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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종교성과 도덕성은 조화할 수 있는가? -키에르케고르와 칸트의 종교관을 중심으로- 소병철 * 목 차 1. 들어가는 말 2. 기독교적 역설의 초합리성 3. 윤리적 실존에 대한 종교적 실존의 우위 4.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5. 맺는 말 1. 들어가는 말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라는 자기반성적 질문의 역사는 철학의 탐구를 추동해 온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의 역사만큼이나 유구하 다. 무수히 많은 철학자의 뇌리에서 명멸했던 이 실천철학의 근본 질문에 대해 근대의 합리주의적 철학 정신을 대표하는 칸트와 그 대척점에 서 있던 기독교 신앙의 투사 키에르케고르는 극단적으로 상이한 각자의 대 답을 내놓는다. 칸트는 주지하다시피 보편적인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한 * 경기대학교 교양학부 조교수

398 인문과학연구 제31집 의지의 준칙만이 올바른 행위의 규준일 수 있으며, 그러한 도덕적 입법 의지는 자연적 경향성이나 신적 권위를 비롯한 일체의 외적 규정 근거로 부터 독립된 순수한 실천적 합리성의 일부분임을 역설한다. 반면에 키에 르케고르는 신과 단독으로 대면하고자 하는 실존적 개인의 근본적 무조 건적 결단을 전술한 질문의 소망스런 종착점으로 간주하며, 그러한 종교 적 결단의 초(超)합리적 성격을 강조한다. 그에게 있어서 성육신(成肉身) 과 같은 신의 기적에 관한 기독교의 근본 교리는 아무리 예리한 합리적 오성으로도 규명해 낼 수 없는 절대적 역설1)이라는 점에서 초합리적이다. 그것은 오성을 앞세워 의심하고 추궁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믿음의 모험을 감행하기로 결의한 사람에게만 계시되는 실존적 주체적 진리라는 것이다. 요컨대 오성으로 결론짓지 말고 의지로 결단하라는 것, 바로 이것이 19세기의 유럽을 풍미하고 있던 합리주의 철학에 대항하여 키에르케고르가 전개한 신앙 투쟁의 핵심적 메시지인 것이다. 이로써 키에르케고르는 사실상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 고 했던 교부 테르툴리아누스의 신앙 고백에 1,660년의 시차를 초월한 공 명을 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방식으로 그는 기독교를 오성에 동화 시키려는 모든 시도를 단호히 탄핵하고자 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전술 한 기독교적 역설을 오성의 촉수가 미칠 수 있는 개연적 지식으로 탈바 꿈시키려는 기독교 호교론의 시도를 그는 신앙의 진정성과 온전성을 훼 손하는 일종의 배신행위로 간주하며 억지로 결혼하느니 형틀에 매달리 는 게 차라리 낫겠다 2)는 말로 그러한 저항감을 표현한다. 기독교 신앙 1) 그리스어로 의견(doxa)에 반한다(para) 는 어원적 의미를 갖는 역설(paradox) 을 키 에르케고르는 평균적인 세인이 굳게 신봉하는 오성의 판단을 거스르는 초합리적 신념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2) Sǿren Kierkegaard, 1985 Philosophical Fragments, ed. and trans. by Howard V. Hong and Edna H. Hong(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p.3. 이것은 원래 셰익스피어의 희 극 십이야(十二夜) 의 1 막 5장에 나오는 말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이 말에 비장감을 더함으로써 당대의 유력한 사상적 경향이었던 합리주의 철학과 기독교의 야합을 결 단코 거부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른바 창조과학 과 같은 현대 기독교계의 조류는 그러한 억지 결혼의 가장 굴욕적인 실례일 것이다.

종교성과 도덕성은 조화할 수 있는가? 소병철 399 의 합리화를 위한 전통적 신 존재 증명의 세 가지 근거 (우주론적, 목 적론적, 존재론적 근거)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그의 강한 반대에 부딪힌다. 무조건적 순종과 섬김과 사랑의 대상인 신을 오성의 법정에 세워 놓고 그의 존재 여부를 심문하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믿는 한 사람이 그 사랑의 타당성을 냉정한 관찰자의 견지에서 객관적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세 가지 근거에 의해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 거나 변호하고 싶다는 생각을 꿈에서라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명백하지 않은가? 왜냐하면 그는 모든 근거와 모든 변론 이상의 어떤 존재이기 때문이 다. 그는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근거를 들어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거나 변호하 는 사람은 모두 실제로는 사랑하지 않는 자이다. 그런 사람은 다만 사랑에 빠진 척할 뿐이며, 불행히도-아니면 다행스럽게도-너무나 어리석은 탓에 자신이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고발하는 것일 따름이다. 3) 이는 기독교적 신앙의 본성을 이해하는 하나의 전형적인 방식을 예 시해 준다. 키에르케고르에게 있어서 신앙은 영원한 신의 진리에 참여적 으로, 그리고 책임 있게 자기를 던지는 실존적 자기실현의 행위이다. 따라서 그것은 객관적 보편적 타당성을 추구하는 오성의 눈으로 보면 역설이요 부조리일 뿐인 것을 영원한 최상의 진리로 받아들이겠다는, 유일무이한 실존의 초합리적 결단에서 나온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기 독교적 신앙은 오성의 합리적인 추궁을 결정적으로 따돌리는 하나의 의 지적 비약 임이 드러난다.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입장은 신을 순수한 실천이성에 의해 요청된 이념으로 보는 칸트의 종교철학적 입장과 첨예한 대립 관계에 있다. 칸 트는 이성적 존재가 지닌 도덕성의 요청에 부응하는 종교만이 참된 종 3) Sǿren Kierkegaard, 1983, The Sickness unto Death: A Christian Psychological Exposition for Upbuilding and Awakening, ed. and trans. by Howard V. Hong and Edna H. Hong(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p.104

400 인문과학연구 제31집 교일 수 있다는 합리주의적 입장을 고수한다. 그에 따르면 선한 품행 이외에 인간이 신의 뜻을 받들기 위해 할 수 있다고 믿는 모든 것은 신 에 대한 종교적 망상이요 잘못된 섬김일 뿐이다. 4) 더욱이 이러한 이성 의 도덕적 자율에 대한 신념을 유한한 인간의 가소로운 오만으로 치부 하며 이성에 대하여 경솔하게 전쟁을 선포하는 종교는 끝내 이성을 당 해 내지 못할 것 5) 이라고 한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종류의 윤리적 자기결정을 그리스도인이 되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극복해야만 하는 과도기적 실존 단계로 간주함으로써 윤리적 실존에 대한 종교적 실존의 우위를 확립하려고 한다. 그가 이상화한 기독교적 실존은 유한 한 존재인 인간이 영원하며 무한한 존재인 신을 자기 삶의 완성을 위한 의지처로 조건 없이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유한성을 초극해 나가는 실 존의 가장 높은 단계이다. 삶의 완성을 위한 이 두 처방, 즉 키에르케고르의 종교성과 칸트의 도덕성은 과연 조화할 수 있는가? 키에르케고르적 신앙과 칸트적 이성 은 얼마만큼 양립 가능한가? 논자는 이 글에서 이 두 처방의 의의를 비 교 대조하는 방식으로 이 질문에 대답해 보려고 한다. 도덕적 최고선 의 성취를 보증해 줄 전능한 도덕적 입법자의 존재를 요청하는 칸트적 합리주의는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라는 한 가지 양립 방식을 암시 하지만, 키에르케고르는 분명 이러한 종류의 조화를 오성에 대한 기독 교 신앙의 치욕적 투항으로 간주하며 혐오해 마지않을 것이다. 결국 칸 트와 키에르케고르의 처방은 각자의 합리주의적 종교적 급진성을 버리 지 않는 한 이론적 실천적 조화의 전망을 갖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 다. 논자는 이러한 절대적 차이를 규명하기 위해 이하에서 키에르케고 르의 기독교적 역설과 종교적 실존의 우위에 관한 관점을 검토한 다음 4) Immanuel Kant, 1983, 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ssen Vernunft, in: Kant Werke Ⅶ, hrsg. von Wilhelm Weischedel(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Darmstadt) S.842 5) Immanuel Kant, 1983, Ibid., S.657

종교성과 도덕성은 조화할 수 있는가? 소병철 401 칸트가 제안한 이성적 종교의 개념을 개관할 것이다. 이러한 검토의 과 정에서 키에르케고르와 칸트는 신앙과 이성, 종교성과 도덕성의 근본적 원 칙적 이질성을 현시한 철학사적 실례였음이 드러날 것이다. 2. 기독교적 역설의 초합리성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기독교적 역설의 핵심은 한마디로 영원의 역사 화에 있다. 단적으로 말해 본성상 영원한 것이 시간 속에서 나타나, 태어 나고 성장하고 죽는다는 것-이것은 모든 사유와의 단절인 것이다. 6) 하 지만 영원한 신이 유한한 인간의 몸으로 탄생과 성장과 죽음의 시간을 맞이했다는 이 역설을 인간의 오성은 부조리한 언어도단으로 간주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영원 은 시간 의 절대적 타자이기 때문이다. 세속 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연속인 반면 영원은 본질적으로 항상 현재다. 따라서 영원한 신은 일정한 시작과 끝을 가진 모든 유한한 존 재와 달리 어떠한 생멸의 시간성으로부터도 독립되어 있다. 그러한 신 이 사람의 아들 예수로 역사화되었다는 것, 영원한 본질이 유한성의 결 정적 표지인 생멸의 변증법 속으로 돌입하게 되었다는 것은 오성이 사 유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부조리일 뿐이다. 그것은 오성이 스스로의 힘으로 넘어설 수 없는 한계인 것이다. 오성이 마주한 이 한계 너머에 는 알려지지 않은 것(the unknown) 이 있을 뿐이며, 이것이 알려지지 않 는 이유는 절대적으로 다른 것(the absolutely different) 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알려지지 않은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오성이 계속해서 다다 르게 되는 한계이다 그러나 그것은 알아볼 만한 표지가 없는, 절대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렇게 절대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정의하고 나면 그것의 비밀 6) Sǿren Kierkegaard, 1941, Concluding Unscientific Postscript, trans. by David F. Swenson and Walter Lowrie(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p.513

402 인문과학연구 제31집 이 금방이라도 드러날 것 같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오성은 절 대적으로 다른 것을 사유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7) 역설이 오성적 인식의 피안에 존재하는 부조리요 초합리인 이유는 이와 같은 역설의 절대적 차이성 에 있다. 이 때문에 오성은 역설을 아 무리 사유하려 해도 사유할 수 없으며,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다.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전심전력으로 이해하려는 데서 생기는 오성의 절망적 무력감을 키에르케고르는 분노(offense) 라고 부 른다. 그에 따르면 이 분노는 오성이 이해를 목적으로 불가해의 역설에 저항할수록 깊어져 갈 뿐이다. 이러한 연유로 분노한 사람은 절망한 채 주저앉아 고통 속에서 역설을 거지꼴로 망연자실 바라보거나 아니 면 비웃음으로 무장한 채 먼 거리에서 화살을 겨누듯 지성의 화살로 역설을 겨냥하게 8) 된다. 그러나 분노한 오성의 악다구니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오성의 분노란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영원한 최상의 진리인 역설의 반향일 뿐이다. 분 노는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역설에 의해 이해된다. 분노 속 에서 메아리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역설의 진리인 것이다. 그러한 의 미에서 분노는 역설이 옳다는 것에 대한 간접적 시험으로 간주될 수 있 다. 왜냐하면 분노는 오산(erroneous accounting)이며, 역설을 밀쳐 내는 비 진리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분노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본성에 따라서 말하지 않고 역설의 본성에 따라서 말한다. 9) 단적으로 말해 분노에는 역설을 받아들이라는 역설 자체의 도전적 요청이 잠복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을 참을 수 없는 부조리로 경험하는 오성은 그러한 요청 에 반발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식할 수 없는 대상을 제거하려는 것이 오성 특유의 인지적 정열이기 때문이다. 오성은 아무리 해도 역설 7) Sǿren Kierkegaard, 1985, Philosophical Fragments, p.44 8) Sǿren Kierkegaard, 1985, Ibid., p.50 9) Sǿren Kierkegaard, 1985, Ibid.

종교성과 도덕성은 조화할 수 있는가? 소병철 403 을 이해할 수는 없고 역설이 역설임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며, 그러한 역설의 역설성에 분노할 뿐이다. 따라서 오성은 신과 인간을 매개할 능 력도 자격도 없다. 이러한 연유로 키에르케고르는 역설의 진리에 다가 서도록 인간 실존을 인도할 내면의 모험적 정열을 필요로 하는데, 이것 이 바로 오성이 아닌 의지의 행위로서의 신앙이다. 신앙은 역설의 초합 리성에 상응하는 의지의 초합리적 비약에서 나온다. 그것은 오성의 반 발을 무릅쓰며 합리적으로 근거지을 방법이 없는 종교적 부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행복한 정열 의 소산이다.10) 신앙이란 한마 디로 사유할 수 없는 것에 직면한 사유의 정지인 것이다. 이것이 함의하는 바는 신앙이 합리적이지 않은 것에 인생이라는 판 돈을 거는, 모험적이고 무조건적인 투기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기 독교적 역설의 진리가 믿는 자에게만 계시된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그 러한 자신의 믿음을 합리화할 필요가 없다. 그는 그저 믿으면 된다. 오 성의 매개는 신앙의 처녀성을 훼손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참되고 올바 른 신앙은 철저히 자기지시적(self-referential)이다. 그것은 오성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수록, 역설적일수록 더 큰 진정성과 온전성을 확보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창세기 22장에 나온 아브라함과 이삭 이야기11)의 재해 석을 통해 그러한 신앙의 실존적 의의를 극적으로 표현한다. 이 이야기 에서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의 역설적 명을 충실히 받드는 신앙의 기사 로 등장한다. 그에게 있어서 신앙은 곧 순종이요, 순종은 인간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모든 개념을 무시하며 오직 하느님의 말씀에만 귀기울이겠다는 단호한 결의에서 나온다.12)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인간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오 성적 자만의 전형으로 윤리적 자율의 개념이 지목되고 있다는 것이다. 10) 이에 관해서는 Sǿren Kierkegaard, 1985, Ibid., p.54, p.59 참조. 11) 이에 관해서는 The Reader s Digest Association(ed.), 1982, The Reader s Digest Bible(서광 선 김이곤 譯, 1987 리더스 다이제스트 성서 (동아출판사, 서울)) 30 31쪽 참조. 12) 이에 관해서는 Sǿren Kierkegaard, 1983, Fear and Trembling; Repetition, ed. and trans. by Howard V. Hong and Edna H. Hong(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참조.

404 인문과학연구 제31집 오성적 합리성을 옹호하는 평범한 사람의 윤리적 확신은 당연히 아브라 함의 순종을 비합리적이고, 타율적이며, 광신적이기까지 한 행동으로 치 부하겠지만,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적인 갈등과 번민의 시간을 고독한 신 앙 하나로 이겨 낸 뒤 자기 손에 죽임을 당할 아들과 함께 시험의 땅 모리아 산을 찾아가던 아브라함의 결의에 찬 여정에서 일체의 윤리적 실존을 능가하는 종교적 실존의 가장 순수한 표현을 발견한다. 그렇다 면 이러한 종교적 실존의 우위가 의미하는 바는 정확히 무엇일까? 이제 부터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서 보자. 3. 윤리적 실존에 대한 종교적 실존의 우위 전술한 것처럼 창세기의 아브라함은 도덕적으로 정당한 선택을 하겠 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아들을 하느님의 제단에 데려간 것이 아니라 그 렇게 하라는 것이 하느님의 명령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이행코자 한 것이다. 그러한 행동을 촉발시킨 그의 내면의 동기는 오로지 그 자 신과 그에게 소중한 것들을 하느님께 진지하고 책임 있게 바치려는 것 뿐이었다. 요컨대 그는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를 묻는 내면의 자 성적 도전에 도덕성이 아닌 종교성으로 반응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는 그가 믿는 하느님의 뜻이야말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지를 결정하는 궁극적 기준이며, 하느님을 믿는 신민의 유일한 책무는 왕이신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자신의 삶을 오롯이 바치는 것이다. 키에 르케고르는 아브라함의 선택에 내포된 그러한 헌신성이야말로 종교적 실존이 윤리적 실존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보여 주는 최적의 종교적 은 유라고 생각한 듯하다. 이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우선 종교성의 안티테제를 이루는 세 속적 도덕성의 본질에 대한 그의 이해를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당대의 합리주의적 도덕성 개념이 지닌 두 가지 핵심적 특징으로 보편

종교성과 도덕성은 조화할 수 있는가? 소병철 405 성 과 내재성 을 들며 특별히 이에 주목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윤리 적인 것은 그 자체로 보편적인 것 이며, 그 자체에 내재해 있다. 13) 윤 리적인 것이 보편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보편적인 것으로서 모든 사람 에게 모든 시간에 적용된다 14) 는 것을 의미한다. 윤리의 보편성에 대한 그의 이와 같은 이해는 어떠한 정황적 특수성에도 구애됨이 없이 모든 시간, 모든 장소의 모든 이성적 존재에게 무조건적 의무를 부과하 는 칸트적 정언명법의 개념과 대체로 부합한다. 여기에서 모든 이성적 존재 에는 신 또한 포함된다는 점을 유념해야만 한다. 윤리의 내재성에 대한 그의 이해 역시 순수한 실천이성의 자율에 관 한 칸트의 도덕철학적 개념과 대체로 부합한다. 그에 따르면 윤리적인 것이 그 자체에 내재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자기 외부의 목적(telos)을 갖지 않으며, 오히려 그 자체가 자기 외부의 모든 것을 위한 목적 15) 이 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의미의 내재성 은 감각적 경향성이나 신의 명령과 같은 의지의 외재적 규정 근거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자 기 행동의 원칙을 입법하는 칸트적 이성 존재(Vernunftwesen)의 자율성 과 사실상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16) 칸트의 잘 알려진 언명에 따르면 이 세상 안에서건 이 세상 밖에서건 무조건적으로 선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선의지밖에 없다. 17) 인간 의지의 바람직한 규정 근거 는 세상 안의 경향성도 세상 밖의 신도 아닌 순수 실천이성 그 자체라 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따르면 신 또한 이성적 존재인 한에서 자의 13) Sǿren Kierkegaard, 1983, Ibid., p.54 14) Sǿren Kierkegaard, 1983, Ibid. 15) Sǿren Kierkegaard, 1983, Ibid. 16) 주지하다시피 칸트는 정언명법의 이성적 기원에 관한 이러한 생각을 이성의 사실 (Faktum der Vernunft)로서의 도덕성 이라는 개념으로 압축하여 표명한 바 있다. 이에 관해서는 Immanuel Kant, 1983,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in: Kant Werke Ⅵ, hrsg. von Wilhelm Weischedel(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Darmstadt) S.140 2, S.155, S.161 참조. 17) Immanuel Kant, 1983,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in: Kant Werke Ⅵ, hrsg. von Wilhelm Weischedel(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Darmstadt) S.18

406 인문과학연구 제31집 (恣意)와 구별되는 선의지를 가져야만 한다.18) 이성적 행위자인 인간의 도덕적 독립성과 자율성을 이론적으로 확보하는 작업에 주력했던 칸트 는 그러한 이유로 아브라함의 선택을 세상 밖의 외재적 권위에 의존하 여 수행된 타율적 행동의 전형으로 간주한다. 그리하여 그는 아브라함 의 시련 속에서 파괴되어 버린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인간의 의무 의 회복을 희구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브라함은 신의 것으로 추정된 그 목소리에 다음과 같이 회답했어야만 한다: 제가 저의 선한 아들을 죽이지 말아야만 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 지만 저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신 당신이 정녕 신이라는 것을 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 목소리가 설령 (눈에 보이는) 하늘에서 들려온 것이라고 해 도 그것을 확신할 수 없기는 매한가지입니다. 19) 도덕철학을 신학의 종속변수로 만들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단호히 반 대했던 칸트는 이러한 말로써 자신이 강조해 왔던 이성적이고 자율적이 며 내재적인 도덕성의 개념을 완곡히 재천명한 셈이다. 그러나 키에르 케고르가 추구한 것은 바로 이러한 도덕성의 차원을 신앙으로 넘어서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윤리적인 것의 요구가 하느님의 자유를 제약할 정도로 보편적이며 내재적일 수 있다는 점을 아무리 해도 인정할 수 없 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보편적이며 내재적인 도덕성으로 무장한 채 윤리적 실존의 단계에 고집스럽게 머물러 있는 사람에게 신이란 보이지 않는 소멸점(vanishing point)이요 무력한 사상일 뿐이다. 다시 말해 신의 권능은 실존의 전부를 차지하는 윤리적인 것 안에만 존재할 뿐이다. 20) 18) 선한 어떤 것이 있어서 신이 선의지로 그것을 하라고 명령한 것인가, 아니면 신이 무조건 하라고 명령한 것이 선한 것으로 규정된 것인가? 칸트의 입장은 당연히 전자 이다. 만약 후자라면, 선과 악은 신의 기분이나 정념에 좌우되는 지극히 임의적인 것이 되고 만다. 19) Immanuel Kant, 1983, Der Streit der Fakultäten, in: Kant Werke Ⅸ, hrsg. von Wilhelm Weischedel(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Darmstadt) S.333 20) Sǿren Kierkegaard, 1983, Fear and Trembling; Repetition, p.68

종교성과 도덕성은 조화할 수 있는가? 소병철 407 그러나 아브라함의 경우는 이와 전혀 다른 실존의 양상을 보여 준다. 그의 신앙은 자율적인 의지를 과감히 포기하고자 하는 초의지적 의지를 구현함으로써 키에르케고르가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보류(teleological suspension of the ethical) 라고 이름한 새로운 실존 단계의 이념형을 현 시한다.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보류란 윤리적인 것의 모든 요구가 윤 리의 영역을 초월한 영원의 목적 아래에서 자격을 정지당한 상태를 말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자신의 윤리적 의지를 초윤리적 목적으로서의 하느님께 자발적으로 복속시킨 아브라함은 보편주의적이고 자기충족적 인 세속의 도덕성에 신앙의 깃발로 정지 신호를 보낸 신앙의 기사 의 전형으로 자리매김된다. 한마디로 그는 자신의 행위로 윤리적인 것을 완전히 넘어서서 윤리적인 것의 외부에 더 높은 목적을 갖게 된 것이 요, 이 목적과 관련하여 윤리적인 것을 보류하게 된 것이다. 21) 이로써 그는 비로소 다음과 같은 초윤리적 신앙 고백에 당도하게 된다. 나는 [나의 부모와 아내와 자녀를] 다양한 방식으로 많이 사랑한다. 그러 나 내가 믿는 그 분이 나에게 그것을 요구하신다고 하면 나는 내가 믿는 그 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할 수 있는 것이다.22) 이러한 실존 양식의 전환은 칸트와 같은 합리주의적 철학자를 사로잡 았던, 강력하고 검질긴 오성적 자의식을 중대한 실존적 결단의 순간에 무력화함으로써 완성된다. 칸트는 인간 의지의 이성적 자기규정을 옹호 함으로써 인간을 인간이 지키며 따르게 될 도덕법칙의 자율적인 입법자 로 옹립한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가 옹호하는 신앙의 견지에서 볼 때 21) Sǿren Kierkegaard, 1983, Ibid., p.59 22) Sǿren Kierkegaard, 1994, Christian Discourses: The Crisis and a Crisis in the Life of an Actress, ed. and trans. by Howard V. Hong and Edna H. Hong(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p.243: 이승구, 2005 합리주의적 윤리와 신앙의 윤리의 관계: 두려 움과 떨림 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시련을 중심으로, 한국키에르케고어학회 編, 키 에르케고어에게 배운다 (철학과현실사, 서울) 186 쪽에서 재인용.

408 인문과학연구 제31집 인간이 스스로를 스스로 만든 법에 구속시키는 행위란 엄밀히 말해서 윤리적 합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종교적 불법에 불과한 것이다. 왜냐하 면 그것은 신의 법을 무시하며 인간의 법을 절대시하는 오성적 오만의 소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당신에게 해가 되는데도 불구 하고 당신이 아주 꼭 쥐고 있는 자율적 의지를 구원의 결정적 관문인 신앙에 복속시킬 것을 권면하며, 우리가 신속히 자신의 의지를 버리는 것만큼 그만큼 더 빨리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23) 이라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키에르케고르가 주장하는 윤리적 실존에 대한 종 교적 실존의 우위 는 증명되었는가? 그의 입장에 대한 지금까지의 분석 에 비추어 보면 어떠한 증명 도 제시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증명이란 오성의 일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순교 를 오성의 십자가 처형 으로 이해하는 그에게 있어서 모든 종류의 오성적 자기확신은 인간 실존의 진정한 종교적 비약을 가로막는 오만의 족쇄일 뿐이다. 따라서 만약 그가 신앙의 합리성을 증명 하지 않고 신 앙의 당위성을 강변 했을 뿐이라는 이유로 그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면, 그는 그러한 사람을 오성의 포로 로 낙인찍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론적으로 그의 사상의 알파와 오메가는 기독교 신앙의 초합리적 자 기준거적 순결성을 오롯이 지켜 내려는 그의 남다른 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인간의 합리성이 긍정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언명에서도 잘 확인된다. 그러나 신앙의 요새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상(a world to itself)이다. 그리 고 그것은 그 안에 삶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으로부터 주어지는 도움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런 것들이 이 신 앙의 요새에게 가장 해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을 주변 세상과의 모든 연 관성과 철저히 단절시켜라. 그렇게 하면 할수록 신앙의 삶은 더 풍성해질 것 이다. 그리고 이 요새 안에서는 신앙으로 순종의 삶을 사는 것이다. 24) 23) Sǿren Kierkegaard, 1994, Ibid., pp.84 5: 이승구, 2005 위 논문, 182쪽에서 재인용.

종교성과 도덕성은 조화할 수 있는가? 소병철 409 4.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그렇다면 칸트는 어떤가? 칸트의 종교철학은 도덕성을 종교성에 복 속시키려고 했던 키에르케고르의 경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노선을 걷 는다. 이 노선은 한마디로 종교성을 도덕성의 보완물로, 신을 순수한 실 천이성의 요청 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회페는 칸트의 종교철학은 그의 도덕철학 전개의 지속 25)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칸트 의 경우에 도덕이 종교로부터 독립된 것을 넘어 도덕이 실천이성의 요 청을 매개로 종교적 신앙에 버팀목을 제공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칸트는 합리주의적인 성격의 도덕신학 으로 신에 대한 믿음에 신학적 근거가 아닌 도덕적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는 것 이다. 이 점은 순수한 도덕적 입법이 모든 참된 종교 일반에 불가 결한 조건일 뿐만 아니라 참된 종교 자체를 본래적으로 형성하는 것이 기도 하다 26)는 그의 언급에서도 확인된다. 칸트의 신 개념은 이처럼 자율적인 도덕성의 필연적인 요청으로서 정립된 것이며, 그런 한에서 그가 철학적 신학과 성서 신학, 이성 신앙과 교회 신앙, 자연 종교와 계 시 종교의 합의점으로 받아들인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는 도덕의 토대가 아니라 결과로서 제시된 것임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 하다. 그는 인간이 단순한 이성의 사용으로 그러한 종교에 자연스럽게 도달할 수 있고 또 도달해야만 한다 27)는 말로 그러한 논리적 선후 관 계를 표현한다. 그렇다면 그는 어떠한 논증적 매개로 도덕과 신을 연결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는 인간의 도덕적 완전성에 관한 이상과 이에 상응하는 행복에 관한 이상을 결합한 최고선 의 개념 속에서 발견될 수 24) Sǿren Kierkegaard, 1994, Ibid., p.87: 이승구, 2005 위 논문, 172 쪽에서 재인용. 25) Otfried Höffe, 1994 이성적 자기성찰의 여정, Otfried Höffe(Hrsg.), 1994, Klassiker der Philosophie(이엽 외 譯, 2001 철학의 거장들 3 (한길사, 서울)) 53 쪽 26) Immanuel Kant, 1983, 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ssen Vernunft, S.764 27) Immanuel Kant, 1983, Ibid., S.824

410 인문과학연구 제31집 있다. 그에 따르면 최고선을 세계 내에 실현하는 것은 도덕법칙에 의 하여 규정될 수 있는 의지의 필연적인 목표이다. 28) 여기에서 최고선의 성취를 위한 최상의 조건으로 칸트가 지목한 것은 인간의 심성이 도덕 법칙에 완전히 조응하는 상태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덕적 완전성은 유 한한 이성적 존재인 인간이 유한한 세속의 삶에서 도달할 수 없는 신성 의 경지이므로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려는 끝없는 노력이 육체의 사후에 까지 계속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선결 조건이 요청되는데, 이 것이 바로 영혼의 불멸이다. 이러한 끝없는 전진은 동일한 이성적 존재의 실존과 인격성이 영원히 지 속된다는 전제(이것을 사람들은 영혼의 불멸이라고 부른다) 하에서만 가능하 다. 그러므로 최고선은 영혼의 불멸이라는 전제 하에서만 실천적으로 가능하 다. 따라서 영혼의 불멸은 도덕법칙과 불가분하게 결합된 것으로서 순수한 실천이성의 요청인 것이다. 29) 그러나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함양된 최상선으로서의 완전한 도덕성 에 행복이 필연적으로 수반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복할 자격(Glückwürdigkeit) 과 행복(Glückseligkeit) 의 불일치가 극복된 바로 그 때에야 비로소 명실상부한 완전선으로서의 최 고선이 실현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칸트는 인간의 선 악에 비례하여 행불행을 할당할 도덕적 세계 질서와 그 구심으로서의 신의 존재를 영혼의 불멸에 이어서 요청하게 된다. 여기에서 신이 각자 에게 응분의 행불행을 할당할 권능을 가진 전능한 이성적 존재 여야 함 은 물론이다. 행복을 필요로 하며 행복할 자격도 있으면서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은 동시에 모든 힘을 가진 이성적 존재-우리는 그러한 존재를 시험 삼아 생각해 볼 수 있 28) Immanuel Kant, 1983,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S.252 29) Immanuel Kant, 1983, Ibid.

종교성과 도덕성은 조화할 수 있는가? 소병철 411 을 뿐이지만-의 완전한 의도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그런데 덕과 행복이 하나 의 인격 안에서 최고선의 소유를 함께 결정하며, 행복이 (인격의 가치요 행복할 자격인) 도덕성에 정확히 비례하여 분배되는 방식으로 양자가 가능한 세계의 최 고선을 함께 형성한다면, 이러한 최고선은 전체, 즉 완전선을 의미한다. 30) 칸트는 이처럼 순수한 실천이성의 도덕적 이상으로 이해된 최고선의 개념을 매개로 종교에 도달한다. 그에 따르면 덕과 행복의 일치로서의 최고선은 신의 현존을 조건으로 해서만 실현되기 때문에 신이 현존한 다는 전제를 의무와 불가분하게 결합한다. 다시 말해 신의 현존을 가정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필연적인 일이다. 31) 이와 같은 방식으로 도덕적 인 현존을 얻게 된, 실천이성의 요청 으로서의 신은 신성하고 선량한 세계 창조자 요 도덕적으로 완전한 동시에 전능한 의지 32) 이다. 또 한 신은 이상적 인격(전권을 위임받은 양심의 심판자) 33) 이요 도덕적 세계 지배자 34) 이다. 나아가 이러한 신의 지배를 받는 윤리적 공동체는 신의 명령에 종속된 국민, 즉 신의 국민으로, 그것도 덕의 법칙을 따르 는 국민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35) 칸트는 이와 같은 도덕적 이성 신 앙의 요체를 다음과 같은 간명한 테제로 정식화한다. 실천이성의 이러한 요구에 맞는, 보편적이고 참된 종교적 신앙은 1) 전능 한 천지 창조자요 도덕적으로는 신성한 입법자인 신에 대한 믿음이고, 2) 인 류의 보호자요 선량한 통치자요 도덕적 부양자인 신에 대한 믿음이며, 3) 그 자신의 신성한 법칙의 주재자요 정의로운 심판자인 신에 대한 믿음이다. 36) 30) Immanuel Kant, 1983, Ibid., S.238 9 31) Immanuel Kant, 1983, Ibid., S.256 32) Immanuel Kant, 1983, Ibid., S.261 33) Immanuel Kant, 1983, Metaphysik der Sitten, in: Kant Werke Ⅶ, hrsg. von Wilhelm Weischedel(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Darmstadt) S.574. 바로 이 점에서 칸트 는 신은 모든 의무 일반이 그의 명령으로도 간주될 수 있는 그러한 인격 (Immanuel Kant, 1983, Ibid.)으로 상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34) Immanuel Kant, 1983, 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ssen Vernunft, S.758 35) Immanuel Kant, 1983, Ibid.

412 인문과학연구 제31집 여기에서 다시 한 번 강조되어야 할 점은 신의 심판에 의한 행불행 의 할당이 도덕의 자율성을 손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칸트의 경우 에 도덕의 근거는 시종일관 자체의 힘만으로 의지를 규정하기에 충분한 이성의 사실 로서의 정언명법에서 찾아진다. 따라서 우리가 의무를 의 무로서 다하겠다는 도덕적 자의식이 아니라 처벌을 피하거나 보상을 얻 겠다는 동기에서 외적으로만 의무에 부합하는 행동을 했을 경우 이 행 동은 어떠한 도덕적 가치도 가질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은총을 입겠다는 동기에서 신을 만족케 할 만한 선행을 하는 것 또한 기회주의적인 성격 을 갖는 계산적 도구적 합리성의 소치일 뿐이며, 나아가서는 스스로에 게 솔직하지 않은 사이비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인간 의 도덕성을 근거짓는 데에는 신이 주관하는 행불행에 관한 어떠한 종 교적 이념도 필요치 않다. 신으로부터 행복을 하사받기 위해 도덕적으 로 행동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도리어 도덕의 순수한 본래 의의를 손상 할 뿐이다. 행불행을 할당할 신의 심판대에 외관상의 행동이 아닌 내면 의 심성으로서의 양심이 올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선량한 양심을 가장할 수도 있는 외관상의 행동과 달리 양심 그 자체는 신의 면전에서 자신의 행동의 결과로 이행해야만 할 책임의 주관적 원리 37) 인 것이다. 따라서 최고선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그 자체로 중요한 유 일의 목표는 의지와 도덕법칙이 완전히 일치하는 최상선의 경지에 도달 하는 것이다. 행복은 인간에게 만족을 주지만 그 자체로 선한 것은 아 니기 때문에 인간은 행복을 바랄 자격 으로서의 최상선을 최우선의 목 표로 삼고 추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최고선의 개념에는 나 자신의 행복 또한 포함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 고 최고선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인도되는 의지의 규정 근거는 행복이 아니 라 도덕법칙이다. (도덕법칙은 오히려 행복에 대한 나의 무한한 욕망을 엄격 36) Immanuel Kant, 1983, Ibid., S.806 7 37) Immanuel Kant, 1983, Metaphysik der Sitten, S.574

종교성과 도덕성은 조화할 수 있는가? 소병철 413 히 제한한다.) 그러므로 도덕은 본래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에 관 한 가르침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행복을 누릴 자격을 갖게 되는가에 관한 가 르침이다. 따라서 종교가 도덕에 부가될 때에만 비로소 언젠가는 우리가 행 복할 자격을 얻으려고 노력한 만큼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생기는 것이다. 38) 이러한 언급은 또한 도덕적 최고선의 개념에 내포된 종교적 관점의 바람직함 과 그것의 진리 여부 가 별개의 문제임을 암시한다. 선한 사람 에게 행복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 불행을 줄 도덕적 심판자로서의 신에 관한 명제들은 행복 과 행복할 자격 의 일치를 바라는 우리의 소망을 대 변하지만, 이러한 소망의 절실한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그러한 명 제들의 진리 를 확증 하지 않고 요청 할 뿐이다. 바로 이 점에서 그러한 명제들은 인지적인 설득력이 아니라 도덕적인 설득력을 갖는다. 이처럼 칸트는 도덕과 종교의 관계를 다루는 이론의 지형구(地形球) 상에서 키에르케고르의 정확한 대척점에 서 있다. 그는 키에르케고르가 내세운 종교성의 우위를 도덕성의 우위로 교정한다. 따라서 그의 철학 적 신이 갖는 보편적 권위는 순수한 실천이성이 본래적으로 지닌 도덕 적 권위를 결코 초월하지 않는다. 이 점은 종교에 대한 그의 정의에 그 대로 드러난다. 그에 따르면 종교란 우리의 내면에 있는 법칙이 입법 자요 심판자인 한 존재를 통하여 우리에 대한 구속력을 유지하게 되는 한에서의 바로 그 법칙이다. 다시 말해 종교는 신에 대한 인식에 적용 된 도덕인 것이다. 39) 이러한 정의에 따라 신의 본성 또한 도덕적 요구 의 범위 내에서 정해지게 되며, 이로써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가 비로소 합리적인 성격의 전체 윤곽을 드러내게 된다. 38) Immanuel Kant, 1983,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S.261 39) Immanuel Kant, 1983, Über Pädagogik, in: Kant Werke Ⅹ, hrsg. von Wilhelm Weischedel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Darmstadt) S.755 6

414 인문과학연구 제31집 신 자신(신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다. 오히 려 신이 도덕적 존재인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러 한 [도덕적] 관계에 맞추어 신의 본성을 생각하고 가정해야만 한다. 신은 (예컨 대 불변의 존재요 전지전능한 존재로서) 자신의 의지를 실행하는 데 요구되는 전체적 완전성 속에서 그러한 관계를 이루는 데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 러한 관계가 없다면 우리는 신에 관하여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다. 40) 5. 맺는 말 논자는 지금까지 키에르케고르의 초합리적 신앙에 관한 옹호론과 칸 트의 철학적 이성 신앙에 관한 옹호론을 종교와 도덕의 관계에 관한 양 자의 시각에 역점을 두고 차례로 살펴보았다. 칸트의 이성의 한계 안에 서의 종교 는 종교의 이상과 열망을 우리의 현실적 생의 연장선상에 놓 고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합리적 관점을 제공한다. 그에게 있어서 종 교란 모든 이성적 존재에게 이성으로부터 부과된 보편적 상호 존중의 의무가 이행되도록 독려하기 위한 이성 자체의 요청 이다. 그것은 왜 우리는 신을 믿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도덕적 세계 질서의 유일한 상징적 보장자가 신이므로! 라고 대답한다. 반면에 키에르케고르는 그러한 칸트적 이성 신앙을 오성의 준동으로 획책된 억지 결혼 의 대표적 사례로 여길 것이 틀림없다.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라는 술어는 이미 이성 과 종교 의 심상찮은 동거를 직 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키에르케고르는 초합리적 역설을 근간으로 하는 기독교 신앙을 이성적 사유의 연장선상에 올려놓기를 결단코 거부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한히 자유로운 신을 협애한 오성의 행동반경 안에 유폐하여 인간의 도덕적 의지에 굴복시키고 길들이는 독신적 처사 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는 왜 우리는 신을 믿어야 하는가? 라 40) Immanuel Kant, 1983, 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ssen Vernunft, S.806

종교성과 도덕성은 조화할 수 있는가? 소병철 415 는 질문 자체를 사실상 금하고 있는 셈이다. 왜? 에 담긴 오성의 도전 이 신앙의 무조건적 순교 의지를 교란시킨다고 여기는 한 그는 그 도전 을 단호히 기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 는 신앙 고백은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 이 성의 유한성을 자각한 사람이 느끼는 절망감의 가장 숭고한 승화로 간 주될 수도 있다. 시스티나 성당의 프레스코화가 그것을 바라보는 신앙 인과 비신앙인 모두에게 전하는 전율과 감동은 그림 속에 표현된 서사 의 합리적 설득력이 아니라 그것의 숭고한 상징성과 초시대적 아우라에 기인한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숭고한 정서적 의의를 갖는 종교 역시 합리적 윤리와의 접점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결코 회피할 수는 없다. 아 들을 바치라는 신의 명령에 복종하기로 한 아브라함의 결정은 도덕적으 로 부당한 결정이 아닌가? 신은 그러한 비도덕적 명령을 내릴 권한이 있는가? 백성의 충성심을 시험해 보려는 의도로 일부러 고문과도 같은 비도덕적 명령을 내리는 신은 심술궂은 악한이 아닌가? 키에르케고르는 아마도 이 모든 도전적 질문에 분노할 것이며, 이 분노는 역설에 대한 오성의 분노에 못지않은 파괴의 정념일 것이다. 논자는 이러한 이유로 종교성과 도덕성의 합리적 조화를 꾀하는 칸트적 방식이 양자의 단절 을 매개로 종교성의 초합리적 우위를 강변하는 키에르케고르적 방식보 다 더 설득력 있는 종교철학적 패러다임이라고 믿는다. 키에르케고르의 종교 사상은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적 이성의 자만에 꾸준히 성찰적 제동을 걸어 온 포스트모던적 반동의 전위였는지도 모른 다. 하지만 그것은 그러한 반동이 남기고 간 정신적 허무를 여타의 모 든 종교에 앞서 오직 기독교만이 채울 수 있다고 보는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는다. 헌신과 복종과 섬김의 대상이 기독교의 하느님이어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나아가 신앙이 불가해한 역설을 통해 결 단의 시험에 들어야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역설은 믿을 가치가 있 다 는 인식론상의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확 실하고 안전한 운신보다 불확실성에 온 생애를 거는 정열적 모험이 더

416 인문과학연구 제31집 짜릿하다는 모험가의 처세훈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제시된 것인가? 이 모든 질문에 합리적으로 대답하지 않는 한 키에르케고르의 종교 사상은 비의적(esoteric) 설교에 불과한 것이라는 의혹을 씻기 어려울 것이다. 실 제로도 그는 철학자가 아닌 종교적 저술가로 자처하곤 했다. 그에 따르 면 나는 예나 지금이나 종교적 저술가이다. 저술가로서의 나의 전 저 작은 기독교와, 특히 그리스도인 됨(becoming a Christian) 의 문제와 관 련되어 있다. 41) 그러나 그리스도인 됨 의 파토스에 조금도 공감할 수 없는 합리적 비판자에게 그는 신앙의 순교자가 되는 대가로 이성의 배 교자가 된 비관용적 확신자로 보일 뿐이다. 41) Sǿren Kierkegaard, 1939, The Point of View for my Work as an Author etc., trans. by Walter Lowrie(Oxford University Press: London, New York, Toronto) pp.5 6

종교성과 도덕성은 조화할 수 있는가? 소병철 417 참고문헌 이승구, 2005 합리주의적 윤리와 신앙의 윤리의 관계: 두려움과 떨림 에 나타 난 아브라함의 시련을 중심으로, 한국키에르케고어학회 編, 키에르 케고어에게 배운다 (철학과현실사, 서울) Höffe, Otfried, 1994, 이성적 자기성찰의 여정, Otfried Höffe(Hrsg.), Klassiker der Philosophie(이엽 외 譯, 2001 철학의 거장들 3 (한길사, 서울)) Kant, Immanuel, 1983,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in: Kant Werke Ⅵ, hrsg. von Wilhelm Weischedel(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Darmstadt) Kant, Immanuel, 1983,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in: Kant Werke Ⅵ, hrsg. von Wilhelm Weischedel(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Darmstadt) Kant, Immanuel, 1983, Metaphysik der Sitten, in: Kant Werke Ⅶ, hrsg. von Wilhelm Weischedel(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Darmstadt) Kant, Immanuel, 1983, 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ssen Vernunft, in: Kant Werke Ⅶ, hrsg. von Wilhelm Weischedel(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Darmstadt) Kant, Immanuel, 1983, Über Pädagogik, in: Kant Werke Ⅹ, hrsg. von Wilhelm Weischedel(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Darmstadt) Kant, Immanuel, 1983, Der Streit der Fakultäten, in: Kant Werke Ⅸ, hrsg. von Wilhelm Weischedel(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Darmstadt) Kierkegaard, Sǿren, 1939, The Point of View for my Work as an Author etc., trans. by Walter Lowrie(Oxford University Press: London, New York, Toronto) Kierkegaard, Sǿren, 1941, Concluding Unscientific Postscript, trans. by David F. Swenson and Walter Lowrie(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Kierkegaard, Sǿren, 1983, The Sickness unto Death: A Christian Psychological Exposition for Upbuilding and Awakening, ed. and trans. by Howard V. Hong and Edna H. Hong(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Kierkegaard, Sǿren, 1983, Fear and Trembling; Repetition, ed. and trans. by Howard

418 인문과학연구 제31집 V. Hong and Edna H. Hong(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Kierkegaard, Sǿren, 1985, Philosophical Fragments, ed. and trans. by Howard V. Hong and Edna H. Hong(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Kierkegaard, Sǿren, 1994, Christian Discourses: The Crisis and a Crisis in the Life of an Actress, ed. and trans. by Howard V. Hong and Edna H. Hong (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The Reader s Digest Association(ed.), 1982, The Reader s Digest Bible (서광선 김 이곤 譯, 1987 리더스 다이제스트 성서 (동아출판사, 서울))

42) 종교성과 도덕성은 조화할 수 있는가? 소병철 419 <Abstract> Kierkegaard and Kant on the Compatibility between Religiosity and Morality So, Byungchul * Are the two philosophical prescriptions for the perfection of our life, Kierkegaardian religiosity and Kantian morality compatible? How compatible are religious belief and philosophical reason? In this paper I am trying to answer these questions by comparing and contrasting the significances of both. Kantian rationalism suggests a compatibility in the form of the religion within the limits of reason alone by postulating an almighty moral legislator who should assure us the achievement of the highest moral good. But Kierkegaard regards this way of combining of religion and moral as the shameful surrender of Christian belief to human understanding. As a result, Kierkegaardian religiosity and Kantian morality are incompatible with each other as long as each of them does not give up its own religious or rationalistic radicalism. To clarify this absolute difference between both, I will examine Kierkegaardian conception of the Christian paradox and the superiority of religious existence over ethical one, and then outline Kantian conception of the religion within the limits of reason alone. Hereby it will be proved that Kierkegaard and Kant are the philosophical-historical examples which show the fundamental difference between belief and reason, religiosity and morality. * Assistant Professor of Faculty of General Education in Kyonggi University

420 인문과학연구 제31집 주제어: 키에르케고르(Sǿren Kierkegaard), 칸트(Immanuel Kant), 종교성(Religiosity), 도덕성 (Morality), 종교성과 도덕성의 조화(Compatibility between Religiosity and Morality) 투 고 일: 2013년 1월 10일 심사완료일: 2013년 2월 4일 게재확정일: 2013년 2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