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 28. (제2011-제27호)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실태와 향후 전망 Ⅰ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특성 1 Ⅱ 김정일 사망 이후 문화예술계 전망 4 Ⅲ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실태 6 정 광 렬 (한 국 문 화 관 광 연 구 원 연 구 기 획 조 정 실 장 ) 조 현 성 (한 국 문 화 관 광 연 구 원 연 구 기 획 팀 장 ) 김 가 진 (한 국 문 화 관 광 연 구 원 위 촉 연 구 원 )
Ⅰ.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 특성 1 Ⅰ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 특성 1. 연구목적 북한 주민들이 문화예술을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향유하고 있는지? 를 알아보고자 함 북한의 문화예술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예술 수용자 연구임 북한에서 문화예술은 선전선동의 수단이기 때문에, 이를 주민들이 어떻게 향유하고, 수용하는지는 북한사회의 현황과 미래를 전망하는 데 중요함 하지만 지금까지 이와 관련된 연구는 거의 수행되지 않았음 북한 주민의 문화향유와 문화수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크기의 표본을 대상으 로 한 설문조사가 필요함 이 연구는 표본조사 이전( 以 前 ) 단계로 탈북자 면접 및 서면조사를 통하여 향후 설문 조사 설계를 위한 기초자료를 생성하고자 함 면접 자료를 토대로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가 북한체제의 유지와 변화에 함의하 는 바를 부분적으로나마 살펴보고자 함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김정일 사망이란 변수가 발생함에 따라 조사결과를 바탕으 로 향후 북한 문화예술계를 전망함 2. 문화예술 향유의 특성 1) 문화예술 향유의 시기적 변화 (1) 최 다 문 화 예 술 향 유 시 기 : 1970년 대 후 반 ~ 1980년 대 전 반 기 피면접자들은 중학교 및 대학교 재학시절에 문화향유 경험이 가장 많음 직장 생활 이후 점차 문화예술 향유경험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음 독서, 영화, 공연관람 같은 비교적 능동적 문화예술 향유뿐 아니라 TV시청 같은 수동 적 향유도 중학교/대학교 시절에 가장 활발히 함 학생시절 집체적 관람이 많은 데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임
Ⅰ.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 특성 2 (2) 문 화 예 술 향 유 의 암 흑 기 : 1990년 대 중 후 반 고 난 의 행 군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정전( 停 電 )으로 TV 시청 불가 정상적인 문화예술 창작 및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았음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모든 여가문화활동의 중단 (3) 문 화 예 술 향 유 의 점 진 적 회 복 : 2000년 대 이 후 상대적으로 영화가 고난의 행군 이후에도 인기를 유지함 TV는 조선중앙TV보다 중국TV(CD알)를 많이 보게 됨 공연과 혁명사적관(지) 관람은 이전보다 빈도가 줄었지만, 재개되고 있음 2) 고난의 행군 과 문화예술 영역의 변화 (1) 고 난 의 행 군 이 전 집체적(의무적) 관람이 우세하였지만, 어느 정도는 개인의 (선택)영역이 있었음 특히, 독서, 영화관람, 공연관람에서 개인의 선택권이 있었음 작품의 내용이 북한체제의 선전 선동과 사회주의적 교양이라고 할지라도, 그 가운데 서 개인이 선호하는 작품을 향유할 수 있었음 문화예술에 대한 선택권은 경제력이 아니라 개인적 취미판단에 따름 문화예술에 대한 통제력이 매우 강했음 외국문화에 대한 개방도 소련, 중국, 동구권으로 매우 선별적이었음 평양에서만 방송되는 만수대 TV 등을 통해서 동구권 프로그램을 선별적으로 보여줌 (2) 고 난 의 행 군 이 후 집체적(의무적) 관람이 줄어듦에 따라 개인의 선택 폭이 넓어짐 하지만 개인적 선택권을 결정하는 요인은 취미가 아니라 경제력임 학교의 예술활동(예술소조활동)도 경제력이 없으면 불가능해짐 문화예술에 통제력이 다소 약화됨 대중국TV, CD알 등의 인기가 대표적인 사례임
Ⅰ.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 특성 3 3) 문화예술을 통한 선전 선동 모든 매체나 문화예술 활동이 북한체제 지배이념의 선전 선동에 효과적이었던 것으 로 보임 혁명사적관(지)이 선전 선동의 효과가 가장 컸던 것으로 보임 혁명사적관(지)은 규모, 내용(콘텐츠), 운영에서 관람자를 압도하였음 개인선택의 여지가 없을뿐더러 피관람자로 하여금 선택되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더욱 효과적이었던 것 같음 반면에 혁명가극은 효과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임 북한에서 혁명가극에 대한 지원과 투자에 비해서 효과가 낮은 이유는 혁명가극을 직 접 관람할 기회가 많지 않고, 같은 내용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며, 혁명가극의 형태에 흥미 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임 영화, TV 드라마, 소설 등에 대한 기억 김일성/김정일의 우상화 또는 체제선전일지라도 대작( 大 作 )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음 이러한 작품들은 재미와 감동을 준 것으로 보임 감동과 재미를 통하여 체제선전, 우상화, 세습에 대한 정당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짐 4) 외국문화에 대한 기억 영화, TV드라마, 소설 등에서 외국작품을 오래 기억하고 있음 신문에서도 국제면을 가장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음 외국작품이 주는 낯선 것 또는 이국적인 것 의 기억이 남는 것으로 보임
Ⅱ. 김정일 사망 이후 문화예술계 전망 4 Ⅱ Ⅰ 김정일 사망 이후 문화예술계 전망 1. 통제적 문화정책의 심화 (1) 외 국 문 화 에 대 한 통 제 가 심 해 질 것 으 로 보 임 한류, CD알 등에 대한 단속과 처벌이 심화될 것임 중국TV, CD알 등을 통해 한국문화, 외국문화 접촉에 대한 통제가 심화될 것임 현재는 뇌물을 주고 처벌을 받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접촉에 대한 통제뿐 아 니라 단속기관에 대한 감시가 강해질 것임 (2) 단 기 간 내 문 화 교 류 는 이 루 어 지 않 을 것 으 로 보 임 남북한 문화교류도 김정은 체제가 안착한 이후에야 가능할 것으로 보임 중국의 경제적 원조가 강화되더라도 중국문화에 대한 개방도 시도하지 않을 것으로 보임 (3) 문 화 예 술 에 대 한 김 정 일 의 업 적 을 반 복 해 서 보 여 줄 것 으 로 보 임 1970년대 김정일이 창작지도한 혁명가극 등의 재창조와 반복이 심화될 것임 1990년대 김정일이 창작지도한 영화 <민족과 운명>의 지속화가 강화될 것임 김일성 우상화 소설 <불멸의 력사>뿐 아니라 김정일 우상화 소설인 <불멸의 향도> 출간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임 김일성-김정일 우상화와 관련된 대규모 창작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음 (4) 혁 명 사 적 지 (관 ) 활 용 이 활 발 해 질 것 으 로 보 임 김정은 후계체제 정착을 위해서 김일성 전적지(사적지)의 집체방문을 강화할 것으로 보임 김정일과 관련된 사적지 발굴에 역점을 쏟을 것으로 보임
Ⅱ. 김정일 사망 이후 문화예술계 전망 5 2. 문화향유의 변화 (1) 단 기 적 으 로 는 통 제 정 책 의 효 과 가 있 을 것 임 김일성/김정일과 관련된 문화예술 및 사적지에 대한 집체관람이 이루어질 것임 2012년 4.15의 문화행사, 문화봉사시설 건립 등에 따라 북한식 문화에 대한 관심을 보 일 것임 단기적으로는 북한당국의 문화정책(통제정책, 4.15행사)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것 으로 보임 (2) 외 국 문 화 접 촉 경 험 자 의 지 속 적 인 관 심 한류와 외국문화에서 이미 흥미로운 것 을 경험한 주민들은 통제에도 불구하고 지속 적인 향유를 시도할 것임 외국문화 관련 CD, 도서, 방송 등의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보임 (3) 통 제 정 책 과 외 국 문 화 향 유 가 공 존 할 것 으 로 보 임 통제정책은 공식영역, 외국문화 향유는 비공식영역이기 때문에 공존할 것임 두 가지의 충돌은 북한사회의 균열이 가시화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현재의 비공식영 역의 영향력은 한정되어 있음 (4) 경 제 적 어 려 움 에 따 라 전 반 적 으 로 문 화 예 술 에 대 한 관 심 은 낮 을 것 임 향후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경제상황임 경제난이 가중된다면 고난의 행군 시기처럼 일체의 문화예술 향유가 중단될 것임 현재 정도의 경제상황이라면 통제정책과 외국문화 향유의 공존이 이루어질 것임 경제상황이 나아진다면 두 가지 가능성이 상존함 중국의 원조 또는 자력에 따른 경제성장이라면, 김일성-김정일 관련 문화예술 작품 향유가 많아질 것임 개방에 따른 경제성장이라면, 외국문화에 대한 관심과 향유가 많아질 것임
Ⅲ.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실태 6 Ⅲ Ⅱ 1. 연구내용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실태 문화(향유) 영역은 대중매체(TV, 신문, 잡지), 도서 및 독서, 문화시설 이용(영화관람, 공연관람, 혁명사적관 관람), 혁명유적지 관람으로 문화생활의 일반임 40대 탈북자들의 (북한에서의) 문화예술 향유실태와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 및 수용태 도를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살펴보고자 함 첫째, 40대 북한주민의 문화향유 실태는 어느 정도인가?(소학교 시절 이후 탈북시기 까지) 둘째, 고난의 행군 은 문화향유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 셋째, 문화예술 향유에서 사적( 私 的 ) 영역은 어느 정도인가? 넷째, 북한 문화예술이 지배이념의 내재화에 얼마나 효과적이었는가? <표 1> 면접 및 서면조사 내용 영역 TV 시청 대중매체 신문, 잡지 도서, 독서 설문조사 및 면접조사 내용 하루 평균 시청시간(탈북 1-2년 이전 기준) TV를 가장 많이 본 시기(소학교~직장생활) 고난의 행군 이후 TV 시청시간의 변화 현재까지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 TV 시청의 전반적 느낌 외국 프로그램 시청 경험 신문구독의 빈도, 장소 구독신문 이름 및 선호지면 신문 구독 후 느낌 잡지 구독의 빈도, 장소 구독잡지 이름 신문과 잡지를 통한 사상교육 연[월]간 독서 정도(탈북 1-2년 이전 기준) 주된 독서 장르 독서방법 및 장소 독서를 가장 많이 한 시기(소학교~직장생활)
Ⅲ.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실태 7 문화시 설 이용 문화시설 공연/영화 관 공연관람 영화관람 도서 구매 경험 현재까지 기억에 남는 책 이름 독서 이유 거주지역 내 문화시설(문화회관, 영화관 등) 연간 문화시설 이용빈도 및 이용목적 연간 공연관람 빈도 공연 관람장소(구체적 문화시설 이름) 개인 선택 공연관람 경험[동행자] 및 대가( 對 價 ) 지불 공연관람 최초 시기 및 가장 많이 한 시기(소학교~직장생활) 고난의 행군 이후 공연관람 빈도의 변화 현재까지 기억에 남는 작품 공연관람의 전반적 느낌 연간 영화관람 빈도 영화 관람장소(구체적 문화시설 이름) 개인 선택 영화관람 경험[동행자] 및 대가( 對 價 ) 지불 영화관람 최초 시기 및 가장 많이 한 시기(소학교~직장생활) 고난의 행군 이후 영화관람 빈도의 변화 현재까지 기억에 남는 영화 영화관람의 전반적 느낌 외국영화 관람경험 혁명사적관 (박물관) 관람 혁명유적지 방문 문화생활 연간 혁명사적관, 박물관 방문빈도 방문한 혁명사적관, 박물관 이름 개인 선택 방문경험 고난의 행군 이후 방문 빈도의 변화 방문의 전반적 느낌 연간 혁명유적지 방문 빈도 방문한 혁명유적지 이름 개인 선택 방문경험 방문의 전반적 느낌 악기 연주 경험 예술소조 경험유무 북한에서 문화생활의 의미와 범위 북한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문화생활
Ⅲ.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실태 8 2. 연구방법 반( 半 )구조화된 설문을 이용하여 탈북자 6명을 대상으로 면접과 서면조사 실시 면접은 다대다 면접으로 피면접자당 1~2회 실시 서면조사는 면접조사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문화예술 향유빈도 및 선호작품 등을 기입하는 형식으로 진행 조사기간은 11월 16일부터 11월 25일까지임 조사대상자는 40대로 한정함 이는 피면접자 수가 적기 때문에 연령별 편재성( 偏 在 性 ) 극복하기 위한 것임 또한 고난의 행군 이전과 이후 향유실태를 비교하기 위해서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성인( 成 人 )이었던 연령층에 초점을 맞춤 추후 면접 또는 설문조사에서는 연령층을 확대할 예정임 피면접자 일시 성별 출생연도 탈북/입국 학력 직업 거주지 현직업 가 나 다 라 마 바 11.16. 10시-12시 여 1964 02/02 대졸 전문직 함북 사무직 11.16. 아파트 남 1963 00/04 대졸 세관원 자강도 10시-12시 관리원 11.16. 13시-15시 여 1963 00/09 고등중 군인, 학교 졸 가정주부 함북 취업 준비 11.16. 전파감시 남 1969 98/01 대졸 13시-15시 조 직원 양강도 사무직 11.18. 13시-14시 11.24. 19-21시 11.18. 13시-14시 11.25 12시-14시 <표 2> 조사대상자의 인구사회적 속성 여 1966 09/09 대졸 교사 함북 사무직 남 1964 09/09 대졸 전문직 평양/ 양강도 사무직
Ⅲ.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실태 9 3. 대중매체 이용 1) TV 시청 북한의 TV는 조선중앙TV가 대표적이며, 만수대TV, 교육문화TV, 개성TV 등이 있음 만수대TV는 평양에서만, 개성TV는 개성 지역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일반 인이 볼 수 있는 채널은 조선중앙TV임 조선중앙TV의 방송시간은 평일 오후 5시부터 10시 30분 정도까지이며, 일요일은 오 전 9시부터 오후 10시 30분정도까지임 (1) 시 청 프 로 그 램 및 평 균 TV 시 청 시 간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전기사정으로 인해 거의 TV 시청을 하지 못하였고, 이후에 보통 평일 2-3시간 정도 조선중앙TV를 시청하는 것으로 보이며, 국경지대에서는 조 선중앙 TV보다는 오히려 중국TV나 CD알을 많이 봄 고난의 행군 시는 정전으로 거의 미시청, 평일에 조선중앙TV 3시간. 1997년부터 중 국 TV, CD알 시청, 평일에 중국TV, CD알 4-5시간 (가, 서면조사) 정전으로 고난의 행군시기에는 TV 시청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음. 1989년부터 중국 TV, CD알 시청, 평일에 조선중앙TV 3시간, 중국TV, CD알 2시간 (나, 서면조사) (고난의 행군 이후에는) 많이 봐요. 중국에서 배터리를 가져다가 충전해서 불 오는 시간에 영화 이런 것을 많이 봅니다. CD알이 나오면서 보는 시간이 더 늘었어요. 불 이 가면 못 보는데, (이제는) 배터리를 충전해서 재밌는 영화를 볼 수 있어요 (바) 이 같은 TV 시청시간에 다른 일을 하지 않고 TV를 보는 시간이라면 상당히 많은 것 이며, 이에 대해서는 추후 확인이 필요하지만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함 첫째, 고난의 행군 을 기점으로 퇴근시간이 빨라지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 문에 물리적으로 TV를 볼 시간 자체는 많아졌을 수 있음 둘째, 전력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TV를 계속해서 켜 놓는 경우일 수 있음 1990년대 후반부터 국경지대에서는 중국TV와 CD알 보기가 일반화되면서 이에 대한 통제가 상당했으나, 단속에 걸리면 돈으로 해결하고 있음 내각의 체신성, 체신관리국, 도 체신관리국 산하 전파감시소에서는 집집마다 다니면 서 중국 TV나 CD알을 보는지를 감시함 (라) 근데 저희도 중국쪽과 가까우니까 중국 거 보죠, 그때 중국TV에 대한 단속이 있어
Ⅲ.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실태 10 채널을 고정시켜가지고 보다가 단속 걸리면 TV를 뺏어가는 거예요. 그럼 돈을 갖다 찔러주고 찾아오죠 (나) 조선중앙TV보다 중국TV나 CD알을 많이 보는 것은 재미 때문인 것으로 보임 TV는 가장 사적( 私 的 )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여가 문화활동임 채널이 여러 개 있을 때 채널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며, 북한의 지배이념에 동의할지라도 조선중앙TV보다는 흥미로운 내용을 선호하는 것은 자연스러움 조선중앙TV의 내용뿐만 아니라 반복성 역시 시청자 입장에서는 불만요인임 만약에 김일성이 성진제강소를 현지 지도했다 하면 똑같은 내용으로 한 달 동안 두 세 번씩 내보내요, (이 같은) 기록영화는 하루에 서너번도 해요 (가) 북한에 재미난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아들이 평양서 큰 간부하는데, 시골 부모에게 컬러 TV를 하나 갖다 줬대요. 한 달 지나서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TV 가져가 라 했대요. 아들이 TV 고장이냐고 하니까 아버지가 TV 다 봤다고 했대요. 한 달 동 안 계속 같은 거 뱅뱅 돌리거든요 (나) (2) 기 억 에 남 는 TV 프 로 그 램 가장 기억에 남는 TV 프로그램 <최학신의 일가>(1966), <이름없는 영웅들>(1979-1981), <민족과 운명>(1991-), <조 선의 별>(1980-1987) 등이 기억에 남은 프로그램임 <이름없는 영웅들>, <석개울의 새봄>, <민족과 운명>이라든지 이런 거, 우리 때는 한 창 거기에 정신이 나가서 그 시간 됐다 하면, 다른 일 제쳐놓고 그거 앉아 보느라고 (다) 이 같은 드라마 또는 영화가 북한체제의 이념 전파수단이지만, 주민들에게 일정한 정 도의 재미 와 감동 을 주었던 것으로 보임 외국 프로그램에 대한 기억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남 TV를 통해서 본 외국 영화 또는 드라마에 대한 기억으로, 피면접자들에게는 중학교 이후 1970-80년대 조선중앙TV에서 방영한 외국영화에 대한 기억이 상당히 구체적으 로 남아있었음 이국적인 것, 흥미로운 것에 대한 관심은 만수대TV의 외국영화에 대한 인식에서도 드러남 외국영화에 대한 이 같은 관심과 인기는 낯선 것 과 재미있는 것 에 대한 선호로, 현 재의 중국 TV, CD알에 대한 관심의 초기형태로 해석할 수 있음
Ⅲ.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실태 11 (3) TV를 가 장 많 이 시 청 한 시 기 1980년대에 TV 프로그램의 인기는 상당했던 것으로 보임 특히 드라마와 영화 프로그램을 통한 대중적 공감이 성공했던 것으로 보임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정전으로 TV 시청이 거의 불가능 함 고난의 행군 이후에는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중국TV와 CD알 시청이 가능해지면서 조선중앙TV의 영향력이 줄어듦 2) 신문 (1) 구 독 신 문 및 선 호 지 면 북한주민이 즐겨 읽는 신문은 로동신문 으로, 피면접자 6명 모두 로동신문을 구독함 로동신문은 6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지( 原 紙 ) 4면과 간지( 間 紙 ) 또는 속지 2면, 그 리고 한국소식과 국제소식을 다루는 간지 5-6면으로 이루어짐 가장 관심 있는 지면은 6면 국제소식임 6면 국제소식 가운데 해외토픽 같은 것을 재미있게 보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TV에서 외국 프로그램에 대한 기억이 오래 남아 있는 것과 궤( 軌 )를 같이함 신문을 읽는 이유가 국제소식을 알기 위해서 란 응답이 2명, 여기에 국내외 소식을 알기 위해서 가 응답 2명으로, 국제정세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음 폐쇄적인 정책으로 인해 외국소식에 대한 욕구가 오히려 더 강한 것으로 보임 (2) 신 문 을 통 한 사 상 교 육 신문은 사상교양 교육의 직접적인 수단임 매일 아침 독보시간에 로동신문은 사상교육을 위해 돌려가면서 읽음 매일 아침 신문 독보 30분 (가, 서면조사) (로동신문) 사설을 매일 돌아가면서 한명이 읽는 것...신문 내용을 발표하면서 우 리도 합심해서 잘 하자 이렇게 결의까지 (바) 하였으며, 설이나 김일성, 김정일 생일 에는 신문을 보면서 발표 강연을 많이 하였음 (라) 신년사 통달경연 (마), 신년사를 주제로 외우기 (라)도 함 하지만 신문 보도내용에 대한 거부감을 만들어내기도 하여 신문을 통한 사상교육의 효과가 크지는 않아 보임
Ⅲ.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실태 12 국제적으로 매우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 (나, 서면조사) 거짓말을 많이 한다는 느낌 (마, 서면조사) 로동신문이나 신문은 담배종이지 보려는 목적으로 구하진 않아요 (가) 4. 독서 및 도서관 1) 독서 (1) 독 서 량 과 선 호 장 르 탈북 1-2년 전을 기점으로 하여 월간 독서량은 2-3권 정도임 대체로 학생시절에 책을 많이 보지만, 직장생활 이후에는 독서 시간이 많이 줄어드는 것으로 보임 피면접자 모두 소설 같은 문학작품을 주된 독서장르라고 응답함 (2) 기 억 에 남 는 책 1980년 중후반 외국문학 번역서라고 대답한 경우가 많았음 독서량이 많지 않은 사람들도 외국소설 번역판에 대한 기억이 많음 80년대 중반인가 그때부터 세계문학전집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그때 책읽기 붐이 일 기 시작해요...보기 시작한 게 <몽테크리스토백작>하고...<쉑스피어 이야기> 뭐 그 땐 완전히 붐이 일었죠... (가) 외국소설의 인기는 TV 외국드라마(영화)와 마찬가지로 흥미 와 이국적인 것 에 대한 관심의 결과로 보임 북한의 소설 가운데서는 <불멸의 력사>, <석개울의 새봄>(바, 1958) 등을 기억함 <불멸의 력사>는 김일성 우상화를 위한 작품이지만, 당대 최상급 소설가들의 작품이며, 내용상 재미(흥미)도 있었던 것으로 보임 (3) 도 서 를 통 한 사 상 교 육 1980년대 연간 만페이지 책읽기 운동 연간 만페이지, 하루 30페이지의 독서계획, 감상문 등을 학교에 보고( 報 告 )함 하지만 필독서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도서 선택의 자율성은 존재함
Ⅲ.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실태 13 학교와 직장의 독보회 나 덕성실기 를 통한 사상교육 김일성과 김정일의 업적을 읽어주고 시험을 치르는 덕성실기 <장군님의 어린시절>, <365일 교양> 같은 책을 읽어주는 독보회를 통한 사상교육 2) 도서관 및 도서판매 (1) 도 서 관 이 용 고난의 행군 이전까지는 도서관 이용이 활발했던 것 것으로 보임 1990년대 초반 북한 전역에는 약 15,000개의 도서관이 존재했음 도( 道 )단위의 인민학습당, 시 군단위 지역도서관, 직장(학교) 도서관에 사상교육 관련 도서와 소설작품이 충분히 비치됨 고난의 행군 이후 정상적인 도서공급 체계가 작동하지 않음 도서관에서도 책을 빌려주고 대여료를 받는 체계로 전환됨 당 교육위원회와 교육성 교육위원회 도서관지도국의 지휘를 받는 국가기구가 도서 를 통해 영리행위를 하고 있음 (2) 도 서 시 장 의 활 성 화 고난의 행군 이후에는 시장에서 도서매매가 활발히 이루어짐 인기도서는 서방소설, 한국 책, 그리고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교과서인 것으로 보임 시장과 개인의 집에서는 교과서는 물론 보지 말아야 될 책, 미국 책이나 한국도서 까지도 활발히 거래되고 있음(마) 더욱이 출판사에서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시장에 바로 팔고 있음 (마) 5. 문화시설 이용 1) 북한의 문화시설 북한의 문화시설은 문화교양건물(관람형, 학습형, 전시형, 소조운영형)과 사상교양건물 로 분류할 수 있음 문화교양건물에 속하는 ➀ 관람형 건물은 극장 영화관, ➁ 학습형 건물은 도서관 인민대학습당, ➂ 전시형 건물은 박물관 전람관, ➃ 소조운영형 건물은 문화회관 궁
Ⅲ.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실태 14 전으로 재분류 할 수 있음 한편 사상교양건물은 혁명박물관과 혁명사적관으로 분류할 수 있음 대표적인 문화시설인 문화회관은 지역(시, 군, 리)과 공장 기업소에서 운영 중임 지역 문화회관(군중 문화회관)과 공장 문화회관(노동자 문화회관)이 도보 10분 이내 에 있는 것으로 보임 문화회관은 공연장, 소조실, 전시홀 등으로 구성되며, 다양한 형태의 공연과 영화 등 을 관람할 수 있음 2) 영화관람 (1) 영 화 관 람 빈 도 영화관람은 연간 단체(집체)관람 횟수가 2-3회(3명), 4-5회(3명)로 나타났고, 개별관람 은 3-5회(3명), 5회 이상(1명), 보지 않음(1명)으로 나타남 영화관람 최다 시기는 중학교(4명), 대학교(2명)로, 주로 학생시절에 많이 관람하였으 며, 의무(집체)관람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음 한 달에 한 번은 간 것 같아요... 온 학교가 다 들어가면 (좌석이 부족해서) 돈 내고, 걸상을 다 매고 (가) 집체관람은 직장생활에서도 이루어지며, 학교와 직장단위의 집체 관람 비용은 실비 ( 實 費 )정도를 지불함 관람 이후에는 실효투쟁 을 했다고 함 회관에 모여서 직장대표가 나와서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고 (나) 실효투쟁을 해야 하니까 다 보고요, 영화감상문을 써야 하니까(사) 고난의 행군 이전까지는 개인적 차원의 영화관람이 활발했던 것으로 보이며, 특히 도시 지역의 영화관은 젊은 층에 인기가 있었음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영화관람의 여유가 없었다가, 2000년대 들어서 다시 영화관람 을 많이 하는 것으로 보임 (고난의 행군) 때는 못했다가 사람들 생활이 안정되면서 다시 영화를 보게 되었고... 학생들은 한 달에 세 번 정도 간다 (마)
Ⅲ.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실태 15 (2) 기 억 에 남 는 영 화 기억에 남는 영화로 6명 모두 <민족과 운명>을, 그리고 4명이 <이름없는 영웅들>을 언급함 <민족과 운명>은 김정일이 특별 지시하여 제작한 북한의 역사를 총망라한 연작임 <민족과 운명>은 1991년부터 기획되어 제작된 다부작영화로 많은 작가와 연출자의 공동창작으로, 총 100편의 영화를 기획했는데, 2003년 기준으로 62부까지 제작됨 <민족과 운명>은 사회주의 몰락에 대한 1990년대 북한사회의 반응으로 볼 수 있음 <이름없는 영웅들>은 1979년 10부, 1980년 10부가 제작된 총20부작 영화로, 6.25 휴 전협상의 첩모물임 영화를 통한 북한 지배이념의 일체화는 효과가 있었고, 영화는 주민들에게 오락적 기 능과 체제유지의 기능을 모두 달성한 것으로 보임 당에 대한 충성심, 집단주의 정신고양 (나) 당에 대한 불타는 충성심, 불타는 적개감, 미국놈이라면 치를 떨었다 (다) 북한군이 철저히 무장했구나 (라) 3) 공연관람 (1) 북 한 공 연 예 술 단 체 전문예술단체는 평양에서 활동하는 국립중앙예술단체와 도 단위의 도예술단으로 구분 할 수 있음 국립예술단체는 피바다가극단, 만수대예술단, 국립민족예술단, 국립연극단, 평양인형연 극단, 국립희극극단, 평양교예단 등이 대표적임 비전문예술단체는 예술선전대, 예술소조 등이 있음 예술선전대는 전문단체와 비전문단체의 중간 정도로, 경제선동공연과 예술소조 지원 역할을 담당함 예술소조는 학교와 직장단위에서 예술에 관심 또는 소질 있는 학생 및 직장인모임임 기동예술선전대는 생산단위에서 예술소조원들을 중심으로 한 단체임 (2) 공 연 관 람 횟 수 와 관 람 경 험 공연관람은 의무관람과 개인(자유)관람으로 나눠볼 수 있음
Ⅲ.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실태 16 연간 의무(집체)관람 횟수는 2-3회(4명), 무응답(2명)이었고, 개인관람은 2-3회(2명), 5 회(1명), 1회(1명), 무응답(2명)이었음 일반적으로 공연을 가장 많이 보는 시기는 중학교 시절로, 이는 의무관람 때문인 것 으로 보임 서면조사에 따르면 고난의 행군 이후 영화관람 부문은 관람빈도가 회복된 반면, 공 연관람횟수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임 북한공연은 혁명가극, 혁명연극, 무용, 교예, 희극 등으로 다양하지만, 교예와 희극은 거의 평양에서만 공연함 (3) 선 호 하 는 공 연 피면접자들은 선호하는 공연 장르는 뚜렷하지 않으나, 혁명가극과 혁명연극에 대해서 는 피로감을 드러냄 학교에서도 집체적으로 관람시켰고, 조선중앙TV에서 주기적으로 내보내거든요... 그 래서 15번도 더 봤어요 (사) (5대혁명가극을) TV로 봤는데, 말할 것을 노래로 길게 뽑아서 하니까 북한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영화 같은 건 좋아하는데 가극은 계속하니까 지루 하죠...TV에서 일요일마다 <피바다>같은 거 계속 돌리니까 싫어하죠 (마)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는 <밀림아 이야기하라>(가), <꽃파는 처녀>(다), <피바다>(다) 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반복이 지루하기는 하지만 공연들에 대해 기억은 남아 있음 북한주민들은 전문예술단 공연보다 예술선전대의 공연(선전)을 더 많이 접함 공연하는 것은 아니고 (출퇴근)행렬에 쭉 서서 북을 울리면서 노래... 어깨 쳐져 들 어오던 사람도 소리에 맞춰 발걸음도 빨라지고 (바) 예술에 관심이 상대적으로 많은 피면접자(마)는 예술선전대는 공연과 선전을 같이하 는 것 으로 인식하고 최근에는 노는 엄마들이 현지에 가서 노래도 부른다 고 언급함 4) 혁명사적관(지) 관람 (1) 혁 명 사 적 관 (지 ) 방 문 경 험 주민들이 일반적인 박물관(전람관)을 방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음 또한 미술전시회 관람경험도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남
Ⅲ.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실태 17 박물관 관람은 혁명박물관(사적관)에 한정되어 있음 북한의 대표적인 혁명박물관은 조선혁명박물관(평양), 보천보혁명박물관(양강도), 신천 박물관(황해남도), 왕재산혁명박물관(함경북도) 등이 있음 혁명사적관은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한 번이라도 방문하여 흔적을 남겼다면 건립되며, 지역단위뿐 아니라 기업, 협동농장에도 존재함 지역의 혁명사적관은 도 시 군( 郡 )단위에까지 건립되는데, 규모는 행정구역에 비례함 혁명전통과 관련된 건물(사적관)이나 공간(전적지, 유적지)은 의무적으로 집체방문해 야 함 혁명사적관(사적지)의 연간방문 경험은 2회에서 20회까지 다양함 혁명사적관(사적지)을 개인적으로 방문한 경험은 전무( 全 無 )하며, 이는 집체적인 의무 로만 존재할 뿐, 개인적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임 (2) 혁 명 사 적 관 (지 ) 방 문 의 성 격 및 기 능 사적관(지) 관람은 의무 활동이지만, 이는 일종의 특혜와 유사한 성격을 가짐 혁명사적지 방문과 답사행군에 참여하는 것은 선택받은 학생, 직장인의 표시임 의무활동이지만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함 고난의 행군 이후에는 집체적 방문빈도가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임 하지만 학생들의 혁명사적관 방문은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보임 혁명사적관(지) 방문은 체제유지에 주요한 기능을 담당한 것으로 보임 대규모 사적관(지) 방문은 일종의 특혜였기 때문에, 체제유지의 순기능을 함 실제 피면접자들은 사적지 방문을 통해 북한사회 지배체제를 내면화하기도 함 북한수령의 우월감 을 느꼈음(다, 서면) 저렇게 싸웠는지 몰라도 대단하다...북한이라는 나라가 대대손손 혁명을 하여, 이렇게 잘살게 되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만들었다 (라, 서면) 6. 문화예술활동 1) 아마추어 예술활동 (1) 예 술 소 조 활 동
Ⅲ.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실태 18 문화예술교육 및 문화예술 참여활동으로서의 예술소조활동 고난의 행군 이전의 예술소조활동: 계층과 소질의 결합 소질이 있는 학생들이 부모의 성분이나 경제력과 관계없이 소조활동 고난의 행군 이후의 예술소조활동: 부모의 경제력의 결과 2000년 이후 예술소조활동을 위해서는 별도의 비용이 듦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예술소조활동도 불가능 좀더 여유있는 계층은 예술개인 교습을 받기도 함 (2) 예 술 교 육 및 예 술 활 동 참 여 북한주민들이 대체로 악기를 다룰 수 있다는 주장은 틀리지 않은 것 같음 하지만 이것은 학교교육이 아니라 직장단위의 집체적 예술활동의 결과로 보임 학교 예술교육이 실기위주가 아니었음 1인 1악기 운동 및 학교와 직장단위에서의 집체 연주회가 필수였음 따라서 악기연주를 스스로 또는 주변에서 배운 것으로 보임 2) 문화여가생활 피면접자들은 문화생활을 영화관람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았음 실제 생활에서는 주패놀이를 많이 하는 것으로 보임 고난의 행군 이후에 북한에서는 문화생활이라는 게 없다는 응답이 많았음 (고난의 행군)전에는 TV도 보고, 고기잡이 가든지 했어요. 그런데 고난의 행군 이 시작되면서, 틈만 나면 다 산에 가는 거예요. 가서... 농사짓고, 어쨌든 문화생활 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진거죠 (나) 문화생활 자체가 없어요. 예를 들어 평양 같은 데서 대성산유원지, 그런 데에 주말에 올라가는 걸 문화생활이라고 하겠죠. 여기서(한국)는 주말을 기다리잖아요, 이번에는 어디를 갔다 오자. 그런 게 문화생활이고, (그것은) 여유가 있어야 갔다 오는 거... 북 한은 그런 게 없어요 (라)
Ⅲ.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실태 19 7. 문화예술 향유실태 요약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실태와 특성을 요약하면 <표 3>과 같음 <표 3> 문화예술 향유실태 TV 시청 신문, 잡지 읽기 도서 및 독서 영화관람 공연관람 혁명사적관(지) 실태와 특성 중학생 때 최다 시청하였고, 매우 인기 있었음 드라마(영화), 뉴스 위주의 시청 <석개울의 봄>, 극장용 영화에 대한 기억 많음 외국 프로그램에 대한 기억 많음 고난의 행군 시 정전( 停 電 )으로 시청 불가 고난의 행군' 이후 중국 TV 시청과 통제 로동신문 6면(국제면), 5면(남한) 읽음 집에서는 실비( 實 費 ) 구독 잡지는 천리마, 조선화보, 시대 등 구독 중학생 때 최다 독서, 문학작품 선호 1980년대 외국도서 번역본에 대한 기억 많음 <불멸의 력사>에 대한 기억 많음 만페이지 읽기 운동으로 실제 많이 읽음 고난의 행군 이후 도서관의 형해화( 形 骸 化 ) : 도서관, 출판사 돈벌이 시작 중학생 때 최다 관람 고난의 행군 이후 다른 매체보다 많이 회복 됨 주요한 문화생활로 인식 <민족과 운명>, <이름없는 영웅들>에 대한 기억 많음 개인영역 존재 중학생 때 최다 관람 혁명가극: 실연( 失 戀 )을 본 적이 거의 없지만, TV에서 반복되어 피로감 교예, 희극: 평양에서만 볼 수 있는 것임 기타공연: 예술선전대의 일상화 개인영역 존재 의무 집체적 활동이었음 개인영역 존재하지 않음 혁명사저관(지)의 내용을 내재화 하였음
Ⅲ. 북한주민의 문화예술 향유실태 20 혁명사적관(지) 답사는 타인과의 차별성을 보여줌 고난의 행군 이후 많이 줄어듦. 하지만 학생들은 지속적으로 존재 문화예술활동 문화생활 일반 예술소조: 부모의 경제력(성분)보다는 개인의 소질에 따름 고난의행군 이후 개인의 소질이 아니라 부모의 경제력이 주요한 변수 대체로 1인 1악기: 학교(직장) 합주회를 위해 개인영역 존재 고난의 행군 이후 문화생활 거의 없음 주패놀이를 하는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