라에 큰 현인이 있으면 이보 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하고는 요석궁의 과부 공주에게 원효를 데려가라고 했다. 명을 받은 궁리가 원효를 찾으니 이미 남산에서 내려와 문천교를 지나는 중이었다. 이때 원효는 일부러 물에 빠져 옷을 적시고, 옷을 말리기 위해 요석궁을 찾아갔다. 3일간 요석궁에 머문 원효는 그 길로 궁을 나서고, 공주에게는 태기가 있더니 신라 십현의 한 사람인 설총을 낳았다는 것이다. 신라시대 최고의 고승 원효대사와 그를 파계시킨 과부 요석공주! 후대 사람들은 그들의 관계를 3일간의 사랑으로 얘 기하면서 원효를 떠나보낸 요석을 비련의 공주로 그리고 있다. 교촌마을 전통한옥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요석궁은 그 유래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한정식 음식점인 요석궁은 마 지막 최부잣집으로 불리는 최준의 동생 최윤의 집이다. 경주 최씨 종가를 비롯하여 요석궁이 자리한 이곳은 현재도 그 후손들이 300년째 그 터를 지키며 생활하고 있다. 최씨고택 종가집 마당 한쪽에는 최씨부자의 가훈이 적혀 있는 것이 눈길을 끌었는데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마라. 둘째, 재산은 만석이상 지니지 마라.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넷째, 흉년 기에는 땅을 사지마라. 다섯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째,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이런 글귀를 보니 요즘 논란이 한창인 부자들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진정한 노빌레스 오빌리 지 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난 안강읍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양동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철도교각공사가 한창 진행 중에 있는 것이 보였고 아주 작은 간이역인 플랫폼 선로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양동마을은 이 간이역 선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 다. 양동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전에 내가 와 보았던 느낌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어 있었다. 그것은 마을 한복판에 우뚝 솟아있던 교회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고. 마을을 무질서하게 이어놓은 전신주가 감쪽같이 땅 밑으로 숨어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마을을 끼고 흐르는 개천은 잘 정비되어 흐르고 있었고 가옥들도 깨끗하게 제법 잘 정돈되어 있었다. 아마도 양동마을이 2010년 7월 3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역사마을로 등재되면서 내가 만난 경주 천년의 이야기(마을 편) 125

126 이러한 변화를 몰고 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동마을은 설창산을 주봉으로 하여 물( 勿 ) 자 모양으로 뻗어 내린 새 구릉과 계곡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은 상 류층 양반들이 대대로 살아온 곳으로, 조선시대 가옥 150여 채가 잘 보존되어 있다. 전국에는 안동 하회마을, 아산 외암리민속마을, 낙안읍성마을 등 각 지역의 크고 작은 민속마을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경주양동마을은 다른 지역 민속마을에서 느낄 수 없는 가옥들마다의 절묘한 배치가 눈길을 끈다. 초가들은 주로 개천을 따라 낮은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고 종가집이나 큰 기와집들은 언덕위에 위치해 있는데 그 구 도는 매우 안정되고 자연스럽다. 예전에 내가 이곳에 촬영 왔을 때는 그다지 큰 감흥 없이 마을을 촬영했는데 지금 새롭게 단장한 마을들을 보며 연신 원더플을 연발했다. 노란 은행나무 잎들이 기와집 마당이며 지붕에 수북이 쌓여있 어서 더욱 운치가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양동마을은 조선시대 청백리인 우재 손중돈과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었다. 이곳 마 을 서백당은 우리나라 종가집 가운데 가장 큰 규모와 격식을 갖춘 대가옥이다. 난 언덕위의 서백당 큰 대문 안으로 들어섰는데 마당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수 백 년 된 향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서백당의 연륜 만큼이나 그 기품이 느 껴지는 것 같았다. 향나무를 사이에 두고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나무막대로 외부인의 출입을 가로막고 있었 다. 난 그 안이 몹시 궁금하여 외부인출입금지 라는 금기를 깨고 울타리를 넘어 그 안을 몰래 훔쳐보았다. 일자 형의 대문채 안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엄한 인상의 종부는 들어오지말라켔는데 왜 들어왔는교! 푯말 못봤는교! 라 고 점잖게 나를 꾸짖는 것이었다. 난 죄송하다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서백당을 빠져나와 마을 버스정류장으로 향했 다. 난 양동초등학교 운동장이 보이는 버스 정류장에서 옥산서원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곧 도착할 때가 되었 는데도 오질 않자 학교담장 안으로 눈길을 돌렸다. 컬러풀한 색상의 세종대왕 동상이 눈길을 끌었다. 아마도 전국에 서 가장 멋쟁이 옷을 입은 왕일 것이다. 옥산서원으로 가는 버스는 안강읍을 지나고 길게 뻗은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갔다. 지나가는 차바퀴에 은행잎들 은 차도에 나뒹굴고, 소나무 숲을 지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다리에서 나를 내려주었다. 계곡을 따라 졸졸졸 흐르는 물웅덩이에는 단풍잎들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옥산서원은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의 제사를 받드는 곳으로 자연의 품안에 안긴 듯 계곡이 흐르는 넓은 반석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난 옥산서원을 벗어나 개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니 이내 독락당이 나타났다. 이곳은 성리학자 이언적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머물던 사랑채이다. 난 독락당 주위를 삥 둘러가며 돌아보았는데 이곳 역시도 그 안을 자세 히 들여다 볼 수 없었다. 돌담 사이 빗살무늬로 된 창을 통해 그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 낮은 기단 위에 세운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었다. 난 독락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정혜사지 13층 석탑을 찾아갔다. 이곳은 따로 출입을 통제하지 않아 마음 내키는 대로 웅크리고 앉아 서 또 삐딱하게 서서 분풀이라도 하듯 여러 각도에서 신나게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통일신라 석탑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석탑이 눈길을 끈다. 정혜사지 십삼층석탑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탑 으로 불국사다보탑, 화엄사쌍사자삼층서탑과 우리나라 이형석탑의 걸작으로 평가받을 만큼 조형미가 빼어나다. 탑 부 근에 흩어져 있는 주춧돌과 기왓장이 절터를 말해주는데 이 절터가 정혜사지인 것이다. 난 저녁에 촬영팀과 약속된 장소로 가기위해 경주 시내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버스가 올 시간은 아직도 많 이 남아 있었다. 마음은 조급해서 화물트럭이건 승용차건 빨리 달릴 수 있는 네 바퀴가 달린 것이라면 아무 것이라도 내가 만난 경주 천년의 이야기(마을 편) 126

127 얻어 타고 시내로 나가야겠는데, 그때 마침 옥산서원을 배회하고 있을 때 마주쳤던 한 사내의 지프차를 얻어 타고는 난 안강읍에서 내렸다. 예전에도 난 이 곳에 한 번 들렀었다. 그때는 오래된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는 작은 읍내였는데 지금은 몰라보게 많이 변해있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난 경주가 천년 고도인 것처럼 안강읍도 예전의 그 모습들이 많이 남아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얼토당토 않는 기대였다. 난 경주시내로 가는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읍내를 어슬렁거렸는데 오래된 읍사무소와 창고건물이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어서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오래전, 내가 알던 여자가 살던 고향이 바로 이곳 안강이었다. 그래서 더욱 애정 어린 눈길로 읍내를 바라보았다. 혹 시 우연히 어느 길모퉁이에서 그녀를 만난다면 내 기억 속에서 그녀를 찾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가물거리는 내 기억 속에는 그녀의 모습과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상냥하게 웃음 띤 그 미소가 어렴풋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난 그녀를 부산 태종대 그 어디쯤에서 만났던 기억이 있다. 당시 난 진해에 있는 해군 2사관학교에서 체력시험을 마 치고 부산에 잠깐 들렀다가 우연히 그녀를 만났었다. 그때 그녀가 내게 집이 안강이라고 자신을 소개했고 우리는 그 언제 그 어디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과 함께 헤어졌다. 당시 난 군 입대를 앞두고 친구가 운영하는 중식당에서 먹고 자며 허송세월로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 게서 한통의 편지가 왔고 우리는 대구 달성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친구에게서 차비를 얻어 대구에 내려와 달 성공원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우린 달성공원을 돌며 얘기를 나눴고, 근처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고 경주로 가는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그녀를 바래다주었다. 그때 난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차비를 내줬는데 막상 서울로 올라갈 내 차 비가 조금 모자랐다. 그녀를 버스로 배웅하고 나서 난 참 난감했다. 한참을 동대구역 광장을 배회했다. 고민 끝에 지 나가는 사람에게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동냥해서는 늦은 밤 통일호 입석열차를 타고 서울로 귀경했던 일들이 주마 등처럼 스쳐간다. 내가 군 입대 후 한두 번 편지를 주고받으며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던 그녀의 편지 그리고 떠오르 는 그녀의 해맑은 미소가 내가 지금 서있는 안강읍 오래된 건물과 오버랩 되면서 그때의 추억과 덧칠되는 것이다. 나 보다도 두 살 연상인 그 여인을 안강읍 그 어디에선가 스치듯 만났으면 했다. 그러나 내가 30년도 더 된 그때 일을 떠올리며 그녀를 기억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그녀의 이름조차도 내 기억 속에는 남아있지는 않지만 그녀가 이 고향마을 그 어디에선가 뛰놀던 동네며 숲길 그리고 학교로 가는 길에 대한 추억은 내 머릿속에도 그려지는 풍경인 것이다. 이 마을의 이름은 안강인 것은 분명한데 저 실개천의 이름은 저 숲의 이름은 무엇인가! 마을 사람들에는 익숙한 것들 이 타관에서 온 외지인에게는 낯설다. 나그네가 길을 묻는 것처럼 낯선 이 공간에서 교감하며 난 여행의 새로운 의미 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 누가 내게 어떤 관점에서 여행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난 바람처럼 자유로이 홀로 떠나는 것이 여행의 본질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여행 중에 고독을 느끼고 쓸쓸함이 배어나오는 길을 걸으면서 나무와 숲과 그 어떤 대상물과 교감하 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여행자 자신 과거의 경험을 통해 사물을 바라볼 때 주마간산 스쳐가는 풍광은 중요한 포인트를 놓쳐 버리는 우를 범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천천히 걸으면서 대상과의 교감을 통해 자연을 음미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야 내가 만난 경주 천년의 이야기(마을 편) 127

128 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그 사물의 한가운데서서 여러 각도로 시간과 때를 달리해서 보질 않는다면 사물은 그저 관념 속에 머물 뿐이다. 내 수학여행의 경험처럼 말이다. 내가 만난 경주 천년의 이야기(마을 편) 128

129 경천호의 작은 학교 :28 전주 교동한옥마을로 촬영을 가기 전 난 딸아이가 있는 경천호 부근의 작은 학교를 찾아 가기로 했다. 전날 아내는 물감과 도화지 등 몇 가지의 미술재료를 챙기고는 내게 촬영장으로 가면서 그곳에 들러 전해 주라는 것이었다. 딸아 이가 있는 중학교는 전북 완주군 화산에 있는 학교로서 이곳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다. 돌이켜보면, 딸아이가 제 스스로 누가 강요하지도 않은 이 시골학교를 자청해서 오게 됐는지는 난 알 수 없었다. 난 늘 바쁜 촬영일정으로 집을 떠나 있을 때가 많았고 집안의 소소한 문제는 모두 아내에게 일임하는 터라 자세한 내용 은 알지 못했다. 어찌 보면 딸아이의 진학문제에 있어 난 수수방관했고 아빠로서 직무유기를 한 것인데 아내로부터 얼핏 들은 이야기로는. 언젠가, 딸아이가 TV 다큐멘터리프로그램에 소개되었던 닭 키우며 마음껏 뛰놀면서 공부하는 시골학교를 어디서 본 모양이다. 그것이 부러웠던지 제 스스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인데 우리부부는 두 말 하지 않고 딸아이가 원하는 그 학교로 보냈다. 응석을 부려야 할 어린나이인데도 부모 곁을 떠나 객지생활을 하는 것이 애처롭 기도 했지만 딸아이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다. 학교 옆에는 경천호가 붙어 있었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대둔산이 있었는데 언젠가 딸아이가 내게 들려준 말이 생 각났다. 화산에는 사람의 숫자보다 더 많은 것이 소 라며 내게 자랑스럽게 말했는데 서울 강남에 사는 사람들은 넓은 평수의 아파트가 부자 척도의 기준이 되지만 이곳 화산에서는 소가 많은 것이 곧 부자라고 했다. 그러면서 집에서 많 은 소를 키우고 있는 반 아이를 부러워하는 것이었다. 난 드라마촬영으로 전주를 중심으로 익산, 군산, 논산 등을 여 러 차례 와봤지만 완주 화산이란 지역은 처음 가보는 생소한 곳이다. 내가 수없이 가본 지역을 교묘하게 비켜 선 경 계지점에 완주 화산은 숨어 있었다. 집을 나와 일찍 서두른 탓에 난 정오가 안돼서 충남 논산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난 대합실을 빠져나와 딸아이가 있는 경천호의 작은 학교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버스정류장을 서성거렸다. 휴가를 나온듯한 푸른 제복의 사나이들 이 낡은 대합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띠었다. 완주 화산읍으로 가는 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서 너 명의 승객을 태우고는 시내를 벗어나 좁은 국도를 따라 한적한 도로를 달려갔다. 실개천을 지나고 옹기종기 모여선 마을이며 산과 구릉 등이 차창 밖을 스쳐갔는데 그 느낌은 전혀 낯설지가 않은 것 이다. 흔히 그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려니 생각하기엔 그 느낌은 뭐랄까! 마치 기시감 같은 것이었다. 내 가 이곳을 언제 와 보았을까! 생전 처음 와보는 곳인데! 논산 가야곡을 거쳐 완주 화산으로 가는 눈앞에 스쳐가는 풍 경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버스는 논산 가야곡을 벗어나 어느 저수지 길 을 따라 달려가고 있을 즈음 갑자기 뇌리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이 길로 쭉 가다 고산 방향으로 핸들을 꺾으면 군 시절 내가 유격훈련을 받던 완주 고산 대아저수지가 나올 것이다. 경천호의 작은 학교 129

130 난 아직도 그때 일을 기억한다.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정확히 1979년 12월5일 난 유격대라는 구호를 외치며 로프를 타고 대아저수 지로 뛰어들던 일을 또렷이 기억해냈다.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에도 악으로 깡으로 무장한 군인정신이라는 미명아래 난 얼음장 같이 차디찬 저수지로 뛰어들었다. 그때 고산 대아저수지는 내 기억 죽음과 공포로 얼룩진 장소였으며 결 코 다시 찾고 싶지 않은 그런 저수지였다. 그 당시 유격훈련을 받으면서 짧은 휴식동안 담배를 피어물고 산 아래 물 안개 낀 대아저수지를 내려다보았었다. 대아저수지를 굽어보는 운암산은 이름대로 구름위에 솟은 산이다. 깎아지른 절벽아래 대아저수지 풍광은 산 정상에서 봉화대로 이어지는 암벽능선이 수려한 곳이다. 산 정상에서 동쪽 능선을 타 고 가다가 높은 봉우리에서 절벽 아래로 내려다보면 아찔한 장면이 연출되는데 그 옆 능선 군부대 유격훈련장에서 훈련받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음미할 만큼 한 점의 여유도 없었다. 생활에 찌들고 삶이 팍팍해지면 밤하늘의 별이 낭 만적으로 보일 수 없는 것처럼 난 고된 훈련 탓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었다. 그때 만약 내가 군인이 아닌 여행가로서 이 대아저수지를 바라보았다면 난 그 아름답고 황홀한 그 모습에 매료되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내가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 호송열차를 타고 충남 논산훈련소에 내린 날, 난 이틀 만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육군 제2하사관학교로 차출되었다. 그때 발에 맞지도 않는 군화를 억지로 구겨 신고 야간행군으로 도착한 곳이 전북 익산 면소재지인 여산이다. 행정구역상 하사관학교는 전북 익산 면소재지인 여산에 있었는데 충남 논산과 인접해 있 고 전북 완주 화산과도 아주 가깝게 인접한 곳이다. 당시 학교교정을 벗어나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훈련했던 그 길을 버스를 타고 달려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난 하사관학교에서 모질고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았다. 그 훈련이 너무도 힘들어 하사관학교 교육을 마치고나면 다시 는 여산 땅을 밟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맹세하고 또 맹세했노라! 그렇게 진한 추억이 서린 곳이다. 빨간 모자를 눌러 쓴 훈육조교의 눈빛은 광기에 번득였고, 잘근잘근 씹어서 뼈다귀만 확 뱉어버리겠다는 훈육하사의 고함소리는 황산 벌을 치렁치렁 울려 퍼졌다. 학교 교정을 벗어나 야외 총검장으로, 수류탄 투척장으로, 또 유격훈련장으로 산과 들을 쫒아 다니며 땀방울로 얼룩지던 그때 기억이 또렷이 남아 있는 것이다. 여산은 그렇게 내 기억 속에 맴돌고 있었고 한동안은 또 뇌리에서 잊혀졌다. 대한의 남아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장동료나 친구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군대시절 이야기를 안주삼아 늘어놓 는다. 자신이 경험했던 시시콜콜한 군대생활 이야기들은 훨씬 더 극적으로 포장되고 미화되기 마련인데, 그럴 때면 가끔 군 생활했던 그곳이 불쑥 가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다시는 이 땅을 밟지 않겠다는 대한남아로서의 금과옥조 같 은 약속은 깨어지고 그 어느 해인가! 난 십 수 년 만에 여산 땅을 다시 밟았다. 당시 난 KBS 대하드라마 서울1945 에서 극중 6,25장면을 이곳 하사관학교에서 촬영했다. 군부대훈련장면을 기초유 격장에서 인민군 탱크에 폭격당하는 군부대 건물은 이곳 하사관학교 교정에서 촬영했는데 난 실로 십 수십 년 만에 교정을 다시 밟아보는 느낌은 감회가 남달랐다. 군인정신으로 똘똘 뭉친 훈련병으로서가 아닌 촬영스텝의 일원으로서 방문하면서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었다. 그때 난 다시는 밟지 않겠다던 여산 땅에 첫 발을 내딛었다. 버스는 느티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여산읍 종점에 나를 내려놓았다. 내가 다녀본 읍내 버스정류장 종점 분위기로 최고의 월계관을 씌어주어도 아깝지 않은 풍경이었다. 난 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읍내가 보이는 언덕을 따라 올 라갔다. 여산성당과 숲정이성지는 가깝게 일렬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그 옆 여산동헌 담장 사이에도 느티나무가 병풍 경천호의 작은 학교 130

131 처럼 우뚝 서있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동헌에서 내려다보이는 숲정이성지는 대원군의 집정 때인 1866년 병인박해가 계속 진행되는 동안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장이 되었다. 얼굴에 물을 뿜고 백지 붙이기를 여러 번 거듭 하면서 죽게 하는 질식사형으로 쇄국정책의 분노와 증오 그리고 양심, 신앙의 자유가 질식한 역사의 현장이다. 옛 동헌 뜰에는 박해 사실을 증명하듯이 대원군의 척화비 가 서있다. 당시 여산 인근의 산골짜기마다 숨어 지내던 수많은 신도들이 이곳으로 끌려와 처형을 당했다는 천주교 순교성지이다. 난 여산이 천호공소, 여산동헌, 백지사터, 숲정이성지 등 천주교 성지가 많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곳이라는 것을 이 곳을 방문하고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장롱 속에 숨겨 논 보물을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난 흥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군 훈련을 받으면서 생각조차 하기 싫던 여산이 숨겨진 보물이 있었음을 난 예전에 미처 몰랐었 다. 내가 하사관학교에서 6개월의 교육훈련과정을 받는 동안 읍내로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게 작은 읍내를 돌 아볼 자유의 시간이 허락되질 않았다. 훈련을 마치고 정해진 이동경로를 따라 주로 야간에 움직이는 것이 대부분이라 여산 읍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난 전혀 알지 못했다. 동네 초입에 머물다가 부대로 복귀하곤 했는데 읍내 깊숙한 곳 에 이런 특징적인 모습이 남아 있다는 것을 난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의 여산은 읍 단위로도 아주 작고 볼품없지만 과거에는 한양에서 공주-논산-여산-삼례를 거쳐 해남에 이르는 삼남대로였다. 고소설 춘향전에서도 암행어사로 임명받은 이몽룡이 전라도 땅을 밟는 장면이 묘사된 충남과 전북을 잇는 호남의 첫 관문이었던 것이다. 여산은 예로부터 전라도 관찰사가 황학정에서 서로의 임무를 교대하는 등 사람의 왕래가 빈번하던 지역이었고, 개성, 남원과 더불어 3대 우시장의 하나였다. 그리 크지 않은 읍내를 조금 벗어나 한가로운 농촌 들녘을 걷다보면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가 나온다. 초가집으로 이뤄진 본채와 사랑채가 있는데 이 집에는 200년도 더 된 탱자나무가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병기 생가는 많은 관 람객들이 찾지 않을 것 같은데 주차공간은 필요이상으로 넓다. 굳이 주차장이 없어도 될 법한데 내가 차량이 없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200년 된 탱자나무 옆 볼 품 없는 양옥집은 또 뭐란 말인가! 양옥집이 턱 하니 버티고 서 있 어서 탱자나무도 덩달아 볼품없어 보였다. 양옥집을 빼고 촬영해야 하는데 어느 각도에서도 피할 수 없으니 나로선 아쉬울 뿐이다. 버스는 어느새 학교 담장 개울 앞 도로에서 나를 내려놓았다. 교문을 들어서자 길게 뻗은 은행나무 잎들은 가을 햇살 에 황금빛 색채를 띠고 있었고, 잔디운동장에서는 몇 몇의 아이들이 뛰노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한 아이가 내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오자 난 딸아이의 이름을 대며 아느냐고 물었더니 잘 아는 선배언니라고 했다. 난 그 아이에게 아 빠가 학교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수업 끝나면 정문으로 나와 달라는 부탁했는데 아이는 씩씩하게 예 소리와 함께 쏜살같이 학교 건물 안으로 뛰어가는 것이다. 학교 정규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리고 딸아이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왔다. 딸아이는 내가 학교로 찾아 온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 그리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우린 학교 교문을 벗어나 경천호가 보이는 호숫가를 따라 걸었다. 호숫가는 역광에 빛을 발하며 실루엣처럼 반짝거렸다. 우린 인근 식당에서 들어가서 닭볶음탕을 먹으면서 여러 애기들을 나눴는데 딸아이는 학교생활이 너무도 재밌고 신 경천호의 작은 학교 131

132 나는 일이 많아서 기분 좋다고 했다. 난 넌지시 딸아이더러 일요일에 집에 오지 않으면 학교에서 뭐하면서 지내냐고 물어보았다. 친구 집에 갈 때도 있고 전주로 나가서 떡볶이도 먹고 영화도 보면서 지낸다고 했다. 난 학교에서 가까운 경천호와 대둔산엔 가보았냐고 물어보았는데 단 한 번도 간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난 대둔산이 얼마나 멋진 산인데 가까이 있으면서 한 번도 가지 않은 것이 참 신기하다고 했는데 아이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딸아이에게는 전주에 나가서 떡볶이 먹고 친구들과 수다 떨며 잘생긴 배우와 인기가수가 그저 관심사일 뿐이다. 하긴 나도 그 나이엔 그랬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꽃이 아름답고 산이 좋아질 무렵 자연의 소중한 가치들을 하나 둘 씩 배워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린 식사를 다 마치자 아이는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난 딸아이를 학교 교문까지 바래다주며 어서 들어가라고 했다. 학교 교문을 들어서는 딸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연을 벗하며 바르고 착하게 성장해주기를 바랐다. 난 전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경천호가 보이는 그 풍경 속에 천천히 빠져들고 있었다. 경천호의 작은 학교 132

133 소나기, 비갠 오후 :00 한일 월드컵의 열기로 대한민국은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일궈 낸 저력은 일본인에게는 그 저 놀라울 뿐이라는 반응이었다. 일본 후지TV 제작 프로듀서인 나카시마와 연출자가 한국을 찾았다. 예쁘장한 용모의 프로듀서는 내게 반가움을 표시 하면서 한일 월드컵 열기로 뜨거워진 한국은 정말 다이나믹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면서 한일합작 드라마를 연출할 감독을 내게 소개시켰다. 삐쩍 마른 체형의 감독은 내게 손을 내밀며 이번에 하게 될 작품에서 한국의 역동적인 모습 을 화면에 담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한국에서 찍게 될 주 촬영지로는 경찰서를 비롯해 지하철 플랫폼, 아파트, 산동네, 도심 일각 등 굳이 한국으로 로케이션을 올 만큼 특징적이지도 않은 장소가 대부분이었다. 어찌 보면 일본에서 촬영허가를 얻기 힘든 장소들이 다 수 포함돼 있었다. 그리면서 내게 한 권의 사진첩을 내밀었는데 그것은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 를 일러스트레 이션 한 그림책이었다. 일본 후지TV 드라마 소나기,비갠오후 는 의문사 사건을 둘러 싼 서스펜스 멜로물이다.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 기 와 일본 소설 여우의 창 한일간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이 사건해결의 모티브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일본 동경의 한 호텔 객실 담당으로 근무하는 오오츠키 치즈루(오네쿠라 료코 분)는 어느 날 일본상사 서울지사에 부 임해있는 오빠를 만나러 서울에 온다. 성실한 회사원인 오빠는 그의 아내가 아들을 낳았는데도 일본에 올수 없을 만 큼 바쁜 사람이다. 오빠가 다니는 회사 근처에서 점심을 마친 치즈루는 오빠에게 저녁을 지어주기로 약속하고 헤어진다. 저녁 반찬거리 를 사들고 오빠 숙소를 찾은 치즈루는 죽어있는 오빠를 발견하고는 경악한다. 한국의 경찰은 오빠의 죽음을 약물과용 에 따른 자살로 단정하고 수사를 종료한다. 납득할 수 없는 수사결과에 어이없어하면서 치즈루는 일본으로 돌아간다. 오빠의 장례식이 있던 날, 치즈루는 어디선가 본 듯한 낯선 한 남자가 자신을 찾아온다. 그는 경찰 조직의 수사결과 에 의혹을 품고 치즈루 오빠의 죽음을 재수사하게 된 서울시경 홍대진(지진희 분)형사였다. 이야기는 두 사람이 서울에서 다시 만나 사망 직전, 오빠의 행적을 밟아 가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들은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문화적인 차이로 서로 티격태격한다. 홍형사(지진희 분)는 지방의 한 여관을 찾아가 유부남이었던 오빠가 회사 여직원과 몰래 여관에 투숙한 사실을 알게 된다. 홍형사(지진희 분)는 치즈루에게 오빠의 부도덕함을 공박한다. "일본인들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 지지 않았다 면서. 상심한 치즈루는 홍형사와 싸우고 들판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게 된다. 치즈루는 비를 피하러 나무 밑으 로 찾아들고 이내 홍형사(지진희 분)도 나무 밑으로 들어선다. 홍형사는 그동안 한 번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치즈 루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하자, 급기야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그리고는 두 사람 사이엔 묘한 신뢰감이 쌓이는데, 60분물 2부작인 한일합작드라마 소나기,비갠오후 는 2002년 월드컵이 한창 열리는 해 한국에서 촬영했다. 한일월 드컵 축구경기로 시청 앞 일대가 마비될 정도로 열기로 가득한데 우린 드라마 촬영으로 눈코 뜰 새 없었다. 서울 도 심에 있는 중부경찰서와 명동 그리고 시청, 테헤란로, 창신동 낙산공원,지하철 역 녹사평 등 여러 곳에서 촬영했다. 촬영할 장소를 미리 확인해야 하는 일정에서 난 일본감독을 창신동 산꼭대기의 동네로 안내했다. 도심 빌딩이 한눈에 아주 가깝게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곳 풍경을 보고는 일본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풍경이라며 놀라워했다. 동경의 시가 지는 주로 평지에 조성되어 있어서 이 같은 느낌이 새롭게 다가왔다고 했다. 그리고 길게 뻗은 테헤란로에서는 차량 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모습을 보고는 무척 역동적이라고 내게 말했다. 난 그런 역동성과 부산함이 한국의 문화 소나기, 비갠 오후 133

134 를 창조했고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이루어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극성스러운 면만으로 치자면 한국을 따라 올 민 족은 없다면서 그래도 한국은 정이 많은 나라라고 말했더니 그도 알고 있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다음 날, 드라마의 미스테리 살인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될 여관이 있는 충남 부여를 찾아갔다. 난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에 이은 한일합작 드라마 거기에다 일본과 백제문화의 원류가 남아있는 충남 부여를 마음속에 엮어놓고 있 었다. 그래서 난 연출자에게 부여의 여러 특징 있는 곳을 추천하면서 그와 함께 부여 여행을 떠났는데, 부여에 처음 들른 우리는 왠지 쇠락한 낯선 도시가 주는 그 어떤 기운에 사로잡혔다. 천년 고도의 신비로움으로 가득 채워졌어야 할 이곳은 왠지 쓸쓸함 마저 감돌았다. 월드컵의 열기도 이곳엔 미치지 않는 성역처럼 남아 역사의 수레 바퀴 한 가운데 머물러 있었다. 신라 천년의 찬란한 유물이 남아 있는 경주와는 달리 이곳은 쓸쓸히 흘러가는 백마강이 그 옛날의 부귀영화를 말해 주는 듯 고요히 흐를 뿐이었다. 우리가 부여에 도착해 맨 처음 찾아간 곳은 구드레 공원이었다. 이곳에는 유명작가 조각상들이 공원 곳곳에 전시돼 눈길을 끌었는데 그 옆으로는 백마강이 흘러간다. 연출자는 이곳을 보더니 꽤 특색 있는 공원이라면서 이곳에서 촬영 하고 싶다고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구드레라는 이름은 부여 부소산 기슭의 백마강 나루터 일대를 말하는데 난 그 이름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발걸음을 옮겨 백마강과 절벽단애를 이루는 낙화암으로 갔다. 백제가 멸망할 때 왕을 모시던 궁녀들이 이곳 바위에서 강으로 몸을 던졌기에 삼국유사 에는 타사암으로 전해진다. 훗날 궁녀들을 꽃에 비유해 낙화암이란 이름 이 붙여진 것 같았다. 일본감독은 이곳 강물로 삼 천 궁녀가 물에 빠졌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그 강물 아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대개 어느 지역이든 그 곳을 대표하는 비경을 내세우곤 하는데 부여 8경도 낙화암을 중심으로 해서 펼쳐진다. 백제탑의 저녁노을, 저녁 무렵 부소산에 내리는 부슬비, 고란사의 새벽 종소리, 낙화암에서 망국의 한을 우짖는 소쩍 새, 구룡평야에 내려앉는 기러기 떼, 백마강에 고요히 감겨드는 달빛, 수북정에서 바라보는 백마강의 아지랑이, 규암 나루로 들어오는 돛단배가 그것인데 난 백마강에 젖어드는 이 같은 정취가 왠지 쓸쓸하게만 보이는 것은 왜일까! 백 제 흥망성쇠의 기운이 그대로 내게 전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백제와 일본 간 문화교류의 흔적이 남아있는 부여를 방문한 일본 감독은 이곳을 매우 흥미로워했다. 우린 부여 8경의 이미지를 가슴속에 담아 둘 수 없기에 부소산 낙화암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난 일본감독에게 무량사 매월당과 이 부 근의 주암리 은행나무는 꽤 특징 있는 장소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는 충남 부여에 왔을 때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면 궁남지라고 소개하며 우린 그곳으로 향했다. 서동요의 주인공 서동(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사랑이 깃든 궁남지는 백제시대 별궁에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연못이다. 무왕 때 궁성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리나 되는 곳에서 물을 끌어와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고 못 한가운데에 는 중국 전설 속 방장선산을 모방한 섬을 만들었다고 삼국사기에 전해진다. 연못의 조경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일본에서는 이를 본받아 일본 조경의 원류가 되었다고 일본서기에 기록돼 있다. 통일신라도 이를 본떠 안압지를 조성했다는 것을 일본 감독에게 말해주었더니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이곳에서 꼭 촬영하고 싶다고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한일합작 드라마 소나기,비갠오후 에서 치즈루의 오빠와 그의 직장 동 료 여직원과 궁남지 포룡정 다리 위를 걸어가며 밀어를 나누던 장면을 촬영했다. 그 일본배우는 영화 로스트메모리 스 에서 장동건과 함께 출연했던 나카무라 도오루가 그 역을 맡았었다. 현재 궁남지 연못은 당시 규모의 3분의 1 정도로 축소 복원된 것이다. 선화공주의 이름을 따 이곳에 연꽃을 심어놓았 다. 궁남지의 모습이 연못에 생생히 투영되는 아침이나 해질녘, 연못 주위를 둘러싼 연꽃은 7월 중순에서 말경 쯤 가 장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순결' '청순한 마음'이라는 꽃말을 가진 연꽃이 만발한 궁남지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 가 남아 있어 연인들에겐 더없이 좋은 데이트 코스이다. 연꽃이 만발한 부여 궁남지에서 연꽃으로 피어난 천 년의 사랑을 담으면 고도 백제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소나기, 비갠 오후 134

135 화순, 적벽을 찾아서(쌍화점) :53 광주를 찾은 건 늦은 여름이었다. 난 전남 장흥 천관산을 가기 위해 잠시 광주에 들렀다. 광주는 주로 내게 있어 담 양이나 나주 또는 화순을 거쳐 가는 경유지로만 인식된다. 그만큼 드라마나 영화 촬영의 주요 장소로 이곳을 찾기란 가뭄에 콩 나듯 하다. 광주는 광주항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도시로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고 드라마 모래시계의 사례처럼 광주시민 과 관청이 발 벗고 나서서 적극적인 촬영지원을 아끼지 않는 도시로만 각인됐다. 물론 광주항쟁을 다룬 드라마에 한 해서이지만. 광주역에 내린 난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장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눈부신 태양은 그리 높지 않은 건물들과 무 성한 가로수 잎에 스며들어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유독 광주의 햇살이 눈부시도록 강렬하게 다가오는 건 무슨 이유일까? 난 광주에 올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광주의 지명이 빛 고을 광주라서 그런 것일까! 찌는 듯한 한낮의 무더위로 대합실은 비교적 한산했다. 에어컨을 틀었지만 넓은 대합실엔 별로 소용없는 듯이 보였 다. 강렬한 햇살이 대합실에도 스며들어 텁텁한 공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난 장흥으로 가는 표를 끊기 위해 일어섰다.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친 건 쏟아지는 햇살에 숨을 쉬는 무등산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마치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 때 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까뮈의 소설(이방인)에 나오는 뫼르소 처럼 그 어떤 강한 햇살의 이끌림이라고나 할까! 무등산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광주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올라가 봤을 무등산을 난 이번 기회에 밟겠노라 다짐 하면서, 무등산으로 가기위해 증심사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아직 햇살은 많이 남아 있었지만 산행을 하기엔 다소 무리가 따르는 시간이기도 했다. 광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무등산 입구인 증심사 까지는 아주 가까웠다. 버스가 종점에 다다 랐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미 산에서 내려와 시내버스를 타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해는 조금 전보다는 그 빛이 더 많 이 줄어든 것 같았다. 증심사에서 대충 사진을 몇 장 찍고는 난 급히 서둘렀다. 산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은 잘 정리되 어 있지 않아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올라가다 아주 큰 느티나무를 만났다. 기분 좋은 산행의 출발이라고 생 각했다. 산이나 혹은 마을 입구에 멋지게 생긴 나무를 만나면 그 주위가 빛난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난 쉬지 않 고 정상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내달았다. 한낮 오후의 태양은 수그러져 조금은 더위가 가셨지만 여전히 무더웠다. 생 수를 꺼내 마시지만 갈증이 쉬 가시질 않는다. 짙은 갈색의 티셔츠는 땀에 젖어 수건처럼 홍건 했고 몸에선 땀 냄새 가 진동했다. 날파리들이 이런 냄새를 어디서 맡고 왔는지 쫓아오면서 괴롭힌다. 장불재를 거쳐 정상에 생각보다 빨 리 다다랐다. 아주 빠르게 내친걸음이다. 해는 이미 서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산꼭대기에는 통신기지가 멀리 보이고 오가는 등산객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 다. 이제부터 나의 판단에 따라 결정을 해야 한다, 편한 길로 또 오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길로 방향을 정할 것인가가 그것이다. 가까운 거리로 하산해 내일 아침 일찍 산의 북쪽인 담양 소쇄원과 식영정을 볼 것인지 아니 화순, 적벽을 찾아서(쌍화점) 135

136 면 자연경관이 수려하다는 화순 적벽을 보러 갈 것인가의 문제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하게 되면 어쩌면 날이 어 두워 길을 잃고 헤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경험으로 알고 있다. 초행길은 앞서 간 발자국을 따라 걸으면 안 전하다는 것을, 몇 해 전, 난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었다. 난 그 여느 때처럼 외딴 곳에 있는 산장을 찾기 위해 점봉산에 갔 는데 그때도 지금처럼 늦은 오후의 산행이었다. 산장을 이리저리 찾다가 내친김에 정상까지 밟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점봉산엔 아직도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꽁꽁 얼은 개울을 건너고 눈이 채 녹지 않은 등산로를 따라 걸었다. 산의 중턱에 이르렀을 때 군락을 이룬 주목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을 때 어디선가 이름 모를 산새가 날아들었다. 그 작은 새가 나를 조금도 경계하지 않는 것에 난 의아했다. 그 새는 나의 손등이며 어깨에 내려 앉기라도 하려는 듯 나를 쫓아 왔다. 겨울 산에 먹을 것이 없어 내게 구원의 손길을 보낸 것이라 생각했다. 난 배낭 속에 있는 건빵을 꺼내 이름 모를 새에게 줬다. 그 건빵 한 알 으로도 사람과 동물이 교감할 수 있고 친해질 수 있음 을 그때 처음 알았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아직 산 정상까지는 절반가량 남아 있는 것 같은데 갑자기 세찬 강풍이 몰아쳤다. 몸 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의 거센 바람이었다. 오던 길은 눈보라에 지워져 보이지 않았다. 겨울 산행의 무서움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휴대전화로 긴급구조대에 구원 요청했다. 허가를 받지 않고 산에 올랐다는 핀잔과 함께 날이 저물었으니 즉시 오던 길로 내려오라는 것이었다. 순간 난 당황했지만 선택은 무조건 하산이다. 산에서 내 려오면서 몇 번이고 허벅지까지 눈 속에 빠지곤 했다.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눈길을 헤치면 서 내려와야 했던 기억이 있다. 뼈아픈 기억이 있음에도 난 화순 쪽으로 내려가야겠다는 무모한 결정을 했다. 난 밑 으로 아래로 계속 앞만 보고 내달렸다. 빠른 걸음으로, 규봉암 산 밑으로 내달리면서 어둠에 가려져있는 서석대, 입석대 는 볼 수 없었고, 다만 산 중턱 저만치 어디에선가 풍경소 리가 들려왔다. 난 그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기니 병풍처럼 둘러싸인 바위에 아담한 암자가 눈에 들어왔다. 절 입구 계단위에는 규봉암이라는 글씨가 어둠 속에 희미하게 보였다. 고요하고 적막한 암자엔 어둠이 깃들었다. 암자에 딸린 부엌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는데 인기척에 스님은 부엌문 을 나와 합장하며 나를 맞는다. 난 스님에게 화순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알려 달라고 했다. 스님은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서 오른쪽으로 가다보면 작은 나무푯말이 보일 거라 했다. 길은 험하지만 가장 빨 리 마을에 닿을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는 마을에 버스가 끊겼기 때문에 원한다면 택시를 불러 주겠다 고 했다. 난 망설였다. 그리고는 고맙지만 괜찮다고 했다. 난 여행을 하면서 그 어떤 예정된 일에 대해 일종의 알레르 기 같은 반응을 보인다. 마을로 내려가서 버스를 탈 수 없다면 그냥 걸을 것이고, 또 걷다 지치면 지나가는 차량을 세워서 시내로 나갈 요량이었다. 산에서 내려 왔을 때 마을은 완전히 어둠에 가려져있었고 마을을 오가는 버스는 끊긴 지 이미 오래였다. 무등산이 바 로 뒷산인 영보마을이라는 마을표석이 흐릿하게 눈에 들어왔다. 초생달이 밤길을 비추는 한적한 도로를 따라 난 터덜 터덜 걸었다. 한참을 걸었다고 생각할 때 집 채 만 한 트럭이 내 앞을 스쳐지나갔는데 난 재빨리 손을 뻗어 애처로운 표정으로 태 워 달라고 했다. 트럭 안의 젊은 부부는 차를 세우더니 운전석 옆에 자리를 기꺼이 내 주었다. 남자는 웃통을 훌렁 벗은 채 운전하고 있었고 그의 아내인 듯한 여자는 차 안 여기저기 널 부러진 그릇들을 치우고 있었다. 화순, 적벽을 찾아서(쌍화점) 136

137 비료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을 봐서는 동물성 비료를 운반하는 차량 같았다. 그 악취가 텁텁한 더위와 섞이면서 그다 지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차를 얻어 탄 것에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그 젊은 부부는 집이 나주이고 돼지 비료 를 싣고 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읍내를 거치지 않고 외곽으로 난 길을 거쳐서 갈 것이라 했다. 화순 읍까지 가는 길은 꽤 멀었다. 그 트럭운전수는 능주 이정표를 지나고 나서야 나를 마을 초입에 내려 주었다. 오래전 난 이곳 능주에 왔던 기억이 있다. 읍내 동헌 맞은편에 제법 큰 오일장이 섰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다. 다음날 아침, 난 산에서 내려왔던 그 마을을 다시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화순 읍에서 이양으로 가는 버스를 탔 다. 버스는 어제 밤 트럭으로 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 잠시 후 버스는 영보마을 입구에 나를 내려놓고는 사라졌는데 마을을 휙 둘러보니 무등산이 마을 전체를 포근히 감싸고 있었다. 문중 소유인 듯한 소나무 숲도 꽤 인상적이었다. 마을 입구 초등학교는 무등산과 어우러져 마치 그림엽서를 보는 것 같았다. 마을 앞 정자에서는 노인들이 모여 부채질하며 시끌벅적 떠들고 있었는데 그들은 외지에서 온 듯한 나를 보 고는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난 사진을 찍으려고 서울에서 왔다고 했다. 그들은 영보마을의 내력을 자랑스 럽게 얘기하더니 이곳에서 조금 더 가면 적벽 노루목이 경치가 아주 좋다고 자랑했다. 적벽 화순의 적벽을 보러 가기 위해 난 마을 농로 길을 따라 이서면 소재지를 향해 걸었다. 하늘에선 먹구름이 몰려 왔고 시원스레 한 차례 소낙비가 쏟아졌다. 난 황급히 비를 피하려고 농로 처마 밑으로 찾아들었다. 하늘을 보니 비가 곧 그칠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이럴 때 내리는 비를 여우비라 하는데 내리는 비만큼이나 여우스러운 표현이라 생각했다. 먹구름이 비켜가고 속살을 드러낸 하늘에선 이따금 이슬처럼 비가 투명한 빛에 반사되어 간간히 내렸다. 난 걸음을 옮겼는데 얼마가지 않아 면사무소가 볼품없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면사무소치고는 내가 다녀 본 것 중 가장 규모가 작아 보였다. 개천을 따라 마을 입구에는 수 백 년은 족히 되었을 법한 은행나무가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는데 이 곳 수몰지역 마 을의 전설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마주 보고 있는 가까운 거리에도 또 한그루의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이 나 무도 수령이 사백 년이 넘었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이곳에 모여 당제를 지낸다고 한다. 폐교가 된 학교 운동장 한가운데 덩그렇게 놓여 있는 느티나 무 옆에는 사당이 있고 길은 삼거리로 나있다. 화순 적벽을 가기 위해선 마을 초입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얼 마 지나서 언덕 좌측으로 따라 오르니 동북댐을 보호하기 위해 입구엔 초소가 세워져 있었다. 난 영화 촬영장소를 보 러 이곳에 왔다고 했다. 관리인은 쉽게 출입을 허용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번 간곡하게 사정해 겨우 동북호를 따라 걸 어 들어갈 수 있었다. 병풍처럼 펼쳐진 웅장함과 푸른 물을 담고 있는 동북댐을 거쳐 망향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화 쌍화점 에서 강 렬한 햇살이 내비치는 오후, 왕과 왕후가 야외에서 풍류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자객들이 나타나 왕과 왕후을 살해 하려 한다. 이때 왕의 친위부대인 건룡위 (조인성 분)가 나타나 왕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반격에 나선다. 그 장면에 나왔던 곳이 바로 화순 적벽의 망향정이다. 눈앞에 펼쳐진 풍광은 탄성을 지를 만큼 아름다웠다. 노루목 적벽은 동북 댐이 만들어지기 직전까지 수려함과 웅장함 으로 예로부터 알려진 관광지다. 그 누군가 이곳의 절경을 보고 중국 적벽에 버금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름 지었을 법도 하다. 화순, 적벽을 찾아서(쌍화점) 137

138 광주와 화순 지역에 식수 공급을 위해 동북댐이 생기면서 이곳 마을 주민들이 모두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 물에 잠긴 마을 사람들은 고향 잃은 아픔을 달래기 위해 이곳에 정자가 만들었는데 지금도 명절이나 고향이 그리울 때 이곳을 찾아와 마음을 달랜다고 한다. 정자 앞 망배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고향은 부노들을 공경하고 죽마고우와 살던 곳 하늘가 땅 끝으로 모두가 흩어졌을 지라도 어찌 지난날의 그리운 얼굴 잊혀질까 해마다 이곳에 모여 푸른 눈빛으로 엣 정을 나누리라. 고향은 내가 생장하고 조상의 송추가 있는 곳 푸른 파도에 묻히고 막혔을 지라도 어찌 마음속의 고향마저 지워질까 해마다 이 곳 찾아 망배로써 고향 생각 달래리라. 그 누군가가 썼을 글귀가 마음에 다가온다. 이런 연유로 해서 수몰되어 고향을 버려야 했던 크고 작은 댐들이 참 많 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파로호, 합천댐. 충주호, 옥정호 등 하나같이 아름다운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이런 곳 에 꼭 댐이 필요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모두 너무도 아름다운 비경을 간직하고 있기에, 난 망향정을 벗어나 물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자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송악정이 눈에 들어왔다. 난 정자 위에 서서 물가를 바라보았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물가에도 대나무 숲 사이에도 내 마음에 도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화순, 적벽을 찾아서(쌍화점) 138

139 잃어버린 아름다운 시절 : 전쟁이 막 끝날 무렵, 이야기는 어느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극 중 창희(김정우분)는 개성에서 내려온 성민(이인 분)네 집 아래채에 세 들어 산다. 미군 부대에서 일하는 큰 딸의 주선으로 일자리를 얻은 최씨(안성기 분)의 살림살이는 나날이 좋아진다. 그러나 아버 지가 의용군으로 끌려간 뒤 창희 네는 집세도 내지 못할 정도로 어렵다. 가난에 찌든 창희어머니를 보다 못한 최씨의 주선으로 안성 댁(배유정 분)은 미군들의 빨랫감을 맡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강가에 널어놓은 미군들의 빨래가 없어진다. 안성 댁은 곤경에 처하고 빨래 값의 변상조건으로 미군 병사와의 정사를 받아들인다. 둘도 없는 친 구인 성민과 창희는 동네를 기웃거리다가 방앗간에서 안성댁과 미군 병사를 보게 된다. 다음날 미군과 정사를 벌이던 정미소에 불이 난다. 미군이 죽고, 창희는 갑자기 마을에서 종적을 감춘다. 이듬해 여름 정미소 근처 늪에서 심하게 부패한 아이의 시체가 발견된다. 성민은 그 시체가 창희라고 생각한다. 동네 아이들과 함께 상여를 만들고 장례식을 치러 준다. 창희와 자주 가던 느티나무 밑에 가묘도 하나 만든다. 휴전협정이 맺어지고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던 창희의 아버지가 마을로 돌아온다. 그는 실종된 아들의 가출 이유를 수소문한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유일하게 사건의 전말을 아는 성민은 입을 굳게 다문다. 성 민의 누나는 미군 장교의 아이를 임신한 채 버림받는다. 성민의 아버지 최씨(안성기 분)는 미군부대에서 몰래 물건을 잃어버린 아름다운 시절 139

140 빼돌리다 발각되고 온몸에 붉은 페인트칠을 당한 채 부대에서 쫓겨난다. 미군의 추가적인 보복을 피하기 위해 성민이 네는 마을을 떠난다. 이 작품은 섬세한 구성으로 그 시대 우리들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줬다. 영화 아름다운시절 의 사실적이면서도 빼어 난 영상미는 신예 이광모 감독에게 해외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다. 감독은 이 작품을 위해 많은 장소를 수개월 동안 찾아다니는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느 자동차 회사 동호회 소식지에 실린 사진을 보고 그가 찾아 간 곳은 경남 의령의 한우 산이었다. 시대적 배경을 담는 영화에서는 극적 리얼리티의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우선 현 대적인 구조물이 없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우산은 이러한 요건에 부합된 적절하고 카메라 구성에 잘 어울리는 곳이다. 영화의 마지막 롱 테이크 장면에서 우마차에 짐을 싣고 산자락을 굽이굽이 내려와 떠나가는 모습은 내게 긴 여운으로 남아 있다. 경남 의령의 한우산 비포장의 구불구불한 산길은 길을 나서는 가족의 모습과 교차되면서 인생길 도 이런 굴곡 같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오래전, MBC 드라마 영웅시대 촬영장소를 찾으러 난 이곳까지 왔었다. 경남 의령에는 남강이 흐르고 그 강물 위 로 한강철교와 비슷한 정암교가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5.16 군사혁명 당시 쿠테타 세력들이 한강철교를 건너는 장면 을 촬영했다. 극중 차지철(정흥채 분)의 지휘 아래 검문소를 통과하는 장면이었다. 난 의령군청에 들러 드라마 영웅 시대 의 촬영계획에 대해 소상히 알려줬다. 군청관계자는 정암교 차량통제를 관계기관과 협의해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경남 의령에는 촬영할 곳이 많다면서 나를 한우산으로 데리고 갔다. 때 마침 잘됐다싶었다. 영화 아름다 운시절 마지막 장면에서의 잔영이 머릿속에 남아 있어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보아야겠다고 내심 생각하던 차였다. 군청을 빠져나온 관용지프는 한우산으로 가고 있었다. 가는 도중 정곡면 어느 마을길로 접어들었는데 그는 눈앞에 보 이는 집이 삼성그룹 창업자 호암 이병철 회장의 생가라고 했다. 난 대대로 이어져 온 부농이었다는 그 안이 궁금했 다. 난 그의 안내에 따라 그 집으로 들어섰는데 앞에는 사랑채, 뒤의 건물이 안채라며 전형적인 조선시대 양반집이라 고 했다. 그러고는 안채 오른쪽 암벽을 가리키며 그 형태가 돈을 쌓아놓은 모양이라고 했다. 그리고 뒤의 나지막한 산이 노적봉 형상인데 주변에 있는 산이 모두 여기에 모이는 혈 자리라고 했다. 난 긍정도 부정도 아닌 표정으로 가 만히 듣고 있었다. 그렇지만 솔직히 별 느낌이 없었다. 나를 태우고 한우산으로 가고 있는 그는 궁유라는 마을에 이르러서는 30년 전 비극적인 살인사건이 일어난 곳이라고 했다. 하룻밤 새에 순박한 마을주민들을 이곳 파출지소에 근무하는 우씨 성을 가진 순경이 무차별 권총으로 살해했다 는 것이었다. 이 평화로운 마을을 한순간에 초토화한 살인사건은 기네스북에도 올랐다고 말해줬다. 하룻밤 사이에 무 려 수십 명의 주민을 그것도 별다른 이유도 없이 살해했으니 충분히 그럴만했다. 어렸을 때, 그 기억들이 불현듯 떠 올랐다. 라디오에서는 끔찍했던 상황을 전하는 방송이 흘러나왔고 흥분한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까 탄식했 다. 어린 나의 기억에도 당시의 끔찍했던 상황이 쉽게 잊히지 않고 어느 한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가는 것이다. 우리 는 마을을 벗어나 궁유면 벽계저수지를 끼고 달리고 있었다. 암벽이 한가운데 있어 저수지 물을 꿈적 못하게 가두어 놓은 듯했다. 지프는 산의 초입에 서 있었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비포장 된 산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내가 가본 많은 산과 비교 해서 그다지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아름답다는 표현은 이곳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구불구불한 산길은 묘한 느 낌이 들었다. 그냥 구불구불, 인생도 구불구불, 그 누군가 삶의 굴곡을 얘기한다면 이곳에 와서 비교해 볼 일이다. 둘 중에 누가 굴곡이 많은지를!! 이 길을 따라 오르면 한우산 정상이 나오고 겹겹이 둘러싸인 산세가 자골산으로 이어진 다. 현란하다거나 황홀한 맛은 없어도 고즈녁한 분위기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난 이 산이 주는 매력이란 인생을 닮아 잃어버린 아름다운 시절 140

141 있는 구불구불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인생이 재미있거나 황홀하지 않은 것처럼! 영화 아름다운시절 에서 섬진강 양지바른 한 귀퉁이의 미군 군복들, 햇볕을 받아 은빛 물결에 반짝이는 기하학적 인 장면이 연출된다. 아이들은 무더운 여름 한 낮 강가에서 물장구를 치고 있다. 미루나무 아래 흘러가는 냇가에서 뭔가 작전을 꾸미고 있다. 섬진 강가를 따라 난 마을길을 먼지를 훌훌 내며 달리던 군용차량, 미군 병사와 정사를 벌 이던 정미소, 영화 아름다운시절 의 또 하나의 촬영지인 섬진강 줄기의 임실군 구담마을이다. 난 임실군 강진면 작은 읍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타고 옥정호가 있는 마을을 찾아가겠다는 애초 의 생각은 바뀌어 이내 구담마을로 행선지를 바꿨다. 임실 강진읍에서 출발한 버스는 좁은 도로를 따라 순창방면으로 가고 있었는데 버스 안은 두서 명의 노파와 여행 가방을 멘 나 그리고 뽕짝을 틀어대며 따라 부르는 기사가 전부이 다. 텅텅 비어 있는 버스는 어느 시골길을 달리고 있을 때 난 버스기사에게 다가가서 구담마을을 가려는데 어디서 내려야 하죠? 라고 물었다. 버스기사는 구담 마을까지는 버스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천담마을에서 내려 걸어가 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천담마을 입구인 다리 앞에 날 내려 주었다. 1997년 가을, 영화 아름다운시절 을 촬영할 당시 천담마을에서 구담마을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차가 통행하기에도 비좁은 길이었다. 갈대가 양옆으로 나있는 황톳길을 군용트럭들이 흙먼지를 훌훌 일으키며 달리고 있다. 아이들은 "할로 기브 미"를 외치며 초코릿을 달라고 다가가던 길이다. 마을 입구의 정미소에서 미군 병사와 정사를 벌이고 나 오던 창희엄마(배유정 분)는 최씨의 자전거를 따라 그 길을 걷는다. 갈대가 하얗게 피고 황톳길을 따라 걷던 그 장면 은 알 수 없는 회한이 묻어난다. 천담마을 입구에 있던 정미소는 어디론가 간데없고 지금 난 콘크리트로 새로 단장된 그 길을 걷고 있다. 서글픈 마음으로,. 가슴속에서만 남아 있는 풍경들, 수채화 같은 기억들이 그곳에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은 내 마음의 풍경들이 가슴 찌릿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내 마음에 덧칠됐다. 이곳 구담마을 강가는 섬진강 상류여서 폭이 좁고 유량도 적어 어찌 보면 개울처럼 보이는 곳도 있다. 섬진강 줄기를 따라 도로 길섶에 매화나무가 길게 뻗어져 있었다. 아직 겨울이 채 가시지 않아 매화나무에는 꽃이 피지는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트릴 것 같은 봄기운이 느껴졌다. 꽃샘바람이 강물을 스쳐갈 때 남녘엔 꽃 소식이 전해져 온다. 봄이 오면 사람들은 전남 광양 섬진강가 다압마을의 눈 부신 매화꽃에 현혹되는데 그와 비할 바는 아니지만 구담마을로 이어지는 이곳의 매화꽃은 소박하다. 난 강가를 따라 걸으며 어느 매화나무에 푯말로 걸어 놓은 글귀를 들어다봤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매화꽃도 거져 보았죠. 매실 향도 그냥 맡으세요. 섬진강 흐르는 물 천천히 바라보시면 가진 것도 버리고 싶은데 왜 매실 열매까지 따시렵니까! 늙고 지친 우리 부모님들의 한해 식량입니다. 오늘도 참으로 아름다운 날입니다" 라고 쓰 여 있었다. 섬진강 자락을 따라 2km쯤 되는 산길을 꼬불꼬불 돌아가니 마을회관이 나타났다. 난 마을회관에서 비탈진 길을 따라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느티나무 아래 창희의 가묘가 있었던 곳인데 이곳에서 바라다보는 섬 진강 물굽이는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영화 아름다운시절 에서 아이들이 물놀이하던 장소이다. 강 건너 지척에 보이는 곳이 섬진강 상류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장구목이다. 장구목은 무수한 반복의 시간이 그 바 잃어버린 아름다운 시절 141

142 위 위에 기하학적인 문양을 만들어 놨다. 누구라도 한 번 눈을 맞추고 나면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장구목 바위 에 새겨진 물결무늬의 아름다움 중에서 단연 으뜸은 요강바위이다. 흡사 모양이 요강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장구목은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여러 차례 등장했던 곳이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드라마 허준 등 화면 곳곳에 장구목의 바위들이 담겨 있다. 특히 영화 아름다운 시절 이 촬영하기 이전에는 장구목은 숨겨진 속살 같은 신비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영화 아름다운시절 은 그 밖에도 여러 지역에서 촬영되었는데 운동회가 열리는 날, 마을 사람들이 힘차게 달리기 를 하는 장면에서 너른 공터의 투박함과 역동성이 살아있는 경남 창녕 우포에서 촬영했다. 순천 낙안읍성 마을은 수개월의 걸친 장소 헌팅을 통해 최종 낙점된 곳이다. 옛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돌담길의 풍 경, 이런 풍경들이 낙안읍성의 이미지들이다. 아름답고 정겨운 마을 풍경 때문인지 이곳에서는 수없이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됐다. 이처럼 영화 아름다운시절 에서는 흑백필름 영사기의 배경처럼 정겨움이 곳곳에 묻어난다. 풍 경이 영화의 중심이고 주연인 셈이다. 이 한편의 영화를 통해 우린 예술적 감흥과 추억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이미지 상품이라 할 수 있 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 의 촬영지로 섬진강 상류의 구담마을과 장구목 등 아름다운 풍경들이 빛났지만 너무 지나 친 관심인지 당시의 모습들이 많이 훼손되어 아쉬웠다. 영화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정미소는 이미 사라졌다. 이제 주 민들의 기억 속에서만 그 정미소는 존재한다. 몰이해인지 무감각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마을 입구에서 언덕 위 느티 나무로 가는 길은 나무 테크로 조성해 놓아 공간적 특성이 크게 훼손됐다. 천담마을에서 구담마을로 가는 길은 넓고 평평하게 만들어 놓아 옛 정취를 느낄 수 없었다. 난 여행을 하면서 그때 촬영했던 영화 속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남아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기대는 물거품으로 끝이 났다. 그 누가 이곳 에 와서 시멘트로 포장한 길을 걷고 나무테크로 연결된 동산에 올라 섬진 강가를 바라보고 싶겠는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영화 속의 이미지를 찾아서 향수와 추억을 체험하는 공간이길 바라는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의 답사 여행이 더욱 활성화되고 대중화되려면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함은 물론 드라마 속의 가상체험을 할 수 있는 세심한 배려가 아쉬운 것이다. 될 수 있는 대로 원형을 보존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아닌가 싶 다. 사람들은 영화 속의 인물과 배경을 동일시하고 그 장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이미지가 추억이 되고 상품이 된다.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고 그곳에서 당시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해져야 하는데 본래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된다면 결국 영화 속 느낌을 가져갈 수 없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특정 지역의 풍광이나 시설 등의 이미지를 상품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드라마 모래시계 가 선풍을 일으키자 배경 중의 한 곳으로 쓰였던 동해안 기차 간이역 정동진이 연간 수백만 명 이 찾는 유명관광지가 됐다. 그리고 내가 했던 드라마들 중에서 그대그리고나 촬영지였던 영덕 강구항은 경제가 어려웠던 외환위기 때도 지역적 호황을 맞았다. 또한 올인 이라는 드라마가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촬영지 중의 한 곳이었던 제주도 섭지코지 성당도 명소로 떠올랐다. 드라마와 영화가 새로운 관광자원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이바지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경우이다. 우리 주변 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특징적인 장소들이 많이 널려져 있다. 곳곳에 크고 작은 사찰과 성당 심지어는 다랭이 논이며 느티나무 한그루도 우리의 중요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 영화 아름다운시절 은 배경 속에서 그 시절 삶의 고단함을 향수와 추억의 이름으로 아름답게 덧칠했다. 그러나 이 잃어버린 아름다운 시절 142

143 젠 아름답고 빛나게 하려 했던 행위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음을 장구목은 알고 있을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으려 구담마을로 찾아갔는데 이제는 그때의 정서와 감흥을 다시는 찾을 수 없었다. 단지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섬진강 줄기의 장구목이 아닐까! 잃어버린 아름다운 시절 143

144 산막이 옛길을 따라서(재빵왕 김탁구) :26 플라타너스 숲 터널을 빠져나온 버스는 청주시외버스터미널에 닿았다. 전국을 한파로 휩쓴 동장군은 터미널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마저 묶어놓았는데 난 네온사인 불빛이 희미한 터미널 부근 어느 한 모텔로 찾아들어갔다. 수은 주가 급강하한 탓인지 방안 공기는 썰렁했다. 이른 새벽 눈이 깨인 것은 휴대폰에 맞춰놨던 알람소리가 아니라 방안의 찬 공기였다. 난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옷을 대충 주섬주섬 껴입고는 황급히 여관 문을 나섰다. 괴산 수전 외사리마을을 곧 바로 직행하는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 서였는데, 이 첫 차를 타지 못하면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과 여행 일정에도 차질을 빚을 것이기 때 문이었다. 내가 이처럼 부산함을 떤 것은 얼마 전에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KBS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주 무대인 충 북의 잘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를 소개해 달라는 잡지사로부터 원고청탁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괴산 갈론 마을이었는데 이곳을 중점 소개하고 드라마 제빵왕김탁구 촬영지 몇 군데를 다녀 볼 심산이었다. 드라마 제빵왕김탁구 는 7,80년대를 추억을 공감할 에피소드와 이야기로 복고적 향수를 뿜어내고 있는 드라마인데 내안의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 곱씹게 하는 드라마였다. 난 괴산 수전 외사리마을 삼거리입구 다리에서 내렸다. 난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산막이 마을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 면 다리를 건너 갈론마을으로 갈 것인가를 놓고 고민을 했다. 괴산댐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길이 마음에 끌렸는데 이런 선택은 차가 없는 나로선 늘 상 따라다니는 고민인 것이다. 그렇지만 난 애초 계획했던 갈론마을 길을 따라 걸 었다. 조금 걷다보니 눈앞에 괴산댐이 보였는데 댐에서 방류했던 물줄기가 그대로 꽁꽁 얼어붙어 있는 것이 보기 드문 장 관을 연출했고 내 몸을 으스스하게 했다. 두툼한 방한복을 입었는데도 대기의 찬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고 입 에서는 하얀 입김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갈론마을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에 있었는데 중간 지점 강 건너편엔 정자와 기와집 두서너 채가 고즈 넉한 분위기로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강을 건너 가보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질 않았다. 혹시 꽁꽁 얼어붙은 빙판이라 고 해도 깨지기라도 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직한 일이다. 갈론마을에 도착하니 익히 들어왔던 정보에 미치지 못한 실망감이 앞섰는데 펜션으로 바뀐 집들이 여럿 보였고 마을 은 유원지로 새롭게 탈바꿈하려는 듯 보였다. 난 마을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웬 낯선 사내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는 아침 일찍 이 마을을 찾은 내게 의혹의 시선을 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여름이라면 피서를 즐기려 이른 아침부터 계곡을 찾는 사람은 더러 있겠지만 아주 추 운 날씨에 이곳을 찾은 여행객은 뮌가 범상치 않은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상상도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난 마을을 조금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었는데 햇볕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흰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이 길로 계속 해서 들어가다 보면 갈론구곡(갈은구곡)이 나오는데 갈은이란 한자 뜻 그대로 칡뿌리를 캐먹으며 숨어 지내는 곳 이란 이름처럼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대개 다른 계곡들은 바로 옆으로 찻길이 지나지만 갈론구곡은 마을을 지나 한참을 걸어서 가야 한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한 여름, 이 갈론계곡에 들어서면 울창한 송림 사이로 꽐꽐꽐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차디차 다. 물빛은 쪽빛 같고 바닥의 잔돌들이 투명한 빛을 발한다. 갈은동문이란 글이 새겨진 제 1공의 바위에서 시작해 계곡을 타고 오르면 오를수록 점입가경이다. 특히 소나무가 빽 빽한 제 7곡 고송유수재와 바위 위에 음각해 놓은 바둑판이 있어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얘기가 전해오는 9곡 선국 암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산막이 옛길을 따라서(재빵왕 김탁구) 144

145 갈론계곡 깊은 골짜기의 비경을 찾아 헤맸지만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난 꽁꽁 얼어붙어 계곡 을 따라 걸으면서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에 내 발자국만 무수히 남겨놓은 채 마을로 되돌아왔다. 갈론계곡까지 더 이 상 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눈 덮인 계곡을 따라 걷는 느낌은 나름 운치가 있었다. 난 처음 버스에서 내렸던 곳으로 무작정 걸었는데 왔던 곳을 다시 되돌아가는 것만큼 재미없고 지루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기를 십 여 분 쯤 지났을까! 난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어 지나가는 차량을 히치하이킹했다.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손을 내 밀었는데 운 좋게도 난 지프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나를 태워준 그는 텁수룩한 수염을 한 인상 좋은 내 나이 또래 의 사나이였다. 차안에서는 흘러간 팝송이 흘러나왔는데 그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이 취미 아닌 취미 라고 자랑하며 내게 산막이 마을을 가보라고 권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날 수전교 다리 앞에서 내려주었다. 난 그가 알려준 대로 산막이 마을을 따라갔는데 댐을 막기 전 옛길을 복원한 길이 편안하고 나름 특색을 갖춘 모습 이 눈길을 끌었다. 괴산호를 바라보며 걷는 길에 소나무 숲 출렁다리도 만나고 꽁꽁 얼어붙은 괴산호를 조망할 수 있 는 전망대도 상쾌하고 재미있었다. 산막이마을 가는 길이 이처럼 잘 다듬어진 것은 제주 올레길을 시작으로 전국에 걷기 열풍이 불면서 이곳도 새롭게 복원된 길임을 알 수 있었다. 그 꾸며놓은 길이 자연스러움이 무너져 내린 것이 아닌 나름 운치가 있어 보였다. 이곳 산막이 옛길의 특징은 괴산호를 굽어보면서 걸어가는데 묘미가 있는데 걷기에 비교적 적당한 거리로서 나로선 그 길 이 짧은 것 같아 못내 아쉽기만 했다. 산막이 옛길 주차장부터 산막이 마을을 지나 노수신 유배지까지는 3KM 남짓으 로 느긋하게 걸으면 1시간 30분쯤 걸리는 거리였다. 산막이마을 끝에는 돌담이며 흙길이 시간을 멈춘 듯 서있는데 내가 건너편 갈론마을 길을 걸으면서 보았던 농가 3채 와 노수신의 유배지가 이 마을의 전부였다. 이것이 산막이 옛길의 종착지이기도 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강산도 변 하련만 이 산막이 마을은 그 모든 것이 단절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산막이마을은 조선시대부터 오지 중의 오지였다. 그럼에도 강물이 굽어 흐르는 빼어난 경관을 갖고 있어 조선 말엽 노성도란 선비가 달래강변의 깊은 산과 벼랑으로 둘러친 산막이마을 부근의 절경에 반해 아홉 곳의 절경에 저마다 이름을 짓고는 연하구곡 이 라 칭했단다. 그렇다면 그는 어찌 무슨 사연으로 이리 깊은 산중의 오지마을에 들었을까! 산막이마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었던 노수신의 유배지였다. 을사사화에 휘말려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노수신은 고난의 세월을 견뎌 훗날 영의정의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노성도는 다름 아닌 노수신의 10대손, 조상이 머물던 유배지를 관리하러 이 깊은 마을까지 들어왔던 노성도는 그만 산막이 마을의 풍광에 반하고 말았다. 달래강변을 둘러보며 빼어난 절벽의 풍광마다 이름을 붙이고는 연하구곡가 를 지었다. 그는 연하구곡가에서 이곳 산막이마을을 가히 신선이 별장으로 삼을 곳 이라고 감탄했다. 그러나 연하구 곡은 1957년 괴산댐이 준공돼 물을 가두면서 물에 잠겨 사람들의 기억에서 차츰 잊어졌고, 그저 전설 속의 절경 으 로만 남았다. 더불어 산막이 마을로 드는 길도 물에 잠겨 끊어졌다. 적막강산의 오지마을이 실날 같은 길조차 물에 막히면서 세상에서 한참 더 멀어지고 만 것이다. 산막이 마을에서 나뭇배가 놓여 있는 꽁꽁 얼어붙은 물가로 내려갔다. 여름이면 나룻배로 괴산호를 건너가야겠지만 난 걸어서 강을 건너가 보기로 했다. 평소 같으면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혹독한 날씨 탓에 꽁꽁 얼어붙은 강물이라 조 금은 안심이 되었다. 난 이곳 주민이 알려준 길을 따라 괴산호를 건넜는데 그 느낌은 짜릿한 스릴 만점이었다. 난 산 막이 옛길 오지마을에서 괴산호의 풍광을 바라보았는데 지난 것은 왜 이리도 아름다울까 생각했다.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보면 이 모든 것이 새롭고 감동으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매서운 한파는 태양의 열기에 조금은 누그러진 것 같다. 그러나 방한복 사이로 스며드는 칼바람은 살을 콕콕 쑤셨다. 추위가 조금은 가셨다지만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대합실 안에서 바라보는 괴산 소읍의 풍경은 얼음만큼 차가웠 고 을씨년스러웠다. 난 허름하고 어두컴컴한 터미널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문광리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드라마 제빵왕김탁 구 의 배경지였던 괴산 문광저수지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가려는 것인데 영 기분이 내키질 않았다. 가보았자 앙상한 나뭇가지를 드러낸 은행나무가 그다지 별 느낌이 없을 것 같기에, 터미널안내판에 보이는 지명들은 온통 계곡으로 가는 길만이 눈에 들어왔는데 각연사, 쌍곡구곡, 선유구곡, 연리지, 화양구곡으로 가 볼까도 생각했지만 피서철도 아닌 세상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이 추운 겨울에 계곡을 찾는 것도 산막이 옛길을 따라서(재빵왕 김탁구) 145

146 영 아니올씨다 이다. 난 한참 망설임 속에 터미널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산막이 옛길을 따라서(재빵왕 김탁구) 146

147 기차는 밤8시에 떠나가네 :42 눈 덮인 시골 마을의 종착역, 철도원으로 생활하고 있는 사토 오토마츠(타카구라 켄 분)는 호로마이역의 역장이다. 단 란했던 시절, 사랑하는 아내가 오랜 기다림 끝에 여자아이를 출산한다.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태어난 아기에게 이들 부부는 '눈의 아이'라는 뜻의 유키코란 이름을 붙여준다. 그러던 어느 날, 급작스런 열병에 걸린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던 아내는 눈처럼 차갑게 식어버린 딸의 시신을 부둥 켜안고 돌아온다. 딸의 죽음을 지켜보지 못한 채 역을 지키고 있던 사토의 가슴엔 깊은 상처가 남는다. 또 아내 시즈 에(오오타케 시노부 분)가 몹쓸 병을 걸려 병원에 입원하는 날에도 사토는 눈에 덮인 기차플랫폼 선로를 쓸고 있었 다. 시리도록 맑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아내마저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말았는데, 세월은 흘러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역장 사토에게 호로마이 역을 지나는 기차운행이 중지된다는 소식이 전해 진다. 번성했던 탄광촌이 문을 닫으면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호로마이역도 곧 폐쇄될 위기에 처한다. 정년퇴 직을 눈앞에 둔 사토는 오늘도 폐쇄될 기차역을 홀로 지키고 있다. 기차 플랫폼 선로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던 그에 게 한 소녀가 다가온다. 그 소녀가 자신의 죽은 딸 유키코라는 사실을 알게 된 사토, 눈 덮인 간이역을 지키고 있는 기차는 밤8시에 떠나가네 147

148 철도원의 끝 모를 슬픔이 잔잔하게 배어나온다. 죽은 딸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얼마나 깊었으면 딸 유키코의 혼령이 사토의 가슴에 남았을까!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죽음으로 갈라놓은 눈 덮인 시골 간이역, 역장 사토는 참아 오르는 슬픔에 겨워 먼 하늘을 바라본다. 영화 도입부는 흑백색의 톤으로 증기기관차가 요란한 기적과 함께 연기를 내뿜으며 달려온다. 회색빛 산골마을을 지 나가는 기관차, 아무도 찾지 않는 눈 덮인 시골 간이역, 회한의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역장, 삶의 마지막 종착역으 로 향해 가는 이별여행 이러한 이미지가 남아있는 이 작품은 이시다 지로 의 소설을 영화화 한 철도원 이다. 메 말라 가는 이 시대 단비처럼 마음을 적셔주던 영화였다. 얼마 전, 난 극중 시골간이역인 황지역(지금의 태백역)을 배경으로 한 MBC 드라마 에덴의동쪽 촬영지를 찾아 나 섰다. 이번 여행은 영화 철도원 의 배경으로 나오는 호로마이역과 같은 이미지의 장소를 찾는 일이다. 난 청량리역에서 안동으로 가는 밤 8시에 떠나는 중앙선 기차를 타기위해 집을 나섰다.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먼 길을 여행하는 난 늦은 시간 밤기차를 타는 것이 더 편하다. 그래야만 다음날 목적지에 내려 더 많은 곳을 돌아볼 수 있어서이다. 이른 새벽, 역에서 빠져나와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골 길을 걷는 느낌이란 남들은 생경하겠지만 나에 겐 익숙하다. 여하튼, 난 싫든 좋든 여행을 직업적으로 해야만 하는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촬영지를 찾는 일을 한다. 혹자는 여행 을 업으로 삼아 월급 받고 일하는 나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에 적합한 장소를 찾는 일이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어서 하루에도 수 백 번씩 때려 치고 싶다는 생각을 밥 먹듯이 한다.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 움이 늘 마음을 짓누르곤 하는데 그래서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옛말은 내게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내가 안동으로 향하는 중앙선 기차를 타고 무작정 여행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단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그것은 시간이 멈춰 선 듯 예스러운 분위기의 역사가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 많아서이다. 중앙선 분기점인 영주역으로 가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차를 타고 가다보면 뭔가 해결되겠지 라는 막연함으로 발길을 옮겼다. 때로는 생각을 단순하게 하다보면 마음이 여간 편안한 것이 아니다. 될 대로 되라 식이다. 한마디로 배 째라! 라틴어로 케 세라 세라 이다. 마음을 비우면 여러 가지로 순조롭고 편안해질 수 있음을 난 잘 안다. 촬영을 하다보면 이것이 아니면 절대 안 돼! 라고 생각되는 통념이 무수히 바뀌고 변형되고 포기되는 일들을 많이 봐왔다. 그것을 수수방관이나 체념 정도로 해석 한다면 무리가 있겠지만 살아오면서 경험한 내 나름의 삶에 한 방편이다. 난 이번 여행이 막막한 쉼표가 되지 않길 바랐다. 그리고는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 귀를 기 울이며 긴 의자에 내 몸을 맡겼다, 밤 열차를 타고 가면 여행객이 그리 많지 않아 긴 의자를 길게 뒤로 젖힌다. 그리 고 옆자리에는 배낭을 놔두는데 보다 넓게 공간을 사용할 수 있어서 왠지 기분이 좋다. 마치 덤으로 물건을 하나 더 얻은 것처럼, 해방 공간의 자유스러움도 잠시일 뿐, 될 대로 되라! 식의 호기도 어느새 마파람에 개 눈 감추듯 사라지고 아무 계 획 없이 떠나 온 후회됨이랄까! 난 늘 이런 식의 연속이다. 여행 자체가 그 목적이라면 설렘으로 가득 차 있겠지만 막상 일과 연결된 여행이란 마음을 짓누르는 중압감에 사로 잡히게 되는 모양이다. 한참을 달렸을까! 지친 듯한 역무원의 영주역 도착을 알리는 멘트가 스피커를 통해 새어 나온다. 친절하게도 아니 성 가신 역무원의 안내멘트가 없었다면 난 졸음에 겨워 목적지를 그냥 지나쳐 버렸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무신 기차는 밤8시에 떠나가네 148

149 경하고 게으른 나의 파수꾼인 셈이다. 영주에 도착하니 역 광장엔 어둠이 짙게 깔렸고 아직 차가운 밤공기가 대기를 가르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택시기사의 호객소리와 길 건너편 모텔 간판이 눈에 반짝였다. 단 몇 시간만이라도 달콤 한 숙면을 취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했다. 모텔로 가야할 지 아니면 찜질방으로 가야할 지 한참을 망설였다. 이런 선택은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 에서처럼 잘못된 선택이 내 운명을 바꿔 놓기라도 한 듯 이상한 결벽증에 시달리게 된다. 대부분의 역 주변 모텔들 입구에는 퇴폐적인 분위기의 전단지가 수북이 쌓여있다. 또 모텔 방안 TV 채널을 돌리면 선정적인 화면이 오히려 수면을 방해 받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가끔은 역 대합실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물론 공짜로 말이다. 몇 해 전, 난 강원도 정선 함백에 있는 세빗재 고개를 넘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세찬 바람은 산꼭대기 벌거벗은 고랭지 채소밭으로도 날아온다. 강원도의 칼바람은 매서웠다.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어둠은 길손처럼 찾아오고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산에서 내려왔다. 배는 허기졌고 인적 없는 거리에 덩그렇게 기차역이 보였다. 난 예미역 이라는 예쁜 이름의 간이역 문을 열고 좁은 대합실로 들어갔다. 난롯가의 조금 남은 온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난 기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전라도 구례로 가야 한다. 몇 번을 갈아타면서 말이다. 아직 기차가 올 시간은 멀었다. 기차 는 연착돼서 늦게 오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결코 먼저 오는 법은 없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시골 기차 간이역! 낯선 여행지에서 스스로 자연스러움을 느끼는 자 있었던가! 기차표를 팔 고 있는 역무원, 그의 알 수 없는 웃음. 그리고 침묵. 이 시골 간이역엔 그와 나만 있을 뿐이다. 이 좁은 대합실의 주 인은 누구일까! 진정 주인은 대합실 한쪽에 놓여 진 낡은 연탄난로가 아닐까 생각했다. 연탄난로가 없었다면 기차표 를 팔고 있는 역무원도 없었을 것이고 여기서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을 테니까! 난 이름처럼 예쁜 예미역에서 기차 오 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연탄난로에 내 몸을 맡기면서 달콤한 선잠에 빠지던 그 때 간이역대합실이 그 어떤 모텔보 다도 더 안락하고 달콤했다. 이튿날, 난 영주역을 다시 찾았다. 역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모두들 의아한 듯 나를 쳐다본다. 내가 말했다. "강원 도의 험준한 지형처럼 산으로 에워 싼 기차 간이역을 찾고 있노라고 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철도업무에 종사 해온 분 들이라 명쾌하게 그 위치를 알려주었다. 일을 하는데 있어서 불확실성은 그 어떤 것보다도 두려운 대상이다. 그리고 때로는 직관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경험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난 역무실 문을 빠져 나왔다. 오 랜 경험이야말로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고 난 믿는다. 그래서 난 여행을 할 때면 으레 그 지역 그 동네에 거주하는 나 이 지긋하신 분에게 길을 묻는 것이 늘 몸에 배어있다. 버스는 시골가로수 길을 따라 몇 개의 마을을 지나고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강 물은 낙동강 줄기일 것이다. 버스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평은리에 닿을 수 있었다. 십여 가구 남짓한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움이 묻어나는 그런 동네였다. 동네에 한 곳 뿐인 듯한 슈퍼마켓을 벗어나 낮은 언덕길을 따라 오르 니 눈앞에 평은역이 나타났다. 오래된 역사 분위기와 지형이 흡사 강원도 황지 역을 재현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성공이다. 그것도 아주 쉽게. 중앙선인 영주역은 영동선과 경북선이 갈라지는 기차의 출발점인 동시에 종착역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기차는 봉화, 춘양 그리고 승부역으로 가는 영동선으로 이어진다. 또 예천, 용궁을 거쳐 점촌으로 가는 경북선과도 만난다. 중앙선 은 청량리에서 출발해 제천을 거쳐 이곳 영주역에서 분기되어 갈라지고 평은역을 거쳐 안동으로 간다, 이곳에서 다시 기차는 밤8시에 떠나가네 149

150 군위 우보역과 증기기관차 취수탑이 남아 있는 화본역을 경유하게 된다. 중앙선은 여러 선로들이 복잡하게 미로처럼 얽혀 있다.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곳을 들여다보면 다른 구간보다도 더 한가로움이 묻어나는 시골 간이역이 적잖이 남아있다. 경북선을 타고 경북 군위에 있는 화본역에 내리면 그림엽서처럼 예쁜 역이 눈에 들어온다. 난 이곳에서도 간이역이 주 배경인 드라마 도시락 을 촬영했다. 처음에는 화본역 외양이 예쁜 것에 마음이 끌려 난 촬영지를 이곳으로 결정 했다. 그런데 나중에 방송을 보고 난 이 역이 작품분위기에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기차간이역을 중심 으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담기에는 너무 예쁘다고나 할까! 차라리 그 옆 우보역이 더 나을 뻔 했다. 감독은 이 두 장소를 놓고 고민했는데 나의 꾐에 빠져 이리로 덜컥 결정해버린 것이다. 나로선 염치없고 미안하고 큰 죄를 지은 것 같다. 경북 군위에 있는 화본역은 하루에 두서 너 번 밖에 서지 않는 간이역이다. 기차플랫폼 선로 맨 끝에 놓여 있는 증기 기관차 취수탑이 꽤 인상적인데 사실 이것 때문에 드라마촬영지를 이리로 결정했는지도 모른다. 현재 취수탑이 있는 곳은 충북 추풍령역과 경남 삼량진역에 일부 남아있는데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 기차 간이역은 마음속에 눈꽃처럼 피어나는 이별의 그리움을 안고서 떠나간다.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기차 간이 역은 떠나는 것의 또 다른 이별의 시작일 뿐이다. 기차 간이역은 만나고 떠나는 사람들의 기다림과 그리움이 봄비처럼 젖어든다. 번잡하지 않은 일상. 느릿느릿한 삶을 난 늘 꿈꾸었다. 바로크 음악 아다지오 선율처럼 잠시 쉬어가는 삶의 방식을 난 시골 기차간이역에서 배운다. 그것이 중앙선을 타고 가는 여행객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하루에 기차가 두 서 너 번 정도밖에 정차하지 않는 기차간 이역은 추억이 묻어나는 그리움을 안고서 밤기차는 8시에 떠나간다. 기차는 밤8시에 떠나가네 150

151 소설 마당깊은집 탐방 (꽃보다 남자) :46 대구역에 내렸을 때는 거리에 어두컴컴한 빛이 깔리고 있었다. 짙은 코발트색 빛깔의 하늘과 빌딩에서 새어져 나오는 불빛들이 서로 뒤엉키며 신비한 빛을 뿜어냈다. 난 불빛을 쫓는 불나방처럼 그 빛을 따라 걸어갔다. 화려한 불빛의 백화점과 패스트푸드상점이 몰려있어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동성로 거리 한복판에서 난 잠시 머뭇거렸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저 어디쯤에 대구지역 첫 양옥집(1930년대)이라는 정소아과 의원과 중국인 소학교 그리고 옛 대구제일교회가 있는 골목길을 찾아가려는 중이었다. 예전에도 난 그곳을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다. 김원일의 자전적인 소설 마당 깊은집 의 주요 무대였던 그곳은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 서울 피맛골 골목을 연상케 할 만큼 상점들이 복잡하 게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소설 마당깊은집 은 전쟁이 막 끝난 1954년 당시, 대구 중심부인 약전골목과 중국인이 많이 거주했던 종로통을 낀 장관동에서 작가가 어렵게 살던 시절의 이야기가 풋풋하게 묘사된다. 한 겨울 김장하는 날, 어머니는 길남이에게 화 교소학교에 가서 세 지개의 물을 얻어오라고 한다. 열세 살 길남이는 출렁이는 물 지개의 중심을 잡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물에 젖은 손가락이 얼어 석고처럼 굳어졌고 떨어져 나갈 듯 아팠다. 길남이는 너무 사는 것이 고단해 빨리 늙어 노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길남이가 신문배달원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염매시장에 데려가 줄이 달린 검정운동화 한 켤레를 사준다. 또 어머니는 자주 염매시장에 가서 쓰레기로 버린 시든 배추 겉잎과 무 줄기를 잔뜩 이고 돌아왔다.(본문내용 중) 내가 어렸을 때 도 한국은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든 궁핍한 시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삶은 고단한데 문득 눈꽃처럼 피어나는 풋풋한 행복의 순간들이 기억 속을 맴돌고 있다. 한때 대가족이 모여 살던 우리가족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뿔뿔이 흩어졌다. 미아리 길음시장 근처 하얀 타일로 멋 을 낸 집 단칸방에 임시 세 들어 살았었다. 어느 날 엄마가 시장에 버려진 배춧잎 껍데기를 주워와 내게 끓여 주던 배추된장국은 천하 일미였다. 그 맛이 오래토록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데 지금도 아내에게 배춧국을 끓여달라고 하 면 엄마가 끓여주시던 예전의 그 맛이 좀처럼 나질 않는 것이다. 그것은 갖은 양념과 정성을 다한다 해도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세월의 장맛을 어찌 따를 수 있겠는가! 과거로의 회귀, 내 여행에서 지난 옛것에 대한 추억과 향수가 남아 있는 묵직한 일상의 주제들이 더 친근하게 다가오 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무겁고 암울했던 시대를 살아서일까! 아니면 편향적인 과거의 사고관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내게 있어 여행이란 그 어떤 주제에 대한 가벼움이나 혹은 무거움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인생 에 대한 성찰이 아닌가도 생각했다. 소설 마당깊은집 길남이네는 장관동 약전골목에서 종로로 빠져나가는 그 긴 골목 중간쯤에 있었다. 당시 이곳은 대구에서 가장 번화가였다. 그러나 지금은 번화가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대구의 옛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삶의 체험장이다. 난 대구를 여행할 때 가장 먼저 마당깊은집 을 떠올리지만 대구란 도시가 내겐 그리 낯설지만 않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 내 군 생활도 이곳 대구와 가까운 성주에서 복무했었다. 부대에서 휴가를 나와 고향인 서울로 갈 때면 으레 동대구로 와서 기차 타고 서울로 가곤 했었다. 또 한 동안은 대구 팔공산 정상 산꼭대기에서 통신망 보초 근무를 서면서 대구를 눈에 익혔다. 대구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있을 때도 난 대구 외곽 어느 도로쯤에서 경계 근무를 서며 잠시 스쳐 지나간 곳도 바로 대구였다. 그렇지만 대구 곳곳을 제법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일천한 것도 사실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한정된 공간이 내 추적의 전부인 셈인데, 하긴 서울사람이라도 남산 팔 각정에 오르지 못한 사람도 부지기수 일 테이고, 63빌딩 전망대도 아직 가보지 못한 사람들 또한 많을 테니까 말이 소설 마당깊은집 탐방 (꽃보다 남자) 151

152 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반경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다. 나 역시도 집으로 갈 때 항상 학교 캠퍼스를 끼고 집으로 가곤 한다. 그런 것처럼 내가 대구에 오면 꼭 맨 먼저 찾게 되고 또 이곳을 찾게 되는 이유가 늘 대구 계명대학교로부터 비롯된다. 그만큼 내가 이곳에서 많은 드라마를 촬영했다는 반증이기도 한데 이곳에 오게 되면 십 수 년 전에도 내가 처음 느꼈던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 와 영화 동감 이 촬영된 계명대학교는 담쟁이 넝쿨이 빨간 건물 외벽을 뒤덮고 있는 모습 이 고색창연하다. 계명대 대명동 캠퍼스 규모가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건물마다의 적절한 배치와 색깔 톤, 어우어진 정원 숲이 마치 외국 대학에 온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학교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아담스관이고, 노천강당을 조금 더 지나 걸어가면 백학관이 담쟁이로 뒤덮여 고풍스런 느낌을 준다. 그 옆의 바우어관도 온통 담장이로 뒤덮여있어 마치 담장이 넝쿨로 둘러싸인 비밀의 화원으로 들어서는 것 같다. 난 장미정원이 있는 이 부근 쉐턱관에서 MBC 드라마 에덴의동쪽 을 촬영했다. 극중 일본으로 유학 온 국영란(이 연이 분)을 만나러 학교로 찾아온 이동철(송승헌 분)과의 해후장면을 촬영했는데 학기 중이라 이들 연기자를 보려는 학생들로 캠퍼스는 북새통을 이뤘다. 족히 수 백 명도 더 된 인원을 통제하느라 촬영이 원활히 진행될 리 없다. 계속 해서 NG가 났다. 동시녹음 기사의 볼 멘 소리가 터져 나오고 막내 연출부가 나서서 학생들에게 애원복걸 사정도해보지만 이를 저지하 기엔 역부족이다. 학생들은 촬영장 저지라인 밖으로 한 치도 물러서질 않는다. 급기야 촬영을 포기할 정도의 수준인 one Scene, one Cut으로 처리해야했지만 그 누구도 왜 이런 곳으로 촬영팀을 이끌고 왔냐는 강한 어필을 하지 않 는다. 왜냐하면 대개의 캠퍼스가 면학을 저해한다는 구실로 촬영 장소섭외가 쉽지 않은데 이곳만큼은 예외이다. 그렇 기 때문에 많은 촬영팀들이 이곳을 찾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오래전, 아마 2000년도쯤이었을 것이다. MBC에서 방송된 드라마 이브의모든것 에서도 허영미(김소연 분)가 졸업 하던 장면을 미술대학 아담스관 후원 뜰에서 촬영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에도 난 사랑해당신을 에덴의동쪽 그리고 최근에 방송된 빛과그림자 등에서도 이곳 학교를 배경으로 촬영할 만큼 내겐 질기고도 긴 인연이 남아있 는 곳이 계명대학교이다. 최근에 방송된 KBS 드라마 사랑비 에서도 극중 서인하(장근석 분)가 김윤희(윤아 분)에 게 첫 눈에 반해버린 캠퍼스 장면이 펼쳐졌는데 이 모두 계명대 대명캠퍼스에서 촬영된 것들이다. 대구 계명대는 1955년 본관 건물이 준공되기 시작해 그 뒤 바우어관 그리고 60년대 건설된 쉐턱관, 아담스관 80년대 이후 비사관등 전체 15개동과 한 개의 노천강당으로 이루어져있다. 모두 붉은 벽돌과 그리스오더(열주원기둥)을 차용 한 신조지아 풍으로 설계된 아름다운 캠퍼스이다. 대구 계명대학교는 대명동캠퍼스 말고도 성서캠퍼스가 있는데 이곳 또한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정문으로 들어설 때부터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게 하는데 각 건물들의 색조가 대명동캠퍼스보다도 훨씬 가볍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화 사하다고하나! 동산 도서관 옆 도로에서 내려다보이는 본관 건물을 끼고 언덕으로 오르다보면 아담스 채플관이 나타나는데 이곳에 서도 드라마 에덴의동쪽 을 촬영했었다. 당시 우리는 해외촬영분인 마카오 시가지에서의 총격전 장면을 촬영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래서 대안으로 이곳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아담스채플관 앞 도로에게 총격전 장면을 촬영했다. 차량의 쫒고 쫓기는 총격전이 이곳에서 펼쳐졌는데 학교에서는 이를 크게 제지하지 않고 우리의 촬영을 도움을 주었 다. 그때 우리가 촬영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촬영팀이 이곳으로 촬영을 왔다. 그 팀은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대에 편성 된 경쟁사 프로그램인 KBS 드라마 꽃보다남자 촬영팀이었다. 시청률 경쟁의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격이 라고 할까! 더구나 그때 에덴의동쪽 에서 송승헌의 어린 시절 동철(김범 분)의 역할을 맡았던 연기자를 이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시청률 경쟁에 적으로서 나타난 김범(소이정 역)에게 넌 삼족을 멸할 반역자라며 우 스갯소리 하던 일이 생각났다. 대구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아담스채플관은 드라마 꽃보다남자 에서 주인공 구준 표(이민호 분)와 그의 친구들이 다니는 신화고등학교로 나오는 장소이다. 이 건물 주변으로는 메타쉐콰이어 나무가 길게 뻗어 있고 한옥의 아름다움이 남아있는 한학촌이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교정에는 목련꽃이 화사한 눈빛으로 인사하고 학교 캠퍼스를 걷는 학생들의 모습은 생기발랄하다. 과거 우리는 곤궁 했던 보릿고개에 학교를 다녔지만 지금의 학생들 삶도 그리 녹록치만은 않은 것 같다. 대학 입시경쟁, 반값 등록금, 소설 마당깊은집 탐방 (꽃보다 남자) 152

153 취업문제 등 마음을 옥죄는 것들이 예나 지금이나 어찌 보면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그런 생각이 미치자 캠퍼스엔 어 느새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다. 소설 마당깊은집 탐방 (꽃보다 남자) 153

154 예쁜 수목원 이야기 (미남이시네요) :57 내가 알고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인데 단체로 방송국을 견학하고 싶 다는 것이었다. 방송국 시설견학이 절차를 통해 허용되긴 하지만 누구든 쉽게 출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녹화리허설을 하고 있을 때 외부인이 출입하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국 에서는 외부인의 방문을 선별적으로 제한한다. 난 지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관계자의 협조를 얻어 흔쾌히 도움 을 주기로 했다. 일본인 단체가 방문하기로 한 날, 방송국 스튜디오에서는 드라마 빛과그림자 녹화리허설이 한창이었다. 카메라 위치며 배우들의 동선 등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촬영리허설을 방문객들은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내겐 지겹기만 한 TV 녹화과정이 그들에겐 퍽 재밌고 신기한 모양이다. 내가 인식하고 있는 이상으로 드라마 한류열풍의 바람은 뜨거 웠다. 외국인이 찾는 한국여행에서 드라마촬영 장소가 관광 상품으로 선호되는 것이 내겐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때론 촬영해야 하는 입장에선 그들의 견학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내가 평소 알고 지내던 연기자들 에게 사인을 요청하고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를 부탁하면서 성심성의껏 난 그들을 안내했다. 녹화스튜디오를 나와 방송국 로비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방송체험관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이곳에는 방송시설과 제작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가상스튜디오가 있다. 난 그들을 아나운서 부스에 앉혀서 뉴스 진행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주었다. 모두들 신기한 표정의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동심으로 돌아간 듯 해맑아 보였다. 우리가 방송체험관을 나왔을 때 로비 한쪽 에 커피프린스 라는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 방문객 중의 한 명이 이곳이 드라마 커피프린스 에 나왔던 장 소냐며 내게 묻는 것이었다. 난 그렇지않다 라고 말해주면서 그곳을 보려면 신촌 홍대부근으로 가야한다고 했다. 그 러면서 당시 드라마 촬영할 때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드라마촬영을 하게 되면 대개 장소렌탈비가 책정되게 마련 인데 커피프린스1호점으로 나왔던 카페 렌탈비가 턱없이 높아서 연출자가 문책 당할 뻔 했었다. 그런데 다행히 시청 률이 높게 나오고 시청자들의 반응도 꽤 좋아 무마될 수 있었다고 귀뜸했다. 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 을 연출자는 여자인데 현재 미국에 체류하면서 공부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또 그들 중 한 명은 SBS 드라마 미남이시네 요 에 나왔던 수목원이 어디냐고 물어오면서 그리로 좀 안내해 줄 수 없냐는 것이었다. 난 속으로 나도 먹고 살기 바쁜 사람입니다! 하면서 함께 온 관광가이드에게 부탁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꽃피는 봄엔 세상만물이 아름답지만 벽초지수목원은 봄 꽃구경을 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라 일러주었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조 각공원이 있는데 한류 열풍을 몰고 온 드라마 '꽃보다 남자' 미남이시네요 등의 촬영지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위치한 벽초지는 별장이었던 것을 한 개인 사업가가 수목원으로 조성했다. 수목원은 약 12만 m2(약 3만6천평)의 평지에 여러 종의 관목과 수생식물 그리고 정원을 조성해놓았는데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빛 솔원과 퀸스가든이 관람객을 맞는다. 빛솔원에는 수목원의 상징인 소나무 두 그루가 있다. 수목원 중앙에 위치한 퀸스가든은 화려한 꽃과 미로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여름이면 원추리 가을이면 코스모스, 구절초 등이 형형색색 정원을 물들인다. 퀸스가든 왼쪽에는 연못 벽초지가 있다. 수목원 이름이기도 한 벽초지는 꽃 나무 땅 그리고 물과 어울린 터 라 는 의미다. 연못 벽초지에는 연꽃, 창포, 수양버들 등 수생식물이 자란다. 퀸스가든 뒤편에는 두 그루의 모과나무가 연결된 연리지가 있다. 벽초지 주변에는 다양한 수목이 터널을 이루고 있는데 70m 길이의 아치형 터널인 장수주목 터널은 수목원의 인기 코스다. 무심교, 파련정, 연꽃이 군락을 이룬 연화원 등도 수목원의 볼거리다. 예쁜 수목원 이야기 (미남이시네요) 154

155 벽초지수목원의 얼굴은 단연 꽃과 나무에 둘러싸인 연못 벽초지이다. 벽초지 한가운데에 만든 연꽃 군락지 연화원에 는 작은 노랑어리연꽃과 수련이 피어난다. 나무데크로 호수를 가로질러 연화원에 이르도록 만든 수련길, 잠시 풍경을 즐기며 쉬어가는 정자 파련정, 또 통나무 를 엮어 만든 다리 무심교가 만들어 내는 풍경은 한 폭의 동양화다. 수양버들 가지가 늘어진 파련정은 잇몸약 광고 배경으로 나왔던 장소로 유명하다. 얼마 전, 난 EBS 교육방송 유아프로그램인 숲속친구 파파룰라 촬영지를 찾아 나섰다. 넓고 넓은 정원,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면 숲속의 요정들이 사는 아담한 공간의 오두막집이 나타난다. 이러한 공간을 찾아 전국의 여러 수목원 과 식물원등을 찾아다녔다. 각 지역의 꽤 특징 있고 예쁜 수목원을 돌아보면서 꽃향기에 취하고 나무들의 축제 마당에 들어선 느낌이어서 한결 마음이 편안했다. 나무와 꽃과 하늘을 보며 자연 속에 내 맡겨진 난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드라마 여름향기 에 나왔던 강원도 오대산의 한국자생식물원도 인상 깊었고, 영화 편지 를 통해 잘 알려진 아 침고요수목원 한국적 정원의 아름다움에도 취했었다. 경기도 용인 한택식물원도 비교적 단아한 수목원의 면모를 보여주었는데 그중에서도 파주 벽초지수목원은 자연과 인 공적인 조합이 매우 뛰어난 곳이었다. 이곳 벽초지수목원에서 EBS 유아프로그램 TV녹화를 희망했었다. 그렇지만 촬 영 렌탈비용을 감당할 만 한 수준이 아니어서 이곳에서의 촬영을 포기해야만 했던 아쉬움이 남았다. 경기도 포천 평강식물원도 소박한 얼굴을 한 식물원인데 이곳에서 MBC 드라마 내마음이들리니 를 촬영했던 곳 이다. 우린 EBS 교육방송 유아프로그램 촬영을 이곳으로 결정했다. 서울을 비롯해 경기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가 볼 만한 한 수목원들이 꽤 있다. 가족끼리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하기 좋 은 곳은 국립수목원이나 홍릉수목원이 좋다. 또 한택식물원과 아침고요수목원은 연인끼리 산책하기에 좋은 코스이다. 그렇지만 난 깊은 산중에서 만난 자연 상태로 피어있는 이름 모를 들꽃이나 양지바른 밭두렁에 피어난 제비꽃이며 민들레꽃이 더 내 마음에 와 닿는다. 수목원, 식물원의 나무나 꽃들을 보면 모두 저마다의 색깔과 특징이 있는데 자연의 바람과 공기와 햇볕에 의해서 또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서로 다른 미세한 색깔의 차이를 경험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일곱 빛깔 무지개 으로 알고 있는 것도 실은 여러 색깔로 인식될 수 있는 것처럼, 학교 다닐 때, 미술시간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려놓고 색깔을 칠할 때 화가의 느낌대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 다. 그런 것처럼 자연에서 꽃이나 나무들을 바라볼 때도 자신만의 느낌으로 들여다보면 만물을 구성하는 나무나 꽃, 하늘 등은 모두 저마다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다. 뉴턴은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온 빛을 프리즘을 통해 그가 자연에서 획득했던 인식체계로 무지개를 일곱 가지 색깔 로 구분했다. 당시의 이러한 발견은 놀라운 것이었지만 당시 뉴턴이 살았던 시대의 사고방식이 다분히 영향을 끼쳤 다. 당시엔 각각의 색마다 명확한 구분이 없었다. 무지개가 일곱 색깔이라는 것은 뉴턴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실제로 미국과 같은 영어권에서는 여섯 가지의 색깔로 구분하기도 하고 네덜란드에서는 다섯 가지의 색깔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여러 나라의 무지개 색은 3색이거나 4색인 것도 있다. 심지어는 무지개는 단색인 경우도 있다면 학교 교육을 통해 배운 아이들은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일본의 산악지대나 하와이 마우이 섬에서는 종종 흰색 무지개가 나타난다고 한다. 무지개가 일곱 빛깔의 색이라고 말하는 사회와 그 문화 관계 속에서 우리는 편견 없는 삶을 살아 갈 수 있을까! 수목원 혹은 식물원에서 삼림욕을 통해 피톤치드를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 기능이 강화되며 살균 작 용도 이뤄진다. 난 은퇴해서 제 2의 인생을 산다면 시골에서 자전거를 타고 우편물을 배달하는 우체부가 되거나 또는 수목원 같은 곳에서 산림감시원 일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곤 한다. 휴양림은 휴식, 건강, 오락, 치유의 목적으로 제공된 숲이다. 그리고 수목원과 식물원은 언뜻 보면 같아 보이지만 엄 연히 구분되어 있다. 수목원이 나무숲의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식물원은 관상목적으로 조성된 공간이다. 관 할 부처도 각각 산림청과 문화체육관광부로 나뉘어져 있다. 전국에는 산림청에 등록된 수목원은 현재 31곳에 달한다. 벽초지수목원엔 나뭇잎와 꽃들이 봄바람을 타고 피어나는데 난 그것이 동양화인지 수채화인지 잠시 헷갈렸다. 봄이 오는 아름다운 정원 난 지긋이 그 꽃향기에 취하면 피고 지는 벽초지수목원의 꽃 이야기가 바람에 흩어진다. 예쁜 수목원 이야기 (미남이시네요) 155

156 예쁜 수목원 이야기 (미남이시네요) 156

157 천국으로 가는 길 :43 소설 당신들의 천국 (이청준 저) 주 무대이자 금단의 땅이었던 소록도, 한하운의 시 '보리피리'의 시상에서 느껴 지는 것처럼 서러움과 인간에 대한 그리움을 떠안고 있는 외로운 섬, 일제시대 한센병(Hansen,s disease)환자들을 강제로 수용하면서 일반인들과는 멀어져 버린 비운의 땅, 사람들 발길조차 거부했던 섬이지만 시리도록 아름다운 섬 이 소록도이다. 울창한 숲과 시원한 해변을 지닌 섬, 소록도 전남 고흥반도의 서쪽 끝인 소록도는 녹동 항 바로 앞에 있는 작은 섬이다. 녹동 항에서 불과 300여 미터, 배로 5분 도 채 되지 않는 지척의 거리다.(현재는 연륙교가 놓여 있다) 무서운 섬이라는 우리의 통념과는 사뭇 다른 울창한 숲과 아담한 해변이 마음에 와 닿는 섬이다. 소록도는 작은 사슴 이라는 뜻이며 한번이라도 이곳을 다녀온 사람이면 꼭 다시 가고 싶을 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난 오래 전 MBC 베스트극장 400회 특집 드라마 천국까지 백마일 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이 작품은 일본영화 철 도원 원작자인 아시다 지로 베스트셀러 동명 소설을 드라마타이즈 한 것인데 난 관심을 갖고 그 대본을 읽어 내렸 다. 내가 그의 작품 철도원이라는 일본 영화를 봤던 터라 그 분위기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잔잔한 감동이 찐하게 천국으로 가는 길 157

158 밀물처럼 전해져왔다. 원작은 작가 자신과 그의 장모를 모델로 한 자전적 소설인데 감수성과 따뜻한 인간애가 물씬 풍기는 그런 작품이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부도와 함께 불어 닥친 이혼과 방황, 생활의 궁핍으로 그는 생명의 위태로움에 처한 엄마의 병원 치료비를 대줄 능력마저도 없다. 엄마는 혼자의 힘으로 자식 넷을 키웠지만 형제들은 모두 엄마를 외면한다. 하지만 주인공 야스오는 엄마를 살려 줄 백 마일이나 떨어진 병원으로 찾아간다. 죽음을 눈앞에 둔 절박한 상황에서도 엄마 는 절망하는 아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그의 손을 꼭 잡아준다. 그의 소설을 리메이크한 드라마에서는 주인공 오봉재(최재성 분)가 술집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꿈도 희망도 없는 인 생 낙오자로 등장한다. 그는 한강철교가 멀리 내려다보이는 흑석동 달동네 옥탑방에 살면서 어느 날 죽음의 기로에서 선 엄마(오미연 분)의 소식을 들게 된다. 그러던 중 평소 알고 지내던 의사에게 엄마를 살려 달라고 호소하며 봉고차 로 백 마일을 달려가는데. 극중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엄마를 태우고 가는 길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길이었으면 했다. 천국으로 가는 백 마일은 굽이굽이 해안선을 따라 점점이 떠있는 섬들 그리고 이따금 지나가는 고깃배가 주는 정겨움과 푸근함에 취해보고도 싶었다. 그리고 올망졸망 모여선 한적한 어촌마을은 엄마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마력이 깃들기를 또 소망했다. 그래서 난 100마일보다 아주 더 먼 250마일쯤 되는 이곳 고흥반도까지 오게 됐다. 죽음을 앞둔 엄마의 불행이 천국으로 이어지는 길이기를 바라면서 내가 탄 버스는 어느새 이곳 녹동 항에 다다랐다. 바닷바람 습습한 공기가 온 몸으로 전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난 이 섬 안을 둘러보았다. 크지 않은 마을과 병원, 우체 국, 그림엽서 같은 성당이 눈에 보였다. 층계를 오르내리는 어린애처럼 난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 딛었었다. 그 섬 어 디에선가 병원균이 묻어나올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나병이 불치의 병도 아니고 쉽게 전염될 수 있는 병도 아니 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개름직한 마음을 난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나병보다도 더 무서운 편견과 무지가 내 안에도 자리 잡고 있구나 생각했다. 내가 이러할진대 이 곳 소록도의 나병환자와 그의 가족들이 사회적 편견과 냉대로부터 받는 상심의 크기는 상상이가고도 남았다. 난 하얀 병원 건물 옆길로 나있는 언덕을 따라 걸었다. 눈앞에 작고 아담한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세월의 더께가 느 껴지는 마리아상을 보면서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 순간 난 멈칫 했다. 예수 십자가를 마주보고 긴 의자에 앉아 엎드린 채 묵상하는 사람이 보였기 때문이다. 성당내부는 어둡고 칙칙했지만 간간히 창문을 통해 새어 들어오는 빛이 분위기를 평온하게 이끌었다. 난 그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문을 다시 닫고 그 성당을 빠져나왔다. 난 불가지론자이지만 그 어떤 종교적인 신념이나 오로지 신앙에 대한 믿음 하나만으로 그는 인고의 세월을 견뎌 냈 을 것이라 생각했다. 주말인데도 이곳을 찾는 여행객은 나 이외엔 없는 것 같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한가로운 이 길을 따라 걸었는데 붉 은 벽돌의 빛바랜 색채를 띠고 있는 건물 하나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서니 안내표지판에는 수탄장 이라고 씌어있었다. 이곳은 나병환자와 그의 가족이 전염될까봐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눈으로만 바라본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인 것 같았다.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의 보고픈 그리움을 물리적 공간으로 나눈 모습이었다. 그것은 마치 교도소에 면회를 온 철장과도 같은 분위기였다. 오래전 동네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의 주인공은 내가 평소 좋아했던 메릴 스트립이라는 배우였는데 난 영화의 내용은 뒷전이고 사실 그 여배우가 좋아서 극장을 찾았었다. 그러나 영화의 내용은 그야말로 감동의 물결 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마지막 크리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도 난 그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극장을 나와서도 집으 천국으로 가는 길 158

159 로 가는 길을 한참을 돌고 돌아 집으로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영화 제목은 소피의선택 이었는데 유태인 포로수용소 아우츄비츠에서 여죄수 소피(메릴 스트립 분)는 독가스 실이 있는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어린 자녀와 죽음의 이별을 해야 하는 그 장면이었다. 영화는 전쟁의 상처를 통해 소피의 치유할 수 없는 일그러진 삶을 그리고 있다. 난 흰색 건물 병원 지나서 여러 가지 나무들로 잘 꾸며진 중앙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공원의 정원 중앙탑에는 한 센병은 낫는다 라는 글귀가 보였다. 그리고는 천국이 있다면, 기적이 있다면 하고 머릿속에 되뇌었다. 그 옆에는 반송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쇠약하고 병든 나병환자의 한 맺힌 것만큼 아름드리나무에서도 그런 풍파가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또 중앙공원에는 한하운 의 '보리피리' 시비가 바위 위에 새겨져 있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닐니리/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닐 니리) 그 누가 이곳 나병환자들의 한 맺힌 설움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한하운 님의 '보리피리' 시구만큼 그들의 마음을 잘 표 현한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한센병 환자여서일까! 그렇기에 이 시구가 적혀 있는 시비에서 굽어보는 중앙공원은 눈물겹도록 더 아름답다. 중앙공원을 빠져나와 난 바다가 멀리 보이는 백사장 벤치에 앉았다. 길게 늘어진 해송 숲 사이로 미풍이 불어왔다. 고요한 흐느낌이었다. 나병환자들은 이곳 바다를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 평화와 안식을 취했으리라! 과거 우리는 한센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그들을 외면했다. 그렇기에 섬 소록도가 우리에게는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은 그런 섬이었다. 한하운 시인의 추억과 그리움이 진한 감동으로 묻어나는 소록도! 이곳에서 그의 시구를 음미하며 천국으로 향하는 마 음의 문을 열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천국으로 가는 길 159

160 7,560일간의 드라마 여행 블로그 붉은 강가를 헤맬 때 저자 흐르는강물처럼 발행일 :30:51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복제와 전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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