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주교회의 민화위 연구용역 보고서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2009. 12. 임강택 임순희 임을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서 문 찬미예수님,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민화위에서는 2009년 연구사업을 통해서 성직자 수도자들의 북 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집을 발간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의 북한복음화의 중요 성에 비추어 볼 때, 그동안의 노력과 나름대로의 진척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성과는 아 직 많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 같은 상황은 일차적으로 종교에 배타적인 북한체제의 특 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천주교회 안에서 북한에 대한 이해 가 부족한 측면도 작용했다는 점을 전적으로 부정하기 힘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 안의 북한에 대한 이해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주교회의 민화위 차원에서 기획 된 연구작업의 결과로 이 자료집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료집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일반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해설서 로 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성직자 수도자들이 주요 이슈 를 중심으로 북한의 실상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기술된 것입니 다. 이에 따라서 우리 사회의 북한 관련 주요 관심 대상이 되는 주제를 중심으로 상식적 인 수준에서 설명을 하고자 하였으며, 교회 입장에서의 해석 및 북한문제에 대한 교회의 노력과 접근방향에 대한 고민을 담고자 하였습니다. 이 자료집은 우리 교회 구성원들의 관심 사항과 견해를 최대한 반영하고자 노력하였습 니다. 이를 위해 성직자 수도자뿐만 아니라 일반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를 통해서 집필 주제를 선정하였으며, 원고를 작성한 이후에는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수렴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료집은 여러 가지 부분에서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 많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자료집은 독자들의 견해를 반영하여 좀 더 보완한 이후에 책자로 발간할 계획입니다. 이런 점에서 독자들께 이 자료집에 대한 아낌없는 질 책과 격려를 요청하고자 합니다. 이 자료집은 주교회의 민화위 전문위원이 주축이 되어 분야별로 나누어 집필하였습니 다. 임강택, 임을출, 임순희, 이영훈 박사님이 집필을 위해 수고해주셨습니다. 또한 외부 에서도 조봉현, 조정아, 김수암, 박영자 박사님께서 북한문제 전문가로 집필 작업에 적극 적으로 참여하여 주셨습니다. 이분들의 도움에 특별한 감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3
집필에 참여하신 많은 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자료집은 앞으로 더 보완되고 개 선되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 자료집을 접하시는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중요합니다. 여러 분들의 견해를 적절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이 자료집에 대한 여러분들의 소중한 의견을 아래의 연락처를 활용하시여 제시해 주시길 바랍니다. - 의견 제시 및 문의 - 우편 주소: (우) 143-912 서울시 광진구 중곡1동 643-1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13호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전화 : 02) 499-2781 / 460-7695~7 팩스 : 02) 460-7698 이메일 : hwahai3217@hanmail.net 김운회 주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4
목 차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서론 : 북한체제에 대한 우리 교회의 이해 필요성 11 I. 북한 정치 1. 북한의 통치체제 19 가. 김정일 정권의 국가 비전 : 강성대국 건설 / 19 나. 주체사상의 지속과 변화 / 24 다. 선군정치와 선군사상 / 27 라. 조선 노동당 / 30 마. 북한의 행정구역 변화 / 41 2. 급변사태 발생 가능성과 체제 안정성 46 가. 급변사태 발생 가능성 / 46 나. 북한의 체제 안정성 / 55 3. 후계체제 구축 59 가. 후계체제 구축 과정 / 59 나. 후계체제의 안정성 / 67 4. 핵 미사일 문제 72 가. 북한의 핵개발 이유 / 72 나. 북한의 핵프로그램 수행 능력 / 74 다. 우리에 대한 위협 가능성 / 81 라. 미국의 입장 / 83 5. 대외관계 86 가. 북 중관계 / 86 나. 북 러관계 / 94 다. 북 미관계 / 97 라. 북 일관계 / 102 5
6. 역대 정부의 대북 통일 정책 107 가. 국가건설 우선 정책 / 107 나. 적극적인 통일정책 제시 / 109 다. 대북포용과 상생공영 정책 / 111 II. 북한 경제 1. 북한경제의 주요 실태 122 가. 북한경제 규모 및 추이 / 122 나. 북한주민들의 경제생활 / 131 다. 북한의 식량사정 / 142 2. 북한의 경제정책 146 가. 북한 경제정책의 기본 특징 / 146 나. 북한 경제정책의 변화 / 150 다. 최근의 경제 조치 / 154 3. 남북경협과 대북지원 160 가. 남북경협의 주요 특징 / 160 나. 개성공단사업 / 168 다. 대북지원 / 177 4. 북한의 대외경제 185 가. 북한의 대외무역 / 185 나. 북한의 대외경제협력 / 192 다. 북한의 외화벌이사업 / 200 6
III. 북한 사회와 문화 1. 북한의 교육 209 가. 북한 교육의 목표와 주요 교육 내용 / 209 나. 북한의 교육제도 / 211 다. 북한의 기초 교육체계 / 214 라. 북한의 대학교육 / 223 마. 경제난 이후 북한 교육현장의 변화 / 228 바. 북한 교육 개선과 남북한 교육통합 / 230 2. 북한의 사회문화 233 가. 북한의 명절 / 233 나. 북한주민들의 결혼 / 236 다. 북한의 언어 / 239 라. 북한의 종교 실태 / 242 마. 북한의 예술 실태 / 253 바. 남북한 사회문화의 이질화 극복 및 동질화를 위한 제언 / 268 3. 경제난 이후 북한사회와 주민생활 및 의식 변화 269 가. 북한의 경제난이 북한사회 및 주민생활에 미친 영향 / 269 나. 경제난이 초래한 북한주민의 의식 변화 / 274 4. 북한의 여성생활 291 가. 북한여성들의 가정생활 / 291 나. 북한여성들의 직장생활 / 292 다. 경제난 이후 북한의 여성생활 / 294 7
IV. 북한 인권과 새터민 1. 북한주민의 인권 실태 309 가. 열악한 구금시설과 가혹행위의 만연 / 309 나. 정권유지를 위한 주민 통제 : 정보 통제 및 이동 거주 자유 제약 / 311 다. 개인숭배와 종교의 자유 / 314 라. 생존을 위협하는 열악한 식량사정과 의료 실태 / 318 마. 최악의 인권사각 지대 : 정치범수용소 / 321 바. 생명의 존엄성 유린: 공개처형 / 326 사. 평등권의 유린 : 성분 차별 / 330 아. 탈북자의 비참한 생활과 처벌 / 332 자.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 / 335 2. 새터민의 삶과 한국사회 정착 339 가. 새터민, 이들에 대한 관심 및 사랑의 중요성 / 339 나. 탈북 동기 과정 경로 / 341 다. 중국 및 제3국에서 탈북자들의 삶 / 346 라. 입국 현황과 정부 정책 / 352 마. 하나원 생활 / 355 바. 지역사회 생활 / 359 사. 교육 및 학교생활 / 362 아. 가정생활 / 366 자. 경제 및 직장생활 / 369 차. 천주교의 새터민 지원활동 및 역할과 과제 / 375 8
표 목차 <표 1> 북한의 조선 로동당 조직체계 / 33 <표 2> 2008년 남 북한의 주요 경제지표 비교 / 123 <표 3> 남북한 지역의 경제성장률 차별화시 국민소득 수렴(60%) 속도 / 124 <표 4> 대중국 소비재 수입 규모 추이 / 130 <표 5> 소비재 구입처 현황 / 135 <표 6> 탈북자가구별 소득 원천 / 137 <표 7> 비직장인의 부업 형태 / 137 <표 8> 장마당의 주요 통제물품 목록 / 139 <표 9> 북한의 시장 가격 및 시장 환율 추이 / 141 <표 10> 주요 품목의 북한가격/남한가격 비율 / 142 <표 11> 북한의 과거 수해피해 현황 / 143 <표 12> 이번 화폐개혁의 주요 내용 / 157 <표 13> 남북교역 규모 추이 / 160 <표 14> 남북경협의 형태별 구조 및 추이 / 161 <표 15> 남북경협을 통해서 북한이 벌어들이는 경제적 이익 규모 추계 / 162 <표 16> 북한주민의 남한사정 인지도 변화 / 164 <표 17> 북한의 주요 무역상대국의 무역 비중 / 167 <표 18> 개성공단 관련 주요 통계 / 169 <표 19>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 비교표 / 174 <표 20> 복리후생비 비교표 / 174 <표 21> 근로자 1인당 생산효율 / 175 <표 22> 정부 및 민간차원 무상지원액 세부내역 / 180 <표 23> 분야별 지원 현황(2009.2.28. 기준) / 182 <표 24> 북한의 대외무역 추이 / 185 <표 25> 북한의 품목별 수출 실적 / 186 <표 26> 북한의 품목별 수입 실적 / 187 <표 27> 북한의 10대 무역 대상국 / 188 <표 28> 북한의 對 한 중 일 교역 비율 추이 / 190 <표 29> 중국의 대북 자원 개발 투자 현황 / 197 <표 30> 북한 식당의 해외진출 현황 / 203 9
<표 31> 북한의 대외인력 진출 현황 / 204 <표 32> 북한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외화벌이 규모 / 204 <표 33> 북한의 학제 / 212 <표 34> 소학교 교육과정 / 218 <표 35> 중학교 교육과정 / 221 <표 36> 구금시설 및 구금근거 / 310 <표 37> 배급 순위와 배급 상황 / 319 <표 38> 정치범수용소 위치 및 현황 / 324 <표 39> 3계층 분류 및 차별 내용 / 331 <표 40>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채택 현황 / 336 <표 41> 탈북 동기별 현황 / 343 <표 42> 탈북 요인 및 중국 이주 요인 / 346 <표 43> 입국 현황 / 352 <표 44> 연령별 유형 / 353 <표 45> 재북 직업별 유형 / 353 <표 46> 재북 학력별 입국현황 / 353 <표 47> 하나센터 운영현황 / 355 <표 48> 정착장려금 / 358 <표 49> 정착가산금 / 358 <표 50> 지역별 거주 현황 / 359 <표 51> 2010년 생계급여 지급기준(최고액) / 360 <표 52> 북한이탈주민 고용동향 개요 / 371 <표 53> 북한이탈주민 고용동향 추이 / 372 그림 목차 <그림 1> 북한 김정일의 가계도 / 61 <그림 2> 중국산 물품의 북한 유입경로 / 134 10
서론 : 북한체제에 대한 우리 교회의 이해 필요성 북한체제의 구조적 특징은 무엇인가?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 라는 독특한 체제로써 나름의 역사와 경험 속에서 정치 경제 사회적 특성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북한 체제의 특징을 정치 경 제 사회적 특성을 중심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북한체제의 정치적 특성은 주체사상이라는 유일사상에 기초하여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에 의해 지배되며, 혁명의 전위대인 공산당 일당에 의해 지배되는 체제라는 것 이다. 둘째, 북한체제의 경제적 특성은 생산수단을 국가와 협동단체가 소유하는 사회주의적 소유제도와 자력갱생노선을 표방하는 중앙집권적 폐쇄적 계획경제 제도이다. 북한은 사 회주의적 소유를 사회주의적 생산관계의 기초가 되는 생산수단과 생산물의 전 사회적 또는 집단적 소유 라고 개념화하고 있다. 사회주의적 소유의 핵심은 생산수단에 대한 소 유인데, 생산수단은 국가와 사회협동단체가 소유한다. 셋째, 북한체제의 사회적 특성은 집단주의 원칙에 의한 공산주의적 전체주의 체제이며, 수령을 어버이로 하는 사회주의 대가정체제 라는 데 있다. 북한은 공민들의 권리와 의무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조선민 주주의 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 제63조)라는 집단주의 원칙에 기초하고, 자기 운명을 집단의 운명과 결부시켜 개인적 목표 가치보다는 집단적 목표 가치를 우선으로 추구하는 집단주의 원리에 의거 공산주의적 인간으로의 개조사업을 하고 있다. 우리가 북한체계를 객관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민족적으로는 통일된 나라가 2개의 지역으로 분단된 이후 65년 동안 전쟁과 대립, 갈 등과 반목의 역사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북한은 함께 통일을 이루어 나가야 할 동반 자이자 군사적 충돌 가능성으로 인한 두려움과 경계의 대상 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북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인식은 지난 10년 동안 남북간 다양한 분야에서의 서론 11
접촉이 증대되는 과정에서 북한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북한 관련 정보의 확대를 통해서 다소 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북한 문제를 둘러싼 우리 사 회 내부의 갈등이 증폭된 점이다. 북한문제와 관련된 우리 사회의 분열은 북한이 2006년 대포동 2호 미사일을 실험 발 사(7.5)한데 이어 핵실험을 실시(10.9)하면서 극대화되었다. 정부의 무책임(?)한 대북유 화정책이 미사일과 핵무기로 돌아왔다 는 보수적인 여론과 당시 야당의 주장에 많은 국 민들이 동조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우리 사회는 2007년 대선정국으로 접어들면서 다양한 이슈에 대해서 지역간, 계 층간, 세대간의 갈등이 증가하게 된다. 소위, 남남갈등 이 재생산되는 방식으로 확산되었 던 것이다. 우리 사회의 남남갈등을 통해서 일종의 편 가르기 현상도 나타나게 되었는데, 소위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을 보수와 진보,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경향이 들불처럼 번 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들이 우리 교회를 비켜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북한체제를 이해하려는 우리 교회의 노력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우 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북한 사회의 근간이 되는 기본 틀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이 없이 북한 주민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북한 복음화를 제대로 준비하고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북한 주민들에게 효과 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우리 사회의 통일 준비하는데 우리 교회의 적절한 역할을 모색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체제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는 필요한 것이다. 북한체제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 교회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첫째, 사실 이 무엇인지를 직시하도록 하자. 우리 교회 내부에서 북한문제에 대한 다양 한 견해가 공존하고 있다는 점은, 같은 사실을 놓고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따라서 때로는 불편한 사실 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둘째, 북한에 대한 사실 이라는 것이 정보의 제약 때문에 부정확한 것이 많고 또한 확 인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와 함께 동일한 사실이나 사건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 하다. 또한 특정 현상을 놓고서도 다양한 인식을 할 수 있다. 따라서 나와 다름 을 틀 림 이나 잘못 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12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셋째, 이러한 노력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열린 마음 으로 대화하는 분위기와 공간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교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성직자들의 선도적인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으로 판단 된다. 특히, 성직자들 사이에서 우선적으로 북한체제의 실상과 문제점을 주제로 대화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서론 13
I. 북한 정치
1. 북한의 통치체제 가. 김정일 정권의 국가 비전 : 강성대국 건설 강성대국 이란 무엇인가? 북한이 강성대국 건설 이라는 구호를 제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겠다 고 하는데 이 주장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북한당국의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의 대문을 열자 는 구호에 대해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 주체사상의 지속과 변화 주체사상이란? 주체사상의 등장 배경은? 주체사상의 정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체사상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다. 선군정치와 선군사상 선군정치란? 선군정치의 등장 배경은? 선군정치사상이 주체사상을 대체할 수 있나? 라. 조선 노동당 조선 노동당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조선 노동당의 조직체계와 기능은? 당은 어떻게 주민통제를 하고 있나? 노동당과 인민군은 어떤 관계인가? 북한의 대남사업은 어느 부서가 담당하고 있나? 마. 북한의 행정구역 변화 북한의 행정구역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탈북자 출신이 많은 지역 : 회령과 혜산 2. 급변사태 발생 가능성과 체제 안정성 가. 급변사태 발생 가능성 김정일의 유고 가능성은? 우리 정부는 급변사태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주변국들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16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미국 등의 급변사태 대비 계획과 관련해 북한은 어떠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나. 북한의 체제 안정성 북한에서 군부의 쿠데타나 민중 봉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북한은 붕괴하지 않 을까? 3. 후계체제 구축 가. 후계체제 구축 과정 북한 3대 세습 가능한가? 후계승계 작업,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권력 승계는 언제쯤 공식화될까? 3남 김정은과 그의 형제들은 누구인가? 나. 후계체제의 안정성 권력 투쟁 가능성은? 2인자, 장성택을 주목하라. 4. 핵 미사일 문제 가. 북한의 핵개발 이유 북한은 왜 핵 미사일 개발에 집착하나? 나. 북한의 핵프로그램 수행 능력 북한의 핵 개발 능력은? 북한의 ICBM은 미국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은 존재하나? 핵미사일 개발 비용은 어떻게 조달되나? 다. 우리에 대한 위협 가능성 남한에 공격할 가능성은 없나? 라. 미국의 입장 미국은 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가? I. 북한 정치 17
5. 대외관계 가. 북 중 관계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 북한의 대중국 경제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고 하는데? 중국의 북한에 대한 딜레마는 무엇인가? 향후 북 중관계는 어떻게 될까? 양자간 주요 합의문서 소개 나. 북 러 관계 러시아의 대북정책 양자간 주요 합의문서 소개 다. 북 미 관계 핵문제를 둘러싼 대립과 갈등의 역사 전 현직 미 최고위 인사 방북, 무엇을 얻었나? 양자간 주요 합의문서 소개 라. 북 일 관계 일본의 대북정책과 경제제재 하토야마 정권과 대북정책 전망 양자간 주요 합의문서 소개 6. 역대 정부의 대북 통일 정책 가. 국가건설 우선 정책 이승만 정부 장면 정부 박정희 정부 나. 적극적인 통일정책 제시 전두환 정부 노태우 정부 김영삼 정부 다. 대북포용과 상생공영 정책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별첨>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 10대원칙 18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1. 북한의 통치체제 가. 김정일 정권의 국가 비전 : 강성대국 건설 최근 북한의 매스컴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중의 하나가 강성대국 이다. 도대체 북한 이 이야기 하는 강성대국 이란 무엇이고, 왜 북한당국이 강성대국 건설 을 강조하고 있으 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적인 노력은 무엇이며, 일반주민들의 반응은 어떤지 여러 가 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강성대국 이란 무엇인가? 강성대국 은 북한이 김정일 정권을 시작하면서 제시한 국가전략 목표의 하나로, 경제 적 부국과 군사적 강국 건설을 지향하고 있다. 사회주의 강성대국 은 이념적인 성격이 강한 용어로써, 북한이 정의하고 있는 강성대국은, 국력이 강하고 모든 것이 흥하며 인민들이 세상에 부럼없이 사는 나라로, 1) 사상강국 군사 강국 경제강국을 의미한다. 북한에서 강성대국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7년 7월 22일 로동신문 사 설 위대한 당의 령도따라 사회주의 건설에서 일대 앙양을 일으키자 에서 주체의 강성 대국 이라는 용어가 나타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그후 1998년 9월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으 로 재추대되면서 제시한 통치선전 구호가 강성대국이 되었던 것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강성대국의 건설이란 무엇인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첫째, 강성대 국은 정치 사상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북한은 정치 사상강국과 군사강국은 이미 실현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경제강국만 건설하면 강성대국을 이룰 수 있 다고 주장하고 있다. 둘째, 정치 사상강국이 실현되었다고 주장하면서도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서는 수령 결 사옹호정신을 근본으로 하고, 당 군 민이 일심단결하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1) 2006년에 발간된 조선말대사전 에 따르면, 강성대국 을 국력이 강하며 모든것이 흥하며 인민들이 세상에 부 럼없이 사는 나라가 사회주의강성대국입니다 라는 김일성의 말을 인용하여 정의하고 있다. I. 북한 정치 19
<경제강국 건설을 강조하는 선전 포스터> 셋째, 군수산업이 주를 이루고 있는 중공업 우선정책을 지속적으로 강조함으로써, 군사 강국을 위한 국내 자원의 우선적인 투입을 정당화하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소식통에 따 르면, 김정일은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강성대국을 건설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하였다고 한다. 넷째, 경제강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자력갱생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어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서 동시에 개혁 개방에 대한 북한사회의 기 대를 없애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강성대국 건설 이라는 구호를 제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당국이 1980년대 말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 이후 지속적인 경제난과 그에 따른 대 규모 아사 및 탈북현상을 겪으면서 체제 및 정권 유지 차원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하다 고 여긴 것은 아마 일반주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해주어야 한다는 것으로 보 인다. 이와 같은 현실적인 필요성과 함께 김일성 시대와의 차별화를 시도함으로써 김정일 자 신만의 색깔을 만들고 통치기반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도 포함된 것으로 평가된다. 다시 말해, 김정일이 김일성 사후 3년상을 치르고 북한을 공식적으로 제대로 통치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김정일 체제의 국가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 20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히,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절망감과 김일성 사후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패배의식을 극 복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강성대국 건설론 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비판적인 견해도 많이 제 기되고 있다. 특히, 북한이 최고지도자 1인을 위한 독재체제이고 소수 특권집단에 봉사하 는 체제라는 점을 들어, 북한이 주장하는 강성대국, 특히 사상강국 건설은 지도자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강성대국 건설은 일반주민들을 호도 하기 위한 기만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평양 동성빵공장의 강성대국 게시판 전경> 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겠다 고 하는데 이 주장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북한은 2007년 11월 30일에 개최된 전국 지식인대회에서 2012년까지 강성대국의 대 문을 활짝 열어 놓을데 대하여 처음으로 대외적으로 선포하고 실천 과제를 제시한 것으 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사항은 2012년을 강성대국 실현의 해 가 아닌 대문을 여는 해 로 설정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2012년을 대문을 열어 놓는 해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2012년은 김일성 출생 100년이 되는 해로, 북한이 제정한 자신들의 최대 명절인 태양절 이 100주년을 맞게 되는 의미있는(?) 해이다. 김일성을 영원한 수령 으로 받들고 I. 북한 정치 21
있는 북한으로서는 2012년을 성대하게 기념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2012년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 로 지정한 이유는 무엇보다 강성대국을 실 현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고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 다. 북한이 노동당원들을 상대로 보낸 문건에 따르면, 2012년까지 달성하도록 촉구하는 경제부문의 목표치가 1980년 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제시했던 10대 전망목표 에도 훨씬 못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2) 따라서 2012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겠다 는 구호는 경제적으로는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주고 경제회생의 기반을 마련하는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을 목 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포함될 수 있다는 점에 서 국제사회의 경제지원을 통해서 경제발전의 여건을 마련하겠다는 기대감도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상강국이라는 측면에서는 2012년을 후계체제를 공식화하는 해로 활용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물론 김정일의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될 경우 후계체제의 공식화 작업은 보다 앞당겨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당국의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의 대문을 열자 는 구호에 대해 북한의 일반주민들 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북한 당국은 지난 2009년 7월경 평양에서 북경으로 가는 국제열차 안에서 승객들을 대상으로 김정일의 뒤를 이어 김정은이 후계자로 나설 것이라는 내용의 학습이 이뤄졌다 고 한다. 이 자리에서 선전원은 김정은이 강성대국을 이끌어 나갈 적임자 이며, 지난 5월 의 2차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이끈 사람도 김정은 이라고 선전하였다. 그런데 일반주민들은 당국의 후계자니, 핵실험 성공이니 하는 선전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반 주민들의 실질적인 관심사는 당장에 먹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있기 때문이다. 2) 2009년 3월, 당원들에게 전달된 문건에서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경제실적 목표치는 전력생산 778만kw, 금속 생산 3300만톤, 화물운반 7200만톤, 석탄 1300만톤, 식량 700만톤 등이다. 이에 반해 1980년에 제시된 10대 전망목표 는 전력생산 1억kw, 석탄 1억5천만톤, 알곡 1000만톤 등이었다. 22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150일 전투 선전 포스터> 강성대국 건설을 기치로 내걸고 추진하고 있는 대중동원 노력운동인 150일 전투 의 경우에도 일반주민들은 정부의 통제가 심해지고 있고 여러 가지 증산 목표를 내세워 주 민들을 들볶고 있다고 느낀다고 한다. 또한 150일 전투 를 명분 삼아 시장의 개장시간을 단축하는 등의 조치로 먹고 살기만 힘들어졌다는 하소연과 불만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북한당국은 로동신문 을 통해서 장군님이 강성대국을 만들기 전까진 휴식을 할 수 없다 고 말했다며 주민들을 독려하고 나서고 있다. 3) 숨 막힐 듯 내려 쪼이는 뙤약볕 속에서 쉬임없이 이어지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지지도 소식을 들으며 인민은 그이께서 순간이나마 쉬시기를 간절히 바라건만 위대한 어버이의 여 름철 강행군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모두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 제끼는 그 날 위대한 장군님의 전사답게, 어머니 조국의 아들딸답게 힘껏 싸웠다고 떳떳이 자부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일을 하자. 3) 로동신문 2009년 8월 20일자 정론 우리는 그늘 밑에서 행복을 찾지 않는다 I. 북한 정치 23
나. 주체사상의 지속과 변화 선군사상, 강성대국 등의 구호가 등장하면서 그간 북한 사회를 지배해왔던 주체사상의 위 상 변화 여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에서는 주체사상의 등장배경, 주체사상이 갖는 의 미, 그리고 최근 그것이 어떻게 변질되고 있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주체사상이란?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는 주체사상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대체하는 당의 공식적인 독자적 통치이념으로 정립되었다. 그리고 1992년 개정된 헌법은 사람중심의 세계관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상인 주체사상을 자기활동의 지침으로 삼는 다 하여 주체사상이 사람중심의 세계관이고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 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주체사상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비롯하여 주 민들의 가치관과 생활영역까지 지배하는 통치이념이자 지도적 강령으로 작용하고 있다. 즉, 북한은 주체사상이라는 유일사상이 지배되는 체제로 정립되었다. 조선노동당의 규약 전문은 조선로동당은 오직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주체사상, 혁명사상에 의해 지도 된다 고 규정하였고, 1998년 개정된 헌법 제3조에서 주체사상을 자기활동의 지도적 지 침으로 삼는다 라고 명시하고 있다. 주체사상의 등장 배경은? 주체 는 하나의 사상 철학으로서 제기되었다기보다는 1950년대 중반 김일성이 대외환 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내부적으로 반대파를 숙청하고,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명분논리로서 제시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대외환경 변화 란 스탈린 사망(1953.3) 이후 흐루시초프의 등장에 따른 스탈린 격하운동과 평화공존노선 채택, 공산권 내부에서 사회주의체제로의 다양한 경로 인정, 모택동의 영향력 증대에 따른 국제 공산주의 운동 내 또 하나의 중심축인 중국의 등장 등을 의미한다. 반대파의 도전이란 스탈린 비판을 계기로 조선노동당 내부에서 야 기된 국내파 연안파 소련파 간의 권력투쟁을 말한다. 이 같은 배경 속에서 나온 주체 는 1972년 12월 채택된 사회주의 헌법 에서 공식 통치이념으로 규정되었다. 24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주체사상은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 게 있다는 사상 또는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자기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사상 이다. 북한에서 주체사상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군사 등 사회 모든 분야를 규정 지배하는 통치이념으로 기능해 왔다. 주체사상의 정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체사상의 정립은 북한정권의 초기 이념적 강령인 마르크스-레닌주의로부터 부분적 이탈을 의미한다. 즉, 주체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달리 마르크스의 유물론 수정, 민족주의 유산과 유교적 사상 그리고 유심론 등을 반영하고 있다. 첫째,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을 수정하고 있다. 사회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적 시각에 대해 주체사상은 상부구조의 주요 구성체인 인간의 의식이 사회변화와 역사전이의 과정에서 능동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강 조한다. 즉, 주체사상은 경제적 생산관계가 그 안에서 활동하는 행위자들의 의식과 행동 을 주도적으로 결정한다는 견해를 수정하면서, 인간의 의식적이고 주체적인 사고와 행위 에 의해 경제구조와 사회와 역사가 변화한다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둘째, 주체사상에 민족주의 유산이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요인은 일제 식민지 시대의 경험과 미국과 서방세계에 대한 공포와 반감, 그리고 소련과 중국 등 우방국과의 비대칭 적인 협력관계의 불편함에 따른 반작용이 투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셋째, 주체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달리 유교적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조선시대 를 지배해온 유교적 전통은 군주의 절대 권력을 유지하는데 일조하였다. 이러한 유교적 전통은 절대 권력의 일인독재 체제를 지원하는 주체사상의 문화적 하부구조를 북한사회 에 생성시켰다. 넷째, 주체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달리 유기체론적 사회 및 국가구성을 강조하 는 유기체적 전체주의와 인간의식이 사회와 역사를 주도한다는 유심론이 반영되어 있다. 인간의 의식적이고 주체적인 행위를 강조하는 유심론은 유물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기체론적 전체주의는 유교적 사상의 전통과 더불어 북한의 가부장적 일인지배체제를 옹호하는 사상적 토대로 작용하였다. I. 북한 정치 25
주체사상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북한은 주체사상이 정립된 이후 김일성의 개인우상화를 위해 이론적 변화를 모색하는 등 전술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 김일성의 일인독재 지배체제를 강화하고자 통치담론 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1967년 10월 26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선포함으로써, 당의 유일사상체계로 이행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 노동당 창당 64주년을 맞이해 북한 청년들이 주체사상탑 앞에서 무도회를 갖고 있다> 둘째, 1970년대 접어들면서 김정일은 김일성의 우상화작업을 위해 주체사상의 김일성 주의 의 이론적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른바 주체형의 공산주의자들이 따라 배워야할 모범 적 인간형으로 김일성의 소년시절이 제시되는가 하면, 인간에게 육체적 생명보다 더 중요 한 사회정치적생명 을 주는 존재가 바로 수령(김일성)이라는 우상화 논리를 주체사상의 터전 위에서 전개하고 있다. 즉, 김일성 개인우상화를 위해 혁명과 건설을 추진하는 주체 인 인민대중의 정점에서 수령이 존재하며 수령은 인민대중을 인도하는 지적 영도자의 역 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수령론 은 인민대중들이 개별적 이해관계의 차이를 상호 극복하는 데 한계를 지니기 때문에 수령의 올바른 지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1980년대 주체사상은 공식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일을 우상화하기 위해 세습수령 에 대한 지속적인 충성심을 요구하였다. 당시 북한은 주체의 위업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 루어질 수 없는 만큼 대를 이어가며 주체의 위업이 달성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26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넷째, 북한은 1980년대 후반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와 소련의 연이은 붕괴로 체제위협을 받게 되자 주체사상의 차별성과 우월성을 부각시키면서 우리식 사회주의 를 대안적 논리 로 내세웠다. 즉, 주체사상으로 대표되는 우리식 사회주의 가 이미 붕괴된 다른 나라의 사회주의 국가와 어떻게 다른지 명확한 차별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 과제를 해결하고자 북한은 주체사상을 참다운 사회주의, 우리식 사회주의로 규정하고, 참답지 않은 다른 나 라의 사회주의와 차별화하여 북한 사회주의의 붕괴 가능성을 불식시키는데 전력하였다. 다섯째, 김일성(1994) 사망이후 1996년 이래 출간되어온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 의 사상이론 시리즈를 통해 주체사상의 김정일주의화 작업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1990 년대 중반 이후 심각한 경제난을 극복하고자 실리적 사고의 필요성을 경험하면서 주체사 상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저해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 군을 최 우선시한다는 선군정치가 전면에 부상되면서 주체사상에 대한 논의나 사회적 구속력을 저하시키는 현상으로 작용했다. 다. 선군정치와 선군사상 선군정치와 선군사상은 오늘날 북한 김정일의 통치이념과 방식을 읽을 수 있는 키워드다. 선군정치는 왜 나왔으며, 과연 어떤 성과와 한계를 보이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선군정치란? 김정일은 권력을 승계한 이후 경제와 대외적 위기의 심화 속에서 체제위기를 극복하고 자 자신의 체제 기반의 안정과 강화를 목적으로 군을 최우선시하는 선군정치( 先 軍 政 治 ) 를 주창하였다. 김정일은 권력 승계 후 체제위기를 극복하고자 자신의 체제 기반의 안정과 강화를 목적으 로 군을 최우선시하는 선군정치( 先 軍 政 治 )를 주창하였다. 즉, 김정일의 선군정치는 김일성 사후 지속되는 경제난과 외부세계의 체제위협 속에서 권력을 군에 의존하여 체제를 보장받 고, 외교적 고립으로 증대되는 대외적 안보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선군정치는 1995년 초반에 처음 논의되기 시작하여 1998년 김정일 체제를 운영하는 핵심적 정치방식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2005년 신년공동사설 전당 전군 전민이 일심 단 결하여 선군의 위력을 더 높이 떨치자 의 제목이 보여주듯이, 내용적으로 선군사상은 김 I. 북한 정치 27
정일의 통치이념이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러한 선군정치는 당보다 군을 앞세워 지도자와 사회주의 체제의 옹호를 위한 중심 기구로 격상시키는 등 군을 정치의 전면으로 내세워 군국주의 정치를 주도하게 되었다. 즉, 김정일체제 하에서의 선군정치는 군을 비롯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예술 등 북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선군정치의 등장 배경은? 북한에서 선군정치를 하게 된 배경은 동구의 붕괴와 소련의 해체에 의한 사회주의 시 장의 와해, 미국의 대북 경제봉쇄, 연이은 자연재해 등 3중고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 러한 대내외적 영향은 북한체제의 위기를 가져왔고, 김정일은 위기극복과 발전전략으로 군을 앞세우는 독특한 정치방식인 선군정치를 주창하게 되었다. <북한 창건 55돌을 경축하는 집단체조 선군조선 의 한 장면> 북한의 극심한 경제난은 당이 인민에게 기본적 삶을 제공하고 인민은 정권에 대한 지지 와 정통성을 부여해 왔던 사회주의적 후원주의 체제를 와해시켰다. 선군정치는 군이 가진 자원과 역량을 활용하여 인민경제의 회복을 꾀하는 한편, 당의 저하된 사회통제 기능을 군 조직을 통해 보완하고 당의 역할까지 부분적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즉, 사회주의의 내적 정통성을 제공하는 당의 기능이 약화되자, 군의 위상과 역할을 재 28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정립하는 북한식 군국주의를 통해 체제 위기를 극복하고 정권의 정통성을 만회하려는 결 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동구 사회주의국가와 소련의 붕괴 이후 북한의 외교적 고립은 가속화되어 왔고, 미국과의 대결적 구도는 자위적 군사력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고조시 켰다. 오랜 기간 축적된 거대한 군 조직의 존재와 북한사회에 내재된 군국주의 성향 등 은 선군정치의 발현을 후원하는 국내적 요인들이다. 이외에도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상 실한 북한은 그나마 경쟁력을 보존하고 있는 군사부문에 대한 자부심과 집착 역시 선군 정치를 지향하게 된 배경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김정일은 경제 위기 상황 하에서 정 권의 정통성 결여와 외교적 고립 속에서 체제안정과 정권유지를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한 것이 선군정치라 할 수 있다. 선군정치사상이 주체사상을 대체할 수 있나? 선군사상 은 인민대중의 자주성 실현을 위한 투쟁에서 총대를 무엇보다도 중시하고 군사 를 다른 모든 사업에 앞세울데 대한 사상이며 혁명군대를 핵심으로, 주력으로 하여 혁명의 주체를 튼튼히 꾸리고 혁명군대의 주도적 역할에 의거하여 혁명운동을 전진시켜 나갈데 대 한 사상 이다. 선군정치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선군정치사상이 주체사상을 대체하여 김정일 시대의 새 로운 통치이념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으나, 사실 여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선군정치사상은 주체사상에 대응할 수 있는 이념체계라기보다는 김 정일 정권의 통치 방식을 정당화하는 정치 슬로건 역할에 치중하고 있다. 선군정치사상 이 독자성을 확보하는 통치이념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이론적 구성과 내용 등의 측면에 서 현저한 진화를 필요로 하지만, 그 성공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김일성종합대학 최금춘 교수(박사)는 북한 웹사이트 <우리 민족끼리>와의 인터뷰(2009 년 7월 4일)에서 선군사상과 선군정치의 창시 또는 출현의 역사적 배경은 엄연히 다르 며 선군정치=선군사상이라는 절대성을 가지는 수학적 도식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면 서 선군사상의 창시는 김일성 주석에 의해 항일무장투쟁이 개척되고 있던 시기인 주체 19(1930)년 6월 말 7월 초에 열린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지도간부회의(카륜회의)에서 선 포되었다 고 밝혔다. 계속해서 그는 선군정치는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1960년대 말부터 격렬한 조미(북미) 대결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시작되었다 면서 그리고 1990년대 중반기 이후 변화된 정세 속 I. 북한 정치 29
에서 선군정치는 전면적으로 정립, 체계화되고 보다 높은 단계에서 실현되었다 고 답했다. 아울러 그는 선군정치가 선군사상, 선군혁명이론을 구현한 정치방식이기에 선군사상 이자 선군정치라는 주장이 타당성을 가지기는 하지만 거기에 선군사상의 창시가 곧 선군 정치의 시작으로 된다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지는 않는 것 이라고 주의를 요구했다. 라. 조선 노동당 선군정치가 강조되고 있고,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이 불거지면서 김정일 사망 후 군이 권력 을 장악할지, 당이 장악할지 한동안 의견이 분분했다. 과연 조선 노동당은 날개 없는 추락 을 하고 있는가. 그러나 아무리 선군정치라고 하지만, 북한체제를 움직이는 조직은 엄연히 조선 노동당이다. 따라서 조선 노동당을 알아야 북한체제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조선 노동당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에 따르면 노동당은 모든 국가기관과 사회단체의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기구로서 내각이나 군부보다 우위에 위치해 있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마 찬가지로 북한의 정치체제에서도 노동당은 권력의 원천이며, 모든 국가기관과 사회단체 의 지도적 핵심인 것이다. 김일성은 해방 후 북한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르기 위해 가장 먼저 정적들을 제거하였고, 동시에 당권 장악에 나섰다. 김정일도 당을 장악하며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다졌고, 이를 통해 결국 북한 최고지도자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김 정일의 1인 지배체제 확립 과정과 동시에 노동당의 성격도 변화하였다. 노동당은 북한 체제 전반을 이끌어가는 엘리트들의 결합체로 북한 체제의 머리라고 볼 수 있으며, 김정일도 당을 장악하면 다른 모든 부분을 장악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후계 자 지명 이전부터 당권 장악을 위해 집중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일은 1973년 조직비서 에 임명되면서 당 정 군 고위 엘리트들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하게 됐고, 이것이 김정일 이 후계자로 결정되는데 가장 주요한 토대가 됐다는 것이다. 조선 노동당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권력이 당에 집중되어 당의 주도 아래 국가가 운영된다. 2009년 창당 63주년 을 맞이한 조선노동당은 북한 내에서 최고의 위상과 권한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기관이나 단체, 군부보다 우위에 있다. 당이 국가의 지도기관이기 때문이다. 30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북한에서 권력의 핵심은 김정일과 조선 로동당(이하 노동당) 이다. 김일성-김정일로 이 어진 수령독재도 당권 장악에서 시작됐다. 김일성 사망 후 북한은 선군노선에 따라 군의 권한이 강화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국 방위원회가 국가기관과 의회를 지도하게 되고, 특히 남북정상회담 등에서 김정일이 국방 위원장 자격으로 나오고 주요 국가권력이 국방위원회에 집중된 것처럼 알려져 있다. 더 욱이 장령급(장성) 인사발령이 국방위원회 명령으로 나가면서 선군정치 아래의 국방위원 회(아래 도표 참조)가 북한 권력의 모든 것 처럼 비쳐지게 되었다. 국방위원회 위 원 장 : 김정일 제1부위원장 : 조명록(차수) 부 원 장 : 김영춘(유임), 리용무(대장, 유임), 오극렬(대장, 2009.2.19 신규임명) 위 원(8명) : 전병호(유임), 김일철(유임), 백세봉(유임), 장성택(신임), 주상성(신임), 우동측(신임), 주규창(신임), 김정각(신임) 김 정 일 직 속 국 가 안 전 보 위 부 인민 무력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김영남(유임) 부위원장: 양형섭(유임), 김영대(유임) 서기장: 최영림(유임) 명예부위원장: 김영주(유임) 위원(10명): 류미영(유임), 강영섭(유임), 심상진(신임), 홍석형(유임), 김양건(신임), 리용철(유임), 김병팔(신임), 강창욱(신임), 로성실(신임), 변영립(유임), 태형철(유임) 선거 선거 선거 최고인민회의 위 원 장 : 최태복(유임) 부위원장 : 김완수(신임), 홍선옥(신임) 대 의 원 : 687명 법제위원회 위 원 장: 주상성(신임) 위원(6명): 리길송(유임), 김병률(유임), 김평해(유임), 성자립(신임), 박관오(유임), 김영일(신임) 김 영 춘 (09.2.11) 임명 예산위원회 위원장: 박남기(유임) 위원(6명):리철봉(신임), 홍서헌(유임), 계영삼(신임), 문명학(유임) 김명환(신임), 조혜숙(유임) 내각 총 리: 김영일(유임) 부총리: 곽범기(유임), 태종수(유임), 로두철(유임), 오수용(신임) 중앙재판소 소 장: 김병률(유임) 중앙검찰소 소 장: 리길송(유임) 37개부서(3위원회 30성 1원 1은행 2국) 도(직할시) 인민위위원회 특별 재판소 특별 검찰소 * 자격심사위원회: 위원장: 김국태(신임) 위 원: 김원홍(신임), 지영춘(신임), 박도춘(신임), 김시학(유임), 김영호(신임), 우두태(유임) 도(직할시) 재판소 인민재판소 도(직할시)검찰소 시 군검찰소 * 자료: 최고인민회의 12기 제1차 회의 결과(2009. 4. 19 현재) I. 북한 정치 31
그렇다면 오늘날 조선 노동당의 역할과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현재 조선 노동당은 혁명 1세대와 2세대를 거쳐 실무형 중심의 3~4세대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 다. 최근 김정일 이후 북한 내 권력 구도 변화에 관심이 증대되며 조선 로동당(노동당) 의 역할과 영향력에 대한 궁금증도 높아지고 있다. 조선 노동당은 1945년 10월 10일 평양에서 개최된 조선 공산당 서북 5도 당 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 에서 결성된 조선 공산당 북조선 분국이 모태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10월 10일이 창건 기념일이다. 1946년 4월 북조선공산당 으로 명칭을 바꾸고 같은 해 8월 조 선신민당과 합당하여 북조선노동당이 되었다. 조선 노동당의 지위와 역할 등은 노동당 규약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 사회주의 헌법 등에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1998년 개정된 사회주의 헌법 11조에 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 노동당의 영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 고 기술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근로대중의 모든 조직들 가운데 가장 높은 형태의 혁명조직 이며 각종 기 관이나 조직들을 영도하는 주체임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 헌법, 노동당 규약 등 은 수령의 독재를 은폐하고 합리성과 정통성을 외부에 선전하기 위한 목적일 뿐 현실은 그 내용과 완전히 다르다. 실제 사회주의 헌법과 노동당 규약은 정부, 군대, 행정, 사법, 검찰 등 모든 부문에서 당의 영도적 지위를 인정하는 동시에 김정일 1인독재의 수단으로서 활용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집단)의 지도적 지위는 인정하면서 그 당의 영도는 오로지 김일성, 김정일에 의해 영도 되도록 해놓은 것이다. 결국 조선 노동당은 법적으로는 북한주민들을 지도하 는 기관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수령의 영도를 받는 하급기관에 불과한 것으로 되었다. 이 로서 수령은 당, 국가, 주권기관의 가장 상위에 존재한다. 조선 노동당의 조직체계와 기능은? 조선 노동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당 대회이다. 노동당 규약에는 당 대회를 통해 당 노선과 정책 및 전략전술에 관한 기본문제를 결정 하도록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당 중앙위원회에서 내린 결정을 나중에 추인하는 형식적 기능밖에 수행하지 못한다. 당 대 회는 5년에 한 차례씩 개최하는 것이 원칙이다. 32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표 1> 북한의 조선 로동당 조직체계 * 2008년 12월 현재 당 대 회 1차 1946년 8월 / 2차 1948년 3월 / 3차 1956년 4월 4차 1961년 9월 / 5차 1970년 11월 / 6차 1980년10월 당 대표자회의 1차 1958년 3월 / 2차 1966년 10월 당 중앙검사위원회 당 중앙군사위원회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비 서 국 검열위원회 *전문부서 시 도 당위원회 조직지도부 통일전선부 (김양건) 근로단체부 평양시 황해남도 선전선동부 대외연락부 재정경리부 나선시 황해북도 간부부 35호실 38호실 평안남도 함경남도 국제부 작전부 39호실 평안북도 함경북도 군사부 군수공업부 당역사연구소 자강도 강원도 행정 및 수도건설부 과학교육부 문서정리실 양강도 계획재정부 총무부 신소실 * 통일부 통일정책국 정치사회분석과, 2009 북한 기관 단체별 인명집 (서울: 통일부, 2008. 12), 11면. 1946년 8월 제1차 당 대회를 시작으로 개최한 이후 1980년 10월 제6차 당 대회를 마 지막으로 28년 동안 당 대회가 열리지 않고 있다. 당 대회가 열리지 않는다는 말은 체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당 대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에는 당 중앙위 원회가 최고 지도기관의 역할을 대행하고, 당 중앙위원회는 6개월마다 1회 이상 전원회 의를 소집해 당 내외의 문제들을 논의한다. 이 전원회의에서 당 총비서, 당 정치국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당 중앙위원 등을 선출하며 당 비서국과 당 중앙군사위원회를 조직하는 권한도 갖는다. 그러나 전원회의 또한 1993년 제6기 21차 대회를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열리고 있지 않다. 전원회의가 열리지 않으면 당 정치국과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로 그 권한이 위임되 어야 하는데, 현재 김정일이 총비서로 있는 당 비서국이 그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공산 주의 사회의 최고 지도기구가 정치국 상무위원회인데, 북한은 김일성, 오진우가 사망한 I. 북한 정치 33
후 현재 상무위원은 김정일 혼자다. 반면 중국 공산당은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제대로 작 동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중국 사회가 나아갈 큰 방향과 정책이 정해진다. 당 비서국에는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통일전선부를 비롯해서 전문부서가 있고, 김정 일의 비자금을 조달하는 38호실과 39호실 등도 포함되어 있다. 조선 노동당의 지방조직 은 당 중앙위원회 아래에 도, 시, 군 당 위원회를 거쳐 초급당위원회, 분초급당위원회, 부 문당위원회와 가장 기초 조직인 당 세포가 있다. o 조선 노동당의 기구는 상설적인 당 조직체계와 비상설적인 집단적 지도체계로 나눌 수 있다. 상설적인 조직체계는 당 중앙위원회에서부터 하부 말단의 당세포에 이르기까지 전문적 인 당 기관에서 근무하는 모든 성원들, 즉 당일꾼 이라고 부르는 실무적 기관의 모든 조 직체계를 아우른다. 비상설적인 집단적 지도체계는 당 대회와 전원회의 등 중앙과 지방의 상급 및 하급 간 부들의 협의체로서 각종 회의들을 통해 사회 전반에 당의 영도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조선 노동당의 구성원은 김정일을 비롯해서 고위층부터 하부에 이르는 모든 간부들과 권 력층 인사를 포함해 약 400만 명의 당원을 가지고 있다. 조선 노동당은 당 비서국 산하에 전문부서를 두어 당원 및 주민들 그리고 북한의 모든 부문에 대한 정책적 통제기능과 지도기능을 수행한다. 크게는 당 생활을 지도하는 조직 지도부와 정책적 기능을 수행하는 기타의 부서로 나뉜다. 조직지도부는 북한사회 전반에 대한 당의 영도와 통제를 실현한다. 김정일의 오른팔과 같은 역할을 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서로서, 전체 간부들과 당원, 주민들의 당 생활을 통제한다. 조직지도부에는 검열과, 간 부과, 당원등록과, 민원처리를 하는 신소과, 각종 사건사고에 대한 직보체계를 갖춘 통보 과 등이 있으며 조직지도부가 사법, 검찰을 관리한다. 검열과는 당의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적 지도체제 확립에서 발생하는 모든 반( 反 )당적, 비( 非 )당적, 무( 無 )규율적, 비리적인 현상을 조사하고 김정일에 보고하는 업무를 맡고 있 다. 특히 조직지도부 검열 은 다른 기관의 검열과 엄격히 구분되어 북한의 모든 당원들 과 행정 간부들이 두려워하는 공포의 대상이다. 정책적 수행을 하는 부서로는 선전선동 부와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38호실, 39호실, 대남담당 통일전선부, 국제부, 과학교 육부, 작전부 등 20여 개 전문 부서가 있다. 34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당은 어떻게 주민통제를 하고 있나? 북한 조선 노동당은 당원과 비당원을 포함해 고위층에서부터 일반 주민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직생활을 장악하고 통제한다. 노동당이 국가 위에 군림하면서 주민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국가의 헌법이나 형법이 아닌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 10대원칙(10대원칙) 이다. 노동당이 주민들을 통제하고 장악하는 도구로 삼고 있는 10대원칙 은 북한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죽을 때까지 그 내용을 암기하고 학교, 직장, 가정에서 준수해야 한다. 10대원칙 은 김정일이 노동당 조직비서 업무를 수행하며 작성을 주도했으며, 1974 년 2월에 북한 전역에 공표됐다. 김정일은 10대원칙 을 기반으로 북한 주민의 하루 일과 와 밀접히 연관된 생활과 행동을 규범으로 정해 놓았다. 당 생활총화는 노동당이 당원들, 나아가 일반 주민들의 모든 업무수행과 사생활을 감사 하는데 가장 전형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10대원칙 8조 5항에는 2일 및 주 당 생활 총화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수령님의 교시와 당 정책을 척도로 자기의 사업과 생활을 높 은 정치사상적 수준에서 검토총화하며 비판의 방법으로 사상투쟁을 전개하며 사상투쟁을 통하여 자신을 혁명적으로 단련하고 끊임없이 개조해 나가야 한다 라고 규정되어 있다.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 10대원칙(이하 10대원칙)-별첨 북한에서의 생활총화란 일정한 기간 동안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업무수행과 개인생활, 모 든 말과 행동, 사고방식 등에서 나타난 결함들과 과오들을 솔직히 털어놓고 자아비판과 상호비판을 진행하는 일종의 회의다. 이런 생활총화는 주( 週 ) 월( 月 )별로 총화를 진행하 고 3개월에 한번 씩은 분기별 총화를 진행한다. 총화에서는 자기의 과오를 숨기거나 축소 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면 다시 준비를 하거나 비난의 강도가 높아지게 된다. 분기 당 총화는 보통 반나절 혹은 하루 종일 진행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며칠씩 걸리기도 한다. 특히 총화를 통한 상호 비판이 끝나고 나면 상급 당회의 지도간부가 김 정일이나 중앙당 조직 지도부의 비준을 거친 결론을 발표한다. 한국의 판결문과 비슷한 이 결론문은 경고, 엄중경고, 자격정지 등의 비교적 가벼운 벌을 받기도 하지만 때에 따 라서 한 달 혹은 수개월 동안 탄광이나 농촌에서 무보수노동, 강직, 직위해제, 지방추방, 보위부 이관 등 중벌이 내려지거나, 구속 기소돼 노동단련형이나 교화형을 받기도 한다. 노동당은 주민들에게 각종 학습과 교양이라는 명목 하에 주민들을 교육시켜 감시와 통 I. 북한 정치 35
제를 진행하고 있다. 10대원칙 4조 5항을 보면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 사상 을 배우는 학습회, 강연회, 강습을 비롯한 집체학습에 빠짐없이 성실히 참가하며 매일 2 시간 이상 학습하는 규율을 철저히 확립하며 학습을 생활화, 습성화하고 학습을 태만하 거나 방해하는 현상을 반대하여 적극적으로 투쟁하여야 한다 라고 명시돼 있다. 특히 매 주 토요일마다 전당적으로 진행하는 토요학습과 강연회, 영화문헌학습은 철저히 선전선 동부의 계획과 각본에 따라 진행되는 북한주민 세뇌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 알려 져 있다. 북한 주민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문답식 학습경연 이다. 문답식 학습강연은 체육대회처럼 예선, 준결승, 결승까지 치르며 모든 간부와 당원, 주 민들은 선전선동부에서 내려 보낸 1백 페이지가 넘는 문답식 학습제강 을 받침하나 틀리 지 않고 완전히 통달해야 한다. 이 문답식 학습제강 은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각종 노작 들과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 10대원칙 을 포함하여 주체사상과 관련된 철학적 문제들, 김( 金 )부자의 위대성과 덕성을 찬양한 자료들, 김( 金 )부자 찬양내용의 각종 시, 노래들을 문제별로 수록하고 있다. 최종결승에서 이긴 단체와 개인에게는 TV 등 선물과 표창이 따르지만 경연에서 패한 단체들은 자체 사상투쟁을 벌이고 선수로 참여했던 사람들은 사 상학습을 게을리했다는 이유로 소속단체와 당조직의 비판 대상이 된다. 북한에서는 노동당원들을 제외한 모든 비당원들은 의무적으로 다양한 노동당 외곽조직 들에 포함돼 당의 지도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 노동당 외곽단체로는 김일성사회주의청년 동맹(청년동맹), 직업총동맹(직맹), 농업근로자동맹(농근맹), 민주여성동맹(여맹), 소년단 등이 있다. 청년동맹은 북한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활동이 적극적인 정치조직이며 모든 노동청년, 학생, 군인들 중 비당원들이 망라되어 있는 유일한 청년조직이다. 청년동맹은 모든 청소 년들의 사상교양과 조직생활에 대한 통제를 통해 세대교체에 따르는 주민의식 변화를 철 저히 차단하며 생산과 건설, 군복무에서 청년들의 돌격대적 역할 보장을 위한 각종 동원 의 조직자적 역할을 한다. 청년동맹은 학생, 청년들 속에서 그 어떤 반체제적인 결사( 結 社 )나 행동의 요소도 나타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중요한 사명으로 하고 있다. 청년동맹원들 중 나이가 30세 정도에 이르러 당에 입당하지 못한 노동자와 하급 관리 들의 경우 직맹에, 농촌청년의 경우 농근맹에, 가정주부의 경우 여맹에 가입해야 한다. 이런 근로단체들에 대한 지도는 노동당 당중앙위원회와 그 산하의 각급 당위원회들의 근 로단체 사업부가 주관한다. 또한 북한의 모든 기관, 기업소, 단체들 내의 초급당 위원회 들과 당세포들은 같은 기관이나 부문 내의 근로단체 말단조직들과 근로단체 성원들의 생 36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활과 업무활동을 지도, 통제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모든 비당원들은 자기 가 속한 근로단체조직의 지도통제와 함께 자기가 근무하는 기관이나 부문에 해당되는 당 조직의 이중적인 지도통제를 받게 된다. 노동당과 인민군은 어떤 관계인가?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이 주도해 온 선군정치( 先 軍 政 治 )의 영향으로 북한 내에서 군의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강화된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김정일 사후 북한체제는 군( 軍 )중 심의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될 것이라는 예측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 고위관료 출신 탈북자들은 이런 예상은 북한 체제의 특징, 특히 북한에서 당과 군의 관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북한 노 동당 국제담당비서를 지낸 황장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도 김정일 사후 북한 체제는 군부가 아닌 당이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당 규약에서는 조선 인민군(이하 인민군)을 조선 로동당(노동당)의 혁명적 무장 력 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이는 인민군이 당의 군대 라는 것을 뜻한다. 인민군에는 군 지 휘계통과 별개로 당 조직이 각급 부대에 내려가 지휘를 하고 있다. 지휘 체계가 군사지 휘 계통과 당 조직 계통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것이다. <북한군 사열 장면> I. 북한 정치 37
당의 편제로 볼 때도 인민군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조선인민군 당위원회 의 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인민군 당 위원회 책임비서는 인민무력부 총정치국장이 맡고 있으며, 총 정치국장은 군에 대해 당의 지시와 방침을 전달하고 군이 당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는가 를 항상 감시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군 최고정치기구인 총정치국은 바로 중앙당 조직지도부의 지시와 감독을 받게 되어 있다. 따라서 당 조직부부장이 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군의 지휘 체계보다 당의 지휘체계가 항상 우위에 서서 군에 대한 통제를 하고 있다. 이와 관련, 황장엽 위원장은 1995년도에 발생했던 6군단 쿠데타 모의사건 을 예로 들 며 당시 (쿠데타 주동자들을) 강당에 모아 죽였는데 이를 집행한 사람은 김영춘(현 국 방위 부위원장)이었지만, 정치적으로 지도한 사람은 장성택(김정일의 매제, 현 노동당 행 정부장)이었다 며 이는 집행하는 군인과 정치하는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 인 사례 라고 설명했다. 당 조직지도부장이 군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인사권 과 검열권 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군인들의 진급과 보직을 포함한 군 인사권 역시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선인민군 당위원회 비서처에서 담당한다. 당 비서처 구성원은 인민무력부 장, 총참모장, 총정치국장, 작전국장, 간부국장 등 5명으로, 경우에 따라 보위사령관이 포 험되기도 한다. 소장(준장) 이상 장성들은 무조건 조직지도부의 비준 대상이 된다. 조직지도부의 비준 이 결정되면 인민군 최고사령관의 명령으로 직무 임명과 군사 칭호를 수여한다. 따라서 조직지도부는 북한군 주요 간부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함으로써 군에 대해 절대적인 통제 권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당 조직지도부는 군에 대한 검열권도 갖고 있다. 군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검열이 바로 중앙당 조직지도부 검열이다. 조직지도부에서 검열을 나가는 경우는 대개 군에 대 형 사건이 터졌을 때다. 조직지도부에서 떴다 는 소문이 들리고 얼마 후면 장성이 몇 명 씩 날아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군이 전적으로 당의 지도와 통제 하에 있는 만큼 과거 김정일 역시 당 조직지도부에 대한 장악을 통해 군을 장악해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조직지도부 내에서 군을 담당하는 구체적인 부서는 당 생활지도 13과, 간부 4과 등이다. 이중에서 당 생활지도 38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13과는 노동당 내 인민군 당위원회 사업과 총정치국 사업에 대한 직접적인 지도와 통제 를 실현한다. 인민군 당위원회와 총정치국은 모든 사업을 독자적으로 조직할 수 없으며, 반드시 사 전에 13과와 협의하여 진행해야 한다. 13과의 책임자는 조직지도부 부부장이 맡는다. 13 과는 총정치국과의 사업적 연계를 위해 인민무력부 청사에 별도의 사무실을 두고 있으며 총정치국이 준비하는 당 중앙위원회 인민군 당위원회 전원회의 등을 비롯한 각종 회의의 방향을 토론하고 진행한다. 북한의 대남사업은 어느 부서가 담당하고 있나?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후 조문사절단으로 2009년 8월 서울을 방문한 김양건 통일전 선부장이 뉴스의 초점이 된 바 있다. 대남 업무 총책 인 그는 2007년 9월 남북정상회담 을 앞두고 극비리에 서울을 방문,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을 만나 남북정상선언 초안을 제 시하고 협의했었다. 그해 11월에는 정상회담 후속 조치 협의를 위해 공개적으로 남한에 왔다. 신중하고 침착한 언행으로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공개적인 대남협상 교류 창구를 조선 노동당 통일전선부(통전부)로 일원화시켜 대남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통전부는 1977년 김일성의 직접교시에 따라 만들어져 남북회 담 등 공식석상에서 노출된 활동을 담당하고 있어 외부에도 잘 알려진 편이다. 남한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대북협상의 내용과 방식을 달리하지만, 북한은 당 총비서인 김정일 이 이를 직접 지휘하기 때문에 대남협상에 있어 별다른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통전부는 남북협상에서도 협상절차, 발언수위, 제스처 하나까지 모든 것을 사전에 철저 히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민간차원의 남북 대화나 교류에서도 북한은 통전 부 요원들을 투입해 대남사업의 일환으로 활용하고 있다. 실례로 2004년 6월 금강산 남 북작가회담 당시 북측 단장 장혜명은 조선작가동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직책으로 등장했 지만, 실제는 101연락소 국장직을 거쳐 지금은 26연락소 대남문학창작국 담당 부소장 을 맡고 있는 통전부 핵심 요원이다. 통전부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통전부에는 약 2,500명, 작전부는 약 8,000명, 여기에 인민군 정찰국 요원들까지 합하면 수 만 명의 인력이 대남사업에 편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전부는 북한 조선 노동당의 대남공작 부서로서 간첩 즉, 공작원들에 대한 기본교육훈련, 침투공작원 호송, 안내, 복귀, 대남테 러공작 및 대남침투루트 개척 등을 주임무로 하고 있다. I. 북한 정치 39
통전부의 외곽단체로는 1970년대부터 남한 내 반미민족해방 운동의 전위조직을 자임하 고 있는 반제민족민주전선( 舊 한국민족민주전선) 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남 북 해외 민간 통일운동 이라는 형식으로 1992년부터 활동해온 범민족통일운동연합(범민련) 북측본부와 범민족통일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 북측본부가 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해외동 포원호위원회,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통협),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북측 민족화해 협의회(민화협),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 등도 통전부의 지시로 움직이는 단체다. 통전부 내에는 직접침투과, 남북회담과, 해외담당과 및 조국통일연구원 등이 있다. 직접침투과는 남한 내 반정부 통일전선 형성을 임무로 하는 간첩을 합법적으로 우회 침 투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역할도 하며, 해외담당과는 해외 반한( 反 韓 )교포단체 육성 및 친 한단체 와해공작을 수행한다. 또, 조국통일연구원은 대남 심리전 및 대남관계 자료 분석을 담당한다. 외부에 노출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대남사업을 벌이는 3대 축은 작전부, 대외연락부, 35호실이다. 통전부가 포괄적인 대남전략을 세우고 얼굴마담 역할을 한다면, 작전부는 미리 구축해 둔 루트와 조직원들을 통해 간첩을 파견하는 행동대장 역할을 맡고 있다. 작전부는 공작원의 기본교육과 육 해상 직접침투 후 주요 시설 정찰, 무인 포스트 발굴 및 매몰, 테러와 고정간첩 호송안내 임무를 맡는다. 산하에 공작원 교육기관인 김정일 정치군사대학( 舊 금성정치군사대학) 을 두고 있다. 작전부에는 대남 육 해상 작전과와 해 외작전과, 지원과가 있으며 개성, 사리원, 청진, 원산, 남포, 해주 등에 연락소를 두고 있 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른바 고정간첩 을 보내는 부서는 대외연락부와 35호실이다. 대외연락부는 직접 남한 에 공작원을 침투시키고 35호실은 외국에 공작원을 보내 대남사업을 하는 해외공작을 담 당한다. 대외연락부는 공작원 교육과 국내외 지하당 구축이 주요 임무로 대남담당과, 해 외담당과, 지원과 등을 두고 있다. 대남담당과는 남한 내 반정부 인사 포섭 및 지하당 구 축뿐 아니라 1997년 고 이한영(김정일의 처조카) 씨 피살사건과 같은 테러임무도 담당한 다. 해외담당과는 일본, 중국, 동남아, 유럽 등의 해외교포들을 포섭하고 남한을 상대로 합법, 비합법적 방법으로 우회침투를 시도해왔다. 일명 조사부라 불리는 35호실은 공작원의 남한 침투 및 해외파견과 대남정보수집, 해 외공작, 테러 등을 담당하고 있다. 1997년 필리핀인으로 위장해 국내대학에서 교수로 활 동하다 적발된 깐수 사건과 1978년 최은희 신상옥 납치사건, 1987년 KAL기 폭파사건 등이 35호실 소행으로 알려지고 있다. 40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 북한의 행정구역 변화 북한의 행정구역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북한의 행정구역은 1직할시 9도 3특급시 24시 148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양시는 직 할시를 유지하고 있고, 개성시와 남포시, 나선시는 특별시로 지정되었다. 북한의 직할시는 중앙정부에 의해 운영되는 데 비해 특급시는 행정구역상 해당 도에 귀속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중앙에서 관리하고 있다. 직할시였던 개성과 남포, 나선시를 특 급시로 바꾼 것은 북한의 개혁개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성은 개성공단 건설로 행정체계도 바뀌었다. 한편, 국가정보원이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홈페이지는 북한의 행정구역을 2직할시(평 양 나선)ㆍ9도ㆍ26시ㆍ148군으로 밝힌 바 있다. 북한은 2004년 1월 남포시(직할시)를 특급시로 바꾸고 항구구역, 와우도구역을 남포시 (특급)에 소속시키면서 항구구역, 와우도구역을 없앴다. 또 강서 천리마 대안 구역 을 군 으로 고치고 남포시(특급), 강서군, 천리마군, 대안군, 룡강군을 평안남도에 소속시켰 다. 남포항은 북한 최대의 항구로, 북한 최초로 컨테이너부두가 건설 중인 곳이다. 남포 특급시에 편입된 와우도구역에는 남포조선소, 항구구역에는 남포제련소 등 주요 산업시 설들이 위치해 있다. 북한은 또한 함경북도 내 일부 군( 郡 )의 이름도 바꾸었다. 북한 언론매체 보도에 따르 면 함경북도의 새별과 은덕, 화성 3개 군이 2005년 3-4월 경에 각각 경원 경흥 명간군으 로 바뀌었다. 함경북도는 1특급시(라선)ㆍ3시(김책, 청진, 회령) 12군(경성, 길주, 명천, 무산, 부령, 경원<새별>, 어랑, 연사, 온성, 경흥<은덕>, 화대, 명간<화성>)으로 이뤄 져 있다. 이들 군 개명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바뀐 이름이 모두 옛 지명이라는 점이다. 또한 새별군과 은덕군은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우상화와 관련이 있는 지역이 다. 새별군은 김정일 위원장을 지칭하는 새별 을 딴 명칭이고, 은덕군은 김 주석의 은덕 을 기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편 한반도 북단인 라선직할시도 2004년 1월 특급시 로 개편돼 함경북도에 편입됐다가 2010년 1월 특별시로 지정되었다. 지리상으로 경흥군 (은덕군)은 라선시와 접하고 있고, 경원군(새별군)은 경흥군과 이웃하고 있다. 그러나 명 간군(화성군)은 함경북도 남부지역에 위치, 라선시와 멀리 떨어져 있다. I. 북한 정치 41
탈북자 출신이 많은 지역 : 회령과 혜산 회령은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의 고향이다. 지금도 김정숙의 혁명사적을 기리는 생가가 있고, 어릴 적 나물 캐던 오산덕과 중국으로 간 나루터가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김일성, 김정일의 현지지도를 기념하는 비문도 많다. 회령을 비롯한 북부 국경일대는 북 한에서 유배지 로 통한다. 출신성분이 나쁘거나 한국전쟁 때 국군포로, 의용군 출신, 피 난민들을 대대적으로 보내 힘든 일을 시켰다. 그러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등장하면서 주민계층 구성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1990 42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년대 초 김정일이 회령을 돌아보고 어머님의 고향이 너무 문란하다 며 주민통제를 잘할 것을 여러 번 강조한 곳이다. 회령은 중국과 통하는 교두보가 있는 국경관문이다. 중국과 왕래가 많고, 중국계 화교 인들이 운집해 장사하는 곳으로서 개인 상공업이 발전되었다. 또 자본주의를 제일 먼저 접하는 요충지이기도 하다. 공장은 1.17 공장(김일성이 이날 공장을 현지지도), 회령곡산 공장(당과류, 담배생산) 등이 있고 대부분의 주민들은 농사에 많이 종사한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은 전례 없는 대아사 시기를 맞게 된다. 먹을 것이 없어 헤매던 사 람들의 북부 국경지대를 통한 탈출이 많아졌다. 이 때문에 조용하던 회령시가 전국의 초 점이 되었다. 탈북자들이 회령을 거쳐 탈북하게 되는 원인은 두만강 폭이 넓지 않고, 교 통이 발달되어 활동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탈출에 뜻을 둔 사람들은 교통이 좋은 회령과 무산 쪽으로 많이 오는데, 국경군인들은 찌들린 군대생활과 제대 후의 생활을 위해 돈을 받고 탈출을 눈감아 주었다. 물론 다시 북한으로 들어온다는 담보 하에서 월경시킨다. 그 외에 돈이 없어 군인들을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체로 월경하다가 국경대원들의 총격을 받거나, 두만강 물에 휩쓸려 죽 는다. 현재 회령은 반체제 삐라 살포, 격문부착과 같은 동영상이 외부로 나옴으로써 북한 반 체제 활동의 쟁점지역으로 되었다. 북한 당국은 회령을 비롯한 국경지대에 통제와 감시 를 강화하고 있다. I. 북한 정치 43
<회령 시내 전경> 회령은 조선시대에 도호부가 설치되었던 큰 고을이다. 조선시대에 군이 되었고, 일제 강점기에도 군 소재지로 있었다. 북부는 백두산에서 시작된 두만강이 중국과 경계를 두 고 흐르고 있다. 일제시기 물이 많아 나룻배가 있었지만 현재는 강폭이 10m 안팎의 작 은 강으로 변했다. 1952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도 회령군의 행정구역은 큰 변화가 없었다. 1974년 5월 유 선군과 종성군이 폐지되면서 유선군 전 지역과 종성군의 방원리, 낙생리, 행영리, 굴산리, 중봉노동자구가 회령군에 편입됐다. 1991년 7월 시로 승격되었으며 노동자구(리)를 모두 폐지하고 동으로 개칭했다. 현재 행정구역은 19개 동과 28개 리로 되어있다. 인구는 13만 명 정도다. 동쪽은 은덕 군, 새별군, 나진 선봉시, 서쪽은 무산군, 남쪽은 청진시, 부령군, 북쪽은 온성군 및 두만 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길림성 용정시와 접한다. 혜산시는 양강도의 도청 소재지이다. 중국 길림성 장백현을 마주하고 있다. 혜산시의 행정구역은 25개 동(혜산, 혜화, 혜흥, 신흥, 혜신, 혜정, 혜명, 탑성, 성후, 련두, 강안, 연 풍, 련봉1, 련봉2, 영흥, 송봉, 강구, 춘동, 마선, 혜탄, 혜장, 검산)과 4개 리(운총, 장안, 신장, 로중)로 알려져 있다. 현재 혜산시 인구는 10만에서 15만 정도로 추산되지만 정확 한 통계는 없다. 혜산 시내에서 눈에 띄는 곳은 모두 김정일 일가의 우상화 기념물들이다. 혜산세관 뒷 44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편에 자리잡고 있는 보천보전투기념탑 과 김정숙예술극장 에는 밤새도록 휘황찬란한 조 명이 비쳐진다. 김정숙예술극장 은 혜산 주민들이 대량아사와 탈북행렬이 끝나지 않던 2000년에도 공사를 멈추지 않았던 곳이다. 혜산은 북-중 국경에서 북한의 실생활을 가장 적나라하게 살펴볼 수 있는 도시이다. 때문에 외부세계에 노출을 꺼리는 북한 당국은 강경하게 혜산시 국경을 통제하고 있으 며, 중국정부 또한 탈북자 및 탈북자들을 돕는 NGO나 선교단체들을 차단하기 위해 강 력한 통제를 실시하고 있다. 압록강이 얼어붙기 시작하면 탈북자들의 숫자가 조금씩 늘고, 중국변방대의 단속에 걸 려 송환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압록강을 건너 장백현에 들어오기는 쉽지만 장백현이 너 무 외진 곳이라 탈북자들이 연변자치주 쪽이나 중국의 큰 도시로 도망치기도 어렵다. 장 백현의 주민들은 가장 오랫동안 북한주민들을 고통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I. 북한 정치 45
2. 급변사태 발생 가능성과 체제 안정성 가. 급변사태 발생 가능성 오늘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건재해 보인다. 그러나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김정일 중 병설이 뉴스의 중심을 차지했다. 김정일 건강이 주목받는 이유는 북한 급변사태의 촉발은 그의 유고로 시작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관심을 갖고 주목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o 북한 급변사태 개념은? 북한 급변사태라는 개념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이 규정되고 있다. 즉, 김정일 유고, 북한의 군부 쿠데타, 민중봉기, 내전 또는 이중 몇가지가 동시에 발생해 나타 나는 무정부 상태, 대량 탈북 등이 북한 급변사태의 주요 양상과 국면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일의 유고 가능성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김정일 중병설이 뉴스의 중심을 차지했다. 북한 김정일 국 방위원장이 뇌졸중에 이어 췌장암에 걸렸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건강이상설에 대한 관 심이 증폭되었다. 특히 사망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췌장암 발병설이 사실일 경우 생존 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유고에 따른 북한 내부 급변 가능성에 대비해 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췌장암은 암이 진행되는 동안 환자가 특별한 증상을 느끼지 못해 주로 말기에 발견되 며 수술을 하더라도 5년 이상 생존할 가능성은 10%대를 밑돈다. 김정일의 암 투병설은 과장된 보도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지만, 김 위원장이 평소 췌장암 발병 원인인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는 점과 핏기없이 수척해진 모습에 비춰볼 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 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한편 국내의 한 언론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간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다지 건 강에 이상이 없으며, 국정수행에도 지장이 없다고 보도하기도 했는데, 결국 이는 김 위원 장의 클린턴 전 대통령(2009년 8월 4일) 및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면담(2009년 8월 17 일)을 통해 확인되었다. 췌장암으로 김 위원장의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이고, 이에 46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따라 후계체제 작업이 속전속결로 이뤄지고 있다는 외신 및 대북소식통들의 그간 정보와 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던 셈이다. 얼마 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조문 사절을 이끌고 2009년 8월 서울을 방문한 김기 남 노동당 비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상태에 관한 질문에 대해 올해는 작년에 비해 4 배나 현지지도(현장시찰)를 많이 했다 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현정은 현대 회장도 와서 확인하지 않았느냐. 건강하시다 라고 설명해 그간의 건강이상설을 누그려뜨린 바 있다. 김 위원장의 건강 악화 사실이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2007년 5월 중순 독일 의료진으 로부터 풍선확장술(경피적 관상동맥확장술) 이라는 심장질환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 면서부터다. 당시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 NK 는 대북소식통을 인용, 김 위원장에게 심 근경색 증상이 나타나 베를린 심장센터 의료진으로부터 풍선확장술 치료를 받은 뒤 하 루 요양하고 일상 업무에 복귀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을 치료한 것으로 알려 진 독일 의료진은 말도 안 되는 소리 라며 한국의 언론 보도를 전면 부인했다. 2008년 8월에는 김 위원장이 뇌졸중을 앓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는 보도가 잇따랐 다. 북한은 2009년 4월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제기된 2008년 8월부터 12월까지의 공개 활동 동영상을 공개, 김 위원장의 건재를 과시했지만 병색을 감추지는 못했다. 동영 상 속의 김 위원장은 왼손을 주머니에 넣고 거의 움직이지 않았으며 수척해진 몸매에 불 룩 나온 배도 많이 들어가 있었다. 특히 2009년 7월 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체육관에서 열린 김일성 주석 15주기 중앙추모대회에 참석한 모습이 그의 건강 이상설을 더욱 부추긴 계기가 되었다. 김 위원 장은 2009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 15주기 중앙추모대회에 참석, 공개석상에는 3개월 만 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지만(뒷장 사진 참조) 병을 앓았던 기색이 역력했다는 게 영상 을 통해 본 한국 의료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 위원장이 고개를 숙여 묵념하거나, 앉아서 자료를 읽을 때 찍힌 영상에는 머리 윗부분의 머리숱이 많이 빠져 있는 모습이었으며, 행 사장에 앉아 있을 때는 수척한 얼굴에 다문 입 오른쪽 꼬리가 올라간 모양으로 비쳤다. 김 위원장의 동영상이 나간 뒤 잇달은 관련 보도들이 김정일의 유고 가능성을 더욱 부 추켰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문제에 대해 향후 5년 동 안 생존할 확률이 29%에 불과하다고 우리 정보 당국에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소식통은 2009년 7월 10일 미 CIA가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를 정밀분석한 자료를 지난 달 우리 정보당국에 통보한 것으로 안다 며 CIA는 김 위원장이 뇌졸중과 당뇨병의 후 I. 북한 정치 47
유증 등으로 5년 내 사망 가 능성이 71%에 달한다고 분 석했다 고 했다. CIA의 이 같은 추정치는 김 위원장의 나이, 질병, 신체조건 및 뇌 졸중을 맞은 시기와 그 이후 의 신체 조건 변화 등을, 의 료관련 데이터베이스와 비교 분석해 얻은 것으로 알려졌 다.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 속에서 김 위원장과 연령, 신체조건, 건강상태가 거의 일치하는 사례들을 골라내 앞으로의 기간별 생존 가능성을 확률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미 워싱턴타임스(WT)(2009.7.9)는 이보다 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워싱턴타임스 는 김 위원장이 지난해 뇌졸중을 앓은 이후 종전에 건강했던 모습과는 전혀 달리 쇠약 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면서 김 위원장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건강으로 인해 앞으 로 1년 정도밖에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김 위원장이 최근 서양 의약에 따른 치료를 포기한 채 한약과 비전통적 요법 등 동양 의약 에 의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보 분석가들은 한때 김 위원장이 뇌졸중에서 회복해 북 한에 대한 통제력을 확실히 쥐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3남 정은으로의 권력 승계설은 그의 건강 이상설을 다시 부추겼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우리 정부는 급변사태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김정일 위원장의 유고 가능성을 고려한 다양한 급변사태 대비책이 우리 정부 차원에서 준비되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우선 가장 주목되는 것이 국방개혁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좋지 않아 5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 면서 그 대비를 서두를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 되었다. 북한 급변사태 시 중국군의 개입 가능성에도 대비를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2012년 전시 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및 한 미 연합사 해체, 중국 일본의 해 공군력 증강 등 주변국의 첨단 군사력 강화 등도 국방개 혁에 영향을 끼칠 중대 변수로 간주되었다. 48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o 우리 정부의 국방개혁 차원에서의 대비책 마련 국방부는 2009년 6월 26일 확정 발표한 국방개혁기본계획 수정안 에서 전시에 10개 사단을 창설한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국방개혁 기본계획 수정안은 오는 2020년까지를 상 정한 것이다. 여기에 북한 급변사태 시 북한 안정화 작전 등에 대비한 무기체계 도입 검 토 등이 포함되어 있다. 군 당국이 전시( 戰 時 ) 민사작전부대를 지정 운영키로 한 것은 북한지역 안정화(민사) 작전에 사전대비하고 전시 예비군의 역할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군당국은 전시에 북한지역 안정화작전을 위해 예비군 10만여 명을 투입한다는 계획에 따라 2010~ 2011년께 10개 향토사단을 민사작전부대로 지정, 본격적인 교육에 들어간다는 계획인 것 으로 알려졌다. 이후 국방부측은 이들 사단이 전쟁 종결 단계에서 북한지역 안정화 작전 임무를 수행 하게 된다고 전했다. 군이 전시 북한지역 안정화 작전 임무수행을 위해 부대를 창설한다 는 것은 이번 수정안의 가장 핵심 중의 하나였다. 그간 전시에 수복된 북한지역에 대한 민사작전 필요성은 군의 여러 문서에 언급되어 있었지만 민사작전의 실행 부대 창설과 교육 등 사전 대비계획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시 북한지역에 대한 민사작전을 준비하게 된 것은 이라크전의 교훈과 함께 자이툰부 대의 이라크 평화재건임무 성공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게 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미군은 이라크전에서 첨단무기를 동원, 중과부적인 이라크군을 손쉽게 제압하고 단기간 에 전투를 종결지을 수 있었지만 이라크인들의 민심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기독교 문화 인 미군이 이슬람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소홀히 했고, 곳곳에서 종교와 관습을 모독 하는 사례들이 벌어져 이라크인들의 반감을 사게 됐다. 결국 미군은 전쟁에서는 이겼지 만 이라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게 된 것이다. 군 관계자는 민사작전부대를 지정 운영해 북한지역 안정화 작전에 대비하려는 것은 이라크전의 교훈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면서 전시 북한주민들을 보호하는 한편 국군에 저항하는 유격대 출몰 등을 미리 방지하는 것이 민사작전부대의 임무가 될 것 이 라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전시 민사작전부대 창설은 북한의 급변사태와는 본질적 으로 무관한 것 이라며 민사작전부대는 오로지 전시에 목적을 두고 있다 고 강조했다. 전시 북한지역 안정화 작전 임무를 수행하게 될 민사작전부대 10개 사단은 전적으로 I. 북한 정치 49
동원 예비전력으로 편성된다. 국방부는 예비군의 역할을 고려해 현행 300만여 명인 예비 군전력을 150만 명으로 줄이려던 계획을 185만명으로 조정했다. 또 예비전력에 대한 교 육을 상비부대 전투력 수준과 동일하게 강화하는 계획도 수립 중이다. 군이 전시 북한지 역 안정화 작전에 예비군을 동원하는 계획을 수립한 것은 현재 65만5천 명인 상비병력 규모가 2020년부터 51만7천 명 수준으로 감축되기 때문이다. 51만7천 명인 상비병력 규 모로는 전투임무 외에 민사작전을 수행할 여력이 없다는 판단에 기초한다. o 대량 탈북 사태에 대한 대비책 마련 국방개혁 다음으로 북한의 급변 등으로 탈북자가 급격히 늘어났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 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탈북자 수가 급증하면 통일부만으로는 이를 처리하는 것은 역 부족일 수밖에 없고, 행정안전부를 중심으로 지방자치단체들에 탈북자 관리를 넘기는 방 안도 검토되고 있다. 주변국들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국제사회는 북한을 유엔 회원국의 하나인 주권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에 혼란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국제사회가 북한에 개입하는 것은 북한이 스스로 원할 때 가능하다. 김정일 사후 북이 혼란에 빠졌다고 남북이 갑자기 통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o 미국의 준비 실태와 입장 우선 미국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해 보인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2009년 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후계 문제를 처음으로 언급한 바 있다. 클린턴 장관은 2009년 2월 19일 방한에 앞서 가진 기내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어떤 후계 구도가 형성될 것이며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등 많은 우려에 직면해 있는 한 국으로서는 지금이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면서 북한 리더십에 변화 조짐이 감지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또 권력 승계가 일어나면 그것이 평화적이라 하더 라도 더 큰 불확실성을 야기하고 북한 내부에서 권력을 공고히하기 위한 수단으로 더 도 발적인 행위를 촉발시킬 수 있기 때문에 (북한 권력 내부에) 압력이 증가할 수 있다 고 지적,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위협과 대남 강경 공세가 후계구도를 둘러싼 북한 내부 의 이상기류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에 힘을 싣기도 했다. 그 뒤 김정일 건강 이상설이 증폭되자 마이클 낙트 미국 국방부 세계전략문제 담당 차 50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관보는 2009년 7월 15일(현지시간) 북한의 미래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를 개발 중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낙트 차관보는 같은 날 하원 군사위원회의 대량살상무기 관련 청문 회에 출석,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제출한 북한의 핵불능화 착수에 대비한 8천만달러의 예산에 대한 삭감 필요성 여부를 묻는 질문에 현실화될 경우 좀 더 효과적으로 이런 돈 이 사용될 수 있는 북한의 미래 상황을 위한 시나리오를 개발 중 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구체적으로 미국이 개발 중인 시나리오가 어떤 경우에 대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또 북한은 권력승계 과정에 있다 면서 이런 승계 작업이 3개월 이 걸릴지 3년이 걸릴지 모른다 고 말했다. 한편, 주한미군 사령부는 2009년 7월 8일 재난구호와 인도적 지원을 위한 탁상 모의훈 련과 다자간 회의를 개최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 회의에는 한국과 미국, 일본, 호주 등 의 장교와 민간단체 관계자 50여 명이 참석하여 재난구조와 인도적 지원 문제에 대한 발 표가 이뤄졌고, 재난재해를 가상한 탁상 모의훈련이 진행되기도 했다. 주한미군은 자연재 해 대응능력과 경험, 난민구제 등 인도적 지원을 위해 지역 군의 이해를 높이려는 것이 라고 설명했지만 북한 급변사태에 따른 대량 탈북 등에 대비하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알 려졌다. 이에 앞서 미국 외교관계협의회(CFR)는 2009년 1월 28일 발표한 북한 급변( 急 變 ) 사 태에 대한 대비(Preparing for Sudden Change in North Korea) 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서, 버락 오바마(Obama) 행정부가 북한의 급격한 붕괴보다는 북한의 행태변화를 추구하 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또 미국이 북한의 급변사태 수습과정에서 한국에 주도권 을 넘겨주고 통일된 한국의 출현을 지지한다고 밝혀야 하며, 중국을 포함한 주변국가들 의 이해관계가 상충하지 않도록 긴밀한 협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북한 김정일 후계구도와 관련, 후계자를 지정한 상태에서 지도부가 바뀌는 관리된 권력승계, 군부나 국가안전보위부 출신 인물이나 집단이 경쟁을 벌여 새로운 정 권이 들어서는 경쟁적 권력승계, 김정일 정권 이후 대다수 지지와 정당성을 확보한 지 도체제가 성립하지 못해 과거 동유럽처럼 무정부 상태 혼란에 빠지는 권력승계 실패 등 3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했다. 보고서는 북한에서 권력승계 암투가 장기화되거나 권력공백사태가 발생하는 등 급변사 태시 우려되는 문제점으로 비무장지대(DMZ) 및 서해상에서의 남북 무력충돌, 대규모 탈 북사태, 식량난과 같은 북한 내부의 대규모 인도주의적 위기 발생, WMD(대량살상무기) 안전확보, 북한 내 치안과 안정유지문제 등을 꼽았다. I. 북한 정치 51
특히 보고서는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북한 내 치안과 안정을 성공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일반적으로 인구 1천명당 5~10명의 병력이 요구된다며 북한의 인구가 2천300만 명인 만큼 11만5천~23만명의 군병력을 한국과 미국 등이 충원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여기에다가 수만 명의 경찰병력이 기본임무를 통해 군병력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한국은 향후 10년간 육군 병력을 30% 감축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 에서 이런 병력 소요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북한군이나 치안 및 정 보기관 출신자, 10만 명에 달하는 특수군 출신자들이 미군을 비롯한 외국군 주둔에 대해 저항운동을 전개할 경우 치안 및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병력수는 급격하게 늘어 날 것이라고 보고서는 내다봤다.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이 2009년 4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이어 보고서는 북한 급변사태는 미국으로선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함께 6~8개로 추 정되는 핵무기 및 핵물질, 4천톤에 이르는 화학무기와 북한이 보유한 생물무기를 찾아내 안전을 확보하고 처분하는 게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WMD를 찾 아내서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해선 수천 명의 병력과 최첨단 탐지장비를 구비한 기술진들 을 필요로 하는 데다가 영변처럼 기존에 존재가 드러난 시설 뿐만 아니라 WMD 관련 의혹이 있는 모든 곳을 조사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보고서 는 지적했다. 52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보고서는 더욱이 중국을 비롯한 다른 주변국도 북한 WMD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이런 노력을 벌일 경우 중대한 갈등을 야기할 수 있어 정치적으 로는 어렵지만 다각적인 협력을 추구하는 게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런 점을 토대로 미국 정부에게 북한에서 정권교체를 추구하기보다 북한 정권의 행동변 화를 유도하는 게 유용하다며 이를 위해 북핵 6자회담을 적극 활용할 것을 권고했다. 구체적인 정책과 관련, 보고서는 대북정보능력을 강화하고, 북한 측과 계속 접촉할 수 있는 창구를 유지할 것을 주장하면서 특히 한국전쟁 당시 숨진 미군 유해 발굴사업 재개 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국, 일본 등 동맹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중국과 오해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조용한 대화를 추진할 것을 아울러 조언했다. 한편 미국과 중국 두 나라는 김정일 사후 북한에서 정치적 혼란 발생 시 군대를 주둔 시키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2009.8.15)이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방 송은 전 미 국무부 북한 담당관 케네스 퀴노네스의 발언을 인용, 남한의 이명박 정부가 북한 유사시 남한군을 진주시키려 할 경우 미국은 남한에 대한 군사적, 외교적 지원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이미 정했다 고 전했다. 이는 지난해 열린 미 중 간 안보대 화에서 두 나라가 공식적인 협정을 체결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급변사태 시 군대를 북 한에 진주시키지 않기로 합의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방송은 분석했다. 2008년 6월 4일 중국 베이징에서 미국과 중국의 외교 관리와 군 관리의 참석 하에 열린 양국간 회의 에서는 미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 존 루드가 미국 측 대표로, 중국 외교부 부부장 헤야페이가 중국 측 대표로 참석했다. 퀴노네스 전 담당관은 회의에서 미 중은 김정일 사후 북한의 정치적 혼란 시 남한이 이를 기회로 한반도 통일을 꾀하려 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며 미 중 두 나라가 북 한 급변사태 시 두나라 군대를 진주시키지 않기로 결정하게 된 배경은 남한의 이명박 정 부가 북 급변사태 시 남한의 북진 가능성을 논의한 것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이 미 중 두 나라의 합의 의도를 이해했을 것이라며 남한이 더는 북한 급변사태 시 남한 군의 북한 진주를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o 중국의 입장 북한 급변사태의 발생에 따라 직접적 영향을 받는 나라인 중국은 정작 말을 아끼고 있 다.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하기를 원하지 않아서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는 북한 체제가 I. 북한 정치 53
불안정하다는 판단 아래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그 위기 상황을 어떻게 관리할지를 포함한 다양한 비상계획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선임연구원은 2009년 2월 4일 발 간한 중국의 부상과 두 개의 한국 이라는 저서에서 북한 급변사태와 관련, 북한체제가 불안정해질 경우 중국이 북한의 핵무기와 핵물질을 확보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개입할 가 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이제 중국군도 북한체제 붕괴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고 중 국군 개입이 불가피한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며 최근 몇 년간 중국 군 대가 병력을 북한접경지역으로 근접 이동시키고 있는 게 우연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의 북한 급변사태 계획에는 북한 체제가 불안정 해질 경우 환경 통제 를 근거로 북한의 핵무기 및 핵물질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군대가 개입하는 것도 상정되어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중국의 당면한 우려사항은 북한 으로부터 대규모 난민이 넘어올 경우 이를 잘 관리하는 것이라고 스나이더 연구원은 덧 붙였다. 미국 등의 급변사태 대비 계획과 관련해 북한은 어떠한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2009.5.3)는 북한의 급변사태 대비와 관련한 월터 샤 프 주한미군 사령관의 발언에 대해 추호도 용납할 수 없는 적대행위이고 전면적인 군사 적 대결선포 라며 이에 대응해 자위적 핵억제력 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평통은 이날 대변인 담화에서 월터 샤프 주한 미군 사령관이 2009년 4월 22일 대한 상공회의소 초청 연설에서 북한의 우발상황(급변사태)에 대비한 계획(plan)을 준비 중 이고 한 미는 작계 5027과 5029를 통해 즉응전투태세를 유지하게 될 것 이라고 말했으 며, 우리 군 당국자들도 이 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할 예정 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조평통은 샤프 사령관과 우리 군 관계자들의 발언은 한미가 연합해 임의의 시각에 핵 으로 우리를 선제타격하겠다는 것을 공식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며, 특히 이미 이 계 획을 연습했으며 우발상황 때 즉각 적용이 가능하다 는 샤프 사령관의 발언은 작계 5029를 이미 전에 완성했으며 오늘에 와서는 그 실행단추를 누르려 하고 있다는 것 이라 54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고 비난했다. 조평통은 이어 미국과 남조선 괴뢰들의 불순한 전쟁도발 기도가 더욱더 명백히 드러 난 조건에서 우리는 이미 천명한 대로 자위적 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하는 길로 곧바로 나 갈 것 이라며 도발자들이 우리의 존엄과 자주권을 털끝만큼이라도 건드린다면 우리는 그 기회를 다시는 놓치지 않고 무자비한 징벌을 가해 조국통일의 세기적 숙망을 실현하 고야 말 것 이라고 위협했다. 북한은 내부에 혼란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를 계기로 외부세력이 안정화 를 명분으로 개입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특히, 잠재되어 있는 반체제 반정권 세력 이 이를 의도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나. 북한의 체제 안정성 북한에서 군부의 쿠데타나 민중 봉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북한은 붕괴하지 않을까? 북한에서 쿠데타 혹은 민중 봉기가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는 주로 전문가들의 추측성 분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다음은 두 전문가의 진단을 소개한 것이다. o 러시아의 한국 현대사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초빙교수(전 레닌그라드 국립 대 교수)(연합, 2009.10.6) 평양에서 중국 지지 쿠데타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대규모 경 제활동은 중국이 각계각층의 북한 인민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데, 이 는 중국이 북한에서 정보를 수집해 비밀작전을 수행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북한이 일단 변하기 시작하면 누구도 그 속도와 방향을 조절할 수가 없을 것이고, 북한에 응급상황이 발생할 시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해야 한다. o 다케사다 히데시( 武 貞 秀 士 )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 주임연구원(데일리 엔케이, 2009.9.24) 김정일 건강 이상 이후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토론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가까운 시일 내 북한 내 체제 붕괴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북한 경제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로 인해 매우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며 경제 제재에 대한 불만이 폭발해 군대 내에서 쿠 I. 북한 정치 55
데타가 발생하는 시나리오가 현재로서는 가장 실현 가능하다. 북한에서 내부 혼란이 일어날 경우는 첫째 김정은이 후계자가 됐을 때 김정남이 반대 하고 나서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그러나 김정남 스스로 후계 승계를 포기했기 때문 에 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두 번째로는 김정일 체제 내 희망이 없다는 판단 아 래 군부가 폴란드 대사로 있는 김평일을 귀국시키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김평일이 오 랜 외국 생활로 북한 내 연결고리가 단절됐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낮다. 국제사회의 금융제재, 경제제재가 더욱 심해져 북한의 수출입 활동이 완벽히 차단될 경우 당이나 군 내부에서 반( 反 ) 김정일파가 늘어날 수 있고, 이들의 주도로 쿠데타가 발생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지금도 BDA(방코델타아시아 계좌 동결)를 풀어준 것을 후 회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금융 제재에 대한 효과가 컸다. 다음으로는 미얀마로 가는 북한 선박이 회항했던 것처럼 PSI체제 아래에서 북한 선박 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 경우 미국(유엔 국가)과 북한 해군 간에 충돌이 일어나 한반도 내부 긴장상태가 높아지는 경우다. 마지막으로는 김정일이 선군정치가 끝났음을 선언하고 총비서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오 는 경우를 상상해 볼 수 있다. 북한 내에는 김정일을 대체할 정치세력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심리적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이중에서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큰 것은 경제 제재에 대한 불만이 폭발해서 군대 내 쿠데타가 발생하는 시나리오다. 그만큼 경제 제재가 북한에 주는 타격이 크다. o 북한이 붕괴되지 않는 원인에 대한 북한 스스로의 설명은 무엇인가?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사를 앞세운 선군정치를 한 덕분에 옛 소련과 동구 사 회주의권이 몰락한 가운데서도 사회주의의 동방초소 로서 역할하고 있다고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009년 6월 14일 주장했다. 북한 온라인 매체 우리민족끼리 에 따르 면 이 신문은 선군으로 정의와 평화를 굳건히 수호하시며 라는 제하 기사에서 기승을 부리며 달려드는 제국주의 연합세력의 온갖 전횡을 제압하고 사회주의 동방초소를 굳건히 지켜가는 조선의 모습은 세계 평화 애호인민들의 동경의 대상으로 되고 있다 고 말했다. 신문은 크지 않은 조선이 웬만한 나라들 같으면 열백 번도 더 붕괴되었을 최악의 역 56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경 속에서도 자기보다 몇십배나 덩치가 큰 제국주의 괴수와 그 연합세력의 압살공세를 군력으로 단호히 제압하는 현대사의 기적을 창조한 비결 은 김정일 위원장의 선군정치, 선군영도 라고 강조했다. 북한 매체들이 현재의 북한을 사회주의의 동방초소 라고 표현 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지난 2003년 7월 북한의 조선역사학학회는 조국해방전쟁(6.25 한국전쟁) 에 관한 글에 서 북한이 한국전에서 미국에 이김으로써 평화와 사회주의 동방초소를 굳건히 보호했 다 고 주장한 적이 있으나, 현재의 북한을 사회주의 동방초소 라고 자칭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 라고 불렀던 부시 미 행정부가 물러난 후 북한이 자신 들을 사회주의 동방초소 라고 자처하고 나선 게 눈길을 끈다. o 그렇다면 쿠데타나 민중봉기는 왜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미국의 북한 전문가 인 박한식 조지아대 교 수는 2007년 7월 24일 자유아시아방송(RFA) 과 인터뷰에서 북한에 서 군부 쿠데타나 민중 봉기의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필연적으로 김 위원장 사후 군부 집단 지도체제에 의해 권력 이 행사될 것 이라고 내다봤다. <2006년 5월 함경남도 단천역 근처 장마당에 붙었던 벽보. 선군정 치 바람에 백성이 굶어 죽는다. 군대들에게만 주지 말고 인민들부 터 쌀을 달라 고 적혀 있다> 또 북한이 식량난 등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있는 것은 정권의 지도력이 뛰어나서라기 보다 새 둥지 처럼 상호 의존적이고 촘촘히 짜여 있는 사회 정치체제 때문 이라며 북한의 선군 ( 先 軍 )정치는 미국의 군사 위협과 대북 강경책에 의해 조장된 면이 크다 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김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보다 더 많이 군부의 정서를 살피고 있다 면서 김 위원장은 군사 쿠데타를 우려해 군부 중 한두 명의 장성에게 힘이 쏠리는 상황을 극히 꺼리고 있다 고 덧붙였다. I. 북한 정치 57
김정일에 대한 비난 벽보, 삐라 살포 등 주민들의 저항을 보여주는 사건의 발생 빈도 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고, 시장활동의 확대로 김정일 정권에 대한 충성심 이 약화되고 있는 점 등은 미약하지만 민중봉기의 가능성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09년 11월 말에 단행된 화폐개혁 이후 북한 내에서 화폐증발과 시장 통제, 인플레 3중고를 겪고 있는 주민들이 보안원들의 각종 단속에 반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폭력까지 행사하는 사고가 빈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 보도, 탈북단체 등에 따르면 평안남도 평성에서는 밀수품 거래, 식량 판매, 풍기 문란을 단속하는 본안원을 신원을 알 수 없는 괴한들이 둔기로 머리를 가격하고 도 주하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해 관계기관이 범인 색출에 혈안이 되고 있다고 한다. 주민들의 저항이 아직은 우발적이거나 폭력 행사 등으로 나타나고 있어 집단 행동으로 발전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북한 주민의 불만이 계속 누적되면서 폭력행위는 갈수록 고의적이고 과격해지는 분위기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2010년 1월 2일 우리 공화국을 내부로부터 허물어보려는 온갖 적 대분자들의 책동을 철저히 소탕할 데 대하여 를 각 도, 시, 군 보위부와 보안서들에 내려 보내면서 자본주의, 비사회주의 현상들을 소탕하기 위한 50일 전투 를 진행할 것을 명령 한 바 있다. 58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3. 후계체제 구축 현재 북한의 후계구도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3대 왕조세습이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한 것인지, 또 가능하다면 본격적인 권력 이양 시기 는 언제가 될 것인지, 3대 세습이 북한주민에게 미치는 파장은 무엇인지로 모아진다. 가. 후계체제 구축 과정 북한 3대 세습 가능한가? 현 시점에서 김정일의 후계자로 셋째 아들 정은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 북한의 후계구 도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3대 왕조세습이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한 것인지, 또 가능하다면 본격적인 권력 이양 시기는 언제가 될 것인지, 3대 세습이 북한주민에게 미치는 파장은 무엇인지로 모아진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언제부터 공식화될지는 쉽게 말하기 힘들다. 이미 후계자가 결정된 상황에서 외부에 공식화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김정일이 마음 먹기에 따 라 그 시점은 당겨질 수도, 미뤄질 수도 있다. 그러나 후계자에게 자신의 권력을 이양하 는 시점은 더 이상 자신이 권력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될 것임은 예측할 수 있다. 김정일은 김일성을 권력의 허수아비로 만들었던 전력이 있다. 김일성은 1990년대 초반 김정일 50회 생일을 맞아 그를 미화하는 송시( 頌 詩 ) 를 직접 써 보낼 정도로 아들의 눈 치를 봤다고 한다. 따라서 권력문제에 관한 한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 데다, 정치적 보복 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김정일이 생전에 권력을 전부 내놓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정은을 권력의 전면에 부상시킨다고 해도 김정일은 군부에 대한 장악력을 유지하면서 섭정 ( 攝 政 )을 할 수도 있다. 김정일의 주변에서 생활해 본 사람들은 그가 이기적이고 겁 이 많다고 한다. 김정일은 후계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왔을 때도 당, 군 전반에서 자신의 권위를 유지할 것이며, 죽음이 임박할 때까지도 이러한 상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I. 북한 정치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