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연구(송석원) 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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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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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태연구 제 13권 제 2호 2006년 11월 30일 pp.81~103 일본에서의 한국학연구 - 회고와 전망 宋 錫 源 경희대학교 사회과학부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Ⅰ. 머리말 Ⅱ. 1945년 이전의 한국연구 Ⅲ. 1945년 이후의 한국연구 < 목 차 >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Key words(중심용어): 한국학(Korean studies), 식민지지배(colonial period), 정체( 停 滯 )성(congestion), 타율성(heteronomy), 야나기 무네요시( 柳 宗 悅 - Yanagi Muneyoshi), 전후민주주의(post-war democratization), 한국 재평가(re-evaluation of Korea) 동조동근( 同 祖 同 根 )성 국문요약 1945년 이전의 한국학 연구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일본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에 있어서의 일본의 한국한 연구는 식민지 지배라는 특수 역사적인 사정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식민지 지배기구인 조선총독부가 앞장서서 한국학 연구를 주도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식 민지 시기의 일본의 한국학 연구는 한국의 정체( 停 滯 )성, 타율( 他 律 )성, 동조동근( 同 祖 同 根 )성 등을 밝히는 데에 주안점이 두어졌다. 따라서 한국의 부정적인 측면만이 부각될 수 없는 시대적인 한계가 명확하였다. 이에 반해서 1945년 이후의 일본에서의 한국학 연구는 큰 변화를 보이게 된다. 초기의 권위주의 체제 비판(그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북한 지지)이 주요 내용을 이루었던 일본의 한국학 연구 관심은 한국의 민주화와 함께 급격히 변화하였다. 이 시기에 비로소 일본의 한국학연구는 한국에 대한 긍정 적인 측면이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나아가 한국에 대한 연구의 결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기본 적으로 한국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시점에서 접근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연구동향에 힘입어 전전의 자신들의 선배들이 집착했던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을 부정, 혹은 시정하는 연구성과가 축적되게 되었다. 현재 일본에서의 한국학 연구는 연구자 개개인이 천착하고 있는 각자의 연구대상을 중심으로 하 면서도, 이들 학문 영역간의 유기적인 연계를 유지하며 전개되고 있다. 학제간 연구와 나아가 복합계 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한 연구 등에 중점에 두며 전개되고 있다. 한국학 연구자들 간의 학문적 공론 의 장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는 것도 이러한 연구경향의 발전 및 다양하고 광범위한 연구업적의 축 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2 2 아태연구 13권 2호 Ⅰ. 머리말 일본인은 스스로에게 스스로가 무엇인지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 국민들 가운데 대표적인 한 국민이다. 1) 자국의 역사와 정치, 경제, 사회 및 문화 등에 대해 각각의 학문 영역에서 연구하는 것은 비단 일본에만 국 한된 것이 아니라 세계의 도처에서 일반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의 경우, 이러한 일반적인 현상을 넘어, 일본 사회의 특수한 독자적인 성격으로 일본 인 자신들에 의한 일본인론이 때의 고금을 불문하고 진지하게 논의되어 왔고, 현재에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 그동안 어떠한 자문을 해왔고, 또 어떠한 자답을 해왔는가? 아니,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 자문하고 자답하는 행위에 익숙해 있기는 한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묻고 답하는 행위에 가장 근접한 학문 영역은 국문학, 역사학, 민속학, 사회학, 문화인류학 등일 것이다. 그리고 정치학, 경제학, 경영학, 지리학 등을 비롯한 관련 학문영역에서 같은 유형의 질문과 해답이 반복되며 발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각각의 학문 영역이 상호간에 지적 자극을 주고받으며, 자신들의 정체성 확립 및 그 강화에 기여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국에서의 한국인에 의한 자신의 정 체성 찾기 게임 역시 타국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정도의 보편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져 왔음을 확인하기 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들 자신에 의한 우리들의 정체성 찾기 게임은 일본인들의 그것에 비해 부족한 감이 없지 않지만, 세계적인 수준에서 볼 때 지극히 보편적인 수준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일본에서와 같이, 자신 스스로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고 자답하는 양과 질의 모든 면에서의 압도적인 축 적은 분명 비정상적일 정도이기까지하다. 일본의 지적 풍토가 그러하다면, 과연 그러한 자국, 자민족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의식에 매몰되어 있는 일본에서의 한국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의 수준에 와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일본인의 일반적인 사회적 특성의 한 단면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 대한 타자의 시선에 의한 규정의 일면을 보는 결 과가 됨으로써 매우 유의미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투사( 投 射 )에 정평이 있는 일본인들의 시선에 머문 한국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일본인 연구자들은 한국의 무엇에 대해 어떠한 방향으 로 어느 정도 연구해왔는가? 한국에 대해 연구를 하는 일본인 학자들은 어떠한 사람들이 있는가? 일본에서 의 한국학 연구의 공과는 무엇인가?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제기에 답해가는 과정을 통해 특히 일본에서의 한국학 연구의 지적 전통과 토양 및 한국학 연구들 간의 상호 교섭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다만, 일본에서의 한국학연구의 동 향이 1945년을 분수령으로 크게 변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기의 전후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Ⅱ. 1945년 이전의 한국연구 1) 이와 관련한 자료는 방대한 양에 이른다. 가장 대표적인 것만 지적하더라도, 南 博, 日 本 人 論, 岩 波 書 店, ; 加 藤 周 一 ㆍM. ライシュㆍR. J. リフトン, 日 本 人 の 死 生 觀, 岩 波 書 店, ; 石 田 雄, 日 本 の 政 治 文 化 : 同 調 と 競 爭, 東 京 大 學 出 版 會, ; 大 久 保 喬 樹, 日 本 文 化 論 の 系 譜, 中 央 公 論 社,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오쿠보 다카키( 大 久 保 喬 樹 )의 저서에는 메이지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15명의 일본 의 지식인, 사상가의 일본문화론을 메이지 개국과 민족의식의 각성, 민속의 발견, 일본철학의 창조, 문인들의 미학, 전통일본에 대한 반역과 새로운 일본상의 발견, 서구근대사회 모델 대 전통일본심성 등의 카테고리로 구분하여 그 요지에 대해 살피고 있다. 동 저서에서 저자 오쿠보는 거울을 바라보는 일본인 이라는 표현을 사 용하고 있는 바, 일본인은 끊임없이 자신들을 비추는 거울을 필요로 하는 민족으로 파악되고 있다.
3 일본에서의 한국학연구 - 회고와 전망 3 1. 식민지사관 : 지배의 합리화 아마도 20세기는 혁명과 전쟁의 세기 로 기록될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2)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불 과 100년이라는 기간 내에 인류는 수많은 혁명과 전쟁의 기록을 남겼다. 사회주의혁명, 민족해방혁명, 근 대화혁명, 민주혁명 등의 제 혁명과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국지적인 소규모의 국가 간, 민 족 간의 전쟁, 그리고 냉전이라는 총성 없는 전쟁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형태의 전쟁이 20세기의 역사를 이루고 있다. 그 어느 세기에서보다도 20세기는 수차례의 혁명과 전쟁을 통해 다수의 정치적 희생자 를 속출함으 로써 전 인류에게 혹독한 시련을 강요한 세기였다. 인간의 모든 행위와 창작, 심지어는 사고에 이르기까지 가 전쟁과 혁명의 영향을 받거나 그와 관련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20세기는 또한 광기( 狂 氣 )의 세기 임에 틀림없다. 유토피아를 목표로 한 이 시기의 각종 혁명과 전쟁이 정기( 正 氣 ) 의 슬로건 하에 수행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인간의 시의( 猜 疑 )심과 부도덕의 광기를 있는 그대로 노출시키고 말았다. 한 편 전쟁과 혁명의 세기로서의 20세기는 그 자체로서 정치의 세기 였다. 그 어느 시대보다도 정치의 논 리가 지배한 100년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의 유토피아 지향은 전쟁과 혁명을 반복하게 하였고, 따 라서 이 시기를 정치의 세기로 만들었다. 한편, 동아시아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역시 20세기는 혁명과 전쟁 에 의한 정치의 세기였다 고 할 수 있다. 서세동점( 西 勢 東 漸 )이라는 역사상 미증유의 위기에 직면하여 동도서기( 東 道 西 器 ), 혹은 위정척사( 衛 正 斥 邪 ) 라는 윤리적, 정신적 대응에서 실패한 결과, 일본에 의한 식민통치를 강요받은 상태 에서 한국과 한민족은 질곡에서의 해방에 의한 유토피아를 구상하였다. 1945년 해방을 성취하기는 하였으 나, 해방은 한국과 한민족에게 유토피아를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해방 한국에는 분단과 한민족간의 전쟁, 그리고 이를 배경으로 한 권위주의적인 독재 권력이 기다리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한국에 있어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로부터의 독립, 해방은 또 하나의 정치적 반세기 의 시작에 불과하였다. 해방 후의 한국이 직면한 과제는 근대국가의 형성이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은 조선말의 긴박한 시기에 근대국가로서의 도약에 실패하였고, 그 결과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강요당한 바 있다. 이것은 한국의 근대국가 건설의 지연을 의미했다. 즉 한국은 적어도 40-50여 년의 시간적 손실을 입었으며, 이러한 시간적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독립 후의 급속한 근대국가의 형성과정은 한국정치에 있어 서의 민주적인 제 가치의 제한, 굴절을 초래하는 원인( 遠 因 )이 되기도 하였다. 특히 합리성만을 앞세워 결과만을 추구하는 군부 엘리트에 의한 목표지상주의의 도입은 과정의 극단적 인 생략, 혹은 축소를 결과하였다. 따라서 과정은 장식물화 되어버렸다. 이와 같은 과정과 절차의 도외시는 한국 민주주의를 불구화하였다. 상호간의 극단적인 불신이 체제 간에, 혹은 체제내의 인간관계에서 팽배하 게 되었다. 인간존중, 신뢰, 도덕성 등의 제 가치는 크게 동요되었다. 시민의식은 현저히 상실되었으며 공 적인 영역은 사적인 영역에 의해 채워져, 마침내 공익은 사익을 은폐하기 위한 술어로 변하였다. 일본 제국 주의에 의해 강요된 어두움을 뚫고 힘겹게 찾아낸 작은 빛은 마침내 권위주의적 독재 권력에 의해 또 다시 꺼지고야 말았다. 그러나 유토피아 지향의 정열마저 꺼진 것은 아니었다. 유토피아 운동은 지속되었다. 독립ᆞ해방의 유토피아 운동은 민주주의의 유토피아 운동에로 계승되었다. 한국사회의 20세기를 지극히 간명하게 정리한다면, 위와 같이 되지 않을까. 앞에서도 이미 지적한 바와 2) 1914년에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과 그 와중에서 발발한 러시아혁명은 20세기의 기본적 동향을 알리는 상징 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세계는 또 한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중국혁명을 결과하는 한편,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각처에서 수많은 정치투쟁, 동란 등을 목격해 왔다. 따라 서 20세기를 그에 앞선 19세기와 비교할 때, 때때로 총성에 의해 깨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 고 19세기는 대체로 이성과 평화, 질서와 안정의 세기였다고 할 수 있다. 木 村 雅 昭, ユートピア 以 後 の 政 治 : 二 一 世 紀 への 政 治 を 読 む, 有 斐 閣, 1993, p.214.
4 4 아태연구 13권 2호 같이, 이 20세기 전반에 걸쳐 일본은 구체적으로 한국의 무엇을 어떻게 보아왔는가. 이에 대한 해답을 찾 아가는 노정에서 우리가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20세기의 벽두를 전후하여 맞이한 근대화의 시기 에 우리의 대응이 일본과 상이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연된 반응 이었고, 따라서 이후의 한일관계 및 일 본인들의 한국학의 원형이 일그러진 그것일 수밖에 없게 하였다는 사실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 일본, 중국 등의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세의 동점으로 인한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에 부심하고 있는 가운데 맞이한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과정은 일본의 성공과 한국, 중국의 좌절 혹은 지체로 귀결되었다. 양이와 개국의 갈림길에서 그동안 중국 중심의 중화질서, 곧 민국은 중국 앞에 불평등하다 는 원리를 구체화한 중심으로서의 중국과 주변으로서의 그 인접 국가라는 동아시아 세계의 계 층적 질서인 조공시스템은 마침내 만국은 국제법 앞에 평등하다 는 원리를 바탕으로 하는 조약시스템으 로 전환되어갔다. 3) 양이와 개국의 갈림길 앞에 3개국은 치열한 내부적 노선투쟁을 겪게 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 가장 먼저 국가의 진로에 대한 길을 개척해간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이 이와 같이 근대화의 길로 매 진할 수 있었던 것은 양이와 개국의 노선투쟁에서 사쿠마 쇼잔( 佐 久 間 象 山 )이 주장한 양이를 위한 개 국 의 국가 노선을 명확히 하였기 때문이었음은 재론을 요하지 않는다. 4) 천하의 스승임을 자임한 사쿠마는 그가 품은 자부심만큼 일본의 진로에 대한 스승의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개국 후의 일본이 부국강병이라는 국가적인 슬로건 하에 국력의 충실에 부심한 끝에 마침 내 양이 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주의의 노선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이어 한국을 식민지화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중국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진력하는 한 편, 세계제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태평양의 제해권을 둘러싸고 미국과 일전을 벌이기에 이른다. 이시하라 간 지( 石 原 莞 爾 )의 이른바 세계최종전 5) 은 궁극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양이 의 최종 달성이라 할 수 있 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일본은 전쟁에서 패하고 식민지를 상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점령 하에 새로운 민주국가를 건설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지배하는 동안, 일본은 실로 다양한 영역에 걸쳐 한국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 분석하였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일본에 의한 한국학연구는 거의 독점적인 형태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들 연구의 대부분이 일본에 의한 한국의 식민지지배를 정당화, 합리화하기 위한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었음은 재론을 요하지 않는다. 물론, 일부의 연구 업적이 한국의 역사 및 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시점에서 이루어진 것도 없지 않으나, 전체적인 양상으로 보아 식민지지배의 합리화를 위한 한국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왜곡 이 심하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이 식민지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주장한 것은 한국의 정체( 停 滯 )성, 타율( 他 律 )성, 동조동근( 同 祖 同 根 )성 등이다. 6) 한국의 정체( 停 滯 )성에 대해 학문적으로 입증하여 시도한 최초의 인물은 후쿠다 도쿠조 ( 福 田 德 三 )로, 그는 러일전쟁을 전후하여 한국을 1개월 정도 여행하여 한국의 경제단위와 경제조직 이 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7) 여기서 후쿠다는 민족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경제사의 발전단계 속에 한국 을 위치시켜 논하고 있다. 일반적인 발전단계론자들이 그러한 것처럼, 후쿠다 역시 세계 각국을 경제적 수 준을 바탕으로 한 단계론의 입장에 서서 한국을 바라보고 있다. 후쿠다에 의하면, 경제의 진보는 생산과 소비 사이의 시간적ᆞ공간적 거리의 차이에 따라 단계를 나눌 3) 송석원, 한반도 통일 환경과 주변 국가, 한반도 통일 환경과 한국의 정체성 (한국정치정보학회 추계 학술 대회), 2006, pp ) 사쿠마 쇼잔의 양이를 위한 개국 의 정치사상에 관해서는, 송석원, 사쿠마 쇼잔( 佐 久 間 象 山 )의 해방론( 海 防 論 ) 과 대 서양관 : 막말에 있어서의 <양이를 위한 개국>의 정치사상, 한국정치학회보 (37집 5호), 2003 참 조. 5) 이에 대해서는, 石 原 莞 爾, 最 終 戰 爭 論, 經 濟 往 來 社, 1972 참조. 6) 하타다 다카시, 한일관계와 역사학, 歷 史 學 硏 究 會 編, 山 里 澄 江 ㆍ손승철 譯, 한일관계사의 재조명, 이론 과 실천, 1992, pp ) 이 논문은 후에 經 濟 學 硏 究, 同 文 館, 1907에 수록되었다.
5 일본에서의 한국학연구 - 회고와 전망 5 수 있는 것으로, 이를 기준으로 자족경제, 촌락경제, 도시경제, 국민경제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는 또한 국민경제의 전제조건으로 봉건제도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입장에서 한국을 볼 때 한국은 봉건제도에 도달하기 이전의 단계라고 설명하고 있다. 8) 후쿠다의 한국에 대한 기술은 약 1 개월간의 여행의 결과이기 때문에 매우 조악( 粗 惡 )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에도 후쿠다와 같은 계열의 한국 정체성론을 주장하는 언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왔다는 점이다. 시가타 히로 시( 四 方 博 )의 조선사회경제사연구( 朝 鮮 社 會 經 濟 史 硏 究 ) 도 후쿠다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평 가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정체성론에 입각한 조선/한국에 대한 기술의 대부분은 한국/조선이 늦게 온 나라 라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환언하자면, 일본의 식민지지배 시기의 일본인 학자들에 의한 한국연구는 엄밀한 의미에서 문헌의 조사 및 실지의 조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들의 실지( 實 地 )의 조사에서 발견한 당시의 조선/한국의 모습에 대해 수백 년 전의 일본의 모습과 같다는 식의 설명을 곁들임으로써 한국이 얼 마나 뒤떨어진 채 정체되어 있는 사회인지를 부각하려 하고 있다. 한국이 옛날 나라이며, 역동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정체, 정지의 나라라는 것이다. 물론, 스즈키 에이타로( 鈴 木 榮 太 郞 )가 조선을 답사한 결과 를 정리한 책에서 조선이 이미 죽은 자와 산 노인의 나라 라는 관찰을 하고 있는 것 9) 은 조선사회의 예 의문화, 혹은 동족문화의 한 단면을 간략히 정리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사 회의 역동성을 부인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한편, 동조동근( 同 祖 同 根 )론에 대해서는 대표적으로 기다 사다키치( 喜 田 貞 吉 )의 주장을 들 수 있다. 그 에 의하면, 일본인과 한국인은 원래 선조가 같고, 핏줄이 같아 가족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10) 그러나 이 경우, 일본이 부모 혹은 형으로서 자녀 혹은 동생으로서의 한국에 대해 우월적인 입장에 있다는 것을 역사적 필연으로서 강조한다. 일본이 한국과 동조동근에 있기는 하지만, 한국에 대해 소여의 조건으로서 우 월적 위치에 서게 되는 이유를 일본의 일본서기( 日 本 書 紀 ) 에 나와 있는 이른바 신공황후( 神 功 皇 后 ) 의 삼한정벌( 三 韓 征 伐 ), 혹은 소위 임나일본부( 任 那 日 本 府 ) 의 존재 등에서 찾아 정당화하고 있다. 조선/한국사회의 타율적 성격에 대해서는 미시나 쇼에이( 三 品 彰 英 )와 이나바 이와기치( 稻 葉 岩 吉 ) 등의 언설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논리의 대략은 조선/한국은 자주성과는 거리가 먼 나라로서 항상 타국에 의해 제약을 받고, 또 타국의 힘에 의해 작동된다는 것이다. 11) 따라서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지배하는 것은 그러 한 한국의 숙명을 구제하는 자선이기조차 하다고 합리화된다. 이와 같이, 1945년 이전의 일본에서의 한국 연구는 그들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지배를 정당화, 합리화할 목적 하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학문적인 연구가 수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하타다도 지적 하고 있는 바와 같이, 1945년 이전의 어떠한 일본의 역사가도 그의 역사학적인 안목에서 볼 때 식민지지 배를 나쁘다고 비판적으로 말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 12) 1945년 이전까지의 한국학연구를 한국인보다도 주도적으로 전개한 일본인들에게 있어, 연구 대상으로서 의 한국은 자국의 식민지지배 경영을 합리화할 목적에 부합하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위에서 살펴 본 정체( 停 滯 )성, 동조동근( 同 祖 同 根 )성, 타율성 등은 사실상 연구의 결과 도출된 학문적 결론이었다기보다 8) 하타다 다카시, 전게논문, p.11에서 재인용. 9) 鈴 木 榮 太 郞, 朝 鮮 の 年 中 行 事 ( 草 稿 ), 鈴 木 榮 太 郞 著 作 集 Ⅴ, 未 來 社, 1973, p ) 喜 田 貞 吉, 韓 國 の 倂 合 と 國 史, 三 省 堂, 1910 참조. 11) 이에 대해서는, 三 品 彰 英, 朝 鮮 史 槪 說, 弘 文 堂, ; 稻 葉 岩 吉, 滿 洲 發 達 史, 日 本 評 論 社, 1935 참 조. 12) 하타다는 식민지지배를 합리화한 조선상으로 대장성( 大 藏 省 ) 관리국이 1947년에 편찬한 일본인의 해외활 동에 관한 역사적 조사 라는 전35권 분량의 방대한 자료를 들고 있다. 이는 전후 배상문제를 준비하기 위해 대장성이 조사를 한 것으로 이해되는데, 35권 가운데 한국 관계가 10권이라는 점은 아마도 한국으로부터 가 장 먼저 배상요구가 제기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타다 다카시, 전게논문, pp
6 6 아태연구 13권 2호 는 이미 정치적 주장이 선행적으로 존재하는 가운데,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구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시기의 일본의 한국학연구는 학문적 영역의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영역의 것이었 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식민지지배 시기의 일본의 한국학 연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러한 일반적인 특성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에 대해 긍정적인 시점에 선 것으로서 주목되는 것은 야나기 무네요시( 柳 宗 悅 )의 연구라 할 수 있다. 일찍이 지배층 중심의 문화연구에 한계를 느낀 야나기는 이름 모를 일반 서민들의 삶의 흔적이야말로 진실 로 가치 있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신념하에 연구를 수행해갔다. 미술사학에 조예가 있는 야나기의 시선에 머문 것은 조선/한국의 불교미술이었다. 그의 한국의 불교미술의 미적 가치에 대한 확신은 마침내 한국 예 술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자임하게 되기까지에 이른다. 그가 제창한 민예 는 주류적인 것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인간의 땀 냄새, 곧 핏줄이 통하는 방류적인 것에 대한 따스한 시선의 결과 만들어진 개념이다. 투박한 것에서조차 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그에게 있어 한국의 불교문화가 내포하고 있는 미적 가치는 매우 높은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다만, 그의 석굴암에 대한 미적 해석이 비장( 悲 壯 )의 미 에 머물러 있는 한계는 있다고 하겠다. 13) 이에 반해, 야나기로부터 사사를 받기도 했으며, 그의 한국 여행에 동행하기도 했던 아루가 기자에몬( 有 賀 喜 左 衛 門 )의 조선/한국의 불교미술에 대한 시선은 보다 더 적극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아루가 는 자신의 대학 졸업논문으로 조선의 불교미술을 제재로 채택하였을 때, 주류문화권의 예술에 대해 연구하 도록 권하는 지도교수에 대해 비록 그리스, 인도, 중국 등에 비해 부족할지 모르지만, 한국의 미술은 한국 의 미술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유명 14) 한데, 그러한 아루가의 시선에 담 겨진 조선 불교미술은 기존에 일본사회에 알려져 있던 조선상과는 지극히 대조되는 것이었다. 야나기가 비장의 미 를 읽었던 석굴암에 대해 아루가는 역동적인 미 로 읽은 데서도 양자의 대비는 극명한 것 이었다. 15) 여하튼, 야나기, 혹은 아루가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 부분적으로나마 한국에 대해 굴절 혹은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보고자 하는 기운이 저변에 있었던 것만큼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유형의 지류는 매 우 미약한 것일 수밖에 없었고, 오히려 금기의 영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식민지지배 말기의 총력전체제 하에서는 국체 16) 에 반하는 일체의 사조가 금기시되었는바, 일본의 한국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 해서는 한국에 보편적인 미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이 시기의 일본의 한국학연구는 정치 우선의 경향을 농후하게 지니는 것이었다. 2. 식민지지배기구를 이용한 한국학 연구 1945년 이전의 식민지시기에 일본의 한국학 연구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학문적 연 구가 식민지지배 기구의 적극적인 활용을 수반하여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그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젠쇼 에이스케( 善 生 永 助 )의 조선의 취락( 朝 鮮 の 聚 落 ) 17), 조선의 계( 朝 鮮 の 契 ) 18) 등에서 볼 수 있는 바 와 같이, 조선총독부의 이름으로 발표된 연구 업적을 들 수 있다. 식민지지배 시기의 일본의 학자들의 활동본거지는 경성제국대학(지금의 서울대학교)이었으며, 이들의 학 13) 柳 宗 悅, 朝 鮮 とその 藝 術, 叢 文 閣, 1922 참조. 14) 有 賀 喜 左 衛 門, 文 明 ㆍ 文 化 ㆍ 文 學, 御 茶 の 水 書 房, 1980, p ) 有 賀 喜 左 衛 門, 상게서, p ) 이에 대한 극히 간단한 설명에 대해서는, 가노 마사나오, 김석근 역, 근대 일본사상 길잡이, 소화, 2004 참조. 17) 朝 鮮 總 督 府 編, 朝 鮮 の 聚 落, 朝 鮮 總 督 府, ) 朝 鮮 總 督 府 編, 朝 鮮 の 契, 朝 鮮 總 督 府, 1926.
7 일본에서의 한국학연구 - 회고와 전망 7 문적 무기는 실증주의였다. 그러한 실증주의 방법론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조선총독부라는 권력기구의 활용이었다. 젠쇼의 연구는 조선사회에 대한 젠쇼의 관심영역인 농촌사회에 대해 그가 작성한 질문표를 조 선총독부의 조직이 조사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권학( 權 學 )의 유착 이라 할 수 있다. 조선총독부의 조사는 식민지지배 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유용한 정보를 얻으려는 취지와 함께 일부 학자 들의 관심 사항에 대한 보조라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조선총독부 내에 설치되어 있던 각각의 부서에서 필 요한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하는 것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교토( 京 都 )대학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총독 부 관련 자료의 일람만을 보더라도 총 510건의 서지를 발견할 수 있다. 이 가운데는 조선총독부를 소재로 한 소설 등과 1945년 후의 조선총독부에 대한 연구문헌까지를 망라하고는 있다 하더라도 단일기관으로서 상당한 양의 검색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서지목록에서 주목되는 것은 조선총독부의 행정에 대한 영문의 연례보고서가 있다는 점과 한국 사회 전반에 걸친 자료조사가 매우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전개되었 다는 점이다. <표 1>은 조선총독부라고 하는 지배기구가 중심이 되어 발간한 한국에 대한 조사연구의 성과 가운데 대표적인 것 20여 종을 임의로 선별하여 간단히 정리한 것이다. <표 1> 조선총독부의 조선/한국 사회 조사자료 (발췌) 부 서 제 목 연 도 식산국 농무과 압록강 및 대동강 연안에서의 도지( 賭 地 )관행 1931 총독관방 문서과 화전의 현상 1926 권업모범장 권업모범장 연구보고 1928 관세국 한국외국무역연표 1908 경무국 한국학생항일투쟁사 1971(복각) 학무국 외국교육제도 및 정황 1920 총독관방 문서과 외국인이 본 최근의 조선 1932 권업모범장 해충에 관한 조사 1919 조선사편집회 근대조선사연구 1944 재무국 금융조합관계 예규집 1932 철도국 경의선건설 공사개요 1911 중추원 근대일선관계의 연구 1973(복각) 관측소 근년에 있어서의 조선의 풍수해 1926 경무국 최근의 조선치안상황 1933 경무국 국제공산당과 중국혁명 1930 식산국 광산과 수은광 1938 재무국 조선금융사항 참고서 1923 수산시험장 조선근해의 해황과 어황 1930 내무국 사회과 조선사회사업요람 1924 내무부 지방국 조선사찰사료 1911 출처 : (검색일 2006년 10월 10일) 조선총독부의 조사보고는 크게 단행본과 잡지의 형태로 간행되었다. 이들 조사보고 가운데 주목되는 것 은 조선의 각 정치, 역사, 교육,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계획적이고도 치밀하게 연구조사가 이루어지고 있 다는 점이다. 특히, 조선의 역사와 관련하여서는 문헌의 연구를 병행하면서 실제조사를 하고 있는데, 고분 의 연구가 상당량에 달한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고 하겠다. 또한 식민지지배에 저항하는 움직임을 미리 차단할 목적으로 치안상황에 대한 점검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조선의 경제 및 산업에 대해서는 매우 구체적인 실증 조사를 행하고 있다. 각 산업별 조사리스트는 오늘날의 분류에서 도 참고할만할 정도이다.
8 8 아태연구 13권 2호 한편, 식민지지배 시기 일본의 한국연구에서는 연구자 스스로 연구의 대상지역을 돌아다니며 실제로 관 찰하는 방식 역시 유력한 하나의 연구방법이었다. 그 대표적인 성과가 스즈키 에이타로의 조선답사사 기 이다. 야나기와 아루가의 조선연구 역시 실제 현장 관찰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은 이미 지적한바 대 로이다. 조선총독부의 조사연구가 기본적으로 하급 지방 행정기관을 이용한 것이라는 점에서도 실지( 實 地 ) 조사라는 특성이 매우 강했음을 알 수 있다. Ⅲ. 1945년 이후의 한국연구 년 이후의 한국사회 적어도 한민족에 있어 일본으로부터의 독립ᆞ해방은 마침내 한민족의, 한민족에 의한, 한민족만의 나라 만들기의 출발로 인식되었다. 우리들의 나라 만들기 를 통해 유토피아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 나 이러한 한민족의 기대는 금방 무너졌다. 우리들의 나라 만들기는 각각 미국과 소비에트로부터의 후원 하에 두 개의 체제를 형성함으로써 기형화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분단 하에서의 유토피아 운동은 당연히 통일운동의 형태로 나타났다. 체제간의 대립은 1950년의 전쟁에서 극에 달해, 이후의 휴전상태 하에서도 직접적ᆞ간접적 대립이 지속 되고 있다. 인간의 이성에 반하는 전쟁 이후, 남북의 양 체제는 국내체제의 강화와 끝없는 군비경쟁을 시작 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중심의 유일체제를 강화하였고, 한국에서는 반공 우선의 입장에서 장기간에 걸친 군부정권의 독재적 지배가 이어졌다. 남북한 어디에서도 개방적인 민주주의체제로의 전환 가능성은 희박했 다. 19) 분단 상황 하에서의 유토피아 운동이 분단된 남북한의 두 체제를 하나로 묶는 통일운동과 함께 체 제내의 권위주의적 독재정권으로부터 민주적 이성을 회복하려는 민주화운동을 지향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 었다. 이렇게 해서 통일과 민주화는 유토피아 운동의 씨줄과 날줄을 이루며, 한민족의 시급하면서도 당면한 과제가 되었다. 한편, 한국적 민주주의는 권위주의 체제에 다름 아니었다. 권위주의는 우리나라 정치문화상의 숙명 은 아닐지라도 중요한 요소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나라의 정치사를 일견할 때,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정치와 도덕의 미분리는 권위주의를 잉태하고 배양한 중요한 토양이었다. 사실상, 우리가 정치를 바라볼 때의 척도는 합리성의 그것이라기보다는 정당성의 그것이다. 정치의 실패는 법적ᆞ제도적 미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주로 부도덕 내지는 도덕적 해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종종 정 치는 전인격적인 성격을 갖고 우리 앞에 다가온다. 우리나라의 정치문화에 있어서 권력투쟁이 도덕적 정당 성을 배경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도덕적 정당성을 전면에 내세운 권력투쟁 은, 승자가 권력뿐만 아니라 권력의 원천으로서의 도덕적 정당성과 권력의 산물로서의 경제적 부까지도 독 점하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20) 이는 또한 권력투쟁에서의 승자가 권력과 도덕적 정당성을 독점하는 한, 권 력에의 도전이나 비판은 부도덕한 행위로써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한국인에 고유한 상 하서열의식 21) 이 권력 측의 무한한 권력 작용을 심리적으로 긍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음은 물론이다. 예 19) 적을 앞에 두고 있다는 상정 하에, 이겨서 살아남는 과제가 우선되었다. 더욱이 세계적으로 냉전 상황이 계 속되고 있는 가운데 남북 간의 적대관계는 강화되어 갈 뿐, 완화될 조짐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池 明 觀, 韓 國 民 主 化 への 道, 岩 波 書 店 ( 新 書 ), 1995, pp ) 小 倉 紀 藏, 韓 国 は 一 個 の 哲 学 である, 講 談 社 ( 現 代 新 書 ), 1998, pp ) 한국인은 주로 신분의 서열과 그에 상응하는 행동양식을 갖고 있는데, 이러한 상하서열의 원형으로서는 가족 관계에서 볼 수 있는 인간관계를 들 수 있다. 이에 대한 보다 상세한 논의에 대해서는 崔 在 錫, 韓 國 人 의 社 會 的 性 格, 開 文 社, 1992, pp 참조.
9 일본에서의 한국학연구 - 회고와 전망 9 컨대,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조선시대에 있어서의 사대부 간의 권력투쟁은 도덕적ᆞ학설적 정당성을 매개로 하여 전개되었으며, 이 투쟁에서의 승자는 거의 모든 것을 획득할 수 있었던 반면에, 패자는 도덕적 ᆞ학설적 정당성을 어지럽힌 적, 즉 사문난적( 斯 文 亂 賊 )으로 몰려 권력과 그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중앙으 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었다. 권력투쟁이 도덕성과 결부되어 전개되었다는 사실이 갖는 중요한 결과는 권력투쟁에서의 패자 역시 그 나름대로의 도덕성을 내걸었다는 사실로부터 권력투쟁의 결과 새로이 탄생한 질서에 쉽게 순응하기보다는 지속적인 저항의 자세를 견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권력 측도 저항 측도 자신들의 도덕률에 의거하여 상 대를 규정하였다. 예컨대, 집권 후 경제개발ᆞ성장제일주의를 채택한 박정희는 저항세력을 개발에의 걸림 돌, 즉 개발난적( 開 發 亂 賊 )으로 인식하였으며, 반대로 저항세력들은 박정희를 민주질서를 유린한 자, 즉 민주난적( 民 主 亂 賊 )으로 인식하였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반공 이데올로기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강화하는데 기여했다. 한국전쟁 이후, 반공과 승공은 한국의 국시, 즉 국가이성이 되었다. 22) 가치의 면에서 반공은 민주주의보다 훨씬 우선하였다. 따라서 사회주의적인 사상을 지니고 행동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러 한 사상을 마음속에 품거나 관심을 갖는 것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사실상, 이승만과 박정희에 의한 독재 가 강화되는 가운데 반공은 주요한 권력 수단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독재 권력에 대한 비판자들을 사회주 의자로 단정하였다. 독재 권력에 대한 비판이 민주주의적인 가치를 토대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의 주장을 사회주의적인 주장, 혹은 사회주의자의 선동에 의한 주장으로 규정하는 것에 의해 독재 권력은 간단히 비판자들에게 반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재 권력은 각종 주장ᆞ요구ᆞ언설에 대한 해석을 독 점 23) 하고 있었으며, 권력의 강화 및 연장을 위해서라면 국가질서의 근간이 되는 헌법을 너무도 간단히 유 린했다. 그들에게 있어서의 헌법은 권력을 합법화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권위주의 시대에 는 반대파의 배제정책에 의해 정치범이 대량생산 24) 되었으며, 권력 측은 이를 허위의 언어 25) 에 의해 합리화하였다. 한편, 1987년 6월의 소위 민주화 의지의 선언 은 한국적 민주주의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로의 전환점 이었다. 26) 이 선언을 한국에 있어서의 민주화의 시발점으로 볼 때,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까지에는 약 4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1974년 4월 25일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시작된 현대 세계에 있어서의 민주화의 제3의 물결 27) 이 한국에 다다르는 데에 13년 2개월여의 세월이 소요되었 22) 주지하는 바와 같이, 5 16 쿠데타 당시, 혁명군은 혁명공약에서 반공을 국시로 한다고 언명하고 있다. 이것은 반공 국시의 공언화로서의 의미를 갖으나, 반공이 이때부터 국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미 이승만 정권 하에서도 반공이 강조되었다. 23) 조선시대의 집권세력이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마저도 독점하고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시 말 해서, 유교 원리주의에 저촉되는 어떠한 주장(명시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의견마저도)도 배제할 수 있는 권력 을 집권세력은 확보하고 있었다. 조선시대 이후, 한국정치에 있어서의 권력투쟁이 도덕적 정당성을 둘러싼 대립ㆍ투쟁의 양상을 띠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한 보다 상세한 논의에 대해서는 송석원, 同 族 と 日 本 の 政 治 文 化 : 有 賀 喜 左 衛 門 の 所 說 を 中 心 として ( 一 ) ( 二 ), 法 学 論 叢 一 四 一 巻 三 号 ( 一 九 九 七 年 六 月 ), 一 四 三 卷 二 号 ( 一 九 九 八 年 五 月 ) 및 송석원, 同 族 と 政 治 文 化 : 日 韓 比 較 硏 究, 京 都 大 学 法 学 研 究 科 博 士 学 位 請 求 論 文, 2000 참조. 24) 池 明 觀, 전게서, p ) 大 江 健 三 郞, にせの 言 葉 を 拒 否 する, 世 界, 1975년 11월호, pp ) 1987년 6월의 선언은 보통 민주화 선언 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6월 선언은 한국적민주주의라 고 하는, 한국에 씌어져 온 무거운 괄호를 제거하고, 한국이 마침내 민주주의의 보편적인 원리와 가치를 존중 하는 사회로 탈바꿈하겠다는 의지를 선언한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선언 이후, 이전의 시기 와 비교할 때, 기능하는 의회, 공정한 선거 등의 면에서 뚜렷한 진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유감스 럽게도 이러한 진전은 선언 이후의 민주주의의 성숙에 의한 것이기보다는 선언 전의 상황이 너무 나빴었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다. 더욱이 민주주의의 기반이기도 한 타협과 관용의 덕이 아직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따라서 타협과 관용의 학습을 통해 한국에 있어서의 민주주의가 안정되게 제도화됨으로써, 참된 의미에 있어서의 민주화 선언이 이루어지기에는 앞으로도 다소의 시일을 필요로 한다고 볼 수 있다. 27) S. P. Huntington, THE THIRD WAVE : Democratization in the Late Twentieth Century, University of
10 10 아태연구 13권 2호 음을 의미한다. 이렇듯 민주화의 길은 결코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한국의 집권세력이 민주화의 의지 를 표명하게 된 것은 결코 그들의 선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선언에 이르기까지의 민중의 고난에 찬 투쟁 의 산물이었음을 특기해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여하튼, 바야흐로 한국은 민주화 과정의 시기를 지나 민주화의 정착에 의한 제도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과정의 길이 멀고 험했듯이, 민주화를 정착하고 심화해 가는 제도 화의 길도 그다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권위주의체제를 극복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민주주의를 위협 하는 요인은 도처에 산재해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 직면하여 무엇보다도 시급한 처방전은 시민의식 (civitas), 즉 공적인 것의 복권 이 아닐 수 없다. 28) 년 이후 일본에서의 한국학연구 패전에 의해서 식민지를 상실한 일본의 전후 외교관계의 골격이 대미관계에 의해 규정되었다는 것은 불 가피한 일이었다. 사실상 전후의 일본은 미국과의 협조 하에 평화와 번영을 향유하게 되었다. 29) 그러나 한 편으로 전후 일본의 대미협조노선은 일본 외교에 있어서의 아시아, 특히 일본의 패전에 의해 새롭게 독립 을 획득한 아시아 제국과의 관계 재설정을 부차적인 문제가 되게 했다. 더욱이 이러한 전후 일본 외교의 방향성이 타율적으로 외부로부터 강요된 것이었기 때문에 전전ᆞ전중에 있어서의 일본의 일그러진 대 아시 아관은 아무런 수정 없이 전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아시아와 직접 마주 대하는 적이 없었던 일본에 있어 서, 아시아의 부재 야말로 그 전후 외교의 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30) 따라서 전후 초기의 일본의 대한정책 역시 미국의 아시아정책의 일부로서의 성격밖에는 없었으며, 일본 의 독자적인 한일관계에 대한 청사진은 부재하였다. 전후 일본에 있어서의 미국의 존재 31) 가 일본의 독자 적인 외교정책의 수립을 제한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일 양국의 민족적 감정과 지도자들 간의 상호불신이 이 러한 제약을 더욱 강화시켰다. 따라서 1952년에 시작된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은 13년이라는 시일이 경과 되어서야 겨우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1965년의 국교정상화가 쿠데타에 의해 집권하였을 뿐만 아니 Oklahoma Press, 1991, p.3. 28) 다니엘 벨은, 시민의식은 사람들이 아무런 저항감도 갖지 않고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 공적인 것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것 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ダニエル ベル, 林 雄 二 郞 譯, 資 本 主 義 の 文 化 的 矛 盾 下, 講 談 社 ( 学 術 文 庫 ), 1977, pp ) 전후 일본에서는 미국과의 협조노선에 대해 일본사회당(현 사회당)과 일본공산당을 비롯한 사회주의 세력에 의한 저항 이 있었다.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이 강한 이들의 저항은 1960년대의 안보투쟁 에서 절정에 달하였 으나 이후 현저히 약화되어 갔다. 한편, 1980년대 후반, 즉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때를 같이 하여, 민족주의자 (한국에서는 일본에 대해 말할 때, 민족주의 라는 용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그 대신에 우익, 우파, 극 우, 혹은 우경화 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서, 김호섭ㆍ이면우ㆍ한상일ㆍ이원덕, 일 본우익연구, 도서출판 중심, 2000 참조.)들을 중심으로 미국과의 협조노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 다. 새로운 일미관계의 모색을 강하게 제언하고 있는 이시하라 신타로( 石 原 慎 太 郎 )ㆍ모리타 아키오( 盛 田 昭 夫 ) 의 NO と 言 える 日 本 ( 光 文 社, 1989)은 일본의 자존심을 전면에 내세운 대미비판이라는 점에서 저자들 의 국제적 명성과 함께 주목된 바 있다. 30) 이와 같이 일본에 있어서의 전전과 전후에 걸친 아시아관의 연속성에 관해서는 尹 健 次, 戦 後 思 想 の 出 発 と アジア 観 中 村 政 則 ほか 編, 戦 後 日 本 占 領 と 戦 後 改 革 第 3 巻, 岩 波 書 店, 1995 참조. 한편, 이노우에 토 시가즈( 井 上 寿 一 )는 1946년에 작성된 일본 외무성 조사국의 내부자료 日 本 経 済 再 建 の 基 本 問 題 를 토대로 전후 일본에 어떠한 형태로든 아시아 지역주의적 대외정책이 구상되었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井 上 寿 一, 戦 後 日 本 のアジア 外 交 の 形 成, 日 本 政 治 学 会 編, 年 報 政 治 学 1998 日 本 外 交 におけるアジア 主 義, 岩 波 書 店, 1999, pp ) 가토 노리히로( 加 藤 典 洋 )는 일본에 있어서의 한국지배, 남경학살 등 아시아 침략의 상처, 유럽에 있어서의 유 대인 학살의 상처, 미국에 있어서의 원폭투하의 상처 등을 20세기 전반기에 일어난 전쟁이 그 전후에 남긴, 지금도 치유되지 않고 우리들의 앞에 놓여 있는 주요 과제라고 지적하면서, 원폭과 무조건 항복, 천황을 둘러 싼 전후의 상처와 고도성장기의 일본에 드리워진 미국의 그림자를 논하고 있다. 加 藤 典 洋, アメリカの 影 : 戦 後 再 見, 講 談 社 ( 学 術 文 庫 ), 1995참조.
11 일본에서의 한국학연구 - 회고와 전망 11 라 이승만에 비해 일본적인 가치에 대해 친화력을 갖고 있는 박정희에 의해 타결되었다는 것이 향후의 한 일관계의 어두운 그림자를 낳는 원인이 되었다. 예컨대, 그것은 과거의 행위에 대한 전후배상의 문제가 청구권 경제협력 의 문제로 변질됨에 따라 일본인들의 심성에 자리 잡고 있는 과거사에 대한 일그러진 인식이 아무런 수정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계승되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 다. 32) 여하튼 이후 한일관계는 주로 경제관계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어 갔다. 그러나 규모면에서의 비약적인 증대는 질적인 면에서의 한국 측의 만성적인 무역불균형의 결과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한편, 정대균은 1945년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일본인의 이웃나라에 대한 관심태도의 추이와 한일관계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일본인의 이웃나라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세 시기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33) 정대균 에 의하면, 제1기는 일본의 한국지배가 종언을 고한 1945년부터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된 1965년까지의 20 년간으로, 한일관계의 단절의 시대 로 형용할 수 있는 이 시기의 일본인의 한국인관은 대체로 무관심과 피관심( 避 關 心 )의 태도 그것이었다. 제2기는 1965년의 국교정상화로부터 1983년까지로, 이 시기의 한일 관계를 특징지우는 것은 일방통행의 관계 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관광객은 물론 자금, 기술, 정 보 등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일방적으로 흐르는 시대였다. 이것은 한국인에게 일본에 대한 유인과 반발, 동 경과 증오라는 양면성의 감정과 태도를 낳는 요인이기도 했다. 또한 이 시기는 한국의 정치현실에 대한 일 본인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시기이기도 하다. 제3기는 1984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시기 로써, 이 시기의 한일관계는 상호교류 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또한 이 시기는 상업 저널리즘이 한국론 의 세계에 진출함으로써 한국에의 관심이 대중화되고 다양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상을 정리하면, <표 2>와 같다. <표 2>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일본인의 한국의 민주화과정에 대한 관심태도의 변화추이는 제1기 와 제2기에 있어서의 그것이다. 한국의 민주화과정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태도의 양상을 시계적( 時 繼 的 )으 로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이승만 시대의 한일관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특징적인 것은 1952년의 이승만 라인 선언을 계기로 한 감정적인 충돌의 표출 이외에는 상호 무관심과 피관심의 태도에 의해 지배 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 분단과 좌우충돌, 한국전쟁 등 정치적 격변기에 있었으며, 특히 폐허로부터 의 도전이 대미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일본에 대해 관심을 둘 여지가 없었다. 더욱이 후술하 는 바와 같이, 식민지배의 부당성에 대한 일본 측의 공식 사과를 선행조건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승만 에 있어서 대일 관계는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일본 역시 미국의 점령 하에 패전 후의 경 제복구에 전념하던 시기로써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한국은 물론 아시아 전체에 대한 관심은 거의 전 무한 상태였다. 34) 32) 전후 일본의 정ㆍ재계를 이끈 인사들에 의한 허언, 망언, 실언 등에 대해서는 失 言 王 認 定 委 員 会 編, 大 失 言, 情 報 センター 出 版 局, 2000 참조. 한편, 이러한 허언, 망언, 실언이 반복되는 배경에 대해서는 졸고, 망 언, 한 것이 아니고 된 것?, 굿모닝 팝스, 1995년 7월호, pp 참조. 33) 정대균은 이와 같은 일본인의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관심태도와 이미지의 변화는, 패전국가에서 민주주의 국 가와 경제대국의 실현을 거쳐 국제국가에로 이행하는 일본인의 자국에 대한 인지와 일정한 대응관계를 시사 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鄭 大 均, 韓 國 のイメージ : 戦 後 日 本 人 の 隣 国 観, 中 央 公 論 社 ( 新 書 ), 1995, pp ) 이러한 사실은 이정식에 의해서도 지적되고 있다. 즉, 이정식은 이승만 시대에 있어서의 한일관계가 감정이 완화되지 않고 지속된 것은 한일 어느 측도 긴장된 관계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때문이 라고 하면서, 한국의 주된 관심사는 북한의 공산집단으로부터의 방위와 전쟁으로 폐허화된 경제의 복구였으 며, 이러한 과제들은 일본보다는 미국의 지원을 필요로 했다. 일본도 2차 대전의 재난으로부터의 회복이 최우 선이었으며 한국이 가져다 줄 것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李 庭 植, 韓 國 과 日 本 - 政 治 的 관계의 照 明, 敎 保 文 庫, 1986년, p.67.
12 12 아태연구 13권 2호 <표 2> 한일관계와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관심태도의 변화추이 제 1 기 제 2 기 제 3 기 기 간 현재 한일관계 단절의 시대 일방통행의 시대 상호교류의 시대 관심태도 무관심ㆍ피관심 정치적 관심 문화적 관심 한국전쟁 한일 국교정상화 민주화 선언 이승만 라인 김대중 납치 서울 올림픽 한국의 재일 한국인 북송 민청학련사건 문민정부 민주화과정에 일본 대중문화의 있어서의 5 16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수입개방 주요사항 안보경협 한일월드컵 공동개최 나카소네 방한 한류 이미지 변화 이진우의 잔영 조용필, 배용준 선글라스와 군복 찌푸린 얼굴의 ㆍ시장에서 물건을 차림의 박정희 이승만 사고 파는 일반인 출처 : 鄭 大 均, 韓 國 のイメージ: 戦 後 日 本 人 の 隣 国 観, 中 央 公 論 社 ( 新 書 ), 1995, pp.11-21을 토대로 필자가 수정ㆍ보완하여 작성함. 더욱이 종전 직후의 일부 재일 한국인들의 과격한 언행은 일본인들의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관심을 의 식적으로 회피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사실상 이 시기에 있어서의 일본과 일본인의 한국 및 한국인에 대 한 감정이나 이미지는 한반도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이라기보다는 주로 재일 한국인들을 통해 형성된 것 이었다. 35)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의 원형을 이루고 있는 재일 한국인의 경우, 1958년 8월에 발생한 고마쯔가와( 小 松 川 )사건(일명 이진우사건) 36) 과 같이, 사건의 결과 한국에 대한 속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으나, 대부분의 경우, 불법과 부정을 일삼는 부정적이고 비우호적인 한국인의 이미지를 고정화시켰다. 37) 패전 후의 일본에 있어서 재일 한국인들의 존재는 언제나 자극적인 세력 38) 이었다. 이승만 시대의 한일관계에 있어서 또 하나의 특기할만한 사항은 이 시기의 한일관계가 정치를 기반으로 하기보다는 도덕과 윤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정식도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승만 시대 의 한ᆞ일간의 대립관계에는 동양적ᆞ유교적 전통과 관련한 오랫동안의 감정적 충돌 39) 이 자리하고 있었 다. 이 시기는 서로 상이한 도덕적ᆞ윤리적 척도에 따라 상대방의 비도덕성을 공격하였다. 도덕이 척도였으 므로 상대에 대한 공격의 강도는 상상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한국은 일본의 과거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의 인정과 그에 따른 사죄의 부재를 공박하였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땅에 군대를 보내겠다는 제안이 아니라 과거의 비행에 대한 뉘우침과 이 시점 이후 우리와 공정하게 대하겠다는 새로운 각오와 관련한 구체적이고도 건설적인 증 거이다. 이러한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 일본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는 확실한 증거는 우리를 고무할 뿐 아니 라 일본 자체 내의 형세도 크게 개선시키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이러한 증거가 나타나기를 희망 하고 있다. 40) 는 이승만의 지적은 한국이 일본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부도덕한 일본이 각성하여 도덕성 35)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재일 한국인의 범위를 넘어 한반도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국인에게로 확대되기 시작한 것은 1965년의 국교정상화 이후의 일이었다. 36) 1963년에 출판된 오에 겐자부로( 大 江 健 三 郞 )의 소설 叫 び 声 는 이진우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37) 鄭 大 均, 전게서, pp ) エドワード ワグナー, 日 本 における 朝 鮮 少 数 民 族 , 湖 北 社, 1975(원저는 1951년), p.2. 39) 李 庭 植, 전게서, p ) 한일관계와 관련, 재외외교사절에 보내는 대통령의 친서, pp.5-9. 올리버 文 書. 李 庭 植, 전게서, p.60에서
13 일본에서의 한국학연구 - 회고와 전망 13 을 회복하는 것임에 다름 아니었다. 또한 이승만이 1952년 1월 18일에 한국 해안으로부터 50 60마일 사이의 수역에 대한 한국정부의 배 타적인 관할권을 선언(이승만 라인)하였을 때, 대륙붕의 해상 및 광물자원의 보호와 일본의 어부와 그들의 발달된 어업 장비로부터 한국 어부를 보호하기 위한 필요에서 오는 정치적 고려와 함께 일본의 부도덕성에 대한 윤리적 제재가 함께 고려되었음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일본의 부도덕성과 관련하여, 사죄, 거만, 고압적인 태도, 지배욕, 비행, 뉘우침 등의 어휘가 이 시기의 한국의 신문기사에 빈번히 사용되었다. 더욱이 1959년 3월 일본의 기시 노부스케( 岸 信 介 ) 내각에 의한 재일 한국인의 북송 결정은 한국 측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국제무대에서의 남북한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가고 있는 가운데, 일본이 한국의 적과 어떠한 관계를 맺는 것조차도 한국을 자극하고 남을 일이었는데 한국이 거대한 감옥으로 믿고 있던 곳으로 한국인 거류민들을 송환한다는 것은 도덕적인 죄악을 범하고 있는 것 41) 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일회담에 있어서, 일본 측의 망언과 허언이 한국 측의 분노를 촉발시켰듯이, 이승만 라인의 선언은 일 본 측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물론 도덕적 정당성은 한국 측만의 무기였던 것은 아니었다. 일본 역시 도덕성 ᆞ윤리성의 척도를 가지고 한국을 바라보았다. 실제로 이승만 라인의 선언에 대해 일본은 당면한 한일교 섭이 어떻게 되든, 위협임을 알고 있는 상대의 태도에 두려움을 느껴 부조리한 주장을 승인하는 것은 우리 나라(일본)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 군비가 없는 약자의 입장이라고 해서 가당치도 않은 상대 의 주장에 굴복한다면 당면한 문제는 해결될지 몰라도 향후의 대등한 선린관계를 쌓아가는 것은 불가능하 다. 42) 거나 한국정부의 악의는 오늘날 시작된 것이 아니다. 또한 그 심리적 유래에 대해서는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한 때 스스로 위험한 이웃 으로서 실패한 일본으로써 타국의 위험 을 비난할 도덕적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을 우리로서는 주저할 필요가 없다. 43) 며 한국의 부도덕성을 비난하고 있다. 특히 이승만 라인의 선언을 계기로 불법, 부당, 무모, 위험, 위 협, 폭거, 부조리, 자극적, 문답이 필요 없는 일방적인 태도 등의 어휘가 일본의 신문기사에 자주 사용되기 도 했다. 44) 더욱이 일본의 척도에 의하면, 한국은 명백히 완전한 독립국가가 아니었다. 한국의 정치인에게서 보이 는 독립에 필요한 실력은 부족한 가운데 독립의식만을 과잉되게 갖고 있는 것 이야말로 모든 것의 화 근 45) 으로 인식되었다. 이와 같이 이승만 시대의 한일관계는 표면상의 무관심과 피관심 속에 내면상의 감정적 대립이 지속된 시기, 즉 단절의 시대 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박정희 이후의 군부정권 시대의 한일관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특징적인 것은 이 시기의 한일관계 가 현실주의를 바탕으로 추이했다는 점이다. 현실 그 자체가 오에 겐자부로( 大 江 健 三 郞 )가 지적하듯이, 허 위의 현실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한ᆞ일간의 관계는 바로 그 현실에 따라서 진행되었다. 한일 양국은 1965년의 국교정상화를 계기로 한층 긴밀해져 한일각료회의의 연례개최를 비롯하여 한일협력위원회, 한일 친선협회, 한일의원연맹 등의 기구를 조직함으로써 국내에 이른 바 지일파 혹은 지한파라 불리는 일정한 정치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 지일파 혹은 지한파 인사들은 대체로 한일 양국의 보수주의자들 이었으며, 세계적 규모로 전개된 냉전의 상황 하에 이들의 유착이 한일관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특히, 일본 내의 지한파 인사들이 주도한 일본의 대한반도 정책의 기조가 한반도의 안정, 즉 현상유지에 있었다. 46) 는 재인용. 41) 李 庭 植, 전게서, p ) 時 事 新 報 1953년 10월 19일. 43) 時 事 新 報 1953년 10월 29일. 44) 鄭 大 均, 전게서, p ) 時 事 新 報 1953년 10월 29일. 46) 伊 豆 見 元, 日 本 의 對 韓 半 島 政 策, 韓 培 浩 외, 現 代 日 本 의 政 治, 慶 南 大 學 校 出 版 部, 1986,
14 14 아태연구 13권 2호 점은 일본에 의한 한국의 반공 정권 지지를 의미했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입장은 한국의 민주화 세력과 일본 내의 전후 민주주의논자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본 지도층의 망언과 허 언, 그리고 한국의 권위주의적 독재 권력에 의한 일련의 정치적 사건과 이들을 바라보는 한일 양국민간에 치유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감정적 앙금 등으로 인해 한일 간의 정치적 외교적인 갈등이 지속되었는데, 이 러한 일련의 갈등들은 사후의 면밀한 검증도 없이 이들 지일파와 지한파 인사들에 의한 정치결착 의 형 태로 매듭지어지곤 했다.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한국적 민주주의가 만든 김대중 납치사건과 민청학련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은 일본인들의 한국에의 관심(보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의 (독재)정치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킨 계기 가 된 사건이었다. 1973년 8월에 발생한 김대중 납치사건은 동 사건이 일본의 국내정치에도 결코 적지 않 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단순히 일본인들이 갖고 있던 한국에 대한 어두운 이미지를 한층 더 강화하였 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일본의 대한 정책에 대한 시비와 한국의 민주화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을 야기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1974년 4월 18일, 일본 국내에 일본의 대한 정책을 바로잡고, 한국 민 주화투쟁에 연대하는 일본연락회의 가 조직되었다. 또한 한국문제 기독교인 긴급회의가 조직된 것도 이 시기였다. 이들 조직은 주로 오에 겐자부로( 大 江 健 三 郞 ), 와다 하루키( 和 田 春 樹 ), 무샤코지 킨히데( 武 者 小 路 公 秀 ), 쓰루미 슌스케( 鶴 見 俊 輔 ) 등 이른바 '전후 민주주의자', 즉 '진보적 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되었 다. 47) 이들은 대체로 일본의 식민지지배에 대한 어느 정도의 속죄의식과 일정한 이념적 정향을 갖고 있었 다. 이들은 한국 사회가 독재자가 지배하는 어두운 사회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48) 1974년의 민청학련사건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킨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구속된 김지하를 후원하기 위해 '김지하를 돕는 모임'(전신은 김지하 구제위원회)이 결성되고, 작가들의 단식투쟁 이 이어졌으며, 모금운동과 데모집회가 잇달았다. 특히, 오에는 '현실'의 기만성, 즉, '만들어진'사건의 허위 성을 폭로하며, 박정희 정권을 독재 권력이라고 비난하였다. 49) 일본인들에 의한 김지하 돕기 운동은 김지하의 '당신들의 운동은 나에게 도움을 줄 수는 없겠지만, 나는 당신들의 운동을 돕기 위해 나의 목소리를 더해 나갈 것' 50) 이라는 언급에 의해 일본인 자신들이 김지하의 도움에 의해 스스로를 구원하는 운동이 되기도 하였다. 김지하의 언급은 김지하를 도울 생각에 시작된 일 본인의 운동은 김지하를 그처럼 옥죄고 있는 박 정권을 일본이 원조하고 있다는 가공할만한 상태로부터 일 본인 자신을 구제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51) 한편, 이른 바 신군부의 집권과정에서 '만들어진 '1980년의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그에 따른 김대중에 의 사형선고는 이정식이 적절히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한국의 국내문제임과 동시에 일본의 국내문제이 기도 하였다. 52) 한국 정부가 혐의의 하나로 지목한 한국 민주화통일 촉진국민회의가 북한의 적극적인 지 원을 받고 있는 조총련이 조직한 것이라는 지적은 일본을 사건의 관련 당사자로 만들어 버렸을 뿐만 아니 라 이 문제가 일본 국내정치에 있어서의 정치적 쟁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김대중이 사형선고를 받았던 9월 pp ) 한국의 민주화 세력과 연계하여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 후원한 것은 이들 전후 민주주의논자, 즉 진보적 지식인들이었다. 그러나, 이들 진보파의 세력은 일본인의 이웃나라 한국에 대한 이미지의 형성에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한일관계를 규정할만한 힘은 결여되어 있었다. 鄭 大 均, 전게서, p ) 예컨대, 후지시마 우다이( 藤 島 宇 大 )는 '일한 친선의 미명 하에 한국을 조금 보고 온 사람들 이 한국은 생각했 던 것보다 밝다 고들 말한다. 2, 3의 도시의 겉모습만 보고 밝다 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 다. 藤 島 宇 大, 朝 鮮 人, 日 本 読 書 新 聞 出 版 部, 1965, p ) 大 江 健 三 郞, 앞의 글 참조. 50) 鶴 見 俊 輔, 金 芝 河, 最 初 の 言 葉, 日 韓 連 ニュース 號 外 (7 月 19 日 ). 和 田 春 樹, 日 韓 連 帶 の 思 想 と 展 望, 世 界, 1975년 11월호, p.54에서 재인용. 51) 和 田 春 樹, 전게논문, pp ) 李 庭 植, 전게서, p.154.
15 일본에서의 한국학연구 - 회고와 전망 15 17일 1만 명 이상의 군중들이 히비야( 日 比 谷 )공원에서 판결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53) 한국의 신군부에 의한 김대중에의 사형선고로 악화되고 있던 한일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한 것은 안보경 협의 요청이었다. 한국의 차관요청이 아무런 사전접촉이 없는 가운데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차관의 안보 적 성격의 명시는 일본을 난처하게 했다. 일본에 있어서 안보적 의미의 원조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불 가능한 문제 54) 였기 때문이었다. 사태의 진정에는 시일이 필요했으며, 나카소네 야tm히로( 中 曾 根 康 弘 )의 등장으로 어렵게 타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카소네의 등장에 의한 한일 간의 현안해결은 한국의 독재 권 력에 대한 대외적인 지지를 인식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따라서 일본 수상으로서는 실질적으로 최초의 한국 공식방문이 된 1983년 1월의 나카소네의 방한도 두 나라 국민간의 우호를 증진시키는 계기로 보기보다는 전두환 정권을 공고히 해주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55) 한편, 일본 정부는 신군부에 의한 김대중에의 사형선고에 즈음하여, '김대중의 처형이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원조제공에 있어서 장애요인이 될 것' 56) 이라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우려의 표명은 사태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의 반일운동을 야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57) 그런데,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호응하는 일본 내의 세력에 대해서는 일본 국내에서도 비판의 대상이 되 기도 하였다. 이러한 비판은 언설의 공간을 지배하며 주로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 후원하는 전후 민주 주의논자들에 대한 이념적 도전의 형태로 나타났다. 특히, 비판자들은 이들 전후 민주주의논자들이 한국을 하나의 외국으로서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58) 이것은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서 국경을 넘 는 민주세력의 연대를 중시하는 전후 민주주의논자들의 활동에 대해 이들의 국경의식의 미확립을 문제제기 한 것으로서, 전후 민주주의논자들의 인권( 人 權 ) 중시에 대한 비판자들의 주권( 主 權 ) 중시의 대립을 의미 했다. 주권 중시의 입장에서 한국의 민주화에 연동한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논자들에 대한 비판은 다른 나라 의 민주화, 인권문제를 언급하는데 주저해하는 일본인이 한국에 대해서는, 한국인에게 피해가 되는 지 돌아 보지도 않고, 목소리 높여 재단하는 것은 왜일까? 첫째로, 한국과의 사이에 국경의식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의 의식이 아직 남아 있다는 의미이다. 한국에는 사상, 행동, 풍속, 습관을 달리하는 인간 들이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나의 준칙은 상대방에도 통용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세이다. 한 국인이 박 정권타도 를 외치는 것은 일본인이 스즈키( 鈴 木 )정권타도 를 외치는 것이 자유인 것처럼 자유지만, 일본인이 그에 동조하여 같은 것을 외치는 것을 일탈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은 우리 집 담장 안 이라는 사고가 깊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은 한국을 통제 가능한 지역으로 간주 하는 것으로써, 한국을 대등한 일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59) 라는 타나카 아키라( 田 中 明 )의 지적 에 잘 나타나고 있다. 한편,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직접적으로 연동은 하지 않았을지라도 일본의 사회주의 세력은 북한과의 대 53) 読 売 新 聞, 1980년 9월 18일. 54) 読 売 新 聞, 1981년 9월 3일. 55) 李 庭 植, 전게서, p ) 読 売 新 聞, 1980년 11월 26일. 57) 사실상 신군부의 일본관은 부정적인 것이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카마다 미쯔토( 鎌 田 光 登 )가 전두환의 주요 측근의 한 사람의 발언으로 소개한, 우리 정부는 친미, 반일 정권이다. 60억불의 차관 요청은 1965년의 배상 회담의 제2라운드라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박대통령 시대 두 나라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졌던 유착 관계의 전말을 폭로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 이라는 발언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鎌 田 光 登, 日 韓 経 済 協 力 の 問 題 点, コリア 評 論, 1982년 4월호, p ) 구리하라 아키라( 栗 原 彬 )는 일본인에 있어서의 한국이란 자국과 등질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타국( 他 國 ) 도, 향수와 이국취미(exoticism)에 의해 바라볼 수 있는 이국( 異 國 ) 도 아닌, 정적( 正 嫡 )에 대한 사생아, 본가에 대한 아웃 카스트 와 같은 존재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栗 原 彬, 歷 史 とアイデンティティ, 新 曜 社, 1982, pp ) 田 中 明, 常 識 的 朝 鮮 論 のすすめ, 朝 日 新 聞 社, 1981, p.88.
16 16 아태연구 13권 2호 비 60) 를 통해 한국의 비민주성을 비판해 왔다. 북한의 선과 한국의 악 이 이들이 주도한 언설의 기본 구도였다. 그러나 이들은 북한의 독재 권력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한국의 독재 권력에 대해서만 비판을 가 함으로써 균형감각의 부재를 스스로 노정하는 결과가 되었다. 따라서 북한의 장기적인 경제침체와 그러한 와중에서의 지속적인 군비증강으로 인한 위협도의 증가는 이들이 주도한 언설의 설득력을 크게 상실케 하 였다. 한국사회의 민주화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에도 큰 변화를 초래하는 결과가 되었다. 비민주적인 권 위주의 정권 하에서는 오로지 정치적인 관심만이 주조를 이루고 있었으나, 한국에서의 민주주의가 성장함 에 따라 한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폭넓게 형성되고 있다. 그리하여 아무도 한국인의 구체적인 표 정을 상상할 수 없었다. 김대중이라는 이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둔감했던 사람들도 보통의 한 국인을 알지 못했 61) 던 일본인, 따라서, 한국인하면 찌푸린 얼굴의 이승만과 선글라스와 군복 차림의 박 정희밖에 연상할 수 없었던 일본인들도 한국에는 조용필과 욘사마 배용준 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큰 소리로 물건을 사고파는 밝은 모습의 보통 사람들 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 속에, 쓰고 있는 선글라스의 색만큼이나(혹은 그 이상으로) 어두운 이미지의 대명사 였고, 민주정치를 유린한 독재 정치인으로 비판해마지 않았던 박정희에 대해서도 경제적인 성과 등을 들어 긍정적인 평가를 하기 시작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일본인의 한반도에 대한 어두운 한국, 밝은 북한 의 도식적인 이미지가 근본적으로 뒤바뀌면서, 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급격히 하락하는 것에 반비례하여 박정 희가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되기 시작한 것은 제3기에 들어서부터이다. 62) 한국의 군부가 다른 개발도상 국의 그것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군부 자체가 스스로의 권력 확대보다는 경제근대화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아 경제근대화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주체로서의 관료와 관료제도를 적극적으로 보호ᆞ육성하였다는 점이 며, 또한 관료제도의 확대와 정비의 귀결로서 스스로의 상대적 지위를 저하시키는 것과 같은 정치적 성 숙 을 관용하게도 허용했다는 점이다. 는 와타나베 토시오( 渡 辺 利 夫 )의 지적 63) 과 한국정치에 있어서의 군의 등장을 군사작전의 전개와도 같은 일의 추진방식, 즉 정보의 수집, 정세판단과 기획입안, 실시라 고 하는 방식을 관료기구에 이식하여, 과감성 탓의 졸속, 이견을 배제하는 경향, 판단에 즈음해서의 과도 한 단순화 등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문인들의 논리중시에 의해 초래되는 현실감각의 결여, 갑론을박에 의 한 사태의 경직상황의 타파라는 점에서 획기적 인 사건이었다는 핫도리 다미오( 服 部 民 夫 )의 지적 64) 은 제 3기에 들어와서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한 박정희 평가를 대변하는 언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언설이 한국에서의 박정희 재평가와 같이, 박정희를 비롯한 군부정권의 공의 부분에만 초점이 맞 추어져 있음은 물론이다. 더욱이 박정희가 남긴 공의 유산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 가운데는 쉽게 동의하 기 어려운 문제들도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관료제도의 확대 및 정비의 경우만 하더라도, 그것이 허ᆞ인가 권을 바탕으로 한 관료주도의 정치를 결과하여 민간의 영역 전반에 대한 관료의 지배ᆞ감독을 정당화함으 로써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을 스스로 위협하는 부의 유산이 되어 가고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60) 예컨대, 김일성의 북한에 대해서는 위대함, 통찰력, 배려, 애정, 활기 등의 어휘가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이 러한 입장을 대표하는 언설로서는 테라오 고로( 寺 尾 五 郞 ), 나리타 토모미( 成 田 知 巳 ), 오타 미노루( 小 田 実 ) 등의 관련문헌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북한 사회를 물품을 기준으로 뒤떨어진 사회라고 단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테라오는 북한이 언젠가는 일본을 따라잡는 공업국이 될 것( 寺 尾 五 郞, 38 度 線 の 北, 新 日 本 出 版 社, 1959, p.89.)이라고 논하고 있으며, 오타는 북한이 일본도 아직 이루지 못한 완비된 사 회보장을 갖춘 선진국( 小 田 実, 私 と 朝 鮮, 筑 摩 書 房, 1977, p.130.)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61) 세키가와 나쯔오( 関 川 夏 央 )는 그 때(1983년-필자 주)까지 일본인에 있어서 한국은 외국이 아니었다. 물론 식민지였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인상이 확실치 않은, 색으로 말하자면 갈색, 혹은 국방색 의 지역일 뿐이 었다. 거기에는 윤곽이 없었다. 고 지적하고 있다. 関 川 夏 央, 東 京 からきたナグネ : 韓 国 的 80 年 代 誌, 筑 摩 書 房, 1987, p ) 鄭 大 均, 전게서, p ) 渡 辺 利 夫, 韓 國 ヴェンチャー キャピタリズム, 講 談 社 ( 現 代 新 書 ), 1986, pp ) 服 部 民 夫, 政 治 経 済, 伊 藤 亜 人 編, もっと 知 りたい 韓 国, 弘 文 堂, 1985, p.239.
17 일본에서의 한국학연구 - 회고와 전망 17 그러나, 여하튼 한일 간의 상호교류가 폭넓게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완만하기는 하지만 비교적 착실히 신장되고 있다는 사실이 일본인들의 한국 및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의 변화를 재촉하 는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의해 과거의 한국의 군부정권이 공유하고 있는 부 의 유산에 대해서보다도 공의 부분에 중점을 둔 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본 에서의 박정희 재평가는 한국 민주주의의 신장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한일관계에 있어서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신념이 양국관계를 규정하게 될 것 이다. 한일 양국에 있어서의 정치 지도자의 세대교체는 향후의 한일관계의 재조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기존 의 한일관계가 특정 정치 지도자의 개인적인 인맥을 통해 이루어짐으로써 항상 어두운 그림자와 함께 추이 했다는 점에서 지도자의 세대교체는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Ⅳ. 맺음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에서의 한국학연구는 1945년 이전과 이후로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 다. 식민지지배 시기에는 그러한 식민지지배를 정당화ᆞ합리화하기 위한 정치적인 요구에 학문이 부응함으 로써 권학의 유착이라고 해도 좋은 결과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일본에서의 한국학연구의 가장 현저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러한 식민지지배 시기의 한국연구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945년 이후에는 한일관계의 변화와 보조를 함께 하는 가운데 일본에서의 한국학연구가 이루어져왔다는 점 역시 일본에서의 한국학연구가 갖는 현저한 특징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일본에서의 한국학연구가 정치의 반영이었다는 점에서 탈피하여, 순수한 학문적인 영역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그 리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상호교류를 바탕으로 한 문화적인 관심의 증대는 일본에서의 한국학연구가 앞 으로 지향해야 할 바를 암시하는 것이기 조차 하다. 일본에서 축적된 한국학 연구업적은 일본 내에서만 소비되는, 일본만의 자산일 수 없다. 그들의 거 울 을 통해 본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의 한국학 연구업적이 단순한 지 ( 知 )의 축적에서 멈추지 않고, 지의 투사( 投 射 )와 연계( 連 繫 )에 의해 일본에서의 더 한 층의 한국학연구의 발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의 지적 자극제가 되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거울을 통해 본 우리들 자 신의 모습과 일본인들이 본 우리 자신의 모습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친화성도 있을 것이고, 혹은 괴리성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친화성이나 괴리성 모두 학문적 연구의 결과라면, 그야말로 학문의 영역에서 해소되어 야 마땅하다. 한편, 일본에서의 한국학연구가 더 한층 발전되어가기 위해서는 일본의 한국 연구자들에 대한 우리 정부 와 학계의 지원과 간단없는 연계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한 기초적인 작업으로서 일본의 한국학 연구자에 대한 기초 데이터베이스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학문적인 연구와 저널리즘과의 경계를 명확히 함으로써 일본에서의 한국학연구의 학문적 동력을 보다 더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참 고 문 헌
18 18 아태연구 13권 2호 송석원 망언, 한 것이 아니고 된 것?. 굿모닝 팝스 (7월호). 송석원 同 族 と 日 本 の 政 治 文 化 : 有 賀 喜 左 衛 門 の 所 說 を 中 心 として ( 一 ) ( 二 ), 法 学 論 叢 141 巻 3 号. 143 卷 2 号. 송석원 同 族 と 政 治 文 化 : 日 韓 比 較 硏 究. 京 都 大 学 法 学 研 究 科 博 士 学 位 請 求 論 文. 송석원 사쿠마 쇼잔( 佐 久 間 象 山 )의 해방론( 海 防 論 )과 대 서양관 : 막말에 있 어서의 <양이를 위한 개국>의 정치사상. 한국정치학회보 (37집 5호). 송석원 한반도 통일 환경과 주변 국가. 한반도 통일 환경과 한국의 정체 성 (한국정치정보학회 추계 학술대회). 伊 豆 見 元 日 本 의 對 韓 半 島 政 策. 韓 培 浩 외. 現 代 日 本 의 政 治. 慶 南 大 學 校 出 版 部. 하타다 다카시 한일관계와 역사학. 歷 史 學 硏 究 會 編. 山 里 澄 江 ㆍ손승철 譯. 한일관계사의 재조명. 이론과 실천. 가노 마사나오. 김석근 역 근대 일본사상 길잡이. 소화. 김호섭ㆍ이면우ㆍ한상일ㆍ이원덕 일본우익연구. 도서출판 중심. 李 庭 植 韓 國 과 日 本 - 政 治 的 관계의 照 明. 敎 保 文 庫. 崔 在 錫 韓 國 人 의 社 會 的 性 格. 開 文 社. 鎌 田 光 登 日 韓 経 済 協 力 の 問 題 点. コリア 評 論 (4월호). 大 江 健 三 郞 にせの 言 葉 を 拒 否 する. 世 界 (11월호). 服 部 民 夫 政 治 経 済. 伊 藤 亜 人 編. もっと 知 りたい 韓 国. 弘 文 堂. 鈴 木 榮 太 郞 朝 鮮 の 年 中 行 事 ( 草 稿 ). 鈴 木 榮 太 郞 著 作 集 Ⅴ. 未 來 社. 尹 健 次 戦 後 思 想 の 出 発 とアジア 観. 中 村 政 則 ほか 編. 戦 後 日 本 占 領 と 戦 後 改 革 第 3 巻. 岩 波 書 店. 井 上 寿 一 戦 後 日 本 のアジア 外 交 の 形 成. 日 本 政 治 学 会 編. 年 報 政 治 学 1998 日 本 外 交 におけるアジア 主 義. 岩 波 書 店. 和 田 春 樹 日 韓 連 帶 の 思 想 と 展 望. 世 界 (11월호). 加 藤 典 洋 アメリカの 影 : 戦 後 再 見. 講 談 社 ( 学 術 文 庫 ). 加 藤 周 一 ㆍM. ライシュㆍR. J. リフトン 日 本 人 の 死 生 觀. 岩 波 書 店. 南 博 日 本 人 論. 岩 波 書 店. 大 久 保 喬 樹 日 本 文 化 論 の 系 譜. 中 央 公 論 社. 稻 葉 岩 吉 滿 洲 發 達 史. 日 本 評 論 社. 渡 辺 利 夫 韓 國 ヴェンチャー キャピタリズム. 講 談 社 ( 現 代 新 書 ). 藤 島 宇 大 朝 鮮 人. 日 本 読 書 新 聞 出 版 部. 柳 宗 悅 朝 鮮 とその 藝 術. 叢 文 閣. 木 村 雅 昭 ユートピア 以 後 の 政 治 : 二 一 世 紀 への 政 治 を 読 む. 有 斐 閣. 寺 尾 五 郞 度 線 の 北. 新 日 本 出 版 社. 三 品 彰 英 朝 鮮 史 槪 說. 弘 文 堂. 石 原 莞 爾 最 終 戰 爭 論. 經 濟 往 來 社. 石 原 慎 太 郎 ㆍ 盛 田 昭 夫 NO と 言 える 日 本. 光 文 社. 石 田 雄 日 本 の 政 治 文 化 : 同 調 と 競 爭. 東 京 大 學 出 版 會. 小 田 実 私 と 朝 鮮. 筑 摩 書 房.
19 일본에서의 한국학연구 - 회고와 전망 19 小 倉 紀 藏 韓 国 は 一 個 の 哲 学 である. 講 談 社 ( 現 代 新 書 ). 失 言 王 認 定 委 員 会 編 大 失 言. 情 報 センター 出 版 局. 有 賀 喜 左 衛 門 文 明 ㆍ 文 化 ㆍ 文 學. 御 茶 の 水 書 房. 栗 原 彬 歷 史 とアイデンティティ. 新 曜 社. 鄭 大 均 韓 國 のイメージ : 戦 後 日 本 人 の 隣 国 観. 中 央 公 論 社 ( 新 書 ). 朝 鮮 總 督 府 編 朝 鮮 の 契. 朝 鮮 總 督 府. 朝 鮮 總 督 府 編 朝 鮮 の 聚 落. 朝 鮮 總 督 府. 池 明 觀 韓 國 民 主 化 への 道. 岩 波 書 店 ( 新 書 ). 喜 田 貞 吉 韓 國 の 倂 合 と 國 史. 三 省 堂. 関 川 夏 央 東 京 からきたナグネ : 韓 国 的 80 年 代 誌. 筑 摩 書 房. エドワード ワグナー 日 本 における 朝 鮮 少 数 民 族 湖 北 社. ダニエル ベル. 林 雄 二 郞 譯 資 本 主 義 の 文 化 的 矛 盾 下. 講 談 社 ( 学 術 文 庫 ). S. P. Huntington THE THIRD WAVE : Democratization in the Late Twentieth Century. University of Oklahoma Press. 読 売 新 聞 時 事 新 報 (검색일 2006년 10월 10일)
20 20 아태연구 13권 2호 Abstract Korean Studies in Japan - Reviews and Prospects Song, Seok Won * Until 1945, Korean studies had been lead by Japanese government and scholars. During the colonial rule period ( ), Korean studies was necessary for the Chosun government-general to rule their colony more efficiently. Due to the limitation of colonial ear, Korean studies was more focus on define the Koreans' defects such as congestion, heteronomy. Also, Japanese scholars tried to prove that Korean and Japanese have a same ancestors and emphasized the unification between Korean and Japanese. After 1945, Korean studies in Japan changed its direction. The early period, they criticised authoritarian government and negative points about Korea; however, right after Korea was democratized, they changed their intellectual interests to positive things, such as economic growth, potential capacities. Moreover, they tried to approach the Korean society objectively. Because of new approaches of Korean studies, previous negative studies were corrected by new accumulate studies. Now, Korean studies in Japan, each researchers and scholars studies their own interest fields. Also, they have been trying to do a interdisciplinary studies in various subjects due to the accumulation of variety of Korean studies. 논문접수일자: 2006년 10월 12일, 논문심사일자: 2006년 11월 7일, 게재확정일자: 11월 15일 * Assistant Professor of School of Social Science, Kyung Hee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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延 世 醫 史 學 제12권 제2호: 29-40, 2009년 12월 Yonsei J Med Hist 12(2): 29-40, 2009 특집논문 3 한국사회의 낙태에 대한 인식변화 이 현 숙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1. 들어가며 1998년 내가 나이 마흔에 예기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되었을 때,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들 너무나도 쉽게 나에게 임신중절을 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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檀 國 大 學 校 第 二 十 八 回 학 술 발 표 第 二 十 九 回 특 별 전 경기도 파주 出 土 성주이씨( 星 州 李 氏 ) 형보( 衡 輔 )의 부인 해평윤씨( 海 平 尹 氏 1660~1701) 服 飾 학술발표:2010. 11. 5(금) 13:00 ~ 17:30 단국대학교 인문관 소극장(210호) 특 별 전:2010. 11. 5(금) ~ 20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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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의 시어 조찰한 의 의미 변화 연구 배호남 *1) 차례 Ⅰ. 머리말 Ⅱ. 종교적 순수성의 정신세계 : 勝 利 者 金 안드레아 의 경우 Ⅲ. 차가운 겨울밤의 정신세계 : 溫 井 과 長 壽 山 1 의 경우 Ⅳ. 명징한 여름 낮의 정신세계 : 白 鹿 潭 의 경우 Ⅴ. 맺음말 국문초록 본 논문은 정지용 연구의 새로운 지평으로 개별 작품에서 보다 더 미시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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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 만 난 7 0 년 대 죽은 언론의 사회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2008년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정동익은 오래 전 자신이몸담았던 동아일 보사 앞에 서 있었다. 촛불을든시민들은 동아일보는 쓰레기다! 라며 야유 를 보냈다. 한때 국민들이 가장 사랑했던 신문 동아일보는 젊은 시절 그와동 료 기자들이 목숨을 걸고 외쳤던 자유 언론 이 아니었다. 그는 차마더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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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정세분석 2012-03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 2012. 4 배정호 국제관계연구센터 소장 선임연구위원 여인곤 국제관계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김규륜 국제관계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전병곤 국제관계연구센터 연구위원 이기현 국제관계연구센터 부연구위원 박재적 국제관계연구센터 부연구위원 목 차 문제제기 북한의 미사일 발사 현황 국제사회의 태도 및 반응
More information단위: 환경정책 형산강살리기 수중정화활동 지원 10,000,000원*90%<절감> 형산강살리기 환경정화 및 감시활동 5,000,000원*90%<절감> 9,000 4,500 04 민간행사보조 9,000 10,000 1,000 자연보호기념식 및 백일장(사생,서예)대회 10
2013년도 본예산 일반회계 환경위생과 ~ 환경위생과 세 출 예 산 사 업 명 세 서 부서: 환경위생과 단위: 환경정책 환경위생과 8,231,353 3,622,660 4,608,693 국 2,472,543 기 144,000 도 976,102 시 4,638,708 자연환경보호(환경보호/환경보호일반) 5,910,247 1,462,545 4,447,702 국 1,817,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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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이순신 인물 서사 변화 과정의 의미 연구 45) * 김경남 차 례 Ⅰ. 서론 Ⅱ. 근대 계몽기 이순신 서사와 뺷유년필독뺸 Ⅲ. 일제 강점기 실기(實記)와 뺷문예독본뺸의 이순신 Ⅳ. 광복 이후의 이순신 서사 Ⅴ. 결론 국문초록 이 연구는 근대이후 교재에 나타난 이순신상을 중심으로, 영웅 서사가 어떻게 변화하 는가를 살피는 데 목적이 있다. 이 연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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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20대 총선 여성 비정규직 청년정책 평가 여성 정책 평가: 다시 봐도 변함없다 (p.2-p.4) 비정규직 정책 평가: 사이비에 속지 말자 (p.5-p.7) 청년 일자리 정책 평가: 취업준비생과 노동자의 분열로 미래를 논할 순 없다 (p.8-p.11) 2016년 4월 8일 [여성 정책 평가] 다시 봐도 변함없다 이번 20대 총선 만큼 정책 없고, 담론
More information216 동북아역사논총 41호 인과 경계공간은 설 자리를 잃고 배제되고 말았다. 본고에서는 근세 대마도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인식을 주로 영토와 경계인 식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이 시기 대마도에 대한 한일 양국의 인식을 살펴볼 때는 근대 국민국가적 관점에서 탈피할
전근대시기 한국과 일본의 대마도 인식 215 전근대시기 한국과 일본의 대마도 인식 하우봉 전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Ⅰ. 머리말 브루스 배튼(Bruce Batten)의 정의에 따르면 전근대의 국경에는 국경선으로 이루어진 boundary가 있고, 공간으로 이루어진 frontier란 개념이 있다. 전자 는 구심적이며 내와 외를 격리시키는 기능을 지니고, 후자는 원심적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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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적 이산과 탈냉전적 공존의 전망: 교토( 京 都 ) 재일코리안의 구술을 중심으로*1) 김귀옥 국문요약 이 글은 1년 가까운 기간 교토를 현지답사하고 교토 재일코리안의 다양한 사회 적 관계나 삶을 관찰한 후 10명의 구술생애사를 조사한 자료를 통해 작성되었다. 주로 교토 재일코리안 2세대(1명의 1세대와 1명의 3세대 포함)들의 재현적 기억과 생활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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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연구 2001 겨울호 제24권 제4호(통권 85호) pp. 75 96 企劃論文 退溪學派의 經濟的 基 : 財産 形成과 所有 規模를 중심으로 1) Ⅰ. 머리말 Ⅱ. 財産 形成 문 숙 자* Ⅲ. 財産 所有 規模 Ⅳ. 맺음말 Ⅰ. 머리말 退溪學派 는 지역, 당색, 학문상의 이론적 배경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 용어이 며, 시기에 따라서 지칭하는 의미에 차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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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운 [ㄱ] [국], [박], [부억], [안팍] 받침의 발음 [ㄷ] [곧], [믿], [낟], [빋], [옫], [갇따], [히읃] [ㅂ] [숩], [입], [무릅] [ㄴ],[ㄹ],[ㅁ],[ㅇ] [간], [말], [섬], [공] 찾아보기. 음절 끝소리 규칙 (p. 6) [ㄱ] [넉], [목], [삭] [ㄴ] [안따], [안꼬] [ㄹ] [외골], [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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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면양행견일기 沔 陽 行 遣 日 記 이 자료는 한말의 개화파 관료, 김윤식 金 允 植 (1835~1922)이 충청도 면천 沔 川 에 유배하면서 동학농민혁명 시기에 전문 傳 聞 한 것을 일일이 기록한 일기책 이다. 수록한 부분은 속음청사 續 陰 晴 史 의 권 7로 내제 內 題 가 면양행견일기 沔 陽 行 遣 日 記 로 되어 있는 부분 가운데 계사년 癸 巳 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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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 詩 源 < 顔 延 之 > 篇 譯 註 * 崔 宇 錫 1) 1. 序 文 2. 古 詩 源 < 顔 延 之 > 篇 譯 註 3. 結 語 1. 序 文 沈 德 潛 (1673-1769)의 字 는 確 士 이고 號 는 歸 愚 이다. 江 南 長 洲 (현재의 江 蘇 省 蘇 州 ) 사람으로 淸 代 聖 祖, 世 宗, 高 宗 삼대를 모두 거쳤다. 특히 시를 몹 시 좋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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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2 학년 1주 2 2주 7 3주 12 4주 17 부록` 국어 능력 인증 시험 22 1주 1. 느낌을 말해요 1 ⑴ ᄂ ⑵ ᄀ 1 8~13쪽 듣기 말하기/쓰기 1 ` 2 ` 3 참고 ` 4 5 5 5 ` 6 4 ` 7 참고 ` 8 일기 ` 9 5 10 1 11, 3 [1~3] 들려줄 내용 옛날 옛날, 깊은 산골짜기에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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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2 동경잡기 東京雜記 동경잡기 173 권2 불우 佛宇 영묘사(靈妙寺) 부(府)의 서쪽 5리(里)에 있다. 당 나라 정관(貞觀) 6년(632) 에 신라의 선덕왕(善德王)이 창건하였다. 불전(佛殿)은 3층인데 체제가 특이하다. 속설에 절터는 본래 큰 연못이었는데, 두두리(豆豆里) 사람들이 하룻밤 만에 메 우고 드디어 이 불전을 세웠다. 고 전한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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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노동운동사 정 호 기 농민운동 1 목 차 제1장 연구 배경과 방법 07 1. 문제제기 2. 기존 연구의 검토 3. 연구 대상의 특성과 변화 4. 연구 자료와 연구 방법 07 10 12 16 제2장 이승만 정부 시대의 노동조합운동 19 1. 이승만 정부의 노동정책과 대한노총 1) 노동 관련 법률들의 제정과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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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미있는 글자 단원의 구성 의도 이 단원은 도비와 깨비가 길을 잃고 헤매다 글자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글자 공부를 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자칫 지겨울 수 있는 쓰기 공부를 다양한 놀이 위주의 활동으로 구성하였고, 학습자 주변의 다양한 자료들을 활용함으로써 학습에 대한 흥미를 갖고 활동할 수 있게 하였다. 각 단계의 학습을 마칠 때마다 도깨비 연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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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례 익산시 조례 제1220호 익산시 주민감사 청구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 1 익산시 조례 제1221호 익산시 제안제도 운영조례 일부개정조례 3 익산시 조례 제1222호 익산시 시채에 관한 조례 폐지조례 12 익산시 조례 제1223호 익산시 시세 감면 조례 전부개정조례 13 익산시 조례 제1224호 익산시 행정기구설치조례 19 익산시 조례 제1225호 익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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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명단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이 명단은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의 후손 또는 연고자로부터 이의신청을 받기 위해 작성 되었습니다. 이 인물정보를 무단 복사하여 유포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전 파하는일체의행위는법에저촉될수있습니다. 주요 훈포상 약어 1. 병합기념장 2. 대정대례기념장 3. 소화대례기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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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의 향기 사랑하는 일과 닭고기를 씹는 일 최승자, 유 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강사/문학평론가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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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과천심상소학교 졸업증서(문헌번호 03-004) 일제강점기 과천초등학교의 유일한 한국인 교장이었던 맹준섭임을 알 수 있다.
More information時 習 說 ) 5), 원호설( 元 昊 說 ) 6) 등이 있다. 7) 이 가운데 임제설에 동의하는바, 상세한 논의는 황패강의 논의로 미루나 그의 논의에 논거로서 빠져 있는 부분을 보강하여 임제설에 대한 변증( 辨 證 )을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다음의 인용문을 보도록
과 임제 신해진(전남대) 1. 머리말 세조의 왕위찬탈과 단종복위 과정에서의 사육신을 소재로 한 작품은 남효온( 南 孝 溫 )의 (1492년 직전?), 임제( 林 悌 )의 (1576?), 김수민( 金 壽 民 )의 (1757) 등이 있다. 1) 첫 작품은 집전( 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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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 관용 표현 인지도> 남 여 70 60 50 40 30 20 10 0 1 2 3 4 5 6 70 < 관용 표현 사용 정도> 남 여 60 50 40 30 20 10 0 4학년 가끔쓴다 써본적있다 전혀안쓴다 5학년 가끔쓴다 써본적있다 전혀안쓴다 6학년 가끔쓴다 써본적있다 전혀안쓴다 70 < 속담 인지도> 남 여 60 50 40 30 20 10 0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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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 州 원림의 景 名 연구 * 用 典 한 경명을 중심으로 1)심우영 ** 목 차 Ⅰ. 서론 Ⅱ. 기존의 경명 命 名 法 Ⅲ. 귀납적 결과에 따른 경명 분류 1. 신화전설 역사고사 2. 文 辭, 詩 句 Ⅳ. 결론 Ⅰ. 서론 景 名 이란 景 觀 題 名 (경관에 붙인 이름) 의 준말로, 볼만한 경치 지구와 경치 지 점 그리고 경치 지구 내 세워진 인공물에 붙여진
More information伐)이라고 하였는데, 라자(羅字)는 나자(那字)로 쓰기도 하고 야자(耶字)로 쓰기도 한다. 또 서벌(徐伐)이라고도 한다. 세속에서 경자(京字)를 새겨 서벌(徐伐)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또 사라(斯羅)라고 하기도 하고, 또 사로(斯盧)라고 하기도 한다. 재위 기간은 6
동경잡기東京雜記 권1 진한기辰韓紀 경상도는 본래 진한(辰韓)의 땅인데, 뒤에 신라(新羅)의 소유가 되었다. 여지승 람(輿地勝覽) 에 나온다. 진한은 마한(馬韓)의 동쪽에 있다. 스스로 말하기를, 망 명한 진(秦)나라 사람이 난리를 피하여 한(韓)으로 들어오니 한이 동쪽 경계를 분할 하여 주었으므로 성책(城栅)을 세웠다. 하였다. 그 언어가 진나라 사람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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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177 178 179 180 181 182 183 184 185 186 187 188 (2) 양주조씨 사마방목에는 서천의 양주조씨가 1789년부터 1891년까지 5명이 합격하였다. 한산에서도 1777년부터 1864년까지 5명이 등재되었고, 비인에서도 1735년부터 1801년까지 4명이 올라있다. 서천지역 일대에 넓게 세거지를 마련하고 있었 던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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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말 풀꽃, 제주어 제주어는 제주인의 향기입니다. 제주인의 삶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삶의 향기이고, 꿈의 내음입니다. 그분들이 어루만졌던 삶이 거칠었던 까닭에 더욱 향기롭고, 그 꿈이 애틋했기에 더욱 은은합니다. 제주어는 제주가 피워낸 풀잎입니다. 제주의 거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비바람 맞고 자랐기에 더욱 질박합니다. 사철 싱그러운 들풀과 들꽃향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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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나눔 섭이와 함께하는 여행 임강섭 복지과 과장 여름이다. 휴가철이다. 다 들 어디론가 떠날 준비에 마음 이 들떠 있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여행 매니아까지는 아니 지만, 나름 여행을 즐기는 사 람으로서 가족들과 신나는 휴 가를 보낼 계획에 살짝 들떠 있는 나에게 혼자만 신나지 말 고 같이 좀 신났으면 좋겠다며 가족들과 같이 가면 좋은 여행 눈이 시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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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보고서 210-4 해방 후 한국여성의 정치참여 현황과 향후 과제 한국여성개발원 목 차 Ⅰ 서 론 Ⅱ 국회 및 지방의회에서의 여성참여 Ⅲ 정당조직내 여성참여 및 정당의 여성정책 Ⅳ 여성유권자의 투표율 및 투표행태 Ⅴ 여성단체의 여성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운동 Ⅵ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향후 과제 참고문헌 부 록 표 목 차 Ⅰ 서 론 . 서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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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이후 우리 교육의 방향 당 체제에서 우리 교육의 전망과 교육행정가들의 역할 박 호 근 서울시의회 의원 교육위원회 위원 서론 년 월 일 제 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선거는 바로 민의 의 반영이기 때문에 총선결과를 살펴보고 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는가를 분석해 본 후 년 월 일을 기점으로 제 대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시 작되는 상황에서 우리 교육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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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9호 [주간] 2014년 12월 15일(월요일) http://gurotoday.com http://cafe.daum.net/gorotoday 문의 02-830-0905 대입 준비에 지친 수험생 여러분 힘내세요 신도림테크노마트서 수험생과 학부모 600명 대상 대입설명회 구로아트밸리서는 수험생 1,000명 초대 해피 콘서트 열려 구로구가 대입 준비로 지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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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 花 下 理 芳 盟 段 流 無 限 情 惜 別 沈 頭 兒 膝 夜 深 雲 約 三 십년을 꽃 아래서 아름다운 맹세 지키니 한 가닥 풍류는 끝없는 정이어라. 그대의 무릎에 누워 애틋하게 이별하니 밤은 깊어 구름과 빗속에서 삼생을 기약하네. * 들어가는 글 파르라니 머리를 깎은 아이가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불 옆에 앉아 있다. 얼음장 같은 날씨에 허연 입김이 연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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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 정 치 제3편 정치 제1장 의회 제1절 의회 기구 제2절 의회기구 및 직원 현황 자치행정전문위원회 자치행정전문위원 산업건설위원회 산업건설전문위원 제1장 의회 321 제3절 의회 현황 1. 제1대 고창군의회 제1대 고창군의회 의원 현황 직 위 성 명 생년월일 주 소 비 고 322 제3편 정치 2. 제2대 고창군의회 제2대 고창군의회 의원 현황 직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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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률 국회에서 의결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을 이에 공포한다. 대 통 령 이 명 박 2012년 2월 29일 국 무 총 리 김 황 식 국 무 위 원 행정안전부 맹 형 규 장 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소관) 법률 제11374호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 공직선거법 일부를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 제21조제1항에 단서를 다음과 같이 신설한다. 다만,세종특별자치시의 지역구국회의원
More information182 동북아역사논총 42호 금융정책이 조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제 대외금융 정책의 기본원칙은 각 식민지와 점령지마다 별도의 발권은행을 수립하여 일본 은행권이 아닌 각 지역 통화를 발행케 한 점에 있다. 이들 통화는 일본은행권 과 等 價 로 연
越 境 하는 화폐, 분열되는 제국 - 滿 洲 國 幣 의 조선 유입 실태를 중심으로 181 越 境 하는 화폐, 분열되는 제국 - 滿 洲 國 幣 의 조선 유입 실태를 중심으로 - 조명근 고려대학교 BK21+ 한국사학 미래인재 양성사업단 연구교수 Ⅰ. 머리말 근대 국민국가는 대내적으로는 특정하게 구획된 영토에 대한 배타적 지배와 대외적 자주성을 본질로 하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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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 2000. 12 ,,,,.,.,.,,,,,,.,,..... . 1 1 7 2 9 1. 9 2. 13 3. 14 3 16 1. 16 2. 21 3. 39 4 43 1. 43 2. 52 3. 56 4. 66 5. 74 5 78 1. 78 2. 80 3. 86 6 88 90 Ex e cu t iv e Su m m a r y 92 < 3-1> 22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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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17일 발행 통권 제112호 112 발행인:李圭衡/편집인:金尙勳/주간:金泰詢/발행처:社)退溪學釜山硏究院 (우614-743) 釜山市釜山鎭區田浦洞608-1 819-8587/F.817-4013 出處가 분명한 공직사회 인간이 가지는 인성은 그 특성이 다양하여 일률적으로 판단 한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어떤 관점과 측면에서 논하느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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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의 가상광고에 나타난 그래픽영상 연구 -TV 스포츠 방송을 중심으로- A study of the graphic image that is presented in Virtual Advertising of VR(Virtual Reality) - Focused on TV Sports broadcasts - 이지은(Lee, ji eun) 조일산업(주) 디자인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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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리티 인문학 2, 2009. 10, 257~285쪽 좌절된 세계화와 로컬리티 - 1960년대 한국영화와 재외한인 양 인 실* 50) 국문초록 세계화 로컬리티는 특정장소나 경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시대에 따 라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개념이다. 1960년대 한국영화는 유례없는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 중 가장 특이할 만한 사실은 미국과 일본의 영화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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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단소산조 퉁소산조 피리산조 형성시기 재검토 49) 이진원* Ⅰ. 머리말 Ⅱ. 기존 연구성과 검토 Ⅲ. 단소산조 퉁소산조 피리산조 형성시기 검토 Ⅳ. 단소산조 퉁소산조 피리산조 형성시기 재검토의 의의 Ⅴ. 맺음말 Ⅰ. 머릿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취관악기(縱吹管樂器)에는 무황악기(無簧樂器)인 퉁소 단소가 있 고, 유황악기(有簧樂器)로 피리와 쇄납 등이
More information잡았다. 임진왜란으로 권위가 실추되었던 선조는 명군의 존재를 구세 주 이자 王權을 지켜주는 보호자 로 인식했다. 선조는 그 같은 인 식을 바탕으로 扈聖功臣들을 높이 평가하고 宣武功臣들을 평가 절하함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려고 했다. 이제 명에 대한 숭 앙과 충성은
朝中關係의 관점에서 본 仁祖反正의 역사적 의미 83)한 Ⅰ. Ⅱ. Ⅲ. Ⅳ. Ⅴ. Ⅵ. 명 기* 머리말 仁祖反正 발생에 드리운 明의 그림자 扈聖功臣 후예 들의 정권 장악으로서의 仁祖反正 仁祖反正에 대한 明의 이중적 인식과 대응 仁祖反正 승인을 통해 明이 얻은 것 맺음말 인조반정은 明淸交替가 진행되고 있던 동아시아 정세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More information지방자치시대의 정책갈등 분석
107 개헌과 새로운 통치이념의 정립 1)한동호(경성대) Ⅰ. 서론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 한국은 경제발전 이후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통해 민주주의 역시 달성하게 되었다. 이후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해 안정적인 민주주의의 정착을 보게 되었다. 하 지만 소위 1987년 체제라고 불리는 현행 헌법체제는 통치구조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노정해 왔다. 특히 1987년
More information통합 창원시의 해양관광 현황과 개선방안
해양비즈니스 제 33 호 (2016. 4.) 167 해양비즈니스 제 33 호 (2016 年 4 月 ) 논문 접수일 : 2016. 04. 10. The Journal of Maritime Business, Vol. 33, April 2016. 논문 심사일 : 2016. 04. 12. 게재 확정일 : 2016. 04. 23. 對 북 및 對 러 경제제재 조치가 환동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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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연구 2011년 하반기(통권 제56호) 전쟁 경험의 재구성을 통한 국가 만들기* - 역사/다큐멘터리/기억 - 1)이 명 자** Ⅰ. 들어가는 말 Ⅱ. 과 제작배경 Ⅲ. 과 비교 Ⅳ. 역사/다큐멘터리/기억 현대 남북한 체제 형성에서 주요한 전환점인 한국전 쟁은 해방 후 시작된 좌우대립과 정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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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 ( 24 ) 2004 6 Korean J Med Hist 13 1 19 Jun 2004 ISSN 1225 505X 1) * * 1 ( ) 2) 3) 4) * 1) ( ) 3 2) 7 1 3) 2 1 13 1 ( 24 ) 2004 6 5) ( ) ( ) 2 1 ( ) 2 3 2 4) ( ) 6 7 5) - 2003 23 144-166 2 2 1) 6)
More information212 영상기술연구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 뉴 뉴웨이브 세대란 60년대 일본의 영화사에서 과거세대와는 단 절된 뉴웨이브 의 흐름이 있었는데 오늘날의 뉴웨이브 세대를 뛰어넘는다는 의미에서 뉴 뉴웨이브 세대로 불린다. 뉴 뉴웨이브 세대 감독들의 경향은 개인적이고 자유분
연구논문 이와이 슌지 영화 속에 나타난 화면구성 연구 -러브레터, 4월 이야기를 중심으로- 최광영 *38) 여주대학교 방송미디어제작과 강사 진승현 **39) 호서대학교 문화예술학부 영상미디어전공 조교수 Ⅰ. 서론 한국에서 일본대중문화 개방 정책에 따라 일본영화가 정식으로 수입되어 들어온 지도 벌써 10여년이 넘었다. 한국에 소개된 일본영화를 살펴보면 기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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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Fashion Business Vol. 6, No. 5, pp.125~135(2002) The Present State of E-Business according to the Establishment Year and the Sales Approach of Dongdaemun Clothing Market Park, Hea-Ryung*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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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회 사 1965년 6월 22일 체결된 한일협정 이 48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먼저 바쁘신 가운데서 도 동북아역사재단이 개최하는 식민지책임판결과 한일협정체제의 재조명 국제학술회의 에 참석하여 주신 국내외의 저명한 석학과 귀빈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이번 국제학술회의 공동개최를 위해 노고해 주신 최승환 대한국제법학회장님을 비롯하여, 특히 귀중한 발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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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59 북로남왜 16세기 중반 동아시아 국제 질서를 흔든 계기는 북로남 왜였다. 북로는 북쪽 몽골의 타타르와 오이라트, 남왜는 남쪽의 왜구를 말한다. 나가시노 전투 1. 16세기 동아시아 정세(임진전쟁 전) (1) 명 1 북로남왜( 北 虜 南 倭 ) : 16세기 북방 몽골족(만리장성 구축)과 남쪽 왜구의 침입 2 장거정의 개혁 : 토지 장량(토지 조사)와
More information340 法 學 硏 究 第 16 輯 第 2 號 < 국문초록 > 박근혜 정부 출범이후 상설특별검사제를 도입하기 위한 논의가 국회에서 진행 중이 다. 여당과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 공약인 상설특별검사제도를 2013년 상반기 중에 도입 하기로 합의했다. 상설특검은 고위공직자비리
仁 荷 大 學 校 法 學 硏 究 第 16 輯 第 2 號 2013년 07월 31일, 339~379쪽 Inha Law Review The Institute of Legal Studies Inha University Vol.16, No.2, July 2013 상설 특별검사제 도입 법률안 시론 * 김 인 회 **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 목 차 >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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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연구 48(2014.3.30), pp.99-133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10 20년대 조선어 가정용 백과사전의 출판과 그 내용 - 강의영( 姜 義 永 )의 가뎡보감 류를 중심으로 - 1)노상호 * 국문초록 본고에서 필자는 1910년대와 1920년대에 출판된 가정용 백과사전을 분석여 20세기 초반에 조선인 여성들이 읽고 소비던 지식의 내용과 특징을
More information11민락초신문4호
꿈을 키우는 민락 어린이 제2011-2호 민락초등학교 2011년 12월 21일 수요일 1 펴낸곳 : 민락초등학교 펴낸이 : 교 장 심상학 교 감 강옥성 교 감 김두환 교 사 김혜영 성실 근면 정직 4 8 0-8 6 1 경기도 의정부시 용현로 159번길 26 Tel. 031) 851-3813 Fax. 031) 851-3815 http://www.minrak.es.kr
More information이용자를 위하여 1. 본 보고서의 각종 지표는 강원도, 정부 각부처, 기타 국내 주요 기관에서 생산 한 통계를 이용하여 작성한 것으로서 각 통계표마다 그 출처를 주기하였음. 2. 일부 자료수치는 세목과 합계가 각각 반올림되었으므로 세목의 합이 합계와 일 치되지 않는 경우도 있음. 3. 통계표 및 도표의 내용 중에서 전년도판 수치와 일치되지 않는 것은 최근판에서
More information제1절 조선시대 이전의 교육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제2장 사천교육의 발자취 제1절 우리 교육 약사 1. 근대 이전의 교육 가. 고대의 교육 인류( 人 類 )가 이 지구상에 살면서부터 역사와 함께 교육( 敎 育 )은 어떠한 형태로든 지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언제부터 이곳에서 삶을 꾸려왔는지는 여 러 가지 유적과 유물로 나타나고 있다. 그 당시 우리조상들의 생활을 미루어
More information사진 24 _ 종루지 전경(서북에서) 사진 25 _ 종루지 남측기단(동에서) 사진 26 _ 종루지 북측기단(서에서) 사진 27 _ 종루지 1차 건물지 초석 적심석 사진 28 _ 종루지 중심 방형적심 유 사진 29 _ 종루지 동측 계단석 <경루지> 위 치 탑지의 남북중심
하 출 입 시 설 형태 및 특징 제2차 시기 : 건물 4면 중앙에 각각 1개소씩 존재 - 남, 서, 북면의 기단 중앙에서는 계단지의 흔적이 뚜렷이 나타났으며 전면과 측면의 중앙칸에 위치 - 동서 기단 중앙에서는 계단 유인 계단우석( 階 段 隅 石 ) 받침지대석이 발견 - 계단너비는 동측면에서 발견된 계단우석 지대석의 크기와 위치를 근거로 약 2.06m - 면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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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지역의 합리적인 행정구역 결정방안 이 양 재 원광대학교 교수 Ⅰ. 시작하면서 행정경계의 획정 원칙은 국민 누가 보아도 공감할 수 있는 기준으로 결정 되어야 관련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들의 분쟁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모 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신생매립지의 관할에 대한 지방자치단체 간 분쟁(경기도 평택시와 충청남도 당진군, 전라남도 순천시와 전라남도 광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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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항공사와 어린이재단이 함께하는 제2회 다문화가정 생활수기 공모전 수기집 대한민국 다문화가정의 행복과 사랑을 함께 만들어 갑니다. Contents 02 04 06 07 08 10 14 16 20 22 25 28 29 30 31 4 5 6 7 8 9 10 11 12 13 15 14 17 16 19 18 21 20 23 22 24 25 26 27 2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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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사 2003년 11월 5일 수요일 제 652 호 대구대신문 창간 39주년을 축하합니다! 알차고 당찬 대구대신문으로 지로자(指걟者)의 역할 우리 대학교의 대표적 언론매체인 대구대 신문이 오늘로 창간 서른 아홉 돌을 맞았습 니다. 정론직필을 사시로 삼고 꾸준히 언로 의 개척을 위해 땀흘려온 그 동안의 노고에 전 비호가족을 대표하여 축하의 뜻을 전하 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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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9 () 11:00 ( ) 20 0 1. 6. 29 11( ).(397-1941) 1. 2. 3. 4. 5. 1. 28, 60() (,, ) 30 619(, 6. 29) () 6 (,,,,, ),,, - 1 - < > (, ), () < > - 2 - 2.,,, 620,, - 3 - 3. ( ) 1,614,, 864 ( ) 1,6 14 864 () 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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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언어학 39, 2015, pp. 283~311 한국 대중가요 가사의 문체 분석 장소원(서울대) Chang, Sowon, 2015. The stylistic Analysis of the lyrics of Korean popular song. Textlinguistics 39. The sociological approach, one of the metho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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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부 제1소위원회 (2) 충남지역(1) 부역혐의 민간인 희생 -당진군ㆍ홍성군ㆍ서산군(2)ㆍ예산군- 결정사안 1950. 9ㆍ28수복 후~1951. 1ㆍ4후퇴경 충청남도 당진 홍성 서산(2) 예산군에서 군 경에 의해 발생한 불법적인 민간인 희생으로 진실규명대상자 33명과 조사과정에서 인지된 자 151명이 희생된 사실을 또는 추정하여 진실규명으로 결정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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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록의 작품세계 윤 혜 진 1) * 이 논문은 생전( 生 前 )에 학자로 주로 활동하였던 오용록(1955~2012)이 작곡한 작품들을 살펴보고 그의 작품세계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음악이론이 원 래 작곡과 이론을 포함하였던 초기 작곡이론전공의 형태를 염두에 둔다면 그의 연 구에서 기존연구의 방법론을 넘어서 창의적인 분석 개념과 체계를 적용하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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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단 전 재 금 함 2011년 3월 5일 시행 형별 제한 시간 다음 문제를 읽고 알맞은 답을 골라 답안카드의 답란 (1, 2, 3, 4)에 표기하시오. 수험번호 성 명 17. 信 : 1 面 ❷ 武 3 革 4 授 18. 下 : ❶ 三 2 羊 3 東 4 婦 19. 米 : 1 改 2 林 ❸ 貝 4 結 20. 料 : 1 銀 2 火 3 上 ❹ 見 [1 5] 다음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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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 刑 事 判 例 硏 究 성풍속범죄에 대한 비판적 고찰 1)이 경 재* [대상판례 1] 헌법재판소 2008. 10. 30. 2007헌가17 21, 2008헌가7 26, 2008헌바21 47(병합) 전원 재판부 [판시사항] 1. 배우자있는 자의 간통행위 및 그와의 상간행위를 처벌하는 형 법 제241조(이하 이 사건 법률조항 이라 한다)의 위헌 여부(소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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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4 호 9 3 와 신시가지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면 제일 먼저 이 도시에서 언제나 활기가 넘 쳐나는 신시가지로 가게 된다. 그 중심에 는 티무르 공원이 있다. 이 공원을 중심으 로 티무르 박물관과 쇼핑 거리가 밀집돼 있다. 공원 중심에는 우즈베키스탄의 영 웅, 티무르 대제의 동상이 서 있다. 우즈베 키스탄을 여행하다 보면 어느 도시에서나 티무르의 동상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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星州 漢文學의 歷史的 展開樣相 황 위 주* Ⅰ. 머리말 Ⅱ. 高麗末 以前의 狀況 Ⅲ. 朝鮮前期 官人과 士林 Ⅳ. 朝鮮後期 道學派의 活動 Ⅴ. 19世紀 以後의 狀況 Ⅵ. 마무리 국문초록 본고는 성주라는 특정 지역의 한문학을 집중적 검토 대상으로 삼아 이 곳에서 수행된 창작 활동의 역사적 전개 양상을 보다 정밀하게 파악하고 자 하였다. 성주지역 한문학은 신라 말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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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4 3, 2001, 40, 4, pp.3-19 The Korean Journal of Physical Education, 2001, Vol.40, No.4, pp.3-19 ( ) 1980 2000,,, 4 3, 91 2, 1980,,,, 1 5, 90 1 GNP 1 95 1 5 5 IMF 5 3 IMF 5 4, IMF 8, IMF IMF 4 3 LG,,
More information목 차 국회 1 월 중 제 개정 법령 대통령령 7 건 ( 제정 -, 개정 7, 폐지 -) 1.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 1 2.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 1 3.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 시행령 일부개정 2 4. 대
목 차 국회 1 월 중 제 개정 법령 대통령령 7 건 ( 제정 -, 개정 7, 폐지 -) 1.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 1 2.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 1 3.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 시행령 일부개정 2 4. 대도시권 광역교통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일부개정 3 5.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일부개정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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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우리나라에서 퍼블리시티권(the right of publicity)보호에 관한 소견 * The Legal Protection of the Right of Publicity in Korea 계승균(KYE, Seungkyoon)**123) 목 차 Ⅰ. 서언 Ⅱ. 의의 Ⅲ. 법적성격 1. 인격권설 2. 재산권설 3. 혼합권설 Ⅳ. 각국의 사례 1.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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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3쪽 머리말 4 1. 계대 연구자료 7 가. 증 문하시랑동평장사 하공진공 사적기 7 나. 족보 변천사항 9 1) 1416년 진양부원군 신도비 음기(陰記)상의 자손록 9 2) 1605년 을사보 9 3) 1698년 무인 중수보 9 4) 1719년 기해보 10 5) 1999년 판윤공 파보 10 - 계대 10 - 근거 사서 11 (1) 고려사 척록(高麗史摭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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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에 나타난 가족가치관의 변화 : 97년부터 26년까지의 텔레비전 광고 내용분석* 2) 정기현 한신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가족주의적 가치관을 사회통합의 핵심 중의 핵심으로 올려놓았던 전통이 현대사회에서 아직 영향력을 미치는 점을 감안할 때, 한국에서의 가족변동은 사회전반의 변동으로 직결된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97년부터 26년까지 텔레비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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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I N S A G O 정답과 해설 채움 1. 마음을 나누는 삶 02 2. 효과적인 자료, 적절한 단어 11 3. 문학을 보는 눈 19 4. 보다 쉽게, 보다 분명하게 29 5. 생각 모으기, 단어 만들기 38 정 답 과 해 설 1 (1) 존중하고 배려하는 언어생활 주요 지문 한 번 더 본문 10~12쪽 01 2 02 5 03 [예시 답] 상대에게 상처를
More information?? 1990년대 중반부터 일부 지방에서 자체적인 정책 혁신 을 통해 시도된 대학생촌관 정책은 그 효과에 비자발적 확산 + 대한 긍정적 평가에 힘입어 조금씩 다른 지역으로 수평적 확산이 이루어졌다. 이? + 지방 A 지방 B 비자발적 확산 중앙 중앙정부 정부 비자발적
제1장 정책의 혁신과 확산, 그리고 변형 중국 대학생촌관( 村 官 ) 정책 사례를 중심으로 Policy Innovation, Diffusion and Transformation The case of the College-graduate as Village Official Plan in China 유은하 한신대학교 유라시아연구소 학술연구교수 ?? 1990년대
More information2 동북아역사논총 50호 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 는 일본 정부의 주장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 본 정부 군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이므로 한일청구권협정 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 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또한 2011년 8월 헌 법재판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구제에 관한 일고( 一 考 ) 1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구제에 관한 일고( 一 考 ) 김관원 /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Ⅰ. 머리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일 간 현안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공개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 등이 일본에서 희생자 보상청구 소송을 제 기한 1991년부터다. 이때 일본 정부는 일본군이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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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에 나타난 사회구조와 그 의미 23) 박유미 * 차례 Ⅰ. 문제제기 Ⅱ. 서사 내부의 사회구조 Ⅲ. 사회문제의 해결방식과 그 의미 Ⅳ. 설화와 후대전승과의 상관관계 Ⅴ. 결론 국문초록 삼국유사 의 조에는 왕거인 이야기와 거타지 이야기가 하나의 설화에 묶여 전하고 있는데, 두 이야기는 해결구조에서 차이를
More information아니라 일본 지리지, 수로지 5, 지도 6 등을 함께 검토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근대기 일본이 편찬한 조선 지리지와 부속지도만으로 연구대상을 한정하 기로 한다. Ⅱ. 1876~1905년 울릉도 독도 서술의 추이 1. 울릉도 독도 호칭의 혼란과 지도상의 불일치 일본이 조선
근대기 조선 지리지에 보이는 일본의 울릉도 독도 인식 호칭의 혼란을 중심으로 Ⅰ. 머리말 이 글은 근대기 일본인 편찬 조선 지리지에 나타난 울릉도 독도 관련 인식을 호칭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고찰한 것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부국강병을 기도하는 과정에서 수집된 정보에 의존하여 지리지를 펴냈고, 이를 제국주의 확장에 원용하였다. 특히 일본이 제국주의 확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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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ability & Employment 2011. 8. 제21권 제3호(통권 72호) pp.209~238 장애인의 직업재활을 위한 자기표현력 향상에 관한 집단미술치료 사례연구 임혜숙 서울사회복지대학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요 약 본 연구에서는 장애인의 직업재활동기를 강화시키고 지속시키는데 필요한 자기표현력 향상을 위한 집단미술치료의 영향에 관하여 사례연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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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측정을 위한 긴급강제채혈의 절차와 법리 A Study on the Urgent Compulsory Blood Collecting for Investigation of Driving while Intoxicated 양 동 철 * (Yang, Dong-Chul) < 차 례 > Ⅰ. 서론 Ⅱ. 체내신체검사와 긴급압수ㆍ수색ㆍ검증의 허용범위 Ⅲ. 긴급강제채혈의 허용범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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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3 - 274 한국문화 73 17~18 세기통제영의방어체제와병력운영 275 276 한국문화 73 17~18 세기통제영의방어체제와병력운영 277 278 한국문화 73 17~18 세기통제영의방어체제와병력운영 279 280 한국문화 73 17~18 세기통제영의방어체제와병력운영 281 282 한국문화 73 17~18 세기통제영의방어체제와병력운영 283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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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사학 제24권 제1호(통권 제49호) 2015년 4월 Korean J Med Hist 24 ː1-34 Apr 2015 c대한의사학회 http://dx.doi.org/10.13081/kjmh.2015.24.1 pissn 1225-505X, eissn 2093-5609 간호부 이정숙의 독립운동 김숙영* 1. 서론 2. 본론 1) 출생에서 정신여학교 수학시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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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사보고서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32조제1항 규정에 따라 2008년 7월 9일부터 2009년 1월 5일까지의 진실 화해를위 한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을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되었습 니다. 차례 제 3 부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사건 김세태 등에 대한 보안대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사건 11 오주석 간첩조작 의혹 사건 25 보안대의 가혹행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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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6) 20056 Korean J Med Hist 14131 Jun 2005 ISSN 1225505X ( 1897-1982) * ** 1 ( 1897-1982) ( ) 1) 3 1 ( ) 1930 1930 1930 * () ** 1) ( 2000 p 13-15) 1 141(26) 20056 1930 19 () ( ( ) () () () ) 2)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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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경준, 대한민국 검사의 민낯! ] 진경준 검사 정봉주 : 진경준 검사장 사건이 충격적인가 봐요.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얘기도 나오는 걸 보니까. 왜 그래요, 느닷 없이? 김태규 : 공수처는 여러 검찰개혁안 중의 하나였죠. 검찰의 기 소독점주의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공수처를 도입해야 한다 는 얘기가 오래 전부터 나왔고. 그런데 지금 정권이 레임 덕에 막 빠지려고
More information제34호 ISSN 1598-7566 충청감사와 갑오년의 충청도 상황 신 영 우 2015. 3. 동학학회 충청감사와 갑오년의 충청도 상황 신영우* 국문초록 이 논문은 충청감사의 시각에서 갑오년을 파악하려는 목적으로 작성한 글 이다. 지금까지 군현이나 권역 단위의 사례연구는 나왔으나 도( 道 ) 단위로 살 펴본 적은 없지만 충청도는 동학농민군의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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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으로 읽는 한국사회 서현의 빨간 도시: 건축으로 목격한 대한민국 (효형출판, 2014)를 읽고 나서 정수복(사회학자/작가) 건축 담론의 부상 의식주. 우리들의 삶은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집에 거주하는 시간들로 이루어진다. 생존을 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입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 의 존재를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좋은 공간에서 살아야
More information참고 금융분야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 1. 개인정보보호 관계 법령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령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전자금융거래법 시행령 은행법 시행령 보험업법 시행령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자본시장과
Ⅰ 가이드라인 개요 >> 금융분야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 참고 금융분야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 1. 개인정보보호 관계 법령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령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전자금융거래법 시행령 은행법 시행령 보험업법 시행령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금융지주회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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