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17 19 21 23 27 29 121 31
5 10 1392,,, (1393),, 3 1394) 8,, 9,,,, 12 10 41395) 9 12 28, 1, 2 8, 9
경복궁과 북악산
8 9,, 9,,, (342m), (125m), (262m), (338m) 59,500( 18.2km),,, 1396 1, 2 49 1,,,, 118.,, 1,
10 11 성곽의 공사는 총 길이 59,500척을 600척(약 180m) 기준으로 모두 97 구역으로 나누어 진행하였고, 각 구역을 북악산 산마루에서 동쪽으로 돌 면서 천자문 千字文의 천지현황天地玄黃의 천 天 자부터 조민벌죄弔民罰罪의 조弔자까지 이름을 붙였다. 성곽 전체를 600척으로 나누면 97척 하고도 1,300척이 남는데 이는 인왕산 부근 자연 암반 절벽을 그대로 성곽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다시 가을 농한기인 8, 9월에는 49일 동안 7만9천4백 명을 동원하여 봄 철에 못다 쌓은 동대문 구역을 완공하고 사대문四大門과 사소문四小門을 준 공하였다. 그리고 문루의 누각들은 공사 후 건축 기술이 뛰어난 승려들을 동원하여 완공하였다. 그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남대문은 2년 뒤인 태조 7 년(1398)에야 준공되었다. 그후 27년이 지난 세종 4년(1422), 세종은 서울 성곽에 대한 전면적인 보수 정비 작업을 시행하였다. 이 공사는 결과적으로 성곽 전체를 석성으 로 수축하는 대대적인 보수 확장 사업이었으며, 1, 2월 농한기 38일 동안 전국에서 약 32만 명의 인부와 2천2백 명의 기술자를 동원하여 완공하였 다. 당시 서울의 인구가 약 1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공사였고, 사 망자만 872명에 달했다. 이것이 지금 서울 성곽의 기본 골격이다. 이후 서울 성곽을 재정비했던 숙종 30년(1704)까지 260년 동안 성곽은 부분적으로 보수했을 뿐 크게 붕괴된 곳은 없었다. 본래 서울 성곽은 도성 을 방어할 목적으로 쌓았지만 정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구실을 하지 못 했고 선조가 의주로 피난하였기 때문에 전란으로 인한 큰 피해는 없었다. 임진왜란의 경험을 토대로 인조는 서울 성곽과는 별도로 전쟁에 대비하 수선전도, 1840년대(김정호 제작) 목판본,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15 여 남한산성南漢山城과 강도성江都城, 강화도 산성을 수축하였다. 그러나 1635 년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굴욕을 당하고 말았다. 그때에 맺은 삼전도 맹 약 盟約 중에 조선은 앞으로 기존 성곽을 보수하거나 새로 성곽을 쌓지 않 는다 는 조항이 있어 서울 성곽은 방치된 상태로 놓아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근 70년 지난 숙종 30년에 이르러, 숙종은 일부 신하들이 청나 라와의 조약을 들어 반대하는 것을 물리치고 서울 성곽을 대대적으로 정비 하였다. 이 공사는 6년에 걸쳐 시행되었고, 서울 성곽이 정비되자 숙종은 이 듬해인 재위 37년(1711), 곧바로 북한산성 漢山城을 수축하여 도성의 방어 체제를 정비하였다. 이것이 근대 사회로 들어오면서 의도적으로 헐어내기 이전의 서울 성곽이다. 이후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 전차를 부설하면서 동대문과 서 대문 부근의 성곽 일부가 헐려 나갔고, 이듬해에는 용산과 종로 사이 전차 를 부설하기 위해 남대문 부근을 철거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면서 서대문과 혜화문동소문이 헐려 사실상 서울의 평지 성곽은 모두 철거 되어 오늘날에는 총 길이 18.2km 중 산지 성곽 10.5km만 남게 되었다. 2006년 문화재청과 서울특별시는 서울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하기 위하여 서울 성곽을 가능한 한 옛 모습으로 복원하는 계획을 수립하 고 그 정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l앞 쪽m곡장에서 북악산 정상으로 길게 이어지는 서울 성곽 촛대바위에서 숙정문으로 이어지는 서울 성곽
16 17 성벽에 새겨진 글자들 서울 성곽의 성벽 돌 중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들이 있다. 이는 대개 성 벽 축조 당시 공사 구역을 표시한 것(천자문의 글자 劒, 崗, 등), 공사 담 당 군현(의령, 흥해 등), 그리고 공사 일자와 공사 책임자의 직책과 이름 등 을 표시한 것이다. 서울 성곽은 태조 5년(1396) 처음 쌓을 때부터 전체 59,500척(약18.2km) 을 600척 단위로 나누어 총 97구역으로 구획하고 천자문 순서로 표시하였 다. 북악산 정상에서 천지현황天地玄黃의 천天 자로 시작하여 낙산, 남산, 인왕산을 거쳐 조민벌죄弔民伐罪, 불쌍한 백성을 돕고 죄지은 자를 벌하다의 조弔 자에서 끝난다. 성벽 곳곳에는 진자종면 字終面, 진자 구역 끝지점, 강자육백척崗字 百尺, 강자구역 600척 등 각 구역을 표시한 글자가 새겨져 있다. 또 조선 팔도 각 지역에서 인원을 동원하였기 때문에 도道 또는 현縣의 담당 지역을 표시하여 의령시면宜 始面, 경상남도 의령 시작 지점, 흥해시면 興海始面,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 시작 지점 등의 글씨가 성벽 돌에 새겨져 있다. 이러한 공사 실명제는 이후에도 계속되어 후대에는 아예 감독관의 직책과 이름 및 날짜가 기록된 것도 있다. 가경 9년(1804년) 갑자 10월일嘉慶九年甲子十月日 패장 牌將 오재민 吳再敏, 감 관 監官 이동한 東翰 변수邊首, 기술자, 편수 용성휘 聖輝 등을 기록한 글씨도 보인다. 청운대 부근 성벽에 새겨진 글자들로 공사를 감독한 사람의 이름과 날짜를 적어 공사실명제를 실시했음을 알 수 있다.
18 19 성벽 축조의 시대별 차이 태조 5년(1396)의 성벽으로 큰 메주만 한 크기의 자연석을 다듬어 쌓았다. 세종 4년(1422)의 성벽으로 장 방형돌을기본으로하면서사이 사이에 잔돌을 섞어 쌓았다. 숙종 30년(1704)의 성벽으로 2자 2자의 석재를 정사각형 에가깝게 규격화하여 튼튼하 게 쌓았으며, 장정 4명이 들 수 있는 무게이다. 숙정문 주변의 성벽은 시대별 축조 방식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 준다.
20 21 1 1 1 3 1 2
22 23, 13(1413) 4(1422) 9(1617) 17(1741) (1623) 1956,
24 25,
26 27 숙정문肅靖門 숙정문은 서울 성곽의 북대문 다 는 뜻과 大門으로 남대문인 숭례문崇禮門, 예를 숭상한 대비하여 엄숙하게 다스린다 라는 뜻으로 이름 붙였다. 태조 5 년(1396) 처음 서울 성곽을 쌓을 때는 지금 위치보다 약간 서쪽에 있었으 나 연산군 10년(1504)에 성곽을 보수하면서 옮겨졌다고 한다. 숙정문은 본래 사람들의 출입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서울 성곽 동서 남북에 사대문의 격식을 갖추고, 비상시 사용할 목적으로 지어졌기 때문 에 평소에는 굳게 닫아 두어 숙정문을 통과하는 큰길은 형성되어 있지 않 았다. 다만 가뭄이 심할 때는 숙정문을 열고 남대문을 닫아 두었다고 하는 데, 이는 태종 16년(1416)에 기우절목 祈雨節目, 기우제 시행규칙을 만들면서 북쪽은 음 陰, 남쪽은 양 陽이라는 음양의 원리를 반영한 것이었다. 이처럼 숙정문 지역은 풍수지리학상으로 음기가 강한 곳이었기 때문에 조선 후기의 학자 홍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에는 정월 대보 름 전에 민가의 부녀자들이 세 번 숙정문에 가서 놀면 그해의 재액災厄을 면할 수 있다 라는 풍속이 전해진다. 그러나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 五洲衍文長箋散稿 라는 저서에서 숙정문을 열어놓으면 장안 여자들이 음란 해지므로 항시 문을 닫아 두게 했다 는 정반대의 속설을 전하고 있다. 숙정문은 오랫동안 문루가 없이 월단만 남아 있었는데 1976년 북악산 일대 서울 성곽을 보수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숙정문
28 29 1 21사태 소나무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0부대의 김신조 외 30명의 무장공비들이 청와 대를 습격할 목적으로 침투하여 우리 군경과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때 수령 200년이 된 이 소나무에는 15발의 총탄 자국이 남게 되었다. 이 후 이 소나무를 1 21사태 소나무라고 부른다. 촛대바위 촛대바위는 북악산 정상에서 보면 촛대의 모습을 확실하게 볼 수 있다. 높 이는 아래에서부터 약 13m이다. 촛대바위 위의 지석은 1920년대 일제강 점기 민족정기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쇠말뚝을 박았던 곳이다. 촛대바위에 서는 주변의 소나무 숲과 어우러져 경복궁을 비롯한 서울 도심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l위m청운대에서 북악산 정상으로 오르는 중에 만나는 1 21사태 소나무 l아래m촛대바위 위의 지석
30 31 342m 40 208 81,,,,,,,,,
32 33 Tree of heaven Oriental white oak, Korean forsythia koreana Temple juniper
34 35 Amur maackia Korean maple Korean snow-bell 5 Pitch pine 1907 196070 2, 3
36 37 Rose of sharon Korean ash Lily tree, Rough-barked maple
38 39 Peach 5 Japanese Alder 1940 Sargent s cherry Silkworm mulberry
40 41 Sawthooth oak, Korean spice bush Korean red pine White pine 1920
42 43 Black locust 19 Korean alder, 5 Suwon poplar Aralia
44 45 Korean white pine Border privet Korean rosebay
46 47 Korean mountain ash 5 Chinese juniper,,, Jew s mallow Box tree,
13 2007 3 30 2007 4 3 302-701 139 1 042-481- 4650 www.cha.go.kr 135-090 112-2 02-747- 2152~3 02-747- 2156 www.fpcp.or.kr 2007 2,000 ISBN : 978-89 - 85764-58- 2 03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