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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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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정책백서목차(1~18)

나하나로 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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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91

이발간물은국방부산하공익재단법인한국군사문제연구원에서 매월개최되는국방 군사정책포럼에서의논의를참고로작성되었습니다. 일시 장소주관발표토론간사참관 한국군사문제연구원오창환한국군사문제연구원장허남성박사 KIMA 전문연구위원, 국방대명예교수김충남박사 KIMA객원연

연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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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남북관계전문가 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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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가? 전진과 후퇴를 반복해왔던 한반도 비핵 평화 프로세스는 년을 거치면서 중대 고비를 맞이했다. 2009년 북한의 로켓 발사와 한-미-일의 과잉대응으로 촉 발된 위기는 북한의 2차 핵실험과 이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

보도자료_북한의 벼랑 끝 외교사_최종.hwp

공동성명 포함내용 비교

1960 년 년 3 월 31 일, 서울신문 조간 4 면,,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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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마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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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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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소고내지(09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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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i 본 연구는 이러한 사회변동에 따른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 전문대 학의 역할 변화와 지원 정책 및 기능 변화를 살펴보고, 새로운 수요와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전문대학의 기능 확충 방안을 모색하 였다. 연구의 주요 방법과 절차 첫째, 기존 선행 연구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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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9월도서관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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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학년도 수시 면접 문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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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전체 :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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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최근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세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6자회담 재개 대( 對 ) 한 미 일 군사협력 금년 들어 남북관계의 개선 신호는 북측의 적극적인 평화공세에서 시작되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 이 어, 북한 국방위원회는 1월 16일 우리측에게 중대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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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건 ) 테러공격 발생건수 테러로 인한 사망자 수

2저널(11월호).ok :36 PM 페이지25 DK 이 높을 뿐 아니라, 아이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물을 구하러 가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본 사업은 한국남동발전 다닐 정도로 식수난이 심각한 만큼 이를 돕기 위해 나선 것 이 타당성 검토(F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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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추천d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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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U 연구총서 Ⅰ 중국의 G2 부상과 한반도 평화통일 추진전략 제1부 황병덕ㆍ김규륜ㆍ박형중ㆍ임강택ㆍ조한범ㆍ김종욱 신상진ㆍ이동률ㆍ이창형ㆍ이홍규ㆍ주재우ㆍ최 강

6) 송승종길병옥, ' 군용무인기개발의역사와그전략적함의에대한연구,' 군사 제 97 호, ) 최근공개된자료에따르면주한미군은기간중 268 회의무인기비행을수행한것으로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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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저널(2월호)0327.ok :40 PM 페이지23 서 품질에 혼을 담아 최고의 명품발전소 건설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또한 질의응답 시간에 여수화력 직 DK 한국동서발전 대한민국 동반성장의 새 길을 열다 원들이 효율개선, 정비편의성 향상,

년 2 월 1 1일에 모 스 크 바 에 서 서명된 북 태 평양 소하 성어족자 원보존협약 (이하 협약 이라 한다) 제8조 1항에는 북태평양소하성어류위원회 (이하 위원회 라 한다)를 설립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제8조 16항에는 위원회가 을 채택해야 한다고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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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51역사지도서3


저작자표시 - 비영리 - 변경금지 2.0 대한민국 이용자는아래의조건을따르는경우에한하여자유롭게 이저작물을복제, 배포, 전송, 전시, 공연및방송할수있습니다. 다음과같은조건을따라야합니다 : 저작자표시. 귀하는원저작자를표시하여야합니다. 비영리. 귀하는이저작물을영리목적으로이용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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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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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 국제학술심포지엄>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북한문제와 한일의 역할 ( 東 アジアの 平 和 と 民 主 主 義 北 朝 鮮 問 題 と 日 韓 の 役 割 ) 동시통역 일시: 2010년 9월 17일 (금) 13:00-18:00 장소: 한국언론진흥재단 19층 기자회견장 주최: (재)극동문제연구소 한반도평화연구원 聖 院 대학 종합연구소 후원: 통일부 세이가쿠인( 聖 院 )대학 도쿄클럽

프로그램 12:30 등록 13:00 개회 축사: 현인택( 玄 仁 澤 ), 통일부장관 13:10-14:50 제1부 (강연) 사회: 오다가와 코( 小 田 川 興 ), 세이가쿠인대학 객원교수, 전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 - 동아시아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일협력 윤영관( 尹 永 ), 서울대 교수,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전 외교통상부장관 - 미북관계: 천안함과 미국의 대응을 중심으로 Young C. Kim(김영진), 조지워싱턴대학 명예교수 - 분단체제와 평화구축: 한국 초계함 침몰사건을 계기로 오코노기 마사오( 小 此 木 政 夫 ), 게이오대학 교수 - 남북관계 현황 및 대북정책 추진방향 김천식( 金 千 植 ), 통일부 통일정책실장 14:50-15:10 휴식 (Coffee Break) 15:10-16:30 제2부 (보고와 토론) 사회: 강인덕( 康 仁 德 ), 극동문제연구소 소장, 전 통일부장관 <보고> - 북한의 화폐개혁과 주민생활 수준변화 홍성국( 洪 性 國 ), 재)극동문제연구소 북한연구실장 - 중국의 대북지원이 북한에 미치는 영향 조명철( 趙 明 哲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 소장 - 일북 관계와 국교정상화 문제의 현상과 전망 엔도 테츠야( 遠 藤 哲 也 ), 전 일북 국교정상화교섭 일본정부대표 <토론> - 민간차원의 대북 인도지원에 대한 현황과 분석 임성빈( 任 成 彬 ), 장로회신학대학 교수 - 일본의 대북 지원의 현상과 과제 미야모토 사토루( 宮 本 悟 ), 세이가쿠인대학 교수 16:30-17:50 제3부 (토론): 전체 참가자 사회: 윤영관( 尹 永 ),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17:50-18:00 총괄: 강인덕( 康 仁 德 ), 극동문제연구소 소장 18:00 폐회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북한문제와 한일의 역할 5 목 차 프로그램 3 강연자 보고자 패널리스트 소개 5 인사말, 글로벌라이제이션과 기독교적 연대: 왜 바야흐로 한일관계의 재구축이 필요한 것인가, 오오키 히데오( 大 木 英 夫 ) 9 제1부 (강연) - 동아시아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일협력 13 윤영관( 尹 永 ) - 미북관계: 천안함과 미국의 대응을 중심으로 17 Young C. Kim(김영진) - 분단체제와 평화구축: 한국 초계함 침몰사건을 계기로 25 오코노기 마사오( 小 此 木 政 夫 ) - 남북관계 현황 및 대북정책 추진방향 31 김천식( 金 千 植 ) 제2부 (보고와 토론) <보고> - 북한의 화폐개혁과 주민생활 수준변화 43 홍성국( 洪 性 國 ) - 중국의 대북지원이 북한에 미치는 영향 51 조명철( 趙 明 哲 ) - 일북 관계와 국교정상화 문제의 현상과 전망 61 엔도 테츠야( 遠 藤 哲 也 ) <토론> - 민간차원의 대북 인도지원에 대한 현황과 분석 69 임성빈( 任 成 彬 ) - 일본의 대북 지원의 현상과 과제 79 미야모토 사토루( 宮 本 悟 )

6 강연자 보고자 패널리스트 소개 강연자 보고자 패널리스트 소개 尹 永 (Young-kwan YOON),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 교수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국제문제연구소 소장. 존스홉킨스대학(SAIS) 국제정치학박사. 캘리포니아대학(UC Davis)에서 티칭. 2003-04 년 외교통상부 장관. 저서에 전환기 국제정치경제와 한국, 21 세기 한국정치경제모델, 논문은 국제 및 국내 저널 등에 50 여편을 출간, 개인 웹사이트는, http://yoon21.net. 김영진 (Young C. KIM),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과 명예교수 펜실베니아대학 정치학박사. 밴더빌트대학, 보스턴대학, 호바트-윌리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은 후,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부 교수, 시글아시아연구소 고문. 현재 게이 오( 慶 )대학 법학부 정치학과 초빙교수로 일본체류 중. 동아시아 국제관계 분야에서 저서 다수. 小 此 木 政 夫 (Masao OKONOGI), 게이오의숙( 慶 義 塾 )대학 법학부 교수 1969 년 게이오의숙대학 법학부 정치학과 졸업. 1975 년 동대학 대학원 법학연구과 박사과정 단위취득 퇴학(1972 년부터 1974 년 연세대학교 유학). 1987 년 법학박사학 위 취득. 동대학 법학부 강사 조교수를 거쳐, 1985 년부터 현직. 저서에 한국전쟁 미국의 개입과정(일본어), 일본과 북한 지금부터 5 년 남북통일에의 시점과 시 나리오(일본어) 외 다수. 金 千 植 (Chun Sig KIM), 통일부 통일정책실장 康 仁 (In Duk KANG), 재)극동문제연구소 이사장 소장 한국외국어대학대학원 수료. 경희대학교 정치학박사. 중앙정보부 북한국장 등을 역임. 통일부 국방부 문교부 자문위원. 1998-1999 년 통일부장관. 현재 북한대학원대학 교 초빙교수, 일본 세이가쿠인( 聖 院 )대학 객원교수. 저서에 남북회담: 7.4 에서 6.15 까지, 원전 공산주의 대계, 북한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일본어), 대북협상연구 남북대화 30 년의 교훈(일본 어), 북한의 7.1 경제조치와 최근 동향 외 다수. 洪 性 (Song-Kuk HONG), 재)극동문제연구소 북한연구실장 러시아 사회과학원 경제학박사. 통일부 경제담당관 심의관, 통일교육원 객원교수를 거쳐 현직. 저서에 평화경제론, 자력갱생의 기로: 북한경제 이론과 실제, 북한의 GNI 분배구조와 주민의 소비생활수준, 남북경협 10 년, 반성적 평가와 과제, 북한의 선군정치가 북한경제에 미치는 영향 외 다수.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북한문제와 한일의 역할 7 趙 明 哲 (Myung Chul CHO),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 소장 김일성대학 박사원 졸업. 동대학 경제학부 교수. 현재 통일부 자문위원, 대통령 소속 사회통합위원회 위원. 저서에 중국의 동북 3 성 개발이 북중 접경지역 산업 및 기 반시설개발에 미치는 영향 분석, 체제전환국의 시장경제교육 경험이 북한에 주 는 시사점, 북한 대외경제제약요인 분석 외 다수. 遠 藤 哲 也 (Tetsuya ENDO), 전 일북 국교정상화교섭 일본정부대표 도교대학 법학부 졸업. 1955 년 외무성 입성, 2 년간 프린스턴대학 유학. 국제원자력 기구(IAEA)이사회 의장, 재윈국제기관일본정부대표부 특명전권대사, 일북 국교정상화 교섭 일본정부 대표, 뉴질랜드 일본국 특명전권대사, 원자력위원회 위원장대리를 거 쳐, 현재 외무성 참여 (IAEA 핵비확산문제 자문위원회 위원), 재단법인 일본국제문제 연구소 시니어 팰로우. 동아시아 국제관계 분야에서 저서 다수. 任 成 彬 (Sung Bihn YIM), 장로회신학대학 교수(기독교와 문화) 프린스턴(Princeton)신학대학원 신학박사(기독교윤리학 전문). 한반도평화연구원 운 영위원,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 공동대표, 문화선교연구원 원장, 기독경영연구원 이 사, 저서에 공공신학이란 무엇인가 (공저), 기독교문화와 한국문화,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문화선교 외 다수. 宮 本 悟 (Satoru MIYAMOTO), 세이가쿠인( 聖 院 )대학 종합연구소 준교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석사학위 취득. 고베( 神 )대학대학원 법학연구과 정치학박사. 일본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2009 년 4 월부터 현직. 저서에 한국 미사일 개발 자주국방과 한미 군사동맹의 마찰(일본어), 북한의 정군( 政 軍 )관계 왜 북 한 군인은 쿠테타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인가?(일본어), Economic Sanctions by Japan against North Korea: Consideration of the Legislation Process for FEFTCL(Feb. 2004) and LSMCIPES(Jun. 2004) 외 다수. 小 田 川 興 (Ko ODAGAWA), 세이가쿠인( 聖 院 )대학 종합연구소 객원교수 와세다( 早 田 )대학 졸업. 아사히( 朝 日 )신문사 입사, 서울지국장, 외보부( 外 報 部 ) 편 집위원 등을 거쳐, 2002년 퇴사. 현재 세이가쿠인( 聖 院 )대학 종합연구소 객원교수. 일본기자클럽 회원, 저서(일본어)에 38선 비무장지대를 걷다, 피폭 한국인 (편역), 한반도 평화의 구도, 북한 그 실상과 궤적, 일북교섭 과제와 전망, 일본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공저), 북한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동 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외 다수.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북한문제와 한일의 역할 9 <인사말> 글로벌라이제이션과 기독교적 연대 왜 바야흐로 한일관계의 재구축이 필요한 것인가 오오키 히데오( 大 木 英 夫 ) Ph.D, LLD., D.D. 세이가쿠인( 聖 院 )대학 종합( 総 合 )연구소 소장 일본의 패전이 초래한 최대의 일은, 낡은 대일본제국 헌법의 폐기, 그리고 새 로운 일본국 헌법이 제정이었다. 이 중대한 사실이, 지금까지, 세이가쿠인( 聖 院 )대학 종합( 合 )연구소의 중심적 연구과제가 되어 왔다. 명치 이후 패전에 이르기까지 근대 일본 77년의 문제는, 그 명칭대로 대일 본제국 이 노골적으로 드러낸 제국주의이다. 그 제국주의는 천황 에게 강렬 하게 수렴하는 해외 확장주의였다. 이것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2발의 원폭에 의 한 무고한 인민의 참담한 비참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메이지 헌법의 제정 (1889년)에서 폐지(1945년)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은 약 56년이다. 전후 일본국 헌법의 제정(1946년)에서 올 2010년까지는 64년, 56년을 이미 8년이나 지났지 만 그간 어떤 개정도 이룩할 수 없었다. 그것이 일본의 전후 국가의 현실을 보 여주고 있다.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받은 민주주의를 향수하고, 또 견지해왔다. 세이가쿠인 대학 종합연구소는, 이 사실을 주시하고, 작년부터 금년까지 2년에 걸쳐서 헌법 연구를 계속했다. 메이지 헌법은, 실은 프로이센 헌법을 모델로 한 것이고, 그 군국주의도 프로이센이 모델이었다. 일본국 헌법에 계승된 인권 이념은 18세기 미국혁명으로부터 17세기 영국혁명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이것은 프랑스혁명 계 통이 아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새로운 헌법은, 세계평화를 목표로 하는 국 가로 일본인민을 규정해온 것이다. 그러면, 우리 연구소가 한일관계에 대해 지금까지 관심을 경주해온 이유에 대 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이것은 우선 대일본제국 헌법적 일본제국주의의 과오 를 깊이 반성하고, 일본의 새로운 국책방향을,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과의 사 이에 확립하는 것에서 출발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한일관계의 과거 현재 미래 를 기독교적 신앙의 자세에서 새롭게 재고찰하기 위해, 한국 교회인이자 대북한 전문가인 강인덕 선생님을 객원교수로서 모시고, 일본에서도 전문가를 모아, 한 일관계 연구를 개시하여 오늘까지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 성과는, 특히 강인덕 선생님을 통해서 영락교회와 장로회신학대학교와의 관계를 심화하 는 것에 이르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한국 헌법의 민주주의와 일본국 헌법의 민주주의는 뿌리가

10 인사말 같다는 점을, 우리는 헌법연구를 통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리적 인국( 隣 國 ) 관계이고, 또 역사적으로 두터운 문화교류뿐만 아니라, 한일을 잇는 끈은, 한일 양국의 헌법이 모두 민주주의 헌법으로 동일한 원리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한일관계와 관련한 우리의 바람은, 대일본제국 헌법시대 일본이 저지 른 죄를 회개하고, 일본국 헌법에 의한 새로운 일본 형성을 위한 외교적 제일보 로서 한일관계의 새로운 구축에 헌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때, 우리의 모범 으로서 기억되는 것이 있다. 유럽에 있어서 오랜 적대관계에 있던 프랑스와 독 일이, 오랜 세월에 걸쳐 양국의 분쟁지역인 자르와 슐레젠을 일변하여 오늘의 EU의 기점으로 대전환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적대가 뒤집혀서 협동( 協 動 )으 로, 그것이 오늘의 EU가 되어 크게 전개되었다. 그와 같은 전환이 동양에서 있 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한국과 일본과의 사이에서 있기를 바라며, 그리고 새로운 AU 의 형성, 그것이 한일 양국의 새로운 공동작업이고, 만일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동아시아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일이 된다고 생각했 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중국과 북한의 공산주의 적 연대 같은 것과는 다르다. 그와 같은 것은, 저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이미 끝난 것은 아닌가? 동양에서 아 직도 (그것을) 기도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과거 의 잔영( 殘 影 )에 불과 할 것이다. 만일, 한일 양국에 있어서 아시아에 AU 적 새로운 국가연합이 생 긴다면, 한일의 연대는, 새로운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아시아에 있어서 공동작업 을 추진하는 것이 될 것이다. 민주화, 그것이 글로벌라이제이션의 기축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계사적 동향에 한일 양국이 동아시아에서 협동( 協 動 )하는 것을 우리는 꿈꾸고 있다. 근대 민주주의가 기독교적 기반을 갖는 것인 까닭에, 그 협동, 그 추진은, 기독교적 연대를 필요로 한다. 그런 연유로, 우리는 한일 기독교적 연대를 기초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북한문제와 한일의 역할 13 <강연 1> 동아시아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일협력 윤영관( 尹 永 寛 ) 서울대학교 교수, 한반도평화연구원장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시작은 세계정치사의 획을 그은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1991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되어 온 냉전구조를 무너뜨리고 미국을 세계 최정상의 유일 초대강국의 자리로 올려 놓았다. 냉전의 다른 한 축을 구성했던 소련이 스스로 무너져버렸기 때문이었 다. 미국은 단순히 패권을 넘어서서,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들어서서는 제국 (empire) 으로 불릴 정도로 그 상대적 권력이 상승하였다. 1 그러나 이 시기에 행해진 2002년 아프가니스탄 공격과 2003년 이라크 공격은 미국 권력의 상대 적 쇠퇴를 재촉하는 부담으로 걸리기 시작했다. 2008년의 세계금융위기는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유일 초강대 국 미국의 위상을 심각하게 흔들어놓은 사건이었다. 이 위기가 다른 곳이 아닌 세계 권력의 중심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거의 동시적으로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는 점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 시작된 팽창적인 통화정 책은 민간부문의 소비 확대와 버블 형성으로 연결되었고, 더욱 심화된 미국 경 제의 금융화와 함께 금융부문의 도덕적 해이가 심화되어 세계금융위기 촉발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민간 부문의 과소비, 그리고 경제위기 극복 과정을 거쳐 오면서 더욱 누적된 엄청난 재정 적자는 세계정치에서 미국이 지 도적 역량을 행사하는데 커다란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위기의 결과, 세계 권력의 중심이 서구에서 동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은 세계 최고의 채권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중국은 2010년 6월 현재 2조45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을 보유하고 있으며 8,4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2 세 계정치가 이제 미국 주도의 單 極 이 아니라 多 極 체제로 변화했다는 주장도 있으 나, 무엇보다도 미중관계의 향배가 앞으로 세계정치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미국 경제력의 상대적 쇠퇴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직도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이다. 미국정부가 한해에 사용하는 군사부문 연구개발비는 세계 다른 1 ) Niall Ferguson, Colossus: the Price of America's Empire (New York: The Penguin Press, 2004). 2 ) China diversifies foreign reserves basket, The People's Daily, August 19, 2010.

14 동아시아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일협력 모든 국가들의 군사부문 연구개발비를 합한 것보다도 크다. 비록 경제력은 약 해졌다고 할지라도 군사력으로는 세계 유일초강대국인 미국은 앞으로도 세계정 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계속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미국의 동 아시아에서의 개입정책도 지속될 것이고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은 계속해서 미국 의 동아시아전략의 중요한 핵심 축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상승 세력 중국은 글로벌 차원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동아시아 차원에 서 지도적 위치를 확보하려 노력할 것이다. 상승한 국력에 상응하는 새로운 국 제적 위상을 원하는 것은 세계역사상 모든 상승 대국들이 보여준 반복된 패턴 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상승 세력의 욕구를 기존의 패권국과 그 연합세력이 어 떻게 관리할 것이냐이다. 미국은 기존의 국제체제에 중국이 참여하여 그 국제 규범과 가치 기준을 따라주기를 원한다. 2005년 로버트 죌릭(Robert Zoellick) 당시 국무부 부장관이 중국을 책임 있는 당사국(responsible stakeholder) 으 로 지칭하면서 중국의 협조적 자세를 요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2008년 세계경제위기의 시작 이후 중국은 공세적인 태도로 전환했으 며 대만에의 무기판매, 달라이라마 면담, 남중국해 문제, 그리고 한반도에서의 한미군사훈련 문제 등을 놓고 미국에 대해 날을 세웠다. 결국 2010년 초 이후 미국은 이전의 부드러운 태도를 바꾸어 중국에 대해 적극적으로 강하게 대응하 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중국 측 이 한걸음 물러나고 미국이 호응하면서 다시 한번 미중관계의 협력적 측면이 부각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장기적으로 볼 때 미국과 중국의 동아시아에서의 경쟁 은 불가피할 것이다. 미국은 한미동맹, 미일동맹을 축으로 유지하면서 동아시 아에서 균형자 역할을 지속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 특히 중국의 군부 인사들은 이러한 동맹들은 냉전이 끝난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시대착오적 유산 이라고 비판을 지속할 것이다. 이러한 미중갈등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양국은 모두 경제적으로는 중국의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으 면서도 안보적으로는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다. 그렇기에 미국과 중국이 서로 충돌하고 그 결과로 두 국가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 상황에 이르는 것은 한 국과 일본 모두에게 어려움을 줄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한일 양국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나의 방법은 동북아 시아에 다자안보협력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유럽은 2차대전 직후 독일과 프랑 스 양국간의 해묵은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경제적 통합의 길로 나섰고 당시 만들어진 유럽석탄철강공동체는 지금의 유럽연합으로까지 발 전했다. 또한 유럽국가들 간의 다자적 안보협력을 위해 유럽안보협력기구 (OSCE)가 만들어져 작동중이다. 이러한 유럽연합이나 유럽안보협력기구와 같 은 다자적인 협력메커니즘이 존재하기에 유럽국가들 간의 관계는 동아시아 국 가들 간의 관계에 비해서 훨씬 안정적이다. 서로 민족주의 감정을 발동시켜 경 쟁하거나 상호간의 의심과 오해가 안보위기로까지 발전하는 일도 드물다. 아무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북한문제와 한일의 역할 15 도 유럽국가들 간에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 이다. 그런데 동아시아 안보질서는 유럽과 달리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양자동맹체 제(hub-and-spoke model)로 구성되어 있다. 한미동맹, 미일동맹, 미-호주동 맹 등에 미중관계까지 더해 양자차원에서 안보 협력을 모색하고 있지만, 한국, 일본, 중국, 호주 등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국가들 상호 간에는 협력메커니 즘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역사 문제나 영토 문제들이 양자 차원에서 분쟁 으로 발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양자동맹체제는 2차대전이후 만들어진 것으로 소련이 붕괴하고 많은 변화가 이루어진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보완이 필 요하다. 이러한 보완책의 가장 중요한 방법이 바로 다자안보협력 메커니즘을 이 지역에서 강화시켜나가는 것일 것이다. 물론 동남아에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과 같은 안보협력메커니즘이 존재하 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북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ARF와 같은 느슨한 협력 메커니즘으로는 부족하다. 2003년 본인이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일할 때 6자회담이 북한 비핵화에 성공한다면 그 후 이것을 다자협력메커니즘 으로 발전시켜야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제안은 북한의 비협조로 인한 비핵화의 진전이 없음으로 해서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6 자회담 그 자체가 그 목표의 달성 여부와 관계없이 동북아에서의 다자안보협력 을 위한 하나의 좋은 모델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다자협력체제는 정치적으로는 미국의 동맹인데도 불구하고 경제적으 로는 중국에의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가고 있는 2중적 구조에 처한 한국과 일본 에게는 좋은 완충장치를 제공할 것이다. 모든 다자협력체제는 나름대로 제도로 서의 규범과 규칙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러한 다자협력체에 미국 과 중국 등이 한국, 일본과 함께 참여한다면 공통의 규범과 규칙을 준수하는 가 운데 각국 간에는 행동의 예측성과 투명성이 커지고 국제관계는 더욱 안정화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미국에서는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 이후에 다자협력에 대해 적극적 으로 나서고 있고 중국정부도 과거 1990년대 초반 이전과는 달리 다자협력메커 니즘의 구축에 긍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도 함께 협력하 여 동북아 다자협력 메커니즘의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그래서 중국까지 포함하고 미국의 동맹대상국들 간에도 상호간의 여러 분쟁현안들을 이러한 다자채널을 통해 논의해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일 양국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와 관련하여 이해가 일치한다. 바로 이 때 문에 북한의 비핵화를 놓고 양국은 그동안 적극적으로 협력해왔다. 예를 들어 2004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한일은 북한비핵화를 이루기 위한 북핵 외교 과정에 서 이른바 TCOG (Trilateral Coordination and Oversight Group)프로세스를 거쳐 협조해왔다. 때로는 미국정부의 강경한 북핵 외교 정책에 영향을 주어 유연성

16 동아시아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일협력 을 강화하기 위해서 한일 외교실무자간에 사전에 상호 협의도 했었다. 그러나 양국간에 독도 문제, 과거사 문제가 다시 등장하면서 한일관계가 악화되어 협력 이 힘들어졌었다. 2년여 전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래 한일관계는 회복되기 시 작하여 양국간 협력도 다시 강화되었다. 여기에는 일본 자민당 보수정권의 후 퇴와 민주당 정부의 등장이 양국협력에 긍정적인 모멘텀을 제공한 것도 사실이 다. 이러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양국간의 협력은 천안함 사태 이후 긴밀한 양 국 공조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일본정부는 사건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한국정부 의 입장을 지지해왔다. 유엔안보리 외교에서도 일본정부는 한국의 입장을 앞장 서 지지했다. 한일 양국 모두 최근 1-2년 전부터 전개되고 있는 북한 내부의 불안정 상황 에 대해 함께 우려하고 있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문제, 김정은으로 의 승계문제를 둘러싼 불확실성, 북한 경제의 파탄, 천안함 공격과 핵실험 등에 대해 양국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유엔제재결의 1874호 이행에 있어서도 한일 양국은 공동보조를 취해왔다. 앞으로 한일간의 협력의 과제는 북한문제에 대해 어떻게 공동의 보조를 취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북한 상황의 안정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대북 제재뿐만 아 니라 대북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도 공동보조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향 후 북한의 점진적인 변화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혹시 있을 수도 있 는 급진적인 변화에 대처하고 관리하는데 있어서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지정학적으로 인접한 한일 양국에게 있어서 북한문제의 안정적인 관리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일본의 입장은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미국 의 입장과도 또 다른 시급성을 갖고 있는 측면이 있다. 이상과 같이 변화하는 동아시아와 한반도 정세 가운데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안정에 한일 양국은 대단 히 중요한 축이 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더욱 긴밀하게 논의하고 협력해나가야 될 것이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북한문제와 한일의 역할 17 <강연 2> 미북 관계: 천안함과 미국의 대응을 중심으로 Young C. Kim (김영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부 명예교수 일본 게이오대학 법학부 정치학과 초빙교수 천안함 폭침: 북한의 의도 이 논문에서는 금년 2 월 도쿄회의 이후의 미국의 대북한 정책, 특히 천안함 침몰 사태에 대한 미국의 대응에 초점을 두고 논평하고자 한다. 첫째, 북한의 천안함 공격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의 문제이다. 여러 가지 요인과 동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먼저 전문가들이 제기한 몇 가지 說 을 소개한다. 1. 작년 11 월 북한이 패배한 해전에 대한 보복이라는 설. 2. NLL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미국에게 조속히 북미 양자회담에 나와 새로운 해상경계선 설정과 평화협정 협상 시작을 노린 대미 압박행위라는 설. 3. 이명박정부의 대북 적대시정책에 대한 보복, 이명박정부에 대한 대북지원 강요, 이 정부의 불응시 이 정부의 본격적인 타도를 추구하겠다는 협박, 국내 친북세력에 대한 MB 정부 타도노선 촉구/지령이라는 설. (최근 한국언론 보도에 의하면 남북한간의 비밀회담에서 정상회담에 관한 협상이 작년 가을부터 단속적으로 진행되어왔고, 금년 2 월경까지 남측의 최종 회답이 없었던 것이 북한측의 3 월하순 천안함 사건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설기사가 있었다.) 4. 김정은씨 승계작업의 일환, 즉 김정은씨 업적쌓기가 되고 2012 년 강성대국 구축에 기여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는 설이다. 승계작업 추진에 필요한 군부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도, 화폐개혁 조치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 조짐에 나타난 이완된 국내 통제력을 강화할 필요성 등을 감안해서도 외적 긴장

18 미북 관계: 천안함과 미국의 대응을 중심으로 상황이 필요했다는 것. 여기에는 체제유지, 승계작업의 중요성은 다른 어떤 견제요소도 압도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미국정부 내의 지배적인 견해는 천안함 사건은 김정은씨 승계작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도 같은 판단을 하고 있다. 북한의 행태를 어떻게 설명하느냐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북한 행위에 적절하고 효과적인 대응책을 결정할 때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북한의 의도 천안함 사건에 대한 미국의 대응에 들어가기 전에 2009 년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문제에 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2009 년 미사일발사와 핵실험을 2006 년 유엔 제제를 무시하고 소위 도발적/도전적 행동을 왜 북한은 감행했는가? 전문가들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북한 국내외의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으나 해설중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어 보이는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북한은 중요한 외교교섭을 예견할 때 교섭상대에 최대한의 압박을 가해 교섭에서 유리한 양보를 쟁취하기 위해 벼랑끝 행동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새로 발족하는 오바마 행정부와의 중대한 협상을 앞두고 힘과 의지를 과시하고 압박하려는 행태라는 해석이다. 2) 둘째로 국내정치적 요인을 동기로 보는 해설이다. 2008 년 8 월에 부각된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문제와 그에 따르는 후계자 문제 해결의 긴박성이 중요 요인이라는 것이다. 지도자의 건강악화로 체제유지를 담보하기 위한 국내체제 정체성에 대한 이완 저지의 중요성, 김정은씨로의 권력기반의 공고화 등 권력 승계작업의 조속한 추진이 최중요 과제로 부상했다. 이를 위해 군부의 지지확보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군부의 요망을 만족시켜야했고 외부로부터의 위협, 긴장상황이 필요했다는 해석이다. 3) 셋째로 2012 년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에 김정일 위원장의 최대 업적인 핵무기 개발과 장거리미사일 개발을 확고히 입증해 그의 통치의 정당성을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북한문제와 한일의 역할 19 높이자는 의도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과업은 김일성 주석이 1960 년대에 내린 비밀교시이고, 아버지도 성취하지 못한 것을 아들이 성취한 위대한 치적이라는 것이다. 김위원장에게는 핵무기는 선군정치 이념의 궁극적이라 할까, 최정상의 결정체( 結 晶 )인 것이다. 과거 2 년간 북한의 행태를 위와 같이 설명하는 것이 타당하다면 국제사회, 특히 한미일 3 국의 대북 대응책이 적절하고 타당하고 유효하고 현명한 것이었는가를 재평가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미국의 대응 미국은 천안함 격침사건을 동맹국가에 대한 침략행위라고 규정했다. 정전협정, 국제법, 유엔헌장에 대한 위반이며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여 다시는 그런 도발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고 하면서, 한국국민에 대하여 한미동맹의 유효성, 한국방위의 의무를 준수한다는 확고한 의사를 강조하였다. 대응 방안에 대해서는 한국정부가 주도권을 갖고 결정하고, 그것을 미국이 전폭적으로 지지 지원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행정부뿐 아니라 의회, 언론 등 사회전반적인 북한 규탄, 한국지원의 정서가 확산되고 미국내의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적대적 감정을 더욱 확대 심화시켰다. 미국은 미중 전략대화, ARF, 싱가포르 전략대화, G-8, G-20, 유엔 안보리 등 각종 국제회의에서 천안함 사건에 관해 북한을 규탄하고 다시는 도발행위를 못하도록 국제사회가 강력한 메시지를 명확히 발신해야한다면서 전력을 다해 외교노력을 경주하였다. 안보리 의장성명에 대해 많은 식자들이 공격의 주체로서 북한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하고 중국의 완강한 반대로 한미일이 양보한 결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의장성명이 발표된 같은 날인 7 월 9 일 미국 백악관과 국무성이 각각 공식성명에서 표명한 내용에 주목해야 한다. 안보리가 만장일치로 중국 러시아를 포함 천안함이 공격으로 침몰했고 그 책임이 북한에 있다는 합동조사단의 결론에 의거하여 우리 안보리가 깊은 우려를 표하며 공격을 규탄한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발신했따고 지적하고 있다.

20 미북 관계: 천안함과 미국의 대응을 중심으로 애매모호하고 전체 문맥에서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뿐 아니라 북한의 행위를 규탄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문장에 중국도 동참한 것이다. 해당부분을 영문으로 읽으면 더욱 명백해진다. 주체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공격이라는 단어, 중국이 그렇게도 반대하던 공격이라는 인식이 명기되었다. 또한 중국이 반대하던 규탄이란 표현도 있다. 의장성명을 읽으면 공격의 주체가 북한이라고 안보리가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의 자신과 무관하다는 주장에 유의한다는 문구가 삽입됨으로써 공격 주체에 대한 안보리의 확신도가 약화됐다고는 말할 수 있겠으나, 중국정부가 북한의 주장에 진정으로 동의하고 북한 소행으로 믿지 않았다면 그런 내용의 성명에 동참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보리 대응이 끝난 이후로는 7 월 하순 동해/일본해에서 한미간 일본자위관의 참관하에 대규모 군사력 시위인 군사연습으로 한미동맹의 건재와 대북 억지력을 과시하였고, 앞으로 황해에서 한국 단독으로 집행한 대잠수함 훈련과는 별도로 한미 양국의 군사훈련을 하겠다는 의사를 명백히 하였다. 군사정책면에서 미국이 재검토하여 한국측과 합의한 내용에도 천안함 사건의 충격을 볼 수 있다. 전시작전권 이양 일정이 3 년 연기되었다. 천안함 사건 전부터 논의의 대상이었지만, 그 사건 없이 이 시점에서 시기를 명시한 연기를 결정하는 것은 곤란했을 것이다. 한미연합사 해체도 연기된다. 연합사 해체 후에 있을 두 개의 사령부 하의 전쟁수행은 한국방위상 중대한 문제를 야기했을 것이다. 미국 국가정보기관 장관이 최근 의회 증언시 표명한 북한의 의도와 능력에 대한 인식을 주시해야 한다. 우리는 현재 북한이 한국을 직접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시기에 들어가 있을 수 있다고. 이번 천안함 사건이 미국의 정책담당자들에게 준 충격은 미국정부의 대담한 기본적 정책 전환을 포함한 대북정책 재검토과정에서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이 취하려는 대응조치 중에서 가장 북한에 극심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미국정부가 생각하는 것이 서울 2+2 회담 직후 클린턴 장관이 발표한 금융제재이다. 오늘 현재(8/7/2010) 공표된 제재내용의 성격, 제재대상만 보아도 미국측의 북한 경제, 나아가 체제안정에 중대한 타격을 가져올 수 있다. 향후 북한의 대응에 따라서는 미국의 금융 및 기타 제재의 수준과 집행과정의 엄격화에 영향을 줄 것이고 그것은 북한정권/체제에 치명적 충격을 줄 수 있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북한문제와 한일의 역할 21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5 월 초순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과 관련하여 많은 식자들은 중국이 대규모 경제지원과 투자를 제공하고 북한에게서 6 자회담 복귀 적어도 예비회담복귀 를 받아낼 것을 예측했었다. 그러나 중국 및 북한측 발표자료에는 북한이 6 자회담 복귀를 약속했다는 언급이 없다. 발표문에는 6 자회담 추진을 위해 관련국가들이 성의를 보여야하며 긍정적 노력을 해야할 것이라고 중북 양국 지도자가 말했다 고 되어있다. 또한 북한이 6 자회담 재개를 위해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기 위해 중국과 같이 노력할 것이라고 김위원장이 말하였다 라고 중국발표문에 적혀있다. 북한 발표문에는 조선측은 각측과 함께 6 자회담의 재개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할 용의를 표명하시엿다 라고 되어있다. 조건이란 제제해제와 미북 평화협정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9/19 공동성명에 대해 두 번 언급하고 있다. 한번은 공동성명 입장에 따라 운운하고 있고, 또 한번은 공동성명을 이행하며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는 우리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고 라는 구절이 있다. 2006 년 9 월 19 일 공동성명에는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프로그램을 폐기한다고 되어있는데 그 부분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북한은 생각하고 있다. 5 월 방중시에 9/19 합의에 따라 운운하고 있지만, 북한측은 핵실험으로 핵보유국이 된 시점에서 그 구절은 효과를 상실했고 북한을 구속하지 않는다는 인식이다. 명백한 것은 중국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5 월 방중시에도 김위원장이 6 자회담 복귀의사의 명시적 표명을 거부한 것이다. 김위원장 방중후 미국정부는 북한의 6 자회담 복귀를 위한 전제조건은 일절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즉 6 자회담 참가를 위한 대가 제재완화, 평화협정 문제 협의의 즉각 시작 등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미국정부는 천안암 사건의 해결이 선행한다는 입장도 거듭 천명하였고, 북한에게 도발행위를 중단하고 비핵화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라고 국무부 공식 기자회견에서 촉구하였다. 전문가들 사이에 김위원장의 방중 성과에 대한 상이한 평가가 있다. 후진타오 주석이 제기한 5 개 항목 중 내정문제 소통에 관한 항목이나 원자바오 총리의 경제개혁 개방에 대한 설교, 또한 중국의 낮은 대북지원 수위에 대한 불만 등 만족스러운 여행이 아니었다는 설이 우세하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으로 국제적 비난에 직면하게 된 북한으로서는 방중을 실현시켜 조중 특별관계를 과시할 수 있었다는 점과 후계자 문제에 대해 사실상 중국지도부의 일정한 양해를 얻었다고, 자국 인민과 국제사회에 주장할 수 있는 중국지도부 인사들의 언급을 확보했다는 점은 성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22 미북 관계: 천안함과 미국의 대응을 중심으로 천안함을 넘어가는 길 천안함 침몰에 대한 안보리 의장성명이 발표 되자마자 중국은 6 자회담 재개를 제안하고 나섰고, 북한은 이에 즉각 호응하듯이 6 자회담 복귀 노력을 다짐하였다. 6 자회담 개최 에 관하여 한국정부는 북한이 먼저 천안함 침몰 책임을 시인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것과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인되어야 한다며 조기재개에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정부의 발언은 이 입장에서 후퇴하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미국정부도 현시점에서는 부정적이다. 안보리 의장성명 후의 국무부 공식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먼저 모든 도발행위를 중지하고 2005 년 9 월의 6 자회담 합의의 실천 등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것을 신뢰할 수 있도록 행동으로 증명하라는 전제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북한이 앞으로 중국에 대한 배려에서나 미국의 금융제재 등 대북제재 완화를 추구하며 6 자회담 참석에 응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나, 북한이 한미양국의 요구에 응하리라고는 상정하기 힘들다. 위에 지적한 바와 같이 지난 5 월 방중시 김정일 위원장은 6 자회담 조기복귀의 확약을 사실상 거부하였다. 중국 후진타오 주석에게 김위원장이 6 자회담의 재개를 위하여 유관국가들과 같이 유리한 조건을 조성 해나갈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는데, 여기서 유리한 조건이란 대북제제 해제와 평화협정 문제에 관한 북미간 협의에서의 진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북한의 전제조건은 아직 유효하며, 그러한 전제조건에 미국이 응한다는 것도 상정할 수 없으니 6 자회담의 재개는 사실상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만약 북한이 6 자회담에 복귀했다해도 비핵화 문제에 의미 있는 진전이 있으리라고 생각 하지 않는다. 김위원장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생각은 미국정부도 거의 단념한 상태다. 따라서 당분간 미국은 대북 국제적 포위망 구축강화, 군사적 억지 조치와 도발대응 조치 강화, 기존 제재조치들의 엄격한 이행, 새로운 추가적 조치 특히 금융 제재 등 을 통한 압박을 계속하며, 병행해서 북한과의 대화를 통한 비핵화를 촉구하는 정책을 추구할 것이다. 북한도 강경조치로 대응하겠다는 기본입장을 견지할 것이기 때문에 한미와의 대결 상태가 계속될 것이다. 미국정부는 북한의 대외적 행태가 북한의 심각한 국내 문제 특히 지도자 교체, 권력승계 문제 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직접 공격 가능성을 포함한 여러 형태의 한반도 긴급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황이 상당기간 계속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북한문제와 한일의 역할 23 필자는 한미일이 향후 여러 제재조치의 엄격한 실천 등 대북 강압정책을 추구할 것이나, 동시에 대결상황을 대화/협상 모드로 전환 시키는 수면 하에서의 외교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소위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6 자회담 조기 재개가 거의 불가능한 정황에서 검토해볼 수 있는 대안이 있다. 현존하는 6 자회담 기구는 휴업상태로 두고, 북핵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동북아 평화 안보 경제발전에 관한 모든 문제를 협의하는 새로운 기구를 구축하는 안이다. 북핵문제도 핵군축문제도 의제의 일부이다. 참가국은 기존 회담과 같은 6 개국으로 하고 회담장소는 윤번제로 각 성원국의 수도로 한다. 외무장관급의 전체회의와 차관급의 실무회담을 원칙으로 운용하고, 회원국가들은 아무 전제조건 없이 회담에 참여하기로 한다. 새로운 6 개국회담의 테두리 안에서 양자, 다자 회담도 가능하다. 현존 6 자회담 재개에 걸림돌인 상호간의 전제조건을 상쇄함으로서 중단된 다자간 협의를 가능케 한다. 장관급 고위급회담은 협의과정에 권위를 주어 조속한 결정을 가능케하며 회담장소의 윤번제는 적절하고 필요한 경우의 개최국 정상의 관여를 용의케한다. 이 새로운 회담에는 북한의 참여도 기대할 수 있다. 참여국마다 다른 고려사항이 있겠지만, 각자가 현재와 같은 불안정 상황이 계속되는 것보다 바람직하고 각자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언급한대로 7 월 9 일 안보리 의장성명에 대해 비판적 평가가 있다. 그러나 합동조사단의 결론에 의거하여 안보리 전원이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그 공격을 규탄 한다는 성명을 채택했다. 게다가 미국은 일련의 정부 공식성명과 행동으로 미국국가의 명예와 위신을 걸고 대북 억지력 강화와 한국방위의 의지를 세계에 천명했다. 동맹국 한국의 안전보장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미국의 확고한 결의를 국제사회에 서약 발신한 것이다. 한국안보를 담보해야 하는 한국국익에 강력하고 유효한 지원 조치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안보상황에서 향후 한국정부는 이번 사태의 초기대응에서 보인 심각한 허점을 시정하는 작업은 물론 국민에게 약속한 각종 대응 조치를 일단 선별적으로 실천하겠지만, 그것과 병행하여 천안함 사건을 넘어서 유관국가들과 협력하여 위에서 제기한 새로운 대화의 테두리 구축과 운영을 통한 제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길 기대한다. (2010-08-07)

24 미북 관계: 천안함과 미국의 대응을 중심으로 <참고자료> 대북한정책, 6자회담에 대체하는 틀을 <아사히( 朝 日 )신문, 2010년 8월 4일> Young C. Kim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명예교수, 게이오( 慶 )대학 방문교수 한국의 초계함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해 유엔안보리는 7월 9일, 북한의 명확한 지목을 피 한 의장성명을 발표했다. 전체 문맥으로 하면, 안보리가 북한의 공격을 비난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타당할 것이다. 다만,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이 발표된 직후부터 중북은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을 암시하고, 한미일 등에 의한 대북한 제재를 저지하려 하고 있다. 북한은 6자회담을 통해서 한국전쟁 을 종결시키는 평화협정 체결이나 비핵화를 향해 노력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6자회담 복 귀에는 전제조건이 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김정일 총서기는 5월 방중시, 중국의 후진 타오 국가주석에게 유리한 조건 형성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유리한 조건 이 란, 대북한 제재조치의 해제와 평화협정 체결을 향한 진전을 의미한다. 만일 북한이 중국에 대한 배려나 미국의 강력한 금융제재를 피하고자 6자회담에 복귀했다고 해도, 한반도 비핵화의 진전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북한이 비핵화를 진전시키는 조건은 미국 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전환 이것은 한미동맹의 파기를 의미한다 이고, 미국이 (여기에) 응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미국은 비핵화를 향한 기존 합의를 확실하게 이행한다는 북한의 의사 를 미국이 확신할 수 있도록, 먼저 구체적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한미일 등이 일정한 대응조치를 취하겠지만, 병행해서 북한을 관계국과의 새로운 대화 틀에 편입시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시기이다. 현행 6자회담은 당면 보류하고 예를 들면 동북아시아의 평화, 안전보장, 경제발전에 관한 6개국 회의 라는 새로운 틀을 가동하 여, 베이징, 모스크바, 도쿄, 서울, 평양, 워싱턴과 로테이션 방식으로 개최한다. 전제조건 없는 참가로 하여, 한반도 비핵화에 한정하지 않고, 동북아시아의 평화, 안전보장, 경제발 전에 관한 모든 문제를 다룬다. 장관급의 전체회의와 차관급의 실질적 협의를 진행한다. 지금까지 북한이 6자회담 복귀에 반대해온 모든 논리를 검토해보더라도, 이와 같은 협 의 분야를 확대한 새로운 국제적 틀에 북한이 참가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 이 틀은 현행 6 자회담 재개에 관한 관계국의 다양한 생각이나 전제조건에도 불구하고, 참가를 가능하게 하는 대의명분과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회의를 로테이션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관계국 정상이 적절한 타이밍에서, 또 용이하게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안전을 향한 정책결정에 관 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불안정하고 위기적인 상황을 관리하고, 북한의 정권교체나 정책전환 으로 시간을 벌 수 있다. 북한도 미국의 군사행동을 우려하는 일 없이 시간을 벌 수 있다. 한국도 새로운 틀 참가로 남북관계 개선으로의 노선수정이 용이하게 될 것이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북한문제와 한일의 역할 25 <강연 3> 분단체제와 평화구축 한국 초계함 침몰사건을 계기로 오코노기 마사오( 小 此 木 政 夫 ) 게이오기쥬쿠( 慶 応 義 塾 )대학 교수 분단체제의 억제 기능이란 무엇인가 최근 몇 년간, 한반도 분단을 둘러싼 국제정치사 연구에 종사하고 있다. 분단 이란 무엇 인가를 질문 받는다면, 미소에 의한 분할 점령 후, 독립을 추구하면 통일이 불가능하게 되 고, 통일을 달성하려고 하면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는 상태, 즉 독립과 통일의 상극 이라 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러한 분단 상태가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를 성립시켜 통 일 전쟁을 재촉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후에 출현한 분단체제 는 단순한 분단 상태 와는 구별되어야 할 것 이다. 한국전쟁 후, 분단 상태 가 분단 체제 로서 제도화되어 남북 대립도 세계적인 냉전 체제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한국전쟁의 경험뿐만이 아니라, 1954 년 한미 상호방위조약, 1961년 북한과 소련 및 중국과의 상호원조조약이 체결되어 국제정치학적으로는 지역적인 상 호 억제체제가 성립한 것이다. 미소중이 정치경제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분단 에 직접 관여했기 때문에, 그 후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사실, 휴전 이래 56 년간, 제2차 한국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분단체제란 전쟁이 불가능한 체제 인 것이 다. 그러나 전쟁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반드시 평화로운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분단체제의 완 성은 오히려 전쟁 이외의 폭력적 수단에 의한 도발이나 파괴, 즉 저강도 분쟁 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그것이 분단체제의 역설 이다. 1960 년대 이후, 남조선혁명 을 표방하면서 북한 지도부는 한국 국내외에서 군사도발, 요인암살, 무력침투, 폭탄테러 등을 반복했다. 그 마지막이 1987 년 대한항공기 폭파였다. 그러한 북한의 도발 행위에 대해서, 한미측은 반드시 효과적으로 반격할 수는 없었다. 북 한 특수부대가 청와대 습격을 기도하다 실패한 후, 박정희 대통령은 동일한 부대를 실미도에 서 훈련시켰지만, 그들을 북한에 침투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북한 미그기에 의해서 EC-121 형 전자 정찰기가 격추되었을 때, 닉슨 미 대통령은 핵폭탄을 탑재한 F-4 기를 군산 기지에 대기시켰지만, 끝내 적공군 기지 공격을 허가하지 않았다. 랭군 폭탄테러나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한국은 반격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80 년대 말 냉전이 종결하고, 소련이나 중국도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그

26 분단체제와 평화구축: 한국 초계함 침몰사건을 계기로 후 사회주의 체제를 포기한 러시아는 북한과의 조약을 개정하고, 상호원조 조항을 삭제했고, 중국도 북중간 조약의 상호원조 조항, 즉 체결국 일방이 어느 일국 또는 수 개국 연합으로 부터 무력 침공을 받음으로써 전쟁 상태에 빠진 경우 라는 규정을 엄격히 해석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인해 동맹조약을 부정하는 사람마저 있다. 게다가 9 11 테러 사건 이후, 부시 정 권 일부에서는 북한의 레짐 체인지(체제 전복)가 거론되었다. 그와 같은 냉전종결 이후의 상태라고 해도, 분단체제의 역설 은 기능하는 것일까? 올해 3 월 한국 해군초계함 천안함 침몰 사건을 둘러싼 논의에서 소홀히 다뤄지고 있는 것은, 대 한항공기 폭파로부터 20 년 이상에 걸쳐 억제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북한 지도부가 다시 큰 도발 행위를 실행으로 옮겼는가 하는 문제제기이다. 천안함 침몰의 첫 보도를 접하고, 북한에 의한 수많은 테러사건을 떠올리면서도, 그 가능성이 과소평가된 것은, 북한 지도부가 장기에 걸쳐 도발 행위를 억제해 왔기 때문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냉전종결 후 분단체제의 억제 기능 저하를 두려워하여, 대규모 도발 행위를 실행할 수 없는 가운데, 북한 지도부는 그 노력을 독자적인 억제력 개발에 집중했던 것이다. 도발 행위를 실행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실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1990 년 에 소련의 Shevardnedze 외상이 평양을 방문해 한국과의 국교 수립을 통고했을 때, 북한의 김영남 외상은 자위를 위해서 핵무기를 개발할 것 이라고 경고했다. 이것은 북한 고위급 인 사에 의한 핵무기 개발에 대한 첫 발언이었다. 그렇다고 하면, 핵무기나 미사일 개발의 진전 을 배경으로, 이번 천안함 침몰사건은 북한이 독자적인 억제력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건 분석의 세 가지 레벨 최초로 천안함 침몰 뉴스에 접했을 때, 북한 범행설이 뇌리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은 아 니다. 랭군 폭탄테러 사건,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등을 연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치 더라도, 운항중인 해군함정을 순간에 파괴하는 작전을 계획하여, 은밀히 실행하는 것이 정말 로 가능할 것일까? 곧바로 부정적으로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북한의 잠수정이 초계함 천안함 을 잠복하여 특수 어뢰를 발사했다고 해도, 그것을 1 발로 명중시키고, 그 후에도 탐지되지 않은 채 도망에 성공하는 등, 용이하게는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북한 범행설에 부정적이었던 하나의 이유는 청와대 습격, 프에블루호 나포, 랭군 폭탄테러 와 계속된 북한의 군사적 도발 행위가,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이후 20 년 이상이나 중단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북한 잠수정이 동해안에서 좌초하거나 남북 해군함정이 서해안 바다에서 교전하거나 했지만, 그것들은 군사 도발도 테러 사건도 아니었다. 따라서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범행에 의한 것이면, 남북관계의 역사가 20 년 이상이나 후퇴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군민 합동조사가 진전되어, 천안함 의 절단된 선체나 어뢰의 추진기 부분이 인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북한문제와 한일의 역할 27 양되는 과정에서 함내사고, 좌초, 기뢰폭발 등의 가능성이 차례차례로 부정되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5 월 20 일의 최종 조사보고는 천안함 의 침몰 원인을 북한의 소형 잠수정에 의 한 어뢰 공격이라고 단정했다. 또 5 월 24 일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 해역에서의 북한 선박에 의한 해상교통로 이용 금지, 남북간 교역과 교류의 중단(개성 공업단지 제외), 유엔 안보리이 사회에의 요청, 황해에서의 한미 해상군사연습 실시 등을 포함한 대북한 제재 조치를 발표했 다. 이렇게 하여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태에 빠진 것이다. 다만, 당연한 일이지만, 군민 합동조사단의 최종 보고는, 왜 북한이 그러한 군사적 도발을 실행했는지, 그 의도나 목표에 관한 설명이 부족하고 있다. 그것들에 관한 분석은 연구기관 이나 연구자 개인에게 맡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북한 잠수정에 의한 천안함 격침 은 어떻게 분석되어야 할 것인가? 그것이 합리적인 행위라고 상정한 아래에서, 세 가지 레벨 에서의 분석이 가능하다. 그 첫째는 전략적이고 국제적인 레벨에서의 분석이다. 작년 4 월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나 5 월 2 번째 핵실험 실시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둘러싼 전략 환경은 반드시 개선되지 않았 다. 부시 정권과는 달리, 오바마 정권은 북한과의 직접 교섭을 계속 거절했기 때문이다. 안보 리이사회의 결의 채택을 위해서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제재 결의 채택 후에는 북한 화물선 을 추적하거나 골드버그 대북 제재 담당 조정관을 임명하기도 하는 등, 그것을 엄격하게 이 행하는 태도를 명확히 했다. 요컨대, 오바마 정권은 북한에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조치 를 요구하고, 클린턴 정권의 유화 정책과도, 부시 정권의 공갈 정책과도 다른 전략적 인 인내 를 발휘했던 것이다. 예상외의 전개에 고심한 북한은, 8 월 클린턴 전 대통령을 평양에 초대하고, 억류중의 미국 인 여성 기자 2 명을 석방하는 조치를 취하거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에 고위급 조문사절 을 파견하여 한국정부와 접촉하는 등, 핵실험 이후의 벼랑끝 정책으로부터 물러서기 시작했 다. 그 뿐만 아니라, 그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 연설(9.21)이나 싱가포르에서의 남북 비밀회담(10.17-18)으로 발전하여, 남북정상회담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해졌던 것이다. 아마,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을 실현하여, 그것을 고위급 미 북 대화로 연결하고자 했을 것이 다. 그러나, 한미 정부는 북한에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조치 를 계속 요구했다. 바꾸어 말 하면, 한미측은 조건부 관여정책의 조건을 완화하지 않았고, 북한측은 그것을 이행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첫째 레벨에서의 분석에 의하면, 3 월 26 일 천안함 격침은, 북한이 핵실험 이 후 전략적인 한계를 군사적인 도발 행위에 의해서 타개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에 의해서, 오바마 정권이나 이명박 정권의 비핵화 우선 정책을 명확하게 거절했으므로, 그것은 본질 적으로 제 3 차 핵실험 의 대체물이다. 그러나 그것과 동시에, 사건 후 김정일 총서기의 2 차례에 걸친 중국 방문에 나타나듯이, 그것은 중국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의 부활을 수반하 는 전략 환경 그 자체의 재편성을 의도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둘째는 전술적인 남북 레벨의 분석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한국의 전문가들 대부분이

28 분단체제와 평화구축: 한국 초계함 침몰사건을 계기로 지적한 것은, 작년 가을 해군함정의 총격전을 포함한, 서해바다에서의 일련의 남북 교전과의 관련성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천안함 격침을 일련의 패전에 대한 보복 이라고 간주하 는 해석이다. 또, 그것은 올해 초부터 공공연하게 논의된 북한 급변사태 론이나 핵기지 선 제공격 론에 대한 반격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것은 6 월초 한국에서 실시되는 통일지방 선거와 관련이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것은 이미 지적한 분단체제 의 억제 기 능과 관련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냉전종결 후 20 년을 지난 군사도발 행위였음에 도 불구하고, 중국이 평화와 안정 을 최우선 한 것처럼, 북한 지도부는 지역적인 상호 억 제가 기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셋째는 북한의 국내정치적인 레벨의 분석이다. 북한의 국내정치를 분석하는 전문가들의 상 당수는, 천안함 격침 사건 후의 대외적 긴장이, 단순하게 북한군 내의 사기 고양이나 화 폐개혁 실패의 책임전가뿐만이 아니라, 건강 불안을 극복할 수 없는 김정일 총서기의 후계문 제와 관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추측했다. 왜냐하면, 올해 초부터 3 남 김정운의 후계자로서 의 대두를 시사하는 현상이 얼마든지 지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러한 추측은 6 월 최 고인민회의에서의 국방위원회 인사에 의해 증명되었고, 나아가 노동당 정치국에 의한 노동당 대표자회 소집에 의해서 결정적으로 되었다. 9 월 초순에 개최되는 당대표자회에서의 주요한 의제가 노동당 최고 지도기관선거 이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로든 김정운이 당지도자로서 공 식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평화체제는 어떻게 구축되는가 천안함 격침 사건에 관한 세 가지 레벨의 분석은 모두 설득력을 가지고 있어 북한 지도 부에 있어서, 그것이 국제정치, 남북관계, 그리고 국내정치 레벨에 있어서, 각각 중요한 의미 를 가지는 복합적인 사건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 각각의 레벨의 분석은 다른 레벨의 분석을 배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복합적인 분석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예를 들면, 미 북 교섭이나 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되지 않으면, 북한은 앞으로도 독자적인 억제력 구축과 중 국과의 관계의 긴밀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결과, 한반도에는 새로운 분단체제 가 성 립할지도 모른다. 북한의 정치체제 존속은, 핵무기 개발에 의한 독자적인 억제력, 경제적인 중국 의존, 그리고 새로운 리더십의 세 기둥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서부터 다시 의문이 생긴다. 김정일 총서기는 천안함 격침을 계기로 중국 과의 전통적 관계를 부활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중국과의 전통적 관계를 부활시키기 위해서 천안함 을 격침한 것인가? 사실, 북한 지도부에 있어서, 천안함 격 침은 수면 아래에서 계속되고 있던 남북 접촉의 단절, 그 이상을 의미했을 것이다. 한 미 일 이 안보리이사회에서 북한 제재를 요구하는 것도, 한미가 황해에서 합동군사연습을 실시하는 것도, 나아가 중국이 거기에 반발하는 것도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중국에의 의존을 전제 로 하면, 그것들은 모두 미중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소이며, 북한에게 있어서 결코 좋은 상황 은 아니었다. 따라서, 북한이 스스로의 전략 환경을 재편성하기 위해서 천안함 을 격침했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북한문제와 한일의 역할 29 다는 의문을 지워버릴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현재까지, 그러한 북한의 대중국 의존 확대는 냉전시대의 견고한 중 북 상호 원조체제의 부활을 의미하지 않는다. 두 번에 걸친 김정일의 중국 방문 결과, 만약 중국으로부터 최신형 전투기가 공여되거나 중국 해군함정이 남포항에 빈번히 기 항하거나 하는 등, 중 북간에 새로운 군사 제휴가 진전한다면, 그것은 중대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김정일이 그것을 요구해도, 중국 지도부가 그것을 무조건으로 승 인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북한이 안보리이사회 결의에 나타난 조건을 채우지 않는 이상 중국이 그것에 노골적으로 위반하고, 북한으로부터의 무기 수출이나 북한에의 무기 수출에 관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중국도 국제적인 책무를 무시하고, 배타적으로 북한에의 영향 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천안함 사건 이래, 중국 지도부는 북한의 모험주의에 대한 불신감을 증대시켜, 그 폭주나 불안정화를 경계하고 있다. 사실, 중국에 있어서, 그것은 큰 정치, 경제, 그리고 안전 보장 리스크이다. 그것은 장래적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대중국 의존 확 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북한정책이 크게 변화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중국이 북한에 기 대하는 것은, 그 경제체제의 변혁, 즉 시장원리를 도입한 개혁개방이며, 그것을 토대로 하는 사회주의국가로서의 북한의 존속이다. 적어도 당분간, 그것은 결코 남북간의 체제 통일은 아 니다. 예를 들면, 작년, 중국정부는 지린성연변조선족자치주, 지린시, 창춘시를 포함한 도문 강 유역 지역을 개발 개방 선도구 로 지정했다. 이것은 국경 지대에서는 첫 국가급 개발구 이며, 중국정부에 의한 대북한 경제지원이 동북개발계획의 일부로서 추진되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중국의 정책의 본질을 이해하면, 북한의 대중국 의존 확대는 한국에 있어 서 나쁜 상황만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북한의 다음의 지도자로 취임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북한의 경제체제를 변혁시킬 것인가이 기 때문이다. 개발에 수반하는 경제의 개방개혁이 진전되지 않는 가운데, 북한이 정치체제의 변혁으로 나아가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또, 그것 없이 비핵화나 남북통일에 실질적인 진전이 있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따라서, 중국에 의한 북한의 개발 지원은,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 기 위한 기회의 창 일지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 연설에 있듯이, 어쨌건 간에 단 계적인 남북통일이 모색된다면, 거기에 대국화하는 중국의 전략적인 이익이 반영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 때에 비로서 국가연합적인 남북통일의 가능성이 보여 올 것이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북한문제와 한일의 역할 31 <강연 4> 남북관계 현황 및 대북정책 추진방향 김천식( 金 千 植 ) 통일부 통일정책실장 1. 3대 공동체 통일구상과 통일논의와 공론화 제65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3대 공동체 통일구상 을 제시했 다. 즉 우리는 주어진 분단상황의 관리를 넘어서 평화통일을 목표로 삼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반도의 비핵화를 이루어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는 평화공 동체 를 구축하면서, 남북간의 포괄적인 교류 협력을 통해 북한 경제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고, 남북한 경제의 통합을 준비하는 경제공동체 를 이루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궁극적으로는 제도의 장벽을 허물고, 한민족 모두의 존엄과 자유, 삶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민족공동체 를 형성해 나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한민족의 평화통일을 이루자는 것이 3대 공동체 통일구 상 이다. 3가지 공동체는 기능적으로 상호 연계되며, 중첩되어 있어 분절적이거나 단절적 인 것이 아니다. 1 다만, 현실적으로 남북한이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북한의 비핵화 진전이 우선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핵문제로 인해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는 본격적인 협력이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에 대비해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도 준비할 때가 되 었다고 보며, 이 문제를 우리 사회 각계에서 폭넓게 논의해 주기를 제안한다고 밝 혔다. 통일세는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대목이다. 이는 통일준비 논의를 이끌어내는 하나의 화두이다. 통일문제를 논의하는데 가장 현실적이고 피부에 와 닿는 통일세 문제를 내세움으로써 통일을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하고, 논의를 현실적 토대에 두고 진행시키며, 이렇게 함으로 써 통일을 현실적으로 준비해 나가자는 취지로 공론화를 제시한 것이다.

32 남북관계 현황 및 대북정책 추진방향 이제 우리가 통일논의를 전개함에 있어, 우리에게 다가올 통일은 어떠한 모습일 것이며, 이러한 통일을 이루어 가는데 지금부터 통일 전까지 해야할 과제는 무엇이 며, 통일되는 시기에 해야할 과제는 무엇이고, 제도통일이 이루어진 후에 국민형성 과 국민통합을 위해 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를 실질적으로 논의해 가는 것이 필요 하다. 이러한 과제를 추진하기 위하여 재원은 얼마나 필요할 것이며, 그 재원은 어떻게 조달하고, 어떤 우선 순위로 투입할 것인가를 검토하는 것도 통일준비 논의의 핵심 이다. 나아가 통일이 가져 올 가치와 편익까지도 충분히 파악해 보아야 할 것이다. 통일은 비용이 들어가며 부담이 되겠지만, 그에 못지 않는 가치를 창출하고 편익 을 생산하게 된다. 분단국가에서 통일국가로 됐을 때, 그로 인한 정치적 역사적 상 징적 가치와 국가위상의 격상은 경제적 계산 가치를 뛰어넘는 엄청난 것이다. 경제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구체적 편익도 엄청날 것이다. 즉 분단으로 인해 발 생하는 제반비용의 절감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새로운 투자기회와 시장규모의 확대, 해양과 대륙을 잇는데서 창출되는 부의 규모가 매우 클 것이다. 이런 것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해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통일과 관련된 제반측면을 종합적이고 현실적으로 논의해 보고 현실적인 통일준비를 하자는 것이 통일세의 화두가 갖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세금 걷자는 차원을 넘는 문제이다. 또한 당장 통일세를 걷자는 것도 아니다. 2 통일제안은 또한 북한의 급변에 대비하는 것으로 일부의 오해를 받고 있다. 북한 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3 그러나 우리 정부는 공식적으로 북한의 급변사태를 상 정한 통일논의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북한의 급변이 쉽게 일어날 것이라는 가정을 갖고 있지 않다. 3대 공동체 통일구상이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자체가 남북간의 공동체 형성이 라는 중장기적이고 점진적인 평화통일을 전제로 하고 있다. 4 대한민국은 평화통일을 지향하며 1989년에 이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공식적 으로 채택했다. 당시 각계각층의 다양한 통일논의와 초당적 의견수렴을 거쳐 통일 방안을 만들었다. 5 그 기본철학은 남북간에 2개의 체제가 존립하고 있으며, 이질성이 높은 상황에서 갑작스런 국가제도 통일은 어렵다고 보고, 먼저 민족공동체 형성을 통한 통일, 즉 민족사회의 통합을 통한 국가제도의 통일을 추구했다. 그래서 이것은 단계적이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북한문제와 한일의 역할 33 점진적이며, 시간이 걸리는 문제로 보았던 것이다. 남북간 공동체를 이루는 방법은 상호 개방의 확대, 접촉과 교류협력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통일방안은 당시 국제냉전체제의 붕괴와 개방화와 정보화의 새로운 국제 조류 속에서 한반도에서도 냉전적 대결을 해소하고 화해와 협력하며, 통일의 기반 을 닦고자 했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시대정신에서 출발했다. 민족공동체 통일철학은 북한이 과거부터 주장했던 두 체제를 그대로 두고 군사 권과 외교권을 갖는 국가를 즉시 만들자는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 6 과 분명하게 달 랐으며,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었다고 본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기초해서 90년대부터는 남북간 교류협력이 법적 틀 속에서 추진되었고 교류협력은 점진적으 로 증가되었다. 7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통일정책과 대북정책은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도 이러한 방향에서 유지되고 있다. 남북한이 전쟁을 겪었고, 매우 첨예한 대결관계 속에서 남북관계가 진행됐다는 측면에서 볼 때, 남북간의 공동체 형성과정이 순탄할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 며, 우여곡절을 겪으며 진전되어왔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요인은 북한의 핵문제였다. 1993년 김영삼 정부는 매우 전향적인 구상을 갖고 출범 8 하였으나, 북한의 NPT 탈퇴로 초반부터 좌절을 겪었다. 1차 북핵위기가 1994년 제네바 합의로 해소되는 국면으로 접어들었으며, 우리는 북한에 경수로 발전소를 지어주는 합의를 하게 되 었다. 9 이러한 합의가 이행되기 시작하던 때에 김대중 정부가 출범했고,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으로 불리우는 대북 화해협력을 적극 추진했다. 10 그러나 2002년 북한의 핵우라늄 농축 의혹이 제기되면서부터 대북화해협력 정책은 우여곡절을 겪게 되었 고, 2006년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 근본적 검토의 계기를 맞게 되었다. 2. 이명박정부 대북정책의 특징과 북한의 반응 이러한 새로운 정세에서 이명박정부가 출범했다. 이명박정부는 북핵문제가 악화 된 정세여건과 국민들의 기존 정책추진에 대한 비판을 고려하여 대북정책에서 2가 지 기본원칙을 제시했다. 첫째는 북한의 비핵화를 우선적인 과제로 제시했다.

34 남북관계 현황 및 대북정책 추진방향 정부는 북핵문제가 있는 한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도, 진정한 남북간 협력도 어렵 다고 본 것이다. 비핵 개방 3000은 북한 핵문제 해결이 매우 중요한 과제라는 인식 하에 북한의 핵문제 해결을 유도 촉진하기 위한 제안으로 제시되었다. 11 둘째, 남북한이 상호 존중하는 가운데 호혜적 협력을 해 나가자는 입장을 내세웠 다. 그동안 남북관계가 진전되는 가운데서도 국민들의 비판이 상당히 높아갔다. 12 대 표적인 비판으로는 남북관계가 일방적이며, 남북관계가 상식에 맞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명박정부는 국민들의 비판을 수용하여 남북관계를 정상 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즉 남북관계도 이제 상식과 원칙이 통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명박정부는 이러한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유연하게 남북관계를 이끌고자 했다. 정책기조면에서 80년대 말부터 지속되어 온 대북포용정책의 기본입장을 유지했 다. 13 즉 북한에 대해 비핵화와 태도변화를 강하게 요구하면서도, 기왕에 추진되어 왔던 남북간 경협과 교류협력이 지속될 수 있도록 했다. 대북 인도적 지원은 계속 추진하도록 한다는 입장은 남북관계 상황이 매우 어려 운 속에서도 유지했다. 2008년 국가원수에 대한 비난이 계속 되었지만, 두 차례에 걸쳐 식량지원 제의 14 를 했으며, 천안함 피격 사건과 같은 엄중한 상황에서도 순수 인도적 지원은 계속 될 수 있도록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15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대해서도 이를 존중하며, 그 이행문제는 남북대화 를 통해 협의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계속 밝혀왔다. 16 또한 남북간의 현안문제들 을 협의하기 위하여 남북대화를 할 것을 여러차례 제의했다. 이명박정부는 이러한 정책방향을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으로 표명하였다. 17 그러나 북한은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을 거부했다. 북한이 이명박정부 초기에 크 게 보아서 두 가지를 분명하게 요구했다. 첫째, 비핵 개방 3000의 철회를 요구했다. 18 북한은 비핵 개방 3000을 일단 선핵폐기론, 즉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것 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왜곡 선전했다. 또한 이명박정부의 핵문제 중시 정책에 대해서 핵문제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으 로 인해 생긴 문제이기 때문에 미국과 대화를 통해 해결할 것이며, 남한은 이 문제 를 북한과 논의할 필요가 없다는 북한의 기존 주장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북한문제와 한일의 역할 35 이러한 북한의 주장을 이명박정부는 납득할 수 없었다. 북한이 핵실험까지 하고, 핵보유를 공언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이를 무시하고 갈 수 없다. 또한 우 리나라는 북핵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당사자이고, 그것이 남북한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당연히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하고 그 해결과정을 논의하 는데 주 당사자로서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둘째,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그대로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19 북한은 이명박정부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무시하고, 파기하려는 것으로 본 것 같다. 이명박정부는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존중하고 그 이행문제를 남북대화를 통해 협의해 간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대화를 거부하면서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존 중하고 무조건 이행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구조를 보면 이행을 위해 대화를 하도록 되어 있다. 또 이행문제는 그 당시 상황과 국민의 지지도 감안해야 한다. 그래서 검토가 필요한 것이다. 민주정치의 장점은 모든 문제를 교조적으로 보지 않고 유연성과 현실을 감안하여 접근하는 점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민주국가에서 정책의 계승과 변화 발전은 체제의 기본요소인 것이다. 북한은 이점을 간과하고 과거 합의를 무조건 그대로 인정하고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즉 정권의 교체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이다. 북한은 이명박정부를 불신한고,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을 거부하면서, 적대적 대 남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우선적으로 남북대화를 중단했다. 이명박정부가 출범한지 한달 만에 북한 은 모든 남북대화와 당국간의 접촉을 중단하였다. 20 이명박정부가 아직 대북정책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내용을 전혀 알아보지도 않고 대화 를 단절한 것이다.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불신이 늘어난 데에는 대화의 단절이 가 장 중요한 요인이다. 이명박정부 출범이후 남북관계상황을 설명할 때 이점은 반드시 짚어야할 문제이 다. 그리고 북한은 곧이어 이명박 대통령을 지명하여 비방중상 21 하고 각료를 포함하 여 무차별적인 대남비난과 선동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국내 정치에 대해서도 사

36 남북관계 현황 및 대북정책 추진방향 사건건 시비하고 관여하려 했다. 이러한 것은 남북관계에서 지켜야 할 금도를 깨고, 상식과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다. 우리 정부가 2008년 7월 11일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새로운 제안 을 했던 바로 그 날,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 군인의 총격에 의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금강산관광이 중단되었으며, 남북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2008년 하반기 이후 북한의 태도는 더욱 강경해졌다. 군부가 개성공단을 방문하 여 점검하고 폐쇄를 위협 22 하기도 했으며, 12월 1일부터는 남북간 육로통행과 개성 공단 체류인원을 제한했다. 23 북한은 2009년 1월 북한군 총참모부가 남북간 전면 대결태세 진입 을 선언 24 하 고, 그동안 남북간에 맺어진 정치군사적 합의를 모두 파기한다고 공표했다. 25 이후 매우 강경한 조치들을 이어갔다. 3월에는 개성공단 출입을 차단하고, 우리측 근로 자를 억류하는 일이 벌어졌다. 4월 들어서는 장거리 로켓발사, 5월에는 2차 핵실험을 함으로써 북한은 유엔안보 리의 제재를 받게 되었고, 남북관계는 더욱 악화 되었다.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하면서부터 북한에 대화를 제의했으나 북한은 반응 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로켓발사와 핵실험이라는 도발을 함으로써 미국의 대북 불 신을 강화했다. 8월 북한은 클린턴 미국 전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142일 동안 억류했던 여기자 2명을 석방하고 137일동안 억류중이던 개성공단 근로자를 송환했다. 또한 故 김대 중 전 대통령 국장에 북한이 특사조문단을 보냄으로써 남북관계가 일시 화해국면 으로 조정되는 듯 했으나, 11월 북한은 서해 NLL 상에서 대청해전을 일으킴으로써 분위기를 반전시켰으며, 2010년 초부터 북한은 보복성전을 벌이겠다는 선전선동을 공개적으로 했다. 26 이러한 대남강경 정책의 연장선 상에서 서해에서 천안함 피격 사건이 일어났고 본다. 3. 최근 현황 북한은 2010년 3월 26일 우리 영해에 몰래 들어와 우리의 해군 초계함인 천안 함을 어뢰로 공격하여 침몰시켰다. 46명의 우리 해군 장병들이 희생되었다. 천안함 피격 사건은 대한민국을 공격한 북한의 군사도발이며, 남북기본합의서와 정전협정, 유엔헌장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이는 이제까지 북한에 대해 인내해 왔던 우리로서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도발이었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북한문제와 한일의 역할 37 이러한 북한의 도발이 계속된다면, 남북관계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북한이 도발을 하고도 아무런 제재 없이 묵인된다면 그러한 도발을 다시 할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한 관계는 비정상적인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정상적인 남북관 계를 만들기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 정부는 2010년 5월 24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북한에 대해 천안함 피격 사건에 대해 사과와 관련자 처벌 등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남북교류협력 중단 조치를 발표하였다. 27 이에 따라 북한선박의 우리해역 운항 전면 불허, 남북교역 중단, 우리국민의 방 북 불허, 북한에 대한 신규투자 불허, 대북지원 사업 원칙적 보류 등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개성공단사업은 그 특수성을 고려하여 유지하고, 북한의 취약계층을 대상 으로 한 순수 인도적 지원은 계속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와 함께 유엔안보리 의장 성명 채택과 한 미 연합훈련 실시 등 북한의 도발에 대해 외교 군사적 조치도 병행 하였다. 우리의 이와 같은 조치들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음으로써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한민족의 공동번영, 나아가 평화통일을 위한 것이며, 우리는 남북간의 군사적 대결 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28 그러나 북한은 천안함 피격 사건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결과를 부인 하고 우리의 정당한 요구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임의의 시각에 핵억제력에 기초한 우리식(북)의 보복성전 을 벌이겠다 29 는 등 위협적 언동 을 계속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의 조사결과 발표 직후, 祖 平 統 대변인 담화와 총참모부 중대 통고문 등을 통해 남북관계 전면 폐쇄, 남북협력사업 전면 철폐, 군사보장 합의 전면 철 회 를 주장 30 하고, 서해 한 미 연합훈련에 대응하여 다시 한번 서해 해안포 사격을 강행하기도 했다. 다만,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 이후부터는 6자회담 재개를 주장하는 것이 특이하 다. 31 북한이 6자회담에 대해서는 작년 4월 장거리 로켓발사에 대해 안보리 의장성 명이 채택된 것을 계기로 6자회담에 절대 나가지 않겠다고 했었다. 32 그런데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제재가 강화되는 시점에 6자회담 재개를 들고 나 온 것이다. 특히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 8월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33

38 남북관계 현황 및 대북정책 추진방향 최근 북한은 외견상 유화적 태도를 보일 수 있는 몇 가지 대남조치들을 내놓았 다. 즉 9월 4일 북한은 대한적십자의 긴급 수해물자 제공 제의에 대해 쌀과 시멘트 및 수해복구 장비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9월 7일에는 북한측 경제수역을 침범했 다고 억류했던 대승호와 그 선원 7명을 송환했다. 9월 10일에는 금년 추석에 즈음 하여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금강산에서 진행 할 것을 제의했으며, 이번 상봉을 계기 로 인도적 협력이 활성화 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출범 이후 지난 2년반 동안 정책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해왔다. 북한의 위협과 도발에 흔들리지 않고 원칙에 기초한 건강한 남북관계 발전을 추 구해 왔다. 정부는 북한에 대하여 이러한 입장을 분명히 전달했다고 본다. 현재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인해 남북관계는 개성공단과 인도적 지원 외에 모두 막혀있다. 북한은 상당한 경제적 손실을 보는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도 더욱 강화되고 있다. 중국이 북한을 지원한다고 하나, 그것도 유엔안보리 결의 1874호를 위반하지 않 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2009년 말 이루어진 화폐개혁 조치의 실패로 인해 물자부족이 더 악화됐고, 사 회통제와 계획경제의 복원을 위해 폐쇄하려 했던 시장은 다시 열리고 있다. 만성적 인 식량부족은 여전하고 수해까지 겹쳐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 김정일 위원장은 건강악화로 3대 세습 을 서두르고 있다. 44년만에 치러지는 당 대표자회 34 는 이러한 3대 세습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즉 북한으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정치과정이 진행되고 있는데, 경제사정과 외부환 경이 열악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의 이례적인 방중과 카터 미국 전 대통령 초청, 6자회담 의사 표명 및 대남조치 등 최근에 이루어진 북한의 대외조치들은 내부상황과 연관성을 가지 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그러한 일련의 조치를 취하면서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우선 6자회담 재개 의사를 표명하고 있으나,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북한문제와 한일의 역할 39 본 회담까지 가는데 여러 가지 단계를 설정한다거나, 제재 해제를 조건으로 내세 운다거나, 평화체제가 비핵화에 우선하여 수립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 리고 비핵화를 결심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이산가족 상봉행사도 또 다시 일회성으로 제의했다. 1년 내내 이산가족들의 요구 를 외면하다가, 일회에 몇 백명 만나고 다시 상봉의 길이 기약 없이 닫힌다면, 그 것은 인도적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천안함에 대해서는 일체의 책임있는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북한의 최근 변화가 근본적인 변화인지에 대해서는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2009년에도 일시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그것이 근본적 변화가 아닌 전술 적 변화로 판명되었고, 그 결과 남북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4. 정책방향 정부는 앞으로도 원칙에 기초한 건강하고 정상적인 남북관계 발전을 추구해 나 갈 것이다. 남북한이 상호 존중하며 호혜적 협력을 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남북대화는 진정한 대화가 되어야 한다. 남북관계에서는 경제문제만 다루고 정치 군사 및 전략적 문제는 미국과 하겠다는 북한의 자세는 시정되어야 한다. 현재 한반도의 핵심사안인 핵문제를 우리와 다룰 수 없다는 태도도 거두어야 한다. 정부는 정치적 상황과는 무관하게 순수 인도적 문제는 인도적 차원에서 우선적 으로 계속 해 나갈 것이다. 천안함 이후에도 순수 인도적 지원은 계속 되어 왔다. 35 이러한 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이나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 해결 노력도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계속 해 나갈 것이다. 북한도 이러한 인도적 문제는 조건 없이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와야 한다. 오늘 (9.17)개성에서 열리는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40 남북관계 현황 및 대북정책 추진방향 우리는 인도적 차원에서 신의주 수재민들에게 100억원 상당의 물자인 쌀 5kg 100만포대(5천톤)과 시멘트 40kg 25만포태(1만톤), 컵라면 300만개를 조속한 시일 내에 보낼 것이다. 36 우리 내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대규모 식량지원 문제는 순수 인도적 차원을 넘는 문제로서 인도적 지원과는 별도의 기준과 검토가 필요하다. 천안함 피격 사건은 북한이 책임있게 풀어야 한다. 우리 사회 일부에서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우리 정부가 출구를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 37 이 있으나, 정부는 이 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 46명의 희생자가 있고, 국민이 받은 상처가 그대로 있는데 정부가 아무 일도 없 었던 것처럼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북한은 천안함에 대하여 우리 국민이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은 북한의 비핵화를 실질적으로 진전시키는 회담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진정성 있는 의지가 중요하다. 북한이 핵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국제사회는 북한을 도울 수 없다. 우리 역시도 본격적인 협력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 북한이 비핵화 결단을 내리면 우리는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할 것이다. 비핵 개방 3000 은 이러한 구상이다. 북한에게 큰 이익이 되고 남북간, 상생 ( 相 生 ) 공영( 共 榮 ) 하자는 정책이다.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시 후진타오 중국주 석도 북한에 비핵화와 개혁 개방을 강조했다. 따라서 북한 스스로를 위해서도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리고 실천에 들 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한 결단이 없으면, 6자회담은 회담을 위한 회담에 머물 수 밖에 없으며, 그러한 회담은 반대한다는 것이 6자회담 참가국의 공통된 의견이 다. 38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북한문제와 한일의 역할 41 <주석> 1 통일부장관, 현대북한연구회 창립 10주년 기념 학술회의 축사(2010.8.24) 2 이명박 대통령, 통일과 관련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자는 것이지, 지금 당장 국민에게 과세할 것은 아니다. (2010.8.17, 청와대 홍보수석실 브리핑) 3 북한 조평통 대변인 중통기자 답변, 통일세란 어리석기 그지없는 망상인 북급변사태를 념두 에 둔 극히 불순한 것 (2010.8.17), 박지원 민주당 비대위 대표, 통일세를 신설하겠다고 하 는 것은 북한을 자극하는 것이다. 마치 흡수통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많 다. (2010.8.16, 민주당 비대위 전제회의) 4 통일부장관, 현대북한연구회 창립 10주년 기념 학술회의 축사(2010.8.24) 5 1992 통일백서(통일부) 6 2009 북한개요(통일연구원) 7 남북교역액 증가 추이를 보면 90년 남북교류협력법, 납북협력기금법 제정 이후 91년부터 비약적으로 증가 : 89년 19백만불 90년 14백만불 '91년 112백만불(1억불 돌파) 95년 287백만불(2억불 돌파) 2005년 10억 5천만불 2008년 18억 2천만불 2009 년 16억 8천만불 8 김영삼 대통령,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으며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민족보 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1993.2.25, 대통령 취임사) 9 1997 통일백서(통일부) 10 김대중 대통령, 북한에 대해 당면한 3원칙을 밝히겠습니다. 첫째, 어떠한 무력도발도 결코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둘째, 우리는 북한을 해치거나 흡수할 생각이 없습니다. 셋째, 남북간 의 화해와 협력이 가능한 분야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1998.2.25, 대통령 취임사) 11 이명박 대통령, 비핵 개방 3000 구상에서 밝힌 것처럼,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을 택하면 남북협력에 새 지평이 열릴 것입니다. (2008.2.25, 대통령 취임사) 12 민주평통자문회의 사무처 국민여론조사(2008.3.19~3.21), 지난 10년간 대북포용정책 기조 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80%가 완전 폐기(6.7%) 또는 수정 보완(73.4%)에 응답, 전적 계승은 16.7% 13 이명박정부 대북정책은 이렇습니다 (2008.8월, 통일연구원) 14 대북 옥수수 5만톤 지원 제안 (2008.5.12, 6.30) 15 이명박 대통령, 대국민 담화문(2010.5.24) 16 이명박 대통령, 국회 개원연설(20008.7.11) 및 민주평통자문회의 국내지역회의 개회사 (2008.9.22) 17 이명박정부 대북정책은 이렇습니다 (2008.8월, 통일연구원) 18 북한 노동신문(2008.4.14), 비핵 개방 3000은 명백히 북남대결과 북침전쟁의 논리로서 용납 될 수 없다. 19 북한 적십자 대변인 담화(2008.8.29), 반민족적인 대결정책을 버리고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이행하는 데로 나와야 할 것이다. 20 북한 장성급군사회담 단장 명의 전통문(2008.3.29), 우리 군대는 그것을 모든 북남대화와 접촉을 중단하려는 귀측 당국의 립장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귀측 당국자들의 군사분계선 통과를 전면 차단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게 될 것입니다. 21 북한 노동신문(2008.4.1), 대통령 실명 거론 최초 비난 22 북한 국방위 정책실장 김영철 등 군부 조사단 개성공단 실태조사(2008.11.6) 23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지구 체류 인원 제한 및 통행시간 축소, 개성관광 및 남북간 화물열차

42 남북관계 현황 및 대북정책 추진방향 운행 중단 등 육로통행 제한조치 실시(2008.12.1) 24 북한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 외세를 등에 업고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부정하고 대결의 길을 선택한 이상 부득불 전면대결 태세에 진입할 것이다. (2009.1.17) 25 북한 조평통 대변인 성명, 정치 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와 관련된 모든 합의사항 무효화 (2009.1.30) 26 북한 국방위 대변인 성명, 남조선당국자들의 본거지를 송두리채 날려보내기 위한 거족적인 보복성전이 개시될 것이다. (2010.1.15) 27 이명박 대통령, 대국민 담화문(2010.5.24) / 통일부장관, 3부 장관 합동기자회견(2010.5.24) 28 이명박 대통령, 대국민 담화문(2010.5.24) 29 북한 국방위 대변인 성명,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이 의도적으로 정세를 전쟁접경에로 몰아가 고 있는 데 대응하여 필요한 임의의 시기에 핵억제력에 기초한 우리 식의 보복성전을 개시 하게 될 것이다. (2010.7.24) 30 북한 조평통 대변인 담화, 이제부터 북남관계전면페쇄, 북남불가침합의전면파기, 북남협력사 업 전면철폐의 단호한 행동조치에 들어간다는것을 정식 선포한다. (2010.5.25), 북한 총참 모부 중대통고문, 우리 혁명무력의 실제적인 중대조치가 시행된다는 것을 엄숙히 통고한다. 북남협력교류와 관련하여 우리 군대가 리행하게 되여있는 모든 군사적 보장 조치들을 전면 철회할 것이다. (2010.5.27) 31 신선호 UN주재 북한 대사, 우리는 평등한 6자회담을 통하여 평화협정 체결과 비핵화 실현 하기 위한 노력을 일관되게 기울여 나갈 것이다. (2010.7.9, 기자회견) 32 북한 외무성 성명, 6자회담에 다시는 절대로 참가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합의에도 더 이상 구속되지 않을 것이다. (2009.4.14) 33 김정일 국방위원장, 중국과 긴밀한 대화와 협력을 통해 조속한 시일내에 6자회담을 재개하 기를 희망한다. (2010.8.30, 中 신화통신사) 34 북한 조선중앙통신, 조선로동당대표자회를 소집할데 대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결 정서가 23일 발표, 우리 당과 혁명발전의 새로운 요구를 반영하여 조선로동당 최고지도기 관 선거를 위한 조선로동당대표자회를 주체99(2010)년 9월 상순에 소집할 것을 결정 (2010.6.26) 35 5.24 조치 이후 6.8~9.13까지 취약계층 대상 순수 인도적 지원물자 39건 32.3억 상당 반출 승인 36 대한적십자사 총재, 기자회견(2010.9.13) 37 경향신문, 이산상봉, 남북대화 6자회담 기회로 삼아야 제하 사설(2010.9.13) 한겨레신문, 상당규모, 적기 쌀 지원으로 남북관계 풀어야 제하 사설(2010.9.8) 박지원 민주당 비대위 대표, 지금 중국이나 미국은 출구전략을 쓰고 있지 않느냐, 우리 정부도 그쪽 방향으로 간 다고 하면 천안함 문제와 대북지원 문제는 투 트랙으로 분리 대응해야 한다. (2010.9.10, MBC 시선집중 인터뷰) 38 보즈워스 美 대북정책 특별대표, 미국은 북한과 대화를 위한 대화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우리는 의미 있는 결과가 도출될 수 있는 협상을 원한다. (2010.9.13, 인터뷰) 크롤리 美 국무부 차관보, 우리는 북한의 근본적인 변화, 지역내 긴장 완화, 남한을 포함한 주변국과의 건설적인 관계 형성, 국제 의무 준수 및 9.19 공동성명에 부합하는 긍정적 조치 이행을 원한다. 이러한 조치들은 북한이 취해야 하는 것들이며, 북한이 우리가 건설적인 방 향으로 고려하는 쪽으로 움직인다면 우리는 호응할 것이다. (2010.9.10, 브리핑)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북한문제와 한일의 역할 43 <보고 1> 북한의 화폐개혁과 주민생활 수준변화 홍성국( 洪 性 國 ) (재)극동문제연구소 북한연구실장 Ⅰ. 북한 화폐개혁의 함의 1. 화폐개혁은 경제수단을 빌린 정치적 처방 북한경제란 자본주의경제와는 달리 정치가 지배하는 경제이다. 단적으로 말한 다면, 북한당국은 경제적 필요만을 위해 경제정책이나 조치를 취하는 경우는 드 물다. 지금까지 북한당국이 기회만 있으면 북한경제는 정치와 경제가 일체화된 경제 라고 강조해 왔는데, 그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북한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거의 대부분의 경제조치를 추 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인플레이션 진정이 화폐개혁의 목적 이라고 하지만, 이는 화폐개혁 이후 일시적 경제현상 으로 나타날 수는 있으 나 북한당국의 의도하는 근본적 목적은 아니다. 북한의 인플레이션은 공급부족 인플레이션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보더라도 화폐개혁이라는 처방은 적절한 해 법이 되지 못하며 북한당국 또한 이를 모를 까닭이 없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유휴통화의 흡수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북한의 상품 유통방법은 과거 김일성시대와 달리 대부분 거래형태 로 바뀌었다. 중앙공급 형태는 무현금으로 결제되는 계획부문에만 남아 있다. 따라서 북한내에는 사실 상 유휴화폐(사장통화)가 거의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주민들끼리의 화폐 유통 속도 역시 과거보다 훨씬 활발해졌다. 그러므로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화폐유통 속도를 공고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북한의 화폐개혁은 최근 김정일의 건강 이상을 계기로 하여 회자되고 있는 북한 의 후계자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튼튼한 계획경제체제를 후계자에게 넘겨주고 싶 은 것이 김정일의 절박한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장마당이 활성화되어 있는 느슨 한 현 상황은 후계체제에 위협요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계획체제의 강화를 위해 화폐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이것 역시 정치적 문제에 속한다. 2. 화폐개혁은 강력한 체제 복원이 목적 북한은 2004년도부터 우리식 사회주의 로의 복귀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 하기 시작했다. 매년 집단주의, 자력갱생 등을 강조하며 계획과 통제의 중

44 북한의 화폐개혁과 주민생활 수준변화 요성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2009년에 와서 극에 달하였다. 연초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사회주의체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하면서 체제 결속을 선동하고 나섰다. 2009년 5월부터 시작된 150일 전투 와 그 뒤를 이은 100일 전투 등은 과 거 김일성 시대에 활용되었던 사회주의 노력경쟁운동의 전형이다. 이들 노력경 쟁운동은 김정일 정권 출범 이후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그동안 강력하게 추진하 지 못했던 구체적인 노력동원운동들이었다. 2009년도에 북한당국이 행한 경제조치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5월부터 시작된 150일 전투 와 11월에 단행된 화폐개혁 이다. 이 두 조치는 겉으 로 보기에 하나는 주민을 대상으로 한 노력동원 조치이고, 다른 하나는 금융조 치이어서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목적으로 단행된 것이다. 최근에 넘어온 탈북자 증언을 종합해 보면 이들 두 조치 사이에 공통되는 특 징이 있다. 그것은 장마당을 통제하고 주민들을 직장으로 복귀시키는 것이다. 북한은 150일 전투 의 경우, 전투 기간 중 노동 현장에서 벗어나 장마당에 나 가 상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하고, 이를 어길 경우 상응하는 형벌이 나 불이익을 부과하였다. 장마당에 나도는 주민들을 모두 공장 기업소, 협동농 장 등 사회주의 체제하의 직장으로 복귀시키기 위해서이다. 화폐개혁의 경우도 방법은 다르지만, 장마당을 통제하기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강도면에서 볼 때, 150일 전투 보다 더 강력한 상거래 차단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150일 전 투 기간 중에는 북한주민들이 나름대로 간부들에게 뇌물 등으로 장마당에 서 장사할 수 있어서 그래도 장마당이 덜 위축되었다. 그러나 화폐개혁 이후에 는 그 정도가 더욱 극심해졌다. 북한당국은 화폐교환 시 일정 한도액만을 교환 토록 하는 방식으로 장사꾼 들이 힘들여 번 돈을 대부분 휴지 조각으로 만들 었다. 김정일 등장 이래 북한당국은 선군정치를 통해 정치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 을 목표로 삼아 왔다. 그리고 2012년까지 이들을 모두 완성하여 강성대국의 새 로운 문을 열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이는 북한당국이 핵 개발로 정치강국과 군사강국은 건설되었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정치강국은 후계자문 제만 해결되면 된다. 이제 남은 것은 경제강국이다. 또 경제강국은 후계자문제 와 맞물려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북한당국이 말하는 경제강국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주목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말하는 경제강국이란 우리식 사회주의, 다시 말하면 강 력한 계획체제에 의해서 작동되는 경제를 지칭하는 것이다. 북한당국이라고 해서 주민의 경제난 탈피에 무관심하다고 단언할 필요는 없지만, 이 문제는 강력한 계획 체제의 강화 다음의 문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이 말하는 경제강국 건설문제 역시 체제적 요구이며 정치적 요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경제는 중앙당국의 정치적 요구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북한 이 강성대국 건설을 완성하기까지, 즉 후계구도에 의해 우리식 사회주의 의 기 틀을 확립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2년도 남지 않았다. 매우 다급한 상황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북한문제와 한일의 역할 45 다. 현재 북한은 계획기능이 현저하게 약화됨으로써 사실상 사회주의 계획체제 를 포기해야 하는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김정일이 넘겨줄 차기 정권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든 계획기능을 원상회복시켜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계획기능의 원상회복을 위해서는 계획의 통제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계획당국 의 강력한 통제는 튼튼한 재정으로부터 나온다. 북한과 같은 고도의 중앙집권적 경제에서 재정이 고갈되면 통제력은 현저히 약화된다. 현재 북한 계획당국의 재 정은 고갈 상태에 있다. 핵 개발에 따른 무리한 재정지출, 비효율적 경제사업 추진에 따른 심각한 누수현상, 경제순환구조의 왜곡 등은 북한의 재정적자 누적 을 심화시켰다. 특히 2008년 남한정부의 대북 지원이 중단되고부터 북한의 재 정사정 악화는 빠른 속도로 심화되어 갔다. 이와 같은 재정 고갈 상태에서 북한 이 바라는 경제강국 건설은 한낱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북한당국은 재정 고갈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 모종의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인식한 것 같다. 그 특단의 조치가 화폐개혁으로 구 체화된 것이다. 즉, 북한은 주민을 대상으로 일종의 경제적 파산을 선언했다고 볼 수 있다. 모름지기 현대사회에서의 화폐란 정부 보증하에 국민들에게 주어지 는 정부부채라고 말할 수 있다. 북한당국은 북한주민에게 진 부채(화폐)를 화폐 개혁이라는 이름아래 강제로 휴지조각화한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화폐개혁에 대해 북한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목적으로 시행한 경제조치라고 분석하는 것은 너무 점잖은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Ⅱ. 북한주민의 월평균 임금과 생활수준 변화 1. 북한주민의 월평균 임금수준 북한의 임금은 계획당국에 의해 직책 또는 업종에 따라 다르게 책정된다. 북 한주민의 임금분포를 보면, 저소득 계층인 일반 근로자 및 협동농장원과 상업유 통종사자, 교육보건 종사자 등 비 생산직이 절대다수인 전체 노동인구의 75.8% 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임금수준이 높은 당ㆍ정 고급관료, 기능직종, 중 노동자 등은 24.2%에 불과한 실정이다. 1 이는 북한 근로자 임금이 저임금 수준 에서 편중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변해 주는 것이 된다. 뿐만 아니라 신분상 으로 볼 때, 북한 핵심계층의 수는 전체 인구 가운데 28%이고 일반 계층은 72%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 여기에서 핵심계층은 북한체제를 실질적 으로 이끌어나가는 지배계층을 말하는 것으로 중앙 당ㆍ군 및 내각의 고위간부 등 각종 특혜를 받는 계층을 말한다. 또한 북한에도 신분상으로는 중간계층이 존재한다. 그러나 오늘날 심각한 경제난으로 이들 중간계층의 경제생활은 일반 1 Central Bureau of Statistics, D P R Korea 2008 Population Census National Report (Pyongyang; 2009), Table 38 p. 202. 동 자료에서 2008년 현재 높은 임금을 받는 인구수 는 전체노동인구 12,185천명 가운데 24.2%인 1,201천명으로 나타났다. 2 연합뉴스, 북한 용어 400선집 (1999), p. 208.

46 북한의 화폐개혁과 주민생활 수준변화 주민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생활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일반주민과도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소득분포 면에서 보면, 높은 임금을 받는 소수의 핵심계층 과 낮은 임금을 받는 절대다수의 일반계층으로 극단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2008년 현재 일반 근로자나 사무직의 경우 월 2,800원~3,000원(19~20 달 러)의 임금을 받았으며,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탄광, 제철소 및 제련소, 화학 공장 등의 특급기업소의 중노동자와 유해노동자가 20,000~30,000원 이상 (135~210달러 이상)의 높은 노력보수를 받아 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3 북한은 화폐개혁과 더불어 임금인상조치를 시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조치 역시 장마당을 나도는 노동자들을 직장으로 복귀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이 며, 북한의 계획체제 복원 및 강화라는 목표와 밀접히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분 석된다. 실제로 북한 내각의 재정성에서는 임금을 300~400원선을 기준으로 책 정한 바 있다는 미확인 정보가 전해진 바 있다. 4 이것은 신구화폐교환비율 5 을 그대로 적용하였을 때 이전보다 훨씬 높은 임금 수준이다. 그러나 외국화폐와의 환율은 물가상승과 더불어 상승했을 것이며, 이에 따라 달러 표시 임금은 이전 보다 하락하였을 것이 틀림없다. 이상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첫째, 화폐개 혁이 물가의 급등을 가져와 북한주민의 실질임금을 하락시켰다는 점이다. 현재 로서는 북한이 달러화 유통을 금지시키고 있어 달러화와의 교환비율을 직접적 으로 파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국 위엔화와의 환율이 급등세를 보이는 것으 로 보아서 암시장에서의 대미 달러 환율 역시 크게 올랐을 것이다. 6 따라서 달 러화 표시 북한임금은 화폐개혁 이전보다 크게 줄어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로, 화폐개혁 이후 북한주민의 소득 수입원이 이전보다 축소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북한당국이 돈 많은 상인들의 상업자금을 대량흡수한데다가, 장마당의 통제 강화로 위축됨으로써 북한주민의 사적 소득원이 줄어들었고, 주로 직장에 서 주는 소득원에 의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주민의 월평균 임금수준을 구태여 수치로 나타낸다면, 화폐개혁 이전에는 최대 4.500원이며, 가계소득은 맞벌이를 가정하였을 때 9,000원 수준으로 판단 된다. 또한 화폐개혁 이후에는 북한당국이 체제 강화를 위해 임금인상조치를 시 행하였다고 한다면, 월평균 임금 수준은 300~400원 수준이며, 따라서 맞벌이 가족의 가계소득은 600~800원이 된다. 이는 신구 화폐교환비율을 감안할 때 화폐개혁 이전의 60,000~80,000원에 해당하므로, 결과적으로 화폐개혁 이전보 다 명목임금이 7~9배 정도 증가한 셈이 된다. 3 재)극동문제연구소, 탈북자를 통한 최근 북한실태 조사 (2009.3), pp.44~48. 4 열린통신 제75호(2010.4.10). 5 교환비율 = 구권 100원 : 신권 1원 6 중국화폐 1위엔 당 북한 원화의 환율은 2.25에는 80원, 2.28에는 150원, 3.1에는 270원으 로 급등하였다고 한다. 열린통신 제85호(2010. 6.7) 참조.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 북한문제와 한일의 역할 47 <표 1> 화폐개혁 전후 북한주민의 월평균 임금 수준 년 도 1인당 평균 임금 월평균 가계소득 전년비 증가율 비 고 2009 최대 4,500원 최대 9,000원 - 구권 2010 300~400원 600원~800원 7~9배 신권 2. 화폐개혁을 전후한 북한주민의 최저생계비 그렇다면 북한주민의 최저생계비는 얼마나 될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까 지 북한의 일반주민이 기본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최저생계비에 대해 지금까지 파악된 바는 없다. 이는 무엇보다도 북한의 통계자료 미공개로 인해 최저생계비 를 산출할 수 있는 구체적 데이터가 결여된데 연유한다. 여기에서는 일반주민에게 충족시켜야 할 최소한의 식량 수요를 북한의 최저 생계비로 간주하기로 한다. 즉, 북한에 있어서 최저생계비는 쌀, 옥수수 등 주 식의 충족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 는 북한경제의 상황에 미루어 볼 때 결코 무리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일반주민이 생계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식량, 특히 주식인 쌀과 옥 수수 수요를 최저생계비를 최저생계비로 간주하여 산출하기로 한다. FAO/WFP는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에 처해 있음을 감안하여 북한주민의 영양 섭취량은 일반인의 약 75% 수준으로 보고, 이를 통해 연간 식량필요량을 추정 한 바 있다. 즉, 북한주민의 영양섭취량을 1일 평균 기본 영양섭취량 (2,130Kcal)의 약 75% 수준인 1,600Kcal로 보고, 연간 식량필요량을 167Kg으 로 추정한 바 있다. 7 이에 의할 경우, 북한주민 1인당 식량필요량은 월평균으로 는 13.9Kg에 이르며, 1일 평균으로는 458g에 이르는 셈이 된다. 북한에서 장마당을 통해 거래되는 식량가격은 지역과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 지만, 2009년 현재 대체로 쌀은 2,500원/Kg, 그리고 옥수수는 1,500원/Kg선에 서 거래되었다. 8 이러한 가격을 토대로 1인당 최저생계비를 산출하면, 쌀로만 소비할 경우에는 月 34,750원, 옥수수만 소비할 경우에는 월 20,850원에 이르 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가구당 최저생계비는 4인 가족을 기준으로 할 경우, 83,400원~139,000원에 이른다고 할 수 있다. 같은 방식으로 하여 2009년 11월 화폐개혁 이후의 1인당 및 가구당 최저생 계비를 산출하여 보자. 화폐개혁 이래로 북한의 식량가격은 극히 불안정한 상태 에서 등락을 지속하는 가운데 전반적으로는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2010년 3월 현재 북한의 쌀 가격은 500~600원대/Kg에서, 옥수수 가격은 300~400원 7 FAO/WFP, ibid. 8 재)극동문제연구소, 전게서, pp.4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