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문화연구제 41 권제 2 호 ( 통권 151 호 ) 231 252 쪽 硏究論文 1924 년극동지역최초신한촌고려인도서관에관한연구 정막래 제1저자, 전계명대학교러시아어문학전공교수, 문화콘텐츠학전공 jml764@daum.net 주동완 교신저자, 한국외국어대교지식콘텐츠학부부교수, 문화콘텐츠학전공 krci4@hotmail.com Ⅰ. 머리말 Ⅱ. 극동지역의고려인과고려인도서관 Ⅲ. 신한촌고려인도서관 Ⅳ. 고려인도서관의서적 Ⅴ. 맺음말
Ⅰ. 머리말 1920년대극동지역에고려인도서관이있었다는사실을아는가? 이사실은오늘날에놀라움을안겨주지만당시에그곳에살고있던고려인 1) 들에게도무척감동적인사실 2) 이었다. 지난 5일신한촌스탈린구락부에서고려도서관개관식을거행하는데여러동무의보고와축사를듣는우리에게는무한한감개를주었다. 이렇게큰감동을안겨준대사건인고려인도서관의개관식이극동지역에서거행되기까지는고려인이주이후 60년 3) 이라는세월이흘러야했다. 1917년 10월혁명을승리로이끈소비에트당국은이어진내전에서백군에게승리를거둔다. 국내에권력을확장시키고정착시키는과정에서극동지역의고려인들역시소비에트화시킬필요성이대두되었다. 이러한과정에서 1920 30년대극동지역에살고있던소수민족들에게이른바문화 교양사업중의하나로도서관운동이장려되었다. 4) 이때그곳에살고있던고려인들역시도서관사업을시작하게되었다. 본논문에서는 1920년대극동지역의고려인도서관이나타나는과정과그특성에대해연구하고있다. 이를위한사료는신문 선봉 5) 에나타난 1) 오늘날 CIS에거주하는한인을칭하는말로는재러한인, 고려인등이있다. 본논문의사료로삼고있는신문 선봉 에서고려인이라는단어를사용하고있기에본논문에서는 1920 30년대연해주에서삶을일구어온한민족을고려인으로표한다. 2) 고려도서관개관식에대하여 아령 60년에첫사업 (1924년 12월 8일, 1면 ). 3) 60년은 1860년중국과의텐진조약으로연해주지역이러시아영토에편입된후부터최초의고려인도서관이개관하는시기까지의 60년을말한다. 고려인들의러시아땅으로의공식적인이주는 1864년으로기록되어있다. 신문 선봉 에서 아령 60년 이라는표현은 러시아영토 로편입된것을말한다. 여기에대해서는 고려도서관개관식에대하여 아령 60년에첫사업 (1924년 12월 8일, 1면 ), 고려도서관개관식 스탈린구락부에서 (1924년 12월 22일, 2면 ) 참조. 4) 이것에대해서는 농촌에서의문화 교양사업에대하여 전동맹공산당 ( 볼세비키 ) 원동변강위원회뷰로의결정 (1936년 4월 11일, 1면과 2면 ) 을참조할것. 5) 신문 선봉 은 1923년 3월 1일에 3월 1일 이라는이름으로처음발행되었다. 1925년 4월 7일당시의발행부수는 2,000부에달했다. 1925년 11월 14일에는 2,500부, 1929년에는 12월 15일 4,400부에달했다. 이신문은스탈린에의해중앙아시아지역으로강제이주를당할때인 1937년까지발행되다가이후중앙아시아에서신문의이름을 레닌기치 로, 개방이후에는 고려일보 로바꾸어계속발행되고있다. 232 정신문화연구제 41 권제 2 호
기사들이될것이다. 이신문에는극동지역고려인들이도서관에대해서어떻게생각하고, 고려인도서관설립에대해어떻게대하고있는지가자세히나타나있다. 신문에기사화되어있는도서관의특성과다양한모습들을살펴보면서본논문에서는 1920 30년대극동지역의고려인도서관설립과정을재구성해보았다. 1920 30년대고려인들의극동지역에서의생활상을생생하게알수있는것은바로신문 선봉 덕분이다. 이신문은극동의연해주지역 6) 에살고있던고려인들에게당시의시대상황을알리고이들을계몽할목적으로 1923년에창간되어고려인들이스탈린에의한강제이주 7) 를당하는 1937년까지발행되었다. 당시에소비에트당국은극동지역에살던고려인들이러시아어를몰랐기에이신문을한국어로발행하도록전폭적인지지를하였다. 이는소비에트혁명과내전을통해서권력을장악한당국이극동지역까지권력을확립시키고자하는계획의일부였다. 계몽을통해전러시아의소비에트화를서둘러달성하고자했던소비에트당국은극동지역에살고있던소수민족들이그들자신의언어로신문을발행하도록고무했던것이다. 요컨대고려인신문 선봉 은국가의공식적인지지를받으며고려인들을계몽하려는목적에서만들어지기시작했다. 물론이신문의발행을전적으로국가가담당한것이아니어서이신문은유료로 8) 판매되었지만한국어로발행된신문을소비에트당국에서지원했다는사실자체만으로도큰의미가있었다. 본논문에서사료로삼을자료는 선봉 이창간된이후부터 1937년고려인들이강제이주를당하기전까지의기사들중고려인도서관에관한기사들이다. 극동지역고려인도서관에대한국내외연구는부재했다. 뿐만아니라 1920 30년대극동지역고려인전체에대한연구역시이지역에대한연구가지니는중요성에비해아직그리많이이루어지지않았다. 러시아어로된연구서로는고려인의극동지역으로이주와고려인 6) 연해 ( 沿海 ) 지역은바다옆을뜻하는프리모르스키 (Приморский) 지역을말한다. 7) 스탈린에의한고려인강제이주는 1937년극동지역에거주하고있던모든고려인들이 카자흐공화국및우즈베크공화국등지로강제이주되었던사건을말한다. 8) 당시의신문 선봉 1부의가격은 10전이었다. 선봉, 1924년 7월 1일자. 1924 년극동지역최초신한촌고려인도서관에관한연구 233
역사에대한저서 9) 와고려인을연구한박사학위논문과일반논문 10) 이있다. 이논문들은극동지역고려인문제를개괄적으로고찰하고있을뿐이다. 강제이주이전극동지역고려인에대한연구가치가충분함에도불구하고이에대한연구결과물이부족한까닭은당시극동지역고려인사회의기본적인소통매체였던 선봉 과같은자료들이부족하기때문이기도하다. 이신문은당국의입장이라기보다는고려인들입장에서나온신문으로고려인들의주관이가미되어있기에모스크바와블라디보스토크소재문서보관소에있는객관적이고일반적인자료들과는성격이같은것이라고볼수없다. 또한고려인의시각에서접근할수있는중요한자료중의하나인 선봉 이라는자료가이시대를연구할수있는가치높은자료중의하나임에도이신문이한국어로발행되어서러시아연구자들에게러시아어로된연구사료보다는접근하기가용이하지않았을뿐아니라극동지역에대한관심도가그리크지않은까닭이었기때문으로보인다. 반면 선봉 을접하게된국내의연구자들은 1920 30년대의고려인에관한논문을내놓고있다. 극동지역에서의고려인의극예술활동에대한연구 11), 고려인사회의문화생활과한인사회에대한연구 12), 고려인문학과출판에대한연구 13), 연해주고려인의법에대한연구 14), 고려인 9) Герман Ким. История иммиграции корейцев. Книга первая. Вторая половина XIX в. (Алматы, 1999)., Ким Сын Хва, Очерки по истории сове тских корейцев (Алма Ата, 1965). 10) Бэ Ын Гиёнг, Советские корейцы в 20 30 е годы XX века, Авторефера т диссертации (Москва, 1998); Сим Лариса, Корейцы Союза ССР, России и Казахстана: социокультурные процессы(20 е годы XX в. начало XXI в.), Автореферат диссертации (Краснодар, 2006); Сон Жанна, Корейцы дальнего востока в системе межэтнических отношенийсоюза ССР. 1920 1930 е годы, Автореферат диссертации (Москва, 2009); Бэ Ын Гиён г, Краткийочерк истории советских корейцев(1922 1938), (Москва, 2001). 11) 양민아, 1920 30년대연해주한인들의공연예술활동현황연구, 재외한인연구 34(2014); 배은경, 고려인신문 선봉 을통해본 1930년대 ( 원동고려극단 ) 의극예술활동과고려인사회에서의그위상과역할, 재외한인연구 35(2015). 12) 반병률, 전면적집단화 시기러시아연해주수청 ( 水淸 ) 지역한인농촌사회의제문제, 역사문화연구 30(2008); 배은경, 소련고려인사회의문화생활 (1920 1930년대), 대동문화연구 43(2003); 반병률, 러시아지역한인신문 선봉 과 1920 30년대한인사회, 역사문화연구 19(2003). 13) 박찬수, 1920 30년대고려인출판문화연구 : 고려인신문 선봉 을중심으로, 글로벌문화콘텐츠 21(2015); 배은경 임영상, 원동고려문단의형성과그초기작품연 234 정신문화연구제 41 권제 2 호
사범대학에대한연구 15), 극동지역미취학아동교육기관에대한연구 16), 그리고고려인학자인보리스박이기술한 140년에이르는고려인의러시아삶을연구한개괄서 17) 등이있다. 이상과같이기존문헌을검토한결과 1920 30년대극동지역전반에대한연구는몇몇존재하지만이시대극동지역의고려인도서관에관한연구는부재함을알수있다. 본연구는다음과같이구성되어있다. 머리말에서는기존문헌검토를통해본논문이지니고있는가치를확인하고연구방법과연구범위를특정한다. 2장에서는극동지역의고려인과고려인도서관의상관관계에대해서고찰한다. 3장에서는극동지역최초의고려인도서관인신한촌고려인도서관에대해알아본다. 4장에서는고려인도서관이보유하고있던장서들에대해서살펴본다. 맺음말에서는본논문에서다루지못한주제들과앞으로반드시연구되어야할주제들에대해서확인한다. Ⅱ. 극동지역의고려인과고려인도서관 극동지역에이주한지 60여년만에고려인들에게자신들의언어로된서적을갖춘자신들의도서관이생겼다. 고려인들에게고려인도서관이생긴다는사실은그들의일생에서획기적인사건이었다. 극동지역에고려인도서관 18) 이문을연것은 1924년 12월 5일이다. 이날해삼현 구 : 고려인신문 선봉 에기초하여, 역사문화연구 56(2015); 이상갑, 고려인문학형성의사회문화적배경 : 선봉 에실린작품과문예관련기사를중심으로, 한어문교육 31(2014). 14) 임채완 허성태 정금희 이명희 장우권 전형권, 연해주고려인의법과생활그리고교육 (1920 30년대) ( 북코리아, 2012). 15) 배은경, 1920 30년대연해주고려인교원양성정책과원동조선사범대학에관한연구 : 고려인신문 선봉 에기초하여, 슬라브학보, 제30권제3호 (2015); 배은경, 니콜스크 우수리스크고려사범전문학교에관한연구 : 고려인신문 선봉 에기초하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84권 (2015). 16) 정막래, 1920년대극동지역미취학아동교육기관 : 선봉 에기초하여, 역사문화연구 제57집 (2016). 17) 보리스박, 니콜라이부가이, 러시아에서의 140년간 ( 도서출판시대정신, 2004); 이상근, 러시아 중앙아시아이주한인의역사 : 고난을극복하여희망을성취하기위한역사 ( 국학자료원, 2010); 이송호 이재훈 김승준, 연해주와고려인 ( 백산서당, 2004). 18) 신문 선봉 에는 고려도서관 으로표기되어있으나이도서관이고려인들이이용할 1924 년극동지역최초신한촌고려인도서관에관한연구 235
신한촌스탈린구락부에대대적인개관식이이루어졌다. 이에대해신문 선봉 은 12월 8일과 22일두번에걸쳐기사 19) 를내보낸다. 그첫번째기사에서는최초의고려인도서관을개관하는데에대한벅찬고려인들의심정을 무한한감개를주었다 20) 라고묘사하고있다. 이날의기사는고려인들이실로 감개무량 한심정으로극동지역의최초의고려인도서관개관식을바라보고있음을알게해준다. 당시고려인들이많이살고있던신한촌의스탈린구락부에서문을연이고려인도서관은극동지역최초의고려인도서관으로서중대한의미를지녔으며또한고려인사회에책이라는귀한자원을접근가능하게해주는가치있는대상이되었다. 극동지역에서도서관에대한간절함은최초의도서관이생기기전인 1923년에도 21) 보인다. 당시의고려인들은자신들의문화의질을향상시키기위해신문을모으고독서회와신문낭독회등을개최하는등여러가지활동을하고있었다. 신문을부지런히모아라. 잡지를다투어사보라. 서적을늘가까이하라. 한조각의삐라를가볍게보지말아라. 독서회, 신문낭독회를개최하라. 도시나향촌을막론하고반드시도서종람소를만들어라. 순회도서관을여투어라. 고려인들은책을통해서자신들의삶의수준을높이기위한많은노력을하며순회도서관을이용하였지만자신들의독자적인민족도서관은가지고있지못했다. 그리하여그들은민족도서관을지니지못한민족인자신들이문화가뒤쳐져참담한생활을하고있다는사실 22) 을잘알고또한느끼고있었다. 반세기나살아온 60 년동안에이제야처음도서관을열게됨은그문화의뒤떨어짐과생활의참담함을반증한것이아닌가? 수있는고려말로된책들을구비해놓은도서관임을감안하여본논문에서는 고려인도서관 으로표기한다. 19) 선봉, 고려도서관개관식에대하여 아령 60년에첫사업 (1924년 12월 8일, 1면 ); 선봉, 고려도서관개관식 스탈린구락부에서 (1924년 12월 22일, 2면 ) 20) 선봉, 고려도서관개관식에대하여 아령 60년에첫사업 (1924년 12월 8일, 1면 ). 21) 선봉, 출판물과혁명 (1923년 5월 12일, 3면 ). 22) 선봉, 고려도서관개관식에대하여 아령 60년에첫사업 (1924년 12월 8일, 1면 ). 236 정신문화연구제 41 권제 2 호
반세기나살아온 60년동안에 라는표현대로타향살이를시작한지 60년이지나서야자신의민족도서관을개관하게되었다는것은타향살이의설움까지이도서관속에고스란히묻고싶은고려인들의심정을엿볼수있는부분이다. 고려인도서관개관식에대한기사제목을 아령 60년에첫사업 으로정한것에서도이러한서러움과동시에고려인들의큰자부심이잘드러나있다. 고려인들은자신의민족도서관이이렇게늦게세워지게된이유에대해조목조목이야기하고있다. 그첫번째이유로는고려인자신들이처했던외지에서소작농으로서살아온서러운삶으로인해경제적인여유가없었음에대해 23) 다음과같이말하고있다. 그는국경이다르고민족의차별로남의토지에서소작인의경우로생활의여유가없었고 고려인들은경제적으로어려운처지에놓여있었을뿐아니라제정러시아시대에언어와문자까지금지당하며살아왔다고 24) 말하고있다. 더욱제정시대에외국인의언어와문자를엄금하였음으로문화운동에생각도미치지못할것은사실이었다. 이렇게힘들게살수밖에없었던고려인들이도서관을개관한다는생각은상상도할수없었던일임을토로한다. 그리고이것이가능한것은순전히 10월혁명덕분임을지적한다. 이들은민족차별을받아소작인으로생활의여유없이살아온가난하고힘들었던삶을탓하는동시에 10월혁명을외국인의언어와문자를엄금했던제정러시아시대와비교하며 25) 현체제를자랑스럽게표현하고있다. 그리하여오늘에야고려도서관이비로소열리게됨은우리의잘못이아니고현대사회제도의불합리한결과이다. 이를짐작하는우리들은러시아의 10월혁명이어떠한행복을가져다준것을더한층각오하여야될것이다. 23) 위의기사 (1924년 12월 8일, 1면 ). 24) 위의기사 (1924년 12월 8일, 1면 ). 25) 위의기사 (1924년 12월 8일, 1면 ). 1924 년극동지역최초신한촌고려인도서관에관한연구 237
10월혁명이가져다준행복에대해말하는고려인의모습속에서당시사회를절대적으로받아들이고있는모습, 혹은그런사회가되어야한다는당위성을설파하고있는것을볼수있다. 또다시억압받는생활속으로들어가지않기위해투쟁을해야하는데이투쟁의무기가곧서적임을 26) 강조하고있다. 원래인류생활의도정은투쟁이다. 원시시대에는자연과투쟁하여그것을우리생활의재료로쓰게하였고지금은사람사이에계급적으로투쟁하여실지에생활하는노력군중이정권을잡으려고투쟁하는중이다. 이투쟁에는오직무기가있어야될것이니그는생활의지식과기술을알려주는과학적으로경험에서얻은사람의뜻을표시하여기록한서적밖에없을것이다. 인류의역사를투쟁의역사로보면서계급투쟁에서승리할수있는길은좋은무기인서적을가지고서싸우는것이라고주장하는것이다. 신문 선봉 의기사에서는책의중요성에대해서말한후에이서적을많이모아놓은도서관의중요성에대해서 27) 말을이어간다. 이러한서적을많이모아놓은곳이도서관이다. 이에대한정의와가치는더말할필요도없다. 이렇게중요한도서관이부르주아의무기가되지않도록하자는권유와다짐을한다. 기사에서는 오늘날세계에유명한도서관들은수백만권의서적을소장하며그굉장한설비는모두부르주아를위하는보고 ( 寶庫 ) 이며무기이다. 28) 라고말하며이들이프롤레타리아인고려인들을억압하지않도록이것을빼앗아야한다고역설하고있다. 또한도서관에서무엇을배우고실행할지에대한연구를해야한다는과제를 29) 제시하기도한다. 우리는이도서관에서무엇을배우며어떻게실행할것이제일노력하며연구할문제일것이다. 26) 위의기사 (1924년 12월 8일, 1면 ). 27) 위의기사 (1924년 12월 8일, 1면 ). 28) 위의기사 (1924년 12월 8일, 1면 ). 29) 위의기사 (1924년 12월 8일, 1면 ). 238 정신문화연구제 41 권제 2 호
도서관을통해서배우고자하는고려인들의자세또한엿볼수있다. 도서관같은시설을 노동군중의사상생활을지배하는문화망 30) 으로여겼던고려인들에게있어도서관은특별한존재였다. 따라서고려인들은 우리의생활은공동적인것에서뜻이깊고발전됨을깨달을것 이라고말하면서 모든고려사람의힘을단합하여이도서관을확장하며농촌에도보습 31) 시키자는당부를한다. 이것은고려인도서관을모두함께힘을합해더발전하도록만들어갈것을고려인사회에당부하는말이다. 도서관개관을보면서고려인사회에정신적인훈련요강을내세우는것과같은요지의이기사는그동안타지에서살아온서러운삶에대한서러움을어느정도토로하고있음을알수있다. Ⅲ. 신한촌고려인도서관 신문 선봉 은극동지역최초의고려인도서관개관식을보면서감성적인기사를내보내느라도서관개관식에대한개요를적는것을잊고만다. 극동지역최초의고려인도서관개관식을보고서이와같은강한선동적인기사를내보낸신문 선봉 은이도서관에대해 12월 22일에기사 32) 를한번더내보낸다. 이때에는고려인도서관개관식기사를처음내보낼때누락시켰던자료들을요약하고있다. 신한촌고려인도서관의개관식개요는다음의표1과같다. 표1-- 신한촌고려인도서관개관식개요 신한촌고려인도서관개관식 개관일 1924년 12월 5일 극동지역최초의도서관 위치 신한촌스탈린구락부 해삼현신한촌 선언자 리동휘 개관식선언 연설자 연해도교육부대표 축하연설 보고자 김철훈 도서관에관한숫자보고 별칭 고골도서관 러시아문학가이름을땀 30) 선봉, 벽신문기자동지들에게주노라 (1924년 12월 15일, 1면 ). 31) 선봉, 고려도서관개관식에대하여 아령 60년에첫사업 (1924년 12월 8일, 1면 ). 32) 선봉, 고려도서관개관식 스탈린구락부에서 (1924년 12월 22일, 2면 ). 1924 년극동지역최초신한촌고려인도서관에관한연구 239
위의표1에서보듯이개관식은다양한순서로진행되었다. 이때리동휘의개관식선언, 연해도교육부대표의축하연설, 김철훈의도서관에관한숫자보고가이루어졌다. 33) 유감스럽게도이숫자보고자료는신문에보도되지않고있다. 이고려인도서관은러시아의문학가인고골 34) 의이름을따서고골도서관 35) 으로불린다. 해삼위신한촌스탈린구락부안에있는이도서관은당시에고려인들에게대중문화를공급한유일한기관 36) 이었다. 그런데이유일한대중문화공급기관이며칠동안문을닫게되는사건이일어난다. 그야말로이일은신문 선봉 에대서특필될만큼큰사건이었다. 도서관이문을닫은이유는도서부장이휴가를받아쉬게된까닭이었다. 고려인신문은이사건에대해서다음과같이열변 37) 을토한다. 도서관이부장을위하여있는가? 군중을위하여있는가? 도서부장이휴가간다하여도서관까지쉰다는일이야말로참말로처음듣는말인동시에기가막히는일이라고아니할수없다. 러시아에서여름휴가는매우중요해서그누구도포기하지않는일임을감안할때도서관의부장역시큰잘못을하였다고여기지않을수도있을것이다. 하지만고려인들은당시의정서에맞지않게이도서부장을크게탓하고있다. 도서부장의휴가로인해그휴가기간동안도서관이휴관하는일을받아들일수없다고신문은보도하고있다. 이것은이도서관이고려인들에게갈급한독서요구를채워주던유일한곳이었기에고려인들이이도서관에거는기대가매우컸음을보여주는것이라고할수있다. 이신한촌고려인도서관의특징중의하나는책을대여해주었다는것이다. 고려인도서관에서가져간책자들을돌려보내시오 38) 라는기사 33) 선봉, 고려도서관개관식 스탈린구락부에서 (1924년 12월 22일, 2면 ). 34) 고골 (1809 1852) 은러시아의작가이자극작가로러시아리얼리즘의시조라고불린다. 코, 외투, 죽은혼, 검찰관 등의작품이있다. 35) 선봉, 문을닫은도서관 묵과못할신한촌도서관 ( 아래아지미에서 일기자 ) (1927 년 7월 14일, 3면 ). 36) 위의기사 (1927년 7월 14일, 3면 ). 37) 위의기사 (1927년 7월 14일, 3면 ). 240 정신문화연구제 41 권제 2 호
제목에서알수있듯이고려인들은도서관에서책을빌려서보았다. 10월 28일자기사에서 본고려인도서관으로부터가져간책자들을 11월 20일이내로꼭돌려보내시오 39) 라는문구를보았을때대여기간이상당히길었음을알수있다. 이날짜만계산해도 23일기간이된다. 이기사를낼때이미연체되어있기에돌려달라는말을하고있을것으로추정해보면대여기간은한달이상이될것으로보인다. 이렇게도서대여기간이길었다는사실은일상의일로인해한가하지않았을고려인들이마음놓고책을볼수있는시간을주었다는것을의미하기도한다. 또한이들이빨리책을읽을수있는능력을아직까지결여하고있을가능성도생각하도록한다. 그리고 만일기일이지나도돌려보내지않는경우에는상당한기관을경유하여엄중한수단을취하게됩니다 40) 라는문구를살펴보면반납을하지않는경우도있음을알수있다. 그러기에기관을통해엄중한수단을강구하겠다고엄포를놓고있을것이다. 빌려간책을반드시반납하라는도서관의규율을알수있는구절이다. 최초의고려인도서관인신한촌고려인도서관외에도신문 선봉 에는또다른고려인도서관이개관예정이라는소식이보인다. 그것은니콜스크시 41) 고려인도서관 42) 이다. 표 2-- 니콜스크시고려인도서관개관예정 니콜스크시고려인도서관 개관예정일위치기부금 1926년 12월이후니콜스크시 40여원 니콜스크시고려인도서관개관에대한기사와이개관을위한기부금관련기사가 1926년 12월 2일에신문 선봉 에실린것으로보아이 38) 선봉, 고려도서관에서가져간책자들을돌려보내시오 11월 20일안으로 ( 해삼위신한촌 고려도서관에서 ) (1928년 10월 28일, 4면 ). 39) 위의기사 (1928년 10월 28일, 4면 ). 40) 앞의기사 (1928년 10월 28일, 4면 ). 41) 선봉, 도서관설립에기부하는동정 ( 기자림호 ) (1926 년 12월 2일, 3면 ) 을참조할것. 42) 기사에서는고인도서관으로나오는데이것은고려인의줄임말로보인다. 여기에대해서는위의기사 (1926년 12월 2일, 3면 ) 을참조할것. 1924 년극동지역최초신한촌고려인도서관에관한연구 241
도서관은적어도 1926년 12월이후에개관되었을것으로여겨진다. 이사업의성공을위해기부금을모집하는데이액수는 40여원 43) 에달했다. 이후원금으로인해니콜스크시도서관의설립은희망을가지게되었다. 기사에서는이도서관이설립되었는지에대한소식은전해지지않고있지만후원금까지모집한상황으로도서관개관의가능성은높아보인다. 이외에고려서적은국립원동대학도서관 44) 에도있었다. 이도서관에는고려서적코너가마련되어이곳에상당한양의고려서적들을갖추어두었음을알수있다. 국립원동대학도서관에소장되어있는책은전부 22만권으로그가운데에는중국, 고려, 일본등의동양도서도많았다는사실을신문 선봉 기사를통해서알수있다. 표 3-- 국립원동대학도서관내고려서적 국립원동대학도서관내고려서적 전체서적고려서적 도서 22만권중국, 고려, 일본등동양도서많음 고려인도서관과대학도서관의고려인코너에고려인들을위한책들이갖춰져있었을뿐아니라일반도서관에도여러민족의서적을찾아볼수있다. 그것은원동변강당위원회가일반도서관에각민족마다자기민족의서적을지속적으로갖추어놓을책임을인민교육부들과직업동맹단체들에부담시키고있었기에가능했다. 그리하여금및백금채굴노동자직업동맹위원회는부분적으로담부카, 블라지미르스크, 쿨리칸, 에킴찬, 케드로프, 바실옙스크, 일리츠 45) 금광들에중국인및조선인노동자들을위한민족서적덕대 46), 즉민족서적코너를조직할것을지시하였다. 47) 금광에서일하는고려인노동자들역시책을접할기회가 43) 1924년 12월공정물가표에따르면계란 10개에 30전, 백미 1근에 9전, 감자 1푸드에 60전, 비누하나에 18전이었다. 이물가표로판단해볼때 1926년에기부금 40원은상당한액수로보인다. 이에대해서는 선봉, 최근공정물가표, (1924년 12월 8일자, 4면 ) 을참조할것. 44) 선봉, 국립원동대학도서관서적권수 (1927년 8월 11일, 2면 ). 45) 일리츠 는레닌의부칭으로 일리츠금광 은 레닌금광 으로해석된다. 46) 덕대 는책을꽂는 선반 을말한다. 47) 선봉, 도시들과노동자부락에서의문화 교양사업에대하여 ( 변강당위원회뷰로 242 정신문화연구제 41 권제 2 호
있었음을알수있다. 이것은고려인들의교육의질이높아가고있음을보여주는하나의척도라고할수있을것이다. 1920 30년대극동지역에는 1924년신한촌에생긴최초의고려인도서관외에도많은도서관들이농촌과도시에있었음을알수있다. 이렇게존재했던도서관들의역사와더불어고려인도서관이발맞추어서발달해갔을것으로여겨진다. 구역편제이전인 1925 26년도초기에소수민족독서실이전도에 14개소에달했는데구역편제이후에는독서실이 12개, 붉은구석 48) 이 28개였으며도시에있는소수민족의구락부가 3개, 붉은구석이 2개그리고고려도서관이 1개 49) 였다. 1936년변강당위원회뷰로는농촌에구역도서관 81개, 콜호스내도서관 140개 50), 도시에시립도서관 22개, 기관부속도서관 250개 51) 등많은도서관들을세울결정을했다. 1928년도서관에관한기사가실린후거의 8년동안도서관기사는신문지상을차지하지못한다. 이는도서관사업이별관심을받지못한것으로도볼수있겠지만 1936년에변강당위원회뷰로가농촌에서의문화 교양사업에대한사업안 52) 과도시에서의문화 교양사업에대한사업안 53) 을내놓은것으로보았을때이때에도도서관이꾸준히성장해왔음을알수있다. Ⅳ. 고려인도서관의서적 고려인도서관에는어떤책들이꽂혀있었을까? 이의문에대한답은최초의고려인도서관이극동지방에세워지던때에이미기사로드러났 의결정에서 ) (1936년 7월 21일, 3면 ). 48) 붉은구석 은러시아어로 красныйугол 로 붉은방 이란뜻으로당의 소그룹 을말한다. 49) 선봉, 소수민족과소비에트 ( 김만겸 ) (1927년 3월 31일, 3면 ). 50) 선봉, 농촌에서의문화 교양사업에대하여 전동맹공산당 ( 볼세비키 ) 원동변강위원회뷰로의결정 (1936년 4월 11일, 1면 ), 위의기사 (1936년 4월 11일, 2면 ). 51) 선봉, 도시들과노동자부락에서의문화 교양사업에대하여 ( 변강당위원회뷰로의결정에서 ) (1936년 7월 21일, 3면 ). 52) 선봉, 농촌에서의문화 교양사업에대하여 전동맹공산당 ( 볼세비키 ) 원동변강위원회뷰로의결정 (1936년 4월 11일, 1면 ). 53) 위의기사 (1936년 4월 11일, 1면과 2면 ). 1924 년극동지역최초신한촌고려인도서관에관한연구 243
다. 고려인들이도서관에서읽어서는안될도서목록으로는 그저소일꺼리로영웅역사나연애소설 을들고있고, 태양의광열, 동식물의생장, 화학, 전기의응용 등을열심히연구할것을 54) 권하고있다. 그렇다면고려인도서관을포함하여극동의농촌과도시에세워진도서관들에는어떤책들이채워져있었을까? 이러한궁금증을풀어주는것은바로전동맹공산당 ( 볼세비키 ) 원동변강위원회뷰로가제시하고있는필독도서목록이다. 원동변강에살던민족중의하나였던고려인들역시이필독도서를읽어야했을것이다. 이목록을통해서고려인들이접한도서들을알수있다. 당위원회에서제시한필독도서목록 55) 은다음의표4와같다. 콜호스원들은위의표4에나타난목록가운데 2 3권은반드시읽도록하였다. 필독서로제시되어있는목록은당시의작품을쓰는강령으로작용했던사회주의리얼리즘에입각하여쓴작품들로써, 당시소비에트러시아당국의이념에부합하는것이었다. 사회주의리얼리즘은그내용은사회주의로하고그표현방식은리얼리즘으로하는것이다. 이것은 1934년제1차소비에트작가회의에서채택된이후사회주의작가가반드시지켜야하는창작방법이되었다. 표4-- 필독도서목록 작가 작품 1 고리키 (1868 1936) 어머니 2 푸르마노프 (1891 1926) 차파예프 3 숄로호프 (1905 1984) 개간된황무지 4 오스트롭스키 (1904 1936) 나는사랑한다 5 노비코프 프리보이 (1877 1944) 추시마 6 이바노프 (1895 1963) 철갑차 7 스탑스키 (1900 1943) 급주 8 파데예프 (1901 1956) 파괴 9 판료로프 부루스키 54) 선봉, 고려도서관개관식에대하여 아령 60 년에첫사업 (1924 년 12 월 8 일, 1 면 ). 55) 선봉, 농촌에서의문화 교양사업에대하여 전동맹공산당 ( 볼세비키 ) 원동변강위원회뷰로의결정 (1936 년 4 월 11 일, 2 면 ). 244 정신문화연구제 41 권제 2 호
당국이도서관을만들면서극동지역의소비에트화를위해얼마나힘을썼는가하는것을이필독서목록만으로도충분히알수가있다. 필독도서목록에나오는 9권의도서의작가들은모두가당국이제시한노선에따라서글을썼던작가들이다. 1920 30년대는혁명에성공하고내전에승리한소비에트당국이나라에기강을세우기위해노력하였던때였다. 따라서이들에게는작가들의노선을당국의지침에맞도록돌려놓을필요가있었다. 56) 필독서가운데몇몇작품들의내용을살펴본다면당시고려인들이어떤사상에젖게되었는지를쉽게이해할수있게될것이다. 제일먼저등장하는작품은고리키의 어머니 57) 이다. 이작품은혁명운동을하는아들과시골의노동자계급여성인어머니의삶을그린이야기이다. 푸르마노프의 차파예프 는붉은군대의지휘관인바실리이바노비치차파예프 (1887 1919) 를주인공으로하는작품으로, 에이젠시타인이같은제목으로영화를만들기도했다. 고요한돈강 의작가로유명한숄로호프의장편인 개간된황무지 58) 는돈강지역의집단화와이곳집단농장콜호스에서농사일을하게되는노동자들의이야기이다. 도서관필독도서목록가운데몇개의작품을보았을때도서관에는사회주의리얼리즘작품들로가득차있었음을알수있다. 그렇지만극동지역의도서관에는당성이짙은문학작품외에도다양한서적이있었다. 혁명적인작품들로가득차있었을것같은그곳에는사회주의리얼리즘에따라서쓰인작품들외에도체육에대한서적들 59) 도있었다. 이는도서관에다양한서적을갖추어주민들의교양을높이고자했던당국의의지가표현된것으로여겨진다. 또한 1927년에는혁명 10주년을맞이한기념집을고려말로편찬하여 60) 이곳고려인도서관에소장했을것으로보인다. 56) 사회주의리얼리즘에따라서글을쓰지않는작가들은외국으로망명하게되거나국내에남아있을경우그들의작품을해빙기를맞을때까지오랫동안발표하지못하게되었다. 흐루쇼프가 1956년에스탈린격하발언을한이후해빙이시작되었고, 1960년대이후에서야이들의작품은세상의빛을보게된다. 그러한작가들로는 거장과마르가리타 를쓴불가코프, 우리들 을쓴자먀틴등을들수있다. 57) 이작품은우리나라에서한때금서가되기도했다. 58) 1932년에제1권이나오고 1959년에제2권이나왔다. 59) 선봉, 농촌에서의문화 교양사업에대하여 전동맹공산당 ( 볼세비키 ) 원동변강위원회뷰로의결정 (1936년 4월 11일, 2면 ). 60) 선봉, 금년 10월혁명기념선물로고려인활동사진준비 (1927년 7월 23일, 3면 ). 1924 년극동지역최초신한촌고려인도서관에관한연구 245
극동지역의주민들에게책을읽도록권장한것외에도당위원회에서는문화 교양사업으로농촌에서구락부, 종람소, 붉은구석, 야영숙소, 콜호스원들의집에모여서문예작품의공동낭독을할것도계획했다. 이사업에교원, 구락부와종람소열성자들, 공산당원, 공산청년동맹원들을가입시키도록독려하고있다. 61) 그리고여러구역들에서푸시킨, 톨스토이, 네크라소프, 고리키 62) 의작품을반영하는독자콘페렌치야 63) 들과야회 64) 들을조직하기를권했다. 그리고구역과콜호스들에있는문예그룹들, 크루조크 65) 원들이작가및시인들과만남의시간을갖도록제의 66) 하기도했다. 1920 30년대에당국은도서관을통해서극동지역에사는주민들로하여금사회주의리얼리즘에입각한작품들을필독서로읽도록했을뿐아니라이들에게글을쓰는작업도권장했다. 당위원회에서문화 교양사업중하나로펼친사업중의하나가글쓰기를권장하는사업이었다. 구역신문들에서는쓰기를시작하는작가들의우수한작품들을발표하는난을조직하도록하기도했다. 그리하여신문 선봉 에서는일반인들의작품들을자주보게되었다. Ⅴ. 맺음말 1920 30년대에극동지역에서민족도서관을세운다는것은고려인들이 책을읽는민족 임을보여주는하나의증거였다. 그리하여극동지역에살았던고려인들에게자신들의말로된서적을보관할수있는도서관을개관하게된사건은그들역사에서한획을그을수있는자랑스러운일이었다. 61) 선봉, 농촌에서의문화 교양사업에대하여 전동맹공산당 ( 볼세비키 ) 원동변강위원회뷰로의결정 (1936년 4월 11일, 2면 ). 62) 푸시킨 (1799 1837), 톨스토이 (1828 1910), 네크라소프 (1821 1878), 고리키 (1868 1936) 는러시아의유명한작가들이다. 63) 콘페렌치야 는러시아어로 конференция 로 학회 를말한다. 64) 야회 는러시아어로 вечер 로 저녁모임, 혹은 소모임 을말한다. 65) 크루조크 는러시아어로 кружок 로 동아리 를말한다. 66) 선봉, 농촌에서의문화 교양사업에대하여 전동맹공산당 ( 볼세비키 ) 원동변강위원회뷰로의결정 (1936년 4월 11일, 2면 ). 246 정신문화연구제 41 권제 2 호
본논문에서는 1924년에생겨난최초의고려인도서관인신한촌고려인도서관을중심으로 1920 30년대극동지역의고려인도서관을설립하게된배경과현황등에대해살펴봤다. 신문 선봉 의보도를보면고려인들이얼마나큰자부심을가지고서이도서관을바라보고있는지가눈에선하게그려진다. 가슴벅찬이사건을계기로고려인들은이국에서최초의도약을할기회를잡게되었다. 설움의날을참고견디면언젠가는기쁨의날이오리라 67) 는러시아시인의시한구절처럼고려인들은설움과고통의순간들을이도서관개막식날에많은부분보상을받았을것이다. 고려인이자신들의민족도서관을가지게되었다는사실자체만으로도역사적으로획기적인사건으로기록되겠지만고려인들은이도서관을통해서자신을계발하고또한공동으로민족의발전을위해서노력하는모습을보여주었다. 이러한모습은당시극동지역에사는소수민족들에게문화사업과교양사업을실시하고자했던당국의취지와부합했다. 고려인들이도서관을중심으로책을읽는민족으로살았던사실은이를유지로떠받든후손들이구소련과오늘날의러시아를비롯한중앙아시아지역에서뒤처지지않는삶을살수있는기반으로작용했을것이다. 고려인들의구체적인독서생활에대해서는다음의논문으로미뤄둔다. 앞으로의연구가이도서관의책을바탕으로이루어지는고려인들의문예창작활동까지이어진다면고려인들의문학세계와정신세계에대한연구가완성될것으로여겨진다. 67) 이시는러시아문학의아버지로불리는푸시킨의 삶이그대를속일지라도 의일부이다. 1924 년극동지역최초신한촌고려인도서관에관한연구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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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본논문은 1920 30년대러시아극동지역의고려인도서관에대한연구이다. 보다구체적으로는 1924년러시아연해주극동지역에서고려인도서관이어떤상황에서최초로등장하게되었는지, 당시고려인들이고려인도서관에대해보여주었던태도그리고소련사회에서의고려인도서관의역할및도서관의특징등에관해살펴보았다. 본연구를위해당시소련정부가발행한 선봉 이란고려인을위한지방신문의기사에서고려인도서관과관련된기사들을면밀히분석하였다. 본연구는다섯부분으로나누어진다. 서론에서기존의문헌을검토하고, 본연구의독창성을지적하였으며, 본논문의연구방법과범위를제시했다. 제2장에서는고려인과고려인도서관사이의관계에대해살펴보고제3장에서러시아극동신한촌에세워진고려인도서관을통해첫번째소비에트고려인도서관의특징을찾아봤다. 제4장에서는소비에트고려인도서관에서어떠한장서들을구비하고있었는지장서의규모와내용등에대해서알아봤다. 그리고결론에서는고려인도서관의장서를바탕으로이루어졌던고려인들의문예창작활동은본논문에서다루지못하고미래에연구해야할주제로지적했다. 투고일 2018. 3. 19. 심사일 2018. 4. 4. 게재확정일 2018. 5. 30. 주제어 (keyword) 고려인 (Koryoin), 고려인도서관 (Koryoin library), 신한촌 (Sinhan-chon), 연해주 (Primorsky Krai), 선봉 (Seonbong)
Abstracts A Study on the First Soviet Korean Library of Shinhanchon in the Far East in 1924 Jeong, Mak-- lae Joo, Dong-- wan This paper is a study on Koryoin (Korean Russian) Libraries in the Russian Far East in the 1920s and 1930s. We specifically examined how the Koryoin library, first appeared at Sinhan-chon in the Far East region of Russia, Primorsky Krai in 1924. We investigated the attitudes of the Koryo people toward the Koryo library, the role of the Koryo library in Soviet society, and the various characteristics of the library. For the purpose of this study, we closely analyzed articles related to the Koryoin library found in local newspapers, such as Seonbong, written for Koryoin, which was issued by the Soviet government at the time. This study is divided into five parts. In the introduction, we review existing literature, point out the originality of this study, and present the research methods and scope of this paper. In part 2, we look at the relationship between Koryoin and the Koryoin library. In part 3, we explore the characteristics of the first Soviet Koryoin library by taking a look at the Koryoin library established in Sinhan-chon, Far East Russia. In part 4, we look at the size and content of the collection at the Soviet Korean library. The conclusion of this paper mentions Koryo people s literary creative activities, which were based on the collection at the Koryoin library. These literary creative activities were not covered in this paper, but were emphasized as subjects to be studied in the fu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