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발간사 I 2015년 12월 28일의위안부합의는두가지상반된평가를받고있다. 하나는부정적인평가로피해당사자라고할수있는위안부할머니들이합의과정에참여하지못했다는지적뿐만이아니라위안부문제와관련해서최초의한일간문서라고할수있는고노담화에도미치지못한것이다. 따라서한일합의는오히려후퇴한정치적합작품이라는지적이다. 이러한미비점으로인한합의과정중에이면합의가있는것은아닌가하는의문을지속적으로제시하는이유이다. 긍정적인평가로는비록부족한측면이있지만위안부문제에대한견해가한일양국이합의에이를수있는최대의근사치였다는것이다. 위안부문제와관련해법적책임을인정하고그에합당한배상을요구하는피해자측의입장과위안부문제를포함한역사인식에는도달하지는못했지만국제적으로이해되는법적책임에근접했다는평가이다. 현실적으로 1965년의조약으로모두해결됐다고주장하는일본측의입장과한국측입장이좁혀지기어려울것이라는출발점에서위안부합의를평가한것이다. 또한한일합의에서미비한부분들에대해서는한일쌍방이후속조치를통해풀어갈수있다는주장이다. 위안부합의에대한상반된평가는한일관계가새롭게발전하는출발일수도있는반면, 한일관계갈등의시발점이될수있음을시사한다. 세종연구소가 위안부합의와한일관계 라는프로젝트를추진한이유는위안부합의가내포한문제점들에도불구하고현재한국이처한국제환경의곤란함을고려하지않을수없기때문이다. 대일정책이한일합의의개정에만매몰되어서는안된다는시급함이존재한다. 본프로젝트는위안부합의가내포한문제점들을감안한가운데한국의대일정책을 iii
어떻게추진하는것이한국의국익에도움이되는가를검토한것이다. 새롭게출범한문재인신정부의 투트랙 대일정책에이번프로젝트의제언이일조하기를바란다. 이책의출판을위해노력해주신집필자들에게감사하며연구진행을차질없이책임져준연구소관계자에게도노고를치하한다. 2017 년 8 월 세종연구소소장진창수 iv
차례 발간사 서장위안부합의와한일관계향방 / 이면우 1 Ⅰ. 위안부합의의과정과그함의및영향 Ⅱ. 한국의대응방향 : 정경분리의구체화방안 Ⅲ. 책자의전체구성 제1장일본의외교안보정책변화 : 아베외교의현황, 영향, 전망 / 이면우 19 Ⅰ. 서론 : 탈냉전기일본외교의변화 Ⅱ. 일본의외교안보정책현황 Ⅲ. 일본외교안보정책의변화전망 Ⅳ. 맺음말 : 일본의대한정책에의영향 제2장위안부합의후의대일외교정책 / 박창건 67 Ⅰ. 들어가는말 Ⅱ. 정체성충돌의정치화로서위안부문제 Ⅲ. 정체와개선의기로에선한일관계 Ⅳ. 출구전략으로서대일외교정책 Ⅴ. 맺은말 : 공생의길을위한한일관계 차례 I v
차례 제3장위안부합의이후대일안보정책방향 / 이기태 97 Ⅰ. 들어가며 Ⅱ. 동아시아및한반도정세변화 Ⅲ. 한국과일본의안보정책및인식 Ⅳ. 한일안보현안과협력방향 Ⅴ. 나오며 제4장한국의대일경제정책및전략 / 이정환 129 Ⅰ. 서론 Ⅱ. 한일경제관계의변화 Ⅲ. 불확실성의세계경제 Ⅳ. 일본경제의대외경쟁력현황과대응전략 Ⅳ. 한국의대일경제정책방향성 Ⅵ. 맺음말 vi I 차례
I 서장 I 위안부합의와한일관계향방 이면우 ( 세종연구소 )
서장 위안부합의와한일관계향방 2015년 12월 28일에한국과일본사이에체결된위안부합의는전후의한일관계에있어서중요한모멘트라고할수있다. 그합의가체결되는과정이나그이후의전개과정이한일관계에영향을미치는요인들이무엇인지, 그에따라한일관계의양상이어떻게변화하며앞으로의한일관계가어떤양상을보일지, 그리고이에대해한국은물론동북아시아의평화와안정을위해한국이일본에대해서어떻게대응해나가야하는지에대해많은시사점을던지기때문이다. 이에따라본프로젝트는전체적으로앞으로의대일정책방향에대해서제언하는것을기본목적으로하는데, 본서장은이를위해위안부합의및그과정이어떤의미를가지는지를검토하고, 본책자가어떻게구성되어있는지에대해간략히소개한다. Ⅰ. 위안부합의의과정과그함의및영향 1) 전후한일관계에있어서, 특히한일기본조약이체결된 1965 년이후 현재까지전개된위안부문제를들러싼갈등양상은대체로다음과같은 1) 본절의내용은이면우, 한일역사갈등의전후사 : 위안부문제를중심으로, 일본연구논총 제 44 호, pp.183-214 의내용을본논문의취지에맞추어간략히조정한것이다. 서장위안부합의와한일관계향방 I 3
네시기로구분해살펴볼수있다. 첫번째시기는 80년대까지의기간으로, 일종의갈등잠복기또는문제제기의시기라고할수있다. 두번째시기는정대협의결성과같이한국에서본격적으로위안부문제가다루어지게되는 1990년부터아시아여성기금이출범하는 1995년까지의기간으로, 제1차한일정부간합의조정기라고할수있다. 세번째시기는유엔의쿠마라스와미보고서가나오는 1996년이후미연방대법원의판결이나오는 2006년까지의기간으로, 위안부문제에대한국제적인, 그리고사법적해결이시도된시기라고칭할수있다. 네번째시기는아시아여성기금이해산되는 2007년부터한일정부간의위안부문제관련합의가체결되는 2015년까지의기간으로, 제2차한일정부간합의조정기라고할수있을것이다. 본절에서는이시기들이나타내는특징들과그배경을중심으로살펴본다. 1. 위안부합의과정 1) 제1기 : 갈등잠복기 / 문제제기기, 1965년-1989 년한일기본조약이체결된 1965년이후 1980년대말까지의기간은갈등잠복기라고할수있겠는데, 이는무엇보다도위안부문제가제기됐지만정치적으로나사회적으로큰반향을일으키지는못한채불씨를안고있는상황이었다는의미를갖는다. < 표-3> 은 1965년이후 80년대말까지위안부문제와관련된사건들을간략히정리한것인데, 이를보면다음과같은두가지측면이드러난다. 첫째, 한국에서는비록 1969 년이라는이른시점에위안부와관련된신문보도나그에기초한송건호의문제제기가있었지만대체로위안부문제는일단락된것으로외면하거나큰관심을끌지못하는쟁점이었다는것이다. 그와반대로, 둘 4 I 위안부합의와한일관계
째, 일본에서는좀더잦은횟수로위안부문제에대한문제제기가있었다는것이다. 이러한차이는한국과일본이당시각기처한정치적상황과무관하지않다고생각된다. 주지하다시피당시, 즉 7~80년대의한국은권위주의정권하에놓여있어서한일관계에악영향을미치는위안부문제를되도록회피하려고했던측면이있었던반면에, 일본에서는 60년대중반이후등장한혁신지자체들의영향도있어서한국과같은정치적제한이덜했고따라서여성인권문제등이제시될수있는정치적환경을갖고있었다는것이다. 일본에서위안부문제를본격적으로제기한요시다 ( 吉田淸治 ) 의책, 나의전쟁범죄 -조선인강제연행 이한국에서 1987년의민주화이후에나출간되었다는점은이러한정치적환경의요인이작용했음을보여주는예라고하겠다. 요시다의책내용및증언은차후에허위였던것으로밝혀졌지만그것이한국에소개됨으로해서위안부문제가한국과일본양국에서본격적으로쟁점화되는데기여했다고할수있다. 2) 이런측면에서요시다의책이한국에소개되는 1989년은위안부문제에대한문제제기라는주요한역할이일단락되는시점이었다고할수있겠다. 2) 제2기 : 제1차한일정부간협의기, 1990년-1995 년요시다의책이한국에소개된이후한국에서는위안부문제에적극적으로임한정대협이 1990년에결성되고수요집회또한전개되는등의본격적인쟁점화가진행됐다. < 표-4> 는 1990년에서 1995년사이에위안부문제와관련해일어난사건들을간략히정리한것인데, 이를보면그이전시기 ( 제1기 ) 에비해한국에서도위안부문제와관련된활동이 2) 요시다증언이허위였다는것은 2014 년 9 월아사히신문의기자회견으로공식화됐다고하겠는데, 그럼에도그이전부터알려져있었다. 서장위안부합의와한일관계향방 I 5
더욱활발히전개됐음을알수있다. 이처럼한국의시민사회가위안부문제에대해적극적으로활동을전개하자한국정부도일본정부에진상규명을요구하는등적극적인자세를보였고, 이러한한국정부의적극적인자세는결국일본정부로하여금위안부문제와관련된 가토담화 (1992년) 와 고노담화 (1993년) 를발표하게만들고, 아시아여성기금 의설립을가져오게만들었다고하겠다. 고노담화와아시아여성기금에대한정대협의입장은비판적인것이어서위안부문제가결코해결된것은아니었지만, 위안부문제가본격적으로쟁점화되어한일간의협의가고노담화및아시아여성기금이라는형태로일단락되었다는점에서이시기를제1차한일정부간협의기라고명명해도무난할것이라고생각된다. 이시기의또다른특징은위안부문제가한일간의문제를넘어서국제적인이슈로부각됐다는점이라고하겠다. < 표-4> 에서보듯이위안부문제와관련된국제회의들이한일양국이외의국가들에서개최되었고, 대만이나중국, 그리고미국등지에서위안부문제와관련해문제제기와함께배상요구가이어졌던것이다. 또한이시기에위안부문제와관련된각행위자들의입장이형성되게되었다고할수있다. 즉, 한국정부는위안부문제와관련해일본정부의철저한진상규명과사죄를요구하는입장이정립되었고, 그와함께 일본군위안부생활안전법 의제정에서보듯이위안부피해자들에대한정부의보상책이마련되었던것이다. 일본정부의경우는 고노담화 에서보듯이초기의군관여부정의입장에서선회하여군의 광의적 관여를인정하고, 그러면서도보상과관련해서는한일기본조약에의해일단락된것이라는입장이도출되었다는것이다. 군의 광의적 관여란군이위안부의모집에직접적으로관여했다는증거는없지만당시의식민주의적상황에서볼때중개업자들의관여 6 I 위안부합의와한일관계
를군의관여로볼수있다는것이라고하겠는데, 이러한광의적해석은한일기본조약에대한해석과함께일본정부의사죄를불완전한것으로만들어위안부피해자들과그지지단체들의비판을비껴가지는못했다. 그대표적인예가아시아여성기금에대한반대및거부라고하겠다. 일본정부가이러한광의적해석에도불구하고, 즉군관여에대한직접적인증거의부재에도불구하고한국정부의진상규명및사죄요구에응하여 고노담화 등을추진한배경에대해서는대체로다음과같은두가지측면이작용했다고생각된다. 첫째는당시냉전이붕괴된후진행된민족주의의고양과그에따른국가의분열및내전의발생등으로전쟁에서의성폭력이국제적으로크게문제시됐다는점이다. 예를들어, < 표-4> 에서보듯이, 당시진행된보스니아내전에서발생한성폭력사건이국제적쟁점으로부각되었는데, 이러한연관하에서문제를키우지않으려는시도로파악할수있다는것이다. 둘째는냉전의붕괴로인한국제정세의불안정성이증가되어일본의외교에있어서한국과의관계가중요해졌다는점이다. 냉전의붕괴로인한국제정세의불안정성증가는일본에있어서외교안보정책, 예를들어미일동맹의향방과같은과제들을앞으로어떻게전개해야하는지에대해서과제를안겨주는것이었고그런차원에서한국과의관계도중요해졌다는것이다. 이외에미야자와수상의리더십도한몫했다고할수있다. 자민당내의국제주의적하토파로알려진미야자와수상은 80년대의교과서문제과관련해근린제국조항이성립되도록하는데역할을한것으로알려져있는데, 위안부문제와관련해서는한국정부의요구가반영되는데있어서도큰역할을했다고할수있다는것이다. 3) 제3기 : 사법적해결시도기, 1996년-2006 년한일정부간에는 고노담화 와 아시아여성기금 의성립으로위안부문 서장위안부합의와한일관계향방 I 7
제는일단락된양상이었지만, 한국의시민단체들은전절에서도언급한바와같이이에대해크게반발했다. 주지하다시피고노담화는위안부의모집에있어서군의관여를광의적으로나마인정하고그에대해사과한것이었고, 아시아여성기금역시사업실시에즈음해작성된총리의서한을통해군의관여를인정하고사과와반성의뜻을표명한것이었다. 하지만한국의위안부피해자들이나그지지단체들은이러한사과와반성에있어서진실성이미비하다고비판하고아시아여성기금의수령을거부했다. 이런경위로 1996 년이후약 10년간은 < 표-5> 에서보듯이위안부문제가국제적인해결과사법적인해결을추구한시기라고할수있다. < 표-5> 는 1996년부터 2006년까지위안부문제와관련해서진행된사건들을간략히정리한것인데, 이를보면대체로다음과같은특징이나타난다. 첫째는위안부문제에대한논의의장이한일양국간에서벗어나국제적으로전개되었다는점이다. 제2기에있어서도위안부문제를국제적으로쟁점화하려는노력이추진되었지만, 제3기의국제적쟁점화가보여주는특징은제2기의국제화노력이결실을맺어유엔에서논의되고관련보고서가제출되었다는점이라고하겠다. 둘째는앞서언급한국제화의장중에서도미국을중심으로전개되었고내용적으로는법정을중심으로진행되었다는점이다. 동기간을사법적해결의시기로명명한것도이와같은이유때문이라고할수있다. 동시기에사법적해결이추진된이유는무엇보다도전시기에제시된고노담화나아시아여성기금과같은정치적해결책에대해한국의시민단체들이수긍하지않고새로운해결책으로서사법적해결을도모했기때문이라고하겠다. 사법적해결책은 < 표-4> 에서보았듯이일본법정을상대로추진된바있지만, 이번시기의특징은미국법정을중심으로진행된점이라고하겠는데그시발점은헤이든법의성립이었 8 I 위안부합의와한일관계
다. 하지만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에도불구하고개인적보상청구의가능성을열어놓은헤이든법에의한사법적해결은 2006년의미대법원판결로성공하지못한채끝나게되었다. 4) 제4기 : 제2차한일정부간협의기, 2007년-2015 년사법적해결책의추구가실패한이후의 2007년부터 2015년까지의기간은다시금정치적인해결책을추구한시기라고할수있다. < 표-6> 은 1997년부터 2015년까지의기간동안위안부문제와관련된사건들을정리한것인데, 이를보면동시기는 2011년을중심으로그전후의두시기로세분할수있음을알수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의전반기는한일양국은물론, 미국등지의의회에서위안부문제와관련된결의안이채택되었는데, 이는동시기를정치적해결기로부를수있는이유라고하겠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의후반기에는한국의헌법재판소가내린부작위결정으로인하여한일양국정부간에위안부문제와관련된협의가완만하게나마추진되다가 2015년 12월 28일에극적인합의를보게되었다. 동시기의특징은무엇보다도사법부의영향력이잘나타났다는점이라고하겠다. 위에서검토한바와같이제3기역시사법적해결이추구되었는데, 제3기와제4기의차이점은사법적해결의장이미국에서한국으로바뀌었고제3기의실패와는달리제4기의한국에서의시도는일정한정도의성과를거두었다는점이라할수있다. 헌법재판소의부작위결정은위안부문제와관련된한국정부의입장을변경시켰다는점에서도의미를갖는다. 종전의한국정부입장은일본정부의사죄와반성표명을촉구하지만배상과는연결시키려고하지않는것이었다고하겠는데, 정부의새로운노력을촉구한헌재의부작위결정으로인해일본정부에대해사죄와배상을공히요구하는방향 서장위안부합의와한일관계향방 I 9
으로바뀌게되었다는것이다. 이는헌재가촉구한정부의새로운노력이라는것이위안부피해자들이나그지지단체들이요구하는수준에맞출수있도록하라는의미를품고있었기때문이라고하겠는데, 정부가이에부응할수있었던것에는 < 표-5> 에서보듯이그이전인노무현정부시절의한일회담자료공개에따라 반인도적위법행위는포함되지않는다 는입장의정리가한몫을했다고도볼수있다. 또한이시기는한일간의갈등을봉합하는데있어서미국의역할이중요하게작용한다는것을다시금보여주었다. 주지하다시피위안부문제를둘러싼한일양국정부간의협의는지지부진했는데, 이는헌재의결정에따라재협의를추진하려는한국정부의입장에대해응하지않는일본정부의태도에따른것이고, 더나아가서는한국의소녀상건립추진에대해한국의중국경사론등으로맞서는일본의대결적자세에기인한것이라고하겠다. 이러한갈등및대립에대해동북아안보정세를이유로조정역할을담당한것이미국이었고, 2015년 12월 28일의극적타결은이러한미국의역할이성과를거둔것이라고할수있다. 2. 위안부합의과정의함의및그영향 1) 위안부합의의함의이상에서위안부문제를둘러싼논의가 2015년 12월 28일의합의에이르기까지의과정을간략히정리했는데, 위안부문제의한일간합의과정은한일관계와관련하여다음과같은측면들을제시한다고하겠다. 첫째는위안부문제를위시한역사인식문제들에대한한일간합의도달이쉽지않다는점으로, 이는한일양국정부가각자의입장을굽히기어려운여러가지사정들이작용하고있다는것에서비롯된다. 이들 10 I 위안부합의와한일관계
사정이란, 일본의경우, 동북아지역및세계의정세변화에대한일본의보통국가화추진이나일본정치가들의세대교체, 그리고민주화이후한국의국내정치상황에대한인식등이포함된다. 이러한일본의국내사정은따라서한국의대일맞대응책이효과를발휘하는데있어서한계를가질수밖에없다는것을보여주는것이기도하다. 한국의경우, 일본의역사인식에대한반감이전체적으로강하다. 둘째는이러한사정들의저변에는중국의부상에대해서어떻게대응해야하는지에대한한일양국의인식차이에서비롯되는측면이강하다는점으로, 이와관련해서는무엇보다도한일양국의상대국가에대한필요성및효용성인식이예전과같지않다는것이크게부각되고있다고할수있다. 이와관련해서는북한문제나그것을풀어가는데있어서의중국이라는변수에대한인식차이도중요한변수로작용한다고하겠다. 셋째는이러한한일간의갈등적상황을해소하는데있어서중요한변수가미국의역할이라는점이다. 아태지역의경제적, 안보적중요성에비추어중국의부상과그에따른동북아지역의세력변경에주목하는미국으로서는한미일 3국의협력이긴요하기에한일간의협력을요구했고, 2015년의위안부합의는그러한맥락속에서가능했다는것이다. 이는또한달리말하면한일양국이중국의역할에대한인식차이가있음에도불구하고미국의역할및그필요성에대해서는공통된인식이있었기때문이라고도할수있다. 2) 위안부합의의영향상기한바와같이 2015년의위안부합의는한일협력에대한미국의요청과북한문제및그해결을위한중국의역할에대한한일간의인식차이감소에따른것이라고할수있다. 이는달리말하면위안부문제 서장위안부합의와한일관계향방 I 11
를비롯한역사인식문제들에있어서한일양국이근본적인해결에도달한것은아니라는점을제시하며, 따라서합의이행여부에따라서다시금갈등적상황이재연될수있음을시사한다. 2017년 3월초현재주한일본대사의부재가한달이상지속되는것이이러한갈등적상황의재연가능성을제시한다고할수있다. 이와같은상황전개는그동안지속적으로제기됐던한일관계의속성변화, 즉더이상한일관계가식민지배등과같은역사적배경이특별히고려되는 특수한관계 가아닌 일반적양국관계 로변화됐음을제시하는것이며, 앞으로한국의대일정책에있어서도이러한변화에대한명확한인식이필요하다는것을의미한다고할수있다. 즉, 2015년의위안부합의는한일관계를고려하는데있어서한국의경제적, 안보적이익과관련하여일본이어떤의미를가지는지에대한명확한이해가필요하며, 그에따라대응해야한다는것을의미한다고하겠다. Ⅱ. 한국의대응방향 : 정경분리의구체화방안 상기한바와같이앞으로일본을대응하는데있어서한국이고려해야하는것은종전과는달리보다포괄적인관점을요한다고하겠다. 보다포괄적인관점을필요로한다는것은다음과같은의미이다. 첫째는한일관계를더이상한국과일본의관계에서파악하는것이아니라, 세계및동북아정세라는보다큰틀속에서고려해야한다는점이다. 보다포괄적인틀에서일본을보는것이좀더명확한이해를가능하게하고한국의국익이라는관점에서일본을대응하게만드는 12 I 위안부합의와한일관계
것을가능하게만들것이기때문이다. 포괄적인관점이라는차원에서는한국의대일정책이긍극적으로지향하는바를동북아지역의평화와번영이라는목표및방향을제시함으로서협력을이끌어낼수있을것이라는점이다. 둘째는한일관계가 특수한 관계에서 일반적 관계로전환됨에따라대응방식에있어서도상호주의적또는호혜주의적관점으로의전환이필요하다는것이다. 이처럼일본에의대응정책을보다포괄적이고도상호주의적인관점에서추구한다는것은종전의정경분리원칙을좀더세분화, 구체화할것을요구한다고할수있다. 전절에서한일관계가갈등적상황에자주노출되는배경으로서는다음과같은세가지를제기할수있다. 첫째는한일양국이상대방의필요성에대한인식이예전과같지않게감소또는부재한정도까지변화했다는것이다. 둘째는한일양국이추구및인식하는목표또는위협인식에있어서상이함이나타난다는것이다. 셋째는한일양국에서공히한일관계와연관된이슈들이국내정치화되는경향이강하다는것이다. 이에따라본책자에서는 분리호혜주의 라고칭할수있는접근방식을제시한다. 분리호혜주의 란한일관계의사안들을분리해서대응하고, 궁극적으로는쌍방의번영에도움이될수있게만든다는것이다. 이러한사안별대응을위해서다음과두가지축을중심으로 분리호혜주의 의추진을제시한다. 첫번째축은실익과명분을분리하는것이고, 두번째축은양보와견제를분리하는것이다. 이러한두가지축을중심으로한일관계의주요이슈에대한대응전략으로서 < 표-1> 에서보는바와같이네가지를도출할수있다. 서장위안부합의와한일관계향방 I 13
< 표 -1> 한국의대일정책방향 협력과견제의병행여부 실익과명분의분리여부 실익추구 명분추구 협력우선 (a) 실익추구에협력우선 (c) 명분추구에협력우선 견제우선 (b) 실익추구에견제우선 (d) 명분추구에견제우선 첫번째는실익을추구하는차원에서협력을우선시하는경우이다. 이러한대응방식은안보와관련된사안들, 예를들어한일정보보호협정이나일본의헌법개정및집단적자위권행사의도입등에있어서활용가능하다고생각된다. 북한에대한일본의정보는한국에도도움이되는것이기에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경우협력을우선적으로추구한다는것이고, 일본의집단적자위권행사가도입되는것이나그연장선상의헌법개정은미일관계를공고히하고한반도유사시에한국에도도움이될수있는것이기에무조건적인비판이나거부보다는협력속에서견제를추구해야한다는것이다. 둘째는실익을추구하면서도견제를우선시하는경우인데, 이러한대응방식은경제와관련된분야에서추구될수있다고생각한다. 예를들어, 한일FTA 가아직까지별다른진전을보이지않고있는것은협정체결에따라득실을달리하는이익집단들에대한고려때문이라고할수있다. 따라서한일경제협력은기본적인방향이지만한일FTA 와같이서로이익이충돌할경우에있어서는실리추구의차원에서견제를필요로한다고하겠다. 셋째는명분을추구하면서도협력을우선시하여대응하는방식이고, 넷째는명분을추구하면서도견제를우선시하여대응하는방식이다. 명분을추구한다는측면에서는역사인식문제들이적용되지만, 이를다시협력과견제의방식으로나누어대응하는것과관련해서는신중한 14 I 위안부합의와한일관계
고려가필요하다. 이제까지의한일관계양상에서알수있듯이역사인식문제들은명분과관련된것이지만그렇다고한일관계전반을좌우하여한국의국익에부정적영향을미칠수도있는것이다. 따라서역사인식문제들에대한협력과견제의구분은이슈에의하기보다는단계별로추진해야한다고생각한다. 즉, 명분과관련된것이라는점에서역사인식문제들에대해서는초기에견제및비판적입장을취하더라도갈등이심해지는다음단계에서는협력적한일관계를강조하는방향에서조절해야한다는것이다. 일단정치화가진행되면이러한조절이결코쉽지않는것이겠지만, 한일관계의전반을고려한다는점에서는매우중요한조치라고생각한다. Ⅲ. 책자의전체구성 서두에서언급한바와같이본책자는위안부합의이후한국의대일정책을어떻게이끌어가야하는가에초점을두고검토하는데, 이에따라본서장외에다음과같은네개의장으로구성되어있다. 본서장에이은제1장에서는위안부합의가일본의외교안보정책에있어서어떤영향을미치는가를살펴본다. 이를위해일본의외교안보정책이특히냉전의붕괴이후어떻게변화했는지, 그런변화속에서위안부합의가어떤의미를가질것인지, 그리고이러한일본의변화가앞으로일본의대한정책에는어떤영향을미칠것인가를간략히검토한다. 제2장에서는위안부합의이후한국의대일정책이어떤방향에서전개되어야하는지를검토한다. 이를위해한국의외교정책이냉전의붕괴이후특히어떤변화를겪었는지, 그러한가운데한국의대일정책 서장위안부합의와한일관계향방 I 15
또한어떤변화를겪었는지, 그배경은무엇인지를검토하며, 이러한속에서한국이포함된동북아시아의평화와번영을위한한국의대일정책방향은무엇인지에대해서검토한다. 제3장에서는한일간의경제관계에대해서검토한다. 한일경제관계는한일FTA 등과같이중요한이슈가있음에도역사갈등과의연관속에서, 그리고한국의경제적위상이상승됨에따른필요성의저하로큰진전을보지못하고있는실정이라고하겠다. 이에따라본 3장에서는한일간의경제관계가전후의역사속에서, 특히냉전의붕괴이후어떤변화를보였고, 현재어떤상황이며, 앞으로협력을위해어떤방향으로나아가야하는가에대해서검토한다. 제4장에서는한일간의안보관계에대해서검토한다. 한일안보관계는북한의핵및미사일위협이라는공통의이슈가있음에도불구하고역사인식의차이에따른불신과갈등의지속이라는장애물을넘지못하여아직도많은부분이미진한상태라고할수있다. 앞서언급한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이최근에서야체결된것에서도그사정을짐작할수있는데, 본 4장에서는한일간의안보관계를정리하는가운데앞으로의방향에대해서도제시한다. 16 I 위안부합의와한일관계
참고문헌 이면우, 일본정계의우익성향강화와동북아, 세종정책연구, 2014-3, 세종연구소, 2014. 이면우, 한일역사갈등의전후사 : 위안부문제를중심으로, 일본연구논총, 제 44 호, 2016.12., pp. 183-214. 이면우, 차기정부의대일외교 : 동북아평화협력을위한한일관계의구축, 세종연구소편, 차기정부의국정과제 : 외교. 안보. 통일, 2017, pp. 129-160. 이면우, 한일관계와한일중 3 국협력 : 평가와과제, 홍현익편, 박근혜정부의대외정책, 세종연구소, 2017.3. 양기호, 한일갈등에서국제쟁점을, 일본연구논총, 2015, vol. 42, pp. 5-30. 서장위안부합의와한일관계향방 I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