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과목회 66호-최종.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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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과목회 65호-최종.hwp


2015년9월도서관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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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과 제자로 부르시니 1. 주님을 따라오라는 말씀에 무엇인가를 버려두고 즉시 순종하였다. 그들이 버린 것은 배와 그물이었는 데, 그것은 곧 생업을 포기한 것이다. 2.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려고. 전도나 선교를 의미한다. 1. 따르다 는 제자도의 핵심 동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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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생명의 법칙은 죽음을 통해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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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oliness Required for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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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 즉 신구약만이 우리 신앙과 문서, 행위를 위한 유일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성경의 원칙과 통찰력을 우리 삶에 적용할 때, 그 성경의 말씀이 우리의 기도를 다듬고 모양을 만들어 가게 한다. 또한 당신의 기도의 내용이 곧 당신의 신앙을 만든다 라고

우리 옆에 계신분과 인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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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청봉3기 PDF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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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송(頌) 유자효 자작나무 잎은 푸른 숨을 내뿜으며 달리는 마차를 휘감는다 보라 젊음은 넘쳐나는 생명으로 용솟음치고 오솔길은 긴 미래를 향하여 굽어 있다 아무도 모른다 그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길의 끝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여행에서 돌아온 자는 아직

5월전체 :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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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나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어떻게 응답하시나요?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 하나님의 반응 2절 ( 원망 ) 함. 8절 ( 음식 )을 약속하심 3절 ( 사람 )에게 따짐. 9절 불평하는 자들을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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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어 살아갑시다 영광의 신비 제 2단 -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을 묵상합시다. 영광의 신비 는 그리스도의 수난의 어둠을 빠져 나와서 부활과 승천을 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신비입니다. 우리들은 주님의 부활의 증인입니다. 그리스도에 대

본문2(91-182)

2 국도복음 설교특집

1 사탄의 시험 우리는 교만해진 루시퍼가 하나님의 지위를 탐내어 반역했던 태초의 사건을 기억한다. 이제 완전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께서 하늘의 영광과 위엄을 떠나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러나 사람이신 예수는, 사탄이 보기에 한번 상대해 볼 만한 존재로 보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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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떻게 가르칠까? 1) 한 눈에 보기 (1) 준비물: 펜 (2) 순서 및 구성 순서 구성 제목 준비물 1 소개 주제 (제목, 본문, 암송구절) - 2 도입 밭 가꾸기 여러 피난처 펜 3 말씀 보기 씨앗 심기 나의 피난처 펜 4 말씀 이해 꽃 피우기 피난처를 향해

두 천사의 기별을 체험하지 못하였다. 사단은 그것을 알고 그의 악한 눈 을 그들에게 돌려 저들을 넘어뜨리려 하였다. 이 기별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자들은 사단의 수많은 미혹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 초기, 256.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 세대를 일컬어 겁이

Transcription:

새로운복음 도마복음 읽기(6) 한 석 진(목사, 원주 진리와자유교회) [제41장]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손에) 무엇이라도 가진 자는 더 받게 될 것이며, 그리고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자는 그가 가진 조그만 것조차 빼앗길 것이다. 이 말씀은 경제나 물질의 분배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다. 이 말씀을 부익 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 가진 자가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는 것)의 말씀으로 곡해하여서 경제적 불평등과 소외를 정당화 하는 사람은 화가 있을 것이다. 물질적인 부는 소수에게 지나치게 편중되 고 쌓일수록 다수에게 구조적으로 경제적 소외와 고통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늘나라는 결코 지나친 경제적 편중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인간 적 소외와 사회구조적 불의를 묵인하고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은 믿음에 관한 말씀이요 깨달음에 관한 말씀이다. 누구든지 하늘나라를 두고 하는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마저 빼앗아 간다. 길가에 뿌린 씨는 그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마13) 믿음이 없는 사람은 진리의 말씀을 들어도 흘려버리 거나 현실의 이익에 보탬이 되지 않기에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로 비웃 거나 멀리 던져버린다. 그러나 진실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진리의 말씀을 154 농촌과목회 제66호

들으면 의(義)와 지혜의 말씀을 충심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며 진리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여 그 뜻을 깨닫기 위하여 온 정성을 집중한다. 즉 온 몸과 마음으로 말씀을 사랑하고 실천하며 참으로 거듭나겠다는 단호한 결단이 따른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다. 믿음이란 불씨와 같다. 이런 믿음의 씨앗이 있는 사람은 진리의 말씀을 하나 들으면 열을 배우고 열을 실천한다. 말씀이 꿀처럼 달콤하고 자나 깨나 묵상을 한다. 진리를 사랑한다는 것은 마치 연애를 시작한 사람처럼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점점 진리의 말씀에 깊이 심취하여 묵상하며 행복하고 진리의 말씀으로 배부르고 진리의 말씀으로 뜨거워진다. 진리의 말씀이 생명의 물이요 생명의 떡이다. 그러나 기적을 좋아하고 복을 받기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좋은 믿음이 못된다. 큰 믿음은 하나님 나라의 비유와 하나님의 정의와 윤리적 교훈을 더 깊이 사랑하며 결단하고 실천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하나님 의 진리를 사랑하는 열정과 거듭나겠다는 각오로 자신을 불태워야한다. [제42장]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건너가는 사람이(나그네가) 되어라.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데, 인생과 진리를 논하면서 이 세상을 떠난 저 세상을 바라보기만 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존 웨슬레도 신앙의 중심은 사람이 거듭나는 회심(義認)과 성화, 두 가지라고 하였으며 천국은 내세신앙이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천국의 비유도 죽음 이후의 내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어느 누구 라도 천국이 죽음 후에 내세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천국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세상 어딘가에 천국이라고 하는 특별 한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의 비유나 건너가 는 자(나그네)가 되라 는 말씀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에 달려있다. 이 세상을 말하되 우리가 눈으로 보는 현상세계가 아닌 다른 세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도마복음 읽기(6)ㆍ한석진 155

[제43장]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여쭙기를, 당신은 누구시기에, 우리에게 이런 일들을 말씀해 주십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 게 말하는 것으로부터 너희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오히 려 유대인들처럼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무는 사랑하지만 그 열 매를 미워하거나, 열매를 사랑하지만 그 나무를 미워하기 때문이다. 진리의 말씀은 남의 것을 흉내를 내거나 남의 것을 내 것인 듯 도둑질할 수가 없다. 금방 탄로가 나기 때문이다. 모방은 모방일 뿐이며 가식은 가식 일 뿐이다. 진리를 깨달은 참된 스승은 남의 것을 흉내 내거나 죽은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지 않는다. 자신 만의 창조적인 말씀을 내며 늘 새로 워진다. 진리의 말씀이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깨달아지고 체득되면 자신 만의 고유한 말씀이 터져 나온다.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 자기 자신 속에서 온전히 소화되고 무르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리의 세계는 유대인들처 럼 암기하고 모방하고 흉내만 낼 것이 아니라, 온 몸과 마음으로 본받고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 진리를 체험하고 거듭나는 것은 진리의 말씀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불타올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은 살아있는 스승의 삶과 가르침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어야한다. 단 몇 마디의 말씀 속에서도, 그리고 그의 눈빛 속에서 그 분이 어떤 분인지 누구인지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절벽에 매달린 사람처럼 스승의 말씀과 가르침을 꼭 붙잡고 놓지 말아야 한다. 놓치면 죽기 때문이다. 내가 죽느냐 사느냐의 선택은 나 자신에게 달렸다. 아무리 생명의 말씀 이라도 내가 꼭 붙잡고 내 것이 되기까지 매달리지 않으면 죽은 말이 된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스승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분의 참 모습이 무엇인지도 알아차리지 못하면 더 이상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믿음이란 예수님을 그리스도 로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 가 예수님의 참모습이다. 믿음의 눈이 뜨여야 예수께서 그리스도 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고 믿게 된다. 그리스도 라는 말은 유대인들에 의해서 정치적인 왕, 다윗의 후손 도마복음 읽기(6)ㆍ한석진 157

메시아 로 왜곡되고 굳어졌지만, 예수께서는 진리=하나님, 하나님의 형 상 이라는 의미로 전혀 새롭게 쓰셨다.(막12:37) 진리의 스승은 말을 전혀 다르게 사용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다른 언어이다. 진리의 말씀을 실천하는 굳은 믿음과 말씀에 대한 간절한 사랑이 없으 면 아무리 위대한 스승의 말씀을 반복하고 실천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없 는 죽은 말일뿐이다. 진리의 말씀에 자기 자신을 던질 의지가 없기 때문이 다. 믿음도 없고 진리에 대한 사랑도 열정도 없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기적을 좋아하고 모세나 예언자의 이름을 칭송하고 그 가르침을 앵무새처 럼 되풀이하지만 그것은 그저 전설에 불과한 것이다. 그 전설을 노래하며 위대한 조상을 찬양하며 자기 자랑을 하지만 말과 행동이 다르고, 말은 뻔지르르하게 하지만 실천할 의지는 전혀 없기 때문에 자신과 상관없는 삶이요 죽은 말이 되어버렸다. 나무는 사랑하지만 그 열매를 미워하거나, 열매를 사랑하지만 그 나무를 미워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제44장]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아버지를 모독하는 자는 용서받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아들을 모독하는 자는 용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이 말씀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과연 종교의 핵심적 요소가 무엇 이며, 종교의 의미가 무엇이냐? 는 문제에 관하여 가장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람들은 성령이라고 하면 미래의 일을 예언하고 방언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속내를 알아맞히고 병을 고치는 신유의 은사나 기적 같은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미신이며 술객들의 방편일 뿐이며 올바른 종교가 말하는 성령이 아니다. 아무리 미래의 일을 예언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시간에 속한 일이지 시간을 초월한(영원) 세계가 아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을 알아맞힌다고 해도 일체의 생각이나 마음을 비운 깨끗한 158 농촌과목회 제66호

진정한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종교가 아니라 미신덩어리요 사기(詐欺)이다. 종교의 본질은 분명히 종파나 교리를 전파하며 세력을 확장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에게 종교적 교리라는 색깔을 입히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 성령의 거룩한 힘을 통하여 온전히 거듭나는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 는다면 더 이상 종교로서의 가치가 없다.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인간은 수많은 신(神)을 만들어냈고, 종교나 종파간의 분쟁은 끊임없고 인권유린 은 처참하였다. 종교의 본질을 모르고 외면하며 종교 싸움 교리 싸움 종파 싸움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누가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였는가? [제45장]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포도는 가시나무에서 수확되지 않 고, 무화과 또한 엉겅퀴에서 수확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열매를 맺지 않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은 그의 창고에서 선한 것을 내어온다, 하지만 악한 사람은 그의 가슴속 악한 창고에서 악한 것을 내어오며, 악한 것들을 말한다. 왜냐하면 가슴속에 넘치는 것으로부터 그는 악한 것들을 내어오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관심 갖고 꾸준히 쌓아간다. 그래서 자연 히 말이나 생각에서도 자신이 추구하고 관심 갖는 것을 표현하며 행동에 도 나타난다. 생각은 숨길 수 있어도 말이나 행동은 숨길 수 없다. 잠시 동안은 숨길 수 있어도 계속 숨길 수는 없다. 사회가 혼란할 때일수록 거짓이 난무하고 예수님 당시도 거짓 위선자들이 많고 거짓 예언자처럼 사람들을 현혹하면서 양의 탈을 쓰고 굶주린 이리처럼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말과 행동이 너무 달라서 말은 포도요 행동은 가시나무와 같다. 따라서 사람을 판단할 때에 말과 행동이 같은지 다른지를 꾸준히 지켜보면 현혹되지 않을 수 있다. 포도는 가시나무에서 수확되지 않고, 무화과 또한 엉겅퀴에서 수확되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를 찾는 사람은 진리의 말씀에 관심과 열정을 집중한다. 진리의 162 농촌과목회 제66호

세계는 마음뿐 아니라 몸으로 함께 익히며 터득해야한다. 관심과 열정과 함께 마음과 몸이 하나 되어 진리의 말씀을 실천하며 익히고 터득하는 것이 없으면 진리의 깨달음과 영적 거듭남도 없기 때문이다. 철이 들어야 사람이 되듯이 영적 거듭남을 통해서 비로소 참 신앙인이 되고 참 자유인 이 되고 참 사람(선한 사람)이 된다. 쇠는 달구어졌을 때 두드려야하고 담금질을 해야 한다. 두드림과 담금 질에서 쇠가 강철이 되고 보검이 되는 비약이 일어나듯이, 진리의 열정이 뜨겁게 달아올랐을 때 죄의 뿌리를 뽑아야하고, 자신의 존재라는 근원을 만나야 하고, 자신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성령의 은혜는 비약(飛躍)과 같아서 진리의 깨달음과 영적 거듭남의 체험이 도적같이 온다. 마치 때가 차면 어느 날 갑자기 새가 하늘을 날고,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고, 애벌레가 잠자리가 되어 허공을 날듯이. 노력한다고만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노력 이 없이 되는 것도 아니다. 노력이 많고 적은데 따라서 차별이나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진리를 깨닫고 거듭나는 체험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자신의 본질을 알면 두려움이 없다. 그것이 진정한 평안이다. 쇠가 식으면 좋은 칼이나 작품도 만들 수 없는 고철로 남듯이, 열정이 식으면 다시 죄의 본성이 나타난다. 다시 죄에 속하여 산다. 그렇기 때문에 쇠가 달아올랐을 때 두드려서 죄의 뿌리를 뽑고 자신의 본질(하나님의 형상)을 찾아야 한다. 죄를 벗어버리고 참 자유인이 되어야 선한 사람이 된다. 하나님께 죄가 없다고 인정받은(稱義) 사람이 선한 사람이요 좋은 나무이다. 좋은 나무(선한 사람)가 되어야 좋은 열매를 맺는다, [제46장]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담으로부터 세례요한에 이르기까지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세례요한보다 더 위대한 이는 없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의 눈이 찌푸리지 않도록 해야 (눈을 찌푸리는 일을 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나 이미 내가 말하였다, 너희 중에서 누구든지 아이가 되는 자는 하늘나라를 알 것이요, 요한보다 더 위대하게 되리라. 도마복음 읽기(6)ㆍ한석진 163

아래 있는 실존의 모습이다.(롬8장) 이제 거듭난 참 나 (아이)는 더 이상 여자가 낳은 자가 아니라, 성령이 낳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어린아이가 되는 자는 하늘나라를 알 것이며, 세례요한보다 더 위대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 듭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율법아래 있는 세계와 복음아래 있는 세계는 천지가 다르듯이 전혀 다른 것이다. [제47장] 예수께서 가라사대, 한 사람이 동시에 두 말 위에 올라탈 수 없고, 한 사람이 동시에 두 활을 당길 수 없다. 그리고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그 종은 한 주인은 영예롭게 할 것이나 또 한 주인은 거스르게 되리라. 그 어느 누구도 오래 묵은 (양질 의) 포도주를 마시고 나서 금방 새 포도주를 마시기를 원치 아니 한다. 그리고 새 포도주는 낡은 가죽부대에 부어넣지 않는다. 낡은 가죽부대 가 터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 묵은(양질의) 포도주를 새 가죽부대에 쏟아 붓지도 않는다. 그(양질의 포도주의) 맛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낡은 천 조각을 새 옷에다가 기워 붙이지 않는다. 그것은 새 천에 안 맞아 다시 터질 것이기 때문이니라. 새 사람이 되려면 낡은 모습을 떠나야 한다. 옛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새 사람은 새 시간과 새 공간, 새 시대를 살아야 한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처럼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진리와 거짓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돈 권력 중에서 무엇 을 사랑하느냐는 것이다. 어느 것인가? 사람이 동시에 두 말위에 올라탈 수 없듯이, 돈과 권력과 명예와 정욕에 대한 탐욕은 진리를 사랑하며 영적 부요함을 찾는 것과는 결코 양립할 수가 없다. 진리와 거짓(가식=외식)도 마찬가지다. 바리새인과 율법학자 들의 거짓과 위선도 예수님의 진리에 대한 열정과 사랑과는 결코 양립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은 모세의 전설을 칭송하고 따 도마복음 읽기(6)ㆍ한석진 165

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전설을 입으로만 떠들어댈 뿐이고 몸과 마음으 로 모세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사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세를 이용하여 명예와 부와 권세를 누린다. 진리를 사랑하는 열정은 이미 식었다. 배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더 이상 모세의 가르침은 유대 사람들에게 새로 운 힘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이미 죽은 가르침이 되어버렸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고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담을 수 없듯이 어서 빨리 떠나야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모세의 율법과는 차원이 다른 생명의 말씀이다. 그 런데 죽은 가르침이 교리가 되고 신화가 되어 사람들을 옭아매고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강한 어조로 말씀하신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모두 다 도둑이며 강도이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거쳐 서 들어오면 안전할 뿐더러 마음대로 드나들며 좋은 풀을 먹을 수 있다. 도둑은 다만 양을 훔쳐다가 죽여서 없애려고 오지만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요10) 그리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다. 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마음이 움직이는(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 사 람은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결단이 필요하다. 인생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선택해야 한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내게 합당치 않다. 당신의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인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요6:68)라 는 고백이 절실히 필요하다. [제48장]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집 안에서 둘이 서로 평화를 이루 고, 그들이 산을 보고 움직여라 라고 말한다면, 산이 움직일 것이다. 두 사람이 한 집 안에서 평화를 이루는 것이 참 중요하고 귀한 것이다. 166 농촌과목회 제66호

가정(가족)이 화목한 것도 아름답지만, 바르고 참된 평화는 정말 귀한 것 이다. 참된 평화는 먼저 자신의 죄로부터 깨끗해야 한다. 죄가 없어져야 나 자신과 화해가 이루어지며 평화가 찾아온다. 죄가 없어진다는 것을 바울은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주시고 의롭다고 인정해주셨다고 하였다. (롬4:7-8) 예수께서는 거듭난다고 말씀하셨다. 죄가 없어지고 깨끗해지면 하나님과 자신과의 화해와 평화를 이룰 뿐만 아니라 이웃과도 평화가 이루어지고 자연 만물과도 화해와 평화가 이루어진다.(롬8:19-20) 이것이 진정한 평화이다. 모든 사람이 진정 이뤄야할 평화이다. 참된 평화가 이루어지면 마음의 모든 장벽이 없어진다. 내적인 장벽이 밖에 있는 장벽보다 더 크고 굳세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라는 장벽보다 더 큰 장애물은 없기 때문이다. 종교의 핵심 문제는 정말 알고 보면 결국 인간의 죄의 문제를 극복하고 해결하는데 있다. 종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구원이라는 것도 결국은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다. 기독교교 리에서 핵심적인 대부분이 사실은 죄의 문제이다. 처녀탄생, 성육신, 십자 가와 부활이 모두 죄의 문제를 말한다. 그러므로 죄가 없어지면 모든 장벽 이 없어진다. 죄가 없어지면 하나님과 하나 된다. 죄가 없어지고 나 자신과 하나님과 이웃과 자연 만물이 화해하고 평화를 이루면 온 세상이 기뻐 춤을 출 것이다. 만물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산을 보고 움직이라고 말하면 산이 움직인다. 만물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죄가 아무리 많고 산같 이 높아도, 진정으로 참회하고 회개하는 마음과 거듭나겠다는 결단과 진 리의 말씀을 갈급히 사랑하는 믿음이 겨자씨만큼만 있어도 산 같은 죄와 모든 장애물은 극복되고 없어질 것이다. [제49장]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복이 있도다. 홀로되고 선택된 자여, 너희는 (하나님)나라를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하 나님)나라에서 왔고 나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결혼하지 말라고 권했고 예수께서는 홀로 되고 선택된 자가 복 도마복음 읽기(6)ㆍ한석진 167

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나라를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하지 않고 홀로된다고 모두 하나님나라를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진 리를 깨닫고 거듭나는 것은 노력한다고 되는 것만도 아니고 성령의 은혜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되었다고 말한다. 결혼하라 나 자신과! 남녀의 결혼만이 결혼이 아니다. 나 자신과의 결혼 이 참 결혼이다. 아들딸만이 자녀가 아니다. 내가 낳은 나(거듭난 나), 그것 이 참 자녀다. 나 자신과 결혼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이요, 나를 미워한다는 말이다. 내가 죽고 참 나 가 산다는 말이다. 그것은 나를 넘어선다는 말이요, 나의 참 본질을 안다는 말이다. 인간, 가장 평범한 인간이 된다는 말이다. 가장 평범한 인간이 되는 것은 가장 비범한 것을 넘어서는데 있다. 내(죄)가 죽어야 한다. 한 톨의 쌀이 땅에 떨어져서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땅속에서 썩어버려야 열배 백배 천배의 열매를 맺는 것을 어찌하랴. 평범이 평범 그대로 있으면 이미 평범이 아니다. 비범 을 넘어설 때 참으로 평범해진다.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인간은 독과 꽃을 함께 품었다는 것이다. 자연은 태어나면 저절로 자연이 된다. 물고기는 저절로 물속을 헤엄치 고, 새는 저절로 하늘을 난다. 거기에 아무런 갈등도 없다. 나무는 저절로 푸르고 꽃은 저절로 핀다. 그러나 인간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왜냐고 묻지 말라.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 자신과 결혼하는 것, 내가 나를 낳는(거듭나는)것, 나 자신을 아는 것이 천명(天命)이다. 어머니가 낳은 나는 참 나 가 아니다. 내가 낳은 나, 거듭난 나 가 참 나 다. 그것이 나의 참 모습이요,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나이며 나의 진면목이다. 행복이 어디 있느냐고 묻지 말라. 결혼 속에 있다. 하늘나라가 어디 있냐고 묻지 말라. 참 나 와 함께 있다. 행복을 남에게 구하지 말라. 결혼하라! 나 자신과.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나님의 나라! [제50장]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너희에게 묻기를, 너희는 168 농촌과목회 제66호

어디서 왔는가? 하면, 그들에게 말하라, 우리는 빛에서 왔다, 빛이 스스로 생겨나고, 빛이 형성되고, 빛의 형상으로 나타난 그곳에서 왔 다. 고. 만약 그들이 너희에게 묻기를, 그 빛이 너희인가? 하고 물으면, 그들에게 대답하라, 우리는 빛의 아이들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아버지 의 선택된 자들이다. 만약 그들이 너희에게 묻기를, 너희 안에 있는 너희 아버지의 증거가 무엇인가? 라고 하면, 그들에게 말하라, 그것은 운동이며, 쉼이다. 앞에서 종교의 핵심 문제는 죄의 문제 라고 말했다. 죄가 극복되어야 죽음이 극복되고,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영생(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죄의 뿌리를 알고 죄가 없어지면 인간의 본질은 죄인이 아니라 빛이다. 인간은 본래 빛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빛(하나님)의 자녀라 고 말한다. 그 빛은 어디서 왔는가? 그 빛은 스스로 생겨난다. 빛이 스스로 생겨나고 형성되고 빛의 형상으로 나타난 그곳에서 왔다. 죄가 없어지면 빛이 드러난다. 마치 어떤 물체가 움직일 때 물체의 질량 -공기 저항-인력-중력-전자기력-시간 등의 많은 장애물이 있지만, 그 물체가 빛의 속도로 빨라진다면 이런 모든 장애물은 더 이상 장벽이 못되 며 모두 사라진다. 죄가 없다고 하나님께 인정받고(稱義), 진리를 깨닫고, 거듭나는 것은 동시간적 사건이며 성령의 은총이다. 그래서 선택되었다고 한다. 미리 예정되었거나 소수의 사람으로 숫자가 정해진 것이 아니다. 빛의 자녀라는 증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운동이며 쉼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일하시며 언제나 쉬신다. 쉼이 곧 일이요, 일이 곧 쉼이 다. 음(陰) 속에 양(陽)이 있고 양 속에 음이 있다. 사람은 식물의 똥(과일) 을 먹고 식물은 동물의 똥을 먹는다. 똥이 곧 밥이요, 밥이 곧 똥이다. 어느 한 쪽에 매이지만 않는다면 그것이 진정한 초월이요 일체가 자유이 다. 하나님은 만물을 초월해 계시고, 선한 자에게나 악한 자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리신다. 도마복음 읽기(6)ㆍ한석진 169

[제51장] 그의 따르는 자들이 그에게 여쭈었다. 언제 죽은 자의 안식 (부활)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리고 언제 새로운 세상이 오겠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기다리는 것은 이미 와 있다. 단지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다.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가 어지럽고 불안하면 묵시록 같은 종말론이나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였다. 예수님 당시도 사람들은 세상이 멸망하고 새로운 세상이 오면 죽은 사람도 부활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 서 피라미드를 만들고 미이라를 만든다. 어리석은 생각이다. 사람들이 현 상적인 것만을 보며 육체에 집착하고 생물학적인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 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부활은 그런 것이 아니다. 자연의 몸 이 있으면 신령한 몸도 있는 것이며, 살과 피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썩을 것은 썩지 않을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전 15:44,50) 죄의 값은 사망이므로 죄가 없어지면 죽음도 없는 것이다. 그래 서 예수께서는 죽음을 겪지 않는다. 영생을 얻는다. 고 말씀하신다. 바 울도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55)고 외친다. 본래 진리의 눈으로 보면 죽음이 없다는 말이다.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는 회심의 체험으로 인하여 이제 영적으로 죽은 자(잠자는 자)가 아니라 산 자로 부활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부활 -즉,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에 관하여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체험을 언급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설명하신다.(막12:27) 죽은 자의 부활과 새로운 세 상은 이미 왔다. 너희가 알지 못할 뿐이다. 너희는 어찌하여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느냐? 현상적인 것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의 눈을 뜨지 못하는 것이다. 170 농촌과목회 제6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