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2012년 4월호 [인터뷰 인터뷰] 글 : 白 崔 承 祐 碩 俱 朴 贊 月 謨 刊 평양과학기술대학 朝 鮮 기자 명예총장 지금 중요해요. 평양과기대는 당장 서로 통일되면 신뢰를 북한 안 사회의 쌓는 돼요. 것이 준비 국제화에 지금으로서는 없이 큰 됐다가는 역할 시급합니다 할 오히려 것 큰일 나요. 남과 북이 동질성을 확보하는 것이 朴 北 從, 北 수학 親 北 교육 세력은 시간 북한을 남한보다 제대로 두 배 모르는 많아 사람들 贊 양과학기술대학(이하 대한민국 贊 77세. 포스텍 謨 서울대 총장, 謨 ) 포스텍(포항공대) IT 분야의 대통령 화공과, 원로학자인 과학기술특별보좌관, 미국 메릴린대 공학 박사. 평양과기대ㆍPUST) 전 총장이 박찬모( 2005년 朴 한국연구재단 초대 이사장 역임. 現 평양과기대 명예총장. 립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는다고 했을 설평 때, 소리가 지에 학계는 악용될 많았다. 물론 가능성이 평양과기대가 기독교계에서도 있다는 북한의 이유에서다. 우려하는 체제 유목 기독교 곡절 450억원에 끝에 단체들이 2009년 달하는 대기로 9월 대학 1단계 한 설립 상황이었다. 공사를 비용도 완료했 국내 고, 1년 뒤인 2010년 10월 첫 수업을 시작했 우여 다. 능했다. 던 그 박찬모 무렵 박 한국연구재단(교육과학기술부 전 총장은 총장은 몇몇 평양과기대 동료들로부터 명예총장으로 빨갱이 라는 산하 연구개발사업 자리를 이야기를 옮겼다. 총괄재단) 듣기도 그의 국적( 했다 고 초대 國 籍 이사장을 )이 토로했다. 미국이라 맡고 있가 평양으로 박 총장은 가기 현재 직전인 평양과기대에서 지난 3월 초, 시스템 서울 강남역 시뮬레이션 근처 과목 사랑의 등을 교회 직접 별관에서 강의한다. 그를 베이징을 만났다. 통해 北 도우려면 北 제대로 알아야 평양과기대 소프트웨어 개발 수준은 포스텍과 비슷
오래된 친북ㆍ종북 친구들까지 인사라는 그런 얘기를 말을 들으면서까지 하더군요. 그냥 평양과기대로 웃어버려요. 자리를 구차하게 옮긴 설명할 이유는 필요도 뭡니까. 령 저는 2007년 대선( 大 選 ) 때 이명박( 李 明 博 )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고, 대선 후에는 없고요. 교과부 과학기술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됐습니다. 2009년에는 한국과학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대통 를 추종한다는 산하 3개 것은 재단을 말이 통합해 안 되지요. 만든 제가 한국연구재단 김진경( 金 鎭 초대 慶 ) 총장과 이사장도 함께 지냈어요. 평양과기대 제가 설립을 북한 체제 등 한 것은 민족 화해와 통일, 경제 번영을 위해서입니다. 주도 평화의 한 가지 탈을 말씀드릴 쓴 친북ㆍ종북 게 있어요. 세력들이 우리 사회에 흔히 이른바 하는 말입니다만. 는 난 사람들입니다. 것을 축복이라고 그들이 생각해야 북한을 해요. 제대로 북한을 알면 도우려면 지금처럼 친북ㆍ종북 북한을 행동하지 제대로 세력들은 않을 알아야 거예요. 북한을 해요. 남한에서 제대로 그래야 태어 모르 관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남북 문에 평양과기대 오해를 받는 내에 건 김일성( 아닌가요. 金 日 成 ) 영생탑과 주체사상연구센터는 왜 세웠습니까. 그런 것 때 학생들과 시설에 그 시설물은 북한 직원들이 저희와 상관없어요. 토요일에 주로 주체사상연구센터의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식 이름은 영생탑은 김일성주의 북한 내 연구실 인데 이 직접 세워져 지은 겁니다. 있어요. 저희 평양과기대도 돈은 한 푼도 예외가 들어가지 될 수 않았어요. 없다고 해서 세웠는데 그들의 돈으로, 모든 그들 교육 장했습니다. 교수를 보수진영의 북에 데려가 사실입니까. 한 인사는 IT기술을 박찬모씨가 집중 훈련시켰고, 김대중 정부 이것이 시절 북한의 대통령 해커 특별보좌관 양산의 토대가 자격으로 됐다 고 50명의 주 전혀 그런데 사실이 최근 아닙니다. 몇 년 사이에 저는 북한 김대중 사이버테러 대통령의 부대의 과학기술특별보좌관을 소행으로 추정되는 한 사건들이 적이 없어요. 이 졌습니다. 있지 않을까요. 박 총장께서 그동안 북한에 전수한 IT기술이 대남( 對 南 ) 사이버테러에 악용될 연이어 가능성 터 관심이 쪽입니다. 제 전공 있는 언론에 분야는 학생이라면 공개된 해킹과 쉽게 디도스 관련이 할 수 테러는 없어요. 있어요. 대단한 저는 컴퓨터그래픽, 수준의 기술이 3D 필요한 가상현실, 게 아닙니다. 그리고 시뮬레이션 컴퓨터에 북한의 농협전산망 소행이 마비사태의 아닐 수도 경우, 있다는 사건 말인가요. 모해 당 정찰총국의 고의로 사이버테러 를 사이버테러 에 감행했을 의한 것으로 초기에 가능성도 결론이 IBM 제기됐습니다. 등 났습니다. 서버관리업체 물론 직원과 검찰 조사 농협 결과, 내부직원이 북한 노동 공
북한 소프트웨어는 선진국 수준 교수 평양과학기술대학 출신의 탈북자 조감도. 합니다. 증언에 따르면, 북한은 사이버테러 부대를 두 곳 이상 운영하고 있다고 씩 은 물론 컴퓨터 있다고 저도 전문가입니다. 합니다. 그런 얘기를 함흥 소재 그들이 들었어요. 대학을 군에 북한에는 졸업한 가서 무엇을 학생들은 컴퓨터 하겠습니까. 관련 대부분 기술대학이 군( 軍 )에 간다고 평양과 해요. 함흥에 그 각각 학생들 1개 현재 이런 이야기를 북한의 소프트웨어 하면 너 북한 수준은 두둔하느냐 고 어느 정도입니까. 의 에 소프트웨어 비해 뒤지지 수준은 않아요. 선진국 은별바둑 만 수준입니다. 봐도 평양과기대 그렇지 비판할 않습니까. 것 학생들의 같군요. 수준도 과학자 우리의 입장에서 포스텍 볼 때, 학생들 북한 8년 바둑대회에서 은별바둑이란 세계컴퓨터바둑대회에서 우승했다. 최고로 그에 인정받고 처음 앞서 우승한 2002년에는 있는 이후 북한의 2003년부터 일본바둑협회가 컴퓨터 2006년까지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4년 수준을 연속 은별바둑은 세계컴퓨터 아마추어 199 초단으로 비결이 인정하기도 뭐죠. 개발 했다. 창의적인 두뇌와 노력이 여건이 합쳐지면 열악했을 얼마든지 텐데요. 북한의 드나들며 경우 놀란 초등학교가 것은 북한 4년제인데 당국이 초등학생 수학과목 때부터 수업시간을 좋은 수학 프로그램을 교육에 비교해 집중하고 만들 보면, 수 우리나라 있어요.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초등학교(6년) 북한을 기간보다 나게 합니다. 두 배 실력이 이상 많아요. 뛰어날 수밖에 북한 학생들은 없지요. 수학적 사고가 상당히 발달돼 있어요. 노력도 엄청 하드웨어 여러 가지 쪽은 제한 어떻습니까. 조건으로 개발 환경이 힘든 게 사실입니다. 사실 북한의 소프트웨어 기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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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월에 평양 에 마무리됐고 대학교를 이듬해 설립하도록 10월 학생을 했다고 선발해 한다. 첫 2003년 수업이 시작된 이뤄졌다. 설립 공사는 6년 뒤인 2009년 9 평양과기대 현재 평양과기대는 수업은 영어로 북한 내에서 진행 상에서 것이다. 평양과기대를 북한 당국은 작년 국제적인 6월부터 대학으로 특별대우를 올해 3월까지 발전시켜야 받고 있다고 한다 며 만수대지구 한다. 특별지시를 생전의 재개발과 김정일이 내렸기 주택 10만 공개적인 때문이라는 호 건설 석 을 박찬모 위해 전국 총장의 대학에 설명이다. 수업 취소령을 내렸는데 평양과기대는 제외했다. 는 니다. 김일성종합대, 수업을 계속 했는데 김책공대 이 때문에 등 다른 북한 대학교 내부에서 학생들 논란이 대부분이 있었어요. 건설현장에 다행히 동원됐어요. 어떤 제재도 우리 없었습 학교 학생 조금 특이합니다. 선발은 어떻게 고등학교를 이뤄집니까. 책공대 우리가 등 우수한 학생을 학교에 요구하니까요. 2년 이상 졸업한 다닌 그리고 학생을 학생을 영어 대상으로 바로 실력도 뽑는 추천과 상당한 것이 소정의 아니라 수준이어야 시험을 김일성종합대학이나 해요. 통해 뽑습니다. 평양과기대 김 는 방 명문대 영어로 학생들도 수업을 하거든요. 들어오고 원산경제대학, 있습니다. 원산농업대학, 함흥공업대학, 회천공업대학 등 지 학교에서 학생들은 가르치기도 영어를 어디서 하지만 배웁니까. 토플시험을 지방에서 봤는데 최고점수가 550점이었고 시험을 대비해 학생 특별히 평균이 준비한다고 450점이었어요. 해요. 대학원생을 놀라운 점수죠. 대상으로 동안 집중적으로 온 학생들은 배우고 영어실력이 나면 상위권 다소 학생들과 낮아요. 비슷해져요. 그런 학생들을 학업 위해 성취도가 특별반을 뛰어나요. 운영해요. 영어를 6개월 물론 물 재학생은 먹는 스펀지처럼 얼마나 빨아들여요. 대학원생까지 포함해 됩니까. 학생들 가정환경은 어떤가요. 270여 명 정도입니다. 낌은 집안 받았습니다. 내력은 잘 몰라요. 아버지가 뭐 하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요. 다만 집안이 괜찮다는 느 학비는 은 평양과기대는 고기와 쌀밥을 북한 실컷 대학생들 먹는다 는 사이에 소문이 인기 나 있는 있어 학교로 서로 입학하려고 알려져 있다고 한다는 한다. 것이다. 평양과기대생들 돼지고기도 물론 부족하지 먹는 것과 않을 자는 정도로 것 모두가 나온다 고 무료로 했다. 제공된다 며 평양 사람들도 쉽게 먹지 박 총장은 못하는
설치해야 현재 평양과기대에는 하는데 비용이 여학생이 만만치가 없다. 않다고 여학생을 한다. 박 위한 총장의 시설(강의실, 설명이다. 화장실, 기숙사)을 별도로 면 인가 북한에서는 여자 기숙사를 남학생과 만들어야 여학생이 하는데 같은 쉽지 건물에서 않아요. 남학생들 생활할 수 사이에서도 없게 돼 있어요. 여학생이 여학생을 없는 게 받아들이 등을 봐요. 우스갯소리지만 작년 봄 교내에서 스피치 콘테스트(Speech Contest)를 열었는데 불만 건이 되면 차지한 여학생도 학생의 받아들일 주제가 우리 생각입니다. 학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여학생이 없다는 것 이었습니다. 여1 한국 교수진은 교수들도 어떤가요. 평양과기대에서 가르쳐야 호주, 40여 중국, 명의 독일 교수진이 등 국적이 있어요. 다양해요. 대부분 한국계 외국인이지요. 중국인, 미국, 한국계 영국, 미국인도 캐나다, 있습니다. 네덜란드, 뉴질랜드, 북한 학사 관계를 현지인 담당하는 교수는 없습니까. 교수들도 영어 공부를 열심히 분은 하고 있지만 있어요. 강의하지는 않습니다. 영어 강의가 안 돼서요. 요즘 북한 했다는데 북한당국은 사실인가요. 대한민국 국적의 교수가 원한다면 평양과기대에서 강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면 큰 북한 얼마든지 도움이 측 될 고위 환영한다 고 거라 인사에게 생각해요. 하더군요. 직접 한국 물어봤어요. 정부도 남한 교수가 이 그랬더니 부분에 북한 대해 실력 학생을 긍정적으로 있는 가르치면 남한 검토하고 교수들이 남북 과학기술교류에 있는 와서 걸로 가르친다 다. 압니 말을 북한당국은 가장 싫어하는데요. 국제화 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지 않습니까. 북한 지도층은 개혁ㆍ개방이라는 당국자들이 하는 개혁ㆍ개방이라는 잘 알았으면 말은 합니다. 금기시돼 사실 있지만 국제화나 국제화 라는 개혁ㆍ개방이나 말은 용인됩니다. 같은 개념입니다. 이 점을 북한이 대한민국 려 말을 굳이 사용할 필요는 없어요. 김일성종합대학 전자도서관에는 김정일의 명제 판이 싫어 바로 있어요. 국제화죠.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 고 돼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걸 인터넷은 평양과기대 제한적으로 학생들의 사용 제한적으로 사용해요. 인터넷 과제와 사용 연구에 빈도는 관련해서만 어느 정도입니까. 30여 사용하지 대의 않아도 컴퓨터가 학생들은 있어요. 남한 외국 사회에 사이트에 대해 접속하는 잘 알고 사용할 있다고 건 거의 수 봐요. 불가능하지요. 있지요. 현재 교내 하지만 인터넷실에는 인터넷을
학교를 운영하면서 힘든 점이 있다면. 들어요. 현재로서는 돈이 부족하다는 게 가장 힘 내 교육환경과 관련해 전기 부족도 들 입니다. 수 유입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자유롭지 컴퓨터 등 않다는 개성을 연구 기자재의 점도 통해 애로사항 평양으로 북한 평양과학기술대 네덜란드, 뉴질랜드 교수진은 등 여러 미국, 나라 영국, 출신으로 중국, 구성됐다. 독일, 캐나다, 직접 평양과기대가 들어갈 날이 남북관계 하루빨리 개선에는 왔으면 해요.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 봅니까. 어느 로는 평양과기대는 한반도의 전쟁 북한의 위협을 심장부에 억제하고, 있어요. 통일을 과기대 향한 내는 교류협력의 평화구역 터전이 역할을 될 하고 겁니다. 있는데 궁극적으 통일은 지금 당장 언제쯤 통일되면 가능할까요. 보하는 것이 중요해요. 안 서로 돼요. 신뢰를 준비 쌓는 없이 것이 됐다가는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큰일 시급합니다. 나요. 남과 북이 동질성을 확 찾아 이승률 옌볜과기대ㆍ평양과기대 대외부총장 시지를 1992년 한중 전했다. 7월 수교를 15일 공식 첸치천( 추진하고 錢 其 琛 있다는 ) 중국 장쩌민( 외교부장은 江 澤 民 김일성이 ) 당시 당 머물고 총서기 있던 겸 국가주석의 연풍호반의 구두메 별장을 옌볜과기대는 중국 땅에 꽃피운 동북아의 희망 짤막하게 에게 김일성은 결과를 중국에 이미 보고했고, 대한 결정됐다면 섭섭함을 50여 일 그렇게 뒤인 나타냈다. 8월 하시지요. 24일 중국 역사적인 우리는 대표단은 어떤 한중 그날로 난관이 수교가 장 있어도 주석과 발표됐다. 극복합니다 라고 리펑( 李 鵬 ) 총리 등 옌볜조선족기술전문대학은 의 우연의 땅 위에는 일치일까. 2년제 중국과의 대학인 옌볜조선족기술전문대학(현 중국의 수교가 교육 이뤄진 개혁ㆍ개방 직후인 9월 정신에 16일 옌볜과학기술대학)이 따라 옌지시 설립된 북산가 중국 언덕 개교( 최초의 위 開 삼십만 중외( 校 )했다. 中 평 外 한중 ) 합작대학이다. 간 조선족 수교가 인재 맺어진 양성이라는 지 올해로 외길 을 20년이다. 달려왔다. 같은 시기 문을 연 옌볜조선족기술전문대학도 20년 옌볜과기대와 옌볜과학기술대학은 평양과기대 1992년 건설에 9월 참여한 2년제 대학으로 이승률( 李 시작됐지만 承 律 ) 대외부총장의 그 다음 해 말이다. 서 데에는 교명( 한중 校 名 수교의 )을 옌볜과학기술대학으로 도움이 컸죠. 옌볜과기대가 개칭( 改 稱 대한민국과의 )했습니다. 빠르게 창구 역할을 4년제로 해줄 4년제로 바뀔 것으로 수 승격하면 있었던 믿은
것 옌볜과기대는 같습니다. 저희 학생들은 성공적이라는 캠퍼스 공용어인 평가를 중국어, 받고 한국어뿐만 있습니다. 그 아니라 이유는 영어에도 뭡니까. 까지 각나는군요. 갖췄어요. 중국에 진출한 외자 기업들이 우리 학생들을 매우 선호해요. 능통하고 한 가지 컴퓨터 일화가 능력 수직원 표창을 베이징, 하는데 상하이, 상을 받은 장쑤, 학생들이 톈진 등에 옌볜과기대 총 7개 법인을 출신이었습니다. 운영하고 있는 표창을 현대모비스에서 하던 정몽구 우생 장께서 요. 깜짝 놀라며 앞으로 옌볜과기대 출신 학생들을 더 많이 고용하라고 지시했다고 하더군회 무감독 처음 무감독시험제가 시험제를 운영하고 실시됐을 있는데 때는 효과는 학생들이 어느 무척 정도입니까. 하게 만 시간이 시험을 흘러 치렀지만 훈련이 일부 되고 학생들은 습득이 되니까 커닝을 학생들이 한 후 양심에 스스로 곤혹스러워했습니다. 가책을 자부심을 느껴 갖고 고통스러워했죠. 정직운동에 많은 학생이 앞장서 하지 정직 고 학생들 있습니다. 중에 자연스럽게 조선족이 인성과 많습니까. 지식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된 것이죠. 국가고시를 옌볜과기대에 조선족 80%, 실시해 오면 한족 학생들을 해외 17%, 유학 고려인 뽑습니다. 기회가 및 많아 기타 학생들 학생들이 소수민족 중에는 몰리죠. 3%로 베이징대 구성돼 수준의 있습니다. 엘리트들도 중국 교육부에서 많습니다. 한국 3년 전부터는 학생들은 매 없습니까. 생들에게도 인기가 높아지고 학기 20~30명가량 있어요. 한국 유학생들을 선발합니다. 학교 홍보가 잘돼 한국 학 00여 ㆍ건축예술학부ㆍ상경학부ㆍ서양어학부ㆍ동양어학부ㆍ간호학부)를 현재 옌볜과기대는 8개 학부(생물화공학부ㆍ재료기계자동화공학부ㆍ컴퓨터전자통신공학부 00대( 명이고, 大 ) 중점대학 미국, 중 유럽 하나로 등 13개국의 선정됐다. 교수 가장 250여 인기 명이 있는 재직하고 학과는 상경학부라고 있다. 운영 중국 중이다. 정부가 한다. 재학생은 시행하는 181 까 캠퍼스 아니면 북한 공용어가 언어를 중국어와 이야기하는 한국어라고 것입니까. 하는데 한국어는 우리나라 표준어를 말하는 것입니 서울말을 당연히 씁니다. 대한민국 한국의 표준어죠. 위상을 물론 실감하고 처음에는 있지요. 어려움이 없지 않았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다들 애로 한국 교회와 사항은 미국 없나요. 이 과정이 열악한 없다 편입니다. 보니 R&D 교민 지금까지 프로젝트를 사회에서 취업 진행할 보내온 및 해외유학은 수 기부금으로 없어요. 만족스러울 연구원이 학교 운영 정도로 없으니까요. 비용을 성공했지만, 충당하기 이 점이 때문에 석ㆍ박사 아쉽습니 재정 다.
어떻게 북한의 바라봅니까. 평양과기대는 옌볜과기대의 동생 격인 대학입니다. 북한 교수들은 옌볜과기대를 수업을 관심이 받기도 아주 해요. 많아요. 오래전부터 북한 교수들이 왔다 갔고, 북한 학생들이 옌볜과기대에서 이유가 북한이 뭐라고 옌볜과기대의 봅니까. 성공을 눈으로 확인한 후 평양과기대 설립을 허락했습니다. 가장 큰 다는 측이 1992년 심각한 것을 느꼈던 한중 경제난에 수교 것이지요. 이후 봉착하게 북한은 됐고 옌볜과기대를 국제무역과 암암리에 기술산업의 모니터링 발전을 해왔어요. 위해 인재양성이 그런 와중에 절실하북 김정일 답하기 매우 시대가 곤란한 가고 질문입니다. 김정은 체제가 다만 들어섰습니다. 중요한 점은 지금의 남북이 김정은 새로운 체제를 공동체 어떻게 정신을 봅니까. 소통하고 한반도에 협력해서 평화가 남북한뿐만 정착되리라는 아니라 점입니다. 주변 국가들과 김진경 같이 총장님은 공생사회를 평화는 이룰 대가를 수 있도록 치러야 갖고 되어야 한다. 서로 우리가 그들이 있는 우리 그 국제사회에서의 대가를 대한민국이 짊어지자 라고 참고 협력자로 인내하면서 늘 참여할 말씀했어요. 먼저 수 있도록 손을 경제력이나 내밀어 지원하고 북한 국가 돕는 주민들에게 경쟁력에서 것이 통일을 희망을 월등히 앞당기는 심어주고, 앞서고 라고 봅니다. 일이 Copyright c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