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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바가바드 기따 의 제사관 불교의례의 재검토를 위한 定礎로서 김 호성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강사) 1. 문제의 제기 1) 제사의 Jñāna-Yoga적 승화 2. 브라흐마니즘적 제사에 대한 비판 2) Karma-Yoga적 승화 1) 브라흐마니즘적 제사 3) Bhakti-Yoga적 승화 2) 브라흐마니즘적 제사에 대한 비판 4. 결론 3) 브라흐마니즘적 제사 비판의 논리 1) 요약 3. 제사의 승화와 그 논리적 근거 2) 불교의례 재검토의 필요성 1. 문제의 제기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는 무엇을 그 목적으로 하는 것일까? 이러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각기 종교적 배경의 차이에 따라서, 혹은 연 구자들마다 입장의 차이에 따라서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 리는 종교가 우리 삶의 내면적 구원의 길이라는 데에는 의견을 같이 하리라 본다. 물론 종교가 갖는 사회적 기능이나 역할을 무시하는 것 은 아니지만1), 적어도 종교의 개념 속에는 구원 구제 해탈의 의미 가 내포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종교의 세계에는 몇가지 구원의 길이 있을까? 1) 종교가 갖는 사회적 기능이나 역할 역시 후술할 바와 같이, 구체적으로 행위의 길 (Karma-Yoga) 속에서 논의될 수 있다.

인도철학 제4집 2. 브라흐마니즘적 제사에 대한 비판 브라흐마니즘적 제사 고대인들의 세계는 신을 중심으로 한 세계였다. 아직 신으로부터 인간의 독립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모든 자연현상이 신격화되고, 신은 또 의인화되었다. 인도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아니, 인도야말 로 신화가 가장 발달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도에서는 자연만이 신이 된 것은 아니었다. 리그 베다 에 의하면, 언어나 기도와 같은 추상적 개념들까지도 신격화된 것이다. 제사 역시 이러한 리그 베다 의 신화 속에서 살펴볼 수 있다. 리그 베다 의 창조신화 중 뿌루샤 찬가 (Puruṣa sūkta, Ⅹ.90)에서 는 제사를 창조행위와 결부시키고 있다. 제사는 창조의 수단으로서, 우주의 창조는 초월적 뿌루샤의 自己限定이라는 사상이 시작되고 있 음을 보여주는 것이다.5) 1) 뿌루샤를 제물로 삼아 신들이 제사를 성스런 풀 위에 제물로 바쳐진, 태초로 태어난 뿌루샤에게 정화의 물을 그들은 뿌렸도다 신들은 그로써 제사를 지냈노니, 사댜들도 그랬고, 현인들도 그랬다. 6) 리그 베다 사마 베다 야주르 베다 도 이 제사에서 생긴 것이 라 한다[Ⅹ.90.9]. 기따 에서도 제사와 함께 피조물을 창조한 것으 로 [3:10]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뿌루샤 찬가 에서 이미 후대의 제 사만능주의의 단초가 보인다고 말해지기도 한다.7) 그런만큼 제사를 지내는 것은 브라흐마니즘의 문화 속에서는 중심적인 일이 되지 않 5) 早島鏡正 外, ィント思想史 (東京 : 東京大學出版會, 1985), p.13. 6) R.V. Ⅹ.90.7. 번역은 鄭承碩, 리그 베다 (서울 : 김영사, 1984) 참조. 7) 鄭泰爀, 인도철학 (서울: 학연사, 1984), p.61.

바가바드 기따 의 제사관/ 김호성 을 수 없었던 것이다. 베다 에는 일상적으로 행해졌던 Agnihotra를 비롯해서 신월제 만월제 계절제 추수감사제 소마제 마제 희생제 등이 행해졌 다.8) 대개 베다 의 제사의식은 정화된 신의 술인 소마를 祭火(Agni) 에 부어 제신에게 바치고, 나머지를 제관 및 그밖의 참가자가 마시는 것이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9) 이러한 제사가 행해지지 않거나, 규정 에 어긋나게 공물을 바쳐서는, 이 세상이 파괴될 것이라고 하는 베 다 의 입장이 우파니샤드 에서도 반영되고 있음이 확인될 정도이 다.10) 이러한 브라흐마니즘적 제사의레의 특징은 한마디로 제사만능주 의 라고 할 수 있다. 제사만능주의는 오직 제사만을 통해서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아직 종교로서의 브라흐마니즘(바라문교)에서는, 지혜에 대한 관심이 충분하지 못했다. 제사와 그 결과에 대한 집착이 진리를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 러한 맥락에서 행해지는 제사의례의 실천은 바라던 대로의 행복이 아니다. 복의 과실로서의 세계는 소멸되고 마는 불행과 苦를 초래하 고 만다는 것이다.11) 이러한 제사관의 변화는, 물론 Radhakrishnan의 말처럼, 그 상반 되는 입장이 지나치게 확대되어서는 안되겠지만12) 제사관에 대한 그 들의 구조적 차이는 분명히 인식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파니샤드 의 입장은 기따 에도 그대로 계승된다. 기따 역시 우파니샤드 처럼 브라흐마니즘적 제사의 모습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8) M. Eliade ed., The Encyclopedia of Religion 15(New York : MacMillan Publishing Company, 1987), pp.227-230. 9) 鄭承碩, 앞의 책, p.70. 10) yasyāgnihotram adarśam apaurṇamāsam acāturmāsyam anāgrayaṇam atithivarjitaṃ ca / ahutam avaiśvadevam avidhinā hutam ā-saptamāṃs tasya lokān hinasti // [M.U.Ⅰ.2.3.] 11) avidyāyām bahudhā vartamānā vayaṃ kṛtārthā ity abhimanyanti bālā ḥ / yat karmiṇo na pravedayanti rāgāt tenāturāḥ kṣiṇalokāś cyavante / / [M.U.Ⅰ.2.9.] 12) S. Rdhakrishnan, The Principal Upaniṣad(London : George Allen and Unwin Ltd., 1953), p.675. 참조.

인도철학 제4집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을 위한 자료로서 제시할 뿐이다. 기따 에 나타난 브라흐마니즘적 제사의 모습을 몇가지로 정리해보 고자 한다. 첫째, 제사는 일상생활의 중심에 놓여있다. 곧 제사는 모든 일상의 출발점이다. 제사에서 남은 것을 먹는 선한 사람들은 모든 죄과로부터 해방되나 자신만을 위하여 음식을 짓는 악한 사람들은 죄악을 먹는 것이다. 13) 여기서 음식 은 하나의 상징(symbol)이다. 그것은 식사만이 아니라 세속의 일상생활 모두를 가리킨다. 제사를 통하여 신을 공양하지 않 고 행하는 모든 행위는 죄악이 된다. 물론, 그 근거로서 모든 것은 신들에 의해서 주어진 것(3: 12)이라는 논리가 성립되어 있는 것이다. 브라흐마나 시대에 일상생활에서의 모든 활동이 오직 제식과의 관련 에서만 비로소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14)는 점을 생각하 면, 이는 기따 안에 남아있는 브라흐마니즘적 제사라고 볼 수 있겠 다. 둘째, 제사의 의의를 현세이익을 위한 수단이라는 데에 두고 있었 다. 이 점은 리그 베다 에서도 확인되는 점이다. 리그 베다 에 나 타난 제사의 목적은, 제사를 통해서 희구한 내용들은 富(Ⅵ. 51. 7), 名 聲(Ⅵ. 51. 11), 암소와 말과 마차(Ⅶ. 7. 5), 無病(Ⅶ. 6. 2), 강하게 함(Ⅹ. 125. 2) 등이었다. 어떤 초월적 의의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따 역 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옛날 프라자파티는 제사와 함께 피조물을 산출한 후 말했다. 13) yajñaśiṣṭāśinaḥ santo mucyante sarvakilbiṣaiḥ / bhuñjate te tv aghaṃ pāpā ye pacanty ātmakāraṇāt // (3:13) 이하 기따 본문 번역은 吉熙星, 바가바드기따 (서울 : 현음사, 1988)를 依用한다. 14) 元義範, 인도철학사상 (서울: 집문당, 1981), p.130.

바가바드 기따 의 제사관/ 김호성 이(제사)로써 그대들은 번성할지어다, 이것이 그대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소가 될지어다. 15) 여기서 제사는 소 로 隱喩(metaphor)되어 있다. 소원을 들어주는 소 (iṣṭakāmadhuk)는 인간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인드라의 신비적인 소를 가리킨다.16) 제사를 행하는 일은 그 신비적인 소에게 소원을 말하는 것과 같은 일이리라. 따라서 제사를 행하지 않고서는 소원의 성취는 불가능하고, 제사를 행하기만 하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다 는 것이다. 신을 찬양하면서도 그 목적은 제사를 지내는 사람의 현세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술적이고, 기따 의 Bhakti-Yoga에 서 보는 것과 같은, 신에게 믿음과 영광을 바치는 신앙구조와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이러한 모습이 기따 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있는 것 이다. 정녕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 삶의 행 불행의 필요충분조건은 신 이 아니라 제사가 된다. 그 결과 제사는 신들보다도 더 뛰어난 신비 적 잠재적 힘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며17) 신들은 제사에 봉사 하고 복종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18) 이것이 제사만능주의의 모습이었다. 셋째, 제사는 천상세계에 태어나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다. 이는 얼 핏 생각하면, 앞서의 현세이익적 성격과 모순되는 것같지만, 그렇지 않다. 본질적으로 주술적이라는 점에서 다른 것이 없다. 리그 베다 에서는 최고의 천상에서 선행과 그대가 제사지낸 과보와 합하소서. 15) sahayajñāḥ prajāḥ sṛṣṭvā puro 'vāca prajāpatiḥ / anena prasaviṣyadhvam / eṣa vo 'stv iṣṭakāmadhuk // (3:10) 16) Radhakrishnan, The Bhagavadgita, p.135. 17) S. DasGupta, A History of I ndian Philosophy 1(London: Cambridge U niversity Press, 1969), p.22. 브라흐마나적 제사가 신의 은총을 비는 행위 가 아니라, 그 자체에 신비적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은, 후대 미맘사의 Apūrva설에 통하는 사고이다. Apūrva는 제사에 의해서 새 롭게 얻게 되는, 제사를 지내기 전에는 없었던 힘이다.[鄭泰爀, 앞의 책, p. 302.] 18) H. Jacobi, 山田龍城 伊藤和男 共譯, 印度古代神觀史 (東京 : 大東出版社, 1940), p.5.

인도철학 제4집 (Ⅹ.14.8)라고 노래하고 있다. 이들은 조상들이 걸어간 길(祖道, pitṛ-yān a)을 따라서 지나치며 사자의 영혼은 빛이 있는 곳으로 간다고 믿는 다. 그리하여 최상의 하늘에서 야마(yāma)와 동등하게 누리고 있는 조상들과 만난다. 여기서 장엄한 육신과 결합하여 완전하고 신체적 으로 결함이 없는 至福한 생명을 얻는다고 믿었던 것이다.19) 이같은 브라흐마니즘적 제사에 대해서 기따 는 그 본질을 적확하 게 제시한다. 즉 브라흐마니즘적 제사는 천상을 최고로 삼는 것이 며, 그 결과 환생을 초래하는 (2:43)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천상세계에 태어나는 것, 그것은 애시당초 브라흐마니즘 최상의 목 적이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복잡한 각종 의례로 가득찬 (2:43) 제사 를 행하였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브라흐마니즘적 제사에 대한 비판 다음으로, 이러한 브라흐마니즘적 제사를 기따 는 어떻게 비판하 고 있는 것인지 기따 에 나타난 그 비판의 양상과 촛점을 살펴보기 로 한다. 첫째, 모든 일상적 삶 속에서 제사가 만능이라고 믿는 태도에 대 해서 비판하고 있다. 기따 는, 과연 제물을 차려놓고 행하는 제사만 이 제사인가를 묻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사의 목적이다. 물론 브라흐마니즘적 제사와 기따 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은 같지 않다. 브라흐마니즘적 제사는 천상세계의 탄생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으며, 기따 는 해탈을 그 궁극적 목적으로 삼고 있었다. 그같은 목적의 차이와 함께 방법론에 있어서도 중대한 차이를 보 여준다. 브라흐마니즘에서는 오직 제사만을 유일한 방법으로 삼고 있지만, 기따 는 궁극적 목적에 이르는 길이 하나만 있다고 강변하 지 않는다. 제사만이 아니라 지혜 행위 신애의 모든 길이 궁극적 목 적인 해탈에 이르는 방법이라고 본다. 하나로 아우르고 있다. 이를 필자는 회통의 논리 (=會通論)20)라고 부르거니와, 이런 회통의 논리는 2) 19) 鄭承碩, 앞의 책, p.243.

바가바드 기따 의 제사관/ 김호성 기따 의 제사관에도 그대로 적용됨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제물을 제사로 바치고, 고행을 제사로 바치고, 또 어떤 이들은 요가를 제사로 바치고 엄격한 맹세를 한 수행자들은 베다의 학습과 지식을 제사로 바친다. 21) 둘째, 현세이익성에 대해서 비판한다. 이는 바로 제사의 기복성 주술성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기복이다. 과 연, 종교에 있어서 祈福이란 무엇인가? 기복은 부정적인 의미로서만 이해되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종교적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는 결 국 기복 이라는 언어에 대한 개념의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 다.22) 복된 삶을 바라는 것이 기복이라고 정의한다면, 모든 종교는 곧 기복이 된다. 모든 종교가 인간의 복된 삶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너무 포괄적이다. 어떠한 종교든지 복된 삶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그런 까닭에 모든 종교는 기복이라고 한다면, 기복은 모두 정당화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목적은 언제나 정당하므 로 어떠한 수단도 정당화되고 말 것이며, 진정한 종교의 수행과 주술 적 기복적 성격의 종교행위가 구분될 수 없다. 따라서 보다 엄밀하 고도 비판적인 정의를 시도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는, 기복 의 개념은 목적과 방법(수단)의 두가지 측면에서 검토되어야 할 것으 로 생각한다. ①목적의 측면에서 : 기복은 현세이익의 추구를 그 목적으로 삼는 20) 拙稿, 바가바드기따에 나타난 까르마 요가의 윤리적 조명 불교윤 리와 관련하여, 인도철학 제2집(서울: 인도철학회, 1992), p.131. 21) dravyayajñās tapoyajñā yogayajñās tathā 'pare / svādhyāyajñāyajñāś ca yatayaḥ saṃśitavratāḥ // (4:28) 22) 종교에 있어서 기복적 성격을 논하는 지금, 언어의 개념을 명백하게 하 는 것을 철학의 사명으로 생각했던 20세기 서양 언어철학자들의 입장을 상기해 보아야 한다. 기복 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도 먼저 개념을 통일하 지 않고 행해지는 모든 찬반론이 결국은 기복 의 올바른 극복을 방해한 다.

인도철학 제4집 다. 종교의 정의는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지만, 어떠한 정의에서든지 유한한 현세적 세속적 삶을 뛰어넘어 영원한 초월의 삶을 지향하는 데서 공통성을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부귀영화를 비롯, 치병 등 일 체의 세속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종교의 궁극적 의미일 수는 없다 질병 죽음 등과 같은 인간의 실존적 한계상황으로 말미암아 종교 내에 기복성이 깃들어 있기는 하다. 이 점은 모든 종교가 마찬가지 다. 또한 한 개인의 종교적 삶 속에서도, 어떤 경우에는 현세적 기 복적 주술적 전통을 수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종교의 궁극적 의미일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개인의 삶 속에서 더 러 기복적 태도를 취할 때가 있음을 인정하더라도, 또한 한 종교 안 에서 기복적 측면이 있음을 인정하더라도 그같은 전통을 수용하는 것은 기복적이라 비판되어야 옳다고 본다. ②방법(수단)의 측면에서 : 기복은 주술적 수단에 의지한다. 복된 삶이라는 결과와 그같은 결과를 얻기 위한 방편 사이에 직접적인 인 과관계가 성립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과관계가 성립된다고 믿는 태도를 주술이라고 한다. 주술에도 인과관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있 지만, 원시적이며 비합리적이다. 예컨대, 제사를 지냄으로써 비가 내 리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주술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주술 은 원시종교의 특성이다. 합리적 지배를 추구한 막스 베버가 이같은 주술성의 극복에서 근대정신을 찾고자 한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 이상과 같은 기복의 정의에 입각해서 보면, 현세이익을 위한 제사 즉 소원을 들어주는 소 로서의 제사는 기복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제사를 기복적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제사 이외의 利他的 善行을 행하 지 않으려 한다. 그러므로, 기복신앙은 비합리적 주술적이라는 논리 적 오류만이 아니라 윤리적 오류까지 범하고 있는 것으로 비판된 다.23) 기따 는 윤리적 행위의 길을 통해서도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므로 주술적 비윤리적 기복을 수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따 는 브라흐마니즘적 제사를 비판하고 있는 것 이다. 셋째, 생천을 목적으로 삼는 제사관에 대해서 비판한다. 그 불완전 23) 尹以欽, 한국종교연구 1(서울: 집문당, 1986), p.171. 참조.

바가바드 기따 의 제사관/ 김호성 성을 비판한다. 인도종교의 생천론은 천상세계를 즐기고 나서 / 공 덕이 다하면 다시 인간세계에 들어간다. [9:21]는 것이다. 생천 생천의 과보[공덕]가 다함 다시 환생 한다는 구조를 갖고 있다. 더욱이 다시 환생하는 세계는 죽음의 세계 이기에 바람직한 것이 아 니다. 그러므로 이제 단순히 생천을 목적으로 한 것이어서는 아니된 다.24) 이는 제사만이 아니라 모든 수행에 다 통용되는 바이다. 브라흐마니즘적 제사 비판의 논리 브라흐마니즘적 제사에 대한 기따 의 이와같은 비판은 기따 가 갖고 있는 사상적 입장에서 볼 때 필연적인 것이다. 그렇게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따 의 비판논리 즉 사상적 뿌리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기따 가 바로 세가지 요가의 입 장에 서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Jñāna-Yoga의 입장에 서있는 기따 는 제사만능주의와 그 생천론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두가지 특징은 하나로 종 합될 수 있는데, 곧 외향적이라는 점이다. 우파니샤드 에서부터 내 면적 정신생활의 관점에서 제사의 외형적 형식주의(externalism)를 비 판해왔던 것이다.25) 내가 곧 브라흐만이다. 라고 하는 梵我一如의 입장에 서는 우파니샤드 철학에서 볼 때, 이같은 내면세계로의 혁 명적 전환은 당연한 것이다. 이제 인간은 더이상 하나의 나약한 존재 가 아닌 것이다. 하나의 소우주인 것이며, 아뜨만의 존재인 것이다. 그리하여 우파니샤드 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모르고 제사를 행하는 것은 머리가 떨어질 것이라. 26)고 비판한 것이다. 外向에서 內省으로의 이같은 우파니샤드 의 전환이야말로 후대 3) 24) 초기불교 역시 차제설법을 통해서 생천론을 수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역 시 그것만이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본 것은 아니다. 천상 역시 윤회의 세 계이기 때문이다. 오직 열반 해탈만이 참된 목적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 서도 기따 와 초기불교는 입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25) S. Radhakrishnan, The Principal Upanisad, p.358. 26) C.U. Ⅰ.10-Ⅰ.11. 참조.

인도철학 제4집 선불교의 사상적 전통의 大河를 이루어간 최초의 源流27)였던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런 맥락에서 제사에 대한 비판과 그 극복의 사상적 의의를 찾고자 하는 입장이다. 하여튼 이러한 우파니샤드 적 전통 은 기따 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제사의 외향적 형식주의는 결 단적 성격의 지성이 삼매에 이를 수 없도록 (2:44) 할 뿐이며, 내면 속 에서 빛을 찾는(5:24) 일을 방해하게 된다. 외향적 儀式(과 意識)은 내 면 속의 빛을 보지 못하도록 하고, 내면 속의 빛을 발견한 사람에게 다시 生天은 유혹이 되지 못한다. 후술할 바와 같이, Karma -Yoga와 Bhakti-Yoga 역시 제사를 비 판하기는 하지만, 제사의 전적인 지양이라는 점에서 Jñāna-Yoga가 보다 본질적인 비판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둘째, Karma-Yoga의 입장에서 행해진 비판이다.28) 인도철학에 대한 선입견 중의 하나는 Max Weber가 제기한 그 초세속성에서 찾 아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견해에 대한 한 반론으로 필자는 기따 의 Karma-Yoga를 주목해 보았다.29) 기따 의 Karma-Yoga는 행위를 통해서 해탈에 이르고자 한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Karma-Y oga가 성립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브라흐마니즘적 제사는 비판 되지 아니할 수 없다. 제사가 개인적인 행위임에 반하여, Karma-Yo ga의 행위는 초개인적 사회적 행위를 의미한다. 이제 바람직한 것은 무행위가 아니라 행위, 그것도 집착없는 행위 이다.30) 그러므로 자기의 현세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제사는 비판 될 수 밖에 없으며, 그러한 제사의 현세이익성과 개인성이 극복되지 않고서는 Karma-Yoga가 실천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따 에서는 브라흐마니즘적 제사가 갖고 있는 결과를 염두에 두고 / 남 27) 이러한 명상적 전통은 인도철학사 전체를 통해서 한편으로 초기불교로 이어지고, 다른 한편으로 초기불교 를 지나 기따 로 이어진다. 이들 양 자는 지혜의 계발과 의례주의(ritualism)의 거부라고 하는 점에서 일치하 고 있는 것이다.[K. N. Upadhyaya, 앞의 책, p106.] 28) Zaehner의 제사에 대한 언급(주 4 참조)은 이 Karma-Yoga와 관련된 기따 의 입장을 약술하고 있다. 29) 拙稿, 바가바드기따에 나타난 까르마 요가의 윤리적 조명 불교윤 리와 관련하여 인도철학 제2집 참조. 30) 위의 책, pp.139-141. 참조.

바가바드 기따 의 제사관/ 김호성 에게 보이기 위하여 드려진 제사 (17: 12)를 격정적 기질의 제사 라고 폄하한다. rajas적 제사라는 것이다. rajas적 기질의 제사는 tamas적 기질의 제사와 함께 바람직한 모습은 아닌 것으로 제시된다. 오직 결과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서 (17: 11) 행해지는 sattva적 제 사만이 바람직한 것이다. 그것이 Karma-Yoga의 차원에서 행해진 제사이다. 셋째, Bhakti-Yoga의 입장에서 행해진 비판이다. Jñāna-Yoga와 Karma-Yoga는 공히 자력에 의하여 해탈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기따 는 타력에 의한 구원을 제시한다. 얼핏보면 전자와 모순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자력과 타력의 두 길을 기따 는 모두 용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힌두교의 장점이라 생각되거니와, 제사와 Bhak ti-yoga의 거리는 제사와 Jñāna-Yoga 혹은 제사와 Karma-Yoga의 거리보다는 가깝다. 그 까닭은 바로 제사와 Bhakti-Yoga 모두 신의 존재를 상정하는 유신론적 체계 속의 일이며, 타력신앙이기 때문이 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양자간에는 중대한 차이가 존재한다. 브라흐마 니즘적 제사는, 앞서 살핀대로 제사만능주의적 특색을 갖는다. 심지 어 신보다도 제사가 더욱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Bhakti-Yoga는 이 관계를 역전시킨다. 신으로부터의 구원은, 신에게 희생(제물)을 바치는 제사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잇는 것이 아니라, 신의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신애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보는 점이 다. 제사는 부수적인 것이다. 제사를 지내는 자의 가슴 속에 내재된 念이 본질적인 의의를 갖는 것이다. 제사의 향수자 (9: 24)인 Kṛṣṇa는 나에게 이르지 못하며 / 반복되 는 생사의 길로 되돌아온다. [9:3]고 브라흐마니즘적 제사를 비판한다. 기따 에 이르러 Kṛṣṇa에게 이르는 것이 종교신앙의 목적인 것이다. 이 점이 브라흐마니즘(바라문교)과 개혁된 브라흐마니즘으로서의 힌두 교의 차이이기도 한 것이다. 힌두교에 의한 브라흐마니즘적 제사를 Bhakti와 결합시키려는 노력은, 비쉬누교에서 유래한 모든 힌두교 개혁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31) 31) 막스 베버, 홍윤기 옮김, 종교사회학 2 힌두교와 불교 (서울 :

인도철학 제4집 3. 제사의 승화과 그 논리적 근거 제사에 대한 두가지 극단적 견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불교적 술 어를 빌어서 말하면 常見과 斷見이다. 상견은 제사만 지내면 모든 소 원이 성취된다는 제사만능주의의 입장이다. 이는 브라흐마니즘의 제 사관으로서, 앞서 비판한 바 있다. 단견의 입장에서는 제사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상견의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아니 면 단견의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상견에 대해서는 위에서 비판하였지만, 단견의 입장을 취하는 사 람도 있을 수 있다(18: 3). 그러나, 기따 는 제사가 비판되었다고 해 서 전적으로 부정되고 버려져야 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상견과 마찬 가지로, 단견 역시 버려져야 할 또 하나의 극단적 견해일 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제사와 보시와 고행의 행위는 단념해서는 안되고 행하여야 하나니 제사와 보시와 고행은 바로 현자들의 정화수단들이다. 32) 기복적 주술적 제사를 수행자들의 정화수단으로 승화시켜가는 데 기따 의 입장이 놓여있음은 앞서 지적한 그대로이다. 그런데 그 렇게 승화해가는 논리적 기반 역시 기따 의 세가지 요가이다. 우리 는 이제 세가지 요가의 입장에서 제사를 어떻게 승화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1) 제사의 ñā J 적 승화 na-yoga 한국신학연구소, 1987), p.443. 32) yajnadanatapahkarma na tyajyam karyam eva tat / yajno danam tapas cai 'va pavanani manisinam // (18:5)

바가바드 기따 의 제사관/ 김호성 첫째, Jñāna-Yoga의 입장에서이다. 이는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생 천에의 비판 등이 Jñāna-Yoga의 입장에서 행해진 것이므로 당연할 것이다. 기따 에서 제사를 지혜의 제사 (Jñānayajña)라고 말하고 있 는 것도, 제사를 Jñāna-Yoga의 입장에서 승화한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제는 제물의 제사 가 아니라 지혜의 제사 를 행해야 한다고 말한 다. 제물의 제사보다 지혜의 제사가 더 우월하나니 오 적을 괴롭히는 자여 모든 행위는 남김없이 지혜에서 완성된다. 프르타의 아들이여 33) Jñāna-Yoga 그 자체는 自己目的的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지혜의 제사(Jñānayajña)는 主格으로 쓰여졌다. 그리고 지업석(持業釋)이다. 지 혜=제사 라는 입장이다. 제물=제사 가 아니다. 따라서, 기따 가 말하 는 바, 지혜 즉 요가의 성취야말로 우리가 제사를 통해서 얻고자 했 던 소원성취를 통한 복된 삶과 마찬가지로 복된 삶을 가져 다 주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공히 복된 삶이 주어진다 하더라 도 브라흐마니즘적 제사에서 추구하는 복된 삶과는 차이가 있다. 브 라흐마니즘적 제사에서는 그것을 목적으로 행한 것이며, 기따 에서 는 그같은 목적의 설정없이, 집착없이 행위한 결과로서 福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따 에는 지혜의 제사 가 主格(jñānayajñaḥ) 아니라 具格(jñ ānayajñena)으로 쓰일 때도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지혜의 제사로서 / 제사드리며 나를 공경한다. (9: 15)고 말한다. 이때 나는 Kṛṣṇa인데, jñānayajña 가 구격으로 쓰임으로써 Jñāna-Yoga가 Bhakti-Yoga에 귀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Bhakti-Yoga의 입장에서 보면, 힌두교적 독실함에서 권유하는 모 든 의식적 비의식적 구원추구는 오직 유일하게 구원을 베푸는 신이 33) śreyān dravyamayād yajñāj jñānayajñaḥ paraṃtapa / sarvaṃ karmā ' khilaṃ partha jñāne parisamāpyate // (4:33)

인도철학 제4집 나 구세주와 관련될 때만 가치있는 일이 되고, 나머지 지혜의 요가 등은 궁극적으로 유일하게 결정적인 위치를 점하는 구원상태에 이르 기 위한 기술적 구원수단으로써만 중요성을 지니기에 이른 것이 다.34) 이렇게 기따 가 Bhakti-Yoga의 입장에서 다른 요가를 포섭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유신론인 힌두교 성서로서의 면목을 잘 드 러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적 승화 둘째, Karma-Yoga적 입장에서이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Karma -Yoga적 입장에서 행해진 제사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Niṣkāma-Ka -rma(離欲行)의 이념을 충족시키느냐 여부에 달렸다. 그러므로 Karm a-yoga적 입장에서 제사를 승화시키는 입장 역시 제사를 행하는데 아무런 집착없이(Niṣkāma) 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2) Karma-Yoga 그러나 이러한 행위들도 역시 집착과 결과를 버리고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 오 프르타의 아들이여, 나의 확실한 최상의 견해이다. 35) 여기서 이러한 행위 는 바로 앞 18:5에 나오는 제사와 보시와 고 행의 행위들이다. 이러한 행위를 함에 있어서도, 집착과 결과를 버 리고 행위하는 것 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집착과 결과를 버리 는 행위가 바로 무행위의 행위로서 Karma-Yoga의 실천임은 주지하 는 바이다. 한편, 이같은 Karma-Yoga적 제사를 제사의 이상적 모습 이라고 보는 기따 의 입장이 극단화되면서, 이제 오직 제사를 목적 으로 하는 행위만이 참된 행위라고까지 하게 된다. 34) 막스 베버, 홍윤기 옮김, 앞의 책, p.441. 35) etāny api tu karmāṇi saṅgaṃ tyaktvā phalāni ca / kartavyāni 'ti me pārtha niścitaṃ matam uttamam // (18:6)

바가바드 기따 의 제사관/ 김호성 제사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 외에는 이 세상은 행위로써 묶여있다. 집착에서 벗어나, 오 쿤티의 아들이여, 제사를 목적으로 한 행위를 행하라. 36) Radhakrishnan이 이 귀절을 주해하면서 모든 행위는 신을 위한, 제사의 정신으로 행해져야 한다. 37)고 언급하고 있는데, 적확한 해석 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그것은 Bhakti-Yoga의 맥락에서가 아니라 K arma-yoga의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Karma-Yoga를 말할 때는 언제나 그 전제가 Jñāna-Yoga였음을 잊 어서는 아니된다.38) 더욱이 제사가 지혜의 제사로 승화되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제사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가 Karma-Yoga적 입장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이 이해될 것이다. 적 승화 셋째, Bhakti-Yoga의 입장이다. Bhakti-Yoga의 입장에서 제사를 승화하고 있다 함은 두가지 경우이다. 하나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브라흐마니즘적 제사가 아니라 신이 중심이 되는 신애의 표현으로서 봉헌된다는 것이다. 이는 제사만이 아니라 모든 삶의 행위를 나를 위한 봉헌 (9:27)으로 귀일시키려는 유신론의 논리에서 보면 당연할 것이다. 3) Bhakti-Yoga (한 개의) 잎사귀든 꽃이든 열매든 물이든 어떤 사람이 신애로써 바치면 그 경건한 자의 신애의 헌물을 나는 즐긴다. 39) 36) yajñārthāt karmaṇo 'nyatra loko 'yam karmabandhanaḥ / tadarthaṃ karma kaunteya muktasaṅgaḥ samācara // (3:9) 37) S. Radhakrishnan, The Bhagavadgita, p.135. 38) 拙稿, 앞의 책, p.138.

인도철학 제4집 그 다음, 제사의 본질(adhiyajña)40)론을 제기하고 있는 점이다.(8:2-4) 제사의 형이상학적 본질을 묻고 있다. 이는 주목해야 할 문제제기인 데, 기따 는 봉헌은 브라흐만이다. (4:24)라고 한다.41) 이때의 브라 흐만 은 중성적 원리(Brāhma)가 아니라 남성적 신격(Brahmā)으로 쓰였 기 때문에, 이 구절은 Bhakti-Yoga의 입장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곧 Viṣṇu의 화현 Kṛṣṇa와 동일시되는 것이다(9: 16). 제사의 본질은 이제 Kṛṣṇa인 것이다. 존재들의 본질은 소멸하는 본성이며 신들의 본질은 정신이며 제사의 본질은 여기 육신에 있는 바로 나이다. 오 육신을 지닌 자들의 으뜸이여 42) 39) pattram puspam phalam toyam / yo me bhaktya prayacchati / tad ah am bhaktyupahrtam / asnami prayatatmanah?? (9:26) 40) adhi- 는 위의, 크게, 안에서 등의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adhiyajña 는 최상의 제사 라고도 옮길 수 있다. Radhakrishnan은 the basis of all sacrifices 로 옮기고 있으며[p.228.], 吉熙星 교수는 제사의 본질 로 옮기 고 있다[p.130.]. 결국 같은 의미이다. 41)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주석가들마다 분명치 않다. 고 하였다.[R. C. Z aehner, 앞의 책, p.261., 吉熙星, 앞의 책, p.81.] 42) adhibhūtaṃ kṣaro bhāvaḥ puruṣaś cā 'dhidaivatam / adhiyajño 'ham eva 'tra dehe dehabhṛtām vara // (8:4)

바가바드 기따 의 제사관/ 김호성 4. 결론 요약 브라흐마나와 베다와 / 제사는 옛부터 제정되었다. (17: 23)고 말하 는 것처럼, 제사는 인도종교사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이는 종교 사 일반에도 그대로 해당되는 것이리라. 종교의 역사는 제사관의 변 천의 역사라 보아서 좋을 것이다. 리그 베다 에서 주술적 기복적인 제사로서 출발한 인도종교의 제사관은 브라흐마나 에 이르면 제사만능주의라 부르는 만큼 전능 한 것으로 인식되고, 마침내 신의 권위까지도 멀리 능가하고 만다. 이러한 제사관을 갖고 있는 종교가 곧 브라흐마니즘(바라문교)이다. 우파니샤드 역시 브라흐마니즘의 전통 有派의 속에 놓 여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브라흐마니즘적 제사관을 비판, 극복한다. 그것은 梵我一如를 주장하는 우파니샤드 의 변화된 인간론의 반영 인데, 이에서 원시종교와 고대종교는 그 궤를 달리한다.43) 이제 제사 의 의미도 알고 동참해야 하는 것이며, 단순히 기복적 브라흐마니즘 적 제사로써만 만족하지 않는다. 이러한 입장은 유파의 범주안에서는 기따 에 그대로 계승된다. 기따 는 브라흐마니즘적 제사를 비판하는데, 그 현세이익성과 생천 론에 촛점을 맞추고 있으며 Jñāna-Yoga, Karma-Yoga, Bhakti-Yoga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기따 로서는 비판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기따 가 제사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 다. 브라흐마니즘적 제사를 그 현세이익성 기복성을 비판 脫落시 킨 뒤에, 다시 진정한 제사로서 승화한다. 이렇게 승화하는 논리 역시 기따 의 세가지 요가인데, Jñāna-Y1) 43) 아트만과 브라만의 일여를 주장하고 있는 우파니샤드 사상 체계를 상기 하는 것으로 이 고대 종교사상이 얼마나 주술적 종교신념과 거리가 먼가 하는 점을 명확하게 드러낸다고 믿는다. [尹以欽, 앞의 책, p.21.]

인도철학 제4집 oga의 입장에서는 지혜의 도구로 인식하며, Karma-Yoga의 입장에 서는 무집착의 차원에서 행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며, Bhakti-Yoga 의 입장에서는 Kṛṣṇa에 이르는 길로서 행해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Bhakti-Yoga적 입장에서는 제사 자체가 Kṛṣṇa이며, 그런 의미에서 제사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만이 참된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결론적 으로 제사는 이제 기복이 아니라 수행(Yoga)인 것이다. 비로소 브라 흐마니즘적 좁은 뜻의 제사 가 힌두교적 넓은 뜻의 제사 로 그 의미 가 확산된 것이다. 불교의례 재검토의 필요성 우파니샤드 에서 보인 브라흐마니즘적 제사 비판의 논리는 한편 으로 위와같이 기따 에로 이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초기불교로 전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선불교의 의식주의(ritualism) 부정으 로 이어진다. 예배대상이 아닌 스승으로서의 불타관을 갖는 초기불 교와 直指人心의 선불교는 공히 의식주의의 부정을 그 특색으로 갖 는다. 따라서 우리는 제사 의식의 문제 를 실마리로 하여 선사상의 源流를 우파니샤드 에까지 소급시킬 수 있으리라 본다. 또하나, 종교에 있어서 의식이 차지하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기로 한다. 우리는 위에서 제사에 대한 상견이나 단견 모두 적절한 견해가 아님을 살펴보았다. 불교 역시 종교이므로, 기복이 아닌 수행 의 길로서의 의식을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44) 이제 의식은 적극적 수행으로 승화시켜 가야만 한다. 그러나, 기복적 의식만이 아니라 수행적 의식마저 거부하려는 현 대인의 정신적 상황45)을 생각할 때, 다시 한번 딜렘마에 빠지지 않을 2) 44) 종교는 지식만을 가르치지 않고 일종의 행위를 요구한다는 말이다. 그 러한 행위는 어떤 형식을 갖춘 의식의례로 나타난다. 이러한 의례, 보다 정확히 말해서 의례의 체계를 갖추지 않은 어떠한 형이상학적 앎도 종교 가 될 수 없다. [朴異汶,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철학 (서울 : 일 조각, 1989), p.66.] 45) 수도, 곧 삶의 훈련의 필요성, 수도를 위한 집단생활의 필요성, 수도를

바가바드 기따 의 제사관/ 김호성 수 없다. 그러나 수행으로서의 의식까지를 거부하려는 현대인의 문 제는 바로 현대사회에서의 종교의 의미 에 해당하는 문제이므로 차 치하고서, 우선 현대 한국의 불교의식은 기복성의 극복과 수행으로의 승화라고 하는 대원칙 아래서 새롭게 재검토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 다. 이는 곧 바라문의 종교 化된 한국불교를 沙門의 종교 였던 초기불 교 본래의 얼굴로 되돌아가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를 필자는 기 따 를 통해서 조명해보면서, 하나의 定礎를 놓고자 한 것이다. 위한 규범화된 행동의 반복의 필요성, 곧 한마디로 해서 의례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尹以欽, 앞의 책, p,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