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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론 42 한국 근현대 과학기술사의 전개 사건은 야마무로가 지적하듯이, 윤리에다가 物理를 종속시킨 송학과 벡터는 역방향이라도 발상으로서는 동일한 것 임에 틀림없었다. 즉, 모든 것을 天理라는 하나의 틀 속에서 해석하는 주자학적 자연관이 사 실상 인간사회의 제질서를 자연계에 투영시켜 그것을 읽어들이는 것이 었다면, 바바나 스기우라의 발상은 그와는 정반대로 자연계의 제법칙을 인간사회에 적용시킴으로서 그것을 읽어들이려는 것에 다름아니었던 것 이다. 그리고, 그와같은 역류현상은 理의 이원적 구분에 의해 태동한 물 리가 초월주의적으로 인식될 때, 언제든지 理의 유동적인 경계를 넘어 반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이처럼, 니시에 의한 심리와 물리의 구별은 당시의 서양자연과학의 도입을 뒷바침하는 논리적 근거로 작용했음에 틀림없으나, 동시에 그것 은 심리와 물리의 경계의 문제를 哲學이라는 새로운 학문속에 던져놓았 던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는 곧이어 유입된 독일 관념론 철학을 거쳐 사실상 20세기의 철학을 움직이는 거대한 동력으로 자리잡아 나가게 되 었다. 그런 점에서, 메이지 사상사는 사실상 니시를 통해 근대철학의 입 구로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으나, 그것은 곧 데카르트 이후의 철학적 이원론의 문제가 메이지 일본의 사상공간에 이식되는 과정이었음을 의 미한 것이기도 했다. 46) 3. 客觀의 物理와 主觀의 心理 경계의 성립 일본의 과학사가 츠지 테츠오(辻哲夫)는 과학기술은 번역문화로서 일 본에 성립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와같은 번역의 과정은 사실상 기존 언어의 소멸과 그것을 대신할 새로운 언어의 창출이 없이는 불가능한 46) 山室信一, 日本学問の持続と転回 ( 学問と知識人, 東京 岩波書店, 1988), 쪽 487. 26
19세기 동아시아의 과학사상과 자연관의 변용 김성근 Ⅲ. 서양학문의 유입과 최한기의 氣化之學 1. 최한기에 있어서의 運化氣 서구 르네상스기에 출현한 초기 근대 과학자들이 자연이라는 것을 수 학의 언어로 쓰여진 神의 서물로 간주했음은 오늘날 잘 알려진 사실이 다. 그들은 스스로를 神의 특별한 피조물로 인식함으로서, 神이 인간을 위해 만든 자연으로부터 불변의 법칙성을 발견할 권리를 손에 넣었다. 그런 점에서, 그들에게 있어 과학은 곧 신앙의 일종이었으며, 그 과학이 대상으로 하는 자연 또한 외부로부터 운동의 속성을 부여받은 神의 창 조물에 다름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문화권에 있어서의 자연계는 주로 氣라는 존재론적 기초개념의 설정에 의해서 말해져왔는데, 특히 최한기의 氣는 종래의 주자학의 이기론이나 주기설과도 달리, 氣밖에 일체의 틈입을 허용치 않는 철저한 유형의 氣에 의해서 구성되었다. 그것은 원리적인 측면에 서 볼 때, 서구근대의 과학적 자연관이 잔존시킨 초월적인 神의 관념은 물론 주자학적 理의 관념마저도 자기운동력을 갖는 氣의 내부로 내재화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에 있어서 神은 곧 氣이며, 氣는 곧 神 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운동력의 내재화는 인간을 神의 피조물로 인 56) 56) 氣即神, 神即氣, 而古之人多以神氣爲二, 易入于虛誕奇異, 至使後人渾淆無 準. 人政 卷五, 9b. 본 논문에 인용된 최한기 저서는 모두 成均館大學 校大東文化硏究院 增補 明南樓叢書 (2002)의 영인본을 사용했다. 논문의 페이지는 최한기의 저서 자체의 페이지로 표기했다. a는 오른쪽 면, b는 왼쪽 면이다. 나아가 본 논문에서는 다 기술할 수 없지만, 최한기 저서 의 일부는 이미 국역본으로 출간되어 있고, 본 논문도 그것들의 일부를 참고했음을 밝혀 둔다. 31
한국사론 42 한국 근현대 과학기술사의 전개 2. 주자학적 理의 재편 氣化之理의 발견 서양의 초기 근대과학자들이 神性의 외재화를 통해 자연을 과학적 사 유의 대상으로 확보했다면, 최한기는 사실상 氣안에 神性을 내재시킴으 로서 본질적으로는 인간과 같은 생물체로서의 자연을 발견했다. 그리고, 神氣의 법칙성은 理라는 언어를 통해 기학적 知로 구성될수 있는 것이 었다. 때문에, 최한기에 있어서의 理는 氣의 그림자와 같은 부수적인 존 재에 불과했다. 그것은 철저한 유형의 一氣로부터 전개되는 氣學의 당 연한 귀결이었다. 즉, 理라는 것은 결코 氣를 초월하여 존재할 수 없으 며, 오직 氣의 궤적이자 氣의 언어였던 것이다. 최한기는 이 理를 流行之理(자연)와 推測之理(당연)의 두개로 나눈다. 자연이란 천지 유행의 理이고, 당연이란 인심 추측의 理이니, 학자는 자 연으로 표준을 삼고 당연으로 공부를 삼는다. 자연이란 하늘에 속하여 인력 으로 증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당연이란 사람에 속하여 이것을 가지고 공부를 할 수 있다. 76) 최한기가 사용하는 자연이라는 용어는 천지유행의 理적 질서를 표현 한 말로서, 서구의 근대과학적 자연관이 말하는 외부세계의 대상화된 실체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말한대로 최한기의 氣가 하 늘과 인간의 합일을 가능케하는 기본적인 생명의 현상이었다면, 이 문 장은 理의 측면으로부터 그것들사이의 구별을 논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유행지리와 추측지리는 앞장에서 본 것처럼, 니시 아마네에 의해서 행해진 物理와 心理의 구분과 매우 유사하게 보인다. 그러나, 최한기에 76) 自然者, 天地流行之理也, 當然者, 人心推理之理也, 學者, 以自然爲標準, 以 當然爲功夫. 推測錄 卷二, 推氣測理, 35a. 40
19세기 동아시아의 과학사상과 자연관의 변용 김성근 있어서의 유행지리와 추측지리의 구분은 니시 아마네의 그것과는 근본 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즉, 최한기의 理적 구분위에는 物과 心뿐만아니 라, 만물을 관통하는 氣의 연속성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한기에 있어서의 유행지리와 추측지리는 니시 아마네에 의한 物理와 心理의 구분과 어떻게 다른 것인가?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늘의 氣가 유행하는 理는 物에 있어 각각 마땅한 바가 있는지라 원래 增減이 없다. 이 理를 窮格할 수 있는 것은 人心의 추측인데, 여기에는 사 람에 따라 잘하고 잘못함과 진실하고 진실하지 못한 차이가 있으나, 이 역 시 理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77) 즉, 이 유행지리는 인간에 의한 인위적인 조작이 불가능한 理로서, 최 한기는 이것을 氣化之理, 天理 또는 物理라는 명칭으로도 사용하고 있 다. 그리고, 이 유행지리를 궁구할 수 있는 것은 人心의 추측인데, 이것 에 의해 얻어진 理가 이른바 추측지리였다. 그렇다면, 이 유행지리를 궁 구할 수 있는 人心의 추측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 최한기는 사람과 만물이 하늘의 氣와 땅의 質을 받아 생겨나는 理적 질서를 주자학적 언어로는 性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하늘을 이어받은 측면으로부터 말하면 性이고, 사람을 주로서 말하면 心이라고 한다. 물론, 이때 性과 心은 주자학에 있어서는 각각 구분되는 개념이었다. 그 러나, 최한기에 있어서는 이 心, 性, 理라는 것은 모두 근원에 있어서는 一氣로부터 생겨난 명칭일뿐이었다. 한편, 추측에 대해서 최한기는 하늘을 이어받아 이루어진 것이 인간 78) 蓋天氣流行之理, 在物各有攸當, 原無增減, 能窮格此理者, 即人心之推測, 而有善不善誠不誠, 然是亦不可不謂之理也. 推測錄, 推測錄序, 1b. 78) 性一而己, 自其本源謂之天, 流行謂之命, 賦於人謂之性, 形體謂之氣質, 主 於身謂之心. 推測錄 卷三, 推情測性, 11a. 77) 41
한국사론 42 한국 근현대 과학기술사의 전개 의 性이고, 이 性을 따라 익히는 것이 미룸(推)이며, 미룬 것으로 바르 게 재는 것이 헤아림(測)이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이 추측이라는 것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구비되는 능력으로 생각되고 있었 던 것이다. 따라서, 추측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 후천적인 경험 (習)을 통하여 얻는 것이 이른바 추측지리라고 이해되었다. 때문에, 그는 이 추측지리라는 것을 心理라고도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추측의 능력은 본래 유행지리로부터 생겨나지만, 그 능력 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살아가면서 각각 다른 경험과 견문을 축적해 가기 때문에, 그 속에서 생겨난 추측지리의 내용에는 優劣과 異同등 여 러가지 편차가 생기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최한기는 유행지리와 추측 지리 사이에도 당연히 일치와 불일치가 생겨난다고 말한다. 79) 80) 81) 유행과 추측이 부합되는 것으로 말하면, 이쪽과 저쪽의 理는 일치하지만, 유행과 추측이 부합되지 않을 경우에는 理가 현저하게 다르다. 만약 理에 虛實의 차이가 있음을 모르면, 잘하고 잘못하는 것을 가려 선택할 방법이 없고, 진실한 것과 진실하지 못한 것이 뒤섞이는 폐단이 생긴다. 82) 이처럼, 유행지리와 추측지리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인간은 그 유행 지리를 파악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최한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마음에 의혹되는 것은 남에게 추측하고, 남에게 의혹되는 것은 성인 에게 추측하고 성인에게 의혹되는 것은 天理에 추측한다. 이미 천리에서 얻 繼天而成之爲性, 率性而習之爲推, 因推而量宜之測. 推測錄, 推測錄序, 1b. 未有習之初, 只此流行之理, 旣有習之後, 乃有推測之理. 推測錄 卷二, 推 氣測理, 25b. 81) 流行之理性理也, 推測之理心理也. 推測錄 卷三, 推情測性, 10b. 82) 擧其流行推測符合者, 理是一也, 在於流行推測不合者, 此理彼理, 完全有跡, 若於理不知虛實之有異, 善不善無擇取之方, 誠不誠有渾淆之弊. 推測錄, 推測錄序, 1b. 79) 80) 42
19세기 동아시아의 과학사상과 자연관의 변용 김성근 은 것이 있으면, 성인에게 質正하고 남에게 질정하고 내 마음에 질정하는 것이니, 이렇게 되면 다른 것과 같은 것의 순함과 어그러짐이 절로 정해져 옳고 그른 것의 갈림길을 선택할 수 있다. 83) 이처럼 최한기는 일찍이 성인에 의해 권위가 보장되어오던 윤리위에 유행지리(天理)를 가져옴으로서, 주자학적 理에 관한 근본적인 전환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즉, 그는 이학의 理, 태극의 理 등 모든 典籍에 서 논한 理는 전부 추측의 理이다. 라고 단언하여, 經典의 전통적 권 위를 완전히 부정해버리고 있다. 때문에, 이제 성인은 단순히 그들이 살 았던 시대의 보통사람들보다 유행지리에 관한 지식이 뛰어난 사람을 가 르킬 뿐이었다. 이와 같은 최한기의 사유는 주자학에 의해 규정된 모든 선험적인 윤 리중시의 태도로부터 탈각하여, 인간이 외물의 탐구로 향하는 논리적 기초를 제시한 것에 다름아니었다. 때문에, 그는 온갖 理가 내 마음에 갖추어져 있다고 하며, 사물의 理를 오로지 마음에서 탐구하고 사물을 추측할줄 모르거나, 자기의 잘못된 견해를 天理라고 하고 物마다의 특수한 天理를 돌아보지 않는 자 등을 人道와 天道의 구별을 잃어버 리고, 人道 속에서 天道를 취하려는 고루한 사람들이라고 비판하고 있 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사물의 理를 오직 人心의 내적탐구로부터 구하 려는 전래의 학문의 허학성과의 단절을 의미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아 84) 85) 86) 凡有疑於心者, 推測於人, 有疑於人者, 推測於聖, 有疑於聖者, 推測於天理, 旣有得於天理, 則質諸聖 質諸人, 質諸心, 異同之從違自定, 是非之分路可 擇. 推測錄 卷一, 推測提綱, 51a. 84) 理學之理, 太極之理, 凡載籍之論理者, 儘是推測之理也. 推測錄 卷二, 推 氣測理, 23a. 85) 或以爲萬理皆具於我心, 事物之理, 推窮究於心, 不識推事物而測事物. 推 測錄 卷二, 推氣測理, 26b. 86) 或以己見之誤得, 謂天理之同然, 而不顧物物各殊之天理. 推測錄 卷二, 推氣測理, 26b. 83) 43
한국사론 42 한국 근현대 과학기술사의 전개 울러 그는 만약, 어떤 사람이 특별히 사물의 성실한 면을 들어서 氣學 에 부가했을 때, 증험되는 것이 기학보다 많고, 일마다 기학보다 나은 것이 있어 그것을 천하에 밝힌다면 기학은 폐할 수 있을 것이다. 라 고 선언하여, 자신의 기학조차도 외적사물의 탐구여하에 따라서는 언제 라도 부정될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처럼, 유행지리는 이제 추측지리를 검증하기 위한 확고한 기준으로서의 위치를 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모든 사물에 대한 準的으로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유행지리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그것은 앞에서 보았던 것처럼, 니 시 아마네가 理를 두개로 분리시켜냄으로서 발견한 物理와는 어떻게 다 른 것인가? 그는 자연현상을 氣의 본원적 자기운동에 환원하면서도, 心이란 一 身을 주관하는 氣이다. 라든가, 事理를 추측하는 것은 心氣이지만, 이것은 이른바 天氣가 내 몸에 나누어진 것이다. 라고 말하여, 이 氣 라는 것이 인식의 내부와 단절된 외부적 자연현상만이 아니라, 인식의 내부마저도 규정하는 본원적 자기운동이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다. 즉, 최한기의 자연관의 독특한 성격은 인식의 내외를 관통하는 이 氣의 연속성으로부터 파악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들은 이 氣라는 것에 의해 취해진 내외의 연속이란 어떠한 것인지 좀더 구체 적으로 해명할 필요가 있다. 87) 88) 89) 90) 若有人特擧別般事物之誠實, 加於氣學, 證驗多於氣學, 事事勝於氣學者, 明 之于天下, 氣學乃可廢也. 氣學 卷二, 6b 7a. 88) 心乃一身之主氣也. 推測錄 卷二, 推氣測理, 28a. 89) 推測事理, 何往非心氣也, 心氣, 即天氣之分在我身者. 推測錄 卷二, 推氣 測理, 33b. 90) 필자는 김용옥에 의한 최한기 연구의 핵심은 바로 物理(matter)와 氣理의 근원적인 대립지점의 발견에 있다고 생각한다. 김용옥 讀氣學說 최한 기의 삶과 생각 (서울 통나무, 1990), 56쪽을 참조. 87) 44
19세기 동아시아의 과학사상과 자연관의 변용 김성근 천지의 理가 점차 밝혀지면 인사도 이에 따라 밝힐 만한 길이 생길 것이 니, 이것이 곧 천인의 神氣이다. 만일 역상과 지구에 관한 학문이 비록 점 차 밝혀진다 하여도 人道가 더욱 밝혀지는 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하늘은 하늘대로, 땅은 땅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마침내 서로 관련 이 없는 것으로 될 것이니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 天地人物은 곧 하나 의 神氣의 조화이다. 91) 위의 내용은 物理가 인간의 心理를 직선적으로 규정해버리는 황당무 개하고 미신적인 연속의 관념이 아니라, 물리의 해명에 의해 심리에 관 한 지식의 폭넓은 확대가 가능하다는 매우 상식적인 언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의 주장은 물리의 발견이 심리, 즉 인간사회의 새로운 질서 의 발달을 가져온다는 것에 다름아니었다. 애시당초, 최한기에 있어서는 재이설과 같은 미신적 관념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물리와 道 理와의 무분별한 연속성을 말하는 사람들을 한갓 잡술에 빠진 사람들로 취급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는 물리와 심리가 완전히 단절되 어 아무런 영향도 서로 주고받지 못한다는 것 또한 말이 안된다고 지적 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최한기는 人心의 추측은 오직 물리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92) 物理를 고요히 관찰하여 추측의 소재로 삼고, 물리에 숙달하여 추측의 범위로 삼는다. 이렇게 하면 다시 추측을 가지고 물리를 징험하여 추측이 지나치면 억제하고 부족하면 따라가도록 노력한다. 91) 天地之理漸明, 則人事從此有可明之道, 即是天人之神氣也, 若謂歷理地球, 雖得漸明, 無關於人道之益明, 是天自爲天, 地自爲地, 人自爲人, 了無關涉, 豈有是哉, 天地人物, 乃一神氣之造化也. 神氣通 卷一, 體通, 23a. 92) 泥古尙術之人, 每以災祥爲天文, 因假設之名目而占豊荒, 推積累之數限而決 治亂. 推測錄 卷六, 推物測事, 13b. 93) 靜觀物理, 以爲推測之資, 貫熟物理, 以爲推測之範圍, 反將推測, 符驗于物 理, 過者抑退, 不及者企就. 推測錄 卷二, 推氣測理, 24a. 93) 45
한국사론 42 한국 근현대 과학기술사의 전개 최한기는 이처럼 物理를 추측의 準的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 다면, 최한기에 있어서 새로운 準的으로 떠오른 물리는 人心의 추측에 의해서 어떻게 파악될 수 있는 것일까? 최한기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심의 추측에서 말하면 멀리 본다는 것도 다만 별빛의 明滅에 미칠 뿐이요, 그것도 蒙氣에 의해 가리워지는 것이며, 멀리 듣는 것도 불과 四 海에서 전하는 말과 글자에 지나지 못하고, 그것도 완전히 전하지 못하는 것이나 전달할 수 없는 것이 실로 많으니, 무엇으로써 하늘 안의 理를 밝히 겠는가? 94) 그는 광대한 하늘을 추측하는 인심의 한계를 명료하게 이해하고 있었 다. 또, 인식본연의 측면으로부터도 유행지리에 대한 추측의 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유행의 理는 자연의 법칙이 있으므로 더하거나 덜할 수 없으나, 추측하 여 생긴 이치에는 상황에 따라 합당한가 합당하지 않으냐 하는 차이가 있 으므로 변통할 수 있다. 이것이 物理를 궁구하여 도달하는 것에 자연히 같 지 아니한 점이 있는 까닭이다. 더욱 사람으로서 사람을 추측하는데 이르러 서는 바로 나의 추측을 가지고 남의 추측을 통하는 것이니, 이야말로 歧路 [物理를 추측하는 것이 서로 다름 인용자]의 歧路[남의 추측을 다시 추측 하는 것 인용자]이다. 95) 성인의 언어도 결국 개명한 일개인의 추측지리로 간주되었듯이, 물리 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항상 추측지리라는 틀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 自人心推測而言之, 則見遠者, 只及於星耀之明滅, 而亦爲蒙氣之遮蔽, 聞遠 者, 不過四海傳譯之言文, 而實多不盡之條, 不能之至, 從何以明得天之範圍 之理也. 推測錄 卷二, 推氣測理, 36a. 95) 流行之理, 有自然之則, 不可增減, 推測之理, 有宜不宜焉可以變通, 此所以 窮格物理, 自有不同也, 至於以人測人, 乃以我之推測, 通人之推測, 便是歧 路之歧路也. 神氣通 卷一, 體通, 17b. 94) 46
19세기 동아시아의 과학사상과 자연관의 변용 김성근 렇다면, 최한기의 사상으로부터는 궁극적으로 物理의 인식은 불가능한 것일까? 아울러 인간의 모든 知의 체계는 결국 상대적일뿐인가? 우리들은 다음으로 그의 사상에 있어서의 물리의 인식가능성이 神氣의 通의 열림으로 환원되어 가는 과정을 보게 된다. 이것은 근대이후의 과학 적 자연관이 가져다 준 물리의 인식방법과 근원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3. 運化의 세계관 通의 성립 성인을 넘어서는 物理의 강조는 외적인 자연(nature)의 본격적인 탐구 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서구자연과학의 성과를 수용할 수 있는 논리적 기초를 제공했다. 최한기가 말한 기화지리라는 것이 오늘날 물리의 미완태로서 취해진다 할지라도, 그것은 氣로 구현 된 내외의 연속적 관념에 근거한 동양인들의 사유속의 하나의 발전적 귀결이었음에 틀림없다. 앞에서 지적한대로 최한기의 사유속에는 理의 무분별한 연속성의 관 념이 부정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매우 의도적으로 물리와 심리 와의 단절 또한 비판하고 있다. 견식이 옅은 자는 마음속의 천지인물과 몸 밖의 천지인물을 두개로 간주 하고, 안을 주체로 밖을 객체로 삼으며, 心理에 따라 政事를 논하고 외측으 로부터 얻어 내측에서 사용하는 것과, 神氣란 스스로 숙달하여 내외가 하나 이며, 원근이 다르지 않음을 모른다. 96) 이처럼, 최한기가 물리와 심리, 주체와 객체의 단절을 비판하는 근거 는 神氣란 스스로 숙달하여 내외가 하나 이기 때문에 다름 아니었다. 96) 見識淺短者, 一心之中, 排布天地人物與身外之天地人物爲二, 而內爲主外爲 客, 多縱心理而論政, 不覺得外而用外, 神氣通達, 內外合一, 遠近無異也. 人 正, 人正序, 1b. 47
한국사론 42 한국 근현대 과학기술사의 전개 그런데, 전통적인 氣學에서는 동류의 氣사이에 感應이라는 관념이 존 재해왔다. 서양철학의 인식론과 비교되는 이와같은 감응의 관념은 동양 사상의 독특한 자연 이해의 방식을 표현한 언어로서 성립했다. 스스로 본원적인 자기운동의 속성을 가진 氣를 인간과 만물의 기저에 두었던 관점이 곧 인식의 주체와 그 대상사이에 감응이라는 독특한 인식의 방 법을 구성했던 것이다. 최한기는 이와같은 감응의 인식론을 더욱 더 구체화하여, 스스로의 독특한 언어체계인 通의 인식론을 구성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心이 사 물을 지각하거나 인식하는 작용을 모두 通이라는 말로 환원하고 있다. 따 라서 사람의 神氣란 인식의 주체이며, 通은 이 주체로서의 신기가 같은 氣적 외부세계와 교류하는 통로에 다름아니었다. 이와같은 通으로서는 體通, 目通, 耳通, 鼻通, 口通, 生通, 手通, 足通, 觸通, 周通, 變通등이 제 기되고 있다. 그러므로 최한기에 있어 인식이란 사람의 神氣가 그와같은 통로를 거쳐 외부세계와 접촉(感應)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했다. 때문 에, 이 通을 행하지 않으면, 心은 단순한 心으로서 物은 단순한 物로서 독립하여 서로를 인식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한 상태라고 볼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인식이라는 것은 인간의 감각기관만으로 달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최한기는 通을 크게 형질의 通과 추측의 通으로 분류하고 있다. 97) 98) 하늘이 물건을 내심에 제각기 형질을 갖추게 하였는지라, 빛은 눈에 통 하고 소리는 귀에 통하고 맛과 냄새는 입과 코에 통하니, 이것이 다름 아닌 형질의 通이다. 97) 天民形體, 乃備諸用通神氣之器械也, 目爲顯色之鏡, 耳爲聽音之管, 鼻爲嗅 香之筒, 口爲出納之門, 手爲執持之器足爲推運之輪, 總載於一身, 而神氣爲 主宰. 神氣通, 神氣通序, 1b. 98) 神氣의 通이란 神氣가 직접 출입하는 것이 아니라, 항아리의 안밖의 소 리가 공명하듯이 서로 감통(感通)하는 것을 가르킨다. 99) 天之生物, 各具形質, 色通于目, 聲通于耳, 味臭通于口鼻, 是乃形質之通也. 99) 48
19세기 동아시아의 과학사상과 자연관의 변용 김성근 이처럼 형질의 通이란 신체의 각 기관이 행하는 정해진 기능을 의미 했다. 한편, 추측의 通에 대해서는 다음처럼 설명하고 있다. 이미 있는 형질의 通을 따라 분별하고 헤아리는 것이 있다. 이는 그것이 만일 전에 보고 들어 열력한 것을 미루는 것이 아니면, 바로 현재 있는 것 을 근거로 이것을 가지고 저것을 비교하거나 저것을 가지고 이것을 비교하 여 그들의 우열과 득실을 헤아려 통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추측이 通 이니 자연히 사람마다 같지 않은 것이다. 100) 이처럼, 형질의 通이 감각기관(諸竅諸觸)에 의한 외부세계와의 소통을 의미했다면, 추측의 通은 이 형질의 通에 의해서 얻어진 외부세계의 정 보를 사유하고 분석하는 기능을 담당했던 것이다. 그는 이 두개의 通을 모두 중시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인식이 얻어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인식의 과정은 우선 神氣가 감각기관에 의해서 외부세계의 신기와 교류한 뒤에, 그것을 사유, 분석하여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예 측하는 일련의 행위를 가르킨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추측이란 이미 형 질이 通에 의해서 얻어진 것을 미루어(推), 아직 얻어지지 않는 것을 헤 아리는(測) 과정을 의미했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通과 추측지리의 관계에 대해서 다음처럼 말한다. 사물에는 사물의 氣와 理가 있고, 나에게는 나의 氣와 理가 있다. 오직 이 추측의 理만이 사물과 나의 중매인이요, 저쪽과 이쪽의 중개인이다. 그 러나 중매인이나 중개인이 모두 내편의 사람이면, 나에게만 친하고 사물에 는 소원하여 이쪽은 자세히 살피고 저쪽은 짐작만 하게 되므로 항상 염려 된다. 神氣通 卷一, 體通, 26b. 100) 旣因形質之通, 而有所分開商量者, 如非推前日之見聞閱歷, 即因現在之物, 以此較彼, 以彼較此, 測度其優劣得失, 有得通達者, 是乃推測之通, 人人自 有不同也. 神氣通 卷一, 體通, 26b. 101) 物有物之氣理, 我有我之氣理, 惟此推測之理, 物我之媒妁, 彼此之駔儈, 俱 101) 49
한국사론 42 한국 근현대 과학기술사의 전개 사물과 나의 형세를 전하는 중개인과 같은 추측은 편견없이 공정한 마음(公心)을 가지고, 공정한 판단(公議)을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다. 이것은 앞에서 지적했듯이, 윤리(心理)에 物理를 종속시켰던 송학은 물론, 물리에 심리를 종속시키던 그 역방향과도 다른 인식의 방식이라 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와같은 公心이나 公議등과 같은 독특한 인식의 개념은 인식주체와 인식객체의 이항대립적 구분과는 달리, 사물 과 나를 氣의 본원적 자기운동으로부터 파악할때 필연적으로 귀결할 수 밖에 없는 通적 인식의 언어에 다름아니었다. 그는 사물과 나를 양방 모두 완전한 주체로서 인식하여, 추측지리를 사물에 대한 나의 일방적 인 규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神氣의 주체끼리의 공의관계에 의해서 달성 되는 것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물론, 이와같은 사물과 나의 離合은 단순히 양자간의 상호관계에 멈 추지 않았다. 추측은 사물과 나의 모든 다층적인 이합관계로부터 얻어 지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가지고 나를 관찰하는 것은 反觀이요, 物을 가지고 物을 관찰하는 것은 無我요, 나를 가지고 物을 관찰하는 것은 窮理요, 물을 가지고 나를 관찰하는 것은 證驗이요, 나는 있고 물은 없는 것은 未發이니, 이 다섯 가 지가 갖추어지면 추측이 이루어진다. 102) 때문에, 나 즉 一身을 주재하는 心氣는 通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이 物 我의 離合에서 발생하는 다섯개의 법칙을 총괄하는 주체자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추측의 理란 그와같은 物 我의 다층적인 이합관계를 거친 通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었다. 是我家之人, 則常患親于我而踈于物, 詳察乎此而揣摩乎彼. 推測錄 卷二, 推氣測理, 24a. 102) 以我觀我反觀也, 以物觀物無我也, 以我觀物窮理也, 以物觀我證驗也, 有我 無物未發也, 五者備而推測成矣. 推測錄 卷六, 推物測事, 44a. 50
19세기 동아시아의 과학사상과 자연관의 변용 김성근 그런데, 이러한 최한기의 독특한 인식론을 규정하고 있는 神氣의 通 이라는 것은 어떻게 확인될 수 있는가? 즉, 그는 신기가 通하는지 通하 지 않는지 어떻게 확인 가능하다고 보았을까? 그는 다음처럼 말한다. 氣가 통하더라도 證驗할 수 있는 뒤에야 참으로 통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으니, 비록 통한다고 하더라도 증험할 길이 없으면 통했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 103) 이처럼 神氣의 通과 不通의 여부는 그것이 증험되었는가, 아닌가에 달려있었다. 실험과 관찰에 의한 증명을 연상시키는 듯한 이 증험의 방 법은 앞에서 말한대로 우선 타인에게 증험하고, 나아가 사물에 증험하 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즉, 신기의 작용에 의해서 얻어진 추측지리 는 우선 타인의 추측지리에 증험을 구하고, 다음에 사물에 비추어 증험 함으로서 通과 不通의 여부를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최한기는 특히 같은 인간끼리는 원래 유행지리에 의해 동일하게 부여 된 추측의 기능을 구비하고 있기 때문에, 通의 원리가 더욱 원활하게 적용될수 있지만, 이러한 通과 비교하여, 지구나 천체 등의 경우는 그 광대한 범위상, 인식주체인 신기와의 通이 매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 었다. 그런데, 이와같은 通은 단순히 物에 대한 인간의 신기의 인식론적인 측면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남의 일에 통하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일만을 자랑하고 남의 일 은 비방하며, 남의 집안일을 통하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집 일만 찬 양하고 남의 집 일은 비방하며, 다른 나라의 일을 통하지 못한 사람은 반드 103) 夫氣通之而可以證驗者, 方許其通, 雖謂通之而無所證驗, 不可許其通也. 神 氣通 卷一, 體通, 2b. 51
한국사론 42 한국 근현대 과학기술사의 전개 시 자기 나라의 일만 찬양하고 다른 나라의 일은 더럽게 여기며, 남의 敎를 통하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敎만 높이고 남의 敎는 배척한다. 그러 나, 不通의 폐단중에는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있으니, 나에게는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差誤가 엄연히 있는데도 그것을 말하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그 말한 사람을 성토하여 남에게는 좋고 이로우며 中道를 얻는 것이 있어 도 그를 取用하는 사람은 도리어 그를 헐뜯고 나무라는 것이다. 이는 스스 로를 편협하게 하고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다. 104) 이처럼 通은 物에 관한 神氣의 인식론적 측면을 넘어, 사회적인 언어 로도 전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국가의 관리등 용에 있어서도 通의 관점을 철저히 주장하여, 그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 록 내외를 자유롭게 출입하고 상하를 통달하지 않으면 안되며, 이것에 의해 통민운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결국, 통민운화라는 것은 그것이 막히게 되면 각각의 인간집단은 자신들의 사 욕에 따라서만 행동하게 되며, 반대로 그것이 통하면 통할수록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참가하여, 그것으로부터 公明, 즉 모두에게 열린 밝은 사 회가 실현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대개 선악은 정해진 곳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남의 시비에 서 취하여 표준을 삼고, 物理의 順逆에서 證驗하여 歸着을 삼는다. 라고 하여, 선악이라는 도덕적 가치 또한 어떤 선험적인 기준으로부터 105) 106) 107) 不通乎人之事者, 必誇伐己之事, 而非毁人之事, 不通乎人家之事者, 必讚揚 己家之事, 而誹訕人家之事,不通乎他國之事者, 必稱譽本國之事, 而鄙訾他 國之事, 不通乎他敎法者, 必尊大其敎, 而攘斥他敎, 不通之弊, 尤有甚焉, 屬於己者, 縱有過不及之差誤, 言之者, 必聲討之, 屬於彼者, 雖有善利得中 之端, 取用者, 必睡罵之, 是自狹自戕也. 神氣通 卷三, 變通, 35a. 105) 以達於上, 則內外出納, 上下通達, 無有阻碍, 統民運化, 自成其道. 氣學 卷二, 12a. 106) 萬姓運化, 分之, 則各從私欲, 統合, 則自生公明. 氣學 卷二, 40a. 107) 蓋善惡無定所, 取諸人之是非, 以爲準的, 驗諸物理之順逆, 以爲歸宿. 神氣 通 卷三, 變通, 34b. 104) 52
19세기 동아시아의 과학사상과 자연관의 변용 김성근 가 아니라, 사람들의 시비를 거치고 物理에의 順逆으로 證驗함으로서 확보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처럼 通은 인간과 사회와 자연의 모든 공간적 범주를 넘나드는 인식의 방식으로서, 항상 그 열림을 지향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通은 그처럼 공간적인 열림뿐만 아니라, 시간적인 열림도 요구 되는 것이었다. 최한기는 일시적 소견을 따라 얻어 세운 것은 1년을 통 해서 얻어 세운 소견만 못하니, 따라서 1백년, 1천년, 1만년을 통한 것은 각각 그에 따라 소견의 차등이 생긴다. 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眞正의 道理란 時空을 넘는 通의 열림에 의해 성 취될 수 있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볼 때, 최한기는 神氣의 추측지리(心理)가 유행 지리(物理)와 합치할 가능성을 그들간의 順逆의 문제로 전환시켰고, 나 아가 그 순역에 대한 최종적 판단은 通의 원근과 광협이라는 방법론적 차원으로 전환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유행지리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通을 실현시켜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었다. 이처럼 최한기에 있어서의 通은 신기의 운화에 있어서 모든 不通 을 없애고 천하일체의 대동사회로 나가기 위한 가장 핵심적이고 실천적 인 용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한기가 일신운화와 대기운화의 중심축으로 통민운화를 설 정한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대기운화라는 자연과학 적 원리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의 현실적 삶의 영위속에서 108) 109) 從一時之所見而得立者, 不如通一年而得立所見, 以至百年千年萬年之通, 皆 爲所見之差等. 神氣通 卷二, 目通, 6b. 109) 大同이란 禮記 禮運 에 나오는 말로서 大道가 행해져 천하가 만인의 것으로 간주되는 사회이며, 그것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크게 합동하여 하 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상태를 의미했다. 한편, 이 大同의 세상과 반 대로, 大道가 쇠퇴하여 열등한 사회는 小康의 세상으로 불리워졌다. 108) 53
한국사론 42 한국 근현대 과학기술사의 전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때문에 최한 기는 통민운화를 대기운화의 표준과 범위가 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하 지만, 그것은 인간사회를 존속케하는 더 넓고 광대한 대기운화속에 궁 극적으로 귀일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따라서 최한기에 있어서 神氣 의 궁극적인 通의 완성은 一身과 一國이 아니라, 일신운화와 통민운화와 대기운화의 3대운화가 실현되는 곳에 있으며, 그것이 실현되는 완전한 通의 단계에서는 추측지리가 유행지리에 순응하여, 모든 不通(모순과 갈 등)이 해소되는 自然(스스로 그러한)의 상태가 도래한다고 할수 있겠다. 르네상스 이후 등장한 초기 근대과학자들은 외재적인 神과 인간과의 특별한 계약관계를 통해 자연을 神이 인간에게 건네 준 또하나의 성경 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그와같은 자연에 대한 탐구를 神의 섭리를 해독 하는 작업으로 인식함으로서 정밀한 실험과 관찰을 시작할수 있었으며, 그것은 근대이후 자연과학이라는 고도한 知의 형태로 구축되었다. 그러 나 그것은 神과 그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동일화가 강화되면 될수록 자 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 또한 더욱 합리화될 수 있음을 의미한 것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것은 필연적으로 자연과학적 知의 절대화를 불러일으 킬 위험성을 내포한 것이었다. 최한기의 氣는 그 안에 스스로 활동운화하는 神性을 내재화시킴으로 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동류의 氣적 상생과 소통의 관계로 정립한 것 이었다. 인간은 외적 자연계와 通함으로서 자연을 이해할수 있었고, 유 행지리의 자연법칙 또한 그와같은 通의 결과로서 얻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즉, 유행지리란 인간이 스스로 활동운화하는 氣적 자연과 끊 임없이 通을 지향함으로서 얻어지는 과학적 知에 다름아니었으며, 그것 은 또한 사회적 通을 실현시킴으로서 결국 의미를 가질 수 있는 知의 체계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한기의 氣學은 자연과학과 인간과학의 통합위에 성립하는 새로운 知의 체계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