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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⑥ 上謂 五承旨及侍讀金科曰 前日史官隨至獵所 何也 皆對曰 史官之 職 掌記時事 況人君擧動乎 科進曰 人君居九重之上 警戒之志日弛 怠惰之心日生 誰能止之 故人君惟畏皇天與史筆而已 上曰 何哉 科 對曰 天無形而福善 禍淫 史筆時政藏否動止得失 無不直書 垂於萬 世 孝子慈孫不能改也 可不畏哉 上曰然 科又曰 雖使史官不得入侍 五承旨皆兼春秋 一動一靜亦皆書之 上初不知其故 以常親近 故頗狎 之 自是 言動愈益恭謹(太宗實錄 卷一 元年 三月 壬午) 史料들은 太祖代의 鄭道傳의 史觀(①과 ②) 및 定宗代 의 下府 및 趙璞의 史觀, 그리고 史官 李敬生의 史觀(③, ④, ⑤) 太宗代 의 金科의 上言이다. 이들중 ①은 開國功臣인 鄭道傳이 太祖의 開國에 관 계된 事實들을 樂章으로 만들어 바치면서, 그것이 널리 民間에 퍼져 輿論 化되기를 바란다는 뜻의 것이며, ②는 그가 開國功臣에다가 史官의 임무를 맡아 기쁜 마음에서 樂章을 지어 바친다는 것이다. 여기서 鄭道傳의 史家 로서의 關心이 엿보인다. 즉, 鄭道傳은 朝鮮의 開國을 天命思想에 의해 체 계화시킴과 同時에 夢金尺 受寶籙 등의 樂歌를 만들어 德을 칭송 함으로써, 開國이 단순한 政權의 탈취가 아니라 麗代末期의 혼란을 수습하 고 새로운 王朝를 개창하여 백성을 잘살게 한다는 命이 이미 있었던 것으 로 合理化시키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그가 高麗史를 撰하면서 여러 가지 사실들에 無理한 删削을 하였다는 점과 一通하는 史觀을 엿볼 수 있겠다. 그러나 ③에서부터는 ①과 ②에서 보여 준 史家의 事實合理化라는 目的 意識과는 相反된 點을 發見할 수 있다. ①과 ②는 王權의 强化와 王室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歷史가 誤記 乃至는 曲筆될 여지를 남기고 있음에 反 하여 ③에서부터는 直筆이라는 記事의 本領을 철저히 함으로써 王의 放恣 를 방지하려는 의도가 뚜렷이 보이고 있다. 즉 ③은 定宗이 史官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함을 門下府가 여러 번 각성을 촉구하는 것으로서 史官의 職 分이며, 歷史 叙述의 效用을 道德的 見地에서 말하면서 麗末의 荒淫無道는 바로 史官이 直書를 꺼려 忠良을 멀리함에서 나타났다고 하고 있는 것이 위에 든 6가지의

8 ④에 있어서는 趙璞이 史筆의 두려움을 要領있게 설명하고 있다: 즉 임금이 두려워하는 바는 天理와 史筆의 두 가지인데 史筆은 임금의 善惡 을 영원히 전달하는 것임을 일깨워 王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⑤ 는 當時의 時政을 기록하던 李敬生이 역시 趙璞의 立場과 비슷한 直筆의 職分을 말하였던 것인데 비로소 定宗은 歷史에 대한 큰 關心을 가지고 高 麗史를 읽게 되었던 것이다. ⑥은 定宗代와 같이 史官의 임무가 直筆時事함과 史官이 있음으로 해서 임금의 경계심이 해이하여짐을 방지하는 効用, 그리고 임금이 史官을 入侍 시키지 않음으로써 어떤 일들이 後世에 傳해지지 않을 수는 없다는 점을 들어 은근히 史官의 自負心을 내세우고 있다. 이것은 한번 直書하면 王의 子孫이라도 改筆치 못한다는 信念이 가득찬 당시의 史觀의 認識을 잘 드 러내 보여 주는 文句가 아닌가 한다. 이렇게 보면 太祖代의 史官으로부터, 적어도 直筆에 대한 王의 믿음과 史官의 自負心이 생겨난 것은 定宗 太宗으로 이어지면서 점점 확고하여짐 을 알 수 있겠다. 또 麗末의 荒廢相이 史官의 直筆을 막음에서 연유했으므 로 이제는 史官으로 하여금 直筆을 하도록 보장하고, 그로 말미암아 王도 쓸데없는 사냥이나 격구에 마음 쓸 것이 아니라 治國安民에 힘써야 한다 는 儒家의 政治的 理想이 차츰 정착되어 갔음을 알 수 있겠다. 勸善懲惡的 인 道德的인 목적과 가치기준을 갖춘 史官의 立場이 官撰의 實錄이라 하 더라도 私撰의 史家들이 지녔던 直筆의 정신과 기록자체의 신성성 존엄성 을 믿고 있었다는 歷史인식체계는 스스로 實錄의 史料的 가치를 높였다고 다. 하겠다. 太宗初에 있어 史官들이 가졌던 儒家的인 道德政治像에 대한 자부심은 佛敎의 배척이라는 思想的인 갈등에서도 자부심을 가졌었음이 엿보인다. 이러한 態度는 차츰 經筵을 通하여 王과 臣下들의 思想사이의 간격이 좁 혀지고 있는 바

9 上曰 古之爲民 士農工商而已 史官閱鱗生進曰 今也遊手之徒多 而生 財之民少矣 上曰然 遊手之徒信多矣 麟生曰 遊手之徒 莫異端若也 上笑 曰 憲府亦 請罷五敎兩宗名利之僧 其寺社土田减獲 盡屬于公 唯任置山 門道僧 予亦知其 不可 而切欲罷之 以太上方好佛事 故不忍遽革 又曰 昔者 佛氏始興於何代 好佛者何代 斥佛者何代 侍讀官金科 明陳歷代好 佛 終以致敗 斥佛終以善治 具如通鑑所載 (太宗實錄 卷一 元年 三 月 壬子) 儒者들의 斥佛에 대한 確信感은 通鑑 等의 歷代史册을 읽고, 歷史的인 경과를 通해 증명됨을 보이고 있음에서 可能하였던 모양이 라고 함에서 보면 다. 好佛하면 敗하고 斥佛하면 興한다는 理論의 증거가 儒者들에 의한 史論 으로 이용된 通鑑 等의 書에서 나타났다고 함은, 鮮初의 史官들이 儒家的 인 見地에서 勸善懲惡의 道德觀에 의해 修史에 임했던 것을 말해주는 것 이라 하겠다. (1) 世宗實錄 에서의 修史觀 年 8月부터 1450年 2月에 이르는 約 33年間의 記錄인 世宗莊憲大 王實錄은 以前의 三代에 걸친 實錄과는 약간의 體裁上의 差가 있다. 즉 世 宗實錄의 構成을 보면, ① 編年紀 卷1 卷127 ② 五禮 卷128 卷135 ③ 樂譜 卷136 卷147 ④ 地理志 卷148 卷155 ⑤ 七政算 卷156 卷163 으로 모두 5가지로 분류된다. 이 중 ①의 編年紀事는 太祖 定宗 太宗實 錄과 같은 것이지만 ②부터는 각각 禮 樂 地理 曆에 관한 紀傳體의 志의

10 注目되는 것이다. 즉 實錄이란 원래 編年體로 記述 하는 것이 原則이었다. 그런데 世宗實錄은 따로 志를 編慕하여 붙여 한 特 色을 이루게 하였다. 紀傳體인 경우는 編年의 帝紀(本紀 或은 世家)와 志, 年表, 列傳이 있으나 世宗實錄은 年表와 列傳이 없음으로 해서 紀傳體도 아닌 것이다. 이것은 世宗大王의 時代에 이르러 禮樂과 文物의 制度가 創 定된 것이 많은 가운데 特히 禮制와 樂譜의 정리, 七政算內外曆法의 完成 등에 대해 史官들이 自負心을 가지고 이미 當代에도 그렇게 認識하였음을 뜻한다고 하겠다. 世宗實錄의 撰修에 관계한 鄭麟址 崔恒 成三問 朴彭年 申 叔舟 等은 當時의 一流의 學者들이요, 그밖의 史官들도 年少氣銳한 人物들 이고 集賢殿에 모였던 學者들로서 古來의 史官으로서의 긍지와 自負心이 대단하였던 것이다. 史官의 職이 비로소 世宗代에 이르러 羡望의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 주는 사건으로 李承門의 구타사건이 있다. 史官 李承門을 司禁 金深이 술에 취해 때렸을 때에 領春秋舘事 朴訔은 自身이 史官을 지 내보지 못하였다하여 史官을 시기하고 밉게 여겼다는 것이 記錄에 보인 다. 領議政이란 最高의 官吏가 六, 七品에 不過한 史官을 시기할 정도로 史官의 直筆에 대한 보장이 있었던 것은 世宗自身의 心性에서나 當時의 儒學의 風에 있어서나 이 시대의 史觀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체제와 같은 것으로서 6) (2) 世祖實錄 의 性格 世祖實錄은 端宗 3年(1455) 閏 6月 11 日부터 在位 14年(1468) 9月 8日까지 約 13年 3個月間의 記錄으로 모두 49卷 18册으로 되어 있다. 그 런데 世祖實錄은 다른 것과는 달리 末尾의 二卷은 編年體의 記事가 아니 라 世宗實錄의 末尾와 같은 形式으로 樂譜가 실려 있다. 이는 世祖代에 雅 樂이 完成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貴重한 資料인데, 이로써 실제 記事 는 47卷 部分만 해당된다. 6) 世宗實錄 世宗 3年 10月 甲午

11 世祖는 端宗을 내쫓고 王位에 오른 非常한 君主였다. 그의 即位에 參與 한 이른바 功臣들에 의하여 그의 實錄은 撰進되었으므로 여러 가지 문제 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端宗을 正當한 임금으로 생각치 않았기 때 문에 稱元法에 있어서도 踰年法을 버리고 即位稱元法을 使用하였다. 閔粹 의 史獄은 그 좋은 본보기로 朝鮮時代에 있어 史官制에 찬물을 끼얹는 첫 事件이요 史 官이 事實을 直筆할 수 있었느냐의 문제도 이러한 史獄을 通 해 고찰할 必要가 있을 것이다. 世祖實錄은 王이 昇遐한 이듬해인 睿宗 元年(1469) 正月에 寧城君 崔 恒을 領春秋舘事를 겸하게 하면서 시작되었다.7 예종대에 世祖實錄의 編慕을 담당한 上位責任者들을 보면 모두가 世祖 와 총신들이었다. 申叔舟나 韓明澮는 崔恒 등과 모두 世祖 擁位의 功臣들 이요, 集賢殿出身의 梁誠之 또한 死六臣 事件때에 特別히 世祖의 命으로 살아난 人物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世祖代의 重臣들이 아직 많이 있을 때 에 世祖實錄이 편찬됨으로 해서, 그리고 自身들이 世祖를 등에 업고 저지 른 비행이 혹이나 直筆되어 後世에 전하여질까를 두려워하여 의심함으로 써 문제의 史獄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하겠다. 閔粹의 史獄은 實로 世祖實 錄을 편찬함에 重大한 영향을 끼친 事件이었다. 睿宗元年 4月에 史草에다 史官의 名을 기입하는 문제에 대하여 논란이 ) 일어난 것을 보면, 獻納 張繼弛將本院議 啓曰 史貴直筆 今春秋舘收史草 令各書姓名於 册 史草 非但記國家事 士大夫善惡得失皆記之 今若是 則臣等恐 人皆從 7) 睿宗實錄 卷 3 元年 正月 戊寅, 申奭鎬 前揭書 p.32에서는 睿宗 元年 4月에 實錄廳을 春秋舘에 設置하고 六房으로(後에 三房) 나누어 編纂하기 始 作하여 라 하였으나 錯誤였던 듯하다. 睿宗實錄 卷 5 元年 4月 甲寅에는 春 秋舘의 實錄廳에 宮醞을 내렸다고 하고 이어서 先是 申叔舟 韓明澮 崔恒等 承命 與梁誠之 李承召 金壽寧 鄭蘭宗 李永根 李克墩 芮承錫 趙安貞 趙益貞等 撰 世祖實錄 後又命姜希孟與焉 이라고 하여 4 月 以前이 分明한 것 같다

12 好惡 且慮取怨 不以直筆也 傳曰 史草修撰非自今始 古人亦書姓名不耶 且修史秘事也 誰先 發此言 對曰 正言元叔康 今任春秋舘 故與司諫曹幹 言之 古人書姓名 臣不知 也 又傳曰 前朝有一人侍君 君命起舞 辭曰 醉 不能舞 及退無醉容 時以爲欺 君 汝於此時 不以實對 至於窮訊 乃吐實 則亦是不直者也 命宦官 侍于春秋 舘日 舘官有發一言者 不以直吿 則必 罪之 四生未知爲何事 皆相顧失色 編修 官成俶對曰 前日叔康云 於史草 不可書名 惟聞此事耳 召叔康問之 叔康對曰 臣仕春秋舘 見史草 皆書史 臣姓名 臣意謂如此 則慮其取怨 無有直筆 故議諸 同僚以啓 傳曰汝豈無 聞見而發此言耶 叔康對如初 又傳曰 古人修史 使先王 功德不泯於千載 汝等不此之顧 反慮史官不直書士夫之事傳也 且修史非特上 古爲 然我朝 亦有之 其時書名與否汝等豈不聞也 繼弛叔康等皆對以不知 命囚 義禁府 俄而命放 傳曰 汝等非無罪也 恐塞言路故赦之 仍命叔康勿仕春秋舘8) 좀 긴 引用文이기는 하지만 당시의 사정을 잘 말해주는 直 筆의 것이 아니었던가 한다. 王은 先代에도 史草에 史官의 名을 記入하였 을 것인데 元叔康 等에게 왜 모르느냐고 다그쳤던 것이다. 史官인 張繼弛 나 元叔康이 이 일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睿宗이 先 王인 世祖의 實錄을 撰함에 있어서 或이나 하는 의심을 먼저 가지고 있었 지 않나 하는 의혹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傳于春秋舘曰 魯山時 日記及癸酉 年靖亂時史草入內 予欲觀凡例 라 하는 것으로 보거나 傳 曰 世祖實錄初卷 已成入內 予觀其例 라 함에 대해 아무런 반발이 없었 던 점에서 보더라도 睿宗이 世祖의 簒位當時의 일이 어떻게 기록될 것 인지 매우 관심을 깊게 가지고 있었음과 通하는 것 같다. 閔粹의 史獄은 이러한 상황 아래서 생겨난 것이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記錄은 좀 장황하 기는 하지만 主要部分을 추려내면 대략 다음과 같다. ① 春秋舘에서 世祖實錄을 撰하려고 史草를 받을 때 或은 만약 史草 이라고 하였다. 9) 10) 睿宗實錄 卷5 元年 4月 甲子 睿宗實錄 卷5 元年 4月 辛未 睿宗實錄 卷 5 元年 4月 戊午 8) 9) 10)

13 름 쓰면 반드시 直筆이 없을 것이다 하고 或者는 史草에는 예로부터 이름을 쓰는 것이므로 지금 쓰지 않음은 不可하다 고 하 였는데 드디어 쓰기로 하였다. ② 奉常寺 僉正 閔粹와 史草에는 자못 大臣들의 得失을 썼었다. 그는 이름을 써야 된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몰래 두려워 꺼려 하였다. ③ 記事官 康致誠과 몰래 史草를 꺼내서 고쳤다. ④ 記事官 崔哲寬은 閔粹가 改書한 것이 梁誠之의 일임을 알고 이 사실 을 記事官 楊守泗에게 말하기를 이 일이 만약 누설되면 우리들은 죄를 면할 수 없다 고 하였다. ⑤ 楊守泗는 드디어 修撰官 李永根에게 몰래 吿하니 永根이 크게 놀랐다. 이에 여러 사람과 살펴보니 고친 곳이 6군데나 되었다. ⑥ 領事 韓明澮를 비롯한 堂上들은 崔哲寬의 供辭와 閔粹의 改處를 모두 써서 임금께 아뢰었다. ⑦ 임금은 즉시 義禁府에 拿捕케 했다. ⑧ 韓明澮는 閔粹가 일찌기 康孝文과 함께 不軌한 일을 꾀하였던 者임을 아뢰고, 지금 아직도 史草를 바치지 아니한 사람이 많으므로 앞으로도 또 이러한 일이 있을까봐 春秋舘의 일을 볼 수 없다고 하였다. ⑨ 임금의 취조에 閔粹는 사실대로 고하였다. 결국 閔粹가 고친 史草의 部分과 그 범위까지 자세히 나타나게 되었다. ⑩ 史草 變改의 일과 더불어 元叔康 等 史官의 姓名을 기입하는데 대해서 반발하였던 人物들까지 처벌케 되었는데 康致誠은 欺君이라 하여 元叔 康과 함께 斬刑되고 子孫은 安置하였으며 閔粹는 杖一百에 濟州官奴로 永屬되고 崔命孫 李仁錫은 杖一百에 本鄕에 充軍토록 하였다. 以上은 閔粹史獄의 대강을 말한 것이지만 이로 말미암아 다른 史官들도 꼼짝없이 史草에 姓名을 기입하여 提出케 되었다. 或이나 世祖時代의 史草 가운데에 閔粹와 같이 改删커나 焚草하는 일이 아주 없었을까도 큰 의문 에 이 을 11) 11) 睿宗實錄 卷5 元年 4月 丁丑

14 世祖實錄에서 部分마다 약간의 改删이 있었을 可能性을 배 제치 못할 점도 남기고 있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世祖實錄은 成宗 2年 12月 壬午日에 撰進되었고 乙酉日에는 實錄編纂에 관계한 諸員에게 恩賜가 있었다. 이라 하겠으며 12) (3) 成宗實錄 의 性格 成宗實錄은 成宗 即位(1469)年 11月 28日부터 25年(1494) 12月 24 日까지 約 25年 1 個月間의 記錄으로 모두 297卷 47册 紙面當 15行 24 字로 되어 있다. 다른 實錄과는 달리 成宗 3年부터는 一個月間의 記事를 一卷으로 하였기 때문에 가장 많은 卷數를 보이고 있다. 成宗實錄은 王이 昇遐한 이듬해인 燕山君 元年 4月에 領議政 盧思愼 等 의 建議에 依하여 春秋舘內에 實錄廳을 設置하고 六房으로 나누어 編慕하 기 始作하여 同 5年 2月에 完成된 것이다. 처음에는 魚世謙 李克墩 成俔 柳 洵 權健 曹偉 申從護 等을 實錄廳의 堂上으로 삼았으나 成宗實錄 卷末에 보이는 編纂關係者 名單에는 成俔과 曹偉의 名이 없다. 이 중 曹偉는 戊午 史禍에 연루되어 죽은 까닭이라 하지만 成俔이 빠진 것은 어찌된 緣由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成宗實錄의 編慕에 관계한 春秋舘員은 다음과 같다. 13) 14) 12) 13) 14) 領 事 監 事 知 事 同知事 編修官 愼承善 魚世謙 成俊 李克墩 朴楗 柳洵 洪貴達 盧公弼 尹孝孫 趙益貞 金壽童 李陸 權健 金克儉 申從護 金弟臣 許深 安琛 表沿末 權柱 尹喜孫 李均 李琚 姜景叙 李承健 楊熙正 李達 善 李惟 李宣茂 金崶 金詮 李守恭 安塘 李繼福 李世英 張 成宗實錄 卷 13 2年 12月 乙酉 燕山君日記 卷4 元年 4月 壬申 申奭鎬 前揭書 p

15 順孫 南宮璨 朴說 孫蕃 許輯 南世周 崔溥 南世聃 金三俊 李懿孫 記注官 李㙉 柳順汀 任由謙 鄭光弼 李顆 金勘 成世貞 李孝文 孫澍 權鈞 記事官 金千齡 李孝敦 柳希渚 權達手 奇褚 權敏手 尹殷輔 曹致處 申證 姜德裕 鄭承祖 李希舜 韓世桓 沈順門 成重淹 鄭希良 權五紀 成希哲 李荇 姜澂 高世昌 金熠 成允祖 李滋 申公濟 金寬 金世弼 李思恭 文瑾 河繼曾 徐厚 金崇祖 成宗實錄이 편찬되는 동안인 燕山君 4年 7月에 戊午史禍가 일어났다. 이 戊午史禍가 實錄의 편찬에 끼친 영향은 어떠한 것이었는가를 살피기 위하 여 그 史禍의 原因과 경과를 간단히 알아보아야 하겠다. 燕山君 4年 7月에 李克墩이 成宗實錄 편찬을 위한 堂上官에 임명되자 훈구파인 그가 士林派인 金馹孫이 納入한 家藏史草 가운데 世祖에 관한 사 실이 많이 쓰여져 있고, 또 金馹孫의 스승인 金宗直의 世祖簒位를 비방하 는 글인 吊義帝文 이 수록되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李克墩은 이 사실을 미끼로 士 林派를 공격하려 하여 魚世謙(당시의 實錄편찬 총재관)에게 보 고하였으나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그는 이 사실을 柳子光에게 알 리었다. 柳子光은 본디 才가 金宗直에 미치지 못하였고, 또 私的인 원한도 있었던 터에 尹弼商 盧思愼 등과 함께 모의하여 燕山君에게 大逆無道의 죄 를 청하였던 것이라 한다. 戊午史禍는 이어 있을 史官問題에 심각한 문제 를 제기한 것으로서 史官인 李克墩이 史草를 漏洩하였던 것은 지나친 新舊 對立의 勢에서 스스로 理性을 잃은 처사였다. 이러한 사실을 이용하여 士 林派의 기세를 꺾을 구실을 만난 燕山君은 일찍부터 내가 자유의 즐거움 을 얻지 못하는 것은 이들 學士輩때문이다 라고 말하였던 터였다고 한다. 그 결과 士林派의 죄악이라는 모든 行爲가 實로 史草의 漏洩로 말미암아 드러나고 이런 것들이 金宗直의 敎唆에 의한 것이라 하여 剖棺斬屍의 刑을 내리고, 이와 관련 하여 비록 史官이 아니었더라도 처벌을 받은 者는 數百 한편

16 名에 達하였다. 이때에는 士林派만 처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명목상 修史 官의 책임도 물어 魚世謙 李克墩 柳洵 尹孝孫 金銓 등이 史草누설의 죄로 罷職당하기도 하였다. 史草問題로 말미암은 政治的 慘劇의 가장 代表가 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成宗實錄의 編纂過程에서 이러한 事件이 일어났다 고 해서 실록의 편찬작업이 늦어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고, 史草가 納入된 다음 問題의 吊義帝文 과 그에 관계된 史草의 一部로서 世祖의 찬위를 비방하거나 當時의 勳舊大臣들에게 비난을 적은 史草의 改變 脫漏 削除 等 의 조처가 있었는지의 與否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燕山君代에 들어 甲子 士禍 以後에는 臺諫의 諫言內容이 削除된 部分이 있음을 보면 成宗實錄에 서도 史臣曰 이나 史論曰 이라 하여 家藏史草에 君臣의 善惡을 크게 드러내어 적었던 부분은 많이 削除되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15) (4) 燕山君日記 의 性格 燕山君日記는 燕山君이 即位한 1494年 12月 25日부터 그가 中宗反正으 로 물러난 1506年 9月 2日에 걸친 약 11 年 9個月間의 記錄으로 63卷 46册으로 되어 있다. 現存하는 것은 一行당 27字 面當 16行으로 되어 있 다. 踰年稱元法을 使用하였다든지 이를 實錄이라 하지 않고 日記라 한 것 은 그가 廢位되었기 때문이지만, 史料的價値나 體裁에 있어서는 實錄과 조 금도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實錄들이 대개 卷末에 編纂年日과 編纂者들의 名單이 붙어 있는 것과는 달리 燕山君日記만은 없다. 그리하여 燕山君日記의 編撰에 대 한 仔細한 상황은 中宗實錄에 의하여 알아 볼 수밖에 없게 된다. 또 燕山 君을 廢位시키고 反正을 이룩한 人物들이 과연 燕山君日記를 編撰함에 있 어 어면 태도를 취하였을 것이며 또 어떤 論難이 있었는가도 알아보고픈 충동감이 앞선다. 15) 申解淳 官僚間의 對立 (한국사 12, pp.171 3)

17 燕山君日記의 編撰에 參與한 人物들을 보면, 中宗實錄에 依하여 그 責任官은 알아볼 수 있지만 其他의 實際執筆者는 알아볼 수 없다. 다행 히도 燕山君日記를 完成하고 遮日巖에서 洗草할 당시의 모습을 그려 놓은 日記洗草之圖 가 慶北 奉化郡 乃城面 西谷里의 權氏家에 남아 있어 이 에 의해 當時의 從事者를 알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그림은 中宗 4年 (1509) 9月 19日 遮日巖에서 있은 洗草光景을 그린 것으로 당시의 承政 院 注書로 春秋舘記事官이었던 權撥에 의해 보관되었던 것이라 한다. 이에 의하면 總責任者는 成希顔이 었고 기 타 관계자는 다음과 같았다. 우선 16) 知<事 成世明 申用漑 張順孫 鄭光弼 金詮 朴說 同知事 曹繼商 李惟淸 金封 成世純 孫澍 任由謙 南袞 權弘 修撰官 姜景叙 李世仁 韓世桓 慶世昌 崔淑生 編修官 柳希渚 金謹思 安彭壽 尹殷輔 李希孟 黃㻫 金崇祖 金駿孫 金 綴文 康仲珎 李偉 尹世豪 金克幅 尹耕 趙舜 許硡 金世弼 李 荇 尹希仁 金安國 申鏛 安處誠 柳雲 魚得江 記注官 李賢輔 李思鈞 成雲.權福 申儼 洪彥弼 鄭忠樑 記事官 李 (土+末) 成世昌 柳灌 金瑛 尹仁鏡 李希曾 金祖 文理 權 撥 尹止衡 金希壽 鄭熊.蘇世良 任樞 崔重演 潘硕枰 <newchar 9"/href> ="U 2128 燕山君日記의 編撰者들을 보면 우선 總責任者 成希顔은 中宗反正 의 元勳으로서, 燕山君在位期間에 楊花渡에서 놀이하다 王을 풍자하는 詩 를 짓고 좌천되었던 바 있었다가 中宗反正에 參與하였던 人物이다. 知事인 成世明도 燕山君에게 몇 차례 처벌받을 면하였던 人物이요, 申用漑 또한 王의 비위에 거슬려 靈光에 귀양살이하였던 人物인 것과 같이 거의 모두 가 燕山君을 좋지 못한 사람으로 여길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燕山君日記의 編纂이 시작된 中宗 2年 4月부터 史草의 納入을 命하였으 나 反正으로 因한 어떤 의구심, 그리고 바로 燕山代에 있었던 戊午史禍에 이들 16) 申奭鎬 前揭書 pp

18 直筆의 家藏史草가 기일내에 納入되지 못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생겨난 法이라 생각되는 重大한 法이 立案된 것은 燕山君 日記의 편찬이 시작되기 직전인 中宗 2年 3月이었다. 즉 史草를 漏拽하는 者는 嚴罰에 處한다는 것으로 日記廳에서 要求한 것이었으니, 대한 생각이 가시지 않아 日記廳堂上郞官啓曰 家藏史草納廳日期 京中則五月晦日 而今過限不 納 故未得始事 此必直筆者畏人漏洩 以戊午之事爲戒 故然且 秉史筆者 不爲不直 須直書廢主致亂之由 而後殿下中興之業明矣 史記非從 一時之 事 萬世垂戒之大法也 (中略) 今史局事漏洩者 請立法以杜其漸 今 藝文舘上疏 亦欲 罪戊午漏洩之人矣17) <첨자> </첨자> <첨자> </첨자> </첨자> <첨자> <첨자> </첨자> 漏洩者에 대한 처벌규정을 만들게 된 動機가 엿보인다. 史官이 直筆을 하지 않으면 아니되는데, 그 直筆이란 當時의 事情으로는 燕山君의 惡行과 中宗反正의 正當性을 기록하는 것이 明白하지만, 中宗反正에 參與한 人物이라 하여 燕山君과 함께 일하지 않은 者는 없었을 것이고, 그때 있었던 이상한 일을 直筆한 것이 漏洩되지 못하도록 하자는 의론이었던 듯하다. 이 러한 立法의 의지가 나타나게 된 것은 史草納入期日이 5月 末日인데도 6 月 17日이 되도록 提出하는 史官이 없었기 때문에, 혹시 史官들이 史草納入을 꺼리는 이유가 燕山君代에 있었던 戊午史禍와 같은 禍가 있을까 두려워서 그러는 것으로 판단되었던 것으로 볼 수가 있다. 결국 이러한 염려로 말미암 아, 그리고 燕山君日記의 編纂에 參與치 않으려는 이상한 움직임의 조짐도 보여서, 中宗 2年 6月 17日에 漏拽者에 대한 立法이 行하여 졌으니, 라고 함에서 日記廳啓曰 今後漏洩史局事者 極邊殘邑永屬爲奴 子孫禁銅 雖經赦勿 原 從之18) 7 中宗實錄 卷3 2年 6月 己丑 同上 1 ) 18)

19 法이 마련되고, 이로 말미암아 史草漏洩에 대한 보장이 있고, 또 일단 日記廳의 官員으로 된 사람은 어떠한 理由에서든지 轉輔치 않기로 함 으로서 燕山君日記의 編纂을 끝내게 되었으니 中宗 4年 9月의 일이었다. 燕山君日記가 畢撰된 다음 前例에 따라 議政府에서 酒樂이 史官에게 내 려 지고 遮日巖에서 洗草할 때에도 賜酒가 있었다. 이것은 燕山君日記가 實錄 과 同一한 性格의 것으로 當時에도 인식되었옴을 뜻한다고 볼 수 있 라 하는 19) 을 것이다. 燕山君의 史官에 대한 태도는 매우 가혹하였다고 함이 燕山君日記의 各 處에서 보이기도 하며, 그런 가운데서도 當時의 史官들은 事實의 記錄에는 매우 充實하였다는 것도 있다. 燕山君의 非行은 燕山君日記 62卷 12年 4 라는 것으로 보아 王의 言行에 月 戊辰에 傳曰自今 史官勿作家藏史草 대한 史官의 비판은 물론 아예 家藏의 史草를 作成조차 못하게 하였다. 史 官들은 그래도 여론에 의거하여 事實의 記錄과 時論을 直筆하였던 것은 燕山君日記 60卷 10年 12月 乙丑에 <첨자> </첨자> 傳曰 採來女一百六人 令禮賓寺供饋 史臣曰 王命任崇載李季仝等 分遣 全羅 慶尚忠淸三道 採取美女及良馬 法令苟刻 事稍稽緩 雖守令杖之 人 人危懼 妻妾莫敢隱匿 怨泣之聲相聞 <첨자> 이라고 함이나 </첨자> 卷63 12年 8月 丙寅의 下御製詩于姜渾曰 史臣曰 渾少好學 善屬文 性明雅行 已不苟 素爲 士林所推 王知其能文 擢爲承旨 凡有所命 皆稱旨 由是寵遇益隆 與勘将 未半歲 已蹄一品 王方荒于色 凡淫詞藝文苟屬女寵之事 必命渾製之 渾 援引古今 竭其心思 務合王旨 士林譏之 或比之江捻等狎客 <첨자> </첨자> 19) 中宗實錄 卷9 4年 9月 辛丑

20 直筆이라기보다 燕山君 내지 中宗代의 史官이 燕山君의 荒 淫한 事實을 記錄하고, 姜渾과 같은 文才가 王旨에 務合하기만 함으로서 士林이 譏之하는 바 됨을 밝힘으로서 後世에의 경계심을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歷史記述의 目的性은 性理學的立場의 史觀이 철저하였음을 보여 준 다. 士林이나 時論에 배치되는 民意에 反하는 行動을 史論에서 밝히는 史 官의 識見이란 朝鮮前期를 통하여 줄곧 흐르는 歷史認識의 潮流인 것 같 다. 燕山君에 대한 史官의 총평을 中宗實錄 卷 1 元年 9月 戊寅에서 보면, 등에서 보인다. 史臣曰 燕山性强戾好察 爲政苟酷 沉湎酒色 昏棄祀事追崇 出母多殺 大臣 惡聞規諫 誅竄言官 又曰 如有直言讜論 盡令割削 家藏史草 亦令收入 且令 即位以后日記史草 不記人君過失 盡革兼帶春秋之號 以他官稱校 史官使撰集即位後實 錄 <첨자> </첨자> 燕山君은 그가 即位한 다음부터 實錄에 필요한 史草에 대 해 통제하고 春秋舘은 다만 他官에 의해 이미 校改된 것으로 燕山生時에 그의 實錄을 撰集케 하였다고 하였다. 中宗反正이라는 政治的 事件에서 前 王인 燕山君을 좋게 評할 理由는 없으나 燕山君自身이 그가 살아 있으면 서 자신의 행적을 과대망상증에 걸린 사람처럼 꾸며서라도 實錄을 作成하 려 하였다고 記錄할만큼 史의 本領을 경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때의 史臣들이 燕山君의 意圖와는 달리 儒家的인 基本綱領을 지켰음을 앞 서 引用한 史論에서 엿볼 수 있다. 그것은 朝鮮의 史家들이 가지고 있었던 史觀이 初期의 그것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음을 말하여주고 있다. 士 林의 탄압에서 그것이 풀리는 中宗代에 이르러 다가오는 변화도 性理學的 명분에 의한 커다란 認識體系 內에서의 변혁인 것이며, 뒤에 살필 中宗代 의 一連의 運動은 史官의 歷史認識이 좀 더 本來의 儒敎的 歷史認識에 밀 착하려는 움직임이었던 것이라고 하겠다. 이라고 하였다

21 4. 中宗代의 史官意識 朝鮮의 史官制는 中央의 春秋舘 외에 따로이 外史官이나 女史 등의 制 가 없었다. 外史官이란 一種의 地方史官으로서 行政單位인 道 府 郡 縣 등 에 史官을 두는 것인데, 이러한 制度는 中國이나 高麗時代에는 있었던 것 이다. 高麗時代에는 司錄 이 그 일을 맡았다고 한 記錄이 있을 뿐 그 이외의 것을 지금 갑자기 알 수가 없다. 外史官 設置의 議는 中宗 8年 金磧이 建議하기를 20) 正言金磧曰 國家於朝廷置史官 而外方無史官 民間疾苦 守令賢否 風 俗汚隆 泯滅無傳 甚爲不可 依古野史之例 守令都事中 使兼帶春秋之職 俾得書之 上不答21) 金磧은 外方의 守令이나 都事 가운데 春秋의 職을 兼하게 하여 그 地方의 百姓生活相을 비롯하여 守令의 賢否 風俗 등을 記 錄케 하자고 하였으나 王의 答을 얻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처 럼 나타난 外史官 設置의 建議는 實現을 보지 못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地方官 가운데는 가끔 春秋兼帶者가 있었음을 보이는 記事도 보인 다. 守令으로서 春秋舘員을 兼한 것 인지 혹은 外史官으로 史草作成의 일 을 맡은 것인지 分明치 않으나 이라 한 것이 그것이다. 開視焉 春秋舘堂上啓曰 星州史庫雨漏處 觀察使令 守令之兼帶春秋者 夫史庫 常時不得開閉 若使守令得以開閉 則恐史庫爲不重也 請遣史官更 令奉審 傳 曰可 <첨자> 20) 21) 世宗實錄 25年 正月甲申 中宗實錄 卷 18 8年 8月 丁巳 </첨자>

22 守令으로서 春秋의 任을 兼한 者 가 있었을 可能性 즉 外史官이 있었을 可能性도 보이고 있으며 또, 라는 것을 보면22) 下春秋舘 外史庫曝曞別監磨鍊文書于政院曰 此事當依前例遣送也 但古者 故常遣記事官爲之矣 今則外方守令都事兼春秋者有之 其不可 外方無兼春秋 以 此人爲曝曞乎 <첨자> </첨자> <첨자> </첨자> 23) 外史官의 制가 施行되지나 않았던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 外方에 兼春秋者가 없었으나, 지금은 外方의 守令이나 都事 가 兼春秋者가 있다는 말은 언뜻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中宗 14年 7月 朝鮮王朝實錄의 編慕態度와 史官의 歴史意識 丁未條에 의하면 外春 秋는 史官이 아니다 라고 春秋舘에서 말하고 있음이 注目된다.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하여 다시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편 中宗代에는 女史의 設議도 있었다. 女史의 制는 漢代에 있었다는 것으로 宮中에서 일어나는 일과 王의 政事外에 있는 言行에 대해 자세한 記錄을 하려는 데에서 생긴 것으로, 이에 대한 設置建議는 金安國에 의해 라는 데서는 다. 예전에는 이루어졌다. 즉 同知事金安國曰 此記太后與神宗言論事甚詳 此乃閨門之言 非史官所得 記 必出於女史之筆 自古女史於閨門之內 人君擧動言行皆悉書之 故外人 知之而書之於策 後人見之而知其善惡 國朝之事 未詳得之閨門之內袵席之 間 一動一靜 豈能詳記之乎 臣意 可依古制置女史 使得記動靜言爲可也24) 金安國은 續綱目의 講筵에서 女史의 記錄을 남긴 中 國의 例에 따라 女史의 設置를 말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掌令 奇遵도 좋다 라고 함이 그것이다. 22) 23) 24) 中宗實錄 卷 29 12年 8月 壬戌 中宗實錄 卷 62 23年 7月 西戌 中宗實錄 卷 35 14年 4月 乙酉

23 王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면서 論議하였다. 대체로 이때의 侍 講官들은 金宏弼의 弟子들로서 저 유명한 趙光祖 金安國 奇遵 등이 中宗을 안고 道學政治라 일컫는 理想的인 儒敎國家의 건설을 꿈꾸던 때에 해당한 다. 앞서 말한 外史官의 設置나 이 女史制의 論議는 中宗代의 政治的 분위 기와 깊은 관련을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고 하였으나 (1) 史官에 대한 認識의 變化 朝鮮時代의 政治家 내지 學者들은 大部分 史草에 自身의 일이 記錄됨을 매우 꺼리거나, 아니면 自己의 行蹟 가운데 後世에 잘한 것이었다고 判斷될 일이 있으면 自身이 草稿를 作成하여 남기려고도 애썼던 것이 往往 보이고 있다. 現實的인 欲心에 눈이 어두워서 他人을 모함하여 나쁜 짓을 하고서, 자신이 꾸민 일들에 관한 자세한 記錄을 하였다가도 後孫에게 미칠 禍를 두 려워하거나 자신의 非行이 後世에 전하여지는 것이 떳떳치 못할 경우에는 불살라버리는 일도 있었다. 己卯士禍때 활약하여 그 후 권세를 누렸던 南袞 과 같은 사람은 平生의 草稿를 불사르고 子孫들에게 自己의 虛名欺世한 일 을 전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謚號를 要請커나 碑를 세우지 말라고 하였던 것 을 보면, 現實의 生活에서 자신의 非理를 죽어서까지 稱케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良心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이든 저런 일이든 史官의 임무는 이 러한 모든 是非善惡을 빠짐없이 記錄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生存時에 權位 에 올라 恣行하는 非理를 後世에 傳하여지지 못하게 하려는 大臣들과, 어떤 事實이라도 直筆하여 後世에 남기려는 翰林注書들과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 는 암투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것도 性理學이 크게 발전하여 공명심을 가지 면서 부터 士林과 勳舊派의 대립이 있었고 이러한 연유로 가장 政治勢力의 消長이 빈번했던 中宗代에 있어서는 매우 심각하게 史官의 지위가 억압되었 다. 中宗代의 이러한 사정은 主로 議政府의 大臣들이 史草問題에 대하여 제 25) 25) 中宗實錄 卷 58 22年 3月 丁亥

24 재를 加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어 朝報 或은 奇別이라는 制度가 생기는 一連 의 변화와, 또 하나는 모든 事實을 빠짐없이 記錄하고 비밀을 보장하려는 一連의 官卑著作者들 사이에서 엿볼 수 있다. 먼저 朝廷에서 보고되고 傳令되는 國家의 모든 일들을 領議政과 左右議政 이 먼저 알아야 하겠다는 의도를 表面에 내세우면서 三公이 史官으로 하여 금 大小事를 議政府에 알리도록 하자고 다음과 같이 主張함을 볼 수 있다. 三公啓曰 且旣授臣等以三公之職 而常未聞朝廷之事 使錄事事聞見 錄事 類皆庸劣 國家大事毎聞於人後至 爲未便 古則以翰林兼司錄 今雖 不可如古事 但翰林注書皆兼春秋 臣等亦兼春秋 今後凡關國事 請令注書 翰林招本府錄事 傳說而送 傳曰 朝廷之事 大臣宜先知之 而最 後得聞不可也 當使翰林注書通說 傳于政院曰 令翰林庄書通于政府 政院 啓曰 以三公未聞朝廷大事 臣等亦以爲未便 但注書爲政院郞官不可爲也 翰林則前日亦兼司錄 已有前例 但不可書送 招錄事傳說使之謄書以歸 則 似無妨矣26) 當時 領議政이던 鄭光弼과 左右議政이던 金應箕 申用漑 朝廷의 일을 빨리 알 수 있도록 翰林官(藝文舘의 所謂 史官)이나 注 書(承政院의 史官)로 하여금 議政府錄事에게 알리도록 하라고 要求하였다. 이에 대하여 王은 三公의 議를 쫓아 承政院에게 命하였지만 承政院에서는 이를 翰林쪽으로 미루고 또 議政府의 錄事가 史官의 傳言을 謄書하는 形 式을 취함이 무방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당시의 史官은 다음과 같 이 評하고 있음을 본다. 위에서 보듯이 등은 史臣曰 史官位雖卑 持萬世公論 不威惕不爲私 阿大而人君得失 小而 大臣善惡 操筆記之凜乎 不可狎而褻也 職重地禁 固非三公之郞屬也 國 以後於聞見 家設史官而待之亦輕矣 然其人主左右 則古猶今耳 光弼等徒 <첨자> 26) 中宗實錄 卷 年 8月 庚戌

25 不知事體 之爲何如 彼以翰林兼司錄者 又豈當乎 嗚呼 此所以二公 爲慮 當用通經術識事體者也27) </첨자> 史官의 評은 領議政 鄭光弼 等이 그들의 일이 뒷날 알려지는 것을 우려 하여 이같은 非理之事를 저질렀음을 통탄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에 대 하여 史官側에서는 또, 藝文舘檢閱安處順 沈彥光 柳庸謹等啓曰 頃令本舘 凡有大事 必言于政 府 錄事或書給之 是欲使政府知之也 然史事不可不秘 若使傳通於宰相 則恐史局 從此而輕矣 司憲府司諫院弘文舘書吏 常立政院 自相聞見 政 府錄事 亦豈不得聞見乎 命問于政府 三公啓曰 臣等非欲聞史局人物是非 褒吃也 日用之事 他人所共知者 而錄事迷劣 不得聞見 且臣等皆是春秋 舘堂上 故請令史官傳說也 史官托史局之重 而不欲傳說固非也 傳曰知道 仍傳于安處順等曰 政府非欲 聞史局隱微之事也 錄事迷劣 凡事亦不得知 故請以史官傳說 其從之28) 問題를 삼았으나, 史官의 實職은 藝文舘의 舘員이요, 兼春 秋인 三公들이 春秋舘側의 立場을 말하는 듯하였고, 三公의 要求가 단지 알 려주는 게 좋겠다는 式이었으므로 그대로 順應하였던 모양이다. 한편 王의 態度도 좋지 못한 일들이 史草에 記錄됨을 願치 않았다. 中宗 24年에 일어 난 일을 소개하면 王의 史草에 대한 태도가 분명히 이해될 수 있을 듯하다. 中宗 24年 正月에는 王이 京主人을 打殺하여도 無妨하다 고 말한 내용을 史草에 쓴 것은 誤記라는 데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는 王의 요구가 있었으니, 라고 하듯이 일단 至爲驚駭 問 癸卯傳于政院曰 前者憲府啓 以謂上敎以京主人打殺無妨云 豈可以爲無妨乎 王言以此 于承旨 承旨亦以爲臺諫啓之云 人物打殺之事 <첨자> <첨자> 7 同上 中宗實錄 卷 26 11年 8月 丙辰 2 ) 28) </첨자>

26 則後世以爲無理 若以傳敎所無之言 而誤啓之 則固當來啓其由29) 書諸史草 </첨자> 京主人을 때려 죽여도 무방하다는 말을 王이 한 것으로 臺諫에서 아뢰었다는 內容을 史草에 쓰면 後世에 王으로서 그런 말을 하 였다는 비난을 받을 것을 두렵게 생각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철저히 이 말 의 出處를 究明하려 하였다. 결국 司憲府 持平 金緣이 감기에 걸려 목소리 가 적게 말한 내용을 史官이 잘못 기록하였다고 하여 당시의 史官인 南世 雄과 鄭希弘을 파직시키고 말았다. 즉 守令 尹奎가 京主人을 杖殺한 사 건을 王이 無丹 이라 한 것을 잘못 記錄하였던 것이라고 하면서 無 丹 이 俗語로는 無妨 과 같다고 해명하고 있다. 실제로 그런 말을 했 는지의 如否는 상세히 알 수 없지만 當時에 王과 三公들이 史官을 심히 압박하였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사실은 趙光祖가 中宗의 신임을 얻었을 당 시 어느 정도의 모순의 사정을 보는 듯하다가 金安老가 세력을 잡음에는 더욱 심각하게 탄압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中宗 14年 6 月 에 이 르러 趙光祖와 李延慶은 講論席上에 서 史官 問題를 제기하였는데, 趙光祖는 라는 것으로 보아 30) 一以新及第者爲之 31) 光祖曰 古者 史官必以持公論 明是非者爲之 今則不然 <첨자> </첨자> 當時 이미 史官들은 三公에 압도되었던 모양이며, 이에 대해서 당시 士林의 추앙을 받던 趙光祖 등은 史官이 經筵에서 最後에 退 出하여야 함을 말하였던 모양이다. 王은 史官이 經筵에서 맨 나중에 나가는 것은 매우 좋은 생각이라고 하 여 三公에게 의논토록 하였고, 이에 대하여 영상 鄭光弼은 비록 以前에 라고 말하고 있다. 29) 30) 31) 中宗實錄 卷 64 24年 正月 癸卯 中宗實錄 卷 64 24年 正月 甲辰 庚戌 中宗實錄 卷 36 14年 6月 甲子

27 行함이 옳다 하고 申用漑는 전에 任士洪이 經筵이 退하고 史官이 먼저 나간 틈을 이용하여 邪言을 하였으며, 지금 비 록 그러한 일은 없으나 후일의 폐단이 염려되니 그러함이 옳다 하였고 安塘도 역시 매우 당연한 일이라 하여 이 로부터 史官은 經筵이 끝나고 맨 나중에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사정은 鄭光弼 등이 이미 趙光祖 등 이 혹이나 任士洪과 같은 일이나 하지 않을까 하여 賛成하였는지 자세치 않으나, 趙光祖 側으로서는 三公에 대한 言論통제의 한 방법으로 史官의 지위를 높이려는 처사가 아니었던가 한다. 그 후 趙光祖가 실각하고 한동 안 政局이 安定되지 못하고 勳舊派의 家內政爭으로 소용돌이 하다가 金安 老 金謹思 張順孫 등 이 정권을 잡으면서는 더욱 史官을 탄압하는 조처가 취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는 하지 않던 바이나 역시 32) 己酉領議政張順孫左議政韓敎元右議政金謹思左賛成尹殷輔吏曹判書金 安老副提學許沆啓曰 臣等以實錄閣雨漏處奉審事入來矣 大抵 以時政記 因爲實錄傳之萬世 如或失實 不可取信於後 近見政記 或有闕實之事 自 以弘文舘二員 定爲常坐春秋 使之撿覈修正 近來解弛 常坐春秋 祖宗朝 官不檢擧 自今申明擧行 且記事官 以曹司長 入下番記事 故一人不得獨 當 以致遲滞 不即修撰 記事官相遞入番 使之逐 日記事 且使弘文舘二員 常坐參考政院日記及本草修正 則自無失實遺忌之弊矣 傳曰如啓33) <첨자> </첨자> 글에서 보이듯 趙光祖系가 몰락한 후 勳舊大臣들은 時政記에 혹간 실제의 일을 빠뜨림이 있다고 하여 春秋舘에 弘文舘員 2人을 常坐시켜서 史 官이 기록한 史草를 修正시키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일찌기 없 위의 同上日의 記錄에 傳于政院曰 史官後出之言甚善 其議於三公 且史局虚疎此甚 不可 其令兼春秋堂檢擧 라 하고 이에 따라 史官後出當否 三公議啓 鄭光弼 云 雖前所不爲 亦可行之 申用漑云 前者任士洪 以邪言乘間而啓 今雖無如此之 事 後日之弊 不可不慮 行之爲可 安塘云 臣 於經筵已啓之 行之甚當 傳曰 自今 令史官後出 이라 보인다. 33) 中宗實錄 卷77 29年 6月 己酉 32)

28 史草나 時政記 등은 春秋舘에서 保管하였다가 後日 實錄을 作成할 時에 빼거나 하는 것인데 이제는 매일같이 史草나 承政院日記 등이 弘文舘員에 의하여 修正 되었던 것이다. 이에 對하여 史臣은 었던 것이다. 즉 辛卯年間 史官直書金安老許沆之事 二人適見所書 初欲治罪 招本舘員詰 責 後以物議不順 如此啓之 二人時爲春秋舘堂上 又曰 時政記 有上及一二 宰相 欲復用己卯罷散之人 而如金謹思 庸鄙之人 在相位 多忌克之心 不能 用其語之言 謹思見而懷憤 終貶翰林尹世忱於殿最 疑記此 出於世忱而然也 又曰安老 恐人議己 使腹心之人 定爲常坐春秋 使史臣不得書其惡也34) 當時의 일을 推理하였다. 이러한 史官側의 記錄이 史官의 本來的인 의무가 아닌 餘談이라 하더라도 奇別紙가 創出되는 것, 그것이 金安老의 실각과 함께 소멸되는 것을 보면 史官의 탄압은 거의 확실했던 것 같다. 奇別은 혹은 朝報라고도 하는 것으로 中宗 11年의 일로부터 이미 史官의 傳言을 議 政府의 錄事가 謄書하여 三公에게 보내던 것이, 이제 中宗 29 年에 와서는 더욱 발전한 듯하니, 라고 乙未傳于政院曰 昨日凡奇別 令史官書付錄事 以傳三公事 三公啓達 故已允矣 今三公之議 則國有秘密事 不可以錄事傳書 <첨자>令史 官書封著名而送之矣</첨자> 傳曰 三公皆兼春秋 故令史官傳書奇別事 已啓 今捧承傳時 並擧前承傳可也35) 三公들의 要求는 中宗 11 年에는 傳說 에서 이제는 史官이 직접 써서 封하고 이를 기입하여 보내라는 것이 되었으니 이것이 奇別 이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燕山君時代에 라고 함을 보아 알 수 있을 듯하다. 34) 35) 同上 史臣曰 條 中宗實錄 卷78 29年 12月 乙未

29 弘文舘이 상소하였으나 모두 들어주지 않았다. 상소의 사연은 甲子 年(연산군 10 甲子士禍) 이후에 삭제하였으므로 빠졌다.36) 빼버리는 것보다도, 事實을 改作하는 修正 을 거 쳐 남게 되었으므로 저울질을 하여보면 燕山君代의 그것보다 결코 金安老 一派와 그것이 가볍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되는 바가 있다 할 수 있겠다. 朝報 或은 奇別에 대하여는 他項에서 다시 자세히 언급하겠으나 이것이 金 安老에 의해 創始되었다가 그의 沒落과 함께 革罷된 바 있었다고 한다. 즉 라고 함과 같은 아주 傳曰 吏曹佐郞盧漢文輪對所陳至當 使史官 書朝報 送于三公之家 此 金安老 所爲也 安老所爲之事 皆令革罷 而是事 則上未及知 而下亦無有 啓達者 故因 循至此 三公雖云春秋舘堂上 史官以其史草 書傳於宰相之 家 於事甚不合矣 即依所啓革罷可也37) 金安老 一人의 所以는 아니라고 하더라 도 史官을 억압하는 한 방편으로, 中宗代에 三公中心의 議政府가 士林의 言路를 制限하려하던 對立相의 하나로 나타난 것이 아니었던가 한다. 이것 이 후일 宣祖代의 난리를 틈타 또 다시 나타나게 되었던 점을 생각하면 (見後) 그것이 비단 士林의 勢力의 견제에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主權의 견제에도 利用되었던 점을 알 수 있게 될 것으로 믿는다. 라고 함이 그것이다. 이는 반드시 5. 明宗代의 史官에 대한 경계심 (1) 續武定寶鑑撰集廳 과 時政記事件 燕山君日記 卷33 5年 4月 丁未 7 中宗實錄 卷86 33年 正月 乙未 36) 3 )

30 中宗 仁宗 明宗으로 이어지는 王系의 계승과 이를 둘러싼 外戚의 相爭이 乙巳年의 사화를 일으키고, 결국 尹元衡을 中心으로 鄭順朋 李芑 林百齡 許磁 등이 尹任의 一派를 타도하였다. 乙巳 以後에도 文定大妃의 垂簾聽政 밑에서 李芑 등이 弄權하여 大尹의 餘黨으로 宋麟壽 李若水 李彥迪 盧守 愼 白仁傑 등이 禍를 입는 이른바 丁未士禍가 있었다. 이듬해에는 李芑 鄭 順朋 등이 乙巳士禍 당시의 일을 정리하고 執權過程에서 發生한 非理를 後世에 남기지 않으려는 意圖에서 史官들을 심히 의심하게 되었다. 여기서 續武定寶鑑을 찬술하게 되었을 때에 乙巳年分의 時政記 등 史草를 春秋舘 에서 撰集廳으로 가져다가 大尹一派를 찬양한 句節 등을 찾아내는 作業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제 戊申年에 일어난 時政記의 開見事件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中宗 39年 10月에는 史官이나 承政院의 注書가 政廳에 들어가 記錄하 는 조처가 回復되었었다. 이 조처는 國初부터 施行되던 史官入記의 原 則이 이미 中途에서 改變되어 史官이 政廳에 들어가서 記錄하지 못하였음 을 示唆하고 있으며, 그것이 中宗末年에야 原則으로 되돌아감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조치는 곧 다시 폐지되고 明宗 7年 7月에 가서야 다시 史官이 政廳에 들어가게 되었다. 仁宗代를 지나 明宗 2年에 이르러, 즉 乙巳士禍가 끝난 다음 續武定寶 鑑을 撰集케 되었을 때 春秋舘에 이미 秘藏시킨 乙巳年 8, 9,10月分의 時 政記를 撰集廳으로 가져 간 일이 일어났다. 이에 대하여 藝文舘의 奉敎인 李文馨이 中心이 되어 史官들이 그 非理를 지적하고 즉시 돌려주기를 要 請하였다. 그러나 撰集廳의 堂上들은 오히려 頃者 藝文舘官員들이 臣等 (兼春秋겸 撰集廳堂上)에게 물어보지도 아니하고 當代의 時政記를 가벼이 내주어 보게하였음은 不可한 일이다 고 하여 李文馨 등을 오히려 推考하 도록 하였다. 이렇게 政院日記를 參考해도 될 일을 굳이 春秋舘時政記 38) 39) 40) 38) 39) 中宗實錄 卷 年 10月 乙亥 丙子 明宗實錄 卷 13 7年 7 月 丙午

31 史臣의 評대로 李芑 등이 史官이 어떻게 기록하였 는가를 보고 史禍를 꾸미려는 것 이 아니고는 前例가 없는 일이었다. 한 편 史官은 거의 李芑 등 權臣의 발로에 압도되어 있었던 듯하니 撰集廳은 그 이후에 다시 時政記를 꺼내갔던 것이다. 春秋舘의 堂上官으로 尹任派에게 가까웠던 閔齊仁이 堂上의 職을 물러 나고, 그 자리에는 李芑系의 陳復昌이 차지하게 됨으로써 春秋舘의 高官과 撰集廳의 堂上은 모두가 權臣들의 손으로 넘어가 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春秋舘을 손에 넣은 權臣들은 乙巳年과 丙午年의 時政記를 抄書하 여 入啓하기를 乙巳年의 士禍 때에 逆賊의 供辭가운데 不祥之言 이 있 다하고, 또 史官은 마땅히 直筆하여야 하는데 乙巳年의 時政記가 不實書 之 하였다 하여 당시 史官이었던 安名世와 孫弘績 등을 처벌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이후 領議政 尹仁鏡, 左議政 李芑, 右議政 鄭順朋 등은 혹 은 啓達의 일에 있어서 비밀을 지키기 위하여 封書를 作成한 다음 그 封 書를 史官에게 보이지 않는 行動을 하는 등 實로 無理가 보통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李彥迪 權撥 白仁傑 등을 처벌하며 金安老 許沆 蔡無擇 등 소위 丁酉三兇의 家產을 籍沒하는 등의 일을 서슴없이 저 질렀다. 또 注書 李純孝는 正言 韓智源의 時政記에도 誤書가 있다고 하 여 罷職되는 일이 있는 등 史官들 사이에도 紛紛한 分裂이 생기었던 듯하 다. 결국 弘文舘의 舘員을 春秋舘의 郎官으로 삼아 史官들과 함께 의논하 여 乙巳年의 時政記를 고치게 하는 조처를 취함으로서 乙巳士禍 때의 자 세한 비행은 알 길이 없게 되었던 것이다. 7 安名世 등의 처벌이 宣祖의 를 참고한다고 함은 41) 42) 43) 44) 45) 46) 4 ) 明宗實錄 卷6 2年 11月 癸卯 明宗實錄 卷7 3年 2月 乙巳 同上 戊申 同上 丙辰 明宗實錄 卷7 3年 2月 己未 辛酉 乙丑 同上 丙寅 同上 丙寅 및 卷9 4年 5月 辛卯 7 明宗實錄 卷8 3年 11月 甲戌 및 明宗實錄 卷9 4年 正月 庚辰 40) 41) 42) 43) 44) 45) 46) 4 )

32 即位와 때를 같이하면서 무고한 것이었다고 하여 申寃되는 李芑 尹元衡 등의 책동이 큰 것이었음을 볼 수 있다. 것을 보아도 48) 家藏史草 의 性格 (2) 中宗이 승하하고 仁宗이 即位하였을 初에 諫院에서는 家藏史草의 納入 때 史草作成者의 姓名을 記入치 않아야 한다고 하였으나 王은 春秋舘堂上 과 의논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藝文舘에서도 中宗代에 史官이 억눌림을 받던 때를 생각하여 이제 새로운 王이 등극한 때를 이용하여 史官이 마음 놓고 直筆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함인지 이 문제를 가지고 所信을 밝히게 되었다. 仁宗 元年 閏正月 辛巳日에 藝文舘 奉敎인 閔思道 등의 箚子에서 49) 는 당시의 사정을 近來條靡成習 氣節掃地 故秉史筆之人 能據事直書 寓其勸懲者 百不 能一 幸或有志之士 雖欲不諱於家史 而又使之書名 俾不得盡焉 此士林 之所常鬱抑 而聖明之下 即當痛革者也50) 士林의 기대가 새로운 임금에게 매우 컸던 것이었 百不能一 이라고 할 만큼 直筆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러한 요구에 대해서 王은 後日 實錄을 편찬할 때에 의논해도 늦지 않다 고 하였으나, 仁宗은 얼마 아니되어 승하하고 明宗이 即位케 되었던 것이 다. 家藏史草에 書名을 하느냐 않느냐의 問題는 그 후 明宗 4年에 이르러 일단락 맺게 되었다. 즉 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음을 알 수 있고 48) 49) 50) 上御朝講 知經筵事任權曰 實錄修撰 凡家蔵史草 使之沒名而納之 宣祖實錄 卷 1 即位年 10月 丙申 仁宗實錄 卷 1 元年 閏正月 庚辰 同上 辛巳

33 盖書其姓名 則觸忌諱 不能盡言故也 但家史之是非人物 或與一時公論 大相抵牾 此或由於識見之不及也51) 마 李芑 등은 이를 반박하여 라는 주장이 나오자 자 豊城府院君李芑 左議政黃憲 右議政沈連源同議啓曰 家史不書名 非古 古之操史筆者 雖斧鉞 紙敎人偸也 議者或謂 書名則無直筆之人 此尤不然 在前 尙且不避而書之 若慷慨之士 則君相過惡 猶且面折廷爭 獨於家史 安有畏忌 今已納者 不必追書 其未納者 依古書名 永爲恒式 答曰如啓52) <첨자> </첨자> 任權의 主張은 묵살되었다. 李芑 등의 말은 도끼가 앞에 있 어도 마땅히 避하지 않고 直筆하는 것이 史官이며, 만약 君王이나 宰相이 過惡함이 있으면 闕廷에서 대들어 다툴 일이지 홀로 家史에 올려 어찌 숨 기느냐는 요지이고, 이미 史草를 納入한 사람은 아마도 直筆하였든 어떻든 거리낌이 없이 納入하였으니 書名치 않아도 좋으나 아직 未納한 사람은 반드시 書名하여 納入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李芑는 교묘한 수단으로 曲筆 라고 하므로서 을 유도한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6. 實錄編纂의 諸資料와 그 性格 朝鮮王朝時代 初期의 實錄이 具體的으로 어떠한 基礎史料를 中心으로 作成되었는가에 대하여는 자세한 記錄이 거의 없으나 戊午史禍가 일어났 을 때의 한 記述 가운데는 史草(史官이 쓴 家藏史草), 時政記(春秋舘에 매 일같이 史官이 記錄한 公的 日記로 一定한 規式이 있었던 듯), 承政院日記 (王命出納을 맡은 承政院의 注書 혹은 堂後官이 兼春秋이면서 政院의 日 51) 52) 明宗實錄 卷9 4年 正月 甲戌 明宗實錄 卷9 4月 正月 甲申

34 記도 記錄하였다), 經筵日記, 各司謄錄 등으로서 무릇 상고할 文書라면 모 두 주워모아 年代順으로 나누고 序의 구별을 하여 편집하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實錄의 편찬에는 政府의 모든 機關에서 記錄한 文書類는 물론이 요, 그밖에 個人의 文集까지도 參考가 되어 作成되었던 모양이다. 實錄의 編纂에 있어 이처럼 모든 文書가 參考되었다고 하나, 실제로는 史草, 時政記, 承政院日記 및 各司의 謄錄이 爲主였을 것이다. 그러나 中 宗代 이후에는 朝報가 다시 重要한 資料가 되었고, 또 備邊司가 創置되고 나서는 備邊司謄錄이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壬辰倭亂을 통하여 朝鮮前期 의 第一次 史料라고 할 수 있는 이들 實錄編纂의 主資料는 거의 남지 못 하고 말았으므로 朝鮮前期의 歷史는 實錄이 가장 중요한 史料가 된다는 結論이다. 朝鮮後期에 이르러서는 앞서서의 資料外에도 여러 가지 資料가 더 參考되었으나 여기서는 우선 朝鮮前期에 있어 實錄編纂의 主要한 資料 인 史草 時政記 承政院日記 備邊司謄錄 朝報에 대하여 言及하기로 하겠다. 53) (1) 史草의 性格 史草란 史官이 直筆한 것으로서 가장 主觀的인 性格이 많이 취급될 수 있는 性格의 것이요, 이로 말미암아 史禍가 惹起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藝 文舘員으로서 史官인 者의 家藏史草를 主로 史草라고 부르나, 혹은 承政院 의 注書가 쓴 史草(堂後日記)도 있다. 問題가 되는 것은 역시 藝文舘 史官 의 史草로서 이들은 毎日의 記事를 時政記에 적은 다음 人君의 善惡, 臣下 들의 善惡과 是非를 비판하는 自身의 意見을 史臣曰 이라고 시작하여 적어 놓기 때문에 이 史官의 史論이 黨爭期에는 매우 좋지 못하게 나타나 기도 하였다. 史草는 史官이 時政記에 쓰면 當時에 兼春秋의 堂上官에게 발각될 염려가 있는 秘密스런 일들도 直筆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史局이 열려 納入케 되어도 姓名을 記入치 않는 것이었으나 世祖이후로는 姓名을 53) 燕山君日記 卷30 4年 7月 乙卯

35 記入케 史官의 지위는 매우 곤경에 처해지게 되었다. 대체로 史草는 當時의 大臣戚族보다는 士林 이나 臺諫과 결부되어 그 비밀을 보장하도록 노력하고 있는 점은 王權과 權臣의 발호를 臺諫과 공동으로 저지하는 작용을 하였다고도 할 수 있다. 史草는 王을 비롯하여 權臣이 이를 보지 못하도록 하였고, 燕山君이 이를 보고자 하였을 때에도 抄錄하여 볼 정도로 비밀이 보장되었다. 그러기 때문 에 往往 王은 史官을 入侍치 못하게 하고 비밀스런 일을 하기도 하였으니 太 宗 燕山君 등이 한때 그러하였던 것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史草에 記錄 되고나면 그것이 後日에 傳存되므로 미리 史草作成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하므로서 이른바 史禍가 일어나고 이로 말미암아 54) 時政記 의 様式과 性格 (2) 時政記는 春秋舘의 史官이 毎日의 일을 記錄하고 이것을 堂上官이 검토 하고 모아 두었다가 實錄의 撰修에 있어 가장 기간으로 삼는 것이었다. 時 政記의 記錄은 일정한 규정이 있었던 듯하니 朝鮮後記의 法典類에는 이런 規定들이 나타나 있다. 즉 大典會通에 의하면, 春秋館時政記 撰集承政院日記及各衙門緊關 文書每歲季啓册數55) 時政記는 實錄編纂을 위한 一次的인 基礎資 料의 撰輯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時政記는 承政院日記 및 各司의 謄錄類 를 가지고 時政記가 편찬되는 것이며 매년 册數만을 보고하였던 것이다. 六典 條例에는 時政記의 作成이 어떠한 규식에 의하여 작성되는 것인가를 仔細하게 밝히고 있다. 라 함이 보인다. 이에 의하면 56) 54) 55) 56) 燕山君日記 卷33 5年 4月 丁未 大典會通 卷3 禮典 藏文書條 六典條例에는 다음과 같이 보인다. (第一行書) 上之某年千支(淸年號某年)某月某日干支晴或雨或陰雲(所報灾異雙

36 春秋舘의 時政記는 第一行에다가 年月日 및 干支를 쓰되 細註로 中國의 年號를 쓴다. 그 뒤에는 日氣나 灾變을 쓴다. 둘째 줄에 는 임금이 어느 궁에 있으며 經筵에의 參席與否를 쓴다. 이곳까지는 承 政院日記와 同一한 規式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承政院日記와는 다른 것이 있으니, 承政院日記가 中國側의 年號를 크게 쓰고 이를 기준 한데 비하여 時政는 우리 측의 年月을 크게 쓰고 中國側의 年號는 細註 로 밝혔던 것이다. 셋째 줄부터는 대개 다음과 같은 요령으로 그날의 일 이에 의하면 을 기록하였으니 ① 臺諫에서 올리는 啓辭는 가장 신랄한 것 외에는 모두 쓴다. 단 한 가지 일을 여러 번 겹쳐서 啓하는 경우에는 다음날부터는 連啓하다 라 고 쓰되 만일 前日의 啓辭에 덧붙여진 말이 있으면 그것 을 쓴다. ② 臺諫의 啓辭를 씀에 있어 入啓者의 姓名을 밝히지 않는다. 다만 論 事가 매우 重大한 경우에는 論議의 發起者와 反對의 이름을 쓴다. ③ 疏章의 긴요한 것은 載錄하되 쓸데없이 넋두리하는 말이나 필요치 않은 것은 간혹 빼버린다. 만약 去就(退官 就官)나 옳고 그름에 관계되는 것은 모두 쓴다. ④ 禮와 관계되어 後日에 參考가 될 만한 것은 비록 번거로워도 모두 기재한다. ⑤ 科擧에 合格한 사람은 代表者의 姓名을 쓰되 某外 몇명 이라 쓴다. ⑥ 벼슬을 받은 사람은 高官顯職 및 外方의 중요한 職을 받은 사람만 書於陰晴之下 外方灾異亦皆備書) (第二行書) 上在某宮常參經筵停否(與政院日記例同)其下因以次第叔事(入侍說 話撮其緊要者錄之如沿革是非 雖奏事人所奏外 亦詳記首末 可以褒泛者 別爲網 目 錄于下 塞啓辭 最歇者外 皆錄之 而一事累啓 則逐日書以連啓 如有添入語 亦抄錄 只書憲府諫院 而勿書來啓人姓名 所論若係重大 則發論立異人亦書 疏 章緊關者載錄 而其間汗漫文字 或加删節 若有去就是非事關時政者 書之 吉凶諸 禮之可爲後考者 雖煩備載 各年登科人 書取某等幾人 除拜只錄高官顯職及外 任緊重者 特除有論讓者 雖微亦錄 書卒尤宜愼重必採公儀 參己見 定爲褒貶 一 語不可輕忽 各司啓下文書 考其月終成册 抄其可錄者記之) 時政記正本外 又 有副書草書者 名曰飛草 本舘褒貶時 堂上取考飛草 以課勤慢

37 쓰고, 특별히 벼슬을 받음에 잡음이 있었던 것은 비록 미천하다 할지라도 모두 기록한다. 렇 요령껏 기록된 時政記는 3年마다 印藏되었다 가 實錄廳이나 日記廳의 개설 때에 實錄編纂에 利用되었던 것이다. 이 時 政記는 비록 政院日記 등의 一次資料를 바탕으로 作成된 것이긴 하지만 史草와 같이 비밀이 철저히 지켜졌던 것으로 보아 政院日記가 항상 閱見 될 수 있었던데 비하여 史官과 春秋舘의 기록으로 開見이 허락되지 않은 것을 보면 實錄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등으로 되어 있다. 이 게 (3) 承政院曰記 承政院日記에 對하여는 仔細한 解題가 있어 省略한다. 申奭鎬 承政院 日記解題 (韓國史料解說集, 1964, 韓國史學會)를 參考함이 좋겠다. (4) 備邊司謄錄 同上書의 備邊司와 그 謄錄에 對하여 에 있으므로 그를 參考함이 좋을 듯하여 省略한다. 이것 역시 (5) 자세한 解題가 朝報의 創始事情 과 그 性格 朝報란 奇別이라고 하였던 것으로 中宗代에 처음 明文으로 나타난다. 中宗實錄에 의하면 己卯士禍 이후에 政權을 잡은 金安老 等에 의하여 끈 질기게 史官의 史草에 대해서, 或은 時政記에 대해서 非常한 關心을 가진 議政府側에서 여러 가지 理由를 들어 承政院의 注書나 藝文舘의 史官들에 게 奇別을 要請하고 있다. 이에 따라서 始作된 朝報는 결국 金安老의 沒落 과 함께 자취를 감추게 된 듯이 記錄에 보이고 있으니,

38 書朝報 送于三公之家 此 傳曰 吏曹佐郞盧漢文輪對所陳至當 使史官 金安老所爲也 安老所爲之事 皆令革罷 而是事則上未及知 而下亦無有啓 達者 故因 循至此 三公雖云春秋舘堂上 史官以其史草 書傳於宰相之家 於事甚不合矣 即依所啓革罷可也57) <첨자> </첨자> 史官이 史草를 써서 春秋舘의 堂上官을 겸직하고 있던 三議政에게 보낸 것이었으므로, 時政記와는 다른 것이었다고 하여야 하겠다. 從來 朝報에 대하여는 이것이 鮮初부터 있었던 것이라던지 或은 宣祖때 부터 있었던 것이라 하여 왔었던 것인데 무슨 誤解였던 것 같다. 宣祖 年間의 朝報에 대해서는 石潭日記에, 라고 함이 그것이다. 58) 先是 京中游手之輩 聞中朝<첨자>通報</첨자> 皆印行 欲効中朝印 通報 賣以資生 呈狀于議政府 請印<첨자>通報</첨자>受各司之價以資 生 政府許之 又禀于憲府 亦許之 其人等 乃刻活字 印朝報 賣于各司及 外方 邸吏士大夫見者 皆便之 行之數月 一日自上 偶見之 震怒曰 刊行 朝報 與私設局何異 若流傳他國 則異暴揚國要也 問大臣曰 誰主張此事 乎 大臣惶恐 啓不明白 乃下其人于禁府刑訊 必推究其主議之人 其人等 不過欲以是資生耳 實無主議者 受刑屢次 將斃 臺諫啓請停刑 不允 大臣 啓請然後 乃命照律曰 當擬以不道治之 禁府啓以過重 初不肯從 後乃 照 以次律 皆流59) 렇 私的이긴 하지만 朝報가 印刊된 것이 있으므로 해서, 또 그것이 議政府와 司憲府의 許可를 받은 것으로 해서 오늘날의 新聞의 효시라고 할 수는 있으나, 그러나 이것이 朝報의 原型인 史草의 印刊이었 나 하는 것은 무리한 추측이 아닐까 한다. 라고 보인다. 이 게 7 中宗實錄 卷86 33年 正月 乙未 今西龍 前掲論文 參照 石潭日記 萬曆 6年 戊寅 5 ) 58) 59)

39 宣祖때의 이 印刊朝報는 그 내용이 무엇을 記載한 것인지 分明히 알 수 는 없으나 約 30餘人에 達하는 儒者들의 資生의 한 수단으로 始作한 것으로 注目되는 바이지만, 그리고 朝鮮後期의 朝報와 관련시켜서 생각할 문제로서 朝鮮前期에 있어 實錄編慕의 主要한 자료로서의 그것과는 다른 성격으로 우 선 생각되어진다. 明宗實錄을 편찬할 때에 李滉이 朝報 와 時政記 가 一致하지 않는다고 하는 경우의 朝報가 史草의 筆書된 어떤 것, 즉 金安老 等의 主張으로 三公에게 政事를 알렸던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던가 한다. 결국 朝報는 王이 알게 或은 모르게 存在하던 것으로 朝 鮮後期에 이르러서는 非公式的인 公式通報로 변화한 듯이 생각된다. 60) (6) 編纂資料 와 實錄의 史料的 價値 앞에서 몇몇의 實錄編慕의 資料가 되는 基礎資料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完全한 考察은 아니나 대강의 性格을 언급하였으므로 이러한 一次的인 資 料에 의하여 撰修된 實錄의 史料的인 價値에 대하여 살펴보아야 하겠다. 우선 實錄에 있어 朝鮮後期의 것은 一次資料가 비교적 많이 남아 있어 서 로 比較 檢討하여 史料的 價値를 판단할 수 있겠으나, 朝鮮前期의 경우는 一次資料가 남아 있지 못하므로 실로 判斷은 어렵게 된다. 다만 史官의 태 도를 엿볼 수 있는 史論이 後期보다 매우 적고, 또 修正實錄이나 改修實錄 이 없는 만큼 單調로운 限界內의 판단이란 點을 생각하면 硬直된 史官의 編纂態度를 상정할 수 있겠다. 宣祖實錄에서 급격히 증가된 臣者들에 대한 人物評이 그 以前에는 그리 많지 않은 點과, 또 매우 혹심하게 極評하지 않았던 점 等에서 朝鮮前期의 實錄들은 事實의 完全한 傳達과 保存 이 라는 一次的인 目的에 强하게 執着하고 있었다고 하겠다. 肯定的인 立場에서 본다면, 歷史傳統에 매우 충실하였으므로 事實自體 를 가장 충실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 高麗末에 등장한 士大夫 60) 宣祖實錄 卷 12 11年 正月 丁卯

40 儒學이 國家的인 목적이나, 支配階層의 被支配階層에 대한 意識이 크게 작용케 하였음을 우선 들어야 하겠다. 官撰史書라는 개념에 속하는 史書들 이 東國通鑑 國朝寶鑑과 함께 實錄을 포함하지만, 實錄의 史料로서의 性格 은 官撰이라 하여 歷史書인 通鑑이나 寶鑑類와 스스로 다른 것을 말할 수 있다. 太祖實錄의 編慕을 시작한 太宗代에 있어 當代史의 編纂에 대하여 記事官 宋褒 등이 反對하고 나선 것을 뿌리치고 河崙 등의 찬성자만으로 編纂한 이래 傳統이 되어버렸다. 實錄이 編纂은 되었으나 秘藏되어 볼 수 는 없었다. 東國通鑑이나 高麗史 등과 달리 實錄을 보지 못하게 한 조치는 그것이 史草와 同一한 性格으로 취급 되었다는 것이다. 國王을 비롯한 臣 者둘에 대한 言行을 直筆한 바를 소중히 여기고, 後代에 사실대로를 그대 로 傳하여 後人들의 判斷에 남기겠다는 精神이 충만되어 있었다. 그러기에 政治에 參考가 될만한 禮典이나 龜鑑이 될만한 言行은 따로이 政院日記 等에서 뽑아 寶鑑이 編纂되었다. 實錄은 當代의 國家目的과 支配者에 啓導 를 위한 歷史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政治狀況에 대하여 臣下中의 몇몇이 自身의 非行을 감추기 위하여 史草의 改修나 時政記의 一部를 고 치거나 善惡에 대한 史臣의 評을 이유로 史禍를 일으키거나 하는 사실이 비록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하여도 推理할 수 있는 文句나 改變케 된 동기 를 또한 仔細히 남겼기 때문에 큰 問題가 되지는 못한다. 否定的인 立場에서는 主로 政治史的 立場에서 말할 수 있겠으나, 그렇 다고 實錄의 史料的인 價値를 全面的으로 否定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士 禍나 官僚들의 非行에 대한 어떤 偏見같은 것이 조금씩 內在하고 있다는 것으로, 史草에 史論을 記入할 때에 사람으로서의 主觀이 개재되지 아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史料와 歷史에 있어서도 完全客觀이란 不 可能한 것이며 實錄에 있어서도 이러한 限界性은 있는 것이다. 公論 에 의한 史論 이 或은 支配者側의 公論에 그치는 수도 있다. 대체로 王室 中心이요 兩班官僚中心의 資料가 主로 되어 있는 限界性은 當時의 실정으 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의

41 實錄編纂의 資料로서는 家藏의 史草. 時政記. 承政院日記. 各司謄 錄 등 모든 公私의 文書가 動員되었다. 이 가운데서도 史草나 時政記가 가 끔 문제시되었던 것은 이것이 多分히 個人的인 主觀이 많이 包含된 資料 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實錄이 비록 官撰의 形式으로 되었다 하여도 거기에 使用된 基礎資料의 가장 중요한 것은 私的인 判斷에 의지 한 것이었음을 또한 理解하여야 하겠다. 實錄이 이들 一次的인 資料에 의해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圖表로 보이 다음 면 다음과 같다. 림 _ JPG </그림>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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