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연구 47(2013.12.30), pp.101-129 고려대학교한국학연구소 석송김형원시연구 * - 잡지 開闢 과 生長 사이 - 1) 강호정 ** 국문초록 이논문은석송김형원 (1900~?) 의시론이시에어떻게반영되고있는지에대해살펴보는것을목적으로한다. 특히 개벽 과 생장 이라는두잡지를중심으로, 매체와의관계속에서석송의시와시론을살펴보고자한다. 석송에게잡지 개벽 과 생장 의의미는남다르다고할수있다. 석송은 개벽 에 85편의시와 6편의번역시, 1편의평론과 1편의수필을싣고있다. 이는 개벽 에실린다른주요시인들의시 ( 김억 57편, 김소월 48편, 이상화 26편, 주요한 10편 ) 와비교해볼때월등히많은작품이라고할수있다. 또석송개인의전체작품중에서 2/3에해당하는많은양이라고할수있다. 아울러석송이 개벽 의 독자문예현상모집 의선자 ( 選者 ) 로참여하여 고선여감 을남기는등 개벽 에적극적으로참여하고있음을알수있다. 한편 생장 에는시 16편, 평론 2편, 산문 5편을발표하고있다. 발표작품수는 개벽 에못미치나석송개인이직접주재한 순문예잡지 라는점에서의미가있다고할수있다. * 이논문은 2010 년도정부재원 ( 교육과학기술부인문사회연구역량강화사업비 ) 으로한국연구재단의지원을받아연구되었음 (NRF-2010-322-A00105) ** 한성대학교언어교육원강의전담교수
102 한국학연구 47 개벽 시절이나 생장 시절, 석송의시혹은시론이일대변모를이루는것은아니다. 시기적으로도불과 1-2년사이여서완전히새로운시세계를보여준다고보기는어렵다. 다만 개벽 시절에는잡지 개벽 이보여준계몽성이석송의문학관에도드러나있고, 생장 시절에는자신의문예이론으로서 민주문예론 을강화한다고할수있다. 두시절을구별하여말하자면, 감정을위주로한생활지향에서좀더포괄적이고, 民 을향한민주지향의문학관을보여준차이가있다고할수있을것이다. 주제어 : 개벽, 생장, 잡지, 매체, 민주문예론, 계몽성 1. 들어가며 이논문은석송김형원의시를 개벽 과 생장 이라는두잡지를통하여매체와의관계속에서석송의시론이시에어떻게반영되고있는지에대해살펴보는것이목적이다. 이런논의의배경에는다음과같은몇가지이유가있다. 첫째는석송의작품활동이 1920년대초반, 주로 개벽 과 생장 을통해이루어졌다는점, 둘째는자유시에대한대중적인식의확산이 1920년대에이르러서야가능했고, 1920년대신문이나잡지등의매체 1) 가문학의대중적인식의확산에지대한영향을끼쳤다는점에서기인한다. 그리고석송의시론이시에앞서주목을받았다는것도하나의배경을이룬다고할수있다. 석송에게잡지 개벽 과 생장 의의미는남다르다고할수있다. 개 1) 1920 년대초반에발간된문예지및잡지는 창조, 개벽, 폐허, 장미촌, 백조, 조선지광, 금성, 영대, 생장 등이대표적이다. 이중에서 개벽, 조선지광 을제외하면대부분동인지이다. 동인지수록작품은일정정도동인에제한되어있는경우가많다. 따라서동인지의동인활동을하지않은석송이글을실을만한잡지는 개벽, 조선지광 정도라고할수있다. 여타의문예지에는 1~4 편의작품만을발표하고있다.
석송김형원시연구 강호정 103 벽 에석송은자신의작품의 2/3가넘는 85편의시와 6편의번역시, 1편의평론과 1편의수필을싣고있다. 또한 개벽 의독자문예현상모집의선자로참여하여 고선여감 을남기는등개벽에적극적으로참여하고있음을알수있다. 한편 생장 에는시 16편, 평론 2편산문 5편을발표하고있다. 발표작품수는개벽에못미치나석송개인이직접주재한 순문예잡지 라는점에서의미가있다고할수있다. 유성호가 그의이러한문학활동은 1924년까지는 개벽 지를중심으로 1925년에는 생장 지를모태로하여이루어지는시기적변별성을갖는다. 그러나이러한분기가단순한시기적구분이라기보다는그가딛고있는시적시야의변모를강력히시사하는것으로보아야할것같다. 2) 고판단한것도석송에게 개벽 과 생장 이주는의미가남다르다는것의반증이라할것이다. 석송김형원에대한연구는그다지많지않은데, 1920년대 민주주의적시인으로당시문단의이채 3) 라는평가를받을정도로하나의기점을세운시인치고는다소이례적이다. 1979년유가족에의한시집출판을전후하여몇편의논문이제출되고, 1990년대이후몇편의논문이제출되었다. 이러한사정은시대적상황과밀접한관련이있어보인다. 초기의연구는석송의문학사적위치를자리매김하고자하기위해, 휘트먼의영향관계를살핀것, 신경향파에석송의시론에대해살핀것, 개괄적이고전체적인측면을살펴본것이이시기연구의대략이다. 4) 1990 년을전후해서는우리사회의시대적분위기가현실참여의분위기가강하다보니, 1920년대대표적현실주의시인으로평가되는석송에대한연구가자연스러워보인다. 이시기에는맹문재, 신연주, 주근옥의학위논문과유성호의논문이눈에띄는데, 맹문재의논문은석송의생애를 2) 유성호, 석송김형원론, 연세어문학 제 23 집, 연세대학교국문학과, 1991, 118 쪽. 3) 백철, 신문학사조사, 신구문화사, 1992( 중판 ), 323 쪽. 4) 한계전, 신경향파시론의형성 : 석송김형원을중심으로, 관악어문연구 6 집, 서울대국어국문학과, 1981, 21-37 쪽.; 오세영, 민중시와파토스의논리 - 석송김형원론, 관악어문연구, 제 3 권 1 호, 서울대국어국문학과, 1978, 277-298 쪽. ; 김용직, 한국현대시에끼친 leaves of grass 의영향, 논문집제 2 집, 서울대교양과정부, 1970, 31-55 쪽.
104 한국학연구 47 포함하여시론과작품세계를두루살피고있고, 신연주역시시론을중심으로석송의시세계의양상과의미를살피고있다. 5) 특히주근옥은자신의석사논문을토대로, 석송김형원연구 를펴내는데, 그동안의어느논문보다도, 석송의이력을꼼꼼하게추적하고있으며, 작품의서지목록역시자세하게수록하고있다. 6) 유성호는당시까지미흡했던석송의시작품목록을추가하면서, 석송의시세계전반에걸쳐살피면서석송의진보적낭만주의자의일면을새롭게고찰하고있다. 7) 기타소논문중에서는휘트먼의영향관계를따진논문이눈에띈다. 8) 아무래도석송의시와시론이휘트먼의영향관계를떠나서설명되기어렵다는점이작용했으리라고판단된다. 위의연구목록들이석송에집중한연구라면, 최근들어 민중 을주제로석송과월탄의시를살펴본논문 9), 휘트먼의영향관계속에서곽말약과석송을함께비교한논문이제출되기도하였다. 10) 또아나키즘의문학사적맥락을점검하는과정에서석송을포함시켜논의하거나 11) 잡지 삼광 소재문학텍스트를살피면서석송의작품은언급하거나 12) 현실주의의시적맥락을점검하며석송을언급하는경우도있다. 석송에대한연구의초기는문학사적인자리매김이연구의핵심이었 5) 맹문재, 석송김형원연구, 중앙대대학원석사논문, 1992. 신연주, 김석송의문학의식과시세계연구, 부산외국어대교육대학원석사논문, 1992. 6) 주근옥, 석송김형원시문학연구, 충남대석사논문, 1998.; 주근옥, 석송김형원연구, 월인, 2001. 7) 유성호, 석송김형원론, 연세어문학 제 23 집, 연세대학교국문학과, 1991, 113-137 쪽. 8) 김형필, 석송김형원과월트휘트먼의 초엽집, 외국문학연구 제 1 집, 한국외대외국문학연구소, 1996, 243-264 쪽.; 정헌, 석송김형원과휘트먼시의이념, 비교문학 제 23 집, 한국비교문학회, 1999, 142-170 쪽. ; 전미정, 석송김형원문학과휘트먼의영향관계, 시학과언어학, 제 4 집, 시학과언어학회, 2002, 223-243 쪽. 9) 홍현영, 1920 년대전반기시문학에서 ' 민중 ' 의의미, 성균관대석사논문, 2013. 10) 박호영, 곽말약과김석송에끼친휘트먼의영향, 소통과인문학 제 12 집, 한성대인문과학연구원, 2011. 11) 송희복, 한국시의아나키즘영향과무정부낙원관, 비평문학 46 호, 한국비평문학회, 2012, 225-265 쪽. 12) 노춘기, 잡지 삼광 소재시와시론연구, 비평문학제 42 집, 한국비평문학회, 2011, 177-210 쪽.
석송김형원시연구 강호정 105 다. 이후 1990년을전후하여현실참여가강조되던때는석송이보여준현실참여적인면모가강조되거나, 한국문학에끼친휘트먼의영향관계를파악하기위해선택된경우가대부분이었다. 대체로문학사에서석송김형원은신경향파혹은현실주의의범주안에서논의되어왔다. 그러나석송은단순히현실주의의범주안에서만논하기에는다소특이한면모를보여준다고할수있다. 이제시대적분위기를넘어서석송의시와시론이보여준 민중, 민주주의문예론 에대한관심과시론에서비롯되는 힘 ( 力 ) 의시 가갖는매력적인개념들을통해그의시를다시조명할필요가있다. 또한문학사에서빠짐없이언급되지만, 연구사는여전히소략한데비해석송의시세계가문학사에서한줄로요약할수없는세계를품고있다는것도석송의연구의의의가될것이다. 2. 감정론과계몽의방향 - 개벽 시대 개벽 이종합지임에도불구하고문학창작물의게재비율이높다는것은이미기존연구에서밝혀진바있다. 13) 특히석송은 개벽 에총 90 편이넘는글을발표했으며, 그중에 85편이현대시이다. 개벽 에실린다른주요시인들의시 ( 김억 57편, 김소월 48편, 이상화 26편, 주요한 10 편 ) 보다월등히많은작품을발표하고있음을알수있다. 개벽 에실린현대시가모두 362편정도이므로석송의시가거의 1/4을담당하고있는셈이다 개벽 은문학의사회변혁기능에주목했고, 그현실적영향력을꾸준히실험했으며, 개벽 의문학은문학속으로의영토확장보다사회운동의장에문학이어떻게참여할것인가를고민했다. 14) 따라서대중에 13) 최수일, 1920 년대문학과개벽의위상, 성균관대박사논문, 2001. 이논문의조사에따르면개벽의문학 4 이중은전체기사대비 37.9% 이며이는정론성기사 14.9% 의두배를초과하는분량이다. 최수일은문학작품가운데자유시가총 297 편수록되어있다고했으나, 우리의조사에따르면 362 편에이르는것으로파악되었다. 14) 한기형, 근대문학과근대몬화제도, 그상관성대한시론적탐색, 상허학회, 한국
106 한국학연구 47 대한계몽성은 개벽 이지닌매체특성의하나라고할수있다. 이미 매일신보, 동아일보 기자로서문인으로서보다기자로더많이알려진석송이 개벽 의매체의특성을간과해서글을썼다고보기는어렵다. 이미 개벽 의현상문예의신시선자로나선석송은 그들은배우랴하는그들이오알고자하는그들이오하고자하는그들이어늘배워주는자알리어주는자하게하는자가일즉이업섯다 15) 며선자로서의계몽적인태도를잘보여주고있다. 어느정도매체의성격에부합하는것이그의시에대한태도에도나타난다고할수있다. 석송이 개벽 에발표한첫작품은 離鄕 (1920.12) 이다. 이무렵석송은시보다먼저시론으로문단에서주목을받았다. 그시론은 1920년동아일보에 文學과實生活의關係를論하야 - 朝鮮新文學建設의急務를提唱함 란제목으로 4월 20일~4 월 25일에걸쳐연재한글이다. 석송의약력을참조하면이시기는석송이동아일보기자로있던시기이며, 이논문이전의석송의문학적활동은일천하다. 16) 약관의나이에특별한문단적이력이없는동아일보기자가다섯번에걸쳐강경한어조의문학론을연재할수있던배경은무엇인가. 결론부터말하면일본유학파로서동아일보창간부터관여했던석송의영향력이지대했다는것을보여준다고할수있다. 여기서기존에알려진석송의이력에대해한가지짚고넘어갈것이있다. 석송의생애와이력에대한연구는그동안연구자들의노력 17) 에의해어느정도현상적인모습을모두갖추었다고볼수있다. 특히주근 근대문학의전환과모색, 깊은샘, 2007, 61 쪽. 15) 김석송, 고선여감, 개벽 제 13 호, 1921.7, 59 쪽. 16) 이시론을발표하기이전의석송의문학적이력은, 1918 년 4 월 청춘 13 호에발표한수필 그래도불만족 과 1919 년 2 월삼광에발표한 곰보의노래, 1920 년 사나히냐, 1919 년 8 월매일신보에발표한시 사나히냐, 불평의주인공에게 가전부이다. 17) 생애와관련한논문은다음을참조할수있다. 박재서, 작고향토문인 - 석송김형원연구, 호서문학 제 15 집, 호서문학회, 1989.; 맹문재, 석송김형원연구, 중앙대학교대학원석사논문, 1992.; 주근옥, 석송김형원연구, 월인, 2001. 맹문재의연구는박재서의연구를토대로보완한것이다.
석송김형원시연구 강호정 107 옥의 석송김형원연구 에이르러비교적상세한생애의이력을확보할수있었다. 한가지확인해야할것은보성고보중퇴로알려진석송의학력이다. 생의이력을꼼꼼하게추적한주근옥은석송의학력을보성고보중퇴로기록하고있고, 박재서는 보성고보중퇴라고만알려져있으나그후일본立敎大學에서수학한것이아닌가싶다 고적고있다. 한편박재서의글을토대로, 맹문재는 석송은 23년 (24세) 경에일본으로건너갔다. 몇년뒤귀국하였는데체류중에立敎大學에서수학한것으로추측된다. 현재석송의학력이보성고보중퇴라고만알려져있으나이것은재고되어야한다 ( 맹문재 10쪽 ) 고밝히고있다. 박재서나맹문재모두立敎大學수학에대한근거를밝히지는않고있다. 다른전기적사실 18) 을확인해보면석송은동아일보재직중인 1923년 5월동경특파원으로일본에가서 1924년 5월에돌아온다. 따라서맹문재의논의와비교해보면동경특파원으로가있던 1년동안立敎大學에서수학했다는것인데, 어떤근거도제시하지않고있다. 여기서말하고싶은것은석송이일본에유학을했다면 1918년경이맞을것이라는추론이다. 그근거는석송이최초로발표한시작품이잡지 三光 이라는데에서찾을수있다. 三光 은 1919년 2월동경에서발간된잡지로, 발행인은홍영후 ( 홍난파의본명 ) 이며, 재동경조선유학생악우회 ( 樂友會 ) 의기관지성격을띠고있다. 물론동경에서발간되고조선유학생이참여한잡지라고해서동경의유학생이아닌사람이쓴시가실리지말란법은없으나, 창간호에, 기존문인도아닌, 서울에사는사람의최초의시작품을실었을가능성은적어보인다. 19) 따라서석송은이잡지가발간되던시기인 1919년 2월을전후하여일본에유학중일가능성높다. 그러니까보성고보중퇴이후 18) 주근옥, 앞의책 19) 석송은 삼광 제 1 권제 2 호 (1919. 12) 에 곰보의노래 를싣는다. 시의내용이유학의경험을배경으로하고있다는점에서이시기의유학가능성은높아진다. 노춘기는이시를해석하면서, 하숙집에서늦잠을자고있는유행생 나으리 들을 철모르는어린것들 로부르는장면은시인이화자를통하여자신과유학생집단의실체를바라보는자기객관화에이르러있음을보여주는중요한증좌이다 고평하고있다. 노춘기, 잡지 삼광 소재시와시론연구, 비평문학 42 집, 한국비평문학회, 2011. 참조,
108 한국학연구 47 1919년여름매일신보에입사하기전까지의시기가유학가능성이있는시기이다. 20) 또다른근거는휘트먼의영향이지대한것으로알려진석송이휘트먼을알게된시점과관련한것이다. 석송은 1922년 개벽 에휘트먼의시 6편을번역소개한바있다. 1914년부터 1921년에걸쳐일본문단에서는휘트먼의사가활발하게번역, 출판 21) 되었다는점을감안한다면, 1919년 2월을전후한시기석송이일본유학중에휘트먼을알게되지않았을까하는추론이가능하다. ( 석송은휘트먼의시를소개하면서자신이최초로휘트먼을소개한다는것에대해자부심을가지고있다 ) 석송의시론이발표된시점은유학이후자부심이가득한속성의패기만만한때의글이라고할수있을것이다. 어쨌든석송은시론으로먼저부각되는데, 초기그의시론은감정론으로요약된다고할수있다. 果然文學은感情이主體가되야想像과趣味를붓치어서思想을表現한것이다. 그러하다文學은感情그것이다. 藝術化식힌感情이다. 讀者에게感情의作用을주고자하는公利的性質보다唯美的性質이만타. 아니純唯美的이다. 文學 - 廣義로藝術自身은美의結晶이다. 나는이제너무專門的으로文學을論코자하지아니하며通俗的으로말하랴한다. 이만하면文學은感情의學文이고感情美의化身인것을우리는알을수가잇다. 그러면우리는이에文學을더仔細히論究함보다도感情그것이엇더한것인가를알아볼必要가잇다. 感情은瞬間이다. 아모리激烈한感情이라도그瞬間의그感情은다음瞬間까지繼續할수업는同時에그다음瞬間에는또다른感情이作用하는것이다. 우리가忿한일을當하고忿한感情이우리의가슴에作用할때에우리는이것을넉넉히볼수가잇다. 예컨대, 비록, A 瞬間의感情과 C 瞬 20) 이후 1919 년여름에는매일신보에입사를하게되고, 이후매일신보에 사나히냐? (1919.8.4) 불평의주인공에게 (1919.9.14) 를수록한다. 사나히냐? 는 1920 년 삼광 2 권 1 호에재수록된다. 21) 전미정, 석송김형원의문학과휘트먼의영향관계, 시학과언어학 4 권, 시학과언어학회, 2002, 225 쪽.
석송김형원시연구 강호정 109 間까지의感情의種類는同一하다할지라도, A 瞬間의感情은, 그만한熱度와勢力의量을가젓고, 그量이 B나 C 瞬間의感情의量과全等할수는업다. 設或全等되는境遇가잇다하면이는偶然이오必然은안이다. 그런고로, 感情은瞬間的이다. 그러나感情은또恒久的이다. 다시말하면앗가, A 瞬間의感情이밧은그量과全等한刺戟을, 感情에게주기만하면, 언제든지, 그 A 瞬間의感情과同一한感情을呼來할수가잇는것이다. 그럼으로感情은瞬間이오, 또한恒久的이다. 이것을文學上으로말하면, 文學의瞬間性과恒久性이라한다. 그리도또感情은누구에게나- 古人에게나, 今人에게나, 東洋人西洋人에게나靑年老年에게나, 모다所用한것임으로, 時代의古今이업고, 洋의東西가업고, 年齒의長幼가업고, 國境의別이업는, 無限大한普遍性을가젓다. 이것을다시文學上으로말하면文學의普遍性이라한다. 22) 석송은문학을 예술화시킨감정 이라고말하며그것은 공리적성질보다유미적성질 이많다고말하고있다. 그러면서문학은곧 미의결정 이라고말한다. 여기서유념해야할것은 문학이미의결정 이라고해서그것이문학적형상화에있어서 미 를말하는것이아니라감정이지니고있는 미 에대해말하고있다는점이다. 감정이지니고있는美醜나熱度의정도를떠나서모든감정은미를지니고있고, 그감정을노래하는것이문학이라는입장이다. 그렇다면석송에게문학적으로표현된진정한감정이무엇인지좀더자세히살펴볼필요가있다. 석송에게진정한감정 ( 의표현 ) 이란대상에대한순간적감정뿐만아니라그감정으로부터배태된통찰이나깨달음이결부된시를일컫는것으로보인다. 예를들어, 시 生命의葛藤 의마지막연은 오! 그러나나의어린魂아! / 너는記憶하여라 / 이따위가하나도업서질때에는 / 너自身도업서진때임을 이라고적고있다. 역시 편집자적논평과같은서술 23) 의형태로민중에게통찰이나깨달음 22) 김형원, 文學과實生活의關係를論하야 - 朝鮮新文學建設의急務를提唱함, 동아일보, 1920.4.20.-4.25. 23) 박호영, 앞의논문, 101 쪽.
110 한국학연구 47 을전달하려는의도를보이고있다고할수있다. 이와같이그의시에는말미에논평자적인서술이덧붙여있는경우가많고, 이것이또한문학적형상화에있어서그의시의약점이되기도하지만, 감정을대하는그의시의특징이라고할수있다. 감정에대한그의생각을드러낸것으로다음의시를예로들수있다. 四이미낡아빠진禮儀의옷을새로운感情의主人公인나에게아모리입히랴고애를쓴들너라하면이 ( 齒 ) 를가는나야말로盛히타는咀呪의불속에더지고야 人情을무시하는 禮儀! ㅅ개어진솟때이듯하는 論理! 神聖한人間性을破壞하는滅亡의씨를뿌리는 舊道德! 아! 나는眞情咀呪한다 ( 중략 ) 八人生은創造的動物이다個性의完全한表現感情의充分한發達여긔에創造가잇슬지오비롯오新世界는展開된다 무엇보다도더큰사랑조차우리의마음대로못하는잠과밥도어더볼수업는
석송김형원시연구 강호정 111 性格破産의宣告를바든人生은일어날것이다革命의홰불을들고 - 離鄕, 부분 시 離鄕 은화자가고향을떠나며가족과이별하는순간과기차안에서상념에잠긴사색의내용, 그리고다시서울에도착하여느낀소회를적은시이다. 一부터十까지숫자로구분되어있고, 각숫자에는대체로 1연 5행으로된구절이각각 2연씩배치되어있는제법긴시이다. 인용한부분은기차안에서상념에잠긴내용에해당하는부분인데, 감정에대한그의생각을엿볼수있는대목이다. 석송에게감정은예의, 논리, 구도덕에대립하거나우선하는개념이다. 예의는인정을무시하는것으로제한되고, 논리는깨어진솟때이듯하는것이고, 구도덕은멸망의씨를뿌리는것으로제한된다. 구도덕 에서보듯이이러한것들은과거의 인습 에해당하는것들이고, 석송은기본적으로이런예의, 논리, 구도덕을 저주 하고있다. 그래서스스로 새로운감정의주인공 임을천명한다. 감정의발달 과 개성의표현 이중요한이유는바로그곳에 창조 가있고, 신세계 가전개되기때문이다. 석송은다른시에서도 개성은우리의뿌릴생명의씨 ( 벌거숭이 ) 라고노래하고있다. 또 개성의생명은전투에있다 며 개성에향하야 / 일제히사격을할것 ( 나는어데로 ) 이라며개성을강조하고있다. 석송에게 개성 은 감정 을살아있게만들며, 인생을일어나 게하는그무엇이다. 감정의발달 + 개성의표현 신세계의전개 의구도는석송의시가보여주는또다른의미를형성하는데, 이는신세계에대한석송의독특한인식을보여준다. 위에인용한시 離鄕 에서도신세계의전개를말하고있지만, 다른시에서도 낙원, 파라다이스 의세계를꿈꾸고있는것을볼수있다. 가령, 生長讚美 에서 우리의도라가는곳은 / 언제든지生命의꼿이滿發하는 / 모든槪念이한데뭉처지는 / 地上에서는想像도못할樂園이다. 라고노래하며, 지상에서상상도못할낙원을꿈꾸고있다. 공간으로서의 낙원 과시간으로서의 새날 은 생장 이이
112 한국학연구 47 루는혹은이루어야할시공간이며, 그토대는감정과개성에있다는것이석송이생각하는문학이기도하다. 석송시의특징중의하나는감탄사를많이사용한다는것인데, 이를감정의과잉으로서감상으로보기는어려워보인다. 석송은감정과감상을구분하고있기때문이다. 개벽의현상문예에응모한작품을선하면서, 응모한시가논문도아니고산문도아니고소설의일절도아니고시도아니고오즉몽롱한작자개개의감상에지나지못한다 고적고있는것으로보아감정과감상을구분하고있음을알수있다. 따라서석송에게감탄사나감탄부호가붙은호격은감탄의의미보다는강조의의미가강하다고할수있다. 나는무산자이다! 라고했을때, 거기서어떤감상적감탄은느낄수없다. 무산자에대한강조만이눈에띈다. 3. 민주문예론과생의의미 - 생장 시대 잡지 生長 은석송의개인문예지로알려져있다. 24) 생장 이란잡지제목에대한석송의애착은그의시여러곳에서찾아볼수있다. 革命은生長의代名詞이다 ( 큰물뒤에 ) 라고할만큼생장이란말자체가석송의시의식의단면을보여주는의미있는말이라고할수있다. 먼저 생장 창간호에실린 生長讚美 를보자. 아! 동무야아, 나의동무들아! 그대들은잔을마시엇는가, 生命의잔을, 이제는一齊히이러나서노래부르자 - 生의讚美! 오生長의讚美! - 生長讚美 부분 24) 생장이창간되고김형원이카스큘라와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서활동하던당시가겹쳐생장을파스큘라의기관지로여기는사람들도많았다고한다. 그러나어디까지나그것은김형원개인이발간한잡지였다. 임경석편, 동아시아언론매체사전, 논형, 2010, 699 쪽.
석송김형원시연구 강호정 113 창간호에실려서잡지 生長 의창간에대한축시의의미도있지만기본적으로生, 生命, 生長에대한석송의의지를보여주는시라고할수있다. 생장은사전적의미로 나서자람 의의미를갖지만, 그를넘어서모든존재가지니고있는 생 혹은 생명 의의미로받아들여진다. 석송이 온누리에모든생물들로더불어 / 나는영원히생장의축배를올리련다 고했을때, 우리는석송이말하는생, 생장의의미가 모든생물, 태양과모든성신 에이르기까지자연과우주로확대됨을알수있다. 이러한생에대한인식은 1920년대초기문학인에게핵심적인인식대상의하나라는점에서특별한것은없으나, 석송에게 생장 은좀더포괄적인의미로강조되고있다고할수있다. 그게누구인가, 내창압헤와서나를부르는이가, 웨대답을하지아니하는가, 그대는유령인가, 바람인가. 아모도부르는이는업다. 그러나, 지금도부른다. 너의갈비ㅅ대밋헤서큰소리적은소리로꾸준히부른다. 모든것은善이다. 모든것은惡이다. 그러나, 오즉한가지특별한善이잇다. 그것은 - 生의旨定 25) 이다. 生長의讚美이다. - 그게누구인가 부분 인용한시는 그게누구인가 라는시의끝부분이다. 앞부분에서화자는그게누구인가물으면서 걸인, 고학생, 지게군, 차부, 창기, 매음녀, 여학생, 유산자, 무산자 등온갖종류의 생 의보유자들을호출한다. 살아있음으로서 생 을보유했으나, 석송이보기에진정한의미의생명력은갖지못한사람들이다. 여기서화자가말하는 그게누구인가 의 그 는 생 혹은 생장 과다르지않다. 지상의모든것은선과악의갈등이지만한가지특별한선으로생의肯定, 生長의讚美를들고있다. 이때의생 25) 生의旨定 은 生의肯定 의오식으로보인다.
114 한국학연구 47 장은생명의확장, 생의확장으로서그것은 죽은생 을보유한사람들과의소통의의미도포함한다. 이는생장의의미가석송에게남다르다는것을보여주는것이며, 그에게있어서생장은혁명에준하는것이기도하다. 잡지 生長 은 5호까지발간된다. 단명이라면단명일수있겠지만, 당대의잡지들이 2-3호를넘기지못했다는것을염두에두면개인잡지로서그래도제법수명을누린잡지라고할수있다. 당대에가장인기있었던 조선문단 이나 개벽 의월평에서도 생장 수록작품들을빠뜨리지않고평한것을보면, 잡지 生長 이지닌문단적의미를확인할수있다. 5호발간에그친이유는 生長 에적극적으로개입했던소설가이자처남인김낭운의죽음 26) 과원고난, 자금난등이겹친것으로보인다. 잡지 生長 에수록된석송의글은시 16편, 기타작품 7편정도이다. 석송은 조광 삼천리 등다른잡지에도작품을실었으나, 生長 이 개벽 다음으로많은작품을수록한잡지라고할수있다. 生長 에수록된석송의의미있는글로는먼저 民主文藝小論 을들수있다. 民主文藝小論 은앞서살펴본 文學과實生活의關係를論하야 와함께석송의대표적인문예론이라고할수있다. 이 民主文藝小論 을이루는핵심적사항은민주 민족 현실의개념이다. 즉민족을주체로현실을수용하면서, 구체적인창작방법내지정신으로서자유 평등 포옹의이념을제시하고자한것이이글이다. 27) 이글에서석송은 1. 귀족적문예, 2. 민주주의와문예, 3. 나와민주주의, 4. 포옹과반항, 5. 민주문예와향토문예, 6. 조선과민주문예로장을나누어설명하고있으나, 핵심적인내용은 민주적문예의내용과그중요성 에대한역설이라고할수있다. 26) 석송의다음글에서잡지 生長 에있어서의낭운의역할을알수있다. 生長 은명의와경영이나에게속하엿섯스나실상일을하기는浪雲이전부하엿다. 編輯은勿論이오印刷校正으로부터發送販賣에이르기까지雜務를통으로마터서하엿다. 生長 이生長하지못하고五號로써夭折한데對하야는나의責任이크지만은五號雜誌라도이것이文壇에寄與한바가잇다고假定하면이것은純全히浪雲의功績으로돌닐것이다. 김석송, 嗚呼薄明의文士들 - 浪雲의性格과生涯, 삼천리, 1929.9 27) 신연주, 앞의논문, 19 쪽.
석송김형원시연구 강호정 115 民主主義는形式에잇서서非因襲的일뿐아니라거의定形이업다하여도過言이아니오, 內容에잇서서는包括的이오, 發達上으로볼때에는進步的이라할것이다... ( 중략 ) 民主主義의特色은제일自由에잇다. 이自由라함은모든形式과束縛을떠나서, 사람의天稟을제일로發揮식히는것을意味함이다. 文藝上으로옴겨말하면形式과題材를拘束업시選擇하고, 個性의率直한表現을爲主하며, 따라서各個人의生活을그대로承認하야, 詩人의입을빌어萬人으로하야금發言할自由를許與하는點에民主的文藝의참된使命을發見할수잇는것이다. 28) 문예론을민주주의와연관하여설명하고있다는것은석송의진보적문학관을그대로드러내는것이라할수있다. 민주적문예는한마디로형식과제재, 내용에있어서구속없이자유롭게선택하여만인으로하여금발언할자유를주는것으로요약가능하다. 위에서짧은부분을인용했지만, 석송의문학관이표현을달리하여드러나있다. 이를테면, 사람의天稟 을발휘시키는것은앞서언급한감정을고양하는것과같고, 시인의입을빌어만인으로하여금발언할자유를허여 한다는것은시인의예언자적목소리에대한지지와더불어계몽성을드러낸다고할수있다. 석송의시의관념성을들어시의미적형상화에실패했다고판단하는논의도있다. 현대시 100년의역사속에서지금의세련된시선으로석송의시를보면일면타당하다고할수있을것이다. 그러나근대시가자리를잡아가는과정에있는 1920년대초반, 당대의입장을고려해야할필요가있을것이다. 아직시가무엇인지정립되지않은상황에서석송은나름대로의근대시를실험했다고볼수있다. 그실험의하나는애초에석송이시의미적형상화에관심을두었다기보다는시의역할에더방점을두고시작을했다는것이다. 그에게휘트먼의영향은상당히지대한것으로알려졌는데, 휘트먼에대한절대적인신뢰를보여준석송으로서 28) 石松, 民主文藝小論, 生長 제 5 호, 1925.5.
116 한국학연구 47 는휘트먼과마찬가지로, 시에예언자적목소리, 선지자적목소리를담고싶었는지도모른다. 석송의시에서영탄과호격의빈번한사용은그런목소리를극적으로드러내는장치이기도하다. 따라서시학적인 미의시 는석송이지향하는바가아니다. 이는석송의시에서언어의조탁이나미적긴장감을느낄수없는까닭이기도하다. 그가휘트먼에게서배운것은 파격 이었다. 휘트맨은破格詩人이다. 그는韻律을無視하였고, 用語를亂用하였고散文的을지나서論說的인詩를썼다. 그의詩集 草葉 은一八五五年뿌루클린에서初版을發行하였으나팔니지아니하였다. 그러나版을거듭함을따라마츰내亞米利加는詩人의靈魂을慰勞하였다. 그는一生을孤獨하게지났으나언제나늘快活하였다. 오즉데모크래시의永遠한眞理를노래하며지기를百年後千年後에기다리는態度로꾸준히노래하였다. 그는이렇게말했다. -가장偉大한詩人은自身으로서最善을다하는사람은아니다. 가장많이暗示를준사람처음부터모든意味가明白한사람이아니라오히려많은餘地를남기고諸君으로하야금說明하고硏究하고또完成시키도록하는사람이다.- 그렇다휘트맨은暗示의詩人이다. 그는무었을暗示하였는가. 그의데모크래시는우리에게무엇을가르치고있는가. 29) 운율을무시하고, 용어를난용하고, 논설적인시 는휘트먼의시에대한석송의평가이지만, 이는곧석송자신의시에해당하는말이기도하다. 운율의무시와용어의난용, 논설적인시 는곧시의미적형상화에관심을갖는것이아니라시의사회적영향력에더관심을갖는다는것이다. 그렇다면사회적영향력의관점에서석송이말하는것은무엇인가. 바로 데모크라시 의문제다. 휘트맨이암시의시인이라는점은또다른해석이가능한것이나, 석송은암시를데모크라시에대한암시로이해하고있다. 29) 석송, 묵은流行, 조광 2 권 5 호, 1936.5, 263 쪽.
석송김형원시연구 강호정 117 떼모크래시를보통飜譯하여民主主義라고한다. 그러나, 民字의字意로만解釋하여, 從來被治者, 즉百姓만을爲主하는主義로알아서는큰誤解이다. 떼모크래시는被治者, 治者, 强者, 弱者, 男女老幼色別을勿論하고, 사람이란사람은모다均等한機會에서生長할수잇다는것을부르짓는主義이다. ( 중략 ) 떼모크래시는어느意味로보아共生主義이오抱擁主義이며떼모크래시의理想은現在보다도未來에잇고떼모크래시의詩人은說明보다도豫言을만히하게된다. ( 중략 ) 떼모크래시는太陽이다. 宇宙의구석구석에그光明을고루고루빗최어줄뿐이오, 아모途別的意味는가지지못한다. 떼모크래시는絶對의抱擁이다. 美醜도不許하고, 善惡도不關하고모다한결가티抱擁한다... 떼모크래시는絶對抱擁인同時에또한絶對의反抗이다. 결국사회적영향력의관점에서그대상은 民 이라고할수있다. 석송이말하는 民 은피치자, 치자, 강자, 약자를모두포괄하는개념으로민족전체를아우르는것이라고할수있다. 앞선인용문에서민주주의의특색으로자유를들었다면, 여기서는만유평등을외치며, 모든것을끌어안는포옹주의를내세우고있다. 떼모크래시 를태양에비유하고절대의포옹으로파악하는것은다소관념적으로읽힌다. 데모크래시를절대의포옹으로파악하는자리에구체적인사상의표현은제거되어있다. 이는석송자신이이데올로기 ( 사조, 동인등을포함한 ) 와거리가멀다는것을반증한다. 이는석송이낭만주의시인으로서의속성을드러내는단면이기도하다. 그러나절대포옹으로서의떼모크래시는모든것을포괄하는것으로서의생혹은생장의문제와관련하여볼때, 석송문학의한지향점이기도하다. 많은경우, 시인의시론은오랜시간창작의고통스런과정을거치며수정, 보완되며스스로완성해나간다. 그러나석송은시등단과비슷한시기에이미자신만의시론을완성해놓고있다. 따라서시론과시가, 내용은물론사용된어휘까지도구체적으로일치하는경우도있다.
118 한국학연구 47 더러운때가더덕더덕부튼발을, 함부로당거도흔연한얼골로, 질겁게노래만하며흘너가는, 깁흔골바위사이시내물이여, 힘을배앗고돌멩이를던저도, 한결갓치생글거리는시내물이여. 아, 나는그대들에게感謝들인다. 매어달녀도, 괴롭다아니하는, 가냘핀나뭇가지여, 흘겨보아도피할줄모르는, 숨사이의흰구름이여, 밟히는흙, 꺽기는꼿, 노래하는새, 반겨하는다람쥐, 쪼차도다시오는물파리떼아, 나는그대들에게感謝들인다. 까닥도업시, 猜忌, 嫉妬, 謀害, 殺戮을일삼는, 人間의사는都會의때를흠뻑무친두발이, 利己와害他의비린내나는싸흠터를지나와, 자욱자욱에더러운피를무친나의두발이, 絶對의無條件, 絶對의無抵抗, 絶對의抱擁 - 밋업시깁흔自然의사랑에안길때에, 아, 나는운다넉을일코울뿐이다. 아, 나의님이여말업는自然이여! 님의품에안긴다! 나의품에안긴님! 아, 이거룩한時間이, 다함업시이어잇게하소서. - 感謝, 전문
석송김형원시연구 강호정 119 인용한시에는어휘의나열이나감탄사의사용등석송시의특징이라고할수있는것이두루나타나있을뿐만아니라, 석송의시론이그대로적용되어나타나있다. 흰구름, 흙, 꽃, 새, 다람쥐등은석송이강조하는생혹은생장의대상이다. 또절대의무저항, 절대의포옹역시석송의시론에서그대로가져온것들이기도하다. 앞선인용문에서떼모크래시가 절대포옹인동시에또한절대의반항 이라고했을때, 절대포옹과절대반항을대립개념으로볼수없는것은석송이미추와선악을대립개념으로파악하지않는것과같다. 따라서이시에사용된절대의무저항도절대의저항의반대되는개념이라기보다는절대포옹의대상일뿐이다. 흥미로운것은인용한시에서절대포옹의모델로서자연이상정되고있다는것이다. 석송의시에서그동안자연물이보이지않았던것은아니나, 대체로그것은생혹은생장의일부분으로서기능했다. 이처럼자연자체가절대포옹의모델로등장하는것은드문일이다. 석송은 생장 폐간이후특별한창작활동을하지않고시로부터멀어져간다. 석송이생각하는문학상의계급성과신경향파에서주장하는계급성의차이로말미암아자연스럽게멀어졌다는것이기존의일반적인논의이다. 이시가석송의시적이력의말미에씌어졌다는것은석송시의변곡점을이룰수있는가능성의지점에서석송의시가동력을잃었다고할수있을것이다. 4. 문인기자로서석송의내면인식 1920년대이후많은문인들이이른바 문인기자 의삶을살았다. 30) 석송은 1919년매일신보에입사한이래, 1920년 4월동아일보창간과함께자리를옮기고, 1924년 5월조선일보로, 1926년 9월새로창간하는형식의중외일보로, 1932년다시조선일보로자리를옮긴다. 1938년경성일보, 1945년복간한조선일보편집국장을맡는다. 승진도빨랐던것으로 30) 조영복, 김기림연구의한방향, 우리말글 33 집, 우리말글학회, 2005, 421 쪽.
120 한국학연구 47 보아기자로서의역량을인정받은듯하다. 그러나기자로서의삶에만족했던것은아니다. 新聞記者의生活은簡單히말하면 산송장 의生活이다. 다시말하면好惡의感情을죽이고理智의分析을必要로하는生活 ( 자기충돌118쪽 ) 이라고하는가하면, 내자신이記者라는職業에실증을내인지가오래요될수만있으면그만두랴는생각 까지하고있는것을보면기자생활에힘겨워했던것으로보인다. 시인과기자사이에서방황한흔적을도처에서엿볼수있다. 그, 그는, 他人과의衝突을어데까지避한다. 그대신自己와의衝突을時時刻刻으로繼續하고있다. 感情과理智의衝突, 理想과現實의調和, 私와公의摩擦, 二重性格의苦悶, 胸中에燃燒되는自己矛盾의熱火! 31) 여기서 그 는석송자신을객관화한표현이다. 감정과이지사이에서, 현실과이상사이에서늘충돌하고있고, 방황하고있는모습을볼수있다. 그것은결국시인과기자사이에서의방황이라고할수있을것이다. 석송은시 天生의詩人 에서작은새를 천생의시인 으로보고, 그純眞, 自由, 奔放의詩를, 속임성업는너의感情을 배우겠다고하고있다. 석송에게순수한감정은곧시인의몫인셈이다. 그것이기자가지녀야할理智와충돌하고있는것이다. 박이석은 시대의조류는석송형을다시언론인으로돌아가지않을수없게하였다. 32) 고회상하고있다. 박이석의회상은두가지점을상기하게한다. 하나는석송이시를포기한것이시대의조류탓이라는것이고, 다른하나는언론인으로서의석송의사명감이더컸다는것이다. 어쨌든석송은매일신보기자를시작으로여러신문사를전전하며기자생활을떠나지않는다. 따라서문인으로서의이력과기자로서의이력은늘겹친다. 그러나그나마 1926년이후에는시를거의쓰지않고몇 31) 김석송, 自己衝突, 조광 2 권 4 호 1936, 119 쪽. 32) 박이석, 석송김형원형 ; 새해에생각나는사람들, 신천지 제 9 권제 1 호, 1954 년신년호, 239 쪽.
석송김형원시연구 강호정 121 편의산문을남기고있다. 그렇다고해서석송이시인으로서시심을잃은것은아니었다. 詩心은곳眞心이다. 누가나詩를읊어보고詩를지어본사람이면이한마듸로써나의說明을더必要타하지아니할것이다. 世上萬事中에무엇하나가假心을許하는일이없지만은詩에限하야서는一毫라도假心을가지고는一句를읊을수도없고一章을지을수도없다. 一瞬이라도眞心을갓게되는때에비로소詩境에들어갈수가있을것이오, 一刻이라도假心을떠나는때에문득詩感을느끼게되는것이다. 33) 석송에게 詩境에들어가는것 혹은 詩感을느끼는것 은꼭시를쓰거나읊어야만가능한것은아니었다. 眞心을갖게되는때곧詩境에들수있다는것이며, 그것이곧詩心이라는것이다. 다시말하면, 詩心은不滅이지만, 그것이꼭시를써야만하는것은아니라는말이다. 인용한글의서두에서석송은 詩와因緣을끈흔지十年 이라고적고있다. 비록시를더이상창작하지는않지만, 스스로의내면에시심만큼은지니고있다는것을강조한것이라고할수있다. 문학과현실, 시인과기자는석송의내면에늘충돌하는두가지요소이기도하다. 다음의두시는문인, 기자로서석송의자기충돌이잘나타나있는시이다. 오, 나는본다! 숨쉬는목내이를. 현대라는옷을입히고제도라는약을발라, 생활이라는관에넣은목내이를나는본다. 33) 김석송, 詩心不滅, 조광 2 권 3 호 1936, 301 쪽.
122 한국학연구 47 그리고나는, 나자신이이미숨쉬이는목내이임을아, 나는조상 ( 弔喪 ) 한다. - 숨쉬는목내이 ( 木乃伊 ), 전문 오뼈와살사이로빨간피ㅅ줄이뛰는숨쉬이는사람들아! 그만깨이지아니하랴느냐? 밤이-무서운이밤이아모리길다하여도마침내새일때는올것이다. 깨여라, 이러나자, 새날을맛기爲하야! 그대들은차림차림이잇는가? 손과손에쓰레질할비를들엇는가? - 白骨의亂舞, 부분 인용한두편의시에는수필 자기충돌 에서보여준내면의고뇌와자아에대한인식이여실히드러나있다. 숨쉬는목내이 ( 木乃伊 ) 에서목내이는미이라를말한다. 이시에서화자가조상하는것은두가지로볼수있을것이다. 하나는문면에나타나있는대로, 자신을 이미숨쉬이는목내이 로보고, 자신을조상하고있다. 그것은시인으로서, 기자로서당대를살아가는자의식의발로라고할수있을것이다. 한편으로현대, 제도, 생활은당대의식민지적상황을떼어놓고생각할수없는것들이다. 결국석송은당대의상황자체에대해조상하고있다고할수있다. 두번째인용한 白骨의亂舞 는기자로서의사명감이드러난시라고할수있다. 새날을맞이하기위하여 숨쉬이는사람들 이깨어있기를, 백골 로상징되는다른부정적인요소를쓸어버릴준비를하기를기대하고있다. 기자로서민중들을계몽하고자하는의도가드러나있는것
석송김형원시연구 강호정 123 이다. 여기서석송이백골로표현한것은 흙인지뼈인지알수도업는四書三經의白骨! / 고사만안지내도탈을내이는터主大監!/ 十九世紀以來의科學! 그로부터나온哲學! / 正義와人道의새옷을떨떠린날송장의정강이뼈! / 社會 의저고리에 民衆 의바지를입은- 것들이다. 예로부터당대에이르기까지 正義와人道 를제외한나머지것들은백골이난무하는것이고, 따라서타파의대상이다. 그러나그가말하고있는 正義와人道 의구체적인대상이나방식은드러나있지않다. 그것이석송의시를생경하게만드는요인이나, 석송이지닌내면의모습을있는그대로드러나게하는요소이기도하다. 5. 나오며 지금까지 개벽 시절에석송이보여준시론과시, 생장 시절에석송이보여준시론과시를, 그리고시인과기자로서석송의내면의식에대해살펴보았다. 개벽 시절 개벽 이지닌매체이념과유사한맥락에서시에서도계몽성을드러낸다고할수있다. 석송이초기에보여준시론은감정론으로요약되는데, 그에게감정은예의, 논리, 구도덕에우선하는개념이라고할수있다. 감정으로부터배태된통찰이나깨달음이결부된시가석송에게는중요한의미를갖는다. 그러나이감정의표현은절제의정도에따라감상과그경계선을같이한다고할수있다. 석송의시에서미적긴장감이떨어지는시들이다수있는것도절제의정도에한계를드러낸것이라고할수있으나, 석송이지향한것은시의미적형상화라기보다는시의사회적영향력에있다고할것이다. 시의사회적영향력에대한석송의의지는 생장 에서좀더본격화한다고할수있다. 생장 은석송이직접주재한잡지라는점에서의미가있다. 그는다른잡지에서펼칠수없었던자신만의문학관을 생장 을통해열어보고자했다. 그는 생장 에 民主文藝小論 이란시론을싣고, 문예론을민
124 한국학연구 47 주주의와연관하여설명하고있다. 석송이말하는민주적문예는형식과제재, 내용에있어서구속없이자유롭게선택하여만인으로하여금발언할자유를주는것으로요약가능하다. 그러한방식이자신의시창작에도드러나있으며바로그지점에서휘트먼과의친연성을보인다고할수있다. 석송은매일신보기자를시작으로 6.25이후행방불명될때까지기자생활을떠나지않는다. 따라서문인으로서의이력과기자로서의이력은늘겹칠수밖에없는데, 기자와시인사이에서석송이보여준내면의모습은 자기충돌 의모습으로나타난다. 석송이 1926년이후시를거의쓰지않고기자생활에전념한것도 자기충돌 로부터벗어나기위한어쩔수없는선택으로보인다. 개벽 시절이나 생장 시절, 석송의시혹은시론이일대변모를이루는것은아니다. 시기적으로도불과 1-2년사이여서완전히새로운시세계를보여준다고보기는어렵다. 다만두시절을구별하자면, 감정을위주로한생활지향에서좀더포괄적이고, 民인 을향한민주지향의문학관을보여준차이가있다고할수있을것이다. 참고문헌 1. 기본자료김석송, 석송김형원시집, 삼회사, 1979. 개벽, 생장, 신민, 신천지, 조광등잡지 2. 논문및단행본김삼숙, 석송김형원의시와시론에관한연구, 서강대대학원석사논문, 1987. 김용직, 한국근대시사 ( 상 ), 학연사, 1986, 409-425쪽. 김용직, 한국현대시에끼친 leaves of grass의영향, 논문집 제2집, 서울대교양과정부, 1970, 31-55쪽. 김은철, 한국근대시연구, 국학자료원, 2000. 김형필, 석송김형원과월트휘트먼의 초엽집, 외국문학연구 1집, 한국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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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한국학연구 47 * < 부록 > 김형원산문작품목록 발표지권호발표일작품제목장르開闢제13호 1921-07 考選餘感평론 ( 선후평 ) 開闢제 31 호 1923-01 잠을쇠수필 開闢 제56호 1925-02 階級文學是非論 '- 階級을爲함이냐文藝를爲함이냐 평론 女性 제1권제9호 1936-12 어머니 안해 누의에게 수필 女性 제2권제6호 1937-06 어머니의마음 수필 新民 제20호 1926-12 身獄에서心獄에 수필 新生 제2권제5호 1929-05 民衆詩人휘트맨의一生 전기 ( 인물소개 ) 新生 제2권제5호 1929-05 朝鮮을배웁시다 수필 新女性 제1권제2호 1923-10 人子와猫子 번역소설 新女性 제2권제10호 1924-11 아기배인女子에게는 수필 어린이 제2권제3호 1924-03 작은새 번역동화 어린이 제7권제8호 1929-10 백도라지 수필 朝光 제2권제3호 1936-03 詩心不滅 수필 朝光 제2권제5호 1936-05 묵은流行 수필 朝光 제2권제6호 1936-06 好意有罪 수필 朝光 제2권제7호 1936-07 空虛症 수필 朝光 제2권제8호 1936-08 貧과富 수필 朝光 제2권제9호 1936-09 瞬間幸福 수필 朝光 제2권제10호 1936-10 晴讀雨耕 수필 朝光 제2권제11호 1936-11 禽獸會議 수필 朝光 제3권제3호 1937-03 人格罫線 수필 朝光 제3권제6호 1937-06 贅疣問答 수필 朝光 제4권제3호 1938-03 그리운江南 은나의愛人 - 그를作詞하든시절의追憶 수필 朝鮮之光 제86호 1929-08 金剛雜記 수필
석송김형원시연구 강호정 127 朝鮮之光 제89호 1930-01 님자업는편지 수필 靑春 제13호 1918-04 그래도 [ 不滿足 ] 수필 號外 제1권제1호 1933-12 最後의一節 수필 三千里제 4 권제 8 호 1932-08 동아일보 1920.4.20. -4.24 曙海와우리들 - 嗚呼 曙海의死, 曙海回想記문학과실생활의관계를논하야-조선신문학건설의급무를제창함 조선일보 1924.10.13 네가지不可解 수필 生長 제1호 1925-01 현대예술의타락 평론 生長 제1호 1925-01 자기타협타인 수필 生長 제2호 1925-02 인격과가격 수필 生長 제2호 1925-02 소개일언 ( 특집염상섭 ) 수필 生長 제3호 1925-04 서적이전서적이후 수필 生長 제4호 1925-05 선후수언 평론 ( 선후평 ) 수필 평론 生長 제5호 1925-06 민주문예소론 평론 衆聲 제1호 1925-05 신춘시단 평론 ( 단평 ) 朝鮮文壇 제18호 1905-04 문단침체의원인과그대책 평론 啓明 제2호 1929-06 성적관계의일고찰 논평 三千里 1929-09 낭운의생애와성격 논평 三千里 1930-07 내고향산천인물 논평 三千里 1933-09 路傍雜草 수필 朝光 제2호 1936-02 福 수필 朝光 제4호 1936-03 記者試驗所感 수필 朝光 제5호 1936-04 自己衝突 수필 朝光 제16호 1937-03 人 格 罫線 수필 朝光 제19호 1937-06 贅疣問答 수필 < 위목록은주근옥의조사자료목록을토대로하였으며, 그중에서누락된산문작품 10 편을보완한것임 >
128 한국학연구 47 Abstract A Study on the Poetry by Kim, Hyung Won(Seoksong) - between The Dawn of Civilization(Gye Byuk) and Growth and Development(Saeng Jang) magazine Kang Ho-jung (Hansung Univ) This study is intended to examine how essays on poetry by Seoksong Kim, Hyung Won(1900~?) reflected on the poetry. Specially, this study will look into the poetry and essays on poetry by Seoksong within its relationship with media around two different magazines, called The Dawn of Civilization(Gye Byuk) and Growth and Development(Saeng Jang). The two magazines, The Dawn of Civilization(Gye Byuk) and Growth and Development(Saeng Jang), have special significance to Seoksong. Seoksong published 85 poems, 6 translated poems, 1 review, and 1 essay on The Dawn of Civilization(Gye Byuk). This is far more than poems by other major poets(57 poems by Kim Uk, 48 poems by Kim So-Wol, 26 poems by Lee Sang-Hwa, and 10 leading poems) published in The Dawn of Civilization(Gye Byuk). Also, it is a considerable number which is the 2/3 of Seoksong's entire work. In addition, it is evident that Seoksong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Dawn of Civilization(Gye Byuk) as he published 'commentaries' as a selector of 'readers literature competition' of The Dawn of Civilization(Gye Byuk). On the other hand, in Growth and Development(Saeng Jang), he presented 16 poetries, 2 reviews, and 5 prose. The number of presented work is far less than the ones published in The Dawn of Civilization(Gye Byuk), but it has
석송김형원시연구 강호정 129 significance that it is a 'pure literary magazine' that Seoksong himself has personally presided it. Poetries or essays on poetry by Seoksong did not make great transfiguration during The Dawn of Civilization(Gye Byuk) period or Growth and Development(Saeng Jang) period. It is difficult to consider that they expressed a completely new world of poetry in terms of time, because it was only within 1~2 years. However, if the two periods have to be classified, there may be a difference that expressed more comprehensive democracy-oriented view of literature from aiming for emotion-oriented life. Specially, during the The Dawn of Civilization(Gye Byuk) period, the enlightenment that the magazine The Dawn of Civilization(Gye Byuk) displayed Seoksong's view of literature, and during the Growth and Development(Saeng Jang), he strengthened the 'theory of democratic literature' as his own literature theory. Key Word : The Dawn of Civilization(Gye Byuk), Growth and Development(Saeng Jang), magazine, media, theory of democratic literature, enlightenment 강호정 소 속 ; 한성대학교언어교육원 전자우편 : krusoe@hanmail.net 논문투고일 2013. 10. 31 / 심사완료일 2013. 11. 26 / 게재결정일 2013. 1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