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정신57호_1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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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정신57호_1도 2011.5.3 5:14 PM 페이지49 mac3 레지스탕스 영화 읽기 영화 <색,계>, 역사와 이야기, 그리고 인간의 조건 이 두 희 자유기고가 이안 감독의 <색,계>(2007)가 처음 개봉했을 때, 영화는 <와호장룡>(2000)이나 <브로크백 마운틴 >(2005)의 감독으로서는 조금 낯설어 보이는 정치적 소재로써 그리고 위험한 수위의 정사 장면으로 적지 않은 화제가 되었었다. 아마도 그래서인지 그 후로 이 영화의 제목은 치정관계과 얽힌 정치스캔 들에 대한 하나의 비유로서 쓰일 때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색,계> 이야기는 센세이셔널한 정 치적 가십거리보다는 통속적인 멜로드라마의 그 것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영화의 배경 에는 세계대전의 와중에 가장 국제적이고 정치적이었던 도시 중 하나였던 상하이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하자면 이 영화는 일본점령기의 상하이에서 친일괴뢰정부의 수뇌에게 신 분을 숨기고 접근한 젊은 여성 항일조직원에 대한 이야기로서 하나의 정치 스파이물이자 한편으로는 남녀 간의 얽혀버린 사랑이라는 그저 범속한,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너무도 인간적인 내용을 담은 영 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5월 6월호 49

독립정신57호_1도 2011.5.3 5:14 PM 페이지50 mac3 레지스탕스 영화 읽기 사실 영화 <색,계>는 장아이링이라는 중국 여류작 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다만 작가 자신이 작품의 배경과 같은 시대의 상하이에서 일본의 점령 기와 그 패망을 겪은 후에 훗날 미국으로 망명하여 완 성한 동명의 작품 <색,계>는, 수십 페이지 정도의 분 량에 지나지 않는 단편 소설로서 영화의 굵직한 줄거 리와 세부사항 묘사에 비해서는 경쾌할 만큼 빠르고 아이러니한 결말을 지닌 한 시대의 스케치 같은 작품 이다. 그리고 또 이 소설 작품에도 역시 또 다른 원작 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사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유 사한 실제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1939년 12월 21일, 당시 난징 괴뢰정부의 정보기관에서 수장과 같 은 역할을 했던 딩모춘(1903~1947)을 표적으로 상하 이의 사교계의 매력적 여성이었던 정핑루 (1918~1940)가 연루되었던 암살기도 사건이 그것이 다. 작가 장아이링이 이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 를 알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격렬했던 중국현대사의 한 장면은 이렇게 소설과 영화를 통해 다시 반복되고 기억된다. 다만 그 과정들에는 실화에서부터 소설로 그리고 소설에서 영 화로 어떤 작위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지는 점들이 있다. 이를테면 실제 사건에서 장제스의 국민당 정 보조직의 포섭에 의해 딩모춘의 암살기도에 동참한 정핑루가 그를 유인한 것은 모피코트점이었고, 소설과는 달리 위험한 순간에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급하게 몸을 피한 것은 딩모춘 자신의 운이었 다고 한다. 하지만 장아이링의 소설에서는 암살기도 장소가 여자의 선물을 사기 위한 보석상으로 바 50 독립정신

독립정신57호_1도 2011.5.3 5:14 PM 페이지51 mac3 뀐다. 그리고 작전이 실패한 이유 역시 결정적 순간 감정 이 흔들리면서 여자가 남자를 도망치게 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여기서 다이아몬드 반지는 사랑이라는 환상 앞에 서 무너지는 여주인공의 심리에 대한 문학적 장치로서 작 가에 의해 설정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리고 소설 속에 서는 여자에 대한 처형을 남자가 직접 명령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딩모춘은 정핑루를 풀어주려고 시도 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장아이링의 소설에서 달라지는 남 녀의 역할과 행동은 여성으로서 작가의 입장에 따라 또 다른 진정성을 가지고 그려지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안 감독의 영화에서는 단편소설에는 없던 보 다 풍부한 세부사항들이 나타난다. 인물의 성격과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설정들과 함께 원작에서는 가벼운 언급 정 도로 그쳤던 시대적 배경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하나하나 씩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40년대 초의 상하이는 아직 서 구 열강들의 자치지구인 조계가 남아있기도 했지만, 일본 점령 이후로 서서히 고립되어가고 있던 불안정한 상황의 국제도시였다. 영화에는 친일정부에 협력하는 고위관료 나 상류층의 권태나 민중들의 가난과 고통, 그리고 분열 에 대한 전형적인 모습들과 함께 역사를 마주보며 고민하 고 방황도 하는 풋풋한 젊은이들의 표정이 잘 담겨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고증적인 태도들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역사적 외연으로부터 인물들, 두 주인공의 배경과 내면 쪽으로 보다 천착하는 듯하 다. 여러모로 화제가 되었던 <색,계>의 과감한 정사씬에서 두 주인공에게 주어진 환경과 인간적 조건 에 대한 비유를 찾는 것이 과연 억지일 뿐일까? 왠지 선정적이기보다는 처절한 그들의 정사는 서로가 속고 속이는 자들로서 의심을 떨치지 못하는 두 인간이 오직 자신의 피부를 통해 느낀 것만을 믿고 서로의 어두움 속으로 끊임없이 파고들고자 하는 욕망과 갈증의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적어도 그들 의 바람이 극단적인 환경에 처한 인간 누구에게나 찾을 수 있는 고독과, 그 위안 혹은 도피와 관련된 무엇이라면 그들의 이야기는 어느 특별한 사람들의 것이 아닌 그저 평범한, 다름 아닌 인간의 범속한 자체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의 초기작들부터 가족으로부터 개인의 관계와 변증적인 성장 5월 6월호 51

독립정신57호_1도 2011.5.3 5:14 PM 페이지52 mac3 레지스탕스 영화 읽기 을 주제로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온 이안 감독이 그 관심사를 관계가 소멸되어가는 과정의 개인으로 좁혀서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는 아니지만 같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하여 참고해 볼 수 있는 소설로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앙 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이 있다. 소설의 배경은 <색,계>보다는 좀 더 앞선 1927년, 장제스의 국민 당 정부와 공산당의 1차 국공합작이 끝나가고 있을 무렵이다. 군벌군을 몰아냈던 상하이의 좌파 노동 자 군대가 이번에는 장제스의 국민군에 의해 무장해제와 함께 숙청을 당하던 때, 소설의 주인공들은 장제스의 암살을 기도하기도 하며 이에 저항하지만 결국 하나씩 쓰러져간다. 소설 속에서 앙드레 말 로는 무도하고 처참한 현실에 대해서도 굴하지 않는 인간 정신의 고양을 그려냈다. 극한 상황에서 부 지불식간에 자신들의 실존적 조건과 존재이유에 대해서 자각하는 그 인물들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사실 <색,계>의 인물들이 보였던 자기탐닉과는 정반대되는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딘지 모르 게 닮기도 하였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의 공통점을 극단에 이른 인간의 자기기만이라고 한다면 너무 위험한 이야기일까. 마치 당시의 유럽 역시 세계대전을 거치며 막다른 길에 출구는 없었고 실존주의 라는 하나의 비약과 단절이 필요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다만, 소설 한 부분에서는 자신들이 가진 인간의 조건과 고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부분이 있다. 말로는 도저히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러나 말을 초월하여 몸짓이든지, 눈빛이 라든지, 또는 그저 한자리에 같이 있다는 것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는 가장 뼈저린 고통 은 거기에 따른 고독감 속에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표현함으로써 또한 거 기에서 해방될 수도 있는 법이다. (앙드레 말로, <인간의 조건> 4부 중) 결국 필요한 것은 하나의 표 현, 우리의 현실과 우리의 조건들에 대한 우리들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역사와 소 설, 영화와 현실에서 이야기는 계속된다. 참고로 30년대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도 있었던 당시의 상하이는 다른 어느 곳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국제도시로서 세계사의 중요한 한 장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제국 열 강들의 정치경제적 이권다툼 속에서도 새로운 아시아의 가능성이 하루하루 만들어지고 있었다고 해 야 할까. 그리고 그러한 상하이의 모습은 영화적 소재로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불과 얼 마 전에도 상하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하여 또 다른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냈던 것도 같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가상의 풍경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한 시대의 어느 장소를 영화를 통해서 어디쯤엔가 짐작해보는 것이리라. 끝. 52 독립정신

독립정신57호_1도 2011.5.3 5:14 PM 페이지61 mac3 독립정신 이모저모 임정서가 안중근 의사의 친필을 담다 안중근 문집(책) 안중근 문집 윤병석 편역, 독립기념관 펴냄 독립기념관에서는 지난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101주년을 기념하여 안 의사가 직접 쓴 글 들을 모아 안중근 문집 을 발간했다. 그동안 안중근 의사 전기 등 여러 종류의 관련 자료집이 간 행된 적은 있으나, 안 의사가 직접 남긴 글을 모아 문집을 발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 의사는 뤼순감옥에서 하얼빈의거의 전말과 자신의 행적을 밝히는 안응칠역사 를 저술하였 고, 그의 동양평화에 대한 사상과 하얼빈의거의 경륜과 의미를 논술한 동양평화론 을 저술하다가 완성하지 못하고 순국하였다. 아울러 현재까지 밝혀진 59점의 유묵을 남겼고 그 외에도 진귀한 필 적과 시문, 친필혈서, 간찰과 유서도 남겼다. 이 자료집에서는 원본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그 중 한문이나 외국어로 된 자료는 번역과 주해를 하였다. 상기 문집내용 중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은 안중근 의사가 동양평화론을 집필하기 위하여 한 달 5월 6월호 61

독립정신57호_1도 2011.5.3 5:14 PM 페이지62 mac3 남짓 사형집행 날짜를 늦추어 달라고 당시 뤼순법원의 최고책임자인 히라이시 우지 히토[平石氏人] 고등법원장에게 요구한 내 용과, 히라이시가 안 의사에게 거짓으로 약속하고 이를 안 의사의 공소포기용으로 이용한 내용 등이다. 결국 안중근 의사는 일제의 위약으로 동양평화론를 완성하지 못한 채 순국하였다. 또한 법원과 감옥의 일본 관리들이 안 중근 의사의 글을 얻고자 종이와 비단 수 백 장을 안중근 의사에게 보내어,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매일 몇 시간씩 글씨를 썼다는 내용도 눈에 띄며, 동생 공근에게 오직 학문을 연구하라는 내용의 서한과 어 머니에게 자신의 아들인 분도가 장차 신부 가 될 수 있도록 키워달라고 부탁하는 유 서도 있다. 이번 문집은 인하대학교 윤병석 명예교수의 편역(編譯)으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자료총서 제28집으로 발간되며, 이번 안중근문집의 편역을 맡았던 인하대학교 윤병석 명예교수는 이번에 발간된 안중근문집은 민족정기의 사표인 안 의사의 평화사상과 행적, 그리고 의열투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며 앞으로 추진할 안중근의사전집 편찬의 기초 작업이라는데 의의가 있 다 고 말했다. 62 독립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