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년제 34 차조선통신사의종사관 1) 이되어 성수초등학교 수석교사이경희 Ⅰ. 들어가며 좋은생각은좋은열매를맺는다. 제 34차일본속의한민족사탐방이라니? 늘남의것이라생각하던것이내것이되었다. 학기중에실시하는조선통신사의여정을따라일본속에남아있는한민족사, 우리조상의자취를찾아가는여정이시작되기를손꼽아기다리던중역사토론동아리에서초청한손승철교수님의독도문제와일본교과서왜곡에관한강의를들었다. 한민족사탐방을앞두고찾아간연수에서만난교수님과탐방내내함께하게될줄이야? 한일간의미묘한정국의흐름속에교과서왜곡의 7 가지근거에대한핵심을짚어주시는손교수님의강의를듣고탐방날이오기를손꼽아기다렸다. 출발전에보내온자료집과한일공통역사교재제작팀이발간한조선통신사 2) 교재를읽으면서과거로돌아가긴역사의흐름속에함께공존했던일본과우리나라의관계를되돌아보는소중한탐방일정을어떻게보낼것인가에대한고민끝에 2014년제 34차조선통신사절단이되어보기로하였다. 조선통신사종사관이되어매일일어나는일을기록하여돌아온뒤자료집을만들어역사지도를하시는선생님들과함께나누어볼까? 초등학교 5학년사회교과서속에담긴관련내용과탐방여정속에서담긴일본속한민족사비교자료가역사지도를하면서우리민족의우수성과한국인으로서의자긍심을높이고올바른역사를지도하는좋은학습자료로학생지도에도움이될것이다. 방학중근무하는날도아닌데출근하여함께했던작은마음이그대로지나칠뻔했던소중한기회를잡게해주심에감사드리며 5일간의新조선통신사종사관으로출발! Ⅱ. 일본속의한민족사여정 1. 제 34 회일본속의한민족사탐방일정 1 일 (9 월 29 일 ) 일본탐방지 주제 강사 답사키워드 다자이후 ( 大宰府 ) 신라공격에대비한방어거점 손승철 수성 ( 水城 ) 후나야마고분군 백제와의연결고리 서정석 고분 ( 古墳 ) 학술강연 1 일본고대문화의이해 정영호 학술강연 2 우정과배신의 5000년역사 손승철 1) 통신사를인솔한삼사는정사 ( 총책임자 ), 부사 ( 정사보좌관 ), 종사관으로구성되며그중종사관은매일일어나는일을기록하여돌아온뒤국왕에게보고하고사신일행의불법행위를단속하며, 문관가운데서글이뛰어난사람을선발함 ( 조선통신사 / 한일공통역사교재제작팀지음, 한길사,2005 92p) 2) 조선통신사 / 한일공통역사교재제작팀지음, 한길사,2005-1 -
일본탐방지주제강사답사키워드 현장강연우스키석불군정영호절 2 일 (9 월 30 일 ) 3 일 (10 월 1 일 ) 4 일 (10 월 2 일 ) 5 일 (10 월 3 일 ) 우사신궁신라범종신라범종 아카마신궁조선통신사의숙소조선통신사숙소 청일강화기념관일제침략의발판시모노세키조약 니조성 ( 二조城 ) 일본권력의변화처성 고류지 ( 廣隆寺 ) 신라인의숨결을찾아절 오사카도톤보리에서문화 호류지 ( 法隆寺 ) 삼국고대문화의종합판정영호절 도다이지 ( 東大寺 ) 가라쿠니신사 ( 辛國神, 韓國神 ) 아스카테라 ( 飛鳥寺 ) 세계최대의목조건축물 도다이지창건에결정적역할을한한반도계 절 신사 일본에서가장오래된불상정영호백제왕흥사 이시부타이 ( 石舞臺 ) 소가노우마코의무덤 서정석 고분 학술강연 3 한국근대사와재일코리안의역사 배광웅 오사카교육대학 학술강연 4 백제와왜의관계 서정석 재테크강의고금리시대의자산관리전략김영옥신한은행 오사카성도요토미의권력의상징손승철성 ( 城 ) 시텐노지 ( 四天王寺 ) 한반도고대절건축양식 593 년쇼토쿠태자가건립한일본최고 ( 最古 ) 의국가사찰. 금강학원방문재일한국인학교성시열 정영호四天王寺 ( 절 ) 최초의한국인학교 2. 탐방첫째날 (9 월 29 일 ) 탐방을앞두고콩볶듯이바빴던시간을보내고드디어출발! 늘부산에서출발하던여정이처음으로비행기를타고출발한다. 운이좋다고하면아직도정리되지못한마음아픈사연을지닌분들에게미안하고죄송하다. 현해탄을건너면서수회에걸친조선통신사로수행하였던많은분들의이야기를되돌아보지는못하여도조선통신사일행이일년이상준비하여 5개월이상걸려다녔던여정을출발한지 5시간도안되어후쿠오카공항에도착하여첫번째탐방지인다자이후 ( 大宰府 ) 를향하였다. 후쿠오카는원래상인들에의하여발전된도시로하카타라불려졌으나대외적으로무사들의힘에의해후쿠오까가되었단다. 신칸센중앙역인하카다역, 하카타라면등일본의모든것이쏟아져나오기시작하였다. 여행의재미는인솔하는가이드에따라플러스알파의소소한즐거움이시작되는데경력 20년의베테랑가이드이자전체가이드총책임을맡고있는미스터정의입담은출발부터만만치않았다. 오랜경험으로애나어른이나똑같이무한반복학습잔소리를해야한다는것을알고있는것일까? 내내서론과본론, 부록까지일본의모든것을다알리려는듯하는열정의사나이였다. - 2 -
가. 신라공격에대비한방어지점다자이후 ( 大宰府 ) < 다자이후현장강의하시는손교수님 > 다자이후는백제와밀접한관계가있는유적으로 660년백제가나당연합군에의해멸망하자백제부흥을이끌던복신 ( 福信 ) 의요청에의해멸망한백제를구원하려고백제땅으로건너와백촌강 ( 白村江, 오늘의동진강하구 ) 어귀에서대접전이벌어지고왜의수군은궤멸하고만다. 이때 3천여백제지배층이일본수군과함께일본으로향하고, 이때신라가규슈까지침공할것을염려하여적의접근을막고자적의접근로가될수있는곳에수성을쌓았다. 수성의제방은다져진흙으로너비 60m, 높이 4m로 4Km를쌓았으나 2.7Km만남 아있다. 수성과함께만들어진대표적인성이오노성으로백촌강전투이후일본으로건너온백제귀족들의지도를받아만들어진성으로일본에서는 조선식산성 이라고부르며서울의몽촌토성과유사하다. 다자이후는규슈지역을다스리고외교를담당하며관문을지키던정청으로나라교토처럼계획적으로지어진도시로정전 ( 政殿 ) 은정전과중문은회랑으로연결되어있던그터가남아있다. 첫도착지다자이후에서만난손승철교수님, 지난 9월역사토론동아리에서뵈었는데이곳에서다시뵙게되어몹시반가웠다. 4박 5일간펼쳐지는답사포인트로고대와근세역사와문화의특징을잇는신사, 고대종교와사상이담긴고분, 한반도고대문화의전래를알수있는절과성으로고대문화의발달에따라신사, 고분, 절, 성의모습과그곳에담긴역사와문화를알아가는과정으로역사순으로 1500년 ~2000년전일본역사의흐름을관통하면서한반도와의관련성을따라가는시간여행으로현재의일본속에서고대의한국사를만나는시공간을초월하는보고느끼고생각하는여행으로일본속의한민족사를찾아가는여정의시작을함께하였다. 나. 백제와의연결고리후나야마 ( 船山 ) 고분 구마모토현에있는후나야마고분군근처식당에서일본의전형적인도시락으로준비된점심을먹고후나야마고분으로향하였다. 후나야마고분은전방 62m, 후원부직경 41m, 높이 12m, 전방폭 40m, 높이 75m 로규모가지금보이는것보다훨씬컸다. 언뜻보면동네낮은언덕처럼보이는전방후원분 ( 前方後圓墳 ) 으로땅의주인이꿈에계시를받고발굴을하게되었다는재미있는이야기가전해지는고분이다고분에서는집모양의석관이석관안은단청이되어있었다고한다. 고분에서출토된 5세기경금동신발과금동제관모, 청동거울, 금귀고리, 철제칼등총 92건의수많은부장품들이출토되었는데백제무령왕릉에서출토된유물과흡사하다. 금동제관모는충남공주수촌리고분에서발굴된고분과흡사하다. 그러나유물관은휴일이어서관람을하지못하여서정석교수의강의후고분과주변을돌아보는것으로아쉬움을달랬다. 고분주변에는일본의중학생들이선생님의지도를받으며주변의풍경을그리는모습을볼수있었다. 체육복을입고그림을그리는학생들의모습을복반가워건네는인사에환하게답하는모습이인상적이었다. 십여년전일본을방문하였을때교복차림의학생들의모습과는사뭇달라진느낌이었다. 후나야마고분답사를마친후벳부의스기노이호텔로향하였다. 산림이우거진고속도로주변의경관을바라보나졸음이몰려오나열정이넘치는가이드의이야기는끝이없다. 일본의첫인상을표현한다면 첫째도깨끗둘째도깨끗셋째도깨끗하다. 로표현된다는말부터시작하여젓가락놓는위치, 우동을먹는방법, 온천장에서목욕하는방법, 초밥에간장을찍어먹는방법, 흡연자의개인용재떨이 - 3 -
등일본의모든것을쉼없이내어놓는다. 일본속한민족사를돌아보는여정에서한일간의비교민속학을전공한사람처럼그잔소리가무한하다. 배려와청결이몸이밴일본인들과한국교사단의모든말과행동이 34회를거듭하면서다녀간선생님들과자동비교되는여정인듯하다. 과거조선통신사들은일본에우리의앞선문화를전파하는최초의한류로서일본에서극진한대접을받으며문화의전령사역할을하였는데그들눈에비치는우리들의모습은무엇을보여주고느끼게하고있을까? 귓전을스치는무수한말을간간히메모하는사이벳푸스기노이호텔에도착하였다. 바로학술강연장코하쿠로향하여세분교수님의강의를들었다. 탐방기간내내넘치는사랑과열정을담은강의로탐방단의수준을높여주신교수님께감사드립니다. 강연후스기노이호텔뷔페식당에서맛있는저녁을먹고벳푸만이한눈에들어오는대온천장에갔다. 계단식논처럼 3단으로만들어진욕조를옮겨다니면서벳푸의야경을내려다보며어렴풋이보이는별빛아래서누리는여유에감사하며하루의피로를흘려보내며온천을만끽하였다. 내일새벽온천에서일출을바 < 첫강의를마치고 > 라볼수있기를기대하며... 3. 탐방둘째날 (9 월 30 일 ) 가. 일본최대의석불군우스키석불군 온천물에세번은몸을담가야한다는가이드의말에두번은하자고서둘러온천장으로달려가군청색어둠사이로벳푸만새벽여명을가르며떠오르는태양을바라보았다. 수평선구름사이로모자를쓰고떠오르는태양, 온천에서맞이하는일출을카메라에담지못하는아쉬움까지마음깊숙이담았다. 동경 135도시차가없는가깝고도먼나라일본에서오늘의첫여정은우리나라삼국시대로거슬러일본의불교전래와함께무수히많은석불을찾아볼수있는오이타현의석불군으로향하였다. 일본전체석불의 70~80% 가산재되어있는이곳에서한반 < 우스키석불 > 도백제로부터전래된일본불상은우리나라서산마애삼존불과형태가비슷하며삼존불의광배와두각이삼국기형식으로구다라관음, 즉백제관음으로 12세기에서 13세기에걸쳐만들어졌다고한다. 무수히많은석불의모습을보면서정교수님의석불에대한현장강의를들은후석불군을돌아보고내려오는데언덕아래밭에펼쳐진코스모스가장관이었다. 무리지어군락을이루는코스모스밭은사유지로들어가지말라는가이드의말과그말을듣지못하여들어가찍는선생님들을향하는가이드의잰걸음이씁쓸하였다. 그곳은석불군을중심으로주변이하이킹코스로곳곳에시비가세워져있었다. 아마도일본의하이쿠가아닐까하는생각이들었다. 한자외의일본어는까막눈이어서읽지못하는것에대한궁금함과아쉬움도있었으나쉽다는일본어를익히고싶은생각이전혀없는것도신기하다. 상대방을이해하기위해서는더잘아야하는데... 나. 신라범종이있는우사신궁아름다운코스모스를뒤로하고우사신궁으로향하였다. 우사신궁은일본의천황을모시는신사로일본전체신사의 60% 에해당하는 4만여하치만구의총본궁에해당하는곳이다. 오진천황의신령을모신곳으로이곳은불교문화와일본고유의신토 ( 神道 ) 신앙이하나로합쳐졌다는의미를갖는곳으로이 - 4 -
곳보물관에신라범종이모셔져있다. 일본의기록에신라에사신을파견하였다는기록과함께신라시대의전형적인청동주조범종으로신라효공왕 8년에해당하는 904년 2월20일송산촌대사의종으로조성되었으며능여화상이지휘감독했다는등의 3행의양주 ( 陽鑄 ) 명문이좌서 ( 左書 ) 되어있다. 신라의종이일본으로건너간종이 6구이며그중 4구가조사되었는데우사신궁에보관되어있는이범종을명문이있어조성연대가확실한매우귀중한동종으로일본과신라의활발한교류가있었음을알수있다. 신사앞에는고구려개라는이름을지닌돌사자고마이루, 우리의솟대와비슷한신과인간을연결한다는의미를지닌도리, 오대츠야라부르는손씻는우물을지나본당이위치한다. 우사신궁앞상가 2층음식점에서우동과도시락으로점심을먹고우사신궁으로들어가려는데비가쏟아졌다. 박물관앞입구에모여손교수님의현장강의를듣고두팀으로나누어신궁과박물관의범종을관람하였다. 곳곳에있는다른신사와달리그규모가매우컸으며오랜세월의깊은숲속우거진자연속에세월의흔적이그대로담긴신사진입로가자연스레우리나라비교되었다. 곳곳에자연을그대로보존하기보다는인간의편의에따를포장으로그빛을잃어가는산사의모습과대조되는아쉬움에부러운생각이들었다. 자연재해속에서오랜세월을견디면서잘보존하고있는것얼마나큰자산인가를다시금생각게하였다. 일본천황을모신신사앞에서기원문을써서붙이는우리들의몰지각도씁쓸하게하지만... 나. 아카마신궁, 청일강화기념관 이제오늘의마지막일정인조선통신사들의숙소였던아카마신궁과청일강 화기념관으로향하였다. 조선통신사의숙소로이용되었던아카마신궁은일본 세토내해입구인시모노세키에있다. 시모노세키는그당시아카마세키로불렸 으며한국과교류하는중요한곳으로조선전기에조선상인이거주했다는기 록과조선통신사가대마도를떠나일본본토로들어가기위해도착하는곳으로 통신사의숙소로성대한연회가열리곤했던곳이다. 아카마신궁은어린나이 에죽은안도쿠천황을모신곳이다. 안도쿠태자는무장타이라노기요모리의 외손자로여덟살에천황이되었는데헤이안시대말기헤이시와겐지의전투에 서헤이시가패하자조모가품에안고시모노세키앞바다에몸을던져죽었다. 어린천황의죽음을목격한안토쿠태자상을진흙으로만들어재를올리는사당 이신궁옆에있다. 조선통신사상륙기념비로가기위한도로옆에안도쿠태 < 조선통신사상륙기념비 > < 안토쿠태자를안고있는조모상 > 자가조모의치마폭에안긴조각상이서있었다. 할머니의피눈물나는사랑이물씬풍기는애잔한상 이었다. 조선통신사는 1607 년선조 40 년에시작하여 1811 년순조 11 년까 지 12 회에걸친조선통신사일행이오가면서안토쿠천황을조문하는 글을남기는등다수의관련시가남아있다. 한류의시작이라할수 있는조선통신사일행은조선의앞선문화와예술, 의학, 시, 서예, 악기, 마장술등다양한인재가선발되어가는문화사절단의성격을 강하게띠고있었다. 조선과일본의우호의상징이었던조선통신사가 머물었던이곳은 19 세기말에는조선침략의시발점이되는곳이되었 다. 아카마신궁옆에있는청일강화기념관은조선의동학농민운동 - 5 -
을평정한다는명분으로벌어진청일전쟁직후 1895년 4월시노모세키조약이채결된곳으로이조약을통해한반도를일본의세력권에넣어일제강점기의비극이시작된장소이다. 양국의전권대사인이토히로부미와청나라리홍장 ( 李鴻章 ) 을비롯한양국대표 11명이참석하여 4월 17일강화조약이조인되었다. 이기념관은당시의모습그대로보존되어있으며이토히로부미와리홍장의유묵등이전시되어있다. 그리하여일제강점기에무수히많은우리동포들의눈물이서린곳이되었다. 이제일본의지중해라부르는세토나이카이내해를오가는페리호에몸에싣고신모지항을떠나밤새오사카항으로향하였다. 깨끗한선내의시설과개인의사생활을최대로배려하는 8인실의구조, 선실에위치한욕탕등이역시일본답다는말을한마디씩하면서수명이다한배를수입개조하여사용하다온국민에게슬픔을안긴 4월 16일오전의상처가다시밀려왔다. 이곳을오가던조선통신사일행중의안타까운죽음에대한기도를잠시올렸다. 선상에서의일출을기대하며호수위를지나듯잔잔한선실에서의잠을청하였다. 4. 탐방셋째날 (10 월 1 일 ) 일본의지중해세토나이카이를오가는명문페리선상에서일출과함께셋째날의아침을맞이하였다. 세토나이카이를가로지는대교중의하나인아카시대교는 3911m의일본이자랑하는최장현수교로유명하다. 갑판에올라대교를바라보며다시올기회가없을것같은이곳을지나며기념사진을한장찍었다. 뷔페식당에서정갈하게준비된아침식사를한후서서히하선준비를하니어느덧항해의종착역인오사카항에도착하여교토로향하였다. 가. 일본권력의변화를함께한니조성일본의천년고도교토, 일본에서가장일본스러운곳으로시내중심에위치한니조성은성전체가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지정되어있다. 니조성은에도막부의쇼군들이일왕에게자신의권위를나타내기위하여호화롭게지어졌으나도리어 1867년마지막쇼군이메이지천황에게정권을봉환하는장소가되었다. 니조성은온갖그림과조각등으로장식되어있으며화려한내부가장관이다. 외부의침입자에대비하여만들어진우구이수바리라는마룻바닥은당시의세콤장치라고소개하던가이드의말처럼발을디딜때마다삐걱거리는소리가나는장치가되 < 마루소리의비밀우구이수바리 > 어있다. 화려한문양과장수를상징하는그림들로치장된니조성도권력의무상함과인간의허황된탐욕과장수에열망이얼마나헛된것인가를오늘역사는말하고있다. 니조성후원의니노마루정원을돌아보며열정넘치는가이드가소개한일본식정원의여섯가지요소를느껴보려하였다. 세월의흐름을나타내는이끼, 낙차를두고흐르는연못, 인공미, 분재, 넒은조망, 사철의꽃으로겨울에개화하는동백부터시작하여매화, 벚꽃, 복사꽃, 수국, 국화등이피는정원을꾸미는데국화는황실상징으로천황이지은절과신사에만국화꽃을심는다고한다. 한모둠으로보이는일본학생들이천수각터계단앞에서가위바위보를하더니한학생만천수각터에올라간다. 모둠원을대표하여사진을찍으러올라가는학생의모습을보니절로웃음이나왔다. 위풍당당서있는니조성, 우리나라의성의개념은도성안에백성과함께더불어사나일본의성은군부만이들어서있는성으로전쟁시도성안의모든사람을전멸시켜야전쟁이끝나던시절임진왜란으로무수히많은백성이피를흘리게된원인도되었단다. - 6 -
나. 신라의숨결이살아있는고류지해자에둘러쌓인니조성을떠나고류지로향하였다. 가을빛이완연한고류지는일본스이코천황 11 년 (603년) 에건립된교토최고의사찰로호류지, 시텐노지와함께쇼토쿠태자가건립한일본 7대사찰중의하나이다. 이사찰건립에중요한역할을한하타씨는한반도에서이주해간신라계로경주와지형이비슷한교토분지에정착하여일본에양잠과견직, 농업등선진문명을전해주었으며수많은불사를일으키는데큰공을세운것으로전해지고있다. 특히일본국보제 1호인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신라의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 국보 83호 ) 과그모습이빼닮았다. 실제로한반도에서도래한것이라는기록이남아있고, 그재질이한반도에서자생하는적송으로그사실이뒷받침하고있다. 인간실존의영원한평화와이상을구현한예술품이라는최고의찬사를받고있는미륵보살반가사유상앞에서사유하는인간으로나의삶의되돌아보며시공을초월한순간에머물며미소속에서나를담아보았다. 나는누구인가? 나의삶에대한성찰, 34차탐방단의일원으로이곳에불러주신그존재에감사드렸다. 아는만큼보인다는진실에대한고백으로십여년전보았던그때의감흥과전혀달랐다. 나. 오카사도톤보리에서 오사카를대표하는번화가로먹자골목도톤보리에서늦은오후의일정이시작 되었다. 온갖아이디어상품, 자판기천국으로불러지는일본의뒷골목에서가장 일본적인저녁식사와가이드가소개한가장일본다운쇼핑목록으로발바닥에 붙이고자는디톡스파스, 눈의피로를풀어주는일회용안대, 동전파스, 물 반창고, 폼클렌징, 돋보기달린손톱깍이등무궁무진하단다. 축소지향적일본 인이라칭하던그들, 오랜불경기를견디는힘이바로일본의이러한창의적인 상품이란다. 회전초밥을먹으면서가장일본적인것에열광하고그것을보러 < 회전초밥집의초밥문자판시계 > 오는이들속에서우리의소중한것은무엇일까생각해본다. 초밥집의초밥문자판시계가세심한배려 의최강일본의모습이느껴졌다. 세계화속에서가장한국적인것은무엇일까? 개발에앞서일상의삶 속에함께하던소중한보물들이사라지고있는아쉬움이가깝고도먼나라일본오사카한복판에서 밀려온다. 이틀간묵게되는오사카리가로열호텔에도착하여여장을풀고호텔앞운하옆에있는작은바에 서샐러드와기린맥주한잔을시켜놓고분위기에젖어좋은사람들과담소를즐기며탐방셋째날의 밤은깊어만갔다. 무릎을굽히고정중히주문을받는주인의모습이마음에남았다. 고객을왕으로모 시는그들의속마음도같을까? 5. 탐방넷째날 (10 월 2 일 ) 일본의아스카문명은바로한국의문명이다. - 존카터코벨 (1910~1996), 미국, 동양미술사학자 가. 삼국고대문화의종합판호류지 ( 法隆寺 ) 호류지는아스카 ( 飛鳥 ) 시대 (6세기 ~8세기초 ) 건립된세계에서가장오래된목조건물로원형이보존되어있으며불교건축과예술을보여주는아스카문화의중심지이다. 원형이그대로보존된일본최초의세계문화유산으로남대문을지나이어지는담은짚을넣어만든흙담으로밑이넓고위로갈수록좁아 - 7 -
지는한국식토담형태이다. 골기와, 수기와, 암기와등연꽃, 구름, 보상화문인동문으로낯익은모습이정겹다. 중문왼쪽의입구회랑을오층탑과금당의모습이눈에들어온다. 오층탑안에석가모니의입적장면등이그려져있고금당은불당으로유명한벽화와쇼토쿠태자를위해건조된금동석가삼존상등많은불상이모셔져있다. 경당, 대강당, 종각, 회랑기둥의배흘림, 고구려식중문위기둥에주두를끼워넣은형태로고구려고분벽화에남아있는양식이다. 정한숙의소설 금당벽화 에의하면고구려의승려담징이벽화를그릴때을지문덕의살수대첩과연관지어수나라와의전쟁승리를벽화의완성과관 < 한국식토탐 > 련지어진소설로인하여담징이그린것으로알고있다. 하지만시기적으로 100여년의차이가있어사실은아니다. 그러나고구려회화의영향을받은것은틀림이없다. 고교시절깊은감동으로읽은소설의배경이되는이곳에서바라보는금당벽화는비록화재로소실되어복원된것이나그당시의모습을엿볼수있다. 우리에게남아있지않은백제의목조건축의모습이그대로남아있는호류지의금당내부와대강당의유물을본후대보장원 ( 大寶藏院 ) 으로발길을돌렸다. 특별실에전시된구다라 ( 百濟 ) 관음상은말그대로백제관음상이다. 구세관음과옥충주자등삼국의영향을받은것이뚜렷한보물등을보며삼국의문화예술이이곳호류지에고스란히살아있다는사실과그앞선문물의선구자였던조상들과달리지금우리들의모습은, 우리학생들의교육의방향은어디를향하고있는가에대한물음표를간직하며세계최대목 < 호류지에서 > 조건물이라는도다이지 ( 東大寺 ) 로향하였다. 나. 세계최대의목조건축물도다이지 ( 東大寺 ) 도다이지는한반도계가창건에결정적인역할을한사찰로세계최대의청동배불을모시고있다. 대불주조의발원, 설계와제작을지위한양변스님은백제계씨족의후손으로알려져있다. 양변스님의왕건박사의후손으로알려진교키스님과함께절의창건에큰도움을주었다. 높이 16m의대불상을돌아나오면기둥아래큰구멍이있다. 그구멍은대불의콧구멍과같은크기로그사이를빠져나오면머리가좋아진다고하여많은이들이빠져나오려고줄을서고있었다. 일본에불교가전해진지꼭 200년이되는해에이대불의개안공양이이루어져신라를비롯하여발해등주변여러나라의사절단이방문한국제적인행사로신흥일본의탄생을알리는사업이었다. 대불전의동쪽회랑을지나뒤쪽오솔길을따라언덕위로올라가면가라쿠니신사가있다. 이주변에없는유일한신사로가라쿠니 ( 辛國神 ), 즉한국신 ( 韓國神 ) 이라는뜻으로절의창건에도움을준백제인에게감사의뜻으로일본조정에서만든신사다. 잰걸음으로가라쿠니신사를들러보았다. < 가라쿠니신사 > 일본황실의유물창고인쇼소인 ( 正倉院 ) 은 9000여점에달하는한국, 중국, 인도의고대유물이보관되어있는곳으로신라의민정문서를비롯하여경주불국사의설계도면이발견되어불국사와자매결연을맺은사찰로현재도우리와인연이깊은곳이다. 다. 아스카테라 ( 飛鳥寺 ) 백제왕흥사 ( 王興寺 ) 를모델로하여지어진아스카테라는 588 년백제로부터부터의사리를헌납받은 일본조정의실세소가노우마코 ( 蘇我馬子 ) 가발원에 596 년창건한일본최조의절이다. 본당의금동불 - 8 -
석가여래상은일본내에현존하는가장오래된불상으로그과정이 일본서기 에기록이남아있다. 눈에익은백제와당과절의구조가 1탑 3금당의구조로북쪽에금당, 동서에법당이위치하는초기우리나라의사찰형식을그대로찾아볼수있는백제의향기를담고있는곳으로탑의기둥을세우던날모두백제옷을입고축제를입었다는기록이남아있다는정교수님의현장강의를듣고아스카테라금동불을관람한후백제의 < 유물전시관의백제와당 > 연꽃무늬기와등이전시된유물전시관을둘러보았다. 똑같이닮은백제기와를바라보며그옛날백제가지원하여지어진절이라는사실을느낄수있었다. 이지역은당시국제교류의장으로많은사절단이머물렀으며고구려의승려혜자 ( 혜자 ) 가쇼토쿠태자를가르치며고구려와일본의교류가이루어졌다. 라. 이시부타이 ( 石舞臺 ) 오늘의마지막으로찾은곳은아스카문화의태동지로우리나라의농촌, 공주와비슷한제계실력자소가노우마코의무덤으로알려진이시부타이 ( 석무대 ) 이다. 일본왕을능가한세력으로조카인쇼토쿠태자와협력하여불교를기반으로하여일본이고대국가의초석을다지는데큰역할을한소가씨는 6세기이후 100여년을일본을사실상지배하였던것으로알려져있다. 오래전도굴되어남아있는유물은없으나봉분이있었고합장이가능한횡렬식석실로임시로폐쇄한분식돌방무덤으로상부에드러난북쪽돌의무게만도 64t에, < 석무대석실내부 > 남쪽돌이 77t으로초중량이 2300t에이른다. 지하내부의현실로들어가는중간돌계단이마치합장분의두주인을나타내듯하나의돌이흑백으로양분되어있어인상깊었다. 작아져야할것의하나인무덤으로문무왕이화장을하여감포앞바다에무덤을마련하였다. 크게만들어야할것과작아져야할것은무엇일까? 단판승의쓰모와같이상냥하나용서가없는일본과삼세판의씨름처럼용서하는우리들처럼마음의폭을넓혀가자는정교수님말씀이다가온다. 나를알고적을알면백전백승이라는말처럼한일간의이해의폭을넓혀가며배움중심교육을실천하는수석교사로거듭나자. 분야별교수님과함께하 < 입구돌계단 > 는그랜드투어로곳곳에서펼쳐지는인문학향연에콩나물자라듯나의마음이한국인이라는자긍심의뿌리를튼튼하게하는소중한자리가되고있다. 6. 탐방다섯째날 (10 월 3 일, 개천절 ) 개천절. 오늘은임진왜란을일으켜한반도를유린한토요토미히데요시의영화와몰락을상징한다는오사카성과한반도의고대절건축양식을그대로보여주는시텐노지 ( 四天王寺 ), 일본에설립된최조의한국인학교금강학원을방문으로탐방여정을마치고귀국하는날이다. 오사카의가을이깊어가고역사의흐름속에오늘불구대천의원수라불리던왜, 일본에서개천절아침오사카성을향하였다. 가. 오사카성 행복은지금이다. 라는말로오사카성앞에서손교수님의현장강의가시작되었다. 돌아갈곳이있고 - 9 -
기다리는가족이있는것이행복이다. 첫관문이었던다지이후에서시작하여신사, 고분, 절, 성으로전국시대건립된오사카성의구조와우리나라성과의차이를설명하였다. 해자를지나세번꺾어들어오는오사카성은산노마루, 니노마루를지나혼마루 ( 천수각 ) 에이르게되어있다. 일본의성은평성으로군사들만이거주하고, 우리나라는산성, 읍성으로도시전체를아우르고있어서전쟁이일어났을때피해의규모가컸다. 이제 2000년을아우르는시간과공간의여행을마무리하며오사카성의천수각을향하여발걸음을옮겼다. 내부계단을통하여 8층으로올라가전망대에오사카시내를조망한후내려오면서토요토미히데요시의생애, 오사카여름전투를그려놓은병풍등관련된유물들이전시되어있었다. 3층에전시되어있는황금다실은실제크기라는데민속촌에처음갔을때작고낮은방크기에갸우뚱하던생각이났다. 비천한가문에서태어나불우했던자신의과거에대한보상을받으려는듯이극도의사치와화려한건축물, 심지어화장실조차황금으로장식을했다고한다. 하지만도요토미히데요시가죽은뒤두번에걸친도쿠가와이에야스의공세로오사카성은폐허로변하고아들히데요리는성뒤편에서할복을함으로서대가끊기고만다. 권력의무상함과인간의한계를느끼게하는곳이랄까? 임진왜란을일으킨장본인으로수많은양민의피에대한대가일까? 8살아들에게조선을지나중국과저멀리인도까지정벌할계획을세우며인도의막부가되라는편지를남긴토요토미의가문은 2대도못가고말았다. 가족과의행복을기다리면서지금잘살아야후손도행복함을토요토미에게서배운다고할까? 늘역사는진실을, 정의를말하고있다는사실을다시깨닫게된다. 34차통신사일행으로 5일간의여정을함께하는멋진 3호차그대들이있어여정내내행복했다고... 나. 시텐노지 ( 四天王寺 ) 시텐노지는약1400년전스이코천황원년 (539년) 에건립된전형적인백제형가람으로남북자오선상에일자형으로중문, 오층탑, 금당, 강당이배치되고이를회랑이둘러싸는형식으로일본에서는가장오래된건축양식중의하나이다. 나라현에있는후류지와함께아스카시대의대표적인건축이다. 이곳에서는여러가지축제가열리는데 11월에열리는 왓소 축제는백제에서부터조선통신사에이르기까지한반도에서온손님들을맞이하는환영의 < 일자형가람배치의사천왕사 > 모습을재현하여일본에왔던왕인박사등손님을맞이하는가장행렬이재현된다. 옛날복장을하고 왓소!, 왓소! 를외치는소리가축제가된것으로 오셨습니까? 의 왔소? 가그대로축제명이되었다. 이제점심을먹고마지막방문지인금강학원으로향하였다. 나. 금강학원 금강학교는해방직후귀국하지못한동포들이 2세교육을위해 1946 년에건립된최초의한국인학교로 1961년최초로한국정부와일본정부의인가를받은학교이다. 재일한국인과파견공무원등, 한국교육을희망하는일본인이함께다니는초중고교생이한건물에서수업을받고있다. 강당에서환영인사와학교교육활동에대한안내후학생들로구성된국악공연을감상하였다. 한중일 3개국학교와자매결연을통한교육활동및교내모든행사에서애국가를제창및독도관련 < 금강학원학생들의민속공연 > - 10 -
교육등자랑스러운한국인으로서의정신을이어가는재일한국인의노력이깊은감동으로다가왔다. 고사리같은손으로걸레를빨고교실바닥을청소하는학생들의모습을바라보며용역과 BTL등으로스스로걸레질을하지않는우리나라학생들의모습과비교되었다. 곳곳에게시된교육활동내용을돌아보고버스에올랐다. 교문앞환영입간판앞에서버스가떠날때가지배웅하고계시는교장선생님의환송을받으며간사이공항을향하였다. 지난 5일간의탐방여정중한국인으로가장감동깊은장소라할까? 어제오사카교육대학배광웅교수님의한국근대사와재일코리안의역사에대한강의를들으면서느꼈던감동의현장이금강학원이었다고할까? 해방직후 200만의재일코리안이현재는 60만명정도를유지하고있으며 33만명이귀화하였다. 민간기업취직차별철폐의시작이된 1970년박종석씨의첫재판이후 4년에걸친노력으로재일한국인으로변호사및국공립대학교수로임용될수있게되었다. 많은불평들을감수하고한국국적을유지하고한국학교를보내는재일한국인의노력이감동으로다가왔다. Ⅲ. 교육과정속에서만난일본속의한민족사 초등학교 5학년사회과는역사영역으로되어있다. 1,2 학기에전체를역사내용으로구성하여 하나된겨레, 다양한문화가발전한고려, 유교전통이자리잡은조선, 조선사회의새로운움직임. 새로운문물의수용과민족운동. 새로운문물의수용과민족운동, 대한민국의발전과오늘의우리 등이 6개의단원으로구성되어있다. 초등학생들이쉽게다가갈수있는생활사, 문화사, 인물사중심으로내용이구성되어있다. 1.2학기교사용지도서와교과서속에서탐방지역과관련된부분을정리하여보았다. 아는만큼보이고, 보는만큼더많은것을학생들과함께나눌수있다. 교육에서학습자의능동성을확보하는것은교육의목적을달성하는데중요한요소로학생들에게다양한정보와장소경험을통하여학습자의의미있는배움이일어나기위한교사의직간접적인경험은매우중요한다. 그러한관점에서일본속의한민족사탐방은교수일선에서학생들과함께하는교사들에게가장유용한연수의기회로앞으로더많은교사들에게제공되기를희망한다. 1. 5 학년 1 학기교과서 가. 사회교과서 단원교과서일본탐방지관련지도요소 1-3 삼국의성립과발전 일본속에서삼국을만나다. (36 쪽 ) 삼국에의한일본고대문화의전래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 ( 백제 ) 금동미록반가사유상 가라쿠니 ( 辛國, 원래는韓國 ) 신사 도다이지 ( 東大寺 ) 쇼소인 ( 正倉院 ) 황실보물창고, 시텐노지 ( 四天王寺 ) 호류지의탑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 도다이지창설과관련, 도다이지의수호신역할 백제계씨족 - 일본의친밀한관계 불국사와자매결연절 ( 화엄종 ), 신라장적, 불국사설계도면발견 다수의한반도유적 한반도고대절백제건축양식 왓쇼축제 충북속리산의팔상전과유사 백제, 고구려, 신라의문화의종합 한반도의적송으로만들어짐, 한반도로부터도래함 - 11 -
1-4 삼국통일과발해 1-5 통일신라와발해사람들 2-3불교의영향과고려사람들 3-5 임진왜란과병자호란 백제와고구려의부흥운동 (44 쪽 ) 통일신라와발해사람들 (48 쪽 ) 불교의영향과고려사람들 (75 쪽 ) 임진왜란 (128~132 쪽 ) 일본에파견된통신사 (132 쪽 ) ( 국보 83 호 ) ( 국보 1 호 ) 백촌강전투 성덕대왕신종 마애석불입상, 왜군의침략과수준의활약, 전란의극복 조선통신사 다자이후 우사신궁 우스키석불군 오사카성 아카마신궁 백제유민들의선진기술 신라의침입에대비하여만든백제식수성 백제범종으로명문이남아있음 금속공예의대표적인작품 불교를통한통치수단 경주남산의석불군, 파주용미리의마애불입상 서산마애불 토요토미히데요시의영화와몰락 권력과인간욕심의허무함 조선통신사의숙소 관련유물및각종자료 나. 사회과탐구 단원 교과서 일본탐방지 지도요소 비슷하면서도 달랐던삼국의 백제금동관 후나야마고분 문화 (24쪽) 1-3 삼국의성립과발전 2-3 불교의영향과고려사람들 3-5 임진왜란과병자호란 고려사람의정신과기술이담긴절 (44쪽) 왜군의침략과수군의활약 (101쪽) 임진왜란이두나라에미친영향 (103 쪽 ) 부석사호류지 ( 法隆寺 ) 조선수군의활약 도자기술의전래 녹동서원 오사카성 이삼평 ( 아리타도자기 ) 심당길 ( 사츠마도자기 ) 도조이삼평의비, 신사 백제무령왕릉부장품비교 금동제신발등백제의유물 배흘림기둥, 목조건물, 백제관음과구세관음 고구려회화의영향 토요토미히데요시의영화와몰락 이순신장군의활약 도자기술의전래 남원도공의사츠마정착 일본군의조선투항과활약 [ 사야기 ( 김충선 ) 의위패를모신 녹동서원 2. 5 학년 2 학기교과서 가. 사회교과서 단원교과서일본탐방지지도요소동학농민운동과청일전쟁의청일강화기념관갑오개혁원인 (63쪽) 2-1 자주독립을위한노력, 대한제국 시모노세키조약으로한반도침략의발판 일제강점기시작의전초전 - 12 -
나. 사회과탐구 단원교과서일본탐방지지도요소 -조선을차지하기위한일본의음모를청일강화기념관소개요정 슌판로 -청일전쟁의결과로일본의조선에대한 ( 春판樓 )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지배권을확립 2-4 국권상실과민족의수난 (52 쪽 ) 일본의한반도에대한지배권획득및일제강점지한반도진출의중요한지점 3. 한국과일본간의전쟁의역사 1 차 이름시기원인결과 백촌강전투 663 년 8 월 백제의구원요청 백제부흥운동 신라와당나라의연합군에의거백제패망 백제사람들은왜선을타고일본으로건너간백제유민의수는 70만호였던전체백제인구의 1/3에육박막대한정신적, 물질적, 인적손실을본왜 ( 倭 ) 는이사건이후 내실에만치중하고신라침입대비수성건축 탐방관련 다자이후 2 차 3 차 임진왜란 [ 壬辰倭亂 ] 청일전쟁 [ 淸日戰爭 ] 1592년 ( 선조 25) 부터 1598 년까지 2 차에걸친왜군의침략으로일어난전쟁 1894~189 5 년조선의지배를둘러싸고청과일본간에벌어진전쟁 조선 일본 계속된평화로국방을소홀히함 사이에당파싸움이많음 일본을얕잡아봄 조세제도의문란으로민심이혼란함 이율곡이 10 만양병설주장무시함 불구재천의원수가됨 내란을도요토미히데요시가통일함 도요토미히데요시는반대세력의관심을돌리기위하여전쟁을계획함 계속된내란으로군인들의전투력이강함 조총이라는새로운무기를만듦 조선에대한이권을독차지하기위해청과일본이대립하다조선정부가청에게동학농민운동을진압요구에일본도천진조약에의거군대를파견하고청을기습하면서일어남 농지면적이 170 만결에달했으나전란이끝나고광해군시대에는 54 만결로줄어듬 국가의조세수입감소 인구감소, 가옥, 재산손실 국보급의문화재훼손및수많은문화재, 미술품약탈 도요토미대신도쿠가와 [ 德川 ] 의막부 ( 幕府 ) 정권수립 조선으로부터금속활자에의한인쇄술도입 도자기기술자에의해요업 ( 窯業 ) 을일으킴 약탈하여간많은서적은성리학 ( 性理學 ) 등그들의학문에크게기여 조선은일본에의해친일내각이만들어지고갑오. 을미개혁을실시 청은패배하여시모노세키조약을맺고조선에대한모든이권을포기 일본승리로세모노세키조약을맺고요동반도, 대만섬, 팽호섬을할양받음 오사카성 청일강화기념관 - 13 -
라. 임진왜란으로탄생된한일간의민족영웅비교 이름 출생 사망 한국 이순신 (1545 년 ~1598 년 ) ( 李舜臣 ) 서울건천동 ( 乾川洞, 지금중구인현동 ), 양반가문에서태어나외가가있던아산에서성장 1598년 ( 선조 31) 11월 19일이순신은노량해전에서전사했고, 왜란도종결됨 일본 토요토미히데요시 (1536 년 ~1598 년 )( 豊臣秀吉 ) 오와리국 ( 현재의아이치현서부 ) 에서비천한가문출신 정유재란중자신의죽음을알리지않고후시미 [ 伏見 ] 성에서질병으로사망 관련유적 아산현충사및남해안일대유적산재오사카성 업적 후손 관련시 - 임진왜란극복에 1 등공신 - 거북선발명 - 근대해전의효시 - 난중일기를집필하여임진왜란해전사를후세에자세히알림 충무공이순신장군후손가운데항일독립운동 3) 에나선인물이 12명 한산섬달밝은밤에수루에홀로앉아큰칼옆에차고깊은시름하는적에어디서일성호가 ( 一聲胡笳 ) 는남의애를끊나니... 한산도가외다수 - 오사카성건축, 자신의야심으로전쟁을일으킴, - 전쟁중 8 세된아들에게보낸편지내용에서중국은건너인도까지나아가겠다는내용이전해짐 - 근대사동아시아침략으로그꿈을... 아들히데요리는오사카성뜰에서할복하여대가끊김 이슬로와서이슬로가는이몸이여. 나니와 ( 오사카의옛지명 ) 의영화도꿈속의꿈이련가. ( 露と落ち露と消えにし我が身かな浪速のことは夢のまた夢 ) 사세구 ( 辭世句 ) 문장 아산시에서수군이순신의이미지를상징캐릭터로사용 토요토미히데요시가문의문장으로현일본의문장으로사용 관련축제 통영한산대첩축제 6~8 월거제옥포대첩축제 6~8 월고성당항포대첩축제 6~8 월여수거북선축제 5 월해남 진도명량대첩축제 9 월아산성웅이순신축제 4 월 오사카성 3) 김기승, 천경석공동연구발표, 순천향대학교이순신연구소주최로제 13 회이순신국제학술세미나에서 ' 이순신후손의항일독립운동 ' 이란주제발표, (2011,04,26) - 14 -
Ⅳ. 탐방을마치고 일본을우습게보는유일한나라한국의수석교사로아니제 34차조선통신사종사관으로일본속의한민족사탐방의막이내렸다. 잘만들어진자료집을읽고조선통신사관련책을읽으면서탐방의시간을기다리던그시간들이그립다. 기대가크면실망도큰법인데기대이상의멋진여정을준비해주신많은분들께감사드립니다. 좋은분들과의만남을통하여더욱행복한시간으로가장짧은여정으로느껴졌다면즐겁고보람찬시간에대한최고의찬사가될까? 5일간의알찬여정속의조선통신사종사관으로나는일본에대하여무엇을보고느끼고왔는가에대한질문을자신에게던져본다. 조선통신사의종사관의기록속에남아있는많은것들은역사속에우리의자랑거리로생생하게그모습을후손에게전해주고있다. 일본속에남아있는무수히많은흔적속에서조상님들의삶의자취와일본과의관계, 멀고도가까운두나라간의협력관계를말하고있다. 지금을살아가는우리들은무엇을남기고무엇을전하고있을까? 역사의흐름속에함께할수밖에없는두나라의관계를우리교사들은어떻게가르치고전해야하는가에대한물음을해본다. 일본과다른나라의경기에서일본이지기를바라는마음으로상대편을응원하는우리들의모습속에담긴일본에대하여무조건미워하는그러면서일본의그무엇에대하여열광하는많은이들의양면성속에서우리들의미래인학생들에게올바른역사의식과동북아발전을위한양국간의인식의개선은필연적이라생각한다. 열하일기의현장을전문가들과다닌후쓴책을읽으면서부러워했던기억이새롭다. 이멋진계절에전문가교수님들의알찬현장강의를들으며제 34차조선통신사로배움의장을마련한인문학그랜드투어를했으니더이상부럽지않다고할까? 10여년전일본을방문했을때보았던학생들의모습과달리밝고환해보이는일본학생들의모습을보면서일본에대한또다른위기의식을느꼈다면과장이고나의우려일것이다. 그렇지만여정을마친후돌아와마주한노벨상수상자에대한발표는나를더쪼그라들게하였다. 독서보다스마트폰에몰입되어있는많은학생들과어른들의모습을보면서더씁쓸하다. 독서량도많고쓰기와읽기의달인이라는일본인들과달리일기지도는인권에침해되는하지말아야하고책도안읽고고학년이되어도제대로글을쓰지못하는학생들을바라보면서노벨상을수상한나카무라슈지교수의말이떠오른다. 노벨상을받으려면미쳐야한다. 미치도록느끼게하는그방법은무엇일까? 창의지성교육의실현을위한배움중심수업실천가로학생들의몸과마음으로느끼게하는학습의변화를위한시작은교사의앎과삶속의실천이라고외치고싶다. 삶이앎과일치되기위한배움의좋은기회를더많은수석교사들과함께하고싶다. 한학급이아닌많은학급의학생들을만나고수업컨설팅으로교사들과함께하는수석교사들에게이멋진기회를주시기를청하며함께한모든분들께감사드립니다. 조상님들덕분에학기중에보낸행복한시간의느낌표를학생들에게고스란히전할수있을까? 일본속의한민족사여정을통하여아로새긴감동을우리학생들에게한국인으로서의자부심을심어주고싶다. 그래도한국의교육은밝다. 헌신하고사랑으로교육의일선에서묵묵히애쓰는수많은교사들과법제화 3년차를맞이하여고사의위기를접하는수석교사들이있기에... - 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