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어떻게 시청자를 잃었는가 한계에 부딪친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중계방송 먼저 야들야들 이라는 말로 시작해보자. 사전을 찾아보면 이 부사는 반들반들 윤기가 돌고 보들보들한 모양 을 뜻한다. 이런 풀이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모든 말은 맥락 속에서 활용되고 이해된다. 낱말 사전으로는 이 세상 거의 모든 단어가 문제 될 리 없다. 그러나 사회적 문화적 관계적 맥락 속에서, 단어는 활용되고 평가된다. 자, 사전의 뜻풀이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야들야들 로 예문을 만들어보자. 이봐, 김 부장. 자네 부인 말이야 피부가 아주 좋아졌더군. 야들야들해. 이 사람이, 자네 딸은 다 컸더구먼. 살결이 야들야들해. 허 참, 이 친구가. 아니 자네 부인 비법이 뭔가. 그렇게 야들야들해서야. 이 두 사람, 곧 죽기 살기로 멱살 잡고 싸우지 않을까.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한신대 정보교양대학 교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7월 31일, 심의위는 제30차 소위원회에서, 올림픽에 출전한 여자 선수들의 외 모를 묘사한 KBS1의 <2016 리우올림픽>과 SBS의 <리우 2016>을 문 제없음 이라고 결정 내렸다. <2016 리우올림픽>은 비치발리볼 중계 도중 캐스터가 비키니 와 해운대 등 경기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대화를 나눴다. <리우 2016>은 유 도 경기 도중 캐스터가 몽골 여자 선수를 두고 보기에는 야들야들해 보이 리우올림픽 비치발리볼 경기 는데 상당히 억세게 경기를 치르는 선수 라고 묘사했다. 수영 경기에서는 해설 위원이 박수받을 만하죠. 얼굴도 예쁘게 생겼고 말이죠 라고 발언했다. 이 사안들이 성차별 소지가 있는 내용인가에 대하여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0조(양성평등) 제3항을 적용해야 한 다는 의견 제시에 따라 심의위는 회의를 열었고, 문제없음 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결정에 대하여 비판적인 댓글 하나를 소개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자. 어떤 이는 이런 댓글 을 달았다. 당신 부인이나 딸한테 야들야들하다고 해도 이젠 문제가 없겠네요. 이 댓글은, 실은 그 표현을 상당히 완화한 것이다. 2016. 08+09 VOL. 07 46
리우올림픽 메인 스타디움 저조한 시청률, 시차 탓이다? 올림픽은, 선수들에게는 4년 동안 노력한 경기력을 평가받는 순간이지만, 동시에 전 세계 미디어 로서는 그동안 누적된 방송 기술과 콘텐츠 마케팅 능력을 검증받는 순간이기도 하다. 아울러 변 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수용자들이 어떻게 콘텐츠를 소비하는지 확인하는, 그야말로 격전의 현 장 이다. 이 격전이 압축적으로 표현되는 수치가 시청률이다. 우선 이 수치로 보건대, 이번 올림픽의 국내 중계는 각 방송사가 기대한 것, 그 이하의 성적에 그쳤다. 시청률 조사 기관 닐슨코리아는 리우올림픽 개막 직전에 주요 경기 시간대가 새벽에 몰리 면서 본방송 시청률로는 역대 최저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고 밝혔다. 실제로 이는 금세 확인되 었다. 지상파 3사의 역대 올림픽 중계방송 평균 시청률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34.2%, 2004 년 아테네올림픽 31.5%, 2008년 베이징올림픽 32%, 2012년 런던올림픽 23.1%를 기록했다. 리우올림픽의 경우 KBS1은 10.5%, MBC는 5.3%, SBS는 4.3%였다. 그런데 이를 밤낮이 뒤바뀌는 시차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것은 게으른 판단이다. 위에 언급한 역대 올림픽 개막식은 대부분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중 런던은 우리 시간으로 새벽 5시에 개 막했는데, 이는 아침 8시였던 리우보다 고약한 시간대다. 2004년 아테네 개막식은 동아시아에 서는 잠을 자는 시간대였는데도 시청률은 31.5%였다. 그렇다면 이 개막식 시청률 추이는 시차가 아니라 올림픽에 대한 관심의 변화를 일차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시드니의 34.2%가 런던의 23.1%를 거쳐 리우에 이르러 10% 안팎에 머문 것은, 올림픽 그 자체에 대한 본질적 인식의 변화를 압축하여 보여주는 것이지 결코 시차 때문이 라고 말할 수 없다. 2016. 08+09 VOL. 07 47
여러 종목의 경기 중에서, 상당히 관심이 높았던 8월 16일 여자 배구 한국 대 네덜란드의 8 강전은 올림픽 중계로서는 가장 프라임 시간대라고 할 수 있는 밤 10시였다. 따라서 지상파 3사 시청률 합계 50% 이상이 예측되었으나 실제로는 합계 30% 수준에 그쳤다. 이렇게 대회 개막 이 후 예상보다 시청률이 저조하자 각 방송사가 이전과 달리 결방 을 적게 편성했다. SBS는 8월 15 일(월) 프라임 시간대에 올림픽 경기 대신 <생활의 달인>과 <닥터스>를 방영했다. 이전 같으면 뉴스를 제외하고는, 줄줄이 경기 화면으로 채웠을 시간대였는데 말이다. 저조한 시청률이 시차만의 문제가 아니라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올림픽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국가의 집합적 열망이나 시각적 쾌락이나 발전 국가식 목표 달성의 가치 추구라는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이 이제는 필요하다. 리우올림픽 한국 선수단의 입장 사라진 올림픽 특수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대한 한국갤럽 의 조사를 보자. 아테네올림픽 폐막 직후 한국갤럽이 발표한 한국인이 본 제28회 아테네올림픽 문서를 보면 올림픽에 좋은 성적을 염원하는 국민들은 밤잠을 설치며 응원을 하느라 생활 리듬이 깨지 는 경우도 많았다 고 적고 있다. 그러나 런던과 소치, 리우에 이르러 이렇게 생 활 리듬 이 깨질 정도로 올림픽을 보는 사람은 크게 줄었다. 위 문서를 보면 아테네올림픽 중계 로 인해 생활이 즐거워졌는지 문의한바 더 즐거워졌다 의 응답률이 무려 77.5%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리우올림픽은? 한국갤럽은 리우 올림픽 폐막 직후 같은 조사를 진행했는데, 55% 정도가 더 즐거웠다 고 답했고 36%는 그렇지 않았다 고 답했다. 4년마다 실시한 이 조사의 같은 문항, 즉 올림픽을 통해 생활이 즐거워졌는가 라는 유의미 한 사회심리학적 질문에 대한 응답률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78%,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89%, 2012년 런던올림픽 84%였으나,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후에는 67%로 하락했고 이번 리 우에서는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올림픽이 더 이상 국가지대사 도 황금알을 낳는 올림픽 특 수 도 아니며, 시청률의 고점을 찍는 대박 시즌 이 아닐 수 있다는 추론은 이러한 수치가 반증한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냉전 시기 강대국이나 신생 독립국가가 올림픽을 통해 부국강병의 국민국가 건설 신드롬을 만들었던 20세기와 달리, 21세기에는 온 국민의 열망을 담아 성황리에 치르는 올림픽 패러다임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국가에서는 올림픽을 사회 인 프라 구축의 계기로 삼는 일도 사양한다. 오히려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인프라를 개발하고 건설 하는 일이 올림픽 이후 적자와 파산으로 이어지는 저주 가 되고 있다. 이를 목도하면서 국민 통 합 은 물론 경제 유발 효과 도 과연 타당한 것인가, 의문이 제기된다. 2016. 08+09 VOL. 07 48
리우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선수단 (왼쪽부터 김우진, 구본찬, 이승윤) 함께 보는 올림픽에서 혼자 보는 올림픽으로 더 중요한 것은 올림픽을 통해 국민 이 되고 애국 을 실천하고 국가 를 드높인다는 식의 발상 자 체가 효력을 잃었다는 점이다. 20세기의 국민 은 21세기에 이르러 시민 이 되었고, 더 일상적이 고 다채로운 문화에 자신의 감각과 이념과 정서를 투사한다. 물론 박태환이나 김연아가 최고 성 적을 냈을 때는 기꺼이 박수를 치지만, 그것이 반드시 국위선양 때문은 아니다. 지겹고 고된 훈 련을 견뎌낸 젊은이들에 대한 격려의 성격이 더 강하다. 올림픽에 대한 열망은 이제 국민국가적 국위선양이 아니라 개인화되고 문화화되는 추세다. 단적으로 말해 개인적인 감수성과 문화적인 취향의 관점에서 재미있으면 보고 노잼이면 안 보 는 시대에 이른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이러한 추세를 면밀히 읽고 2020 어젠다 를 발표했다. 그들은 올 림픽이 더 이상 개발도상국의 대규모 국책 사업이 될 수 없다고 인정했다. 다시 말해, 그들과 개최 국과 다국적기업과 거대 미디어가 올림픽 이란 이름으로 크게 판돈을 걸고 한몫 잡는 시대는 끝 나가고 있다고 인정했다. IOC는 1개국 1도시가 과중한 압력을 받으며 겨우 올림픽을 치른 뒤에 거의 파산 지경에 처하 는 상황을 여러 번 겪었다. 그러면서 두세 개 나라 혹은 서너 개 도시가 공동 개최를 하거나, 무분 별하게 환경을 파괴하고 뒷감당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재정을 쏟아붓는 행위를 조절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아직 아이디어 차원이긴 하지만, 그리스 등 제3 지대에 섬을 하나 만들어서 영구 개최를 하자는 의견도 나올 정도다. 하계올림픽은 대략 50조, 동계올림픽은 대략 20~30조 원의 비용이 투입되는데, 앞으로 어느 나라 어느 도시가 이익을 낼 수 있겠느냐는 냉정한 인식이다. 미디어의 주된 능동적 소비자는 도심지의 젊은 생활자들인데, 이들의 올림픽 감수성은 국가 중 심에서 도시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모두 함께 모여 텔레비전을 보는 게 아니라 모바일 환경에서 지극히 개인화된 모니터를 잠시 응시하다가 여러 콘텐츠를 향해 순간적으로 분산되는 양상이다. 올림픽을 둘러싼 전반적인 환경과 감수성의 변화를 수용자 측면에서 잘 보여주는 것이 인터 넷 서비스다. 생중계를 독점하다시피 한 지상파의 올림픽 특수는 거의 사라지고 하이라이트를 서비스하는 포털이 올림픽 반짝 효과를 누린 것이 그 예다. 이를 경계하여 지상파 3사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에 높은 재전송 료를 매겨 하이라이트 다시보기 정도만 제공하도록 압 력을 가했다. 그럼에도 하이라이트 전송을 포함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총체적 올림픽 콘텐츠 마 케팅은 반짝 효과를 얻었고, 생중계 시장 이 열린 SK브로드밴드, KT올레, LG유플러 스 등의 모바일 TV 시장도 크게 열렸다. 요 컨대 리우올림픽은 지상파 중심, 국가 주의 중심, 금메달 중심 같은 기존 올림 픽 중계 패러다임이 변화될 수밖에 없 는, 변화해야만 하는 중요한 전환점으 로 기억될 필요가 있다. 2016. 08+09 VOL. 07 49
리우올림픽 유도 경기(왼쪽)와 배드민턴 경기(오른쪽) 패러다임의 변화를 직시하자 광고업계에 따르면 8월 22일 폐막까지 지상파 3사의 올림픽 중계방송 광고 판매량은 사별로 평균 80억 원가량에 불과하다고 알려졌다. 개막 초기 사별 평균 60억 원을 기록했으나 폐막까 지 광고 판매량은 겨우 30%가량 증가하는 데 그쳤다. 3사를 합하면 240억 원 정도인데, 이는 2012년 런던올림픽(574억 원)의 41%에 불과하다. 이를 시차 때문이라고 한다면, 리우의 치안 부재 때문이라고 한다면, 주요 종목에서 메달이 안 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큰 오산이다. 국민국가 이념의 변화, 국가적 욕망의 집약적 스펙터 클이었던 올림픽의 전반적 퇴조, 감수성의 다변화에 따른 시장의 축소와 변형, 개별화되고 모바 일화되는 미디어 수용 변화 등이 그 원인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이런 패러다임의 거시적 변화를 검토하지 못하고, 그저 옛날 방식으로, 국가주의 방식으로, 금메달 지상주의 방식으로 접근하다 보니 남성 가부장 승리 지상주의 중계를 남발한다. 해설이 라기보다는 소리 지르기요, 격려라기보다는 희롱이며, 분석이라기보다는 정신 승리 일변도의 수 준 낮은 중계로 일관한다. 이 과정에서 파생한 숱한 판단 착오와 낙후된 언어와 수준 낮은 편견이 야들야들 이라는 표 현으로 드러난 셈이다. 바로 이런 수준으로 올림픽 방송을 준비하고 스포츠를 표현하는 상황, 나 는 그것을 심각하게 문제 있음 이라고 판단한다. 2016. 08+09 VOL. 07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