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최종- 행정학회-1900년 울릉도시찰위원 우용정의 돌섬 인식과 울도군 칙령의 석도(독도) 문제 - 행정학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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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1년 한국행정학회 동계학술대회 및 정기총회 건강한 국가, 행복한 시민: 정부역할과 정책수단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여성가족부, LG화학 1900년 울릉도시찰관 우용정의 돌섬 인식과 울도군 칙령의 석도(독도) 문제 적요 대한제국 정부는 1900년 10월 27일 강원도 소속으로 울릉도를 군으로 설치하는 고시 를 시행했다. 울릉도의 이름을 울도군 이라고 하였고, 관할하는 섬에 죽도와 石 島 가 포 함되어 있다. 현재 한국측은 이 石 島 가 독도라고 주장하고 있고, 일본측은 이를 부정하 고 있다. 더욱이 최근 일본측은 설사 이 석도가 독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조선 시대의 우산도는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 연구는 1900년 6월 이전의 울릉도민의 돌섬 독섬 인식과 그 이용 상황 및 칙령 제41호 그리고 1906년 3월 28일의 시마네현 竹 島 조사단 방문시의 울도군수 심흥택의 대 응 및 심흥택의 보고를 받은 중앙정부기관 內 部 와 일본의 조선통감부 사이의 대응 관계 에 있어 핵심적 존재인 우용정의 돌섬 독섬, 즉 石 島 인식 형성과 대한제국 정부의 대 응과의 관계에 대하여 검토한 것이다. 주제어: 우용정, 울도군, 울도군칙령, 石 島, 돌섬 독섬, 內 部 시마네현 竹 島 조사단 목 차 1. 연구의 맥락과 의의 년 이전 울릉도인들의 독도 인식과 강치 잡이 3. 울도군칙령의 石 島 4. 심흥택 군수의 보고 및 시마네현 竹 島 시찰단 발언 함의 5. 결론 선우영준 한국 독도 통일연구소장

2 1. 연구의 맥락과 의의 가.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울도군칙령 )과 우용정의 독도 인식 문제의 관계 대한제국 정부는 1900년 10월 27일 강원도 소속으로 울릉도를 군으로 설치하는 고시를 시행했다. 울릉도의 이름을 울도군 이라고 하였고, 관할하는 섬에 죽도와 石 島 가 포함되어 있다. 현재 한국측은 이 石 島 가 독도라고 주장하고 있고, 일본측은 이를 부정하고 있다. 더 욱이 최근 일본측은 설사 이 석도가 독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조선 시대의 우산도는 아니 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울도군 칙령(제40호)을 발한 해인 1900년 상반기에 중앙정부의 관리로서 일본인 조사관 아카츠카( 赤 塚 正 輔 ) 등과 함께 울릉도에 가서 현지 조사를 했던 사람이 우용정이다. 그 당시는 현재와 같은 통신수단이 없었으며, 우용정 일행 외에는 울릉도 상황에 대하여 듣 거나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전 해인 1999년에 프랑스인 세무사 라포테가 울릉도에서의 일본인들의 행패에 대하여 일본인과 함께 조사하러 갔다 온 후인 1899년 9월에 황성신문에 울릉도에 관한 특별 보도가 있었는데, 그 보도에서는 우산도 와 석도 가 울릉도에 속하는 섬으로서 이름만 언급된 바 있다. 그리고 라포테는 1900년에도 우용정, 적총과 함께 울릉도 조사에 참여하였다. 1900년 한일공동 조사는 울릉도에서의 일본인들의 행패에 대한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정 부 사이에 공식적으로 실시된 조사이었으며, 그 조사 결과에 대하여는 그 후에 한성(현재의 서울)에서 양국 정부 사이에 여러 차례 논의된 바가 있다. 그리고 그 후인 1900년 10월에 울도군칙령 이 공포된 것이다. 그에 관계된 유일한 중앙정부 내부의 최고위직 관리가 우용 정이다. 따라서 우용정이 울릉도에서 조사를 하고 오면서, 현재의 독도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지 아닌지의 문제가 결국 석도가 독도라고 볼 수 있는지의 문제로 귀결되게 된다. 독도 관련 주제 전체에 있어, 어떤 전문가는 석도가 독도라는 것이 규명되는 것을 가장 중요하다고 보기도 한다. 다만, 필자는 두 번째 내지 네 번째의 주제라고 본다. 그러나 그 비중이 여하한 것이더라도 石 島 가 독도임이 명확하게 규명된다면, 그리고 그것을 일본 정 부가 인정한다면, 그 자체로 독도 문제는 완전히 종결된다. 이 점에 있어서는 일본 정부 또 한 같은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한일 양국 모두에 있어 울릉도 조사과정에 있어서의 우용 정의 인식 형성에 대하여 여하한 검토도 한 바 없다. 또한 우용정이 내부에 근무할 당시에 일어났던 1906년 4월 말의 사건과 7월 초의 사건에 대하여 검토된 바 없다. 이 연구에서는 우용정의 인식형성과 이미 일본 통감부의 지배를 받고 있던 조선국에서 우용정이 內 部 에 근무할 당시(1906년 4월)와 지방군수로 전출된 이후(1906년 7월)의 상황 등 을 종합하여 석도와 독도와의 관계를 검토한다. 이 주제는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그렇지만 또한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림 1은 1900년 6월 이전의 울릉도민의 돌섬 독섬 인식과 그 이용 상황 및 칙령 제41 호 그리고 1906년 3월 28일의 시마네현 竹 島 조사단 방문시의 울도군수 심흥택의 대응 및 심 흥택의 보고를 받은 중앙정부기관 內 部 와 일본의 조선통감부 사이의 대응 관계를 그림으로 - 1 -

3 나타낸 것이다. 그린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핵심에 우용정이 존재한다. 1900년 6월 이전의 울릉도민의 돌섬 독섬 인식과 그 이용 상황 (전달) (반영) (1900년 칙령 41호에서 인용된 관련자들) 울릉도감 배계주 부산세관 세무사 라포테 1900년 한일 공동 울릉도 시찰위원 우용정( 內 部 근무) 1900년 울도군칙령 (칙령 41호) 1906년 3월 29일 시마네현 竹 島 조사단의 울릉도 방문에 대한 심흥택 군수의 대응 심흥택 군수의 보고에 따른 1906년 4월~7월의 內 部 와 조선통감부 사이의 대응 그림 1. 우용정의 독도 인식 형성과 대한제국의 독도 문제 나. 영토에 관한 국제법 이해 어느 나라가 해당 영토에 대하여 적법한 근거를 갖고 있다면, 어느 국가는 그 결과로서 그 영토에 대한 주권(sovereignty)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국제법상 적법한 근거를 영토 권 원(title)"이라고 한다. 따라서 독도 竹 島 의 문제는 대한민국이 독도 에, 또는 일본이 竹 島 에 대하여 영 토권원(title or territorial title)을 가지고 있는지의 문제이다. 따라서 독도 또는 타케시마 영 토권원 ((a territorial title over "Dokdo" or "Takeshima") 문제는 국제법적 관점에서 적법한 근거를 형성할 요건 또는 요소를 한국 또는 일본이 가지고 있는지의 문제가 된다. 그런데 국제법에서 영토권원의 근거로서 인정되는 것은, 현재의 국제사법재판소에 의하 면, 다음가 같은 명확한 순위가 있다: 1 해당 국가 사의의 조약(treaties) 또는 합의(agreement); 2 어느 국가가 독립할 당시의 행정적 국가적 경계선(uti possidetis 원칙); 3 점령(occupation) 또는 실효적 점유(effective possession) 그리고 이와 같은 근거가 없는 경우에 한하여, 4 형평 및 기타 요소들이 고려된다. 필자가 위에서 이 연구의 주제가 전체 독도 문제 중에서 두 번째 내지 네 번째 주제라고 - 2 -

4 제시한 이유가 바로, 한국과 일본의 政 府 들은 물론이고 여타 전체 연구자들과 달리, 독도 문 제가 A)"와 B)"에 해당하는 문제이면서 동시에 C)"에도 해당되는 문제라는 확실한 근거 를 확립하여 갖고 있기 때문이다(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학위논문 독도 영토권원의 연구 에서 다루었으며, 앞으로 계속해서 책이 출판될 예정이다.). 1) 이 중에서 이 연구에서 다루는 주제인 점령(occupation) 또는 실효적 점유(effective possession)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A) 국가의 점유 의도; B) 실효적 점유 가 성립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국가의 점유 의도 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a) 국가(중앙정부)의 의도, 또는 b) 지방정부 또는 私 人 에 대하여 사전에 중앙정부, 즉 국가가 그 행위에 대하여 위임 을 했거나 아니면 지방정부 또는 私 人 의 행위에 대하여 사후에 追 認 을 했어야만 한다. 따라서 1900년 울도군칙령 과 그 후의 독도에 대한 실효적 점유가 공식 인정됨으로써, 독도 문제가 종결되기 위해서는 위의 a)"와 b)" 요건을 반드시 충족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중에서 이 연구는 울도군칙령이 a)"를 충족하는지 여부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일 본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선진국들이 영토를 취득하는 경우에 그러하듯이, 1905년 일본의 '타케시마 편입조치' 및 그 이후에 A)"와 B)"에 대한 완벽한 대처를 한 반면에, 대한제국의 경우에는, 전혀 그러하지 못했다. 다만, 이 점에 있어서는 주의가 필요한데, 한국의 연구자들 사이에는 신용하 교수를 포함 하여, a)"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주장을 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주장이 맞는지 여부는 확실 하지 않다. 유력한 견해의 하나는 그렇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b)"에 대 해서는 과거에 그 어느 누구도 주장한 바 없다. 오직 선우영준이 박사학위논문에서 확실한 논거에 근거하여 제시했을 뿐이다. 2) 이에 대해 국제법적으로 좀 더 제시하면, 선진국의 경우에는, 새로운 영토를 취득한 것을 천명하는 경우에는, 1) 관련 기관에서 현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2) 영토취득 사실을 밝히는 관보 등에서 그 섬의 위치를 명확하게 제시한다(경위도나 지도 등을 이용하여). 그런데 대한제국의 경우에는 독도에 대하여 이러한 절차가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제기 될 수 있는 문제는 1) 칙령의 석도 가 현재의 독도인지 아닌지 여부 및 2) 설사 석도 가 현재의 독도라고 하더라도, 무슨 근거로, 그 암석들이 실효적으로 한국의 영토가 된 것인지 여부 가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논란을 종결하기 위해서는 국제법적으로 적합 한 근거들을 제시해야만 한다. 1) 현재까지도 한국정부 및 일본정부 그리고 양국의 모든 연구자들은 이러한 연구 수준과는 전혀 다른 낮 은 수준의 연구에 머무르고 있다. 2) 그런데 필자가 놀랐던 것은,

5 년 이전 울릉도인들의 독도 인식과 강치 잡이 이 연구는 선우영준의 행정학(정책학 전공) 박사학위 논문인 독도 영토권원의 연구 (2006)를 출발점으로 한 것이다. 선우영준은 한국과 일본 전체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독도 영토권원(territorial title)의 핵심적 근거(material evidences) 전반에 대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한일 양측의 기존의 연구들 에서는 일부러 조작하거나, 누락시키거나 억지로 주장하거나, 전혀 해석을 하지 못하였거나, 근거를 찾지 못한 예들이 너무도 많았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지면 관계도 있고 하여, 양측의 잘못된 주장들을 나열하는 데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기 로 한다(선우영준의 논문에 나와 있음). 가. 울릉도인들의 독도 인식의 형성 울릉도인들의 동남쪽 섬의 존재 인식 형성 문제는 상당히 단순하다. 그러나 인간행태를 고려하여 그 필연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몇 개의 필수 정보가 필요하다: 1 당시의 가시거리(visibility distance). 2 섬을 발견한 인간의 행태 3 울릉도인들이 독도에 대하여 필연적으로 알게 되지 않을 수 없는 조건. 그리고 4 울릉도인들의 (반복적) 독도 이용 증거. 이 주제에 대하여 1~3을 먼저 제시하고 4를 다음에 제시한다. A. 울릉도인들이 독도를 필연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조건 1) 당시의 가시거리 이와 관련하여 당시의 가시거리( 可 視 距 離 )에 대해서는 선우영준의 독도책 시리즈 제1권 고려와 조선국 시대의 독도 (2007)에서 자세히 설명했는데, 결론은 당시의 가시거리는 200km 또는 그 이상 이었다. 그 반면에 울릉도에서 독도까지의 거리는 87.4km이다. 2) 섬을 발견한 인간의 행태 미국과 네델란드 사이의 팔마스(Palmas) 섬 사건(1928년)에서 휴버(Max Huber) 재판관은 거론된 섬이 실제로 팔마스 섬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많은 비중을 두면서 검토 하였다. 3) 그 중에서 섬을 발견한 인간의 행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Celebes 海 구역에는 어떤 다른 섬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항해자들이 1700년 11월과 12월의 3회의 항해에 있어 한 번도 이웃하는 섬을 보지도 못했고, 언 급하지도 않았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것 같으므로(most unlikely), 1700년 12월 10일 Larycque 艦 이 방문한 섬은 팔마스(또는 Miangas) 섬이라는 것은 최소한 대단한 가능성(at least a great possibility)이 있다. 이와 같은 휴버 재판관의 판단은 독도 영토권원과 관련하여, 독도의 동일성 확인만이 아 니고 여러 가지 해석에 도움을 주는데, 다음과 같다: 3) Jennings, 1963:

6 실제로 보았다는 기록의 내용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3회의 항해에 있어 한 번도 이웃하는 섬을 보지도 못했고, 언급하지도 않았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것 같 으므로(most unlikely) 라고 판단하였다는 것은 문자로 기록된 것 외에도 인간의 행태 도 재판에 있어 중요하게 고려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3) 울릉도인들이 독도에 대하여 필연적으로 알게 되지 않을 수 없는 조건 울릉도인들이 독도에 대하여 필연적으로 알게 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에 대해서 최초로 부정적 가능성을 제시한 사람은 카와카미 겐조( 川 上 健 三 : 1966)로 그는 울릉도 고지대가 울 창한 숲으로 덮여 있어서 독도를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이 주은 잘못된 것이 다. 그 반면에 한국측에서는 울릉도에서 독도가 사진촬영을 하고는 독도가 보인다. 고 주장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주장 또한 잘못된 것이다. 울릉도에서 독도 사진을 촬영하기까 지에는 인식적으로 여러 단계가 경과된 다음에야 가능하다:, 1) 독도가 울릉도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2) 그쪽을 주목(attention)하고 관찰해야만 한다. 그리고 2) 고성능 사진기와 같은 과학적 장비를 동원해야 한다. 알아야 할 것은 독도의 존재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도 그 옛날에 울릉도 사람들이 독도를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근거이다. 4) 조선 초기에 강원도에 흉년이 들었을 때 울릉도로 가서 먹을 것을 찾다가 독도를 발견한 사실에 대해서는 선우영준의 고려와 조선국 시대의 독도 에서 정리한 바 있다. 그렇지만, 울릉도에 사는 사람들이 독도를 발견하지 않을 수 없는 절대적 조건을 거의 유일한 것은, 동부 울릉도 고지대에 경작지가 존재하는 경우이다. 그림 2, 東 部 울릉도의 저동과 내수전리의 高 地 帶 밭( 田 ) 모습 이 곳은 獨 島 를 正 面 으로 볼 수 있는 곳으로 해발 미터의 高 地 帶 까지도 밭을 일구어 耕 作 을 하고 있다. 앞쪽의 산에서 밝은 부분이 밭이다. 해변에는 아파트 등 주거지역이 있다. 2005년 10월 27일 해질 때 쯤 필자 撮 影. 칼라 사진을 黑 白 寫 眞 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필자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던 중인 2005년 10월 27일 울릉도에 가서 가장 관심을 4) 마치 a) 장기간 미제로 되어 있는 개구리 소년들 이 어느 무인도에 살고 있다거나 아니면 변을 당했다 는 정보를 알고, 그 섬에 찾아가는 것과 b) 개구리 소년들 문제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또는 그 소년 들이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경우이에도 불구하고우연한 기회에 개구리 소년들 의 생사 여부 또는 흔적을 찾아내게 되는 것과의 차이에 해당한다

7 둔 것은, 過 去 에, 독도를 정면으 로 볼 수 있는 위치에서 경작을 했거나 그 곳에 사람의 접근이 가능했었을 것인지 여부였다. 이 를 위해 울릉도를 一 週 하는 遊 覽 船 을 타고 확인한 결과 울릉도에 서 독도를 정면으로 볼 수 있는 東 部 울릉도의 저동과 내수전리 일대에는 해발 미터 정도 되는 높이의 넓은 공간에서 대규 모의 밭을 경작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동부 울릉도 해발 200 미터 지점에서도 독도가 보인다). 그리고 하나의 경작 공간으로 서의 밭( 田 )의 上 部 와 下 部 의 높 이 차이가 수십 미터이상이 되었 다. 따라서 밭의 상단과 하단의 그림 3. 동부 울릉도 내수전리 전망대(해발 500 미터) 부근의 밭. 멀리 보이는 항구가 저동항이다. (2006년 12월 1일 필 자 촬영) 표고 차이는 한국에서 자라는 어떤 나무의 높이보다도 더 컸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望 見 하 는 경우에는 거의 水 平 線 방향으로 望 見 하게 되므로, 어떤 나무도 視 野 를 차단하지 못한다 는 結 論 을 얻게 되었다. 그림 3은 위의 사진 속의 한 지점인 해발 500 미터의 내수전리의 독도전망대 인근의 지 점에서 2006년 12월 1일 찍은 사진인데, 전망대와 같은 높이 지점에 경작지들이 분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울릉도에서 일정기간 사람이 정주하여 경작을 하였다면, 확인을 하지 못했을 가 능성이 절대로 없는 섬이 바로 독도이다(휴버 재판관 견해 참조 요망). B. 韓 海 通 漁 指 針 1) 책의 개요 葛 生 修 亮 의 한해통어지침은 黑 龍 會 에 의하여 1903년에 출판된 것으로, 그는 저술 목적을 명시하였다. 그 목적은 첫째, 한국에서의 일본의 세력을 부식하려는 것이고 둘째, 어업상의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葛 生 修 亮, 1903: 1-2). 이 지침은 조선해통어조합연합회(그 전신 의 명칭은 조선어업협회)가 지속적으로 조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주로 참조하였고 1893 년에 간행된 朝 鮮 通 漁 事 情 등도 일부 참고하면서, 자신이 직접 시찰하면서 보고 관찰한 바에 토대를 둔 것으로 판단된다( 葛 生 修 亮, 1903: 서언의 1 및 同 3-4). 5) 韓 海 通 漁 指 針 에서 다룬 내용은 당연히 한국의 항구와 섬 및 그 주변 해역에서의 산물 등 인데, 그 내용 중에 강원도의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기술이 있다. 韓 海 通 漁 指 針 에는 당시 일 본 어민들이 울릉도와 독도를 한국 영토로서 보고 있었다는 점 외에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들어 있다. 먼저 울릉도와 독도의 관계에 대하여, 1) 당시 사람들은 울릉도가 대소 6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도 하거나, 5) 그 외 葛 生 修 亮 이 참조한 자료는 日 本 水 産 動 物 圖 說, 淸 國 水 産 物 圖 說 및 淸 國 駐 在 領 事 官 報 告 類 이다 ( 葛 生 修 亮, 1903: 서언의 4)

8 2) 죽도와 송도 2도를 총칭한 것이라고도 하고, 또는 3) 지도에 두 섬을 병기한 것도 있지만, 이것은 큰 오류라고 지적하였다. 즉, 울릉도와 독도의 위치 관계에 대해서 한국인들이 잘 못 알 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고 울릉도의 다른 사정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록하였다. 독도에 대해서는 울릉도로부터 동남쪽으로 약 30리(120km), 일본의 隱 岐 島 로부터 서북 방향으로 거의 같은 거리의 바다에 있는 무인도라고 하였다. 또한 맑은 날에는 울릉도의 높 은 곳으로부터 바라다 볼 수 있고, 한인 및 일본 어민이 얀코도라고 부른다 6) 고 하였다( 葛 生 修 亮, 1903: 123). 또한 해마가 대단히 많이 서식하고 있다고 하였다. 수년 전에 전복, 海 鼠, 石 花 등이 풍부해서 수년 이전에 山 口 縣 의 잠수기선이 출어하여 잠수를 하였더니 무수히 많은 해마군에 방해를 받았다고 하였다( 葛 生 修 亮, 1903: ). 7) 따라서 그 책이 작성된 시점에 이미 한국인들이 독도를 얀코도 라고 부르고 있었다고 하였으므로, 그 당시에 한국인들이 독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확실히 해 두어야 할 것은, 만약 일본 어민들과 한국인들 간에 독도에 관하여 대화가 이루어진 결과로 한국인들이 얀코도(독도)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면, 동시에 1) 그 개략적인 위치 및 2) 독도에 강치가 무수히 살고 있다는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이다. 2) 葛 生 修 亮 의 울릉도 독도에 대한 정보 획득 시점 이제 葛 生 修 亮 의 韓 海 通 漁 指 針 이 언제를 기준으로 하여 작성된 것인가를 판단해 보면, 한국인들이 늦어도 언제까지는 독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가 규명되게 된다. 葛 生 修 亮 은 1899년 2월부터 육로로 부산에서부터 강원도를 거쳐서 원산에 갔다가 다 시 서쪽의 경성, 진남포, 평양 등을 시찰하고, 다시 경성, 충청도와 전라도의 중요한 도 시를 시찰하고 6월에 부산의 조선어업협회에 돌아왔다( 葛 生 修 亮, 1903: 서언의 1-2). 그 후의 조사 일정은 다음과 같다: 1899년 6월 27일부터 9월 9일까지 조선어업협회 제10회 파견 순찰선을 탑승하고 6) 다만 島 名 을 정말로 얀코도라고 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葛 生 修 亮 이 얻은 정보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검 토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얀코도 에 대한 정보를 한국인들이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도 검토할 가치가 있다. 7) 전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얀코도: 울릉도로부터 동남의 방향 약 30십리(120km), 일본의 은기국의 북서쪽으로 거의 같은 거리의 해중에 無 人 의 일도가 있고, 晴 天 의 울릉도 산봉의 고산으로부터 이것을 바라다 보게 될 수 있다. 한인 및 일본 어민은 이것을 얀코도라고 부르고, 길이는 거의 10여 町, 연안의 굴곡이 극히 많아서 어선을 정박하고 풍랑을 피하는 데 적절하다. 그렇지만 연료 및 음료수를 얻는 것은 대단히 곤란하여, 지상 數 尺 의 곳에서는 구멍을 뚫어서 쉽게 물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섬에는 해마가 대단히 서식하고 있 고, 근에에는 전복, 海 鼠, 石 花 菜 등이 풍부하고 수년전 이전 山 口 縣 잠수기선이 출어를 했지만, 잠수했 을 때 무수한 해마군에 방해받았다고 한다. 음료수 결핍 때문에 만족스럽게 영업을 할 수 없어서 복귀 했다고 한다. 관찰하면, 당시의 계절은 마침 5-6월이어서 해마의 산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특히 방해를 받은 것이 아닐까. 또 부근에 잡이가 좋아서 網 代 (물속에 나무나 대나무를 발처럼 쳐놓고 고기를 잡 는 장치)로 수년 이래 5-6월에 大 分 縣 繩 船 을 인수하여 출어한 사람도 있다. 작념 봄에 그곳에 귀항 한 어부에 관하여 들으니 출어는 아직 2-3회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충분한 효과를 얻었다고 할 수 없지만, 매 계절 상응하는 어획이 있고, 종래의 경험상 그 網 代 의 상태 및 類 의 서식의 모양 등으 로부터 관찰하면 장래 대단히 유망한 어장이라는 것에 의심이 없어서, 同 島 는 어쩌면 영업자를 위하여 더욱 충분히 관찰할 가치가 있어야 한다( 葛 生 修 亮, 1903: )

9 부산에서부터 두만강 연해를 시찰했다( 葛 生 修 亮, 1903: 서언의 2). 8) 1899년 10월 18일부터 12월 10일까지 조선어업협회 제11회 파견 순찰선을 탑승 하고 부산에서 목포와 제주도 간 연해를 시찰했다( 葛 生 修 亮, 1903: 서언의 2). 임시 파견 순찰선을 타고 울산만 포경업을 조사했다( 葛 生 修 亮, 1903: 서언의 2-3). 1900년 2월 26일부터 3월 27일까지 제12회 파견 순찰선을 탑승하고 부산에서 所 安 島 연해를 조사했다( 葛 生 修 亮, 1903: 서언의 3). 1900년 4월 29일부터 5월 27일까지 조선어업협회 제 13회 겸 조선해통어조합연 합회 제 1회 파견순찰선을 탑승하고 부산에서 군산포 간 연해를 조사했다( 葛 生 修 亮, 1903: 서언의 3). 그 다음에 명치 33년(1900년) 7월부터 淸 國 에 있어서의 韓 海 수산물 판로의 상황 을 거의 1년 간 조사하였다( 葛 生 修 亮, 1903: 서언의 2). 따라서 葛 生 修 亮 이 동해안을 조사한 것은, 1) 1899년 2월 초부터 6월까지의 조사 중에 먼저 육로를 이용하여 부산에서 강원도를 거쳐서 원산까지 시찰한 것과, 2) 1899년 6월 27 일부터 9월 9일까지 선박을 이용하여 부산에서 두만강 사이의 연해를 조사한 것(조선어업협 회 제 10회 조사) 및 3) 1899년 10월 18일부터 12월 10일까지 울산만 포경업 조사(임시조사) 를 한 것밖에 없다( 葛 生 修 亮, 1903: 서언의 2-3). 그리고 傳 聞 의 형태로 울릉도에 대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1900년 4월 29일부 터 5월 27일까지의 조사가 마지막이었다. 葛 生 修 亮 의 조사는 항상 부산을 거점으로 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가 부산에서 울릉도에 관한 정보를 얻었을 수 있는 마지막 시 기이었다. 따라서 1) 한해통어지침의 내용은 1900년 5월 이전의 정보를 토대로 한 것이다. 그리고 2) 葛 生 修 亮 이 울릉도에 가서 직접 조사하지는 않았고, 3) 울릉도에서 한국인들로부터 직접 정보를 얻은 흔적은 전혀 없었다. 따라서 울릉도에 관한 것은 傳 聞 의 형태로 들은 것임을 의미한다. 葛 生 修 亮 은 1901년 8월 중순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11월 상순에 완성하였다. 9) 당시 울릉도민들은 6-7월 중에 강치잡이를 했는데, 葛 生 修 亮 은 1900년 5월 이전의 정보 에 근거했기 때문에, 만약 指 針 의 내용에 나타난 울릉도민들의 독도 인지가 그들이 독도에 가서 활동을 했기 때문이라면, 그 활동의 가장 늦은 시기는 늦어도 1899년이라는 결론이 내 려지게 된다. 즉, 1899년 이전에 독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따라 서 한국인들은 우용정과 赤 塚 등 한일공동조사단이 울릉도에 갔던 1900년 5월 31일 이전에 이미 독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는 것이 규명되었다. 나. 울릉도 관련 제도적 성격의 조치들 A. 鬱 陵 島 의최초 地 方 制 度 添 入 8) 葛 生 修 亮 이 동해안 특히, 울릉도와 관련한 준거 시점의 확인은 독도 영토권원의 규명에 있어 매우 중요 하므로, 여기서 葛 生 修 亮 의 기록 착오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韓 海 通 漁 指 針 의 서언의 본문에서는 제10회 조사가 明 治 32년, 즉 1899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하였는데, 조사일정을 정리한 곳에는 明 治 33년, 즉 1900년으로 되어 있어서 1899년인지 1900년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제 10회 순찰 조사 다음 해에 이루어진 제 12회 조사가 명치 33년(1900년) 2월 26부터 3월 27일까지 실 시되었고, 제 13회 조사가 명치 33년(1900년) 4월 29일부터 5월 27일까지 실시되었으므로( 葛 生 修 亮, 1903: 서언의 1-3), 제10회 조사가 실시된 것은 1899년 6월부터가 아닐 수 없다. 9) 그런데, 서언을 작성한 날자는 명치 33년 11월 3일로 되어 있는데( 葛 生 修 亮, 1903: 서언의 4), 이것은 명 치 34년(1901년)의 착오인 것으로 판단된다

10 1898년 5월에 칙령 제12호(지방제도중 개정 첨입하는 事 )에 의하여, 10) 울릉도가 조선국에 서 최초로 지방관제에 편입되어, 島 監 을 두고 판임관으로 대우하도록 하였다(송병기, 2000: 95). 그러나 도감은 아직 본토인(울릉도인) 중에 임명하는 것이었고, 여전히 월봉( 月 俸 )도 업 었고, 수하 직원이 한 명도 없었다. B. 배계주 라포테의 조사 및 황성신문 보도 1) 배계주 라포테의 조사 일본인의 범작 투운이 심해지자 朝 鮮 國 정부에서는 1899년 5월에 부산에 머무르고 있던 前 島 監 배계주를 도감에 재임명하는 한편, 그의 부임에 즈음하여 부산 해관세무사 서리 라포 테(E, Laporte: 羅 保 得, 프랑스 인)와 함께 진상을 조사하러 6월 말에 출발하였다(송병기, 2000: , 105). 이들은 조사를 마치고 7월에 總 稅 務 士 브라운(J. B. Brown: 栢 卓 安 )을 통하여 정부에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11) 주목할 사실은 1899년에 라포테와 배계주가 울릉도를 조사하기 위해 떠난 것이 6월 말이 었다(송병기, 2000: ). 12) 따라서 한국인들은 6-7월에 독도에서 강치를 잡았으므로 1899 년 6월 말에는 이미 강치잡이를 했을 시기였다. 따라서 그 내용이 라포테와 배계주에게 전 달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2) 황성신문 보도의 于 山 島 竹 島 1899년 해 9월 23일 황성신문은 별보의 제1면 전체에 울릉도의 역사와 라포테의 조사 내용을 소개하였다. 그 첫머리가, 鬱 珍 之 東 海 에 一 島 가 有 하니 曰 鬱 陵 이라 其 附 屬 한 小 六 島 中 에 最 著 者 는 于 山 島 竹 島 니 大 韓 地 誌 에 曰 울릉도는 古 于 山 國 이라 고 하여 울릉도에서 가장 큰 섬을 우산도와 竹 島 로 보았다. 황성신문이 울릉도에서 가장 큰 섬을 우산도와 죽도라고 한 것, 즉 最 著 者 는 于 山 島 竹 島 라고 기술한 것은 주목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먼저, 여기에서 제시된 竹 島 가 현재의 댓 섬을 가리킨다는 데 대해서는 한국과 일본연구자 사이에 특별한 이견이 없다. 그 반면에 한 10) 鬱 陵 島 區 域 을 地 方 制 度 中 添 入 에 關 請 議 書 (1989년 5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울릉도가 동쪽 바다에 홀로 서 있어 육지와 너무 떨어져 있는 것이 실로 한스러워 형편이 어떠한 지와 거주민의 숫자를 아직도 간혹 알지 못하기에, 개국 504년(1895) 8월 13일에 울릉도 도감으로 택하여 보내기로 청의( 請 議 )하여, 같은 달 16일에 상주하여 재가를 얻었습니다. 같은 해 9월 20일에 울릉도 사람 배계주를 도감에 차정( 差 定 )하고, 도감은 판임관에 대우하기로 관보에 게재하고 본도 의 관리를 전적으로 맡겨 도의 형편과 호구를 사실대로 조사한 후에 보고하게 하였습니다. 이 사람 이 보고한 성책( 成 冊 )에 의거해보니, 거주민의 호수가 277이오, 남녀 인구가 1,137이오, 개간한 전토 가 4,774두락인지라. 이를 조사해보니, 섬사람의 호수( 戶 數 )와 개간된 토지가 이 같은 경우에는 지 방제도 안에 첨입( 添 入 )하는 것이 타당하기에 이 칙령안을 회의에 올립니다. 광무 2년 5월 일 의정부 참정 내부대신 박정양 의정부 참정대신 朴 定 陽 각하 査 照 자료: 유미림(연도미상) 11) 이 내용은 海 關 案 2( 구한국외교관계부속문서 에 있는 것으로 현재 고려대학교 부설 아세아문제연구소의 문서번호 1621(1972)에 나타난다(송병기, 2000: 100의 주 30). 필자는 이 문서에 石 島 에 대한 내용이 있는 지 를 확인하기 위해 동 연구소에서 검토했는데, 내용 자체가 남아 있지 않았다. 12) 內 衙 門 日 記 1899년 6월 27, 28일(송병기, 2000: 100의 주 29)

11 국측은 여기에서의 우산도를 독도로 보는데 비해, 일본측은 독도라고 보지 않는다. 다만 大 西 俊 輝 는 현재의 독도로 보았다(2003: 88-89). 13) 주목해야 할 사실은, 于 山 島 가 댓섬( 竹 島 ) 보다 먼저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만약에 일본측의 시모조( 下 條 正 男 )가 1900년 칙령 제41호이 石 島 를 島 項 (이 섬은 실제로 섬의 목 이라고 볼 수 있다)이라고 주장하듯이, 여기에서의 于 山 島 가 島 項 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댓 섬보다 먼저 제시될 가능성은 매우 작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小 六 島 라는 것으로 볼 때, 당시 준거가 된 지도는 선우영준이 복원한 바 있는 서 기 512년 이전에 제작되었다가 울릉도 수토관들이 살짝 변경하여 복제한 우루마지도가 이용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실은 1882년 이규원의 보고 당시에 확보된 지식으로부터 어떤 변화가 있었을 가능 성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규원은 송죽도( 松 竹 島 )에 관하여 울릉도 근처에 있는 섬이 라고만 들었다고 보고하면서, 도항( 島 項 )은 별도로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섬으로 보지 않았 고, 우산도는 울릉도의 이명( 異 名 )이라고 하면서, 오직 竹 島 (본논문에서의 댓섬을 말함)만을 언급했었다. C. 한일 울릉도 공동조사의 실시 가) 대한제국정부는 이에 1899년 10월(음력 9월) 內 部 官 員 禹 用 鼎 을 책임자로 한 조사단을 울릉도에 파견하여 울릉도에서의 일본인들의 행패 실태를 정밀히 조사하 기로 결정하고, 일본측에서도 조사위원을 파견하여 합동조사해서 일본인 潛 越 문제 대책을 세우기로 방침을 정하였다. 나) 우용정( 禹 用 鼎 )이 鬱 陵 島 視 察 委 員 으로 임명되었다( ). 다) 內 部 는 1900년 2월에 鬱 陵 島 官 制 改 定 을 추진하여 그 개정안을 議 政 府 에 제출하 였다. 島 監 을 監 務 라고 개칭하여 奏 任 官 으로 해서 內 部 地 方 局 長 의 지휘를 받도록 하고, 監 務 밑에 7명의 직원( 島 長 1명, 書 記 2명, 通 引 2명, 使 令 2명)을 두며, 監 務 의 임기는 5년으로 13) 大 西 俊 輝 씨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죽도는 댓섬( 竹 嶼, 부소우르암)이고 또 하나의 부속섬 우산도란 독도(리안쿠-르암)이다. 라포테에게는 그러한 2도의 인식이 있었다. 그것은 라파테가 동행한 울릉도 조사단의 갖가지 탐색의 결과 얻은 결 론이다. 석도의 문헌이 있는 칙령은 중앙관 우용정( 禹 用 鼎 )과 지방관 배계주의 보고에 근거한 것으로, 거기 에 입회한 자가 라 포테이다. 그래서 그들의 섬에 대한 인식은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칙령은 울 릉도의 속도로 죽도와 석도를 표기한다. 그리고 라 포테의 보고는 울릉도의 속도로 죽도와 우산도를 표기한다. 그렇게 돼서 석도란 곧 우산도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그것은 먼 암초의 섬 독도(리안쿠-르 암)를 말하는 것이었다. (2004: 88-89) 필자는, 石 島 가 독도라는 것 및 1899년 라포테가 독도를 우산도로 부르면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과 관련하여 大 西 俊 輝 (일본 大 阪 의 병원장) 씨만큼 확신에 찬 주장을 보지 못했다. 필자는 아직 石 島 가 독도라는 것을 명쾌하게 규명하는데 주력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오-니시 씨에게 전화 를 걸어서, 어떤 근거로 그와 같이 확신하고 있는지, 그리고 혹시 별도의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를 물었 다. 오-니시 씨는 한참 생각한 후 자신도 별도의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신용하 씨의 일본어판 史 的 糾 明 獨 島 를 보고 판단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필자가, 신용하 교수도 특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신 교수의 1997년 책 독도의 민족영토사 연구 및 2003년 책 韓 國 과 日 本 의 獨 島 領 有 權 論 爭 을 토대로 판단한 것임)고 말했더니, 워낙 유명한 사람의 책에 나와서 그냥 믿은 것이라고 답변하 였다. 그 후 오-니시 씨는 필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왔는데, 역시 자신도 별도의 근거가 없다는 점 및 필 자의 연구 자세가 좋다는 점을 적시하였다

12 하고, 島長은 도민의 유지들이 회의하여 투표로 선출하되 임기를 3년으로 하며, 관리들의 봉 급액은 울릉도의 戶口와 田結을 조사한 후 도민의 회의에 따라 결정 조달한다는 것이었다. A) 울릉도 도감 배계주로부터는 일본인들이 1899년 7, 8월간에 도벌한 材木이 1천여 株에 달하며, 불법으로 槻木을 대량 도벌하면서 이를 저지하려는 島監을 위협하고 있다고 사정의 시급함을 알리는 보고가 다시 도착하였다(1900년 3월). B) 대한제국 내부는 3월 14일과 26일 外部에 사태의 시급함을 알려 일본공사관에 항의 토록 했고, 외부에서는 일본공사에게 知照하여 한 일 양측이 모두 함께 派員하여 합동조사하기로 했다. 일본측은 5월 초순에 파견원을 보내기로 동의했다가 다시 2 주일의 연기를 요청해왔다. 라) 한일 울릉도 공동조사의 실시( ) 울릉도에 체류하던 일본인들의 행패에 대해 조사하기 위하여 1900년 5월 한일공동조사단 이 구성되었다. 조선국에서는 內部 시찰관 울도시찰위원 우용정, 부산해관 감리서주사 김면 수 등이, 일본에서는 부산영사관 영사관보 赤塚正輔, 警部 渡邊應治郞 등으로 구성되었다. 그 외 부산해관세무사 라포테가 참여하였다(표 1). 표 1. 한일 울릉도 공동 조사단의 구성 한국측 일본측 내부시찰위원 우용정 부산영사관 부영사 赤塚正輔 부산 감리서 주사 김면수 警部 渡邊鷹治郞 부산해관세무사 라포르테(E. Laporte, 羅保得) 보호순검 2명 부산해관세무사 통역 김성원 보호 순검 신태현 김형욱 1) 총 10명 2) 공동조사단은 양국의 정부차원에서 임명된 것으로 한국의 경우에는 1899년 12월 15일에 내부 시찰관 우용정을 울릉도시찰위원으로 임명하였고, 경성(京城) 주재 특명전권공사 林權助는 赤塚 영사관보와 관련하여 본국 외무성 대신 靑木에게 보고를 하였다. 울릉도 시찰위원 우용정은 5월 25일 인천항을 향해 서울을 출발하여, 5월 27일에 日本警 部 1명(警部 渡邊鷹治郞)을 태우고 인천을 출발 釜山港에 도착해서, 5월 30일 監理署 主事 金冕秀와 부산해관세무사 라포테(E. Laporte, 羅保得) 및 封辦 金聲遠과 駐釜山日木副領事 赤塚正輔 및 警部 渡邊鷹治郞과 함께 蒼龍丸에 탑승하여 5월 31일 오후 울릉도에 도착했다. 우용정은 6월 1일부터 3일간 日本 副領事 赤塚正助 등과 함께 도감 배계주와 일본인들에 대 하여 조사를 실시하였다. 프랑스인 稅務司 라포르테도 입회하였다. 5월 4일에는 합동으로 기 선을 타고 섬 전체를 순찰하였다. 다. 1900년 이전의 강치 잡이 입증 년 이전부터의 강치 잡이 사실 확인 A 년 경의 일본 군함의 독도 조사 보고 가) 군함 新高의 報告 1) 년 9월 25일 軍艦 新高號의 行動日誌에 의하면, 松島에서 리양코르드 岩을 실제로 본 사람(實見者)으로부터 들은 정보. 리양코르드 岩 韓人은 이것을 獨島라고 書하며 本邦의 漁夫는 略하여 리양코 島라고 呼稱한다

13 松 島 로부터 도항하여 해마 사냥에 종사하는 자는 石 적재량의 和 船 (일본 배)을 사용한다. 섬 위에 납옥을 만들어 매번 약 10일간 체재하는데 다량의 수입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인원이 때로 40-50명을 초과할 때도 있으나 淡 水 의 부족은 말해지지 않는다. 또 올해에 들어와서는 여러 차례 渡 航 했는데, 6월 17일에는 러시 아의 군함 3척이 이 섬 부근에서 발견되어 일시 漂 泊 한 후 북서쪽으로 進 航 하는 것 을 봤다고 한다. 14) 라고 보고하였다. 이 보고는 1905년 일본의 竹 島 편입조치에 관한 일본 정부의 움직임이 있기 전에 실시된 보고이다. 나) 1905년 1월 5일 軍 艦 對 馬 艦 長 의 보고 이 보고는 海 軍 中 佐 仙 頭 武 央 이 水 路 部 長 에게 제출한 리앙코르드 島 개요로 東 島 의 水 質 을 화학적으로도 실험한 정밀한 보고였는데,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듣기로 매년 6-7월 경에 해표를 사냥하기 위해 도래하는 자가 수십 명에 이른다고 하며, 이들은 모두 한 번에 약 10일간 宛 假 居 를 만들어 사냥에 종사하지만, 모두 다 른 계절에는 거의 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현재 목격하는 기백천의 해표군은 일 년 내내 어획을 해도 남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6-7월의 계절 외에는 래항하지 않는 것은 아마 계절의 풍랑에 대해 피난할 방도를 얻는 것이 힘들다는 것에 기인할 것 이다. 15) 이 보고는 1904년 군함 新 高 가 9월에 보고한 이후 다음 11월에 20일 조사하여, 1월 5일 에 보고한 것인데, 동도의 수질에 대한 화학적 조사도 했을 정도로 상당히 정밀한 조사였다. 다만, 울릉도에는 11월 19일에 도동 부근에 하루가 못되게 정박했다는 기록이 있으며(신용 하 편저, 1999: ), 11월에는 독도에 어민들이 없을 시기이므로 강치잡이에 대해서는 新 高 號 조사내용을 참고하였거나 울릉도에서 전해 들었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다) 1905년( 明 治 38년) 6월 15일 橋 立 艦 長 의 竹 島 視 察 報 告 전함 橋 立 은 6월 13일 독도를 시찰하였는데, 이 섬은 海 驢 의 사냥 시즌이라 隱 岐 國 으로부터 도해한 어부가 33-35명에 이른다. 이 섬은 海 驢 사냥에 풍부한 장소이어서 음력 4월부터 7월 중순까지 머물러 있 으면서 연일 사냥에 종사한다. 지금 어부를 지휘하는 자는 隱 岐 國 中 井 養 三 郞 이다 라고 제3함대 사령관에게 보고하였다. 16) 라) 1905년(명치 38년) 6월 14일 第 3 艦 隊 司 令 官 의 竹 島 視 察 報 告 제3함대 사령관은 군함 橋 立 의 보고 및 직접 시찰한 바에 따라, 지금 本 邦 의 어부 수십 명이 이 섬에 있으면서 해표 사냥에 종사하고 있는데, 그의 14) 松 島 ニ 於 テ リアニコルド 岩 實 見 者 ヨリ 聽 取 リタル 情 報. リアンコル 岩 韓 人 之 ヲ 獨 島 ト 書 シ 本 邦 漁 夫 等 略 シテ リヤンコ 島 ト 略 稱 セリ. 松 島 ヨリ 渡 航 海 馬 獵 ニ 從 事 スル 者 ハ 六 七 十 石 積 ノ 和 船 ヲ 使 用 シ 嶼 上 ニ 納 屋 シ 構 エ 每 回 約 十 日 間 滯 在 シ 多 量 ノ 收 額 アリト 云 フ. 而 シテ 其 人 員 モ 時 時 四 五 十 名 ヲ 超 過 スルコトアルモ 淡 水 ノ 不 足 ハ 告 ケザリシ. 又 今 年 ニ 入 リ 數 回 渡 航 シタルニ 六 月 十 七 日 露 國 軍 艦 三 隻 同 島 附 近 ニ 現 ハレ 一 時 漂 泊 シ 後 北 西 ニ 進 航 セルヲ 實 見 セリト 云 フ(신용하 편저, 2000: ). 15) 聞 く 每 年 六 七 月 の 頃 海 豹 獵 の 爲 め 渡 來 するもの 數 十 名 の 多 きに 達 することあり. 是 等 は 皆 一 回 約 十 日 間 宛 假 居 をなし 獵 獲 に 從 事 するとも 皆 共 の 他 の 季 節 に 於 ては 殆 と 來 るものなしと. 現 に 目 擊 する 幾 百 千 の 海 豹 群 は 周 年 獵 獲 するも 尙 餘 りあるべきにも 拘 らす 六 七 月 季 の 外 來 航 するも 欲 せさるは 蓋 季 節 の 風 浪 に 對 し 避 難 の 途 を 得 るに 苦 あしむるに 基 因 するものならん(신용하 편저, 2000: ). 16) 신용하 편저, 1998:

14 말에 비추어 보면 그들은 매년(每年) 5월 중순경부터 8월 중순경까지 매월 1회 오 끼(隱岐島)로부터 和船을 가지고 교통하며, 양식 보급을 받아 이 섬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고 보고하였다. 6월 14일이면, 이미 나카이(中井養三郞)가 竹島어렵회사를 만들어서 본 격적으로 강치잡이를 하기 시작한 6월 9일부터 6일 째이다. 보고에서 확인된 정보 가) 개념의 범주화 17) 2) 이상의 보고에서 나타나는 주요한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日本과 관련된 표 현은 항상 本邦, 和船, 內地, 本邦人, 本邦의 漁夫, 나카이(中井養三郞) 등 그 표 현에 철저를 기했던 것이 확인된다. 그리고 1900년(광무 4년) 양국의 공동조사단이 울릉도를 조사한 후에 조선국 외부대신(外部大臣)과 일본공사간의 논의에서도 일본공사는 본방(本 邦), 본방인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광무 4년 9월 12일 외부대신의 내부대신에게의 조 복 ). 이 현상은 내 집단의 구성원 과 다른 집단의 구성원 을 구분하는 사회적 범주화(social categorization)의 표현이다. 사회적 범주화는 자기 주위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을 도와주는 근본적인 역할을 하며(Forsyth, 1990: 396), 어떤 대상이나 사람을 자기의 범주로 직관적으로 분류할 때 일어난다(Forsyth, 1999: 75). 범주화는 동일체 의식(sense of identity)의 과정으로 서 일어나는 것으로, 동일화를 통해서 자신이 속한 집단의 부분들을 자기 개념 (self-concept) 으로 받아들인다(Forsyth, 1999: 76). 이와 같은 동일화를 통해서 개인들은 집 단의 구성원으로서의 유사성을 인식하게 된다(Forsyth, 1999: 76, 78). 그리고 우리 와 그 들 간에 자기 집단을 선호하는 인식적 차별을 촉발한다(Forsyth, 1990: 396). 범주화는 통제된 인식의 과정이 아니고 자동적인 인식의 과정이다. 자동적인 과정은 신 속하고 동시적이고, 노력없이 일어나고, 비자발적이며, 의식의 외부에서 일어난다(Forsyth, 18) 1999: 77). 따라서 1904년 9월 25일 군함 新高의 보고에서 여기에서는 송도에서 독도를 실제로 본 사람 (實見者), 및 松島로부터 도항하여 해마 사냥에 종사하는 자 들 및 1907년 조 선수로지의 本島民 및 1905년 7월 부산주재 영사의 보고에서 鬱陵島民 은 한국인을 지 칭하는 것이다 (종래 일본 정부 또는 일본측 자료에 의하여 크게 혼동되었던 내용이다 ). 둘째, 1905년 1월 5일 군함 對馬의 보고에서는 해표를 사냥하기 위해서 도래하는 자가 매년 6-7월에만 오고 그 외의 계절에는 오지 않는 것이 계절의 풍랑을 피할 방도가 없어서 라고 보았는데 비하여 1905년 6월 14일의 第3艦隊司令官의 竹島視察報告 및 15일의 군함 橋立의 보고에는 나카이(中井養三郞)이 해표를 매년 5월 중순 경부터 8월 중순까지 사냥한 다고 보고하였다. 이것은 당시 울릉도민과 나카이(中井養三郞)가 이용할 수 있었던 선박의 차이를 반영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19) 現に本邦の漁夫數十名同島にあて海豹捕獲に從事し居れり. 其の言に徵すれは彼等は每年五月中旬頃より 八月中旬頃の至の間每月一回隱岐島より和船を以て交通し糧食の補給を受け此の島に生活し居ると云ふ(신 용하 편저, 2000: ). 18) 愼鏞廈 편저, 2000: ) 신용하는 울릉도에서 실견한 민간인을 일본인이라고 보았고(1997: 207) 나홍주는 그 내용을 인용하였다 17) (2000: 57)

15 셋째, 1904년 군함 新 高 의 보고와 조선수로지에서 한인은 이것을 獨 島 라고 書 하며, 본 방의 어부는 약하여 리앙코 島 라고 칭한다 라는 보고는 한국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섬의 발음 이 獨 島 가 아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川 上 健 三 과 下 條 正 男 등은 軍 艦 對 馬 의 보고에 나타나는 독도(리양코 島 )에서의 강치잡이를 모두 일본인의 활동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이 고용하여 데리고 간 것이므로 한국인들이 독도(리양코 島 )에서 강치 를 잡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1905년 일본의 竹 島 편입조치가 국제법상 무주지 선점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적시하였듯이, 1905년 여름철 강치잡이를 하였을 때 이후에는, 일본 해군 은 일본인들에게 물어보았고, 그 경우에 本 邦 의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1904년 군함 新 高 와 1905년 1월의 對 馬 의 보고는 韓 人 의 진술을 토대로 하였던 것이고, 군 함 對 馬 의 보고에서 每 年 이란 1897년 이후의 한인들의 강치잡이를 토대로 진술한 것일 가 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 나) 군함 新 高 行 動 日 誌 의 또 금년 들어 數 回 渡 航 했다 의 의미 1904년 9월 25일 군함 新 高 의 행동일지에는, 松 島 로부터 도항하여 해마 사냥에 종사하 는 자 들은 매번 약 10일간 체재하는데 다량의 수입 이 있었고, 또 올해에 들어와서는 여 러 차례 渡 航 했는데 20) 라는 내용이 있다. 울릉도민이 매번 약 10일간 체재하여 해마를 잡으면 다량의 수입이 있었더라도 그 需 要 가 울릉도 내수용으로 국한되었다면, 독도에서의 강치잡이는 여러 번 할수록 각각의 한계 효용은 감소되게 되는 반면에, 강치를 잡는 기회비용(강치가 새끼를 낳아서 잡기가 쉽거나 항해조건이 유리한 6월과 7월에는 一 定 不 變 이고 그 외에는 증가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 이다)은 커지게 되므로 강치잡이 회수가 적게 된다. 강치를 포획하여 내수용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지방과 고기가 주된 용도였던 것으로 판 단된다. 그리고 당시 울릉도민들은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강치 가죽의 가치는 식 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고기와 지방의 가치만큼 클 수가 없다. 따라서 강치 가죽의 내수용 가치는 그리 크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반면에 강치 가죽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경우에는 내수용에 강치 가죽의 수출 가격을 더한 것이 매회 강치잡의의 한계 효용이 된다. 강치 가죽을 수출할 때 얻게 되는 한계효용 은 수출 가격에서 내수용으로 사용할 때의 가격을 뺀 것이 된다. 이 경우 내수용 가격이 낮 다고 보면, 강치 가죽의 수출용 한계효용은 수출가격이 불변인 한 거의 일정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강치를 잡아서 수출할 수 있게 되는 경우에는 강치의 내수용 한계효용에 수출 가격을 더한 것이 한계효용이 된다. 그런데 일본인인 中 井 養 三 郞 은 당초에는 강치의 가치를 몰랐다가 1903년에 시범적으로 강치 잡이를 했고, 1904년부터 본격적으로 강치잡이를 해서 그 해에 2,750 마리를 잡았다. 그리고 잡은 강치에서 가죽을 주된 가치가 있어서 大 阪 으로 내다 팔았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독도에서 잡은 강치의 가죽을 일본에 수출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1904년부터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1904년부터 일본에서 강치의 가죽과 기름의 수출 수요가 생겼다면, 울릉도민도 능력이 허용하는 한 여러 차례 독도에서 강치를 잡아서 강치의 가죽 등을 수출하여 상당한 수익을 올리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그림 4는 울릉도민들이 수출을 할 수 없었던 경우보 20) 又 今 年 ニ 入 リ 數 回 渡 航 シタ

16 다 수출을 하는 경우에는 강치잡이 횟수가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한 정황을 말해 주는 것이 1904년 군함 新高가 또 올해에 들어와서는 여러 차례 渡 航했는데 라고 기록한 것이다. 이 사실은 또한, 한국인들이 1903년 이전에도 독도에서 강치 잡이를 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다만 횟수가 적었을 뿐이다. 독도 강치잡이의 효용 한계 비용 비용 독도 강치잡이의 한계 효용(수출) 수출용 강치 가죽의 한계효용(일정) 독도 강치잡이의 한계 효용(내수) 1903 년까지 1904 년 이후 연간 강치 잡이 횟수 그림 4. 독도강치 잡이의 한계 효용 비용 및 연간 강치잡이 횟수 다) 군함 對馬艦長 보고의 매년 년 또는 그 전에도 독도에 가서 강치잡이를 했다는 것을 보증하는 또 하나의 내용이 군함 對馬의 함장의 보고의 每年 6-7월 경 이다. 對馬艦長은 1904년 11월에 조사한 결과를 1905년 1월 5일 보고하였는데, 每年 6-7월 경 에 해표를 사냥하기 위해 도래하는 자가 수 십 명에 이르고 그 외의 계절에는 오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조사 당시인 11월에는 한 국인이든 일본인이든 독도에서 강치잡이를 하는 사람이 없을 시기이다. 따라서 위의 내용은 군함 對馬가 울릉도에 기항했을 때 들은 말이거나 아니면 1904년 9월에 조사한 군함 新高의 보고 내용을 참조했을 가능성 둘밖에 없다. 이중 전자의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일본인들의 강치잡이가 본격적으로 실시된 것은 1904년이었다. 따라서 울릉도에서 군함 對馬의 조사자에게 말한 사람이 일본인들의 강치잡이에 대한 사실을 알고 말한 것이었다면, 매년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금년부터 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그리고 1905년 6월 15일 군함 橋立의 함장과 그 상관인 제3함대 사령관의 보고들에서는 나카이(中井養三郞)가 해마를 5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잡는다고 하였다. 따라서 매년(每年) 6-7월 경 에만 강치잡이를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일본인들이 아니고 한국인들이고, 그 매년 은 적어도 몇 년 전부터라는 것을 쉽게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울릉도민이 1903년 또는 그 전부터 每年 6-7월에 강치를 잡으러 왔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된다 ) 라. 1900년 이전의 독도 강치 잡이 검증 울릉도민이 독도에서 최초로 강치 잡이를 한 시기는 언제인가? 이 질문은 울도군 칙령의 石島 가 현재의 독도를 의미하는 것을 입증하는데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울도군 칙령 이 1900년 10월에 있었으므로, 과연 1900년 10월 이전에 강치잡이를 했는지 아니면 그 후였 21) 군함 新高의 보고 중의 松島로부터 도항하여 해마 사냥에 종사하는 자 및 군함 對馬의 보고의 도 래하는 자 는 한국인을 지칭하는 것임에 대해서는 제3장 제3절에서 제시한 바 있다

17 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림 5에서 적어도 1903년 이전 몇 년 전부터 강치잡이가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線은 위에서 검토한 일본 군함 등의 보고를 통해서 명확히 확인되었다. 문제는 1900년 6월 이전 즉, 적어도 1899년 부터는 강치잡이를 했는지를 의미하는 線임을 규명할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한 잇슈이다. 울릉도민의 독도 강치잡이 입증력 년도 그림에서 축(軸)을 제외한, 선(線)의 굵기는 입증력의 강도를 나타내며, 점선은 아직 확실히 규명되지 못했다는 것을 나타냄 그림 5. 울릉도민의 독도 강치잡이 근거 A. 1) 울릉도민 홍재현 증언의 검증 홍재현의 증언 홍재현(弘在現)은 1862년생이며 강원도 출신으로, 울릉도 개척이 최초로 실시된 1883년 봄에 울릉도에 들어와서 살았다. 그리고 도동(道洞)으로부터 멀지 않은 사동(砂洞)에 거주하 였다. 현재까지 1900년 울도군 칙령 이전에 이미 한국인들이 독도에서 강치를 잡아서 고기와 기름을 이용하였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검증할 가치가 있는 언급을 한 기록은 홍재현의 활동에 관한 것뿐이다. 신석호에 의하면, 홍재현은 울릉도인들의 독도 인지에 관하여, 22) 울릉도 개척 당시 울릉도민은 쉽사리 이 섬을 발견하고, 미역과 전복, 그리고 강치를 잡기 위해 자주 독도에 출어했고 자신도 십 수 번 왕래했다는 홍재현의 증언을 제시 한 바 있다(1965: 30). 먼저, 앞에서 제시했듯이, 울릉도 사람들이 울릉도에 1883년에 정착하기 시작한 후 곧 독 22) 洪在現은 1862년 생으로 학식이 있었던 사람으로, 1883년 4월 8일 제1차로 입국한 30명의 일원으로 3 代(홍재현, 父 및 祖父代)는 울릉도 남쪽에 있는 砂洞里 170번지에 거주하였다. 홍재현은 한문실력이 있 어 울릉도에서 공부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고 한다(2005년 8월 10일 홍재현의 증손녀인 홍연숙씨에게 확 인한 것임)

18 도를 발견했다는 주장은 부정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일본측 연구자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홍재현의 증언에 주목해 왔다( 川 上 健 三, 1966: 187; 梶 村 秀 樹, 1978: 23; 屈 和 生, 1987: 113 및 주 57; 大 西 俊 輝, 2004: 75). 그리고 그 증언을 한국측 견해를 반박하는 데 이용한 연구자도 있고( 川 上 健 三 ), 한국인의 인지에 활용한 연구자도 있다( 楣 村 秀 樹, 堀 和 生, 大 西 俊 輝 ). 카와카미( 川 上 健 三 )는, 신석호가 제시한 홍재현 등의 활동과 관련하여, 홍재현 한 명에 의한 하나의 증언으로는 어떤 객관성도 없고, 한인이 울릉도 개척당시에 오늘의 竹 島 (독도)에 갔는지 아닌지에 대한 신빙성이 결여된다고 하였다(1966: 187). 그 반면에, 신석호의 관심 이후, 한국측의 연구 특히 최근의 연구에서는 홍재현의 활동에 대해서 언급한 연구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23) 그리고 2005년에 독도 문제가 다시 대두 되자, 일본의 기자들은 울릉도에 와서 과거 홍재현이 10여 차례 독도에 갔다 왔다고 하는 기록을 확인하려고 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일본 기자들은, 울릉도에서 그 증거를 확인하지 못하자, 울릉도에 오래 거주했고 정보도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L씨(본인의 명예와 관련되어 L씨라고 만 함)에게 확인하곤 했는데, 이 경우, L씨는 1898년 경에 범선을 타고 강치잡이를 독도에 갔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고 하였다(필자가 2005년 8 월 5일 L씨와 통화한 내용임). 이것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당시를 판단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판단된다. 필자의 독도 연구의 초기였던 2005년 여름 경에, 필자는 홍재현의 증언에 대한 입증이 한국인들이 1900년 울도군 칙령 이전에 한국인들이 독도를 인지하고 강치도 잡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유일한 근거로 판단하고, 그 증거의 확보에 상당한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정보의 부실과 조작 등의 문제, 또 관계자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여러 차례 좌절도 겪었었다. 그렇 지만, 상당한 성과도 거두었다. 홍순칠(홍재현의 손자)은 이 땅이 뉘 땅인데 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1997: 14): 고 주장했다. 1 홍재현이 어느 날 산에 올라 먼 동쪽 바다에 섬을 발견하고 우산도일 것이라는 것 을 짐작했었고, 년 6월에 섬에 직접 가서 돌아올 때는 바다사자 세 마리를 잡아와서 칡과 소 라, 생복(전복)만으로 연명하던 주민들의 지방질로 제공하였다고 하였다(1997: 14). 홍재현은 이후로는 지방질을 독도에서 얻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다사자를 잡으러 독도에 갔는데, 1898년 에는 독도에서 바다사자를 잡아서 파는 동물상인인 일본인 무라까미( 村 上 ) 일행과 마 주쳤다. 이에 홍재현은 조선 땅인 이 섬에 다시 오지 말라고 말했다. 홍순칠의 기록 중에서 1 울릉도민의 독도 인지 시기는 이미 앞에서 제시한 바와 같다. 즉, 동부 울릉도 고지대에서 우연히 독도를 보았을 수 도 있고, 경작을 하던 농민이 발견했 을 가능성도 있다. 그 소식이 동부 울릉도 사동리에 살던 젊은 홍재현에게도 전달되었다면, 당연히, 어느날, 특히 바다의 날씨가 청명한 가을철에 홍재현이 동부 울릉도의 중산간 경작 지에 올라 독도를 보았을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동부 울릉도의 고지대에서 경작을 하는 한 독도를 확인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절대로 없고, 그 시기는 울릉도 정착 후 이른 시 기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2와 3에 대하여 검증만이 필요하다. 2) 1900년 이전 독도에서의 강치 잡이 확인 23) 신용하의 일어판 사적해명 독도 에서는 홍재현에 관한 내용을 언급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大 西 俊 輝, 2003: 75)

19 홍순칠(1997: 14)에 의하면, 홍재현은, 1897년 6월에 섬에 직접 가서 돌아올 때는 바다사자 세 마리를 잡아와서 칡과 소라, 생복(전복)만으로 연명하던 주민들의 지방질로 제공하였다고 하였다. 홍재현은 이후 로는 지방질을 독도에서 얻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1898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다사자를 잡으러 독도에 갔다 라고 증언하였다. 따라서 이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에 대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에 있어, 주목해야 할 것은, 서로 교감이나 교신이 없는 상태에서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의 증언이 거 의 일치한다면, 그것은 사실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가) 1897년부터 오끼섬(隱岐島) 西鄕港에 강치 가죽 등장 田村淸三郞은 일본인들이 明治政府 초기부터 독도의 강치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1897년 (明治 30년) 경부터 강치의 피혁이 隱岐島 西鄕港(당시 울릉도와 은기도를 오가던 항구임)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고 하였다(田村淸三郞, 1965: 40). 홍재현은 강치를 잡아와서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에 관심을 표명했는데, 그 가죽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만약, 따라서 강치 의 피혁이 일본인에게 전달되었고, 그것이 西鄕港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그와 달리, 만 약에 일본인들이 강치를 잡았다면, 西鄕港에는 강치의 피혁 만이 아니고, 1600년대에 울릉 도에 와서 강치와 미역을 잡았던 오야 무라카와 양가의 경우처럼, 강치의 고기와 기름도 같 이 나타났거나 잡혀서 죽은 상태로의 강치가 나타났을 것이다. 그리고 田村淸三郞(1965: 40, 83)과 川上健三(1966, 200)은 奧原碧雲의 竹島 및 鬱陵島 (1907, 2005: 6-7)에 근거를 두고 주장한 것인데, 奧原碧雲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지금부터 8~9년 전(田村은 1897년 경이라고 했음)에 隱岐國의 어부가 울릉도에서 난파한 어선을 수색하기 위해서 독도에 도항하였을 때, 강치가 무리를 지어 살고 있는 것을 보고, 5-60두를 박살하여 일본에 수송하여 상당한 이익을 올렸다(1907: 6-7). 이 내용 중에서 먼저, 8~9년 전이란 1906년의 8, 9년 전을 말하는 데, 나카이(中井養三郞) 가 강치잡이를 최초로 한 것이 1903년으로 1906년의 만 3년 전이다. 그런데, 3, 4년 전이라 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초년도를 산입하는 계산방식을 사용했다고 판단된다. 이 경 우, 8, 9년 전이란 1898년을 의미하게 된다. 1898년이란 홍재현이 말한 1898년 무라카미 가문과 조우한 시기와 일치한다. 따라서 1897년부터 독도에 가서 강치를 잡았다는 홍재현의 주장이 정확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같이 두 나라에서 서로 정보의 교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기가 일치하는 경우 는 진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24) 나) 홍재현의 일본 시마네현 방문 홍재현은, 1898년에는 독도에서 바다사자를 잡아서 파는 동물상인인 일본인 무라까미 (村上) 일행과 마주쳤다. 이에 홍재현은 조선 땅인 이 섬에 다시 오지 말라고 말했다. 는 것 인데, 그가 村上(무라카미) 일행과 마주쳤다는 점이 주목된다. 필자는 홍재현 증언의 그 증거 확보에 상당한 노력을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사진 한 장 을 확보하였다. 그 사진은 홍재현의 증손녀인 홍연숙씨와 2005년 8월 8일 통화를 하여 확인 을 한 것인데, 현재 독립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 사진(그림 6)의 뒷면에는, 25) 24) 카와카미(川上健三)는 1897년 전후로 보았다(川上健三, 1966: 200)

20 전 독도 의용수비대장 홍순칠씨 의 조부 홍재현 선생이 1898년 잦 은 왜인의 침입에 일본 시마네현 에 가서 일인 행정관과 이를 논의 하고 당시 유숙했던 집의 자제(가 타오까 형제)들과 기념 촬영한 사 진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26) 27) 그 당시에 隱岐島에는 옛날부터 선 단을 거느린 村上家가 있었다. 다만 시마네현의 竹島問題硏究會 의 竹島 문제에 관한 조사연구 중간보고서에서 는 隱岐島의 村上家와 海士町 村上家 가 서로 다른 家門인 것을 모르고, 28) 29) 근세 초기, 寬永 寬文30) 경에는 대소선 5척을 보유하고 해운업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北前 船에 의한 沖乘의 기항지로서, 隱 岐의 해운업이 융성하기 이전의 일로서, 주목되는 사상이다. (內 田文惠, 동 중간보고서 17쪽) 그림 6, 홍재현이 1898년에 島根縣에서 유숙했던 형제와 찍은 사진 라고 썼는데, 필자가 이를 확인하고, 2006 집의앞 가타오까(片岡) 줄 겨울 한복을 입은 사람이 홍재현(36세) 년 하반기에 村上助九郞(海士町 村上家의 당주)씨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어 수정하도록 하였다. 田村淸三郞은, 5-60두를 박살하여 일본에 수송하여 상당한 이익을 올렸다 는 내용에 이 어, 그로 인해, 각지에서 엽사가 狷集(견집: 서둘러 모임)했다고 전해지고 있고(1965: 40), 새 필자는, 한국인들이 명확하게 독도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하던 중에, 어느 프로그램에서 홍재현이 1898년에 일본까지 가서 찍었다는 사진을 본 기억을 되살려냈다. 따라서 그 寫眞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것은 한국인들이 1998년에 이미 독도를 인식했음은 물 론, 현장에서 강치를 잡았다는 증거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 도서관에 가서 이 땅이 뉘땅인데 (저자 홍순칠은 홍재현의 손자임)라는 책을 검토했는데, 그 사진이 실려있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직계 가족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수소문을 하던 중에 증손녀 홍연숙씨와 통화가 이루어져서 사진의 소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26) 홍재현은 학식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독도에서 일본인과도 대화가 가능했고, 증손녀 홍연숙씨에 의하면 울릉도에서 사람들을 가르친 적도 있다). 흥재현이 울릉도에 입도(入島)한 1883년에 만 21세였으 므로 울릉도에 입도하기 전에 이주할 섬인 울릉도와 관련되는 과거의 기록을 읽었을 가능성을 배제하 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이 경우 동쪽 먼바다의 작은 섬이 于山島일 것이라고 인식했을 가능성도 있다. 27) 사진은 요즘처럼 필름으로 찍은 것이 아니고 유리에 그려져 있는 것이었는데, 이 방식은 dry plates 방식의 사진술로 일본에 최초로 도입된 것은 1883년으로 추정되며, 기존의 wet plates 방식을 대체하고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 1889년 경이었다(PhotoGuide Japan). 그리고 사진 속의 홍재현은 나이가 많 은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 반면에 한국에 사진이 보급된 것은 1884년에 池運英이 일본에서 사진 술을 배워서 麻洞에 사진관을 차린 것이 최초이다. 그러나 본토의 경우에도 1910년까지는 사실상 보급 되지 못했다. 28) 필자가 독도에 대하여 연구한 초기에 확인한 사실임. 29) 隱岐島 일대 전체를 관할했던 가문으로, 안용복의 은기도 도착 사실을 기록한 元祿丙子年朝鮮舟着岸 一倦之覺書 (2005년 5월 17일 일본 山陰中央新聞 보도)를 보관했던 가문이다. 30) 寬文은 년, 寬永은 년 사이의 年號임. 25) TV

21 로운 어장으로서 이 섬이 다시 역사상 등장해 오고 있었다(1965: 83)고 주장했다. 불과 50-60두를 잡아서 판 결과 상당한 이익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 4년 동안 강 치잡이가 중단되었다가 1903년에야 中 井 養 三 郞 이 시범적으로 강치잡이를 시작했다는 것은 합리적 선택의 관점에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31) 필자는 홍재현의 시마네현 방문 사진의 진위에 대하여 두 가지 방법으로 추가로 확인하 였다. 하나는 홍재현의 후손에게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위의 사진을 일본의 島 根 縣 隱 岐 郡 海 士 町 에 거주하는 村 上 助 九 郞 씨에게 보내서 사진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村 上 助 九 郞 씨는 隱 岐 郡 海 士 町 에서 1200년 이전부터 거주하면서 주요한 역할을 한 名 望 家 의 현재의 책임자이다. 32) 먼저, 홍재현의 孫 婦 인 박영희씨와는 2006년 6월 8일 이후 여러 차례 통화를 하여 확인 하였다. 2006년 6월 8일 통화한 바에 의하면, 박영희씨가 들은 것으로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첫째, 1898년에 독도에 갔었다는 사실, 둘째, 일본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 셋째, 일본 에 간 시기가 홍재현이 37 38세일 때라는 사실이었다. 33) 村 上 助 九 郞 씨와는 2006년 6월 5일부터 접촉하기 시작하여, 6월 7일 문제의 사진을 보냈 다. 사진은 6월 13일에 도착하였는데, 6월 15일 村 上 助 九 郞 씨와 통화를 한 결과 村 上 助 九 郞 씨는 여러 곳에 사진을 확인하고 있다고 답변해 주면서 몇 가지 중요한 정보를 확인해 주었 다. 첫째, 사진은 일본에서 찍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사진의 뒷배경이 일본 집의 담 장의 무늬이기 때문이었다. 둘째, 일본인이 입은 의복은 막부시대의 것과 다른 것으로 명치 시대의 것이라고 확인해 주었다. 이상의 사실을 통해서 홍재현이 일본에 갔고 거기서 사진 을 찍은 것은 확인되었다. 34) 31) 더욱이 강치를 잡은 사람은 난파선을 수색하러 출선하였다가 독도에 간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선박이 나 항해의 능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32) 島 根 縣 隱 岐 郡 海 士 町 에 살고 있는 村 上 助 九 郞 씨(67세)는 2005년 5월에 안용복 일행의 1696년 은기도 도착 상황을 기록한 元 祿 九 丙 子 年 朝 鮮 舟 着 岸 一 卷 之 覺 書 를 찾아서 공개한 사람이다. 2006년 6월 5일 이후 여러 차례 전화를 하였다. 33) 홍재현의 손부 박영희씨와 여러 차례 통화해서 얻은 정보는 다음과 같다: 박영희씨는 1952년 12월 말에 고 홍순칠 씨와 결혼했고, 홍재현 옹(1862년 생)은 1954년에 작고하 였다. 박영희씨는 홍재현의 활동에 관하여 홍재현 옹으로부터 직접 듣지는 못했고, 홍순칠로부터 들었고 홍순칠은 할아버지로부터 서당 교육을 받으면서 주로 이야기를 들었다. 홍재현이 독도에 강치를 잡으러 여러 차례 갔다 왔고 1898년에 독도에 갔더니 일본인이 강치를 잡 았다는 것과 그 후에 일본에 갔다 왔다는 것만은 정확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37,8세 (한국 나이일 것으로 봄) 때 갔다 왔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였다. 6월 8일의 통화에서는 일본 사람이 강치잡이를 많이 했다고 홍재현이 말했다는 것과 관련하여, 필 자가 그것은 1904년 이후의 일이므로, 홍재현의 나이가 42세일 때라고 말하자 박영희씨는 마흔이 넘지 않은 젊었을 때라는 것과 분명히 37,8세 라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고 하였다. 홍재현 옹은 평상시에도 허름한 차림을 하지 않고 예의를 존중해서 항상 탕건을 쓰고 버선발을 하 고 있었다고 하였다. 홍재현은 농토를 많이 일궈서 울릉도에서는 여유 있게 살았고 그래서 홍재현 의 아들은 일본에 가서 교육을 했고 딸들도 외지에 보내 고등교육을 시켰다. 6월 8일에는 30여년 전에 홍재현의 사진을 보았다는 양도전 씨(서울 거주)와도 통화를 했는데, 양 도전 씨는 30년 전에 사진곽에 들어 있는 사진을 보았다고 하면서, 당시에는 그런 사진은 조선국의 내지에서도 사업이 안되었을 때이고 더욱이 울릉도에서는 사진업이 안될 때라고 하였다. 양도전 씨 가 말한 사진곽 에 대해 그 후 다시 박영희씨와 통화를 한 결과 유리 속에 사진이 찍혀 있는 사 진을 말하는 것이었다. 34) 1900년 재부산 일본영사관 赤 塚 영사관보의 보고에는 당시 울릉도의 일본인의 前 간사가 片 岡 吉 兵 衛 였다( 駐 韓 日 本 公 使 館 記 錄 14: 546). 그런데, 1906년 3월 28일 島 根 縣 의 竹 島 調 査 團 이 울릉도에 들렀을 때, 일본 경찰관 및 日 商 組 合 員 의 알선에 의해서 도동의 片 岡 (가타오까), 脇 田, 吉 尾 씨 등의 집에 분산 하여 휴식을 취한 것으로 보아 片 岡 은 울릉도에서 가장 여유있게 살던 일본인의 한 명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도동에는 일본인 가옥이 40-50채 있었다( 奧 原 碧 雲, 1907: 79). 그런데, 홍재현이 일본에서 찍 은 사진에는 그가 머문 집이 가타오까 란 성을 가진 사람의 집이었다

22 그림 7. 선우영준과 島根縣 海士町의 村上助九郞 씨 村上 씨는 필자와 대화 후 마을 행사에 나가던 중에 집 앞에서 찍 었다 따라서 1899년부터 독도에서의 강치잡이가 중단된 사실이, 홍재현의 시마네현 방문의 결 과로 이루어진 것일 수 있다고 판단된다. 표 2. 홍재현의 독도 강치 잡이 관련 증언이 신빙성이 있는 근거 홍재현의 주장 일본에서 일어난 상황 1897년에 강치 3마리 잡아 1897년 또는 1898년에 隱岐島 지방질원으로 사용했음(가죽에 西鄕港에 강치 가죽이 등장함 강치의 최초 포획 대해서는 무언급). 1898년에 강치 50~60두를 잡아 큰 1898년에 더 많은 사람이 잡으러 이익을 남김 갔음 1898년에 독도에서 무라카미 가문을 일본인들의 만나 조선 땅인 이 섬에 오지 말라고 1899년부터 강치 잡이가 중단되었음 강치잡이 중단 말함 1898년에 시마네현을 방문했음 이상의 검토를 통해서 한국인들이 독도에서 1900년 이전인 았다는 사실은 진실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된다 년 경부터 강치를 잡 마. 우용정의 독도 인식 문제 異聞 관련 우용정의 鬱島記와 報告書 비교 검토 A. 울릉도에서의 우용정의 일정은 표 3과 같다. 우용정은 1900년 5월 31일 울릉도에 도착하 여 그 다음 날인 6월 1일 각동에서 상세하게 아는 2-3명씩을 대비하도록 지시했었다. 울도 기 에 의하면, 우용정은, 5일에는 각 洞의 백성들이 等狀(疏頭를 감추기 위하여 여러 사람의 이름을 圓形으로 쓴 상소문)하여 아뢰는 바를 하소연하는데 도리어 좌우에서 酬應(대답)하기에 이르러 조금도 중단할 틈이 없었다

23 고 했다. 표 3. 울릉도에서의 우용정의 활동 일자 울릉도 도착 (13시) 고시: 일본인 작폐에 대한 한일공동조사차 왔음 및 각동의 대소민 중에서 일을 잘 아는 2-3인 씩 대기하고 있다가 진술할 것 대주민 고시 6. 3 고시: 정부의 금령 준수, 삼림보호 및 학교 설치 등 훈령: 개운회사 설립 및 개운환(開運丸) 1척 구입 훈령: 13동 주민에게 일본인과 결탁하여 불법행위를 하는 자를 처벌할 것임(울릉도 출발 직전에 한 훈령). 일본인들의 작폐에 일본인 福間兵之, 片岡廣親, 松本繁榮 등 조사 대한 한일 공동조사 도감 배계주 조사 (라뽀테 세무사 참석) 도감 배계주 및 일본인 대질 조사 赤塚正輔 등과 회동하여 륜선(輪船)을 타고 섬 전체를 섬 전체 순찰 순찰. 천부동, 고선포, 현포동에서 하선, 동민을 효유 동민으로부터 호소를 각 동의 백성들이 등장(等狀)으로 진지하게 호소함 들음 석탄 소진 등으로 더 이상 머물 수 없어 출항함 자료: 우용정의 鬱島記 그리고 本島 산천의 形勝과 토산과 풍속을 비록 상세히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5일을 머 물면서 公事를 보는 여가에 각 마을의 父老를 불러들여 개척 이후의 일을 상세히 의논하였 는데 사이사이에는 역시 異聞이 있었다(間亦有異聞) 이라고 하였다. 당시 도감이 배계주였다. 또 최초 개척 당시부터 울릉도에 정착한 홍재현(38세) 같은 사 람들은 우용정의 소집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공식 회합 또는 오찬이나 저녁 식사와 같은 사적 자리에서도 대화를 하게 마련이다. 그와 같은 사적 자리에서는 독도에서 강치 잡이를 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안 나올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우용정은 자신의 보고서인 울도기에 그 독도에 대하여 아무런 흔적도 남겨 두지 않았을 것인가?. 이 것은 필자가 석도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고심한 주제였다. 그 것은 아무래도 울도기에 기록되어 있는 間亦有異聞 에서 찾아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인터넷 한국고전종합DB"에서 고전번역서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異聞 을 검색하면, 현 재 68건이 나오는데, 거기에 인용된 문헌들은, 홍재전서, 해동역사, 퇴계집, 동국이상국집 등 이었다. 그 책들에서 제시된 異聞 사례로서, 중에서 가장 빈번히 인용된 것은 南柯一夢 으 로 14회 인용되었다: 당(唐) 나라의 순우분(淳于棼)이 어느 날 남쪽으로 뻗은 홰나무 가지 아래서 잠이 들 었는데, 꿈에 괴안국(槐安國)에 가서 왕의 딸을 아내로 맞고 남가군 태수(南柯郡太守) 까지 되는 등 부귀를 누리다가 꿈을 깨고 보니 그 홰나무 아래에 큰 개미구멍만이 있 더라는 고사. 남가일몽(南柯一夢). 異聞集 그 외에 인용된 것 한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진계경(陳季卿)이란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자, 청룡사(靑龍寺)의 노옹(老翁)이 환영 도(寰瀛圖)에 그려져 있는 위수(渭水) 위에다 대나무 잎 하나를 따서 올려놓고 물결을

24 일으킨 뒤 그 죽엽주(竹葉舟)를 타고서 고향에 다녀오게 하였다는 전설이 당(唐)나라 이민(李玟)의 이문실록(異聞實錄) 에 나온다. 異聞의 개념에 대해 인터넷 포탈 Naver의 한자 사전에서는 이상한 이야기. 보통으로 이 야기 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 남이 알지 못하는 일을 특별히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 기라고 하였고(Naver 한자사전), 일본의 大辭泉에서는 1) 사람이 들어서 알고 있지 않는 이 야기, 2) 보통 말해지고 있는 내용과 다른 신기한 이야기 라고 하였다 따라서 영어에서 풍문이나 異說을 뜻하는 heresy에 가까운 개념이라고 판단된다. 이 점에 유의하면서 우용정의 울도기와 보고서의 내용을 비교 검토해 보고자 한다(표 4. 회색 부분이 보고서의 내용이다). 표 4. 우용정의 울도기와 보고서의 有異聞 관련 내용 비교 보고서 鬱島記 後錄 35) 울 릉 도 역 사 有 異 聞 섬 의 개 요 35) 鬱島는 예전에 于山國이라 일컬었다. 신라의 어느 代에 건국하였는지 알지 못하 는데 문헌에 증빙할 수가 없고 역시 상고할 수도 없다. 智證王 때 이르러 반란의 무 리들이 몰래 점거하여 지형이 험난한 것을 믿고 복종하지 않으므로 臣 異斯夫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정벌하라 命하니, 선박에 나무로 만든 獅子를 싣고 산에 가서 속여 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만약 복종하지 아니하면 이 짐승을 많이 풀어놓아 너희들을 물어 죽이겠다 고 하니 여기에서 우산국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고 그래서 항복하였 다고 하였다. 이것은 바로 野史에서만 전하는 것이고 역시 나라에서 편찬한 역사책 에는 기재된 것은 없다. 이런 이후부터 그 땅을 몇 백년 동안 비워버린 것이니 역사 에 전하는 것이 없다. 우리 조선조에 이르러 임진왜란에 삼척의 정씨 몇 사람이 전 쟁을 여기에서 피하였고. 숙종조에 金丸 등 70여명을 찾아 쫓아낸 사실이 역사책에 (무언급) 기재되어 있는데 이 후에 삼척부사와 越松萬戶에게 3년 간 搜討使를 명하여 사람이 살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니, 대체로 絶島 중에서 만약 무뢰배가 무리를 이루어 혹 禍胎를 만들까 염려한 것이었다. 皇上이 등극하심에 있어, 聖德이 높고 넓어 원근의 백성이 일체가 되니, 온 천하 의 땅에 왕의 백성이 아닌 사람이 없었다. 近者 임오년에 臣 李奎遠에게 군사를 거 느리고 실행하라 명하고 開拓使를 삼음에, 이전에 몰래 건너온 日本人 1천5백 명을 모두 철수하여 돌아가게 하니, 후에 關東 사람 7 8집이 먼저 들어오고 그리고 영남 사람 10여 집이 따라 들어와서 바위에 의지하여 집을 짓고 불을 놓아 밭을 일구었 다. 우용정은 울릉도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음을 말해 줌. 本島 산천의 形勝과 토산과 풍속을 비록 상세히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5일을 머물면서 公事를 보는 여가에 각 마을의 父老를 불러들여 개척 이후의 일을 상세 (무언급 ) 히 의논하였는데 사이사이에는 역시 異聞이 있었다. (本島山川形勝土産風俗 雖未 可詳知 然留連五日 公事之暇 召入各洞父老 詳論開拓以後事實 間亦有異聞) 本島의 地形은 石壁이 많고, 길이는 70리가 되고 너비 대개 섬의 전체 길이는 70리가 되고 는 40리가 되고 둘레는 대개 145리에 모자라지 않으니 역 너비는 40리가 되며 둘레는 145리가 되 시 주민들이 일컫는 바이다. 각종 아름드리 수목이 죽 늘 고 壬午 癸未년 개척이후 오늘날까지 어섰는데, 물푸레나무, 紫檀, 잣나무, 감탕나무 등의 나무 주민은 400여 가구가 되는데 인구는 남 가 있다. 암석이 있는 곳의 바깥에는 간간이 개간하였는데 녀 모두 1천7백여 명이며 개간하여 일 토양이 기름져서 비록 똥거름이나 灌漑가 없어도 곡식을 으킨 화전이 700여 斗落이며 땅이 기름 파종하면 풍성하게 수확하였다. 파종하는 것으로는 대맥, 지고 곡식을 씨뿌리면 잘 자라는데, 심 소맥, 黃豆, 고구마 등인데 각 집마다 양식을 잇고도 남아 는 것으로는 대맥, 소맥, 黃豆, 고구마로 내다 팔고 있다. 그 사이에 개간한 것이 7천7백여 斗落이 집집마다 양식이 풍족하고 물때가 좋 고 주민은 400여 戶이고 인구는 남녀를 합하여 1천7백여 으면 미역 따는 것을 위주로 하고 棉 名이다. 山谷에 흩어져 살고 혹 沿海濱에 자리잡아 살면 花, 삼베, 紙類 등에 이르러서는 외지에 서, 화전을 일구고 미역을 채취하여 생애가 풍족하다. 면 서 오는 것을 기다리지 아니하여도 자 화, 삼베, 紙類 등속은 역시 외지에서 들어오기를 기다리 족하며 지 않으며, 단 부족한 바는 이 섬의 지세가 너무 기 울어져 논에서 벼를 심지 못하는 것뿐이다. 인터넷 야후 일본의 辭書에서 검색한 것임(2006년 8월 10일)

25 독 특 한 사 실 혹 흉년을 만나면 다행히 鶴鳥와 茗夷草가 있어서 기아를 가히 면할 수 있으니 이것이 上天의 好生之德(하늘은 살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라 그런 뜻이 있어서 이 땅에 이 물건을 생육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鶴鳥라는 것은 부리는 매, 발은 오리, 털은 하얀 비둘기인데 한낮이면 海面 위 를 날면서 魚種을 쪼아먹고 저녁이면 山間에 돌아가서 구멍에 거처하는데, 사람들 이 잡으려고 산중에서 불을 사용하니, 밝은 것을 향하여 모여드는 것을 이용하여 전혀 힘들이지 아니하고 포획하는 것이었다. 맛은 오리고기 같다. 더욱 좋은 것은 茗夷인데 줄기 하나에 잎이 둘이고 줄기는 마늘 이삭과 같으나 잎은 玉簪과 같다. 그 꽃은 파 이삭의 종류이고 맛도 역시 같다. 대체로 이 새와 풀 로서 여러 해를 먹고 지내도 역시 굶주린 기색이 없으니 아주 이상한 일이라 하겠 다. 山勢는 층층한 산봉우리가 푸르게 솟았는데 奇巖怪石이 혹 사람같이 섰고 혹 짐승같이 쭈그려 千態萬象이라 묘사하기 어려운데, 수목은 하늘에 높이 솟아 물푸 레나무 같은 나무, 紫檀, 잣나무, 甘湯나무 등의 나무가 모두 堅密하고 무늬가 치밀 하여 진기한 그릇에 쓰일 만 하였다. 더욱 기이한 것이 있으니, 봉우리와 골짜기가 이와 같이 깊고 그윽한데도 호랑 이, 표범, 큰 뱀, 살무사의 침해가 없고, 수목이 이와 같이 무성한데도 또 가시나무 에 피부를 찔리는 고통이 없으니, 신령스런 기운이 모인 바가 아님이 없으며 사람 을 헤치는 물건을 제거함이었다. 울릉도 섬사람들이 소금강이라고 일컬음은 당연하 고 헛된 자랑만이 아니다. 자료: 우용정의 울도기 및 보고서 만약 혹 흉 년을 만나면 새에는 鶴鳥가 있고 풀에는 茗夷가 있어 여유 있게 흉 년을 지내고 飢餓를 면할 수가 있으며 또 萬山이 중 첩한데도 호랑 이, 표범, 승냥 이, 뱀의 침해 가 없고, 수목 은 죽 늘어섰 는데 역시 가 시에 피부를 찔리는 고통이 없으니 유명한 절경이라 할 수 있는데 표 4에서 보면, 異聞 이라고 비견해 볼 수 있는 내용은 독특한 사실 에서 제시한 내용 뿐인데, 그 내용들은 사실 에 근거한 것이며, 아무래도 5일을 머물면서 公事를 보는 여가에 각 마을의 父老를 불러들여 개척 이후의 일을 상세히 의논하였는데 사이사이에는 역시 異聞이 있었다(然留連五日 公事之暇 召入各 洞父老 詳論開拓以後事實 間亦有異聞) 와 같은 수준의 異聞 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한 것 같다. B. 상황인식 관련 정보의 유형 상황인식(situation awareness)과 관련하여, 세 가지 유형의 정보처리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시그널(signal)은 대표하는 측면이 상황의 의미있는 상태에 직접적으로 寫像을 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이 경우에는 숙달에 근거하거나 자동적 처리(automatic processing)가 가능한 경우이다. 그 예는 자동차의 운전대를 돌리면 그에 따라 자동차도 방 향을 바꾸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추론의 필요성과 높은 수준의 인식적 자원에 의존할 필 요가 거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작동자는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상황에 대한 복합 적 분석의 필요성이 거의 없다(Falch, Mulder and van Passen, 2004: 51-52). 둘째, 싸인(sign)은 대표하는 측면과 상황의 의미있는 상태 간에 일관적인 역사(장기간에 걸친 상관관계)가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지름길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 는데, 규칙에 근거한 처리(rule-based processing)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상황에 대한 깊은 분석 없이도 인지와 행동간의 관계를 알 수 있게 된다(Falch, Mulder and van Passen, 2004: 52). 셋째, 상징적(symbolic) 인 경우는 시현된 것으로부터 상황의 의미있는 상태로 寫像을 하는 것이 애매모호한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인지와 행동간의 적절한 연계를 발 견하기 위해서 깊은 분석이 필요하다. 이것을 지식에 근거한 처리(knowledge-based processing)라고 한다. 이 분석에는 높은 인식적 자원의 활용이 필수적이다. 이 경우에는 관 찰자가 의미를 보아서 아는(see) 것은 가능하지 않고 상황에 대하여 이용가능한 큐(cues)

26 와 지식으로부터 의미를 추론(infer)하고 계산(coumpute)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Falch, Mulder and van Passen, 2004: 52). 36)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시그널이나 싸인의 관계의 밑바탕에 있는 규칙성이나 일관성에 조율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상황에 대하여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Falch, Mulder and van Passen, 2004: 52). 따라서 경험이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 지식에 근거한 처 리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Falch, Mulder and van Passen, 2004: 52). 상황인식에 대해서 유용하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1) 어떤 사람이 상황에 대하여 갖고 있 는 지식 뿐만 아니고 2) 그러한 지식을 생산하게 된 과정도 포함해야 하는데, 그 과정은 상 황과 그의 맥락에 의존한다(Patrick and James, 2004: 63). 현실 세계에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는 전달하는 사람의 전달력, 의도 등이 작용하고 전달과정에서도 오류를 일으킬 수 있지만, 전달을 받는 사람의 완벽성이 제한적이어서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 주목의 한계, 기억의 한계 등으로 인하여 받아들이는 정보를 정확하게 해 석할 수 없는 경우도 흔하다(Jones, 2001: 87-88). 즉, 인간의 인식적 건축이 객관적인 정보를 느끼고 해석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된다(Jones, 2001: 88). C. 우용정의 돌섬 독섬 인지 문제 1) 데이터의 휠터링 문제 데이터는 사물의 속성이라고 특징지울 수 있는 반면에, 지식은 행위자의 속성으로 어떤 성향을 갖고 특정한 상황에서 행동하게 만든다(Boist, 1998: 12). 정보는 사물에 존재하는 자 료의 하위 셋트로 행위자를 활성화 시키는데, 정보는 행위자의 인지적 또는 개념적 장치에 의하여 걸러진다(Boist, 1998: 12). 결국 정보는 사물과 행위자 사이에 관계를 확립한다(그림 8). 인지적.개념적 휠터 사건 (데이타의 원천) 데이타 정보 행위자 (지식의 원천) 그림 8. 데이터, 정보 및 지식의 관계 자료: Boist, 1998: 12. 지식은 한 행위자가 가지고 있는 확률의 분포로 개념화될 수 있으며, 그리고 그의 행동 36) 상황 인식(situation awareness) 이 주목(attention), 인지(perception), 탐색(detection) 및 이해 (comprehehsion)를 넘어서서 통찰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에는 무시된 임무(task) 또는 현상 (phenomenon)을 조사하는 것에서 정당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Patrick and James, 2004: 78)

27 의 방향을 잡아준다. 이들은 새로운 정보가 추가됨에 따라 수정되거나 강화된다. 정보와 달 리, 지식은 직접 관찰할 수 없다. 그의 존재는 오직 행위자의 행동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다 (Boist, 1998: 12). 인간사에 있어 지식은 물리적 자원의 이용을 세 방법으로 효율화 시키는 데, 1) 형태를 구축하는 것(in-forming), 2) 조직화 하는 것 및 3) 지적 행위자의 이해를 향상 시키는 것이다. 조직화 한다는 것은 문서라는디 상징적 지원 체제 안에 정보를 embedding 시켜서 사물의 창조와 기능수행을 조정하는데 이용된다. 지적 행위자의 이해를 향상시키는 것이란, 개인들 또는 조직의 뇌 속에 embedding 시키는 것이다(Boist, 1998: 12-13). 요약하여, 행위자가 보유하고 있는 지식은 물리적 사물, 문서 또는 개인의 뇌 속에 잠재 하고 있는 정보 구조를 건축한다(Boist, 1998: 13). 2) Bottom-up 방식의 독도 인식 문제 패턴 인식에 관한 이론을 검토하면, 패턴 인식이 top-down 또는 bottom-up 과정 어느 것을 포함하는지에 관한 물음을 제기하며, 이에 대한 주장은 인지와 주목(perception and attention)에 관한 하나의 중심적 논쟁이다(Lund, 2001: 63). Top-down 이론들은 패턴의 인 식이 전체로서의 패턴에 대한 가설로부터 출발하며, 이것이 구성요소에 대한 확인과 인식을 이끈다고 주장한다. 이 top-down approach은 그림 의 6면체의 회색 면에 대한 인식에서 잘 나타난다. 이것은 회색 면이 앞으로 나온 경우 및 뒤에 감추어진 경우의 두 방법으로 인식될 수 있다. 회색면에 대한 정보는 제한되 어 있고, 그에 대한 인지는 회색 면이 앞으로 나와 있거 나 또는 뒤로 들어가 있는 것에 의존하게 된다. 그림 6에 서 6면체의 구성요소는 인지될 수 있지만, 그러나 오직 전체의 하나로서 인지되게 된다(Lund, 2001: 63). 그림 9. 6면체의 인지 그 반면에 bottom-up 이론들은 패턴 인식이 구성요서 의 확인으로부터 툴발하며, 그 다음에 집단을 구성하고, 그 결과 전체의 인식을 가능하게 한 다. 예를 들면, N" 자의 인식은 각각의 구성요소인,, 의 분석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구성요소들은 그 다음에 결합되어, N 자가 인식될 수 있다. 그리고 각각의 글자가 인식되 고, 결합되면서 글자(word)를 형성한다(예: NAME. 이 경우 N이 F로 바뀌면 전혀 다른 의 미의 단어인 FAME이 된다). 그와 같이 인식은 가 장 밑바닥의 모습으로부터 출발하여 건설해 나간다 12 A 13 C 특히, top-down 이론들은 또한 맥락(contexts)과 기대(expectations)의 중요성을 강조한다(Lund, : 63). 다양한 예에 의하면 인식은 맥락과 기대. 맥락의 효과 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Lund, 2001: 75). 그림 10. Lund(2001: 76)의 그림을 새로 그림 10에서 보는 바와 같이, 비록 가운데 글자의 그린 것임 모양은 그대로 일지라도, 어느 방향에서 보는지에 따라 B 또는 13으로 읽혀질 수 있다(Lund, 2001: 75-76). 그런데 우용정 등 당시의 조선국 정부 관리들은 울릉도 먼 바다에 독도가 존재한다 는 것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었고, 또 가본 적도 없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bottom-up 방식으로 정보를 하나하나 조합해 나가야 된다. 그러므로 설사 울릉도에서 도도에 대하여 들었다고 하더라도 공식 보고서에 선뜻 기 (Lund, 2001: 64)

28 록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우용정 개인의 인식과 지식 수준의 문제도 있지만, 만약에 국왕 고종이 그 섬에 가보았느냐고 물으면 처신하는데 어려움이 발생하 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우용정의 뇌 속에는 잘 보관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개념(concepts)은 인식의 건축 벽돌이다(Kunda, 1999: 16). 개념들은 객체, 사 람, 또는 상황이 실제로 어떤 것인가를 시현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이 어떨 것이라고 믿는 것을 시현하는 것이다(Kunda, 1999: 16). 개념이 없다면 우리의 세상은 이해되지 않을 것이 다. 개념이 포함하고 있는 핵심적 기능들은 분류, 추가적 속성의 추론, 주목과 해석의 안내, 의사소통 및 논리 형성이다(Kunda, 1999: 17). 그리고 개념(concept)은 어떤 범주(category)를 정신적으로 시현(representation)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함께 속한다고 믿는 객체의 한 종 류이다(Kunda, 1999: 51). 자질, 스테레오 타입, 대인간의 상황과 같은 사회적 객체의 개념들 은 우리들의 사회적 세계를 해석하기 위한 우리들이 행태, 사람들 및 사건들을 분류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직접적으로 관찰한 정보를 넘어서는 그 사회적 세계에 대하여 추론 (inference)을 할 수 있도록 하며,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한다 (Kunda, 1999: 51). 이와 같이 형성된 개념이 장차 역할을 하게 될 수 있다. 그림 11. 부산주재 赤塚正輔 영사관보가 보고한 울릉도 도면 바. 일본 부산영사관 부영사 赤塚正助의 보고 울릉도에서 돌아온 부산영사관의 부영사 赤塚正輔는 6월 12일 在京 특명전권공사 林權助 에게 조사상황을 자세히 보고하였다. 그 보고에는 부속도면(附屬圖面)이 첨부되었다(그림 11). 그 지도는 방각(方角)이 잘못되어 있어, 동-서와 남-북이 각각 반대로 표기되어 있다. 그 반면에 동리의 분포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록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울릉도 해변에서 조금 37) 37) 駐韓日本公使館記錄 14권 544쪽. 각영사관기밀내신 機密京제17호. 송병기는 赤塚의 보고가 더 정확 한 것으로 보았다(2000: 111)

29 이라도 떨어진 섬으로는 죽도(竹島)밖에 없으며, 현재 도항(島項)이라고 불리는 섬을 목도(牧 島)라고 하였고, 그 섬으로 연결되는 지점을 관음기(觀音崎)라고 하였다. 38) 울도군칙령의 石島 3. 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울도군칙령) 대한제국 정부는 1900년 10월 27일 강원도 소속으로 울릉도를 군으로 설치하는 칙령 제 41호(이하 울도군칙령 이라고 한다)를 관보에 게재하여 이날로부터 효력을 발했다. 이 칙령 에서 울릉도의 이름을 울도군 이라고 하였고, 관할하는 섬에 죽도와 石島가 포함되어 있다. 현재 한국측은 이 石島가 독도라고 주장하고 있고, 일본측은 이를 부정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일본측은 설사 이 석도가 독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조선 시대의 우산도는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池內敏, 2011). A. 칙령 제 호와 청의서 41 鬱陵島를 鬱島로 改稱하고 島監을 郡守로 改正에 關한 請議書 검토 1) 鬱陵島를 鬱島로 改稱하고 島監을 郡守로 改正에 關한 請議書 는 대한제국 내각에서 울 도군칙령을 건의한 이유문(청의서)인데, 1900년 10월 22일자 청의서에는 勅令第四十一號(案) 을 첨부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제시하였다. 청의서에서 제시한 전체 내용은 울릉도의 크기 등에 관한 개략적 수치 정보들이며, 독도와 관련된 직접적은 내용은 없다. 다만 주목할 것은, 청의서를 올리게된 정보의 출처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右 該島가 東溟에 特立 야 大陸이 遠隔 온바 開國五百四年에 島監을 設置 야 島 民을 保護 고 事務를 管掌케 該島監 裵季周의 報牒과 本部視察官 禹用鼎과 東 萊稅務司의 視察錄을 叅互節査 온즉 該地方이 蹤可八十里오 橫爲五十里라. 四圍峭壁 에 中有巨山 야 自北止南 고 間有大川 야 深廣이 幾容舟楫 고 其土가 沃腴 고 其民이 質野 야 自數十年來로 民蓄이 蕃殖 야 戶數가 爲四百餘家오 墾田이 爲萬餘 斗落이라. 居民의 一年農作 擔包數爻가 藷爲二萬餘包오 大麥이 爲二萬餘包오 黃豆爲 一萬餘包오 小麥이 爲五千包라 오니 大率 戶數와 田數와 穀數를 陸處 山郡에 較 計 오면 數或不及이오나 不甚相左 더러 挽近 外國人이 往來交易 야 交際上도 亦有 온지라. 島監이라 稱號 오미 行政上에 果有妨碍기로 鬱陵島를 鬱島라 改稱하고 島 監을 郡守로 改正 오미 妥當 기 此段 勅令案을 會議에 提呈事. 光武四年 十月二十二日 議政府贊政 內部大臣 李乾夏 議政府議政 尹容善閣下 査照 勅令第四十一號(案: 생략)39) 이와 같이 청의서에서는 도감 배계주의 보첩과 본부시찰관 우용정과 동래세무사 라포테 의 시찰록을 비교 조사하였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2) 칙령 제 호 41 월 22일 올린 청의서에는 칙령 제41호 안도 포함되어 있다. 10월 24일 내각회의를 거 10 38) 39) 이 도면은 울릉도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도면을 모사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 독도학회 신용하 편, 1999:

30 쳐, 10월 25일에 고종(高宗)의 재가를 받아, 10월 27일에 칙령 제41호로 울릉도를 鬱島로 개칭하고 島監을 郡守로 개정한 件 이 관보에 게재됨으로써 울도군 칙령이 시행되었다(신용 하, 1997: ; 송병기, 2000: ). 주목할 사실은 이 칙령에서는 名辭 등은 한문을 사용하고 조사 등은 한글을 사용하였다 는 것이다. 반포된 내용 중 독도 영토권원과 관련된 조문은 제1조와 제2조로, 다음과 같다: 칙령 제41호 울릉도를 鬱島로 개칭하고 島監을 郡守로 개정한 件 제1조 鬱陵島를 鬱島라 개칭하야 강원도에 부속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하여 관제 중에 편입하고 군등은 5등으로 할 事 제2조 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鬱陵全島와 竹島 石島를 관할할 事 光武 4년 10월 25일 勅 議政府 議政府臨時署理 贊政 內部大臣 李乾夏 40) 칙령에서 竹島는 한때 일본에서 竹嶼島라고 불렀던 섬인 현재의 죽도를 가리키는 것이라 는 데 있어서는, 한국과 일본 양국 모두가 일치하고 있다(일본 외무성의 2007년 竹島問 題 ). 오직 견해가 상반되는 것은 石島 가 어떤 섬을 지칭하는 것인지이다. B. 41) 울도군 청의서의 특징 대한제국의 청의서 는 오늘 날의 국무회의 안건에 해당된다. 이들 문건에서는 대체로 어떤 안건에 대한 논의의 결과로서의 공식적 정보만을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울대학 교 규장각에서 검색해 볼 수 있는 대한제국의 청의서 에는 28책이 있으며, 각각의 책에는 수십 건 이상의 청의서를 찾아 볼 수 있다. 모든 청의서를 다 검토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 의 청의서와 특히, 행정구역과 관련된 청의서 모두를 검토했지만, 그 청의서들에서 報諜 을 인용한 예는 울도군 청의서밖에 없었다. 원래 보첩 이란 표현 자체가 국무회의 안건이나 勅令 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奎章閣 소장 勅令 光武 4년 20월 25일 및 官報 일)(송병기, 2005: 152 주 97): 40) 월 勅令 第四十一號 鬱陵島를 鬱島로 改稱 고 島監을 郡守로 改正 件 第一條 鬱陵島를 鬱島라 改稱 야 江原道에 附屬 고 島監을 郡守로 改正 야 官制中에 編入 고 郡等은 五等으로 事 第二條 郡廳 位置 台霞洞으로 定 고 區域은 鬱陵全島와 竹島石島를 管轄 事 第三條 開國五百四年 八月十六日 官報中 官廳事項欄內 鬱陵島以下 十九字를 刪去 고 開國五百五年 勅令三十六號 第五條 江原道二十六郡의 六字 七字로 改正 고 安峽郡下에 鬱島郡 三字를 添入 事 第四條 經費 五等郡으로 磨鍊호 現今間인 즉 吏額이 未備 고 庶事草創 기로 海島收稅中으로 姑先 磨鍊 事 第五條 未盡 諸條 本島開拓을 隨 야 次第 磨鍊 사 第六條 本令은 頒布日로부터 施行 事 光武四年 十月二十五日 奉 勅 議政府臨時署理 贊政 內部大臣 李乾夏 41) 大西俊輝는, 일부러 도명을 들어 울도 군수에게 관할 시키는 섬이라면 울릉도에 당연하게 부속되는 섬은 아니고, 특별한 섬이기 때문으로, 떨어진 섬이거나 강조해두지 않으면 안되는 섬일 것이므로, 독도가 어울린다고 하였다(2004: 83)

31 청의서에서 사용될 표현이 아니다. 그리고 울도군청의서 내용이 청의서와 칙령 제41호에서 죽도와 석도 를 제외하면, 該 島監 裵季周의 報牒과 本部視察官 禹用鼎과 東萊稅務司의 視察錄을 叅互節査 온즉 이라는 인용을 할 필요도 없는 내용들이다. 더욱이 울릉도는 이미 1898년에 지방관제에 반영되었다. 따라서 1900년 10월 울도군청의서에서 세 사람의 보고를 인용할 필요는 오직 石島 를 명시 하기 위한 필요 외에는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1898년 직제와 1900년 3월의 청의서안과 달리 왜 세 사람의 보고가 언급되었 고, 竹島石島 가 제시된 것일까? 표 5. 울릉도 지방제도 등에 있어서의 부속 도서 명기 여부 1898년 울릉도 지방제도 황성신문 청의서안 울릉도 대상 명칭 울릉도 울릉도 우산도, 죽도 울도군칙령 울릉도 죽도, 석도 그것은 당시 대한제국 정부에서는 독도를 실사한 적이 없었던 데다, 일본을 의식하 여, 타인이 알듯 모를듯 하도록 조치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거기에는 우용정의 정보 처리와 국왕 고종의 울릉도 인식 그리고 대한제국 내각의 업무처리 요령이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C. 1) 정보처리 이론과 우용정과 고종의 지식 우용정의 돌섬 독섬 정보 처리 정보의 처리 라는 측면에 있어, 완전한 합리적 의사결정과 제약된 합리적 의사결정 간 에 현저한 차이가 나타나게 된다. 정보이론(information theory)에 의하면, 수신자(의사결정 자)는 완벽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정보가 완벽하면 그 처리도 완벽하다는 것인 반면에, 정보처리이론(information processing theory)에서는 정보의 수신자가 오류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므로 그 처리와 해석과정에 있어서도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Jones, 2001: 85-86). 정보처리 이론에서는 전달된 정보와 신호(시그널)는 수신자에 의하여 전환되게 (transformation) 된다. 의사결정자는 그가 결정의 근거로서 이용한 시그널을 신뢰성 높게 재생산 할 수 없다(Jones, 2001: 90). 사람은 자신이 해독한 신호에 반응하여 외부 환경에 대 응하는 의사결정을 하게 되는데, 그 해독과정은 신호가 보내진 대로 받아들여지는 객관적 과정이 아니며, 의사결정자가 추구하는 선택은 수신된 정보의 감각적 인식적 해석에 따라서 영향을 받게 된다(Jones, 2001: 85). 그런데, 인간의 마음은 정보를 매듭 없이 해석해서 결정 으로 만드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의사결정자는 해석된 정보에 따라 전략을 세우 게 된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받아들인 정보를 왜곡하는 것은 마음의 작동하는 방법으로부터 나온 다. 정보 왜곡의 원천은 3 가지가 있다. 첫째, 받아들이는 정보 시그널이 처리과정에서 의사 결정자의 성향, 습관화(habituation) 등에 의하여 변경된다. 둘째, 다양한 원천에서 오는 정보 를 의사결정자가 결합시키는 데서 오는 암묵적 지표 문제(implicit indicator problem)가 있 다. 셋째, 직면한 문제로부터 문제의 공간을 건설하는 데 정보가 왜곡되게 된다(Jones, 2001:

32 84-85). 인간이 의도적으로 합리적이라면, 수신된 정보의 그 왜곡을 가능한 한 줄이려 하며, 그렇지 못하면 왜곡은 커진다. 정보 1 지표 1 소음 정보 1 지표 1 계산 결정 정보 1 지표 1 소음 그림 12. 의사결정의 암묵적 지표 모텔 자료: Jones, 2001: 181. 그런데 해당 임무를 위해서 이용가능한 시간에 따라 정보의 처리는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된다(Jones, 2001: 100). 42) 그림 13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식적 시간대에서는 행태는 기본적 으로 자동적이다. 인식적 시간대의 경우에 행태는 기본적으로 자동적인데, 지식의 탐색은 하 지만 문제에 대한 탐색은 하지 않는다(Jones, 2001: 100). 43) 인식적 시간대에서는 지식의 탐 색은 하지만 문제는 탐색하지 않게 된다(Jones, 2001: ). 44) 인식적 시간대의 결정의 경우에 사람들이 기존에 형성된 느낌에 근거하여 선택을 하기 때문에, 작은 변화에 관한 정 보는 들어오더라도 기존의 느낌에 따라 대응을 하게 된다. 그 반면에 시간이 좀 더 허용되어 의도합리적 시간대에서 선택을 할 수 있는 경우에는 분명한 문제 공간이 건설되어서 원하는 것 및 현재의 정치적 상황 등이 고려되게 된다 (Jones, 2001: ). 이 경우에는 문제 공간을 건설해야 하기 때문에 속성에 기초한 처리 를 하는데, 문제 공간은 당면한 과제를 특징화하는 모습 또는 속성으로 구성되며(Jones, 2001: 100), 선택의 과정은 평가될 대안의 생산 및 대안의 상대적 바람직성의 비교를 포함한 다(Jones, 2001: 100). 합리적 의사결정자는 어떤 의사결정 상황에서도 들어오는 다양한 정보의 지수를 만들 것 이다. 이들 지수는 다양한 원천으로부터의 정보에 대한 가중치를 부여한 합계가 될 것이다 (Jones, 2001: 181). 완전히 합리적인 행위자들은 이들 지수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갱신 할 것이다. 다만, 공공정책의 참여자들이 합리적이라고 보는 경우에도 각각의 구성원이 다른 선호(preference)를 갖고 있는 경우에는 전형적으로 leptokurtic한 분포가 일어난다(Jones, 2001: 170). 42) Newell(1990)에 의하면 인간행동의 시간 규모에 있어 1/100초에서 10초까지를 인식적 시간대(cognitive band)로, 10초에서 1만 초까지를 합리적 시간대(rational band)라고 보았다. 그리고 1/100초 미만을 생 물학적 시간대, 1만 초를 넘는 시간대를 사회적 시간대이다(Jones, 2001: 57). 43) 존스의 이 내용은 Newell의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44) Newell(1990)에 의하면 인간행동의 시간 규모에 있어 1/100초에서 10초까지를 인식적 시간대(cognitive band)로, 10초에서 1만 초까지를 합리적 시간대(rational band)라고 보았다. 그리고 1/100초 미만을 생 물학적 시간대, 1만 초를 넘는 시간대를 사회적 시간대이다(Jones, 2001: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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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대한신경학0201 www.neuro.or.kr 2010 1 Vol. 82 www.neuro.or.kr 01 5 January 2010 2007 Newsletter of THE KOREAN NEUROLOGICAL ASSOCIATION 2010 NO.82 2010.JANUARY C o n t e n t s 04 05 06 10 13 17 18 20 22 25 28 32 33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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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아웃 1

레이아웃 1 03 04 06 08 10 12 13 14 16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도 지나가고 어느덧 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소현이가 이 곳 태화해뜨는샘에 다닌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네요. 해샘에 처음 다닐 때는 대중교통 이용하는 것도 남을 의식해 힘들어하고, 사무실내에서 사람들과 지내는 것도 신경 쓰여 어려워했었습니다. 그러던 우리 소현이가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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º´¹«Ã»Ã¥-»ç³ªÀÌ·Î 솔직히 입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왜 그렇게까지 군대를 가려고하냐,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후회는 없다. 그런 말을 하던 사람들조차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군대는 하루하루를 소종하게 생각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점점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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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¼ºÀαÇ24È£ Contents ㅣ반딧불이ㅣ뒤엉켜 버린 삶, 세월이 흘러도 풀 수 없는.. 실타래 벌써 3년째 시간은 흘러가고 있네요. 저는 서울에서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에 가족들과 제주로 내려오게 되었답 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엄마의 죽음을 잊으려고 하였습 니다. 그러다 여기서 고향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분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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