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순화의 역사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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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남 전서울교육대학교교수 답변자 : 정길남 ( 전서울교육대학교교수 ) 질문자 : 차익종 ( 서울대학교강사 ) 때 : 2011 년 5월 14일곳 : 서울교육대학교 ( 서울서초동 ) 퇴임교수연구실

차익종: 우리말 연구와 강의뿐 아니라 수필 문학까지, 퇴임 후에 더 바쁘 군 게 지내시는 요. 정길남: 흔히 말하길 백수들이 더 바쁘다고 (웃음). 차익종: 오늘은 주로 한글 성경 발간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글 성경 완역 100주년인데요, 사실 최초의 성경 번역은 19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습니까? 금년이 한 정길남: 맞습니다. 최초의 우리말 성경은 1882년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주 조선인들과 함께 옮겨 발간한 예수셩교 누가복음젼 셔 와 예수성교 요안 복음젼서 를 꼽습니다. 그때부터 만주, 일본, 한 국 등 세 방면에서 여러 분들이 성경 번역 작업에 힘을 기울였고, 이런 노력 끝에 1910년 신약젼셔 가, 1911년에 구약젼셔 가 발간되면서 비 로소 성경 66권 전체를 완역한 셩경젼셔 가 나온 것입니다. 차익종: 그런데, 조금 불편하실지 모르지만, 아주 중요한 질문부터 드려야 겠는데요. 성경 발간 사업은 특정 종교 내부의 문제이지 우리말 연구나 우리말 생활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 라고 묻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성 경 번역이 우리말의 역사나 우리말 생활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궁 금합니다. 정길남: 아주 큰 의미가 있지요! 무엇보다 성경을 우리말로 옮기고 보급 하는 과정이 곧 한글을 교육하고 한글 전용을 굳히는 일이었습니다. 15세 기에 훈민정음이 창제되었지만 이 훈민정음만으로 글을 쓰고 기록하는 것, 즉 한글 전용은 구한말까지도 제대로 자리를 못 잡았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성경 보급이 주로 서민을 대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한글의 보급에도 적지 않게 이바지한 셈이지요. 로스가 만 에서 이곳 이 사람 139

령 이광수나 심훈의 소설을 보면 한여름 찌는 날씨에도 마을 사람들 이 교회를 가득 채울 정도로 앉아서, 심지어 담벼락에 매달려 가갸거겨 하며 한글을 익히는 모습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만큼 보통 언중들이 글 을 깨치고 익히는 데 한글 성경이 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 가 차익종: 최현배 선생님도 한글이 한문과 달리 어리석은 백성 들을 위해 주 적합한 문자였기 때문에 포교에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한글 성 경과 한글 찬송가가 한글을 민중 사이에 전파하는 데 큰 공덕 을 세웠 다. 고 하신 바 있지요. 아 정길남: 네, 1962년에 발표하신 <기독교와 한글>이라는 논문에서 그런 말 씀을 하셨지요. 일반적인 종교들은 전도자가 먼저 들어온 후 현지 경전을 만들지만, 기독교는 선교사가 오기 전에 성경이 먼저 들어왔습니다. 번역 성경은 현지 문자로 된 것이니까, 그것을 읽는 사람들이 문자를 저절로 깨우치게 된 것이지요. 런데 한글 성경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즉 그 시대 우리말의 모습을 생생히 기록하는 귀중한 자료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차익종: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지요. 정길남: 가령 예수 그리스도를 2인칭으로 부르는 낱말이 조금씩 변합니 존 로스가 발간한 성경에서는 영감 이라고 했고, 1884 년 이수정 선생이 일본에서 발간한 한글 성경에서는 그냥 너 라고 했지 요. 예수가 베드로에게 너 라 하고, 베드로도 예수에게 너 라 부른 것이 지요. 이게 아무래도 좀 이상하니까 1887년에 나온 로스 번역본에서는 부자 가 됩니다. 부자 는 공자와 같은 스승을 부르는 한문식 용어였지요. 그 다음에는 스승 으로 옮기기도 했고 2인칭을 생략하는 우리말 특징대 다. 1882년 선교사 140 새국어생활 제21권 제2호(2011년 여름)

르 쪽으로 고쳤다가, 마지막으로 1900년 성경부터 주 라는 낱말을 씁니다. 그 밖에 유월절은 넘는 절, 십자가는 십자틀, 나무틀, 광야는 빈들 이 라 하였지요. 또 빌라도의 관직명을 오늘날 성경에서는 총독 이라고 합 니다만, 이것은 일제 강점기 때 비롯된 것이고 그 전에는 사또 라고 하였 지요. 글쎄, 우리가 독립을 계속 유지했었더라면 지금까지도 빌라도 사 또 라고 불렀을지 모르겠네요(웃음). 로 직접 부 지 않는 차익종: 하나님 을 상제 라 옮긴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정길남: 이수정 선생이 일본에서 발간한 성경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래 한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그분이 옮긴 성경에는 이수정 선생이 본 한문 투가 많습니다. 차익종: 혹시 방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지요? 정길남: 그게 또 재미있습니다. 가령 로스 번역본에는 평안북도 방언, 특 히 의주 방언이 많이 보입니다. 부모를 아밤, 어멈 으로 옮겼고 말 못하 는 이를 버버리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로스 목사가 만주에서 평안도 출 신 사람들에게서 우리말을 배웠고 또 초기 기독교 전파가 평안도를 중심 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차익종: 방언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라는 말씀이군요. 그만큼 성경 번역이 데 우리말 생활이나 우리말 연구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크다는 것인, 그러 세 주 료 종 번 고 보면 15 16 기 우리말 연구의 된 자 도 교 경전 역문들이지요. 정길남: 불경 언해문들이 바로 그것이지요. 불경 언해를 빼놓고 15세기 이곳 이 사람 141

겠습니까? 연산군 때 소위 언문을 쓰지 말라면서 책 들을 불태웠었던 사건이 있었지요? 그때 불교 신도들이 목숨을 걸고 책 을 지켰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이것들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인데, 아무도 이 연구를 불교와 결부 짓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글 성경도 우리말 연구 자료로 손색이 없습니다. 국어를 연구할 수 있 차익종: 한글 성경이 발간되는 과정에서도 여러 일화가 있었겠습니다. 정길남: 존 로스라는 분은 스코틀랜드 출신 선교사인데 매제인 매킨타이 께 포교를 위해 중국에 왔거든요. 그러다가 동쪽 끝인 압록강 의 주 건너편, 소위 고려문 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고려문이란 오늘날 홍콩 과 같이 교역을 하는 구역이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압록강 건너 의주 쪽에서 와요. 보부상들이었지요. 자세히 보니 갓 쓰고 옷 입은 품새가 중국인과 다르단 말입니다. 저 사람들이 누구요. 하니 까, 물 건너 조선에서 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로스가 내가 비용을 낼 테 니까 조선어를 가르쳐 달라. 하며 우리말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로스는 이때 배운 말로 한국어 기초(Korean Primer) 라는 회화 책을 만들지요. 그 내용이 또 재미있습니다. 어와 함 물 건넌 사람 어딧슴마? 대마당에 이서 일함메. 물주 어딧습마? 대처발에 있슴마, 이제 나갑데. 주 방언이지요. 이렇게 조선어를 배운 로스 목사가 이응찬, 서상륜, 백홍준 같은 분들과 함께 성경 번역을 시작했고, 제일 먼저 내놓 은 것이 누가복음입니다. 조선 신도들이 이것을 봇짐 안에 감추고 목숨을 전형적인 의 142 새국어생활 제21권 제2호(2011년 여름)

올 때 물난리까지 겪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 후 기독교 전파가 한반도 전역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면서 대한성서 공회가 서울말을 중심으로 성경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으로 1911년에 셩 경젼셔 를 발간한 것이지요. 걸고 들여 차익종: 1911년 셩경젼셔 가 곧오늘날 기독교에서 쓰는 성경은 아니겠지요? 정길남: 물론 그 후로도 고치기를 거듭했지요. 말이라는 것이 계속 변하 질 초기 성경이 나올 때에도 여전히 우리 말과 글이 한문 투에서 벗어나는 중이었기 때문에 번역이 계속되었습니 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주로 사용하는 한글 성경의 모태는 1938년에 나온 성 경개역 인데 여기에도 한문 투가 많아서 성경전서개역한글판 을 1961 년에 선보입니다. 그렇지만 이 개역 한글판은 새로운 번역이라기보다는 기존 성경을 1933년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따라 고치고 ㅼ 를 ㄸ 로 바꾸는 정도였기 때문에 여전히 한문 투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고쳐서 내놓은 것이 1993년에 내놓은 성경전서 표준새 번역 입니다. 간단히 표준새번역 이라 부릅니다. 이전 성경을 보면 개 동 시에 사람들과 그 나귀를 보내니라. 라고 했는데 무슨 소린지 아시겠 어요? 이건 아침이 밝을 때에 라는 뜻이고, 또 그렇게 고쳤습니다. 또 반구의 소리가 울렸다. 를 비둘기 소리가 들렸다. 로,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를 남쪽에서 출발했다. 로 고쳤지요. 이런 식으로 한글 세대를 위해 우리말 어법에 맞는 성경을 내놓은 것이지요. 는 성 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차익종: 표준새번역 이 나오면서 번역자들께서 한숨 돌리신 건가요? 정길남: 그게 또 그렇지가 않아요. 막상 표준새번역 을 그렇게 많이 쓰지 입 히 쓰 습 않는 것 니다. 여전 이전 성경을 는 경우가 적지 않 니다. 심하게 말 이곳 이 사람 143

표준새번역 은 대한성서공회에 가야 구입할 수 있다고 할까. 하면 차익종: 무슨 까닭이 있습니까? 정길남: 쉬운 우리말로 성경을 읽고 암송하기를 꺼리는 태도가 여전히 남 감수 과정에서 어려운 점이 적지 않았습니다. 가령 창세기 첫 구절을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라고 해 놓았는데, 성경은 본래 암송이니까 옛날 경전 암송하듯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 니라 로 해야지, 이게 뭐냐. 하는 반론이 주로 나이 많은 교인들 사이에 서 나왔습니다. 또 창조하시었습니다. 로 해야만 동의하겠다는 분도 있 었습니다. 하도 반대가 심해서 결국 공들여 내놓았지만 제대로 받아들여 지지 않은 것입니다. 아 있어서 차익종: 그 이후에 개역판이 계속 나온 까닭도 그래서군요. 정길남: 그렇습니다. 표준새번역 의 보급이 어려워지자 새로운 개역본 습 래 죠 역개정판 은 아주 공을 들여 내놓은 것입니다.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는 물론 구세군, 루터교회, 나사렛교단까지 거의 모든 개신교단이 전부 참여 해서 이루어냈습니다. 현재는 이 개역개정판 이 주로 보급되고 있습니다. 차익종: 그렇게 계속 우리말로 옮기고 감수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겠습 을 시도했 니다. 1998년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이 그 서 나온 것이. 개 니다. 정길남: 아, 정확히 말씀드리면 제가 하는 일은 성경의 번역이 아니라 우 감수 입니다. 번역은 성경으로 학위를 받은 전공 교수들이 히브리어 원전에서 직접 옮기는 일이고, 저는 이 분들이 내놓은 번역문을 우리말답 게 다듬고 고치는 일을 맡은 것이지요. 리말 144 새국어생활 제21권 제2호(2011년 여름)

차익종: 물론이겠지요. 번역을 담당하시는 분들은 원전의 내용을 정확히 옮기는 데에 주력을 하실 테고. 정길남: 저는 국어학자로서, 우리말답게 옮기도록 감수하는 것이지요. 제 래 번역자에게 보내고, 또 제가 연필로 수정해서 보내고, 이렇게 왔다 갔다 작업을 계속합니다. 특히 개 역개정판 을 감수할 때는 독회를 여러 번 했습니다. 가 교정지에 연필로 수정을 한 후에 원 의 차익종: 독회를 몇 번 정도 하셨나요? 정길남: 한 스무 번 정도 했지요. 차익종: 한 단위, 한 대목을 놓고요? 정길남: 네, 한 번 읽고 나서 또 한 번 보고, 또 한 번 보고. 차익종: 한 번 독회 때 몇 분이 모이나요? 정길남: 한 서른 명 정도였어요. 차익종: 대단한 풍경이었겠군요. 정길남: 성경 번역할 때마다 다 그런 풍경이지요. 차익종: 한 번 모이면 몇 시간 정도 하십니까? 정길남: 날을 새워서 1박 2일씩 하지요. 한번 토의가 붙으면 몇 시간 동안 한 페이지도 못 나갑니다. 이곳 이 사람 145

차익종: 보통 정성이 아니었겠습니다. 정길남: 성경 감수 중에는 이런 장면이 벌어집니다. 번역자들은 주로 신 권 권위 있는 분들이 참여하여 원탁회 의로 축조심의를 하는데, 서로 견해가 다를 때에는 어떤 어휘나 표현을 쓸 것인지 정말 목숨을 내건다 할 만큼 양보를 안 합니다. 그런데 성경도 결국은 우리말로 표현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마지막 의견은 국어학자 에게 묻게 되죠. 여기서 의견을 한마디 내놓으면 바로 매듭이 지어질 수 밖에 없지요. 학대학의 교수님들로, 66 별로 가장 차익종: 그렇게 공을 들인 만큼 새로운 번역이 좋은 반응을 얻어야 할 텐 데요. 정길남: 그렇습니다. 반가운 사실은 최근에 나온 쉬운 성경 과 100분 주 환영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쉬운 성경 은 본래 초등학 생들을 생각해서 만든 것인데 일반 교인들, 특히 초신자들이 좋다고 하 고, 또 목사님들도 설교 때 직접 낭송하기도 한다니 아주 기쁜 일입니다. 성경 이 아 차익종: 감수 과정에서 특별히 역점을 두시는 점이 있습니까? 정길남: 정확하고 쉬운 우리말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글 글 전용의 선도 역할을 해 온 만큼 잘못되었을 때 미치는 영향 이 매우 큽니다. 따라서 우선 쉬운 말로 정확하게 옮기는 것이 제일 중요 합니다. 개동 시에 와 같은 표현은 곤란합니다. 차익종: 쉬운 말이란 무슨 말일까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표준어 규정에 교양 있는 이라는 구절이 있지만 단순히 학교를 많이 다녔다기보다는 품 위가 있으면서도 보통 한국 사람이 쓰는 한국어다운 표현, 가장 많은 사 성경이 한 146 새국어생활 제21권 제2호(2011년 여름)

람이 쓰는 전형적 문장이나 어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정길남: 교양 있으면서도 쉬운 말. 너무 현학적이지 않은 말이라고 할 수 겠 딱딱한 말, 지나치게 전문적인 말, 토박이말이라 해도 현재 안 쓰이는 말 같은 것은 되도록 피하려 합니다. 있 지요. 차익종: 쉬운 우리말 에 어떤 객관적인 기준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정길남: 저는 본래 초등학교 교과서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 교과서 삼습니다. 교과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엄청난 노력의 결과입 니다. 교과서는 확정안이 나오더라도 그대로 보급하는 것이 아니고 일단 실험본을 만들어 도별로 두 학교씩 지정해서 1년 동안 강의에 사용하도 록 합니다. 이렇게 교사들이 강의를 하면서 본인들이 직접 살피고, 또 가 족들에게도 묻고 해서 고칠 점을 알려 오면 이를 반영해서 또 고칩니다. 를 전범으로 차익종: 그런 과정을 거치게 되니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만으로 문장과 어 군 휘를 고치는 것은 아니었 요. 정길남: 그렇죠. 초등학생들을 언중으로 해서 이들이 가장 쉽고 편안하게 쓸 수 있는 표현으로 다듬는 연습을 저 스스로 해 온 것이지요. 성경 번 역의 한글 감수라는 일도 이 덕택이라 할 수 있겠죠. 차익종: 그러고 보니 개화기 교과서를 주제로 삼아 쓰신 논문이 많더군요. 글 성경 연구 역시 개화기 시기 것이 많았는데, 이렇게 개화기에 주목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한 정길남: 본래 석사 학위는 음운론, 그러니까 현대 우리말 말소리를 주제 습 런데 전주대학교 교수로 부임해서 우연히 도서관에서 로 했 니다. 그 이곳 이 사람 147

신약젼셔 원본을 발견한 것입니다! 마침 제가 박사 논문을 준 비하고 있던 참이라, 바로 이거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개 화기 국어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많지 않았던 데다 개화기 문헌에서는 번역 성경이 큰 비중을 차지하거든요. 1900년 차익종: 그런데 바로 신약젼셔 원본을 발견하셨으니. 정길남: 깜짝 놀랐습니다. 그 이후로 개화기 한글 성경, 개화기 국어 교과 독립신문에 나온 한글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지요. 그러다 보니 1980 년대부터 한글 성경 감수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차익종: 그런 인연으로 한글 성경 발간에 30년 동안 관여를 하신 것이군 요. 퇴임하시면서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어 가시는 셈인데 앞으로의 계획 은 어떻습니까? 서, 정길남: 여생이 주어지는 한 제자를 양성하는 데 힘을 쏟으려 합니다. 사 산 긴 습? 교수가 되기 전에 교사 생활을 오래 했었는데 그때 교사 연수를 무애 양 주동 선생님에게서 받았었습니다. 그때 연세 많으신 무애 선생님이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한 시까지 정말 한숨도 쉬지 않고, 스스로 신들려 강 의한다. 라며 열변을 토하시던 모습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 분을 제 본보기로 삼아 제 강의를 듣는 분들에게 유익하고 흥미로운 강 의를 정성을 다해 해 드리려고 노력합니다. 업가는 자 을 남기고 교육자는 제자를 남 다고 하지 않 니까 제가 차익종: 국어 교사인 제자들에게 평소 당부하시는 말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정길남: 우리 말소리에 대한 관심을 잃지 말아 달라는 것이지요. 가령 이 중 모음 왜 와 단모음 외 는 발음법이 다른데 이것을 모르는 분들이 간 148 새국어생활 제21권 제2호(2011년 여름)

혹 있습니다. 또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은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 지요. 요즘 초등학생들이 인터넷 용어를 많이 쓰는 모습에 대해 저는 그 래도 이해해 주는 편입니다. 다만 선생님들이 우선 스스로 연구하고 모범 을 보일 필요가 있지 않나 합니다. 차익종: 건강 관리도 하셔야 할 텐데요. 정길남: 시골에 텃밭을 얻어서 일주일에 사흘 농사지으며 살고 있지요. 모임 때 제자들에게 무농약 채소를 듬뿍 싸 주는 것이 낙입니다. 사 실은 지금 이 자리도 농사짓다 막 뛰어온 것이어서 두서가 없었어요(웃 음). 그렇지만 좋은 강의를 했을 때 제자들 얼굴에 떠오르는 환한 웃음이 저에게는 최대의 보약입니다. 수필 차익종: 귀중한 시간 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하시고 싶은 일도 모두 이루시길 바랍니다. 정길남: 저도 고맙습니다. 우리말을 가꾸고 사랑하는 분들께 모두 고맙다 립 립 맙 합 는 인사를 드 니다. 그리고 국 국어원에도 고 다는 인사를 전 니다. 이곳 이 사람 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