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조선학그리고과학 * : 식민지지식인의보편을향한열망의기호들 정종현 목차 1. 단군 의초상 2. 조선학 ( 운동 ) 논의에대한재고 3. 두개의 국학 과 진보 라는보편의감각 4. 경합하는 과학 : 실증주의와마르크스주의 5. 결론을대신하여 1) 국문요약이글은식민지시기단군론과조선학을민족주의의문화적실천이라는 특수성 의맥락에서만이아니라, 과학으로표상되는 보편성 을향한열망과관련지어재해석하고자하는시도이다. 잘알다시피, 식민지시기조선학은근대적전통재구성이라는민족적자기정립의학문적표현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조선이라는특정한역사적장소와 과학 이라는보편적언술체계사이의이율배반적균열을내장하고있는것이었다. 이글은특정한민족을학문의대상으로삼으며그 고유성 을어떻게보편적인언어로전달할수있을것인가의문제가식민지시기의단군론, 조선학논의의핵심이었다고판단한다. 이과정에서마르크스주의자와실증주의자들은아카데미즘과과학을자기들만이이해하고있는방법으로특권화하고전 * 이논문은 2011 년도정부 ( 교육과학기술부 ) 의재원으로한국연구재단의지원을받아수행된연구임 (NRF-2011-32A-A00091). 성균관대학교동아시아학술원 HK 연구교수 단군, 조선학그리고과학 1
세대의비체계적인논의를비과학으로배제하면서식민지학술장에서헤게모니를관철시켰다. 본연구는 조선학운동 을중심에둔기존연구의 1930년대식민지학술장에대한이해를 과학 이라는보편의언어를통해재맥락화하고이를해방이후의학술장에대한이해로연결시키고자하는시론에해당한다. 주제어 : 단군 ( 檀君 ), 조선학, 조선학운동, 국학, 과학, 아카데미즘, 보편 / 특수 논문투고일 : 2012.09.15 / 심사완료일 : 2012.10.17 / 게재확정일 : 2012.10.17 2 한국학연구제 28 집
1. 단군 의초상 대한민국건국직후인 1948년 9월 25일법률제4호 연호에관한법률 을통해단기 ( 檀紀 ) 는서기 ( 西紀 ) 와함께국가의공식연호로법제화되었다. 또한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관한법률 을제정 공포하여단군의조선건국일을 10월 3일로비정하고이날을개천절로정하여국경일로선포하였다. 1) 이처럼해방직후국가와민족문화건설이시대의의제로제시되었을때, 단군을매개로하는여러시도들에대하여역사철학자신남철은 八紘一宇 가 弘益人間 으로변하였다는것이과연얼마나무엇을인민의생활과민족해방에기여공헌한단말이냐 2) 고신랄하게비판한바있다. 신남철은국조단군과연관된 홍익인간 이라는구호가제국의 팔굉일우 가변형된것임을암시한다. 단군을민족의기원이아닌사적유물론에입각한역사의특정단계의지표로파악한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단기연호는식민지시기매일같이확인하며살았던다이쇼 [ 大正 ], 쇼와 [ 昭和 ] 등의천황을중심에둔제국일본의력 ( 曆 ) 을연상시키는식민지의잔재로간주되었다. 신국일본을일상의차원에서지각하는형식이천황중심의歷체계였다. 아마테라스를국조로하는만세일계의천황가와그를중심으로구성된천황력은일본제국의성원임을각인시키는장치였다. 탈식민지한국사회에서단기연호는대한민국의국민 ( 민족 ) 이다른누구와도공유되지않는독자적영역을확보했다는상징이었지만, 식민지시기日本曆에서천황의자리에단군을대신올려놓은것처럼보였던것도사실이다. 다이쇼, 쇼와, 단기는서력 1) 단기연호는 1961년 12월 2일법률 775호 연호에관한법률 에의해폐지되고서력기원만사용되고있다. 개천절 이라고하는이름은대종교에서비롯되었다. 대종교는개천절을경축일로제정하고매년경축행사를거행하였다. 1919년대한민국임시정부가수립되자임시정부에서는음력 10월 3일을국경일로제정하였다. 해방이후다시이음력을양력으로전환하여기념일로제정하였다. 2) 신남철, 제4장민족문화론, 전환기의이론, 1948, 167쪽. 단군, 조선학그리고과학 3
이라는 보편성 을거부하며고유의시간성이존재하는것처럼내세우는문화적특수주의의상징이다. 고유한존재 를강박적으로과시하는이러한행위는자신의독자성을강조한다는점에서특수성의표현임에틀림없지만, 한편으로는전도된형태로보편성에대한의식이투영되어있다고도말할수있을것이다. 흥미로운것은천황의자리혹은그의선대인아마테라스의자리에단군을놓으려는시도가해방이후에처음으로나타난것은아니라는점이다. 근대초창기부터단군신화는한국인을여타의다른민족집단과구분되는특수한공동체로인식하는근대적민족관념의거점으로소환되었다. 3) 그렇지만단군에대한논의가민족주의적맥락에서만이루어진것은아니었다. 단군을둘러싼논의는 아시아적생산양식 과더불어서일본인과조선인지식집단사이에서벌어진가장열띤논쟁중의하나였다. 또한, 단군을둘러싼논쟁은식민지시기이념과방법을달리하는조선인연구자들의세계인식과학문관의차이를뚜렷이보여준다. 식민지시기그려진 단군 의초상은조선인의집합적자기인식의기원인 국조 의형상에서부터한 중 일을포함한광활한문화권의원점으로묘사되는가하면, 원시공산사회로부터부족사회, 고대국가형성으로이어지는사적유물론에입각한보편적역사발전론이조선사에서도확인되는증거물이기도했으며, 일본인연구자들에게는조작된위조품으로간주되기도하였다. 이들논의를세세히분별하여그진위를평가하는것은이글의관심이아니다. 여기서는식민지시기단군초상을민족주의의문화적실천이라는 3) 기존의연구에따르면, 근대이전부터도단군을국조로하는단일민족의식이형성되어있었다. 단군은구한말서구의내셔널리즘의영향아래한국민족주의의핵심을이루는이데올로기적상징으로재부각되었다. 단군에대한경모는신앙으로발전하여 1909 년나철의 원단군교 로체계화되어등장하였으며식민지지배체제성립이후본류인대종교와총독부의인가를받은유사단체인단군교로분화되어전개된다. 이에대해서는삿사마츠아키 [ 佐佐充昭 ], 한말 일제시대단군신앙운동의전개 : 대종교 단군교의활동을중심으로, 서울대학교박사논문, 2003 을참조. 4 한국학연구제 28 집
차원이아니라보편성에대한열망과관련지어검토해보고자한다. 1900년을전후한시기부터일본의동양사학자들은이후한국학계에서 단군말살론 이라고명명되는단군신화조작설을일관되게제기하였다. 단군에대한기록이중국에는존재하지않고 삼국사기 에도없으므로, 단군사적이처음나타나는 삼국유사 (1275~1308) 발간시기까지의사이에새롭게등장한전설적인인물이라는것이큰틀에서의기본주장이다. 고구려계승을표방한고려의승려가단군을고구려의선조라고날조한것이라는那珂通世, 白鳥庫吉등의 僧徒妄談說, 일연의창작이라기보다고려중엽평양신에게단군이란존칭을바쳐서조선창시의신인으로삼았다는今西龍의 王險城神說, 小田省吾의 묘향산산신설, 三浦周行과稻葉岩吉등이주장한, 기자에대항하여씨족적신앙의대상으로단군을강조했다는 민족적감정설 등이존재한다. 4) 이러한말살론에대한대종교등의반박이있었지만, 그것이본격적인사론의형태를띠고제기된것은 1925년동아일보에신채호의 전후삼한고, 평양패수고 등이발표되면서부터로알려져있다. 5) 이후최남선, 정인보, 안재홍등이른바 국학 계열학자들의조선고대사관련글들이발표되면서단군은민족주의의중심적표상으로부각된다. 주목할것은식민지시기국학자들이그린단군의초상에서민족의국조라는특수성의기원으로서뿐만아니라바로그민족이라는특수성을넘어서는보편에대한열망을확인할수있다는점이다. 단재의조선고대사의서술 4) 최남선은 1926년동아일보에연재한단군론에서일본인들의단군론을위의명명을사용하며정리하고비판하였다. 또한백남운도최남선류의단군론을 환상적인독자성 으로비판하면서동시에일본인학자들의단군말살설에대해서도 합리주의적인假象 ( 백남운, 29쪽 ) 이라비판한바있다. 일본인연구자들의 단군말살설 은해방이후중국산동성가양현에서발견된 武氏祠石室畵像石에보이는단군신화 에의해무너졌다. 단군신화와대체로동일한이야기가여기에그려져있었는데이석실은기원후 2세기에만들어졌고, 그원본은기원전 2세기까지소급되는것으로밝혀졌다. 그내용은김재원, 단군신화의신연구, 정음사, 1947에서최초로소개되었다. 5) 이들논의는 동아일보 에연재된 조선사연구초 (1924.10.13~1925.3.16) 의시리즈의소논문으로수록되어있다. 1929년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조선사연구초 로간행되었다. 단군, 조선학그리고과학 5
에서잘드러나듯이, 고조선은광대한영토를영유하고중국과대등하게존재했거나혹은오히려그것을압도하는제국의형상을띤국가로현현한다. 단재는부여족의고대국가들즉고조선, 부여등을중국영토대부분을영유하는대국가로제시하고, 마한, 진한, 변한의전삼한의위치를요동지역으로설정하는등조선고대사의강역을확대시켰다. 또한중국문화를타자로삼아단군을기원으로하는한민족고유의문화적원류를구성하여그것이이후국선도, 화랑도, 풍류, 낭가등으로계승된것으로설명한다. 이미많은연구들이지적했듯이, 단재의고대사인식에는사회진화론과제국주의의논리가도사리고있는것이거니와, 그것은힘이라는왜곡된형태의보편성에대한욕망이내재해있는것이라고할수있다. 이러한고대의낭만화는민족주의적원류를구성하는방식을보여준다는점에서도흥미롭지만, 그것이민족의경계를넘어세계사적보편과접속하는, 혹은보편을자처하는상상력으로발전했다는점에서더욱주목될필요가있다. 1925년도에발표된최남선의 불함문화론-조선을통하여본동방문화의연원과단군을계기로한인류문화의일부면 6) 은이런측면에서특기할만하다. 최남선은 동양학의진정한건립은조선을중심으로하여조선의비밀의옛문이열림을기다려비로소시작 7) 된다고주장하며, 단군 ( 문화 ) 를조선의건국신화로서만이아니라일본을포함하는동방문화권의공통의표상으로제시한다. Park( 밝 ) 이라는神을뜻하는고대어가산악에남아있는양상을통해남으로는오키나와 [ 琉球 ] 로부터일본, 조선, 동부중국, 만주, 몽고, 중앙아시아, 발칸반도에이르는광활한권역을동일한문화권으로해석하며조선역사 6) 최남선, 불함문화론: 조선을통하여본동방문화의연원과단군을계기로한인류문화의일부면 ( 윤재영번역 ), 고려대아세아문제연구소편, 육당최남선전집 2권, 동방문화사, 2008 참조. 7) 최남선, 위의글, 43쪽. 6 한국학연구제 28 집
의출발점인단군신화를이동방문화의연원을드러낸것으로설명한다. 천강신화와태백산 ( 밝 ) 이조선과일본에공통된다는주장에는일선동원론이자리하고있고, 이것은 1930년대이후범아세아주의로확장되며내선일체의논리로활용된다. 8) 최남선의불함문화론은그 비과학성 과이러한일선동원론의요소들때문에당대에도큰비판을받았다. 여기서는그시비를떠나최남선이단군을조선민족의특수성의기원이면서동시에보편성의매개로구성하는방식에대해주목해보고자한다. 지금-현재의조선사의굴종과결핍과대비되는영광의고대에서세계사적인문화권으로 불함문화 ( 동방문화권 ) 를구성하려는시도는단군을조선민족이라는특수한공동체의기원으로설정하면서복수의세계문화권의중심으로구성하려는보편화에대한욕망이동시에투사되어있는것이기도하다. 흥미로운것은이러한논의구조가중국문화를타자화하면서새롭게 동양 이라는지정학적권역을창안했던동양사학의담론틀을연상시킨다는점이다. 9) 단군신화의해석을두고서는최남선과시라토리 [ 白鳥庫吉 ] 는대립적인견해를가지고있었지만, 중국을타자화하고복수의보편사속에서특권화된자신을중심에두는보편의일환으로서동양 ( 동방문화권 ) 을구성해가는방식에서는공통점을발견할수있다. 이글이일본어로쓰여졌다는사실은각별히강조될필요가있다. 10) 일본인독자를향해 8) 가령최남선의 神ながらの昔を憶ふ ( 新時代 7 輯, 1941. 7) 은민족적주체성의보증이었던단군이일선동원론으로노골화되는과정을보여준다. 이글에서최남선은불함문화론의동방문화권에대한논의를재연하면서 비아세아적위협 에직면한시국의중대함에올바르게대응하는것은고대문화의본원성을회복하는것, 즉일선동원론에입각한내선일체의완성에있다고암시하고있다. 9) 동양사학의제도적정착과정과권력과의공모에대해서는 Stefan Tanaka, Japan s Orient: Rendering Pasts into History(Californi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3); 스테판다나카, 박영재 함동주역, 일본동양학의구조, 문학과지성사, 2004 참조. 10) 최남선의 불함문화론 은 朝鮮及朝鮮民族 1집, 조선사상통신사, 1927에발표된논문이다. 朝鮮及朝鮮民族 은 1920년대한국지식계를대표하는인사들이필자로나서서조선 ( 민족 ) 에대한과거와현재, 각지의풍속그리고장래에대한전망에이르는지식을 단군, 조선학그리고과학 7
야심차게발화된불함문화론은새로운보편으로동양을창안하는제국의동양사에동방문화권이라는유사담론을제시하며자기증명을도모한것이라고해석할수있다. 그가제시한불함문화론은 1930년대이후일본제국주의의범아세아주의의아류로전락해버린다. 그렇지만민족이라는특수성의영역을보편성과조우시키려는식민지지식인의보편지향의한양상을보여준다는점에서그의불함문화론은여전히논의의여지가있다. 최남선의사례에서보듯이, 단군신화에대한해석은조선사라는특수성을어떻게세계사와만나게할것인가라는문제와도긴밀하게결부되어있다. 최남선의단군론을비판했던마르크스주의자들은단군을매개로조선사를세계사와접속시키는또다른담론을선보였다. 가령, 사적유물론의틀속에서조선사를설명한백남운의그유명한 朝鮮社會經濟史 11) 의실질적인서장에해당하는 제2장단군신화에대한비판적견해 는대표적인사례이다. 백남운은 단군신화는문헌상에나타나는가장오래된건국신화인만큼귀중한사료이다. 그러나그것을실재화하거나신비화해서는안된다 12) 고언급하며 삼국유사 와 세종실록 의단군신화에대해여러분과학문의방법론을활용하여분석하면서단군이특정한인격자나민족시조가아닌농업공산사회붕괴기원시귀족인남계추장이라고주장하였다. 그는조선민족의발전사가결코단군신화에서시작되는것이아니며그것은기껏해야우리원시사회의발전사에서역사적인지표에불과하고, 농업공산체의발전과정을암시하는점에서역사적중요성이인정된다고언급한다. 백남운은단군신화를 인간의현실적인관계의세계사적유사성의표명 13) 이라이해한다. 보편적인발전사관 망라하며 조선 ( 민족 ) 을구성하고있는단행본으로 1920년대의 조선학 혹은 조선연구 를가늠할수있는저술이다. 이에대한분석과논평은다른지면을기약하겠다. 11) 白南雲, 朝鮮社會經濟史, 改造社, 1933. 여기서는백남운, 박광순역, 조선사회경제사, 범우사, 1989를인용함. 12) 백남운, 위의책, 27쪽. 8 한국학연구제 28 집
인사적유물론의관점에서단군신화는원시사회의발전사에서비교적후기에생긴변화를나타내는계급적이데올로기이다. 삼국유사 의단군신화는농업공산체의붕괴과정을, 세종실록 의단군신화는생산력의비약적인발전및고구려의건국과정을간파하는기록이라고간주된다. 이러한사유는김태준의 단군신화연구 에서도거의유사하게반복된다. 김태준은 신화도스스로어느정도까지의세계사적공통성을가지 14) 므로신화를근본에서부인, 말살하려고해서는안되고, 그신화를편찬한당시사회관계의반영이라는사실을염두에두고그역사적보편법칙에비추어해석해야한다는견해를피력한다. 백남운, 김태준등의논의는단군신화는고조선의발상신화이고단군시대는조선역사의초기단계를알려주는지표임에는틀림없지만, 원시공산사회의붕괴와모계사회에서부계사회로의전환기남계추장의확립에대한전설이봉건및자본주의사회에와서그시대의외피를입고나타나게되었다는견해로요약할수있을것이다. 이들의단군에대한논의는신채호나최남선과는다른차원에서보편을향한욕망과밀접하게관련되어있다. 일원론적발전사를전제로하는사적유물론의맥락에서원시공산사회에서고대노예제사회, 봉건제로의보편적이행단계가조선사에서도존재했다는것을논증하려는목적으로구성된 조선사회경제사 의체계안에배치된 단군 ( 신화 ) 는그자체로조선사가지니고있는보편성의증표이다. 15) 백남운은마르크스주의라는보편과 ( 역사 ) 과학의이름으로 13) 백남운, 위의책, 29쪽. 14) 김태준, 단군신화연구, 조선중앙일보 1935.12.6~12.24. 여기서는이기백편, 단군신화논집, 새문사, 1988, 199쪽참조. 15) 김태준이지적하고있듯이, 현존하는최초의기록인삼국유사에서의단군신화에대한묘사에서고조선의건국시기를고고학적발견들이추정하는고조선의건국시기와다르게요 ( 중국 ) 임금시대로소급하여설정하는데에는중국만큼오랜역사를지닌공동체로서의자긍이투사되어있다고할것이다. 후대에단재와최남선, 안재홍등이단군을기원으로하는특수한공동체의경계를구성하는것도몽고라는외세하의일연의그것처럼식민지하에서민족의역사성을강화하려는시도와관련될것이다. 단군, 조선학그리고과학 9
사적유물론의맥락에서조선사의특수성이세계사적보편성의맥락과동일한계통구조를밟고있음을논증하고있으며, 김태준의장문의단군론역시이러한계보안에서단군의해석을통해서 조선사 의특수성을보편성과조우시키고있다. 16) 단군을가로지르는이러한일본 / 조선의지식집단의논의는그대로당대 조선학 을둘러싼학술진영과중첩된다. 단군의논의를통해서알수있듯이, 식민지학술장의 조선학 은조선이라는특수성을탐구하는민족주의적학술의범주만으로는충분히해명될수없다. 조선 이라는특수성에대한관심의저변에는당연하게도보편과의조우와그에대한열망이함께존재하고있었다. 특히 과학 이라는보편의표상언어를통해이러한보편성의획득이가능한것으로인식되었다는것은흥미롭다. 이를테면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비과학적이라고비판받는최남선도자신의불함문화론이최신의민속학적, 인문과학적연구방법론을이용하여쓰여졌다고강조했다. 이어지는장에서는조선학과이러한 과학 이라는보편표상이교차하고있는당대학술계의문제를검토하고자한다. 2. 조선학 ( 운동 ) 논의에대한재고 위에서살펴본단군을둘러싼논의의지형은한국의학계에서근대학술의기점으로간주하는 1930년대 조선학운동 을중심으로설명해온학술장의지형을압축하고있는것이기도하다. 조선학 ( 운 16) 보편주의 를하나의세계사적폭력이라고본다면, 스스로보편성을참칭하는 보편주의 는 법정립적폭력, 그러한 보편주의 에기대어내부에자리할수밖에없는 특수주의 는 법집행적폭력 이라고도언급할수있을것이다. 최남선의 불함문화론 은일본동양사의동형의구조에서근원적인보편성을단군에투사하고자한다는점에서 법정립적폭력 으로, 마르크시즘의보편법칙에부합하는조선사의특수성을구성하는마르크시스트들의논점은 법집행적폭력 이라고도분류할수있을것이다. 10 한국학연구제 28 집
동 ) 논의에관한연구사정리에서신주백은 사실이란측면에서말하자면, 조선학운동이란 1934년다산정약용의다산서세 99주년기념사업을계기로본격화한문화운동 17) 이라고기존연구들의 조선학운동 에대한개념규정을요약한바있다. 한국의학계에서는안재홍, 정인보등의비타협적민족주의자들이주창한이운동을중심에두고 1930년대식민지조선의학술장을대략 4개의학술그룹으로정리하는관행이반복되고있다. 18) 식민지학술계에대한이러한역사상은과연타당한것일까? 민족주의운동사의일환으로 조선학운동 을의미화하면서, 한편으로는지식사연구를위한지도그리기 (mapping) 를위해시작되었을이러한학술장묘사는이른바 국학적 전통을근대학술의중심에두고해방이후의학술을그연속성위에서계보화하고자하는연구자들의가치의식이투사된측면이강해보인다. 19) 이방면의연구에서가장중요한참조가되는이지원은 17) 신주백, 조선학운동 에관한연구동향과새로운시론적탐색, 한국민족운동사연구 67, 2011, 168쪽. 18) 조선학 진흥운동을연구한전윤선은이시기 조선학 의흐름과그에대한대응을크게네계열로나누고있다. 그에따르면, 1934년 9월 다산서세 99주년기념사업 을계기로조선학에대한다양한관심이촉발되었는데, 이로부터 (1) 안재홍중심의 조선학운동 계열, (2) 조선학자체를무시하는극단적인마르크스주의계열, (3) 정치색을배제한채순수학문적차원에서조선문화를연구하고자한이병도중심의진단학회, (4) 조선학운동의관념성에반대하면서도과학적인입장에서비판적조선학의진흥을주창한백남운, 신남철등의마르크스주의계열의서로다른대응이파생된다. 그는이가운데 조선학 의진흥을운동의차원에서접근해간것은안재홍중심의 조선학운동 과백남운중심의 과학적조선연구론 이었다고평가한다. 전윤선, 1930년대 조선학 진흥운동연구 : 방법론의모색과민족문제인식을중심으로, 연세대석사논문, 1999, 9~13 쪽참조. 조선학운동 중심의식민지학술사에대한설명은이지원의일련의논문들에서도확인할수있다. 조선학운동과관련된자신의논문을종합한내용이라할 1930년대 조선학 논쟁, 논쟁으로본한국사회 100년, 역사비평, 2000에서정인보안재홍의 조선학운동 을중심에두고 4개의학술진영을구분한후이들과백남운계열의조선학연구를중도노선의민족통합의학술로파악하고있다. 안재홍, 정인보의조선학운동을 1920년대이래의조선일보중심의비타협적민족주의운동으로파악하는논의는 한국근대문화사상사연구, 혜안, 2007 등에자세히드러나있다. 이에대한비판적검토는본문에서진행하도록한다. 19) 실학 ( 양명학 )-민족주의적조선학운동 ( 국학 )-한국인문학 으로이어지는이러한계보화는냉전체제하에서식민지시기마르크스주의적인학문전통을소거하고구축된것이다. 일례로박희병은 통합인문학으로서의한국학 ( 21세기한국학, 어떻게할것인가, 푸른 단군, 조선학그리고과학 11
조선학운동을설명하며 비타협적민족주의자 와조선일보의연계를통한 조선학운동 과, 타협적민족주의 진영이동아일보와연계하여문화혁신을통해민족문화선양을위해벌인위인선양 고적보존운동을대립시킨다. 20) 이를테면현상윤의발언에대한해석은그한사례이다. 현상윤은 조선연구의기운에제하야 ( 三 ): 조선학이란 명사 에반대-현상윤씨와의일문일답 에서 조선학 이라는명사가 한나라이름밑에다가學字를붙여가지고부르는것은마치英佛등의학자들이埃及을연구할때에에집토로지라는말을쓰는것과같아서퍽불유쾌합니다. 말하자면남을경멸히여기는데서나온말이지요. 21) 라고적고있다. 그는조선을 한개의연구대상으로하야 한데모아서 연구하는것이아니라문화의각부문을전문적으로연구하는것이온당하다 고설명하면서그것을 조선문화연구 라고부르자주장한다. 조선학 과 조선문화연구 는다르지않냐는기자의지적에그렇다면그것을 조선정신의학 이라든가 조선혼의학 이라고부르자고응수하고있다. 이러한현상윤의언술에서 문화의각부문을전문적으로연구 하는진단학회설립취지와부합하는 조선문화연구 와정인보의 조선얼 을떠오르게하는 조선정신의학 조선혼의학 이라는용어는당대적맥락에서는각기다른연구의태도를표시한다. 22) 이지원은현상윤의이발언을 진단학회의찬조회원 역사, 2007) 에서식민지시기의학문을 국학1 ( 실학및양명학등의 전통지식 과연결된정인보등의조선학 ) 과 국학2 ( 경성제국대학및유학생들의근대학문 ) 로구분하고 국학 1 의전통적학문의통합적사유방식에서한국인문학의기원을찾는계보화를수행하고있다. 근대학문혹은근대성의신화속에사장된전통적인지식의통합적사유를되살리려는의미를평가할수있지만, 한편으로는이러한계보화는냉전적사유와도연관되어있다는점을지적하지않을수없다. 실학-좌파적맥락의과학적조선연구-북한의사회과학 으로이어지는또다른계보화역시도식민지시기의 조선학 의지형을이데올로기적으로맥락화하면서구성된것이다. 본론에서언급하겠지만근대성을매개로창조된실학- 조선학의계보는이른바좌, 우파가 조선 이라는특수성을보편성속에서설명하고자하는열망속에서공동으로구성해낸것이라고할것이다. 20) 이지원, 한국근대문화사상사연구, 혜안, 2007의제4장. 21) 조선연구의기운에제하야 ( 三 ): 조선학이란 명사 에반대-현상윤씨와의일문일답, 동아일보, 1934. 9. 12. 12 한국학연구제 28 집
이었던현상윤은조선학이라는포괄적개념을설정하기보다는문화의각부분을전문적으로연구하는것이우선되어야하므로, 조선학이아니라 조선문화연구 가타당하다고주장했다 23) 고언급하며그의발언을 조선학운동 에대한동아일보및진단학회의정치적성향의발화로해석하고있다. 진단학회의핵심상무위원인이병도, 신석호, 손진태등이경성제대법문학부소속교수를비롯한재조일본인지식인들이주도한청구학회위원 16명에속했다는점에서 조선학운동 의맥락에서 진단학회 를비판하는것은이해되지만그것을그대로진단학회전체의이념적통일성에기반을둔발화로규정하는것은무리가있다. 특히찬조회원들은학문에대한특정한이념적경향성을보인사람들이아니라 조선문화 에대한연구의취지에공감하는조선인유지들을망라하고있다. 예컨대, 찬조회원의명부에서현상윤의옆자리를차지하고있는것은홍명희였다. 동아일보 = 타협적민족주의자 / 조선일보 = 비타협적민족주의자 라는도식속에서는현상윤이 조선학 이라는명사사용에반대한것은조선일보계열의비타협적민족주의자들의조선학운동에대한반대로만해석된다. 그렇지만적어도 조선학운동 에있어서만큼은동아일보 / 조선일보를타협적 / 비타협적민족주의로구분하여각각의미디어에일대일로직접대응시키는것은자의적인구분일수밖에없다. 조선학운동 의중요한상징이었던정약용관련의글들, 가령다 22) 여기서현상윤이식민지학으로강하게부정하는 에집톨로지 가여하튼근대서구가하나의지역을총체적인단위로설정하여근대적인학문방법론에입각한다양한학문분과들을종합하여분석하는체계학문의틀을지니고있다는점을인식하는것이중요하다. 현상윤이 --톨로지 에보이는거부감은 1930년대이후새롭게육박하는마르크스주의혹은실증주의등의아카데미즘에서훈련된새로운세대가제시하는 체계 에대한반감이섞여있는것일지도모른다. 1922년제2차조선교육령의개정이후이전의지식세대와는다른감각을지닌새로운지식계급이양산되었다. 그들이조선사회의각영역에진출한것이 20년대후반 1930년대초반이라는점을염두에둘필요가있다. 1930년대의학술문화장의담론에는이러한세대간의감각의차이와헤게모니각축의흔적이각인되어있다. 23) 이지원, 1930년대 조선학 논쟁, 논쟁으로본한국사회 100년, 역사비평, 2000, 135쪽. 단군, 조선학그리고과학 13
산서세백주년기념학술논문등은동아일보에실렸으며, 조선학운동 의중요한이념적기반이되는정인보의 오천년간의조선의얼, 양명학연론 이발표연재된지면역시도동아일보였다. 조선학에대한안재홍, 현상윤, 백남운과의대담이실린다거나, 기자인신남철이기획한여러조선학관련학술들이게재되고, 객원인백남운을위시하여김태준, 홍기문등의마르크스주의에기반을둔조선학연구에관한글들도지속적으로실리는등, 동아일보역시 조선학 이라는범주에대해서지속적인관심을보이고그학술담론을확산하고있다는점에서이러한매체를매개로한구분은재고될필요가있다. 이것은신간회성립과해소로이어지는 1920년대말 30년대초엽의운동사의맥락에서 조선학운동 을중심으로당대역사상을재구하면서생긴현상으로보인다. 조선학 이근대적전통 ( 재 ) 구성이라는민족적자기정립의학문적표현이었다는점은분명하지만, 이때 조선학 은근원적으로 조선 이라는특정한역사적장소와 ( 과 ) 학 이라는보편적언술체계사이의이율배반적인균열을전제하게된다. 가령, 앞서살핀백남운등의단군론은이러한특수성을어떻게보편적인담론질서안에서설명할것인가라는특수 / 보편의긴장관계위에설정된논의이다. 기존의 조선학 에관한연구들은 조선학운동 의내부혹은 조선학운동 을중심으로한배치속에서당대의학술계를파악해왔다. 그렇지만필자의판단으로는이시기학술계를경계지은것은 과학 ( 성 ) 이라는새로운표상언어였다. 알다시피과학은근대의특권적개념중하나로그권위를상실한적이없었지만정작그명확한규정이어려운것이기도하다. 과학은근대적분과학문전체를통칭하기도하며여타의분과학문중하나를지칭하기위해사용되기도한다. 1930년대초반식민지조선의인문학술장에서특히두드러지게사용되기시작한 과학 ( 성 ) 은보편을표상했으며, 특히아카데미즘과마르크시즘을지반으로작동한용어이기도했다. 이러한과학 ( 성 ) 이제국학술제도 14 한국학연구제 28 집
와연계된전문적인지식을기반으로하거나그것과의경쟁의식속에서발화되고있다는점은강조될필요가있다. 이를테면, 앞서언급한 朝鮮經濟史硏究 의서문에서백남운은자신의저술이, 조선경제사에최초로착안 했으나 조선에있어서의봉건제도의존재를완전히부정한점 에서승복할수없었던자신의스승福田德三박사와, 계 를중심에둔 朝鮮經濟史 를간행하고 자신의연구를무용지물로만들어줄 조선인의연구를기다리고있던선배猪谷善一의자극에서비롯했으며, 나아가그에대한대항으로이루어졌음을밝히고있다. 24) 일본 ( 인 ) 의학술을대타자로한이러한인식은 근래조선 ( 문화 ) 를연구하는傾向과盛熱이날로높아가는상태에있는것은참으로敬賀해견디지못하는바이나, 그런경향과성열이조선인자체에서보다조선인이외의人士간에더많고큼을발견 25) 하게되는상황을반성하며 1934년 5월에설립된진단학회의창립취지에도드러나있다. 여기서진단학회의설립자들이의식하는조선연구의경향과성열의고조가 조선인이외의인사간 에서발견된다는언급은기본적으로 조선학운동 을중심에두고그에대한태도를바탕으로당시학술장을구성하려는것이당대지식인들의인식과는차이가있다는것을일러준다. 이들의발화에는제국 내지 및경성 24) 백남운, 조선사회경제사, 서문. 개조사의경제학총서의한권으로발간된이책이아카데미즘의일본인독자를대상으로하고있다는점에대해인식하는것이중요하다. 백남운저서의서문이일러주듯이이러한일본인연구자들의조선에대한연구는당대에광범위한영향을끼쳤거니와, 김태준도 진정한정다산연구의길 ( 조선중앙일보 1935.7.25~8.6. 여기서는정해렴편역, 김태준문학사론선집, 현대실학사, 1997을참조함 ) 에서猪谷善一의 조선경제사 에서 계 의중요성을언급하는장면을인용하면서, 이것을간파한정다산 이계에대한여러연구를수행했다고설명하고있다. 김태준의무의식적발화에는猪谷善一의 계 에대한분석이아카데미즘의학술로근대적, 과학적정당성을가지고있고그것을전제로하여, 정다산이근대과학적학문론이발견한이러한 계 가조선경제에서지니는중요성을간파했다는사유방식이드러나있는셈이다. 이어지는서술에서도黑正岩의 경제사논고 로부터출발하여다산의계에대한논의의위대성에도달하는방식이재현된다. 단군론에서도佐久達雄의 日本古代社會史 를인용하며신화의과학적해석의논거로삼고있다. 25) 진단학회창립, 진단학보 제1권, 1934. 11. 28. 단군, 조선학그리고과학 15
제대, 청구학회, 조선사편수회등제국-식민지의학술제도와아카데미즘을배경으로한일본인들의조선연구에대한수용과대타의식이병존한다. 특히제국과식민지의대학에서훈련된조선지식인들이아카데미즘을장악한일본인학자들에뒤지지않는, 혹은그것을넘어서는조선연구와조선어학술을어떻게구성할것인가라는문제의식이당대식민지학술장의중심에놓여있었다. 26) 백남운으로대표되는사회경제사연구의경향과진단학회가학문적방법론과세계관이라는차원에서적대하면서도공유하고있었던어떤지점이여기에있었다. 27) 이때학술의전문성의기반은각각내포를달리하는 과학 혹은 과학적연구 라는이름으로공유된것이었다. 28) 26) 잘알려져있듯이, 조선인은유일한대학이었던경성제국대학 ( 법문학부 ) 의교수직진입이막혀있었다. 대학제도안에서조선어학술은허용되지않았으며, 경성제대일본인학자들의관학에대항하는조선인의학술진영은대학제도밖에서마련될수밖에없었다. 연희전문의상과연구회와 경제연구, 보성전문의 보성학회논집 의간행, 진단학회의설립과 진단학보 의간행, 경성제대출신자들의학술지였던 신흥 이나당대철학연구자들을망라했던 철학연구회 (1932) 와그동인지 철학, 조선경제학회의창립 (1933), 전문학교에재직중인조선인최고의지식인들을동원하여각신문사가주최한순회강연등은대학제도밖에서구성된 식민지적아카데미즘 이라고명명할수있는것이었다. 필자는신남철과경성제국대학의관계를고찰하면서, 제국의아카데미즘에서소외된식민지지식인들의학술적모색을 식민지적아카데미즘 이라고언급한바있다 ( 정종현, 신남철과대학제도의안과밖, 한국어문학연구 54집, 2010. 2). 이러한개념을보다발전시켜식민지학술장을도해하고있는최근의연구로홍종욱의 식민지아카데미즘 의그늘, 지식인의전향, 사이間 SAI 11호, 2011. 11을참조할수있다. 27) 마르크스주의를자신의방법론으로삼은김태준과신남철은자신의세계관및학문방법론과다른진단학회와관계를맺는데이는그들이경성제대라는아카데미즘출신이라는사실과관련된다고할수있다. 김태준은진단학회의발기인으로상임위원을맡았지만글을남기지는않았고, 신남철은 진단학보 제3권 (1935) 에덴마크의역사학자 Kristian Erslev의 Histoische Technik 를 역사연구의방법 (1) 이라는제목으로번역소개하고있다. 이번역은단 1회로중단되었는데, 그이유는찾을수없었다. 해방뒷날설립된조선학술원이백남운의사회경제사연구계열의연구자들과이병도중심의진단학회의결합위에서구성될수있었던한이유도이러한아카데미즘에기반한전문성에대한공유감각이작용하고있었다고할수있다. 28) 근대적인학문체계안에서조선에대한지식을생산하는것은문화적시민권을획득할수있는가능성을지닌것이면서, 동시에보편의입장에서지역이대상화되기때문에오리엔탈리즘의인식으로귀결될위험에노출된다. 특히, 일본의아카데미즘이동양학의일환으로구성한 조선학 은일본을중심으로아시아안에서의위계를재구축한동양사학의체계안에서재맥락화되었다. 마르크시즘이라는과학을매개로이러한식민주의자들의조선학을극복하고자하는시도도사적유물론이라는보편의체계에자신의몸을 16 한국학연구제 28 집
1930년대학술장을이해하는핵심은 조선적인것 이라는특수성에대한관심의고조라는현상뿐만아니라, 그연구대상을둘러싼 과학 이라는보편의표상언어를둘러싼경합에있었다. 자기를보편으로구성하는한방법이보편적방법론으로서의 과학 을통해자기안의보편을발견하는것이었다. 과학이라는보편적방법론을통해역사발전의보편성안에서 조선 ( 사 ) 이라는특수를어떻게위치짓고처리할수있는가? 29) 나는이문제가 1930년대조선지식인들의학술행위의기반에놓여있었던핵심이라고판단한다. 3. 두개의 국학 과 진보 라는보편의감각 조선학운동 의주창자로알려진안재홍은아래와같이 조선학 을學的체계로구성하고자했다. 조선학 의외침이가끔노픈것이이지음우리사회의한경향이다. 애급학지나학하는따위로조선학이란것은좀당치안흔말이라고주장하는분이잇스니그말이올타그러나또무슨學하면서일개의동일문화체계의단일한집단에서그집단자신의특수한역사와사회와의문화적경향을탐 맞추면서또다른형태의내부오리엔탈리즘의시선을발생시키게되는측면이있다는점도부기해야만할것이다. 29) 진화론을포함한일원론적세계관은이문제를단일진보사관위에다양한시간의차이에의해서인식하고있다고말할수있을것이다. 이글의중심주제가될마르크스주의의 역사과학 의이문제에대한답변은백남운의다음과같은인식에압축되어있다. 즉역사과학의유일한특수성은사회의역사발전단계의특수성이며, 이것은환상적특수성이아니라현실적인특수성이므로실제로발전그자체에의하여하나의계기적 (Nacheinander) 연관을이룬다. 우리나라역사발전의전과정은지리조건, 인종학적인머리모양, 문화형태의외형특징등약간의차이를인정하더라도이른바외관의특수성은다른문화민족의역사발전법칙과구별시켜야만하는독자적인것은아니고, 세계사의일원론적역사법칙을통하여다른모든민족과거의비슷한발전과정을거쳐온것이다. 그발전과정의완만한템포, 문화상들의특수한濃艶은결코본질의특수성은아니다. ( 백남운, 앞의책, 23쪽 ) 단군, 조선학그리고과학 17
색하고구명하려는學의부문을무슨學이라고한다면그런의미에서조선 학이란숙어를우리가마음노코쓸수있다. 30) 여기서 애급학지나학따위로조선학이란것은좀당치안흔말이라고주장하는분 은 조선학 이무엇인가라는주제로동아일보의 T 기자와대담하는기획특집인 朝鮮硏究의機運에際하야 에서 조선학 이라는용어에비판적이었던백남운과현상윤을지칭하는듯하다. 31) 동일한대담에서안재홍은 조선의고유한것조선문화의특색, 조선의독자한전통을천명하야학문적으로체계화 32) 한다는의미에서 조선학 이라는용어를정의한다. 이후 동일문화체계의단일한집단에서그집단자신의특수한역사와사회와의문화적경향을탐색하고구명하려는學 으로규정되는 조선학 의정의에서근대학문체계안에서조선이라는동일자를구성하려는욕망을읽을수있다. 안재홍에따르면, 이러한 조선학 은 조선역사를기초로하야연구 되어야하며문집등의문헌을통해그독자성이구명되어야하는대상이다. 안재홍의조선과관련된학문관 역사관에서근대일본의학문이 국학 을구성한담론을떠올리는것은어려운일이아니다. 잘알려져있듯이일본의근세국학은 歌 를둘러싼논의에서시작해, 그로부터상상의공동체로서의언어적 ( 민족적 ) 공동성의문제들을새롭게구성하는국민내셔널리즘의성립과깊게관련된운동이었다. 33) 이글이관심을갖고있는것은일본국학의역사적전개라기 30) 樗山 ( 안재홍 ), 조선학의문제, 신조선 7, 1934. 12, 2쪽. 31) 백남운역시서구에서의 지나학 애급학 등의관습적용어들을연상시키는 조선학 에대해서비판적으로성찰하고있다. 현상윤도 조선학 이라는용어가연상시키는경멸적의미, 이를테면애급의뒤에학문의톨로지를붙이는에집톨로지와비유하면서 조선학 에붙는오리엔탈리즘의의미를근거로이용어자체에반대했다. 32) 안재홍, 朝鮮硏究의機運에際하야 (2): 세계문화에조선색을짜너차-안재홍씨와의일문일답, 동아일보, 1934. 9. 12. 33) 국학운동은근세후기부터메이지초년기에있어서는 新神道運動 이라고도불러야할운동으로바뀌어, 문명개화- 근대화정책이나 정교분리 = 神道非宗敎論 의표면상의방침 18 한국학연구제 28 집
보다는근대학술이문헌학으로서국학을 발견 해, 스스로의前史에모토오리노리나가 [ 本居宣長 ] 에게집약된국학상을다시금위치지우는방식이다. 34) 일본의근대국학상정립과관련하여하가야이치 [ 芳賀矢一 ] 는결정적인역할을수행한것으로알려져있다. 뵈크의말에따르면, 문헌학이목적으로하는것은옛사람이안것을다시알려고하는것입니다. 다시말해, 옛날사람이의식했던것을우리가눈앞에다시꺼내어아는것이문헌학의목적이라는정의를내린것입니다. ( ) 정치 문학 법제 미술은원래그외모든사회상의사안을옛사람이알고있던대로, 지금의사람의눈앞에보이게하는것이이학문의목적입니다. ( ) 그를위해선먼저옛말을연구해나가지않으면안됩니다 ( ) 고어를아는것을첫번째단계로하여이미배워얻은고문학의지식으로, 그사회전체의정치 문학 어학 법제 역사 미술등의모든사안을, 한마디로하자면고대문화일체의사안을안다는것이문헌학자의일입니다. 바꾸어말하면, 하나의국민전체의사회상의생활상태, 활동상태를과학적으로, 학술적으로연구해안다고하는것, 이것이문헌학의목적이라할수있습니다. ( 중략 ) 나라라는것을근본으로하여모든것을연구한다, 국가가전체의총괄이된다, 이것에의해, 문헌학은훌륭하게성립하는것입니다. ( 중략 ) 그리고이도역시독일의대가입니다만, 빌헬름훔볼트라는학자가있습니다. 이사람은문헌학을 ( 중략 ) 국학이라고명명한것입니다. ( 중략 ) 그국민을외부의국민과구별하는것이국학의목적이라고훔볼트는보다명료하게말하고있습니다. 모든나라에는그나라특유의특성이있다, 그특성을지적하는것이국학자의역할입니다. ( 중략 ) 지금의학문은세계적이고국민적은아니다, 세계적이기때문에만국공통이다, 라는것에는문헌학의연구가필요하지않습니다. 그러므로국학 을내세운국가신도체제앞에서좌절하게된다. 34) 이상의국학과일본내셔널리즘의관련양상에대해서는가쓰라지마노부히로, 김정근 김태훈 심희찬역, 동아시아자타인식의사상사, 논형, 2009, 72~72쪽참조. 단군, 조선학그리고과학 19
은그연구의범위를고대에두지않으면안됩니다. 고대일수록국민적성 질을알기쉽습니다. 35) 야이치는문헌학으로서의국학을 발견 하고, 그것을계승하는일본문헌학을구축하면서노리나가를매개로국학과일본의근대문헌학을계보화했다. 독일유학에서귀국한후 1904년에행해진위의강연에서야이치는뵈크 (Bockh) 를인용하여 하나의국민전체의사회상의생활상태, 활동상태를과학적으로, 학술적으로연구해안다고하는것, 이것이문헌학의목적 으로 국가가전체의총괄 로그배경에있다고설명한다. 나아가훔볼트를인용하여 문헌학 = 국학 으로규정하고 국민을외부의국민과구별하는것 이국학의목적이고 그나라특유의특성을지적하는것 을국학자의역할로제시한다. 문헌을통해서조선의역사를이해하고, 그것을통해서독자적인전체로서의조선의특색을추출하는것, 특히 화랑도 등고대의본래적인조선색을구명하자고주장하는안재홍의 조선학 에대한인식과담론은하가야이치의담론에곧바로대응된다. 이러한 국학 적전통을다산정약용에게서발견하고그를매개로 조선학 의역사상을정립하여다시조선학을근대적학술로자리매김하려는 조선학운동 에서국학과노리나가를연결짓는모델이재연되고있음을확인할수있다. 백남운은이러한독일문헌학과일본국학그리고조선의역사학이맺고있는관련성에대해서다음처럼명료하게지적한바있다. 최근의우리선배들은조선사학을위해얼마나공헌했을까. 그들은문헌 고증을위해, 혹은고적답사및유물수집을위해심혈을기울이고있다. 물 론어느것이나필요한일이지만, 다른면에서보면우리사학의영역에서 35) 국학이란무엇인가 ( 芳賀矢一選集第 1 卷 ), 國學院大學, 1982. 가쓰라지마노부히로, 위의책, 77~78 쪽재인용. 20 한국학연구제 28 집
하나의새로운, 게다가불행한각인으로서의 특수사관 인외래품을일본에서수입한것도우리의선배들일것이다. 그특수사관인역사학파의이데올로기는신흥독일자본주의가영국에대항하기위한국민적운동의소산이었는데, 이것이신흥일본의자본주의적인국정과부합되어대량으로수입된결과일본의사학계는아무튼비약적인발전을하게된것이다. ( 중략 ) 그러나적어도관념적으로는조선문화사의독자적인소우주로서특수화하려는기도가비교적뿌리깊게습관화되어있다. 이러한종류의특수성외에이것과는외관상다른관제의특수성이라는것이별도로규정되어유포되고있다. 관인들의 조선의특수사정 이라는이데올로기가바로그것이다. 36) 백남운은자기학문을 과학 으로규정하면서조선문화사를 독자적인소우주로서특수화하려는기도 와 관인들의조선의특수사정이라는이데올로기 를그와대척점에있는 특수사상 에기반한두가지경향의사이비학문이라고비판한다. 관인들의조선의특수사정이데올로기 란경성제대일본인학자를중심으로한수량화와실증주의적학문방법론을비판하는것이거니와이에대해서는다음장에서상세히언급하겠다. 여기서주목하려는것은전자의 특수사관 인외래품인독일역사학파의이데올로기즉, 독일문헌학의일본적변형판에대한언급이다. 백남운이 우리선배 로지칭하는일본을경유한독일문헌학적특수사관에기반하여조선역사를구성한대표적인인물로는최남선, 신채호등을거명할수있겠거니와그외에도 조선얼 을강조한정인보나안재홍등의조선학운동의주창자들도동일한맥락에서비판하고있다고할수있을것이다. 그국민을외 36) 백남운은이러한독일문헌학에대한비판뿐만아니라羽仁五郞을참조하여 이론적으로는인문지리학적자연환경론, 인종학적특수문화론, 리케르트류의개별적문화가치론등도모두특수사관의특수이론으로조선의특수문화사를신봉하는사람에게있어서는최상의외래품으로애용되겠지만, 그것들은역사과학에있어서는본질적으로는무가치한것 ( 백남운, 앞의책, 21 쪽 ) 이라고규정한다. 단군, 조선학그리고과학 21
부의국민과구별하는것 이국학의목적이고 그나라특유의특성을지적하는것 이국학자의역할이라고주장하며그눈을고대에두어야한다는훔볼트의명제는최남선의단군론이나단재의고대사에대한열광을이해하는한단초를제시한다. 독일의국민주의와결합된문헌학과일본국학, 식민지조선의 조선학 ( 운동 ) 의관련성을지적하는것은민족주의계열의고전부흥열에내재한파시즘적성격에대한비판이암시되어있다고할것이다. 이를테면신남철은 현대의낭만적복고사상은개인적이고주관적이며나아가서는파씨스트적이기도한것이다. 현대의낭만적복고사상에는사실로파씨스트적쇼비니슴을만히가지고잇다. 나치독일의광신적행동성을보라! 그광신적행동성에지배되고잇는독일에서고대에의복고가문제되고잇다. 독일의복고주의자에관하여서뿐만아니라일본의그들에관하여서도이와같은말은할수가잇고또조선의그들도비판할수가잇다고생각한다. 37) 고적고있는데여기서도 독일문헌학 = 일본국학 = 조선학운동 이이어지고있다는인식이내재해있다고하겠다. 이처럼 조선학운동 이일본의 국학 과맺고있는관계에대한지적은백남운뿐만아니라마르크스주의의학문방법론을과학으로설정하고그에대한대척점에비과학적조선연구열을두고있는신남철, 김태준등의발언속에서도찾아볼수있다. 이를테면, 김태준은 1933년 5월에 조선학연구열이인풀레이션 38) 된현상을언급하면서조선학을국학적연구와사회학적연구로구분하며기미년이후조선사회의변화의맥락위에서국학적연구를낡은것으로표상하고조선학연구가 從으로는현계단에이르기까지의발전과정을분명히해석하여미래의예측에제공할만한資助가되어야할 37) 신남철, 복고주의에대한數言 : E. 스프랑거의연설을중심으로, 동아일보, 1935.5. 10~11. 38) 김태준, 국학적연구와사회사적연구, 조선일보, 1933.5.2. 22 한국학연구제 28 집
것이요, 橫으로는세계적학문으로서연락이있어야하고또거기서만학문의생명도있 다고주장한다. 이러한주장은조선사의특수성을보편성안에서사유하는양상을보여준다. 흥미로운것은김태준이자기역사를이해하면서도그것이세계적보편성과연결되는이러한학문의사례로곽말약의 중국고대사회연구 를거명한후, 일본메이지유신의원동력이되었다는모토오리노리나가등의일본적국학을비판하면서중국의국학을바람직한국학상으로주조하고있다는점이다. 신남철이 1934년 1월 1일벽두에쓴 조선학은어떠케수립할것인가 도 조선학 범주를구성하는데마르크스주자들이사용하는과학에대한감각과 국학 에대한묘한태도를보여주는글이다. 신남철은조선학이라는용어가 일부 국학자 들사이에서는이말이유행된지벌서오랫겠지만그것이공연히인구에회자되게된것은극히최근의일 이라언급하며, 새로운세대의조선에대한과학적지식을획득하려는노력은당연히종래거의고루하고관념적인방법에의하여연구되어오는조선의역사적문화에대한재음미를요구 39) 한다고주장한다. 조선학은조선의역사적연구로부터시작 되며이 역사적 이라는말이재래의조선의학자들에게는 비역사적 인 잡박하고표면적인고증과연대기로써이해 되었다고설명한다. 신남철이말하는 역사적연구의진정한의미 는 과학적필연성의법칙을객관적발전의속에발견하야서써제형태의교호관계를조직하고이해하는데있는것 이다. 그는편견없는사실로서의조선역사를천명하기위한 역사과학 의 3대과제로 (1) 역사의내면적원동력으로서의사회적생산관계를과학법칙에입각하여파악 (2) 현대적정황을고려한역사서술의기초적조건인사료문헌의선택 (3) 일정한 전체 속에서, 전체적관심속에서의서술 을꼽고있다. 조 39) 신남철, 조선연구의업적과그재출발 : 조선학은어떠케수립할것인가, 동아일보, 1934.1.1~7. 단군, 조선학그리고과학 23
선학은역사의사회적연구를기다 리고있다거나 민족적특수성 조선적특수성 을확립하고민족적유대를강화하는것이조선학이아니라는그의언급을통해서그가비과학으로비판하고있는조선학의실체가앞서살펴본일본국학과관련된조선학의흐름과연관되어있다는것을알수있다. 여기서보다주목할것은신남철이이른바 국학 을구분하는기준이다. 신남철은일본에서의국학과중국에서의국학에대하여전자를 국수적 후자를 진보적개혁적 이라고구분한다. 김태준과마찬가지로일본의국학을釋契沖, 荷田春滿, 賀茂眞淵, 本居宣長등의국가의식을기점으로한 皇國之學 또는 국학 으로구성하여일본고유의문화를선양하면서그것이명치유신에까지이르른과정을도해하고, 국학에대하여이단자로박해를받은양학이신일본의건설자로등장 한이후 前과학적 인국학이현대에는국수적반동적역할만을수행하게되었다고설명하고있다. 이에비해중국의錢玄同, 蔡元培, 胡適등의국학은보수적인국수주의를 國賊 으로규정하고 데모크라시와과학과모랄리티 로써새중화민국을건설하려했으며, 서양적내지자본주의적개인사상으로서신중국의지도원리를삼은이른바 민주주의적국학운동 이었다고설명한다. 40) 중국의국학운동은처음부터그들의 반식민지적사회환경때문에진보적 이었다고정리하며이국학운동이 반드시 40) 신남철이언급하고있는전현동, 채원배, 호적등은서구사상의영향을받은대표적인자유주의지식인들이다. 이들은중국사회의변화를위해서구의자유주의사상을받아들여점진적인개혁을추구하였고사회주의적인궁극적인해결을반대했다. 이에대해서는김정화, 1920 년대초자유주의지식인들의정치활동 - 호적의노력정치와채원배의불합작정치, 역사와담론 제 54 집, 2009 참조. 중국의국학도초기에는중국을보편문명으로인식하는 中學 으로부터출발하여이후중국적천하관이붕괴되며여러가지네이션중의하나로서의 국학 이라는인식이대두하였다. 이후신남철이중요하게거론하는호적에이르러서는 국고정리 라는개념으로중국의문화를서구적과학적체계와방법을통해재검토하여중국문명을재건한다는현대화, 보편화의담론이대두하게된다 ( 홍석표, 근대중국의 西學 수용의이념적논리와 國學, 중국현대문학 제 32 호, 2005). 신남철은이처럼과거의 국수 에얽매이지않고근대적인과학과체계적인학문방법에의해검증되어미래와보편을향해열려있는호적의 국고정리 의맥락을 조선학 의방향으로제시하고있는셈이다. 24 한국학연구제 28 집
오고야말다음의계단으로변환 했다고말한다. 이것은아마도 30년대의중국공산당의대두와사회주의적학술을의미할것이다. 신남철은일본의국학을복고적국수주의적인반동적사상과의결합으로, 중국의국학을개혁적진보적방향으로출발하여 보편적과학방법론으로서의사회과학적방법 에의한연구로전환되었다고정리하며 조선학 이중국의국학과같은것이되어야한다고주장하고있다. 신남철의논리전개에는마르크스주의의사적유물론에기반한진보의서사가배경으로자리하고있다. 당대의마르크스주의자의담론에서빠지지않는사적유물론에기반한 역사과학 이란, 원시공산제사회로부터공산주의라는일종의초월적세계를향해진행해가는역사의합법칙적발전과진보에대한비전을공유한다는점에서유토피아적충동을간직하고있는용어이다. 중국의 국학 을민주주의적국학운동으로정리하는것은자본주의단계에서사회주의로전환해가는이러한유토피아적비전의계선위에서발화되고있다. 41) 양명학에대한논의를통해실학을성리학으로부터구획지어근대성의학문으로구성하고, 정다산을현창하며조선학운동의이념적기반으로제시한것은정인보이다. 조선학을근대내셔널리즘과관련된학술운동으로발전시키는데안재홍의공로가큰것도분명한사실이다. 그렇지만여기서간과하지말아야하는것은정다산등을그시원으로삼아구성되는 조선학 의맥락에서이른바 국학 적전통이형성되는과정에마르크스주의자들의학문방법론과자기인식이결정적인영향을끼쳤다는사실이다. 백남운은 종래의 지나학 이란의미에본뜬 조선학 과우리가과학적방법을통하야보려는연구대상으로서의 조선학 과는구별 되어야하며, 조선의민족의식 41) 여러자료를읽으면서일본의학술제도속에서자신의학문적정체성을구성한마르크스주의계열의지식인들이당대중국의학술계의동향에깊은관심을갖고 조선학 혹은 조선연구 의내용과방향성을고민하고있다는점을확인할수있었다. 신남철, 김태준등의호적, 곽말약에대한관심은그한사례이다. 식민지조선의학술과당대중국학술계의동향과의관련에대해서는향후연구에서다루어보고자한다. 단군, 조선학그리고과학 25
을고조하는학문 이조선학이아니라 과학적정제 하에수립된 조선학 42) 이어야한다고주장했다. 그런의미에서의조선학이싹트기시작한때를숙종이후로설명하며 근세조선사상유형원, 이익, 이수광, 정약용, 서유구, 박지원등이른바 현실학파 라고도할수있는우수한학자가배출되어우리의경제학적분야에선물로서남겨준업적 43) 을언급하며 ( 현 ) 실학파 의실학을과학적연구의기원으로호명하고있다. 44) 백남운의담론속에서 과학적정제 하의조선학으로서의실학은근대성의형상을부여받는다. 이와동일한맥락위에서동시기의국학을일본적인퇴영적국학과중국의진보적국학으로구분하고이것을다시정약용과연결시키는김태준과, 결정론적인사적유물론의맥락에서자본주의단계의데모크라시와과학, 모랄리티에기반한중국의국학을긍정하는신남철등의논의역시도실학을조선이라는민족적동일자이자공동체에대한학문으로구성하며그것에진보라는발전의동력을부여하여실학을 진보적국학 으로범주화하는데사회경제사및마르크스주의가어떠한역할을했는가를보여준다고할수있다. 그런의미에서실학을한국적국학으로재구성해낸공적은정인보, 안재홍은물론이거니와, 근대성과진보를기반으로하는과학이라는학술적의미를부여한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도함께돌려져야한다. 이것이해방과분단이후남북한의학계가실학을공유하며나뉘어지는맥락을이해할수있는기반이기도하다. 1960년대이후자기내부의보편의표지로서 ( 자본주의적 ) 근대성을발견하고그것을진보의감각위에서설명하는내재적발전론의전사를 1930년대의조선학을둘러싼학계의논의에서찾을수있을것이다. 42) 조선연구의기운에제하야 ( 一 ): 조선학은어떻게규정할가-백남운씨와의일문일답, 동아일보, 1934. 9. 11. 43) 백남운, 조선사회경제사, 서문. 44) 실학이라는용어는최남선이가장먼저쓴것으로알려져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그용어가어떠한맥락에서사용되었는가가보다더중요하다고판단된다. 26 한국학연구제 28 집
4. 경합하는 과학 : 실증주의와마르크스주의 진단학회는 한국은물론그인근지역의문화에대해서도관심의영역에두고연구하는것을목적 으로출발한학술단체로, 그구성원대부분이현재한국학의기원으로간주되고있다. 이학회와연결된학문방법론이바로실증주의이다. 진단학회가실증주의적방법론을중심으로삼았다는것은사실일터이지만, 식민지시기의 진단학보 를일별하다보면이러한통념과어긋나는흥미로운존재들을마주하게된다. 유물사관을통해조선의문학사와역사를이해한김태준이진단학회의상임위원이었으며, 유물론적역사과학방법론에관한외국이론을소개하는신남철의번역이실리는가하면, 유럽유학출신으로유물사관에입각한고고학을전개하다가해방이후북한학계의중심인물로자리잡은도유호, 한흥수의고고학관련전문연구가게재되고, 역시해방이후마르크스주의비평을수행하다월북한김영건, 북한역사학계의주축으로자리잡는경성제대출신의역사학자박시형, 김석형등의사회경제사적맥락의연구물들도목격하게된다. 45) 식민지시기에간행된마지막 진단학보 인제14권 (1941 년 ) 의경우는 4편의논문필자가김석형, 고유섭, 박시형, 도유호로실증주의로맥락화되는진단학보의학술성격과는전혀다른구성을보여주고있다. 진단학회가순수학문을표방하며체제내적지향을보여준학자들을중심으로한학술단체라는사실은분명하지만, 그것을극단화하여이해하면그내부에공존하고있는유물사관에기반한학문방법론을추구했던여러연구자들의공존에대해서해명할길이막연해 45) 한흥수, 조선의거석문화연구 (3 권 ), 한흥수, 조선석기문화개설 (4 권 ), 신남철, 역사연구의방법론 (3 권 ), 도유호, 지나사회사상으로본공자와노자 ( 獨文 ) (8 권 ), 김영건, 안남보타산명고 (10 권 ), 도유호, 중국도시문화의기원 (12 권 ), 요세프헥켈씨의 토템 주의론 (12 권 ), 중국도시문화의기원 (2) (13 권 ), 김석형, 이조초기국역편성 (14 권 ), 박시형, 이조전세제도의성립과정 (14 권 ), 도유호, 중국도시문화의기원 (14 권 ). 단군, 조선학그리고과학 27
진다. 반복되는감이있지만, 이공존의기반은아카데미즘출신의전문학도이자새로운학문세대라는공유감각이다. 가령, 앞서살펴본단군론에서김태준은이병도가진단학보에게재한 삼한고 의논증을통해기자조선설의문제를비판하고, 손진태의소도및솟대에관한민속학적논의를최남선의불함문화론을비판하는데활용한다. 즉이들의과학적논증에입각해서비과학적인선배세대의단군론을비판하고있는셈이다. 마르크스주의에기반한학술을지향한연구자들이진단학회의실증주의를비판하는경우에도그것이그앞세대와의변별이후에이루어지고있다는점을섬세하게분별할필요가있다. 이를테면, 이청원의 진단학보제삼권을읽고 46) 는진단학회에대한마르크스주의자의이러한이중적인태도가드러나있는글이다. 그는진단학회의창립과진단학보의간행이 빈약한우리학계에잇어서는의미잇는일 이라고고평하면서도, 동시에 조치못한결과도산출 하였다고지적한다. 그것은 사회적운행을초월한순수사유 이니 순수한개인의자기사상 이니하는따위의 늘점차적으로 라는기분조흔선율 ( 메로틱 ) 에따라가는 관념론적사관 으로 젊은학구자들에게소화불량의결과 를주었다고비판한다. 지금까지도실증주의에가해지는비판이라는점에서크게새로울것은없지만여기서주목해야하는것은이러한비판에도불구하고정작개별논문들에대한이청원의평가가호평일색이라는점이다. 이청원은 진단학보 제삼권의내용이 그들선행자들의제기한명제를일반화하고수정하고보충하고달은일면을분리하엿다는의미 에서즉본질적인변화는아니라고단정하면서도 퀴퀴묵은통속사가들보담엄청나는발전의자최 가드러나있다고고평한다. 퀴퀴묵은통속사가 와대립되는위치에있는이들진단학보의신진기예들의글은 시가에대한근래에드문 46) 이청원, 진단학보제삼권을읽고, 동아일보 1935.11.9~14. 28 한국학연구제 28 집
論索 인 歷代歌集編纂意識에대하야 ( 조윤제 ), 닭토테미즘의유풍이많은우리에게잇어서는유익한논문 인 支那民族의雄鷄信仰과그전설 ( 손진태 ), 지금까지의통속사가에의하야전개된설을근본적으로전복하는 신연구인 三韓問題의新考察 ( 이병도 ), 대관절근래에드문신연구의성과 로찬탄되는 조선의巨石文化硏究 ( 한흥수 ) 등으로각각의글을논평하고있다. 47) 이청원은이들글들이지닌전문성을고평하는것일터인데여기서 퀴퀴묵은통속사가 란, 이병도의글을참작해본다면 전삼한설 과 삼한이동설 등에서맥락을함께하는신채호, 정인보, 안재홍등민족주의역사학의논의를비과학으로규정하고있다고할수있을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진단학보의방법론과마르크스주의자의학술이분기하는지점은무엇인가. 고유섭의 高麗畵跡에관하야 에대한이청원의논평에서그단서를찾아볼수있다. 이청원은고유섭의글을고려에는그리큰 畵跡 이없다는기존이론에대한반론으로화려한고려의 화적 을논하는전문적인성과를올리고있는논문으로평가한다. 그렇지만, 고려에많은명화가있다는자기주장을위하여많은문헌을인용하나이것은 통속사가들의考證慾을만족시킬따름 이라고비판한다. 오직문제는 그를 ( 문헌고증-필자주 ) 통하야그배후에서너울거리고숨쉬고잇던묻치우고왜곡된사회의발굴 에있다고주장한다. 이러한문헌의고증에기반하는실증주의를과학으로오인하는데대한비판은백남운에게서도확인된다. 세간에는과학적이론과 실증주의 를혼동하는신사제군이많다. 그들의 47) 유물론과결합된세대론은 3 권에수록된한흥수의글에서직접적으로확인되기도한다. 그런데최남선씨가그의저 兒時朝鮮 에 古조선인의활동은죄다종교중심이었다 고하여, 거석문화유적을거진다그범주에틀어넣어가지고, 그것들을 聖物 이라고하는것은모두武斷적이라고아니할수없다. 이같은관념론자들의과학적근거가없는그릇된주관적관찰은, 학술로서우리에게아무런이익을줄수없는것이다. 나는조선고대인이태양숭배사상을가졌던사실을시인하는자이나, 무조건하고거석유물을전부무슨종교적儀典에사용하던유물과같이보는것은적당하지못한견해라고생각한다. 단군, 조선학그리고과학 29
과학은증거품의수집을생명으로여기지만조선의사학계에대해자칫하면반역시 ( 反逆視 ) 될듯한이러한중대한역사론을제창하는필자로서는더욱더그들이좋아하는증거품을제시해야할의무감을느끼게된다. 그러나이증거품은이미구명된전체의구체성을추상화시키기위한예증이지결코이증거품에의해서만비로소그생산조직의구체성이실증되는것이아니라는점을분명히말해두고자한다. 48) 앞서살폈듯이, 백남운은당대의두가지 특수사관 에대해비판적이었다. 그두가지특수사관은전자는독일의역사학파에서영향을받은조선인선배들의신비주의적태도이고후자는 관인의특수사정이데올로기 라고명명되는실증주의를지칭한다. 민족주의역사학에대한비판은앞서 국학 과관련된논의에서다루었거니와여기서는이른바 관인의특수사정이데올로기 에대해서간략히검토해보고자한다. 백남운이비판하고있는것은 순수학문 = 아카데미즘 이라는명제아래확대되고있는일제관학과이를답습하고있는조선인학자들의실증주의방법론이었다. 그는실증주의와과학적이론이동일한것이아니라고설명하고, 또한실증과실증주의도구분하고있다. 백남운에따르면실증은 역사적구체성을일반화하기위한예증 에불과하다. 백남운이보기에실증주의의문제는단지역사연구분야에한정된것이아니었다. 그것은당대의사회경제분석에일반화되어있었는데그것은 수량적 ( 통계적 ) 방법 이라고요약할수있다. 조선현실에대한통계적수량적실증을통해식민지하조선의 약진 을검증하고자하는것이실증주의의본질이자관제 조선특수사정이데올로기 의방법으로그주도자들로경성제대조선경제연구소의일본인교수들을지목하고있다. 49) 48) 백남운, 조선사회경제사, 379쪽. 49) 이상에대해서는방기중, 한국근현대사상사연구, 역사비평사, 1992, 108~110쪽참조. 30 한국학연구제 28 집
흥미로운것은실증주의를배격하고있는백남운이어느누구못지않게조선사와관련된유물과문헌에대한꼼꼼한 실증 을통해서자신의이론을전개하고있다는점이다. 달리말하면, 백남운은실증을배격한것이아니라 전체의구체성을추상화시키기위한예증 으로서의실증을위해자료의천착에심혈을기울였다고말할수있을것이다. 문헌과유물의너머에있는전체로서의사회상, 그것은사적유물론이라는역사과학의체계, 즉유토피아적미래를향해끊임없이진행하고있는인간역사의진보와그질서를전제하고서야발견될수있는것이라고설명된다. 이목적론적체계와질서를 역사과학 이라는유일보편의과학으로제시하면서그것을학적으로지탱해주는분과과학을일종의종속과학이라는개념으로사유한다. 이를테면백남운은역사과학과그것을보조하는각종분과과학의관계를다음과같이제시했다. 우리원시족의생활발전사를전반에걸쳐서구명하려면유일한과학적인방법론에입각하여여러과학부문의엄정한비판적인성과를정리하여통일적으로고찰해야할것이다. 즉출토품의연구에의해원시조선의생산제관계를판정해야하는조선의고고학, 반도대륙의각지층의구성, 매장물의종류, 비옥도등에관한지질학, 또는토양학, 원시족의골격및노동과음식물과의관계에대한인류학적지식, 각생산단계의생활습속에관한토속학, 조상족의이데올로기에관한신화학, 생활의식의표현형태로서의고어에관한비교언어학, 민족의역사적형성및그기본조건에대한민족학등등의과학을총동원하여야비로소노동도구의발전, 생활자료의획득방법의변화, 생활양식의내용등의생산제관계를판정할수있고원시사회의전모가재현될것이다. 50) 50) 백남운, 앞의책, 90 쪽. 단군, 조선학그리고과학 31
이인용문에서는두차원의과학이예시되는바 유일한과학적인방법론 과그것에입각해있는 여러과학부문 이다. 유일한과학적인방법론 은역사전개의전체적방향성을파악가능하게하는마르크스주의의방법론을의미하는용어일터이고, 뒷부분의여러과학부문은근대학문이분업을통해전문적으로발전시켜온세부학문을지칭하고있다. 이러한 이념으로서의궁극의과학 과그궁극의과학을뒷받침해주는 학술로서의종속과학 의구분은당대의마르크스주의학술의일반적인명제였던듯하다. 51) 백남운이 조선사회경제사 에서수행하고있는것을구체적으로들여다보더라도어원을통한씨족공동체로부터의푸날리아가족단계를거쳐고대노예제사회로의발전을설명한다든가, 중국등의한문고적을꼼꼼이고증인용하면서자신의주장을뒷받침하는방식등은문헌고증학자의면모를엿보이게할정도이다. 이런점에서백남운은실증을반대했다기보다그실증에방향을제시하는과학으로서의체계가부재한실증주의를비판했다고할수있다. 백남운혹은마르크스주의자의과학의견지에서실증주의가 이론없는이론 으로비판되는이유는바로이질서와전체로표상되는마르크스주의의역사적유물론에입각한전체성과진보라는전망이부재하기때문이었다. 5. 결론을대신하여 단군, 조선학등은한국의학계에서주로민족주의의아이콘혹은민족주의학술운동사의맥락으로설명되어온측면이있다. 특수성 51) 홍기문은 역사학의연구 ( 조선일보, 1935.3.19~4.5. 총 10 회, 여기서는김영복 정해렴편역, 홍기문조선문화론선집, 현대실학사, 1996, 149~150 쪽참조 ) 에서보조과학과종속과학을언급하며역사학이이들보조과학의힘을빌리지않으면불충분, 불가능한영역이라고설명한다. 역사가가이종속과학전부에통달하는것은불가능하지만그에대한상당한기초지식이필요하다고주장했다. 32 한국학연구제 28 집
은늘 보편 을전제하며발화되기마련이다. 따라서특수에대한논의는그것이가정하고있는보편에대한열망을함께아울러검토할때그논의가지향하는바가더욱명확해진다. 식민지시기의단군과조선학논의는세계사적보편과의관계성을설정하려는시도였으며, 자기안의보편성을추출하고나아가스스로보편을자임하려는욕망이투사된것이기도했다. 해방이후한국지식인들은식민지의유산위에서새로운탈식민지지식제도를수립해야만했다. 해방직후의지식사회도식민지조선의학술계를기반으로삼아탈식민지사회의시대적의제에부응하며재구성된것이다. 해방직후의학술장은우선아카데미즘을공유하는지식인집단이주도한것으로보인다. 이를테면 조선학술계의총력을집결하야해방건설의위업에협력 하는것을임무로삼아 1946년 8월 16일에구성된 조선학술원 의상임위원 42명이도쿄제대 10명, 교토제대 9명, 게이조 [ 京城 ] 제대 8명, 도호쿠제대 3명, 규슈제대 4명, 도쿄상대 1명, 와세다대 4명, 미국대학출신 3명으로구성된것은한사례이다. 52) 방기중은해방직후설립된 조선학술원 이백남운계열과이병도계열이결합한 학술진영의통일전선형태를취 53) 한것이라고간단히언급한바있다. 국사대관 이라는저술은아카데미즘을매개로한이들의연합을상징한다. 최호진의회고에따르면, 이병도의저술로유명한이책은조선학술원의첫사업으로백남운이이병도에게맡겨씌어진일반인과대학생을위한교재로, 불티나게 팔렸다고한다. 54) 이러한일련의사례들은맑스주의와실 52) 조선학술원상임위원의출신대학별통계는 학술원위원록, 학술-해방기념논문집 제 1집, 서울신문사, 1946.8, 230쪽의명단을참조하여필자가재구성한것이다. 53) 방기중, 한국근현대사상사연구, 역사비평사, 1993, 230쪽. 조선학술원 의구성과성격에대해서는방기중과함께김용섭, 남북학술원과과학원의발달, 지식산업사, 2005 를참조할것. 54) 최호진, 일제말전시하에서의학문편력과해방후경제학과창설, 역사비평 ( 통권 15 호 ), 1991.5, 263 쪽. 해방직후의제목은 조선사대관 이었으며, 현재확인되는판본은 국사대관 (4 판 ), 동지사, 1948.11.20 이다. 단군, 조선학그리고과학 33
증주의가그세계관의차이에도불구하고아카데미즘의훈련과 과학 에의추구라는점에서근본적으로공유하고있었던감각을환기시킨다. 여기서조선학술원에정인보로대표되는국학적계열의지식인들이참여하지않았다는것도시사적이다. 과학 이라는언술체계가저광활한전통지식을비체계적인쓸모없는지식으로유폐시켰다고도말할수있다. 조선학 을둘러싼식민지의학술지형에서 민간 의연구자들 55) 과대립하며과학과아카데미즘을매개로공유되었던이두그룹의연계는그렇지만그리오래가지못했다. 이후 국립서울대안 사태를거쳐대한민국정부가수립되면서조선학술원의중요한두축이었던진단학회계열과마르크스주의에기반을둔사회경제사연구계열의학자들이각각국립서울대학교와김일성종합대학의중심교수진으로분화한것은잘알려진사실이다. 조선에관한지식을생산하던경성제대법문학부는미국식교양학부를변용한문리과대학으로재편되었으며, 이과정에서 조선학 은국민국가의동질적자아를형성하는 한국학 이라는규범적지식으로변모되었다. 문교부와서울대학교문리과대학교수직에있었던조선어학회및진단학회회원들은한국이라는자기정체성구성과관련한지식의생산에서주도적인역할을수행하였다. 식민지에서습득한지식을대한민국이라는자기동일적주체를구성하는민족주의적지식으로재구성하면서, 새로운보편으로등장한미국 ( 서구 ) 적지식을지향하는것이대한민국건국기학문담론을주도했던주류지식인집단이수행한핵심적인내용이었다. 56) 흥미로운것은이과정에서 55) 백남운은두가지특수사정이데올로기에입각한연구자들로신채호, 최남선, 정인보등의조선인민간연구자들을지칭하고일본의연구자들을官人이라고명명하고있다. 김태준도이들을각각 민간 연구자와 관료 연구자로지칭한다. 이러한명명에는사이비과학자들과대립되는아카데미출신의과학연구자로서자신의정체성을구성하는논리가담겨있다. 56) 이에대해서는 JEONG Jong Hyun, Shifts in Korea's Intellectual Community and Academia in the Early Years of Nation-Building, Korea Journal Vol. 51 No. 3, 2011 참조. 34 한국학연구제 28 집
실증주의적방법론과과거 조선학운동 의이념인민족주의가새로운형태로결합되었다는점이다. 이를테면손진태, 이인영등의신민족주의사학은그한사례로이해될수도있을것이다. 이주류지식인집단의재구성과정에서식민지시기보편성을추구하며조선학을사유했던사회경제사계열이걸어간길도중요한검토과제이다. 이에대한자세한연구는후일을기약한다. 단군, 조선학그리고과학 35
[Abstract] Dan-gun, Koreanology and Science : Symbols of Deep Longing from Colonial Intellectuals for Universality (Jeong, Jong-Hyun) This study seeks to re-interpret Dan-gun theory and Koreanology (Joseonhak) during colonial period under the rule of imperial Japan in the context of specificity in cultural practice of nationalism, and in terms of deep longing for universality represented by science. It is well known that during the colonial period of modern Korea, Koreanology was an academic expression of national self-establishment in modern traditional reconstruction. However, it involved antimonic gaps between certain historic location called Joseon and universal linguistic system of science. This study was based on an assumption that a question about how to deal with certain nation as target of academic studies and deliver its originality with universal languages was a crucial issue in Dan-gun theory and Koreanologic discussions during colonial period. In this course, Marxists and positivists set academism and science under their own privilege in the manner only they can understand them, and exclude non-systematic discussions of whole generation as unscientific things, so that they could carry through hegemony in academic forum of Joseon, a colonized country under Japanese imperialism. This paper is an essay that employs a universal language of science to re-contextualize previous studies' comprehensions about colonial academic forum focusing on Koreanologic movement in 1930's, and thereby extends discussions into comprehensions about academic forum after national liberation of Korea from Japanese imperialism. Keyword: Dan-gun( 檀君 ), Koreanology, Koreanologic movement, national studies, science, academism, universal / specific 36 한국학연구제 28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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