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1B6BBE7BFACB1B82033B1C72031C8A32023352028C1B6BBE7B5BFC7E229202D20B9DAB9ABC0CD2E687770>



Similar documents
ad hwp

대학생연수용교재 선거로본대한민국정치사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조사연구 권 호 연구노트 사전투표득표율예측에대한연구 The Study on the Advance Voting Forecasting 1) 이찬복 a) 주제어 지방선거 사전투표 출구조사 득표율예측 예측오차 Advance voting was held nationwide in

목차

- 2 -

152*220

2006

[ 표 34] 원하는차기대통상 [ 표 35] 안철수원장의출마에견해 [ 표 36] 안철수원장과야당후보와의단일화에대한견해 [ 표 37] 단일화할경우누가로단일화되어야하는지에대한견해 [ 표 38] 공천비리사건에대한박근혜후보의책임여부.

[ 표 33] -김문수... 3 [ 표 34] -문재인... 7 [ 표 35] -박근혜 [ 표 36] -손규 [ 표 37] -안철수 [ 표 38] -정몽준 [ 표 3] 지난 1년간가정살림변화 [ 표 40] 지

2013_1_14_GM작물실용화사업단_소식지_내지_인쇄_앙코르130.indd

(012~031)223교과(교)2-1

041~084 ¹®È�Çö»óÀбâ

<B1DDC0B6B1E2B0FCB0FAC0CEC5CDB3DDB0B3C0CEC1A4BAB82E687770>

<5BC5EBB0E8C7A55D BFF920BFA9B7D0C1B6BBE75FC5EBB0E8C7A55FBCADBFEF2E687770>

2015년9월도서관웹용

조사연구 sampling error of polling sites and the additional error which comes from non-response, early voting and second stage sampling error of voters in

1. 조사설계 조사대상 2017 년 2 월현재, 전국만 19 세이상남녀 표본의크기 조사방법 1,021 명 ( 가중전 1,021 명, 가중후 1,000 명 ) - 가중치를 1,000 명기준으로부여했으나, 보도시표본크기는 1,021 명으로보도해야함. 구조화된설문지를이용한전

D-30의시정에서더민주당후보를선택한유권자중에서 80% 는실제로더민주당후보에게투표하였고, 11% 만이지지후보를바꾸어국민의당후보에게투표하였다. 반면국민의당후보를지지할의향이있었던유권자중에서는 63% 가국민의당후보에게투표하고 22% 는더민주당후보에게투표한것으로집계되었다. 투표

응답자분포표 전 체 (1527) 남 자 (756) 49.5 여 자 (771) 세 (281) 대 (314) 대 (336) 대 (288) 세이상 (308) 20.1 졸이

목 차 통계표요약... 1 응답자특성표... 4 표 1 이명박대통령국정수행평가... 5 표 2 18 대국회의정활동평가... 7 표 3 주요정당공천평가... 9 표 4 공천결과가후보선택에미친영향 표 5 19 대총선투표후보정당 표 6 민주통합당, 통합

2004-report hwp

기획 2012 년총선출구조사평가와개선방향 현경보 SBS 여론조사전문기자 연세대언론학박사 SBS 시사토론팀장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전문위원 한국방송대상특별상, 한국조사연구학회특별상수상 4 11 총선출구조사결과에대해말들이많다. 방송사출구조사또빗나갔다, 무려 70억원들여실시한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

hwp

<B3EDB9AEC0DBBCBAB9FD2E687770>

È޴ϵåA4±â¼Û

141018_m

춤추는시민을기록하다_최종본 웹용

<5BBAB8B0EDBCAD5D4D424320C3D1BCB1C1B6BBE75FBCADBFEF20B3EBBFF8B1B8BAB428BFC0C3A2C8F1292E687770>

º´¹«Ã»Ã¥-»ç³ªÀÌ·Î

( 단위 : 가수, %) 응답수,,-,,-,,-,,-,, 만원이상 무응답 평균 ( 만원 ) 자녀상태 < 유 자 녀 > 미 취 학 초 등 학 생 중 학 생 고 등 학 생 대 학 생 대 학 원 생 군 복 무 직 장 인 무 직 < 무 자 녀 >,,.,.,.,.,.,.,.,.

조사설계 조사대상 전국만 19 세이상남녀 조사규모 1,008 명 ( 주의 : 통계보정으로 1,000 표본으로분석하였으며, 보도시에는조사실사례수 1,008 명으로기재해야함 )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 3.1% Point 조사방법 유선전화면접 49.7% + 무선전화

조사설계 조사대상 전국만 19 세이상남녀 조사규모 1,514 명 ( 주의 : 통계보정으로 1,500 표본으로분석하였으며, 보도시에는조사실사례수 1,514 명으로기재해야함 )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 2.5% Point 조사방법 무선전화면접 79.1% + 유선전화

178È£pdf

CC hwp

<5BBAB8B0EDBCAD5D4D424320C3D1BCB1C1B6BBE75FBCADBFEF20BFEBBBEAB1B828BFC0C3A2C8F1292E687770>

목차 응 답 자 특 성 표... 1 표 1 차기대통령지지후보... 2 표 2 박근혜 vs 문재인... 6 표 3 박근혜 vs 안철수... 8 표 4 박근혜 vs 문재인 vs 안철수 표 5 가장경쟁력있는여권후보 표 6 가장경쟁력있는야권후보... 14

목차

03 ¸ñÂ÷


Ⅰ. 조사목적 본조사는전국민을대상으로대통령국정수행지지도, 정당지지도등을 파악하여, 국민여론을파악하는기초자료수집에그목적을둠. Ⅱ. 조사설계 조사대상 전국거주만 19세이상성인남녀 표본수 총 1,035 명조사후, 지역, 성, 연령별사후보정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최대허용

러한 변화는 조사방법상 문제가 많은 선거 여론조사 결과가 언론보도에서 사전 배제되는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제도적 개선 노력을 통해 과거보다 높은 품질의 조사가 이뤄졌지만, 여 전히 선거결과를 예측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부 분의 언론사와 조

5 291

4. 오성택.아파트 시세 등이 후보자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계량 분석( ).hwp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NO_11] 의과대학 소식지_OK(P)

197

선거기사심의위원회 관련 공직선거법 규정

....pdf..

선거기사심의위원회 관련 공직선거법 규정

2 Journal of Disaster Prevention

01¸é¼öÁ¤

한국갤럽 데일리정치지표

#7단원 1(252~269)교

_1.hwp

나하나로 5호



2003report hwp

기본소득문답2

Á¦190È£(0825).hwp

¾Æµ¿ÇÐ´ë º»¹®.hwp


목 차 통계표요약... 1 응답자특성표... 4 표 1 차기대통령후보지지도... 5 표 2 새누리당대통령후보지지도... 9 표 3 민주통합당대통령후보지지도 표 4 양자대결 1 : 박근혜 vs 안철수 표 5 양자대결 2 : 박근혜 vs 문재인...

0.筌≪럩??袁ⓓ?紐껋젾 筌

_¸ñÂ÷(02¿ù)

<C1B6BBE7BFACB1B82031B1C72032C8A BFACB1B8B3EDB9AE29202D20B7F9C1A6BAB92E687770>

<5BB0EDB3ADB5B55D B3E2B4EBBAF12DB0ED312D312DC1DFB0A32DC0B6C7D5B0FAC7D02D28312E BAF2B9F0B0FA20BFF8C0DAC0C720C7FCBCBA2D D3135B9AEC7D72E687770>

[ 조사개요 ] 구분 내용 모집단 전국에거주하는만 19 세이상성인남녀 표집틀 유무선전화 RDD 표집방법 지역별, 성별, 연령별기준비례할당추출 표본크기 2,000 명 ( 유선 551 명 (27.55%), 무선 1,449 명 (72.45%)) 표본오차 무작위추출을전제할경우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2ÀåÀÛ¾÷

목차

º»ÀÛ¾÷-1


한국갤럽조사연구소신간안내 제 18 대대통령선거투표행태 - 2 이책은크게 4부로구성되어있다. 1부에서는 18대대선예측결과를다룬다. 공식선거운동기간을중심으로지역별, 유권자특성별표심변화를보여주는데이터를면밀하게제시했다. 2부는선거당일투표자대상사후조사를통해실제투표에영향을미친요인

조사설계 조사대상 전국만 19 세이상남녀 조사규모 1,507 명 ( 주의 : 통계보정으로 1,500 표본으로분석하였으며, 보도시에는조사실사례수 1,507 명으로기재해야함 )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 2.5% Point 조사방법 무선전화면접 80% + 유선전화면접

<C3E6B3B2B1B3C0B C8A32DC5BEC0E7BFEB28C0DBB0D4292D332E706466>

조사연구 using odds ratio. The result of analysis for 58 election polls registered in National Election Survey Deliberation Commission revealed that progr

지방선거투표의향 문 1. 선생님께서는올해 6 월 13 일치러지는지방선거에서투표하실생각이십니까? 투표하지않으실생각이십니까? 1 반드시투표할것이다 (70.8%) 2 가능하면투표할것이다 (21.3%) 3 별로투표할생각이없다 ( 2.1%) 적극적투표의향 : 70.8 소극적투표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공직선거법 제108조 ( 여론조사의결과공표금지등 ) 3 다음각호의어느하나에해당하는자를제외하고는누구든지선거일전 180일부터선거일의투표마감시각까지선거에관하여정당에대한지지도나당선인을예상하게하는여론조사 ( 공표 보도를목적으로하지아니하는여론조사를포함한다 ) 를실시하려면중앙선거관

750 1,500 35

hwp

**09콘텐츠산업백서_1 2

Ä¡¿ì_44p °¡À» 89È£

제1장부산 18개선거구 ( 통합 ) 3 제2장중구 동구 8 제3장서구 13 제4장영도구 18 제5장부산진구 ( 갑 ) 23 제6장부산진구 ( 을 ) 28 제7장동래구 33 제8장남구 ( 갑 ) 38 제9장남구 ( 을 ) 43 제10장북구강서구 ( 갑 ) 48 제11장북

..1,2,3,

p529~802 Á¦5Àå-¼º¸í,Ç×ÀÇ

관훈저널106호봄_내지

Drucker Innovation_CEO과정

2저널(11월호).ok :36 PM 페이지25 DK 이 높을 뿐 아니라, 아이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물을 구하러 가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본 사업은 한국남동발전 다닐 정도로 식수난이 심각한 만큼 이를 돕기 위해 나선 것 이 타당성 검토(Fea

³»Áö_10-6

60

이슈브리핑

<B3EBC6AE3120BCB1B0C5B0B3C7A5B9E6BCDB5FB9DAC1F8BFEC2E687770>

764È£ 1~16¸é

CC hwp

hwp

Transcription:

조사동향 선거여론조사의 역사와 의의 박무익 1) Ⅰ. 머리말 선거여론조사의 시원( 始 原 )은 19세기 초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통계기법을 거의 적용하지 않은 채 지상투표식( 紙 上 投 票 式 straw poll) 선거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지상투표식 여론조사는 그 후 1 세기 이상을 지속한 끝에 1936년에 비로소 막을 내리게 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미국의 시사 잡지 리터러리 다이제스트(Literary Digest)는 1920년부터 지상투표 식 선거여론조사를 실시해 왔다.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와 갤럽여론조사소, 엘모 로퍼(Elmo Roper), 아치볼드 크로스리(Archibald Crossley) 조사기관들과의 선거예측 경쟁은 종래 의 지상투표식 선거여론조사의 종말을 고하는 사건이 되었다. 이전까지 시행된 선거여론조사는 단지 당 선자를 예측할 뿐 오차의 개념이나 표본추출의 개념이 거의 없다시피 했었다. 1936년 당시 리터러리 다이제스트 社 는 전화가입자와 자동차 소유자들 중 1000만 명에게 우편엽서를 발송, 236만 7230장을 회수하는 종래의 지상투표식 조사방법을 사용했다. 반면, 갤럽여론조사소 등은 전 국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할당추출법(quota sampling)을 적용, 1500명의 표본을 추출하고 이들을 대상으 로 면접 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갤럽여론조사소측의 대승이었다. 리터러리 다이제스트 社 는 당선자 예 측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무려 19% 이상이나 틀려 여론조사 사상 최대 오차를 기록한 반면, 갤럽은 6.8%로 당선자를 예측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한국갤럽조사연구소편, 2002). 이로써 통계학에서만 머물 던 표본추출방법이 세상으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오늘날 선거여론조사의 기법은 이때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선거여론조사는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처음 시도되었다. 이후 2002년 2월 현재 까지 15년 동안 세 번의 대통령 선거와 두 번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및 두 번의 국회의원 선거(15대 및 16대) 등 총 7회의 선거예측조사가 시행된 바 있다(13, 14대 총선은 공식 선거예측조사가 행해지지 않았다). 선거여론조사의 역사가 1백50년을 넘어선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에 비하면 한국의 선거여론조사 15 년은 일천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몇 몇 조사기관들은 다양하고 대범한 시도를 통해 선거여론조사 방법과 이론을 한국적 특성에 맞게 혁신시키면서 선거 예측률을 높여왔다. 특히 1997년 12월18일에 치러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이하 한국갤럽)의 예측은 당선자의 경 우 0.4%의 오차를, 2위는 0.2%, 3위는 0.5%의 오차로 순위까지 적중시켜 세계 선거예측사상 완벽한 예 측률을 기록하여 통계학의 예술 을 보여주기도 했다. 선진국에 비해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갤럽을 포함한 일련의 조사기관들이 시도한 선거여론조 사와 예측은 한국 선거문화에 과학성과 합리성을 불어넣으면서 선거문화의 질적 향상을 유도해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 한국갤럽조사연구소장 - 1 -

이 기간동안 한국의 선거여론조사는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 발전했다. 제1기는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및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와 1995년 제1회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치러진 8년의 기간으로, 선 거여론조사 및 선거예측이 한국갤럽에 의해 거의 주도된 시기이다. 세 번의 선거 중 제14대 대선과 제1 회 지방선거의 경우 SBS측이 어느 조사회사와 선거여론조사를 했으나 예측 결과가 크게 주목받지 못 한 채 세인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경우도 있긴 했다. 선거여론조사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이 시기는 다행히도 MBC의 후원을 받은 한국갤럽의 예측이 정확하게 들어맞아 여론조사에 익숙하지 않았던 대중 들의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었던 기간이었다. 제2기는 한국갤럽을 포함한 국내 다수의 여론조사기관들이 선거여론조사에 공동 참여하여 이른바 선 거예측 경쟁시대가 펼쳐진 시기이다. 이 기간 중 1996년 제15대 총선,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1998 년 제2회 지방선거 및 2000년 제16대 총선이 치러졌으며 국내 대표적인 여론조사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선거여론조사와 예측을 시도했다. 특히 253개 지역구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던 15대 총선에 여론조 사기관들이 참여하여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했던 과정은 한국 여론조사의 역사에 시금석으로 기록될 만 하다. 이처럼 선거여론조사의 회수가 거듭됨에 따라 공식선거운동기간 중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한 구시 대적 헌법에 대해 여론조사기관과 선거보도를 수행하는 언론사 및 일부 후보진영에서 위헌제소를 헌법 재판소에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 15년 간을 돌이켜 보면 선거여론조사의 본고장인 서구 선진국가나 민주정치가 선진화되었다는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는 선거여론조사가 정확하게 이루어지기에는 대단히 어려운 환경이었음을 고백하 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오랜 기간 독재정치에 영향을 받은 많은 유권자들이 자신의 솔직한 정치적 태도 를 표현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이로써 신뢰할 수 없는 응답이 많았으며 무응답층도 서구 보다 3~ 5배나 많은 실정이었다. 앞서 언급된 선거운동기간 중 여론조사공표 금지조항도 여론조사의 발전을 저 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이유로 외국에서는 그다지 활용되지 않는 각종 추정 기 법들이 국내에서는 연구대상이 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조사기관들은 선거여론조사야 말로 대표적인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이랄 수 있는 선거제도에 봉사하는 공적 서비스 업무라는 나름의 시대적 소명을 지키려 애써왔다. 한국의 선거 여론조사의 역사란 이 같은 소명의식을 간직한 채 고군분투해 온 15년의 역사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 다. 본고에서는 지난 15년 동안 7차례에 걸쳐 시행된 선거여론조사의 경과를 살펴보고, 선거여론조사의 의의를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Ⅱ. 선거여론조사 약사( 略 史 ) 1. 태동기 -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1995년 제1회 지자체 선거까지 1)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한국 최초의 선거여론조사는 1 盧 3 金 의 대결로 유명한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본격적으로 이 루어 졌다. 1987년은 군부의 권위주의 정치문화에 대한 시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5공 정부가 정치적 자 유를 보장하고 자유선거를 실시한다는 6 29 선언이 발표된 해였다. 1971년 제7대 대선 이후 유신헌법 이 제정되면서 사실상 폐지됐던 국민투표가 16년 만에 부활되어 여야 후보는 물론 국민들의 관심도 어 느 선거 때보다 높았다. 이러한 열기를 반영하듯 선거운동기간 중에는 각종 사회단체, 학계, 정당 및 언론사 여론조사팀이 제 각각의 방식으로 선거여론조사를 시도했다. 심지어 대기업이나 대학교 총학생회가 주도하는 모의투표식 여론조사도 유행했다. 정당의 경우, 여당인 민정당은 선거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선거 전략팀을 운영했으 - 2 -

며 야당 측도 자체적인 선거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언론들도 여론조사 방식을 빌려 후보 지지도와 당선 예측 기사를 내보내기도 하여 여론조사 없이 선거예측 없다 는 인식이 생겨날 정도였다. 그러나 선거예측을 발표한 조사기관은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유일했다. 한국갤럽은 투표 5일전부터 2 일전까지(12월 12~14일) 전국의 유권자 2,234명을 면접조사한 뒤 예상 득표율을 산출하여 1987년 12월 16일 오후 6시 투표 종료와 함께 각 언론사에 공개했다. 그 결과는 약 12시간 후에 밝혀진 실제 득표율 은 표본오차 이내에서 적중했다. <표 1> 1987년 13대 대선 예측과 실제 비교 (%) 후보자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기타 실제 결과 36.6 28.0 27.1 8.1 0.2 갤럽 예측 34.4 28.7 28.0 8.4 0.5 오 차 2.2-0.7-0.9-0.3-0.3 출처: 한국갤럽조사연구소편(2000b) 그러나 여론조사에 대한 인식과 신뢰가 낮았던 우리나라 언론계에서는 예측 발표 당일에 이 사건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일본의 NHK(선거당일 오후 7시 뉴스 보도)를 비롯하여 외국 방송사와 통신사가 이를 전 세계에 보도했다. 외국신문으로는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노태우씨 당선 확실시 라는 제목으로 17일자 조간에 보도하는 등 센세이셔널 하게 다루어졌으나 국내 언론에서는 일부 언론에서 아 주 미미하게 다루어졌으며 KBS 9시 뉴스에서는 이런 선거예측도 있었다 는 투의 단신보도로 그쳤을 뿐 이었다. 그러나 국내 최초로 조사기관의 선거예측이 성공함에 따라 정당과 언론은 점차 여론조사와 선거와의 함수관계를 의식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갤럽은 이때, 두 가지 점에서 한국 선거여론조사의 방법론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첫째는 질문방식의 토착화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1987년 당시엔 대다수 유권자들이 오랜 권위주의 독 재정치에 압도된 채 살아와 자신의 투표행동을 정직하게 표현하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미국 등 정치민주화가 앞선 국가에서 사용하던 선거여론조사용 질문인 직문직 답( 直 門 直 答 )형식으로는 한국의 유권자들로부터 솔직한 응답을 받아내기 어려웠다. 당시 필자는 이 점을 극복하기 위해 완곡하게 우회하여 묻는 질문방식을 개발하여 조사에 활용함으로써 응답자의 투표성향 예측률을 높이는 데 일조를 기했다. 다른 한 가지는 판별분석 기법의 도입이었다. 현재 NI코리아 대표이사 이흥철은 당시 한국갤럽 선거 조사 팀장으로서 판별분석을 이용한 예측 모형들을 만들어 이를 토대로 선거예측을 시도한 바 있었다. 그 결과 한국갤럽은 당선자 기준 2.2 %의 오차로써 한국 최초로 대통령 선거예측에 성공하게 되었다(한 국갤럽조사연구소편, 1996). 이후 1988년의 제13대 총선과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는 방송사들이 선거예측을 활용하지 않았다. 가 장 큰 이유로는 250 여개나 되는 지역구의 광대함과 거기에 비례하는 조사예산의 막대함에 견줄 만큼 선거여론조사의 필요성을 그만큼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원자가 될 언론사나 방송사도 국 회의원 선거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만한 관심을 갖지 않고 있을 때였다. 아마도 이 무렵까지는 선 거예측 조사를 대통령선거에 국한된 특별한 여론조사 라는 인식도 한 몫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2)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 3 -

1992년 제14대 대선에서는 이전 대선과는 달리 선거운동 과정에서부터 선거여론조사가 자주 활용되기 시작했으며 방송사들도 여론조사에 관심을 가져 선거보도 및 개표방송에 사용할 여론조사를 정식으로 의뢰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때도 시청자들은 선거종료와 동시에 선거 예측치를 접하지는 못했다. 선거과정에서의 여론 조사는 활성화되었으나 여론조사 결과의 발표는 선거법상 공식선거기간 돌입시점부터 선거 당일 밤 12 시까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선거 당일( 92년 12월 18일) 오후 6시, 필자는 MBC-TV(문화방송)에 출연하여 한국갤럽은 문화방송의 의뢰로 투표 3일전 전국의 유권자 2,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오늘의 개표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에 관한 예측자료를 이 책상 위에 놓아두었습니 다 라고 알렸다. 문화방송측은 선거법의 발표시한 규제 때문에 부득이 자정에 이 결과를 발표할 수밖에 없다 는 점에 대해 시청자들의 양해를 구했다. 이 방송 직후 시청자들의 전화항의가 방송사로 빗발쳤다. 문화방송측은 김영삼 후보의 당선이 거의 확정된 시점인 자정이 지나서야 한국갤럽의 선거예측 결과를 발표했다. 이로써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깔끔한 선거예측과는 거리가 먼 씁쓸한 맛을 시청자에게 안겨 주었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개표가 1%라도 진행된 상황에서 발표하는 선거예측은 선거예측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국적으로 1%라도 개표된 상황에서 지역별로 분석하면 선거 예상치를 추정할 수 있기 때문 이다. 어떤 조사회사는 개표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우리도 조사 예측을 발표했다 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하간 오후 5시에 문화방송에 제출된 한국갤럽의 제14대 선거예측은 당선자 기준 2.5%의 오차로서 순위까지 모두 맞추었다. 한 조사회사의 두 번에 걸친 대통령 선거 예측 적중은 우리 국민의 여론조사 에 대한 정확성과 신뢰도를 크게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당시 SBS도 한 조사기관과 선거예측방송을 내보냈으나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으로 기억한다). <표 2> 1992년 14대 대선 예측과 실제 비교 (%) 후보자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 박찬종 기타 실제 결과 42.0 33.8 16.3 6.4 1.5 갤럽 예측 39.5 31.1 15.7 12.4 1.2 오 차 2.5 2.7 0.6-6.0 0.3 출처: 한국갤럽조사연구소편(2000b) 3) 1995년 제1회 지방 선거 제1회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치러졌던 1995년 6월27일은 한국 조사 역사에 기록될만한 날이었다. 한국갤럽에 선거여론조사를 의뢰했던 MBC TV는 선거법을 무시하고 이날 오후 6시, 투표종료와 동시에 각 후보의 예상 득표율을 발표한 것이다. 이로써 일반인들은 선거여론조사와 선거예측방송을 동격( 同 格 ) 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MBC측의 시도는 선진국처럼 우리나라도 개표방송에서 선거여론조사를 본격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 준 계기가 되었으며 동시에 선거여론조사를 통한 예측결과가 시청자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실제 투표수 와 비교할 수 있게 됨으로써 조사회사의 능력도 투명하게 공개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에 비하면 1992년 제14대 대선 때는 개표가 종반을 치다를 즈음인 자정을 넘기고서야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어 엄밀한 의미에서 선거예측 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날 MBC측은 선거법을 무시한 방송진행이란 부담과 예측자료 누설에 대한 우려 때문에 개표방송 - 4 -

앵커(엄기영, 정동영)들에게 조차 방송 1시간 전에 선거예측방송 계획이 실린 진행표(큐시트)를 전해주 었다고 한다. 이 무렵 MBC의 19개 지방 계열사들도 개표방송 시작 직후에 서울본사가 어떤 내용을 방 송할지 전혀 모르고 있었을 정도로 선거예측방송은 극비리에 추진되었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은 과거 개표방송의 관례대로 지역별 투표율과 개표를 준비하고 있는 개표장 스케치 화면 등을 예상했다가 화면 에 당선예상자의 얼굴과 함께 예상 득표치까지 제시되자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는 반응들 이었다고 한다. 개표방송이 진행되는 가운데 15개 광역단체장 선거 결과(민자당 5, 민주당 4, 자민련 4, 무소속 2)가 선거여론조사의 예측과 일치해 가자 여론조사의 정확성에 시청자들은 다시 한번 놀라워했다. 당시 한국 갤럽이 95년 지방선거 예측을 위해 실시한 조사는 이전의 대선 예측(선거 2~6일전 면접조사)과는 달리 투표를 마친 투표자(지역별 500~1,200명)들에게 전화로 조사가 진행한 점이 특징이었다. MBC가 투표 종료와 동시에 선거예측조사결과를 발표하자 경쟁 방송사의 항의가 뒤따랐고 중앙선거 관리위원회에서는 투표자 조사 행위가 공식 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이라는 경고가 있었다. 그러나 MBC측은 선거결과의 신속하고 정확한 전달을 원하는 유권자들의 바램이 MBC에게 우선적으로 고려되 었다고 말했다. 전화조사가 최초로 시도된 탓인지 일부 언론에서는 출구조사(Exit Poll)라고 誤 報 하기도 했다(SBS-TV도 선거예측을 내보냈으나 한 지역에서 당선자가 틀려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라졌 다). 개표가 끝난 뒤 당선자를 모두 적중시킨 MBC는 개표방송이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했다 는 찬사를 받았으며 그동안 금지되어 논란이 되었던 출구조사 및 선거예측방송 허용 등 선거 과정을 투 명하게 해 줄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논의를 촉발시킨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 95 지방선거 여론조사는 전국에서 단 한 명의 당선자를 예측하는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와는 달 리 15개 광역시를 대상으로 15명의 당선자를 동시에 예측해 내는 새로운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 다. 이 선거예측에서 한국갤럽의 예측 적중은 다수의 선거구에서 다수의 당선자를 동시에 예측해 내는 선거조사기법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 젖혔다. 그 결과 이듬해에 치러질 전국 257개 지역구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부터 총선 여론조사 가 실시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셈이었다. - 5 -

<표 3> 1995년 지방선거 예측과 실제비교 지 역 후보 실제 결과 갤럽 예측 정원식 (민자) 20.7 24.0 서 울 조 순 (민주) 42.3 39.4 박찬종 ( 무 ) 33.6 34.4 문정수 (민자) 51.4 58.8 부 산 노무현 (민주) 37.6 35.0 김현옥 ( 무 ) 9.8 4.0 배상한 ( 무 ) 1.2 2.2 조해령 (민자) 16.9 18.4 이의익 (자민) 22.1 19.4 대 구 문희갑 ( 무 ) 36.8 40.9 이해봉 ( 무 ) 21.4 19.9 안유호 ( 무 ) 2.8 1.4 최기선 (민자) 40.8 48.5 인 천 신용석 (민주) 31.7 26.5 강우혁 (자민) 27.4 25.0 광 주 김동환 (민자) 10.3 8.8 송언종 (민주) 89.7 91.2 염홍철 (민자) 20.9 31.1 대 전 변평섭 (민주) 10.9 8.4 홍선기 (자민) 63.7 58.6 이대형 ( 무 ) 4.5 1.9 이인제 (민자) 40.4 50.2 경 기 장경우 (민주) 29.6 25.8 김문원 (자민) 10.2 9.2 임사빈 ( 무 ) 19.8 14.7 강 원 이상룡 (민자) 34.2 39.3 최각규 (자민) 65.8 60.7 김덕영 (민자) 23.3 29.9 충 북 이용희 (민주) 24.5 22.2 주병덕 (자민) 36.4 36.2 기타 후보 15.8 11.6 박중배 (민자) 19.2 23.2 충 남 조중연 (민주) 12.9 13.2 심대평 (자민) 67.9 63.6 전 북 강현욱 (민자) 32.9 33.1 유종근 (민주) 67.1 66.9 전 남 전석홍 (민자) 26.5 23.9 허경만 (민주) 73.5 76.1 이의근 (민자) 37.9 48.2 경 북 박준홍 (민주) 27.7 20.6 이판석 ( 무 ) 34.4 31.3 경 남 김혁규 (민자) 64.0 68.7 김용균 (자민) 36.0 31.3 우근민 (민자) 32.5 36.9 제 주 강보성 (민주) 24.3 15.3 신구범 ( 무 ) 40.6 46.9 신두완 ( 무 ) 2.6 0.8 (민자)민자당, (민주)-민주당, (자민)-자민련, (무)-무소속. 후보 란의 굵은 글씨체는 당선자 출처 : 한국갤럽조사연구소편(1997b) (%) - 6 -

2. 제2기 - 경쟁적 선거여론조사기 1995년 지자체 선거 당시 MBC 개표방송의 영향을 받아 1996년 4월11일에 치러질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는 방송 3사(KBS, MBC, SBS) 모두가 개표방송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로써 한국의 선거여론조사 는 종래 한국갤럽의 독무대에서 벗어나 다수 조사회사가 참여하는 경쟁 구조로 바뀌었다. 이 같은 양상 은 조사에 대한 인식과 조사 수준의 향상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모습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소수의 입후보자가 출마하는 대선이나 지자체와 달리 전국 253개 지역구(16대의 경우 227개) 의 1천여 명에 달하는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예측 조사를 실시해야 하는 국회의원 선거는 그렇게 쉽사리 조사회사들에게 승리를 안겨주지 않았다. 제2기에 들어선 한국의 조사회사들은 나름의 성취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조사인에게 선거예측을 공표하는 날은 전국민 앞에서 벌거숭이가 되는 날 이라고 여론조사의 아버지 조지 갤럽(George Gallup, 2002)은 말한 바 있다. 실제로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작은 한국의 조사 개척자들은 이런 모험을 거 치면서 수모와 영광 사이를 오가곤 했다. 1)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제1회 지방선거 후 채 10개월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치러진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는 총선으 로서 여론조사가 최초로 실시된 선거였으며, 동시에 여러 조사기관들이 공동으로 선거여론조사를 실시 했다는 점에서도 최초였다. 당시 KBS, MBC, SBS 방송 3사가 전례 없이 여론조사를 공동으로 기획 실시해 발표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여론조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선거여론조사가 공동으로 실시된 배경에는 253개나 되는 선거지역구 로 인해 과중한 조사 경비문제와 조사지역의 광대함이란 현실적 여건이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하 간 방송 3사의 선거방송 담당자와 자문 교수팀으로 이루어진 선거방송을 위한 여론조사 담당팀 이 구성 되고 질문지의 작성 등 기본지침 등은 여기서 작성되었다. 조사는 동서리서치, 미디어리서치, 월드리서치, 한국갤럽, 코리아리서치 등 5개 조사회사가 나누어 맡 았다. 각 조사회사가 담당키로 한 선거구의 배분은 253개 지역구의 예측 난이도를 고려하여 50 여 개씩 나누어졌다. 예컨대 영호남 지역과 충청지역처럼 비교적 당락을 예측하기 쉬운 지역과 서울 등 당락 예 측이 어려운 지역을 각 조사기관에 공평하게 배분하는 식이었다(한국갤업조사연구소편, 1997a). 조사 방법은 한국갤럽이 1995년 지방선거예측에서 사용했던 전화여론조사 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1996년 4월11일 오후 6시, 투표 마감과 동시에 각 방송사는 5개 조사회사에서 제공한 선거 예측을 발표 했다. 그런데 각 방송사들은 경쟁을 의식한 때문인지 조사회사들로부터 전달받은 조사결과에 0.1 % 라 도 앞선 후보들을 모두 당선 예상자 로 분류했다. 그리고 이 수치를 기준으로 추산한 각 정당의 예상 의석수를 확정적인 것처럼 보도했다. 심지어 일부 방송사에서는 박빙지역에서 우세 로 나타난 후보자를 당선 확정자 로 간주하고 인터뷰를 곁들이기도 했고, 여당 압승, 신한국당 175석 예상 이란 헤드라인을 크게 내 보내기도 했다. 즉 표본조사가 갖고 있는 표본오차 ± 4% 라는 개념을 무시한 여론조사 보도가 진행되었다. 개표가 진행될수록 예측조사에서 1위로 나타난 후보들이 고전하는 지역은 늘어만 갔으며 1 2위가 바 뀌는 지역도 나타났다. 개표가 끝난 다음 제15대 총선에서 당선자 예측 성공률은 한국갤럽, 미디어리서 치, 코리아리서치와 월드리서치, 동서리서치 순으로 나타났다. 5개 조사회사들은 전체 253개 지역구 중 작게는 2개 지역구에서 많게는 12개 지역구까지 총 39개 지역구에서 당선 예측에 실패했다. 사후평가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예측 실패한 39개 지역구 중 후보자의 소속 정당별로는 당시 여 당인 신한국당 후보들이 36곳으로 가장 많아 조사회사들의 예측조사가 전반적으로 여당 후보들을 과대 - 7 -

평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이변을 잡아내지 못한 미숙한 조사는 조사회사의 책임이고, 조사 결과 가 0.1 % 라도 앞서면 당선자 반열에 올린 방송사의 섣부른 보도방식에도 큰 책임이 있다고 지적되었 다. 결과적으로 1996년 제15대 총선 선거 개표방송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온 생선과도 같았다. 그러나 본질적인 한계도 있었다. 총선의 경우 모집단인 지역구가 대선처럼 전국 규모가 아닌 작은 지 역사회로서 규모가 작았다. 모집단이 작으면 선거 막판의 돌발 변수로 인해 선두가 바뀔 확률이 매우 높다. 각 지역구별 모집단의 평균 규모는 약 15만 명에 불과했으므로 작은 소문이나 사건만으로도 1위 와 2위의 순서가 뒤바뀔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특히 표본오차 이내에서 승부가 갈라질 박빙 지역이 많 았음에도 불구하고 샘플 사이즈는 조사 경비문제로 500명 규모에 국한되어 표본오차의 범위는 더욱 늘 어나 버린 점등은 총선 여론조사가 내포하고 있는 본질적인 한계들이었다. 결과적으로 제15대 총선 선거여론조사는 언론들로부터 뭇매를 맞으며 막을 내려야 했다. 이는 10개월 전 지방선거의 정확한 당선자 예측으로 쌓은 여론조사의 신뢰를 크게 훼손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당 시 한국갤럽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론조사 신뢰도가 1995년에는 77.9% 이었으나 1997년 국회의원 선 거가 끝난 다음에는 38.7%로 급강하했던 조사결과가 이를 잘 말해준다고 할 것이다(한국갤업조사연구소 편, 1997a). 2)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는 선거여론조사가 선거판세에 영향을 줄만큼 역대 대선 기간 중 가장 많 은 여론조사가 실시된 선거였다. 또한 대선 관련 선거 예측이 처음으로 투표 종료와 동시에 방송을 타 기도 했던 선거였다. 이 해엔 가히 대선의 해 라고 할 만큼 신문들은 연초부터 대선 출마 예상자들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싣기 시작했다. 심지어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의 후보 경선과 관련한 지역 대의원들의 후보 선호 도조차 여론조사로 파악되었고, 그 조사결과는 대의원의 지역 연설회가 열린 다음날 조간신문에 실리기 도 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16대 대선을 앞둔 2002년 초 현재, 여당인 민주당 후보 경선 보도에서도 유 사하게 나타나고 있어 향후 우리나라 선거여론조사는 언론보도와 밀접한 관계 하에 진행될 것으로 보인 다. 15대 대선에서 여론조사가 선거판세에 영향을 끼친 사례로는 신한국당 경선에서 떨어진 이인제 전 경 기지사가 여당후보로 결정된 이회창씨보다 상대적으로 높게 나온 여론조사 인기도를 명분 으로 내세우 며 경선 불복 이라는 멍에에도 불구하고 신한국당을 탈당해 대선 출마를 선언한 사건을 들 수 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조순 후보를 내세운 민주당의 경우를 들 수 있다. 민주당은 조순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으로 조사되자 신한국당과의 합당을 결정했던 것이다. 이인제 후보와 조순 후보 등이 선거 운동과정에서 합리적 전략 변경을 하게 된 배경에는 선거여론조사의 결과가 크게 작용한 것이었으며, 종래의 우격다짐이나 지역감정 자극 등 원색적인 대결문화가 사라져 감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들은 선 거 후 결과에 대해서도 역대 대선 패배자들이 즐겨 사용한 부정선거 라는 불복사유를 대지 않고 깨끗하 게 결과에 승복함으로써 여론조사가 선거문화의 선진화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된 것으로 평가되었다. 선거운동과정에서 각 정당의 출마 후보들이 결정되자 여론조사는 선거 보도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 게 되었다. 15대 대선과 관련된 여론조사는 공식선거운동기간 전까지 방송 3사와 중앙일간지는 물론 지 방 언론사들까지 조사회사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를 쉬지 않고 발표해 유권자들은 거의 한 주일에 한 번 이상 각 후보자들의 지지도를 포함한 여론조사 결과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거여론조사의 홍수는 공식선거기관 돌입과 함께 끝을 맺었다. 선거법이 여전히 공식 선거기간 중 여론조사의 공표를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11월 26일 이후 선 거일까지 20여 일간 대선 판세를 가름할 수 없었던 유권자들이 다시 여론조사 결과를 접한 것은 선거가 - 8 -

종료된 1997년 12월 18일 오후 6시 한국갤럽의 후보별 득표 예상치(투표 당일 전국의 유권자 2,500명 대 상 전화조사)를 발표한 MBC의 대선 개표방송을 통해서였다. 한국 대선 개표방송 역사상 최초로 선거예측이 선거 종료와 동시에 발표된 것이다. 당시 방송 3사는 선거 수일 전부터 선거 종료와 함께 각 후보의 예상 득표율을 발표하겠다는 예고를 여러 차례 냈으나 시청자와의 약속을 지킨 것은 MBC 뿐이었다. 타 방송사들은 개표 방송을 위해 조사를 실시했으나 두 후보(국민회의 김대중, 한나라당 이회창)가 박빙의 혼전을 펼치고 있어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 며 발표를 연기한다고 했다. MBC가 발표한 한국갤럽의 선거 예측은 김대중 39.9%, 이회창 38.9%, 이인제 19.7%로 1 2위 후보의 격차가 1 % 포인트에 불과했다. 한국갤럽의 예상득표율과 실제 선거결과는 당선자인 경우 0.4 %의 오 차를, 2위는 0.2 %, 3위는 0.5 %의 오차로 순위까지 적중했다. 이 기록은 한국갤럽이 행한 역대 대통령선거 예측 중 가장 정확한 것이며 CNN, NHK, Fuji-TV를 비 롯하여 세계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AFP 통신은 'South Korea Vote: Result too close to Call - Poll' 라고 보도했으며 한국의 조사수준이 세계 정상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한국의 조사수준을 세계에 알린 선거예측이란 평가가 많았다(한국갤업조사연구소편, 1998). <표 4> 1997년 15대 대선 예측과 실제 비교 후보자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기타 실제 결과 40.3 38.7 19.2 1.8 갤럽 예측 39.9 38.9 19.7 1.5 오 차 0.4-0.2-0.5 0.3 출처 : 한국갤럽조사연구소편(1998) (%) 3) 1998년 제2회 지방 선거 1998년 지방선거는 우리나라 선거 방송 사상 처음으로 3개 TV방송사가 모두 선거 종료와 동시에 선 거예측을 발표한 기록을 남겼다. MBC는 한국갤럽, KBS와 SBS는 미디어 리서치와 코리아리서치가 공 동으로 행한 예측을 발표했다. 한국갤럽의 경우 국민회의 6개, 한나라당 6개, 자민련 4개, 무소속 1개 지역에서 당선될 것으로 보았 으나, 실제 결과는 부산에서 무소속 대신에 한나라당의 안상영 후보가 간발의 차이로 당선됨으로써 14 개 중 13개 지역은 당선자를 맞추었으나 1개 지역에서 예측이 빗나갔다. 여하간 <표>에서 보는바와 같이 MBC-한국갤럽의 예측치는 당선자기준으로 3.5 % 포인트 오차를 나 타냈고 표본오차 범위를 벗어난 지역은 5개였다. 한편, KBS, SBS-미디어 리서치와 코리아리서치의 예 측치는 당선자 기준에서 4.2 % 포인트 오차를 나타냈고 표본오차 범위를 벗어난 지역은 8개였다. 개표가 끝난 다음 어떤 신문에서는 이번엔 여론조사가 틀렸다 라고 조롱하는 투의 기사도 있었다. 이 런 보도 태도는 6개월 전에 있었던 97년 대통령 선거 예측에서 0.4%의 오차만을 보였던 여론조사의 정 확성에 대해 기대수준이 높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거 예측에 대한 언론의 이해가 부족한 것에도 기 인했다. 한국갤럽의 예측으로는 부산에서 안상영 후보가 43.7 % 이었으나 실제득표는 45.1 %로 차이는 -1.4 % 였으며, 이는 표본오차 ±3.4 % 범위 내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당락 적중여부에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부 신문에서는 선거예측의 정확성을 따질 때 당선자와 몇 %의 오차를 보였는 - 9 -

지를 기준으로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1위와 2위와의 간격을 클로즈업하여 오차가 15%나 되었다는 투로 기사를 써서 여론조사 불신 쪽으로 유도하는 듯한 보도 태도를 보였다(한국갤럽조사연구소편, 1999b). 이런 언론의 여론조사에 대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1998년 6월 30일 전국 1,500명 대상 조사에서 일반 국민들은 지방선거의 선거여론조사에 대해 82%가 믿을 만 했다고 응답했다(한국갤럽조사연구소편, 1999b). - 10 -

(%) 지역 후보 실제 결과 MBC KBS/SBS 최병렬 (한) 44.0 37.3 39.2 서 울 고 건 (국) 53.4 64.1 58.5 이병호 (무) 2.6 1.6 2.3 안상영 (한) 45.1 43.7 43.4 부 산 하일민 (국) 11.4 8.4 10.7 김기재 (무) 43.5 47.9 45.9 문희갑 (한) 72.0 75.3 79.4 대 구 이의익 (자) 20.7 16.1 15.8 유성환 (신) 7.3 8.6 4.8 안상수 (한) 34.0 32.1 32.1 인 천 최기선 (자) 53.4 59.0 58.7 김용모 (신) 12.5 8.9 9.2 광 주 고재유 (국) 67.2 62.4 72.2 이승채 (무) 32.8 37.6 27.8 홍선기 (자) 73.7 78.0 74.5 대 전 송천영 (신) 18.1 14.5 19.3 조명현 (무) 8.2 7.5 6.2 심완구 (한) 42.7 47.5 44.5 울 산 차화준 (자) 7.9 7.3 7.5 강정호 (신) 9.9 8.3 8.0 송철호 (무) 39.4 36.8 40.0 경 기 손학규 (한) 45.7 42.4 42.6 임창열 (국) 54.3 57.6 57.4 김진선 (한) 39.3 39.9 40.1 강 원 한호선 (자) 33.8 34.0 33.9 이상룡 (무) 26.9 26.1 26.0 충 북 주병덕 (한) 25.8 33.6 30.8 이원종 (자) 74.2 66.4 69.2 충 남 한청수 (한) 15.4 15.8 8.6 심대평 (자) 84.6 84.2 91.4 경 북 이의근 (한) 72.0 74.6 78.0 이판석 (자) 28.0 25.4 22.0 김혁규 (한) 74.7 74.3 73.8 경 남 강신화 (국) 12.9 12.9 13.6 허문도 (무) 12.5 12.8 12.6 현임종 (한) 16.5 17.0 10.3 제주 우근민(국) 52.8 51.4 61.6 신구범(무) 30.8 31.5 28.1 당선자 기준 평균 오차 3.5 4.2 전북과 전남은 단독 후보 출마로 예측하지 않음. 후보 란의 굵은 글씨체는 당선자 (국)-국민회의, (한)-한나라당, (자)-자민련, (신)-국민신당, (무)-무소속 후보 출처 : 한국갤럽조사연구소(1999b) <표 5> 98년 지방선거 예측과 실제비교 4) 2000년 제16대 총선 2000년 4월13일 실시된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는 국회의원 선거예측이 두 번째 실시되는 선거였다. MBC는 한국갤럽과 단독으로, KBS와 SBS는 4개 조사회사(미디어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 - 11 -

TN소프레스)와 공동으로 진행되었다. MBC-한국갤럽은 단독으로 227개 지역구 전체를 조사대상으로 삼아 민주당 107석, 한나라당 100석을, KBS/SBS와 4개 조사회사는 민주당 112석, 한나라당 95석을 예상하여 모두 민주당이 제1당을 차지할 것으로 보도했다(한국갤럽조사연구소편, 2000a). 그러나 개표가 자정을 지나 다음날로 넘어가고 새로운 투표함이 열릴 때마다 1, 2 위가 100표 미만으 로 엎치락뒤치락하는 접전지역은 줄어들지 않은 가운데 개표는 당초 선거예측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갔다. 결국 표본오차 이내인 1,000표 미만의 표 차로 당락이 엇갈린 15개 지역 중 13개 지역에서 한나라 당이 당선되고 1개 지역만이 민주당이 당선된 비확률적 결과인 극단적인 현상(Outlier)이 발생했다. 제16대 총선은 조사회사측의 예측 실패 지역구와 방송사들의 추정오차를 고려않은 단정 보도가 맞물 려 전체 예측 실패 지역구는 가중되어 버렸다. 방송사들은 총선 이틀 뒤인 15일 밤 뉴스시간을 통해 개표방송 당시 투표자 합동조사 가 정확하지 못해 혼란을 야기한 점에 대해 사과한다 는 요지의 공동 사과문을 방송했다. 또 방송위원회는 27일 방송사에 대해 중징계 조치인 시청자에 대한 사과 와 제작책 임자에 대한 징계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15대 총선에 이어 16대에도 여론조사기관들의 조사가 빗나간 데 대해 전국 곳곳에서 후보 간 박빙의 승부가 벌어지고 일부 응답자들이 여론조사에 응하면서 여당에 유리한 답변을 했을 가능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96년 총선 당시 가장 많은 오차를 낸 방송사측은 투표소 500m바깥의 출구조사 대신 전화여론 조사에 주로 의존해 예측이 크게 빗나갔다고 해명했으나, 이번에는 투표소 300m 바깥에서 출구조사를 실시했음에도 적지 않은 차이가 나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하기도 했다(한국갤럽조사연구소편, 2000a). <표 6> 조사결과 1%p라도 앞서고 있는 지역 개표결과 MBC 출구조사 KBS SBS 출구조사 한나라당 112 100 95 민 주 당 96 107 112 자 민 련 12 12 12 민 국 당 1 2 1 한국신당 1 1 1 민 노 당 0 2 5 무 소 속 5 4 출처 : 한국갤럽조사연구소편(2000a) 제16대 총선이 끝난 뒤 사후조사를 실시했던 한국갤럽은 제16대 국회의원선거 투표행태 란 책에서 총 선 선거여론조사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첫째, 표본크기와 추정오차에 관한 것이다. 조사의 정확성은 돈과 시간이 관건이다. 227개 전 지역구의 선거 예측을 하려면 조사 경비가 많이 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조사 비용의 한계가 많아 지역별 표본수를 충분하게 구할 수 없었다. 실제 지역별 표본수 500명(추정오차 ±4.4%P)은 너무 적었다. 둘째, 막판 변화를 추적하기 어려웠다. 227개 전 지역구를 맡 았기 때문에 120개 지역은 D-day 7일 전의 조사로 최종 예측치를 구했다. 따라서 이들 비 백중지역의 막판 변화를 추적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셋째, 출구조사(Exit Poll)의 한계와 절차상의 미숙성도 문 제였다. 현행 선거법은 투표소 300m 이내에서 출구조사를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도 문제지 만 선거당일 전화조사와 출구조사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면접원의 선발, 훈련 등에서 미숙함을 보였다. 또한 방송사의 협조 방송이 있었지만 응답자의 솔직성 확보도 문제점으로 남아 있었다.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던가. 이번 선거 예측의 실패를 거울삼아 학계, 산업계에서 조사방법론과 절차에 대한 진 - 12 -

지한 검토가 이뤄져 우리나라의 조사수준이 더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한국갤럽조사연구소편, 2000a). 지난 15년 간 대통령 선거, 지방선거 및 총선(국회의원 선거)의 선거여론조사를 시행해 오면서 조사전 문가들이 느끼는 것은 총선이야말로 조사회사의 난적( 亂 賊 ) 이란 점이다. 광대한 조사지역, 많은 후보자, 평균 15만 명에 불과한 모집단과 500명 단위의 표본 규모, 80여 지역구의 표본오차 이내에서의 경합, 조 사비용의 한계 등은 선거여론조사의 모든 기법들을 동원해도 극복하기 힘든 난관으로 남아있다. 이에 더해 선거개표방송에 임하는 방송사간의 보도경쟁으로 인해 조사회사들은 총선 선거여론조사를 통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던 전적( 戰 績 )기록을 갖게 됐다. 그러나 조사회사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또 다시 도전할 것이 틀림없다. 올 2002년은 제3회 지방선거와 제17대 대선이 있는 해여서 또 다시 조사기관들은 분주해지기 시작했 다. 분명한 것은 시장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건전한 경쟁구조가 정착되는 한, 조사회사들의 자기 개혁적 노력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며 이에 따라 조사기법과 선거예측 보도기법 등도 분명히 나아지는 방향성을 유지할 것이란 점이다. 특히 총선과 같은 선거여론조사는 방송사와 조사전문가들과의 충분한 이해와 협의를 거쳐 좀더 진화된 조사방법과 보도방법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한다. III. 선거 여론조사의 의의 1. 선거여론조사가 공정선거에 기여하는 측면 여론조사를 선거예측으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선거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며 선거여론조사는 이런 와중에 널리 인식되는 기회를 갖게 됨으로써 여론조사와 혼동하게 된 것 이라 본다. 그러나 선거결과의 예측은 여론조사의 사회적 역할 중 극히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의 역사가 서구에 비해 일천한 우리나라에서 선거여론조사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국민과 정치인들, 심지어 극히 보수적인 기업인들조차 여론조사를 납득하는 이유는 과학적 표본추출에 따른 선거예측이 적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거여론조사는 공정선거에 많은 측면 에서 기여하고 있다. 우선, 선거여론조사는 대규모 부정선거를 검증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투표함 바꿔치기 등과 같은 대 규모 부정은 과학적인 표본추출을 거친 선거여론조사결과의 예측치와 많은 차이를 드러낸다. 이로써 국 민들은 정확한 여론조사 결과와 부정선거 결과의 차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됨으로써 대규모 부정선 거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를 얻는다. 동시에 선거결과에 승복하는 풍토조성도 선거여론조사 가 갖는 기능으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여론조사가 행해지지 않았던 과거에는 크건 작건 여야 모두 선거 부정이 행해졌고 대부분 선거에 서 패한 후보측은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다. 처음 선거여론조사가 시행되었던 제13대 대선의 경우 에도 후보자들의 그러한 관행이 그대로 존속된 때였다. 당시 민정당 후보에 패한 양 김씨 진영은 부정 선거 라고 우겼고, 심지어 컴퓨터 부정선거 라고 백서까지 펴 낸 정당조차 있었다. 선거여론조사의 또 다른 기능으로는 대규모 군중동원 유세 문화를 사라지게 한 점을 들 수 있다. 제 13대 대선 당시 여의도 유세와 보라매공원 유세 등은 6 29 선언 이후 민주화의 열기를 보여준 시민의 저항처럼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각 정당 모두가 자파 당원들을 총동원하여 꾸민 유세에 불과했다. 이 같 은 결론은 당시 한국갤럽이 대규모 유세 전후의 각 후보자 지지도 조사 결과를 통해 입증해 낼 수 있었 는데, 모든 후보진영이 대규모 군중동원 이후 지지도에 있어 별다른 차이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점이 그 - 13 -

것이었다. 이로써 언론의 추측성 선정적 보도에도 제동이 걸렸다. 선거여론조사는 투표장에 나가는 사람들의 여론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투표권이 있는 조사대상자 전체를 모집단으로 하여 표본추출하기 때문에 투표를 하지 않은 유권자를 포함한 전 국민의 의견을 알 아낸다. 어느 정당 후보에게도 확실한 지지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부동층은 그들 나름의 정당한 이유가 있지만 현 정치제도에서는 그들의 의사를 대변해 줄 대표자나 정당이 없다. 이들의 의견은 다만 선거여 론조사를 통해서만 표현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선거여론조사는 민주주의를 보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뿐 만 아니다. 선거여론조사를 통해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유를 분명하게 밝혀낼 수 있으며, 그들에게 투표장에 나가도록 권유하기 위한 방법 또한 찾아 낼 수 있다. 혹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 후 각종 관련통계를 발표하므로 조사회사의 선거여론조사는 필요 하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관위의 자료를 가지고 20~30대, 여성, 불교신자, 기독교신자, 5 0~60대, 자영업자, 농민, 도시 근로자들이 각 각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거여론조사는 일반 국민이 많은 지식을 가지고 가능하면 이성적으로 여러 후보 중 한 명을 선택하 도록 정보를 제공한다. 선거여론조사는 막대한 비용이 유권자의 호감을 살 것으로 기대되는 수건이나 돈봉투 혹은 선심관광 등으로 흘러가는 것을 무의미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국의 조사 통계에 따르면 수건을 돌리건, 돈봉투나 선심관광버스를 전세 내어 전국을 유람시키던 간에 유권자의 태도는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음이 이미 밝혀졌다. 선거여론조사야 말로 후보자가 적은 비용으로 유권 자에게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2. 선거예측이 유권자에게 주는 영향 - 출구조사와 선거예측 공표허용을 현행 선거법은 선거 후보자가 공식 등록한 직후부터 개표가 끝나는 시점까지 여론조사를 공표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 헌법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전문에 상기되어 있지만, 이와 같은 세부 항목을 통해서만 보면 자유민주주의를 제한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는 여타 정치체제와 달리 선거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후보자와 유권자 모두 결과 에 승복하는 문화를 지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우 공식 선거운동기간 중 여론조사 공표가 막혀 있어 각종 유언비어와 유사 선거여론조사 결과가 언론을 통해 유포되고 후보자 진영은 물론 유권 자들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선거운동기간 중 여론조사 공표 금지의 이유로는 선거여론조사 가 유권자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재판부의 판단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한 오해에 불 과하다. 우선, 선거운동기간 중에 후보자의 당락 가능성이 주기적으로 조사되어 발표된다면 이는 각 후보진영 에게 합리적인 선거전략 수정을 요구하는 셈이 된다. 마찬가지로 유권자들은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지 지하는 후보가 얼마나 왜 불리한지 혹은 유리하지를 알게 되므로 이성을 잃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일 따위는 없어질 것이다. 혹자는 이런 말을 한다. 선거 과정에서 후보자의 당락 가능성이 보도되면 유권자들 중에는 자신이 지 지하는 후보가 얼마나 뒤졌는지를 알게 되고 이로써 지지후보를 바꾸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 각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우선 위 주장을 인정해 보자. 위의 말대로라면, 낙선이 뻔한 후보임에도 불 구하고 일반 유권자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현재까지 이 논리가 허용 되므로 해서 선거 참모들은 낙선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무리해서 우연의 확률을 높이려 애를 쓴다. 곧 억지와 선동과 매수 등 불법 탈법 선거운동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게 된다. 전반적으로 선거가 공정하 게 치러진 과거 사례를 뒤져보면 이런 후보가 당선된 사례는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여론조사 공표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유권자들이 승산 있는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이란 우려를 그 이유로 삼기도 한다. 이른바 밴드웨건효과(bancwagon effect)를 이유로 드는 것이다. 이 주제는 무려 - 14 -

60년 전인 1940년대 미국에서 논의된 적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선거 여론조사의 본고장인 미국뿐 아니 라 일본이나 유럽의 모든 국가에서도 밴드웨건효과를 입증한 사례는 그다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밴드웨건효과가 기각됨을 보여주는 사례는 수없이 많았다. 유권자들은 항상 승산 있는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유권자를 제대로 모르 는 착각이다. 선거운동과정에서 특정후보가 승산 있다고 발표될 때 어떤 사람은 1위 후보에게, 또 다른 사람은 2위 후보에게 동정심을 갖고 표를 던짐으로써 서로 상쇄된다는 현대 조사학계의 주된 이론이다. 결국 선거운동과정에서 공표 되는 여론조사는 유권자의 태도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공표가 금지되는 바람에 유권자들은 극도의 혼란을 겪어야 한다. 선거와 관련된 조사는 조 사기관뿐 아니라 언론사, 정당, 심지어 대학교 학생회나 기업에서도 행해지지만 가장 정확한 조사를 전 문적으로 수행하는 조사기관의 발표만 금지하는 바람에 정확성과 거리가 먼 조사결과들이 여론조사란 이름으로 활개치듯 선거운동 기간동안 유권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확한 조사결과를 제공받 지 못한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각 후보진영이 소리 높이 외치는 소리만 듣고 판단해야 하는 입장에 처한 다. 물론 언론의 사실보도가 어느 정도 이 문제를 해소할 것이란 주장도 있다. 그러나 언론사의 자체 예 측은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다. 언론사의 경우, 정치부의 십 여 명에 불과한 기자들이 자신의 출입처인 정당분위기와 선거유세장 참관을 통한 소감을 모아서 예측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런 류의 선거제도가 지속되는 한 자유민주주의는 제대로 발전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오히려 유권자들에게 진행되는 각후보별 선거운동의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앞서 언급한 대규모 부정선 거 가능성을 차단시킬 뿐 아니라 선거 후 결과에 승복하는 문화를 조성하여 차분하고 합리적인 선거운 동기간을 보장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유권자들은 후보자의 정견에 귀를 기울이며 지역 감정을 부추키는 선동에도 의연할 수 있는 것이다. 선거여론조사야 말로 선거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진작시키는 훌륭한 도구라는 점 을 강조하고 싶다. 미국의 경우 이 점을 고려하여 초등학교과정부터 여론조사의 중요성과 그 역할이 자 유민주주의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에 관해 교육해 오고 있다는 점을 부연하고자 한다. 3. 선거여론조사의 정확성 - 당락에 초점을 맞추면 안된다 지난 15년 동안 7번의 선거에 여론조사가 시행되면서 필자를 포함한 조사 전문가들에게 반성의 기회 가 몇 차례 있었다. 필자는 7회에 걸친 선거여론조사를 전부 시행해 오면서 선거여론조사의 정확성을 당락 여부에 두려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는지 반성하곤 한다. 선거여론조사의 정확성은 현실적으로 조사회사에게만 그 책임이 있다. 그러나 조사회사의 예측결과를 보도하는 방송사들이 당선자의 예측에만 몰두하는 바람에 어느 정도의 책임은 방송사가 떠 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제15대 및 16대 총선 예측 당시 조사회사들은 표본오차내 000후보 우세 로 예측한 자료를 제시했으나 방송사들은 후보 당선 확실 로 확정보도함에 따라 예측 실패의 책임이 조사회사로 집 중된 바 있었다. 이후 당선자 예측이 빗나간 특정 지역구의 숫자는 여론조사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뇌리 에 깊숙이 각인되었고 그만큼 여론조사에 대한 일반국민의 신뢰도도 추락했다. 그러나 실제로 선거여론조사의 정확성은 당선자를 사전에 맞추었느냐에 따르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선거여론조사의 정확성은 최종 조사결과의 숫자가 실제 선거에서 각 후보자, 혹은 정당의 득표수와 어 느 정도 거리에 있는가 라는 점에서 측정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것은 당선자 맞추기 경쟁과는 궤를 달 리한다. 만약 모든 조사회사가 당선자 맞추기 경쟁에만 몰두한다면, 여론조사는 더 이상 과학일 수 없고 역술인과 동등한 입장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한 사건들은 지난 15대 및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드러난 바 있었다. 앞서 기술한 바 - 15 -

와 같이 여러 조사회사가 담당 지역구 전체의 모든 당선자를 예측해 내는데 실패했다. 언론도 이를 보 도하면서 당선자 예측 중심의 보도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어느 조사회사가 어느 만큼 실제 득표수와 간격이 벌어졌는지를 보도해 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표본오차 이내에서, 심지어 3~4 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 후보들을 잘 못 예측했다고 여론조사회사가 비난받는 일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의 모든 조사회사가 선거 때마다 역술인들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IV. 맺음말 1987년 대통령 선거일 아침까지 선거예측의 발표를 망설였다. 맞으면 당연하지만 만일 틀리면 망신일 뿐 아니라 회사의 문을 닫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짓누르고 있었다. 회사 직원들 중에서도 구태여 위험 을 감수할 필요가 있냐고 발표를 만류하는 사람도 있었다. 투표일 4일전에 면접방법으로 진행된 조사였 고 표본오차, 허위응답, 면접원의 부정직, 무응답이 30%가 넘는 상황 등 조사의 각 단계마다 오차가 숨 쉬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오후 6시 국내외 언론기관에 선거예측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성립을 위해서라는 대의에서였다. 민주주의 성립의 조건인 과정의 공개에 있어 여론조사만이 그 과정을 밝혀주는 유일한 도구이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선거법에는 선거일 60일 동안 여론조사 보도를 금지해 놓았기 때문에 암흑 속의 꼭두각시 노 름처럼 선거가 과열되고 혼탁했다. 각 후보자는 모두 자기가 이긴다고 큰 소리쳤으며 언론은 형용사를 동원하여 재미있는 소설을 써 갔으며 소주잔을 앞에 두고 멋대로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핏대를 올리는 유권자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으며 모의투표가 극성을 떨쳤다. 여의도 유세전후에 신문 기사철을 들춰 보니 우리언론의 선거보도 행태에 얼굴이 뜨거워진다. 여하간 역대선거에서 TV를 통해 발표된 한국갤럽의 선거예측이 한국과 한국인에게 다음과 같은 선물 을 드릴 수 있었기에 한 조사인으로 큰 보람을 느낀다. 1 한국의 조사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앞서감을 증명한 점. 2 이번 선거과정의 공명성이 증명되어 재검표 등 선거휴유증을 없애고 낙선자의 깨끗한 승복을 이끌어 낸 일. 3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합리적으로 만들고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데 보탬을 줄 수 있는 일. 4 우리기업 경영의 의사결정과정이 합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보탬이 되리라는 기대, 특히 주먹구 구식의 경영의사결정은 이제 통하지 않고 마케팅 조사 즉 사실확인(Fact-Finding) 이라는 바탕 위에 경 경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이 무한경쟁이라는 21세기에 살아남는 지혜임을 가리켜 준 일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문헌> Gallup, George(박무익 역). 2002. 갤럽의 여론조사. 한국갤럽. 한국갤럽조사연구소편. 1997a. '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행태.. 1997b. 한국인의 투표행동.. 1998. '97 제15대 대통령 선거 투표행태.. 1999a. 한국갤럽의 어제와 오늘.. 1999b. '98 제2회 지방선거 투표행태.. 2000a. 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행태.. 2000b. 한국갤럽의 역대 선거 예측과 적중. 00년 제16대 국회의원선거 투표행태 부록. - 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