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칼럼 2017 년 6 월 2 일 SK 브로드밴드의자회사정규직화 정세를이해하는하나의창 나비의날갯짓이태풍을몰고온다는나비효과를보는듯하다. 문재인대통령이인천공항공사를방문한자리에서공론화된 자회사정규직화 방안은곧통신업체 SK브로드밴드의자회사정규직화계획발표로이어졌다. 이는각각공공부문과민간부문을대표하는사례로자리매김하며사회적파장을키워가고있다. 인천공항에서 10,000명, SK브로드밴드에서 5,200명등그규모에서도유례가없다. 민주노총으로조직된노동자들에게도이자회사정규직화방안은강력한영향을미친다. 당연히인천공항이든 SK브로드밴드든, 만약그곳의노동자들이투쟁하면서목소리를내지않았다면굳이문재인정부와자본가들이움직이지는않았을것이다. 그런데우리가바라던정규직화라고덜컥수용하기엔미심쩍은대목이많다. 그래서현장의노동자들도이사태를어떻게받아들여야할지의견이엇갈리며혼란스러운상태다. 그래서우리는잠시한걸음물러나서사태를조망해보려한다. 문재인정부가등장한배경이무엇인지, 따라서문재인정부에게부여된과제가무엇인지확인하기위해서다. 뒤돌아보기 지난해 11월 5일자뿌리칼럼 < 최순실정국 : 문이열렸으면밀고들어가야한다 > 에서우리는당시상황을이렇게진단했다. 집권에성공한박근혜정부에게부여된임무는명백했다. 노동자들의조직과투쟁을철저하게분쇄하라! 위기에처한자본가들의이윤보따리를지켜내라! 애초에임무를부여한자본가계급핵심세력이보기에박근혜정부는시킨일도제대로못하고, 통제도안되는무능력하고위험한청부업자다. 미덥지못한청부업자는거래선이끊기기마련이다. 자본가계급핵심세력들이원하는건이른바 박근혜없는박근혜체제 즉, 돈줄로연결된재벌대기업들의통제에충분히잘따르면서도노동자계급에대한전면공격을효과적으로감행할수있는유능한청부업자를세워내는것이다. 그래서결국그들은박근혜를탄핵의도마위에올렸다. 완강하게촛불항쟁이이어진건자본가계급에게도위험한일이었지만, 헌법재판관들을정의로운심판자로포장하고선거몰이를하면서대중의불만과저항의지를법과의회제도의울타리안에가둬두는데가까스로성공했다. 1
그렇게자본가계급의지도부가교체됐다. 우리의상황이해가틀리지않았다면, 이새로운지도부의임무도근본에서다르지않을것이다. 애초에박근혜에게부여됐던임무, 하지만그가제대로처리하지못한채엉망진창으로헝클어놓은임무를완수하는것이다. 노동자들의조직과투쟁을제압함으로써위기에처한자본가들의이윤보따리를지켜내는것말이다. 단, 자본가계급의새로운지도부는상황이적잖이달라졌다는점을반영해야만할것이다. 그들스스로도더이상박근혜정부를그대로두기어렵다는판단을했지만, 탄핵과정에서대중의폭발적에너지가만만치않게분출됐다는점을두눈으로목격했기때문이다. 그래서새정부는당분간전임정부보다훨씬더대중의열망에부응하는모양새를갖춰야하는처지다. 당분간 이라고했다. 왜냐하면그런모양새를갖추는데는상당한비용손실이따를수있기때문이다. 실제로벌어지는일들 이런상황판단의연장선에서, SK브로드밴드에서추진되는자회사정규직화라는해법을다시들여다보자. 얼핏보기엔, 노동자들의조직과투쟁을제압해야한다는저들의기본임무와모순되는것처럼느껴질수도있다. 하지만자회사정규직화의실체를깨닫는건그다지어렵지않다. 그것이현실에서어떤효과를내고있는지, 그리고구체적으로어떤조치와함께추진되고있는지살펴보는것으로충분하다. 첫째, 자회사정규직화의실체와무관하게, 문재인정부가비정규직문제를해결하기위해진지하게팔을걷어붙이고나섰다는대중적, 정치적, 사회적, 이데올로기적효과가강력하게발휘되고있다. 모든언론에서거의세뇌에가깝게 정규직화 라는단어를반복해서쏟아낸다. 반대로이렇게정부가나서서비정규직문제를해결하는동안민주노총으로대표되는민주노조운동은아무짝에도쓸모없는것으로사회적낙인이찍힌다. 문재인정부의정당성과권위는급상승하는반면, 노동자운동의정당성과호소력은수직으로추락한다. 둘째, 실제로 SK브로드밴드에서벌어지는일은 103개협력업체로나뉘어있던비정규직노동자들이통째로자회사라는단일한하청업체노동자로넘어가는것에불과하다. 그게전부가아니다. 자회사로넘어가면서수년에서십수년넘게일했던노동자들은그간의경력을무시당하고 신규채용 이라는절차를거쳐야한다. 그것도 2년에걸쳐단계적으로시행되며, 그사이에무슨일이벌어질지는아무도모른다. 새자회사에서는또다른경쟁과스트레스의근원이될다면평가제도가시행된다. 그렇다고실질임금이의미있는수준으로인상되는것도아니고, 고용안정이획기적으로보장되는것도아니다. 오히려현장직 26% 를정리해고하는로드맵까지포함돼있다. 셋째, SK에서는이작업을어용노조설립계획과병행해서추진하고있다 ( 당연히회사는공식적으로는부인한다. 하지만자회사통합안때문에피해를보게된서비스센터사장들이불만을품으면서 SK의비밀스런계획이새어나오는중이다 ). 2,000명조직화를목표로한다는구체적인수치까지회자되는데, 만약회사가자본의힘을동원해추진하는어용노조설립이성공적으로안착하고다수노조로서교섭권, 쟁의권, 체결권따위를몰수해가면, SK브로드밴드에서민주노조는설자리를잃게된다. 2
넷째, 어용노조설립과별개로, 기존민주노조지도부를길들이려는시도가계속돼왔다. SK에서는자회사정규직화방안이아직확정된게아니라이사회를통과해야하기때문에, 그때까지는이사실을비밀에붙이라고노조 (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지부 ) 집행부에요구했다. 노조집행부는자회사정규직화라는환상에압도된채사측의요구에순순히따랐다. 그래서다수의조합원들은노동조합을통해서가아니라언론보도를통해비로소자회사정규직화방안을듣게됐다. 올해초부터여러차례비밀교섭이이뤄졌다는사실역시철저하게감춰졌다. SK브로드밴드사측입장에서본다면, 민주노조의 민주적 규율과원칙을무너뜨리는데성공한셈이다. 자본가들이그토록비밀교섭에매달리는데에는이유가있는것이다. 문재인정부의임무 문재인정부와자본가들의이와같은책략이어떠한저항도없이관철된다고가정해보자. 그결과는무엇일까? 무엇보다국가권력과자본으로부터독립적인민주노조의존재가치가사라진다. 조직노동자들은거듭비밀을지키라는사측의압박속에아무소리도못내고, 언론보도로뒤통수를맞은뒤선택을강요당하는무기력한처지가된다. 미조직노동자들은무장해제된민주노조에희망을품느니사측의후원을받는어용노조로달려갈것이다. 조직 미조직노동자모두오직문재인정부와자본가들의입만쳐다보는처지가되면서, 자본가정부에종속된정치적부속품으로전락한다. 이렇게민주노조가무장해제된다면, 설사민주노조라는명패를달고있더라도더이상노동자운동의근거지로기능할수없을것이다. 그렇게저항선이무너진뒤에벌어질일역시불을보듯훤하다. 경제위기에서탈출하려는자본가들은사력을다해이윤율을회복하기위해노동자를겨냥한칼을휘두를것이다. 더욱이자본가들은 당분간 문재인정부의정규직화드라이브에보조를맞춰야했다는점때문에많은시간과비용을빼앗겼다고여길것이다. 이는자본가들의공격성을한층더부추길수밖에없다. 민주노조라는저항의근거지를함락당한노동자들은무방비로공격에노출된채고난을겪게된다. 문재인정부는, 박근혜가서툴고거칠게일을처리하는바람에실패한임무를세련된방식으로완수하게될것이다. 박근혜에게실망한자본가들이정권교체프로그램을선택했을때부터, 그들이원한건이것이었다. 이것은물론예상일뿐이다. 이런자본가계급의계획이실현되려면중요한전제조건이충족돼야한다. 노동자운동이성공적으로반격을시작하지못하고얌전히목을내놓는것이다. 자본가들과문재인정부는그렇게되기를바랄것이다. 그간의오랜후퇴와조직노동자들사이에누적된패배감때문에반격에나선다는게엄두가나지않을수도있다. 너무나준비가부족하다고생각할수도있다. 그런데때로는선택의여지가없을때도있다. 산비탈에서거대한바위가굴러내려오기시작했는데, 힘이부족하다며등을돌린채앉아있다면그다음장면은이미결정된것이나다를바없다. 우리를덮치려는바위에맞서기위해뭐라도해보려는사람들만이현실을변화시킬자격을갖는다. 3
강력한지지율, 허약한토대 지금당장에는문재인정부가압도적인지지를받고있는것같지만, 이정부의발밑이결코단단하지않다는점에주목해야한다. 첫째, 박근혜정부를탈락시킨뿌리깊은경제위기가여전히해결되지않고있다. 거제를유령도시로전락시키고있는조선산업붕괴, 삼성과현대가겪고있는경쟁력위기는단지박근혜를탄핵하고대통령의얼굴을교체한다고해결할수있는문제가아니다. 이위기가지속되고심화되는한, 대자본가들이문재인정부의개량정책 ( 아무리기만적이고내용없는것일지라도 ) 에호응할수있는여력도점차소진될것이다. 결국문재인정부는자기가어느계급에게봉사하는정부인지솔직하게얼굴을드러낼수밖에없다. 둘째, 지난겨울거리를점령하고청와대로진격했던촛불항쟁참가자들은단지정권교체만을원하지않았다. 열심히일한만큼인간답게살수있다는희망을가질수없고, 그런일자리조차구할수없는지옥같은현실에대한불만이다양한방식으로표출됐다. 설사이것이명료한정치적구호로표현되지는못했을지라도, 어중간한기만적약속으로대중의불만을관리할수없으리라는점을자본가계급의전위들도느꼈을것이다. 노동자운동이어떤전망을제시하고행동을조직하는가에따라이대중의불만과열망은완전히다른방향으로분출할수있다. 셋째, 자본가계급극우세력이실추된권위와지분을회복하기위해호시탐탐때를노리며문재인정부에압력을넣을것이다. 새정부는한편으로대중의열망에호응하는모양새를취하면서도, 한편으로는자본가계급극우세력과의관계를유지하는데에도신경을써야만한다. 지배계급내에서분열과갈등이일어날가능성이항상자리잡고있다. 넷째, 미 중간의제국주의적경쟁이한반도주변정세를요동치게하면서박근혜정부를들었다놨던것처럼, 문재인정부역시주관적으로어떤신념을갖고있는가와무관하게제국주의적경쟁이야기하는정치군사적불안정과경제적파장속에서허우적거릴가능성이높다. 이는문재인정부를향한대중의환상에찬물을끼얹을것이다. 요컨대문재인정부는매우불안정하고, 불확실한요인들에둘러싸인채위태로운균형을유지하고있다. 모든게불확실할때에는, 확실한전망과추진력을가진세력이정세를바꾸는첫디딤돌을놓을수있다. 문재인정부는자신이바로그세력이되고싶어한다. 하지만노동자들이더이상침묵하지않고독립적인목소리를내며함께일어선다면, 그자체만으로도저들의계획에금이가기시작할것이다. 방향이중요하다 사실 SK 브로드밴드현장노동자들도저들의자회사정규직화방안에많은결함과속임수가있다는 걸모르는게아니다. 단지지금당장에는달리대안이안보이니어쩔도리가없다고여기며입을다물 뿐이다. 하지만그렇게입을다물고있을수록노동자운동은방향감각을상실한채자본가들과정부에 4
휘둘리게된다. 반대로 SK브로드밴드노동자들이자신이원하는진짜정규직화가뭔지당당하게말하기시작한다면, 그것으로부터새로운상황이시작될수있다. 정부가내놓은자회사정규직화의기만성은폭로될것이다. 대안이없는게아니라바로자신들의가슴속에있는열망, 비정규직철폐가대안이라는사실이분명하게떠오를것이다. 정부와자본가들의입만쳐다보고있는게아니라더많은노동자를조직하며단결해투쟁하는것이야말로우리의대안이라는진실과마주하게될것이다. 가장중요한것은우리를둘러싼기본적인지형을이해하는것이다. 지금껏민주노조들은자기사업장차원에서저들의공격에대응하는데익숙해져있었다. 하지만자본가들과정부는 SK브로드밴드같은특정사업장만을겨냥해책략을구사한게아니었다. 공공부문과민간부문을실시간으로동시에아우르며, 정규직과비정규직, 조직노동자와미조직노동자모두를겨냥해작전계획을짜고입체적으로공략하는중이다. 이런상황에서, 먼과거에나그럭저럭써먹을수있었던 ( 하지만결코노동자계급에게진정한승리를보장할수없었던 ) 단사차원의조합주의적대응책으로는현상유지조차할수없다는사실을직시해야한다. 이제노동자에게는자기사업장을넘어서는노동자계급단결의전망이필수적이다. 그것이없다면노동자들은투쟁을시작하기보다는저들의압도적공격앞에온몸이마비돼버릴것이기때문이다. 우리에겐다른가능성이있다. SK브로드밴드만이아니라 LG유플러스, 삼성전자서비스등다른사업장노동자들과나란히전선을만들어간다면. 민간부문뿐만아니라인천공항공사를포함한공공부문노동자들과도나란히전선을만들어간다면. 그리고그선두에서자본가계급과그들의정부에맞선정치투쟁을지휘할수있는조직, 즉노동자계급의정당건설을향해전진한다면. 문재인정부의권위와영향력이압도적인것처럼보이기때문에지금당장에는이런전망이엄두도나지않을수있다. 하지만저들의발밑이결코단단하지않다는사실, 문재인정부가누리는권위의유통기한도한정돼있다는사실을잊지말자. 당장빠르게진격할수는없을지라도, 방향을잃지않고단단하게버틴다면기회는우리에게넘어올것이다. 그것을위해우리는먼훗날이아니라, 오늘노동자의목소리를내야한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