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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6일

Transcription:

WHY GRACE CHANGES EVERYTHING 척 스미스의 은혜 하나님의 복의 문을 여는 열쇠 척 스미스 목사 지음 갈보리채플 극동선교회 THE WORD FOR TODAY KOREA

WHY GRACE CHANGES EVERYTHING by Chuck Smith 2007 The Word For Today Published by The Word For Today Translated by permission of The Word For Today TWFTK(The Word For Today Korea)는 성경은 하나님의 온전한 계시의 기록이라고 믿고, 성경 말씀을 온 세상에 가르치도록 훈련하는 기관입니다. 홈페이지: www.fareastmission.org 전화: 041)557-4607 Korean edition 2009 by The Word For Today Korea 본서에 나오는 모든 성경 구절들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전서(2008년)로부터 발췌한 것입니다.

나의 소중한 아내 케이에게, 그녀의 성실함과 사랑은 일관성 있는 영감입니다.

차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7 1. 용서받음 17 2. 그 문은 절대로 닫혀 있지 않습니다 29 3. 천국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41 4. 은혜의 초상 57 5. 한 번에 한 걸음씩 69 6. 정원이지 공장이 아닙니다 85 7. 믿음으로 받는 복 99 8. 갈등은 시작되고 111 9. 이젠 정말 자유입니다! 125 10. 그들이 제멋대로 살지 않을까요? 137 11. 위장 폭탄과 지뢰 151 12. 전부가 아니면 소용 없습니다 165 13. 왕가의 가족들 179 14. 우리의 유일한 책임 193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라는 간단한 문장의 의미를 깊이 생 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이 말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진 리를 내포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사랑의 관계를 가지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쪽에서 할 일이라고는 단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보살핌과 긍휼을 신뢰하고 받아들이 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에서 오는 자유함과 기쁨을 경험하는 것은 얼 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 이 율법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져 보려고 애쓰는 것을 보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그들은 그들의 의로움의 근거를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서 이미 행하신 일보다는 자기들이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과 해서 는 안 될 일들 의 목록을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말입니다. 나도 그런 억압적이고 소극적인 의로움에 대해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닙니 다. 어린 시절에는 늘 내가 동네에서 가장 믿음이 좋은 아이들 중에 하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죠. 담배도 안 피웠고, 춤추는 곳에도 가지 않았으며, 영화도 보러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아주 죄스러운 일들이라고 배웠기 때문입니 다. 그래서 그런 일들은 하지 않으려고 피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일에 정 신이 팔린 믿음이 약한 친구들보다 내 자신이 훨씬 더 의롭다고 믿었습 니다. 담배 꽁초를 주워 숨어서 몰래 피우는 목사님의 아들보다 내가 훨 7

척 스미스의 은혜 씬 더 거룩하다고 생각했지요. 나는 그러한 모든 아이들보다 내가 더 훌 륭하다고 생각했고, 하나님이 그것을 알고 계신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여전히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비록 가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백설공주 영화가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고, 그 로 인해 나는 죄책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주일 저녁마다 나는 다시 구원 받아야 했고, 다음 주에는 달라질 것이라고 하나님께 약속하곤 했습니 다. 하지만 그 약속은 월요일 아침까지만 지켜져도 다행이었습니다. 나의 의는 나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오래 가지 않아 하나 님과 나의 관계는 굉장히 힘들어졌습니다. 나는 매년 여름 우리 교회의 청소년 캠프에 참여하곤 했습니다. 마지막 날 밤에는 언제나 큰 장작불 을 피워 놓고 둘러 앉아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주께 드리네! 와 끝까 지 주님 따라 가겠네! 등의 찬송을 불렀지요. 분위기가 무르익어 감정이 극한 상태가 되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변화시키기 원하시는 부분이나 하나님 앞에 우리가 헌신하고 싶은 일들을 종이에 적을 것을 요구받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적은 종이를 접어서 솔방울 속에 밀어 넣 은 후 타는 장작불 속으로 던져 넣었지요. 내 솔방울이 타는 것을 보면 서 나는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 그분의 사랑에 의해 내 삶이 불타기를 원하고, 내 자신을 온전히 주님을 섬기는 일에 바 치기 원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야영 집회가 끝나면 우리는 선생님들을 따라 앞으로 일 년 동안은 하 나님의 은혜로 극장에는 절대 가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으며, 술도 입 에 대지 않고, 천한 말은 입에 담지 않으며, 물론 춤을 추러 가지도 않 을 것을 약속합니다 라는 말이 기록된 카드가 쌓인 테이블로 갑니다. 거기서 결단의 카드에 서명한 후 일 년 동안 늘 지갑에 넣고 가지고 다 니는 것이지요. 8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나는 결단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는 메마르고 율 법적인 관계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계약에 의해 하나님께 매여 있 었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 속에서 거의 기쁨을 찾지 못 했지요. 나는 약속한 것을 어길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서명했고, 내가 날 짜를 기록했으며, 또 그것을 항상 지갑에 넣어 가지고 다녔기 때문이지 요. 나는 내가 약속한 것을 지키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 로는 하나님이 나의 이러한 노력에 대해 보상을 하셔야 한다고 굳게 믿 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잘 대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약 속을 지키지 않고 결단한 대로 살지 않는 다른 아이들보다는 나에게 복 을 더 많이 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결코 나보다 의롭지 못한 내 친구들이 항아리 속의 젤리 빈 숫자 맞추는 게임에서 일등하고 상을 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화가 나서, 하나님,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라고 불평했습니 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약속을 지키느라 죽 을 고생을 하며 노력했는데, 하나님은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 같았 습니다. 나는 정말 힘이 빠졌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가끔 나 자신에게 솔직해질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나 자신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의로운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곤 했습니다. 나는 나의 삶의 태도가 마땅히 그러해야 할 수준에 미 치지 못했음을 알았습니다. 나는 내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서 철저 하게 멀리 떨어져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극 장에 살짝 숨어 들어갔던 일이 생각나더군요. 그 일 후에 나는 6개월 동 안이나 하나님께 약속한 결단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셔야 한다 는 생각을 포기하곤 했지요. 하나님께 구하고 기도할 것이 많았지만, 하 나님을 그렇게 배반해 놓고 무슨 낯으로 무엇을 구할 수 있었겠습니까? 9

척 스미스의 은혜 이러한 행위로 의로움을 얻어 보려는 힘겨운 노력은 아리조나 투산 (Arizona Tucson)에서의 나의 초기 목회에서도 여전했습니다. 목회 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내가 경험하고 있었던 것보다 더 많 은 그 무엇이 나의 사역에 있어야 하고,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내 가 누렸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게다 가 설상가상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부흥회를 여는 당시 유명한 부흥사 들의 집회를 지켜보곤 했는데,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는 사람들이 천막 을 가득 메우고, 많은 사람들이 기적적으로 병고침을 받았다고 법석을 떠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는 나의 삶과 목회에서도 그러한 능력이 명백하게 드러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투산의 사막에서 금식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물 한 병과 성경과 노트 한 권만 가지고 나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기 위해 혼자 길을 떠났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나의 삶에 그분의 복과 능력과 기름부으심을 허락해 달라고 간구했습니 다. 이러한 영성 훈련을 치른 후에, 나는 금식 기도를 이만큼 했으니 이 제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복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면서 흥분되 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주일 예배에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지 주일 이 기다려졌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금식으로 인해 너무 쇠약해진 상태여서 주일까 지 강단에 거의 서 있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마음이 복잡해서 조 리있는 설교를 도무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졸았고, 나는 곤혹 스러워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역사를 기 대했는데, 그 대신에 코고는 소리가 합창을 하듯 터져 나왔던 것입니다. 나는 낙심했고 또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얼마나 열심히 금식하며 기도했는지 보지 못하셨습니까? 보셨다면, 이 교회와 저에게 마땅히 복을 주셔야지요. 10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그 때는 나의 금식과 기도가 하나님께 의무를 지우고자 하는 시도였다 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이 하시도록 강요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또한 나는 사람들이 사도행전에 기 록되어 있는 기적들을 보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를 믿게 될 것이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내가 깨달은 것은, 우리가 세상에 보여 줄 수 있는 궁극 적인 증거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며, 이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마 음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법과 규칙을 지키는 것으로 는 그러한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인간 관계에 는 법을 적용해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안전과 안정성 을 얻을 유일한 방법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경은 사랑이 율법 의 완성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예수님도 무엇이 가장 큰 계명이냐는 질 문에,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법이 아니라 사랑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그리고 우리들 서로의 관계에 있어서 열쇠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율법의 의무 조항과 죄책감보다 더 강한 사랑의 줄에 의해 그분께 이끌려 나오는 아름다운 관계를 경험하기를 원하십니다. 만 약 우리가 여전히 법과 규칙들에 의해 하나님께 매여 있다면, 우리는 머 지 않아 안달하며 속박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기쁨으로 맺어진 관계와 의무나 죄책감으로 묶여 있는 관계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분의 백성이 외부적 압력의 목록에 매여 있도록 의도하 지 않으셨습니다. 제기랄 이렇게 할 일이 쌓였는데, 오늘 또 교회를 가 야 하나? 그렇다고 안 가면 하나님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으실 테 고, 목사님도 사나운 눈초리로 노려보실 텐데. 이렇게 짜증내며 불평하 는 것을 듣는 일도 하나님께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11

척 스미스의 은혜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진 것처럼 힘들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그 것은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사랑으로 맺어진 것이 아니라 율법주의에 빠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없는 단조로운 존재 방식보다 더 좋은 것이 우리에게 있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와 다음과 같이 긴 계약을 맺으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세운 모든 조건을 지키라. 그러면 너를 사랑하고 너에게 복을 주 겠다. 그러나 하나라도 어기는 날에는 모든 것이 무효가 되고, 너는 내 왕국 밖으로 쫓겨날 줄 알아! 그리스도인은 무거운 계약에 의해서 하 나님께 붙들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기 때문이라고 선포했습니다(고린도후서 5:14). 내가 스스로 의로워지려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함을 얻을 때까지 하나님은 오랜 세월을 참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많은 사람들이 로마서를 통해 엄청난 복을 받았다는 말을 들어 왔습니다. 나 는 언제나 복 받기를 갈구하고 있었고, 결국 로마서를 깊이 공부해 보기 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말씀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래도 나는 다른 사람들을 사로잡은 그 진리를 발견해 보려고 꾹 참고 계 속 연구하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내가 이 위대한 책을 공부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다름 아닌 하 나님과 나의 관계에 일대 혁명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분은 단순하고 자 주 사용되는 말이면서도 그 뜻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은혜 라는 말의 의미를 분명히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나는 그때 이후로 지금 까지 자유로운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누리게 되었으며, 나의 사역 에서 놀랄 만한 기적을 경험하는 것에 대해 조금도 개의치 않게 되었습 니다. 나는 비록 내가 넘어지고 실패할지라도 나의 잘못이나 실수가 결 코 나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주님과 나의 관계는 오르락내리락 하는 롤러 코스터와 같은 관계가 아 12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니라, 그분의 놀라운 사랑 가운데 편안하게 달리는 안전한 관계라는 것 을 알았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로마서 8:31)라는 심오한 진리를 발견했을 때의 내 기분이 어떠했겠는가를 상 상해 보십시오. 수십 년 동안 나는 하나님이 내 편이 아니라는 하나님 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고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선을 그 어 놓고 가만히 기다리고 계시다가 내가 선 밖으로 발만 내디디면 무서 운 진노의 심판을 내리시는 그런 하나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마침내 하나님이 항상 율법주의를 동반하는 두려움이 아닌 그분 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평안을 내가 누리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 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나는 하나님과 전혀 새로운 차원의 관계를 시작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율법이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도록 만들 어진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율법이 금지하고 있는 사항들은 마치 부모가 어린 아이들의 안전과 복지를 위해 내린 안전 수칙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를 깨닫고 나 면, 더 이상 우리는 율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해칠 어떠한 일도 우리는 하기를 원치 않 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의 기쁨을 안다면, 우리 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어떤 장애물이나 방해물도 놓이기를 원치 않 을 것입니다. 사실상,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할수록 그분은 더욱 더 우리 삶의 근 본적인 욕구와 중심이 됩니다. 율법으로 인해 억지로 맺어진 관계는 필 요가 없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을 기 쁘시게 해드리기를 원하게 되는 것이지요. 13

척 스미스의 은혜 이것이 바로 인생 최대의 기쁨입니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경험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고 그분이 나를 사랑 하신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안전입니다. 하나님 의 놀라우신 은혜를 발견한 것은 나의 영적인 경험 전체를 통해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나는 전혀 새로운 근거 위에 하나 님과 관계를 맺어가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선한 행위 나 나의 의로움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의 나를 향하신 사랑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요, 그것 때문에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상 은혜야말로 우리의 실제 삶을 풍성하고 만족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조약돌과 같이 보잘것없는 우리의 노력 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바위와 같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 의 속성에 달려 있다는 엄청난 진리에 눈을 뜨게 될 때, 우리의 삶은 무 한한 가능성을 지닌 천연 색깔의 폭발성을 가진 삶으로 우리 앞에 펼쳐 지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는 메마르고 황량한 들판을 기름지고 싱그러운 푸른 초장으로 바 꾸어 놓습니다. 은혜는 이를 악물고 억지로 하는 봉사를 사랑과 기쁨이 가득한 열심있는 봉사로 바꾸어 놓습니다. 은혜는 자신의 노력이 실패한 것에 대한 죄책감과 눈물을 하나님의 오른편에서 누리는 영원한 즐거움 의 전율로 바꾸어 줍니다. 은혜는 모든 것을 바꾸어 놓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사는 심오한 기쁨을 발견하셨나요? 우리 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미약한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하신 팔이 이루어 놓으신 일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겠습니까? 당신이 지금 영적으로 어떠한 상태에 있든지, 나와 함께 잠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쏟아부어 주신 놀라운 은 혜를 생각해 보는 자리에 있기를 초대합니다. 14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네, 참으로 그렇습니다. 은혜는 모든 것을 바꾸어 놓습니다! 15

1 은혜 용서 받음 어느 날 저녁 나는 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박사(Dr. Henry Kissinger)가 연설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는 그 자리에서 모인 사람들에게 자신 의 자서전 1159쪽에는 자신이 처음으로 저지른 실수가 기록되어 있으 며, 그것은 처음이자 마지막 실수였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자서전을 쓴다면, 나의 첫 번째 실수는 차례가 있는 페이지는 아닐 지라도 서문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나 자신의 선함으로는 하나님 앞에 절대로 서지 못합니다. 내가 도덕적으로 타락한 썩어 빠진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지기 에 턱없이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가망이 없는 의 의로워지기 위한 한 가지 매우 흔한 방법은 무엇이 의로운 일이고 무엇 이 의롭지 않은 일인지를 구분해서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자기가 정한 규칙에 따라 살 사람이 없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그것을 지키지 못했는지에 대한 핑계만 잔뜩 둘러대게 되는데, 가장 흔한 핑계는 규칙대로 살지 못한 것이 자기 잘못 17

척 스미스의 은혜 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유리컵을 떨어뜨려 깨뜨렸다면,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되는 순간에 내 이름을 불렀고, 또 건너편 방에 서 사람들이 너무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래 서 사실은 내 잘못이 그들의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한 것 은 바로 너 때문이야! 네가 그렇게 하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우리는 아무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 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아담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자신의 실패를 이 브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있으라고 주신 여 자 곧 그 여자가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 다 (창세기 3:12)라고 말했습니다. 잠언은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자기 눈에는 순결하여도 여전히 자기의 더러움에서 씻기지 않은 세대가 있느니 라(잠언 30:12). 당신이 스스로 깨끗한 자라고 생각하면서 더러운 것으로부터 씻음을 받 지 못했다면, 의는 물 건너간 것입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우리가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며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면 우리가 그분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들며 또한 그분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 하니 라(요한일서 1:8,10). 성경은 우리의 문제를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 앞에서 유죄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 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19,23). 우리가 규칙을 지킴으로 우리 자신의 의를 세우려 노력할 때마다 결국 우리는 기울어진 저울로 무엇을 측량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언제나 나는 나 자신을 당신보다는 도덕적으로 더 낫게 보게 되고, 당신도 역시 당신 자신보다는 나를 도덕적으로 더 못하게 볼 18

1.용서받음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온갖 잘못을 다 볼 수 있지만, 나 자신을 볼 때는 잘못도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잘못들조차도 대단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심지어 나의 행위로 얻을 수 있는 의조차도 모두 가짜입니다. 성경은 다 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우리는 다 부정한 물건 같아서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누더기 같으며(이사야 서 64:6). 어떤 사람들이 누더기를 걸치고 줄을 지어 돌아다니는 것을 본다면, 참 으로 우스꽝스럽지 않겠습니까? 굉장히 신령한 척 번지르르한 종교적 행 위를 하면서, 너희들보다 내가 더 거룩하다 는 태도로 어슬렁거리며 돌 아다니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말할 때도 속삭이듯 낮은 음성으로 엄숙하게 말하는데, 이는 그렇게 하는 것이 거룩하고 의롭게 들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또 성경에 있는 종교적인 고상한 용어를 사용하 는데, 이는 그것이 일상 용어보다 훨씬 더 의롭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자 기의 의를 내세우려고 걸음도 점잔을 빼고 걸으며 애써 거룩하게 보이려 하지만, 하나님은 머리를 저으시며 더러운 누더기! 라고 하십니다. 만일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나의 선함과 의로움에 달려 있다면, 나는 전 혀 가망이 없을 것입니다. 나는 이제까지 실패했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 르지 못했습니다. 나의 생체 리듬이 좋을 때는 정말이지 모든 것이 순조 롭게 흘러 갑니다. 그런 날은 내 자신이 뭔가 된 기분입니다. 그러나 그 렇게 가까스로 최상의 것을 이루어 낸 날에도 하나님은 나를 내려다보 시면서, 더러운 누더기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충 분하지 못한 것이지요.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는 것은 나를 정죄에 빠뜨립니다. 왜냐하면 참된 율법은 내적인 마음의 자세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내가 자기 의의 기준 아래 애쓰던 때에는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어떤 일에 대해 분개했습 19

척 스미스의 은혜 니다.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의 의를 위해 세운 규칙을 어겼으며, 그로 인 해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끝나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다시 시작하 는 것외에는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제 겨우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했다 싶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관계는 허물어져 버리고 다시 시작해 야만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느껴지는 단계까지 선행 의 사다리를 계속 기어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 단계에 이른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속도로에서 어떤 사람이 갑자기 새치기를 하면, 나는 야! 너, 어디서 운전면허 받은 거야? 그 따위로밖에 운전 못 해? 라 고 고함을 지릅니다. 그러면 그 동안 쌓은 공은 다 무너져 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기준이 무엇입니까? 예수님 없이도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몇 가지 중요한 질문에 봉착하게 됩니다. 어떤 수준의 선함에 도달함으로써 천 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 선함의 기준은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 은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실까? 많은 사람들이 저는 기본적으로 친절 하고 착하기 때문에 기꺼이 제 힘으로 하나님 앞에 서고 싶습니다 라 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준은 우리의 기준과 다르다는 사실을 계산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의 힘으로 천국에 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일을 말씀하시면서, 그러 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 라 (마태복음 5:48)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온전함에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단지 열 심히 노력하거나 진실되게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에게 원하 시는 모든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하 20

1.용서받음 게 말해서, 스스로의 선한 행위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다는 것에 대해 왜곡된 이 해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로운 행위의 기준을 세우려 한다면, 예수님이 세우신 기준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 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마태복음 3:17)고 말씀하신 유일 한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의 로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분[성령]께서 오셔서..., 의에 대하여... 세상을 꾸짖으시리라... 의에 대하 여라 함은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므로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요 (요한복음 16:8,10). 예수님의 승천은 세상에 보여 주는 그분의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 였습니다. 마치 내 아들의 의를 보라. 내가 천국에서 받아줄 의는 바로 이런 것이라야 하느니라 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삶이야 말로 오직 유일한 의의 기준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를 원한 다면 예수님처럼 의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받아주실 단 한 가지 종류의 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바 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선한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서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본 선함과 같은 기 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불가능한 일인 것을 잘 압니다. 나는 그런 종류의 의 는 이루어 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그녀에게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속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마태복음 5:28). 그리고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아무 까닭 없이 자기 형제에게 화를 내는 자는 심판의 위험에 처하게 되고(마태복음 5:22). 21

척 스미스의 은혜 또 더 나아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고 너희를 저주하 는 자들을 축복하며 악의를 품고 너희를 다루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또 네 빰 을 치는 자에게 다른 빰도 내주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가 네 덧옷도 가져가는 것 을 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모든 자에게 주고 네 물건들을 빼앗는 자에게 다시 달라고 하지 말며(누가복음 6:27-30). 그리고 우리에게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 라지 말고 빌려 주라 (누가복음 6:35)고 명령하셨습니다. 어느 누가 그렇게 의로울 수 있겠습니까? 나는 아닙니다. 나는 형편없이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저와 같은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버림받아야 한다는 말일까요? 나에게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릴 수 있는 길은 전혀 없는 것일까요? 공허함과 좌절 속에서 결코 얻을 수 없는 무언가를 잡기 위해 계속 애써야 할까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다는 소망이 있기 위해서는 우리 의 행위 같은 것 말고 다른 근거가 꼭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율법 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게 될 수 없나니 (로마 서 3:20)라고 선언한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릴 수 있으려면, 우리 자신의 의가 아닌 다 른 어떤 근거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를 위해 세우신 법은 너 무 엄해서 우리가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다른 형태의 의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인데, 그 의는 우리 자신의 행위와는 전혀 다 른 원리에 기초한 것이어야 합니다. 은혜란 무엇입니까? 은혜 (grace)라는 단어의 어원은 아름다움 (beauty)이며, 신약 성 경에서 은혜는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총 을 의미합니다. 은혜는 나 스스로 얻을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은혜는 내 22

1.용서받음 가 그럴 만한 자격이 없고 가치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에 의해 받아들여 지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나의 믿음과 신뢰로 은혜를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 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 하나니 라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를 대신한 그분의 죽음을 믿음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을 받 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신뢰를 하나님께 드릴 때, 우리의 죄가 말끔히 씻 어집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키거나 어떤 종교적 행위로 우리 죄를 용서받는 것은 불 가능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 주 님이 십자가로 가셔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이 아니옵고 오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누가복음 22:42). 주님의 이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의 죽음 외에 다른 방법으로 인 류가 구원받을 수 있다면,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서나 어떤 식으로든 그 들 자신의 의를 얻음으로 구원 받을 길이 있다면, 나는 십자가를 지고 싶 지 않습니다. 내가 참혹한 고통의 길로 가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그러 나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으며, 장 사 지낸 바 되셨다가 부활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죽음으로 하나님이 당 신과 나에게 그분의 은혜를 베푸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예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당신이 범 죄를 저질렀다고 합시다. 이웃의 재산을 침해한 죄로 기소를 당했습니 다. 어느 변호사나 다 알고 있듯이, 당신이 혐의를 벗기 위해서는 두 가 지 가능한 길이 있습니다. 이웃의 재산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 23

척 스미스의 은혜 하든지, 아니면 당신이 그 재산에 대해 행사할 충분한 권리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이제 이 논리를 우리의 영적인 상황에 적용해 봅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한 죄인으로 정죄하고 불의한 자로 기소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모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또 우리가 그런 죄를 범 할 권리가 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그럴 권리 가 없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행한 일은 명백하게 잘못된 일입니다. 그렇 다면 죄사함을 받고자 하는 우리들에게 법은 어떤 가치가 있습니까? 어 떤 가치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소송은 명백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죄를 범할 권리가 없었는데 어쨌든 그것을 범했고, 따라서 우리는 유죄 인 것입니다. 대단한 은행 강도 예화를 바꾸어 봅시다. 내가 치밀하게 계획하여 은행을 털었다고 가정합 시다. 감시 카메라에 포착되어 내가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하지 않았 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없기 때문에 법은 나를 정죄합니다. 또 내가 은행 을 털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도둑질은 국민의 기본권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법으로는 죄사함을 받을 길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재판을 받을 때, 이제 일생 동안 절대로 은행을 털지 않을 것을 약속합 니다. 이제부터 선하고 깨끗한 생활을 하겠습니다. 절대로 남의 물건을 불법으로 취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열심히 사정할지라도, 그것이 내가 이미 저지른 일을 정당화하지는 못합니다. 그 돈으로 착한 일을 많이 했 기 때문에 용서받아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교회에 헌금도 하고 24

1.용서받음 굶주린 가족도 먹였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의로운 행위들이 그 죄를 상쇄하거나 사면해 주지는 못합니다. 판사는 내가 훔쳐간 모든 돈을 은행에 갚도록 명령할 수도 있습니다. 또 판결의 일부로서 도로변의 쓰레기를 줍는 환경미화 노역형을 언도할 수 도 있습니다. 비록 내가 남은 일생 동안 선한 일을 하며 살지라도, 그것이 내가 이미 지은 죄를 없이 할 수는 없습니다. 법이 행하는 모든 일들은 나의 죄를 지울 수 없습니다. 나의 과거 범죄 기록은 여전히 남아 있게 되 는 것입니다. 나는 여전히 강도를 범한 죄인이며, 그 평결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왜 영적인 일에 있어서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행한 모든 선한 일들을 들어 하나님 앞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것일까요? 자신의 죄와 범죄 행위와 불의에 대해 뉘우치고 새로운 결심을 가지고 살아가고자 다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개과 천선하고 완 전히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이 죄 사함을 받아 낼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노력할지라도 이미 지은 죄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결코 선한 행위로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평생을 선하게 살고 단 한 번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평생의 그 선한 행위가 그 한 번의 죄를 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죄사함의 근거는 그분의 독생자 아들의 희생입니다. 우리의 모 든 죄, 우리의 과거와 미래의 모든 죄가 죄 없으신 어린 양,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온전하신 분, 예수 그리스도께 씌워진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 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고통 당하시고, 우리 죄 를 사하시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 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후서 5:21). 우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죄인이 되 25

척 스미스의 은혜 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와 자리를 바꾸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그분께서 부요하셨으나 너희 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자신의 가난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 심이라(고린도후서 8:9). 그분은 그분을 믿고 신뢰하는 단순한 우리의 믿음 때문에 우리 죄를 대 신 담당하시고, 우리를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님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께 씌우셨을 때, 예수님은 우리가 우 리의 죄 때문에 받아야 할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으셨는데, 성경은 그 벌을 사망이라고 말합니다(로마 서 6:23).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 으면, 우리의 지은 모든 죄가 다 용서함 받는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예 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고 요한일 서 1장 7절은 말합니다. 이처럼 깨끗케 하심은 율법이 절대로 할 수 없 는 일이며, 은혜만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믿음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한 행위나 노력이나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로부터 죄사함을 얻게 하지는 못 합니다. 바울은 강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선언했습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느니라(로마서 4:5). 일하지 않고 단순히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의로움을 주십니다. 하나님 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이미 이루어 놓으신 일을 믿는 우리의 믿음 때문에 우리에게 죄사함을 주십니다.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당신은 언제라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 당신 자신의 노 력으로 예수님처럼 선해지려고 발버둥칠 수도 있고, 아니면 예수님을 믿 26

1.용서받음 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권리를 은혜의 선물로 받을 수도 있습니다. 내게는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나는 선한 행위로는 내가 절대로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과거의 죄 때 문에 어떠한 소망도 없이 정죄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비 를 떠나서는 결코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된 소식은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실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 셨다는 사실입니다. 절대적으로 거룩하시고 정결하시고 의로우셔서 죄 가 함께 하지 못하는 하나님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그분과 교제할 수 있 도록 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치르신 희생을 우리가 믿기만 하면, 비록 우리는 자격이 없을지라도, 하나님 아 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한 죄사함을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복음입니다. 비록 우리가 온전함과는 거리가 멀지 만, 우리 각자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 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아름다운 관계를 가질 수 있 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아들을 통해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를 맺으면, 우리는 견고한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제 그분의 자녀들입 니다. 그분이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과연 아버지 앞에 나아 갈 수 있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근거 로 그분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의 관계를 근거로 나아가는 것 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복음의 전부입니다. 하나님은 마치 우리가 어떠한 죄 도 짓지 않은 것처럼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나는 나 자신을 그렇게 바라 볼 수가 없습니다. 나는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보면서 말합니다. 야, 27

척 스미스의 은혜 척! 너는 죄인이야. 너는 네 식욕도 절제할 줄 모르고, 너는 너무 문제가 많은 사람이야!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보시면서, 죄사함 받았음! 이 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 를 사랑하시고,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그분의 친아들을 받아주시는 것과 똑같이 나를 받아주십니다. 바울은 우리가 그 사랑 하시는 자 안에서 (에베소서 1:6) 받아들여졌다고 말합니다. 그분의 사 랑하시는 자는 바로 그리스도이시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당신은 그리스 도께서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것 같이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복음이 내가 들은 소식 중에 가장 복된 소식이 되는 이유입니다.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도록 이 땅에 보내신 그분의 아들을 우리가 믿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의 모 든 죄는 깨끗이 씻어졌습니다. 죄책감이 없습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자기 불법들을 용서받고 자기 죄들이 가려진 자들은 복이 있으며 주께서 죄를 인 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로마서 4:7,8).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구하기 위해 언제나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올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 엇인지 아시는 그분의 지식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시거 나 거절하시는 우리 아버지의 지혜를 신뢰할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 다. 우리는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 자신 을 맡길 수 있으며, 그분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만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분은 그분의 부요하고도 풍성하신 사랑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 주기 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의 복음입니다! 28

2 은혜 그 문은 절대로 닫혀 있지 않습니다 용서받는 것이 기쁘고 놀라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은혜의 복음 이야기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 신 것을 믿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복음의 나머지 절반인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여기 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단체 들이 의의 기준들을 세웠지만, 그 기준들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 해서는 그들도 좀처럼 동의하지 않습니다. 금목걸이를 해도 괜찮을까요? 그렇게 오래 전 일도 아닙니다만, 단추 달린 옷을 입으면 의롭지 못하 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훅(단추 대신에 쓰는 쇠 고리-편집자 주)을 사용했으며, 단추를 옷에 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 했습니다. 그들은 단추를 옷에 달다니요? 아이 망측해라. 그것이 얼마 나 불의한 일인데요! 라고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금 목걸이나 금으로 된 장식품을 몸에 지니는 것은 죄라고 가르치는 사람 들이 있습니다. 금목걸이를 하고 다닌다면, 당신은 의로울 수 없다는 것 입니다. 인류 역사를 통해서 사람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다양한 의의 기 29

척 스미스의 은혜 준들을 세워 왔습니다. 이 특정한 기준을 잘 지키면 하나님이 받아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말입니다. 그러나 법이나 행위를 통해 의를 세우려 하는 데는 진짜 문제가 있습니 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세운 기준에조차 우리가 따라 살고 있지 않다 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우리가 선하며 옳다고 믿는 도덕적 기준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진짜 모습이거나, 외부의 방해만 없다면 최소한 우리 각자 가 그런 사람일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그것을 우리의 초자아 (superego), 혹은 이상적인 자아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불행하 게도, 아무도 참된 나 를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참된 나 는 완벽하 기 때문이지요. 사실상 나는 외부의 환경이 자꾸만 나의 이상적인 자아 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하기 때문에 참된 나를 알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초자아와 함께 자아 (ego)에 대해 말하는데, 이것은 실 제의 나, 즉 실제 당신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슬픈 것은 실제의 당신 이 결코 이상적인 당신의 기준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만일에 당신의 초자아와 자아 사이에 거대한 차이가 있다면, 당신은 심 리적으로 부적응자로 여겨집니다. 다른 한편, 당신 자신이 완벽하지 않 음을 알고 이상적인 자아에 대해 그렇게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 면, 당신은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으로 평가받게 되는 것이지요. 심리학자들은 흔히 환자들에게 그들이 비현실적인 목표를 세웠다고 말 해 줌으로써 그들의 초자아의 기준을 낮추려고 노력합니다. 아무도 그 렇게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아무도 그렇게 선하지 않단 말이에요. 당신 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극히 정상입니다. 누구나 다 하는 일인 걸요. 당 신 혼자 그렇게 높은 수준의 목표를 세우고 완벽하게 살아 보겠다고 쩔 30

2.그 문은 절대로 닫혀 있지 않습니다 쩔 맬 필요가 없어요! 라고 말합니다. 이 정신 치료사들은 우리가 균형 잡힌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초자아와 자아의 간격을 줄여 나 갑니다. 초자아를 끌어내리는 치료법이지요. 이것은 예수님의 방법과는 대조적입니다. 예수님은 초자아를 낮추려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자아를 양육하는 데 초점을 맞추십니다. 예수 님은 실제의 당신을 향상시키기 원하십니다! 실제의 내가 비록 이상적인 나보다 훨씬 못하다 하더라도, 그것과 상관 없이 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온 전히 의롭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복음의 두 번째 내용입니다. 첫 번째는, 예수 그리 스도에 대한 당신의 믿음 때문에 당신의 모든 죄가 씻음을 받고 용서함 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당신의 믿음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을 의롭게 보신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이 어떤 일 을 행하든 행하지 않든 상관 없이, 도덕 강령을 지키든 지키지 않든 상 관 없이, 하나님은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당신에게 의로 움을 입혀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영광스러운 복음, 즉 복된 소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 한 나의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시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 아 내가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복된 소식입 니다. 문은 열려 있습니다 어째서 그것이 그렇게 복된 소식입니까? 나는 절대로 두려워하며 다음 과 같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 나는 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어. 나는 방금 거짓말도 했고, 화도 냈고, 사람을 속이기도 했어. 내가 31

척 스미스의 은혜 일을 그르쳐 놓고 어떻게 하나님의 도움을 청할 수 있단 말인가! 만일 에 나의 의가 나의 행위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이라면, 실제로 사탄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문을 항상 막고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 는 마땅히 내가 행해야 할 만큼 행하지 않고 있으며, 마땅히 선해야 할 만큼 선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나는 나의 초자아에 도달하지 못한 것입 니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나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 것이지요. 내가 세운 이상적인 의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탄은 그 실 패를 이용해서 내가 하나님 앞에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너는 하나님 께 도움을 청할 권리가 없어. 방금 넌 그분을 실망시켜 드렸잖아. 하나 님이 싫어하시는 일인 줄 알면서도 넌 그렇게 했잖아. 그러다가 어려움 에 처하니까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겠다구? 하나님이 들으실 거라고 생 각하니? 어림도 없지! 사탄이 나로 하여금 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만들면, 그는 항상 내가 하 나님께로 나아가는 문을 막아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 그리 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믿음 때문에 의롭다 여김을 받 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사탄은 절대로 문을 막아서지 못합니다. 사탄은 지금도 여전히 내게 다가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야, 척, 너 는 형편 없는 자야! 넌 사람들 앞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 할 자격이 없어. 너는 거기 그렇게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자격 이 없단 말이야! 너는 이것도 망치고 저것도 망쳐 버렸잖아? 너는 사고 뭉치야! 나는 이럴 때면 항상 미소를 짓기 시작합니다. 몇 가지 내가 잘못한 일 들을 들고 나와 나를 넘어뜨리려 하지만, 그 외에도 내가 잘못한 것이 많은데 그것들을 들추어내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나는 사탄에게 다음 과 같이 말해 줍니다. 사탄아, 그런 것 가지고 나를 겁주려고? 그런다 32

2.그 문은 절대로 닫혀 있지 않습니다 고 내가 도망가서 숨을 줄 아니? 네가 한 말 다 맞아. 그래 내가 잘못 한 일이 많지. 그래 나도 내 약점을 잘 알아. 그러나 네가 나를 예수님 으로부터 멀리 쫓아버릴 수는 없어! 오히려 예수님께로 더욱 가까이 가 게 만드는 거야. 왜냐하면 나의 유일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 없거든! 그리고는 나에게 가장 안전한 곳, 나의 모든 소망이 걸린 주님의 십자가 로 달려갑니다. 정말이지 나는 나 자신이나 나 자신의 의에서는 소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과 하나님이 나 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드시면서 성령의 능력으로 내 안에서 행하시 는 그 일 안에서 큰 소망을 얻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해주십니다. 내가 약한 부분에서 하나님은 나를 강하게 만들 어 주십니다. 나의 약함을 깨닫고 나 자신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한때는 내가 약해서 자주 넘어지던 부분에서 이제는 강하게 설 수 있게 되었는 데, 그것은 그분의 강한 능력이 나의 약함 안에서 온전해졌기 때문입니 다(고린도후서 12:9). 분명한 것은, 나는 아직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삶을 살지 못하고 있 다는 것입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지금의 나는 과거 의 나와 같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지금과 같은 불완전한 상태에 서도 하나님은 나를 의롭고 거룩하다고 간주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내 가 예수님외에 어느 것에도 붙들려 있기 싫은 이유입니다. 우리는 절대 로 예수님을 떠나서 우리 자신을 보면 안 됩니다. 의에는 등급이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 때문에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입혀 주셨다면, 나의 행위로 그분의 의를 더 낫게 개선해 보겠다고 노력하는 것은 어리 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더 낫게 개선할 수 없습니다. 하나 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의로운 신분을 개선하는 방법은 없다는 것입니 33

척 스미스의 은혜 다. 우리는 의롭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믿고 신뢰하는 우리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결산입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아무도 자기 자신을 얼마만큼 의롭게 만들었는지를 자 랑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다윗, 혹은 바울이 하나님 앞 에서의 의로운 신분을 얻기 위해 그들이 행한 모든 놀라운 일들에 대해 우리는 결코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었고, 그 들의 믿음이 그들에게 의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하늘 나라에 가서 다른 사람과 선한 행위를 서 로 견주어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는 오 직 한 분만이 영광을 받으실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곳에서 빛나는 별은 오직 하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행한 일들 때문에 번쩍번쩍 빛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구석에서 천국에 온 것만도 다행이 라고 생각하며 서 있게 되는 영적 계급 제도와 같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에 대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곳에 갈 수 없을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어떤 것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6:14). 우리가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한다 하더라도, 아무리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한다 하더 라도, 주님을 위해 아무리 많은 교회를 세운다 하더라도, 우리의 영광 은 오직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의는 우리의 선한 행위나 인간적인 노력의 문제가 아니며, 어떤 의식이나 음 식에 관한 율법을 지키는 것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의는 지금부 터 영원토록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오직 그 믿음의 결과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얻은 의는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사람들 간의 차이를 없애 줍 34

2.그 문은 절대로 닫혀 있지 않습니다 니다. 내가 당신보다 더 나을 것이 없고, 당신이 나보다 더 나을 것이 없 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로 구원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운 신분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의는 오직 한 가지밖에 없는데, 그 것은 우리에게 부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내가 나 자신의 의로움이나 행위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려 하거나, 이번 주간에 착하게 살고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에 하나님 의 복주심을 기대한다면, 나와 하나님의 관계는 항상 미약할 것입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은 것 같고, 어떤 때는 나쁘다고 느껴질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의 의를 바탕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없이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실제로 성립될 수 없고, 평안을 누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내가 어 떻게 느끼느냐,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 또는 나 자신의 의에 달려 있다 면,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복의 문은 절대로 닫혀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하나님의 은혜, 거 저 주시는 은총에 기초해서 우리에게 부여되는 것입니다. 결코 내가 복 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으로 복을 얻어 내지는 못합니다. 내 삶에 주 어지는 복은 항상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총에 따른 것입 니다. 하나님은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하시고, 어떻게 해서든 나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가장 진실한 찬양은 우리를 향 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깨닫고,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저절 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고약한 버릇 우리는 우리의 의로움이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행하는 일들과 어떤 식 으로든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기가 참 힘들다는 것을 발 35

척 스미스의 은혜 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믿는 자들이 그들이 행한 일들 때문에 다른 믿는 자들보다 더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러 한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는 것만큼 그 들이 일하지 않거나 우리만큼 그들도 열심이 있지 않을 때, 우리는 그들 이 우리만큼 의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행위로 의로움을 얻는다는 개념을 우리 생각에서 떨쳐버리기란 정말 어 렵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개념이 너무 깊이 박혀 있어서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죄책감으로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도인인 우리들도 우리 자신이 죄의식에 빠질 수 있는 여건을 스스로 만 들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 나님의 자녀로서 그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적인 행동의 기준을 세워 놓고 그것을 지키기 원하게 됩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거하시므 로 나는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기를 원합니다. 그분의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성내지 않으며,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안에 있는 사랑은 얼마나 깨지기 쉬운 보잘 것 없는 것인지 모릅니다. 내가 고속 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앞의 운전자가 멍청한 짓을 해서 내 목숨을 위태롭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그 즉시 화 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오릅니다. 요란하게 경적을 울리면서 바로 옆까지 다가가 그 못된 녀석에게 내 기분이 어떠했는지를 꼭 보여 주고 맙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고약한 짓을 다 하고 난 후에야, 내 차 번호판에 갈보 리 (CALVARY)라고 쓴 것이 기억나지 뭡니까! 그 순간 오래되고 친숙 한 죄책감이 내 마음에 들어옵니다. 이러고도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 라니! 하는 가책이 물밀 듯 일어나면서, 내가 얼마나 불의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나는 다시 그것을 망쳐 버렸고, 한 번 더 하 나님을 실망시켜 드렸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은 기분에 사 로잡히게 됩니다. 36

2.그 문은 절대로 닫혀 있지 않습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나의 행위가 잘못되었을지라도 그것이 하 나님 앞에서의 나의 의로운 신분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행위와 율법이라는 개념을 의로움이라는 개념과 따로 떼어서 생각하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나의 행위와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신분이 떨어 질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둘은 전혀 관계가 없 습니다. 사실은 단순하게 내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하 나님이 의로운 신분을 내게 입혀 주신 것입니다. 만일 운전하면서 절대 로 화내지 말 것 혹은 자녀들에게 절대로 신경질 내지 말 것 등의 규칙 을 지키는 것이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져다 준다면, 나 의 행위와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운 신분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 셈이 됩 니다. 그러나 생명을 가져다 주는 율법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우리 에게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와 사망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에 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행위로 얻는 의로움보다 더 나은 약 속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 새로운 언약이 바로 은혜의 복음입니다. 은혜와 평강 당신은 아주 나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화도 잘 내고 쓸모 없 는 사람이어서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할 수 없을 것이라고 느낍니다. 육 체를 따라 살면서 완전히 실패한 자신에 대해 당신은 염증을 느끼고 있 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채찍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당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때, 갑자기 침울한 어두움을 깨고 하나님이 당신에게 놀라운 복을 주 십니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저절로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터져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찬양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저절로 터져나오는 것 말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찬양은 다음 37

척 스미스의 은혜 과 같은 것들이지요. 하나님은 내게 참 좋으신 분이라오. 나는 그 사 랑을 조금도 받을 자격이 없네. 나는 은혜를 바탕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때문에 절대로, 절대로 그 분의 복주심으로부터 단절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만일 내가 나의 선함과 행위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복주심을 기대한다면, 나는 번번이 그 것으로부터 단절되고 말 것입니다. 내가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나의 외부적인 행위 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나의 믿음 의 부족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주심이 무조건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내 삶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복을 보면 볼수록 나는 내가 전혀 복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 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나는 이 진리 때문에 놀라운 평강을 누리게 되 었으며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 자신의 의를 의지한다면, 우리는 결코 지속적인 평강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과 행위를 바탕으 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려 하는 것은 언제나 갈등과 긴장 그리고 강요 를 수반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평강을 알아 가야 한다면, 우리는 하나 님의 이 놀라우신 은혜가 하나님 편에서부터 먼저 우리에게 흘러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나면, 하나님의 평 강이 우리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우리가 비록 완벽하지 않 고 실패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압니 다. 아무도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조차도 하나님은 여 전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38

2.그 문은 절대로 닫혀 있지 않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등이 서로 붙은 쌍둥이에 대해 들어 보셨나요? 그 쌍둥이는 은혜와 평강 이라는 두 단어입니다. 이들은 항상 이 순서로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쌍둥이 중에 형은 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항 상 은혜와 평강이라고 언급되지, 평강과 은혜라고 언급되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말을 마차 앞에 놓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바른 순 서는 언제나 은혜와 평강 입니다. 왜냐하면 먼저 우리의 삶에서 하나 님의 은혜를 경험할 때까지는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평강을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성경은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게 된다 고 말합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요? 그것은 하나님이 마치 우리가 전혀 죄 지은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분 앞에 설 수 있도록 우리에게 어떤 신분을 허락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이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죄 를 지었고 의의 표적을 맞추지 못했는데, 어떻게 우리를 전혀 죄짓지 않 은 의로운 사람으로 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만일에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시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속성에 따라 행하셔야 했 다면, 어떻게 그분은 마치 우리가 완전한 것처럼 우리를 대하실 수 있 을까요? 이 부분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 등장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죄 없으신 예수님을 우리를 위하여 죄인으로 만드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죄 없 으신 그리스도께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담당시키셨다고 선언합니다. 예수 님이 문자 그대로 내가 죄인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나를 위하여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영광스러운 은혜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율법 아래에서 얻을 수 있는 어떤 의보다도 훨씬 더 월등한 의의 신분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39

척 스미스의 은혜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섬세하게 율법을 지키려 노력해도 언제나 부족할 뿐, 그것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한 믿 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입혀 주신 것으로 온전 한 의입니다. 아무 것도 더할 필요도 없고 더할 수도 없습니다. 나는 그 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으로 온전한 의로운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는 완전합니다. 그 말은 내가 완전한 사 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하시며 나는 그분에 대한 나의 믿음 때문에 그분의 의를 얻게 되었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부어 주신 그분의 은혜를 아는 지식과 내가 하나님 과 맺고 있는 사랑의 관계를 생각할 때, 나는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하 고 찬양해야 할까요! 그분의 은혜와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우 울할 때나 올바르지 못할 때나 화가 났을 때에도 그것은 언제나 동일합 니다. 그것은 꾸준하며 항상 거기에 있는 풍성한 관계입니다. 그분은 내 가 상냥할 때도 나를 사랑하시고, 심술궂을 때도 사랑하십니다. 이 하 나님의 은혜와 그 은혜에 의한 복음을 아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인지요! 40

3 은혜 천국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절대로 구원받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종종 예수님을 영접하 고 구원받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갈보리 채플에서는 오랫동안 서로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뜻밖에 복 도에서 만나 이상 야릇하게 서로를 쳐다보며, 네가, 여기 웬일이야? 하 고 한 목소리로 말하는 모습은 그리 보기 힘든 것이 아닙니다. 손에 성 경을 들고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교회에서 서로 마주친 이들은 한 순간 넋이 나가 버립니다. 둘 다 서로가 예수 믿고 구원 받으리라고는 생각하 지 못했던 것입니다. 나는 초대 교회의 매우 많은 사람들이 사울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다고 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다음과 같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주님, 이 자를 처치해 주십시오. 그가 교회를 말살하려 합니다. 그를 막아 주세요. 주님! 그들은 아마 하나님이 심판의 단칼을 내려치시기 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그를 중지 41

척 스미스의 은혜 시킬 계획을 가지고 계셨지요. 하나님은 다마스커스 도상에서 그를 정지 시켜 그의 삶을 180도로 돌려 놓으셨습니다. 사울은 바울로 다시 태어 났고, 그는 은혜의 복음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전혀 예상 밖의 사람들을 붙들어서 그분의 은혜의 전리품으로 바꾸어 놓으시는 데 명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각자 안에서 아름다운 변화를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가치 체계를 바꾸시고, 그리 스도 안에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그분 의 은혜가 할 수 있는 일들의 본보기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쓸모 없는 자는 없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이 강한 사람, 지식 있는 사람, 잘생긴 사람과 같 은 특별한 사람만 사용하신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범합니다.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쓰일 곳이 없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생각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중요한 사람이란 없습니다. 하나님은 보통 사람들을 사용하 시고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 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 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 럽게 하시며(고린도전서 1:26,27). 하나님은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또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를 부어 주셔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우리의 역할들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떠한 능력도 모두 주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바울 이 고린도전서 4장 7절에서, 네가 가진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 이냐? 라고 질문한 것처럼 말입니다. 42

3. 천국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마치 내가 그것을 받지 않은 것처럼, 혹은 마치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는 것이 나의 타고난 소질이나 명석함에서 비롯된 것처럼 어떻게 내가 나의 사역을 자랑하겠습니까? 내게 쓸 만한 것이 있다면, 모두 하나님께로부 터 온 것입니다. 마치 내가 그분의 신세를 지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인 것 처럼 절대로 자랑하고 뽐낼 수는 없습니다. 그분을 떠나서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니며, 또 그분을 떠나서는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중요성과 능력을 과대 평가한 나머지, 하나님의 일을 행하면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자만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은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여러분을 중요하지 않 은 사람으로 여기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하나님 이 우리를 사용하시기로 하셨지만, 꼭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분은 쉽게 다른 사람들을 사용하실 수도 있습니다. 내게는 이것이 얼마나 감격적인지 모릅니다. 나는 내가 잘나서 섬기도록 선택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훌륭함이나 능력, 혹은 잠재 력 때문에 우리를 선택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택하시기로 결정 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잘난 체하는 사람들 은 이 사실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냥 선택된 것이 아니라 다 른 사람보다 그들이 특별히 잘나서 선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보 면 그렇지도 않은 사람들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은혜로 택하십니 다. 그래서 나를 택하셨고 당신을 택하신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깜짝 놀랄 일이 많을 것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서 가장 먼 저 놀랄 일은 절대로 오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와 있는 것입니 다. 두 번째 놀랄 일은 맨 앞줄 영광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일 것입 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겠지요. 이 사람들은 누구야? 전에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인데. 몇몇은 갈보리 채플에 다니던 사람들이네! 어떤 사 람은, 그런데 척 목사님은 어디에 계시지? 라고 묻겠지요. 그러면 맨 뒤 43

척 스미스의 은혜 쪽 별 볼일 없는 자들 틈에 껴서, 나 여기 있어요. 감사하게도 그분의 은 혜로 저도 왔어요! 라고 소리를 지르겠지요. 천국에서는 모두 동등합니다 다마스커스(Damascus) 도상에서 예수님을 얼굴로 대하여 직접 만나 기 전까지는 사도 바울은 그의 삶을 대부분 바리새인의 신분으로 살았 습니다. 잘 알겠지만, 바리새인들이란 엄격한 율법주의적 유대 종교 단체 의 구성원들로서 매우 강하게 예수님을 적대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하는 것은 그들의 기도를 통해 잘 알 수 있는 데, 그 기도 중 몇 개는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아침마다 랍비들은 이렇 게 기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내가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 고, 종으로 태어나지 않고,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합니다. 틀 림 없이 바울도 이러한 기도를 오랫동안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러한 전통적인 기도의 세 가지 요소 모두를 완전히 뒤 바꾸어 놓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거기에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 없고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가 없으며 남자나 여 자가 없나니 너희는 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라디아서 3:28). 예수님은 훌륭한 평형 장치이십니다. 그분의 은혜는 한 사람을 또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이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우 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똑같이 하나님이 받아주신 죄인들이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엄청난 가치를 부여하십니다. 이 복음은 세상 어디든지 가는 곳마다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여성 들의 권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뉴 기니아(New Guinea)에 기독교가 들 어가기 전에는, 여자들은 신을 숭배할 가치도 없는 존재로 취급받았습니 다. 그래서 신을 숭배하는 자리에 가까이 가기만 해도 죽임을 당했습니 다. 이러한 저급한 사회 제도는 여인들에게 많은 두려움과 수치심을 자 아내게 했고, 따라서 여인들의 자살률이 극도로 높았습니다. 또한 여인 44

3. 천국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들에 대한 억압은 매우 심했습니다. 이러한 곳에 복음이 전해졌을 때 그 문화에 미쳤을 영향을 생각해 보십시오. 갑자기 남자와 여자들이 그리스 도 안에서는 차별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예수님은 어떤 인구 통계학적 집단에 속하든지 상관 없이, 모든 사람에 게 똑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나 님은 우리를 의롭게 된 이방인이나 조금 아는 사람으로 받아주신 것이 아니라 너무나 사랑하는 자녀로 받아주셨습니다. 요한은 우리에게 말 합니다. 그분을 받아들인 자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요한복음 1:12). 이것이 복음의 아름다움입니다. 비록 우리가 악한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혹은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 하 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우리는 모든 죄를 용서받게 됩니 다. 심지어 이것보다 더 놀라운 복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받 아주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너희가 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 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이들이 되었나니 (갈라디아서 3:26)라고 한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아이들이 되었나니 라는 말은 문자 적으로 아들로 임명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는 중요한 사람이 없습니다. 강한 사람, 잘생긴 사람, 지적인 사 람들만이 그분의 은혜의 대상은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 같이 평범한 사 람들을 불러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 주시고, 강한 팔로 끌어안아 주십니 다. 이것이 은혜의 복음입니다. 은혜로 선택받았습니다 바울은 그의 생애 전체를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의 결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내 안에 계시하사 내 45

척 스미스의 은혜 가 그분을 이교도들 가운데 선포하는 것을 기뻐하실 때에 (갈라디아서 1:16). 이것이 바로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하시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당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하시고 싶어 하 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통하여 그분의 아들을 세상에 나타내기 를 원하십니다. 사실상 하나님은 당신이 잉태된 순간부터 그분의 아들을 나타내는 완 벽한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 당신의 삶 가운데 역사해 오셨습니다. 이 것이 바로 바울이, 내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나를 구별하시고 자신의 은 혜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갈라디아서 1:15)라고 말한 이유입니다. 바울이 주님의 사역을 시작하기 오래 전부터 하나님이 그를 준비시키신 것을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특별한 사람이 필요하게 될 것을 아 셨습니다. 이 사람은 뿌리 깊은 유대인의 전통을 깨뜨려야만 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에 대해 매우 배타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방 인들과 함께 어울리려 하지 않았는데, 심지어 같이 먹지도 않고 그들의 집에도 들어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이 길을 걸어갈 때에는 혹시 옷자락이 바람에 날려 이방인들에게 닿을까 걱정스러워 겉옷을 바짝 감 아쥐고 걷습니다. 잘못해서 이방인들에게 옷자락이 닿기라도 하면, 집에 가서 목욕하고 겉옷을 빨고 그 날은 성전에 가지 않습니다. 스스로 부정 한 자로 여기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사람은 이방인들에게로 가서 그들과 같이 살면서 그 들과 같이 되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이 특별한 일을 위해 하나님이 그의 조상들의 전통을 가장 열심히 지키 는 유대인을 택하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흥미롭습니까! 바울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손이 처음부터 자신의 삶 가 46

3. 천국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운데 역사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헬라 문화가 편만한 당시 세 상에서 하나님이 택한 사람은 헬라의 관습과 철학에 능통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또 그는 로마 제국의 모든 영토를 여행하며 온갖 위험을 겪을 것이기 때문에 로마 시민권도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이 로마의 시민권자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가 어떻게 로마의 시민권자로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바울에게는 분명히 큰 혜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바울은 여러 가지 어려움과 심지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서도 구원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2장과 25장 참조). 바울의 고향인 다소(Tarsus)는 헬라 문화가 상당히 강한 지역이었습니 다. 바울은 헬라의 관습과 사상을 그저 조금 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는 그것의 일부였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이방인들에게 효과적으로 접근 할 수 있었고, 헬라 사상의 뜻과 미묘한 차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의 이러한 모든 배경으로 인해, 바울은 헬라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철저한 유대인이 필요하셨습니다. 바울이 열 두 살 때, 그의 부모는 당시 가장 유명한 유대인 석학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 부하도록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냈습니다. 거기서 바울은 탈무드와 히 브리 성경을 철저히 배우며, 히브리 문화와 전통에 흠뻑 젖게 됩니다. 바 울은 율법에 대해 극도로 열심을 갖게 되었고, 최선을 다해 율법을 지킴 으로써 의로워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같은 시대의 사람들 중에서 가 장 뛰어난 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 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니라(빌립보서 3:4). 47

척 스미스의 은혜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어부나 세리의 배경을 가진 자들로서 바울만 큼 철저하게 율법을 이해하도록 준비되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다마스커스 도상에서 바울에게 그분의 은혜를 나타내시는 그 날이 마침내 이르렀을 때, 바울은 구약의 성경 말씀들과 최근에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바로 연관지어 생각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는 새로운 관점에서 메시아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울이야말 로 은혜의 복음을 전하기에 가장 완벽한 선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 으로 의로워지려고 애쓴 사람이라면, 바울보다 더한 사람은 없었기 때 문이지요.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율법 에 있는 의에 관하여는 흠이 없는 자로라 (빌립보서 3:6). 그는 율법으 로 의로워지려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예 수 그리스도를 아는 영광스러운 지식에 접했을 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 에 대한 그의 믿음을 통해 부여받은 새로운 의를 기쁨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변한 것은 없습니다 바울의 이야기는 매우 극적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그에게나 다른 신약에 나오는 성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생각지 마십시오. 예를 들어, 내 삶만 돌아보아도 하나님이 내가 할 일을 위해 나의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나를 구별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뒤돌아보면, 당시에는 중요한 일로 보이지 않던 일들이 중요한 일이었음 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야 나는 이러한 모든 일들이 나의 운명을 만들 고 결정하는 인생의 기로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당시에는 하 나님의 손길이 어딘가 가까이 계신 것을 깨닫지 못했으나, 지난 일을 돌 아보면서 나는 이 모든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셨다는 것 을 알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내버려 두신 줄 알았습니다. 그러 나 이제 나는 나에게 부여하신 일들을 감당하도록 나를 준비시키시기 48

3. 천국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위해서, 내 삶의 온갖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내가 내렸던 결정들을 돌아보며 하 나님이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얼마나 흥분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내 인생길 내내 주님이 나를 인도하시네! 라고 찬송을 부릅니 다. 다 지나고 나서야 나는 하나님의 손길이 처음부터 내 삶에 함께 하 신 것을 간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나를 보호하시기 위해서 초자연적으로 간섭하셨습니다. 그분은 내가 해야 할 특별한 일을 가지고 계셨고, 그 일에 맞는 사람으로 나를 만들어 가셨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몇 주 전에 나의 사촌이 뇌막염으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누나도 이 몹쓸 병에 걸렸습니다. 하루는 누나가 너무 심하게 경련 을 일으켜서 우리 가족은 모두 그녀가 죽은 줄 알았습니다. 나의 어머니 는 급히 아이를 안고 동네에 있는 교회의 목사님 사택으로 달려가서 카 펫 위에 생기 없는 누나의 몸을 내려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목사님과 나 의 어머니는 누나를 살려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눈은 이미 힘이 풀려 있었고, 턱은 굳었으며, 맥박도 희미했습니다. 얼마 후 나의 아버지가 당구장에서 집으로 돌아오셨을 때, 한 간호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리고는 빨리 당신 아내에게 가 보세요. 당신 의 딸이 죽어가고 있는데, 아마 지금쯤은 숨이 끊어졌을 거예요!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그 목사님을 때려 눕히고 누나를 병원 으로 데려 가려고 사택으로 달려갔습니다. 의사가 필요한 때에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사택에 도착한 아버지는 누나의 상태를 보고 이미 늦은 것을 깨 달았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서 흐느껴 울었습니다. 목사님은 나의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자, 이제 당신의 눈을 이 아이 49

척 스미스의 은혜 에게서 주님께로 돌리십시오. 주님만을 바라봅시다. 그 때 임신 중이 었던 나의 어머니는 얼굴을 하나님께 돌리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 딸을 살려 주시면 제 삶을 주님께 바치겠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라 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하겠습니다. 그러자 누나가 그 즉시로 살아나서 울기 시작하며 일어나 앉아 주위를 둘러보고는 집에 가자고 하는 것이었 습니다. 나의 부모님은 누나를 데리고 왔고, 그녀는 완전히 나았습니다. 그리고 몇 주 후에 내가 태어났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아들입니다! 라 고 말하자, 나의 아버지는 병원 복도를 돌아다니시며 할렐루야, 아들입 니다! 를 외쳤습니다. 그 때 나의 어머니는, 주님, 감사합니다. 저의 딸 을 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에 제가 주님께 드린 서원을 이 아들을 통 해서 갚겠습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의 어머니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속에 심어 주셨습니다. 내가 마당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동안에도 성경 구절을 외 우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내가 네 살이 되었을 때는 성경을 가지고 책 읽 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는 내가 발음할 수 없는 단어들의 철자 를 말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나의 어머니는 모르는 알파벳 글자를 설 명하려고 노력하던 나의 모습을 얘기해 주시면서 웃으셨는데, 내가 브 이 (V)를 뒤집어진 텐트 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인내와 사 랑을 가지고 나를 길렀으며, 나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일곱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성경의 모든 책의 이름들을 말하고 쓸 수 있 게 되었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 나는 동화를 들어 본 적이 없고, 성경 이 야기만을 듣고 자랐습니다. 골디락 (Goldilocks)과 곰 세 마리 대 신에 나는 다윗과 모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지요. 나의 어머니는 하 나님이 함께 하시면 아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두려워할 것도 없다 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거인도 나를 대적할 수 없 50

3. 천국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다고 말입니다. 나는 내 일생에서 하나님을 모른 적이 없었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나에게는 구원의 간증 같은 것이 없습니다. 공개적으로 나의 신앙을 고백하고 침례를 받은 적은 있지만,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하 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구별되었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나는 신경외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필요한 과정 을 시작했습니다. 나의 포부를 말씀드릴 때마다 나의 어머니는 빙그레 웃 으시며 나를 격려해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태어날 때에 내 삶을 하 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하신 것을 내게 전혀 말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십대 시절 여름 캠프에서 하나님은 내 삶을 변화시키셨고, 거기서 나는 주님이 온전히 나의 삶의 주인이 되셔서 다스려 주시도록 헌신하고 결단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나에게 사람은 육체적인 것보다 훨씬 더 중요 한 필요를 가지고 있음을 강하게 인식시켜 주셨습니다. 사람들의 육체적 인 필요를 위해 사역하는 것은 일시적인 도움을 제공하지만, 영적인 필요 를 위해 사역하는 것은 사람들을 영원히 돕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람의 영혼을 치료하는 그분의 사역의 일꾼으로 부르셨습니다. 나는 내가 의사가 되지 않겠다고 하면 어머니가 굉장히 실망하실 줄 알 았습니다. 내가 가족들에게 나의 삶의 방향 전환에 대해 말하면, 모두들 어깨가 축 늘어져서 실망한 얼굴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 머니에게 하나님이 나를 사역자로 부르셔서 성경 대학에 가기로 했다고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잘 했다, 아들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우시거나 속상해 하시지 않는 것이 참 이상했습니다. 나는 성경 대학에 다니며 모든 훈련 과정을 마치고 케이와 결혼한 후 함 께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어머니는 누나 51

척 스미스의 은혜 의 명백한 죽음과 그녀가 하나님께 약속한 것, 그리고 그 때 서원한 것 을 나를 통해 지키기로 하나님께 약속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말해 주셨 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답고 경건한 분들 중에 한 분이었으며, 영적인 깊이가 있는 모범적인 믿음의 삶을 사신 분이셨습니 다. 내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이 그분의 사역을 위해 어머니 뱃속에서부 터 나를 구별하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만일에 당신이 믿음 으로 당신의 영원한 운명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손 안에 맡겨 드 렸다면, 하나님이 당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과 환경들을 다 듬어서 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아들을 나타내는 아름다 운 모자이크를 만들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 이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분의 손은 지금 당신 위 에 있습니다. 은혜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은혜로 우리 위에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매 우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은혜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그 러나 내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나를 구별하시고 자신의 은혜로 나를 부르 신 하나님께서 (갈라디아서 1:15)라고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하 나님을 섬기도록 부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구원 받을 자격도 없습니 다. 천국에 갈 자격도 없습니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에 가야 마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우리 모두에게 주신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은 우리의 삶을 은혜 가운데 계획하시고, 우리 각자에게 해야 할 특별한 일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한 시간 만에 다 이루는가 하면, 나와 같은 사람들은 천천히 전 생애를 통 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종의 목적을 달성하기도 합니다. 52

3. 천국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한 질문을 기억하십니까? 네가 이와 같은 때를 위해 왕국에 들어갔는지 누가 알겠느냐?(에스더기 4:14). 에스더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주요한 목적은 며칠 만에 다 이루어졌습 니다. 하나님은 그녀를 일으키셔서 바사(Persia) 궁으로 들어가게 하시 고, 아하수에로 왕의 아내가 되게 하신 후, 그녀의 간청을 통해 유대인 들을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가 해야 할 특별한 일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 모두는 그 일을 위하여 준비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우리 의 날이 이르기 전에 이 준비를 위해 우리 삶의 대부분을 보내게 될 것 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게 될 것이고, 그 리고는 사라질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들은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우리를 거기에 두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손을 우리의 삶 위에 얹고 계시며,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 든 일 위에 얹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려운 시험을 겪고 있을지도 모릅니 다. 하지만 고생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인격과 자질을 우리 안에 만들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만드 신 바, 즉 그분의 포이메마 [poimema] 혹은 그분의 작품입니다(에베 소서 2:10 참조). 하나님은 그분의 왕국에서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에게 맡기신 일들을 우리가 이룰 수 있도록, 그분의 은혜에 따라 우리 각 사람 안에서 일하실 것입니다. 함정을 조심하십시오 사탄은 하나님의 손이 우리 위에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이용해 우리가 용기를 잃도록 만들고자 할 것입니다. 53

척 스미스의 은혜 마귀는 종종 우리로 하여금 불합리한 일을 하도록 부추기며, 하나님이 그러한 일 뒤에 계신다고 믿게 만듭니다. 그리고는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 는 어떤 수준의 완전함에 이르도록 몸부림치며 애를 쓰게 만들지요. 사탄이 이렇게 우리를 괴롭히고 무거운 짐을 지울 때, 많은 경우 우리 는 절망에 빠져 극도로 자신감을 잃고 그만두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 나님이 우리를 위해 정해 주시지 않은 어떤 기준에 이르려고 애쓸 때마 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비극적일 수 있습니다. 신체 장애자인 한 소년이 우리 교회에 나오고 있었습니다. 예배가 끝날 때마다 이 소년은 내게로 다가와 대화를 나누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말 하는 데 매우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을 표현하는 그의 능 력에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또한 그의 지적인 능력에 놀랐습니다. 그의 질문들은 통찰력 있는 좋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극도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교회 앞 복잡 한 길에서 달리는 자동차 앞으로 자신의 몸을 던지려 했습니다. 우리는 그를 교회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와 같이 기도하고 관계 기관에 연락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의 안전을 위하여 의사의 진찰이 필요하다고 느꼈 지요. 그는 병원으로 실려 갔고, 거기서 진찰을 받은 후 집으로 보내졌 습니다. 그는 견딜 수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는 나 에게 목사님, 담배를 끊을 수가 없어요! 라고 호소했습니다. 나는 담배 를 피운다고 해서 엉터리 그리스도인은 아니며, 그러니 그것에 대해 걱 정하지 말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 교회에서 만났는데, 그 는 하나님이 자기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고 말하면서, 하나님 앞에 다시 한 번 진정으로 헌신의 결단을 하였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보 54

3. 천국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기에는 그는 여전히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사탄은 그의 육체 의 연약함에 대해 그를 고소하고 있었고, 그의 육체적인 장애에 대해 그 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이 무거운 죄책감과 좌절감은 한 젊은이의 생명을 앗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는 고층 호텔 발코니에서 뛰어내려 죽음을 택하 고 말았는데, 이 모든 것이 사탄으로 하여금 그의 연약함을 이용해 그를 좌절시키도록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힘 주시는 그 이상의 일은 우리가 할 수도 없고, 그 이상의 사람은 될 수도 없다는 것을 그 젊은 청년이 깨달아 알았더라면! 우리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성 령을 떠나서는 아무런 가치도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속 태울 필요도 없고, 우리 자신을 정죄할 필요도 없고, 우리의 실수와 잘못을 계속 꾸짖을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연약함을 깨 닫고 인정하며, 겸손하게 주님, 저의 연약함을 잘 압니다. 주님의 도우 심이 필요합니다. 이제 이 일을 주님께 드리오니, 제가 할 수 없는 일을 주님이 친히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라고 말씀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그 분이 하실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누구든지 환영받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 몸의 모든 지체는 다 중 요합니다. 모두 입만 있다면 얼마나 쓸모 없고 이상한 몸일까요. 하나님 은 나를 지체 중에서 입으로 만들어 주셨지만, 몸 전체가 입은 아닙니 다. 몸의 다른 많은 지체가 입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여러 가지 다양 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각기 다른 환경과 배경을 가지고도 하나가 되어 함께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 본래의 기능과 역할을 다 하는 것을 볼 때,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55

척 스미스의 은혜 당신이 어디 출신이든, 지금 어디에 있든,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든 상관 없이 하나님은 당신 안에 있는 그분의 아들을 나타내기 원하십니 다. 당신의 삶을 통해, 당신의 행동을 통해, 당신의 자세를 통해, 당신의 반응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밝게 빛나게 하십시오. 전에 우리는 교회에서 이런 찬송을 불렀습니다. 예수님의 아름다움이 내 안에서 나타나게 하소서. 주님의 신실하심과 정결하심이 내 안에 있 게 하소서. 오! 주님! 당신의 성령으로 나의 성품을 새롭게 하소서. 예수 님의 아름다움이 내 안에서 보일 때까지! 이 찬송은 단지 아름다운 합창과 훌륭한 기도,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우리 각자의 마음의 소원이어야 합니다. 다윗이 기도한 것처럼 말입니다. 오 주님, 당신의 아름다움을 내 안에 보여 주소서. 내가 깰 때에 주의 모습에 만족하리이다 (시편 17:15).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 명민한 사람과 아둔한 사람, 등 우리 모두는 성령에 의해서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해 가고 있습 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그분의 은혜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주 의 형상 안에서 깨는 그 영광스러운 날에 다함께 만족할 것입니다. 그것말고 어떤 다른 방법이 있겠습니까? 56

4 은혜 은혜의 초상 이론적으로 은혜에 대해서 말하는 것과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묘사하 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만약 한 장의 그림이 천 마디 말의 가치가 있다면, 은혜는 어떤 그림일까요? 우리는 구약의 한 인물을 통해 전체 성경에서 은혜에 관한 가장 좋은 그 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인물은 신약 성경에 몇몇 기자들에 의해 언급 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보편적으로 믿는 사람들의 조상으로 받아들 여지고 있습니다. 그는 은혜가 무엇이며, 은혜가 무슨 일을 하는가에 대 한 명확한 그림을 보여 줍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믿음에 기초해서 하나님이 받아주신 사람의 대표적인 본보기로 아브라함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로마 서 4장 3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경 기록이 무어라 말하느 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하 느니라. 또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6절과 7절에서도 동일한 예를 사용하 57

척 스미스의 은혜 며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곧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너희는 믿음에 속한 자들 곧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 지어다. 아브라함 이야기 창세기 15장에 따르면,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는 아기를 가질 수 없 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씨를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 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브 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창세기 15장 6절은 아브라함이 주를 믿 으니 그분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시고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해가 거듭 되어도 아기가 태어나지 않자,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 나님이 그분의 약속을 지키실 것인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 느 날, 사라는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아브라함에게 자기의 여종인 하갈과 동침하여 아기를 가질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들은 그 아 기를 그들의 친자식처럼 키우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리모 출 산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현대에 개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얼 마나 흥미로운지 모릅니다!) 하갈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자 이름을 이스 마엘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가 열 세 살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분의 약속을 반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 신과 사라 사이에 아들을 주신다는 것을 여전히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생각은 좋으시지만 이스마엘이 이미 있으니, 이스 마엘이나 복 주시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여쭈었습니다. 사라를 통해서 자식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그토록 믿지 못하던 아브라함을 성경이 믿는 모든 자들의 조상이 되어 (로마서 4:11)라고 묘사하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격려가 되는지 모릅니다. 주께서 사 라를 통해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반복하시자, 그것이 도저히 믿어 58

4. 은혜의 초상 지지 않는 일이기에 사라는 웃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서 하나님의 약 속은 이루어졌고, 사라는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이삭이라 지었는데 그 것은 웃음 을 의미합니다. 이삭이 자라면서 모든 관심이 약속의 아들인 이 아이에게 쏠리게 되자, 그의 형 이스마엘이 그를 시기하였습니다. 이삭이 젖을 떼는 날 연회를 배설한 자리에서 이스마엘이 이삭을 조롱했습니다. 사라가 이스마엘의 짓궂은 태도를 보고는, 아브라함에게 그와 그의 어머니 하갈을 내쫓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이 그의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 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근심이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분이 이 스마엘을 돌보아 주실 것을 그에게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사 라의 말대로 여종과 그녀의 아들을 내보내야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된 복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림 그리기 바울은 믿음을 통한 은혜로 얻는 의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독자들의 시선을 아브라함에게로 돌려 놓았습니다. 그는 아브라함 의 이야기가 자기의 요점을 명확하게 보여 주는 풍유를 담고 있다고 말 했습니다. 바울 시대의 랍비들은 전통적으로 모든 성경 말씀에 대해 근 본적으로 두 가지 해석이 있음을 고수했습니다. 첫째는 페샷 [peshat] 이라는 본문의 평범하고 분명한 의미를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고, 둘째는 각 구절의 숨은 뜻을 가리키는 레메즈 [remez]라는 것입니다. 어떤 랍 비들은 두 가지 추가적인 해석 유형들을 고집했는데, 데라쉬 [derash] 는 풍유적인 의미들과 문자적이지 않은 모든 것이며, 소드 [sod, 비밀] 는 한 가지 풍유적인 의미를 산출해 내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상충하는 이들 학파들의 약점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성경의 메시지에 대해 혼동과 의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59

척 스미스의 은혜 나는 가장 좋은 중심점은 본문의 평범하고 분명한 의미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고 싶으신 바를 그대로 정확하게 말씀하실 수 있는 분 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공상적인 영적 해석을 시도함으로 써 성경의 명확한 가르침으로부터 벗어나곤 합니다. 한 번 생각해 봅시 다. 지나치게 영적인 해석을 시도하다 보면, 천진 난만한 유아들의 동요 인 허버드 노파 (Old Mother Hubbard)의 가사를 가지고도 굉장한 설교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가련한 강아지에게 먹이를 주려고 찬장 에 갔던 이 노파로부터 심오한 영적인 의미를 생각합니다. 노파를 삶의 황폐와 좌절과 허무의 늪에 빠진 비참한 인생으로 그릴 수 있습니다. 왜 냐하면 그 찬장은 비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바닥 나는 그 날은 우리에게 얼마나 비극적인 날인지 모릅니다! 약간의 상상력만 동원하면 조그마한 흙덩이로부터 태산과 같은 교리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성경 자체가 풍유의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풍유적인 해석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 나 다음의 경우에는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아브라함의 삶으로부터 믿 을 만한 풍유적인 적용을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기록된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노예 여종에게서 났고 다른 하나는 자유로운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느니라. 그러나 노예 여자에게서 난 자는 육체를 따라 태어났고 자유로운 여자에게서 난 자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것들은 풍유니라.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인데 하나는 시내 산에서 나와 종이 되 게 하는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이요, 지금 있는 예 루살렘에 해당하는 곳으로 자기 그 아이들과 더불어 종노릇 하느니라. 그러나 위 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로운 자니 곧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 기록된바, 수태하지 못하는 자여, 너는 기뻐할지어다. 산고를 치르지 못하는 자여, 너는 소리 지르고 외칠지어다. 황폐한 자가 남편 있는 여자보다 더 많은 아이를 두느니라, 하였느니 라. 형제들아, 이제 우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아이들이니라. 그러나 그때에 육 체를 따라 태어난 자가 성령을 따라 태어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지금도 그러하 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기록이 무어라 말하느냐? 노예 여자와 그녀의 아 들을 내쫒으라. 노예 여자의 아들이 자유로운 여자의 아들과 함께 상속자가 되지 못하리라, 하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이처럼 우리는 노예 여자의 아이가 아니요 자유로운 자의 아이니라(갈라디아서 4:22-31). 60

4. 은혜의 초상 아브라함의 이야기의 의미 바울은 우리에게 이 사건들이 순수하게 역사적인 의미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행위를 통해 유업으로 얻으려는 사람들의 무모 함에 대한 예를 보여 준다고 말합니다. 하갈과 그의 아들은 율법을 지킴 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려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과 사 라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지 못하고 절망했을 때, 그들은 그 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방향을 전환했고, 그것은 그들에게 비탄과 좌절 만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육체의 소산이므로 그는 자기의 노 력으로 복 받기를 추구하던 사람들의 모형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삭 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복을 유업으로 받을 사람들을 대표하는 약속의 자녀입니다. 흥미롭게도 이스마엘이 이삭을 조롱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조롱합니다. 바울은 유 대주의자들의 압박 작전은 두 형제 사이의 갈등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 의를 얻기 위해 율법에 집착 하는 자들은 축출당해야 했습니다. 주후 70년 디도 장군이 이끄는 로마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되었을 때, 이 풍유는 성취되었습니다. 믿음 의 사람들을 핍박했던 자들은 문자 그대로 추방당했습니다.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의 비극적인 종말과 믿음의 자녀들의 놀랄 만한 장 래를 대조합니다.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 다. 수태하지 못하는 자여, 너는 기뻐할지어다. 산고를 치르지 못하는 자여, 너는 소 리 지르고 외칠지어다. 황폐한 자가 남편 있는 여자보다 더 많은 아이를 두느니 라(갈라디아서 4:27). 이것은 믿음의 결과로 왕국에 모여든 믿는 자들이 그들의 행위로 하나님 께 가고자 했던 모든 사람들의 수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그 풍유는 명확해집니다. 61

척 스미스의 은혜 그런즉 형제들아, 이처럼 우리는 노예 여자의 아이가 아니요, 자유로운 자의 아 이니라(갈라디아서 4:31).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상속받게 될 것입니다. 그 리고 이는 그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이 성 취된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이 주시는 자유함과 약속과 복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서기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속해 있습니다. 약 속의 자녀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자로서, 우리들은 이제 그리스도와의 동행에서 놀라운 견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한 찬송시가 이것을 매우 잘 표현했습니다. 주의 은혜로 대속하여서 피와 같이 붉은 죄 눈 같이 희겠네!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설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 때문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위대한 능력을 보며 우리는 아무도 나 자신의 신실함 과 단호한 노력으로 이 영광을 얻게 되었다 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대신에 우리는 머리를 숙이고 기쁨에 넘쳐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주님이 다 하셨어요! 주님이 저를 구원해 주실 줄 알았어요. 저의 선한 행위로는 절대로 저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주님, 감사합니다! 중요한 질문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언제 하나님이 그를 의롭다고 선포하셨습니까? 할례를 받은 후였습니까, 아니면 할례 받기 전이었습니까? 갈라디아의 거짓 선생들은 할례 받지 않으면 의로워질 수 없다 고 했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의 식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62

4. 은혜의 초상 그렇다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 때문에 그를 의롭다고 하신 것은 언 제입니까? 할례의 규례를 받기 전인가요, 후인가요? 할례 받기 전이었지 후가 아닙니다! 이 의식에 대해 전혀 알기도 전에 아브라함은 의롭다 여 김을 받았습니다. 그가 의롭다 여김을 받은 것은 창세기 15장에 나오는 데, 할례 의식은 두 장이 더 지날 때까지 나오지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 을 믿고 신뢰하는 순간 아브라함은 의롭다 여김을 받았습니다. 여러분과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는 순간,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여기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일이나 할 일을 근거로 우리를 의롭다 하신 것이 아니라,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천국의 주인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며, 나의 개인적인 구주시 므로 나는 그분을 신뢰할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은 나를 의롭다! 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음과 같 이 질문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들을 하리이까? 하매, 그 때 예수님은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6:28,29). 당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야고보도 믿음의 그림으로 아브라함을 사용한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는 가만히 앉아만 있는 그리스도인이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그의 서신 을 기록했습니다. 그의 특별한 관심은 행위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임을 보 여 주는 것입니다(야고보서 2:26 참조). 야고보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로 하여금 어떤 일을 행하게 했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그의 믿음 을 인정하셨다고 말합니다. 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