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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가? 전진과 후퇴를 반복해왔던 한반도 비핵 평화 프로세스는 년을 거치면서 중대 고비를 맞이했다. 2009년 북한의 로켓 발사와 한-미-일의 과잉대응으로 촉 발된 위기는 북한의 2차 핵실험과 이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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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송승종길병옥, ' 군용무인기개발의역사와그전략적함의에대한연구,' 군사 제 97 호, ) 최근공개된자료에따르면주한미군은기간중 268 회의무인기비행을수행한것으로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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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북아역사논총 50호 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 는 일본 정부의 주장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 본 정부 군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이므로 한일청구권협정 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 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또한 2011년 8월 헌 법재판소는

182 동북아역사논총 42호 금융정책이 조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제 대외금융 정책의 기본원칙은 각 식민지와 점령지마다 별도의 발권은행을 수립하여 일본 은행권이 아닌 각 지역 통화를 발행케 한 점에 있다. 이들 통화는 일본은행권 과 等 價 로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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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핵 파문의 발단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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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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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창원시의 해양관광 현황과 개선방안

Ⅰ. 조사목적 본조사는전국민을대상으로대통령국정수행지지도, 정당지지도등을 파악하여, 국민여론을파악하는기초자료수집에그목적을둠. Ⅱ. 조사설계 조사대상 전국거주만 19세이상성인남녀 표본수 총 1,035 명조사후, 지역, 성, 연령별사후보정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최대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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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가 전 략 연 구 2013년 봄호

국 가 전 략 연 구 2013년 봄호 목차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편집자의 노트 한반도 안보,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여 해법을 찾아야 7 박근혜 정부의 4강 외교와 주요 정책과제 유명환 11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고유환 29 김정은의 생존전략과 남북관계 전망 이승열 45 오바마 2기 정부의 한반도 정책은 변화할 것인가 하태원 61 미 중관계의 전개 양상과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 구본학 77 시진핑 정권의 대 한반도 인식과 정책 전망 이지용 93 북 중관계의 변화 가능성과 한 중관계 한석희 111 아베 자민당 정부의 대외정책과 한 일관계 진창수 125 일본의 우경화 군사대국화의 전망 정구종 141 푸틴 3기 정권의 대외전략과 미 러관계, 중 러관계의 전망 장덕준 163 푸틴 3기 러시아의 대 한반도 정책과 전략적 이해 김석환 179 신간 서적 소개 193 세종포럼 안내 196

특 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ニッチ G2ステエ ヌムアケタヌ サ チクタ ォ 5

편집자의 노트 한반도 안보,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여 해법을 찾아야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4강국에 새 정부가 들어선 가운데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긴장감이 고조되었 다. 갓 출범한 박근혜 정부로서는 새로운 대북정책을 펼쳐보기도 전에 거대한 암초와 마주친 격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인해 한반도의 형세는 근본적으 로 바뀌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만약 북한이 주장하는 것처럼 3차 핵실 험을 통해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가 이뤄졌다면 심각한 사태진전이 아 닐 수 없다. 게다가 이번 실험이 우랴늄을 활용한 핵실험이었다면, 그들의 로켓 발사 기술과 결합해 통제 불가능한 위협으로 발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박근혜 정부는 기존의 대북정책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 토하여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북핵으로 인 해 안보의 전제조건이 달라졌으므로 철저한 대비책 강구가 시급하다. 한반도 안보는 이제 핵을 가진 북한의 도발 위협에 맞서 어떻게 핵억지력을 구축할 수 있느냐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북핵에 맞서기 위해서는 한국도 핵무장을 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와, 전술핵을 다시 반입해야 한다는 주장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7

이와 함께 기존의 북핵 폐기에 초점을 맞춘 정책은 이제 현실성이 희박해졌 으므로 핵동결과 핵통제에 우선순위를 두어 더 이상 북한핵이 늘어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방안도 새롭게 제기된다. 그러나 북한핵에 대한 각종의 대처방 안은 그 어느 것도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핵에 대한 확실한 억제대책 강구와 함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구축 으 로 요약되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도 좀더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에 신뢰가 쌓이고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면 이에 상응하는 정치 경제 외교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나, 현재와 같은 대북 제재국면에서는 실효성을 기대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아무런 소득없이 시간만 낭비했다는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을 되풀이 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들린다. 북한 핵실험 이후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한반도 주변 4강의 기류 역시 북핵 대처전략에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미국과의 긴밀한 안보태세 확립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음은 물론이고, 중국과의 협력도 더욱 절실한 과제라고 하겠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유엔의 대북 제재결의 준수에 적극적인 자 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북한과의 관계 재정립 필요성이 제기되 고 있어 주목된다. 아직은 시진핑 새지도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지 확실치는 않으나 이전과는 다른 기류가 중국내에 조성되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이런 시점에 대중외교력을 발휘해 중국으로 하여금 실질적인 대북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고, 새로운 한반도정책을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견인해낼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한반도 정세는 19세기 말 주변 강대국들의 패권경쟁을 상기시킨 다. G2로 일컬어지는 미중간 경쟁은 물론, 아베 정권 등장과 함께 우경화 분위 기 속에서 군사대국화 우려를 낳고 있는 일본의 동향도 예사롭지 않다. 푸틴의 재집권 이후 잊어버린 영광을 찾기 위해 동북아의 잠재력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러시아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북한문제, 그 중에서도 북핵문제를 풀 어야 할 박근혜 새정부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원론적인 수준의 문제 제기나 해법 제시는 쉽지만 엄중한 현실 속에서 실천해야 할 구체적 정책 제시는 지난 8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하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는 반드시 북한문제를 풀어내고 안보를 확립해야 할 책무가 있다. 이번 봄호에서 다룬 다양한 논의가 작은 보탬 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9

특 집 미 일 중 러 새 정 부 와 한 반 도 의 안 보 박근혜 정부의 4강 외교와 주요 정책과제 유명환 * 들어가며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12 19 선거에서 처음으로 과반수의 득표(51.6%)를 얻 어 진보적인 야당 단일후보에게 약 3% 차이로 승리하였다. 1987년 직접선거를 통한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으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이후 지난 25년 동안 매 5년마다 주기적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바 이제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 나름대로 뿌리가 내렸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한국의 대통령선거는 40대(투표권자의 22%)를 중간으로 하여, 노년층 (40%)과 청년층(38%)이 각각 보수와 진보로 양분된 세대 간의 대결이라고 분석하 는 사람도 있다. 또한 박정희 정권 시대의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한 산업화세력 과 80년대 군사정부와 싸웠던 민주화세력 간의 대결전장(Armageddon)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아무튼 지난 대통령 선거는 첫 번째 여성대통령이 세종대 석좌교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서울대 법과대학 졸, 미국 스탠포드대 초빙연구 원. 대통령외교안보비서관, 주이스라엘 대사, 주필리핀 대사, 외교부 차관, 주일 대사 역임.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1

탄생한 것 뿐 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이유에서도 한국의 정치발전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대통령 선거에서 50대 이상의 장년층이 크게 집결한 것은 2012년 4월 총선 과정에서부터 나타난 야당측의 한 미 FTA 폐기, 제주 해군기지 건설 중단 주장 과 북방한계선 문제 등으로 인해 안보에 대한 불안감과 위기의식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앞으로 보수적인 박근혜 정부의 대북한 정책 및 전반적인 외교정책에 있어서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박근혜 신정부의 대외정책 우선순위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당면과제는 우선 국내 정치적으로 국민통합 이라 고 보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 관측인 것 같다. 따라서 대외정책보다는 대내정 책에 우선순위를 두고, 이를 실천하는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박대통령은 무엇보다도 48%를 얻은 야당에 대한 적절한 정치적 배려 없이 안정적인 국정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합리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정국 을 운영할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야당에게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주도할 수 있는 명분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신 집권세력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외교 또한 국내정치의 연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명박 정부 당시와는 달리 앞으로 국내정치에 부담이 되는 외교적 과제는 우선순위에 있어 뒤로 미루어질 우려가 있다고 본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제적으로 큰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적으로 는 그에 비해 낮은 점수를 받고 있다. 2008년 이 대통령의 취임 초기에 발생한 미국의 금융쇼크와 그로 인한 세계 경제의 침체, 그리고 유럽의 경제위기 등을 감안할 때, 한국경제는 안정적인 기조를 유지하는 데 비교적 성공했다는 것이 외국에서 보는 일반적 인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로부터 합당한 평가 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불가피하게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형 구조에 의존하여 12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왔다고 생각된다. 대외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정책선택 결과라고 본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연 4% 정도의 지속적 성장을 이룩하였으며, 지난 15년간 수출총액은 4배 정도 증가하였다. 그러나 신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대기 업 주도의 성장이 오히려 고용의 85%을 차지하는 중소기업 종사자들과의 소득 격차를 심화시켰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수출주도 성장정책이 내수를 침체시켜 고용악화와 저임금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고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인 경제 모순을 극복하는 것은 매우 장기적인 전략 이 수반되어야 하는 어려운 과제다. 한편, 꾸준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고용이 그만큼 증대되지 않았던 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선진국 경제의 공통적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 나 경제성장 없이 청년실업을 해소하고 고용을 증대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수출 증대와 해외에서의 수주를 적극 확대해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일본의 수출이 국민 총소득에 기여하는 비율이 약 13% 정도인 데 비해 한국은 약 50%에 가깝다. 그만큼 수출이 중요하다. 따라 서 대외 경제영토를 확장하고 수출증대에 필요한 자유무역협정의 지속적 확대 와 적극적인 선린 외교정책은 새 정부가 중요과제로서 추진해야 할 필수불가결 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적 수완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4년 동안 국회의원으로서 세계 각국의 많은 지도자 들을 만나는 등 외교경험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과거 부친이 집권하 고 있던 당시, 1975-79년간 영부인의 역할을 대신하여 많은 외국 고위인사들을 접견한 체험은 앞으로 빈번한 정상외교 활동을 수행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 산이 될 것이다. 21세기 들어와서 정상외교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것은 기후변 화, 안보 및 핵 비확산, 국제금융 등 분야에서 범지구적 차원의 대처가 불가피해 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총회는 물론 기후변화 정상회의, G-20 정상회의, 핵 안보 정상회의, 한 중 일 정상회의, APEC, ASEM, EAS 등 다자 정상회의는 중 견국가(middle power)인 우리가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정상회의라고 하겠다.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3

더구나 박대통령은 대학졸업 후 파리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영어 는 물론 불어도 구사할 수 있으며, 중국어로도 소통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한다. 이러한 박대통령의 개인적 자질을 감안할 때 앞으로 국제 외교무대에서 거리낌 없는 활발한 외교활동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여성 대통령으로서의 존 재감을 살릴 경우 외교적 성과를 한층 높일 수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한국 의 위상이 더욱 고양될 것으로 보인다. 신정부의 외교정책 기조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 안보 및 대북정책은 기본적으로 보수적 이념을 바탕 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 4강 및 대북정책에 있어서 현 정부의 대외정책과 커다란 차이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시 말하면, 외교적 연속성이 잘 유지되 는 가운데 기존의 대외공약은 차질 없이 이행될 것으로 보인다. 신정부 외교정 책의 좌우명(motto)은 신뢰외교 (trustpolitik)인 바, 박대통령은 한반도 신뢰 프로 세스 를 통해 남북관계를 정상화할 것을 공약한 바 있다. 작년의 대선과정에서는 재벌규제와 복지 등 경제문제가 주로 쟁점화되었고, 반면 주변국과의 개별 외교 안보 이슈는 별로 부각되지 않았다. 다만 핵무기를 지속 개발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거듭하여 시험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어떠한 정 책을 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야 간 현격한 입장 차이를 보인 바 있다. 한국 국내에서는 대북한정책을 국내정치 문제의 일환으로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우를 보면 한국정부의 대북한정책과 남북관계 상황은 우 리의 대미국 및 대중국 관계는 물론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외교관계에 있 어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위협인식의 차이로 인해 한때 한미관계가 소원 하였던 것을 많은 사람은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자신의 핵무기 개발 이 한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미국의 압살정책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고 위장하고 있다. 만약 한국정부가 이러한 북한의 왜곡된 주장에 동조하 14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여, 지속적 핵무기 개발에도 불구하고 큰 걱정 없이 북한과 경제협력을 진행한 다면 핵비확산정책을 중요시하는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 다. 따라서 박대통령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은 한미관계에 있어서도 매우 다행한 일이라고 본다. 또한 남북관계의 긴장은 한중관계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이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중국의 대한반 도 정책의 우선순위이기 때문에 중국은 항상 북한의 대남도발에 대해서 양측 모 두의 자제를 요청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이 일방적으로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는 것과 관련, 한국의 대중국 여론은 때때로 크게 악화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중국은 유엔에서 북한으로 인하여 필요 이상 많은 외교적 부담을 지 고 있다. 이제는 한중 양국정부 당국 간 북한의 개방 및 개혁에 관한 논의를 할 수 있도록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 박대통령에 게 주어진 커다란 과제라고 생각된다. 박근혜 정부는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평화 를 만들 것을 천명 한 바 있다. 다시 말하면, 주변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동 북아시아 평화 협력 구상 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대통령은 미국 및 중국과 조화롭고 협력적인 관계 를 유지할 것이라고 한 바, 이것은 동북아시 아 각국의 상호관계를 더 이상 냉전적 제로섬 게임이 아니고 윈윈 게임으로 풀 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한 정책 한국의 신정부는 지난 이명박 정부보다 유연한 입장에서 북한과의 접촉을 시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대통령은 조건 없이 북한과 다양한 접촉채널 을 상시 유지하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를 통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박대통령은 후보 당시 신뢰외교와 새로운 한반도 라 는 제목하의 정책 발표(2012.10)에서 우리의 대북정책도 진화해야 한다 고 언급 한 바 있다. 유화 아니면 강경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에서 벗어나 균형 잡힌 대북 정책 추진을 약속한 것이다.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5

또한 박대통령은 정치적 상황과는 구분하여,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앞으로 한국의 신정부가 남북대화를 제의할 경우, 북 한은 예전과 같이 회담에 응하는 댓가로 경제원조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3차 핵실험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박근혜 정부가 북한과의 만남 자체를 위해 과거와 같은 수준의 많은 경제원조를 제공하는 것은 지금까지 나타난 박대 통령의 생각이나 국내의 부정적 여론을 감안할 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2년 5월 당시 국회의원 신분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 일 위원장과 면담한 바 있어, 부친으로부터 권력을 승계 받은 김정은 제1위원장 은 박대통령에 대하여 관심이 클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금년도 신년사에 서 과거와는 다른 유화적인 입장을 보였다. 대선기간 중 박후보에게 한 것 같은 원색적인 비난이나 상투적인 주한미군 철수 주장 및 연방제 통일에 대한 언급이 없이, 6 15 및 10 4 선언의 이행을 통해 남북 간 대결 상태의 해소 를 주장한 바 있다. 이는 박근혜 정부 출범과 관련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 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박대통령은 선거유세기간 중 남북한 교류협력사무소의 상호설치를 제 안한 바 있다. 나아가 비핵화 진전에 따라 한반도의 균형발전과 경제공동체 건 설을 위한 비젼 코리아 프로젝트 를 추진할 것도 천명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구 상은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 프로젝트 와 유사한 제안으로서 대규모 재 정투입이 필요한 사업이다. 따라서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지속할 경 우, 박근혜 정부가 동 사업을 추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신정 부는 자신의 지지기반인 국내 보수세력의 반대와 미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감수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앞에 언급한 유연한 대북정책 제시와 더불어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 기 개발과 관련, 북한으로부터의 핵 미사일 위협을 무력화 할 수 있는 억지력 을 바탕으로 협상의 다각화를 통해 해결할 것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나아가 박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진전에 따라 상응하는 정치 경제 외교 조치 를 강구할 것 이라고 함으로써 남북대화의 명확한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 한 박대통령의 선거공약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궤도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이 16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다. 더욱이 박근혜 정부가 선거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북한 인권법을 제정할 경 우, 북한은 이에 반발하여 남북대화를 전면 거부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앞으로의 파장 지난 2월12일 북한은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3차 핵실험을 강행하였다. 미국은 물론 중국도 공개적으로 북한의 핵실험 계획을 반대하였으 나 북한은 오히려 미국과 중국에 사전 통보를 하면서 핵실험을 실시한 것이다. 북한은 자신의 핵무기 개발계획을 기정사실화하여 협상의 여지를 사전에 차단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제 핵무기 개발이 자신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앞으로 김정은 정권이 지 속되는 한 협상을 통한 비핵화 목적은 달성할 수 없음을 확인시킨 것이다. 바꾸 어 말하면 북한의 비핵화를 어떻게 해서든지 달성하려면 북한의 김정은 세습정 권을 교체(regime change)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핵무기 개발을 김정일 위원장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칭송하고 있는 상 황에서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세습한 김정은이 서방의 경제원조를 댓가로 핵무 기 개발 포기를 약속한다는 것은 북한의 내부 사정으로 볼 때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김정은의 정통성은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통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 에 아버지의 업적을 훼손하는 일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은 2012년 4월 헌법 개정을 통해 스스로 핵보유국이라고 선언한 바 있고 이를 근거로 군사강국 임을 대내외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북한이 김정일의 생일을 앞두고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무엇보다도 아직 불안한 김정은 정권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은 3차 핵실험을 통하여 인도, 파키스탄과 같이 사실상의 핵무기 보유 국 이라고 주장할 근거를 만든 것이다. 아직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구체적인 분 석은 나오지 않았지만 북한이 언급한대로 소형화와 경량화에 성공하였다면 동 북아의 안보환경이 크게 바뀌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더구나 농축 우라늄을 사용 한 핵실험이라고 한다면 그 파장은 더욱 심각하다. 북한은 천연 우라늄이 많기 때문에 다량의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다. 이것은 핵물질의 확산 가능성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7

을 높이는 것으로서 미국으로서는 큰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우 라늄 농축시설은 지하에 은닉할 수 있기 때문에 인공위성을 통한 감시망을 회피 할 수 있어 탐지가 더욱 어렵다. 북한은 작년 12월 자신의 기술로 인공위성의 궤도 진입에 성공 한 바 이것은 장거리 탄도미사일 실험의 성공이라고 보아야 한다. 장거리 미사일과 핵무기 실 험에 모두 성공한 것이라면 이제 북한은 실용적인 핵무기 개발에 한층 가깝게 다가선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한국은 물론 일본, 그리고 미국에 대해서도 직접적 인 위협이 된다. 그것은 미국의 한국 및 일본에 대한 안보공약의 이행을 제약하 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며, 나아가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는 일본의 핵 무장 여론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한국의 신정부도 북한의 핵무장을 전제로 새로운 군사방어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 이외에 현실적으로 볼 때 박근혜 정부가 당장 취할 수 있는 대북제재의 선택지는 많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유엔 안보리를 통한 제재와 별도로 대북한 금융제재를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미 재무성은 2005년 북한의 불법자금 세탁에 연루된 마 카오 소재 BDA 은행을 감시대상으로 지정함으로써 북한의 대외 자금거래를 차 단한 바 있다. 금번에도 미국은 그와 유사한 조치를 통해 북한의 해외 구매활동 을 제한시키려 할 것인 바 이는 매우 효과적인 제재수단이 될 것이다. 또한 미국 을 중심으로 한 PSI(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가입국들은 한반도 주변에서 차단 훈련을 실시함으로써 북한이 항공기 및 선박을 통해 위험물자를 수송하지 못하 도록 압박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은 당분간 한반도의 긴장을 높 이게 될 것이지만 과거의 학습효과로 인하여 경제에는 커다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다소 시간이 지나면 박근혜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신정부는 북한의 비핵화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기 때문에, 조기에 의미 있는 남북대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신정부 는 당분간 북한에 대한 국제적 압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예상된 다. 만약 북한이 남북대화에 조건 없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비핵화 실 천방안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 관련 모라토리움 등을 스스로 보장하지 않는 한 18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대화는 진전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남북대화는 시작과 끝이 항상 북 한의 반응에 따라 좌우되어 왔던 점을 감안할 때 남북대화 전망은 매우 불투명 할 수밖에 없다. 주변 4강과의 새로운 외교환경 박근혜 정부는 앞으로 매우 어렵고 유동적인 한반도의 주변정세 속에서 외 교를 전개해야 한다. 중국은 이미 G2로서의 경제력과 항공모함 등으로 증강된 군사력을 바탕으로 중화주의와 중화민족의 부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은 과 거와는 달리 자기주장이 강한 외교(assertive diplomacy)를 전개하고 있는 바, 영해 및 영토문제와 관련해 일본뿐만 아니라 베트남 필리핀과도 외교적 마찰을 감수 하면서 적극적인 입장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과의 기존 유대관계 강화와 계속적 영향력의 유 지를 위해 아시아 회귀(Asia pivot)와 이에 따른 전략적 재균형(strategic re-balancing)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중동지역에서의 소모적 전쟁을 조기에 수습하고, 유럽에 있는 해군력을 감축하여 이를 아시아에 증강 배치시킨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이 것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거듭 설명하고 있지만, 중국은 자신 을 포위하기 위한 미국의 새로운 전략이라고 반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아베 내각은 오랫동안 좌절감 속에 빠진 국민을 격려하고, 침체된 경 제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하여 과감한 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평화 헌법 개정, 과거사 관련 담화의 수정 등 민족주의적 감정을 부추기는 공약을 많 이 내걸고 있기 때문에 우경화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독도 문제와 위안부 문 제는 한일 우호관계에 과거보다 더욱 더 큰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작년 재집권에 성공한 이후 잊어버린 영광을 다시 찾기 위해 극동 러시아의 개발과 동북아시아의 잠재력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2012년 9월 APEC 정상회담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하여 러시아가 태평양 연안국가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동북아시아 세력균형의 한 축을 쥐고 있음을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9

상기시키고 있다. 오늘의 한반도 정세는 마치 19세기 말 주변 강대국들의 패권경쟁을 상기시 킨다. 당시 국제정세에 둔감하고 힘이 없었던 대한제국은 신흥세력인 일본의 식 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던 것이다. 역사를 보면 시간이 아무리 흘러가도 한 나라 의 지정학적인 관계는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한반도의 분단은 이러한 지정학적인 세력균형의 논리로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태평양전쟁 말기 미국과 소련은 패전한 일본군대를 접수하기 위하여 각각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기로 합의하였다. 당시 소련군대의 급속한 한반도 진입을 저지하기 위하여 미국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로 인한 한반도의 분단 상황은 민족상잔의 한국전쟁으로 이어졌고 한 국은 물론 미국과 중국도 수많은 인명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한반도에서 포성이 멈추고 60년이 지났으나 남북한 간의 긴장상황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더구나 동서 냉전이 끝난 지도 벌써 20년이 더 지났으나 불행하 게도 한반도의 냉전구도는 아직 살아 숨쉬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한반도의 통일도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주변 강국의 협조 없이는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는 통일된 한국이 주변 강대국 모두의 전략적 이익 에 부합할 것이라는 점을 중국은 물론 일본 및 러시아에게 설득해야 하는 어려 운 외교적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환경을 감안할 때 북한의 거듭된 위성발사와 핵무기 실험 은 한반도의 안보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더구나 북한의 3대 세습과 비정상적인 행태로 인해 한반도의 안보상황에 대한 예측 가능성은 더욱 불투명 한 실정이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의 붕괴 가능성은 주변 강대국의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더욱 풀기 어려운 숙제로 만들고 있다. 미국과의 안보 및 동맹 외교 강화 박근혜 정부의 외교라인과 주변 인물들의 성향, 그리고 2012년 10월 발표된 새누리당의 공약을 보면, 한미 안보 및 동맹 강화정책 기조는 그대로 유지될 것 으로 보인다. 선거공약에서 박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기 위하여 한미 20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동맹을 포함한 방위역량을 강화해 나가고, 2015년 전시작전권 전환을 차질 없 이 준비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 또한 한미 정부당국 간 북한의 비핵화를 향한 목표와 정책에 있어 이견이 없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불협화음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오바마 2기행정부가 전략적 인내심(strategic patience) 정책을 버리고 북 한과 양자적 접촉을 시도할 경우, 한미 당국 간 한층 긴밀한 사전 협조가 전제되 어야 한다. 존 케리 차기 국무장관 내정자는 2011년 6월 LA Times 지 기고에서 미국으로서 최선의 대안은 북한을 직접 대화로 끌어들이는 것 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그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 이라 고 클린턴 국무장관의 대북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동맹국인 한국과의 공조가 북미대화보다 중요하다 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도 남북대화 재개와 관련해 미국과의 공 조 필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 능한 비핵화보다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추정되는 현재의 상태를 인정하고, 다만 비확산에 대한 북한의 약속을 받아내는 선에서 타협할 가능성에 대하여 한 국의 보수적 학자들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한미 양국의 새로운 외교 안보팀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하여 명확한 인 식을 공유해야만 상호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의지가 약화되었다고 인식될 경우,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북한의 우리 민족끼리 라는 유혹에 넘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미국의 핵비확산 정 책도 크게 훼손될 것이다. 한편 작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문제가 된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잘 이행되고 있고, 이미 그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양국이 다시 이 문제가 정치 적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도록 상호 세심한 배려를 할 경우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안인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협상은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사안이다. 일부 한국언론이 동 협정개정에 대한 기대수준을 너무 높여 놓았 기 때문에, 만약 협상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자칫 반미감정을 자극하는 계기가 될 것이 우려된다. 새누리당 공약은 현재의 협정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21

으로 정의하고 있으나, 국제적 비확산체제에 비중을 두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입장을 전면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기대수준을 너무 높이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본다. 주한미군 주둔비용 분담문제도 금년 내 타결을 위해서는 어려운 협상을 거쳐 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회는 이미 국방예산 수권법안 통과시 동맹국들의 미군 주둔비용 분담액 증액을 전제로 한 바 있기 때문에, 현상유지를 희망하는 한국정부와의 협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용산기지 이전 등 여타 동맹 현안들은 계속성이 유지되면서 예정대로 무난히 이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국방 현대화 계획 2020에 따른 전력증강 사업은 박근혜 대통령의 억 지력 강화 공약에도 불구하고 금년도 예산에 반영되지 못했다. 당초 정부의 예 산안에서 무기 현대화사업 예산이 크게 삭감되어 복지예산으로 전용된 데에 대 해서 여론의 비판이 일고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앞서 말한 미국의 아시아 회 귀 정책과 전략적 재조정 정책에 따라서 한국군의 현대화 사업은 앞으로 한미 간에 중요한 현안으로 다루어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 내실화 중국은 한국의 제1투자 및 교역 상대국으로서 점차 한국에 대한 영향력이 증 대되고 있다. 상호 인적교류도 600만 명을 초과하여 한중 양국은 물리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나라가 되었다. 박근혜 정부로서 대중국 외교를 매우 민감하고 중 요한 과제로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미 새누리당은 공약에서 한중관계 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에 걸맞게 업그레이드 시킬 것 이라고 약속한 바 있 다. 한편, 2010년 천안함 및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중국은 북한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면서, 서해안에서의 한미 기동훈련과 관련해 한국을 노골적으로 비판하 였다. 이러한 중국에 대해 한국 내 여론이 크게 악화되었던 게 사실이다. 북한으 로 인해 한중 관계가 영향을 받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한중 관계의 분위기는 지난 20년간 경제적 상호 의 존관계가 꾸준히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차갑게 느껴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미중관계가 좋지 않을 경우, 그 파장은 한국의 의도와 관계없이 한중관계에 직 22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물론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한중관계 발전에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중국에 설득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알 수 없다. 중국은 자신이 북한과 긴밀한 우호관계를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한중관 계 발전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의 외교적 입장이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중국이 지금과 같이 유엔 안보리 토의 등에서 북한의 입장을 무조건 옹호하 는 것은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의 중국 위상에 큰 외교적 부담이 되고 있다. 이것은 한중관계에도 상당한 제약요소가 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새 지 도자가 어떠한 입장을 갖고 있는지가 주목된다. 중국의 신임 정치국 상무위원 7 인 중에는 연변대학에서 조선어를 공부하고,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경제학을 전 공한 장더장( 張 德 江 )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북한과 인접한 길림성 당서기로 일한 바 있어 북한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북한을 잘 아는 사람이 최고 정책결정기 관에 있다는 것은 북한에게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 려 북한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해 북한 핵문제를 포함한 이 지역의 안 보문제를 전략적 관점에서 중국과 긴밀히 협의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물론 한국주도 하의 한반도 통일이 중국의 전략적 이해와 상충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 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며,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 자민당 정부와의 관계 개선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본천황에 대한 우발적 언급으로 인해 한일관계는 예상보다 많이 악화되었다. 일본 국회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이는 한일 우호관계에서 볼 때 이례적인 조 치로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입장이 매우 경색되었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한일관 계를 개선하는 데 상당한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가 한일관계를 시급히 개선하는 것은 집권 초기의 큰 외교적 성 과가 될 것이다. 2012년 12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본 총선에서 압승한 아베 신임총리도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가급적 조속한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23

시일 내에 정상회담을 갖고 실마리를 풀어가야 하지만, 서두르지 말고 상호 충 분한 사전 준비를 거친 후 만나야 한다. 아베 총리로서는 중국과의 외교전쟁에 전념하기 위해서 한국과는 우선 잠정적이더라도 상황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최소한 금년 7월 참의원 선거까지는 우익적 성향을 가급적 겉으로 내놓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양측의 외교당국이 움직일 수 있는 다소의 시간적 여유는 있을 것이다. 금년 상반기 한국은 한 중 일 3국 정상회담의 의장국으로서 정상회담을 서 울에서 주관하게 된다. 따라서 이 기회를 잘 이용할 경우 한일 간에는 물론 중일 간에도 양자 정상회담을 큰 부담 없이 개최할 수 있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이 3자 서울 정상회담을 무난히 개최하는 데 성공한다면 앞으로 한국의 외교적 입 지가 상당히 높아질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대립하고 나아가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한미일 정책공조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저지 를 비롯해 미국의 동북아시아 정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일 간 군사정보 비밀보호협정이나 상호군수지원협정은 미국이 각각 일본 및 한국과 동맹국으로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매우 필요한 협정들이다. 한국 의 신정부는 한반도 안보에 필요한 유사한 제반 협정들을 가급적 조속히 처리하 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한일관계의 불안요인은 한국보다는 일본에 더 있다고 생각된다. 한국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필 요는 없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독도문제 관련 정부조직을 강화하고, 역사인식 과 관련하여 자신의 생각을 반영한 새로운 담화 를 발표할 것이라고 언급한 데 대하여 주변국은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나타난 아베 총리의 언급뿐만 아니라 지난해 말 출범한 아베 내각 의 주요인물을 보면 주변국의 우려는 단지 기우만은 아닌 것 같다. 오래 전부터 일본의 역사교과서 검정에 근린조항 과 위안부에 관한 기술을 자학사관 이라 고 비판하면서 이를 삭제하려는 움직임을 주도한 연구모임(일본의 전도와 역사교육 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의 회원들이 다수 입각하였기 때문이다. 24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아베 총리 자신도 그 연구모임의 사무총장을 맡은 적이 있다. 새로 입각한 회 원들 중에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하여 울릉도를 방문할 목적으로 방한하 려다가 공항에서 입국을 거절당한 의원뿐만 아니라, 남경대학살을 부정하고 동 경 전범재판이 불법 무효라고 주장한 사람도 포함되었다. 아베 총리 자신도 고 노 담화 와 무라야마 담화의 수정 그리고 소위 전후체제로부터의 탈각 을 자신 의 지론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미국이 일본의 영토문제를 분명하게 다 루지 못한 측면이 있다는 주장이 학자들 간에 제기되고 있다. 독도, 센가쿠(댜오 위다오) 열도는 물론 북방영토 문제에 있어서도 오히려 패전국인 일본의 입장이 많이 고려됐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의 발발과 중공군의 개입, 스탈린의 국제 공 산주의 팽창 정책 등으로 전후처리 도중에 갑작스럽게 일본의 역할이 중요해진 상황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미국은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주변국들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아베 총리는 2월 하순 미국을 방문하여 미일 안보동맹을 확인하고 센가쿠(댜 오위다오) 영토 분쟁과 관련한 미국의 지원을 확보할 것이라고 한다. 일본은 또한 헌법개정 이전이라도 현행헌법 해석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데 지장 이 없도록 할 생각인 것 같다. 또한 노다 전임 수상이 추진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의 개시도 금번 방미 시 합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 미국으로서 미일동맹 강화는 매우 환영할 일이지만 그만큼 부 담도 클 것이다. 전후 70년이 거의 지난 지금의 상황에서 일본 내에서는 이제 소 위 보통국가로 다시 출발하자는 주장이 점차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 인다. 그러나 그것이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더 나아가 왜곡하는 일과 함께 이 루어질 경우 일본은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와의 에너지 등 경제협력 강화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지정학적 관점에서 한반도에 대한 관심이 크고, 과거 한반도를 유럽과 연결시켜 주는 고리 역할을 한 바 있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 화회의 당시 열강의 각축 속에서 독립을 지키려고 노력하던 대한제국으로 하여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25

금 대표단을 파견할 수 있도록 당초에 주선한 것이 러시아라고 한다. 물론 러시 아가 동 회의에서 나중에 입장을 바꾸어 우리 대표단의 회의 참석을 적극 나서 서 지원하지 않았던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러시아는 과거 남북분단의 직접적 책임도 상당히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앞으로 러시아는 안보적 관점에 서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남북한 관계개선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역할을 수 행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는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시베리아 철도가 한반도로 연결되어 있다. 한국에서 유럽으로 수출하는 물동량을 철도로 운송할 수 있다면 남북한과 러시아 모두 커다란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다. 더구나 일본에서 유럽으로 수출 하는 물동량도 흡수할 수 있다고 한다. 이미 한국은 사할린에서 생산되는 천연 가스를 2015년부터 연간 약 700만 톤 정도 수입하기로 장기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국내 총 소비량의 20%에 해당되는 많은 물량이기 때문에 북한을 관통하 는 파이프라인을 부설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북한은 통과 수수료로 매년 약 1억 5천만 달러의 현금이나 그에 상당한 가스를 제공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제안으로 러시아는 이미 북한과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협상을 한 바 있으나 아직 진전이 없는 상황인 것 같다. 북한을 개혁과 개방으로 나올 수 있도록 설득하는 데 러시아의 협력과 지원 이 앞으로 더욱 중요하게 될 것이다. 남북한이 관계를 개선하여 한국의 자본과 북한의 인력을 가지고 함께 시베리아 개발에 참여할 수 있다면 러시아로서도 큰 경제적 이득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북한이 경제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유일 한 방안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박근혜 정부의 대러시아 외교의 과제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러한 구상을 가지고 구체적 협력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다. 26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Abstract Park s Government Toward Foreign Policy with Four of the Most Strong Neighboring Countries Surrounding Korea and Major Policy Tasks Yu Myunghwan Former Minister of Foreign Affairs The new Park Geun-hye s government will face the most difficult problem the neighboring foreign situation in the 21st century. Four of the most strong neighboring countries surrounding Korea are responding sensitively, similar to the change of power balance in Northeast Asia back in the late 19th century. It will be expected that the President of China, Xi Jinping will develop an active and offensive diplomacy target for Chinese Rising based on its huge economic power and confidence. America professes Asia is return policy and will move some of its navy forces deploying from Europe to Asia for a strategy re-equilibrium government of Japan is pledging the policy that is stirring national feelings to revive their poor economy and redevelop their confidence. Also, Russia has been devoted to developing Far East Siberia and connection of Northeast to regain their glory under Putin s strong lead, who has come back to power in 4 years. They will push ahead with policy that is wining the sympathy from people toward North Korea. Additionally, they also said to strengthen and make up for the weakness of policy and transparent establishment and enforcement. But, it will be difficult to get a clue about the talks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27

between South and North for a while because of the 3rd nuclear test on 12th, Feb in the North, regretfully. However, Korean diplomacy has to bear the big burden with sustained nuclear weapon development and repeated long-range missile launch tests. Since, North Korea has been recognized by nuclear weapon development as a way of preserving its regime. A bond of sympathy is developing away from the persons in charge of a nuclear North Korea with the U.S., and Western Nations, through diplomatic talks about that denuclearization will be impossible. Nevertheless, Park s government had pledged to push forward a balanced policy toward North Korea the Korea Peninsula Trust Process. Related to the 3rd nuclear test in North Korea, Park s government did not have any special distractor except for additional North Korea sanctions from the U.N. and financial sanctions from the U.S. But, this premise is practical nuclear weapon of North Korea would be target and stationed to South Korea soon and the South Korean government should task to change an epoch-making impenetrable defense, like the change of weapon systems. If North Korea will arrange for nuclear weapons, actual situation will develops, which basically means the balance of power in Northeast Asia will be changed, and Korea will be the biggest victim and not forgot this. 28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특 집 미 일 중 러 새 정 부 와 한 반 도 의 안 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고유환 * 남북관계 복원과 새로운 성장동력 찾기 남과 북에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했다. 북에서는 김정은 체제가 들어섰고 남 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이로써 당분간 한반도의 운명은 박정희 전 대 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손자 김정은 제1비서에 의해 결정되 게 됐다. 분단체제가 지속하면서 확대재생산 되듯이 분단체제의 권력도 재생산되고 있다. 남과 북의 새로운 권력은 과거 권력과 연관돼 있다. 북의 김정은이 수령체 제의 지속에 따른 귀속지위를 부여받았다면, 남의 박근혜는 자신의 노력에 따른 업적지위를 성취했다. 하지만 남과 북의 새로운 권력은 신화 에 기반하고 있다. 남은 근대화의 신화가, 북은 항일무장투쟁의 신화가 자리 잡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 다시 한번 잘살아보세 를 표방했고, 김정은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동국대 북한학연구소장,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민족화해협력국민 협의회 정치외교분과위원장. 북한연구학회 회장,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역임.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29

제1비서는 첫 공개연설에서 인민들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 고 하면서 인민생활 향상을 다짐했다. 두 지도자 모두 민생 을 강조함으로써 남북 관계 전망을 밝게 했지만,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해 남북관계 전망을 어둡게 한다. 남과 북이 소모적인 분단체제를 지속하면서 대립 갈등할 경우 민생문제 해결은 어렵게 될 것이다. 남북 간에 긴장이 높아지면 남한은 대외신인도가 떨 어질 수 있고, 북한은 북미관계 정상화 등 대외관계 확장이 어려울 것이다. 박정희와 김일성이 분단체제를 활용해서 적대적 공존관계를 유지했다면, 박 근혜와 김정은은 신뢰를 회복해서 상생과 공영의 상호의존관계로 남북관계의 질적 발전을 모색해야 할 역사적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 내부 성장동력이 고갈 된 북한의 경우 대외관계 확장을 통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 시기 남북갈등을 지속하는 동안 북한의 대중국의존도가 높아졌 다. 북한은 도쿄, 워싱턴, 서울을 통한 자본주의 세계경제로의 접근이 어려워지 자 베이징을 통한 세계체제로의 편입 가능성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미 적대관계와 남북 분단체제의 갈등구조를 해소하지 않고는 구조적 이고 총체적인 체제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한국경제도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 수 출주도형 한국경제의 한계, 고용 없는 부의 양극화 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북 방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 남북경제협력을 확대해서 내수시장을 키우고 중국, 러시아 등 북방으로 뻗어나가야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대북 강경정책의 한계 남과 북이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면서 분단정권을 수립한 이후 남북관계는 대화 없는 대결시대 (1970년대 초까지), 대화 있는 대결시대 (1972년 7 4 남북공동성명 이후), 화해협력시대(2000년 6 15 남북공동선언 이후), 합의 없는 대결시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로 대별해 볼 수 있다. 남북관계 발전 추세로 보면 화해협력을 제도화하 30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고 통일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과 북은 관계 조정에 실패하고 갈등을 지속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한 우위의 새로운 남북관계 설정을 모색했지만 북 한은 응하지 않았다. 남북갈등을 지속하는 동안 북핵 해결의 집중력을 잃었다. 유엔 차원의 대북제재와 남북 차원의 5 24 조치 등 제재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능력은 향상되고 대남도발이 증대하는 등 한반도 정세는 악화됐다. 이 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 재설정에 실패한 것은 북한이 남측 정부의 바뀐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고 이전 정부에 대하던 태도를 반복한 데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008년 8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뇌졸중을 계기로 남측에서 북한 급변사태론 이 다시 부각했다. 이명박 정부의 급변사태론과 김정일 건강악 화 이후 북한의 연이은 대남 무리수는 남북관계 복원의 동력을 소진시켰다. 이명박 정부가 시도한 남한 우위의 남북관계 틀 바꾸기에 북한이 호응하지 않고 한반도 상황이 악화됨으로써 박근혜 정부는 새로운 관계 틀을 모색해야 한 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평가에 기초하여 새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 방향을 알아봐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대북정책 목표로 표방했던 비핵 개방 3000 의 관점에서 볼 때도 상황은 오히려 악화됐다. 북한은 2차, 3차 핵실험을 강행하여 핵능력을 향 상시키고 있다. 북한은 2012년 4월 개정한 헌법 서문에 핵보유국의 지위를 명문 화했다.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 지명자도 북한은 위협수준을 넘어선 상태 (beyond a threat) 로, 이미 실질적인 핵 파워(real nuclear power) 인데다 아주 예측불 가능하다 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2013년 2월 1일). 이와 같이 이명박 정부가 선 비 핵화 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비핵화 시키기는커녕 사실상의 핵보유 국 으로 인정해야 할지도 모를 단계에 이르렀다. 개방의 경우도 관광객 피살사 건으로 금강산관광이 중단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발생한 남북관계의 여러 사건들의 일차적 책임은 북 한에 있다. 하지만 벌어진 사태를 제대로 해결한 것은 없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 건의 수위가 높아졌다. 기다리는 전략 으로 일관하면서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는 동안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북한의 핵능력은 향상되고 말았다. 이명박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31

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던 비핵 개방 3000 을 달성하지 못한 책임 모두 를 북한에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하드 파워(hard power) 위주의 대북압박은 북한을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고, 남측이 대북 강경정책을 펼 때 북한은 이를 적대적 의존 관계로 활용하여 내부결속에 활용했다.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소프 트 파워(soft power)가 들어갈 수 있는 접촉, 제공, 대화의 통로를 확보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이를 차단했다. 하드 파워 위주의 강압정책은 북한의 대 남 경계심을 높였고, 교류협력 차단에 따른 소프트 파워 사용 부재는 북한변화 를 가로막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남과 북에서 정권이 바뀌었다는 점은 새로운 관점에서 관계설정을 할 수 있 는 전기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숙제가 너무 많아 새 정부가 짧은 시간 내에 남북관계를 복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와 북한의 관망 박근혜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 10년,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압정책 5년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에 기초해서 새로운 대북정책을 추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기간 동안의 남북관계가 비정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에 새 정부는 북핵해결에 집중하면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 장과의 정상회담 추진, 개성공단을 비롯한 경제교류 활성화, 인도적 지원 제공, 금강산 관광 재개, 북한 인권개선 등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대선과정에서 후보 들이 포용정책을 업그레이드 하거나 새로운 대북정책 또는 제3의 길을 모색해 야 한다는 주장을 폈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는 초당적 협력을 받아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펼칠 여건은 조성돼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 키워드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다. 남북관계에 신뢰가 쌓이고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면 비전코리아 프로젝트를 가동해서 한 반도 경제공동체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 유화와 강 32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경 사이에 균형을 잡아 대북정책을 진화시키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대화 에 전제조건이 없고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된다면 김정은도 만날 수 있다 고 하여 조건 없는 대화를 강조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공약은 북한이 신뢰를 보인다면 이라는 조건부에 가 깝다. 악화될 대로 악화한 지금의 남북관계에서 조건 없는 대화가 이뤄져 신뢰 를 쌓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안보와 억지력을 중시하고 남북관계 개선의 조건으로 북핵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대북 억지에 기초한 북핵 우 선 해결의지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 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 다. 이런 우려에 대해 대통령 측에서는 비핵화 진전 이전이라도 교류협력을 확 대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다. 북한은 대선과정에서 박근혜 후보 측에 공개질문장 을 내고 6 15 공동선언 과 10 4선언 외면,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기초한 통일, 선 핵폐기, 억지력 강화 와 외세와의 동맹 강화, 북한인권법 제정 움직임, 5 24 조치 등을 문제 삼았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공개질문장, 기만적인 <대북정책> 공약은 누구에게도 통할 수 없다, 로동신문, 2012년 12월 2일). 대선과정에서 북한은 박근혜 후보 측에 이명박 정부의 대결정책과 대담하게 결별하고 진실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설 의지 가 있는지를 질문하고 대답을 요구했다. 북한은 대선과정에서 박근혜 후보에 대해 강하게 비난했다. 당선이 확정된 이후 북한은 일체의 언급 없이 좀 두고 보자 는 관망모드로 들어갔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2013년 1월 9일)는 박정희 대통령이 7 4 공동성명에 조인하고, 2002년 박근혜 대통령이 김정일을 만나 민족화해와 교류 에 대해 대화한 것을 언급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다. 현재까지 북한은 그들 지도자와 대통령의 인연을 강조하면서 선거공약을 행동으로 실천할 의지가 있는지를 지켜보고 있다. 김정은 제1비서는 올해(2013년) 신년사에서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 놓아야 한다고 밝히면서 남북 대결상태 해소를 강조했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6 15와 10 4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하는 것이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고 통일을 앞 당기기 위한 근본전제라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북한은 남북관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33

계 복원의 기본전제로 남북공동선언의 이행을 제시하고 있다. 대선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기존 합의에 담긴 평화와 상호존중의 정신 을 실천할 것 을 공약했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 초기 남북기본합의서만 강조하 다가 6 15와 10 4선언에 대한 입장정리가 늦어져 갈등을 지속한 것과 비교하 면 진전된 입장 정리로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의 빠른 복원을 희망 한다면 6 15와 10 4선언의 존중과 이행에 관한 입장 정리를 분명히 해야 할 것 이다. 조선신보는 김정은 제1비서의 신년사는 지나온 북남관계를 돌이켜보며 동 족대결로 초래될 것은 전쟁뿐이라고 경종을 울렸다 고 주장하면서 그 경고성 메시지 는 이명박 정권과의 차별화 를 강조한 당선자에게 대담한 정책전환을 촉 구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고 주장했다. 조선신보는 과거의 역사가 보여주듯 이 북남관계의 개선은 조미관계의 진전과도 연관된다 고 하여 북미관계 진전을 위해서도 남북관계를 개선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선신보, 2013년 1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은 첫 공식일정에서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고, 시작이 반 이 라고 말했다. 그만큼 시작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매사가 그렇듯 남 북관계도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단추를 꿰는 방식에 합의하 지 못하고 원칙만 강조하다가 임기를 마치게 됐다. 이명박 정부는 첫 단추를 잘 못 끼우면 북측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이게 되고 남측이 끌려 다닐 수밖에 없 다는 인식아래 우리가 갑( 甲 )이 아니면 관계설정을 할 수 없다고 버텼다. 북한붕 괴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기다리는 전략으로 일관하는 동안 북한의 도발은 증대 하고 핵과 미사일 능력은 향상됐다. 퇴임을 앞둔 이명박 대통령은 3차 핵실험 직후인 지난 2월 15일 (북한) 정권 이 바뀌고 무너지기 전에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북한 정권과 의 협상이나 대화로 핵을 포기시킬 수는 없다 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이 북한정 권 붕괴 를 언급한 것은 3차 핵실험으로 북한 핵무장이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현실 인식을 반영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 2013년 2월 16일). 박근혜 정부는 이전 정부가 풀지 못한 많은 숙제들을 풀어야 한다. 새 정부는 34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이명박 정부에서 발생하거나 악화된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천안함-연평도 사태, 핵과 미사일 능력 향상 등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남북관계 복원의 첫 단추는 천안함 폭침과 로켓발사 및 핵실험으로 취해진 5 24 조치와 유엔의 대북제재를 어떻게 푸느냐에 달렸다. 제재 하에선 대화할 수 없다고 북한이 버틸 경우 남북관계 조기 복원은 어려울 것이다. 제재를 풀고 대화를 모색하는 것이 순서다. 하지만 북한이 지난해 12월 12일 광명성 3호 2호 기(은하 3호) 로켓발사와 올해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강행하여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정부가 제재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조치를 먼저 취하 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마치 미국 오바마 1기 행정부 출범 직후 북한이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해서 미국의 대북정책 선택을 제한했듯이 이번에도 북한 스스로 남한정부의 전향적인 대북정책 선택을 제한하는 선수를 쳤다. 새 정부로선 과거 정부에 있었던 남북현안들을 사건별로 순차를 정해서 풀 여유가 없을 것이다. 결국 최고지도자의 신임을 받는 특사를 교환해서 포괄적으 로 풀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시기에 있었던 남북 사이의 불미스런 사태들에 대해 포괄적으로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방지를 확약하는 수준에서 과거를 정리 하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신뢰를 구축해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의 연속 성은 부인할 수 없지만 남과 북의 권력교체를 계기로 남북관계의 새판을 짜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지난 시기에 있었던 남북관계의 여러 불미스런 사건 과 사태들에 대한 정리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과 도전받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북한이 국제사회의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3차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한반도 정세가 다시 긴장국면으로 진입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데는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정권과 체제를 지켜주는 보루로 인식하기 때문 이다. 핵을 가진 미국과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으로선 핵 억지력을 보 유해야 정권과 체제를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북한은 생존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35

전략 차원에서 일관되게 핵무기 개발을 추진해 왔다. 북한은 내부적으로 핵무기를 은밀히 개발하면서 대화와 협상이 진행되는 동 안은 핵실험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과 유엔의 압력과 제재가 추진되면 이 를 빌미로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해서 핵능력을 향상시켜왔다. 이번에도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2013년 2월 12일)를 통해서 원래 우리에게는 핵시험을 꼭 해 야 할 필요도 계획도 없었다 고 밝히고, 제재가 핵실험을 불러왔다는 억지논리 를 폈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 2087호에 반발하여 핵실험은 민심의 요구 라고 하 면서 3차 핵실험을 강행함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다시 긴장 국면으로 진입했다. 북한은 유엔 안보리가 다른 선택의 여유를 더는 주지 않았다 고 주장하면서 핵 실험 이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 고 밝혔다( 로동신문, 2013년 1월 26일). 북한은 핵 억제력을 포함한 자위적 군사력을 질량적으로 확대 강화하는 임의의 물리적 대응조치들을 취하게 될 것 (1월 23일 외무성 성명) 우리가 진행할 높은 수준의 핵시험도 미국을 겨냥하게 된다 (1월 24일 국방위원회 성명) 다른 선택은 없다 (1월 26일 로동신문 정론) 국가적 중대 조치 (1월 27일 국가안전 및 대외부분 일꾼협의 의) 중대한 결론 (2월 3일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등을 언급하며 핵실험 강행 의 사를 거듭 강조했다. 북한이 유엔의 제재결의에 강하게 반발한 것은 이른바 자주권 이 훼손된 데 대한 타협불가의 내부논리 때문으로, 인공위성 발사는 주권국가의 자주적 권리 인데 왜 미국과 유엔이 이를 문제 삼느냐는 것이다. 북한은 남한의 나로호 발사 는 되고, 북한의 광명성 발사는 왜 안 되냐면서 미국의 이중기준 을 문제 삼고 나왔다. 북한이 주권국가의 자주적 권리에 제약을 받는 것은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어떠한 로켓의 발사도 금지한다는 안보리 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북한의 로켓발사 성공 이후 의장성명 정도의 대북경고가 나 올 것으로 예상했으나, 위성의 우주궤도진입 성공과 미국본토에 도달할 정도의 사정거리에 놀란 미국이 제재결의 쪽으로 방향을 틀고 중국이 동의함으로써 새 로운 결의가 채택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을 더욱 분노케 한 것은 믿었던 중국이 제재에 동의한 것이다. 36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지나간 일이지만 유엔이 의장성명으로 북한에 경고하고 김정은 정권에게 인 민생활 향상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유리한 것인지, 아니면 제재 결의로 북한을 자극하여 핵실험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 전략적인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이번 3차 핵실험은 지난해 말 북한이 발사한 광명성 3호 2호기에 대해 유엔 안보리가 제재결의 2087호를 발동하자 이에 반발한 추가도발이다. 북한은 미국 이 주도해서 만든 제재 결의가 그들의 발전권은 물론 자결권과 생존권 자체를 부정한 범죄적인 국가테러문서 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중앙통신, 2013년 2월 12 일). 북한은 유엔의 제재를 미국의 이중기준 적용에 따른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핵실험을 강행한 것이다. 북한은 이번 핵실험의 주된 목적이 나라의 자주권을 끝까지 지키려는 선군조선의 의지와 능력을 과시하는 데 있다 고 주장했다. 북 한은 핵실험을 통해 주체사상에 입각해서 자주권을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 치로 삼고 이와 관련해서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내부논리를 재확인했다. 핵실험 이후 추가 제재로 인민생활 향상 전략에 심각한 난관이 초래될 것이 분명한 데 도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정권 유지가 최우선 목표이기 때문이다. 미국 오바마 1기 행정부 출범 직후 북한이 로켓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해서 미 국의 대북정책 선택을 제한했듯이, 이번에도 북한은 주변 국가들의 전향적인 대 북정책 선택을 제한하는 잘못된 행동을 보였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함에 따라 남북관계 복원도 상당기간 늦어지게 될 것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2월 12일, 제3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한 것과 관련 하여 우리의 제3차 핵시험은 미국의 대조선 적대행위에 대처한 단호한 자위적 조치이다 라고 밝혔다. 핵실험이 철저히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 번 핵실험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일 것이다. 이번 3차 핵실험에서 북한이 주장한 것처럼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가 이뤄 졌다면 심각한 사태진전이다. 특히 이번 실험이 고농축우라늄(HEU)을 활용한 핵 실험이었다면 북핵문제는 통제 불가능한 위협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우선 이번 핵실험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3차 핵실험 이 이뤄졌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미국과 한국의 북핵정책 실패 를 의미하고 전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37

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미국과 한국이 선 핵폐기 또는 비핵을 정책의 최 우선으로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인내 와 기다리는 전략 으로 수수방관 하는 동안 북한의 핵능력은 향상됐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북한이 로켓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남 북관계 복원에도 난관이 조성됐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키워드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다. 북한의 잘못에 대해선 벌을 주고, 잘했을 때는 상을 줘서 남 북 간 신뢰의 토대를 만들겠다 는 것이 신뢰 프로세스의 핵심이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잘못된 행동에 벌을 받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 14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관련해서 박수는 양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면서 현재 상황은 이런 생각을 진전시키기 어려 운 상황 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 2013년 2월 15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작동 하기 위해서는 남북이 국제적 규범에 따라 서로 기대하는 바를 이행하면서 신뢰 를 쌓아가야만 한다. 북한이 국제적 규범을 어기고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진전시키기 어렵다 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보여줄 때만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진전될 수 있다 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안보와 억지를 바탕으로 비핵화 진전에 따라 상응하는 정 치 경제 외교적 조치를 취하겠다 고 밝혀 신뢰가 쌓이고 비핵화가 진전되지 않으면 남북교류협력을 확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박근혜 정 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비춰볼 때 제재국면에서의 남북관계 복원은 쉽지 않아 보 인다. 3차 핵실험 이전인 2월 6일 조선신보가 유엔안보리 결의 가 초래한 제재 국 면에서 새 정부가 취하게 될 행동은 북남관계 정상화를 위한 신뢰프로세스 의 시금석으로 될 것 이라고 밝혔다. 조선신보(2013년 2월 6일)가 조선은 유엔안보리 결의 채택으로 미국의 적대시정책이 최절정에 달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비핵화 회담의 종결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남측에서 민족공동의 이익을 내세워 문제해 결을 시도한다면 대화의 창구가 열리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고 밝혔다. 하지 만 유엔 제재 결의 2087호 이후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감행해서 남북관계 복원시 38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기는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불확실해졌다.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선행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며, 새 정부가 남북 신뢰를 회복하고 대화의 틀을 마련하게 되면 핵문제해 결을 우선적 과제로 다룰 수밖에 없을 것이다. 9 19 공동성명, 2 13합의, 10 3 합의 이행이 중단되고, 6자회담 재개도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또다시 핵문제 우 선해결론을 내세우고 대북제재와 압력에 주력할 경우 남북관계 복원은 요원해 질 것이다. 북핵문제가 불거진 이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북핵문제 해결은 쉽지 않은 과제다. 역설적이게도 북핵문제는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복잡해지고 오 히려 핵능력이 향상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이제 미국의 오바마 2기 행정부와 한국의 새 정부는 핵동결과 핵통제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더 이상 북한 핵 이 향상되거나 늘어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으로 선 핵폐 기정책의 한계가 드러났다. 새 정부는 북한 핵폐기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기 보다는 핵동결과 핵통제 에 우선순위를 두고 더 이상 북한 핵이 향상되거나 늘어나는 것을 통제하면서 북미 적대관계 해소와 평화체제 구축의 수순에 따라 최종적으로 핵을 포기하도 록 핵정책의 수순을 조정해야 할 것이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북한의 핵능력이 상용무기로 발전하는 것을 막는 일이다. 북한 핵을 동결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묶어 놓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체제에 들어오게 만들어야 한다. 북핵문제는 북한문제 의 중요한 구성요소임에는 분명하지만 북한 급변사태 론과 붕괴론의 관점에서 북핵문제를 다뤄서는 비핵화 목표를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붕괴론에 사로잡히게 되면 기다리는 전략으로 일관하면서 북한이 붕괴되면 핵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오판하게 된다. 특히 중국의 협조를 받기 위해서는 북핵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동안 중국은 북한이 붕괴되 는 것보다는 핵을 가진 북한이 낫다는 정세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 다. 따라서 북한붕괴론으로 북핵문제를 다룰 경우, 중국의 협조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39

지금까지 북핵문제는 위기조성 제재 협상의 수순을 거치면서 상황이 악화됐고,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능력은 향상됐다. 이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맺음말 북한은 남측에 새 정부가 출범하면 의례적으로 남북의 관계개선 의지를 시 험해본다. 기선잡기 차원의 기싸움으로 역대 정부들은 관계 설정에 1 2년을 보냈다. 이명박 정부는 6 15 공동선언과 10 4선언 이행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지속하다가 관계설정 자체도 하지 못하고 임기를 마쳤다. 통일시대를 열어가는 데 있어 새 정부의 역사적 사명은 막중하다. 이명박 정 부 시기 남북관계는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 를 넘어 국가 대 국가의 관계 로 변질 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을 화해협력의 대상으로 보기 보다는 흡수의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분단 이후 최초로 벌어진 정규 무력을 동 원한 북한의 도발이 민족의식을 희석시키고 적대의식을 강화시켰다. 새 정부 집권 초기 남북관계 복원을 하지 못할 경우 남과 북은 2개의 주권국 가인 분단국가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될 것이다. 하루빨리 관계복원을 모색하 기 위해서는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북이 먼저 신뢰를 보일 것을 요구하기에 앞 서 남이 먼저 신뢰를 베푸는 아량도 있어야 교착국면에 빠진 남북관계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국정의 첫 단추를 강조했듯이 남북관계에서도 첫 단 추를 잘 끼워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대화의 상대를 인정하고 공약대로 남북 간 기존 합의를 존중하고 대화를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핵을 가진 북한 과 어떻게 악수할 것인가이다. 새 정부는 핵문제 우 선해결론, 선 핵폐기론 등을 내놓고도 북한 핵능력의 향상을 막지 못했던 역대 정부의 경험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북핵문제는 북한이 주장하는 핵개발 동기 가 해소되지 않는 한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북 미 적대관계에서 핵 개발 동기를 찾기 때문에 북 미 적대관계 해소 없이 우리의 대북정책만으로 핵 40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문제를 풀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6자회담 틀을 유지하면서 3자회담(남북한과 미국, 또는 한미중), 4자회담(남북한과 미중), 양자회담(남북, 미중, 북미) 등 다양한 대화 틀 을 유지하면서 북핵해결과 평화체제 구축, 북 미 적대관계 해소, 남북관계 진전 등이 상호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 발전에 가장 위협적인 요인은 북한의 무력도발이다. 새 정부는 북 한의 무력도발 불용의 원칙 을 확고히 지켜내야 한다. 하지만 도발을 예방하기 위한 사전 노력이 중요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새 정부는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원칙과 의지를 확고히 천명하여 도발을 억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발할 경우 강력히 응징하여 추가도발을 방지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새 정부는 평화협력을 제도화해서 도발을 억지하고, 예방외교 차원의 평화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새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고유환, 이명박 정부 대북정 책 평가와 차기 정부 대북정책 방향, 북한학연구 제8권 제2호,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2012, 153-183쪽을 참고 바람).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41

Abstract Park Geunhye s Government policy toward North Korea, what will be different from former government Koh Yuhwan Professr of North Korean Studies Dongguk University Keyword of Park s government policy toward North Korea is the Process of Trust-Building on the Peninsula. It means that they will set up a Korean Economic Community using Vision Korea project when South and North Korea establish trust between each other and denuclearization in North Korea progresses. President Park is considering clear deterrence against North Korea and emphasizing on the resolution of North Korea nuclear as precondition of improvement for relationship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Park Geun-Hye s government should solve many problems that are left unsolved in prior government. The new government have to solve problems occurred and developed in Lee s government including a visitor killed at Mt. Geumgang, attacked on the Cheonan warship and Yeonpyong Island, and improvement of nuclear and missile, etc. Despite the warnings and concerns given by international society, the North Korea carried out third nuclear test and it created tension-ridden in Korea peninsula. If the 3 rd nuclear test consisted small size, light weight and variety kinds as the North Korea argued, it is a serious movement. The enforcement of 3rd nuclear test in North Korea has 42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made it evitable for reexamination from South Korea and U.S.A toward North Korea nuclear policy. President Park Geun-Hye, on the basis of security and deterrence, said We will take political, economical and diplomatic measures according to progress on denuclearization progress. She also made it clear that it will be impossible to expand cooperation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unless the trust is established between each other and denuclearization progresses. So, in the view based from basis of Park s government, the recovery of relations does not seem easy in the light of sanctions. The first thing to be solved for better relationship of nations is to recover collapsed trust. If new South Korea s government recovers relationship and provides a framework for the South-North dialogue, they can t but manage issue of the nuclear as their priority. But, if they put out an urgent conclusion for nuclear issue or concentrate on pressuring and restricting North Korea, the relationship recovery of South and North Korea will be still some way off. New government should focus more on nuclear freeze and wmds control policy as their top priority, not denuclearization, and control boosting or growing of North Korea s nuclear. At the same time, they should coordinate priority order of nuclear policy and sequences of making North Korea consequently giving up their nuclear after building peace regime and solving the hostile relationship between North Korea and U.S. The most important task is to prohibit the capability of nuclear from boosting as a common use weapon. They will push ahead North Korea policy that can win the sympathy from citizens through not only strengthening the strengths and making up for the weakness from former policies but also establishing and enforcing transparency policies. But to one s regret, it will be difficult to find clues to the talks between South and North for a while because of 3rd nuclear test on Feb. 12 th. Related to 3rd nuclear test in North Korea, Park s government does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43

not have any possible choice except for North Korea additional sanctions from U.N. or financial sanctions from U.S. But, under the premise that practical nuclear weapon of North Korea could be stationed and targeted soon toward South Korea, its government is positioned to change epoch-making impenetrable defense, like the change of weapon system. If the situation of North Korea arranging nuclear weapon actually develops, basically this is means balance changing of power in Northeast Asia and Korea will be the biggest victim. 44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특 집 미 일 중 러 새 정 부 와 한 반 도 의 안 보 김정은의 생존전략과 남북관계 전망 이승열 * 새로운 위기의 시작 2011년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 1974년 후계자 내정 이후 37년 동안 북한 을 철권통치했던 김정일 시대가 그의 사망과 함께 사라졌고, 그의 삼남인 김정 은이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만경대와 백두 의 혈통을 지켜내고 있다. 올해 29세(1984년 1월 8일생)로 어리고 경험이 일천하다는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김 정은은 아버지 시대부터 권력기반을 닦아온 노련한 엘리트 집단의 후원과 충성 을 끌어내며 2012년 첫해를 넘기고 2013년을 맞이하였다. 북한은 지난 12월 12일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을 이용한 은하3호 장거리 로켓을 시험 발사하였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소 연구위원.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졸,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 학박사. 스웨덴 ISDP 초빙연구원, 북한인권시민연합자문위원 역임. 저서 및 논문: 김정일 의 선택 (2009),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제재 와 협상 의 실패요인; 북미중의 전략적 삼각 관계론을 중심으로 (한국평화연구학보 11원3호), 북한 수령체제 의 변화와 3대 세습 의 구조적 한계 (북한연구학회보 13권1호).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45

북한이 탄도기술을 이용한 모든 발사체 시험을 금지한 유엔 결의안 1718호, 1874호를 위반했다며 강력한 제재를 예고했다. 2013년 1월 23일 유엔 안보리는 보다 강력한 대북 제재안인 2087호를 중국과 협의하여 15개 이사국의 만장일치 로 통과시켰다. 기존의 제재안을 포함하여 수출입 통제, 금융거래 중단, 해외여 행의 금지 등이 새롭게 제재안에 추가되었다. 그리고 북한이 또 다시 도발을 할 경우 중대한 조치(significant measures) 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무엇보다 중 국이 강화된 대북제재안에 찬성한 것은 북한에게 매우 뼈아픈 사건이었다. 북한 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잘못됐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 는 겁쟁이들의 비열한 처사 라며 제재 결의안에 찬성한 중국을 비난하였다. 예상대로 북한은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유엔 안보리가 추가 제재 결의안을 채택한 지 2시간 만에 북한은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조선반도 비핵화는 불 가능하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고 밝혔다. 3차 핵실험을 예고한 셈이다. 북한 은 26일 국가안전 및 대외부문 일꾼협의회 를 열어 유엔 제재에 맞서 국가 중 대조치를 취하겠다 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김정은을 비롯해 김계관 외무성 제1 부상, 김영일 당국제비서,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최용해 총정치국장, 현영 철 총참모장, 홍승무 당부부장, 박도춘 당군수담당비서 등 그동안 북핵과 미사 일 개발 책임자들 그리고 대미협상의 주역들이 모두 참석했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예상되자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 人 民 )일보의 자매지 인 환구시보( 環 球 時 報 )는 우둔한 결정 이라며 비판했고, 시진핑( 習 近 平 ) 총서기 또 한 방중한 김무성 특사단장에게 북핵에 반대한다 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 다. 미국은 이번 2087호 제재안을 주도하면서 소극적인 중국을 설득하였으며, 북한의 핵실험 시도에 대해 중대한 위반이며, 고립을 자초할 것 이라면서 중단 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6년과 2009 년에 이어 2013년 2월 12일 제3차 핵실험을 강행하였다. 북한의 관영매체인 조 선중앙통신은 12시 30분 긴급소식을 통해 3차 지하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진행 했다 고 보도했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이 현실화되면서 공식 출범을 앞둔 박근혜 정부 또한 심각 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의 핵심인 한반도 46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신뢰 프로세스 가 정부 출범 초기부터 무력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은 5 24 조치를 비롯해 이명박 정부 동안 진행된 대북정책에서 한 발도 나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를 통해 지난 5년간 중단된 남북관계를 복원하고자 했던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출범도 하기 전에 좌초될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1993년 제1차 북핵 위기가 터지자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를 선언했던 김 정일의 벼랑끝 전술이 또 다시 재현될지 모른다. 이것은 지난 20년 동안 비핵 화 를 목표로 했던 대북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출범을 앞둔 박근혜 정부 또한 북한의 3차 핵실험이라는 국가위기 상황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를 차질 없 이 추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의 전략은 무엇이고, 그렇지 않 다면 앞으로의 남북관계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2013년 김정은의 생존전략 김정일과 김정은의 권력기반 구축과정의 차이 김정은은 아버지인 김정일의 경우와 달리 태생적으로 매우 취약한 권력기반 을 갖고 최고지도자의 지위에 올라섰다. 가장 큰 이유는 후계자 시절에 구축해 야 할 유일지도체제 의 미완성 때문이다. 북한에서 후계자의 유일지도체제란 후 계자의 조직 및 정치적 기반을 튼튼히 닦고 그의 영도를 완전히 실현하기 위한 사상체계, 조직체계, 사업체계를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후계자의 조직 기반을 확립해야 하고, 둘째, 후계자 중심의 엘리트 교체를 단행하고, 셋째, 후계자 중심의 새로운 통치 규율을 정립해야 한다. 김정일의 경우, 1974년부터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1994년 김일성 사망 때까 지 약 20년 동안 후계자의 유일지도체제 확립을 위해 첫째, 조직지도부와 선전 선동부를 자신의 조직공간으로 확립하고 둘째, 3대혁명 소조원 등을 후계자 중 심의 엘리트로 충원했으며 셋째, 유일사상확립 10대 원칙 을 후계자 중심의 규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47

율로 정립하였다. 이를 통해 김정일은 인사권과 검열권, 그리고 보고권을 확실 히 장악하여 자신의 유일지도체제 를 완성할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1985년 이후 김정일은 실질적으로 김일성의 권력을 넘어설 수 있었고, 이는 1994년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죽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이 매우 안정적인 권력 이양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반면 김정은은 자신의 유일지도체제 확립에 필수적인 조직체계 및 사상체계 그리고 사업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후계자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2009년 1월 김정일 에 의해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조직지도부 혹은 선전선동부와 같이 조직체계를 확립할 수 있는 공식 직책을 맡지 않은 채, 2010년 9월에 이르러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직에 임명됨으로써 선군정치의 후계자로 상징적인 직책을 맡게 되었 다. 그리고 약 1년 뒤인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또한 갑작스럽게 사망하였다. 김정은의 공식적인 후계체제 확립기간은 약 20년이었던 김정일과 달리 3년에도 미치는 못하는 짧은 기간이었다. 이 기간 동안 김정은이 자신의 조직 및 사상 그 리고 사업체계, 즉 후계자의 유일지도체제를 구축하는 데에는 명백히 한계가 있 을 수밖에 없었다. 권력기반 강화를 위한 김정은의 두 가지 생존전략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은 후계자 시절 취약했던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하 기 위해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생존전략 을 구사하였다. 첫째, 김정은은 신속한 공식 권력 승계를 통해 자신의 제도적 권력을 강화하였다. 김정일은 1994년 김 일성 사망 이후 3년상을 선포하고, 3년 뒤인 1997년 당 총비서를 시작으로 1998 년 국방위원장직을 국가 최고 수위로 한 상태에서 김정일 정권을 출범시켰다. 반면 김정은은 후계자 시절 취약했던 권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김정일 사 망 이후 제도적 권력 승계를 모두 마무리하였다. 2011년 12월 28일 김정일의 영 결식이 끝난 직후, 12월 30일 당정치국은 김정은을 인민군 최고사령관직에 추 대하였다. 그리고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100주기 기념식 직전인 4월 11일 제 4차 당대표자대회와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12기 5차 회의에서 김정일을 영원 48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한 총비서 와 영원한 국방위원장 에 추대하고, 대신 김정은을 조선노동당 제1비 서 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에 각각 추대하였다. 김정은의 공식적인 직위 승계 는 김정일 사망 후 약 4개월 만에 이루어진 것으로 과거 김정일이 김일성 사망 후 3년 만에 공식적인 권력 승계를 마무리 한 것과 비교할 때 매우 빠르게 진행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2012년 7월 18일 조선중앙통신과 평 양방송을 통해 12시 중대발표 를 예고했고, 김정은에게 공화국 원수 의 칭호를 부여하였다. 둘째, 김정은은 자신의 입맛에 맞도록 권력 엘리트 집단을 새롭게 재편성하 였다.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대회는 김정은이 후계자로서 공식화됨과 동시 에 김정은 시대를 이끌고 나갈 엘리트 구조 또한 새롭게 짜여졌다. 가장 큰 특징 인 장성택을 중심으로 한 체제 보위를 담당하는 공안계통 의 엘리트와 이영호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엘리트 집단으로 분화하였다. 북한에서 권력 엘리트 집단 이 이처럼 분화된 것은 지난 1967년 갑산파 사건 이후 처음이다. 이것은 김정 일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것인데, 김정일은 20년 동안 후계체제를 준비했던 자신과 달리 매우 취약한 권력기반을 갖고 있는 김정은이 보다 효과적으로 엘리 트 집단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엘리트 집단을 분화하여 이들 간의 충성경쟁을 유 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정일 사망 이후 약 7개월 만에 엘리트 집단의 충성경쟁 이라는 김 정일의 구상은 김정은에 의해 새롭게 재편되었다. 김정은의 첫 구상은 2012년 4 월 15일 김일성 100주기 기념 직전인 4월 11일과 13일에 나타났다. 김정은은 당 관료 출신이며 장성택의 측근인 최룡해를 군부집단을 통제하는 총정치국장 에 임명하였다. 뿐만 아니라 최룡해를 당정치국 상무위원, 당중앙군사위 부위원 장으로 임명함으로써 당시 실질적인 권력 2인자였던 이영호 총참모장보다 오히 려 한 단계 더 올려놓았다. 그 결과 선군정치 하에서 승승장구했던 군부의 위상 이 주춤하는 동안 전통적인 당-군 관계로의 복원이 추진되었다. 뿐만 아니라 장 성택이 정치국 위원으로, 김경희가 당의 조직비서로 임명되었으며, 장성택의 최 측근인 김원홍이 국가안전보위부 부장으로 임명되었다. 또한 장성택의 지휘를 받는 이명수 인민보안부장과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49

모두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반면 군부 엘리트 집단은 한직으로 밀려 났다. 특히 군부의 최고 실세 중 하나인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이 인민무 력부장에 임명되었다. 이것은 후방 보급과 행정을 담당하는 인민무력부의 성격 상 승진이라기보다는 좌천의 성격이 짙다. 이처럼 지난 4월 인사를 통해 김정 은은 장성택을 중심으로 한 공안계통의 당 출신 인사들로 짜여진 체제보위 엘 리트 집단을 지배 엘리트 집단으로 등장시켰고, 이를 통해 군부 통제를 강화한 것이다. 공안 엘리트와 군부 엘리트 집단 간의 경쟁구도는 2012년 7월 15일 군부 엘 리트 집단을 이끌었던 이영호 총참모장이 전격적으로 숙청되면서 공안 계통 엘 리트에 의한 당 우위 노선으로 종결되었다. 김정은은 2012년 7월 15일 정치국 회의에서 북한 군부의 최고 실력자인 이영호를 정치국 상무위원,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인민군 총참모장, 차수 등에서 모두 직위 해제했다. 이영호의 숙청은 그동안 선군정치로 성장한 신군부엘리트 집단에 대한 당의 통제가 회복되었음 을 의미한다. 이영호의 숙청과 함께 주요 군부 인사, 현영철 총참모장이 차수에 서 대장으로 강등되고,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대장에서 준장으로 강등되는 등 군 부 주요 엘리트들에 대한 통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결과적으로 김정은의 두 번 째 생존전략은 자신의 권력 기반을 자신의 권력 후원자인 장성택이 이끌고 있는 공안계통의 엘리트 집단에 두고 이들을 통해 군부 엘리트 집단을 장악하려는 것 으로 정리되었다. 2012년 김정은의 상반된 정책기조와 2013년의 생존전략 2012년 김정은은 대내외적으로 두 가지 매우 상반된 정책을 시행하였다. 하 나는 경제적 차원에서 인민들의 생활향상을 약속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국제 사회를 향하여 우주 개발권을 주장하면서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것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매우 상반된 행동이지만 북한이 그동안 추진했던 일련의 행동, 즉 위 기 조성과 협상 그리고 경제원조라는 패턴에 비춰볼 때는 매우 일관된 정책 패 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은 지난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100기 기념식 연설에서 인민들이 50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고 공언했다. 그에 따른 후속 조치 로서 6월 28일 우리식의 새로운 경제관리 체계를 확립할 데 대하여 라는 제목 으로 6 28 방침 을 공포하여 인민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협동농 장과 기업소에 대한 개선조치를 발표했다. 20인 이상의 협동농장 구성원을 4-6 인 정도로 축소하여 가족농이 가능한 수준으로 축소하고, 수확량의 약 30%를 자율적으로 처분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한 무역 분야에서 돈을 가진 사 람들의 개인 투자를 합법화하여 생산물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등 생산단위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특히 생산된 물품을 자유롭게 시장에 내다팔 수 있도록 한 다는 조치이다. 이러한 조치들이 아직까지 전면적으로 시행되진 않았지만, 김정 은이 6 28방침 을 발표한 그 자체가 인민경제 활성화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 기반이 취약한 김정은에게 인민 들의 지지는 매우 중요한 권력 기반 중 하나이다. 따라서 김정은은 생존전략 차 원에서라도 인민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시적인 경제개선 조치를 내놓으려 고 할 것이다. 또 다른 차원에서 김정은은 2012년 12월 12일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 고 은하3호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였다. 이에 유엔안보리 15개 이사국은 더욱 강 화된 새로운 대북 결의안 2087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북한이 강력 반발하면서 추가적으로 3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북한의 이러한 행동은 과 거 2006년과 2009년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의 유형, 즉 미사일 발사 국제사 회의 제재 핵실험 협상이라는 패턴을 모방한 것으로 북한의 벼랑끝 전술 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3차 핵실험은 과거 두 차례와 달리 매우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이 깔려 있다. 북한은 지난 12월 은하3호 발사를 통해 이 미 미국 서부지역을 사정거리로 두는 장거리 탄도 미사일 기술을 축적했다. 동 시에 북한은 김정일의 유훈대로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3차 핵실험은 장거리 미사일에 핵탄두 장착을 염두에 둔 소형화 노력을 추 진한 것이다. 북한은 이미 이번 핵실험이 미국을 향한 높은 수준(high-level)의 실험 임을 밝혔다. 2013년 김정은의 생존전략 또한 2012년에 추진했던 정책기조에서 크게 벗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51

어나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은 2012년 동안 국가 최고 수위를 모두 장악하여 제 도적 리더십을 확립하였고, 엘리트 구조의 변화를 통해 김정은 시대를 위한 친 정체제를 구축하였다. 따라서 2013년 김정은의 생존전략 또한 이를 기반으로 군사강국과 경제강국을 향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첫 째, 군사적 차원에서 김정은은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핵과 미사일의 능력을 계속 키워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대결구도를 확대할 것이다. 북한은 이미 3차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써 국제사회와의 대결을 시작하였다. 무엇보다 이러한 대외적 긴장 국면은 김정은의 대내 권력 기반을 매우 강화할 것이다. 둘째, 경제 적 차원에서 김정은은 북미간의 파국보다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극적 타협을 선택하려고 할 것이다. 이를 통해 국제사회로부터 식량과 전력 및 경제 적 보상을 이끌어 내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아버지 김정일이 약 속했던 경제 강성대국을 실현하여 인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려는 의도도 함께 갖고 있다. 결론적으로 김정은은 이번 3차 핵실험 국면을 통해 지난 20년 전 1994년 제 네바 협상 시나리오를 새롭게 각색하려고 할 것이다. 1993년 국제원자력기구 (IAEA)의 북핵 사찰 요구에 반발하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듯이 3차 핵실험 직후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를 빌미로 새로운 차원의 벼랑끝 전술 을 통해 핵능력을 더욱 증대시키려 하겠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극적 타협 가능성 을 열어 놓고 북미대화 재개를 노릴 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에 대한 대북제재 해 소 및 식량과 에너지 지원 그리고 대북투자 증대 등 경제지원을 이끌어 내려 할 것이다. 사실 북한의 이러한 의도는 3차 핵실험 직후 북한 외무성의 담화에서도 잘 드러났다. 북한 외무성은 미국은 지금이라도 우리의 위성발사 권리를 존중 하여 완화와 안정의 국면을 열겠는지, 아니면 대조선 적대시정책을 끝까지 추구 하여 정세 폭발을 향한 지금의 잘못된 길을 계속 걷겠는가 하는 양자택일을 해 야 한다 며 장거리 로켓 발사와 3차 핵실험이 미국을 겨냥한 것이며, 미국의 정 책변화를 촉구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은 위기 조성을 통해 대미 협 상력을 최대로 끌어 올리겠다는 전략을 여전히 숨기지 않고 있다. 52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2013년 남북관계 전망 향후 남북관계에 대한 상반된 전망들 2012년 12월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2087호가 통과 된 후 2013년 1월 25일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선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성명 을 통해 1992년 채택된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의 완전 백지화, 전면 무효화를 선포한다 며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무효를 주장하였 다. 또한 남한이 유엔 제재에 직접 가담할 경우 강력한 물리적 대응조치를 취할 것 이라고 밝힘으로써 남한 정부를 직접 위협하는 매우 거친 메시지를 던졌다.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태도는 매우 강경하다. 박근혜 대 통령은 지난 2월 13일 북핵 불용입장을 천명하면서 북한이 아무리 많은 핵실험 으로 핵 능력을 높여도 국제사회에서 외톨이 국가가 되고 국민들을 궁핍하게 만 들고 그것으로 국력을 소모하면 결국 스스로 무너지는 길을 자초하는 것 이라며 구 소련이 핵무기가 없어서 무너진 게 아님을 알아야 한다 며 북한을 향해 정 권붕괴 라는 단어까지 써 가며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사실 북한의 이러한 공세적 태도는 모두에게 매우 익숙한 패턴이다. 북한의 이러한 위협에 대해 정부의 고위 당국자 또한 예상했던 수준 이라고 평가했다. 그동안 북한은 남한의 신정부가 들어서면 대북정책의 의지를 파악하기 위해 선 ( 先 )도발을 감행했으며, 이러한 도발을 통해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향후 대 화와 협상 과정에서 최대의 이익을 노리는 이중전략을 구사하곤 하였다. 향후 남북관계의 전망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이 존재한다. 북의 도발을 억지하고 서해의 평화를 정착시키고 군사적 신뢰를 쌓고, 북핵과 장거리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증진시키는 이 모든 일이 남북관계 복원에 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김근식, 동아일보, 2013.2.1). 이와 반대로 3차 핵실험의 원인이 제1,2차 서해교전 연평해전, 1, 2차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나쁜 행동에 대해 제대로 응징을 하지 않았기 때문 이며 따라서 남북관계의 나쁜 복원이 냉각국면의 장기화만도 못하다는 것이다 (오경섭, 동아일보, 2013.2.1).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53

사실 지난 2000년 김대중 정부의 6 15 공동선언을 시작으로 시작된 남북 간 의 교류 협력은 두 차례 서해상의 무력충돌과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2007년 노 무현 정부의 10 4 합의 로 이어졌다. 그 결과 남북 간의 화해 협력은 남북관계 를 규정하는 비가역적인(irreversible) 중요한 명분이 되었다. 지난 2012년 7월 정 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여론조사에서 교류 협력에 대한 지지도가 53.7%(서 울대 통일 평화연구소)로 나타난 것은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도 불구하고 남북관 계를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이미 매우 깊이 뿌리 내렸 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성숙한 남북관계를 위해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북한의 선( 先 )사과 또한 남북관계 복원의 매우 중요한 시금석이라는 보수의 주장 또한 여전히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잘못된 행동에는 반드시 대가 가 따라야 한다는 상호주의 원칙은 남북관계를 이끌어 가는 또 다른 매우 중요 한 축임에 틀림없다. 남북관계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입장이 이렇게 팽팽한 가운데 북한은 2012 년 12월 은하3호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였고, 2013년 2월에는 제3차 핵실험을 실시하였다.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하여 미국까지 도달하 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기술을 획득하였고, 3차 핵실험을 통해 미사일 탑재 가 가능한 수준의 경량화 및 소형화 기술을 상당부분 축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출범을 앞둔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과연 남북관 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헤쳐 나갈 것인지 매우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향후 남북관계 규정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해석과 적용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이다. 한 마디로 남북 간에 신뢰가 쌓여야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남북관계의 역사상 신정부의 대북정책 모토가 집권 기간 내내 남북관계를 규정 한다고 보았을 때, 박근혜 정부 또한 신뢰 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 느냐에 따라서 향후 5년 동안의 남북관계가 규정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 5년 동 안 남북관계를 규정한 것은 비핵 이었지만, 비핵에 발목이 잡혀 집권 기간 내내 54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남북대화는 단절되었으며, 오히려 3차 핵실험이라는 엄중한 현실에 직면해 있 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 또한 신뢰 가 이명박 정부의 비핵 처럼 선결조건으로서 이데올로기화 된다면 향후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의 재판이라는 비판에서 자 유로울 수 없게 될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북한의 핵은 절대 용인할 수 없다 는 점을 분명히 했지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가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를 그 대로 답습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밝혔다. 그렇다면 이미 현실화된 3차 핵실험 이 후 남북관계를 과연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박근혜 정부 시기 남북관계를 단기적인 차원과 장기적인 차원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단기적으로 박근혜 정부 또한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에 적극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 미 국은 유엔 제재와 별도로 금융제재를 포함한 독자적인 제재를 준비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도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해 독자적인 대북 제재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유엔 안보리는 3단계 제재 중 가장 높은 수준인 결의안 을 채택할 가능 성이 높으며, 동시에 지난달 23일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안 2087 호에서 명시했던 중대조치(significant measures) 에 대한 협의에 착수했다. 대량살 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따라 북한을 왕래하는 선박에 대한 감시가 강화될 것이고, 북한 항구에 들어간 선박이 다른 나라에 입항하는 것도 금지될 전망이 다. 또한 김정은 일가의 해외 자산과 북한의 돈세탁 창구로 의심되는 해외 계좌 를 전면 동결할 것이며 북한의 교역루트와 돈줄은 차단될 것이다. 무엇보다 북 한을 겨냥한 한미 군사훈련 또한 크게 강화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 는 현 5 24 조치를 완화할 수 있는 어떤 명분도 쉽게 찾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 초기 남북관계는 매우 어려운 국면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둘째, 장기적으로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의 복원을 통한 대북정책의 전환을 동시에 시도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대북제재가 불가피할지라도 이런 제재만 으로는 북핵 문제의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근본적인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을 박근혜 대통령 또한 잘 알고 있다. 만약 대북정책이 제재 일변도로 향할 때에는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는 결국 출발도 못해보고 좌 초되거나 이명박 정부의 비핵화 정책에 묻힐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장기적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55

으로 북한의 3차 핵실험이라는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박근혜 정부는 남북 간의 물밑 대화 및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정경분리 원칙이 이명박 정부보다 확고 하게 지켜질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의 방향이 남북관 계뿐만 아니라 보다 넓은 차원의 동아시아 다자간 접근까지를 고려하고 있기 때 문이다. 2011년 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내용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 방향으로서 유럽의 OSCE(Organization for Security and Cooperation of Europe)와 같은 다자적 통합의 과정을 지적하였다. 박근 혜 정부의 남북관계가 유화 혹은 강경이라는 그동안의 이분법적 대북정책에서 좀 더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남북관계를 한반도에 국한시키지 않고 동아시아 다 자안보라는 지역공동체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2013년 향후 박근혜 정부 하에서 남북관계는 당연히 긴장이 높 아질 수밖에 없겠지만, 동시에 3차 핵실험을 빌미로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제재 와 대화 라는 대북정책이 언뜻 보면 상호 모순되어 보이지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라는 차원에서 볼 때는 매우 당 연한 접근 방법일 것이다. 최근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한반 도 신뢰 프로세스 의 변경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북한이 이 렇게 나왔을 때의 상황도 상당 부분 염두해 두고 만든 것이기 때문에 큰 틀에서 변화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고 답변하였다. 북한은 그동안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대미관계에 있어서도 도발 과 협상 이 라는 강온 정책을 동시에 밀고 들어왔다. 북한의 대외협상 전략인 벼랑끝 전술 은 이처럼 상호 모순된 정책을 동시에 터뜨림으로써 위기수준을 최대치로 끌어 올리고, 상대방의 양보를 이끌어 내어 극적 효과를 활용하는 전술이다. 박근혜 정부가 지금까지 유화와 강경이라는 이분법적 대북정책에서 벗어나겠다는 것 또한 바로 이런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북한과 같이 예측 가능성이 현저하게 떨 어지는 상대를 만났을 때는 상호 모순된 정책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수단으로 다소 시차를 두더라도 긴장 고조와 대화 노력을 동시에 병행할 가능성 이 높다. 56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또한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의 근원적 해법을 보다 넓은 차원에서 해결해 보려고 할 것이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남북관계를 동아시아 다자안보 협력 체 구상으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남북관계의 진전을 북한 을 둘러싼 대외환경의 변화를 통해 발전시켜 나갈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북 한의 3차 핵실험은 2013년 이후 북한의 대외적 고립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기 때 문이다. 특히 북한의 3차 핵실험은, 비록 한계가 존재하겠지만, 북한의 최대 후 원국인 중국의 태도에도 어느 정도의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관 영언론들이 만약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한다면 대북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논 조의 기사를 쓰는 것도 과거와 달라진 중국의 태도 변화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 부는 남북관계의 근원적 진전을 위해 북핵에 대한 보다 폭넓은 접근을 시도할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의 6자회담을 보다 발전시켜 미중의 협력을 끌어 낼 수 있도록 동아시아 다자안보 협의체의 구성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결 과적으로 박근혜 정부 시기 남북관계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에 따라서 진행된 다면, 단기적으로는 3차 핵실험에 따른 제재로 인해 위기와 갈등 수준이 높아지 겠지만, 이를 해결하려는 대화 노력 또한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할 가능성이 높 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 시기보다 진전된 남북관계를 기대할 수 있다.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환을 기대하며 2012년 전세계가 김정은에게 가장 관심을 가졌던 가장 큰 이유는 김정은의 개방적 리더십 때문이었다. 김정은은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100주기 기념식 에서 인민대중 앞에서 직접 육성연설을 함으로써 아버지 김정일과 달리 은둔자 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매우 개방적인 지도자임을 과시하였다. 그리고 2012년 7 월 6일 평양 모란봉 악단의 시범공연에서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백설공주 와 미키마우스 등 디즈니랜드 캐릭터와 미국의 대표적인 상업영화인 록키 의 하 이라이트 장면이 주제곡과 함께 등장하는 파격 또한 보여주었다. 특히 2012년 4 월 15일 대중 연설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 고 다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57

짐하고, 현지지도 도중 인민들과 군인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과 팔짱을 끼는 등 적극적인 스킨십을 시도함으로써 자신이 인민 친화형 지도자임을 과시하였다. 사실 김정은의 이러한 개방적이고 인민 친화적 행보로 인해 북한의 개혁 개 방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도 많이 등장하였다. 스위스 유학을 통해 어릴 때부터 서구 자본주의 문화를 접한 김정은에게 오랫동안 고립된 북한의 변화, 즉 개혁 과 개방의 물결이 밀려들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북한이 2002년 7 1 조치 와 비슷한 성격의 6 28 조치 를 시행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북한 의 개혁과 개방에 대한 기대심리가 더욱 더 고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기대도 잠시, 북한은 2012년 4월 장거리 로켓 발사를 통해 미국과의 2 29 합의를 파기했고, 2012년 12월 12일 은하 3호 장거리 로켓을 다시 발사하여 성 공시켰다. 이로 인해 국제사회는 안보리 결의안 2087호를 결의하였다. 이에 반 발하여 3차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써 김정은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2013년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이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느냐 혹은 다른 길로 갈 것인가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남북관계에 달 려 있다. 사실 2006년과 2009년 두 차례의 핵실험 과정에서 보았듯이 유엔 제재 이후 북한의 3차 핵실험 가능성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에 게 보다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언대로 차기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모토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가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까지를 모두 고려한 포괄적인 정책이라면 더더욱 그렇 다. 강력한 제재와 대화를 창의적으로 조합하여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3년 박근혜 정부의 출범이 북핵 해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제재와 대 화를 조화시킬 냉정한 전략이 필요하며, 북핵 문제를 넘어 북한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미중의 협력을 끌어 낼 수 있는 폭넓은 전략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 다. 국제적 협력의 핵심은 북핵 해결을 위한 미중의 협력 구도를 만드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북한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구도에 끌어 들이는 노력이 필요 하다. 58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Abstract The Survival Strategy of Kim Jungun and The Prospect of Relations between South Korea and North Korea Lee Seungyeol Senior Research Fellow of Ewha Institute of Unification Studies Without heed to international criticism, North Korea launched its long-missile equipped with ICBM technology, the Eunha-3, on Dec. 12th, 2013. On the 23rd of January, 2013 the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unanimously adopted resolution 2087, which includes provisions to enforce stronger sanctions on North Korea. As expected, North Korea responded harshly to the UN resolution by conducting a third underground nuclear test on Feb, 12th, 2013. Although disheartened by the nuclear test, the international community was not surprised as the test was only evidence of one of the North s strategies to survive. The Pyeongyang survival strategies are as follows: from a military perspective, the North Korean government will continue to instigate confrontation with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nd in particular the U.S from an economic perspective, they would rather fund their country through dramatic compromise rather than choose to collapse. The South Korean government has undertaken a policy described as A Process of Trust-Building on the Peninsula. Therefore, under Park s government, although tensions remain high after the North s latest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59

nuclear test, it is unlikely to desolve into a complete breakdown of the North-South relationship. As a result, the relationship between South Korea and North Korea under Park s leadership might possibly work within the framework of North Korea s survival strategy. The aim is to dominate leadership of the relationship by combining strong sanctions and employing dialogue in creative ways. Key Words : Kim, Jung-un, Survival Strategy, 3rd nuclear test, Park, Geun-hye, a process of trust-building on the peninsula, relationship between South Korea and North Korea, sanctions, dialogue. 60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특 집 미 일 중 러 새 정 부 와 한 반 도 의 안 보 오바마 2기 정부의 한반도 정책은 변화할 것인가 하태원 * 새로운 출발, 무거운 발걸음 미국 역사상 첫 흑인대통령으로 재선에 성공하며 2013년 1월 21일 출범한 미국의 버락 오바마 2기 행정부는 시작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정치적으 로는 새해 첫날 한시적으로 발동이 연기된 시퀘스터(sequester) 연장협상이 실패 로 돌아가며 3월 1일 재정적자 완화를 위한 예산 삭감조치가 자동 발동했다. 연간 1100억 달러씩 10년간 총 1조2000억 달러의 정부지출을 삭감하게 되 는 조치로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되는 곳이 국방부다. 올해 460억 달러를 포함해 10년간 5000억 달러(약 546조 원)의 국방예산을 삭감해야 한다. 한미연합 독수리 훈련(3월 1일-4월 30일)과 키 리졸브(3월 11-21일)는 예정대로 치르겠지만 올 하반기 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등 연합훈련은 축소되거나 연기될 수도 있다. 2만 8500여 명의 주한미군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해외에 파견된 미군 전력을 철수 동아일보 논설위원. 연세대 정외과 졸, 미국 터프스대 플레처스쿨 국제관계학 석사(MALD), 경남대 정외과 박사과정 수료. 동아일보 워싱턴특파원 역임(2008-2011).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61

하거나 축소하면서 생긴 전력 공백을 주한미군이 메워야 하는 일이 생기지 않으 리라는 보장도 없다. 한반도 방위를 전담하는 붙박이 군 이 전략적 유연성에 따 라 한국을 떠나는 상황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북한 상황은 더 심각하다. 3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결 의(2094호)에 반발해 북한은 1953년 정전협정 백지화, 남북불가침합의 폐기를 공 언하고 있다. 핵무기를 이용한 서울, 워싱턴 불바다 발언까지 하고 있다. 한반 도에서 국지전을 포함한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이 미 핵보유국이 됐다고 주장하고 있고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을 경우 대륙간탄도 미사일(ICBM)을 이용해 미국 본토를 타격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1990년대 초 북한의 핵개발 당시 적용됐던 게임의 법칙 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현재까지 상황만 봐서는 오바마 2기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에 많은 재량권은 없어 보인다. 경기회복과 재정적자 극복을 위한 경제정책에 전력투구해야 할 오 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이보다 좋을 수 없다 는 수준으로 격상된 한미관계의 기조 를 유지하면서 북한의 위협을 억제해야 할 것 같다. 시작과 동시에 북한의 장거 리 미사일 발사라는 도발을 맞았던 집권1기의 상황과 비슷해 보인다는 점에서 한반도 정책을 대폭 궤도 수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두 번째 4년을 보장받은 역대 미국 대통령은 대체로 역사에 오래 기 록될 만한 자신만의 유산(legacy)을 남기기 위해 전력을 다해왔다. 북한정권을 지 칭해 폭정의 전초기지(outpost of tyranny) 악의 축(axis of evil) 이라며 아예 상종하 지 않을 것처럼 몰아붙였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에 들어서자마 자 북핵 협상에 열을 올리며 9 19 공동성명(2005년) 2 13합의(2007년)를 이끌어 낸 것이 좋은 예다.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해준 것도 바로 부시 2기 행정부다. 역사는 반복되는 속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오바마 역시 예외가 아닐 것 이라는 전망을 한다. 이미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을 선언한 오바마 가 4년간 가장 주목할 지역 역시 중국과 한반도가 포함된 동북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인 것은 분명하다. 이 글을 통해 오바마 1기의 한반도 정책을 간략하게 되 짚어 보고 현재 미국이 처한 국제안보의 현실과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으로 62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대표되는 대외정책 기조에 비춰 새롭게 출범한 2기 행정부가 어떤 한반도 정책 을 추진할 것인가를 전망해 보려고 한다. 오바마 1기의 대한반도 정책 오바마 1기 4년 내내 한반도 정책과 관련한 잡음은 많지 않았다. 2009년 6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10개 항 의 한미동맹을 위한 공동비전 에 합의했다. 안보동맹 차원을 뛰어넘어 명실상부 한 전략동맹 가치동맹으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이 담긴 이 합의문 정신에 따라 한미 양국은 대부분의 현안을 무난히 해결했다고 볼 수 있다. 세계20대 경제 강 국의 모임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2010년 11월, 핵안보정상회의를 2012년 3월 서울에서 각각 개최할 수 있었던 것도 굳건한 한미동맹의 힘이 작용 한 것이다. 가장 어려웠던 대목은 역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문제였다. 2012년 3월 15 일 협상개시 9년 만에 발효될 때까지 양국의 국내정치가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대북정책의 기조는 단연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란 키워드 안에 함축적 으로 담겨있었다. 2008년 선거운동 과정에서 독재자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 는 말을 종종해 북한과의 적극적인 양자대화 가능성을 내비쳤던 오바마 대통령이 었지만 외교적 설득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2009년 4월 장거리 미사일을 발 사하고 한 달 뒤 2차 핵실험을 감행하는 것을 목도한 뒤에는 운신의 폭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로버트 아인혼, 스티븐 보즈워스, 애쉬턴 카터 등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제 네바 합의 실패를 경험했던 외교안보라인들이 즐비했던 오바마 내각은 같은 말 ( 馬 )을 두 번 사지 않겠다 는 원칙을 천명하면서 유엔을 통한 강력한 대북제재에 착수했다. 안보리 결의 1874호는 북한의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광범위한 선박제재와 사치품 금수조치를 단행해 김정일 정권의 자금 줄을 죄려했다. 전반적인 대북봉쇄라는 기조가 만들어진 계기라고 볼 수 있다.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63

이 기조가 확고해진 데는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과 11월 연평도 포격사건 이 결정적인 요인을 제공했다. 2009년 12월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오 바마 정부 들어 첫 고위인사로 방북길에 올라 북미 양자대화의 길을 모색했지만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워싱턴에서 비둘기파가 설 자리를 잃게 됐다. 두 차례의 사실상 전쟁에 준하는 도발을 겪어야 했던 한국의 이명박 정부 역시 미국이 북 한과 급속도로 관계를 개선해 나가는 것에 찬성할 수 없었다. 물론 두 차례의 결정적인 도발을 전후해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연평도 사태 에 대한 사과와 남북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적극적인 남북대화 를 시도했지만 정상회담의 대가를 요구하는 북측이 천안함 폭침 등에 대해 사과 를 거부하면서 돌파구는 마련되지 않았다. 북한은 2010년 11월 핵물리학자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평북 영변으로 불 러들여 우라늄 농축시설을 전격 공개했다. 헤커 박사가 현대적 시설 이라고 평 가했던 이 시설이 전면 가동될 경우 매년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 30~40kg 정도 를 생산할 수 있다. 2012년부터는 매해 핵무기 1~2기를 만들 수 있는 고농축 우 라늄을 생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불어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의 성능 향상에 도 박차를 가해 2013년에 이르러서는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사거리를 갖 춘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1기 오바마 정부는 이에 따라 군사적 압박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한미연 례안보협의회(SCM)를 통해 북한에 대한 핵 억지력(nuclear deterrence)을 강화하는 조치에 잇따라 합의했고, 전통적인 핵우산의 개념에 더해 재래식 군사력과 결합 한 확장된 억지력 의 제공에까지 이르렀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잇따라 벌 어지고 있는 도발에 대비해서는 한미연합사가 서해 군사작전계획을 구체적으로 개발했고 이를 이행할 군사적 능력의 강화에 매진하게 됐다. 2010년 11월에 이어 2012년 6월 미 7함대의 기함인 원자력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서해에서 연합 해상훈련을 실시한 것은 가장 극적인 변화다. 북의 미사일과 장사정포를 요격하는 킬 체인(kill chain) 을 2015년까지 구축키로 했고 이명박 대통령 임기말에 이르러서는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으로 300km에 그쳤 던 한국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도 800km까지 연장됐다. 64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그러던 중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급사했고 급변사태에 가 까운 극심한 혼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됐던 북한은 3남 김정은을 중심으로 일단 안정을 찾은 것으로 평가된다. 오바마 2기 4년의 한반도 정책은? 2월 25일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게도 오바마 2기 행정부가 펼쳐나갈 대( 對 ) 한 반도 정책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미국으로서도 중국의 급부상 속에 한국과의 안정적인 동맹관계 유지가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하는 만 큼 특별한 상황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현재의 정책기조를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오바마 스스로 린치핀(linchpin, 수레나 자동차의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 는 핀으로 핵심이라는 뜻) 으로 규정한 한미동맹과 코너스톤(cornerstone 주춧돌) 미일 동맹이 동북아 정책의 양대 축이 될 전망이다. 같은 대통령이지만 전기 4년과 후기 4년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정책을 직접 담당하는 사람에 변화가 오기 때문이다. 2기 오바마 행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한반도 정책을 펼치게 될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정책 주요 포스트에 누 가 배치될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준비된 국무장관 존 케리의 실험 2기 오바마 행정부 최대의 변화는 1기 행정부 4년 내내 미국의 얼굴로 대외 정책을 총괄했던 외교사령탑 힐러리 클린턴의 퇴진이다. 힐러리 사단 의 동반사 퇴 속에 국무부에서 한반도 정책을 실무적으로 총괄해 온 커트 캠벨 동아태담당 차관보도 물러났다. 우여곡절 끝에 포기 바텀(foggy bottom 국무부의 별칭) 의 주인이 된 사람은 존 케리 전 상원 외교위원장이다. 지난해 리비아 벵가지 소재 미국 영사관 폭동사 태를 우발적인 사고 로 평가한 것이 문제가 돼 지명이 철회된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대사의 대타( 代 打 )였지만 2004년 대통령선거 때 민주당 후보를 지낸 거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65

물이다. 아직 작정하고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정책에 대한 새로운 구상을 밝힌 적은 없지만 자신의 상원 외교위원회 인준청문회(1월 24일), 북한 핵실험 직후 발 언(2월 13일) 등을 살펴보면 케리가 추진할 한반도 정책의 일단을 엿볼 수는 있다. 3차 북핵 실험 직후 케리 장관은 북한의 핵실험은 경솔하고 도발적인 행동이며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이 미국뿐 아니라 세계 안보와 평화에 위협이 된다 고 지적하면서도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당장이야 제재국면이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도 섣불리 북한과의 대화를 언급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케리는 적극적인 대북( 對 北 ) 대화론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30년간 상원에서 외교문제만 다뤄온 그는 6자회담에 반대하지 않지만 북-미 양자대화를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는 유인책을 제공하는 것이 효 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하기 보다는 일단 시도해 보는 파이터 란 점에서 의욕적으로 북한과 담판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일례로 2009년 3월 북한에 억류된 2명의 미국 여기자 석방 임무를 띤 방북특사를 자원한 적이 있 다. 북한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선택해 스타일을 구겼지만 그의 협상 의지는 북한에도 전해졌다. 당시 상원외교위 전문위원이었던 프랭크 자누지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워싱턴사무소장은 대표적인 대북 협상론자다. 케리 국무장관이 첫 해외순방지로 유럽과 중동을 선택한 것은 다소 의외다. 오바마 1기 행정부가 아시아 복귀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전통적인 미국 외교의 중심지인 유럽과 중동을 소홀히 했다는 불평 달래기 차원으로 볼 수 도 있다. 영 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터키,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 르 등 9개국을 갔다. 케리가 측근들에게 종종 아시아 문제 해결보다는 중동문제 해결과 유럽과의 새로운 경제협정 체결에 치중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는 점을 들 어 클린턴 색깔 지우기 라는 평가도 나온다. 케리는 상원외교위원장 시절 중동 평화협상에 유독 공을 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케리장관이 아시아를 소홀히 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66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헤이글 국방, 북한의 핵 위협 현실 직시 2009년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사태로 새롭게 만들어 진 한미 외교국방장 관(2+2) 회의의 한 축인 국방장관은 척 헤이글 전 공화당 상원의원이 임명됐다. 오바마 1기 첫 국방장관에 공화당 인사인 로버트 게이츠를 유임시켰던 것과 같 은 탕평( 蕩 平 ) 인사다. 베트남 참전용사 출신으로는 첫 번째 국방장관이 된 헤이 글은 대화와 외교는 유화책이 아니다 는 소신을 갖고 있으며 평소 위험하고 예 측 불가능한 북한에 대한 고립 시도는 절대 금물 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헤이글의 상원 인준은 순탄치 않았다. 공화당 출신이지만 헤이글이 과거 이 라크 점령 이후 전쟁 수행에서 줄곧 공화당 의견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으며 공화당 내에서 유일하게 국방예산 삭감을 주장하는 등 당 노선과 반대되는 목소 리를 주로 내왔던 탓에 동료들의 반대가 거셌다. 과거 이스라엘 비판 발언도 도 마에 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 상원은 2월 26일 인준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58표 반대 41표로 통과시켰다. 국방장관 내정 50여일 만에 이뤄진 일이다. 2월 27일 펜타곤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헤이글 장관은 미국은 지난 역사와 마찬가지로 세계 속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 며 그 역할은 지혜롭게 수행해야 한 다 고 말했다. 미국이 세계를 지배할 수는 없지만 관여(engage)는 해야 한다는 말 도 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헤이글 장관은 나토 (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와 같은 전통의 동맹을 활성화하되 아시아 태평양 지역 으로 더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 며 우리의 동맹국들과 함께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 고 말했다. 헤이글 장관은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음미해 볼 만한 발언을 남겼다. 북한을 일컬어 실질적인 핵 파워(nuclear power) 라고 평가한 것이다. 현재 개발 중인 이란 의 핵보다는 탄두의 경량화, 소형화 단계를 목전에 둔 북한의 핵이 더 위협적이 라는 말도 했다. 북한 핵을 과장도 경시도 하지 않는 대신 가장 현실적으로 북한 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해 나가겠다는 현실론을 밝힌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을 실질적 핵파워 라고 했다고 해서 미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 하고 대접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북한의 핵 위협을 허 풍 수준으로 폄훼하기 보다는 군사적 도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확고한 억지력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67

을 키워 나가겠다는 다짐을 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케리 국무장관이나 헤이글 국방장관 두 사람 모두 대북 대화론자이기는 하지만 핵 개발만큼은 용납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국무부-NSC 한반도팀, 대북정책 기조 유지 존 케리 국무장관의 기용에도 불구하고 2011년 현직에 오른 국무부의 윌리 엄 번스 부장관-웬디 셔먼 정무차관 라인은 일단 유임이 확정됐다. 북핵 6자 회 담과 대북정책을 전담하는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특별대표, 북한에 대한 제재 를 담당했던 로버트 아인혼 비확산 군축 담당관 역시 현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로버트 킹 대북인권특사의 후임도 거론되는 인물이 없다. 1기 정책의 기 조가 연속성을 유지할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이유다. 데이비스 대표는 2012년 2 29 윤달합의(Leap Day Deal) 를 이끌어냈지만 북한 이 일방적으로 합의사항을 어기며 그해 3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해 망신을 당 하기도 했다. 한때 북한 배신에 대한 충격으로 두문불출하는 모습을 보였던 데 이비스 대표이지만 최근에는 한국, 일본, 중국 등 6자 회담 관련국들을 적극적으 로 방문하면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 재개의 불씨를 살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한반도 정책의 또 다른 축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아시아 라인도 큰 변동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특사로 한국을 찾은 토머스 도닐런 국가안보보좌관이 건재할 것으로 보이고 제프리 베이더의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자리를 이어받은 데니얼 러셀도 현직을 지키거나 커트 캠벨의 국무 부 동아태 차관보로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 어느 경우에도 한반도 정책관련 요 직을 지키는 것이다. 동아태 차관보의 또 다른 유력후보는 마이클 시퍼 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이다. 상원 외교위 전문위원으로 케리 전 상원외교위원장을 측근 에서 보좌했던 그는 2009년 오바마 행정부 1기 내내 국방부에서 한반도 정책을 실무적으로 총괄했던 지한파( 知 韓 派 )이기도 하다. 68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산적한 한미동맹 현안 한미 양국이 어떤 구체적인 현안을 가지고 상호간에 논의를 해나갈 것인가 를 분석해 보는 것 역시 정책추진의 방향을 살펴보는 데 매우 유용한 방식이다. 2월 초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단장으로 한 정책협의대표단은 케리 국무 장관 등 주요 인사를 면담한 자리에서 북핵문제 등 북한문제에 대한 양국의 공 조를 재확인하는 한편 박근혜 정부의 정책비전을 설명하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가장 궁금해 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의 진의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일단은 새롭게 출발한 박근혜 정부와 언제 어떤 방식으 로 양자이슈를 처리해야 할 지를 두고 고민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가장 시급한 현안은 2014년 3월 19일 만료되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협상이다. 2010년 이후 양국 대표들이 서울과 워싱턴을 오가며 3년째 지루한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진 전은 더디다. 1974년 체결된 한미원자력협정에 따르면 양국은 평화적 목적으로 원자력 분야에서 협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한국은 미국 동의 없이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거나 제3국에 이전할 수 없다.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분야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농축-재처리를 할 수 없다는 부분이다. 핵확산 방지를 지상과제로 여기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다. 협상에 나서고 있는 미국 협상대표인 로버트 아 인혼 국무부 군축 비확산담당 특보는 철두철미한 반( 反 ) 확산론자다. 설혹 자신 을 설득한다 해도 농축-재처리 라는 문구가 담긴 협정안이 미국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제로 라는 말도 자주했다. 하지만 한국으로서는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라고 말하면서도 평화적 핵 이용 의 권리를 제약하는 것은 적절한 태도가 아니라는 주장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 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공개석상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권리를 충분히 보 장받아야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또한 일본에는 허용하면서 한국만 유독 차별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협정비준에 5~6개월의 시간이 걸리는 미국의회의 일정을 감안하면 실제 협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69

상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은 올 상반기다. 꼭 미국 일정에 맞춰야 하느냐는 반 론도 있겠지만 협상의 상대방인 만큼 시간이 촉박한 것은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양국의 이견차가 큰 점을 감안해 현행 협정의 유효기간을 2년 정도 연장하는 방 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로서는 일단 개정협상에 전력을 기울 이겠다는 방침이다. 21기의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고 있고 전력의 절반 가량을 원자력에 의존하 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사용후 핵연료의 처리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원전 수조( 水 槽 )에 쌓여 있는 사용후 핵연료는 이미 1만 t을 넘어섰고 2016년이면 이 마저도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다. 사용후 핵연료에는 연소되지 않은 우라늄과 핵 분열과정에서 새롭게 생성된 플루토늄을 함유하고 있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에 너지원이지만 현재의 협정에는 재처리를 금지하고 있다. 또 하나의 난관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다. 심각한 재정적자 해결을 위해 향 후 10년간 5000억 달러 규모의 국방비 감축을 선언한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한 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 절실한 상황이다. 2014~2018년 방위비 분담금 협 상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한국의 분담비율을 현재 42%에서 50%까지 올려달라 고 요구할 것이라는 예상이 벌써부터 나온다. 2008년 한국의 분담금은 7415억 원이었다. 원자력협정 개정협상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함께 새롭게 출범한 박근혜 정부와 버락 오바마 2기 한미동맹의 발전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한반도 방위문제를 넘어서 인류공통의 문제에까지 협력하 는 글로벌 가치동맹 차원으로 성장한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하게 하기 위해서도 한국의 평화적 핵이용권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2015년 12월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에 대한 협의도 관심사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은 전작권 전환시기를 2012년 4월에서 한 차례 연기했고 현재 한미 군사당국은 한미연합사(CFC)의 해체에 따른 전력공백 최소화를 위해 미니연합사 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기구의 창설을 적극 검토 중이다. 흥미로운 것은 전작권 전환 재연기에 대한 논의가 서서히 이뤄지고 있는 점 이다. 성 김 주한 미국대사는 2월 20일 만약 한국 측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전작 70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권을 이전하지 않을 것 이라고 말했다. 전작권 전환이 한국의 자주적 국방태세 의 준비를 평가하고 전환시점의 안보상황에 대한 검토를 통해 이뤄진다는 원론 에 충실한 답변이지만 주한미국 대사가 공개적으로 연기를 시사한 발언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앞서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량살상무기 조정관도 서울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 참석, 박근혜 정부가 원한다면 한 미 양 국 간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 문제가 논의될 수 있을 것 이라고 했다. 예비 역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 星 友 會 ) 와 재향군인회도 각각 성명을 내고 전작권 전 환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핵 보유국 북한, 달라진 게임의 법칙 오바마 행정부 2기 한반도 정책의 변화를 가늠해 볼 때 간과할 수 없는 중요 한 핵심변수는 역시 북한이다. 2011년 말 김정일의 급사로 북한의 최고지도자 가 된 김정은이 어떤 정책노선을 따를 것인가를 따져보는 것과는 별도로 오바마 의 대북정책은 물론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접근법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 역대 한 미정부의 정책협조에 가장 큰 갈등요인을 제공한 것도 바로 북한을 바라보는 시 각차와 북한에 대한 관여(engage) 정책의 실행 여부였다. 현재 북미간 긴장은 최고조에 이른 상태다. 실제적인 능력보유 여부는 차치 하고라도 북한은 정밀 핵타격 수단으로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겠다 고 수차례 주장했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1월 24일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가 계속 발사하게 될 여러 가지 위성과 장거리 로켓도, 우리가 진행할 높은 수준의 핵실험도 미국 을 겨냥하게 된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고 공개적으로 언명했다. 물론 북한의 핵능력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게 사실이다. 탄두의 소형화, 경량화 에 이르지 못했을 뿐더러 미국의 핵 보복을 맞받아칠 제2격( 擊 ) 핵전력 도 보유 하고 있지 않다. 미국이 가장 신경 쓰는 것 중 하나가 핵 능력을 키워 온 북한의 핵확산 가능 성이다. 2001년 9 11 테러를 당했던 전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물론 핵 없는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71

세상 을 주창해 온 오바마 행정부 공히 핵물질이 테러리스트의 손에 흘러 들어 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중에서도 북한이 보유한 몇 개의 핵탄두가 아니 라 핵 물질과 핵무기 개발 기술이 불량국가 또는 테러집단에 이전돼 워싱턴을 겨냥하는 상황을 가장 경계한다는 분석도 많다. 오바마 대통령 재선 이후에도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아무런 물꼬가 트인 것 도 없고 북미간에 특별한 접촉의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지 않다. 지속적으로 인 내심을 시험하는 북한에 대해 미국이 북한이 비핵화의 노력에 성실하게 임할 자 세가 돼 있다면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이 오히려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다. 3차 핵실험까지 마친 북한이 6자 회담에 대해 사망선고 를 내리며 핵을 가진 자 대( 對 ) 핵을 가진 자 가 따로 앉아 핵 군축회담을 하자는 허황된 주장을 하고 있지만 미국은 여전히 6자 회담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가 최선의 정책 목표 라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한미 신행정부 등장 이후 북한과 대화에 나서라는 조언이 크 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매파로 알려진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가 1984년부터 27년간 북한의 도발과 협상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미국 등과 협상을 벌이고 있는 도중에는 북한이 도발에 나선 적이 한 번도 없다 (2011년 3월 10 일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 고 밝힌 것이 이론적 배경이 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와 미국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을 지낸 지한파 에 반스 리비어는 최근 브루킹스연구소에서 낸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제기하고 있 는 차원이 달라진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협상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야 한다 고 제안하고 있다. 그가 제안하고 있는 것은 평양에서 실제로 결정을 내리 고 있는 사람을 만나야만 그들을 직접 설득해 비핵화를 이뤄낼 수 있을지 여부 를 판단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 새로운 접근법이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현재의 접근법은 이미 실패했고 앞으로도 성공할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아예 오바마 행정부가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 북한 문제와 관련한 주도 권을 넘기라는 제안도 나온다. 미국 스탠퍼드대 쇼렌스틴 아시아태평양연구소 (APARC)가 내놓은 북한문제와 한국 리더십의 필요성 이라는 제목의 정책보고서 는 북한의 핵개발 등과 관련해 지난 20여 년간 미국이 주도해 온 정책은 북한을 72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전혀 변화시키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며 이같이 주장했다. 결국 박근혜 대통 령이 정책기조로 삼고 있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에 힘을 실어주면서 북핵문제 를 외교로 풀어가는 노력을 다하라는 제안이다. 도저히 인정할 수는 없지만 사실상 핵을 가진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오바마 2기 행정부가 풀어가야 할 핵심적인 한반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문 제는 미국이 가장 신경쓰는 미래의 슈퍼파워 중국과의 관계를 다뤄 나가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이슈다. 미국이 기본전제로 삼고 있는 가설은 북한이 핵을 실 제로 사용하는 시나리오에 대해 중국 역시 단호한 반대의사를 갖고 있다는 것이 다. 북한이 핵을 사용하는 경우 동북아 지역에서 결국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고 이는 미국과 중국 모두의 국익에 가장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하며 중국과 매우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다. 첫 한미정상회담이 분수령 국제정치학자들은 현재의 국제질서를 규정하는 데 있어 혼란스러워 한다. 가장 흔히 인용되는 미국과 중국의 주요 2개국(G2) 시대라는 분석에서부터 다극 화(multi-polarity) 시대, 심지어는 무극화(non-polarity) 시대라는 평가까지 백가쟁명 의 양상이다. 하지만 적어도 현 시점에서 가장 확실한 명제는 팍스 아메리카나 의 영광을 역사의 뒤안길로 넘기고 싶지 않은 미국이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제1순위 지역 으로 꼽은 곳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이라는 점이다. 재선 결정 직후 첫 방문지로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2012년 11월 17~20일)를 택한 오바 마는 이 기간 중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참석하고 동남아국가연합(ASEAN) 회 원국 정상들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 관여를 질적 양적 으로 팽창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한미 양자관계의 특성상 오바마 2기 정부의 대 한국정책은 새롭게 출범한 박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73

근혜 정부의 대미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미국의 대북 정책 역시 박근혜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느냐에 따라 궤 도수정의 가능성도 적지 않다. 오바마 1기 행정부 시절 내내 미국이 북미 양자 대화를 집요하게 요구해 온 북한에 대해 남북관계 발전이 우선 이라며 서울을 거쳐 워싱턴에 올 것을 북한에 권유했던 것도 사실이다. 전망이나 분석보다 강한 것이 과거의 경험이다. 3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 긴 장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어떤 방식으로 성안될지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도 북한의 강력한 도발 위협 이후 북한과 미국, 그리고 한국이 걸었던 길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뒤 미국은 유엔을 위시한 국제사회를 통한 대북 제재의 틀을 강화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북미 양자협의를 거쳐 2005년 9 19 공 동성명 이행을 위한 2 13 합의(2007년)조치에 이르렀다. 미국은 2007년 4월 대 북제재의 핵심이었던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예치된 2400만 달러의 북 한자금 동결을 해제했고, 북한은 합의준수의 상징으로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을 폭파했다. 2009년 5월 2차 핵실험 상황 뒤에도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의 움직임은 있었 다. 적극적인 관여(engagement)가 없었던 탓에 북핵 상황이 악화됐다는 주장이 힘 을 얻으며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방북길에 오른 것이다. 물론 이듬해 북한의 천안함 폭침 등의 연이은 도발로 북미 대화는 추동력을 상실했지만 단기 적으로 미국이 북한과 대화에 나서는 계기를 마련한 것만큼은 틀림없다. 하루가 멀다한 도발위협으로 한반도 안보가 시계제로의 상황에 빠졌지만 미국이 한반 도 상황의 관리를 위한 대화에 나설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다. 이제는 양국 고위급 인사들의 상호 교차방문을 통한 주요정책 결정의 시기 와 방법이 중요해졌다. 일단 존 케리 국무장관의 방한이 3월 말~4월 초 정도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고 4월~5월 사이엔 박근혜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양국 정상의 첫 만남은 향후 4년의 한미관계의 기조를 결정할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2기 한반도 정책의 기조도 5월 정상회 담을 전후해 구체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74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Abstract Can change Obama s 2 nd government policy for the Korea Peninsula? Ha Taewon Editorial Writer, Dong-A Ilbo Barack Obama had been reelected as the first black president in the US history. On January 21 st, 2013, his 2 nd administration started with a chaotic condition with both internal and external troubles. Obama government had cut budget measure, sequester, to relax budget deficit on the Feb.1st, and economic recovery effort is currently underway. Challenge of China in Asia-Pacific region is getting stronger and Arab spring represented as disaster in Benghazi is still battling as well. North Korea had responded with the long missile launch and 3rd nuclear test as for the start of Obama s 2 nd administration. The Obama s 2 nd government cabinet is currently under the progress. However, it is fortunate that key positions for Korea Peninsula Policy have been appointed rapidly with John Kerry for Secretary of State and Chuck Hagel for Ministry of Defense. Former U.S. presidents who were assured their 2 nd tenure for 4 years did their best to leave their own legacy in history for a long time. One good example of this is former President George W. Bush who drove harshly on North Korea by referring them as outpost of tyranny or axis of evil as he would not associate any more. However as soon as he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75

started his 2 nd tenure, he achieved 9.19 joint statement in 2005 and 2.13 agreement in 2007 as a result of effort put on the negotiation for North Korea nuclear. Clinton Administration was not different. Once Clinton s administration had considered on pinpoint strike on nuclear facilities, but at the end of his tenure, he almost had made historical visit to North Korea following exchange visit from Jo Myong-rok, a First Vice- Chairman of the National Defense Commission and Madeleine Albright, A Secretary of State. Those who believe that recurring properties of history are looking with hopeful view on President Obama, that he will not be an exception. Obama already had announced pivot of Asia and he is clearly going to pay close attention to Northeast Asia region including in China and Korea Peninsula, as well for next 4 years. Just, foreign security policy of US has attributes of warship, so lightening course correction is not achieved. 76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특 집 미 일 중 러 새 정 부 와 한 반 도 의 안 보 미 중관계의 전개 양상과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 구본학 * 들어가며 미국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같은 전통의 동맹을 활성화하되 아시아 태 평양 지역으로 더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 제2기 오바마 행정부의 국방장관으 로 임명된 척 헤이글(Chuck Hagel)이 그의 취임사에서 강조한 말이다. 미국정부가 450억 달러의 국방비가 포함된 850억 달러(약 92조원)에 달하는 정부예산이 자동 삭감되는 시퀘스터 상황에서도 아태지역의 중요성을 함축적으로 설명한 것이 라 할 수 있다. 미국이 아태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아태지역이 세계 정치경제질서의 중심으로 등장하였기 때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국제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졸, 미국 신시내티대학교 정치학박사.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역임. 주요저서 및 논문: Political Economy of Self- Reliance (1993), 세계외교정책론 (1995), 주변4강 및 북한의 신대외정책과 한국의 중장 기 안보전략 ( 국방정책연구, 제28권 제4호), North Korea after Kim Jong-il ( New Asia Vol. 19, No. 2, Summer 2012)외 다수.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77

문이다. 아태지역에는 전 세계 인구의 약 60%에 달하는 40억 명 이상이 살고 있 으며,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국가들은 전 세계 GDP의 약 55%를 차지하고 있다. 아태지역의 핵심국가라고 할 수 있는 한국, 중 국, 일본 등 세 나라만 보더라도 세계 인구의 약 22%, 세계 GDP의 약 19.6%, 세 계 교역량의 약 17%를 차지한다. 여기에다 미국에서 수출되는 상품의 약 58% 가 아태지역에 집중되고 있다. 미국이 유럽에서부터 아태지역으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아태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는 중국의 부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때 아시아의 거대한 후진국으로 분류되었던 중국은 1978년 덩샤 오핑의 개혁 개방 이후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기록하면서 현재 세계 제2위의 경제력을 가진 산업화된 강대국 으로 등장했다. 군사적으로는 미국과 러시아 다 음으로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였다. 또한 2012년 말 3조2,500억 달러 이상의 외환보유고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중 미국의 국채가 1조1,500억 달러 이상이다. 2010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센가쿠열도(중국명 釣 魚 島,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일본과의 영유권 분 쟁과 남중국해의 난샤군도( 南 沙 群 島, Spratly Islands)와 시샤군도( 西 沙 群 島, Paracel Islands)를 둘러싼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과의 영유권 분쟁에서는 군사력 까지 동원해 노골적으로 주변국가들을 위협하고 있다.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이 아태지역으로의 전환 (pivot to Asia) 또는 재균형정책 (rebalancing strategy)을 선언하 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안보는 한미동맹, 경제 는 한중관계 라고 하는 이중구조 속에 놓여 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급 장거리미사일 발사에 성공하고 3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핵위협이 현 실화된 상황에서 한미동맹은 우리의 안보와 생존을 지켜주는 든든한 보루다. 동 시에, GDP 총량 규모로는 세계 12~13위이며 무역규모로는 세계 8위권의 경제 대국인 우리의 대중국 무역규모는 이미 대미 및 대일 무역을 합친 것을 상회한 다.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우리의 경제발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다. 미 중관계의 변화에 따라 우리의 안보와 경제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으 78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며, 미중간의 갈등과 마찰이 심화될 경우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고민 하지 않을 수 없다. 본고는 이러한 상황에서 동북아정세의 특징을 분석하고, 미국과 중국의 대동 북아 정책을 살펴봄으로써 향후 미중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그리고 우리 의 안보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전망함으로써 우리의 대응 방향을 제시 하고자 한다. 미 중의 아태지역 패권경쟁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질서 하에서는 군사력이 바로 국가의 힘을 결정하는 요소였으며, 국가간에는 군사력의 크고 작음에 기초한 위계질서가 형성되어 있 었으나, 냉전 이후의 국제질서에서는 군사력뿐만 아니라 경제적 능력, 문화적 측면에서의 영향력, 부존자원의 매장량 등 다양한 측면에서 국가의 능력이 평가 되고 이에 따라 국가의 영향력이 결정된다. 물론 군사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미 국이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중국의 부상 과 자원부국들의 영향력이 증대되었다. 군사안보와 경제 측면을 제외한 다른 이 슈영역에서는 또 다른 국가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21세기의 새로운 현상을 복 합적 단다극 국제질서(complex multi-polar international order)라고 부른다. 이러한 복합적 단다극질서 하에서 중국을 비롯한 제3세계 국가들이 눈부신 경제적 발전을 배경으로 국제무대에서 주요 행위자로 등장한 반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다. 냉전 이후의 세계는 경제의 세계화, 서양에서 동양으로의 부의 이전, 비국가 행위자(non-state actors)의 영향력 증대 등 다극화 현상이 더욱 촉진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미국의 국가정보위원회는 더 많은 국가들의 부상(the rise of emerging powers) 이라고 한 바 있다. 즉, 미국의 국력이 쇠퇴한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의 급속한 성장으로 인해 미국이 지배하 고 있던 질서에 대한 도전들, 즉 이슬람의 도전과 테러, 북한 등 불량국가 들의 도전, 세계 각 지역에서의 민족주의 운동, 핵 및 장거리미사일 확산 등에 대해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79

미국이 단독으로 대응할 수 없게 된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국제질서의 전반적인 흐름 속에서 한반도가 위치해 있는 동아 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한 국가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 지고 있으며, 어족자원 및 해저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도서지역의 영유권 분쟁이 날로 격화되고 있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의 도서를 둘러싼 분쟁과 해저자원 개 발을 둘러싼 중국과 주변국들 간의 갈등으로 동아시아 지역은 2차 세계대전 이 후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 있다. 센가쿠열도의 영유권을 둘러싼 일본과 중국 간의 우발적 사건이 무력충돌로 발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 며, 이로 인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될 경우 국제정세는 심각한 불안정 상 황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불안정한 동아시아의 국제정세 하에서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상호협력을 강조하고 있지만 군사안보적으로는 지역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심 각한 갈등과 경쟁을 지속하고 있다. 먼저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미국은 중국의 노동착취와 평가절하된 위안화로 인한 값싼 중국 공산품들이 미국 상품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라고 비판 하면서 이를 시정할 것을 중국정부에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미국 의 과도한 달러화 발행과 독점적 기축통화제도로 인해 시장이 왜곡되어 왔다고 반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모두 상호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지속적 경제발전을 위해 미국의 투자와 상품의 수출시장이 필요하며, 미국은 생 산에서 소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중국이라는 생산기지와 13 억 명의 인구를 가진 거대한 시장이 필요하다. 3조 달러 이상에 달하는 중국의 외환보유고 또한 상호협력을 필요로 하는 요인이다. 2011년 5월 워싱턴에서 개 최된 제3차 미 중 전략경제대화에서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양국관계를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것 ( 同 舟 共 濟 )에 비유하고 산을 만나면 길을 뚫고 물을 만 나면 다리를 건설 ( 蓬 山 開 道 遇 水 架 橋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미중협력의 중요성 을 강조한 것이다. 2012년 5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4차 전략경제대화에서 천 광청( 陳 光 誠 ) 사건에도 불구하고 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한 것은 양국이 갈등과 마찰보다는 협력이 필요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80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이와 같이 경제적으로는 미 중의 상호의존 관계가 심화되고 있지만, 위안화 절상문제, 중국의 대미 일방적 무역흑자, 희토류 수출통제 등을 둘러싸고 갈등 이 지속되고 있으며, 인권문제와 환경문제 등에 있어서도 양국은 첨예하게 대립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군사안보적 영역에서의 갈등은 더욱 심각하다. 2010년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서해상에서 미국 항공모함이 포함된 한미 연 합해상 훈련에 대해 중국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미사일 발사 훈련을 실시하는 등 중국 근해에서 미국의 군사활동에 대해 중국은 극심한 거부 입장을 보이고 있 다. 또한, 최근 미국과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적 극적인 관계개선에 대해서도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중국은 미국의 항공모함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DF-21D 중거 리미사일과 최초의 항공모함인 랴오닝함, 최첨단 스텔스 구축함을 실전 배치했 고, 최신 스텔스 전투기 J-20를 시험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제1 도련선( 島 鏈 璉 線, 해양방위경계선으로 오키나와, 대만, 남중국해를 포함)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2020년까 지 제2 도련선(사이판, 괌 및 인도네시아를 포함)을 구축하며, 2040년까지 미국의 인도 양과 태평양 지배를 저지한다는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이러한 중국의 계획을 미국의 패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간주하 고 있다. 2010년 발표된 4년주기 국방정책검토 (QDR 2010, Quadrennial Defense Review 2010)에서 미국은 중국의 부상과 군사력 증강을 미국에 대한 가장 심각한 도전으로 규정하였다(US DoD, Quadrennial Defense Review Report, February 1, 2010, pp. 6-7 and 31). 이어 2012년 1월 발표된 신국방전략지침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유지: 21세기 국방 우선순위 (Sustaining U.S. Global Leadership: Priorities for 21st Century Defense)는 향후 미국이 국방비 삭감과 군사력 감축에도 불구하고 아태지 역에 대한 군사력은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이며(US DoD, Sustaining U.S. Global Leadership: Priorities for 21st Century Defense, January 2012, pp. 1-8), 전체 해군 함정의 60%를 아태지역에 유지할 것이라고 하였다. 미국은 중국의 군사력 강화를 미국의 중국 포위전략에 대응하고 태평양과 인도양으로의 진출을 목표로 하는 반접근/지역거부 (A2/AD, Anti-Access/Area Denial) 전략으로 판단하고, 이에 대한 대응역량을 강화할 것임을 천명하였다. 또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81

한, 스텔스 능력과 탄도탄 요격 능력을 갖춘 줌왈트(Zumwalt)급 구축함을 건조하 고 알레이버크(Arleigh Burke)급 이지스함의 대공방어 능력을 강화하여 중국의 대 함 유도탄에 대비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2018년까지 총 18척의 8 천톤급 신형 버지니아(Virginia)급 핵추진 공격잠수함을 확보할 계획이다(한국전략 문제연구소, 미 전략축의 아시아 전환정책, 정책토론회 결과보고서, 12-8, No. 186, 2012년 3월, pp. 7-8). 이상과 같이 아태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은 날로 뜨겁게 달아오르 고 있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 National Intelligence Committee)는 2013년 1월 발 간된 글로벌 트랜드 2030 (Global Trend 2030)에서 중국의 경제력이 2030년 이전 에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제정치 학 자들은 군사적으로는 미국이 여전히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므로 중국 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는 없을 것으로 예측한다. 범세계적 또는 지구적 차원에서는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태지역 차원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유럽의 경제위기 지속, 이 슬람 및 테러리즘의 재부상, 북한과 이란에 의한 핵확산, 사이버전의 가능성 등 은 아태지역은 물론이며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지역 정세의 불확실성과 유동 성을 증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반도 안보정세 또한 불 안정하고 유동적인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중국의 대 동아시아 정책 미국의 대동아시아 정책의 기조는 지역 동맹국들과 포괄적 동맹체제를 구축 하는 한편, 중국과는 협력과 경쟁을 병행함으로써 미국의 국가이익을 확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하나의 중국 원칙 하에서 중국과의 상호의존체제를 확 대하면서 중국을 국제질서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책임있는 이해 상관 자 (responsible stakeholder)로서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를 확대하도록 촉구하는 동 시에, 장기적 측면에서 중국과의 이해충돌 가능성에 대비하여 중국을 좌(중동 및 82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중앙아시아), 우(한국 및 일본), 아래(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폴, 인도 등)로부터 견제 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김성한, 미국의 장기 아시아정책 구상과 한국, 한국의 안 보환경 2020, NARI Report 2009-1, 신아세아연구소, pp. 36-37).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중 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미일동맹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의 이전을 추진하면서 호주의 다윈(Darwin)에 2,500명 의 해병대를 주둔시키기로 하였으며, 필리핀과 베트남과 해상연합훈련을 실시 하는 것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이러한 미국의 대동아시아 정책은 지 속될 것으로 생각된다. 즉, 2011년 말부터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해 온 아시아로 의 전환 또는 재균형전략 이 확고하게 추진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직후 캄보디아에서 개최된 동아시아 정상회의 (EAS, East Asia Summit)에 참석하면서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미얀마를 방문했다는 것도 같은 맥락 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은 또한 아태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을 강화하는 차원 에서 아세안지역포럼(ARF, ASEAN Regional Forum)과 EAS 등 다자안보협의체에 적 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역내의 우방 및 동맹국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것도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경제적 차원에서도 미국은 아태지역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한미 자유무역협 정을 체결한 이후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Trans-Pacific Partnership)을 적극 추진 하려 한다. 자유무역을 통한 역내 국가들과의 경제적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역내 주변국들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전략이다. 아태지역에 대 한 군사력 증강과 동맹 네트워크의 강화 등과 같은 하드파워를 확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에 유리한 아태지역 국제질서 구조를 구축하려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군사안보 및 정치경제적으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정 책을 추진하고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중국은 한편으로는 미국과의 협력을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 으로는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 해 왔다. 즉, 중국은 1994년 ARF에 가입하였으며,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연대 를 목적으로 하는 상하이협력기구(SOC, 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창설을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83

주도하였고,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적극적으로 다자안보 협력에 참여해 왔다. 또한, ASEAN+3(APT, ASEAN Plus Three), EAS, APEC 등 다양 한 다자협력체에 참여하는 등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에 대비하고 주변국에서 反 중국 연대가 형성되는 것을 견제하는 동시에 인접지역에서의 분쟁에 대비하 는 전략을 추구해 왔다. 2012년 11월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출범한 시진핑( 習 近 平 ) 체제는 중국이 명실상부한 G2의 지위에서 적극적으로 국제질서 구축에 관 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18차 당대회 정치보고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중국의 국제적 지위에 걸맞고 국가안보와 발전에 적절한 군대의 건설을 전략적 임무로 제시하였으며(김재철, 시진핑 체제의 출범과 한 중관계, 동북아 국가리더십 변화와 한국의 외교안보,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 주최 세미나, 코리아나호텔, 2012년 12월 6일, p. 75), 후진타오 전 주석은 업무보고를 통해 해양강국 건설을 강조한 바 있다. 또한, 시진핑 당 총서기가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위대한 중화민족 부흥 을 역설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임을 시사한다. 중국은 현재 동북아 국제정세를 냉전적 질서와 새로운 질서가 공존하는 과 도기적 상황으로 인식한다. 군사안보적으로는 미국의 패권이 지배하는 냉전적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반면, 경제적으로는 미국의 힘이 쇠퇴하고 중국이 미국의 경제적 힘을 대체하고 있는 전환기적 상황이라고 이해한다. 이러한 과도기적 상 황이 미국에 의해 주도되거나 미국에 유리하게 전개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 하 에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즉, 과거 도광양회( 韜 光 養 晦 : 몸을 낮추고 힘을 기르는 것)에서 벗어나 21세기는 유소작위( 有 所 作 爲 : 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나서 뜻을 이루는 것)의 시대 에 들어섰다는 정세인식에 따라 적극적인 대외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 시진핑 총서기는 미중관계의 기본 원칙을 신형대국관계 ( 新 型 大 國 關 係 )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즉, 미중간의 평등을 강조하고 핵심이익을 상호 존중하고 협의해 나가야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국제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 며, 과거와는 달라진 중국의 국제적 위상을 반영한 것이다(이태환, 시진핑 시대 중국 의 대외정책과 한반도, 정세와 정책 통권 제200호, 2012년 12월, p. 12). 시진핑 체제의 중국 이 대미관계에서 협력을 추구하겠지만 핵심이익이 충돌할 경우에는 갈등과 대 84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립이 심화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아태지역에서 한미 및 미일동맹 등 동맹네트워크를 강화하고 필리핀 및 베트남과의 군사협력을 증진하고 있으며, 인도, 미얀마 및 캄보디아 와의 관계 강화에 주력하고 있는 것을 중국 포위전략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인 식 하에 중국은 항공모함과 스텔스 구축함을 실전 배치하는 등 해군력의 비약적 인 발전을 추진하고 있으며, 과거 소극적인 연해방어전략에서 적극적인 근해방 어전략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이 지역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인 도양과 태평양으로의 진출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미 중관계가 한반도 안보에 미치는 영향 2013년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고도 긴장된 동북아 정세가 전개될 것으 로 예상된다. 미국에서는 제2기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했고 중국에서는 시진핑 체제가 등장했다. 일본에서는 아베의 보수정권, 러시아에서는 제3기 푸틴 체제 가 출범했으며, 출범 1년을 맞은 김정은 체제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주변국 모두 새로운 지도자를 맞이한 가운데 세계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세계 경제위기로 인한 보호무역주 의의 강화, 에너지 확보를 위한 자원개발 경쟁, 해양 영유권 분쟁의 격화, 기후변 화로 인한 식량가격의 폭등, 중동정세의 불안정,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국익 을 보호하기 위한 각국의 민족주의 경향 등이 국제질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 다. 이와 함께,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힘의 약화는 지역패권을 둘러싼 미 중 경쟁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한반도는 미 중경쟁의 최전 방에 위치해 있다. 미 중관계는 한반도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한때 한반도를 미국의 태평양 방어선에서 제외하는 애치 슨 라인(Acheson Line)을 선언했지만 북한의 남침이 있자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될 경우 일본의 안전이 위험해진다는 판단 하에 6 25전쟁에 참전하였다. 이후 한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85

반도에 미군을 주둔시키면서 공산세력의 팽창을 저지하는 최전선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중국 또한 한반도를 자본주의세력의 대륙 진출을 저지하는 완충지대(buffer zone)로 인식한다. 6 25전쟁 당시 김일성 정권이 붕괴하기 일보 직전 마오쩌둥 ( 毛 澤 東 )은 한반도 전체가 친미 자유민주주의 국가화 될 경우 중국은 자본주의 해 양세력의 직접적인 침투위협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참전을 결정했다 고 한다(Henry Kissinger, On China; 권기대 역, 중국이야기, 서울: 민음사, 2012, pp. 174-175). 마오쩌둥의 동의가 없었더라면 김일성이 남침을 감행하지 못했을 것이며, 중국 인민해방군의 6 25전쟁 참전이 없었더라면 한반도 분단상황은 벌써 종식되었 을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을 단적으로 입증하 는 대목이다. 미 중관계가 협력을 지향할 경우 한반도 안보정세는 안정을 유지 할 것이나 갈등과 대결을 지향할 경우 불안정성이 증가될 것임을 알 수 있다. 현 재의 미 중관계는 상호의존과 협력, 갈등과 경쟁이 공존하고 있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상황이다. 이에 더하여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개발과 핵실험, 그리고 외 부세계와의 소통을 차단하고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있는 김정은 체제의 속성 은 한반도 안보정세를 더욱 불확실하고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바마 2기 행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은 1기 때와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는 기존의 대화와 압박이라는 투 트랙정책 (two-track policy)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즉,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경우 대북지원이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대북제재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2012년 11월 19일 오바마 대통령의 양곤대학 연설). 이와 동시에 한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 압력도 더욱 거세질 것이다. 미국의 국방비 삭감으로 인해 국제평화 유지에 대해 동맹국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강요할 것이며, 주한미 군에 대한 방위비 분담 증가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보에 대한 우리의 부 담이 늘어날 것임을 의미한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 또한 한반도에 대해 후진타오 시대와 마찬가지로 변화 86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보다는 현상유지(status quo)를 선호하는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중국의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이라고 인식 한다. 이러한 인식 하에 중국은 1992년 한 중수교 이후 한반도에서 중국의 영 향력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으며, 이에 따라 남북한을 동시에 지지하는 전략을 견지해 왔다. 즉, 북한에 대해서는 정치 경제 군사적 지원을 지속함으 로써 북한체제를 안정시키고 북한에 대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동시에 한국에 대해서는 경제적 교류협력을 확대함으로써 영향력을 증대하고 있다 새로 출범한 시진핑 체제는 북한 요인으로 인해 미 중관계에 갈등이 증폭되 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에 찬성하 는 등 북한을 압박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오바마 2기 행정부와의 갈등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북한에 대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자제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중국의 압박으로 인해 김 정은 체제가 불안정해지는 것은 중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의 안정에 변화가 초래되 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 한반도 정세가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이다.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에서의 돌발사태로 인해 양국이 직접적인 대결상태로 들 어가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 이 막 종식된 상황에서 한반도 분쟁에 개입할 의지가 부족하며, 중국은 아직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능 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가 분단된 상태로 안정을 지속하 는 것이 양국의 최대의 이익이라고 인식하고 있는지 모른다. 통일한국이 다른 쪽의 배타적 영향권에 놓이게 되는 것은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과제 최근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국의 리더십 교체, 중국의 부상 및 미국의 상대적 약화, 협력과 경쟁이라는 이중구조 하에 지역패권을 둘러싼 미중간의 갈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87

등, 일본의 보수우경화 경향, 북한체제의 불안정성과 장거리미사일 및 핵무기 개발 등으로 한반도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제 갓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국제정세 하에서 남북관계는 물론 이며 주변국들과의 관계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한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미 중관계에서 전략적 유연성을 가지는 외교를 추 진하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상호의존과 협력에도 불구하고 지역패권 을 둘러싼 양국의 경쟁과 대립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힘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는 한국으로서는 양국의 갈등을 조정하고 협력을 확대 하는 것이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최선의 전략이 될 것이다. 즉, 한미동맹을 강 화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중국이 지역패권을 추구하지 않도록 역내 다자안보협력 기제를 활성화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 진할 필요가 있다. 둘째, 북한의 핵위협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억지(deterrence) 란 상대방에게 위협을 가함으로써 도발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주한미군에 전술핵을 재배치한다거나 선제타격 (preemptive attack)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부적절하 다. 전술핵의 재배치를 위해서는 미국의 전반적인 핵전략 및 동아시아 군사전략 수정이 필요하다. 또한, 국제법적으로 인정되는 정당한 선제공격이라 하더라도 북한으로부터 핵보복을 받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북한 전역을 사정권에 두는 장거리 정밀타격 무기체계(지상, 해상, 해저 및 공중 무기체계)를 확보함 으로써 억지력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대안일 것이다. 셋째,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으로서 북한의 체제변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북 한의 체제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제재와 지원, 위협과 대화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북한을 압박할 경우에는 인도적 지원을 포함한 정부 차 원의 모든 대북 지원에 대한 단호한 중단을 고려해야 하며, 지원할 경우에는 정 부 차원의 직접적 지원보다는 민간 차원에서의 지원을 추진하여 북한 주민과 직 접 접촉하는 대북지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중국 및 국제사 회를 통해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북한 사회에 지속적으로 투 88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입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문제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은 강력한 대북 억지력을 유지하는 가운데 북한을 개혁 개방하여 민주화시키는 것이다. 북한이 우리에게 위협이 되 지 않고 북한 주민들이 우리와 같은 자유를 누린다면 남북간 갈등과 대결, 적대 관계는 모두 해소될 것이며 한반도 안정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는 미국과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임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미국과 중국이 상호 의존과 협력관계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가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외교과제일 것이다.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89

Abstract Development Pattern of the US-China Relations and its Influence on Korean Peninsula Koo Bonhak Professor, Department of International Studies, Hallim University of Graduate Studies The international order of East Asia in the 21 st century continues to remain uncertain and unstable. The leadership of Korea s neighboring countries has changed. Although Kim Jung-un regime of North Korea has been stabilized, it is driving the international order of East Asia into crisis. The most prominent variable in its international order is the US-China relations, which show the rise of China and the weakening of US. China has strengthened its military power with a booming economic power since its laisser-faire. In particular, China has confronted USA s Supremacy in the Asia-Pacific area. So in the South China Sea and the East China Sea, it has carried out the massive show of force in the territorial battle with its neighboring countries like Japan, Philippines, vietnam and the like. The Obama Administration stresses the importance of the Asia-Pacific Area, declaring a reorientation of US foreign policy in the direction of Asia or a re-equilibrium policy US, though US is under the general cutback of U.S. troops. In order to confront China s military reinforcement in the Asia-Pacific area, the US has strengthened 90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cooperation with its allied nations and built a solid bond with south-east Asian countries. China thinks of the USA s reaction as a policy of encircling China and protests against it. Meanwhile, both US and China recognize the necessity of their cooperation well enough. China knows that the regional stability is indispensible to achieve its constant economic development. It also knows that it needs USA s cooperation for the purpose of the export of Chinese products to US as well as US capital inducement into China. USA, too, needs China s foreign exchange reserve which amounts to 3 trillion US dollars. And the economic cooperation with China, whose population is about 1.3 billion, is necessary to US. As shown above, even though US and China continue to show some conflict and competition of military and security, they have their dual structure which needs economic cooperation. Therefore, the US-China relationship is thought to have an influence on our security and economy. The policy of Obama s 2 nd term Administration toward Korean Peninsula isn t expected to be different from that of Obama s 1 st term administration. When it comes to North Korea s Nuclear bomb, the Obama administration will continue its two-track policy of conversation and pressure. But owing to the recent 3 rd nuclear testing of North Korea, Washington will not lift sanctions against North Korea for a while. And with US defense cuts, South Korea is obliged to participate in maintaining the international order actively and agree the high defense cost-sharing with US. Currently China gives great thought to maintaining the stable order of Korean Peninsula. Although North Korea s nuclear testing brings in sanctions, China does not want North Korea to get politically unstable. As China competes with USA and has a feud with Japan, China will show some interest in South Korea, laying great emphasis upon the importance of its economic cooperation with Seoul. Under the above situations, first of all, our government s foreign and national security policies should go ahead with the strategic flexibility in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91

US-China relations. Our best policy is to maximize our interests by reconciling the two countries in conflict and making them expand their cooperation. Second, we should have the ability to control North Korea s nuclear threat. It is necessary to maintain a strong alliance with the United States and check North Korea s nuclear threat, along with our ability to confront North Korea independently. We should introduce a long-range precision-strike weapons system which aims at the entire North Korea. Third, we need to plan a regime change of Pyeongyang as a more fundamental solution. In order to change their regime, we should pressure and support the regime along with all the possible means like sanctions, aid, threat, conversation, etc. At the same time, Seoul should seek ways to influx the market economy and liberal democracy into Pyeongyang consistently through China and other countries. 92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특 집 미 일 중 러 새 정 부 와 한 반 도 의 안 보 시진핑 정권의 대 한반도 인식과 정책 전망 이지용 * 들어가며 한국의 신정부와 중국의 신지도부는 출범 벽두부터 북핵 이라는 시험대에 들어섰다. 한 중 양국은 새로운 정치리더십이 들어서면서 양국관계를 보다 실 질적으로 내실화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특히 중국에서는 한국의 신정부 출 범이 한반도 안보의 안정과 한 중 관계 발전의 새로운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이 라는 전망과 함께 하나의 기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대 의 바탕에는 한국 신정부의 대북( 對 北 )정책 변화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북한변 수에 대한 고려는 상대적으로 작았던 것 같다. 한반도 안보문제가 악화된 원인 을 한국정부의 대북강경책과 한 미동맹의 강화로만 돌렸던 측면이 있었던 것 이다. 중국의 신지도부는 북한 김정은 정권이 2012년 12월 미사일 발사실험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교수. 건국대 정외과 졸, 미국 뉴욕주립대 정치학박사. 주요 저서: China-US Relations: Analytical Approaches and Contemporary Issues (공저) 등.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93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단행함으로써 한반도 안보환경에 먹구름이 짙게 깔린 상황을 맞이했다.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안보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북한과 한반도에서 불안한 안보환경이 조성됨으로써 대외환경을 안정적으로 관 리한다는 계획에 차질이 발생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번 사건의 경우 한반도 안보의 불안정을 야기한 원인이 북한이라는 사실은 중국도 부정할 수 없 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불안정한 안보환경이 조성될 때마다 한국의 침착하고 안 정을 우선시하는 대응을 요구하던 중국으로서도 이번만큼은 논리가 매우 궁핍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정책이 중국 에 대한 포위전략 강화책이라는 강한 불신과 우려를 갖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복 잡한 상황전개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북한발( 發 ) 한반도 긴장 조성에 대한 중국의 불편한 심경을 반영하듯, 중국 일각에서는 이제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에 대해 재고해야 될 때가 되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鄧 聿 文, The Financial Times, 2013년 2월 28일자). 한반도 안보환경의 악조건을 가지고 출범하게 된 중국의 신지도부가 앞으로 대( 對 )한반도 정책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는 한국에게 있어서도 초미의 관심사 이다. 중국 신지도부는 북한과 한국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인식 을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동력이라 할 수 있는 이해관계는 무엇인지, 이해관계의 변화가능성은 있는지 등의 여부를 파악하는 것은 한국이 중국에 대한 외교전략 을 전개하고 북한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중요하다. 따라서 중국의 대( 對 )한반도 정책 방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중국 신지도부 의 한반도 인식과 이해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신지도부의 인식과 이해구조, 그리고 그러한 인식과 이해구도를 제약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대내외 정치경제적 제약요인과 추동요인을 알아본다. 이러한 요인들을 바탕으 로 동북아 국제질서와 변화양상을 연동시키면서, 중국의 신지도부의 대한반도 정책을 외삽( 外 揷 )해 보기로 한다. 94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중국 신지도부 출범과 특징 2012년 11월 8일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이하 18차 당대회)가 개최되 었다. 18차 당대회에서 후진타오는 정치보고를 통해 집권 10년간의 성과에 대 한 평가와 함께 향후 중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정책을 제시했다. 정치보고는 전 반적으로는 2007년 개최된 17차 당대회 보고와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다. 다 만 대외관계와 관련해 주목을 끄는 대목은 에너지 자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해양강국의 의지를 피력했다는 것이다. 또한 대외관계에서 강대국으로서의 중 국의 위상과 역할을 강조한 점은 향후 중국의 대외정책 전개방향과 관련해 눈여 겨 볼 필요가 있다. 18차 당대회가 폐막(14일)된 다음 날 중공공산당 18기 1차 중앙위원회 전체회 의(이하 18기 1중전회)가 열렸는데, 18기 1중전회에서는 향후 최소 5년에서 10년 간 중국을 이끌어갈 중국공산당 최고지도부가 선출됨으로써 중국에서는 시진핑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치지도부 시대가 개막했다. 이번 중국 최고지도부 구성의 특징을 간략히 살펴보면 첫째, 상무위원 숫자 가 16차 당대회(2002년) 이후 9명에서 7명으로 다시 축소되었다는 점이다. 상무 위원 숫자가 7인으로 구성된 것은 최고의사정책 기구인 상무위원회가 집단지도 체제라는 특징을 감안할 때, 의사결정의 효율성 제고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둘째, 상무위원 구성이 태자당과 장쩌민 계파에 속하는 상하이파 중심 으로 편성(7명 중 6명)되었다. 최고지도부 구성에서 파벌(계파) 간 권력안배를 해오 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번 상무위원 인선에서는 태자당 및 장쩌민 계열의 상 하이파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함으로써 파벌 간 권력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 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하지만 파벌 간 권력투쟁과 파벌 편중인사가 중국 정치 엘리트 그룹의 불안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국공산당 내의 파벌 간 대립과 갈등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며 그동안에도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다. 현재 전개되 고 있는 파벌갈등은 이념과 노선보다는 각 파벌의 권력장악과 이해에 기반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때문에 이번에 나타난 파벌 대립과 편중된 인사가 향후 중 국공산당의 정책결정 방향에 큰 변화를 몰고 오지는 않을 것이다.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95

18기 정치국 위원 및 상무위원 구성표 정 치 국 상 무 위 원 정 치 국 원 성 명 나이 직 책 시진핑( 習 近 平 ) 59 리커창( 李 克 强 ) 57 중국공산당 총서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국가주석(2013년 3월 이후) 중국공산당 상무위원 국무원 총리(2013년 3월 이후) 2017년 이후 (19차 당대회) 장더장( 張 德 江 ) 66 전인대 상무위원장 퇴임 위정성( 兪 正 聲 ) 67 정협 주석 퇴임 류윈산( 劉 雲 山 ) 65 사상 및 선전담당 상무위원 중앙당교 교장 퇴임 왕치산( 王 岐 山 ) 64 중앙기율검사위 서기 퇴임 장가오리( 張 高 麗 ) 66 상무부총리 퇴임 류옌둥( 劉 延 東 )* 67 리위안차오( 李 源 潮 )* 62 현 교육문화 담당 국무위원 **국무원 부총리 현 중앙조직부장 **국가부주석, 외사영도소조 부조장 왕양( 汪 洋 )* 57 **부총리(산업 에너지 교통) 퇴임 마카이( 馬 凱 ) 66 **부총리(무역 금융) 퇴임 왕후닝( 王 滬 寧 ) 57 **부총리(외교) 류치바오( 劉 奇 葆 ) 59 중앙선전부장 쉬치량( 許 其 亮 ) 62 중앙군사위 부주석 쑨춘란( 孫 春 蘭 ) 62 현 텐진시 당서기 쑨정차이( 孫 政 才 ) 49 현 충칭시 당서기 리젠궈( 李 建 國 ) 66 현 전인대 부위원장 퇴임 장춘셴( 張 春 賢 ) 59 현 신쟝위구르자치구 당서기 판창룽( 范 長 龍 ) 65 중앙군사위 부주석 퇴임 멍젠주( 孟 建 柱 ) 65 정법위 서기 퇴임 자오러지( 趙 樂 際 ) 55 중앙조직부장 후춘화( 胡 春 華 ) 49 현 광둥성 당서기 리잔수( 栗 戰 書 ) 62 현 중앙판공청 주임 중앙보밀( 保 密 )위원회 주임 궈진룽( 郭 金 龍 ) 65 현 베이징시 당서기 퇴임 한정( 韓 正 ) 58 현 상하이시 당서기 * 정치국원 유임. ** 18차 2중전회(2월 26-28일)에서 결정되어 3월 5일 전인대에서 확정) 96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셋째, 신임 상무위원 7명 중 5명이 19 大 (2017년) 이후 모두 퇴임해야 하는 연 령이고 19 大 차기 지도부를 담당할 이른바 6세대 지도자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진핑/리커창 체제 이후가 될 2022년부터 중국을 이끌어갈 지도부에 대한 합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시진핑 집권 1기 (2013-2017년) 동안 파벌 간 경쟁이 지속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18 大 상 무위원 7명 중 시진핑과 리커창 만이 19 大 에 상무위원을 연임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차기 최고지도부 후보는 2017년 19차 당대회를 통해 결정될 것으로 보 인다. 넷째, 시진핑 신임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후진타오 로부터 넘겨받았다. 따라서 시진핑 신임 총서기는 명실공히 3대 권력인 당, 군, 정을 모두 장악함으로써 지도력을 행사하기 위한 권력기반을 기본적으로는 갖 추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시진핑 총서기의 권력 장악도와 영향력 행사 정도를 평가할 때, 이전 지도자들에 비해 권력이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물론 지도자 개인의 카리스마, 권력행사를 위한 제도적 제약, 그리고 증가하는 이익집단과 여론 등의 지표를 볼 때 이전 지도자들보다 권력 행사의 폭과 깊이 에 있어서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진타오 전임 총서기 겸 국가주석에 비해 현격 히 줄어들었다고 평가하기는 곤란하다. 시진핑은 3대 권력기반을 형식적으로나 마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권력행사 기반을 탄탄히 다져나가고 있 다고 평가할 수 있다. 먼저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의 숫자를 7명으로 줄이면서 후진타오 시기 저우융캉( 周 永 康 )이 휘두르던 정법위( 政 法 委 員 會 : 국내치안, 검찰, 법원 관 장) 권력을 장악했다. 상무위원이 아닌 정치국원인 멍젠주( 孟 建 柱 )가 정법위 서기 가 되면서 시진핑은 군부와 함께 국내치안 및 검 경 권력을 장악했다. 또한 최 근에는 국가 기밀과 각종 비밀공작 등을 담당하는 국가보밀( 保 密 )위원회에 측근 인 리잔수( 栗 戰 書 )를 임명함으로써 권력의 핵심을 확보했다. 신지도부의 출범과 특징을 통해 중국의 대내외 정책의 방향을 종합해보면, 신지도부가 안정적 권력기반 위에서 출범했다는 것이다. 중국 파워 엘리트 집단 내에 존재하는 파벌 간 경쟁과 갈등은 시진핑 집권 1기(2013-2017년) 동안 지속되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97

겠지만 이것이 중국의 정책결정과 방향에 주는 의미는 낮을 수밖에 없는 것이 다. 따라서 중국 신지도부의 대내외 정책과 대( 對 )한반도 정책의 방향성을 분석 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지도부가 헤쳐 나가야 할 중국의 주객관적 상황과 상황변 화, 그리고 그것과 맞물려 정책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신지도부의 상황인식 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신지도부의 도전과 극복 과제 시진핑과 리커창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신지도부가 이끌어갈 향후 10년 간 중국은 매우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다. 중국은 현재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국 제관계에서 개혁개방 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복잡하고 어려운 도전들을 맞이하 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향후 5~10년 동안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의 경제성장 모델을 새롭게 전 환하면서 중진국 함정 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수출지향 산업화 와 양적성장 방식이 한계점에 도달하면서 경제성장방식을 전환해야 하는데, 이는 정치체제 개혁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은 정치개혁을 과감 히 단행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또한 국내적으로 한계선상에 도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도농 지역 계층 간 빈부격차, 공산당 통치 정당성을 위 협하고 있는 부정 부패 및 부조리, 지속적으로 분출되고 있는 소수민족 분리독 립운동, 확산되고 있는 사회적 분규와 정치자유화/민주화 요구 등과 같은 문제 들은 점점 더 관리하기 힘든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중국 신지도부가 이러한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집정능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현실은 빈부격차 심화, 부정부패 만연에 따른 공산당 정당 성 약화, 사회적 다원화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확산에 따른 여론 영향력 증가 등 공산당의 집정능력을 더욱 약화시키는 요인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시진 핑 개인의 정치적 기반은 18기 1중전회를 통해 3대 권력요소(당 군 정)를 모두 장악한 그가 강력하고 효과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경우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겠 98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으나 이것이 시진핑 일개인의 주도권을 강화시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신 지도부의 정치적 기반을 고려해 볼 때, 권력 및 정책결정 과정은 이전보다 약화 된 정치권력 과 집단지도체제 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대외적으로 중국은 주변국들로부터 보다 강한 견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중국은 주변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할 필요성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 중국의 급부상하는 국력과 점증하는 공세적 대외행태는 주변국들의 대중국 견 제라인 구축을 추동해 오고 있다. 주변국들이 대중국 외적균형(external balancing) 전략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동맹체제 (hub-and-spokes system)이다. 특히 동 남 중국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과 주 변국들 간의 해양영유권 분쟁은 일본, 베트남과 필리핀 등 이해당사국들이 미국 과의 공동대응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끌면서 중국이 우려하고 있는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환영하게끔 만들었다. 주변국들의 중국견제 움 직임은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중국의 이해에 결코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중국은 현재 주변국을 지경학적으로 중화경제권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중국은 동남아에서 이른바 일축양익( 一 軸 兩 翼 : 난닝-싱가포 르 경제회랑을 축으로 양쪽의 범북부만과 메콩강 유역을 포괄하는 지역개발전략) 전략을 전개하 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남부와 동남아를 잇는 교통, 통신 및 산업 인프라스트 럭쳐를 구축해오고 있다. 즉, 정치경제적으로 주변부 국가들을 포용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 력을 약화시키고 주변국들과 우호적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또한 과거와 달리 높아진 중국의 세계적인 위상으로 중국은 대외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국제적 여론, 명분, 평판을 보다 많이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는 중국이 주 변국 외교에 있어서, 그리고 대미외교를 전개하는 데 있어서 제약요인으로 작용 할 것이다. 중국은 또한 대외적으로 국제 정치경제 환경변화에 대처해야 한다. 중국은 금융과 통상 분야에 있어 서방국가들의 다각적인 압력을 받을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 유럽 그리고 일본에서 진행 중인 양적 완화 정책이다. 이는 중국의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99

통상환경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또한 선진국들의 대중국 통상압력과 마찰 은 글로벌 경제둔화와 맞물려 더욱 강한 강도로 발생할 것이다. 중국은 국제금 융에서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 중에 있다. 위안화 국제화는 국제금융질서의 재편 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국제금융질서 변화는 결국 정치안보 문 제와 직결된 문제이다. 국제경제 권력의 재편요구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 가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중국은 국제금융, 통상질서 개혁과 이에 따른 새로운 규칙제정 과정에 따르는 강대국간 이해 조정과, 경쟁, 그리고 갈등을 관리해 나가야 한다. 또한 중국은 경제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량의 에너지/자원을 해외에서 확보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해외에너지, 자원은 전략적 의미를 갖게 된다. 누가 에 너지, 자원을 확보하느냐가 곧 정치, 경제, 군사적 힘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의 해외에너지, 자원 확보에 대한 견제가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이 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범위는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이 진출하 고 있는, 중동, 중앙아, 동남아, 아프리카, 중남미, 그리고 동 남 중국해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중국은 지역 강대국을 넘어 세계적 강대국으로 부 상함에 비례해서 이와 같이 다각적인 도전에 대처해야 하는 더욱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신지도부의 대외인식과 정책결정구조 변화 중국 신지도부와 젊은 세대 엘리트 그룹은 중국의 주객관적 국력에 대해 이 전에 비해 상당한 자부심과 자신감에 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자신감은 중국이 세계적, 지역적 수준에서 중국의 국력에 맞는 위상을 확보하고 영향력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중국 지도부의 인식의 변화는 1990년대 이후 개최되어온 중국공산당 당대회 정치보고에서 중국의 대외관계 에 관한 표명을 비교분석할 경우 뚜렷이 나타난다. 2012년 개최된 18차 당대회 정치보고의 특징 중 하나는 중국 국력에 대한 자신감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확연 100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히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보고에서는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영토 등 중국의 이익과 관련한 이슈에서 보다 강경한 태도를 취할 것임을 시사해주 고 있다. 중국 외교정책의 기조는 여전히 국내문제의 안정적 관리와 경제성장을 위한 우호적 국제환경 조성에 있다. 하지만 중국의 주객관적 국력이 상승함에 따라 대외적으로 보다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는 해외시장과 자원에 대한 의존도와 실질적인 투자가 증가함에 따라 이해관계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국력이 증가함에 따라 이익수호에 보다 강경하 게 대응하면서 마찰의 강도를 증가시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동아시아 해 양영유권 분쟁이다. 18차 당대회 정치보고에서 후진타오는 해양자원 개발능력 을 제고하고, 해양경제를 발전시키며, 해양환경을 보호하고, 중국의 해양권익을 수호하며, 해양강국을 건설하자( 提 高 海 洋 资 源 开 发 能 力, 发 展 海 洋 经 济, 保 护 海 洋 生 态 环 境, 坚 决 维 护 国 家 海 洋 权 益, 建 设 海 洋 强 国 ) 고 역설하면서 해양권익 보호와 해양강국 건설 을 위해 해군력을 증강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후진타오 18차 당대회 업무보고). 중국이 대외관계에서 강경한 행태를 보이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요 인은 국내여론 영향력 증가이다. 중국공산당은 강화되는 중화민족주의 및 여론 의 영향력에 취약해지고 있다. 또한 컨센서스 빌딩(consensus building) 에 기반한 집단지도체제는 일관된 정책도출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는 결국 외교정책 결정과정에서 국가의 장기적, 전략적 이익보다는 개별분파적, 근시안적 이해가 반영될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중국의 대외관계를 악화시키고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다. 중국의 대외정책에 있어 카리스마적 지도자 시기와 약화된 리더십 시기를 비교할 때 리더십 약화가 대외정책의 불안정성과 공격성 정도를 증가시켰다. 따라서 시진핑 시기의 약화된 정치권력 기반은 중국이 대외 관계에 있어 특히 주변국들과의 마찰발생 빈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01

시진핑 시기 신지도부의 대외정책 방향 중국공산당이 당면한 대내외적 과제와 권력기반 등의 변화를 감안했을 때 신지도부가 주력해야 할 과제는 국내 정치경제적 문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정 책결정의 최우선 순위를 국내문제 해결에 부여할 것이다. 대외정책은 안정적인 대외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향후 외교정책과 대 외적으로 표출되는 행태를 전망하는 데 있어 경계해야 할 것은 갈등 또는 협력 과 같이 단순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중국이 안정적 대외환경을 조성한 다는 기조를 바탕으로 대외관계를 전개한다는 것이 갈등과 마찰을 회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대외문제가 국내문제에 일률적으로 종속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국내문제 해결에 중점을 두면서 대외적으로 우호적 환 경을 조성한다는 것은 하나의 거시적 기조로서 시진핑 시기 중국 지도부 정책의 큰 틀을 설명하는 것이다. 시진핑 시기 대외관계 전개는 현상적으로 보다 복잡 하게 전개될 것이다. 신지도부 시기 동안 중국 대외정책의 기본적 특징을 살펴보면, 우선 세계적 수준에서 국제 정치경제질서에 대한 관여와 영향력 증가, 미국과의 경쟁 및 갈 등요인이 증가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미 중 관계를 안정 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시진핑 시기 미 중 관계를 중국 측 입장에서 설명하는 것이 이른바 신형대국관계( 新 型 大 國 關 係 : 새로운 강대국 관계) 이다. 신형대국관계는 중국과 미국이 동등한 파트너로서 상호존중하고 협 력해 국제이슈를 관리한다는 의미이다. 앞으로의 미 중관계는 과거 냉전시기 적대적 미 소관계와 같이 서로 체제를 전복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 공영하면서 국제적 이슈를 공동으로 관리하는 강대국 관계라는 의미에서 신형 이라는 수사를 붙였다. 물론 미국이 글로벌 이슈를 관리하는 데 중국을 동등한 파트너 로 볼 것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중국의 대( 對 )미정책 기조가 신형 의 의미에서 볼 수 있듯 이 대립 보다는 공존 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의 대립적 관계를 원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102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미 중 관계는 외형적으로 중국의 강대국화와 미국의 견제라고 하는 경쟁심 화로 정의될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관리된 범위 내의 경쟁과 갈등, 실리추구 실용주의 접근 의 양상을 띨 것이다. 범위 내 경쟁과 갈등 이라고 하는 것은 경 쟁심화에도 불구하고 미 중 간 경쟁이 극단의 양상으로 전개되지는 않을 것이 라는 점을 의미한다. 미국과 중국은 수교 후 20년 이상 경제적, 정치적 관계를 긴밀화하면서 상호이해가 증가했고, 그동안 발생해 온 양국 간 갈등 사례들을 다뤄오면서 양국관계를 다루는 갈등관리 기법을 정교화, 세련화해 왔다. 중국은 지속적 경제발전을 위해 안정된 국제환경을 조성한다는 외교정책 기조를 유지 할 것이고, 미국 또한 현재 일차적인 관심사항인 경제회복에 역점을 둘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미 중 양국은 이를 위한 실리적 외교정책을 전개할 것이고 갈등보다는 상호이익을 취하는 데 역점을 둘 것이다. 시진핑 시기 중국은 미 중 간 직접적 충돌발생은 가급적 회피할 것이다. 수면 위에서 미국과 이해충돌이나 마찰이 발생할 경우 수면 아래에서는 타협안 도출을 통해 종국적으로 사태를 무 마하고 현상을 관리해 나갈 것이다. 지역적 수준에서 중국은 지역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그에 걸 맞는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주변국들을 중국의 영향력 내 로 편입시키기 위해 개별국가들에 대한 일대일 포섭외교 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 다. 끝으로 시진핑 시기 중국 대외관계 전개에서 주목해야 할 사항은 중국의 국 제관계사를 돌이켜 볼 때도 새로운 양상이라 할 수 있는 해양강국화 이다. 그런 데 중국의 해양으로의 진출은 불가피하게 주변국들과의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다. 신지도부 시기 중국 대외관계 변화는 결과적으로 지역수준에서 실질적으로 표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변국에 대한 외교정책과 전략, 그리고 발생 이슈를 둘러싼 주변국과의 관계 및 관리방식 등에서 중국 주변국들은 중국의 강대국 외 교를 실질적으로 체감하게 될 것이다. 특집 미 일 중 러의 새정부 등장과 한반도의 안보 103

신지도부의 대( 對 )한반도 인식과 정책 중국의 신지도부의 출범이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인식과 이해가 변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 국가와는 달리 중국공산당 일당독재가 유지되는 관계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신지 도부는 새로운 리더십 집단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중국공산당에서 성장하면 서 이전의 주요 정책형성에 관여하고, 학습하고, 그리고 집행해 온 집단이다. 또 한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과거를 계승해 미래를 개척한다는 의미의 계왕개래( 繼 往 開 來 ) 의 전통을 지켜나가고 있다. 물론 덩샤오핑을 필두로 하는 개혁파가 집권하면서 중국은 개혁개방 이라고 하는 정책적 전환을 경험했다. 또한 덩샤오핑 이후 지도부의 변화에 따라 정책 적 변화는 분명히 있어왔다. 장쩌민이 성장을 중시했다면 후진타오의 경우는 균 형발전과 분배를 보다 강조했다.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후진타오는 삼린정책((선 린( 睦 隣 ), 안정( 安 隣 ), 공동발전( 富 隣 )) 을 주창하면서 주변국들에 대한 정책을 보다 강화 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가 정책의 급격한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국내정 책에서 성장 을 강조하는 기조에도 변함이 없었고, 대외정책에서 덩샤오핑이 역 설한 전략적 기회의 시기에 도광양회( 韜 光 養 晦 ) 를 통해 우호적 대외관계를 조성 한다는 기조 역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신지도부의 정책적 강조점이 분배 를 더욱 강조하고 있으나 이것이 성장 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덩샤오 핑 이후 정책변화의 성격은 중국이 처한 주객관적 국력과 상황변화에 맞추어 정 책적 강조점이 변화해 온 것뿐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변화는 시진핑 시기에도 변함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외정책을 큰 틀 에서 볼 때 이른바 신형대국관계를 모토로 미국과의 갈등을 가급적 회피하면서 점차적으로 중국의 대외적 영향력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국제관계를 전개할 것이다. 주변국에 대해서도 삼린정책을 유지하면서 자국의 영향력과 해양에서 의 이익을 서서히 도모하는 신중한 행보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 대 한 인식과 정책 또한 같은 맥락에서 연속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한반도에서 중국이 가지고 있는 전략적 이해는 기본적으로 중국의 안보에 104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한반도가 중국에 적대적인(비우호적인) 세력의 영향력 아래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보다 바람직한 상황전개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 친( 親 )중국적 한반도이다. 한반도가 중국의 영향력 하에 소속되는 것, 또는 중국에 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서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 이해를 바탕으로 중국 이 한반도에서 전개하고 있는 정책의 기본적 기조는 한반도 안보환경의 현상유 지이고, 정책이 지향하는 목표는 현상유지 플러스(+)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첫째, 남 북 관계 안정을 통한 한반도 안보의 안정이다. 둘째, 북한의 현 상유지이다. 그리고 정책적 지향점은 북한정권이 유지되면서 개혁개방으로 나 오는 현상유지 플러스(+)이다. 셋째, 한국과의 관계 강화이다. 한국에 대한 중국 의 궁극적인 전략적 목표는 한 중 관계를 더욱 강화해 한 미동맹을 약화시키 고, 이를 통해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제어하고 중국 중심의 동북아 안보 를 확고히 할 수 있는 발판을 공고히 구축하는 현상유지 플러스(+)이다. 중국 지도부가 북한정권에 가지고 있는 인식은 세대가 변하면서 바뀌고 있 는 것이 사실이다. 이념과 체제의 동질성을 바탕으로 북한을 혈맹으로 인식했던 과거의 인식이 2000년대 들어 점차 실질적 이해에 기반한 일종의 거래 관계로 변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과 전개하는 경협 또한 더 이상 인도적, 일방적 지원이 아니다. 북한의 경제적 가치를 보고, 경협이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수 있도록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에 제공하고 있는 경제 적 지원 또한 북한이 중국에게 가지고 있는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이는 북한 역 시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바꾸어 생각해보면, 북한이 중국 에 전략적 가치를 더 이상 가지지 못할 경우 중국은 언제든지 북한을 버릴 수 있 음을 의미한다. 경협 또한 현재 고립되어 있는 북한의 상황을 역이용해 중국 측 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개하고 있으며, 북한은 이러한 중국의 접근을 경계하면서 협상이 결렬되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안보적 측면에서 북한정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 다. 오히려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미 중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것과 정함 수 관계를 이루면서 증가할 것이다. 2013년 2월 북한이 3차 핵실험을 단행하면 서 북핵의 성격 자체가 바뀌었다. 북한의 핵무기 실전배치가 가시화되면서 미국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05

은 본토가 위협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북핵의 전략적 의미와 북핵을 둘러싼 전 략적 지형도가 바뀌게 된다. 미국은 북핵을 막기 위한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한 국,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로 확장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전개의 직접적 피해자는 다름 아닌 중국이다. 미국과의 전략무 기 경쟁에서 비대칭적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핵무장 요구가 분출할 수 있고, 결국 동아시아 핵확산의 압력에 중 국이 노출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북핵 자체가 중국에 위협을 주지는 못하지 만, 북핵의 전략적 의미로 인해 어떻게 보면 중국이 직접적 피해자가 되는 형국 이 전개된다. 이러한 상황전개에서 북한이 핵실험과 핵무장을 일방적으로 계속 추진하게 되면 북한은 중국에게 갖는 전략적 가치는 자산 과 부담 에서 부담의 측면이 더 증가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핵과 관련해 북한에 강한 압력을 행사하려고 하겠지만 결과적으 로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시스템이 한반도까지 확장돼 구축되는 것과 동아시아 핵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방향으로 외교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에 대한 중국의 이해방정식은 미 중 관계 함수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인식은 안보와 관련해 큰 변화를 보이고 있지 않 다. 중국 지도부는 한국을 여전히 한 미 동맹의 틀 내에서 사고하고 있다. 즉 한 미 동맹을 안보의 축으로 하고 있는 한국은 미국에 종속적이라고 보는 것이 다. 따라서 한반도가 한국주도의 영향력 내로 흡수된다면, 이는 중국이 현재 북 중 경계선에서 미국과 직접적으로 대면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과 중 국의 전략적 경쟁이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이 결코 맞이하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다. 신지도부 시기 동안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가져 가야 한다는 기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증가하는 중국의 국력 을 반영하면서 동아시아를 중화권( 中 華 圈 ) 으로 공고히 구축하려는 노력을 경주 할 것이다. 아마도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지향하는 바는 중국식 먼로 독트린 (Monroe Doctrine) 을 암묵적으로 선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지점이 바로 중국 이 한국을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106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중국 지도부는 이를 위해 한국에 대한 일종의 포섭( 包 攝 )외교 를 지속적으로 강화, 전개할 것이다. 2012년 11월 18대( 大 )가 끝나자마자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새로 선임된 정치국원들을 해외로 파견하면서 중국 신지도부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중국 파견단이 제일 먼저 방문한 국가는 다름 아닌 한국이었 다. 한국의 신정부 들어 중국은 특사파견을 제일 먼저 요구했고, 신정부는 요청 순서 대로 특사를 파견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중국에 특사를 파견했다. 한국 대 통령 취임식에는 과거 정부보다 격을 높여 중국 여성 최고위직이자 정치국원인 류옌둥( 劉 延 東 ) 국무위원을 사절단으로 파견했다. 한국에 대한 각별하고도 세심 한 예우가 엿보인다. 이러한 중국의 태도에 대해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시진핑과 리커창, 중국의 두 최고지도자는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고, 한국 인사들과의 관계를 지 속해오고 있는 특징이 있다. 특히 시진핑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 등을 배경 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중국 최고지도부의 한국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과거 지 도부에 비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지방 성( 省 )과 시( 市 ) 책임자로 있던 시기 는 한국과 중국의 경제협력이 활성화될 때였다. 그 당시 한국의 투자가 담당 지 역의 경제발전에 많은 공헌을 한 것 또한 사실이다. 경제발전이 최대의 화두이던 때에 실무 담당자로서 한국의 기술과 발전경험을 배우고 적용시키고자 하는 노 력을 하면서 한국인과의 관계와 한국에 대한 이해의 폭이 확장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을 근거로 중국 지도부가 한반도와 한국에 갖고 있는 전략적 이해가 바뀔 수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국제 구조적 측면에서 미 국의 아시아 중시정책(pivot to Asia)과 미 중 경쟁 강화, 중 일 갈등 고조, 그리고 일본 호주 필리핀 한국 등을 포함하는 미국의 동맹체제(Hub and Spokes system)가 확대 강화되는 가운데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이 증가한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 다. 중국 지도부에서는 이명박 정부 기간 동안의 한 중 관계가 냉각되었던 것을 재검토하고, 동북아 국제환경 변화와 중국의 대외정책 방향을 설정하면서 한국 의 전략적 가치에 대해 재평가하는 작업을 거쳤을 것이다. 중국측 입장에서 보 면, 한국에 대한 중국 외교정책의 목표라 할 수 있는 한국의 친중화( 親 中 化 )와 그 결과인 한 미동맹 약화를 통해,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동맹국가들의 대중국 포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07

위전략(중국측 인식)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 신지도부 는 한국에 대해 적극적 외교정책을 전개하고 관계강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즉 인식의 변화보다는 이해구도의 변화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한반도에 가지고 있는 이해구조는 동북아 국제관계와 맞물려 쉽게 변경되지 않을 것이다. 최근 중국 싱크 탱크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북한카드 버리기 는 여전히 소수의견일 뿐이다. 파이낸셜 타임즈(The Financial Times, 2013년 2월 28일자)에 기고된 글은 중국의 의견을 대표한다기 보다는 북한을 겨냥한 측면 이 없지 않다. 북핵실험과 관련해 중국 국민들의 여론이 신문에 발표되는 것 역 시 과대해석해서는 안 된다. 한반도에서 안정적인 안보환경 유지에 이해가 있는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핵도발 자체에 대해 반대하고 있지만, 북핵으로 북한정권 의 안정이 위협 당하는 상황전개를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다. 물론 중국 지도부 는 북핵이 동북아 전략무기 지형도를 바꾸어 놓음으로써 중국에 직접적 위협으 로 귀결되는 상황에 매우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그만큼 북한 김정은 정권에 직 간접적인 압력을 보다 강하게, 그리고 다양한 수준에서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이해로 인해 결과적으로 북핵이 국제문제화 될 경우 에는 북한의 안정을 위협하는 수준의 제재에 반대할 것이다. 또한 동아시아에서 핵확산과 미국의 미사일방어시스템(MD system)이 구축되는 상황에 강하게 반대 할 것이다. 시진핑 시기 한국과 중국은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더욱 밀착되고 교류가 활발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안보영역에서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이해구 조는 쉽게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한반도에서 북한에 의한 안보 환경 악화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이전 시기 중국 지도부가 보여준 태도를 반복해 서 다루어야 하는 과제를 갖게 될 것이다. 맺음말 한 국가의 인식 과 이해 는 바뀔 수 있는 것일까? 한국은 중국의 한반도에 대 108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한 인식과 전략적 이해구조를 한국의 국익에 맞게 바꿀 수 있을까? 한반도 통일 과 안보문제 발생원인인 북한의 정치적 문제와 미 중관계 라고 하는 국제권력 구조 맥락에서 중국이 북한에 가지고 있는 이해를 고려한다면, 중국의 전략적 이해 를 바꾸는 일은 한국이 할 수 있는 능력 범위를 벗어나 있다. 그렇다면 중 국 지도부의 인식 의 변화가능성은 어떠할까? 인식 과 이해구조 와의 (선후)관계 를 따지는 것을 떠나, 인식의 변화는 중요하며 가능하다. 인식의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중국이 한반도에서 남 북 둘 중, 한 국가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올지 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는 그러한 경우에 한반도에서 중국이 수용할 수 없는 최 저한계선 을 뚫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즉, 이익과 비용 계산에서 판단 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인식 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인식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미 중 전략경쟁과 완충지대로서의 북한이 라는 국제안보구조 상의 이해구조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바라보는 입장이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안보에 있어 한 미 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이 중국에 적 대적인 국가가 되지 않는다는 것과 그러한 이유에 대해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노 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미 안보 외의 영역에서 중국이 한국을 바라보는 인식에 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 중 수교 20년을 거치면서, 그리고 경제적 상호의존 도와 사회문화적 교류가 확대 심화되면서 한국을 바라보는 인식에 변화를 가 져왔다. 또한 한국과 중국 정부당국자 간 실무협의회와 학자들 간의 활발한 민 간 학술교류를 통해 각자의 입장에 대해 많은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서로에 대 한 오해와 불신이 줄어든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보와 관련해 서 중국이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불신의 수준은 여전히 깊다. 이를 푸는 것이 한반도의 안정과 장기적 관점에서 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한국에게 남겨진 과제 이다.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09

Abstract Prospect on the Xi Jinping Government s understanding toward Korea and policy Lee Jiyong Assistant Professor Korea National Diplomatic Academy(KNDA) Institute of Foreign Affairs and National Security (IFANS) New government of Korea and China has faced challenge North Korea Nuclear from the start. Additionally, how China is going to solve the Korea Peninsula Policy under unfavorable security environment problem of North and South Korea is also a pressing matter in Korea. Structural understanding and awareness of Korea should be preceded in order to understand Korea Peninsula of China s new government. In other means, South Korea is ought to apprehend that if the New Government has any recognition of North Korea and South Korea, or what is an interest that can form and transform the recognition power and potentiality of an interest change. This article will look into awareness and understanding structure of new government, and also political constrain and promoting causes which can restrict or change these in both domestic and foreign matter. Based on these factors, it links East Asia s international order and change shape appearance in line and extrapolate toward Korea peninsula policy of China s new government. This raises a need to change the China s leadership s recognition about Korean Peninsula and Korea. 110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특 집 미 일 중 러 새 정 부 와 한 반 도 의 안 보 북 중관계의 변화 가능성과 한 중관계 한석희 * 한반도 주변국의 리더십 교체와 변화에의 기대 일반적으로 북중( 北 中 )관계와 한중( 韓 中 )관계는 서로 상반된 입장, 즉 제로섬 (zero sum)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즉 중국과 북한의 관계 가 밀착되면 한국과 중국관계가 소원해지고 반대로 한국과 중국이 원활한 관계 를 유지하면 북중관계에 문제가 생긴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이 수교 한 1992년 이래 20년간 중국과 한반도의 관계를 검토해 보면 한중관계와 북중 관계를 제로섬의 관계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별로 없다. 물론 천안함 연평도 사태 때와 같이 중국이 일방적으로 북한의 편을 들면서 한중관계가 악화되는 경 우를 한중관계와 북중관계의 제로섬적 상황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부교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 연세대 대학원 정치학석사, The Fletcher School of Law and Diplomacy 외교학석사, 외교학박사. 미국 플래처대 North Pacific Program 위원, 중국 북경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중국 사회과학원 아세아태평양연 구소 특임연구원, 연세대 국제대학원 부원장 등 역임.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11

두 사건은 그렇게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며, 오히려 한미관계, 미 중관계, 북미관계 등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가 서로 얽히면서 만들어진 외교적 비극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한국과 북한 모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국 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즉 한국과 북한 중 어느 한 국가와의 관계를 강 화하기 위하여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희생시키는 것은 중국의 국익에 반하기 때 문에 중국은 가급적 양자관계를 서로 독립적으로 관리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한중관계와 북중관계는 제로섬이 되기 힘들다. 이런 중국의 입장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고민을 하는 한국의 입장 과 흡사하다. 즉 정치 안보상의 동맹국인 미국과 최대 교역국인 중국 사이에서 미 중과의 관계를 동시에 원만하게 유지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것 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중국은 한중관계와 북중관계를 인과관계의 틀 속에서 제 로섬적 시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양자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 한다. 중국이 항상 남북관계의 개선을 강조하고 나서는 것도 사실 한중관계와 북중관계를 동시에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최근 한반도와 그 주변국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리더십 교체가 북 중관계와 한중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2011년 12월 김정일의 갑작스런 사 망과 그에 따른 김정은의 부상으로 북한에서 리더십 교체가 일어난 이후, 1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미국, 중국, 한국에서 모두 리더십 교체가 이루어졌다. 2012 년 11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하여 그의 2기 행정부를 시작하고 있으며, 중국도 제18차 당 대회를 통하여 최고지도자를 후진타오( 胡 錦 濤 )에서 시 진핑( 習 近 平 )으로 교체하였다. 2012년 12월 한국에서는 박근혜 후보를 제18대 대 통령으로 선출하였다. 이러한 리더십 변화는 분명 지역안보환경 변화의 주요원 인으로 작용할 것이며 따라서 북중관계 및 한중관계에서 일정 수준의 변화가 기 대되고 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동북아시아 각국은 리더십 교체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대외정책에서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 김정은이 북한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한지 1년이 지나는 동안 그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북한 내에서 자신 112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의 권력을 확립한 것으로 보이며, 별다른 정치적 사건 없이 북한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온 듯하다. 그러나 기대했던 개혁 개방정책의 추진이나 핵 포기와 같은 대담한 노선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북한주민들은 여전히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그 동안 오히려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돌파구가 될 수 있었던 2.29합의를 광명성 3호 로켓발사로 무효화함으로써 미국과의 대화가능 성을 스스로 차단했다. 사실 미국의 입장에서는 24만톤의 대북 식량지원(영양지 원)을 받는 대가로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을 중단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복귀시키는 한편 핵 미사일 시험을 유예(임시중단)하기로 합의한 후 2 달 만에 이를 파기한 북한과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기 쉽지 않은 상태이며, 이러 한 불신의 관계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도 대북한 정책에서 별다른 변화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 두 번에 걸친 북 한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여전히 6자회담에 의존하여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대북 경제지원 및 김정은 정권에 대한 정치적 보 호를 통하여 북한정권의 생존을 보장하고 있다. 중국의 다양한 자극에도 불구하 고 북한은 여전히 개혁 개방을 거부한 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자국정권의 연장을 시도하고 있으며, 국가발전은 거의 포기한 채 협박과 기만, 그리고 불법 에 의존하여 동북아시아 안보에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도 새로운 대 통령을 선출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대북정책 및 대외정책에 새로운 정책이 반영되지 않고 있으며, 혹시 반영된다 하더라도 박근혜 정부의 남북관계가 급격 한 변화를 나타낼 것 같지는 않다. 3차 북핵실험과 북중관계의 균열 조짐 유엔 제재 과정에서 보인 중국의 태도변화 이러한 상황에 새로운 변화의 조짐을 끌어낸 사건은 2012년 말 북한의 장거 리 미사일 발사 및 그 뒤를 이은 3차 핵실험이었다. 우선 북한은 12월 12일 대륙 간 탄도미사일급 장거리 미사일 은하 3호를 발사했으며, 그 해 4월 광명성 3호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13

의 실패를 설욕하듯이 광명성 3호 2호기를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시켰다. 북 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성공은 동북아시아 안보에 상당한 위협으로 인식되었 다. 북한은 지난 30년 동안 지속적으로 미사일을 개발해왔고 또한 강성대국의 완성을 위한 방편으로 핵과 미사일 기술을 축적해 왔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지역국가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성공을 자국에 대한 중대 한 안보위협으로 인식하였다. 이에 따라 유엔 안보리는 2013년 1월 22일 북한 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고, 안보리 결의 1718호(2006) 및 1874호(2009)에 이어 대북 제재를 확대 강화한 안보리 결의 2087호를 이사국 만장일치로 채택 하였다. 그러나 이번 안보리 결의안 통과와 관련하여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중국과 북 한의 양국관계에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우선 지금까지 유엔에서 통 과되었던 안보리 결의안은 모두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제재 결의안이었으나, 이 번 2087호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제재 결의안이라는 특징을 가 지고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핵실험도 아니고 위성 을 발사한 데 대하여 중국 이 안보리 추가제재에 동의했다는 점에서 섭섭함과 동시에 분노를 느끼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북한의 입장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된 직후 발표된 북한 의 성명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북한은 2013년 1월 23일 외무성 성명을 통하여 미국의 가중되는 대조선 적대시정책으로 6자회담, 9 19공동성명은 사멸되고 조선반도 비핵화는 종말을 고했다 며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대화는 없을 것이라 고 주장했다. 성명은 또한 미국의 제재압박 책동에 대처해 핵 억제력을 포함한 자위적인 군사력을 질량적으로 확대 강화하는 물리적 대응조치를 취할 것 이 라고 발표하면서 3차 핵실험 가능성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이러한 북한의 공식적인 성명은 북 중간의 갈등을 표면화하는 요소로 작용 하고 있다. 왜냐하면 북한의 성명내용 대부분이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반대되 는 주장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선반도 비핵화의 종말, 6자 회담의 사멸, 핵실험 가능성 등의 발언들은 중국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며, 게다가 이러한 성명들이 1월 23일 시진핑 총서기가 한국의 박근 혜 대통령 당선자의 특사단을 만난 바로 직후에 나왔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114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더하고 있다. 시 총서기는 한국 특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핵 미 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필수 요건이라는 것이 중국의 일관된 입장 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시 총서기의 발 언이 공표되자마자 이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성명을 곧이어 발표하였으며, 중국 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이러한 행동은 향후 10년을 이끌고 갈 중국의 새로운 총서기의 체면을 깎는 의도적인 행동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3차 핵실험은 한반도와 그 주변지역에 또 한 번의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작용하였다. 북한은 20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단행하였으며, 미 국을 겨냥한 높은 수준의 핵실험 을 하겠다고 공언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오바마 대통령의 미 의회 연례 국정연설을 하루 앞두고 핵실험을 실시하였다. 우리 정 부는 즉각적으로 이번 핵실험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718호, 1874호, 2087호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는 점을 확실히 밝혔다. 그 동안 북한의 핵실험 불용이라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왔던 주변국들도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 한 반대의사를 분명하게 확인했으며, 북한의 핵실험을 규탄하고 북한에 대한 제 재를 규정하기 위하여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에 돌입하였다. 일반적으로 안보리 제재안과 관련하여 가장 핵심적인 국가는 중국이다. 중 국은 지금까지 핵실험에 대해서는 안보리 제재안에 동의해 왔지만, 그 외의 도 발행위에 대해서는 안보리 제재에 협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 측면에 서 본다면 지난 12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안보리 제재안에 중국이 동의 했다는 점을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현 시점에서 중국은 핵실험에 따른 제재안 강화에 동의할 것이다. 핵실험에 대한 중국의 민감한 반응 배경 중국이 북한 핵실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한반도의 비핵화가 지역평 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이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화의 의미는 북한 핵에 대한 반대뿐만 아니라 남한의 핵 보유 가능성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지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북한의 핵실험 장소인 함경북도 길주 군 풍계리가 중국 국경에 너무 근접해 있다는 점도 중국에게는 부담이다. 중 북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15

국경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북한 핵실험의 진동에 불안감을 느낄 뿐 아니라 실험 후에 발생하는 방사능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으로서 는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라도 북한 핵실험에 정면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다. 특 히 북한의 이번 3차 핵실험은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거듭나는 기회일 뿐 아니라, 핵탄두 소형화 과정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의 입장에 서는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상황에서 미국 및 국제사회로부터의 압력 및 제재, 그리고 동북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나타날 수 있는 핵 도미노 현상에 대 하여 주의깊게 그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입장에서도 북한 핵실험을 사전에 저지하는 것을 중국의 국 익에 최선이라고 인식하였으며, 이에 따라 중국은 이번 3차 핵실험을 사전에 막 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한 듯 보인다. 중국은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감수해 가면서 지난 1월 말 주중 북한대사와 공사를 3차례나 초치해 3차 핵실험에 대한 반대의견을 북한에 확실하게 전달했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이 아무리 북한에 대 한 압력을 행사하더라도 중국은 북한 핵실험을 근본적으로 저지할 수 없다는 데 에 있다. 북한에 매년 식량 30-40만 톤, 원유 50만 톤을 원조하고 있는 중국은 북한 김정은 정권의 생존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과 함께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 고 있지만, 북한에 그 영향력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정권의 붕괴를 원치 않는 중국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북한에 대한 지원을 지속해 왔으며, 국제 사회로부터의 제재가 북한정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완충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중국은 근본적으로 북한 핵실험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효과적 인 저지 방안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북한은 자국이 핵실험을 한다 하더라도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물론 북한 의 핵실험 직후에는 다소간의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겠지만, 이러한 갈등적 관계 는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는 다시 원만한 관계로 회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 한은 중국의 압박을 그다지 심각하게 우려하는 것 같지 않다. 예를 들어 중국은 북한의 첫 핵실험 후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반대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핵실험을 실시했다 고 강하게 비판하였지만, 1년 정도가 지난 후에는 양국관계를 정상화 116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시켰다. 2차 핵실험 때에는 또 다시 핵실험을 실시한 것을 결사 반대한다 는 1 차 핵실험 때보다는 보다 완화된 입장을 표명하면서 오히려 5개월 정도 만에 관 계를 정상화시켰다. 이와 같은 전례를 검토해 보았을 때,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결행했지만,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근본적으 로 변환할 수 없으며, 따라서 과거와 같이 일정 기간의 갈등상태가 지속된 후 관 계정상화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북한의 이번 핵실험을 계기로 제기되는 또 한 가지 특징은 이번 핵실 험이 장기적 인 차원에서 중국의 대북정책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기 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의 비밀주의를 고려 해 볼 때, 이러한 주장은 아직까지는 가능성 에 무게를 두고 조심스럽게 제기하 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소수이긴 하지만 중국 내부에서는 수정주의적인 주장이 대두되고 있으며, 검토 차원에서 그러한 문제들을 제기해 본다면, 우선 중국은 북한 핵실험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영향력에 한계를 느꼈으 며, 따라서 앞으로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치명적인 요소로 작용할 북한의 대남도발을 저지할 수 있는 능력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 상당히 부담을 느끼는 듯이 보인다. 사실 지난 60여 년 동안의 북중관계를 살펴볼 때, 북한의 생존을 위하여 중국만큼 노력한 나라도 없다. 그러나 북한정권을 위해서 지속적인 지원 을 해 왔던 중국의 입장에서는 때때로 중국을 난처하게 만드는 북한이 야속하기 도 하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하는 듯하다. 게다가 이번 핵실험이 중국의 지속적 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실행되었기 때문에 중국은 자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북한이 작년 12월 은하 3호 장거리 미사일 발사 성공에 이어 3차 핵실 험에 성공하여 인도와 파키스탄에 이어 NPT(핵확산 금지조약)체제 밖의 실질적 핵 보유국이 된다는 점도 중국의 불편함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 듯하다. 비 공식적이긴 하지만 핵보유국이 된 북한이 중국을 직접적으로 적대시하지는 않 겠지만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더 약해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보인다. 게다가 인도 파키스탄과는 달리 북한은 핵을 빌미로 미국을 협박하면 서 협상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중국은 미국과의 조율 속에서 북한 핵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17

처리를 시도해야 한다. 물론 중국의 부상과 국제사회에서의 역할 강화에 따라 중국의 안보에 대한 북한의 완충지대적 효과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 지만, 핵을 가진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놓고 중국은 다시 한 번 심각한 고민을 시작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긍정적 전환기를 맞은 한중관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중국의 우호적 시각 북중관계와 달리 한중관계는 새로운 긍정적인 전환기를 맞고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북중관계와 한중관계는 서로 독립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따라서 북 중관계의 복잡성과는 달리 한중관계는 비교적 순탄하게 새로운 5년을 맞을 것 같다. 우선 지난 20년간의 성공적인 관계발전을 바탕으로 새로운 20년을 맞이 하면서 한국과 중국은 모두 희망적인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 원인 중의 한 가지 는 양국 모두 새로운 지도부가 출범한다는 것이다. 2012년 11월 시진핑은 제18 차 당 대회를 통하여 총서기의 지위에 등극하였으며, 중국의 대내외에서는 그의 새로운 리더십에 희망적인 기대를 걸고 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12월 19일 한 국에서는 박근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며, 그는 유교사회 내 최초의 여성대 통령으로 또 신뢰와 화합의 심벌로 국제적인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국과 중국 의 국민들은 지난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한중관계가 불편하게 유지되어왔던 것 을 말끔히 해소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과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주기를 바 라고 있다. 특히 2013년은 한중관계의 새로운 20년을 시작하는 첫 해라는 측면에서 한 중 양국 국민들의 기대가 높으며,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듯이 양국관계의 미래는 밝아보인다. 그 예로 한국과 중국은 2013년 벽두부터 모두 특사를 상호 교환하 였으며, 이를 통하여 향후 양국관계를 우호적으로 만들어 가기로 다짐하였다. 우선 중국은 2013년 1월 9~11일까지 장즈쥔 외교부 부부장을 한국에 특사로 보내 박근혜 당선인과 만나 후진타오 국가주석 및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의 친서 118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를 전달하고, 한중간의 관계강화 및 북한정세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였다. 이 에 대한 답방의 형식으로 한국에서는 김무성 선거대책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특사단을 2013년 1월 21~24일까지 베이징에 파견하였으며, 시진핑 총서기를 만나 박근혜 당선인의 친서를 전하고 박 당선인의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내실화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였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정책에 대한 중국인 들의 호감과 기대가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우선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가 높았다. 5년 전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에 박근혜 대표를 대중특사로 보낸 적이 있었으며, 그 때도 중국인들은 박 대통령에 대한 호감과 친밀성을 나타내었다. 여자정치인이라는 특수성뿐만 아니라 우아하고 단아한 몸가짐, 그리고 약속한 것은 꼭 지키는 정치인으로서의 신뢰감 등 박 대 통령은 중국인들이 호감을 가질만한 다양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따라서 대부 분의 중국인들은 박 대통령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평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중국역사 및 철학에 조예가 깊다 는 사실은 중국인들이 박 대통령에게 매료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 으며, 이에 따라 중국인들은 박 대통령이 자신들의 정서에 맞는 대중정책을 구 사해 줄 것이라는 높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듯이, 박 대통령은 주변 4강중 유일하게 그리고 가장 먼저 중국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중국은 한국에게 있어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어느 국가보다도 잘 알고 있으며, 또한 일본과의 애증관계도 잘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특사파견에 대해서 상당한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 물론 박 대통령 측에서는 중국에 특사를 먼저 보낸 것에 대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 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대외관계 중요도에서 중국이 아직까지 미국을 능가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일본은 추월했다고 자부하면서 한중관계의 미래에 대하여 낙관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특히 중국인들은 이명박 정부 시 절에 한중관계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과도한 한미동맹 강화가 더 이상 지 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중국에 대한 이해, 한중 간의 신뢰에 대한 강조, 박 대통령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 등을 고려해 볼 때, 중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19

국인들은 향후 5년간의 한중관계에 상당히 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 모습이다. 또한 중국인들은 박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서도 호감과 기대를 나타내고 있 다. 우선 대북정책의 핵심인 신뢰프로세스는 조건 없는 남북대화 그리고 인도적 인 대북지원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중국은 그 동안 남북대화 및 남북간 관 계개선을 선호해 왔으며, 그런 입장에서 보면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에 대해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는 듯하다. 특히 최근 실시된 북한의 3차 핵실험 과 관련하여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이 제기된 때부터 북한의 3차 핵실험 으로 혹시나 박 대통령의 신뢰프로세스가 시작도 못해보고 도전에 직면하지 않 을까 하는 우려를 지속해 왔으며, 한국측 인사를 만날 때마다 중국이 북한의 핵 실험 저지에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 보겠지만 중국의 대북 영향력에 한계가 있다 는 점을 사전에 설명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박 대통령의 신뢰프로세스는 실행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였다. 중국인들이 호감을 갖는 박 대통령의 또 하나의 정책은 한중 전략적 협력동 반자관계의 내실화이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과 중국은 한국의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양국관계를 격상시켜 왔다. 1992년 수교 당시, 우호협력관계 로 설정되 었던 양국관계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21세기를 향한 협력 동반자 관계 로 진일보한 관계로 발전되었으며,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방중 때에는 다시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 로 격상되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은 이 미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직후 중국방문을 계기로 이루어진 전략적 협 력동반자관계라는 상당히 고차원적인 관계에 이르러 있으며, 관계를 또 한 번 격상시키는 것보다는 격상된 관계에 걸맞는 내용을 충실화하는 것이 양국관계 발전에 더 효과적이라는 점이 인정된 듯하다. 양국관계의 내실화 방안 중 특히 인문교류의 활성화는 중국인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전통적으로 같은 문화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를 강 조하여 양국관계 증진 및 양국간의 이해를 도모하자는 취지이다. 사실 중국은 한국이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기는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한중관계를 뭔가 특별 한 관계로 만들고 싶은 의지를 가져왔다. 중국인들은 이번에 시도되는 인문교류 가 좀 더 긴밀한 한중관계를 만드는 기회하고 생각하는 듯하다. 120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한 미 중 3국 전략대화의 의미와 중요성 우리의 입장에서 이번 기회에 좀 더 확고하게 관계설정을 할 부분이 있다. 바 로 한미관계와 한중관계의 관리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한미관계와 한중관계 가 모두 중요하다. 북한으로부터 상존하는 위협을 고려해 볼 때, 우리의 안보를 확고하게 지키기 위해서 한미동맹은 필수적이다. 반면, 중국은 한국에게는 최대 의 교역 및 투자 대상국이며, 최대의 무역수지 흑자를 내는 국가이기도 하다. 우 리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 한중관계는 확실히 유지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한미동맹과 한중동반자 관계가 제로섬의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보여주어야 한다. 즉 한미관계와 한중관계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며, 이 두 관계 가 원활하게 공존할 수 있도록 상황을 관리해 가야 한다. 그 중 특히 중요한 것 은 북한문제를 잘 관리하는 것이다. 과거에도 북한의 도발로 인한 양자관계의 갈등이 일어나곤 했다. 따라서 북한을 잘 관리하면서 이 두 양자관계를 원활하 게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박 대통령이 제시하는 한 미 중 3국 전략대화는 상당 히 의미 있는 제안이다. 물론 현재의 상황에서 중국은 이 3국 전략대화에 별다 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북한을 관리하는 것이 점점 더 불가능해지 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 그리고 중국이 협력하여 북한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한반도문제에 직면하 여 미국과 중국이 협력할 수 있는 외교적 틀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매우 타당한 제안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및 경쟁관계가 나날이 노골화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의 주도로 미 중 양국이 협력을 논의하는 틀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한국의 미래안보에 매우 긍정적인 발전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이 3국 전략대화에서는 한반도의 통일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 어 차피 우리의 통일문제는 미국, 중국과의 긴밀한 협력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전에 이런 틀을 통하여 통일문제를 협의하는 것도 장기적인 측 면에서 좋은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21

동북아 지역의 역학구도와 한 중관계 발전 가속화 이와 같이 최근의 상황을 반영하여 중북관계와 한중관계에 대하여 검토해 본 결과, 북한과의 관계와 한국과의 관계를 동시에 관리해 나가야 하는 중국의 특수한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북중관계는 상당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북한의 3차 핵실험, 북한의 만성적인 경제 낙후성, 인권문제와 탈북자 문제, 그 리고 북한의 내부불안정성 등 북한에는 중국이 처리하기에는 너무 벅찬 문제들 이 산재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북한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나, 현재의 양국관계는 협력보다는 갈등 내지는 경쟁관계 에 있는 듯하다. 중국도 이제는 북한이 변하는 것만이 북한의 생존을 확보하는 길이라는 점에 동의하는 듯하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까지 변화의 가능성은 보이 지 않고 핵에 대한 집착, 낙후된 경제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내부 권력투쟁에의 집중 등의 모습만 보이고 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중국과 북한의 불일치가 나타 나고 있으며, 중국이 북한의 변화를 재촉하기 위하여 강제력을 실행할지, 아니 면 북한의 생존을 위해서 현상유지를 택할지의 선택은 앞으로 중국이 직면해야 할 상황이기도 하다. 반면, 한 중관계는 지난 5년 동안의 갈등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 한 협력의 단계에 도달해 있다. 새로운 지도부의 출범과 함께 동북아시아 지역 의 역학구도는 한중관계 발전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센카쿠/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간의 갈등은 아직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군사 적 충돌 가능성만 높아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도 독도 및 역사문제, 위안 부 문제 등으로 인하여 조만간 호전되기는 힘든 상황이다. 게다가 동북아시아의 갈등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강화가 필수적이다. 한중관계 강화를 통하여 미국과 일본을 동시 에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또한 중국과의 관계강화가 필요하다. 물론 미 국과의 동맹관계가 훼손되지만 않는다면 중국과의 관계강화는 한국의 경제발전 및 지역안정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북한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하여 한국과 중국이 진정한 협력의 길로 들어설 때가 다가왔다. 122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Abstract Possibility of Change toward North Korea and China and Relationship with South Korea and China Han Sukhee Associate Professor, GSIS Yonsei University Unlike widespread recognition, the relationship between North Korea and China, South Korea and China stands as independent phenomenon, not as reciprocal relationship. In spite of their recent government leadership change in China, South Korea and North Korea, there has not been any change among their diplomacy. However, North Korea s longdistance missile launch in December, 2012 and 3rd nuclear test of North Korea in Feb, 2013 has been the factor of change and it s being sensed that there are subtle changes to their foreign manner. Even though China seems to show some changes to their relationship with North Korea due to the shock from nuclear test, it s prospected that it is not much different from the past in the long term. Unless the peace and stability of Peninsula stands above denuclearization of Korea peninsula in the China s goal of strategy towards North Korea, it will be hard to expect for changes in China s policy toward Korea peninsula. On the other hand, there is higher possibility of a new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China due to the change of leadership for both will be maintained for at least 5 years, on this basis. First of all, China s favoring toward President Park, approval rating for policy, and on et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23

cetera shows significant differences in positive ways and also, as a part, there is expectation toward the policy change or shift of governing style. Especially, Korea and China is introducing various programs to increase the level of closeness at this time and considering humanity exchange and high-level regular talks. In Korea s stance, it should prepare the ground t omaintain not only the alliance between Korea and the United States but also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China simultaneously for the next 5 years. As the national interest of Korea, neither the alliance between Korea and United States and mutual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China is not a matter of choice, nor zero-sum relationship. So, bilateral relations of these must be supervised in both harmonious and effective way. Now, considering international relations with East Asia, Korea and China is facing a situation to establish a close association. It is needed of sincere cooperation of both Korea and China for an amicable settlement to complete their common task, the matter of North Korea. 124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특 집 미 일 중 러 새 정 부 와 한 반 도 의 안 보 아베 자민당 정부의 대외정책과 한 일관계 진창수 * 아베의 대외정책이 직면한 과제 2012년 총선거에서 자민당은 침체한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대담한 금융완화 를 통한 경기 부양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강한 일본 을 위한 외교안보 공약 은 아베 신조( 安 倍 晋 三 ) 총재의 우익적 사고방식이 여과 없이 반영돼 국내외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자민당의 외교 안보 공약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일동맹 강화를 토대 로 국익을 지키고 주장하는 외교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총리 관저 의 사령탑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안전보장회의 를 설치한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국가안전보장기본법을 제정한다. 자위대의 인원 장비 예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졸, 서강대 대학원 정치학석사, 도쿄 대학 총합문화연구과 정치학박사. 도쿄대학 사회과학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세종연구소 부 소장, 현대일본학회 회장 역임. 주요저서 및 논문: 일본의 정치경제: 연속과 단절 (한울, 2009), 일본 국내정치가 한일관계에 미친 영향: 민주당 정권을 중심으로 ( 세종정책연구 2012-2) 외 다수.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25

산을 확충, 해상보안청을 강화한다. 둘째, 영토문제와 관련된 역사적 학술적 조사연구를 수행할 기관을 신설한 다. 각종 전후 보상 재판과 종군위안부 문제의 언설( 言 說 ) 등과 관련, 새로운 기관 의 연구를 활용해 적확한 반론 반증을 실행한다. 센카쿠 제도를 수호하기 위해 공무원 상주 및 주변 어업환경의 정비를 검토한다. 2월 22일을 다케시마( 竹 島 )의 날, 4월 28일을 주권회복의 날 로 지정해 축하 행사를 개최한다. 국경을 형성하 는 섬을 수호하고 진흥하는 특정국경 섬 보전 진흥법 과 무인국경 섬 관리 법 을 제정한다. 영해경비를 강화하기 위한 영해경비법 을 검토한다. 셋째, 북한에 대해 대화와 압력 을 관철한다. 납치피해자 문제의 완전 해결과 핵 미사일 문제의 조기 해결에 전력을 경주한다. 넷째, TPP는 성역 없는 관세 철폐를 전제로 할 경우 교섭 참가에 반대한다. 자동차 등 공업제품의 수치 목표 는 수용할 수 없고, 일본의 식품 안전기준을 고수한다. ISD조항(해외투자자 보호 규 정)에 대한 합의는 불가하며, 정부 조달 금융서비스 등은 일본의 특성을 고려한 다. 다섯째, 헌법개정을 추구한다. 헌법개정의 발의 요건을 중의원과 참의원 각 각 과반수로 완화한다. 헌법개정으로 자위대에 국방군 의 위치를 부여한다. 그 리고 일본은 국가와 국민 통합의 상징인 천황폐하를 받드는 국가로 규정한다. 아베 총리의 외교정책은 미일동맹의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면서 중국 과 한국과의 관계를 조정하겠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렇지만, 아베 총리 의 외교정책은 미일동맹을 강화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아베의 우파 적인 역사인식과 영토문제에 대한 국내조직 정비로 인해 나타나는 중국과 한국 과의 갈등을 관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국제관계를 위해 국내의 우파들의 주장 을 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다. 본고에서는 아베 총리의 외교정 책에 대한 한계와 문제점을 살펴보면서 한일관계에 대한 한국의 대응에 대해 살 펴보고자 한다. 126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미일동맹의 강화에 대한 부담 증가 아베 총리는 2월 28일 국회의 시정방침 연설에서 자신의 외교는 전략적 외 교,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외교, 그리고 국익을 지키는 주장하는 외교 라고 설명하면서, 그 기축이 되는 것은 미일동맹이라고 강조하였다. 아베는 미일안보 체제는 억지력을 바탕으로 한 공공재라고 하면서 일본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더 욱더 역할을 할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미국을 방문한 아베 총리가 2월 22 일 일본이 돌아왔다 라고 선언한 것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아베는 CSIS 연설에서 일본은 지역국가로 머물 수 없다 는 말로 화두를 전 개하면서 자신이 주도하는 일본의 3대 지향점을 제시했다. 첫째로 아시아 태평 양 지역의 번영을 위해 일본이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국제적 단결을 위해 일본이 수호자적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일본은 앞으로 미국과 한국, 호주 등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과 긴밀하게 협조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아베 총리는 아시아 지역이 갈수록 번영하는 가운데 북한만이 예외라 고 지적하면서 북한의 핵 야망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재확인했다. 북한 문제는 지역을 넘어 국제적 현안임도 강조하면서, 일본은 미국과 한국, 그리고 유엔 등 과 함께 북한의 야망을 중단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연설에서 다시 총리가 된 만큼 일본경제의 부흥을 위해 전력투 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구상대로 일본경제가 성장하면 일본은 더 많이 수출하고 수입도 더 많아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일본의 수출증가로 인해 미국 이 첫번째 수혜자가 될 것이고 중국과 인도, 인도네시아도 혜택을 볼 것 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 에 대해 언급하면서 역사는 센카쿠 열도가 일본의 영토임을 말해준다. 지금이 나 미래에 있어 어떠한 도전도 용인할 수 없다 고 중국을 겨냥했다. 물론 아베 총리는 영유권 분쟁으로 인한 긴장을 고조시키고 싶은 의도는 없다고 부연했다. 일본과 중국은 상호 도움을 주는 전략적 관계를 갖고 있다 ( 연합뉴스 2013년 2월 23일). 마지막으로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두 나라가 지난 세월 개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27

척해온 관계는 놀랄만하다 고 강조했다. 지난 3년간 일본 민주당 집권 당시 다 소 소원했던 것으로 평가된 미일관계가 이번 회담을 계기로 부활 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이 점에서 아베의 연설은 일본의 경제회생을 다짐하면서 미일동맹의 견고함을 통하여 강한 일본 으로 재등장하겠다는 결의를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미일 정상회담은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등에서 권력교체가 이뤄지거 나 진행중인 상황에서 처음으로 열린 정상간 회동이라는 점에서 애초부터 주목 을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오 직전부터 가진 백악관 집무실 환담 후 가진 기 자회견에서 많은 안보 이슈에 대해 폭넓고 긴밀한 협의를 했다 면서 미일동맹 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안전보장에서 중심적인 기초 라며 아베 총리 취임 이 후 달라질 미일 관계를 약속했다. 아베 총리도 미일동맹의 신뢰와 강한 연대감 이 완전히 부활했다고 자신있게 선언한다 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2013년 2월 23일). 그렇지만 이번 정상회담을 통하여 미일간의 정책 우선순위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나면서 향후 일본의 정치적인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어졌다. 미일정상회담 후의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는 미일동맹 강화를 우선적으로 언급하면서 중국 을 견제하고자 하였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정책 최우선순위는 경제 성장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고 주장했다. 미국은 일본이 바라는 동맹 강화를 위 해서는 일본이 상당한 비용과 부담을 해야 함을 암시적으로 말한 것이다. 즉 미 국은 동맹 강화라는 측면에서 반테러와 비확산에의 공동대응, 한미일 삼각협력 강화,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 이전 등과 함께 경제 사안인 일본의 TPP(환태평양경제 동반자협정) 교섭 참가를 강조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경제성장을 위해 TPP에 일본이 가입하여 공헌해야 한다는 요구를 한 것이다. 미국이 역점을 두 고 추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대해 아베 총리는 참여하는 데 동의를 하였다. 그러면서도 이번 미일회담의 결과는 미국이 만족할 만큼 일본이 명확히 교 섭 의사를 밝힌 것은 아니었다. 양국이 발표한 공동선언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이 협상에 참여한다면 모든 상품이 협상의 대상이 돼야 한다 면서도 일본 의 특정 농산물이나 미국의 특정 공산품 등 민감 품목은 협상 과정을 거쳐 최종 결론을 도출하기로 했고,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모든 관세를 일방적으로 철폐하 128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는 것은 아니다 고 밝힌 것이다( 일본경제신문 2013년 2월 23일). 즉 미국이 원해 온 TPP에 참여하되 자민당이 선거기간 중에 성역 없는 관세철폐 가 전제조건인 TPP교섭에는 참가하지 않겠다는 주장이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타협에도 불구하고 아베는 벌써부터 일본 국내에서 많은 비난을 받 고 있다. TPP를 찬성하는 편에서는 TPP 협상에 일본이 9월에 참가하게 되면 일 본은 협상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일 수 있어 빠른 협상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반 해 농업개방을 반대하는 농업부문과 자민당 내의 농림족의 반발을 초래하였다. TPP 체결에 대해 자민당 내에서도 50% 이상이 반대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 다고 미국이 원하는 대로 빨리 협상을 앞당길 수 없는 것이 아베 총리의 딜레마 이다.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아베로서는 국내 지지세력에 민감할 수밖 에 없기 때문에 당분간은 동맹강화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따라서 아 베 정부는 국내 설득과 미국과의 대외협상이라는 험난한 상황에 봉착되어 있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아베 총리는 TPP 교섭에만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양국은 오키나와( 沖 繩 )현의 후텐마( 普 天 間 ) 미군기지 이전을 조기에 추진한다는 미 일 합의사항을 재확인했다. 그렇지만 동맹관계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후텐 마 기지 이전문제를 둘러싸고 일본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열린 일본과의 주일미군 재편을 위한 협의에서 8 년간의 기지 보수비로 약 250억 엔(약 3천400억 원)을 부담해 달라고 요구했다. 일 본은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 보수를 할 경우 기지의 고정화로 연결될 수 있다고 보고 미국의 요구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정부는 후텐마 기지를 같 은 오키나와 내 나고( 名 護 )시 헤노코( 邊 野 古 )로 옮기기로 합의했으나 지자체와 주 민의 반발로 이전작업에 진척이 없는 상태이다. 이에 아베 총리는 오키나와 주 민들의 저항과 미국의 과중한 요구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었다.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29

동북아 국가에 대한 아베의 대응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베 총리가 미 일동맹을 강화시키는 데 많은 어 려움이 예고되고 있다. 더욱더 큰 문제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미중관계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은 적 대국임과 동시에 미국 경제를 회복하는 견인차 역할을 할 상대다. 또한 중국은 북한 핵문제, 반테러, 비확산, 에너지, 신 금융질서 등 지구적인 문제를 함께 풀 어갈 동반자인 것이다. 이점에서 미국은 미일동맹이 중국을 견제하는 측면에서 중요하지만, 국력이 쇠퇴한 미국으로서는 일본이 강한 일본 으로 중국을 견제해 주기를 바라는 측면이 있다. 강한 일본 이야말로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 노선 과도 함께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렇다고 미국이 일본과 중국과의 관계에 말 려들어 일본의 대리전을 하는 것은 더욱 원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일본이 미국을 강하게 엮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리고 아베는 미 일동맹을 기축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동아시아 국가들을 설득할 수 있는 외교전략이 절실해졌다. 아베의 대중국외교는 대중국 포위망 외 교의 성격을 띠고 있다. 중국을 에워싸는 형태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 권의 국가군을 형성한다는 전략이다. 즉 호주, 뉴질랜드에서 시작하여 인도, 중 앙아시아, 유럽을 네트워크화하여 가치관 외교를 실현한다는 구상이다. 따라서 아베 총리는 취임 후 첫 외국 방문지역으로 동남아시아를 선택하였 다. 동남아시아 지역은 중국과 인도 사이에 있는 지정학적 특성이 있고, 경제와 안보 면에서 그 중요성이 증가하는 지역이다. 따라서 아베 총리는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를 1월 16일에서 18일에 걸쳐 순방한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 본이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자유, 민주주의, 인권 등 보편적 가치의 실현과 경제 네트워크를 통해 번영을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의 아베독트린 을 보더라도 이같은 가치관 외교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아베 총리의 동남아 중시는 아소 부총리의 미얀마 방 문과 기시다 후미오 외상의 필리핀을 비롯한 4개국 순방 등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아베의 동남아 중시 외교는 동남아 각국으로부터는 환영받는 130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분위기다. 동남아 국가들은 미국의 전략을 보완하여 일본이 중국과의 균형자적 인 역할 을 할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처럼 아베 총리는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서라도 미국을 끌어들이면서 동아시아와의 관계에서 영향력을 회복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베의 내셔널리즘적인 색채는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에서 불 신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일본의 동북아 지역외교에서 자신의 주장이 발목을 잡 는 현상마저 나타났다. 이런 점을 의식한듯 아베 총리는 정권 출범부터 중국과 한국에 대해서는 신 중한 접근을 하였다. 아베 총리가 1월 28일의 소신 표명 연설에서 이념 대신 내 세운 것은 경제재생 의 강조였다. 동북아 국가들과 갈등하기 보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수를 되찾아 안정적인 정권을 만들겠다는 의도다. 이는 제1차 아베 내각과는 다른 모습이다. 제1차 아베내각 발족 직후인 2006년 9월 아베는 소신표명 연설에서 아름다운 나라 를 목표로 헌법개정과 교육개혁을 향 한 열의 등 자신의 이념을 설명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그는 일본의 문화와 전 통을 소중히 여기고 자유사회와 성장을 중시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을 가 진 국가를 목표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교육재생회의를 설치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연구하는 방침을 표명하였고, 헌법개정의 필요성도 강조하였다. 하지만 각료 스캔들과 사라진 연금문제 등으로 2007년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하였 고, 결국 퇴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현재 아베 총리는 이념의 색채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 다. 제2차 내각의 아베 소신 연설에서는 경제재생 을 전면에 내세우고 금융정 책, 재정정책, 성장전략의 3개의 화살 로 일본경제를 재생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실무적인 내용을 강조하였다. 아베가 총리가 된 이후 그동안 시장은 아베 성장 으로 들끓었다. 1월 28일의 평균 주가는 일시적으로 1만1000 엔 대를 회복했다. 자신감을 얻은 총리는 연설에서 일본은행과 함께 2%의 물가상승 목 표를 담은 공동성명을 추진할 것과 대규모 재정확대를 위해 추가예산을 편성하 였다고 강조하였다. 그 결과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일본 주가와 함께 급상승하 여 정권 출범 2개월 만에 70%대를 넘어섰다( 요미우리신문 2013년 2월 10일). 당분간 아베는 국내정치와 경제문제에 치중하면서 중국과 한국에 대한 외교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31

는 신중한 형태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2월 22일 미일정상회담에서 중국 의 태도를 누그러뜨린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당시 아베 총리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에 대해 늘 이 문제를 조용하고도 침 착하게 다뤄왔다 면서 앞으로도 지금까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행동할 것 이라 며 외교적 해결 노력을 강조했다. 외교 관측통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미일 안보 동맹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면서도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적절한 선에서 신중한 대응을 주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 2월 23일). 그리고 이러한 아베의 대중 자세는 2월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나타난다. 아베는 센카쿠 문제와 관 련해서는 일본 고유영토로 영유권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면서 중국 함정의 자위대 호위함 레이더 정조준과 같은 일로 사태를 악화시키는 행위를 삼가하도 록 중국 측에 자제를 요구하였지만, 동시에 일 중관계는 가장 중요한 양국관계 라고 밝힌 것이다. 그리고 개별의 문제가 일 중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조정 해가는 전략적인 호혜관계 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2월 28일 시정방침 연설에서 한일 간에 는 곤란한 문제도 있지만 21세기에 걸맞은 미래지향적이고 중요한 파트너십 구 축을 위해 협력해 나가겠다 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한국은(일본과) 자유와 민주 주의의 기본적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국가 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는 한국과는 '곤란한 문제도 있다'고 비켜가면서 관계 개선의 기대감 을 표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아베 총리는 작년 12월 중의원 선거를 거쳐 집권하기 전 고노, 무라야 마 담화를 수정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한국 정부는 물론 미국 정부까지 반대하 자 최근 이와 관련된 언급을 자제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이번 시정방침 연설에 서도 무라야마( 村 山 ) 담화 및 고노( 河 野 ) 담화 등 역사인식 문제와 독도 문제에 대 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베 총리가 자신의 이념적인 공 약을 아예 거둔 것은 아니다. 2월 1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아베는 알맞은 시기 에 21세기에 적합한 미래지향적인 담화를 발표하고 싶다 고 밝힘으로써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드러냈다. 일본의 식민지지배에 대한 반성을 진술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이어갈 아베 담화를 발표할 생각이라고 표명하기도 했 132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다. 시기나 내용에 대해서는 앞으로 충분히 검토하고 싶다 며 발언을 삼가했지 만, 그 내용에 대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의회에서 외교연설을 한 기시다 후미오( 岸 田 文 雄 ) 외무상이 독도 영유 권 주장을 거듭한 것을 보면 아베 정부 내에서 언제든지 역사문제의 갈등이 분 출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기시다 외무상은 한국에 대해 미래 지향적이고 중층 적으로, 더 강고한 관계를 구축할 것 이라면서도 독도 문제를 하루 저녁에 해결 하지는 않겠지만, 끈질기게 대응할 것 이라고 밝혔다( 朝 日 新 聞 2013년 3월 1일). 결 국 아베 내각 구성원들 간의 역할 분담 차원에서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해 서도 민감한 문제를 제기하되, 발언 주체의 격을 한 단계 낮추어 국제관계를 안 정적으로 운용하면서 국내의 반발을 무마하려는 것으로 판단된다. 박근혜 정부의 대일정책의 방향 박근혜 정부는 남북한에는 신뢰프로세스를, 동북아에서는 화해와 협력을, 그 리고 국제사회에서는 기여하는 외교를 기조로 설정하고 있다. 다케시마의 날 로 시작되는 한일관계의 경색은 박근혜 정부의 출범 초기부터 풀어야 할 외교적인 난제임에 틀림없다. 대일정책은 향후 5년 한국의 대외전략 속에서 일본의 전략 적 가치 평가와 함께 동북아 질서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금의 험 난한 대일관계는 양국관계를 넘어서 국제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현재 박근혜 정부에게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외교적인 과제는 우선 북 핵 불용 을 실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남북관계를 보면 양자가 정면으로 달려 드는 치킨 게임 의 양상이었는데, 항상 충돌을 회피하는 것은 한국이었다. 그 결 과 북한이 의도하는 대로 상황이 전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북한이 잘못 된 선택을 하였을 경우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 으로 바꾸어 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최악의 상황에 처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 이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프로세스를 실현하는 길이다. 자칫 신뢰프로세스를 북한에 대한 지원정책 으로 오인할 수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33

있다. 신뢰 프로세스는 굳건한 안보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한 남북한의 신뢰를 형성할 수 없다는 철학에 근거하고 있다. 이 점에서 단기적으로 박근혜 정부는 군사력에 대한 투자와 선택을 대폭 늘려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주변국에게는 한국의 북핵 불용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한국의 강력한 의지 표명과 이행은 주변국을 설득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다. 북핵 불용 원칙에 대한 주변국과의 공감대를 확보하고 북한을 실질적으로 압박하는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그리고 동북아의 안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미 중 갈등을 완화하도록 하 는 외교적인 노력 또한 매우 시급하다. 아시아의 안보 불안정의 중심에는 미중 갈등이 있다. 북한의 도발에는 중국의 북한 껴안기 가 있으며, 센카쿠를 둘러싼 중일 갈등에는 일본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있다. 결국 미 중관계가 나빠지면, 북한의 비핵화와 동북아의 협력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미중이 담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중이 북핵 불용 이 아닌 북핵을 인정하는 핵의 비확산 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라도 박근혜 정부는 당면 외교 현안(북한핵 등)에 대한 해결 의지와 대안을 국제사 회에 명확히 표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고 한미정상회담과 한중 정상회담을 성급하게 추진하기 보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동북아 평화협 력 구상 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현안 해결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다자협력 강화와 확대에 한국이 주도적으로 외교적인 역량 을 발휘해야 한다. 이미 제도화되고 정례화된 한 중 일 정상회담 을 안보협력 의 장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으며, 한 미 중 전략포럼도 적극적으로 실현하도 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이런 시급한 외교적인 과제를 생각하면 대일정책에서는 과거 사 문제와 함께 현재의 과제(대북문제, 한일 경제협력, 동아시아의 불안정성에 대한 대응 등) 를 고려하는 폭넓은 사고가 필요하다. 따라서 한일관계는 갈등의 사이클에서 탈 피하여 동북아의 새로운 화해와 평화의 틀이라는 큰 틀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새 로운 사고가 필요하다( 서울신문 2013년 2월 26일). 그렇지만 우익 성향의 아베 정권의 등장으로 한일관계는 처음부터 인내의 134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시험에 들 가능성이 높다. 아베 정권은 발등의 불과도 같은 경제문제로 인해 당 장 한국과는 갈등관계를 만들지 않겠지만, 앞으로 한일관계는 지뢰밭 투성이 다. 첫째, 아베 총리가 2월 22일의 다케시마의 날 을 일본정부 행사로 하지는 않 았지만, 아직도 애매한 형태로 남아 있어 언제든지 불씨가 될 수 있다. 3월이 되 면 교과서 문제 외교청서 그 이후 방위백서 등으로 일본이 한국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는 산재해 있다. 한국이 이런 일본의 국수주의적 주장을 문제시하면 이제는 일본이 당당하게 반론하는 상황이라 한일관계는 더욱 더 어려워질 수밖 에 없다. 게다가 독도 문제는 일본의 민족주의적 정서와도 연관되어 있어 의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일 갈등을 가져올 수 있다. 둘째, 아베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 해석 변경을 주요 정책 목표로 내걸고 있 어 한일 간의 쟁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올해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수를 획득하게 되면 일본 정치권에서 집단적 자위권의 흐름은 돌이킬 수 없 게 된다. 미국마저 미일동맹 강화를 핑계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부추기고 있다. 일본이 해외에서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본격화하면 한국의 정서상 독도를 둘러싼 긴장과 일본에 대한 불신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일본 자위대의 역 할 확대는 센카쿠를 둘러싼 중일갈등에도 영향을 미쳐 동아시아의 긴장이 높아 질 수 있다. 셋째, 아베 정권 시기에 헌법개정을 통하여 정상국가 로 거듭나고자 하는 일 본의 움직임도 한일 갈등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아베 정권 시기에 헌법개정을 이루기는 쉽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일본이 전수 방위의 제약을 벗어나 재군비의 길로 들어서는 상황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일본이 정상국가가 되 면 한일관계는 새로운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일본이 한국과 협력할 수 있는 접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입 장에서는 중국의 부상으로 한국의 전략적인 중요성이 높아졌다. 센카쿠 영토갈 등이 진행되면서 일본은 한국을 무시하고는 중국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힘 들어졌다. 더욱이 미국이 아시아로 복귀할 만큼 중국이 커지면 커질수록 일본에 게 한국의 전략적인 위치는 더욱 더 중요해 질 수밖에 없다. 또한 국제관계에서 도 한국의 위상 강화와 더불어 일본이 한국과 협력하여 윈-윈 할 수 있는 부분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35

도 많아졌다. 박근혜 정부의 대일외교는 과거사 문제로 충돌하는 일본 과 전략적인 협력 상대로서의 일본 이라는 양면성을 적절히 조화시키면서 균형외교 를 구사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대일정책은 양국 간 현안에 매몰되지 않고, 안 정적인 지역 세계 질서의 구축 유지라는 다자적 관점에서 한일 양국의 상호 전략적 가치를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대일정책의 방향은 일본과 전략적 인 협력관계를 구축하여 중견국 외교를 추진하는 동반자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당장의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박근혜 정부의 5년을 생 각하는 단계적이고 기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의 여론을 감안하면 과거사 문제(특히 위안부 문제)로 일본을 밀어붙여야 하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오히려 역풍 을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우선 과거사 문제에 대해 끊임없는 교섭을 하면 서도 민간교류를 활성화하여 한일 경제생활권을 확대시키는 기능적인 접근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특히 청소년의 교류를 활성화시키고, 한일 간 장벽을 허무는 일을 차근차근 진행시켜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하여 점차 경제협력, 안보 협력도 구체화하는 기반이 만들어질 수 있다. 둘째,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의 청사진을 만들어가는 노력도 지속되어야 한 다. 현재 한일관계에서의 문제점으로 한일 양국이 국가목표 달성을 위한 하위전 략으로서의 종합적인 대일, 대한 전략의 부재를 들 수 있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 는 한일관계의 청사진을 마련하기 위해 전략적인 지침서를 만들 필요가 있다. 한일 비전회의를 새롭게 설립하여 외교부, 민간 학자들이 전략지침서를 함께 만 들 필요가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2015년을 어떻게 규정하며, 이를 어떻게 준비하여 갈 것인가에 대한 방침이 필요하다. 현재 한일 양국의 불만은 1965년 한일조약을 둘러싼 인식의 차에서 기인하는 부분이 많다. 한국은 1965년의 한 일조약이 불충분하다고 보는 데 비해, 일본은 1965년으로 과거사 문제는 더 이 상 거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양국의 불만을 남겨둔 채 한일 관계를 논의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양국이 우호적인 관계를 증진시켜 가기 위해서라도 지금까지 한일관계가 이룩해 온 성과를 객관적으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는 가칭 한일미래위원회 를 만들어 과거사 문제를 포 136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함하여 한일이 어떻게 인식을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실질적인 소통의 장을 만들 어야 한다. 셋째, 동아시아 국제질서 변화라는 틀 속에서 일본을 바라보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앞으로 대일 외교는 한일 양국에 매몰되지 말고 동아시아의 지평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 외교의 숙명적 과제는 동아시아의 상생과 번영을 도 모하면서 한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대일 정책에서도 이러한 전략적인 발상이 자리 잡아야 한다. 그동안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해석 변경이나 헌법개 정을 하고자 하면 부정적인 반대부터 앞섰다. 일본의 안보에 대한 조바심 은 중 국과 북한을 의식한 측면이 많다. 이제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헌법개정을 현 실주의적인 시각에서 냉철히 바라보아야만 한다. 예컨대 자위대의 역할 확대가 우리가 막을 수 없는 것이라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큰 틀에서 군 비경쟁을 축소시키면서 상생의 길을 만드는 외교적 설득작업이 우선되어야 한 다. 이런 부분을 생각하면 동북아의 불안을 줄이는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평화 협력구상 을 구체화하여 일본을 동아시아 화해와 번영의 틀 속에서 묶어내는 대 일외교가 되어야 한다. 한일 간의 쟁점은 어떻게 풀 것인가 박근혜 정부의 과거사 문제에서 초점이 되는 것은 첫째, 독도문제에서는 일 본을 설득하여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를 포기하게 만들고, 현상유지를 지속시 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일본이 반발하는 독도 부근의 해양과학기지 건설은 신 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독도를 분쟁지역화 하려는 것에는 원칙적인 대응을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타협을 통하여 독도를 현상유지하는 방안을 모색하여야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일본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를 제소하고, 홍보전 을 강화할 경우에 대비하여 국제여론을 환기시키는 외교의 로드맵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둘째, 종군위안부 문제일 것이다. 일본의 정치상황을 고려하면 해결하기 힘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37

들 가능성이 크다. 현재 한국정부는 분쟁에 대한 제3자 조정을 신청하고 있지 만, 일본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결국은 국제사회에서 홍보를 통해 일본을 압 박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다. 자민당 정권을 설득하는 방법으로는 위안 부 문제에 대한 한일워킹 그룹의 창설을 제안하는 것이다. 일본도 위안부 문제 를 부정하기 힘들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이 점에서 일본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베 시대에 일본정 부가 한국의 시민단체에서 주장하듯이 법을 만들어 배상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 이다. 현실성을 고려하여 일본정부가 협상의 여지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위안부 문 제를 제3기 한일역사공동위원회의 워킹그룹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제3기 역 사공동위윈회가 실질적인 해결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역사공동위가 과거 처럼 논문을 나열하는 방식에서 탈피하고 과거사의 쟁점을 정리하여 교과서에 반영할 수 있는 해설서를 만들어야만 한다. 둘째 한일 양국은 역사공동위의 제 언이 정부 정책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강제성을 두도록 해야 한다. 셋째 위안부 할머니들이 고령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2015년 이내에 결론을 내도록 시한을 설정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역사공동위의 문제는 제2기 역사공동위의 설립 당 시 일본 연구자들의 인선을 우익인사로 채우는 바람에 진행에 많은 어려움이 있 었다. 이것을 고려하면 제3기 역사공동위를 형성하기 전에 역사공동위 개선위 원회 를 먼저 만들어 한일 양측의 합리적인 인선과 진행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양측 연구자들의 결론에 대해 한일 정부가 어떠한 정책을 실행할 것인지를 두고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 셋째,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장기적이고 제도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동북 아역사재단을 개편하여 독일의 미래재단과 같은 기능으로 강화시킬 필요가 있 다. 동북아 차원의 화해, 교육, 배상을 함께 할 수 있는 기능으로 동북아역사재 단을 확장하여 양국 차원을 넘어선 동북아 차원에서 과거사 문제를 풀도록 노력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일본 내에서 올바른 인식이 정착될 수 있도록 다 양한 채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한국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확대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한일 간 네트워크를 새롭게 개선 발전 138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시키기 위한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일포럼, 한일협력위 원회, 한일문화교류기금 등의 기능을 보완하고, 세대교체를 진행해야 할 것이 다. 또한 1.5 트랙의 한일정책대화를 활성화하여 독도문제에 대한 소모전을 인 식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한 중 일 영토분쟁의 문제점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지속함으로써 한일이 함께 나아갈 길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넷째, 안보문제, 경제협력문제 등은 국민의 여론을 감안하여 점차적으로 시 행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정권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민간교류의 활성화를 적극 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김대중 오부치의 신한일공동선언의 액션플 랜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경제협력은 한 중 일 FTA의 추이를 보면서 한일 FTA도 중간 수준에서 협상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 에서 안보문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한일 정부 간 다층적 소통채널을 확보해야 한다. 한일 간은 정치적 신뢰관계 회복과 소통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일 정상 간 셔틀외 교 재개, 각료회의 정례화, 차관급 전략대화, 실무자급(국장 과장급) 비공식 대화 등 다양한 대화채널이 확대 강화되어야 한다. 양국의 거듭되는 정권교체와 정 치인의 급속한 세대교체의 결과, 한일 정계 간 정책 네트워크가 약화되어 있다. 기존의 한일의원연맹 등의 활동과 함께 양국의 초당파 신진의원 모임을 정례화 하여 한일 정치인 교류 채널을 활성화해야 한다.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39

Abstract The Foreign Policy of the Abe Government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Jin Changsoo Direactor of the Japan Center, the Sejong Institute This article considers the foreign policy of the Abe Government and the outlook of relations between South Korea and Japan. In the 2012 politics election, the Liberal Democratic party billed the economic stimulus, as top priority, with an easy-money policy for the rehabilitation of an economic saddled with depression. Both foreign and security policies for the Strong Nation of Prime Minister Abe Shinjo, have caused quite a stir throughout Japan and abroad. His policy vividly reflects his conservative attitude. As firsts priority, Abe s foreign policy strategy has been interpreted as a reinforcement of the alliance between America and Japan. Coordinating the relationship amongst China and Korea has taken secondary significance. But, we are not sure a foreign policy of Abe s that can not. But, there are will questions asking if the foreign policy of Abe s has ability and willingness of reinforcing the alliance between America and Japan. We have looked into the political response proposals of Korea toward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as examining closely to the limitation and problems about the foreign policy. 140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특 집 미 일 중 러 새 정 부 와 한 반 도 의 안 보 일본의 우경화 군사대국화의 전망 정구종 * 2012년 일본 우경화의 풍경 일본 민주당 정권의 관방장관과 법무대신을 역임한 6선의 중의원 의원 센고 쿠 요시토( 仙 谷 由 人 ). 중견 정치인으로서 리버럴한 현실주의 노선을 견지해 온 그 는 외교적으로는 아시아 중시 정책을 지지해 왔으며 재일한국인 등의 참정권 부여를 목적으로 하는 재일한국인 등 영주 외국인 주민의 법적 지위 향상을 추 진하는 의원 연맹 에도 참가하였다. 2010년 관방장관 재임 때에는 일본에 의한 한국 병합 100년 에 대한 칸 나오 토( 菅 直 人 ) 총리의 사죄담화 작성 및 채택의 중심 역할을 하였고, 일본이 한국으 로부터 가져간 조선궁중의궤 반환에도 앞장서서 실현을 보게 하였다. 동서대 석좌교수, 일본연구센터 소장. 한일포럼 대표간사, 한 중 일 문화교류포럼 한국 측위원장, 한일문화교류회의 한국측위원장. 연세대 졸, 연세대 행정대학원 석사, 일본 게이 오대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한일비교정치). 동아일보 주일특파원, 동경지사장, 편집국장, 동아닷컴사장 역임. 주요저서; 21세기 일본의 국가전략 (한국전략문제연구소), 공저 異 說 政 治 改 革 ( 日 本 經 濟 新 聞 社 ) 등.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41

2012년 민주당의 노다 총리에 의한 국회 해산 및 그에 따른 12월의 총선거에 지역구(토쿠시마)에서 출마한 그는 당연히 당선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뜻밖에 낙 선하였다. 선거운동 기간 중에 우익의 선전 카(car) 가 그의 지역구를 휘저으면서 2002년 월드컵 축구 한일 공동개최 때 한국 응원팀이 힘껏 부르던 대한민국! 을 연호하여 그가 친한파 임을 은연 중에 암시하고 다님으로써 유권자들의 경계심 을 불러 일으켰다. 우호적으로 대한민국 을 외친 게 아니라 비아냥이었다. 이른 바 추켜세우면서 죽이는(ほめ 殺 し) 우익 특유의 방법이다. 민주당 정권의 정치가들, 특히 한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 중시 정책에 앞장섰 던 의원들이 2012년 12월의 총선거에서 이같은 조직적인 낙선운동에 쫓겨 고전 을 면치 못했다. 심한 경우 한국에 나라를 팔아먹었다! 며 매국노 라고 매도하 기도 했다. 총리를 지냈던 칸 나오토 역시 지역구에서는 낙선하였으나 토쿄도의 비례대표에서 가까스로 턱걸이하여 원내에 살아 남았다. 정치인에게 있어 낙선은 정치적인 죽음 이다. 센고쿠 전 장관을 낙선하게 한 주요 배경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우익의 친한파 낙선운동은 20세기 초 일본 의 자유민권운동과 大 正 데모크라시에 대해 암살의 정치 로 반대세력을 제거했 던 정치 사회적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일본사회의 혐한 반한 분위기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한류 드라마를 많 이 방영한 TBS TV 앞에는 이에 항의하는 데모대가 몰려들었고, 새로 형성된 일 본 내 코리안 거리인 토쿄의 신오쿠보에서도 우익단체의 시위와 방해 등으로 한 류 가게들이 고전하고 있다. 반한 혐한 데모대는 한국인을 죽여라! 는 구호까 지 외치는 등 배외( 排 外 )주의적인 극단의 표현도 서슴지 않고 있다고 아사히신문 (2013년 3월 16일자)이 보도했다.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본과 중국 간에 영유권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센카쿠 제도에서의 일 중 충돌 이후 일본의 서점들에는 반한, 반 중 감정을 부추기는 영토문제를 다룬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주간지들은 또한 매주 한국과 중국을 비판하는 기사를 특집으로 다뤘다. 일본에서는 90년대 초 이후, 냉전의 종결과 함께 불황이 깊어지면서 국민들 의 현실 불만을 부추기듯 일본의 전후를 되돌아보는 복고주의 보수 회귀의 움직 142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임들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본사회의 보수 우경화 움직임을 측정하 는 바로미터의 하나로 국기 히노마루( 日 の 丸 ) 의 일선 학교 게양 문제와 국가 키 미가요( 君 が 代 ) 제창을 둘러싼 논의가 전후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다. 그간의 경위 를 잠깐 살펴보자. 일본은 패전 후 1947년 시행된 교육기본법에서 과거의 군국주의 교육에 대 한 반성으로 국가주의를 부추기는 듯한 교육을 배제해 왔다. 일본 교원노조는 키미가요 제창과 히노마루 사용을 일선 학교에서 못하도록 반대해 왔다. 그러나 일본은 2006년 교육기본법 개정으로 키미가요와 히노마루에 대한 터부( 禁 忌 )를 허물기 시작, 교육현장에서의 복고주의 움직임이 단계적으로 본격화하였다. 당 시의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은 야4당이 불참한 가운데 국회에서 교육법을 고쳤다. 이를 바탕으로 문부과학성은 2008년 3월 초 중학교 학습지도 요령을 고쳐서 학교에서 키미가요를 부르도록 지도하라고 사실상 의무화했다. 교육기 본법 개정 당시의 총리도 아베 신조( 安 倍 晋 三 )였다. 아베는 2006년 교육기본법 개 정을 공약으로 내걸고 총리로 취임하였다. 보수세력을 향한 우파 정치인의 주장 이 힘을 얻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교육기본법이 60년 만에 개정된 데 이어 새 학습지도 요령에서는 애국심을 강조하는 교육지침이 표기되었다. 이시하라 신타로 토쿄도 지사는 입학 졸업식 때 국기(히노마루)를 걸고 교사 와 학생들이 일어서서 키미가요를 부르도록 요구했다. 학교 또는 공공기관에서 의 히노마루 게양과 공식 행사 때의 키미가요 제창을 둘러싼 찬반 소송도 여러 건이 제기되어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최고재판소의 판결이 2007년 합헌 으로 내 려졌다. 자민당의 재집권과 보수 우파 아베 총리의 재등장 이같은 일본사회의 우경화 분위기에 힘입어 보수 우파 정치가와 정당들이 다시 전면에 부상하였고, 그 결과 2012년 12월의 총선거에서 제1 야당 자민당 이 압승함으로써 3년 반 만에 집권당으로 복귀하였다. 자민당 총재로 복귀한 아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43

베 신조 전 총리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일본의 재건 을 외치면서 국방군을 갖는 일본,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허용 등 필요하면 헌법을 고쳐서 전쟁행위도 불사 할 것 같은 공약을 내세웠다. 일본사회가 갑자기 우경화하는 듯한 의심을 갖기 에 충분한 움직임에 앞장선 것이다. 아베는 총리에 선출된 후에도 기자회견, 시정연설, 국회답변을 통하여 평화 헌법 개정, 집단안전 보장에의 참여 등 일본의 군사 무력 행사 허용의 길을 터 놓으려는 듯한 발언으로 내외의 경계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서 자민당이 재집권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자. 일본은 90년대 초의 버 블 경제가 붕괴되면서 20년에 이르는 장기불황에 사회적인 탄력이 저하되었다. 또한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정치적으로도 혼란이 계속되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5년 간에 걸친 장기 정 권 이후에는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종신 고용의 안정적 평생 보장 은 사 라졌다. 2006년 아베 총리가 건강 상의 이유로 1년이 안 돼 총리직을 사임한 후 로 1년에 한 명 꼴로 총리가 바뀌는 정치 리더십의 불안정이 계속되었다. 집권 자민당의 정치력 부족으로 경제 사회적인 난제 해결에 더 이상 기대를 걸 수 없게 되었다고 판단한 국민들은 2009년 6월의 총선거에서 변화(Change) 를 공약으로 들고 나온 민주당에 표를 몰아주어 민주당은 압도적인 의회 의석을 확보하면서 집권당으로 등장했다. 민주당의 첫 내각인 하토야마 유키오( 鳩 山 由 紀 夫 ) 총리가 이끄는 정부는 복지 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하여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하토야마 총 리는 주일 미군기지가 있는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를 현( 県 ) 밖으로 이전하겠다 고 한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고, 미국정부와 불협화음을 빚은 끝에 1년이 채 안 되어 사임하고 칸 나오토( 菅 直 人 ) 총리가 정권을 이어 받았다. 하토야마나 칸 나오토는 정치성향으로는 자민당의 보수 색채와는 다른 리버럴 한 정치가로서 시민세력의 지지를 받는 쪽이었다. 일본의 과거사를 둘러싼 역사 인식 면에 있어서도 하토야마는 2009년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담 때 민주당은 역사를 직시할 용기가 있다 고 밝혔고 칸 나오토 역시 과거사에 반성할 것은 반 성한다 는 신념으로 2010년 일본의 한국 병합 100년째를 맞아 일본정부의 사죄 144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담화를 채택, 발표하였다. 민주당 정부가 결정적인 타격을 입은 것은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동일 본대지진과 쓰나미, 그에 따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이라는 이른바 트 리플 재해 였다. 지진과 쓰나미는 현대 과학이나 방재 시스템으로도 어쩔 수 없 는 자연재해라 하지만 원전 폭발은 평소의 시설 관리와 초기대응에 실패하여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인재( 人 災 )라는 것이 일본 국회 사고조사위원회의 결론이 었다. 재난과 재해로부터의 복구와 초기대응 부진에 대해 국민들의 불만이 증폭되 었고, 불만은 집권 민주당에 대한 불신으로 옮겨졌다. 결국 칸 나오토 총리도 사 임하고 노다 요시히코( 野 田 佳 彦 )가 세 번째의 민주당 정부 총리로 선출되었다. 노 다 총리에게는 재해 복구와 부흥을 위해서는 재원 마련이 불가결한 과제로 등장 했다. 복구재원 마련을 위해서 정부의 각종 예산사업이 축소되거나 삭감되었다. 모든 공무원이 급여의 10% 삭감을 요구 받았고 결국 소비세 증세 법안이 2012 년 10월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소비세 증세에 대해서는 자민당도 이전부터 지 지하는 입장이었으나 정작 민주당 정권에서 단행됨으로써 국민의 불만은 민주 당에 쏠렸고 노다 정권의 지지율도 20%대 이하로 내려앉았다. 민주당 정권은 결국 2012년 12월의 총선거에서 참패하여 정권을 잃었고, 야 당으로 내려 앉은지 3년 반 만에 자민당이 집권당으로 복귀하게 된 것이다. 아 베는 2012년 9월 자민당 당내 선거에서 총재로 선출된 이래 보수 우경화를 공 공연히 표방하는 정책 공약을 주장하면서 12월의 총선거를 승리로 이끌었고, 12월 26일 국회에서 새 총리로 선출되었다. 그가 신병을 이유로 단명 총리에서 물러난 지 5년 만에 총리로 다시 복귀한 것이다. 자민당은 1955년 보수연합에 의한 이른바 55년 체제 의 중심세력으로 일본 의 전후 보수체제를 이끌어 온 일본 정치 사회의 주류세력이다. 1993년 파벌 정치와 돈 정치에 대한 비판과 함께 제도 피로에 싫증을 느낀 유권자들의 반란 으로 잠시 정권을 잃었으나 1년여 만에 사회당과의 연립정권으로 복귀하였다. 2009년의 정권 상실 역시 3년 반 동안의 징계로 끝나 2012년 집권당으로 다시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45

전면에 나섰다. 민주당이 내세웠던 리버럴한 시민사회 세력의 대리인 역할은 일 본사회에서 정치적 주류세력으로는 꽃을 피우지 못한 것이다. 민주당 정권의 후퇴와 자민당 정권의 재등장에 이르는 정치적 프로세스는 위와 같다. 그러나 일본국민이 3년 반 만에 버렸던 자민당에 다시 지지를 보내 고 집권당으로 내세워 보수 우경화 노선을 외치게 한 배경에는 일본사회의 보 이지 않는 손에 의한 변화에의 촉구가 자리잡고 있다. 변화는 3 11 대지진과 최 근 2, 3년 이래의 국제환경의 급격한 변화라고 하는 일본사회 안팎으로부터의 압력에서 촉발되었다. 일본사회 변화 를 촉구하는 내외의 사건들 일본의 변화를 촉구하는 내적 요인으로 3 11 동일본대지진과 쓰나미, 그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고를 들 수 있다. 일본 열도는 지진이 발생하기 쉬운 활단층( 活 断 層 ) 위에 놓여 있어 지진이 잦은 데다 매그니튜드 7.0 이상의 거대지진 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일본국민은 이같은 자연재해에 대한 불안과 체념 속에 살고 있다. 1995년 M7.3이었던 한신( 阪 神 )대지진도 활성단층에서 발생하였다. 이번 동일본대지진은 일본 열도로부터 떨어진 해저에서 일어났음에도 쓰나 미로 인한 주민 피해(사망, 행방불명 약 2만 명, 이재민 30여 만 명)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 로 엄청났다. 해당지역 주민은 물론 피해지 이외의 일본국민들도 공포와 좌절감 을 느꼈다. 3 11 대지진 이후 일본 내의 외국기업들이 현지 공장 또는 본사를 일본 이외의 지역, 예를 들어 한국, 중국, 멀리는 싱가포르에까지 이전할 계획들 을 세우고 있다는 정보도 있어 일본 경제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외국인들의 일 본 근무 기피현상도 적게나마 나타나고 있다. 지진은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라고 하지만 쓰나미에 의한 원전폭발은 사실 상의 인재( 人 災 )라는 조사 결과를 놓고 일본국민들은 낭패감을 느끼고 있다. 일 본국민들이 오랫동안 안전 이라고 믿었고 완벽 하다고 주장해 온 일본식 관리 시스템, 특히 철저한 사전 점검과 대비가 필요한 원전 관리 시스템의 허술함이 146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드러남으로써 사회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일본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을 뿐 아니라 내외에서 드러난 안전신화의 붕괴로 국민들은 낭패감에 빠졌다. 국민들의 불만과 좌절, 낭패감은 이를 분출하기 위한 탈출구를 찾아 헤매기 시 작했다. 일본사회에 어딘가 문제점이 있으며 이를 고쳐야 된다는 개혁의 심리가 국 민들에게 폭넓게 번져갔다. 아사히신문의 와카미야 요시부미( 若 宮 啓 文 ) 주필은 2011년 7월 8일 동서대 일본연구센터가 주최한 강연회(동서사랑방 토론회)에서 동 일본대지진을 계기로 일본인의 사고방식이 바뀌었으며 그로 인해 일본의 정 치 경제 구조가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처럼 동일본대지진과 후 쿠시마 원전폭발 사고는 전후에 일본이 이룩해 놓은 정치 사회 시스템을 근본 적으로 뒤흔드는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고 많은 지식인들이 지적하고 있다. 동일본대지진 부흥(복구) 구상회의 의 의장대리 미쿠리야 타카시( 御 厨 貴 ) 토쿄 대 교수는 3 11로서 일본의 전후 정치 경제 문화 시스템은 끝맺음( 終 焉 )을 고 했고 정체된 일본의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새로운 논리로 국가를 재건해야 한 다고 주장했다. 변화와 개혁의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정치 사회적 유동화 분위기를 타고 마치 개혁의 주체가 되기라도 하듯이 정치의 전면에서 국민들의 관심을 모 으는 정치공세를 펴기 시작한 것이 보수세력이다. 그리고 보수세력들이 들고나 온 공약이 우경화 노선의 정책 공약들이다. 이같은 보수 우경화 세력들에 개혁과 변화의 명분을 안겨주고 있는 외적 요인으로서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파워 밸런스의 변화, 그리고 일 본을 둘러싼 영토 분쟁이라고 하는 외부로부터의 압력이 3 11을 전후해서 클로 즈업 되었다. 국제정치학자들은 일본을 초조하게 하고 있는 외부적인 압력의 하나로 중국 의 부상을 들고 있다. 중국은 2010년을 기점으로 GDP에서 일본을 따라잡아 미 국에 다음가는 경제 대국이 되었으며, 국제무대에서 미국과 함께 G2로 불리기 시작했다. 세계질서가 미 중을 중심으로 재편돼 가면서 일본으로서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초조해져 있는 일본에 또다시 일격을 가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47

하듯이 닥쳐온 것이 2012년 8월의 센카쿠 제도에서의 일 중 충돌 사건이다. 센카쿠 제도의 영유권을 둘러싼 일 중 간의 역사 공방은 이 글에서 전부 다 루기는 어렵다. 그러나 2012년의 센카쿠를 둘러싼 일 중 충돌의 빌미 역시 일 본이 먼저 제공한 측면이 있다. 센카쿠는 일본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무인도이 다. 최근 중국어선의 조업 문제로 인한 마찰이 가끔 있어 왔으나 일 중 간의 뜨 거운 영토 분쟁은 아니었다. 가만히 두면 무력 충돌을 불사할 듯한 일 중 대치 가 일어날 가능성이 적었다. 그러나 극우 보수주의자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토쿄도의 이시하라 신타로( 石 原 慎 太 郎 ) 지사가 2012년 5월 워싱턴의 한 집회에서 연설을 통하여 센카쿠를 토 쿄도가 매입하겠다 고 선언했다. 이 발언이 중국을 자극한 데 이어 노다 총리가 아예 국유화 하겠다 고 나서 동년 9월에 각의 결정으로 센카쿠를 국유화 했다. 이에 중국이 폭발하듯이 강경대응으로 나서면서 일 중 간에는 센카쿠를 둘 러싸고 군함이 출동하고 전투기가 발진하는 일촉즉발의 사태로까지 에스컬레이 트 되었다. 센카쿠를 둘러싼 양국의 대립은 아직도 진행 중으로 중국에서는 1백 50여 도 시에서 반일 집회가 전개되었다. 일본국민들도 사태를 여기에 이르도록 서툴게 대처한 민주당 정권의 외교력 부재를 지탄함과 동시에 중국에 대해 강력히 대처 해야 한다는 쪽으로 여론이 기울게 되었다. 일본정부의 센카쿠 국유화로 촉발된 일 중간 영토 분쟁은 일본국민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동시에 일 본정부는 중국의 경제적 군사적 프레젠스의 도전에 새삼 부닥쳐 대응책을 강 구할 필요성의 하나로 군사적 대응을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 일본정부에 군사적인 면에서 대응의 명분을 주고 있는 또 하나의 외부적 압 력이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과 잇딴 핵실험이다. 북한이 2013년 2월 12일 세번째의 핵실험을 강행하자 아사히신문, 산케이신문 등 주요 일간지들은 이 사 실을 호외로 전하면서 일본사회의 충격을 반영하였다. 북한은 이번 핵실험에서 핵탄두의 소형화 및 경량화에 성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같은 소형 핵탄두를 자체 개발한 장거리 탄도 미사일에 탑재할 경우 한국은 물론 일본과 괌, 알래스카, 미국 본토까지도 사정권에 넣는 핵 보유 능력을 갖추 148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었음을 의미한다. 북한의 핵실험 및 핵무기 개발에 대해서는 한 미 일이 공조하여 철저히 대 응해 나갈 것을 재삼 확인하였으나 북한의 3차 핵실험을 계기로 동북아의 비핵 국가들 사이에서는 핵무기 보유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핵개발 도미노 현상이 우 려된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에서도 일부 극우 보수 정치가들이 핵 보유 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 받고 있는 오사카의 하시 모토 토오루( 橋 下 徹 ) 시장은 강한 일본을 만들기 위해서는 핵무장이 필요하다 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2012년 12월의 총선거를 앞두고 극우파의 이시하 라 신타로 토쿄도지사와 손잡고 일본유신회를 창당하여 총선거에서 54석을 확 보, 일본유신회는 일약 제 3당으로 중앙 정치에 등장하였다. 이시하라 역시 일본의 핵무장 추진론자로서 2012년 11월 토쿄의 외신기자협 회 강연에서 일본이 핵 모의실험을 하면 억제력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미 일 안보조약에 의해 미국의 핵우산의 보호 를 받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잇딴 핵실험과 그에 따른 핵무기 성능의 향상, 궁 극적으로 핵 보유국으로서의 지위가 인정되는 데 대해서 일본도 불안감을 느끼 지 않을 수 없다. 북한 핵은 일본의 우파 정치가들로 하여금 방위력 증강의 필요 성과 핵 무장론을 주장하는 명분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변혁 움직임에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일본의 변화 의 역사와 군사 증강 노선 앞에서 살펴본 내외적인 환경 변화의 압력 속에서 일본은 어떠한 변화를 추 진하여 어떠한 국가 진로를 설정하게 될 것인가. 변화의 흐름이 보수 우파 성향 의 정치가들에 의해 리드되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서 일본이 우경화 하고 있다는 우려가 해외로부터 제기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경화의 궁극적인 목 표가 군사력 확충에 의한 군사 대국화 인가 아니면 중국의 군사력 강화, 북한의 핵무기 보유 가능성 등 주변 안보환경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필요적 방위수단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49

으로서 방위력 확보를 추진해 나가고자 하는 데 머물 것인가. 그같은 일본의 군 사 강화 움직임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 치게 될 것인가. 이같은 의문들을 풀어가기 위해서는 일본의 역사 속에서의 변화의 흐름과 군사 증강 노선의 발자취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근대국가 성립과정 및 그 후의 근 현대사 속에서의 변화 과정을 살 펴보면 일본은 역사적으로 안팎의 충격과 위기에 민감히 반응하면서 정치 사 회의 혁명적인 변혁을 이루어왔으며 그같은 변혁의 물결 속에서 국가적인 진로 를 재설정해 왔다. 국가 진로와 좌표의 수정을 통하여 근대국가로 도약하는 기 회를 잡기도 했으며 때로는 국가의 진로를 그르쳐 군국주의 패권국가에의 길을 택함으로써 무모한 전쟁 도발과 패망이라는 쓰라린 경험도 겪었다.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흑선( 黑 船 )군단이 토쿄만( 灣 )까지 거슬러 올라와 교역과 개국을 요구하자 토쿠가와 막부는 이를 막을 길이 없어 정권을 천황에게 반납( 大 政 奉 還 )하였다. 이같은 정치변동으로 정권의 전면에 나선 천황에 의하여 일본은 메이지유신( 明 治 維 新 )이라는 근대화의 길로 나서 근대국가로 도약 하는 국가발전의 계기를 잡았다. 그러나 메이지유신의 부국강병, 해외식민지 확 장 노선은 결과적으로 일본을 대륙침략과 미국과의 전쟁 등 세계대전으로 끌어 들여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는 참담한 결과를 맞게 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 일본의 군조직은 연합군 사령부(GHQ)에 의해 육 해공군 모두 해체되었고 전쟁을 지휘하던 육군성과 해군성도 폐지되었다. 항공 기와 군함, 항공모함을 만들던 군수산업도 모두 해체되었다. 해체된 일본군과 군수산업에 다시 재기의 기회를 준 것이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 전쟁이었다. 주일미군의 한국전 투입으로 인해 생긴 일본 내의 치안공백을 메꾸 기 위해 GHQ에 의해 창설된 것이 자위대의 전신인 경찰예비대였다. 1951년 미일안보조약이 체결되면서 미국이 일본의 방위를 책임지게 되었고, 일본정부는 방위력을 단계적으로 회복해갔다. 경찰예비대는 1954년 육상자위대 가 되었고, 해상자위대와 항공자위대도 잇따라 발족했다. 일본의 전후 헌법은 일 본이 군대를 갖지 않고 전쟁 행위도 포기하며 전수 방위에 머물도록 규정하였다. 150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그러나 미 일동맹을 기반으로 하는 미 일 간의 방위협력과 일본 유사시를 상정한 태평양 상의 합동훈련에 자위대가 참가하는 등의 미 일 연대를 통하여 일본의 방위능력은 차츰 회복되어 갔다. 냉전 기간 중인 1980년대의 미국과 일본의 안보 방위의 제 1 목표는 소련 봉쇄 로서 이를 위해서는 시레인(Sea Lane) 방위가 필요하다는 미국측의 요청에 따라 스즈키 젠코( 鈴 木 善 幸 ) 일본 총리는 미국 방문 중에 일본에서부터 괌과 필리 핀을 잇는 1천 해리의 시레인 해상 교통로 방위계획을 발표했다. 일본이 전후 본격적인 방위력 증강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1982년 11월 나카 소네 야스히로( 中 曽 根 康 弘 ) 총리가 등장하면서부터이다. 나카소네 총리가 등장하 게 된 당시의 일본의 정치 사회적 분위기는 30년 후인 2012년 아베 총리가 재 등판하게 된 정치 사회 분위기와 매우 비슷하다. 그리고 이들 2인의 보수 정치 가가 외치는 방위력 증강 (나카소네), 군사 강화 (아베) 정책도 너무나 닮았다. 나카 소네 의원은 자민당내 소수파의 대표로서 당총재 곧 총리가 되기에는 역부족이 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정치 사회적 배경 아래 일약 총리가 되었다. 일본은 1970년대의 고도성장에 힘입어 경제적으로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경 제력에 상응하는 국력의 신장으로 국제사회에의 진출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 다. 일본이 멍에처럼 짊어지고 다니던 침략의 과거사로부터도 차츰 해방되고 싶 은 욕망이 일부 정치가들에게서 싹트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의 중 고교 사회 역사교과서에 기술된 과거사 가운데서 제국주의 시대의 침략행위 등을 감추거 나 미화하고자 하는 문부성 관료들의 간섭이 교과서 출판회사들에게 가해졌고 이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것이 82년의 제 1차 역사교과서 왜곡 검정 파동이었 다. 문부성 관리들의 교과서 검정에의 간섭과 그로 인한 수정 내용이 교과서 검 정본 공개 과정에서 드러났다. 과거 일제의 대륙 침략 을 진출 로 고치도록 한다 든지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듯한 검정 지침이 밝혀지자 한국과 중국에서 강한 비 판 여론이 일어났고 드디어 외교문제로까지 비화했다. 한국정부와 중국정부는 왜곡 검정의 중지 및 왜곡 교과서를 수정할 것을 일 본정부에 강력히 요구했다. 일본의 대부분의 미디어도 일본정부 비판에 동조하 여 국내적으로도 큰 정치문제화 했다. 일본정부는 결국 관방장관의 담화를 통하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51

여 정부가 책임지고 수정하겠다 고 약속함으로써 한국과 중국에서 일어난 일본 비판을 가까스로 잠재울 수 있었다. 일부 보수세력에 의한 역사 수정 기도에 브 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교과서 검정 파문으로 불거진 역사 문제에 대한 일본정 부의 대응이 서툴렀다 는 데 대한 책임을 지고, 그리고 한국 중국정부의 요구 에 무릎을 꿇었다는 질책을 받는 가운데 스즈키 총리는 보이지 않는 손 에 의해 끌어내려져 총리직을 사임했다. 그 뒤를 이어 그 해 11월에 나카소네 야스히로 의원이 새로운 일본의 총리로 선출되었다. 총리 선출에 앞선 자민당내 총재 선거를 둘러싸고 큰 파벌의 대표 들이 다투는 가운데 좀처럼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자 잠정적인 후임 총재로 소수 파벌 대표의 나카소네 의원에게 맡기자는 데 합의가 이루어졌다. 큰 파벌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나카소네 의원이 당총재에 선출되었고, 국회에서 총리로 지명 되었다. 그러나 정치권의 청년 장교로 불리던 나카소네는 총리가 되자 전후 정 치의 총결산 을 제창하면서 각종의 개혁정책을 들고나와 국민적인 지지를 받고 5년 간이나 장기 집권하게 된다. 그 나카소네 총리가 주도한 것이 강한 일본, 곧 방위력의 증강을 내세운 우경화 노선이다. 나카소네 총리는 전후 정치의 총결산을 들고나와 일 미운명공동체, 일본열 도 불침항모론( 不 沈 航 母 論 ) 등의 군사노선을 상징하는 듯한 발언(1983년 1월의 미일 정상회담 때)으로 강렬한 군사대국 지향의 이미지를 부각시켰으나 여론의 비판을 받자 약간 주춤하여 내정 중시, 행정 개혁 지향으로 중점을 슬쩍 비켜서 세론의 지지를 회복해 갔다( 内 田 健 三, 現 代 日 本 の 保 守 政 治, 1989 年. p. 7). 그러나 나카소네 총리는 시레인 방위의 공동 작전 연구의 합의, SDI(전략 방위 구상) 연구 참가, 방위비의 GNP 대비 1% 제한 돌파 등 군사면에서의 능력 증강 은 확실히 추진되었다 고 우치다 켄조는 위의 저서에서 지적했다. 나카소네 총리 재임기간 중 일본의 방위비는 꾸준히 늘어 1988년 이미 미국 과 소련에 이은 세계 3위의 군사비 지출국이 되었다는 것이 국제적인 통설이라 고 아사히신문(1988년 10월 19일자)이 지적했다. 나카소네 총리의 일본정부는 1987년 1월 각의에서 방위비 GNP 1% 상한을 철폐하여 GNP 연동제를 폐지함으로써 비핵 재무장에의 심리적 걸림돌을 넘어 152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섰다(정구종, 일본의 군사력-현황과 전망, 일본평론, 1990년).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해마다 발간하는 밀리터리 밸런스 1989-1990 에 의하면 일본의 1989년 방위비는 프랑스, 서독을 앞질러 서방국 가들 중 미국, 영국 다음의 군사비 지출국이 되었다. 1990년 2월 일본국회에 넘 겨진 1990 회계연도의 일본정부 예산안 중 방위비는 4조 1,593억 엔으로서 전년 도보다 6.1%가 늘어난 액수, 이는 10년 전에 비해 약 두 배가 늘어난 규모이다. 아베 총리의 군사 확장 주장들 2012년도의 일본 방위비는 4조 6,453억 엔이다. 일본 방위청이 발행하는 방위백서 2012년 판 에 의하면 방위비는 2003년 4조 9,262억 엔에서 지난 10 년간 해마다 줄었다. 주요국의 국방비(2010년 기준)와 대비하면 미국, 중국, 러시 아, 영국, 프랑스 다음의 세계 6위가 되었다.그러나 아베 총리는 2013년도 방위 예산을 11년 만에 증액했다. 나카소네 총리가 등장한 1982년 이래 30년 만인 2012년에 다시 군사강화 노 선을 주창하는 아베 총리가 등장함으로써 일본이 1980년대의 나카소네 군확노 선( 軍 拡 路 線 )과 같은 군사강화 정책을 펼 것인지가 내외의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자민당 총재 당내 경선 과정과 2012년 12월의 총선거 과정에서 주장한 정책노선 가운데 방위력 강화 및 자위대의 역할 강화 관련 내용을 종합 하면 세가지로 요약된다. (1) 일본의 중장기 국방계획을 규정하고 있는 방위계획 대강 의 수정 (2) 미군과 자위대의 협력체계를 규정하고 있는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 라인)의 개정 (3) 헌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허용을 위한 개헌 이 가운데 (1)은 자민당 정권 하의 내각에서 수정이 가능하며 (2)는 미국과의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53

미일동맹 아래서 개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3)은 의회에서의 중 참의원 각각 3 분의 2의 찬성에 의한 발의 및 성립, 그리고 성립될 경우 다시 국민투표를 통하 여 찬반을 묻는 절차가 필요하다. 아베 총리는 이같은 세가지로 요약되는 방위정책의 수정 및 집단적 자위권 허용을 위한 개헌 등을 취임 후의 기자회견과 미디어 인터뷰를 통하여 재삼 강 조했다. 이 가운데 (1)과 (2)를 통하여서는 자위대의 역할 강화와 확대를 위한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아베 총리는 취임 직후에 오노데라 이쓰노리( 小 野 寺 五 典 ) 방위상에게 미일 방위협력지침인 가이드 라인의 재개정을 지시했다. 미국의 신 군사전략과 연계하여 자위대의 역할을 강화하고 억지력을 높이라 는 지시였다. 방위계획의 수정이나 미일동맹 강화를 위한 가이드 라인 개정 등은 점증하는 중국의 위협과 북한의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개발 등이 명 분이 되고 있다. (3)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허용 문제는 일본이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전 쟁 행위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일본 국내는 물론 해외로부터도 적지 않은 반발과 반대가 예상된다. 집단적 자위권이란 국제법상 국가는 집단적 자위권 곧 자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동맹국 등 외국이 적으로부터 무력 공격을 받았을 경우 자 국이 직접 공격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여 실력 (무력)으로 저지할 권리를 갖는다는 개념이다. 일본은 주권국인 이상 국제법상 당연히 집단적 자위권을 갖고는 있으나 이를 행사하여 일본이 직접 공격받지 않 았음에도 우호국(또는 동맹국)에 가해진 무력 공격을 실력으로 저지한다는 것은 일 본 헌법 제 9조에 허용된 실력행사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므로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일본 방위성, 2012년도 방위백서 ). 일본정부의 정책 자문기관들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허용을 제언해왔다. 제 1차 아베 내각이 설치했던 유식자 간담회는 2007년 공해상에서의 미군 함정 에 대한 공격에의 대처 와 미국을 향해 발사된 탄도 미사일의 요격 이 가능하도 록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제언하였다. 아베 총리는 유식자들에게 새 삼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아사히신문, 2013년 1월 10일자). 미국은 미일동맹을 들어서 일본에 대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허용을 꾸준 154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히 요구해왔다. 아베 총리는 총선 과정 및 그 후의 미디어 인터뷰에서 일본을 지키려고 작전 중인 동맹국 미국의 함선이 공격받을 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 여 함께 막지 않는다면 동맹 관계는 끝장 이라고 주장해왔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극단적인 예로서 북한이 미사일 또는 핵무기로 미국 영토, 괌이나 알래스카를 비롯한 미 본토를 공격했을 경우 일본은 북한의 공격 을 받지 않더라도 미국의 편에 서서 대북한 반격에 나서야 할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이는 사실상의 전쟁 행위이며 이같은 상황이 전개될 경우 한국은 심각한 선택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따라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허용 문제는 일본 만의 문제가 아닌 주변 각국에 파장을 불러 일으키는 심각한 상황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 일 간의 합의만이 아닌 관계 각국과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 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허용 여는 개헌의 전망은? 자민당은 2012년 총선거에서 선거 이전의 118 의석을 294석으로 대폭 늘리 는 압승을 기록했다. 여기에 개헌에 찬성하는 일본유신의회 54석, 민나노당 18 석 등을 합치면 개헌 발의에 필요한 중의원 3분의 2가 훨씬 넘는다. 그러나 참의 원에서도 개헌 지지 정당 의석이 3분의 2를 넘어야 하기 대문에 2013년 7월의 참의원 선거가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중 참 양원 모두에서 개헌 지지 정당들이 개헌 발의가 가능한 3분의 2 의석 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래서 아베 총리는 개헌 요건을 완화하 기 위해 헌법 96조를 먼저 바꿔서 중 참 양원 3분의 2의 동의 규정을 2분의 1 동의로 바꾼 뒤 본격적인 헌법 개정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단계적으로 국회에서의 개헌의 문턱을 넘어선다 할지라도 국민투표 에 부쳐야 한다. 국민투표에서 일본국민들이 평화헌법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일본정치의 우파들이 들고 나올 헌법 개정을 통한 군사강화 노선을 지지할 것인 지는 일본국민들의 몫이다. 언젠가는 그같은 선택의 기로에서 치열한 찬반 논의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55

가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개헌을 둘러싼 정당들과 일반 국민의 입장 차이는 여론조사에서 확실히 드 러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이 일본 총선거 직후인 2012년 12월 26~27일 국민 85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개헌 반대가 52%, 찬성이 36%였다. 집 단적 자위권 행사의 허용에 대해서도 반대 37%, 찬성 28%로 반대 여론이 많았 다. 아사히신문의 여론 조사(990명 대상)에서도 헌법 9조 개헌 반대 53%로 찬성 32%보다 훨씬 많았다. 한편 마이니치신문이 총선거 당선자를 상대로 한 여론조사(12월 16일)에서는 당 선자의 91%가 헌법 개정에 찬성했는데, 특히 군대 보유를 금지하고 있는 9조 개 정에 대해서도 72%가 찬성했다. 따라서 개헌을 둘러싸고는 우파 성향의 정당들 과 평화헌법을 지키고자 하는 일반국민 사이의 커다란 갭이 있기 때문에 정치권 의 개헌을 위한 움직임이 반드시 가까운 장래에 개헌으로 이어지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전후 오랫동안 터부시되어 왔던 헌법 개정을 둘러싼 논쟁은 자민당 의 재집권을 계기로 국회에서, 그리고 미디어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으 로 전망된다. 일본국회의 헌법심사회가 작년 말의 총선 결과 및 아베 정권의 발 족을 계기로 새로 구성되었으며 2013년 3월 토론을 재개하였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새로 구성된 정원 50명의 헌법심사회는 자민당이 31명, 개헌 지지의 유 신회가 6명 등 개헌파가 압도적으로 많은 가운데 토론을 시종 리드하였다고 한 다. 토론에서 자민당의 한 의원은 자위대를 국방군 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밝히 면서 자위권의 보유, 국가를 지키는 조직의 명칭, 권한 등을 명기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개헌 동조의 자민 유신의회 민나노당 등 3당은 이 토론에서 국 기 국가를 헌법에 명기해야 한다는 데에도 입장을 같이했다(아사히신문 2013년 3 월 15일자). 156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아베 정권의 일본, 군사 대국화 전망은? 아베 총리와 자민당의 매파 의원들은 일본도 국방군 으로 명명하고 군대의 보유를 헌법에 확실히 해야 하며 전쟁 행위와 직결되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같은 군사 돌출 을 연상케 하는 조치 들이 실현된다고 할 경우 일본은 군사 대국화 할 수 있을까. 군사 전문가 및 국제정치학자들이 정의하는 군사 대국의 조건은 일반적으로 핵무기의 보유, 장거리 탄도 미사일(ICBM)의 보유, 장거리 폭격기의 보유, 공격용 전투기의 탑재가 가능한 항공모함의 보유 등이다. 일본은 아직 이 가운데 한가 지 조건도 충족하지 못한 상태이다. 따라서 최소한 군사적 장비면에서 보면 일본이 가까운 미래에 군사 대국화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만 일본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또한 과거의 군수산업 을 기반으로 한 기술면에서, 또한 핵무기 개발 가능성 등에서 여차하면 언젠가 는 군사 대국화의 조건을 충족시킬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음을 주변 국가들은 인식해야 한다. 우선 핵무장의 가능성에 대해서 검토해 보자. 일본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원폭 투하 공격으로 세계 유일의 피폭국이 되었다. 그같은 교훈 위에서 1967년 12월 사토 에이사쿠( 佐 藤 栄 作 ) 총리는 일본은 핵무기를 가지지 않고 만들 지 않으며 들여오지도 않는다 는 비핵 3원칙을 국회에서 천명하였다. 이 비핵 3 원칙은 1991년 국회 결의를 거쳐 방위 안보 정책의 하나로 정착되었다. 그러 나 일본은 그 후 핵무기 제조 가능 원료가 되는 다량의 플루토늄을 유럽으로부 터 해상 수송해 들여왔다. 이를 계기로 일본의 핵무장 문제에 대한 논의가 국회 에서 제기되었다. 미야자와 키이치( 宮 沢 喜 一 ) 총리는 그가 총리가 되기 전인 1991년 여름 中 央 公 論 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기술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핵무장이 가능하다 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헌법이 개정되면 일본은 본격적인 군비( 軍 備 )에 착수하게 될 것이나 누가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57

생각하더라도 가장 경제적인 군비는 일본과 같은 나라로서는 핵무장이라고 생 각한다. 그것은 기술적으로도 가능하고 재정적으로도 그다지 어려운 얘기는 아 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 핵무장을 하여 핵병기를 잘 관리할 수 있게 되어야 할 것이다. ( 中 央 公 論, 1991년 9월자). 일본은 벌써 20년 전에 비록 개인의견 이라고는 하지만 곧 총리가 될 유력 정치가의 발언을 통하여 핵무장도 할 수 있는 실력이 있음이 언급되었다. 일본의 핵무장을 포함한 군사 대국화에의 유혹을 막는 가장 강력하고도 안 전한 장치는 아이러니컬 하게도 미일안보체제라는 점에서 미일 안보 동맹의 지 속적인 유지는 동아시아 지역 나아가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필 수적이다. 1990년대 초 일본에서는 냉전이 끝난 시점에서 자위대 무용론, 미일동맹 해 체론 등이 사회주의 좌파 정치세력들을 중심으로 한 때 은밀히 제기되기도 했 다. 소련의 해체로 미일동맹의 역할은 끝났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냉전 종결 이후 두 가지 측면에서 미일 안보체제의 지속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하나는 방위 경비 등 국제 공헌의 분담 요구이며 또 하나는 미국과 소 련의 퇴조에 따른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막기 위해서 미일 안보체제의 지속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정구종, 21세기 일본의 국가 전략,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총서, 1993년). 미국으로서는 소련의 붕괴로 위협은 없어졌다 할지라도 극동에서의 미국의 이익과 안전을 위협하는 불안정 요인이 남아 있는 한 아시아 태평양에서의 미 국의 프레젠스를 포기할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에서 아 태의 군사 유지를 위한 미일 안보체제의 지속을 강조한 것이다. 냉전 이후 미국의 국방관계 보고서와 전략 구상 등에서 극동에서의 불안정 요인 으로 제기된 것이 북한의 핵무기 개 발 움직임과 일본의 군사 대국화 움직임이었다. 20년이 지난 현재 미국이 우려했던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이미 가시화 단계 에 이르렀다. 또 하나의 우려인 일본의 군사 대국화는 미국 스스로의 잠재적 국 가 이익을 위해서도 미일동맹의 체제 속에서 계속 억제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중국의 군사적 프레젠스가 크게 부각되고, 특히 2012년 8월 이래의 센 158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카쿠 제도를 둘러싼 일 중 충돌사태가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자극하여 궁극적 으로는 일본을 군사 대국화의 길로 몰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한 논쟁도 국내외의 학술 회의에서 활발하다. 현대일본학회와 서울대 일본연구소 등이 공동 주최한 일본 신정권의 등장 과 한일관계 전망 학술회의가 2013년 2월 28일 서울대 국제 대학원에서 있었 다. 한국측 주제 발표에 나선 박철희 교수는 일본은 미 일동맹에서 벗어나기 어 려우며, 戦 前 으로 돌아갈 수 없는 데다 중국과 등지고 살아갈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어서 일본의 군국주의로의 회귀 가능성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박 교수는 일본 정치의 보수화 경향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최근의 총선거 결과 등은 보 수의 승리라기 보다는 리버럴의 패배 라고 주장했다. 일본측 주제 발표에서 카쿠슈인대학의 노나카 나오토( 野 中 尚 人 ) 교수는 일본 정치 전체가 우경화했는가 라는 의문에 대해 중국 북한의 대외 자세와 관련 한 반발과 경제적 정체의 장기화 정치적 무능에 대한 반발과 불만의 현상이 아 니겠는가 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노나카 교수는 일본국민들은 전후의 일본의 방향성을 바꿔야 한다고는 생각하고 있으나 정치와 일반 국민들의 생각에는 이 중성이 있다 고 지적하고 아베 총리의 현재의 주장들로 2, 3년 후에는 자민당이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고 주장했다. 맺음말 일본의 정치 사회적 분위기가 우경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머지 않은 장래에 군사 대국화하여 과거의 군국주의 노선으로 되돌 아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지나친 경계라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일본이 그같 은 잘못된 방향을 선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외부로부터의 충격과 자극을 억제 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군사확장 노선, 북한의 미사일 핵무기 개발 등은 일본 의 군사강화 노선으로 가는 명분을 제공한다는 면에서 세계가 감시하고 억제하 도록 권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59

주변 국가들은 일본 자체적으로도 명분 없는 우경화와 역사 부정의 유혹으 로부터 탈피해 나가도록 일본 정치가들에게 지속적으로 경고해야 할 것이다. 아 베 총리가 일본의 군대 위안부에 軍 이 관여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河 野 )담화 를 수정하겠다고 하고, 과거의 침략전쟁에 대해 사죄한 무라야마( 村 山 )담 화 를 대체하겠다고 주장한 데 대해 미국의 뉴욕타임즈와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등 국제적 유력 미디어들도 후안무치한 발언이라고 질타한 것은 그의 역사 수정 의도가 국제적 비판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함을 지적한 것이다. 일본은 과거 침략의 역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 없이는 아시아에서 더 이상 우 호국으로서 인정받을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일본의 한 국제정치학자가 지적 하듯이 자국 내의 1%도 안 되는 우익 세력에 이끌려서 일본적 논리 의 정당성 만 주장한다면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자폐 국가 로 전락할 것이다. 역사 부정 이 군사 대국화 와 결합하여 일본이라는 나라의 국격( 國 格 )을 떨어뜨리고 21세기에 세계의 고아 를 자초하게 한다는 사실을 일본의 정치가들은 깨달아야 할 것이 다. 160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Abstract Conservative swing of Japan and outlook of a military power Chung Kuchong Director, The Japan Center of Dongseo University Conservative parties are emerging again in front of politics as conservative wings changed socio-politically in Japan. Liberal Democratic Party who guided for Japan s conservative politics postwar had finally seized power in 3 and half years after landslide victory in politics election in Dec, last year. The changes of circumstances both from inside and outside surrounding Japan could be used as the background reason for conservative parties emerging again. In terms of domestic factor, long recession is continuing for 20 years as bubble economy collapsed in the early 1990s creating economic depression and at the same time flexibility for society fall down rapidly. Japanese s anxiety and dissatisfaction have been building up and accelerated by their severe earthquake on March 11th, 2011, tsunami, and Fukusima nuclear reactor s radiation leak, and so on. Besides, Democratic party had suffered greatly from increasing consumer tax to be used toward disaster restoration finance, so they handed over the reins of power in the election in 2012. External background that fanned Japan s conservatization and military expansion line could be due to the dramatic growth of China and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61

Japanese citizens nervousness coming from relative declination of their status. And, Japanese government and their citizens recognize the need of response of military because of tinderbox collision dispute surrounding Senkaku Island that is faced with a deep antagonism situation since August of last year. Besides, the development of ERBM in North Korea and additional nuclear tests had instigated alert and tension of Japan. In order to response to internal and external shock and change like this, Japanese citizens nervousness on need of change began to germinate national wide. Abe Shinjo who is a conservative in Liberal Democratic Party is rising due to the people s request for change in the society. It is true that Japanese politics and atmosphere are changing conservatively rapidly. But, there are some concerns regarding militarizing Japan is too hasty within short period of time. Just, Korea and neighboring countries should keep close eyes on Japan s behaviors, changes and which direction they set the coordinate of their nation. 162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특 집 미 일 중 러 새 정 부 와 한 반 도 의 안 보 푸틴 3기 정권의 대외전략과 미 러관계, 중 러관계의 전망 장덕준 * 들어가며 2012년 5월, 블라디미르 푸틴이 마침내 크렘린에 재입성했다. 이로써 푸틴 은 메드베데프와 양두체제를 형성하면서 실권을 행사했던 시기를 합치면 13년 가까이 러시아를 통치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집권 3기를 맞이한 푸틴 정부 는 집권 1, 2기와 비교해 국내외적으로 만만찮은 도전과 과제에 직면해 있다. 국내적으로 크렘린은 반( 反 )푸틴 시위 등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오프 라인상의 집회와 블로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 반정부 활동을 돌 파하면서 경제성장을 지속해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다. 동시에 공직자들 사이에 국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사회과학대학장. 미국 뉴욕주립대(버펄로 소재) 정치학 박 사. 주요저서 및 논문: 자본주의로의 험난한 여정: 사유화를 통해 본 러시아의 체제전환 (한울아카데미, 2008), 중러관계와 한반도 (편저) (한울아카데미, 2012), 현대 러시아 정 치문화의 탐색 ( 한국정치학회보 제41집 1호, 2007), 러중관계와 새로운 한러관계의 모 색 ( 한국정치연구 제 20집 3호, 2011), What Happened to Russian Federalism?: Federal Reform under Putin and Medvedev ( 러시아연구 제22권 2호, 2012) 외 다수.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63

만연해 있는 부패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국내적 난제들에 더해 러시아는 녹록치 않은 대외환경 속에서 자신 의 위상을 제고해 나가야 하는 임무를 안고 있다. 우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에너지 수요의 감소로 인한 에너지 수출 부진은 러시아 경제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더구나 최근 들어 미국이 셰일가스의 대량 생 산에 들어가면서 석유와 천연가스의 가격이 떨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러시 아 경제의 버팀목인 에너지 수출을 통한 경제성장 동력의 창출에 적신호가 켜지 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러시아 경제를 둘러싼 환경의 악화는 푸틴 정부의 순 항 여부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러시아는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에 대한 확고한 영향력 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통합체를 확립하려는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2 년 1월에는 러시아 주도하에 유라시아 단일경제 공간(Eurasian Single Economic Space) 이 출범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CIS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패권적 지위는 상당히 약화되었다. 이 지역에는 미국 유럽 등 서방의 영향력 이외에도 중국의 적극적인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편, 유럽에 배치할 예정인 미사일 방어체제(MD)의 건설을 둘러싸고 러시아 는 미국 등 서방국가들과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오바마 집권 1기에 형성되었던 미 러 협력 분위기는 냉각되었고 이제 양국 사이에는 갈등기류가 형성되었다. 푸틴의 재집권 이후 러시아는 미국과 더욱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 고 있는 것이다. 한편, 러시아는 서방과의 갈등을 빚으면서 아시아의 이웃 국가들과의 협력에 공을 들이고 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극동지역의 개발을 본격화할 수 있는 교 두보를 확보하고 아태 지역 국가들과의 정치 및 경제협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신동방정책 의 기치 아래 대외정책에 있어서 아시아에 대한 비중을 높이고 있 다. 본고에서는 푸틴 3기 러시아 대외정책의 변화를 분석하고, 러시아와 미국,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현안과 양자 관계의 전망을 살펴보고자 한다. 164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푸틴 3기 대외정책의 방향 2000년대 이후 경제적 부흥과 함께 강대국으로 재등장한 러시아 대외정책의 전반적인 전략과 목표를 살펴보자. 현재 러시아 대외정책의 기본방향은 메드베 데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8년 7월에 승인된 <러시아연방 대외정책개념>, 2008년 8월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천명한 <러시아 대외정책의 주요원칙>, 2009 년 5월에 채택된 <러시아연방 국가안보전략 2020>, 그리고 2012년 5월에 발표 된 <외교정책의 실행관련 조치들에 대한 행정명령> 등에 나타나 있다. 푸틴은 집권 3기에도 이전 집권기에 선보였던 강대국 러시아 지향의 대외정책 기조를 유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푸틴 신정부는 실용주의, 슬라브 민족의 자긍 심 고취, 국제적 위상 제고, 국익의 극대화, 국민의 복리증진 및 경제성장을 지원 하는 외교기조를 그대로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대외정책의 기본노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러시아는 특정 국가에 의한 일극적 지배는 세계정치의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음은 물론 지구화 시대의 국가간 협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 다는 이유로 다극적 질서의 구축을 지향한다. 이는 미국의 독주체제가 글로벌 정치무대의 강대국으로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러시아의 노력에 걸림돌로 작 용한다는 계산에서 비롯된 대외정책의 정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러시 아는 다층적이고 다방면(multi-vector)적인 외교와 안보정책을 추구한다. 유사한 맥락에서 러시아는 국제관계에 있어서의 법치주의를 강조하고, 평화유지군 및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의 자국의 활동무대가 될 수 있는 유엔의 지도적 역할 을 부각시키는 한편, 주권존중의 원칙을 내세움으로써 미국의 일방주의를 제어 하고 자국의 역할을 확대하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또한 이러한 목적을 위해 러 시아는 유엔 이외에도 주요 8개국(G8) 및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글로벌 수준의 협력체와 아시아 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상하이협력기구(SCO), 유라 시아경제공동체(EurAsEC),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등 주요 지역협력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다자협력체를 통한 자국 영향 력의 확대를 도모한다.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65

둘째, 러시아는 미국과 쌍벽을 이루는 핵 강대국으로서 핵확산을 저지하는 것을 외교정책의 주요목표로 삼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글로벌 차원의 안정적 인 핵 레짐을 유지하기 위해 모스크바는 워싱턴과 협력을 도모해왔다. 옛 소련 시기부터 모스크바와 워싱턴은 전략무기의 제한 또는 감축문제를 논의하기 위 해 여러 차례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재래식 무기 및 핵무기의 제한과 감축을 위 한 일련의 협정을 맺은 바 있다. 최근의 예를 들면, 러시아는 오바마 행정부 출 범 이후 리셋 외교 의 틀 속에서 대미관계를 복원하려는 정책방향을 설정해 양 국간 전략무기에 관한 새로운 협력체제를 발전시켰다. 예컨대, 2010년 4월에 러 시아는 미국과 새로운 전략핵무기 감축협정 (New START)을 맺는 등 전략적 안정 (strategic stability)을 도모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미국과 경 제협력을 확대하고 비자면제협정을 체결하는 등 실용주의에 기초한 협력의 확 대를 도모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구성원들이 국제법과 유엔헌 장을 준수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옴은 물론 러시아의 국익에 도 부합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미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하는 입장을 보인다. 셋째, 러시아는 몇 몇 중요한 지역에 대해 외교역량을 집중해왔다. 우선, 18 세기 초 이래 유럽은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대외정책의 대상지역 가운데 하나이 다. 오늘날에도 러시아는 유럽연합 및 유럽 각국과의 에너지, 경제 및 안보협력 을 긴밀하게 유지해오고 있다. 유럽은 러시아의 가장 큰 에너지 자원 수출시장 이자 상품교역 및 투자의 파트너이다. 또한 러시아와 유럽은 정치 외교와 안보 부문에 있어서도 서로 전략적인 협력과 연대를 필요로 하는 파트너이다. 한편, 러시아는 전통적인 영향력의 범위에 속하는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 (CIS)의 결속을 다지고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려는 노력을 경주해오고 있다. 한편, 푸틴 3기에 접어들어 러시아 정부는 극동개발부 를 신설하고 극동지역의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을 집중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러시아 는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증대시키기 위한 신동방정책 을 주 요 대외정책 노선으로 설정했다. 넷째, 러시아는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과 현대화를 위해 정치, 외교, 경제, 문 화 등 다방면에서 국제협력을 강화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 166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은 취임 2년차인 2009년 5월에 러시아 경제현대화 및 기술발전을 위한 대통령 위원회 를 출범시켜 에너지, 핵기술, 의료기술, 우주항공 및 통신분야 등 5개 산 업부문에 있어서 기술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현대화 계획을 추진했 다. 이를 위해 메드베데프 정부는 선진 기술과 제도를 지니고 있는 서방국가들 과의 협력관계를 통한 현대화동맹 (modernization alliance)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푸틴은 2012년 5월 취임에 즈음해 국가목표 내지 비전으로서 2020년까지 세계 5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한다는 푸틴 플랜 2020 을 제시 했다. 푸틴정부의 미 러 관계 현황과 전망 : 리셋 외교에서 갈등관계로? 러시아는 2000년 푸틴 집권 이후 소련붕괴로 인한 국내적인 혼란과 국제적 인 위상추락을 회복하고,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 다. 특히 푸틴은 집권 1기를 시작하면서 강한 러시아'라는 슬로건 아래 러시아 의 재등장을 가속화시켰다. 푸틴 등장 이후 러시아가 국제무대에서 보인 독립적 인 행보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대미관계를 들 수 있다. 소련해체 이후 신생 러시아는 1990년대 초반까지 신사고 외교정책의 연장선 상에서 소위 친서방 외교정책을 표방했다. 이는 국내적으로 광범위한 정치 및 경제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러시아가 대외적으로 개혁에 유리한 환경을 유지해 야 한다는 현실적인 고려에서 나온 외교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대외정 책 노선하에서 러시아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추진했던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의 동진정책 등에 있어서 온건한 대응을 보였다. 그러나, 미국의 독주와 주요 국제 이슈에 있어서 러시아에 대한 전략적 무시정책이 지속되자 모스크바 는 1990년대 중반 이래 미국의 일극적 지배체제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꾸준 히 내왔다. 게다가 2001년 9 11 이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세계의 주 요 국가들과 손을 잡지 않을 수 없게 된 상황으로 인해 미국의 패권적인 일극지 배체제는 상당히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현실을 반영해 많은 러시아 관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67

측통들은 이제 미국의 일극체제는 종언을 고했다는 주장까지 펼치게 된 것이다. 특히 러시아는 NATO 팽창문제와 MD 시스템의 구축문제를 둘러싸고 미국 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러시아의 주류 정치인들과 여론주도층은 NATO의 팽창 이 미국의 동맹국과 그 밖의 국가들을 구분하는 냉전적 사고방식에 갇힌 정책이 라고 비판해왔다. 이들에 따르면,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NATO의 팽창을 통 해 동유럽 국가들과 옛 소련 국가의 일부를 서유럽권에 끌어들인 성과를 거두기 도 했지만 오히려 그러한 미국의 정책이 러시아 내부의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해 러시아의 방어적인 대응을 초래했다. 2007년 2월 10일 독일의 뮌헨에서 열린 제 43차 유럽 안보정책회의에서 푸 틴은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푸틴은 국제법이 무시되고 있 는 현실 을 개탄하고, 미국이 세계 도처에서 국제법과 개별국가의 주권을 무시 하는 행동을 보여왔다고 비난했다. 또한 미국이 국제적인 이슈들을 다룸에 있어 서 원칙과 규범보다는 정치적 편의에 입각해 군사적인 방법을 즐겨 사용하는 경 향을 보여 왔고, 이는 극도로 위험한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논리의 연장 선상에서 푸틴은 미국의 주도하에 이뤄지고 있는 NATO의 확대는 유럽과 유라 시아 대륙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기 보다는 회원국과 비회원국들(특히 러시아) 사 이의 상호불신과 안보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킬 뿐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Washington Post, 2007년 2월 12일).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일시적으로 형성되었던 미 러 협력외교의 분위기 는 2011년 하반기부터 다시 불거져 나온 MD 문제에 대한 양국간의 이견으로 인해 상당히 냉각되었다. 동유럽에 배치할 예정인 MD 시스템이 러시아를 겨냥 하지 않는다는 점을 조약으로 보장해달라는 요청을 워싱턴이 거부하자 모스크 바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메드베데프는 칼리닌그라드 등 러시아 서부국경과 남 부국경지대에 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배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그는 유럽 의 미사일 방어시스템 건설을 백지화하지 않을 경우, 2010년의 새로운 전략무기 감축협정을 철회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BBC Monitoring Former Soviet Union, 2012년 1월 11일). 이로써 양국간의 협력무드는 상당히 후퇴하게 되었다. 더구나, 푸틴의 세 번째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미 러 관계는 파열음을 내기 168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시작했다. 우선 2011년 12월 러시아 총선 부정선거 시비로 촉발된 중산층과 야 당 개혁세력에 의한 반푸틴 시위에 대해 푸틴은 미국측이 사주하고 지원한 결 과라고 비난하는 등 미국에 대한 불편한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2012년 5월 미국 워싱턴 근교의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에 푸틴은 조각( 組 閣 ) 작업을 이유로 불참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그의 태도의 일단을 보여주 었다. MD 문제를 둘러싼 양국간의 갈등이 해결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12년 3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오바마 미국대통령 이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에게 대통령선거가 끝 날 때까지 MD 문제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 준다면 선거 이후에 보다 융통성 있 는 입장을 갖게 될 것이라는 언급을 함으로써 세계 각국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 킨 바 있다. 이러한 에피소드에서 볼 수 있듯이 오바마 집권 2기에 접어들어서 양국간 화해 분위기가 다시 조성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하지만 2013년 2월초 뮌헨에서 열린 유럽안보정책회의에 참석한 NATO의 아네르스 라 스무센 사무총장은 유럽배치 MD 계획을 철회할 의사가 없다고 언급함으로써 이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신경전은 일단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최근에 러시아와 미국은 인권문제를 둘러싸고도 날선 공방을 서로 주고 받았다. 소위 미국의 마그니츠키 법(Magnitsky bill) 제정을 둘러싼 미 러간 갈등이 그것이다. 이 사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2009년 러시아연방 국세청 관리의 부정을 조사했던 변호사 겸 회계감사관 세르게이 마그니츠키(Sergei Magnitsky)가 모스크바의 한 교도소에 수감중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2012년 6월에 미 국 하원 외교위원회는 마그니츠키의 사망에 책임이 있는 러시아 관리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고 미국 은행시스템의 사용을 불허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 안은 12월 미국 상원에서 통과된 뒤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서명됨으로써 발효되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정부는 미국계 홍보전문 기업을 통해 반대 로비 를 벌이다가 법안이 통과되자 외무부 성명을 통해 어리석은 행위 라는 표현을 쓰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더 나아가 푸틴 대통령은 이것은 매우 나쁜 결정이며, 이러한 미국의 행동은 양국관계를 확실하게 악화시킬 것이다 라고 언급했다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69

(New York Times, 2012년 12월 20일). 또한 이 법안에 맞서 러시아 의회는 2012년 12 월에 러시아 아동들의 미국 입양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미 러관 계는 한층 더 껄끄럽게 되었다. 그밖에 무역 및 국제협력 이슈에 있어서도 미 러 갈등 기조는 지속되고 있 다. 러시아정부는 2013년 1월에 약 5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산 쇠고기 및 돼지고 기의 수입중단을 결정했다. 이는 직접적으로는 마그니츠키 법 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 보면, 러시아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민사회 의 반푸틴 운동이 미국의 영향력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는 크렘린 당국의 불편한 심기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한편, 러시아정부는 미국과의 국제범죄 퇴치를 위한 공조마저 유보시키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예컨대 러시아는 2000년대 초반에 미국과 국제 마약거래, 국제매춘, 돈세탁, 테러리즘과 컴퓨터 범죄 등의 국제범죄에 대한 공동대응과 법집행에 있어서의 공조를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마그니츠키 법 제정을 둘러싼 양국간의 신경전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미국이 시 민사회 지원을 위한 양국 공동패널에서 탈퇴를 선언하자 메드베데프 총리는 2013년 1월 말에 국제마약거래 및 인신매매 방지 등을 위한 미 러 협정으로부 터의 탈퇴를 선언했다(Washington Post, 2013년 1월 31일). 이러한 행보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판에도 러시아정부는 미국과의 대립각을 계속 세워나가고 있는 형국 이다. 그럼에도 푸틴 3기의 러시아는 미국과의 협력채널을 열어 두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북핵문제, 이란의 핵개발 문제 등 핵 확산에 대해서는 공동으 로 대응하면서 전략무기의 감축에 대해서도 공감대를 갖고 협력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국제테러리즘, 마약밀매, 국제범죄 등에 대해서도 공동 대 응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미국의 압박과 관 여, 시리아 사태의 해법에 대한 미 러의 시각 차이, 그리고 이란 및 북한의 핵개 발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방법에 관한 이견 등은 양국관계를 악화시킬 요소로 작 용할 수 있다. 170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푸틴 정부의 중 러관계 : 협력, 편승, 경쟁의 삼중주 러시아와 중국은 지난 400여년의 양국 관계사에서 정점에 다다랐다고 할 정도 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에 대해 다소 경직되고 부정적인 태도를 보 여 온 푸틴은 중국과는 한층 더 긴밀한 우의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 급한 바와 같이 첫 해외 방문지가 될 수 있었던 워싱턴의 G8 회의의 참석을 마다 한 푸틴은 취임한 지 한 달만인 2012년 6월에 중국을 방문해 미국의 이란 제재문 제와 시리아 사태 등에 대한 공동인식을 확인하고 에너지 협력 등 경제협력의 확 대에 합의했다. 또한 양국은 이 시기에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SCO) 를 비롯한 다자협력체를 통해 유라시아지역의 안보와 경제협력 그리고 지정학적인 공동이익을 위해 협력을 확대해 나갈 것에 합의했다. 최근 수년간 러시아와 중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관계를 발전시켜왔다. 첫째, 양국은 4,000km가 넘는 국경선에 대한 이견을 해소했다. 극동 러시아 지방 에서 일부 비판도 있었으나, 2008년 7월 중국과 러시아 양국의 외교장관은 베이 징에서 아무르강의 볼쇼이 우수리스크 섬(중국명 헤이샤쯔다오)의 절반을 중국의 영 유권으로 인정하는 것을 포함하는 러 중 동쪽 국경선 서술 협의서 에 서명함으 로써 양국간 국경선을 최종 획정했다. 둘째, 러시아와 중국은 상하이 협력기구 를 통한 다자안보 부문에서도 긴밀 한 협력을 진전시켜왔다. SCO는 원래의 목표를 확대해 정치, 경제, 운송, 교육, 문화, 환경보호 등을 포함해 광범위한 이슈를 다루고 있다. SCO의 주도국으로 서 러시아와 중국은 SCO를 통해 긴밀한 안보 협력을 해오고 있다. 특히, 러 중 양국은 중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미국의 시도에 대해 공동으로 대 처한다는 차원에서 SCO를 다자안보협력기구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러 중 양국은 평화사명(Peace Mission) 등의 이름으로 SCO의 주관하에 여러 차례의 합 동군사훈련을 벌인 바 있다. 셋째, 양국은 지난 20여년에 걸쳐 경제협력 분야에서도 괄목할만한 협력관 계를 발전시켜왔다. 먼저, 교역부문을 살펴보면, 2002년의 교역량은 72억 4,200 만 달러에 달해 1999년의 44억 6,100만 달러에 비해 무려 97.3%나 증가했다.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71

2012년 첫 10개월간 이루어진 러시아와 중국간의 교역규모는 736억 달러에 이 르고 이는 전년도에 비해 13.4% 증가한 것이다. 2,000억 달러가 넘는 한국과 중 국간의 교역규모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약 20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한 러간 무역규모에 비해서는 상당히 큰 규모라고 할 수 있겠다. 양국의 경제협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에너지 협력분야이다. 세계 굴지의 석유 및 천연가스 매장량과 생산량을 자랑하는 러시아와 세계의 공 장으로서 에너지 자원의 확보에 목말라 있는 중국 사이에 에너지 협력이 양국 협력의 중요 아젠다가 된 것은 당연하다. 러시아의 동시베리아산 원유를 공급받 기 위해 중국은 러시아 정부와 8년간의 오랜 협상 끝에 2009년 타이세트에서 스 코보로디노를 거쳐 다칭까지 연결되는 러시아의 동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의 지선 건설에 합의를 이끌어 내고, 2010년 연말에 마침내 그 완공을 보았다. 그 리하여 중국은 일일 수송량 30만 배럴에 이르는 동시베리아산 원유를 향후 20 년간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푸틴은 자신의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시베리아 및 러시아 극동지방의 개발을 촉진시키는 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아시아 중시정책에 시동을 걸고 중국과의 파트너십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양국은 러시아 에너지 및 지하자원 분야뿐만 아니라 극동지역 국경지대에서의 도로 및 인프라 건설, 항공기 제조, 우주탐사, 농업부문, 그리고 관광 부문에 이 르기까지 공동투자와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체적으로 볼 때, 러 중관계는 해를 거듭할수록 그 협력의 폭과 깊이를 더해 온 결과, 작금의 양국관계는 역사상 최고조에 도달 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전반적인 협력관계의 공고화에 도 분야에 따라서는 양국간에 상당한 이견이나 경쟁, 더 나아가 잠재적인 갈등 의 씨앗을 배태하고 있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첫째,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관 계는 다분히 편의에 의한 전략적 제휴관계로 볼 수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각각 대미관계를 의식해 자국과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있을 때 러 중 전략적 협 력을 강화하는 이미지를 창출함으로써 미국에 대해 우리도 친구가 있다 는 것 을 보여주고 양자관계를 미국과의 세력균형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러시아 지도자들은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수사를 거듭 사용해 172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왔으나, 내심으로 중국의 급부상에 대해 우려와 경계의 시선을 갖고 있다. 전략 적 동반자 관계라고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의 급성장은 러시아인들에게 도전, 위험, 또는 위협으로 인식되기에 충분하다. 둘째, 양국 협력의 중요한 사례로 간주되고 있는 SCO의 기능과 목표에 대해 서도 모스크바와 베이징은 이견을 노출하고 있다. 예컨대, 러시아는 SCO가 기 본적으로 다자간 안보협력기구에 초점을 두고 활동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중 국은 경제협력을 포함한 광범위한 지역협력체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에 더 관심 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이미 영향력의 범위를 구축 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이 지역의 현상유지를 원하는 한편으로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고 미국 등 제3의 세력이 중앙아시아에서 세력을 확대하는 것을 저지하 기 위해 SCO가 다자안보기구의 역할에 치중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셋째, 일견 양국 협력에서 매우 중요한 동시에 실용적인 측면에서 호혜적인 분야로 손꼽히는 경제협력과 에너지 협력 부문에서도 양국간에는 상호 불신과 경쟁, 더 나아가 갈등의 요소가 잠재되어 있다. 또한, 양국간 교역의 대표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는 무기교역에 있어서도 첨단무기 기술의 이전을 둘러싸고 러 중 사이에는 이견과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양국간 교역의 규모는 상당히 늘어났으나, 러시아정부는 교역의 내용과 구조에 대해 우 려를 갖고 있다. 에너지 협력문제에 있어서도 러 중 사이에는 상호불신이 존재 하고 있다. 러시아는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방식의 에너지 협력을 꺼려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러시아의 불투명하고 변덕스러운 정책결정 방식에 불만을 품 고 있다. 2000년대 중반에 벌어진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일본 사이의 동시베리 아-태평양 송유관 (ESPO) 노선 논란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최근 중앙아 시아에서 양국이 벌이고 있는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과의 석유 및 천연 가스 확보경쟁은 향후 이 지역에서의 양국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것 임을 예고하고 있다. 넷째, 양국관계의 진전에 따라 중국의 상인, 기업인,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의 러시아 유입이 늘어나면서 양국간에 불신과 갈등의 요소가 되고 있는 아이러니 도 존재하고 있다.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중국인들의 유입이 늘어나면서 중국위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73

협론이 대두해 소위 황화론 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상당수 러시아 주민들은 중 국 노동자들의 자국 유입을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일부 정치인들은 그러한 주민들의 인식을 빌미로 중국인 노동자들의 이주에 대한 규제정책을 주장해왔 다. 아직까지는 러시아의 일부 민족주의자들에 의한 과장된 담론으로 평가되기 도 하지만,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러시아인들의 중국에 대한 경계심과 부정 적인 인식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양국간 갈등의 원천으로 작용할 수 도 있다. 다섯째,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국제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다소간 이견 과 경쟁구도가 발견된다. 러시아는 동북아에서 기본적으로 현상유지(status quo) 를 원하는 입장이다. 반면에, 중국은 급성장하는 국력을 바탕으로 동북아는 물 론 세계정치 무대에서 자국의 국력에 걸맞은 영향력의 확대를 원한다. 중국의 급성장과 동북아 역내에서의 주도적 역할이 동북아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보 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거나 중국의 경제적 팽창이 자국의 산업을 잠식하는 상 황이 벌어질 경우 러시아는 한국이나 일본 등 동북아의 다른 파트너와 협력을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러시아와 중국은 지난 20여년간 꾸준히 협력관 계를 발전시켜온 결과 오늘날 양국관계는 역사상 최고로 우호적인 단계에 도달 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국관계는 결코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상태로만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러 중관계의 현상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는 다양한 평가 가 존재한다.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적 동반자관계는 점진적으로 성숙되어 결국 에는 동맹관계의 수준까지 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유사한 맥락에서 러 중 양 국은 전략적 협력에서 경제협력에 이르기까지 호혜적인 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양국의 협력관계는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 이라는 실용주의적인 낙관론을 펼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양국관계는 공통의 가치나 장기적인 상호이익, 그리고 대등한 국력 등에 기반을 둔 안정적인 관계 가 아니라 미국의 패권적 행보에 대한 공동대처 등을 포함해 중단기적인 이해관 계의 공통분모에 기반을 둔, 편의에 의한 결합축(axis of convenience) 으로 보는 시 각도 있다. 174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맺음말 블라디미르 푸틴은 집권 3기를 맞아 만만찮은 대내외적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지속되는 가운데 에너지 수출의 감소로 인해 경제발전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하다. 그러한 가운데 푸틴은 지난 1, 2기 집권기와 마찬가지로 경제 와 안보 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아 일단 러시아의 국익을 극대화하려는 실용주의 외교노선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한 맥 락에서 러시아는 주요 외교파트너와의 협력과 경쟁 사이의 균형을 도모하려고 한다. 러시아는 우선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더욱 공고화시켜 나갈 전망이다. 특히 양국은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패권적 행보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공유하고 있 다. 따라서 양국은 SCO, 브릭스(BRICs) 등의 다자협력체를 발전시키는 한편, 미 국의 일방주의에 공동대응하기 위해 양국간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 를 공고 화하려는 입장을 보인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양국 사이에는 상당 한 불신과 잠재적 갈등의 요소도 존재하고 있다. 특히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에 서의 에너지 확보를 둘러싼 경쟁과 중국인들의 시베리아와 극동지역 등 러시아 각지로의 활발한 진출로 인해 양국간의 갈등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이에 비해 미 러관계는 당분간 한랭전선이 계속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 다. 우선 유럽배치 예정인 MD 시스템을 둘러싼 양국간의 갈등이 남아 있는 한 양국 관계의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러시아의 인권문제를 둘러싼 양국 사이의 공방은 급기야 무역분쟁으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더 나아가 최근 미국에서 셰일가스의 대량생산이 시작됨으로써 러시아의 에너지 전략은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과거 소련시기에 중동산 석유를 증산하여 소련의 석유수출에 타격을 주려고 했던 미국의 냉전적 전략이 셰일가 스의 대량생산을 통한 러시아 에너지 수출의 타격이라는 형태로 부활함으로써 러시아 경제운영 계획에 막대한 차질이 발생하게 된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 한 점을 감안해 볼 때 미 러 양국관계의 회복가능성은 더 희박해진 것이 아닌가 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75

이렇듯 미 러관계는 당분간 크게 개선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 다. 하지만 글로벌 파워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러시아로서는 미국과의 관계를 오 랫동안 경직된 상태로 끌고 가긴 어려울 것이다. 전략무기 협력의 강화, 핵비확 산의 유지, 테러문제에 있어서의 공동노력의 필요성, 경제의 현대화를 위한 자 본 및 기술의 도입 등 다양한 이슈 영역에서 미국 및 서유럽과의 협력이 필수적 이다. 또한 전략적, 경제적으로 러시아는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공고화시켜 나갈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당분간 미 중 양강(G2)의 경쟁구도 속에서 자신의 목 소리를 내고 이익을 극대화시켜 나가기 위한 행보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 리고 그 핵심은 미국 및 중국 각각에 대해 공조와 견제를 동시에 구사해 나가는 소위 편승 과 균형 의 외교정책으로 요약될 수 있다. 176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Abstract A Foreign Policy of Putin s 3 rd Term Administration and the Prospect of US-Russia Relations/China-Russia Relations Chang Duckjoon Dean, College of Social Science, Kookmin University Since starting his third term of office in 2012, Vladimir Putin has undertaken a much stronger policy toward the United States than his predecessor Medvedev. This stance foreshadows a high likelihood of long-term stagnancy in US-Russia relations. Indeed, as long as the two countries have a conflict over a looming missile defense system to be deployed in Europe, rifts in their relationship are unlikely to be traversed. Furthermore, battles concerning Russian human rights issues seem to have escalated into trade disputes, and the USA s recent mass production of shale gas has struck a blow to the Russian energy strategy. This trend of recent conflict may make it more difficult for the two countries to restore mutual faith in restoring their relationship. Meanwhile, Putin has a strong will to cooperate with China. In particular, both Russia and China have voiced protest against the US global hegemony. Establishing cooperation groups like SCO, BRICs, etc, in order to confront USA s supremacy, Russia and China have secured their own strategic partnership. And yet, despite their efforts, Russia and China have some potential elements of conflicts as well as considerable distrust in each other. In particular, the energy battle in CIS and the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77

advance of the Chinese into Siberia and Far East Russia illustrate how the two countries face constant challenge and conflict. Considering this trend, the US-Russia relationship is highly unlikely to improve. But, Russia, which is determined to become a world leader will try to mend its relationship with the US to a certain extent. In particular, Russia must cooperate with the US and Western Europe in relation to the following issues: the buildup of strategic arms reduction, the maintenance of nuclear non-proliferation regimes, the necessity of partnership against terrorism, the induction of foreign capital and technology for economic modernization, and so on. In addition, Russia is expected to keep its solid relationship with China. In the current environment of US-China competition, Russia will try to forge its own niche and strategy. 178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특 집 미 일 중 러 새 정 부 와 한 반 도 의 안 보 푸틴 3기 러시아의 대 한반도 정책과 전략적 이해 김석환 * 푸틴식 국가 거버넌스의 부활 혹은 텐덤(tandem)의 균열? 2012년 5월 블라디미르 푸틴이 러시아의 대통령으로 복귀했다. 이로써 지난 몇 년 동안 국제사회에서 관심을 끌던 러시아의 리더십 교체에 대한 각종 시나 리오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텐덤(tandem)의 균열을 기대하던 사람들은 실망했겠 지만 사실 푸틴이 밝힌 바대로 푸틴-메드베데프-푸틴 으로 이어지는 리더십 교 체 시나리오는 매우 공고했다. 두 사람은 메드베데프를 후계자로 결정하던 순간 에 이미 4년 후 권력 복귀에 대한 시나리오에 합의했고 이 시나리오는 원래의 계획대로 진행됐다. 지난 4년 동안 두 사람은 공동으로 러시아를 관리 통치했다. 겉으로는 텐덤 (tandem)이었지만 내용상으로는 푸틴이즘 으로 불리우는 푸틴식 국가 거버넌스 한국유라시아 연구소장,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초빙교수. 한국외국어대 러시아 어과 및 동대학원 동구지역학과 졸. 중앙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국제부장, 논설위원, 대통 령자문정책기획위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자문위원 역임.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79

시스템(Putinism)이 계속해서 관철됐고 푸틴은 러시아의 실권자로서의 위상을 한 번도 상실하지 않았다. 외교안보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푸틴의 후임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던 메드베데프는 푸틴 통치 1기 및 2기의 핵심 정책결정권자들을 대부분 유임시켰 다. 특히 외교장관인 세르게이 라브로프와 크렘린 외교안보수석인 세르게이 프 리호드코(Sergei Prikhodko)의 존재는 푸틴이즘의 지속을 상징하는 것이나 다름없 었다. 당시 푸틴은 프리호드코를 크렘린에 잔존시키는 대신 자신과 크렘린을 연 결시킬 총리실 외교보좌관에 주미대사를 지낸 유리 우샤코프(Yuri Ushakov)를 임 명해 외교안보에 대한 자신의 장악력을 거둘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모습은 푸틴 3기 첫 조각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푸틴은 외교장관에 세르게이 라브로프를 유임시켰으며 외교수석에는 우샤코프를 임명했다. 대신 프리호드코를 총리실로 자리를 옮기게 해 메드베데프 총리에게 외교안보 문제 를 조언함과 동시에 크렘린과의 의사소통을 담당하게 했다. 이에 따라 프리호드 코는 행정실 부실장으로 승진했고 여전히 외교안보 정책과 관련한 푸틴의 의중 을 정부에 관철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프리호드코 뿐만이 아니라 푸틴 3기 의 크렘린과 총리실에는 푸틴 1,2기 주요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들이 여전히 중 요한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푸틴이즘이 지난 12년 동안 사실상 관철됐으 며 향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러시아 내부의 일부 반정부 시위와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 고 푸틴 1기 때부터 관철됐던 러시아의 정책 거버넌스가 큰 변동없이 가동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즉 푸틴이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후계자로 지명된 후 2000년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합의되고 가동됐던 집권 통치 엘리트 그룹 의 합의의 정신이 여전히 러시아의 권력 세계에서 핵심적 드라이브 파워로 가동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난 20년 동안의 러시아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러 시아의 야권세력, 혹은 비( 非 )푸틴 세력 가운데 통치 엘리트 및 집권세력의 신임 을 얻고 국민의 지지를 받아 푸틴 세력을 대체할 대안세력이 여전히 존재하지 않고 있으며 존재하기도 어려운 상황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때문에 푸틴 3기의 대내외 정책, 대한반도 정책에 대한 예측 또한 이러한 분석에 기초해 이루어져 180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야 할 것이다. 러시아의 전통적 외교자산과 한반도에 대한 인식 러시아는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핵무기를 가진 강대국이다. 나폴레옹 전쟁과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며 전후 얄타 체제를 형성한 주요한 설계자이 기도 하다. 21세기 들어 글로벌 거버넌스에 변화가 초래되고 있지만 여전히 러 시아의 외교안보정책은 글로벌 거버넌스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테러와의 전쟁, 북아프리카 시민혁명에 대한 태도, 시리아 내전, 북한 핵문제 등에 대한 입장 등에서 보여지듯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은 여전 히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또한 러시아는 한반도를 비롯해 유럽과 아시 아의 16개국과 접경하고 있는 유라시아의 대국이다. 이 때문에 세계 경제 및 문 화의 선순환적 발전과 활력, 그리고 번영에도 러시아의 입장과 특정 이슈에 대 한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러시아와 접경하고 있는 한반도의 미래 또한 러시아의 대( 對 )한반도 관 에 의해 크게 변모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의 극동 시베리아 개발계획과 한반 도 평화 번영은 선순환적 보완적 기능을 할 수 있고 이를 잘 활용할 경우 한국 은 다시 한번 도약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러시아가 추 구할 푸틴 3기의 외교안보정책을 제대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선적으로 는 지난 12년간 지속되었던 푸틴이즘 (Putinism)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분석, 그 리고 향후 짧게는 6년, 길게는 12년간 지속될 푸틴 통치기간의 장기적 정책에 대한 한국의 대응전략의 기초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푸틴 3기 러시아 외교안보정책의 기본방향은 다극주의의 추구, 지역통합, 유 라시아 공동안보를 기초로 러시아의 핵심적 국익을 수호하고 확산하는 것이다. 이는 푸틴 1기 및 메드베데프 시절의 정책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푸틴은 2000 년 집권 초부터 러시아의 힘은 과거의 역사적 경험과 글로벌 거버넌스의 공동 설계자로서 축적된 외교자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러시아의 지정학적 특징을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81

감안해 입안한 현실주의적 정책에서 나온다는 확신을 갖고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그의 정책은 지정학적 현실주의 라는 수단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이 로 인해 푸틴의 외교안보 정책은 한편으로는 과거 소련시절의 유제와도 비슷한 경직된 정책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푸틴은 러시아의 국익과 영향력의 극대화는 패권국 러시아의 우월성 을 추구하는 데에서 나온다고는 보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는 소련시절처럼 동서 양 진영을 대표하는 수퍼 파워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 때 문에 그는 과거에 대한 집착이 아닌 세계적 및 지역적 차원의 세력균형을 추구 했으며 이 과정에서 러시아가 글로벌 거버넌스의 주요한 강대국으로서의 대접 을 받고자 했다. 푸틴은 이를 관철하는 정책적 전략적 차원의 주안점을 미국 유일 패권주의 의 약화를 위한 다극화된 국제질서의 형성에 두었다. 이러한 푸틴의 정책은 한 편으로는 강대국 지위 회복이라는 강성 경직 외교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다 른 한편으로는 약화된 러시아의 위상을 감안한 현실적 전략적 유연성이 강조 된 실용주의적 외교정책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반도 및 동북아 정책과 관련해서도 푸틴은 이러한 현실주의적 인식에 기 초해 정책을 추진했다. 푸틴은 러시아가 동북아 지역, 특히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국제이슈의 현장에서 목소리를 상실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일방적인 친남한 정책 추구 때문이라는 러시아 국내 전문가들의 비판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푸틴은 2000년 취임 직후 평양을 방문, 남북한 등거리 노선으로 회귀한다는 신 호탄을 쏘아 올렸다. 동시에 1990년대 들어 일방적 친서방 노선으로 인해 상실 한 러시아의 전통적 영향력 회복의 기회를 잡기 위해 북한 핵문제의 주요 행위 자로서 기능하고자 했다. 푸틴은 이를 위한 가장 강력한 구도는 러시아와 중국,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 가 정상화되고 긴밀해져야 한다는 판단을 굳히고 집권 1기에 대북 및 대중정책 격상을 위해 노력했다. 그렇다고 해서 푸틴이 이 기간 한국과의 유대 강화에 소 홀히 한 것은 아니다. 푸틴은 이 시기 한국과 경제협력 및 지역협력을 강화하고 자 했다. 국제사회에서의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한반도와 러시아 극동 시베리 182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아 지역의 발전 전략을 연동시키고자 노력했다. 남북한 등거리 전략이 본격적으 로 가동됐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상대적으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환경을 적 극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했던 고르바초프 때의 정책에 비해선 역동성이 현저히 약화된 정책이었다. 실제로 푸틴과 러시아 지도부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독자적이면서도 도전적이고 현상타파적인 정책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정학적 세력균형과 현실적 실리적 경제협력이라는 양축을 오 가면서 동북아 지역의 안정과 발전이라는 모습을 관철시키고자 했다. 이는 동북 아의 현상유지와 경제협력 구도의 관철이 러시아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 했기 때문이다. 푸틴은 이 때문에 북한 정권 및 지도부에 대한 외부의 급격한 관여정책에 반 대의 입장을 견지했다. 동시에 동북아의 안정에 위협적인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 도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는 현실주의적인 노선을 견지했다. 이러한 노선은 메 드베데프 정부에 들어서도 그대로 관철됐으며 푸틴 3기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을 예측할 때 항상 강조되는 것이 극동 시베리아 지 역에 대한 러시아의 지역개발 정책과 한반도 경제와의 연계성 문제다. 러시아는 극동 시베리아 지역 개발과 안정을 위해서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한반도의 안정 과 발전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의 지정학적 가치를 극대화 하기 위한 새로운 대규모 프로젝트인 남북러 가스관을 비롯한 동부시베리아 송 유관망, TSR-TKR 연결사업을 비롯한 물류 통합망, 송전망 구축과도 같은 동북 아 슈퍼 그리드 사업 등이 모두 한반도의 안정과 발전에 연동되어 있다. 때문에 러시아는 북한의 급격한 변동이나 중국 동북부를 포함한 태평양 연안 지역의 정 치 안보적 상황이 영토분쟁이나 기타 다른 이슈들로 인해 급격한 변화를 겪는 것을 거부한다. 점진적이면서도 지역 통합적 상생의 구도, 윈-윈의 협력 구도를 관철하고자 하는 희망이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북한과의 다양한 형태의 경제협력 프로그램들이 가동될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한국과 러시아 간의 경제협력의 고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83

양을 전제로 한다. 남북러 가스관 연결은 한국 및 북한 지역 그리고 일본 지역의 러시아 가스에 대한 장기적 수요를 전제로 이루어진다. TSR-TKR의 연결 및 활 성화 또한 동북아 물류회랑 건설에 있어 러시아가 한반도와 동해안 지역의 물류 능력을 활성화 해 러시아의 글로벌 물류 장악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전략적 고려 에 의해서 추동력을 얻고 있다. 물론 푸틴이 그리고 러시아의 지도부가 남북한에 대한 등거리 정책을 추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장기적으로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증대해가는 중국에 대한 지정학적 대응과도 무관치 않다. 즉 남북한, 특히 북한이 중국의 일방적 영향력 지대화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러시아의 국익에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외교안보정책 중 대동북아 및 대한반도 정책은 푸틴 1 기의 정책인 한반도와의 협력 강화 및 남북한 등거리 정책이라는 기조를 벗어나 지 않을 것이다. 푸틴 3기의 외교안보전략 기조와 한반도 정책 푸틴 3기 러시아의 외교안보 기조는 위에서도 설명했듯 과거와 큰 변화가 없 다. 외교안보 정책을 관장하는 인적 구조도 큰 변화가 없고 러시아에 대한 대내 외적 위협 요인 혹은 기회요인이 극단적으로 변화한 것도 없다. 때문에 푸틴 3 기 출범 이후의 외교안보정책에 있어서도 새로움보다는 연속성의 원칙이 더 강 하게 표현되고 있다.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강한 러시아 를 바탕으로 독자적 외교정책 및 반( 反 )미 국/반NATO 정서를 강조하는 한편 반( 反 )패권, 다자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의 국익과 안보를 최우선시하고 특정 이념에 대한 지나친 경직성을 회피 하고자 하는 실용주의 외교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즉 사안에 따라 미국과 협력 하는 실용적 노선을 견지하는 것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핵 비확산, 아프간 및 중동문제, 경제 현대화 등 글로벌 이슈 분야는 서방과 협력하고 NATO(미국)의 유럽 MD배치, 시리아 사태 184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에 대한 군사개입 등은 러시아의 핵심 이익 및 안보 직결 사안으로 간주해 독자 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하는 식이다. 이외의 이슈에 대해서는 해당국과 전략적 협 력을 지속하는 실용주의 정책을 추진하고자 한다. 러시아의 대( 對 )한반도, 동북아 정책 역시 이러한 그랜드 전략과 연동된다. 특 히 푸틴 3기의 대한반도 정책은 동북아 내 한반도 정책을 통해 새로운 질서나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독자성의 영역과 도전적 성격이 매우 약하다.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강한 변화 압력이 가해지지 않는 한 변동성보다는 연속성의 기조 를 유지할 것이다. 현재 푸틴이 추구하는 한반도 정책은 소극적 대응적 측면이 강하다. 미국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중시 정책(Pivot to Asia) 및 중 일간 영토분쟁과 동북아 주 도권 쟁탈전에 대한 대응적 측면과 연동된다. 물론 신동방정책이라 불리는 러시 아의 국내정책, 시베리아 및 극동 개발 정책도, 러시아의 한반도에 대한 관심을 자극한다. 푸틴 대통령 및 메드베데프 총리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러시아의 국제 화와 현대화 정책도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측면은 한국의 정책적 접근 방향과 열정에 따라 양국 협력에 새로운 변화를 도모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소극적이며 대증적이다. 때문에 한국의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이 를 좀 더 외교안보적 측면을 강조해서 살펴보면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은 다음 과 같은 연동의 층위를 가지고 있다. 우선 러시아의 아태 정책과 연동된다. 또 아태 정책은 러시아의 유라시아 정책과 그리고 글로벌 외교안보전략과 연동된 다. 여기서 아태 정책의 80% 이상은 대( 對 )중국 정책이며 이는 러시아의 대외 안 보만이 아닌 대외 경제정책과도 핵심적 이해관계를 갖는다. 또한 대중국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관계국이 인도다. 이런 점에서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은 대중 국 및 대인도 그리고 대중앙아시아 정책과 연동된다. 이는 한반도와 관련해 러시아의 독자적 개별적 정책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러시아가 독자적인 정책을 수립한다 하더라도 더 큰 범위의 대 외 안보정책과 큰 틀의 방향에서 벗어난 도전적인 혹은 현실타파적인 정책을 수 립할 만한 요인이 없는 한 특별한 지역이나 국가로서 간주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85

하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년 전 한국과 러시아(소련)는 각자의 필요 와 세계적 흐름 속에서 상대국을 외교안보정책의 중요한 변동 요인으로 간주하 고 이를 정책화시켰다. 한국의 북방정책과 러시아(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및 신 사고 외교정책이 그것이다. 외교정책의 결정과정에서 러시아도 한국도 모두 지도층, 특히 국가 최고지도 자의 대외정책 인식에 큰 영향을 받는다. 특히 이러한 대외정책 인식이 국내의 여론과 상승작용을 할 경우엔 그 탄력이 강해진다. 푸틴의 강한 러시아 정책은 러시아 국민들의 자존심 회복과 맞물리면서 대외정책에서 강공책을 불러왔다. 체첸전쟁, 미국 일방주의에 대한 반발, 브릭스(BRICS) 강화 외교, 러-중-인 3각 지정학적 연대 구축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푸틴 집권 1기 강한 러시아 의 회복 전략이 대한반도 정책에는 어떠 한 영향을 미쳤는가? 결과는 우리가 다 알고 있듯 남북한 등거리 전략 혹은 균형 전략으로의 전환이었다. 푸틴은 취임 직후 G8정상회담 참석을 앞두고 소련시절 을 포함해 역대 러시아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고르바초 프 시절 체결한 한소수교 이후 사실상 교류 단절 상태에 이르렀던 러시아와 북 한의 정상외교 복원과 함께 러시아가 아태지역 정책의 한 고리로서 한반도와 북 한을 최고지도부 차원에서 재고한다는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이다. 그의 방북은 소련 및 러시아 지도자로서는 최초의 일이었다. 당시 푸틴의 평양 방문을 맞아 김정일은 미사일 발사 모라토리움을 제안했고 푸틴은 국제사회 데뷔 무대인 G8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 및 미사일 발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주최국 일본 언론의 각광을 받았다. 러시아 정치에 있어서 푸틴이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해 북한 지 도부와 러시아의 외교관료들은 북한을 활용한 대한반도 정책 구상을 짜고자 했 다. 그리고 이의 첫 단추로서 러시아 외교지도부는 정상회담을 결행했고 이를 통한 북한 지도부의 호전적 대결의식 약화 및 국제사회 체제로의 편입을 강력히 종용했다. 하지만 성과는 별로 없었다. 북한은 푸틴에게 약속했던 미사일 발사 모라토리엄을 곧바로 파기했고 6자회담에 유연성을 불어 넣으면서 자신들의 중 재력을 과시하고자 했던 러시아의 입장을 참혹하게 깨뜨렸다. 크렘린에 정통한 러시아 소식통에 의하면 당시의 상황에 푸틴은 격앙했고 186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김정일 및 북한 체제에 대한 환멸을 가졌다. 이후 러시아의 대북 정책은 적극성 및 창의적 개입의 의지가 현저하게 약화된 상태로 되돌아갔다. 현상을 방치하다 위기가 고조되면 개입해 균형을 회복하거나 관리하는 방식으로 돌아간 것이다. 자신들의 존재감이 무시되지 않고 잊혀지지 않는 상황의 관리 정책이 반복됐다. 한마디로 적극성을 띠지는 않겠지만, 소외되지도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한 것이 다. 그렇다고 해서 옐친 시절처럼 친남한 일변도의 정책을 펼쳐 한국을 일방적 으로 지지하는 방식으로 회귀하지도 않았다. 천안함 폭침사건 조사과정에 대한 참여와 그 이후의 처리과정은 러시아의 존재감 과시와 균형 관리 정책의 대표적 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기간 한국의 대러 정책이 러시아를 우리의 의도대로 견인해 내거나 원하는 구도를 구축하는 데 참여하도록 설득하 는 데 성공한 것도 아니다. MB정부 들어 양국의 관계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 계로 격상됐지만 동맹 수준인 한미관계를 제외할 경우 가장 높다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는 한 몽골을 비롯한 많은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남발돼 단순한 레 토릭으로 전락한 느낌마저 준다.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의 구조적 특성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은 한 측면에서는 미 일 축의 해양 및 서방 안보진영 에 대한 대응 및 대항적 성격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러시아의 유 라시아 정책에서 중국을 다루는 대중국 정책과도 깊은 연동성을 갖고 있다. 여 기에 한국 및 러시아 그리고 유라시아 국가간 다자틀의 협력 공간 창출의 가능 성이 상존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은 러시아의 세계 정책 그리고 아태 정책의 하위개념이다. 한반도가 북한 핵문제와 같은 국제사회의 시급한 현안이 존재하는 지역이라 고 해도 러시아에게 있어 한반도는 개별국가 혹은 지역적 차원에서 미국이나 중 국, 인도, 브라질 등에 비해 낮은 비중의 국가 지역이며 동북아 또한 유럽과 중 앙아시아 지역과 비교해 역시 정책적 우선순위가 높다고 할 수 없다. 때문에 긴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87

급한 현안이 발생하지 않는 한, 특히 그것이 체제의 위기나 동북아 지역질서의 근본적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 아닌 한, 러시아는 적극적으로 개입할 생각이 없 는 것 같다.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 혹은 한국의 대러 정책은 동전의 양면이다. 러시아 가 자신들의 외교안보정책 구상을 통해 한반도를 자국의 국익과 비전에 맞게 관 리 운용하고자 한다면 한국과 북한 또한 이에 대해 나름대로의 구상을 가지고 대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푸틴 3기와 박근혜 대통령 시대를 맞은 현 시점에서 러시아의 대한반 도 정책 그리고 한국의 대러정책의 방향과 성격을 이해하려면 선행적으로 몇가 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먼저 찾아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질문은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이 혹은 반대로 한 국의 대러 정책이 러시아와 한국의 대외안보정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관한 것 이다. 즉 한국의 대러 정책이, 혹은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이 독자적 영역이냐 아니면 종속적 영역이냐의 문제다. 물론 어느 나라의 대외정책도 독자성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세계와 정책 이 점점 상호 의존성을 높여간 결과다. 하지만 국가의 전략적 목표에 따라 지역 전략이나 특정국가에 대한 외교전략은 종속적인 성격을 가질 수도, 이니셔티브 를 가진 적극적 혹은 도전적 성격을 띨 수도 있다. 과거 한국의 북방정책과 동북아 정책은 매우 현상타파적인 도전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노태우 정부 이래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정권 의 보수적 혹은 진보적 성격과 상관없이 북방권 외교에 있어 적극적인 현상타파 적 신환경 조성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한국은 동유럽 소련 중국과 수교 했고 수교 이후에도 이들 국가와의 적극적인 선린 우호 외교를 통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증대시키는 윈-윈의 성과를 이룩했다. 이는 한국이 직면한 시대적 상황과 소련 러시아가 직면한 시대적 상황이 각 각의 외교안보적 상상력의 선순환을 탄 결과였다. 한국은 1980년대에 접어들면 서부터 진영적 외교와 안보관으로는 고도산업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국제사회에 서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절박감에 직면했다. 당시 한국의 성장하는 산 188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업과 경제는 새로운 시장과 기술을 절대적으로 요구하는 상황이었고 이를 달성 하기 위해선 냉전적 진영외교의 틀과 진영적 시장의 틀을 한꺼번에 깨뜨리고 변 모시킬 필요가 있었다. 반면 소련 및 동유럽 지역은 1980년대 들어 자유세계와의 공존을 넘어 체제 전환의 변혁적 압력에 직면하고 있었다.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 치 정책은 이러한 시대적 압력에 대한 대응이었고 그 과정에서 한반도 정책이 한국전쟁 이래 처음으로 소련 외교안보 정책에 있어 하나의 중요한 정책적 고리 이자 고려사항으로 자리를 잡을 수가 있었다. MB정부는 북방정책의 마지막 연결고리이자 조각이라고 할 수 있는 대북정 책을 정교화하고 북방정책의 성과와 연결시킬 임무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MB 정부 기간 한국의 대러 정책 혹은 대북방정책은 특별한 도전적 성격을 갖고 있 지 못했다. 이는 정책과 비전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정책을 다루는 전문가들의 북방 이슈 및 유라시아 문제에 대한 열정과 우선순위의 문제이기도 했다. 결국 MB정부 기간 북방정책은 북한 이슈에 대한 비핵개방 3000 에 매몰돼 특별한 이니셔티브를 가진 새로운 정책이 나올 수도 없었고 그저 현상 유지를 위한 대 증적 정책의 수준으로 저하될 수 밖에 없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푸틴의 러시아 나 메드베데프의 러시아 모두 러시아의 정책적 수단과 국가적 목표의 우선순위를 감안해 볼 때 대동소이 할 수밖에 없는 환경적 틀 속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강조하고 있는 것은 향수 를 밑에 깔고 있지만 러시아의 현대화 추구라는 전략적 장기적인 목표 에 집중함 을 알 수 있다. 즉 푸틴-메드베데프-푸틴 으로 이어지는 권력의 변화에도 불구 하고 외교 및 안보 개념과 전략은 나름대로의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푸틴이 자신의 후계자로 메드베데프를 지목하고 퇴임을 3개월여 남겨 둔 상황(2008년 2월 8일)에서 서둘러 입안 발표한 2020년까지의 러시아의 발전전 략에 관하여 라는 연설과 이때 언급한 내용들의 발전 및 정책 반영과정을 통해 서도 알 수 있다. 당시 푸틴은 러시아는 글로벌 문제 해결에 있어 모든 국제사회의 확실한 파 트너가 될 것 임을 강조하면서 러시아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안보, 과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89

학, 에너지,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 등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국제사회와의 호 혜적인 협력 이라고 밝히고 있다. 푸틴의 이러한 언급은 2008년 7월 15일 발표 된 메드베데프의 러시아의 외교개념 과 2009년 5월 발표한 2020년까지의 러시 아의 국가안보전략 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특히 2020 국가안보전략은 2002년의 모스크바 노르드-오스트 극장 테러사건과 2008년 8월의 그루지야와의 전쟁을 모두 다 반영한 것으로 사실상 소련해체 후 러시아가 내놓은 현대적 개념의 외 교안보 전략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이를 발표한 메드베데프는 국가 안보 분야에서의 개념 규정은 전략 (2020년까지의 러시아의 국가안보 전략) 과 개념(2020년까지의 러시아의 장기 사회 경제 발전 개 념) 간의 상호 연관과 상호 의존 관계에 근본적인 기초를 두고 있다고 말하고 군 사 분야와 함께 경제 분야에서 국가 경제발전의 수출 원료 모델 유지 등이 전 략적 위험과 위협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나타났다. 이러한 러시아의 인식은 한국과 러시아의 협력과 우호선린관계가 한 단계 상승할 수 있느냐 아니면 과거와 같은 어중간한 형태의 관계로 정체할 것이냐는 우리의 대응에 달려있음을 보여준다. 때문에 푸틴 3기와 박근혜 정부 시대를 맞아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 그리 고 한국의 대러 정책이 과연 어떠한 궤적을 그릴 것인지를 예측하려면 현재의 러시아 지도부 혹은 한국의 지도부에게 있어서 한국(한반도)과 러시아가 어떤 존 재감을 갖는 국가인가라는 성격을 파악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점을 감안해서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이 갖는 독자성과 종속성 혹은 상호의존 성의 층위를 세분해서 세밀화된 대응을 해내야 할 것이다. 190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Abstract On the Policy and Strategy of Putin s 3 rd Term Administration toward the Korean Peninsula Kim Seokhwan President, Korea Institute of Eurasian Studies Many principal officials from Putin s 1 st and 2 nd term Administrations continue to hold important posts in both Kremlin and the premier office of Putin s current administration. Thus the continuity of Putinism established over the past 12 years is unlikely to change. It reminds us that, despite some anti-government demonstrations and continued resistance from the opposition party, that the governance of Russian policy from Putin s 1 st term adminstration is being conducted without change. It can be deduced that it has been too difficult to find a rival to Putin, who can win enough confidence from the opposition party, a rival able to gain the favor of elite politicians that are non-putin, or a opposition leader able to inspire widespread support from the public. It is from the framework of such an analysis that the national and international policy of Putin s 3 st term administration, including the policy toward the Korean Peninsula should be investigated. Considering Russian policy toward the Korean Peninsula, what is most at stake is Far East Siberian development and its interdependence with the Korean economy. In order to create development and maintain stability in Far East Siberia, Russia views that stability and development 특집 미 일 중 러 새정부와 한반도의 안보 191

of Korea as essential. Of particular importance for Russian value are the North-East Asia Super Grid projects: The linking of pipelines to export natural gas and oil found in Russia s Far East and Siberia to South Korea, the connection of the Trans-Korean Railway with the Trans-Siberian Railway and the transmission network of electricity are all interwoven with Korea s stability and development. That s way Russia rejects any forces of change such as North Korea s sudden fluctuation and various conflicts in the Pacific region including those in North-East China. Russia hopes to accomplish a gradual win-win relationship for regional integration. The reason that Putin administration has undertaken equidistance diplomacy toward North Korea and South Korea is that Russia plans to make a long-term geopolitical reaction to China, which has been gradually increasing its influence on north-east Asia. That is, Russia has considered undesirable for Russian interests that China has had such a major influence on North Korea. Therefore the Russian diplomacysecurity strategy toward north-east Asia and the two Koreas is to strengthen cooperation and maintain equidistance diplomacy. This policy is the same as the policy of Putin s 1 st term Administration. 192 국가전략연구 Global Affairs 2013년 봄

신 간 서 적 소 개 한국현대사 차하순, 이인호, 한영우, 강규형, 이주영, 유영익, 남시욱, 김영호, 김용호, 송 복, 김영봉, 전상인, 김세중, 박효종, 안병준, 주명건 지음 세종연구원 368쪽 2013.02.25일 값 15,000원 한국 현대사 는 우리 사회 일각의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인식을 더 이상 방 치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으로 뭉친 학계의 중진, 원로학자들이 대거 집필에 참여한 책이다. 차하순, 이인호, 한영우, 남시욱 등 16인이 분야별로 나누어 쓴 이 책은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마르크스주의에 뿌리를 둔 수정주의 역사 관에 의해 정치적, 이념적 목적으로 변질되어온 데 대한 전면적인 역사 바로 잡기의 성격을 띠고 있다. 대부분의 기존 역사서가 한두 명의 저자가 연대순 으로 사건을 나열하거나 정치, 경제, 사회 분야별로 나누어 서술했다면, 이 책은 16인의 필자가 한국 현대사의 기본 문제를 비롯하여 대한민국의 건국 및 발전 과정,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다양한 시각으로 설명함으로써 한 국 현대사를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특히 6 25전쟁을 보는 수정주의 이론의 오류를 밝혀 좌파적 시각의 문제점을 상 세히 서술해놓았다. 나노베이션 2,000달러짜리 작은 차가 이루어낸 거대한 기적 케빈 프레이버그ㆍ재키 프레이버그ㆍ데인 던스턴 지음 신현승 옮김 세종서적 724쪽 2013.04.05 값 24,000원 80여 개국에 약 100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한 해 총수익이 710억 달러에 달하는 대기업의 총수가 막 빈곤층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위해 세상 에서 가장 싼 자동차를 개발하기로 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전 세계 모든 전문가들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그 일을 타타 그룹의 회장인 라탄 타타는 해냈다. 어느 비 오는 날 저녁, 스쿠터에 매달리듯 올라탄 한 일가족이 미끄 러운 빗길 위에서 사고를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그는 이들이 구입할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노 개발 프 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출시된 그 차의 가격은 10만 루 피(2,000달러)로 확정되었다. 강철 바디와 4개의 좌석, 4개의 문을 가진 진 짜 자동차 가 고작 스쿠터 한 대 가격으로 출시된 것이다. 그 차 타타 나노는, 신간 서적 소개 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