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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강의 계획 석 식 : 오후 5시00분 오후 5시50분 1교시 : 오후 6시00분 오후 6시50분 2교시 : 오후 7시00분 오후 7시50분 3교시 : 오후 8시00분 오후 8시50분 년 월 일 회 주 제 5 (1) 입학식 15 (2) 호스피스완화의료의 현황과 전망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교수 허 대 석) 한국인의 죽음에 대한 이해(I) (서강대학교 종교학과교수 최 수 빈) 한국인의 죽음에 대한 이해(II) (서강대학교 종교학과교수 최 수 빈) 2011 9 22 (3) 29 (4)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이해(I)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이 경 식)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이해(II)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이 경 식) 호스피스완화의료돌봄계획 (국립암센터 간호과 남 은 정) 말기암환자전인적평가 (충남대병원간호과장 황 관 옥) 나의생사관(I) (과정담당주임교수) 나의생사관(II) (과정담당주임교수) 강사 사정에 의하여 일정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주소 : (우) 410-769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로 323번지 대표전화 1588-8110 홈페이지 http://www.edu.ncc.re.kr

PROFILE 성 명 (한글) 허 대 석 (한자) 許 大 錫 소 속 서울대학교 의대 내과학교실 직위 교 수 전공 종양내과 전화번호 연구실 02-2072-2857 e-mail heo1013@snu.ac.kr 내 용 주 요 학 력 및 경 력 학 력 1980 서울대 의과대학 의학사 1983 서울대 의과대학원 석사 1986 서울대 의과대학원 박사 경 력 1984. 2 내과전문의 1984. 3~1986. 2 서울대학교 병원 혈액종양내과 전임의 1986-1989 미국 University of Pittsburgh, Pittsburgh Cancer Institute연구원 1993-1994 미국 University of Michigan 교환교수 2004. 1-2006. 1 서울대학교 의료정책연구실장 2004-2008 서울대학교병원 암센터 소장 2006-2008 첨단유전자세포센터 소장 2008-현재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원장 1990-현재 서울의대 내과 교수 1998-현재 서울대학교병원 호스피스실 실장 2003-2005: Chairman, Scientific Committee, 6th Asia-Pacific Hospice Conference 2003-2005: Chairman, Scientific Committee, 18th Asia-Pacific Cancer Congress 주 요 연 구 논 문 및 저 서 연구논문 및 저서 Oh DY, Kim JH, Kim DW, Im SA, Kim TY, Heo DS, Bang YJ, Kim NK. Antibiotic use during the last days of life in cancer patients. Eur J Cancer Care (Engl). 2006 Mar;15(1):74-9 Oh DY, Kim JH, Kim DW, Im SA, Kim TY, Heo DS, Bang YJ, Kim NK. CPR or DNR? End-of-life decision in Korean cancer patients: a single center's experience. Support Care Cancer. 2006 Feb;14(2):103-8. Oh DY, Kim JE, Lee CH, Lim JS, Jung KH, Heo DS, Bang YJ, Kim NK. Discrepancies among patients, family members, and physicians in Korea in terms of values regarding the withholding of treatment from patients with terminal malignancies. Cancer. 2004 May 1;100(9):1961-6. Yun YH, Lee CG, Kim SY, Lee SW, Heo DS, Kim JS, Lee KS, Hong YS, Lee JS, You CH. The attitudes of cancer patients and their families toward the disclosure of terminal illness. J Clin Oncol. 2004 Jan 15;22(2):307-14.

호스피스-완화의료의 현황과 전망 Dilemmas in End-of-Life Decision Making for the Korean Patients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허 대 석 인공호흡기와 같은 연명장치는 급성질환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환자들의 목숨을 구하는 의 학발전의 큰 성과였다. 그러나 이 장치가 자연스럽게 임종을 맞이해야 할 만성 질환자까지 널리 적용되면서, 의미 있는 삶이 아니라 고통 받는 기간을 연장시키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 라에는 1년에 24만 여명이 사망하고 있는데, 대부분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게 되면서, 임종과정 에서 어느 선까지 연명치료를 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의료진과 환자 가족들이 갈 등을 겪는 일이 진료 현장에서 점점 증가하고 있다. 회생가능성이 희박한 환자의 연명치료와 관련된 대법원의 판결(2009년 5월)은 다음과 같은 의 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의학적 결정을 하는 주체의 변화이다. 전통적으로 의학적 결정은 의사 가 하고 환자가 동의하는 방식이었으나, 이 판결은 연명장치를 원하지 않는다는 환자의 자기결정 권을 의사의 기술적 판단보다 우선하고 있다. 둘째, 의료행위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기준에 의료기술뿐만 아니라 환자의 가치관도 고려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해당병원은 8%의 확률로 의식이 회복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연명장치를 중단 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으나, 다른 병원의 의사는 회생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여 기 술적 판단이 애매한 상태였다. 기술적 판단이 불확실한 상황에 대하여, 법원은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원하지 않았다는 생명에 대한 가치관을 최종 판결의 근거로 삼고 있다. 연명장치와 같은 문제에서 기술적 판단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가치 를 고려하여 결정했다는 것은, 선진국들이 수십 년의 논의를 거쳐 결정한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에 관한 제도를 우리나라도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단계에 이르 렀음을 의미한다. 셋째,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 은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환자의 권리 측면에서 논의하 는 것이 필요하며, 심폐소생술금지(do-not-resuscitate; DNR)도 무의미한 심폐소생술을 거부할 수 있는 환자의 권리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적절하다. 연명장치중단에 관여한 의사를 살인방 조죄로 처벌한 보라매병원 사건의 영향으로, 이 논의가 중환자 치료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의사들 의 책임문제를 면해주기 위한 것처럼 오해되고 있는 측면이 있으나, 논의의 본질은 환자의 자기 결정권에 관한 것이다. 한편,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연명치료와 관련된 진료 관행은 아직 큰 변 화를 보이고 있지 않다. - 1 -

1. 무의미한 연명치료 실태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연명치료 실태조사를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공동으로 실시 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중환자실을 운영하고 있는 총 308개의 의료기관중 256개 의료 기관의 회신 결과를 종합하면, 2009년 7월 22일 12시를 기준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고 있 는 실태는 표 1과 같다. 표 1. 전국 의료기관의 무의미한 연명치료 대상자 입원 현황(2009년 7월 22일 기준) 유형 환자수 비율(%) 1 뇌사(뇌사 판정을 받지 않았으나, 임상적으로 뇌사로 판정된 환자) 77 5.0% 2 3개월이상 지속적 식물상태를 보이는 환자 286 18.4% 말기암 환자 659 42.4% 3 기저 질병이 치료에 반응을 뇌질환 환자 보이지 않는 말기(6개월이내에 (뇌졸증 등) 192 12.3% 사망이 예상: 2주이상 병원에서 말기 호흡부전환자 157 10.1% 입원중인 환자) 기타 184 11.8% 합계 1,555 100% 우리나라에서는 장기이식에 관한 상황에서만 뇌사가 사망으로 인정되고 있다. 장기이식이외의 상황에서 발생된 뇌사상태 환자에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합법적이지 못하다. 죽음의 정의 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은 모순이다. 뇌사 환자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 지 않을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환자군은 말기 암환자들이다. 또,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 는 지속적 식물상태 환자들도 18.4%였다. 이 조사는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생존 하는 환자를 주된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가정이나 일반병실에서 연명치료를 하고 있는 환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국가전체로 볼때는 훨씬 많은 환자 및 가족들이 연명치료 문제로 어려 움에 처해 있다고 판단된다. 한편,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협조를 받아 실시한 만 성질환으로 인한 사망자의 연명치료 실태 조사는 또 다른 측면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표 2의 자료는 2007년 사망자중 건강보험심사청구기록에 근거하여 만성질환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182,307명을 대상으로 조사되었다. 임종 직전에 의료기관에서 심폐소생술 혹은 인공호흡기를 적용했었는지 여부를 조사한 결 과, 인공호흡기는 16.5%에서 적용되었고 심폐소생술은 17.6%에서 이루어졌다. 이 자료를 다르게 해석하면 사망자중 82.4%는 임종과정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인공호흡기도 83.5%에서 적용되지 않았다. 현행 우리나라의 법체계에 의하면 임종과정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았다면, 환자를 소생시키기 위해 의료진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법적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 2 -

그러나, 진료현장에서는 의료진과 환자 가족간의 협의로 관행적으로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 는 경우가 82.4%이다. 법과 진료현장사이에 큰 간극이 있다. 표 2. 만성질환사망자 연명치료실태(2007년 기준, 182,307명 대상) 시행 중단(유보) 인공호흡기 16.5% 83.5% 심폐소생술 17.6% 82.4% 2. 생각과 행동의 괴리 대부분의 환자나 그 가족들은 말기라는 상태를 환자에게 통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문조사 에 응답하고 있다. 또, 사전의료지시서를 통해 환자본인의 가치관을 연명치료여부의 결정에 반영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의사나 가족들은 환자에게 임종이 임 박했음을 알리는 것을 꺼리고 있으며, 사전의료지시서에 서명하는 주체는 대부분 환자의 가족들 이다. 2-1. 나쁜 소식 전하기 불치병 환자에게 병의 상태를 제대로 알리기에 대하여, 환자 96%가 찬성하였고 가족들은 78% 가 찬성하고 있다(2004년 발표). 2010년 발표된 481명의 말기 암 환자에 대한 조사에서 환자 중 58%는 말기를 알고 있었다. 직접 의사로부터 통보를 받은 경우는 56.2%, 가족이 알려준 경 우가 10.7%,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본인이 스스로 짐작한 경우가 28.5%였다. 한편 말기 환자중 78.6%가 병의 상태에 대하여 정확히 알려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한편, 말기 환자가 가족들 혹은 의료진과 임종 문제를 상의하는 경우는 20-3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달리 이야기하면 70-80%의 환자는 임종과정에서 본인의 의사를 제대로 밝히거나 가족들이나 의료진과 대화를 하지 못한 채 임종을 맞고 있다. 2-2. 사전의료지시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조사에서 대부분의 국민들이(71-90%), 환자의 사전의사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답하고 있다. 그러나, 심폐소생술거부(DNR)와 같은 사전의료지시서에 환자가 직 접 서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0.002%=1/479). 대부분 가족들이 환자를 대리하여 서명하고 있다. 2004년 발표된 서울대학교병원 내과 조사결과, 사전의료지시서에 대한 설문조사에 대하여 환 자 가족들이 환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환자와 직접 면담이 가능한 경우가 12.3%에 불과하였다. 또, 이중에서 사전의료지시서에 대한 논의를 거부하는 환자들이 있어, 실제 사전의 료지시서의 구체적인 항목에 대한 의견을 피력할 수 있었던 환자는 전체 대상환자의 7.9%에 불 과하였다. - 3 -

표 3. 사전의료지시서 작성이 가능한 경우 조사 탈락 사유 잔여 환자 조사 대상 환자 총수 (진행기 혹은 말기 암) 114 환자 가족과 면담이 가능 환자 가족의 조사 거부 (17) 97 한 경우 가족의 의견은 조사에 반영되었으나, 환자 환자 본인과 면담이 가능 14 에게 접근하는 것을 가족이 원하지 않음 한 경우 (12.3%) (97) 최종 조사에 환자가 참여 9 환자가 조사 거부 (5) 한 경우 (7.9%) 3. 연명치료 보류/유보 vs. 제거/중단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스님의 임종은 자연스러운 죽음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연세대병원 김할머니의 경우, 존엄사 혹은 소극적 안락사라는 용어로 논란을 야기하였다. 당사자들이 가졌던 가치관, 절차는 유사함에도 한국사회는 연명치료의 유보와 중단은 다른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표 4) 표 4. 김수환 추기경과 김 할머니의 상황 비교 김 수환 추기경 (87/남) 김 할머니 (77/여) 가치관 사전의료지시서 작성 대리인 의미없는 생명 연장을 위한 어떤 조치도 하지 말아 달라 인공호흡기는 절대 안된다 하지 않음 의사: 교구청에 연명치료중단에 대해 공증 요구 정 진석 추기경: 책임지겠다 내가 병원에서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호흡기는 끼우지 말라 하지 않음 4명의 자녀들: 공동으로 문제제기 연명치료 withhold (유보) withdraw (제거/중단) 인공호흡기와 같은 연명치료의 유보와 중단을 대부분의 문화권이나 종교에서는 동일한 윤리적 잣대로 받아들이고 있고, 법적으로도 동일하게 인정받고 있다. 특이한 점은 유대교와 그리스정 교, 유교권에서는 두가지 문제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윤리적으로 다른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 4 -

표 5. 문화권 혹은 종교에 따른 연명치료에 대한 수용의 차이점 보류/유보 (withhold) 제거/중단 (withdraw) Catholics yes yes Protestants yes yes Greek Orthodox no no Muslims yes yes Orthodox Jews yes no Buddhists yes yes Hindus & Sikhs yes yes Taoism most most Confucianism no no 2009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일반국민 997명 및 의료인 503명을 대상으로 죽음이 임박한 말기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처음부터 달지 않는 것과 부착했다가 제거하는 것은 윤리적, 법적으 로 같은가 다른가? 고 설문조사한 결과는 그림 1과 같다. 일반인 68%와 의료인중 71%가 연명치 료의 유보와 중단은 다른 윤리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 결과는 한국에서는 의학지식과는 무 관하게, 문화적인 영향에 의하여 연명치료의 윤리적 기준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그림 1). 그림 1. 연명치료의 유보와 중단의 차이점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한국보건의료연구원, 2009) 4. 의료집착 우리나라 병원에서 환자들이 수액주사를 맞고 있는 것은 흔히 보게 되는 모습이다. 이에 반하 여 미국이나 유럽의 호스피스에서 말기 암 환자임에도 대부분의 경우 수액주사를 맞지 않고 있 다. 2004년도 17개 대형병원에서 암으로 사망한 3,75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0%에서 임종 1개월전 시점에 항암제를 투약받고 있었다(그림 2). 비슷한 조사에서 10%에 - 5 -

서 항암제를 투약받고 있는 미국과 대비되는 결과이다. 60% 50% 48.7% 47.7% 한 국 미국 40% 45.9% 43.9% 38.6% 30% 35% 30.9% 20% 22% 10% 10% 0% 6개월전 5개월전 4개월전 3개월전 2개월전 1개월전 그림 2. 한국과 미국의 암 환자에서 사망전 항암화학요법을 받은 비율 한국에서 총 의료비중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7.4%임에 반하여, OECD평균은 16.7%이다. 행위별수가제도 등의 영향으로 한국에서는 검사나 투약은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환자를 돌 보는 행위(care)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판단된다. 5. 자기결정권 회생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 에 대한 논의가 문제의 본질이다. 그런데, 2009년 연세대 김 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논의된 주된 관점은 죽음의 모습이었다. 일단 연명치료를 시작한 다음에 연명장치를 제거하는 것은 존엄사인가? 소극 적 안락사는 아닌가? 등이 언론매체의 제목이었다. 논의의 관점부터 제대로 설정해야 할 때이다. 논의의 목적은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연명치료여부 등에 대한 진료계획을 사전에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advance care planning). 이를 위해서는 환자가 본인의 상태에 대하 여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고, 또 임종과정의 진료계획에 대하여 의료진 및 가족들과 대화가 가능 하여야 한다. 환자가 병식이 있고 가족간에 대화가 가능한 경우, 환자가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하고, 이에 근거한 의학적 결정이 이루어지면 된다. 그런데, 말기환자의 대부분(70-80% 이상)에서 환자가 병식이 없거나 가족간에 대화가 불가능하여, 사전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미국의 경우, 연방법인 Patient Self-Determination Act를 통해 의료진에게 설명의무를 부가하고 있다.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된 환자에 대하여, 의료집착적 접근외에도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고 호스피스-완화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하고, 사전의료지시서 작성을 의무화하였다. 우리와 비슷한 문화적 여건을 지닌 대만의 경우는 가까운 가족에 의한 대리 결정을 허용하였 다. 일본의 경우는 다음과 같이 추정적 의사의 인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 가족이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그 추정 의사를 존중해, 환자에게 있 어서의 최선의 치료 방침을 취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 6 -

- 가족이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환자에게 있어서 무엇이 최선일까에 대해서 가족과 충분히 서로 이야기해, 환자에게 있어서의 최선의 치료 방침을 취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우리나라에서 연명치료와 관련된 제도화 논의가 벽에 부딪힌 이유는 자기결정권을 어떻게 반 영할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병식이 있고 의사결정이 가능한 경우는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하도록 하면 되지만, 대부분의 말기환자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의사에게 설명의무를 부과하거나, 대만처럼 대리결정 을 인정하거나, 일본처럼 추정적 의사를 인정하여야 한다. 그런데, 의사의 설명의무부과에 대하 여는 미온적이며, 대리결정이나 추정적 의사에 의한 결정은 악용가능성 때문에 반대하고 있다. 만약, 본인이 작성한 사전의료지시서에 근거한 결정만 합법적이고, 대리 혹은 추정적 의사를 불법으로 규정하면, 이제까지 관행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행하지 않던 83%의 임종 환자의 의료진이나 가족들은 범법자가 되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최대 의 과제이다. <참고문헌> 1 허대석 (2008).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할 권리. 대한의사협회지 51(6):524-529 2. 일본후생노동성: 종말기 의료의 결정 프로세스에 관한 가이드라인, 2007 3. 臺 灣 行 政 院 衛 生 暑 : 安 寧 緩 和 醫 療 條 例, 2000 4. 배종면, 공주영, 이재란, 허대석, 고윤석: 전국 의료기관의 연명치료 대상자 입원 현황. 대한중 환자의학회지 25(1), 2010 (In Press) 5. Yun YH, Lee CG, Kim SY, Lee SW, Heo DS, Kim JS, Lee KS, Hong YS, Lee JS, You CH. The attitudes of cancer patients and their families toward the disclosure of terminal illness. J Clin Oncol. 2004 Jan 15;22(2):307-14 6. Yun YH, Kwon YC, Lee MK, Lee WJ, Jung KH, Do YR, Kim S, Heo DS, Choi JS, Park SY. Experiences and Attitudes of Patients With Terminal Cancer and Their Family Caregivers Toward the Disclosure of Terminal Illness. J Clinical Oncology 2010 Mar 8 (Epub) 7. Bulow HH, et al: The world s major religions points of view on end-of-life decision in the ICU. Intensive Care Medicine 2008: 34(3), 423-430. 8. David F Kelly. Contemporary Catholic Health Care Ethics. 2004. Georgetown University Press 9. Yun YH, Kwak M, Park SM, Kim S, Choi JS, Lim HY, Lee CG, Choi YS, Hong YS, Kim SY, Heo DS. Chemotherapy use and associated factors among cancer patients near the end of life. Oncology. 2007;72(3-4):164-71 10.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위한 사회적 합의안 제시. 2009.10. - 7 -

PROFILE 성 명 (한글) 최 수 빈 (한자) 崔 秀 嬪 소 속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직위 대우교수 전공 중국종교 전화번호 연구실 010-7722-9089 e-mail seraphinchoi@empal.com 내 용 주 요 학 력 및 경 력 학 력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 박사(종교학) 경 력 일본 와세다 대학교 외국인 연구원 역임 가톨릭대학교 인간학연구원 연구원 역임 서강대학교 종교연구소 선임연구원 역임 광운대학교 교양학부 강사 가톨릭 대학교 강사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대우교수 연구논문 및 저서 주 요 연 구 논 문 생태주의와 에코페미니즘 (공저) 사람의 종교, 종교의 사람 (공저) 십이지 이야기 (역저) <도성( 道 性 )관념을 중심으로 살펴본 도교의 구원관 본제경( 本 際 經 ) 에 나타난 구원가능 성>, <도교 경전에 대한 종교학적 이해> <노자도덕경>을 통해 조명해 본 '여성해방' 등 다 수의 논문 및 저 서

한국인의 죽음관 Ⅰ. 들어가는 말 예로부터 (인간은) 모두 죽는다. 1) 라는 논어( 論 語 ) 의 말이나, 우리의 삶은 끝 이 있다. 2) 라는 장자( 莊 子 ) 의 표현처럼,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인간의 일 생이다. 죽음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가장 평등한 조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 음이라는 동일한 사건에 대한 해석은 각 개인, 혹은 종교, 민족마다 차이를 나타낸 다. 죽음에 대한 이해 안에는 바로 그 사회의 세계관이 집약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 다.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인도, 중국에 이르기까지 그 시초로부터 인 류는 알 수 없는 터널인 죽음에 대해 답 없는 답 을 말해왔다. 인간의 사고와 추리 가 멈추는 곳, 그렇기에 인간의 이성에게는 가장 어둡고 알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인 죽음은 인간 누구에게나 가장 피하고 싶은,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지적 난제였으며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죽음에 대해 결론을 지을 수 없는 지적 싸움을 계속해 왔다. 본 논문은 역사적으로 인류가 남긴 죽음의 이해 가운데 특별히 한국문화의 배경이 되는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국인의 심성 기저에 자리 잡 고 있는 죽음의 윤곽을 그려보고자 한다. 한 연구소에서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인의 죽음관에 대한 설문 조사 3) 에 따르면 한국인은 70.5%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고 응답자의 과 반수 이상이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응답자의 과반수 이상이 죽고 싶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해 반해 죽음 에 대해 대비하고 있는 경우는 20.1%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이 조사에 따 르면 한국인은 사후세계에 대한 문제나 영혼의 존재 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 을 알 수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사후세계나 영혼의 존재에 더욱 강한 믿음을 소 유하며 종교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후에 다음 세상이 있다는 견해 가 66.7%이며 이 세상에서 한 일에 따라 사후세계의 양상도 결정된다는 의식이 높 은 것으로 나타난다. 사후세계에 대한 한국인들의 사고를 결정하는 데에는 그리스 도교와 불교의 내세관이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후의 영혼이 살아 있는 후손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 의견이 70%정도이며 그것도 제사장소에서 만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아직까지도 상장례 의식을 할 때 전통유교식을 따르는 사람들의 비율이 51.4%로 가장 높게 나 1) 自 古 皆 有 死,... 論 語 顔 淵 篇 2) 吾 生 也 有 涯... 莊 子 養 生 主 3) 이재운, 한국인의 죽음관에 대한 설문조사 보고 전주사학 (전주대학교 역사무화연구소, 1999) pp. 1-61 참조 - 1 -

타나고 그 뒤를 이어 개신교가 25.9%, 불교가 10.6%, 천주교가 7.1%의 비율을 나 타낸다. 이상과 같은 자료를 근거로 생각해 보면 한국인의 죽음관은 어느 특정종교나 신 앙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인들이 소유한 다양한 종교문화의 영향을 골고루 받아 형 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물론 점차 세속화가 강해지고 세속적 학문주의나 과학적 사 고가 보편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한국인들의 일상적 의식 표면에 나 타나는 죽음은 비교적 합리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그러나 막 상 자신의 죽음이 목전에 놓이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맞이한 경우에는 죽음 에 대한 의학적 혹은 과학적 설명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누구 나 다 죽음을 단순히 생물학적 육체의 종결이며 삶의 끝이며 완전한 존재의 소멸로 바라보고 그러한 존재의 소멸을 그저 당연하고 편안하게 바라보지는 못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합리적거나 이성적이지도 않은, 그리고 매우 복잡미묘한 한국인의 죽음관을 형성 하는 데에는 우리 민족 공통의 종교라도 보아도 좋을 유교를 가장 큰 틀로 해서, 윤회사상을 말하는 불교, 그리고 신선과 불사를 이야기하는 도교, 그리고 천국과 영 생을 말하는 그리스도교의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이해가 골고루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유교는 매우 세속적 종교라는 특성상 특정한 종교활동이 나 타나지 않지만 현대 한국인의 삶에서도 여전히 문화와 의식 저변에서 살아 숨쉬고 있으며 한국인의 죽음관도 기본적으로 이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얼 마전 타계한 노무현 대통령이 유서에서 죽음을 자연의 한 조각 으로 돌아간다고 한 표현역시 유교나 도교와 같은 동아시아 전통종교의 죽음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II. 유교에서 바라보는 죽음 1. 중국의 세계관과 인간, 그리고 생사( 生 死 )의 문제 서구 유일신 전통이나 인도의 종교전통과 비교해 볼 때, 중국의 종교--유교와 도 교--는 저세상, 혹은 사후의 세계에 대해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그 다지 힘을 기울이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중국인들에게 살아있는 것은 좋은 것이며 이 세상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행복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중국에 서는 소크라테스나 피타고라스와 같이 죽음을 육체로부터의 영혼의 해방이라고 설 명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 구원은 사후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든가, 혹은 저세상적인 것으로 설명되기보다는 현생에서 깨달음에 이르고 현생에서 그 깨달음 을 실천 혹은 실현하는 방향으로 설명된다. 거꾸로 죽음은 필연적이며, 때때로 그것 - 2 -

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지만, 이상적인 인간의 상태와 연결 짓지는 않는다. 또한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영속적인 정체성이 정신, 혹은 영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육신이 죽어도 계속해서 존재하는 불멸의 영혼 등은 상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중국 고유의 전통적 세계관에 기초한다. 유교와 불교 구별 없이 중국의 종교에서는 우주 만물이 기( 氣 )라고 하는 근본적인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리고 송대( 宋 代 ) 이후에 출현한 신유학과 같은 경우에는 이를 보다 구체화하여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이 리( 理 )와 기( 氣 )로 구성 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4) 즉 모든 사물은 리( 理 )라고 하는 원리에 따라 기( 氣 )라고 하는 기본인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로 기( 氣 )의 이합( 離 合 ), 취산( 聚 散 )에 의해 생 겨나고 사라진다고 본다. 기( 氣 ) 개념은 물질과 정신 모두에 소통되는 개념이다. 따 라서 기는 물질도 정신도 아니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중국의 기 이론은 서구철학 과 같이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적 체계와 달리, 물질과 정신 양자 사이의 소통가능 성을 제시하고 있다. 시간관에 있어서도 서구 중심의 유일신 전통과 중국의 종교전통은 차이를 보인 다. 서구의 유일신 종교 전통은 직선적 시간관과 미래에 도달할 종말에 대한 관념 을 가지고 있는 것에 반하여 동아시아 전통은 순환적 시간관을 가지고 있으며 직선 적 시간관이나 미래종말론, 혹은 메시아사상이 강하지 않다. 일부 도교의 교리에서 메시아사상이나 종말론적 사상이 제시되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중국 종교에서 이러한 사상은 주류를 이루지 못한다. 2. 공자가 말한 죽음 인간의 생명이 유한하고, 죽음으로써 인간 존재가 소멸된다는 것은 인간을 불안 과 두려움과 공허감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그러나 유교에서는 죽은 다음에 인간이 어떤 상태로 존재하는지, 그리고 어떤 세계에서 존재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으로 형 상화하는 표현을 찾아보기 어렵다. 유교는 공자로부터 합리적 정신이 투철하여 자연현상뿐 아니라 인간세계의 일도 모두 원리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귀신이나 죽음을 이해 하는 데에도 이러한 합리성은 여전히 반영된다. 공자는 그의 제자 계로( 季 路, 혹은 자로)가 사후세계의 神 的 실체로서의 귀신을 섬기는 일과 죽음에 대해 물어보자 다 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4) 성리학자인 주자에 의해 이기론( 理 氣 論 )이 체계화되면서 이 사상은 유교의 세계관으로 정착하게 된다 - 3 -

자로( 子 路 )가 귀신섬기는 일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 람을 섬기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 그럼 죽 음은 어떠하신지요?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 수 있겠는 가? 5) 또한 <<논어집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낮과 밤이 바뀌는 것이 바로 삶과 죽음의 도리이다. 삶의 도를 알면 곧 죽음의 도를 알게 된다. 사람을 섬기는 도를 다하는 것이 바로 귀 신을 섬기는 도를 다하는 것이다. 삶과 죽음, 사람과 귀신은 하나이 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것이다. 6) 이상에서 보는 것처럼 공자를 필두로 한 유교의 관심은 실질적으로 인간이 인식 하고 행동으로 반응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되어 있다. 귀신과 죽음에 대한 공자의 대답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사후 세계에 대한 깊 은 사색이나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대한 비관과 걱정, 죽음에 대한 공포와 긴장, 죽 음 자체에 대하여 스스로를 속이거나 낭만적으로 미화하는 등의 현상은 공자나 유가의 눈으로 볼 때 모두 비이성적이고 비현실적이다. 그러므로 살아 있다면 삶의 가치를 귀 중히 아끼고 최대한 실현하며, 하늘의 뜻에 순응하고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며 현실 세 계의 감성적 생활이 주는 행복을 충분히 향유해야 한다. 이처럼 죽음의 존재는 승인하 면서도 이것을 절대로 논하지 않는 태도는 이성적이며 현실적인 정신을 가진 삶의 태 도이다. 공자를 비롯한 유가를 회의주의자라 의심하기도 하고 현세주의자라 규정하 기도 한다. 그러나 공자는 죽음의 세계로 접근하고 이해하는 길이 삶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방향을 제시한 것이요, 죽음과 삶을 마주하는 유교적 인간의 자세를 제 시한 것이다. 죽음의 의미란 삶의 태도에 따라 결정될 수 있는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삶과 죽음, 사람과 귀신이 별개의 이치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죽 음이나 귀신같이 일상적 경험이 가능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별도의 관심을 보 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바꾸어 이해하면 삶을 알면 죽음은 저절로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공자가, 죽어서 이루어지는 일이나 귀신과 같은 존재를 부인했다기 보다는 이를 우리의 경험세계의 이치에 어긋나는 괴이한 실체나 현상으로는 이해하 5) 季 路 問 事 鬼 神 子 曰 未 能 事 人 焉 能 事 鬼 敢 問 死 曰 未 知 生 焉 知 死 << 論 語 >> < 先 進 篇 > 6) << 論 語 集 註 >> 先 進, 程 子 曰 : 晝 夜 者, 死 生 之 道 也. 知 生 之 道, 則 知 死 之 道 盡 事 人 之 道, 則 盡 事 鬼 之 道. 死 生 人 鬼, 一 而 二, 二 而 一 者 也. 或 言 夫 子 不 告 子 路, 不 知 此 乃 所 以 深 告 之 也. - 4 -

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 여러 속에서 귀와 신에게 제사를 드릴 것을 말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그러한 의식을 통해서 사람 들로 하여금 도덕심성을 가꾸고 인간적으로 성숙한 행동을 하게끔 하고자 했기 때 문이다. 즉 인귀( 人 鬼 )에게 제사드림으로써 孝 를, 天 神 에게 제사드림으로써 敬 을 마 음속에 길러주려는 것이었다. 3. 신유학( 新 儒 學 )에서 보는 죽음 불가지와 비합리 영역보다는 합리와 실천 가능한 영역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세계를 법칙적으로 파악하려는 경향의 씨앗이 이미 공자에게서 배태되었으며 이는 신유교( 新 儒 敎 )를 집대성한 주자( 朱 子 )에게서 꽃을 피우게 된다. 주자는 귀신과 생 사를 이기론( 理 氣 論 ) 의해 설명하고자 하였다. 精, 氣, 神 모두 하나의 氣 이며 모두 하나의 이치에 의해 운영된다. 이러한 기의 응취와 취산에 의해 육체와 정신, 인간 과 귀신, 삶과 죽음이 구분될 뿐이라는 것이다. 新 유가에서는 魂 은 陽 의 神 이요, 魄 은 陰 의 神 으로서 이른바 形 氣 의 主 가된다고 설명한다. 귀신도 바로 氣 의 굴신운동 일 뿐 살아있는 사람과 별개의 다른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유교는 죽음 역시 精, 氣, 神 의 변화로 설명한다. 신유교에 따르면 죽음은 맨 처음에 먼저 魂 이 분리되어 흩어지고 다음에 氣 와 精 이 하나의 근원적인 기( 一 元 氣 )로 흩어져 돌아가 개체 인간이 영원히 없어지는 과정이다. 신유교에서는 삶과 죽 음을 모든 만물이 생기고 죽는 이치에 의한 것으로 파악한다. 사람이 죽어 흩어져 하나의 원기로 돌아간다면 제사는 무슨 의미인가? 이에 대한 신유교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응취한 기가 죽으면 흩어지는데 그 속도에 있어 완 급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한다. 다시 말해 사람이 죽어서 일원기( 一 元 氣 )로 흩어지는 것이 상리( 常 理 )이지만 때로는 일정기간 뭉친 상태로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러나 이것도 언제인가는 모두 흩어져 하나의 기로 변화된다고 신유교는 말한다. 조 상의 기가 사후에 모두 흩어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제사를 지내야 하는 것은 개 체로서의 기가 흩어져도 조상과 후손이 하나의 이치( 理 )는 영원히 남아 이 양자를 연결하고 있으며 따라서 조상의 정신과 영혼은 흩어지더라도 조상에서 파생한 자손 의 정신과 영혼에는 그 이치를 담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손인 나의 존재 적 근거가 바로 조상이므로 조상에 대한 공경심을 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는 것이다. 제사는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재확인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4. 유교인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 (1) 호생오사( 好 生 惡 死 )로부터 안심입명( 安 心 立 命 )으로의 전환 - 5 -

유학자들은 死 生 에 정해진 명이 있으며,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태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7) 이러한 사고는 죽음이 인간 존재의 당연한 귀결이므로 죽 음에 대하여 호오( 好 惡 ), 즉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과 태도를 취하는 것은 매우 부 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낳는다. 그러한 호오의 감정을 전환하여 안심입명( 安 心 立 命 ) 으로 나아가는 것이 유학자들의 이상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의 언사로부터 그 러한 사고를 읽을 수 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더라도 괜찮다. 8) 천지간에 생명이 있는 것들 중에서도 사람이 가장 귀하다. 초목은 제 멋대로 자라나면서 시들어 가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금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슬픔을 알지 못한다. 한편 사람은 죽음을 슬퍼할 줄 알 지만 죽게 된다는 사실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죽음을 슬퍼하는 것 은 천지만물의 생성을 관장하는 것이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천 지만물의 변화를 닫아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슬퍼하는 것 과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과 금수 간의 커다란 차이이다. 9) (2) 彼 岸 보다는 此 岸 을 중시하는 태도 앞에서도 말했듯이 유교에는 분명한 내세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상례의 의 절에서도 사후의 존재가 돌아가서 안정을 얻는 곳이 바로 조선들의 혼이 계신 곳이라 고 하지만, 더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생명의 근원처인 天 地 로 회귀한다는 것이 유교적 사고이다. 그러나 그 천지 역시 별도의 차원의 세계가 아니고 삶의 공간과 다름없는 공 간이다. <<주자가례>>의 불교적 상례의 금지 이유에서 보듯이, 유교적 사고에서는, 불 교나 기독교 이슬람에서 강조하는 彼 岸 의 실재는 사실상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공이 공자에게 "죽은 사람이 세상의 일을 알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공자 는 "만약 죽은 사람이 알 수 있다고 말한다면 효자와 현손들이 자신의 삶을 내버려 두 고 죽음에만 매달리지 않을까 두렵고,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불효한 자손이 죽은 사 7) << 論 語 >> 顔 淵, 司 馬 牛 憂 曰 : 人 皆 有 兄 弟, 我 獨 亡. 子 夏 曰 : 商 聞 之 矣 : 死 生 有 命, 富 貴 在 天. 君 子 敬 而 無 失, 與 人 恭 而 有 禮, 四 海 之 內 皆 兄 弟 也, 君 子 何 患 乎 無 兄 弟 也? 8) << 論 語 >> 里 仁, 子 曰 朝 聞 道 夕 死 可 矣. 9) 王 夫 之, << 周 易 外 傳 >> - 6 -

람을 매장하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내다 버리지 않을까 두렵다. 죽은 사람이 세상의 일 을 알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네가 죽은 후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니, 그 때 가서 알 아도 늦지 않을 것이다. 10) 이 글은 인간의 삶이 죽음의 세계보다 더 중요하다는 유교적 사고의 일단을 잘 보여 준다. 이 글에서 '죽은 사람이 앎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자손이 죽음에만 매달 릴까 두렵다'고 하는 언급은 실상 타 종교에서 절대자에 의하여 구원이 가능하다고 하 는 사고에 대한 비판적 경계의 태도와 통한다. 이러한 사고로부터 유교에서 죽음의 세 계나 일에 대하여 깊이 천착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학자들이 그렇다고 죽음의 세계 혹은 그 일에 대하여 일종의 판단중지를 하 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보다는 죽음과 삶의 일이 일관된 이치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는 유교적 성찰을 통해서 현실의 삶에 대해서 더욱 적극적이고 성실한 삶의 자세를 추구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 이래로 유학자들이죽음 이후의 세계가 삶 의 세계와 그 이치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지만, 여기에는 죽음이란 천명( 天 命 )에 의한 당연한 귀결이며, 그것은 삶의 한 과정으로서 거역할 수 없는 당위 임을 경건하게 수용하는 태도가 나타난다. 그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가 유학자들에게는 당연시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죽음 이후에도 어떠한 형태의 삶이 지속될 수 있다는 희망, 절대자에 의한 구원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의 생성과 소멸이 하나의 천리라고 자각하고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판단 때문 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즉 일반인들은 죽음을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것인데, 이는 무엇보다도 개인 존재의 소멸에 대한 강렬한 저항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 소멸로 인하여 추정되는 절대적인 허무의 느낌에서 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부정적 태도를 극복하는 방법은 유교에서는 인간의 생명을 천지의 생명 과정의 차원에서 보는 관점, 즉 소아( 小 我 )의 차원에서 벗어나서 大 我 의 차원에서 삶과 죽음을 보도록 하는 관점을 통해서 구하고 있는 것이다. 5. 인간 개체의 소멸인 죽음과 인간의 영속성의 문제 죽음은 인간으로서 회피할 수 없는 필연적 과정이다. 죽음을 극진하게 슬퍼하지 만, 죽음을 허무한 것으로 부정하고 삶에 집착하는 것이 유교의 입장은 아니다. 10) << 說 苑 >> 권18 < 辨 物 > 子 貢 問 孔 子 : 死 人 有 知 無 知 也? 孔 子 曰 : 吾 欲 言 死 者 有 知 也, 恐 孝 子 順 孫 妨 生 以 送 死 也 ; 欲 言 無 知, 恐 不 孝 子 孫 棄 不 葬 也 賜 欲 知 死 人 有 知 將 無 知 也? 死 徐 自 知 之, 猶 未 晩 也! - 7 -

주역 에서는 시작에 근원하고 끝으로 돌아가니 죽음과 삶의 설명을 알겠다. 라고 하여, 죽음과 삶이 시작과 끝으로 이어져 있는 하나의 순환 현상으로 보기도 한다. 인간의 죽음이란 마치 하늘로 피어오른 연기가 점점 흩어져 대기 속으로 녹 아들듯이, 개별적 생명이 우주의 전체 속으로 흡수되는 것이요, 인간 생명의 태어남 이란 우주 전체로부터 작은 개체가 분리되어 나오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죽음은 개인이라고 하는 개체가 소멸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주적 생 명으로 복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만큼, 결코 허무한 소멸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다만 사후 존재가 개체성을 버리고 전체 속에 녹아들어 간다는 것은 개체의 지속을 통해 그 개체의 구원을 얻는 방법을 찾기 어렵게 된다는 난점이 발생한다. 따라서 유교의 사후 세계에 대한 인식에서도 사후에 개체성을 유지하는 방법을 확보하는 방법이 제시되며, 이러한 사후의 개체성을 확보함으로써 유교에서도 사후에 개체의 존재와 영속성(immortality)을 충족시켜 주고 구원을 실현해 주는 장치가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교에서 사후의 개체 존재가 유지되는 방법은 두 가지 양상으로 제시된다. (1) 그 하나는 개인의 사후 존재가 혼백( 魂 魄 )'의 형태로 일정한 기간 동안 개체성을 유지한다는 것이요, (2)다른 하나는 개인의 사후에도 그 후손을 통해서 개체성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먼저 사후에도 유지되는 개체의 존재로서 혼백 은 사후 존재의 영역에 속하지 만 살아 있는 존재와 똑같이 실재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살아 있는 사람의 집을 양택 ( 陽 宅 )이라 하고 죽은 자의 집인 무덤을 음택( 陰 宅 ) 이라 하여, 존재 양상은 음과 양으로 구별되지만 집 이라는 실상에서는 같은 것으로, 살아 있는 인간이 심신( 心 身 ) 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죽은 자도 혼백( 魂 魄 ) 으로 유지되고 있다 는 것이다. 유교의 사후 세계에 대한 인식의 특징은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유지되는가에 있으며, 사후의 존재도 살아 있는 사람과 관계를 유지 함으로써 충족된 생명을 확보하여 구원을 얻는 데 있다. 유교적 전통에서는 자신의 과오를 후회하면서,'지하에 돌아가 조상을 뵐 면목이 없다'고 하는 말을 쉽사리 듣게 된다. 모든 사람은 죽으면 다시 조상을 만날 수 있 고 조상과 후손이 죽은 뒤에도 가족 관계를 계속 유지한다는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 다. 돌아가신 부모를 합장( 合 葬 )하거나 자손을 부모의 무덤 근처에 잇달아 묻는 가 족 묘지를 선호하는 사실은 죽은 자들의 공동생활이 지속된다는 의식을 보여 준다. 이와 더불어 죽은 자들과 살아 있는 후손과 교류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 다. 유교 전통에서 산 자와 죽은 자의 교류 방법은 집집마다 사당( 祠 堂 ), 곧 가묘 ( 家 廟 )를 세우고 조상을 받드는 사실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한 가정에서는 한 사람 이 출입을 할 때나 집안에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에는 마치 자식들이 살아 있는 부모에게 알리듯이 사당에 가서 돌아가신 조상에게 고한다. 철따라 새로운 음식이 - 8 -

생기면 먼저 사당에 계신 조상에게 바치며, 사당에서 성대한 제물을 차려놓고 조상 들에게 경건하게 제사를 드리면 조상의 신령이 후손의 정성에 흠향하고 그 음식에 복을 내려 준다( 降 福 )고 믿으며, 자손들은 이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음복( 飮 福 ) 의례 에 참여한다. 사당을 그 집안의 담장 안에 세우니, 같은 울타리 안에 죽은 조상과 살아 있는 후손이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잊혀지고 버려 지는 것이 아니라, 후손의 따뜻한 사랑과 공경심에 의해 받들어진다는 사실은 바로 유교인에게 사후 세계가 허무한 어둠의 세계가 아니라 충만한 구원의 세계임을 보 여 주는 것이다. 더구나 조상은 후손과 함께 살아가며 음덕( 陰 德 )을 베풀어 후손을 돕고 축복해 줄 수 있다는 것도 죽은 자에게 보람된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죽은 자에 대한 공경과 산 자에 대한 축복이 교환되는 가운데 죽음과 삶의 세계 가 서로 소통하고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은 유교인이 바로 사후 세계에서 구원을 얻는 길이다. 다음으로 한 개인은 그 후손을 통해 사후에도 이 세상에서 자기 존재의 개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나의 몸과 터럭과 피부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 히 손상시킬 수 없다. 라고 하는 것은 나의 몸이 나의 것이기에 앞서 부모의 것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유교에서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면서 부모의 뜻을 계승하고 부모의 사업을 이루어 가는 것을 가장 중시하고 있는 사실도 부모의 존재가 자식을 통해 이어져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유교적 생명 의식 속에서 한 개인이란 조상으 로부터 후손으로 이어가는 사슬의 한 고리를 이루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고리는 하나의 완결된 존재이지만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 긴 사슬을 이어 주는 것 으로 받아들여진다. 주역 에서는 착한 일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스러움이 남을 것이요, 악 한 일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재앙이 남을 것이다. 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선하거 나 악한 행위에 대한 심판으로서 경사나 재앙이 나 자신에게 주어질 뿐만 아니라 나의 후손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유교 사회에서 자식이 부모의 행위에 대하여 연 대 책임을 지고 상벌을 받기도 하며, 부모도 자식의 행위에 대하여 연대 책임을 지 고 상벌을 받기도 하는 사실은 바로 부모의 생명이 자식에게로 이어져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부모가 나라에 큰 공을 이루면 그 자손에게도 음직( 陰 職 )의 벼슬이 내려 지며, 자손이 나라에 큰 공을 세우거나 높은 벼슬에 오르면 그 죽은 조상에게도 증 직( 贈 職 )으로 벼슬을 높여 주는 사실을 볼 수 있다. 또한 부모와 자식 사이에 연좌 법( 連 坐 法 ) 으로 처벌이 적용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생명 의식에서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개체적 생명이 자손의 개체 속에 유지된다는 인식은 유교인 에게 사후에도 자손에 대해 책임을 지게하며, 조상에 대해서도 의무를 지게 한다. 따라서 자신의 개체 존재가 후손으로 이어져 존재한다는 생명 의식은 유교인에게 후손의 삶을 통해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것이다. - 9 -

유교에서 사후 존재는 비록 지극히 복된 천상으로 들어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결코 잊혀 지지 않은 채 후손과 함께 살아가며 후손을 통해 살아 있다는 사실에서 충족된 생명을 얻어 구원을 받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여기서 죽 음은 삶과 단절되지 않고 삶과 더불어 존속하며, 삶과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것 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삶 속에 죽음을 감싸고, 삶과 죽음의 조화를 이룸으로써, 한 개체의 사후 세계를 죽음의 공허함과 소멸로부터 구원해 주는 존재 구조를 제시하 고 있다. 정리하여 말하면 유교는 죽음 자체의 의미나 죽어서 시작하는 또 다른 세계에 대 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삶과 죽음을 대자연의 법칙에 의한 순환과정으로 봄으 로써 형이상학적 이해의 문제로 환원시켰다. 그리고 사후의 영생이 아니라 조상에 서 후손으로 이어지는 삶에 서 삶으로 이어지는 인간세계의 영속에서 영생을 추구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III. 도교의 죽음관 도교는 그 경전모음집인 도장( 道 藏 ) 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매우 복잡하고 포 괄적인 종교이다. 도교의 죽음관이나 불멸에 대한 사고도 일괄적으로 말하기 힘들 다. 전체적으로 보아 도교의 죽음관은 이중적, 혹은 중층적이다. 장자와 같이 삶과 죽음을 하나로 여기고 생사를 초월한 태도를 보여주는가 하면, 갈홍과 같이 육체적 불사를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상청파를 시발점으로 하여 후대 내단 계통의 분파에서는 생사를 초월한 새로운 의미의 불사( 不 死 ) 관념을 제시한다. 1. 인간의 실존적 곤경과 죽음 도교전통에서 말하는 죽음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우선 단순히 인간 의 수명이 끊어지는 것, 즉 생리적인 죽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훨씬 포괄 적이고 상징적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도교교리를 집대성한 중세 상청파( 上 淸 派 )에 서 죽음은 인간의 실존이 안고 있는 원초적인 곤경(predicament)을 지칭한다. 도교 인들이 말하는 죽음은 단순히 생리적인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우주의 근원적 생명의 원리, 곧 참된 道 에서 벗어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도교 인들의 근본 질문은 죽음 에 관한 것이었고 이 질문은 신선 이 되는 것 곧 영원 해지는 것으로 진행된다. 그들이 추구하는 진인( 眞 人 ), 곧 신선의 이상은 일상적(세 속적) 자아에서 벗어나 새롭게 변화된 자아를 획득함을 통해 달성되는데, 변화된 자 아와 일상적 자아의 차이는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구분점 중의 하나가 죽음 의 극복 여부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죽음의 문제를 극복한 변화된 - 10 -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일상적 인간으로 대별된다. 2. 장자 에 나타난 죽음관 장자 에서 죽음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인간이 맞이하는 여러 단계의 과정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하나의 과정적 현상으로 묘사된다. 장자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자연의 리듬에 따르는 참으로 당연하고 일상적인 과정이라고 한다. 넓은 대지는 우리의 형체를 만들고 생명을 주어 일하게 하고, 늙게 하여 일에서 풀려나게 하고, 죽게 하여 편안히 쉬게 한다. 그러므로 내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내 죽음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11) 하늘의 기쁨을 아는 자에게 삶 또한 하늘을 따르는 행동이고 죽음 또한 사물의 변화인 것이다. 12) 그러므로 장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죽음에 대해 슬퍼하거나 분노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장자는 아내가 죽자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13) 장자에게 죽음은 단지 기( 氣 )의 변화에 따른 인간 형태의 변화 일 뿐이다. 형체가 변해서 삶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형체가 변해서 죽게 되는 것이 다. 인간의 삶과 죽음은 사철의 변화와 동일한 과정이다. 따라서 장자는 죽은 자신 의 아내에 대해, 천지( 天 地 ) 라는 커다란 방에 편안히 누워 있는 것이라고 묘사하 였다. 생과 사를 하나로 여기는 장자의 죽음관은 후대 도교인들의 죽음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유교의 합리적, 현실적 죽음관과 병행하여, 중국인들이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데 커다란 지침이 되 주었다. 삶과 죽음을 동일한 우주의 이 치에서 이해한다는 점에서 장자의 죽음관은 유교의 그것과 맥락을 같이 하지만, 유 교의 관점이 주로 현실에서의 실천적 삶에 초점이 있는 것에 비해, 장자의 죽음관 은 도와 우주의 원리에 순응하는 무위자연의 삶에 그 강조점이 있다. 관점은 유사 하지만 각각 인도( 人 道 )와 천도( 天 道 )를 따른다는 측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도교에는 다양한 교리와 문화적 스팩트럼이 존재한다. 죽음관도 마찬가지다. 장 11) 夫 大 塊 載 我 以 形 勞 我 以 生 佚 我 以 老 息 我 以 死 故 善 吾 生 者 乃 所 以 善 吾 死 也. 莊 子 大 宗 師 12) 故 曰.. 知 天 樂 者 其 生 也 天 行 其 死 也 物 化 莊 子 第 13 天 道 篇 13) 莊 子 妻 死, 惠 子 弔 之, 莊 子 則 方 箕 踞 鼓 盆 而 歌. 惠 子 曰, 與 人 居, 長 者. 老. 身 死, 不 哭, 亦 足 矣, 又 鼓 盆 而 歌, 不 亦 甚 乎. 莊 子 曰, 不 然. 是 其 始 死 也, 我 獨 何 能 无 槪 然. 察 其 始 而 本 无 生, 非 徒 无 生 也 而 本 无 形, 非 徒 无 形 也 而 本 无 氣. 雜 乎 芒 芴 之 間, 變 而 有 氣, 氣 變 而 有 形, 形 變 而 有 生, 今 又 變 而 之 死, 是 相 與 爲 春 秋 冬 夏 四 時 行 也. 人 且 偃 然 寢 於 巨 室, 而 我 噭 噭 然 隨 而 哭 之, 自 以 爲 不 通 乎 命, 故 止 也. 莊 子 至 樂 - 11 -

자와는 전혀 다른, 아니 오히려 상반되는 죽음에 대한 이해도 존재한다. 갈홍( 葛 洪 ) 의 포박자 가 그 대표적 예이다. 3. 포박자 에 나타난 죽음과 신선 포박자( 抱 朴 子 ) 는 도교의 신선사상과 장생불사 관념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저 술이다. 포박자 의 저자인 갈홍( 葛 洪, 283-363)은 육조시대라고 하는 혼란한 시대 적 상황 속에서 인간 존재의 한계를 절감하고 많은 공부와 수행을 통해, 절대불멸 의 존재에 이르는 길을 절실히 모색했던 인물이다. 죽음은 갈홍에게 있어서 인간이 가장 넘어서기 힘든 한계상황이었다. 갈홍의 포박자 는 그 이전에 통용되던 신선 관념이 초인간적이고 선천적인 성격을 가진 것에 도전하여, 누구나 후천적인 수행 과 학습에 의해 신선에 도달할 수 있다는 보편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한 저술이다. 평범한 인간도 노력에 의해 죽음을 극복하고 신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이론 이다. 갈홍은 삶과 죽음을 전혀 다른 존재 양식으로 인식하였다. 그리고 삶으로부터 죽 음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현상적인 육체의 소멸이 죽음과 직 결되므로 죽음을 겪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든 육체의 소멸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갈홍의 생사관과 신선관은 그의 형신론( 形 神 論 )에 바탕을 둔다. 갈홍에 의 하면 인간은 형( 形 )고 신( 神 ), 즉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며 인간이 생명 을 유지하고 살아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형과 신이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며 통합 되어 있어야 한다. 즉 형은 형태를 갖추고 있어야 하고, 신은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갈홍을 비롯한 당시 도교인들은 형진즉신멸( 形 盡 則 神 滅 ) 곧 육체가 다하면 정신도 사라진다 는 이론을 견지했으며 이러한 논리에서 갈홍도 불멸의 존 재가 되기 위해서는 육체를 단련하여 불멸의 상태가 되도록 변화시키는 것이 우선 적이라고 인식했던 것이다. 따라서 갈홍은 금단( 金 丹 )을 제조하여 마치 황금과 같이 변하지 않는 육체를 획 득하고 그 결과 죽음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채, 천선( 天 仙 ), 지선( 地 仙 ), 혹은 시해 선( 尸 解 仙 )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자 하였다. 즉 포박자 에서는 죽음 없는 영생 을 이루어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갈홍은, 당시 다른 도교분파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원인을 도덕적 죄악으로 파 악한다. 당시 여러 도교분파와 마찬가지로 그는 인간이 영생은 고사하고 자신의 수 명을 다하지 못하고 일찍 죽는 것은 모두 죄로 인해 자신의 수명이 감해진 것이라 고 설명한다. 커다란 악행을 저지른 자는 사명신( 司 命 神 )이 그 사람의 기( 紀 )를 빼 - 12 -

앗고, 작은 과실에 대해서는 산( 算 )을 빼앗는다. 범한 바, 죄악의 경 중에 따라 빼앗는 수명에 많고 적음이 있다. 14) 여기서 기( 紀 )는 30일, 산( 算 )은 3일의 생명을 말한다. 포박자 에 의하면 인간의 수명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져 있는데, 악행에 의해 기나 산이 감해진다. 따라서 장 생의 기본조건은 자신의 죄를 씻고 도덕적인 삶을 살며, 수행에 힘쓰는 것이다. 또 한 갈홍은 인간이 자신의 수명의 한계를 넘어서 불사하기 위해서는 금단이 필요한 데 불사의 약인 금단( 金 丹 )을 제조하려면, 우선 도덕적인 실천과 뼈를 깎는 수행이 필요하다. 그리고 선행의 실천정도에 따라 실현가능한 신선등급도 달라진다. 또한 ( 옥금경 에서) 이르기를, 사람이 지선( 地 仙 )이 되고 싶으면 300 善 을 닦아야 하고 천선( 天 仙 )이 되고 싶으면 1200 선( 善 )을 닦 아야 한다. 만일 1199번의 선을 행하고 그 위에 문득 하나의 악을 행하면 그때까지의 선행은 모두 백지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다시 그 로부터 선생을 세기 시작해야 한다... 또한 이르기를 선생을 쌓는 일이 위의 수에 차지 않으면 아무리 선약( 仙 藥 )을 먹어도 이익이 없 다. 가령 선약을 먹지 않는다 하더라도, 항상 선한 일을 하고 있으면 곧 선인은 되지 않을지라도 횡사의 재앙을 만나는 일은 없다. 라고 한다. 15) 즉 인간의 행위는 죽음의 원인이 되는 동시에 영생의 기본 요건이 되기도 한다. 인간에게 있어 불가피한 죽음의 문제에 도전했던 갈홍의 신선관은 인간의 삶과 죽 음을 운명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반대하여, 인간의 자발적인 노력과 행동에 의해 자신의 수명을 조절하며, 나아가 영생이 가능하다는 이론을 제시한 것이다. 갈홍의 공헌은 인간의 자력적, 보편적 구원 가능성을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곧 갈홍은 인 간의 무한한 잠재력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었으며, 나아가 갈홍 이전에 주로 선천적 이고 신적인 존재로 기술되던 신선의 이상을 인간적 영역으로 확대시켜 누구나 노 력에 의해 신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4. 상청대동진경( 上 淸 大 洞 眞 經 ) 에 나타난 죽음과 신선 상청대동진경 (이하 대동진경 으로 명칭함)은 육조시대에 남부 지식층을 중심 14) 行 惡 事 大 者, 司 命 奪 紀, 小 過 奪 算, 隨 所 犯 輕 重, 故 所 奪 有 多 少 也. 抱 朴 子 卷 3 對 俗 15) 又 云, 人 欲 地 仙, 當 立 三 百 善 ; 欲 天 仙, 立 千 二 百 善. 若 有 千 一 百 九 十 九 善, 而 忽 復 中 行 一 惡, 則 盡 失 前 善, 乃 當 復 更 起 善 數 耳... 又 云, 積 善 事 未 滿, 雖 服 仙 藥, 亦 無 益 也. 若 不 服 仙 藥, 幷 行 好 事, 雖 未 便 得 仙, 亦 可 無 卒 死 之 禍 矣. 抱 朴 子 卷 2 論 仙 - 13 -

으로 형성된 도교분파인 상청파( 上 淸 派 )의 핵심경전이다. 상청파는 그 이전까지의 교리를 집대성하고, 경전을 수집, 정리하는 한편, 존사( 存 思, visualization) 16) 나 송 경( 誦 經 )와 같은 내면적 명상법을 개발하여 도교 수행의 역사에 새로운 물줄기를 형성한 중요한 교파이다. 특별히 대동진경 을 중심으로 한 상청파의 경전들 안에 는 죽음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상세하게 나타나 있다. 상청파는 깊이 있는 죽음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하여 신선이라는 도교의 종교적 이상에 대해 보다 철학적이 고 내면적인 측면에서 해석을 가하고 있다. 1) 인간 안에 내재된 죽음 대동진경( 大 洞 眞 經 ) 에서는 인간 안에 존재하는 죽음의 구조를 죽음의 문( 死 門, 혹은 死 戶 )과 태( 胎 )의 결박, 두 가지로 설명한다. 이 중에서 結 胎 ( 胎 의 결박 혹은 매듭)는 생명과 동시에 배태된 인간의 죽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는 삶이, 부모 의 성적결합에 의해 전해진(유전된) 죽음에 이르는 질병(terminal illness)이라고 하 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다. 九 天 生 神 玉 章 經 解 (CT397) 17) 에서 보여주는 다음의 인용문은 죽음과 더불어 시작되는 인간의 삶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삶은 죽음의 근원이다. 태( 胎 )의 형태가 갖추어지면 죽음의 기( 氣 )가 있게 된다. 18) 위의 예문은 인간의 삶 안에 본래부터 자리하고 있는 죽음의 뿌리를 설명하고 있 다. 大 洞 眞 經 에서는 이러한 죽음의 뿌리를 胎 의 결박으로 명시하며 胎 의 결박이 百 神, 곧 신들과의 교통을 막는다고 말한다. 胎 의 結 縛 은 百 神 을 해친다. 19) 대동진경 에 의하면 인간 안에는 모두 24 개의 결절(혹은 결박)이 있다. 이들의 結 節 은 인간의 全 身 에 빈틈없이 산재하고 있다. 결태의 개념을 상세히 설명하는 상 청파의 경전으로는 태정중기경( 胎 精 中 記 經, 본래는 上 淸 九 丹 上 化 胎 精 中 記 經 ) (CT1382)을 들 수가 있다. 이 경전에서는 胎 의 형성과정과 結 의 생성과정을 상세 16) 존사는 시각적 명상법이다. 존사는 자신의 신체를 우주의 축소판으로 보는 한편, 그 안에 신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보고, 이들 신들을 단계적으로 명상하여 세속적 자아를 버리고 참 자아를 발견하 여 결국 득도에 이르는 독특한 명상법이다. 17) 이 경전이 상청파가 아니라 도교의 또다른 분파인 영보파계통의 경전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적으로 연결되므로 인용한다. 18) 生 者 死 之 根 胎 形 旣 具 有 死 氣... 九 天 生 神 玉 章 經 解 (CT397) 卷 上 第 31b 19) 結 胎 害 百 神 大 洞 眞 經 卷 2 第 5a - 14 -

히 말하고 있다. 20) 이 경전에 따르면, 인간의 육신이 태어나는 것은 우주적인 氣 를 품수받고 그것이 응결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이렇게 태 가 발생하는 시기에 胎 중에 결박이 형성되며, 이러한 결박에 의해 인간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결박을 풀어야만 인간이 죽음으로부터 벗 어날 수 있다고 한다. 2)죽음의 원인 그렇다면 왜 죽음의 원인인 結 胎, 그리고 死 門 이 인간에게 존재하는가? 그에 대 한 원인으로서 대동진경( 大 洞 眞 經 ) 에서는 인간의 罪 와 惡 을 들고 있다. 인간은 유 전적으로 생명을 물려받는 순간부터 조상대대로 행한 罪 와 惡 의 결과를 동시에 부 여받는다. 즉 악의 문제가 인간에게 본성적으로(선천적으로) 잠재해 있는 것이다. 이렇듯 오랜 세대를 걸쳐 대물림된 죄와 악을 대동진경 에서는 숙죄( 宿 罪, 묵은 죄)), 숙예(묵은 찌꺼기, 宿 穢 )라고 이야기한다. 인체의 三 部 에 쌓인( 三 積?) 묵은 찌꺼기(더러움, 宿 穢 )가 남아있지 못 하게 하며( 無 滯 ) 21) 즉 인간이 안고 있는 난제인 죽음은 그 원인이 죄에 있다. 인간의 죄는 생명의 문을 막는다. 大 洞 眞 經 에서는 인간에게 죄가 유전되며, 그 결과, 인간이 생명을 부여받는 순간 죽음의 씨앗을 부여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숙죄( 宿 罪 ) 가 단순히 몇 대 이전의 조상부터 비롯되는 죄인지, 혹은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부 여된 원죄( 原 罪 )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게 된다. 그것에 대한 대답을 확실하게 명 시하는 구절은 이 경전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大 洞 眞 經 의 전체적인 내용의 맥락에서 볼 때, 여기서 말하는 오래된 더러움( 宿 穢 ) 이나 묵은 죄(숙죄) 는 일상 적 인간에게는 예외 없이 유전적으로 주어지는 근원적인 죄악으로 해석된다. 道 를 깨닫지 못한 인간, 곧 우주의 본래적 원리에 합치되게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한 인 간은 죄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죄는 단순히 부도덕한 행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道 라고 하는 올바른 궤도에서 이탈한 인간의 생존, 그 자체를 지적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죄의 결과물인 죽음도 일상 적인 인간에게는 피할 수 없이 원천적으로 부여되는 것이다. 20) 天 地 交 運 二 象 合 眞 陰 陽 降 氣 上 應 九 玄 流 丹 九 轉 結 氣 爲 精 精 化 成 神 神 變 成 人 故 人 象 天 地 氣 法 自 然 自 然 之 氣 皆 九 天 之 精 化 爲 人 身 含 胎 育 養 九 月 氣 盈 九 天 氣 普 十 月 乃 生 上 淸 九 丹 上 化 胎 精 中 記 經 (CT1382) 第 1b. 凡 人 生 在 胞 胎 之 中 皆 稟 九 天 之 氣 凝 精 以 自 成 人 也 旣 生 而 胞 中 有 十 二 結 節 盤 固 五 內 五 內 滯 結 不 可 解 節 不 可 滅 故 人 之 病 有 於 節 滯 也 人 之 命 絶 有 於 結 固 也 兆 能 解 於 胞 中 十 二 結 節 則 求 死 亦 不 得 也 胎 精 中 記 經 (CT1382) 第 3a--b 21) 三 積 之 宿 穢 無 滯 大 洞 眞 經 卷 4 第 18b - 15 -

오래된 죄와 악의 뿌리는 인간의 내부에 항상 남아 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사악한 氣 ( 邪 氣 ), 그리고 악마( 魔 )의 유혹과 훼방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의 몸 안에 자리한 邪 戶 는 곧 이러한 악, 그리고 죄와 연결되는 통로이 며 이것은 곧 죽음과 연결되는 통로이기도 하다. 죽음의 문( 死 門 )을 닫는 것은 바로 惡 의 출입구인 邪 戶 를 닫는 것이기도 하다. 즉 惡 이나 罪, 그리고 죽음은 바로 동전 의 양면과 같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죄는 죽음의 뿌리( 死 根 ) 22) 이기도 하다. 3) 죽음의 해결: 解 胎 結 와 反 胎 죄와 죽음의 원천을 차단하는 것을 해태결( 解 胎 結 ), 혹은 해결( 解 結 )이라고 말 한다. 해태결( 解 胎 結 ) 이란 結 胎 를 풀어주는 것이다. 태의 결박을 풀어줌으로써, 인간은 새로운 생명의 배태자로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따라서 해태는 反 胎, 곧 胎 를 돌리는 것, 혹은 새로운 胎 로 돌아가는 것으로 표시된다. 이것은 또 다른 생명으 로의 탄생, 곧 제 2의 탄생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거듭남( 重 生 )의 개념 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百 神 이 胎 의 결박을 풀어주네. 23) 태보( 胞 )의 죽음의 뿌리를 끊어버리고 천계( 上 世 )에서 道 德 을 받네. 24) 대동진경 에서는 神 들이 胎 의 결박, 혹은 胎 褓 의 결박, 혹은 죽음의 뿌리를 풀 어준다고 말한다. 大 洞 眞 經 의 경문 안에서 해태결( 解 胎 結 )과 반태( 反 胎 )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는 구절은 눈에 띄지 않는다. 25) 다만, 반태( 反 胎 )와 해태결( 解 胎 結 )이 죽음을 단절하고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을 의미하며, 그 방법으로서 신들의 존사가 이용됨을 알 수 있다. 大 洞 眞 經 에서는 각 신들의 존사( 存 思 )를 통해 죽음의 뿌리를 없애는 해태결( 解 胎 結 )을 성취하고 그를 통해 죽음과 악을 근절시킨다고 말한다. 그리고 수행자 자신 안에 새로운 생명의 영아( 嬰 兒 )를 탄생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大 洞 眞 經 의 가장 마지막 장인 39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묘사를 하고 있다. 22) 七 祖 絶 死 根 五 毒 氣 零 滅 大 洞 眞 經 卷 3 第 18a 23) 百 神 解 胎 結 大 洞 眞 經 卷 2 第 5a 24) 斫 斷 胞 死 根 上 世 受 道 德 大 洞 眞 經 卷 2 第 12b 25) 대동진경 에서의 解 結, 혹은 反 胎 의 개념은 다른 경전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胎 精 中 記 經 (CT1382)나 太 丹 隱 書 ( 洞 眞 太 一 帝 君 太 丹 隱 書 洞 眞 玄 經 ) (CT1330), 雌 一 五 老 寶 經 ( 洞 眞 高 上 玉 帝 大 洞 雌 一 玉 檢 五 老 寶 經 ) (CT1313) 등의 상청파 경전들은 모두 解 結 을 통해 죽음의 뿌리를 제거하는 방법을 말한다. - 16 -

삼가 청하오니 대동제일의 가장 희고(순결하고) 존엄한 靈 이시여. 父 寧 과 母 精 둘이 합하여 百 眞 을 이루며 크게 섞이어 한번 돌아 생명 을 시작하고 신체를 결성하여 그 연기( 氣 )가 들어가 태를 변화시켜 本 元 의 영아가 되어 해와 달의 보배로운 빛이 나의 몸을 꿰뚫게 하 옵시고 太 一 이 위( 天 上 )에서 帝 와 나란히 합하게 하옵소서... 26) 위의 인용문에서는 大 洞 眞 經 의 존사과정 중 마지막 순서에 등장하는 제일존군 ( 帝 一 尊 君 )의 탄생과정에 대해 말한다. 부녕( 父 寧 )과 모정( 母 精 )이라고 하는 부모, 즉 음( 陰 )의 원리와 양( 陽 )의 원리를 나타내는 두 신들의 통합에 의해 완전한 생명 을 상징하는 帝 一 尊 君 이 수행자의 내부에서 탄생되게 된다. 제일존군( 帝 一 尊 君 )은 수행자 자신의 내부에 새롭게 탄생되는 새로운 자아이며 나아가 자신 안으로 끌어 들인 道 의 현현이기도 하다. 이러한 새로운 생명의 탄생으로 수행자는 영원과 연결 될 수 있으며 천상계적 존재로 변화될 수 있다. 또한 제일존군( 帝 一 尊 君 )의 탄생은 영원한 생명의 모태인 우주적 자궁으로 복귀 해 그곳에서 다시 산생된 생명을 뜻하기도 한다. 大 洞 眞 經 에서 자주 등장하는 反 胎 의 개념은 바로 우주적 자궁으로의 들어감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4) 상청파의 구원과 신선: 삶과 죽음을 넘어서 획득한 생명 단적으로 말해 신선의 이상이 가지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모티프는 불사 (immortality), 곧 죽음의 단절이다. 바꾸어 말하면 새로운 생명을 획득한 존재가 바로 신선이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의 획득과 더불어 완전하게 변화한 자아를 경험 하는 것이 바로 신선이다. 신선은 바로 새로운 생명과 변화된 자아를 획득한 존재 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도교에서 말하는 불사는 현세적인 육체의 장생불사라고 간주된다. 그러나 도교의 不 死 가 단순히 육체적인 장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교에서 육체를 긍정 하고 그것을 강조한 것은 분명하지만 도교의 종교적 수행을 통해 도달하는 것이 현 실세계에서 육체적인 수명을 오래 연장시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육 신의 죽음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때에 따라 구원을 위해 죽음이 요 청되기도 한다. 27) 상청파의 신선관에서 육체의 존속 여부는 得 道, 그리고 우주와의 26) 謹 請 大 洞 帝 一 太 素 尊 靈 父 寧 母 精 二 合 變 成 百 眞 大 混 一 徊 始 生 身 結 入 烟 變 胎 元 嬰 日 月 寶 光 洞 我 軀 形 太 一 在 上 與 帝 合 幷... 大 洞 眞 經 卷 6 第 30a 27) 예를 들어 진고( 眞 誥 ) 를 위시한 상청파의 문헌에는 죽은 사람( 死 者 )들이 다시금 神 仙 이 될 수 있는 우주적 장치( 南 宮 등)를 담고 있다. 대동진경 에 의하면 죽은 조상들에게 있어서 죽음이라고 하는 사건은 오히려 영원한 삶으로 연결되는 가능성을 내포하기도 한다. 大 洞 眞 經 에서는 살아있 는 동안에 신선이 되지 못한 조상들이 死 後 에 다시금 육체를 받아 승선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 - 17 -

통합을 위한 재료로서 반드시 긍정된다. 그러나 일단 得 道, 곧, 변화된 자신(육신)을 획득한 뒤에는 일상적인 육체는 得 道 者 자신에게는 더 이상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른 다. 그는 이미 천상계와 교통하고 우주적 존재로 변화하였으며, 천상계에 올라 새로 운 형태로 존재할 것이므로 이 세상에서 그가 몸담았던 일상적 육신은 큰 중요성을 갖지 못한다. 더 시해선( 尸 解 仙 )의 경우, 일부러 그 죽음을 재촉하여 천상계로 비상 하려고 시도한 경우도 있다. 시해가 가지는 의미는 신선이 전적으로 이 세상적 존 재가 아닌, 초월적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의례적인 죽음은 바로 이 세상, 곧 세속적인 자아, 세속적인 욕망과의 철저한 단절 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시해는 이른바 죽음으로 상징되는 궁극적 일자인 道 와의 단절, 그리고 인간존재의 본성의 훼손, 참된 자아의 상실, 죄와 악 등을 극복 하기 위한 죽음, 즉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또 다른 죽음일 것이다. 이러한 의도적 죽음을 통해 참다운 생명과 육체로 연결된다고 그들은 믿었던 것이다. 상청파에서의 구원은 죽음마저도 방해할 수 없는 초월적인 자유를 목적으로 한 것이며 이러한 자유를 누리며 온 우주를 자신 안에 품는 것이다. 참된 구원을 획득 한 자는 生 과 死 를 초월한 절대생명 안으로 진입하여 그러한 생명의 세계를 누리게 된다. 大 洞 眞 經 에서는 나고 죽음이 없이 胎 의 문으로 들어가느니 28) 라고 말한다. 태( 胎 )의 문( 門 ), 즉 진정한 생명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은 곧 생사 를 초월하는 것이다. 즉 온 우주의 생명의 원리를 깨닫고 도와 하나가 된 이에게는 다고 말한다. 또한 신선의 성취가 생리적 육체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과 별개의 것임을 암시하는 예 들을 상청파의 문헌에서 발견할 수 있다. 상청파를 성립시킨 초기 인물들 중의 한 사람인 허홰( 許 翽,341-370)의 죽음이 그 예이다. 허홰는 누구보다도 높은 경지의 仙 道 를 성취한 인물이었는데, 영매인 천계( 天 界 )의 관리로 등용하기 위해 그를 부른다는 소명의 계시를 받 는다. 그러자 그는 천계에 오르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주장하고 지상에서의 수도를 조금 더 하기 위해 13년을 더 줄 것을 요청한다. 1) 그러나 그는 이 계시가 있은 지 5년 후 죽게 된 다. 여기서 그의 죽음은 바로 天 界 의 관리가 되기 위한 하나의 변화로 인정되었다. 도홍경 은 진고( 眞 誥 ) 에서 그의 죽음에 대해 그 지역( 茅 山 을 중심으로 한 중국남부)의 전승을 인 용하여 말한다. 그는 ( 茅 山 의) 북쪽 동굴 입구에서 돌제단에 분향하고 경의를 표하였다. 그 리고 나서 몸을 엎드린 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이 그를 발견하였을 때 그의 신체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의 안목으로 보아 허홰는 요절한 인물이다. 그러나 진고 에서는 그의 죽음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그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仙 界, 그것도 그 곳의 관리로 소명될 만큼 높은 仙 의 경지에 올라 있었으며 따라서 더 이상 세속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신선이 경지에 도달한 인물이므 로 이 세상에서 육체를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상청파의 계시에 참여하고 그 계시들을 전달한 주요인물에 대한 이러한 기사는 상청파에서 신선의 성취와 일상적 육체 의 보존이 반드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님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미 신선의 경지에 오른 인물은 천계에서 새로운 형태의 육체를 받을 것이며 이미 수도를 마친 그에게 생리적 육체는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8) 無 生 死 入 胎 門 大 洞 眞 經 卷 2 第 17b - 18 -

생사를 극복한 완전한 자유와 초월의 경지가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상청파에서 추 구하는 진인( 眞 人 )의 경지는 生 死 를 초월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삶과 죽음을 초월한 신선관은 장자 의 사상과도 통한다. 29)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장자 30) 에서는 죽음을 단지 사물의 변화로 이해한다. 제임스 밀러 (James Miller)는 상청파의 교리가 사물의 변화로서의 죽음의 개념을 가장 잘 보여 준다고 말한다. 31) 여기서 말하는 사물의 변화란 죽음을 통한 존재의 변화가능성을 말한다. 죽음이 사물의 변화라고 하는 것은 곧 죽음이야말로 인간의 가능성을 산출 하는 힘(virtue)을 내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죽음의 개념은 신체의 생리적 과정의 종말을 의미하는 물질적인 죽음 개념과 대조된다. 도교적 관점의 죽음 개념 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변화적 잠재태(transformative potential)로서의 죽음의 가능 성을 파악해야만 한다. 일상적 삶이란 사실상 에너지( 氣 )를 소진하는 행위, 곧 죽어 가는 과정이다. 반면 죽음은 천상계로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곧 죽음은 그를 통해 변화적 힘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되기도 하는 것이 다. 이러한 의미에서 죽음은 또 하나의 생산의 과정이다. 따라서 도교의 선( 仙 )에 대한 개념을 다룰 때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상청파에서는 일상적 삶의 연장으로서의 불사( 不 死 )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을 향한 일상적인 삶의 과정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불사( 不 死 )를 다루는 것이다. 이 러한 이유 때문에 도교 학자들은 선( 仙 )을 immortal"로 번역하는 것을 거부하고 그보다는 오히려 transcendent"라고 번역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사실상 초월 (transcendent)이라는 말도 그다지 정확하지는 않다. 물론 육체적 불사에 대해 부 정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사, 곧, 육체적 불사, 그 자체만이 상청파 의 종교적 목적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32) 상청파에서 추구하는 불사는 미래의 죽음 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실제로 그것은 모든 존재의 죽음을 끌어안는 것이다. 상청파의 신선은 지금 바로 이 자리에 완성되는 존재라는 특성을 내포한다. 仙 王 은 누구인가? 나는 이미 眞 ( 眞 人, 곧 仙 )을 이루었으며 암컷과 수컷을 감추어 간직하고 있다. 33) 나는 眞 ( 眞 人, 곧 仙 )을 이룬 자이니 선계로 날아올라 (보니) 구름이 29) 故 曰.. 知 天 樂 者 其 生 也 天 行 其 死 也 物 化 莊 子 第 13 天 道 篇 30) 莊 子 는 상청파에서 매우 중요한 경전으로 취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도홍경은 장자 를 불교의 法 華 經 과 더불어 중요한 경전으로 취급한다. 仰 尋 道 經 上 淸 上 品 事 極 高 眞 之 業 佛 經 妙 法 蓮 華 理 念 一 乘 之 致 仙 書 莊 子 內 篇 義 窮 玄 任 之 境 此 三 道 足 以 包 括 萬 象 體 具 幽 明 而 幷 二 十 卷 者... 眞 誥 卷 19 第 1b 31) James Miller, The Economy of Cosmic Power: Theory of Religious Transaction and a Comparative Study of Shangqing Daoism and The Christian Religion of Augustine of Hippo (A dissertation for degree of Ph. D, Boston University, 2002) p.89 32) ibid, p.90 33) 仙 王 何 人 我 已 成 眞 隱 存 雌 雄 大 洞 眞 經 卷 2 第 10a - 19 -

크도다(높도다). 34) 大 洞 眞 經 에서는 수행자 자신이 이미 眞 을 이룬 자, 곧 成 仙 한 존재라고 말한 다. 그리고 선왕( 仙 王 )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仙 王 이 될 수 있다 고 말한다. 득도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높은 신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절대적인 자유와 초월을 맛보며 천상계의 신비와 교류 하는 수행자는 이미 신선과 다른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상청파의 신선은 미래의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진 다. 신선은 이렇듯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벗어나 늘, 어디에서나 영원과 자유를 향 유하는 존재이다. 5. 내단분파의 죽음관 전진교( 全 眞 敎 )와 같은 내단도교 분파가 공유하는 수행론 초점은 성명쌍수( 性 命 雙 修 )에 있다. 여기에서 성( 性 )과 명( 命 )은 간단히 말해 마음과 몸에 해당되는 것이다. 전진교의 내단법은 불교의 유심론적 수행관의 영향을 받아 마음수양을 중시하는 한 편, 도교 고유의 육체수행을 병행한다. 따라서 전진교의 내단수행에 기초한 신선관 은 유심적이지도 유물적이지도 않다. 생사를 초월하고 육신의 죽음을 넘어선 삶이 라고 하여 영혼의 불멸과 등식화할 수도 없다. 한편, 그렇다고 해서, 현상적 육체의 불멸을 고집하는 것도 아니다. 도교에는 영육 이원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 선은 영적 존재만도 아니고 육체적 존재도 아니다. 현상적 육체를 벗어버리고 자신 의 내부에서 새롭게 생산된 새로운 불멸의 몸 혹은 자아에 의지하여 존재하는 것이 신선이다. 즉 몸은 몸인데 현상적인 몸은 아닌 몸, 정신은 정신인데, 유심적 차원의 정신은 아닌 정신이 바로 신선의 존재양식이다. 따라서 몸 밖의 몸( 身 外 之 身 ) 등의 명칭으로 부르는 것이다. IV. 불교에서 바라보는 죽음 1. 불가피한 현실로서의 죽음--죽음에 대한 자각 유교와 도교가 동아시아, 즉 중국의 전통 종교인 것에 반해 불교는 인도에서 유 래한 외래종교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유교나 도교와는 다른 세계관에 바탕을 가 지고 있으며 죽음에 대한 이해에도 차이를 보인다. 부처의 문제의식은 생로병사가 모두 고통이다 라는 명제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34) 我 曰 成 眞 飛 仙 雲 京 大 洞 眞 經 卷 2 第 10a--b - 20 -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있는 우주 만물과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파 악하는 것, 즉 그 실상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부처는 죽음이라는 현상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 정확히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 즉 부처는 인간이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현실로서의 죽음, 다시 말해 죽음의 불가 피성을 철저히 인식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죽음이라는 현실에 대한 냉철한 자각으로 부터 시작하여 죽음이라는 실상을 초월하는 높은 차원의 진리를 터득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죽음에 대한 정확한 자각을 통해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모 든 종교가 다 죽음에 대한 인식을 중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불교만큼 죽음을 철저하게 인식하고자 하는 종교도 드물 것이다. 초기 불교 여성수행자들의 깨달음의 과정을 담은 기록인 테리가타(Therigata, 長 老 尼 偈 ) 에는 죽음의 신인 마라와 한 비구니와의 대화를 소개하고 있다. 한 때 찰라(Cala)라는 이름의 비구니가 잠시 쉬려고 어느 나무 아래 에 않았다. 그 때에 악마 마라가 다가와서 다음과 같이 말을 건넸다. 비구니여, 그대는 어니에서 즐거움을 찾지 않습니까? 태어남에서, 나는 즐거움을 찾지 않습니다. 왜 그대는 태어남에서 즐거움을 찾 지 않는가? 일단 태어나면 감각을 느끼는 삶의 즐거움을 누리게 된 다. 누가 그대의 마음속에 이처럼 태어남에서 즐거움을 찾지 말라 는 생각을 심었는가? 비구니여! 태어나면 우리는 곧 죽습니다. 태어나면 우리는 곧 삶의 괴로움, 온 갖 속박과 고통스러움을 겪어야 하고 그러면서 삶은 단절됩니다. 붓 다께서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우리에게 밝혀 주셨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태어남의 힘을 벗어날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는 온갖 괴로 움을 끝낼 수 있는가? 그렇게 그분께서는 저를 참된 길로 인도해주 셨습니다. 형태가 있는 세계로 온 사람들, 형태가 없는 세계에 머무 는 사람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어떻게 끝낼지 모르는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은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자 악마 마라는 비구니 찰라는 나의 정체를 아는구나! 라고 생 각을 하여 그 자리에서 낙담하여 사라졌다. 35) 또한 앙굿타라 니카야 라는 불교문헌에서는 바뀌를 만드는 이 라고 불리는 스승 의 가르침이라고 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35) Psalms of the Early Buddhists, I-Psalms of Sisters, trans. by Mrs. Rhys Davids, M. A. (London: The Pali Text Society, 1980) P. 186-21 -

사람의 삶이라는 것은 짧고도, 바라문이여, 하찮고 귀찮고 여러 가지 괴로움과 수고로움으로 가득찬 것이다. 진언으로 (사람들을) 일깨워 라! 선을 행하라! 신성한 삶을 살아라! 태어난 자에게 불멸이란 없다. 풀잎 끝의 이슬 한 방울이 해가 뜨면 잠시도 머무르지 못하고 곧장 말라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 인간의 하찮고 귀찮고 괴로움과 수고로 움으로 가득찬 삶이다. 진언으로 사람들을 일깨워라! 선을 행하라! 태어난 자에게 불멸이란 없다. 36) 이상의 인용문 속에서 우리는 죽음에 대한 불교의 기본적인 생각을 읽을 수 있 다. 불교에서 죽음이란 본질적으로 인간이 안고 있는 고통의 가장 대표적인 양태이 다.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러한 고통의 기간도 마치 이슬과 같이 금새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듯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것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이렇게 죽음과 현실의 고통에 대한 철저한 자 각이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은 깨달음의 기로가 연결될 수 있으며 깨달음을 통해서 비로소 이러한 고통이 극복될 수 있다고 한다. 이 것이 바로 불교의 기본적인 사고 이다. 2. 죽음의 현상에 대한 불교적 고찰 1)불교에서 말하는 죽음이란? 인도의 전통 종교인 힌두교와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는 윤회( 輪 廻 ), 즉 인간의 삶이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무한히 생과 사를 반복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윤회를 인정하는 불교에서 죽음이란 수명을 지닌 생명체가 전변( 轉 變 )하는 과정, 또는 시기 중의 하나로 정리된다. 여기에서 수명의 지속과 파괴는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셈이 되는데, 불교의 교학에 의하면 수명은 업( 業 )에 의해 유지된다. 따라서 업력( 業 力 )이 존속하는 동안은 그 업력의 변화에 따라 삶과 죽음도 변화의 과정에 있다. 이러한 인식은 수태( 受 胎 )를 통해 인간의 생명이 시작된 이후 다음의 생명체로 결 정되기까지 4가지 종류의 존재를 거치게 됨을 말하는데 이를 사유( 四 有 ) 라고 한 다. 사유를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1생유( 生 有 )는 인간 존재의 기준을 오온( 五 蘊 )이라고 불리는 5가지 구성요소의 집합체로 삼는데, 생유는 이렇듯 오온이 결성되는 찰나, 즉 생명이 결성되는 찰나를 36) The Book of the Gradual Sayings IV (Pali Text Society, 1978) p.93-22 -

말한다. 2본유( 本 有 )는 생을 받은 뒤 임종 직전까지를 말한다. 3사유( 死 有 )는 최후에 임종하는 찰나를 말한다. 4중유( 中 有 )는 죽은 뒤 다시 생명이 결성되는 때 까지, 즉 다음 생을 받을 때까 지를 말한다. 사유와 생유의 중간으로 죽은 영( 靈 )이 다음 생에 태어나기 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특별히 불교 신자들 사이에서는 사자의 명복을 비는 의식으로서 관례화되어 있는 소위 사십구재( 四 十 九 齋 )는 바로 중유(혹은 중음( 中 陰 ))의 개념에서 유래한 것이다. 만일 죽은 뒤 바로 다음 출생의 조건을 만나지 못하면 다시 수차례 죽고 태어나는 식으로 여러 7일을 경과하게 되는데 그 최대기간이 칠칠일(7 7=49), 즉 49일이라 고 한다. 중유에 대한 믿음이 불교 특유의 왕생( 往 生 ) 사상으로 연결되고. 따라서 불교 신도들은 사람이 죽으면 7일마다 사자의 복을 기원하며, 특별히 49일이 되는 날에는 보다 큰 의식을 치르는 것이 관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중유 자체에 대한 논의나 인식이 죽음의 문제를 대한 핵심이 아니다. 죽 음에 대한 이상과 같은 설명은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사실을 자각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즉 죽음에 대한 이해를 통해 모든 만물이 무상하다고 하는 가르침 을 바로 깨닫게 하는 것에 있다. 중유에 대한 설명의 목적은 죽음이란 바로 단멸( 斷 滅 )이 아니라 삶의 연장선상에 있는 하나의 변화라는 사실, 다시 말해 죽음이란 바 로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 있다. 결국 부처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사후의 세계가 아니라 새로운 차원에서 죽음 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었다. 즉 삶에도 번민하지 않고 죽음에도 번민하지 않는, 생 명에 대한 추구였다. 바꾸어 말하면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가 의 문제였다. 따라서 공자와 마찬가지로 부처님도 사후( 死 後 )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무기 ( 無 記 ) 라 고 하여 논하려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이는 당장 실재적 삶에 도움이 되 지 않기 때문이다. 2)죽음의 종류 불교의 경전들에서는 죽음의 시기와 원인에 따라 죽음의 종류를 다양하게 분류한 다. 예를 들어, 대반열반경( 大 盤 涅 槃 經 ) 같은 경우, 다음과 같이 죽음의 종류를 구 분하고 있다. - 23 -

A. 2 종류의 죽음 -- 수명이 다한 죽음 ( 盡 命 死 )과 외적 요인에 의한 죽음( 外 緣 死 ) B. 3 종류의 죽음 a. 방일( 放 逸 )함으로 인한 죽음( 放 逸 死 )--예를 들어 대승불교의 가장 보편적인 덕 인 반야바라밀을 비방하여 이르게 된 죽음 b. 파계로 인한 죽음( 破 戒 死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들이 제정한 금계를 해치 거나 범하여 이르게 된 죽음 c. 생명기관의 파괴로 인한 죽음( 壞 命 根 死 )--오온으로 구성된 육신이 사라지는 것 3) 죽음과 마음의 문제 소승계통의 경전에 따르면 사람이 죽을 때 육체의 기관이 사라지는 과정은 그가 처하고 있는 세계에 따라 다르다. 그런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죽음이란 인간의 기 능 중에서 전적으로 정신적 기능의 소멸이다. 즉 마음의 문제이다. <구사론>과 같 은 경전에 의하면 사유( 死 有 ) 즉 죽음의 찰나와 생유( 生 有 ) 즉 생명이 결성되는 찰 나는 마음이 산란한 자에게만 있다. 마음을 집중한 사람과 무심( 無 心 )한 사람에게는 죽음과 출생이 없다는 것이다. 무심은 생명을 손상시키지 않으며 생명이 끝날 때에 는 반드시 의지하는 바의 신체에 따라다니며 종속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생명을 받 는 데에는 번뇌가 원인이 되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무심에서는 생명을 받지 않는 다. 이 때문에 무심한 자에게는 죽음과 출생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죽음의 문제가 정신 집중이나 정적( 靜 寂 )의 경지로써 해결 될 수 있다는 불교 특유의 인식이다. 일체의 번뇌가 사라지면 다시 태어나지 않는 다는 것, 즉 다시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3. 죽음의 극복문제 인간이 현실적으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임이 분명한 이상, 죽음에 대한 불 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죽음의 의미를 철저히 이해하여야 한다. 불교에서는 죽음 의 불안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수행으로서 염사( 念 死 ), 죽음에 대한 명상을 중시하 였다. 죽음에 대한 철저한 고찰 자체가 바로 죽음을 극복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는, 죽음이라는 현상을 포함하여 모든 현상은 고통이며, 무 상( 無 常 ), 무아( 無 我 )라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 涅 槃 )이나 해탈( 解 脫 )은 그 러한 실상을 체득함으로써 죽음을 포함한 모든 문제를 극복한 상태이다. - 24 -

우리의 삶이 죽음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즉 삶이 곧 죽음이므로, 죽음을 내포하고 있는 삶의 진실을 이해하게 되면 곧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 된다. 죽음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삶의 실상을 아는 것은 곧 영원히 사는 것이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죽음의 극복은 철저히 생사가 열반이라고 하는 각자의 내적 체험 에 달려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여 보자. 불교에서는 모든 현상은 인연생기( 因 緣 生 起 ) 적 현상 이며, 마음이라고 부르는 청정한 고요의 바다 위에 일어난 하나의 물결파문 이라고 본다. 결국 상대적인 인간개념과 경험의 현상으로서의 삶과 죽음이라는 현 상도 모든 현상 중의 한 가지 현상이므로 삶과 죽음 역시 인연생기적 현상일 뿐 그 것 자체로서의 실체나 실재로서의 불변적 속성이 없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생( 生 ) 과 사( 死 )가 같다고 하며, 언제나 생사( 生 死 )라고 붙여서 표현한다. 이것은 불교의 죽음관을 설명하는데 있어 중요한 열쇠이다. 삶과 죽음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삶이 곧 죽음이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다시 말해서 산다는 것은 곧 죽고 있다는 뜻이며,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뜻도 된다. 삶의 편에서 보면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죽 음의 편에서 보면 아직 죽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늙음과 병듦도 마찬 가지이다. 산다는 것은 늙는다는 것이요 늙는다는 것은 병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삶이란 사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을 벗어나려면 삶도 벗어나야 한다. 생( 生 )이 있는 한 사( 死 )는 필연적인 것으로 그 어떤 경우도 사( 死 )를 부정하 거나 거부할 수는 없다. 불교에서는 죽음을 또 다른 생존의 형태로 인식하고 있 다. 이는 죽음을 단멸( 斷 滅 )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연장선으로 인식 하는 특징을 갖는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우리가 불교의 죽음의 문제를 다루면서 유의해서 생각하여야 할 것이 있다. V. 그리스도교에서 바라보는 죽음 그리스도교는 한국문화 전통 안에서 비교적 새롭고 짧은 역사를 가짐에도 불구하 고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의 근대화와 관계한다. 한국의 근대화는 바로 서구화였고 한국의 근대화와 서구화의 중심점에 그리스도교가 자리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동양의 전통종교들과는 달리 그리스도교는 이원론적 세계관에 바 탕을 두고 있다. 육신과 영혼, 삶과 죽음을 이원적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지평의 것 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에서 바라보는 저세상, 즉 죽음 뒤의 세계는 이세 상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세계로서 연속성이 없다. 도교나 유교에서처럼 죽음을 삶 과의 연속성에서 이해하거나 자연의 순리적 과정의 일부로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태도는 이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기본적으로 그 - 25 -

리스도교에서의 죽음은 죄의 값으로 치르는 형벌 같은 것이다. 인류가 지은 원초적 범죄로 인해 인간은 누구나 죽는 것으로 이해한다. 신의 형벌로서 죽음이 이해된다. 죽음은 인간이 가지는 곤경과 고통을 가장 대표하는 대상이다. 따라서 죽음 그 자 체는 전혀 긍정되거나 용인될 수도 없으며 미화될 수도 없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 리스도교에서는 죽음은 완전한 구원과 승리, 그리고 영원으로의 통로이다. 특별히 그리스의 영육이원론의 영향 하에 그리스도교에서는 인간의 본질인 영혼이 육체의 죄와 부조리로부터 해방되어 완전한 신적 생명과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유일한 통 로이자 수단이 죽음이라고 설명하게 된다. 다시 말해 죽음은 원래는 저주이자 고통 이었지만, 그리스도교의 신앙 안에서 완전한 영생과 축복의 계기로 탈바꿈된다. 그 리스도교 신자에게 있어 죽음은 신적 세계, 곧 하느님의 나라를 영원히 향유할 수 있는 통과의례로서 그것을 통해 온전한 삶으로 다시금 태어나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새로운 탄생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불교의 윤회처럼 불완전한 상태로의 탄생이 되거나 반복적인 형태의 탄생이 아니라 완전한 형태로의 변화이며 단 일회적인 재 생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렇듯 그리스도교의 신자에게 죽음은 축복이요 영생의 기회이며 천국으 로의 입문이지만 비신자들, 즉 죄인에게는 지옥과 영원한 형벌의 시작을 의미한다. 따라서 죽음은 천국과 지옥이라는 이원적 세계로 향하는 새로운 출입구로서 죽음의 순간은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따라서 신자들은 현세에서의 신앙과 삶을 어떻게 영위했느냐에 따라 그것의 댓가로 사후세계를 다르게 누리게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상에서 나열한 그리스도교의 죽음관은 매우 거칠고 편파적인 것이다. 가 톨릭 같은 경우에는 연옥과 같이 사후에도 구원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믿기도 하며 시대별, 그리고 분파별, 학자별로 죽음과 사후문제에 대한 의견은 매우 다양하고 중 층적이다. 특별히 현대 그리스도교 신학에서는 죽음을 영혼의 해방으로 보는 이원 론적 해석을 거부한다. 그리고 죽음이란 육신만이 아니라 육신과 정신 모두를 관통 하는 전적인 죽음으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오직 사 후에 내세에만 향유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을 지양하기도 한다. 게다가 현대 과학 적 지식과의 만남을 통해, 죽음에 대해 형이상학적 설명을 시도하기보다는 사회일 반이 설명하는 것처럼 자연적인 죽음으로 이해하려는 입장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더 이상 사후세계나 천국과 지옥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현세에서의 신앙과 현세에서의 삶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러나 대중적인 신앙 안에서는 사후의 세계와 천국과 지옥 문제, 영혼만의 부활 인가, 혹은 새로운 육신의 부활인가 등의 질문이 여전히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상 당수의 그리스도교 신자수를 자랑하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그리스도교적 죽음관과 내세관은 한국 사회 일반의 죽음 및 내세에 대한 이해에 큰 영향을 미치 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죽음관이나 내세관 역시 유교나 도교, 불교와 마찬가 지로 현대 과학적 지식이나 합리적 설명과 충돌함을 피할 수 없으므로 주로 젊은 세대, 그리고 지식층의 신자들은 기존의 설명에 전적으로 수긍하거나 만족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인들의 죽음관, 내세관이 개인에 따라 상당히 - 26 -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VI. 나가는 말 이상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종교인 불교, 유교, 도교, 그리고 근대에 유입된 외래 종교인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한국인의 죽음관을 살펴보았다. 윤회( 輪 廻 )사상을 중심 으로, 개체로서의 인간이 사후에 전변을 통한 개체적 연속성을 유지한다고 하는 불교의 죽음개념, 그리고 사람이 사후에는 일정시간 이후 모두 우주적 기( 氣 )로 융화된다고 하 여, 사후의 개체적 영속성을 인정하지 않는 유교의 죽음관은 그 양상이 매우 상이하다. 또한 노장의 생사를 하나로 보는 초탈한 죽음이해와 신선을 통한 영생을 추구한 도교 의 죽음관도 동양인들의 내면에 자리한 또 다른 죽음관을 보여준다. 이렇듯 서로 다른 견해를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이들 세 종교의 죽음관으 서양의 그리 스도교와 같이 직선적 시간관에 바탕을 둔 종말적 내세관을 소유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 종교는 모두, 죽음의 문제가 결국은 사후의 문제에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문제, 이세상의 문제에 직결되는 것임을 강조한다. 즉 이 세상에서의 삶을 잘 영위하기 위해 죽음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죽음이라고 하는 불가항력적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로부터 출발하여 죽음의 실상을 그대로 인식하는 과정을 거쳐 연기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죽 음이해, 즉 삶이 죽음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다시 말해 삶이 곧 죽음이므로 죽음을 내포 하고 있는 삶의 진실을 이해하게 되면 곧 죽음을 극복하는 된다고 하는 것을 깨달 을 것을 강조한다. 종합적으로 말해 죽음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삶의 실상을 아 는 것은 곧 영원히 사는 것이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죽음의 극 복은 철저히 생사가 열반이라고 하는 각자의 내적 체험에 달려있다. 철저히 합리적이고 현실적 설명을 고집했던 유교에서는 인간의 인식이 닿지 않는 죽 음과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설명을 거부한다. 다만 천명으로서의 죽음을 숭 고한 자세로 받아들이는 태도, 즉 안심입명( 安 心 立 命 )하는 태도를 통해 죽음으로부터 자유감을 소유하는 것을 중시한다. 그리고 사후의 개체적 존재의 연속이 아닌 조상에서 후손으로 이어지는, 바꾸어 말하면 삶에서 삶으로 이어지는 인간세계에서의 도덕적, 정신적 영생(immortality)을 추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교가 도덕적, 정신적 영생을 추구한 반면, 도교에서의 영생은 각 분파마 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말해, 신선이라고 하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남을 통해 서 이루어진다. 그것이 현상적 육체를 보존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든(갈홍), 혹은 현 상적 육체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육체를 형성하는 것이든(전진교), 또 다른 의미의 몸으로 태어난 상태에서 누리는 것이 도교의 불사이다. 이상의 전통적 종교인 세 종교와 완전히 구분되는 그리스도교의 죽음 이해는 직 - 27 -

선적 시간관과 영육이원론적 인간 이해, 그리고 이생과 저승을 완전히 단절된 것으 로 이해하는 이원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죽음은 이 세상의 완전 한 극복이자 이 세상과 전혀 단절된 새로운 차원으로의 진입을 의미하며 죽음이라 는 사건에 의해 단절된 두 세계 사이에는 전혀 연속성이 없다. 따라서 죽음이란 신 앙의 결과에 따라 주어지는 존재의 비약과 몰락 양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살펴 본 한국의 각 전통별 죽음관에 근거해 정리를 해 보면 적어도 현 재 한국인들의 심성 안에서 죽음관은 통일된 의견을 보이지 못한다. 더 나아가 각 종교전통에 속하는 신자들끼리도 죽음이나 내세에 대한 의견에 통일점을 찾지 못하 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각 개인이 소유한 종교가 무엇이냐와 별개로 다른 종교의 죽 음관이나 내세관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교 신자 의 경우에도 불교의 윤회적 관념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 경우도 발견되며, 불교신자의 경우에도 그 심성 기저에 유교적 죽음관이 자리하는 경우도 있다. 죽음이란 합리적 언표와 설명이 불가능한 주제인 바, 죽음에 대한 이해는 의식세 계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 저 깊은 곳에 자리하며 오랜 전통과 세월 속에서 세대를 거치며 되물림 되고 축적되는 것이라 여겨진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들의 죽음 이해 안에는 유교적 선비의 죽음관, 그리고 도교의 불사관, 불교의 윤회관, 그리고 서구 그리스도교식의 천국과 지옥관 등이 서로 얽히고 묶여 만들어진 복합적 죽음관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관은 지금도 현대 학문적 세계관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종교 아닌 종교와 만나면서 지금도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는 진행형 의 주제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정직한 답이라고 할 것이다. - 28 -

PROFILE 성 명 (한글) 이 경 식 (한자) 소 속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직위 명예교수 전공 종양내과 전화번호 연구실 011-9472-6058 e-mail kslee@catholic.ac.kr 내 용 주 요 학 력 및 경 력 학 력 1967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경 력 1998-2002년 한국호스피스 완화의료학회 이사장 역임 2002-2003년 대한암학회 회장 역임 2003-2004년 한국호스피스 완화의료학회 회장 역임 2003-2004년 호스피스 완화의료 사업지원평가단 단장 역임 1981-2008년 가톨릭의대 강남성모병원 종양내과 및 호스피스 센터 교수 현재-가톨릭의대 명예교수, 호스피스 센터 교수 및 삼성산 호스피스봉사회 고문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이해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센타 명예교수 삼성산 호스피스봉사회 고문 이경식 I. 호스피스의 역사 1. 구 미 구미의 호스피스는 중세기에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 중 쉬어 가는 숙소를 지칭하는 이름이 었으며, 19세기 초부터 수녀들이 임종자들을 한데 모아 돌보아 주는 임종의 집을 호스피스 라 불렀다. 근대적 호스피스는 1967년 영국에서 여의사인 Cicely Saunder's가 현대의학을 호스피스에 접목시켜 죽음이 예견되는 말기환우들을 다각적 전문분야로 구성하여 돌보는 근 대적 호스피스 를 세웠다. 그후 죽음을 너무 강조하는 느낌이 드는 호스피스 보다는 증상완 화를 강조하는 완화의료 라는 용어를 추가하여, 현재에는 세계적으로 호스피스 완화의료 로 사용된다. 현 재 에는 호스피스 병동, 산재형 호스피스, 가정 호스피스, 시 설 호스피스 등으 로 발 전 되었고,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구축망이 갖춰짐으로써 환자와 가족이 원하는 곳에서 지속적 으로 돌봄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의료계에서는 완화의학과 라는 전문 분야도 생겼고, 사회 적으로 재정적 지원이 활발하고, 국가적으로는 의료보험의 지원을 받고있다. 2. 한국 한국은 1964년 마리아의 작은 자매 수도회 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강릉에서 호스피스를 시 작하였으며, 1991년에 한국 호스피스 협회, 1992년에 가톨릭 호스피스 협회가 출범하여 종교 계를 중심으로 점차적으로 사회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의료계의 시작은 1982년 가톨릭대학 의과대학에서 대학생과 함께 다각적 전문 분야로 구성 된 근대적인 호스피스 팀 을 시작하였고, 1998년 한국 호스피스 완화의료 학회 가 창설되 었고, 2003년에 한국 간호사 호스피스 협회 가 창설되어 의료계에 정착이 되었다. 현 재 에는 전국 적 으로 퍼져 병원내 호스피스 병동 호스피스 팀 과, 가정 호스피스, 시설 호스피스 가 운 영 되고 있 다. 정 부 는 2003 년부 터 호스피스 완화의료 시범 사업을 실 시하 였 고, 2009년 12월부터 완화의료 건강보험 수가 시범사업이 8개소의 말기암환자 전문의료기관에서 실시되고 있으며, 2010년 40개소의 기관이 완화의료 전문의료 기관으로 지정되었다. II. 말 기 환 우 는 호스피스 및 완화의료로 돌 본다. 1.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차 이점 호스피스와 완화의료는 같 은 뜻 으 로 사용되 기 도 하 나, 완화의료는 말 기 의료의 증 상 완화와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