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트랜스라틴 9 호 (2009 년 9 월 ) 서평 정치를사유하라 : 사빠띠스따의진화 ( 갈무리, 2009) 김은중 " 의견의불일치는세계의성질에대한것이아니라존재에관한것이다 " - 알랭바디우 " 자신의현재의삶으로부터단절하는것, 무기력한자본주의세계의확실성과냉담성들로부터단절하는것은단순히합리적인선택이아니라하나의급진적인결정이다. 그리고내가그것을급진적이라고부르는것은. 그것이올바른선택을하느냐마느냐의문제가아니라위험을무릅쓰고몸을던지느냐마느냐의문제이기때문이다." - 미할리스멘티니스 북미자유협정 (NAFTA) 의발효를계기로멕시코가 제1세계 로진입하게된것을축하하기위해샴페인을터뜨리고있던카를로 웹진트랜스라틴 http://translatin.snu.ac.kr 서울대학교라틴아메리카연구소 (SNUILAS)
정치를사유하라 : 사빠띠스따의진화 ( 갈무리, 2009) 69 스살리나스대통령과국제로비스트들에게찬물을끼얹은사파티스타 3) 봉기가발발한지올해로 15년이넘었다. 그동안사파티스타봉기에대해학문적으로많은글들이발표되었고, 비학문적영역에서도다양한관심들이표명되었다. 라틴아메리카를바라보는국내의시각이끊임없이온탕과냉탕을오고가는것처럼, 사파티스타운동에대한국내외적평가도극명하게갈린다. 한쪽진영에서는사파티스타운동이냉전의종식과더불어선포된 역사의종말 에대한도전이면서반 ( 反 ) 자본주의투쟁을전세계로확산시킨급진정치의진앙이라고포상하고, 다른쪽진영에서는급진적인변화를이끌어내는데도실패했을뿐만아니라자신들의정치적의제를제출하는데도별다른진전을이루지못한 찻잔속의폭풍 이었다고폄하한다. 절대적인환호에서부터공공연한적대에이르기까지다양한스펙트럼을형성하는독해들의과잉 도문제지만,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 (EZLN) 부사령관이라는직책을가지고이데올로그역할을맡고있는마르코스를문화적아이콘으로만들고싶어하는저널리즘적흥행요소까지가세하면서사파티스타운동에대한올바른평가가시급해지는시점에서두툼한분량의책 사빠띠스따의진화 가출판되었다. 필자가과문한탓이겠지만책의저자는미할리스멘티니스 (Mihalis Mentinis) 라는낯선이름의그리스출신학자로아테네의하트퍼드셔대학에서사회심리와정치이론을강의하는것으로소개되어있다. 사빠띠스따의진화 는서문과 7장으로구성되어있다. 저자가언급하듯이책전체는이론적건설과비판적해체의두축으로이루어져있다. 1~2장에서는치아파스에서일어난사건의 3) 이글에서는웹진 트랜스라틴 의편집규정에따라책제목을제외한모든표기에서격음을사용한다.
70 트랜스라틴 9 호 (2009 년 9 월 ) 연대기와사파티스타운동에대한이론적독해를소개하고있고, 4장은기존의독해가포착하지못한사파티스타봉기의새로움이무엇이며이것이급진적정치에던지는의미가무엇인지, 그리고봉기가가져온급진적주체성들의생산에관해분석하고있다. 5 장에서는사파티스타운동을둘러싼담론과실천을여러측면에서비판적으로평가하고, 6장에서는급진적주체성의등장과원주민의사회적상상성의관계를살핀다. 마지막 7장은결론부분이며 3장은 4장에서다루어지는이론적작업틀을세우기위한사전정지 ( 整地 ) 작업에할애되고있다. 서평을쓰기위한독서과정에서많은시간을할애한부분은 2~4장까지였다. 다양한스펙트럼을형성하는이론적독해의공통점과차이점을분별하는일도문제였지만, 특히사파티스타운동에대한저자의독창적인의견을피력하는 4장에서는책장을넘기는일이쉽지않았다. 바디우철학, 특히타자의윤리학을중심으로사파티스타봉기에대한정치적독해를재해석하는횡단비평 (trans-critics) 은새로운개념에대한숙고를요구했다. 더구나이책의목적이새로운이론의생산이아니라혁명적주체-되기라는윤리적입장에있다는저자의강조점을몸각화하는작업이어려웠음을고백할필요가있다. 따라서서평도 2~4장을중심으로서술하려고한다. 미할리스멘티니스는지금까지사파티스타운동이주로정치적분석의대상이되어왔음에도불구하고, 이운동이갖는보다폭넓은정치적의의를이해함으로써비판의균형을잡아보려는시도는매우적었으며이론화작업도조야한수준을벗어나지못했다고비판한다. 이런이유로사파티스타에게는 혁명가 와 포스트모던게릴라 라는딱지와, 이와는모순되는 무장한개량주의자 와 사회민주주의자 라는딱지가나란히붙어있다는것이다. 여기
정치를사유하라 : 사빠띠스따의진화 ( 갈무리, 2009) 71 서주목해야할것은사파티스타운동에적대적인진영은그렇다치더라도, 이운동을옹호하는진영에서도이운동의새로운차원을이론화하지못하고있다는사실이다. 저자는사파티스타독해가보여주는문제와한계는사파티스타봉기를기성의이론들내부에포섭하기때문이며, 그결과치아파스봉기가동시대의다른투쟁들과무엇이다른지설명하지못한다고비판한다. 사파티스타봉기에대한이론들과시각을다루는이책의 2장에서저자는크게네가지접근법 그람시주의적접근, 라클라우와무페의담론이론, 학문적인자율주의적마르크스주의시각, 비학문적인좌파와급진적인좌파적접근 을분석하고있다. 네가지접근법을크게나누어보면비학문적인좌파와급진적인좌파적접근이사파티스타봉기를전통적인혁명개념을바탕으로이상화하거나비판하는태도를취한다면, 그람시주의적접근과라클라우와무페의담론이론그리고학문적인자율주의적마르크스주의관점은혁명개념보다는민주주의개념에초점을맞추어사파티스타봉기를설명한다. 저자가기존의이론을단순하게직접적으로적용하는것을넘어서서새로운이론적범주와작업틀을개발하는것이이책의목표라고말하고있기때문에학문적차원의세가지접근법을간단히살펴볼필요가있다. 그람시는헤게모니이론을통해전통적인마르크스주의가설정한경제와국가사이의위계를허물고지배계급이하나의국가
72 트랜스라틴 9 호 (2009 년 9 월 ) 가되고헤게모니적으로되는것은단순히무력행사라는수단을통해서만이아니라 도덕적이고지적인리더십에의한동의 를통해이루어진다고주장했다. 헤게모니를사회변형의점진적인기획을위해서로다른이해관계를분절하는과정으로바라보는그람시의사유는무장투쟁전략이패배한이후, 라틴아메리카에지대한영향을미쳤다. 따라서헤게모니이론이강조하는사회적정체성과다원론이자연스럽게라틴아메리카서발턴 (subaltern) 그룹의정치적투쟁의모델이되고사파티스타운동을이론화하는데도적용되었다는것은놀랄일이아니다. 이런맥락에서그람시주의의사파티스타독해는사파티스타운동이강조하는 복종하면서명령한다 (mandar obedeciendo) 는명제와 권력을갖는다원론적이고민주주의적이며확장적인국가 라는명제가합류하는지점에머문다. 라클라우와무페의담론이론은구조주의적마르크스주의에대한그람시주의적비판을출발점으로삼아 급진적이고다원적인민주주의 이론을발전시켰다. 라클라우와무페는후기조주의, 라캉의정신분석학, 후기비트겐슈타인언어철학을받아들여외부세계가담론적으로만구축되며담론의외부는존재하지않는다는담론이론을주장했다. 라클라우와무페의주장에따르면, 담론이란차이의흐름을포획해서하나의중심을구축하기위한시도이지만, 단지 떠다니는기표들 의의미를부분적으로만고정할뿐이다. 따라서 헤게모니는고정되지않은요소들을부분적으로고정된계기들로분절함으로써하나의담론을, 또는담론들의집합을사회적정향과행동의지배적지평속으로확장하는것으로이해할수있다. 그러나헤게모니적담론의확장은 적대의현존 때문에결코완전히도달될수없다고주장한다. 여기서적대는 담론들이달성하려고시도하는사회의최종적인봉합 을가로막
정치를사유하라 : 사빠띠스따의진화 ( 갈무리, 2009) 73 는어떤것이다. 사회적적대에는두가지유형이존재하는데, 하나는전체사회적공간을두개의반대진영으로분할하는 대중적적대 이고, 다른하나는세계를점점더복잡하고다양한전투지형으로만드는 민주적적대 이다. 따라서그들의주장에따르면, 급진적이고다원적인민주주의를위한기획은평등주의적논리를토대로모든영역들을최대한자율화하기위한투쟁과다르지않다. 라클라우와무페의담론이론의관점에서볼때, 사파티스타봉기는급진적이고다원적인민주주의가확대되고심화되는과정을보여주는좋은예증이다. 자율주의적마르크스주의이론은전통적인마르크스주의가자본주의착취의메커니즘에만맞춰져있던분석의초점을노동계급의자율행위로이동함으로써자본의논리에포섭된노동운동을혁신하려는노력이다. 자율주의적마르크스주의이론에따르면, 자신의계급적지위를벗어나무언가다른것이되려고하는노동자들의노력은노동계급이되지않으려는노력을뜻하는것이아니라노동의 자기가치화 라는대안적인도식을제기할때가능하다. 또한 사회적공장 이라는말이의미하듯이노동착취는공장에만한정되는것이아니고계급이노동자에게만적용되는것도아니다. 자율주의적마르크스주의의관점에서보면 자본의확대는사실상라틴아메리카역사전체를특징짓는과정 이며 사파티스타의경험은주변적이거나고립된사건이아니라, 전지구적인노동재구성의분리불가능한부분 이다. 자율주의적마르크스주의이론은노동의자기가치화라는관점에서사파티스타운동을라틴아메리카게릴라운동의단순한연속이라는점에반대할뿐만아니라, 좌파정당이나도시의노동조합들이포기한정치공간을채우고민주주의, 토지, 문화적자율성등을요구하는개량주의적운동으로이해하는주장역시논박
74 트랜스라틴 9 호 (2009 년 9 월 ) 한다는점에서앞의이론들과는차별성을갖는다. 대표적인예로홀러웨이의 권력을잡지않고세상을바꾸는것 에대한논의와 인간의존엄성 을혁명적범주로이론화하는작업을들수있다. 사파티스타들이 라칸돈정글선언 에서지속적으로사용하고있는 인간의존엄성 이라는개념은단순히농업개혁에대한, 또는원주민들에게더관대한정책들에대한주장이아니라자본의확장과그것의파괴적인결과에대한근본적인저항과비판이기때문이다. 달리말하자면, 인간의 존엄성은착취, 소외, 물신화에대항하는투쟁 이며 인도적인개념이아니라계급개념 이라는것이다. 그러나자율주의적마르크스주의역시기성의이론을사파티스타봉기에적용함으로써사파티스타봉기가이러한이론들의타당성을입증하는하나의사례로취급되고있다는점에서는그람시주의적접근이나라클라우와무페의담론이론과크게다르지않다. 그렇다면저자가주장하는사파티스타봉기의새로움, 즉총체적인측면에서사파티스타봉기를그것이속한지역성과한계를넘어서서중대한정치적사건으로시간과공간속으로확대시키는새로움은무엇인가? 여기서미할리스멘티니스는알랭바디우의 사건 개념과상황주의자들의 구축된상황 개념을연결시켜 사건적상황 이라는개념을도입하고, 이를통해혁명적주체성의출현에대한논의로나아간다. 저자가바디우에게서빌려오는사건개념은 기존사회를지배하는셈의법칙이누락시킨공백이존재하는것으로드러나는과정 이다. 쇤베르크의음악은그이전의음악적상황을지배하는법칙을깨는음악적공백 ( 음악적으로의미를갖지않던음계 ) 을드러낸사건이고, 파리코뮌은그이전의정치에서정치적으로무가치한것으로간주되었던노동계급 ( 정치에서의공백 ) 이스스로의가치를선언한사건이다. 그리
정치를사유하라 : 사빠띠스따의진화 ( 갈무리, 2009) 75 고이러한사건을통해서공백으로있던것이드러나는것이진리이다. 따라서진리는사건이전에는지식체계에의해이름붙여질수없는명명 ( 命名 ) 불가능한것이다. 저자가차용하는또하나의개념인구축된상황이란하나의상황이구축되기위해서는시간의어떤계기의모든측면 배경에서부터연루된사람들이어떻게행동하고있느냐에이르기까지 이집단적으로연루됨을의미한다. 즉 구축된상황은그구축과정에서개인의완전한연루를요구하며그리하여스펙타클과관객사이의분할이해체 됨을의미한다. 부연하자면 구축된상황들은삶의물질적환경과실천으로서의행위사이의상호작용 을뜻하며 현실적인환경의불모성과억압그리고지배적인정치적ㆍ경제적질서에반대하는선동과논쟁을유발시킨다. 따라서좋지도나쁘지도않은순수한주체성이사회의지배적질서와직접적으로결합되는계기들을의미하는구축된상황은 자본주의적인조건들하에서스펙터클의최면적인힘, 달리말해이미지의지배와불능을타파할수있는, 실재의삶을경험하고생생한세계의구축에능동적으로참여할수있는잠재력을갖는다. 그렇다면구축된상황이란진리를생산하는사건에실천적으로개입하는것을의미한다고볼수있다. 멘티니스가사파티스타봉기를새롭게조명하기위해조합한개념인사건적상황은사건자체의혁명성보다는시간과공간으로확장되어상황을구축할수있는효과를만드는사건을의미한다. 멘티니스는프랑스혁명이모든해방운동을위한지형을열어젖혔다면, 이후의운동들을위한불꽃을일으킨것은아이티혁명의사건적상황이라고말한다. 그리고사회주의와프롤레타리아봉기의역사적노선의관점에서러시아 10월혁명과쿠바혁명도동일한관계로말할수있다. 따라서 사건적상황이란사
76 트랜스라틴 9 호 (2009 년 9 월 ) 건을특정한조건들및맥락들에특유한언어로번역해내는중간요소와같은무엇이다. 이런맥락에서멘티니스는사파티스타봉기가사건도아니고구축된상황도아닌 유사사건성 이라고규정한다. 1994년반란은자본주의에유효한일격을가하지못하고어쩌면단지지역적수준에서그발전을지연시켰을뿐이며, 어떠한실재적인혁명적인억제책과대안도없는상태에서자본주의는자신의궤적을계속하기 때문에사건이아니다. 사건은상황을변화시키는것이기때문이다. 그러나지역적관심사들과만소통하는구축된상황담론과달리 사파티스타담론은보편적인호소력을갖는, 그리고지역적조건들에의존하지않는, 아니더욱좋게는, 모든억압및착취의조건들에적용되는개념들및사상들 ( 예컨대, 민주주의, 존엄, 많은세계들이어울리는하나의세계, 신자유주의에대항하는인류등등 ) 을강조하는또다른방향성속에서자신을드러내기 때문에구축된상황도아니다. 이런맥락에서유사사건성은멘티니스가사건개념과구축된상황개념사이의어딘가에사파티스타봉기를위치시키기위한개념이며, 사파티스타운동에대한무비판적환호와악의적폄훼에균형을잡고사건적상황으로규정하기위한선택이라고볼수있다. 결국, 사파티스타와그들의사건적상황의중요성은그들의혁명이론이나자본주의에대한그들의정치적대안에존재하는것이아니라, 오히려혁명적정치를위한필요를, 그리고가장중요하게는혁명적정치의가능성을명백히한것에존재한다. 기성의이론이사파티스타봉기를포섭하는독해방식을살펴보고, 이들이놓치고있는봉기의새로움을드러내기위해사건적상황개념을건설적인이론의축으로제시한뒤멘티니스가최종적으로다다르는지점은혁명적주체-되기의문제이다. 앞에
정치를사유하라 : 사빠띠스따의진화 ( 갈무리, 2009) 77 서말한것처럼진리는사건을통해서드러난다. 사건은기존의사회질서를뒤흔들어구멍을만드는어떤것이며, 기존의언어와지식으로는명명할수없는결정불가능한것이다. 다시말해, 기존사회의이해지평을벗어난사태가사건이다. 그리고개입을통해서이러한새로운사태를 ( 소문자 ) 진리로인식하고실천하는주체가혁명적주체이다. 즉사건적상황을살아있도록만드는, 진리가되도록행동하는충실성이혁명적주체-되기이다. 바디우철학을배경으로멘티니스가강조하는주체-되기는기존의사회적혁명을대체하는개체의혁명이며대문자혁명이아니라소문자혁명이다. 극단적으로말하면 하나의상황속에서새로운존재및행위방식을창안하는과정에들어가기위한사건적파열이강제하기전에는주체란존재하지않는다. 따라서사건, 진리출현, 혁명, 주체-되기는동시적이다. 사건에대한충실성, 즉혁명적주체-되기의종류, 성격, 스타일은그사건에참여한정도, 사건과이루는거리와근접성, 자본주의적위계와권력관계들속에서그가차지하는지위에달려있으며, 사건의진앙으로부터동심원적으로확장된다. 멘티니스는사파티스타봉기라는사건적상황에대한첫번째주체-되기는사파티스타자신들이며, 두번째주체-되기는사파티스타를지원하는사람들이라고말한다. 사파티스타들의주체-되기는저항의구체화를통해서가능했고, 사파티스타를지원하는사람들의주체-되기는그들이처한상황에서 가장교활한통제메커니즘인스펙터클과단절 함으로써가능하다. 멘티니스가학계와관련하여언급하는세번째주체-되기는훨씬구체적이고사실적으로들린다. 사파티스타에관한저작을읽거나그들에대한책을쓰는학자의충실성은, 또는사파티스타에대한논문을쓰려고마음먹은학생의충실성은어떻게표현
78 트랜스라틴 9 호 (2009 년 9 월 ) 되며물질화되는가? 앞에서언급했듯이사파티스타봉기의중요성이그들의혁명이론이나자본주의에대한그들의정치적대안이아니라, 봉기의효과들이시간과공간속에서사건적방식으로확장되고, 생명을유지하며혁명적기획을향해나아가는 것이었다면, 멘티니스가강조하는학계의주체-되기는 학계의급진적인변형 다양한정치투쟁형태들과불가피하게친밀하게연결하게될변형 을위한집단적인격려, 조직, 행동 이다. 다시말해, 폴리페서의행태에서볼수있듯이 학계를자본주의적기구로내버려두고, 소위주변부그룹들을이상화하고물신화하는것으로만족하면서, 학계와정치행동간의관계를전적으로학계바깥의정치적활동과의연루를조장 하는것으로생각해서는안된다는것이다. 멘티니스는충실성윤리와주체성그리고정치행위에대한혁신적이해방식을제공하는바디우철학에크게의존하고있지만두가지면에서의문을제기한다. 첫째는사건이전에주체가존재하지않는다는바디우의주장은어떻게사건이존재하게되는지설명하지못한다는것이고, 둘째는충실성에대한바디우의개념화가방향성이없는정적인과정으로보인다는것이다. 첫번째의문에대한대답으로저자는 3장에서논의한카스토리아디스의자율기획을제시한다. 그는사건의창조에참여하거나사건에의해포획되는충실성의주체가그저누군가일수없고 자율기획의생성중인역사적주체 라고말한다. 그리고 자율기획은고대그리스에서일어났던파열에뿌리를둔사회적인상상적의의들이며, 타율과사물의제도화된질서, 제정권력을부정하는재귀적인인간활동의상호환원불가능한극들로서의민주주의와철학의창조속에체현되었다 는카스토리아디스의주장을받아들인다. 자율기획과더불어네그리의제헌권력에대해서상세히
정치를사유하라 : 사빠띠스따의진화 ( 갈무리, 2009) 79 서술하고있는 3장의근본적인주제가바로유럽문명의기원으로인정되는그리스부터시작해근대까지계승된 고도로재귀적인 역사적주체이다. 고도로재귀적인역사적주체의행동원리인자율기획은어떠한 사회바깥의 원천 ( 신, 영웅, 보편적이성, 역사발전의법칙등 ) 에대해서도거부를표명하고, 집단체가자신과자신의활동을문제삼고, 자신을명백히그리고재귀적으로제도화하고재제도화 하는급진적상상성이다. 그리고역사적주체의급진적상상성이사회적상상성과연결된것이네그리의제헌권력 ( 구성적힘 ) 이다. 충실성의개념화에내재하는방향성의상실에대한멘티니스의답변은전통적인의미의혁명이내세웠던폐쇄적유토피아기획으로인해진정한혁명사상자체가거부되어서는안된다는것이다. 이는다분히포스트모던적정치학의계량주의를경계하려는의도이다. 그리고이것의연장선상에서기존의독해들이자본주의를극복하고잿더미에서사회를다시만들실제적인사건을위한사파티스타의상상성에대한평가를거부하고, 오히려그렇게하지못하는무능성을이론화하려는경향에대한비판이기도하다. 윤리학에중심을둔바디우의철학이미래적비전을제시하지않는것은탈근대철학의지배에도전하여다시금진리를탐구하는철학을옹호하기위해서는 어떤경우에서건신학에대한암묵적인준거 를부정하고이미구성된사물들의질서를파열하는것이기때문이다. 5장에서수행하는사파티스타운동에대한비판적독해와 6장에서다루는원주민의사회적상상성에대한연구까지더해지면멘티니스의작업은지금까지부분적이고다분히이분법적으로접근했던한계를벗어나사파티스타운동에대해총체적관점을제공하는훌륭한지침서가될자격이충분하다. 특히정치와철학
80 트랜스라틴 9 호 (2009 년 9 월 ) 을가로지르는횡단비평은사파티스타들의창조적반란을이해하는대담하고새로운접근법을통해우리의사유를자극한다. 하지만마지막으로근대성에대한저자의언급과관련하여한가지짚어야할문제가있다. 멘티니스는 사건이전에주체는없다 는바디우의주장을비판하고그대신자율기획안에혁명적인활동을위치시키는데, 그것은 자율기획이언제나기존의질서에대해급진적인물음을던지기때문 이라고말한다. 그리고급진적인물음이가져온계보학적파열의계기를유럽의근대성속에서추적한다. 내가치아파스에서일어난사건들을이해하기위해현저하게유럽적개념들을사용하는이유가사파티스타담론이자율기획의배치와같이유럽에기원에두고있는개념들및관념들을토대로구조화되어있기때문이며, 그래서치아파스에서일어난사건들은자율기획을유럽의경계너머로확장시키는것에의해서 ( 만 ) 이해될수있다 는주장은이런맥락에서가능하다. 그러나유럽중심적근대성에대한탈근대적비판이반근대적인근대적 (anti-modern modern) 비판에불과하다는지적을되새겨야한다. 고도로재귀적인역사적주체라는표현에는하버마스나기든스가주장하는성찰적근대성이라는유럽중심주의가오버랩된다. 최근라틴아메리카와미국의학자들간에활발하게진행되고있는근대성 / 식민성프로젝트는유럽중심적근대성이은폐하고있는식민성을드러냄으로써유럽중심적근대성을재해석하고있다. 타자에게저질러진억압과착취의식민성을은폐한고도로재귀적인역사적주체는이론적허구다. 또한사파티스타의급진적상상력이이운동의영토적경계를넘어자율기획의전지구적인배치를촉발했다고높이평가한다고해도재귀적근대성을경험하지않은사파티스타는역사적주체가될수없으며, 헤겔
정치를사유하라 : 사빠띠스따의진화 ( 갈무리, 2009) 81 이말했던것처럼보편사의꼭두각시에불과할뿐이라는전제가깔려있음을부인하기어렵다. 따라서저자가주장하는 정치적ㆍ사회적지형의급진적변형이라는혁명기획 역시유럽중심적근대성에대한바디우의비판 지배적인윤리적이데올로기가어떠한해방적인정치적기획도, 사회적ㆍ정치적변형에대한어떠한진정한시각도결여하고있다 을벗어나지못하는한계를노출한다. 유럽중심적근대성에대한수많은비판에도불구하고유럽중심적근대성에대한대안은유럽에서만도출될수있다는유럽중심주의가 사빠띠스따의진화 에도완고하게자리잡고있는셈이다. 그렇다면이제우리에게주어진과제는유럽중심적근대성의외부에서유럽중심적근대성을사유하고, 이를통해사파티스타운동을재해석하는작업이다. 김은중 - 서울대학교 HK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