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arative Epistemologies for Thinking China," The Research & Educational Center for China Studies and Cross-Taiwan Strait Relations, Department of Political Science, National Taiwan University 약력 김영문 ( 金 永 文 ), KIM YOUNG MUN 1945 년 2 월 15 일 (양력), 닭띠, 남 (현)영남대 정치행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기본 사항 구분 내용 출생지 대구 본적 경북 칠곡군 동명면 금암동 239 본관 김해 직업 교육자(교수) 기관/부서/지위(1) (현)영남대 정치행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기관/부서/지위(2) (현)영남대 정지챙정대학 학장 담당업무/전문분야 중국정치 직장주소 [712-749] 경북 경산시 대동 214-1 직장전화 (053)810-2627 직장 FAX (053)813-3811 E-Mail ymkim@yu.ac.kr 소속단체 한국국제정치학회, 한국정치학회, 대한정치학회, 동아시아국제정치 1
병역 육군 혈액형 O 형 신장 165 cm 체중 67 kg 시력 (좌)0.7 - (우)0.7 흡연량 안피움 취미 골동품 수집 결혼일 1970 년 7 월 27 일 자녀 2 녀 자격/면허 운전면허 존경인물 모세(성경 속) 좌우명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하되, 하나님이 내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 가훈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에베소서 6:1~4) 감명깊은 책 성경 감명깊은 영화 벤허 선호음식 비빔밥 애창곡 보리밭, 선구자 즐겨하는 운동 수영,골프 좋아하는 연예인 안소니 퀸 좋아하는 술 보드카 좋아하는 차( 茶 ) 커피 좋아하는 색깔 흰색 좋아하는 꽃 무궁화 2
외국어 구사 영어 학력 사항 기간 내용 ~ 1969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 졸업 ~ 1971 미국 캘리포니아대 산타바바라 정치학과 졸업 ~ 1976 미국 캘리포니아대 리버사이드 대학원 정치학 석사 ~ 1979 미국 캘리포니아대 리버사이드 대학원 정치학 박사 경력 사항 기간 내용 1980.3 ~ 1982.9 국제조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1982.9 ~ 현 영남대 정치행정대 정치행정학부 정치외교학과 교수 1995.1 ~ 현 선거행태연구회 회장 1998.1.1 ~ 1998.12.31 대한정치학회 회장 1999.1 ~ 1999.12.31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1999.1.1 ~ 1999.12.31 동아시아 국제정치학회 회장 2002.8 ~ 현 영남대 정치행정대학 학장 가족 사항 관계 이름 생년월일 근무처 직위 장녀 김유정 1973.8.22 차녀 김재인 1980.11.3 3
교우/지인 사항 [교우] 유은상/서울여대 교수 김정흥/카이저병원 의사(하와이, 호놀룰루) 저서/논문 사항 [저서] 서명: 중공의 세계전략 - 삼세계이론과 그 실제, 발행: 대왕사, 1982. 서명: 신생국 정치론(공), 발행: 정음사, 1983. 서명: 새로운 선거전략 - 과학적인 대중설득방법(역), 발행: 한울, 1987, 원서명: Nimmo, Dan(The)political persuaders, 단 니모 지음; 김영문 옮김. 서명: (모택동 이후의) 중국외교정책(역), 발행: 大 光 文 化 社, 1989, 원서명 Sutter, Robert G.Chinese foreign policy : developments after Mao, Robert G. Sutter 지음; 金 永 文 옮김. 서명: 중국외교론, 발행: 대왕사, 1993. 서명: 덩샤오핑 정치사상(공), 발행: 법문사, 1994. 서명: 한국의 통일외교인력 양성방안(공), 발행: 국제평화전략연구원, 1998.3. 서명: 우리시대의 정치(공), 발행: 경산 - 영남대학교출판부, 2003. 서명: 鄧 小 平 과 중국정치: 노선투쟁의 변증법적 발전과정, 발행: 探 求 堂, 2007. [논문] CHINESE FOREIGN POLICY TOWARD THE THIRD WORLD IN THE 1970S : THE THEORY AND PRACTICE OF THE THREE WORLD 제 2 의 카디시아 ( Qadisiya ) 전쟁의 원인분석을 위한 모델 : 이라크 를 중심으로, 한국중동학회논총, 1981. 권력구조 변화의 정책 결정-이집트 사례연구, 한국중동학회논총, 1982. 페르샤만 보수왕정의 체제안정도 분석, 1982. 최근 중소의 대한정책, 통일문제연구, 1984. 투표성향, 정당선호도, 자치의식에 관한 연구, 1985 새로운 시각에서 본 소련의 대한반도정책, 통일문제연구, 1988. 80 년대 중국의 초대강국 정책 : 개방 독자 노선, 사회과학연구 제 9 집 제 1 권, 1989.08.30, pp.75-96. 4
20.30 대의 정치성향 분석: 대구. 경북지방 중심으로, 대구 경북정치학회, 1987. 경북지역 주민의 정치성향에 관한 연구, 1990. 중국의 대소관계 개선과 우리의 북방정책, 통일문제연구, 1990. 동북아의 질서변화와 우리의 북방정책, 한국자유총연맹, 1990.09.19. 경북지역 주민의 정치성향에 관한 연구, 대구 경북정치학회, 1990.12.20. 덩샤오핑 政 治 思 想 에 관한 硏 究, 국제정치논총 제 30 집 2 호, 1990. 04. 25, pp.283-312. 10 년 국가발전 전략과 8 5 계획 속에 나타난 중국지도부의 노선투쟁에 관한 연구: 경제정책을 중심으로, 국제정치논총 제 33 호 2 집, 1993. 06. 15, pp. 225-244. 鄧 小 平 시대의 外 交 政 策 과 實 事 求 是 의 역할, 중소연구 제 17 권 여름호, 1993.08.01, pp.15-36. 덩샤오핑시대의 脫 중앙집권화와 反 분권화 갈등구조 : 中 央 정부와 地 方 정부관계, 중소연구 제 8 권 제 3 호, 1994.09.01, pp.119-138. 중국지도부의 정치발전 전략과 노선투쟁: 李 鵬 보고서 중심으로, 대구 경북 정치학회보 제 2 호, 1994.12.29, pp.111-129. 북한 핵문제와 중국의 대한정책: 인식적 접근방법, 통일문제연구, 1995. 제네바 합의 이후의 남북대화와 경제협력, 1995. 鄧 小 平 사후 중국 권력구조의 성격분석: 노선투쟁에 따른 변증법적 과정(dialectical process) 시각에서, 대구 경북 정치학회보 제 4 집, 1997. 02. 27, pp.73-110. 중국외교관제도에 관한 연구, 1997. 한국정치문화와 세대: 대구 경북주민중심으로(공), 대구 경북정치학회/대구 경북정치학회보 제 6 집 1 권/1998.8.25 江 澤 民 중심의 文 民 집단지도체제와 경제정책의 방향, 국제정치논총 제 38 집 2 호, 1998. 12. 30, pp.177-196. 중국 문민집단지도체제와 정치개혁, 한국군사 제 9 호, 1999.7.1. 한 중 관계정상화 이후 중국의 대북한정책, 대한정치학회보 제 8 집 2 호, 2000 년 겨울, pp.247-274. 毛 澤 東 사후 중국 군 현대화와 정치적 역할의 상관관계, 중소연구 26 권 2 호, 2002.8. 중국 현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부패원인에 관한 연구, 대한정치학회보 제 11 집 3 호, 2004. 02. 28, pp.1-30. 반정신오염 및 정신문명건설운동과 그 실패원인에 대한 연구, 대한정치학회보 제 13 집 3 호, 2006.02.28, pp.121-151. 5
인터뷰 우선 인터뷰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구술 작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질문에 대한 사항보다는 선생님의 초기 중국연구의 경험을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시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입 니다. 다음 문항은 일반적인 질문사항입니다. 문항마다 모두 답을 하셔야 되는 의무사항은 아니며 답하실 수 있는 부분에 한해 답 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중국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요? 조사한 바로는 선생님께서는 한국에서의 학부시절 학과가 사학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학과에서 중국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중국이라는 나라를 연구하게 된 동기는 학부시절 사학과에서 공부를 하던 중 사학과 가운데 동양사 특히 중국사를 접하게 되면서 그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부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 선생님께서 수학하신 과정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미국에서 중국학을 수학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수학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서울문리대의 사학과에서 학부, Univ. of California, Santa Barbara에 정치학 학부, Univ. of California, Riverside에서 정 치학 석사와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저의 관심 분야였던 중국에 대한 역사와 정치에 대해 심도 있게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3. 수학하시는 과정 가운데 중국과 관련된 강의를 들으신 적이 있었는지요? 그 강의를 수강 하면서 교수님께서 느끼신 중국에 대한 인상은 어떠했는지요? 한국과 미국 두 국가에서 중국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느낀 것은 각 국가마다, 또 학자들의 국적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제가 느끼기에 한국에 있는 역사학자들은 식민사관에 학문적 뿌리를 두 6
고 있다고 생각되며, 특히 미국에서 강의하는 중국학자들은 중화사상에 깊은 학문적 뿌리를 두고 있으며, 미국인 학자들에 대해선 중국의 정치문화와 역사에 대한 심층 적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강의를 들으며 느꼈습니다. 4. 학사, 석사, 박사 수학과정 가운데 연구를 해오시면서 스승으로는 어떤 분들이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연구 과정 가운데 그분들이 선생님의 연구에 미친 영향으로는 어떤 것들 이 있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학과정 가운데 많은 교수님들이 계셨지만, 연구를 하던 가운데 저에게 많은 도 움과 영향력을 끼치신 스승님을 이야기 하자면 두 분이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과정 가운데 Professor Alan P. Liu와 Professor Melvin Gurtov로부터 중국의 역사와 정치문화에 대한 지경을 넓히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 니다. 5.학문의 길을 걸으시면서 선생님 본인에게 가장 영향을 미쳤던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 니까?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서 선생님께서는 어떤 결과가 있었다고 보십니까? 제가 생각하기에 정치학이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자 면 학문의 길을 걸으면서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정치학을 연구하고 있는 한 사람으 로서, 정치학이란 평생을 받쳐서 자신의 전공을 과학적으로 심층 연구하여도 역부족 인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정치에 몸담기 바빠서 본업을 팽개친 동료 교수들과 식인종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 정치를 볼 때마다 이론과 실 제의 괴리를 느끼게 됩니다. 6. 연구초기 선생님께서 참가하셨던 학술회의와 연구회가 있으면 생각나시는 대로 이야기 해주십시오. 국내 학술회의에서 발표되는 논문들은 대체로 수준이 이하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이러한 생각을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는 질보다 양을 추구하는 대학교들의 개인 업적 평가제도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7. 선생님께서는 지금까지 많은 연구를 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연구과제는 어떻게 선정하셨는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연구를 해오고 있지만 저는 전공영역을 떠나 연구비나 시류에 따라서 연 구과제를 선정하여 연구하기 보다는, 연구비나 시류 등 이런 것들을 떠나서 중장기 적으로 한 권의 책을 저술한다는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연구과제를 선정하고 있습니 다. 8. 그렇다면 지금까지 연구를 하시는 과정 가운데 연구비용은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궁금합 7
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연구를 하시면서 연구비와 관련된 변화가 있는지요? 제가 연구를 하는 과정 가운데 연구비용은 주로 기관에서 주는 연구비로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대학이나 학술진흥재단, 그리고 여타 연 구소의 연구비를 가지고 연구 과제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9. 강의를 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연구와 경험이 어떻게 투영된다고 보십니까? 강의 내용은 주로 어떤 것이었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된 것이 있는지요? 현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지만 강의를 하는 과정에서 강의와 연구를 따로 분 리하여 구별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의 견해로는 강의와 연구는 상 호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0. 정치외교학과 학과장을 맡고 계시면서 여전히 중국정치에 관련하여 강의를 하시고 있으 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평생을 교직에 몸 담고 계시면서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실 수 있습니까? 지금까지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 왔지만, 요즘의 대학생들은 학부시절에 배운 자신 의 전공지식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요즘 대학생들을 보면 매우 안타까운 심정이 듭니다. 11. 한국의 중국학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한국의 중국학계에 대해 논평을 해주 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국의 중국학계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중국학 학자들이 이념으로 오염된 나머 지 과학적인 심층 연구가 결여되어 있으며, 특히 중국의 정치현상을 이해하는데 정 치문화적 변수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측면이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12. 연구과정에서 서구사상(Hegel, Marx, Weber, Parsons, etc.)및 영미 중국연구의 영향 을 어느 정도 받았다고 보시는지요? 연구과정에서 서구사상 및 영미 중국연구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저의 견해로는 중국이라는 공산국가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 다. 따라서 중국을 연구하는 과정 가운데 자료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이를 해소하고 자 비판 없이 서구의 secondary material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고 봅니다. 13. 중국학술계나 기타 사람들과 교류가 있으신지요, 함께 연구를 진행한 경험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있으시다면 경험을 이야기 해 주세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선진국의 학문적 training이 없는 중국인 학자들은 정치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훈련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8
14. 중국의 발전 과정과 미래에 대한 평가를 하신다면? 중국의 발전 과정과 미래에 대하여 평가를 해본다면, 단기기적으로는 현재와 같은 경제성장을 할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경제성장을 토대로 하여 군사력을 확장할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면에서는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전망됩니 다. 15. 연구 과정 및 연구 경험(연구과제, 연구자료, 연구방법 등)에 대해 이야기해주시면 좋겠 습니다. 저의 연구 과정 및 연구 경험 즉 연구과제나 연구자료, 연구방법에 대해서 이야기 를 하면, 지금은 연구과제로 중국의 정치문화가 현재의 권력구조의 성격과 정책결정 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료와 연구방법으로는 일차와 이차자료를 longitudinal and latitudinal level에서 문헌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16. 본인의 연구에 가족이 준 영향이 있는지요? 없습니다. 17. 선생님께서는 한국에서 중국 연구가 어떻게 되어져야 한다고 보십니까? 한국에서의 중국 연구는 이념적인 편견을 떠나 과학적, 체계적으로 분석하되, 비 판적 시각에서 중국학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8. 한국에서 학문 이외에 정치적인 참여를 하신 적이 있는지요? 있다면 어떤 역할이었나 요? 없습니다. 19. 중국의 정치가나 정치학자와 교류를 하시고 계신지요? 없습니다. 20. 소속하신 연구단체는 무엇이며 그 연구단체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거나 맡고 계신지요? 선생님께서는 지금까지 연구를 하시는 과정 중 많은 연구단체와 연구소에서의 연 구 활동에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조금 구체적으로 소속하신 연구단체를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금까지 많은 연구단체에서 활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 면 주로 한국정치학회, 한국국제정치학회, 동아시아국제정치학회, 대한정치학회, 21 세기정치학회 등에서 회장, 이사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9
21. 선생님 연구 생애에서 본인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그리고 아쉬움 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연구를 하면서 공들여서 한편의 논문을 완성하였을 때 기쁘기도 하지만, 또 한편 으로는 그 논문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함께 느껴집니다. 이럴 때 저는 학문 이란 평생을 바쳐도 역시 이를 수 없는 외경의 세계로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주요저서요약 1. 서명: 新 生 國 政 治 論 발행: 서울 정음사, 1983년 저자: 한배호, 정태동, 민만식, 김영문, 김용서, 박상식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세계 정치외교 상황을 먼저 알아야 용이하다. 라스웰 이라는 미국 정치학자는 50년대 초에 <병영국가><Garrison State>라는 용어를 가지고 전 세계 각국에서 장차 폭력의 전문가들이 정치 무대에서 현저한 진출과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었다. 당시는 미 소 양대국을 주축으로 한 동서진영( 東 西 陣 營 ) 사이에 심각한 냉전이 벌어지고 있었던 때로서 세계적인 불안이 감돌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그러한 상황이 심화될수록 안보 문제가 최우선시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그 분야의 전무가 집단의 역할이 증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 소를 위시해서 동서 블록의 주요 국가 내에서도 라스웰이 말한 대로 군의 정치적 역 할은 현저하게 증대했고, 군부가 외교 안보 분야에 관한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 깊숙히 개 입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군부의 정치적 개입이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 곳은 제3세계의 신생국이다. 신생국 에서 군부는 민간인과 정치 세력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대립을 억제하는 중재자( 仲 裁 者 )의 역할을 맡기도 하고 민간인이 약체 정부를 무력으로 장악하여 군사정권을 세우기도 했다. 펄뮤터에 의하면 79년 현재로 아프리카에 14개, 아랍 국가군에 5개, 동북아에 1개, 라틴 아메리카에 9개, 동남아에 2개, 도합 31개의 군사 정권이 있으며, 그 수는 앞으로 더 욱 늘어갈 것으로 내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신생국의 정치 불안도를 반영해 주는 현실이라 10
하지 않을 수 없다. 신생국 정치를 논함에 있어서 이제는 군의 정치적 개입이나 역할이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집권 후 군부가 구상하고 추구하려는 정치 체제나 정치 질서가 어떤 것이며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활용하게 되며 그 결과가 무엇인가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하 겠다. 신생국 정치의 비교 분석을 위한 이론적 시도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러한 연구 목적을 향한 하나의 첫 걸음으로 볼 수 있으며 앞으로 보다 철저하 고 체계 잡힌 연구 활동을 전개하는데 필요한 기반을 마련한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의 구성은 총 6개의 논문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4번째 소개되고 있는 김영 문교수의 이집트 軍 事 政 權 의 勸 力 構 造 와 主 要 業 績 제목의 논문은 낫세르-사다트-무라바 크로 이어지는 권력 구조와 정책의 방향을 검토한 다음, 현재 무라바크 정권을 위요한 환경 구조와 이에 대한 엘리트들의 인식의 정도를 고찰함으로써 향후 이집트 권력 구조와 정책의 방향을 전망하고 있다. 특히 필자는 기존 연구와 현재 이용할 수 있는 자료를 근거로 하여 낫세르, 사다트, 무바 라크로 이어지는 이집트의 권력 구조와 대내외 정책 -특히 외적인 위협에 대한 안보 문제 와 내적인 현대화 요구-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엘리트 접근방법(Elite Approach)을 통해서 분석함으로써 사다트 사후 이집트의 권력 구조 변화 가능성을 전제하고, 사다트 노선과 바 교해서 현 무바라크정권의 국가 전략의 지속성과 그 변화, 나아가서 그 변화의 요인을 고찰 하고자 하였다. 2. 서명: ( 毛 澤 東 이후의) 中 國 外 交 政 策 (역) 발행: 서울 - 大 光 文 化 社, 1989년 저자: Robert G. Sutter, 지음; 金 永 文 옮김. 원서명: Sutter, Robert G.Chinese foreign policy: developments after Mao 毛 澤 東 이 1976년 9월에 죽은 이후 중국은 그 외교정책에 있어서 또 한번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지난 달 毛 澤 東 이 집권하던 시절에는 이념적인 접근방법에 따라 중간지대론 (1949~1962), 제 1 제 2중간지대론(1962~1969), 3세계론(1969~1978)으로 중국 외교정 책을 분석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1978년 이후 개혁과 대외개방 및 독자노선을 표방하고 있는 鄧 小 平 과 그 개혁세 력의 외교정책은 이념적인 분석이 틀을 벗어나 현실에 입각한 국가 최우선 과제인 경제발전 을 안정기반 위에서 조속히 달성하는데 총력을 경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Robert G. Sutter의 Chinese foreign Policy : Development After Mao는 이 당시 이 분야의 저서 가운데 가장 최근에 출판된 것으로서, 그 내용이 거의 완벽 한 일차 자료를 수집하여 이를 객관적으로 심층 분석한 훌륭한 저서임을 발견하고 역자는 이 도서를 번역하기에 이르렀다. 11
한편 역자는 한국과 중국은 지난날의 적대관계를 벗어나 현재는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이 역서가 정책입안자, 학자, 학생 및 일반인 에게 이르기까지 오늘의 중국 외교정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이 책의 필자는 당시의 최근 중국 외교정책의 결정요인이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시기별로 나누어서 그 시기의 국가간의 외교관계를 세심히 분석하고 있다. 毛 澤 東 의 죽음과 1976년 의 사인방의 체포 이후 중국의 지도자들은 점진적으로 중국을 현대화하고 국민의 물질적 생 활 수준을 개선할 수 있는 경제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중점을 두고 있는 실질적인 정책을 모 색해 왔다. 따라서 중국은 이 중요한 경제 개혁을 확실히 실천에 옮기고, 매진할 수 있는 보다 단일화 된 지도 체제를 갖추기 위해서 대규모 정치적 개혁을 단행하고자 했다고 소개 하고 있다. 중국 외교 정책은 이와 같은 국낸 정책 변화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아 왔으며, 경제 현 대화라는 주된 관심에 기여해야만 되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양초강대국에 비해 상대적으 로 많은 약점을 지니고 있는 중국의 현실로 인해 중국은 저우언라이가 지난 196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 설정한 전략적인 틀 안에서 그 외교 정책을 수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끊임없 이 증대하고 있는 소련의 군사력과 정치적 압력 앞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지키려는 중국 지도자들은 자신의 안정된 주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군사력과 외교에 의존 해 왔다. 아시아에서 미국을 비롯한 미국의 동맹국과 우방국과의 관계는 중국의 안보와 발 전을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아시아의 안정을 지속하려는 중국의 노력에 있어서 가장 중요 한 것이다. 중국은 기존 전략적인 필요 외에도 최근 경제 현대화 추진과 더불어 점증되고 있는 경제적인 요구로 인해서 서방과 관계를 더욱 강화해 왔다. 중국과 서방 사이의 무역, 학생 교환, 기술 이전의 증대는 이점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략적인 틀 안에서 중국 외교 정책은 여러 번의 중요한 전술적인 변화를 경험 했으며, 毛 澤 東 이후 이러한 변화가 계속해서 일어났다. 많은 학자들이 논문이나 저서를 통 해서 중국 외교 정책의 이 같은 변화를 분석해 왔지만 최근의 다양한 변화를 체계적으로 연 구해 오질 못했다. 필자는 본 연구를 통해서 이와 같은 필요성을 충족시키려고 시도했다. 또한 필자는 이 책을 1960년대 말부터 중국의 세계 무대 접근을 주도해 온 전략적인 틀이 지니는 의미와 최근 중국 외교정책의 발전 과정을 연구하려는 아시아 관계 전문가와 학생을 위해서 썼다고 한다. 3. 서명: 우리시대의 정치 발행: 경산 - 영남대학교출판부, 2003년 저자: 우철구, 이문조, 김영문, 김태일, 정달현, 정준표, 김학노 이 책은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교수들이 오늘날의 주요 정치 이슈들 에 관하여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같은 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동료로서 공 동의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하는 바램을 오래 전부터 가져왔었다. 그러나 늘 바 12
쁜 일상 생활에 쫓기고 각자의 연구와 교수활동에 몰두하다 보니 공동작업을 수행할 수 있 는 기회를 갖기가 무척 힘들었다. 이에 따라 공동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기 보다 는 억지로라도 공동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로 하였고, 이 책은 그러한 의도적인 노력의 첫 산물이다. 공동작업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하였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책은 공동작업이라고 하기 에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공동으로 작업하기 보다는 각자 개별적으로 수행한 연구의 결 과를 공동으로 묶은 것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같이 기획하고 그 기획에 따라서 각 자 맡은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점에서 공동작업의 성격을 희미하게나마 찾아볼 수는 있다. 그러나 같이 연구를 수행하거나 함께 집필하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공동작업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이 책을 기획할 때의 초심에서 생각하면 부족한 점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고 한다. 정치학 관련 교재가 많이 출판되어 있는 상황에서 의미 있는 공동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우 리는 이 책이 단순히 정치학의 여러 이론과 개념들을 소개하는 교과서에 머물지 않고, 실제 생활에서 느끼고 접할 수 있는 주요 정치 이슈들을 중심으로 각자의 논의를 전개하기로 하 였었다. 이 책은 총 7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에서는 오늘날 세계사회에 작동하는 지 배적인 사상인 자유주의를 소개하고 있다. 먼저 자유주의를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한 모멘텀 으로서 근대 시민혁명과 자유주의 이론의 정초자로서 로크의 논의를 살펴봄으로써 자유주의 의 기원을 설명하고, 근대 자유주의의 구성요소를 열거하였다. 다음으로 자유주의 이론이 전개되는 역사적 과정을 서술하였다. 특히 로크 이후에 등장한 자유 지상주의적 자유주의 이론과 국가 개입주의적 자유주의 이론의 초기적 형태를 개괄하고, 이러한 두 가지 논의의 전통이 2차 대전 이후 현실의 추동력으로서의 자유주의와 조응하면서 현재까지 자유주의의 이론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음을 끊임없이 밝히고 있다. 또한 사회주의의 쇠락과 함께 지구 적인 차원에서 자유주의가 보편화되었다고 주장하는 후쿠야마의 논의를 검토하였다. 제2장은 민주주의와 정치문화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먼저 민주주의의 올바른 작동과 정치문화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고찰하면서 민주적 정치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정치문화의 개념과 정치문화가 다루고 있는 주요 쟁점을 정리하면서 민주적 정치문화 에 필요한 개인의 자질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정치문화를 노함에 있어서 중요한 개념인 정 치사회화의 의미와 매체를 검토하는 동시에 민주적 정치문화로의 정치사회화를 위한 몇 가 지 방안을 소개하였다. 다음으로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의 한국정치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한국인의 정치의식과 행동을 규제하는 정치문화의 특성을 정리하였다. 마지막으로 정치문화 의 관점에서 정치이념의 의미를 새롭게 규정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제3장에서는 한국의 정치과정에서 점증하는 정당정치의 중요성을 논의하고 있다. 이 장에 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문제는 정당정치와 사회계급의 연관성을 밝히는 것이다. 즉 정당 정치의 계급적 성격 혹은 본질을 밝히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필자는 정당정치의 문제 영역으로서 1정당의 역사적 기원, 2정당의 이념, 3정당의 조직구조를 제시하여, 이러한 13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정당정치가 사회계급과 어떤 관계를 보이는가를 규명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영역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정당정치의 양상에 영향을 주는 주요한 변수로 1국가 -정당-사회관계의 역사 2사회의 성격 3국가의 성격 4정당체계 5개별정당의 행위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제4장에서는 정치적 제도, 그 중에서도 특히 선거를 포함한 투표의 방법과 절차의 중요성 을 환기시키고 있다. 먼저 선호, 제도적 규칙과 절차, 투표행태 등 투표결과를 결정하는 3가 지 기본적 요소를 설명하고, 투표공간이론의 여러 결과를 간략히 소개한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제도의 효과를 우리 나라 선거제도와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논의한다. 다음으로 국 회의원 선거제도의 선택 기준을 제시하고, 우리 나라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어떤 식으로 변 화해왔는지, 그리고 그 정치적 효과가 어떠했는지 경험적으로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생각하는 선거제도의 개선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제5장에서는 중국정치에서 인민해방군의 정치적 역할의 변화를 살펴보고 있다. 특히 중국 군의 현대화 작업이 인민해방군의 정치적 역할에 미친 여향을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먼저 공산 혁명기에 형성된 당 군일체 내지 당의 군대 라는 정치문화적인 기본 골격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당의 군대라는 기존의 정치문화가 모택동 사후의 이루어진 등소평과 강 택민의 군 현대화 과정에서 어떠한 변화를 겪었는지에 대하여 분석하였다. 인민해방군은 중 국정치에서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는 정치문화와 일당독재체제가 존속하는 한 당의 군대 로서의 역할을 앞으로 계속할 것이다. 정치적 역할에 있어서는 그 범위와 정도와 성격이라 는 측면에서 많은 변화를 보이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군 현 대화, 전문화, 직업 화, 제도화는 당과 군의 기능적 분화현상을 가속시킬 것이므로 전반적으로 군에 대한 당의 통제력은 과거와 같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앞으로 중국에서 국내 위기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처음에는 인민무장경찰이 투입되겠지만, 만약 이들이 실패할 경우 의심할 여지없이 당 은 군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군은 지금까지 분석에서 나타난 대로 제한된 범위 내 에서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차원에서 이를 수용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모 택동, 등소평과 같은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와 대장정과 항일전쟁을 경험한 군의 원로들이 사 라진 상황에서 군 현대화에서 오는 젊은 군 간부들은 전문성과 직업성에 따른 의식변화와 군의 對 民 이미지 개선을 고려한다면 군이 文 革 과 천안문 사태와 같은 수준의 정치적 개입 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제6장에서는 국제관계에서 문화의 중요성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우선 문화의 중요성 을 국제관계의 기본을 형성하는 국가 또는 지역공동체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리고 한 국가의 사회제도와 정치제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국 제관계에서 문화적인 힘이 민족주의에 미치는 영향과 종교가 국제관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검토하였다. 마지막으로 세계화라는 대세 속에서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의 의미를 새 롭게 고찰하였다. 특히 헌팅턴의 문명과 충돌 과 뮐러의 문명의 공존 을 소개하면서 앞 으로의 국제적 분쟁 혹은 협조가 문화에 의해서 혹은 더 구체적으로 문명에 어떻게 영향을 받을 것인가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14
제7장에서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세계화 현상과 국민국가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검토하고 있다. 특히 세계화에 의해 국민국가가 약화되는지 여부에 대 한 논쟁에 초점을 두고 있다. 먼저 최근의 세계화 현상을 추동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포드주 의 생산방식에서 유연생산방식으로의 변화와 이러한 변화에 따른 기업의 지배구조의 변화를 검토하였다. 또한 세계화 현상이 국민국가를 약화시키는지의 여부에 대한 논쟁을 자본에 대 한 국가의 상대적 힘의 약화를 주장하는 국민국가 쇠퇴론 과 자본에 대한 국가가 여전히 규제력을 발휘한다고 주장하는 국민국가 건재론 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특히 국민국가 쇠 퇴론과 건재론이 사회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으며 상이한 사회세력 간의 힘의 관계를 재구성 하는 사회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해 논하고 있다. 4. 서명: 鄧 小 平 과 중국정치-노선투쟁의 변증법적 발전과정 발행: 서울 - 探 求 堂, 2007년 저자: 김영문 鄧 小 平 의 實 事 求 是 에 따른 현대화로 중국은 경이적인 속도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 여 왔으며, 그 결과 오늘날 중국의 경제력은 1978년에 비하여 34배나 증대되었다. 그러나 중국은 정치적 민중화와 자유화를 유보한 상태에서 서구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도입한 결과, 부정부패와 퇴폐 향락 그리고 이념해이라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와 같은 鄧 小 平 시대의 어두운 면은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 상실 차원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권 력구조, 법률체계, 사회의 윤리규범, 경제개혁, 사회주의 이념 등과 밀접히 관련된 구조적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鄧 小 平 시대에 전개되었던 중국정치의 허실과 현대화 에 따른 명암을 재조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지난 1989년부터 2005년까지 발표된 13편의 중국관계 논문을 수정 보완하여 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부제로 노선투쟁에 의한 변증법적 발전과정 이라고 한 것은, 1930년대 말부터 1950년 초 까지를 제외하고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정책결정 과정에서 단일노선을 유지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노선마찰을 빚어왔기 때문이다. 鄧 小 平 이 최고실력자로 부상한 1978년 이후에 도 비록 정치적 숙청은 없었지만 노선투쟁은 계속되었으며, 이 시기의 노선투쟁은 진보성향 의 원로 및 개혁세력과 보수성향의 원로 및 개혁세력에 의해서 4차례나 전개되었다. 이들 중국 지도자들은 선진 사회주의국가 건설 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치적 안 정과 지도부의 단결이 필수적이며 4대원칙의 범위 안에서 개방과 개혁정책을 추진한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이고 있지만, 국가발전 전략의 구체적인 내용, 방법, 범위, 속도를 둘러싸 고 마찰을 빚어왔던 것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급속하고도 광범위한 개혁 개방정책이 실시 되었으나, 부정적인 결과가 심화되면서 중국 지도부 내 노선투쟁이 전개되고, 조정정책이 그 뒤를 이어 등장하였다. 이 책은 크게 여섯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에서는 등소평의 실사구시 사상을 우선적으로 살펴보고 있는데, 이는 그이 사상이 오늘날 중국의 국가적 목표설정, 이를 달성 15
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제공, 그리고 당시 중국이 처한 정치와 군, 외고, 사회와 정신문명 등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이다. 정치와 군 부분에서는 鄧 小 平 시대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탈중앙 집권화와 반분권 화의 갈등구조를 분석하였으며, 李 鵬 과 江 澤 民 의 부상으로 등장한 집단지도체제와 정치개혁 에 대한 상관관계를 노선투쟁의 시각에서 고찰하고, 군 현대화와 정치적 역할의 상관관계를 살펴보았다. 鄧 小 平 은 현대화 달성에 필수적인 조건인 주변의 평화로운 분위기 조성을 위한 수단으로 써 대외개방과 독자노선을 추구해 왔다. 따라서 이 책의 외교부분에서는 중국의 대외정책 결정과정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 실사구시의 이론적 역할을 분석하고, 이를 중국의 초강대 국 정책과 1992년 한 중 관계 정상화 이후 중국의 對 북한정책에 적용하였다. 경제 부분에서는 현대화 전략을 둘러싸고 전개되어 온 중국지도부의 노선투쟁을 李 鵬 당 시의 집단지도체제와 江 澤 民 중심의 집단지도체제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사회와 정신문명 부분은 중국의 현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부정부패 및 정신오염과 관련하 여 그 원인과 중국정부의 대응방안 및 효과를 다루었다. 중국정치의 미래를 전망하는 부문에서는 중국정치의 장래에 관한 6개의 가정을 설정하고, 이를 노선투쟁의 변증법적 발전과정이라는 시각에서 권력구조의 변화 가능성을 분석한 내용 이 편성되었다. 이 책을 엮으면서 필자는 송나라 시인 蘇 東 坡 의 廬 山 眞 面 目 가운데 不 識 廬 山 眞 面 目 只 緣 身 在 此 山 中 (여산의 참모습을 알 수 없으니, 그것은 이 몸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리라) 이 라는 구절을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이 구절이 암시하고 있듯이, 중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 는 대학생, 관계 전문가, 정책결정자들이 鄧 小 平 시대의 중국정치와 현대화라는 그림을 감 상할 때, 높은 산만 쳐다보거나 아니면 깊은 계곡만을 내려 보아서는 안 되며, 산이 높으면 계곡이 그 만큼 깊다는 시각을 가져야만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부록에는 중국정치 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초자료인 중국공산당 장정과 중국인민공화국 헌법을 수록하고 있 으며, 이는 가장 최근에 수정 통과된 것이다. 16
주요논문요약 새로운 시각에서 본 소련의 對 韓 半 島 政 策, 통일연구문제,1988. 한반도에 있어서 소련은, 과거에는 분단의 장본인이었으며 오늘날에는 남북한의 대립과 경쟁에 직 간접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므로 소련의 對 韓 半 島 政 策 에 관한 연구는 단순한 공산권 연구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의 생존권이 걸린 주요한 과제이다. 본 논문은 소련의 세계전략과 한반도 정책을 살펴 볼 수 있는 분석의 틀로서, 認 識 에 의 한 접근방법(perceptional approach)을 원용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소련의 대외정 책을 수립하는 과정에 常 數 로서 작용하는 인식의 요소를 찾고, 이를 위해 먼저 소련의 대외 정책의 목적과 전략을 살펴보고, 나아가서 한반도에서 이들의 전략과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 에서 영향을 미치는 내외의 핵(core) 변수와 주변(peripheral)변수의 상대적 중요성을 분석 하였다. 끝으로 본 연구는 지금까지의 분석을 토대로, 향후 우리의 對 蘇 관계를 위한 대응책 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본 논문에서 필자는 먼저 소련의 세계전략을 이해하기 위한 틀로서 소련 대외정책 수립자 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常 數 요인과 이에서 도출된 목적을 설명하고, 소련의 對 韓 半 島 政 策 의 변화추이를 시기별로 구분하여 그 전개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3개의 핵 변수와 5개의 주변변수의 상대적 중요성을 살펴보고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해서 소련과 한반도 관계에서 가장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무엇보다 관계당사국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즉 소련의 권력 구조의 성격과 변화, 북한의 주체사상, 한국의 경제성장과 국제지위 향상 등이 소련과 한반 도 관계의 핵을 이룬다. 그 외, 미 소 관계, 중 소 분규, 미 일 중 삼각관계, 주한미 17
군을 포함한 한 미 동맹관계, 남북관계는 그 주변에 형성한다. 여기에서 우리의 對 蘇 관계 개선방안은 먼저 한국이 지니고 있는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적이 위치와 소련이 추구하는 세계전략을 감안하여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논하며, 이를 위해 필자는 다음의 7가지 정책대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첫째, 소련의 궁극적인 세계전략의 목적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맑스 레닌주 의와 국가이익과의 상관관계, 소련 대외정책의 일관성 여부와 평가 기준, 소련의 국내요인 이 대외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의 범위 등 제반 문제에 관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할 수 있는 소련관계 전문요원 양성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둘째, 韓 蘇 관계에 그 어떤 변수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주체적인 매력 즉 경제성장 과 국제적 지위 향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치적 안정기반 위에서 경제 성장을 지속적으로 다져야 하고 국제적 지위를 향상시키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셋째, 73년 6 23선언 이후 한국은 對 蘇 接 近 을 위한 정치적인 제스츄어만 있었지 81년 1 12서언까지 무려 7년간 공백이 있었다. 결국 우리는 이 사이 소련이 한국의 정치 경제 및 군사면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비적성 분위기를 유도할 수 있는지, 그 방법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근본적인 연구와 노력은 없었다. 그러므로, 필자는 앞으로 對 蘇 戰 略 은 무엇보다 그 일관성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넷째, 한국과 소련이 서로 접근을 시도하더라도 우리가 예상하는 것 같이 북한이 중공에 밀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소련측에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러므로 우리는 북한의 자주노선과 이에 대한 소련의 불신을 향후 우리의 북방정책을 추진하는데 최대한 이용할 필 요가 있다고 논하고 있다. 다섯째, 한국의 대소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변변수 가운데 하나는 중 소 관계이 다. 80년대 들어와서 중 소는 서로 화해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으나 당과 당간의 화해가 이 루어지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중 소간의 화 해가능성에 대해 예리한 판단이 필요하다. 여섯째, 한국과 소련 사이의 환경을 조성하는 주변 변수 가운데 미 소관계, 주한 미군을 포함한 한 미 동맹관계, 그리고 미 일 중 삼각관계를 들 수 있다. 미 일 중의 삼각관계가 현재의 취약성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협력체제를 구축하며, 여 기에다 한국마저 이 협력체제의 일원으로서 기능을 한다며, 소련은 이 체제의 단결을 저해 할 목적으로 한반도내 긴장을 야기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필자는 미 일 중 협력 체제에 있어서 우리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準 독자성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일곱째, 한 소 관계 개선에는 무엇보다 참을성과 예지가 필요하다. 한 소 관계가 적대 관계에서 전술적인 차원으로 넘어가는데는 25년의 세월이 경과했다. 앞으로 전술적인 관계 를 떠나 전략적인 관계를 수립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소련을 생각하는 만큼 소련은 한번도 자신의 대외문제 가운데 높은 순위 다시 말해, 중요한 이익(vital interest)이라고 간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술적인 관계의 취약점이 명백한 이상 지난 30여 년 걸쳐 18
누적된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성급한 자세는, 현재 주어진 조건에 과도하게 짐을 지 움으로써 오히려 역효과를 자초하게 될 것이라고 필자는 전망하고 있다. 80년대 중국의 초대강국 정책 : 개방 독자 노선, 사회과학연구 제9 집 제1권, 1989.08.30, pp.75-96. 본 논문에서는 1982년 개방 독자노선이 공식으로 천명되기에 앞서 鄧 小 平 이 실제로 등 장한 1978년부터 미 소 관계의 변화와 중국에 대한 미 소의 정책, 나아가서 중국이 당 시에 처한 국내 상황을 살펴보고, 이 요인들이 1970년대 안보중심의 반소 연합전선 으로부 터 경제발전과 안정된 국제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개방 독자정책으로 전환되어가는 과정에 미친 영향을 조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 중국의 초강대국정책이 지니고 있는 성격과 문 제점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중국의 초강대국정책은 미 소의 제2냉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던 1980년대 초부터 중 소 관계개선의 조짐을 보였다. 한편 고르바초프가 등장하면서부터 구체화 되어왔던 미 소 데탕트는 중국의 안보와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중 소 관계에서 오는 미국의 우려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중 소 관계를 더욱 개선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 다. 중 미 관계는 양국이 상이한 이념과 체제, 이해관계와 세계전략으로 인해 그 동안 불 편한 때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양국관계는 발전하였다. 이와 같은 전반적인 상태는 앞으 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필자는 전망하고 있다. 중국의 대소관계 개선과 우리의 북방정책, 통일문제연구, 1990. 소련공상단서기장 고르바초프의 중국방문(89.5.15~18)은 국제정치에 있어서 한 획을 그 을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이것은 지난 30여 년 동안 계속되어온 양국의 적대관계가 비 대적인 관계로 변화되었음을 상징하고 있다. 한국정부 또한 88년 7월 7일 유엔에서 행한 노태우 연설에서 중 소를 포함한 공산권 국가의 관계개선을 선언한 이후 이들 국가와 다 양한 접족을 활발하게 추진하여 왔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중 소 관계 개선과 이것이 우 리의 북방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중 소 관계에 대해서 본 논문은 먼저 지난 40년에 걸친 중 소관계를 약술하고 있으며 북방정책에 대해서는 중국의 대소관계정상화가 한국의 북방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에 앞서 한국의 북방정책의 연원을 약술하고 있다. 이 북방외교가 지향하고 있는 목표는 크게 3가지 : 1) 안보적 차원에서 한반도의 평화통 일기반과 안정된 동북아 전략환경을 조성하고 : 2) 공산권과의 경제교류증대를 통한 경제 협력의 다변화와 경제적 고도성장유지 : 3) 전방위외교를 통한 국위신장을 들 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목적을 추구하는 한국의 북방정책에 중 소 관계 개선이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 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중소관계 정상화가 몰고 온 획기적인 동북아 질서변화를 능동적으로 19
수용하기 위해서 우리의 북방정책을 다음과 같은 6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첫째, 우리는 북방정책을 전략적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으로 이 북방정책은 공산권 정치 경제 문화적인 유대강화를 통해서 우리의 번영과 국 위를 선양하고 한반도에 군사적 적대관계를 비적대적 관계 내지 평화공존으로 전위시키며, 궁극적으로 한민족의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동질성 형성과 국제환경을 조성하는 전략적 의미 를 지녀야 한다. 둘째, 북방정책에서 오는 이념상의 혼란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그 결실을 다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대응책 또한 기능적인 차원에서 점진적으로 신중하게 모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셋째, 현재 남북한 관계는 실질교류의 형식으로 진전돼 가고 있고 정부차원의 통일 대화 와 민간영역의 경제교류가 자유경쟁양상을 띠게 됨에 따라 남북문제를 총괄적으로 다루는 정부 민간으로 구성된 단일화된 조직의 설치가 시급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넷째, 북방외교에서 중소와의 정치적 관계정상화를 서두르기보다는 중장기차원에서 가장 현실적인 수단인 경제적 협력관계를 증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섯째, 북방정책의 추진에 앞서 주변 4강에 대한 우리의 외교자세의 재정립이 요청된다. 즉 필자는 앞으로 한국은 외교문제에 있어서 강대국에 의존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상호 의존 하는 국제질서와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주성 사이에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정 치력을 배양해야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여섯째, 북방정책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체제내의 결속된 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제6공화국이 현대한국사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4가지 기본국가전략을 수립하려면 그것은 1)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민주화를 실현하며, 2) 유형 무형의 가치를 상 대적으로 박탈해온 근로자, 농민, 일반대중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가진 자의 기업윤 리를 확립하고, 3) 민족의 염원인 통일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북방정책을 지속적으로 추 진하며, 4) 국기를 흔들 정도의 부정 부패 퇴폐 타락으로 인한 정신오염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인간성 회복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므로 이 북 방정책은 대외적으로 자주노선과 개방정책을 추구하되, 우방고의 대화와 결속을 다지며, 국 내적으로 민주화, 부의 균등한 배분을 통한 정치적 안정과 건강한 정신으로 단합된 국민의 힘이 표출될 때만이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주장한다. 덩샤오핑 政 治 思 想 에 관한 硏 究, 국제정치논총 제30집 2호, 1990. 04. 25, pp.283-312. 덩샤오핑의 정치사상은 그가 마오저뚱 이후 역사를 바꾼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물론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라는 덩샤오핑 사상의 이론적 체계와 20
실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현대화의 성공여부에 달린 것이라고 한 다면 이와 같은 평가는 앞으로 상당 기간이 경과된 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본 논 문의 목적은 단지 현재 광범하게 진해되고 있는 중국 현대화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 그 연원 이 되는 덩샤오핑의 정치사상을 분석하는데 있으며, 이를 위해 덩샤오핑의 신념체계와 그로 부터 파생된 정책의 성격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또한 본 연구를 위해 필자는 덩샤오핑선 집 : 1975~1982를 중심으로 중국정부의 공식문서 등 일차자료의 내용을 분석하고, 덩샤오 핑 전기와 그의 개혁정책에 관한 광범위한 2차 자료를 참고하였다. 본론에서는 실사구시라는 단순화된 개념을 통해 맑시즘과 마오저뚱 사상을 새롭게 해석한 덩샤오핑의 사상이 현재의 당면과제인 중국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과 이념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서 우리는 프라그마티즘(pragmatism)의 성격과 제도화(instintutionalization), 안정, 질서 속 에서 성장을 추구하려는 서구형 절치발전론 특히 사뮤엘 헌팅톤의 발전구도와 여기에서 파 생되는 제한된 타협 및 개혁과 보수의 2중적인 성격이 내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덩샤오핑선집을 중심으로 한 자료는 그의 정치사상의 이론적 틀과 실질적인 정책의 성격 과 범위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 그는 지난 날 고정관념인 맑시즘-레닌니즘-마 오저뚱 사상을 재해석 함으로서 그의 사상적 기초인 실사구시 개념을 정립하고, 이를 통해 사상통일과 정치, 경제, 교육, 과학개혁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정책수립의 기초로서 삼았다. 한편으로 경제영역에서 덩샤요핑은 원로세력인 진운과 진보적인 개혁세력인 후야오 방과 자오쯔양의 정책을 강력히 지지했으며, 그 어느 분야보다도 제한한 지식에서 오는 오 류를 범하면서 일관성있는 입장을 견지했다. 또한 중국의 핵심권력구조인 당 정 군의 개 혁의 방향과 한계를 설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교육과 과학정책에서 과학자와 기 술인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고 이 분야의 획기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이와 같이 이론과 실제에서 실사구시의 발전, 개혁과 개방, 안전과 타협, 한계와 이중성을 보이고 있는 덩샤오핑의 사상적 특징은 자산이 치밀한 이론가가 아니라 실천가인 동시에 사 회주의 혁명가이며, 테크노크라트가 아니라 정치인 이라는 사실과 발전을 위해 난( 亂 ) 을 피하고 안정과 단결을 유지하려는 중국적 정치문화에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말하고 있다. 한편 아편전쟁 이후 150년이 지난 현재 중국은 가장 안정된 국제환경을 맞고 있으며, 이 와 같은 안정된 국제환경이야말로 중국이 사회주의 현대화를 달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국내의 정치적 안정과 단결없이는 이 개혁과 개방의 성과를 얻을 수 없기에 덩샤오핑은 이념적으로 실사구시와 4대원칙이 조화를 도모하는 한편, 정치적 타협과 제한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필자는 향후 덩샤오핑이 살아있는 한 중국의 중단기적 차원에서 이와 같은 국가기본 전략 을 지속할 전망이다. 즉 중국은 실사구시를 통해서 새로운 정치 경제 사회적 현실을 분 석하여 새로운 정책대안을 마련하고 급변하는 국제질서에 적응함으로써 안정된 국제환경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서 이념적, 정치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맑시즘-레닌니즘-마 21
오저뚱 사상과 실사구시의 융합을 도모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여년간 추진해온 경제개혁 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최근 천안문 사태에서 본대로 지도층 간의 노선투쟁 과 정치적 불안이 계속되며, 소련의 소수민족의 연방탈퇴 움직임과 민족분규, 동구의 자유 화운동이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미칠 경우 중국은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고 이 야기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정치 발전과정에서 덩샤오핑의 공헌은 과거 지도자들이 누렸던 특권, 권력남용, 인맥관계에 관한 요소들을 최소화하고, 지도자 개인보다 법과 제도의 확립을 강 조했으며, 이를 통해 경제발전에 필수적인 정치적 안정과 지도층의 단결을 성공적으로 유지 한데서 찾을 수 있다. 나아가 실사구시를 통해 맑시즘-레닌니즘-마오저뚱 사상이 지니는 보편적인 원리와 현재 중국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조화시켜 개혁과 개방으로 유도하는 한 편 중국식 사회주의의 현대화를 달성할 수 있는 이념적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덩샤오핑 의 정치사상은 새로운 조명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하고 있다. 10년 국가발전 전략과 8 5 계획 속에 나타난 중국지도부의 노선투쟁에 관한 연구: 경제정책을 중심으로, 국제정치논총 제33호 2집, 1993. 06. 15, pp. 225-244. 본 연구는 1991년 4월 9일 폐막된 중국의 제7기 4차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승 인된 리펑총리의 국민경제사회발전 10년프로그램과 8차5개년계획 가운데 내재된 현 중국 지도부의 노선마찰의 성격을 심층분석 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른바 10년프로그램은 1991년 부터 2000년까지의 장기발전 계획이며, 8차5개년계획은 91년부터 95년까지의 경제발전계 획을 의미한다. 본 논문에서는 현 10년국가발전전략과 8 5계획을 둘러싼 현지도부의 노선 마찰의 내용과 원인, 그 전개과정을 경제정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이것이 향후 중국의 권 력구조와 정책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전망하고자 하였다. 리펑의 보고서는 90년대 중국의 경제발전에 대한 10년프로그램과 8차5개년계획의 대강 을 밝히고 있지만, 동 보고서가 담고 있는 이론적 틀과 실천방안은 향후 경제정책 수립의 기초로서 기능하기 보다 보수원로, 보수적 개혁세력과 덩샤오핑, 진보적 개혁세력간의 상이 한 노선을 절충하고자 노력한 나머지 구체성이 결여된 원칙만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보고서에서 그의 중도좌파적인 성향을 읽을 수 있다. 즉 노선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정치개혁에 있어서는 경제발전에 필요불가결한 최소한의 제도개혁을 제외하고는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현재의 권력구도를 유지하되 중앙의 권한을 보다 강화하고자 한다. 나아가서 고도경제성장 정책에서 오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안정기조 위에서 균형있 는 발전을 도모하는 한편 부르주아 자유화를 저지하기 위한 이념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한 마디로 개혁과 개방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되 4대원칙의 준수라는 테두리 안에서 그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현재의 노선마찰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자는 중국의 현재화를 시작한 지난 1978년 당제 22
11기 3중전회로부터 지금까지 4차례에 걸친 개혁과 치리정돈의 순환과정을 분석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권력구조의 변화를 제로 섬게임에 따른 권력투쟁으로 해설하 기 보다 넌제로섬게임(non-zero-sum game)의 타협이란 규칙에 따른 노선투쟁의 결과라고 보고 있다. 필자는 타협은 결국 개혁 개방과 함께 4대 원칙의 준수라는 상호 모순된 형태 로 나타날 것이며, 통제완화-혼란-통제강화-정돈상태-통제완화 라는 현상을 되풀이 할 가 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한편 지금까지 이 현상은 진보적 개혁세력이 보수적 개혁 세력의 입장을 수용함으로써 나타나는 변증법적 변화과정(dialectical process)이었다. 중국의 현 지도부는 노선마찰을 떠나 경제발전이라는 하나의 중심과제와 개혁 개방과 4대원칙의 준수라는 2가지 기본전략에 따라 선진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자 하나, 향후 경제발 전이 가속화되면서 필연적으로 정치와 사회적 변수(politico-social variables)에 커다란 파 급효과를 미칠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즉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교육시설이 확충되 면서 문맹율이 낮아지고, 소득수준이 증대하면서 물질적 요구 외에 자유 평등 인간의 존 엄성에 대한 민주화 요구가 증대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한꺼번에 분출하는 다양한 욕구를 충 족시키기 위해서 사회주의와 일당독재라는 낡은 이념과 통치기구를 가지고 이 새로운 변화 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더욱이 80년 말부터 시작된 사회주의 몰락 과 함께 전세계가 이념과 체제를 떠나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전념하고 있는 현재의 국제상황 은 중국정치체제의 변화 가능성을 제고시킬 가중치 역할을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요인으 로 인해 중국공산당이 조만간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개발독재 형식으로 서커스와 빵 을 사회구성원에게 적절히 제공함으로써 일당독제체제가 위기를 극복하고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와 같이 이율배반적인 상황이 계속될 것인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가 가로 놓여 있다고 필자는 이야기 하고 있다. 鄧 小 平 시대의 外 交 政 策 과 實 事 求 是 의 역할, 중소연구 제17권 여름호, 1993.08.01, pp.15-36. 중국외교정책은 중국의 이익과 중국이 처하고 있는 대내외적 상황에 대한 반응이라기 보 다는 이들을 정의내리는데 영향을 미치는 인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덩샤오핑 과 개혁세력들의 인식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實 事 求 是 개념이 오늘날 중국이 처한 군내외적 상황을 분석하고, 경제현대화가 당면한 중국의 최우선과제임을 분명히 하며,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 지난날 70년대 反 蘇 연합전선으로부터 안정된 국제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개방 독자정책으로 전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덩샤오핑시대의 대외 정책을 보다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현재 중국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인 實 事 求 是 의 역할에 대한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따라서 덩샤오핑시대의 대외정책을 이해하기 위한 시작 은 바로 實 事 求 是 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 논문은 과거 마오저뚱시대 중국의 외교정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23
矛 盾 論 帝 國 主 義 階 級 鬪 爭 의 개념과 덩샤오핑시대의 實 事 求 是 개념 사이의 상호 연관관 계가 무엇이며, 이것이 1982년부터 공식적으로 표명되고 있는 개방과 독자노선에 어떤 역 할을 하고 있는 지를 살펴보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덩샤오핑의 實 事 求 是 思 想 과 外 交 政 策 의 상관관계에서 다음 몇 가지 특징을 추출하고 있다. 첫째, 덩샤오핑의 實 事 求 是 개념은 오늘날 중국의 현대화라는 국가목표와 더불어, 이를 달 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對 外 政 策 을 수립하는 認 識 의 틀을 제공한다. 둘째, 이 개념은 중국의 내외환경을 현실적인 바탕 위에서 지난날의 외교정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세가지 이념적 요소인 모순론 제국주의 계급투쟁을 재해석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셋째, 實 事 求 是 에 따른 상기 이념적 요소의 재해석은 기존 마르크시즘-레닌이즘-마오저뚱 사상의 폐기나 단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의 連 續 이라는 차원에서 대외정책의 새 로운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 덩샤오핑에 의하면 당면하고 있는 국가 최대과제인 현대화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는 무엇보다 國 際 安 定 이 긴요하며, 연합전선 또한 현재 무르익고 있는 평화무드를 장기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지난날의 제국주의와 모순론을 실사구시적 차 원에서 재해석하여 패권주의의 개념과 마찰 내지 갈등의 개념으로 전환시키고, 전쟁을 지연 하기 위한 연합전선이 아니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연합전선을 구축하고자 노력한다. 결론적으로 1)모순론 제국주의 계급투쟁과 實 事 求 是, 2)독자노선과 개방노선이 표면적 으로 상호모순된 개념일지 모르나 덩샤오핑시대의 외교정책 가운데 위와 같은 개념들은 변 증법적 발전과정을 통해서 상호 有 機 的 인 連 關 關 係 를 유지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 필자는 덩샤오핑은 實 事 求 是 를 통해 기존 이데올로기를 재해석하는 한편, 이 를 당면하고 있는 국제정세에 적용하여 중국식 사회주의현대화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외개방과 독자노선을 추구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實 事 求 是 와 중국 외교정책의 유기적인 상호연관관계는 현 개혁세력이 권력기반을 유지하고 있는 한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덩샤오핑시대의 脫 중앙집권화와 反 분권화 갈등구조 : 中 央 정부와 地 方 정부 관계, 중소연구 제8권 제3호, 1994.09.01, pp.119-138. 본 논문은 덩샤오핑 시대의 분권화와 반분권화 갈등구조를 노선투쟁(two-line struggle) 이라는 접근방법에 따라 분석하고자 하였다. 또한 분권화의 개념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 이의 권한배분, 즉 중앙집권화와 지방분권화라는 제도적 차원으로 한정하였다. 일반적으로 공산권에서는 3가지 형태의 분권화가 있다. 1)중앙의 권력을 지방으로 분산하는 제도적 차 원의 분권, 2)일당독재로부터 당 정 분리로 나아가는 권력분립 차원의 분권, 3)경제기획, 조정, 경영권이 정부로부터 기업으로 이양되는 경제적 차원의 분권이 있다. 이 3가지 분권 24
가운데 이 논문은 제도적 차원의 분권을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다. 중국지도자들은 1978년 이후 선진 사회주의국가건설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고, 이 를 달성하기 위해서 대외개방과 개혁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일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 까지 이 개혁 가운데 분권화의 방향 범위 속도 방법을 둘러싸고 노선마찰을 빚어왔다. 그러나 이 분권화와 반분권화의 갈등구도는 제로섬게임에 따른 권력투쟁으로 보기보다 넌 제로섬게임의 타협이란 규칙에 따른 노선마찰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보수원로 보수적 개 혁세력과 덩샤오핑 진보적 개혁세력은 현대화에 필수적인 정치적 안정기반과 지도자 상호 간의 단결을 유지하려는 공통된 인식과 함께 현실적 이해관계로 인해 노선마찰을 권력투쟁 으로 표면화시키지 안하고 共 生 을 바탕으로 한 설득과 타협의 정책결정과정에 있었던 것으 로 보인다. 경제와 관련해서 보수원로와 보수적인 개혁세력들이 개혁정책의 실패를 수습하기 위해 중 앙정부의 거시적인 계획경제의 효율성을 강조하면 진보적 개혁세력은 강화된 중앙정부의 기 능을 중심으로 한 조정정책을 수용하였다. 그 결과 처음에는 급속하고도 광범위한 개혁 개방정책과 함께 분권화가 추진되었으나, 개혁의 부정적인 후유증이 심화되면서 중국지도부 내 노선투쟁이 전개되고, 여기에서 긴축 내지 조정정책과 함께 反 분권화가 되풀이되는 현상 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현상은 경제정책의 결과를 두고 표면적으로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것 으로 보이지만, 이면적으로는 진보적 개혁세력이 중심축이 되어 보수적 개혁세력의 입장을 수용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지방분권화라는 변증법적 변화과정으로 나타나고 있 다. 한편 현 지도부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내재되어 있는 정치적 지방분권화는 통치의 효율 성을 제고하는 동시에 변화된 환경과 증대된 인민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점진적인 제 도의 개선 내지 조정을 인정하지만, 아직은 지방정부에게 책임에 상응하는 권한과 재정적 뒷받침이 결여된 상태에서 인민에 대한 통제완화와 서비스향상을 위한 기능과 책임을 강화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지방정부의 정책결정과정이나 대표를 선출하는데 인민의 참여 를 제도화하는 지방분권화는 학문적인 논의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앞으로 경제와 관련해서 지방분권화의 방향과 범위는 중앙정부의 세입과 세출의 불균형에 서 오는 만성적인 재정적자, 총수요와 공급간의 불균형, 특히 신용, 외환 및 원자재의 수요 와 공급의 불균형, 경제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한 경영의 합리성과 기술향상의 문제, 지 역과 지역간의 불평등 발전과 인민과 인민간의 소득 불균형, 지속적인 산업구조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비대한 가공산업, 취약한 농업기반 및 기간산업, 인프라스트락쳐, 미분화 된 노동시장, 인민의 일상생활과 경제발전의 필요성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건설산업과 서비 스분야 등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해소할 것인지 그 수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필 자는 논하고 있다. 한편 정치적 반분권화가 제1차 경제조정기에 2번, 그 후 3번의 경제조정기에 각각 한번 씩 있은 것으로 미루어 양자 사이에 상호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므 25
로 향후 경제발전이 가속화되면 정치와 관련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권력배분에도 커 다란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필자는 앞으로도 상당기간에 걸쳐 변증 법적 발전과정을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한정된 분권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그러 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진보적인 개혁세력이 중심축이 되었을 경우에 한하는 것이므로, 덩샤 오핑 사후 현재의 중심축과 변화여부가 중요한 변수이며, 이에 따라 분권화의 성격과 범위 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하고 있다. 중국지도부의 정치발전 전략과 노선투쟁: 李 鵬 보고서 중심으로, 대구 경 북 정치학회보 제2호, 1994.12.29, pp.111-129. 1991년 4월 9일 폐막된 중국의 全 人 大 7기 4차 전체회의에서 승인된 李 鵬 총리의 국민 경제사회발전 10년 프로그램과 8차 5개년 계획 은 지난 1980년대 4개 현대화를 평가하고, 1990년대의 정치 경제 사회 이념 외교 분야에 대한 정부의 공식입장을 밝힌 것으로 서 향후 중국의 정치발전 전략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문건이 된다. 한편 李 鵬 보고서 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노선투쟁이라는 접근방법을 원용한 이유는 이 보고서에 앞서 1990년 말에 열린 당 제13기 7 中 全 會 에서 다시 중국은 지도부의 정책대립으로 인해서 현대화를 추 진하는데 있어서 2가지 기본원칙 즉 개혁 개방과 4대 원칙(사회주의 노선, 인민민주독재, 공산당의 영도, 마르크시즘 레닌이즘 毛 澤 東 사상)의 준수라는 추상적인 합의만 도출하 였을 뿐 구체적인 문제는 미결상태로 남겨두었던 것이다. 등소평이 최고 실력자로 부상한 1978년 이후에도 비록 정치적 숙청은 없었지만 노선투쟁 은 계속되었으며, 이 시기의 노선투쟁은 전보성향의 원로 및 개혁세력과 보수성향의 원로 및 개혁세력에 의해서 4차례(1978년~82년, 83년~86년, 87년~91년, 91년~현재)나 전개되 었다. 분명히 1978년 이후의 중국지도자들은 선진 사회주의국가 건설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정치적 안정과 지도부의 단결이 필수적이며 4대 원칙의 범위 안에서 개방 과 개혁정책을 추진한다는데 의견 일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국가발전 전략의 구 체적인 내용, 방법, 범위, 속도를 둘러싸고 마찰을 일으켰다. 그러므로 매번 처음에는 급속 하고도 광범위한 개혁 개방정책이 실시되었으나, 부정적인 결과가 심화되면서 중국 지도 부 내 노선투쟁이 전개되고, 조정 내지 反 분권화정책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노선투쟁은 권력엘리트 상호간의 인간관계, 이해관계, 상이한 개성과 가치관, 세대차이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전개되어 왔다. 여기에서 본 연구는 李 鵬 의 10년 국가발전 전략과 8 5계획 속에 내재된 정치발전 전략 을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는 중국 지도부의 노선투쟁의 성격을 심층 분석하는데 목적이 있으 며, 이것이 향후 중국의 권력구조와 정책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전망하고자 하였다. 李 鵬 보고서에서 나타난 정치발전의 성격과 향후 변화가능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李 鵬 보고서는 90년대 중국의 정치발전에 대한 대강을 밝히고 있지만, 동보고서가 담고 있는 정치개혁의 틀과 실천방안은 보수성향의 원로, 보수성향의 개혁세력과 鄧 小 平 진보성향의 26
개혁세력 간의 상이한 노선을 절충하고자 개혁과 개방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되 4대 원칙의 준수 라는 원칙을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동보고서는 노선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 는 정치개혁에 있어서는 경제발전에 필요불가결한 최소한의 제도개혁을 제외하고는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현재의 권력구도를 유지하되 중앙의 권한을 보다 강화하려는 데서 그 의 중도좌파적인 성향을 읽을 수 있다. 鄧 小 平 사후 중국 권력구조의 성격분석: 노선투쟁에 따른 변증법적 과정 (dialectical process) 시각에서, 대구 경북 정치학회보 제4집, 1997. 02. 27, pp.73-110. 본 논문은 향후 鄧 小 平 과 같은 혁명 제1세대 원로들이 부재한 상황에서 권력구조의 성격 을 분석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노선투쟁의 변증법적 발전과정을 원용하고자 하였다. 먼저 노 선투쟁에 관하여 살펴보면 이 노선투쟁은 1992년 초 鄧 小 平 의 南 巡 講 話 이후 鄧 과 陳 雲 간의 대립에서 볼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의 권력투쟁이 아니라 넌 제로섬 게임(non-zero-sum game)의 규범이 작용한다. 즉 각 노선을 추종하는 세력은 소속 그룹에 대한 충성심과 이념적 동질성에 따른 결속된 조직이 아니라 상이한 이해관계, 인간 관계(학연, 지연, 혈연 등), 개인적인 성격과 가치관에 바탕을 둔 상당히 유동적이며 융통성 이 있는 집단이다. 다음으로 중국정치에서 변증법적 발전과정의 중요성을 살펴보면 鄧 小 平 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도 비록 정치적 숙청은 없었지만 4번 1) 1978-82년, 2)1983-86년, 3)1987-91년, 4)1992년-현재 의 노선투쟁에서 매번 마다 처음에는 급속하고도 광범위한 개혁 개방정 책이 실시되었으나 부정적인 결과가 심화되면서 지도부내 노선투쟁이 전개되고 治 理 整 頓 이 그 뒤를 이었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1978년 이후 선진 사회주의 국가건설이라는 국가목표 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개혁 개방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정치적 안정과 지도 자들의 단결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데 의견 일치를 보였다. 그러나 중국은 이 개혁 개방의 내용, 범위, 속도, 방법을 둘러싸고 보수성향의 개혁세력과 진보성향의 개혁세력 사이에 노선투쟁이 있었으며, 그 결과 급속한 경제발전과 치리정돈의 변증법적 발전을 경험 함을 논하고 있다. 본 논문은 노선투쟁의 변증법적 발전과정이라는 접근 방법에 따라 鄧 사후 권력구조의 성 격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그 개연성의 정도에 따라 6가지 가설을 설정하고 이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먼저 개연성이 아주 희박한 범주로서 1) 밑으로부터 혁명(revolution from the below). 2) 공국현상(dukedom), 3) 군부 쿠테타를 포함한 궁중혁명(revolution from the above including military coup)을 들 수 있고; 개연성이 희박한 범주로서 1) 보수성향의 개 혁세력에 의한 단일지도체제(monolithic leadership by the conservative reformists), 2) 진 보성향의 개혁세력에 의한 단일지도체제(monolithic leadership by the progressive reformists)를 들 수 있으며; 개연성이 있는 범주로서 과도기적 집단지도체제(collective 27
readership in the near term) 이후 중 장기적 단일 지도체제(monolithic readership in the long term)를 들어서 논하고 있다. 鄧 사후 중국의 권력구조 성격을 분석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나 본고에서는 지금까지 鄧 小 平 사후 6가지 권력구조의 변화가능성을 3가지 범주로 나누어 노선투쟁의 변증법적 발전 과정에 따라 살펴보고, 중국은 鄧 小 平 이라는 거목이 사라진 이후에도 권력구조가 단절 아닌 연속이라는 차원에서 주어진 조건과 역사적 환경에 따라 변증법적 변화과정을 밟을 것이며, 과도기적 집단지도체제 이후 안정된 단일노선의 지도체제가 등장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변증법적 발전과정에 따라 鄧 死 後 등장할 과도기적 집단지도체제는 경제발전에 필수 불가결한 최소한의 제도개혁을 제외하고는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현재의 권력구도를 유지하되 중앙의 통제력을 보다 강화하고자 할 것으로 필자는 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상의 분석을 바탕으로 한국의 대중정책에 대해 논하고 있다. 한국은 鄧 死 後 중국의 권력구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對 中 政 策 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고 주장한다. 향후 중국의 대외정책기조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경제발전에 필요한 안정된 주 변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주변국에 대한 선린외교를 펴는 등 대외정책노선에 근본적인 변화 는 없을 것으로 보이며, 같은 맥락에서 중국의 대한반도정책은 기존 현상유지정책을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필자는 중국은 한국에 대하여 자신의 현대화와 필요한 자본과 기술, 무역, 경영지식을 도입하기 위해서 경제협력을 강화하되 과거와 달리 다원화된 관계발전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북한이라는 카드를 이용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역사적 안목과 현실정치적 시각에서 중국에 대한 근원적인 인식의 전환이 긴요하다. 우리가 중국에게 첨단과학기술을 이전하고,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며, 축적된 경영지식을 전수하여 중국이 시장경제와 현대화를 지원하는 문제는 근시적인 이해관계보다 역사적인 해안에서 새 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江 澤 民 중심의 文 民 집단지도체제와 경제정책의 방향, 국제정치논총 제 38집 2호, 1998. 12. 30, pp.177-196. 지난 1997년 2월 중국의 최고 지도자 鄧 小 平 이 사망한 뒤 국내의 중국관계전문가들은 江 澤 民 시대의 권력구조 성격과 향후 경제정책의 방향을 분석하는데 상당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江 澤 民 을 정점으로한 단일지도체제의 확립과 함께 鄧 小 平 의 현대화 정책 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견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江 澤 民 을 중심으로한 과도 기적 집단지도체제의 등장과 함께 현대화 정책을 다소 수정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이한 분석의 배경에는 지난 18년 동안 강력한 리더쉽으로 정책대립과 권력투쟁을 견제하고 정치적 균형을 유지해온 鄧 과 같은 카리스마적인 원로가 없는 현 상황에서, 누가 어떤 방법으로 이 권력의 진공상태를 채울 것인지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 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鄧 小 平 사후 권력구조의 성격과 경제정책의 방향을 분석하기 위해서 28
노선투쟁의 변증법적 발전과정 (the dialectical process of two-line struggle)개념을 원용 하고자 하였다. 본고에서는 江 澤 民 중심의 文 民 집단지도체제와 경제정책의 방향을 살펴보았다. 鄧 死 後 현 재 중국의 권력구조는 江 澤 民 을 중심으로한 과도기적 文 民 집단지도체제이며, 5년이 지난 후 에는 중 장기적 카리스마적인 단일지도체제가 등장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아울러 통치양 식에 있어서도 鄧 死 後 文 民 집단지도체제는 온건한 권위주의의 성격을 띌 것이고, 인치와 법 치가 혼재한 가운데 법치 아니면 인치가 배제된 법치로 나아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어느 상황이든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수렴하고, 권력기구의 상호경쟁과 타협을 통 하여 국가목적을 추구하는 서구식 민주화가 아니라 공산당의 지도력하에서 이루어질 것이므 로 서구의 제도변화와는 근본적으로 상이할 것이다. 특히 지난 20년간에 걸친 중국의 현대화는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 세계무대에 서 중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은 반면에 중국의 정치와 경제에 새로운 문제점을 제공했으 며, 지난날 권력의 정통성을 부여한 도덕적, 이념적 자산의 고갈을 가져왔다. 따라서 현 집 단지도체제는 최소한 경제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여야 그 정통성이 유지될 것이다. 나아가서 지속적인 경제발전은 향후 중국의 정치와 사회전반에 큰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 로 예측하고 있다. 즉 산업화와 함께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교육시설이 확충되면서 문맹률 이 낮아지며, 소득수준이 증대하면서 중국인들은 물질적 요구 외에 민주화 요구가 증대될 것이고, 이는 현재의 사회주의 이념과 일당독제체제에 대한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사회주의 붕괴와 이념과 체제를 떠나 경제발전과 민주화라는 시대적 요청을 외면할 수 없는 국제상황은 중국으로 하여금 체제의 변화가능성을 고려하도 록 가중치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따라서 중국은 21세기에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도전과 웅전으로 점철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중 관계정상화 이후 중국의 대북한정책, 대한정치학회보 제8집 2 호, 2000년 겨울, pp.247-274. 미 국무장관 방북 시 중국의 국방부장이 대규모 군사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의 6 25 참 전 50주년 기념식을 갖고자 북한을 방문한 사실은, 향후 중국과 이를 둘러싼 국제 관계에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이런 상황에 기인해 한 중 관계정상화 이후 중국의 대북한정책에 대해 중국적 시각에서 분석하고자 하였다. 중국의 대북한정책은 현대화의 달성과 안정된 주변환경의 조성이라는 독립변수에 종속되 어 있으므로 이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중국과 북한의 쌍무 관계뿐만 아니라 남 북한을 포 함한 주변 4강이라는 다자 관계 속에서 접근해야 한다. 즉 중국은 자신의 현대화라는 국가 목표를 추진하기 위해 한반도에서의 장기적 평화가 유지되어야 하지만, 미국과 일본의 패권 주의 노선의 저지를 위해 기존의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한국에 대해서도 경제협력과 안 보차원의 관계강화를 적극 모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중국 현대화에 미국과 일본의 29
지원이 긴요한 만큼 이들 국가와의 갈등을 통제된 범위 안에서 작용할 수 있도록 세심한 노 력을 또한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복잡한 다자간의 관계 속에서 중국의 대북한정책은, 국제여론에 비추어 북한의 핵 과 미사일 문제에 반대입장을 취하면서도 북한의 울타리 역할을 함으로써 한반도에서의 자 신의 영향력을 제고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毛 澤 東 사후 중국 군 현대화와 정치적 역할의 상관관계, 중소연구 26 권 2호, 2002.8.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중국군의 현대화 작업과 그 정치적 역할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전문가들 사이에는 크게 두 가지 시각이 있다. 어떤 전문가들은 군 현대화로 인하여 인민해방군의 성격이 근원적으로 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인민해방군 의 정치적 역할도 크게 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즉 인민해방군은 공산혁명 과정과 1949년 건국 이후에 발생한 몇 차례의 중대한 정치 사회적 위기 속에서, 그리고 권력승계 과정 등에 있어서 중요한 행위자로 역할을 하였으나, 군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이러한 군의 역할에는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들에 의하면 당 군간의 조직과 기능의 분화 가 심화되면서 군에 대한 당의 통제가 이완됨과 동시에 군의 정치적 역할은 축소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군부라는 특수한 집단의 이해관계와 전문성이 강조되는 직업군인제도 (professionalism)가 정착할 가능성도 점증되어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추세는 궁극적으로 인민해방군을 당의 군대에서 국가의 군대로 전환시킬 것이며, 이는 서구와 마찬가지로 문민 우위를 인정하면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조직으로의 발전을 의미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 이다. 이들은 그 가능성을 1989년 6 4 천안문사태에서 찾는다. 당시 사관학교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한 일부 중견간부들이 무장하지 않은 시위대에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했는데, 이것이 이러한 주장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전문가들은 오늘날에도 인민해방군의 성격이나 그 정치적 역할에 있어서 큰 변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의하면 오늘날의 중국 군부는 국제 안보환경의 변화와 당의 군대라는 기존의 틀을 유지하면서 전투능력을 향상시키려 했던 鄧 小 平 의 군 현대화, 그리고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군의 지지를 필요로 하는 江 澤 民 의 등장을 거치면서, 비 록 군부의 집단적 이익 추구로 인해 군의 정치 참여 범위와 정도, 성격이 다소 변화하긴 했 지만, 공산 혁명기에 형성된 당 군일체 내지 당의 군대라는 政 治 文 化 적인 기본 골격이 유 지되고 있어서, 毛 澤 東 시대와 비교했을 때 전통적인 군의 정치적 역할에는 큰 변화가 없다 고 한다. 이들은 최근에 인민해방군이 보여준 대만에 대한 일련의 무력시위가 중국 정책결 정 과정에서 군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지 적한다. 본 논문은 이와 같은 상이한 두 가지 관점에 유의하면서 毛 澤 東 사후 鄧 小 平 과 江 澤 民 의 군 현대화가 인민해방군의 정치적 역할에 미친 영향을 다음의 네 가지 변수에 따라 분석하 30
고자 하였다. 먼저 毛 澤 東 시절에 군의 정치적 역할이 컸던 이유를 창군 및 공산혁명 과정 에서 형성된 당 군 일체 혹은 당이 군대라는 政 治 文 化 적 변수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본 논문에서는 이와 같은 政 治 文 化 적 변수와 그 연속성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다음으 로 鄧 小 平 은 군 현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경제현대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군 현대 화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에 따라 중국의 군 현대화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첨단 과학무기와 장비보다는 소수 정예화와 군의 전문성과 직업성 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하여 추진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군이 누 렸던 기존의 정치적 역할을 약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鄧 小 平 의 군 현대화를 두 번째 변수로 설정한다. 나아가서 군사적 경험과 군부 내의 지지기반이 없는 江 澤 民 으로서는 鄧 小 平 의 후계자로 권력을 承 繼 하는 과정에서 군부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하 였는데, 이와 같이 江 澤 民 을 圍 繞 한 개인적 정치적 환경이라는 변수가 군의 정치적 역할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므로 이를 제 3의 변수로 설정한다. 끝으로 인민해방군도 다른 어느 나라의 군대와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이익을 지키고 확대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집단이 므로, 이와 같은 集 圍 理 論 적 관점에서군 현대화에 따른 군부 자체의 성격변화와 군부라는 조직의 이익추구 역시 군의 정치적 역할에 영향을 미치는 또 하나의 변수로 고려된다. 한편 이러한 네 변수 가운데 정치문화, 鄧 小 平 의 군 현대화, 江 澤 民 의 군사적 경험의 부재와 권 력승계과정 등은 독립변수(independent variable)로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은 분석 틀을 통하여 필자는 다음의 논점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오늘날 인민해방군은 당 군 일체 내지 당의 군대라는 기존의 정치문화를 유지하면서도, 그 정치 적 역할을 범위, 정도, 성격에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즉 공산 혁명기를 거쳐 당 군간의 조직이 분화된 건국 이후 毛 澤 東 시대의 군은 군의 정치참여를 허용하는 정치문화로 인해 당 노선과 정책에 대한 지지뿐만 아니라 정책결정 과정에서도 포괄적이면서 적극적인 역할 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毛 사후 鄧 小 平 시대가 등장하면서 군은 당 노선과 정책에 대 한 기존의 포괄적 지지 보다 경제현대화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주변의 평화로운 분위기 조 성 이라는 한정된 범위에서의 지지기능을 수행하였으며,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군의 역할 또한 현저히 축소되었다. 한편 군 경력이 없는 기술관료 출신인 江 澤 民 이 등장하면서 군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당의 군대라를 정치문화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군의 전문성과 직업성이 더욱 강조되면서, 권력승계와 경제현대화에 대한 군이 제한적이면서도 소극적인 지지가 있었지만 모델로서의 일반적 지지기능은 더욱 약화되었다. 아울러 군은 과거와 달리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요구와 정책결정과정에 있어서 보다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하 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외 정책결정과정에서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제한하거나 자제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한편 중국 군에 관련된 자료의 빈곤성, 폐쇄성, 불투명성을 고려한다면, 인민해방군의 현 대화와 정치적 역할의 상관관계를 분석한다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러나 중국은 세 계화 추세에 신속하게 적응하여 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외국 정보기관, 언론, 관계 전문가 들의 중국 군에 대한 자료 수집이 과거 보다 쉬워졌다. 문제는 자료수집이 용이해졌다 할지 31
라도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서방의 학자들이 중국의 政 治 文 化 를 이해하는데 한계를 드 러내고 있으며, 이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동일 문화권의 학자라 할지라도 체제와 이 념이 다른데서 오는 편견으로 분석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는 점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와 같은 연구의 어려움을 고려하여 관련된 주제의 1차, 2차 자 료를 앞서 언급한 분석의 틀에 따라 과학적이면서 합리적으로 분석하고자 하였다. 필자는 향후 인민해방군은 중국정치에서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는 정치문화와 일당독 재체제가 존속하는 한 당의 군대로서의 역할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나, 정치적 역할에 있 어서는 과거와 달리 그 범위와 정도와 성격에는 많은 변화를 보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 고 있다. 특히 군 현대화, 전문화, 직업화, 제도화는 당과 군의 기능적 분화현상을 가속시킬 것이므로 전반적으로 군에 대한 다의 통제력은 과거와 같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앞으로 중국에서 국내 위기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처음에는 인민무장경찰이 투입되겠지만, 만약 이 들이 실패할 경우 의심할 여지없이 당은 군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군은 지금까지 분석에서 나타난 대로 제한된 범위 내에서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차원에서 이를 수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毛 澤 東, 鄧 小 平 과 같은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와 대장정과 항일전쟁을 경험한 군의 원로들이 사라진 상황에서 군 현대화에서 오는 젊은 군 간부들의 전문성과 직업성에 따른 의식변화와 군의 對 民 이미지 개선을 고려한다면 군의 文 革 과 천안문 사태와 같은 수 준의 정치적 개입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더욱 어려워 질 것이다. 중국 현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부패원인에 관한 연구, 대한정치학회보 제11집 3호, 2004. 02. 28, pp.1-30. 지금까지 중국의 부패문제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는 그 원인을 권력의 구조 및 기능적 측 면, 경제 사회적 측면, 또는 문화적 측면으로 나누어 분석하여왔다. 이 3가지 거시적 접근 방법은 중국의 부패를 분석하는데 유용한 도구이긴 하나, 각 접근방법은 부패 연구의 한 측 면만을 강종함으로써 부패를 체계적이며 종합적으로 분석하는데 있어서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고, 부패 원인들의 상대적 중요성을 찾아내는데 있어서도 균형감각을 잃게 하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각 접근방법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이 주제를 심층적이며 과학적으로 분석하 기 위해 수평적인(latitudinal) 차원뿐 만 아니라 수직적(longitudinal) 차원에서 살펴보고 있 다. 즉 부패는 단순히 현대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념적 해이와 중국만이 가지는 독특한 전통인 꽌시( 關 係 )라는 문화적 요인, 그리고 권력은 부패하는 속성에 있으며,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 는 정치권력의 일반적 특성에 주목하여 중국의 정치제도인 일당독재체제에 서 찾고 있다. 분석의 결과, 이 거시적 요인들이 부패에 직접적으로 어떻게 영향력을 미치 는지를 과학적으로 측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과제이지만, 부패의 동기를 부여하는데 있어서 현대화라는 경제환경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권력구조의 성격으로 드러난 인치와 일당독제체제, 나아가서 급속히 식어가고 있는 혁명적 열정과 이념적 해이, 과거 전통적인 규범과 도덕에 기초를 둔 꽌시의 변화는 중국의 32
현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부패를 심화시키는 가중치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정신오염 및 정신문명건설운동과 그 실패원인에 대한 연구, 대한정치 학회보 제13집 3호, 2006.02.28, pp.121-151. 鄧 小 平 은 당면하고 있는 모순 가운데 인민들의 물질적 욕구는 증대하고 있으나 생산력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모순이라고 지적하고 생산력 향상을 위해서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였다. 이후 중국은 이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서 사회주의 초급단계론 을 개발하는 한편 시장경제 원리, 자본주의 경영지식과 관행, 과학과 기술을 도입하고, 대외 무역을 확대하였다. 그 결과 1978년부터 2004년까지 국내총생산이 1473억 달러에서 1조 6494억 달러로 연평균 9.4%, 수출입 총액이 연평균 16%로 각각 성장하고 지난해 말 외국 직접 투자액이 누계 5천 621억 달러 에 이르는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이 과 정에서 집단주의(collectivism) 가치관은 서서히 퇴색하고 개인주의가 그 자리를 대체했으며, 자본주의 국가의 과학과 기술, 지식과 문물을 접촉하면서 사회주의의 우월성과 중화사상에 기초를 둔 국가주의에 대한 의구심이 늘어났고, 황금만능주의, 부정부패, 퇴폐와 향락, 도박 과 매춘 등 도덕과 윤리적 문제가 심화되어 왔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이와 같은 정신오 염이 체제와 이념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인식하고, 이념, 윤리, 문화에서 사회주의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반정신오염운동과 정신문명 건설운동을 전개하여 왔다. 그러나 정신오 염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여기에서 본 논문은 반정신오염운동과 정신문명 건설운동이 효과를 거두지 못한 원인을 노선투쟁이나 사회주의 이념과 시장경제 가치관의 충돌 등 단일변수에서 찾기보다 공산당 일당독재체제, 경제현대화, 급속한 사회경제적 변화, 기존 가치관의 붕괴에 따른 대안부재라 는 다변적 변수에 기초한 구조적 시각(structural perspectives)에서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 를 위해서 먼저 정신오염과 정신문명에 대한 개념을 고찰해 보고, 반정신오염과 정신문명 건설 운동의 전개과정과 그 특징을 살펴보았으며, 결론에서 이 정신오염이 향후 중국의 정 치체제와 이념에 미칠 영향을 검토하고자 하였다. 필자는 중국의 공산주의 체제는 집단주의 가치관인 남에 대한 헌신과 봉사를 통해서 이상 사회를 구현하려는 高 신뢰체제이며, 지금까지 중국 공산당은 반정신오염과 정신문명 건설 이라는 방법으로 이 체제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노력하여 왔지만, 이 실험은 성공하지 못했 으며, 앞으로도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논하고 있다. 또한 논문에서는 정신오염의 근원은 일당독재체제, 급속한 경제발전에서 오는 사회적 변 화, 새로운 공유가치관의 부재에서 오는 구조적인 문제점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중국 공산당은 경제발전을 위해서 자본주의 관행과 방법을 도입하지만, 자본주 의 가치관인 자유와 민주, 인권과 개인주의를 수용할 의사가 없다. 특히 정치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politics commands everything) 는 중국의 일당독재체제하에서 정치개혁 없이 정 신문명을 건설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이 개혁에는 소극적이다. 이들은 여전히 지난날 공 33
유 가치관인 사회주의에 의존하고자 하며, 사회주의 이상과 인민들의 물질적, 정신적 욕구 증대 사이의 갈등을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사회주의 법 제도의 완성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 고 믿고 있고 있다. 나아가서 기존에 사회적 신뢰를 제공해온 꽌시 문화의 변화에서 나타나 듯이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사적 관계망을 기반으로 한 배타적인 소집단내지 이기주의적 유 대관계는 부정, 부패, 퇴폐의 온상이 되어 왔다. 따라서 중국사회는 전통적 유대나 사적인 신뢰관계를 넘어서 사회적 협력과 합의를 가능케 하는 새로운 공유가치관의 창출이 긴요하 며, 이를 위한 사회주의 이념과 체제의 변화는 필연적인 시대의 요청인 것이다. 향후 중국 이 이 요청을 외면하고 개인이나 집단이 서로 경쟁적으로 지대를 추구하는 갈등적 상황이 지속될 경우 중국 사회는 더욱 위험해질 것이며, 당의 정체성은 더욱 약화될 것이다. 만약 중국 공산당이 약화된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강제력에 호소하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면, 이것 은 궁극적으로 사회주의 체제와 이념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을 제고시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