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노조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김 금 수 외 지음 한 국 노 동 사 회 연 구 소 1996
산별노조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한국노동사회연구소(KLSI) 프리드리히에베르트재단(FES)
집필자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정승국 사회학 박사, 가톨릭대 강사 오삼교 정치학 박사, 가톨릭대 강사 신원철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이민영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인수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산별노조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c노동사회연구, 1996 초판 인쇄/1996년 9월 10일 초판 발행/1996년 9월 17일 지은이/한국노동사회연구소 펴낸곳/도서출판 노동사회연구 펴낸이/김금수 등록/제2-2201호 주소/100-051 서울시 중구 회현동1가 100-48 남산빌딩 201호 전화/778-4225~7, 팩스/776-4444, 모뎀/klsi21(천리안) 홈페이지http://bora.dacom.co.kr/~klsi/ E-mail/klsi@bora.dacom.co.kr * 잘못된 책은 바꾸어 드립니다.
책을 내면서 한국 노동조합운동이 현재의 기업별 노조형태를 구조적으로 개혁하여 산업별 체제를 확립하는 일은 현단계에서의 주체적 최대 과제이다. 산별 노조 건설운동은 단순히 조직형태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환을 위한 계기를 창출하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 문이다. 그것은 조직과 투쟁, 정치역량과 운동이념의 발전을 통해 계급적 통일과 적극적인 의미의 사회체제 개혁이라는 노동운동의 역사적 책무수 행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산별노조 건설운동에서 중요하게 요구되는 것은 올바른 조직론적 관 점을 정립하는 일이다. 이와 더불어 객관적 주체적 조건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산별노조체제 구축을 위한 원칙을 수립해야 하며, 단계적 경로의 설정과 아울러 현단계적 과제를 밝힐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실천적 과제 로서는 조직노선에 기초한 정확한 목표설정과 계획적인 실천방침 수립, 그리고 조직적 행동의지의 통일 등이 제기된다. 그런데 산별노조 건설에 관한 그 동안의 이론적인 작업은 다양한 수준과 방법에서 이루어지긴 했 으나, 대부분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정황에서 산별노조 체제 구축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작업은 정확한 목표설정과 실 천방침의 수립을 위해 필수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연구소는 산별노조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라는 주제로 연구사 업을 진행하면서, 선진자본주의국가의 노동조합 조직발전 과정과 단체교 섭구조에 대해 보다 정확하고 체계적인 내용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또한
4 90년대에 와서 이루어지고 있는 노동조합의 조직 변화에 대해서도 최근 의 통계와 자료를 통해 그 실상을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이를 위해 1995 년 9월부터 10월까지 근 한 달 동안에 걸쳐 유럽국가들의 노조와 연구소 들을 직접 방문해서 사례를 조사하고 자료를 수집했다. 방문조사는 7개 국(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빠듯한 일정에 쫓겨야 했지만, 각국 노사관계의 특징들을 구체적 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였으며 산별노조 연구에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이 기회를 빌어 국외의 방문객에게 친절을 아끼지 않은 그들 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 책은 크게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1장)에서는 노동조합 조 직형태와 산별노조 건설의 의미를 다루고 있고, 본론 부분에서는 각국의 산별노조 건설과정과 단체교섭구조(2장~8장)를 소개하면서 우리나라 노 동조합의 조직발전과정(9장, 10장)을 살펴보았다. 외국의 사례로는 독일, 스웨덴, 이탈리아 등 선진국은 물론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브라질, 남 아프리카공화국의 노동운동을 함께 다루었다. 아울러 기업별 노조형태를 취하고 있는 일본 노동운동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교훈을 취하고자 했 다. 우리나라 노동조합운동의 조직발전 과정에서는 일제 시대 노동운동 과 해방 직후 산업별로 건설된 전평의 조직과 활동, 1960년대부터 1970 년대까지 형식적으로는 산업별 노조 형태였던 한국노총의 조직구조 및 교섭구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우리나라 노동조합운동의 주체적 객관적 조건을 분석하고, 산별노조 건설운동의 원칙과 구체적 경로를 제시하고 있다. 연구진이 내린 결론은 산별노조 운동은 세계 노동운동사에서 보더라 도 보편적인 노동운동의 원리라는 것이다. 노동조합 조직형태의 구체적 인 모습은 산업별 노동조합의 보편적인 원리가 각국의 개별적인 노동운 동 및 노사관계의 역사 속에서 특수하게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산별노조의 건설은 노동운동의 합법칙적인 발전과정에서 어느 나라에서 나 주창되고 관철되었던 역사적인 현실인 것이다. 또한 산별노조와 같은 전국적 조직의 건설은 노동운동의 이념정립이나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에
책을 내면서 5 구조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80 년대 이후 나타나고 있는 교섭구조의 분권화도 산별노조가 강력하게 존 재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작업장 차원의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전국적 노동운동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약화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유도되고 있음 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본 연구도 외국에 대한 연구가 항용 가지는 한계에서 크게 벗 어날 수 없었고 앞으로의 산별노조 건설과정에서 나올 좀더 세부적인 주 제에 대한 구체적 분석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많은 연구과제들이 남아 있 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쪼록 이번 연구결과가 한국 노동 운동이 산별노조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실제적인 도움이 되고, 산별 노조 건설을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에 대해 활발한 논의를 전개하는 데 소중한 토대가 되기를 바란다. 1995년 5월부터 1996년 7월까지 1년이 조금 넘게 진행된 본 연구사업 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재단의 후원을 받아 추진 하였다. 열성적으로 참여한 연구진들과 기꺼이 재정지원과 편의를 제공 해 준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재단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연구기간 동안 관 심과 조언을 아끼지 않은 모든 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1996년 9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김 금 수
6 차 례 책을 내면서 3 제 1 장 산별노조 체제 구축을 위한 조직론적 관점 김금수 13 제 2 장 독일 산업별 노동조합의 형성과 발전 이민영 19 1. 머리말 19 2. 독일 노동조합의 기원 20 3. 독점의 진전과 산업별 노동조합의 성립 25 4. 독일 산업별 노동조합의 조직구조와 단체교섭 45 5. 조직현대화 논의 56 6. 맺음말 62 제 3 장 스웨덴의 산별노조 건설과정과 단체교섭구조의 변화 인수범 72 1. 머리말 72 2. 스웨덴의 산업별 노조 건설과정 73 3. 노동조합의 조직체계 및 운영: 노총과 금속노조 88 4. 단체교섭의 변화: 분권화와 노조의 대응 97 5. 맺음말: 시사점 111 제 4 장 산별노조와 작업장조직의 발전: 이탈리아의 사례 정승국 124 1. 머리말 124 2. 노사관계의 특성 125 3. 노동조합조직 및 단체교섭의 구조 126 4. 노동조합 조직구조의 발전과정 136 5. 결론 148
7 제 5 장 유럽연합(EU)의 노동사회정책과 노사관계 인수범 151 1. 들어가는 말 151 2. 유럽연합의 발전과정과 의사결정기구 152 3. 유럽연합의 노동사회정책 158 4. 맺음말 168 제 6 장 브라질 노동운동의 산별노조 건설 오삼교 173 1. 머리말 173 2. 브라질의 노동조합 조직구조 174 3. 단체교섭의 특징과 관행 182 4. CUT의 수직조직 건설 191 5. 결론: 한국 산별노조 건설에의 함의 204 제 7 장 남아프리카 노동운동의 현황과 전망: 신원철 211 1. 머리글 211 2. 남아프리카 노동조합 조직현황 212 3. 노동조합 조직형태의 변화과정 217 4. 단체교섭구조의 변동 225 5. 맺음말: 새로운 도전과 대응 231 제 8 장 일본 : 기업별 노조 극복을 위한 시도 이원보 235 1. 머리말 235 2. 일본 노동조합의 조직적 특성 237 3. 일본의 초기 노동조합 조직형태 248 4. 기업별 노조 극복을 위한 시도들 254 5. 일본 기업별 노조의 형성 배경에 대한 논의 281 6. 맺음말 284 제 9 장 한국 기업별 노동조합의 성립 이민영 291 1. 머리말 291 2. 노동조합운동의 진전과 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노력(~1945) 292
8 3. 전평의 등장과 대한노총의 도전 307 4. 맺음말 315 제 10 장 1960~70년대 한국의 산별노조 이원보 321 1. 60~70년대 노동조합운동의 개관 321 2. 60년대 산별노조의 형성과정 323 3. 산별노조의 조직체계와 운영 330 4. 60~70년대 산별노조의 성격과 한계 353 5. 맺음말 358 제 11장 산별노조 건설의 원칙과 경로, 현재적 과제 김금수 361 1. 산별노조체제 구축을 위한 객관적 주체적 조건의 변화 361 2. 산업별 노조체제 구축을 위한 원칙 371 3. 산업별 노조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경로 378 4.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산별노조 건설 방향 검토 389 5. 산업별 노조체제 구축을 위한 현단계적 과제 396
9 표 차 례 [표 1-1] 직업활동인구의 분야별 비중(1800~1914) 21 [표 1-2] 프러시아 지방의 노동자, 직인 수의 변화(1816~1861) 22 [표 1-3] 독일의 카르텔(1865~1905) 26 [표 1-4] 각 노동조합의 조합원수(1869~1932) 28 [표 1-5] 자유노동조합의 가입조직 수와 조합원 수의 변화 42 [표 1-6] 자유노조 10대 연맹의 조합원수(1913~1932) 44 [표 1-7] DGB의 가입조직 47 [표 1-8] 법정 평의원 수와 전임자 수 51 [표 1-9] 종업원평의회 선거결과(1978~90) 52 [표 1-10] 독일의 실업 57 [표 1-11] 독일 노동조합 조합원수 추이 58 [표 2-1] 스웨덴 초기 노동조합의 조직유형별 분류: 20세기 초 79 [표 2-2] LO 노조조직유형 분포의 변화 80 [표 2-3] 통제(Control)와 유형(Types) 82 [표 2-4] 스웨덴 노조수와 조합원수(1994년 현재) 88 [표 2-5] 스웨덴 노조 조합원의 발전 89 [표 2-6] 스웨덴 주요 경제부문의 단체교섭 조직 98 [표 2-7] 스웨덴사용자측의 협상단위 103 [부표 2-1] 스웨덴의 주요 경제지표 114 [부표 2-2] 스웨덴의 주요 노동경제지표 114 [부표 2-3] 스웨덴의 주요 노사관계 지표 114 [부표 2-4] LO 소속노조와 조합원 수 115 [부표 2-5] TCO 소속노조와 조합원수 116 [부표 2-6] 스웨덴 제조업의 협약임금인상과 임금부상(1975~91) 117
10 [부표 2-7] 스웨덴 단체협약(1980~93) 118 [부표 2-8] 스웨덴 중요 부문 및 교섭카르텔의 조합원 수 119 [부표 2-9] 스웨덴 노조 조직률 119 [표 3-1] 이탈리아 노조의 조직률(1950~1990) 129 [표 3-2] 이탈리아 전국중앙조직의 교섭 134 [표 3-3] 이탈리아 산별교섭의 주요 내용 135 [표 3-4] 이탈리아 산별노조의 결성 138 [표 3-5] 이탈리아 작업장조직의 변화와 특성 141 [표 3-6] 숙련에 따른 임금 차이 146 [표 4-1] 유럽통합의 주요 연표 153 [표 4-2] 12개국의 마스트리히트조약 비준절차 155 [표 5-1] 단체교섭의 빈도 185 [표 5-2] 단체교섭의 형태 186 [표 5-3] CUT와 CGT의 교섭 패턴 187 [표 5-4] 브라질 민간 상업은행의 여신규모 추이(1955~80) 198 [표 6-1] 남아공 조합원수 및 조직률 213 [표 6-2] 인종별 성별 조직률(1994) 214 [표 6-3] OHS 조사에 의한 부문별 노동조합 조직률 215 [표 6-4] 전국연맹 및 조합원수 216 [표 6-5] 코사투 창립시 가맹노조 및 조합원수 221 [표 6-6] 코사투 가맹 노동조합 현황 224 [표 6-7] 중앙교섭의 진행 현황 227 [표 7-1] 일본 노동조합 및 조직률 추이 238 [표 7-2] 산업별 조직상황 238
11 [표 7-3] 적용법규별 노동조합원수 239 [표 7-4] 기업규모별 노동조합원수 240 [표 7-5] 주요 단체별 노동조합원수 242 [표 7-6] 주요 단체 적용법규별 조합원 242 [표 8-1] 초기 노동조합 설립상황 294 [표 8-2] 일제시대 공장수와 종업원수, 노동단체수 추이 295 [표 8-3] 업종별 규모별 공장수 296 [표 8-4] 서울지역 직업별 노조의 산별 분포 297 [표 8-5] 지역별 노동조합연맹 결성상황 302 [표 8-6] 원산노동연합회의 세포단체 303 [표 8-7] 직업별 노동조합의 전국조직 조직상황 306 [표 8-8] 전평 산하 산업별 노조와 조합원수 308 [표 8-9] 대한노총 산하단체 조직상황 314 [표 9-1] 1960년대 산별노조의 구성 변화 327 [표 9-2] 산별노조의 지부, 분회 설치 상황 334 [표 10-1] 민주노총의 조직발전 방향 394
12 그림 차례 [그림 1-1] 독일 금속노조의 조직구조 49 [그림 2-1] 생산직노총(LO)의 조직체계 90 [그림 2-2] 사무직노총(TCO)의 조직체계 92 [그림 2-3] 스웨덴 금속노조의 조직체계 95 [그림 2-4] 조합주의의 이념형 109 [그림 3-1] 이탈리아 노조운동의 조직구조 128 [그림 4-1] 유럽 차원 협약의 적용 165 [그림 7-1] 일본의 노동조합 조직체계 244 [그림 8-1] 전평의 조직체계 310 [그림 9-1] 60~70년대 산업별 노조의 조직체계도 333
제 1 장 산별노조 체제 구축을 위한 조직론적 관점 김 금 수 *1) 한국 노동조합운동이 기업별 노조형태를 극복하고 산업별 노조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은 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형을 열어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의 도약을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말하자면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단순히 조직형태의 변화를 추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환을 위한 계기의 창출에 그 목표를 두고 있다. 그것은 조직과 투쟁, 정치역량과 운동이념의 발전을 통해 계급적 통일과 적극적인 의미의 사 회체제 개혁이라는 노동운동의 역사적 책무 수행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노동운동을 추진하는 기본 축은 조직과 이념이다. 노동운동의 발전에 서 조직은 과학적인 이념과 결합될 때 확대 강화될 수 있고, 이념은 투 쟁을 매개로 하여 조직의 발전을 통해 구체화되고 완성된다. 그런 점에 서 조직은 노동운동 추진의 토대이고, 조직형태는 노조조직의 골간 구실 을 한다. 노동운동의 발전과 관련하여 조직론적 주요 논의의 대상은 조직률과 조직형태이다. 조직률은 수의 다수 를 포용해야 할 대중조직으로서의 노 동조합이 전체 노동자 가운데 어느 정도의 구성을 조직화했는가에 대한 지표로서 조직의 양적 크기를 나타낸다. 노조 조직형태는 조직 내부구조 의 체계로서, 그것은 조직적 단결과 통일, 투쟁과 활동, 이념의 실현과 정치적 역량을 규정하는 요건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노동운동의 발전 과 관련하여 노조 조직형태는 어떤 규정력을 갖는 것인가. 노조 조직형태는 먼저 조직률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는다. 노조 조직형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14 태가 사업소별 노조, 기업별 노조, 직업별 노조, 산업별 노조, 일반노조, 합동노조 가운데 어떤 것을 취하느냐에 따라 조직 대상이 다르고 조직의 양적 크기가 달라지게 된다. 이를테면 한국이나 일본의 경우처럼 기업별 노조나 사업소별 노조형태 아래에서는 주로 개별 기업의 정규직 종업원 에 한해서만 실질적인 노조 가입 자격이 부여되고 일용직이나 임시직, 파견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가입 대상에서 배제된다. 또한 이런 조건에서는 중소 영세 사업장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많은 부분이 노 조를 결성하기 어렵거나 조직운영을 유지할 수 없어 미조직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높은 조직률을 확보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 가능하게 된다. 직업별 노조형태의 경우는 노동조합운동의 초기 단계에서 보듯, 숙련 공이 주된 조직 대상이 되고 미숙련공이나 반숙련공은 조직 대상에서 배 제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에 반해 산업별 노조나 일반노조의 경우는 동일 산업이나 여러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직종이나 기업에 관계 없이 조직 대상으로 하여 광범하게 포괄한다. 산업별 노조형태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나라들에서의 조직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도 조직형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와 산업별 노조형태를 취하고 있는 나라들의 경우에도 스웨덴과 덴마크 등 몇몇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조직률의 현격한 감소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 라 전통적으로 조직률이 높았던 제조업 부문의 취업자가 감소한 반면 서 비스 부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게 되고, 고용구조 면에서도 비정 규직이 늘어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본의 합리화와 국가의 신보소주 의적 통제가 강화되는 등의 상황에서 노조가 이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이다. 또한 노조 조직형태는 조직의 내적 결집과 통일의 정도를 규정한다. 예컨대 기업별 노조나 직업별 노조의 경우, 기업이나 직업 직능에 따라 조직이 분산되고 때로는 고립화의 경향마저 나타내게 되어, 집중화된 강 력한 조직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특히 폐쇄성과 편협성을 지닌 기업별
산별노조 체제구축을 위한 조직론적 관점 15 노조형태 아래서는 조직간 연대와 통일이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더 욱이 산업간 직종간 학력간 기업규모간 임금 노동조건 노동복지 등 의 격차가 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노동시장 분단화가 심화되고 있 는 상태에서는 조직의 분산과 분열의 경향이 증대되게 된다. 이에 반해 전국 단일의 산업별 노조형태의 경우, 조직의 규모가 큰데 다 집중과 통제가 용이하여 통일적인 조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다. 산업별 노조의 취약점으로는 현장 조직력의 공동화 현상이 지 적되는데, 이것의 극복을 위해서는 지부(Local Union)와 현장활동가(Shop Steward)의 역할 및 기능 강화가 강조되고 있다. 이 경우에도 작업장 내 에서의 노조활동 자율성 증대와 관련하여 지부나 현장활동가의 지나친 역할 강화는 산업별 노조체계의 집중성과 통제력을 이완시킬 수도 있다. 한편, 노조 조직형태는 노동자의 계급적 결집과 관련된다. 기업별 노 조형태 는 노동자들의 종업원 의식이나 기업 귀속의식의 극복을 어렵게 하여 계급적 의식 형성을 가로막기 쉽다. 특히 노조의 조직구조가 기업 의 경영조직과 체계를 같이 하기 때문에 경영측의 노무관리가 노조 조직 운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조합원의 단결과 계급적 결집을 가로막을 수 있다. 직업별 노조의 경우는 노동자들을 하나의 계급으로 조직화하거 나 계급적 투쟁의 관점에서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기보다는 노동자들 가운 데 숙련노동자들의 직업적 이해를 중시함으로써 전체 노동자들의 계급적 이해를 경시하게 된다. 이에 반해 산업별 노조는 노동자 대중 전체의 계급적 이익옹호를 조 직의 목표로 하여 노동자들을 하나의 계급으로 조직화하려 한다. 이런 산업별 노조가 관료화되거나 개량적 조직으로 변모함으로써 계급적 에너 지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는 조직 발전의 중심적인 원칙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원칙을 조직의 규율과 민주주의 그리고 교육에서 찾 기도 한다. 1) 1) Foster, Z. Foster(1974), American Trade Unionism: Principle and organization: Strategy and Tatics, NewYork: International Publishers, pp. 245-247, 한국사회연
16 다음으로 노조 조직형태는 투쟁 및 활동의 폭과 성격을 규정한다. 노 조가 추진하는 각종 투쟁과 활동은 조직형태에 따라 실제적인 경계와 범 위가 설정되기도 하고, 그 내용과 성격이 달라지기도 한다. 기업별 노조 의 경우, 노조 활동과 투쟁은 기업을 중심으로 하여 분산적으로 이루어 지고, 지역이나 산업별 연대는 기업 차원의 활동과 투쟁을 지원하고 촉 진하는 데서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기업별 노조의 활동과 투쟁은 경제 투쟁이 위주가 되기 쉽고 정치투쟁이나 전체 노동자의 계급적 요구 실현 을 위한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기에는 분명한 한계를 갖는다. 이와 동시에 기업체의 규모에 따른 교섭력의 격차, 부문별 조직능력의 불균등한 발전 은 노동자 내부의 이질화를 강화하며 결국에는 노조운동 자체를 약화시 킬 가능성을 증대시킨다. 2) 더구나 기업별 노조가 현장조직을 공고히 하지 못한 채 기업조직과 노동시장, 노동과정과 기술체계, 기업의 관리전략과 노동조직 내에서의 권력관계 구조 등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때, 노조운동은 위기국면에 놓이게 될 수도 있다. 기업별 노조가 지닌 분산성, 폐쇄성 그 리고 높은 자율적 기능은 산업별 연맹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의 강한 연대성을 제약하고 자본측의 지배와 통제를 허용하게 되기 때문이 다. 직업별 노조형태의 경우는 기업의 범위를 넘어 활동과 투쟁이 이루어 지기는 하지만, 숙련노동자 이외의 광범한 미숙련 또는 반숙련노동자들 의 이해를 대변하지는 못한다. 그런가 하면 직업별 노조는 숙련노동자들 의 직업적 이해를 중시하게 되고 산업 차원이나 전국 범위에 걸친 계급 적 정치적 투쟁 과제에 대해서는 집중화된 노력을 소홀하게 된다. 더욱 이 직업별 노조는 한 산업 내에서도 여러 조직으로 나뉘어져 있을 뿐 아 니라 여러 산업에 걸쳐 중복되어 있어 통일적인 활동과 투쟁을 추진하는 데는 한계를 갖는다. 그런 점에서 직업별 노조는 산업별 노조의 적이라 는 지적도 있다. 3) 구소(1989), 노동조합조직연구, p. 37에서 재인용. 2) 박준식(1996), 생산의 정치와 작업장 민주주의, 한울아카데미, p. 130.
산별노조 체제구축을 위한 조직론적 관점 17 이에 비해 산업별 노조는 기업이나 직업의 한계를 넘는 횡단적 조직 으로서 전국 차원의 집중적 활동과 통일투쟁을 추진하게 된다. 산업별 노조형태 하에서는 특정 기업이나 특정 직종의 이익을 옹호하기보다는 노동자계급의 생활을 전반적으로 개선하고 확보하기 위한 활동과 투쟁이 추진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규모적인 파업투쟁이 결행되기도 한다. 또 한 산업별 노조는 국가에 대해서도 노동자계급의 제도 정책 개선 요구 나 정치적 목표의 실현을 위한 전술의 폭넓은 추진을 그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산업별 노조형태가 조직적 강점과 투쟁성을 지니고 있다 하더 라도 모든 상황에서 언제나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최대한으로 전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업별 노조의 경우에도 조직의 내부구조와 체계, 조직운영의 방식과 규율, 활동기조와 투쟁노선, 운동이념과 정치역량 등 에 따라 활동과 투쟁은 상이한 내용과 성격을 나타내게 된다. 1980년대 이후, 산업별 노조형태를 취하고 있는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 에서 나타나고 있는 노사관계 특징의 하나가 단체교섭의 분권화 경향인 데, 이것은 사용자측이 시장상황의 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생산의 유연 성을 추구함에 따라 작업장 수준에서의 단체교섭이 갖는 중요성이 커졌 기 때문이다. 단체교섭의 레벨이나 형태 변화가 조직운영과 내부 통제 등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나 조직형태를 변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은 아니 다. 그리고 노조 조직형태는 운동 이념의 실현과 정치적 역량과도 직접적 인 관련을 갖는다. 노동조합운동이 추구하는 이념은 그 표방하는 내용이 어떻든 조직역량과 투쟁이 뒷받침되지 않아서는 현실적으로 실현되기는 어렵다. 기업별 노조와 직업별 노조는 분산성과 투쟁력의 취약성 때문에 경제적 이익의 추구에 몰입하기 쉽고 전계급적 요구 실현을 위한 투쟁에 서는 한계를 갖게 됨으로써 노사협조주의나 경제주의를 취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일반노조의 경우도 조직의 집중성과 통일성을 확립하기 어 3) Clegg, H. A.(1976), A Theory of Union Structure, Trade Unionism under Collective Bargaining, Blackwell, p. 29.
18 려운 상태에서 개량주의적 운동이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이에 반해 산업별 노조형태는 조직의 주체적 상태에 따라 다 양한 이념을 설정하고는 있으나, 계급적이고 변혁적 이념을 실현하는 데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직구조가 될 수 있다. 노동운동의 이념은 전국 규 모의 강력한 조직력과 계급적 의식에 기초한 투쟁을 통해서만 그 실현 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노조 조직형태는 정치적 역량을 규정하는 요건으로 작용하게 되 는데, 기업별 노조나 직업별 노조의 경우는 조직 구성원의 정치적 자각 이 낮으며 노조 간부들의 사상적. 이론적 수준도 한계를 지닐 뿐만 아니 라 노조가 추진하는 활동과 투쟁도 정치적 역량의 증대를 뒷받침하기에 는 취약한 편이다. 노조 조직형태에 따른 이런 취약성은 자본과 국가권 력에 대한 강력한 전략적 대응을 어렵게 하고 정책적 능력을 제한할 뿐 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책임성의 확대를 제약하게 된다. 반면에 산업 별 노조체계 하에서는 정치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조직적 기반 구축이 가능하고 정치조직의 건설이나 진보적 정당과의 협력관계 수립이 용이하 게 된다. 역으로 산업별 노조의 정치적 역량 증대는 조직의 기능 강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산업별 노조의 조직원리는 규모가 큰 사회민주당과 상 대적으로 집중화된 노조운동 사이의 협력관계가 긴밀한 나라들에서 가장 잘 실현되었다는 주장 4) 은 이 같은 사실을 반영해주고 있다. 4) Bean, Ron(1994), Comparative Industrial Relations, Routledge, p. 30.
제 2 장 독일 산업별 노동조합의 형성과 발전 이 민 영 *1) 1. 머리말 노동조합은 생산수단에서 분리된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 대한 통제를 통해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는 조직이다. 노동조합이 이러한 역할을 충실 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단결의 양과 질이 결정적인 요소로 된다. 노동조 합 조직형태의 변화과정은 곧 단결력을 더욱 강화하여 정치 경제적 환 경변화에 대응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지난한 투쟁과정의 산물이다. 한 편 각 나라의 구체적인 노동조합 조직형태와 활동방식은 그 나라의 정치 경제적 조건과 노동운동의 전통, 노동조합의 전략과 대응력 등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특히 독일 노동조합은 집중적이고 정연한 산 업별 노동조합체계를 갖추고 있어서 기업별 노동조합체계를 극복하고 산 업별 노동조합으로의 발전을 모색하고 있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 다. 현재 독일 노동조합의 조직체계는 승리와 패배가 교차하는, 기나긴 노 동운동 역사의 산물이다. 독점자본주의가 진전되고 사용자들의 결속과 노동운동에 대한 공격이 강화됨에 따라 산업별 노동조합주의가 우월한 조직원리로 받아들여졌으나 이것이 현재의 모습으로 확립된 것은 나치에 의한 노동운동 말살을 경험하고 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었다. 하 지만 독일 노동조합은 이에 그치지 않고 세계화 와 유연화 로 표현되는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20 새로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조합들간의 통합과 결속을 강화하는 조직현대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글은 이러한 독일 산업별 노동조합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추적함으 로써 한국 노동조합의 조직발전 전망을 구체화하기 위한 시사점을 찾고 자 한다. 2절에서는 독일의 자본주의 발전과 초기 노동조합, 3절에서는 독점자본주의의 진전과 산업별 노동조합의 형성과정과 그를 둘러싼 논 의, 4절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정착된 산업별 노동조합의 조직구조와 단체교섭구조의 특징, 5절에서는 최근 제기되고 있는 조직현대화 논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맺음말에서는 독일 산업별 노동조합의 형성과 발전과 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사점들을 정리할 것이다. 2. 독일 노동조합의 기원 1) 독일 자본주의의 진전 뒤늦게 산업화의 대열에 참여했던 독일의 자본주의는 1850년 이래 비 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먼저 철도 건설이 진전됨에 따라 전국시장의 형성이 촉진되었다. 프러시아의 경우 1850년에는 철도 길이가 3,869Km이 었지만 1870년 경에는 11,523Km으로 늘어났으며 기관차의 수도 같은 기 간에 498개에서 3,485개로 늘었다. 철도는 1871년 독일제국이 형성된 이 후 산업화를 더욱 촉진했다. 철도 길이는 1875년 28,000Km에서 1913년 경에는 65,000Km로 늘어났다. 독일제국 창립 이후 이루어진 독일의 산업 화 속도, 특히 중화학공업의 발전을 잘 드러내 주는 예는 선철 생산이다. 1850~1871년 사이에 독일의 선철 생산은 20만t에서 160만t으로 늘어났고 1910년에는 약 1400만t에 이르렀다. 반면 일찍이 산업화를 시작했던 영국 에서는 1871년에 670만t이었던 산출량이 1910년 경에는 1,000만t을 약간 웃돌았다(Schneider, 1989: 16). 이러한 급속한 산업화는 정치적 법률적 제반 조건의 영향을 받았다.
독일 산별노조의 형성과 발전 21 먼저 1807년 프러시아의 농노해방은 이후 자유로운 노동자가 될 수 있는 농촌 최하층이 출현하는 데 기여했다. 또 다른 결정적인 요인은 자유로 운 고용계약을 인정한 법률의 뒷받침이었다. 예를 들어 1845년 1월 17일 제정된 프러시아 직업규제법 제134조는 독립 상인과 방랑직공, 조수와 도제 사이의 관계는 당사자들이 자유롭게 맺은 협약에 따른다 고 규정하 고 있었다. 또한 1833~34년에 프러시아의 주도로 이루어진 관세동맹 (Zollverein)은 2,300만명을 통일된 관세, 무역영역으로 통합하였다. 1850년 대와 1860년대 초에 만들어진 환전과 상업에 관한 법률, 그리고 1871년 제국정부 창설에 따른 통화와 화폐제도, 우편업무의 표준화는 장기적으 로 경제활동을 크게 촉진하였다. 정부의 개혁조치는 한편으로 경제발전 에 유리한 법률적 정치적 조건을 창출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농민을 해방 시켜 고용계약을 맺을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근대적인 노 동자계급이 형성되는 데 기여했던 것이다(Schneider, 1989: 17). [표 1-1] 직업활동인구의 분야별 비중: 1800~1914 연도 전체 직업활동인구 (1,000명) 농업 분야별 비중(%) 공업 상업 및 서비스업 1800 1825 1850 1875 1900 1914 10,500 12,600 15,800 18,600 25,500 31,300 62 59 55 49 38 34 자료: F.-W. Henning(1973), Die Industrialisierung in Deutschland 1800~1914, Paderborn, p, 20, Kocka(1983), p. 74에서 재인용. 21 22 24 30 37 38 17 19 21 21 25 28 산업화의 진전은 자본과 노동, 곧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용자와 그로부 터 분리된 노동자들간 갈등의 확대를 의미했다. 이윽고 자신의 경제 사 회적 처지를 깨닫고 고용주를 자신의 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등장하
22 기 시작했다. 전체 노동인구에서 차지하는 농업 종사자의 비중은 1825년 의 59%에서 1850년에는 55%, 1914년에는 34%로 떨어졌다. 이와는 대조 적으로 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같은 기간에 21%에서 24%, 38%로 늘어났으며 서비스부문 종사자도 17%에서 21%, 28%로 증가했다. 노동자들의 숫자도 급속한 증가를 보여 프러시아 지방의 경우 1816년에 서 1861년 사이에 직인의 숫자가 14만6천명에서 55만9천명으로 283% 증 가한 반면 공장노동자와 광산노동자는 각각 4만4천, 1만5천명에서 41만4 천명, 11만7천명으로 늘어났다. [표 1-2] 프러시아 지방의 노동자, 직인 수의 변화, 1816~1861 전체인구 수공업 장인 직인 하인 날품팔이꾼 및 막노동자 공장노동자 광산노동자 (단위 1,000명) 1816 1861 증가율(%) 10,349 259 146 1,082 880 44 15 18,491 535 559 1,470 2,229 414 117 79 107 283 36 153 848 680 자료: G. Schmoller(1870), Zur Geschichte der deutschen Kleinggewerbe im 19. Jahrhundert, Halle; Neuder(1975), Hildesh eim, p. 65, p. 71; Jahrbuch des Preußischen Staats 2, 1876, p. 231 이하, Kocka(1983), p. 76에서 재인 용. 2) 초기 노동조합의 등장 1848년 2월 하순 프랑스에서 시작된 혁명은 곧바로 독일지역으로 확 산되어 이후 1년 남짓 하는 기간 동안 독일 전역을 혁명의 소용돌이 속 으로 몰아 넣었다. 이 기간 동안 대도시에서는 직인들과 일부 공장노동 자들을 중심으로 한 파업이 확산되었고, 노동조합들이 직업별로 조직되 기 시작했다. 인쇄공과 연초공의 경우에는 독일 최초로 전국조직을 결성
독일 산별노조의 형성과 발전 23 하였다. 전국인쇄공협회(Nationaler Buchdrucker-Verein)는 1848년 마인즈회의에 서 12,000여명의 식자공과 인쇄공을 대표하는 대표자들이 결성하였다. 이 후 임금협약 요구안을 둘러싼 갈등으로 일부 세력이 전국인쇄공협회에서 떨어져 나와 1849년에 구텐베르크동맹(Gutenberg League)을 결성하였는데 동맹은 규약에서 인쇄공, 식자공, 도제들의 물질적 정신적 복지를 개선 확보하는 것 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동맹은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을 줄이기 위해 도제제도의 억제뿐만 아니라 표준임금률과 표준노동시간을 확립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동맹은 초기에 질병, 생명보험 등의 부 조제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동맹은 전투적인 조직은 아니었으며 사용 자와 정부에 요구를 제출하고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심을 두었다. 전국연초공협회(Assoziation der Zigarren-Arbeiter Deutschlands) 또 한 부조제도와 과부 고아에 대한 기금을 마련하고자 했다. 협회의 또 다른 목표는 회원들에 대한 직업훈련이었다(Schneider, 1989: 26-28). 이것 은 독일의 초기 노동조합이 정치투쟁 경제투쟁보다는 노동시장 규제를 통해 노동자들의 임금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한편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일정한 사회보장체계를 갖추려고 했던 직업별 노동조합의 일반적인 특징 을 가지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1850년대에 반동의 물결이 몰아닥쳐 잠복기에 들어갔던 노동조합운동 은 60년대에 접어들어 고양기를 맞이하였다. 이후 노동조합운동의 발전 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것은 작센(1861), 바이마르(1863)에서 시작되어 북부독일연합 전체에 걸쳐 적용된 결사금지조치의 폐지였다. 그러나 이 것은 결사의 자유 보장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먼저 단결권은 농업 노동자, 선원, 철도노동자, 공무원에게는 보장되지 않았다. 둘째로 노동자 들의 파업권뿐만 아니라 사용자들의 직장폐쇄도 인정했으며 심지어는 사 용자에게 노동자들을 해고시킬 수 있는 권리까지 부여했다. 셋째로 노동 조합을 정치조직으로 규정함으로써 법적인 제한을 둘 수 있는 여지를 남 겨 놓았다. 마지막으로 조합원 모집이나 피케팅 등 노동조합의 활동을 제한했다(Schneider, 1989: 32-34).
24 18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 경제 활황기에 결성된 모든 노동조합에 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노동쟁의의 경험이었다. 1865~1873년 사이에 파 업이 폭발적으로 일어났고, 직물공과 봉제공, 기계공, 인쇄공, 그리고 특 히 광부들이 주도적으로 참가했다. 이 파업 이후에는 노동조합이 우후죽 순처럼 결성되었다. 1868~1869년에만 해도 양복공, 제과공, 목수, 제화 공, 건설노동자, 목재노동자, 직조공, 봉제공 등의 조직이 나타났다. 이 시기에 광부, 철강노동자, 기계공과 제조업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을 조직 하기는 했지만 초기에 지배적이었던 것은 인쇄공, 가구장이, 제화공 등의 직업별 조직이었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중공업 중심지에서는 잘 조직되 지 않았고 오히려 라인-루르 지역, 그리고 베를린, 함부르크, 하노버, 라 이프치히, 뮌헨, 뉘렌베르크 같은 상업지역에서 출현했다(Schneider, 1989: 37). 이 시기에 대부분의 고용주들은 조합 대표와 협상하는 것을 거부했다. 고용주들은 분할해 다스려라 하는 격언에 따라 개별계약을 고수하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1873년에 독일 최초의 단체협약인 총독일인쇄공협약 이 체결되었다. 3년간 유효한 이 협약은 8시간 노동제를 의무화하는 대 신 시간외 근무를 허용하고 중재제도의 설립을 규정하였다. 그러나 단체 협약이라는 개념이 고용주는 물론이고 노동조합운동에서도 일반화되기까 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법률적 제한은 1878년 비스마르크가 반사회주의 자법(Sozialistengesetz)을 성립시킴으로써 절정에 달했다. 비스마르크는 질 병보험(1883), 사고보험(1884), 노령보험(1889) 등 선구적인 사회보험제도 를 도입하는 한편 성장한 노동자들의 정치적 권리와 단결권을 박탈하는 이중적인 정책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반사회주의자법은 노동운동의 발전 을 가로막지는 못했고 1890년 이 법이 폐지되자 대중운동은 획기적인 진 전을 거듭하였다.
독일 산별노조의 형성과 발전 25 3. 독점의 진전과 산업별 노동조합의 성립 1) 산업별 노동조합 성립의 배경 독점의 성립에 따른 사용자들의 경제력 증대, 노동과정의 변화에 따른 전통적인 숙련노동자의 노동시장 지위 약화, 노동시장의 전국적인 범위 로의 확대 등에 따라 노동시장 공급을 통제함으로써 숙련노동자들의 경 제적 지위 개선을 꾀했던 직업별 노동조합은 그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게 되었다. 산업별 노동조합운동은 이러한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 전략이었다. 산업별 노동조합운동은 먼저 독점자본주의 부상과 산업 집중화에 대 한 대응이었다. 거대한 독점체의 출현은 분할된 노동계급의 힘을 상대적 으로 더욱 약화시켰다. 이 경우 많은 직업별 노동조합은 더 크고 강력해 진 사용자 및 사용자단체와 맞서야 했다. 한편 경제력 집중과 기술 개선 을 통해 직업별 노동조합에 대한 대응력이 높아짐에 따라 사용자들은 더 욱 공격적으로 반노조활동을 펼쳤다(Peterson, 1983: 51). 다음으로 대규모 독점산업의 성장은 남성 숙련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직업별 노동조합 조직의 기초를 허물었다. 이것은 기존 숙련노동자들의 탈숙련(dequalification)을 통해, 처음부터 미숙련 반숙련, 여성 노동자들 에 근거한 완전히 새롭고 기술적으로 진전된 산업과 공장의 신설을 통해 이루어졌다. 소수의 노동자들만을 조직하고 있고 미숙련노동자대중들에 대한 경영측의 통제를 방치하고 있는 직업별 노동조합은 국가의 지원을 받는 사용자들의 공세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산업별 노동조합운동 은 특히 새로운 산업에서 전통적인 직업별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이해 를 수호하는 데서 무능성을 드러내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미숙련노동자 와 전체 노동운동을 희생하는 대가로 소수 숙련노동자들의 특권적인 지 위만을 보호하려는 데 대한 대응이었다(Peterson, 1983: 51-52). 또한 독점자본의 형성과 더불어 상품시장은 전국 차원으로, 세계적인 규모로 확대되었다. 또한 교통수단의 발달로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이동
26 이 가능하게 되었고 노동시장도 전국적인 범위로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일정 지역의 노동시장을 통제함으로써 숙련노동자들의 임금 근로조건 개선을 꾀하던 전통적인 직업별 노동조합의 활동은 한계에 부닥쳤다. 독일은 19세기 말에는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로 부상했다. 독일 산업화 의 출발은 영국, 프랑스에 비해 늦었지만 그 속도는 매우 빨랐다. 예를 들어 독일의 선철과 강철 생산량은 1890년에는 영국에 뒤져 있었으나 1910년에는 영국을 훨씬 앞질렀다. 또한 새로운 발명과 신기술의 개발로 독일의 전기공업과 화학산업, 기계공업은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 (Schneider, 1989: 62). [표 1-3] 독일의 카르텔: 1865~1905 연도 1865 1870 1875 1879 1885 1890 1896 1900 1905 수 4 6 8 14 90 210 260 351 400 자료: 1865-1990: Kuczynski, Die Geschichte der Arbeiter unter dem Kapitalismus, 14: 130. 1905: Dobb, Studies in the Development of Capitalism, p. 3, Gary Marks(1989), p. 96에서 재인용. 이 시기에 자본의 집중도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공업 부문에서 6인 이하의 사업장에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는 1882년에는 노동인구의 59.8% 를 차지했으나, 이 비율은 1907년에는 31.3%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동 안 천명 이상을 고용하는 회사는 전체의 1.9%에서 4.9%로 늘어났다. 1879년 14개에 불과하던 카르텔은 1905년 400개로 폭발적으로 증가하였 다. 1893년에 석탄 신디케이트가 만들어졌는데 1910년에는 석탄 신디케 이트가 루르 지방의 거의 모든 탄광을 포괄했다. 철광산업에서는 1897년 에 라인베스트팔렌 철 신디케이트가 결성되었다. 전기공업은 거대 기업 인 AEG와 지멘스가, 화학산업은 네 개 또는 다섯 개의 기업이 지배하고 있었다. 독일은행과 드레스덴은행 등 다섯 개의 주요 은행이 전체 은행 여신의 거의 반을 차지했다. 은행은 대출자로서 뿐만 아니라 주주로서 경제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자본주의 경제의 전형적인 표현이라
독일 산별노조의 형성과 발전 27 할 수 있는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의 합병이 시작된 것이다(Schneider: 62-63). 이와 더불어 사용자들의 이해를 대표하는 사용자단체들도 출현하였다. 1875년에 설립된 독일경영자중앙연합(Central Federation German Industrialists)은 제조업의 요구를 해결하는 데 비중을 두고 있던 사용자연 합(Bund der Industriellen)과 1895년에 통합했다.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목격하고서 특히 쟁의에서 자신의 이해를 지키고자 했다. 또한 사용자들은 주로 중공업이 지배하는 독일사용자단체중앙조직(Hauptstelle Deutscher Arbeitgeberverbände)을 결성하였다. 그리고 사용자단체연합 (Verein Deutscher Arbeitgeberverbände)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주로 가공산 업의 이해를 대표하였다. 1913년에 두 단체는 독일사용자단체연맹 (Vereinigung der Deutschen Arbeitgeberverbände)으로 통합되었다(Schneider, 1989: 62-63). 이것은 노동조합운동의 발전을 목격한 사용자들이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결속하는 경향을 드러내며, 또 한편으로 산업별 노동조합을 더욱 강화하는 요인이 되었다. 2) 조직원리를 둘러싼 논의 19세기 말 독일의 노동조합은 이념과 종교의 차이에 따라 나뉘어 있 었다. 먼저 사회주의적인 성향을 띠고 있던 자유노조(Freien Gewerkschaften), 자유주의적 경향의 힐슈둔커(Hirsch-Dunker)노조, 그리고 기독교 노조(Christlichen Gewerkschaften) 등이 존재하였다. 각각의 조합원수는 1895년 현재 자유노조가 약 26만명, 기독교노조가 약 5천명, 힐슈둔커노 조가 약 7만명이었다. 독일 노동조합운동은 나치에 의해 노동조합이 해 산될 때까지 이념과 종교에 따라 분열되어 있었으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서 자유노조는 조직력이 상대적으로 앞서 있었으며 산업별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형태 전환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자유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 고자 한다.
28 [표 1-4] 각 노동조합의 조합원수: 1869~1932 (단위: 명) 연도 자유노동조합 기독노동조합 힐슈둔커노동조합 1869 1875 1885 1895 1905 1915 1925 1932 47,192-85,687 255,511 1,429,303 994,853 4,182,511 3,532,947 자료: Schneider(1989), pp. 383-385. - - - 5,500 188,106 162,425 582,319-30,000 19,900 51,000 66,759 116,143 61,086 157,571 - 노동조합운동은 억압적인 탄압을 이겨내고 1890년 반사회주의자법 폐 지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지만 경찰과 사법부, 그리고 사용자들은 노동조합운동을 지속적으로 위협했다. 또한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수많은 패배를 경험함으로써 그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제한적인가를 깊이 깨달았 다. 1890년 함부르크 담배제조노동자들의 파업, 1891년 루르 탄광노동자 들의 파업, 1891~1892년 자르지역의 파업, 그리고 1891~1892년 인쇄공 파업 등의 패배로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노동조합 활동의 전망에 대해 회 의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재정적인 출혈로 노동조합이 파산에 이르렀을 때,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떠남으로써 파업 실패는 곧바 로 조직의 약화로 귀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노동조합의 조합원 수 는 1890년 29만명에서 1892년 21만5천명으로 줄었다(Schneider, 1989: 69-70). 이러한 쟁의 과정에서 사용자들은 메이데이 축제기간 동안 보복 직장 폐쇄를 단행하여 단결을 과시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 해서는 직업을 초월한 전국적인 단결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활동을 추진하였다. 1890년 11월 16~17일 베를 린에서 열린 노동조합 간부회의, 1892년 3월 14일부터 18일까지 할버슈 타트(Halberstadt)에서 열린 자유노조 제1차 노조대회에서 조직구조에 대
독일 산별노조의 형성과 발전 29 한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특히 할버슈타트대회는 독일노동조합운동사에 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였다. 할버슈타트대회에는 208명의 노조 대표들이 참석하였다. 57개의 전국조직들이 172명의 대표를 파견하였고 지역조직들은 모두 36명의 대표들을 파견하였다. 여기에서 제기된 조직 구조와 관련된 쟁점은 지역적 자율성인가 중앙집중인가, 중앙위원회 (Generalkommission)의 구성 여부와 그 역할, 직종별조직인가 산업별 조직 인가 등 세 가지 것이었다. (1) 지역적 자율성인가 중앙집중인가 당시 반사회주의자법이 노동자들의 단결을 가로막고 있던 동안에도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한 다양한 조직들이 발전되었다. 가장 광 범위한 조직은 전통적인 숙련노동자에 기반한 지역 단위 직업별 노동조 합이었다. 직업별 노동조합은 정부의 탄압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용이했 고, 길드시대의 전통과 부조제도가 계속되는 조건에서 가까운 동료들 사 이의 연대감에 근거할 수 있기 때문에 운영도 용이했다(Schönhoven, 1985: 220). 한편 반사회주의자법 시행 초기에 설립된 지역클럽들은 노동조합 지 역사무소뿐 아니라 불법화된 사회주의자들의 비밀 회합장소 구실을 했 다. 하지만 지역클럽의 이러한 이중적인 역할은 1880년대 중반 이후 수 많은 노동조합 전국조직들이 설립됨으로써 점점 약화되었다. 전국조직들 은 직업별 조직들을 통합하면서 지역 단위 조직들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자 했다. 더욱이 1890년 가을 반사회주의자법이 철폐되고 사민당이 자신 의 지역조직을 재건할 수 있게 되자 지역 단위 노동조합들은 더욱 어려 움에 처하게 되었다. 베를린의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지역주의를 강력하게 지지했지만 그 배경은 다양했다. 금속부문의 경우 노동조합 지역조직책(Vertrauensmänner)들은 상황에 따라 특정한 공장에서 자신의 직업을 대표할 뿐만 아니 라 특정 산업에서 자신이 일하고 있는 공장의 노동자들을 대표하기도 했
30 다. 순수하게 직업과 지역에 따라 조직된 노동조합들에 비해 작업장에 기반한 베를린의 조직은 여러 직업들에 영향을 미치는, 지속적인 구조변 화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건설업의 경우에는 기계화의 정도가 낮았고 소기업들이 지배적이었다. 고도의 숙련수준을 가지고 있는 벽돌공과 목 수들의 경우 다른 노동자들에 의해 쉽게 대체될 수 없었다. 또한 베를린 에는 20세기 초까지 단일한 사용자 단체가 없어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통 해 임금협약을 쉽게 체결할 수 있었다(Müller, 1985: 240-43). 한편 서비스 부문 노동자들의 경우 이질적인 노동자들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는 전 국조직이 1896년 이후에야 설립되었고 노동자들 사이에 공통적인 직업적 이해가 많지 않아 직업적 이해를 뛰어넘는 연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 정한 시간이 필요했다(Schönhoven, 1985: 223). 1895년 말 베를린의 자유노조 조합원 가운데 45%가 여전히 독립적인 지역 단위 노동조합의 조합원이었다. 하지만 베를린 노동자들이 오랫동 안 지역 단위 노동조합을 유지한 것은 조직적인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었 다. 그들은 전국조직들이 주장하는, 정치활동은 사민당이 담당하고 경제 적인 이해는 노동조합이 대표하는 식의 역할분담론에 대해 의문을 제기 했다. 그들이 중앙집중을 반대한 것은 이 경우 노동조합이 정치를 포기 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투쟁은 사회주의적인 전망, 당의 강령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노동조합 내에서 정치적인 선동을 포기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Schönhoven, 1985: 223-224). 이러한 조직원리는 반사회주 의자법이 시행되던 기간 동안 실제 관철되던 것이었다. 또한 지역주의자들은 지역 자율성 상실, 특히 파업을 발의할 권리를 잃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노동조합조직의 중앙집중을 주장하는 사람들 은 지역 차원의 투쟁이 전국적인 지원을 통해 더 쉽게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지역주의자들도 이것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연대 곧, 특정한 투쟁을 지원할 지 안할 지를 노동자들 스스 로 결정하기를 원했다. 중앙집중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역그룹들이 적 절하게 분담하는 중앙파업기금을 설치하기를 원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독일 산별노조의 형성과 발전 31 제한된 자원을 긴급하게 요구되고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경우 에 집중하고자 했다. 반면에 지역주의자들은 위에서 부과되는 행동방침 을 원하지 않았고 직접 쟁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총회가 결정기구여야 한다고 주장했다(Müller, 1985: 239-40). 이와 관련한 논의는 베를린 간부회의와 할버슈타트대회에서 주된 쟁 점이 되었다. 베를린 간부회의에서 전국조직의 필요성이 확인된 데 이어 할버슈타트대회는 노동조합을 중앙집중화할 것을 결의하였다. 특히 1890 년대에 사회민주적 노동조합운동의 공식적인 대표가 된 칼 레긴(Carl Legien)이 이끄는 독일노동조합중앙위원회(Generalkommission der Gewerkschaften Deutschlands, 중앙위원회)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조합을 집중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노동조합의 역할을 연대를 위한 훈련의 장 으로 규정하면서 지역주의적 사고에 반대했다. 레긴의 주장에 따르면 수공업적으로 조직된 기업이 지역시장을 위한 생산을 하는 한은 지역 차원의 노조조직이 지역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 칠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이 대량생산을 하거나, 더 나아가서 세계시장을 상대로 생산을 하는 경우에는 지역 수준을 넘어선 노동조합활동이 훨씬 더 중요하게 된다. 레긴은 또한 산업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불안정하고 유동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역조직은 기술자들이 자주 이동하지 않는 경우에는 노동력 공급을 통제할 수 있지만 이미 기차와 기선들이 수천의 노동자들을 하루만에 도시로 수송하게 되었다. 그는 이런 이유만 으로도 원거리에 있는 조직까지를 관할하는 포괄적인 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Schönhoven, 1985: 224). 한편 레긴은 정당과 노조간의 역할분담론이 노동조합을 경제투쟁에만 매몰되게 하여 노동자들을 우민화시킨다는 지역주의자들의 비판에 대해, 노동자들은 자본 소유자들에 대한 집단적인 투쟁을 통해서만 계급의식을 얻을 수 있다고 답했다. 그에 따르면 노동자들에 대한 정치교육은 일상 적인 생활 속에서 시작되고, 정당과 노동조합은 협력하여야 하지만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결국 할버슈타트대회에서 대다수 대표자들 은 전국조직을 선호했고 이는 노동조합의 조직원리로 채택되었다.
32 지역주의는 점점 쇠퇴했다. 1907년 베를린금속노동자조합(Berlinermetallarbeiterverband)에 대한 금속노동자연맹(Deutsche Metallarbeiterverband)의 전국파업조항 적용, 사민당의 당원은 지역주의자들의 전국조직인 독일노동조합자유연합(Freie Vereinigung Deutscher Gewerkschaften)의 회원 을 겸할 수 없다는 1908년 뉘렌베르크 사민당 대회의 결정이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1900년 전성기에는 2만명이었던 독일노동조합 자유연합의 회원수는 그후 점점 줄어들었다(Müller, 1985: 246). (2) 중앙위원회의 설립과 그 역할(Schönhoven, 1980: 264-306) 산업이 급속하게 독점화되는 조건에서 단결의 필요성을 어느 부문보 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던 금속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간부회의의 개최를 발의했고 이것은 많은 노동조합들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렇 게 하여 1890년 11월 16일에 열린 베를린 노조간부회의에는 80명의 노조 간부들이 참여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지역조직이 변화된 생산관계에 적 합하지 않다고 결론짓고 지역적 조직형식과 결별할 것을 선언하였다. 이 회의의 또 하나의 성과는 부문을 초월한 중앙위원회를 설립하기로 결정 한 것이다. 베를린회의에서 결정된 중앙위원회의 초기 역할은 장차 개최할 노조 대회를 조직적이고 실질적으로 준비하고 이미 제기된 의안들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그밖에 중앙위원회는 노조들이 사용자들의 공세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경제적으로 취약한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지원하며, 아직 노조가 조직되지 않은 지역에서 조직활동을 수행하는 것을 주임무 로 하였다. 각 노조들은 조합원수에 비례하여 의무금을 납부해야 했다. 중앙위원회는 1891년 4월에 자신의 조직계획안을 내놓았다. 조직계획 안은 먼저 개별 직업에 기초한 중앙연맹을 설립하고 인근 중앙연맹들을 연합(Union)조직으로 통합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중앙위원회의 다섯 가지 활동영역을 규정하였다. 그것은 미조직 부문에 대한 선전활동, 독립 적인 신문의 발행, 전체적 직업통계의 작성, 주기적인 파업통계의 발간,
독일 산별노조의 형성과 발전 33 전체 파업기금을 통한 파업투쟁의 지원 등이었다. 이 계획안이 발표되자 노동조합운동 내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특히 금속노동자들은 직 종별 조직원리와 중앙위원회의 권한 강화를 반대했다. 할버슈타트 노조대회는 베를린회의에서 설립된 중앙위원회를 공식적 으로 인정하였고 그 기구의 활동영역을 새롭게 규정하였다. 그러나 할버 슈타트 노조대회는 중앙위원회로부터 파업원조권을 몰수하였다. 노동조 합 대표자들은 중앙위원회가 행정적 역할과 선전활동만 담당하기를 원했 다. 노동조합들은 가능한 한 자신의 권한을 중앙위원회에 이양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파업원조권이 박탈됨으로써 중앙위원회는 재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수입원을 잃게 되었고 각 노조들에 대한 영향력도 실질적으로 축소되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1896년 5월 4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2차 노조대회에서는 중앙위원회 존속 여부가 안건으로 상정되었다. 금속노동자연맹의 간부들은 중앙위원 회의 폐지를 제안하였다. 목수, 목재, 공장노조 등은 기부금을 최대한 축 소하면서 중앙위원회를 유지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조 대표들은 중앙위원회의 해체에 동의하지 않았고 중앙위원회의 존속 여부 에 관한 투표에 참가한 137명 중에 132명이 목재노조가 제안한 중앙위원 회 유지안에 동의하였다. 베를린 대회에서 중앙위원회 간부들은 자신들의 권한을 확대하기 위 해 각 노조들의 재정에서 조달되고 중앙위원회가 관리하는 파업준비금의 설치를 제안했다. 중앙위원회는 파업자금의 중앙화를 통해 파업활동을 단일한 중앙지휘체계로 묶으려 했고, 이와 더불어 노조들에 대한 조정자 의 지위를 확보하려 했다. 그러나 중앙위원회의 제안은 대부분의 노조 대표들이 반대함으로써 관철되지 않았다. 1899년에 개최된 프랑크푸르트 3차 자유노조대회에서는 더 이상 중앙 위원회의 유지 여부가 논란이 되지 않았다. 중앙위원회는 파업에 대한 지원과 미조직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통해 그 필요성을 입증하였던 것이 다. 중앙위원회는 프랑크푸르트 대회 이후 사회민주주의계 노동조합운동 의 사회 정치적 센터로 발전하였고 사회 정치적으로도 안정적인 지위
34 를 확보하였다. (3) 직업별 조직인가 산업별 조직인가 이 문제는 할버슈타트대회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는데, 이와 관련하 여 네 가지 조직계획안이 제출되었다(Schönhoven, 1980: 276-280). 먼저 중앙위원회는 각 직종별 중앙조직들의 발전정도와 역량이 큰 차 이가 있어서 연합(Union) 건설을 위한 예비조건들이 아직 충분하게 성숙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중앙위원회는 연합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 선 카르텔협정을 통해 인접 직종들이 결합해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산별 노조의 건설에는 반대하였다. 다음으로 목재노조는 카르텔협정을 통해 인접 직종들을 중앙화의 방 향으로 유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연맹과 산별노조 가운데 어느 것 을 선택할 것인가는 각 노조들의 자율적인 결정에 맡기는 방안을 제안하 였다. 그러나 목재노조는 노조들이 결국 산별노조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 상하였다. 금속노조는 할버슈타트대회에서, 그들이 이미 1891년에 현실화시켰던 산별노조 모델을 모든 산업분야로 확산시키려 했다. 그들은 산별노조가 없는 산업분야에서는 카르텔협정을 통해 이런 조직모델을 도입할 것을 권유하였다. 한편 지역적 자율성을 주장한 조직계획안은 대다수 대표자들의 반대 에 부닥쳤다. 할버슈타트대회에서 대다수 대표자들은 중앙조직을 선호했고 이를 노 동조합의 조직원리로 채택했다. 그러나 당시 노동조합운동에서 핵심적인 사안이었던 중앙조직을 직업별로 조직할 것인가 아니면 산업별로 조직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정하지 못하였다. 이 문제에 관해 다양한 부문에 서 온 대표자들 사이에는 해소할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결국 조직구조 에 관한 결선투표에서는 147대 37, 그리고 기권 11표로 목재노조가 제안 했던 조직계획을 확정하였다.
독일 산별노조의 형성과 발전 35 따라서 노동조합들은 기존의 조직구조를 유지하면서 유사한 직종노조 간에는 서로 협력할 것이 요구되었으며 이는 카르텔 협약을 통해 제도화 되어야 했다. 특히 금속노동자들이 선호했던, 노동조합들을 몇 개의 크고 강력한 산업별 조직으로 통합하는 일은 유보되었다. 산업 차원에서 지역 을 초월한 연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총회의 권고는 의무사항은 아니었다. 노동조합 간의 협력을 진전시킬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직업 별 조직을 유지할 것인가 아닌가는 이후의 과제로 남게 되었다. 이후 노동조합들간의 제도적인 연계를 강화하려는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직업은 자유노조조직들을 서로 구분하는 주요한 기준이었다. 이는 개별 노동조합들의 차이(재정, 부조제도, 조직운영, 조직률, 노동시 장에서의 지위 등)에서 연유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자유노조 지도부는 통일적인 조직구조를 강요하지 않았다. 노동조합 간의 연대를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중앙위원회의 접근방식은, 노동조합 조직구조를 변화시 키는 일은 관련 조합원들 사이에서 집중적인 여론 형성과정을 필요로 하 며 경제상황과 기술조건의 변화에 따라 결정된다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 었다. 할버슈타트대회 이후 중앙위원회는 조직원리를 규약에 의해 강제 하지 않고 노동조합들의 자발적인 협력을 권고하고 통합을 고무하는 데 그쳤다. 직업적 경계를 뛰어 넘는 산업별 노동조합을 제안한 대표자들의 입장 에서는 이러한 태도는 불만족스러운 것이었다. 금속노동자들은 직업별 경계를 넘어서 조직을 확대하고자 하지 않는 노동조합은 사용자들에게 뒤처지게 된다고 판단했다. 급속한 생산의 집중, 특히 금속산업과 제조업 분야에서 카르텔이 형성되는 상황에서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주장이었 다. 하지만 이것은 생산방식이 수공업적이며 사용자단체도 강력하지 않 은 주로 중소규모의 기업들을 중심으로 하는 다른 산업에는 적용되지 않 았다. 그러나 할버슈타트대회 이후 노동조합들이 직업에 근거하여 분화되는 것은 중단되었고 각 노동조합들은 미숙련, 반숙련노동자들을 포괄하면서 그 조직범위를 넓혀 갔다.
36 3) 산업별 노동조합의 건설과 확대: 1890~1914 1) (1) 금속노동자연맹 1880년대 이후의 노조 재조직 과정에서 금속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직종을 초월한 노조를 건설하고자 했다. 이러한 금속노동자들의 노력은 게라(Gera)에서 개최된 노조 대회에서 독일금속노동자연합(Vereinigung Metallarbeiter Deutschlands)의 결성으로 결실을 맺었으나 독일금속노동자 연합은 1년이 지나지 않아 경찰의 탄압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독일금속 노동자연합이 해체된 후 금속노동자들은 지역 단위의 노조 건설에 집중 하였다. 한편 1888년 함부르크에서는 자물쇠공과 기계공들이 그들 직종에서 전국노조의 건설을 선언하였는데 여기에는 파업 실패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파업과정에서 강한 독일금속사용자총연맹(Gesamtverband Deutscher Metallindustrieller)에 비한 노조의 수적 열세와 재정적인 무력함이 적나 라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1890년 가을 반사회주의자법이 폐지된 후 금속분야에서 조직구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여기에서 산업의 집중과 사용자단체 결성을 통해 강력해진 사용자들과 대응하기 위해서는 직종의 구별을 넘 어선 노동조합 조직의 건설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마침내 1891년 6월 1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된 역사적인 독일 금속노동자대회 에서 101대 21이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독일 최초의 산업별 노동조합인 독일금속노동자연맹(Deutsche Metallarbeiterverband)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대장장이노동조합과 주조공노동조합은 금속노동자연맹에 합류 하지 않았다. 직종별 전국조직들은 자신의 조직형태를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한편 베를린 금속노동자들도 합류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먼저 반사회주의자법이 시행되던 시기에 경찰과 사법당국의 엄격한 탄압으로 지역조직들이 중앙조직과 연계를 갖지 못함에 따라 지역적 특별의식이 1) 이 부분은 주로 Schönhoven(1980), pp. 306-376을 요약 정리한 것임.
독일 산별노조의 형성과 발전 37 강했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베를린 노동조합들의 경우 조직력 이 강하여 재정적 조직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던 다른 지역 노동조 합들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협정을 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이데올로기적인 요인도 한 몫을 하였다. 베를린의 금속노동자들은 독일금속노동자연맹이 설립된 이후 1897년 까지 지역적 독립성을 고수했다. 중앙위원회가 베를린에 사무소를 개설 함으로써 새로운 조합원들이 대거 가입하게 된 이후에야 베를린의 노동 조합 지도자들은 통합협상을 할 것을 결정했다. 결국 중앙위원회가 예외 적인 양보를 하여 베를린지역 금속노동조합은 파업과 임금투쟁의 자율성 을 보장받고 조합비의 1/4만을 내는(다른 지역조직들의 경우 1/2) 등 특 수한 지위를 갖는 조건으로 금속노동자연맹에 통합되었다. 주조공노조는 파업투쟁과정에서 강력한 사용자연합과 대응하기 위해 서는 통합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1901년에 금속노동자연맹과 통 합하였다. 주조공노조도 주조공의 이해보장을 위한 특별기금의 설치, 금 속노동자신문(Metallarbeiterzeitung) 2) 에 주조공 난의 보장, 지역 직업국의 설치 등 특별한 권한을 보장받았다. 한편 대장장이노조의 경우 생산이 대기업으로 집중됨에 따라 금속노 동자와 대장장이들 사이의 직무차이가 없어짐으로써 금속노동자연맹과 대장장이노조의 통합을 위한 조건이 마련되어 갔다. 1900년 이후 대장장 이노조의 지역조직들은 지속적으로 통합을 요구하였고 함부르크 지역조 직은 1908년에 탈퇴하여 금속노동자연맹에 가입하였다. 결국 1912년에 대장장이노조는 금속노동자연맹과 통합하였다. 이러한 통합과정을 거쳐 금속노동자연맹은 1913년에는 금속분야에 종 사하는 자유노조계열 노동자들의 94%를 포괄하게 되었고 그 조합원수는 약 56만6천명에 달했다. 2) 금속노동자연맹의 기관지로서 금속노동자연맹이 설립되기 전부터 발간되었으 며, 각 지역별로 분산된 노동조합들이 산별노조로 통합되게 하는데 많은 기 여를 하였다.
38 (2) 목재노동자연맹 금속산업과 비교할 때 목재산업의 집중화운동은 반사회주의자법이 시 행되던 기간 중에도 폭넓게 진행되었다. 이 시기에 금속분야에서는 자치 권을 가진 지역 단위 노조가 지배적인 조직형태였던 반면, 목재산업의 경우에는 가구조립공(1883년 설립), 붓제조공(1884년), 수레목수(1885년), 우산제조공(1886년), 선반공(1887년), 바구니제조공(1889년), 미숙련목재노 동자조합(1890년)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직종별 전국조직이 형성되었다. 목재산업의 경우에도 파업과정이 노동조합의 집중화를 촉진하였다. 파 업에서 직종별 조직의 조직적 재정적 취약성이 드러났고, 결국 1893년 4월 4일 카셀에서 가구조립공과 선반공, 수레제조공, 붓제조공노조 등 네 개 직종별 전국조직들이 통합함으로써 목재노동자연맹(Holzarbeiterverband)이 설립되었다. 목재분야의 경우 가구조립공은 창립 당시 전체 조합원 22,745명 가운 데 19,400명을 차지할 정도로 이 분야에서 가장 강력한 그룹이어서, 목재 산업의 모든 직업들을 하나의 노동조합으로 묶자는 그들의 결정이 목재 노동자연맹 건설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각 노조들이 산업별 노동조 합 건설에 관해 상이한 입장을 보임에 따라 목재노동자연맹은 설립 이후 다른 숙련노동자들을 포괄하여 조직을 확대하지는 못했다. 물론 목재산업의 경우에도 생산의 집중과 생산방식의 변화가 나타나 는 등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위한 객관적인 조건은 무르익고 있었다. 하 지만 노동조합들이 통합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은 수공업적인 직업의식, 특별한 지역적인 이해관계, 각 조직간 발전정도의 차이, 산별노조의 통합 력에 대한 의구심, 재정적인 문제와 관련한 우려 등이었다. 해당 조합원들의 임금수준을 반영하는 재정문제의 경우 조각공노조의 연간 조합비는 31.72마르크인데 반해 미숙련노동자노조의 경우 3.08마르 크, 선반공노조의 경우 4. 76마르크여서 큰 차이를 보였다. 상대적으로 조합비가 높은 노동조합의 경우 재정력이 약화되는 것을 우려하여 조직 통합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다.
독일 산별노조의 형성과 발전 39 하지만 목재노동자연맹은 바구니제조공노조가 1896년, 코르크제조공노 조가 1899년, 금맥기공노조가 1906년, 우산제조공노조가 1910년 합류함으 로써 점점 그 조직영역을 확대하였다. (3) 건설노동자연맹 건설산업의 경우 미장이, 목수, 석고세공인, 페인트공, 기와장이, 포석 공( 鋪 石 工 ) 등의 직업별 노동조합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일반적으 로 산업별 노동조합에 대해 거부하는 경향이 강했다. 1890년대 초 조직 원리에 관한 논의가 진전되면서 건설분야에서는 산업별 노조의 옹호자와 지역노조 추종자 사이에 심한 분열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노동자들간의 임금격차와 지위의 차이가 노동조합 통합에 장애요인이 되었다. 숙련노동자들은 건설보조공을 자신들과는 다른, 이류계급 (Arbeiter zweiter Klasse)으로 여겼다. 또한 건설보조공의 임금 근로조건 은 열악했으며 고용상태도 불안정했다. 이에 따라 건설보조공노조의 재 정력은 취약했고 조직률도 낮았다. 그러나 1900년 이후 지속되었던 경기호황의 시기에 미장이노조와 건 설보조공노조는 주목할 만큼 조합원수를 확대하였고 내적 결속도 강화하 였다. 이와 더불어 그들은 여러 차례의 파업을 통해 통합의 필요성을 인 식하게 되었다. 1903년에 미장이노조, 목수노조, 건설보조공노조 등은 카 르텔협정을 체결하였다. 협정은 임금투쟁과 파업, 조직확대, 선전활동에 서 협력할 것과 지역조직간의 정규적인 회합을 규정한 것이었다. 한편 건설산업의 경우에도 철근콘크리트를 이용한 건설기법이 도입됨 에 따라 미숙련, 반숙련노동자들의 고용이 점점 증가하였다. 또한 1900년 이후 건설분야에 급속하게 보급된 단체협약제도는 노조 집중화를 급속하 게 촉진하였다. 1907년 현재 독일의 단체협약 가운데 약 50%가 건설분 야의 협약이었다. 단체협약은 직종을 초월하여 실시되었기 때문에 각 노 동조합은 공동의 요구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와 더불어 사용 자들의 조직화도 노조의 집중화를 자극했다. 건설산업의 사용자들은
40 1899년 3월 베를린에서 건설산업사용자연맹(Deutsche Arbeitergeberbund für das Baugewerbe)을 구성하였고 이 단체에 속한 회원수는 1899년 2,850 명에서 1909년 20,930명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이런 조건들은 노동조합들간의 통합을 촉진하였다. 결국 1911년에 미 장이노조와 건설보조공노조가 통합함으로써 건설노동자연맹(Deutscher Bauarbeiterverband)이 설립되었다. 1912년에는 석고세공인노조가 건설노동 자연맹에 결합했다. 건설산업의 경우 단일한 산업별 노동조합을 설립하 고자 하는 희망은 단기간 내에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아스팔트공노조, 기 와장이노조, 페인트공노조, 포석공노조 등은 상당 기간 동안 건설노동자 연맹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1913년 현재 건설노동자연맹은 건설분 야의 자유노조계 조합원의 71.4%를 포괄함으로써 그 조합원수는 약 32 만7천명에 이르렀다. (4) 식료품분야 19세기말 빵제조공노조, 양조공노조, 제분공노조, 제과공노조 등 식료 품분야의 노동조합들은 조합원수가 몇백명 정도였고 조직적으로 불안정 한 상태였다. 식료품분야 노동조합 대표들은 할버슈타트대회에서 각 노 조간의 협력계획을 논의했으나 구체적인 조치들이 뒤따르지는 않았다. 식료품분야 노동조합들간의 통합이 지체된 것은 노동자들간에 계급적 배타심(Kastengeist) 이 강했고 그 처지가 상이했기 때문이었다. 양조공들 은 주로 대기업체에서 일했고 빵제조공을 비롯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소규모 작업장에서 근무하였다. 제분공들은 전국적으로 산재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양조공노조는 빵제조공과 제분공의 경우 경제투쟁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을 통합 거부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제분공노조는 빵제조공 들이 마이스터(Meister)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노동자들과 는 이해관계를 달리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1901년 이후 8년간 빵제조업 분야에서는 대규모 공장의 수가 네 배 이상 증가하였고 이들은 생산분야를 제과분야까지 확대하였다. 빵
독일 산별노조의 형성과 발전 41 제조공과 제과공이 대기업에서 같이 일하게 됨에 따라 그들간 직무의 차 이는 줄어들었고, 숙련노동자와 반숙련노동자들이 동일한 생산활동에 종 사하게 되었다. 결국 빵제조공노조와 제과노조는 1907년 통합하여 빵 제과노조를 설립하였다. 1909년부터 시작되어 1910년 완료된 양조공노조와 제분공노조의 통합 은 직무가 아니라, 사업장구조의 변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먼저 양조업과 제조업분야에서 대규모 경영자가 지반을 넓혀 갔다. 동시에 양 영역에서 미숙련, 반숙련노동자들이 숙련노동자들을 대체하였다. 이런 변화에 따라 난관에 봉착한 두 노동조합이 포괄적인 노동조합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5) 광산, 섬유 광산노조와 섬유노조의 경우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산별노조를 건설할 수 있었는데 이 경우 노동조합의 분산을 막은, 특별한 조건이 존재했다. 광산의 경우 노동상황이 특수했고 몇몇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섬유의 경우에는 대기업이 일반적이었고 기계화가 진전되어 있어서 미숙련 반 숙련노동자들의 비중이 높았으며 직무 간의 차이나 수공업적인 전통이 별로 존재하지 않았다. 1892년 할버슈타트대회에 참가한 노동조합은 57개였으나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즈음에는 46개의 조직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통계 의 이면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 할버슈타트대회에 참가했던 노동 조합 가운데 반 이상이 1914년까지 해소되거나 다른 노동조합과 통합하 였다. 또한 노동조합운동 내에서 개별 노동조합들의 상대적인 지위는 전 체적으로 완전히 변화했다. 1차 세계대전 초기에 존재했던 46개 조직 가 운데서 39개는 조직대상이 하나 혹은 몇 개의 직업범주로 제한되었다. 이 이외에 7개의 거대 조직들(금속, 건설, 운수, 공장, 목재, 섬유, 광산) 이 있었다. 이 조직들의 조합원 수는 각각 10만 명이 넘었고 자유노조 조합원의 70%를 차지했다. 이 7개의 산업별 노동조합들은 독일 노동조합운동의 현대적인 추세를
42 드러냈다. 그들은 해당 산업 부문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조직을 공개함으 로써 숙련, 반숙련, 미숙련노동자들 사이의 차이를 줄였다. 또한 몇몇 직 업별 노동조합들이 규약에 의해 금지했던 여성을 받아들였다. 제국 전체 에 체계적인 사무소망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통해 조합원을 모집하고, 조합원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었다. 그들은 상근직원을 두었고 파트타 임에 의지하지 않았다. 더욱이 장기적인 파업을 치룰 만한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었고 소규모 조합보다 자본가와의 투쟁을 치를 수 있는 준비가 잘되어 있었다(Schönhoven, 1985: 228-229). [표 1-5] 자유노동조합의 가입조직 수와 조합원 수의 변화 연도 중앙연맹 조합원 1886 1888 1889 1890 1896 1900 1905 1910 1914 1917 1918 1919 1922 1924 1925 1928 1931 1932.4 35 40 41 58 51 58 64 53 46 48 50 52 49 41 40 35 30 29 81,207 89,706 121,647 301,200 329,230 680,427 1,344,803 2,017,298 1,485,428 1,089,288 1,664,991 5,479,073 7,895,065 4,618,353 4,156,451 4,653,586 4,417,852 4,743,585 자료: Bundesvorstand des FDGB(1985), Geschichte des Freien Deutschen Gewerkschaftsbundes, Verlag Tribüne Berlin, p 43, p 60, p 109.
독일 산별노조의 형성과 발전 43 4) 바이마르공화국시기의 노동조합조직(1918-1932)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배로 끝나자 그 동안 침체에 빠져 있던 독일 노동조합운동은 독일 내의 혁명적 열기에 바탕하여 단결권을 확보 하고, 독일의 주요한 사회세력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정립하였다. 1919년에 뉘른베르크에서 전후 처음으로 열린 제10차 자유노조 대회 는 독일노동조합총연맹(Allgemeiner Deutscher Gewrkschaftsbund, ADGB)이 라는 전국중앙조직을 설립했다. 독일노동조합연맹(DGB)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ADGB는 조직, 재정, 활동에 관한 자율권을 가지고 있는 단위 노동조합들의 연맹체였다. 한편 이 시기에 독일 자유노조운동 내에는 ADGB 외에도 각각 사무직과 공무원을 대표하는 자유사무노동자총연맹 (Allgemeinen Freien Angestelltenbund)과 독일공무원총연맹(Allgemeinen Deutschen Beamtenbundes)이 병렬적으로 존재하였고 이는 현재 독일 노동 조합운동의 구조에도 반영되어 있다. 노동조합의 조직구조는 1919년 뉘른베르크대회에서 다시 주요한 쟁점 이 되었다. 뉘른베르크대회는 타협을 통해 쟁점을 피하고자 했다. 대회는 산업별 연맹 뿐만 아니라 직종별 연맹도 승인했고 1기업 1노조 원리에 따라 설립된 노동조합들도 인정했다. 이후 산업별 노동조합의 옹호자들 과 직종별 노동조합을 지지하는 사람들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하 지만 노동조합들간의 조직관할권 분쟁이 늘어났고, 주요 산업이 집중화 되었으며, 기업측의 통일적인 행동이 강화됨에 따라 산업별 노동조합원 리는 더욱 우세한 지위를 점하게 되었다. 결국 1922년 라이프치히대회에 서 대다수 대표자들은 현재의 직종별 조직을 통합함으로써 통일적인 산 업별 연맹을 설립한다는 데 찬성했다. 하지만 1기업 1노조 원리는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Potthoff, 1987: 39-40). 이후 산업별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형태 변화는 느리기는 했지만 지속 되었다. 취약한 소규모 노동조합들은 인근 부문의 대규모 조직과 결합하 였고 각 노동조합들은 이런 식으로 산업별 노동조합에 가까워졌다. 한편 활동력이 있고 전문적인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있는 소규모 연맹들은 자
44 립성을 계속 유지하였다. 이 시기에 조직구조와 관련한 중요한 변화는 공공부문에서 일어났다. 이전의 운수노동자연맹(Transportarbeiterverband)에서 발전한 교통연맹 (Verkehrsverband)은 1930년에 지자체 국가노동자연맹(Gemeinde- und Staatsarbeiterverband), 원예노동자연맹(Gärtnerverbandes), 소방수연맹(Verbandes Feuerwehrmänner)과 통합하여 공기업노동자총연맹(Gesamtverband der Arbeitnehmer der Öffentlichen Betrieb)을 설립하였다(Potthoff, 1987: 40). 공기업노동자총연맹은 조합원이 70만명에 이르렀고 금속노동자연맹에 이 어 두 번째의 규모를 가진 노동조합이었다. 노동조합들의 집중화가 지속적으로 추진됨에 따라 개별 조합의 숫자 는 1919년 52개에서 24년에는 41개, 32년에는 29개로 줄어들었다. 한편 1931년에는 금속, 농업, 공장, 섬유, 건설, 광산, 철도, 목재, 공기업부문을 조직하고 있는 9개의 대규모 산업별 노동조합이 자유노동조합 조합원의 약 78%를 차지했다. 이것은 산업별 노동조합 원리가 대부분의 영역에서 관철되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표 1-6] 자유노조 10대 연맹의 조합원수, 1913~1932 (단위: 명) 금속 농업 공장 운수/교통 섬유 건설 광산 철도 목재 지자체/국가 공기업 1913 1918 1920 1922 1924 1926 1929 1931 1932 565,930 19,077 210,659 229,785 141,484 326,631 104,113-195,441 52,996 472,633 9,923 143,338 98,318 91,292 89,346 164,876 57,016 108,143 47,003 1,647,916 695,695 643,800 568,080 491,480 470,749 450,320 428,174 379,381 288,274 자료: Potthoff, 1987, pp. 352-353. 1,622,707 555,864 722,081 582,066 740,852 546,042 422,172 442,082 416,462 282,995 889,063 147,650 394,984 310,948 425,510 362,482 229,956 202,689 323,175 187,205 675,398 141,778 375,935 313,069 284,773 339,159 184,275 210,568 266,055 207,917 953,891 167,444 457,657 394,561 303,269 478,550 197,513 248,552 315,621 270,008 870,548 138,717 413,477-261,763 433,019 176,826 222,480 285,804-655,600 738,592 131,286 353,641-219,469 350,991 152,411 189,800 249,726-578,024
독일 산별노조의 형성과 발전 45 4. 독일 산업별 노동조합의 조직구조와 단체교섭 1) 산업별 노동조합체계의 확립 1933년에 집권한 나치는 노동조합을 파괴하고 이를 독일노동전선 (Deutsche Arbeitsfront)으로 대체하였다. 노동전선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자 본가도 평등한 구성원으로 하는 조직이고 그 설립목적을 전 독일인의 국민공동체 내지 작업공동체의 형성 으로 규정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노 사간의 이해대립은 인정하지 않았으며 조직력에 근거하여 노동자의 계급 적 이익을 옹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노동전선은 나치당의 지도를 받는 나치당의 수족이었다. 노동전선의 책임자는 히틀러가 임명하는 나 치당 조직부장이었으며 그 외의 임원은 조직부장이 임명했다(광민사, 1981: pp. 63-81). 노동전선은 어떠한 점에서도 노동조합이 아니었지만 모든 육체노동자 와 사무직노동자들을 18개의 전국사업장그룹(Reichbetriebs gruppen)으로 묶고 있었는데, 그 조직영역은 전후 DGB 산하 산업별 노동조합이 취한 것과 유사했다(Markovits, 1986: 10). 제2차 세계대전이 나치의 패배로 마무리되자 독일 노동조합운동은 다 시 확대 발전의 길에 들어섰다. 1945년 8월 북부독일을 점령하고 있던 영국이 새로 설립된 노동조합들을 독일노동자의 합법적인 대표로 인정했 을 때, 이미 100만명의 노동자들이 조직되어 있었다. 영국지역의 경우 1946년 11월 170만이었던 조합원들은 1947년에는 210만명으로 늘어났다. 1948년 말경에는 약 500만명(베를린과 자르지역 제외)의 독일 노동자들 이 조직되었다(Markovits, 1986: 63). 당시 노동조합활동가들은 바이마르시기의 쓰라린 패배의 경험, 곧 바 이마르공화국 몰락과 나치 등장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노동운동의 지도적 인 원리로 인식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노동운동 지도자들은 망명생활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나이와 이념적인 지향성도 유사했다. 주도적인 독 일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예외없이 1880년대에 태어났으며 사회민주당
46 (SPD)이나 독일노동조합총연맹(ADGB)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전쟁 중 에는 영국, 스위스, 미국, 스웨덴 등지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이들은 바이 마르시기와는 다른, 새로운 노동운동을 건설하고자 했다. 망명지에서 돌아온 지도자들이 추구했던 것은 바이마르시기 노동자들 의 치명적인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조직적 통일과 집중이었고 이를 위해 노동조합운동의 통일(Einheitsgewerkschaft), 1산업-1노조(Eine Industrie-eine Gewerkschaft), 1기업-1노조(Ein Betrieb-eine Gewerkschaft) 등 세 가지 조직 원리를 관철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노동운동가들간에 차이가 있었 다. 스웨덴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지위, 임금, 직업, 산업, 지역에 상관없 이 모든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일반노동조합(Allgemeine Gewerkschaft)을 설립하도록 동료들을 설득했다. 이 경우 일반노동조합이 민간부문이든 공공부문이든 사용자들과의 모 든 교섭을 담당할 것이고, 산업별 분과가 어떻게 설치되든 간에 그것은 자율성이 없는, 일반노동조합의 보조적인 기구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형 태의 노동조합조직을 주장한 사람들은 분명히 분과가 적을 수록 노동자 계급에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한편 미국, 영국, 스위스에서 돌아온 사람 들은 단체교섭권 같은 권한을 개별 조합이 행사하는, 더 분권화된 연맹 체계를 원했다. 하지만 1945년 후반에 지배적인 의견은 집중화된 일반노 동조합을 설립하는 것이었다(Markovits, 1986: 65). 이 계획은 점령군에 의해 거부되었다. 영국과 미국은 집중화되어 있고 포괄적인 노동조합이, 특히 정치제도가 아직 확립되어 있지 않는 나라에 서, 노동자들에게 너무 많은 권력을 집중시킬 것을 두려워했다. 더욱이 미국은 그러한 노동조합조직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장악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영국의 압력에 의해 독일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결국 상급조직은 제한 된 권한만을 가지고 단체교섭과 대중동원에 관한 사안은 개별 노동조합 이 전권을 갖는 연맹구조를 택했다. 3) 미국은 이 계획을 몇 달 후에 승인 3) 헬가 그레빙에 따르면 일반노동조합을 만들려는, 초대 DGB 의장인 한스 뵈클
독일 산별노조의 형성과 발전 47 했고 1946년 초 영국과 미국 점령지역에서 산업별 노동조합이 탄생했다 (Markovits, 1986: 65). [표 1-7] DGB의 가입조직(1994.12.31 현재) 노동조합 금속산업노조(Industriegewerkschaft Metall) 공공 운수 교통노조(Gewerkschaft Öffentliche Dienste, Transport und Verkehr) 화학 제지 요업산업노조(Industriegewerkschaft Chemie, Papier, Keramik) 건설 석재 토양산업노조(Industriegewerkschaft Bau, Steine, Erden) 독일체신노조(Deutsche Postgewerkschaft) 상업 은행 보험노조(Handel, Banken, Versicherungen) 독일철도노조(Gewerkschaft der Eisenbahner) 광산 및 에너지산업노조(Industriegewerkschaft Bergbau und Energie) 식품 제과 접객노조(Gewerkschaft Nahrung-Genuß-Gaststätten) 교육 과학노조(Gewerkschaft Erziehung und Wissenschaft) 섬유 피복노조(Gewerkschaft Textil-Bekleidung) 언론매체산업노조(Industriegewerkschaft Medien) 경찰노조(Gewerkschaft der Polizei) 목재 합성수지노조(Gewerkschaft Holz und Kunststoff) 원예 농업 산림노조(Gewerkschaft Gartenbau, Land- und Forstwirtschaft) 피혁노조(Gewerkschaft Leder) 조합원수 2,995,783 1,877,651 742,367 652,964 546,906 545,270 423,163 390,000 336,239 316,196 234,240 215,155 197,482 179,678 90,281 25,043 합계 9,768,373 자료 : DGB, 1995. 독일노동조합연맹(Deutscher Gewerkschaftsbund, DGB)은 이후 1949년 10 월 12~14일 뮌헨에서 16개 산별노조들의 연맹체로 설립되었으며 4) 회원 러를 비롯한 지도자들의 시도는 점령군뿐만 아니라 루르 지역의 광산노조와 철강노조들의 반대에 부닥쳐 좌절되었다고 한다(Grebing, 1966: 356-57). 한편 독일노동조합연맹 산하의 연구기관인 경제사회연구소(WSI)의 볼프강 레허는 초기에 몇몇 노동조합 대표자들이 선호했던 집중된 단일노조와 달리, 회원 조직으로서 자율적인 산업별 노동조합들을 가진 연맹조직을 채택한 결정은 내부민주주의라는 면에서 이점을 갖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고 한다. 집중화된 구조에서 관료화의 위험성은 연맹의 경우보다 확실히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Lecher, 1994: 29). 4) 소련군 점령지역의 경우에는 1945년 6월 10일 소련 군정청 2호 명령에 의해 단결권이 인정되었고 1946년 2월에 독일자유노동조합연맹(Freien Deutschen Gewerkschaftsbundes)이 설립되었다.
48 조합수는 1995년 현재도 16개이다. 5) 결국 독일 노동조합운동은 노동조합운동의 통일, 1산업-1노조, 1기업-1 노조 등 세 가지 조직원리에 따라 노동조합운동을 재편하였다. 하지만 이 원칙들이 완전하게 관철된 것은 아니어서 DGB 이외에도 독일사무직 노동조합(Deutsche Angestellten Gewerkschaft), 독일공무원연맹(Deutscher Beamten Bund), 기독노동조합연맹(Cristlicher Gewerkschaftsbund) 등의 연 맹이 존재하고 있고, 산업과 기업마다 복수의 노조가 조직되어 있다. 물 론 DGB의 1994년 말 현재 조합원수는 약9백80만명으로 전체 조합원의 약 85%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원칙이 근본적으로 허물어 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2) 산별노조의 조직구조 독일노동조합연맹과 개별 산업별 노조는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DGB의 재정은 산하조직의 분담금에 의해 유지된다. 일반적으로 개별 조 합원은 총소득의 약 1%를 조합비로 내며 각 노조는 조합비의 12%를 DGB에 낸다. DGB는 행정체계와 더불어 출판사(Bund-Verlag), 연구소 (Wirtschaft- und Sozialwissenschaftlichen Instituts, WSI), 교육관 등을 운영 하고 있다. 더불어 기업의 감독회에 노동자측 위원으로 참여하는 사람들 의 봉급은 산업민주주의와 사업장조직 관련분야의 활동을 하는 한스뵈클 러재단(Hans-Böckler-Stiftung)의 재정에 이용된다. 교육 과학노조(Gewerkschaft Erziehung und Wissenschaft)를 제외하고, DGB 산하노조는 특정 산업분야의 모든 조직 노동자들을 포괄하고 있다. 실례로 금속노동자를 대표하는 금속노조는 지방본부 차원에서 항공, 자 동차, 금속제조, 전기, 전자산업을 포괄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한다. 더불어 노동조합은 철강과 비철금속산업을 대표하여 단체협약을 체결한다. DGB 5) 1978년에 경찰노조가 17번 째 회원조직으로 결합하였으나, 1989년에 출판노조 (IG Druck und Papier)가 예술노조(Gewerkschaft Kunst)가 통합하여 매체노조 (IG Medien)를 결성함으로써 조직수는 다시 16개로 줄었다.
독일 산별노조의 형성과 발전 49 는 산업경계에 관해 노동조합 간에 분쟁이 일어날 경우 이를 해결할 책 임을 갖고 있다. [그림 1-1] 독일 금속노조의 조직구조 전국대의원대회 (Gewerkschaftstag) 중앙위원회 (Beirat) 중앙집행위원회 (Vorstand) 감독위원회 (Kontrollausschuß) 지방본부대의원대회 (Bezirkskonferenz) 지방본부집행부 (Bezirksleitung) 지역대의원대회 (Vertretersammlung) 지역집행부 (Ortsverwaltung) 조합원 (Mitglieder) 개별 노동조합의 최고기구는 총회이다. 총회에 참석하는 대의원들은 지역에서 선출되며 그 숫자는 해당 지역의 조합원수에 따라 결정된다. 노동조합 상근자가 대의원 가운데 상당수를 차지한다. 총회는 중앙집행 위원을 선출하고 노동조합 정책의 가이드라인과 과제를 공식화한다. 하 지만 개별 노동조합에서 실질적인 권한은 중앙집행위원회에 있다. 중앙 집행위원회는 모든 하급조직을 지도하고 단체교섭을 하며 출판, 홍보활 동, 교육 등을 담당한다. 단체교섭은 보통 독립적인 교섭위원회가 지방본부 차원에서 행하기 때문에 지방본부는 개별 노동조합에서 특히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교 섭위원회는 보통 지역 집행부와 지방본부의 노동조합 상근자, 그리고 주
50 요 사업장의 종업원평의원으로 구성된다. 대부분의 노동조합에서는 중앙 집행위원회가 지방본부 집행부를 임명한다. 몇몇 노동조합에서는 중앙집 행위원회의 참여 없이 지역에서 선출된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는 지방본 부 대의원대회에서 지방본부 집행부가 직접 선출되기도 한다. 지방본부 지도부와 중앙집행위원회간에 갈등이 있는 경우에 중앙집행위원회의 입 장이 우선한다. 조직의 기초 단위는 지역(Orts)이다. 여기에서 조합원들(또는 대표자나 대의원대회)이 지역 집행부를 선출한다. 지역 집행부는 노동조합 상급조 직에 대해, 대외적으로 대표권을 행사하는 한편 중앙집행위원회의 지시 에 복종해야 하고 이것을 조합원 사이에서 이행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 집행부는 지방본부 집행부에 의해 조정 통제된다. 지역 차원의 활동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전체 조합비의 약 12~25% 정도가 지역조직에 배 당된다. 볼프강 레허에 따르면 현재 독일 노동조합에서 민주주의의 문제는 1945년 직후와 비교하여 매우 실망스러운 상태를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노동조합 활동에 참여하는 조합원의 숫자가 크게 줄어들었고 중앙기구와 상근자들의 영향력은 늘어났으며, 지역조직은 예를 들어 연방총회에 제 안을 제출할 권한을 상실했고 선출된 상근자들의 재임기간은 길어졌다는 것이다(Lecher, 1994: 162). 물론 이것은 독일의 노동조합이 고도로 중앙 집중화되어 있으며, 노동조합 간부들이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여지도 많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것이도 하지만 노동조합이 현장 조합원으로 부터 멀어지고 있으며 관료주의적 경향이 나타날 가능성도 많다는 것을 드러낸다. 3) 독일 노동조합의 현장조직 독일의 경우 다른 나라와는 달리 공동결정제도에 의해 사업장에 노동 조합 조직과는 구분되는 종업원평의회(Betriebsrat)가 설치되어 있으며 종 업원평의회는 임금 근로조건, 복지, 인사 경영사항에 대한 공동결정권,
독일 산별노조의 형성과 발전 51 협의권을 가지고 있다. 종업원평의회법(Betriebsverfassungsgesetz)에 따르면 평의원은 명예직으로 보수를 받지 않으며 작업시간 중에 유급으로 업무 를 수행할 수 있다. 종업원평의회 활동을 위해 연장근무를 한 경우에도 그에 대한 임금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사용자는 종업원평의회 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하며, 종업원평의회 회의와 일상활동에 필요한 사무 실, 사무원, 물질적 편의 등을 제공해야 한다. 법률로 정해진 평의원 수 와 전임자 수는 [표 1-8]과 같다. [표 1-8] 법정 평의원 수와 전임자 수 선거권이 있는 노동자 수 평의원 수 전임자 수 5-20 21-50 51-150 151-300 301-600 601-1,000 1,001-2,000 2,001-3,000 3,001-4,000 4,001-5,000 5,001-6,000 6,001-7,000 7,001-8,000 8,001-9,000 1 3 5 7 9 11 15 19 23 27 29 29 31 31 1 2 3 4 5 6 7 8 9 10 추가 인원 9,001-10,000명의 노동자 9,000명 경우 11인이며, 이상인 경우 10,000명 이상인 3,000명 당 2인이 경우 2,000명당 1 추가됨. 인이 추가됨. 자료 : The Federal Minister of Labour and Social Affairs, 1991. 종업원평의회는 임금 및 작업조건에 관해서는 공동결정권을 갖고 있 으나 인사 고용 관련사항에 관해서는 동의권 내지는 협의권을, 경영정
52 책과 관련된 사항의 경우에는 정보권 정도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한편 종업원평의회는 평화의무, 비밀준수의무를 지켜야 하고 단체교섭권, 단체 행동권도 부여되지 않는 노사협의기구이다. 독일에서 종업원평의회는 산별 차원의 임금협약에 기초하여 사업장 차원의 추가적인 임금교섭을 한다. 이에 따라 독일의 경우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임금 근로조건은 금속노조와 사용자협회간의 단체교섭에 의해 규율되며 단체교섭의 구체적인 이행과 그 외의 복지관련 사항은 종업원 평의회와 사용자간의 사업장협정에 의해 규제된다. 한편 사업장 내 노조조직으로는 현장위원(Vertrauensleute)들이 있는데 이들은 조합원 모집, 조합 자료 배포, 정보교환 등을 담당한다. 현장위원 은 조합원 약 20명당 1인씩, 3년마다 선출된다. 그러나 종업원평의회와 현장위원 간에는 우선 상근역량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으며 종업원평의 회가 법률적으로 보장된 참가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장위원들의 활 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표 1-9] 종업원평의회 선거결과, 1978~90 1978 1981 1984 1987 1990 실시 기관과 평의원 수 기관수(개) 평의원수(명) 33,294 194,455 36,307 199,125 35,343 190,193 34,807 189,292 33,012 183,680 DGB의 비중 평의원(%) 의장(%) 38.6 71.4 63.2 79.9 63.9 75.1 65.4 74.8 69.3 78.4 기타 노동조합의 비중 평의원(%) 의장(%) 18.1 15.2 13.5 9.6 10.7 7.9 7.1 5.1 5.6 5.2 비조합원 비중 평의원(%) 의장(%) 23.3 13.1 23.3 10.5 25.4 17.04 27.5 20.1 25.2 16.45 여성의 비중 평의원 수(%) 의석(%) 자료: DGB(1990), Gewerkschaftsreport, Lecher(1994), p. 166에서 재인용. 20 13 15 6 19 11 19 9 19 11
독일 산별노조의 형성과 발전 53 독일 금속노조는 1952년 종업원대표법 제정 이후 종업원평의회가 현 장의 노동조합활동을 약화시킬 것을 우려하여 현장위원 활동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따라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현장위원수 가 대폭 늘어났다. 하지만 현장위원보다는 종업원평의회가 사업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금속노조는 이후 종업원 평의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그 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 환하였으며 중앙집행위원회의 현장위원 활동지침도 현장위원의 역할을 종업원평의회를 지원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Streeck, 1984: 27-31). 물 론 종업원평의회 구성원의 대다수는 DGB 산하 조직의 조합원이며 종업 원평의회는 어느 정도 노조 지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최근 들어 독일의 경우에도 사용자들의 유연화 요구가 강해지고 있 고 이에 따라 종업원평의회의 역할이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노동시 간 단축투쟁과정에서 금속노조는 노동시간 단축을 얻은 대신 사용자들이 요구하는 유연성 곧, 그 구체적인 이행을 종업원평의회와 사용자들간의 2차 교섭에 맡기는 것을 수용하였다. 또한 최근 들어 첨예한 사안이 되 고 있는 작업장 차원의 합리화와 관련하여 종업원평의회가 제도적으로 보장된 참가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종업원평의회의 중요성은 더욱 부 각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 분권화 는 미국이나 영국처럼 전국교섭의 힘이 약화되거나 특정한 산업이나 사업장이 전국 차원의 규제에서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전국협약 자체에 유연성을 도입하고 사업장의 종업원평의회 에 더 큰 권한을 부여하는 정도의, 부분적인 변화이다. 독일의 전국교섭 제도는 여전히 강력하고 중심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Thelen, 1991: 157-158). 물론 독일의 경우에도 사용자들은 유연성 을 확보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하여 특히 중소기업들은 사용자단체 내에서 노조측에 더 이상 양보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금속산업사용자협 회 내의 이런 압력이 전국교섭의 파멸로 귀결되지 않은 이유는 이들 기 업들도 혼자보다는 단결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금속산업사용자협
54 회의 의장인 베르너 슈템페가 지적했듯이 거대하고 강력한 금속노조와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만일 우리가 금속노조와 개별협약을 맺으려고 한 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6) 는 것이다. 결국 사용자측이 지속적인 통일성을 유지하는 이유는 노동조합의 지 속적인 힘, 그리고 통일성과 관련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노동시간 단 축투쟁과정에서, 고용촉진법(AFG) 116조 7) 에 대해 저항하기 위한 파업에 서 독일 노동조합은 여전히 노동자들을 위한 전국적인 요구를 결정하고 이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조합원들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또한 현재 독일 노동조합이 여러 가지 난관에 부닥쳐 있는 것은 사실이 지만 다른 나라의 노동조합운동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조직력 을 유지하고 있다. 4) 독일 단체교섭구조의 특징 독일의 경우 단체교섭제도도 중앙집중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노동 조합뿐만 아니라 사용자들의 조직률이 높고 조직에 대한 충실성이 높아 사용자단체도 다른 나라에 비해 집중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사용자단체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경제정책과 해외무역에 관해 사용자들을 대표하는 것은 독일상 6) Kölner Stadt Anzeiger, 1987. 6. 12, Thelen(1991), p. 177에서 재인용. 7) 1986년 독일 정부는 고용촉진법 116조를 개정함으로써 파업권을 크게 제한하 였다. 정부는 116조를 개정함으로써 이전의 파업에서 상당수를 차지했던 간 접적 직장폐쇄(cold lockout)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에 대한 실업급부를 없앴 다. 이 노동자들에게 국가 부조를 주지 않게 됨으로써 1984년 노동시간 단축 을 위한 투쟁과정에서 효과가 입증된, 최소의 손실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mini-max) 노조의 전략은 무력화되었다. 1984년에 노조는 몇 개의 부품공급 사업장을 집중 공략함으로써 전체 자동차산업을 무력화시키면서 파업지구의 노동자들에게만 파업지원금을 주면 되었다. 하지만 개정된 고용촉진법 116조 는 간접적 직장폐쇄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라 하더라도 그 지구의 요구가 파 업지구와 같은 경우 더 이상 실업부조를 받을 수 없게 하였다. 이 조항에 대 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조합이 교섭지구마다 요구를 다르게 하는 것뿐이다. 이 조항은 노동조합의 장기적 전국 파업 수행에 제약을 가한 것이 다.
독일 산별노조의 형성과 발전 55 공회의소연합(DIHT)이다. 다음으로 기술, 생산, 시장, 연구를 담당하는 독 일공업연맹(BDI)이 있다. 임금과 노동시간, 그외의 노동조건에 관한 민간 부문 사용자들의 이해를 대표하는 것은 독일사용자단체총연맹(Bundesverband der Deutschen Arbeitgeberbände, BDA)이다. BDA도 DGB와 같이 단체교섭을 직접 담당하지는 않고 조정, 중재역할만을 한다. BDA는 사 회정책과 노사관계 영역에서 정부, 공공기관, 국제조직에 대해 독일 사용 자들을 대표한다. BDA는 사용자단체의 상급조직이고 BDI와 달리 제조 업만을 조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BDA는 공업, 수공업, 농업, 도소매, 수출, 은행, 보험, 수송 등 독일경제의 거의 모든 부분을 대표한다. 1994년 현재 BDA는 46개의 전국 부문조직과 12개 지역조직으로 구성 되어 있다. 민간부문 사용자의 약 80%가 BDA에 가입되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산업별 조직은 단체협상에 대해 배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 철강산업사용자단체는 예외적으로 BDA 밖에서 활동한다. 대표적인 부문조직 가운데 하나인 금속산업사용자단체(Gesamtmetall)는 85년 현재 8,300개 회원사, 전체 기업의 약 55%를 포괄하고 있다. 이 회 사들은 약 300만명을 고용하고 있고 이는 금속산업 노동자의 약 75%를 차지한다. 금속산업사용자단체와 같은 상급조직은 상당한 재정적인 자원 을 가지고 있고 파업의 타켓이 되는 회원사를 지원하기 위해 파업기금을 설치한다. 금속산업사용자단체는 자동차, 기계공구, 전기산업 등 모든 영 역을 포괄하고 있고 400만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단체교섭을 담당할 뿐 아니라 노사간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Jacobi, 1992: 237-38). 독일의 경우 산업별 단체교섭이 일반화되어 있고 폴크스바겐과 같이 금속노조와 개별 사용자가 대각선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경우 도 있으나 이는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독일에서 기업별 협약 은 단지 노동력의 6%만을 포괄한다. 그리고 독일의 경우 단체협약의 범 위는 조합원 수와 직접 연계되어 있지는 않다. 현재 약 3만개의 유효 협 약이 전체 종업원 중에 약 90%를 포괄하는데 이는 조합원수의 약 세 배 이다(Lecher, 1994: 22-24). 독일의 노동조합은 스웨덴의 연대임금정책과 같은 평등주의적 임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