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C 중반 ~ 15C 러시아문학속의 따따르신화 37 13C 중반 ~ 15C 러시아문학속의 따따르신화 이교문화의전유로서타자적형상과위상그리고진화를중심으로 오원교 ( 한양대 ) I. 들어가며 유라시아공간의형성은동양을향한유럽적러시아의지정학적확장뿐만아니라그것에대한지문화적전유를동반하는바, 러시아의제국적이념지형의형성과정에서러시아인들은동양민족들에대한아주독특한인식과평가를드러냈다. 역사적으로러시아인들에게동양의개념이완전한의미를획득하고, 소위러시아오리엔탈리즘이본격적으로등장하는것은 18C 이후, 즉서구화혹은유럽화로상징되는뾰뜨르개혁에서시작된러시아의근대이후이다. 하지만러시아와동양의관계는다양한아시아의유목민족들과본격적인접촉이이뤄졌던끼예프루시 (Русь) 시대로, 더구나그역사적뿌리는러시아땅에슬라브인들이나타나기이전으로까지거슬러올라간다. 하지만러시아문학사, 특히고대러시아문학사전체를통틀어동양에대한태도와관념, 이미지그리고담론의형성에서가장근원적이고중대한의미를지니는역사적계기는다름아닌 따따르의멍에 (татарское иго: 1240~1480) 이다. 주지하다시피두세기반에걸친몽골 따따르 ( 이하따따르로약함 ) 의지배는국토의황폐화와인명의손실은물론이고끼예프루시의역사적 문화적유산의파괴를낳은까람진과솔로비요프와같은후대의저명한러시아역사-문화사가들조차외면할정도로러시아역사의암흑시대였다. 따따르의지배는러시아인들에게신의저주이자민족의수치이며벗어야할역사의짐으로서기억되며, 나아가이른바 아시아적야만 (азиатчина) 이라는러시아오리엔탈리즘의역사적본거지로자리한다. 실상다소일면적인역사적평가 예컨대, 우리는아시아로부터특별히받은것이거의없다 55) (Д.С. Лихачев) 라는식의 와는상관없이, 이른바 따따르의멍에 는러시아와동양의관계에서커다란역사적의미를갖는다. 주지하다시피그것은동유럽의국가로출발했던러시아에동양적요소를심어주었으며, 모스끄바공국은끼예프루시의전통을계승하면서도동시에초원의강력한동방민족의영향속에서성장하게된다. 말하자면몽골지배와그후동방으로의러시아제국의팽창은지리적 문화적차원에서러시아의유라시아적정체성을현실화하였다. 즉, 슬라브, 따따르, 뚜르끄그리고다양한아시아계민족들을포함하는서양과동양을아우르는다민족, 다문화적유라시아적공동체의토대가실제적으로형성된것이다. 이처럼 따따르멍에 라는전대미문의역사적재앙과그로인한러시아인들의고통은다양한사회적반향을낳았는데, 특히당대의러시아문학은쓰라린역사적트라우마에근거해이교적동양에대한독특한신화를창조했다. 13C 중반에서 15C까지고대러시아문학이독특하게만들어낸따따르신화의바탕에는정교주의와애국주의가깔려있는데, 이를기반으로따따르로대표되는이교적동양에대한차별적타자화가다채롭고도일관되게실현된다. 그리고이러한과정은블라지미르대공의기독교수용이후본격화되어온고대러시아의정치적 문화적자기정체성의확립노 55) 올랜드파이지스 (2005), 533 에서재인용
13C 중반 ~ 15C 러시아문학속의 따따르신화 38 력과맞닿아있다. 요컨대, 13C 초반따따르의침략과거의한세기반에걸친따따르의지배를거치면서점차형성되었던따따르에대한원형적관념, 이른바 따따르신화 는꿀리꼬보전투 (1380년) 를계기로 15C 말의따따르로부터의실질적해방에이르기까지또한세기를지나는동안에지속적으로변모해갔다. 말하자면당대고대러시아의역사적전개와밀접하게연관되어있는고대러시아문학속의따따르신화는종교적 민족적파토스가넘쳐나는이원론적사고에기반하면서역사의흐름에따라의미론적대립항들의구체화와풍부화를통해지속적으로진화하였고, 이과정에서향후러시아문학사전체에걸쳐심대한영향력을발휘하는소위 Татарщина의원형상이태동한다. 이런맥락에서본연구는따따르지배시기의러시아문학속에서드러나는이교문화에대한차별적전유의하나로서따따르신화의타자적형상과위상그리고진화의역학을살펴보고자한다. 이연구는고대러시아문학속의따따르신화의실체에대한구체적인식과해체적지양을겨냥하는하나의전제작업이다. II. 13C 중반 ~ 14C 전반의고대러시아문학에서따따르의지각 따따르의침략은중세러시아의역사에서결절점이었다. 따라서당대의작가들은따따르라는현상자체, 루시땅에그것의출현의원인그리고생겨난상황으로부터탈출의가능성에대한깊은모색을하게되었고, 그과정에서또한도덕적 윤리적자기평가와관련된문제들을우회할수없었다. 실제로따따르의출현과러시아공후들의패배는당대루시에서형성된정신적상황과밀접한관련속에서숙고되었으며, 따따르에대한지각은당대러시아사회의정신적발전의기본적방향을규정한도덕적 지적인추구들의중요한요소였다. 1. 초기연대기들의 깔까강전투에관한이야기 에서따따르 고대러시아문학에서따따르에대한최초의언급은깔까강에서러시아-뽈로베쯔연합군과따따르군의역사적전투 (1223년) 의이야기인 깔까강전투에관한이야기 (Повесть о битве на Калк е) 를다룬연대기들에서등장한다. 대표적으로 노브고로드제1연대기 (Новгородская первая лето пись), 라브렌찌연대기 (Лаврентьевская летопись), 이빠찌연대기 (Ипатьевская летопись) 에서다뤄지는깔까강전투 56) 는연대기작가들에게단순히미지의적들과의일회적충돌과패배에대한기록이아니라향후오랫동안러시아의정치적, 사회적, 정신적발전에커다란영향을끼치는이민족과의최초의투쟁이었다는점에서의미심장했다. 따라서작가들은독자들의주의를끌면서따따르의출현이라는사건의의미를한 ( 汗 ) 의침략과그이후일련의사건들과의연관속에서해명하고자했다. 우선연대기작가들에게중요한물음은갑자기나타난낯선사람들이누구이고왜그들이바로그순간에등장했는가를해명하는것이었다. 노브고로드제1연대기 에서작가는당혹과의문 ( пр 56) 깔까강전투에관한이야기 는세연대기에서서로구별되는데, 각각은많은양의고유한정보를지니며, 정보의일부는이야기사이를유랑한다. 여전히논란거리지만 깔까강전투에관한이야기 는 노브고로드제 1 연대기 과 라브렌찌연대기 에서는 1220 년대후반에서 1230 년대전반사이에, 이빠찌연대기 에서는이보다 20~30 년후혹은적어도 13C 말과 14C 초이전에기록된것으로추정된다. 이에대해자세한것은 В. Н. Рудаков(2009), 20-26 참조.
13C 중반 ~ 15C 러시아문학속의 따따르신화 39 идоша языци незнаеми, их же добре никто не весть, кто суть и отколе изидоша, и что языкъ ихъ, и которого племени суть, и что вера ихъ... - 61) 57) 을표시하며, 미지의민족을세가지형태 ( А зовуть я Татары, а инии глоголють Таурмены, а друзии Печенези - 61) 로소개한다. 그리고빠따라 (Патара) 출신의메포지 (Мефодий) 의 계시록 (Откровение) 을인용하여따따르의출현의원인을무엇보다도러시아의도덕적-윤리적불완전성, 죄악성 (греховность) 에서찾는다. 58) 노브고로드제1연대기 에서작가는러시아와연합했던뽈로베쯔에대해비판적인데, 뽈로베쯔는 безбожный, окаянный, беззаконный 로묘사되며, 그들이러시아땅에서수많은악행을저질렀고, 농민들의피를흘리게했으며, 이러한행위때문에자비로운하느님의처벌을받았다고기술한다. 이에비해따따르는죄많은뽈로베쯔에대한하느님의채찍이며, 따라서결코무신적 (безбож ные) 으로간주되지않는다. 연대기작가는러시아인들에게자기행동의결과에대해경고하면서, 그들에게닥친불행은하느님이벌하는뽈로베쯔를도운믿음직스럽지못한선택, 러시아인들이스스로저지른죄악에대한처벌로인식한다. 또한작가는따따르가일반적으로이즈마일사람들로인정된뽈로베쯔와싸운다는사실때문에그들을이즈마일사람들과동일시하는것에대해머뭇거리며, 따따르의도래가다가오는최후의심판의표지중의하나인지에대해서도명확한답을제시하지않는다. 이작품에서작가는따따르인들에상당한정도로동정적태도를보여주는데, 왜냐하면그들은그릇된행위로부터러시아인들을떼어놓으려하고, 러시아에대해평화애호적인태도를표하며, 두명의사신을보내뽈로베쯔를돕지말도록설득하기때문이다. 따따르인들의긍정적인측면은러시아인들과뽈로베쯔인들의부정적인행위로인해훨씬강조된다. 라브렌찌연대기 는깔까강전투에대해상대적으로간략한이야기를담고있다. 이야기의슈젯은 1) 한 ( 汗 ) 의출현은무신의뽈로베쯔에대한절대자의벌 (Кара Господина), 2) 뽈로베쯔공후들을돕기위한남러시아공후들의원정과러시아인들의결과적패배, 3) 따따르에맞선전투에참가하지않아파멸로부터구원을받은로스또프의공후바실꼬꼰스딴찌노비치 (Василько Констант инович) 에대한이야기등으로구성되어있다. 슈젯의선택에서드러나듯이 라브렌찌연대기 의작가는그자체로서따따르의행위에대한묘사에는관심이적으며, 일종의놀라운냉소주의를간직하고있다. 말하자면 남부루시가눈물을흘리고슬퍼할때, 블라지미르와로스또프에서하느님과성모를찬양하며기쁨에차있었다 59) 라는인상을남긴다. 작가는러시아공후들의궤멸이라는역사적사실로부터스스로를격리시키며깔까강에서의패배에대한무관심을로스또프공후단한사람의운명에대한특별한관심으로보상하는듯한데, 이러한독특한태도는다른연대기에도보편적으로존재하는낯선침입자들에대한이해부족과작가자신의친 ( 親 ) 로스또프적경향에서비롯된것으로보인다. 라브렌찌연대기 는 노브고로드제1연대기 와마찬가지로따따르에대한충실한태도가엿보이는데, 뽈로베쯔들에게붙여진부정적어휘들 безбожный, беззаконный, окаянный 는따따르에게사용되지않으며, 역시그들은기독교도들에게피를흘리게만든무신의이즈마일로프의아들들에게복수를하기위한신의무기로서간주된다. 뽈로베쯔에대한부정적인관계를배경으로따따르는특색없고수동적인세력으로보인다. 따따르는단한차례만직접적으로언급되며, 많은경우인칭대명사와지시대명사로칭해지며 (ти пойдут; бишася с ними; побеждены от них), 러 57) Новгородская I летопись(1950), 61. 이하인용에서는괄호안에쪽수만표기 58) 노브고로드제 1 연대기 에서죄의테마는 3 차례 ( 도입부에서 1 회, 결말부에서 2 회 ) 반복되는데, 여기에서죄자체는구체적으로언급되지않으며지상의일반적인죄와연관된다. 59) И. У. Будовниц(1960), 296.
13C 중반 ~ 15C 러시아문학속의 따따르신화 40 시아에대한따따르의승리도건조하게서술된다. 즉뽈로베쯔에대한하늘에서내린벌로서따따르의고상한소명은그들에맞서전투를벌인남러시아의공후들의행위에대한무관심하거나부정적인작가의태도를규정한다. 적들을벌하기위해신이파견한세력에맞서는행위는무가치하거나그릇된일로받아드려졌던것이다. 이러한맥락에서자신의공후바실꼬의선택과생존에대한연대기작가의특별한만족감이해명된다. 60) 이빠찌연대기 는위의두연대기에비해훨씬상세하게전투의준비와경과와결과를기록하였다. 작가는몇몇사료에서아주다양하고미세한세부를선별하여모자이크식으로텍스트를결합하여하나로만들어냈다. 우선작가는러시아공후들에게닥친불행의규모를강조하였는데, 깔까강에서의패배는결코단순한사건이아니었다 ( быс победа на вси князи Роускыя, тако же не бывало никогда же - 745). 61) 이빠찌연대기 에서러시아공후들은 노브고로드제1연대기 에서처럼자기주도가아니라뽈로베쯔의요구에따라따따르에저항하였다. 이연대기에서작가는러시아인들과전투자체에비해따따르에대해서는상대적으로적은관심을보낸다. 즉따따르는얼굴없는무리로서등장한다. 따따르는 неслыханная рать безбожнии Моавитяне, кекомыи Татаръве 로규정되는데, 종교적원칙에입각한부정적성격화로서 безбожн ые의등장은, 한 ( 汗 ) 들의 лесть에대한강조 ( иные же страны ратми, наипаче лестью погубиш а ) 와함께일반적으로따따르에대한 безбожный 라는형용이바띄 (Батый) 의침략에관한이야기로부터시작된다는점을감안해보면, 다른두연대기에비해다소때늦은등장 ( 기록 ) 에서비롯된결과로파악된다. 62) 이빠찌연대기 의또다른서사적특징은사건의묘사에서드러나는일종의낙관주의이다. 러시아인들은단순히자신들의운명에저항하는것이아니라궁극적으로패배를견뎌낸다. 러시아인들은자신들의행위에서적잖이성공적이며, 따따르에대한러시아인들의승리는원칙적으로가능하다는인상을풍긴다 ( победиша и (их - татар) и гнаша в поле далеце, секоуще и взяша скоты ихъ ; татаром же бегающимъ, Данилови же избивающи ихъ своимъ полкомъ. - 743-744). 다른연대기에서는낯선독특한낙관적음조는연대기의해당부분이기록된다닐로마노비치 (Дани ил Романович) 치세의갈리쯔꼬-볼릔스끼루시의정치에특징적이었던따따르에대한비타협적인저항과관련된다. 작가는한편으로러시아가승리할기회가있으며, 따라서투쟁은무의미하지않고러시아에이롭게끝날수있으며, 다른한편으로승리는오직죄과를벗어난후에만, 즉하느님의진노가사라진후에만가능하다고생각한다. 이처럼 깔까강전투에관한이야기 의초기연대기텍스트들에서작가들의관심은따따르는누구이며무엇때문에그들은그시기에나타났는가이며인식의윤리적측면이아니라상징적측 60) 라브렌찌연대기 의작가의입장에서남러시아의공후들은어디서왔는지누군지도모르고, 신의채찍으로서무신의뽈로베쯔족을벌하는올바른일을행한, 더구나남러시아땅을침범할의도도없는이민족, 따따르와의싸움에개입한것이었다. 패배를당한싸움은오히려남러시아공후들이자초했다는것이다. 이연대기에는따따르에맞선뽈로베쯔가러시아공후들에게도움을요청하는에피소드도존재하지않으며, 따라서러시아공후들이자초하고무의미하고그릇되며비극적결과를가져온전투에참가하지않은자신의공후바실꼬의행위는정당하고현명하며모두가하느님의뜻에따른것이라는주장이다 61) Ипатьевская летопись(1962). Стб. 745, 이하인용에서는괄호안에 Стб. 의수만표기. 62) 이빠찌연대기 의상대적으로늦은등장을보여주는또하나의서술은따따르에대한패배가죄과에대한하느님의벌일뿐만아니라러시아인들에대한일종의경고인데, 바로그들에게죄로부터벗어나서의식적으로참회와개심의길에서도록또한번의기회를제공한다는내용이다. 이러한사고는따따르의 безбожность 와함께바띄의침략이후에널리퍼졌다.
13C 중반 ~ 15C 러시아문학속의 따따르신화 41 면이중요하게여겨졌다. 노브고로드제1연대기 와 라브렌찌연대기 의작가는갑자기등장한알수없는민족을일관되게인식하지못했으며, 메포지의 계시록 에따라다가오는최후의심판의하나로서나타날전설적인민족, 이즈마일사람들의형상을뽈로베쯔와연관짓고따따르의행위를이즈마일의후손들과비교한다. 작가들은커다란적대심을가지고뽈로베쯔인들을대했으며, 따라서이교적인꾸만들과러시아공후들의연합은인정할수없는것으로간주된다. 깔까강에서러시아의패배는 노브고로드제1연대기 와 라브렌찌연대기 의작가들에게죄에대한응보로서여겨지며, 이빠찌연대기 의작가에게는하느님의벌이러시아인들의개심의필요성에대한독특한경고로서받아들여지고러시아의패배가완전한파국로여겨지지는않았다. 대체로초기연대기들에서작가들은따따르에대해대체로중립적인태도를지녔었다. 그들에대한따따르에대한원칙적으로다른인식은바띄의침략이후에나타났다. 말하자면 러시아땅의패망 (погибель Русской земли) 과같은종말론적음조로채색된평가는이후에등장한다. 2. 초기연대기들의 바띄의침략에관한이야기 에서따따르 바띄의침략에관한이야기 (Повесть о нашествии Батыя) 는 깔까강전투에관한이야기 와마찬가지로연대기들에서최초로기록되었는바 63), 이야기의성격은작가들의개인적열정과일련의사회적요소들의결합에의해규정되었다. 64) 노브고로드제1연대기 에서따따르에대한작가의지각은상대적으로훨씬부정적인데, 따따르는단순히러시아도시들을파괴한점령자, 즉적 ( 敵, враг) 으로서가아니라대체로불가피한악으로간주되며, 그것의출현자체, 형식, 결과등은이해할수없는차원에속한다. 텍스트에서따따르는 иноплеменьници, глаоголемии Татарове로칭해지며, 이민족 (Иноплеменн ики) 은 погани, безбожнии, беззаконьнии, оканьнии 로수식되며, 또한 кровопролитцы крестьянь скыя крови, безказоньнии Измаильти, оканьнии безбожници(74-77) 등으로표현된다. 따따르의인종적기원이나신앙, 습속이나풍속등은중요성을지니지않으며, 구체적행위들이평가되고침략의공포가묘사되기보다는일어난사건이특별한논평없이서술된다. 이민족으로서따따르는일반적인행위방식에따라상투적으로행동하며, 따라서그들의행위는고유한자질에의해서가아니라위로부터그들에게맡겨진징벌의검 (карающий меч) 이라는사명에의해지시된이민족일반의속성에의해규정된다. 65) 전반적인상투적성격화속에서특별히두드러지는작가의독특한관찰혹은의식적선택은따따르의메뚜기떼에대한비유 (...на землю Рязнаьскую, множества бещисла, акы прузи - 74) 이다. 바로메뚜기떼는전통적으로중세적의식속에서절대자의형벌중의하나로간주되었는바, 이 63) 연대기들에서 바띄의침략에관한이야기 는텍스트들이오랜기간에걸쳐진화를겪어왔기에이야기의최초의형태 ( 원형 ) 와각텍스트의정확한창작시기를결정하는일은상당히어렵다. 학계의대략적인견해로는 바띄의침략에관한이야기 를다룬세연대기는늦어도 14C 초이전에기록되었고, 이빠찌연대기 가비교적정확하게 13C 중엽이라면, 노브고로도제 1 연대기 와 라브렌찌연대기 의정확한시기는아직합의되지못하고있다. 노브고로도제 1 연대기 와 라브렌찌연대기 의이야기는동시대인들이아니라가까운후대인들에의해기록되었으며, 시간상으로거리가있는과거의증언들에작가들의고유한시각이부기되어있다. 64) 일반인들의따따르에대한지각에영향을미친것은이야기가창조된장소 ( 따따르에패배한공국인가아니면주변인가 ), 해당공국의정치적엘리트들의한 ( 汗 ) 권력에대한관계의성격 ( 적대적인것에서우호적인것에이르는 ), 이야기의출현시기 ( 목격자에의해생생한흔적을통해기록되었는가, 혹은사후에후손들의침착한사고의결과인가, 아니면소문들의문학적가공인가 ) 등이다. 65) 따따르를규정하는형용어는메포지의 계시록 에서최후의날에인류를벌하기위해오는민족들을수식하는어휘들 (племя Измаилево, беззаконные, поганые 등 ) 과거의동일하다.
13C 중반 ~ 15C 러시아문학속의 따따르신화 42 러한비유를통해작가는의식적으로따따르의무수함과함께그들의도래가하느님의벌이라는측면을강조한다. 그리고 깔까강전투에관한이야기 를기술했던자신의선대인들의의심과는달리이제는따따르를최후의날전야에세상을정복할불순한민족, 특히이즈마일사람들이라고확신에차서말한다. 노브고로드제1연대기 에서따따르는대단히성공적으로행위하며, 뜻하는모든것을성취한다. 따따르의승리, 특히랴잔의포위와점령은다성적으로묘사된다. 또한따따르의승리는마치아무런저항도받지않고저절로이뤄지는듯이그려진다. 이러한경향은블라지미르의포위와관련된일련의사건에대한묘사에서도지속된다. 이처럼이교도의승리에대한묘사는다소단조로운데, 이것은전투의실제라기보다는오히려전투에대한작가의관념 ( 태도 ) 을표현하기때문이다. 말하자면전투에서따따르는하느님의형벌의무기이며, 따라서죄를벌하려는하느님의뜻에러시아인들이저항하는것은원칙적으로불가능하다. 작가는하느님의분노에맞서는것은불가능하다는점을재차강조한다. 작가는역사적사건의정치적이면에대한탐색을거의하지않는다. 66) 라브렌찌연대기 에서 바띄의침략에관한이야기 는모자이크적성격을띠는데, 특히해당텍스트는수많은차용과자유로운취사선택에기초하여다른연대기에비해훨씬문학적이라는평가를받는다. 67) 따따르의침입은이교도들에대한하느님의자비가아니라러시아인들의죄에대한벌 ( попуст и Богъ поганыа, не акы милуя ихъ, но нас кажа - 462-463) 68) 로규정되며, 종말론적인전조들에대한유비를통해서사의극화가이뤄지고사건의비극적성격이강화된다. 연대기에서종말론적주제는서사에상응하지않는현실, 즉비실제적인연대기적정보를도입함으로써발전한다. 이러한기법은중세의문헌가들에의해자주사용되는시간범주에대한중세적관계를보여주는데중세는역사적시간개념에대해무차별적이었으며, 오히려시간은기호적 ( 상징적, 알레고리적 ) 성격을지녔다. 69) 또한작가는따따르를단순히신의분노를표현하는맹목적인무기로서가아니라, 어떤독자적특징 언제나부정적인, 예컨대 безбожные, окаянные, злые кровопийцы, поганые инополемен ники, проклятые безбожные, плотоядицы, глухое царство оскверненное 을지닌세력으로형상화한다. 또한따따르는러시아를이겼을뿐만아니라사방에악 ( 惡 ) 을퍼뜨리는주체로묘사된다 ( безбожнии со лживы миром живуще, велику пакость землям творять, еже и зде многа зла ст вориша - 468). 라브렌찌연대기 의이야기에서중요한것은정교신앙과따따르의투쟁 (борьба татар с праос лавной верой) 이서술된다는점인데, 하지만이처럼따따르의 безбожность를반 ( 反 ) 정교성 (антипр 66) 말하자면중세러시아의연대기작가에게자기동포들의죄악을제외하고는러시아에닥친불행에대한보다심오하고총체적인인식은아직존재하지않았다. 따라서연대기작가가러시아에닥친대재앙의원인을정치적무질서와공후들의혼돈탓을돌린다는견해 (И.У. Будовниц(1960), 302) 는재고를요한다. мы въздыхаемъ день и нощь, пекущеся о имении и о ненависти братьи (75) 라는발화는공후들사이의내분과갈등에대한개별적지적이아니라당대러시아사회전반에걸쳐사람들사이에퍼져있던탐욕과증오라는보편적인죄스런행위에대한언급이라고할수있다. 67) А. Ю. Бородихин(1989), 12. 68) Лаврентьевская летопись(1926~1928). Стб. 462-463, 이하인용에서는괄호안에 Стб. 의수만표기. 69) 예컨대, 라브렌찌연대기 에서작가는의식적으로따따르에의한블라지미르점령일을확대했는데, 노브고로드제 1 연대기 의수난주일전금요일대신에사건이수난주일에일어난것으로기록했는데, 일종의섭리론 (провиденциализм) 에의거하여작가가블라지미르루시에덮친신의형벌이실행되는날에대한선택에영향을미친것으로수난주일은정교에서최후심판의주일 (неделя о Страшном суде) 이라는명칭을가진다. 즉작가는최후심판의날과따따르의침입에의한러시아땅에대한신의벌이라는두개의사건을극적으로합친것이다.(А. Ю. Бородихин(1989), 78-79, 81-82)
13C 중반 ~ 15C 러시아문학속의 따따르신화 43 авославие) 으로해석하는것은당대가아니라후대의시각을반영한것으로평가된다. 또한따따르에대한새로운지각이드러나는데, 작가는따따르를하느님의진노를표현하는수동적인무기로부터개성적인부정적자질을지니고, 저지른악행에대해하느님앞에서책임을져야하는주체로변모시킨다. 한편작가의이교도에대한반대가능성은학계에서여전히논쟁적인문제이다. 일부는따따르에대한타협을, 일부는따따르에대한저항을호소한것으로간주하는데, 대체로나쁜운명과신의의지의거역은불가능하다는분위기가감지되며따따르에대한저항의불가능성과무용성이지배적이다. 바로이런입장에서수도블라지미르의방어자들과도시에남겨졌던대공의아들들 ( 프세볼로드와므스찌슬라브 ) 은어쩔수없는상황속에서타협적행동을했던것이다. 이처럼 라브렌찌연대기 에서작가는이교도에대한적극적저항이아니라기도속에서신의형벌의수동적기다림을통한구원을기독교인들의마땅한행위의이상으로간주한다. 70) 이빠찌연대기 에서따따르의지각은바띄의침략이후남러시아에서형성된여타지역과는다른정치적상황때문에다른연대기와구별되었다. 이연대기에는다닐로마노비치 (Даниил Ром анович) 와그의주위사람들의반 ( 反 ) 따따르적인분위기가반영되어있는데그는당시따따르에저항하기위한서유럽국가들의동맹에대한희망을간직하고있었다. 여기서연대기는독자들을압제자들에대한미래의저항에대비시키는이데올로기적수단으로복무한다. 이빠찌연대기 에서따따르는다른연대기에서처럼 безбожнии Измаилтяне, безбожнии Агаря не, иноплеменьныхъ языкъ. беззаконые, поганые, нечестивые 등으로규정되며, 작가는부정적인형용어를구체적인인물의성격화에도사용하는데, 이를테면바띄는 нечестивый, свирепый зверь 로칭해졌다. 또한작가는따따르에게종교적관점의부정적자질 (нечестивые, поганые, безбожн ые) 외에도보다세속적관점의부정적자질도관련시켰는데랴잔땅의점령과관련하여특히 лест ь를두번이나사용하였고 ( изведошм на льсти...и убиша ), 블라지미르를포위했을때바띄는러시아인들을꾀일려고 (с льстью) 했으나주교미뜨로판 (Митрофан) 은신도들에게불신의인간들의유혹 (прельщения) 을두려워하지말라고기도했다고적고있다. 이처럼작가는따따르의힘보다는간계 (коварство) 와배신 (вероломство) 을중요하게여긴다. 실제로작가는따따르의간교함은이교도의부정적인지상적자질로해석되며, 따라서따따르는상종할수없는명예와양심이없는민족으로여겨진다. 여기서 льстивость, коварство 는불순한민족의자질로소개된다. 이에반해당시에다른연대기에서너무나유명한 кара Господней за грехи наши 로서무신론자들의침략이라는문구는아예등장하지않는다. 즉 이빠찌연대기 에는참회를호소하는종교적훈계로서러시아에닥친불행에대한설명은존재하지않는다. 나아가작가는사건의사실적측면과함께윤리적측면에커다란의미를부여하는데, 다른연대기에서는이미패배로운명지어진따따르에맞선투쟁이가장선호하는행위의방식으로나타난다. 이를위해작가는의식적으로블라지미르와꼬젤스끄두도시의방어에얽힌이야기를도입하는데, 특히블라지미르와는달리꼬젤스끄의시민들은싸우다죽을각오를했고, 이러한결단성은이세계에서는영광을, 하늘에서는영생을, 예수의화관을받게했다고설명한다. 꼬젤스끄시민들은불요불굴의강인한정신력 (крепкодушный) 을지니고있으며, 그들은점령자들과의싸움에필수적인용기만가진것이아니라정교기독교인들에게더욱중요한자질, 즉악마의음모 ( 책동 ) 에도맞설수있는능력을지니고있다. 이에반해작가는따따르와바띄를악마의부역자들, 교활한반 ( 反 ) 그리 70) 이와관련하여루리예 (Я.С. Лурье) 는 1237~1240 년의이야기에서적극적인반 ( 反 ) 따따르적경향을말하는것은불가능하다. 그것의기본주제는절망, 공포와불안그리고천국으로인도하는신의형벌과공격앞에서복종이다 라고지적한다.(Я. С. Лурье(1974), 63.)
13C 중반 ~ 15C 러시아문학속의 따따르신화 44 스도들에나란히대응시켰다. 이빠찌연대기 에서작가는따따르의침략에맞선투쟁은올바른행동이며, 저항속의죽음은영생을보장하는진정한기독인의공적으로간주한다. 작가는따따르의러시아점령을단순히군사적인패배로서가아니라보다높은차원, 즉러시아땅의파멸이라는식으로규정한다. 이처럼 바띄의침략에관한이야기 를다룬세연대기에서죄악에내려진하느님의형벌이라는사건에대한기본적이해는슈젯과묘사수단의선택은물론이고침략이라는현상, 따따르민족자체그리고점령자들에대한저항의가능성에대한작가의태도를결정했다. 특히시대의종말론적기대, 즉최후의순간에구원의가능성에대한주제는따따르의침략을작가들에게그것의징조로간주하게한근거중의하나였다. 노보고로드제1연대기 와 라브렌찌연대기 에서구원은하느님의형벌의순종적인수용과참회를통한죄의사함에서비롯된다. 이에비해 이빠찌연대기 에서작가는비록패배가운명지어져있지만따따르에대한적극적저항만이최후의심판에서영혼의구원을가능케한다고믿었다. 노보고로드제1연대기 와 라브렌찌연대기 에서따따르의침략이죄에대한신의형벌로간주되었지만, 이빠찌연대기 에서는무신의간교한따따르의침략은악마와관련되었으며, 저항의가능성도긍정적으로그려졌다. 여기에는서유럽국가들과가톨릭교회와의동맹을통해이교도들을물리칠수있다는당시남러시아의통치자들의정치적희망이깔려있었다. 이처럼 이빠찌연대기 의명백한반 ( 反 ) 따따르적분위기와저항에대한호소는이후시기의문학에서표현된이념들과유사성을보여준다. 그것은향후고대문학에서정초될점령자들에대한적극적인저항이념의뿌리라고추정할수있다. 71) 하지만 이빠찌연대기 에서도따따르와의전투에서승리의가능성에관해서는어떠한낙관주의도존재하지않는다. 저항은실제적승리가아니라단지영혼의구원에대한희망을의미할뿐이었다. 72) 3. 세라삐온의 설교문 에서따따르 따따르의침입을다룬고대러시아문학에서독특한위상을차지하는작품은블라지미르공국의주교세라삐온의 설교문 (Поучение) 이다. 73) 세라삐온의 5개의 설교문 은중세에널리퍼졌던설교장르의틀을크게벗어나지않는바, 인간적죄악에대한폭로, 참회, 정진, 갱생을통한진실된구원의길로의인도등을담고있다. 세라삐온의호소는인간적불완전성에대한교리에서비롯된다. 당대사회에존재하는무질서에특별히주목했던세라삐온에게따따르의침략과러시아땅의종국적예속은대단히중요한의미를지녔는데, 그는이교도의침략이라는하느님의형벌의맥락에서당대루시의정신적상황의특수성을분석해냈다. 71) 물론 노보고로드제 1 연대기 와 라브렌찌연대기 에특징적인운명에대한온순한복종이라는주제도그후시기의기념비적문학들에서등장한다. 대적할수없는신의벌앞에서순종적인파멸이라는이상은정교신앙을위한고통스런죽음 ( 순교 ) 이라는이념으로진화하기도한다. 72) 이런맥락에서 이시기연대기의주된주제가외국의점령자들에맞선투쟁이다 (История русской л итературы(1980), 94) 라는주장역시완전히신뢰하기는어렵다. 73) 13C 설교문학의대가이자웅변술이능한작가로널리알려진세라삐온 (Серапион:? - 1275) 의전기는명확하지않은데, 따따르통치기처음 10 년동안끼예프 - 뻬체르스끼수도원의수도원장이었고, 1274 년부터블라지미르에서주교였다. 그는 5 개의설교문을남겼는데, 그중의 4 개는고대러시아성자들의모음집중의하나인 14C 황금사슬 (Златая чепь) 에세라삐온의이름으로게재되어있고, 다섯번째글은 15C 빠이시예프선집 (Паисиевский сборник) 에보존되어있다 (N. K. 구드지 (2008), 369). 설교문 의집필시기에대해서는논란이있지만대체로세라삐온이블라지미르에머물던시기인 1270 년대로추정된다. 하느님의형벌과전투에관하여 (О казнах божих и ратях) 는깔까강전투이후 1230 년경에, 나머지설교문은사망하기직전 1274~5 년에쓴것으로알려진다 ( 김문황 (2002), 128).
13C 중반 ~ 15C 러시아문학속의 따따르신화 45 바띄의침략이라는역사적사건이일어난지 40여년이지난 1270년대에세라삐온이해당사건에대한재인식을시도했다는점은대단히의미심장하다. 그는 40년의간극속에서러시아에서일어난사건에대한상징적해석을제시하는바, 바로황야에서이스라엘민족의 40년간의고행에대한유비가그것이다. 신에게자신의유훈을어긴대가로이스라엘민족을벌하기위해 40년의세월이필요했듯이, 러시아사람들에게도죄악에대한징벌과궁극적인갱생을위해똑같은기간이필요했던것이다. 이런맥락에서세라삐온에게당대는최후의시간처럼연상되었고, 그는역사를인간의죄와하느님의벌이번갈아나타나는일종의연쇄로파악하였다. 세라삐온이 설교문 를집필하게된주요한동기는최후의시간이다가오는상황에서정교도들사이에서진실된참회와갱생이나타나지않는다는점이다. 주교는사람들이자신들에게닥친불행의상징적의미를이해하지못하고있기에위로부터인류에게내려진재난의필연성을증명하고자했으며하느님의관대함의경계를분명히보여주고자했다. 세라삐온의논리에따르면이교도의침략은어쩌면갱생의필연성에관한최후의환기였다. 바로역사적사건에대한이러한이해는세라삐온의따따르에대한지각의성격을미리규정하였다. 즉사회적도덕의교정, 참회그리고정교도들의종말론적인구원으로수렴되는주교앞에놓인초월적과제는침략에대한상응하는인식과정복민족에대한합당한묘사를요구했다. 설교문 에서는무엇보다따따르에대한호명에주목할필요가있는데, 세라삐온은당대의설교문들에서는흔희볼수있었던따따르라는칭호를단한번도사용하지않았으며, 또한어디에서도성경에나오는민족들의이름으로도부르지않았다. 즉의식적으로블라지미르의주교는따따르들의호칭과묘사에서구체성을회피했는데, 그냥아주불특정하게이민족 немилостивым, л ютым, не щадящим красы уны, немощи старець, младости бетии, врагами нашим, погаными, иноплеменникками, иноверцами 으로기술하였다. 또한텍스트에는따따르의행위에고유한특징들에대한어떠한묘사도없다. 장르로서중세설교문의독특한보수성는주교세라삐온에게아주전통적인서술수단만을허용했다. 따따르의행위들은죄지은나라들에하느님이보낸민족들의전통적인행위의틀 예컨대메포지의 계시록 에서처럼 을넘어서지않았다. 특징적으로세라삐온은러시아인들의결함을폭로하기위하여그들의행위를이교도들의행위에비교하기도하는데, 때로주교는정교도들에게본보기가될수있는따따르의긍정적인장점들을인정하기도한다. 74) 전체적으로세라삐온의 설교문 에서따따르는인간들의죄악을교정하기위하여최후의시간에러시아로보내진신의형벌로서지각된다. 악덕과불신에빠진당대인들은죄를지었기에신은러시아를벌하게되며, 따따르에대한이러한관점은정교도들의구원가능성과이교도들과의투쟁의가능성에대한주교의입장을규정한다. 구원의가능성은정교도들을단순히벌하는것이아니라최후의날의전야에정교도들을교정하기위해형벌을내린신에의해주어진다.( се же все от Бога бываеть, и симъ намъ спасениье здеваеть - 452) 75). 그리고구원의가능성은자신들의죄에대한인식과진정한참회속에존재한다. 바로참회는신의분노를막을수있으며, 죄로부터벗어남은하느님의분노의멈춤으로, 이민족의압제로부터벗어남으로이어진다. 바로종교적참회만이따따르권력이저지른고통과고뇌를벗는근본수단이다. 74) См.: Как не проклинали татар за их свирепые опустошения, даже в первое время ига русские пи сатели признавали в татарах известные добродетели в их собственном быту (А. Н. Пыпин(1911), 216). 75) ПЛДР(1979~1994). XIII век. 452.
13C 중반 ~ 15C 러시아문학속의 따따르신화 46 이처럼세라삐온의 설교문 는따따르침략이라는역사적사건에대한인식과러시아에닥친재앙의의미를신도들에게전달하려는의도를지니고있었다. 이작품에는직간접으로시대의종말론적기대가반영되어있는바, 당대를최후의시대를인식하고당대인들을최후의사람들로간주하며따따르를잔인한이민족으로, 그들의침략은조만간에끝날거대한악 ( 惡 ) 으로규정된다. 4. 한 ( 汗 ) 에서살해된공후들에관한생애전의초기판본들에서따따르 한 ( 汗 ) 에서죽어간러시아공후들에관한이야기는고대러시아문학에서독특한자리를차지한다. 따따르와러시아의충돌과정에서공후의죽음은그자체가완전히새로운사건은아니지만, 체르니고프의미하일프세볼로도비치 (Михаил Всеволодович) 와뜨베르의미하일야로슬라비치 (М ихаил Ярославич) 의죽음은당대인들과후손들에게커다란인상을남겼다. 두공후는죽음직후에성인으로추대되었고, 그들의고통스런최후는고대러시아작가들의각별한주의와창조적관심을반복해서불러일으켰다. 체르니고프의미하일에관한이야기 (Повесть о Михаиле Черниговском) 는연대기들에서는비교적짧게서술되지만, 최소 3개의판본이존재하는규모가비교적큰작품으로각각의판본의창작시기는여전히논란거리이다. 76) 세판본에서따따르의침략은전통적인사고와마찬가지로 점증하는죄에대한신의분노 (гнев омъ Божиимъ за оумножение грехъ нашихъ) 로동일하게인식된다. 로스또프증보판 이슈젯의사건적측면의전달에주력한다면, 안드레이사제의판본 과 확장증보판 는신의분노의의미에대하여, 이교도들의침략에대한러시아인들의대응에대하여보다상세하게서술한다. 세텍스트에서따따르의가장주요한특징은 이빠찌연대기 에서와마찬가지로 лесть, прельщ ение 이다. 미하일과표도르는따따르의 лесть에저항하여커다란공적을세웠다. 이교도의간계에대한저항, 혹은지상의명예, 일시적삶과영원한삶, 하느님의화관사이의선택의문제는당대의화두였다. 따따르는정교도들을잔인하고무자비하게살해하는박해자로그려지며, 지도자들은 цесарь와 хан으로불리는데이는러시아에서따따르권력에대한고대러시아작가들의태도를보여준다. 세판본에서작가들의시각은그다지독창적이지는않다. 이교도들은불순한민족들의전통적인자질들을지니고있고, 따따르는간악하고변덕스러우며잔인하다. 하지만작가들은따따르를단일한것으로보지않고다양한현상으로보려고노력한다. 특히작가들은따따르의지배에대해관심을기울였는데, 그것은신으로부터 цесарь와 хан에게주어진것이다. 따라서지상적인것에관한한그것에복종해야한다. 하지만영원한삶을위해서는기독교적의무의위반보다는순교자적죽음을택하는것이낫다고파악한다. 바로미하일과표도르도그러한행위때문에작가들의커다란관심을끌었다. 뜨베르의미하일에관한이야기 (Повесть о Михаиле Тверском) 는가장뛰어난고대러시아의 76) 성자미하일프세볼로도비치에관한이야기는 로스또프증보판 (Ростовская проложная редакция) 이최초인데, 세레브랸스끼 (Н. И. Серебрянский) 는이증보판이 1271 년전에집필되었다고주장하는데비해, 박 (Н.И. Пак) 은최초의작품으로인정하면서도창작시기는 1271-1277 년경으로추정한다. 이와는달리꾸취낀 (В. А. Кучкин) 은 미하일과표도르에관한이야기 의 안드레이사제의판본 (Редакция от ца Андрея) 이이것에앞선다고주장한다. 또한 확장증보판 (Пространная проложная редакция) 은 로스또프증보판 과연대기에기초해서집필된것으로연대기상으로두번째로오랜판본 (13C 말 ~14C 초 ) 이다. 결과적으로 미하일과표도르에관한이야기 의최초판본은 로스또프증보판 과 안드레이사제의판본 이며좀더후에 확장증보판 이등장하였다고볼수있다. 이에대해자세한것은 В. Н. Рудаков(2009), 102-105 참조.
13C 중반 ~ 15C 러시아문학속의 따따르신화 47 생애전들중의하나로서연대기와필사선집으로전해진다. 77) 이작품은 체르니고프의미하일과표도르에관한이야기 와러시아공후의순교에관한이야기라는점에서유사성이있지만, 순교자인공후들의행동에대한해석과박해자인따따르에대한평가에서차이를보인다. 후자에서공후와대귀족은신앙을위한순교자로간주되지만, 전자에서작가는비극적사건의정치적이면을또한밝혀내려노력한다. 뜨베르의미하일에관한이야기 에서따따르에대한지각은미하일야로슬라비치와그의후계자들이통치하던시기의뜨베르공국을지배하던상당히날카로운반 ( 反 ) 따따르적분위기와뜨베르공국을러시아땅의중심으로간주하려는당대의긴장된정신적지향에의해제약된다. 이야기의편찬자는시대의취향에맞추어사건을종말의시대의도래에관한일상적사고와밀접한관련속에서인식했다. 공후미하일의순교적공적에관한이야기는멀리루시의세례로부터시작하는데이러한역사적조망은공후에게일어난사건을보다넓은맥락에서인식하게한다. 작가는하느님이내린형벌가운데정교도들을벌하려는최후의죽음을특히강조한다. 여기서따따르와동일시되는이즈마일인들 (измаилтяне) 은 беззаконные, нечестивые, поганые 에의해부정적으로수식되며, 러시아인들의노예화는교활한이교도의손아귀에떨어진것으로그려진다. 따따르의침략은거대하고잔인한러시아의점령으로규정된다. 1318년의비극적사건을서술하면서작가는모든재앙의근원을악마로인식하며, 따따르는결코수동적인무기가아니라악마의행각에참여하는탐욕 (корыстолюбие) 이넘치는종족으로그려진다. 또한간계 (лесть), 즉유혹과위선의지향, 악의 (злоба) 도따따르의자질이된다. 특히따따르공후중의한사람인까브가듸 (Кавгадый) 는신실한공후의박해자로서성자의압제자라는신앙의적 ( 敵 ) 으로서뿐만아니라따따르의공후로서구체적인자질을가진인물로그려진다. 까브가듸는복합적인형상인데, 그는무법 (беззаконность), 악 (зло), 비열 (подлость), 모략 (хитрость), 교활 (коварство) 등의체현자로서미하일의주적이다. 그는 беззаконный, треклятый, окаянный, нечестивый, кровопийца 로묘사되며, 악에눈이멀어미하일에게부당한판결을내리는심판관으로등장한다. 한 ( 汗 ) 의지배에대한관계는한 (хан) 우즈벡 (Узбек) 에대한태도에서드러난다. 러시아에대한한우주벡의지배는영원하지않으며, 러시아에서내분이그치면따따르에대한투쟁은성공할것이라고말해진다. 일시적현상으로서따따르의지배에대한인식은죄로부터벗어날가능성에대한작가의희망뿐만아니라러시아자체의위상에대한이해를나타내는데러시아는예루살렘과콘스탄티노플에비교되어, 하느님의축복이내릴나라임이암시된다. 한편부정적인물인까브가듸는도덕적-윤리적문제를성찰하는인물로도그려지는데, 모스끄바의공후유리다닐로비치 (Юрий Данилович) 에게미하일의시신을덮을것을요구하는장면에서는따따르인의형상에대한인간화의맹아를엿볼수있다. 또한확연하지는않지만따따르무리가운데서중립적혹은긍정적인형상도존재하는데, 바로우주벡의아내이다. 그녀는비록순간적이지만두번에걸쳐따따르의악행으로부터러시아인들을구해준다. 따따르의공후들에대한거의전적인부정적인묘사를배경으로공후의아내에대한이러한호의적태도는상당히독창적이다. 이처럼전통적인틀에서벗어나점차인간적이고보다현실적인, 즉부정적, 중립적, 그리고긍정적인자질을함께지닌정복자의형상으로의진화는이작품에서처음으로보여진다. 전체적으로한 ( 汗 ) 에서살해된공후들에관한이야기들은전쟁을다룬이야기들과는달리성자 77) 연대기는모스끄바판본과뜨베르판본으로전해지면동일한텍스트이지만후자가훨씬간략하다. 두판은독립적으로발전하다가 1520~30 년대니꼰전서가편찬될때합쳐졌다. 이야기의저자는뜨베르의오드로치수도원장알렉산드르 (игумен Тверского Отроча монастыря Александр) 이며, 1319 년말에서 1320 년초사이에집필되었다. 이에대해자세한것은 В. Н. Рудаков(2009), 111-113 참조.
13C 중반 ~ 15C 러시아문학속의 따따르신화 48 공후들에대한박해자들의행위에주목하며, 따라서행위주체인따따르는적극적으로작동하는악의힘으로형상화된다. 당대의전통적견해에따르자면하느님의전령인따따르의짜르 ( 황제 ) 는무조건적으로러시아땅의최고지배자로인정되지만, 그들의이런저런행위들은작가들의엄격한비판과비난에서자유롭지못했다. 공후들에관한이야기에서특징적인것은따따르의몇몇인물들에대한중립적이고때로는긍정적인성격화이다. 이러한현상의이면에는중세적상투성에서벗어나서따따르를보다넓고보다다차원적으로제시하려는작가들의의도가깔려있다. 또한사라질지상의영광과불멸의하느님의화관사이의선택은당대인들이결정해야할핵심적도덕적-윤리적문제중의하나인데, 사후의보상을획득하는보증으로서순교자적죽음을지상적행복보다작가들은더욱선호한다. 지상적구원의선택은비난받으며, 신앙을위한순교가이상인셈이다. 78) III. 14C 후반 ~ 15C 의고대러시아문학에서따따르의지각 러시아와따따르의관계사에서꿀리꼬보전투 (Куликовская битва, 1380) 는중대한전환점이다. 이전투에서러시아의승리는한편으로 150년간따따르의압제에서벗어나는해방의전조였으며, 다른한편으로그것은승리의주인공이었던모스끄바공후의권력을고양시키고강화시키는결정적계기였다. 또한꿀리꼬보전투는따따르라는타자와자아에대한러시아인들의인식에커다란변화를가져온중대한사건이었다. 이에중세의러시아작가들은마마이대전투라는주제에거듭접근했고, 그럴때마다 1380년의사건의원인과결과를분석하고성격을가치평가적으로규정하며나아가향우의전망을제시하고자했다. 마마이에대한드리뜨리의승리라는예외적이고의미심장한사건에대한작가들의거대한관심은 돈강너머이야기 (Задонщина), 각종연대기의이야기들, 여러판본의 마마이대전투에관한이야기 (Сказание о Мамаевом побоище) 등으로구성되는이른바 꿀리꼬보연작 (куликовский цикл) 을낳았다. 79) 1. 돈강너머이야기 에서따따르 꿀리꼬보전투는러시아인들에게민족적자긍심과함께따따르의압제로부터벗어날수있다는자신감을불어넣어주었는데, 14세기말이러한민족적자각을가장잘표현한작품이다름아닌 돈강너머이야기 이다. 이작품은꿀리꼬보전투가끝난후 1383년경랴잔의수도사소포니 (С офоний) 가집필한것으로알려지는데, 작가는 이고르원정기 (Слово о полку Игореве) 를모방한듯 80), 역사적사건을기록하기보다는문학적이고시적인표현에중점을두고, 실제전투장면은 78) 말하자면공후들의공적은전투적인것이아니라정신적인것이었다. 작가들의의도는러시아인들에게이교도들에맞서힘을합쳐싸울것을호소하는것이라기보다는신앙을위한순교이며, 참회, 순종, 복종이 13~14C 초의정치적경전의기본이념이었다. (А.С. Хорошев(1986), 77-8). 79) 꿀리꼬보연작 (куликовский цикл) 을구성하는작품들에대한거대한관심과세밀한연구에도불구하고여전히해결되지않은문제들이많이남아있는데, 그가운데가장논쟁적인주제중의하나는창작시기에관한것이다. 학계에서는대략적으로 돈강너머이야기 는 14C 말 ~1470-80 년대에, 각종연대기의이야기들은 1410~1440 년대에그리고 마마이대전투에관한이야기 는 1485~16C 초 (1510-20 년 ) 에집필된것으로추정한다. 이에대해자세한것은 В. Н. Рудаков(2009), 125-134 참조.
13C 중반 ~ 15C 러시아문학속의 따따르신화 49 압축적으로묘사하는대신에, 따따르에맞서얻은러시아의승리에초점을두고한편의위대한장편서사시를완성하였다. 돈강너머이야기 는 이고리원정기 와마찬가지로독특한대조의시학에입각해있는데, 마마이의따따르군대는드미뜨리이바노비치 (Дмитрий Иванович) 와블라지미르안드레예비치 (Вла димир Андреевич) 의러시아군대에대조되어극히부정적인형상으로그려진다. 따따르와마마이에대한묘사는상당히간결한데, 따따르는아주쉽사리 поганные로규정되고, 단한번만 хинови ( 뽈로베쯔 ), бусорманы( 이단자 ) 로서술된다. 마마이도언제나 поганый로, 역시한차례만러시아공후들의 супостат( 적수, 敵手 ), безбожный로, 그리고따따르의 царь로칭해진다. 여기에서따따르에붙여진형용어 поганые, хинови는 이고리원정기 에서뽈로베쯔의호칭으로서, 비록작가가따따르를직접적으로뽈로베쯔로칭하는경우는없지만꿀리꼬보전투를뽈로베쯔의땅에서일어난것으로간주하는바, 이것은단지두작품의문체적근접성뿐만아니라은밀한형태로이뤄진두이교도민족에대한작가의의식적동질화의결과이다. 81) 한편따따르의침략의목적을작가는 이교도들이러시아땅으로왔다 라는식으로간략하게규정하는데, 오히려그것은러시아인들의투쟁의목적을통해간접적으로감지된다. 러시아인들은러시아땅과정교신앙을위해서, 그리고간혹대공의분노로인해싸웠다. 여기에서 러시아땅 과 정교신앙 은일찍이 러시아땅의패망에관한이야기 (Слово о погибели Русской земли) 에서등장한적이있는데, 하나의호소속에함께등장하는경우는 돈강너머이야기 가처음이다. 말하자면러시아땅의수호라는세속적인개념과기독교신앙의수호라는종교적개념이의미론적으로동시에, 즉마치동의어처럼공존하는것이다. 82) 이처럼 돈강너머이야기 가창작되던당시따따르는정교의적으로서지각되었으며작가는스텝민족들과의싸움의최종적장면, 즉정교들과이교들의수세기에걸친대립의결말을보여준것이다. 즉작가는마마이의침략의반 ( 反 ) 기독교적성격을강조하면서이러한상황으로부터의출구를오직따따르와의비타협적투쟁에서찾았다. 여기에서 사느냐죽느냐 라는양자택일은중요하지않았다. 승리와마찬가지로투쟁속에서죽음은영원한삶의보증이었다. 2. 간략한연대기의 돈강너머대전투에관하여 이야기에서따따르 연대기에서꿀리꼬보전투에관한이야기는간략한형태와장황한형태의두가지로전해오고 있다. 돈강너머이야기 가이교도따따르에관한이야기라면, 돈강너머대전투에관하여 (О великом побоище, иже на Дону) 라는간략한연대기이야기의주인공은마마이이다. 연대기작 80) 주지하다시피 이고르원정기 와 돈강너머이야기 의상호텍스트적관계는러시아고대문학사에서여전히가장큰논란거리중의하나이다. 특히후자에대한전자의영향, 후자에의한전자의수용의문제에서이교도들 ( 뽈로베쯔, 따따르 ) 에대한묘사와평가의차용, 그것의의식적성격의문제또한여전히논쟁적이다. 이점에서흥미로운것은 이고리원정기 에서러시아인들에관련되었던것을 돈강너머이야기 에서따따르에전도시키는소위 뒤집힌대응 (обратный параллелизм) 이다. 이에대해자세한것은 А. А. Горский(1990), 98; Д. С. Лихачев(1986), 288-317 참조. 81) 이것은유목민족들의차이에대한인식이아니라그들에대한 무차별적일반화 라고할수있다. 그결과러시아문학에서 따따르 는역사적으로특정한민족을지칭하는고유명사가아니라, 비 ( 非 ) 기독교적인동양의민족들을총칭하는보통명사로사용되곤하였다. 이것은문화의메커니즘의보편적경향의하나인문화에의한비 ( 非 ) 문화와반 ( 反 ) 문화의다양한자질들의동질화이다. 이에대해서는 Ю. М. Ло тман и Б. А. Успенский(2000), 495 참조. 82) 당시러시아땅이라는개념은오늘날 정교의 (православный) 라는용어로수식되는민족 종교적공동체를의미했다. 따라서당시에는따따르 / 러시아의대립이기독교인 / 무신론자의대립으로자연스럽게표현되었다.
13C 중반 ~ 15C 러시아문학속의 따따르신화 50 가는마마이를러시아원정의주도자를간주했다. 그의형상, 사고, 행위속에작가는이교도일반에고유한특징적인자질들을부여한다. 이야기의처음부터따따르의공후와대공드미뜨리이바노비치사이의대립이명백하게설정된다. 마마이는살해당한따따르에대한복수를위해원정을감행했다. 이에반해대공드미뜨리는자신의조국의방어뿐만아니라신성한교회, 정교신앙을지키기위해나섰다. 마마이의부정적자질, 요컨대 безбожный, злочестивый, нечестивый, поганый 등은거의이야기전체에걸쳐반복적으로등장하며, 따따르는 поганый род измаилтеский, поганые иноплеменн ики, сыны агаряны로칭해진다. 돈강너머이야기 에서와는달리따따르는 поганые половцы라고규정된다. 또한작가는러시아의승리의중요성을제고하기위하여따따르의무수성을자주강조한다. 또한따따르는과거에는볼수없었던공포를체험하는데, 하느님은보이지않은힘으로따따르를위협하고 ( Бог невидемою силою устраши ), 이때문에그들은전장에서도망친다. 이러한공포와전율은마치바띄의침략에서러시아인들이겪은감정과유사하다. 이것은전쟁의실제적상황이아니라하느님의분노라는비현실적 상징적인요소에의해불러일으켜진것이다. 드미뜨리와마마이의대립외에이야기에서는러시아땅과따따르땅의대립이설정되는데, 따따르는막연한동양, 미지의땅, 혹은불순한민족들이살고있는전설의땅이아니라엄연한따따르의땅에서왔고, 패배이후에마마이와함께따따르의땅으로도망친다. 또한연대기이야기에는따따르침략의주요원인으로지목되어왔던신의분노는언급되지않는다. 고대러시아문학에널리퍼져있던전통적사고는신의중재혹은도움을통한러시아의승리라는이념으로대체된다. 따라서따따르의러시아침략은신의분노가아니라마마이의개인적인주도로, 말하자면보다실제적이고세속적인원인에서비롯된것으로파악된다. 마마이에게는인간적감정도드러나며 ( в идя себя бита и бежавша и посрамлена и поругана ), 그의개인적의도는당연히부정적으로평가된다. 3. 장황한연대기의 꿀리꼬보전투에관한이야기 에서따따르 장황한연대기 83) 의 꿀리꼬보전투에관한이야기 (Повесть о Куликовской битве) 는간략한연대기에서나타나는따따르에대한지각의기본특징들을간직하면서작가이념이보다분명해지고구체적인예에의해기술되며추가적인논거를담고있다. 따따르의침략은마마이의개인적인주도로인식되고그의악의적의지는좀더자세하게밝혀진다. 마마이는뻔뻔스럽게한국 ( 汗國 ) 의짜르 ( 황제 ) 행세를하는자이며, 따라서꿀리꼬보전투는황제가아니라황제권의찬탈자 (узурпатор) 와의싸움이라고반복해서강조된다. 즉마마이는질서와위계를무너뜨리는무법자로형상화된다. 마마이의부정적자질은과거보다훨씬강화되는데, 그는 нечестивый, окаяный, безбожный, зл оверный, поганый, темный сыроядец, старый злодей 등으로묘사되고, злоба, свирепость, ярост ь, гневливость 등의성격이강조된다. 작가는바띄처럼되고자하는찬탈자마마이의거만함을드러내면서그의반 ( 反 ) 기독교적성격을설파한다. 또한간략한연대기와는달리장황한연대기는마마이의침략을신이내린형벌이라는초월적 83) 장황한연대기 (простанная летопись) 의이야기는 노브고로드제 4 연대기 (Новгородская IV летопись) 속에포함되어있으며, 창작시기는정확하지않으나, 1410~1440 년대로추정되며, 간략한연대기에다른사료들을결합하여편찬한것으로간주된다. 이에대해서는 В. Н. Рудаков(2009), 129 참조.
13C 중반 ~ 15C 러시아문학속의 따따르신화 51 차원과마마이자신의주도라는지상적차원에서동시적으로해석한다. 하지만과거의인식과는달리러시아인들을자신이내린벌에서구해주는하느님의자비가더욱강조된다 ( Нъ милосердъ бо есть Богъ чловеколюбець: не до конца прогневается на ны, ни въ векы враждеуеть - 22 ) 84). 하지만인간존재로서자기개선은주목받지않는다. 말하자면더이상러시아사회가죄악에물든것으로여겨지지않는다. 이런맥락에서간략한연대기에서처럼신의중재라는이념이등장한다. 신은보이지않는힘으로따따르를위협하고 ( Богъ бо невидимою силою устраши полки т отарьскии - 21) 이교도들로부터러시아인들을나서서방어하고구한다 ( Бог заступил, защитил, избавил русских от поганых - 22-23). 이처럼장황한연대기에서따따르는 иноплеменники, враги, супостаты, поганые, сыроядци, не честивые, беззаконии агаряне, безбожные, погании измаилтяне, измаилтеский род, погании пол овцы, сыны агарины, нечестивые измаиловичи, содомьляне 등으로그려진다. 또한찬탈자-마마이의침략의무법적성격이반복적으로강조되고이교도일반의본질도지적된다. 나아가마마이의악마적성격도새롭게강조된다. 그는악마의체현자로불린다. 이와같이따따르의지도자를악마로직접칭하는경우는장황한연대기가처음이다. 또한마마이와동맹을한랴잔의공후올렉 (Олег) 과리뚜아니아의공후야가일로 (Ягайло) 도민족적, 종교적소속성에관계없이비판적으로형상화된다. 랴잔의공후는정교도이지만신앙에서멀어져간인물로, 리뚜아니아의공후는낯선민족으로언급된다. 이처럼장황한연대기에서는마마이의무법성이침략의근본원인으로강조되며, 신의분노에대한타협적해결책이제시된다. 요컨대, 러시아사회의죄악으로부터의자기교정보다는신의중재와자비가우선시된다. 4. 마마이대전투에관한이야기 에서따따르 꿀리꼬보전투에관한이야기가운데허구적이고전설적인요소를가장많이담고있는작품인 마마이대전투에관한이야기 (Сказание о Мамаевом побоище) 에서는정교적 민족적이념에입각한대조의시학이보다분명하게드러난다. 이작품에서따따르에대한지각은작품의주제의식, 즉무신론자따따르인들에대한정교도러시아인들의승리, 하느님의자비와천상의힘의중재에의해획득된승리에의해미리규정된다. 85) 실제로마마이의주요목적은정교신앙의파괴와모독 (разорение и осквернение православной веры) 이며, 사령관 (темник) 마마이는 злый хритьанскый укоритель, злый христанскый ненавистн икъ и разоритель, злый христианскый искоренитель로칭해지며, 마마이와연합했던리뚜아니아와랴잔의공후들의행위도 Ныне же едина вера, едино крещение, а къ безбожному приложиш ася въкупе гонити православную веру Христову (28) 라고묘사된다. 이처럼마마이원정의반 ( 反 ) 기독교성이라는사고에조응해서작가는마마이와그의군대를대단히부정적인어휘로그려낸다. 이야기에서는러시아인들에대한따따르인들의대립성이아주직접적으로드러나는데 86), 마마이는드미뜨리의대립자로설정되어, нечестивый царь, поганый, без 84) Сказания и повести о Куликовской битве(1982), 22. 이하인용에서는괄호안에쪽수만표기. 85) 마마이대전투에관한이야기 에서서사의기본파불라는아주간략한형태로작품의부제속에미리주어진다 : Начало повести. како дрова Богъ победу государю великому князю Дмитрею Иванов ичю за Даномъ над поганым Мамаем, и молением Пречитча Богородица и русьскиых чюдотворцев ъ прасвославное христианство Русскую землю Богъ възвыси, а безбожных агарянъ посрами ( 25). 86) Л. А. Дмитриев(1955), 151.
13C 중반 ~ 15C 러시아문학속의 따따르신화 52 божный, идоложрец, иконборец, ненавистник и враг роду христиансткому, свирепый зверь 등 으로칭해지고, ослеплен умом, того бо не разуме 처럼행동하는인물로등장한다. 87) 따따르는 безбожные агаряне, безбожные половци, безбожные половци агаряны, безбожные печенеги, по ганые татары, поганые измаилтяне, поганые нечестивые половци, языки половцькие, нечестив ые, поганые супостаты, супротивные, злые сыроядци 등으로일컬어지는대적할수없는무수한 세력이다. 마마이대전투에관한이야기 의가장큰변별성은따따르의사령관마마이가짜르 (царь) 라는 호칭으로불리는것인데 (40 회이상 ), 동맹자들은그를 великий царь, всесветлый царь, волный ца рь, царь царям 라고부르며, 심지어러시아인들조차 царь 로칭한다. 작품속에서는단지한번 кня зь от въсточныа страны 로칭해질뿐이다. 장황한연대기의이야기에서마마이가자신을 царь 로 생각하지만, 언제나 ординский князь 로묘사된다는점을감안하면, 이러한호명은역사적진실에 반하는대단히의식적인행위인바, 당대 (15C~16C 초 ) 에핵심적주제였던따따르의황제에대한 모스끄바대공의대립이념의고양을위한의도로해석된다. 말하자면짜르에대항한투쟁의문제 는적극적으로해결되는바, 작가에따르면그것은가능할뿐만아니라필요한것이며, 여기에서 마마이의짜르적위엄의끌어내리기는드미뜨리의위상의끌어올리기와교묘하게결합되어있다. 공후드미뜨리에게실제삶에서결코본래적이지않은짜르적자질들이부여되는것이다. 마마이 는다가오는전투에서자신과유사한짜르와대적해야한다고말하며, 전투이후러시아인들은대 공드미뜨리가건강하고 영원히차르가되길염원한다 (царствовал во веки. - 46). 장황한연대기와마찬가지로 마마이대전투에관한이야기 는이교도의침략을악마의음모와 관련짓는데, 마마이의행위는악마의부추김과자신의악마적자질에따른것으로동시에해석된 다. 또한이교도들의목적은단지기독교의파괴에만국한되지않는다. 마마이는개인적인오만과 탐욕을추구하며, 그의동맹자랴잔의올렉도사익을취하려는것으로서술된다. 작가는또한전사들의사후의운명에대해서는깊은관심을드러내는데, 정교도인러시아인들의 운명은이교도인따따르의운명과는질적으로다르다. 전투에참가한러시아인들은그리스도의화 관과영혼의구원으로보답받고죽음으로영생을얻는반면에, 이교도따따르는영원한고통과 지옥불에떨어진다. 즉이교도에대한투쟁은기독교의방어이며, 영생으로이어질미래의삶속 에서시들지않은화관의수령이다. 마마이대전투에관한이야기 의가장중요한주제중의하나는정교도들에대한신의중재이 다. 마마이의따따르군대에맞서는것은드미뜨리와러시아군대뿐만아니라무수한천상의힘을 지닌하느님이다. 따라서하느님에대한도움의요청은승리의요건이다 ( всякъ въинъ... кликнуш а единогласно: С нами Богъ! и пакы: Боже христианский, помози нам! - 43). 전투는실제 적요소뿐만아니라초월적요소와연관되어서술되고후자가전자보다훨씬강조되는것이다. 이처럼 꿀리꼬보연작 에서는따따르행위의반 ( 反 ) 기독교성이강조되며이교도에맞선투쟁은 신실성의문제로언급된다. 이전의작품들에서신앙을위한죽음의모티프는저항을거부하는개 인들의죽음인순교에관한범기독교적표상에조응하여해석되었다면, 꿀리꼬보연작에서러시아 인들은집단적으로무장하고신앙을위한투쟁에참가하며성스런순교자와등가화된다. 또한 꿀리꼬보연작 에서는죄에대한신의형벌이라는따따르의침략에대한전통적해석은 87) 흥미로운사실은당대에낍차끄한국은이미무슬림국가였고, 마마이도이슬람을믿는무슬림이었음에도불구하고 꿀리꼬보연작 에서마마이는이교도로말해질뿐, 단한번도무슬림 (бесермен) 으로칭해지지않는다는점이다. 당시낍차끄한국의신실한무슬림지도자들도러시아정교를배척하지않았다는점에비추어볼때, 마마이의무슬림성은그를러시아정교의적 ( 敵 ) 으로극화하는데별다른보탬이되지않았기에특별히언급할필요가없었던것이다.
13C 중반 ~ 15C 러시아문학속의 따따르신화 53 완전히거부되고, 신의분노를대신해서이교도사령관의탐욕적이고오만한주도성이, 용서할수없는러시아인들의죄악성을대신해서정교도들에대한신의중재가들어선다. 바로천상의힘의도움이전투의승패를좌우하는결정적요소로언급되며, 따라서신에대한도움의요청과신의중재에대한묘사가서사의핵심을이룬다. 꿀리꼬보연작에서민족으로서따따르에대한성격화는여전히상투적이고다소약화되는대신에오히려역사적인물인마마이가대표적전형으로등장한다. 그의가장두드러진자질로서러시와공후들과의관계에서행위의위법성 (неправомерность), 러시아땅의최고통치자를주창하는부당성 (нелегитимность), 짜르를사칭하는불법성 (беззаконность) 이부각된다. 이로써마마이는러시아인들에의해마침내전면적악 ( 惡 ) 의체현자로서신화화되며러시아에맞서는임의의적을표상하는보통명사로다시태어난다. IV. 나오며 지금까지살펴보았듯이 13C 중반 ~ 15C까지고대러시아문학에서따따르에대한지각과형상화는결코고정되거나불변하지않았다. 13C 중반 ~ 14C 전반쓰라린역사적재난을직접체험한러시아인들의따따르에대한지각은꿀리꼬보전투에서승리를경험하고민족적자긍심이높아가던 14C 말 ~ 15C의그것과는사뭇달랐다. 역사적사건에대한시각과그것의표현방식은시대에따라적지않은굴절을보여준다. 13C 중반 ~ 14C 전반따따르는불순한민족으로, 그들의도래는러시아인들의죄악에대한신의분노와형벌이며, 최후의시대의도래로여겨졌다. 따라서따따르에대한저항의가능성은극도로회의적으로여겨졌다. 저항의불가능성과전망없음은작가들의소심함과앙가주망의부재가아니라이교도의모습으로등장하고미래의최후심판을예고하는신의형벌앞에서진정한기독교적순종이었다. 이런맥락에서러시아에대한따따르한 ( 汗 ) 의지배는완전히정당한신의뜻이기에그것에대한저항도, 그것의합법성에대한논쟁도당대의문헌에서는두드러지지않았다. 이런맥락에서따따르의침략과동시에따따르에대한저항의이념이고대러시아문학에나타났다는종래의애국주의적경향의상투적사고는재고되어야한다. 당대사람들의이상적행위모델은전사가아니라오히려순교자였다. 따따르에대한지각의전환점은 1380년의꿀리꼬보전투였다. 따따르에대한러시아의승리라는달라진상황은따따르자체, 그들의침략의원인과목적, 한 ( 汗 ) 권력의본성, 러시아인들의마땅한행위등에관한질적으로새로운사고를낳았다. 역사적사건의주된원인은그것을주도한따따르사령관마마이의부정적측면에서찾아졌고, 지배의정당성은비판적으로재고되었으며, 정교도러시아인들에대한신의중재라는사고를배경으로루시의선민이념과그것에근거한러시아의새로운국가이데올로기가등장한다. 이제따따르는정교신앙의박해자로창조주의뜻과는무관한이교적이고무법적인민족으로취급된다. 따라서이교도들과의투쟁은정교도들의사명이었다. 여기에서특징적인것은 13C 중반 ~ 14C 전반의경우낯선이민족따따르에대한이해에서끼예프루시시대의뽈로뻬쯔로대표되는동양민족에대한신화와유사하게이교성으로상징되는비 ( 非 ) 반 ( 反 ) 기독교적의미자질들 поганый, окаяный, безбожный, безверный, беззаконный, не честивый 등 이결정적이었다면, 꿀리꼬보전투를전환점으로 14C말 ~ 15C 엄연히따따르자체로특정된동양민족에대한신화에서는비 ( 非 ) 반 ( 反 ) 인간적의미자질들 лживый, лукавый,
13C 중반 ~ 15C 러시아문학속의 따따르신화 54 немилосердный, свирепый, гордый 등 이점차지배적으로된다는점이다. 말하자면고대러시아문학이창조한따따르신화는종교적 민족적파토스가넘쳐나는이원론적사고에기반하면서역사의흐름에따라의미론적대립항들의구체화와풍부화를통해지속적으로변모하였고, 그과정에서의미론적무게중심의점차적이지만분명한이동이목격된다. 바로이러한과정은따따르로대표되는타자에대한차별적전유를통해자기정체성의벡터를점차형성해가는당대러시아의의식적노력과중층적으로맞닿아있다.
13C 중반 ~ 15C 러시아문학속의 따따르신화 55 참고문헌 김문황 (2002). 고대러시아문학사. 건국대출판부. 니꼴라이깔리니꼬비치구드지 (2008). 고대러시아문학사 I, II. 정막래옮김. 한길사 올랜드파이지스 (2005). 러시아문화사 : 나타샤댄스. 채계병옮김. 이카루스미디어. Бородихин, А. Ю.(1989). Цикл повестей о нашествии Батыя в летописях и летоисно-хроногра фических сводах XIV-XVII вв. АКД. Новосибирск. Будовниц, И. У.(1960). Общественно-политическая мысль Древней Руси XI-XIV вв. М. Дмитриев, Л. А.(1955) Публикацистические идеи Сказания о Мамаевом побоище. ТОДРЛ. Т. 11, М. Ипатьевская летопись(1962). Полное собрание русских летописей. Т. 2. М. История русской литературы(1980). М. Лаврентьевская летопись(1926-1928). Полное собрание русских летописей. Т.1. Вып. 1-3. Л. Лихачев, Д. С.(1986). Черты подражательности Задонщины (К вопросу об отношении Задон щины к Слову о полку Игореве. Исследования по древнерусской литературе. Л. Лотман, Ю. М. и Успенский, Б. А.(2000). О семиотическом механизме культуры. Семиосфера. СПб. Лурье, Я. С.(1974). Лаврентьевская летопись свод начала XIV века. ТОДРЛ. Т. 29. Л. Новгородская I летопись(1950). Новгородская первая летопись старшего и младшего изводов. М. Новгородская IV летопись(1915-1925). Полное собрание русских летописей. Т. 4. Ч. 1. Вып. 1-2. Л. Памятники литературы Древней Руси(1979-1994). В 12 т. М. Пыпин, А. Н.(1911). История русской литературы. Изд. 4-е. Т. 1. СПб. Рудаков, В. Н.(2009). Монголо-Татары глазами древнерусских книжников середины XIII-XV вв. М.: Квадрига. Хорошев, А. С.(1986), Политическая история русской канонизации(xi-xvi вв.). 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