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Ⅰ 메르스사태와언론보도 메르스 70 일간의기록 남주현 SBS 정책사회부의학팀기자 서울대언론정보학과졸업 SBS 입사 5월 20일, 중동호흡기증후군 ( 이하메르스 ) 환자가국내에유입됐다는보건복지부보도자료를처음열던순간은아직도기억이생생하다. 정확히는보도자료도아니고, 보도자료보다중요도가떨어진다고판단할때 배포하는 보도참고자료 였다 ( 파일명은 [ 보도참고자료 ] 중동호흡기증후군 ( 메 르스 ) 환자국내유입확인 ). 외신을통해서만간간이들었던메르스라. 당시 자료를보면중동이외의국가가운데가장많은환자가보고된나라는영 국으로메르스환자 4 명이발생해 3 명이숨졌다. 그외의국가에서는대부 분중동에다녀온환자한두명이나오는데그쳤다. 의학전문기자인 1 진에게보고했고, 국내처음유입된감염병인만큼 8 시 뉴스용리포트를제작하라는지시를받았다. 첫환자가그날아침국가지 정격리병동인국립중앙의료원에입원한사실을확인하고바로병원으로 향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은당일에볼라에대비해만든매뉴얼에따라일부 환자들을퇴원시키거나다른병동으로옮겨급히격리병동을만들었다. 사실상의메르스첫날, 그때까지만해도그렇게급박한상황은아니었 16 관훈저널 가을호
다. 에볼라같은두려운전염병은아니고, 낯설지만통제가능한범위안에있다는자신감이느껴졌다. 2개의문으로차단돼안전하지만환자와는불과 100여 m 떨어진음압병동앞에서감염병센터장을인터뷰할정도로, 나부터도두려움이없었다. 그날리포트를본회사동료들이농담처럼괜찮으냐고, 전염된것아니냐고한마디씩던졌지만씩웃고말았다. 치명률은높아도전염성은낮대요. 5월 21일, 메르스발생이틀만에세번째환자까지확인된뒤메르스는잠시소강상태를보였다. 다른나라들처럼큰탈없이마무리되는가싶었다. 그러나첫번째환자를 5분가량진료했던의사가다섯번째로, 첫번째환자와다른병실을사용해격리대상에도들지않았던 70대남성이여섯번째환자로확진되면서부터사태는완전히다른국면으로접어들었다. 양병국질병관리본부장이공식브리핑에서환자와 2m 이내에서 1시간이상접촉하는것이 밀접접촉 이고, 밀접접촉 한경우에만메르스에감염될가능성이있다고설명했는데, 이에정면으로대치되는결정적사례들이었다. 보건당국의믿을구석이었던 WHO( 세계보건기구 ) 의지침은힘을잃었고, 불신이싹텄다. 5월 28일, 메르스의심환자가중국으로출국한사실이확인되면서방역망이뚫렸다는공포가눈덩이처럼불어났다. 문제는메르스에대한경계심은생겼지만우리는여전히그바이러스를잘알지못했다는것이다. 공포의 B 병원, 평택성모병원에가다 메르스발생 13일째인 6월 1일. 첫환자를비롯해메르스환자 16명이거쳐가 메르스바이러스의온상 처럼알려진 B병원, 즉평택성모병원을찾아갔다. 추무진대한의사협회장이해당병원시설을점검하고의료진을위문하는자리에의학팀 1진이동석하게됐고, 나는취재를자청해합류했다. 예상치못했던추가감염이왜끊이지않는지, 작은단서라도직접찾아보 메르스 70 일간의기록 17
고싶다는마음이두려움보다컸다. 앞서몇몇언론사에서은밀하게촬영하고취재하긴했지만의료진의안내를받아첫번째환자가입원했던병동곳곳을둘러본매체는 SBS가처음이었다. 관리가제대로되지않았을것이라는막연한예상과달리올초개원한신축병원은깔끔했다. 병실구조와창문을포함한환기시설에대해추무진회장은긍정적인평가를내렸다. 전날까지곳곳에서바이러스의흔적을찾고역학조사를했던보건당국의자취도모두확인했다. 보건당국의지시에따랐을뿐인데마치병원만의잘못으로메르스바이러스가퍼져나간것처럼됐다고답답해하던병원이사장의한숨은깊었다. 병원을직접찾아확인한성과는분명했다. 병동의정확한구조를처음으로보도했고, 여섯번째환자의병실위치등여러팩트를통해보건당국의역학조사가부실했음을확인했다. 공식브리핑에서해당병원의부실한감염관리가메르스전파의원인이라고줄기차게주장했던외부전문가들이이병원을직접찾아가시설을살펴본사실이없다는것도알게됐다. 직접보고듣고왔기에, 이후보건당국의주장대로특정병원만의문제라는식으로몰아가면안된다고목소리를높일수있었다. 그러나메르스에대한공포가커지면서분위기는의외의방향으로흘러갔다. 메르스바이러스는최적의조건에서길어야 72시간생존하는데다방역이끝난뒤였고, 이후보건당국이발표한평택성모병원방문자전수조사기간 (5월 15~29 일 ) 에도포함되지않았는데현장에다녀왔다는이유만으로보도국안팎에서공포와우려의대상이됐다. 걱정스러운눈초리가느껴져함부로기침도하지못했다. 보도국에 N95 마스크와장갑이지급됐다. 평택성모병원취재다음날인 6월 2일은전국에서처음으로휴교한학교가나온, 아주어수선한상황이었다. 함께취재했던카메라기자자녀들이다니는학교에서병원취재사실을알고는아이가등교해도되는거냐고걱정하며물었다. 최근에들은얘기지만, 당시나와함께뉴스용리포트편집만해도하루, 이틀정도는영상편집팀내에서 접촉금지 됐다고한다. 18 관훈저널 가을호
그렇게공포는곳곳에서자라났다. 병원접근금지! 새로운 현장 을찾아서 메르스바이러스전파력이기존상식을벗어나자우리사회는본격적인공포확산단계에접어들었다. SNS를통해온갖유언비어와메르스병원에대한소문이퍼져나갔다. 마스크품귀현상이빚어졌다. 0.001% 의전염가능성도무시할수없는상황이되자실체적진실에접근하려는취재진의노력이감염가능성을높일수있다는우려가커지기시작했다. 결국메르스관련병원이나환자들이찾아갈수있는보건소같은각종의료시설, 의심환자나격리대상자에접근하지말라는보도국내지시가내려왔다. 기자들이접근가능한현장이사라진것이다. 메르스확산속도가빨라지면서의외의현장이속속등장했다. 6월 3일, 당시 D병원으로보도됐던삼성서울병원응급실의료진 (35번환자 ) 이 3차감염된사실이공식확인됐다. 다음날인 4일밤, 박원순서울시장의긴급브리핑을통해삼성서울병원과 35번환자가거쳐간서울시내곳곳이메르스최전선으로공개적으로떠올랐다. 서울시장으로서각구에속한보건소최고책임자인박시장이모든책임을보건복지부에떠넘긴그브리핑이적절했는지여부에대한평가는저마다다르지만, 보건당국의병원이름공개를앞당기는데결정적인역할을했다는데는대부분의견을같이한다. 정부는사흘뒤인 6월 7일, 메르스환자관련병원 24곳을공개했다. 메르스검사속도가너무느리다는언론의질타에메르스검사기관도대폭늘렸다. 메르스환자발생및경유병원이우후죽순으로생겨났지만거의모든취재는전화취재로대체해야했다. 잘알지못하는바이러스, 커져가는공포, 그보다더두려운것은무기력감그자체였다. 방역망이제대로작동하지않은지오래인데정보를틀어쥔채공식브리핑외모든취재에응하지 메르스 70 일간의기록 19
않는보건당국에대한분노와답답함에새로운현장을찾아나섰다. 바이러스전문가들을적극적으로취재하기시작한것도그때문이었다. 6월 6 일 국내에유입된메르스바이러스는변종이아니다 라고못박은국립보건연구원장의발표를반박하는보도를할수있었던것도국내최고권위의바이러스전문가들덕분이었다. 변이가일어난부분이 0.18% 에불과하다는것이중요한게아니라어떤기능을하는유전자에서변이가일어났는지더주목하고연구해변종가능성에대비해야했는데, 보건당국이앞서모든가능성을닫아버린것이다. 6월 8일메르스확진환자는 87명이됐다. 사우디아라비아에이어두번째로많은메르스발생국가가됐고, 전세계언론이주목했다. MERS가아니라 KORS로이름을바꿔야한다는자조적인얘기도나왔다. 그날마침 2015세계과학기자대회 가개막했는데, 주최측은대회에참석한국내외보건의료및과학담당기자들을위해 메르스특별세션 을마련했다. 당시가장뜨거운이슈가메르스였으니까. 이른아침에시작했는데도가장많은기자들이몰렸다. 병원안에서만감염되는독특한바이러스에대한궁금증과호기심, 두려움은우리나라기자들만의것이아니었다. 메르스바이러스가소독약같은병원의특정물질을좋아하는것아니냐 는외국기자의질문은엉뚱하면서도날카로웠다. 현장에있던전문가들은반박했지만이독특하고도낯선바이러스의실체를원점에서부터새롭게바라보고자하는기자의노력이느껴졌다. 정작당사자인우리는메르스라는낯선질병을어떤자세로바라보고있었던걸까. 메르스를대하는우리의자세 메르스발생 24 일째인 6 월 12 일메르스환자가 12 명늘어난것을끝으로 환자발생은한자릿수로줄어들었다. 바이러스는주춤했지만사망자는계 속늘어났다. 공포는계속됐다. 국립서울병원의메르스심리위기지원단은 20 관훈저널 가을호
완치자와격리해제자, 유족들에대한심리치료를시작했다. 완치된사람들, 사망자유족들은이미사라진바이러스에대한두려움때문에집안을닦고또닦는다고했다. 머리로는아닌줄알면서도혹시메르스에걸린것아닌가, 다시고통받는것아닌가하는공포감때문이다. 다른사람에게바이러스를옮겼다는혹은옮길수도있다는두려움에사로잡혔다. 바이러스전파시작점에있었던환자들의스트레스는이루말할수없었다. 특히관심이집중됐던환자는평택성모병원에서감염된뒤 5월 27일삼성서울병원응급실에가서두번째유행이시작되는데결정적역할을했던 14번째환자였다. 이환자가감염된줄도모르고보건당국의무관심속에서여러병원을헤맨정황을가장먼저기사화했기때문에, 개인적으로도주목할수밖에없었다. 이환자는서울대병원에서잘치료받고 6월 23일퇴원했는데, 퇴원직전자신이 14번째환자임을알았다. 나이와성별, 사는지역이어느정도특정된상황에서 100kg이넘는거구 라는구체적정보까지언론을통해노출됐기때문이다. 취재과정내내환자들에게번호를붙여부르고기사를쓰는것은유쾌하지않은일이지만, 그것이그들의개인정보를지킬수있는방법이라는사실을다시한번아프게깨달았다. 이 14번째환자등을 슈퍼전파자 (Super Spreader) 라고부른것도문제다. 공식브리핑에서한기자가질문하면서이표현을처음썼고, 이후보건당국도브리핑에서사용하면서급속히퍼져나간것으로기억한다. 이름표붙이기좋아하는언론의속성에딱들어맞는표현이지만환자의잘못으로메르스가확산됐다는인식을심어줄수있다. 슈퍼전파사건 (Superspreading Event) 이보다중립적인표현이다. 메르스환자중일부가증상이심해가래, 재채기를통해많은바이러스를내뿜고있을때, 보건당국의방역망이제대로작동하지않는상태에서병원이무방비로환자를맞아들인, 이모든것이동시다발적으로빚어진결과일뿐이다. 실제로사스 (SARS) 등감염병관련논문을살펴보면 슈퍼전파사건 이라는표현이주를이룬다. 기사에등장한표현하나하나가사안을바라보는관점을바꿔 메르스 70 일간의기록 21
놓을수있다는점, 잊지말자몇번이고되뇌었다. 끝날때까지끝난게아니다 메르스확산이멈춘뒤에도몇차례후배들의전화를받았다. 메르스와사투를벌이는의료진을취재하기위해보호장구를갖추고음압병실에들어가도되겠느냐는질문이었다. 우리의학팀의답변은 NO! 였다. 전문가인의료진도보호장구를벗는과정에서또는잠시방심한사이감염됐는데비전문가인기자가메르스환자를근접취재하는것은너무도위험했다. 메르스의실체와의료진의노고를취재해야할의무가있지만적극적으로감염을막아야하는책임도우리에게있었다. 이낯선전염병은두달만에두려움이없던기자를바꿔놓았다. 메르스발생 70일째이던 7월 28일, 정부는사실상메르스종식을선언했다. 우리의삶을뒤흔들었던메르스의기억은어느덧이여름과함께조금씩멀어져가고있다. 그러나 8월 16일을기준으로메르스양성환자 1명을포함해여전히 10명이치료를받고있다. 마지막메르스환자는지병때문에면역억제제를복용하고있어완치가쉽지않은상황이다. 메르스후유증을앓을환자들이얼마나될지도아직알수없다. 메르스완전종식까지는아직갈길이멀다. 22 관훈저널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