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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째, 특별법 제2조 제11호(학병, 지원병, 징병 또는 징용을 전국적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선전 또는 선동하거나 강요한 행위)에 해당되느냐의 여부. (피고 준비서면 31쪽) 피고는 이에 대해 년 징병제도실시감사축하대회에 참석하고, ~1944년 매일신보, 춘추에 문약의 고질을 버리고 상무기풍 조장하라, 인고단련의 기백, 대의에 죽을 때 황민 됨의 책무는 크다, 충용무쌍의 황병( 皇 兵 )되라 등의 글을 기 고하여 징병을 선전, 선동하였으며, 년 학도출진좌담회와 매일신보, 경성일보에 빛나는 전통을 살리라, 일각( 一 刻 )도 주저( 躊 躇 )치 말자, 우리 완승을 지향하여 한층 연락하고 격려하자(われ 完 勝 を 目 指 すなほ 連 絡 と 激 勵 を), 이 시대 최고의 광영 등의 글을 기고하여 학병의 취지를 고취시켜 학병 동 원을 독려하였다고 했습니다. <반론> 년 5월 23일 열린 징병제도실시감사축하대회 에 참석한 것으로 돼있는 각급 학교장 은 김성수 보전 교장, 오긍선 세브란스 교장, 유억겸 연희전문 부 교장, 김활란 이화여전 교 장, 이병규 휘문고보 교장, 최규동 중동학교 교장, 백남훈 협성실업학교, 광신상업학교 교 장, 현상윤 중앙고보 교장, 이종국 보인상업학교 교장, 이숙종 성신여학교 교장, 신흥우 경 성배재중학 교장, 황신덕 경성가정여숙 교장 등 경성의 고등교육 학교장들 입니다. 당시 상 황을 고려할 때 이들이 총독부의 강요로 부득이 참석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특별법 제2 조 제11호(학병, 지원병, 징병 또는 징용을 전국적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선전 또는 선동하거 나 강요한 행위)에 해당될 수는 없습니다. 당시 보전에는 총독부로부터 아래와 같은 공문들이 내려 왔습니다(고려대 소장- 소실되고 남은 자료임 - 원고 주). 이를 통해 총독부가 각 급 학교에 대해 사사건건 지시, 통제, 강요 하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문부성에서 전국전문학교장 회의에 관한 건 보전-총독부 학무국 1933년 5월 21일 문부성 주최 전문학교 교장회의에 참석치 못함을 통보 공립학교 전문학교 규정 중 개정의 건 학무국장-보전 총독부령 제81호에 의거 규정개정 할 것. 전문학교 교육의 근본 방침을 명시하여 충실한 황 - 1 -

2 국신민을 양성토록 할 것 기원( 紀 元 ) 2600년 식전 봉축회 참렬( 參 列 )의 건 보전-학무국장 봉축회에 교장 김성수가 참석한다는 통보 전시 국민생활 실천사항 국민정신총동원 경성연맹-보전 황국정신의 양양(오전 7시 궁정 요배, 정오 묵념, 신궁 신사 배례, 외국어 사용 억제), 생활 의 쇄신(조기 청소, 라디오 체조) 교육에 관한 칙어 환발 50주년 기념식에 관한 건 보전-학무국장 교장 김성수가 참석하며, 기간 중 여관은 알선해줄 필요 없다는 통보 입회에 관한 건 보전-조선교육회장 보전에서 새로 가입하는 회원 명단 통보(총 19명, 인촌 포함) 기원 2600년 기념식 및 봉축회 참석에 관한 건 학무국장-보전 초대장 송부 통보 및 수송계획과 관련한 내용 첨부 황기( 皇 紀 ) 2600년 기념식 및 봉축회 참석에 관한 건 보전-학무국장 교장 김성수가 동경으로 이동하는데 따른 제반 사실 통보(여관알선 불필요, 신궁참배 불 희 망, 지정열차 불 희망, 경성 역에서 출발) 학교총력대에 관한 건 보전-총독부 학무국 보전 총력대 훈련계획, 실시현황 보고 제8회 학생기갑훈련 참가 신청 건 - 2 -

3 보전-기계화국방협회 조선본부 보전학생 4명 할당. 학교에서는 이철승 백황규 등 4명 추천 학교 교련교사에 관한 조사의 건 보전-총독부 학무국장 보전 교관 육군중위 화종군형 대동아전쟁 1주년 기념 전시표어 응모에 관한 건 저팬 타임지 사장-보전 12월 8일로 맞이하는 대동아전쟁 1주년 기념일에 즈음한 전시표어 모집에 보전학생들의 많 은 응모를 요청하는 내용 황대신궁 요배식에 관한 건 총독부 학무국장-보전 10월 2일에 있을 요배식에 교장 혹은 학교 대표 참석을 요청하는 내용 총독부 내부 육상대회에 보전 학생을 심판으로 파견의 건 총독부 육상경기부-보전 육상경기부 총독부 자체 육상경기 대회에 보전 학생 6명 심판요원으로 파견 요청 학도총력위원회 간담회 개최의 건 경성제대 학생과장-장덕수 11월 3일 경성제대 개최 간담회에 보전 학생 대표 2명 보내줄 것을 요청 대동아전쟁 제1주년 기념행사 실시에 관한 건 학무국장-보전 12월 8일 학교에서도 기념행사 실시하라는 정무총감의 지시 전달 전선 전문학교의 청년학도 결의 발표회 개최에 관한 건 경성중앙방송국 제1방송부장-보전 매년 개최하는 행사에 보전 학생 1명 추천 요망하는 글. 주제는 전문의 학업에 입각한 대 동아전 하에 있어서 학생으로서의 결의 - 3 -

4 대동아전쟁 제1주년 기념 방공강화운동 실시에 관한 건 경성부윤-보전 12월 9~11일에 걸쳐 방공강화훈련을 실시할 것 요망. 또 훈련기간 중 관할 경찰서장이 훈 련 지도한다는 내용 일본 문화 논문 현상모집에 관한 건 국민총력 조선연맹사무부총장-보전 황도세계관에 입각하여 새로운 반도문화의 진로를 일으키고 민중의 지향을 계도하는 논문 모집 요강 첨부 학교에 있어서 청소 실시에 관한 건 학무국장-보전 국민총력 조선연맹에서 3월 중 실천 철저사항으로 청소 노력, 하루 한 끼 이상 죽 먹기, 금속 류 공출 세 가지 통보 재향군인회 회원 학생 군사교육에 관한 건 학무국장-보전 1942년도 교육보충병 및 제2국민병 교육 실시 요청 및 지원에 관한 내용 초혼제 집행에 관한 건 경성부윤-보전 4월 30일 용산 연병장에서 연례대로 초혼제를 집행하니 별지의 참배 요령에 의거 생도 대 표를 인솔하여 참배할 것. 초혼제 참배 요령 첨부 학교체육쇄신에 관한 건 학무국장-보전 대동아공영권의 확립을 완수하기 위해 국방력의 확충은 더욱 요구되며 이에 발맞추어 대학 체육교육을 진흥해야 한다는 내용 정국(야스쿠니) 신사 임시대제에 관한 건 학무국장-보전 4월 25일 야스쿠니 신사 임시 대제를 거행하니 학교에서는 휴업하고 경의를 표할 것

5 천장절 봉축의 건 국민총력 경성부연맹회장-보전 4월 29일 대동아전쟁 하에 처음으로 천장절을 맞아 봉축 의례를 행하니 부기한 내용에 따 라 시행할 것. 국기게양, 축하식 제전 내용 등 징병령 발포 봉고제에 참열의 건 총독부 법무국장-보전 5월 11일 오전 11시 조선신궁에서 징병령 발포에 관한 봉고제를 시행하니 보전 학생 대표 50명 이내를 보내줄 것 징병령 시행대회에 관한 건 총력연맹-보전(전화연락) 5월 18일 부민관에서 징병령 시행에 따른 강연회를 개최하니 보전 학생 많이 참석바람 궁성요배 및 정오 묵념에 관한 건 국민총력 조선연맹 -보전 시행방법 첨부 징병령 시행 발표 감격대강연회 정학회 이사장-보전 강연회 개최 일시:5월18일, 장소:부민관 징병제도 실시에 수반한 학도지도요항에 관한 건 학무국장-보전 지도방침, 지도요강, 취지 설명, 사회지도자로서의 긍지 고취. 특히 사범학생 및 여학생에 대한 지도 요령. 특히 내지인 학도에 대한 지도 조의 궁성 요배 및 정오의 묵도에 관한 건 국민총력경성연맹회장-보전 아침에는 세면한 직후 요배하고, 묵념의 경우 종래에는 정오에 사이렌을 울렸으나 전시이기 때문에 사이렌을 울리지는 않고 라디오로 전달 징병제실시 기념 강연회 감상문 제출의 건 - 5 -

6 동아민족경륜연구소-보전 강연회 후 각 학교 학생들로부터 감상문을 거두고 있으나, 보전에서는 아직 제출하지 않았으 니 제출하라는 내용 시의 기념일 거행에 관한 건 국민총력 경성부연맹-보전 전시하의 생활 개선, 능률증진을 위해 시의 기념일을 거행할 것 신 총독 및 정무총감 착임에 즈음하여 부내 각 학교의 출영에 관한 건 학무국장-보전 신임총독 및 정무총감 부임을 환영하는 행사에 학생들 동원하라는 내용. 요강 첨부. 욱의전 앞 교차로-남대문까지 구간 징병제도의 취지 보급 강연회에 관한 건 총독부 관방정보과-보전 시국인식 철저와 징병제도 취지 보급을 위한 각 학교 순회 강연회 개최에 따른 협조 요청 학생 생도 집단근로작업실시에 관한 건 학무국장-보전 조선신궁 작업에 관한 내용 학교 직원 생도의 사상사건 상황 조사의 건 학무국장-보전 사건 발생 연월일, 사건명, 수모자 및 인원, 사건의 개요 통보 지시 학교 직원 생도의 사상사건 상황조사의 건 보전-학무국장 윤익선 운동. 교장 재직하며 독립신문 사장으로 구금 3년 징역. 강기덕-법과 3년 수년간 징역, 김종문 외 1명 징병제 실시 방법 발표에 수반하는 학도 지도에 관하여 학무국장-보전 징병제 발표 이후 학생의 동향 등을 보고하도록 지시. 구체적 지도 방책, 학도동향조사 요령 첨부

7 신궁 행사 참석의 건 보전-조선신궁 궁사 6월 30일 거행되는 신궁 행사에 인솔자 교수 장덕수, 학생 12명의 명단 보고 징병제 시행 방법 발표에 수반하는 학생지도에 관한 건 보전-학무국장 구체적 지도 방책으로 교련시간 강화, 국어 상용은 황국신민의 표징으로 대동아 지도자가 되는 필수조건임을 강조 에서 피고는 김성수 보전 교장이 1943~1944년 매일신보, 춘추 에 문약의 고질을 버리고 상무기풍 조 장하라, 인고단련의 기백, 대의에 죽을 때 황민 됨의 책무는 크다, 충용무쌍의 황병( 皇 兵 )되라 등의 글을 기고하여 징병을 선전, 선동하였으며 1943년 학도출진좌담회와 매일신 보, 경성일보에 빛나는 전통을 살리라, 일각( 一 刻 )도 주저( 躊 躇 )치 말자, 우리 완승을 지 향하여 한층 연락하고 격려하자(われ 完 勝 を 目 指 すなほ 連 絡 と 激 勵 を), 이 시대 최고의 광 영 등의 글을 기고하여 학병의 취지를 고취시켜 학병 동원을 독려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선 김 보전 교장이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 경성일보, 친일 월간 잡지 춘추 에 스스로 기고한 사실이 없습니다. 인촌 김성수 선생은 일기도, 메모도 남긴 것이 없습니다. 그가 남긴 자필의 글은 몇 통의 편지와 붓글씨 공선사후( 公 先 私 後 ) 와 담백명지( 淡 白 明 志 ) 뿐입니다. 인촌은 글( 文 )을 안 쓰시기로 유명한 분이었다. (중략) 보전 교장으로 재임하시는 동안, 나는 7, 8년간 졸업식전, 기타의 경우에 선생이 낭독하신 식사 기념사 훈사( 訓 辭 ) 같은 것 을 대필( 代 筆 )하였는데, 그것은 나에게 참으로 큰 고역이었다. 글을 써 가지고는 사전에 선 생께 검열을 받아야 하는데, 그 검열을 무사통과하기가 극난( 極 難 )한 것이다. (유진오, 동 아일보 1962년 2월 18일자 2면) 일정기간( 日 政 期 間 ) 중 나는 당시 보전 교장이시던 선생을 위하여, 학생들에 대한 훈사( 訓 辭 ) 고사( 告 辭 ) 등을 여러 번 대필( 代 筆 )했는데(인촌 선생은 평생에 문장을 쓰지 아니하셨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하듯이, 어느 정도 추고를 하다가 보면 귀찮아져 서, 좀 더 손질을 해야 할 줄 알면서도 그대로 내버려 두는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런 때면 인촌 선생은 영락없이 그 미흡한 곳을 지적하여 수정을 명하시는 것이었다. 선생은 손수 글 을 쓰지는 안하셨지만, 문장( 文 章 )에 관한 판단력은 누구보다도 뛰어나셨던 것이다. (유진 - 7 -

8 오, 동아일보 1965년 2월 16일자 5면) 인촌 선생을 모시고 보성전문학교에 있는 동안에 강연 원고나 훈시 등을 써 드리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당신이 글은 안 쓰시지만 내가 글을 쓰다보면 정신이 집중되지 않고 귀찮을 때 슬쩍 넘기고는 나중에 마음에 걸렸는데 이것을 읽으신 인촌 선생께서는 반드시 그것을 지적하셨습니다. (유진오, 新 東 亞, 1976년 4월호, 496쪽) 인촌 선생은 신문 같은 데 글을 쓸 줄 모르는 분이다. 써야 할 때도 비서, 교수들이 써주는 것이고 (중략) 양호기에도 나오지만 유진오 선생한테 내가 직접 들은 얘기이기도 하다. 인촌은 그런 선동적인 글을 쓴 적도 없다. 문투나 용어도 그런 것을 쓰는 사람도 아니고 그 런 재주도 없다. 인촌은 한 번도 학병을 가라는 식의 말을 하러 나온 적이 없다. (이철승, 2004년 7월 8일 면담 중) 하나 확실한 것은 인촌 선생이 글을 쓰시는 분은 아니에요. 당신도 글 쓰려고도 안하고 그 런 분이 아니에요. 인촌 선생은 투고하거나 글 쓰시는 분이 아니고요. (중략) 말씀 잘하 시는 분은 아니고. 좌담을 좋아하셨죠. 그렇게 민주주의도 얘기하시고 그러시지만 체계적으 로 학문적이기 보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얘기하시는 분이에요. 학자 타입이거나 그런 것은 별로 없으시고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2008년 11월 18일 녹화 DVD 중) 위와 같은 증언에 비춰 위 피고 준비서면 중 기고하였다 라는 기술은 잘못된 것입니다. 원고가 제시한 아래와 같은 사람들의 증언 역시 인촌 김성수 선생은 남의 앞에 나서 말하기 를 좋아하거나 글을 쓰는 분이 아님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는 상호 모순 되는 점 이 있다 시점이 맞지 않는다 는 등의 이유를 들어 개인적인 의견, 믿을 수 없는 증언 이 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고는 원고가 제시한 증언이나 자료와 상반되는 단 한 건의 근거 자료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일제의 충견 노릇을 한 총독부 기관지가 중요한 1차 사료다 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1) 이혜복 언론인(보전, 학병출신, 2009년 8월 26일 녹화) 2) 송방용 전 헌정회장(연전, 2009년 1월 29일 녹화) 3) 이무연 전 효명중 교장(보전, 학병출신, 2009년 8월 31일 녹화) 4) 권중혁 전 대구여상 교장(보전, 학병출신, 2008년 12월 24일 녹화) 5) 윤석헌 전 외무부 차관(보전, 2009년 7월 9일 녹화) 6) 최재동 1 20 학병동지회 사무총장(보전, 학병출신, 2006년 3월 24일 녹화) 7) 문병윤 전 부통령 비서관(보전, 징용출신, 2004년 10월 28일 녹음) - 8 -

9 8) 서태원 고일회 회장(보전, 징병출신, 2004년 11월 23일 녹화) 9) 김진웅 전 고려대 총장 서리(보전 출신, 2004년 12월 3일 녹화) 10) 김진섭 전 매일신문 기자(2009년 3월 19일 녹화) 11) 고일회( 高 一 會 고대 1회 졸업생 모임) 회원들 김진웅, 최재동, 이중재, 서정석, 김수명, 이종우(2006년 9월 18일 녹화) 12) 장택상 전 국무총리(동아방송, 정계야화 1965년 2월 19일 방송) 13) 우승규 언론인(1982년 9월 30일 녹음) 14)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2009년 9월 7일 녹화) 15) 김성식 전 고려대 교수(1982년 10월 22일 녹음) 16)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2008년 11월 18일 녹화) 둘째, 특별법 제2조 제13호(사회, 문화 기관이나 단체를 통하여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 는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 위)에 해당하느냐의 여부. (피고 준비서면 31쪽) 피고는 김 보전 교장이 년 황국정신의 앙양 등을 목표로 내건 흥아보국단의 준비위원으로 활동하였고, 흥 아보국단과 임전대책협의회를 통합하여 조직된 전시체제기 최대의 민간전쟁협력단체 조선임 전보국단에서 발기인과 감사로 활동하고 년 중일전쟁기에 라디오와 강연회를 통하여 시국인식의 철저와 총후봉공 을 역설하 고, 군용기 경기호 건조비로 3백 원을 헌납하였으며, 같은 해 8월 경성군사후원연맹에 국방 현금 1000원 등을 헌납하고 년과 1944년 매일신보에 절대로 협력, 징병이 닥쳐온다 라는 글을 기고하여 출정 군인 유가족에 대한 원호사업의 철저와 협력을 주장하여 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 다. <반론> 1. 흥아보국단의 준비위원, 조선임전보국단에서 발기인과 감사 등의 명단에 여러 수많은 조 선인 유지들과 같이 이름이 올라 있다는 것만으로 특별법 제2조 제13호(사회, 문화 기관이 나 단체를 통하여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 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특별법 조문은 어떤 단체의 간부로 이름이 올라 있는 그 직책 이 기준이 아니라 그 단체에서 구체적 - 9 -

10 으로 어떤 친일반민족행위 를 했는지, 즉 행위 를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피고는 김 보전 교장이 그 같은 단체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친일반민족행위 를 했는지를 입증해야 하 는데 피고는 단 한 건의 명백하고도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원고는 김 보전 교장이 1) 1941년 8월 25일의 임전대책협의회 결성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 삼천리 1941년 11월호, 46~49쪽) 2) 임전대책협의회 에서 벌인 채권가두판매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임종국, 실록 친일 파, 돌베개, 1991년, 230쪽) 3) 보전공문서 1940년 9월 25일자 황기 2600년 봉축회 와 관련, 각 학교 교장들을 동경기 념식에 참석토록 하며 여관 알선, 지정열차 탑승 등의 편의 제공 의사를 밝혔으나 이를 거 절했으며 신궁참배 불 희망 이라고 통보했다. 문서번호 제목 내용 453 紀 元 2600년 기념식 및 봉축회 참석에 관한 건 학무국장-보전 초대장 송부 통보 및 수송계획 과 관련한 내용 첨부 454 皇 紀 2600년 기념식 및 봉축회 참석에 관한 건 보전-학무국장 교장 김성수가 동경으로 이동하 는데 따른 제반 사실 통보(여관 알선 불필요, 신궁참배 불 희망, 지정열차 승차 불 희망, 경성 역 에서 출발) 4) 1938년 6월 22일 부민관 중강당에서 열린 발기인 대회나 7월 1일의 창립총회에 참석하 지 않았다. 는 구체적 자료들을 제시하며 특별법 제2조 제13호가 규정한 사회 문화기관이나 단체를 통 하여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 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를 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11 또 라디오 출연과 관련, 조선일보 1937년 8월 3일자 2면과 매일신보 1937년 8월 1일자 6 면에 8월 2일 제2방송 (중략) 8시 시국강좌 김성수 (후략) 라고, 예고 기사만 나와 있을 뿐 그 방송에서 무슨 말을 했다는 기사가 없고 인촌 김성수 선생이 설립자인 동아일보에도 1937년 8월 3일자 3면에 8월 2일(월) 제2방송 (중략) 8시 시국강좌 김성수 라고만 간략 히 보도됐습니다. 2. 피고는 김 보전 교장이 라디오와 강연회를 통해 특별법 제2조 제13호(사회, 문화 기관이 나 단체를 통하여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 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다고 하나 어떤 내 용의 친일반민족 행위 를 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백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피고는 막연히 시국인식 철저와 총후봉공 을 역설했다 고 만 주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시 국인식 철저와 총후봉공 을 역설했다 는 것만으로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 동을 적극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에 해당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피고는 방송의 구체적 내용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지만 인촌 김성수전 (인촌기념회, 1976, 404쪽, 갑 제69호증)은 아래와 같이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총독부는 조선인 명사들을 시국 강연이나 라디오 방송에 동원해서 전쟁에 협력케 하고 온 민족을 이른바 황국신민의 길로 내모는 데 혈안이 되었다. 강연도 자주 있었거니와 방송은 처음에는 주 1회 하던 것이 차츰 그 횟수가 늘어 이름 있는 인사 치고 여기서 빠지기는 매 우 어려웠다. 인촌에게도 방송에 나오라는 그들의 요구가 왔으나 단호히 거절했다. 그랬더 니 총독부 사회과에서 원고를 만들어가지고 와서 피치 못하게 강요하고 나왔다. 방송국에 나간 인촌은 사회과의 원고와는 전연 다른 물자절약과 유언비어를 조심하라는 내용의 이야기 를 5분 동안 하고 나왔다. 예정시간 15분의 3분의 1인 5분, 그것도 그들이 요구하는 내용과 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었다. 또 피고가 인용한 매일신보 1937년 9월 11일자 3면 춘천발 기사 도 남녀 청중의 운집으로 장내장외( 場 內 場 外 )는 정각( 定 刻 ) 전( 前 )부터 초만원을 이뤄 대 혼잡 을 정( 呈 )한 가운데, 一 지나사변( 支 那 事 變 ) 추이( 推 移 )에 대하여 김성수 一 지나사변( 支 那 事 變 )의 전모( 全 貌 ) 현상윤 이상과 여( 如 )한 양씨( 兩 氏 )의 열변으로 일반 청중을 감탄케 한 바 있었다 라고 돼있어 춘천 강연회 에서 특별법 제2조 제13호(사회, 문화 기관이나 단체를 통하여 일본제국주의 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에 해당하는 어떤 친일반민족행위 의 발언을 했는지를 입증하지 못하고

12 있습니다. 이와 관련, 원고는 인촌 김성수전 (인촌기념회, 1976, 431쪽)의 아래와 같은 대목을 인용한 바 있습니다. 일본은 1944년부터 실시하려던 조선징병령을 1943년 8월 1일자로 단행하여 12월부터 우 리 장정들을 그들의 군문에 징집해 가는 한편 동년 10월 20일에 갑자기 특별지원병제라는 것을 공포 실시하여 조선의 모든 전문대학교생을 전쟁에 내몰게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학 도병 또는 학병이라는 것이다. 처음에 일제는 사상이 불온한 학생 등은 제외하기로 하였으 나 자진해서 지원하는 자는 전무했기 때문에 방침을 변경해서 모조리 끌어가기로 했다. 이 에 신문 잡지 방송을 최고도로 활용함은 물론 그들의 행정력을 동원해서 갖은 협박과 공갈 로 지원을 강요하고 듣지 않으면 체포 구금하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이와 병행해서 지도자 들을 동원하여 각 처에서 강연회를 열고 이른바 학도 출진을 권유하도록 강요하였다. 이런 광란을 보고 인촌은 전곡농장에 내려가 병을 핑계로 세상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한번은 칭병( 稱 病 )이 통하지 않아 억지로 춘천에 끌려갔다. 연단에 오르기는 했으나 인촌은 단 한 마디만 하고 내려왔다. 이 사람은 대중 앞에서 연설할 줄 모르기 때문에 다음에 나와서 하 는 사람의 말을 이 사람이 하는 말과 같은 것으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나오게 된 사람은 장덕수 였는데, 두 사람 사이에는 미리 그렇게 하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허망한 그의 한마디에는 뼈가 있었고 알아들을 사람은 다 알아들었다. 그를 끌고 간 사람들 도 말주변이 없다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에 대해 피고는 김성수 평전은 김성수와 춘천만 빼고 시간과 동행 연사 등 중요사항을 잘못 기록하였기에 그 뒤의 행위 내용도 믿을 수 없는 것임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원고 의 주장대로 김성수가 연설을 하지 않았다면 김성수 평전의 신뢰도가 없어진 것으로 이 평 전을 근거로 내세우는 원고의 어떤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고 할 것이다. (피고 준비서면 82 쪽)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촌 김성수전 이 두 대목에서 오류가 있다고 해서 그 뒤의 행위 내용도 믿을 수 없는 것임은 당연하다 김성수 평전의 신뢰도가 없어진 것으로 이 평전을 근거로 내세우는 원고의 어떤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는 식의 주장을 할 수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피고는 년 징병제도실시감사축하대회에 참석한 바 없다 고 원고가 주장한 바 없음에도 참 석한 바 없다고 주장했다 고 잘못 전제하고 - 원고는 김성수가 연설을 하지 않았다 고 하지 않았음에도 피고는 바로 위에서 원고의 주장대로 김성수가 연설을 하지 않았다면 이라고 잘못 기술하며 - 김 보전 교장이 기고 한 바 없음에도 담( 談 ) 을 반복하여 기고 한 글 이라고 부정확하게

13 표현하고 - 김 보전 교장이 몇 차례의 행사 등에 참석했는지 밝히지도 못하면 무수하게 참석한 반민 족적인 행사 라고 과장하며 - 원고는 보성전문학교의 졸업생들은 한결같이 인촌 선생으로부터 학병지원을 독려하거나 그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증언하고 있다 고 했는데 학병 지원과 관련하여 원고가 제 시한 증언자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개별적으로 김성수로부터 학병에 나가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라고 엉뚱하게 기술하고 - 피고가 답변으로 대신한 장신의 의견서 가 현재까지의 연구로 볼 때 황국신민의 서사 부분을 김성수가 직접 또는 동의 하에 썼다고 수긍하기 힘들다 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 는 준비서면 125쪽에서 그동안 원고는 총독의 훈시와 비슷하다 하여 도용설을 주장하듯 김성수의 글이 황국신민의 서사 와 비슷하다 하여 조작설을 제기한 바 있었고 라며 피고 스스로 피고의 답변을 대신한다고 한 장신의 의견서 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며 - 참고 자료로 했다던 김상훈의 글 을 다시 번복하여 증거라고 제시하는 등 갈팡질팡하고, - 정진석 교수의 글, 성주현의 논문과 고려대학교 100년사 535~536족을 거두절미하여 인용한데 이어 김상훈의 글 이 사실에 부합됨을 입증시키겠다며 제시한 손종영, 손점용, 허호의 글 과 - 에커트의 저서 제국의 후예 와 고려대학교 100년사 도 피고에게 유리할 듯한 부분만 작 위적으로 거두절미하여 인용하고 있습니다. ( 손종영, 손점용, 허호의 글 과 에커트의 저서 제국의 후예, 고려대학교 100년사 에 대해서는 추후 상술 - 원고 주) 그렇다면 피고의 논리대로 피고의 준비서면은 설득력이 없고 작위적이라고 해야 하지 않 겠습니까? 1937년 8월과 9월에 낸 헌금 은 보전 교장 김성수 가 아니라 계동정 132 김성수 가 낸 것으로 기록돼 있어 이는 학교 돈 이 아니고 개인 돈 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동아일보 1937년 9월 15일 석간 1면을 보면 금 일만원을 이왕가 어 하사 황군 위문 연초도 어 하사 이왕가에서는 반도에서의 총후의 열성에 깊이 어관심을 가지시고 조선군사후원연맹에 금 일만원을 어하사 하신다고 어분부가 계셨다. 동시에 북지 제일선에 활약 중의 황군 장병의

14 위문을 위하사 연초 2천5백 상( 箱 )을 어하사 하신다는 어분부가 계셨다 는 기사가 있습니 다. 이 헌금은 원고가 갑 제72호증으로 제출한 임종국 선생의 빼앗긴 시절의 이야기 (민족문제 연구소 편, 아세아문화사, 2007년)의 기술과 같이 일본의 신을 섬기도록 강요하고(1936년 8월), 한국어 교육은 폐지되어 일어의 상용이 강제되고(1937년 4월), 황국신민의 서사를 제 창해야 하고(1937년 10월),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고치도록 강요받는 세월(1940년 2월) 에 왕실조차 헌금을 내지 않을 수 없는 암담한 상황에서 강요되는 헌금을 어쩔 수없이 낸 것입 니다. 인촌 김성수 선생은 일제의 강요에 의해 낸 헌금보다 훨씬 더 많은 성원금을 독립운동을 하 는 사람들을 위해 썼습니다. 동아일보와의 인연은 독립운동군 자금조달관계로 끈끈하게 이어졌다. 동아일보 사장이던 고하(송진우)는 김좌진 장군에게 3백~4백 명 규모였던 독립군의 무기 구입과 훈련 등에 쓰 도록 비밀리에 1만 원 가량씩 네 차례나 군자금을 보내주었다. 동아일보 설립자인 인촌 김 성수가 고하를 통해 보낸 것이지. 1만원이라면 그때 황소 1백 마리를 사고도 남을 돈이었으 니 요즘 돈으로 수 억 원대의 큰돈이지. 이 옹은 이 자금을 세 차례는 천도교 계통을 통해 받았고, 마지막에는 직접 받았다. 1930년 1월 24일 김 장군께서 일제의 하수인에게 암살 된 지 며칠 후 20대 청년이 동아일보 심부름을 왔다며 당시 김 장군의 대변인 역할을 하던 나를 찾아왔소. 돈 1만원과 함께 만장을 가져와 장례식 등 사후문제를 해결하는 데 요긴하 게 썼지. (이강훈 전 광복회장, 동아일보 1990년 4월 1일자, 14면) 장례는 이미 사회장으로 치르기로 결정이 됐고 이을규가 총무를 맡았고 권화산이 장례위원 장으로 추대되었으며 내가 대변인을 맡기로 했다. 내가 도착한 다음날 동아일보에서 특파원 김이삼( 金 利 三 )을 파견하여 조의를 표했고, 송진우 사장도 거액의 부의금을 보내왔다. (이 강훈 전 광복회장 자서전 민족해방운동과 나, 제삼기획, 1994년, 127쪽) 김구 선생의 특무공작도 안창호 선생의 재정지원을 받고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미국 동포 들이나 중국을 지나가던 국내 인사들이 안창호 선생을 신뢰해서 그를 통해 독립운동자금을 대주었으므로 도산이야말로 독립운동자금의 주머니였기 때문이다. 한 예로 유럽을 순방한 뒤 귀국 길에 상해에 들른 인촌 김성수도 도산을 찾아와서 인성학교에 기부금을 전했는데, 그 자리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기금도 내놓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구익균 회고록, 새 역사의 여명에 서서, 일월서각, 1994년, 127쪽) 당시 나는 상해에서 임시정부 내무총장으로 독립운동을 지도하시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비 서로 일했다. 선생의 사무실 겸 숙소는 프랑스 조계에 있었다. 어느 날 도산 선생은 애국지 사들에 대한 말씀을 하다가 인촌 선생만큼 용기 있고 진실한 애국자가 없다 는 말씀을 했 다. 인촌 선생은 세계 일주여행 길에 상해에 들러서 일본인과 그 첩자들의 눈을 피해 가면

15 서 도산 선생을 찾아 왔었다는 것이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도산 선생 사무실로 찾아온 사실에 더 감격한 듯 했다. 당시 국내의 지사들이 독립운동 자금을 보낼 때는 신변이 위험 하여 꼭 이편( 人 便 )을 이용하곤 할 때였다. 국내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던 실력자 인촌 선생이 임시정부에 2천불, 그리고 인성학교에 5백불을 내놓으셨는데, 그 분이 직접 방문한 것은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있던 도산 선생을 직접 뵙고 독립운동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고 협의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 뒤에도 참다운 애국자를 말할 때는 인촌 선생이 그 귀감이라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구익균, 인촌 김성수의 사상과 일화, 동아일보사, 1985년, 236~237쪽) 언제인가 미국에 계시던 도산(안창호) 선생님이 목릉현에 계신 아버님( 李 甲 ) 병상에 5백 달러의 치료비를 보내주신 일이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나는 정성껏 도산 선생을 간호해 드렸다. 그러던 나날, 나는 열흘마다 계산되어 나오는 병원비로 환자가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110원씩 청구서가 나왔는데 그때마다 총독부 신세를 질 수 없다 하여 도산 선생은 저들의 보조를 받을 수 없다 하시며 펄펄 뛰었다. 선생님, 그런 걱정 마시고 진정하세요. 그래, 내가 죽는 날까지 그 놈들 돈으로 치료받을 줄 알아. 제가 밖에 나가 서 몇 군데 다녀 보겠어요. 글쎄, 한 번 그래 볼래. 마지못해 응낙하면서 견지동 이지송 ( 李 芝 松 ) 씨한테나 가보라는 말씀이었다. 인촌 선생 댁에 가 볼까 해요. 알아서 하오만 도 움 받은 일이 많아서. 그 밖에도 방응모 최창학 박흥식 제씨의 이름이 거론되었으나 그 때마다 그동안 신세 많이 진 분 들인데, 그만두지. 하며 사양의 뜻을 표했다. 윤치호 씨 에 대해서는 더욱 완강한 만류를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병원비 주선을 위하여 먼저 인촌 김성수 선생 댁에 갔다. 인촌은 이런 일에 부인까지 나서다니 이 군(이응준)도 전지에 가 있고 한데 하며 즉석에서 쾌락해 주었다. 그리고 위험하니 현금만은 가지고 다니지 마시 오 하는 주의까지 환기시켰다. 나는 감격했다. 박흥식 씨 회사에 갔더니 호응해 주어 흐뭇 했다. 조선일보사 사장 방응모씨도 나중에 5백 원인가의 수표를 보내온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친구 오빠 나경석씨를 통해 만나본 최창학 씨는 감시의 눈길을 두려워해서 거절의 뜻을 표했다. 이렇게 이심전심으로 독지가들의 성금이 답지되어 도산 선생의 치료비와 장례 비에 충당된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중략) 밤이 깊어갔다. 12시 자정을 알리는 시보 의 울림이 마지막 땡! 하고 칠 그 때 도산 선생의 숨길은 멎었다. 거인의 최후였다. 향년 61세로 이렇게 생애의 막을 내렸다(1938년 3월 10일). 그 자리에는 안치호 장회근 이선행 김순원 그리고 우리 어머님과 큰 아이 이창선과 내가 있었다. (이정희< 李 正 熙 >, 도산여 록, 흥사단출판부, 1986년, 268~269쪽) 1956년 경 육당(최남선 선생)에게서 들은 얘기다. 3 1운동 당시 천도교 쪽은 최린이 있고, 북쪽 기독교 세력(서북 기독교)은 이승훈, 남쪽 기독교 세력은 이상재가 대표적이었다. 최린 과 육당은 일본 유학을 같이 한 친한 사이다. 평양 쪽 기독교의 이승훈 선생을 천도교의 참 여 세력에 합류시키려 서울로 불러왔는데 종로 YMCA 건물 옆에 황금여관에 묵었다. 거사 자금 분담금 문제로 어려움이 있었다. 이 때 인촌이 육당을 불렀다. 인촌이 기독교가 내야 할 몫이 얼마냐 고 물어서 육당이 얼마라고 얘기하니까 인촌은 말없이 주머니 속에서 몇 천 원을 꺼냈다. 인촌은 이것을 내가 낸 것으로 하지 말고 이승훈 선생이 기독교 몫으로 낸 것으로 하라 고 말했다. 육당은 이 돈을 보자기에 싸서 그 길로 황금여관으로 달려가 이승 훈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내가 육당한테 이 얘기를 듣게 된 것은 한용운 선생이 독립선언

16 서의 뒷부분 공약 3장을 썼다는 논란이 나오던 무렵 독립선언서가 나오기까지의 전 과정을 육당에게 시간대 별로 여쭤보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들은 독립선언서 탄생 과정을 독립선언서 연구 라는 논문에 썼다. 사실 3 1운동의 발동이 처음 걸린 것은 광문회 사랑방 에서다. 거기에는 아사히신문 등 외국의 신문 잡지가 다 모이고 지식인들이 서울 올라오면 모여서 이를 돌려보고 세계정세를 논하곤 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천명 이후 우리도 이 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 해서 현상윤 선생이 이를 중앙학교 숙직실로 가져가서 논의한 것이 다.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 2004년 12월 9일 면담 증언) 내 손으로 직접 러시아로 망명시킨 공산당 간부도 있었지만, 그들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로 는 러시아로 망명한 사람들의 거개가 모두 인촌 선생으로부터 노잣돈을 얻어가지고 망명하 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 당시 서울로부터 블라디보스토크로 밀항해 가지고 모스크바까지 달 아나려면 일본 돈으로 3백 원 내지 5백 원 만 가지면 족하였다. (중략) 공산당원이거나 민족사상 운동, 혹은 직접 행동을 음모하다가 붙들려갔든지, 서대문감옥에 들어가게 된 사 람, 혹은 감옥에 들어가 있다가 병보석으로 나와 있는 사람으로서 만주나 로령( 露 領 )으로 망명하고 싶었을 때 인촌 선생한테서 돈을 얻어가지 아니한 사람은 거의 한사람도 없었을 것이라고 나는 추상하고 있다. 1922년의 제1차 공산당사건이후 1931년 제3차 공산당(속칭 ML당)사건까지 10년 동안, 일제에 대한 공산투사 가운데서 인촌 선생으로부터 3백~5백 원 의 돈을 얻어간 사람은 열 손가락을 꼽을 수 있건만, 지금 내가 기억하는 이름은 ML당의 이성태라는 이름뿐이다. (중략) 주의와 사상은 자기와 다르지만, 일제의 쇠사슬을 끊어 버리려는 목표에는 일치하는 까닭에 인촌 선생은 그들을 도와주었을 뿐이라고, 그 때나 지 금이나,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김기진 전 경향신문 주필, 한국근대화에 공헌한 인 촌, 사상계, 1961년 2월호, 218~219쪽) 반민특위 활동이 시작될 무렵, 특검부장은 김상돈 의원이었고, 그 중 특별검찰관의 한 사 람으로 독립운동가였던 장홍염( 張 洪 琰 )의원이 끼어 있었다. 그는 반민자( 反 民 者 )들의 행적을 조사하기 위해 정부에서 보관 중에 있던 총독시대의 기록을 가져와 부일협력자와 일제에 반 항한 애국지사들의 기록을 살펴봤다. 뜻밖에도 인촌 김성수 선생에 관한 대목이 눈에 띄었 다. 자세히 살펴보니 일제 치하에 독립단원 한사람이 그의 집을 찾아가 돈을 훔쳐갔다는 대 목이 있었다. 사랑방에 주인이 없는 새 도둑이 들어와 금고를 털어 돈을 가져갔다는 것이었 다. 이 때 김성수 선생 댁을 찾아가 독립자금을 달라고 졸라댄 사람이 바로 장홍염 의원 자 신이었다. 자신의 간청을 받자 전후사정을 알아보고 신분을 확인한 선생은 사랑방에 있던 금고문을 열어 제치곤 돈이 들어있다는 시늉을 한 후에 용변을 보러간다며 자리를 비워주었 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기에 거제서야 주인이 없는 새 돈을 가져도 좋다는 것으로 판단하고 독립자금을 가져가 요긴하게 쓴 일이 있었다. 스스로 독립자금을 준 것과 다름이 없었는데도 육영사업과 언론사업, 민족자본의 육성을 위해 후환을 없애기 위해 이렇게 선생 은 용의주도하게 도둑을 맞은 것으로 일제의 눈을 속였다. 이 사실이 제헌국회에 전해지자 인촌 선생의 우국충정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서병조 전 연합신문 편집부국장, 정치사의 현장 제1공화국 편, 중화, 1981년, 196~197쪽)

17 3. 피고는 1943년과 1944년 매일신보에 절대로 협력, 징병이 닥쳐온다 라는 글을 기고하 여 출정군인 유가족에 대한 원호사업의 철저와 협력을 주장하여 이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매일신보 기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김성수, 절대로 협력, 매일신보(일본전수< 專 修 >대학 소장본), 1943년 12월 7일자 석간 2면. 멀리 전선에 용약 출전한 군인들이 만일 그 사투가 감행되는 결전장에서 고향에 남아있는 외로운 어머니나 또는 아내의 일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이것이 곧 전투에 영 향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총후에서 상이장병들을 위하며 또는 출정 유가족을 위하여 행하는 원호사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이번 학병들이 출진함에 당하여 신문 을 통하여 보더라도 가정사정이 여러 가지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용약출진을 결행한 학도 들의 수효가 적지 않은 모양이다. 이러한 학병들을 위하여 또는 징병제 실시에 따라 금후 출정할 반도 출신 장병들을 생각할진대 군인 원호 역시 한층 확대강화 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인데 이번 조선금융단에서 20만원을 제공한 것은 일대 쾌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 사업의 중요성을 더욱 인식하고서 원호사업에 절대 협력하여야 할 것을 더욱 각오할 것이 다. 징병이 닥쳐온다, 매일신보 1944년 1월 22일자 3면. (전략) 보성전문학교장 김성수씨는 다음과 같이 결의를 말한다. 오직 한결같은 순충의 마음으로서 군문에로 들은 우리 학병들의 전도는 승리와 광영이 있 을 뿐이다. 이제 대망의 징병이 실시됨을 따라 우리는 학생이 없는 가정이라도 적령기의 청 년 남아를 가진 집에서는 모두 이 며칠 동안 반도 전역이 감격으로 환송하는 장쾌한 병역의 성사를 맛보게 될 것이다. 반도출신의 젊은 병사들을 전열로 보내는 것은 실로 이제부터 시 작되는 것이다. 떠나는 병사, 보내는 부모형제 이 광경은 이웃집의 일이 아니요,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머지않아서 내 앞에 당하는 내 일임을 이제 학병을 보내면서 여러 가지로 미 흡하거나 준비가 부족하였던 점도 점차 개선되어 징병의 길에 유감없이 될 것이다. 또한 그 동안 신문에도 많이 보도되었거니와 아들과 남편을 나라에 바치는 가정 중에는 가정 사정이 심히 곤란한 곳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가정, 이러한 부모를 뒤에 남기고서 전열 에 나가는 병사들로 하여금 뒷일은 우리가 맡을 것이니 오직 잘 싸워 달라 출정 군인 유 가족을 위한 여러 가지 원호사업에 또한 만전을 기하여야 할 것이다. 당국에서도 일찍이 군 인 원호회 조선 본부를 두고 각 도에 지부, 분회를 설치하여 각종 사업으로서 유가족의 직 업보도 또는 의료, 교육 등 각 방면으로 원호의 손을 뻗치고 있기는 하지만 반도에서 군인 들이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이 원호사업도 더 확충하여 가야 할 것이고 이러한 사업이야말 로 반도 민중이 다 함께 키워나가도록 힘써 싸우는 반도의 책임을 완전히 수행하도록 할 것 이다. 위의 두 기사는 우선 피고의 주장처럼 글을 기고한 것 이 아니라 담( 談 ) 즉 말을 듣고 옮 겨 썼다는 것입니다

18 다시 한 번 김달수 당시 경성일보 기자의 고백을 상기시킵니다. 중추원 참의 김사연은 학생들의 지원 에 대해서는 당신도 그 학생들과 꼭 같은 귀중한 세 대군요 라고만 말할 뿐, 결국 최후까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김사연의 태도에서 오히려 상쾌함을 느꼈지만 신문 지면에 기사가 되어 나온 것은 거의 전부가 만들어진 것 밖 에는 없었다. 이처럼 경성일보 편집국은 매일매일 이 같은 거짓을 만들기 위해 마치 모두가 정신이 돈 것 같았다. 위 기사는 김달수 당시 경성일보 기자의 고백처럼 사정이 어려운 출정 군인 유가족은 우리 가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는 정도의 한 마디를 듣고 매일신보가 열 마디의 선전선동물을 만든 것입니다. 인촌 김성수전 (인촌기념회, 1976년, 432~433쪽)에 아래와 같은 대목도 있습니다. 학도병들이 끌려가서 입대한 이틀 후인 1월 22일자 매일신보에 보전교장 김성수 담( 談 ) 이라 하여 징병이 닥쳐왔다. 군인원호사업에 한층 분발하자 라는 제하의 기사가 실린 것이 다. 매일신보는 우리말로 발행되는 유일한 신문인 동시에 총독부 기관지로 허위와 왜곡을 일삼는 그들의 꼭두각시였다. 이러한 매일신보의 기자가 계동으로 찾아와서 다음은 선생님 의 차례 라면서 제자들을 학병으로 보낸 학교장으로서의 감격을 써달라고 한 일이 있었다. 아시다시피 나는 글을 쓸 줄 모르오. 이것은 신문사의 청탁이 아니고 총독부의 지시올시다. 꼭 써주셔야 합니다. 총독부의 지시라고 없는 재간이 생겨나겠소? 글을 받아내지 못한 기자는 몇 마디 말씀이라도 해달라고 졸랐다. 말도 할 줄 모른다고 할 수는 없는지라 인촌은 그가 묻는 대로 한 두 마디 대답했다. 조선의 청년들이 전장에 나가게 된 것은 현실적 사실 아닙니까? 그렇지요. 뒤에 남은 우리들은 그들의 가족을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와야지요. 내용은 이것뿐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장황하게 각색되어 지면에 나타났으니 그들의 맹랑한 조작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이는 이른바 전향문 강제극이 있은 후 경성일보 기자가 와서 5분가량 면회하고 가더니, 여운형 은 성전 완수에 적극 협력하고 나섰다. 특히 청년 학생들은 전쟁터로 나아가 목숨을 바쳐 황은에 보답하라고 소리 높이 권고한다 운운의 장문 기사를 연 3일간에 걸쳐 연재하기에

19 이른다. 물론 이것은 여운형을 이용하자는 일제의 새빨간 날조극이었다. 6월 하순 어느 날 아침, 필자는 몽양 자택을 방문했는데, 공교롭게도 그날이 바로 이 엉터리 기사의 첫 회가 발표되던 날이었다. 방바닥에 놓인 경성일보를 들고 필자가 물었다. 선생님, 어찌된 일입니 까? 글쎄 기자가 쫓아와서 몇 분간 이러쿵저러쿵 하고 가더니 저렇게 났구먼 필자도 더 묻지 않았고, 몽양도 더 말이 없었다. (이기형, 몽양 여운형, 실천문학사, 1984년, 237~238쪽) 교활한 일제는 총독부 기관지에서 조선말 신문으로 유일한 매일신보에 조선인 전문학교, 대학교 학생들에게 학도병에 지원해 나서라 는 안재홍의 이른바 담화 를 날조해서 발표케 하는 사기 협잡극을 연출해냈다. 신문에는 안재홍의 사진도 실리고 자필서명도 있었는데 그 사진은 옛날 어디에서 찍은 사진을 오려서 낸 것이고 자필서명도 옛날 어느 신문에 난 것을 복사한 것이었다. 이 날조극이 있기 전에 일제 경찰의 고등계형사가 서울 돈암동에서 병 치 료를 하는 안재홍을 찾아와 전향 을 강요하며 학도병 제도를 지지하는 담화를 내달라고 하 였다. 그때 그는 팔자 콧수염을 씰룩거리며 이 놈아, 53살이나 된 나를 1년이나 홍원경찰 서에 잡아가두고 이렇게 폐인으로 만들어놓고 그것도 부족해서 또 학병 지지 담화를 강요한 단 말이냐! 당장 내 눈앞에서 썩 사라져라! 라고 을러멨는데 그 일이 있은 다음날에 그런 날 조극이 신문에 실렸던 것이다. (김흥곤 강현만, 민족과 하나, 평양, 금성청년출판사, 2003 년, 381쪽) 와 같은 경우의 사례 중 하나일 뿐 입니다. 사정이 어려운 출정군인 유가족을 도와야한다 는 말이 특별법 제2조 제13호(사회, 문화 기 관이나 단체를 통하여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함으로써 일본 제국주의의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에 해당될 수 없습니다. 셋째, 특별법 제2조 제17호(일본 제국주의의 통치기구의 주요 외곽단체의 장 또는 간부로서 일본제국주의의 식민 통치 및 침략전쟁에 전극 협력한 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 (피고 준비서면 32쪽) 피고는 김 보전 교장이 년부터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발기인, 이사, 참사로, 년부터 1944년까지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이사로 재직하면서 매일신보에 만전 준비 다할 뿐, 각 전문교 과거와 현재, 새 결의로 총궐기 라는 글을 기고하여 일제의 침략전쟁 승리를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을 역설하였다고 했습니다

20 <반론> 피고는 김 보전 교장이 1938년부터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발기인, 이사, 참사로, 1940 년부터 1944년까지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이사로 재직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친일반민족행 위 를 했는지에 대한 사례를 단 한건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매일신보에 만전 준비 다할 뿐, 각 전문교 과거와 현재, 새 결의로 총궐기 라는 글을 기고하여 일제의 침략전쟁 승리를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을 역설하였다 는 것이 구체적 사례라고 피고가 든 것이라면 우선 위의 세 기사 역시 기고한 것 이 아니라 담( 談 ) 즉 말을 옮겨 쓴 것임을 지적해 둡 니다. 피고가 예시한 세 기사의 전문( 全 文 )은 아래와 같습니다. 매일신보 1943년 10월 14일자 2면 만전 준비 다할 뿐 - 김 보성전문교장 담( 談 ) 과학전을 싸워나가는 이때이니만큼 전시학도의 나아갈 길이 과학의 길임은 두말할 것이 업 다. 법문계 사립전문학교를 이과 계통 전문학교로 전환하는 것은 응당 있어야 할 조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과 계통학교로서 시설문제로 급속한 전환은 어려울듯하나 당국의 전면 적 협력이 잇슬 것이므로 이때 우리들은 이전함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것으 로 생각하는 바이다. 매일신보 1944년 2월 10일자 3면 각 전문교 과거와 현재 보전 보성전문학교는 전시교육비상조치 방침에 따라 경성척식경제전문으로 전환하여 명실함께 새 출발을 하기로 되었는데 이 학교는 구한국 내장원경 고 이용익 씨가 명치38년 한국학부의 인가를 얻어 사립 보성전문학교로 설립한 것이다. 동년 4월 3일 수업연한 2년의 법률과와 경제과를 설치하고 수송정 원아어학교 교사에서 수업을 시작하였다. 동40년 수업 연한을 3 년으로 하고 43년에는 경제과를 상업과로 고치고 그 경영을 천도교의 고 손병희 씨가 인계 하여 다음해 6월에 사립보성법률상업학교로 개칭하였다. 그동안 생도수도 늘고 교운( 校 運 ) 은 점점 발전하여 대정7년 9월에는 교사를 낙원정으로 옮기고 동 10년 12월에 재단법인이 설립되어 다음해 4월 1일에는 조선 교육령에 의하여 교명도 보성전문학교로 되고 상과와 법과를 설치하여 교사를 송현정 구교사로 이전하였다. 그 후 고 김기중 김경중 양씨가 거재 ( 巨 財 )를 던져 이를 인계하여 재단의 기초를 반석과 같이 굳게 하고 현 교장 김성수 씨가 취임하여 소화9년 9월에 안암정 현교사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김성수 교장 담( 談 ) 지금 저에게는 아무런 감상도 없습니다. 우리가 해 나아갈 길은 국가 방침에 좇아 전쟁에 싸워 이기기 위한 꾸준하고 힘찬 실천이 있을 뿐입니다. 전력증강 현재 우리에게는 오직 이 한 가지 뚜렷한 목적이 있을 뿐입니다. 물론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진 학교를 갑자기 척식경 제전문학교라는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을 시키는 일은 적지 않은 혁신임에 틀림없습니

21 다. 그러나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한 급선무이라면 이 위에 더 중대한 일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의 생활양식이 시대에 따라 변천하여 나아가는 것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 이 교육체제도 때에 따라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교육자는 물론 학생과 학부형들도 일억 국민이 각기 맡은 직장에서 싸워 이기기 위하여 전력을 다할 것을 한층 더 깊이 각오하여 국난 돌파에 용왕매진할 뿐입니다. 매일신보 1944년 7월 24일자 2면 새 결의로 총궐기 조선 총리에도 광명 - 김성수 씨 담 ( 談 ) 고이소( 小 磯 ) 대장을 수반으로 인재를 널리 구하야 국민이 기대하는 거국일치의 신내각 진 용이 결정된 것은 실로 국가를 위하야 경하할 일이다. 신내각은 강력 내각이라는 점에서 국 민은 이에 전폭적인 신뢰를 바칠 수 있다. 덕망이 높고 정치적 수완이 큰 고이소 총리를 비 롯하여 총리대신의 경력이 있는 요나이( 米 內 ) 대장의 해군대신이며 그밖에 각성 대신과 국 무대신 등의 새 진용은 일억 국민을 이끌고 전쟁완수에 매진하기 위해 충분한 강력적인 것 이라고 믿는 바이다. 적을 격멸하여 성전을 완수할 태세는 이로서 완비된 것이므로 일억은 이 기회에 비상한 결의로 총궐기해야 할 것이다. 조선으로서는 현 총독이 총리대신이 된 만 큼 조선 통치의 전도에 대해 배전의 광명이 있을 것을 확신하다. 조선을 잘 알고 또 사랑하 는 고이소 총리의 지도에 따라 금후 반도 이천 육백만은 더한층 지성봉공해야 만 할 것이 다. 이들 기사 역시 조선을 잘 아는 조선 총독이 총리대신이 된 만큼 축하한다 는 정도의 말을 전폭적인 신뢰를 바칠 수 있다 적을 격멸하여 성전을 완수할 태세 비상한 결의로 총궐 기해야 조선 통치의 전도에 대해 배전의 광명이 있을 것 지성봉공해야 만 할 것 이라는 등 보통사람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투적인 찬사를 매일신보 측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피고 준비서면 32~33쪽) 피고는 결론적으로 이와 같은 다양한 친일행위를 볼 때 김성수의 행위를 강압에 의한 소극적 행위라고만 볼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즉 김성수가 무수하게 참석한 반민족적인 행사는 물론이고 중추인 간 부직 역임을 비롯하여 시국강연과 친일 기고 등을 통하여 침략전쟁에 나갈 것을 선동 선전 하는 행위는 행사의 성격과 선동성이 매우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므로 적극적, 주도적, 전국 적 행위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점은 김성수의 각종 친일행위와 연동 되어 특별법상 중요한 친일반민족 행위 결정의 근거로 작용하였다. 이를테면 학교 교장으로 서 제자들에게 노골적으로 학병을 권유하고 또한 징병제 실시를 일본 왕에게 감사하고 찬양 하는 행위는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친일반민족적 행위이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서 적극적,

22 주도적, 전국적인 반민족행위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은 사료가 확인될수록 행위의 사례는 더욱 늘어나고 있고, 입증된다는 점에서 이유가 없다. 이제까지 확인된 것만 하더라도 김성 수의 행위는 지속적, 반복적, 연속적으로 계속되는 가중성을 가지고 있어 원고의 주장은 그 일면만 본 것에 불과하고 설득력이 없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특별법 제2조 제11호, 제13 호, 제17호가 각각 규정하는 적극적, 주도적, 전국적인 행위로써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하 므로 원고의 주장은 부적법하고, 이유 없음을 명백히 한다 고 했습니다. <반론> 피고는 이와 같은 다양한 친일행위를 볼 때 라고 했지만 피고는 이를 구체적이고 명백한 자료로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피고가 제시한 유일한 자료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 경성 일보에 게재된 왜곡, 과장, 날조된 허위의 기사들 뿐 입니다. 피고는 무수하게 참석한 반민족적인 행사 라고 표현했지만 김 보전 교장이 무수하게 참석 한 반민족적인 행사 는 없으며 참석하지 않은 사례를 원고는 위에서 구체적으로 예시했습니 다. 피고는 김 보전 교장이 무수하게 참석한 반민족적인 행사 를 구체적으로 나열해 제시해 주기 바랍니다. 피고는 또 제자들에게 노골적으로 학병을 권유하고 라고 했지만 당시 보전 제자들 중 어 느 한 사람도 그 같은 진술을 하고 있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제자 문병윤은 학병 나가지 않 아도 된다고 해서 김 보전 교장 집에 숨어 있었다 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넷째,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의 김 보전 교장 명의로 된 보도 내용이 신빙성이 있는지 여부. (피고 준비서면 55~77쪽) 3.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의 신빈성에 관한 주장에 대하여 가. 총독부 기관지 기사는 신뢰성이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1) 피고가 사료로서의 가치와 진상규명 자료로서의 가치를 혼동 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하 여 피고의 주장 원고는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의 사료로서의 가치가 인정된다고 해서 위 각 기관지의 보도기 사의 내용을 그 지면 그대로 믿는 역사학자는 아무도 없다 고 들며, 단순한 사실(fact)을 확인하는 것 이상의 가치는 없다고 할 수 있고, 그 기사의 이면에 숨어있는 배경이나 역사 적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진상규명의 자료로서의 가치는 거의 없다 라고 단정하고 있다

23 이와 같은 원고의 주장은 역사학자의 연구를 폄훼하는 것입니다. 역사학자들은 단순한 사 실(fact) 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연구의 실마리를 잡고 진실을 탐구해 나가는 계기를 만들 고 있습니다. 원고의 주장은 팩트 를 통하여 진실을 추구해 나가는 역사학자의 사료 찾기에 대한 연구방법론을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이다. 역사학자는 연속되는 팩트 를 통하여 사 건이나 인물의 활동 배경과 이면을 탐구한다. 그러므로 과거사에 대한 연구는 팩트 에 대한 배경이나 역사적 진실을 확인하는 진상규명의 과정이며, 여기에 동원되는 사료들은 1차 자 료로서의 가치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김성수의 친일반민족행위를 입증하는 팩트 로 활용된 매일신보와 경성일보 등은 그런 점에서 매우 유용한 역사 사료이며 팩트 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원고는 이에 수많은 증언들과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매일신보와 경성일보가 게재한 기사가 얼마나 왜곡되고 날조되었는지를 논증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원고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으며,이들 신문이 근현대사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이미 반민규명위 답변서를 통해서도 충분히 밝힌 바 있어 자세한 설명을 생 략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원고가 수많은 증언들과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매일신보와 경성 일보가 게재한 기사가 얼마나 왜곡되고 날조되었는지를 논증 한 것이라고 언급한 점은 현재 근현대사연구에 있어서 납득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이를 다시 한 번 바로 잡는다면 원고의 주장은 수많은 증언들과 객관적인 자료 가 아니라 수많은 개인 적인 주장들과 주관적인 자료 라고 반박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이 시기의 매일신보와 경성 일보 기사를 인용하여 작성한 논문과 그 논문이 게재된 학술지의 등급(한국연구재단 등재 지)이 무엇인지 원고가 조금만 살펴봐도 이들 신문에 대한 사료적 가치는 팩트 이상의 학 문적 유용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반론> 피고는 김성수의 친일반민족행위를 입증하는 팩트 로 활용된 매일신보와 경성일보 등은 그런 점에서 매우 유용한 역사 사료이며 팩트 라고 할 수 있다 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피고는 원고가 제시한 증언과 자료들에 대해 수많은 증언들과 객관적인 자료가 아니라 수많은 개인적인 주장들과 주관적인 자료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인익 당시 매일신보 편집국장, 이원영 당시 매일신보 정치부장, 백철, 조용만, 김진섭 당 시 매일신보 기자, 김달수 당시 경성일보 기자가 당시 매일신보와 경성일보는 총독부의 기 관지로서 왜곡, 과장, 날조된 허위의 기사로 선전선동물을 만들어 내는데 광분했다고 생생 하게 증언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실상을 전혀 모르는 피고가 그 신문에 있던 사람 들의 증언은 굳이 믿지 않고 그 신문에 있던 사람들이 새빨간 거짓말의 선전선동물이었다고 참회하며 고백해 놓은 일제 기관지를 매우 유용한 역사 사료이며 팩트 라고 하는 것은 어 불성설( 語 不 成 說 ) 입니다

24 (2)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의 기사 날조 실태에 대하여 피고의 주장 원고가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의 기사 날조의 실태라고 예를 든 사례는 기사 조작에 대한 구 체성이 없는 정황에 대한 이야기로서 개인의 생각을 나열한 것이며, 기사 조작에 대한 사실 관계를 따지는데 적절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그 중에 매일신보 기자 백철은 일본 당국이 다시 소위 지도급의 인사들이란 것을 동원하여 학병 권유의 시국강연을 시켰다. 나중은 일 본 동경까지 그 인사들이 파견되어 명치회관이라는 데서 학병권유 강연들을 하는 식의 광극 ( 狂 劇 )을 벌이기도 했다 고 하였지만, 이것은 당시 지도급 인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을 말하며, 그것은 분명한 팩트 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한 백철 자신의 친일행위가 어떠했는 지 비판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당대 지식인이었던 이광수와 최남선은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닌 신념에 차서 적극적으로 친일반민족적인 활동을 하였다. 이에 대한 반응은 강덕상의 반도학도출진 을 보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매일신보 기자 조용만의 회고는 기사 조작과 관계없는 신문사의 풍경과 분위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매일신보 편집국장 정인익은 반민 특위 조사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변명으로 일관하였다. 예컨대 정인익은 언론인으로서 어떤 이념 하에 행동하였는지 신문하는 특위조사관에게 민족영원불멸이라는 신념 하 에서 동포에게 희망을 주도록 노력 했다고 반민특위 조사 때 밝혔으나 그가 해방 직전까지 사무 국장으로 재직한 조선언론보국회가 어떤 단체인지 살펴보면 그 말이 허위진술임은 자명하게 드러난다. 정인익은 반민특위 신문 당시 자기 합리화와 변명에 급급한 답변을 하였다. 따라 서 원고가 기사조작의 근거로 예를 든 정인익에 대한 이야기는 신뢰하기 힘든 자료라고 할 것이다. 다음은 정인익이 활동한 조선언론보국회에 대한 내용이다. (내용 생략 - 원고 주) <반론> 우선 피고는 원고가 예시한 17건의 증언, 1) 정인익 당시 매일신보 편집국장의 반민특위 피의자 신문조서 2) 김달수 당시 경성일보 기자, 나의 아리랑 노래 (중앙공론사, 1977년, 232~235쪽) 3) 김진섭 당시 매일신보 기자, 녹취 한국언론사 (대한언론인회, 2001년, 97~98쪽) 4) 이원영 당시 매일신보 정치부장, 언론비화 50편 (한국신문연구소, 1978년, 95쪽) 5) 백 철 당시 매일신보 기자, 속( 續 )진리와 현실 (박영사, 1975년, 109~112쪽) 6) 조용만 당시 매일신보 기자, 경성야화 (도서출판 창, 1992년, 212~213쪽) 7) 이기형, 몽양 여운형 (실천문학사, 1984년, 237~238쪽) 8) 유기선, 황혼의 명상 제5화, 학도병 출정 때의 이야기 ( 고당 조만식 회상록, 고당 조만식 기념사업회, 조광출판, 1995년, 51쪽) 9) 한근조, 고당 조만식 (중앙서관, 1983년, 366쪽) 10) 김흥곤, 강현만, 민족과 하나 (평양, 금성청년출판사, 2003년, 381쪽) 11) 서석연, 그림자 잃은 사나이 ( 1 20 학병사기 1권, 1987년, 185쪽)

25 12) 김영화 전우여! 지금은 어디에? ( 청춘만장< 靑 春 挽 章 >, 1 20 동지회 중앙본부, 1972년, 412~413쪽) 13) 윤임술, 특별 고사포 부대의 정체 (위 책 290~291쪽) 14) 정치근(시인, 작사가)의 회고 15)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2009년 9월 7일 녹화) 16) 최남선, 자열서( 自 列 書 ) (자유신문, 1949년 3월 10일자 2면) 17) 임종국, 빼앗긴 시절의 이야기 (민족문제연구소 편, 2007년, 249쪽) 중 백철, 조용만, 정인익 세 사람의 증언에 대해서만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그 나머지 14건의 증언, 즉 김달수 당시 경성일보 기자의 고백( 나의 아리랑 노래, 중앙공론사, 1977년, 232~235쪽) 내가 대망의 사회부로 가게된 것은 1943년 9월 말이나, 10월 초였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 다. (중략)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경성일보 지면이 커다랗게 바뀌어 있었다. 조선에서 이른바 학도출진 과 학생의 강제 지원 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반도의 학도여, 자신의 영예에 눈 떠라! 천재일우의 호기( 好 機 )를 놓치지 말라! 라는 표어가 커다란 철판( 凸 版 )이 되어 지면 가득히 메워져 있었다. 그 지도기사( 指 導 記 事 )에 이어 각계 조선인 명사들의 이 름이 사진과 함께 나란히 실렸다. 영광입니다. 이보다 영광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반도의 학도는 흔연히 한 몸을 바쳐 한 죽음으로 황은( 皇 恩 )에 보답해야 합니다! 라고 입을 맞춘 듯한 담화가 가득히 실려 있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한 죽음으로 황은에 보답해야 합 니다. 라는 것은 웃기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것이 그렇지 않았다. 만약 그것을 웃기는 것이라고 말하는 자가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형무소에 갈 각 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신문이 하나의 결의 하에 행동하면 그 신문이 거대한 윤전기 에 말려 들어갔다 나오듯이 주변의 모든 것들도 그에 말려 들어가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한 다. 편집국의 간부들은 미네 사회부장이나 차장들을 포함하여 매일 회의를 계속하여 그 날 의 호소 표어와 기획을 정하고 담화를 받아야 할 각계 조선인 명사들의 명단을 한 손에 들 고 부원들을 닦달했다. 물론 나도 그러한 닦달을 받는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가서 만나보면 신문 지면에 나오는 것과는 전혀 반대의 일만 있었다. 예를 들면 학생이 또 한사람 지원 했다고 하여 사진기자와 함께 가보면 그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 거나 또는 격정에 겨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무엇을 쓰든 당신 마음대로이지만 들어 줄 수 있으면 들어주기 바란다. 도대체 우리들 조선인의 적은 어디에 있습니까. 도대 체 어느 것이, 어느 쪽이 우리들의 적입니까. 나는 그저 잠자코 듣고 있을 뿐으로 대답할 말이 없었다. 또 그들 가운데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찌하여 우리들은 전장에 가서 사람을 죽이고 그리고 자신들도 부상하고 죽지 않으면 안 됩니까. 도대체 왜 우리들이 일본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까. 말하자면 나 자신도 그들과 같은 조선인이면서 어느 편에 서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비로소 나 자신에 대해 심각히 생각하지 않고는 있을 수가 없었다. 그들 가운데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 도 있었다. 우리들이 희생함으로써 삼천만 조선 민족이 받고 있는 차별이 조금이라도 없어 진다면 그것으로 좋습니다. 나는 기쁘게 하나의 사명을 다했다는 자각 아래 싸우다 죽겠습

26 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나도 나름대로 감동하여 그대로 이야기를 썼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 시 데스크에서 빨간 펜으로 고쳐 써졌다. 이제야 커다란 영예와 임무를 자각하여 운운으 로. 이른바 각계 명사의 담화도 꼭 같았다. 나는 중추원 참의라는 김사연( 金 思 演 )을 찾아갔 을 때의 일을 지금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중추원 참의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고 돈암정인가 어디인가의 커다란 저택에 살고 있던 그런 조선인 부르주아를 방문하는 것도 그것이 처음이었다. 그 때 슬쩍 엿본 김사연의 생활 모습은 뒤에 쓴 장편 현해탄 의 또 하나의 주인공인 백성오( 白 省 五 )의 아버지 중추원 참의 백세필( 白 世 弼 )을 쓸 때 써먹었지 만 그 김사연은 먼저 당신은 동양형의 미남자이네요 라며 나를 치켜세우는가 싶더니 시종 한결 같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을 얼버무릴 뿐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의 지원 에 대해서는 당신도 그 학생들과 꼭 같은 귀중한 세대군요 라고만 말할 뿐, 결국 최후까지 한마디도 언 급하지 않았다. 나는 김사연의 태도에서 오히려 상쾌함을 느꼈지만 신문 지면에 기사가 되 어 나온 것은 거의 전부가 만들어진 것 밖에는 없었다. 이처럼 경성일보 편집국은 매일매일 이 같은 거짓을 만들기 위해 마치 모두가 정신이 돈 것 같았다. 김진섭 매일신보 기자의 증언( 녹취 한국언론사, 대한언론인회, 2001년, 97~98쪽) 하루는 고영한 지사장이 조만식 선생을 인터뷰해 오라고 했다. (중략) 취재 지시를 받 은 나는 조만식 선생으로부터 시국과 관련한 어떠한 논평이나 언급도 받아낼 수 없으리란 걸 알았지만 찾아 나섰다. 마침 평양 시내 따님 댁에 와 계시던 선생께 찾아온 용건을 아뢰 었더니,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겠냐 하시곤 함구로 일관하다가 댁으로 가셨다. 지사에 돌 아와 안계시더라 고 허위 보고할 수밖에 딴 도리가 없었다. 서울서 내려온 일류 기자가 그것도 못 하느냐 고 크게 책망을 들었다. 고영한 지사장은 때마침 들어온 김창문 기자에 게 같은 취재 지시를 했다. 조 선생 댁은 시내에서 40~50리 떨어진 강서( 江 西 )였는데, 김 기자와 나는 함께 나섰지만 이심전심이었다. 중도에서 대포만 마시고 또 빈손으로 돌아와 호된 기합을 받았다. 며칠 뒤, 본사의 독촉이 심했던지, 고영한 지사장이 사진기자 한명을 데리고 직접 나섰고, 사흘쯤 뒤 인터뷰 내용이 신문에 실렸다. 아무리 뜯어봐도 자작 작문 기사였다. 당시의 그 기사가 요즘 일부 사람들에 의해서 조만식=친일파 로 매도되는 꼬투 리가 됐고 그 때 신문 스크랩이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는데 진상은 이러한 것이었다. 격동 기, 전환기에 기자의 처세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하는 것을 실감하는 사례이다. 조국 광 복이 된 후 서울 본사에서 근무하다 김창문과 함께 평양에 갔다. 가는 길에 고영한 지사장 을 만나 지방에만 있지 말고 함께 상경하자고 권했더니 내일 아침에 만나자고 해서 헤어졌 다. 다음날 새벽에 찾아 갔더니 지사장의 어머니께서 우리 애가 어젯밤 자살했다 며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니도 자살할 뚜렷한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 며칠 지나니까 항간에 소문이 돌 았다. 지사 직원 가운데 공산주의자가 한명 있었는데, 당시 경방( 警 防 )단장 직도 겸하고 있 던 고 지사장을 평소 친일파라고 몰아세우며 협박을 일삼아서 괴로워했고, 또 조만식 선생 의 인터뷰 기사 사건으로 해서 많이 자책하는 것을 보았다는 주변의 얘기들이 무성했다

27 이원영 매일신보 정치부장의 증언 ( 언론비화 50편, 한국신문연구소, 1978년, 95~97쪽) 정치부장으로 있던 1944년 어느 날인가 하루는 조선총독부 정무총감과 도서과장이 나를 만나자는 것이었다. 또 무슨 명령이 있으려니 하고 잔뜩 긴장해서 갔더니 그들은 별다른 이 야기도 없이 요정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일반적인 세사( 世 事 )에 관한 것이었 으므로 별다른 것이 아니겠거니 하고 헤어지려는데 도서과장이 나에게 큼직한 취재 활동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부탁이란 소위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을 위해 한국 청년이 전쟁에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한국이 대동아건설에 강력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청년을 고무하는 강연회나 글을 쓰도록 날더러 송진우 안재홍 여운형 홍명희 제씨( 諸 氏 )와 교섭하라는 요지였다. 나는 별다른 저항 없이 그들의 요구를 따르고 말았다. 맨 먼저 계동으로 고하( 古 下 ) 송진우 선생을 찾았다. 매일신보 정치부장이란 명함을 내놓고는 무릎을 꿇고 앉아 선생님, 총독부에서 학생들의 군대 지원을 고무하는 강연이나 글을 써서 신문에 내라고 해서 왔습니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고 말씀을 드리니까 나를 서대문 감옥으로 데려가라지. 나는 글 쓸 줄도 모르고 연설도 할 줄 몰라. 가서 내가 그러 더라고 그렇게 전해요. 하고 보료에 기댄 채 일어나지도 않고 한마디로 거절하는 것이었다. 고하 선생의 당당한 풍채가 놀랍기도 하려니와 나로서도 굳이 글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어 그저 기계적으로 접촉해 본 것 일뿐-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 나오고 말았다. 그 때 고하 선 생의 옷이 파란 색 조끼의 한복차림이었던 것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다음은 당시 평택 진위에 계시던 민세( 民 世 ) 안재홍 선생의 차례였다. 그에게는 정치부의 김 모 기자를 보냈 다. 그런데 김 기자는 그날로 두툼한 원고를 받아가지고 왔는데 그에 의하면 앉아서 기다리 라고 하고 써 주시더라는 것이었다. 여운형 씨에게는 다른 정치부 기자를 보냈다. 몽양 선 생이 동경에 가는 길이라 서울 역에서 만나 차중 인터뷰를 통해 글을 받아 기재했다. 홍명 희 씨에 대해서는 사정이 달랐다. 그의 아들 기문과는 막역한 친구 간 이었으므로 먼저 그 를 만나 총독부의 지시 내용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그는 아버님이 창동에 계시지만 괴산 ( 槐 山 )에 가시고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핑계를 대자고 해서 총독부에는 그렇게 복명( 復 命 )하 고 말았다. 이러한 이야기는 잘못하면 한 개인의 명예에 본의 아닌 누를 끼칠 것이기 때문 에 그 때의 시국이라든지 그 분들의 개인적인 사정 또는 그 밖의 여러 가지 환경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단지 나 개인의 직접적인 체험이기에 적어보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이 러한 극히 부분적인 이야기가 그 분의 생애를 판단하는 자료이기에는 아주 적당치 못하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두려는 것이다. 여운형 선생의 측근 이기형의 증언( 몽양 여운형, 실천문학사, 1984년, 237~238쪽). 이른바 전향문 강제극이 있은 후 경성일보 기자가 와서 5분가량 면회하고 가더니, 여운형 은 성전 완수에 적극 협력하고 나섰다. 특히 청년 학생들은 전쟁터로 나아가 목숨을 바쳐 황은에 보답하라고 소리 높이 권고한다. 운운의 장문 기사를 연 3일간에 걸쳐 연재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것은 여운형을 이용하자는 일제의 새빨간 날조극이었다. 6월 하순 어느 날 아침, 필자는 몽양 자택을 방문했는데, 공교롭게도 그날이 바로 이 엉터리 기사의 첫 회가 발표되던 날이었다. 방바닥에 놓인 경성일보를 들고 필자가 물었다. 선생님, 어찌된 일입니 까? 글쎄 기자가 쫓아와서 몇 분간 이러쿵저러쿵 하고 가더니 저렇게 났구먼 필자도

28 더 묻지 않았고, 몽양도 더 말이 없었다. 조만식 선생의 측근 유기선과 한근조의 증언. 일제는 악랄하게 허위 보도로 조만식 씨 드디어 전향하다 라는 표제 하에 학도병 출정 찬 성, 날인과 자발적으로 유기( 鍮 器 )를 헌납하고 성전( 聖 戰 )에 적극 협력하였다고 대서특필로 보도하고 사진까지 게재하였다. 그러나 일제 주구 외에 이 기사를 믿는 자는 없었다. (유 기선, 황혼의 명상 제5화, 학도병 출정 때의 이야기, 고당 조만식 회상록, 고당 조만식 기념사업회, 조광출판, 1995년, 51쪽) 1943년 말이 아니면 이듬해 초엽 고당은 명의를 도용당하였다. 일제를 지지하는 시국강연 회를 한다 해서 연사로 조만식의 이름을 대서특필하여 벽보를 붙이고 야단법석이었다. 물론 사전에 일언반구의 응락도 없이 권부( 權 府 )의 힘을 빌어 모측에서 고당을 위협하는 계획적 인 음모였다. 이 경우 고당은 어찌해야하는가. 시국 강연 광고는 이미 다 해 놓은 터이요, 일을 꾸민 측에 항의를 한다한들 씨가 먹지 않을 것이었다. 길이 막히면 돌아갈 줄 아는 고 당이다. 그의 슬기는 병원 문을 두드렸다. 꾀병으로 평양 서문통 기홀병원에 입원하였다. 한 2주일간 고당 조만식은 평양 사회에서 그림자를 찾을 길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강연 날짜 는 지났다. 그제서야 그는 태연히 나타났다.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것이다. (한근조, 고 당 조만식, 중앙서관, 1983년, 366쪽) 김흥곤 강현만의 증언( 민족과 하나, 평양, 금성청년출판사, 2003년, 381쪽) 교활한 일제는 총독부 기관지에서 조선말 신문으로 유일한 매일신보에 조선인 전문학교, 대학교 학생들에게 학도병에 지원해 나서라 는 안재홍의 이른바 담화 를 날조해서 발표케 하는 사기 협잡극을 연출해냈다. 신문에는 안재홍의 사진도 실리고 자필서명도 있었는데 그 사진은 옛날 어디에서 찍은 사진을 오려서 낸 것이고 자필서명도 옛날 어느 신문에 난 것을 복사한 것이었다. 이 날조극이 있기 전에 일제 경찰의 고등계형사가 서울 돈암동에서 병 치 료를 하는 안재홍을 찾아와 전향 을 강요하며 학도병제도를 지지하는 담화를 내달라고 하 였다. 그때 그는 팔자 콧수염을 씰룩거리며 이 놈아, 53살이나 된 나를 1년이나 홍원경찰 서에 잡아가두고 이렇게 폐인으로 만들어놓고 그것도 부족해서 또 학병 지지 담화를 강요한 단 말이냐! 당장 내 눈앞에서 썩 사라져라! 라고 을러멨는데 그 일이 있은 다음날에 그런 날 조극이 신문에 실렸던 것이다. 이밖에 본인이 체험한 사실을 기록으로 남긴 학병 출신 등의 증언. 동경서 귀성하는 한인 학생의 대열에 서도록 명령한다. 연락선은 연말의 귀성객을 만재하 고 출항했다. 갑판에 즐비한 우리 한국학생들을 선실 아닌 소음이 요란한 선저의 기관실로 몰아넣고서 일장의 설교를 한다. 그리고 나서 경성일보 한 장 씩을 배포 받았다. 서울의 성 대를 위시해서 각 전문학교에 진학했던 선배 동창들의 사각모 사진 일색이었다. 용약지원했

29 다는 찬사와 아울러 각자의 포부마저 빼지 않고 날조 보도한 것이다. (서석연, 그림자 잃 은 사나이, 120 학병사기 1권, 1987년, 185쪽) 그해 11월 13일, 학생복 차림으로 고향 길에 올랐다. (중략) 아니나 다를까. 연락선내 에서 형사들은 우리 학생들 약 30명을 별실에다 연금하고 갖은 수단으로 학병 지원을 강요 하기 시작하였고 불응이면 징용 영장에 날인하라고 협박하였다. 나는 사령장이 있었기 때문 에 강제 지원은 일단 보류되었으나 그들은 취직을 재고하라 하였다. 그러나 곽 군을 위시하 여 학생 전원이 지원을 강요당하고 말았다. 근심과 초조 속에 연락선은 부산에 도착하였다. 이때 일본 헌병들이 승선하여 우리들의 앞을 가로막고 승선 명부에 각자의 성명을 기입하고 하선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승선 때마다 기입하는 명부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다 같이 성명을 기입하고 하선하였다. 그러나 그네들의 간악한 술책에 빠졌던 것이다. 곽 군과 나는 동래 온천으로 가서 마지막 학생 기분을 내고 돌아오는 도중 명대( 明 大 ) 동창인 지( 池 ) 모군을 만났다. 이 친구가 나를 보자마자 놀라는 표정으로 어이, 자네 학병 가는가? 하면 서 부산일보( 釜 山 日 報 ) 를 내밀며 묻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면서 신문기사를 보니 연락선에 탔던 학생 전원이 수상경찰서에 가서 학병에 지원하였다는 사연의 기사가 아닌가! 승선 명부를 원서로 둔갑시켰구나! 아, 간악한 놈들 우리들을 속였구나, 이놈들! 하고 분해 했으나 그들의 함정에 이미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 신문기사는 나보다 먼저 포항에 배달 되었고 고등계 형사인 김이란 자가 부친을 찾아와 신문기사를 보이면서 아들을 찾았다고 하 며 또 지원을 했으니 지원 승낙서에 날인을 강요하였다. 부친께서는 (중략) 그만 날인 하여 주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나는 학병으로 끌려갔던 것이다. (김영화, 전우여! 지금은 어디에?, 청춘만장, 1 20 동지회 중앙본부, 1972년, 412~413쪽) 일제는 너무나 조직적이었다. 하숙집으로, 학교로, 매일 고향의 집에서 친 전보가 날아들었 다. 그 전보 내용은 모두가 집에서는 승낙을 하였으니 하루빨리 학병을 지원하라 는 것이었 다. 그러나 뒤에 집에 돌아와서 보니 전보 친 일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관계 관청에서 조작으로 만들어 친 전보였다. (윤임술, 특별 고사포 부대의 정체, 위 책 290~291쪽) 정치근(시인 작사가)의 증언(2005년 11월 14일 21세기 문화광장 주최, 친일 음악가 시비 이대로 좋은가 세미나, 한국언론재단 국제회의장, 자료집 19쪽) 소설가 정비석 선생은 숙부로 나는 그 숙부 집에서 중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그 때의 상황 을 비교적 생상하게 기억한다. 일제 말기 명사나 시인들에게 일본 헌병이나 순사가 와서 학 도병에 지원하도록 또 신문에 기사를 쓰도록 협박했다. 2, 3일 생각해 보겠다하면 다시 와 서 다그치고, 처음에는 부탁하지만 나중에는 협박해 반 정도는 불러주고 수식어 몇 자 붙여 서 이름으로 내곤했다. 그 자리에서 자살하지 않는다면 안 쓸 수 없는 절박한 순간들이었 다. 숙부는 네 형제 가운데 마지막이어서 나와 나이 차이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식사를 하 다가도 문을 두드리면 온 식구가 또 왔구나 하며 숟가락을 놓고 벌벌 떨어야 했다. 일본 순

30 사와 우리 순사가 번갈아 보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두 사람이 와서 괴롭혔다.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2009년 9월 7일 녹화)의 전언. - 격동기, 사상적으로 이념적으로 대결하고 갈등하는데 비친 그걸 가지고 실체라고 얘기한 다면 얼마나 우스운 얘기냐. - 육당 선생의 학병 관계된 걸 얘기했지만 인촌 선생에 대해서 70년대 초반일거요. 내가 조교수 돼 가지고니까. 72년이나 73년, 아마 그때 저기를 나가셔서, 현민 유진오 선생님은 정계에 나갔다가 병을 얻으셔서 관두시고 은퇴하고 계실 때야. 붓글씨를 많이 연습하고 계 셨어. 내가 일본 갔다 오고 그럴 적에도 늘 먹도 사다 드리고 선생님, 민족문화창달 이라고 그걸 하나, 민족문화연구소장 때니까 그거 휘호를 하나 써달라고, 지금도 민족문화 연구원 에 있어요, 소장 실에. 그걸 하나 써 달라고 부탁도 드리러 가고. 현직 총장으로, 학생 때 내가 장가들었는데, 그 총장이 학생 장가드는데 주례해 주신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데 해주 셨고, 또 육당 연구 라고 하는 책 처음 낼 때 서문을 써주셨고 내가 그 어른한테 각별한 사랑을 받아서, 그 집 무상출입하는 사람이야. 가서 밥도 얻어먹고, 나중에 정계 저거 할 적 에 비서실장을 하던 박찬세 씨가 잘 알지. 그건. 그래, 한번은 가서, 그때 왜 그랬는고 하 니. 또 학교에서 인촌 선생에 대해서 이 자식들이 좌파 학생들이 인촌 동상 뭐 헐어 낸다고 끌어내린다고 그러고 할 때야. 그땐가, 그 전에 좌파 학생들이 아무튼 학교가 조용할 날이 없었잖아요. 인촌 친일파로 몰고 막. - 그래서 내가 하도 기가 막혀가지고 선생님 뵙고, 선생님, 그 인촌 선생님, 그 저 매일신 문에다가 매일신문이라는 게 조선말로 나오던 경성일보의 자매지야. 독자도 몇 안됐대. 한 몇 천부 찍었다 그래. 거기다 학병 권유하는 그런 글 쓴걸 가지고. 그래 맞아. 그때 최 뭐라 고 하는 사람이 동아일보 뭐지, 한국언론사 인가 뭐 썼는데 거기다가 난리 쳤지. 맞아. 여 하 간에 말이야. 그래, 여쭤보기를 인촌 선생이 그런 학병 권유하는 글을 쓰셨다고 그걸 근거로 해가지고 자꾸 애들이 야단인데 또 하나는 내가 또 그때 같은 시기에 그게 있어. 조지훈 선생님을 좌파 학생들이, 조지훈 시비를 세운다니까 학교에다가, 이걸 반대하고 난 리야. 반대하는 이유가 걸작이야. 조지훈 선생 아버지 조헌영 선생이 월북이 아니라 납치거 든. 제헌국회의원으로. 그리고 그 조지훈 선생 할아버지 조인석 씨가 저, 인민군 들어왔을 적에 당신 아들이 제헌국회의원이고, 손자가 남하해 가지고 민족시인이고 하니깐, 할아버지 를 연행을 했어. 인민위원회에서. 그러니깐 연행당해 가시다가 말이야. 내가 너희 놈들한 테. 그 대단한 분입니다. 그 집안 한양 조씨 집안이 대단해. 그 생가 앞에 개울이 있어 요. 평소 때는 조그만 개울인데, 장마가 질 때는 물이 많이 내려가지. 그리 뛰어내려가지고 자살을 하셨어. 할아버지가. 그걸 알고 좌파 학생들이, 지금 뭐 정계에 누구누구 내가 말은 안하지만 그때 날 뛰던 학생들이요. 지금 국회의원이다 장관이다, 하는. 지난 10년 동안 그 런 사람들, 참 내 속 어지간히 썩힌 사람들이오. 자, 그런데 그 자들이 조지훈 선생 집이 모 두 극우였다고 시비 못 세우게 난리쳐. 그거 세운다고 다 돈까지 모아놨는데, 내가. 그걸 했 다가는 고인한테 더 욕되게 된단 말이야. 그때 내가 마음이 굉장히 화가 났지. 그래서 아마 그거 연장선상으로 인촌에 대해서, 아마 유진오 선생님한테 여쭤본 거 같아. 이제 가만히 기억을 더듬으니깐. 하필 왜 그때 가서 새삼스럽게 그걸 여쭤 봤나. 더듬어서 생각하니까. 조지훈 선생 관계로 해서, 내 직접 은사니까, 또 민족문화 연구소 소장으로 모시고, 내가 총

31 간사를 했고, 그분 돌아가시고 내가 소장을 이어갔고, 학맥이 그렇게 통하니까, 조지훈 선생 님은 친부모와 같은 분이니까. - 그래, 이제 그런 일이 있어서 여쭸더니 이 어른이 인촌 그 어른은 평생 당신 손으로 글 한줄 쓰신 분이 아닐세 그러셔. 학교 소식도 전하면서 좌파 학생들이 그렇게 NL인가? 뭐 하여튼. 지금 짐작도 못하실 거야. 그때 나는 김상협 선생님 총장 하실 적에 이념서클, 문제 서클 지도교수를 전부 맡으라 그러고, 또 김상협 선생님 스피치라이터를 또, 국문과 교수라 고, 그런 거 써오라 하면 맨 날 밤을 홀딱 새우고 그걸 써가고 그랬다고. - 인촌께서는 평생 글 한줄 안 쓰신 분이고, 그걸 전부 내가 대필을 졸업식사라던가, 어디 가서 뭐 말씀 하실 때가 있으면 전부 나한테 대필을 시키셔서 내가 썼는데, 내가 쓴 사실이 없네. - 그때 단말마적인 뭐 일제 전쟁 말기가 돼 가지고, 막 아무나 이름대가지고 인촌 뿐 만아 니라 써달라고 그래서 써주는 사람은 당연히 써주고, 다행이고. 써달라고 말도 못 붙일 사 람이 있고, 써달라고 하면 난 모르겠네 그러고 알아서 하게 하는 사람이 있고. 이렇게 여 러 계층이 있을 것 아냐? 인촌 선생께도 써달라고 많이들 갔었겠지. 근데 인촌이 나한테 쓰라는 말 하신 적이 없어. 난 쓴 기억이 없어. 근데 그때 매일신문 건이니까 아능 조용만 씨가 잘 알 걸세 그러시더라고. - 조용만 씨가 구인회 멤버고 매일신문 학예부장을 했어. 경성제국대 영문과 나와 가지고. 우리 고대 영문과 교수야. 나도 직접 배우고 그랬지. 잘 알지. 그래서 그때 그 어른이 이미 은퇴했을 거야. 정년퇴임 하셨을 거야. 그 어른이 따님 댁에 계시다가 수원에 그 무슨 실버 타운에도 계시고 그랬어. 그때 그 어른을 어떻게 어떻게 해서 만나 뵙도록, 서울서, 그 어른 이 잘 가시던 다방이 그, 저, 종로 네거리에서 안국동 쪽을 올라가다보면 아, 그 무슨 다방 이더라. 잊어버렸다. 옛날 노인네들 모이는 그 2층에, 그리 약속을 해서 가서 여쭤봤어. - 선생님, 현민 선생을 뵀는데, 인촌의 그 학병 권유하는 연설을, 연설문을 현민이 안 쓰 셨대요. 그러면 누가 썼습니까? 그랬더니, - 글쎄 뭐 그때 말기가 돼가지고 말이야. 난리 치는데. - 그 저 선생님, 아능 선생님께 여쭤보면 잘 알걸세 그러시는데. 선생님 좀 말씀 해주시 면 좋겠다 그랬더니 그 양반이 말을 좀 더듬는, 그걸 뭐라 그러나. 눌언은 아니고. 눌자가 말씀언( 言 ) 변에 안 내( 內 )자 하면은 말더듬을 눌( 訥 )자야. 눌언은. 글쎄, 그거도 눌언이라고 할까? 말을 좀 더듬으셔. 또 급하시고. - 내가 지금도 눈에 선해요. 어휴, 그 얘기 왜 또 꺼내. 아휴 그러니깐 그거에 대한 많은 언론, 그 자신이 언론계에 있었으니깐 시달렸던 모양이야. 그런 얘긴 왜 또 꺼내? 왜 또 꺼내? 그러셔. - 아닙니다. 이것은 제가 개인적으로 꼭 좀 확인해야 할, 저기. 그래서 현민께 여쭤봤더니 아능 선생님께 가서 여쭤보면 잘 아실 거라고 그래서 뵙자고 한 겁니다 그랬더니 처음엔 사양하시다가 하, 참, 말 마 그때, 그 매일신문이라는 건 그냥 뭐 총독부 기관지니까, 그 말 맞아 몇 등급이 있단 이 말이야. 말도 못 붙여 볼 사람, 꼭 필요하지만. 말 붙이면 거절 할 사람, 또 가서 이런 걸 요청을 하면, 부탁을 드리면 에이, 난 모르겠네. 당신네가 알아 서 하게. 이렇게 하는 사람, 그 다음에 알았네 하고 다른 사람 시켜서 써서 보내주는 사람, 여러 계층이 있는데. 인촌은 쓰지도 않을 분이고, 써달라고 해도 안 써주실 분이고, 그러니 까 그때 급하고 뭐 신문은 나가야되는데 매일매일 오더가 떨어진다는 거지. 누구 이름으로 받아내라, 누구 거 받아내라 신문사에선 받아 낼 수가 없으니까 학예부 기자, 뭐 서너 명

32 인데, 그거뿐만 아니라, 사회부 기자 뭐 해가지고, 순전히 앉아서 그것만 썼다는 거야. 맨 날 B29가 공습 온다고, 여기 폭격은 안했지만, B29 지나가면 공습경보 내려가지고, 말이지. 응? 다 엎드려 있어야 되고 말이지, 방공호 찾아가야 되고, 그런 판국에 무슨 신문 제작이 고 뭐고 제대로 되겠나? - 앉아 가지고서 전부 그런 거 대필해가지고 누가 썼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러니깐 개인 말을 하기가 모르진 않으셨을 거야. 나는 안 썼고, 물론 자기는 안 썼고. 아까 말한 김모 씨라는 사람도 그중의 하나지, 그 사람이 전부 쓴 것도 아닐 거야. 난 알아. 그때 분위기를 조용만 선생을 통해 잘 들었거든. 그때 매일신문 안에 분위기를. 최남선, 자열서( 自 列 書 ), 자유신문 1949년 3월 10일자 2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반민( 反 民 ) 해당의 조건은 대강 이상과 같은 듯하나 남이 보기에는 또 얼마나 많은 죄목이 있을지 모른다. 혹시 태평양전쟁 말기에 나의 명자( 名 字 )를 도용한 위조 담화 내지 마음대로 변조 개작한 신문 원고 강연필기 중에 또 어떠한 것이 있을지 모 르되 이러한 것에 대한 책임까지는 내가 질 수 없으며 (중략) 또 혹 전쟁말기의 모종 단체 참가 같은 것을 선전하는 이가 있으되 평생에 문화단체에 열명( 列 名 )하기도 싫어함을 아는 이는 아는 바이며 다시 운위할 것 없는 일이다. 임종국, 빼앗긴 시절의 이야기 (민족문제연구소 편, 2007년, 249쪽)의 기술. 총독은 이름 있는 인사들에게 꼭두각시 노릇을 강요하면서 온갖 협박을 자행하였다. 협박 에 굴하지 않으면 명의를 도용해 가면서 허위로 날조한 학병 권유문을 발표했다. 도 피고의 주장처럼 기사 조작에 대한 구체성이 없는 정황에 대한 이야기로서 개인의 생각 을 나열한 것이며, 기사 조작에 대한 사실 관계를 따지는데 적절하지 않은 것 인지, 피고는 위 14건의 증언 등이 어떤 점에서 기사 조작에 대한 구체성이 없는 정황에 대한 이야기 이며 개인의 생각을 나열한 것이며 기사 조작에 대한 사실 관계를 따지는데 적절하지 않 은 것인지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하여 답변해야 할 것입니다. 피고는 또 매일신보 편집국장 정인익은 반민특위 조사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변명으로 일관하였다. 예컨대 정인익은 언론인으로서 어떤 이념 하에 행동하였는지 신문하는 특위조 사관에게 민족영원불멸이라는 신념 하 에서 동포에게 희망을 주도록 노력했다 고 반민특위 조사 때 밝혔으나 그가 해방 직전까지 사무국장으로 재직한 조선언론보국회가 어떤 단체인 지 살펴보면 그 말이 허위진술임은 자명하게 드러난다. 정인익은 반민특위 신문 당시 자기 합리화와 변명에 급급한 답변을 하였다. 따라서 원고가 기사 조작의 근거로 예를 든 정인익 에 대한 이야기는 신뢰하기 힘든 자료라고 할 것이다 고 했는데 조선언론보국회가 어떤 단체인지와 정인익의 반민특위 심문조서와는 별개의 문제인데 피고

33 는 조선언론보국회에 대한 자료를 장황하게 인용하고 있으며 정인익의 반민특위 진술 요지 와 취지는 민족영원불멸이라는 신념 하에서 동포에게 희망을 주도록 노력하려 했는데 시국 이 악화되며 차차 나중에 가서 심하게 된 때부터 곤란하여졌다 는 것입니다. 매일신보사 시대에 여전히 민족적 정신 하에 행동하였는가 는 심문에 정인익은 본인 마음만큼은 여전히 민족정신을 갖고 있었지만 그 당시의 환경과 제 조건이 본인으로 하여금 의사대로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당국의 지시대로 복종하였으니 그 자체가 벌써 반민 행위라고 자인하는 바이올시다 고 자백하고 있는데 피고는 무슨 이유로 변명으로 일관해 신뢰하기 힘든 자료 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인익의 피의자 신문조서 중 아래의 관련 부분을 다시 한 번 검토해 주기 바랍니다. 정인익의 피의자 신문조서 중 관련 부분. 반민특위 조사기록, 정인익( 鄭 寅 翼 ) 피의자 신문조서(제1회) 작성일 4282년(1949) 8월 11일 (중략) 문 신문계에 투신한 동기 如 何. 답 그 당시의 본인이 생각하기를 곤경 속에 있는 민족을 구원할 책임을 느끼고 교육계에 종 사코자 하였으나 본인 취미와 취직 조건이 신문사를 희망케 된 까닭입니다. 문 언론인으로서 어떠한 이념 하에 행동하였는가. 답 민족영원불멸이라는 신념 하 어떠한 難 事, 어떠한 압박이 가하여 지더라도 민족정신만 보존한다면 반드시 조국광복의 날이 오리라는 맘에서 동포에게 희망을 주도록 노력했습니 다. 문 그 당시 그러한 신념 하에서 행동하기에는 곤란하였을 터인데. 답 그 당시 총독정치가 문화정치라 하여 언론계에 대하여 그렇게 압박이 심하지 않은 탓으 로 前 衛 기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강연 기타로 민족정신을 흥기시키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차차 나중에 가서 심하게 된 때부터 곤란하여졌습니다. (중략) 문 전술 조선, 중외 양( 兩 ) 일보사 근무 시에 양심적 가책을 받은 사실이 없는가. 답 그 당시 본인은 민족적 입장에서 최선을 다 하였으며 光 州 學 生 事 件, 普 天 敎 事 件, 6 10 萬 歲 事 件, 제1차 共 産 黨 事 件, 高 麗 革 命 黨 事 件 같은 것은 본인이 주로 취급하여 왜 관헌에게 암암리 위협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34 문 매일신보사에 근무한 사실이 있는가. 답 사실이 있습니다. 단기 4262년(1929) 2월부터 同 社 사회부장으로 취임하였습니다. 문 매일신보사에 何 年 근무하였던가. 답 해방 전까지 전후 약 17년간 근무하였습니다. 문 매일신보사 시대에 여전히 민족적 정신 하에 행동하였는가. 답 본인 마음만큼은 여전히 민족정신을 갖고 있었지만 그 당시의 환경과 제 조건이 본인으로 하여금 의사대로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당국의 지시대로 복종하였으니 그 자체가 벌써 반민 행위라고 자인하는 바이올시다. (하략) 반민특위 조사기록, 정인익 피의자 신문조서(제2회) 작성일 4282년(1949) 8월 12일 (중략) 문 총독부의 황민화정책의 가장 선봉적인 기관지 매신사의 편집국장에 취임하였을 시의 심 경 如 何. 답 한 말씀으로 말하자면 同 夜 가 번민이었으며 죄송스러운 일이라고 느끼면서도 다년의 습 관과 생계상 문제가 그 직무를 맡아보게 된 것입니다. 문 그 당시의 매신지가 민족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생각해 봤는가. 답 민족의 앞길을 막는 것이라고 가책을 안 받은 날이 없었습니다. 변명 같으오나 오히려 매 신의 존재를 없애는 것이 옳다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이야기한 적도 있습니다. 문 그러면 매신이 민족에게 害 는 될지언정 利 는 못 된다는 것을 알면서 왜 그러한 중책을 맡아 봤는가. 답 뜻있어도 나타내지 못하는 불구자 같은 심경 속에서 평범한 날을 보내게 되었을 뿐입니 다. 문 그러한 생활이 결국 오늘의 반민자로서 신문을 받게 된 것 같은데 현재의 심경은 如 何. 답 본인의 과거를 악몽과 같이 통감하고 있으며 신 국가에 처한 국민의 1인으로써 또 언론 인의 한 사람으로서 민족의 이름아래 처단을 받게 된 것을 본인이 신생할 기회를 얻은 것이 라고 기쁘게 생각하는 바이올시다. 문 편집국장으로써 주로 어떠한 집무를 하였던가. 답 보통 편집국이란 신문 편집의 최고 행정이니만큼 본인의 집무도 그와 같이 규정된 것입 니다

35 문 집필하여 게재한 사실 如 何. 답 본인은 사회부장 취임 이후부터 집필한 일이 없으며 더구나 편집국장이란 원칙으로 붓을 들 필요가 없으니 본인은 그러한 사실이 없습니다. 문 사회부장 취임 후 집필을 중지하였다함은 무슨 이유인가. 답 취재기자들이 갖고 오는 기사를 본인이 수정하는 일만 하여도 벅차고 또 당시의 본인 심 경이 일종의 허무적 기분이 들어서 집필하여 발표하고 싶은 의사가 없었습니다. 문 매신사가 범했던 민족적 죄과를 누구가 책임질 것인가. 답 본인 현재의 심경으로는 그 책임 추궁할 전에 본인의 과거에 맡은 편집국장으로써의 가책 을 받기가 바쁩니다. 문 조선언론보국회에 관계한 사실 如 何. 답 단기 4278년(1945) 5월에 당국에서 본인을 사무국장으로 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문 언론보국회란 무엇이며 관계케 되었던 동기 如 何. 답 소위 대동아전의 최고조에 달한 때니만큼 문화인의 단속을 목적으로 총력연맹이 당국과 짜서 설립케 된 것인데 회장이 최린( 崔 麟 ), 이사장이 경성일보 편집국장 그리고 매신 편집 국장이 사무국장이므로 본인이 자연 취임케 된 것입니다. 문 언론보국회에서 특기한 사건이 없는가. 답 전쟁 의식 앙양을 목적으로 회원들이 강연하러 지방 순행한 사실이 있습니다. 본인이 그 런 곳에 갔던 일이 없습니다. 문 신문받는 현재 심경 如 何. 답 할 말이 없습니다. 右 본인에게 열람시킨바 相 違 가 無 하다하고 서명 날인함. 공술자 정인익 印 4282년[1949] 8월 12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 이병홍( 李 炳 洪 ) 印 입회인 서기 서정욱 印 피고는 원고가 인용한 아래와 같은 백철 당시 매일신보 기자의 기록, 즉 말이 특별지원이지 실지는 전부를 강제 동원한 것이다. 1943년 11월 19일부의 매일신보에 큰 타이틀로서 걸려 있는 제목에 지원 않으면 비신민( 非 臣 民 ) 이란 것이 협박하듯이 나와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일본 당국은 다시 소위 지도급의 인사들이란 것을 동원하여 학병 권 유의 시국강연을 시켰다. 나중은 일본 동경까지 그 인사들이 파견되어 명치회관이라는 데서

36 학병 권유 강연들을 하는 식의 광극( 狂 劇 )을 벌이기도 했다. (중략) 이 전쟁 말기에 학 도병의 동원이 성화같이 재촉될 때의 그 가두의 풍경, 그것은 마치 어린 양떼들이 도살장으 로 끌려가는 가엾은 광경이었다. 이리 몰리고 저리 쫓기고 피할래야 피할 구석이 없는 것이 그 때 우리 젊은 학도가 당한 봉변이었다. 나는 북경에 있으면서 국내에서 오는 신문을 읽 을 때마다 학도들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떼들의 모양같이 눈앞에 클로즈업되었다. 그래 도 이들은 황은에 감읍하고 있다고 신문기사는 써내고 있는 것이다. ( 속< 續 > 진리와 현 실, 박영사, 1975년, 109~112쪽) 중에서 피고는 일본 당국이 다시 소위 지도급의 인사들이란 것을 동원하여 학병 권유의 시 국강연을 시켰다. 나중은 일본 동경까지 그 인사들이 파견되어 명치회관이라는 데서 학병권 유 강연들을 하는 식의 광극( 狂 劇 )을 벌이기도 했다 는 부분을 인용하여 이것은 당시 지도 급 인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을 말하며, 그것은 분명한 팩트 이다 는 결론을 내리고 있 습니다. 그러나 피고의 주장처럼 지도급 인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 이 글의 분명한 팩트 가 아니라 지도급 인사들을 동원하여 광극( 狂 劇 )을 벌인 것이 이 글의 팩트 입니다. 또 백철 기록의 핵심은 말이 특별지원이지 실지는 전부를 강제 동원한 것이다. 일본 당국은 다시 소위 지도급의 인사들이란 것을 동원하여 학병 권유의 시국강연을 시켰다. 학도들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떼들의 모양같이 눈앞에 클로즈업되었다. 그래도 이들은 황은에 감읍하고 있다고 신문기사 는 써내고 있는 것이다 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통상인의 이해력일 것입니다. 조용만 당시 매일신보 기자의 기록에 대해 피고는 조용만의 회고는 기사 조작과 관계없는 신문사의 풍경과 분위기를 보여주는 대목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조용만은 그 당시의 매일신보 사원들은 그야말로 매신( 賣 身, 몸을 파는 사람 - 원 고 주)해온 사람들이어서 어떻게 하루 신문지면을 만들어 채우면 그만이지 신문을 잘 만들 어보겠다는 열의도, 정성도 없었다. 10시에 나와서 3시 30분까지 신문을 만들어내고 4시만 되면 모두들 나가버렸다. 대단히 편하고 힘 안 드는 직업이었다 (중략) 그때 우리들은 일 본의 식민지 통치아래 있어서 아무 희망이 없었다. 재주가 있고 열심히 일을 해도 지위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대로 일본 사람 아래서 심부름이나 하는 차별대우를 받을 뿐 이었다. ( 경성야화, 도서출판 창, 1992년, 212~213쪽)라고 기록하여 조선인 기자들의 뜻 과는 달리 전쟁 선전선동물을 만들기에 광분하던 매일신보 내 조선인 기자들의 참담한 상황 과 심정을 자조적 표현으로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37 나.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와 매일신보도 검열 당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피고의 주장 원고는 총독부가 매일신보 등이 전쟁동원과 관련한 기사를 과장, 날조했다는 이유로 검열 을 할 리가 없는 것 으로 단정 짓고, 정진석 교수의 논문을 인용하여 매신의 압수는 제작 상의 실수나 부주의에 의한 것으로 민간지의 필화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가 발간한 조선출판경찰월보 를 보면 원고의 주장이 일방적 인 주장이고 사실이 아님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원고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의 보도 행태 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하고, 검열의 목적과 대상이 중요한 것 이라고 하였는데, 이 에 대하여 피고가 조선출판경찰월보 를 확인한 결과 중일전쟁 이전부터 매일신보와 경성일 보 등이 총독부 경무국으로부터 기사를 검열당하고 치안방해 혐의로 차압, 삭제, 주의처분 등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일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37년 5월분에 대하여 매일신보 가 치안방해로 1회 주의 처분을 받고 경성일보가 1회 삭제 처분을 받았으나 중일전쟁(1937 년 7월 7일 일어남)이 개시된 7월분부터는 매일신보가 치안방해로 1회 차압, 2회 삭제, 1회 주의 처분을 받고, 경성일보가 삭제 1회 처분을 받는 등 전쟁동원과 관련한 기사 에 대하 여 총독부의 검열에 대한 처분이 증가됨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검열 현상은 중일전쟁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1937년 8월분에 대해서도 매일신보가 차압 1회, 삭제 2회 처분되 었으며, 1938년 2월분에 대해서도 매일신보가 3회 삭제 처분되었다. 이어 1938년 7월분에 대해서도 매일신보가 3회 삭제, 1회 주의 처분되었는데, 그중 자로 천진역( 天 津 驛 ) 일대를 사수( 死 守 ) 라는 제하의 기사와 관련해 응소( 應 召 ) 날짜가 차지사항( 差 止 事 項 ) 저촉 에 해당되어 삭제 처분되었다. 1938년 8월분에 대해서는 매일신보가 치안방해로 1회 차압, 2회 삭제처분을 받았다. 또한 같은 해 9월분에서는 경성일보가 자로 세 궁민계급( 細 窮 民 階 級 ) 에 대한 기사 중 중일전쟁의 최중( 最 中 )에서 민중에 불안한 생각을 포 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삭제처분 되었고, 매일신보가 9. 2.자로 장로회 고등과장회의에서 협 의 란 기사가 치안을 방해하였다는 이유로 삭제 처분되었다. 1938년 10월분에 대해서는 매 일신보가 치안방해 기사로 1회 삭제 처분되었고, 경성일보가 1회 삭제 처분되었다. 또한 경 성일보가 11월분에서 자로 삭제 처분되었는데, 이유는 군산( 群 山 )의 용사전사( 勇 士 戰 死 ) 라는 제하의 기사 중에서 응소일이 명기되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응소일은 군사상 비 밀에 해당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원고가 주장하였던 총독부가 매일신보 등이 전쟁 동원과 관련한 기사를 과장, 날조했다는 이유로 검열을 할 리가 없는 것 이라는 주장 은 총독부 경무국의 조선출판경찰월보 를 살펴볼 때 이유가 없다. 특히 원고의 주장처럼 매신의 압수는 제작상의 실수나 부주의 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치안방해 및 중일전쟁의 최중( 最 中 )에서 민중의 불안한 생각을 포지 한 경우 차압 및 삭제의 대상이 되었음을 볼 때 원고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반론> 피고는 총독부가 매일신보 등이 전쟁 동원과 관련한 기사를 과장, 날조했다는 이유로 검열 을 할 리가 없는 것 이라는 주장은 총독부 경무국의 조선출판경찰월보 를 살펴볼 때 이유

38 가 없다 고 했으나 (아래)와 같이 치안방해 혐의로 차압, 삭제, 주의처분 등을 받은 매일 신보와 경성일보의 내용은 제작상의 부주의, 차지사항(일종의 엠바고)을 어긴 것과 부대 명, 부대장 이름, 응소일 등 사소한 군사사항과 관련된 것입니다. 경성일보 자 세궁민계급( 細 窮 民 階 級 ) 에 대한 기사 1건과 매일신보 자 장로회 고등과장회의에서 협의 란 기사 1건 등 두 건이 삭제 처분됐으나 제목으로 보아 별달리 의미가 있는 기사는 아닙니다. 따라서 피고는 총독부 경무국의 조선출판경찰월보 를 살펴볼 때 원고의 지적이 이유가 없 는 것 이 아니라 피고의 주장이 이유 없는 것 입니다.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와 매일신보가 삭제, 보류된 것과 동아, 조선일보가 검열 당해 삭제, 압수, 무기정간까지 당한 것은 비교할 수 없는 일입니다.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와 매일신보는 검열당한 것이 아니라 총독부의 감독관으로부터 지도 를 받은 것입니다. 피고가 두 건의 사소한 사례를 들어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와 매일신보를 높이 평가하여 두둔하려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아래) * 조선출판경찰월보 제105호(1937년 5월분) - 경성일보 1937년 5월 5일자 = 석간 천람( 天 覽 ) 마술( 馬 術 )의 기사 중 어애마( 御 愛 馬 ) 화 초( 華 初 ) 를 백설( 白 雪 ) 로 오기해 근정( 謹 訂 ) 처분 * 조선출판경찰월보 제107호(1937년 7월분) - 매일신보 1937년 7월 14일자 전승기원과 축하회 준비 의 전승 의 문자(삭제) - 매일신보 1937년 7월 15일자 신궁대전( 神 宮 大 前 )의 기원 이라는 제목 기사 중 20사단 축하 만세 의 문자(삭제) - 경성일보 1937년 7월 15일자 = 조선신궁 대 광장에서 무운장구의 기원제, 대야연( 大 野 宴 ) 관민 2천 만세를 고창이라는 제목의 기사 중 제20사단 만세 라고 한 것은 조선군의 출 동을 추지( 推 知 )할 수 있어 이에 삭제 처분 * 조선출판경찰월보 제108호(1937년 8월분) - 매일신보 1937년 8월 7일자 = 장사( 將 士 ) 위문과 남천예기( 南 川 藝 妓 ) 라는 제목(삭제) * 조선경찰월보 제114호(1938년 2월분) - 매일신보 1938년 2월 4일자 = 국민정신총동원 주간행사의 기사 중 천안( 川 岸 ) 의 자구

39 (삭제) - 매일신보 1938년 2월 9일자 = 도의선양정신의 앙양 (3) 도의 중심의 장( 章 ) (삭제) - 매일신보 1938년 2월 24일자 = 천안병단장( 川 岸 兵 團 長 ) 자구(삭제) - 경성일보 1938년 2월 20일자 = 국기( 國 旗 ) 중에 기재된 지금은 비상시 총동원 선전 백 ( 百 ) 보다 실력 하나 의 자구(삭제) - 경성일보 1938년 2월 26일자 = 3면 본란 4단째 기사 중 이 상태를 お 隣 れみ 는 お 憐 れみ 의 오식이므로 이에 근정( 謹 訂 ) 처분 * 조선경찰월보 제119호(1938년 7월분) - 매일신보 1938년 7월 2일자 = 소련 게베우 대장의 명 이라는 제목의 사설은 아직 기사 차지( 差 止 ) 중이므로 삭제 처분 - 매일신보 1938년 7월 9일자 = 천안( 川 岸 ) 장군 개선 환영 이라는 제목 표제 중 개선 의 자구(삭제) - 매일신보 1938년 7월 23일자 = 황실 기사의 게재 개소( 箇 所 ) 부적절(주의) - 매일신보 1938년7월 30일자 = 과병( 寡 兵 )을 써서 선투( 善 鬪 )해 천진역 일대를 사수 라는 제목의 기사 중 7월14일 은 응소월일이므로 차지( 差 止 )사항에 저촉되므로 삭제 처분 - 경성일보 1938년 7월 4일자 = 입영인사 광고 중 평양 제등( 齊 藤 )부대 평암대( 平 岩 隊 ) 라 는 자구는 평시편제와 칭호를 달리하는 것으로서 유수대( 留 守 隊 )인 것이 판명되면 본대의 출동 중임을 찰지( 察 知 )할 수 있으므로 이에 삭제 처분 * 조선출판경찰월보 제121호(1938년 9월분) - 매일신보 1938년 9월 3일자 = 석간 제2판 진로가 흔들리는 장로회 고등과장회의에서 협 의 라는 제목의 기사는 치안방해에 해당(삭제) - 경성일보 1938년 9월 14일자 = 석간 시내판 세민( 細 民 )계급의 피를 빠는 중앙 무진( 無 盡 ) 에 메스 라는 제목 표제 중 세민계급의 피를 빠는 이라는 것과 내용 중 가입자인 세민계급 의 궁상을 틈타고, 피해액은 50만원을 돌파하는 모양, 또한 연말 등의 세민계급이 금융에 압박되는 때 그 궁상을 틈타 어음할인 등 부정사실이 있는 것을 탐지 운운의 기사는 사변 한가운데 있는 민중에게 불안한 생각을 가지게 해 총후의 일치를 문란시키는 온당하지 않은 것이라고 인정됨(삭제) - 경성일보 1938년 9월 24일자 = 석간 시내판 중대법인 체포 함남갑산군에서 의 기사는 차지사항에 저촉됨(삭제) * 조선출판경찰월보 제122호(1938년 10월분) - 매일신보 1938년 10월 4일자 = 제1면 반도총후 열성에 감사 라는 제목의 기사 중 반도 관 계 출정부대 운운 의 출정 의 자구(삭제) - 경성일보 1938년 10월 6일자 = 남선판 첫 인사 제일선의 암절부대장으로부터 대구부윤 에게 진중소식 이라는 제목의 기사 중 향토 연대장 군기 그리고 전 연대장 의 자구는 표제와 관련하여 대구의 부대는 연대라는 것을 추지( 推 知 )할 수 있고 또 암절부대도 연대라 는 것을 알 수 있음(삭제) - 경성일보 1938년 10월 27일자 = 석간 제2면 고 복견궁박의왕 전하 기사 중 고 왕비 사자 어부궁박공왕 전하 는 고 왕비사자 어부궁박공왕 양 전하 로서 양 자를 누락(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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