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국어순화 북한의우리말다듬기어떻게보아야하는가? 김석향 이화여자대학교통일학연구원 1. 시작하는말 이글은분단이후북한당국이추진해온우리말다듬기운동이어떤과정을거쳐오늘에이르렀는지, 또북한의우리말다듬기운동은남쪽사람과북쪽사람의속성을동시에지니고있는새터민 ( 북한이탈주민 ) 1) 에게사회심리적으로어떤의미를지니는지고찰해보고자하는목적으로작성하였다. 굳이새터민의시각에서이작업을시도하는이유는남쪽의우리가향후어떤관점에서북한의우리말다 1) 통일부에서는 2004 년도하반기에많은사람들이거부감을느낀다고하는 탈북자 라는용어를친근하면서도뜻깊은표현으로바꾸기위해전자공청회를실시하는등다양한경로를통해의견을수렴한결과, 순수한우리말단어인 새터민 이라는용어로대치할것을결정하였다. 따라서앞으로통일부가공식적으로사용하는문서에서는 탈북자 라는용어를 새터민 으로대치하여사용하게될것이라고한다. 그러나법률용어인 북한이탈주민 을변경한것은아니다. 따라서 2005 년현재통일부는 북한이탈주민 과 새터민 이라는용어를함께사용할것이라는방침을지니고있다. 특집 국어순화 59
듬기운동을평가해야하는지시사점을얻을수있다고생각하기때 문이다. 그런데북한의우리말다듬기운동이전개되어온과정과그사회 심리적의미를고찰하기전에반드시짚고넘어가야할문제가한가 지있다. 다름이아니라북한의우리말다듬기운동의실체가과연무 엇인가하는점이다. 이글에서는우선북한의우리말다듬기운동이란구체적으로그 실체가무엇인가하는점을논의한뒤말다듬기운동의전개과정을 살펴보고마지막으로남쪽사람과북쪽사람, 새터민등이땅한반도 에뿌리를둔채서로동질적인속성을강하게지녔으면서도동시에 이질적인면모도지니고있는 한국인 2) 내소집단각각에대해북한 의말다듬기운동이사회심리적으로어떤영향을미쳤는가하는점 을분석해보고자한다. 필자는이글을작성하는과정에서다른자료와함께새터민면담 내용을논리적전개에꼭필요한근거로폭넓게활용하였다. 다만이 글에서활용하는새터민면담자료가이번에새로조사한자료이외 에앞서다른연구를위해수집한내용도있다는점을밝혀두고자 한다. 이글에서활용한면담자료는필자가 2002 년 8 월 ~10 월과 2004 년 9 월 ~10 월, 각각다른목적으로 35 명씩면접조사를실시했던결과 물과이번연구를위해 2005 년 2 월에 5 명을대상으로면접조사를통 해습득한내용이함께섞여있다. 3) 특히이번연구에앞서 2005 년 2) 필자는궁극적으로 한국인 이라함은남북한주민과새터민은물론국적과관계없이중국에거주하는조선족이나일본에거주하는재일동포, 구소련지역에사는고려인과아울러미국을비롯한여러나라로이주해간해외교포를모두포함하는개념으로사용하고자한다. 만약 한국인 이라는단어가이렇게다양한유형의한국인을모두포함하는데미흡하다면이들을포괄적으로나타내는새로운표현을만들어야할것이다. 3) 2002 년 8 월 ~10 월면접조사의결과및면접대상자의일반적특성은김석향 (2003), 북한이탈주민의언어생활에나타나는북한언어정책의영향, 서울 : 통일교육원 (www.uniedu.go.kr 자료실 도서자료 ) 에소개하였고, 2004 년 9 월 ~10 월자료는김석향 (2004), 북한이탈여성의직업의식현황과직종개발을위한정책제언, 북한이탈여성, 사회적응지원을위하여, 서울 : 대한 YWCA 연합회사회개발위원회에서술해놓았다. 60 새국어생활제 15 권제 1 호 (2005 년봄 )
2 월에면접조사를시행할때에는면접대상자인새터민들이북한의 우리말다듬기운동을어떻게평가하고있는가하는점을파악하기 위해노력하였다. 2. 북한의우리말다듬기 : 그실체에대한논의 우리가북한의우리말다듬기운동에관심을갖는이유는이문제가남북한언어이질화의주요원인이기도하지만무엇보다그실체를파악해두는것이앞으로통일한국의언어정책을확립하는첫걸음이될것으로생각하기때문일것이다. 그런데필자가과문한탓인지지금까지북한의우리말다듬기운동의실체를구체적으로논의한자료를본기억이없다. 다만북한의우리말다듬기운동이라고하면외래어와한자어를우리말단어로바꾸어사용하는현상을의미하는것으로이해하는사람이많은것같다. 4) 이런추측을하는근거는통일부를비롯한정부부처와주요언론사의누리집 (home page) 은물론이고초 중 고등학교수업시간과방송매체에서남한말 / 북한말항목을구분하여 아이스크림 과 얼음보숭이, 원피스 와 달린옷, 도넛 과 가락지빵 등단어비교표를제시하는사례가너무나많다는점을들수있다. 간혹이런현상에지나치게빠져든나머지언어란마치유기체적생물체와같아생성 성장 소멸의변화과정을겪는다는사실을잊은채북쪽에서예외적으로몇몇사람이사용했거나또는한때널리퍼졌던일이있으나지금은아무도기억하지않는표현까지도남쪽에서는북한말로여기고열심히공부하려는경우도드물지않게나타난다. 얼마전, 필자에게초 중 고교과서편집실무자한분이전화를한뒤, 북쪽에서는겨울을 겨울 이라하지않고 동삼 이라고한다는 4) 간혹남북한의언어이질화는곧단어의이질화일뿐이라고주장하는의견이나오기도한다. 김태식 (2001), 언론의남북한언어동질성회복방안, 새국어생활 제 11 권제 1 호 (2001 년봄 ) 참조. 특집 국어순화 61
데그것이사실인지질문한일이있었다. 어디서그런의견을들었느냐고반문하자그분은교과서를제작하면서남한말 / 북한말단어를비교하는도표를만드는데마지막편집단계에서전문가감수를받았더니감수를맡으신분이그렇게말씀하셨다는것이었다. 필자는상식적으로그렇지않을것같지만확인해서알려주겠다고대답한뒤우선평소에각별하게지내는새터민몇사람에게전화해서북한에서겨울이라는단어를사용하지않고그대신 동삼 이라는단어를사용하는지물어보았다. 그때필자의전화를받은새터민은도무지 동삼 이라는단어를알아듣지못하였다. 한참설명을하려고애쓴다음, 마침내 동삼 이라는표현이겨울을대신하는용어인지물어보는것이라는내용을파악한새터민들은한결같이무슨소리를하느냐는반응을나타냈다. 겨울은겨울이지갑자기무슨말을하는지모르겠다는것이그들의반응이었다. 다음단계로필자는오늘날북쪽에서사용하는 조선말대사전 ( 평양 : 사회과학원언어학연구소, 1992년 ) 올림말중에서 겨울 과 동삼 항목을찾아보았다. 다음인용문은 조선말대사전 에나오는 겨울 과 동삼 항목을그대로옮겨놓은것이다. 겨울 [ 명 ] 한해의네철가운데넷째철곧가을다음에오고봄과바뀌는 추운철. ~ 을나다. 박달나무도얼어터지는추운 ~ 겨울이면눈덮인산 등판과얼음판마다가아이들의즐거운놀이터로된다. 늦 ~. 첫 ~. 한 ~. 동삼 [ 명 ] ➀ 겨울철석달이라는뜻으로 «겨울» 을이르는말. 시꺼먼눈구름을앞세우고다가오는그해동삼에성준은썩은거적들을주어오고길길이자란보통벌의풀대들을베여다가그다리밑에초막을한채지어놓았다. ( 장편소설 «평양시간») ➁ «동삼삭» 의준말 ( 冬三 ) 새터민몇사람의반응과 조선말대사전 의내용을종합해본결과, 필자는나름대로일의전후사정을파악할수있었다. 아마도 동삼 이라는표현은소설 평양시간 을지은작가를비롯한몇몇사람이사용하여 조선말대사전 에오를정도에이르렀으나대다수북한주 62 새국어생활제 15 권제 1 호 (2005 년봄 )
민은일상생활에서겨울을겨울이라고하며동삼이라는단어가존재한다는사실도모르고지내는상황이라는것이필자의결론이었다. 물론필자는이런내용과함께결론에이르게된과정을전화를걸었던교과서편집실무자에게알려주었다. 아울러교과서에남쪽말 / 북쪽말항목을비교하는도표를만들어넣으려면각각의단어가만들어진역사적배경과아울러일상생활에서사람들이그단어를사용할때알게모르게전달하게되는감성적느낌까지함께제시하려고노력하는것이필요하며그렇게하지않은채단어만제시해놓으면전혀의도하지않은부작용이나타날가능성도있다는의견을전달하였다. 5) 지금까지서술한사례와같은현상이발생하는배경에는북한의우리말다듬기운동은곧한자어와외래어를우리말단어로바꾸어표기하는정책으로한정하여생각하는일반적인인식이존재한다. 이런인식에따르면남쪽에서사용하는외래어인 컴퓨터 나 키보드 를북쪽에서다듬어놓은 전자계산기 나 6) 건반 으로바꾸어표현하면의사소통에아무런문제가발생하지않아야마땅하다. 그러나막상남쪽사람과북쪽사람이만나축구를하다가 골키퍼 와 문지기 라는용어가번갈아나오면서로상대방이이상하다고느끼거나북쪽사람이나서서왜좋은우리말을놔두고영어를쓰느냐고힐난하면서우쭐한표정을짓는현상이생기곤한다. 우리의언어생활은단순한단어의교환행위가아니다. 단어의교환을훨씬넘어서상대방에대한친근감이나거부감은물론이고언어사용자의가치관이나생활방식을평가하는행위까지순식간에이루어지는것이우리의언어생활이다. 그런의미에서북한의말다듬기 5) 김석향 (2003), 앞의책, 24~25 쪽. 6) 최근에는북쪽에서도 컴퓨터 를 컴퓨터 로표기한다. 그러나 1980 년대후반이후 1990 년대초반에걸쳐북한에서는컴퓨터를 전자계산기 로표현하고대학의관련학과명칭을 전자계산기학과 로불렀던시기가있었다. 한때전자계산기라고불렀던물건을컴퓨터로그명칭을바꾸게된현상의배경에는북쪽사람들이이제컴퓨터란단순한전자계산기와다르며그기능이훨씬다양하다는점을체험을통해서알게되었다는사실을시사해준다. 특집 국어순화 63
운동이단순히외래어나한자어를우리말단어로다듬어사용하는분야에국한해두어야하는지한번생각해볼필요가있다. 외래어나한자어를우리고유의단어로바꾸어놓는일이말다듬기운동의중요한구성요소라는점은불을보듯명확한사실이다. 그러나외래어를우리고유의표현으로바꾸는것이곧북한의말다듬기운동과동일한개념은아니다. 왜냐하면 북한의말다듬기운동 이란단순히외래어나한자어를우리말표현으로바꾸는차원을넘어, 이른바 혁명적문풍 을따라배워발음을바꾸거나억양을강하고약하게조절하는훈련은물론이고심지어 남조선에서쓰고있는말에서한자말과일본말, 영어를빼버리면우리말은 을, 를 과같은토만남는형편 이라고주장하는김일성의발언내용에 7) 대해어떻게반응해야하는지, 자신도의식하지못하는사이에배우고익히는가치관정립과정까지얽혀있어, 훨씬복잡하고감정적으로도미묘한개념이기때문이다. 다음에인용하는새터민의발언은북한의우리말다듬기운동이미치는영향은단순히단어의표기를다르게하는차원을넘어발음이나억양은물론이고언중 ( 言衆 ) 의감성적측면까지복잡하게얽혀있다는점을시사해준다. 아파트단지지하상가식당에서 냉면하나요 했는데아줌마가못알아들었다. 옆에있는남한사람이 냉면이오 하니까알아들었다. 같은냉면이라고한것도내말은전혀알아듣지못하는건, 억양이서로다르다보니그럴수도있다고생각되지만, 한편으로는그사람들 ( 남한사람들 ) 보다떨어진다고생각이된다.(30대남자, 1998년탈북, 2001년국내입국.) 례절 이고유한말같다. 여기서 예절 이라하는게틀려보인다. 회사 다니니까 ( 회사에서 ) 서로틀렸다고분쟁할때가있다. 회사에사람들이왔 다가는돌아가서 북한여자봤다. 하면서자기네들끼리내가한말기억했 다가써먹고자기네들끼리웃는다. 꼴똑찼다. 이런말을, 내가말하는거 7) 1966 년 5 월 14 일, 김일성이 조선어의민족적특성을옳게살려나갈데대하여 라는제목으로언어학자들과한담화에나오는표현이다.( 김석향 (2003), 앞의책, 279 쪽.) 64 새국어생활제 15 권제 1 호 (2005 년봄 )
듣고신기해서계속따라한다. 그리고어떤사람은계속 ( 북한에대해 ) 묻 는다. 배급줘요?, 잘안주죠? 하면서. 그러면 북한에한번가보 세요 한다.(20 대여자, 1998 년탈북, 2000 년국내입국.) 북한에서왔다는게콤플렉스, 열등감인데, 말이라도북에서쓰는말이 맞았으면하는기대가있다. 그런기대와함께 례절 같이 하는게맞는 다고한참주장했었다.(20 대남자, 1997 년탈북, 1998 년국내입국.) 한마디에 교포시군요. 하고이방인처럼생각한다. 자기민족아니구나하는걸로생각돼열등감든다. 교포구나 할때 제나라사람아니구나, 남이구나 생각하는것같아위축감들고말못하겠다.(40대여자, 2002년탈북, 2003년국내입국.) 위의인용문은우리가북한의우리말다듬기운동에대해논의할때에는단순히단어바꾸기차원을벗어날필요가있다는점을시사해준다. 다시말해서북한의우리말다듬기운동을분석할때에는이운동을주도한사람들이명시적으로밝힌의도와함께숨은의도는무엇인지살펴보는노력이필요하며아울러말다듬기운동을통해다듬어놓은단어의사용자인언중 ( 言衆 ) 의사회심리적특성까지고찰하려는시도가필요하다고하겠다. 3. 북한의우리말다듬기진행과정 적어도필자가아는범위에서는북한의우리말다듬기운동이공식적으로언제부터시작된일인지확인할수있는자료는없었다. 다만김일성의교시와노동신문이나민주조선등북한의주요일간신문이게재하는 우리말다듬기 지상토론의전개과정을통해북한당국이우리말다듬기운동을공식적으로시작하고끝낸시점이언제인지짐작할수있을뿐이다. 그런의미에서이부분에서는우선북한최대의일간지인노동신문에나타나는 우리말다듬기 지상토론의전개과정과아울러그과정에서북한의정치지도자김일성의위상이어떻 특집 국어순화 65
게변화해가는지살펴보고자한다. 노동신문의 우리말다듬기 지상토론이북한의말다듬기운동의주요요소이기는하지만두가지개념이동일한것은아니다. 당연히북한의말다듬기운동은노동신문의 우리말다듬기 지상토론이외에도다양한요소를포함하고있다. 따라서본격적으로북한의우리말다듬기운동의사회심리적의미를평가하고자할때에는분단이후북한당국이추진해온언어정책의다양한요소를포함하여총체적인맥락에대한분석을시도해야할것이다. 다만이글에서는원고분량의제한이라는현실적여건을감안하여노동신문의 우리말다듬기 지상토론을중심으로북한의말다듬기운동의전개과정을고찰해보고자한다. 김일성은 1964년 1월 3일과 1966년 5월 14일, 두차례에걸쳐북한의언어학자들과담화를나누었다. 1964년담화의제목은 조선어를발전시키기위한몇가지문제 였으며 1966년에는 조선어의민족적특성을옳게살려나갈데대하여 라는제목이었다. 8) 그뒤, 1966년 7 월 9일자노동신문제4면에는 «우리말다듬기» 의지상토론을시작하면서 라는제목아래국어사정위원회의인사말과제1회우리말다듬기기사가나온다. 이점으로미루어북한의우리말다듬기운동은이무렵에공식적으로시작되었다고볼수있을것같다. 9) 우리말다듬기 지상토론은 1966년 7월 9일에제1회이래 1973년 10월 28일에제554 회로마지막회에이를때까지대체로 2~3일간격으로노동신문에그모습을드러냈다. 물론북한당국의필요에따라 8) 재미있는사실은북쪽에서우리말다듬기운동을하는과정에서김일성이직접지시한내용을북한주민들이지키지않는경우도나타난다는점이다. 예를들어 1966 년담화에서김일성은 지금우리의일꾼들이 일하는시간 이란말을 사업시간, 공작시간 이라고하고 낮잠 을 오침 이라고하는 현상이있다고개탄하는내용이나온다. 이렇게김일성이직접지적한내용이었으나필자의면접경험을미루어보면오늘날북한의유치원교양원들은일반적으로 낮잠 을 오침 이라고하는것으로나타난다. 9) 물론노동신문의 우리말다듬기 지상토론이곧북한당국이추진해온말다듬기운동은아니라는점을감안하면말다듬기운동이언제공식적으로시작되었다고볼것인가하는점에대해서는충분히다른의견이나올수있다고생각한다. 66 새국어생활제 15 권제 1 호 (2005 년봄 )
1~2주정도중단하거나드물게두달에걸쳐 우리말다듬기 지상토론을게재하지않는경우도있었다. 그러나이런경우에는왜중단하는지그이유가명확하게나타나기때문에큰문제가되지않는다. 10) 반면노동신문이왜 1973년 10월 28일에제554 회를마지막으로 우리말다듬기 지상토론을더이상게재하지않는지그이유는찾을수없었다. 11) 노동신문에서 우리말다듬기 지상토론을시작하고끝내는모습을비교해보면재미있는대조를이룬다. 우선시작할때모습은다소거창한느낌을줄정도로두차례에걸쳐공식적인인사말을게재한다. 1966년 7월 9일, 제1회를시작할때북한의국어사정위원회는 «우리말다듬기» 지상토론을시작하면서 라는제목아래다음과같은인사말을수록하였다. 우리들은누구나알수있는쉬운말을하고쉬운글을써야한다. 그러기위하여서는묻혀있는좋은말을찾아쓰는한편어려운한자어나외래어를우리말로다듬어야할것이다. 이를위하여국어사정위원회에서는이지상토론을조직한다. 독자들은다듬은말이마음에드는가안드는가하는의견을우편으로국어사정위원회나본사에보내되직장, 직위, 이름, 나이를밝혀서아름다운우리말을활짝꽃피우며더욱더빛내기위하여모두다이토론에참가하자. 똑같은인사말이 1966 년 7 월 15 일제 3 회에한차례더나온다. 반 면 1973 년 10 월 28 일, 제 554 회로 우리말다듬기 지상토론을끝낼 때에는아무런인사말이없다. 게다가그내용을읽어보면제 554 회 원고를작성한사람은자신이마지막회글을쓰고있다는사실을전 10) 1979 년 3 월 29 일제 442 회 우리말다듬기 지상토론이나온이후, 두달이상지난뒤 6 월 7 일에야제 443 회가나왔다. 이기간동안노동신문은온통김일성 60 회생일을축하하는기사로뒤덮여있다. 11) 필자는제 554 회 우리말다듬기 지상토론이마지막회인지확인하기위해 1973 년 11 월이후 1975 년 12 월까지발행된노동신문을빠짐없이살펴보았다. 그러나 우리말다듬기 지상토론의중단을알리는내용이나왜중단하는것인지설명하는기사를찾지못했다. 또한 1973 년 10 월 28 일자이후, 노동신문이제 555 회 우리말다듬기 지상토론을실은것도볼수없었다. 특집 국어순화 67
혀알지못했던점이나타난다. 모두다어버이수령님의교시를높이받들고우리말다듬기지상토론을 더욱활발히벌려야한다. 이번에는물고기의알과관련한말을비롯한일 부말마디들을토론에붙인다. 노동신문은 1973년 10월 28일에왜갑자기 우리말다듬기 지상토론을끝낸것일까? 무려 7년이넘는시간이흐르는동안꾸준히게재해왔던연재물을끝내면서제554 회필자가마치다음회에또이어질것같이 이번에는 일부말마디들을토론에붙인다 고글을쓴이유는무엇인가? 현재상태에서필자의능력으로이런질문에대해구체적인증거가확보된답을찾는것은불가능한일이다. 다만앞으로더많은연구를전제로하되, 일단다음에제시하는두가지자료를관찰해보면그당시북한당국이추진하던말다듬기운동은단순한단어다듬기차원을넘어서정치적으로복잡한의미가있었다는생각을갖게된다. 첫번째자료는노동신문의 우리말다듬기 지상토론내용을통해서김일성의위상변화를추적하는과정이다. 특히 1967년 11월이후 1969년 6월까지게재되었던 ( 제124 회이후제257 회에이르는 ) 우리말다듬기 지상토론은북한의말다듬기운동이단순한언어정책의범위를넘어김일성의정치적위상을높이는도구로써결정적인역할을했다는점이나타난다. 노동신문의 우리말다듬기 지상토론은제1회이후제123 회까지순전히외래어나한자어를우리말로바꾸는운동에전념한다. 그런데제124 회에서갑자기 경애하는수령김일성동지 라는표현이등장했던것이다. 그뒤 1년 6개월에걸쳐 김일성 이라는단어가얼마나자주등장하는가하는점은아래 < 표 1> 에서관찰할수있다. 왜이런현상이나타난것일까? 그이유는이제서술하게될두번 째자료와연결해보면좀더명확해진다. 두번째자료는 1967 년이 68 새국어생활제 15 권제 1 호 (2005 년봄 )
< 표 1> 노동신문 우리말다듬기지상토론 에나타나는김일성이름의빈도 시기 김일성이름등장횟수 (A) 총횟수 (B) 백분율 (A/B) 해당횟수 67년 11~12 월 1 16 6.3 122~137 회 68년 1~ 2월 1 12 8.3 138~149 회 68년 3~ 4월 0 14 0.0 150~163 회 68년 5~ 6월 5 15 33.3 164~178 회 68년 7~ 8월 0 15 0.0 179~193 회 68년 9~10 월 7 12 58.3 194~205 회 68년 11~12 월 3 13 23.1 206~218 회 69년 1~ 2월 6 13 46.2 219~231 회 69년 3~ 4월 10 13 76.9 232~244 회 69년 5~ 6월 12 13 92.3 245~257 회 후 1973년에이르는기간동안북한사회전역에휘몰아쳤던혁명의광풍을거치면서당시북한주민들은일상생활에서말을하는행위에대해두려움을느꼈을가능성이높다는점이다. 다음에인용하는새터민의체험담은그런두려움의가능성을시사해준다. 8살때중국에서평양으로갔어요. 그해해방이되었는데집에서재산을다팔아서은으로바꿔가져갔지. 한 4~5개월걸렸어요. 연말쯤평양에도착해서평양제 2인민학교를다니고대접받으며잘살았어. 오빠덕분에. 오빠가전쟁시기서울해방시킨사단의참모장이었어요. 그러다포항근처에서죽었어. 유공자였지, 전쟁유공자. 우리부모님고향은남쪽이야. 내가늘엄마는왜경상도말고치지못하냐고했거든. 말하는게이상했어요. 어쨌든대접받고고위층에서잘살았는데 70년 7월 4일에남편이영원히못나오는정치범수용소에갔어요. 그때내나이서른다섯이었는데아직도그사람생사를몰라요. 재판을안했으니뭘잘못했는지도모르고. 곧이어나는 7월 10일에보위부초대소에서두달심문을받다가정치범수용소로갔어요. 뭐내가말한게남조선에전달되었다할때책임이없느냐고묻는건데, 뭐라하겠어요? 거기서 8년을있었지. 들어갈때에도뭘잘못했는지, 언제나오는지모르고갔지만나올때에도어떻게나올수있었는지아는게없어요.(60대여자, 2001년탈북, 2003년국내입국.) 특집 국어순화 69
그당시북한당국은 1967년에끝낼예정이었던 7개년인민경제계획을 3개년연장하여 1970년에마무리할것을결의하였다. 정치적으로는주체사상이본격적으로대두하는가하면대학을졸업한김정일이조선노동당선전선동부에들어가그아버지의후계자로위치를확립해가는중이었다. 또한남로당, 소련파, 연안파의거물급인사들이숙청당한뒤사실상김일성세력을견제할유일한대안으로남아있던박금철등갑산파의주요인물이중앙의정치무대에서사라지던시기였다. 이런상황에서그당시, 평양을비롯한북한전역에흩어져살던평범한사람들이갑자기광산촌이나수용소로쫓겨가는일이줄지어일어났다. 쫓겨가는사람들은대부분남쪽출신이었으나자신들이왜갑자기그런대우를받는지설명을듣지못했고스스로그이유를짐작할수없는사람도많았다. 다만명목상사회주의체제를비난했다거나무심코말했던내용이이른바간첩을통해서 남조선 에전달되었을가능성이있다는이유로보위부간부들의추달을받았을뿐이었다. 한마디로말을하는행위자체가그당시북한주민의일상생활에서목숨을걸어야할만큼중대한정치적의미를지니고있었다는것이다. 현재상태에서명확한증거는없으나노동신문 1973년 10월 28 일자제554 회 우리말다듬기 지상토론을작성했던사람도어느날갑자기평양을떠나게된인물중의하나일가능성이있다는것이필자의의견이다. 4. 북한의우리말다듬기 : 그사회심리적의미 북한당국이추진해온우리말다듬기운동은과연남쪽사람과북쪽사람, 그리고새터민에게각각어떤의미를지니고있는가? 한걸음더나아가재일동포나조선족, 고려인을포함하여오래전에이땅한반도를떠난사람들은북한의우리말다듬기운동을어떻게평 70 새국어생활제 15 권제 1 호 (2005 년봄 )
가하는가? 또분단이후남쪽에서더좋은삶의기회를찾아미국과캐나다, 호주등이른바잘사는나라로떠나그곳에터전을잡은국외동포들은북한의우리말다듬기운동에대해무슨생각을하는가? 이런질문에대해만족할만한답을제시하려면앞으로더많은후속연구가이어져야할것이다. 이부분에서는단지북한의말다듬기운동에대해북쪽에서태어나상당한시간을보낸뒤남쪽에와서정착하게된새터민들이어떻게평가하는지알아보고자한다. 아마도노동신문의 우리말다듬기 지상토론에따른영향을가장직접적으로받았고그만큼북한의말다듬기운동을민감하게평가하는집단은단연코북쪽사람일것이다. 그런데참으로아쉽게도우리가북쪽사람들의보편적인생각을직접조사한다는것이현실적으로불가능한여건에놓여있다. 따라서아쉽지만이글에서는새터민과면접한내용을근거로북쪽사람은물론북쪽에서살다가남쪽으로건너온새터민들은북한당국이추진했던말다듬기운동을어떻게평가했을지생각해보기로하겠다. 12) 새터민과면접한자료를전체적으로살펴보면아마도이들은대다수가말다듬기운동에대해서는긍정적으로평가하고있는것같다. 한걸음더나아가말다듬기운동이야말로북쪽사람에게그체제에대한자부심을제공하는근거의하나로작용하는것같은느낌이든다. 그리고이런자부심은남쪽사회에대한부정적인인식이나안타까움의근거가되기도한다. 그러나북한당국이강력하게추진했던말다듬기운동이실제로성과가있었던것은아니라고생각하는새터민도있었다. 다음에새터민들의의견을인용해보겠다. 그러니까여기사람들은어렸을때부터그영어라는게뭐예를든다면 패스워드하게되면아이건뭐비밀번호다하는걸어렸을때부터했기 때문에자연적으로나가잖아요. 그런측면에서는북한에서잘한다고봐요. 12) 논리적으로볼때북한주민과새터민이반드시동질적인의견을보유하지않을것은분명한일이다. 그러나이글에서는새터민을면접한자료를근거로북쪽사람의생각을재구성했다는점에서근본적인한계를지니고있다. 또한새터민과북쪽사람의생각을구분하기어렵다는점도이글의한계라하겠다. 특집 국어순화 71
나는그런측면에서는한국에문제가있다고비판적으로보거든요. 언론에서도얘기하잖아요. 우리말을쓰자고말은하면서도그도모르게외래어들이많거든요. 그러니깐그건 ( 우리말은 ) 옛날시대오래전부터살아오면서쌓아온거니까그냥맞춰써야하지않겠어요? 비판적인시각에서본다면그런언어정책에서는한국보단북한이잘된거같아요.(50대남자, 2002년탈북, 2003년국내입국.) 평가를한다면저는개인적으로안타깝다고생각해요. 영어는영어자기분야에서사용돼야해요. 그런데이게생활속에들어오면우리조선말없어지지않겠어요? 저는아주부정적으로봐요. 실지생활에서는영어로쓰면안돼요. 그런데여긴지하철도다영어로되어있잖아요. 그러니우리자라나는새세대들이진짜조선말을바탕에서잃어버릴수있다니까요. 헤어 하면 머리카락 이지어떻게 헤어 가될수가있어요. 그러니까그걸첫째부정적으로많이바라보게돼요.(40대여자, 2000년탈북, 2000년국내입국.) ( 외래어많이써서 ) 남북한이한민족인데도한민족이라는느낌이안들고, 아버지가한국사람이면어머니는미국사람인것처럼느껴진다. 차라리완전영어도아니고, 발음도정확하지않게별나게섞어서완전영어도아니다.(30대남자, 1999년탈북, 2000년국내입국.) 영어로 포크 라하잖아. 이런것도다별나게우리말로만들어놨어요. 그런데바꾼말로잘사용안해요. 그런용어고친게, 내지금생각잘안나요. 지상토론, 연구토론회, 웅변. 이런거. 김일성의노작들, 저작집, 말씀들위에서내려오면우리는그거갖고연구토론회하는거요. 자기가연구하고면담에나가서토론하고자기의사그대로. 그런건있어요, 실제로. 그런데그게생각도역시김일성이생각주제로만표현돼야하지, 내가건설적으로생각해서하는것그런거함부로말못하는거야.(40대남자, 2003년탈북, 2004년국내입국.) 새터민들이특히거부감을느끼는부분은남쪽에서는영어를써야지식이있고훌륭한사람으로대접하는분위기가있다는점이다. 또한단지북쪽에서왔다거나영어를모른다는이유로아무것도모르는사람으로취급당하는점에대해분노와절망감을느끼는것같다. 72 새국어생활제 15 권제 1 호 (2005 년봄 )
내가여기서는특히비판적으로보는게그거야. 조선말쓰는거보다영어를쓰는게아주유식한사람처럼그렇게실제적으로비춰지는부분이많거든요. 드라마를보게되면, 요즘에아침에드라마를보면, 아, 여기도영어를써야유식한걸로표현되는그런시절이있었기땜에차곡차곡지금까지누적돼있지않느냐 ( 하는생각이들어요 ). 근데김일성이가얘기하는것은, 고건요, 외래어를다없애야되겠다 ( 하는거예요 ). 근데북한에서도아직그대로쓰는게있거든요. 고유한말이없는것은그대로쓰라고하지만.(50 대남자, 2002년탈북, 2003년국내입국.) 북한에서왔다하면배운게다르다고생각하고, 지식수준이여기보다못하다고생각한다. 또못사는데서왔다고생각한다. 나라잃은설움 이라고할까. 상대방표정을보고, 깔끔한성격사람앞에서는주눅이든다. 많이배워보여서그런지. 허물없는사람한테는이야기해도어려운사람앞에서는말못한다. 마요네즈같은소스정확히분별이힘들고어디서파는지도모르겠다. 음식은뭘사야할지모르겠다. 다먹어볼수도없고. 난모르는건다물어본다. 하지만한번은회사에서너무많이물어봐서그런지 우리딸채연이보다모르는게많고, 묻는게많다 고하는소리를듣고, 자존심상해말안한다.(20대여자, 1998년탈북, 2000년국내입국.) 위의면담내용을살펴보면새터민들이북한의우리말다듬기지상토론에대해평가하는내용은단순히외래어를우리말표현으로바꾼것의범위를넘어정서적, 감성적반응이섞여있는것을볼수있다. 따라서남쪽의우리가앞으로북한의우리말다듬기지상토론을평가할때에는정서적측면을반드시고려해야할것이다. 5. 마무리하는말 2000년대의시작을눈앞에두고동아일보에서전국의 20세이상남녀 1000명을대상으로여론조사를한결과우리국민들은지난 1000년동안한국인이이룩한일중에서가장자랑스러운업적으로한글창제를선정했고가장아쉬웠던사안으로는남북분단을지적한 특집 국어순화 73
것으로밝혀졌다. 13) 또한월간중앙 역사탐험 에서 2004년신년호특별기획 한국사흐름을바꾼역사적결정 이라는주제로교수 교사 전문연구원등역사전공자 101명을대상으로설문조사를실시한결과훈민정음창제는전체응답자 101명가운데 51명이지목할정도로높은지지를얻은것으로나타났다. 14) 이와같은사실은남북한주민의만남이전보다더다양하고활발해지고있는오늘의시점에서앞으로우리가한반도의미래를어떤방향으로이끌어가야하는지시사해주는점이매우크다. 이제우리는앞으로통일을향하는길에서북한주민은물론새터민과함께우리말과글을어떻게가꾸고다듬어갈것인지큰방향을정립해야한다. 단순히단어와어휘, 표기법의차이수준을벗어나이들이일상생활에서남북한의말다듬기운동을어떻게평가하는지, 또과거의우리역사에서말과글을다듬어온조상들의노력을어떻게평가하는지, 앞으로우리말을어떤방향으로발전시켜나갈것인지함께논의하는길을찾아야하는것이우리의과제라하겠다. 그런관점에서볼때남북한의통합과통일을지향하는언어정책은남북한의언어현실을좀더종합적으로분석한뒤, 언어사용의주체인남북한의 7,000만주민이스스로원하는대안을선택할수있도록기회를제공해야할것이다. 그렇다면이과정에서반드시남쪽사람뿐만아니라북쪽사람과새터민의의견을적극적으로구하는한편그들이원하는지식을습득할수있도록기회를제공하는것또한우리가해결해야할과제라하겠다. 13) 동아일보, 1999 년 12 월 17 일자 1000~1999 지난천년국민의식조사 : 우리글자 존심천년빛냈다 14) 중앙일보, 2003 년 12 월 18 일자, 한국사흐름바꾼역사적결정 훈민정음, 위화도회군, 나당동맹. 월간중앙역사탐험설문 74 새국어생활제 15 권제 1 호 (2005 년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