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F1B1B3B9CEBCD3C7D020C1A63538C1FD28BABBB9AE F32C2F72E687770>

Similar documents
01정책백서목차(1~18)

¼øâÁö¿ª°úÇÐÀÚ¿ø

5 291

도서관문화 Vol.51 NO.9(2010.9) 가을은 독서의 계절?! 16

%±¹¹®AR

( 제 20-1 호 ) '15 ( 제 20-2 호 ) ''16 '15 년국제개발협력자체평가결과 ( 안 ) 16 년국제개발협력통합평가계획 ( 안 ) 자체평가결과반영계획이행점검결과 ( 제 20-3 호 ) 자체평가결과 국제개발협력평가소위원회

ÃѼŁ1-ÃÖÁ¾Ãâ·Â¿ë2

120~151역사지도서3

2003report hwp


<C1DF29B1E2BCFAA1A4B0A1C1A420A8E85FB1B3BBE7BFEB20C1F6B5B5BCAD2E706466>

CR hwp

<B3EDB4DC28B1E8BCAEC7F6292E687770>

±³À°È°µ¿Áö

allinpdf.com

#遺€?됱궗?뚮뱾168?

2013지발-가을내지1004-4

•••••1301(•••).pdf

1. 경영대학

** ¿ùÈ£

(중등용1)1~27

#7단원 1(252~269)교

152*220

<B3EDB9AEC0DBBCBAB9FD2E687770>

- 2 -

<C0FCB9AEB1E2BCFA20BFDCB1B9C0CEB7C220B3EBB5BFBDC3C0E520BAD0BCAE2E687770>

* 이논문은제 1 저자의진주교육대학교교육대학원초등특수교육전공석사학위논문임. ** 주저자 : 진주장재초등학교교사 *** 교신저자 : 진주교육대학교교수

경상북도와시 군간인사교류활성화방안



È޴ϵåA4±â¼Û

[2016년조사대상 (19곳)] 대림산업, 대한항공, 동부화재해상, ( 주 ) 두산, 롯데쇼핑, 부영주택, 삼성전자, CJ제일제당, 아시아나항공, LS니꼬동제련, LG이노텍, OCI, 이마트, GS칼텍스, KT, 포스코, 한화생명보험, 현대자동차, SK이노베이션 [ 표

viii 본 연구는 이러한 사회변동에 따른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 전문대 학의 역할 변화와 지원 정책 및 기능 변화를 살펴보고, 새로운 수요와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전문대학의 기능 확충 방안을 모색하 였다. 연구의 주요 방법과 절차 첫째, 기존 선행 연구 검토


»êÇÐ-150È£

행정학석사학위논문 공공기관기관장의전문성이 조직의성과에미치는영향 년 월 서울대학교행정대학원 행정학과행정학전공 유진아

2002report hwp


핵 심 교 양 1 학년 2 학년 3 학년합계 문학과예술 역사와철학 사회와이념 선택 교양학점계 학년 2 학년 3 학년합계비고 14 (15) 13 (

저작자표시 - 비영리 - 변경금지 2.0 대한민국 이용자는아래의조건을따르는경우에한하여자유롭게 이저작물을복제, 배포, 전송, 전시, 공연및방송할수있습니다. 다음과같은조건을따라야합니다 : 저작자표시. 귀하는원저작자를표시하여야합니다. 비영리. 귀하는이저작물을영리목적으로이용할

(연합뉴스) 마이더스

더바이어102호 01~09

07

할렐루야10월호.ps, page Normalize ( 할 437호 )

행정학박사학위논문 목표모호성과조직행태 - 조직몰입, 직무만족, 공직봉사동기에미치는 영향을중심으로 - 년 월 서울대학교대학원 행정학과행정학전공 송성화

¿©¼ººÎÃÖÁ¾¼öÁ¤(0108).hwp

2016남서울_수시모집요강_단면.pdf

자유학기제-뉴스레터(6호).indd

<3235B0AD20BCF6BFADC0C720B1D8C7D120C2FC20B0C5C1FE20322E687770>

<B8D3B8AEB8BB5F20B8F1C2F72E687770>

세미나자료 전국초 중 고성교육담당교사워크숍 일시 ( 목 ) 10:00~17:00 장소 : 한국교원대학교교원문화관

Untitled-1

ISSN 제 3 호 치안정책연구 The Journal of Police Policies ( 제29권제3호 ) 치안정책연구소 POLICE SCIENCE INSTITUTE

문화재이야기part2

현장에서 만난 문화재 이야기 2

DocHdl2OnPREPRESStmpTarget


제 53 회서울특별시과학전람회 예선대회작품설명서 본선대회작품설명서 쓰나미의피해를최소화시키는건물과 건물배치에대한탐구 출품번호 S-504 출품분야학생부출품부문지구과학 학교명학년 ( 직위 ) 성명

¹é¹üȸº¸ 24È£ Ãâ·Â

....(......)(1)

1362È£ 1¸é

ë–¼ì‹€ìž’ë£„ì§‚ì‹Ÿì€Ł210x297(77p).pdf

UDI 이슈리포트제 20 호 울산권개발제한구역의효율적관리방안 도시계획연구실정현욱연구원 052) / < 목차 > 요약 1 Ⅰ. 서론 3 Ⅱ. 울산권개발제한구역의현황및문제점 4 Ⅲ. 외국의개발제구역대안적관리사

수의대소식지5호(10)

= ``...(2011), , (.)''


= " (2014), `` ,'' .." " (2011), `` ,'' (.)"

pdf 16..

DBPIA-NURIMEDIA

(012~031)223교과(교)2-1

³»Áö_10-6

이발간물은국방부산하공익재단법인한국군사문제연구원에서 매월개최되는국방 군사정책포럼에서의논의를참고로작성되었습니다. 일시 장소주관발표토론간사참관 한국군사문제연구원오창환한국군사문제연구원장허남성박사 KIMA 전문연구위원, 국방대명예교수김충남박사 KIMA객원연

단양군지

소식지수정본-1

**09콘텐츠산업백서_1 2

목차 C O N T E N T S

Ä¡¿ì_44p °¡À» 89È£

2003report hwp

???德嶠짚

ÆÞ¹÷-Æîħ¸é.PDF

저작자표시 - 비영리 - 변경금지 2.0 대한민국 이용자는아래의조건을따르는경우에한하여자유롭게 이저작물을복제, 배포, 전송, 전시, 공연및방송할수있습니다. 다음과같은조건을따라야합니다 : 저작자표시. 귀하는원저작자를표시하여야합니다. 비영리. 귀하는이저작물을영리목적으로이용할

연차보고서_표지 완료

* pb61۲õðÀÚÀ̳ʸ

0.筌≪럩??袁ⓓ?紐껋젾 筌

해오름summer2009


src.xls

복지백서내지001~016화보L265턁

Microsoft PowerPoint - 26.pptx

untitled

178È£pdf

<BBEAC0E7BAB8C7E8C1A6B5B52E687770>

기본소득문답2

5권심층-양화1리-1~172

목차 Ⅰ. 기본현황 Ⅱ 년도성과평가및시사점 Ⅲ 년도비전및전략목표 Ⅳ. 전략목표별핵심과제 1. 군정성과확산을통한지역경쟁력강화 2. 지역교육환경개선및평생학습활성화 3. 건전재정및합리적예산운용 4. 청렴한공직문화및앞서가는법무행정구현 5. 참여소통을통한섬

Á¤Ã¥¹é¼Ł_Ç¥Áö

1220½É¹Ì¾Èâ27È£º»¹®

2006¹é¼Ł¹ß°£»ç1

10월추천dvd

±èÆ÷ºÏºÎ¼Ò½ÄÁö-2È£2¼öÁ¤

Transcription:

97 전통적마을민속의공공문화자원화과정 * - 안동하회탈놀이와국제탈춤페스티벌의경우 - 118) 배영동 ** 목차 Ⅰ. 마을민속의재맥락화와새문화형성 Ⅱ. 전통적마을민속으로서하회탈놀이 Ⅲ. 하회탈놀이의공공문화자원화과정 Ⅳ. 공공문화자원화의양상과주체, 의미 [ 국문초록 ] 이연구는경북안동하회마을에서전통적마을민속으로전승되다가단절된하회별신굿탈놀이 ( 하회탈놀이로약칭 ) 가공공문화자원으로변화되는과정을분석한것이다. 하회탈놀이는마을제의의일부로 1928년까지전승되다가단절되었다. 그후하회탈놀이는연구자와애향인의주목을받아서조사 연구 복원되어 1958년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참가하여수상하면서널리알려졌다. 뒤이어하회탈이국보로지정되었고, 그후연구자들의연구성과에힘입고전승 보존단체의노력으로하회탈놀이는 1980년에중요무형문화재로지정되었다. 이때부터하회탈놀이는마을민속이라기보다는국가공인문화자원이되었으며, 여러사람들이구경하고배우고싶은, 세계로향해열린문화자원이되었다. 그러다가문화관광부의지역문화지원정책의흐름을타고안동시가주도하여하회탈놀이를근거로하여, 1997년에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만들었다. 국제탈춤페스티벌이성립되기까지에는안동시, 민속학연 * 이논문은 2015 학년도안동대학교연구비에의하여연구되었음. 이글은 문화자원론과지역학 을주제로한제주발전연구원제주학연구센터제 4 회제주학국제학술심포지엄 (2015.10.2.) 에서 전통문화의공공자원화과정과지역학의실천 이라는제목으로발표한내용가운데 지역학의실천 부분을제외하고수정하여작성한것임을밝힌다. ** 안동대학교민속학과

98 비교민속학제 58 집 구자, 문화기획자, 정치인,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가중요한역할을하였다. 그런데복원된하회탈놀이전승주체로 1973년에결성된하회가면극연구회 ( 현재의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 구성원은하회마을토박이가아니라안동시내사람들이다. 이보존회는 1980년대중반부터하회탈놀이전승모체인하회마을동제에참여하다가 2008년경부터는아예동제를주도하고있다. 거기에는하회탈놀이가국가공인문화자원이고,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의근거자원이며, 하회마을이유네스코세계유산이라는가치를보존하려는힘이작용하였다. 하회탈놀이는중요무형문화재지정,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성립으로지역민과내국인들뿐만아니라, 외국사람들에게도의미있는문화자원으로자리잡기시작했다. 본래하회탈놀이는신분제사회에서피지배층 ( 하층민 ) 의민속이었지만, 지금은누구나보고즐기고따라할수있는문화로자리잡아가고있다. 결국하회탈놀이는본래전승되던마을사회를떠나서마을토박이가아닌안동사람들이전승하되, 다양하게활용되는새로운형태의문화자원으로자리잡고있다. 즉, 지자체 학계 문화예술계 교육계 방송계가다함께활용하고있는공공성을띤문화자원이되어가고있다. [ 주제어 ] 마을민속, 마을제의, 하회탈놀이,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중요무형문화재, 공공문화자원 Ⅰ. 마을민속의재맥락화와새문화형성 전통적마을민속은전근대적생활양식속에서마을을단위로하여어떠한의미를소통하고기능을담당하던민간풍속이다. 그러므로전통적마을민속은마을공동체생활의전통적양상을이해하는데매우중요한문화현상이다. 미국의민속학자이자인류학자였던윌리엄바스콤 (William Bascom) 은 민속은민간의경험지식 (learning) 을의미하는데, 무문자사회의민속은문화와사실상같지만, 문자가있는산업사회에서민속은단지문화의파편 이라고하였다. 1) 무문자사회일수록민속이곧문화였지만, 산업사회로올수록민속의기능과의미가약화된다는사실을지적하고있다. 사회체제가근본적으로재편된산업화시대에는종래의생활관습이던민속이재편된새로운체제로부터분리되고있다는뜻이다. 사람들의생활영역에서보면산업화는, 개인이나집단이필요로하는것 1) William Bascom, Folklore,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Vol.15, The Macmillan Company & The Free Press, 1974, p.496.

전통적마을민속의공공문화자원화과정 99 을스스로만들고해결하던종래의자급자족적체제에서, 개인이나집단이필요로하는것의거의대부분을타인이만든것으로시장에서사서쓰는체제로바뀌는것이다. 이과정에서종래에기능적이었고의미를갖던민속은크게변하게되었다. 그럼에도종래의민속이기능적이지않거나그의미가약화되었다고해서, 당장소멸되는것이아니라문화의관성 ( 慣性 ) 에따라어느정도지속되기마련이다. 이러한상황에처한민속에대해서민속학계는흔히 잔존문화 라고부르기도했다. 특히영국민속학에서민속은 문명민족의서민간에잔존하는고대적유습 (ancient practices) 혹은합리주의문화이전의원시잔존문화 라고2) 규정한까닭은바로여기에있다. 전근대체제와다른새로운체제의산업화가진행되면서민속의존립과전승의근거가약화된다는일반적흐름이있다고할지라도, 반드시모든민속이그렇게전승이약화되고소멸과쇠퇴의길을걷는다고할수없다. 사회체제의변화와더불어민속또한새로운전승의길을모색할수있기때문이다. 즉, 민속의전통적전승배경과사회적맥락이달라진다는상황에대응하여종래와다른전승주체가민속의새로운전승배경과맥락을다시조성할수있다는뜻이다. 민속의진정성과탈맥락적변화, 재맥락화에관하여설명하고논의하려는개념에는두가지가있다. 첫째는소련과독일민속학에서제기된포크로리즘 (folklorism), 3) 둘째는포크로리즘의맥락속에서미국의리차드도슨교수 2) 이두현 장주근 이광규, 한국민속학개설, 일조각, 1991, 4 쪽. 3) 포크로리즘은 진짜 (genuine) 민속으로여겨지는것 과 진짜가아닌민속으로여겨지는것 을구별하려는하나의시도이다. 포크로리즘을정의하는시도는 진정한 (authentic) 대 가짜의 (spurious), 자발적인 (spontaneous) 대 무대화된 (staged), 1 차적전통 (primary tradition) 대 신문잡지용 (journalistic) 때로는선전용 (propagandistic) 사용 과같은대조적인용어를줄줄이만들어냈다. 간단히말해서그개념논쟁은무엇이민속이고무엇이민속이아닌지에대해집중되어있다. 1930 년대소련에서민속은봉건사회의표현물로여겨졌고, 포크로리즘은 민중의창조성 (folk creativity) 이나 당대의민속 을서술하기위해사용되었다. 러시아민속학자마크아자도브스키 (Mark Azadovsky) 도포크로리즘이란용어를사용하였다. 이것은그가세익스피어에관한구전민속이작가들에의해간단하게사용된것을의미하는 세익스피어리즘 (Shakespearism) 혹은그들이쓴허구적문학작품속에있는역사의의미로사용하였던 히스토리즘 (historism) 이란용어를사용한것과같은방식으로쓴것이다. ( 중략 ) 독일에서포크로리즘이란용어는학문적으로확장되어갔다. 한스모저 (Hans Moser) 는독일사회에서민속의표현형태로전통적으로여겨져왔던것을재현하는일이많아지자이를명료하게하기위한시도에서 1962 년에그의새로운논리를소개했다. 예를

100 비교민속학제 58 집 가주장한 가짜민속 (fakelore) 논의이다. 4) 그런데학문적연구와구별되게또다른연구자나기획자들에의해서생성되는민속을미국에서는공공민속 (public folklore) 이라한다. 공공민속이란그민속전통이발생된공동체안에서그리고공동체를넘어서, 가끔은전통보유자들과민속학자들혹은다른문화전문가들의협력을통하여, 새로운윤곽과맥락속에서민속전통이재현 (representation) 되고활용 (application) 되는것이다. 5) 전통민속이그전승자에게서는이탈되어기능과의미가약화되는대신다른사람들에의해서다른논리와형태로탈바꿈해서펼쳐지는현상을주목한것이다. 공공민속학은학문적제도밖에서청중 ( 관중 ) 을위하여민속연구를제공하는것이다. 6) 포크로리즘이민속현상의진정성을가리려는학문적시도라면, 공공민속학은학문적인성과에토대를두고사회가요구하는계획을만들어민속을다양하게활용하는것이자그에대한연구라고하겠다. 오랫동안민속은일반적으로피지배층의생활관습으로규정되었지만, 사회가변화되면서공공민속으로전환되는과정에서민속은지배와피지배의논리가개입될수없는상태로바뀌었다. 그렇다면그외양이민속인것처럼여겨져서공공민속이라할수도있지만, 문화의형성과전승의계급성이달라졌기때문에공공문화 (public culture) 라고하는것이더적합하다. 미국민속학에서는 민속의공공화, 공공화된민속 으로보는데그쳤다면, 이글에 들어서민요는전통적인맥락밖에서, 가끔은사회의다른계층에서노래불러지고, 기획된모방과무대화된모방이이루어지며, 가끔은어떠한동일시할만한전통적맥락밖에서민속의재창조가이루어진다. 민속춤은그전통성을유지했던마을에서보다는관중을위하여연행되고, 일부는텔레비전을위하여연행되었다. 상업적으로더시장성이있는완제품을생산하기위하여여러혁신이결합되고있다. 민속적예술, 노래, 의상, 연행물모두는특히성장하는관광산업을위한상품이되었다 (James R. Dow, Folklorism,The Greenwood Encyclopedia of World Folklore and Folklife, Vol.1, Westport: Greenwood Press, 2006, pp.35~37). 4) 1950 년대에리차드도슨은가짜민속이라는단어를만들었는데, 이것은포크로리즘에대한미국식개념화의중심에있다. 도슨은가짜민속이라는용어를, 의식적으로그럴듯하게꾸몄거나가끔은돈벌이를위하여진짜민속이라고주장되는가짜의저술 ( 문학작품 ), 합성한저술을가리키는데사용하였다 (James R. Dow, ibid, p.36). 5) Robert Baron & Nicholas R. Spitzer, Public Folklore, Washington and London: Smithsonian Institution Press, 1992, p.1; 배영동, 수제 ( 手製 ) 전통의산업적성격전환과정, 한국민속학 제 59 집, 한국민속학회, 2014, 59 쪽. 6) Gregory Hansen, Public Folklore, The Greenwood Encyclopedia of World Folklore and Folklife, Vol.1, Westport: Greenwood Press, 2006, pp.75-77.

전통적마을민속의공공문화자원화과정 101 서는전통적마을민속이이제는달라진사회와집단에의해서전통마을민속의형태를갖춘새로운현대문화라는사실을주목하고자한다. 이제하회탈놀이는외형상마을민속으로지속되는듯이보일지라도탈맥락화하여마을민속의틀을벗어나 재맥락화된 (recontextualized) 것이다. 이러한시선에서이글은안동하회별신굿탈놀이 ( 이하하회탈놀이로약칭함 ) 가어떤과정을거쳐서주민들로부터분리되고, 제3의보존단체가주도하면서학계, 지자체, 문화예술계, 방송언론계, 교육계등이함께하회탈놀이를지원또는활용하기도하는형태로탈바꿈하였는지에대해서살필것이다. 그리고하회마을의별신굿탈놀이가어떻게지역의민속축제에참여하여공연하게되었는지, 나아가지역민속축제를흡수한국제탈춤페스티벌로전환되어갔는지에대해서알아보고자한다. 이러한시도는지금까지하회탈놀이나아가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대해서상당히많은연구가있었지만, 주로탈놀이의텍스트가어떻게변화되었는가에치중하고있는것과구별된다. 한편, 이와같이마을에있던전통민속이자마을문화로서하회탈놀이가공공민속이나공공문화로바뀐것은사실상본래적의미나기능이상당히탈락되고부분적으로재평가되거나새로운의미가부여되고기능또한달라진것이다. 그것은마을민속으로서하회탈놀이가가치있는전통문화유산이라고평가된것이며, 새로운형태와방식으로자원화된것이다. 자원은본래부터정해져있는것이아니라, 상황에따라필요에따라가변적으로규정되는것이다. 7) Ⅱ. 전통적마을민속으로서하회탈놀이 하회탈놀이는 1928년까지하회마을별신굿의일부로서본래의맥락에따라전승되었다. 하회별신굿은정확히언제부터행해져왔는지는알수없지 7) 배영동, 향토자원의활용을위한시스템구축과정책방향, 전통지식기술의향토자원화방안, 농촌진흥청농업과학기술원 한국지역사회생활과학회, 2006.5.12. 발표요지집, 31 쪽참조.

102 비교민속학제 58 집 만, 그일부로있던탈놀이는고려의몽골지배기이후에시작된것으로판단된다. 그근거는탈에시대적요소가분명하게드러나는각시탈과부네탈의두갈래머리꾸밈, 연지와곤지등에있다. 8) 하회별신굿은하회마을동제의확대형으로서무당이참여하는가운데 10 년주기또는서낭신의계시가있으면하던큰제의였다. 지금까지알려진전승의고형에대해서김택규, 이두현, 임재해, 류정아, 한양명등이조사한내용을토대로한양명이정리한내용의일부를축약해서보자. 매월초하루와보름에종신직제관인산주가화산 ( 花山 ) 에모셔져있는서낭신과산신에게치성을드리는데, 섣달보름날치성을드릴때산주가별신굿개최에대해서신의뜻을묻는다. 신의뜻이산주에게전달되면산주는정식으로동네양반어른들에게알리고별신굿을하겠다는동의를얻어서별신굿을진행하였다. 섣달 29일동민대표들이동사 ( 洞舍 ) 에모여서부정이없는사람들중에서배역을선정한다. 광대 12명과산주외에유사 2명, 대메는광대와청광대, 무동꾼등을선정하여해당자에게통지한다. 광대들이의상과기타준비물을갖추어서동사에모이면, 섣달그믐부터동사에금줄을치고황토를뿌리고목욕재계하여합숙에들어간다. 이때부터모든동민들에게는소위말하는부정 ( 不淨 ) 을탈수있는행동은모두금지된다. 그믐날에내림대를든산주, 서낭대를멘광대두사람, 큰광대, 무동을탄각시광대, 양반광대, 선비광대, 그리고나이에따라선나머지광대들이줄을지어풍물을울리며서낭당에올라간다. 이때부정이없는노인서너명도뒤따른다. 서낭당에도착하면서낭대는당앞쪽처마에기대어세우고, 산주는당방울을매단내림대를양손에받쳐들고당안으로들어가기대어세운다. 각시광대는무동춤을추며서낭대를돌고, 악기든사람들은풍물을치며돈다. 산주가내림대를잡고빌기시작하면, 각시광대만계속서낭당을돌고나머지광대들은당앞에일렬횡대로선다. 이윽고대가흔들리고당방울이흔들리면산주는재배하고당에서물러나와 8) 배영동, 고려시대하회탈이제작된시기와배경, 고려시대의안동, 예문서원, 2006.

전통적마을민속의공공문화자원화과정 103 다시재배하는데이때광대들도함께재배한다. 산주가당방울을내림대에서서낭대꼭대기에옮겨달면광대둘이서낭대를메고앞서고산주가그뒤를따르고, 나머지는올라갈때와같은순서로행렬을지어풍물을치며하산한다. 각시광대는역시무동을타고춤을추며내려온다. 동사에도착하면각시광대는무동춤을계속추면서마당을빙빙돌다가청광대가주는각시탈을받아서쓰고춤을추고이어서무동을탄채로꽹과리와채를들고구경꾼앞을돌면서걸립을한다. 걸립을하는동안에광대들은탈놀이를준비한다. 주지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중마당, 양반 선비마당의순서로탈놀이를한다. 무당이없을때는서낭대 산주 큰광대 양반광대 선비광대순으로행렬을짓고나머지는나이순으로행렬을지어길놀이를한다. 무당이오면무당은서낭대뒤에서고산주와광대들은서낭대앞에서서길놀이를했다. 산주집, 삼신당, 양진당 ( 풍산류씨대종가 ), 충효당 ( 서애류성룡종가 ) 에가서놀고, 남촌댁, 북촌댁등에가서도놀았다. 다만삼신당에는한바퀴돌아서갈뿐이었다. 양반집이아닌작은집에는지신밟기만하고탈놀이는하지않았다. 집주인은곡물이나폐백주식 ( 幣帛酒食 ) 을대접하였다. 이렇게탈놀이와지신밟기는음력정월 14일까지계속하는데, 서낭당신이각시의친정으로전해지는월애에도간다. 대보름에아침밥을먹고나서청광대가탈을담은섬을지고서낭당으로올라가서당제를지낸다. 그동안광대들은탈을쓰고탈놀이를하는데, 음복하고쉬다가다시놀기를일몰무렵까지한다. 무당들도한쪽에서논다. 서낭대의당방울은풀어탈과함께섬에담아청광대가짊어지고, 서낭대는옷이나예단은풀고서서낭당의뒤처마에얹어두고모두가하산한다. 양반광대, 각시광대, 청광대만남고산주와다른광대들은귀가한다. 마을입구진밭에모닥불을피워놓고멍석을깐뒤초례상턱으로무당에게빌린장고를하나세운다음, 그위에꽃갓을하나올려놓는다. 각시광대가각시탈을쓰고신부가되고, 청광대가선비탈을쓰고신랑이되어탈은쓰지않은양반의주재아래혼례를치른다. 예가끝나면양반광대와각시광대는짝짓는의식을하는데, 이는하회탈을깎은허도령과서낭각시를결혼시키는의미이다. 모든과정이끝나고각시광대가청광대에게탈을주고귀가하면청광대는탈이

104 비교민속학제 58 집 든섬을동사에옮겨보관한다. 이어서동네어귀에서암무당 1명, 숫무당 2명이잡귀잡신을퇴송시키는허천거리굿을하는데유사와사령 ( 뱃사공 ) 이뒤치다꺼리를한다. 그이튿날서낭님께바친옷을다시사다입으면복을받고아들을낳는다고하여그렇게한다. 옷을판돈과별신굿하는동안모아진곡식이나돈은정리하여별신굿경비로충당한다. 별신굿을할때는남녀노소가인산인해를이루었으며, 인근촌락은물론멀리타도에서까지구경꾼이몰려들었다고한다. 9) 이런하회탈놀이의내용과연행방식을보면다음과같은여러가지사실을알수있다. (1) 하회탈놀이는확대된동제인별신굿의일환으로행해졌다. (2) 별신굿을할때는서낭신의계시와뜻이별신굿을할사람에게전해져야한다. (3) 하회마을에사는산주와광대는양반이아니다. (4) 외부에서남녀무당이초청되어별신굿에참여하였다. (5) 마을에서탈놀이는지신밟기와병행되었다. (6) 종가를위시한양반가에서별신굿을할때동의를해주고, 양반가에서별신굿을하는사람들에게일정한물질적후원을해주었다. (6) 하회탈을깎다가비명횡사한것으로전하는총각허도령과처녀서낭으로알려진무진생서낭님을혼인시키고합방을하는절차가있었다. 그리고위의내용에는언급되지않았지만, (7) 별신굿이나당제를지낼때주도하는사람들은무당을제외하고는모두하회마을에사는사람들이었다. (8) 별신굿을하는광대들은모두하회마을의지배성씨인풍산류씨들에게사회경제적으로예속되어있었다. 이러한여러사실로볼때, 하회별신굿탈놀이는제의적축제로서하회마을에서하층민들에의해서행해진것이고, 상층민인풍산류씨들은탈놀이구경꾼이자물질적후원자였다. 또한잘알려진바와같이하회탈놀이의대사를보면, 하층민들이양반 선비 중등을풍자하고조롱함으로써, 적어도이춤이평상시에는평소얼 9) 한양명, 하회별신굿의축제적성격, 안동문화연구소, 하회탈과하회탈춤의미학, 사계절, 1999, 216~220 쪽발췌혹은축약.

전통적마을민속의공공문화자원화과정 105 굴로는할수없는일을제의적축제의상황에서탈을쓰고신나게했던것이다. 이것은놀이였기때문에가능한일이고, 더구나양반과선비들이이이야기를들어주었기때문에가능한일이다. 더욱이자신들을풍자하고비판하는대사로진행하는탈놀이를구경하고있을뿐만아니라, 술과음식을비롯한물질적향응을제공한다는사실이놀랍다. 그만큼하회마을양반들은하층민에대한부드러운지배를통하여자신들과하층민들이더안정적으로더불어살아가는지혜를발동하였다. 이점에서하회마을양반들은평소에마을을안정적으로지배하고있었다는뜻이기도하고, 그래서지배층을풍자하는하층민들에대해서너그럽고여유있게대응하였다고도할수있다. 이른바타성으로구성된하층민들은서낭신을중심으로마을의신앙체계를형성하고, 이서낭신을즐겁게하기위해서하회탈놀이를하면서그틀속에평소의지배층까지수용하여제의적축제를벌였다. 그반면상층민인풍산류씨들은조선초기부터마을의상층부에공존했던흥해배씨, 안동권씨, 광주안씨, 10) 그리고고려때부터살았던김해허씨등이조선초기부터점차후손단절, 이주등으로마을에서거의사라진 17세기부터확실하게마을에대한지배체제를구축하게되었다. < 그림 1> 별신굿체제와마을지배체제의대응관계 10) 이들성씨의하회마을입향조와그가계의혼인관계에대해서는배영동, 고려시대하회탈이제작된시기와배경, 앞의책, 370 쪽참조.

106 비교민속학제 58 집 이와같이하회탈놀이는하회마을의마을단위동제를신의뜻에따라서별신굿으로확대하여지낼때당연히하회마을사람들이했던것이다. 탈을쓰고춤을추며놀아서서낭신을즐겁게하고이어서처녀신인서낭신과탈을깎다가죽은총각허도령의영혼혼례를치러서서낭신을위무한다음에치르는동제였다. 그런데중요한사실은 < 그림 1> 에서보는바와같이별신굿체제의마을주민과마을지배체제속의주민들은서로대응관계를이루고있다. 별신굿체제의정점에무진생처녀서낭신이있다면, 마을지배체제에는풍산류씨입향조류종혜 ( 柳從惠 ) 가있다. 별신굿을하는주체로타성으로구성된집단이있다면, 마을지배체제에는양반으로군림하던풍산류씨가있다. 또한별신굿체제에풍산류씨가포함된마을주민이있다면, 마을지배체제에는풍산류씨들로부터지배받던타성들이있다. 이렇게해서, 하회마을의민속신앙적인측면의별신굿체제에서는서낭신을정점으로하여타성들이주도층이되고, 사회경제적인측면의마을지배체제에서는풍산류씨입향조를정점으로하여풍산류씨들이주도층이되어있다. 결국하회마을은민속신앙적으로하나의세계가형성되어있고, 사회경제적으로또다른하나의세계가형성되어운영되어왔다. 전통사회에서민속신앙적세계와사회경제적세계는결코분리될수없었다. 그러므로민속신앙적세계와사회경제적세계는상호협력과공존을모색하면서마을이운영되었다. 바로이와같은지점에서하회마을에서풍산류씨와타성들은더불어살아가는공존의노력을하였던것이다. 풍산류씨가높은학문과지체를가졌다면타성들은건장한노동력을가졌다. 풍산류씨가많은토지를가졌다면타성들은실제로일을하였다. 풍산류씨가입향조를중심으로한문중을운영한다면타성들은서낭신을중심으로한별신굿과동제를주도적으로수행하였다. 따라서별신굿을할때풍산류씨들은사실상민속신앙적차원에서별신굿의영험이나신성성을인정하고별신굿을주도하는타성들에게협력과지원을하였다. 다시일상의현실로돌아오면모든타성들이풍산류씨들의

전통적마을민속의공공문화자원화과정 107 통제와지배를받게되고, 그들에게순응할수밖에없었다. 권력과부를가진풍산류씨들의지배가별신굿을중심으로하는타성들의제의적축제보다현실적강제력이컸기때문이다. 지배가있는곳에저항이있듯이, 풍산류씨의사회경제적지배에대해서타성들은별신굿을중요하게여김으로써문화적저항을했던것이다. 이러한사정으로인해서풍산류씨와타성들은각기하회탈춤과탈에대한인식에차이가있었다. 탈춤에대해서풍산류씨들은단순히 놀이 로평가했다면타성들은탈놀이연희행위를민속신앙체계 (folk religious system) 의일부로평가하였다. 그연장선상에서풍산류씨들은 탈을천하게여겼기때문에궤짝에넣어하인들집이나굴뚝뒤또는처마밑에매달아두었다 고한반면에, 타성들은 탈은아주신성한것이어서함부로취급하지않고궤짝에넣어동사에보관했다 고하였다. 11) 이렇게운영되던하회별신굿은 1928년을마지막으로전승이단절되었다. 이시기는일제강점기로여러가지면에서전승을방해하는요소들이작동했을것이다. Ⅲ. 하회탈놀이의공공문화자원화과정 1. 연구자와애향인이주목한하회탈놀이 일제강점기의대표적인민속학자송석하는 1936년, 1939년, 1940년에하회마을에와서하회탈을조사하고탈놀이의재현을시도하였다. 12) 이재현 11) 류정아, 하회탈놀이의의미변화, 서울대학교대학원인류학과석사학위논문, 1989, 42 쪽. 12) 中村和代, 전승집단과연행상황에따른하회탈놀이의지속과변화, 안동대학교대학원민속학과석사논문, 2004, 22 쪽참조 ( 여기에는 40 년 41 년으로되어있음 ); 송석하, 석남송석하영상민속의세계 를보면 1939 년 8 월 20 일과 1940 년 12 월 14 일에하회탈을조사하여사진촬영한것으로확인된다. 다만, 이날짜가음력기준이라면 1940 년 12 월 14 일은 1941 년이된다. 1936 년에도 신동아 52 호에 조선팔도민속개관 ( 경상도편 ) 을쓸때이미하회마을의탈을제사용가면으로소개하고있다 ( 송석하, 위의책, 51 쪽 ).

108 비교민속학제 58 집 은사실상탈놀이에한정되었기에사실상마을제의의맥락을떠난것이다. 결국탈놀이에관심을둔재현이었기에부분적일수밖에없었다. 아무튼연구자가하회탈춤에관심을가지고재현하고자했다는점에서놀랍다. 송석하가하회마을에왔을때하회마을에있던풍천면장류장하의집에서숙식을제공받고머물렀는데, 류장하의아들로중학생이던류한상 (1925년생) 은이때부터하회탈이소중하다는생각을하게되었다고한다. 13) 이어서하회탈이국내학계에알려지고새삼그가치가주목되기시작한것은미국인아더멕타카르트 (Arther Joseph Mctaggart) 박사가하회탈을미국미술잡지 FOURTUNE의표지에소개한덕분이다. 14) 그는 1954년서울미문화원에근무하였는데하회탈을보기위해서복잡한의식을거친후에사진을찍어서, 하회탈이국립박물관의김재원박사와문공부의관심을끌게된것이그때라고회고하였으며, 당시하회탈을볼수있도록안내한사람역시류한상이었다. 15) 류한상이하회탈에대하여애향적차원의관심을크게가지고있었음을말해준다. 최상수도 1936년, 1942년, 1957년에안동에와서하회탈에대한조사를하였다고주장한다. 하회탈이외국에서더널리알려지자점차국내에서도관심이고조되었다. 류한상과문화재전문위원이두현교수에의해서소실된탈에대한복원이시도되었다. 특히이두현교수는하회탈관리가소홀하다는판단에서문화재로지정할목적으로하회탈을국립중앙박물관으로가지고갔다가 1964년에국보제 24호로지정되고는하회마을로돌아오지못했다. 하회탈놀이는 1958년제 1회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참여하여대통령상을수상하게됨으로써세간에널리알려졌다. 당시에도류한상은경상북도로부터전국민속경연대회의출품작을추천해달라는요청을받고조사 지도하면서하회탈놀이를복원한것이다. 16) 1958년 8월 13일에열린제 1회전국 13) 이상현, 안동문화의변화와민속의재창조, 비교민속학 제 26 집, 비교민속학회, 2004, 539 쪽 ; 中村和代, 위의글, 22~23 쪽 ; 조정현, 하회탈춤전통의재창조와안동문화의이미지변화, 비교민속학 제 29 집, 2005, 351 쪽. 14) 임재해, 민속마을하회여행, 밀알, 1994, 251~253 쪽 ; 中村和代, 위의글, 23~24 쪽. 15) 임재해, 위의책, 같은쪽.

전통적마을민속의공공문화자원화과정 109 민속경연대회에춤과복식, 반주음악등에대해외부전문가의지도와자문을받고, 원래모습과는다른형태로재구성한공연물을들고나가대통령상을수상했다. 17) 한편, 이두현교수의안내에따라 1959년류한상은하회탈놀이대사를조사복원하여처음으로 국어국문학 학회지에게재하였다. 하회탈놀이가민속경연대회에서수상한것을계기로하회탈의국보지정도급물살을탔던것으로이해된다. 그후에도류한상은잊혀진제의적축제인하회탈놀이의재현과복원을꾸준히시도하였다. 18) 대구에있던중학교무용교사출신오숙자가 1962년고향안동으로돌아아오자류한상은하회탈놀이의복원을요청하였다. 춤은모두류한상의조언을참고로오숙자가창작을하였다. 탈은홍익대출신의주상찬과목공예가김완배가제작한것이고, 의상은오숙자가직접만든것이며, 가락은장구하나로맞추었다. 이런방식으로 1969년어느시기까지이어졌다. 당시류한상은가톨릭교구소속의문화회관관장이어서, 프랑스에서신부나선교사가온다거나미국 호주에서사절단이오면하회마을양진당이나부용대아래모래밭에서공연을보여주었다고한다. 한편, 김택규교수는 1963년도에하회마을을조사하여그이듬해 동족부락의생활구조연구 라는단행본을간행하였다. 이책은 11개장으로되어있는데, 제 10장습속 ( 習俗 ) 에는당제, 별신굿 공동오락을다루고있다. 19) 또중요한사건은별신굿이단절되고 45년이흐른 1973년에 하회가면극연구회 라는단체가안동에만들어진것이다. 20) 초기회장은염순규, 사무담당은이재호, 탈놀이연출은이상호가맡았다. 이재호는하회탈놀이에대한보고서를만들었고, 이상호는지금하회탈놀이기능보유자로활동하고있다. 16) 中村和代, 앞의글, 23쪽. 17) 한양명, 지역축제의전승과민속의변용-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의경우-, 비교민속학 제35 집, 2007, 450쪽. 18) 中村和代, 앞의글, 12~13쪽. 19) 김택규, 동족부락의생활구조연구, 청구대학출판부, 1964( 씨족부락의구조연구, 일조각, 1979 재판 ). 전경수교수에따르면이는일본동경대학문화인류학과에서마을조사를하던일반적형식과체제를준용한것이라고한다. 20) 이에대해서는류정아, 앞의글, 22~25쪽참조.

110 비교민속학제 58 집 이연구회는하회마을에살았던풍산류씨들로부터지배를받던토박이타성들이만든것도아니고, 하회마을과아무런인연이없는안동시내사람들이만든것이다. 자연히과거의하회탈놀이전승에참여했던전통적인집단과아무런동질성이없는단체이다. 그렇다고하회마을풍산류씨들이만들도록권장한것도아니고, 오로지사회문화적인분위기와시대상황에따라안동에살던개개인이모여서결성한것이다. 류정아에따르면그들의참여동기는 조상의빛난얼을지키고자하는일념에서, 내고장전통문화를복원 계승하고자, 전통문화를몸소느끼고싶어서, 우리것을알기위해서 라고한다. 21) 전통문화, 안동문화에대한애착과지켜야한다는소명의식이개인적으로강하게발동되어실행에옮겨진단계라고하겠다. 이렇게해서 1970년대후반이되면, 경상북도문화재위원으로활동하던안동 ( 교육 ) 대학성병희교수, 영남대학교김택규교수가하회탈놀이에대해서깊은관심을가지게된다. 그리고중앙문화재위원이었던서울대학교이두현교수는지속적으로이에관심을두고있었다. 성병희교수와김택규교수는류한상이처음으로보고한하회탈놀이대사에상당한의문을제기하였고, 급기야 1928년마지막별신굿을할때 17세의어린나이로참여했던이창희 (1912년생) 씨를 1976년에발굴하여 1978년에탈춤의대사와내용등에대해서고증을새롭게하기에이르렀다. 22) 성병희교수에따르면 50년전에참여했던하회별신굿탈놀이에대한대사와과정의고증이가능했던것은, 술과담배를전혀하지않는이창희의남다른기억력덕분이었다고한다. 2. 중요무형문화재로지정된하회탈놀이 앞서성병희교수가주도한하회탈놀이대사와절차에대한, 이창희의체험적증언이토대가되어 1980년 11월에비로소하회탈춤이 하회별신굿탈 21) 위의글, 22 쪽. 22) 김택규 성병희, 안동하회별신굿놀이, 우리고장의민속, 경상북도문화재과, 1978; 성병희, 하회별신탈놀이, 한국민속학 제 12 호, 민속학회, 1980.

전통적마을민속의공공문화자원화과정 111 놀이 라는이름으로국가차원의중요무형문화재제 69호로지정되었다. 이것은중앙문화재위원이었던이두현교수의참여와고증이추가되면서이루어진것이다. 당시이두현교수가심사하고문화재관리국에제출한무형문화재지정조사보고서는, 성병희교수가류한상의보고서와다르게작성된연구보고서를전면적으로인용한것이라고한다. 23) 하회탈놀이가중요무형문화재로지정되면서자연스럽게하회가면극연구회는 1982년에사단법인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 하회탈놀이보존회로약칭 ) 로개칭되었다. 이때이사로는안동시외버스터미널사장을비롯한안동의유지 10명정도선출되었고, 회장으로는이창희가선출되었다. 이때부터하회탈놀이공연이종전보다자주이루어졌고, 1985년에는하회마을에하회별신굿탈놀이전수회관이건립되었다. 류정아가조사한내용을보면, 1988년도외부인을위한유료공연회수는 3월에 2회, 5월 3회, 6월에 1회, 7월에 1회, 8월에 1회, 9월에 6회, 10월에 4회였고, 공연수입금은모두 1,595만원이었다. 대표적인공연명칭을보면 무진년성황신회갑연기념공연, 제19 회인간문화재대제전, 일본 NHK 촬영을위한공연, 서울올림픽성화맞이구미공연, 서울올림픽경축공연, 서울장애자올림픽경축공연 등이다. 24) 이를보면중요무형문화재지정으로국가를대표하는전통공연예술로그지위가격상되었음을알수있다. 하회탈놀이는마을을떠나국내다른지역으로공연을갈뿐만아니라, 해외로출장공연의길을열기시작했다. 더놀라운현상은하회탈놀이보존회가 1980년대중반경부터지금까지하회마을의동제에참여하고있다는점이다. 별신굿은 1928년이후단절되었지만, 동제는옛전통대로하회마을의타성들이주도하는가운데해마다거행되어왔다. 전통적으로는사회경제적지배권을가진풍산류씨들이거의전폭적인재정지원을하였지만, 어느시기부터는마을의가가호호가차등없이동제의경비를분담하는형식으로바뀌었다. 일정금액갹출도 1988년까지이루어졌기에 1989년부터는하회마을보존위원회에서관리하는마을기금에 23) 中村和代, 앞의글, 25~27 쪽. 24) 류정아, 앞의글, 25 쪽.

112 비교민속학제 58 집 서동제경비를충당하였다. 25) 그래서동제를주도하는타성들이종전처럼신이나지않는어려움에봉착한상황에서, 하회탈놀이보존회가하회마을동제제의집단에합류한것이다. 하회탈놀이보존회로서는하회마을동제를하회탈놀이의근원적제의로인식하기때문에내린결정이다. 평년에는하회탈놀이보존회원몇사람이동제에참여하다가, 1988년 하회별신굿탈놀이회갑연 을할때는모든회원들이동제에참여하였다. 그리고 1981년 4월부터하회마을에인근마을출신의김동표가하회마을에들어와서하회탈방을차리고탈을깎아서판매하기시작했다. 26) 마을밖에서는시내에서김완배가하회탈을조각하여판매하였다. 이것이 1980년대안동을대표하는관광기념품이자고품격선물이었다. 1984년 1월하회마을이중요민속자료 ( 지금은중요민속문화재로법적용어변경 ) 로지정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후반부터마을에관광객이몰려들면서민박업이활성화되기시작했다. 1988년류정아가조사할당시하회탈놀이보존회는하회탈놀이의문화재적가치를이렇게설명하고있다. 27) 1 이것은외국에보여줄수있는우리의 자랑거리 이다. 2 이것은옛날우리선조들이놀았던기지와해학이담긴놀이로서오늘의우리가사는 민족성, 주체성 을유지시켜주는새로운 전통문화의밑거름 이다. 3 우리의전통문화는우리 민족의뿌리 이며, 정신적인지주 가되어야한다. 뿌리가튼튼하지않는나무는잘자리지못하기때문에우리가자손에게우리 민족의정신 을심어주어야한다. 4 안동의것 이므로안동사람이계속살려야한다. 25) 위의글, 31 쪽. 26) 하회동탈박물관홈페이지자료. 27) 류정아, 앞의글, 50 쪽.

전통적마을민속의공공문화자원화과정 113 이러한보존회원들의주장과설명은하회탈놀이보존회구성원들이탈놀이를즐기기위한것이거나단순한관광자원으로생각하는것이아니라는뜻이다. 한국의전통문화와안동문화에대해서상당한공부를하여하회탈놀이가중요하다는근거를연구자나정책입안자못지않게제시하고있다. 다만이들은어떻게든하회탈놀이를보존계승해야한다는일념을공유하고있다. 그리고이속에는과거에하회탈놀이가하회마을안에서사회경제적약자였던사람들이하던것이라는의미는전혀없다. 마을의신앙적자원이지역을대표하는문화자원이자국가를대표하는문화자원으로, 민족적자원으로자리매김되고있어서, 전통사회의하회탈놀이와는크게달라졌다. 최근에하회탈놀이보존회는하회마을밖에있는하회마을동제수행집단으로자리를잡았다. 더욱이하회마을의주민들과협력하되그들보다도더적극적으로동제를지내는제의집단으로위상을구축하였다. 20년넘게하회탈놀이보존회원 2~3명만이동제에참여하였는데, 2008년경부터는보존회가경비도지원하면서시장에가서제수를구입하고마련할뿐만아니라, 보존회모든회원들이동제를지내는데동참하고지신밟기등에전면적으로참여하고있다. 28) 하회마을동제가주민의힘에의해서는전승이대단히어려워진상황에서하는일이다. 마을밖의사람들이주체적으로마을안의서낭신을대신받들고있다. 또한하회탈놀이보존회는 2013년과 2014년에는 4월초파일별신굿을재현하기까지하였다. 2010년에하회마을이세계문화유산으로등재되면서문화재청, 경상북도, 안동시등에서세계유산활용사업비가거액으로지원되면서그비용으로하회마을동제, 별신굿경비를지출할수있게되면서가능해진일이다. 29) 하회마을의마을단위민속신앙에대한관심없이하회탈놀이를활성화한다는것은하회탈놀이의역사문화적뿌리를외면하고사상누각을기대하는것과다르지않다고판단한것으로이해된다. 28) 안동시문화관광과학예사겸하회탈놀이보존회원손상락설명 (2015.9.) 29) 위와같음.

114 비교민속학제 58 집 3.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의토대로서하회탈놀이 1990년대에접어들면하회마을도새로운변화를경험하게된다. 하회마을에는관광객들이찾아와서살림집어디든지들어와서문을훌쩍훌쩍열어젖히고서는 양반들도이렇게사는구나 하니주민들이겪는불편이커졌다. 급기야 1992년 11월에는사단법인하회마을보존회가발족되었고, 그후 1994년부터하회마을은입장료를징수하기에이르렀다. 이때부터관광객들에게개방하는집과그렇지않은집으로나뉘어졌고, 또상행위를하는집과그렇지않는집으로나뉘어져서관광객에대한태도가마을사람들사이에서도몇유형으로분화되었다. 마을에있던하회탈조각가김동표는 1995년 8월사재를털어하회마을입구에하회동탈박물관을건립하였다. 하회탈을다른지역탈과비교해서이해하고, 나아가다른나라탈과대비해서구경할수있는길을하회마을안에연것이다. 더욱이 1995년지방자치제시행은관광활성화정책과더불어지역문화에대한선택과집중을강요하게되었다. 특히문화관광부는문화관광축제를제도적으로활성화하기위한장려를하였다. 즉, 축제를 생산원가는저렴하되부가가치는높은 관광상품으로보고 지방활성화 를위한지원대상의하나로설정해문화관광축제를선정해지원하기시작하자, 지자체는앞다투어문화관광축제를만들기시작했다. 30) 그러므로국가또는관이주도하여만든문화관광축제에는기본적으로경제논리와문화논리가복합되기마련이다. 이런분위기를타고 1997년에처음안동에만들어진축제가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이다. 종래문화재명이하회별신굿탈놀이였지만, 더적극적으로탈춤을내세우면서국제행사로축제를만든것이다. 탈놀이보다는탈춤이라는표현이대중들에게훨씬강렬한인상을심어줄수있었다. 게다가안동에서꾸민국제행사로서는처음이었다. 국제탈춤페스티벌이만들어진배경에 30) 한양명, 앞의글, 2007, 454~455 쪽.

전통적마을민속의공공문화자원화과정 115 는여러가지요인이작용했다고하겠다. 그간의사정을다음과같이요약할수있다. 하회탈놀이보존회는 1994년에안동시에하회별신굿상설공연기획서를제출하여국제적인탈춤축제를제안하였고, 안동시에서도하회탈놀이상설공연을추진하면서이놀이의관광자원화에관심을기울였다. ( 중략 ) 지역밖에서는서울에서활동하던문화기획자강준혁이탈춤축제를기획하고실행하기위한방안을모색하던중, 1996년후반기에안동시관계자와만나자신의기획을안동시에제안하고안동시가이를수용함으로써축제만들기를위한본작업에들어갔다. 그해 12 월에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관광축제추진계획과지침 을각자치단체에내려보냈다. 이에안동시에서는이계획과지침에따라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개최신청서 를문화체육관광부에제출하였다. 그래서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전남강진의 청자문화축제 와더불어신규 2대집중육성축제로선정되어 5천만원의지원금을받게되었다. 축제의준비에서부터기획, 실행에이르는제과정은강준혁이운영하는 스튜디오메타 에서전담하게되었다. 31) 이렇게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문화체육관광부의정책, 안동지역내부의욕구, 외부문화기획회사의전문기획자생각이하나로어우러지면서결실을맺게된것이다. 기획실무를맡은강준혁의회고에따르면, 여러관계자와전문가를만나서힘을얻고실행력을키운것이다. 즉, 안동출신태영교역권경섭사장의안동탈춤축제개최권유와재정지원, 1996년가을안동대학임재해교수와만남과그로부터의격려, 1997년하회탈놀이보존회도영심이사장, 안동출신권정달국회의원의만남, 문체부이유범사무관, 하회탈놀이보존회이상호선생, 임형규회장, 하회탈박물관김동표선생이발벗고나섰다고한다. 아울러도지사, 안동시장, 경북도청관광과정윤열과장, 시청관광과류용호과장, 그리고축제집행위원회와추진위원회의역할과협 31) 남치호외, 1 등축제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1997~2001,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추진위원회, 2002, 44~45 쪽.

116 비교민속학제 58 집 력지원등을거론하고있다. 32) 이렇게출범한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축제의기본틀은유지하되, 축제의시간과공간, 연행, 조직에약간의변화가있었다. 첫째는축제기간을 5일간씩하던것을 1999년부터는 10일간으로늘였으며, 둘째축제장소를낙동강변의공터가축제공원으로용도가확정되어정비하였고, 셋째축제조직은집행위원회에외부인사를대거지역내전문가로교체하고, 축제조직을재단법인화하였다. 33)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하회마을의탈놀이를핵심자원으로하여설계된것이지만, 국내탈놀이, 마당극공연, 해외탈놀이초청공연, 해외무용초청공연등을중심으로하여, 지역민속공연, 지역내문화예술단체들의공연과전시, 마임과인형극, 체험행사등으로이루어졌다. 이러한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1968년부터하던 안동민속제전 ( 후에 안동민속축제, 안동민속문화제 로개명 ) 을흡수하였다는점도중요하다. 본래안동민속제전은안동시가주도하고안동문화원이주관하던시민축제로서전국의허다한시군이비슷비슷한구성으로하던것이었다. 그속에는하회탈놀이공연도포함되어있었다. 그러니국제규모의탈춤페스티벌을개최하는마당에안동민속제전을별개로하기는어렵고무의미하기때문에탈춤페스티벌을특화하여전면에내세우고민속제전을수렴한것이다. 호소력이있고강렬한축제의소재를통하여밋밋한큰축제를전도시킨구도였다. 그래서안동의일부사람들은 아버지축제가아들축제에역전을당한격 이라고표현하기도하였다. 오랜역사의안동민속제전이탈춤속으로희석되어간것에대해못마땅하게생각하기도했다. 한편으로탈춤이안동문화의정체성을표현하는데부적합하다는사람들도상당수에이르렀다. 안동이한국을대표하는유향인데옛날상민들이추던탈춤을가지고전면에내세우니어색하다 든지 아무리축제로흥미는있어도배울점은없다 는반응을하기도하였다. 탈춤페스티벌을하던초기 32)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추진위원회,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97 팸플릿, 1997 참조. 33) 한양명, 앞의글, 2007, 458~459 쪽발췌.

전통적마을민속의공공문화자원화과정 117 5년정도까지는이런부류의반응을엿들을수있었지만, 축제가축제답게운영되고문광부우수축제로거듭선정되니자연스레이런목소리는잠잠해져버린것같다. 축제의신명과즐거움은정숙한유교문화로써해결할수없을뿐만아니라, 탈춤은축제의소재로서적합하다는판단을하는쪽으로의식이바뀌었다. 놀라운사실은정치인도영심이상당히오랫동안하회탈놀이보존회이사장을맡고있었다는점이다. 안동출신권정달전국회의원은그의남편인데, 하회탈놀이에대해서는도영심의관심이컸던모양이다. 그리고 1997년부터는하회마을입구에있는하회탈놀이전수회관에서탈춤공연회수와요일을정례화하였다. 34) 2014년까지의공연성과를집계한자료를보면, 상설공연은 1,676회했으며, 관람인원은 2,369,633명인데, 이가운데외국인은 160,983명이다. 중요인사방문기념공연은, 1999년영국엘리자베스2세여왕방문시, 2005년조지허버트워커부시전미대통령방문시, 2007년노무현대통령방문시, 2009년조지워커부시전미대통령방문시에이루어졌다. 해외초청공연은 15개국 15개국 43차례 142회공연을하였다. 35) Ⅳ. 공공문화자원화의양상과주체, 의미 1. 마을민속의공공문화자원화양상 앞에서본바와같이하회탈놀이는사회변화에조응하여 마을의제의 마을문화연구자원 지역의문화자원 국가의문화자원 으로그실체적의미가확장되어왔다. 이를정리하면 < 표 1> 과같다. 34) 안동시청문화관광과학예사겸하회탈놀이보존회원손상락제공 (2015.9.). 35)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중요무형문화재제 69 호하회별신굿탈놀이제 25 회전통문화교류공연및제 35 회하회별신굿탈놀이정기발표공연 팸플릿, 2015.

118 비교민속학제 58 집 < 표 1> 하회탈놀이의위상과성격변화 구분 위상 마을제의로서하회탈놀이 (1928 년까지 ) 중요무형문화재로서하회탈놀이 (1980 년이후 ) 국제탈춤페스티벌의근거자원으로서하회탈놀이 (1997 년이후 ) 전승 ( 담당 ) 주체 주민 마을밖안동사람 ( 하회탈놀이보존회 ) 하회탈놀이보존회 자원위상마을자원지역자원 ~ 국가자원국가자원 ~ 세계자원 자원화참여자 주민 하회탈놀이연구자하회탈놀이보존회행정기관 ( 안동시 ) 안동문화원 하회탈놀이연구자하회탈놀이보존회다양한분야의안동지역인사정치인도영심경상북도지사안동시장안동시문화관광분야국장 사회의기반과배경 전근대적생산양식, 생계형농경사회, 신분제사회, 마을공동체 자본주의와산업화, 산업농사회로이행 ( 상품생산농업 ), 전통문화보호육성 지자제시행, 지역문화의자원화분위기, 세계화시대국제행사, 전통문화의자원화와활용 후원, 지원주체 마을의대표적양반들 ( 풍산류씨대종가와서애종가 ) 국가 ( 문화재청 ), 경상북도, 안동시 국가 ( 문광부 ) 경상북도, 안동시, 안동문화원 복원재현된하회탈놀이가중요무형문화재가되고, 국제탈춤페스티벌의근거자원으로그위상이변모된데에는행위주체에따라서의도나참여형태에차이가있지만, 전체적으로보면사회적가치의공유를추구하는공유가치창출 (creating shared value) 이라는방향으로움직인것이다. 어느누구만이이득을보는것이아니고, 어느단체만이이익을추구한것도아니다. 하회마을주민들에게도도움이되고, 하회탈놀이보존회도유익하고, 하회탈놀이연구자들의생각과크게충돌하지않고, 안동시의문화재정책과문화관광정책에도유용하고, 경상북도와문화재청과문화관광부에서도지원할만한가치가있다고여기는방향으로하회탈놀이의위상과성격이변화된것이다. 경제논리를깔고있음에도그에못지않은문화논리를강조하는축제로자리잡아가고있는중이다. 이러한사정은이축제가수상한이력으로도어느정도뒷받침되고있다.

전통적마을민속의공공문화자원화과정 119 1997년에문화체육부 10대문화관광축제, 1998년에문화체육부 5대집중육성축제, 1999년에문화관광부선정전국문화관광축제평가 2위, 2000년에문화관광부선정전국문화관광축제평가 1위, 2001년에문화관광부선정전국문화관광축제평가 1위, 행정자치부주최경영행정연구발표대회최우수상, 한국관광공사한국관광대상우수상등이 2001년까지의수상경력이다. 36) 그리고하회탈놀이가이러한형태로자원화되면서안동 MBC 안동 KBS 대구매일신문 경북북부신문 안동신문등과같은지역방송언론사는국제탈춤페스티벌을활용하여언론과방송으로보도하였다. 안동을위시한경북북부지역주민들뿐만아니라전국에산재한안동의출향인사, 문화관광과축제에관심을가진사람들에게중요한소재를제공하게되었다. 이러한활동은독자나청취자를위한것이기도하지만, 방송사와언론사를위한것이기도하다. 하회탈춤, 나아가하회탈춤을매개로한세계의탈춤에대한교육적인차원의활용도많다. 안동대학교 가톨릭상지대학 안동과학대학과같은대학에서는국제탈춤페스티벌추진을위해서관련연구자의축제기획과연차별평가보고서작성은물론이거니와자원봉사자참여, 유관학과의탈춤페스티벌공연장내부스운영, 참관수업활용등으로다양한형태의참여공간이마련되었다. 그리고초중고학생들에게도안동에서열리는국제행사를교육적차원에서참관 체험할수있는계기가마련되었다. 2010년부터는안동교육지원청초등연합탈춤동아리가운영되고있다.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의일환으로초등 6개교중등 3개교에서하회탈놀이전수교육프로그램을진행하여매년 100여명의학생들이참여하고있다. 37) 국제행사는안동시민들에게문화행사참여환경을조성하는데도움을주었다. 외지상인들이축제장에서많은공간을차지하였다는비판도있지만, 안동시관내면단위활동을지원하는부스운영, 안동농협 안동간고등어 안동소주등과같은지역업체에서생산하는특산물이나기념품등을다루는 36) 남치호 한양명외, 1등축제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1997-2001,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추진위원회, 2002. 37)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앞의팸플릿, 2015.

120 비교민속학제 58 집 부스운영, 탈을만들거나쓰고하는체험공간조성등은축제를축제답게만드는작용을하고지역주민들의참여를유도하였다. 외지에서찾아오는관광객들을위한서비스를실현하기위해서안동의음식업, 숙박업, 운수업등은질서의식과서비스감각에뭔가변화가불기도하였다. 국제행사를치러봐야만질서의식이달라진다 낯선사람들이자주, 많이올수록우리를되돌아본다 는이야기는다른지역사람들이나외국인과접촉하면서안동사람들에게미묘한사회의식에변화가생긴다는의미이다. 지역사회에어떤변화를꾀하는개별주체들이국제탈춤페스티벌과더불어서노력하고있다. 이런점에서보면, 오늘날하회탈놀이는하회마을주민의문화자원이아니라이를보존하고활용하고즐기는다수의사람들에게의미있고유익한문화자원으로자리를잡아가고있다. 다시말해서참여주체의성향에따라서차이는있을지라도, 하회탈놀이는다수사람들에게접근이개방되어있고, 다수사람들이활용할수있는공공성을띤문화자원으로그위상을구축해가고있다. 축제가축제정신에충실하고, 축제답게자리잡아가는것은축제가애초에공공문화적속성을띠기때문일것이다. 따라서전근대적, 생계형농업생산체제가아니라현대자본주의적사회체제에서하회탈놀이는국제탈춤페스티벌을탄생시키는근거가되는핵심자원으로서공공문화자원으로탈바꿈하고있다. 공공문화는현대적인형태의공공성을띤문화라고할수있다. 그것은문화행사도돈벌이가되어야한다는논리, 경제적파급효과가있어야문화자원이된다는논리가아니다. 공공문화는사람들이더불어살아가는데유익하고필요한문화, 다중주체들이각기자신들의필요에따라활용할수있는문화, 고비용지출없이누릴수있는문화, 공공기관에서지원하고제공하는것과같은문화, 더불어살아가는마음이존중되는문화를말한다. 자연히공공문화자원은애초에공공성이있던것이든없던것이든간에사회적공유가치가있는공공문화로만들어갈수있는자원이다. 따라서공공문화자원이되려면더불어살아가는사람들의바람직한삶의방식을장려하고지원할수있어야한다. 이와관련하여챔버의다음이야기는시사하는바가크다.

전통적마을민속의공공문화자원화과정 121 오늘날지역개발방식에서 사물중심의개발방식 (paradigm centered on things) 에서 인간중심의개발방식 (paradigm centered on people) 으로의전환에대한인식이중요하다. 과거물리적 수학적분석과예측에기반한지역개발방식은거대한규모의기반시설, 산업화, 그리고관개사업등을강조했으며, 그에따라표준 절차 양식을결정했다. 경제적인분석은개발의영역에서강조되었으며, 개발에대한사고와행위의지배적인양식이었다. 그러나오늘날영향력이강조되고있는 인간중심의개발방식 에서는 민속적지식체계 / 토착적지식체계, 보텀- 업 (Bottom-up) 방식 풀뿌리민주주의, 그리고 지역자치 의문제의식들이중요시되고있다. 38) 물질적가치나경제적가치보다는인간중심의가치를실현하는지역개발이바람직하다는것이다. 지역의문화관광자원을만들든지, 교육자원을만들든지, 주민들의삶에도움이되고그것을지원하는사회적가치를중시하는지역개발이란, 곧공공문화를만드는방식의지역개발을의미한다. 안동시관계자도축제가공공문화의장으로발전되어야바람직하다는것을인식하고있다. 2011년 9월 30일자 축제신문 ( 안동시 안동축제관광조직위원회발행 ) 에쓴안동시장의칼럼에서는축제를통한대규모관광개발이나경제적효용보다는오히려 지역의문화로서, 신명의장으로서 의모습을강조하고있다. 39) 아무튼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성립과운영의핵심적근거자원이하회탈놀이이다. 하회탈놀이가있음으로써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라는국제적인축제가가능했고, 앞으로도마찬가지다. 사람에따라서, 집단에따라서하회탈놀이에대한인식이상이할수있지만, 그럼에도지금의하회탈놀이는마을사회를떠나서, 마을토박이이외의사람들이인위적으로만든집단에의해서마을의공연장과축제장에서연행되는공공자원이되어간다는평가가가능하다. 마을의제의적유산의일부였던하회탈에대해서오랫동안풍산류씨 38) Chamber, Robert, Paradigm shifts and the practice of participatory, In Nici Nelson and Suan Wright(eds), Power and Participatory Development: Theory and practice, Intermediate Technology Publications, 1995, pp.30~42( 이진교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의전개과정과지역사회, 실천민속학연구 22집, 실천민속학회, 2013, 95~96쪽재인용 ). 39) 이진교, 위의글, 96쪽재인용.

122 비교민속학제 58 집 들은긍정적인평가를하지않았다. 그런데국제탈춤페스티벌이정착되고하회마을이세계문화유산으로등재된이후, 하회마을서애류성룡종가의종손은하회탈을들고국보로지정된마을유산이라고설명하는장면이텔레비전에나오기도하였다. 하회탈놀이가공공문화자원이되고, 국제적인행사의초석이된이후풍산류씨들도하회탈과하회탈놀이에대한인식이바뀌었거나바뀌고있음을말해준다. 2. 마을민속의공공문화자원화주체 하회탈놀이가전통적모습에고착되지않고지금처럼그문화적위상과의미를달리하게된과정에는여러주체들이함께참여하였다. 하회마을주민, 하회탈놀이보존회, 전통문화에관심이있는안동사람들, 안동의정치인, 안동시, 경상북도, 문화재청, 문화관광부가다함께하회탈놀이의성격과위상이지금처럼변화되는방향으로노력한것이다. 그가운데서도하회탈놀이보존회와전통문화에관심이있는안동사람들, 행정당국인안동시는매우적극적으로노력했다. 이제국제탈춤페스티벌을추진하고운영한조직과그구성원을보도록하자. 초기일정기간까지는안동시가축제의추진주체나마찬가지였기때문에, 다양한팀을구성하여공무원들을축제장에분담배치하였다. 40) 수년간은축제조직위원회를안동시에서직접구성하여운영하다가, 축제조직의완전한민간화를추진하는계획에따라 2006년에 재단법인안동축제관광조직위원회 가발족되었다. 그리고국제탈춤페스티벌의실제운영조직은추진위원회와집행위원회로구성되어있다. 축제운영경비는문화관광부에서지원하는국비, 경상북도지원금, 안동시지원금으로이루어지는데, 2015년의경우안동시비 1억원, 국비 2억원, 도비 2억원, 축제관광조직위원회자부담 ( 부 40) 2001 년의경우, 축제운영침, 하회지원팀, 의전인력팀, 수익사업팀, 위생수탁팀, 홍보섭외팀, 청소환경팀, 전시운영팀, 출입문관리팀, 정비운영팀, 시설물지원팀, 교통지도팀등으로구성되어, 모두 37 개반에 616 명을탈춤장에서근무하였다 ( 남치호 한양명외, 1 등축제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1997-2001,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추진위원회, 2002, 216 쪽 ).

전통적마을민속의공공문화자원화과정 123 스운영비, 판매사업수익등 ) 7 억원으로 12 억원이다. 1) 탈춤페스티벌추진위원회추진위원회는명예위원장으로는경북도지사, 추진위원장으로는안동시장, 집행위원장으로안동대학미술학과이수창교수, 그밖에새마을지회안동지회장이자안동병원이사장강보영, 스튜디오메타강준혁대표, 그리고음식업중앙회안동시지부장, 안동현장학협의회장, 안동 MBC사장, 한나라당안동시지구당위원장, 민주당안동시지구당위원장, 안동청년회의소회장, 안동청년유도회장, 민속주안동소주부사장, 예총안동지부장, 안동문화원장, 문화관광부관광개발과, 한국전력안동지사장, 하회탈놀이보존회장, 보존회원몇명, 하회탈놀이보존회이사장 ( 도영심 ), 하회마을보존회장, 안동시문화관광과장, 안동세무서장, 대한항공안동지점장, 아시아나항공안동지점장, 숙박업중앙회안동지부장, 경상북도문화체육관광국장, 안동시여성단체협의회장, 안동시의원, 안동교육장, 안동경찰서장, 안동대학교총장, 안동상공회의소부회장, 안동시의회의장, 시의원몇명, 그리고대학교수 ( 남치호, 임재해, 한양명, 권기창, 기화서, 김춘식, 김택규, 성병희, 이남식, 이두현, 임동권등 ) 등으로이루어졌다. 연도별로차이가있지만대략 70여명을웃돈다. 이들은안동지역의각급기관장, 전문가, 문화행사기획자, 하회탈놀이보존회, 하회마을보존회, 문화예술계종사자, 관광업종사자등이망라되어있다고하겠다. 애초에안동시가주도했다할지라도지역주민들가운데대표성이있는사람들로고루구성하여, 민간이대거참여하는축제로만들어가려고한것이다. 이가운데초기에국제탈춤페스티벌을성사시키는데주요한역할을한사람은도영심하회탈놀이보존회이사장이고, 또한메타기획강준혁대표였다. 2013년 10월 4일자 컨슈머타임스 에는다음과같은기사가실렸다. 양반의도시 하면떠오르는지역이바로안동 ( 安東 ) 이다. 안동에는안동권씨, 안동김씨, 풍산류씨등내놓으라하는권문세가들이득실거린다. 하지만양반문화

124 비교민속학제 58 집 가강한만큼상대적으로부녀자와천민들이가부장적인유교사상에의해가장많이홀대받았던지역이기도하다. 아이러니하게도이런안동이오늘날에와서는홀대받던여자와괄시받던천민들에의해발전하고있다는것이다. 그중심에는 UNWTO 스텝 (ST-EP) 재단도영심이사장이있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에참석차안동을방문한도이사장은 1993년권씨문중의며느리로안동에내려왔다. 당시안동에서는탈춤을복원하려는노력이계속되고있었다. 며 지지부진하던탈춤복원사업에흥미를느껴 탈춤페스티벌 을기획하게됐고지금은안동에서손꼽히는축제로자리잡았다 고설명했다. 도이사장은 탈춤이복원되고나서세계의문화유산으로등재시키기위한노력을지속적으로펼쳐왔다 며 국제적인행사에초청되어탈춤을선보이는것은물론, 유명공연장을돌아다니며공연하는등이제탈춤은오페라와어깨를견줄수있는수준까지성장해있다 고설명했다. 41) 이를보면정치인도영심에의해서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기획되는단초를마련하였음을알수있다. 그는상당기간외국에머물렀고정치적이력이있었는데42) 1994년외국인들과안동하회마을에방문하였다가하회탈놀이공연을보고크게감명받아 이토록중요한문화자원이안동에서만머물러있어서는안된다. 세계무대로나아가야한다. 그러면앞으로 10년뒤에하회탈놀이가안동을먹여살릴것이다 고하고는며칠뒤에하회탈놀이보존회이사장을자원하였다. 43) 그래서 1995년 1월부터 2000년 1월까지제 2대하회탈놀이보존회이사장을지냈다. 44) 이어서 1999년영국엘리자베스여왕의안동방문 ( 하회마을, 봉정사 ) 을성사시켰다. 45) 또한 2001 한국방문 41) 컨슈머타임스, 2013.10.04. 42) 그는미국에서신문학학사학위와행정학석사학위를받았고프랑스소르본느대학에서문화관광코스를수료하였다. 국회의장비서와전국구국회의원 (1988.5.~1992.5) 을지냈다.( 위키백과도영심 ) 43) 안동시문화관광과학예사겸하회탈놀이보존회원손상락제공 (2015.9.). 44) 안동시문화관광과손상락, 손재완학예사제공 (2015.9.). 45) 사랑방출입도못하던부녀자, 영국여왕과안동방문 ( 컨슈머타임스. 20103.10.04.) 도이사장은 한국에는여자들이들어갈수없는방이있다 는얘기를들은영국엘리자베스여왕이직접한국을방문하겠다고했을때감개무량했다 며 왕관을쓴여성이안동에오기까지 1000 년을기다린것 이라고당시의상황을회상했다. 그녀는또 영국에선여자가신발을벗는것을

전통적마을민속의공공문화자원화과정 125 의해추진위원회 위원장을맡아서활동했다. 하회탈놀이보존회원들은도영심이국제적으로활동한경력이있어서지역자원을세계적자원으로만들어가는감각이있을것같고, 또이를추진하는역량도있는것으로생각하였다. 도영심이하회탈놀이보존회이사장을맡고있을당시, 하회탈춤은그이전보다국제적인공연을참많이하였다. 1995년 7월미국워싱턴DC ᆞLA 공연, 1996년 8월미국애틀란타올림픽문화축전, 1997년 11월유럽독일 프랑스 영국순회공연, 1999년 11월중국북경공연, 2000년 1월영국런던밀레니엄축제등의해외공연은 46) 모두도영심의추진력과영향력속에서이루어졌다. 권정달전국회의원또한 2012년 2월부터 2015년현재까지제3대하회탈놀이보존회이사장을맡고있다. 지역정치인들이지역의역사문화자원을활용하여지역문화발전과지역활성화를추진함으로써부분적으로는자신들의정치적목적을추구하기도한다. 하회탈놀이보존회로서는정치인들이도와주니깐숙원사업해결이쉽다는점에서서로뜻이맞은점도있는것같다. 1997년도에처음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기획할때, 서울에있는메타기획강준혁대표가총괄기획을담당하였다. 강준혁대표는춘천인형극제를기획해서호평을받았기때문에안동시와하회탈놀이보존회가그에게총괄감독을의뢰하였다고한다. 이때기획위원회가결성되어민속학분야에안동대학교임재해교수와한양명교수, 지방행정분야에남치호교수와상지가톨릭대학김춘식교수, 그리고지역문화계에안동문화회관이진구관장등이기획에참여하였다 ( 간사는메타기획이승훈실장 ). 초대기획위원으로활동한임재해교수는제1회축제이후외부기획자에의존하는축제, 특히탈춤페스티벌에서외부기획자의역할과한계에대해서는의미있는비판을하고, 47) 더이상국제탈춤페스티벌에관여하지않았다. 그후페스티벌기획 매우수치스럽게생각하는관습이있다 며 하지만엘리자베스여왕은한국의문화를존중해주기위해사랑방에들어갈때신발을벗고들어가는모습을보여줬다. 한국여성의여권신장을생각하는정신과한국문화를존중해주는마음에매우감명받았었다 고말했다. 46) 안동시문화관광과학예사겸하회탈놀이보존회원손상락제공 (2015.9.) 47) 임재해, 지역특성도없고국제적이지도않았던축제, 문화도시문화복지 24, 문화체육부, 1997.

126 비교민속학제 58 집 작업은지역의전문가들에의해이루어져서, 지역전문가들이만드는지역축제로자리잡았다. 그럼에도사실상메타기획이처음구상한틀은 2015년현재까지별로바뀌지않았다. 48) 그것은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과기왕의안동민속문화제를형식상으로는병행하는것이고, 실제로는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중심으로하고그틀속에안동민속문화제를적절하게안배하는형식에다가, 탈춤공연장에서하는각국탈춤은유료화하고, 그밖의공간에서하는안동민속문화제를비롯한주변행사는무료화하는것이었다. 민속학분야에서국제탈춤페스티벌의기획과운영에깊이관여한사람은한양명교수와국제탈춤페스티벌을운영하는안동축제관광재단 ( 처음에는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사무국 ) 의권두현사무처장이었다. 축제와놀이분야를연구하던한양명교수는애초의국제탈춤페스티벌과안동민속문화제로형식상 2원화되고, 표면적으로는국제탈춤페스티벌의이름으로널리홍보하면서실제로는한장소에서동시기에진행되면서나타나는어정쩡한관계가국제탈춤페스티벌의모순이라는지적을하고, 또한축제가바람직한축제답게되려면안동시민들이구경꾼에서축제의주체로참여할수있는구조를만들어야한다고제안하였다. 그결과지역주민이나타지역사람들까지참여하는 탈놀이경연대회 를만든정도의개선이이루어졌다고한다. 또한안동민속문화제와병행되는국제탈춤페스티벌이라면 중심적연행과주변적연행을구분해서 시간적 공간적으로배치하는형식의페스티벌이되도록노력하였다. 그럼에도안동민속문화제와국제탈춤페스티벌을병행하는이상근원적으로해결되기는어렵다. 뿐만아니라한양명교수는처음부터지금까지국제탈춤페스티벌기획위원이면서오랫동안이페스티벌연차평가를담당하면서일관된논리로축제에대한의견을제시하였다. 권두현사무처장역시민속학전공자로서, 한양명교수와해외축제에관심을가진행정학전공자남치호교수등으로구성된위원회의의견을실행에옮기는역할을하였다. 권두현처장에따르면, 1997년국제탈춤페스티벌 48) 안동대학교한양명교수면담 (2015.9.)

전통적마을민속의공공문화자원화과정 127 시행이후다양한유형의시민들이축제에참여하도록유도하여축제가제대로자리잡을수있도록, 그리고국제탈춤페스티벌이라는국제적행사의면모를갖추는데가장많은노력을했다고한다. 그결실은 2001년부터국제탈춤페스티벌참여를위한시민교육을전개한것이었고, 이어서국제탈춤페스티벌의주제를해마다정한일이다. 49) 그나마다행인것은하회탈놀이에대해서는국제탈춤페스티벌의근거자원이라는상징성을구현하기위해국내다른지역의탈춤, 해외탈춤과달리탈춤페스티벌에서비중을높여준점이다. 탈춤페스티벌을시작할때는하회마을의서낭당 ( 상당 ) 에가서서낭신을축제장으로모셔오고, 축제가끝날때는다시모셔다드리는구성을하였다. 탈춤페스티벌에참여한모든프로그램이하회탈놀이라는큰마당속에연행된다는순차적구조의축제적설정을한것이며, 그리고다른어떤탈춤보다공연회수를많이설정하고있다. 그리고하회탈놀이를근거로하여만든국제탈춤페스티벌에서국내 13개의탈춤이연대할수있도록묶어준것이탈춤이나탈놀이의공공성을높인효과를가져왔다고한다. 50) 2) 탈춤페스티벌집행위원회추진위원회가의결기구라면, 집행위원회는의결된사항에대해서집행하는기구로 2001년에설치되었다. 그런데사실상집행위원회는전문성이있는사람들이대거참여하여운영되었기에, 여기서내는의견이추진위원회에상정되어의결되는절차를밟았다. 그러므로집행위원회가더중요한역할을했다고하겠다. 집행위원회는위원장에안동대학교미술학과이수창교수, 부위원장에문화회관관장, 당연직집행위원으로안동시문화관광과장, 그리고기획 연구분과위원회, 공연 연출분과위원회, 사업 운영분과위원회, 관광 홍보분과위원회, 사무국으로구성되었다. 기획 연구분과위원은남치호, 한양명, 이 49) 전안동축제관광재단권두현사무처장전화통화 (2015.12.) 50) 위와같음.

128 비교민속학제 58 집 희재교수등이며, 공연 연출분과위원은하회탈놀이보존회장, 예총안동지부사무국장, 안동문화원사무국장, 연극협회사무국장, 한국인형극회이사장, 안동문화연구회사무국장등이며, 사업 운영분과위원으로는전기 전력관련회사, 한국미술협회안동지부장, 안동청년회의소회장, 안동시광고협회장, 가톨릭상지대학산업디자인과이희복교수, 안동공예인협회장등이며, 관광홍보분과위원으로는민속주안동소주부사장, 안동간고등어대표, KBS안동방송국 PD, 안동라이온스사무국장, 경북북부신문사장, 안동닷컴대표, 안동과학대학광고기획과기화서교수, 2001한국방문의해추진위원장도영심, 하회동탈박물관장등으로구성되었다. 이가운데서다른분과보다탈춤페스티벌의축제적논리와형식, 방향등에관해서는기획 연구분과위원회가주도하는가운데연출분과위원회가연출에대한실무적차원의의견을내는형식이었다. 집행위원회의결정과정에서는하회탈과하회탈놀이연구자의의견을상당부분참작하였다. 특히탈놀이의전통적의미와기능에주안점을두고국제탈춤페스티벌을기획해야한다는논리는기획연구분과위원회가제안한것이고, 또한반영되었다. 그러한학문적판단이존중된것은그간하회탈놀이에대한수많은연구가축적되어있었고그성과를수용하고활용하여오늘날세계적인탈춤축제로만들어가고자하는집행위원회의의지가있었기때문이다. 오래전부터하회탈과하회탈놀이, 하회마을에대한연구성과는상당히축적되어있었고, 이를발판으로하회탈놀이가그나마안정적으로전승될수있었고, 국제탈춤페스티벌의성립도가능했다고하겠다. 이페스티벌성립전에는이두현, 김택규, 성병희, 박진태, 임재해교수등의연구가주목되고, 페스티벌성립후에는임재해교수, 안동대안동문화연구소의성과가돋보인다. 51) 특히임재해교수는하회하회탈과하회탈춤에대한연구는물론이고, 국제탈춤페스티벌이수년째이어지던 2001년에지역축제발전을위한지역대학의역할에대해논하면서, 축제는주민들이자발적으로하는신명풀이여 51) 여러연구자들의연구성과목록은참고문헌으로대신함.

전통적마을민속의공공문화자원화과정 129 야하는데요즘지자체에서주도하는축제는축제적요소를갖추지못한지역이벤트라고하였다. 52)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도이러한비판을받으면서성장한셈이다. 그나마국제탈춤페스티벌의경우하회탈놀이를기반으로하였으므로지역적특성을살리는데는유리했던것이다. 축제집행위원회기획연구분과위원회와안동대학교안동지역사회개발연구소는국제탈춤페스티벌에대한연구성과를발간하여국제탈춤페스티벌에대한반성과발전의가능성을탐색한바있다. 53) 이가운데서 안동지역사회의세계화전략 (1998) 에포함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의세계화전략, 1등축제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1997~2001 (2002),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중장기발전계획 (2002) 등은안동시가주도하여국제탈춤페스티벌을시작했다는여건의한계속에서도이페스티벌에축제정신을구현하고자노력하는응용민속학이자공공민속학에해당한다. 학문적연구의공공적실천의결실이기때문이다. 54) 다음으로국제탈춤페스티벌추진위원회와집행위원회구성원을보면오늘날안동지역유력인사들이다. 이들은오늘날안동의상류층인사라고할수있고, 반면에국제탈춤페스티벌에서탈춤을추는사람들, 구경하고배우는사람들의사회경제적지위는다양하게이루어져있다. 이들의관계는어느정도현대사회의정치적 경제적관계일수는있어도과거신분제사회의계급관계처럼평가될수는없다. 3. 마을민속공공문화자원화의의미 이렇게볼때문화현상의자원화도역시그것을사람들이공유하고활용 52) 지역축제발전을위한지역사회와지역대학의역할, 비교민속학, 20 집, 비교민속학회, 2001. 53) 여러연구자들의연구성과목록은참고문헌으로대신함. 54) 로저아브라함스 (Roger D. Abrahams) 는공공민속실천가와학문적민속연구자사이의공통점과차이점에대해고려한다. 그에따르면, 소통형식, 재현양식, 청중에차이가있으며, 자료의공유부분, 제보자권리를위한관심, 그들문화의통합성에서공통점이발견된다. 또한공공민속학과마찬가지로학문적민속학은고용위급, 학문적자유에대한정치적제약, 자금의유용성을조건으로한다 (Robert Baron & Nicholas R. Spitzer, ibid, 1992, p.5).

130 비교민속학제 58 집 할수있는것으로만들어갈수있느냐에따라서성공할수도있고실패할수도있는문제이다. 55) 전통문화를자원화할때사적인자원으로만드는것보다는공공성이있는자원으로만들어가는것이더바람직하다. 여러사람들이서로다른목적이나의도에따라다양한형태와방식으로참여하여공공성이있는자원으로만들때, 사적자원조차도공적자원으로전환될수있기때문이다. 공공문화라고할때공공성은공중의시선에대한개방성, 의사결정과정의민주성, 기본적재화와서비스에대한모든사회구성원의평등한접근성, 비시장적원리에따른자원배분의강화, 국민적자산과사회경제적의제에대한국민적통제라는함의를가진다. 56) 이러한공공성에는다수사회구성원에미치는영향, 만인의필수생활조건, 공동의관심사, 만인에게드러남, 세대를넘어서는영속성등의의미요소가포함되어있다고한다. 57) 오늘날하회탈놀이를하회마을토박이들이아닌안동사람들이전승하고있다는점은하회탈놀이의공공성을이해하는데무시할수없는요소이다. 본래의전승주체가아닌사람들이하회탈놀이의예술성이나전통문화적가치에매료되어연구회를만들어복원전승하였다는사실은공공성이있는자원으로만들어간출발이었다. 이렇게해서하회탈놀이의전승주체가바뀐것이다. 본래신분제아래서하회마을의하층민들이전승하고상층양반들도물적지원을해주던놀이였는데, 잠시애향인이무용가를초청하여복원재현을하기도했지만, 다시하회마을의신분제질서와관련이없는안동사람들이연구회 ( 지금의보존회 ) 를만들었던것이다. 1928년까지마을주민들로구성된전승주체가하회탈놀이에애착이있는안동사람으로전면교체되었다. 물론이들은자발적으로구성된전승주체이다. 하회탈놀이의전승, 활용, 지원주체를시기별로보면 55) 배영동, 마을문화전시관으로본마을문화의자원화과정, 마을민속자원화어떻게할것인가, 민속원, 2007, 8쪽참고. 56) 신정완, 사회공공성강화를위한담론전략, 시민과사회, 제11호, 2007, 41쪽 ( 조한상, 공공성이란무엇인가, 책세상, 2009, 22쪽재인용 ). 57) 위의책, 같은쪽.

전통적마을민속의공공문화자원화과정 131 < 표 2> 와같다. < 표 2> 하회탈놀이의시기별 주체별속성 탈놀이의속성과양태 주체 전승주체활용주체지원주체 제 1 기 : 전통적마을민속으로서하회탈놀이 마을의하층민 ( 본래의주체 ) 마을주민, 구경꾼 마을의상층민 제 2 기 : 애향적재현물로서하회탈놀이 안동의예술인 ( 초청된주체 ) 문화예술인, 애향인 애향인, 관심있는사람 제 3 기 : 무형문화재로서하회탈놀이 제 4 기 : 국제탈춤페스티벌의토대로서하회탈놀이 하회탈놀이보존회 ( 자발적으로구성한주체, 교체된주체 ) 관광객, 행사참여자, 연구자 ( 탈놀이, 축제, 문화행사, 관광분야등 ), 각급교육기관, 방송국, 언론사, 잡지사 연구자, 행정관청, 문화관련기관 연구자 ( 민속학, 지역행정학 ), 지역정치인, 방송국 이처럼마을민속이었던하회탈놀이는본래신분제사회에서피지배층의민속이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누구나보고즐기고따라할수있는문화로자리잡아가고있다. 하회탈놀이는본래전승되던마을사회를떠나서마을토박이가아닌사람들이전승하되, 다양하게활용되는새로운형태의문화자원이되었다. 즉, 지자체 학계 문화예술계 교육계 방송계 관광업계가각기의목적에따라활용하고있는공공문화자원이되고있다. 로버트캔트웰 (Robert Cantwell) 은오늘날민속축제에서는민중문화와공식적문화가서로를포용하고있다고지적하였다. 즉, 하나는교육, 과학, 상업혹은정부와제휴된문화적제도에관심을가져서명예를얻기위한것이며, 다른하나는대중적상상속으로, 그리고민중문화를옹호하고지지하여상업적시장이나공공정책속으로, 민중문화의영향을확산시키기위한것이다. 58) 오늘날하회탈놀이도이런과정을거치면서교육 상업 공공정책속으로파고드는전통마을민속의새로운문화형태이다. 58) Robert Cantwell, Feasts of Unnaming : Folk Festivals and the Representation of Folklife, in Robert Baron & Nicholas R. Spitzer, ibid, 1992, p.263.

132 비교민속학제 58 집 지금과같이하회마을에서주기적으로연행되고, 국내외공연을가고, 국제탈춤페스티벌의근거자원이된하회탈놀이는더이상하회마을제의의맥락속에서본래적의미와기능을담당하는민속은아니다. 탈놀이의형식과내용은전통적인것을지향하여거의비슷하게보이지만, 근본적으로하회탈놀이의전승주체가바뀌었고, 연행의시 공간, 연행의목적과의도가달라졌다. 하회탈놀이가전통마을민속으로부터탈맥락화되고재맥락화되었다고해서가짜민속이니진정성이없는민속이니하는것은새롭게생성된의미를간과하는것이다. 현대사회에서전승주체가바뀌어도다양한사람들에게다양한방식으로활용될수있는공공성을띤문화자원이되어가고있다는사실이더중요하다. 물론이러한문화자원이언제나순기능을담당하는것은아니므로, 이에대해서는별도의논의가필요하다. 참고문헌 김택규 성병희, 안동하회별신굿놀이, 우리고장의민속, 경상북도문화재과, 1978. 김택규, 동족부락의생활구조연구, 청구대학출판부, 1964( 씨족부락의구조연구, 일조각, 1979). 남치호외 4인, 안동지역사회의세계화전략, 안동대안동지역사회개발연구소, 1998. 남치호외, 1등축제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1997~2001,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추진위원회, 2002. 남치호 한양명 권두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중장기발전계획, 안동대안동지역사회개발연구소, 2002. 류정아, 하회탈놀이의의미변화, 서울대학교대학원인류학과석사학위논문, 1989. 박진태, 한국가면극연구, 새문사, 1985. 박진태, 탈놀이의기원과구조, 새문사, 1990. 박진태, 하회별신굿탈놀이, 비교민속학 6집, 비교민속학회, 1990. 배영동, 고려시대하회탈이제작된시기와배경, 고려시대의안동, 예문서원, 2006. 배영동, 향토자원의활용을위한시스템구축과정책방향, 전통지식기술의향토자원화방안, 농촌진흥청농업과학기술원 한국지역사회생활과학회, 2006.5.12. 발표요지집. 배영동, 마을문화전시관으로본마을문화의자원화과정, 마을민속자원화어떻게할것인가, 민속원, 2007. 배영동, 수제( 手製 ) 전통의산업적성격전환과정, 한국민속학 제59집, 한국민속학회, 2014. 성병희, 하회별신탈놀이, 한국민속학 제12호, 민속학회, 1980.

전통적마을민속의공공문화자원화과정 133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추진위원회, <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97> 팸플릿, 1997. 안동대안동문화연구소, 하회탈과하회탈춤의미학, 사계절, 1999. 이두현, 한국가면극, 문화재관리국, 1969. 이두현, 한국의가면극, 일지사, 1979. 이두현 심우성, 하회별신굿탈놀이, 무형문화재지정조사보고서제133호, 문화재관리국, 1980. 이두현 장주근 이광규, 한국민속학개설, 일조각, 1991. 이상현, 안동문화의변화와민속의재창조, 비교민속학 제26집, 비교민속학회, 2004. 이진교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의전개과정과지역사회, 실천민속학연구 22집, 실천민속학회, 2013. 임재해, 탈과조각품으로본하회탈의예술성과사회성, 안동문화의재인식, 안동문화연구회, 1986. 임재해, 하회탈춤에나타난민중적세계관과대동성, 전통과예술 1호, 한국예총안동지부, 1986. 임재해, 민속마을하회여행, 밀알, 1994. 임재해, 지역특성도없고국제적이지도않았던축제, 문화도시문화복지 24, 문화체육부, 1997. 임재해, 지역축제발전을위한지역사회와지역대학의역할, 비교민속학 20집, 비교민속학회, 2001. 임재해외 6인, 하회탈, 그한국인의얼굴, 민속원, 2005. 임재해 배영동 윤천근외 6인, 세계유산하회마을의세계, 민속원, 2013. 조정현, 하회탈춤전통의재창조와안동문화의이미지변화, 비교민속학 제29집, 2005. 조한상, 공공성이란무엇인가, 책세상, 2009.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중요무형문화재제69호하회별신굿탈놀이제25회전통문화교류공연및제35회하회별신굿탈놀이정기발표공연 팸플릿, 2015. 한양명, 하회별신굿의축제적성격, 안동대안동문화연구소, 하회탈과하회탈춤의미학, 사계절, 1999. 한양명, 지역축제의전승과민속의변용-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의경우 -, 비교민속학 제35집, 2007. 中村和代, 전승집단과연행상황에따른하회탈놀이의지속과변화, 안동대학교대학원민속학과석사논문, 2004. Anderson, Perry, Structure and Subject, In the Tracks of Historical Materialism, Verso, 1983( 오길영, 윤병우외편역, 마르크스주의와포스트모더니즘, 이론과실천, 1993). Bascom, William, Folklore,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Vol.15, The Macmillan Company & The Free Press, 1974. Baron, Robert, & Nicholas R. Spitzer, Public Folklore, Washington and London: Smithsonian Institution Press, 1992. Dow, James R., Folklorism, The Greenwood Encyclopedia of World Folklore and Folklife, Vol.1, Westport: Greenwood Press, 2006. Hansen, Gregory, Public Folklore, The Greenwood Encyclopedia of World Folklore and Folklife, Vol.1, Westport: Greenwood Press, 2006.

134 비교민속학제 58 집 The Process of Making a Public Cultural Resource of Traditional Village Folklore in Korea -The Cases of the Hahoe Mask Dance and the Andong International Mask Dance Festival- 59) Bae, Young-Dong* This study has analyzed the process in which the Hahoe Byeolsingut Mask Dance (also known as the Hahoe Mask Dance) was established as a public cultural resource. The Hahoe Mask Dance was originally part of a village folklore as a ritual for the Hahoe Village spirit, handed down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till 1928 when it disappeared. Later, the Hahoe Mask Dance was revived by folklore researchers and a native of Hahoe Village who loved his hometown. They together investigated, studied, and restored the Hahoe Mask Dance. In 1958, the Hahoe Mask Dance won a prize in the National Folk Art Contest of Korea, and became widely known. Having gained recognition, the Hahoe Mask was designated as a national treasure of Korea, guaranteeing its thorough and continued investigation by its researchers. Thanks to the hard work of the researchers and the efforts of the society for inheriting and preserving the Hahoe Mask, the Hahoe Mask Dance was designated as an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of Korea in 1980. From its humble beginning as a village ritual ceremony to its recognition as an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by the whole nation, the Hahoe * Andong National University

전통적마을민속의공공문화자원화과정 135 Mask Dance has come a long way. The Hahoe Mask Dance has been presented to the world and there are many people who want to see and learn it. So, backed by the regional culture-supporting policy of the Korean Ministry of Culture and Tourism, the Andong City government played a leading role in creating the Andong International Mask Dance Festival based on the Hahoe Mask Dance in 1997. In addition to the Andong City government, folklore scholars, culture planners, politicians and the Hahoe Mask Dance Preservation Society also contributed to establishing the Andong International Mask Dance Festivsal. The members of the Hahoe Mask Dance Research Society (now the Hahoe Mask Dance Preservation Society) founded in 1973 played a leading role in the revival and handing down of the Hahoe Mask Dance. Though they were not natives of Hahoe Village, people of Andong City have formed and run this organization. From the mid-1980, the Hahoe Mask Dance Preservation Society participated in Dongje, the Hahoe Village Ritual, which was the main event of inheriting the Hahoe Mask Dance. Since 2008, this society has been leading the Hahoe Village Ritual. As the Hahoe Mask Dance was designated as an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and the Andong International Mask Dance Festival was securely established, not only have people in Andong and other regions of Korea regarded the Hahoe Mask Dance as a meaningful cultural asset, but foreigners have also begun to appreciate it. Originally the Hahoe Mask Dance was the folklore of the class dominated in hierarchical society. However, the Hahoe Mask Dance has now been established as a cultural event that anyone can enjoy and participate in. In closing, the Hahoe Mask Dance has been passed on from the natives of Hahoe Village who created it, to the people of Andong City. The people of Andong City have been handed down the Hahoe Mask Dance. It is a cultural resource that can be utilized in various ways. The mask dance can now be accessed by the city of Andong; academic, cultural, and artistic

136 비교민속학제 58 집 worlds; and journalists, ensuring its preservation and development as a public cultural resource. [Key Words] village folklore, village ritual, Hahoe Mask Dance, Andong International Mask Dance Festival,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public cultural resource 이논문은 2015년 11월 8일투고되어 2015년 11월 24일부터 12월 9일까지심사위원이심사하고 2015년 12월 18일수정완료하여 2015년 12월 21일심사위원및편집위원회에서게재가결정된논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