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침

Size: px
Start display at page:

Download "지침"

Transcription

1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 선 홍 (부산외국어대학교)

2

3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부산외국어대학교) Ⅰ. 머리말 오늘날의 단일한 세계국제사회는 기독교문명권을 중심으로 한 서구지역국제사회가 근대이후 비서구지역으로 팽창 침략하면서 마침내 세계 전역으로 확대된 것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서구지역국제사회의 전 세계적 확대 팽창과정에서 중동의 이슬람-아 랍어, 인도의 힌두-산스크리트어 그리고 동아시아의 유교-한자 문명권들과 이에 기반한 지역국제사회들이 차례로 붕괴되고 그에 흡수 편입되어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구의 시각이나 논리 가치관 규범 제도 등 곧 서구 문명기준 이 전 세계에 보편화되어 갔으며, 1) 따라서 서구의 중세시대에 대해서는 물론 비서구지역에 대한 평가도 대체로 부정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통상적으로 국제관계는 영토에 기초하고 주권을 가진 정치집단들 간의 관계를 의미 하며, 근대 주권국가를 공인한 1648년 웨스트팔리아조약을 그 기점으로 삼고 있다. 즉 중세 서구의 기독교적 보편주의질서를 붕괴시키고 영토주권을 핵심으로 한 근대 국민국 가를 국제관계의 유일한 행위자로 규정하게 되면서, 국가보다 더 상위의 어떠한 권위체 도 인정하지 않는 이른바 무정부상태 를 당연한 전제로 삼고 있다. 그에 따라 근대 주권국가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국제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와 같 은 국제관계의 근대기원론에 따른다면 국제[International] 라는 말조차 중세시대의 경 우에 사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2) 실제로 영어의 International'이 란 용어는 영국의 공리주의학자 벤담이 1780년의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 에서 처 음 사용하였다. 3) 기존의 국제관계연구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서구중심주의와 몰역사주의 그리고 1) 문명기준에 대해서는 Gerrit W. Gong, The Standard of Civilization in International Society (Oxford: Clarendon, 1984) 참조. 2) Martin Wight, Systems of States (Leicester: Leicester University Press, 1977), pp ; J. L. Holzgrefe, "The Origins of modern international relations theory," Review of International Studies, Vol. 15, No. 1 (1989), pp ) Jeremy Bentham, An Introduc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 (Mineola, N.Y: Dover Publications, 2007), p. 326;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 고정식 옮김 (서울: 나남, 2011), 쪽. 또한 김용 구, 세계관 충돌의 국제정치학: 동양 禮 와 서양 公 法 (서울: 나남, 1997), 40-41쪽 등 참조. 7

4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무정부지향성, 국가중심주의 등이 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4) 오랜 인류역사에서 본다면 근대는 매우 짧은 시기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국제관계 라는 용어가 좀 더 적절한 용어로 대체되지 않는 한 그 연구범위를 고대나 중세시대 나아가 비서구 문명권의 경우까지 확대 사용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통시적이고 포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인류역사상의 국제관계는 수단차원에서 권위형과 강제력형으로, 구조측면에서 상하차등의 수직형과 상호대등의 수평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권위형-수직형 국제 관계의 대표적 사례 중의 하나가 바로 중국이 주도한 유교문명권을 중심으로 형성 유지되어오다가 19세기 중엽부터 말엽까지 서구열강의 침략 팽창으로 붕괴된 동아시아 지역질서였다. 유교문명권의 국제관계에 관한 연구는 1930년대 장팅푸( 蔣 廷 黻, )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겠으며, 5) 그의 지도를 받기도 하였던 미국학자 페어뱅크가 1940년대 부터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1960년대에 중화세계질서(Chinese World Order)라는 분석틀을 제시하여 6) 국제학계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7) 그러나 페어뱅크류의 주장에 대해서 조공 체제라는 말이 전통시대 중국의 대외관계를 전부 망라할 수도 없으며, 이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도 최상의 용어가 아니라며 비판하는 견해들이 대두하였다. 8) 특히 1990년대 이래 미국에서 청대 중국역사를 기존의 한화(Sinicization) 중심의 논의와는 달리 한화와 만주족 특성의 복합적 시각에서 새롭게 볼 것을 강조하는 이른바 신청사(New Qing History) 주장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주장에 대한 비판은 한층 더 적극적인 상황이라 하겠다. 9) 4) Barry Buzan & Richard Little, International Systems in World Histor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pp ) T. F. Tsiang, "China and European Expansion," Politica, Vol. 2, No. 5 (March 1936), reprinted in Immanuel C.Y. Hsu (ed.), Readings in Modern Chinese Histor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71), pp 또한 Chu Djang( 章 楚 ), Chinese Suzerainty: A Study of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China and Her Vassal States, , Ph. D. dissertation, Johns Hopkins University, 1935이 있다. 6) John K. Fairbank & Ssu-yu Teng, "On the Ch ing Tributary System," Harvard Journal of Asiatic Studies, Vol. 6 (1941), pp , reprinted in John K. Fairbank & Ssu-yu Teng, Ch ing Administration: Three Studies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60), pp ; John K. Fairbank (ed.), The Chinese World Order: Traditional China's Foreign Relations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68). 또한 M. Frederick Nelson, Korea and the Old Orders in Eastern Asia (Baton Rouge: Louisiana State University Press, 1945)도 있다. 7) 대표적인 연구로 Immanuel C.Y. Hsü( 徐 中 約 ), China's Entrance into the Family of Nations:The Diplomatic Phase, (Cambridge, Mass.:Harvard University Press, 1960); Mark Mancall, China at the Center:300 Years of Foreign Policy (New York: Free Press, 1984); Key-Hiuk Kim( 金 基 赫 ), The Last Phase of the East Asian World Order: Korea, Japan, and the Chinese Empire,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0) 등이 있다. 8) 비판적인 연구로는 John E. Wills, Jr. Pepper, Guns, and Parleys: The Dutch East Indian Company and China,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74), pp ; idem, Embassies and Illusion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8), Chap. 1; Morris Rossabi (ed.), China among Equal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3); James L. Hevia, Cherishing Men from Afar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1995), Chap. 1 등을 들 수 있다. 9) 계승범, 조선시대 동아시아질서와 한중관계, 동북아역사재단 편(2009), 쪽; 전재성, 사대 의 개념사적 연구, 하영선 손열 엮음, 근대한국의 사회과학개념 형성사2 (서울: 창비, 2012), 47-50쪽; Andre Schmid, "Tributary Relations and the Qing-Choson Frontier on Mount Paektu, Diana Lary (ed.), The Chinese State at the Borders (Bancouver: UBC Press, 2007), pp : Joanna Waley-Cohen, The New Qing History, Radical History Review, Issue 88 (Winter 2004), pp 등 참조. 8

5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국내학계에서는 전해종이 한 중 양국 간의 조공관계 연구를 선도하였다. 그는 고대(A.D. 8)로부터 1894년에 이르는 양국관계를 시대 구분하여, 명 청대의 중국과 고려 조선관계는 매우 의례적이며 전형적인 관계가 성립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조공관계는 경제나 문화적 측면보다는 정치적 요인이 더 중요한 동인이었으며, 한국으로서는 무엇보다 굴욕적인 것이었음은 자명하다 고 지적하였다. 특히 청과의 관계에서 경제적 차원에서는 조선에게 매우 불리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10) 한편 윤영인은 조공제도라는 지극히 관념적인 틀이 근대이전 동북아국제관계사를 이해하는 해석의 틀로서는 한계가 있다면서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조선이 명에 대해 사대정책을 취한 것도 성리학 수용 때문이 아니라 지정학적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라면서, 기본적으로 현실주의와 실용주의 원칙에 따라 대외정책을 추진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11) 최근에도 유교문명권의 국제관계에 대해 국내는 물론 중국과 일본, 서양 등 국내외학계에서 적지 않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12) 특히 국제정치이론을 적용하거나 지역공동체와 연계하려는 시도까지 등장하고 있다. 13) 기존 연구에서 많은 성과들이 이루어지고는 있으나, 문제점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외국학자들은 물론 국내학자들도 서구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와 관련하여 일찍이 이용희는 왕왕 우리는 과거의 선인의 행적을 자주적으로 비판한다 하면서, 과거의 체제와는 수화( 水 火 )의 관계에 있는 유럽의 가치관과 입장에 서서 보는 일이 많지 않을까 14) 라고 지적하였는데, 이러한 문제점은 여전하다고 보인다. 또한 조동일도 국가주의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을 최대의 명예로 여기는 근대의 학문 범위 를 벗어나 근대인의 편견을 시정하고 세계사의 중세를 정당하게 인식하는 연구를 수행해 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15) 나아가 그는 페어뱅크가 10) 전해종, 한중관계사연구 (서울: 일조각, 1970), 제Ⅱ편. 또한 김한규, 천하국가 (서울: 소나무, 2005) 등 참조. 11) Peter I. Yun, Rethinking the Tribute System: Korean States and Northeast Asian Interstate Relations, , Ph. D. diss.,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1998; 피터 윤(윤영인), 서구학계 조공제도이론 의 중국중심적 문화론 비판, 아세아연구, 제45권 3호(2002), 쪽. 12) 최근 연구로는 전재성, 동아시아국제정치: 역사에서 이론으로 (서울: 동아시아연구원, 2011), 4-5장; Takeshi Hamashita( 濱 下 武 志 ), China, East Asia and the Global Economy. ed. by Linda Grove & Mark Selden (London: Routledge, 2008); Anthony Reid & Zheng Yangwen (eds.), Negotiating Asymmetry: China s Place in Asia (Honolulu: University of Hawai i Press, 2009); David C. Kang( 康 燦 雄 ), East Asia before the West: Five Centuries of Trade and Tribute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0); Zheng Yongnian (ed.), China and International Relations (New York: Routledge, 2010) 등이 대표적이다. 기존연구 성과를 소개 평가하는 저술로 국내에서는 동북아역사재단 (편) 한중일학계의 한중관계사 연구와 쟁점 (서울: 동북아역사재단, 2009), 일본에서는 모모키 시로 (엮음), 해역아시 아사 연구입문 (2008), 최연식 옮김 (서울 : 민속원, 2012) 등이 있다. 한편 학술지인 세계정치, 제30집 2호 (서 울대 국제문제연구소, 2009)는 동아시아 전통지역질서 라는 특집호이고, The Journal of American-East Asian Relations, Vol. 16, Nos. 1-2 (2009)과 Journal of East Asian Studies, Vol. 13, Issue 2 (2013)도 각각 이 주제에 관한 특 집을 실었다. 또한 최연식, 조공체제의 변동과 조선시대 중화-사대관념의 굴절: 변화 속의 지속, 한국정치학회 보, 41집 1호(2007), 쪽; 김성규, 미국 및 일본에서 전통중국의 세계질서 에 관한 연구사와 그 특징비 교, 역사문화연구, 32집(2009), 쪽; 김진웅, 조공제도에 관한 서구학계의 해석 검토, 역사교육논 집 50집(2013), 쪽 참조. 13) 남궁곤, 동아시아 전통적 국제질서의 구성주의적 이해, 국제정치논총, 제43집 4호 (2003), 7-27쪽; 周 方 銀 高 程 ( 編 ), 東 亞 秩 序 : 觀 念, 制 度 与 戰 略 (북경: 사회과학문헌출판사, 2012) 등 참조. 14) 이용희, 사대주의. 한국민족주의. 노재봉 (편) (서울: 서문당, 1977), 171쪽. 9

6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편찬한 책이 무엇보다 외교관계의 실제상황 측면에서만 다루고 정신문화적 의의를 밝혀 고찰하는 작업은 하지 못하였으며, 또한 책봉 조공관계의 전형이라 할 명대를 고찰대상으로 삼지 않았고, 뿐만 아니라 다른 문명권과의 비교연구를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였다. 16) 이들 모두 역사적 맥락에서 접근해야 하며, 무엇보다 중세문명의 특징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전통시대 동아시아국제관계의 실상을 제대로 보려면 실제상황과 함께, 그에 못지않게 정신문화적 측면의 이해가 중요함은 물론이다. 즉 유교사상 특히 예규범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핵심적인 선행과제라 할 수 있다. 페어뱅크류의 조공체제론에서 이러한 노력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정주의 접근에서의 문제는 더욱 크다고 하겠다. 후자의 경우 무엇보다 청대를 주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또한 주로 청조와 몽고 중앙아시아 등 비유교권과의 관계에 치중하고 있다. 17) 그러면서 조공체제가 단순히 상징적인 것일 뿐 현실적으로는 별다른 중요성이 없다거나, 아예 그 존재를 부정하기도 한다. 18) 대부분의 국제관계이론 특히 주도적인 현실주의이론에서는 어느 국가든 무정부적인 국제사회에서 자국생존을 위해서는 다른 국가들과의 끊임없는 권력추구 경쟁이 불가피하며, 이러한 국제관계의 본질은 보편적이고 영속적이며 변함이 없다고 주장한다. 19) 그러나 서구사회에서도 중세와 근대의 차이에서 보듯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국제관계의 변화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20) 예컨대 근대이후 서구국제관계에서는 주권규범이 보편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으나, 21) 전통시대 동아시아국제관계에서는 이와는 매우 다른 규범이나 제도가 오히려 정당성을 누렸던 것이다. 즉 근대의 서구국제관계가 기독교의 영향력을 벗어나 주권국가들의 공존을 정당화하면서 무력에 의한 상호견제를 중요시하며 근대국가의 무력중심과 군사주의에 15) 조동일, 책봉체제, 문명권의 동질성과 이질성 (서울: 지식산업사, 1999a), 15, 18쪽. 16) 조동일, 연구방향 전환을 위한 구상, 하나이면서 여럿인 동아시아문학 (서울: 지식산업사, 1999b), 63쪽. 17) 잘 알려져 있듯이 청조는 유목민인 만주족이 세웠던 왕조로, 통치의 필요상 유교를 수용하였지만 정통성 있는 유교왕 조로 보기는 어렵다고 하겠다. 청에 대한 최근 연구로는 구범진,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서울: 민음사, 2012) 등이 있다. 18) James L. Hevia, Tribute, Asymmetry, and Imperial Formations: Rethinking Relations of Power in East Asia, Journal of American-East Asian Relations Vol. 16, Nos.1-2 (2009), pp. 69; Yuan-kang Wang, Explaining the Tribute System: Power, Confucianism, and War in Medieval East Asia. Journal of East Asian Studies Vol. 13, Issue 2 (2013), pp 또한 David C. Kang( 康 燦 雄 ), East Asia before the West: Five Centuries of Trade and Tribute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0), pp 참조. 19) Tim Dunne & Brian C. Schmidt, Realism, in John Baylis, Steve Smith & Patricia Owens (eds.), The Globalization of World Politics, 5th ed.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Chaps. 5, 7; Kenneth N. Waltz,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 (Readinng, MA: Addison-Wesley, 1979). 20) 이러한 주장으로는 이용희, 일반국제정치학(상) (서울: 박영사, 1962); Adam Watson, The Evolution of International Society: A Comparative Historical Analysis (London: Routledge, 1992); Buzan & Little (2000); Raymond Cohen & Raymond Westbrook (eds.), Amarna Diplomacy: The Beginning of International Relations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00); Anja V. Hartmann & Beatrice Heuser (eds.), War, Peace and World Orders in European History (London: Routledge, 2001); Richard Ned Lebow, A Cultural Theory of International Relation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8) 등이 대표적이다. 21) 주권에 관한 최근 연구로는 박상섭, 국가 주권 (서울: 소화, 2008); Robert Jackson, Sovereignty: Evolution of an Idea (Cambridge: Polity, 2007) 등이 있다. 10

7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기반을 두고 있는데 반하여, 유교권의 경우는 사회구조나 국내정치는 물론 국제관계 즉 군주들 간의 관계에서도 원칙상으로 유교예법의 권위와 명분을 중심으로 신분적 예교관념에 기반하였던 것이다. 22) 전통시대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 유지되어왔던 동아시아지역국제사회는 시대에 따라 지리적 범위나 구체적 양상에서 다양한 변동이 있기도 하였음은 물론이나, 대체로 북방유목민이나 중앙아시아지역 나아가 동남아국가들까지 아우르기도 하였다. 23) 그러나 그 핵심적 구성 국가는 중국과 함께 유교와 한자를 공유하였던 한국 유구 월남과 일본 즉 유교문명권이 핵심지역이었음은 물론이다. 24) 유교문명권은 물론 중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지만 여타 구성국들 모두의 참여로 이루어졌으며, 이들 나라 는 각각 별개의 역사공동체를 형성하여 독자적인 역사를 전개하면서 동시에 다른 나라 들과 더불어 동아시아 세계 라는 한 차원 높은 역사공동체를 형성하여 공동의 운명과 문화를 서로 나누었던 것이다. 25) 즉 유교문명의 공통성 보편성과 함께 이질성 독자성을 공유하면서, 하나이면서 여럿 인 세계였음을 유의해야 한다. 26) 이 글에서는 전통시대 동아시아국제관계를 유교사상 특히 예규범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기존의 국가중심보다는 문명권 차원에서, 근현대적 시각보다는 중세적 시각에서 나아가 역사적 맥락에서 접근해 보고자 한다. 우선 2장에서는 중세의 일반적 특징과 함께 유교사상의 주요 내용인 천명사상과 대일통사상, 화이사상 그리고 예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예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3장에서는 사대자소 의 문제를 예 라는 차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전통시대 중국과 그 주변국들이 사대문제를 어떻게 인식하였는지를 알아본 후, 4장에서는 책봉 조공과 관련한 내용을 살펴보고, 5장에서는 평가를 해봄으로써, 책봉 조공제도가 단순히 기능적이거나 상징적인 것을 넘어 정체성 내지 존재이유와 다름없는 유교예치질서 27) 의 일부분이었음을 밝혀보고자 한다. 22) 이용희(1977), 쪽. 이미 이용희가 지적한 대로 사대체제에서 말하는 천자의 권위, 상국의 우위론도 허구 이 지만, 또 세력균형의 국가평등설도 현실에 비춰보면 허구 임은 물론이다. 크래스너도 주권규범이 실제와는 괴리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결국 조직화된 위선(organized hypocrisy) 이라며 주권원칙의 위선적 측면을 지적하였다. Stephen D. Krasner, Sovereignty: Organized Hypocris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9), pp ) 동아시아역사에서 북방민족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구도 적지 않은데, 예컨대 이삼성,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Ⅰ (서울: 한길사, 2009) 등 참조. 24) 1831년 월남사절로서 청나라에 갔던 李 文 馥 은 동문의 나라 곧 華 의 범위에 중국 월남과 조선 일본 유구 다섯 나라를 들고 있다[ 天 地 間 同 文 之 國 者 五 中 州 我 粤 朝 鮮 日 本 琉 球 亦 其 次 也 ]. 최귀묵, 월남의 중국 사행문헌 자료개 관 및 연구동향 점검, 대동한문학 34집(2011), 쪽. 한편 일본은 유교문명권에서 처음으로 이탈하였는데, 탈아입구 를 주장한 福 澤 諭 吉 은 인의예지는 外 見 의 虛 飾 에 지나지 않으니 버려야 하고 고래의 구습에 사로잡 혀 있는 조선과 중국 두 惡 友 를 사절 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유교문명의 내용을 부정하고 나아가 문명권의 외연을 파괴하였다. 조동일, 세계 지방화시대의 한국학 6: 비교연구의 방법 (대구: 계명대학교출판부, 2007), 391쪽. 25) 김한규, 전통시대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세계질서, 역사비평 통권50호(2000), 283쪽. 26) 조동일, 하나이면서 여럿인 동아시아문학 (서울: 지식산업사, 1999b); 山 室 信 一, 여럿이며 하나인 아시아 임성 모 옮김 (서울: 창비, 2003) 등 참조. 27) 이를 홍콩학자 황지련은 천조예치체계( 天 朝 禮 治 體 系 ) 라 부르고 있다. 黃 枝 連, 天 朝 禮 治 體 系 硏 究 ( 上 中 下 卷 ) (북경: 중국인민대학출판사, 1992, 94, 95). 11

8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Ⅱ. 중세 유교사상의 주요 내용 1. 중세문명권의 국제 관계 인류역사상 존재하여온 다양한 형태의 국제관계에 대하여, 일찍이 이용희는 권위형과 강제력형으로 양분하였다. 권위형의 경우는 국제관계가 동일 권위관념에 의하여 규정되는 경우인데, 이러한 정치권위는 본질상 초국가 적이 아닐 수 없으며, 또 따라서 권위가 타당하는 범역은 한 개의 초국가적인 국제사회를 형성한다. 그런 고로 이러한 국제권위가 통용하는 국제사회에 있어서 나라가 지니고 있는 성격은 유아독존적 근대국가와는 전연 유형이 다르지 않을 수 없으며, 또 형식으로는 서로 마치 형제자매국가인 양하다. 그리고 국제권위가 지배하는 국제사회 속의 국가관계 혹은 국제 정치는 본질상 계층적이며 서열적인 정치관계에서 이루어지며, 따라서 주권사상 같은 정치신 화가 용납될 여지가 없다 고 지적하며, 중세시대의 기독교사회나 이슬람사회 그리고 불교 유교권 내의 국제관계 를 그러한 예로 들고 있다. 즉 근대국가의 국제관계로 대표되는 강제력형이 서로 다른 권위관념 속에 상호 배타적이며 적대적이고 또한 나 남 이 첨예하게 구별되는 차별관이 근본 특징이며, 권위가 통용되지 않으므로 국제관계의 핵심이 주로 강제력에 있는데 반하여, 권위형의 국제관계는 무엇보다 초국가적인 정치권위 아래 계층적이고 서 열적인 정치관계가 이루어졌으며 따라서 주권개념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역설하였다. 28) 일찍이 마이네케도 서구 중세에 이르러 새로운 보편종교가 등장하면서 국가도 준수해야 하는 보편적 도덕률을 만들었고, 개인들에게도 내세적 가치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도 록 만들었다고 하였다. 즉 영웅주의를 포함한 세속적 가치들은 쇠퇴하게 되었으며, 나아 가 게르만적 법체계와 기독교원리가 결부되어 국가를 크게 중시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물론 중세에도 국가는 존재하였으나 종교나 신법의 아래에 있어 결코 최상의 지위에 있 던 것이 아니었으며, 한마디로 정치나 국가이성이 조금도 인정되지 않았다고 지적하였 다. 29) 28) 이동주(용희), 국제정치원론 (서울: 장왕사, 4288[1955]), 쪽. 한편 영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였던 와이트는 국제사회의 양대 유형으로 고대 그리스나 근대 유럽처럼 주권적 구성국들 간의 상호 승인에 기초하는 국제국가체제 (international states-system)와, 페르샤제국과 같이 제국 중심부와 그 주변 속국들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종주국가체제 (suzerain state-system)를 들고 있다. 영국의 외교관이자 학자인 왓슨은 정치체들 간의 관계를 네 부류로 나누어, 독립 (independence)과 제국(empire)이 스펙트럼의 양극에 있고 그 사이에 패권(hegemony)과 지배(dominion)가 위치한다고 하였다. Wight (1977), pp ; Watson (1992), pp ) Friedrich Meinecke, Machiavellism: The Doctrine of Raison d Etat and Its Place in Modern History (Boulder: Westview Press, 1984[1957; 독일어 초판 1924]), p. 27; 프리드리히 마이네케, 국가권력의 이념사, 이광주 옮김 (서울: 민음사, 1990), 59-60쪽.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 )는 세속의 지상국가를 인간원죄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만들어진 부자연스럽고 과도기적인 비상국가로 이해하며, 방어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보았다. 즉 국가는 전적으로 교회에 봉사해 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신국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서구중세를 지배하는 사상이 되었다. 박종대, 중세 의 평화관, 서강대 철학연구소 (편), 평화의 철학 (서울: 철학과 현실사, 1995), 76-86쪽; 최상용, 평화의 정치사 12

9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중세시대의 최대 특징은 씨족적이며 신화적 정치사상과 지역국가적 특성이 강조되던 고대나 또는 특수적이며 국가주의적인 근대와는 다르게, 하나의 보편종교가 각 문명권을 독점하였으며 따라서 보편적이고 초국가적인 권위가 동시에 개별 국가의 정치를 정당화하는 정치권위로서 관념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무엇보다 중세의 각 문명권에서 초국가적 문명권의식이 탄생하였고, 또한 하나의 통일제국이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즉 세계국가의 출현과 이를 정당화하는 유일한 국교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고대는 사라지고, 새로운 역사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30) 구체적으로 중세 유럽에서는 단일한 기독교세계의 단일한 제국이라는 관념이 지배하여, 제국은 명분상 신의( 神 意 ) 에 의한 보편적인 정치체로 존재하였으며, 사실상의 지배가 어떠하든 간에 그 보편성과 통치의 명분은 유지되었던 것이다. 31) 이슬람권이나 유교권에서도 압도적으로 강대한 국가가 그 권역의 중심이 되어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중심세력으로 군림하였다. 이에 따라 이러한 단일한 중심세력의 존재를 관념적으로도 정당시하여, 통치의 정통사상을 낳게 하였다. 물론 역사적 현실에서는 이러한 단일하고 압도적인 중심세력이 붕괴하여 상하위계적인 국제질서가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분열 시기는 시간적으로 보더라도 안정시기에 비할 바가 못 되었으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들의 관념 속에서도 그러한 분열시대가 이례적이며 과도적이며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는 사실이다. 32) 또한 중세에는 정치의 목적이 각 문명권에서 이상적으로 여겼던 즉 덕성스러운 인간을 만드는 것이었으며, 국가의 목적도 윤리적 종교적 또는 형이상학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33) 뿐만 아니라 중세 유럽에서는 주권국가들이 등장한 근대와는 달리, 공적인 것과 사적인 분야 나아가 국내적인 것과 국제적인 분야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34) 중세 유럽에서 군주의 최대 의무는 신의 평화 내지 기독교공동체의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었으며, 35) 아직 국가이익 개념은 등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즉 영토를 기반으로 하는 근대 주권국가의 성장과 함께 상 2판 (서울: 나남, 2006), 63-76쪽; F. Parkinson, The Philosohy of International Relations (Beverly Hills: Sage Publications, 1977), pp ) 이용희, 정치와 정치사상 (서울 : 일조각, 1958), 2편 1-2부. 조동일(1999a)도 중세의 특징은 자기중심주의의 고대나 민족주의의 근대와는 달리, 보편주의라고 지적하였다. 31) 이용희, 일반국제정치학(상) (서울 : 박영사, 1962), 113, 270, 280쪽. 32) 이용희(1962), 113쪽. 33) 강정인 엄관용, 군주론 (파주: 살림, 2005), 2장; Mark V. Kauppi & Paul R. Viotti, The Global Philosophers (New York: Lexington Book, 1992), p.152. 정치관념에 대하여는 이용희(1962), 48-50쪽 참조. 마키아벨리 ( )가 종교에 종속되어 있던 정치의 독자성을 주장하고 군주에게도 기존의 윤리도덕적 규범으로부터 벗어나 이 익지향적으로 행동하길 요구하면서, 근대정치학이 시작되었다. 34) Ronald J. Deibert, 커뮤니케이션과 세계질서 조찬수 역 (서울: 나남, 2006), 44쪽; Joseph R. Strayer, On the Medieval Origins of the Modern State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0), pp. 27, 83; Holzgrefe (1989), pp ; John Gerard Ruggie, Constructing the World Politics (London: Routledge, 1998), pp , ; Hendrik Spruyt, The Sovereign State and Its Competitors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4), Chap. 3; Benno Teschke, The Myth of 1648 (London: Verso, 2003), pp ) 이용희(1962), 쪽; W. 울만, 서양중세 정치사상사, 박은구 이희만 옮김 (서울: 숭실대 출판부, 2000), 60, 150 쪽; Garrett Mattingly, Renaissance Diplomacy (Boston: Houghton Mifflin, 1955), pp , ; Robert Jackson, Sovereignty (Cambridge: Polity, 2007), pp 참조. 13

10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국가이성주의(Raison d État) 에 기반한 국가이익 관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36) 뿐만 아니라 중세의 법은 만드는(made) 것이라기보다는 발견되는(found) 37) 즉 신에 의해 주어진(given) 것이었다. 이슬람권의 경우, 이슬람이 종교이자 국가 라는 전통적 정교일원론은 그야말로 변할 수 없는 신앙으로 절대신의 법(Shari a)의 실현과 확대를 목적으로 하는 초국가적 종교사회로서, 이슬람지역(dar al-islam)과 이교도의 적지역(dar al-harb)을 명백히 구별하는 국제사회의식을 가졌다. 즉 세속적 통치보다는 종교가 중시되어 성법이 국가보다 우선하며, 이슬람종교의 유지가 바로 국가의 핵심기능이었다. 정부의 제1차적 목적은 국가보다는 신앙의 방어와 보호였던 것이다. 38) 또한 이슬람법도 절대신이 만든 것으로, 인간은 다만 이를 확인 해석 정리 설명해내는 것이 주 임무일 뿐이었다. 39) 끝으로 중세의 또 다른 특징은 상하위계질서였다는 사실이다. 기독교권의 경우 인간의 양심이나 신앙 등 영적문제를 다루는 교회는 교황과 대주교-주교 등의 위계구조로 되어 있고 나머지 세속문제는 신의 권위가 신성로마황제에게 위탁된 것으로 인정되었는데, 봉건제에서 알 수 있듯이 황제와 국왕-지방영주 등의 상하위계질서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40) 예컨대 교황은 신의 이름을 빌어 국제평화의 수립이나 조약 협정 위반 시의 정신적 제재 그리고 외교교섭 상의 중재개입 거중조정 등에 이르기까지 지대하고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예컨대 교황의 인준이나 윤허가 없으면 세속군왕 간의 전쟁행위나 평화교섭 또는 국제회의 등 일체의 공식 활동은 국제적 정당성이나 공신성을 부여받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41) 이슬람권에서도 각국은 명분상 동등한 것이 아니라 군주의 호칭에서 알 수 있듯이, 종주국을 중심으로 하는 상하위계적인 세계였다. 42) 즉 예언자 무함마드의 대리인이자 이슬람문명권 전체의 유일한 존재인 칼리파(khalifa)는 이슬람신도공동체의 세속적인 것과 종교적인 양면을 동시에 통치하고 관장하는 수장으로, 술탄이나 지방 군주들보다 상위에 있다고 인식하였다. 43) 이와 같은 중세적 특징은 대체로 유교문명권에서도 36) 이용희(1962), , 쪽; 프리드리히 마이네케, 국가권력의 이념사, 이광주 옮김 (서울: 민음사, 1990), 서 론; Kauppi & Viotti (1992), pp. 128, 139; Rodney Bruce Hall, National Collective Identit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9), Chap ) George H. Sabine, A History of Political Theory, 4th ed. (Hinsdale, Ill: Dryden Press, 1973), pp ) Ann K.S. Lambton, 중세 이슬람의 국가와 정부, 김정위 옮김 (서울: 민음사, 1992), 서론, 2장; 손주영, 칼리파 制 史 (서울: 민음사, 1997), 393쪽 등 참조. 39) 손주영(1997), 29-30쪽. 이슬람국제관계에 대해서는 하병주, 이슬람문명권의 국제관계사상, 권선홍 외, 비서구문 명권의 국제관계사상 (부산: 부산외국어대출판부, 1998), 쪽; Majid Khadduri, War and Peace in the Law of Islam (Baltimore: Johns Hopkins Press, 1955); AbdulHamid A. AbuSulayman, Towards an Islamic Theory of International Relations (Herndon, VA: International Institute of Islamic Thought, 1993) 등 참조. 40) 이용희(1962), 쪽; Jeremy Larkins, From Hierarchy to Anarchy: Territory and Politics before Westphalia (New York: Palgrave, 2010), chaps 봉건제에 대해서는 진원숙 편역, 서구의 봉건제도 (대구: 계명대학교출판부, 1985); 나종일 편, 봉건제 (서울: 까치, 1988); Susan Reynolds, Fiefs and Vassals (Oxford: Clarendon Press, 1994) 등 참조. 41) 김홍철, 외교제도사 (서울: 민음사, 1985), 104, 116쪽; R. F. Wright, Medieval Internationalism (London: Williams & Norgate, 1930), pp , ; Arthur Nussbaum, A Concise History of the Law of Nations, rev ed. (New York: Macmillan, 1954), pp ) 이용희(1962), 233쪽. 14

11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그대로 나타난다고 하겠다. 2. 유교문명권의 주요 사상 유교문명권의 경우, 다른 문명권들로부터 상대적인 고립 속에서 일찍부터 독자적인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또한 대륙이라는 지형적 조건과 정착형 농경사회 그리고 혈연중심의 위계구조 의 종족사회였다는 사실도 유교문명권의 특성을 가져다준 요인들이라 하겠다. 유교문명권의 기본 구조와 특성에 대하여 이용희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이 권역의 정치양식은 유교의 정교( 政 敎 )관념에 유래하고 있으며 국내의 법질서나 지배질서가 당 명률계( 唐 明 律 系 )나 충효사상에 입각한 가부장적인 전제이듯이 국제정치적 질서는 예교( 禮 敎 )를 본으로 하되, 권역을 막연히 천하( 天 下 ) 라 하여 천명( 天 命 )을 받드는 중조( 中 朝 )의 천자( 天 子 )의 덕이 미치는 범위로 관념된다. 이 천하 는 그것이 중조의 문화가 미치는 터 이며, 예교의 명분( 名 分 ) 이 유지되어야 하는 곳이며 또 신분적인 유교의 예( 禮 )사상을 따라 그 구조가 서계적( 序 階 的 )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예교의 질서가 통행하는 천하 안에 존재하는 상 하( 上 下 )와 서차( 序 次 )의 명분 을 규율하는 제도가 소위 사대자소( 事 大 字 小 ) 의 예( 禮 ) 로서, 거기에는 반드시 조근( 朝 覲 )과 빙문( 聘 問 ), 공헌( 貢 獻 )과 사뢰( 賜 賚 ), 봉삭( 奉 朔 )과 책봉( 冊 封 ) 등이 따르는 것이라고 여겨졌으나 44) 즉 천하는 천명을 받은 천자의 덕이 미치며 예교명분이 유지되는 공간으로, 국가 간의 관계에도 사대자소의 예가 적용되며 이는 구체적으로 조공과 회사, 책봉과 봉삭 등의 예 로 제도화되었던 것이다. 45) 유교문명권의 국제관계는 기본적으로 사상적 차원에서 중국 스스로 지역적 및 정치 적으로 천하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우수한 문명의 원천이라고 자부하며 아울 러 중화와 이적(비한인)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중화(화이)사상과 함께 천명과 대일통사 상 등을 포괄하는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중국과 그 주변의 국가들 간의 관계를 사대자소 의 예적 질서로 규정하고 현실에서는 책봉 조공제도가 운용되었다. 물론 이러한 사상이 나 제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장구한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왔으며, 따라서 시대나 국가 지역에 따라 그 실제 양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음은 물론 이다. 46) 43) 칼라파에 대해서는 손주영(1997); Thomas W. Arnold, The Caliphate (Oxford: Clarendon, 2000[1924]) 등 참조. 44) 이용희(1962), 71-72쪽. 45) 사대자소관계가 명분상 예교의 질서 이므로 이미 지적하였듯이 국내정치에서도 이러한 예교질서를 국내 질서로 공인 하였던 것이고, 따라서 국제체제와 국내체제는 본질상 구별될 수 없는 것 이었다. 이용희 (1962), 59쪽. 46) 예컨대 중국 역대왕조의 한족 여부 또는 유교화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었으며, 주변 조공국들의 경우에도 중국과의 지리적 원근이나 정치적 또는 사회경제적 여건 특히 유교문명의 수용 정도에 따라 적지 않은 편차가 존재하였다. 대체 15

12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여기서는 유교문명권의 국제관계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던 천명사상과 대일통사상, 화 이사상, 그리고 이들을 포괄하는 유교의 예사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천명사상과 대일통사상 유교문명권에서는 무엇보다 천( 天 ) 곧 자연 을 우주만물의 원천으로 설정하여, 그것을 궁극적인 준거로 인생의 모든 길[ 道 ]을 설정하였다. 47) 즉 인간 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존재인 천지의 덕을 본받고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겼다. 따라서 인간이 이상으로 삼는 세계는 하늘[ 天 ]과 땅[ 地 ]과 사람[ 人 ]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세계이며, 이를 위해서는 위로 하늘의 도[ 天 道 ] 리[ 天 理 ]를 이어받고 아래로 만물의 정( 情 )을 살펴 얻어 그러한 능력을 갖춘 훌륭한 사람[ 聖 人 ]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하였다. 한마디로 내성외왕( 內 聖 外 王 ) 수기치인( 修 己 治 人 ) 을 이상으로 삼고, 자신을 비롯하여 가정 국가 천하 모두 가 함께 이상적 경지를 추구해나가는 것이 유교의 기본적 특성이었다. 48) 뿐만 아니라 유교권에 서 하늘[ 天 ]은 우주만물을 주재하는 최고의 신으로서 비할 데 없는 위력을 지닌 절대 존재였으 며, 인간 사회를 다스리는 것도 하늘의 뜻을 받아야만 된다고 여겼다. 인간세상의 최고 통치자 는 바로 하늘의 아들 곧 천자( 天 子 )라고 일컬었다. 천자는 또한 하늘의 대리인이며 하늘과 인간의 중개자이기도 하였다. 49) 서경 홍범편에서는 천자는 백성의 부모가 되어 천하의 왕이 된다[ 天 子 作 民 父 母 以 爲 天 下 王 ] 고 하였고, 예기 곡례하편에서도 천하에 군림 통솔하면 천자라 한다[ 君 天 下 曰 天 子 ] 고 하였다. 공자도 오직 천자만이 하늘로부터 명을 받는다 50) 라 하면서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땅에는 두 임금이 없다 51) 고 말하였다. 이처 럼 천자는 천명을 받아 천하를 다스리는 지고무상의 존재인 만큼, 천하 또한 천자의 소유라고 하였다. 즉 시경 소아편 북산장에서는 드넓은 하늘 아래 왕의 땅 아닌 곳이 없고, 온 땅 끝까지 왕의 신하 아닌 사람이 없다[ 溥 天 之 下 莫 非 王 土, 率 土 之 濱 莫 非 王 臣 ] 고 하였다. 하나의 통치자 곧 천자가 천하를 다스려야 한다는 사상은 자연스럽게 대일통( 大 一 統 )사상 으로 이어졌다. 즉 모든 곳이 왕의 땅이고 모든 이가 왕의 신하 라는 왕토왕신 사상은 대일통사상의 초보적 형태였다. 중국 역사상 최초로 통일을 이룬 진시황이 문자와 수레바퀴, 도량형 등을 통일시킴으로써 대일통 실현의 구체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어 한나라 무제 로 중국과의 거리가 멀고 유교문명의 수용 정도가 약한 나라일수록 명목상으로만 책봉 조공관계를 유지한 채, 경제적 이익 등 자국의 실익을 추구하였던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하겠다. 47) 김충열, 중국철학사 (서울: 예문서원, 1994), 58-60쪽. 48) 김충열(1994), 68-75쪽. 또한 김능근, 유교의 천사상 (서울: 숭실대학교출판부, 1988); 풍우, 동양의 자연과 인간 이해: 중국의 천인관계론 김갑수 옮김 (서울: 논형, 2008); 溝 口 雄 三, 개념과 시대로 읽는 중국사상 명강의 최 진석 옮김 (서울: 소나무, 2004) 등 참조. 한편 유럽에서도 중세에는 신이 자연법칙과 인간의 정치세계 사회질서까지 도 절대적으로 지배하였으나, 근대가 되면서 신과 인간이 분리되어 신의 영역은 인간 내면의 도덕적인 부분에만 국한 되어가는 이른바 세속화(secularization) 과정으로 나아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49) 이춘식, 사대주의 (서울: 고려대학교출판부, 1997), 쪽; 김충열(1994), , 쪽; 周 桂 鈿, 중국철 학, 문재곤 외 옮김 (서울: 예문서원, 1992), 제1장. 50) 예기 表 記 : 唯 天 子 受 命 於 天. 51) 예기 坊 記 : 天 無 二 日 土 無 二 王 家 無 二 主 尊 無 二 上. 맹자 만장상편 4장에도 天 無 二 日, 民 無 二 王 이란 공자 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예기 상복사제편에서도 하늘에 두 해가 없고 땅에 두 왕(천자)이 없고 나라에 두 군주 가 없고 집에 두 가장이 없으니, 이는 반드시 한 사람이 다스려야 한다는 것[ 天 無 二 日 土 無 二 王 國 無 二 君 家 無 二 尊 以 一 治 之 也 ] 이라 하였다. 16

13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때 동중서( 董 仲 舒 )는 유교를 국교로 채택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하였으며, 무엇보다 대일통사 상을 크게 발전시켰다. 즉 그는 천자는 하늘로부터 명을 받고 제후는 천자로부터 명을 받는 다 52), 오직 천자만이 하늘로부터 명을 받고 천하는 천자로부터 명을 받는다 53) 고 하여, 대일통사상을 적극 주장하였다. 대일통은 정치적 통일과 사상적 통일을 포함하는데, 동중서는 춘추 의 대일통이야말로 천지의 변하지 않는 원칙[ 常 經 ]이며, 고금의 보편적인 도리[ 通 誼 ] 54) 라고 역설하였다. 천명이나 대일통사상이 후대에도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예컨대 명나라가 건국되고 홍무제 가 즉위하였다는 사실을 고려에 알리는 문서에서 송나라가 천하를 잘못 다스려 하늘이 그 왕조를 단절시켰다. 원나라는 우리 족류가 아니나, 천명으로 중국에 들어와 주인이 되어 백여 년이 지났다. 짐은 금년 정월에 신민들이 추대 하여 황제 자리에 오르고, 천하의 호칭을 대명( 大 明 )으로 정하고 연호를 홍무( 洪 武 )라 하였 다. 55) 라고 하였다. 즉 이민족인 원나라의 중국 통치까지도 천명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또 한 명 태조 주원장은 황제가 정무를 보는 정전을 봉천전( 奉 天 殿 )이라 칭하였으며, 모든 조서( 詔 書 )에는 봉천승운( 奉 天 承 運 ) 이라는 4글자로 시작한다는 규정을 두었는데, 이 는 황제가 행하는 모든 행동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행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였다. 56) 명나라가 안남이나 일본 점성( 占 城 ) 유구 등에 보낸 문서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옛날 제왕이 천하를 다스림에, 무릇 해와 달이 비추는 곳은 멀고 가까움이 없이 누구나 똑같이 사랑하였다. 그러므로 중국은 안정되고 사방 이적들은 제자리를 얻 게 되었다. 57) 또한 명 성조는 짐이 천명을 받들어 천하 군주가 되매 오직 만방의 사람들이 모두 제 자리를 얻기만 바랄 뿐 58) 이라 하였으며, 청나라가 조선에 보내온 국서에서도 천하 국가들은 모두 하늘의 명으로 건립된 것 59) 이라 하였다. 고려 말의 유학자 이색은 하늘을 대리하여 일을 행하는 자를 천자라 일컫고, 천자 를 대리하여 봉해진 땅을 나누어 다스리는 자를 제후라 일컫는다 60) 고 하였다. 고려가 52) 춘추번로 순명 제70: 天 子 受 命 於 天 諸 侯 受 命 於 天 子. 53) 춘추번로 위인자천 제41: 唯 天 子 受 命 於 天 天 下 受 命 於 天 子. 54) 한서 권56, 동중서전. 55) 고려사 권41, 공민왕 18년 4월 임진; 명태조실록 권37, 홍무 원년 12월 임진. 56) 吳 晗, 朱 元 璋 傳 (천진: 백화문예출판사, 2000), 152쪽. 57) 명태조실록 권37, 홍무 원년 12월 임진; 권38, 홍무 2년 정월 을묘; 권71, 홍무 5년 정월 갑자. 58) 명태종실록 권111, 영락 8년 12월 정미. 59) 청태종실록 권3, 천총 원년 5월 경오: 天 下 諸 國 皆 天 之 所 命 而 建 立 之 者. 60) 목은집 周 官 六 翼 序 : 代 天 行 事 者 曰 天 子, 代 天 子 分 理 所 封 者 曰 諸 侯. 17

14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명나라의 건국과 주원장의 황제 즉위를 축하하는 표문에서도 명이 건국한 것은 천명( 天 命 : 景 命 )을 받은 것으로서, 중국 황제의 정통을 이었다고 하였다. 61) 조선에서도 천명이 나 천자의 책봉을 받아 나라를 세운 것[ 受 命 立 國 ]을 지극히 당연하고 떳떳한 일이라 여 겼다. 예컨대 태조 이성계는 백관들이 추대하여 왕위에 오르기를 권하자 예로부터 제 왕의 일어남은 천명이 있지 않으면 되지 않는다 며 덕이 없어 감당하기 어렵다며 거절 하기도 하였다. 62) 조선왕조의 설계자라는 정도전은 우리나라의 역대 왕조 가운데 오직 기자만이 천자(주나라 무왕)의 명을 받아 조선후( 朝 鮮 侯 )에 봉하여졌으므로 명분이 가장 바로 선 왕조이며, 이로부터 중국의 번국이 되어 사대관계를 맺게 된 것을 매우 자랑스 럽게 생각하였다. 이러한 의식은 조선시대의 성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하였다. 63) 유학자 권근도 무릇 제후가 나라를 이어 받는데 반드시 천자에게 명을 받는 것 또한 예의 상경( 常 經 ) 64) 이라 하였으며, 태종 때 사간원의 상소에서도 전하께서 천자의 명 을 받들어 나라를 가지셨다 65) 고 하였다. 한편 태종 이방원은 하늘에는 두 해가 없 고 왕위에는 두 임금이 없다 66) 고 하였고, 세종 연간에 대신들 역시 무릇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백성에게는 두 임금이 없다 67) 고 하였다. 퇴계 이황은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백성에게는 두 임금이 없다. 춘추 의 대일통은 곧 천지 의 떳떳한 도리이고 고금의 이치이다. 대명( 大 明 )은 천하의 종주국으로, 바다 모퉁 이 해가 뜨는 곳 어디를 막론하고 신하로서 복종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다. 68) 고 하였다. 송시열도 춘추 에서 강목 까지 한결같이 대일통을 주장하고 있다. 대개 대통이 분명하지 못하면 인도( 人 道 )가 어지러워지고, 인도가 어지러워지면 나라가 뒤따라 망하는 것 69) 이라 하였고, 영조 때 이무 역시 춘추 의 대일통의 의는 천 지를 버티고 만고에 뻗어, 하루라도 없어질 수 없는 것 70) 이라고 강조하였다. 조선 후 기의 대표적 위정척사파였던 이항로는 더 나아가 하늘에는 두 상제( 上 帝 )가 없고 마 음에는 두 인군( 人 君 )이 없다 71) 고 까지 하였다. 이처럼 천명사상과 대일통사상은 조선 에서도 신봉되었던 것이다. 한편 중용 1장에서는 하늘이 명하신 것을 성이라 일컫고 이 성을 따르는 것을 61) 고려사 권41, 공민왕 18년 5월 갑진. 또한 김순자, 한국중세 한중관계사 (서울: 혜안, 2007), 52-53, 쪽 참조. 62) 태조실록 권1, 원년 7월 17일 병신. 63) 한영우, 조선전기 사회사상연구 (서울: 지식산업사, 1983), 28쪽. 64) 조선태종실록 권12, 6년 8월 24일 경술: 凡 諸 侯 之 承 國 必 受 命 於 天 子 亦 禮 之 經 也. 65) 조선태종실록 권36, 18년 8월 9일 병술: 殿 下 承 天 子 之 命 而 有 國. 66) 조선태종실록 권34, 17년 7월 10일 계해: 天 無 二 日 尊 無 二 主. 67) 조선세종실록 권117, 29년 9월 3일 임진: 夫 天 無 二 日 民 無 二 王. 68) 퇴계집 권8, 서계수답 예조답일본국좌무위장군원의청 69) 조선효종실록 권19, 8년 8월 16일 병술. 70) 조선영조실록 권51, 16년 5월 15일 갑인. 71) 이항로, 화서집, 김주희 역(서울: 대양서적, 1973), 90쪽(화서아언 권3, 神 明 ): 天 無 二 帝 心 無 二 君. 18

15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도라 일컫는다[ 天 命 之 謂 性 率 性 之 謂 道 ] 면서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 라 하였는데, 주희는 도를 날마다 일이나 사물마다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이치[ 理 ] 라면서 마음에 갖추어져 있어 사물마다 있지 않음이 없고 때마다 그렇 지 않음이 없어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라 해석하였다. 72) 한대의 동중서는 도의 위대한 근원은 하늘에서 나온다. 하늘은 변하지 않고 도 역시 변하지 않는다 73) 고 하였으며, 주희도 이러한 견해를 계승하고 있다. 74) 일찍이 관중도 하늘은 자신의 본래 법칙을 바꾸지 않는 다 75) 고 하였으며, 북송의 사마광은 천지는 여전하며 일월은 변함이 없으며 만물은 마찬가 지며 본성은 옛날과 다름없는데, 어찌 도만 변할 리가 있겠는가? 76) 라며 도의 불변성을 강조 하였다. 청말의 왕도( 王 韜 )는 만세토록 변하지 않는 도는 공자의 도 라 하였고, 정관응도 도는 근본이다. 도는 변하지 않는다 고 하였다. 77) 이러한 관념은 조선에서도 마찬가 지였다. 예컨대 정도전은 도의 위대한 근원은 하늘에서 나온다 며, 도는 사물마다 존재하며 어느 때나 그러하다고 하였다. 78) 또한 중종 연간에도 도의 위대한 근원은 하늘에서 나와 마음에 갖추어지고 만사에 흩어지니, 천지를 통하여 한 가지 원리이고 만물을 통틀어 한 가지 본체 79) 라 하였다. 이처럼 도는 우주만물의 최고 주재자인 천으로부터 유래하였기에, 절대성 과 불변성 및 편재성을 구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순자는 도가 있으면 나라가 존재하고 도가 없어지면 나라가 망한다 80) 고 하였고, 맹자도 하늘의 뜻에 따르는 자는 생존하고 거슬리는 자는 망한다 81) 라 고 하였다. 조선에서도 나라는 망할 수 있어도 의리는 망할 수 없다 82), 하늘의 이 치를 거스르면 반드시 망한다 83), 나라는 망해도 도는 망하지 아니 한다 84) 고 여겼 던 것이다. 85) 이와 같이 유교문명권에서 천이나 도는 인간세상의 존망과도 직결되며, 따 라서 나라보다 더 근본적인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나아가 인간사회의 모든 제도는 전적 으로 천도 를 본받아 만든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예컨대 주례 에서는 천지와 춘 하추동 사계절의 순서에 따라 국가의 예의와 정무를 관장하는 천 지 춘 하 추 동 관의 육관( 六 官 )을 두었다. 한편 리는 본래 옥을 다듬는 것 에서 시작하여, 선진시대에는 도덕의 준칙으로 의미가 72) 중용 1장 주: 道 者 日 用 事 物 當 行 之 理. 73) 漢 書 권56, 董 仲 舒 傳, 頁 : 道 之 大 原 出 於 天 天 不 變, 道 亦 不 變. 74) 중용 1장 주. 75) 관자 형세편: 天 不 變 其 常. 76) 司 馬 溫 公 文 集 권74, 朱 日 耀, 전통중국정치사상사 정귀화 옮김 (부산: 신지서원, 1999), 430쪽 재인용. 77) 李 宗 桂, 文 化 批 判 與 文 化 重 構 (서안: 섬서인민출판사, 1992), 76쪽. 78) 三 峰 集 권9, 佛 氏 雜 辨 佛 氏 昧 於 道 器 之 辨, 頁 9. 79) 조선중종실록 권95, 36년 4월 2일 무오. 또한 37년 11월 12일 무오; 38년 11월 1일 신축 등 참조. 80) 순자 군도: 道 存 則 國 存 道 亡 則 國 亡. 81) 맹자 이루 상, 7장: 順 天 者 存 逆 天 者 亡. 82) 조선선조실록 권66, 28년 8월 23일 계해: 國 可 亡 義 理 不 可 亡. 83) 조선고종실록 권3, 3년 9월 11일 정묘: 逆 天 理 者 必 亡. 84) 劉 秉 憲, 晩 松 集 附 郭 鍾 錫 疏 : 國 可 亡 道 不 可 亡. 총성의, 근대한국 지식인의 대외인식 (서울: 성신여대출판부, 2000), 219쪽 재인용. 85) 권선홍, 전통시대 동아시아국제관계 (부산: 부산외대 출판부, 2004), , 쪽 참조. 19

16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확대되었으며, 송대 성리학에 의해 천지만물의 최고 근원으로서 우주자연의 최고 본체이자 인륜도덕의 최고 준칙으로 간주되어 그 근본성과 보편성이 한층 강조되었다. 86) 한마디로 유교사상에서 도와 리는 우주만물의 궁극적 본체이자 인륜도덕의 최고 준칙이었 던 것이다. 87) 그러나 도나 리는 추상적인 것이었던 만큼, 현실의 인간세계에서는 구체적인 예규범으로 구현되어져야만 하였다. 2) 화이사상 중국인(화하족, 뒤에 한족)들은 황하 중하류지역을 중심으로 일찍부터 농경문화를 발전시 키는 한편, 청동기 제련이나 한자 및 예제문화의 창제 등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발전을 거듭하였으며, 그에 따른 문화적 자부심이나 자존의식이 자연스럽게 발생하였다. 더욱이 이러 한 의식이 지리적 관념과 결합됨으로써 그들 자신이야말로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천하의 중심을 이룬다는 관념으로 확대되었고, 이로부터 중화(화이)사상이 발생하여 중국인들 나아 가 유교문명권의 대외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88) 다시 말하여 중국은 지대물박 ( 地 大 物 博 )이란 표현에서 보이듯이, 광대한 땅과 자급자족적인 경제 그리고 오랜 역사와 찬란 한 문명을 이루었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주변 종족 국가들에 대하여 일종의 우월감을 갖게 되었다. 또한 중국은 지리적으로 여타 고대 문명의 중심지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거나 격리되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지리적 문화적 중심이라는 인식이 더욱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89) 또한 주나라 사람들은 그들 문화의 선진성 우월성에 대한 자부심으로 스스로를 화 ( 夏 ) 화하( 華 夏 ) 등의 용어로써 부르고 이민족을 이만융적( 夷 蠻 戎 狄 )이라 하여, 문화적 으로 낙후 열등하다는 곧 경멸과 폄하의 의미를 지닌 명칭으로 비하시켜 버렸다. 이처 럼 주대에 이르러 무보다는 문을 숭상하며 고도로 화려한 자신들의 문화를 형용하기 위 하여 화하라는 말을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이적에 대하여는 한없이 탐욕스러운 시랑 ( 豺 狼 : 승냥이와 이리) 등 금수와 다름없는 존재로 격하시켰던 것이다. 90) 이와 같이 주 대의 중국인들은 이전 시대의 중심 또는 중앙과 동서남북의 사방이라는 방위관념 그리 고 내외차등관념을 계승 발전시키면서, 나아가 문화적으로 중심이며 우월하다는 의식에 서 중화와 이적을 구분 차별하고 멸시하는 이른바 화이분별론( 華 夷 分 別 論 )을 확립하였 다. 한편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중국인들의 문화적 우월감은 진일보하여 문화적 사명감 으로 발전하였다. 즉 자신들의 우월한 문화를 주변 사방으로 널리 확산시킴으로써 사방 86) 張 岱 年, 中 國 古 典 哲 學 槪 念 範 疇 要 論 (북경: 중국사회과학출판사, 1989), 39-47쪽; 張 立 文 ( 編 ), 리의 철학 안유 경 옮김 (서울: 예문서원, 2004) 등 참조. 87) 張 立 文 ( 編 ), 道 권호 옮김 (서울: 동문선, 1995); 張 立 文 (2004) 등 참조. 88) 박충석 유근호(1980), 쪽; 陳 潮 (1996), 쪽. 또한 이춘식, 중화사상 (서울: 교보문고, 1998) 참조. 89) 이춘식, 유학의 천도관과 정치이념 (서울: 고려대학교출판부, 2004), 제4장; 권선홍(2004), 제1장 제2절; 유근호, 조선조 대외사상의 흐름 (서울: 성신여자대학교출판부, 2004), 제1장 제1절; 孫 建 民, 中 國 歷 代 治 邊 方 略 硏 究 (북 경: 군사과학출판사, 2004), 제4장; 李 雲 泉, 萬 邦 來 朝 : 朝 貢 制 度 史 論 수정판(북경: 신화출판사, 2014), 제4장 제2절; 韓 昇 (2009), 제1장 제2절; Fairbank(1968), pp. 1-2; Samuel S. Kim(1979), pp ) 春 秋 左 傳 定 公 10년 疏 : 中 國 有 禮 義 之 大, 故 稱 夏 ; 有 服 章 之 美, 謂 之 華. 20

17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의 이민족들까지 중화의 덕교( 德 敎 ) 혜택을 누리게 해줄 책무가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중국인들은 중화문명이야말로 사방의 이적들이 당연히 흠모하고 배워야할 대상으로 자 부하였으며, 따라서 이적들은 중화문명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그 은택을 흔쾌히 받아들여 야 했고 그럼으로써 중화세계 내에 들어가게 된다고 하였다. 이를 이른바 왕자무외( 王 者 無 外 ) 라 하는데 다시 말해 화하와 이적 간은 비록 내외차등의 구별은 있으나, 이상 적인 군왕은 마땅히 안의 화하로부터 밖으로는 사해의 이적에 이르기까지 덕의를 베풀 어 천하를 하나로 통일시키거나[ 天 下 大 一 統 ] 한집안으로 만들어야 한다[ 天 下 一 家 ]고 여 겼던 것이다. 91) 따라서 화하와 이적은 비록 문화적으로는 구별되지만, 서로 확연히 갈라 져 교류나 융합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즉 예의의 고하, 도의의 유무에 따라 이적이라 하더라도 나아가 화하가 될 수 있고, 반대로 화하라 하더라도 물러나 이적으로 떨어지기도(이른바 新 夷 狄 이 되기도) 하였다. 92) 화이분별론과는 대립되는 화이융합론이 등장하였다. 3) 유교 예사상 유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고 여기고, 명령이나 형벌 같은 힘에 의 한 정치보다는 덕과 예에 의한 정치를 강조하였으며 그 실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위정 자들이 높은 도덕적 수양과 윤리적 교양을 갖출 것을 역설하였다. 즉 수기치인 또는 내 성외왕으로 표현되는 도덕정치 왕도( 王 道 )정치를 강조하였다. 한 무제 때 유교가 국교 로 되면서 유교사상은 중국인 나아가 유교문명권의 세계관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한편 주나라 때에는 내복( 內 服 )의 관료와 외복( 外 服 )의 제후라는 상나라 때의 복제 ( 服 制 )를 발전시켜 오복제 등의 내외차등관념을 만들었다. 이는 주 천자가 중앙에 위치 거주하고 그 주위를 제후들이 둘러싸고 있으며 더 바깥으로는 이만융적 등 사이( 四 夷 ) 들이 포진하고 있는 내외층층의 동심원적 구조를 이룬다는 관념이었다. 즉 중앙에 왕성 이 위치하며 그 주변 사방으로 매 500리마다 전복( 甸 服 ) 후복( 侯 服 ) 수복( 綏 服 ) 요복 ( 要 服 ) 황복( 荒 服 )이 차례로 에워싸고 있으며, 거리의 원근에 따라 직책과 공부( 貢 賦 )의 차등이 주어졌던 것이다. 93) 오복설 외에 구복설도 있으며 그 명칭이나 내용에서 차이가 있기도 하다. 94) 그러나 천자를 중심으로 제후와 이적들이 각기 층층으로 방위구조를 이 91) 邢 義 田 (1981), pp. 453, ; 陳 潮 (1996), p ) ( 後 漢 ) 何 休 : 中 國 所 以 異 乎 夷 狄 者 以 其 能 尊 尊 也. 王 室 亂 莫 肯 救 君 臣 上 下 壞 敗 亦 新 有 夷 狄 之 行 故 不 使 主 之. 春 秋 公 羊 傳 昭 公 23년 7월 解 詁. ( 唐 ) 韓 愈 : 孔 子 之 作 春 秋 也 諸 侯 用 夷 禮 則 夷 之 夷 狄 進 於 中 國 則 中 國 之. 古 文 眞 寶 後 集 권2, 原 道. ( 明 ) 何 瑭 : 中 夏 夷 狄 之 名 不 籍 其 地 與 其 類 惟 其 道 而 已 矣. 故 春 秋 之 法 中 國 而 用 夷 禮 則 夷 之 夷 而 進 入 中 國 則 中 國 之 無 容 心 焉. 陳 潮 (1996), 213쪽. 93) 예컨대 전복은 周 王 의 직할지 곧 王 畿 였으며 양식을 공납해야 하였다. 후복은 제후의 땅으로서 왕을 위하여 경계 정 찰을 해야 하며, 수복은 왕이 정복하여 중국의 판도가 된 지역으로서 왕을 보위해야 하였다. 수복 바깥은 蛮 夷 가 사 는 요복으로서 비록 느슨하나마 왕의 교화가 미치고 그 지배를 받는 지역이며, 가장 바깥은 戎 狄 이 사는 황복으로서 왕의 교화가 미치지 못하며 독자적인 정치가 행하여지는 이른바 천하의 자연적 끝이었다. 오복에 관한 기록은 書 經 禹 貢 篇 에 자세하며, 같은 책 康 誥 篇 과 周 官 篇 에서는 侯 甸 男 采 衛 服 이라 하였다(주관편에서는 오복과 畿 內 를 합 쳐서 六 服 이라 하였음). 史 記 권2 夏 本 紀 에도 서경 우공편에서와 같은 내용이 보인다. 한편 荀 子 正 論 篇 에는 오복을 甸 侯 賓 要 荒 服 이라 하였다. 21

18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와 같은 구조는 주대 봉건제도에서의 친친( 親 親 ) 과 내외( 內 外 ) 의 기본 관념과 완전 일치하는 것으로, 한마디로 내외차등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아울러 이러한 내외구조는 주변 사방으로 무한히 확대되고 또한 무수한 층 층이 형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내외층층의 동심원적 구조는 다분히 이상적인 것이라 하겠으나, 그 시행여부를 떠나서 중국인들의 천하관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95) 또한 주나라가 건국되면서 혈연에 기반하고 윤리도덕을 중시하는 종법( 宗 法 )제도와 함께, 이에 근거하여 정치적인 분봉( 分 封 )제도가 만들어져 시행되었다. 종법의 특징은 무엇보다 혈연관계에 의한 친함과 소원함의 차등[ 親 疎 之 殺 ] 을 바탕으로 조직되었으 며, 분봉의 특징은 존귀함과 어짐의 차등[ 尊 賢 之 等 ] 을 근거로 영위되었다. 예컨대 가 정에는 부모형제 등의 위계가 있고 사회에도 장유 존비 등의 차등이 있으며 국가 차원 에도 상하 귀천 등의 분별이 있었다. 주나라 왕과 각 제후들 간에는 정치적으로는 상하 군신관계가 성립하고 그에 상응하는 권한과 책무가 주어졌으며, 아울러 종법상으로는 대 종과 소종의 관계였다. 따라서 주나라 왕은 천하의 최고 통치자 곧 천하공주( 天 下 共 主 ) 였으며 동시에 주 왕실 대가족의 족장인 천하의 대종( 大 宗 )이었다. 96) 이와 같이 천자-제 후-경대부-사에 이르는 위계적 구조와 질서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천자가 다스리는 천하 ( 天 下 )와 제후가 다스리는 국( 國 ) 그리고 경대부가 다스리는 가( 家 ) 사이에서도 마찬가 지였다. 97) 피라미드형의 통치구조 즉 위계적이며 상하등급적인 종법분봉제도를 제대로 이끌어 나가기 위하여 주공( 周 公 )을 비롯한 주나라 위정자들은 이른바 예악을 만들었던 [ 制 禮 作 樂 ] 것이다. 예는 유교문명의 핵심 98) 이자 관건, 99) 또는 근본특징 100) 이라 평가되며, 매우 포괄적이고 복합적인 개념이다. 우선 예의 기원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신에 대한 제사행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101) 예에 대한 대표적 경전인 예기 에서 94) 구복설은 周 禮 夏 官 職 方 氏 에 보이는데, 중앙은 사방 1,000리의 王 畿 이고 그 바깥으로 매 500리마다 차례로 侯 服 甸 服 男 服 采 服 衛 服 蛮 服 夷 服 鎭 服 藩 服 이라 하였다. 구복은 九 畿 라고도 하였다. 95) 邢 義 田 (1981), pp ; 劉 逖, 我 國 古 代 傳 統 治 辺 思 想 初 探, 馬 大 正 ( 編 ), 中 國 古 代 邊 疆 政 策 硏 究 (북경: 중국사 회과학출판사, 1990), 쪽; 陳 連 開 (1994), 78-79쪽; René Servoise, La Conception de l'ordre mondial dans la Chine impériale, Revue Française de Science Politique, 23 : 3 (1973), pp ) 김충열(1994), 3장 2절; 이춘식, 중국고대의 역사와 문화 (서울: 신서원, 2007), 2장 2절; 楊 寬, 西 周 史 (상해: 상해인민출판사, 2003), 3편 등 참조. 97) 김한규, 천하국가 (서울: 소나무, 2005), 47-48쪽; 陳 劍 峰, 文 化 与 東 亞 西 歐 國 際 秩 序 (상해: 상해대학출판사, 2004), 31-35쪽. 또한 이용희(1977); 趙 汀 陽, 天 下 體 系 (남경: 강소교육출판사, 2005) 등 참조. 98) 陳 來, 古 代 思 想 文 化 的 世 界 (북경: 삼련서점, 2002), 7장; 彭 林, 中 國 古 代 禮 儀 文 明 (북경: 중화서국, 2004), 1장; 甘 懷 眞, 皇 權, 禮 儀 与 經 典 詮 釋 (상해: 화동사범대학출판사, 2008), 3-9쪽 등 참조. 99) 박종천, 다산 정약용의 의례이론 (서울: 신구문화사, 2008), 제1장. 100) 鄒 昌 林, 中 國 禮 文 化 (북경: 사회과학출판사, 2000), 12-14쪽. 101) 예( 禮 ) 라는 글자 자체가 복사나 금문에서 제기에 제물을 올려놓은 형상 곧 신을 뜻하는 기( 示 ) 와 제기를 상 형한 풍( 豊 ) 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대 허신이 편찬한 설문해자 에서도 예는 (절차를) 밟는다[ 履 ] 는 것이고, 신을 섬겨 복을 불러오는 것[ 所 以 事 神 致 福 也 ] 이라고 풀이하였다. 예에 대해서는 전세영 외, 禮 樂 교화사상과 한국의 윤리적 과제 (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 한형조 외, 전통 예교와 시민윤리 (화성: 청계, 2002); 한도현 외, 유교의 예와 현대적 해석 (서울: 청계, 2004); 김상준 외, 유교의 예치이념과 조선 (고양: 청계, 22

19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무릇 예란 선왕이 하늘의 도( 道 )를 받들어서 사람의 정( 情 )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를) 잃는 자는 죽게 되고, (예를) 얻는 자는 살게 된다.... 이 때문에 무릇 예는 반드시 하늘에서 근본하고 땅에서 본받으며 귀신에게 펼쳐서 상례( 喪 ) 제례( 祭 ) 활쏘기( 射 ) 말타기 ( 御 ) 관례( 冠 ) 혼례( 婚 ) 조례( 朝 ) 빙례( 聘 )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 聖 人 )이 예로써 그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천하( 天 下 ) 국( 國 ) 가( 家 ) 모두 바르게 되는 것이다. 102) 예란 사람의 정에 의거하되 그것을 절도 있게 정형화하여[ 節 文 ] 백성들의 (무례한 행동을 막는) 제방[ 防 ]으로 삼는 것이다. 103) 무릇 예는 관례( 冠 禮 )에서 시작하여, 혼례( 昏 禮 )에 근본을 두고, 상례( 喪 禮 )와 제례( 祭 禮 ) 로 융중하게 하고, 조례( 朝 禮 )와 빙례( 聘 禮 )로 존경하게 하고, 사례( 射 禮 )와 향음주례( 鄕 飮 酒 禮 )로 화목하게 한다. 104) 이처럼 예는 하늘의 도를 본으로 삼아 인정을 다스림으로써 천하 국 가 등 크고 작은 공동체의 질서를 바로잡아 사회정치적 통합을 이루는 도구였던 것이다. 105) 제사행위에서 비롯된 예는 주나라 초기에 도덕적인 인문사상이 대두하면서 객관적인 행위규범으로 발전하였고, 또한 정치질서에 필요한 각종 제도 등 인간세상의 모든 영역 을 망라하게 되었다. 106) 주례 춘관에서는 예를 길 흉 빈 군 가례의 오례( 五 禮 ) 로 구분하였는데, 그 중 빈례는 제후들이 주나라 왕을 알현하거나 제후들 사이에 빙문하 거나 또는 동맹을 맺을 때 따르는 예절이었다. 즉 주례 에서 빈례( 賓 禮 )로써 서로 친근하게 하며 107) 라 하였다. 한편 의례 는 17편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중 14번째 빙례는 제후국 사이에 사절을 주고받는 것으로 제후들 간의 외교예절을 기록하고 있으 며 16번째 근례는 제후가 천자를 알현하는 예절이었다. 108) 전통적으로 예는 왕조 차원에 서 길 흉 군 빈 가례의 오례로 분류되기도 하고, 평생의례 차원에서 관 혼 상 제 례의 사례로 나뉘기도 하며, 의례주체의 계급 지위에 따라 천자 제후 대부 사 서인 의 예 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이처럼 예는 개인 차원에서 국가 차원 나아가 국제 차원 까지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며 아울러 정치사회적 위계질서에 따른 다양한 차별적 양상 을 지니고 있다. 109) 2007); 박종천, 예, 3천년 동양을 지배하다 (파주: 글항아리, 2011); 楊 志 剛, 中 國 禮 儀 制 度 硏 究 (상해: 화동사범대학출판사, 2001); 鄒 昌 林, 中 國 禮 文 化 (북경: 사회과학출판사, 2000); 陳 戍 國, 中 國 禮 制 史 ( 先 秦 卷 ) ( 長 沙 : 호남교육출판사, 2002); 勾 承 益., 先 秦 禮 學 (성도: 파촉서사, 2002); 徐 燕 斌 (2011) 등 참조.. 102) 예기 예운: 夫 禮 先 王 以 承 天 之 道 以 治 人 之 情 故 失 之 者 死 得 之 者 生. 是 故 夫 禮 必 本 於 天. 103) 예기 방기. 104) 예기 혼의( 昏 義 ). 105) 박종천(2008), 제1-2장. 106) 김충열(1994), 쪽; 甘 懷 眞 (2008), 3-14쪽. 107) 주례 춘관 大 宗 伯. 108) 王 琦 珍, 중국, 예로 읽는 봉건의 역사, 김응엽 옮김 (서울: 예문서원, 1999), 22-28쪽. 23

20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한편 예의 실제적용에서는 상황에 따라 적합함을 취해야 한다고 하였다. 일찍이 주자 는 세상일에는 상변이 있고 그 대처 방법에도 원칙과 변칙이 있다고 하였다. 신은 세상의 일에는 변하지 않는 것[ 常 ]과 변하는 것[ 變 ]이 있어서, 일에 대처하는 방법에도 원칙[ 經 ]과 변칙[ 權 ]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임금과 신하, 아비와 자식은 지위가 정해져 있어서 바꿀 수 없는 것이니, 세상의 일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임금은 명령하고 신하는 실행하 며, 아비는 물려주고 자식은 이어받는 것은 도의 원칙입니다. 일이 잘못되어 그 상도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변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처하는 방법 역시 모두 원칙대 로만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것은 변칙이라고 말합니다. 110) 이처럼 예에는 변치 않는 근본원칙과 상황에 따르는 임시방편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국가 간에 적용되는 예규범 역시 근본원칙이라는 일정한 한계 내에서 행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상당한 융통성이 이미 내재되어 있었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예의 기능을 살펴보면, 우선 개인 차원에서는 인격수양과 자아실현을 하게하고, 사회 국가에서는 상하위계적이지만 조화로운 질서를 형성 유지하게 하는데 있었다. 111) 즉 예는 몸의 근간 112), 사람의 근간 으로 예가 없으면 스스로 설 수 없다 113) 고 하였다. 이는 공자가 예를 배우지 않으면 스스로 설 수 없다 114) 는 말과 같으며, 예를 배워서 지켜나가는 것은 사람이 사회 생활하는데 매우 당연하고 필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자는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도 말라 115) 며, 예의 중요성과 그 포괄성을 강조하였다. 맹자 역시 예가 아닌 일은 하지 않는다 116) 고 하였고, 순자도 예란 몸을 바르게 해주는 것 117) 이라 하였다. 또한 예는 개개인이 지켜야 할 규범일 뿐 아니라, 국가의 통지질서이기도 하였다. 춘추좌전 에서는 예가 국가의 근간 118), 왕이 지켜야 할 근본 규범 119), 백성을 바르게 다스리는 것 120) 이라 하였다. 즉 예는 국가를 다스리고 사직을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질서 지으며 후대를 이롭게 하는 것 121) 이며 국가를 지키고 109) 박종천(2008), 55쪽. 또한 楊 志 剛 (2001); 彭 林 (2004) 등 참조. 110) 주자대전 번역연구단 옮김, 주자대전, 3 (전남대 철학교육연구센터 대구한의대 국제문화연구소, 2010), 쪽. 111) 남상호, 육경과 공자인학 (서울: 예문서원, 2003), 쪽 등 참조. 112) 춘추좌전 성공 13년 봄: 身 之 幹. 113) 춘추좌전 소공 7년 9월: 人 之 幹 無 禮, 無 以 立. 114) 논어 계씨 13장: 不 學 禮, 無 以 立. 또한 같은 책 요왈편 3장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115) 논어 안연 1장: 非 禮 勿 視 非 禮 勿 聽 非 禮 勿 言 非 禮 勿 動. 116) 맹자 이루 하, 28장: 非 禮 無 行 也. 또한 같은 책, 이루 하편, 6장에서도 유사한 말이 있다. 117) 순자 수신: 禮 者 所 以 正 身 也. 118) 춘추좌전 희공 11년 봄: 國 之 幹. 또한 같은 책, 양공 30년 7월. 119) 춘추좌전 소공 15년 12월: 王 之 大 経. 120) 춘추좌전 장공 23년 여름: 所 以 整 民. 121) 춘추좌전 은공 11년 8월. 24

21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정령을 이행하고 백성을 잃지 않게 하는 것 122) 이라 하였다. 한편 예기 에서도 사람을 다스리는 도는 예보다 급한 것이 없다 123), 도덕과 인의는 예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고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바로잡는 일도 예가 아니면 완전무결할 수 없다. 분쟁과 소송도 예가 아니면 해결되지 않으며 군신 상하 부자 형제관계관계도 예가 아니면 확정되지 않는다 124) 고 하였다. 순자 역시 사람은 예가 없으면 살지 못하고 일도 예가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고 국가도 예가 없으면 평안하지 못하다 125), 천하가 예를 따르면 다스려지나 예를 따르지 않으면 혼란에 빠지며, 예를 따르면 안전하나 예를 따르지 않으면 위험하며, 예를 따르면 생존하나 예를 따르지 않으면 멸망한다. 예란 인도의 극치 126) 라며, 예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예는 기본적으로 상하존비귀천 친소원근 등에 따라 차등을 주고 분별하는 기능을 하였다. 구체적으로 예는 친소를 정해주고 혐의를 결정해주며 같고 다른 것을 분별해주고 옳고 그른 것을 밝혀주는 것 127) 이며, 상하를 정하고 혐의를 분별하는 것 128) 이었다. 공자는 예가 아니면 군신 상하 장유의 지위를 분별할 수 없고, 예가 아니면 남녀 부자 형제의 친근함에 따른 친소관계를 구별할 수 없다 129) 고 하였다. 순자도 예란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 사이에 등급이 있고 어른과 아이 사이에 차별이 있으며 가난한 사람과 부자인 사람 및 낮은 사람과 높은 사람 사이에 모두 차례가 있는 것 130) 이라 하였고, 관중 역시 상하의 예의가 있고 귀천의 본분이 있고 장유의 차서가 있고 빈부의 절도가 있으니 이 8가지가 예의 준칙 131) 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예는 천지의 질서 로서 질서가 있기 때문에 천지만물에 모두 구별이 있다 132) 고 보았던 것이다. 송대 성리학이 등장하면서 기존 유교의 삼강오륜 등 윤리원칙과 철학적 본체론은 천리( 天 理 ) 라는 개념 속에 통합되었다. 133) 즉 우주의 자연법칙 과 인간의 도덕법칙 이 일체화되었고, 더 나아가 물질적인 기( 氣 )와 법칙적인 리( 理 )라는 개념으로 우주의 생성과 운동을 설명하는 우주론은 물론 인간본성의 선악을 결정하는 인성론의 영역까지 포괄하게 되었다. 이러한 세계관에 따른다면 인간세상의 리[ 人 理 ]가 122) 춘추좌전 소공 5년 1월. 123) 예기 제통: 治 人 之 道 莫 急 於 禮. 124) 예기 곡례 상. 125) 순자 수신: 人 無 禮 則 不 生, 事 無 禮 則 不 成 國 家 無 禮 則 不 寧. 또한 같은 책 대략( 大 略 ) 참조. 126) 순자 예론: 天 下 從 之 者 治 不 從 者 亂. 從 之 者 安 不 從 者 危. 從 之 者 存 不 從 者 亡. 禮 者 人 道 之 極 也. 127) 예기 곡례 상: 所 以 定 親 疎 決 嫌 疑 別 同 異 明 是 非. 128) 與 猶 堂 全 書, 2집 권16, 38면, 논어고금주: 所 以 定 上 下 別 嫌 疑, 금장태, 仁 과 禮 : 다산의 논어 해석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 159쪽에서 재인용. 129) 예기 애공문: 非 禮 無 以 辨 君 臣 上 下 長 幼 之 位 也, 非 禮 無 以 別 男 女 父 子 兄 弟 之 親. 130) 순자 부국 및 예론: 禮 者, 貴 賤 有 等 長 幼 有 差 貧 富 輕 重 皆 有 稱 者 也. 131) 관자 오보( 五 輔 ): 上 下 有 義 貴 賤 有 分 長 幼 有 等 貧 富 有 度 凡 此 八 者 禮 之 經 也. 132) 예기 악기: 天 地 之 序 序, 故 群 物 皆 別. 춘추좌전 에서도 상하 간의 기강[ 上 下 之 紀 ] 라 하였다. 춘추좌 전 소공 25년 여름. 133) 張 立 文 편, 道, 권호 역(서울:동문선, 1995), 11-12장; 張 立 文 편, 리의 철학, 안유경 옮김(서울: 예문서원, 2004), 5-6장. 25

22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바로 하늘의 리[ 天 理 ]이기에, 하늘이 내려주는 본성을 인간들이 스스로 실현하여 도덕적 완성을 이루어야 하는 실천철학이기도 하였다. 134) 성리학은 기존 유교에 도교와 불교의 장점을 결합하여 리[ 天 理 ]를 우주만물의 근원이라 규정하며, 또한 예를 도 내지 리의 구현이라고 하면서 이들 양자와 동일시함으로써 예를 더욱 절대화시켜 나갔던 것이다. 135) 이처럼 성리학자들은 예를 하늘의 초월성이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한 자연적 본성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보았다. 136) 예컨대 정이( 程 頣 )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사람은 천지의 사이에서 자리 잡고 만물의 위에서 서니, 천지와 우리는 동체( 同 體 )요 만물과 우리는 동기( 同 氣 )이니, 존비와 분류는 베풀지 않아도 뚜렷이 드러난다. 성인( 聖 人 )이 이에 따라 관혼상제 조빙연향( 朝 聘 燕 享 )의 예를 제정하여 군신 부자 형제 부부 붕우의 의 ( 義 )를 행하였다. 중인( 衆 人 )은 그것을 힘쓰고 현인( 賢 人 )은 그것을 행하며 성인은 그것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그 몸과 그 가( 家 )와 그 국( 國 )과 그 천하( 天 下 )에 행하는 방법은 예로 다스리면 질서가 잡히고 예가 어지러워지면 혼란하게 되며, 예가 있으면 유지되고 예가 없으면 망하게 된다. 137) 즉 몸이나 가 국 천하 모두 예로 다스려야 질서가 바로잡히고 예가 있어야 유지된다고 하였다. 주자도 예란 하늘의 이치를 알맞게 갖춰놓은 것이고 세상사에서 지켜야 할 법칙[ 禮 者 天 理 之 節 文 人 事 之 儀 則 也 ] 138) 으로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않는 것이 곧 천리 139) 라고 하면서, 예에는 근본[ 本 ]과 형식[ 文 ]이 있는데 하루라도 예를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 140) 이라고 역설하였다. 명 태조 주원장은 다스리는 도는 반드시 예에 근본을 두어야한다 141), 예가 있으면 다스려지고 예가 없으면 어지러워진다 142), 예는 국가의 방범이자 인도의 기강으로 조정에서 당연히 먼저 힘써야 할 것이다.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143) 라며, 예를 중시하였다. 144) 청말 왜인( 倭 仁 )도 국가를 세우는 도는 예의를 134) 島 田 虔 次, 주자학과 양명학, 김석근 이근우 옮김 (서울: 까치, 1986); 溝 口 雄 三, 개념과 시대로 읽는 중국사상 명강의, 최진석 옮김 (서울: 소나무, 2004); 小 島 毅, 사대부의 시대, 신현승 옮김 (서울: 동아시아, 2004); 蕭 公 權, 중국정치사상사, 최명 손문호 역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15장; 주일요(1999), 7장 등 참조. 135) 柳 肅, 예의 정신 홍희 옮김 (서울: 동문선, 1994), 쪽. 136) 박종천(2008), 143쪽. 137) 二 程 集 1 冊, 禮 序 : 禮 治 則 治 禮 亂 則 亂, 禮 存 則 存 禮 亡 則 亡, 박종천(2008), 쪽에서 재인용. 이와 유사한 내용 이 조선의 율곡전서 권20, 성학집요2 頁 30; 眉 叟 記 言 원집 내편 권31, 경설 예설1; 旅 軒 集 권10, 跋 五 先 生 禮 說 跋 頁 1 등에서도 보인다. 138) 논어 학이 12장, 주자 註. 139) 蔡 尙 思, 中 國 禮 敎 思 想 史, 이광호 옮김 (서울: 법인문화사, 2000), 158쪽. 140) 性 理 大 全 권19, 家 禮 序 : 凡 禮 有 本 有 文 固 不 可 以 一 日 而 不 修, 도민재, 조선전기 예학사상 연구, 성균관대 학교 대학원 철학박사 학위논문, 1998, 40쪽에서 재인용. 141) 명태조실록 권53, 홍무 3년 6월 계해: 爲 治 之 道 必 本 于 禮. 142) 명태조실록 권73, 홍무 5년 3월 신해: 有 禮 則 治 無 禮 則 亂. 143) 명태조실록 권80, 홍무 6년 3월 갑진: 禮 者 國 之 防 範 人 道 之 紀 綱 朝 廷 所 當 先 務 不 可 一 日 無 也. 144) 羅 冬 陽, 明 太 祖 禮 法 之 治 硏 究 (북경: 고등교육출판사, 1998) 참조. 26

23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숭상해야지 권모를 숭상하지 않는다 145) 고 하였다. 이러한 예 인식은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조선 초기의 권근은 예기천견록 에서 예가 도에 근본 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쓰여지는 바는 그릇을 쓰는 것과 같아서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라면서, 예의 실천은 하늘과 사람이 합일되는 과정 으로 인식하였다. 146) 조선왕조실록 에서도 옛사람은 예를 보고 그 나라의 존망 성쇠를 알았다. 예가 있으면 나라가 존재하고 예가 없으면 나라도 망하게 되니 이는 필연한 이치 147) 라고 하였다. 즉 예를 천리의 절문 148), 상하의 분별[ 分 ] 149) 이라 하면서 잠시라도 몸에서 떠나서는 안 된다 150),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 151) 이라며 예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예컨대 국왕 선조는 비록 굶어죽을지라도 어찌 예를 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52) 라고까지 하였다. 이처럼 예는 성리학에서 도 내지 리와 같은 절대성과 보편성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유교문명권에서 예의 중요성을 살펴보면, 무엇보다 인간과 금수를 구별하는 기준이었 다. 예기 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나온다. 무릇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은 예의가 있기 때문이다. 153) 앵무새는 말을 하지만 나는 새에 지나지 않고, 성성이는 말을 하지만 금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제 사람으로서 예가 없다면 비록 말은 잘 하더라도 역시 금수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무릇 금수에게는 예가 없다. 그러므로 성인이 예를 만들어 가르쳐서, 사람으로 하여금 예를 가지게 하고 스스로 금수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하였다. 154) 즉 예 가 있어야만 사람은 사람다워질 수 있으며 따라서 인간과 금수를 구별해주는 중요한 표지라고 여겼던 것이다. 155) 145) 籌 辦 夷 務 始 末 ( 同 治 朝 ) 권47, 頁 24: 立 國 之 道 尙 禮 義 而 不 尙 權 謀, 李 細 珠, 晩 淸 保 守 思 想 的 原 型 : 倭 仁 硏 究 (북경: 사회과학문헌출판사, 2000), 180쪽에서 재인용. 또한 蕭 公 權 (1998), 1105쪽 참조. 146) 강문식, 권근의 경학사상 연구 (서울: 일지사, 2008), , 쪽. 147) 조선중종실록 권32, 13년 4월 17일 을유: 古 人 見 禮 而 知 國 之 存 亡 盛 衰 禮 存 則 國 存 禮 亡 則 國 亡, 此 必 然 之 理 也. 비 슷한 내용은 조선순종실록 권25, 19년 8월 6일 정축조 등에도 보인다. 148) 예컨대 태종 4년 9월 19일 정사; 중종 13년 6월 1일 기사; 중종 29년 3월 4일 경오; 명종 2년 5월 20일 경오; 선조 즉위년 11월 4일 을묘; 광해군 2년 3월 14일 경인; 인조 4년 12월 25일 계해 등 참조. 149) 태종 6년 8월 8일 갑오; 세종 10년 9월 27일 병자; 중종 21년 5월 16일 무술 또한 태종 11년 9월 26일 갑신; 성종 12 년 9월 29일 경자; 중종 11년 7월 29일 무신; 인조 3년 8월 23일 기해; 인조 4년 2월 8일 신사 등 참조. 150) 不 可 斯 須 去 身. 세조 8년 8월 20일 임오; 선조 2년 윤6월 7일 기유; 인조 5년 4월 2일 무술. 151) 세조 4년 9월 21일 을사: 不 可 一 日 而 無 也. 152) 선조 27년 5월 26일 계묘: 雖 餓 死, 豈 可 滅 禮. 153) 예기 관의( 冠 義 ): 凡 人 之 所 以 爲 人 者, 禮 義 也. 154) 예기 곡례 상. 155) 유교를 수용한 월남도 예외가 아니었으니, 월남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黎 聖 宗 ( )은 인간이 금수와 다른 것은 예 때문 이라 하였다. 유인선, 베트남 黎 朝 의 성립과 유교이념의 확립, 서강대 동아연구 48집 (2005), 48쪽. 한편 일본 덕천막부시대의 貝 原 益 軒, 中 井 履 軒, 藤 田 東 湖 등 일부 학자들도 유사한 주장을 하였다. 朱 謙 之, 日 本 的 朱 子 學 (북경: 인민출판사, 2000[1958]), , , 쪽. 27

24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또한 예 는 중화와 이적을 구별하고 문명과 야만을 분별하는 상징이기도 하였다. 즉 중화와 이적을 구별하는데 습속이나 생활방식 등 문화 문명의 차이가 지역이나 종 족 혈연보다도 더 중요한 기준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일찍이 공자는 (제나라 환공을 도와 천하를 하나로 바로잡게 한) 관중( 管 仲 )이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들은 모두 (오랑캐 처럼) 머리를 풀어헤치고 옷섶을 왼쪽으로 여미고 있을 것 156) 이라며, 중국인들이 오랑 캐처럼 피발좌임( 被 髮 左 衽 ) 하지 않게 만든 관중의 공을 높이 평가하였다. 예기 왕제편에도 동방(의 오랑캐)은 이라 하는데, 머리를 풀어헤치고 서방은 융이라 하며, 머리를 풀어헤치고 157) 라 하였다. 이처럼 중화는 속발관대( 束 髮 冠 帶 )인데 반하여 이적은 피발좌임이며, 따라서 중국은 의관예악의 나라[ 冠 帶 之 國, 禮 義 之 邦 ]로서 시서 예악과 법도로써 정치를 해나가지만 이적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던 것이다. 후한의 반고( 班 固 ) 역시 이적들은 탐욕스럽고 호리하며 피발좌임하고 인면수심 158) 운운하였으며, 이러한 인식이 후대에도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159) 중화와 이적, 문명과 야만의 분별 나아가 인류와 금수를 분별해주는 예의 중요성에 대하여 송대 학자 호안국( 胡 安 國 )은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지적하였다. 중국이 중국이 되는 까닭은 예의 때문이다. (예의를) 한번 잃으면 이적이 되고, 두번 잃으면 금수가 되어 인류는 멸망한다. 160) 앞서 언급한 정호 정이도 예를 한번 잃으면 금수가 된다 161) 고 하였으며, 명대의 구 준 역시 다음과 같이 예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예는 천하에서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중국이 이적과 다르고 인류가 금수와 다른 것은 예가 있기 때문이다. 예가 가히 하루라도 없을 수 있겠는가? 162) 이와 같은 인식은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으니, 예컨대 대표적 성리학자 이황도 옛사람은 예가 하루라도 폐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말하기를 (예를) 한번 잃어버리면 이적이 되고 두번 잃어버리면 금수가 된다 고 했으니, 어찌 156) 논어 헌문 17장. 157) 예기 왕제: 東 方 曰 夷 被 髮... 西 方 曰 戎, 被 髮 ) 漢 書 권94 하, 匈 奴 傳 : 夷 狄 之 人 貪 而 好 利 被 髮 左 衽 人 面 獸 心. 159) 권선홍(2004), 37-43쪽 참조. 월남도 예의의 존망 여부 로써 화이를 구분하며, 유교문명권의 일원으로서의 동질성 을 확인하였다. 최귀묵(2011), 쪽. 이미 지적한 대로 화하와 이적은 비록 문화적으로는 구별되지만, 서로 확연히 갈라져 교류나 융합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즉 예의의 고하나 도의의 유무에 따라 이적이라 하더라도 화하가 될 수 있고, 반대로 화하라 하더라도 이적으로 떨어지기도(이른바 ' 新 夷 狄 '이 되기도) 하는 것으로 보았다. 160) 春 秋 胡 傳 권12, 희공 23년 11월: 中 國 之 所 以 爲 中 國 以 禮 義 也. 一 失 則 爲 夷 狄 再 失 則 爲 禽 獸 人 類 滅 矣. 161) 二 程 全 書 권2상 二 程 先 生 語 錄 : 禮 一 失 則 爲 禽 獸, 박지훈, 송대 화이론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990, 107쪽에서 재인용. 162) 丘 濬, 家 禮 儀 節 自 序 : 禮 之 在 天 下, 不 可 一 日 無 也, 中 國 所 以 異 于 夷 狄 人 類 所 以 異 于 禽 獸 以 其 有 禮 也 禮 其 可 一 日 無 乎, 錢 武 偉, 明 代 史 學 的 歷 程 (북경: 사회과학문헌출판사, 2003), 35쪽에서 재인용. 구준에 관한 연구로는 윤정분, 중국근세 경세사상 연구: 구준의 經 世 書 를 중심으로 (서울: 혜인, 2002); 李 焯 然, 丘 濬 評 傳 (남경: 남경대학출 판사, 2005) 등이 있다. 28

25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깊이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163) 라 하였다. 송시열 역시 군신 부자 등 인륜도덕이 중요함을 지적하면서 만약 혹시라도 이것을 버린다면 사람이 금수의 길로 접어들게 되고 중국이 오랑캐의 길로 빠져들고 말 것이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64) 라며 천서( 天 敍 ) 천질( 天 秩 ) 등 예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조선말 위정척사파였던 유인석은 정자( 程 子 )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를 한번 잃으면 이적이 되고 두번 잃으면 금수가 된다 고 하였다. 한번 잃는 것은 제도를 잃는 것이고, 두번 잃는 것은 윤리강상을 잃는 것 165) 이라며 부연 설명하였다. 전우 역시 중화와 이적의 구별은 예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 있다. 그러므로 예를 조금 잃으면 이적으로 들어가고 크게 잃으면 금수로 들어간다고 한 것 166) 이라 하였다. 이처럼 유교문명권에서 예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줄 뿐만 아니라, 이적이나 금수와도 구별해주는 이른바 인간의 정체성이자 존재이유 였다고 하겠으며, 167) 따라서 누구든 속발관대 로 상징되는 예를 지켜나가고자 목숨을 걸고 노력하였던 것이다. 예컨대 청 초기의 체발령 168) 이나 조선말의 단발령 과 복식제도개혁 169) 등에 격렬히 저항하였던 것은 이와 같은 예의 중요성 때문이었음은 물론이다. 효경 에서도 (사람의) 몸과 머리터럭 피부는 모두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이를 훼상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 이라 하였다. 한마디로 유교문명권에서는 한번 머리털을 깎으면 호로가 되고 호로는 곧 견양 170) 으로 여겼던 것이다. 또한 유교권에서 유교 원리와 규범은 개인 가정 사회 국가뿐 아니라 천하 곧 국 가 간의 관계에까지 두루 통용되는 즉 국제관계의 명분이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중국과 조공국 간의 관계는 가정의 부자나 국내의 군신과 다름없는 인륜관계 차원에서 인식되 고 정당화되었다. 다시 말해 중국과 조공국 관계는 가족관계의 확대 연장으로 보았으 며, 가족 국가 천하를 하나의 연속선상에서 동질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따라 서 국가 간의 관계 역시 개인 간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비록 상하차등적이었으나, 대립 투쟁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조화와 화합을 이루며 대동세계를 추구하는 이른바 유기체적 위계주의가 강조되었다. 즉 중국과 조공국 곧 황제와 국왕은 정치적으로는 군신관계이지 만 윤리적으로는 부자관계로 비유 간주되었다. 이에 따라 황제는 조공국들에 대해서도 163) 退 溪 集 권41, 雜 著, 諭 四 學 師 生 文, 頁 36. 도민재(1998), 106쪽에서 재인용. 164) 조선숙종실록 권11, 7년 1월 3일 정사. 165) 毅 菴 集 권53, 道 冒 編 중, 頁 34: 一 失 失 制 度 也, 再 失 失 倫 常 也 ; 국역 의암집, 6 (춘천: 의암학회, 2010), 302쪽. 같은 책 권25, 頁 22; 권34, 頁 18 등에도 유사한 내용이 있다. 166) 艮 齋 集 별편 권1, 잡저 華 夷 鑑, 頁 82: 華 夷 之 分 以 有 禮 無 禮 之 異. 故 曰 禮 小 失 則 入 於 夷 狄 大 失 則 入 於 禽 獸 也 ) 김성기는 유교에서 예가 사람의 근본 아이덴티티에 해당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면서, 인간의 존재 근거로 설정 되어 있다고 지적하였다. 김상기, 유가의 예에 대한 해석학적 접근, 최영진 지준호 (편), 동아시아유교문 화의 새로운 지향 (서울: 청어람미디어, 2004), 119쪽. 또한 예는 유교문명권의 전통적 문명기준 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Zhang Yongjin & Barry Buzan, The Tributary System as International Society in Theory and Practice, Chinese Journal of International Politics, Vol. 5, No. 1 (2012), p ) 岸 本 美 緖 宮 嶋 博 史, 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 김현영 문순실 옮김 (서울: 역사비평사, 2003), 215쪽. 169) 강상규, 1884년 의제개혁 에 대한 정치적 독해, 세계정치, 제30집 2호 (2009), 쪽 등 참조. 이처럼 청초기에는 留 頭 不 留 髮 留 髮 不 留 頭, 조선말에는 頭 可 斷 髮 不 可 斷 을 내세워 체발 단발문제가 이슈화되었다. 170) 박지원, 열하일기 馹 汛 隨 筆 秋 7월 15일 신묘: 一 薙 髮 則 胡 虜 也, 胡 虜 則 犬 羊 也. 29

26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예로써 위무하고 덕으로써 편안케 하여 일시동인( 一 視 同 仁 )의 모범을 보이며, 중화문명 의 은택을 널리 베풀고 교화 덕화시킴으로써 비중국인까지도 중국화하여 마침내 내 외 원근 곧 천하를 합쳐 하나가 되는 이른바 하이일체( 遐 邇 一 體 ), 천하일가 를 이루 는 것을 최고의 이상으로 내세웠다. 이처럼 대일통사상은 하나의 영원한 우주자연법칙으 로 인간세상에 구현되어야 하는 것으로 현실정치에 중대한 규범으로 작용하였으며, 중세 의 특징인 단원적 세계관과 위계적 질서관의 유교문명권적 표현이었다고 하겠다. 끝으로 유교문명권에서 사회규범의 총칭이자 그 정수였던 예 는 원칙적으로 유교 문명권 내에서만 적용되는 규범이었다. 즉 예를 모르는 권역 밖의 이적에 대해서는 다만 이를 준용할 따름이지, 굳이 엄격하게 적용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171) 중국은 물론 이고 조선 역시 그러하였으니, 예컨대 세종은 저들(일본)은 본래 예의를 모르는 자이 니 무엇을 족히 책하겠는가? 172) 라 하였으며, 성종 역시 저들은 인면수심이니 야인은 예의로써 꾸짖을 수가 없다 173) 고 하였다. 이처럼 유교문명권의 밖에 있는 화외 의 나라에 대해서는 예의로써 책하는 것은 불가하다 174) 고 여겼던 것이다. Ⅲ. 유교문명권에서의 사대자소의 예 사대문제에 관한 기존 연구는 적지 않으며, 175) 이미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어 왔다. 우선 김옥균, 윤치호 등 개화파 인사들이 사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하였으며, 176) 신채호 등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이를 이어받았다. 177) 이러한 부정적 평가는 해방 이후에 도 지속되었으니 예컨대 이종항은 사대를 몰아적( 沒 我 的 )이며 자비적( 自 卑 的 )인 것으로 완전히 자아를 말소하고 자주성을 상실 하였다며 비판하였다. 178) 한중관계사 연구의 171) 이는 서구국제법이 기독교문명국가들에게만 적용될 뿐, 비서구 국가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던 것과 마 찬가지라 하겠다. 이용희(1977), 18-20, 142, 쪽; 김용구(1997), 16-17, 72-76쪽; 徐 杰 令 (2004), 전언 19쪽 등 참 조. 172) 조선세종실록 권46, 11년 12월 9일 신사: 彼 輩 本 不 知 禮 義, 何 足 責 也? 173) 조선성종실록 권186, 16년 12월 10일 정해: 彼 輩 人 面 獸 心 然 野 人 不 可 責 以 禮 義. 174) 조선선조수정실록 권21, 20년 9월 1일 정해: 化 外 之 國, 不 可 責 以 禮 義. 175) 대표적으로 이기백, 민족과 역사, 신판 (서울: 일조각, 1994), 제6부: 사대주의론; 이용희(1977), 쪽; 이춘 식, 사대주의 (서울: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7); 김용구(1997), 2장; 안정희, 조선초기의 사대론, 역사교 육, 64 (1997), 1-33쪽; 김석근, 한국전통사상에서의 평화관념: 사대 와 중화 를 중심으로, 하영선 편, 21세기 평화학 (서울: 풀빛, 2002), 쪽; 유근호, 조선조 대외사상의 흐름 (서울: 성신여자대학교 출판 부, 2004), 1장 2절; 이상익, 조선시대 중화주의의 두 흐름, 한국철학논집, 제24집(2008), 9-38쪽; 박충석, 한국정치사상사, 제2판 (서울: 삼영사, 2010), 3장 3절; 임민혁, 조선시대의 묘효와 사대의식, 조선의 예치 와 왕권 (서울: 민속원, 2012), 쪽; 전재성(2012), 45-76쪽; 孫 衛 國, 大 明 旗 號 与 小 中 華 意 識 (북경: 상무 인서관, 2007), 1장 2절 등이 있다. 176) 김옥균은 청나라가 예전부터 우리나라를 속국으로 삼아왔는데 이는 참을 수 없는 수치 라 하였으며( 김옥균전 집 조선개혁의견서), 윤치호는 지금에 와서 종주국을 섬기고 옛 법규를 지키는 것은 비단 아무 실익이 없을 뿐 만 아니라 오히려 나라를 망친다 고 하였다( 윤치호일기 1884년 2월 10일). 177) 신채호,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 정해렴 편역, 신채호 역사논설집 (서울: 현대실학사, 1995), 쪽. 30

27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1세대 학자 전해종도 중국에의 사대는 약자 의 정책에 지나지 않으며 바람직한 정 책은 아니었 고 조공 역시 무엇보다도 굴욕적인 것이었음은 자명한 일 이라며 부정 적인 평가를 하였다. 179) 다음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사대는 안보를 보장받기 위한 불 가피한 조치 였으며, 어디까지나 국가보전을 위한 현실적 외교정책 이었다는 주장이 통설처럼 제기되고 있다. 180) 예컨대 신석호는 조공이 고대 동양사회에 있어서의 일종 의 외교 및 무역의 형태를 말하는 것 이었다며, 주위의 여러 나라들은 (진보한 중국 문화 수입이라는) 문화적 (중국과의 물물교환이라는) 경제적 이익을 취하기 위하여 또한 자국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에 조공하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 이 라고 하였다. 181) 즉 해방이후 사대를 자주적 실리외교 라고 보는 해석이 유행하고 있 다. 182) 박충석도 사대는 문화이념적 지향을 핵심으로 하는 중화관념과는 달리, 힘 관계 위에 성립된 관계개념으로서 매우 상황적인 성격을 내포 하고 있었다고 지적하였 다. 183) 끝으로, 이러한 부정론이나 긍정론과는 달리 사대문제를 문명권 차원의 거시적 시각 에서 접근하여, 국제정치질서의 한 역사적 유형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예컨대 국제정치 학의 1세대 학자 이용희는 일찍이 사대의 국제정치적 의의는 동양사회의 국제권위(불 교 유교)적인 구조에서 유래되는 것이 틀림없다 면서, 약국의 굴욕적 외교정책이라 고 보기 쉽 지만 그러나 적어도 권위형적인 국제관계의 시대적 의미를 생각하는 한 정확한 이해의 방식은 아니 184) 라고 지적하였다. 즉 사대에는 현실적인 사대관계라는 사실의 면이 있고, 또 사대의 제도라는 면이 있고, 또 끝으로 사대관계를 정당화하는 사 상과 이념의 면 곧 사대주의라는 가치관 이 있다고 정리하였다. 185) 다시 말해 명분으 로서의 사대가 있고, 명분 없는 힘에 의한 사대의 현실 이 있었다면서, 하나는 가치 관념 혹은 이데올로기이고, 또 하나는 단순한 힘의 부족, 힘의 위협 아래에 생기는 현실 과 그 적응 이라고 하였다. 나아가 사대란 단순히 대국을 섬긴다는 것을 넘어서서 여 러 가지 예( 禮 )다운 의식 절차 규정에 맞아야 된다는 것 으로, 적어도 가치관으로서 의 사대의 예 는 유교문명권의 특정한 형식 절차 규범과 가치관이 구조적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면서 말하자면 유교예치질서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186) 고 역 설하였다. 조동일 역시 사대관계는 약소국이 강대국의 침략에 대응하는 방책이었다고 하는 (기존의) 견해는 (중세시대 여러 문명권들에 대한) 광범위한 비교연구의 결과에 178) 이종항, 한국정치사 (서울: 박영사, 1963), 쪽. 179) 전해종, 한중관계사연구 (서울: 일조각, 1970), 24, 56쪽. 180) 손승철, 조선시대 한일관계사 연구 (서울: 지성의 샘, 1994), 제1장; 박원호, 명초 조선관계사 연구 (서울: 일조 각, 2002); 김당택, 한국대외교류의 역사 (서울: 일조각, 2009), 제3장. 181) 신석호, 조선왕조 개국 당시의 대명관계, 국사상의 제 문제, 1(1959), , 특히 95-96쪽. 182) 계승범, 조선시대 동아시아질서와 한중관계: 쟁점별 분석과 이해, 동북아역사재단 (편)(2009), 쪽 참조. 183) 박충석(2010), 280쪽. 184) 이동주(용희), 국제정치원론 (서울: 장왕사, 1955), 275쪽 주9. 185) 이용희(1977), 140쪽. 나아가 사대의 예는 명분 외에 국제정치 체제로도, 또 외교정책으로도 기능하는 면이 있는 법 이라 하였다. 이용희(1977), 163쪽. 186) 이용희(1977), , 156, 169쪽. 31

28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의해 부인된다 187) 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사대의 예는 유교문명권에서 예치질서 의 일부분이었던 것이다. 우선 사대자소는 주대의 종법적 분봉제도 내에서 크고 작은 제후국들 간의 우호증진과 친목도모 및 결속강화를 위한 이른바 교린의 예[ 交 隣 之 禮 ] 에서 비롯되었다. 예컨대 춘추좌전 에서는 사대자소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예라는 것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받들고 섬기며,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어여삐 여기고 돌보아주는 것을 말한다. 사대는 큰 나라의 명령을 공손히 받드는데 있고, 자소는 작은 나라의 모자라거나 없는 것을 걱정하고 도와주는데 있다. 188) 또한 같은 책에서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신( 信 )이고 큰 나라가 작은 나 라를 돌보아주는 것은 인( 仁 )이다 189) 라 하였다. 이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은 맹 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큰 나라로서 작은 나라를 섬길 수 있다.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길 수 있다. 큰 나라로서 작은 나라를 섬기는 것은 하늘의 뜻을 즐거워하는 것이고,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늘의 뜻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천하를 지키고,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기 나라를 지킨다. 190) 이에 대하여 주자는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돌보아주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 는 것은 모두 천리의 당연함이다 191) 고 해석하였다. 명 태조 주원장은 이적이 중국을 받드는 것은 예의 변치 않는 원칙이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예나 지금이 나 똑같은 이치 192) 라 하였으며, 명대 정효도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사 리와 형세의 마땅한 일 193) 이라 하였다. 이와 같이 사대자소는 대소 제후국들이 지켜야 하는 당연한 예이자 천리였던 것이다. 194) 다시 말해 사대자소는 단순한 물리적 힘의 관 계라기보다, 하나의 가치관 명분 으로 유교문명권의 국가 간의 법 곧 천하 법 이었던 것이다. 195) 물론 한비자 등 비유가 사상가들은 사대자소를 현실적인 힘의 강약에서 보고 있기도 187) 조동일(1999a), 15쪽. 188) 춘추좌전 소공 30년 8월: 禮 也 者, 小 事 大 大 字 小 之 謂. 事 大 在 共 其 時 命 字 小 在 恤 其 所 無. 189) 춘추좌전 애공 7년 여름. 같은 책 양공 22년 가을에도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190) 맹자 양혜왕 하 3장. 惟 仁 者 爲 能 以 大 事 小 惟 智 者 爲 能 以 小 事 大 以 大 事 小 者 樂 天 者 也, 以 小 事 大 者 畏 天 也. 樂 天 者 保 天 下, 畏 天 者 保 其 國. 191) 맹자 양혜왕 하 3장 주자 注 : 大 之 字 小 小 之 事 大 皆 理 之 當 然 也. 192) 명태조실록 권90, 홍무 7년 6월 을미: 夷 狄 奉 中 國 禮 之 常 經. 以 小 事 大 古 今 一 理. 193) 鄭 曉, 吾 學 編 皇 明 北 虜 考 제69, 頁 1: 以 小 事 大 理 勢 之 常. 194) 이춘식(1997), 쪽, 195) 이용희(1977), , 148, 150쪽; 高 明 士, 天 下 秩 序 与 文 化 圈 的 探 索 (상해: 상해고적출판사, 2008), 11, 58쪽. 32

29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하였다. 196) 힘이 많으면 남들이 조공해오나, 힘이 적으면 남에게 조공해야 한다. 197) 그러나 유교에서는 힘보다는 덕과 예를 중시하고 문치를 숭상하였으며, 대외침략이나 정복보다는 수비와 방어를 강조하였다. 일찍이 공자는 먼데 사람이 복종하여 오지 않 으면 (무력을 사용하기보다는) 문덕을 닦아서 스스로 오게 해야 한다 198) 고 하였으며, 후한 초기의 하휴( 何 休 )도 왕자는 이적을 다스리지 않는다. 오는 자는 막지 않 고 가는 자는 쫓지 않는다 199) 고 하였는데, 이는 후대에도 되풀이 강조되어졌다. 한편 한국사에서 사대의 기록을 보면 삼국사기 에서 무릇 국가는 큰 나라와 작은 나라가 있고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예 200) 라고 하였다. 고려사 에서도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의이다. 섬기기를 예로써 한다 201) 또는 폐방(고려)은 본래 바다바깥의 작은 나라로서 예로부터 반드시 사대의 예를 행하며 왔고 그런 연후에야 국가를 보전할 수 있었다 202) 고 하였다. 삼국시대나 고려 때에는 사대가 생존을 위한 수단적 측면이 좀 더 강하였다는 지적도 있으나, 203) 이처럼 예규범으로 인식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성리학이 수용되면서 고려 말의 사대부들은 원 명에 대한 양단외교를 반대하고 명분을 기준으로 사대의 대상을 정하였다. 204) 조선이 건국되면서 성리학을 국가통치이념으로 삼게 되고, 대내외적으로 유교 예규범을 구현하여 이른바 동쪽의 주나라[ 東 周 ] 를 건설하겠다는 이상을 내세웠다. 그에 따라 사대는 보국의 방도 [ 保 國 之 道 ]로 여겨지기도 하였으나, 205) 그보다는 건국이념으로 삼은 유교 예치의 구체적 반영이었으며 206) 무엇보다 예규범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예컨대 조선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은 성리학을 철저히 수용하여, 한족인 명의 건국이 이적인 원나라를 물리치고 중화의 정통을 회복시킨 것이라 높이 196) 이용희(1977), 141, 150쪽. 197) 한비자 顯 學 : 力 多 則 人 朝, 力 寡 則 朝 於 人. 또한 鹽 鐵 論 권8, 誅 秦 편에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198) 논어 季 氏 1장: 遠 人 不 服 則 修 文 德 以 來 之. 旣 來 之 則 安 之. 199) 춘추공양전 은공 2년 봄 하휴 注 : 王 者 不 治 夷 狄. 錄 戎 者 來 者 勿 拒 去 者 勿 追. 200) 삼국사기 권13, 고구려 본기 제1, 유리왕 28년 8월: 以 小 事 大 者 禮 也. 201) 고려사 권102, 열전 권15, 諸 臣, 兪 升 旦 : 以 小 事 大 義 也. 事 之 以 禮. 202) 고려사 권23, 고종 19년 11월: 必 行 事 大 之 禮, 然 後 能 保 有 其 國 家. 203) 전재성(2012), 57-60쪽. 204) 예컨대 정몽주는 중원의 지배자는 의로운 군주여야 한다고 하였으며, 박상충은 이치로 보나 형세로 보 나 명나라가 우위에 있다고 하였다. 즉 이들은 명나라를 정통왕조로 여기고 천자국으로 섬겨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도현철(1999), 쪽. 205) 예컨대 조선태조실록 권1, 총서 신우 14년; 조선명종실록 권17, 9년 10월 30일 정유조 참조. 206) 왕원주, 한국근대이행기 화이관의 변화와 민족의식, 연세대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1, 18쪽; 陳 潮, 傳 統 的 華 夷 國 際 秩 序 與 中 韓 宗 蕃 關 係, 復 旦 大 學 韓 國 硏 究 論 叢, 제2집(1996), 225쪽; Walker, Hugh Dyson The Yi-Ming Rapprochement: Sino-Korean Foreign Relations, , Ph. D. diss., University of California, 1971, p

30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평가하고 명 황제를 진주( 眞 主 ) 로 존숭하여 중국과의 관계도 인간관계와 마찬 가지로 상하 존비관계로 차등화하였다. 그는 사신을 파견하는 것은 천조( 明 )에 표문을 올려서 사대의 성경을 다하기 위한 것 207) 이고 우리나라는 예로써 사대하여 조빙하고 공물을 바치며 세시에 사신을 보내니, 이는 제후의 법도를 닦고 맡은 바 직무를 보고하기 위한 것 208) 이라 하였다. 권근 역시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섬기고 이적이 중화를 흠모하는 것은 예가 또한 그러하다 209) 고 하였다. 태종 연간에 사헌부도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고금의 공통된 의리 210) 라고 하였다. 조선 전기의 양성지 역시 대개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예법의 상도로서 예로부터 다 그러하였다 211) 고 지적하였다. 따라서 중국의 번국이 되어 사대관계를 맺게 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였으며, 이러한 의식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하였다. 212) 사대의 예 와 관련하여 태종은 내가 대국을 섬기는데 있어 결코 참람한 생각이 없으니, 213) 내가 공경히 천자를 섬겨 오직 한 마음[ 一 心 ]을 다했을 뿐 내가 마음속으로 하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대국을 정성껏 섬기는 것 214) 이라 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국을 섬기는 것은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예가 그러한 것 215) 이라 하여, 사대의 본질이 예라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세종 역시 지성으로 사대하였으니, 매의 진헌 중단을 요구하는 신료들에 대해 사대함에 있어서는 마땅히 성심껏 하여야 할 것 이라며 매의 포획과 진헌 때문에 백성의 폐해가 있음을 잘 알고는 있지만 대의로 말할 것 같으면, 민간의 폐해가 있는 것은 그 일이 가벼운 것이나 사대를 성실히 하지 않는 것은 그 일이 무거운 것 216) 이라며 지성으로 사대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후일 조선이 청에 보낸 국서에서도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에 복종하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이야말로 당연한 이치 217) 라 하였다. 송시열도 기축봉사 에서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천리이나 부끄러움을 참고 원수를 섬기는 것은 인욕 218) 이라 하면서, 명과의 사대관계는 천리이지만 청과의 사대는 인욕이라 규정하였다. 위정척사파의 거두 이항로는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또한 천리의 당연함이니 공명을 계산하고 이익을 도모하여 행하여서는 안 된다 219) 고 207) 三 峰 集 권7, 朝 鮮 經 國 典 上 禮 典 摠 序 : 其 遣 使 也 奉 表 天 朝, 以 盡 事 大 之 誠 敬. 208) 三 峰 集 권7, 朝 鮮 經 國 典 上 禮 典 遣 使 : 本 國 事 大 以 禮 朝 聘 貢 獻 歲 時 遣 使 所 以 修 侯 道 而 述 所 職 也. 209) 陽 村 集 권34, 東 國 史 略 論 신라 내물왕 41년: 以 小 事 大, 以 夷 而 慕 華, 禮 亦 然 矣. 210) 조선태종실록 권8, 4년 8월 20일 기축: 以 小 事 大, 古 今 之 通 義 也. 211) 조선세조실록 권1, 1년 7월 5일 무인: 盖 以 小 事 大 禮 之 常 也, 自 古 皆 然 212) 한영우, 조선전기 사회사상연구 (서울: 지식산업사, 1983), 28쪽. 북학파였던 박지원도 동방(조선)이 중국을 사 모하는 것은 곧 그 천성[ 東 方 慕 華 卽 其 天 性 也 ] 이라고 하였다. 열하일기 망양록 망양록서. 213) 조선태종실록 권9, 2년 7월 2일 계미. 214) 조선태종실록 권18, 9년 11월 15일 계미. 215) 조선태종실록 권22, 11년 8월 18일 정미: 事 大, 非 畏 之 也, 禮 則 然 矣. 216) 조선세종실록 권33, 8년 9월 29일 기미: 事 大 當 以 誠... 民 間 有 弊 其 事 輕, 事 大 不 誠 其 事 重. 217) 조선인조실록 권34, 15년 정월 11일 신해: 以 弱 服 强, 以 小 事 大, 乃 理 之 常. 한편 청태종실록 권33, 숭덕 2년 정월 계축조에는 以 弱 臣 强, 以 小 事 大, 乃 理 之 常 으로 되어있다. 218) 송자대전 권5, 봉사 기축봉사: 小 事 大 者 天 理 而 忍 恥 事 讐 者 人 欲 也. 34

31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하였다. 민영환도 우리나라는 곧 중국의 동쪽울타리로, 자소와 사대는 고유한 명분 220) 이라 하였다. 유인석은 1913년에 저술한 우주문답 에서 중국과 조선은 친척 간의 큰집과 작은집과 같다 며 나라가 나라답고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서는 중국을 임금으로 삼고 중국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221) 고 역설하였다. 이와 같이 정통성이 있는 황제 즉 의주( 義 主 ) 또는 진주( 眞 主 ) 에 대한 사대는 당연하고도 중요한 예였던 것이다. 222) 앞서 언급하였듯이 가치관 이념과 현실은 서로 괴리되기 쉬우며, 사대의 경우도 예 외는 아니라 하겠다. 조선왕조실록 을 보면, 태조 때에 외교문서인 표전 문제로 관련 자들을 보내라는 명나라 요구에 대하여 변중량( 卞 仲 良 )은 대국을 섬기는 예절[ 事 大 之 禮 ]로서는 그리해야겠지만 임기응변하는 계책[ 應 變 之 計 ]으로서는 불편한 점이 있을 듯 하다며, 보내지 말라고 상소하였다. 223) 태종 때에도 명나라가 전쟁에 쓰일 말을 보내라 고 하는 문제에 대하여 사간원은 사대의 예[ 事 大 之 禮 ]로 말하면 바치지 않을 수 없고 종사의 계책[ 宗 社 之 計 ]으로 말하면 많이 바칠 수 없는 것 이라며, 국왕에게 사대의 예 와 종사의 계책 으로 참작하여 시행할 것을 건의하였다. 224) 이처럼 명분으로서의 사대의 예 는 다른 한편으로 조선의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임기응변의 계책, 종사의 계책 또는 권의의 계책 225), 백성의 폐해 226) 등과 대비되어 인식되기 도 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사대를 행함에 명분론과 현실론의 충돌은 어쩌면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논란이 명종 연간에 보인다. 즉 사헌부는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는 상도( 常 道 )와 권도( 權 道 )가 있는데 권도가 알맞게 되면 실 로 상도와 다름이 없다 면서, 사대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맹자 에 소국으로서 대국을 섬기는 자는 하늘을 두려워하는 자이다 하였다. 이른 바 두려워한다고 한 의미는 다른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대국의 위세를 두려워하면서 자기 나라 백성을 잘 보호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국을 섬기는 것은 단지 자기 백성을 잘 보호하기 위해서일 뿐이니, 혹시라도 대국을 섬겨야 한다는 명분만 지키면서 오히려 백성에게는 해로운 실상을 가져오게 된다면 깊이 생각하여 잘 처리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즉 사대를 행함에 상도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권도를 써서 백성에게 해가 되지 않도 219) 華 西 集 권9, 書 答 柳 穉 善 丙 午 正 月, 頁 41: 以 小 事 大 亦 天 理 之 當 然 也, 非 計 功 謀 利 而 爲 之 也. 220) 閔 忠 正 公 遺 稿 集 권2, 千 一 策 時 勢 第 三 : 我 國 乃 中 國 之 東 藩 字 小 事 大 固 有 名 分. 221) 우주문답, 서준섭 외 옮김 (춘천: 의암유인석선생기념사업회, 2002), 쪽: 中 國 朝 鮮 有 如 親 戚 大 小 家 也. 國 以 爲 國 人 以 爲 人 矣 君 中 國 而 師 中 國 也. 222) 몽고족의 원나라는 물론 만주족의 청조 역시 비한족 왕조로서 정통성시비가 있어왔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이들 왕조 를 유교권의 전형으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정통론에 대해서는 陳 芳 明, 송대 正 統 論 의 형성과 그 내 용, 민두기 (편), 중국의 역사인식, 하 (서울: 창작과비평사, 1985), 쪽; 饒 宗 頤, 中 國 史 學 上 之 正 統 論 (상해: 상해원동출판사, 1996[1977]) 등 참조. 223) 조선태조실록 권14, 7년 윤5월 3일 무인. 표전문제에 대해서는 박원호, 명초조선관계사연구 (서울: 일조각, 2002), 5-32쪽 등 참조. 224) 조선태종실록 권18, 9년 11월 14일 임오. 225) 조선성종실록 권170, 15년 9월 4일 무자: 權 宜 之 策. 226) 조선명종실록 권14, 8년 3월 30일 병오: 生 民 之 弊. 35

32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록 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고려의 현실주의적인 사대외교에 대하여 다음 과 같이 평하였다. 고려시대에 남으로는 송나라를 섬기고 북으로는 금나라를 섬겼는데, 송나라에 조공할 때에는 금나라 섬기는 일을 숨기고 금나라에 조공할 때에는 송나라 섬기는 일을 숨겼다. 상도 로 논한다면 비록 올바르지 못한 것이지만, 권도로 논한다면 백성 보호하는 방도를 잘 했다고 할 수 있다. 혹시라도 그렇게 하지 않고 송나라만 섬기고서 금나라는 끊었다면 온 나라의 백성이 모두 어육이 되었을 것이니, 고려가 어찌 5백 년이나 누리고 망했겠는가. 그러니 그 당시의 모신( 謀 臣 )들이 계책을 잘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즉 고려가 송 금 두 나라를 동시에 섬겼던 상황적 실리적 사대관계가 비록 명분상으 로는 잘못이 있으나, 백성보호라는 기준으로는 훌륭한 계책이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 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사신( 史 臣 )은 다음과 같이 비평하였다. 고려가 남으로는 송나라를 섬기고 북으로는 금나라를 섬긴 것을 이미 바르지 못한 것이라 하였으니, 간언을 드리는 사람들이 과연 바르지 못한 것으로 임금을 인도해서야 되겠는가. 비록 백성을 보호하는 길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런 의론은 취할 만한 것이 못된다. 227) 즉 비록 백성을 보호하는 길이라 하더라도, 올바르지 못한 것인 만큼 취할 만한 게 못된 다며 고려의 현실주의적인 사대외교를 비판하며, 명분론적 원칙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후대에도 보이는데, 예컨대 영조 연간에 성균관 생원들은 승국(고려)에 이르러서는 아침에는 금나라를 저녁에는 원나라를 섬기며, 오직 강약을 살펴 향배를 결 정했다 고 비판하면서 조선에 이르러서야 존주( 尊 周 )의 의 를 세우고 지성으로 사 대하여 마침내 왜란 때 재조의 은혜를 입었다고 하였다. 228) 사대나 조공문제와 관련하여 이율곡은 누구보다도 구체적이고 명쾌한 견해를 제시하 였다고 여겨진다. 이름은 비록 외국이라 하나 실은 동방의 한 제 노일 따름입니다. 예라 예라 하는 것은 옥이나 비단 등의 예물만을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삼국과 고려가 사대함에 게으르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정말로 의리가 있어 능히 그 정성을 다하였는지, 대국의 도움을 빌려 적국을 제압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위세에 눌리어서 진심으로 복종하지 않았던 일은 없는지, 감히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 예의는 비록 부지런했으나 반드시 의리에 맞지는 않았고, 그 의례는 비록 성했으나 반드시 그 정성이 있지는 않았으니, 어찌 우리 국가가 필히 의리로써 (섬기고) 필히 정성으로써 (섬기는) 것과 똑같이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듣건대, 아랫사람이 윗사람 섬김에는 쉽고 어려움 때문에 그 마음을 바꾸지 아니하 227) 조선명종실록 권17, 9년 7월 18일 병진: 雖 曰 保 民 之 道 其 論 不 足 取 也. 이와 유사한 내용은 그 1년 전 포획한 왜인 을 중국에 보낼 것인지의 논란에서도 드러난다( 조선명종실록 권15, 8년 7월 24일 무진). 228) 조선영조실록 권87, 32년 2월 1일 기해: 至 於 勝 國 朝 金 暮 元 惟 視 强 弱 而 向 背 之. 36

33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고, 성함과 쇠함 때문에 그 예의를 폐하지 아니한다 하오니, 능히 이를 행하고 있는 것은 오직 우리 국가가 중조를 섬김 바로 이것입니다. 중화와 동방이 합하여 한집안이 되어. 이제 소국이 대국을 섬겨 군신의 지위가 이미 정하여졌으니, 때의 어려움과 쉬움을 헤아리지 말고 형세의 이로움과 해로움에 꺾이지 아니하고 그 정성을 다하는데 힘쓸 따름입니다. 229) 즉 사대는 상황의 변화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의리와 정성을 다 해야 한다 고 주장하며, 삼국이나 고려의 사대는 진정한 것이 아니고 조선만이 이를 행하고 있다고 자부하였던 것이다. 본래 예는 예기 의 첫대목에서 강조하듯이 공경 이 그 핵심원 리였다. 230) 따라서 예규범인 사대를 행하는 데에도 정성과 성의를 다해야 하였음은 물론 이다. 한편 유구도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과 같 다 231) 고 하면서, 명나라에 조공횟수를 늘려줄 것을 간청하기도 하였다. 232) 또한 중국과 조선 사이에 요구되는 예적 관계는 더 나아가 조선과 야인 왜인 간에 서도 지켜져야 하는 규범이기도 하였다. 예컨대 조선이 대마도에 보낸 문서에서 다음과 같이 요구하고 있다. 무릇 아랫사람은 마땅히 삼가 그 직공( 職 貢 )을 닦아야지 감히 법을 범하면서까지 은혜를 바라서는 안 되는 것이며, 윗사람도 마땅히 오는 사람을 감싸주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법을 어기면서까지 넘치도록 은혜를 베풀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한 뒤에야 상하의 법도가 이루어져서 걱정이 없게 된다. 233) 대체로 큰 나라를 섬기고 작은 나라를 돌보는 것은 (서로의) 신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지, 이해를 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만약 신의는 돌아보지 않고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바로 맹자( 孟 子 )의 약탈하지 아니하고는 만족하지 않는다 는 말에 가까울 것이니, 양료( 糧 料 )의 많고 적음과 손익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지고 천백 년이나 서로 믿어온 신의를 손상한단 말입니까. 작은 이익에 구애되어 큰 신의를 해치지 말기를 깊이 바라는 바입니다. 이제 족하 와는 땅은 비록 다르나, 의리는 한 나라와 같으므로 234) 즉 큰 나라든 작은 나라이든 법도를 지키면서 이익추구보다는 신의를 지켜나가야 한다 고 강조하였다. 이처럼 예규범은 중국과 조공국 간에는 물론 유교문명권에서 두루 통용 되어야 하는 국제규범이었던 것이다. 본래 유교에서는 예를 귀하게 여기고 재물을 천 229) 율곡전서 습유 권4, 잡저 貢 路 策 ; 국역 율곡집, I (민족문화추진회, 1968), 쪽: 名 雖 外 國, 而 實 東 方 一 齊 魯 耳. 華 夏 東 方 合 爲 一 家... 今 夫 以 小 事 大 君 臣 之 分 已 定 則 不 度 時 之 艱 易 不 揣 勢 之 利 害 務 盡 其 誠 而 已. 230) 예기 곡례상 1절: 毋 不 敬 231) 명헌종실록 권226, 성화 18년 4월 신해: 以 小 事 大 如 子 事 父. 232) 중국과 유구관계에 대한 연구로는 권선홍(2004), 5장; 徐 玉 虎, 明 代 琉 球 王 國 對 外 關 係 硏 究 (대북: 대만학생서국, 1982); 米 慶 餘, 琉 球 歷 史 硏 究 (천진: 천진인민출판사, 1998); 丁 春 梅, 淸 代 中 琉 關 係 檔 案 硏 究 (북경: 중국당안출판 사, 2007); 紙 屋 敦 之, 琉 球 と 日 本 中 國 (동경: 산천출판사, 2003); 豊 見 山 和 行, 琉 球 王 國 の 外 交 と 王 權 (동경: 길 천홍문관, 2004); 賴 正 維, 淸 代 中 瑠 關 係 硏 究 (북경: 해양출판사, 2011) 등이 있다. 233) 퇴계집 권8, 書 禮 蓸 答 對 馬 島 主 宗 盛 長, 頁 ) 율곡전서 권13, 應 制 文 禮 蓸 答 對 馬 島 主 書, 頁 8-9: 事 大 字 小 信 義 爲 重, 利 害 非 所 恤 也... 今 與 足 下 壤 地 雖 殊 義 同 一 國. 37

34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하게 여기며 예를 먼저하고 재물을 뒤로 한다 235) 고 하여, 재물보다는 예가 중요하다 고 강조하였던 것이다. Ⅳ. 유교문명권의 책봉 조공관계 이미 언급하였듯이 유교문명권에서 하늘은 우주만물을 주재하는 최고의 신으로서 지 고무상의 절대적 존재였으며, 인간사회를 다스리는 것도 하늘의 뜻을 받아야 된다고 여 겼다. 인간세상의 최고 통치자는 바로 하늘의 아들 곧 천자 라고 일컬었으며, 천자는 또한 하늘의 대리인이자 하늘과 인간의 중개자이기도 하였다. 236) 유교문명권에서는 천명 사상 내지 대일통사상에 따라 천명을 받은 천자로부터 명 즉 책봉을 받아야 권력의 정 통성을 인정받고 국왕지위를 공인받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우선 책봉관계는 전통시대의 한중관계에서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은 물론, 더 나 아가 중세시대의 여러 문명권들에서 공통적으로 행하여졌던 보편제도였다. 중세 여러 문 명권의 책봉제도를 비교연구한 조동일의 지적대로, 책봉은 강대한 제국이 인접 국가를 지배하는 정치형태라기보다는 문명권의 동질성과 내부적인 결속을 이루는 중세의 특징 적인 제도였다. 무력의 강약에 의해 이루어지고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관계가 아니라, 문화적인 관계였던 것이다. 즉 문명권마다 하나만 존재하는 천자가 문명권의 여러 국왕 들을 책봉해야 하는 것으로 믿었으며, 책봉 절차를 거쳐야 국왕의 지위가 공인되었다. 천자의 책봉을 받은 나라들은 모두 같은 문명권에 함께 소속되어, 하늘이 부여한 도리를 공동으로 수행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37) 중세 유교문명권에서 책봉자는 천자 의 자격을 가진 황제였다. 천자는 하늘의 뜻을 지상에 펴는 매개자이므로, 하늘을 대신하여 각국의 국왕들을 책봉하는 권능을 가졌던 것이다. 따라서 천자 는 둘일 수 없고 반드 시 하나여야만 천도를 실현하는 질서가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천자만이 할 수 있는 고유 한 임무가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는 것으로, 따라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祭 天 ] 연호와 달력을 만드는[ 作 曆 ] 일은 천자만의 전권이었다. 예컨대 예기 (곡례 하 왕제 예운 235) 예기 향음주의: 貴 禮 而 賤 財... 先 禮 而 後 財. 236) 이춘식(1997), 쪽; 김충열(1994), , 쪽. 이와 유사한 주장은 고대 이집트 앗시리아 페르샤는 물 론 로마황제나 서구중세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Hugh Nibley, The Hierocentric State, The Western Political Quarterly Vol. 4, No. 2 (1951), pp ; F.H. Hinsley, Sovereignty, 2nd e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6), Chap ) 예컨대 이슬람권에서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대리인이며 문명권 전체의 유일한 칼리파(khalifa) 가 천자 노릇을 하 여, 술탄(sultan) 이라고 일컬어지는 개별 국가의 통치자가 이슬람교도임을 인정해 옷과 증서를 수여하는 절차를 거쳐야만 책봉이 이루어져서 그 권력이 종교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정당하다고 공인되었다. 조동일(1999a), 62-79쪽. 기독교권에서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의 대리자로 인정되는 총대주교(patriarch)가 최고 종교지도자로서, 신에게서 부 여받은 권능을 행사하는 천자 노릇을 하여 황제를 책봉하였다. 그러나 총대주교는 종교수장이기만 하고 황제는 아 니라는 점과, 피책봉자가 문명권 전체에 하나만 있는 황제라는 점에서 다른 문명권과 달랐다. 동방기독교권에서는 황제가 총대주교의 책봉을 받으면서 천자의 권능을 부여받아, 다시 여러 나라의 왕을 책봉하였다. 반면에 서방기독 교권에서는 총대주교(교황)가 황제를 책봉하기만 하고, 각국의 왕들은 황제가 아닌 총대주교 하위의 각국 대주교들 이 책봉하였다. 조동일(1999a) 79-98쪽. 38

35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편)에서 천자는 천지에 제사지내고 제후는 사직에 제사 지낸다[ 天 子 祭 天 地 諸 侯 祭 社 稷 ] 고 하였다. 따라서 천자가 아닌 어떠한 통치자라도 하늘과 직접 통하지 못하므로, 천자가 제정한 연호와 달력을 받아서 사용해야 하였으니 이른바 정삭을 받든다[ 奉 正 朔 ] 고 하는 것이었다. 조선 초에 개국공신들이 중국황제의 제후 지위에 있는 국왕으로 서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은 예에 어긋나는 참월한 행위 라며 그 폐지를 주장하였음 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238) 고려조에서 "일찍이 건원칭제하여 참람한 일이 자못 많았 " 239) 다며 비판하기도 하였다. 한편 피책봉자는 고려의 일부 왕이나 월남의 왕들처럼 자 국 내에서는 스스로 황제라고 일컬을 수 있으나, 천자의 책봉을 받는 통치자는 모두 국왕 일 뿐이었다. 동아시아국가의 국왕들이 모두 황제 가 되고 국가 간에 대등한 관계가 수립되면서, 책봉제도는 종말을 고하고 근대가 시작되었다. 240) 다음으로 책봉의 절차를 보면, 책봉은 문명권 전체의 공동문어를 사용하면서 이루어 지는 국제관계였다. 책봉을 하려면 조공이 선행되거나 중국연호의 사용 또는 이전 왕조 가 내려준 고명 인신의 헌납 등을 통하여 황제의 덕화에 따르고 신복한다는 뜻을 확인 할 필요가 있었다. 책봉은 경솔히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또한 책봉을 받아야만 정 례적 조공을 할 수 있게 되고, 나아가 동아시아국제사회의 정식 일원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책봉을 받아야만 공식적으로 국왕 호칭을 사용할 수 있었고, 그 이전에는 권서국 사( 權 署 國 事 )나 세자 등의 이름으로만 부를 뿐이었다. 241) 즉 책봉을 받지 못하면 정부 (왕실)차원에서 중국과의 공식적인 왕래나 교류는 불가능하며, 다만 변방에서의 교역 통상관계만이 시혜차원에서 허용되었을 뿐이었다. 242) 유교문명권의 경우 일정한 격식에 따라 한문으로 작성된 국서와 함께 왕권을 상징하는 금인 등을 내려줌으로써 책봉이 이 루어졌다. 명 청대의 경우 조선 안남 유구 세 나라에는 직접 사신을 보내 책봉하였고 [ 遣 使 往 封 ], 나머지 나라들의 경우 그 나라의 사절에게 주어 가져가게[ 順 付 ] 하였다. 또 한 명대에 조공국 국왕에게 수여하는 인장은 금인 도금은인 은인 3종류였는데, 조선과 일본에게는 거북뉴 금인[ 龜 紐 金 印 ]이, 유구나 안남 등의 나라에게는 낙타뉴 도금은인[ 駝 紐 鍍 金 銀 印 ]이 각각 주어졌다. 243) 책봉은 이러한 국서를 교환하면서 추진되고 천자가 국 왕에게 고명과 인신을 수여하는 행위로 구체화되며, 공물 이라는 물품과 답례인 하사 품을 주고받으며 물물교환이 수반되었다. 244) 따라서 피책봉국가들은 천자로부터의 책봉 238) 한영우(1983), 32-37쪽. 239) 조선세종실록 권125, 31년 7월 4일 임오. 240) 조동일(1999a), 39, 50, 104쪽. 그 과정에서 칭제건원( 稱 帝 建 元 )에 반대하는 주장도 있었다. 예컨대 이항로의 제자 柳 麟 錫 은 개화파의 자주독립론을 비판하면서, 명분을 모르고 참람하게 황제를 칭하는 각국들과 같은 대열에 서기보 다는, 중화의 臣 邦 이 되는 것이 명분도 바르고 영광스러운 일 이라고 주장하였다. 毅 菴 集 권37, 雜 著 病 床 記 言, 頁 4-5; 이상익(1997), 136쪽. 241) 서구에서도 왕위계승자는 대관예정자(coronandus) 혹은 군주(princeps)지명자라 하다가 서임즉위식에서 가장 중요한 도유례를 통해 정식 왕(rex)으로 호칭되었다. 차용구, 중세 초 왕권에 대한 기독교 사상가들의 견해, 지동식 (편), 서양 고대와 중세의 사회 (서울: 신양사, 1993), 쪽. 242) 좋은 예로서 청대 서양상인들에 대한 광동무역제도(Canton System)를 들 수 있다. 243) 明 史 권68, 輿 服 志 4 및 권73, 職 官 志 ) 국서가 문명권의 동질감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구실을 하였다면, 조공과 그에 수반되는 무역은 물질의 교환을 이루 게 함으로써, 문명권의 동질성을 이중으로 다져나갔던 것이다. 조동일(1999a), 31쪽. 39

36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을 매우 자랑스러워하였다. 245) 즉 책봉 받는 것을 매우 큰 영예이자 경사라 하면서, 나 라 다스리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매우 긴요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고려 인종은 책명 (책봉)이 천자가 제후를 포상하는 중대한 예절[ 大 典 ] 246) 이라 하였고, 우왕도 무릇 왕이 되려는 자는 반드시 천자의 책봉을 받아야만 왕 노릇을 할 수 있다 247) 고 하였다. 이는 조선은 물론이고 유구 248) 나 월남 249) 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뿐만 아니라 대마도나 구주지역의 지방 호족들도 조선으로부터 관작이나 도서를 받고 무역 특권이 주어졌는데, 도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며 감격하기도 하였다. 250) 한편 조공은 책봉과 표리를 이루는 것으로, 251) 예기 에서 조근의 예는 군신관계 의 대의를 밝히기 위한 것 이라며 조근의 예를 폐기하면 군신의 지위를 잃게 된 다 252) 고 하였다. 본래 주례 의 빈례 는 주왕(천자)과 제후들 간의 관계에 적용 되는 것이었으나, 통일제국인 한대부터 황제와 외국 군주들 관계에도 준용되기 시작하였 으며 당대에 확립되고 송대를 거쳐 명대에 와서 완비되었다. 253) 245) 조동일에 따르면 이슬람권에서도 술탄이나 지방 군주들은 통치의 정당성 합법성을 확보하기 위해 신의 대리인이며 종교와 세속정치의 수장인 칼리파의 권위에 의존하였는데, 자신들의 권력은 칼리파의 재가로 보장받는다고 믿었으며 따라서 책봉 받는 것을 커다란 명예로 여겼다. 즉 이슬람세계의 술탄이나 군주라면 마땅히 칼리파에 대한 충성의 맹세 와 충성의 맹세에 따르는 의무사항 선언 을 해야 하였으며 이는 바로 칼리파의 책봉을 받아야 한다는 의 미로서, 책봉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권한이 약화되거나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공인 받는 것이었다. 따라서 책봉을 받 지 않은 통치자는 찬탈자이거나 불신자(이교도)로 여겨져 백성들이 불신하고 따르지 않게 되어 종종 전쟁을 일으켜 책봉을 강요하기도 하였으며,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도 여전히 칼리파의 책봉을 받고 존경을 표시하며 지고의 존재로 받들었던 것이다. 조동일(1999a), 62-79쪽; Jurji Zayadan, History of Islamic Civilization: Umayyads and Abbasids. translated by D.S. Margoliouth (New Delhi: Kitab Bhavan, 1981), pp ) 고려사 권15, 인종 원년 6월 갑오. 247) 고려사 권134, 우왕 6년 6월. 248) 유구는 조선에 보낸 자문에서 지금 대명 황제의 먼데 사람을 회유하시는 은혜를 입어 영광스럽게 왕작을 봉해 이 지방을 관장하게 되었으니 ( 조선태종실록 9년 9월 21일 경인), 폐방이 귀국과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함께 천조(명)에 칭신하는 폐방이 근년에 관복을 반사하고 왕작을 습봉하는 천조의 황은을 입어 비로소 귀국 과 형제의 정을 맺어 함께 천조의 번병으로 고굉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후로는 영원히 동맹을 맺어 귀 국은 형이 되고 폐방은 동생이 되어 천조를 부모로 섬기면서 화목하게 지내고 빙문하여 영원히 변하지 않기를 바랍 니다 ( 조선광해군일기 원년 3월 22일 계묘 및 원년 12월 21일 무진) 운운하였다. 249) 안남국왕이 청에 보낸 사은주문에서 진실로 오늘날 위대하신 황제께서 커다란 은혜를 내리시고 남방에서 제 후의 법도를 길이 지켜나가게 하고자 신은 실로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으로서 이런 영광을 입게 되었는 데 어떻게 천지 같으신 은혜에 만분의 일이나마 보답하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신은 외람되게 봉작을 받고 즉시 남쪽 지방 울타리 역할을 맡은 셈인데 신은 자손 대대로 황제의 가르침을 삼가 준수하여 대청국을 받들어 나갈 것입니다. 신은 영광스럽게도 봉호를 받게 되었으니 스스로 물어보아도 이를 보답할 길이 없습니 다 ( 조선정조실록 14년 3월 2일 정미)고 하였다. 250) 조선중종실록 권64, 23년 윤10월 5일 계유; 조선순조실록 권27, 24년 윤7월 28일 무오. 251) 김한규(2005), 31-32, 64쪽. 252) 예기 경해: 朝 覲 之 禮 所 以 明 君 臣 之 義 也, 聘 問 之 禮 所 以 使 諸 侯 相 尊 敬 也 聘 覲 之 禮 廢 則 君 臣 之 位 失. 253) 김성규(2003), 쪽. 명 홍무3년(1370)에 만든 명집례 의 빈례는 번왕조공 번사조공 및 견사 의 세 가지 예의로 이루어져 있으며( 明 集 禮 권30-32, 賓 禮 1-3; 明 史 권56, 志 제32 禮 10 賓 禮 ), 明 會 典 에도 조 공과 관련하여 그 횟수와 사절규모 노정, 조공품과 하사품, 표문과 감합, 각종 금령 등 상세한 절차와 규정이 만들 어졌다( 明 會 典 권 , 禮 部 63-70). 즉 명대에 이르러 구체적인 책봉조공관련 규정을 두었는데, 이와 관련하여 김경록(2012), 1-27쪽; 李 无 未 (1998), 48-50, 쪽; 萬 明 (2000), 2장; 李 雲 泉 (2014), 2장, 4장 3절; 李 慶 新 (2007), 2-4장; 付 百 臣 (2008), 4장 등 참조. 한편 청대의 조공관련 규정은 명대의 것을 기초로 하면서도 유목민의 전통과 실 제 대외관계의 경험을 통하여 고쳐나간 것이다( 淸 史 稿 권91, 志 66 禮 10 빈례; 淸 會 典 禮 部 主 客 淸 吏 司 ; 淸 會 典 事 例 禮 部 朝 貢 ). 청대의 경우 陳 志 剛 (2000), 3장, 6장; 王 開 璽 (2009), 1장; 曹 雯 (2010), 1장; 張 雙 智 (2010); 何 新 華 40

37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명나라는 조공의 기한과 인원수 및 노선 등을 규정해놓았다. 조공기한[ 貢 期 ]은 명조 와의 친밀도를 보여주는 척도라고 할 수 있으며, 나라마다 차이가 있었다. 254) 중국은 가 능하면 조공횟수를 줄이려는 것이 기본 방침이었다. 예컨대 명 태조는 홍무 5년에 고려 의 조공사절이 너무 빈번하게 온다고 지적하며 마땅히 3년에 한번 빙례하는 예를 따 르거나 또는 매년 한번 내조하게 하되, 조공방물은 그 나라에서 나는 베 10필로 족하며 과다하게 하지 말라 고 하면서, 이를 알려주라고 하였다. 아울러 점성 안남 섬라 진 랍 등이나 새로 귀부하는 먼 나라들이 내조하는 경우에도 이러한 뜻을 잘 알리도록 하 라고 명하였다. 255) 또한 조공사절이 중국에 입국하는 장소와 북경에 이르는 노선, 입경 인원까지 규정하였다. 256) 끝으로 조공품과 회사품, 황제알현례 등에 대해서도 규정하였 다. 조공사절의 북경입성 후 제일 먼저 표문을 예부에 바쳐야 하였다. 그리고는 택일하 여 황제를 알현하였는데, 황제를 알현하거나 회사품을 받을 때 등 정해진 경우에는 필 히 오배삼고두( 五 拜 三 叩 頭 ; 청대에는 三 跪 九 叩 頭 )를 해야 하였다. 조공관계에서 가장 중 요한 것은 국왕 스스로 신하라 일컫는[ 稱 臣 ] 표문( 表 文 )과 함께 황제에게 행하는 고 두례였다. 257) 이처럼 책봉 조공관계는 책봉과 조공의 예를 서로 교환하는 관계로서, 송 명 청대 중국사절의 조선사행록을 연구한 김한규는 책봉과 조공이 예 그 자체 였기 때문에 책봉-조공관계는 예에서 출발해서 예에서 끝나는 관계였다 며, 의례의 의미가 절대적이고 예제가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고 지적하였다. 258) 중국왕조들이 책봉 조공예의를 상세히 규정하고 이행해나간 것은 무엇보다 그 정치 적 의의가 막중하였기 때문이었다. 즉 예치질서를 통하여 국내는 물론 외국까지 포함되 는 천하질서를 유지하려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주변의 여러 조공국들과 명분상 상하군 신관계를 예치질서 속에 구현함으로써 천하공주 로서의 황제의 권위와 위상을 새롭 게 재확인해 나갔으며, 이는 대외적으로는 물론 대내적으로도 필요한 통치행위였던 것이 다. 259) 한편 조공국들은 책봉을 받음으로써 권력의 정통성을 인정받아 국내정치적 안정 과 함께 유교문명권의 정식 회원국이 됨으로써 대외적 위상을 높이기도 하였다. 260) 한마 (2011), 1-4장; 尤 淑 君 (2013), 1장; 李 雲 泉 (2014), 3장 등의 연구가 있다. 254) 조공기한 규정이 바뀌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명대의 경우 조선은 1년 3공, 유구는 2년 1공, 안남은 3년 1공, 일본은 10년 1공이었다. 明 會 典 권105, 禮 部 63, 頁 1-9; 李 雲 泉 (2014), 61쪽. 255) 명태조실록 권76, 홍무 5년 10월 갑오. 256) 명회전 권 , 조공1-2 참조. 257) 중국은 조공사절이 정해진 문서 특히 표문을 지참하지 않거나 문서가 격식에 어긋나는 경우, 되돌려 보내기도 하였 다. 예컨대 明 史 권322 일본전에 보면, 일본 사신들이 표문이나 국왕의 명이 없다든가 중국연호를 사용하지 않 았다는 등의 이유로 거부된 사례가 적지 않게 기록되어 있다. 한편 조선도 경국대전 이나 대전회통 의 禮 典 待 使 客 條 에서 왜인이 포소(지정 선착장)에 도착하면 변장( 邊 將 )이 서계 도서 노인( 路 引 )을 조사 하여 서계 가 격식에 맞지 아니하는 자는 돌려 보낸다[ 書 契 違 格 者 還 入 送 ] 고 규정하였다. 258) 김한규(2011), 20-23, 105, 146, 150, 230쪽. 259) 물론 중국 역대왕조가 현실적으로 항상 우월한 지위를 유지했던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한대 초기에 흉노와의 대등 관계, 송대에는 요 금과 대등 내지 열등관계였던 시기도 있었다. 260) 이용희(1977), , 165쪽; 李 揚 帆 (2012), 쪽; Kim(1980), pp 또한 정치 이외에 경제와 문화 차원의 이 유 등도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이용희는 명분으로서의 가치관에는 사대의 예로써 무엇을 얻느냐 실리는 무엇이냐 하는 것이 강조되고 있지 않 았다고 지적하였다. 이용희(1977), 쪽. 조동일의 지적대로 중세인들은 실리보다는 명분이나 명예를 중시하였던 것이다. 조동일(1999a), 63, 95쪽. 41

38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디로 왕조정권의 상호 유지라는 기능적 측면이 강하였다고 하겠다. 261) Ⅴ.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에 대한 평가 이상에서 유교예치질서의 일부를 이루는 국제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이에 대한 평가를 간단히 해보려 한다. 첫째, 중국과 조공국 간에 경제적 득실은 어떠하였을까? 이 미 말한 대로 전해종은 조선 측의 손실이 컸다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조선과 청 관계에 서 청이 조선 측에 내려준 물품은 조선의 세폐와 방물에 비해 10분의 1에 미달하여, 조 선에게는 경제적 이득은커녕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였 으며 경제적으로 매우 불리 한 것 이라 지적하였다. 262) 한편 이용희는 힘에 의한 사대의 경우에 조공은 착취이거나 가혹한 공부( 貢 賦 )였다고 하겠으나 명분관계인 경우에는 여러 이익이 조공국에 있었던 것이 대체의 실정이라고 하였다. 263) 당시 조선인들의 경우, 예컨대 세종은 또 들으니, 내가 사대의 예를 지나치게 한다고 말한다는데, 지금 명나라가 사신을 보내오고 상을 주 고 하는 일이 없는 해가 없을 정도로 예우가 융숭함이 일찍이 없었다. 다만 우리나라는 본래 예의의 나라로서 해마다 직공( 職 貢 )의 예를 닦아 때에 따라 조빙하면, 명나라가 이 를 대우하는 것이 매우 후하였다. 그런데 정성을 다하여 섬기지 않는다면 이것은 크게 불경하는 일이고 특히 신하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 그럴 수가 있겠느 냐? 264) 고 하였다. 즉 사대는 정성을 다해야 하고 그에 따른 명의 대우가 매우 후하다 고 하였다. 후일 정조 원년에 청나라에 사절로 갔던 이압은 (북경에 이르는) 연로로부터 사절 숙소에 머무르기까지 중국이 지급하는 여러 물품과 상사( 賞 賜 )하는 물품들을 모 두 계산하면 우리나라 방물 수보다 훨씬 많다[ 遠 過 ] 265) 고 지적하였다. 정조 역시 사대 에서는 중국의 접대와 상사가 매우 후하여 주고받는 것이 비슷하지만[ 置 相 當 ], 일본과의 교린에서는 무용지물이나 얻을 뿐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고 하였다. 266) 조선과 대 마도관계를 보면, 대마도가 진상하는 물품보다 조선의 하사품이 많았던 것이 통례였다. 예컨대 1764년 통신정사로 일본에 다녀온 조엄은 그들이 바치는 것은 우리가 주는 것 에 비교하면 10분의 1밖에 안 된다 267) 고 지적하였다. 따라서 중국과 조공국 간의 경제 적 손익문제는 다른 한편으로 소책봉관계 예컨대 조선과 야인 대마도와의 관계 등까지 함께 고려해야 전체적 실상을 알 수 있다고 본다. 261) 이용희(1977), , 165, 186쪽. 262) 전해종(1970), , 특히 85, 99, 112쪽. 263) 이용희(1977), 쪽. 264) 조선세종실록 권40, 10년 윤4월 18일 기해: 又 聞 議 者 以 予 爲 過 於 事 大 之 禮 方 今 上 國 遣 使 賞 賚 無 歲 無 之 其 眷 遇 之 隆 者 無 他, 但 以 我 國 本 禮 義 之 邦 歲 修 職 貢 朝 聘 以 時 耳 大 國 待 之 甚 厚 而 不 盡 誠 事 之 則 是 爲 大 不 敬 殊 失 人 臣 之 義, 其 可 乎? 265) 李 押, 燕 行 記 事 문견잡기 하, 국역 연행록선집, Ⅵ (민족문화추진회, 1976), 쪽. 266) 정조, 홍재전서 권176, 日 得 錄 ; 노대환, 동도서기론 형성과정연구 (서울: 일지사, 2005), 68쪽 재인용. 267) 조엄, 해사일기 계미년 10월 28일, 국역해행총재, Ⅶ(민족문화추진회, 1975), 66쪽; 이원식, 조선통신사 (서울: 민음사, 1991), 122, 329쪽. 42

39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본래 중국은 조공물의 종류와 수량도 지정하였는데, 대체로 공물은 그 나라의 토산물 로 하도록 하였고 토산물이 아니면 진상하지 못하게 하였다. 268) 조공물품도 수량보다는 그 정성과 공경을 중시하였던 것이다. 269) 중용 9경( 九 經 )장에서는 "제후들을 품어 주는 것 을 강조하고 있다. 무릇 천하 국가를 다스리는데 9가지 원칙이 있다. 제후들을 품어주는 것[ 懷 諸 侯 ]이다. 제후들을 품어주면 천하가 경외하게 된다. 끊어진 대를 이어주고 무너진 나라를 일으켜주 며, 어지러운 것을 다스려주고 위태로운 것을 붙잡아주며, 조근과 빙문을 때에 맞추어 하고, 보내는 예물은 후하게 하고 받는 공물은 적게 하는 것[ 厚 往 而 薄 來 ]이 제후들을 품어주는 방법 이다. 이처럼 후하게 주고 적게 받는다 는 후왕박래( 厚 往 薄 來 ) 의 유교 원칙과 이상은 후대에도 큰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조공의 빈도를 늘려달라는 요청도 조선이나 유 구 등 조공국들이 하였으며, 중국은 가능한 들어주지 않으려 하였다. 더욱이 서구의 조 공관계는 정복과 피정복관계였으며, 조공에 대해 그에 상응하는 회사품도 없는 일방적 행위가 일반적이었다. 270)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조공국은 경제적으로 이익을 보았거 나 별다른 손해는 없었다고 하겠다. 271) 둘째, 유교문명권에서의 간섭문제를 살펴보자. 대체로 중국은 조공국이 기본 예규범 을 지키는 한 내정에 간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본래 유교에서는 기본적으로 매우 관후한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예기 에는 교화를 닦을 뿐이지 그 풍속을 바 꾸지 않으며, 정령을 가지런히 할 뿐이지 그 지역의 고유습속을 바꾸지 않는다 272) 라 하였고, 앞서 인용한 중용 의 천하국가를 다스리는 9가지 원칙에 어루만져주는 것[ 柔 遠 人 ] 이 포함되어 있다. 먼데 사람들을 먼데 사람들을 어루만져주면 사방의 사람들이 스스로 따르게 된다. 떠나갈 때 잘 보내주고 올 때 잘 맞이하며, 잘하는 일은 칭찬해주고 잘못하는 일은 동정해주는 것이 먼데 사람들을 어루만져주는 방법이다. 우선 책봉과정을 보면, 무엇보다 조공국의 책봉요청[ 請 封 ]이 선행되어야만 하였다. 이는 조공국 국왕이 중국 천자의 천하공주 위상을 인정하고 그 신하가 되겠다는 의 사표현이기도 하였지만, 쌍방이 공동참여하고 상호승인한다는 측면도 있었다고 하겠 268) 錢 實 甫 (1959), 25쪽; Fairbank and Teng(1941), p ) 예컨대 明 太 祖 實 錄 권88, 洪 武 7년 3월 계사: 其 所 貢 方 物 不 過 表 誠 敬 而 已 ; 명태조실록 권89, 홍무 7년 5월 임 신: 自 今 寧 使 物 薄 而 情 厚 毋 使 物 厚 而 情 薄 ; 明 宣 宗 實 錄 권63, 宣 德 5년 2월 계사: 自 今 貢 獻 惟 以 土 物 效 誠 而 已. 270) 張 雙 智 (2010), 6장. 또한 Abraham I. Pershits, Tribute Relations, in S. Lee Seaton & Henri J. M. Claessen (eds.), Political Athropology (The Hague: Mouton Publishers, 1979), pp 참조. 271) 조선은 청과 전쟁을 통해 조공관계가 수립되었으며, 세폐는 전쟁배상금의 성격이 있다고 하겠다. 양국관계가 호전되 면서 청은 이를 점차 삭감하여 주었다. 272) 예기 왕제: 脩 其 敎 不 易 其 俗 齊 其 政 不 異 其 宜. 43

40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다. 273) 유구의 경우, 왜구의 소요나 책봉요청 지연 등의 이유로 즉위 후 수년 혹 십여 년이 지나서야 행해지기도 하였다. 274) 명 청의 조선 책봉과 관련하여 전해종은 적극 적인 간섭을 한 일은 한번도 없다 275) 고 평가하였다. 명나라가 고려에 보내온 국서에서 도 (왕을) 세우는 것도 저들에게 있고 폐위시키는 것도 저들에게 있다. 우리 중국은 상관하지 않겠다 276) 고 하였다. 또한 중국은 기실 (조공국) 국왕이 존립하느냐의 여 부는 (중국)조정의 책봉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 대체로 해외 번방들은 일이 없으면 조 공을 폐하고 자립하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조공을 구실 삼아 책봉을 요청한다 277) 는 사실도 간파하고 있었다. 즉 조공은 임명이 아니라, 국왕의 기존 권력과 지위를 공인하 는 행위였던 것이다. 278) 다음으로 중국은 조공국의 자주를 강조하였다. 명 태조가 고려에 보내온 문서에서 짐이 옛 군왕들을 살펴보니, (오복 중에서) 전복 후복 수복의 바깥은 다스리지 아니 하였고 그 나라 사람들이 스스로 다스리게 하였다 279) 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공국은 중국이 다스리는 곳이 아니다 라면서, 의례는 본국의 풍속을 따르고 법은 예전에 시행하던 전장을 지키라[ 儀 從 本 俗 法 守 舊 章 ] 며 성교자유( 聲 敎 自 由 ) 를 인정하는 국 서를 여러 차례 보내기도 하였다. 280) 임란 때 명 황제가 선조에게 보낸 칙유에서도 짐 이 왕을 대함에 비록 외번이라 부르지만 그러나 조빙예문 외에는 왕에게 병사 하나, 역 인 하나도 번거롭게 하지 않았다. 대병도 철수하였으니, 왕은 이제 스스로 돌아가 다 스리도록 하라. (조선의) 조그마한 땅도 짐은 관여하지 않겠다. 어찌 다시 국경을 넘어 구원하는 것을 상사( 常 事 )로 여길 수 있겠는가. 이제부터 존망과 치란의 기틀은 왕에게 있지 짐에게 있지 않다 라며, 이를 경계하고 삼가라고 하였다. 281) 조선후기에 청이 (조선은) 속방이나 내치외교는 자주 라는 이른바 속방자주론 을 내세웠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중국이 조공국들에게 요구한 내용을 보더라도 주로 예와 분수를 지키라는 것이 었다. 예컨대 명이 조선에 보낸 국서에서 만일 천리를 어기고 인륜에 어긋나는 일이 273) 孫 宏 年, 淸 代 中 越 宗 藩 關 係 硏 究 (하얼빈: 흑룡강교육출판사, 2004), 2장. 274) 米 慶 餘, 琉 球 歷 史 硏 究 (천진: 천진인민출판사, 1998), 37쪽. 275) 전해종(1970), 53쪽; Kim(1980), pp ) 고려사 권137, 창왕 원년 3월 정해: 立 亦 在 彼 廢 亦 在 彼 中 國 不 與 相 干. 277) 명사 권324, 占 城 傳 弘 治 18 年 ; 明 武 宗 實 錄 권2, 弘 治 18년 6월 경오: 其 實 國 王 之 立 不 立 不 係 朝 廷 之 封 不 封 也... 大 都 海 外 諸 蕃 無 事 則 廢 朝 貢 而 自 立 有 事 則 假 朝 貢 而 請 封. 278) 조동일(1999a), 96, 99쪽; 김한규(2005), 272, 327, 536쪽. 279) 명태조실록 권89, 홍무 7년 5월 임신; 고려사 권44, 공민왕 23년 6월 임자: 朕 觀 上 古 之 君 自 甸 侯 綏 服 之 外 不 治. 其 令 土 人 主 之. 280) 명태조실록 권221, 홍무 25년 9월 경인: 高 麗 限 山 隔 海 僻 處 東 夷 非 我 中 國 所 治.; 明 史 권320, 열전제208 외국1 조선, 홍무 25년 9월: 高 麗 僻 處 東 隅 非 中 國 所 治.; 명태조실록 권244, 홍무 29년 정월 을해: 其 四 夷 外 蕃 風 殊 俗 異 各 有 酋 長 自 治 其 民 初 不 以 中 國 之 治 治 之 此 內 外 遠 近 之 別 也. 今 朝 鮮 僻 在 東 隅 遠 隔 山 海 朕 嘗 勅 其 禮 從 本 俗 使 自 爲 聲 敎 來 則 受 之 去 亦 勿 追. 예컨대 고려사 권135, 우왕 11년 9월, 조선왕조실록 태조 5년 3월 29일 병술; 태조 7년 5월 14일 경신; 정종 원년 6월 27일 병인; 세종 18년 4월 25일 신유; 세종 28년 6월 7일 계묘 등 참조. 281) 명신종실록 권264, 만력 21년 9월 병자; 조선선조실록 권45, 26년 윤11월 12일 임진: 朕 之 視 王, 雖 稱 外 藩, 然 朝 聘 禮 文 之 外, 原 無 煩 王 一 兵 一 役. 大 兵 且 撤 王 今 自 還 國 而 治 之, 尺 寸 之 土 朕 無 與 焉, 其 可 更 以 越 國 救 援 爲 常 事? 自 今 存 亡 治 亂 之 機 在 王 不 在 朕. 44

41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없으면, 그들 나라 안에서 스스로 주장하도록 하게 하라 282) 고 하여 천리와 인륜 곧 예를 지키라고 요구하였다. 또한 명이 안남과 점성에게 내린 조서에서도 하늘을 두 려워하고 분수를 지키라 283) 하였고, 섬라에게 내린 칙유에서도 분수와 예를 지키며 이웃나라들과 화목하라 284) 고 하였다. 유구에게도 상국 섬기는 정성을 더욱 굳게 하 고 공경히 신하의 절의를 지키며 공순히 직공을 닦으라 285) 고 요구할 뿐이었다. 한마디 로 천리와 인륜 즉 (신하 곧 제후로서의) 분수와 예를 준수하라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이처럼 예교의 명분에서 사대자소의 관계가 일단 성립되면, 내정간섭이라든가 정치관여 는 존재하지 않던 것이 원칙이었다. 286) 조공국은 책봉을 받고 정해진 기간에 조공을 행 하며 중국연호를 사용해야 하였으며, 무엇보다 황제의 신하로 자처하는 칭신( 稱 臣 ) 과 고두례 등 정해진 예절을 이행하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황제와 국왕 간의 관계는 사 절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무엇보다 외교문서가 핵심적이었다. 다시 말해 책봉과 조공관 련 외교문서의 격식이나 호칭 등과 관련하여 기본적인 예규범만 제대로 이행한다면, 중 국은 원칙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287) 그러나 조공국이 지켜야 할 예규범을 벗어나는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본래 황제 는 유교문명권의 최고 수호자였던 만큼, 천리를 어기고 인륜에 어긋나는 일이 있으 면 즉 예에 어긋나는 경우에는 사실조사나 경고 문죄 또는 부득이한 경우 (물론 현실 적 수단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였지만) 출병 등 합당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당연시되었 다. 288) 즉 중국의 간섭이나 정치적 압력이 가하여지는 일은 대개 사대의 명분에 분규가 생긴 경우 곧 새로운 정치세력이 정통의 명분 없이 무력으로 상국의 지위를 인정시키려 는 준전시적인 분위기에서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요 금 원과 고려, 청과 조선 간 의 분규가 그러한 예라 하였다. 또 다른 간섭의 예로는 찬탈 등 유교권의 명분을 어겼다 고 해서 견책 또는 조공 단절하는 경우인데, 예컨대 명나라 초기에 안남의 여일원( 黎 一 元 )이 살군부도( 殺 君 不 道 ) 하다고 하여 조공단절하고 견책한 것을 들 수 있다. 289) 282) 조선태종실록 원년 윤3월 15일 갑진: 若 果 無 虧 天 理 悖 人 倫 的 事, 任 他 國 中 自 主 張. 283) 明 太 祖 實 錄 권47, 洪 武 2년 12월 임술: 諭 以 畏 天 守 分 之 道. 284) 明 太 宗 實 錄 권72, 永 樂 5년 10월 신축: 自 今 安 分 守 禮 睦 隣 境. 안남에게 내린 같은 내용의 칙유는 明 英 宗 實 錄 권190, 景 泰 원년 3월 병인: 安 分 守 禮 保 邦 睦 隣. 285) 명영종실록 권90, 정통 7년 3월 임오: 益 堅 事 上 之 誠 敬 守 臣 節 恭 修 職 貢. 286) 이용희(1962), 57, 59쪽; Kim(1980), pp ) 임민혁은 조선 내에서 사사로이 묘호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참례이기 때문에 논란이 많았지만 정작 명은 별다른 간섭 을 하지 않았다며, 양국 간의 사대관계가 조공 책봉이라는 제한적 기능에 머물렀다고 하였다(임민혁, 조선시대의 묘효와 사대의식, 조선의 예치와 왕권 [서울: 민속원, 2012], 쪽). 또한 정동훈도 조선 태조 때의 표전문 제에서 보듯이, 명은 외교현안에서 실재 사건보다는 대체로 예제 문제를 빌미로 삼았다고 지적하였다(정동훈, 고려 -명 외교문서 서식의 성립과 배경, 한국사론, 56 [2010], 194쪽). 심재권은 조선이 명청에 보낸 국서는 당시 관 념상 바로 예 의 표현이라 하였다(심재권, 조선의 대명청문서로 인한 갈등사례 분석, 고문서연구, 제34호 [2009], 101쪽). 288) 이용희(1977), 161쪽; 권선홍(2004), 98-99, 쪽. 예컨대 명나라 예부에서 조선에 보낸 서신에서 중국이 그 대의 삼한 나라와 매우 가까우니 이륜의 도리가 조금이라도 틀린 점이 있다면 어찌 책망하지 않는 예절이 있겠습니 까?[ 中 國 與 爾 三 韓 密 邇. 彝 倫 之 道 纔 有 訛 謬 安 有 不 責 之 於 禮 乎! ] ( 조선태조실록 권14, 7년 5월 14일 경신)라 하였 고, 국왕 선조는 명 사신에게 반역자를 토벌하고 포악한 자를 주벌하는 것은 제왕의 성전[ 伐 叛 誅 暴 帝 王 盛 典 ] ( 조선선조실록 권45, 26년 윤11월 12일 임진)이라 하였다. 289) 이용희(1962), 59쪽. 예컨대 명 태조는 안남이 찬시했으므로 조공을 불허한다[ 安 南 簒 弑 不 許 朝 貢 ] 며, 그 사절도 45

42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한편 조공국의 경우, 예의 한계를 넘어서는 중국의 요구를 거절하기도 하였다. 예컨 대 천성으로 사대하였다는 후대의 평가를 받은 세종은 명의 파병요청을 거절하기도 하 였다. 290) 사대를 예법의 상도 라고 하였던 양성지도 예법은 본국의 풍속을 따라야 한다 291) 라면서 먼저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이니, 대개 고금 천하와 국가의 일은 자치 보다 큰 것이 없다 292) 라 하여, 사대와 자주가 배타적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병존하 는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293) 나아가 조선은 천자의 직접 통치를 받는 기내( 畿 內 )의 사세와는 다르다 면서, 큰 나라를 섬기는 예법을 다하지 않을 수도 없 지만 그렇다 고 자주 할 수도 없는 것 294) 이라 하여, 사대에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역설하였 다. 295) 사대란 이해득실이나 난이 성쇠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복종 하고 의리와 정성을 다해야 하는 관계 라고 역설하였던 이율곡도 사대의 예란 성심 껏 부지런히 조공을 행하고 각기 그 봉강을 잘 지킬 뿐 이라면서, 이를 벗어나는 일 은 사대의 예 와는 무관하며 중국이 이런 문제에 개입하는 것도 비례 라고 보았 던 것이다. 예컨대 율곡은 중국 요양지방의 기민 구제여부에 대하여 강역은 한계가 있 고 정치는 서로 관여하지 않으니, 중국의 유민은 중국이 마땅히 진휼해야 한다. (조선 의) 창고곡식은 유한하고 (중국의) 유민은 무수하니 능히 다 지급될 수 있겠는가? 어찌 헛된 은혜를 쫓아 스스로 나라를 병들게 할 것인가 라면서 우리의 중국 섬기는 예절이나 힘쓰고 각기 그 경계나 잘 지킬 뿐 296) 이라며 반대하였던 것이다. 또한 율곡 은 명나라가 의주 부근에 진( 鎭 )을 설치하고 널리 개간하려 하자, 그렇게 된다면 조 중 양국민 간의 왕래가 빈번해지고 또한 사단이 일어나는 등 반드시 후환이 많을 것이라며, 명에 사신을 보내어 그 중지를 주청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297) 병자호 란 당시 인조가 청에 보낸 항복국서에서도 신이 바야흐로 성신으로 폐하를 섬기고 폐 하께서도 또한 예의로 소방(조선)을 대하시어 군신 사이에 각기 그 도리를 다하며 298) 운운하여, 서로 성신으로 섬기고 예의로 대함으로써 각기 그 도리를 다해야하는 관 계 임을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사대는 서로 예로써 사대하고 예로써 대우하며 299) 입국시키지 말라고 지시하였다. 명태조실록 권232, 홍무 27년 5월 갑인조. 또한 유인선, 베트남과 그 이웃 중 국 (서울: 창비, 2012); 山 本 達 郞 ( 編 ), ベトナム 中 國 關 係 史 (동경: 山 川 출판사, 1975); 鄭 永 常, 征 戰 與 棄 守 : 明 代 中 越 關 係 硏 究 (대남: 국립성공대학출판조, 1998); John K. Whitmore, Vietnam, Ho Quy Ly, and the Ming ( ) (New Haven: Yale Southeast Asia Studies, 1985) 등 참조. 290) 계승범(2009b), 쪽. 291) 조선세조실록 권1, 1년 7월 5일 무인:.. 儀 從 本 俗. 292) 조선세종실록 권127, 32년 1월 15일 신묘: 先 自 治. 盖 古 今 天 下 國 家 之 事, 莫 大 於 自 治. 293) 이용희는 사대와 자주를 대립시키는 것은 사대는 타력의존의 나쁜 것으로 규정하고 그에 대하여 자주독립이다 하는 식의 발상으로, 사대의 명분에서는 그러한 대치를 무의미하게 하는 것이었다고 지적하였다. 즉 고유의 전통과 사대는 자연스럽게 병존하였다면서, 사대와 자주를 대립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하였다. 이용희(1977), 159, 쪽. 294) 조선세조실록 권1, 1년 7월 5일 무인: 蕃 國 之 勢 與 畿 內 之 勢 異. 事 大 之 禮 不 可 不 盡 而 又 不 可 以 數 也. 295) 한영우(1983), 53-56, 쪽. 또한 한영우, 조선 수성기 제갈량 양성지 (서울: 지식산업사, 2008) 참조. 296) 율곡전서 습유 권5, 잡저 시폐칠조책, 頁 28: 封 疆 有 限 政 不 相 關 敦 吾 事 大 之 禮 而 各 守 其 境 而 已 ; 黃 枝 連 (1992), 4편 4절. 297) 율곡전서 권29, 경연일기2 만력 4월, 頁 ) 조선인조실록 권34, 15년 정월 23일 계해: 臣 方 以 誠 信 事 陛 下 陛 下 亦 以 禮 義 待 小 邦 君 臣 之 間 各 盡 其 道 ; 청태종실 록 숭덕 2년 정월 갑자. 46

43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진심으로 복종하고 진심으로 돌보아주 300) 는 관계였던 것이다. 거듭 지적한 대로 예에는 일정한 절도 와 한계 가 있었던 만큼, 중국과 조공국 간에 적용되는 예규범에서도 마땅히 지켜야 할 법도가 있었던 것이다. 즉 부자나 군신관 계가 천지간의 존비관계처럼 비록 상하차등적이나 결코 일방적이라기보다 쌍무적인 관 계였듯이, 301) 황제와 국왕도 각기 도리를 다해야 하는 관계였던 것이다. 302) 따라서 만일 중국이 예를 벗어나 조공국에 관여를 한다면, 이는 비례 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였 다. 303) 유교권에서 예냐 아니냐[ 非 禮 ]의 여부는 모든 행위의 시시비비와 선악을 판별하 는 가치기준이었으며, 304) 천자도 스스로 그 모범을 보여야하였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 처럼 예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원칙과 위에서 언급한 양성지나 이율곡의 주장 등에 서 알 수 있듯이, 적어도 유교사상에서 본다면 유교권의 국제관계는 예규범에 근거한 관계 가 그 핵심이었다고 하겠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이념과 현실은 괴리되기 쉬우며, 실제 그러한 예규범이 제대로 준수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았음은 물론이나, 적어도 유 교 사상에서 본다면 이와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하겠다. 305) 셋째, 유교문명권은 매우 평화지향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우선 유교사상을 보더 라도, 일찍이 공자는 먼데 사람이 복종하여오지 않으면 문덕을 닦아서 (그들이) 오게 하고, 이미 온 뒤에는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 306) 고 하였고, 이미 언급한 중용 9 경( 九 經 )장에서 먼데 사람들을 어루만져주는 것[ 柔 遠 人 ]"과 "제후들을 품어주는 것[ 懷 諸 侯 ] 을 강조하고 있다. 후한 초기의 하휴도 오는 사람은 막지 않고 가는 사람은 쫓 지 않는다 307) 고 하였으며, 이러한 유교의 원칙과 이상은 후대에도 큰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한마디로 유교문명권에서는 병기는 흉기 라면서, 대체로 전쟁을 부정적으 로 여겼다. 308) 또한 역대 왕조에서도 대체로 방어적인 수비를 기본정책으로 내세웠다. 예컨대 명 태조 주원장은 원나라가 침략전쟁을 일삼고 일찍 멸망한 일에서 교훈을 얻어, 다른 나라가 중국을 침범하지 않는 한 기본적으로 우호관계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즉 그 299) 조선명종실록 권8, 3년 8월 6일 무신: 本 國 事 大 以 禮, 天 朝 亦 以 禮 待 之 久 矣. 300) 조선숙종실록 권32, 24년 4월 29일 계유: 誠 服 誠 恤. 301) 예컨대 논어 팔일 19장; 예기 예운; 대학 전3장 등 참조. 302) 김한규도 책봉 조공관계가 일방적 강제적관계가 아니라 쌍방적 임의적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하였다. 김한 규(2011), 125쪽. 303) 일찍이 춘추좌전 에서도 왕이나 제후들의 예에 어긋나는 사례들을 기록하고 있다. 예컨대 주 천자가 가보를 (노나라로) 보내 수레를 요구하였는데, 이는 예가 아니다. 제후는 (천자에게) 수레와 예복을 바치지 않고, 천자는 (제후에게) 사사로이 재물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天 王 使 家 父 來 求 車, 非 禮 也, 諸 侯 不 貢 車 服, 天 子 不 私 求 財 ] ( 桓 公 15 년 봄), (주왕실의) 모백 위가 오나라에 찾아와 (주 양왕( 襄 王 )을 예장하기 위한) 금을 요구 하였는데, 이는 예가 아니다[ 毛 伯 衛 來 求 金, 非 禮 也 ] ( 文 公 9년 봄 을축; 춘추공양전 문공 9년 봄 傳 王 者 無 求. 求 金, 非 禮 也. )라 며, 비판하였다. 304) 박종천(2008), 57-58; 馬 小 紅, 禮 与 法 (북경: 북경대학출판사, 2004), 200쪽. 305) 일찍이 이용희는 양성지가, 몽고가 용병을 해서 병을 써가지고 고려를 굴복시켜 조공관계에 들어간 것은 사대관계 가 아니라고 판단 하였다며, 명분상으로 보면 그 점은 결정적 이라고 지적하였다. 이용희(1977), 181쪽. 306) 논어 계씨편 1장. 307) 春 秋 公 羊 傳 隱 公 2년 ( 何 休 ) 注 : 王 者 不 治 夷 狄. 錄 戎 者, 來 者 勿 拒, 去 者 勿 追. 308) 한 일본학자는 유교의 역사를 꿰뚤어 변하지 않았던 것 중의 한 가지는 힘의 부정, 무력의 경시이다 고 지적하였 다. 島 田 虔 次, 주자학과 양명학, 김석근 이근우 옮김 (서울: 까치, 2001), 80쪾. 47

44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는 황명조훈 에서 자손들에게 다음과 같은 간절한 훈계를 남겼다. 사방 여러 이적들은 모두 산으로 막히고 바다로 떨어져 있는 한쪽 구석에 궁벽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 땅을 얻는다 하더라도 공급을 하기에 부족하고, 그 사람들을 얻는다 하더라 도 명령하고 부리기에 부족하다. 만일 그들이 자신의 역량을 알지 못하고 우리 변경을 침범하 고 소요를 일으키면 곧 그들에게 매우 큰 불행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중국에게 환란을 끼치지 않는데도, 우리가 군사를 일으켜 경솔하게 침범하는 것도 또한 매우 큰 불행이다. 나는 후세 자손들이 중국의 부강함을 믿고 일시적인 전공을 탐내어 이유 없이 군대를 일으켜 인명을 살상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간절히 그 불가함을 적는다. 라고 하면서, 구체적으로 정벌해서는 안 되는 나라[ 不 征 之 國 ] 로 조선 일본 유구 안남 등 15개국을 열거하였다. 309) 즉 외국이 중국 변경을 침범해오면 당연히 물리쳐야 하지만, 침범하지 않는 한 경솔하게 침략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고 훈계하였다. 조선도 유교명분에 충실하여 강국도 약한 나라에 대해 거만하게 대해서는 안 되는 법 310) 이 며, 조광조는 야인 속고내를 불의에 엄습하여 사로잡자는 조정 중론에 대하여 도와 인의 등 유교명분을 내세워 반대하였다. 311) 무엇보다 전쟁빈도수가 근대 서구사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었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이용희는 17세기 100년 동안 유럽에서 완전 무전쟁상태는 불과 7년간이었으 며 근대 전후기의 유럽 주요 국가들이 2년 중의 1년은 전시환경 중에 있었다고 추정되 는데 비하여, 한국사의 경우 유럽에 비하여 11분의 1에도 못 미친다고 지적하고 있 다. 312) 최근의 한 연구에서도 아편전쟁 이전 약 500년간 동아시아국가들 간에 6차례의 전쟁이 있었다면서,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다고 강조하였다. 313) 이와 관련하여 이용희는 유교문명권의 경우 힘보다는 권위에 의존하는 면이 강하였고, 따라서 평화를 유지하는 경향도 그만큼 컸다 고 하면서, 서계적 국제주의 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평가하였다. 314) 끝으로, 유교문명권의 국제적 유대의식이 적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이는 무엇보다 유 교문명권의 상류 지배층인 사대부계층에서 문화적인 동류의식이 한문을 매개하여 동 문의식으로 나타났던 것이라 하겠으며, 중세의 보편적 특징이기도 하였다. 315) 유교권 309) 皇 明 祖 訓 箴 戒 章 ; 明 會 典 권105, 예부63 조공 동남이 상. 또한 명태조실록 권68, 홍무 4년 9월 신미조 참조. 310) 조선인조실록 권34, 15년 1월 2일 임인: 强 國 之 於 弱 國 亦 不 當 慢 以 待 之. 311) 조선중종실록 권34, 13년 8월 17일 갑신. 312) 이용희(1962), 쪽. 313) Kang(2010), chap ) 이용희(1977), 쪽. 315) 이용희(1958), 95쪽. 이러한 점은 유럽의 귀족사회에서도 매한가지였 으니, 19세기만 하더라도 유럽의 귀인 문 사들은 나라를 넘어서 국제적인 사회를 형성하는 면이 있었다 고 하였다. 이용희(1977), 186쪽. 국제정치학의 대가 모겐소의 지적대로, 서구사회에서도 특히 1789년 프랑스혁명을 계기로 귀족주의사회가 민주주의사회로, 보편적이며 초국가적인 도덕규범 행동기준이 국가적 행동기준으로 대체됨으로써 이전까지 대외정책의 운용에 규제를 가할 수 있었던 국제도덕이 퇴조되어 갔으며, 아울러 기독교권의 군주와 귀족들을 결합시켜 주던 국제도덕이 작용되었던 귀 48

45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의 동문의식은 중용 에서 지금 천하가 수레는 바퀴폭이 같고 책은 글자가 같으며 행위는 윤리가 같다 316) 고 하여, 행위규범과 문물제도의 공유 그로 인한 유대의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317) 또한 문명의 중심지에서 건너온 인물이나 그 자손이 자국의 건국시조 가 되어 왕조를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한국이나 월남 유구 일본 모두 공통적이었다. 일 본은 중국고대의 현인 태백의 후예라는 주장이 있고, 조선의 기자나 월남의 염제 신농씨 후예설도 유사한 사례이다. 318) 뿐만 아니라 이미 지적한 대로, 중국 황제들은 천하부 모 이며 천하 만민이 모두 자신의 적자( 赤 子 ) 라 하였으며, 조선이나 유구 월남도 자국 인민이나 땅이 천조(중국)의 소유라든가 또는 천조로부터 받았다고 하면서 황제를 부모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예컨대 임란 당시 선조는 중국은 부모와 같고 우리나라와 일본은 똑같이 외국으로 자식과 같은 것 이라며, 우리나라는 효자이고 일본은 적자 ( 賊 子 ) 라 하였다. 319) 유구도 폐국은 누대에 걸쳐 위로부터 책봉을 받아 오랫동안 외 번 노릇을 해왔고, 국주( 國 主 )로부터 신민에 이르기까지 천조의 적자( 赤 子 )가 아닌 자가 없 320) 다며, 중국의 외번임을 강조하였다. 나아가 폐국이 바다 바깥에 고립하고 있다 고는 하나, 원래 조선 월남과 함께 천조의 속국이 되어 대대로 조공을 해왔 다며, 같 은 조공국들에 대해서 강한 유대감[ 與 國 意 識 ]을 보여주었다. 321) 안남 역시 신의 인민 과 토지는 (중국)조정에서 받았다 322) 라거나 신의 본국 토지와 인민은 모두 천조의 소유 323) 라 하였다. 한편 정유재란 때 왜군에 잡혀갔던 조완벽은 안남까지 다녀왔는데, 안남유생들이 그에게 "귀국은 예의지방으로서, 우리나라와 동체( 同 體 )" 324) 라고 하였다. 이처럼 중세인들은 개별 국가의 자국인이면서 동시에 황제의 적자 즉 동아시아인이 기도 하였던, 이른바 이중국적의 소유자들이었다고 하겠다. 325) 나아가 유교를 철저하게 수용할수록 국가보다는 유교 규범을 더 중시하고 강조하였 족중심의 사해동포주의적 국제사회도 붕괴되어 갔던 것이다. Hans Morgenthau, Politics among Nations, 6th ed. (New York: Alfred A. Knopf, 1985), pp ) 중용 제28장: 今 天 下 車 同 軌 書 同 文 行 同 倫. 317) 이러한 동문의식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 최만리 등이 "예로부터 九 州 안에 풍토는 비록 다르나, 지방의 말에 따라 따 로 문자를 만든 것이 없고 오직 蒙 古 西 夏 女 眞 日 本 과 西 蕃 이 각기 그 글자가 있으나, 이는 모두 夷 狄 의 일이므로 족히 말할 것이 없다 면서, 文 物 과 禮 樂 이 중국에 비견되는 조선이 이제 따로 언문을 만드는 것은 중국을 버리고 스스로 이적과 같아지려는 것 으로서 어찌 문명의 큰 흠절이 아니겠는가 라며 반대한 데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조선세종실록 권103, 26년 2월 20일 경자. 318) 조동일(1999b), 쪽; 朱 雲 影, 中 國 文 化 對 日 韓 越 的 影 響 (대북: 黎 明 문화사업공사, 1981), , 쪽. 319) 조선선조실록 권37, 26년 4월 4일 무자. 320) 박훈, 유구처분기 유구지배층의 자국인식과 국제관, 역사학보, 186 (2005), 158쪽. 321) 박훈(2005), 159쪽. 322) 明 憲 宗 實 錄 권91, 成 化 7년 5월 경자: 惟 臣 之 人 民 土 地 受 于 朝 廷. 323) 明 世 宗 實 錄 권221, 嘉 靖 18년 2월 계축: 臣 本 國 土 地 人 民 皆 天 朝 所 有. 324) 한영우, 실학의 선구자 이수광 (서울: 경세원, 2007), 226쪽. 325) 즉 중세인들은 책봉하는 쪽의 상징적 지배와 책봉 받는 쪽의 실질적 지배에 이중으로 소속되었는데, 문명권인 곧 동 아시아인이 아닌 자국인으로만, 다시 말해 이중국적이 단일국적으로 바뀌면서 근대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조동일 (1999a), 101쪽. 한편 이황이 일본에 보내는 답서에서 귀국의 백성도 또한 우리 백성이다 ( 퇴계집 권8, 서계 수답 예조답일본국좌무위장군원의청)라고 하였고, 대마도주가 보내온 서계에서도 "대마도 한 주가 귀국(조선)의 신하 가 아님이 없다[ 大 凡 對 馬 之 一 州 無 非 貴 國 之 臣 ]"( 조선성종실록 권48, 5년 10월 6일 무자)고 하였다. 49

46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다고 하겠다. 예컨대 송대 장재는 천하 만민은 내 동포이고 천하물건은 내 동류 326) 라 하였고, 명대 왕양명은 성인의 마음은 천지만물과 한몸이 되고자 한다 면서 천 하를 한집안처럼 보고 중국을 한사람처럼 본다 327) 고 하였다. 명말청초의 대학자 고염 무는 나라가 망하는 것[ 亡 國 ]과 천하가 망하는 것[ 亡 天 下 ]이 있다 면서 망국은 (정 치적으로) 왕조의 교체를 말하는 것이고, 망천하는 (도덕적으로) 인의가 막히고 땅에 떨 어져서 사람들이 금수의 지경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고 하면서, 왕조의 흥망은 있을 수 있는 것이지만 중화 유교문명의 가치상실 즉 망천하는 하찮은 필부라도 그 책임을 면 치 못한다면서, 중화 유교가치의 보존에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328) 이처 럼 유학자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경계한 것은 특정 왕조의 멸망보다는 인륜도덕 즉 중화 유교문명의 몰락이었던 것이다. 이는 조선의 유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즉 국가는 망 할 수 있어도 도 의리나 역사는 망할 수 없다 는 것이 유학자들의 신념이고 가치기준 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유교문명권의 국가들은 서로 기본적인 분수를 지키면서, 이른바 천하 라 는 큰 나라 속에 제후의 나라인 국 이 포함되는 곧 단순한 상하라기보다는 대소 상 포( 相 抱 )의 독특한 관계였던 것이다. 329) 즉 유교에서는 개인 가족 국가를 처음의 것 이 다음의 단계로 통합되고 하나의 원리가 각 단계로 파동적으로, 동심원적으로 확대되 어 가는 과정 330) 으로 보았던 것이다. 조선말의 이항로는 공리( 公 理 )라는 것이 하늘 로 땅을 품고 양으로 음을 품어주며 큰 나라로 작은 나라를 돌보아주고 어진 사람으로 어리석은 사람을 길러주는 것으로서, 천리와 인사의 당연한 것 331) 이라 하였는데, 이는 유교문명권의 조화로운 국가 간 관계를 적절히 표현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332) Ⅴ. 맺음말 유교문명권의 국제관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서구중심주의와 근대지상주의 326) 張 載, 西 銘, 소공권1998), 844쪽. 327) 소공권(1998), 930쪽. 328) 顧 炎 武, 日 知 錄, 윤대식 옮김(서울: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09), 쪽; 황원구, 중국사상의 원류 (서울: 연 세대출판부, 1976), 87-88, 쪽. 329) 이용희(1977), 147, 156, 165, 173, 쪽; 黃 枝 連 (1992), 129쪽. 일찍이 주례 에는 작은 나라와 큰 나라가 서 로 연계되어 있다[ 凡 邦 國 大 小 相 維 ] ( 주례 하관 직방씨)고 하였고, 명나라 영락제가 일본국왕에게 보낸 새서에서 도 큰 나라와 작은 나라가 상하 서로 연계되어 있다[ 大 邦 小 國 上 下 相 維 ] ( 명태종실록 권193, 영락 15년 10월 을유)라 하였다. 330) 이영찬, 유가의 국가론: 이기론을 중심으로, 최석만 이영찬 외, 유교적 사회질서와 문화, 민주주의 (광주: 전 남대출판부, 2006), 161쪽. 331) 華 西 雅 言 권9, 響 背 제27, 頁 25: 何 謂 公 理 以 天 包 地 以 陽 包 陰 以 大 字 小 以 賢 養 愚 天 理 人 事 之 當 然 也 ; 화서집, 김주희 역 (서울: 대양서적, 1973), 293쪽. 332) 중세 서구사상도 이와 유사하였으니, 예컨대 토마스 아퀴나스는 최상위에 교황과 황제, 다음 수준에 각 지역 군주들, 그 밑에 지방군주들이 위계질서를 이루면서 병존하는, 즉 위계질서로 구성되는 조화로운 단일세계를 지향하였으나, 근대국가의 등장으로 붕괴되었다. 박상섭(2008), 197쪽; David Boucher, Political Theories of International Relation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pp

47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라는 기존 관념에서 벗어나 문명권차원에서 그리고 역사적 맥락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 으며 무엇보다 유교사상 특히 예규범에 대한 파악이 핵심과제이다. 우선 유교권에서는 하늘을 위시한 우주자연의 법칙을 상정하고 인간세상에서도 이를 본받고 따라야한다고 하였다. 예는 바로 도 리가 지상에서 구현된 것으로 개인은 물론 가정 사회 국가 나아가 국가 간에도 적용되는 규범이었다. 무엇보다 예는 상하 존 비 귀천이나 친소 원근 등을 구별하는 기능을 바탕으로, 중화와 이적을 구별함은 물론 인간과 금수를 구별해주는 핵심기준이었다. 속발관대 로 상징되는 예규범은 유교문명 인들에게는 바로 존재이유 그 자체였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사대자소는 유교권의 국제관계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예규범이었다. 물론 사대가 국가보존의 수단이라는 인식도 존재하였지만, 정통유교사상에서 본다면 지극히 당연한 예 이자 천리 였던 것이다. 나아가 책봉은 하늘로부터 천명을 받아 온 천하를 다스리는 천자로부터 왕권의 정통 성과 국왕지위를 공인하는 중요한 의례행위였다. 또한 중용 의 후왕박래 원칙은 중국과 조공국 관계뿐 아니라 조선과 야인 왜인 사이에서도 적용되는 규범이기도 하였 다. 한마디로 유교문명권의 국제관계는 위계적이나 호혜적 이었다고 평가된다. 끝으로 명분이나 이념은 실제 현실과는 괴리가 있게 마련이며, 따라서 유교사상 특히 예규범과 실제 역사적 상황과의 대비 작업이 보완될 필요가 있다. 또한 중국과 유구 월 남 및 일본과의 관계를 포함하여 유교권의 국제관계를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나아가 다 른 문명권들의 경우와도 비교분석해야 한다고 본다. 아울러 나라가 망하더라도 도는 지켜야 한다 며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적 문명공동체를 중시하고 동문( 同 文 )의식 으 로 상징되는 유대감을 공유하였는데, 이를 밝혀내어 장차 지역협력체로 나아가는 소중한 토대로 적극 계승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51

48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참고문헌 周 禮, 儀 禮, 禮 記, 春 秋 左 傳, 春 秋 公 洋 傳, 管 子, 荀 子, 韓 非 子 漢 書, 春 秋 繁 露, 鹽 鐵 論, 春 秋 胡 傳, 四 書 集 註, 孝 經, 春 秋 胡 傳 明 史, 明 集 禮, 明 會 典, 淸 史 稿, 淸 會 典, 淸 會 典 事 例 李 國 祥 ( 編 ). 明 實 錄 類 纂 : 涉 外 史 料 卷. 무한: 무한출판사, 李 澍 田 ( 編 ). 淸 實 錄 中 朝 關 係 史 料 摘 編. 길림: 길림문사출판사, 中 國 雲 南 省 歷 史 硏 究 所 ( 編 ). 淸 實 錄 越 南 緬 甸 泰 國 老 撾 史 料 摘 抄 곤명: 운남인민출판사, 中 國 社 會 科 學 院 歷 史 硏 究 所 ( 編 ). 古 代 中 越 關 係 史 資 料 選 編 北 京 : 中 國 社 會 科 學 出 版 社, 朴 興 鎭 ( 編 ). 中 國 二 十 六 史 及 明 淸 實 錄 東 亞 三 國 關 係 史 料 全 輯 전5권. 연길: 연변대학출 판부, 2007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삼봉집, 양촌집, 퇴계집, 율곡전서, 송자대전, 여헌집, 미수기언 열하일기, 화서집, 면암집, 毅 菴 集, 艮 齋 集, 민충정공유고 유인석. 우주문답. 서준섭 외 옮김. 춘천: 의암유인석선생기념사업회, 田 中 健 夫 ( 編 ). 善 隣 國 寶 記 新 訂 續 善 隣 國 寶 記. 동경: 집영사, 강상규. 1884년 의제개혁 에 대한 정치적 독해. 세계정치 제30집 2호(2009) 계승범. 조선시대 동아시아질서와 한중관계: 쟁점별 분석과 이해. 동북아역사재단 (편), 한중일학계의 한중관계사 연구와 쟁점 서울: 동북아역사재단, 2009a. 계승범. 조선시대 해외파병과 한중관계 서울: 푸른역사, 2009b. 권선홍. 전통시대 동아시아국제관계 부산: 부산외대출판부, 권선홍. 유교문명권의 외교. 권선홍 외. 외교론 부산: 부산외대출판부, 권선홍. 유교문명권의 국제관계: 책봉제도를 중심으로. 한국정치외교사논총 31집 2호(2010). 권선홍. 유교의 예규범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국제관계. 한국정치사학회 35집 2호(2014). 김경록. 홍무제의 대외인식과 조공제도의 정비. 명청사연구 37집(2012). 김당택. 한국대외교류의 역사 서울: 일조각, 김상준 외. 유교의 예치이념과 조선 고양: 청계, 김성규. 중국왕조에서 빈례의 연혁. 중국사연구 제23집 (2003). 김성규. 미국 및 일본에서 전통중국의 세계질서 에 관한 연구사와 그 특징비교. 역사문화연구 32집(2009). 김용구. 세계관 충돌의 국제정치학: 동양 禮 와 서양 公 法 서울: 나남,

49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김진웅. 조공제도에 관한 서구학계의 해석 검토. 역사교육논집 50집(2013). 김충열. 중국철학사 서울: 예문서원, 김한규. 전통시대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세계질서. 역사비평 통권50호(2000). 김한규. 천하국가 서울 : 소나무, 김한규. 사조선록 연구 서울: 서강대학교출판부, 도민재. 조선전기 예학사상 연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철학박사 학위논문, 도현철. 고려말 사대부의 정치사상연구 서울: 일조각, 동북아역사재단 (편). 한중일학계의 한중관계사 연구와 쟁점 서울: 동북아역사재단, 모모키 시로 (엮음). 해역아시아사 연구입문 2008, 최연식 옮김. 서울: 민속원, 박종천. 다산 정약용의 의례이론 서울: 신구문화사, 박종천. 예, 3천년 동양을 지배하다 파주: 글항아리, 박지훈. 송대 화이론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박충석. 한국정치사상사 제2판. 서울: 삼영사, 안정희. 조선초기의 사대론. 역사교육 64(1997). 왕원주. 한국근대이행기 화이관의 변화와 민족의식. 연세대대학원 박사학위논문, 윤 피터(윤영인). 서구학계 조공제도이론의 중국중심적 문화론 비판. 아세아연구 제45권 3호(2002). 이동주(용희). 국제정치원론 서울: 장왕사, 이용희. 정치와 정치사상 서울: 일조각, 이용희. 일반국제정치학(상) 서울: 박영사, 이용희. 사대주의. 한국민족주의 노재봉 (편). 서울: 서문당, 이용희. 미래의 세계정치 서울: 민음사, 이익주 외.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의 한중관계사: 제언과 모색 서울: 동북아역사재단, 이춘식. 사대주의 서울: 고려대학교 출판부, 이춘식. 유학의 천도관과 정치이념 서울: 고려대학교출판ㅂ, 전세영 외. 禮 樂 교화사상과 한국의 윤리적 과제 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전재성. 동아시아국제정치: 역사에서 이론으로 서울: 동아시아연구원, 전재성. 사대 의 개념사적 연구. 하영선 손열 엮음 근대한국의 사회과학개념 형성사 2 서울: 창비, 전해종. 한중관계사연구 서울 : 일조각, 조동일. 책봉체제. 문명권의 동질성과 이질성 서울: 지식산업사, 1999a. 조동일. 하나이면서 여럿인 동아시아문학 서울: 지식산업사, 1999b. 조동일. 세계 지방화시대의 한국학 6: 비교연구의 방법 대구: 계명대학교출판부, 53

50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한영우. 조선전기 사회사상연구 서울: 지식산업사, 甘 懷 眞. 皇 權, 禮 儀 与 經 典 詮 釋 상해: 화동사범대학출판사, 高 明 士. 天 下 秩 序 与 文 化 圈 的 探 索 상해: 상해고적출판사, 溝 口 雄 三. 개념과 시대로 읽는 중국사상 명강의 최진석 옮김. 서울: 소나무, 勾 承 益. 先 秦 禮 學 성도: 파촉서사, 島 田 虔 次. 주자학과 양명학, 김석근 이근우 옮김. 서울: 까치, 賴 正 維. 淸 代 中 琉 關 係 硏 究 북경: 해양출판사, 馬 小 紅. 禮 与 法 북경: 북경대학출판사, 萬 明. 中 國 融 入 世 界 的 步 履 : 明 与 淸 前 期 海 外 政 策 比 較 硏 究 북경: 사회과학문헌출판사, 付 百 臣 ( 編 ). 中 朝 歷 代 朝 貢 制 度 硏 究 장춘: 길림인민출판사, 徐 杰 令. 春 秋 邦 交 硏 究 북경: 중국사회과학출판사, 徐 燕 斌. 禮 与 王 權 的 合 法 性 建 構 북경: 중국사회과학출판사, 蕭 公 權. 중국정치사상사 최명 손문호 역.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小 島 毅. 사대부의 시대 신현승 옮김. 서울: 동아시아, 小 島 毅. 유교와 예 김용천 옮김. 고양: 동과서, 孫 衛 國. 大 明 旗 號 与 小 中 華 意 識 북경: 상무인서관, 宋 成 有. 東 北 亞 史 硏 究 導 論 북경: 세계지식출판사, 楊 志 剛. 中 國 禮 儀 制 度 硏 究 상해: 화동사범대학출판사, 王 開 璽, 淸 代 外 交 禮 儀 的 交 涉 与 論 爭 북경: 인민출판사, 王 啓 發. 禮 學 思 想 體 系 探 源 정주: 중주고적출판사, 王 琦 珍. 중국, 예로 읽는 봉건의 역사 김응엽 옮김. 서울: 예문서원, 尤 淑 君. 賓 禮 到 禮 賓 : 外 使 覲 見 与 晩 淸 涉 外 體 制 的 變 化 북경: 사회과학문헌출판사, 柳 肅. 예의 정신 홍희 옮김. 서울: 동문선, 劉 豊. 先 秦 禮 學 思 想 与 社 會 的 整 合 북경: 중국인민대학출판사, 李 慶 新. 明 代 海 外 貿 易 制 度 북경: 사회과학문헌출판사, 李 金 明. 明 代 海 外 貿 易 史 북경: 중국사회과학출판사, 李 无 未. 中 國 歷 代 賓 禮 북경: 북경도서관출판사, 李 无 未. 周 代 朝 聘 制 度 硏 究 장춘: 길림인민출판사, 李 雲 泉. 萬 邦 來 朝 : 朝 貢 制 度 史 論 수정판. 북경: 신화출판사, 李 揚 帆. 涌 動 的 天 下 : 中 國 世 界 觀 變 遷 史 論 (1500~1911) 북경: 지식산권출판사, 張 立 文 ( 編 ). 道 권호 옮김. 서울: 동문선, 張 立 文 ( 編 ). 리의 철학 안유경 옮김. 서울: 예문서원, 張 雙 智, 淸 代 朝 覲 制 度 硏 究 북경: 학원출판사,

51 유교사상에서 본 전통시대 동아시아지역질서 권선홍 曹 雯, 淸 朝 對 外 體 制 硏 究 북경: 사회과학문헌출판사, 朱 日 耀. 전통중국정치사상사 정귀화 옮김. 부산: 신지서원, 陳 尙 勝. 閉 關 与 開 放 : 中 國 封 建 晩 期 對 外 關 係 硏 究 제남: 산동인민출판사, 陳 尙 勝. 懷 夷 与 抑 商 : 明 代 海 外 力 量 興 衰 硏 究 제남: 산동인민출판사, 陳 戍 國. 中 國 禮 制 史 ( 先 秦 卷 ) 長 沙 : 호남교육출판사, 陳 潮. 傳 統 的 華 夷 國 際 秩 序 与 中 韓 宗 蕃 關 係. 復 旦 大 學 韓 國 硏 究 論 叢 제2집 (1996). 蔡 尙 思. 中 國 禮 敎 思 想 史 이광호 옮김. 서울: 법인문화사, 鄒 昌 林. 中 國 禮 文 化 북경: 사회과학출판사, 彭 林. 中 國 古 代 禮 儀 文 明 북경: 중화서국, 馮 寓. 동양의 자연과 인간 이해: 중국의 천인관계론 김갑수 옮김. 서울: 논형, 何 新 華, 威 儀 天 下 : 淸 代 外 交 禮 儀 及 其 變 革 상해: 상해사회과학원출판사, 何 新 華, 最 後 的 天 朝 : 淸 代 朝 貢 制 度 硏 究 북경: 인민출판사, 黃 純 艶. 宋 代 朝 貢 體 系 硏 究. 북경: 상무인서관, 黃 枝 連. 天 朝 禮 治 體 系 硏 究 ( 上 中 下 卷 ) 북경: 중국인민대학출판사, 1992, 94, 95. Buzan, Barry & Richard Little. International Systems in World Histor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Djang, Chu( 章 楚 ). Chinese Suzerainty: A Study of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China and Her Vassal States, Ph. D. Dissertation. Johns Hopkins University, Fairbank, John K. & Ssu-yu Teng. "On the Ch ing Tributary System." Harvard Journal of Asiatic Studies, Vol. 6 (1941). Fairbank, John K. (ed.). The Chinese World Order: Traditional China's ForeignRelations.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Hamashita, Takeshi( 濱 下 武 志 ). China. East Asia and the Global Economy. ed. by Linda Grove & Mark Selden. London: Routledge, Hevia, James L. Cherishing Men from Afar.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Hevia, James L. Tribute, Asymmetry, and Imperial Formations: Rethinking Relations of Power in East Asia. Journal of American-East Asian Relations, Vol. 16, Nos. 1-2 (2009). Holzgrefe, J. L. "The Origins of modern international relations theory." Review of International Studies, Vol. 15, No. 1 (1989). Kang, David C.( 康 燦 雄 ). East Asia before the West: Five Centuries of Trade and Tribute.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Kim, Key-Hiuk( 金 基 赫 ). The Last Phase of the East Asian World Order: Korea, Japan, and the Chinese Empire,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52 2014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Mancall, Mark. China at the Center: 300 Years of Foreign Policy. New York: Free Press, Nelson, M. Frederick. Korea and the Old Orders in Eastern Asia. Baton Rouge: Louisiana State University Press, Reid, Anthony & Zheng Yangwen (eds.). Negotiating Asymmetry: China s Place in Asia. Honolulu: University of Hawai i Press, Rossabi, Morris (ed.). China among Equals: The Middle Kingdom and Its Neighbors, 10th-14th Centurie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Tsiang, T. F.( 蔣 廷 黻 ). "China and European Expansion." Politica, Vol.2, No. 5 (1936). Walker, Hugh Dyson. The Yi-Ming Rapprochement: Sino-Korean Foreign Relations, , Ph. D. Dissertation. University of California, Wang, Yuan-kang. Explaining the Tribute System: Power, Confucianism, and War in Medieval East Asia. Journal of East Asian Studies, Vol. 13, Issue 2 (2013). Watson, Adam. The Evolution of International Society. London: Routledge, Wills, John E. Jr. Pepper, Guns, and Parleys: The Dutch East Indian Company and China,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Wills, John E. Jr. Embassies and Illusions: Dutch and Portuguese Envoys to K ang-hsi,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Yun, Peter I. Rethinking the Tribute System: Korean States and Northeast Asian International Relations Ph. D. Dissertation.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Zhang Yongjin & Barry Buzan. The Tributary System as International Society in Theory and Practice. Chinese Journal of International Politics, Vol. 5, No.1 (2012). Zheng Yongnian (ed.). China and International Relations. New York: Routledge,

銀 行 勞 動 硏 究 會 新 人 事 制 度 全 部

銀 行 勞 動 硏 究 會 新 人 事 制 度 全 部 渡 變 峻 現 代 銀 行 勞 動 東 京 大 月 書 店 銀 行 勞 動 硏 究 會 新 人 事 制 度 全 部 銀 行 勞 動 硏 究 會 新 人 事 制 度 全 部 銀 行 勞 動 硏 究 會 新 人 事 制 度 全 部 銀 行 新 報 關 東 渡 變 峻 現 代 銀 行 勞 動 銀 行 勞 動 硏 究 會 新 人 事 制 度 全 部 相 互 銀 行 計 數 集 計 ꌞ ꌞꌞ ꌞ ꌞꌞ

More information

60-Year History of the Board of Audit and Inspection of Korea 제4절 조선시대의 감사제도 1. 조선시대의 관제 고려의 문벌귀족사회는 무신란에 의하여 붕괴되고 고려 후기에는 권문세족이 지배층으 로 되었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새로이 신흥사대부가 대두하여 마침내 조선 건국에 성공 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조선양반사회의

More information

152*220

152*220 152*220 2011.2.16 5:53 PM ` 3 여는 글 교육주체들을 위한 교육 교양지 신경림 잠시 휴간했던 우리교육 을 비록 계간으로이지만 다시 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우 선 반갑다. 하지만 월간으로 계속할 수 없다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솔직히 나는 우리교 육 의 부지런한 독자는 못 되었다. 하지만 비록 어깨너머로 읽으면서도 이런 잡지는 우 리

More information

緊 張 冷 戰 體 制 災 難 頻 發 包 括 安 保 復 舊 地 震 人 類 史 大 軍 雷 管 核 禁 忌 對 韓 公 約 ㆍ 大 登 壇 : : : 浮 上 動 因 大 選 前 者 : : : 軸 : : : 對 對 對 對 對 戰 戰 利 害 腹 案 恐 喝 前 述 長 波 大 産 苦 逆 說 利 害 大 選 大 戰 略 豫 斷 後 者 惡 不 在 : : 對 : 軟 崩 壞

More information

한류동향보고서 16호.indd

한류동향보고서 16호.indd Story Story 2012. 9. 13. Story 16호 STORY Korean Wave Story 2012 STORY STORY 12 호 2012 한류동향보고 Korean Wave Story 2012 Korean Wave Story 2012 (2012년 1/4분기) 12 호 12 호 2012. 4. 9. 2 3 4 5 轩 辕 剑 之 天 之 痕 我 的

More information

다문화 가정 중학생의 문식성 신장 내용

다문화 가정 중학생의 문식성 신장 내용 교육연구 제58집 성신여대 교육문제연구소 2013년 12월 30일 2009 改 定 敎 育 課 程 에 따른 中 學 校 漢 文 敎 科 書 의 多 文 化 敎 育 에 對 한 一 見 이돈석 청주대학교 한문교육과 Ⅰ. 들어가는 말 Ⅱ. 한문 교과 교육과정 목표에 대한 검토 Ⅲ. 중학교 한문 교과서 분석 목 차 1. 재제 출전의 문제 2.. 교육 내용과 제시 방법의 문제

More information

<B3EDB9AEC0DBBCBAB9FD2E687770>

<B3EDB9AEC0DBBCBAB9FD2E687770> (1) 주제 의식의 원칙 논문은 주제 의식이 잘 드러나야 한다. 주제 의식은 논문을 쓰는 사람의 의도나 글의 목적 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 협력의 원칙 독자는 필자를 이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다. 따라서 필자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나 표현을 사용하여 독자의 노력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논리적 엄격성의 원칙 감정이나 독단적인 선언이

More information

2002report220-10.hwp

2002report220-10.hwp 2002 연구보고서 220-10 대학평생교육원의 운영 방안 한국여성개발원 발 간 사 연구요약 Ⅰ. 연구목적 Ⅱ. 대학평생교육원의 변화 및 외국의 성인지적 접근 Ⅲ. 대학평생교육원의 성 분석틀 Ⅳ. 국내 대학평생교육원 현황 및 프로그램 분석 Ⅴ. 조사결과 Ⅵ. 결론 및 정책 제언 1. 결론 2. 대학평생교육원의 성인지적 운영을 위한 정책 및 전략 목

More information

Readings at Monitoring Post out of 20 Km Zone of Tokyo Electric Power Co., Inc. Fukushima Dai-ichi NPP(18:00 July 29, 2011)(Chinese/Korean)

Readings at Monitoring Post out of 20 Km Zone of Tokyo Electric Power Co., Inc. Fukushima Dai-ichi NPP(18:00 July 29, 2011)(Chinese/Korean) 碘 岛 监 结 30km 20km 10km 碘 达 碘 测 时 提 高 后 的 上 限 [250,000 微 西 弗 / 年 ] [10,000 微 西 弗 / 年 ] 巴 西 瓜 拉 帕 里 的 辐 射 (1 年 来 自 地 面 等 ) > 辐 射 量 ( 微 西 弗 ) 250,000 100,000 50,000 10,000 注 : 本 资 料

More information

한류동향보고서 26호.indd

한류동향보고서 26호.indd Story Story 2013. 1. 30. Story 26호 STORY Korean Wave Story 2013 STORY STORY 12 2012 한류동향보고 Korean Wave Story 2013 Korean Wave Story 2013 (2012년 1/4분기) 12 12 2012. 4. 9. 2 3 4 5 6 乱 世 佳 人 花 絮 合 集 梦 回 唐

More information

*074-081pb61۲õðÀÚÀ̳ʸ

*074-081pb61۲õðÀÚÀ̳ʸ 74 October 2005 현 대는 이미지의 시대다. 영국의 미술비평가 존 버거는 이미지를 새롭 게 만들어진, 또는 재생산된 시각 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 정의에 따르 면, 이미지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혹은 이미지를 창조하는 사람의 믿음이나 지식에 제한을 받는다. 이미지는 언어, 혹은 문자에 선행한다. 그래서 혹자는

More information

赤 城 山 トレイルランニンング レース 大 会 記 録 第 10 回 赤 城 山 選 手 権 保 持 者 男 子 須 賀 暁 記 録 2:35:14 女 子 桑 原 絵 理 記 録 3:22:28 M1 ミドル 男 子 18~44 歳, 距 離 32km 総 登 高 1510m ( 注 :DNF:

赤 城 山 トレイルランニンング レース 大 会 記 録 第 10 回 赤 城 山 選 手 権 保 持 者 男 子 須 賀 暁 記 録 2:35:14 女 子 桑 原 絵 理 記 録 3:22:28 M1 ミドル 男 子 18~44 歳, 距 離 32km 総 登 高 1510m ( 注 :DNF: 赤 城 山 トレイルランニンング レース 大 会 記 録 第 10 回 赤 城 山 選 手 権 保 持 者 男 子 須 賀 暁 記 録 2:35:14 女 子 桑 原 絵 理 記 録 3:22:28 M1 ミドル 男 子 18~44 歳, 距 離 32km 総 登 高 1510m ( 注 :DNF: 棄 権 DNS: 欠 場 ) 順 位 氏 名 記 録 順 位 氏 名 記 録 順 位 氏 名 記 録

More information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KR000****4 설 * 환 KR000****4 송 * 애 김 * 수 KR000****4

More information

目 次 第 1 章 總 則 第 1 條 ( 商 號 )... 1 第 2 條 ( 目 的 )... 2 第 3 條 ( 所 在 地 )... 2 第 4 條 ( 公 告 方 法 )... 2 第 2 章 株 式 第 5 條 ( 授 權 資 本 )... 2 第 6 條 ( 壹 株 의 金 額 )..

目 次 第 1 章 總 則 第 1 條 ( 商 號 )... 1 第 2 條 ( 目 的 )... 2 第 3 條 ( 所 在 地 )... 2 第 4 條 ( 公 告 方 法 )... 2 第 2 章 株 式 第 5 條 ( 授 權 資 本 )... 2 第 6 條 ( 壹 株 의 金 額 ).. 제 정 1973. 2. 28 개 정 2010. 3. 19 定 款 삼성전기주식회사 http://www.sem.samsung.com 目 次 第 1 章 總 則 第 1 條 ( 商 號 )... 1 第 2 條 ( 目 的 )... 2 第 3 條 ( 所 在 地 )... 2 第 4 條 ( 公 告 方 法 )... 2 第 2 章 株 式 第 5 條 ( 授 權 資 本 )... 2

More information

(012~031)223교과(교)2-1

(012~031)223교과(교)2-1 0 184 9. 03 185 1 2 oneclick.law.go.kr 186 9. (172~191)223교과(교)2-9 2017.1.17 5:59 PM 페이지187 mac02 T tip_ 헌법 재판소의 기능 위헌 법률 심판: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면 그 효력을 잃게 하거 나 적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 탄핵 심판: 고위 공무원이나 특수한 직위에 있는 공무원이 맡

More information

<BBFDB8EDBFACB1B83232C1FD2D766572342E687770>

<BBFDB8EDBFACB1B83232C1FD2D766572342E687770> 유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 전 병 술 건국대학교 접 수 일 : 2011년 11월 6일 심사완료일 : 2011년 11월 21일 게재확정일 : 2011년 11월 23일 주제분류 동양철학, 유가, 종교학, 죽음학 주 요 어 삶과 죽음, 생명의 학문, 명( 命 ), 사생취의, 초혼재생 초 록 동양철학의 특질을 생명의 학문 이라 규정하는 견해가 있다. 생명의 학문

More information

<4D6963726F736F667420576F7264202D20313030303931302D3242463531B27BA6E6A6D2BBCDA8EEABD72DBEC7BEA7A558AAA9AAC02E646F63>

<4D6963726F736F667420576F7264202D20313030303931302D3242463531B27BA6E6A6D2BBCDA8EEABD72DBEC7BEA7A558AAA9AAC02E646F63> 前 1 前 言 現 行 考 銓 制 度 一 現 行 考 銓 制 度 對 人 事 行 政 的 重 要 性 : 強 烈 建 議 考 人 事 行 政 的 同 學 們, 一 定 要 精 讀 現 行 考 銓 制 度! 熟 讀 現 行 考 銓 制 度 的 好 處, 可 以 從 以 下 幾 個 角 度 來 分 析 : 相 對 重 要 程 度 高 : 現 行 考 銓 制 度 在 人 事 行 政 三 個 主 要 等

More information

<3035B1E8BFECC7FC2E687770>

<3035B1E8BFECC7FC2E687770> 정신문화연구 2006 겨울호 제29권 제4호(통권 105호) pp. 119~148. 硏 究 論 文 주자학에서 혼백론의 구조와 심성론과의 관계 * 김 우 형 ** 1) Ⅰ. 서론: 귀신론과 혼백론 Ⅱ. 북송시대 주자학에서의 혼백과 귀신 Ⅲ. 주희 혼백론의 구조 Ⅳ. 혼백론에서 심성의 지각론으로 Ⅴ. 결론: 혼백론을 통해 본 주자학의 성격

More information

<302DC5EBC0CFB0FA20C6F2C8AD28BFCF292E687770>

<302DC5EBC0CFB0FA20C6F2C8AD28BFCF292E687770> 72 통일과 평화(창간호 2009) 한반도 통일에 관한 이론적 고찰 전재성(서울대 외교학과) 국문요약 본 논문은 변화하는 국제질서와 한반도 내부의 상황을 고려하여, 21세기 한반도 통일 을 새로운 관점에서 이론적으로 분석하고자 시도한다. 21세기 하나의 주권을 가진 하나 의 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통일론은 결국 한반도 거버넌스의 문제이다. 한반도에서 사는 전통적

More information

DBPIA-NURIMEDIA

DBPIA-NURIMEDIA 104 韓 國 禪 學 제36호 조선전기 문인사대부의 贈 序 文 에 보이는 불교 인식 * 김상일(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Ⅱ 목 차 Ⅱ Ⅰ. 시작하는 말 Ⅱ. 조선전기 문인사대부와 불교 관련 증서류 산문 Ⅲ. 불교적 가치관에 대한 비판과 유교 윤리 권면 Ⅳ. 유불 교유론 Ⅴ. 유불 조화론 1. 김수온: 唯 心 一 理 的 儒 佛 融 通 論 2. 성 현:

More information

<C0BDBEC7B0FA2028BEC8B8EDB1E2292E687770>

<C0BDBEC7B0FA2028BEC8B8EDB1E2292E687770> 音 樂 學 碩 士 學 位 論 文 P. Hindemith 음악에 대한 분석 연구 - 를 중심으로 - 2002 年 2 月 昌 原 大 學 校 大 學 院 音 樂 科 安 明 基 音 樂 學 碩 士 學 位 論 文 P. Hindemith 음악에 대한 분석 연구 - 를 중심으로 - Sonata for B-flat

More information

<C1DF29B1E2BCFAA1A4B0A1C1A420A8E85FB1B3BBE7BFEB20C1F6B5B5BCAD2E706466>

<C1DF29B1E2BCFAA1A4B0A1C1A420A8E85FB1B3BBE7BFEB20C1F6B5B5BCAD2E706466> 01 02 8 9 32 33 1 10 11 34 35 가족 구조의 변화 가족은 가족 구성원의 원만한 생활과 사회의 유지 발전을 위해 다양한 기능 사회화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행동 가구 가족 규모의 축소와 가족 세대 구성의 단순화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 1인 또는 1인 이상의 사람이 모여 주거 및 생계를 같이 하는 사람의 집단 타나는 가족 구조의

More information

의정연구_36호_0828.hwp

의정연구_36호_0828.hwp 특집논문 제19대 총선과 정당체제 전망: 연합 정치의 효과 정 병 기 (영남대학교) 요약 19대 총선은 선거 연합을 통해 반공 보수주의 카르텔 체제의 해체를 확정짓 고, 정당 통합 및 선거 연합을 통해 지역주의 정당체제의 약화를 지속시켰다. 이러한 연합 정치에 의해 지역주의 구도가 약화되면서 전통적 보수와 자유주 의 보수 및 권위주의 진보가 대립하는 기존 삼각

More information

<5BB0EDB3ADB5B55D32303131B3E2B4EBBAF12DB0ED312D312DC1DFB0A32DC0B6C7D5B0FAC7D02D28312E28322920BAF2B9F0B0FA20BFF8C0DAC0C720C7FCBCBA2D3031292D3135B9AEC7D72E687770>

<5BB0EDB3ADB5B55D32303131B3E2B4EBBAF12DB0ED312D312DC1DFB0A32DC0B6C7D5B0FAC7D02D28312E28322920BAF2B9F0B0FA20BFF8C0DAC0C720C7FCBCBA2D3031292D3135B9AEC7D72E687770> 고1 융합 과학 2011년도 1학기 중간고사 대비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 빅뱅 우주론에서 수소와 헬륨 의 형성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4 서술형 다음 그림은 수소와 헬륨의 동위 원 소의 을 모형으로 나타낸 것이. 우주에서 생성된 수소와 헬륨 의 질량비 는 약 3:1 이. (+)전하를 띠는 양성자와 전기적 중성인 중성자

More information

1-조선선불교의 심성이해와 마음공부.hwp

1-조선선불교의 심성이해와 마음공부.hwp 교육학연구 Korean Journal of Educational Research 제50권 제2호, 2012, pp.51-70 A Study on the Theory of Mind and Mind Practice in Korean Zen Buddhism -Focused on the Thought of Deuktong-Gihwa around the Idea of

More information

완치란 일반인들과 같이 식이조절과 생활관리를 하지 않아도 다시 통풍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의 통풍이 몇 년이나 되었는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로릭과 진통 소염제로 버텼는지 이제 저한테 하소연 하시고 완치의 길로 가면 다. 어렵지 않습니다. 1 2015 11 10

완치란 일반인들과 같이 식이조절과 생활관리를 하지 않아도 다시 통풍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의 통풍이 몇 년이나 되었는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로릭과 진통 소염제로 버텼는지 이제 저한테 하소연 하시고 완치의 길로 가면 다. 어렵지 않습니다. 1 2015 11 10 완치란 일반인들과 같이 식이조절과 생활관리를 하지 않아도 다시 통풍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의 통풍이 몇 년이나 되었는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로릭과 진통 소염제로 버텼는지 이제 저한테 하소연 하시고 완치의 길로 가면 다. 어렵지 않습니다. 1 2015 11 10 # 2012 000081 1 000 95% 95% 60 5 B 507 070 4651 3730~4

More information

<3120B1E8B1D9BFEC2D31C2F7C6EDC1FD2830292DB1B3C1A4BFCFB7E12831707E292E687770>

<3120B1E8B1D9BFEC2D31C2F7C6EDC1FD2830292DB1B3C1A4BFCFB7E12831707E292E687770> Perspectives J of Oriental Neuropsychiatry 2012:23(1):1-15 http://dx.doi.org/10.7231/jon.2012.23.1.001 심신치유를 위한 불교의학, 사상의학, 한의학에서의 心 의 연구 김근우, 박성식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신경정신과 교실,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사상체질과 교실 The Study on

More information

그렇지만 여기서 朝 鮮 思 想 通 信 이 식민본국과 피식민지 사이에 놓여 있는 재조선일본인의 어떤 존재론적 위치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식민본국과 피식민지의 Contact Zone 에 위치한 재조선일본인들은 조선이라는 장소를 새로운 아이덴티티의 기

그렇지만 여기서 朝 鮮 思 想 通 信 이 식민본국과 피식민지 사이에 놓여 있는 재조선일본인의 어떤 존재론적 위치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식민본국과 피식민지의 Contact Zone 에 위치한 재조선일본인들은 조선이라는 장소를 새로운 아이덴티티의 기 식민지의 목소리 - 朝 鮮 思 想 通 信 社 刊, 朝 鮮 及 朝 鮮 民 族 (1927)을 중심으로 鄭 鍾 賢 ( 成 均 館 大 ) 1. 伊 藤 韓 堂 과 朝 鮮 思 想 通 信 伊 藤 韓 堂 이 발간한 朝 鮮 思 想 通 信 은 1925 년에 발행을 시작하여 1943 년 그가 죽은 직후에 폐간될 때까지 대략 18 년 동안 간행된 조선문을 번역한 일본어 신문이다.

More information

내지-교회에관한교리

내지-교회에관한교리 내지-교회에관한교리 2011.10.27 7:34 PM 페이지429 100 2400DPI 175LPI C M Y K 제 31 거룩한 여인 32 다시 태어났습니까? 33 교회에 관한 교리 목 저자 면수 가격 James W. Knox 60 1000 H.E.M. 32 1000 James W. Knox 432 15000 가격이 1000원인 도서는 사육판 사이즈이며 무료로

More information

untitled

untitled 조선시대 형사판례를 통해 본 재판의 제원칙 조선시대 형사판례를 통해 본 재판의 제원칙 - 심리록에 수록된 사례를 중심으로 - 김 용 희 * 차 례 Ⅰ. 서 설 Ⅱ. 심리록에 나타난 지방관리들의 사법행정능력 1. 검험의 기준 2. 검험조서 Ⅲ. 심리록에 나타난 재판의 기본원칙 1. 관용의 원칙 2.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in dubio pro reo)

More information

¾Æµ¿ÇÐ´ë º»¹®.hwp

¾Æµ¿ÇÐ´ë º»¹®.hwp 11 1. 2. 3. 4. 제2장 아동복지법의 이해 12 4).,,.,.,.. 1. 법과 아동복지.,.. (Calvert, 1978 1) ( 公 式 的 ).., 4),. 13 (, 1988 314, ). (, 1998 24, ).. (child welfare through the law) (Carrier & Kendal, 1992). 2. 사회복지법의 체계와

More information

ÃѼŁ1-ÃÖÁ¾Ãâ·Â¿ë2

ÃѼŁ1-ÃÖÁ¾Ãâ·Â¿ë2 경기도 도서관총서 1 경기도 도서관 총서 경기도도서관총서 1 지은이 소개 심효정 도서관 특화서비스 개발과 사례 제 1 권 모든 도서관은 특별하다 제 2 권 지식의 관문, 도서관 포털 경기도 도서관 총서는 도서관 현장의 균형있는 발전과 체계적인 운 영을 지원함으로써 도서관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간되 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를 통해 사회전반의 긍정적인

More information

101-03.hwp

101-03.hwp 人 文 科 學 제101집 2014년 8월 漢 字 문자 그 이상의 상징 체계 Ⅰ. 서론 중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한자의 본격적인 개혁운동은 5.4 白 話 運 動 이 후 지식인들에 의한 표음문자화를 지향하는 漢 字 革 命 論 이다. 근대 알파 벳 문자를 이상적 원형으로 사유하는 서구학계의 깊은 인식론의 영향으로 1954년 中 國 文 字 改 革 委 員 會 성립 이후

More information

#7단원 1(252~269)교

#7단원 1(252~269)교 7 01 02 254 7 255 01 256 7 257 5 10 15 258 5 7 10 15 20 25 259 2. 어휘의 양상 수업 도우미 참고 자료 국어의 6대 방언권 국어 어휘의 양상- 시디(CD) 수록 - 감광해, 국어 어휘론 개설, 집문당, 2004년 동북 방언 서북 방언 중부 방언 서남 방언 동남 방언 제주 방언 어휘를 단어들의 집합이라고 할 때,

More information

<B1E8BCF6C1A4BEC6BDC3BEC620BFA9BCBAC0C720B1B9C1A6B0E1C8A5BFA120B4EBC7D120B9CCB5F0BEEE20B4E3B7D02E687770>

<B1E8BCF6C1A4BEC6BDC3BEC620BFA9BCBAC0C720B1B9C1A6B0E1C8A5BFA120B4EBC7D120B9CCB5F0BEEE20B4E3B7D02E687770> 아시아 여성의 국제결혼에 대한 미디어 담론 : 한국 미디어의 재현방식을 통해 김수정(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1. 들어가는 말 길가를 지나다보면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여성과의 국제결혼을 알선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현수막의 대부분은 한국 남성과 외국, 특히 동남아시아 지 역의 여성과 결혼을 알선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More information

- 4 -

- 4 - - 4 - Abstract - 5 - - 6 - - 7 - 국문요약 - 8 - - 9 - 제목차례 Abstract ----------------------------------------------- 5 국문요약 ---------------------------------------------- 8 서론 -------------------------------------------------

More information

356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제5권 1883.01.24 釜 山 口 設 海 底 電 線 條 欵 / 海 底 電 線 設 置 ニ 關 スル 日 韓 條 約 漢 日 1883.06.22 在 朝 鮮 國 日 本 人 民 通 商 章 程 / 朝 鮮 國 ニ 於 テ 日 本 人 民 貿 易 ノ

356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제5권 1883.01.24 釜 山 口 設 海 底 電 線 條 欵 / 海 底 電 線 設 置 ニ 關 スル 日 韓 條 約 漢 日 1883.06.22 在 朝 鮮 國 日 本 人 民 通 商 章 程 / 朝 鮮 國 ニ 於 テ 日 本 人 民 貿 易 ノ 근현대 한일간 조약 일람* 22) 1. 조선 대한제국이 일본국과 맺은 조약 주) 1. 아래 목록은 國 會 圖 書 館 立 法 調 査 局, 1964 舊 韓 末 條 約 彙 纂 (1876-1945) 上 ; 1965 舊 韓 末 條 約 彙 纂 (1876-1945) 中 ; 外 務 省 條 約 局, 1934 舊 條 約 彙 纂 第 三 巻 ( 朝 鮮 及 琉 球 之 部

More information

국제무역론-02장

국제무역론-02장 1 1 ( 27 ). 2, 3, 4. - 5. 6,. 7. 2... 17 20... 32 1.? ( ).?? 2.?,? 17 18, (Adam Smith). 40 (David Ricardo).,.,,. 20 (Gottfried Haberler). 2 2. 2 2.,. 6., 7. 1776. 1776,,,., 17 18 (,, ).,. 33 (1571 1641).

More information

문화재이야기part2

문화재이야기part2 100 No.39 101 110 No.42 111 문 ᰍℎ᮹ šᯙŝ $* ᗭ} 화 재 이 야 기 De$** 남기황 ᰍℎ šᯙŝ $* ᗭ} 관인은 정부 기관에서 발행하는, 인증이 필요한 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편찬토록 하여 그 이듬해 문서 따위에 찍는 도장 이다. 문화재청은 1999년 (1447) 만든 석보상절을 읽고나서 지은 찬불가(讚

More information

현장에서 만난 문화재 이야기 2

현장에서 만난 문화재 이야기 2 100 No.39 101 110 No.42 111 문 ᰍℎ᮹ šᯙŝ $* ᗭ} 화 재 이 야 기 De$** 남기황 ᰍℎ šᯙŝ $* ᗭ} 관인은 정부 기관에서 발행하는, 인증이 필요한 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편찬토록 하여 그 이듬해 문서 따위에 찍는 도장 이다. 문화재청은 1999년 (1447) 만든 석보상절을 읽고나서 지은 찬불가(讚

More information

_ _ Reading and Research in Archaeology. _ Reading and Research in Korean Historical Texts,,,,,. _Reading and Research in Historical Materials from Ko

_ _ Reading and Research in Archaeology. _ Reading and Research in Korean Historical Texts,,,,,. _Reading and Research in Historical Materials from Ko 4. _ Culture of Korea: In the Present and the Past,.. _ Korean History and the Method of Psychoanalysis.,,. _ Politics and Ideas in Modern days Korea.,. _ Contemporary Korean History and International

More information

Çѹ̿ìÈ£-197È£

Çѹ̿ìÈ£-197È£ 2014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More information

allinpdf.com

allinpdf.com 이책은북한에대한이해를돕기위해통일교육원에서발간한교재입니다. 각급교육기관등에서널리활용하여주시기바랍니다. 차례 Ⅰ. 북한이해의관점 Ⅱ. 북한의정치 차례 Ⅲ. 북한의대외관계 Ⅳ. 북한의경제 Ⅴ. 북한의군사 Ⅵ. 북한의교육 차례 Ⅶ. 북한의문화 예술 Ⅷ. 북한의사회 Ⅸ. 북한주민의생활 차례 Ⅹ. 북한의변화전망 제 1 절 북한이해의관점 Ⅰ. 북한이해의관점 Ⅰ. 북한이해의관점

More information

CC......-.........hwp

CC......-.........hwp 방송연구 http://www.kbc.go.kr/ 텔레비전의 폭력행위는 어떠한 상황적 맥락에서 묘사되는가에 따라 상이한 효과를 낳는다. 본 연구는 텔레비전 만화프로그램의 내용분석을 통해 각 인 물의 반사회적 행위 및 친사회적 행위 유형이 어떻게 나타나고 이를 둘러싼 맥락요인들과 어떤 관련성을 지니는지를 조사하였다. 맥락요인은 반사회적 행위 뿐 아니라 친사회적

More information

16 經 學 研 究 集 刊 特 刊 一 墓 誌 銘 等 創 作 於 高 麗 時 代 與 朝 鮮 朝 時 代, 此 是 實 用 之 文 而 有 藝 術 上 之 美. 相 當 分 量 之 碑 誌 類 在 於 個 人 文 集. 夢 遊 錄 異 於 所 謂 << 九 雲 夢 >> 等 夢 字 類 小 說.

16 經 學 研 究 集 刊 特 刊 一 墓 誌 銘 等 創 作 於 高 麗 時 代 與 朝 鮮 朝 時 代, 此 是 實 用 之 文 而 有 藝 術 上 之 美. 相 當 分 量 之 碑 誌 類 在 於 個 人 文 集. 夢 遊 錄 異 於 所 謂 << 九 雲 夢 >> 等 夢 字 類 小 說. 經 學 研 究 集 刊 特 刊 一 2009 年 12 月 頁 15~36 高 雄 師 範 大 學 經 學 研 究 所 15 韓 國 漢 文 學 硏 究 之 最 近 傾 向 김동협 金 東 協 教 授 / Professor Kim Donghyub 摘 要 我 想 對 於 韓 國 漢 文 學 最 初 之 專 門 著 書 是 金 台 俊 之 >. 此 冊 刊 行 於

More information

211 1-5. 석촌동백제초기적석총 石 村 洞 百 濟 初 期 積 石 塚 이도학, (서울의 백제고분) 석촌동 고분, 송파문화원, 2004. 서울 特 別 市, 石 村 洞 古 墳 群 發 掘 調 査 報 告, 1987. 1-6. 고창지석묘군 高 敞 支 石 墓 群 문화재관리국,

211 1-5. 석촌동백제초기적석총 石 村 洞 百 濟 初 期 積 石 塚 이도학, (서울의 백제고분) 석촌동 고분, 송파문화원, 2004. 서울 特 別 市, 石 村 洞 古 墳 群 發 掘 調 査 報 告, 1987. 1-6. 고창지석묘군 高 敞 支 石 墓 群 문화재관리국, 210 참고문헌 1. 능묘 1-1. 경주황남리고분군 慶 州 皇 南 里 古 墳 群 경상북도, 文 化 財 大 觀, 1-V, 慶 尙 北 道 編, 2003. 문화재관리국, 天 馬 塚 發 掘 調 査 報 告 書, 1974. 1-2. 함안도항리 말산리고분군 咸 安 道 項 里 末 山 里 古 墳 群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咸 安 道 項 里 古 墳 群 5, 2004.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More information

7 청보 86. 3. 29( 對 삼성 )~4. 5( 對 빙그레 ) NC 13. 4. 2( 對 롯데 )~4. 10( 對 LG) 팀별 연패 기록 삼 미 18 연패 ( 85. 3. 31~4. 29) 쌍방울 17 연패 ( 99. 8. 25~10. 5) 롯 데 16 연패 ( 0

7 청보 86. 3. 29( 對 삼성 )~4. 5( 對 빙그레 ) NC 13. 4. 2( 對 롯데 )~4. 10( 對 LG) 팀별 연패 기록 삼 미 18 연패 ( 85. 3. 31~4. 29) 쌍방울 17 연패 ( 99. 8. 25~10. 5) 롯 데 16 연패 ( 0 전반, 타격, 투수, 수비 진기록 전반 시즌 최고 승률 0.706 85 삼성 (110 경기 77승 32패 1 무) 기별 최고 승률 0.741 85 삼성 ( 전기 55경기 40승 14패 1 무) 시즌 최저 승률 0.188 82 삼미 (80 경기 15승 65 패) 기별 최저 승률 0.125 82 삼미 ( 후기 40경기 5승 35 패) 시즌 최다 승리 91 00

More information

중국기본고적 데이타베이스 기능수첩

중국기본고적 데이타베이스 기능수첩 중국기본고적고 사용설명서 1 로그인( 進 入 ) 1.1시작을 클릭하신후 왼쪽 프로그램에서 AncientBook 을 찾으신후, AncientBookClient 를 클릭하세 요. 1.2 服 務 器 (ip), 用 戶 名 (id), 密 碼 (pw)를 입력 후 진입( 進 入 ) 클릭하세요. 1-3. 아이콘 설명 : 메인페이지 : 최소화 : 화면 닫기 2. 검색( 檢

More information

041~084 ¹®È�Çö»óÀбâ

041~084 ¹®È�Çö»óÀбâ 1998 60 1 1 200 2 6 4 7 29 1975 30 2 78 35 1 4 2001 2009 79 2 9 2 200 3 1 6 1 600 13 6 2 8 21 6 7 1 9 1 7 4 1 2 2 80 4 300 2 200 8 22 200 2140 2 195 3 1 2 1 2 52 3 7 400 60 81 80 80 12 34 4 4 7 12 80 50

More information

POWERSHELL CONTROLLER + BATTERY Setup Guide English............................... 4 繁 體 中 文.............................. 12 한국어............................... 20 www.logitech.com/support................

More information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2 목차 편집자의 말 ------------------------------------------------------------------------------------- 3 한국의 * 상1 개괄 한국의 병역거부운동 -------------------------------------------------------------------------

More information

- 2 -

- 2 - - 1 - - 2 - - - - 4 - - 5 - - 6 - - 7 - - 8 - 4) 민원담당공무원 대상 설문조사의 결과와 함의 국민신문고가 업무와 통합된 지식경영시스템으로 실제 운영되고 있는지, 국민신문 고의 효율 알 성 제고 등 성과향상에 기여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를 치 메 국민신문고를 접해본 중앙부처 및 지방자 였 조사를 시행하 였 해 진행하 월 다.

More information

178È£pdf

178È£pdf 스승님이 스승님이 스승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알라는 위대하다! 위대하다! 알라는 알라는 위대하다! 특집 특집 기사 특집 기사 세계 세계 평화와 행복한 새해 경축 세계 평화와 평화와 행복한 행복한 새해 새해 경축 경축 특별 보도 특별 특별 보도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도가니! 스승님과의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More information

토픽 31호(2016.3.7).hwp

토픽 31호(2016.3.7).hwp 절실히 묻고 가까이 실천하는 선진 산림과학 3.0 시대를 열겠습니다! 01 03 05 05 06 07 08 08 10 10 11 임업인에게는 희망을, 국민에게는 행복을 带 NIFoS 1 중국 닝샤회족자치구() 중국 무슬림 인구 주요 분포도 중국 닝샤의 회족 자치구 3 중국 무슬림 인구 Top 11 지역 순위 지역( 省 ) 인구(만)

More information

40 / 延 世 醫 史 學 제11권 제1호 세브란스병원의학교 제1회 졸업생이었던 신창희의 생애에 대해서는 그 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의 생애에 관한 개략적인 소개가 있었지만, 1) 여전히 많은 부분이 확인되지 않은 실정이다. 본고 또한 여전히 짧고 소략한 내용

40 / 延 世 醫 史 學 제11권 제1호 세브란스병원의학교 제1회 졸업생이었던 신창희의 생애에 대해서는 그 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의 생애에 관한 개략적인 소개가 있었지만, 1) 여전히 많은 부분이 확인되지 않은 실정이다. 본고 또한 여전히 짧고 소략한 내용 延 世 醫 史 學 제11권 제1호: 39-44, 2008년 6월 Yonsei J Med Hist 11(1): 39-44, 2008 일반논문 세브란스병원의학교 제1회 졸업생 신창희( 申 昌 熙 )의 생애와 활동 박 형 우(연세대 동은의학박물관) 홍 정 완(연세대 의사학과) 40 / 延 世 醫 史 學 제11권 제1호 세브란스병원의학교 제1회 졸업생이었던 신창희의

More information

<30312DC8ABBDC2C7E52E687770>

<30312DC8ABBDC2C7E52E687770> 사회연구 통권13호(2007년 1호), pp. 9~43 여론과 정책 - 민주화 이후 한국정부의 정책응답성 1)홍승헌 이 논문은 민주적 책임성의 확보를 위해서는 민주정부가 응답적이어야 한다는 전제 하 에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에서 정부가 실질적 응답성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경 험적으로 논증한다. 두 가지 분석을 수행한다. 먼저 최근 10년 간 여론과 정책의

More information

ㅍㅍㅍㅍ통계지식과 경제적 상상의 구축

ㅍㅍㅍㅍ통계지식과 경제적 상상의 구축 통계지식과 경제적 상상의 구축 : 한말~식민지기 시장조사서를 중심으로 조형근(한림대 일본학연구소 연구교수) 1. 서문 이 글은 짧은 기간에 걸쳐 생산된 몇 가지 통계수치들이 보여주는 차이에 대한 매우 단순한 의문에서 출발하여, 식 민권력이 재현하고 구축한 학지로서 통계지식의 성격을 식민지근대적 경제적 상상 (economic imaginary)의 구축 과 실행

More information

238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제3권 생각해야 한다는 제안이 일어나게 되었다. 예를 들면 貫 井 正 之 씨는 豊 臣 秀 吉 의 대외적 인 정복의도 전반을 검토하고 책 이름에 海 外 侵 略 이라는 문구를 채택했으며( 豊 臣 政 権 의 海 外 侵 略 과 朝 鮮 義 兵

238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제3권 생각해야 한다는 제안이 일어나게 되었다. 예를 들면 貫 井 正 之 씨는 豊 臣 秀 吉 의 대외적 인 정복의도 전반을 검토하고 책 이름에 海 外 侵 略 이라는 문구를 채택했으며( 豊 臣 政 権 의 海 外 侵 略 과 朝 鮮 義 兵 文 祿 慶 長 의 役 연구의 학설사적 검토 237 文 祿 慶 長 의 役 연구의 학설사적 검토 나카노 히토시( 中 野 等 ) 머리말 Ⅰ. 근세 전기 일본의 文 祿 慶 長 의 役 ( 壬 辰 倭 亂 )에 대한 위치 설정 Ⅱ. 근세 후기 일본의 文 祿 慶 長 의 役 ( 壬 辰 倭 亂 )에 대한 위치 설정 Ⅲ. 근대 일본의 성립과 文 祿 慶 長 의 役 ( 壬 辰 倭

More information

감사회보 5월

감사회보 5월 contents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동정 및 안내 상장회사감사회 제173차 조찬강연 개최 상장회사감사회 제174차 조찬강연 개최 및 참가 안내 100년 기업을 위한 기업조직의 역 량과 경영리더의 역할의 중요성 등 장수기업의 변화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윤정구 이화여자대학교

More information

제국주의로서의 근대일본자유주의

제국주의로서의 근대일본자유주의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제28차 워크숍 2016-04-08 제국주의로서의 근대일본자유주의 -가와이 에이지로의 제국일본 인식에 대한 비판적 고찰- 이용철(한림대일본학연구소 연구교수) 1. 연구의 목적 및 필요성 2. 식민지 인식과 정당화논리 2.1 이상주의적 자유주의와 국민적 자유론 2.2 식민지 정당화의 논리 3. 전쟁 인식과 정당화논리 3.1 이상주의적

More information

DBPIA-NURIMEDIA

DBPIA-NURIMEDIA 119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역사와 법* 60) 조시현** 목 차 Ⅰ. 들어가며 Ⅱ.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전개 Ⅲ.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법 적용의 의미 -역사와 법의 관계 1. 법적 책임의 전제로서의 사실에 대한 규범적 평가 2. 법을 둘러싼 진실규명의 필요성 3. 연속된 법의식의 회복과 미래 -피해자의 권리와 공동행동원칙의 정립 4. 국가책임의

More information

2013_1_14_GM작물실용화사업단_소식지_내지_인쇄_앙코르130.indd

2013_1_14_GM작물실용화사업단_소식지_내지_인쇄_앙코르130.indd GM작물실용화사업단 인식조사 및 실용화 방향 설정 GM작물 인식조사 및 실용화 방향 설정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김욱 박사 1. 조사목적 GM 작물 관련 인식조사는 사회과학자들을 바탕으로 하여 국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GM 작물 관련 인식 추이를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하여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탐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2. 조사설계 2.1.

More information

기본소득문답2

기본소득문답2 응답하라! 기본소득 응답하라! 기본소득 06 Q.01 07 Q.02 08 Q.03 09 Q.04 10 Q.05 11 Q.06 12 Q.07 13 Q.08 14 Q.09 응답하라! 기본소득 contents 16 Q.10 18 Q.11 19 Q.12 20 Q.13 22 Q.14 23 Q.15 24 Q.16 Q.01 기본소득의 개념을 쉽게 설명해주세요. 06 응답하라

More information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 발행일 : 2013년 7월 25일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정]--------------------------------------------

More information

....(......)(1)

....(......)(1) Finance Lecture Note Series 창업설계(캡스톤디자인)(1) 제1강. 강의소개 조 승 모1 영남대학교 경제금융학부 2015학년도 2학기 Copyright 2015 Cho, Seung Mo 1 영남대학교 상경대학 경제금융학부 조교수; (우) 712-749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 영남대학교 상경관 224호; [email protected];

More information

11+12¿ùÈ£-ÃÖÁ¾

11+12¿ùÈ£-ÃÖÁ¾ Korea Institute of Industrial Technology 2007:11+12 2007:11+12 Korea Institute of Industrial Technology Theme Contents 04 Biz & Tech 14 People & Tech 30 Fun & Tech 44 06 2007 : 11+12 07 08 2007 : 11+12

More information

<B0EDBCBA20C0B2B4EB20B3F3B0F8B4DCC1F620B9AEC8ADC0E720C1F6C7A5C1B6BBE720BAB8B0EDBCAD28C3DFB0A1BCF6C1A4BABB292E687770>

<B0EDBCBA20C0B2B4EB20B3F3B0F8B4DCC1F620B9AEC8ADC0E720C1F6C7A5C1B6BBE720BAB8B0EDBCAD28C3DFB0A1BCF6C1A4BABB292E687770> 固 城 栗 垈 2 農 工 團 地 造 成 事 業 文 化 財 地 表 調 査 報 告 書 2003. 11 慶 南 發 展 硏 究 院 歷 史 文 化 센터 固 城 栗 垈 2 農 工 團 地 造 成 事 業 文 化 財 地 表 調 査 報 告 書 Ⅰ. 調 査 槪 要 1. 調 査 目 的 고성군에서 추진중인 율대 농공단지 확장예정지에 대해 문화재보호법 제74-2와 동법 시행령 제43-2

More information

Untitled-1

Untitled-1 영역별 욕구조사 설문지 예시 자료 3 장애인영역 평택시 사회복지시설 욕구조사 실무도움서 _ 201 202 _ 평택복지재단 영역별 욕구조사 설문지 예시 자료 2 3 2 3 평택시 사회복지시설 욕구조사 실무도움서 _ 203 204 _ 평택복지재단 영역별 욕구조사 설문지 예시 자료 2 3 4 평택시 사회복지시설 욕구조사 실무도움서 _ 205 2 3 4 5 6 7

More information

CR2006-41.hwp

CR2006-41.hwp 연구책임자 가나다 순 머 리 말 2006년 12월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원장 - i - - ii - - iii - 평가 영역 1. 교육계획 2. 수업 3. 인적자원 4. 물적자원 5. 경영과 행정 6. 교육성과 평가 부문 부문 배점 비율(%) 점수(점) 영역 배점 1.1 교육목표 3 15 45점 1.2 교육과정 6 30 (9%) 2.1 수업설계 6 30 2.2

More information

82-대한신경학0201

82-대한신경학0201 www.neuro.or.kr 2010 1 Vol. 82 www.neuro.or.kr 01 5 January 2010 2007 Newsletter of THE KOREAN NEUROLOGICAL ASSOCIATION 2010 NO.82 2010.JANUARY C o n t e n t s 04 05 06 10 13 17 18 20 22 25 28 32 33 36

More information

<30322DB1E8BDC2BFEC34345FBFACB1B8BCD2B1B3C1A4BFCFB7E12E687770>

<30322DB1E8BDC2BFEC34345FBFACB1B8BCD2B1B3C1A4BFCFB7E12E687770> 한국학연구 44(2013.3.30), pp.35-79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용비어천가 의 전거( 典 據 )와 체재( 體 裁 )에 대한 연구 * 1) 2)김승우 ** 국문초록 본고는 용비어천가 에 수록된 각종 사적들의 연원을 탐색하고, 전거 차용상의 특징을 검토하는 한편, 그러한 전거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활용 되어 현재와 같은 체재의 용비어천가 가 성립되었는지

More information

.....6.ok.

.....6.ok. Ⅳ 성은 인간이 태어난 직후부터 시작되어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므로 성과 건강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청소년기에 형성된 성가치관은 평생의 성생활에 영향을 미치며 사회 성문화의 토대가 된다. 그러므로 성과 건강 단원에서는 생명의 소중함과 피임의 중요성을 알아보고, 성매매와 성폭력의 폐해, 인공임신 중절 수술의 부작용 등을 알아봄으로써 학생 스스로 잘못된 성문화를

More information

할렐루야10월호.ps, page 1-12 @ Normalize ( 할 437호 )

할렐루야10월호.ps, page 1-12 @ Normalize ( 할 437호 ) www.hcc.or.kr [email protected] Hallelujah News PHOTO NEWS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제437호 2007년 10월 7일 (주일) 화요청년찬양부흥회 날짜: 10월 16일, 11월 6일, 11월 20일 12월 4일, 12월 18일 (매달 1 3주 화요일) 장소: 할렐루야교회

More information

4 7 7 9 3 3 4 4 Ô 57 5 3 6 4 7 Ô 5 8 9 Ô 0 3 4 Ô 5 6 7 8 3 4 9 Ô 56 Ô 5 3 6 4 7 0 Ô 8 9 0 Ô 3 4 5 지역 대표를 뽑는 선거. 선거의 의미와 필요성 ① 선거의 의미`: 우리들을 대표하여 일할 사람을 뽑는 것을 말합니다. ② 선거의 필요성`: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지역의 일을 의논하고

More information

98 농업사연구 제 6권 1호, 한국농업사학회, 2007. 6 주요어 : 농업기술, 농서집요, 농상집요, 수도, 휴한법, 연작법 1. 머리말 한국사에서 14세기는 고려왕조에서 조선왕조로 국가 지배체제가 크게 격변한 시기였다. 고려말 고려 사회 내부와 외부에서 발생한 여

98 농업사연구 제 6권 1호, 한국농업사학회, 2007. 6 주요어 : 농업기술, 농서집요, 농상집요, 수도, 휴한법, 연작법 1. 머리말 한국사에서 14세기는 고려왕조에서 조선왕조로 국가 지배체제가 크게 격변한 시기였다. 고려말 고려 사회 내부와 외부에서 발생한 여 14세기 高 麗 末, 朝 鮮 初 농업기술 발달의 추이* - 水 稻 耕 作 法 을 중심으로- 염 정 섭** < 국문초록 > 15세기 초반 태종대에 만들어진 농서로 현재 農 書 輯 要 가 남아 있다. 이 농서는 元 代 의 農 書 인 農 桑 輯 要 를 抄 錄 하고 吏 讀 를 붙여 간행한 것이었다. 간행연대가 아직 불확실하지만 15세기 초반 태종대로 추정된다. 고려말

More information

º´¹«Ã»Ã¥-»ç³ªÀÌ·Î

º´¹«Ã»Ã¥-»ç³ªÀÌ·Î 솔직히 입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왜 그렇게까지 군대를 가려고하냐,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후회는 없다. 그런 말을 하던 사람들조차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군대는 하루하루를 소종하게 생각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점점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More information

The mission minded church - Strategies in building a multicultural ministry – Die missions-bereite Kirche - Strategien zum Aufbau multikultureller Ge

The mission minded church - Strategies in building a multicultural ministry –  Die missions-bereite Kirche - Strategien zum Aufbau multikultureller Ge 도여베르트의선험적비판 Dooyeweerd s transcendental critique Session One: What is the transcendental critique of theoretical thought? 이론적사고의선험적비판이란무엇인가? Session Two: Transcendental critique as a thought and cultural

More information

[NO_11] 의과대학 소식지_OK(P)

[NO_11] 의과대학 소식지_OK(P) 진 의학 지식과 매칭이 되어, 인류의 의학지식의 수준을 높 여가는 것이다. 하지만 딥러닝은 블랙박스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는 단지 결과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의학지 식의 확장으로 이어지기는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실제로 의학에서는 인공지능을 사용하게 될 때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이해

More information

04 특집

04 특집 특집 도서관문화 Vol.51 NO.5(2010.5) 시작하는 말 18 특집 :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한 도서관 서비스 소셜 네트워크란? 19 도서관문화 Vol.51 NO.5(2010.5) 20 특집 :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한 도서관 서비스 소셜 네트워크, 환경에 따라 변모하다 21 도서관문화 Vol.51 NO.5(2010.5) 소셜 네트워크와 도서관을 결합시키다

More information

가해하는 것은 좋지 않은 행동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쌍해서이다 가해하고 나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받을 것 같아서이다 보복이 두려워서이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화가 나고 나쁜 아이라고 본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생각이나 느낌이 없다 따돌리는 친구들을 경계해야겠다 남 여 중학생 고등학생 남 여 중학생 고등학생 남 여 중학생 고등학생 남 여

More information

01¸é¼öÁ¤

01¸é¼öÁ¤ 16면 2012.7.25 6:14 PM 페이지1 2012년 8월 1일 수요일 16 종합 고려대장경 석판본 판각작업장 세계 최초 석판본 고려대장경 성보관 건립 박차 관계기관 허가 신청 1차공사 전격시동 성보관 2동 대웅전 요사채 일주문 건립 3백여 예산 투입 국내 최대 대작불사 그 동안 재단은 석판본 조성과 성보관 건립에 대해서 4년여 동안 여러 측면에 서 다각적으로

More information

DBPIA-NURIMEDIA

DBPIA-NURIMEDIA 총력전 시기 재조선 일본인의 내선일체 정책에 대한 협력 우치다 쥰(Uchida, Jun) 스탠퍼드대 역사학과 교수 I. 서론 최근 들어 한국과 일본에서는 총동원체제기( 總 動 員 体 制 期 : 1937~45년) 의 일본 식민지주의와 조선 민중의 일상 생활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 다. 1) 본 논문에서는 총력전체제 하에서의 재조선 일본인( 在 朝 日 本

More information

신계내과학(1).indd

신계내과학(1).indd 腎 系 內 科 學 1. 腎 에 관한 역대 醫 論 簡 略 2 2. 腎 의 해부학적 인식 및 오행적 속성 7 3. 腎 의 생리적 기능 9 4. 腎 과 他 臟 腑 와의 관계 12 5. 命 門 14 6. 腎 膀 胱 의 病 理 16 7. 腎 病 의 辨 證 18 2 1 腎 에 관한 역대 醫 論 簡 略 1. 黃 帝 內 經 에서의 腎 현대 우리나라 한의학의 여러 다른 분야에서도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