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응용연구 2011년 통권 제4호 Ⅰ. 들어가며: 한류와 케이팝 최근 케이팝(K-Pop) 의 국제적인 열풍이 심상치 않다. 적어도 우리의 방송과 언론 미디 어를 믿고 지켜본다면 말이다. 올해 초부터 소녀시대, 카라 같은 걸 그룹들이 일본 열도를 점령하는가 싶더니, 어



Similar documents
_¸ñÂ÷(02¿ù)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09콘텐츠산업백서_1 2

152*220

* pb61۲õðÀÚÀ̳ʸ

hwp

<B3EDB9AEC0DBBCBAB9FD2E687770>

CC hwp

pdf

<C3E6B3B2B1B3C0B C8A32DC5BEC0E7BFEB28C0DBB0D4292D332E706466>

5 291

041~084 ¹®È�Çö»óÀбâ

¾ç¼ºÄÀ-2

<C1DF29B1E2BCFAA1A4B0A1C1A420A8E85FB1B3BBE7BFEB20C1F6B5B5BCAD2E706466>

³»Áö_10-6

41호-소비자문제연구(최종추가수정0507).hwp

<5BB0EDB3ADB5B55D B3E2B4EBBAF12DB0ED312D312DC1DFB0A32DC0B6C7D5B0FAC7D02D28312E BAF2B9F0B0FA20BFF8C0DAC0C720C7FCBCBA2D D3135B9AEC7D72E687770>

SIGIL 완벽입문

효진: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은 많지만, 콘서트까지 가시는 분들은 많이 없잖아요. 석진: 네. 그런데 외국인들은 나이 상관없이 모든 연령대가 다 같이 가서 막 열광하고... 석진: 지 드래곤 봤어?, 대성 봤어?, 승리 봤어? 막 이렇게 열광적으로 좋아하더라고요. 역시.

CC hwp

- 2 -

미술00부속(001~007)2ee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

2003report hwp

C O N T E N T S 1. FDI NEWS 2. GOVERNMENT POLICIES 3. ECONOMY & BUSINESS 4. FDI STATISTICS 5. FDI FOCUS

□ 개요

#7단원 1(252~269)교

º´¹«Ã»Ã¥-»ç³ªÀÌ·Î

Drucker Innovation_CEO과정

04 Çмú_±â¼ú±â»ç

공연영상

글청봉3기 PDF용

wtu05_ÃÖÁ¾

트렌드29호가제본용.hwp

제 출 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귀하 이 보고서를 한류문화 진흥 방안 연구 의 최종보고서로 제출합니다. 2012년 6월 주 관 기 관 : 성균관대학교 산학협력단 연 구 책 임 자 : 한기형(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공 동 연 구 원 : 박헌호(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서울도시연구_13권4호.hwp

178È£pdf

레이아웃 1

2 Journal of Disaster Prevention

12Á¶±ÔÈŁ

10월추천dvd

4번.hwp

2002report hwp

CR hwp

77

스키 점프의 생체역학적 연구

레이아웃 1

27-1 한국 문화의 수용과 국가 이미지 형성에 관한 탐색적 연구 - 파리 한국문화원 한국어 수강자들의 문화수용 과정과 의미 - 손승혜 세종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국문초록] 한 국가의 문화에 대한 관심의 형성과 발전은 매우 다양한 기원과 복 잡다단한 과정을 거친다.


<C3D6C1BEBFCFB7E12D30372E3032C0DBBEF72DB1B9BEC7BFF820B3EDB9AEC1FD20C1A63139C1FD28C0FCC3BC292E687770>

A Time Series and Spatial Analysis of Factors Affecting Housing Prices in Seoul Ha Yeon Hong* Joo Hyung Lee** 요약 주제어 ABSTRACT:This study recognizes th

( 단위 : 가수, %) 응답수,,-,,-,,-,,-,, 만원이상 무응답 평균 ( 만원 ) 자녀상태 < 유 자 녀 > 미 취 학 초 등 학 생 중 학 생 고 등 학 생 대 학 생 대 학 원 생 군 복 무 직 장 인 무 직 < 무 자 녀 >,,.,.,.,.,.,.,.,.

11¹Ú´ö±Ô

DBPIA-NURIMEDIA

CT083001C

?? 1990년대 중반부터 일부 지방에서 자체적인 정책 혁신 을 통해 시도된 대학생촌관 정책은 그 효과에 비자발적 확산 + 대한 긍정적 평가에 힘입어 조금씩 다른 지역으로 수평적 확산이 이루어졌다. 이? + 지방 A 지방 B 비자발적 확산 중앙 중앙정부 정부 비자발적

01¸é¼öÁ¤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기호

ad hwp


Çѹ̿ìÈ£-197È£

<B7CEC4C3B8AEC6BCC0CEB9AEC7D B3E23130BFF9292E687770>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B1E8BCF6C1A4BEC6BDC3BEC620BFA9BCBAC0C720B1B9C1A6B0E1C8A5BFA120B4EBC7D120B9CCB5F0BEEE20B4E3B7D02E687770>

C O N T E N T S 1. FDI NEWS 2. GOVERNMENT POLICIES 3. ECONOMY & BUSINESS 4. FDI STATISTICS 5. FDI FOCUS

한류 목차2_수정 1211

Special Theme TV SNS 2015 Spring vol

232 도시행정학보 제25집 제4호 I. 서 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사회가 다원화될수록 다양성과 복합성의 요소는 증가하게 된다. 도시의 발달은 사회의 다원 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화된 도시는 경제, 사회, 정치 등이 복합적으로 연 계되어 있어 특

국어 순화의 역사와 전망

DBPIA-NURIMEDIA

2 동북아역사논총 50호 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 는 일본 정부의 주장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 본 정부 군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이므로 한일청구권협정 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 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또한 2011년 8월 헌 법재판소는

09김정식.PDF

쌍백합23호3

_ _ Reading and Research in Archaeology. _ Reading and Research in Korean Historical Texts,,,,,. _Reading and Research in Historical Materials from Ko


106 통권 제12 호 (2012) 제에 의하여 라는 외부적인 포스트- 식민화의 문제점을 노정하는지, 그리고 4 3이나 5 18과 비교 할 때 근대 국민 국가 성립 전의 조선과 대한민국을 포괄하여 일본군위안부가 어떻게 법적 언어로 구성되고 있는지는 국가주의, 민족주의,


나하나로 5호

pdf 16..

<3635B1E8C1F8C7D02E485750>

ÃѼŁ1-ÃÖÁ¾Ãâ·Â¿ë2

1 [2]2018개방실험-학생2기[ 고2]-8월18일 ( 오전 )-MBL활용화학실험 수일고등학교 윤 상 2 [2]2018개방실험-학생2기[ 고2]-8월18일 ( 오전 )-MBL활용화학실험 구성고등학교 류 우 3 [2]2018개방실험-학생2기[

<B9AEC8ADC4DCC5D9C3F7BFACB1B82D35C8A32833B1B3292E687770>

C O N T E N T S 1. FDI NEWS 2. GOVERNMENT POLICIES 中, ( ) ( 对外投资备案 ( 核准 ) 报告暂行办法 ) 3. ECONOMY & BUSINESS 美, (Fact Sheet) 4. FDI STATISTICS 5. FDI FOCU

춤추는시민을기록하다_최종본 웹용

....pdf..

아태연구(송석원) hwp

1960 년 년 3 월 31 일, 서울신문 조간 4 면,, 30

<5B335DC0B0BBF3C8BF2835B1B35FC0FAC0DAC3D6C1BEBCF6C1A4292E687770>

한류동향보고서 18호.indd

소식지수정본-1

View Licenses and Services (customer)

(연합뉴스) 마이더스

2015년9월도서관웹용

hwp

음악부속물

음악부속물

음악부속물

2011´ëÇпø2µµ 24p_0628

광주시향 최종22

Transcription:

음악응용연구 The Journal of Music Application Studies 2011, Vol. 4, pp. 19-37 케이팝(K-Pop)의 글로컬(Glocal) 전략과 혼종정체성: 포스트-한류 시대 케이팝의 사회문화적 지형에 대한 소고 양 재 영 <목 차> Ⅰ. 들어가며: 한류와 케이팝 Ⅱ. 케이팝의 시작: 본격적인 팝 아시아주의 혹은 트랜스 아시아 대중음악 Ⅲ. 케이팝의 혼종정체성과 탈국적성 Ⅳ. 글로벌-로컬 동학과 케이팝의 새로운 전략: 탈국적 vs. 국지적 Ⅴ. 케이팝 소비의 의미: 인터 아시아 에서 탈 아시아 로 Ⅵ. 케이팝 혹은 한국연예산업의 (전)근대성과 재-국적 화 Ⅶ. 나가며: 케이팝의 빈 공간 채우기 국문요약 이 글은 한류 혹은 포스트-한류 시대의 대표적인 문화적 표현물이자 상품인 케이팝(K-Pop)의 문화적 지형과 그 생산-분배-소비 를 둘러싼 동학(dynamics)에 대한 시론적인 고찰을 목표로 한다. 우선, 최근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케이팝의 인터 아시아(inter-Asia)화 를 넘어선 탈 아시 아화 과정은 혼종성(hybridity)' 개념에 대한 보다 집중적인 관심을 요구한다. 대중문화 텍스트 로서 케이팝 혹은 한국 대중음악의 지속적인 혼종성은, 문화-경제적 연예산업 시스템으로서 한 류의 최근 '글로컬(glocal)' 전략/전술과 상보적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즉 케이팝은 혼종적인 문 화적 텍스트이면서, 동시에 글로벌과 로컬이 복합적으로 상호 작동하는 탈국적인 사회문화적, 경제적 장(field)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당대의 케이팝에 대한 고찰은 생산과 유 통 과정 뿐 아니라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소비의 의미에 대한 고민하게 한다. 맹목적인 팬돔(fandom)을 넘어서는 적극적인 문화적 실천으로서 케이팝의 초국적 소비와 수용 의 사례들은, 문화산업으로서 케이팝 혹은 한류에 대한 이해가 단순히 그 생산과 분배/유통에 대한 분석 혹은 그 과정을 둘러싼 담론에만 국한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정교해지고 대규모화 된 케이팝이라는 대중음악 텍스트 혹은 문화산업 구조물은 글로벌-로컬, 혼종성-순혈적 민족주 의, 탈국적성-국지성이라는 상반된 문화적 개념과 사회경제적 범주들이 공존하며 뒤섞여 있다. 따라서 생산과 유통에서 소비에 이르는 케이팝의 상호 연관되고 일관된, 하지만 유동적이고 복 합적인, 동학에 대한 체계적인 고찰이 요구된다. 주제어: 혼종성, 탈국적성, 국지성, 글로벌, 로컬, 재-국적화, 인터 아시아, 탈 아시아 - 19 -

음악응용연구 2011년 통권 제4호 Ⅰ. 들어가며: 한류와 케이팝 최근 케이팝(K-Pop) 의 국제적인 열풍이 심상치 않다. 적어도 우리의 방송과 언론 미디 어를 믿고 지켜본다면 말이다. 올해 초부터 소녀시대, 카라 같은 걸 그룹들이 일본 열도를 점령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슈퍼주니어를 비롯한 일군의 SM 사단 이 유럽 일대를 뒤흔들 고 있다. 2PM을 비롯한 JYP 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들이 동남아를 장악하고, 빅뱅을 비롯 한 YG 엔터테인먼트의 그룹들은 아시아계 미국인 소년들에게 미국의 흑인 슈퍼스타 못지 않은 빼어난 흑인음악 뮤지션들로 꼽힌다. 우리 미디어의 자랑스러운 보도에 따르면 전 세계의 청소년들이 케이팝 아이돌의 춤을 그대로 따라하며 노래를 정확히 부르기 위해 한 국어를 배운다. 그리고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으로 작성한 케이팝 스타들의 프로필을 동영 상과 함께 인터넷으로 전파하기도 한다. 물론 케이팝의 이러한 비약 혹은 도약은 때론 케 이팝 침공(K-Pop invasion) 이라는 표현과 함께 해외 언론에서 종종 언급된다. 바야흐로 케이팝의 시대가 온 것 같다. 케이팝의 파워와 가치가 급상승하면서 기존의 한 류 라는, 보다 상위범주에서 한국 대중문화를 일컫던 표현과 이제는 때론 등가의 위치에서, 때론 독립적인 지위에서 케이팝이 거론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과거 일본과 미국에서 장기체 류하며 벌인 보아(BOA)나 원더걸스의 사투와 지금의 케이팝 스타들이 한국과 외국을 동 시간에 오가며 벌이는 입체적 활약은 뭔가 느낌이 다르다. 심지어 배용준, 이병헌 같은 한 류 배우들보다 이들 케이팝 스타들이 국내외 미디어를 통해 그리고 한류 팬들의 입을 통해 더 많이 오르내린다. 극단적인 경우 포스트-한류 혹은 탈-한류 시대가 도래 했다고 호들 갑을 떠는 이들도 있다. 물론 한류에 대한 사망선고라기 보다 새로운 개념과 경향의 한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뜻으로 사용한 표현이겠지만 말이다. 사실 한국의 드라마와 대중음악이 한류 라는 신조어와 함께 거침없이 해외 진출을 시작 한지 어느덧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H.O.T.가 베이징 공연장에서 1만여 중국 청소년들을 열광시켰던 초창기부터 겨울연가 와 대장금 같은 드라마가 아시아 대륙을 뒤흔들던 2000 년대 중반을 거쳐 걸 그룹들이 일본을 점령하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부와 미디어에 게 한류는 글로벌 시대 우리 문화의 위상을 국내외에 알리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왔고, 우리 국민의 문화적 자부심을 고양시키는데도 일조했다. 점증적인 인기와 함께 콘텐츠가 다양해지고 그 경제적, 문화적 영토가 확장된 만큼 한류 에 대한 학문적 논의 역시 꾸준히 진전되어 왔다. 가령 국내의 낙관론자들은 한국 드라마와 아이돌 가수들의 춤과 노래에 열광하는 아시아 팬돔(fandom)에 고무되어 한류를 경쟁력 있 는 국가 혹은 민족 문화상품으로 만들자며 여전히 강권한다(박재복 2005; Hyun 2004). 반 - 20 -

케이팝(K-Pop)의 글로컬(Glocal) 전략과 혼종정체성 양재영 면 비관 혹은 비판론자들은 한류의 기저에 깔린 불변하는 문화민족주의의 기표와 상업주의 의 논리를 까발린다(이동연 2006). 아마도 한류에 대한 국내 방송미디어와 정부 중심의 홍 보와 광고가 지속되는 한, '문화 민족주의 담론을 둘러싼 이러한 논의와 논쟁은 계속될 것 이다. 한편, 해묵은 민족주의 격론이 여전한 가운데, 한류의 문화적 가능성을 상이한, 즉 영 토적으로 보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려는 입장들 또한 국내외에서 눈에 띤다. 특히 서구적 근대화의 제약을 벗고 탈식민주의 맥락에서 문화적 대안으로서 한류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일련의 논의들이 있어왔다(조혜정 2003). 한류를 문화산업의 도구를 넘어 동아시아 문화교 통의 장으로 바라보거나(백원담 2005), 한류 드라마를 통해 아시아 팝문화의 정치적 흐름과 사회적 교환의 연결고리를 파악가능하다고 주장하며(Chua & Iwabuchi 2008), 때론 미국식 문화 헤게모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문화적 가능성으로서 한류에 주 목하기도 한다(Chen 2001). 물론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한류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은 상당수가 한류 드라마나 아 이돌 뮤지션(혹은 그들의 노래와 춤) 등의 대중문화 텍스트 자체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한류를 하나의 문화담론으로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다보니 최근 의 새로운 한류의 흐름, 특히 케이팝 중심으로 재편된 한류 문화산업의 현황과 그 기저에 깔린 전략과 전술들을 꿰뚫어 보는데 한계가 있다. 사실 아이돌 케이팝의 생산, 유통, 분배 를 둘러싼 국내 연예문화산업의 논리가 현재의 화두라고 볼 때, 단순한 담론의 차원을 넘어 한류 문화콘텐츠의 생산과 재생산을 위해 어떻게 경쟁력 있는 시스템이 실제로 구축되고 있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기존의 한류에 대한 민족주의 담론 혹은 그 논의와 더불어 (동)아시아적 현상 으로서 한류를 바라보는 시각들은 아시아라는 지역적 경계에 집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 다. 따라서 아시아를 뛰어넘는 지금의 글로벌 한류, 특히 케이팝 현상과 이를 추동하는 국 내 연예문화산업의 논리를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글로벌 문화산업 체계에서 탈국( 脫 國 )적인 생산-유통-소비 의 재생산 순환 구조를 갖추려는 현재의 케이팝 연예문화산업의 욕망과 이를 위한 전략 혹은 전술들이 문화민족주의 를 둘러싼 격론의 장을 넘거나, 혹은 그 공간 내에서 작동하고 있는 실제 논리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말하자 면, 포스트-한류 혹은 탈-한류를 둘러싼 케이팝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한류에 대한 민족주의적 함의나 담론에 집착하기보다, 이러한 기표가 어떻게 어떠한 문화자본을 탈 국적 맥락에서 일관된 경제체계로서 작동시키는지를 보아야 한다(이동연 2010). 이 글은 한류, 혹은 포스트-한류를 추동하는 중심적인 문화적 표현물이자 상품으로서 케 이팝의 현 상황과 그 동학(dynamics)에 대한 시론적인 고찰을 목표로 한다. 특히 최근 급격 히 진행되고 있는 케이팝의 인터 아시아(inter-Asia)화 를 넘어선 탈 아시아화 과정을 혼 - 21 -

음악응용연구 2011년 통권 제4호 종성(hybridity)'의 개념과 연결해 논할 것이다. 대중문화 텍스트로서 케이팝의 혼종성은, 문 화-경제적 연예산업 시스템으로서 한류의 최근 '글로컬(glocal)' 전략/전술과 상보적 관계를 구축한다. 말하자면 케이팝은 글로벌과 로컬이 복합적으로 상호 작동하는 탈국적인 사회문 화적 장(sociocultural field)이 되는 것이다. 아울러, 생산과 유통 과정 뿐 아니라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케이팝 소비의 의미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것이다. 맹목적인 팬돔을 넘어서는 적극적인 문화적 실천으로서 케이팝 소비와 수용의 사례들을 살펴봄으로 써, 문화산업으로서 케이팝 혹은 한류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그 생산과 분배/유통에 대한 분석 혹은 그 과정을 둘러싼 담론에만 국한될 수 없음을 보여줄 것이다. 실제로 케이팝의 수용에 대한 관심은,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케이팝의 일관된 글로벌-로컬 동학에 대한 보 다 효과적인 접근을 가능케 한다. Ⅱ. 케이팝의 시작 : 본격적인 팝 아시아주의 혹은 트랜스 아시아 대중음악 한류라는 용어가 그러하듯이, 케이팝 역시 애초에는 외국에서 한국 대중음악을 분류, 구 분하기 위해 산업적으로 만든 단어였다(최지선 외 2011). 즉 한류가 중국어권에서 한국 대 중문화와 관련된 제 현상과 사실을 묘사하는 용어라면, 케이팝은 일본어권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미 가요 라는 말이 장기간 통용되어온 국내 음악시장 내에서 케이팝 이란 말이 상대적으로 근래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신현준(2005) 은 케이팝을 한국 음악산업을 통해 생산되고 동아시아권에서 소비되는 대중음악 및 그와 연관된 문화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국제적 고유명사 라고 정의한다 1). 따라서 케이팝은 지금껏 주로 국제경쟁력을 갖추려 만든 음악, 즉 아이돌 팝에 제한되어 지칭되어 왔다. 그리고 국제적 혹은 글로벌한 문화산업 구조에서 나오는 대중음악이지만, 다국적 대기업보다는 상대적으로 영세한 국내 연예기획 산업체가 그 생산과 유통을 지배하 고 있다. 이러한 특성들은 케이팝이 출현한 사회경제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사실 드 라마를 비롯한 다른 장르의 대중문화들이 한류 상품으로 범주화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 럼, 미디어와 정부의 직접적인 사회적, 경제적 지원과 후원만으로 케이팝의 출현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1990년대 중, 후반 국내 가요시장을 둘러싼 경제적, 제도적 변 1) 케이팝은 특히 동아시아 음악시장에서 제이팝(J-pop), 칸토팝(Canto-pop), 만다린팝(Mandarin-pop) 등과 대척점에 놓이는, 우리의 대중음악에 대한 표현이자 정의라고 할 수 있다(신현준 2005). - 22 -

케이팝(K-Pop)의 글로컬(Glocal) 전략과 혼종정체성 양재영 화와 음악적 내용의 전환이 케이팝의 탄생을 촉발했다. 1990년대 초, 중반 서태지와 아이들 을 중심으로 진행된 가요시장의 패러다임 전환은 그 음악적 스타일 뿐 아니라 수용자의 취 향까지 변화를 가져왔고, 1997년 사전검열제도가 폐지되면서 당시의 소위 신세대가요 가 향후 한국 대중음악의 주도적 시스템의 근간을 제시하게 되었다. 즉, 텔레비전 방송 산업과 밀착된 10대 취향의 스타 연예산업이 형성되고, 이들 연예기획사 혹은 프로덕션은 댄스 중 심의 아이돌 스타들을 무기로 복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지향하기 시작한 것이다(신현준 2005). 이러한 상업적 가요 중심의 한국음악산업이 1990년대 후반부터 해외시장 개척을 본 격적으로 타진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이 지점이 한류 케이팝의 출발점이 되었다. H.O.T, 신 화, 젝스키스, N.R.G. 같은 당시 국내에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아이돌 댄스그룹들이 케이 팝 초기의 주역이었다. 이들은 1997년 말 경제위기 직후 다른 산업분야와 마찬가지로 구조 적 침체에 빠진 국내 음악 산업이 중국, 일본 등지에서 활로를 개척하는 첨병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이때부터 2000년대 중, 후반에 이르는 시기의 케이팝과, 포스트-한류로 꼽히며 새롭게 폭발하는 지금의 케이팝은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혹은 어떤 단절지점이 있을까? 현상적으로 보자면 양자 간에는 공통점이 차이점보다 더 많아 보인다. 사실, 제이팝, 칸토팝 등 동아시아 국가의 다른 대중음악처럼 애초에 케이팝은 영미 팝음악이 (때론 일본을 거친 후) 한국에서 적용, 변용되어 재창조된 혼종적인(hybrid)' 음악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또 한, 적어도 글로벌 시대에 지역 대중음악으로서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는, 즉 월경( 越 境 ) 하 는 팝의 성격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 또한 여전하다 2). 하지만 지금의 케이팝이 세계적으로 폭발하며 새롭게 주목받는 양상은, 양자를 차별하는 단절지점이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그 리고 그 단절지점을 찾아내는 실마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케이팝이 지닌 혼종성 (hybridity) 에 있다. 왜냐하면 혼종적 이라는 본원적인 공통분모가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한국 문화산업이 변화하는 글로벌-로컬 동학에 대응하고 적응하는 동안 케이팝의 그 혼종 성은 제작, 분배,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내부적 변태( 變 態 )를 겪어왔기 때문이다. 2) 물론 케이팝을 글로벌 비서구 대중음악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월드뮤직 과 같은 범주로 묶을 수는 없다. 신현준(2005)은 월드뮤직이 잡종화와 문화변환을 통한 교차풍부화된 지역 팝음악의 대표적 사 례 라고 주장한다. 아프리카, 라틴아프리카, 중동, 남아시아에서 월드뮤직은 그 지역의 팝 음악과 명확 한 분리가 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는 고전 혹은 민속음악을 기반으로 한 월드 뮤직과, 영미 팝음악이 아시아화 된 대중음악이 이분화되어 있다. 케이팝이 후자에 속하는 것은 물론 이다. - 23 -

음악응용연구 2011년 통권 제4호 Ⅲ. 케이팝의 혼종 정체성과 탈국적성 일단 대중음악 텍스트로서 케이팝 음악 자체가 지닌 혼종성의 내용에 주목해보자. 사실 케이팝 텍스트에 대한 분석은, 한류 혹은 케이팝의 혼종성을 논의하기 위한 주된 소재로 지 금껏 활용되어 왔다. 가령 케이팝 열풍을 주도해온 SM 엔터테인먼트 사단의 음악을 살펴본 다면 테스트에 내재한 음악적 혼종성은 분명해진다. 케이팝 초기를 대표했던 H.O.T와 보아 부터 2000년대 후반의 동방신기 그리고 지금의 슈퍼주니어와 소녀시대에 이르기까지, 각자 의 구별되는 음악적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R&B와 힙합이라는 미국식 흑인음악, 유럽의 테크노/일렉트로닉 댄스음악, 그리고 제이팝이 그 멜로디와 리듬 속에 어떠한 형태 로든 교묘하게 혼용되어 있다. 물론 단순한 짜깁기는 아니다. 케이팝 제작자 혹은 기획자들 은 독자적 제작과 매니지먼트 시스템에 의해 나름의 완결된 음악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따 라서 지역성이 강한 일본 아이돌 음악에 비해 훨씬 더 미국적 혹은 글로벌한 팝음악으로 들리는데, 그러한 음악적인 감각과 태도 자체가 역설적으로 바로 한국식 아이돌 음악, 혹은 케이팝의 색깔이 되는 것이다. 가령 미국 흑인음악과 제이팝을 근간으로 하되, 북유럽 스타 일의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조합함으로써 소녀시대나 슈퍼주니어의 음악에서 보다 강한 멜 로디와 댄서블(danceable)한 리듬이 드러나는 것이 그 본보기이다. 물론 음악적 내용 뿐 아니라 문화적 표현의 텍스트로서 케이팝 아티스트들 역시 스스로 의 신체 이미지(body image)를 위해 혼종성을 표방한다. 예를 들어 케이팝 혹은 한류의 간 판역할을 했던 비(Rain)의 경우 미국식 R&B/힙합을 레퍼토리로 삼으면서, 자신의 신체는 서구적인 남성적 근육과 아시아적인 미소년의 이미지를 혼용한다. 소녀시대는 유로 댄스팝 을 부르면서 서구 여성의 이상적 신체구조와 아시아적인 작은 동작의 춤을 혼용한다. 바로 이런 식의 혼용전략 혹은 혼종성은 지금의 케이팝 스타들 대부분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공통적인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듯 여타의 제3세계 대중음악들과 마찬가지로, 대중음악 텍스트로서 케이팝의 음악적 내용과 형식은 늘 지극히 혼종적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아니 영미권 팝음악의 양식을 최 소한이라도 차용한 음악들은 태생적으로 혼종적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대중음악 역시 영미 권 팝음악의 직, 간접적인 영향을 흡수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1990 년대 중반 이후의 아이돌 댄스 음악은 굳이 케이팝이라는 언명 하에 월경하는 한류 문화상 품이 되었을까. 우선은 국내외 음악 산업과 시장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급격한 재 편과 재구조화가 진행된 데서 직접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한 경제적 구조 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춘 음악을 제조하고 유통하려는 경제적, 음악적 욕망은 그저 자연스 - 24 -

케이팝(K-Pop)의 글로컬(Glocal) 전략과 혼종정체성 양재영 러운 것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혼종적인 대중음악에 대한 생산자와 수용자의 인지 방식과 판단기준이 이 시기에 변화했다는 점이다. 사실 혼종성은 애초에 서구와 비서구가 문화적 접촉과 충돌 을 이루던 식민국가에서 생성된 물질적 실체이자 개념이었고, 그 기저에는 순혈적인 서구인 들이 식민지에 부여한 근대적인 열등의 가치가 녹아있었다(Young 1995) 3). 하지만 백여 년 이상 지속되었던 근대성의 절대적 기준으로서 순혈주의, 민족적-인종적 우월주의에 상반되 는 열등함으로써의 혼혈 혹은 혼종성은, 역설적으로 근대성의 보편원리가 해체된 탈근대적 인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계와 불평등한 관계를 허무는 일종의 문화적 축복 을 상징 하게 되었다(Wicker 1997). 제3세계의 대중음악이 서구사회에서 월드뮤직이라는 언명 하에 근사한 상품으로 재포장되어 글로벌 문화상품으로 각광받게 된 것도 이러한 문화적 탈근대 화, 혹은 포스트 모더니티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 아마도 1990년대 중, 후반 이후 쏟아져 나 오는 한국 아이돌 스타와 그들의 댄스 음악이 노골적으로 혼종적인 음악 스타일과 내용을 추구하며 스스로를 케이팝으로 정체화했던 것도 이러한 문화적 아우라의 변화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텍스트로서 월경하는 케이팝의 음악적 콘텐츠와 형식에 팽배한 혼종성은, 이를 둘러싼 산업 시스템과 담론의 (전)근대성과 근래까지도 마찰을 이루어 왔다. 우선 케이팝을 둘러싼 다양한 수준의 국내 담론들, 특히 언론 방송 미디어와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투 여하고 있는 문화 민족주의 혹은 국민문화 담론은 혼종성 혹은 탈국적성 을 표방하는 케이 팝 텍스트의 내용이나 형식과는 모순적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케이팝 제작과 마케팅 시스템 은 2000년대 중반까지도 한국이라는 전초기지를 완전히 떠난 적이 없었다. 한국 국적 혹은 적어도 한국 출신 부모를 둔 교포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들을 국내에서 훈련하고 양성한 뒤, 국내 기획사와 음반제작사를 통해 음반을 생산하고 국내 방송을 통해 일단 마케팅을 진행 하면서 케이팝 스타로 키워 해외활동을 타진하는 연예문화산업의 시스템은 여전히 국지적 이었다. 즉 케이팝은 글로벌 혹은 탈국적 이미지로 사용되었지만, 그 속에는 한국 대중음악 의 국지적인 특수성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케이팝은 분명 한국 대중 음악의 경제적, 문화적 지형을 탈국적인 상태로 만들어 놓았지만, 그 기저에는 이렇게 국지 적인 기반이 깔려있었다. 물론,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혼종성 혹은 탈국적성과 동반하는 국적화된 담론들 - 3) Young(1995)은 혼종성의 개념이 생성되는 역사를 추적하기 위해, 19세기 서구인들이 식민 지배하던 남미와 아프리카 대륙에서 진행된 서구남성과 피식민지의 유색인종 여성들 간의 은밀한 연애에 주목 한다. 그리고 인종적, 정치적, 경제적, 성적 불평등 관계에 놓인 이들 간의 연애의 산물로서 탄생한 혼 혈 후손들을 서구사회와 식민지 사회에서 인지하고 판단하던 방식에서 근대성과 혼종성이 필연적으 로 뒤얽혀있는 역사를 뒤집어 본다. - 25 -

음악응용연구 2011년 통권 제4호 국가문화, 문화민족주의 등 - 과 연예문화산업에 담지된 필연적인 국지성은 사라지기 어렵 다. 하지만 분명한 건 케이팝을 추동해온 국내 연예문화산업 시스템이 최근에 전략적, 전술 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케이팝을 진정한 글로벌 문화상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국내 연예문화기업들의 욕망과 변화된 글로벌 경제구조가 조우하면서, 케이팝의 혼종성을 축복하는 새로운 문화산업적 환경이 갖추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즉, 문화산업의 생산에서 분배에 이르는 시스템 자체가 혼종성과 탈국적성을 환영하고 체화하는 전이가 이루어지면 서, 바로 지금의 포스트-한류 혹은 공간적으로 재편되고 확장된 한류를 가능케 하고 있다. 말하자면 케이팝 텍스트 자체가 지닌 혼종성에 걸맞은, 한국 연예문화산업의 생산, 분배와 유통, 그리고 소비에 이르는 탈국적화, 혼종화가 최근의 케이팝 폭발 혹은 케이팝의 글로벌 침공(global invasion)을 추동하고 있는 것이다. Ⅳ. 글로벌-로컬 동학과 케이팝의 새로운 전략: 탈국적 vs. 국지적 한국의 연예문화산업이 변화하는 글로벌-로컬 동학에 조우하면서 그 시스템 자체가 혼종 화되고 탈국적화되고 있다면, 케이팝의 혼종성 혹은 혼종 정체성은 실제로 어떠한 변태를 거쳐 왔을까. 케이팝은 어떻게 드라마나 영화를 제치고 한류 아이템들 중에 리더가 되었으 며, 그 활동영역은 지금 어디까지 도달했을까. 이런 저런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하나의 문화산업 시스템으로서 케이팝의 현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 다. 사실 케이팝은, 기존의 정의와 달리, 더 이상 한국에서 생산되어 (동)아시아권에서 주로 소비되는 대중음악에 국한되지는 않는 듯하다. 일단 케이팝을 추동하는 문화자본, 마케팅과 프로모션 전략, 그리고 유통 과정까지 모두 '초국적(transnational)'이다. 그것도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를 아우르는 인터 아시아(inter-Asia) 네트워크를 넘어 이미 미주와 유럽을 아 우르는 진정한 글로벌 산업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에 상응하는 전략을 진행 중이다. 사실 한 류 드라마나 다른 한류 문화상품과 마찬가지로 케이팝은 2000년대 중, 후반까지도 아시아 내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트랜스 아시아(trans-Asia), 혹은 아시아 국간 간을 상호 교차하는 인터 아시아' 팝의 성격이 강했다. 이런 측면에서 케이팝은 서양 중심의 도식적인 글로벌과 로컬의 동학, 즉 서양에서 제3세계로 일방적으로 문화가 들어가는 흐름과는 달리, 로컬과 로컬이 문화적, 경제적으로 교차하고 교류하는 대안적인 글로벌-로컬 모델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의 케이팝을 둘러싼 연예문화산업은 아시아의 경계를 넘어 보다 복잡하고 - 26 -

케이팝(K-Pop)의 글로컬(Glocal) 전략과 혼종정체성 양재영 탈 아시아 적인 글로컬 시스템을 바탕으로 정교하고 확장된 국제적 전략과 전술을 추구한 다. 가령, 케이팝 음악 자체의 혼종적 성격은 제작 시스템 자체의 다국적화를 통해 더욱 강 조되고 있다. 가령 SM 엔터테인먼트 같은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의 경우, 수년전부터 국내 작곡가/프로듀서에만 의존하지 않고 미국과 유럽의 작곡가/프로듀서의 곡을 받거나 리메이 크해 소속 케이팝 스타들이 부르고 있다. 전 세계 팝시장에서 그들이 받은 곡 중에는 미국 과 영국 뿐 아니라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작곡가들의 곡도 다수이다 4). R&B/힙합 스 타일의 미국식 팝, 그리고 일렉트로닉 댄스 스타일의 유럽식 팝의 느낌이 물씬한 곡들 덕분 에 소속사 뮤지션들인 슈퍼주니어, 샤이니 등의 유럽과 미주 진출이 수월해졌다고 해도 틀 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들 연예기획사들은 현지의 문화 산업체들과 제휴 혹은 연계 해 국내 아이돌 스타들을 경계를 넘나드는 케이팝 스타로 재탄생시킨다. 현지 에이전시를 통해 쇼케이스, 방송 출현, 음반발매 프로모션 등이 진행되는 것은 부지기수인데, 보아, 비, 원더걸스 등의 해외 활동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5). 아울러 케이팝 뮤지션들을 아예 다국적으로 구성하는 것도 눈에 들어온다. 이전처럼 재 미교포, 재일교포들을 한국 출신과 묶어 그룹을 구성하는 데 머물지 않고, 대형 연예기획사 들은 한국과 혈연적 관계가 전혀 없는 미국, 중국, 태국 국적의 멤버들이 포진한 아이돌 그 룹을 만들어 케이팝의 국가적, 지역적 경계를 허물고 있다 6). 이를 위해 이들 기획사는 국외 현지에 사무실을 갖추고 다국적 오디션을 진행 중이다. 매년 5만 명 이상이 오디션을 치른 다는 SM, JYP, YG 등 이른바 빅쓰리 연예기획사들은 열 개 이상의 해외도시에서 현지화 전략을 목적으로 대대적 광고와 함께 오디션을 벌이고 있는데, 교포보다 비교포 청소년들이 더 몰려들 정도로 현지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한편으로, 탈국적인 현지화를 가속하기 위해 이들 케이팝 스타들은 공연이나 방송을 통 한 마케팅과 프로모션 뿐 아니라 현지의 유명 지역 축제나 이벤트 등에 참여해 탈국적 지 역화 를 시도하기도 한다 7). 이는, 방송이나 공연과 달리, 해외의 지역 이벤트에서 직접 현지 팬들과 조우하면서 케이팝을 홍보하고 청소년들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 보다 적극적인 경우는 케이팝의 이름을 건 다양한 규모의 축제들이 현지의 한국계 기관이나 혹은 현지 팬 들에 의해 개최되는 사례들이다. 케이팝 스타들이 초청되기도 하고 현지의 케이팝 팬들이 4) 소녀시대의 Run Devil Run"은 미국(Busbee), 영국(Alex James), 스웨덴(Kalle Engstrom) 출신 다국적 작곡팀의 작품이며, 동방신기, 샤이니, 보아 등의 앨범 작업에는 덴마크 출신 Remee가 참여해왔다. 5) 원더걸스의 경우 미국의 인기 그룹 Jonas Brothers의 투어에서 오프닝 공연을 맡고 미국 공중파 방송의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 Nobody"가 빌보드지의 싱글차트에 진입하는데 큰 역할을 했었다. 6) JYP 엔터테인먼트 소속 2PM의 닉쿤(태국),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F/X의 빅토리아(중국)와 앰버(중국 계 미국), 그리고 근래 슈퍼주니어를 탈퇴한 한경(중국) 등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7) 미주의 아시아계 미국인 관련 축제나 동아시아나 동남아시아의 지역 축제 등에 SM 엔터테인먼트와 JYP 엔터테인먼트 소속 뮤지션들이 특별 게스트 등의 형태로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 27 -

음악응용연구 2011년 통권 제4호 때로는 관객으로 때로는 직접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이벤트가 미국, 영국, 캐나다, 핀란드, 프랑스, 리투아니아, 불가리아, 브라질 등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다. 과거와 달리 한류 축제 의 부속 행사가 아닌 케이팝의 이름으로 이런 단독 이벤트들이 진행된다는 점은 케이팝이 스스로를 탈국적으로 정체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맥락에서 케이팝 스타들의 해외 활동에서 최근 가장 두드러진 점은 아마도 국가 개념이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로 현지화 전략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즉 과거처럼 한국출 신 의 아이돌 스타로 마케팅 활동을 하기보다, 같은 연예기획사 소속 아이돌들이 함께 공연 이나 이벤트를 마련하면서 연예기획사 자체 브랜드 파워를 공고히 한다. 미국, 프랑스, 일본 에서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뮤지션들이 함께 SM Town 의 이름하에 공연을 함으로써 현 지의 청소년 팬들에게 SM의 이미지를 더 강하게 각인할 수 있었다. 국적보다는 브랜드로서 케이팝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전략은 케이팝이 진정한 글로벌 탈국적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한편으로 다국적 대기업이 아닌 이들 국내 연예기획회 사들이 스스로 탈국적 대기업으로 변모하려는 야심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국내 대중음악과 연예산업의 구조적 전환의 전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케이팝의 탈국적화 과정이 보다 적극적인 국내에서의 한류 혹은 케이팝 관련 마케팅 활동과 동반되어 진행되고 있다 는 점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케이팝 관련 행사와 공연, 방송 프로그램이 기하급수적으로 늘 어나고 있다. 인천 케이팝 음악축제 처럼 지자체 주관의 대규모 이벤트 뿐 아니라, 방송국 이 주관하는 케이팝 전문 프로그램도 다수가 특집으로 방송되거나 정규적으로 편성되고 있 다 8). 한편 케이팝을 표면적인 주제로 내걸지 않더라도, 아이돌 위주의 오락 프로그램들과 대중음악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케이팝 전문 프로그램들과 함께, 일종의 케이팝 트라이앵글 을 구축한다. 대부분의 아이돌들이 케이팝 스타이거나 그 지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돌 위주의 오락 프로그램은 사실상 케이팝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으며, 대중음악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일반 청소년들을 위한 케이팝 경연장이 되면서 케이 팝 홍보 기능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9). 이들 이벤트와 방송 프로그램들은 현재 케이팝이라 는 언명이 더 이상 외국에서 한국의 음악을 분류하기 위한 용도로 쓰이는 것만은 아님을 보 8) 지난 추석 때 SBS는 한류올림픽 을, MBC는 나카타 K팝 올스타 콘서트 를 특집으로 반영했다. 한편 케이블 방송인 M-Net은 Boom the K Pop'이라는 정규 케이팝 전문 프로그램을 방송 중이다. 9) MBC의 2011 아이돌스타 육상선수권 대회, KBS의 아이돌 대격돌, 마법의 제왕, 그리고 브아걸의 두근두근 같은 추석특집 프로그램과 M-Net의 아이돌 차트쇼 는, 방송 미디어에서 아이돌 스타들이 차지하는 막강한 비중을 보여준다. 반면 MBC의 위대한 탄생 과 M-Net의 슈퍼스타K' 같은 대중음악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현재 방송되는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들 중에 사실상 가장 시청률이 높은 경우라 할 수 있다. - 28 -

케이팝(K-Pop)의 글로컬(Glocal) 전략과 혼종정체성 양재영 여준다. 케이팝은 그 자체로 국내에서 아이돌 뮤지션들 일반의, 혹은 극단적인 경우에는 국 내 대중음악 전반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10). 한편으로 상황에 따라 케이 팝이 한류라는 표현과 독립되거나 동등한 권위의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기도 한데, 이는 국 내 연예문화시장에서 케이팝의 막강한 문화적 지위를 입증한다. 국내에서 케이팝의 이러한 문화적, 상업적 확장과정은, 탈국적화된 문화표현물로서 대중 음악과 지역적인 문화의 장(cultural field)이 상호영향을 미치며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새로 운 음악 산업의 지형을 반영한다. 물론 이러한 국내 활동은 정부와 언론을 중심으로 일종의 문화 민족주의 담론과 함께 홍보되고 진행된다는 점에서 일종의 케이팝 재-국적화 (re-nationalizing)'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이들 케이팝 관련 국내 이벤 트와 방송 프로그램들은 상당수가 해외 합작을 통해 혹은 해외 수출과 홍보용으로 기획되 고 제작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탈국적이며 글로벌하다. 그런데 국내의 케이팝 관련 이벤트와 방송 프로그램들을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상당수의 국내 케이팝 이벤트에서 외국인 팬들을 목격할 수 있고, 심지어 한류 올림픽 처럼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케이팝 스타의 외모, 노래, 춤을 모방하는 경연을 벌이는 것을 볼 수도 있다. 국내 아이돌 팬들도 아니고 해외의 한류 팬들도 아닌, 국내 거주 외국인 케이팝 팬들의 활약상 은 대중음악으로서 케이팝 수용과 소비의 문제가 우리가 생 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즉, 케이팝의 소비가 내국인 팬/해외 팬 의 이분 법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양상으로 흐르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Ⅴ. 케이팝 소비의 의미: 인터 아시아 에서 탈 아시아 로 사실, 최근의 변화된 상황에 대한 새로운 주목에도 불구하고, 케이팝에 대한 관심은 주로 케이팝 텍스트로서 아이돌과 그들의 음악, 그리고 그 배후의 연예기획 산업체들의 전략과 전술에 집중되어 왔다. 말하자면 케이팝의 생산과 유통/분배에만 관심이 쏠려있는 셈이다. 케이팝의 탈국적 소비와 연관된 이슈와 주제는 그저 그러한 생산과 유통/분배 과정의 변화 에 상응하는, 아시아권을 뛰어넘는 유럽과 아메리카로의 소비시장 확대에 대한 보도와 리포 트에 주로 한정되어있었다. 그리고 이들 미디어 속의 케이팝 팬들은 단지 공연장과 이벤트 공간에서 한국 아이돌들의 춤과 노래를 모방하거나 인터넷으로 케이팝을 극성 홍보하는 해 10) 최근 MBC의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 가 호주 특집을 기획했던 것도 보는 시각에 따라서 비아이돌 가요가 케이팝의 국제적 후광 하에 해외 시장을 타진한 간접적 사례로 이해될 수도 있다. - 29 -

음악응용연구 2011년 통권 제4호 외 소녀들뿐이었다. 지금은 케이팝 소비와 수용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집중적인 관심이 매우 절실한 상황 이다. 실제로 문화산업 일반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생산과 유통 뿐 아니라 문화상품의 소 비와 수용 역시 동등하게 중요한 부분이며, 하나의 일관된 산업체계로서 문화산업 혹은 대 중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어떠한 대중문화의 소비도 일방 적이고 수동적인 게 아니다. 즉 나름의 다양한 문화적 실천의 의미를 지니며, 항시 그 생산, 분배와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하기 마련이다. 신현준(2005)이 내린 케이팝에 대한 정의에 따 르면, (케이팝의) 내용은 음악과 함께 문화를 포함한다... 즉 제작과 유통 뿐 아니라, 문화 적 실천으로서의 다양한 소비와 수용 양상을 아우를 때에만 하나의 일관된 문화 체계로서 의 케이팝의 동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한국에서 아이돌 음악을 소비하는 청소년들을 오빠부대, 빠순이, 빠돌이 같은 저급한 표현과 함께 맹목적이고 획일화된 소비 집단으로 폄하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 우 리는 그 이미지를 지금 한국 바깥의 케이팝 팬돔에게도 비슷하게 적용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허구적인 편견에는 언론과 방송 미디어의 현지 케이팝 붐에 대한 성급하고 과장된 보도가 한 몫 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내 미디어나 문화연구 종사자들 또한 그들 케이팝 수용자들이 변별적이고 주체적인 개인이자 집단이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각기 나름 의 의미를 부여하며 케이팝을 수용하고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 다. 하지만 해외 케이팝 팬돔의 수용과 소비가 지니는 문화적 실천의 의미는 현재의 글로벌 -로컬 경제 동학과 문화 지형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현실적 으로 보더라도, 일관된 연예문화산업체계로서 케이팝이 장기적으로 현재의 성공을 유지, 확 산하기 위해서는 그 탈국적인 소비와 수용의 복합적인 양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 하고 그들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해야 한다. 가령 순전히 케이팝과 한류에 대한 관심 때문에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의 증가는 케이팝 의 소비가 진정으로 지역 간 경계를 실시간 이동하며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록 아시 아 국가를 중심으로 한류 관광 차원에서 찾아오는 외국인들도 여전하지만, 근래에는 오디 션 프로그램에 출전하기 위해서 혹은 비보잉을 배우기 위해서 혹은 케이팝을 이해하려는 목적으로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 국내에 들어와 장기간 체류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들의 국적 또한 미국, 일본, 독일, 태국 등 굉장히 다양하다. 실로 국경을 넘나드는 케이팝의 탈국적 소비와 수용의 국면을 맞이한 셈이다. 하지만 케이팝이 적극적인 형태로 수용되고 소비되는 해외 공간과 장소에서조차 본격적인 리서치와 현지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인지라, 이 사례만으로 케이팝의 탈국적 소비와 문화적 실천의 의미를 당장 제대 로 짚어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흥미로운 최근 이슈들은 탈국적 - 30 -

케이팝(K-Pop)의 글로컬(Glocal) 전략과 혼종정체성 양재영 인 케이팝 수용이 적어도 수동적이고 맹목적인 소비를 뛰어넘는 문화적 실천의 의미를 가 지고 있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우선, 원더걸스의 춤을 그대로 모사한 태국의 십대 소년들이 원더게이(Wonder Gay)라는 이름으로 온라인과 동남아시아 지역을 휩쓸며 큰 화제가 된 것은 자못 흥미롭다. 이 사례는 케이팝 시장의 확대에 따른 글로벌-로컬 동학의 변화, 문화적 텍스트의 전복, 그리고 성 정 치(sexual politics)의 가능성 등이 케이팝이라는 하나의 소비 현상을 축으로 복잡하게 얽힐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 흥미로운 사례는 바로 케이팝 스타인 동방신기의 해체, 2PM 멤버 박재범의 탈퇴를 둘러싼 탈국적인 팬들의 반응과 대응이다. 이 이슈들은 국내에서는 언론을 중심으로 연예기획사의 노예계획과 멤버간의 금전적 갈등, 그리고 문화 민족주의와 같은 논란꺼리로 국한되며 대충 정리가 되었다. 하지만, 해외 팬들이 인터넷을 통해 진행한 전지구적인 플래시몹(flash mob) 운동은 케이팝이라는 대중음악 텍스트가 얼마나 중층적 인 문화적 실천의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세계 도처의 수십여 도시에서 동시다 발적이고 기습적으로 진행되어 완성된 이 플래시몹 동영상들이 유튜브(Youtube)에 업로드 되는 순간, 온라인 테크놀로지와 전복적이고 탈국적인 팬돔의 연계가 케이팝 텍스트 본연의 의미를 넘어서는 새로운 문화적 실천이 될 수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Ⅵ. 케이팝 혹은 한국 연예산업의 (전)근대성과 재-국적 화 한류 문화상품 혹은 문화표현물의 하나인 케이팝은 2000년대 중, 후반까지도 주로 문화 민족주의와 같은 담론의 논리와 연결되어 이해되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보다 가시적인 글로 벌-로컬, 혹은 글로벌 연망 속의 로컬-로컬 동학과 직결된 탈국적 문화산업으로서 설명되어 야 한다. 지금의 케이팝 폭발, 혹은 포스트 한류 시대의 도래는 심지어 아시아 대륙을 넘어 서는 탈국적 생산-유통-소비 의 순환적 체계를 갖춘 문화산업의 논리 속에서만 이해 가능 할 것이다. 케이팝이 제작되고 유통되는 과정 뿐 아니라 소비되는 과정까지 포함한 일관된 분석이 요구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즉, 케이팝이 제작되고 유통되는 과정과 함께, 그 소 비 역시 중요한 문화적 실천이자 의미가 된다. 탈국적 연망과 국지적 기반이 복잡하게 상호 교차하고 상호작용하는 순환구조와 그 기저에 깔린 혼종성은 대중음악적 텍스트에서 시작 해 최종적인 소비에 이르기까지 케이팝의 전체적인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어쩌면 케이팝 뿐만이 아니라 후기자본주의 시대에 지구화를 경험하는 모든 문화표현물이 공유하는 특성 일 수도 있겠다. - 31 -

음악응용연구 2011년 통권 제4호 하지만, 아시아를 대표하는 혼종적인 대중음악으로서 탈국적 문화산업으로 자리 잡기 위 한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케이팝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들을 안고 있다. 가령 최근의 2PM 전 멤버인 박재범과 슈퍼주니어 전 멤버인 중국인 한경을 둘러싼 온라인 논쟁 그리고 케이팝의 유럽과 미주 침공을 호도하는 언론과 방송 매체의 보도방식은, 케이팝을 둘러싼 담론과 이슈들이 국내에서는 여전히 지리적,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경계에서 자유롭지 못함 을 보여준다. 즉 케이팝의 탈국적이고 혼종적인 성격을 지역화하고 재-국적화 하는 문화 민족주의가 일종의 유령처럼 케이팝과 한류를 따라다니는 것이다. 즉 케이팝의 기표를 담는 콘텐츠는 더 이상 한국적이지 않지만, 정작 그 기표는 여전히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로 포장 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세부적으로 낙후되고 불건전한 국내 연예산업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국내 연예산업 구조가 지나치게 아이돌 팝 중심으로 독점화되어 있는 현재의 상황이, 역설적으로 케이팝에 문화자본 투자와 제작이 집중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데 일조한건 사실이다. 가령 케이팝 아이돌 스타들을 중심으로 한류의 다른 장르들, 즉 영화나 드라마 등을 아우르는 상호교차 활동이 가능해졌고 이를 통해 국내 연예기획사들이 스스로 를 대기업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돌 팝이 독점하는 생산과 유통 환경은 케이팝의 음악 적 영역을 넓히는데 분명 독으로 작용한다. 근래 들어 아이돌 댄스 음악 장르가 아닌 힙합 이나 인디록 뮤지션들이 미국을 비롯한 해외진출을 타진한 경우가 있었지만 큰 성과를 거 두지 못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11). 한국 대중음악의 해외진출을 위한 생산과 유통 환경 이 유독 케이팝 중심으로 특화되고 독점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 연예산업구조 자체의 전근대적이고 불건전한 속성은 언제든 케이팝의 성 장을 일시에 파괴할 수 있는 화약고에 다름 아니다. 동방신기나 카라의 경우처럼, 한번 씩 터지는 아이돌과의 불공정 전속계약이나 노동착취 문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소위 말 하는 연습생 시절 을 거치며 살아남은 이들은 극소수이며 다수의 청(소)년들은 이 과정에 서 상처받고 떠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스타의 꿈을 안고 한국에 들어와 수년간 연예기 획사에서 연습생 시절을 보내다 좌절하고 미국으로 되돌아간 한 교포청년은 이렇게 얘기한 다. 한국에 들어가 수용소의 포로 같은 생활을 하게 될지 생각도 못 했다. 난 미국에서부터 소울 뮤지션이 되는 게 꿈이었다. 여기서 클럽을 전전하다가 단지 동양인이 흑인음악을 한 다는 이유로 차별받긴 싫었고... 그래서 서울에 가면 더 떳떳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음악을 11) 홍대앞 인디밴드들이 미국 대륙을 횡단하며 진행한 서울소닉 투어, 그리고 힙합 그룹 에픽하이의 본격 미국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 32 -

케이팝(K-Pop)의 글로컬(Glocal) 전략과 혼종정체성 양재영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갔다. 하지만 하루 종일 몸을 꼬는 춤 연습만 하고 갇혀 사는 게 너무 싫었다. 감옥같이 느껴졌다... 단체 훈련도 싫었고, 창법에 제약도 너무 많았고... 노래 부르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며 야단을 맞기도 했다. 사실 3년이 넘는 시간을 그렇게 보내 다 포기하고 돌아오니 부모님께도 죄송하고 친구들 보기에도 창피했다... 하지만 여기서 다 시 내가 원하는 음악을 맘대로 할 수 있게 되어 그저 행복할 뿐이다. 만약 그런 경험이 없었 다면 지금 여기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는 내 모습이 오히려 비참해보이지 않았을까... (Matt, 한국계 미국인 2세, 23세/ 2009년 미국 산호세에서 인터뷰 중에서) 더 심각한 문제는 불공정하고 전근대적인 문화관행과 커넥션이 전체 연예문화산업구조에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다. 방송사나 언론과의 부적절한 공생관계를 통한 문화산업시장 장악, 무리한 신규분야 사업 확장, 고비용과 투자 위험요소의 가중, 연예-제조업 자본의 기형적 통합, 방송사를 연계한 금융자본과의 비리형 커넥션과 불공정 주식거래 등이 그 전형이다 (이동연 2010). 코스닥 우회상장을 위해 비가 소속된 기획사 제이튠과 그의 전 소속사인 JYP 엔터테인먼트가 전략적 제휴를 했던 게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부를 쌓을지언정, 대부분 연예기획 사업체들의 제작구조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전근대적 제작 구 조와 탈국적인 케이팝의 문화적 지형 간의 이러한 모순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인 것이다. Ⅶ. 나가며: 케이팝의 빈 공간 채우기 당장 해결책이 없어 보이는 구조적 난제들만 뱉어낸 듯해서 불편하겠지만, 글을 마무리 하면서 현재의 케이팝과 관련해 몇 가지 흥미로운 주제들을 추가해보겠다. 특히 케이팝의 수용 혹은 소비와 관련해 분명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 있는 것 같다. 첫째, 국내 거주 외국인의 케이팝 수용 양상을 다문화주의 논의와 연결해 본격적으로 살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다양한 국가와 대륙 출신의 이주민들이 들어오면서 한국은 소위 다문화사회 로 이미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들 중 다수의 인구가 케이팝의 수용과 소비에 관여하고 있다. 최신 대중음악에 민감한 젊은 이주민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데다, 이미 자신의 본국에서 케이팝과 한류를 경험하고 들어온 이들도 상당히 많다. 역으로 케이팝 텍 스트 자체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아이돌 팝 이외의 대중가요도 국내에서 케이팝으로 인지되 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맥락에서 케이팝과 한국 대중음악을 이들 이주민의 생활과 분리하 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외국인 인구가 케이팝의 문화적 실천을 행하는 과정에 대한 심도 있는 관찰이 필요한 시점이며, 특히 다문화주의 논의와 연결고리를 찾는 게 시급하다. 한국 - 33 -

음악응용연구 2011년 통권 제4호 과 같은 다문화사회에서 이주민의 문화적 실천이 지닌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중음악, 특히 케이팝이 중요한 주제이자 소재가 될 것이다. 둘째, 해외의 케이팝 팬돔과 국내의 아이돌 팬돔이 어떤 식으로 연계될 수 있는지, 혹은 실제로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케이팝 플래쉬 몹의 경우처럼, 문화 민족주의 담론에 몰두하는 한국과 국외의 케이팝 수용지역 간에는 케 이팝 붐을 인지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돌 팬돔이라는 기본적인 공유 지점이 있는 이상, 어떤 식으로든 이들 팬돔 사이에 초국적인 커넥션이 가능할 것이다. 실 재로 박재범 사건이 불거졌을 때, 국내 언론 미디어와 온라인에서 몰아친 문화 민족주의 광 풍과는 별개로, 국내의 2PM 팬돔은 해외의 2PM 팬돔과 적극적인 연계를 통해 나름의 해 결책을 찾고자 했다. 이러한 탈국적 팬돔의 활동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면 그 속에서 언어적, 지역적 장벽을 뛰어넘는 대안적 문화 실천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다른 아시아의 대중문화 표현물 혹은 문화상품의 소비와 케이팝의 소비 사이에 어 떤 연결점이 있는지 찾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유럽이나 미주에서 케이팝이 처음 인지되던 순간에는 분명 일본 애니메이션이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실제로 상당수의 유럽이 나 미국의 케이팝 팬들은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저패니메이션에서 흘러나온 동방신기나 윤 하의 노래를 들으며 케이팝에 처음 눈을 뜨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아시아 대중문화 일반과 케이팝의 관계를 유추하는 과정은 흥미로운 문제제기로 이어진다. 과연 이들 유럽과 미주의 팬들은 한국의 대중문화로서 케이팝에 빠져든 것인가, 혹은 범아시아 대중문화에 대 한 전반적인 관심 속에 단지 일부분으로서 케이팝을 좋아하는 것인가. 넷째, 마지막으로, 케이팝의 점진적인 탈국적 인기를 고려할 때 실제 음악적으로 케이팝 이 해외 대중음악 시장에서 어떤 역영향 을 주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물론 아시아권내에서 케이팝의 영향을 받거나 심지어 노골적으로 카피한 음악은 이전부터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케이팝이 상대적으로 늦게 도입된 아시아 대륙 바깥 지역에서 케이 팝은 지역 대중음악에 어떤 음악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까. 앞서 대중음악 텍스트로서 케이팝의 혼종성을 논할 때 케이팝은 미국의 흑인음악, 유럽의 일렉트로닉 댄스음악, 그리 고 제이팝의 요소들이 묘하게 뒤섞여있다고 했다. 이렇게 시작된 케이팝이 시간이 흘러 역 으로 이들 나라 대중음악의 스타일이나 형식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는 흥미로운 사실이 아 닐 수 없다. 글로벌이 로컬로 가는 흐름과 로컬이 글로벌로 가는 과정이 시간과 공간을 따 라 뒤섞이면서 특정 대중음악의 혼종성에 변화와 역변화, 변태와 역변태가 이루어지는 상황 은 대중음악 분석의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사실 케이팝의 음악적, 구조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과, 케이팝을 둘러싸고 새롭게 떠오르는 이러한 문제꺼리들에 대한 고민은 달리 보면 별개의 것이 아니라 일종의 동전의 - 34 -

케이팝(K-Pop)의 글로컬(Glocal) 전략과 혼종정체성 양재영 양면과도 같다. 15년의 세월을 거치며 정교해지고 대규모화된 케이팝이라는 대중음악 텍스 트 혹은 문화산업 구조물은 실로 글로벌-로컬, 혼종성-순혈적 민족주의, 탈국적성-국지성이 라는 상반된 문화적 개념과 사회경제적 범주들이 공존하며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식적이고 이분화된 사고로 케이팝에 접근하기보다, 케이팝이라는 실체가 항상 유동적이 고 부유하는 일종의 비어있는 개념이라고 상정하고 이 복합적인 문화 표현물에 접근하는 게 당장은 필요할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박재복. 한류: 글로벌 시대의 문화경쟁력. 삼성경제연구소, 2005. 백원담. 한류: 동아시아의 문화선택. 서울: 펜타그램, 2005. 신현준. K-Pop의 문화정치(학): 월경하는 대중음악에 관한 하나의 사례연구. 언론과 사회, 2005년 여름 13권 8호, 7-36. 이동연. 아시아 문화연구를 상상하기. 그린비, 2006. 이동연. 문화자본의 시대: 한국문화자본의 형성원리. 문화과학사, 2010. 조혜정. 글로벌 지각 변동의 징후로 읽는 한류 열풍. 한류 와 아시아의 대중문화. 연세대 학교 출판부, 2003, 1-42. 최지선, 차우진, 이승아. 케이팝, 진단이 필요해. 한겨레 21, 2011. 06. 27(제866호) K-H. Chen & Lee, D-Y. 한류문화의 현황과 반성. 월간 문화연대 11집, 2001. B. H. Chua & Iwabuchi, K. East Asian pop culture: analysing the Korean Wave, Hong Kong: Hong Kong University Press, 2008. O. S. Hyun. Taking advantage of the Hallyu Wave. Korea Focus, November-December, 2004. H-R. Wicker. From complex culture to cultural complexity. Debating Cultural Hybridity: Multi-Cultural Identities and the Politics of Anti-Racism (eds. by Werbner, Pnina and Tariq Modood). London & New Jersey: Zed Books, 1997, 29-45. R. Young. Colonial desire: hybridity in theory, culture and race. New York: Routledge, 1995. <참고링크>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m1fe&articleno=6959701&_bloghome _menu=recenttext#ajax_history_home : 해외의 케이팝 축제 관련 내용이 담긴 개인 블로그 - 35 -

음악응용연구 2011년 통권 제4호 <Abstract> Glocal strategies and hybridity of K-Pop: the sociocultural landscape of K-Pop in the age of post-hallyu Yang, Jae-young As an international cultural sensation since the late 1990s, Hallyu (Korean Wave) has been the center of attention from both academia and media in Korea. While, in a circle of inter-asia cultural studies, it has been discussed in the context of its socioeconomic and cultural impacts on other East Asian countries including China and Japan, Hallyu has also been presented as an important nationalist marker when promoted by Korean media and the government. Among a variety of the Hallyu items, K-Pop is perhaps the most powerful and popular genre nowadays. As it has gained a huge popularity around and across the border of Asia, K-Pop is transforming the landscape surrounding culture industry and popular culture in and outside of Korea. This paper examines such cultural and socioeconomic landscape of K-Pop while exploring the dynamics of its production, distribution and consumption in the 'post-hallyu' era. First of all, in order to understand the transnational process of K-Pop production and distribution across and beyond the continental Asia, it is all the more necessary to dig into the notion of hybridity. Continuous hybridity of K-Pop or Korean popular music as a popular cultural text is now interwoven into the recent 'glocal' strategies of Hallyu as a system of cultural and economic entertainment industry. That being said, K-Pop is not only a hybrid cultural text, but also a complex transnational field where 'global' and 'local' interact each other socioculturally as well as economically. On the other hand, an inquiry into contemporary K-Pop makes us pay attention to the meaning of consumption which has been usually overshadowed in comparison to that of production and distribution as far as popular cultural studies is concerned. Several cases of transnational consumption and reception of K-Pop exemplify very active cultural practices beyond blind devotion of typical teenaged fandom to idol stars. It suggests that, in order to understand K-Pop or Hallyu as culture industry, the research should not be confined to simple analysis of its production - 36 -

케이팝(K-Pop)의 글로컬(Glocal) 전략과 혼종정체성 양재영 and distribution/circulation, or the discourse surrounding them. The more K-Pop is elaborated as a cultural text, the bigger it gets in its scale as a construct of culture industry. It is a field where coexist and mingle each other contrasting cultural concepts and socioeconomic categories such as global and local, hybridity and pure nationalism, and transnational and regional. Therefore, it is required to thoroughly examine the interconnected and coherent, but fluid and complex, dynamics of K-Pop from its production and distribution to consumption and reception. Keywords: hybridity, transnationality, nationality, global, local, re-nationalizing, inter-asia, trans-asia 접수일(2011년 9월 27일), 수정일(2011년 10월 15일), 게재확정일(2011년 11월 2일) - 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