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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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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인에서초기황반변성질환과 연관된위험요인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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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Educational Innovation Research 2018, Vol. 28, No. 4, pp DOI: * A Research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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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과 학기 술부 고 시 제 호 초 중등교육법 제23조 제2항에 의거하여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다음과 같이 고시합니다. 2011년 8월 9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1.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은 별책 1 과 같습니다. 2.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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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체험합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집시다. 5. 우리 옷 한복의 특징 자료 3 참고 남자와 여자가 입는 한복의 종류 가 달랐다는 것을 알려 준다. 85쪽 문제 8, 9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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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習 說 ) 5), 원호설( 元 昊 說 ) 6) 등이 있다. 7) 이 가운데 임제설에 동의하는바, 상세한 논의는 황패강의 논의로 미루나 그의 논의에 논거로서 빠져 있는 부분을 보강하여 임제설에 대한 변증( 辨 證 )을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다음의 인용문을 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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伐)이라고 하였는데, 라자(羅字)는 나자(那字)로 쓰기도 하고 야자(耶字)로 쓰기도 한다. 또 서벌(徐伐)이라고도 한다. 세속에서 경자(京字)를 새겨 서벌(徐伐)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또 사라(斯羅)라고 하기도 하고, 또 사로(斯盧)라고 하기도 한다. 재위 기간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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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J. Aesthet. Cosmetol., 및 자아존중감과 스트레스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고, 만족 정도 에 따라 전반적인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신체는 갈수록 개 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중요해지고 있다(안희진, 2010). 따라서 외모만족도는 개인의 신체는 타

서론 3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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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민락초신문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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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절 조선시대 이전의 교육

사진 24 _ 종루지 전경(서북에서) 사진 25 _ 종루지 남측기단(동에서) 사진 26 _ 종루지 북측기단(서에서) 사진 27 _ 종루지 1차 건물지 초석 적심석 사진 28 _ 종루지 중심 방형적심 유 사진 29 _ 종루지 동측 계단석 <경루지> 위 치 탑지의 남북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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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Educational Innovation Research 2016, Vol. 26, No. 2, pp DOI: * Experiences of 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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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Educational Innovation Research 2018, Vol. 28, No. 4, pp DOI: 3 * The Effect of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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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 의사학 제24권 제2호(통권 제50호) 2015년 8월 Korean J Med Hist 24 ː497-532 Aug 2015 c대한의사학회 http://dx.doi.org/10.13081/kjmh.2015.24.497 pissn 1225-505X, eissn 2093-5609 역시만필( 歷 試 漫 筆 ) 의 사례로 재구성한 조선후기 여성의 삶과 질병 이꽃메* 1. 서론 2. 출생에서 성장까지; 귀하지 못한 존재로 태어나 급성감염병을 치르며 성장하다 3. 성인기의 산부인과 관련 문제와 질병임신과 출산 4. 성인기의 기타 질병 5. 결론 1. 서론 조선시대 여성의 건강과 질병 경험 관련 연구는 매우 부족하고, 대부분이 출산 관련, 그것도 왕실의 출산 관련 연구에 치우쳐 있다. 1) 그 이유는 조선 궁 궐에서 왕가의 출산을 위하여 설치되었던 호산청이나 산실청 등의 기록이 남 아있어서 우선적으로 발굴되어 해석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사 연구의 한 흐름이 개인의 일상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구체적 인 삶을 짚어가면서 그 의미를 파악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조선시대 인 * 상지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간호학과 이메일: yime@sangji.ac.kr 1) 조선시대 왕실에서의 출산 관련 연구는 1990년대 이후로도 김신연의 조선왕조의 궁중 출 산 풍속 연구 (1998), 신명호의 조선시대 궁중의 출산풍속과 궁중의학 (2002), 김호의 조선 후기 왕실의 출산 지침서:림산예지법 (2004), 육수화의 조선왕실의 출산과 안태의 재조명 (2007)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왕실이 아닌 일반 가정에서의 출산에 관한 역사학 연구는 이복규의 조선 전기의 출산, 생육관련 민속 (1997), 백옥경의 조선시대 출산에 대한 인식과 실제 (2007) 정도에 그치고 있다. 제24권 제2호(통권 제50호) 497-532, 2015년 8월 497

YI Ggodme : The Lives and Diseases of Females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as Reconstructed with Cases in Yeoksi Manpil (Stray Notes with Experienced Tests) 물이 환자로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에 관한 연구가 다수 이루어졌지만 2) 모두 양반 남성이 쓴 일기를 대상으로 하였고 여성이 어떻게 건강을 관리하고 질 병을 겪으며 살았는지에 대하여는 거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신 동원은 조선의약생활사 (2014)에서 묵재일기( 黙 齋 日 記 ) 의 저자로 여러 번 분석의 대상이 된 이문건이나 그의 아들, 손자 뿐 아니라 그의 부인과 며느리, 세 손녀, 여종들의 삶과 질병에 대하여 분석하여 조선시대 여성에 대한 이해 를 높였다. 한편, 2000년대 이후에 역사인구학 연구에서 족보, 호적, 행장류, 혼서 등을 분석하여 조선후기 여성의 평균수명, 초혼연령, 합계출산률 등에 관하여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 3) 그런데 최근 역시만필( 歷 試 漫 筆 ) 이라고 하는 의안( 醫 案 )이 발굴되고 번 역과 풀이가 이루어져 조선 후기 여성의 삶에 대하여 질병 경험을 중심으로 많은 사례를 더해주게 되었다. 의안( 醫 案 )은 의사가 의료에 대한 경험과 생 각을 구체적으로 기술한 것으로서, 의사와 환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진단 및 치료행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선언적 성격의 정보 위주로 나열되어 있는 의서의 한계를 보완할 뿐 아니라, 시대별 의학 사조의 특징과 역사 문화 적 맥락까지도 읽어낼 수 있는 저술 장르이다(오재근, 2015: 691). 역시만필 ( 歷 試 漫 筆 ) 은 1664년에 태어나 27세인 숙종 16년 의과에 합격하였으며 영 조때는 어의까지 지낸 이수귀( 李 壽 龜, 1664-1740?)가 본인의 치험 사례를 모 아 엮은 의안이다. 역시만필 은 130개 꼭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 꼭지에 하나 이상의 사례 2) 이 부분의 연구로는 김호의 18세기 후반 거경 사족의 위생과 의료-흠영을 중심으로 (1998), 김성수의 16세기 향촌의료 실태와 사족의 대응 (2001)과 묵재일기( 黙 齋 日 記 )가 말하는 조 선인의 질병과 치료 (2013), 신동원의 병과 의약생활로 본 정약용의 일생 (2006), 홍세영의 미암일기( 眉 巖 日 記 )의 의학 기록 연구 (2011) 등이 대표적이다. 3) 여성의 삶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이룬 역사인구학 연구로는, 김건태의 18세기 초혼과 재혼 의 사회사-단성호적을 중심으로 (2004), 19세기 단성지역의 결혼관행 (2006), 18-19세기 제주도 여성의 결혼과 출산 (2009), 김두얼의 행장류 자료를 통해 본 조선시대 양반의 출산 과 인구 변동 (2012), 박희진의 양반의 혼인연령: 1535-1945-혼서를 중심으로, 차명수의 조선후기의 출산력, 사망 및 인구증가: 네 족보에 나타난 1700-1899년간 생몰 기록을 이용 한 연구 (2009) 등이 있다. 498 醫 史 學

이꽃메 : 역시만필( 歷 試 漫 筆 ) 의 사례로 재구성한 조선후기 여성의 삶과 질병 를 들고 있는 것들이 있어서 실제는 154개의 사례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사례의 약 절반이 여성이고, 4) 사례의 주인공인 환자 뿐 아니라 부수적으 로 등장하는 여성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역시만필 을 통하여 거의 80 명에 달하는 여성의 82건에 달하는 삶과 질병 경험을 접할 수 있다. 5) 이들 여 성은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 위로는 고관대작의 부인에서 아래로는 비천한 여 종에 걸쳐져 있고, 나이는 태아부터 팔순의 할머니까지 다양하다. 단지 이 여 성들은 거주 지역이 한양과 그 인근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교통이 편리 하지 않았던 조선 후기에 여성이 멀리 사는 의원에게 치료를 구하기는 힘들 었을 것이며, 이수귀가 평생 한양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활동했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는 이수귀가 저술한 역시만필 에 등장하는 여성에 대한 기술을 재분류하고 분석하여 조선 후기 여성의 삶을 질병 경험 중심으로 재구성하였 다. 즉, 등장하는 여성을 출생에서 자라나 결혼 이전까지의 성장기,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기르는 성인기, 늙어가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노년기로 나누 고, 그중 성인기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경험상의 특징에 따라 다시 둘로 구분 하여 총 넷으로 분류하였다. 여성의 나이가 언급된 경우는 구분이 쉬웠지만, 나이가 언급되지 않은 경우는 그 여성의 상황에 대한 기타 기술을 근거로 하 여 시기 구분을 하였다. 출생에서 결혼 이전까지를 성장기로 한 것은, 조선후기 여성의 초혼 연령 이 평균 17.5세 정도로 나타나고(김건태, 2004: 198; 박희진, 2006: 9), 행장류 자료를 통한 연구에서는 양반 여성의 평균 결혼연령이 15.8세(김두얼, 2012: 10)로 더 어리게 나타나는 것, 그리고 조선 후기 여성이 초경을 하면 이에 따 4) 역시만필 에 수록된 환자를 154명으로 구별한 표에 의하면, 그중 남녀가 구별되지 않는 경 우가 두명, 남성이 78명, 여성이 74명이다(신동원 외, 2015: 717-725). 5) 본 글에서는 역시만필 에서 여성에 관하여 언급될 때 하나씩 번호를 붙이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1번에서 84번까지 구분했지만, 실제 여성 건수는 82건이고, 등장인물은 거의 80명이다. 그 이유는 먼저, 임신맥에 대하여 설명한 본문 표 2의 8번과, 출산에 대하여 의원이 알아야 할 것을 설명한 표 2의 17번은 건수와 인물 모두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인물이 다른 번호로 분류되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어 이수귀의 외할머니는 14세의 성장기(6번) 와 61세(68번), 그리고 76세(82번) 등 세 건으로 나뉘고, 이수귀의 형수는 20대(29번)와 79세 (83번) 등 두 건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제24권 제2호(통권 제50호) 497-532, 2015년 8월 499

YI Ggodme : The Lives and Diseases of Females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as Reconstructed with Cases in Yeoksi Manpil (Stray Notes with Experienced Tests) 라 결혼이 진행되었던 것(박희진, 2006: 14-16) 등의 연구결과에 근거하였다. 또한 이수귀는 기혼 여성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누구의 부인, 누구의 며느리 등 가족에서의 위치를 언급하였기 때문에 미혼인 성장기와 기혼인 성인기 및 노년기의 구분은 용이했다. 그리고 기혼 여성 중에 임신 및 출산과 관련된 경 우와 기타 정황상 가임기로 짐작되는 경우는 성인기로 구분하였다. 마지막으 로 성장하여 혼인한 자식이 있거나 언급된 나이가 50대 이후인 경우는 노년 기로 구분하였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82세, 특히 여성은 85.1세에 달할 정 도로(2014년 기준) 인생의 중후반기가 길어진 현대에는 보통 40대와 50대를 중년기, 그리고 60세에서 65세 이상을 노년기로 구분한다. 그렇지만 조선 후 기에는 양반계층일지라도 여성의 평균수명이 45.3세에 불과했고, 53%가 50 세 이전에 사망했으며(김두얼, 2012: 9-10) 대부분의 여성이 10대 후반에 결 혼하여 40세 전후에 손주를 보았기 때문에 중년과 노년의 구분이 별 의미가 없고, 6) 본인이 가임기가 지나거나 자식이 혼인을 하여 며느리나 사위를 보게 되면 노년기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역시만필 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삶은 본 글에서 1. 출생에서 결 혼 이전까지인 성장기 7건, 2. 결혼 이후 성인기의 산부인과 관련 경험 중심 28건, 3. 성인기의 기타 질병 경험 중심 25건, 4. 노년기 22건으로 나누어졌 다. 본 글에서는 시기별로 각 여성의 사건에 대하여 증상과 특이사항 및 예후 를 정리하여 표로 만들어주고, 1번부터 84번까지의 일련번호로 구별하였으 며, 신동원, 오재근, 이기복, 전종욱이 옮기고 해설한 역시만필-조선 어의 이 수귀의 동의보감 실전기 (2015)와 비교가 용이하도록 이 책에 제시된 사례 번 호를 함께 표기하였다. 그리고 각 시기별 공통된 요인을 가진 사건들을 묶어 그 의미를 짚고, 각 사건별로 주목할 만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기술하며 분 석함으로써 조선 후기 여성의 삶을 성장기, 성인기의 산부인과 경험, 성인기 의 기타 경험, 노년기의 주요 건강상 문제가 있었던 경험을 중심으로 재구성 6) 예를 들어 역시만필 에 등장하는 인물중 한명인 이수귀의 외할머니는 열네살에 병자호란을 겪었으므로 1623년 출생으로 추정되는데, 그 외손주인 이수귀는 1664년생이다. 따라서 이수 귀의 외할머니는 마흔두살에 외손주를 보았다. 500 醫 史 學

이꽃메 : 역시만필( 歷 試 漫 筆 ) 의 사례로 재구성한 조선후기 여성의 삶과 질병 해 보았다. 이러한 접근은 조선시대 여성의 구체적인 삶에 대한 자료가 부족 한 상황에, 남성 의원의 기록을 통하여 여성의 삶을 재구성한다는 의미에서 자료와 내용 모두 새로운 접근과 해석을 시도한 것으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2. 출생에서 성장까지; 귀하지 못한 존재로 태어나 급성감염병을 치르며 성장하다 역시만필 의 약 150명에 달하는 등장인물 중에 출생에서 성장기까지의 여 성은 다음 표의 7명 뿐이다. 남성의 경우는 이보다 많아서, 임신과 출산 과정 에서 어려움을 겪고 태어난 여러 아기들 중에서 1번의 이판서 외손녀를 제외 하고는 모두 남자아이이고, 나이가 명시된 환자 중에 18세 미만 성장기 남성 이 11명으로, 7) 성장기 여성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그나마 이 성장기 여성 중 에도 한명은 성별을 모르던 태아기에 어머니가 치료를 받았던 경우(1번), 또 한명은 저자 이수귀의 딸(2번), 나머지 한명은 이수귀 외할머니 열 네 살때(6 번) 이야기이니, 이수귀가 타인으로부터 아픈 여자아이를 의뢰받아 치료한 것을 기록으로 남긴 것은 3, 4, 5, 7번의 넷 뿐이다. 그렇다면 여자아이가 남 자아이보다 덜 아팠기 때문일까? 그것은 아니다. 조선후기 양반계층에서 출 생아의 50%가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했는데, 이 미성년사망자의 남녀 성비는 1.05로 남녀간 차이가 거의 없었다는 연구(김두얼, 2012: 17-18)가 있다. 따 라서 성장기 남녀의 사망비율이 비슷했는데 의안에서 여성에 대한 기록이 적 다는 것은, 비록 조선사회가 인구조절을 위하여 중국처럼 영아살해를 하지는 않았더라도, 아픈 여자아이를 의원에게 보이고 약을 먹여서 낫게 하는 행위가 남자아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짐작하게 한다. 8) 7) 역시만필 에 등장하는 환자 중에 나이가 명기된 성장기 남성 11명은 이첨지의 7개월된 손 자, 이수귀의 2세 외손자, 황주판관 이공의 3세 아들, 조능주의 3세 손자, 이장령의 7세 손자, 장생의 8세 아들, 신생의 10여세 아들, 양첨지의 10여세 아들, 마진을 앓은 12세 남아, 양초 관의 15세 아들, 그리고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소년 이라고 지칭된 환자 등이다.(신동원 외, 2015: 717-725) 8) 16세기에 활동한 유의( 儒 醫 ) 이문건( 李 文 楗 )을 찾아온 환자의 성별 통계를 보면, 총 663명 중 제24권 제2호(통권 제50호) 497-532, 2015년 8월 501

YI Ggodme : The Lives and Diseases of Females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as Reconstructed with Cases in Yeoksi Manpil (Stray Notes with Experienced Tests) 표 1. 역시만필 에 나타난 성장기 여성의 질병 경험 Table 1. The Diseases of Female Children in Yeoksi Manpil 번호 번역서 case 인물 나이 주요 증상 특이 사항 및 경과 1 83 조한림 부인이자 이판서 딸의 여아 태아 어머니가 임신 3개월에 복통 없이 자궁출혈. 달포가 지나 서는 수척해 식사량도 뚝 떨 어짐 당귀기생탕 복용 후 하혈이 멎고 태가 안정됨. 달이 차 서 출산 2 49 이수귀의 딸 4,5세 잇몸이 헐고 문드러짐 두진 후에 증상이 나타나 중 국인의 비방으로 만든 약 등 으로 쾌차 3 118 여자아이 미상 몸, 얼굴, 손톱이 모두 푸른색 을 띠고 회충을 서너번 토함 홍진을 하다가 붉은 반점이 사그라진 후 나타남. 약 복용 하고 편안해짐 4 122 서진사 딸 11세 열, 몸이 부음. 기 부족 홍진 후 나타남. 열, 부종, 기 부족 각각에 대하여 약 복용 하고 완전히 나음 5 36 김첨지 딸 13세 가슴 답답, 배와 옆구리 부분 에서부터 목구멍에 이르기까 지 기운이 치밀어 오름. 팔과 팔꿈치가 굽어지며 경련 쇠고기를 먹고 증상이 나타 남. 약을 복용하자 음식 먹는 것 좋아지고 일어나서 움직 이게 됨 6 118 이수귀의 외할 머니 14세 발병할 때마다 혼절 14세에 병자호란 겪어 몸속 장부가 모두 손상 7 80 부자 노인의 손녀 미상 다리에 힘이 빠지고 마름 약 50첩 복용 후 따뜻하게 목 욕하여 나았다고 주장 그렇다면 왜 여자아이를 남자아이보다 의원에게 덜 보였을까? 여자아이는 남자아이보다 귀하게 간주하지 않았음이 환자 보호자의 육성으로 나타난다. 역시만필 에 등장하는 여성 중에 가장 어린 1번의 아이는, 어머니에게 임신 3개월일 때부터 무통성 하혈이 나타났던 경우이다. 여러 의원의 처방에 따 라 약을 복용했지만 한달이 지나도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임신부가 식사 도 잘 못하고 수척하게 되자, 친정아버지인 이판서가 이수귀에게 의뢰를 하 에 여자는 208명으로 삼분의 일이 되지 않는다(신동원, 2014: 402). 502 醫 史 學

이꽃메 : 역시만필( 歷 試 漫 筆 ) 의 사례로 재구성한 조선후기 여성의 삶과 질병 였다. 이수귀가 처방한 약을 복용하고 나서 딸의 하혈이 멎고 태가 안정되자 이판서는 무척 기뻐하면서도 대개 물( 物 )의 이치에서 귀한 것은 지키기 어렵 다. 지금 이 병으로 달포 동안 하혈하고도 능히 태를 지킬 수 있었던 까닭은 여아이기 때문에 그랬음이 틀림없다 (신동원 외, 2015: 411)라고, 즉, 한달동 안 하혈하고도 무사히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귀한 존재가 아닌 여자아이이 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성장 과정에서 가장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는 흔히 역병( 疫 病 )이라고 했던 급성감염병이었다. 2번, 3번, 4번의 세 여자아이는 모두 급성감염병인 두창이 나 홍역을 심하게 앓고 경과가 좋지 않았던 경우이다. 두창과 홍역은 모두 조 선시대에 많이 유행하면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역병이었다(신동원, 2004: 40-41). 특히 3번의 여자아이는 아프면서 서너번 회충을 토하기도 했는데, 이 외에도 회충을 토하는 경우가 역시만필 에 여러번 나타난다. 그만큼 만성감 염병인 기생충 감염이 흔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세 여자아이는 모두 약 을 복용하거나 처치한 후 특별한 후유증 없이 완치되었다. 5번은 쇠고기를 먹고 체한 13세 소녀이다. 19세기 초 빙허각 이씨가 기술 한 가정백과사전 규합총서 에서도 음식 독을 21가지로 나누어 기술할 정도 로 조선시대에는 음식을 먹고 이상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의원에 게 보이지 않았던 것 같고 음식을 소화시키고 체한 것을 제거하는 약을 복 용 했다고 하는데, 이 약이 어떤 약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규합총서 에서 쇠고기 체한 데 제시한 흑축 삼 전을 곱게 갈아 필발 달인 데나, 생강 차에 타 (빙허각이씨 외: 388) 먹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낫지 않자 이수 귀를 포함하여 세명의 의원이 각자의 판단에 따라 약을 처방하여 복용하도록 하였다. 비록 자주 있는 경우는 아니었지만, 병이 낫도록 의원을 바꿔가며 이 런 저런 치료를 시도해 보면서 최선을 다한 경우였고, 다행히 이 13세 소녀의 증세는 호전되었다. 제24권 제2호(통권 제50호) 497-532, 2015년 8월 503

YI Ggodme : The Lives and Diseases of Females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as Reconstructed with Cases in Yeoksi Manpil (Stray Notes with Experienced Tests) 7번은 다리의 힘이 빠지고 몸이 말라간 연령 미상의 경우이다. 9) 이 부자 노 인의 손녀는 이수귀의 처방으로 약을 50첩이나 복용한 후였는데도 따뜻하게 목욕하여 나았다고 주장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목욕이 질병 치료를 위한 적극 적인 방법의 하나로 인식되었으며, 땀으로 사기( 邪 氣 )를 몰아내는 한법( 汗 法 ) 에 해당하였다. 특히 피부질환, 눈병, 사지의 통증과 마비, 전염성 질환에 사 용되었으므로(구현희, 오준호: 272-282) 다리에 힘이 빠지고 마르는 증세를 보인 이 환자에게 적용되었을 것이다. 가장 특이한 것은 14세 때 병자호란을 겪고 몸 속 장기가 모두 손상을 입어 발병할 때 마다 혼절했다는 이수귀의 외할머니에 대한 언급이다. 전쟁 상황 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외상적 사건으로 경험되는 것으로, 감당하기 힘든 외 부적 자극으로 인한 내적 상처를 의미하는 트라우마(trauma)를 남기는데, 트 라우마에 대한 반응은 지연된 후에 신체적 증상, 플래시 백, 악몽 등의 형태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이진숙, 2013: 181-184). 특히 병자호란은 제대로 항전 해보지도 못하고 굴욕적으로 지고 만 전쟁이었을 뿐 아니라 이후 세자와 신하 들이 인질로 중국에 가고 수십만명의 조선 백성이 전쟁 포로로 중국에 끌려 가야만 했던 조선사의 가장 커다란 비극 중의 하나였다. 이후 병자호란이 조 선 정부 뿐 아니라 조선사회와 일반인의 삶에도 미친 영향은 인질의 몸값을 대기 위하여 수많은 가계가 파탄하고, 속환녀 처리 문제가 1세대 이후인 30년 후까지 조야에서 주요 논쟁의 대상이 된 것에서 나타나는 것 처럼 장시간에 걸쳐 조선인의 삶에 참담한 영향을 미쳤다(남은경, 2008: 47-50). 조선시대에 도 전쟁은 14세의 나이로 이를 경험한 소녀가 그로 인하여 몸 속 장기가 모두 손상을 입어 발병할 때마다 혼절하는 트라우마가 남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9) 7번의 경우 연령이 나와 있지 않지만, 외동아들을 잃고 두 아이만을 키우는 부자 노인의 손녀 라고 되어 있고, 기타 가족이나 결혼생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서(신동원 외, 2015: 400) 결혼 이전인 성인기로 판단하였다. 504 醫 史 學

이꽃메 : 역시만필( 歷 試 漫 筆 ) 의 사례로 재구성한 조선후기 여성의 삶과 질병 3. 성인기의 산부인과 관련 문제와 질병임신과 출산 역시만필 에는 산부인과로 분류되는 사례가 28건 나오는데 대부분이 임신 및 출산과 관련된 것으로, 이수귀가 남긴 환례 약 150건의 거의 1/5에 달한다. 그런데 16세기의 유의( 儒 醫 ) 이문건( 李 文 楗, 1494-1567)이 경험했던 환자의 병증 456건 중에 출산 관련은 12건(신동원, 2014: 407)으로 0.5%에 불과하다. 물론 이수귀가 경험한 환례 전체를 남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문건과 단순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이수귀가 남긴 환자 사례 중에 산부인과가 많고, 이문 건의 환자 중에는 매우 적었던 차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문건이 16 세기 그리고 이수귀가 주로 18세기에 활동했던 시기적 차이, 이문건은 경북 내륙지역인 성주에서 그리고 이수귀는 한양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지역적 차 이, 10) 이문건은 세도가에서 태어나 과거에 합격하여 승문원판교까지 지낸 양 반으로 지방에 귀양을 가서 주변 요청에 의해 의료를 베풀었지만 이수귀는 역 관 집안에서 태어나 의과를 거친 중인이면서 직업으로 의료를 했다는 신분의 차이 등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11) 그렇지만 역시만필 에서 직접 드러나는 가능성은 이수귀가 접했던 임신 및 출산과 관련된 환례들이 위중했거나, 12) 치 료하기가 어려웠거나, 13) 의원의 입장에서 기억에 남는 특이한 경험이었다는 10) 조선 전기에 비하여 조선 후기로 가면서 민간의료가 성장하여 특히 18세기 의료의 가장 큰 특징으로 민간의료 성장이 꼽힌다.(김대원, 1998: 188) 그렇지만 지역적으로 차이가 커서 18세기 전후 거의 모든 의약 자원이 서울에 집중하고 지방은 의원과 약재가 부족하여 지방 의 관아를 활용하거나 서울로부터 구하는 모습을 보였다(신동원, 2006: 2). 이렇게 의원과 약재가 풍부했던 서울에서는 임신과 출산에 문제가 있을 때 의원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 이 높고, 의원이 부족한 지방에서는 특히 출산의 경우 의원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낮 아지게 된다. 11) 성리학을 이론적 이념으로 했던 조선사회에서 내외는 양반일수록 엄격했으며 하층은 상대 적으로 그로부터 자유로웠다. 따라서 양반, 그것도 서울에서 높은 벼슬을 지내다 귀양 온 양 반에게 임신과 출산에 관한 문제를 의뢰하는 것 보다는 중인층으로 의업으로 생계를 이어 가는 의원에게 임신과 출산에 관한 문제를 의뢰하기가 덜 불편했을 것이다. 12) 이수귀가 남긴 사례 중에 성인기 여성이 사망한 경우는 셋 뿐인데, 그중에 둘이 출산 관련 으로, 19번은 산모와 아기가, 23번은 산모가 사망하였다. 13) 이수귀는 34번 여성 사례를 기록하면서, 열명의 남자보다 한명의 부인이 치료하기 더 어렵 다는 고사를 인용하며 치료하기 어려웠다는 것을 강조하였다(신동원 외, 2015: 444). 제24권 제2호(통권 제50호) 497-532, 2015년 8월 505

YI Ggodme : The Lives and Diseases of Females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as Reconstructed with Cases in Yeoksi Manpil (Stray Notes with Experienced Tests) 것이다. 14) 그래서 이수귀는 임신 및 출산 관련 환례를 특히 중요하고 후대에 남길 만한 것으로 상대적으로 더욱 비중 있게 다루었을 것이다. 이수귀는 본인이 경험한 산부인과 환례 기록과 별도의 꼭지로 임신한 여성 의 맥(8번), 그리고 의원이 알아야 하는 다양한 출산의 경우(17번)를 정리하 였다. 이렇게 역시만필 에서 산부인과 관련 사례가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임신맥과 출산에 대하여 별도로 정리한 것은, 임신과 출산을 둘러싸고 벌어지 는 건강상의 문제들이 조선 사회에서 매우 중요했다는 것, 그리고 조선 후기 여성의 다양한 건강상의 문제에-남성과 공통으로 겪는 건강상의 문제 뿐 아니 라 여성만이 경험하는 임신과 출산, 성생활에 관한 문제 15) 에 이르기까지- 남 성 의원이 상당히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치료했다는 것이다. 역시만필 에는 성장기와 노년기 뿐 아니라 성인기 여성도 필요에 따라 남 성인 의원을 직접 대면하여 도움을 받은 사례가 거듭된다. 그 과정에서 대개 는 가장을 비롯한 가족 중의 성인 남성이 이수귀를 찾아와 환자의 상황을 설 명하면서 치료가 시작되지만, 16) 의원은 필요에 따라 환자를 대면하여 살피는 시진( 視 診 ), 환자와의 대화를 통하여 질병 발생 이전 상황과 이후의 경과를 파악하는 문진( 問 診 )은 물론 필요에 따라 직접 진맥하여 여성의 임신 여부와 14) 이수귀는 포상기태로 추정되는 사례에 대해서 본인이 치료에 개입하지 않았음에도 세 건을 기술하였고, 역시만필 에서 유일하게 같은 사례를 반복하기도 하였다.(신동원 외, 2015: 432-436). 15) 36번 여성에 대해서는 성관계를 가질때 질건조증과 통증이 있어 힘들어 한 점을 기술하였 다(신동원 외, 2015: 113). 16) 이수귀에게 성인기 여성 환자를 의뢰하고 치료하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다 음 세 사례 정도이다. 16번의 경우, 정선달이 이수귀를 찾아와 아내의 병에 대하여 묻고 이 수귀가 처방하는 방식으로 치료가 이루어졌으며 환자를 직접 만나거나 진맥했다는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수귀가 환자를 직접 만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신동원 외 2015: 433). 또 한 40번의 경우도 권직장의 아내가 아플 때 남편은 지방에 출장을 가고 집안에 성인 남자가 없어 사촌아우가 그 역할을 대신한 것으로 나오고, 이 경우에도 환자를 직접 만나거나 진맥 에 대한 언급이 없어 이수귀가 환자를 직접 만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신동원 외, 2015: 559-562). 그렇지만 31번에서는 시아버지가 이수귀를 찾아와 의논한 후, 직접 환자를 찾아 가 진맥을 하고 약을 처방하였다(신동원 외, 2015: 441). 그 외에 양반가의 여성이 이수귀에 게 직접 찾아간 경우는 나타나지 않고, 최초의 의뢰 과정은 불분명하지만 이수귀가 환자를 직접 만나 증세를 살피고 진맥한 경우는 여러번 보인다. 506 醫 史 學

이꽃메 : 역시만필( 歷 試 漫 筆 ) 의 사례로 재구성한 조선후기 여성의 삶과 질병 건강상태를 판단하였다. 17) 다만 양반가의 여성은 병 치료를 위하여 의원을 접 촉하는 것 외에는 내외를 지켰던 것으로 보이는데, 60여세였던 종4품 무관의 아내(64번)는 이수귀의 약 처방으로 병이 나은 이후 남자가 아니라서 직접 감 사드릴 수 없는 안타까움을 조카를 통하여 전달하고 음식 대접으로 대신하였 다(신동원 외, 2015: 515). 또한 하층민의 경우에는 성인 남녀간의 분별을 강 조하는 내외에서 상당히 자유로워 61번의 사비처럼 직접 의원을 찾아가 도움 을 구하기도 했다(신동원 외, 2015: 589). 표 2. 역시만필 에 나타난 성인기 여성의 산부인과 관련 경험 Table 2. The Experiences of Female Adults Related to Obstetrics and Gynecology in Yeoksi Manpil 번호 번역서 case 인물 나이 주요 증상 특이 사항 및 경과 8 91 여러 경우 임신 임신맥의 특징을 기술 9 87 박첨정의 아내 20세 이전 10 83 조한림 부인이자 이판서의 딸 임신인데 배가 크게 불러오지 않고 태동도 느껴지지 않음 임신 3개월에 복통 없이 자궁 출혈. 수척해지고 식사량 감소 진맥 후 딸을 순산 약 복용 후 하혈 멎고 태가 안 정. 이후 달이 차서 여아 출산 11 17 어떤 부인 임신 셋째 달에 특별한 연고 없이 세 차례 유산하고 네 번 째 임신 12 82 어느 부인 임신 3개월에 자연유산 3회 후에 다시 임신 13 83 이참판 딸 하혈. 정신 혼미하고 인사불 성 약 복용 후 태를 보전하고 순산 약 복용 후 달이 차고 아들 순 산. 이후 연이어 아들딸 셋을 약 먹지 않고 출산했으나 산모 와 아이 모두 건강 하혈 있어 약 복용하고 멈추 었으나 며칠 후에 놀라서 증상 심해짐. 다시 약 복용하고 태 를 지켜 남아 낳음 17) 이수귀는 특히 임신에 관하여 기술한 부분에서, 본인이 여러 번 임신맥을 진찰했는데 특 징이 어떻더라는 자세한 기술과 함께 잘 살펴 판단하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신동원 외, 2015: 439). 제24권 제2호(통권 제50호) 497-532, 2015년 8월 507

YI Ggodme : The Lives and Diseases of Females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as Reconstructed with Cases in Yeoksi Manpil (Stray Notes with Experienced Tests) 14 84 한판서 며느리이자 한진 사 아내 임신 9개월 연달아 자녀를 두셋 낳았는데 출산 때마다 순산하지 못하고 산후에 병이 많았음. 다시 약 복용 후 시아버지 초상 때 같 은 방에 있던 사람이 출산 했 는지 모르기도 할 정도로 순 산. 산후에도 병 없음 15 89, 90 상민 여자 임신 증상 신방험태산 복용 다음날 자수 정으로 만든 갓끈 고리와 같은 것을 배출 16 89 정선달 아내 혈괴와 관련된 병증. 덩어리 배출 후 두통 17 94 여러 경우 출산 때 의사가 대비해야 하 는 상황 커다란 덩어리 하나를 배출했 는데 그 속에 수정 구슬 같은 것이 많이 들어있었음. 약 복 용하고 밥, 국으로 조리하도 록 함 정산, 횡산, 역산, 좌산, 애산에 대하여 설명 18 85 홍생의 아내이자 이감사 딸 하혈하고 횡산으로 사산. 숨이 끊어질 듯 하면서 위로는 구 토하고 아래로는 설사. 미음을 먹는 대로 토하고 체증 심해짐 점차 꺼져가면서 숨이 다할 듯 배 가운데 부위가 힘이 없고 차가움 산달에 작은아버지 부음 듣 고 몹시 놀라 하혈 시작. 증상 별 약 복용 후 몇 개월 조리하 여 쾌차 19 94 어느 부인 횡산 먼저 나온 태아의 손바닥 가 운데 혈자리를 침으로 찌르고 소금을 발라 돌아 수축하도 록 하고 소금을 어미 배꼽 위 에 바름. 약 등으로 치료하도 록 했으나, 의원의 처방 효과 가 즉시 나지 않자 집안사람들 이 산파를 부름. 산파가 수법 ( 手 法 )으로 억지로 쪼개어 나 오도록 했지만 아이와 어미 모 두 죽음 508 醫 史 學

이꽃메 : 역시만필( 歷 試 漫 筆 ) 의 사례로 재구성한 조선후기 여성의 삶과 질병 20, 21 94 초산 두 명 20세 이전 횡산 산파를 경계하고 삼가도록 함. 의원이 지도한 19번 방법으로 순산 22 95 어떤 산모 태반이 나오지 않음 약 복용하고 작은 끈으로 탯줄 을 단단하게 묶은 후 절단 23 95 어떤 산모 태반이 나오지 않음 22번 방법으로 치료하도록 했 으나, 산파가 억지로 태반을 빼 다가 산모가 사망 24 101 김생의 처 17세 신생아 얼굴이 푸른빛을 띠고 호흡이 미약하며 울지 못함 25 108 김정 부인 정신이 어지럽고 심장이 두근 두근 뛰며 허기증 26 108 이생 부인 두통, 살가죽에 열이 나고 헛 소리 처서가 지난 뒤 첫 출산하여 순 산했으나 신생아 상태가 좋지 않음. 솜이불로 아이 싸고 탯 줄 아래를 덥히고 식초를 끓여 탯줄 씻어내기 계속한지 삼일 째 울음소리 우렁차게 되어 탯 줄 자름 오래전 출산으로 많은 피를 흘 려 허로병. 약 쓰고 회복 분만할 때 지나치게 많이 피를 쏟은 후 증상 나타남. 약으로 완전히 나음 27 113 김생 아내 45세 어지럼증으로 정신 잃음 사내아이 순산했으나 출혈량 이 많아 기에 손상 입음. 약 복 용하고 편안해짐 28 113 어떤 부인 몹시 위독 해산 후에 몸이 허약했음. 약 복용하고 쾌유 29 125 형수 최씨이자 최 이태 딸이자 최대 립의 손자 20-30세 숨 쉬는 것이 거칠음. 음식을 먹자마자 허기짐 출산 뒤 허약 증세 나타남. 약 복용하고 조리하자 편안해짐 30 119 박상주 며느리 기침하고 헐떡거림. 홍역에 걸림 31 92 안생 아내 헛소리 하며 남편 비난. 투기, 노기, 남편과 상대하려 하지 않음. 성내며 울음. 옷가지 챙 겨 본가로 돌아가려 함 쌍둥이 해산 후 증상 나타남. 약 복용 후 나음 몇 명의 아이 낳고 남편과 금슬 이 좋았는데 산후 얼마 안되어 아이를 잃고 몹시 슬퍼하고 감 기 들어 와병. 약 복용하고 정 신이 정상으로 돌아옴. 열흘 정도 조리하자 평안 제24권 제2호(통권 제50호) 497-532, 2015년 8월 509

YI Ggodme : The Lives and Diseases of Females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as Reconstructed with Cases in Yeoksi Manpil (Stray Notes with Experienced Tests) 32 86 이한림 아내 허약한 증세 다시 발생 자녀를 많이 낳음. 본래 허약한 증세 있었음. 약 복용하고 조 리하자 편안해짐 33 88, 89 이회양 아내 젊은 나이 월경 중단. 몇 개월 뒤 배가 아 프다고 하더니 신발 크기 핏덩 이를 쏟음 월경 중단 이후 관찰하도록 하 자 핏덩이 쏟음. 이후 탈 없이 연달아 남아 2명 출생 34 93 최생 아내 임신 증상; 월경 중지, 음식 먹 기를 싫어하고 구역질. 미약 한 움직임, 배가 높아짐. 아홉 달에도 출산 징후 없음. 몸이 마르고 기운 없음. 복통. 배 속 에 주먹만한 크기의 덩어리 일찍 아들 낳고 4년 지난 후에 증상이 나타남. 약 복용 후 복 부의 덩어리 소실 35 87 박첨정 아내 20 대 초 흰색 질 분비물 20세 이전에 딸을 순산하고 몇 년 후에 증상 있어 약으로 증 상은 치료했으나 이후 아이를 갖지 못함 36 17 어떤 부인 양 손바닥과 발바닥, 가슴이 답답하고 열감. 질 건조증과 성교통 약 복용하고 치료 후에 자연유 산 3회 있었으나 다시 치료받 고 순산 37 40 김생 아내 유방 종기 약 복용하고 쾌유 역시만필 에서 등장하는 임산부의 나이는 17세(24번)에서 45세(27번)에 걸쳐져 있어 가임기와 일치한다. 그렇지만 20세 이전인 네명(9번, 20번, 21번, 24번)과 45세인 경우만 나이가 명시되고 나머지 임산부는 나이가 제대로 나 타나 있지 않다. 또한 20세 이전은 임신 증상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다든지, 횡산으로 출산이 어려웠다든지, 신생아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든지 하는 것을 설명하기에 앞서 특별히 산모의 나이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20세 이전 의 출산은 조심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음을 알 수 있다. 18) 또한 산후 출혈이 18) 조선 후기에 여성은 15세에서 20세 사이에 결혼하는 것이 적당한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평 균 만 17.5세 경에 결혼을 했다. 그렇지만 결혼하고 바로 아이를 가져 낳은 것이 아니라 몇 년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 이유는 아이를 낳기 어려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해서인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 혼인을 한 후 신랑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신부는 일정 기간 친정에 머물다 시댁에 우귀한 이후 신혼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함께 살기 시작 한 이후에도 관혼상제 및 갖가지 금기와 관련하여 부부생활에 제약이 많았고, 때문에 혼례 510 醫 史 學

이꽃메 : 역시만필( 歷 試 漫 筆 ) 의 사례로 재구성한 조선후기 여성의 삶과 질병 많아 기에 손상을 입어 어지럼증이 심했던 경우(27번)도 45세라는 나이를 특 별히 언급한 것으로 보아, 노산으로 간주했던 것 같다. 조선 후기 여성이 임신을 알게 되는 증상은 월경의 중단, 입덧, 태동과 배 불러옴 등이었다. 그렇지만 임신 여부가 확실하지 않거나 의심될 때에는 의 원에게 진맥을 받거나, 신방험태산을 복용한 후 복부의 움직임을 통하여 판 단하였다. 신방험태산은 궁귀탕, 일기산이라고도 하며, 천궁과 당귀를 가루 낸 뒤 쑥 달인 물이나 술에 타서 복용하는 약인데(신동원 외, 2015: 434), 먹고 4-6시간이 지난 뒤에 배꼽 아래에 약간 꿈틀거리는 것이 잇달아 잦아지면 임 신이 된 것으로 판명하였다. 동의보감 에서 임신 여부를 시험하는 방법으로 제시했을 뿐 아니라(신동원, 1999: 694), 언해태산집요 에서도 무릇 부인이 두서 달 월경 안하여 자식을 뱄는가도 의심이 되며 혈기가 뭉쳤는가도 의심되 거든 신방태험산을 씀이 마땅하다 고 언급할 정도로(허준, 2010: 56) 임신진 단시약 역할을 하였다. 그렇지만 산림경제 나 규합총서 등 조선후기의 대 표적인 가정백과사전에는 이에 대하여 기술하지 않았고, 이수귀도 의뢰인에 게 이를 복용하여 임신 여부를 판단하도록 한 것으로 보아, 일반 여성들이 일 상적으로 사용했던 것 같지는 않다. 임신 중에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하혈과 유산이어서 10번에서 13번 까지는 이와 관련된 경우이고, 그중 11번과 12번은 임신 초기에 자연유산이 세 번씩 반복되었던 경우이다. 결혼한 여성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자식, 그중 에 아들을 낳아 대를 잇는 것이었던 당시에 하혈하거나 유산이 반복되면 당 사자와 가족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이고, 태아를 지키기 위하여 의 원의 도움을 받았던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에도 포상기태가 드물지 않았던지, 16번과 17번의 여성은 모두 임신 증상을 보였지만 각각 자수정으로 만든 갓끈 고리와 같은 것, 속에 수정 구슬 같은 것이 많이 있는 덩어리를 배출하였다. 와 초산 사이 간격이 매우 커서 18-19세기 남부지방에서는 초혼에서 첫아이 출산까지 4년 의 시간이 소요되어(김건태, 2009: 312-313) 단성지역 여성의 초산연령은 21.7세였고, 평 균 혼인연령이 단성보다 1.7세 정도 늦었던 제주지역에서는 초산연령이 20.8세였다(김건 태, 2009: 343-344). 제24권 제2호(통권 제50호) 497-532, 2015년 8월 511

YI Ggodme : The Lives and Diseases of Females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as Reconstructed with Cases in Yeoksi Manpil (Stray Notes with Experienced Tests) 14번의 한판서 며느리는 연달아 자녀를 두셋 낳으면서도 출산 때마다 순산 하지 못하고 산후병이 많았는데, 다시 임신을 하여 9개월에 달생산을 복용한 후 달이 차서 순산하였다. 그렇지만 만삭의 임산부이면서도 시아버지의 초상 을 치르고 여러 사람이 함께 머무르는 방에서 출산을 할 정도로 부모의 상을 치르는 것은 며느리에게 막중한 의무였다. 임신 과정의 어려움을 겪어냈다 할지라도 출산은 조선 후기 성인기 여성의 건강과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사건이었다. 조선 후기 양 반 여성의 사망에 대한 분석에서, 사망 원인 1위는 출산 및 그 후유증으로, 사 망원인 2위인 전염병의 배에 달하였다. 19) 차명수의 연구(2009: 128)에 의하면 조선 후기 여성의 유배우합계출산율은 8.10, 상위 계층은 5.86이었고, 김두얼 의 연구(2012: 16)에 의하면, 양반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5.09, 유배우합계출 산율은 6.90이었다. 따라서 조선 후기 양반 여성은 결혼하여 평균 5명의 자녀 를 낳았고, 가임기에 부부가 모두 생존한 경우에는 6~7명의 자녀를 낳았으며, 양반이 아닌 경우에는 자녀 수가 8명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양반계층 부부 의 평균수명을 비교해 보면 남성은 58.1세, 여성은 45.3세였다(김두얼, 2012: 9-11). 성장기 남녀사망비에는 별 차이가 없지만 성인기 이후 남녀 평균수명 의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은 임신과 출산,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여성이 사망하 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출산이 몹시 위험했기 때문에, 비정상 분만의 경우 의원이나 산파를 불러 도움을 받았다. 역시만필 에 나오는 비정상 출산 사례 넷은 모두 횡산인데, 그중 19번은 산모와 아이가 모두 사망했고, 18번은 사산했지만 산모는 무탈 했던 경우이고, 20번과 21번은 순산할 수 있었던 경우이다. 이중에 산모와 아 이가 모두 사망한 사례와 태반이 배출되지 않은 경우에는 의원 뿐 아니라 산 파가 동원되었다. 의원은 주로 약을 통하여 정상 분만과 태반 배출을 유도하 19) 김두얼은 15세기에서 19세기 중반 행장류를 통하여 학자의 배우자였던 193명의 양반 여성 의 혼인과 출산, 사망 등에 관하여 분석했는데, 사망 원인이 나타나 있는 것은 일부이지만, 25명이 출산 당시 혹은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하여 사망원인 수위를 차지하며, 사망원인 2위 인 전염병 13명의 배나 된다(김두얼, 2012). 512 醫 史 學

이꽃메 : 역시만필( 歷 試 漫 筆 ) 의 사례로 재구성한 조선후기 여성의 삶과 질병 였지만, 물리적인 방법도 사용하였다. 즉, 횡산이나 역산의 경우 먼저 배출된 태아의 손이나 발에 침을 놓고 소금을 발라 정산( 正 産 )으로의 체위 변경을 유 도한다든지, 좌산의 경우에는 높은 곳에 수건을 걸어 산모가 끌어당기면서 발 을 구부려 태아가 순조롭게 나오게 한다든지, 애산의 경우 산모가 하늘을 보 고 눕게 한 뒤 출산을 돕는 사람이 태아를 위로 밀어 올리며 손을 넣어 가운데 손가락으로 태아의 두 어깨를 눌러 탯줄을 벗겨준다든지 하는 것이다(신동원 외, 2015: 447-449). 또한 태반이 배출되지 않은 산모에게는 탯줄을 끈으로 단 단하게 묶은 연후에 절단하도록 하고 열심히 약을 복용하며 잘 조리하여 저절 로 태반이 배출되는 것을 유도하였다(신동원 외, 2015: 452). 산파의 경우 어떤 약을 사용했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비정상 출산과 태반 미배출에 훨씬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던 것 같다. 즉, 횡산의 분만을 진행 시키기 위하여는 수법( 手 法 ) 을 사용했으며(신동원 외, 2015: 448), 태반을 배 출하지 못한 산모에게는 긴 베로 허리와 배를 동여매고 잡아당겨 태반 배출을 유도하였다(신동원 외, 2015: 453). 그렇지만 산파가 개입한 이 두 사례는 모 두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 횡산의 경우에는 산모와 태아가 모두 사망 하였고, 태반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던 경우도 산모가 사망한 것이다. 이에 대 하여 저자인 의원 이수귀는 자신이 제안한 방법으로 천천히 분만과 태반 배 출을 기다리지 못하고 산파가 개입하게 한 것에 대하여 몹시 안타까와 했다. 그리고 이후 두 번의 횡산에서는 산파를 부르지 말도록 극구 만류하며 자신 의 방법을 고수하여 분만이 성공하였다고 자평하였다. 그렇지만 모든 난산이 나 태반 미배출의 경우 산파가 개입하여 좋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면, 사람들 이 다시 산파를 불렀을 리가 없다. 난산과 태반 미배출은 상당히 위험한 상황 이고, 어떤 산파나 의원이 개입했어도 항상 결과가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의 원의 입장에서 기록한 이 사례들을 통하여 비정상 출산과 태반 미배출에 대하 여 의원과 산파중 어느쪽이 더 성공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의원의 개입 이 즉각 효과를 보이지 않자 산모 가족이 산파를 부르고, 의원은 산파를 부르 지 않도록 산모 가족을 설득하기도 한 점으로 보아 출산에 있어서 의원과 산 제24권 제2호(통권 제50호) 497-532, 2015년 8월 513

YI Ggodme : The Lives and Diseases of Females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as Reconstructed with Cases in Yeoksi Manpil (Stray Notes with Experienced Tests) 파는 경쟁적 관계였던 것은 분명하다. 출산 후에 태반 미배출과 함께 위험한 것은 출혈 과다였다. 24번, 25번, 26 번은 출산시에 출혈이 과다하여 산모의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경우였다. 특별 히 이유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해산 후에 몹시 위독할 정도였다는 27번의 경 우까지 모두 삼부탕, 인삼차, 보허탕, 십전대보탕, 인삼을 더한 궁귀탕, 팔물 탕 등 인삼이 포함된 약재를 사용했다. 당시 인삼은 매우 고가의 약재여서 가 난했던 28번과 29번의 집안에서는 인삼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했지만, 이수귀 가 강력히 권하여 죽음을 면하고 살아남았다고 하니, 고가의 치료법은 환자 가족에게 부담이었던 것이다. 그 외에 29, 30, 32번도 출산한 후에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경우인데, 특히 30 번은 쌍둥이를 해산하고 나서, 그리고 32번은 자녀를 많이 낳아 허약해진 경 우였다. 24번은 17세의 이른 나이에 초산을 한 김생의 처로, 산모는 특별한 이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갓난아기의 상태가 좋지 않아 얼굴이 푸른빛을 띠고 호흡 도 잘 못하여 울지도 못할 정도였다. 이 갓난아기는 솜이불로 싸두고 탯줄을 자르지 않은 채 기름종이에 불을 붙여 탯줄 아래를 덥히고 뜨겁게 끓인 식초 로 탯줄을 씻어내도록 하였다. 이 방법을 반복하여 사흘째 되는 날 울음소리 가 좋아지자 비로소 탯줄을 자르도록 하였다. 이렇게 갓난아기의 상태가 좋 지 않으면 탯줄을 자르지 않고 유지한 채 덥히고 식초로 씻어내는 방법은 언 해태산집요 (허준, 2010: 225)와 규합총서 (빙허각 이씨, 2008: 360)에도 언 급될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었다. 어려운 출산을 겪어내고 낳은 아이가 잘 자라면 그 노고의 보람이 있었지 만, 낳은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를 잃는 경우도 있었다. 남편과 금슬이 좋았 던 31번 안생 아내는 산후 얼마 안되어 아이를 잃고 몹시 슬퍼하다가 정신이 상이 왔던 경우이다. 그 외의 산부인과 질환으로는 딸을 낳고 난 후 흰색 질 분 비물이 배출되어 치료를 했지만 더 이상 아이를 갖지 못한 박첨정 아내(35번), 자궁 근종으로 추정되는 덩어리가 있었던 최생 아내(34번), 월경이 중단된 지 514 醫 史 學

이꽃메 : 역시만필( 歷 試 漫 筆 ) 의 사례로 재구성한 조선후기 여성의 삶과 질병 수개월 후에 복통이 있고 핏덩이를 쏟은 이회양 아내(33번) 등의 사례가 나타 난다. 또한 유일하게 유방의 이상으로 기록에 남은 김생 아내(37번)도 있다. 20) 4. 성인기의 기타 질병 역시만필 에 나타나는 성인기 여성의 사례 중에 산부인과 관련 문제를 제 외하면, 조선 후기 여성의 일상이 더욱 잘 드러난다. 임신과 출산을 별 탈 없 이 치루었어도 어린이를 양육하고 가족을 건사하며 살림을 돌보는 것은 심신 의 노고를 요하는 것이었다. 정만호 며느리(38번)는 20대 초의 젊은 나이에 잘 놀라고 가슴 두근거리며 불안, 초조한 증상이 있었다. 약을 복용하면서 거 의 낫고 있었지만 아프다고 어디 입원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 머물러 있었으므 로 자신의 회복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어린이를 건사해야 했던 것 같다. 아이 가 물건을 얼굴 쪽으로 던져 놀라면서 증상이 심해져 개소리, 닭소리에도 놀 라 발작을 일으키는 지경이 되었다. 낳은 아이의 절반이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했던 조선 후기에 어머니로써 아픈 아이를 돌보며 노심초사 하는 일은 흔했을 것이다. 21) 장공 부인(39번)은 아이들 병으로 고생도 많이 하고 걱정거리도 많던 끝에 가래기침과 가슴벌렁 증, 그리고 귀신을 보고 헛소리하고 놀라 떠는 정신과적 문제까지 얻게 되었 다. 자녀가 자라면 혼사를 치루는 것이 큰 일이어서, 권직장 부인(40번)은 집 안의 혼사를 결정하고 나서 신경이 많이 쓰였는지 아팠는데, 이틀 동안 십여 마리의 회충을 토하기까지 하였다(신동원 외, 2015: 559). 가난한 경우에는 고생이 더욱 심해서, 가슴이 답답하고 발작할 때마다 혼절하는 증상이 나타 난 아낙(41번)도 있었다. 20) 김생 아내의 유방 종기를 2015년 번역 및 해설자들은 암으로 분류했지만, 붉게 붓고 열이 많이 났다는 증상(신동원 외, 2015: 223)으로 보아 암이 아니라 유방 농양이었던 것 같다. 21) 조선후기 행장류 자료를 통하여 얻은 결과에 의하면, 가임여성 1명당 자녀수는 5.09명, 그 중 미성년사망자가 2.55명으로 출생아의 50%이다(김두얼, 2012; 17). 훨씬 작은 집단이기 는 하지만, 16세기 이문건 가내 사환비의 출산 기록은 총 19회인데, 이중 영유아기에 자녀 가 사망한 기록은 총 11회다(이혜정, 2010: 132). 제24권 제2호(통권 제50호) 497-532, 2015년 8월 515

YI Ggodme : The Lives and Diseases of Females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as Reconstructed with Cases in Yeoksi Manpil (Stray Notes with Experienced Tests) 표 3. 역시만필 에 나타난 성인기 여성의 기타 질병 경험 Table 3. Other Diseases of Female Adults in Yeoksi Manpil 번호 case 번호 환자 나이 주요 증상 특이사항 38 41 남판관 딸이자 정만호 며느리 20대 초 잘 놀라고 가슴 두근거리며 불안 초조. 숨이 막히고 잘 놀 라고 두려워하는 증후가 심해 져 닭 울고 개 짖는 소리에도 놀라며 숨 막힘. 하루에 네다 섯 차례 발작 약 복용하여 거의 낫다가 아이가 물건을 얼굴 쪽으로 던져 놀라자 숨 막히고 잘 놀라고 두려워하는 증후가 심해짐. 약 복용하고 쾌유 39 8 장공의 아내 가래기침과 가슴벌렁증. 귀 신을 보고 헛소리하고 놀라 떰 40 121 권직장 부인 살갗에 삼씨 같은 붉은 반점 이 돋음. 머리 아프고 열이 나 며 목이 부음. 회충 토함 41 6 아낙 가슴답답증과 옆구리 부어오 름. 발작할 때마다 혼절 아이들 병으로 고생 많이 하고 걱 정거리 많았으며 증상 나타났으 나 약 복용하고 깨끗이 나음 유감사 집안과 혼사를 정하고 증 상 나타남. 약 복용하고 평안해짐 가난한 집안에서 고생이 심함 42 2 조생 부인 43 35 이참의의 조카며느리 심하게 땀이 남. 뜨거운 죽이 나 끓인 물을 마셔도 입안에 들어오자마자 얼음처럼 차갑 게 느껴짐. 몸이 부음 극심한 복통과 변비로 식음 을 전폐 첩을 얻은 남편을 원망하고 증상 나타남. 약 복용하고 나음 젊을 적부터 금슬이 좋지 않음. 약 복용하자 대변 나오고 복통 이 그침 44 4 홍첨지 며느리 가슴속이 뭉치고 갑갑. 혼미 하여 인사불성 시댁 식구와 격하게 다투며 격분 하고 수일간 음식을 먹지 않고 쓰 러짐. 약 복용하고 뜸 뜨니 증상 줄고 나음 45 9 피첨지 며느리 젊은 나이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머릿 골이 아픔. 사람과 사물이 모 두 뒤집어져 보이고 방바닥 이 높은 언덕과 깊은 골짜기 처럼 보임 청상과부로 남편 기일에 슬퍼한 후 증상 생김. 약 복용하고 나음 516 醫 史 學

이꽃메 : 역시만필( 歷 試 漫 筆 ) 의 사례로 재구성한 조선후기 여성의 삶과 질병 46 5 정판서 며느리 배가 몹시 부르고 얼굴과 팔 다리는 마름 일찍 과부가 되어 자식도 남편 도 없이 고독하여 매일 술을 몇병 씩 마심. 약 복용하고 배 불룩하 던 것 삼분의 이 줄고 나음. 술과 짠음식 절제 못하여 재발하여 같 은 약 복용하고 나았으나 술을 삼 가지 못하여 몇 달 후 다시 재발 하여 사망 47 62 어떤 부인 해수기침으로 눕지 못함 약으로 나음 48 19 박첨지 후실 설사. 소변은 시원하게 나가 질 않음. 대소장 부근 아파함. 생식기 부위도 아파함. 소변 이 시원하게 나가지 않고 쌀 뜨물 같음 약으로 치료 49 27 이양천의 딸 이자 성정언의 조카 며느리 역병에 걸려 열이 내렸다 다 시 열이 나면서 병이 극심해 짐. 한열이 교차하고 가슴과 격막이 꽉 막히고 답답하여 음식이 넘어가지 않음. 뼈만 앙상하여 사경 약으로 병이 나음 50 130 김생 부인 목이 붓고, 귀가 아프며, 열이 심하게 나고, 대변이 마르고 잘 배출되지 않음 대마진에 의해 발생 51 52 홍정승 종손부 이자 이무주의 손녀 때로 열이 오름. 물을 마시 면 물이 등을 타고 내려가는 것 같음 가을철 이질설사 후에 증상 얻음. 약으로 쾌유 52 56 이판서 딸이자 황참판 며느리 20세 미만 설사, 열, 푸른 얼굴빛, 혀가 쪼그라들고 손발톱이 검게 됨, 호흡이 끊어질 듯 하고 사 람을 알아보지 못함 약으로 나음 53 57 유감사 부인 머리 쑤시고 온몸이 아프고 살가죽에 열이 나며 맥이 잦 음. 흉격이 빈 듯 허하여 뭔가 먹고자 함 봄철에 나타남. 약으로 나음 54 65 충주 수령 막내 딸이자 서백천 의 며느리 머리가 아프고 살갗이 뜨거 움. 열이 극심해져 헛소리 사월 무렵 나타남. 약으로 나음 제24권 제2호(통권 제50호) 497-532, 2015년 8월 517

YI Ggodme : The Lives and Diseases of Females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as Reconstructed with Cases in Yeoksi Manpil (Stray Notes with Experienced Tests) 55 58 윤순흥 부인 오한하며 몸을 심하게 떨음. 머리 아픔, 살가죽 뜨거움. 맥 박 빠름 사월 무렵 읍에서 출발하여 배를 타고 상경한 후 나타남. 약으로 건강해짐 56 66 누이의 아들 집 계집종 20 여세 머리 아프고 팔다리 관절이 후끈거리며 지끈거림. 혀에 검은 태. 입술 타고 갈증, 복 통, 설사, 정신 혼미, 나른한 목소리 10월 무렵 나타남. 약 복용하여 쾌유 57 60 어떤 계집종 살가죽에서 열이 나는 것이 숯불 같음. 입술 타들어가고 가슴 답답. 갈증. 검은 설태. 배가 아프면서 자주 혈변. 얼 굴빛이 참혹하고 목소리 끊어 져 말을 잇지 못함. 회충을 여 러 마리 토함 초겨울에 얻음. 약으로 나음 58 71 문생 부인 열, 숨가쁨, 얼굴 붓기 등 2월에 얻음. 약 복용하고 나음 59 93 이판서 조카딸 흉격 아래 덩어리로 물 한모 금을 세 번을 나누어 삼킬 정 도 약 복용하고 조리하여 나음 60 20 어느 상놈의 처 입맛이 없고 설사 병들어 수십일 누워 지냄. 약 복 용하고 효험 얻음 61 126 윤생의 계집종 팔다리에 감각 없음. 오른손 이 주먹은 쥐어지나 펴지지 않음 여름철에 바닥이 낮고 습한 땅에 서 기거한 후 병을 얻음. 침 놓고 굴신이 가능해짐 62 129 계집종 근 40세 배만 북처럼 팽팽하게 부어 올라 높이가 턱과 나란함. 머 리도 몸도 돌리지 못함. 때 로 혼절 낮고 습한 곳에 오래 누워있고 냉 수를 계속 마셔 증상 나타남. 침 놓고 뜸 뜨자 몸 움직이고 회복하 여 병이 나음 조선시대 여성이라고 남편과 시댁에게 순종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어서, 남 편이나 시댁과의 갈등으로 병을 얻기도 하였다. 조생 부인(42번)은 남편이 첩 을 얻자 원망하다가 심하게 아팠다. 22) 이참의는 조카며느리(43번)가 아프자 22) 조선시대 첩을 두는 것은 그다지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일제 초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1915년 경상도 안동 천전리의 경우 처는 248명, 첩은 1명 뿐이었고, 남성부족 현상에 시달 518 醫 史 學

이꽃메 : 역시만필( 歷 試 漫 筆 ) 의 사례로 재구성한 조선후기 여성의 삶과 질병 의원 이수귀를 불러 평소 병의 원인이 될 만한 것을 알린다면서, 젊을 때부터 금슬이 좋지 않았고 치우친 성질의 소유자라고 평가하였다(신동원 외, 2015: 196). 남편과의 불화가 시댁식구들도 잘 알정도로 심했던 것 같고, 시댁식구 입장에서는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은 며느리를 좋게 바라보지는 않았을 것이 다. 구체적인 이유는 나타나있지 않지만, 홍첨지 며느리(44번)는 시댁 식구와 다투며 격분하여 며칠동안 음식도 먹지 않다가 가슴속이 뭉치고 갑갑한 증상 이 생겼고, 급기야는 혼미하여 인사불성에까지 이르렀다. 23) 양반가 여성보다 남성의 평균수명이 길었던 당시에 과부가 되는 경우보다 홀아비가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24)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는 경우도 흔했다. 조선 후기 재가한 과부의 자손은 관직에 진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양반 여성 의 경우, 남편이 사망하면 대개 남은 평생을 재가하지 않고 살았다. 청상 과부 가 된 피첨지 며느리(45번)와 정판서 며느리 역시 재혼을 생각할 수 없고 친 정과 시댁에 대하여 자식으로서 의무만 남는 어려운 처지였을 것이다. 25) 특 히 정판서 며느리는(46번) 남편도 자식도 없는 청상 과부로 살면서 알콜에 의 존했던 것 같다. 매일 술을 몇병씩 마시면서 시름을 달래다가 간경변을 앓았 던 것으로 보인다. 약을 복용하면서 증상이 호전되었지만 다시 술과 짠 음식 을 먹으며 나빠졌고, 재차 약을 복용하며 좋아졌지만, 결국은 술을 끊지 못하 여 사망하였다. 성장기의 주요 사망원인이었던 급성감염병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심각한 려서 축첩풍습이 성행했던 제주도에서도 첩의 비율이 정점에 달했던 1840년대에도 14%였 다(김건태, 2009: 335-338). 23) 이문건(1494-1567)의 며느리로 김종금은 시어머니 김돈이(1497-1566)와 불화가 있었다. 1563년, 예순일곱인 시어머니가 가정사를 제대로 건사하라고 훈계하자, 서른여덟이었던 이 며느리는 죽고 싶다며 대들었다. 시어머니 말에 의하면 며느리가 툭하면 말을 거역하고, 온 갖 능욕을 다했다고 한다(신동원 외, 2014: 333). 24) 조선후기 행장류를 통한 분석에서 결혼한 양반가 여성의 평균수명은 45.3세이고, 그 배우 자인 남성은 58.1세였다(김두얼, 2012: 9-10). 25) 예를 들어 18세기말 열다섯에 시집갔다 스무살에 자식이 없이 남편을 잃은 풍양 조씨가 남 편을 따라 죽지 않은 것은 애정이 각별했던 아버지와 언니에게 미칠 영향, 그리고 무남독녀 였던 남편의 사망 이후 시부모님과 시조부모님을 모시면서 집안을 꾸려야 한다는 의무 때 문이었다(풍양 조씨, 2014: 91-117). 제24권 제2호(통권 제50호) 497-532, 2015년 8월 519

YI Ggodme : The Lives and Diseases of Females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as Reconstructed with Cases in Yeoksi Manpil (Stray Notes with Experienced Tests) 문제였다. 26) 성정언의 조카며느리(49번)가 앓았던 병은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는 않지만 역병( 疫 病 )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무척 심각한 급성감염병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밖에 김생 부인(50번)은 심했던 홍역 유행으로, 홍정승 종 손부(51번)는 이질로 고생하였다. 성인기와 노년기 여성이 가장 많이 앓고 고생했던 질병은, 밖으로부터 오 는 한( 寒 ), 열( 熱 ), 습( 濕 ), 조( 燥 ) 따위의 사기( 邪 氣 )로 인하여 생기는 병을 통 틀어 이르는 상한이었던 것 같다. 상한병은 20살이 안된 황참판 며느리(52번) 부터 육순 부인(73번)에 이르기까지, 관찰사의 부인(53번)이나 수령의 딸(54 번)에서 계집종(66, 67번)에 이르기까지 나이와 지위의 고하를 불구하고 누 구나 걸릴 수 있었다. 육로가 좋지 않았던 조선시대에는 먼거리를 갈 때 수 로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흔했으므로, 윤순홍 부인(55번)은 아직 아침저녁으 로 바람이 차가운 사월 무렵 배를 타고 상경한 후 상한병에 걸려 고생하였다. 기타 질병으로는 해수기침이 심했던 어느 부인(47번), 비뇨기계 염증으로 추정되는 박첨지 후실(48번), 상복부 종양으로 추정되는 이판서 조카딸(59 번) 등이 있다. 한편, 병에 걸렸을 때 의원을 찾아 처방을 받고 약을 복용하여 회복을 도모 하는 것은 양반계층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역시만필 에는 천민이 의원을 찾 아 치유를 도모하는 사례가 여럿 나오는데(56, 57, 60, 61, 62번), 61번과 62 번의 여종은 여름에 낮고 습한 곳에서 기거하다가 아플 만큼 생활 여건이 좋 지 못했고, 이들에게 행해진 치료 방법도 비용이 소요되지 않는 침과 뜸이었 다. 그렇지만 여종의 치료에 값비싼 인삼을 넣은 약을 사용한 경우도 있었고 (60번), 의원의 판단에 따라 약에 인삼을 갑절로 넣을 만큼(56번) 치료에 비 용을 투자하기도 하였다. 가정을 단위로 자급자족적 생활을 기본으로 하던 조선시대에 여성은 음식 과 의복 마련, 농사짓기와 농지관리, 구매와 교환, 자녀양육 및 교육, 노비 관 26) 조선후기 행장류에 나타난 양반가 여성의 사망원인은 1위가 임신 및 출산 관련, 2위가 감염 병이었다(김두얼, 2012: 10). 520 醫 史 學

이꽃메 : 역시만필( 歷 試 漫 筆 ) 의 사례로 재구성한 조선후기 여성의 삶과 질병 리, 봉제사와 접빈객 등의 가내노동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노비 등의 아랫사 람이 있던 부유한 양반계층 여성의 경우 직접적 노동 수행 보다는 관리자로 서의 역할이 컸지만(이기영 등, 2007:119-132 ), 그런 인력이 따로 없었던 농 민계층은 여성이 수행하는 가사노동이 가족원 생존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 였다(조희선, 2000: 60). 따라서 여성이 아픈 경우 집안의 일상에 미치는 영 향이 심각해서 어느 상놈의 처(60번)는 설사하고 입맛이 없어서 수십일 동안 몸져 누워 있었는데, 그 남편은 아내 대신 물 긷고 불 때서 밥 지어 먹느라고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으로 고생하였다고 의원에게 어려움을 토로하였다(신 동원 외, 2015: 127). 4) 노년기; 질병과 가족의 사망을 겪으며 삶을 마무리하다 역시만필 에 나오는 노년기 여성의 사연은 22개이다. 이를 살펴 보면, 노 년에 들어서 가족의 사망과 본인의 노화와 질병을 겪으면서 삶을 마무리했던 조선 후기 여성의 삶이 나타난다. 표 4. 역시만필 에 나타난 노년기 여성의 삶과 질병 경험 Table 4. The Lives and Diseases of Aged Females in Yeoksi Manpil 번호 case 환자 나이 주요 증상 특이 사항 및 경과 63 73 유참판 여동생 이자 윤청풍 며느리 64 110 피만호 아내 60 여세 65 115 박감사 부인 60 여세 열. 기운 없음. 턱 씰룩거림. 잠만 자려 하고 정신 혼몽하여 아무도 알아보지 못함 어지럼증, 기운 없음, 팔다리와 온몸에 오한 느낌 가슴이 답답하고 번조하며 흉격 이 그득. 오슬오슬 떨리면서 열이 나며 머리가 욱신거림 과부. 외동딸이 산후에 생사를 넘 나드는 것을 애태우다 발병. 약으 로 움직이고 의식도 올라옴 자식을 잃고 슬퍼하다 증상 생김, 약으로 쾌유 6월중 돌림병으로 아들을 잃고 증 상 생김. 약으로 나음 66 7 유감사 어머니 제사상 떡과 찬을 먹고 저녁에 가 슴과 배가 대단히 아픔 애지중지한 외동딸의 사위를 잃 고 제사상을 통곡하며 과도하 게 슬퍼하고 증상 나타남. 약으 로 쾌유 제24권 제2호(통권 제50호) 497-532, 2015년 8월 521

YI Ggodme : The Lives and Diseases of Females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as Reconstructed with Cases in Yeoksi Manpil (Stray Notes with Experienced Tests) 67 61 권판서 조카며 느리이자 김진 사 장모 50세 넘음 살가죽에서 열이 나고 정신이 혼 미하여 말을 못하더니 정신 잃음 이가 아파 미음만 먹다가 동기가 죽어 문상을 가서 곡을 하고 발 병. 약으로 좋아짐 68 128 이수귀의 외할 머니 61세 근력이 쇠약해지고 뼈만 남음. 대 변에 피가 섞여 나옴. 몸이 퉁퉁 부음. 숨을 겨우 이음 남편 여의고 과도한 슬픔으로 몸 을 상함. 담제를 지낸 뒤에도 투 박한 채식 고수. 배꼽을 볶은 소 금으로 메워 뜸을 뜨고 나음 69 21 누이동생이자 경별좌 아내 거의 70세 이질 설사. 복통 약으로 나음 70 24 김정승 부인 하루에 수십 차례 설사. 기운이 매우 없고 음식 먹기를 싫어함 71 28 육순 부인 61세 속이 메스껍고 구토. 온몸이 차 갑고 아프며, 어금니를 물고 턱이 뻣뻣해지면서 인사불성 72 18 피찰방 어머니 오한과 신열이 번갈아 남. 배뇨 통. 움직이지 않는데도 땀이 흐름 73 28 육순 부인 61세 상한병, 정신 혼미하고 말이 서 투름 약 복용하자 설사 멎어 음식 먹 기 시작 상한병에서 회복하고 열흘쯤 뒤 에 만두 먹은 후 발발. 약으로 편 안해짐 여름에 질환 얻음. 이수귀가 삼기 계부탕 권하자 피찰방 아버지가 몹시 난색 표함. 삼기계부탕 포함 한 약을 쓰고 나음 약 복용하니 땀나고 정신 나면서 죽 먹음. 수일 복용 후 열이 물러 나고 편안해짐 74 72 홍진사 모친 거의 60세 오한으로 온몸이 떨림, 두통 봄에 증상 나타남. 약으로 회복 75 111 장수 수령 부인 두통, 오한 약으로 나음 76 65 조충주공 부인 담이 섞인 해수. 병세 위중. 가 슴이 그득하고 음식을 체함. 밤 에 잠을 이루지 못함. 기침, 입 맛 잃음 77 78 최판관 부인 다리에 힘이 빠져 말라가다가 걷 지 못하여 여러 달 자리에서 일어 서지 못함 78 79 이생 부인 다리에 힘이 빠져 걷지 못함. 몸 을 움직이지 못하여 수개월 앉은 채로 자리 보전 증상에 따라 약을 사용하여 나음 약 복용 후 쾌차 약으로 쾌유 522 醫 史 學

이꽃메 : 역시만필( 歷 試 漫 筆 ) 의 사례로 재구성한 조선후기 여성의 삶과 질병 79 39 한생의 누이 동생 50 여세 명치끝 아래 근처에 덩어리가 가 로로 드리워져 주변 흉격이 더부 룩하고 답답. 배가 그득하고 불러 옴. 호흡 급박해지고 앉거나 눕는 것이 힘듬 일찍 남편 잃고 자녀도 없어 마음 이 괴롭고 체하는 병고가 있었음. 약을 복용하고 평상시같이 됨. 달 포 후에 증상이 재발하여 사망 80 37 이참판 부인 60세 왼 옆구리 아래 종양이 자주 움직 이면서 아픔. 공격용 약제를 먹자 음식 싫어하고 혈괴가 왼쪽 배로 옮아가고 추위에 덜덜 떰 수십년 됫박만한 덩어리가 왼 옆 구리 아래 있었음. 왕왕 움직이 기도 했는데 임신 중에는 숨어들 어 움직이지 않음. 젊은 의사가 처방한 약 쓰고 사망 81 129 어느 계집종 70세 기술되지 않음 근 40세에 심하게 아팠지만 침과 뜸으로 치료됨. 70세에 사망 82 128 외할머니 76세 기술되지 않음 61세에 남편을 여의고 몹시 아팠 으나 회복. 76세에 사망 83 125 형수 최씨 79세 기술되지 않음 20대에 출산 뒤에 허약 증세가 있 었으나 약 복용 후 회복. 수십 년 자기 소변으로 세안하며 시력 관 리하여 등불 켜둔 상태에서 바늘 귀에 실을 꿰고 작은 책자를 봄 84 128 증조할머니 80세 넘음 기술되지 않음 며느리가 남편 여의고 노환 중에 계속 채식하는 것이 염려되어 형 편에 따르라고 만류 애써 낳은 자녀를 무사히 키워서 결혼을 시킨 이후에도 자식 걱정은 계속 되었다. 평균수명이 짧았기 때문에, 27) 어머니로서 오래 사는 경우에는 성장 한 자식의 죽음이라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참판 여동생(63 번)은 과부로 혼자 키운 외동딸을 성혼까지 시켰지만, 그 딸이 산후에 목숨 이 경각에 달린 상황을 겪으며 노심초사 하다가 병까지 얻었다. 피만호 아내 (64번)와 박감사 부인(65번)은 나이가 60이 넘을 만큼 조선 후기 여성으로서 는 오래 살았다고 할 수 있지만 장성한 자식을 앞서 보내는 고통을 겪었고, 유 감사 어머니(66번)는 애지중지한 외동딸의 사위를 잃고 제사상에서 통곡하 27) 족보를 통하여 추론한 조선후기 인구의 출생시 기대여명은 23세, 양반은 25세였다(차명 수, 2009: 124). 제24권 제2호(통권 제50호) 497-532, 2015년 8월 523

YI Ggodme : The Lives and Diseases of Females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as Reconstructed with Cases in Yeoksi Manpil (Stray Notes with Experienced Tests) 며 슬퍼하였다. 동기나 배우자의 사망은 나이가 들면서 누구나 겪기 마련이고 자식의 죽 음만큼 애통한 일은 아니라 할지라도 쉽게 겪고 넘어가지는 일이 아니었다. 김진사의 장모(67번)는 50대 초반이었는데 치통으로 음식을 잘 먹지 못하면 서 쇠약해진 상태에서 동기가 사망하자 문상을 가서 곡을 하고 발병하였다. 이수귀의 외할머니가 남편을 여의고 심하게 아팠던 일은 특히 자세하게 언 급되어 있다. 외할머니는 61세에 남편을 잃었는데(68번), 법도를 넘었다고 표 현이 될 정도로 통상적인 애도를 넘어서게 슬퍼하여 몸을 상했고, 보통 담제 를 치르고는 일상으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계속 채식만 하여 전신쇠 약, 체중감소, 혈변, 전신 부종 등이 나타날 정도로 심각한 상태가 되었다. 자 녀들이 영양가 있는 음식을 섭취하고 약을 복용할 것을 울면서 권하자 모진 목숨이 일찍 죽지 못하는 게 한스러울 뿐인데 더 무슨 치료를 하겠느냐? 다만 몸이 퉁퉁 부어서 죽는 것은 정말 싫으니 아무쪼록 이런 병 말고 다른 병을 얻 어 죽는 게 소원이다 라고 하였다(신동원 외, 2015: 594). 배우자의 사망에 뒤 따라 사망하는 것은 괜찮다는 일부종사의 생각은 굳건했지만, 몸이 붓는 신 체적 고통은 힘들었던 것 같다. 처방약이 비싼 인삼이 들어가는 것이어서 쓰 지 못하고 28) 그 대신 배꼽에 소금 뜸을 떴는데, 이것이 효과가 있어 이후 76세 까지 장수하였다(신동원 외, 2015: 593-4). 노년기의 여성은 성장기와 성인기에 각종 급성감염병을 경험하고 면역력 을 획득하여 나이 들어서는 성장기와 성인기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급성감염 병으로부터는 좀 자유로웠던 것 같다. 역시만필 에 언급된 노년기 여성 사 례 중에 이질(69번) 이외에는 급성감염병 증세를 보이는 사람은 없다. 설사 나 구토 등의 증세를 보이는 소화기계 이상(70, 71번), 상한(73, 74, 75번), 비 뇨기계 염증으로 추정되는 경우(72번) 등이 노년기 여성이 앓았던 질병인 것 28) 이수귀의 외할아버지 최승작은 역과 출신으로 첨지를 지냈으나(신동원 외, 2015: 606; 이기 복, 2015: 621), 사후 부인의 병에 인삼이 들어가는 약재를 쓰지 못한 것을 보면 가정경제가 넉넉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524 醫 史 學

이꽃메 : 역시만필( 歷 試 漫 筆 ) 의 사례로 재구성한 조선후기 여성의 삶과 질병 같다. 또한 근위축과 전신쇠약 증상을 보이는 경우(77번, 78번)도 있었다. 조선 후기 노년기 여성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종양이 당시에 도 주요 사망원인 중에 하나였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노년기 여성의 사망에 대하여 그 원인이 명확히 지적되어 있는 것은 둘 뿐인데 둘 다 종양으 로 인한 사망(79번, 80번)이기 때문이다. 29) 한생의 누이동생(79번)은 일찍 남 편을 잃고 자식도 없어서 마음이 괴롭고 음식이 체하는 것을 반복하다가 50 세 초반에 명치끝 아래 근처에 가로로 덩어리가 생겼다니 위암을 앓았던 것 같다. 이수귀는 이 병이 고치기 힘들다는 것을 환자 가족에게 알렸지만 약을 처방해 주었고, 환자는 이 약을 복용하고 일단 나아지기는 했지만, 몇 달 후 재발하여 사망하였다(신동원 외, 2015: 219-220). 이참판 부인(80번)은 젊었 을 때부터 왼쪽 옆구리 아래에 종양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종양이 커지면 서 통증도 심했다는 것으로 보아 양성 종양이 수십년이 지나면서 악성 종양으 로 변했던 것 같다. 젊은 의사가 약을 잘못 써서 60세에 사망했다고 기술되어 있지만, 이수귀가 개입했다고 하여도 종양에서 완치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 다. 조선 후기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 치료가 시작된 암은 치료가 거의 불가 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30) 그렇다면 어느 정도 나이에 사망하면 천수를 누렸다고 생각하고 자연스럽 게 받아들였을까? 역시만필 에 나타난 사례를 보면, 70세를 넘겨 사망하는 경우였던 것 같다. 40세때 심하게 아팠지만 회복되고 70세에 사망한 여종(81 번), 그리고 14세에 병자호란을 겪으면서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고 61세에 남 편이 사망한 후에는 위중할 정도로 병환이 심했지만 회복한 후 76세에 사망 29) 기타 사망의 경우에는 사망 원인이 언급되지 않았ㄹ다. 40세 경에 심하게 아팠다가 나은 후 70세까지 살았던 계집종의 경우는 단순히 사망했다는 것만(81번), 61세에 남편의 사망 이후 심하게 아팠던 외할머니의 경우에는 76세에 다른 병으로 사망했다는 것(82번)만 기 술되어 있다. 30) 역시만필 에는 이외에 남성 암환자의 사례가 하나 더 나온다. 이 경우 약을 쓰고 덩어리 가 거의 해소되어 흩어졌지만, 다시 재발하는 조짐이 있고 적괴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아 새 롭게 약을 권했다는 것 까지 기술되어 있고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신동 원 외, 2015: 215-216). 제24권 제2호(통권 제50호) 497-532, 2015년 8월 525

YI Ggodme : The Lives and Diseases of Females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as Reconstructed with Cases in Yeoksi Manpil (Stray Notes with Experienced Tests) 한 이수귀 외할머니(82번)의 경우, 간단하게 사망했다는 사실만 남겨져 있지 어떤 병으로 어떻게 앓았다던가, 치료가 어때야 했다던가 하는 기술이 없다. 이것은 60대의 환자(64, 65, 68, 69, 71, 73번)들에 대하여 그 증상과 치료 과 정을 모두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즉, 70세 이후 사망하는 경우에는 생로병 사의 마지막 과정으로 의원의 입장에서도 적극적으로 치료하려 하지 않았거 나 치료되지 않은 것을 실패로 여기지 않을 만큼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 과로 받아들였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역시만필 에는 70대를 살아남은 79세와 80세의 여성이 나온다. 이수귀의 형수(83번)는 20대에 허약했지만 회복한 이후 무척 정정한 노년을 누렸던 것 같다. 특히 이수귀는 79세의 형수가 등불을 켠 상태에서 바늘에 실을 꿰고 작 은 책자를 보았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놀라움을 표현했고, 그 비결을 물었더니 수십년째 자기 소변으로 눈을 세안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고 하였다. 이 이 야기는 조선후기 여성이 매일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건강을 관리했 으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가사노동을 계속했던 것을 나타낸다. 역시만필 에 등장하는 최장수 노인은 80세가 넘은 이수귀의 증조할머니 (84번)이다. 그런데 증조할머니의 건강이나 질병 관련 언급이 아니고, 이수 귀의 외할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망자의 부인인 며느리가 애통해 하면서 채식 을 고집하자 염려하며 형편에 따르라며 만류했다는 것이다. 여든이 넘은 노 인이 남편을 여읜 육순의 며느리를 걱정하는 웃사람의 모습을 보이는 것, 이 것이 자손을 헤아리는 어른으로 역할을 해야 했던 조선 후기 노년기 여성의 모습이었다. 5. 결론 본 글에서는 의원 이수귀( 李 壽 龜 )의 의안( 醫 案 )에 나타난 거의 80명 여성 의 사례를 통하여 조선 후기 여성의 삶과 질병을 성장기, 성인기의 산부인과 관련, 성인기의 기타 질병 관련, 노년기로 나누어 재구성한 후 분석하였다. 그 526 醫 史 學

이꽃메 : 역시만필( 歷 試 漫 筆 ) 의 사례로 재구성한 조선후기 여성의 삶과 질병 결과, 성장기 여자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남자아이보다 귀하게 대접받지 못했 으며, 성장하면서 질병이 있을 때 의원의 치료를 구하는 경우가 남자아이보 다 적었고, 급성감염병이 가장 심각한 건강문제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필요에 따라 남성 의원의 치료를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직접 의원과 대면하고 진맥을 하는 등 필요한 접촉을 했다. 그렇지만 양반 여 성의 경우 가장을 비롯한 성인 남성이 그 과정을 주도하고 내외( 內 外 )를 벗어 나지 않도록 하였고, 하층민은 유학의 엄격한 법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서 직접 의원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기도 하였다. 성인기 여성의 생명과 건강에 가장 심각한 위협은 임신과 출산이어서 그 과정에서 태아나 임산부가 또는 둘 다 사망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문제가 있을 때는 의원과 산파의 도움을 받았다. 의원은 진맥 이나 약을 통하여 여성의 임신 여부, 태아와 임신부의 건강상태를 판단했으 며, 임신과 분만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이상에 약과 기타 처치를 통하 여 적극적으로 대처하였다. 그중에는 하혈과 유산, 비정상임신, 다양한 형태 의 분만과 태반 미배출, 산후 출혈 과다 등이 있었다. 특히 비정상 분만과 태 반 미배출의 경우에는 의원 뿐 아니라 산파를 부르기도 하였고, 이들은 경쟁 적 관계였다. 성인기 여성은 반복되는 임신과 출산, 육아로 건강을 상하는 경우도 있었 고, 남편이나 시댁식구와의 불화로 병을 얻기도 하였다. 남편이 먼저 사망하 는 경우, 양반가의 과부는 여생을 혼자 살아야 했기 때문에 그로 인한 심적, 신체적 부담이 무척 커서 병을 앓기도 했다. 급성감염병은 성장기에 이어 여 전히 성인기 여성의 주요 질병 중 하나였고, 상한은 성인기와 노년기에 자주 앓는 질병 중 하나였다. 천민 여성의 경우, 병을 얻을 정도로 주거환경이 열악 하기도 했으며, 이 경우 돈이 들지 않는 침이나 뜸으로 병을 고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종이면서도 고가의 인삼이 들어간 약을 복용하기도 하였고 중인이 나 양반 여성일지라도 경제적인 이유에서 인삼 약재를 쓰기 어려워하기도 했 으므로, 신분에 따라 치료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제24권 제2호(통권 제50호) 497-532, 2015년 8월 527

YI Ggodme : The Lives and Diseases of Females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as Reconstructed with Cases in Yeoksi Manpil (Stray Notes with Experienced Tests) 노년기에는 장성한 자손, 동기, 배우자의 죽음이라는 힘든 과정을 겪었다. 상한병, 이질, 소화기계 이상이 흔한 질병이었으며 종양은 주요 사망원인중 하나였다. 70세가 넘은 노인의 사망은 주변에서 상당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였 다. 그렇지만 성장기와 성인기를 겪어낸 여성 노인은 건강을 유지하고자 노 력했으며, 자손을 돌보는 어른으로서 역할을 하고자 하였다. 역시만필 에 나타난 약 80명 여성의 생로병사는 오늘날 우리 여성의 삶과 어떤 점에서 유사하고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가? 급성감염병이나 임신과 출산의 위험에서 상당히 안전해졌고, 생활수준 전반이 향상되며 평균수명은 조선후기의 두배가 되었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 가까운 사람의 사망, 자신의 질병과 건강관리의 책무, 인생의 단계에 걸맞는 역할 수행 등 생로병사의 경 험은 오늘날에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과제로 주어져 있다. 색인어: 역시만필, 이수귀, 조선후기, 여성, 질병, 급성감염병, 임신, 출 산, 의원, 산파 투고일: 2015. 07. 09 심사일: 2015. 07. 17 게재확정일: 2015. 08. 05 참고문헌 REFERENCES <자료> 빙허각 이씨, 규합총서 (서울: 보진재, 2008). 이수귀, 역시만필-조선 어의 이수귀의 동의보감 실전기, 신동원 외 역(서울:들녘, 2015). 풍양 조씨, 자기록-여자, 글로 말하다, 김경미 역(서울: 나의시간, 2014). 허준, 역주 언해태산집요, 정호환 역(서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10). <연구논저> 구현희, 오준호, 질병치료와 공공의료에 활용된 조선시대 목욕요법 연구, 민족문 화 40(2012), pp. 265-294. 528 醫 史 學

이꽃메 : 역시만필( 歷 試 漫 筆 ) 의 사례로 재구성한 조선후기 여성의 삶과 질병 김건태, 18세기 초혼과 재혼의 사회사, 역사와 현실 51(2004), pp. 195-224. 김건태, 19세기 단성지역의 결혼관행, 고문서연구 28(2006), pp. 235-263. 김건태, 18-19세기 제주도 여성의 결혼과 출산, 대동문화연구 65(2009), pp. 311-351. 김두얼, 행장류 자료를 통해 본 조선시대 양반의 출산과 인구 변동, 경제사학 52(2012), pp. 3-27. 김성수, 묵재일기( 黙 齋 日 記 )가 말하는 조선인의 질병과 치료, 역사연구 24(2013), pp. 35-53. 김신연, 조선왕조의 궁중 출산 풍속 연구, 한국여성교양학회지 5(1998), pp. 103-120. 김호, 조선후기 왕실의 출산 지침서:림산예지법, 의사학 13-2(2004), pp. 348-360. 남은경, 병자호란과 그 후의 기록 심양장계, 한국문화연구 14(2008), pp.15-62. 박희진, 양반의 혼인연령: 1535-1945-혼서를 중심으로, 경제사학 40(2006), pp. 3-20. 백옥경, 조선시대 출산에 대한 인식과 실제, 이화사학연구 34(2007), pp.191-217. 신동원 a, 병과 의약생활로 본 정약용의 일생, 다산학 22(2006), pp.259-328. 신동원 b, 조선시대 지방의료의 성장: 관 주도에서 사족 주도로, 사족 주도에서 시장 주도 로, 한국사연구 135(2006), pp.1-29. 신동원, 조선의약생활사 (파주: 들녘, 2014). 신동원, 김남일, 여인석, 한권으로 읽는 동의보감 (파주: 들녘, 1999). 신명호, 조선시대 궁중의 출산풍속과 궁중의학, 동북아문화연구 21(2002), pp. 147-165. 오재근, 중국, 일본, 한국의 의안 비교를 통해 살펴본 17-18세기 한국의 상한 의학, 이수 귀, 신동원, 오재근, 이기복, 전종욱, 역시만필-조선 어의 이수귀의 동의보감 실전 기 (파주: 들녘, 2015). 육수화, 조선왕실의 출산과 안태의 재조명, 민족문화논총 35(2007), pp. 279-315. 이기복, 18세기 의관 이수귀의 자기인식: 기술직 중인의 전문가의식을 중심으로, 이수 귀, 신동원, 오재근, 이기복, 전종욱, 역시만필-조선 어의 이수귀의 동의보감 실전 기 (파주: 들녘, 2015). 이기영, 김성희, 이현아, 조선시대 양반가의 남녀 간 가내노동 분담: 보완적 역할 수행에 관한 연구, 한국가족자원경영학회지 11-4(2007), pp. 115-135. 이복규, 조선 전기의 출산, 생육관련 민속-묵재 이문건의 묵재일기, 양아록을 중심으로, 한국민속학보 8(1997), pp. 5-22. 이진숙, 트라우마에 대한 소고, 여성연구논집 24 (2013), pp. 175-190. 이혜정, 16세기 가내사환노비의 동류의식과 저항- 묵재일기 를 중심으로, 조선시대사 학보 54(2010), pp. 129-161. 제24권 제2호(통권 제50호) 497-532, 2015년 8월 529

YI Ggodme : The Lives and Diseases of Females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as Reconstructed with Cases in Yeoksi Manpil (Stray Notes with Experienced Tests) 차명수, 조선후기의 출산력, 사망 및 인구증가: 네 족보에 나타난 1700-1899년간 생몰 기 록을 이용한 연구, 한국인구학 32-1(2009), pp.113-137. 조희선, 조선조 가부장제 가족주의의 실현과 여성생활, 동아시아 문화와 사상 5(2000), pp.59-83. 530 醫 史 學

Korean J Med Hist 24: 497-532 Aug 2015 pissn 1225-505X, eissn 2093-5609 C The Korean Society for the History of Medicine http://dx.doi.org/10.13081/kjmh.2015.24.497 http://medhist.kams.or.kr -Abstract- The Lives and Diseases of Females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as Reconstructed with Cases in Yeoksi Manpil (Stray Notes with Experienced Tests) YI Ggodme* 31) ** Department of Nursing, Sangji University, Wonju-si, Kangwon-do, KOREA Through the cases of approximately 80 females in the case records of traditional physician Yi Sugwi (1664-1740?), the present study divided and reclassified the lives and diseases of females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into childhood, obstetrics- and gynecology-related problems in adulthood, other diseases in adulthood, and old age and analyzed them. According to the results, female children were treated less preciously than were male children so that treatments by traditional physicians were sought out less when they were ill than in the case of male children, and acute infectious diseases were the most serious health problems. In the process of receiving treatment from traditional physicians as adults, females came in contact with traditional physicians, who were male, when necessary including face-to-face sessions and the reception of pulse examination but the yangban (literati-official) class practiced sex * Department of Nursing, Sangji University, Wonju-si, Kangwon-do, KOREA E-Mail: yime@sangji.ac.kr Received: Jul. 09, 2015; Reviewed: Jul. 17, 2015; Accepted: Aug. 05, 2015 제24권 제2호(통권 제50호) 497-532, 2015년 8월 531

YI Ggodme : The Lives and Diseases of Females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as Reconstructed with Cases in Yeoksi Manpil (Stray Notes with Experienced Tests) segregation as much as possible while the lower classes were considerably free from such restrictions. For female adults, the most serious health issues were pregnancy and childbirth so that they received help from traditional physicians and midwives when there were problems. Traditional physicians determined females pregnancy and the health of fetuses and pregnant women through pulse examinations and medication and actively responded to diverse problems that surfaced in the process with medication and other treatments. Acute infectious diseases, too, were serious diseases suffered by females, and problems involving cold damage and the digestive system were among diseases frequently suffered by females in adulthood and old age. In old age, females often became ill in the arduous process of dealing with the deaths of adult descendants, siblings, and spouses, and tumors were among the major causes of their deaths. The deaths of those aged 70 or above were accepted as quite natural. Aged females endeavored to maintain their health and played the role of elders giving care to their descendants. Keywords: Yeoksi Manpil, Yi Sugwi,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females, diseases, acute infectious diseases, pregnancy, childbirth, traditional physicians, midwives 532 醫 史 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