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시리아난민에게문을연라틴아메리카 이정은 유럽난민사태 유엔난민기구 (UNHCR) 의지난 6월보고서에따르면 2013년 5,120만명이던세계난민이 2014년에 830만명증가한 5,950만명으로집계되었다. 2013년은제2차세계대전이후난민숫자가가장많은해다. 그중에서도시리아인 (408만여명 ) 출신이가장많다. 2011년에시작된시리아내전이장기화되면서 760여명이시리아인이국내외로삶의터전을찾아대거이주한것으로추정된다 (UN 난민협력 ). 그와중에시리아인접국의국경봉쇄및통제가강화되면서목숨을걸고지중해를건너는와중에 3,000 여명가까이사망했을뿐아니라, 오스트리아에서난민을실은냉동트럭에서전원이사망한채발견된사건으로유럽연합은물론전세계가경악하였다. 2015년유럽난민사태는난민문제는글로벌이슈로유럽연합은물론전세계가난민문제에해결을위해힘써야한다는인도적국제여론을형성하기에이르렀다. 이런상황에서 9월초아일란쿠르디라는세살배기남자아이가유럽으로이동하는와중에사망하여터키해안가로떠밀려온사진이언론에노출되면서, 난민수용에반대하던영국등의일부유럽의여론을완전히뒤집어놓았다. 라틴아메리카의일부국가에서도시리아난민수용정책을적극적으로검토하고도입하기시작했다. 사실 19세기후반 20세기초
24 트랜스라틴 32 호 (2015 년 10 월 ) 아이를안고있는난민 ( 출처 :http://www.rpp.com.pe) 반부터중동지역의인구가유입되기시작된라틴아메리카는현재 1,800만명인구가중동출신의후손으로추정된다. 특히브라질에서는 20세기초기이후아랍계이주민의현지정착을적극적으로장려했고, 아랍인구는상업에종사하는등브라질사회에순조롭게통합되며오늘까지중요한공동체를형성하고있다. 이렇게역사적으로도아랍인에처음적극적으로문을활짝연브라질의경우에는시리아내전이시작된직후부터시리아난민의입국장벽을낮추고적극적수용하겠다는입장을밝혔다. 라틴아메리카국가의시리아난민수용상황 2011년내전이발생한시점부터오늘까지 2,000명이상의시리아난민이브라질땅에정착했다. 이수치는스페인, 그리스, 포르투갈의난민수용숫자를넘는것이다. 난민이브라질로향하고있는이유는난민인정절차를간소화한브라질정부의배려는물론실제로법적난민신분이보
25 장되기전까지도일자리를구할수있고, 교육기회는물론보건혜택까지보장되기때문이다. 대부분의난민은터키, 요르단, 레바논의브라질대사관을통해난민신청하는것으로알려졌다. 특히 2017년까지분쟁출신국이라는신분을밝히기만하면, 비자를허용하는법을연장시행한다고밝혔다. 실제로중동지역의브라질영사관에서비자를발급한건수는 7,800건으로실제입국한 2,090명과는다소차이가있다. 브라질의국경은확실히열려있지만난민신분에거주할집과일자릴제공하거나지원금을보장하는유럽국가에비해서는지원프로그램이부족하기때문인것으로보인다. 브라질에입국한시리아인의교육수준이높음에도불구하고, 증명할방법이없어서서비스업종이나비공식부분의일에종사하고있다고전했다. 포르투갈어를구사하지못하는점도적지않은장애물이었다. 한시리아여성은 대학학위는물론사회경험이있고, 영어를구사한다해도포르투갈어를못해서현지에서원하는일자리를구하는데어려움이있다 고호소하기도했다. 다행인점은시리아등아랍계공동체와기존의정착한이민자를통해서많은도움을받을수있다는점이다. 1) 아르헨티나의경우도브라질과비슷한시기에아랍인을받아들이면서상당한규모의아랍계공동체를형성하고있다. 현재까지 233명의난민이입국했고, 아르헨티나당국은 2014년시리아프로그램이라는정책을마련해, 더적극적으로범죄기록이없는시리아난민이입국절차를간소화하고, 헤어진가족을상봉시킬예정이다. 코르도바주의필라르 (Pilar) 시경우, 시리아난민 50가구에직업기회를제공하고토지를분배하는현지정착지원정책을내놓기도했다. 한편, 우루과이는지난해 2014년외교부의지휘아래 42명의시리아난민을받아들였고, 2015년 4분기까지 76명이추가적으로수용하는등이번시리아난민사태에적극적인수용정책을펼쳤다. 지난해에는호세무히카대통령이직접공항으로마중을나갔을정도다. 하지만, 이번 9월중순시리아난민이몬테비데오독립광장앞에서타바레신정부에 레바논으로돌아가게해달라 고요구하며천막시위를벌였다. 우루과이사람들 1)http://www.icndiario.com/2015/09/21/refugiados-sirios-en-brasil-no-reciben-viviendas-ni-ayuda-estatal/
26 트랜스라틴 32 호 (2015 년 10 월 ) 은너무친절하고좋지만, 정부가약속한것은사실과달랐다 며, 특히 정착후 2년간지원금을받게될테지만아직까지도제대로된일자리를구하지못했고, 높은현지물가때문에어렵게일자리를구한다고해도가족수가많은탓에생활을유지하는데어려움이있다 는것이다. 타바레정부는레바논정부의비자거부를거론하며시리아가족귀국요청에대해서는일단거절의입장을밝히고, 지원정책강화하는등대안을마련하여합의점을찾도록노력하겠다고밝혔다. 시리아가족은 3일동안의철야를마치고집으로귀가하며사태가일단락된상태다. 칠레의경우, 10명의난민지원자에대해허가가떨어진상태이며, 현정부에따르면향후더많은난민을수용할예정이라고전했다. 한편, 2008년입국한 100여명이넘는팔레스타인난민중 64명이칠레로귀화한상태다. 페루도 9월 11일유엔난민기구에난민수용자격및과정에대해서논의하며, 초기 25명의시리아국민을대상으로신변보호, 사회적응교육등을제공할예정이다. 멕시코또한뒤늦게나마난민수용물결에힘을합했다. 30명의시리아학생에게시민권은물론보건, 생활비까지지급하는프로젝트하베사 (Proyeto Habesha) 를통해대학과정을마치도록돕는내용이다. 하지만현재까지정부는일반난민에대한비자를구체화하지않은상태다. 이때문에멕시코시민들은 멕시코에서할수있어요! (En Mexico Se Puede) 라는캠페인을통해시리아난민수용에대한여론을제고시키고, 1Change.org 사이트를통해 0만명의멕시코인이페냐정부를대상으로국민청원을준비하고있는상황이다. 9월 23일코스타리카정부청사앞에서는시리아와이슬람공동체를중심으로정부에시리아난민수용정책을요구하는시위를벌어졌다. 이들은 코스타리카가분쟁국출신에게피난처를제공하고평화적제스처를취해왔던나라였다 고주장하며코스타리카로입국하고자하는시리아인을위한특별조치를취하라고촉구했다. 한편, 베네수엘라의마두로대통령은인류애와평화의표명 평화, 예수, 볼리바르의땅에서함께하고자하는사람, 이마법과같은대륙에서
27 새로운기회를만들고싶은 20,000명의난민을원한다 고밝혀이목을끌었다. 하지만, 이는최근콜롬비아국경봉쇄및콜롬비아인추방사태는물론베네수엘라의경제위기를감안하지않는발언이라며국내외언론의비판에부딪혔다. 또한무작정입국을허용하기보다는통합정책및사회적응정책이동반되어야한다는주장이제기되기도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난민과망명자 라틴아메리카현대사에서정치불안, 권력다툼, 독재정권, 테러리즘은새로운이야기가아니다. 멀리갈것도없이, 칠레, 우루과이, 파라과이, 아르헨티나의경우 70, 80년대까지독재정권시대의정치적망명자를수없이배출한역사가있다. 일찍이 1928년아바나에서라틴아메리카국가사이에정치적망명자의생명을보호하기위한협정을논의하였다. 1933년몬테비데오에서정치적망명 (Asilio político) 라는개념과망명자를대상으로한구체적인협력이채결되었고, 이후 1955년카라카스에서외교적망명 (asilio diplomático) 에대한협력등이추가로맺어졌다. 독재정권하의망명자는생명의위협을피해모국을떠나라틴아메리카의다른국가는물론스페인등의해외로떠나야만했다. 다행히위에서언급한협정덕분에, 당시대사관은이러한망명자의신변보호에결정적인역할을할수있었고, 이는망명자에겐마지막한줄기빛과같은희망이자피난처였다. 라틴아메리카의여러국가가수만킬로미터가떨어진시리아의난민에게국경을활짝열고도움의손길을내밀수있는이유가바로여기있지않을까. 유럽인접국은물론아시아의대부분의국가가나와는상관없는일이라고, 혹은불똥이튀는걸어떻게든피해보려고안간힘을쓰는사이에시리아난민혹은망명자를수용하는데훨씬개방적이고태도, 적극적인조치를취하고있다. 이정은 아르헨티나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교라틴아메리카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