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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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발간사 동북아시아 지역은 예부터 문화와 사상 그리고 문자를 상당 부분 공유하면서도 때 로는 서로 역사적 갈등을 빚어 왔습니다. 오랜 교류를 통한 선린우호의 관계가 지금 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한편으로 문화적 자부심과 정치적인 이유로 자기 나라의 역사 와 문화를 앞세우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상대방의 역사를 훼손하고 민족적 자존심까 지 상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동북아시아에서의 역사 갈등 등이 그 예입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2006년 9월 동북아시아라는 큰 틀에서 인접 국가의 역사침탈과 왜곡에 대응하여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출범하였습니다. 우리 재단은 동북아시아의 역사문제 및 독도 관련 사항에 대하여 종합적, 체계적으로 접근함으로 써 깊은 연구와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바람직한 정책안을 만들어 내는 역할과 기능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설립 이후 일본의 독도 역사왜곡에 효과적 으로 대처할 수 있는 독도관련 시민활동가를 육성하고 국내외 시민사회단체의 인적 물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시민사회의 활성화를 도모해 왔습니다. 이를 위해서, 동북아역사재단은 독도 시민활동가들의 전문성 제고를 위한 독도 역 사기행, 독도관련 현안문제 논의를 위한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자발적이고 건전한 독 도 시민단체 육성 및 활성화 도모를 위한 시민단체 등에 대한 지원 사업을 추진해 왔 습니다. 우리 재단은 이러한 사업들을 통하여 일본의 행태에 대한 시민사회의 자율적, 체계적 대응을 도모하고 기존의 고답적 대응방안에서 벗어나서 민관협력에 기초한 독 도관련 대응능력 강화에도 크게 기여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시민협력사업의 결과물을 출간함에 있어 무엇보다도 다양한 형태의 시 민사회 활동을 추진하면서 독도와 관련된 올바른 역사인식의 확대를 위해 성실히 그 역할을 다해 오신 시민활동가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동북 아역사재단은 영유권 공고화를 위해 역사 왜곡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동북아시아의 영토 영해 연구 및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발간사 3

4 이 성과물이 독도관련 시민사회의 새로운 활동영역을 계발하고, 나아가 민관협력을 기반으로 우리의 영유권 공고화를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2008년 3월 4 발간사

5 차 례 제1장 독도 시민사업 개요 7 Ⅰ. 사업내용 / 9 Ⅱ. 독도역사기행 / 9 Ⅲ.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 11 Ⅳ. 독도 시민단체 지원 / 11 Ⅴ. 국내외 시민사회 네트워크 구축 / 11 제2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13 Ⅰ. 행사내용 / 15 Ⅱ. 18세기 말 울릉도 수토관 일지 / 20 Ⅲ. 울릉도 관련 울진유적지 자료 / 25 제3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43 Ⅰ. 행사내용 / 45 Ⅱ. 19세기 말 울릉도 검찰과 재개척 일지 / 49 Ⅲ. 울릉도 검찰일기 논고 / 67 Ⅳ. 인터뷰와 언론보도 / 79 제4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81 Ⅰ. 행사내용 / 83 Ⅱ. 울릉도 지역의 독도 관련 일제 유적지 소개 / 87 Ⅲ. 러일전쟁과 일본의 독도 점취 / 93 Ⅳ. 조선 침략의 첫 신호탄, 독도 강제 편입 / 112 Ⅴ. 인터뷰와 언론보도 / 122 차례 5

6 제5장 독도 전문가 초청강연 137 Ⅰ. 행사개요 / 139 Ⅱ. 독도운동과 시민문화운동 / 140 Ⅲ. 한국의 역사연구와 울릉도 검찰일기 / 142 Ⅳ. 독도 연구 활동의 회고와 전망 / 145 Ⅴ. 독도에 연관된 러시아측 자료 및 일본과 꾸릴열도, 댜오위다오 / 154 제6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171 Ⅰ.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행적 답사 / 173 Ⅱ. 러일전쟁 관련 일제 유적지 답사 / 208 Ⅲ. 조선시대 수토정책관련 역사 유적지 답사 / 248 제7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267 Ⅰ. 독도 시민활동가들의 의견 / 269 Ⅱ. 독도 시민단체 활동 사례 / 291 제8장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319 Ⅰ. 독도 시민단체 활동가 포럼 / 321 Ⅱ. 독도 시민단체 대표자회의 / 344 Ⅲ. 독도 시민활동가 워크숍 / 347 제9장 독도 시민협력 지원사업 357 Ⅰ. 한국시인협회 / 359 Ⅱ. 한국수중환경협회 / 361 Ⅲ. 역사NGO세계대회 독도특별분과 / 362 Ⅳ. 영토NGO국제포럼 / 364 Ⅴ. 역사NGO국제포럼 관련 해외언론보도 / 383 제10장 시민단체 현황 389 부 록 독도 현황 차례

7 제1장 독도 시민사업 개요 Ⅰ. 사업내용 Ⅱ. 독도역사기행 Ⅲ.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Ⅳ. 독도 시민단체 지원 Ⅴ. 국내외 시민사회 네트워크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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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Ⅰ. 사업내용 독도에 대한 바른 역사인식의 확대를 도모하고, 독도관련 시민단체의 전문성 제고를 위 한 독도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독도관련 역사기행 독도관련 현안문제 및 민관협력 제고 방안에 관한 논의를 통하여 독도관련 대응능력 강화를 위한 독도 시민단체 활동가 포럼 자발적이고 건전한 독도 시민단체를 육성하고 활동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시민단 체 행사 지원 Ⅱ. 독도역사기행 년도 독도역사기행 행사명: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의 발자취를 찾아서 주 최:동북아역사재단 주 관:동북아역사재단, 울릉문화원 추진목적 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의 행적 답사를 통해 울릉도 독도의 역사 지리 이해 년 이규원의 울릉도 검찰은 울릉도 개척과 일본의 울릉도, 독도 칩입에 대한 불법, 부당성을 확인하는 역사적 근거가 되고 있음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독도관련 전문성 제고 독도관련 시민단체 활동의 새로운 문화콘텐츠 개발 일시 장소 울릉도 우산문화제 기간 중(10월 26 29일, 3박 4일) 울릉도 및 독도 현지 제 1 장 독도 시민사업 개요 9

10 행사내용 역사기행은 초청강연, 시민 활동가 포럼과 함께 독도 시민단체 연합행사로서 추진 - 독도역사기행:1882년 이규원 검찰사의 울릉도 조사 행적 답사 - 초청강연:울릉도 독도의 역사 문화적 의미와 가치에 대해 강의 - 시민활동가 포럼:재단 및 시민단체 간 교류협력방안 등 다양한 주제 논의 참가자:독도관련 시민사회단체 대표 및 활동가 등 31명 참가방법:참가단체 소개서 및 참가자 인적현황 각 1부 제출 년도 독도역사기행 행사명: 독도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탐방 -독도의 망루를 찾아라. 추진목적 독도침탈의 결정적 계기가 된 러일전쟁의 독도관련 유적지를 탐방함으로써 독도문제 의 본질을 재확인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독도관련 전문성 제고 독도관련 시민단체 활동의 새로운 문화콘텐츠 개발 일시 및 장소 동해해전에서 일본연합함대에 의해 러시아함대가 격침된 5월 전후 울릉도 독도 현지 행사내용 전문가 초청강연 - 러일전쟁 전문가 러일전쟁 유적지 탐방 - 러일전쟁 중 일본이 건립한 망루터 탐방(울릉도 3곳, 독도 1곳), 러일전쟁 최후의 격 전지 견학 주제가 있는 토론회 -울릉도 현지인 등 참가 독도와 러일전쟁 관련 자료집 제작 1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1 - 일지, 사진 및 문헌자료 등 수록 참가자: 독도 시민단체 26개 단체(36명) 참가방법:참가단체 소개서 및 참가자 인적현황 각 1부 제출 Ⅲ.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추진목적:민관협력을 강화하고 국내외 단체간 협력 대응시스템 구축을 통한 독도관련 대응능력 강화 행사내용 시민단체 대표자 회의:일본 시마네현 죽도의 날 등 독도관련 현안문제 대응논의 시민활동가 워크숍:재단의 시민협력사업 및 민관협력 강화 방안 논의 Ⅳ. 독도 시민단체 지원 추진목적:독도 등 영토 영해와 관련하여 자발적이고 건전한 시민단체를 육성하고 활 동의 활성화를 도모 행사내용 영토 영해관련 각 시민단체 행사 지원 역사NGO세계대회 독도특별분과의 독도문화축전 행사 지원 Ⅴ. 국내외 시민사회 네트워크 구축 추진목적:국내외 시민사회내 독도관련 바른인식 확대를 위한 네트워크 구축 제 1 장 독도 시민사업 개요 11

12 행사내용 국내외 네트워크가 가능한 시민사회 단체 방문 및 활동가들과 교류 협력 국내외 영토NGO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영토NGO국제포럼 1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3 제2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Ⅰ. 행사내용 Ⅱ. 18세기 말 울릉도 수토관 일지 Ⅲ. 울릉도 관련 울진유적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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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Ⅰ. 행사내용 1. 행사개요 행사명:조선시대 수토정책관련 역사유적지 탐방 독도관련 2007년 시민사업 실적 평가 및 2008년 시민사업 계획 협의를 위한 시민단 체 대표자 간담회와 병행 실시 추진목적 독도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을 통한 독도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전문성 제고 및 시민 단체간 상호 협력 증진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유적지 탐방을 통해 우리 정부가 울릉도 독도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실증적으로 이해 일 시:2007년 12월 7일(금) 8일(토) 장 소:경상북도 울진군 현지 간 담 회:백암 한화콘도 역사탐방:조선 수토정책 관련 유적지(선정비, 대풍헌, 구산항 등) 참가자:독도 시민단체 대표자 등 22명 명단 <별첨> 참조 행사 세부 일정 일자 12.7(금) 주요일정 09:30 서울 출발 16:00 울진 도착 16:00 울릉도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울릉도장 선정비, 대풍헌, 구산항, 월 송정터) 안내:심현용(경북 울진군청 학예사) 18:30 석식 21:30 분임토의 (계속)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15

16 일자 12.8(토) 08:00 조식 09:00 간담회 주요일정 2007년 시민단체 사업 실적 보고 및 평가 2008년 시민단체 사업 계획 보고 및 의견 수렴 기타 의견 수렴 12:00 울진 출발 14:30 식사 후 구( 舊 ) 일본군 죽변 망루터 답사 21:00 서울 도착 2. 역사 유적지 탐방 1) 평해군수겸 울릉도장 영세불망비 1885년 6월 울릉도장( 島 長 )을 겸임한 평해군수 심의완의 공적비 - 평해군수가 울릉도를 관할하였다는 역사사료로서 가치를 가짐 위치:경북 울진군 온정면 외선미리 138-1번지(비석거리) 비석은 깨어진 상태 그대로 방치되어 있으며, 보존 방안 강구 필요 - 마을 주민들 사이에 비석에 대한 금기가 있어 비석의 복원 또는 재배치가 어려운 실정 사진 1 깨어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선정비 사진 2 울릉도장 선정비가 방치되어 있는 곳 1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7 2) 대풍헌과 울릉도 수토관련 문서 대풍헌( 待 風 軒 )은 1882년 이규원 검찰사를 비롯, 조선시대 울릉도 수토관들이 울릉도 로 떠나기 전에 머물렀던 곳(현재 마을 동사로 사용) - 위치:경북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 202번지 사진 3 대풍헌에서 마을 주민과 역사탐방단 사진 4 대풍헌 내부에 걸려 있는 현판 대풍헌 소장 문서인 수토절목(1823년 추정)과 완문(1811년 추정)은 울릉도 수토관 일 행의 접대를 위해 소요되는 경비 부담에 관한 방책에 대해 관아(삼척부)에서 결정해 준 내용 사진 5 문서 보관함과 마을 주민 사진 6 수토절목과 완문 대풍헌과 울릉도 수토관련 문서는 조선 정부가 울릉도를 포기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관리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문화재이자 역사사료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17

18 3) 구산항 1882년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를 비롯, 울릉도 수토관 일행이 출발했던 항구 울릉도 독도관련 역사유적지 탐방 장소로서 의미를 지님 사진 7 구산항에서 역사유적지 탐방단 사진 8 구산항 전경 4) 월송포영 울릉도 수토관의 직임을 수행했던 월송만호와 수군들이 주둔했던 수군 진으로 현재 는 남아 있지 않음 월송포영( 越 松 浦 營 )은 현재의 월송정과 다른 곳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 -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303-3번지 일원으로 추정 지도 1 월송포영 위치(추정) 1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9 별첨 - 참가자 명단 순번 소 속 직 위 성 명 비 고 1 독도수호국제연대 실장 박창우 2 독도NGO포럼 회장 나홍주 3 코리아독도녹색연합 대표 박순종 4 코리아독도녹색연합 공동대표 방길남 5 코리아독도녹색연합(양양지부) 지부장 김영기 6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 고문 조영삼 7 동해미래포럼 비서실장 김종출 8 동해미래포럼 회원 김한백 9 독도문화연대 사무국장 서주원 10 독도리아 대표 안용식 11 독도의병대 부대장 오윤길 12 독도의병대 총무 윤미경 13 독도사수대 대표 이상훈 14 이종학관장기념사업회 대표 이종호 15 코리아스코프 대표 장석훈 16 재경독도향우회 회장 조대용 17 한국시인협회 독도지회 회장 편부경 18 발명계 독도개발지원 운동본부 본부장 한송본 19 독도지킴이 대표 정성광 20 동북아역사재단 부연구위원 홍성근 21 울진군청 학예사 심현용 22 클로버관광 직원 이재모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19

20 Ⅱ. 18세기 말 울릉도 수토관 일지 1) 정조실록 권40, 정조 18년 6월 무오조(1794년 6월 3일)의 기록 - 울릉도 수토 결과를 강원도 관찰사 심진현이 보고하다. 강원도 관찰사 심진현( 沈 晉 賢 )이 장계하였다 울릉도의 수토( 搜 討 )를 3년에 한 번씩 변장( 邊 將, 월송 만호)으로 하여금 돌아가며 거행 하기로 이미 정해 놓고 있었기 때문에, 수토관( 搜 討 官, 越 松 萬 戶 ) 한창국( 韓 昌 國 )에게 관문을 띄워 분부하였습니다. <1794년 4월 21일> 순풍을 기다려 울릉도로 향하다 월송 만호의 서면보고[ 牒 呈 ]에, 4월 21일 다행히도 순풍을 만나 식량과 반찬거리를 4척 의 배에 나누어 싣고 왜학( 倭 學 ) 이복상( 李 福 祥 ) 및 상하 원역( 員 役 )과 격군( 格 軍 ) 80명을 거 느리고 같은 날 미시[ 未 時 :오후 2시]쯤에 출항하여 바다 한가운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유시[ 酉 時 :오후 6시]에 갑자기 북풍이 일며 안개가 사방에 자욱하게 끼고, 우뢰와 함께 장 대비가 쏟아졌습니다. 일시에 4척의 배가 뿔뿔이 흩어져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는데, 만호가 정신을 차려 군복을 입고 바다에 기원한 다음 많은 식량을 물에 뿌려 해신( 海 神 )을 먹인 뒤에 격군 들을 시켜 횃불을 들어 호응케 했더니, 두 척의 배는 횃불을 들어서 대답하고 한 척의 배 는 불빛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4월 22일> 고생 끝에 울릉도에 도착하다 22일 인시[ 寅 時 :새벽 3시]에 거센 파도가 점차 가라앉으면서 바다 멀리서 두 척의 배 돛 이 남쪽에서 오고 있는 것만을 바라보고 있던 참에 격군들이 동쪽을 가리키며 저기 안개 1) 이 기록은 바른역사정립기획단( ), 독도자료집 1, 쪽의 내용을 인용 재정리하였으며, 내 용 중 [ ] 안의 내용은 이해를 돕기 위해 오늘날의 울릉도 지명 등의 설명을 덧붙인 것이다(정리 설명:홍 성근). 2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1 속으로 은은히 구름처럼 보이는 것이 아마 섬 안의 높은 산봉우리일 것이다. 하기에, 만호 가 자세히 바라보니 과연 그것은 섬의 형태였습니다. 직접 북을 치며 격군을 격려하여 곧장 섬의 서쪽 황토구미진[ 黃 土 丘 尾 津, 태하동]에 정박 하여 산으로 올라가서 살펴보니, 계곡에서 중봉[ 中 峰 :성인봉]까지의 30여 리에는 산세가 중 첩되면서 계곡의 물이 내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논 60여 섬지기의 땅이 있고, 골 짜기는 아주 좁고 폭포가 있었습니다. 그 왼편은 황토구미굴[ 黃 土 丘 尾 窟, 황토굴]이 있고 오 른편은 병풍석( 屛 風 石 )이 있으며 또 그 위에는 향목정( 香 木 亭 )이 있는데, 예전에 한 해씩 걸 러 향나무를 베어 갔던 까닭에 향나무가 점차 듬성듬성해지고 있습니다. <4월 24일> 거북바위가 있는 통구미에 도착하다 24일에 통구미진[ 桶 丘 尾 津, 통구미]에 도착하니 계곡의 모양새가 마치 나무통과 같고 그 앞에 바위가 하나 있는데, 바닷속에 있는 그 바위[거북바위]는 섬과의 거리가 50보( 步 )쯤 되 고 높이가 수십 길이나 되며, 주위는 사면이 모두 절벽이었습니다. 계곡 어귀에는 암석이 층층이 쌓여 있는데, 근근이 기어 올라가 보니 산은 높고 골은 깊은데다 수목은 하늘에 맞 닿아 있고 잡초는 무성하여 길을 헤치고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4월 25일> 저전동 앞에 있는 죽도 등 3개의 섬을 보다 25일에 장작지포[ 長 作 地 浦, 사동]의 계곡 어귀에 도착해보니 과연 대밭이 있는데, 대나무 가 듬성듬성할 뿐만 아니라 거의가 작달막하였습니다. 그중에서 조금 큰 것들만 베어낸 뒤 에, 이어 동남쪽 저전동[ 楮 田 洞, 저동]으로 가보니 골짜기 어귀에서 중봉에 이르기까지 수십 리 사이에 세 곳의 널찍한 터전이 있어 수십 섬지기의 땅이 되었습니다. 또 그 앞에 세 개 의 섬이 있는데, 북쪽의 것은 방패도( 防 牌 島 ), 가운데의 것은 죽도[ 竹 島, 죽도], 동쪽의 것은 옹도( 瓮 島 )이며, 세 섬 사이의 거리는 1백여 보( 步 )에 불과하고 섬의 둘레는 각각 수십 파 ( 把 )씩 되는데, 험한 바위들이 하도 쭈뼛쭈뼛하여 올라가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4월 25일> 가지도에 가서 가지어를 잡다 거기서 자고 26일에 가지도( 可 支 島 )로 가니, 네댓 마리의 가지어( 可 支 魚 )가 놀라서 뛰쳐나 오는데, 모양은 무소와 같았고, 포수들이 일제히 포를 쏘아 두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21

22 구미진( 丘 尾 津 )의 산세가 가장 기이한데, 계곡으로 십여리를 들어가니 옛날 인가의 터전이 여태까지 완연히 남아 있고, 좌우의 산곡이 매우 깊숙하여 올라가기는 어려웠습니다. 이어 죽암[ 竹 巖, 죽암], 후포암( 帿 布 巖 ), 공암[ 孔 巖, 공암], 추산[ 錐 山, 추산] 등의 여러 곳을 둘러보고 나서 통구미[ 桶 丘 尾, 통구미]로 가서 산과 바다에 고사를 지낸 다음, 바람이 가라앉기를 기다 려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대저 섬의 둘레를 총괄하여 논한다면 남북이 70 80리 남짓에 동서가 50 60리 남짓하 고 사면이 모두 층암 절벽이며, 사방의 산곡( 山 谷 )에 이따금씩 옛날에 사람이 살던 집터가 있고 밭으로 개간할 만한 곳은 도합 수백 섬지기쯤 되었으며, 수목으로는 향나무, 잣나무, 황벽나무, 노송나무, 뽕나무, 개암나무, 잡초로는 미나리, 아욱, 쑥, 모시풀, 닥나무가 주종 을 이루고, 그 밖에도 이상한 나무들과 풀은 이름을 몰라서 다 기록하기 어려웠습니다. 날 짐승으로는 기러기, 매, 갈매기, 백로가 있고, 네발 달린 털 짐승으로는 고양이, 쥐가 있으 며, 해산물로는 미역과 전복뿐이었습니다. <4월 30일> 울릉도를 떠나서 5월 8일에 월송으로 돌아오다 30일에 배를 타고 출발하여 새달 8일에 본진으로 돌아왔습니다. 섬안의 산물인 가지어 가죽 2벌, 호아죽( 篁 竹 ) 3개, 자단향( 紫 檀 香 ) 2토막, 석간주( 石 間 硃 ) 5되, 도형( 圖 形 ) 1벌을 감 봉( 監 封 )하여 올립니다. 함께 비변사로도 올려 보냅니다. 2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3 지도 1 천하총도-강원도(조선후기)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23

24 지도 2 여지도-울릉도( ) 2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5 Ⅲ. 울릉도 관련 울진유적지 자료 심현용(경북 울진군청 학예연구사) 1. 평해군수겸 울릉도장 영세불망비 위치:경북 울진군 온정면 외선미리 138-1번지(비석거리) 郡 守 兼 鬱 島 僉 使 沈 公 宜 琬 永 世 不 忘 兩 代 一 郡 恩 同 冫 馬 驪 頌 登 四 方 孰 不 錄 仰 德 頻 鄒 衍 汗 傳 千 秋 (앞면) 해석 양대(부자)가 일군을 맞아 큰일 하니 은혜를 비유하기를 여산 탓 것(중국 여산) 같으니 모든 업적(좋은 얘기)이 사방에서 퍼져 소문이 나니 누군가 가서 우러러 기록하여 큰 덕이 춘나라에 펼쳐진 것(공자님 덕)과 같으니 땀 흘려 일함을 천추만대에 전하니 그 업적을 크게 기린다 內 外 仙 味 一 年 乙 酉 十 月 日 謹 竪 ( 光 緖 十 ) 搭 邱 三 洞 (뒷면) 해석 (광서 1)1년 을유 10월 일 내외선미(선구리, 외선미리), 탑구 3동(부달)에서 삼가 세움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25

26 사진 1 심의완 영세불망비(앞면) 사진 2 심의완 영세불망비 (뒷면) 울릉도는 임오군란이 수습된 직후인 고종 19년(1882) 8월 20일 영의정 홍순목이 울릉도 개척방안으로 제안을 하여, 지방관제상 울릉도의 소속이 울진현에서 평해군으로 바뀌게 된 다. 이때 도장을 두어 다스리게 하였는데, 고종 22년(1885) 6월 평해군수 심의완을 울릉도 장( 島 長 )으로 겸임시키고, 평해소속 월송만호 서경수를 왕래하면서 검찰하게 했다. 심의완 은 1885년(고종 22) 3월 28일 평해군수로 부임하였으나, 1886년 1월 14일 강화판관으로 이 동하여 갔다. 2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7 2. 월송포영터 위치: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303-3번지 일원 1) 월송포영 월송포영( 越 松 浦 營 )은 평해군의 동 6(7)리의 거리에 돌로 만든 수군 진이 있었다. 높이는 6(7)척, 둘레는 628(489)척이다. 만호 1인과 수군 400명 정도가 주둔하였다 ( 신증동국여지승 람, 동국여지지, 여도비지 ). 지도 1 울진포영 위치(추정도) 2) 월송포영 관련 산수화 현재 월송정을 그린 그림이 몇 점 전해지고 있다. 대부분 조선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대 표적인 것인 겸재의 그림이다. 이외 이정, 2) 정충엽, 강세황, 김홍도 등의 그림도 전해지고 있다. 이는 당시 월송포영의 현황을 유추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2) 이정( )이 관동지역을 여행하고 그중 경치 좋은 경포대, 죽서루, 망양정, 월송정을 그렸는데(박은 순(1997), 금강산도 연구, 일지사, 61쪽), 필자가 자료를 확인하지 못하여 본 글에서는 생략하였다.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27

28 (1) 정선 사진 년, 紙 本 淡 彩, 가로 57.7 세로 32.2cm, 간송미술관소장 이 그림은 월송정( 越 松 亭 ) 이란 화제가 쓰여 있으며, 정선이 63세 때(1738) 8촌 친척 아우 인 우암 최창억을 위해 제작한 관동명승첩( 關 東 名 勝 帖 ) 의 11폭 중 1폭이다. 이 그림은 빽 빽이 들어찬 긴 소나무 숲을 화면 중앙에 대담하게 포치하고 울창한 수림( 樹 林 )의 가지와 잎새를 먹구름처럼 칠해놓은 겸재 특유의 묵송법( 畵 松 法 )을 분방하게 묘사하여 송림의 정 취를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주변에는 소나무숲과 모래해변이 펼쳐지며, 왼쪽으로는 굴미봉 (일명 군무봉)으로 보이는 바위봉우리가 돌출해 있고 남쪽으로는 석축으로 쌓은 돈대( 墩 臺 ) 위에 누각이 서 있다. 월송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을 세웠는데, 창방과 평 방이 보이며, 기둥은 방주를 사용하였다. 건물 아래에는 성문이 있고 양옆으로 성벽이 이 어져 문루( 門 樓 )임을 알 수 있다. 이는 해안경비를 관장하던 월송진성의 성문 구실을 함께 겸한 것으로 추측된다. 3) 정자 주변에는 월송만호가 살던 관청과 관사인 듯한 기와집들이 들어서 있으며, 하천이 앞으로 돌아 흐르고 있다. 지금의 자연환경과 거의 비슷하다. 3) 최완수(1999),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 여행, 대원사, 272쪽. 2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9 (2) 정충엽 사진 4 18세기, 紙 本 水 墨, 가로 28cm 세로 22.4cm, 개인 소장 이 그림은 월송정( 越 松 亭 ) 이란 화제가 쓰여 있으며, 정충엽( 이후)이 정선풍( 鄭 敾 風 )의 구도와 준법, 수지법 등으로 그렸다. 즉 경물을 화면에 가득이 채우는 구성, 근경 을 위주로 한 빽빽하고 평면적인 구도, 강한 골세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필법, 짙고 윤택한 묵법, 토산을 표현할 때 피마준과 미점을 주로 사용하고 정자형( 丁 字 形 )의 소나무 표현 등 이 두드러지는 정선의 독특한 표현기법을 구사한 것이다. 이로 보아 정선의 진경산수화 화 풍은 중인 화가였던 정충엽에게 충실히 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정선이 그린 월송정도와 거의 비슷하다. 즉 주변의 소나무숲과 하천 등 자연 환경과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과 건물아래의 성문과 양옆의 성벽 등이 거의 동 일하다. 왼쪽의 뾰족 솟은 돌산은 굴미봉으로 보이며, 관청으로 보이는 기와집과 초가마을 등이 정선의 그림을 거의 빼닮았다.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29

30 (3) 강세황 사진 년, 紙 本 水 墨, 가로 48 세로 3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그림은 화제가 쓰여 있지 않으며, 강세황( )이 1788년(정조 12) 9월 13일 17일까지 김홍도, 김응환 등과 금강산을 여행할 때 14면으로 제작한 시서화 합벽첩인 풍 악장유첩( 楓 嶽 壯 遊 帖 ) 에 속해있다. 4) 이 화첩은 제8면부터 제14면에는 7폭의 그림이 그려 져 있는데, 이 7폭의 그림 중 삼척의 죽서루와 고성의 청간정, 평해의 월송정의 관동팔경 세 장면을 그렸다. 이중 월송정도는 13면에 그려져 있다. 4) 이 그림을 가학정( 駕 鶴 亭 ) 을 그린 그림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국립춘천박물관(2002), 우리 땅 우리의 진경 조선시대 진경산수화 특별전, 통천문화사, 167쪽]. 그러나 이 그림은 월송정 을 그린 그림으로 보는 것이 타 당할 것 같다. 왜냐하면 가학정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 호동에 있는 정자로 전방으로 황룡강을 바라보 는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건물의 형태는 육각정( 六 角 亭 )으로 골기와 육모지붕을 취하고 있다. 가학정은 임진왜란 때 백의종군하여 무훈을 세운 박경( 朴 璟 )이 선조가 벼슬길에 나서기를 권했으나 이를 사 양하고 여생을 초야에 묻혀 충성할 것을 아뢰니 왕이 이를 가상히 여겨 1601년 가을 이곳에 가학정을 건립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그림의 바다가 보이는 위치는 가학정이 있는 곳이 아니며 정자의 모습도 그림과 다 르기 때문에 평해의 월송정을 그린 그림으로 보아야 한다. 박은순(1997), 금강산도 연구, 일지사, 쪽도 이 그림을 월송정을 그린 것으로 파악하였다. 3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1 그림에는 소나무숲과 모래해변이 펼쳐지며, 건물은 높은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정면 5칸 측면 2 또는 3칸의 팔작기와집을 세웠다. 그리고 건물 뒤쪽에 긴 건물이 연결되어 있다. 이는 그동안 문루 위에 있는 상황과 사뭇 다름을 보여 준다. 뒤쪽으로는 굴미봉으로 보이 는 바위봉우리가 솟아 있다. 이 월송정도를 포함한 죽서루, 청간정의 그림은 김홍도가 그 렸다고 추정하는 금강산도 중의 관동팔경 그림인 해산도첩 과 비슷한 구도와 구성, 소재 와 기법으로 그려졌다. 수묵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유탄( 柳 炭 )으로 잡은 초를 그대로 베껴 낸 듯 신선한 담백함이 느껴진다. (4) 김홍도 이 그림은 월송정( 月 松 亭 ) 이란 화제가 쓰여 있으며, 김홍도( 경) 筆 로 전하는 금 강산도 중의 관동팔경 그림을 그린 해산도첩( 海 山 圖 帖 ) 의 하나이다. 김홍도의 금강산도들 은 1788년 관동지방으로의 봉명사경을 계기로 그려졌다고 여겨지는데, 이 그림도 이때 그 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5) 사진 년, 재료 크기 未 詳, 개인 소장 5) 이동주(1975), 김단원이라는 화원, 우리나라의 옛그림, 박영사, 쪽 ; 박은순(1997), 위의 책, 258쪽.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31

32 이 그림은 소나무숲과 모래해변이 펼쳐지며, 왼쪽으로는 소나무숲 사이에 굴미봉으로 보이는 바위봉우리가 솟아 있고 남쪽으로는 석축으로 쌓은 돈대 위에 누각이 서 있다. 월 송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으로 건물 양 옆으로 성벽이 이어졌고 건물 아래 에는 성문이 있어 문루임을 알 수 있다. 정자 주변에는 관청과 관사인 듯한 기와집들이 들 어서 있다. 지금의 자연환경과 거의 비슷하다. 이 그림은 강세황의 월송정도와 같은 구성 으로 표현되었다. 강세황과 김홍도의 관동도( 關 東 圖 )가 구성과 화풍이 유사한 것은 새로운 진경산수화풍을 형성하는데 두 사람이 함께 작업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들의 관동팔경은 진경에 대한 사실적 접근을 벗어나 자기 자신만의 화풍으로 소화한 구도와 필묵법을 보여주어 그 화격( 畵 格 )이 진일보한 면모를 보여 준다. 특히 그 공간의 규 모와 일관된 시점, 원근법이 좀더 뚜렷하 게 감안된 구성, 날카로운 선묘( 線 描 ) 등에서 다른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화풍 은 18세기 말엽 이후 진경산수화에 변화를 일으키며 19세기 중엽까지 영향을 주었다. (5) 허필 이 그림은 월송정( 越 松 亭 ) 이란 화제가 쓰여 있으며, 허필( )이 그린 관 동팔경도병 중의 하나이다. 이 그림은 소 나무숲과 모래해변이 펼쳐지며, 왼쪽으로 는 굴미봉으로 보이는 바위가 솟아 있고 석축으로 쌓은 돈대 위와 그 안에 건물들 이 서 있다. 건물들은 자세하지 않으나, 팔 작기와집이며 건물 아래에는 성문이 있고 양 옆으로 성벽이 이어져 문루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정선, 정충엽, 김홍도 등이 그 린 월송정의 성격과 같은 성문구실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7 18세기, 가로 42.3 세로 85cm, 선문대박물관 소장 3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3 (6) 백운 사진 8 조선시대, 紙 本 淡 彩, 가로 43 세로 32.5cm, 관동대박물관 소장 이 그림은 평해월송정( 平 海 月 松 亭 ) 이란 화제가 쓰여 있으며, 백운( 白 雲 )이란 호를 가진 인명미상의 작품이다. 백운선생이 직접 관동팔경과 금강산 등의 명승지를 두루 탐승하고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데, 소상팔경의 작품이 함께 실려 있다. 그 외에도 간찰의 서식들이 그림 뒷면에 붙어있는데, 후대에 와서 재편집된 것 같다. 조선말기에서 근대 초반의 작품 으로 추정된다. 6) 이 그림은 소나무숲과 모래해변이 펼쳐지며, 뒤쪽으로는 굴미봉으로 보이 는 2개의 봉우리가 뾰족 솟아 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으로 건물 아 래에는 석주를 정면 2칸 측면 1칸으로 하여 건물을 받친 2층 누각의 형태를 띤다. 건물의 형태가 문루에 나타나는 것과 사뭇 다르다. 6) 관동대학교박물관(2004), 소장품도록, 예맥출판사, 293쪽.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33

34 3. 대풍헌(수토절목, 완문) 위치:경북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 202 1) 완문 完 文 辛 未 七 月 日 右 完 文 爲 永 久 遵 行 事. 卽 接 邱 山 洞 民 等 狀 內 / 鬱 陵 島 搜 討 時 / 鎭 營 使 道 越 松 萬 戶 行 次 / 雜 費 奉 行 等 節 / 前 所 沿 海 九 洞 之 幷 力 / 隨 護 者 而 挽 近 矣. 洞 惟 此 專 當 則 偏 害 / 賢 勞 不 一 滌 陳 而 / 余 洞 僅 聚 錢 / 爲 壹 百 貳 拾 兩. 搜 討 時 萬 一 添 補 之 資 / 是 在 中 分 授 / 各 洞 存 本 取 利 / 每 年 二 月 推 捧 亦 爲 有 置. 莅 位 以 來 究 諸 營 弊 則 洳 矣. 洞 搜 討 時 難 支 之 狀 / 已 爲 洞 悉 / 而 右 錢 壹 百 貳 拾 兩 / 布 殖 於 各 洞 而 / 亦 是 不 費 之 惠 / 乙 仍 于 鄕 作 廳 的 / 只 各 洞 良 中 分 排 右 錢 / 而 每 兩 頭 參 分 邊 / 每 年 二 月 推 捧 / 搜 討 時 用 費 添 補 之 意 / 成 完 文 以 續 爲 去 乎. 以 此 遵 行 直 當 者. 辛 未 七 月 日 官 (수결사인) 後 表 山 洞 錢 拾 伍 兩 烽 燧 洞 錢 捌 兩 於 峴 洞 錢 柒 兩 ( 乙 巳 三 月 初 七 日 錢 二 十 兩 正 ) 直 古 洞 錢 貳 拾 兩 狗 巖 洞 錢 伍 兩 巨 逸 洞 錢 貳 拾 兩 浦 次 洞 錢 拾 兩 也 音 洞 錢 伍 兩 3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5 邱 山 洞 錢 參 拾 兩 완문 7) 신미년 8) 7월 일 옆의 완문 은 영구토록 지켜 행할 것이다. 즉 인접해 있는 구산동민의 진정서에 따른 일 이니, 울릉도를 수토할 때 (삼척)진영사또와 월송만호의 행차에 따라 소요되는 비용을 봉행 하는 등의 절차로서 월송진의 해안에 접한 아홉 마을에서 힘을 모아 지켜서 빠른 시일 내 에 이행해야 할 것이다. 구산동에서 이를 오로지 분담하여 폐해가 편중되었으니, 특별히 수고하는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니 이런 묵은 일을 없애고자 동(구산동)에서 조금 모은 돈이 120냥이다. 수토 시 만에 하나라도 더 필요한 자금이 있으면 이 가운데서 나누어주고 각 동에 있는 자본의 이 자를 매년 2월에 추봉 9) 하니 이 돈을 여기에 쓰도록 하였다. 부임한 이래로 여러 군영의 폐 단을 살펴보니 그 폐습이 깊숙이 배여 있다. 이 동에서 수토 시 지탱하기 어려운 현상은 이미 모든 동에서도 잘 아니 이 돈 120냥을 각 동에 나누어서 이자 증식하는 것도 또한 자 본이 줄어들지 않는 혜택이니, 향청과 작청의 규정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다만 각 동에 이 돈을 나누어 분배하되 1냥에 3푼 변리로 하고 매년 2월에 추봉하여 수토 시 비용에 보태어 쓰라는 뜻으로 완문 을 발급하였으니 이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지켜 행하는 것이다. 신미년 7월 일 (수결사인) 다음 표산동 전 15냥 봉수동 전 8냥 어현동 전 7냥(을사년 3월 초7일 전 20냥 정) 직고동 전 20냥 7) 관청에서 향교(혹은 향교의 교생), 서원(혹은 서원의 원생), 결사( 結 社 ), 촌( 村, 혹은 촌민), 개인 등에게 어 떠한 사실을 확인해주거나 권리 및 특전을 인정해주기 위한 용도로 발급되던 문서이다. 완문은 당사자나 해 당기관의 청원에 의하여 발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8) 조선 순조 11년(1811)으로 추정. 9) 전곡을 물리어서 거두어들임.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35

36 구암동 전 5냥 거일동 전 20냥 포차동 전 10냥 야음동 전 5냥 구산동 전 30냥 2) 수토절목 搜 討 節 目 ( 供 饋 變 通 ) 癸 未 十 月 日 邱 山 洞 節 目 右 爲 永 久 遵 行 事. 卽 者 / 南 北 津 九 洞 民 人 等 呈 狀 內 / 以 爲 鬱 陵 島 之 搜 討 / 三 陟 鎭 營 使 道 / 與 月 松 萬 戶 / 間 三 年 行 之 者 乃 是 定 式 / 而 待 風 發 船 之 節 / 每 於 邱 山 津 / 而 爲 之 是 乎 所 月 松 鎭 之 於 本 津 / 則 相 距 稍 近 / 其 所 費 用 雖 不 至 於 顆 / 多 至 若 鎭 營 之 行 則 / 本 津 留 住 也 爲 日 之 久 近 / 都 關 於 風 勢 之 利 不 利 然 則 / 易 至 於 八 九 日 十 數 日 矣 / 雖 留 住 之 不 久 若 一 二 日 之 內 / 各 須 費 用 之 數 / 誠 爲 不 少 / 而 以 不 少 之 費 / 擔 當 於 矣 徒 九 洞 者 / 乃 是 九 洞 之 巨 弊. 是 如 乎 每 於 收 錢 之 時 / 怨 惡 相 加 / 咸 曰 難 支 故 / 齊 會 取 議 則 / 商 船 之 毋 論 / 魚 鹽 與 藿 物 到 泊 浦 口 下 陸 津 頭 時 受 貰 / 八 道 沿 邊 邑 通 行 之 例 也 而 矣. 徒 南 北 津 良 中 / 各 道 商 船 之 年 後 年 來 泊 者 / 亦 云 多 矣. 依 此 例 隨 多 少 受 貰 取 殖 補 用 / 於 惟 正 之 費 者 / 似 合 於 矣 / 各 洞 永 保 之 道 也. 以 此 意 / 成 給 節 目 / 俾 祛 不 細 之 民 痒 亦 爲 有 置 盖 此 鬱 島 搜 討 時 / 鎭 營 之 行 則 六 年 一 次 / 而 以 今 年 言 之 兩 日 內 支 用 之 費 / 殆 近 百 金 矣. 邱 山 津 民 之 訴 則 曰 / 分 値 九 洞 / 乃 是 前 例 / 其 他 八 洞 民 之 訴 則 曰 / 徵 數 此 多 莫 可 支 吾 互 相 呼 訴 非 止 一 再. 左 處 右 斷 似 不 無 彼 此 稱 寃 之 端 是 如 乎. 第 其 兩 日 之 費 / 旣 如 是 顆 然 矣. 若 値 風 不 利 / 而 或 至 於 十 餘 日 之 留 住 則 / 尤 將 奈 何. 弊 誠 非 細 / 憧 憧 一 念 思 / 所 以 支 保 之 策 / 是 在 如 中. 3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7 齊 訴 適 至 參 互 事 勢 則 / 於 商 人 別 無 大 失 於 九 洞 省 弊 不 些. 大 抵 鬱 島 在 於 海 中 / 搜 討 發 之 待 風 / 亦 在 於 津 頭 / 而 其 費 用 之 從 前 分 値 於 九 洞 者 / 誠 由 於 濱 海 之 致 則 / 商 船 之 去 來 也 / 亦 豈 無 些 少 之 受 貰. 而 況 他 各 道 沿 邊 邑 通 同 之 例 乎. 一 依 汝 矣 等 所 訴 受 貰 數 爻 / 及 擧 行 條 件 並 以 這 這 後 錄 / 成 節 目 四 件. 一 則 置 之 作 廳. 一 則 出 給 於 揮 羅 浦. 一 則 出 給 於 直 古 洞. 一 則 出 給 於 邱 山 洞. 是 去 乎 以 此 永 久 遵 行 / 毋 或 違 越 宜 當 者. 癸 未 十 月 日 官 (수결서명) 後 一 商 船 之 受 貰 也 / 不 可 無 一 定 之 規 矣 / 鹽 則 每 石 五 分 / 明 太 則 每 駄 一 戔 式 是 齊. 一 旣 已 受 貰 於 商 船 則 / 當 該 船 主 人 / 亦 不 無 貰 錢 / 藿 船 主 人 則 二 兩 / 鹽 船 主 人 則 五 戔 / 微 魚 船 主 人 則 五 戔 式 是 齊. 一 今 此 節 目 已 成 / 其 收 捧 之 節 / 毋 論 某 津 / 商 船 如 / 民 來 泊 是 去 等 / 該 洞 任 與 船 主 人 眼 目 以 某 商 船 來 泊 之 意 / 來 報 官 家 是 齊. 一 受 貰 之 節 旣 已 定 式 則 / 收 捧 之 際 / 相 蒙 之 歎 難 保 / 其 必 無 不 可 無 句 檢 之 監 發 監 發 啓 自 邱 山 洞 / 擇 其 諸 洞 民 中 / 稍 實 勤 幹 者 一 人 / 報 發 差 出 / 使 之 逐 津 受 貰 / 而 受 貰 之 際 / 與 各 該 洞 任 及 船 主 人 眼 目 擧 行 是 齊. 一 商 船 到 泊 之 後 / 旣 有 該 津 洞 任 之 報 則 / 自 官 卽 爲 題 送 于 受 貰 / 監 官 使 之 擧 行 而 所 捧 錢 / 啓 計 其 多 少 / 當 該 監 官 來 付 / 邱 山 洞 計 年 取 殖 是 齊. 一 今 此 受 貰 錢 / 旣 付 邱 山 洞 / 使 之 計 年 取 殖 / 則 無 論 鎭 營 與 月 松 / 間 三 年 搜 討 行 / 待 風 時 / 支 用 下 記 / 自 邱 山 洞 全 當 擧 行 / 而 切 勿 侵 得 於 各 洞 / 俾 無 如 前 紛 計 之 弊 是 齊. 一 毋 論 某 津 / 商 船 來 泊 之 後 / 如 有 掩 匿 不 報 之 弊 / 是 如 可 現 發 於 廉 探 之 下 則 / 當 該 尊 位 洞 任 及 船 主 人 等 / 斷 當 限 / 死 嚴 治 是 齊. 一 上 道 進 支 旣 有 官 供 / 則 不 必 擧 論 / 而 至 於 陪 下 人 馬 之 供 饋 則 / 自 官 至 出 勤 幹 色 吏 一 人 /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37

38 與 邱 山 洞 任 眼 目 擧 行 / 而 所 用 下 記 / 一 依 辛 未 節 目 用 下 爲 乎 矣 / 切 勿 濫 下 是 齊. 一 鹽 船 來 泊 也 / 每 石 五 分 戔 / 旣 已 成 節 目 酌 定 收 / 捧 付 之 邱 山 洞 / 補 用 於 搜 討 發 下 記 則 / 鹽 捧 之 受 貰 / 可 謂 疊 得. 自 今 爲 始 永 革 是 齊. 一 九 洞 巨 瘼 / 都 付 邱 山 洞 / 俾 爲 矯 捄 則 / 錢 雖 有 受 貰 處 / 亦 不 無 酬 勞 之 典 / 小 小 烟 戶 赴 役 除 減 是 齊. 一 月 松 萬 戶 搜 討 之 時 / 擧 行 之 節 及 其 他 諸 條 / 已 悉 於 辛 未 節 目 / 今 不 必 疊 床 是 齊. 一 未 盡 條 件 追 後 磨 鍊 是 齊. 수토절목(수토사 등의 접대 등에 변통하라) 계미년 10) 10월 일 구산동 절목 옆에 쓰여 있는 글은 영구토록 지켜 행할 일이다. 이것은 (월송진의) 남북포구 아홉 동민 들의 소장( 訴 狀 )에 따른 것으로 울릉도에 대한 수토에 쓰이는 것이다. 삼척진영사또와 월송 만호가 3년에 한 번 행하는 것이 정식으로 되어 있으니, 바람을 기다려 배를 출발하는 때 에 매번 구산진에서 하도록 하는 바이다. 월송진은 본 진에서 서로 거리가 아주 가까우니 그 소용되는 비용은 비록 많지 않지만, 자주 진영의 행차가 있게 되면 본 진에 유숙을 해야 된다. 날짜가 길어지고 짧아지는 것은 바람의 세( 勢 )가 좋고 나쁨에 달려 있는, 즉 쉬워야 8 9일이나 십 수 일이니 비록 유숙하 는 것이 오래지 않더라도 하루 이틀 안에 각 재료비용의 수는 진실로 적지 않으니 그 적지 않은 비용을 9동민에게 담당하게 한 것은 이는 9동의 큰 폐단이다. 이와 같이 매양 돈을 걷을 때 원망이 서로 더하니 다 같이 말하기를 지탱하기 어렵다고 하니, 그러한 고로 모여 서 의논을 들은, 즉 상선은 말할 것도 없고 어염과 미역은 배가 포구에 이르러 진두( 津 頭 ; 구산진)에 하륙( 下 陸 )할 때 세( 貰 )를 받는 것은 8도의 연변 읍에 통상 행하는 예가 있으니 그대로 한다. 다만 남북진에서 각 도( 道 )의 상선이 와서 머무는 것이 해마다 많다고 말한 다. 이 예에 의하여 다소에 따라 세를 받아 보충비용에 쓰고, 생각컨대 바르게 쓰는 것은 10) 조선 순조 23년(1823)으로 추정. 3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9 각 동에서 오래 보전해야하는 도리에 맞는 것 같다. 이러한 뜻에서 절목( 節 目 ) 을 발급하여 적지 않은 민폐를 없애고자 한다. 대개 울릉도 수 토 때는 진영의 행차인, 즉 6년에 한 번 있으나, 금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양일 안에 지출 한 비용이 거의 100금( 金 )에 가깝다. 구산진 백성들이 진정하기를 9동이 분담 시행한 것은 앞서 시행한 것이다 라 하였고, 11) 다른 8동민이 진정하기를 징수하는 비용이 많으니 가히 우리가 지탱할 수 없다 고 서로 호소하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구산동에서 진정하는 것을 다른 8동에서 차단하니, 피차 원망의 단서가 되지 않는 것이 없다 할 수 있다. 그 양 일 간에 비용이 이미 이와 같이 많았다. 만약 바람을 만나 불리하면 혹 십 여일 유숙한 즉 장차 어떻게 하겠는가? 진실로 폐단이 적지 않으니 어떻게 해볼 일념( 一 念 )으로 생각하였 는바, 지탱하고 보존하는 대책이 이 가운데 있다. 하소연을 간추려서 서로의 사세( 事 勢 )를 맞추어 참작한, 즉 상인에게는 별다른 큰 손실이 없으나 9동의 폐단을 줄이는 데는 적지 않다. 무릇 울릉도가 바다 가운데 있어 수토하는 관리가 진두( 津 頭 ; 구산진)에서 바람이 잦 아들기를 기다리니, 그 비용은 종전에 9동에서 분담하였으니 진실로 해변에 위치한 소치로 서 상선이 왔다 갔다 할 때에 어찌 적은 세( 貰 )라도 없겠는가? 하물며 다른 각 도 연변 읍 에도 같은 예가 있다. 너희들이 호소한 바에 의하여 받는 세의 수효와 거행하는 조건을 일 일이 다음(뒤) 에 기록하여 4조 절목( 節 目 )으로 한다. 하나, 작청 12) 에 비치하여 둘 것. 하나, 휘라포에 내어 줄 것. 하나, 직고동에 내어 줄 것. 하나, 구산동에 내어 줄 것. 이렇게 하였으니 이로써 영구토록 좇아 행하여 혹시라도 어긋남이 없도록 하는 것이 마 땅할 것이다. 계미년 10월 일 (수결서명) 다음 11) 신미년 완문 을 이름. 12) 서리들의 집무처를 공식적으로 인리청( 人 吏 廳 ), 이청( 吏 廳 )이라 하였고 일반적으로는 작청( 作 廳 ), 성청( 星 廳 )이라고 하였다. 서리들은 이곳을 연방이나 연조라고 존칭하였는데 속어로는 길청, 질청이라고 하였다.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39

40 하나, 상선의 세를 받을 때 일정한 규정이 없지 않으니 소금은 한 섬 머리 5푼으로 하고 명태는 한 뭇에 1전으로 한다. 하나, 이미 상선에 세를 받았으면 마땅히 선주( 船 主 )도 또한 세가 없을 수 없다. 미역채 취선의 선주는 2냥으로 하고 소금 선주는 5전으로 하고 작은 고기잡이 선주는 5전으로 한다. 하나, 이제 절목이 이미 작성되었으니 그 받아들이는 절차는 어떤 진을 막론하고 상선과 같은 식으로 하고, 와서 정박하고 가는 민선( 民 船 ) 등은 동임과 선주의 안목( 眼 目 )으로 하고 어떤 상선이 와서 정박하였음을 관가에 와서 보고한다. 하나, 세를 받는 절차는 이미 정식( 定 式 )으로 되었으므로 받아들일 즈음에 서로 혜택을 보려고 하여 바르게 시행되는 것을 보장하기 어려우니 반드시 검열하는 감영의 관리가 없 어서는 안 된다. 감영의 관리는 구산동으로부터의 상계는 그 동민 중에 뛰어나고 부지런한 한 사람을 차출하여 관청에 보고하여 세 받는 책임자로 하고 세를 받을 즈음에는 각 해당 동임과 선주인의 안목대로 거행한다. 하나, 상선이 이르러 정박한 뒤에 이미 있는 해당 진의 동임이 보고하면 관청으로부터 곧 세를 받는 지침을 보내어 감영의 관리로 하여금 거행하고 바치는 돈은 그 다소를 계산 하여 보고하고 당해 관리는 구산동의 연간 돈을 모아 증식케 한다. 하나, 이제 세를 받을 돈을 미리 구산동에 부치어 연간 모아 증식케 함은 곧 삼척진영과 월송진이 물론 3년마다 수토가려고 바람을 기다릴 때에 쓰는 비용은 구산동에서 전담하게 하여 일절 각 동에 전과 같은 분쟁의 폐단이 없게 함이다. 하나, 어떤 진( 津 )을 막론하고 상선이 와서 정박한 후에 만일 숨겨서 보고를 하지 아니한 폐단이 있으면, 이는 가히 염탐하여 밝힐 것인 즉, 당해 존위 동임 및 선주 등은 마땅히 죽도록 엄하게 다스리게 될 것이다. 하나, 상급 도( 道 )의 수토관 지출비용은 이미 관에서 공급을 한 즉, 거론할 필요가 없으 나 상관을 모시고 온 부하와 말의 먹이에 대한 것은 관청으로부터 나와 일하는 아전 한 사 람과 구산동임이 안목에 맞도록 거행할 것이되 소요비용은 신미절목( 辛 未 節 目 ) 13) 대로 해야 하고 절대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 13) 이로 보아 신미년 완문 을 발행한 후 같은 해에 수토사 일행을 접대할 때 들어가는 물품의 종류와 수효 등을 규정하는 절목 도 만들었던 것으로 보임. 4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41 하나, 염선이 와서 정박할 때에는 한 섬 머리 5푼 식으로 이미 절목으로 성립되어 있으 니 참작하여 정한대로 거두어 구산동으로 부치어 수토비용에 보태어 쓰게 하면 염선에서 거둔 세로 가위 재원이 늘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처음 시작하여 영원히 개선되게 한다. 하나, 9동의 큰 병폐를 모두 구산동에서 처리하도록 교정한 것인즉, 돈은 비록 세를 받 을 곳이 있다 하더라도 또한 수고를 하는 사람에게 수고비를 주는 법이 없지 않으니 민가 호구의 부역을 감해 주게 한다. 하나, 월송만호가 수토 시 거행하는 절목 및 기타 조건은 이미 신미절목 에 모두 정하였 으니 지금 거듭 말할 필요 없이 그대로 한다. 하나, 미진한 조건은 추후에 참작 조치한다. 제 2 장 조선시대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 탐방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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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제3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Ⅰ. 행사내용 Ⅱ. 19세기 울릉도 검찰과 재개척 일지 Ⅲ. 울릉도 검찰일기 논고 Ⅳ. 인터뷰와 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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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Ⅰ. 행사내용 행사명: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의 발자취를 찾아서 주제: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의 행적 답사를 통해 울릉도 독도의 역사 지리 이해 1882년 이규원의 울릉도 검찰은 울릉도 재개척과 일본의 울릉도, 독도 칩입에 대한 불법, 부당성을 확인하는 역사적 근거가 되고 있음 일시 장소 10월 26일 29일(울릉도 우산문화제 기간 3박 4일) 울릉도 및 독도 일원 참가자:독도관련 시민사회단체 대표 및 활동가 등(31명) 초청강연 독도운동과 시민문화운동 이종상(서울대 명예교수) 한국의 역사연구와 울릉도 검찰일기 양태진(동아시아영토문제연구소장) 시민단체 활동가 포럼 논의주제:독도 관련 시민단체의 교류협력방안 내용: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참여하여 단체의 현황 및 활동을 소개하고 독도 관련 교 류협력방안에 대해 논의 세부일정 1일차 10월 26일(목) - 독도박물관 견학, 독도진경전 관람, 독도전망대 강연 - 26일 0시 30분 덕수궁 대한문앞 출발 시 간 내 용 장 소 비고 00:30 포항행 버스탑승 완료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 00:30 06:30 서울 포항 (버스로 이동) 버스 06:30 08:00 조식 08:00 10:00 휴식 및 승선 준비 (09:40 승선완료) 포항 여객선 터미널 (계속)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45

46 시 간 내 용 장 소 비고 10:00 13:00 포항 울릉도 (선박 이동) 썬플라워호 13:00 14:00 울릉도 입도. 숙소 배정 14:00 15:00 중식 15:00 16:30 독도박물관 견학, 독도진경전 관람 독도박물관 16:30 17:00 독도전망대 관람 독도전망대 17:00 18:30 초청강연 1. 독도운동과 시민문화운동 -이종상(서울대 명예교수) 2. 이규원 검찰사의 울릉도 검찰의 역사적 의의 -양태진(동아시아영토문제연구소장) 독도 스카이라운지 18:30 20:00 석식(소개 등) 독도 스카이라운지 20:00 입실, 취침(자유시간) 2일차:10월 27일(금)-이규원의 발자취를 찾아서(울릉도 육상답사) 시 간 내 용 장 소 비고 06:00 07:00 07:00 08:00 기상 조식 08:00 09:00 육상일주 시작 도동 학포 (차량 이동) 울릉관광개발 09:00 10:30 10:30 12:00 학포 태하 (도보 이동) 태하 나리동 (차량 이동) 12:00 13:00 중식 나리동 13:00 18:00 18:00 19:00 19:00 20:00 20:00 22:00 나리동 성인봉 저동 (도보 이동) 도동 (차량이동) 휴식 석식 각 팀별 분임토의 22:00 입실 및 취침 4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47 3일차:10월 28일(토)-우산문화제 참여, 독도 답사, 시민활동가 포럼 시 간 내 용 장 소 비 고 06:00 07:00 기상 (도동 해변 산책) 여객선 터미널 뒷길 07:00 08:00 조식 08:00 13:00 독도답사 독도 씨플라워호 13:00 14:00 중식 14:00 18:00 시민활동가 포럼 향군회관 회의실 교류협력 방안 논의 18:00 19:00 석식 19:00 21:00 우산문화제 참여 도동, 저동 21:00 입실, 취침 4일차:10월 29일(일)-이규원의 발자취를 찾아서(울릉도 해상답사) 시 간 내 용 장 소 비 고 07:00 08:00 기상 (도동 약수공원 산책) 독도박물관 위 08:00 10:00 조식 10:00 울릉 출발 (현지사정에 따라 묵호행) 참가자 명단 순번 소 속 직 위 성 명 1 대한민국 독도향우회 부회장 주경호 2 문화국장 구주회 3 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 대표 이종상 4 독도사랑협의회 회원 김준연 5 회원 류호정 6 독도수호국제연대 기획팀장 박창우 7 독도수호대 대표 김점구 8 운영위원 황병관 9 독도수호전국연대 대표의장 최재익 10 자문위원 김봉식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47

48 순번 소 속 직 위 성 명 11 독도어울림 사무국장 김성호 12 회원 민진규 13 독도의병대 부대장 오윤길 14 총무 윤미경 15 독도향우회 사무총장 김해일 16 회원 송재욱 17 발명계독도개발지원운동본부 본부장 한송본 18 회원 김광식 19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 20 자연보호중앙연맹(독도를 사랑하는 모임) 부총재 백남진 21 재경독도향우회 회장 조대용 22 자문위원 김관일 23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 회장 이예균 24 사무처장 김장복 25 한국시인협회 독도지회 지회장 편부경 26 동아시아영토연구소 소장 양태진 27 울릉문화원 국장 김성권 28 운영위원 조영삼 29 진행요원 정장호 30 동북아역사재단 부연구위원 홍성근 31 경 정 정봉훈 4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49 Ⅱ. 19세기 말 울릉도 검찰과 재개척 일지 1) 1. 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의 검찰일지(요약) 일 시 내 용 비 고 1881년 5월 22일 1882년 4월 7일 4월 10일 4월 29일 4월 30일 5월 1일 5월 2일 5월 3일 5월 4일 부호군( 副 護 軍 ) 이규원을 울릉도 검찰사에 임명 고종 임금을 알현하고 구체적인 울릉도 검찰의 명을 받음 서울 흥인문(동대문) 밖을 출발하여 육로로 원주, 평해를 경유, 구산포에 4월 27일 도착하여 순풍을 기다림 일행 1백여 명이 세척의 배로 출항 일행은 검찰사 이규원, 중추도사 심의완, 군관 출신 서상학, 전 수문장 고종팔, 화원 유연호, 기타 선원 82명, 포수 20명 등 대규모 조사단 저녁 무렵, 울릉도 서안 소황토구미(학포)에 도착 포구에서 전라도 흥양 삼도 사람 김재근이 23명을 데리고 배 를 만들고, 미역 등을 채취하면서 살고 있는 것을 확인 풍랑이 심해 위기를 맞음. 산신당에 기도 산을 넘어 대황토구미(태하)에 도착. 고분 확인 포구에 평해 출신 최성서가 인솔한 인부 13명이 움막을 짓고 살고 있었음. 경주사람 7명은 약초를 캐고 연일사람 2명은 움 막을 짓고 사는 것을 확인 흑작지(현포)에 도착하여 작은 배를 타고 창우암(노인봉), 추 봉(송곳산)을 바라보며 천년포를 거쳐 왜선창(천부)에 도착 왜선창에서 전라도 낙안 사람 이경칠이 인솔한 20명과 초도 사람 김근서가 인솔한 19명이 각기 움막을 짓고 배를 만들고 있었음 오대령을 넘고, 다시 홍문가(홍문동)라는 고개를 넘어 나리동 도착. 날이 저물어 파주 출신 약재상 정이호의 초막에서 유숙 울릉도 최고봉인 성인봉 등정. 사방이 망망대해 철저한 조사를 위해 다음해로 출항 연기 이날 30리 가량의 산길을 걸음 (계속) 1) 이 글에서 고종실록 부분은 바른역사기획단( ), 독도자료집 1, 쪽 의 국역본을, 이규원 검 찰일기 계본초 부분은 신용하 편저( ), 독도연구총서7:독도영유권 자료의 탐구 3권, 독도연 구보전협회, 21 46쪽 의 번역본을 인용, 날짜별로 재정리하였다. [ 의 울릉도 지명 등 설명을 덧붙인 것이다(정리 설명:홍성근). ]안의 내용은 이해를 돕기 위해 오늘날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49

50 5월 4일 5월 5일 5월 6일 5월 7일 5월 8일 5월 9일 5월 10일 5월 11일 5월 12일 6월 4일, 5일 동쪽으로 십여리 내려가서 함양 출신 약초상 전석규의 주거처를 지 나, 산등을 따라 내려가다가 저포(저동)에 도착, 나무숲에서 노숙 도방청포(도동)에 정박 중인 일본선박 발견. 울릉도 나무를 도벌 중인 왜인들과 직접 필담 나눔 너희들이 어찌 이곳에서 벌목을 하고 있단 말인가? 우리는 이곳이 타국 땅이라는 말은 들은 바 없고 일본 땅으로 알고 있다. 이미 이곳이 일본의 송도( 松 島 )라 표시되어 있다. 전라도 흥양 삼도 사람 이경화가 움막을 치고 살면서 인부 13명 과 미역을 따고 있었음 배를 타고 장작지(사동) 포구에 도착하여 흥해 초도 사람 김내언 이 인부 12명과 배를 만들고 있었음 장작지 포구에서 유숙 장작지에서 통구미로 향하는 도중 해변 바위 사위에 표목 발견(길 이 6척, 넓이 1척). 전라도 흥양 초도 사람 김내윤이 22명의 인부 와 배를 만들고 있는 것을 확인 산길이 깊고 어두워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곡포(남양)에서 노숙 위험한 바윗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 소황토구미에 도착 석공을 시켜 섬이름을 새기게 함 배를 타고 서쪽 해안을 따라 순찰. 향목구미, 대황토구미(태하), 대풍구미(대풍령), 흑작지(현포), 왜선창(천부), 선판구미를 지나 해안을 돌아봄. 2개의 작은 섬을 발견했는데, 하나는 죽도(대섬) 라 하고, 다른 하나는 도항(관음도)이라 함. 해가 저물어 육지에 내려 유숙 9일에 이어 배를 타고 도방청(도동), 장작지(사동), 통구미, 흑포, 사 태구미, 산막동 등의 포구를 돌아 보고 소황토구미(학포)에서 유숙 아침에 세 척 배를 타고 육지로 출항 저녁에 울진 쪽으로 향했으나 파도가 크게 일어 노를 저어 근근이 저녁에 구산포에 도착 이규원이 고종임금을 알현하고 복명함 고종 임금은 일본의 울릉도 불법 잠입 등에 항의하도록 하고 울 릉도 재개척에 큰 열의를 보임 이 때 울릉도에 서 벌목에 종사 한 일본인은 모 두 78명에 달한 다고 함 大 日 本 國 松 島 槻 谷 明 治 2년 2월 13일 암기충조 ( 岩 崎 忠 照 ) 세움 육상일주:소황토구미(학포) - 대황토구미(태하) - 흑작지(현포) - [창우암(노인봉), 추봉(송곳산)] - 왜선창(천 부) - 홍문가(홍문동) - 나리동 - 성인봉 - 저포(저동) - 도방청(도동) - 장작지(사동) - 통구미 - 곡포(남양) - 소황토구미(학포) 해상일주:소황토구미(학포) - 향목구미 - 대황토구미(태하) - 대풍구미(대풍령) - 흑작지(현포) - 왜선창(천 부) - 선판구미(선창) -도항(관음도) -죽도(대섬) -저포(저동) -도방청(도동) - 장작지(사동) - 통구미 - 사태구미 - 산막동(산막) - 소황토구미(학포) 5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51 2. 울릉도 검찰과 재개척 일지 1) 울릉도 검찰사를 임명하다 <1881년 5월 22일> 부호군 이규원을 울릉도 검찰사로 임명하다 통리기무아문( 統 理 機 務 衙 門 )에서 제의하였다. 지금 강원감사( 江 原 監 司 ) 임한수( 林 翰 洙 )의 장계( 狀 啓 )를 보니, 울릉도수토관( 鬱 陵 島 搜 討 官 )의 보고를 하나하나 들면서 말하기를, 순찰할 때에 어떤 사람이 나무를 찍어 해안에 쌓 고 있었는데 머리를 깎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 7명이 그 곁에 앉아있기에 글을 써서 물어 보니 일본 사람이 나무를 찍어 원산( 元 山 )과 부산( 釜 山 )으로 보내려고 한다고 대답하였답니 다. 일본 선박의 왕래가 근래 대중없어서 이 섬에 눈독을 들이고 있으니 폐단이 없을 수 없습니다. 청컨대 통리기무아문( 統 理 機 務 衙 門 )으로 하여금 품처( 稟 處 )토록 하기 바랍니다 라 고 하였습니다. 나라에서 채벌을 금하는 산은 원래 중요한 곳이고 조사하여 지키는 것도 역시 정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이 남몰래 나무를 찍어서 가만히 실어가는 것은 변금( 邊 禁 )에 관계되므로 엄격하게 막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차 이 사실을 문건으로 작성 하여 동래부( 東 萊 府 ) 왜관( 倭 館 )에 내려 보내서 일본 외무성( 外 務 省 )에 전달하게 할 것입니 다. 생각하건대 이 섬은 망망한 바다 가운데 있는데 그대로 텅 비워두는 것은 대단히 허술 한 일입니다. 그 형세가 요충지로 될만한가 방어를 빈틈없이 하고 있는가를 두루 살펴서 처리하여야 할 것입니다. 부호군( 副 護 軍 ) 이규원( 李 奎 遠 )을 울릉도 검찰사( 鬱 陵 島 檢 察 使 )로 임명하여 가까운 시일에 빨리 가서 철저히 타산해보고 의견을 갖추어서 보고하여 이로써 문의해서 처리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모두 승인하였다. (고종실록 권18, 고종18년 5월 22일조) 2) 임금께서 울릉도 조사사항을 지시하다 <1882년 4월 7일> 임금께서 검찰사 이규원을 불러 만나다 임금께서 검찰사( 檢 察 使 ) 이규원( 李 奎 遠 )을 불러 만나, 하직인사를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울릉도( 鬱 陵 島 )에는 근래에 와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무상( 無 常 )으 로 왕래하면서 제멋대로 편리를 도모하는 폐단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송죽도( 松 竹 島 )와 우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51

52 산도( 芋 山 島 )는 울릉도의 곁에 있는데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또 무슨 물 건이 나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이번에 네가 가게 된 것은 특별히 골라서 임명한 것이니 각별히 검찰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고을( 邑 )을 세울 생각이니 반드시 지도와 함께 별지 에다가 자세히 적어 보고할 것이다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우산도( 芋 山 島 )는 바로 울릉도( 鬱 陵 島 )이며 우산( 芋 山 )이란 바로 옛날 의 나라 수도의 이름입니다. 송죽도( 松 竹 島 )는 하나의 작은 섬인데 울릉도( 鬱 陵 島 )와 떨어진 거리는 20 30리쯤 됩니다. 여기서 나는 물건은 단향( 檀 香 )과 담뱃설대라고 합니다 라고 하 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우산도( 芋 山 島 )라고도 하고 송죽도( 松 竹 島 )라고도 하는데다 동국 여지승람( 東 國 輿 地 勝 覽 ) 에 실려 있다. 그리고 또 혹은 송도( 松 島 ) 죽도( 竹 島 )라고도 하는 데 우산도( 芋 山 島 )와 함께 이 세 섬을 통칭 울릉도( 鬱 陵 島 )라고 하였다. 그 형세에 대하여 함께 알아볼 것이다. 울릉도는 본래 삼척영장( 三 陟 營 將 )과 월송만호( 越 松 萬 戶 )가 돌려가면서 수색 검열하던 곳인데 거의 다 소홀히 대함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저 외부만 살펴보고 돌 아왔기 때문에 이런 폐단을 가져왔다. 너는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하였다. 이규원이 아뢰기를, 삼가 깊이 들어가서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송도( 松 島 )와 죽도( 竹 島 )는 울릉도의 동쪽에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송죽도( 松 竹 島 ) 밖에 따로 송도와 죽도 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혹시 그전에 가서 수색조사한 사람의 말을 들은 것이 있는가? 라고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그전에 가서 수색조사한 사람은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대 체적인 내용을 얻어 들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고종실록 권19, 고종 19년 4월 7일조) 3) 울릉도 검찰 후 이규원 검찰사가 임금께 올린 보고서 2) <1882년 4월 7일> 출발전 임금께 하직인사하다 신( 臣 )은 을사년(1881) 5월 23일 외람되게도 울릉도 검찰사의 직책에 임명되어 임오년 (1882) 4월 7일에 전하께 하직하면서, 엎드려 전하의 정중하신 하교를 받들 때 황송하고 2) 이규원 울릉도 검찰 계본초( 李 奎 遠 鬱 陵 島 檢 察 啓 本 草 ). 5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53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4월 10일> 서울을 떠나 울릉도로 향하다 교외로 물러나 행장을 수습하고 10일에 길을 떠나 12일에 원주목( 原 州 牧 )에 이르러 하루 를 머물고 20일에 평해군( 平 海 郡 )에 도착하여 6일을 묵으면서 바다를 건너갈 선박과 땔나 무, 물, 양식, 찬 등을 준비하도록 하였습니다. 27일 평해읍에서 10리쯤 거리에 있는 구산 포( 邱 山 浦 )에 가서 순풍을 기다렸습니다. <4월 29일> 검찰사 일행 102명이 울릉도로 떠나다 29일에 비로소 순풍을 만나 중추도사( 中 樞 都 事 ) 심의완( 沈 宜 琬 ), 군관( 軍 官 )출신 서상학( 徐 相 鶴 ), 전( 前 )수문장( 守 門 將 ) 고종팔( 高 宗 八 ), 차비대령( 差 備 待 令 ) 화원( 畵 員 ) 유연호( 劉 淵 祜 ) 및 관속 사공 등 82명, 포수( 砲 手 ) 20명과 더불어 세 배에 나누어 타고 당일 진시( 辰 時 :오전 8시)쯤 배를 출발시켰습니다. 배가 바다 중간에 이르자 풍세( 風 勢 )가 불리하여 파도가 용솟음치는데 사방을 둘러보아 도 한 점의 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배는 아래위로 까불리면서 큰 바다 가운데에서 떠다 니며 지향할 바를 몰랐습니다. 다행히도 저녁때가 되어 다시 곤신( 坤 辛 :남서) 방향의 바람 을 얻어 밤새도록 배를 달렸습니다. <4월 30일> 울릉도 소황토구미에 도착하다 30일 유시( 酉 時 :오후 6시)쯤 울릉도의 서쪽에 도착하여 정박하였는데 지명은 소황토구미 [ 小 黃 土 邱 尾, 학포]였습니다. 갯가에 막을 치고 사는 사람이 있어서 자세히 탐문한 즉 이때 전라도 흥양( 興 陽 ) 삼도( 三 島 )에 사는 김재근( 金 載 謹 )이 인부 23명을 데리고 배도 만들고 미 역도 딴다고 하였습니다. 육지에 내려 선막( 船 幕 )에 유숙하였습니다. <5월 1일> 풍랑이 크게 일다 5월 1일. 풍랑이 크게 일어 3척의 선박을 매어 둔 닻줄이 거의 끊어질 뻔하여 선원들이 당황해 구조하면서 상선( 商 船 )의 닻과 밧줄을 빌려 사방으로 매어서 다행히 위급함을 면하 고 산신당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53

54 <5월 2일> 대황토구미에서 약초 캐는 사람들을 만나다 2일, 드디어 산에 올라 고개를 넘어서 대황토구미[ 大 黃 土 邱 尾, 태하동]에 이르렀습니다. 길 곁에 넓은 돌로 뚜껑을 하고 사방에 작은 돌로 받친 것이 많았으니 이것은 옛 사람들의 석 장( 石 葬 )이라 하였습니다. 시내의 흐름을 따라 포구에 이르니, 평해( 平 海 )의 상선( 商 船 )인 최 성서( 崔 聖 瑞 )가 인부 13명을 데리고 막을 치고 살고 있었고, 경주( 慶 州 ) 사람 7명이 막을 치 고 약초를 캐고 있었으며, 연일( 延 日 ) 사람 2명이 막을 치고 대나무를 베고 있었습니다. 이날 보행한 산길이 거의 30리에 가까웠는데 산봉우리들은 하늘을 찌르고 수목들은 해 를 가리며 풀에 싸인 길은 실낱 같았습니다. 바다의 해가 저물게 되자 나쁜 기운을 품은 산바람이 옷을 적셔 초막에서 유숙하였습니다. <5월 3일> 끝없이 평탄한 나리동에 이르다 3일에는 산신당에 제사를 지낸 후 고개를 넘고 숲을 뚫으면서 흑작지[ 黑 斫 支, 현포]에 도 착하니 여러 가지 돌무덤들이 있었고, 십리나 되는 평원은 백성을 거주시킬 수 있는 토지 였습니다. 갯가에 내려 작은 배를 타고 노를 저어 전진하니까 창우암[ 倡 優 岩, 노인봉]이 있는데 높이 가 수천 척이요 형상이 기괴하였으며 꼭대기에는 위아래로 크고 작은 구멍이 있고, 그 곁 에는 또 나란히 선 촉대암[촛대암]이 있어 높이가 수천 길이나 되었습니다. 또 살만한 터가 있으니, 삼척( 三 陟 )에 거주하던 정씨( 鄭 氏 ) 성을 가진 사람이 임진란 때 피난했던 곳으로서 8형제가 동방( 同 榜 )으로 진사급제( 進 土 及 第 )한 곳이라 하였으며 지명은 천년포[ 千 年 浦, 평리 지역]였습니다. 산봉우리 하나가 하늘 높이 솟아있으니 높이가 수천 길이요 형상이 송곳과 같아 추봉[ 錐 峯, 송곳산]이라 불려지고, 그 아래 큰 바위 하나가 있어 그 가운데 큰 구멍이 뚫려 모양이 성문 같았습니다. 아래로 작은 시내가 흘러내리는데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아 나리동( 羅 里 洞 )에 지하로 흐르는 물이 뿜어 나오는 곳이라 하였습니다. 천년포를 거쳐 왜선창[ 倭 船 艙, 천부]에 도착하니 전라도 낙안( 樂 安 )의 주민으로 선상( 船 商 ) 인 이경칠( 李 敬 七 )이 인부 20명을 데리고, 그리고 흥해( 興 海 ) 초도( 草 島 )의 주민 김근서( 金 勤 瑞 )는 인부 19명을 데리고 각기 막을 치고 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차차로 전진하여 점점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면서 다섯 개의 큰 고개를 넘었는데 고갯길이 너무나 험준하여 오를 5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55 때는 이마에 닿고 내려올 때는 머리에 닿았으며 제일 아래에 하나의 고개가 있으니 이름을 홍문가[ 紅 門 街, 홍문동]라 하였습니다. 이 고개를 넘어 들어가니까 곧 이 섬의 중심인 나리동( 羅 里 洞 )이었는데, 오방( 午 方 :남쪽) 을 향하여 형국이 열려 있고 수목이 하늘에 높이 솟았고 바라보니 끝이 없이 평탄한 지형 이었으니 길이는 10리가 넘고 너비는 8, 9리나 되었습니다. 여러 산봉우리로 둘러싸여 첩 첩이 서 있는 봉우리는 엄연히 성곽을 이루었으니, 한 병졸이 관문을 지키면 일만 군사로 도 열 수 없는 땅 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홍문가의 길은 거의 자오( 子 午 :남북)방향으로 뻗은 골짜기로서 서쪽으로 갈 수록 약간 낮지만 그러나 산기슭이 서로 교차되어 전혀 물이 새어나갈 길이 없었습니다. 큰 못이 국 내( 局 內 )의 건방( 乾 方 :북서)에 있는데, 길이가 70여 보( 步 )이고 너비는 50보( 步 )에 지나지 않으나 못 가운데 고인 물이 없고 다만 풀만 나 있을 뿐이었습니다. 또 곤신( 坤 辛 :남서) 방향으로 작은 못이 있는데 길이와 너비가 각각 2 30보에 지나지 않고 지형이 움푹 패였 으나 역시 고인 물은 없었습니다. 해가 저물어 파주 사는 약초 상인 정이호( 鄭 二 祜 )의 초막 에서 유숙하였습니다. <5월 4일> 울릉도의 최고봉, 성인봉에 오르다 4일에는 산신당에 기도를 올린 후 등나무, 칡덩쿨을 부여잡고 동쪽 최고봉에 올랐는데 성인봉( 聖 人 峰 )이라고 하였습니다. 서쪽을 바라보니 바다와 산이 아득할 뿐이요 다른 한 점 의 섬도 없고 다만 열넷의 봉우리들이 우뚝하게 줄지어 서서 나리동 한 동네를 둘러싸고 있는 것만이 보이니 과연 하늘이 감추어 둔 별천지였습니다. 동쪽으로 10여리를 내려가니 초막 하나가 있는데 함양 주민으로 약초를 캐고 있는 전석규( 全 錫 奎 )가 살고 있는 곳이었습 니다. 그는 10년 동안 섬에 들어와 있으므로 섬의 형편에 익숙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살 만한 곳과 여러 가지 토산물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없어 더불어 이야기를 나눌만 하였습 니다. 산등성이 작은 길을 따라 점점 내려오니 돌길이 중단되고 낭떠러지는 하늘에 걸려 실로 발을 디딜 곳이 없어 엎드려 서로 이끌면서 여러 가지 줄을 잡고 오르내리면서 저포[ 浦, 저동] 에 도착하였습니다. 동쪽으로 땅이 열려 터를 잡을 만하고 모시풀( 苧 草 )이 무성하여 자연적 으로 수십일 갈이의 밭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해가 저물어 숲 사이에서 노숙을 하였습니다.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55

56 <5월 5일> 도동에서 일본인을 만나 필담을 나누다 5일에 하나의 큰 고개를 넘어 도방청[ 道 方 廳, 도동] 포구에 도착하니 모양이 이상한 작은 배 한 척이 포구에 정박하고 있으므로 먼저 선체를 살펴보니 길이는 7척( 尺 )이고, 너비는 3척( 尺 )인데 다만 하나의 돛대만 세워놓고 배 안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해안가에 왜인들 의 판막( 板 幕 )이 있었으므로 먼저 사람을 시켜 통고한 후에 막으로 들어가니 왜인 6 7명 이 문을 나서 영접하였습니다. 그런데 동래 통역관을 미처 평해군에 대령시키지 못해 당초 에 데리고 오지 못했으므로 언어가 통하지 않아 글을 써서 물었습니다. 지금 너희들을 보니 일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어느 달 어느 날에 이 섬에 들어왔으며 무슨 일을 하며 막을 치고 살고 있느냐? 하니 그들이 말하기를, 일본제국 동해도( 東 海 道 ) 혹은 남해도( 南 海 道 ) 혹은 산양도( 山 陽 道 ) 사람으로서 2년 전부터 처음으로 벌목 공역을 시 작하여 금년 4월에 다시 여기에 와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여 묻기를, 만약 2년 전부터 여기 와서 벌목을 했다면, 어디에 사용하고 있으며, 일찍이 너희 조정 에서 금지하고 있는 명령을 듣지 못하였는가?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고용주( 役 事 者 )가 알 고 있을 것이나 우리는 어디에 사용하는지 모르며 또 일찍이 우리 조정에서 금지하는 법령 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여 묻기를, 작년에 수토관( 搜 討 官 )이 이 섬에 들어왔을 적에 너희 나라 사람들이 벌목하고 있다는 실정을 들은 후에 그 사유를 우리 조정에 보고하고 우리 조정에서는 곧 서계를 만들어 너 희 나라 외무성에 보냈는데 어찌 듣지 못했고 알지 못한다고 할 수 있느냐?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귀국의 자세한 일은 저희들이 일찍이 듣지 못하였으니, 남포 규곡( 南 浦 摫 谷 )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있으니 사람을 시켜 불러 보십시오 하여 묻기를, 너희 일행에 관작( 官 爵 )을 가진 사람이 있느냐?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저희는 모두 관 작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여 묻기를, 그렇다면 너희는 남의 지시에 의한 것이냐?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모두 스스로 벌목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여 묻기를, 남포에 있는 사람이 온 후에라야 비로소 문답할 수 있겠느냐?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저희는 사정을 모르니 남포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 온 후에 문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 므로 오랫동안 앉아 기다렸으나 끝내 오지 않아 사람을 시켜 가보게 하였더니 저들의 이른 바 남포는 곧 남쪽에 있는 장작지[ 長 斫 地, 사동] 포구였습니다. 5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57 도방청에서 장작지 포구에 이르기까지 두 곳에 막을 치고 살고 있는 왜인들이 몇 사람 인지도 모르겠는데 바야흐로 사방에 흩어져 벌목하고 있었으므로 형편이 곧 불러오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묻기를, 나는 왕명을 받들고 이 섬을 검찰하고 있다. 지난달 그믐날 이 섬에 들어와 산이나 물 을 두루 다니며 돌아보다가 오늘 너희를 만나 이와 같이 문답하였고 장차 이 사정을 서류 를 만들어 우리 조정에 보고할 것이니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이 좋겠다 하니 그들이 말하기 를, 저희들은 삼가 그렇게 알겠습니다 하여 묻기를, 강토에는 저절로 정해진 경계가 있는데 너희가 다른 나라에 와서 마음대로 벌목을 하고 있는 것은 무슨 도리냐?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저희는 다른 나라 강토가 되는 것을 듣지 못했지만 그러나 이 고용주( 役 事 者 )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본국에 있으니 다른 나라 의 땅인지를 거론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이미 남포 규곡( 南 浦 摫 谷 )에 표목( 標 木 )이 있으니 곧 우리 일본제국의 송도( 松 島 )인 줄을 알 것입니다 하므로 다시 묻기를, 표목이 있다는 것은 지금 와서 처음 듣는 일인데 어찌 다른 나라 땅에 표목을 세우는 도리가 있느냐?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저들은 금년에 처음 여기에 왔으므로 귀하께서 묻 는 일에 대하여 알지 못합니다 하므로 묻기를, 너희가 처음 와서 모른다고 하면서 송도라고 칭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일본제국 지도와 여지전도( 輿 地 全 圖 )에서 모두 송도라고 칭하고 있는 것으로 알 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고용주( 役 事 者 )가 지금 본국에 있지만 그는 모두 알고 있습 니다 하므로 묻기를, 이 섬의 이름은 울릉도로서 고려는 신라에서 받았고, 우리 왕조는 고려에서 받았으므로 이는 몇 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오는 강토인데, 너희들이 너희 나라 송도라고 칭하는 것은 어떤 근거가 있느냐? 더구나 몇 백 년 이래로 우리 조정에서는 관리를 파견하여 1년 간격 으로 수토( 搜 討 )하고 있는데 너희가 우리 나라 금령을 모르고 함부로 벌목하고 있느냐? 하 니 저들이 대답하기를, 고용주( 役 事 者 )가 알고 있지, 섬에 대한 일은 저희들은 모릅니다 하 여 묻기를, 만약 과연 법의 금지를 모르고 이 범행을 하였다면 이는 용서할 길이 있으나 알면서도 고의로 범행을 하였다면 죄를 논단하여 형벌을 시행하는 일을 단연코 그만둘 수 없으니, 일을 철수하여 빨리 돌아가는 것이 옳다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저희는 삼가 그렇게 하겠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57

58 습니다 하여 묻기를, 벌목은 해서 어디에다 사용하며 돌아가는 기일은 언제쯤이겠는가? 하니 저들이 말하기 를, 어느 곳에 사용할 목재인지 저희는 모르며 돌아갈 기일은 금년 8월에 배가 온 후의 일입니다 하므로 묻기를, 너희들의 성명과 주소를 알고자 한다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일본제국 남해도 예주( 豫 州 ) 송산읍( 松 山 邑 )에 사는 내전상장( 內 田 尙 長 )으로 나이는 29세, 산양도( 山 陽 道 ) 장주( 長 州 ) 선화읍( 善 和 邑 )에 사는 야촌선일( 野 村 善 一 )로 나이는 50세, 방주( 防 州 ) 궁시읍( 宮 市 邑 )에 사는 길기묘길( 吉 崎 卯 吉 )로 나이는 40세, 동해도( 東 海 道 ) 총주( 總 州 ) 팔전읍( 八 田 邑 )에 사는 길곡장 차랑( 吉 谷 庄 次 郞 )으로 나이는 26세, 그 밖에 길전대길( 吉 田 大 吉 ), 도해요장( 島 海 要 藏 ), 장사용 랑( 庄 司 勇 郞 ), 송미이이조( 松 尾 而 已 助 ) 모두 4명은 나이도 모르고 일정한 거주지도 없습니다 하므로 묻기를, 와서 머물고 있는 일꾼은 모두 몇인가?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두 곳에 결막( 結 膜 )의 일꾼을 합하면 78명입니다 하여 묻기를, 동해도, 남해도, 산양도는 여기서 뱃길로 얼마의 거리인가?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동해도는 6천리요, 남해도는 2천 5백리며, 산양도는 1천 5백리입니다(왜국의 10리는 우리 의 100리이다) 하여 묻기를, 표목을 세운 사람은 어느 도의 어떤 사람이며 무슨 근거로 다른 나라 땅에 표목을 세웠 느냐?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2년 전에 여기 와서 처음 보았는데, 명치( 明 治 ) 2년(1869) 2월 13일에 암기충조( 岩 崎 忠 照 )가 세운 것으로서 다만 우리나라 사람인 것만 알지 그 거주지와 어떤 사람인지는 모릅니다 하였습니다. 왜막( 倭 幕 )을 나서서 갯가에 내려오니 전라도 흥양 삼도의 주민 이경화( 李 敬 化 )가 인부 13명을 데리고 막을 치고 미역을 따고 있었습니다. 곧바로 배를 타고 남쪽으로 달리니 해 악( 海 嶽 )의 기괴한 형상은 절경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장작지[사동] 포구에 도착하니 흥양 초도( 草 島 )의 주민 김내언( 金 乃 彦 )이 인부 12명을 데리고 막을 치고 배를 만들고 있었으며, 해가 저물어 여기에서 유숙하였습니다. <5월 6일> 장작지에서 통구미로 가는 길에 송도라고 쓴 일본 표목을 발견하다 6일, 장작지 포구에서 통구미( 桶 邱 尾 )로 향하니, 해변의 돌길 위에 표목을 세웠는데 길이 5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59 는 6척이요 너비는 1척이며 거기에 대일본국 송도 규곡, 명치 2년 2월 13일, 암기충조( 岩 崎 忠 照 ) 세움( 大 日 本 國 松 島 摫 谷, 明 治 2 年 2 月 13 日, 岩 崎 忠 照 建 之 ) 이라고 쓰여 있어 과연 왜인 들의 문답과 같았습니다. 하나의 큰 고개를 넘으니 노목이 하늘을 찌르고 쌓인 낙엽은 무릎이 빠지고 절벽과 음 애( 陰 崖 )의 사이에 실낱같은 작은 길 하나로 통하는데 혹 있기도 하고 혹 없기도 하였으나, 중봉( 中 峰 )에 이르니까 형체도 없이 중단되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몰라 깊은 골짜기 속으로 방황하면서 물어볼 사람도 없고 휴식할 땅도 없어 석벽( 石 壁 )을 더듬으며 고기 엮듯 이 서로 엉기어 나아가다가 3여리쯤 진행하여 겨우 통구미( 桶 邱 尾 ) 포구에 도착하였습니다. 큰 바다는 끝이 없고 기이한 바위는 중첩되어 굽어보고 쳐다보는 모든 경치에 마음이 놀라고 정신이 상쾌해짐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갯가에 흥양 초도의 주민 김내윤( 金 乃 允 ) 이 인부 22명을 데리고 막을 치고 배를 만들고 있었는데, 기운이 다하고 다리가 저려 전진 할 수 없어 그대로 유숙하였습니다. <5월 7일> 곡포의 산길을 헤매다 노숙하다 7일, 서쪽으로 향하여 세 고개를 넘고 세 냇물을 건너서 점점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니 지명은 곡포[ 谷 浦, 남양]였으며 산길이 기구하고 햇빛이 서쪽으로 빠지고 전진할 수 없어 암 혈 사이에서 노숙하였습니다. <5월 8일> 출발지 소황토구미로 돌아오다 8일, 바위 사이의 작은 길을 따라 가니, 고개를 넘고 개울을 건너는데, 위험하지 않는 곳 이 없었고 30리를 가서 소황토구미[학포]에 도착하니 곧 당초에 배를 정박한 곳이었습니다. 석수를 시켜 섬 이름을 석벽 위에 새기게 하고 날이 이미 저물어 초막에서 유숙하였습니다. <5월 9일> 배를 타고 서쪽으로 나아가다 9일, 조그만 배를 타고 서쪽으로 향하여 10여리를 가서 향목구미[ 香 木 邱 尾, 향목]에 이르 니 바다에 임한 가파른 석벽이 형형색색으로 기기묘묘하여 이루 말할 수 가 없었습니다. 차차로 전진하여 대황토구미[태하], 대풍구미[ 待 風 邱 尾, 대풍령], 흑작지[현포], 왜인 선창[ 倭 人 船 艙, 천부] 등을 지났는데, 포구의 산봉( 蒜 峰 )의 형상은 마늘모와 같았고, 큰 바위가 우뚝 서서 하늘을 능멸하는 모양이나 폭포가 층층으로 바다에 떨어지는 모양들은 모두가 절경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59

60 이었으며, 한 뿌리에 두 머리인 바위가 수백 길로 기립하여 있는 모양이 특이하였고, 형제 바위가 서로 돌아보며 나란히 서 있는 것이나 촉대 바위가 둥근 형체로 깎여서 튀어나온 것이나, 하늘의 솜씨가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또 하나의 포구가 있었으니 이름은 선판구미[ 船 板 邱 尾, 선창], 남쪽으로 바다 가운데 두 개의 작은 섬이 있으니 모양이 누워 있는 소와 같으며 좌우로 돌면서 서로 안을 듯한 형태 인데, 하나는 죽도[ 竹 島, 대섬]라 하고 하나는 도항[ 島 項, 관음도(깍새섬)]이라 하는데, 다만 대 나무가 무더기로 있을 뿐이었습니다. 해가 저물어 육지에 내려 대나무가 있는 바위 아래에 막을 치고 유숙하였습니다. <5월 10일> 여러 포구를 지나 소황토구미로 돌아오다 10일, 배를 타고 도방청[도동], 장작지[사동], 통구미, 흑포( 黑 浦 ), 사태구미[ 沙 汰 邱 尾, 사태구 미], 산막동[ 山 幕 洞, 산막] 등의 포구를 지나왔습니다. 바다 해가 서쪽으로 잠기고 풍랑이 갑 자기 일어, 배에서 내려 육지에 올라 소황토구미 선막( 船 幕 )에서 유숙하였습니다. <5월 11일> 선박에 돛을 달고 육지로 향하다 11일, 산신에 기도를 드렸는데, 사공들이 동풍이 점점 일어나니 배를 띄울 수가 있다 고 하여 진시( 辰 時 :오전 8시) 쯤 되어서 3척의 선박에 모두 돛대를 달았습니다. <5월 12일> 없음 <5월 13일> 험한 파도를 헤치고 평해 구산포에 도착하다 13일 해시( 亥 時 :오후 10시)쯤에 바로 울진( 蔚 珍 )으로 향하였는데, 풍랑이 크게 일어 정박 할 수 없어 노를 저어 제어하면서 평해 구산포에 돌아와 정박하고 육지에 내렸습니다. 층 계가 진 바다와 험한 파도 속에서도 이와 같이 잘 건넌 것은 역대 임금님의 혼령이 도우신 바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울릉도의 지세 섬 지형의 험난함과 산세의 일어남과 떨어짐은 그림으로 그려왔고, 토지의 비옥척박과 백성이 살만한 곳 및 섬에서 산출되는 해산물들을 일일이 구별하여 다음에 기록하였습니다. 6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61 섬을 둘러싼 많은 산봉우리들은 구름 속에 솟아 깎아지른 듯이 벽처럼 서 있고 첩첩한 것은 병풍을 둘러친 것과 같았는데, 비록 해안이 있어도 배를 정박해 둘 평온한 항구는 도 무지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득을 따라 몰래 들어가는 사람들도 모두 악착스러운 백성 ( 下 民 )들이었고, 겨우 복어를 잡거나 약초를 캐거나 나무를 배어 배를 만들뿐이었습니다. 새나 짐승도 오래 살 계책을 못하는 까닭으로 대충 막을 치고 사는데, 아직 집을 지어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섬의 중심지인 나리동이라는 곳은 산중에 들판이 열 려 평평한 초원이 기름져 일천(1,000) 가호는 살 수 있으나, 그 나머지는 삼백(300)여 호 ( 戶 )의 땅도 일일이 예를 들기 어렵습니다. 지방 약 5 60리가 될 만한 땅에는 뽕나무, 산뽕나무, 모시풀, 닥나무가 심지 않아도 저 절로 생장하여 족히 한 고을의 땅이 될 만합니다. 지금은 일천 길이나 되는 나무들이 하늘 을 찌르고 해를 가릴 뿐인데, 아름다운 언덕을 오래 내버려 두고 있어 참으로 이러한 효과 를 거두고 있지만 가시나무를 베고 풀을 자르는 것은 몸소 실천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일본인의 행태 왜인들이 한 모퉁이를 점거하여 막을 친 것은 오랜 시일동안 날마다 벌목하여 본국으로 보내 마치 그들의 변방인 듯하고 심지어 표목을 세운 일까지 있었으니, 그때를 맞아 안용 복이라는 자가 없었더라면 그들이 마음대로 행하고 기탄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 臣 )이 꾸짖어 물을 즈음에 그 표정을 보니까 자칫하면 사람을 속이기는 하나 그 말에는 부끄러워함이 많았으니, 이는 반드시 그들이 스스로 범행한 것이지 남의 지시를 따라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른바 표목을 세운 것에 대하여 짐짓 빼어버리지 않은 것 은 사실의 징빙으로 삼을 계책이었는데, 이번 검찰을 하기 전에는 헛소문만이 내려오고 오 히려 자신을 기속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검찰을 한 후에 만약 또 불문에 붙인다면 이는 교활한 왜인이 몰래 벌목하 는 것을 묵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문서를 보내 추궁해도 아마 그만두지 않을 것이 두렵습니다. 우산도 송도( 松 島 ), 죽도( 竹 島 ), 우산도( 于 山 島 ) 등은 우리나라 백성으로 거기 사는 여러 사람들도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61

62 모두 근방의 작은 섬이라고 여기고 있고, 그러나 이미 근거할만한 지도도 없고, 또 향도할 표적도 없고, 청명한 날이면 높은 곳에 올라가 멀리 바라봄에 일천리를 바라볼 수 있지만, 울릉도 외에 다시 한 주먹의 돌이나 한 움큼의 흙(다른 섬)도 없습니다. 우산도를 울릉도 라 칭하는 것은 마치 탐라( 耽 羅 )를 제주도( 濟 州 道 )라고 칭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 臣 )이 울릉도에 도착한 후에 이미 그 높은 산마루까지 걸어 보았고 다시 배를 타고 그 산기슭도 돌아보면서 10일 동안에 발자취가 닿지 않은 곳이 없어 온 섬의 경치가 훤히 눈앞에 있는 듯하오나 다만 문장에 서툴러서 아직도 누락된 것이 많으나 시급히 아뢰어야 할 것에 연유하여 시급히 아룁니다. 울릉도 거주자 각처의 상선( 商 船 )은 봄철에 섬에 들어가서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고 고기나 미역을 잡 고 따서 떠나고 있으며, 약초 상인들은 상선을 따라 들어왔다가 막을 치고 약초를 캐어 역 시 배를 따라 떠납니다. 거주할 만한 지역 나리동 산 위에는 들판이 열려 10리나 평평하게 뻗어 있고 토질이 비옥하여 가령 개간 을 한다면 근 일천 홋수의 백성이 생활을 영위하는 땅이 될 것입니다. 다만 물이나 샘이 땅속으로 흐르기 때문에 저수할 수 없으므로 지금 본 바로는 밭으로 적당하지 논으로는 적 당하지 않습니다. 그밖에 대황토구미[태하동], 흑작지[현포], 천년포[평리 지역], 왜선창[천부], 대저포[큰모시 개:저동], 소저포[작은모시개:저동], 도방청[도동], 장작지[사동], 곡포[남양] 등지는 밭을 해도 좋고 논을 해도 좋은 옥토로서 살만한 곳입니다. 포구는 14곳이 있는데, 소황토구미[학포], 대황토구미[태하동], 대풍소[대풍령], 흑작지포[현포], 천년포[평리 지역], 왜선창[천부], 대암포 [죽암], 저전포[저동], 저포[저동], 도방청[도동], 장작지[사동], 현포[ 玄 浦, 감을계], 곡포[남양], 통 구미 등인데 뿔 같이 생긴 바위가 많고 파도가 거칩니다. 또 산기슭에는 차호( 遮 護 )하고 장 포( 藏 抱 )하는 지형이 없어서 항상 배를 안전하게 정박시키지 못함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토산품 토산품으로서는 자단향( 紫 丹 香 ), 오동나무( 梧 桐 ), 측백나무( 柏 子 ), 동백나무( 冬 栢 ), 황백( 黃 6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63 柏 ), 뽕나무( 桑 木 ), 감나무( 柹 木 ), 후박나무( 厚 朴 ), 홰나무( 槐 木 ), 회목( 檜 木 ), 마가목( 馬 柯 木 ), 노가목( 老 柯 木 ), 박달나무( 朴 達 木 ), 닥나무( 楮 木 ), 모시풀( 苧 草 ), 산삼( 山 蔘 ), 맥문동( 麥 門 冬 ), 황 정( 黃 精 ), 전호( 前 胡 ), 현호색( 玄 胡 索 ), 위령선( 葳 靈 仙 ), 백합( 百 合 ), 당귀( 獨 活 ), 남성( 南 星 ), 속 새( 木 賊 ), 관중( 貫 衆 ), 복분자( 覆 盆 子 ), 산포도( 山 葡 萄 ), 춘배, 니실( 尼 實 ), 다래, 까마귀, 비 둘기, 매, 곽조( 霍 鳥 ), 수우( 水 牛 ), 해구( 海 狗 ), 고양이, 쥐, 지네, 미역, 전복, 해삼, 홍합 등입 니다. 섬의 둘레 둘레는 1백 4 50리이고 육지와의 거리가 멀고 가까움인 것은 물길이 워낙 험하고 풍랑 에 시달리어 몇 리가 되는지 측량할 수 없습니다. 4) <1882년 6월 5일> 이규원 검찰사가 임금께 복명하다 울릉도 검찰사( 鬱 陵 島 檢 察 使 ) 이규원( 李 奎 遠 )이 복명하여 임금님께 아뢰었다. 임금께서 이 르시기를, 서계( 書 契 )와 별단( 別 單 )은 이미 읽어 보았고 지도( 地 圖 )도 역시 보았다. 산위에 있는 나리동( 羅 里 洞 )이 넓기는 하지만 물이 없는 것이 결함이다. 그 속에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들어서 있지 않는가? 라고 하였다. 이규원이 아뢰기를 나리동 산위에 따로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어 비옥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기슭에서부터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크고 작은 냇 물들이 모두 땅속으로 스며들어 흐르는 것이 가장 큰 결함입니다.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꽉 들어서서 종일 걸어도 햇빛을 한 점도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만일 고을을 설치한다면 서너개 곳 중에서도 나리동이 가능할 것 입니다 라고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진이나 읍을 설치하자면 나리동이 아니고는 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그 골짜기 안에 한 300호 가량 들어앉을 곳은 드물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라고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골짜기에 호 가량 들어앉을 만한 곳은 7 8개가 안 됩니다. 그런데 개척한 후 여러 골짜기에 바다를 막을 곳이 없는 것이 결함입니다 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뽕나무 산뽕나무 닥나무 모시풀은 심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63

64 자라나고 있으니 이상한 일이 아닌가 라고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무성한 모시풀밭은 수십 이랑이나 되었으며 뽕나무 산뽕나무 닥나무 같은 것이 사이사이 산림을 이룬 것으 로 보아 옛날 백성들이 살적에 심어놓은 것 같습니다 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그 곳을 개척하면 백성들이 들어가 살려 하겠는가? 라고 하니 이 규원이 아뢰기를, 뱃군과 약재 상인들에게 시험 삼아 물어보니 들어가 살고 싶어 하는 사 람이 많았습니다 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우리나라 사람이 많이 들어가 약재도 캐고 배도 만들던가? 라고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호남사람들이 제일 많았습니다. 전부 다 배를 만들거나 미역과 전복을 따는 일들을 하였으며 그 밖의 다른 도의 사람들은 모두 약재를 캐는 일을 위주로 하였습니다 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일본사람들이 푯말을 박아놓고 송도( 松 島 )라 한다는데 그들에게 말해주지 않을 수 없다 라고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그들이 세워놓은 푯말에는 송도라 했습니다. 송도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서로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한번 화방의질( 花 房 義 質 )에게 공문을 내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일본 외무성에 편지를 보내지 않 을 수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이 내용을 총리대신과 현임 재상들에게 이야기하여 줄 것이다. 지금 형편으로 보아서는 단 한시라도 등한히 내버려 둘 수 없고 한 조각의 땅이라도 버릴 수 없다 라고 하였다. 이규원이 아뢰기를, 이 하명을 일일이 총리대신과 현임 대신들에게 알려주겠습니다. 설사 한치의 땅이라도 그것은 바로 조상들의 강토인데 어떻게 등한히 내 버려둘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일본 사람에게 통지할 뿐만 아니라 개척하는 일도 속히 손을 쓰 는 것이 좋겠다 라고 하였다. 이규원이 아뢰기를, 빨리 개척하자면 그저 백성들만 먼저 들 어가 살게 할 수는 없습니다. 모여드는 것을 본 다음이라야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입니 다 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배를 댈 항구를 우선 마련할 도리는 없던가? 라고 하니 이규원이 아뢰기를, 온 섬에 둘러있는 여러 포구는 돌이 깔리지 않은 데가 없으므로 시로 손대기 쉽지 않습니다 라고 하였다. (고종실록 권19, 고종 19년 6월 5일조) 6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65 5) 이규원 검찰 후 우리 정부의 조치 <1882년 6월 16일> 일본에 항의 서한을 보내도록 하다 삼군부( 三 軍 府 )에서 임금께 아뢰었다. 울릉도 검찰사( 鬱 陵 島 檢 察 使 ) 이규원( 李 奎 遠 )은 일본 사람들이 한쪽 구석에 막을 치고는 송도( 松 島 )라 칭하면서 나무 푯말을 세웠으니 공문을 띄워 힐책할 일에 대하여 교지( 敎 旨 ) 를 받아 삼군부( 三 軍 府 )로 하여금 품처( 稟 處 )케 해달라고 계청( 啓 請 )하였습니다. 일본인들이 이 섬에 들이닥쳐 나무 찍는 것을 그 나라에서 금지시키라는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검찰사( 檢 察 使 )가 직접 가보니 그전과 다름없다고 하니 부득이 저번의 글 내용을 다시 강조하여 이 폐단을 영영 막아버려야 하겠습니다. 대제학( 大 提 學 )으 로 하여금 서계를 만들어 보내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고종실록 권19, 고종 19년 6월 16일조) <1882년 7월 10일> 다시 일본에 항의 서한을 보내도록 하다 10일, 삼군부( 三 軍 府 )에서 임금께 아뢰기를, 울릉도 검찰사( 鬱 陵 島 檢 察 使 ) 이규원( 李 奎 遠 ) 의 서계( 書 啓 )에 대해 삼군부( 三 軍 府 )로 하여금 품처( 稟 處 )케 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일본인들 이 침입하여 이 섬의 나무를 찍는 문제와 관련하여 그 나라에서 금지시켜 달라는 뜻으로 벌써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검찰사( 檢 察 使 )가 가서 목격해보니 그들이 전과 다 름없이 행동하고 있다고 하니 종전의 내용을 다시 강조하여 이 폐단을 영원히 막아버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학( 提 學 )으로 하여금 서계( 書 契 )를 만들어 보내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 니까 하니 임금께서 윤허하였다. (고종실록 권19, 고종 19년 7월 10일조) <1882년 8월 20일> 임금께서 울릉도 재개척을 윤허하다 홍순목이 임금께 아뢰기를, 전번에 검찰사( 檢 察 使 )가 복명( 復 命 )할 때에 올린 울릉도( 鬱 陵 島 )의 지도와 서계( 書 契 )는 이미 다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섬은 바다 가운데 외 로이 떨어져있는 하나의 미개척지로서, 듣자니 땅이 비옥하다고 합니다. 우선 백성을 모집 해 밭을 일구고 5년 후에 가서 조세를 물리면 스스로 점차 취락( 聚 落 )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남( 嶺 南 )과 호남( 湖 南 )의 조운선( 漕 運 船 )들이 여기에 가서 재목을 베서 배를 만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65

66 들도록 허락한다면 사람들이 번성하게 모여들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에 가히 해볼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만일 관할하는 사람이 없으면 잡다한 폐단을 막기 어려울 것이니 성실하 고 일에 능한 사람을 검찰사( 檢 察 使 )에게 문의하여 우선 섬의 장관으로 임명해 보내어, 규 율과 질서를 세우고 그 제도를 새로 만들도록 하여 다른 날 진( 鎭 )을 설치할 뜻을 미리 강 론해서 감사( 監 司 )에게 분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께서 윤허하였다. (고종실록 권19, 고종 19년 8월 20일조) 6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67 Ⅲ. 울릉도 검찰일기 논고 양태진(동아시아영토문제연구소 소장) 1. 머리말 평소 독도문제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활동해 오신 여러분들을 오늘 이 자리에서 뵙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독도문제는 독도영유권 자체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독립국 대한민국의 정체성 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익히 알고 있듯이 일본제국주의자들은 과거 우리나라를 본격적으로 침략하기에 앞서 이 땅을 제일 먼저 침략해 왔고 이곳을 전진기지로 이용, 러일전쟁을 승 리로 이끄는데 획을 그은 곳입니다. 저는 이러한 견지에서 한국독립의 상징 독도 라는 단행본을 발간하여 2천여 부를 관심 있는 단체나 개인들에게 배포하여 독도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하였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 독도와 울릉도가 모자( 母 子 )관계임에 역점을 두어 왔습니다. 이 모자관계론 ( 母 子 關 係 論 ) 속에 비중( 比 重 )있게 다루어야 할 내용으로 이규원( 李 奎 遠 ) 검찰사( 檢 察 使 )의 울릉도 검찰일기( 鬱 陵 島 檢 察 日 記 ) 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도서( 島 嶼 )의 모자관계는 역사적 인문지리적 제반사항에 대한 검토와 연구가 필요하겠으 나 독도문제는 무엇보다 모도( 母 島 )내지 속도론( 屬 島 論 )과 관련한 탄탄한 경략사( 經 略 事 )를 사적( 史 的 )으로 정립( 定 立 )하는 것이 선결문제( 先 決 問 題 )라고 봅니다. 요컨대 발표요지는 이규원( 李 奎 遠 ) 검찰사( 檢 察 使 )의 검찰일기( 檢 察 日 記 )를 바탕으로 독도 ( 獨 島 )와 울릉도( 鬱 陵 島 )의 모자관계( 母 子 關 係 )와 동해( 東 海 )라는 민족전래( 民 族 傳 來 )의 영해 ( 領 海 )가 유루( 遺 漏 )없이 지켜 나가야만 한다는 일념( 一 念 )하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67

68 2. 조선시대의 해방정책과 수토제에 따른 울릉도 조선조 초기에는 변경관리정책( 邊 境 管 理 政 策 )이 남( 南 )으로 대마도 정벌( 征 伐 )과 북( 北 )으 로 사군육진정책( 四 君 六 鎭 政 策 ) 등으로 역동적( 力 動 的 )인 정책을 펴왔으나 중기에는 임진왜 란을 겪으면서 점차로 변경( 邊 境 ) 및 해방정책( 海 防 政 策 )을 미온적( 微 溫 的 )으로 대처하는 가 운데 도서관리정책( 島 嶼 管 理 政 策 )은 자연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이러한 와중에서 울릉도에 왜구들이 출몰하면서 노략질을 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조정 ( 朝 廷 )에서는 수토제( 搜 討 制 )를 실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수토제 실시와 울릉도 개척시대 를 맞이하기까지의 조선조 왕대별( 王 代 別 ) 사안( 事 案 )을 개괄( 槪 括 )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월 26일 요도( 蓼 島 ) 탐방실시( 探 訪 實 施 ) 世 宗 13년(1438) 4월 2일 4월 5일 함길도( 咸 吉 道 ) 감사( 監 司 )에 요도( 蓼 島 )의 도세( 島 勢 )를 조사( 調 査 ) 해 품계( 稟 啓 )하라 명( 命 )함. 전농사( 典 農 寺 ) 신인손( 辛 引 孫 )을 함길도( 咸 吉 道 )에 보내 요도를 탐 방( 探 訪 )케 하다. 世 宗 20년(1446) 7월 26일 강원도 감사에 명해 양양( 襄 陽 ) 동쪽 요도를 찾지 못한다 하니 경 ( 卿 )이 다시 탐문 보고하라 명하다. 世 宗 27년(1452) 6월 12일 삼봉도로의 도주자( 逃 走 者 )를 수문( 搜 問 ), 보고( 報 告 )하라 하다. 2월 3일 봄에 사람을 파견( 派 遣 )하고자 하는데 따른 사안( 事 案 )을 적어 올 리다. 3월 20일 삼봉도( 三 峰 島 ) 경차관( 敬 差 官 ) 박종원( 朴 宗 元 )이 출발할 때 왜( 倭 ) 와 여진통사( 女 眞 通 詞 ) 각 1명을 대동( 帶 同 ) 차송( 差 送 )케 하다. 成 宗 3년(1771) 成 宗 4년(1472) 4월 1일 6월 12일 8월 11일 1월 9일 박종원( 朴 宗 元 )에게 삼봉도는 우리 영토로, 도피( 逃 避 ) 잠입( 潛 入 ) 한 위령자( 違 令 者 )들은 군법( 軍 法 )으로 시행( 施 行 )하라 하다. 삼봉도 경차관( 敬 差 官 ) 박종원이 풍랑( 風 浪 )으로 항해( 航 海 )가 난 ( 難 )함을 이극돈( 李 克 墩 )이 아룀에, 경( 卿 )의 판단( 判 斷 )대로 하라 하다. 김한경( 金 漢 京 )을 앞세워 삼봉도를 수토케 하다. 김한경이 말하되 청명( 淸 明 )한 날 경흥( 慶 興 )에서 삼봉도를 볼 수 있다. (계속) 6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69 成 宗 7년(1475) 成 宗 8년(1476) 成 宗 10년(1478) 2월 8일 6월 10월 12일 3월 4일 5월 7월 13일 8월 9월 영안도( 永 安 道 ) 관찰사( 觀 察 使 ) 이극돈( 李 克 墩 )이 도민( 道 民 ) 가운 데 삼봉도( 三 峰 島 )를 찾아가 멀리서 보았고 상륙( 上 陸 )하지 못했다 고 보고함. 김한경( 金 漢 京 )과 건실( 健 實 )한 인사( 人 士 ) 3인을 대동( 帶 同 ), 재차 ( 再 次 ) 수색( 搜 索 )토록 하라 하다. 영흥인( 永 興 人 ) 김자주( 金 自 周 )가 도형( 島 形 )을 그려왔으나 상륙( 上 陸 )하지 못했다고 관찰사( 觀 察 使 ) 이극돈( 李 克 墩 )이 보고( 報 告 ). 좌랑( 佐 郞 ) 이창신( 李 昌 臣 )이 삼봉도( 三 峰 島 ) 포기( 抛 棄 )를 건의( 建 議 )함에 대해 촌토( 寸 土 )의 땅도 버릴 수 없다 하다. 영안도( 永 安 道 ) 관찰사( 觀 察 使 )가 조정론의( 朝 廷 論 議 )를 거쳐 쇄환 시행( 刷 還 施 行 )을 건의( 建 議 ). 상( 上 )께서 동해( 東 海 )에 섬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하고 앞으로 섬 에 들어갈 때 병기지참( 兵 器 持 參 )을 허락( 許 諾 )하다. 조정론의( 朝 廷 論 議 )가 분분( 紛 紛 )한 가운데 적극적( 積 極 的 )인 수토 조치( 搜 討 措 置 )를 취( 取 )하도록 함. 론의( 論 議 ) 이후( 以 後 ) 10월 27일 수토( 搜 討 )를 위해 발선( 發 船 )하다. 10월 28일 조위( 曺 偉 )가 마상선( 麻 商 船 )을 모아 출항케 했으나 역풍( 逆 風 )으 로 되돌아옴에 30일에 재출항( 再 出 航 )시키다. 12월 판서( 判 書 ) 이극돈( 李 克 墩 )이 명춘( 明 春 )에 조선( 造 船 )하여 출범( 出 帆 )에 대해 논의( 論 議 )할 것을 상( 上 )께 건의( 建 議 )함. 2월 12일 병조( 兵 曹 )에서 군관( 軍 官 ) 10명 선원( 船 員 ) 30인을 승선( 乘 船 )시 키겠다 하니 왕( 王 )이 윤허( 允 許 )하다. 成 宗 11년(1479) 2월 20일 3월 11일 3월 17일 상호군( 上 護 軍 ) 정석희( 鄭 錫 禧 )가 초무사( 招 撫 使 )로 갈 때 보고 들 은 바를 기록( 記 錄 )하기 위해 문신( 文 臣 ) 1인을 동행( 同 行 )케 해달 라고 청( 請 )하다. 김소( 金 訴 )가 수로( 水 路 )에 익숙한 자 2 3인을 먼저 보낸 후 초무 사( 招 撫 使 )를 보내자고 건의( 建 議 )하였으나 상( 上 )은 불윤( 不 允 )하다. 삼봉도( 三 峰 島 ) 초무사( 招 撫 使 ) 심안인( 沈 安 仁 )에 교서( 敎 書 )를 주 어 도민( 島 民 )이 많을시는 수장( 首 長 )만 데려오고, 여타( 餘 他 )는 출 륙( 出 陸 )하지 않으면 토벌( 討 伐 )하겠다고 하라 하다. 成 宗 12년(1480) 1월 8일 삼봉도( 三 峰 島 )에 대한 대책( 對 策 )을 올리니 왕( 王 )이 윤허( 允 許 )하다. 肅 宗 20년(1694) 9월 19일 삼척첨사( 三 陟 僉 使 ) 장한상( 張 漢 相 ) 9월 20일 10월 3일까지 13일 동안 울릉도( 鬱 陵 島 ) 심찰( 審 察 )후 [울릉도사적( 鬱 陵 島 事 蹟 )]을 남 겼는데 여기에 독도의 위치를 확인하였다 함. (계속)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69

70 肅 宗 23년(1697) 肅 宗 25년(1699) 肅 宗 28년(1702) 英 祖 4년(1728) 英 祖 45년(1769) 4월 6월 4일 5월 6월 9일 수토제( 搜 討 制 ) 시기( 時 期 )를 2년 걸러 - 간이년( 間 二 年 )-3년에 1번씩으로 결정( 決 定 ). 월송만호( 越 松 萬 戶 ) 전회일( 田 會 一 )이 17일간 수토( 搜 討 ) 후( 後 ) 울 릉도도( 鬱 陵 島 圖 )와 토산물( 土 産 物 )을 가져오다. 삼척영장( 三 陟 營 將 ) 이준명( 李 浚 明 )이 수토차( 搜 討 次 ) 울릉도( 鬱 陵 島 )에 다녀옴. 죄인( 罪 人 ) 황부( 黃 溥 )를 추문( 推 問 ). 섬을 얻으려면 30인 정도의 인 원에 4년간의 부역을 면제 판조선을 건조해 타고 가야 한다 하다. 삼척영장( 三 陟 營 將 )이 울릉도( 鬱 陵 島 ) 인삼( 人 蔘 ) 밀채혐의( 密 採 嫌 疑 )로 처벌( 處 罰 )됨. 正 祖 18년(1794) 4월 21일 한창국( 韓 昌 國 )이 울릉도( 鬱 陵 島 )를 수토후( 搜 討 後 ) 가지도( 可 支 島 ) 에서 가지( 可 支 ) 포획( 捕 獲 ). 5월8일 귀환( 歸 還 ). 正 祖 19년(1795) 음력( 陰 曆 ) 3 4월에 실시( 實 施 )하던 수토시기( 搜 討 時 期 )를 6 7월 로 조정( 調 整 )함. 위와 같이 수백 년에 걸쳐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조정의 관심은 끊이지 않은 가운데 수 토정책은 지속되었다. 수토를 통해 숙종년간( 肅 宗 年 間 )에 강원도 삼척영장( 三 陟 營 將 ) 장한상 ( 張 漢 相 )의 울릉도 피토사( 被 討 事 )에 관한 기록을 비롯해, 정조 18년(1794년)에는 강원도 관 찰사( 觀 察 使 ) 심보람( 沈 普 覽 )의 명에 의해 수토관 월송만호( 越 松 萬 戶 ) 한창국( 韓 昌 國 )이 울릉 도를 수토한 첩정( 牒 呈 )이 전해지고 있다. 이후 왜인( 倭 人 )의 불법적인 울릉도상륙이 확인된 것은 고종 18년(1881년) 초이다. 당시 울릉도에 와서 무단벌목 하던 일본인 7명이 수토관원에 적발되었다. 이에 강원도 관찰사 박한수( 朴 翰 洙 )는 즉시 이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였다. 이에 왕명에 의해 이규원 검 찰사의 울릉도검찰 보고가 있게 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획기적인 울릉도관리정책 을 수립하게 되였다. 이러한 이규원의 검찰일기는 울릉도개척은 물론 과거의 해방정책( 海 防 政 策 )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한 매우 의의 있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이규원의 울릉도 개척건의로 울릉도는 행정적으로나 주민생활상 새로운 전기 를 맞게 됨과 동시에 왜구들의 침탈도 근절시키는 계기가 되고 동시에 내륙의 영토와 동일 한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7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71 3. 울릉도검찰일기의 서지사항( 書 誌 事 項 )과 이규원 인물 소개 1) 이규원( 李 奎 遠 ) 인물 소개 울릉도검찰일기의 주인공인 이규원에 대한 개략적인 인물 소개를 살펴보면 자( 字 )는 성 오( 星 五 ), 호( 號 )는 만은( 晩 隱 )이며 본관( 本 貫 )은 전주( 全 州 )이다. 순조( 純 祖 ) 23년(1823년) 3월 [계사( 癸 巳 )], 강원도( 江 原 道 ) 금화군( 金 化 郡 ) 읍내( 邑 內 ) 암정리( 岩 井 里 )에서 태어났으며 부친 ( 父 親 )은 면대( 勉 大 )이다. 철종( 哲 宗 ) 2년 19세에 무과( 武 科 )로 출사( 出 仕 )하여 선전관( 宣 傳 官 )이 되고 금부도사( 禁 府 都 事 ) 훈련원부정( 訓 練 院 副 正 )을 역임한 다음 고종 5년 16년간에 정평( 定 平 ), 단천( 端 川 ), 통 진부사( 通 津 府 使 ) 등 여러 고을의 수장( 首 長 )을 지냈다. 1881년 고종 18년 울릉도 검찰사( 檢 察 使 )를 역임한 후에는 어영대장( 御 營 大 將 )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慶 尙 左 道 兵 馬 節 度 使 ) 총융사( 摠 戎 使 ) 해방총관( 海 防 總 管 ) 병조참판( 兵 曹 參 判 ) 형조 참판( 刑 曹 參 判 ) 동남제도개척사( 東 南 諸 島 開 拓 使 ) 함경남도병마( 咸 鏡 南 道 兵 馬 ) 절도사( 節 度 使 ) 안무사( 按 撫 使 ) 제주목사( 濟 州 牧 使 )로, 1894년 개화파( 開 化 派 ) 정권하( 政 權 下 )에서는 군무아문 대신( 軍 務 衙 門 大 臣 ) 중추원일등의관( 中 樞 院 一 等 議 官 ) 궁내부특진관( 宮 內 府 特 進 官 ) 함경북도관 찰사( 咸 鏡 北 道 觀 察 使 )를 지냈다. 향년 69세[광무( 光 武 ) 5년:1901년 11월]로 생( 生 )을 마감하니 시호( 諡 號 )는 장희( 莊 僖 )이다. 이상과 같이 그의 경력이 말해 주듯이 어느모로 보나 이규원은 한말정계의 뚜렷한 존재 임에도 불구하고 울릉도 검찰보고 외에 그가 남긴 기록은 별로 없어 아쉬움을 더해 주고 있다. 2) 울릉도검찰일기의 서지사항 울릉도검찰일기는 서지적( 書 誌 的 ) 측면에서 보면 작성체계상( 作 成 體 系 上 ) 울릉도 탐사기록 ( 探 査 記 錄 )과 임금께 보고한 계초본( 啓 草 本 )으로 대별( 大 別 )된다. 기록 중 4월 초7일 임금을 뵙고 등정( 登 程 )한 이래 16일까지의 10일간의 일기는 없고 20일 이후인 3일간의 기록( 記 錄 ) 은 누락( 漏 落 )되어 유감( 遺 憾 )스럽기 이를 데 없다. 아쉽기는 하나 23일 이후 일기( 日 記 )와 5월 1일부터 열흘간의 탐사기록과 귀경 후 임금께 복명( 復 命 )한 초계본( 草 啓 本 )은 탐사기록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71

72 과 중복되는 면이 있기는 하나 내용( 內 容 )을 검토( 檢 討 )함에 있어서는 오히려 보탬이 된다. 일기작성( 日 記 作 成 )은 검찰사( 檢 察 使 )를 수행( 隨 行 )하였던 인물( 人 物 )중 임지( 任 地 )로 향( 向 ) 할 때의 사항( 事 項 )을 기록( 記 錄 )한 영리( 營 吏 ) 장병규( 張 秉 奎 ), 입도시( 入 島 時 )에는 역시 영리 ( 營 吏 ) 손영태( 孫 永 泰 )가, 상경시( 上 京 時 )에는 영리( 營 吏 ) 이두선( 李 斗 善 ) 등이 각기( 各 己 ) 기록 ( 記 錄 )한 것을 검찰사( 檢 察 使 ) 측근( 側 近 ) 인물( 人 物 )인 박기화( 朴 基 華 )가 종합필사( 綜 合 筆 寫 )한 것이다. 기록사항별로 발선수계( 發 船 修 啓 ) 회박수계( 回 泊 修 啓 ) 별단수계( 別 單 修 啓 )로 삼분( 三 分 )해 초안( 草 案 )을 작성하였다. 일기( 日 記 ) 말미( 末 尾 )에 작성시기( 作 成 時 期 )를 밝힌 연대( 年 代 )와 관련인명( 關 聯 人 名 )을 다 음과 같이 부기( 附 記 )하고 있다. 1882[광서( 光 緖 ) 8년] 임오( 壬 午 ) 유월( 六 月 ) 日 밀주( 密 州 ) 박기화( 朴 基 華 ) 근지( 謹 誌 ) 하거시배행영리( 下 去 時 陪 行 營 吏 ) 장병규( 張 秉 奎 ), 발강수계( 發 舡 修 啓 ) 울진( 蔚 珍 ) 입도배행영리( 入 島 陪 行 營 吏 ) 손영태( 孫 永 泰 ) 회박수계( 回 泊 修 啓 ) 평해( 平 海 ) 상래시배행영리( 上 來 時 陪 行 營 吏 ) 이두선( 李 斗 善 ) 별양수계( 別 量 修 啓 ) 평창( 平 昌 ) 본 일기( 日 記 )는 총 16매( 枚 )가 남아있고 자체( 字 体 )도 간혹 불명( 不 明 )한 자( 字 )도 있다. 이 일기초본이 학계( 學 界 )에 알려지기는 하성( 霞 城 ) 이선근( 李 瑄 根 )박사가 이규원공( 李 奎 遠 公 ) 의 사손( 嗣 孫 ) 이건웅( 李 建 雄 )씨로부터 차람( 借 覽 )하여 이를 대동문화연구( 大 東 文 化 硏 究 ) 지 ( 誌 )에 게재( 揭 載 )함으로써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위의 검찰일기( 檢 察 日 記 )와 계본( 啓 本 )에 첨부( 添 附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울릉도( 鬱 陵 島 ) 내도( 內 島 ) 와 울릉도( 鬱 陵 島 )외도( 外 島 ) 가 있는데, 비단에 채색한 내도도( 內 島 圖 )는 cm에 산봉( 山 峰 ), 분지( 盆 地 ) 등 자연경관( 自 然 景 觀 )에 치중되어 있고 나리동( 羅 里 洞 ) 서반부( 西 半 部 )에 추봉( 錐 峯 ), 항봉( 恒 峯 ), 숭봉( 嵩 峯 ), 태봉( 泰 峯 ), 기린봉( 麒 麟 峯 ), 옥녀봉( 玉 女 峯 ), 화봉( 華 峯 ), 동반부에 신선봉( 神 僊 峯 ), 장군봉( 將 軍 峯 ), 활인봉( 活 人 峯 ), 도덕봉( 道 德 峯 ), 성 인봉( 聖 人 峯 ) 등이 그려져 있다. 나리동( 羅 里 洞 )(일명 국동)에는 내장( 內 長 ) 10여리, 내광( 內 廣 ) 89리라 기록, 대택( 大 澤 )과 소지( 小 池 )가 그려져 있고 성인봉( 聖 人 峯 )과 화봉( 華 峯 ), 화봉 ( 華 峯 )과 옥녀봉( 玉 女 峯 ) 사이에 작은 계류( 溪 流 )가 그려져 있다. 울릉도외도( 鬱 陵 島 外 島 ) 역시 비단에 채색한 cm 크기에 섬 외부에서 바라보며 그 7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73 린 것인데 내도( 內 島 )가 자연경관에 치중된 것이라면 해안지방의 만과 도방청, 왜선창, 선 판구미, 저포, 장작지 등이 표시되어 있어 인문현상과 취락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하였다. 도방청이 현재의 울릉읍(도동)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개척령 이전의 행정처로 보인 다. 선판구미, 저포, 장작지, 선박재의 주요 산지, 기암절벽, 주변 섬들을 그렸고 일본인의 어로, 벌채, 선박왕래를 확인케 하는 지도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제도자( 製 圖 者 ) 미상 ( 未 詳 )이다. 4. 일기의 개요 1) 일자별( 日 字 別 ) 주요내용 4월 29일 4월 30일 5월 초1일 5월 2일 5월 3일 3척( 尺 )의 배로 나누어 타고 출항하였는데 승선인원은 검찰사( 檢 察 使 ) 이규원( 李 奎 遠 ) 을 비롯해 중추도사( 中 樞 都 事 ) 심의완( 沈 宜 琬 ) 군관출신( 軍 官 出 身 ) 서상학( 徐 相 鶴 ) 전 수문장( 前 守 門 將 ) 고종팔( 高 宗 八 ) 기타( 其 他 ) 원역( 員 役 ) 사격( 沙 格 ) 등 82명 포수( 砲 手 ) 20명이 거친 파도( 波 濤 )를 헤치고 야행항해( 夜 行 航 海 )하다. 유시( 酉 時 ) 울릉도( 鬱 陵 島 ) 서변( 西 邊 ) 첫 기착지( 寄 着 地 ) 소황토구미( 小 黃 土 邱 尾 )에 포변( 浦 邊 )에 결막( 結 幕 ) 주거민( 住 居 民 ) 탐문( 探 聞 )[전라도( 全 羅 道 ) 흥양( 興 陽 ) 삼도 인( 三 島 人 ) 김재근( 金 載 謹 )이 23명을 데리고 조선채곽( 造 船 採 藿 )(채확)함을 인지( 認 知 )하다.] 풍랑이 심해 정박한 배의 닻줄이 끊어질 지경에 당황 노심초사 산신당에 기도드림. 산으로 올라 고개를 넘어 대황토구미( 大 黃 土 邱 尾 )에 도착 고인( 古 人 )의 석장( 石 葬 ) 여러 기를 발견하였고 평해( 平 海 ) 선상( 船 商 ) 최성서 인솔한 13명 경주인( 慶 州 人 ) 7 명 채약( 採 藥 ), 연일인( 延 日 人 ) 2명 결막예죽( 結 幕 刈 竹 ) 사실( 事 實 ) 인지( 認 知 ). 산신당에 제사올리고 고개 넘어 흑작지( 黑 斫 支 )에 많은 석장( 石 葬 )과 10리나 되는 평 원( 平 原 )을 발견 후 소선( 小 船 )을 타고 전진( 前 進 )하니 천장( 千 丈 )에 달하는 창우암 ( 倡 優 岩 ) 쌍립( 雙 立 )한 촉대암( 燭 臺 岩 )을 둘러보고 수년포( 手 年 浦 )는 임란시 삼척인 정씨( 鄭 氏 ) 피란해 8형제를 동방진사( 同 榜 進 士 )케 한 명당지( 明 堂 地 )라 하다. 이곳을 지나 왜선창( 倭 船 艙 )에 이르니 전라도( 全 羅 道 ) 낙안( 樂 安 ) 선상( 船 商 ) 이경칠( 李 敬 七 ) 20명, 초도거민( 草 島 居 民 ) 김근서( 金 謹 瑞 ) 19명, 결막조선( 結 幕 造 船 ) 오대령( 五 大 嶺 ) 넘어 홍문가령( 紅 門 街 嶺 ) 넘어 나리동( 羅 里 洞 ) 도달, 장과십리( 長 過 十 里 ) 광구리( 廣 九 里 ) 환이중봉( 環 以 衆 峰 ) 성성곽( 成 城 郭 ) 이곳에 장( 長 )70여보( 餘 步 ) 광( 廣 )50여보( 餘 步 )의 무수대택( 無 水 大 澤 ) 장광불과( 長 廣 不 過 ) 2 30보( 步 )의 무수소택( 無 水 小 澤 )을 발견( 發 見 ) 후 파주거약상( 坡 州 居 藥 商 ) 정이호( 鄭 二 祜 ) 초막( 草 幕 )에 지숙( 止 宿 ) (계속)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73

74 5월 4일 성인봉( 聖 人 峰 ) 등반( 登 攀 ) 서면( 四 面 ) 해천( 海 天 ) 망망( 茫 茫 ) 경무일점도서( 更 無 一 點 島 嶼 ) 14제봉( 諸 峰 ) 홀연열립( 忽 然 列 立 ) 환포나리일동( 環 包 羅 里 一 洞 ), 천예별계( 天 藝 別 界 ) 동( 東 )으로 10리 일초막유( 一 草 幕 有 ) 함양거채약인( 咸 陽 居 採 藥 人 ) 전석규( 全 錫 奎 ) 주접처( 住 接 處 ) 입도( 入 島 ) 10년차( 年 次 )라 관숙형편( 慣 熟 形 便 ) 민생가서( 民 生 可 居 ) 각종토산( 各 種 土 産 ) 가여담론( 可 與 談 論 )할만하다. 산척미로( 山 脊 微 路 )를 따라 내려오 니 수풀이 무성( 茂 盛 ) 인근자성수십일경지지( 隣 近 自 成 數 十 日 耕 之 地 )라 로숙수림지간 ( 露 宿 樹 林 之 間 )하다. 산령( 山 嶺 )을 넘어 도방청포( 道 方 廳 浦 )에 도달, 이양소선( 異 樣 小 船 ) 1척 포구( 浦 口 )에 유박( 留 泊 ) 선중( 船 中 ) 무인( 無 人 ) 해안상( 海 岸 上 )에 왜인( 倭 人 ) 판막( 板 幕 ) 발견( 發 見 ) 왜인 6 7인 출문인접( 出 門 引 接 )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필담( 筆 談 )을 나누다. 5월 5일 언제 입도( 入 島 )하였으며 사는 곳은 어디인가 하니 동해도( 東 海 道 ) 산양도( 山 陽 道 ) 등지로 2년 전부터 벌목해 왔으며 올 4월에 재입도( 再 入 島 )해 일하고 있다고 하다. 조정( 朝 廷 )의 방금령( 防 禁 令 )을 모르느냐 하니 모른다 하고, 벌목( 伐 木 )의 용처( 用 處 )도 모 르며 일행 중 관리( 官 吏 )는 없다고 하였다. 입도왜인( 入 島 倭 人 )들은 현재 산지사방( 散 之 四 方 )에서 벌목( 伐 木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수토관( 搜 討 官 )이 와서 보니 일본인이 벌목( 伐 木 )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 고 이에 대해 우리 정부에서 너의 나라 외무성에 공문을 보냈는데 모른단 말인가. - 모르 고 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들어 본 바도 없다. 남포규곡( 南 浦 槻 谷 )에 머무르고 있는 자가 있는데 알는지 모르니 불러 오겠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고용된 사람들인가, 자의( 自 意 )에 의해 일하고 있는 자들인가 하니 자의 에 의해서라고 하다. 우리들은 더 이상 아는 것이 없으니 남포( 南 浦 )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 이 온 후에 다시 문답하면 어떻겠는가? 하면서 답을 피하다. 그러나 오랜 동안 기다렸으나 오지 않아 사람을 다시 보냈다.(남포는 남쪽 포구 장작지포 임) 일본인은 도방청으로부터 장작지포에 이르는 사이에 움막을 짓고 머무르고 있으나 수 효는 알 수 없었다. 이로써 일인들의 도서내 거주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산지 사방에서 왜인들이 벌목작업을 벌이고 있어 섣불리 찾아 나설 수 없어 장작지포로부터 오는 자를 만 나보기로 하고 문답을 뒤로 미뤘다. 뒤에 불러온 자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왕명( 王 命 )을 받들고 여기에 와 그대들을 보게 되었 다. 이 사실을 조정( 朝 廷 )에 알리겠다. - 우리들도 그리 알겠다. [피왈( 彼 曰 ) 복등( 僕 等 ) 근락 ( 謹 諾 )]. 강토는 경계가 정해져 있는데 너희들이 어찌 이곳에서 벌목을 하고 있는가? ( 疆 土 自 山 定 界 爾 等 今 來 他 境 壇 自 伐 木 勢 難 卽 招 來 是 何 道 理 乎 彼 曰 僕 不 聞 爲 他 境 然 爲 知 此 役 事 者 今 在 於 本 國 他 境 是 擧 不 可 己 有 南 浦 谷 標 木 卽 知 爲 我 日 本 帝 國 松 島 問 曰 標 木 之 有 今 來 始 聞 而 寧 有 立 標 他 境 之 理 乎 ) - 이에 우리는 이곳이 타국 땅이라는 말은 들은바 없다. 이곳은 일본 땅으로 알고 있다. 남포의 규곡에는 이곳이 일본의 송도( 松 島 )라 표시되어 있다. 표본( 標 本 )이 있다 하니 금시초문( 今 時 初 聞 )이구나. 입표지경( 立 標 之 境 )이니 송도( 松 島 )니 하는 것이 무슨 소리냐? - 일본제국지도( 日 本 帝 國 地 圖 )와 여지전도( 輿 地 全 圖 )에도 모두 송 도( 松 島 )라 한다. 그래서 그렇게 알고 있다. 이 섬은 울릉도라 하는 섬으로 울릉도라고 하는 섬으로 신라 고려 조선으로 수 천 년 간 전래되어온 강토인데 너희들이 송도라 함은 어떤 근거인가? 수 백 년 이래 우리 조정이 관 리를 두고 다스려 왔는데 너희들이 금법지정( 禁 法 之 定 )임을 모른다니 말이 되느냐? -이에 (계속) 7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75 5월 5일 5월 6일 5월 7일 5월 8일 5월 9일 자기들은 이 섬에 와서 벌목을 할 따름이지 섬의 내력에 대해서는 아는바 없다. 여하튼 범금사실을 모른다고 하여도 죄를 범한 것이며 혹시 알고 행했다면 이 자리에서 논 죄하여 처벌함이 마땅하다 속히 철수해 돌아감이 가하리라! - 그렇게 하겠다. 벌목의 용도는 무엇이며 귀국 시기는 언제인가? - 사용처는 모른다. 돌아갈 시기는 금년 8 월(음7월) 배가 온 뒤이다. 너희들 인적사항을 알고 싶다 하니, 남해도예주( 南 海 道 豫 州 ) 송산읍거( 松 山 邑 居 ) 내전상장 ( 內 田 尙 長 ) 29세, 산양도( 山 陽 道 ) 장주( 長 州 ) 선화읍거( 善 和 邑 居 ) 야촌선일( 埜 村 善 一 ) 51세, 방주( 防 州 ) 궁시읍거( 宮 市 邑 居 ) 등 합 4명 여타 불명 총 88명이다. 표목을 세운 자는 어디 사람이며 어떤 근거에 의해 세웠는가? - 2년 전에 여기에 와서 처 음 보았으며 명치( 明 治 ) 2년(고종 6년) 2월 13일에 암기충조건지( 岩 崎 忠 照 建 之 )라 하였는데 그 사람에 대해서는 모른다. 이상이 왜인들과 나눈 대화이다. 왜인이 세웠다는 표말이 장작지포( 長 斫 之 浦 )에서 통구미( 桶 邱 尾 )로 향하는 도중( 途 中 ) 해변( 海 邊 ) 바위 사이에서 표목( 標 木 )을 발견( 發 見 )하였는데 길이 6척, 넓이 1척에 [대일본국송도규곡( 大 日 本 國 松 島 摫 谷 ) 명치( 明 治 ) 2년 2월 13일 암기충조건지( 岩 崎 忠 照 建 之 )]라 쓰여 있었다. 높다란 령( 嶺 )을 넘어 절벽소로( 絶 壁 小 路 )를 따라 무리해 통 구미포( 桶 邱 尾 浦 )에 다다르니 지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였다. 향서이행( 向 西 而 行 )하여 고개 셋, 세 개의 개천을 건너 도달해 보니 이곳을 곡포( 谷 浦 )라 하였다. 바위 사이 길로 30리를 지나니 소황토구미( 小 黃 土 邱 尾 )에 당도하니 이곳이 당초 입도 처( 入 島 處 )라 석공( 石 工 )을 시켜 석벽상에 도호( 島 號 )를 각자( 刻 字 )하고 쉬다. 작은 배를 타고 섬을 둘러보고 10일에 도방청을 비롯해 여러 거처지를 둘러보았고 11일에는 산신께 기도하고 진시( 辰 時 )에 출범( 出 帆 )하였다. 12일 해시( 亥 時 )에 울진으 로 직행하고 하였으나 부득이 평해( 平 海 ) 구산포( 邱 山 浦 )에 하선( 下 船 )하다. 2) 검찰일기에 함축된 제반( 諸 般 ) 의의 1 울릉도 지세를 과거 어느 때 보다 정밀하게 관찰해 기록을 남김으로써 지형도( 地 形 圖 ) 작성에 도움을 주었다. 2 산천지세를 면밀히 답사 관찰하여 이곳의 물산과 주거여건 및 경작 가능지를 가늠케 하였다. 3 지리적 지식을 넓혀주고 있다. 즉 고장사 연구의 필수불가결한 지명사 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예컨대 나리동( 羅 里 洞 )이란 신라( 新 羅 )의 라( 羅 )에서 연유된 연해주 땅에 한인( 韓 人 )들이 거주하면서 명명된 라선동( 羅 鮮 洞 )과 같은 맥락( 脈 絡 )임을 알 수 있다. 4 고고학적으로 울릉도사를 연구 가능케 하는 수 많은 석장( 石 葬 )을 발견하였다.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75

76 이는 고고학의 발달로 석기시대의 유적이 있었음이 확인되었고 경북 강원 함북지역 등과 일본 은기( 隱 岐 ) 출운( 出 雲 )등지의 문화층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 게 볼 때 신라기 유적 유물이 존재함은 이사부 사건에 관한한 고고학으로도 뒷받침 되고 있다. 5 민속학상 의미 있는 산신제 해신제 성황당 신앙의 전래를 확인해 주고 있다. 고래로 민속신앙의 일면을 알려주고 있다. 이곳에서는 사실상 산신제와 해신제가 전해 내려 오는데 산신의 명칭은 매우 다양하다. 그 이유는 그만큼 숭앙의 대상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즉 산신제에서는 산왕신 산령신 산왕대왕지신 동신 본부산령신 구암동사신 ( 龜 巖 洞 社 神 ) 등으로 불려지고 해신제의 신은 동해해신 동해보명신 사해용왕신 등으로 불려진다. 6 내륙 각처에서 입도한 출신 지역민들의 분포를 살필 수 있으며 특히 절대다수인 전 라도민들의 입도생활은 자연히 오늘날 독도라는 지명이 전라도지역의 방언으로 볼 수 있는 전거( 典 據 )가 될 수 있다. 7 이 당시까지도 일본정부는 한국정부에 월경방지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 로 이 지역에 드나듦이 범법임을 알리지 않고 묵인하였는가 하면 이들의 약탈을 방 조함으로써 그들의 침략근성의 일단을 엿 볼 수 있게 하였다. 8 우리 정부의 수토정책( 搜 討 政 策 )을 적극적인 개발정책으로 전환케 하였다. 일기 내용을 종합해 보면 당시 도내( 島 內 )에 거주하고 있던 수( 數 )와 그들이 하고 있던 일, 거처지명( 居 處 地 名 )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학포( 鶴 浦 )[소황토구미( 小 黃 土 邱 尾 )] 24명, 대황토구미( 大 黃 土 邱 尾 ) 23명, 왜선창( 倭 船 艙 ) 41 명, 도방청( 道 方 廳 ) 14명, 장작지( 長 斫 之 ) 13명, 통구미( 桶 邱 尾 ) 23명, 함양( 咸 陽 ) 전석규( 全 錫 圭 )(10년 간 머물음) 파주( 坡 州 )의 사족출신( 士 族 出 身 )인 정이호( 鄭 二 祜 )는 나리동( 羅 里 洞 )에 성 황화상( 城 隍 畵 像 )을 모신 산신당( 山 神 堂 ) 있는데 여기서 초막생활( 草 幕 生 活 )을 함, 전라도( 全 羅 道 ) 전남( 全 南 ) 고흥( 高 興 )[흥양( 興 陽 )] 선주( 船 主 ) 5명과 격졸( 格 卒 ) 89명 등 94명, 전남( 全 南 ) 순천군( 順 天 郡 ) 낙안면( 樂 安 )에 선주( 船 主 ) 1인과 격졸( 格 卒 ) 20명 등 모두 115명이다. 다음 에 강원도( 江 原 道 ) 평해( 平 海 ) 출신 선주( 船 主 ) 1인과 격졸( 格 卒 ) 13명 등 14명이고 경상도( 慶 尙 道 ) 경주( 慶 州 ) 7명 연일( 延 日 )[영일( 迎 日 )] 2명, 함양( 咸 陽 ) 1명, 경기( 京 畿 )[파주( 坡 州 )] 1명인 7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77 데 전라도에 온 115명은 조선( 造 船 ), 채작( 採 雀 ) 채어( 採 魚 )하고 봄에는 나무와 배를 만든 뒤 미역 고기잡이를 하고 있고 강원도( 江 原 道 ) 14명은 조선차( 造 船 次 )로 경상도( 慶 尙 道 ) 10명은 약초( 藥 草 )를 주로 채취( 採 取 )하고 경기도( 京 畿 道 ) 경상도( 慶 尙 道 )인들은 연죽( 烟 竹 )을 베여내 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3) 검찰결과보고 요지 一. 적극적인 개발정책을 펴 나리동( 羅 里 洞 )에 설읍( 設 邑 )하고 호구( 戶 口 )를 증식( 增 殖 ) 개간 하면 1천여호가 생활할 수 있고 요소요소에 1 2백호의 부락을 형성할 만한 곳이 67개 처나 된다. 二. 천연자원( 天 然 資 源 )을 비롯한 풍부한 해륙물산( 海 陸 物 産 )은 수다한 내륙민들을 입도영주 ( 入 島 永 住 )케 할 수 있다고 판단( 判 斷 )되며 三. 조상전래( 祖 上 傳 來 )의 천연보고( 天 然 寶 庫 )를 일본인들의 침입약탈( 侵 入 掠 奪 )을 방지( 防 止 ) 하기 위해서도 일본정부( 日 本 政 府 )에 엄중항의( 嚴 重 抗 議 ), 령토상( 領 土 上 )의 주권수호의지 ( 主 權 守 護 意 志 )를 확고( 確 固 )히 해 나갈 것을 임금께 아뢰다. 5. 맺음말 오랜 기간 정부의 수토정책을 통해 동해상의 울릉도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으나 도서관 리정책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이규원 검찰사의 울릉도 검찰 후 이전까지의 정책을 바 꿔 적극적인 개척령을 공포하고 이규원의 천거로 전석규( 全 錫 奎 )를 첫 도장( 島 長 )으로 임명 하고 개척사업을 주관할 지방관으로 평해군수를 위촉하는가 하면 본토인의 울릉도 입거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아울러 정부 관원의 배치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었고 도민( 島 民 )에게는 부세( 賦 稅 )와 요 역( 徭 役 )을 감면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사실상 수토제는 명실상부하게 폐지되고 울릉도는 내륙과 동일한 위상을 갖추게 되었고 독도의 모도( 母 島 )로써도 그 위용을 자랑할 수 있게 되였다. 이밖에 다소 위에 언급된 내용과 중복되는 감을 느낄지 모르나 이는 그 의의를 강 조함이다.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77

78 즉 검찰일기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된 석장과 고분은 고고학적으로 울릉도사를 연구 가 능케 하였다. 즉 이들 석장과 고분에서 석기시대의 유적이 있었음이 확인되었고 경북 강원 함북지역 등과 일본 은기( 隱 岐 ) 출운( 出 雲 ) 등지의 문화층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신라기 유적 유물의 존재는 이사부 사건에 관해 고고학으로도 뒷받침되게 하 고 있다. 고래로부터 살아온 원주민들의 민속신앙의 전래를 확인해 주고 있는 산신제와 해신제가 전해 내려오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또한 향토사 연구의 필수불가결한 지명사 연구에 도움을 준 당해 지역의 지명을 일기와 지도에 명기함으로써 독도문제와 관련한 <독섬> <독도>의 유래를 밝힐 수 있는 전거를 주고 있고 나리동( 羅 里 洞 )이 신라( 新 羅 )의 라( 羅 )에서 연유된 연해주 땅에 한인( 韓 人 )들이 거 주하면서 부르게 된 라선동( 羅 鮮 洞 )과 같은 맥락( 脈 絡 )을 같이하고 있음을 자각( 自 覺 )케 해 주고 있다. 이처럼 이규원공의 검찰일기는 울릉도의 개발의 전기를 가져 왔을 뿐만 아니라 역사 인 문지리학상 연구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 參 考 文 獻 ] 三 國 史 記 新 羅 智 證 王 13 年 條 異 斯 夫 列 傳 朝 鮮 王 朝 實 錄 - 世 宗, 成 宗. 肅 宗, 正 祖 實 錄 등 參 照 備 邊 司 謄 錄 承 政 院 日 記 新 增 東 國 與 地 勝 覽 增 補 文 獻 備 考 鬱 島 誌 國 朝 人 物 考 外 務 部 獨 島 關 係 資 料 集 (11) 7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79 Ⅳ. 인터뷰와 언론보도 프로그램:KBS 포항방송국 동해안 네트워크 방송일시:2007년 10월 31일 화요일 오후 3시 35분경 대 담 자:동북아역사재단 홍성근 박사 내 용 대한민국독도향우회, 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 푸른울릉도독도가꾸기모임 등 독도 관 련 시민단체들이 참 많죠. 최근에 이런 독도관련 시민단체들이 모두 모여서 뜻 깊은 행사를 가졌다고 하는데요. 이번 행사를 주관한 동북아역사재단의 홍성근 연구원과 전화연결해서 자세한 얘기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이번 독도 시민단체 연합행사에 대해서 소개해 주십시오(행사 취지)? - 국내 10여 개의 독도관련 시민사회단체가 있지만, 독도관련 시민운동이 산발적으 로 추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 그래서 독도관련 시민단체 간 교류협력방안을 모색하고 때때로 분출하는 독도관 련 여론을 건전한 시민사회 운동으로 승화시켜 나갈 수 없을까 하는 취지에서 행 사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단체들이 참여했나요? - 울릉도의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 서울과 부산에 각각 사무국을 두고 있는 독도 수호대, 독도향우회 등 15개 시민단체 대표자 30여 명 참석하였는데, - 국내 독도관련 시민단체가 거의 모두 참여했습니다. 연합행사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독도전문가 초청강연, 독도 역사기행, 시민단체 활동가 포럼 등의 행사를 하였습니다. 초청강연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 일찍부터 그림을 통해 독도문화 운동을 해 오신 이종상 전 서울대 박물관장님께 서 독도의 문화적 가치를 중심으로 독도 시민문화 운동에 대해 강의하셨고, - 동아시아영토문제연구소장이신 양태진 선생님께서 이규원 검찰사의 울릉도 검찰 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강의하셨습니다. 제 3 장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역사기행 79

80 이규원 검찰사에 관한 강연을 하셨다는데, 이규원 검찰사는 어떤 분인가요? - 이규원 검찰사는 1881년 울릉도 검찰사로 임명을 받아 1882년 100여 명의 조사단 을 이끌고 울릉도를 실지 순찰하셨던 분입니다. 이규원 검찰사의 울릉도 조사를 통해 일본인들의 울릉도 불법침입 실태가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그동안 금지되었 던 울릉도로의 주민 이주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규원 검찰사 역사기행도 있었죠? - 이규원 검찰사의 120여 년 전의 행적을 따라 울릉도를 실지 답사하였습니다. 검 찰사 일행이 1882년 음력 4월 30일 지금의 울릉도 학포에 도착하여 순찰하셨는 데, 그 옛길과 활동을 기록한 각석문, 제를 올리셨던 산신당 등 유적지를 답사하 였습니다. 이규원 검찰사는 울릉도 개척에 공이 큰 분이잖아요. 독도에 관한 시민단체들이 함 께 하는 행사에서 이렇게 이규원 검찰사의 역사기행을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울릉도를 알지 못하고는 독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지리적 으로 울릉도와 독도는 분리할 수 없습니다. 울릉도의 역사지리에 대한 이해를 통 하여 독도를 더 잘 알자는 것입니다. - 또한 실지, 이규원의 울릉도 검찰은 일본의 울릉도, 독도 침입에 대한 불법, 부당 성을 확인하는 귀중한 역사적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시민단체 활동가 포럼도 있었는데, 어떤 내용들이 논의됐나요? -(독도 시민단체들이 역사상 처음 만나는 자리인 만큼) 각 단체의 현황이나 활동을 소개하고 또한 독도관련 시민사회단체간 교류협력방안에 대해 정보와 의견을 교 환하는 자리였습니다. 이렇게 독도관련 시민단체들이 함께 모여서 연합행사를 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닐 까 하는데요, 그런 만큼 이번 연합행사에서 얻은 것도 많을 것 같아요? - 역사상 국내 독도관련 주요 시민단체가 거의 모두 참가한 첫 연합행사였습니다. 민관협력 또는 시민단체 상호 간의 협력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독도 대응 방안 수립에 관한 가능성들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 이규원 검찰사의 행적답사와 같은 역사기행을 통해 정치지향적인 독도운동에서 벗어나 독도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8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81 제4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Ⅰ. 행사내용 Ⅱ. 울릉도 지역의 독도 관련 일제 유적지 소개 Ⅲ. 러일전쟁과 일본의 독도 점취 Ⅳ. 조선 침략의 첫 신호탄, 독도 강제 편입 Ⅴ. 인터뷰와 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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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Ⅰ. 행사내용 행사명:2007년 독도 시민단체 연합행사 독도 역사기행 독도의 망루를 찾아라 주 제: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답사 러일전쟁의 격전지였던 독도 근방 유적지를 탐방함으로써 독도가 러일전쟁 중에 일본 에 의해 침탈되었다가 다시 찾은 우리 땅이라는 독도문제의 본질을 재확인하고자 함 일 시:5월 15일부터 5월 18일까지(3박 4일) 장 소:울릉도 및 독도 현지 참가자:독도관련 시민사회단체 대표 및 활동가 등 36명(26개 단체) 행사내용 초청강연 - 최문형 명예교수(한양대):러일전쟁과 일본의 독도침탈 러일전쟁 유적지 탐방 -러일전쟁 중 일본이 건립한 망루터 탐방(울릉도 3곳, 독도 1곳) - 러시아 전함 침몰지역, 울릉도 삼림 보존지역, 일제시대가옥 등 대화와 토론 - 러일전쟁 유적지 인근 현지 울릉도 주민과의 대화 - 기타 독도 시민단체 활동관련 논의 등 독도 현장 체험 - 문어잡이, 해산물 채취 등 독도 주민 생활 체험(KBS) - 독도유적지 답사, 독도자연보호활동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83

84 세부일정 1일차:5월 15일(화) 시 간 탐방 순서 장 소 13:00 14:00 울릉도 입도, 숙소 배정 14:00 15:00 중 식 15:00 17:00 독도박물관 견학 17:00 18:30 도동 망루터 답사 독도전망대 18:30 19:30 초청강연:최문형(한양대 명예교수) 19:30 20:00 석 식 20:00 취 침 2일차:5월 16일(수) 시 간 탐방 순서 장 소 07:00 08:00 기 상 08:00 09:00 조식 및 이동 준비 09:00 10:00 태하리 이동 육상일주 10:00 12:00 태하 망루 답사, 현지 주민과의 대화 12:00 13:00 중 식 13:00 14:00 석포리 이동 14:00 16:00 석포 망루 답사, 현지 주민과의 대화 16:00 17:00 도동리 이동 3일차:5월 17일(목) 시 간 탐방 순서 장 소 07:00 08:00 기 상 08:00 09:00 조식 및 이동준비 09:00 11:00 역사현장답사 (울릉도 삼림) 봉래폭포 11:00 12:00 역사현장답사 (돈스코이 침몰지) 저동 촛대암 12:00 13:30 중 식 13:30 17:00 일제 가옥 견학 이영관씨댁 17:00 18:50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18:50 석식 8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85 4일차:5월 18일(금) 시 간 탐방 순서 장 소 07:00 09:00 기상 및 조식 09:00 12:00 KBS체험 삶의 현장 촬영 도동어촌계 협조 12:00 13:30 중 식 13:30 17:30 독도 견학 17:30 울릉 출발 참가자 명단 순번 소 속 직위 성명 1 독도를 사랑하는 모임 (자연보호중앙연맹) 감사 손용해 2 독도사랑협의회 대표 박정순 3 독도수호국제연대 실장 박창우 4 독도수호대 운영위원 한성민 5 독도어울림 회원 정성광 6 독도의병대 부대장 오윤길 7 독도의병대 총무 윤미경 8 독도향우회 공동대표 김해일 9 발명계 독도개발지원운동본부 본부장 한송본 10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 11 재경독도향우회 회장 조대용 12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 회장 이예균 13 한국시인협회 독도지회 회장 편부경 14 독도연구보전협회 회원 신동철 15 독도의용수비대 동지회 사무차장 김점구 16 전국지리교사연합회 부회장 위상복 17 코리아독도녹색연합 홍보위원 한서정 18 코리아스코프 공동대표 윤한경 (계속)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85

86 순번 소 속 직위 성명 19 흥사단 지도위원 안용식 20 독도간도교육센터 연구원 김태형 21 동북아우의연맹 사무총장 이병만 22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사구국장 양재섭 23 평화통일시민연대 이사 조성용 24 한국수중환경협회 회장 황대영 25 초청강연(한양대) 명예교수 최문형 26 동북아역사재단 팀장 조기철 27 연구위원 홍성근 28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 행사실무 정장호 29 행사실무 조영삼 30 행사실무 정장복 31 업무보조 자료 유재호 32 촬영 안봉호 33 KBS 탤런트 김명국 34 PD 남정민 35 촬영 최장면 36 수중촬영 박근학 합계 36명 8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87 Ⅱ. 울릉도 지역의 독도 관련 일제 유적지 소개 1) 홍성근(동북아역사재단 부연구위원) 1. 독도 관련 일본군 망루 2) 1) 독도 망루 위치:러일전쟁 시 일본군 망루는 현재 독도 경비대 숙소, 등대 자리에 위치 형태:망루대원이 거주하는 막사 외에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형태의 참호 지도 1 러일전쟁 당시 독도 망루, 오쿠하라 헤키운의 죽도 및 울릉도 (1906), 35 36쪽. 1) 이 글의 내용은 오쿠하라 헤키운의 저서(1906) 외에 주로 울릉도/죽변 지역주민들의 증언(2007년 4월) 등을 참조하여 작성된 것이다. 2) 울릉도 지역 등의 일본군 망루는 러일전쟁과 중일전쟁 두 차례에 걸쳐 구축된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 기록 한 대부분 지역주민들의 증언은 중일전쟁 이후 구축된 일본군 망루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중일전쟁 이후 망루의 경우 러일전쟁시 망루에 비해 관련시설이 좀더 확충되고 기계화된 것을 제외하고 러일전쟁에 구축 된 그 위치를 중심으로 구축된 것으로 보인다.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87

88 2) 울릉도 망루 위치:러일전쟁 시 일본군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울릉도 지역 3곳에 남망루, 북망루, 서망루를 건설하고, 적함의 동향을 감시하기에 용이한 해안 절벽의 산 정상 부근에 구축 중일전쟁 이후에 건설된 망루도 러일전쟁 시의 망루 위치를 중심으로 구축된 것으로 보임 형태:하나 또는 수개의 참호를 구축하고,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은폐된 곳에 막사 등 건립 감시초소:1 2m 깊이로 참호를 파고 바다 쪽으로 창을 내어 그 위를 나무와 가지 등으로 덮고 외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은폐 막사:외부로 노출되지 않은 수풀 속에 벽돌 등으로 건축하여 망루 근무자 숙소 및 통신시설 장소로 이용 울릉도 주민들은 망루가 세워졌던 3곳의 산을 모두 보루산 이라고 부름 ( 보루는 망루( 望 樓, 보로)의 일본식 표현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 지도 2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망루, 오쿠하라 헤키운의 죽도 및 울릉도 (1906), 63 64쪽. 8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89 (1) 남망루 (도동 망향봉) 위치:도동의 망향봉 정상(1곳)과 독도 제2전망대 자리(1곳)로 추정 형태:망향봉 정상은 참호 형태이고, 독도 제2전망대에는 대포를 설치했다고 증언 해저케이블:사동 1리 아래구석에서 원산, 마츠에로 각기 연결되는 해저케이블 설치 ( ) 일찍부터 울릉도에 전보가 가능한 우편취급소를 설치 운용 도동에 울릉도우편취급소 개국, 울릉도우편전신취급소 개설 울릉도무선전신국을 개국하여 고정무선통신 실시 사진 1 망향봉 정상에서 본 사동항 사진 2 독도 제2전망대에서 본 도동항 (2) 서망루(태하 등대) 위치:태하등대(1곳), 등대 건너편의 향나무 자생지 표지판 자리(1곳)에 참호 구축, 등대 구역 입구에 무기고(1곳)가 있었다고 증언 주민들이 현재 해군 레이더 위치를 망대 라고 부르는 것을 보아, 그 자리에도 감시 초소 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 형태:1 2m 정도의 깊이에 큰 나무와 가지 등으로 덮어 외부로 노출되지 않은 은폐된 참호 형태로 구축 전화:유선의 이동식 전화기를 사용하여 연락 강제동원근거:일제는 동네주민들로 감시조를 편성하여 근무토록 하고 망루에 이르는 길을 건설하는데 동원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89

90 (3) 북망루(석포 전망대) 위치:삼선암이 내려다 보이는 석포 전망대 자리에 참호를 파고, 그 안쪽 수풀이 우거 진 곳에 막사, 통신시설 등 대규모 시설 건립 사진 3 무기고 자리와 인근 주민 (김두경씨) 사진 4 서망루 자리와 태하등대 형태:참호는 해안절벽에 외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막사는 벽돌로 건축 해방 전에 잔존했다는 붉은 벽돌은 러일전쟁 당시 막사의 일부이고, 현재 회색 벽돌 의 잔류물은 중일전쟁 이후 건립된 것으로 추정(벽돌은 동네주민들이 집수리를 위해 가져가고 밑자리만 남아 있음) 둥근 수레바퀴가 달린 대포가 설치되었다는 증언도 있음 강제동원:중일전쟁 이후 망루 건설시 대다수 동네주민들이 막사 건설에 동원됨 사진 5 석포전망대 앞의 북망루 막사터 사진 6 북망루터에서 본 죽도, 관음도 9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91 (4) 죽변 망루 위치:현재 죽변등대 자리로 추정 죽변등대 마을에 중일전쟁 당시 해군 막사, 육군 감시초소, 신사가 위치 죽변등대는 1910년 11월 건립 형태:은폐된 참호 형태로 추정 강제동원:중일 전쟁시 어업조합을 중심으로 동네주민으로 구성된 감시조를 편성하여 등대마을의 육군 감시초소에서 감시 활동(책임자는 일본군) 사진 7 죽변등대와 죽변 망루터 사진 8 일제의 육군감시 초소 등 위치 2. 기타 일제 유적지 1) 울릉도 삼림 보존지역 울릉도는 일본과 러시아의 삼림벌채지로 유명 현재 봉래폭포 가는 길에 예전의 삼림 형태를 일부 볼 수 있음 2) 드미트리 돈스코이호 침몰지 일본 함대의 공격으로 러시아 해군 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호가 울릉 도 저동앞바다에서 침몰 침몰 잔해는 현재 울릉도 저동 촛대바위 동쪽 약 1마일 앞 해상 수심 약 400m 지점 에 위치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91

92 3) 일제시대 가옥(이영관씨 소유)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문화재청 공고 호) 지금으로부터 년 전 일본인(사까모도)이 건축하고 거주 보와 기둥, 천정은 수백년 이상된 솔송목, 귀목 등으로 만들고, 벽과 바닥도 흙과 다 다미로 만듦(과거 상태로 유지 보존되고 있음) 사진 9 일제시대 가옥 외부 9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93 Ⅲ. 러일전쟁과 일본의 독도 점취 최문형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1. 머리말 독도영유권( 獨 島 領 有 權 )을 둘러싼 한일 양국 간( 韓 日 兩 國 間 )의 논쟁( 論 爭 )은 일본각의( 日 本 閣 議 )의 독도편입의결( 獨 島 編 入 議 決 )의 정당성문제( 正 當 性 問 題 )와 고시절차( 告 示 節 次 )의 합법 성문제( 合 法 性 問 題 )로 집약되고 있다. 일본( 日 本 )은 나까이 요사부로( 中 井 養 三 郞 )가 독도( 獨 島 )에서 어로작업( 漁 撈 作 業 )을 벌인 사실( 事 實 )만을 근거( 根 據 )로 무주지선점( 無 主 地 先 占 ) 이 론( 理 論 )을 적용, 각의( 閣 議 )에서 영토편입( 領 土 編 入 )을 의결( 議 決 )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신 문( 新 聞 )에 게재( 揭 載 )했다는 점을 내세워 병합( 倂 合 )에 필요한 국제법상( 國 際 法 上 )의 모든 요 식절차( 要 式 節 次 )를 밟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 측은 우선 이 섬이 무주지( 無 主 地 )였다는 전제( 前 提 )부터가 잘못이고, 자 기들끼리의 요식절차( 要 式 節 次 )를 거쳤다고 해서 자기네 땅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 反 駁 )하고 있다. 그리고 공개방법( 公 開 方 法 )도 시마네현( 島 根 縣 )의 관내고시( 管 內 告 示 )로 처리 ( 處 理 )했을 뿐, 결코 공개적( 公 開 的 )이 아니었다고 지적( 指 摘 )한다. 이에 대해서는 호리( 堀 和 生 )교수와 가지무라( 梶 村 秀 樹 )교수 등 여러 일본 학자들도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1) 그럼에도 양국( 兩 國 )의 영유권주장( 領 有 權 主 張 )은 이처럼 오늘날까지도 논쟁( 論 爭 )의 한계 ( 限 界 )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끝없이 논쟁( 論 爭 )만을 되풀이하고 있는 실정( 實 情 )이다. 이 런 상황( 狀 況 )에서 시마네대학( 島 根 大 學 ) 나이토 세이츄( 內 藤 正 中 )명예교수( 名 譽 敎 授 )의 죽도 ( 竹 島 )는 일본고유영토( 日 本 固 有 領 土 )인가 ( 世 界 )라는 논문 2) 은 우리의 눈길을 끈다. 1) 梶 村 秀 樹 (1978), 竹 島 = 獨 島 問 題 と 日 本 國 家, 朝 鮮 史 硏 究 182 ; 堀 和 生 (1987), 1905 年 日 本 の 竹 島 編 入, 朝 鮮 史 硏 究 會 論 文 集 第 24 集 쪽. 1877년 당시 일본 최고의 국가기관인 太 政 官 은 울릉도와 독도 가 일본령이 아니라고 공적으로 선언했다. 그리고 고시방법도 일본정부 내에 독도가 한국령일지도 모른다 는 견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한국정부에 조회하기는커녕 통고조차도 한 일이 없다 고 밝히고 있다. 1876년 일본이 小 笠 原 諸 島 를 차지할 때는 미 영과 여러 번 절충, 양해를 얻고 난 뒤에도 구미 12개국에 대해 그 管 治 를 통고했다.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93

94 역사( 歷 史 )의 공유( 共 有 )를 필요로 하는 오늘의 현실( 現 實 )에서 하나의 큰 진전( 進 展 )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의 이 글은 이런 논쟁( 論 爭 )에 동참하기 위한 또 다른 이론제기( 理 論 提 起 )가 아니다. 논쟁( 論 爭 )의 범주( 範 疇 )에서 벗어나 구체적( 具 體 的 )인 역사적( 歷 史 的 ) 사실( 事 實 )을 제시( 提 示 )함으로써 문제( 問 題 )에 접근( 接 近 )하려는 실증적( 實 證 的 ) 시도( 試 圖 )이다. 즉 일본 의 독도편입( 獨 島 編 入 )이 카이로선언( 宣 言 )의 규정( 規 程 )-(일본은 탐욕 과 폭력 으로 탈취한 모든 영토로부터 축출( 逐 出 )되어야 한다)-에 저촉( 抵 觸 )된다는 사실을 구체적 사실( 具 體 的 史 實 )을 통해 입증( 立 證 )한다는 방법( 方 法 )이라 할 수 있다. 러일전쟁은 이들 두 나라가 다 같이 표방하고 있는 자기들의 조국방위전쟁( 祖 國 防 衛 戰 爭 ) 이 결코 아니었다. 전장( 戰 場 )은 러시아의 조국 땅도 아니고 일본의 조국 땅도 아닌 바 로 만주( 滿 洲 )와 한국( 韓 國 )땅이었다. 3) 러일전쟁은 만주와 한국을 쟁탈대상으로 한 명백한 침략전쟁이었다. 따라서 이 전쟁과 관련된 조치는 필연적( 必 然 的 )으로 폭력( 暴 力 ) 과 탐욕 ( 貪 慾 ) 이 수반( 隨 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본의 독도점취( 獨 島 占 取 )가 러일전쟁과 관련( 關 聯 )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많은 연구 자( 硏 究 者 )들이 상식( 常 識 )처럼 언급( 言 及 )하고는 있다. 그러나 정작 각론( 各 論 )으로 들어가 어떤 역사적( 歷 史 的 ) 사실( 事 實 )을 통해 어떻게 관련( 關 聯 )되었는지를 구체적( 具 體 的 )으로 밝 힌 상세( 詳 細 )한 연구( 硏 究 )는 과문( 寡 聞 )한 탓인지는 몰라도 필자( 筆 者 )는 아직 찾아보지 못 했다. 한마디로 말해 시마네현고시( 島 根 縣 告 示 )는 당시 동해( 東 海 )의 긴박( 緊 迫 )했던 정황( 情 況 )과 발틱함대( 艦 隊 )의 동항속도( 東 航 速 度 )에 발맞춘 해군측( 海 軍 側 )의 대비책( 對 備 策 )을 보 조( 補 助 )하기 위한 내각( 內 閣 )의 지원조치( 支 援 措 置 )였다. 이에 필자( 筆 者 )는 울릉도( 鬱 陵 島 )와 독도( 獨 島 )가 동일작전권( 同 一 作 戰 圈 )에 속함을 감안 ( 勘 案 ), 먼저 러시아로부터 울릉도( 鬱 陵 島 ) 사용권( 使 用 權 )을 탈취( 奪 取 )하기 위한 일본외무성 2) 內 藤 正 中 (2005), 竹 島 は 日 本 固 有 領 土 か, 世 界, 61 63쪽, 無 主 地 先 占 理 論 을 적용하여 竹 島 (독도)를 영토편입한 일본이 외무성 홈페이지에 竹 島 는 일본고유의 영토 라고 함으로써 스스로 모순을 드러냈다 고 지적했다. 그러자 일본정부는 島 根 縣 告 示 는 근대국가로서 竹 島 領 有 의사를 재확인한 것 이라고 둘러대고 있다. 그러나 告 示 當 時 일본정부는 나까이의 생업보호를 위해서 라는 명분이외에 다른 어떤 명분도 내세운 사실이 없다. 內 藤 敎 授 는 독도가 일본영토일 수 없다는 연구성과를 무시하고 있는 일본 외무성의 不 勉 强 (공부부족)을 엄중히 꾸짖고 있다. 3) 中 馬 淸 福 (2004), 蹂 躪 された 民 族 だけが 知 る, 環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95 ( 日 本 外 務 省 )의 외교공작( 外 交 工 作 )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독도점취( 獨 島 占 取 )로 이어졌는가를 단계적( 段 階 的 )으로 추적( 追 跡 )해 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일본내각( 日 本 內 閣 )은 발틱함대( 艦 隊 )의 동항속도( 東 航 速 度 )에 발맞춘 해군측( 海 軍 側 )의 단계적( 段 階 的 )인 대응책( 對 應 策 )을 과연 어떤 방법으로 지원했던 것일까. 그리고 이 지원( 支 援 )은 어떤 과정( 過 程 )을 통해 결국 시마네현고시( 島 根 縣 告 示 )로 이어졌을까. 이 문제 를 구명( 究 明 )하는 작업( 作 業 )이 바로 이 논고( 論 考 )의 근간( 根 幹 )이다. 2. 동일작전권( 同 一 作 戰 圈 )으로서의 울릉도와 독도 독도를 자국영토로 편입( 編 入 )한 일본의 시마네현고시( 島 根 縣 告 示 )( )는 그들의 울릉도사용권탈취공작( 鬱 陵 島 使 用 權 奪 取 工 作 )( )과 더불어 러일해전( 露 日 海 戰 )에 대비 ( 對 備 )하기 위한 전략( 戰 略 )의 일환이었다. 그들의 독도점취( 獨 島 占 取 )가 카이로선언( 宣 言 )의 규정( 規 定 )에 저촉( 抵 觸 )된다는 근거( 根 據 )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독도( 獨 島 )는 울릉도( 鬱 陵 島 ) 와 더불어 발틱함대( 艦 隊 )의 동항( 東 航 )에 따른 러일해전의 종결지점( 終 決 地 點 )이었다. 러시아 제2태평양 함대사령관( 第 2 太 平 洋 艦 隊 司 令 官 ) 로제스트벤스키(Rozhdestvensky) 중 장( 中 將 )이 의식( 意 識 )을 잃은 채 포로( 捕 虜 )로 잡힌 곳이 울릉도( 鬱 陵 島 ) 부근( 附 近 )이고, 4) 그 를 대신해서 함대( 艦 隊 )의 지휘권( 指 揮 權 )을 장악( 掌 握 )한 네보가토프(Nebogatov) 소장( 少 將 ) 이 모든 주력잔함( 主 力 殘 艦 )을 이끌고 일본에 투항( 投 降 )한 곳이 바로 독도동남방( 東 南 方 ) 18 마일 지점( 地 點 )이었다. 5) 두 섬은 해전( 海 戰 ) 의 종결지점( 終 決 地 點 )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 실상 전쟁( 戰 爭 ) 의 종결지점( 終 決 地 點 )이었다. 4) 軍 令 部 纂, 明 治 37 8 年 海 戰 史 ( 內 閣 印 刷 局 朝 陽 會 ) 下, 쪽, 362쪽. 5) Denis and Peggy Warner, The Tide at Sunrise:A History of the Russo-Japanese War; 妹 尾 作 太 郞 三 谷 庸 雄 譯, 日 露 戰 爭 全 史, 時 事 通 信 社, 昭 和 54 年 3 月, 쪽 ; Mitchell(1974), A History of Russian and Soviet Sea Power New York:Macmillan, pp ; War Department, Epitome of the Russo-Japanese War(Washington,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07) p.16.; 1905년 5월 30일(화요일)자 더 타임즈 는 일본연합함대의 주력은 27일 이래로 작전을 계속했다. 28일에는 니콜라스(Nicholas) 1세, 오 렐(Orel), 세니아빈(Seniavin), 아프록신(Aproxin), 그리고 이즈무르드(Izmurd) 등으로 구성된 러시아 함대에 대해 리앙쿠르 岩 礁 에서 공격했다 고 보도했다. 그렇지만 네보가토프의 항복지점이 독도 남방 8마일이라는 설도 있다.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95

96 그러나 이것은 결코 우연( 偶 然 )이 아니었다. 일본 해군의 치밀한 작전계획( 作 戰 計 劃 )의 결과( 結 果 )였다. 울릉도( 鬱 陵 島 )와 독도( 獨 島 )는 동일작전권( 同 一 作 戰 圈 )에 속( 屬 )했다. 독도 ( 獨 島 )는 울릉도( 鬱 陵 島 )에서 92km에 불과한 가시거리( 可 視 距 離 )에 위치하여 6) 필자( 筆 者 )도 맑은 날 오후에 성인봉( 聖 人 峰 )에 올라가 육안( 肉 眼 )으로도 독도( 獨 島 )를 본 사실이 있다. 두 섬이 동일작전권( 同 一 作 戰 圈 )에 속한다는 뚜렷한 근거가 아닐 수 없다. 대마도전투( 對 馬 島 戰 鬪 )( )가 끝나자, 도고 헤이하찌로( 東 卿 平 八 郞 ) 제독( 提 督 )이 현 장정리( 現 場 整 理 )를 위한 일부 병력만을 남기고, 전함선( 全 艦 船 )을 이튿날 새벽 5시까지 울 릉도( 鬱 陵 島 )로 집결시킨 것도 이 사실을 전제( 前 提 )로 한 조치( 措 置 )였다. 7) 그리고 이 조치 ( 措 置 )의 정확성( 正 確 性 )은 이튿날 새벽 5시 20분경 곧바로 현실( 現 實 )로 실증( 實 證 )되었다. 독도근해( 獨 島 近 海 )에서 러시아 함선( 艦 船 )이 내뿜는 연기( 煙 氣 )를 발견하고 즉각 그곳으 로 출동( 出 動 )한 일본군( 日 本 軍 )이 네보가토프 휘하( 麾 下 )의 전함정( 全 艦 艇 )을 포위( 包 圍 ), 투 항( 投 降 )케 했던 것이다. 이는 독도( 獨 島 )가 울릉도( 鬱 陵 島 )와 더불어 러일전쟁 수행( 遂 行 )을 위한 전략기지( 戰 略 基 地 )로 이용되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실증( 實 證 )이다. 3. 일본 외교진의 울릉도 탈취공작 일본의 울릉도사용권 탈취공작( 奪 取 工 作 )은 1904년 5월 15일 전후의 돌연( 突 然 )한 해군의 전력상실( 戰 力 喪 失 )에 따른 대응조치( 對 應 措 置 )였다. 일본의 여순함대( 旅 順 艦 隊 )가 한 달 전 부터 똑같은 방법( 方 法 )으로 봉쇄작전( 封 鎖 作 戰 )을 벌이자 이에 착안( 着 眼 )한 아무르호( 號 ) 함장( 艦 長 ) 이바노프(Nicolai A. Ivanov)대령( 大 領 )이 그들의 통로( 通 路 )에 어뢰( 魚 雷 )를 설치함 으로써 8) 일본해군은 최신예전함( 最 新 銳 戰 艦 ) 하쯔세( 初 瀨, 15,000t)와 야지마( 八 島, 12,500t)를 동시에 잃었다. 6) 內 藤 正 中 (2005), 앞의 논문 57쪽. 世 宗 實 錄 地 理 志 (1432)의 蔚 珍 縣 條 를 인용하고 있다. 堀 和 生 (1987), 앞의 논문, 99쪽. 7) 軍 令 部 纂, 앞의 책, 326쪽 ; Naganari Ogasawara, Life of Admiral Togo, trans. by Jukich Inoue and Tojo Inoue( 東 京 ), 357쪽. 8) Penis and Peggy Warner(년도), p.176. 일본 함정이 격침된 5월 15일은 너무나 공교롭게도 금일한 으로 이 전법(1개월간이나 계속된 똑 같은 전법)을 끝낸다는 도고의 재가가 났던 바로 그 날이었다. 9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97 뿐만 아니라 이보다 7시간 전에는 농무( 濃 霧 )로 인해 순양함( 巡 洋 艦 ) 요시노( 吉 野 )와 가스 가( 春 日 )가 충돌하고, 다시 포함( 砲 艦 ) 오오시마( 大 島 )와 아카쯔키( 赤 城 )마저 사고를 일으켰다. 즉 6척의 보유전함( 保 有 戰 艦 ) 중 2척을 포함하여 해군전력( 海 軍 戰 力 )의 3분의1(총 34,325t)을 며칠 새에 한꺼번에 잃었던 것이다. 9) 이 사태( 事 態 )에 대해 데라우치 마사타케( 寺 內 正 毅 )는 5월 18일자 자신의 일기( 日 記 )를 통 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오후 3시 30분부터 대본영회의( 大 本 營 會 議 )가 열렸다. 지 난 15일 여순만( 旅 順 灣 ) 참사( 慘 事 )에 대한 해군측( 海 軍 側 )의 보고( 報 告 )를 들었다. 개전이래 ( 開 戰 以 來 ) 이 같은 불행( 不 幸 )에 조우( 遭 遇 )한 일은 없다. 바라건대 이 같은 불행이 재래( 再 來 )하지 않기를 빈다 고 했다. 10) 사태의 심각성을 한 마디로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그들로서는 상실전력( 喪 失 戰 力 )의 보충( 補 充 )이 무엇보다도 시급( 時 急 )했다. 그러 나 그 보충방법( 補 充 方 法 )은 시간적( 時 間 的 )으로 기지확보( 基 地 確 保 )와 망루건설( 望 樓 建 設 ) 이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여기서 러시아의 동해종단( 東 海 縱 斷 )을 차단( 遮 斷 )할 수 있는 전 략기지( 戰 略 基 地 )로서 울릉도( 鬱 陵 島 )와 독도( 獨 島 ) 사용( 使 用 )이 절실해졌던 것이다. 11) 그리 고 우선 울릉도사용문제( 鬱 陵 島 使 用 問 題 )를 일본은 당시 자국 육군( 陸 軍 )의 만주( 滿 洲 )로의 북진( 北 進 )에 앞서 러시아가 가지고 있던 압록강삼림채벌권( 鴨 綠 江 森 林 採 伐 權 ) 12) 을 접수( 接 收 )하려는 하야시 곤스케( 林 權 助 ) 주한공사( 駐 韓 公 使 )의 외교공작( 外 交 工 作 )에 끼워 넣음으로 써 해결( 解 決 )의 실마리를 찾았던 것이다. 이는 일본의 주한공사( 駐 韓 公 使 )와 외상( 外 相 )이 주고받은 보고( 報 告 )와 훈령( 訓 令 )으로 분 9) Penis and Peggy Warner, 앞의 책, pp ; War Department, Epitome of The Russo-Japanese War(Washington,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07) pp 일본정부가 5월 15일 사건을 계속 비 밀로 붙였다가 약 1년 뒤에야 공표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그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10) 山 本 四 郞 編 (1900), 寺 內 正 毅 日 記, , 京 都 女 子 大 學, 쪽. 11) 海 軍 勳 功 表 彰 會 纂 (1907), 日 露 海 戰 記, 全 쪽 ; V. M. Vonliarliarsky, Why Russia Went to War with Japan Fortnight[y Review DⅩⅫ. 러시아는 울릉도의 가치를 목재에만 두고 있었지만 1900년 3월 그들의 마산포 점거 기도 이후 이 섬이 마산포에 이르는 중간거점으로서의 전략적 가치가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 Foreign Office Correspondece(이하 F.O.로 약함) ) F.O ; David Crist(1942), Russia s Far Eastern Policy in Making, Journal of Modern History, Vol. ⅩⅣ, No.2 pp 러시아는 아관파천기인 1896년 8월 22일 주한 외교진을 동원, 한 민간인인 브린너를 내세워 이완용 조병식 등 한국정부 당국과 동 지역 임차계약서를 체결케 했다. 그리고 이튿날 폴리아노프스키(Polianovsky) 부영사가 이에 확인서명했다. 동 계약 제16조는 브린너에게 자신의 권리를 누 구에게든 마음대로 양도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는 러시아 정부가 재량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한 조치였다.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97

98 명( 分 明 )하게 입증( 立 證 )된다. 즉 하야시 공사의 5월13일자 보고( 報 告 )에 의하면 어제(5.12) 한국외상( 韓 國 外 相 ) 이하영( 李 夏 永 )에 대해 러시아와 기왕( 旣 往 )에 맺은 모든 조약( 條 約 )을 폐 기( 廢 棄 )하라고 강압( 强 壓 )함으로써 동의( 同 意 )를 얻어냈고, 이 사실( 事 實 )을 5월 18일부 한 국의 관보호외( 官 報 號 外 )에 칙선서형식( 勅 宣 誓 形 式 )으로 발표하기로 했다 는 내용이었다. 13) 이는 외상( 外 相 )의 5월 9일부 훈령을 차질없이 이행했다는 보고였다. 하야시 공사에게 하달( 下 達 )한 외상의 5월 9일부 훈령( 訓 令 )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러한양국 간( 露 韓 兩 國 間 )에 성립된 일체의 조약 및 약속( 約 束 )을 폐기( 廢 棄 )해둬야 하 고, 두만강( 豆 滿 江 ) 압록강안( 鴨 綠 江 岸 ) 삼림채벌권( 森 林 採 伐 權 )은 본래 개인( 個 人 )에게 허여( 許 與 )한 것인데 이를 러시아 정부가 자의( 恣 意 )로 경영, 불법행동( 不 法 行 動 )을 자 행( 恣 行 )했기 때문에 마땅히 폐기( 廢 棄 )해야 한다. 그리고 러국( 露 國 )이 해륙( 海 陸 )에서 공히 대패( 大 敗 )한 지금이 바로 실행에 옮길 적기( 適 期 )이다. 14) 그러나 정작 5월 18일자로 발표된 관보호외( 官 報 號 外 )의 내용( 內 容 )은 위의 고무라( 小 村 ) 외상( 外 相 )의 5월 9일자 훈령( 訓 令 )에서도, 하야시 공사( 公 使 )의 5월 13일자 임무완료보고( 任 務 完 了 報 告 )에서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조항이 난데없이 추가되어 있었다. 울 릉도삼림채벌권( 鬱 陵 島 森 林 採 伐 權 ) 폐기문제( 廢 棄 問 題 )가 바로 그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폐기이유( 廢 棄 理 由 )도 러시아의 불법행위( 不 法 行 爲 ) 때문 이 아니라 침점적행위( 侵 占 的 行 爲 ) 의 자행( 恣 行 ) 때문 이라고 그 표현이 한 단계 더 강경해져 있었다. 15) 따라서 그 원인이 13일 이후 18일 이전 며칠 동안의 상황변화( 狀 況 變 化 )에 있었음은 재론 ( 再 論 )의 여지( 餘 地 )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변화( 狀 況 變 化 )란 다름 아닌 5월 15일 전 후( 前 後 ) 일본( 日 本 )의 치명적( 致 命 的 ) 전력상실( 戰 力 喪 失 ) 바로 그것이었다. 16) 이후 그들은 재빨리 한국 동해안의 죽변( 竹 邊 )과 울릉도( 鬱 陵 島 )에 망루( 望 樓 )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8월 과 9월에 각각 완공했다. 17) 이어 독도에 망루설치( 望 樓 設 置 )를 위한 조사작업( 調 査 作 業 )에 13) 日 本 外 交 文 書 第 37 卷 第 1 冊 文 書 番 號 (이하 日 外, 37-1 no.로 약함) 435. no.436. no.444. no ) 日 外, 37-1, p ) 日 外, 37-1, no.450 no ) Denis and Peggy Warner, pp ) 堀 和 生 (1987), 앞의 논문, p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99 착수( 着 手 )하라는 군령부( 軍 令 部 )의 명령( 命 令 )에 따라 군함( 軍 艦 ) 니이다까 호( 新 高 號 )가 울 릉도( 鬱 陵 島 )를 출발했고(9. 24), 18) 정부당국( 政 府 當 局 )은 5일 뒤인 9월 29일 나까이로 하여 금 독도편입원( 獨 島 編 入 願 ) 을 제출( 提 出 )케 했다. 4. 발틱함대( 艦 隊 )의 내항속도( 來 航 速 度 )에 발맞춘 일본해군의 대응과 내각의 지원 그렇지만 일본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은 이 같은 울릉도사용권탈취( 鬱 陵 島 使 用 權 奪 取 )만으 로 해결( 解 決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발틱함대( 艦 隊 )의 내도( 來 到 )에 대응( 對 備 )하는 문 제도 물론 절박( 切 迫 )했지만, 잇센(Issen)제독( 提 督 ) 휘하( 麾 下 ) 러시아 블라디보스톡함대( 艦 隊 )의 신예함( 新 銳 艦 )(Rossya, Gromboy, Ryurik)이 대한해협( 大 韓 海 峽 )으로 출동하여(6.12) 한 반도와 일본 사이의 교통로를 차단( 遮 斷 )하려 들었기 때문에 당장이 더 다급했다. 만일 교 통로( 交 通 路 )가 차단( 遮 斷 )된다면 만주( 滿 洲 )로 파견( 派 遣 )된 일본군( 日 本 軍 )은 완전고립( 完 全 孤 立 )을 면할 길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차르가 노렸던 것은 바로 이 같은 출정일본군( 出 征 日 本 軍 )의 고립( 孤 立 )이었다. 19) 따라서 일본은 대륙( 大 陸 )으로 파견( 派 遣 )된 자국군대( 自 國 軍 隊 )의 안전( 安 全 )을 위해서도 대한해협( 大 韓 海 峽 )의 제해권확보( 制 海 權 確 保 )가 무엇보다도 가장 절실( 切 實 )했다. 물론 일본 은 러시아 여순함대( 旅 順 艦 隊 )와 블라디보스톡함대( 艦 隊 )의 합류기도( 合 流 企 圖 )가 실패( 失 敗 ) 한 6월 23일 이후, 황해( 黃 海 )의 제해권( 制 海 權 )만은 분명하게 장악했다. 그러나 동해상( 東 海 上 )에서의 불안( 不 安 )은 전혀 개선( 改 善 )시키지 못한 그대로였다. 실제로 16일에는 무기( 武 器 )를 가득 싣고 여순( 旅 順 )으로 향하던 히다치마루( 常 陸 丸, 6.175t)가 그롬보이 에게 격침( 擊 沈 )당함으로써 여순함락( 旅 順 陷 落 )이 2개월 간이나 늦어졌 18) 內 藤 正 中 (2005), 앞의 논문, p. 60 ; 堀 和 生 (1987), 앞의 논문, p 호리교수는 軍 艦 對 馬 戰 時 日 誌 ( 防 衛 廳 戰 史 部 所 藏 )을 인용, 군령부는 1904년 11월 13일 군함 對 馬 에 대해 리양코 島 에 電 信 所 設 置 可 能 與 否 를 調 査 하라고 명했고, 이에 따라 같은 달 20일 독도에 도착, 조사에 착수했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겨울철에는 공사를 할 수 없어 실제로는 착공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틱함대와 결전을 치뤘다는 것이다. 愼 鏞 廈 (2003), 韓 國 과 日 本 의 獨 島 領 有 權 論 爭, 漢 陽 大 出 版 部, 쪽. 19) Denis and Peggy Warner, p.323.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99

100 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탑승( 搭 乘 )했던 고노에( 近 衛 ) 후비연대( 後 備 聯 隊 ) 1,095명이 희생( 犧 牲 )되는 비상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사도마루( 佐 渡 丸, 6.226t)가 로시아 에게, 이 보다 조금 앞서 이즈미마루( 和 泉 丸, 3,229t) 가 그롬보이 에게 격침당했다. 20) 더욱이 연대장( 聯 隊 長 )이 연대기( 聯 隊 旗 )를 소각( 燒 却 )하 고 자결( 自 決 )한 사실이 보도( 報 道 )되자 여론( 輿 論 )은 마침내 극한점( 極 限 点 )에 달했다. 블라 디보스톡함대( 艦 隊 )의 봉쇄임무( 封 鎖 任 務 )를 맡은 가미무라( 上 村 ) 중장( 中 將 )에게 책임( 責 任 ) 이 돌려져 그를 국적( 國 賊 ) 러탐( 露 探 )(러시아 스파이) 이라고 규탄( 糾 彈 )하는 사태까지 벌 어졌던 것이다. 21) 그렇다고 해서 동해상( 東 海 上 )의 위급사태( 危 急 事 態 )를 해소( 解 消 )하기 위해 여순함대( 旅 順 艦 隊 )에서 함선( 艦 船 )을 뽑아 동해병력( 東 海 兵 力 )을 증강( 增 强 )시킬 수도 없는 처지였다. 이 방법( 方 法 )은 육군( 陸 軍 )이 여순( 旅 順 )을 함락( 陷 落 )하기 전까지는 엄두도 낼 수 없었기 때문 이다. 대본영( 大 本 營 )에 보낸 도고( 東 卿 )제독( 提 督 )의 7월 11일자 여순공략촉진전청( 旅 順 攻 略 促 進 電 請 )은 이 점을 분명히 대변( 代 辯 )해주고 있다. 전국( 戰 局 )(동해상)은 실로 우려치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발틱함대( 艦 隊 )의 동항 ( 東 航 )에 대비할 필요가 절박( 切 迫 )한 처지다. 우리 전략( 戰 略 )의 최대급무( 最 大 急 務 )는 하루 빨리 여순( 旅 順 )을 공략하는 길밖에 없다. 따라서 이의 촉진( 促 進 )을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을 요청한다. 22) 그러나 불안( 不 安 )은 7월 하순( 下 旬 )으로 접어들며 더욱 고조( 高 調 )되었다. 다까시마마루 ( 高 島 丸 )를 비롯한 많은 선박( 船 舶 )이 격침( 擊 沈 ) 당했을 뿐만 아니라 7월 20일에서 30일 사 이에는 러시아함선( 艦 船 )이 쯔가루( 津 輕 ) 해협( 海 峽 )을 두 번이나 넘나들며 동경만( 東 京 灣 ) 근처까지 위협했다. 따라서 일본은 여순( 旅 順 )을 함락하지 못한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부 득불 주력중순양함( 主 力 重 巡 洋 艦 ) 6척 중에서 4척(야구모 八 雲, 아사마 淺 間 등)을 뽑아 대한해 협( 大 韓 海 峽 )에 배치( 配 置 )할 수밖에 없었다. 23) 20) Denis and Peggy Warner, pp ; 伊 藤 正 德 (1956), 大 海 軍 を 想 う, 文 藝 春 秋 社, 196쪽. 21) 軍 令 部 纂, 앞의 책, 50쪽. 22) 內 藤 正 中 (2005), 앞의 논문, 200쪽. 10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01 물론 8월 8일 일본( 日 本 ) 육해군( 陸 海 軍 )의 여순연합공략( 旅 順 聯 合 攻 略 )이 시작되어 8월 10일 황해해전( 黃 海 海 戰 )에서의 승리( 勝 利 )가 확연( 確 然 )해지고, 8월 14일의 울산해전( 蔚 山 海 戰 )으로 잇센제독( 提 督 ) 휘하의 블라디보스톡함대( 艦 隊 )의 기세( 氣 勢 )도 크게 꺾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이것이 오히려 차르로 하여금 복수( 復 讐 )를 결심( 決 心 )케 함으로써 대해군회의( 大 海 軍 會 議 )(8.30)를 열어 발틱함대( 艦 隊 )의 동파( 東 派 )를 확정( 確 定 )짓는 결정적( 決 定 的 ) 계기 ( 契 機 )가 되었음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24) 그리고 9월 13일에는 마침내 그 일진( 一 陣 )이 크론슈타트를 출항( 出 港 )했다는 소문( 所 聞 ) 마저 나돌아 동해( 東 海 )의 정황( 情 況 )은 오히려 악화일로( 惡 化 一 路 )였다. 25) 더욱이 9월 23일 블라디보스톡함대( 艦 隊 )가 수리( 修 理 )를 완료( 完 了 )했다 는 이쥬잉 고로( 伊 集 院 五 郞 ) 군령부 차장( 軍 令 部 次 長 )의 발표( 發 表 )가 있었고 이 함대( 艦 隊 )가 21일에 이미 항구( 港 口 )를 떠나 동 해로 들어왔다 는 24일의 풍문( 風 聞 )은 동해( 東 海 )의 불안( 不 安 )을 더욱 가중( 加 重 )시켰다. 26) 이런 일련( 一 連 )의 사태( 事 態 )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군령부( 軍 令 部 )의 명령( 命 令 )에 따라 군함( 軍 艦 ) 니이다까 호로 하여금 독도망루( 獨 島 望 樓 ) 설치조사( 設 置 調 査 )를 위해 9월 24일 독도로 출발( 出 發 )케 했고, 27) 일본정부 당국은 나까이 요사부로( 中 井 養 三 郞 )로 하여금 리양코도( 島 ) 영토편입( 領 土 編 入 ) 및 대하원( 貸 下 願 ) 을 제출케 했던 것이다. 독도망루설치 ( 獨 島 望 樓 設 置 )가 군부( 軍 部 )의 조치( 措 置 )였다면 편입원( 編 入 願 ) 을 제출( 提 出 )케 하는 공작( 工 作 )은 정부( 政 府 )의 몫이었다. 일본정부가 나까이 요사부로의 이른바 리양코도( 島 ) 영토편입( 領 土 編 入 ) 및 대하원( 貸 下 願 ) 을 접수한 1904년 9월 29일이라는 시점은 바로 이 같은 초비상시( 超 非 常 時 )였다. 당시의 일본은 울릉도조치( 鬱 陵 島 措 置 ) 이후 동해의 위급상황( 危 急 狀 況 )을 4개월 간 이상이나 끌면 서도 해소( 解 消 )하지 못한 상태로 발틱함대( 艦 隊 )에 대적( 對 敵 )해야만 했던 다급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들로서는 그야말로 국가존망( 國 家 存 亡 )이 달린 피가 마르는 시기였다. 이 지경에서 나 23) 內 藤 正 中 (2005), 앞의 논문, 195쪽. 24) 海 軍 勳 功 表 彰 會 (1907), 日 露 海 戰 記, 全, 444쪽 ; 丸 山 正 彦 赤 掘 又 二 郞, 日 露 戰 史 後 編, 274쪽. 25) 丸 山, 앞의 책, 374쪽. 26) 內 藤 正 中 (2005), 앞의 논문, 197쪽. 27) 愼 鏞 廈 (2003), 앞의 책, 169쪽.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101

102 까이라는 어민( 漁 民 ) 한 사람의 생업( 生 業 ), 그것도 그의 장차( 將 次 )의 생업( 生 業 )을 위해 영 토편입원( 領 土 編 入 願 ) 을 접수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양두구육( 羊 頭 狗 肉 )을 방불케 하는 이야 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초비상사태( 超 非 常 事 態 )에서는 동해상( 東 海 上 )의 해운중단( 海 運 中 斷 ) 이나 어업전면휴지문제( 漁 業 全 面 休 止 問 題 ) 따위는 고려( 考 慮 )의 대상( 對 象 )도 될 수 없었던 것이다. 28) 따라서 나까이의 영토편입원( 領 土 編 入 願 ) 제출( 提 出 ) 자체도 전적( 全 的 )으로 정부당국( 政 府 當 局 )의 사주( 使 嗾 )에 따른 것일 수밖에 없었다. 29) 나까이는 처음 영토편입원( 領 土 編 入 願 ) 을 내무성( 內 務 省 )에 제출( 提 出 )했다. 그러나 내무성( 內 務 省 ) 지방국장( 地 方 局 長 )은 접수( 接 受 ) 를 거부( 拒 否 )했다. 한국영지( 韓 國 領 地 )라는 의문( 疑 問 )이 드는 황막( 荒 漠 )한 일개 불모의 암 초( 暗 礁 )를 얻고, 환시( 環 視 )하는 여러 외국에게 우리가 한국병탄야심( 韓 國 倂 呑 野 心 )이 있다 는 의심( 疑 心 )을 갖게 하기 때문 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30) 그러자 나까이는 외무성정무국장( 外 務 省 政 務 局 長 ) 야마자 엔지로( 山 座 圓 二 郞 )를 찾아갔다. 독도가 무주지( 無 主 地 )로 돌변처리( 突 變 處 理 )된 곳은 바로 이 곳에서였다. 야마자는 시국( 時 局 )은 그 영토편입( 領 土 編 入 )을 급무( 急 務 )로 한다. 며 외교상( 外 交 上 )으로도 문제 될 것이 없 고, 내무성( 內 務 省 ) 같은 걱정은 있을 수 없다며, 농상무성( 農 商 務 省 ) 수산국장( 水 産 局 長 ) 마 끼보꾸 싱( 牧 朴 眞 ), 해운성( 海 軍 省 ) 수로국장( 水 路 局 長 ) 기모쯔께 가네유키( 肝 付 兼 行 ) 등과 협 의해 나갔다. 그런 뒤에 나까이에게 내무 외무 농상무 3대신에게 리양코도( 島 )편입( 編 入 ) 및 대하원 ( 貸 下 願 ) 을 제출케 했다. 31) 따라서 나까이가 자신의 독자적( 獨 自 的 )인 판단( 判 斷 )에 따라 편 입원( 編 入 願 ) 을 제출한 것이 아님은 재론할 여지도 없는 것이다. 이는 러시아가 아관파천 기( 俄 館 播 遷 期 )를 이용, 압록강삼림채벌권( 鴨 綠 江 森 林 採 伐 權 )을 획득( 獲 得 )하며 영 일의 의혹 을 피하기 위해 브린너(Y.I. Brynner)라는 상인( 商 人 )을 내세웠던 경우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28) Denis and Peggy Warner, p.324 ; 伊 藤, 위의 책, p ) 堀 和 生 (1987), 앞의 논문, 118쪽. 호리교수는 나까이의 편입원 제출이 내무 외무 농상무 3국장의 指 示 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30) 崔 文 衡 (2004), 日 露 戰 爭 の 世 界 史, 藤 原 書 店, 233쪽. 31) 內 藤 正 中 (2005), 앞의 논문, 60쪽. 10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03 여기서 해군성의 기모쯔께 가네유키 수로국장은 기모쯔께장군( 將 軍 ) 단정( 斷 定 )에 따라 이 섬이 전적으로 무소속( 無 所 屬 )임을 확인했다 고 했다. 나까이가 전년부터 리양코도( 島 ) 에서 물개잡이를 시작한 사실이 있는 이상은 이라며 무주지선점이론( 無 主 地 先 占 理 論 ) 을 적용하여 영토편입( 領 土 編 入 ) 을 제안했던 것이다. 32) 더욱이 당시 외무성( 外 務 省 ) 정무국장( 政 務 局 長 ) 야마자 엔지로의 나까이의 영토편입원제 출( 領 土 編 入 願 提 出 )에 즈음하여 라는 언급은 일본정부의 진의( 眞 意 )가 어민( 漁 民 ) 한 사람의 생업( 生 業 )때문이 아니었음을 명료( 明 瞭 )하게 입증( 立 證 )해 주고 있다. 시국( 時 局 )은 그 영토편입( 領 土 編 入 )을 급요( 急 要 )로 하는 바 (여기에) 망루( 望 樓 ) 를 건축( 建 築 )하고 무선( 無 線 ) 또는 해저전신( 海 底 電 信 )을 설치( 設 置 )하면 적함감시상 ( 敵 艦 監 視 上 ) 극히 필요하기 때문에 라며 그 접수이유가 바로 발틱함대( 艦 隊 )에 대비 하는 데 있었음을 증언해주고 있는 것이다. 33) 물론 일본은 당시 울릉도에 이어 독도까지 일거( 一 擧 )에 무력점령( 武 力 占 領 )할 수도 있었 다. 그러나 당시의 시점에서 그들은 영토편입원( 領 土 編 入 願 ) 접수이상( 接 受 以 上 )의 조치( 措 置 )는 사실상 필요치 않았다. 발틱함대( 艦 隊 )의 내도( 來 到 )를 앞두고 쓸데없는 전력낭비( 戰 力 浪 費 )를 피해야 하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시간적으로 아직은 편입( 編 入 ) 이 그리 절실( 切 實 )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본정부는 지난 해 9월 29일에 이미 접수( 接 受 )해둔 나까이의 독도편입원( 獨 島 編 入 願 ) 을 끄집어내어 발틱함대( 艦 隊 )의 일본으로의 항행속도( 航 行 速 度 )에 맞추어 처리수속( 處 理 手 續 )을 밟으면 되는 것이었다. 34) 당시는 이른바 203고지( 高 地 )-여순항( 旅 順 港 )에 직접( 直 接 ) 포격( 砲 擊 )을 가할 수 있는- 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양군( 兩 軍 )이 처절( 悽 絶 )한 쟁탈전( 爭 奪 戰 )을 반복( 反 復 )하고 있던 시 기( 時 期 )였다. 따라서 일본으로서는 발틱함대( 艦 隊 )가 여순( 旅 順 )으로 향하게 될지, 아니면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할지를 가늠할 길이 없어 병력( 兵 力 )을 두 방향( 方 向 )으로 분산배치( 分 散 配 置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35) 이에 접수해 둔 나까이의 독도편입원( 獨 島 編 入 願 ) 은 일 32) 內 藤 正 中 (2005), 앞의 논문, 60쪽. 33) 愼 鏞 廈 (2003), 앞의 책, 174쪽 ; 崔 文 衡 (1935), 발틱 艦 隊 의 來 到 와 日 本 의 獨 島 倂 合, 獨 島 硏 究, 韓 國 近 代 史 資 料 硏 究 協 議 會, 388쪽. 34) 崔 文 衡 (1985), 앞의 논문, 234쪽.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103

104 본이 이 고지( 高 地 )의 점령( 占 領 )(12.6) 36) 에 이어 여순( 旅 順 )을 점령( 占 領 )함으로써 발틱함대 ( 艦 隊 )의 진로( 進 路 )가 블라디보스톡으로 확정( 確 定 )되기 전까지는 실천( 實 踐 )에 옮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실로 1905년 1월 1일 일본육군( 日 本 陸 軍 )의 여순점령( 旅 順 占 領 )은 발틱함대( 艦 隊 )에 대비 ( 對 備 )한 구체적( 具 體 的 ) 대전준비( 對 戰 準 備 )를 본격추진( 本 格 推 進 )할 수 있는 그야말로 확실 한 계기였다. 37) 마찬가지로 독도점취( 占 取 )를 실천( 實 踐 )에 옮길 수 있는 결정적( 決 定 的 ) 계 기( 契 機 )이기도 했다. 이에 반해 러시아의 로졔스트벤스키에게는 그야말로 절망( 絶 望 )의 시 작( 始 作 )이었다. 제2태평양함대( 艦 隊 )를 이끌고 10월 15일 리바우(Libau)를 떠나 희망봉( 希 望 峰 )을 돌아 간신히 마다가스카르의 노시베(Nosi-Be)항( 港 )에 도착하기는 했지만(12.29) 여기 서 다시 불리한 소식을 연이어 접했기 때문이다. 38) 여순점령( 旅 順 占 領 )으로 일본은 우선 방위부담( 防 衛 負 擔 )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뿐만 아 니라 새로 편성( 編 成 )하게 된 제2태평양함대( 艦 隊 )와 합류( 合 流 )한 후에 전장( 戰 場 )으로 향 하라 는 러시아정부의 훈령( 訓 令 )은 결과적으로 일본에게 대전준비( 對 戰 準 備 )를 갖출 수 있 는 충분한 시간적( 時 間 的 ) 여유( 餘 裕 )마저 다시 주게 되었다. 따라서 로졔스트벤스키함대( 艦 隊 )는 적도( 赤 道 )의 뜨거운 태양열( 太 陽 熱 )이 내려 쪼이는 철갑선( 鐵 甲 船 ) 위에서 3월 17일까 지 근 3개월간이나 발이 묶였고, 설상가상( 雪 上 加 霜 )으로 여기서 피의 일요일 ( )이라 는 혁명 소식까지 접함으로써 장병들의 사기( 士 氣 )가 그야말로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39) 발틱함대( 艦 隊 )와의 구체적( 具 體 的 )인 대전준비( 對 戰 準 備 )를 위한 일본 해군( 海 軍 )과 내각 ( 內 閣 )의 움직임이 활기( 活 氣 )를 띠는 것은 바로 이 무렵부터였다. 도고도 이도( 伊 東 ) 군령부 35) 谷 壽 夫 (1966), 機 密 日 露 戰 史, 原 書 房, 221쪽. 36) Warner, 위의 책, p.480. 당시 발틱 함대는 케이프 타운에 이르기에 바로 앞서 독일령 앙그라 베케나 해안에 서 석탄을 보급받고 있었다. 여기서 로제스트벤스키는 일본군이 203고지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독일 총독으 로부터 얻어 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그의 함대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37) Mitchell, 위의 책, p.242.; 軍 令 部, 위의 책, p ) Official History(Naval and Military) of Russo-Japanese War(London, Publishing by His Majesty s Stationary Office,1920) p.733. 로제트벤스키는 제3태평양 함대를 기다릴 것 없이 노시베를 출발 계속 항 행하도록 피터즈부르그에 허가를 요청했으나 스쿠루이드로프(Skuruidlov)제독으로부터 거절되었다. 39) Warner, 위의 책, pp 러시아군은 식품 음료수 부족과 사기( 士 氣 ) 저하로 기강이 무너진 상태 였다. 艦 艇 의 機 關 故 障 에 더하여 혹독한 더위와 전염병으로 병사자( 病 死 者 )가 속출하고 사병들의 자살사태 까지 속출했다. 10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05 장( 軍 令 部 長 )의 지시에 따라 12월 30일에서 이듬해(1905) 2월 6일까지 약 5주간에 걸쳐 동 경에 체류( 滯 留 )하며 해군수뇌( 海 軍 首 腦 )와 작전( 作 戰 )을 협의( 協 議 )했다. 국가( 國 家 )의 운명( 運 命 )이 걸린 발틱함대( 艦 隊 )와의 일대결전( 一 大 決 戰 )을 바로 앞둔 시점 ( 時 點 )에서 이 작전( 作 戰 )을 직접( 直 接 )수행하게 될 해군 측의 발언권( 發 言 權 )이 가장 강력( 强 力 )했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각( 內 閣 )에 의한 독도편입조치( 編 入 措 置 ) 를 비롯한 러시아와의 대전( 對 戰 )을 위한 모든 구체적( 具 體 的 ) 작전계획( 作 戰 計 劃 )도 정확하게 도고의 동경체류기간( 東 京 滯 留 期 間 )에 처리되었다. 40) 여순함락( 旅 順 陷 落 ) 10일 만에 내무대신( 內 務 大 臣 ) 요시가와 아끼마사( 芳 川 顯 正 )는 내각총리 대신( 內 閣 總 理 大 臣 ) 가쯔라 다로( 桂 太 郞 )에게 이른바 무인도소속( 無 人 島 所 屬 )에 관한 건( 件 ) 이 라는 비밀공문( 秘 密 公 文 )(73비을( 秘 乙 ) 제337의1) 41) 을 보내 각의결정( 閣 議 決 定 )을 요구( 要 求 )했 다(1.10). 그러자 각의( 閣 議 )는 1월 28일 이를 다음과 같은 사유( 事 由 )를 붙여 통과( 通 過 )시켰다. 명치( 明 治 ) 36년 나까이 요사부로( 中 井 養 三 郞 )라는 자가 이 섬에 이주( 移 住 )하여 어업( 漁 業 )에 종사한 것은 관계서류에 의해 명백하기 때문에 국제법상 점령 사실이 있 는 것으로 인정, 이를 본방소속( 本 邦 所 屬 )으로 하고, 시마네현( 島 根 縣 ) 소속( 所 屬 ) 오끼 도사( 隱 岐 島 司 )의 소관( 所 管 )으로 해도 무방( 無 妨 )하다고 생각하여 이로써 청의( 請 議 )한 각의통과결정( 閣 議 通 過 決 定 )이 이루어졌음을 당연하다고 인정한다. 42) 이는 도고가 특수임무( 特 殊 任 務 )가 없는 전함선( 全 艦 船 )은 수리( 修 理 )를 끝내고 1월 21일까지 대한해협( 大 韓 海 峽 )에 집결( 集 結 )하라 는 명령( 命 令 )을 내린 43) 뒤 불과 1주일만의 일이었다. 40) 軍 令 部, 앞의 책, 쪽. 41) 無 人 島 所 屬 에 관한 件 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북위 37도 9분 30초, 동경 131도 55분, 隱 岐 島 서북 85마일 에 있는 無 人 島 는 타국이 이를 점령했다고 인정할 만한 형적이 없어 지난 明 治 36년(1903) 일본인 中 井 養 三 郞 이라는 자가 어사( 漁 舍 )를 짓고 인부를 옮기고 어구를 갖춘 뒤 海 驢 잡이에 종사해 이번에 領 土 編 入 및 貸 下 를 出 願 한 바 차제에 所 屬 및 島 名 을 確 定 할 필요가 있어 이 섬을 竹 島 라 이름붙이고 이후 島 根 縣 隱 岐 島 司 의 所 管 으로 할 것을 閣 議 에 요청한다. 明 治 38 年 1 月 10 日 內 務 大 臣 子 爵 芳 川 顯 正 印 內 閣 總 理 大 臣 伯 爵 桂 太 郞 殿 42) 內 藤 正 中, 위의 논문, 60쪽 ; 大 熊 良 一, 竹 島 史 稿 ( 原 書 房, 1968) 249쪽. 43) 軍 令 部, 앞의 책, 137쪽 ; Ogasawara, 앞의 책, 325쪽.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105

106 이 명령( 命 令 )(1.21)은 도고가 발틱함대( 艦 隊 )와의 대결전장( 大 決 戰 場 )을 대한해협( 大 韓 海 峽 ) 으로 최종확정( 最 終 確 定 )했다는 뜻이 된다. 그럼으로써 그가 독도를 울릉도와 더불어 해전 ( 海 戰 )의 종결예정지( 終 結 豫 定 地 )로 결정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 證 據 )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각의( 閣 議 )의 독도편입결정( 獨 島 編 入 決 定 ) (1.28)은 그의 작전계획( 作 戰 計 劃 )을 지원( 支 援 )하기 위한 후속조치( 後 續 措 置 )의 하나에 불과했음이 또한 분명해지는 것이다. 44) 따라서 일본각의( 日 本 閣 議 )의 독도편입( 編 入 ) 결의( 決 議 )가 발틱함대( 艦 隊 )의 동항( 東 航 )에 대비( 對 備 )하기 위한 조치( 措 置 )였음은 의문( 疑 問 )의 여지( 餘 地 )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영토편입( 領 土 編 入 ) 을 각의( 閣 議 )에서 의결( 議 決 )했다고 해서 그들은 발표( 發 表 )까 지 서둘 필요가 없었다. 발표( 發 表 )라는 최종절차( 最 終 節 次 )만은 발틱함대( 艦 隊 )가 내도( 來 到 ) 하기 직전( 直 前 )까지 유보( 留 保 )함으로써 열강( 列 强 )에게 의혹( 疑 惑 )을 살 수 있는 여지를 시 간적으로도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개전( 開 戰 ) 4개월 만인 6월 초순부터 이미 일본의 예상( 豫 想 )밖의 과도( 過 度 )한 승 리( 勝 利 )를 우려( 憂 慮 )하고 있었다. 일반적( 一 般 的 )인 상식( 常 識 )과는 달리 이제 일본은 미국 의 지원대상( 支 援 對 象 )이 아니라 러시아를 대신하여 견제대상( 牽 制 對 象 )으로 바뀌고 있었 다. 45) 미국의 지원( 支 援 )없이는 전쟁( 戰 爭 )을 계속할 수 없었던 일본으로서는 몸을 도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서울에는 아직 열강의 외교사절( 外 交 使 節 )이 여전히 상주하 고 있었고, 전장( 戰 場 )에도 미국과 영국의 관전무관( 觀 戰 武 官 )(observatory officer)이 일본 군 함에 탑승하고 있었다. 각의통과( 閣 議 通 過 ) 후, 내무성( 內 務 省 )이 2월 15일 시마네현지사( 島 根 縣 知 事 )에게 각의결 정( 閣 議 決 定 )을 관내고시형식( 管 內 告 示 形 式 )으로 처리( 處 理 )하라고 한 훈령( 訓 令 )(제87호)을 통 해서도 이는 분명한 일이다. 46) 따라서 독도편입( 編 入 ) 의 최종발표( 最 終 發 表 )는 러시아 제3 44) 軍 令 部, 위의 책, pp 당시는 해군의 작전준비가 최우선 될 수밖에 없었고, 더구나 작전해역 내 의 도서병합문제라면 해군 당국의 주장에 좌우될 수밖에 없었다. 45) R.A.Esthus, Theodre Roosevelt and Japan(Seattle, University of Washington Press,1960) pp ; 崔 文 衡, 위의 책, p.191.; 루즈벨트 대통령은 일찍이 1904년 6월 6일 가네코( 金 子 )특사와 다까히라( 高 平 )공사 를 오이터 灣 으로 초치, 강화 중재 의사를 표명하며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차지하게 될 지위를 시사했다. 이 어 6월 9일에는 이들을 재차 초치하여 일본이 北 上 할 수 있는 限 界 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미 그는 일본 의 예상밖의 일방적인 승리에 대한 경계심을 품었던 것이다. 46) 堀 和 生, 위의 논문, p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07 태평양함대( 艦 隊 )가 2월 15일 리바우를 출항( 出 港 )했다는 정보( 情 報 )를 약 1주일 뒤에 입수 하고 난 뒤에야 이루어졌다. 이번에도 진해만( 鎭 海 灣 )에 도착한 도고가 2월 21일 임전태세완비( 臨 戰 態 勢 完 備 )를 먼저 선언( 宣 言 )했다. 그리고 이어 바로 이튿날인 1905년 2월 22일자로 내각( 內 閣 )은 이른바 시 마네현고시( 島 根 縣 告 示 ) 라는 방법으로 독도를 자국영토( 自 國 領 土 )로 편입( 編 入 ) 했다. 나까이 의 영토편입원( 領 土 編 入 願 ) 접수단계( 接 受 段 階 )에서 편입( 編 入 ) 발표( 發 表 )라는 최종단계( 最 終 段 階 )까지 내각( 內 閣 )은 전황변화( 戰 況 變 化 )에 따른 해군측( 海 軍 側 )의 대비책( 對 備 策 )과 보조 ( 步 調 )를 맞추며 시종( 始 終 ) 지원( 支 援 )했던 것이다. 시마네현고시( 島 根 縣 告 示 )는 그 지원책 ( 支 援 策 )의 하나였다. 5. 맺음말-일본의 독도점취는 카이로선언 규정의 대상 독도가 울릉도와 동일작전권( 同 一 作 戰 圈 )에 속한다는 사실( 事 實 )은 도고의 전략( 戰 略 )으로 도 이미 확실( 確 實 )하게 입증( 立 證 )되었다. 이 두 섬은 해전( 海 戰 ) 의 종결지점( 終 決 地 點 )이었 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전쟁( 戰 爭 ) 의 종결지점( 終 決 地 點 )이었다. (1) 먼저 일본에게 울릉도의 전략적( 戰 略 的 ) 사용( 使 用 )을 절실케 한 원인( 原 因 )은 1904년 5월 15일을 전후한 여순항( 旅 順 港 )에서의 치명적( 致 命 的 )인 해군력( 海 軍 力 )상실( 喪 失 )에 있었다. 이에 그들은 그 해결방법( 解 決 方 法 )을 하야시 주한공사( 駐 韓 公 使 )의 압록강 울 릉도 삼림채벌권( 森 林 採 伐 權 ) 접수공작( 接 受 工 作 )에서 찾았다. 즉 육군( 陸 軍 )의 북진( 北 進 )에 앞서 압록강 두만강 삼림채벌권( 森 林 採 伐 權 )을 접수( 接 受 )하려는 시점에서 돌연 해군력( 海 軍 力 )을 결정적으로 상실 당하게 되자 그 접수계 획에 서둘러 울릉도를 끼워 넣었던 것이다. 그리고 즉각 울릉도와 죽변( 竹 邊 )에 망루 ( 望 樓 )를 건설하기 시작하여 8월과 9월에 각각 완공( 完 工 )했다. (2) 이어 군령부( 軍 令 部 )는 9월 24일 독도망루설치( 望 樓 設 置 )를 위한 조사( 調 査 )를 명령( 命 令 )하게 되었고, 내각( 內 閣 )은 9월 29일 나까이의 리양코도( 島 ) 영토편입원( 領 土 編 入 願 ) 을 접수( 接 受 )하는 방식( 方 式 )으로 해군측( 海 軍 側 )을 지원했다. 그 접수이유( 接 受 理 由 )부터가 발틱함대( 艦 隊 )의 내도( 來 到 )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음은 야마자 정무국장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107

108 ( 政 務 局 長 )의 언급( 言 及 )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은 접수( 接 受 ) 이상의 조치는 취할 필요가 없었다. 여전히 여순 ( 旅 順 )을 점령( 占 領 )하지 못한 처지였기 때문에 발틱함대( 艦 隊 )가 여순( 旅 順 )으로 향하 게 될지,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할 지를 분간( 分 揀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동해( 東 海 )의 제해권( 制 海 權 )도 완벽( 完 璧 )하게 장악( 掌 握 )하지 못한 채, 발틱함대( 艦 隊 ) 와의 대전( 對 戰 )을 준비( 準 備 )해야만 했던 처지였다. (3) 따라서, 대전준비( 對 戰 準 備 )는 일본이 여순( 旅 順 )을 점령한 1905년 1월 1일 이후에야 비로소 본격추진( 本 格 推 進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시간적( 時 間 的 )으로 육전( 陸 戰 )의 전 황변화( 戰 況 變 化 )와 발틱함대( 艦 隊 )의 동항( 東 航 ) 속도( 速 度 )에 발맞추어 진행했다. 내 상( 內 相 ) 요시가와가 수상( 首 相 ) 가쯔라에게 독도편입( 編 入 ) 을 의결( 議 決 )해 달라고 요구한 날짜는 여순함락( 旅 順 陷 落 ) 10일 만인 1월 10일이었다. 이어 도고가 특수임무가 없는 전함선( 全 艦 船 )의 대한해협( 大 韓 海 峽 ) 집결명령( 集 結 命 令 )을 내린 날짜는 다시 이 보다 10일 뒤인 1월 21일이었다. 그리고 이 이후 다시 1 주일 뒤인 1월 28일 내각은 무인도선점( 無 人 島 先 占 ) 이론( 理 論 )을 적용( 適 用 ), 독도를 자국영토( 自 國 領 土 )로 편입( 編 入 ) 했다. 모두가 도고의 동경체류기간( 東 京 滯 留 期 間 )에 취해진 조치였다. 전함선( 全 艦 船 )의 대한해협( 大 韓 海 峽 ) 집결명령( 集 結 命 令 )은 해군측( 海 軍 側 )이 발틱함대 ( 艦 隊 )의 진로( 進 路 )를 동해( 東 海 )로 확정지었다는 뜻이다. 러시아해군( 海 軍 )과의 결전 장( 決 戰 場 )을 대한해협( 大 韓 海 峽 )으로 잡았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해전( 海 戰 )의 종결지 점( 終 決 地 點 )을 해군측( 海 軍 側 )이 독도와 울릉도로 예정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4) 독도의 영토편입( 領 土 編 入 ) 고시( 告 示 )도 영토편입원( 領 土 編 入 願 ) 접수단계( 接 受 段 階 ) 에서 그랬던 것처럼 도고의 임전태세완비선언( 臨 戰 態 勢 完 備 宣 言 )(2.21)에 바로 뒤이어 이루어졌다(2.22). 그것도 당당하게 정부명의( 政 府 名 儀 )로 공시( 公 示 )한 것이 아니라 시마네현( 島 根 縣 )이라는 일지방관청( 一 地 方 官 廳 )의 관내고시( 管 內 告 示 )로 처리했다. 이 는 열강( 列 强 )의 의혹( 疑 惑 )을 피하기 위한 치밀( 緻 密 )한 대비책( 對 備 策 )에 다름없었다. 고시( 告 示 )를 늦춘 까닭도 마찬가지로 열강에게 의혹( 疑 惑 )을 품을 시간적( 時 間 的 ) 여 유( 餘 裕 )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10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09 독도와 울릉도에 대한 이상과 같은 일본( 日 本 )의 모든 조치( 措 置 )는 5월 28일 발틱함 대( 艦 隊 )와의 대전( 對 戰 )이 이 두 섬에서 종결( 終 決 )됨으로써 일본해군전략( 海 軍 戰 略 ) 의 정확성( 正 確 性 )이 한꺼번에 재입증( 再 立 證 )되었다. 따라서 일본의 독도령토편입( 獨 島 領 土 編 入 ) 이 러일전쟁과 밀접하게 관련된 사실은 어떤 논리( 論 理 )로도 부정( 否 定 )할 수 없는 것이다. 역사에 있어 우연( 偶 然 ) 한 일이 한 번은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같은 우 연( 偶 然 ) 이 세 번 네 번 되풀이될 수는 절대로 없는 것이다. 독도편입( 獨 島 編 入 ) 이 나까이의 생업보호( 生 業 保 護 ) 를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은 그 목적( 目 的 )이 전쟁( 戰 爭 ) 에 있었음을 은폐( 隱 蔽 )하기 위해 내세운 명분( 名 分 )이었다. 러일전쟁이 침략전쟁( 侵 略 戰 爭 )일진대 폭력( 暴 力 ) 과 탐욕( 貪 慾 ) 은 필연적( 必 然 的 )으로 수반( 隨 伴 )되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일본의 독도점취는 카이로선언( 宣 言 ) 규제( 規 制 )의 대상( 對 象 )임은 부정( 否 定 )할 수 없는 것이다. 끝으로 한 가지 부언해 둘 말이 있다. 필자의 일본판 저서 일러전쟁의 세계사( 日 露 戰 爭 の 世 界 史 ) 를 출간한 출판사의 등원사장( 藤 原 社 長 )이 베푼 간소한 저녁모임에서의 일이다.(2005년 10월 21일. 동경상해구락부( 東 京 上 海 俱 樂 部 ), 신숙( 新 宿 ), My city, 8 층 ). 일본의 저명한 신문사 논설위원이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竹 島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 라고 했다며 필자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필자의 논고를 제대로 읽지도 않은 것이 분명했다. 이 인사는 필자와도 여러 번 접촉이 있었지만 일본에서 는 그야 말로 양식있는 지식인 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에 대해 필자는 독도가 일본고유의 영토라면 어째서 시마네현고시( 島 根 縣 告 示 )가 필요 했는가? 라고 반문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설득했다. 필자의 이 논고를 읽고 일본정부가 곧바로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선언할 리는 물론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史 實 )이 분명한 이상, 적어도 일본의 지식층만은 이를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눈 앞에 놓고도 지식층조차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두 나라의 우호와 접근이 가능해지겠 는가 라고 했다. 국익과 관계되는 한, 아무리 리베랄한 일본인도 예외가 없다는 사실을 실 감했다.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109

110 일러두기 러일전쟁의 성격-이 전쟁은 러 일이 한국과 만주를 쟁탈대상으로 한 전쟁으로서, 일본은 영 미의 지원을 받았고 러시아의 배후에는 독일과 프랑스가 있었다. 8개국이 관련된 소규모 세계전쟁이었다. 영일동맹의 규정-영 러가 단독으로 대결하면 영국은 엄정중립을 지키지만, 프랑스가 러시 아를 지원하면 영국은 즉각 전쟁에 개입하게 된다. 따라서 영 불은 1904년 4월 8일 영불협 상을 체결한다. 러시아 해군의 배치-러시아 해군은 발틱 함대, 흑해 함대 및 태평양 함대로 분산되어 있었 다. 그리고 태평양 함대는 다시 여순 함대와 블라디보스톡 함대로 나뉘어 있었다.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명칭-본래부터 주둔해온 태평양 함대는 제1태평양 함대(그러나 이것 도 여순과 블라디보스톡으로 분산), 러일해전을 위해 1904년 10월 15일 리바우를 출항한 함 대를 제2태평양 함대, 그리고 제2함대를 지원하기 위해 낡은 선박을 긁어모아 1905년 2월 15일에 리바우를 출항한 함대를 제3태평양 함대라 칭한다. 발틱 함대의 동항일지-지도에 표시 일본 육군과 해군의 협동작전-노기 장군의 여순점령의 의미 일본해군의 대비-울릉도 독도에 망루 설치 일본 내각의 지원-독도 편입 병합과 편입 혼용- 침탈 이라는 말의 타당성 11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11 초청강사 약력 姓 名 崔 文 衡 : 漢 陽 大 名 譽 敎 授 (1935년생) 學 歷 서울 大 學 校 文 理 科 大 學 史 學 科 卒 業 ( 文 學 士 ) 서울 大 大 學 校 大 學 院 史 學 科 修 了 ( 文 學 碩 士 ) 西 江 大 學 校 大 學 院 史 學 科 修 了 ( 文 學 博 士 ) 美 國 시카고 大 學 修 學 ( 東 아시아 硏 究 所 ) 經 歷 漢 陽 大 學 校 人 文 大 敎 授 學 長 歷 史 學 會 會 長 著 書 (1) 국제관계로 본 러일전쟁과 일본의 한국병합(지식산업사, 2004) 日 露 戰 爭 の 世 界 史 ( 東 京 藤 原 書 店, 2004) (2) 한국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지식산업사, 2002) (3)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을 밝힌다(지식산업사, 2001) 閔 妃 は 誰 に 殺 されたのかー 見 えざる 日 露 戰 爭 の 序 曲 ( 東 京 彩 流 社,2004) (4) 제국주의시대의 열강과 한국(민음사, 1990) (5) 열강의 동아시아정책(일조각, 1979) 譯 書 H. Schultz, 英 國 史 ( 新 丘 文 化 社,1975) L. B. Packard, 商 業 革 命 ( 探 求 堂,1976) 共 著 書 淸 日 戰 爭 前 後 韓 國 과 列 强 (1994) 明 成 皇 后 弑 害 事 件 (1992) 露 日 戰 爭 前 後 日 本 의 韓 國 侵 略 (1986) 韓 露 關 係 100 年 史 (1984) 韓 英 修 交 100 年 史 (1982) 韓 美 修 交 100 年 史 (1982)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111

112 Ⅳ. 조선 침략의 첫 신호탄, 독도 강제 편입 독도는 우리 땅 이라는 노래가사 5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러일전쟁 직후에 임자 없는 섬이라고 억지로 우기면 정말 곤란해. 신라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독도는 우리땅 노래에서 말하다시피, 러일전쟁이 계기가 되어 군사상 전략기점으로서 일본은 독도에 눈 독을 들이게 된다. 이러한 일본의 침략의도에 의해 최초로 침탈된 우리땅이 바로 독도이다. 일본의 조선 침략은 1850년대 요시다 쇼인( 吉 田 送 陰 )에 의해 처음 제기된 이후 기도 다카 요시( 木 戶 孝 允 ), 사이고 다카모리( 西 鄕 隆 盛 )등 정한론자들이 틈만 나면 주창했던 것이다. 일본의 조선 침략이 본격화 된 것은 1894년 청일전쟁을 즈음해서이다. 일찍부터 조선 침략을 준비하고 있던 일본은 1894년 동학농민봉기를 기화로 군대를 조선에 파견하여 왕 궁을 점령하고, 서울 부산 인천 원산등지에 군대를 주둔 시켰다. 그들은 사역원ㆍ장악 원 등의 중앙관서 청사를 병사( 兵 舍 )로 사용하는가 하면, 서울 부산, 서울 인천 등 전국 곳곳에 군용전선을 설치하고 철도를 부설하여 전쟁에 이용하였다. 아산만의 풍도( 楓 島 ) 앞 바다에서 시작된 일본군과 청나라군의 전투는 평양 서해 등으로 옮겨갔고, 조선의 육지와 바다는 침략의 전쟁터로 유린 되었다.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을 장악하고 청나라로부터 요동반도까지 할양받게 되 었지만, 러시아 프랑스 독일 세 나라의 간섭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일본으로 서는 조선에 막강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러시아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러시아를 배제하지 않고서는 조선 병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일본은 수단과 방법을 가 리지 않았다. 조선 내에 친러 세력의 입지가 확대되는 것을 염려한 일본은 결국 천러정책 을 주도하는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까지 저지르게 된다. 정한론자 1870년대를 전후하여 일본 정계에서는 한국을 공략하자는 정한론이 강력하게 대두된다. 메 이지유신 이후 근대화 작업을 해 나가던 일본은 근대화 관료세력과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보수 세력 등 두 정치세력으로 나누어진다. 그 중 보수적인 무사계층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고자 보수 강경 파들이 중심이 되어 정한론을 주창하게 된다. 11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13 지도 1 청일전쟁 전투 경과도 삼국간섭으로 인해 요동반도를 다시 청나라에 반환하고 와신 상담의 기회를 노리던 일 본은 1904년 2월 8일 여순항에 있던 러시아 군함 2척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러일전쟁을 일 으켰다. 같은 날 일본군은 조선 정부의 중립선언을 무시하고 인천 남양 군산 원산에 상 륙을 개시하였다. 일본 육군 선발대인 기코시(木越安綱)여단은 9일 서울로 진주하고, 이어 이노우에(井上光貞)중장이 이끄는 제12사단 주력부대가 서울에 입성하였다. 일본은 10년 전 청일전쟁에서 못다 이룬 조선 병탄을 보다 주도면밀하게 추진하였다. 1904년 2월 23일 일본은 군대를 동원하여 대궐을 포위하고 황실과 정부를 협박하여 한 제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113

114 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였다. 일본은 이 의정서를 근거로 군대 주둔은 물론 군사전략상 필요한 지점을 점령, 수용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며 조선 병탄을 더욱 노골화하였다. 1904년 4월 일본은 일제 조선주차군 사령부를 설치하고 군대를 조선 전역에 확대 배치하였 다. 전쟁이 본격화되던 1904년 7월 주차군 사령관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함경도에 군 정을 시행하고, 1905년 1월에는 일본군 헌병대가 서울과 그 부근 지역의 치안경찰권 까지 장악하였다. 전쟁을 위해 군용전선과 철도를 부설하고 그것을 보호한다며 엄한 군율을 공 포하였다. 군용전선이나 철도를 훼손하거나 전쟁 수행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은 사형에 처 해지기도 했다. 또한 영흥만 진해 등에 요새를 설치하여 군율을 공포하고, 요새로 지정한 지역의 토지 를 강제로 수용하였다. 1905년 7월 일본군이 군용지로 사용하기 위해 강제수용 하겠다고 한 땅은 용산 평양 의주 등지에 975만평이나 되었다. 상황이 이러한데, 러일전쟁의 전략적 요충지인 울릉도와 독도가 강제수용의 대상에서 제외 될 리가 만무했다. 러일전쟁 초기부터 일본군은 울릉도와 독도의 전략적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울릉도와 독도는 남하하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함대가 동해 해상권을 위협 하는 가운데 일본 해군은 1904년 5월 15일을 전후한 불과 며칠 동안 해군 전력의 3분의 1을 상실하게 된다. 일본군으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새로운 군함을 건조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요구되었다. 긴박하게 전개되는 전황을 고려하여 남아있는 군함을 가지고 작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방안을 고안했다. 그 것은 기지 확보와 감시망루 설치를 통하여 적함의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는 것이었다. 한일의정서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한국에 대일 협력을 강요 협박하기 위해 체결한 조약. 대한 제국 정부는 일본제국이 필요시 편의를 제공하고 전략상 필요한 지역을 언제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일본이 한국 식민지화의 제1단계에 착수했다고 볼 수 있는 강제 조약으로 서, 이 문서에 서명한 이지용의 집이 폭탄세례를 받는 등 거센 반발을 샀다. 한일의정서 제4조 제3국의 침해 또는 내란으로 인하여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 또는 영토보전에 위협 이 있을 경우 인본 정부는 신속히 필요한 조치를 취하며, 대한 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행동을 용이 하게 하기 위하여 충분한 편의를 제공한다. 일본 정부는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군략상 필요 한 지점을 수시로 수용할 수 있다. 11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15 사진 1 인천에 상륙하여 시가 행군하는 일본군 기코시 여단(1904) 사진 2 강제수용되어 일본군의 감시 망루가 설치되었던 울릉도 사동마을의 망향봉 울릉도와 독도는 이러한 일본의 작전수행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역이었다 년 5월 18일 일본은 대한제국으로 하여금 러시아의 울릉도 삼림벌채권을 빼앗도록 하여 울릉도에 대한 러시아의 기반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였다. 그리고 그해 9월 1일 일본군은 울 릉도 서쪽과 남쪽에 감시망루를 각각 설치하였다. 이어 독도에도 망루를 설치하기 위해 군 함 니타카(新高)호를 파견하여 조사하였다. 니타카호가 독도 현지 조사를 떠난 날은 9월 24 일로 나카이요사부로(中井養三郞)라는 자가 일본 정부에 독도의 영토편입 신청서를 제출하 기 5일 전이었다. 제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115

116 나카이 요사부로는 외국 연해로 나가 잠수기 어업에 종사한 기업적인 어업가로서, 독도 에 다량으로 서식하는 강치를 독점적으로 잡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 당초 그는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알고 일본 정부를 통해 한국에 임대청원서를 제출하려 고 했다. 하지만 해군성 수로국장 기모쓰케 가네유키( 肝 付 兼 行 )등의 사주를 받고 9월 29일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하는 청원서를 일본 정부에 제출하게 된다. 당시 나카이가 독도 영토 편입 청원서 를 제출했을 때 내무성 이노우에( 井 上 )서기관은 반대하였다. 한국 땅이라는 의혹이 있는 쓸모없는 암로를 편입할 경우 우리를 주목하고 있는 외국 여러 나라들에게 일본이 한국을 병탄하려고 한다는 의심을 크게 갖게 한다. 나카이 요사부로의 독도 사업경영개요, 1906 내무성이 청원을 기각하려 하자 나카이는 외무성 정무국장을 찾아갔다. 당시 외무성 정 무국장인 야마자 엔지로( 山 座 圖 次 郞 )는 러일전쟁에 처음부터 끝까지 깊이 관여한 인물로 러 일전쟁 선전포고 원문을 기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반응은 내무성과 완전히 달랐다. 이 시국이야말로 독도의 영토편입이 필요하다. 독도에 망루를 설치하고 무선 또는 해저 전선을 설치하면 적함을 감시하는데 극히 좋지 않겠는가? 나카이 요사부로의 독도 사업경영개요, 1906 강치 물개와 비슷하며 털이 짧고 발톱이 있는 물갈퀴가 있다. 몸길이는 2m 내외로 군집을 이루어 생활하며, 멸치 오징어 꽁치 등을 먹고 산다. 한때 가지도 라고 할 정도로 독도에 강치가 많이 서식하고 있었으나, 가죽 을 탐낸 일본인들의 무분별한 남획 등으로 지금은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가지도의 가지( 可 支 )는 강치의 한자표기 11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17 지도 2 러일전쟁 전투 경과도 적함을 감시하기 위해 망루와 해저 전선을 설치하면 좋겠다는 외무성 정무국장의 발언 은 그대로 현실로 나타났다. 1904년 11월 일본 해군은 재차 군함 쓰시마( 對 馬 )호를 독도에 파견하여 감시망루와 통신시설 설치가 적합한지에 대해 조사하였다. 그러나 독도 망루 설 치는 겨울철의 험악한 날씨와 작전 수행의 어려움 등으로 지연되었다. 그러는 사이 1905년 1월 1일 일본군이 여순을 함락하자 러일전쟁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일본의 연합함대 총사령관 도고헤이하치로( 東 鄕 平 八 郞 )는 인도양을 돌아오는 발틱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117

118 함대를 격파하기 위해 일본 전 함대에 대한해협으로 집결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였다. 여순 이 함락된 상황이라 러시아 발틱함대가 대한해협을 지나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할 것이 분 명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일본 전시내각은 독도 침탈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실행에 옮겼 다. 1905년 내무대신 요시카와 아키마사(芳川顯正)는 총리대신 가쓰라 다로(桂太郞)에게 무 인도 소속에 관한 건 이라는 비밀공문을 보내 독도 편입을 위한 내각 회의 개최를 요청하 였다. 1월 28일 총리대신과 해군대신 등 11명의 각료가 참석한 가운데 독도의 편입을 결정 하였다. 사진 3 일본 내각의 독도 편입 결정문(1905) 118 독도와 시민사회 독도 시민활동 백서

119 나카이 요사부로라는 자가 이 섬에 이주하여 어업에 종사 한 것은 관계 서류에 의해 명백하므로 국제법상 점유 사실이 있는 것으로 인정하여 이를 본국 소속으로 하고, 시마네현 소속 오키도사의 소관으로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여 이로써 신청한 각의 결정이 이루어졌음을 인정한다. 일본 내각의 독도 편입 결정문, 사진 4 러일전쟁 중 러시아 발틱함대의 최후(1905) 일본 정부가 나카이라는 한 어민의 청원을 승인하는 형식을 취해 전격적으로 독도의 강 제편입을 단행했던 것이다. 이어 시마네현(島根縣) 지사는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로 독도를 오키도사(隱岐島司) 소관(所管)으로 정한다고 고시했다. 이렇게 진행된 시 마네현 고시 제40호는 현재 일본의 논리를 뒷받침 해 주는 가장 중요한 문건이기도 하다. 한편, 러시아 발틱함대는 적도를 돌아 오는 7개월이라는 기나긴 항해 끝에 1905년 5월 27일 마침내 대한해협에 도 착했으나, 발틱함대의 상태는 최악이었 다. 지칠 대로 지친 발틱함대는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던 일본 연합함대에 도 착 직후부터 하나둘 격침되었다. 대한해 사진 5 울릉도에서 바라본 독도 협에서 부상당한 발틱함대의 총사령관 제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119

120 로케스트벤스키제독은 울릉도 근해에서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고, 그를 대신하여 함대를 지휘하던 네 보가토프제독도 밤새 쫓겨다니다 5월 28일 아침 독도 근해에서 포로가 되고 말았다. 러시아 발틱함 대가 일본 연합함대 의해 최종 격멸되는 순간이었다. 세계 최강 함대로 명성을 날리던 발틱함대를 울 릉도와 독도 근해에서 격멸시킨 일본군은 두 섬의 전략적 가치를 더욱 절감하게 된다. 여전히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러시아와 언제다시 일전을 치러 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일본군은 울릉도 북 사진 6 울릉도 석포마을에 남아 있는 일본 군의 감시망루터 쪽과 그곳에서 바라다 보이는 독도에 감시망루 각 각 1개씩을 추가로 설치키로 했다. 일본 해군은 그 해 6월 하시다테( 橋 立 )호의 재조사를 거쳐 7월 25일 독도망루 공사를 시작, 8월 19일 준공 하여 해상감시 활동을 개시하였다. 그런데 장기전으로 예상되었던 전쟁이 그해 9월 5일 포츠머스 강화조약 체결로 예상보 다 빨리 종결되자 기능을 상실한 독도망루는 10월 24일 철거된다. 한편 일본군은 1905년 10월 8일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해저전선을 부설하고 이어 11월 9일 독도와 일본 마쓰에( 松 江 )사이에 해저전선을 완료하였다. 당시 전쟁이 끝나는 시점이 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은 독도에 해저전선을 부설하여 독도에 이은 한반도 병탄 의도 를 숨기지 않았다. 러일전쟁 직후 독도는 당시 일본 언론에 큼직한 사진과 함께 전승기념명소로까지 소개 되었다. 제국주의 일본에 있어 독도는 단순히 작은 돌섬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 게 독도는 한반도 침략전쟁의 전승기념지였던 것이다. 포츠머스 강화조약 미국 뉴햄프셔주의 군항도시인 포츠머스에서 미국 대통령 T.루스벨트의 주선으로 러일전쟁을 종결하기 위해 강화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에서 체결된 조약으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지 도 보호 감리권을 승인받았다. 또 중국 여순 대련의 조차권과 장춘 이남의 철도 부설권,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섬을 할양받고, 동해와 오호츠크해 베링해의 러시아 연안 어업권도 일본이 가져갔다. 12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21 사진 7 독도 사진을 게재하고 러일전쟁의 전승기념명소로 소개한 일본신문(1906) 일본은 러일전쟁 도발 직후에 강제로 체결한 한일의정서( )를 시작으로, 제1차 한 일협약( ), 제2차 한일협약(을사늑약, ), 한일신협약( ), 한일합병조약 ( ) 등으로 이어가며, 예정했던 한반도 병탄을 마무리하였다. 결국 제국주의 일본의 한반도 병탄 첫 신호탄이 독도였던 것이다. 출처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바른역사정립 기획단(2006), 일본은 이렇게 독도를 침탈했다 제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121

122 Ⅴ. 인터뷰와 언론보도 프로그램:KBS포항방송국 제1라디오 <동해안 네트워크!> 인 터 뷰:동북아역사재단 제3연구실 홍성근 박사 방 송 일:2007년 5월 14일(월) 오후 3시 20분 내 용 전국 독도 시민단체가 모인다고 했는데요, 어떤 단체들이 함께 하는 건가요? - 울릉도에 있는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을 비롯하여 구미, 부산, 서울에 각각 사 무국을 두고 있는 독도의병대, 독도향우회, 독도수호대 등 전국 26개 독도관련 시민단체 대표 30여 명이 참석합니다. 전국에 있는 독도관련 시민단체가 한 자리에 모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거 같은데 요, 어떻게 해서 이렇게 모이게 되신 건가요? - 이번 독도 시민단체 연합행사는 저희 동북아역사재단의 사업으로 추진됩니다. 동 북아역사재단에서는 시민단체 교류,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번 행사도 그러 한 차원에서 민관협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추진되게 되었습니다. 독도 역사 기행이 올 해가 처음이 아니죠? - 예, 그렇습니다. 작년 동북아역사재단에는 1882년 울릉도 재개척에 공이 큰 이규 원 울릉도 검찰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라는 주제로 역사기행을 하였습니다. 이규 원 검찰사의 행적 답사는 독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울릉도에 대한 이해를 비 롯하여 일본의 울릉도, 독도 침입에 대한 불법, 부당성을 확인하는 귀중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올해는 독도에 있는 망루의 흔적을 찾아간다구요? - 예, 그렇습니다 년간 일본은 한반도 침탈전쟁인 러일전쟁 중에 러시아 함대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전국의 20여 곳에 감시망루를 세웠습니다. 울릉도 와 독도에도 감시망루를 세워서 러일전쟁을 수행하는데 중요한 역할들을 하였습 니다. 현재 울릉도 석포에는 망루의 막사로 사용한 건물의 잔해가 일부 남아 있 습니다. 12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23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곳인가요? - 독도 망루는 일본이 한반도를 침탈하기 위해 우리의 시설이나 토지를 사용한 것 과, 아울러 그러한 전쟁에 울릉도와 독도가 전략적으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알 려줍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도에는 언제 들어가시는 건가요? 일정 좀 소개해 주세요? - 독도는 5월 16일 들어갑니다. 이번 독도역사기행은 5월 15일부터 시작하여 3박 4일 일정으로 진행됩니다. 울릉도, 독도 망루터 등 러일전쟁 관련 유적지를 비롯 하여 일제시대 지은 가옥과, 러시아와 일본이 각축을 벌였던 울릉도 삼림이 잘 보존되어 있는 삼림보존지역 등도 답사할 예정입니다. 하루만 독도에 들어가는 거고, 나머지는 울릉도에 계시는 건데요, 울릉도에 일제강점 기 때 설치된 망루가 여러 개 있다구요? - 예, 울릉도, 독도망루는 년 러일전쟁 중에 설치되었는데, 독도에는 한 개, 울릉도에는 3개의 망루가 설치되었습니다. 독도에는 지금의 등대자리에 망루 가 설치되었고, 울릉도에는 도동의 망향봉, 태하의 향목 등대, 석포의 전망대 지 역에 설치되었습니다. 지금은 이 망루 자리가 어떻게 이용되고 있습니까? - 망루 자리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현재에도 그 중요성이 인정되 어 레이더 기지나 등대시설 등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망루의 흔적을 찾아가는 이번 역사 기행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 망루터는 아까 말씀 드린 대로 러일전쟁의 유적지입니다. 이러한 지역을 탐방함 으로써 독도가 러일전쟁 와중에 일본에 의해 침탈되었다가 다시 찾은 우리의 삶 의 터전이라는 독도문제의 본질을 재확인하고자 합니다. 독도에 대한 관심은 언제까지나 계속돼야겠죠? - 예, 그렇습니다. 독도는 지금까지 대대로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으로 존재해 왔 습니다. 우리 민족과 함께 여전히 삶의 터전으로 존재하는 한 독도에 대한 관심 은 계속되어야겠죠.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123

124 프로그램:KBS 뉴스와이드 2부(울릉)-KBS 제1라디오 <특별 인터뷰> 국내 독도 시민단체, 연합으로 울릉 독도 탐방 방 송 일:2007년 5월 15일 (화) / 11시 30분 인 터 뷰:동북아역사재단 홍성근 박사 내 용 홍 박사님, 안녕하세요? 파도가 높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릉/ 독도 여행을 강행하시는군요? -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번 행사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역사기행입니다. 울릉 도의 울렁거리는 파도를 경험하는 것도 의미 있는 역사기행이 되리라 봅니다. 이번 여행의 주요 행선지는 어디고, 여행의 목적은 뭔가요? - 울릉도와 독도가 주요행선지이고 그 중에 러일전쟁 때 일본이 설치했던 망루 유 적지를 탐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적지를 탐방함으로 독도가 러일전쟁 와중에 일본에 의해 침탈되었다가 다시 되찾은 우리 땅이라는 독도문제의 본질을 재확인 하고자 하는 게 이번 역사기행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일본이 만들었던 망루가 어떤 의미가 있길래 이렇게 망루 터를 중심으로 여행 을 다 기획하신 건지 망루가 왜 중요한가요? - 러일전쟁 전후 일본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 망루를 설치하고 적함인 러시아 함대의 동향을 면밀히 관측하여 적함에 타격을 입히고자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전역에 20여 곳의 망루를 설치했는데, 울릉도와 독도에도 모두 4곳에나 망루를 건 설하였습니다. 일본군 망루는 한반도와 독도침탈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곳이 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러일 전쟁을 전후로 독도에 대한 일본의 태도가 급격히 변화했고, 우 리는 그 부분을 잘 눈여겨봐야 하고 거기서부터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는 겁니까? - 그렇습니다. 일본은 러일전쟁 와중에 시마네현 고시라는 것을 통해 독도를 침탈 했는데, 이것은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일 본은 한반도 침탈과정에서 병탄한 독도에 대한 권리를 10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12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25 일본은 끊임없이 독도를 분쟁 지역화하기 위해 노력하는데요. 과거 무대응으로 일관 했던 우리 정부가 요즘은 태도가 많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지금 잘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년 4월 바른역사정립기획단의 설립과 이은 2006년 9월 동북아역사재단의 설 립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 정부는 독도관련 기구 설립을 통하여 일본의 독도 주 장에 대해 보다 종합적,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많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삼스럽습니다만 동북아역사재단은 어떤 분들이 모여, 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소개 해 주실까요? - 동북아역사재단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관련 사항에 대해 체계적, 종합 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2006년 9월 법률에 의해 만들어 졌습니다. 재단의 구성을 보면 외교부, 교육부, 해양부, 해양경찰청 등 각 부처에서 나온 공무원들과 역사, 국제법 등을 연구하는 민간학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홍성근 박사님은 그럼, 독도 영유권 파트를 전담하고 계신가요? - 그렇습니다. 그 동안 동북아역사재단이 해 온 대표적인 사업 혹은 성과? 이것도 좀 궁금한데요? -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과 관련된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만, 독도와 관련해서는 일 본의 독도주장에 대한 정책개발 및 대응방안 수립, 민관협력 사업, 서적발간을 통한 홍보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동해표기 오류시정 활동도 활발히 전개 하고 있습니다. 일본 시마네현이 독도의 날 조례를 제정하고, 대외적으로 독도 침탈 야욕을 표시하 면서, 우리나라에도 독도 관련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지 않았습니까? 이들 독도 관련 시민단체들과 동북아역사재단의 차별성이 있다면 뭘까요? - 동북아역사재단은 시민단체가 아니라 정부가 설립한 법률상 기구입니다. 시민단 체의 활동을 지원하고 정부가 나서서 할 수 없는 일들을 시민단체와 협력하여 주 변국의 역사왜곡과 독도관련 사항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독도, 역사문제와 관련하 여 민과 관을 중개하며 조정자,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국내 독도 관련 단체 서른 여개의 대표들이 함께 오신다면서요?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125

126 - 예, 26개 단체 30여 명의 독도관련 시민단체 대표들이 참여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독도 단체가 몇 개나 됩니까? - 전문적으로 독도만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만, 최근 들어 역사, 민족운동을 해온 단체들 중에서 독도관련 활동을 하는 단체도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이번 행사에는 독도와 관련 있는 활동을 하는 단체는 모두 참석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이번 여행에 동참하시는 분들은 활동이 활발한 단체에 해당되나요? -예, 모두들 독도에 대한 열의가 가득합니다. 요즘 독도 여행이 붐입니다. 일반인들은 물론, 최근엔 고등학생들이 독도로 수학여 행을 오기도 했는데요. 이런 현상이, 올해 독도 입도객이 확대된 데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고 독도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라면, 독도 여행 역시 금새 사그라들 수 도 있을 거예요. 특히, 배멀미도 있고 갑작스런 기상 변화로 독도 여행이 코앞 에서 좌절되기도 하니까요. 사람들이 독도를 보고 싶어 하면서, 찾아오는 것과, 독도 영유권를 공고히 하는 것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어떻게 보십니까? -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보지 않 고 찾지 않게 되면 잊혀지게 되고 영토의식도 흐릿하게 되겠지요. 사람들 중에는 독도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아마 수학여행으로든, 호기 심으로든 독도에 다녀오게 되면, 독도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겠지요. 그리고 독도 방문객이 한 사람, 두 사람 늘어갈 수록 독도는 우리 기억의 일부분으로, 또 우리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라 봅니다. 아마 높은 파도로 배 멀미를 심하게 한 사람일수록 독도에 대해 더 특별한 애정과 의미를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도 드네요. 독도에 대한 우리의 자세 바로 잡을 건 무엇이고, 버려야 할 태도는 무엇이며 끝까지 살려야 할 건 뭘까요? - 독도는 우리의 삶의 터전입니다. 분쟁과 갈등의 장소로 생각하지 말고 삶의 터전 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독도를 우리 영토, 우리 영해로 지키는 데 있어 울릉군의 역할과 울릉군민이 담당해 야 할 몫도 분명히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12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27 - 우리 국민 누구나에게 해당되는 것이겠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영토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울릉도 주민도 예외는 아니라고 봅니 다. 그리고 특별히 울릉도민에게 있어 독도는 실제적인 삶의 터전입니다. 독도가 울릉도 본도와 분리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며, 울릉 주민들의 실제적인 삶의 터 전으로 가꾸고자 하는 노력과 정책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앞으로 독도 문제에 대해,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있습니까? - 독도영유권공고화를 위해 정책개발, 대응방안수립, 서적을 통한 홍보책자발간, 민 관협력사업 등을 계속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이번과 같은 독도 역사 기행이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고 독도 사랑, 나라 사랑 정신도 키우고, 우리 영토, 영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일반 인들의 테마 여행으로도 한 번 개발해 볼 만 하지 않나 싶은데요? 망루가 있던 곳이 니까 전망 하나는 환상적이지 않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이번 역사기행이 독도관련 시민운동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울릉도 와 독도 여행에 있어서도 새로운 문화와 모델을 제시해 주는 좋은 계기가 되리 라 봅니다. 그럼, 독도 시민단체들과의 이번 역사 기행 무사히 잘 하시고 앞으로 독도 영유 권 수호를 위해서 많은 연구와 활동 해주십시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홍성근 박사였습니다. (끝)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127

128 대구일보 2007년 5월 11일 12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29 경북일보 2007년 5월 11일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129

130 매일신문 2007년 5월 11일 독도 영유권 침해 공동 대처 전국 관련단체들 전국 독도 관련단체 대표들이 독도에 모인다. 동북아역사재단,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 독도향우회, 독도수호대 등 전국 30개 독도관련단체 대표들이 오는 15 18일 독도역사기 행 에 나선다. 이들은 일본이 러일전쟁(1904) 당시 만 들었던 독도 망루대와 년에 울 릉읍 도동 망향봉 망루, 서면 태하리 향목 망루, 북면 석포에 설치한 일본군사시설물 과 망루대를 답사한 후 당시부터 최근까 지 일본이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는 독도 침탈행위와 영유권 주장 망발에 대해 공 동대처 방안을 논의한다. 고 10일 밝혔다. 러일전쟁을 앞두고 당시 일본군이 만들었던 석포마을 망 루대에서 바라본 울릉 북면해안 전경 동북아재단 연구위원 홍성근 박사는 독도 망루는 일본 해군성이 1905년 7월25일 공사 를 시작, 같은 해 8월19일 준공했고, 망루에는 군인 4명, 고용인 2명 등 6명이 군사활동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고 말했다. 또 일본은 당시 조선의 허락도 없이 1905년 11월19일 독도-일본 송강( 松 江 ) 사이에 해 저 통신전선을 설치하고 감시망루에 통신수단을 갖춰 러일전쟁에 대비했다. 는 것. 현재 독도 망루자리에는 독도경비대 막사가 세워졌고, 도동 망향봉과 태하마을 향목 망 루는 흔적이 사라졌지만 북면 석포 망루터는 시설물 일부가 남아있어 귀중한 터로 인식되 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정부가 2006년 8월 20일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 일본의 왜곡된 역 사교과서 채택 및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주변국의 역사왜곡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법 률에 따라 설립됐다. 울릉 허영국 기자 [email protected] 13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31 한겨레신문 2007년 5월 11일 독도 관련단체 망루터 역사기행 전국의 독도 관련 시민단체 대표들이 15 18일 독도 망루터에 모인다. 동북아 역사재단은 전국 30여개 독도 관련 단체들이 이 기간 독도를 방문해 일본 제국 주의 군사침략의 흔적인 독도 감시 망루터 등을 답사하는 역사기행을 벌인다고 11일 밝혔 다. 이번 행사에는 동북아역사재단,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 독도향우회, 독도의병대, 독 도수호대 등 전국 30개 단체가 참가한다. 이들 단체 대표들은 러일전쟁( ) 기간 중에 일본이 만든 독도 동도의 망루터 답사를 통해 일본이 독도를 군사적 요충지로 여겨 침탈했다는 독도문제의 본질을 되짚어 보게 된다. 또 이들은 역사의 현장에서 일본의 치밀하고 지속적인 독도 영유권 주장을 상 기하고 공동대처 방안도 협의할 예정이다. 동북아 역사재단 홍성근 박사는 독도 망루는 일본 해군성에 의해 1905년 7월25일 공사 가 시작돼 같은해 8월19일 준공됐으며, 당시 망루에 배치된 인원은 군인 4명, 고용인 2명 등 모두 6명이었다 고 밝혔다. 현재 이 망루터에는 독도경비대 막사가 설치돼 독도를 지키 는 보루 역할을 하고 있다. 참가단체 대표들은 독도망루 터 뿐 아니라 일본이 년 사이 울릉도에 설치한 도동 보루산과 태하 향목, 석포 망루대 등도 답사할 예정이다. 박영률 기자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131

132 연합뉴스 2007년 5월 11일 전국 독도 관련단체 독도 망루터 답사 (울릉 연합뉴스) 홍창진 기자 전국의 독도 관련 시민단체 대표들이 오는 15 18일 독 도 현지를 방문해 일본제국주의 군사침략의 흔적인 독도 감시 망루터 등을 답사하는 역사 기행을 갖는다. 11일 동북아역사재단에 따르면 이번 행사에는 동북아역사재단,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 주최로 독도향우회, 독도의병대, 독도수호대 등 전국 30개 단체가 참가하며 1904년 러일전 쟁 당시 일본이 만든 독도 동도( 東 島 )의 망루터를 둘러본다. 이들 시민단체는 독도 유적지를 탐방하고 독도가 일본에 의해 러일전쟁의 군사적 요충 지로 침탈당했다 되찾은 대한민국 영토라는 독도문제 본질을 되짚어볼 계획이다. 또 독도 관련 단체들은 역사의 현장에서 일본의 치밀하고 지속적인 독도영유권 주장을 상기하고 공동대처 방안을 논의하게 된다. 독도 망루는 일본 해군성에 의해 1905년 7월 25일 공사가 시작돼 같은 해 8월 19일 준 공됐으며 당시 망루에 배치된 인원은 군인 4명, 고용인 2명 등 모두 6명이었다. 이 망루터에는 독도경비대 막사가 설치돼 국토의 막내 독도를 지키는 보루 역할을 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는 일본이 1905년 11월 조선의 허락 없이 독도와 시마네현 현청 소재지인 마쓰에( 松 江 ) 사이에 해저 통신선을 설치, 감시망루 등을 갖추고 러시아와의 전쟁 에 대비했었다 고 설명했다. [email protected]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33 연합뉴스 2007년 5월 15일 독도주민 생활상 방송에 공개 (독도 연합뉴스) 홍창진 기자 독도주민의 생활상이 방송을 통해 전국에 공개된다. 15일 동북아역사재단에 따르면 한국방송(KBS)과 동북아역사재단은 16 17일 양일간 독 도에서 체험 삶의 현장 프로그램을 제작할 예정이다. 이번 제작은 독도 주변 어장을 삶의 터전으로 하는 독도주민 김성도(67)씨 부부와 울릉 도 도동어촌계, 독도경비대 등의 실생활을 카메라에 담게 된다. 독도를 생활공간으로 삼은 어민들의 삶을 프로그램 속에 엮어 독도영유권 확립을 위한 자료확보 및 독도가 한국인의 생활근거지임을 알릴 계획이다. 이번 체험 삶의 현장 독도편에는 역사드라마 연개소문 에 출연 중인 탤런트 김명국씨가 잠수기선박을 타고 독도 앞 바다에서 홍합과 소라 등 해산물을 채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제작팀은 김성도씨 부부가 사는 서도( 西 島 )에 하룻밤 머물며 김씨 부부와 독도경비대원, 유인등대 근무대원들의 생활상을 밀착 취재하게 된다. 한국방송 관계자는 흥미 위주의 방송이 아니라 독도사랑운동 확산에 초점을 두었다 며 독도를 터전으로 하는 분들의 이모저모를 있는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겠다 고 밝 혔다.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133

134 경북매일 2007년 5월 14일 독도서 체험 삶의 현장 촬영 탤런트 김명국씨, 김성도씨 부부와 해산물 채취 [울릉]독도 주민 김성도(67) 김신열(68)씨 부부와 독도어장에서 수산물을 채취하는 모습 을 담은 모습이 KBS 체험 삶의 현장 을 통해 전국 안방에 소개된다. KBS와 동북아역사재단은 오는 16, 17일 이틀간 독도에서 울릉도 도동어촌계와 독도주 민, 독도경비대원, 등대원 등의 실생활을 엮은 KBS프로그램 체험 삶의 현장 독도 편을 제 작한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촬영은 독도의 삶과 실생활을 엮어 방송으로 보냄으로써 시청자들에게 단순한 흥 미 위주의 방송 제작이 아니라 독도사랑운동 확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독도를 터전으로 한 울릉도어민들을 진솔하게 화면에 담아냄으로써 장기적으로는 독도영유권 확립에 대한 자료 확보와 독도가 한국 민들의 순수한 생활근거지자 삶의 터전 임을 널리 알리는데 있다. 이번 독도 편에는 불멸의 이순신, 신돈, 연개소문 등에서 열연한 탤런트 김명국씨가 도 동어촌계 소유의 잠수기선박을 타고 독도 바다에서 홍합, 소라, 해삼, 전복 문어 등 해산물 을 채취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또 경북도, 울릉군, 독도어촌계 어민들이 수십 년 전부터 독도어장의 자원보호를 위해 실시하고 있는 어린전복 살포 작업도 이날 촬영된다. 김두한 기자 13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35 KBS 체험 삶의 현장 677회 홍보문 독도 울릉도 체험 - 탤런트 김명국 방송일자:2007년 6월 10일 (일) 오전 9시 KBS 1TV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00리 우리 땅! 독도 땅을 밟기 위해 출동한 탤런트 김명국! 유람선 타고, 독도 앞바다로 고 고!! 어느새 독도가 눈앞에 보이고 접안을 시도해 보지 만, 높은 파도에 결국 접안 실패!! 아쉬운 마음에 멀리서 나마 독도의 동도와 서도를 보고, 다음날 울릉도 고깃배를 타고 다시 입도 준비! 그러나 거센 파도와 바람이 독도의 문을 쉬 이 열어주지 않고, 높은 파도로 인해 입도 중단!!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것! 마음에 되새기 고, 고깃배 선장님과 함께 울릉도 앞바다로 항해! 선장님과 함께 문어잡기 위해 낚시 바 늘에 생선 엮기도 척척, 낚시 줄 바다에 풍덩!! 문어 잡히기만을 기다리고 시간이 지나 자 거대한 문어가 올라오고! 자연산 해산물 채취에 잠수부 입수!! 자연산 전복, 소라, 홍 합, 성게가 듬뿍! 수확한 수산물 횟집에 판매하기까지 비록 독도 땅을 밟아보지 못했지 만, 독도는 우리 땅이다. 독도와 울릉도 삶의 터전을 체험하고 돌아온 김명국 파이팅! 제 4 장 독도 관련 러일전쟁 유적지 역사기행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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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제5장 독도 전문가 초청강연 Ⅰ. 행사개요 Ⅱ. 독도운동과 시민문화운동 Ⅲ. 한국의 역사연구와 울릉도 검찰일기 Ⅳ. 독도 연구 활동의 회고와 전망 Ⅴ. 독도에 연관된 러시아측 자료 및 일본과 꾸릴열도, 댜오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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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Ⅰ. 행사개요 년 전문가 초청강연 독도운동과 시민문화운동:이종상(서울대 명예교수) 한국의 역사연구와 울릉도검찰일기:양태진(동아시아영토문제연구소 소장) 일시:2006년 10월 26일(목) 17:00 18:30 장소:독도 스카이라운지(울릉군 도동회) 년 전문가 초청강연 독도 연구 활동의 회고와 전망:김명기(명지대 명예교수, 전 대한국제법학회 회장) 독도에 연관된 러시아측 자료 및 일본과 꾸릴열도, 댜오위다오:박종효(역사학 박사, 모 스크바대학교 전 객원교수) 일시:2007년 11월 7일(수) 8일(목) 장소:아카데미 하우스(서울 수유동 소재) 제 5 장 독도 전문가 초청강연 139

140 Ⅱ. 독도운동과 시민문화운동 이종상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1. 우리의식 여러 단체들이 우리 라는 의식부족으로 협력이 제대 로 되지 않아 아쉬움이 많았는데, 동북아역사재단의 주 도 덕분에 이렇게 모인 것에 감사하게 생각함 1) 당부의 말 이종상 교수 1 각 단체의 업무와 성격은 다르지만, 일관되게 독도를 수호하자! 2 문화, 구호, 무력 등은 선택적 수단에 불과하며 목적은 하나임 3 이순신 장군이 모함에 빠져서 귀향을 가서 왜군의 침공을 걱정하며 부인에게 한말 우직한 내가 나라를 위해 하는 걱정이 망상이었음 좋겠다 고 하였는데, 그의 역사의 식과 직관력이 적중하였는데, 우리가 독도에 대한 걱정들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노 력하여야 함 2. 울릉도 내도와 외도 그림 설명 1) 화법의 설명 1 이원법으로 그렸는데, 마음속으로 하늘을 보는 형상임 2 문화로 이 땅을 지키려는 화가의 소망을 표시함 2) 고구려의 사신사상 설명 1 좌청룡, 우백호 등에 따라 의미가 달라짐 14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41 2 가운데 황색은 영토, 중앙을 의미함 3 본인이 최초로 1974년에 고구려벽화 관련 논문을 발표하여, 중국의 동북아공정을 미 리 예견하였음 3) 소재문화에 대해 설명 1 한국의 문화독립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에서 시작됨 2 백두산 천지를 그리며, 우리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소재문화임 3 국가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즉 영토를 문화의 소재로 많이 활용하여야 함 3. 역사이해와 당부의 말 1) 대왕암의 전설 1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일본의 침탈을 예견하여 수중릉을 만들었지 않았나 생각함 2 감포 앞바다가 아니라 독도에 묻히기를 희망하였을 수도 있음 2) 우리의 임무 1 독도 문화심기 운동을 독도 자연보호운동과 병행하여야 함 2 문화사랑이 영토사랑이 되는 지름길임 제 5 장 독도 전문가 초청강연 141

142 Ⅲ. 한국의 역사연구와 울릉도 검찰일기 양태진 (동아시아영토문제연구소 소장) 1. 한국역사 연구의 문제점 1) 역사책이 인물위주로 되어 있음 2) 일본인의 한반도 인식 1 삼국시대 백제가 멸망하면서 유민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지도층이 되었음 2 따라서 지도층은 한일병합도 자신들의 땅에 다시 온 것으 로 당연시하게 여김 3) 근대 한국영토에 대한 외국의 불법점유 사건들 양태진 소장 1 녹둔도, 두만강하구, 발해 이후의 전진기지, 간도지방에서 바다로 가는 출구임, 1860 년에 러시아에 복속된 것을 철종실록에 나옴 2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대항하여 영국의 거문도 점거사건(3년간) 3 서해 가도, 명나라 장수, 모문룡이 멸망해가는 시점에 점거하였음 4 서해 신도, 비단섬으로 불림, 중국과 영토분쟁, 일본이 청나라와 흥정하였음 5 간도, 청일 간의 간도협약으로 중국으로 넘어감 2. 사료의 중요성 1) 육당 최남선 1 친일 성향 등 문제점은 있지만, 광범위한 사료수집을 하여 일본에 대항함 14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43 2) 관찬사료의 중요성 1 국가가 편찬하는 각종 사료가 영토연구와 분쟁에 중요하게 활용됨 2 민간에서 편찬하는 사찬사료인 보첩의 연구를 통하면 많은 역사적 사실을 알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됨 3 보학을 보면, 인구수를 추정하고, 민간에 기록된 조상의 활동으로 관찬사료를 보완 가능함 3) 울릉도 지역의 석장에 대한 연구 1 유물로 문화의 추측이 가능함 2 약 200기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80기 정도만 존재하고 있음 3. 검찰일기와 정부의 대응 1) 검찰일기 1 기록상으로 상세하여 역사적 가치가 있으며, 관찬사료로서 의미가 큼 2 지명이 정확함 - 지명은 영토수호 의미가 크고, 국제재판소 판결에 영향을 미침 - 과거와 현재의 지명을 비교하는 것이 도움이 됨 3 산신당, 해신당에 기도하고 순항하였다는 것은 지역민속을 인정, 동참, 공감 받았다 는 것을 의미함 2) 독도에서 일본인의 활동에 대한 정부의 대응 1 표석을 제거 2 금법을 국가문서로 보냈음 제 5 장 독도 전문가 초청강연 143

144 4. 기타사항 1) 영토분쟁과 강대국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언어공부가 중요함 ① 한자 ② 일본어 명치언어, 대정 당시 언어가 일본자료 파악에 중요함 2) 방언연구의 필요성 ① 전라도 사람이 많이 들어와 살았으므로 전라도 사투리 사용함 ② 독도나 지명에 관한 방언연구가 필요함 현포의 석장 144 독도와 시민사회 독도 시민활동 백서

145 Ⅳ. 독도 연구 활동의 회고와 전망 김명기 (명지대학교 명예교수) 1. 머리말 독도 연구 활동의 회고와 전망 이라는 무게 있고 방대한 발표 주제를 수락하고, 무엇을 어떻게 정리 발표해야 할지 망설인 것은 발표자의 독도 연구 활동에 특기할 만한 것이 별 로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주저 끝에 1 발표자에게 독도 연구의 길을 열어주시고 뿐만 아 니라 한국의 독도 연구의 기본 틀을 제시하신 독도 연구의 선구자 세 분을 소개하고, 2 독 도에 관한 도서를 저술하여 한국의 독도 연구에 기여하신 몇 분을 연대순으로 소개하기로 한다. 그리고 3 한일 간 독도영유권 문제의 주요 쟁점을 요약 정리하고, 4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뒤에, 5 몇 가지 제외를 하고, 끝으로 6 독도문제의 정책적 타협 해결 방안의 검토를 제의해보기로 한다. 상기 1, 2, 3은 회고 글, 4, 5, 6은 전망 으로 대하기로 한다. 그러면서 이 발표를 계기로 하여 한국의 독도연구사 를 여러분 중에 어느 분이 연구 정리하여 후학들에게 독도연구에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2. 독도 연구의 선구자와 저자 1) 독도 연구의 선구자 (1) 박관숙( 朴 觀 淑 ) 동경제대 법문학부 졸업, 연세대 법대 교수 독도의 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 연세대 박사 학위 논문(1969) (2) 이한기( 李 漢 基 ) 동경제대 법문학부 졸업, 서울대 법대 교수 제 5 장 독도 전문가 초청강연 145

146 한국의 영토,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1969) (3) 박종성( 朴 鍾 聲 ) 서울대 법대 졸, 뉴욕대 로스쿨 박사, 단국대 법대 교수 해양법 특수 연구, 서울:법문사, ) 독도 연구의 저자 1 황상기, 독도 영유권 해설, 서울:근로학생사, 외무부, 독도문제 개론, 서울:외무부 정무국, 박경래, 독도의 사법적 연구, 서울:일요신문사, 대한공론사, 독도, 서울:대한공론사, 김원식, 독도논집, 서울:일심사, 이한기, 한국의 영토, 서울:서울대출판부, 김교식, 독도 수비대, 서울:선문출판사, 김명기, 독도와 국제법, 서울:화학사, 김병렬, 독도냐 다께시마냐, 서울:다다미디어, 신용하, 독도, 보배로운 한국영토, 서울:지식산업사, 신용하, 독도의 민족영토사 연구, 서울:지식산업사, 나홍주,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과 국제법상 부당성, 서울:금광, 김명기 편, 독도연구, 서울:법률출판사, 홍순칠, 이 땅이 뉘 땅인데, 서울:혜안, 김명기, 독도의용수비대와 국제법, 서울:다물, 김병렬, 독도, 서울:다다미디어, 김명기, 독도의 영유권과 국제법, 안산:투어웨이사, Myung-Ki Kim, Territorial Sovereignty over Dokdo and International Law, Claremont, California:Paige Press, 한국해양연구소, 독도생태계 등 기초조사연구, 서울:해양수산부, 나홍주, 독도의 영유권에 관한 국제법적 연구, 서울:법서출판사,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47 김명기 편, 독도특수연구, 서울:독도조사연구학회, 이석우, 일본의 영토분쟁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인천:인하대출판부, 독도본부, 독도는 한국땅인가, 서울:백산서당, 독도본부, 독도영유권 위기연구, 서울:백산서당, 독도학회 / 신용하, 독도연구총서 전10권, 서울:독도연구보전협회, 서대구C J, 독도가 한국을 살린다, 서울:백산서당, 독도박물관, 독도 그리고 울릉도, 울릉:울릉군청, 김학준, 독도는 우리 땅, 서울:해맞이, 2005 독도본부, 독도학술토론회 전10권, 서울:우리영토, 김영구, 독도영토주권의 위기, 부산:다솜출판사, 김병렬, 일본정부의 독도침탈사, 서울:바른역사정립기획단, 김명기, 독도의 영유권과 신한일어업협정, 서울:우리영토, 김명기, 독도의 영유권과 실효적 지배, 서울, 우리영토, 김명기, 독도강의, 서울:독도조사연구학회, 김명기, 독도의 영유권과 대일평화조약, 서울:우리영토, 나홍주, 독도의용수비대의 독도주둔 활약과 그 국제법적 고찰, 서울:책과사람들, 독도 연구학회와 시민단체 1) 학회 (1) 독도학회 1 설립:1996년 2월 29일 2 회장:신용하 교수 3 간행본:독도연구총서, 전10권 (2) 독도조사연구학회 1 설립:1997년 5월 18일 제 5 장 독도 전문가 초청강연 147

148 2 회장:엄정일 박사 3 간행물:독도논총, 2006년 창간호 2) 시민단체 4. 독도 연구자의 소외 1) 정부 당국과 학자로부터의 소외 (1) 정부 당국으로부터 소외 1 정부의 독도정책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학자는 철저히 정부 당국으로부터 배척:절 대적 관료주의의 권위적 망상의 표현 2 정부의 독도정책에 반하지 아니하는 주장을 하는 학자도 정부 당국으로부터 냉대: 관료의 전문지식 결여에 의한 자격지심에 따른 학자에 대한 편협한 경쟁의식의 왜곡 된 발로 (2) 학자로부터 소외 1 관변학자로부터 소외:정부 정책결정 과정에 반관변 독도 전문학자의 참여 배제 의 도의 발로 2 독도전문 아닌 학자로부터 소외:독도에 관한 연구가 전혀 없는 대다수 학자로부터 의 따돌림 2) 자료와 연구비로부터 소외 (1) 자료로부터 소외 1 정부 관계 당국의 보안상의 이유를 명분으로 연구 자료의 제공 거부:편협된 관료주 의의 권위 유지 발상 2 해외자료의 전무:독도 문제에 관한 제3국의 해외자료 전무, 해외자료 수집에 막대한 경비 소요 14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49 (2) 연구비 지원으로부터 소외 1 정부 당국이 연구비 지원 전무:정부의 독도연구의 기피 정책의 귀결 2 정부 당국의 연구비 어용학자에 부여:정부정책의 정당성 유지를 위한 정책적 고려 5. 한일 간 독도문제의 주요 쟁점 1) 역사적 사실에 관한 쟁점 (1) 삼국사기 의 기록 1 삼국사기 권44, 열전( 列 傳 ) 이사부조( 異 斯 夫 條 )에 이사부가 우산국을 속임수로 항복시켰다. 는 기록이 있다. 2 한국은 우산국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a 우산국은 나라 로 표기되어 있으며 섬 으로 표기되어 있지 않다. b 후에 독도를 우산도라 부르게 되었다. 3 일본은 우산국에는 독도가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주장한다. a 삼국사기 에 독도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 b 세종실록 (지리지 울진현조)에 신라시대에 우산국을 울릉도라 불렀다. 는 기록 이 있다. (2) 세종실록 의 기록 1 세종실록 지리지 울진현조에 우산 무능 이도( 于 山 武 陵 二 島 ) 라는 기록이 있다. 2 한국은 우산은 독도를 뜻한다고 주장한다. a 동국여지승람 에 우산도와 울릉도는 울진현에 속한다. 는 기록이 있다. b 고려사 지리지 에 우산 무능은 본래 두 섬으로 서로 바라볼 수 있다. 는 기록이 있다. 3 일본은 우산도는 울릉도의 다른 이름이라고 주장한다. a 태종실록 에 우산도에 86명이 거주했다는 기록이 있다. b 울릉도에서 우산도는 바라보이지 않는다. 제 5 장 독도 전문가 초청강연 149

150 (3) 은주시청합기 1 은주시청합기 ( 隱 洲 視 廳 合 記 )에는 고로 일본의 북쪽 땅은 이 주를 끝으로 한다( 故 日 本 之 乾 他 以 此 洲 爲 限 矣 ). 라는 기록이 있다. 2 한국은 상기 기록 중 이 주( 此 洲 ) 는 은주, 즉 오끼시마를 뜻한다고 주장한다. a 주( 洲 )는 섬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군도( 群 島 )를 뜻한다. b 동 합기에 울릉도는 죽도( 竹 島 )로 독도는 송도( 松 島 )로, 오끼도를 은주( 隱 洲 )로 각 각 표기하고 있다. 3 일본은 상기 기록 중 이 주 는 울릉도 를 뜻한다고 주장한다. a 송도(독도)는 은주에 포함된다. b 은주시청합기 가 쓰여진 1667년에 울릉도는 일본의 영토로 일본에 인식되어 있 었다. (4)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 1 일본 외무성이 1869년에 작성한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 ( 朝 鮮 國 交 際 始 末 內 探 書 )에 송 도는 죽도의 이웃섬으로 송도의 건에 관하여는 이제까지 게재된 서류가 없다 는 기록 이 있다. 2 한국은 상기 기술은 송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a 일본 외무성이 죽도 송도가 조선의 부속으로 된 자초지정을 조사하라고 명한 바 있다. b 기록이 없다는 것은 일본의 영토라는 기록이 없다는 의미이다. 3 일본은 상기 기술은 송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a 내탐서에 송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기술은 없다. b 기록이 없다는 것은 조선의 영토라는 기록도 일본의 영토라는 기록도 없다는 뜻이다. (5) 태정관 지시 년 3월 17일 일본 내무성이 태정관에 대해 일본해내 죽도외일도( 竹 島 外 一 島 ) 의 지적 편찬에 관해 태종관에 질의한 바, 3월 29일 태정관의 지시에는 죽도외일도는 일본과 관계가 없다 라는 기록이 있다. 15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51 2 한국은 죽도외일도 는 송도(독도)를 뜻한다고 주장한다. a 죽도 밖의 섬은 송도(독도)를 뜻한다고 주장한다. b 질의서에 첨부된 부속서류에 밖에 섬이 하나 있는데 이를 송도라 부른다. 는 기 록이 있다. 3 일본은 죽도외일도 는 송도(독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a 울릉도 외에 송도 아닌 다른 섬이 있다. b 내무성이 태정관에 보낸 서류에 죽도외일도 는 송도라는 기록이 없다. (6) 대한제국칙령 제41호 의 규정 1 대한제국칙령 제41호 제2조에는 울릉군청은 울릉전도와 석도를 관할할 사 라는 규정이 있다. 2 한국은 석도 는 독도라고 주장한다. a 독도를 돌섬 이라 불렀다. b 죽도는 울릉도 옆에 있는 죽서도를 뜻한다. 3 일본은 석도 는 독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a 동 칙령에 석도 가 독도라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 b 한국의 어떤 기록에도 석도 가 독도라는 기술이 없다. 2) 국제법적 논리에 관한 쟁점 (1) 도근현고시 제40호 년 2월 22일 도근현고시 제40호 로 일본은 죽도를 관할한다고 고시했다. 2 한국은 동 고시는 국제법상 선점의 요건을 구비하지 못한 것으로 무효라고 주장한다. a 독도는 무주지가 아니므로 선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b 일본은 선점의 의사를 한국에 통고한 바 없다. 3 일본은 동 고시는 국제법상 선점의 요건을 구비한 것으로 유효라고 주장한다. a 독도는 조선의 공도정책으로 포기된 무주지였다. b 통고는 국제법상 요건이 아니다. 제 5 장 독도 전문가 초청강연 151

152 (2) SCAPIN 제677호 1 SCAPIN 제677호 제3항은 일본의 영토로 포함되지 아니하는 도서로 독도를 명시하고 있다. 2 한국은 동 규정에 의해 독도는 일본으로부터 분리되었다고 주장한다. a 연합군최고사령관은 항복문서 의 시행을 위해 영토처분의 권한이 있다. b 제6항의 이 훈령의 섬에 관한 규정은 연합국의 최종적 정책이 아니다. 라는 규정 은 연합군최고사령관이 동 훈령의 규정을 다시 정할 수 있는 규정이다. 3 일본은 동 훈령에 의해 독도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a 동 훈령은 행정권의 지정일 뿐 영토의 처리에 관한 규정이 아니다. b 제6항은 최종적이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다. (3) 대일평화조약 제2조 1 대일평화조약 제2조 a항은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 도를 포함하는 한국의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2 한국은 동 조에 독도가 명시되어 있지 아니해도 독도는 일본으로부터 분리된 것이라 고 주장한다. a 동 조에 독도는 분리된다는 규정도 분리되지 아니한다는 규정도 없다. b 제19조 a항은 SCAPIN의 효력을 승인하고 있다. 3 일본은 동 조의 규정에 의해 독도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a 독도가 분리된다는 명시적 규정이 없다. b 한국의 독도를 분리시켜 달라는 요청이 있었으나 이는 거부되었다. 6. 몇 가지 제의 1) 정부당국에 대한 제의 (1) 연구의 관리 1 주요 쟁점별 장기 연구계획 수립 시행 15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53 2 연구에 관한 보안 유지 (2) 연구비 지원 (3) 실효적 지배의 강화 1 역사적 권원의 변경을 위한 실효적 지배:역사적 권원을 현대 국제법에 의한 권원으 로의 변경을 위한 실효적 지배 강화 2 취득 권원의 유지를 위한 실효적 지배:역사적 권원을 현대 국제법에 의한 권원으로 변경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실효적 지배 강화 3 상대적 권원의 응고를 위한 실효적 지배:일본이 독도영유권 주장을 포기하지 아니 하는 한 한국의 독도 권원은 상대적 권원에 불과하며 이를 절대적 권원 또는 보다 강 한 상대적 권원으로 응고하기 위한 실효적 지배 강화 (4) 대국민 교육 및 홍보 2) 학계에 대한 제의 (1) 어용적 연구의 자제 (2) 선행적 연구의 존중 (3) 학제연구의 모색 국제법학, 사학, 생태학, 지질학, 해양학 등의 학제연구 3) 시민단체에 대한 제의 (1) 연대 조직 및 활동, 학회와 협조 협동 (2) 특성화 차별화 발전 (3) 조직의 저변 확대와 대국민 교육 (4) 정부시책의 사각영역 보완 제 5 장 독도 전문가 초청강연 153

154 Ⅴ. 독도에 연관된 러시아측 자료 및 일본과 꾸릴열도, 댜오위다오 박종효 (모스크바대학교 전 객원교수) 1. 러시아의 독도 발견과 지도상의 명칭 러시아는 19세기 중엽 영국과 미국에 이어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과 수교 및 영토협 상을 위해 세계일주에 경험이 있는 유능한 해군제독 시종무관장 뿌쨔찐(Е.В.Путятин)을 빨라다호로 극동에 파견하였다. 뿌쨔찐은 모함 빨라다호(2,090톤)에 3척의 보조함을 거느리고 청국( 淸 國 )과 일본( 日 本 )은 물론 한국과도 수교와 개항교섭을 위해 한국해안을 왕래하면서 독도를 발견하고 동해안 지도를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앞서 현대적 측량기법으로 제작하였다. 이 때 원산에도 상 륙해 수교요청서를 전달하려고 하였으나 한인들의 완강한 투석 전에 밀려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거문도( 巨 文 島 )에 상륙하였을 때는 모함 빨라다 호에 뿌쟈찐 제독의 비서로 탑승( )한 유명한 러시아 소설가 곤차로프(Гончаров И.А.)도 있었다. 그는 한인과 한문을 사 용하여 서로 필답으로 의사를 소통 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한인에 대한 인상을 중국인에 비해 영리하고 일본인 보다는 체격이 장대하여 동양인 중에서는 뛰어난 민족이라는 기록 을 전함 빨라다 호의 여행기에 자세히 남겨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1) 이 빨라다호(주:소혹성)의 보급을 맡은 수행함 올리부챠(Оливуца)호(함장 나지모프)는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하였다가 러시아 구 월력으로 1854년 4월 2일(양력 16일) 대한해협을 통해 블라지보스또크 방향으로 항진하다가 1854년 4월 6일(양력 18일) 아직 서양 지도상에 서 보지 못한 독도를 처음 발견하고 빨라다호에 보고한 후 항해 일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 하였다. 1) 곤차로프 선집, 제2권, 모스크바, 1958; 빨라다호의 여행 인상기, 1858, 뻬쩨르부르그. 15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55 해가 뜰 무렵 함정 전방에서 도서 발견. 08시 함정상태 양호. 환자 1명. 08시 현재 섬 방위 32도. 바람 미풍. 일기청명. 기 압 30도. 기온 15도. 09시를 넘어 중간 돛대 및 삼각돛을 세움. 12시 바람을 가로질 러 좌측으로 선회. 함정 내 수위 4.75인치. 아침에 발견한 두개의 높은 바위는 오전 내내 시야 거리에 있었는데 이제 명확함. 이 두 개의 바위섬은 약 300 사젠(약 642) 떨어져 있음. 이들 섬은 동남동 및 서남서로 놓여 있고 이들 중 더 높은 서쪽 섬은 올리부챠로 명명하고 동쪽 섬은 올리부챠가 발틱 함대로 편입되기 전 흑해 함대에 소 속되어있을 때 사용한 호칭을 기념하여 미네라이로 작명함. 2) 이어서 독도가 한국해안으로부터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다고 하였다. 뿌쨔찐은 독도 발견에 큰 관심을 갖고 정확한 도서의 위치와 지형을 조사하기 위해 낮 12시 정각에 중령 세르게예프(Сергеев)를 시켜 독도를 필사하도록 해 1856년에 발행한 러 시아 해군성 수로지에 최초의 현대적 측량에 의한 동해안 지도에 독도를 포함시키고 이어 서 거듭 수년 동안 해군성에서 독도를 올리부챠(서도) <메네라이>(동도)라는 명칭을 붙여 발행하였다. 3) 이렇게 러시아가 독도를 발견한 이후 독도명칭에 대해 제정 러시아와 소련 그리고 현 러시아의 해군성 수로지와 세계지도 사전 그리고 지도를 비교해 보면 각각 다른 표기를 사 용한 모순이 쉽게 발견된다. 1 최초 발견할 때 년에 발행한 수로지와 지도에는 올리부챠(Олибуца)와 메 네라이(Менелай)라고만 호칭했다. 2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는 a 불란서함:리안꾸르(Liancort) b 영국함:호네트(Hornet) c 러시아:올리부 챠(Оливуца 서도)와 메네라이(Менелай 동도)라고 호칭하여 2) 최명복(1997), 독도와 러시아, 해양전략지, 해군대학, 217쪽. 러시아 해군성 문서 보관소, 폰드 870, 오 삐시1, 델로7208 3) 뻬제르부르그 아카데미 도서관 지도과, 1856, 1857, 1858년, 한국 동해 안 지도 및 일본 서해안 지도, 해군 성 문서 보관소, 필자, 러시아 국립문서 보관소 한국관련 문서 요약집, 서울 2002년, 587쪽 제 5 장 독도 전문가 초청강연 155

156 a, b, c를 같이 함께 표기하였다. 3 러 일 전쟁( )이후 부터는 상기 3개 표기 외에 4번째로 다께시마라는 일본 도서 표기가 하나 더 붙어 명칭이 4개였다 년 이후 1974년까지는 지도에 다께 시마라는 호칭만 썼다. 일본영토로 인정을 뜻한 것이다 년에 발행한 세계 도서사전에는 독도를 다께시마로 표시하고 일본 영토라고 하 였다. 4) 6 그 후 현재는 모든 지도에 산호<Коралловые рифы>도로 최초의 불란서 포경함을 따 리안꾸루로 표기하고 있다. 위와 같은 옳지 않은 현상은 그간 미 소 이념 전으로 인해 발생한 한 러 양국 외교관 계의 단절에 있었다고 보여진다. 반면에 한국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교통부에서 발행한 세계 지도에 일본이 완강히 주장하고 있는 소위 북방영토를 꾸릴열도에 포함해 러시아와 같은 도색을 하여 꾸릴열도라고 표기하여 러시아 학계에서는 화제가 되었다. 아무튼 앞서 지적했듯이 구 소련이 독도를 다께시마로 표기하고 일본영토로 1973년까지 그대로 사용한 것은 카이로 선언과 동경 연합국사령부의 지령서 번호 677에도 모순이 되 므로 정부차원에서 러시아 정부에 항의를 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정부차원에서 침묵하고 있어 개인자격으로 위와 같은 모순을 지적하고 독도 호칭의 정정을 요청하는 진 정서를 러시아 외무성에 2006년 3월 6일 제출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외무성의 회답의 전 문을 여기에 소개한다. 모스크바 대학교 국제한국학 센터 박종효 박사님께! 박종효 님 독도(다께시마 혹은 리안꾸루)호칭에 관한 문제에 대해 보내주신 진정서와 주장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도서를(지리적 대상) 둘러 쌓고 국제적인 분쟁은 아주 오래 전부터 발생 4) 소련 교통성 지도국 발행(1973), 세계 도서사전, 모스크바. 15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57 하고 있으며 유감스럽게도 종종 관련국들은 구체적인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분쟁 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꼭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와 관련 러시아 측은 한 일 간에 분쟁을 조정하는데 개입할 생각 이 없습니다. 러시아에서 발행된 외국의 도서(대상)의 지리적 호칭의 결정은 러시아 외무성 권한 밖에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이 문제는 러시아 연방 교통성 산하 연방지도제작사(축지 및 제도제작)에서 취급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연방 지도제작사는 문제가 정치화 되는 것을 피하면서 이런 저런 외국의 도서명(지명)을 표기하는데 무엇보다도 지명의 표준화를 위한 UN회의에서와 국제수 로기관의 추천을 근거로 지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러시아에서 발행되는 지 도에는 장기간에 걸쳐 사용되어 오래 전에 형성된 외국도서에 대한 명칭을 사용해 오 고 있는 유럽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귀하가 러시아 지도에서 지적한 도 서의 호칭이 한국에 러시아의 전통적인 우호정책과 모순이 된다는 주장에는 동의 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에서 그 어떤 한민족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으로 생각하는 귀하 의 생각을 재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한 일 간에 분쟁도서의 호칭에 대한 문제는 곧 타협이 달성되어 귀하가 제기한 문제에 실제적인 해결이 되였으면 합니다. 세계는 기꺼이 이것을 납득할 것이고 또 도서명칭의 단일화에 대한 합의를(명칭)채택할 준비를 갖추고 있을 것으로 믿고 있습 니다. 본인이 알고 있기로는 귀하가 상기시킨 현 도서명칭(리안꼬르)의 사용을 검토한 세 계적인 지도전문가들도 임시대책으로(타결될 때까지)표기한다는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괄호 안의 말은 원문과 그 의미를 말함) 존경을 표하면서. 러시아 외무성 아시아 제1국 부국장 알렉산드르 띠모닌 2006년 6월 1일 위 회답으로 보아 러시아 측은 독도 호칭문제에 있어서 일본에 심기를 거슬리지 않으려 고 회피하고 말았다. 따라서 이제부터 정부기관에서는 적극적으로 독도에 대한 한국의 역 사적 영유권은 물론 호칭 표기에도 적극적으로 해외 홍보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본다. 제 5 장 독도 전문가 초청강연 157

158 2. 러시아인 브린네르가 획득한 울릉도 벌목이권과 일본 1896년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해 있을 때(소위 아관파천) 러시아 블라지보스또 끄 상인 브린네르(주:왕년의 유명한 서부활극에서 명연기를 한 율 브린너는 브린네르의 손자)가 압록강, 두만강, 울릉도 3개 지역에서 벌목이권을 획득하였다. 특히 울릉도는 25m 2 에 걸쳐 아름드리 각종 수목들로 울창하였다. 물론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도서이므로 울릉도를 논할 때 별도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독도에는 바위섬으로 울창한 수목은 자랄 수 없었다 할지라도 일본인이 애호하는 분재용 수종과 울릉도 목재 수송 중간거점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브린네르가 울릉도 이권을 취득한 3년 후 1899년 6월 서울 주재 러시아공사관 서기 쉬 떼인은 경북도청의 한인 관리와 함께 울릉도 현장에 갔었다. 그가 외무성에 보낸 현장답사 보고서에서 울릉도에는 140명의 일본인 도벌꾼이 23명의 일본 여성과 같이 생활하면서 거의 모든 희귀목을 도벌하여 일본으로 수송해가고 있다고 하였다. 일본은 값진 목재나 동해(본문은 일본해)상의 전략거점을 러시아에 양보하지 않으 려고 했던 것이다. 5) 그러므로 서울 러시아 공사관에서는 1898년 수차 한국정부에 울릉도의 목재를 일본인들 이 도벌해가고 있다고 말했으나 한국정부는 어떤 보호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어 직접 러 시아 외무성에서 동경주재 러시아 공사 로젠에게 훈령을 보내 일본 외무성에 러시아가 획 득한 벌목이권의 도벌을 중지시켜 달라고 항의하였다. 일본 외상은 도벌을 금지시키겠다고 약속하였다. 6) 그러나 도벌을 실제적으로 금지시키지 않고 계속하여 쉬떼인은 러시아 정부에 군함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1899년 10월말에 블라지보스또끄에서 순양함 깔로닐 제독 호가 현지 답사를 위해 울릉 도에 갔었다. 깔로닐 호는 해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해상에 수송선이 눈에 띄지 않게 있다가 넓이가 약 340m쯤 되는 만에 들어와 벌목한 목재를 부지런히 수송해 가는 현장을 5) 필자, 러일전쟁과 한국, 1996년 모스크바, 89쪽. 6) 제정 러시아 대외정책 문서 보관소, 폰드 150, 오피시 493, 델로 134, 리시트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59 목격할 수 있었다고 보고하였으나 외교상의 문제로 도벌을 막는 어떤 특단의 조치를 취하 지는 못했다. 1902년 일본은 한 상인을 내세워 20십만 루블에 15년간 울릉도 벌목이권을 임대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7) 그러나 이미 값진 향나무 등은 일본이 다 도벌해간 상태로 얼마 남지 않은 목재는 한국 정부가 대궐 보수용으로 사용하겠다고 하여 울릉도의 러시아 벌목 이권은 아무 소득 없이 일본인들이 방어력이 없는 울릉도를 자기집처럼 드나들며 도벌해가 그대로 막을 내리게 되고 말았다. 3. 러의 대마도 해전과 울릉도와 독도의 탐망대 일본은 울릉도에 통신시설을 갖추고 러 일전( )초기부터 러시아 해군의 항해 를 감시하고 원산으로 상륙하는 일본군을 지휘하였다. 최초 통신시설은 러 일 전쟁이 발 생하면서 1904년 울릉도에서 원산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 만큼 일본은 벌써부터 동해상에 있는 울릉도나 독도가 한반도를 점령하는데 전략적인 중요한 거점으로 생각하고 이용하였 음은 물론 러시아 함대의 항로를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이 발생하면서 뻬쩨르부르그에서 러시아 태평양 제 2함대와 3함대가 편성되어 총사 령관에 러시아 해군사령관이며 중장인 라제스트벤스끼(Рожественский З.П.)가 제 2 함대 지휘관으로 1094년에 러시아 리바바 항을 출발하였다. 그러나 영 일 동맹으로 스위스 운 하를 통과 할 수 없어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오게 되면서 많은 시일이 소요되어 일본군에 만주에 있던 러시아 해군 항이며 전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요새였던 여순항을 일본에 빼앗 기게 되고 말았다. 결국 여순항의 러시아 태평양함대가 전멸한 상태였으나 블라지보스또끄에 가 동해를 장 악하라는 니꼴라이 2세 황제의 어명이 있어 제주도 인근해역에 제 2함대와 제 3함대의 연 합함대가 진입했을 때는 남해안 마산포에 좌정하고 있던 일본해군제독 도고가 첩보 선으 로부터 무전으로 보고를 받고 알게 되었다. 7) 제정 러시아 대외정책문서 보관소, 폰드 150, 오삐시 493, 델로 134, 리스트 제 5 장 독도 전문가 초청강연 159

160 일본은 오래 전부터 러시아 함대를 대기하고 있었다. 독도에는 부상하는 일본 함대를 감 사하기 위해 탐망대를 설치하고 울릉도에 있는 보루산에는 블라지보스또끄로부터 남하하 는 군함을 감시하고 또 동쪽 산과 서쪽 산에도 각각 한국해안과 일본해안을 감사하는 탐망 대를 설치하여 사방에서 러시아 함대의 이동을 파악할 수 있도록 만전의 준비를 하고 있었 던 것이다. 당시 통신시설은 독일제로 지금도 그 잔해가 남아 있다(울릉도 박물관). 이와 같은 일본군의 철저한 준비를 모르고 러시아 함대는 2열 종대로 대마도 인근해협 을 통과하면서 1905년 5월 27일 새벽에 블라지보스또끄로 향하던 철갑 순양함과 구축함, 그리고 병원선을 포함하여 38척의 대 함대가 일본이 영국과 미국에서 구입한 최신예 순양 함과 구축함을 비롯하여 어뢰정 42척을 포함한 각종 함정 121척의 기습을 받아 맨 앞에 가든 함대의 총사령관 라제스트벤스끼는 포화를 맞고 큰 부상을 입어 지휘권을 제 3함대 사령관 네바가또프에게 이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네바가또프(Н.И. Небогатов)제독도 5월 28일 독도 앞 8마일 해상에서 집중포화 를 받아 항복 하고 말았다. 8) 원인은 독도에 설치해 함정과 긴밀히 통신연락을 한 일본해군 의 탐망대를 피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 함대의 포위망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러시아의 38척의 함정 중에서 겨우 순양함 한 척과 구축함 두 척이 독도와 울릉도에서 일본군 함대의 포위망을 뚫고 블라지보스또끄에 도착하였으나 심하게 파괴된 상태였다. 예 기치 않았던 러시아 함대가 독도와 울릉도에 설치한 일본군의 탐망대 때문에 러시아 함대 의 이동상황을 수시로 연락하여 포위 할 수 있었다. 차라리 남쪽으로 탈주한 군함은 방해 를 받질 않고 필리핀과 홍콩 등지로 무사히 탈출 할 수 있었다. 그 중 한국 호란 러시아 수송선도 탈출에 성공했었다. 러시아의 돈스끼 호는 일본 함대의 집중포화를 뚫고 대응하면서 어둠을 틈타 울릉도에 도착하였으나 반파되어 더 이상 항해가 불가능해 함정을 독도 저동 앞 바다에 스스로 침몰 시켰다. 돈스끼 호의 함장을 비롯한 수병은 울릉도 산에 숨어 있다가 일본군의 포로가 되 었다. 포로 중에는 러시아 정교회 신부도 있었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에 석방되어 남긴 보고서에서 울릉도 도민을 만났는데 일본인을 증오하고 있었으며 러시아인을 동정하였다 고 하였다. 9) 8) 러시아 해군총사령부 년 러일해전 사료편찬위원회, 1-7권, 뻬쩨르부르그, 년. 9) 러시아 연방문서 보관소. 16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61 러시아의 이와 같은 참패에 대하여 흥미롭게도 레닌은 그의 전집에서 패전은 예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함대가 그렇게 무참히 전멸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을 못했다. 러시 아는 패전뿐만 아니라 전제군주국가 군부의 종말을 맞이하였던 것이다. 라고 하였다. 10) 그 렇게 레닌이 혹평할 만큼 독도 앞 해상에서 처절한 참패를 당하고 1905년 9월 5일 러 일 포츠머스 평화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독도에 일본군의 탐망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4. 러시아의 독도에 대한 인식 러시아는 처음 독도를 1854년 발견하였을 때는 해군성에서 큰 관심을 갖고 지도까지 펴 냈으나 지금은 별 관심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세계지도에 동해상에 있는 리안꾸루 라는 산호도( 珊 瑚 島 )로 표시하고 있다. 더욱이 앞서 지적했듯이 러 일 해전 당시 러시아에 결정적 참패를 안겨준 원인이 독도와 울릉도에 설치한 통신시설과 탐망대의 역할이 컸었 다는 것도 모른다. 필자가 1996년 모스크바 국립 동방출판사에서 발행한 저서 러일전쟁과 한국 에서 최초 로 리안꾸루를 독도라고 호칭하였으며 독도의 탐망대 시설은 2005년 모스크바 대학교 250 주년 기념학술대회에서 필자가 발표해 알게 되었던 것이다. 러시아에 이런 현상은 2차 대전 이후 미 소의 냉전으로 러시아와 한국과의 학술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1900년부터 구 소련과 외교관계가 수립되었으므로 한 러 간에 통상외교뿐 만 아니라 여러 학술 분야에서도 적극적인 교류가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독도는 앞서 보 았듯이 러시아 측과 역사적으로 깊은 관계가 있었다. 사실 독도문제는 영토문제로 국제간 의 승인이 필요하며 게다가 2차 대전 이후 동경에 설치되었던 연합군 사령부의 미 소 영 중과 함께 일원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일본과 도서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동아시아 3국 중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연합국 사령부에서 독도를 일본영토에서 제외시켜 일본정부에 하달한 1946년 1월 10) 레닌전집 제10권, 모스크바, 1948년, 252쪽. 제 5 장 독도 전문가 초청강연 161

162 29일 지령서 번호 677에 동의하였으며 센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서명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러시아가 독도 명칭 표기를 비롯하여 소속문제에 대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게 한 것은 전 세기 미 소 냉전으로 한국과 외교가 없어서 학술교류가 단절된 원인이 큰 것이 다. 이제 외교가 수립 된지도 17년이 되었으니 상호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이해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더욱이 일본과 도서분쟁을 빚고 있는 독도, 꾸릴열도, 댜오위다오(조어도 센까구)문제는 한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이 다 같이 일본을 상대해 풀어야 할 문제이기에 그렇다. 5. 일본과 러시아와의 도서 갈등 러시아의 꾸릴 열도는 미 영 소의 얄타 수뇌회담에서 전후 일본으로부터 소련에 귀속 시키기로 이미 합의되었으며 대만과 독도 등은 카이로와 포츠담 선언에 따른 것으로 일본 영토분할의 전권을 위임 받은 동경 연합군 총사령부가 재확인하였던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함으로서 1946년 1월 29일 연합군 군 사 대표자회의 참모장 부관 알렌(H.Y.Allen) 대령이 총사령관 맥아더(D. Mac Arthur)장군을 대신하여 상기 여러 협정에 준해 일본 정부에 보낸 외교각서(메모란덤) 제 3조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1 울릉도( 鬱 陵 島 다자레트), 독도( 獨 島 리안꾸르), 제주도( 濟 州 島 라페루즈) 그리 고 꾸릴열도는 일본 영토에서 제외한다. 2 일본영토는 홋가이도( 北 海 道 ), 혼슈( 本 州 ), 규슈( 九 州 ), 시꼬구( 四 國 ) 4개 도서와 지 정한 1,000여 개의 작은 도서로 한정한다. 그리고 4조에서는 다음 지역은 일본정부의 행정 및 사법권관할지역에서 제외한다. 1 만주( 滿 洲 ), 대만( 臺 灣 ), 팽호도( 澎 湖 島 ) 2 한국 3 가라후도(사할린) 16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63 이어서 5조에서는 현 지령서에 밝힌 일본영토의 확정이 앞으로 연합군 총사령부의 모든 메모란덤, 지령서, 명령서에서 다른 어떤 방법으로 영토가 확인 되지 않는 한 현 결정이 적 용될 것이다. 위와 같은 연합군 사령부의 외교각서를 받고 일본 정부는 처음 무조건 항복 조건에 순 응하여 패전의 결과와 그 책임으로 수용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갑자기 1951년 센프란시스 코 평화조약을 전후하여 한국의 독도를 비롯하여 러시아의 꾸릴 열도 그리고 댜오이다오 를 자국의 영토로 주장하고 있다. 일본이 북방영토라고 주장하는 4개 도서인 남 꾸릴 열도를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 약과 미 일 방위조약을 체결하면서 소유권을 주장하여 러 일 간에 분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꾸릴 열도에 대하여 좀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러시아 깜차뜨까(Камчатка)반도 연안에서 일본 홋가이도( 北 海 島 )연안까지 730마일에 걸쳐 해상 화산폭발로 출현한 30개 이상의 큰 섬과 100개 이상의 무인도로 형성된 열도로서 원주민은 일본인이 아닌 아이누(Ainu) 족이다. 꾸릴은 원주민 아이누 족의 어원<꿀>로 사람 이란 뜻이었으나 러시아가 1643년경에 처 음 발견 할 때 아이누 족이 러시아인을 처음 보는 사람 이란 뜻으로 이 말을 했으나 잘 못 이해하여 러시아어 꾸리찌 (Курить), 즉 담배 피우다 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로 담배처 럼 길다는 뜻에서 유래 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어로는 지시마(천도( 千 島 ))로 아이누 족 의 어원인 많은 섬을 뜻하는 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아이누 족은 18세기경에 러시아 깜차뜨까 반도에서 이주해와 주로 홋가이도를 중심으로 여러 꾸릴 열도와 사할린 남부 일부 지역에 살고 있었다. 언어와 용모는 일본인과 전혀 다 르며 인종학적으로는 동남아 종족에 속하는데 신석기 시대에 이주해 온 것으로 고고학자 들은 보고 있다. 러시아는 1643년에 깜차뜨가와 꾸릴 열도를 발견하고 1705년부터 꾸릴 2개 도서를 시작 으로 점차 야사끄(Ясак)(주:모피가죽 등의 현물세. 조공으로도 해석 할 수 있다. 러시아는 이 지 역으로부터 가죽 현물세를 받았다) 지역을 넓혀 20개 도서로 홋가이도( 北 海 島 ) 일부까지 확대 하여 현물세를 받았다. 그런데 일본이 지금 자국 영토로라고 주장하고 있는 북방 영토는 홋가이도 북방에 위치 한 하보마이( 齒 舞 ), 시코단( 色 丹 ), 구나시리( 國 後 ), 이또로후( 擇 捉 ) 4개 도서로 러시아에서는 제 5 장 독도 전문가 초청강연 163

164 남 꾸릴 열도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 외 전 도서를 총칭하여 꾸릴 열도라고 하고 있다. 이 상기 4개 도서의 면적은 전채 꾸릴 열도의 반에 해당하는 5,000평방 미터에 달하고 러 일 간에 군사전략적인 요충지로 또는 주변에 가스와 각종 어종이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에 일본은 러시아가 꾸릴 열도를 발견한 이후 원주민으로부터 모피 등으로 현물세 를 받던 시기 보다 더 늦게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북방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홋가이도 (아이누 족의 영토)를 병합하고 18세기 말부터 꾸릴 열도에까지 적극적으로 진출하기 시작 하면서 러시아와 국경이 발생하게 되었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즈음하여 100년 전의 1855년 러 일 시모다 조약에서 북방 4개 도서인 남 꾸릴은 러시아가 일본영토로 인정한 것이니 당연히 양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소련은 시모다 조약은 이미 폐기된 지 오래이며 시모다 조약 체결 이전에 벌써 러시아 영토로 있었으며 이후에도 일본과 영토문제로 뻬제르부르그 조약과 포츠머스 조약으로 국경선이 여러 차례 변경되었으며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무효가 되었다 고 반박하였다. 사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전 꾸릴 열도에 대한 모든 권한과 주장을 포기 하며 또 사할린과 주변의 모든 도서와 1905년 9월 5일 포츠머스 조약으로 제정 러시아로 부터 러 일( )전쟁에서 얻은 남 사할린을 포기한다고 명백히 기록되어 있어 이 문서로 러 일 국경에 대한 문제는 일단락된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1955년 1956년에 걸쳐 개최한 소 일 외교 정상화 협상에서 일본측은 샌프란시 스코 평화조약에 일본이 서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이 서명을 거부한 것을 역이용 문 제를 제기하여 논쟁이 시작되었다. 처음 일본은 제2차 대전 후 러시아 영토가 된 모든 전 일본영토의 반환을 요구하다가 반 대에 직면하면 차츰 요구에서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이 논쟁에 흐루스쵸프(Н.Хрущ ев)가 우호적 제스처로 평화조약을 체결한 이후에 꾸릴 열도 중 가장 작은 두 개의 도서인 시코단과 하보마이를 일본에 선사하겠다고 경솔하게 말을 하지 않았다면 전면적으로 일본 의 요구를 거부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말은 전혀 적법성이 없는 독선적인 약속으로 1956년 10월 19일 모스크바에서 서명한 소 일 관계정상화 소 일 공동선언( 蘇 日 共 同 宣 言 ) 제9조에 언급되어 있다. 16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65 1956년의 소 일 공동 선언은 중요한 역사적 문서로 양국의회에서 승인하여 소 일의 전쟁 상태의 종결을 의미하며 양국의 정상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 선언서가 발표 된 이후부터 러 일 양국간에는 모든 분야에 걸쳐 평화적인 발전이 시작 되었다. 그러나 흐루스쵸프의 독선적인 산물인 공동선언이 3년이 경과하면서 바로 1960년에는 공동선언 발표 때 처음 9조의 의미를 상실해 버렸다. 이때 일본은 꾸나쉬르와 이뚜루쁘를 포함하는 전 남부 꾸릴의 영토주장을 하였던 것이다. 게다가 1960년 1월 일본 정치지도자 들은 소련공산정권에 대항하는 신 미 일( 美 日 ) 방위조약을 체결하였다. 그와 같은 일본의 반전된 태도에 흐르스쵸프 정부는 일본정부에 3통의 외교 각서를 전 달 하였다. 그 각서에서 하보마이와 쉬꼬딴 양 도서를 평화조약체결 이후에 선물로 반환하 겠다는 이전 약속의 취소를 통고한 것이다. 이 취소 각서에 근거해 이 후 30년간 소련의 입장은 변함없이 완강하였으며 일본과의 영토문제는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다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일본은 미 일 상호 방위조약 체결 이후 더욱 강력히 소련에 영토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말하자면 일본은 소 일 양국간에 평화조약을 체결하지 않아 영토문제에 관한 조약이 없기 때문에 이전 100년 전 러 일 조약으로 소급해 4개(북방 영토)도서와 남 사할린을 반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 고 일본은 1956년 흐루스쵸프(Н.Хрущев) 때 소 일 선언에서 밝힌 2개 도서의 양도는 즉 시 이행하라고 촉구하였다. 이에 대해 소련은 국제조약 법에 관한 비엔나 협정 62조 2항과 3항에 조약 체결 이후 일국이 조약 당시의 조건과 다른 상황이 발생할 경우 조약을 완전 히 이행하지 않거나 연기 또는 부분적으로 이행하지 않을 수 있다. 라고 거부하였다. 그리 고 소련은 더 이상 일본과 도서문제 자체를 회담 의제로 정하는 것조차 반대하였다. 이후 가르바쵸프가 구 소련 대통령이 되면서 개방 개혁정책을 1989년부터 시행하고 극 동 영토문제에도 완강했던 전 지도자들과는 다르게 유연한 정책과 태도를 취했다. 일본은 가르바쵸프가 1991년 4월 동경을 방문하였을 때 최소한 남 꾸릴(북방 4개 도서)을 반환 받 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가르바쵸프는 일본 수상과 회담에서 도서문제에 대하여서는 예상외로 완강했었 다. 전 지도자에 비하여 인플레에 시달리며 경제를 회복하고자 일본의 협력을 바라고 유연 성을 보였으나 공동성명에서는 1956년 2개 도서 양도합의를 확인하는 것조차 피했다. 다 제 5 장 독도 전문가 초청강연 165

166 만 양국입장을 고려하여 일본이 주장하는 4개 도서와 평화조약 체결에 관한 모든 문제를 협의하자는 합의에 그쳤다. 가르바쵸프의 개혁정책도 오래가지 못하고 1991년 정변의 발생으로 73년간에 걸친 소련 방은 붕괴되고 공산당 정권이 실각 되면서 민주 정의를 표방한 신생 러시아 연방공화국의 탄생으로 이념을 앞세운 미 소 대결과 긴장은 종식 되었다. 이제 1956년에 소 일이 합의한 2개 도서의 양도 불이행(미 일 안보조약) 명분도 공산 당의 몰락으로 없어지게 되었다. 다만 파탄에 직면한 국가경제를 회복시키고 민생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옐친(Н.Н.Ельцин) 러시아 연방 대통령은 경재 회생정책을 모 색하면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영토문제로 이해관계에 있는 경제 대국인 일본을 떠올렸다. 옐친은 1992년 말에 일본을 방문하여 돈가방을 받고 축배를 들려고 계획했으나 뜻하지 않은 국내의 강력한 반대여론에 직면하여 출국조차 하지 못하고 말았다. 겨우 여론을 진정시키고 1993년에야 일본에 가 옐친과 일본 수상은 1993년 10월 13일 동경선언을 발표하였다. 선언서에서 러 일 양국정부는 과거의 불편한 관계를 극복해야 할 필요성을 이해하고 남 꾸릴 도서의 소속 문제를 신중하게 협의했으며 양국은 남 꾸릴 문제의 해결로 속히 평 화조약에 대한 협상을 계속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는 의례적인 틀에서 크게 벗 어나지 않았다. 그 후 러 일 간에 평화조약 체결 협상을 1997년 그리고 1999년에도 계속하면서 2000년 까지 체결한다는데 합의하였으나 서로 이견을 좁히지 못하여 실패하고 러시아는 2005년에 일본에 새로운 안을 제시하였다. 즉 일본의 북방 4개 도서에 일본의 광범한 경제적 투자와 권한을 인정하는 대신 러시 아의 행정주권을 그대로 유지한다. 는 안이었다. 뿌찐(В.В.Путин)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상황은 전과는 많이 변하였다. 뿌찐 대통령은 강력한 러시아를 원하여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있다. 석유와 가스 대국으로서 부상하면서 악화 되였던 경제사정도 호전되어 지금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외환보유국가로 부상하 였다고 한다. 이제 21세기 자원 대국이라는 자부심으로 일본의 도서협상 제의에는 종전의 주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국가 이익에 최우선 정책을 두고 있다. 16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67 6. 일본과 댜오위다오의 분쟁 문제 댜오위다오(조어도 센까꾸)소속국 문제로 대만과 중국이 일본과 분쟁 중에 있다. 독도를 1905년 러 일 전쟁 중에 일본이 시마네 현에 임의로 편입시켰듯이 댜오위다오도 청일전 쟁으로( ) 일본이 임으로 영토에 편입시킨 점이 유사하다. 댜오위다오는 무인도로 8개의 작은 바위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밖에 암초 등이다. 센까꾸의 지명은 영어 <Pinnacle>에서 차용해온 말로 1900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이전에는 일본어로는 센또라고 불렀다. 그 당시에는 세끼비(치웨이)는 센까꾸에 포함되지 않았다. 센까꾸의 소속이 한 번도 어떤 국제조약이나 연합군사령부의 지령서에서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었다. 북경( 北 京 )에서는 1281년부터 중국이 관리하던 요추리(댜오유이) 도 대만에 소속된 도서로 생각하고 있다. 이 도서를 1403년에 발행된 선박잡지에 중국 선 원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한 항해 표점( 標 點 )으로 표시하였다. 구체적으로 댜오유이, 후아이웨이, 치웨이에 대해서 1534년 유뀨(오끼나와)(주:역사적으로는 유꾸열도 왕국이었으나 현재는 유뀨열도의 수도였던 오끼나와 현이라고 한다)왕국에 특사로 간 중국의 특사 장강의 여 행기<장루>에 처음으로 기록되어 있다.이것이 중국이 갖고 있는 댜오위다오(쎈까꾸)에 대 한 사료 중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그러나 유뀨 왕국에 특사로 간 중국특사의 여행기에 이 도서가 어느 나라에 소속되었는 가는 언급이 없으며 다른 기록도 1719년까지는 없었다. 중국정부는 1719년부터 센까꾸를 중국영토로 보고 있으나 1971년에야 영토로 선언하였다. 유뀨 왕국은 15 19세기까지 중국의 조공국가였으며 동시에 년까지 일본에 도 조공을 바쳤다. 1872년에 유뀨 왕국은 중국의 조공국가에서 독립한 후 일본이 합병하자 중국은 1879년 합병을 인정하였다. 이때부터 일본 역사학자와 지리학자들에 의해 일본 지 도에도 센까꾸가 등장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센까꾸를 일본과 중국의 중간 경계지점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1882년 일본의 천진 영사 다께조예로부터 센까꾸가 오끼나와에 소속된 도서라고 권리 요구를 중국에 하고 중국도 같이 유사한 요구를 하였다. 한편 일본은 1884년에 이 섬을 최초로 발견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 최초의 발견자는 규 제 5 장 독도 전문가 초청강연 167

168 슈에서 오끼나와로 이주한 꼬까라는 자로 일본정부에 섬 중에서 가장 큰 요추리(댜오유이) 의 사용권을 달라고 진정하고 후에 꼬비(후아이웨이)에 꼬가 마을을 건설하고 요츄리에 건 어물 건조 장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중국측에서는 후챤주의 경계에 있는 요추리를 일본인의 이주는 대만에 소속된 중국 영토의 점령으로 간주하였다. 이와 관련 일본외상 이노우에는 1885년 12월4일 오끼 나와 지사에게 세기(치웨이)와 꼬비(후아이웨이)의 국경표시가 확정되고 경제적으로 효용 가 치가 있게 되면 <상황이 호전>될 것이니 그 때까지 참고 자제하라고 지시하였다. 이 문서가 영토논쟁에서 중국의 입장을 확인해 주고 있다. 그러나 청 일 전쟁( )이 끝날 때까지 상기 도서에 대한 소속이 중 일 간에 해결되지 못하였다. 이 청 일 전쟁에 앞서 중 일 간에는 한국에서의 러시아와 이해와 센까꾸 지역의 영토문제로 구실 을 삼아 일본이 중국을 침략 하였던 것이다. 일본이 중국에 승리해 센까꾸를 획득할 수 있는 <상황으로 호전>되어 중국과 어떤 협상 도 하지 않고 예고도 없이 바로 합병해 버렸다. 이렇게 일본은 센까꾸를 1895년 무력으로 점령하였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은 센까꾸를 중국과 어떤 조약에 의해 합병한 것이 아니었으나 중국측은 반세기 동안 이에 대해 침묵을 하여 일본이 정치적으로 실효적 점령 을 한 편이 되었다. 물론 1943년 카이로 선언과 1945년 포츠담 선언으로 연합국인 소련, 미국, 영국 그리고 중국에 의하여 일본영토를 정하게 되어 있었다. 이 때 카이로 선언에서 제2차 대전( )이 종결되면 일본의 침략을 처벌하여 청일전쟁( )으로 빼 앗은 대만을 반환하기로 되고 또한 무력과 정치적인 야욕으로 점령한 태평양의 모든 도서 에서 일본을 추방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종전 후 8년이 지나 센까꾸는 일본 유뀨열도에 편입되었으며 1953년1월12일자 유뀨열도 지리경계에 관한 미국 의회보고서 22호에 의하면 미군의 통제하에, 즉 미군이 1951년부터 점령하여 군사목적으로 활용하였다. 이로 인하여 대만정부는 동경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가 일본정부에 보낸 지령서 그리고 1951년 4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도 일본영토에 포함시키지 않았었다고 격렬한 항의를 하였었다. 한편 1958년에 개최한 대륙붕에 대한 제네바 협정을 비준할 때 대만정부는 센까꾸는 대 만 영토라고 주장하고 중국 대륙붕의 일부인 해상 수면에 있는 만큼 연안지대로서 대만에 16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69 소속된다고 주장하였다. 일부 해상법 전문가들도 1958년 제네바 회의에서 대만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이 요구도 다른 요구처럼 대만이 늦게 문제를 제기해 승인을 받지 못 하였다. 1966년 7월 17일 대만정부는 센까꾸와 대륙붕의 모든 자연자원에 대한 주권을 선포하였 다. 그 후 4년이 경과한 후 대만에서 발행되는 차이나 타임즈 기자들이 어선을 임대해 센 까꾸에 가서 대만국기를 세웠다. 하지만 일본 국경 순시선이 대만국기를 바로 제거했다. 그 후 극동 국가 UN 경제위원회 지리탐사팀이 동( 東 ) 중국해의 대륙붕에 다량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고 확인한 1968년부터 센까꾸 소속문제가 다시 첨예화되기 시작하였다. 매 장량에 대한 한 평가자료에 의하면 전 근동지역에 매장량과 같은 약 30조 리터로 예상하고 다른 평가자료에는 약 100억 배럴일 것이라고 한다 년 이 정보는 일본의 3개 지질조사단에 의해 확인이 되었다. 그밖에도 대륙 붕의 동부 지방(센까꾸 근해)에서 일본 지질학자들은 다량의 천연 가스를 발견하고 미국이 센까꾸를 1972년에 일본 오끼나와에 반환하면서 대만과 일본 간에는 더욱 논쟁은 격화되 었다. 상황은 중국도 이 센까꾸와 전 대륙붕 지역에 권리를 주장하자 1970년 말부터 1971년 초 까지 더욱 악화 되었다. 중국 정치지도자들은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추구하면서 대만의 모 든 국제적 권리를 대신 행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인민공화국)정부는 1950년에 카이 로와 포츠담 선언을 승인하면서 센까꾸의 반환에 대해서는 어느 경우에도 전혀 말을 하지 않았었다. 현재는 일본이 실효적 점령을 하고 있는 실정이나 언젠가는 중 일간에 해결해야 할 문 제로 남아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독도는 물론 꾸릴열도와 댜오위다오의 분쟁도 다 일본의 침략성 때문에 발생하였다. 그 침략성의 부활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제 5 장 독도 전문가 초청강연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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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제6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Ⅰ.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행적 답사 Ⅱ. 러일전쟁 관련 일제 유적지 답사 Ⅲ. 조선시대 수토정책관련 역사 유적지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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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Ⅰ. 이규원 울릉도 검찰사 행적 답사 벅찬 감동과 함께 한 3박 4일- 독도는 영원한 우리 민족의 땅 유호정 (독도사랑협의회) 2006년 독도 시민단체 연합행사. 독도관련 시민운동 단체들이 한 자리에 모여 독도문제 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마음들을 열어놓고, 함께 고민하는 시간들이었다. 1882년 이규원 검 찰사의 행적을 따라 걷는 것이 행사의 중심을 이루었지만, 실은 단체 관계자들끼리 서로를 좀 더 이해함으로써, 향후 일본에 대해 좀더 강력하고 일사 분란한 움직임을 보여주기 위 한 자리였는지 모른다. 이 글은 독도사랑협의회 유호정 님께서 3박 4일간의 행적들을 꼼꼼 하게 기록한 것이며, 사진은 독도어울림 김성호 님이 촬영한 것이다. 정말 왜 그러는 것일까? 내 대부분의 여행이 치밀한 계획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고 이 렇듯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 말이다. 20대의 십년동안 그랬다. 매번 여름만 되면 전국일 사진 년 이규원 검찰사가 처음 닻을 내린 울릉도 학포. 고종임금의 명령을 받은 이 규원 일행은 4월 29일 구산포를 출항하여 4월 30일 저녁 무렵 소황토구미(학포)에 도착했다.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173

174 주를 하겠다며 며칠을 두고 경로나 이동 수단을 결정하고 총 예산을 짠 뒤 계획된 출발 날 짜만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여행은 못 간다고 보는 것이 옳다. 갑작스러운 일들, 혹은 이 들쑥날쑥한 마음의 변화. 인생이 얼마나 갑작스러운 일들로 가득 차 있는지 나는 여행계획을 짜면서 알게 되 었던 것이다. 1. 즉흥적 울릉도행 그와 반대로 여행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별 볼일 없는 일상에 코가 빠져 허덕이고 있을 때 그것은 역시 갑작스럽게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다. 한 번은 늦은 밤, 친구들과 풋소주에 취해 신세나 한탄하고 있다가 불쑥 청량리에서 막차를 타고 정동진에 간 적도 있었다. 새벽 공기를 안주 삼아 바라보는 바다는 역시나 취할 정도로 일품이었다고 하지만 누군 들 모르랴, 일정에 없던 외박과 그 별 볼일 없는 일상을 살지 못하는데서 오는 살 떨리는 압박. 너 어디야? 못 들어오면 못 들어온다고 전화 한통 못해? 오늘 회의하기로 했잖아, 너 어디야? 비디오 가게인데요, 비디오 반납 안하셨거든요? 오, 제발! 담배를 피우고 갈아 신지 못해 냄새가 나는 양말을 바람에 말리며 생각하는 것이다. 전 화기 따위는 아예 꺼 놓는 것이 좋다. 그리고는 생각하는 것이다. 다음부터 이런 여행은 절대 오지 않을 거야. 아아, 이 헛된 공염불. 사실 울릉도에 가지 않겠냐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거의 세 갑 정도의 담배를 피운 상 태였기 때문에 뒷머리를 부여잡고 홀로 신음하고 있던 중이었다. 거의 5개월간 붙잡고 써 왔던 시나리오가 진탕 속에 빠져 나올 줄을 몰랐다. 영화사에서는 하루 빨리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모두들 지쳐 가고 있었 고. 왜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집에 혼자 남아 밥을 먹으면 폭식을 하기가 일쑤였고 식구들 이 퇴근할 무렵에는 일부러 산책을 나가기도 하였다. 조만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음 17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75 악을 들어 볼까, 책을 볼까. 차라리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 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전화벨이 울렸다. 형, 울릉도 안 가실래요? 울릉도? 네, 울릉도. 형, 가고 싶어 했잖아요. 이런 식은 아닌데, 못 가 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가 않는다. 울릉도. 신비의 섬. 푸른 바 다. 넘실대는 북태평양 한류 괴의 검고 푸른 바다를 지나 울렁울렁 울렁대는 트위스 트. 갈께. 네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이따 다시 자세한 내용 알려드릴게요. 끊어요. 응. 2. 즐겁게 가자 다른 사람의 경우는 물론 그렇지 않겠지만 내 경우에 있어서만큼은 아직까지 인생이 이 렇듯 급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아직 철이 없고 즉흥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리 라. 그리고 그렇게 길을 바꾼 인생은 원래의 길을 다시는 찾지 못하리라. 어딘지 모르는 숲 속에서 계속 헤매기만 하는 삶도, 삶의 한 방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 다. 나도 참으로 한심한 놈이다 라는 생각도 덤으로 해 보았다. 사실 마음이 편치 않아 울릉도에 가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은 상태였는데, 원래 출발하 기로 한 날에서 일정이 모두 하루씩 연기 되었다. 영화사에 시나리오 최종고를 넘기고 전 화가 오기를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수신확인을 해 보니 아직 메일을 읽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바쁜가 보구나. 술이 먹고 싶었는데 여의치가 않았다. 마침 후배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당연히 마시겠 다고 했다. 시의 적절한 전화와 사람이 반갑구나. 술을 마시다가 울릉도에는 즐겁게 가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가기로 한 거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뭐든 고민은 하나씩 없애 가는 것이 좋다. 이것저것 다 껴안고 내일로 넘어 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175

176 년 10월 25일 저녁 버스가 출발하기로 한 시청 앞 광장에 도착 한 것이 버스 출발 시간인 12시 30분보다 한 시간 빠른 11시 반이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동북아역사재단은 정부가 출연한 정부 산하기관으로서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보다 근본적이고 깊이 있는 접근을 위해 만들어 진 단체라고 인터넷에서 읽었다. 참가하는 분들은 다들 지난 몇 년 동안 독도 문제를 다루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의 간사 나 대표 분들로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라는 말을 들었고, 모두들 열정적으로 사시는 분들 일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시간이 좀 남았기에 대한문을 지나 덕수궁 돌담길을 좀 걸었다. 수중에는 만 원짜리 한 장이 전부였지만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고 필름을 한 통 샀다. 남은 돈 4,800원. 사진을 몇 장 찍고 벤치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웬일인지 지겨웠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밤, 세상에 밤하늘이 무언가 이야기 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니, 퇴폐의 정도가 많이 심해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되자 역시나 머리가 희끗하신 어르신들로 버스가 채워졌다. 가장 젊어 보이는 분들도 적어도 나와 내 후배 녀석 보다는 10년은 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 같았다. 간단한 소개가 있고 버스는 출발했다. 창 밖에는 상투적인 서울의 야 경이 보인다. 울릉도와 독도 여행이라. 사진 2 대한문 앞에서 10월 25일 12시 30분 정각에 버스는 포항을 향해 출발했다. 정확히 말하면 단순한 여행만은 아니다. 시민사회단체 간의 교류협력방안을 위한 세미 나도 준비되어 있고 공동의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포럼도 있을 예정이다. 강의도 두개 나 듣는다. 이를테면 많은 고민과 계획을 필요로 하는 일정인 것이다. 지금 나에게 그런 준비가 되어 있나? 독도문제에 대해서는 민족적이고 감정적인 차원의 화는 가지고 있었지 17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77 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터였다. 1) 돌이켜 본 대학생활 대학에 처음 입학해서 느낀 것은 불편함이었다. 물론 생활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유로운 (?)생활이었지만 마음 한 쪽은 언제나 불편함으로 가득했다. 그것은 지지부진한 불편함이 었다. 이름도 무시무시한 한총련이라는 조직도 있었고, 영어회화 동아리도 있었으며, 힙합 댄스 동아리도 있었다. 다양성이라는 기지 아래 다들 자유로워 보였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 니었다. 어느 사회든 크던 작던 모순 없는 사회는 없을 텐데 그것을 너무 갑작스럽게 깨닫게 되 는 것이 문제였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사회나 국가의 모순과 아픔에 거의 무지한 상태 로, 혹은 알아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살다가 대학에만 들어가면 개개의 학생들에게 사 회 각계각층의 아픔과 모순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하루 이틀 된 문제들이 아니었다. 아니 왜 이런 문제들을 이렇듯 방치하고 있었단 말인 가, 아니면 왜 어른들은 우리의 눈과 귀를 이와 같이 철저하게 막아 놓은 채 에헴 하고 있었단 말인가. 다들 자유와 진리가 넘치는 대학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유와 진리를 누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누구든 한 쪽 눈을 감거나 한 쪽 귀를 막아야 했다. 그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이었다. 그 당시에는 물론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냥 어느 한 쪽을 택하는 것이 본능적으로 싫었을 뿐이었다. 한 발자국만 떨어져서 냉정하게 바라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깜냥에 맞는 생활의 양식이 나왔을 터인데 그러지 못하고 무슨 술만 그렇게 먹어댔는지 지금도 한 심하기만 하다. 덕분에 남들보다 오래 학교를 다녔고 우왕좌왕한 기회비용을 톡톡히 치르고 있고, 정치 적인 일에 앞장서 나간다는 것, 혹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에 무의식적인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그러나 비성숙과 지리멸렬의 결과일 뿐이다. 지금 내 앞자리에 하얀 머리만 보이 는 분들은 이러한 단계를 극복하고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자신이 해 야 한다고 믿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 분들일 것이다.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177

178 단 번에 이루어지는 삶은 없겠지. 시행착오가 남들보다 조금 길어진다 한들 무엇이 대수 랴. 무엇을 배우고 생각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행동해야 할 것인가가 중요할 것이다. 아 이 지독하고 명민한 자기 합리화! 앞으로 몇 시간은 지루한 고속도로 여행이 될 텐데 잠이나 자는 것이 속 편한 일일 것이 다. 문득 책을 읽어도 머리가 아프지 않은 버스가 나온다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하는 생각 이 들었다. 아니지, 책은 무슨 년 10월 26일 새벽 예정보다 조금 일찍 포항에 도착한 관계로 아침을 먹기로 한 식당이 아직 식사를 준비 하기 전이었다. 몇 분은 사우나에 몸을 풀러 가시고 또 몇 분은 식당 방에 누워 선잠을 청 한다. 나와 동행하는 독도사랑협의회의 김준연은 예총에서 일하는 기자인데 포항에 한 번 와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자전거를 타고 전국일주를 한 적도 있고 러시아와 몽골을 지나 유럽을 홀로 여행한 적도 있는 친구이다. 식당 바로 앞에는 화물 창고 같은 것이 있었고 그 앞에는 바다가 보였다. 물 많은 파도 가 항구의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귀에 와 닿는 듯 생생했다. 그 친구와 나는 바다를 잠깐 보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바닷가라고는 하지만 비릿한 갯내음이나 짠 냄새가 하나도 나 지 않았다. 나중에 울릉문화원에서 일하시는 분의 말을 들으니 바다가 오염이 되지 않아서 라고 했다. 난 그래도 바닷가 오면 그런 냄새가 좋던데, 그것이 오염의 냄새였단 말인가? 새벽바람이 꽤 차가웠기 때문에 식당으로 돌아와 다른 분들처럼 식당 방에 누워 잠을 청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혼자 나가 길을 걸었다. 식당 앞 도로에서 조금 걸어 나가 니 좌로 굽은 길이 있었고 굽은 길을 벗어나자마자 시야가 뚫리며 크고 널따란 해수욕장이 보였다. 당연히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사장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 몇이 보 일 뿐이었다. 방파제를 따라 걷다가 맨 끝에 세워진 빨간 등대를 보고 왔다. 실제 길을 알려주는 등대 라기보다는 관광용으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예쁘게 생긴 등대의 뒤편에는 영원히 사랑 해!, 넌 내꺼야! 등등의 낙서가 가득했다. 그 중 아무 글이나 골라 사진을 찍었다. 부디 17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79 영원히 사랑해야 될 텐데 말이다 년 10월 26일 아침 물매기라고도 하고 바다매기라고도 불리는 생선으로 끓인 탕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뼈 가 굵고 껍질이 미끄러우며 살이 토실한 것이 꼭 아귀나 복어 같았다. 사람들은 배 멀미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실은 나 역시 배 멀미가 두려웠다. 바다매기 탕 맛이 참 좋은데 아닐 말로 이 음식들을 다시 보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 정도 되었다. 밥을 먹자 멀미약을 나눠 주었는데 주의사항에 승선 전 30분에 먹으라고 적 혀 있었다. 배 시간이 10시니까 9시 반에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먹지 않았다. 시간이 아 직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후배와 나는 포항 시내를 잠깐 걷기로 했다. 어느 관광지에 여행을 가든 내가 주로 관심 을 가지는 것은 어디 어디 이름난 폭포나 고 사찰이 아니라 이렇게 사람이 살고 있는, 그 것도 가난한 이들이 살고 있는 뒷골목들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후배도 마찬가지인데 작은 집들이 빽빽이 들어선 골목들을 걷다보면 조금은 쓸쓸해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좋았다.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 친구들 과 놀던 골목의 모습이 어렴풋이 생각이 나는 것인지, 아니면 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 활에 애정과 경의를 표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번화가나 명승지보다는 이런 곳 이 좋고, 어느 도시를 가던 빼 놓지 않고 가보는 곳이기도 하다. 어느 도시에도 있고, 어느 시대에도 있던 곳이다. 아이들은 다 학교에 간 시간, 조용해서 재미없는 햇볕을 받고 서 있는 하얀 벽. 낮은 옥상에는 몇 장의 수건과 늘어진 속옷이 바 람에 흔들리고 있다. 1) 머나먼 울릉도 드디어 승선, 파도가 심해 연착할 예정이라는 선장의 안내방송을 듣고 잔뜩 긴장하였다. 시간에 맞춰 멀미약을 먹었고 기분도 나쁘지 않았으며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한 덕분에 배 속도 편안히 꺼진 상태다. 좌석 앞에는 멀미할 때 쓸 봉투가 마련되어 있었다. 과연, 멀미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179

180 를 할 것인가. 후배 녀석은 아 무렇지도 않은 듯 앉아 있는데 나만 긴장을 한 것 같아 머쓱했 다. 아무렇지도 않겠지. 과연 파도는 심했다. 우리가 타고 가는 썬플라워호는 뱃전 이 두개로 분리된 배였는데 파 도가 뱃전에 부딪히는 소리가 사진 3 초현대식 선박으로도 울릉도행은 만만치 않았다. 포항에서 출발하여 무려 4시간 30분 만에 울릉도에 도착했을 때는 모두가 멀미 에 지쳐있었다. 쉬지 않고 들렸으며 그 때마다 배가 출렁 출렁 크게 흔들리고 급기야 좌우로도 요동 쳤다. 한 순간도 배가 가만히 있을 때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 것이 재미있고 신기했으나 세 시 간이 넘어가자 참으로 곤욕이었다. 다행이 멀미는 하지 않았고 머리가 어지러운 상태로 계 속 머리를 부여잡고 있어야 했지만 헛구역질을 하고 나니 그것도 좀 괜찮아졌다. 준연이는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매정한 녀석, 같이 머리도 좀 아파주고 그래야 정이라도 들 텐 데 하는 생각으로 피식 웃기도 했다. 조금 지저분하지만 사실을 그대로 옮기면 여기저기서 구역질 하는 소리가 끊기지 않았 다. 약 60%정도는 다 구역질을 하고 있었고 나머지 20% 정도는 구역질은 하지 않았지만 나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려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부류들이었다. 의자에 앉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듯 앉아 있는 사람, 바닥에 누워 고해성사 하 는 사람, 화장실 변기를 껴안고 있는 사람, 거짓말 조금 보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어 서 빨리 배를 멈춰야 한다. 이대로 간다면 전멸하고 말거야 라는 생각을 할 때에 삼십분 더 연착 한다 는 선장의 안내 방송이 들리자 낮은 탄식들이 파도처럼 쏟아져 나왔다가 꺼 졌다. 나 역시 한 숨을 내쉬었다. 준연이는 여전히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아 강한 남자여! 전생에 이 녀석은 마도로스였음이 분명하다 년 10월 26일 오후 1시 30분 네 시간 반 만에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다들 밝지만은 않은 표정들이었는데 아마 돌아갈 일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돌아갈 때에는 18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81 바다가 잔잔하기를 바랄 뿐이다. 과연 울릉도는 첫 인상부터 비 범했다. 산세의 흐름이 육지의 그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수목은 비 슷하지만 펄펄 끓는 용암이 바다 를 뚫고 나오면서 떨어져 나가고 급히 식는 바람에 생긴 모습이 가 히 예술 작품이라 할 만한 우연의 사진 4 울릉문화원과 독도박물관에서 마중을 나와 주었다. 일행 들을 기다리고 있는 반가운 얼굴들 풍경들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멀리 성인봉에는 안개가 드리워져 있었고 가까이 바다와 인 접한 봉우리는 달려 나갈 듯 깎아지른 검은 절벽에 소나무들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 었다. 따뜻한 미역국으로 식사를 하며 간단하게 속을 푼 일행은 숙소에 짐을 풀고 가벼운 차 림으로 독도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독도 박물관은 마을을 가로 질러 산 중턱에 자 리 잡고 있었는데 오르막길 양 옆에 미용실, 중국집, 군청, 학교 등 육지와 다를 바 없는 상가들이 왠지 재밌기도 하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독도 박물관은 이종학( 년)이라는 분이 평생에 걸쳐 모은 512점의 독도관련 자 료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었다. 독도관련 자료라 함은 독도가 한국 땅임을 증명하는 고지도 와 고문서, 1950년대에 활동했던 독도의용수비대 분들의 자료들을 말하며 또 독도를 소재 사진 5 이종학 관장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512점의 독도관련 자료를 전시해놓은 독도박물관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181

182 로 한 현대화,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모형 등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민간에 의해서 수집되었으며 건물 또한 정부 건립이 아니라 민간 에 기증 받은 것이라 한다. 일행들 중에는 이종학 독도박물관 초대 관장과 같이 일을 했던 분들도 계시는 등 그 분을 기억 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비로소 내가 단순한 여행을 하고 있 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다. 1) 흐린 날의 독도전망대 독도 박물관을 나오니 바로 옆에 독도전망대로 가는 케이블 카가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독도 전망대에 올랐으나 안개가 많고 날이 흐려 독도를 볼 수는 없었다. 아쉽다는 반응들이었지 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흐린 날에는 흐린 날의 경치를 보면 사진 6 독도전망대에서 열린 초청 강연 되지 않은가. 안개에 쌓인 울릉 앞바다의 풍경은 정말 그럴싸했는데 다들 독도를 보지 못 한다는 이유로 놓치고 있는 것 같았다. 이후 독도 전망대에 있는 식당의 홀에서 이종상 교수님과 양태진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 다. 다들 진지한 표정들이었다. 이종상 교수님은 서울대 미대 교수이자 화가로서 오랫동안 독도 관련 일을 해 오신 분으로, 좀 전에 독도 박물관에서 보았던 독도를 주제로 한 현대 화 전을 기획하셨다고 한다. 강연의 요지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도와 관련된 문화가 없 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라는 것이었다. 만약 독도에 사람이 많이 살아서 자연스럽게 사 회가 형성된다면 그것은 하나의 사회 문화가 되어 굳이 우리 땅이라 말하지 않아도 우리 땅이 되는 것인데 그렇게 문화가 형성될 만큼 사람이 살 수 없으니, 다른 방법으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18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83 2) 독도에 문화를 심다 다른 방법이란 독도를 소재로 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독도를 소재로 한 널리 불 리는 노래가 만들어 지거나 문학 작품이 만들어 지거나 훌륭한 그림이 나온다면 그것은 바 로 독도의 문화가 되고 독도의 문화는 자연스레 우리의 것이 되어 영유권 주장 따위는 필 요하지도 않게 된다는 말씀이었다. 수긍할 수 있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도 사람들을 움직이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 은 무슨 법률이나 선언문이 아니라 그 것과 관련된 그림이나 노래, 문학 작품 등이었기 때 문이다. 추상적 개념의 애국심은 종종 민족의 로고 라 지칭할 수 있는 국기나 국가적 보물의 훼 손, 도난 등에 의해 나타나기도 한다. 목숨을 바쳐 태극기 한 점을 숨긴다던지 고향이 그 려진 그림을 보고 조국을 느낀다던지 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일 것이다. 독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독도를 소재로 한 그림들을 보면서 들었던 안도감의 정체 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일본 사람들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할망정 그것을 사랑하는 마 음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만들거나 시를 짓지는 않는다. 이 점만 보아도 이미 결론은 내려져 있는 것이다. 예술은 종종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오해 받지만 실은 그 어떤 현실보다도 강력하게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이기도 하 다. 그것은 피로서 흐르기 때문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가 고려와 조선을 거쳐 우리 현대 미술에 흐르고 세계 어느 곳에서 어 떤 모습으로 살고 있던지 아리랑을 잊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좋은 예술이란 유구한 세월 속에서 그 빛을 발하는 법이다. 오늘의 독도 그림 한 점이 비록 작게 보일지라도 백년 뒤 이백년 뒤 어떤 힘을 발휘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독도사랑협의회에서 나호열 시인이나 박 정순 시인 같은 분들이 독도를 노래하고 시 낭송회 같은 문화 운동을 벌이는 것은 직접적 으로 일본 대사관에서 항의 집회를 한다거나 항의문을 전달하는 운동에 비해 소극적으로 보이고 눈에 띄는 가시적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지라도 분명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라 말 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 독도를 지키는 운동의 방향을 제시 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183

184 3) 이규원 검찰사의 활동 이후 동아시아 영토 연구소의 소장님으로 계신 양태진 교수님으로부터 이규원 검찰사 일행(즉 고종 19년, 1882년에 일본인의 불법 어업과 벌목 행위 실태를 조사하고 울릉도와 독도가 명백히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하기 위해 파견된 이규원 검찰사 이하 80명의 관리와 선원, 20명의 포 수)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울릉도와 독도가 서로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자료들은 대부분 누가 어디에 살았다 라고 하는 거주확인의 私 的 인 史 料 들이 대부분인데 이규원 검찰사 일행의 행적에 대한 기 록과 추후 후속조치가 모두 조선 중앙 정부의 관리 하에 만들어진 관찬자료라는데 의의가 크고 확고 부동한 증거자료로 쓰일 수 있다는 요지였다. 이후 다 같이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 자유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도동항에 나가 사 람들을 구경 한 뒤 허름해 보이는 술집에 들어가 술을 마셨다. 매실을 무친 밑반찬에 해물 파전, 갑자기 수많은 상념들이 들이닥쳤다. 별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어찌하여 이 망망 대해 바다 한 가운데의 울릉도라는 섬에 와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지가 신기할 뿐이었다. 잘 써지지 않는 시나리오와 30살의 생( 生 )이 주는 여러 압박과 고민 속에서 참 마음 편하 게도 산다는 생각. 한 번에 넘기는 소주가 맛이 없었다. 사진 7 이규원 일행이 처음 울릉도에 도착한 학포 18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85 년 10월 27일 다음 날 아침 본격적으로 차를 타고 울릉도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해안선을 타고 놓인 일주 도로는 아직 완공이 덜 되어 다시 돌아와야 한다고 했으나 끝까지 가지 않고 중 간에 내려 학포라는 작은 마을에 가게 되었다. 이곳은 이규원 검찰사 일행이 처음 배를 댄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타고 온 커다란 배로 오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목선을 타고 꼬박 하루가 걸려 도착했을 때의 마음은 어떤 것 이었을까? 기록으로는 모두들 지쳐 있었다고만 나온다는데 과연 지쳐있기만 했을까? 어쨌든 검찰사 일행은 왕명을 받들어 울릉도에 도착, 학포에 배를 대고 넓은 바위에 일 행의 도착을 알리는 글을 새겨 놓았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더니 120년이나 지난 지금 사진 8 한 때 번성했던 마을의 흔적은 간 곳 없고, 외로운 교회가 일행을 맞고 있다. 사진 9 이규원 일행은 학포에 배를 대고 넓은 바위 에 일행의 도착을 알리는 글을 새겨놓았다. 사진 10 우리 민족은 가는 곳마다 산신당을 세우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학포도 예외는 아니어서 울릉도 섬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해신당이 세워져 있다. 이규원 일 기에 의하면 5월 1일 풍랑이 심해 위기를 맞았고, 산신 당에서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이 산신당은 이규원이 이 곳에 오기 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년의 세월을 이어 시민단체 회원들이 이 규원 일행이 섰던 그 자리에 다시 섰다.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185

186 사진 12 이규원 검찰사 일행은 5월 2일 꼬박 하루에 걸쳐 산을 넘어 태하로 넘어갔다. 시민단체 일행도 숲으 로 우거진 길을 따라 걸었다. 이 길이 이규원 일행이 넘었던 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울릉도 사람들이 이 길을 통해 학포에서 태하로 다녔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도 바위에는 또렷이 이규원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다. 학포는 조용한 어촌 마을이었다. 폐교가 된 학교의 운동장에는 웃자란 풀들이 가득했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니 서울에서 온지 6년 되었다는 한 분이 부인과 함께 민박집을 운영 하고 있었는데 민박집의 모습은 그야말로 동화 속 마을이 따로 없었다. 판자로 기둥을 만든 낮은 담과 나무에 매달린 그네, 작은 꽃들과 계곡, 눈앞에 펼쳐지는 푸른 바다는 정말 혼자 보기 아까운 것이었는데 민박집이라고는 하지만 손님이 많을 것 같 지는 않고 그 민박집 주인 분 내외가 이 아름다운 풍광을 혼자 누리는 것 같아 은근한 시 18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87 샘이 나기도 했다. 이런 곳에 혼자 와서 글 쓰면 정말 잘 써지지 않을까. 준연에게 물었다. 돈이 많아야 하지 않을까요? 준연의 답이 들려왔다. 이런! 맞네. 1) 왜곡되는 사실들 이후 이규원 검찰사 일행이 걸었으리라고 추정되는 산길을 지나(간단하게 적지만 산세가 험하고 잡풀들이 우거져 무척 힘든 코스였다. 하지만 이것도 오후에 걷게 될 성인봉 등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대황토구미라는 곳에 이르렀다. 구전( 口 傳 )에 강릉 부사가 동해 앞바다 에서 선유를 즐기다 기생과 함께 풍랑에 이곳까지 떠 내려와 먹을 것이 없어 사 경을 헤매던 중, 황토가 보이 길래 이거 라도 먹어보자 하는 마음에 집어 먹었더 니 흙에서 아홉 가지 맛이 난다 해서 붙 여진 지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안내하는 운전기사의 잘못된 설명이었 고, 구미는 경상도 말로 움푹 파져있는 사진 13 울릉도 수토관들이 조정에 울릉도를 다녀왔다 는 증표로 바쳤던 유난히 붉은 황토, 집 채만한 바위 사이 에 붉은 속살처럼 자리 잡은 황토는 신기하기만 하다. 사진 14 울릉도 태하리 광서명 각석문. 이 비석은 1890년, 1893년 기록으로 조선말기 울릉도 개척정책을 실 시하던 무렵 서경수, 심순택, 이규원, 조종성 등 울릉도에 공적이 많은 분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187

188 곳 을 일컫는 말이라 한다. 황토구미, 사태구미 등의 이름은 모두 움푹 들어간 곳들을 말한다. 호기심이 일어 흙 맛을 보았으나 짠 맛 이외에는 별다른 맛을 느낄 수는 없었던 것은 당 연한 것이었다. 집채만한 화산암 사이에 붉은 속살처럼 자리 잡은 황토는 신기하였다. 맛 을 좀 더 자세히 느껴 볼까 하였으나 일행 분 중 어느 분이 나눠 준 호박엿 맛에 황토 맛 은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문득문득 두고 온(?) 육지의 일들이 생각나 편치 않은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냥 여기에 눌러 살아 버릴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몇 백 년 전에 이곳에 정착한 사람 들의 마음이 그러했을까? 2) 나리분지의 평화로움 차를 타고 점심을 먹기 위해 도착 한 곳은 나리 분지 한 가운데 위치한 식당 이었다. 나리 분지는 정말 분지였다. 사방에 병풍처럼 산이 드리워져 있고 축구장 대 여섯 개만한 공간이 푹 들어 가 있는 곳이 바로 나리 분지였다. 산 속이지만 자연이 특별히 마음을 써준 덕분에 이곳에는 마을이 형성 될 수 있었는데 우데기가 있는 너와집이 인상적이었다. 눈이 많은 기후에 적응 하기 위해 서까래 밑으로 집을 빙 둘러 나무로 덧 담을 댄 형식인데 이 공간에 땔감이나 겨울에 먹을 식량 등을 보관 했다고 한다. 주택의 구조는 일자형 집의 가운데에 벽이 없는 주방이 위치한 형태이다. 아마 겨울에 불을 때면 그 열기가 우데기에 갇 혀 방안은 물론 우데기 안에도 가득 했으 사진 15 이규원 검찰사의 검찰일기에는 대황토구미(태하) 에서 수십 기의 구분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지만, 지금은 온 전하게 보존되고 있는 것이 드물다. 현재 현포 일대에 38기 의 고분이 있다고 하지만 역시 많이 사라지고 있다. 18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89 리라. 눈이 사람 키만큼이나 내린 한 겨울에 너와집에 갇혀 있는 한 식구의 모습을 상상해 본 다. 넉넉하진 않지만 훈훈한 온기 속에 곰들처럼, 여우 가족처럼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이 그려 진다. 서로 화목하지 않고는 못 배겼으리라. 그 집에 살고 싶은 마음이 잠깐 간절했다. 사진 16 사방이 병풍처럼 산이 드리워져 있고, 축구장 대 여섯 개만한 공간이 펼쳐져 있는 나리분지 사진 17 형편이 조금 나은 사람들은 우데기집보다 너와집을 짓고 살았다. 나무를 얇게 쪼개 지붕을 만들 고, 나무로 덧 담을 댄 형식의 집이다. 사진 18 우데기집들 사이로 교회가 고개를 내밀고 서 있다.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189

190 3) 성인봉에서 바라본 바다 점심으로 토종닭 백숙과 호박동동주를 먹었다. 호박 동동주는 그 맛이 담백하면서도 쌉 쌀한 뒷맛과 호박의 달짝지근한 맛이 어우러져 일품이었다. 누구든 나리 분지에 가면 호박 동동주를 맛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점심을 먹고 기념촬영을 한 뒤 성인봉에 올라갈 사람과 그냥 버스를 타고 계속 관광할 사람을 나누었다. 맛있다고 몇 잔 들이킨 호박 동동주가 서서히 올라오고 계속되는 강행군 에 조금은 지쳐 있었지만 올라가 보기로 했다. 잘 닦인 산책로 같은 산길과 잠깐 나타난 개활지와 울창한 원시림을 지나 급한 경사의 계단 산길을 한 시간 정도 오르니 성인봉이었다. 정상에 서니 멀리 푸른 바다가 한 눈에 펼쳐졌다. 사진을 찍고 역시 안개로 가득 찬 주변의 산들을 바라보며 잠시 호연지기를 생 각하다가 여기저기서 터지는 카메라 소리에 나 역시 생각났다는 듯 카메라를 꺼냈다. 진정한 감상은 이놈의 카메라가 없어져야 가능할 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랴 그렇다 고 또 안 찍으면 안 되는 것을. 문명에 굴복하는 현대인답게 성인봉 표지석 옆에서 한 컷, 둘이서 한 컷, 너도 찍어 주고 나도 찍히고 찍고 찍었다. 그 순간에는 독도 따위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맑은 날이면 보인다는 독도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행은 숙소가 있는 도동항 쪽으로 택했다. 평지가 발달하지 못한 울릉도의 지형상 산을 다 내려오고 나서고 마을입구까지 급격한 경사의 내리막길이었다. 그날 저녁은 둘 다 피곤하여 그 좋아하는 술을 먹을 생각도 안하고 둘 다 잠이 들고 말았다. 사진 19 잘 닦인 등산로의 마지막 자락. 이곳에서부 터 가파른 등산로가 시작되고,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이 성인봉으로 치달아야 한다. 사진 20 성인봉 정상에 선 일행들. 정상에 서니 푸른 바다가 한 눈에 보였다. 행운이 따라주지 않아서인지 독 도는 안개 속에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19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91 년 10월 28일 다음 날 아침은 날이 맑고 파 도도 잠잠했다. 울릉도는 맑은 날이 년 평균 55일 밖에 되지 않 아 이 곳을 찾은 사람들 중에서 도 운이 좋아야 독도를 볼 수 있 다고 했다. 어쨌든 멀미약을 먹 고 배에 올라탔다. 파도가 낮았기 때문에 배는 순 사진 21 울릉도에서 독도로 가는 뱃길. 바닷길은 예상 외로 잠잠 했고, 일행도 지친 기색없이 독도에 내릴 수 있었다. 항을 할 수 있었으며 멀미를 하거나 괴로운 표정을 짓는 사람도 없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그야 말로 망망대해였다. 가도 가도 바다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바다 사람이 느끼는 바다에 대한 느낌이야 육지 사람이 느끼는 것하고는 다르겠지만 소 심한 육지 사람이 보기에는 그 망망함에 놀랄 수밖에는 없는 것이었다. 어느 시인은 바다 가 놀라운 것은 거기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는 데. 물론 해양수산학으로 들어가면 이 말은 명백하게 틀린 문장이 되겠지만 적어도 감상의 차원에서는 정확하게 맞 는 말이다. 이 넓은 곳에 물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렇게 아무것도 거칠 것 없이 두 시간 동안 배를 타고 가다보면 막상 지루하고 심심하 다. 눈을 들어 산의 모양을 볼 수도 없고, 어 꽃이 피었네 라고 말할 일도 없고, 교통사고 다! 라고 외칠 일도 더더욱 없다. 어쩌다가 갈매기라도 보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는데 갈매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하 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고 쳐다 보다 보면 갑자기 어떤 강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 게 된다. 먼 전생에 배를 타고 대양을 누리던 해적의 후예였던지, 콜럼부스의 배를 타고 육지를 찾아 헤매는 탐험가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깨닫게 된다. 근처에 섬이 있다!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191

192 9. 눈 앞에 나타난 독도 바로 가도 가도 끝없을 것만 같이 펼쳐지던 바다 한 가운데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묵 묵히 자리 잡고 있는 국토의 최동단 독도가 나타나는 것이다. 독도는 마치 반가운 친구 같 았고, 지친 여행을 달래주는 삼촌 같았으며, 든든한 수문장 같기도 했다. 그림에서만 보던 동도와 서도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고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작은 바위 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커다란 섬이었으며 뉴스로만 보았던 경찰들의 기지와 통신 시설들이 보였다. 얼른 배에서 내려 독도의 풍경들을 눈 안에 담았다. 벅찬 감동이라기보다는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오는 기분이었다. 그래 이 먼 곳에 너 혼자 잘 있었구나, 고맙다. 앞으로는 좀 더 관심을 가져줄게. 이 말 하려고 날 여기까지 불렀구나. 사진 22 사진으로만 보던 독도의 탕건봉을 배경으로 일행이 자리를 잡았다. 19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93 역시 몇 장의 사진을 찍고, 감흥이 사라지고 난 후의 독도 모습을 쳐다보다가 배에 올라 탔다. 사람들은 독도에 머무르는 시간이 다소 아쉬운 듯 다들 한 마디씩 했지만, 더 있어 봤자 달라질 것은 없었다. 독도는 계속 이제 그만 하고 돌아 가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가서 할일이 있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바다를 헤매기라도 하듯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삶의 어떤 대양을 헤매고 있는 중이었 다. 계획 없이 흔들리는 삶. 혹은 중심 없이 떠다닌 삶.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방황, 그 방황 에 기인한 소심과 우울, 주변엔 아무것도 없고 나 혼자 뿐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진을 한다 한들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지쳐 몸을 뒤척이고 몸살을 앓을 지경이 되면 갈 매기 한 마리가 보일 것이다. 갈매기가 보이면 그 갈매기를 놓치지 않고 추적해야 할 것이 다. 추적하다 보면 독도처럼 의젓하게 바다 한 가운데라도 떠나지 않고 나를 맞아줄 무엇 인가가 분명 있을 것이다. 쉽게 지쳐서도 안 되고 쉽게 포기해서도 안 된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바다였지만 저 렇게 독도가 버티고 있지 않았던가. 독도는 말없이 그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고 있었다. 돌 아가서 우선 앞으로 쉼 없이 나아가라고, 그 말 하려고 내 너를 불렀노라고. 사진 23 4시간에 걸친 열띤 토론의 장이 울릉도 향군회관에서 마련되었다.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193

194 1) 따뜻한 손길을 내민 독도 울릉도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은 뒤 시민 사회 단체 활동가 포럼이 열렸다. 독도를 지키 시는 일을 꾸준히 해 오신 분들이다. 그 분들의 열정과 쉼 없는 행보에 부끄러워 졌다. 이 리 재고 저리 고민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보내 버린 지난날의 과오를 또 다시 범 하려 하는 나에 비해 이 분들은 어쨌든 계속 움직이고 계신 분들이었다. 네 시간에 걸친 열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그 분들의 말씀을 한 마디 한 마디 적어 나 가는 동안 적어도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독도는 우리 땅이 분명하다는 것 이다. 왜냐하면 이렇듯 무관심 하고 고민만 하던 별 볼일 없는 나에게도 이런 따뜻한 손길을 내어 줄 줄 아는 독도는 분명 우리 땅이라는 것, 이제 독도와 나는 추억을 공유한 문화를 가졌다는 점. 그리고 이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리라는 점. 벅찬 감정을 안고 날짜를 보니, 오늘은 내 30번째 생일이었다 년 10월 29일 묵호항으로 돌아오다. 바다는 잠잠 했으며 날씨는 맑았다. 사진 24 묵호항에 돌아오자 새하나 관광버스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19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95 이규원 검찰사의 발자취를 따라서 윤미경 (독도의병대 총무) 1882년 4월 29일은 울릉도 검찰사로 임명받은 이규원 검찰사가 선원, 포수를 비롯하여 1백 여 명의 대규모 조사단을 거느리고 구산포를 출발한 날이다. 다음날 4월 30일 저녁 울릉도 서안 소황토구미(학포)에 도착해서 울릉도 전역을 육상일 주, 해상일주하며 철저히 조사한지 어느덧 124년이 지난 2006년 10월 26일! 이 날 동북아역사재단의 초청으로 전국의 독도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울릉도를 방문했다. 파도 때문에 하루를 연기해서 배를 탔으나 파도는 여전해서 멀미약을 먹고 하루 전에 귀미테를 붙였지만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체면도 없이 배 바닥에 누워 도착하는 순간까 지 계속 구토를 했다. 그 동안 여러 차례 독도를 방문했지만 한 번도 멀미를 하지 않았던 독도의병대 부대장 님도 이번에는 멀미를 했다. 평소에 멀미를 잘해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도저히 참을 수 가 없으면 중도하차를 하곤 했던 내가, 배에서는 내릴 수도 없어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끝까지 싸워야 했던 그 상황에서 이 민족과 독도를 생각했다. 다들 독도문제가 없었으면 이 시간에 이 배를 타고 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 터인데, 이 나라와 독도를 사랑하는 열정 때문에 묵묵히 멀미를 참으며 울릉도를 향하는 일행들 사진 1 단체사진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195

196 이 고맙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되풀이 되는 이 현실이 가슴이 저리도록 안타까웠다. 파도로 인해 한시간 늦게 울릉도에 도착해서 향토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우리는 곧바로 독도박물관으로 올라갔다. 독도박물관에는 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장이신 이종상 교수님을 비롯하여 전국의 문화의병들이 독도를 직접 방문하여 그린 독도진경전이 열리고 있었다. 육지에서 전국을 순회하며 독도진경전이 개최된 후 독도를 지키는 최전방기지 울릉도 독도박물관에서 이 전시회가 열리기까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던 과정을 이종상 교수 님을 통하여 들었던 나로서는 독도박물관에서 열리는 독도진경전이 더 가슴 벅차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독도전망대 스카이라운지에서는 독도운동과 시민문화운동 이라는 주제로 30년 전부터 독도 사랑을 실천해오신 이종상 교수님의 우리 의식 에 대한 강연이 있었다. 이어서 이규원 검찰사의 울릉도 검찰의 역사적 의의라는 주제로 평생을 영토 지키기에 몸 바쳐오신 양태진 동아시아영토연구소장님의 강연이 있었는데 양소장님께서는 각 집안의 족 보나 고분 등을 조사해서 확증 된 독도문화의 발굴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열강을 하셨다. 과거 이규원 검찰사는 울릉도를 조사 하는 도중, 도동에 정박하여 울릉도 나무를 도벌중 인 일본인 78명을 발견해서 항의했고, 일본인들은 일본의 송도라며 떼를 씀으로써 지금 독 도가 죽도라고 떼를 쓰는 오늘의 일본인들과 다를 바가 없이 행동했다. 그 당시 조선 조정에서 재차 항의함으로써 울릉도를 지켜낸 것은 오늘 독도정책이 조용 한 정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역사적인 교훈이다. 사진 2 독도박물관에는 때마침 독도문화심기운동본 부(이종상 대표)에서 진행 중인 독도진경전이 열리고 있었다. 사진 3 이규원 검찰사가 남긴 울릉도 외도에 대해 설 명하고 있는 이종상 대표. 이종상 선생은 독도운동과 시 민문화운동에 대해 강의했다. 19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97 이 검찰사가 그 당시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울릉도 전역을 철저하게 돌아보고 고 종황제께 울릉도의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함으로써 조선초기부터 시행되어온 울릉도 주민 거주 금지 정책이 이 시기를 전후해서 폐기되고 적극적인 개발정책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7일 오전에는 도동에서 학포까지 차량으로 이동해 이규원 검찰사가 입항하여 울릉도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던 학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검찰사가 가셨던 길을 따라 태하까지 30 리 산길을 미끄러지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도보로 역사 탐방을 하고 울릉도 방문 증거물로 가져 갔다는 황토굴과 잘 보존되어 있는 현포 고분을 돌아보았는데 다들 독도운동을 해오 신 분들답게 너무 진지하게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자료를 조사하는 모습이 일반 관광객들과 는 달리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사진 4 일행은 험한 산길을 걸어서 때로는 소형버스를 이용해 이규원 검찰사의 발자취를 따랐다. 사진 5 이규원 일행이 처음 울릉도에 도착한 학포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197

198 사진 6 이규원 검찰사 일행은 우리보다 더 험한 여건 속에서 산을 넘고 수풀를 헤치며 울릉도를 조사했을 것 이다. 험한 산길을 걸어 갈 때에는 우리보다 더 험한 여건 속에서 노숙까지 하면서도 울릉도 를 철저하게 조사한 이규원 검찰사의 고마움을 새삼 느꼈다. 지난번에 나리분지에 방문했을 때는 투막집과 너와집을 보고도 못 알아보았는데 이번 행사에 참가해서 나리분지에 있는 투막집과 너와집에 대해 직접 보고 소개 받은 것도 좋은 체험이었다. 오후 일정은 이규원 검찰사가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을 넘어간 길을 따라 등산하는 순서 였는데 비가 온 뒤라 길이 미끄러워 위험하다는 현지인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산을 오르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가 나중에는 자원하는 사람만 성인봉을 오르고 나머지는 육로 탐방 을 하기로 했다. 독도의병대 부대장님은 미끄러운 산길을 걸을 때 아예 신고 있던 불편한 구두는 벗고 맨발로 걸어 거뜬하게 4시간 걸리는 성인봉을 3시간 만에 종주했다. 발 다치지 않았느냐는 내 얘기에 조건이 안 된다고 중도에 포기하는 것 보다는 조건이 되도록 만들어서 끝까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중요하지. 독도지키기 200만인 서명 달성도 다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했지만, 바위를 없애기 위한 목적이라면 계란을 깨지 않고 100판만 모아 팔아 포크레인 빌리면 두시간만에 바위 를 깰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잖아. 구미 유채꽃밭 국토 체험장에서 맨발로 일한 것이 단련이 되어 성인봉을 무사히 횡단할 19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199 수 있었어. 하며 웃었다. 국력으로나 인구로나 월등하게 우리보다 앞선 일본! 그 일본인들이 아무리 독도를 빼앗으려 해도 한민족 모두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프로 근성으로 독도를 사랑하고 지키고자 한다면 우리 독도는 얼마든지 지킬 수 있다. 3일째 되는 28일은 파도 때문에 입도가 어려울까 걱정 했는데 장판을 깔아놓은 것처럼 바다는 잔잔했다. 사진 7 독도의병대 부대장님은 미끄러 운 산길을 걸을 때 아예 신고 있던 불편 한 구두는 벗고 맨발로 성인봉을 올랐다. 8번째 찾아가서 만난 독도는 이번에는 점잖은 중년 신사의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씨 플라워호에서 독도에 내려 감격스러워 하는 사람들 중에는 전날 내수전 일출 전망대 에서 만난 맹인가수 이용복씨도 있었다. 육신의 눈은 볼 수 없지만 독도를 보고 만나고 싶어하는 그 간절한 독도열정을 보면서 생각하면서 독도를 사랑하는 한민족 모두의 독도사랑 열정을 그를 통해 읽을 수가 있었다. 방문객들의 안전을 위해서 막는 해경들과 독도를 조금이라도 더 밟고 싶어하는 방문객 들 간에 밀고 당기는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이런 경우에는 이동식 안내판을 설치해서 방문 객들이 스스로 자제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독도를 방문하는 방문객들은, 절도 있는 행동, 수고하는 독도경비대에 대한 사랑의 배려 사진 8 울릉도에서 독도로 가는 뱃길. 바닷길은 예상 외로 잠잠했고, 일행도 지친 기색없이 독도에 내릴 수 있었다. 사진 9 독도의 선착장에는 1천리 바닷길을 마다않고 달려온 국민들의 발길이 떠날 줄을 몰라했다.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199

200 가 꼭 필요하고, 경찰들은 수시로 만나는 방문 객들이지만, 방문객 개개인은 꿈에도 그리며 벼 르고 벼르다 일생에 한번 찾아온 방문객이 대 다수라는 것을 감안하여 지금까지도 잘 해왔지 만 끝까지 친절하고 늠름한 모습으로 그들을 환영하고 환송해주는 자세를 가져주었으면 좋 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민족의 사랑 속에 오늘도 늠름하게 동해를 지키는 독도! 한반도를 품에 안고 한반도의 새벽을 여는 독도! 이 독도가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영 원히 한민족의 품에서 행복하기를 간절히 기원 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독도를 떠나왔다. 울릉도에 도착해서 정원도, 이필영 독도의용 수비대 대원들과 점심식사를 같이 한 후 군청 에 가서 기념촬영을 하고, 바로 향군회관 회의 사진 10 독도의병대 윤미경 오윤길 부부 사진 11 독도의용수비대 이필영 선생과 정원도 선생께서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실에 모여 홍성근 박사님의 사회로 시민단체들의 교류협력 방안에 대한 논의를 했다. 첫 번째 발표에 나선 독도의병대는 앞으로 지속적인 독도발전을 위해서는 독도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상호간에 공유하고, 동북아역사재단의 연구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종 자료와 조사내용을 빠른 시일 내에 제출하자고 제안하고 이번 행사에 촬영한 영상물 을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에게 전달했다. 독도수호국제연대 박창우 기획팀장님은 일본의 다께시마 표기에 맞서 외국 지도 독도 표기에 앞장서겠다고 발표했다. 독도리 이장이면서 독도수호전국연대 의장이신 최재익 의장님은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 행사 저지를 위해 현장을 방문하여 혈서를 쓰고 항의 행진 한 것과 앞으로도 독도를 지키 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독도수호대 김점구 대표님은 독도에 대해 우리가 확실하게 배워서 잘 가르치자고 제안 20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01 했다. 독도어울림의 사무국장님이자 <일본은 죽어도 모르는 독도이야기88>을 쓰신 김성호 작 가님은 각 단체들이 맡은 일이 각각 다르지만 주어진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연대회 의 같은 느슨한 형태의 연대모임을 제안했다. 독도향우회 김해일 사무총장님은 독도의 실질적 이익과 독도 수호를 위해 노력하겠으며 독도 단체들이 행사할 경우 독도 그림을 전시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했다. 발명계독도개발지원운동본부 한송본 본부장님은 독도를 보존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자유 로이 독도에 접근해서 애국심을 고취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우리마당 독도지킴이팀 김기종 대표님은 독도관련 예술제를 개최하고 다른 독도단체들 이 행사할 때 예술로 같이 참가 하겠다고 했다. 자연보호 중앙연맹 독도를 사랑하는 모임의 백남진 부총재님은 독도를 오염과 파괴로부 터 보호하고 국토를 소중히 보존하기 위해 범국민적으로 자연보호운동을 하겠다고 했다.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에서는 독도의용수비대의 애향 애국적인 정신을 계승해 푸른 영 토를 만드는데 앞장서겠다고 했다. 한국시인협회 독도지회장 시인 편부경씨는 지속적인 시문화 행사를 개최하고 국내외에 독도를 올바르게 알리도록 하겠다고 했다. 사진 12 4시간에 걸친 열띤 토론의 장이 울릉도 향군회관에서 마련되었다.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01

202 동북아역사재단의 정봉훈 경정님은 독도단체들이 독도운동을 할 때 차가운 바람보다는 따뜻한 바람이 되어 서로를 존중하며 활동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독도의용수비대 홍순칠대장님의 조카이신 홍성근 박사님은 울릉도에서 자란 덕분에 울 릉도와 독도에 대해 더 세부적이고 깊이 있는 안내를 해 주셨다. 이번행사 참가를 계기로 본 독도의병대에서도 울릉도 독도를 방문하고자 하는 전국의 독도의병 150여 명을 모시고 2006년 11월 8일 9일 단순 관광이 아닌 역사탐방으로 이규 원 검찰사가 개척하고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가르쳐주신 그 길을 다시 탐방하고자 한다. 독도단체 관계자들과 처음 만났을 때는 서먹서먹한 면도 있었지만 이규원 검찰사가 가 신 길을 따라 극기훈련을 같이 하면서 동고동락을 하다 보니 나중에는 한 가족처럼 가깝게 느껴지고 고맙게 느껴졌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이번 행사를 통하여 독도 단체들이 일관성 있게 국민을 일깨우는 일에 앞장설 수 있도록 좋은 산파 역할을 담당해 주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독도와 고구려 역사를 지키는데 있어서 국민의 등대 역할을 잘 감당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이 지면을 빌어 이 행사를 기획해 주시고 끝까지 수고해 주신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 여러분과 원활한 행 사 진행을 위해 밤낮으로 친절하게 수고하신 울릉문화원 조영삼, 정장호님께 다시 한번 깊 은 감사를 드린다. 20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03 자취따라 해 뜨는 섬으로 편부경 (시인, 한국시인협회 독도지회장) * 于 山 - 武 陵 二 島 * 在 縣 正 東 海 中 二 島 相 去 不 遠 風 日 淸 明 則 可 望 見 섬으로 향하는 길은 늘 기대와 그리움으로 설레이곤 했다. 섬 떠돌이로 살며 2001년 독도를 만나기 전까지의 이야기이다. 처음 독도에 발을 딛은 것은 환하기만 한 6월의 한날, 젊은 유골을 감싸 안고서였다. 자꾸만 흐려오는 시야를 닦아내며, 내려 선 독도의 첫 감상은 웅장한 장군 하나 근엄한 표정으로 그러나 따스한 체온을 실어 안아줄 듯 다정한 모습이었다고 할까. 낯설지 않은 이웃마을의 한 부분처럼 느껴졌던 이후 수십여 차례 독도를 드나들었고 2006년 10월에는 사진 1 이규원 검찰사 일행이 처음 도착한 학포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03

204 새로 발족한 동북아역사재단 주최로 독도관련 시민단체 연합행사에 동참하여, 또 다른 의 미 있는 방문을 하게 되었다. 나 자신도 시민단체의 일원이긴 하지만, 얼마나 많은 독도관련 단체가 있는지 정확히 파 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인데, 한자리에 모이게 되고 보니 놀랍기도 하고 의지 하 나 지탱하며 걸어 온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특히나 이번 행사가 의미 있었던 것은 어려움 속에서도 직접 섬을 돌며 체험하고 조사 해 선각자의 영토사랑을 실감케 한 19세기 이규원 검찰사의 자취를 밟아 본 것이었고, 이 는 현 독도관련 정부부처나 단체 개인에게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깨우침을 얻었다. 실상 일본이 침탈야욕으로 억지주장을 하게 된 계기로 공도정책이 한 몫을 한 것은 아 쉬움 가운데 부정할 수 없는 일인데 이규원 감찰사의 행적과 같은 기록이 조금만 더 일찍 이루어졌었다면 하는 아쉬움 또한 갖게 한 시간이었다. 이어진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활동내용 및 현황 등을 소개하고 교류 협력하는 방안 등을 토론하는 자리에서는 독도라는 하나의 주체성 속에 놓인 여러 문제들을 짚어보고 이번 행 사를 갖게 된 주목적을 논의하고 결론을 얻는 일에 뜻을 모아 나갔다. 논제로써 1, 시마네 현의 다케시마화에 대한 대응방안 2, 시민단체간의 네트워크 3, 의용수비대 관련(기념사업, 국가유공자 예우 등 지원법 시행) 4, 결과보고서 출판내용 및 자료에 관한 건 5, 유인도로서의 독도리 마을 충족 조건 등이 공개 토론 제목으로 채택되었고, 단체 나름의 주장과 생각을 발표하고 질문하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뜻은 하나인데 산재한 문제들은 많고 주체는 같으 나 각자의 의견은 조금씩 다르고 이것이 또한 독도의 문제라는 생각을 문득 해 보았다. 한 번의 모임으로 결론에 도달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번 연합모임에서는 공동의 목소 사진 2 울릉도 도동 선착장과 학포 해변 20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05 리를 낼 수 있도록 단체 간의 역할분담과 뜻을 모으는 것이 중 요하다는 자성의 시간이었음을 성과로 기억해야 할 듯하다. 독도를 관련하여 전체적인 문제는 물론 몇 개의 난제라도 토 론대에 올려놓고 보면 쉽사리 해결방안이 나서지 않는 일은 왜 일까? 본적을 옮기고, 주민등재를 하고, 유인화를 외치고, 수시 로 섬을 드나들고 시를 쓰고 이젠 살아보려는 것이 나의 독도 사랑 방법일 뿐 해답은 언제쯤 얻게 될까 또한 삶의 화두처럼 오늘도 뒤통수를 간질이고 있다. 단체마다 설립목적이 있다. 결국은 일본의 침탈야욕으로부터 사진 3 편부경 시인은 시로 써 의견발표를 대신했다. 독도를 지켜내 대한민국 자존의 영토로써 길이 보전하자는 것이다. 독도를 만날 때마다 그 려보는 풍경은 몇 안 되는 어민들이 그물을 손질하고 해산물을 거둬들이며 소박하게 살아 가는 평화로운 어촌마을의 모습이다. 그곳은 예전부터 울릉어민의 텃밭이었으며 어족자원 이 풍부한 부속 섬이었기 때문이다 미흡하나마 한 가구가 정착의 발판을 딛었고 이젠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지원으로 동도에도 이웃을 만들고, 예전에도 그랬듯이 울릉어민의 어장으 로써 민간인이 거주하는 섬마을로서의 조건을 충분히 갖춰주어야 할 것이다. 1) 독도를 관련하여 시민운동이라 함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국민 한사람마다에게 주어진 의무와 다르지 않 을 것이다, 그러나 목소리를 높이고 내 것만을 주장하는 태도로써는 얻어지는 것이 적다고 본다. 저들을 설득하고 작은 것부터라도 내실을 기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닐는지 조심 스럽게 개인의 평소 생각을 피력해 본다. 학자는 역사를 발굴하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시인은 시를 쓰고 발명가는 그 분야에서 누구라도 자신의 소신대로 서있는 자리에서 최선의 꾸준한 관심이 이어진다면 독도는 결 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갖는다. 해국과 털머위가 만개한 가을 절정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울릉 독도에서의 특별한 만남 이 일회성의 조우가 아닌, 나라를 위한 독도를 위한 순결한 영토사랑으로 이어지길 기원하 며 글머리에 쓴 세종실록의 시 보다 아름다운 어휘를 되뇌어 본다.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05

206 사진 4 울릉도 학포 해변의 정겨운 풍경 정동바다 중심에 두 섬이 있는데 우산 무릉이네 두 섬은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바람 자고 맑은 날엔 눈으로 볼 수 있다네 20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07 첫날 밤 편부경 독도의 하루가 저문다 섬 등성이 마다 내리는 장막 그림속의 등대 살아있는 빛으로 어둠을 돈다 날지 못한 갈매기 춥게 웅크린 한 여름의 첫날 밤 여기는 독도리 20번지 울릉도에서 여섯시간 느린걸음을 풀어놓고 돌아서는 예인선 힘겨운 항해 밤을 매달고 부선을 매달고 남은자의 또렷한 기억을 매달고 언제 돌아오마 약속의 말 바람이 지우고 파도가 씻고 우두커니 희미한 세상품을 향해 점점 사라지는 점 점 여기는 북위 삼십칠도 섬 사방에서 달려드는 울음일까 웃음일까 건너 섬 등대곁 환한 야간 보초경의 눈망울 보임직한 거리에서 오랜 설레임을 내려놓고도 잠들지 못하는 그대안의 서성임 행복이라 말하기 이른 이유 있는 것은

208 Ⅱ. 러일전쟁 관련 일제 유적지 답사 독도의 망루를 찾아라 위상복 (대구제일고등학교 교사) 답사 코스 5월 15일 : 도동(중식) 독도박물관 약수터 공원 도동 망루 독도 전망대(석 식 및 초청강연) 5월 16일 : 태하 망루 나리분지 천부리(중식) 석포 망루 석포 마을 내수 전 전망대 저동항 5월 17일 : 일제 가옥 및 관사 견학 도동(중식) 봉래폭포 저동항 도동 향군 회관(대화와 토론) 5월 18일 : KBS 촬영협조 도동(중식) 독도 답사 5월 19일 : 성인봉 등산(KBS 중계소 성인봉 나리분지 도동) 1. 첫째날 : 5월 15일(화) 동북아역사재단이 주최한 2007 독도역사기행 에 전국지리교사연합회를 대표해서 3박 4일 일정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27개 시민단체가 참가한 이번 행사는 독도 시민단체 연합 행사로서 동북아역사재단과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의 공동 주관으로 진행되었다. 5월 15일 9시까지 포항의 여객선 부두에 모인다는 연락을 받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다 소 여유롭게 포항에 도착하였다. 기상 상태의 악화로 묵호에서 출발하는 선편이 끊겼기 때 문에 서울에서 모인 일행도 모두들 포항 부두에서 출발하였다. 우리 일행은 시민단체대표 27명, 업무진행 8명, KBS 4명 등 모두 39명의 대식구였다. 920명이 정원인 썬플라워호가 10시에 포항을 출발하여 3시간 정도 지나서 울릉도에 도 착하였다. 조용한 도동항에 920명이 한꺼번에 내리자 시골장터마냥 갑자기 시끌벅적하였 20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09 사진 1 울릉도 도착 사진 2 독도박물관 전시실을 둘러보는 일행 다. 우리 일행은 복잡한 도동항 부두를 빠져나와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에서 미리 예약해 둔 대나무 숯불가든에서 가벼운 정식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울릉도에서 생산된 나물 반찬 들의 이름을 확인하면서 모두들 맛있게 음식을 비웠다. 점심 식사 후 향군회관에 도착하여 방 배정을 마친 후, 간단한 차림으로 첫 번째 찾은 곳은 항구 서편 산중턱에 위치한 약수터 공원의 독도 박물관이었다. 박물관장님의 친절한 안내와 설명을 들으며,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독도박물관은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울릉군이 대지를 제공하고, 삼성문화재단이 건축한 건물에 이종학 초대관장이 30여 년 동안 국내외에서 수집, 기증한 자료를 근간으로 하고, 고 홍순칠대장의 유품 및 독도의용수비대 동지회와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 등의 자 료를 첨가하여 1997년 8월 8일 국내 유일의 영토박물관으로 개관되었다. 독도박물관은 독도 및 조선해(동해)를 둘러싼 관련 자료를 발굴 수집 연구하며, 그 결 과를 바탕으로 전시 관리 교육 홍보함으로써,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을 반박할 수 있 는 자료와 이론의 토대를 구축하는 동시에 국민의 영토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데 건립 목적을 두고 있다. 박물관 견학을 마치고 약수터 공원에서 안영복 장군 충혼비와 향토사료관을 둘러보았 다. 울릉도의 민속 유물과 선조들의 생활상을 전시한 향토사료관은 주민들의 삶의 흔적을 돌아볼 수 있게 꾸며져 있었다. 그러나 안용복 장군 충혼비 주변에 하필 아름드리 벚꽃나 무가 함께해서 약간은 어색해 보인 것이 나만의 느낌은 아닌 듯 했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에 위치한 독도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 광장에서 홍성근 박사의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20m 정도 떨어진 남망루로 향했다. 남망루는 도동의 망향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09

210 사진 3 약수터 공원이 위치한 안용복 장군 충혼비 사진 4 독도전망대에서 바라본 도동항과 해안 산책로 봉 정상과 독도 제2전망대 자리로 추정된다. 망향봉 정상은 참호 형태였으나, 독도 제2전 망대에는 대포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일본은 1905년에 사동 1리 아래구석에서 원산과 마 츠에로 각기 연결되는 해저 케이블을 설치하였기 때문에, 일찍부터 울릉도가 전보가 가능 한 우편취급소를 설치 운용하였다고 한다. 남망루에서 도동항 전경을 카메라에 담고 난 후, 저녁 식사와 초청강연회가 준비되어 있 는 독도 전망대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식사 후 시작된 강연은 러일전쟁과 일본의 독도 점취 라는 주제로 최문형 한양대학교 명예교수님이 강의를 하였다. 1시간 정도에 걸친 강 의의 내용은 러일전쟁의 시작과 끝이 독도라는 것이었다. 즉, 일본은 러일전쟁을 위해 강 제로 독도를 침탈한 것이기 때문에 시마네현의 주장이 허구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반박 한 것이다. 지리적인 내용은 지리학자들이, 역사적인 내용은 역사학자들이, 그리고 국제법 에 대한 것은 법학자들이 각각의 분야에서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어두운 밤 케이블카를 타고 도동 항의 야경을 만끽하면서 전망대를 내려와 조심스럽게 비탈길을 하산해 서 숙소로 향했다. 길옆에는 향나무 공예품 상점과 오징어, 호박엿 등을 파는 토산품점이 줄지어 있다. 숙소 에 도착한 후 같은 방의 손용해 독도 사진 5 초청 강사인 최문형 교수를 소개하는 홍성근 박사 21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11 를 사랑하는 모임 감사, 안용식 흥사단 지도위원, 조성용 평화통일시민연대 이사, 윤한경 코리아스코프 대표 등과 함께 저동으로 향했다. 저동의 수협회센터에 위치한 울릉횟집에서 싱싱한 회와 소주를 곁들이며 모두들 의미 있는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2. 둘째날 : 5월 16일(수) 아침 일찍 일어나 6시경 도동항 좌안 산책길을 따라 행남 등대로 향했다. 안내는 지난밤 에 협의한 손용해 감사가 맡았다. 손용해 감사는 일찍부터 독도에 관심이 많아 울릉도와 독도를 60여 회나 드나들었기 때문에 이곳을 손바닥 훑듯이 훤히 꿰뚫고 있었다. 해변을 따라 조성한 산책로는 이른 아침인지라 몇몇 해돋이 관람객을 제외하고는 한적 한 편이었다. 산책로 내내 옥처럼 맑고 깨끗한 바다와 거친 화산암이 이룬 경관은 압권이 었다. 현무암과 응회암으로 시작된 암석은 염성 타포니와 해식동, 몽돌해안, 그리고 석회 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관을 이루고 있었다. 인공림인 해송과 시누대 숲을 지나 40분 정도 걸어서 등대에 도착하였다. 현재 확장 공사 중인 등대를 지나 전망대에 이르자 저동항이 한눈에 들어왔다. 깨끗하게 펼쳐진 저동항과 촛대바위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했다. 향군회관 인근의 장원 식당에서 아침 식사 후, 미니버스 2대에 분승하여 서망루인 태하 등대로 향했다. 운전기사의 친절한 안내 설명을 들으며, 30분 정도 걸려 도착한 곳은 황토 굴 부근의 해안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황토굴을 배경으로 사진을 담고 난 후, 20분 정도 사진 6 행남 등대로 가는 해안 산책로 사진 7 서망루가 있었던 태하 등대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11

212 산길을 걸어서 태하 등대에 도착하였다. 태하 등대와 등대 건너편의 향나무 자생지 표지판 자리에 참호를 구축하고, 등대 구역 입구에 무기고가 있었다고 홍성근 박사는 알려주었다. 일제는 동네 주민들로 감시조를 편 성하여 근무토록하고 망루에 이르는 길을 건설하는데 강제 동원하였다고 한다. 또한 주민 들이 부근의 현 해군 레이더 기지 자리를 망대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그 자리에도 감시 초소 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홍성근 박사의 안내로 등대 책임자를 만나보았으나, 이곳에 부임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등대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만 들을 수 있었다. 등대 뒤의 전망대에서 약 300m에 달하는 수직의 절벽을 이룬 대풍감의 향나무 자생지를 사진에 담고, 또 송곳봉을 배경으로 한 대 풍감 해안 절벽도 담았다.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너무 세어서 사진을 찍는데 어려움이 있 었지만, 전망대를 중심으로 좌우를 향해 모두 사진에 담은 셈이다. 등대 옆의 무기고 자리와 버려진 연자방아를 둘러보며 부근의 김두경씨 집을 찾았다. 주 인은 출타 중이어서 만나지 못하고 빈집과 수백 년 묵은 향나무만 둘러보았다. 등대를 내려올 때는 오를 때와 다른 길을 택했다. 울릉도 산나물 재배지에서 산나물을 채취하는 장면과 잘 가꿔진 해송림 숲을 구경하면서 태하항으로 내려왔다. 태하리 마을 중 앙에 위치한 성하신당을 둘러본 후, 버스에 올라 다음 목적지인 나리분지로 향했다. 버스로 30분 정도 해안 도로를 달린 후, 천부리에서 급경사의 산길을 다시 10분 정도 지 나 울릉도의 유일한 평지인 나리 분지에 도착하였다. 나리 라는 이름은 이곳 주민들이 식량으로 이용했던 섬말나리가 분지 내에 많이 자생하 사진 8 나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나리 분지 사진 9 북망루터에서 현지 주민(홍연하씨)과의 대화 21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13 였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나리 분지는 규모가 직경 2km 이상 으로 칼데라에 해당한다. 과거 비옥 한 토지를 바탕으로 300명 이상의 주민이 살았으나, 모두들 떠나고 현 재는 6 7가구 밖에 없다고 한다. 주민들의 가옥은 현대식 건물이었으 나, 관광객을 위해 너와집과 투막집 이 보전되어 있었다. 학습용 교재로 사진 10 내수전 가는 길의 원시림 활용하기 위해 너와집과 투막집을 사진에 담고, 운전기사에게 부탁하여 나리 전망대에서 나리 분지의 전경도 촬영하였다. 천부리의 동해 횟집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서둘러 북망루인 석포 전망대로 향했다. 삼선암이 내려다보이는 석포 전망대 자리에 참호를 파고, 그 안쪽 수풀이 우거진 곳에 막 사를 건립하였다고 홍성근 박사는 설명하였다. 참호는 해안 절벽에 외부로 노출되지 않도 록 하고, 막사는 벽돌로 건축하였다고 하는데, 아직도 생생하게 벽돌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마침 태평양 전쟁 당시 막사 건축에 강제 동원되었던 현지 주민인 홍연하(82)씨를 만나 서 당시 상황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전망대에서 송곳봉을 배경으로 사진에 담고, 또 죽도와 관음도를 향해서도 촬영하였다. 석포 전망대를 출발하여 다음 목적지인 석포 마을로 향했다. 석포 마을은 주변의 경관도 빼어나지만, 맑은 날씨면 육안으로 독도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날씨 가 매우 흐렸기 때문에, 마을 앞바다의 죽도가 겨우 보일 정도였다. 부근에서 매일 독도를 보기 위해 이곳에 집을 짓고 독도를 향해 창을 낸, 이두영씨 집을 볼 수 있었다. 독도 사랑 을 실천하는 행동의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독도를 사랑한다는, 독도를 지켜야 한다는 그 어떤 말보다도 더욱 뇌리에 깊게 닿았다. 마침 마을 전망대에서 만난 현지 주민인 백태철 (65)씨는 이곳에 관광객을 위한 망원경이라도 설치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동행한 경북도 청의 김정일 사무관에게 건의하였다. 석포 마을에서 내수전 약수터까지는 걷기로 하였다. 말하자면 울릉도 일주도로 중에서 아직 개통되지 않은 4.4km 구간을 걸음으로써, 우리 일행은 오늘 하루만에 육로로 한 바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13

214 퀴 돌아보는 셈이다. 산 정상인 망루터를 중심으로 다녔기 때문에, 울릉도의 빼어난 경관 을 가장 잘 조망하는 하루가 된 것이다. 도중에 비가 내려 어려움도 있었지만, 원시림으로 둘러싸인 산책로의 경관이 워낙 빼어났기 때문에 모두들 너무나 만족해하는 분위기였다. 대나무 숯불가든에서 저녁 식사 후, 같은 방에 묶는 일행 10명에게서 1만원씩 갹출하여 만찬을 약속하였다. 하루 밖에 함께하지 않았지만 벌써 친해진 것이다. 아마 같은 뜻을 가 진 사람들의 모임이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택시를 이용해 저동으로 갔으나 흐린 날씨 탓 에 저동항에서는 허탕을 쳤다. 물가가 비싼 도동항에서 간단하게 음식을 준비한 후 307호 실에 모였다. 그간의 바쁜 일정으로 밀렸던 대화를 나누는 진지하고 의미있는 시간을 가 졌다. 3. 셋째날 : 5월 17일(목) 어제 저녁부터 내린 비는 아침에도 계속되었다. 기상 상태가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16일 실시하기로 한 독도 답사 계획은 계속 미루어졌다. 향군회관 1층에 위치한 식당에서 약소 불고기 곰탕으로 식사 후, 오전에는 일본식 가옥을 답사하였다. 도동에는 일제시대 가옥을 쉽게 볼 수 있다. 2005년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영관 씨 소유의 가옥은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이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일본인(사까모도) 이 건축하고 거주하였던 가옥이다. 보와 기둥, 천정은 수백 년 이상 된 울릉도 솔송과 귀 사진 11 일제가옥 내부에서 집주인 이영관씨와 함께 21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15 목 등으로 만들고, 벽과 바닥도 흙과 다다미로 만들었다. 구한말 일본인이 삼림 채벌권을 침탈하여 울릉도의 고유한 삼림이 파괴된 증거를 확인한 것이다. 가는 빗줄기가 계속되는 흐린 날씨였기 때문에, 긴급히 호실 대표를 소집하여 본부(305호) 에서 논의한 결과, 오후엔 희망자에 한해서 봉래 폭포를 다녀오기로 했다. 물론 봉래 폭포 답사도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의 전임 회장인 조영삼씨의 적극적인 주장의 도움이 컸다. 장원 식당에서 점심 식사 후 빗줄기가 멎을 때 쯤, 우리 일행은 봉래 폭포를 향했다. 창 밖의 원시림을 감상하며 20분 정도 걸려 저동항 상부 2km 지점에 위치한 주차장에 도착하 였다. 폭포를 향해 5분 정도 걷자 관광객을 위해 현대식으로 잘 단장한 풍혈이 있었다. 이 는 울릉도가 경사가 급한 화산 지형이기 때문에 암괴류 형태가 잘 발달한 것이 원인인 것 같았다. 실제로 물이 거의 없는 울릉도 곳곳의 하천은 바위 덩어리가 많이 퇴적되어 암괴 류 형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봉래 폭포 가는 길의 하천도 예외는 아니었다. 풍혈을 나와 태풍으로 망가진 계곡을 보며 조금 더 걷자 삼림욕장이 나타났다. 일본 삼 나무를 인공적으로 조성한 삼림욕장은 주변의 원시림과 폐타이어를 활용한 산책로 등과 이룬 조화는 장관이었다. 일본 삼나무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삼림욕장을 지나 계곡을 따라 조금 더 오르자 봉래 폭포 전망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3단 폭포로 이루어진 봉래 폭포는 높이가 25m에 달한다. 성인봉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관음 봉에서 폭포를 이룬 곳이다. 1일 유량이 약 3,000톤 이상으로 울릉도 주민들의 상수원이 다. 너무나 깨끗한 원시림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를 보면서 모두들 자리를 떠날 줄 모른다. 폭포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저절로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사진 12 원시림과 어우러진 봉래폭포 사진 13 봉래폭포 앞에서 단체사진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15

216 시원스레 떨어지는 폭포 물줄기를 보면서 한참을 보낸 후, 친숙해진 사람끼리 폭포를 배 경으로 사진을 담아둔다. 물론 우리 일행 모두를 담는 단체 사진도 빠질 수가 없었다. 폭포를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에 수원지와 투막집을 카메라에 담았다. 특히 전망대 바로 아래의 휴게소에 도착하여 독도사랑협의회 박정순 대표가 준비한 하산주로 한잔씩 건넨 호박막걸리는 폭포 답사에 대한 깨끗한 분위기를 더욱 맑게 하는 것 같았다. 버스로 저동까지 이동하여 걸으면서 저동항을 둘러보았다. 마을 중앙 쯤에서 박정희 대 통령이 5 16 직후 울릉도를 방문했던 기념비를 볼 수 있었다. 저동항에서 가진 20여 분 동안의 휴식 시간을 이용하여 오징어 선박 등이 정박해 있는 항만을 둘러보고, 촛대 바위 와 행남 등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였다. 다시 도동의 향군회관에 도착하여 각 호실로 돌아가 간단하게 씻은 후, 5층 회의실에서 대화와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내일 일정에 대한 주최측의 안내가 있고 난 후, 첫 번째로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울릉 군수님으로 일행에 대한 인사와 울릉도 독도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독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기 때문에 막내가 아닌 맏형이라고 하며, 실효적 지배의 중요성을 살리 기 위해 앞으로 독도를 삶터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또 울릉도와 독도의 중요성에 대해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난 후, 이어진 질의 시간에는 독도 개발의 문제점과 북한 동포 방문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사진 14 탐방단에게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 소개하는 정윤열 울릉군수 21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17 독도 주민인 편부경 한국시인협회 독도지회 회장의 독도 사랑 시낭송이 있은 후, 최문형 교수님의 독도 망루 건설 시기에 대한 보충 설명이 이어졌다. 즉 동쪽과 서쪽에 위치한 울 릉도 망루 2개는 러일 전쟁 시에 건설이 되었고, 독도 망루는 러일 전쟁 직후에 건설되었 다고 하였다. 그 외 세계 역사 NGO 대회에 대한 독도 시민단체모임의 대처 문제와 동북 아역사재단 홈피의 시민단체 코너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분위기는 차분했지만 모두들 지 나칠 정도로 진지했다. 모두가 독도 사랑이라고 하는 같은 마음 때문이었기에. 저녁 식사는 도동항 입구의 바다횟집에서 가졌는데, 모처럼 싱싱한 울릉도 회와 소주를 곁들인 화기애애한 자리였다. 그 동안의 일정을 소화해내면서 모두들 친해졌기 때문이다. 우리 호실(307)은 저녁 식사 후에도 좋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손용해 감사님의 탁월한 친 화력이 돋보이는 시간이었다. 저녁 늦게까지 많은 대화를 가진 후 잠자리에 들었다. 4. 넷째날 : 5월 18일(금) 장원 식당에서 여유롭게 아침 식사를 한 후, 도동항 우안 산책로를 다녀왔다. 우안 산책 로는 거리도 짧았지만, 그나마 풍랑이 심해 위험한 코스는 출입 통제를 하고 있었다. 산책 로 모퉁이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회를 파는 간이횟집이 있다. 해삼과 소라 등 울릉도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회를 바다와 가장 가까이서 맛 볼 수 있는 곳이다. 산책로를 나와서 도동항 기념품 가게를 잠시 둘러 본 후, 체험 삶의 현장 촬영 장소로 갔다. 오전에는 도동항에서 KBS 체험 삶의 현장 촬영을 구경하고 협조하는 것이 일정의 전부였다. 마침 KBS 소속의 연예인 김명국씨가 울릉도 어민과 고기를 잡은 후 회를 맛보 사진 15 KBS 체험 삶의 현장 촬영 장면 사진 16 울릉도와 독도의 위치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17

218 는 장면이었다. 멋진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촬영 현장도 구경하고, 촬영이 끝난 후 소품으로 동원된 회도 즉석에서 맛 볼 수 있었다. 독도의 입도가 어렵기 때문에 많은 장면을 울릉도에서 촬영해야만 했던 것이다. 12시에 도동항 입구에 위치한 바다횟집에서 싱싱한 물회로 점심 식사를 끝낸 후 13시에 출발하는 대망의 독도행 씨 플라워호 선박에 올랐다. 2시간 정도 후에 만날 독도를 생각하 며, 주최측인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나눠준 자료집을 꺼내 독도 현황을 읽어 보았다. 독도는 울릉도 동남쪽 87.4km에 위치하며(일본 오키섬 북서쪽 157.5km임), 동도와 서도 2 개의 주섬과 주변 89개의 부속도서로 구성되어 있다. 동도와 서도의 거리는 110m 160m, 수심은 10m 정도이며, 독도 전체 면적은 56,000여 평에 달한다. 독도는 해저 약 2000m에서 솟아 오른 용암이 굳어져 형성된 화산섬으로, 신생대 3기 460만 년 전부터 생성되기 시작하여 270만 년 전에 해수면 위로 올라왔다. 독도는 우리나 라 화산섬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울릉도와 비교하면 약 250만 년, 제주도와 비교하면 약 340만 년 앞선다. 동도는 최고봉 98.6m로 북쪽에 2개의 화산 흔적이 있으며, 정상에 비교적 평탄한 부분 이 있다. 서도는 최고봉 168.5m로 산정이 뾰족한 원뿔형이다. 특이한 점은 서도 북서쪽 해안의 물골 바위틈에서 조금씩 떨어지는 물은 하루 한 드럼 정도의 분량으로 독도에서의 생활에 귀중한 수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독도는 화산활동에 의하여 분출된 알칼리성 화산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암석은 현무 암, 조면암 및 응회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토양은 산 정상부에서 풍화하여 생성된 잔적토 로서 경사 30도 이상의 급격한 경사를 이루고 있고, 토성은 사질양토이며, 흑갈색 또는 암 갈색의 토양이다. 독도를 포함한 울릉도 부근 지역의 기후는 난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를 띠고 있다. 연평균 기온은 약 12 C이며 최난월인 8월의 기온도 24 C를 초과하지 않 아 여름에도 시원한 편이다(연중 85%가 흐리거나 눈비가 내려 비교적 습한 지역임). 그리고 최 한월인 1월의 평균기온은 1.0 C로 온난한 편이다. 안개가 많고 연중 흐린 날이 160일 이상 이며, 강우일수는 150일 정도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240mm로 겨울철 강수는 대부분 적 설의 형태이며, 폭설이 자주 내린다. 연간 평균풍속은 4.3m/s로 여름에는 남서풍, 겨울에 는 북동풍이 우세하다. 21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19 독도는 강한 해풍과 암석류의 척박한 토질로 인하여 식물이 잘 자랄 수 없는 환경 조건 이며, 지질 구조상(화산암) 지하수 저장이 곤란하다. 그러나 철새 이동경로의 중간 피난처 및 휴식처로서, 우리나라 생물의 기원과 분포를 연구할 수 있는 섬 생물지리학적으로 중요 한 도서이다. 독도에 처음으로 주민등록을 이전하여 거주한 사람은 고 최종덕씨로 1965년 3월부터 거 주를 시작했다. 현재는 서도에 김성도씨 부부가 주민등록을 두고 거주하고 있으며, 동도 에는 독도경비대와 등대관리원이 거주하고 있다. 학계에서 주장하는 독도의 자원과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풍부한 수산자원과 어업전진기 지로서의 가치는 당연하고, 부근의 대륙붕과 해저에 매장된 하이드레이트(Gas Hydrates : 메 탄이 주성분인 천연가스가 얼음처럼 고체화된 상태)를 비롯한 지하자원, 해양연구 및 무선중계 기지, 천혜의 관광자원, 그리고 국방상의 요충지 등 우리에겐 너무나 소중한 땅이다. 오로지 독도만을 생각하면서 바다만 바라보며 한참을 지나자, 갑자기 배 안의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독도의 모습이 눈앞에 한 점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거리가 좁혀지면서 커다란 섬으로 모습이 바뀌자 가슴이 뭉클하면서 쿵쿵거리는 것 같았다. 독도 탐사 대원이 아닌 일반 관광객의 입장이라도 마찬가지였다. 독도행 씨 플라워호에 같이 오 른 사람들 모두가 한 마음이었다. 서도에 가까이 접근하자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풍랑이 너무 세어서 독도에는 입도할 수 없으며, 배 바깥으로도 나갈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서도에서 시작하여 시계 반대 방향 으로 독도 전체를 한 바퀴 돌고, 다시 거꾸로 돌아오는 것으로 독도 관광을 대신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배 안에서 유리창을 통해 독도를 조망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쉽기는 했지만 독도를 처음 만난 느낌에는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도리어 직접 밟아보지 못하는 아쉬움 때문에 더욱 진해 지는 것 같았다. 일본은 러일 전쟁 중 독도를 소위 다케시마 라는 명칭을 붙여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 17 물개바위 쪽에서 바라본 독도

220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독도는 한일 간의 정치 문제로 늘 시끄러우며, 우리나라는 1952년 주권 선언 이후 독도를 우리 땅으로 지켜오고 있다. 소설가 최성각은 독도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이 섬과 관련해서 아무런 추억도 지니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독도( 獨 島 )라 는 이름이 맞다. 라고 말했다. 우리가 찾는 독도는 외롭지 않고, 우리가 지키는 독도는 넘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슴 속 깊이 새기면서 독도를 뒤로 했다. 풍랑이 심해 배멀미로 고생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미처 멀미에 대비를 하지 못한 사람 들은 더욱 심했다. 평소 멀미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멀미약은 먹지 않고 귀밑애만 붙인 나는, 배멀미로 돌아오는 동안 내내 어려움을 참으면서 도동항에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 다. 독도를 갈 때에는 반드시 현지에서 멀미약을 구해 먹는 등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필 요한 것 같았다. 오후 5시경 도동항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묵호로 향하는 일행은 서둘러 오후 6시에 출항 하는 배편으로 도동항을 출발하였다. 묵호행 중에서 코리아독도 녹색연합의 한서정 홍보위 원과 KBS 팀 4명 등 5명만 남았다. 배편이 끊긴 포항행 5명은 19일 오후 3시에 출발하게 되어 있었다. 묵호행 5명과 포항행 5명 등 모두 10명만 남은 것이다. 이예균 회장의 안내로 바다횟집에서 속을 가라앉히기 위해 담백한 복지리를 시켰다. 정 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모두들 배멀미로 고생한 것 같았다. 저녁 식사 후 향군회관 5층으 로 방을 옮겼다. 독도의병대의 오윤길 부대장과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의 이예균 회장이 자리를 함께 해 독도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5. 다섯째날 : 5월 19일(토) 아침 일찍 일어나 장원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성인봉 등산을 위해 우의와 물병 등 간 단한 등산 준비하였다. 전날 배멀미가 너무 심했던 독도의병대 윤미경 총무님은 향군회관 에 남고 5명만 등산에 참여하였다. 등산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향군회관에서 KBS중계소 까지는 택시를 이용했다. 해발고도 200m 정도 되는 중계소에서 등산로로 접어들자 입구부터 울창한 원시림이 인 상적이었다. 하늘도 보이지 않을 만큼 원시림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 감회가 새로운 등산로 이다. 울릉도는 제주도와 함께 식생의 수직적인 분포가 잘 나타는 곳이다. 해발고도 500m 22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21 이하의 저지대에는 후박나무, 동백나무, 굴거리나무, 감탕나무, 사철나무, 식나무 등의 상 록활엽수가 자란다. 그리고 고지대에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너도밤나무, 섬피나무, 섬 잣나무, 솔송나무, 섬고로쇠나무 등의 특산 식물이 자라며, 섬 전체에 분포하는 향나무는 재질이 단단하고 향이 짙다. 그러나 과거 일본의 삼림 침탈로 식생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솔송나무와 향나무 등은 등산로 주변에서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략 해발고도 100m 간격으로 식생 경관을 촬영하다가 정상 부근에 이르자 짙은 구름 이 깔려 안개 속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구름 속에 둘러싸인 성인봉에 도착하여 기념 촬영 을 한 후, 준비해 온 소주를 한 잔씩 나눠 마셨다. 마치 신선이 된 기분으로. 전체 39명의 일행 중 5명만이 참여한 성인봉 등정이 너무나 아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곳은 산의 모양이 성스럽다하여 성인봉( 聖 人 峰 )이라 부른다. 연평균 300일 이상 안개 에 쌓여 신비로움을 더하며 제단처럼 된 바위에는 장군 발자국이라고 전하는 족적이 있다. 이 발자국은 왼발로, 본토 어딘가에 오른쪽 발자국이 있다고 한다. 마침 짙은 구름 안개로 인해 정상을 제외한 주변 경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하얀 솜 더미에 쌓인 듯한 성 인봉의 신비스러운 모습은 신선경을 보는 듯 했다. 해발 984m 성인봉의 희귀 수목이 군락 을 이루고 있는 정상 부근은 천연기념물 제189호로 지정되어 있다. 내려오는 길은 나리분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나리분지로 내려오는 길은 내내 구름 속 의 하산 길이었다. 나리분지에서 성인봉 쪽으로 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분지 쪽은 완전히 구름 속이었던 것이다. 전형적인 푄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구름 속의 원시림은 압권 이었다. 아무렇게나 카메라를 눌러도 모두가 작품이었다. 잠시 사진작가가 된 기분으로 하 산 길의 주변 경관을 계속해서 카메라에 담았다. 때 묻지 않은 울창한 원시림과 구름 속에 사진 18 성인봉 정상 부근의 원시림 사진 19 성인봉 정상에서 일행들과 함께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21

222 묻힌 3시간 정도의 성인봉 등산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무사히 등산을 마치고 또 다시 나리분지에 도착하였다. 미리 전화 연락을 받고 분지 내 의 약속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택시를 이용해 도동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도동으로 향하는 1시간 10분 정도의 시간은 지금까지의 울릉도 여행에 대한 복습 시간이었다. 택시 기사인 사랑실은 교통봉사대 소속의 이종진씨는 차를 세우기도 하고, 때로는 설명을 덧붙 이기도 하면서 울릉도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물론 택시 경비도 일반 택시보다는 저렴하였다. 향군회관에 도착한 일행은 모두들 성인봉 등산에 대해 너무나 만족해하면서, 서둘러 짐 을 꾸려 장원 식당으로 향했다. 장원 식당에서 이번 울릉도 여행의 마지막 식사를 마친 후, 이예균 회장님에게 부탁하여 상가(농협)에 들러 간단한 선물을 준비하였다. 만약을 위해 배 멀미도 철저히 준비를 하였다. 지금까지 울릉도에 머문 동안 도와주신 푸른울릉독도가꾸기 모임의 모든 분에게 고맙다고 인사 한 후, 오후 3시 출발 포항행 썬플라워호에 올랐다. 이번 행사인 2007 독도역사기행 을 기획하고 주최한 동북아역사재단에 감사를 드린다. 또 이번 독도 탐방의 기회를 제공해 준 전국지리교사연합회에도 감사를 드린다. 울릉도와 독도를 학교 현장에서 직접 가르치는 지리교사의 입장인 나로서는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던 것이다. 3박 4일간 계획되었던 행사(실제는 4박 5일간 이루어짐)를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독도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너무나 귀한 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다. 또 독 도가 정말 소중한 우리의 영토라는 사실과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독도를 지켜 낼 능력이 충분히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토 교육 사례에서 보듯이 영토지리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기회였다. 현재 우리나라는 주변국과의 영토 문제만큼은 역사 이래 매우 어려운 시기이다. 대부분의 다른 나라와 같이 영토 문제에서 자유롭고 평화스러운 상 태가 아니다. 휴전선, 독도, 간도, 어업 협정의 수정과 EEZ 설정 등 우리가 해결해야할 어 려운 문제들이 너무나 많이 산적해 있다. 우리의 영토는 어느 누구도 대신 지켜주지 않는 다. 우리가 지킬 의지가 있고, 지킬 힘이 있을 경우만이 영토를 보전할 수 있다. 오는 5월 31일 대구지리교사대회에서 이번 답사 내용을 발표하고, 9월에 개최될 예정인 지역사회답사연구회의 연수회에서도 공개할 예정이다. 지리 교사들에게 영토지리 교육과 22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23 독도 문제 라는 주제를 설명할 수 있는 자료도 확보한 셈이다. 또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독도의 중요성을 이전보다는 훨씬 가슴에 닿도록 인식시킬 수 있는 자신감과 의무감도 생 겼다. 이 모두가 이번 독도 역사 기행에서 얻은 소득인 셈이다. 여행이 아름답고 가슴 설레는 것은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신 일행 중 연로하신 어느 분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음미하면서 글을 마친다.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23

224 독도를 잃으면 동해를 잃는다 안용식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지도위원 / 극단 독도리아 대표 / 수필가)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L 간사로부터 독도를 방문할 의사가 있느냐고 묻는 전화를 썬 플라워호 선상에서 받았다. 독도를 주제로 한 연극을 울릉도에서 상설 공연하기 위해 K 극작가와 함께 울릉도에 들어와 관련 인사들을 만나 협의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울릉도까지 왔다가 일정에 쫓겨 독도를 가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는데 동 북아역사재단에서 독도를 방문할 행사에 동참할 기회가 주어진 것은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나는 동북아역사재단의 행사에 참여해서 울릉도를 향해 떠났다. 5월 14일 밤이다. 나는 울릉도를 두 번째 가는 길인데 옆 자리에 앉은 S씨는 30회 이상 울릉도와 독도를 방문했다 고 한다. 운이 좋아 안내를 잘 해 줄 길벗이자 좋은 동지를 만난 셈이다. 옛날에는 울릉도 까지 가는데 열여덟 시간이 소요되었고, 심한 풍랑이 계속 되면 군에서 휴가를 나왔다가 부모님을 뵙지도 못하고 그냥 귀대한 군인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쾌속정이 포 항과 울릉도 간, 그리고 묵호와 울릉도 간에 운항되고 있어서 운항시간이 열여덟 시간에서 세 시간으로 단축되었다. 우리들 일행은 세 시간 만에 울릉도에 도착했다. 울릉도에 도착한 우리는 점심식사를 끝내기가 바쁘게 숙소로 정해진 재향군인회 복지관 에다 여장을 풀어놓고 곧 바로 독도박물관으로 갔다. 사학자 이종학 선생이 사재를 털어가 며 모으고 연구한 자료를 중심으로 하여 세워진 독도박물관 일본 사람들이 아무리 생떼 를 써도 독도는 엄연히 우리 땅, 우리 영토라는 역사적인 기록들이 연대와 시대별로 정연 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독도의용수비대들이 독도를 잃으면 동해를 잃는다 는 정신으로 지 켜왔다는 발자취에 대한 소개는 나를 숙연하게 하였다. 독도박물관 바로 아래 세워진 향토사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쟁기, 물래, 배틀, 삽과 곡 괭이, 낫, 호미, 덕석, 대바구니 등 농기구나 생활도구는 육지에 있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가 없었다. 마치 추억의 앨범을 펼쳐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약수터 옆에 세워져 있 는 비석에 눈길이 끌렸다. 안용복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새겨진 비석이었다. 일본 에 붙잡혀가 모진 매를 맞고 투옥되고 생명의 위협을 당하면서도 당당하게 독도가 우리 영 토임을 주장하고 일본 막부로부터 확인서까지 받아왔다는 그의 의기와 충성심은 민족의 22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25 사진 1 울릉도 도착 사진 2 독도박물관 견학 후예들로서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사실 독도하면 신라시대 이사부 장군, 조선시대 안용 복 장군, 정부수립 후 홍순칠 의병대장 같은 의인들의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케이블카를 타고 러일전쟁 당시 망루가 세워졌다는 정상의 유적지를 답사하고 그곳에서 한양대학교 최문형 명예교수로부터 독도가 러 일 해전의 시발점이자 종결점이었다는 사 실( 史 實 )을 새롭게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 자리에다 2차 대전 때도 일본이 망루를 세 우고 숙소를 지었는데 당시 벽돌을 져 날랐다는 생존 노인의 회고담을 듣기도 했다. 잡목 이 우거진 망루 터도 있지만 지금은 미사일 기지가 설치되어 있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시 대가 바뀌어도 전략요충지는 바뀌지 않는가 보다. 기상악화로 독도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러일전쟁 당시의 망루가 세워졌던 지점을 찾아 답사를 하면서 신비의 섬 울릉도의 비경을 관광하는 기쁨을 덤으로 얻었다. 화산이 폭발하는 분화구에는 식물이나 농작물 이 자라지 않은 것이 지리적인 현상이요 학계의 정설이라고 하는데 울릉도 나리분지는 예외 지역 이라고 한다. 나리분지는 마치 평야처럼 보여서 내가 섬에 와 있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화산지 대에 생성하여 자라는 말라리 라는 풀이 고급 나 물로 먹을 수 있어 재배단지가 조성되었다는데 그 곳까지 가보지는 못했다. 울릉도에 마을이 형성될 때의 주거형태를 재현한 집과 화장실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현장을 둘러보고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3 독도전망대 케이블카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25

226 망루가 서있던 자리에 지금은 등대가 세워져 있는데 그 등대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으로 부터 기상악화로 등대가 제 기능을 작동할 수 없을 때는 전파를 25초 간격으로 보내어 울 릉도의 위치를 확인시켜 준다는 설명을 들었다. 울릉도의 동서 계곡을 가로 지르는 내수전의 등산 코스는 비경 중의 비경이었다. 더러는 칼로 깎아 세워 놓은 듯한 가파른 계곡은 발을 헛디디면 곧 바로 바다로 빠져버릴 정도로 급경사지에 나무와 숲이 우거져 있고,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바다의 푸르름은 더 장관이었다. 우리 일행은 비를 맞으며 걸어도 마냥 즐겁기만 했다. 깊은 산 속에서만 맡을 수 있는 자연의 향취는 나를 매료시켜 버렸다. 장미에도 가시가 있듯이 겨울에는 눈이 많이 쌓여 등산객이 조난을 당해 목숨을 잃은 예가 종종 있다고 했 다. 약수터 옆 휴게소에 울릉도 개항 100주년 기념으로 상을 받은 노부부의 선행기사가 게 시판에 부착되어 있었다. 겨울 산행 때 눈이 많이 쌓여 길을 잃고 조난을 당해 사경을 헤 매는 등산객을 집으로 데리고 와 구해 준 일이 많았다고 한다. 조난에서 구조를 받은 그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은인이 된 셈이다. 아들과 딸들은 울릉도 항구가 있는 도동에서 약국 을 경영하며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깊은 산 속에서 외롭게 고생하며 살지 말고 자식들 곁에서 편안히 사시라고 해도 노부부는 효성어린 권유를 뿌리치고 또 언 제 발생할지 모르는 조난자를 구조하기 위해 산 속에 살고 있다는 얘기는 가슴 뭉클하게 해 주는 미담이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차창을 통해 푸른 바다와 푸른 숲을 동시에 볼 수 있고 조선조 때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황토층의 굴이 있는가 하면 삼선암 중에 풀 한 포기 없는 큰 바위와 낙석을 주의하라는 안내문 옆에 여자의 음부같이 생긴 바위 동굴을 지나며 사진 4 태하등대 시설 안에서 사진 5 옛길 걷기 22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27 사진 6 석포 보루산과 삼선암을 보며 관광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깔깔대며 웃기도 한 기암괴석이 많은 땅 신비의 섬 울릉도. 고 려장의 옛 무덤이 있는 것을 보면 그때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흔적이 아닌가. 조그마 한 연못도 있고, 논과 밭도 있는 섬, 항구이지만 비린내가 나지 않고 오물 하나 보이지 않 은 너무 깨끗한 섬 울릉도였다. 독도를 들어가기로 예정한 하루 전 날 역사NGO 대표들과 실무자들이 모여 평가회를 하 는 자리에 정윤열 울릉군수로부터 고무적인 얘기를 들었다. 독도의 동도와 서도 사이의 바 다를 매립하거나 다리를 놓아 그 위에다 10여 채 집을 지어 20여 명이 생활하며 살게 할 획이라는 설명을 듣고 기뻤다. 국제해양법에서 실효적지배가 법적으로 가장 큰 효력을 나 타낸다는 법리에 비추어 볼 때 군수의 계획이 실현만 된다면 독도 수호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질 것으로 전망되었다. KBS 체험 삶의 현장 프로 팀과 함께 독도에 내려 김성도 부부의 생활하는 모습을 영상 에 담아 전국시청자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독도사랑의식을 고취시키려 했던 계획은 독도 주변을 세차게 파도치는 기상악화로 물거품과 함께 사라져버린 것이 아쉬웠다.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27

228 그렇게도 가고 싶고 그렇게도 딛고 싶었던 독도 답사를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 다. 선장은 우리들이 촬영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서서히 독도를 일주해 줬다. 나카이 요사부로 등 일본 어부들의 남획으로 씨가 말라버린 바다사자들이 노닐던 가제 바위가 파도에 의해 물에 잠겼다 나타났다 했다. 파도가 가제바위에 부딪치면 흰 물거품이 일면서 초록색 물빛은 신비롭게 보였다. 어떻게 같은 물이 푸른 파도가 흰 색으로 변하고 초록색으로 바뀔 수 있단 말인가? 그 신비의 조화를 알지 못하고 돌아왔다. 다음에 찾아가면 그때는 독도가 늦게 왔다고 심통을 부리지 않고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아 줄 것인지 독도를 잃으면 동해를 잃는다 는 절규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울릉도와 독도를 찾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가슴에 독도지킴이 가 되겠다는 다짐을 확신시 켜주면 독도는 덜 외로워할 것 같다. 사진 7 KBS 체험 삶의 현장 촬영 22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29 내 삶의 터전 독도 탐방 박정순 (독도사랑협의회) 1. 5월 14일:덕수궁 돌담길을 돌며 여행을 떠나기 전, 가슴 두근거림은 어린 시절 소풍 떠나기 전날의 그런 설레임이다. 독 도에 관한 시를 발표하고 시화전을 하면서도 정작 나는 독도 아닌, 포항조차도 방문한 적 이 없었다. 아니 그 어느 곳보다 가고 싶은 곳 1순위로 적어 놓았지만 이곳보다 더 먼 곳 까지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서도 정작 한국 내에 있는 내 시의 화두인 독도는 방문할 엄두 조차 낼 수 없었다. 날씨에 따라 며칠이고 섬에 발이 묶여야 한다는 기후조건이 떠나기도 전에 미리 갈 수 없는 곳으로 나를 세뇌시킨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동북아역사재단의 시민 연대 독 도 탐방은 나로서는 독도를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마침 서울에서 하던 일 을 접고 약간의 시간적 여유도 있어 무조건 따라가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아침에 일찍 출발하려던 계획이 변경되어 당일 밤 12시에 서울 시청역에서 출발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집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번거로워 강남에서 일을 마치고 출발 장소로 바로 가기로 했다. 나름대로 몇 번 확인 했다고 생각했는데 디지털 카메라의 건전 지가 충전이 필요했다. 카메라 대리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은 시간이라 용산까지 택시를 타 고 건전지와 메모리 카드를 구입했다. 전자상가에서 용산역으로 걸어가는 도로 가에는 포 장마차들이 즐비해 소주잔을 놓고 열심히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정겨운 풍경을 바라보 는 것도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시청역에서 내려 출발 버스가 정차하는 곳을 확인한 후 교보문고로 가려고 했던 마음을 바꾸어 카페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칼쳐 코드 를 읽었다. 독서삼매경에 빠져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해져 있을 때 종업원은 미안하다는 듯 조심스럽게 10시 반에 문을 닫 는다고 말해 주었다. 다시 거리로 나서니 갈 곳이 없었다. 1시간 반 동안 서 있기 보다는 언젠가 홍박사가 동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29

230 북아역사재단을 갈 때 가르쳐 준 길, 덕수궁 돌담길을 걷기로 했다. 군데군데 켜져 있는 가로등과 담장 너머의 또 다른 모습들이 서울의 바쁜 일상과는 다 른 아름다움에 오랫동안 고요함에 젖어 있었다. 밤길을 혼자서 또각거리며 걷는 산책의 즐 거움을 오랜만에 맛보았다. 함께 떠나고 싶었던 회원들을 생각하면서 아쉬움은 컸지만 후 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밤이 깊어 갈 시간에 어둠 속에서 서로를 반기는 이들의 손짓, 그리고 심야 관광버스를 타고 불빛이 화려한 도시를 뒤로한 채 포항을 향해 떠났다. 2. 5월 15일 울릉도, 그리고 신비의 아름다움 내 안에 충족되지 않은 그 무엇인가를 찾기 위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여행은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만남은 내 안의 나와의 마주침이다. 싫어하는 사람도 내 안의 바로 그 싫은 부분을 만나는 것이며,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도 내 안의 이기의 일부분이 상대에 게 투영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까닭으로 여행은 또 다른 나를 만나러 가는 것인지도 모 른다. 심야버스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석양과 작은 별빛과 어둠의 풍경, 그리고 포항에서 맞는 새벽의 운치만으로 이번 여행의 포만은 충 분했다. 혹여 어떤 분은 독도를 핑계 삼아 너도 나도 단체 만들어 돈 타내기 위해 포장을 하고 있다 라 는 거침없는 표현을 했을 때, 과연 우리들이 각자 의 시간과 호주머니 돈을 쓰면서 대한민국 정부 에게 무엇을 얻어 냈는가? 하고 자문을 해 보았 다. 폭언을 쏟아낸 그는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도 받고 자신의 영역에서 전문가의 명예도 갖고 있 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씁쓸한 기억이 하필이면 사우나탕 안의 유 리창 너머로 바라보는 일출의 아름다움인지 그가 깨닫지 못하는 것, 바로 이런 일상의 평범한 아름 사진 1 썬플라워호에서 내려 23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31 다움일지도 몰라. 찾는 이가 없는 곳에서 문득 바라본 보석 같은 아름 다움, 그건 순전히 덤으로 얻은 기 쁨이라는 것을 소득 없는 일에 매달 려 사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욕심이 없었다. 시민연대라고 해서 떠나기 전부 터 약간 겁을 집어 먹었던 것과는 달리 모두가 순하고 맑은 눈빛으로 사진 2 울릉도 식당에서 독도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의 순수함이었다. 아침을 먹고 난 뒤 포항에서 바다의 꽃, 썬플라워를 탔다. 우리나라에서 해가 제일 먼저 돋아 오르는 섬, 울릉도와 독도를 만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내 가슴은 푸른 파도로 출렁 거렸다. 눈이 시리도록 넓고 푸른 바다에 눈길을 주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 다. 잠에서 깨어나니 바다 한 가운데서 푸른 섬, 울릉도가 보였다. 육지로부터 오백 여리나 떨어진 외딴 섬 울릉도는 첫눈에 나를 사로잡았다. 바다 가운데 솟아 오른 아름다운 섬의 신비는 내 삶에 또 다른 길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삶의 터전을 이루고 사는 사 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은 또 다른 만남이었다. 3. 독도 박물관 초행길인 나와는 달리 독도 시민 연대에 소속되어 있는 분들의 대부분이 울릉도와 독도 를 여러 차례 다닌 경험이 많으신 분들이었다. 지난 역사를 거울로 삼아 오늘의 난관을 헤쳐 나갈 지혜와 힘을 얻고, 선조들의 민족혼 앙양과 국토수호 의지를 오늘날에 발현시키고자 하는 것으로 박물관의 설립배경 및 목적, 운영의 방향을 박물관 담당자와 동북아역사재단의 홍박사는 자세한 설명까지 덧붙여주 었다. 탄산수가 솟는 도동 약수공원에서 물을 마시고 청마의 시비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손용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31

232 사진 3 청마 유치환 시비 앞에서 사진 4 강의하시는 최문형 교수님 해씨가 청마의 [울릉도]를 낭송했다. 푸른 나뭇잎을 흔들며 시공을 헤쳐 나가고 있는 듯 섬 전체가 거대한 절벽 같은 곳이었다. 이번 여행의 여정 가운데 하나인 러일전쟁과 독도에 관한 강의 였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간 곳에서 듣는 강의는 알 수 없는 비장함까지 느끼게 했다. 우리들의 역사는 늘 강 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전략이 필요했던 나라였다. 역사에서는 논리가 통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통한다. 이제는 그들이 다케시마라고 말하는 땅이 일본의 고유 영토가 아니라 한국 땅이라고 말한 것을 입증하는 것이 한국 사람들의 몫이라고 했다. 그 래, 어쩌면 이제 우리들의 몫을 생각하지 않고 늘 일본의 망언에 항의수준으로만 반응하고 있었던 한국이었는지 모른다. 역사에 있어 우연한 일은 한번은 일어날지는 몰라도 두 번, 세 번은 일어날 수 없다 라 고 말하는 노교수의 말씀이 내 머릿속에서 섬광처럼 지나갔다. 내게 언제 이렇게 호사스런 역사탐방을 갈 시간이 있을까? 하여 무턱대고 따라 나섰지 만 어둠이 깊어 갈수록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내 발걸음의 무게를 더해 주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난 뒤 편시인은 커피를 마시러 물레방아로 가자고 했다. 물레방아로 가는 길은 편시인이 미리 준비해 놓은 택시를 타고 갔다. 울릉도가 이제 고향이 되어 버린 편시인은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울릉도의 이곳저곳을 소개 해 줬다. 그녀의 열정이 새삼 부러웠다. 23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33 4. 5월 16일:빗나가는 여정 일기예보, 파도가 높다고 했다. 일정을 바꿔서 독도는 다음날 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 늘은 울릉도, 망루를 돌아보기로 했다. 울릉도에서 바라보는 동해의 푸른 바다, 바다, 받다, 받아. 바다는 넓은 품속에 하늘의 푸른빛을 받아주라고 바다로 불리게 됐단다. 하늘, 한을, 한울. 하늘이란 이름은 한울 빈 틈없이 바다를 감싸주라. 는 가르침이었다고 하니. 받아주는 바다와 감싸주는 하늘, 그 바 다와 하늘이 가슴을 열고 함께 하는 그곳에서는 뜨고 지는 해와 함께 거센 터전을 일구어 온 사람들의 강인함을 생각하게 했다. [푸른 독도 가꾸기] 회원님들의 봉사로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어서 고마웠고 독도라는 인연의 끈으로 약간은 서먹한 분위기 속에서도 정감 어린 투박한 마음들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산다는 것은 조금씩 자신을 버리고 서로의 빛깔에 스며드는 지혜, 대방의 허물까 지도 감싸주는 너그러움, 그래서 우리들은 자연을 보며 삶의 이치를 생각하게 하는지도 모 른다. 바로 달려갈 수 없는 독도를 놓고, 신목사님 왈, 그래서 사랑이 쉬운 게 아니지요. 라고 하며 나를 놀렸다. 사랑을 위한 기다림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지혜라고 하면서 나는 각자의 독도에 대한 사랑에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사진 5 태하등대가 있는 서망루터에서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33

234 빤히 들여다보이는 논리를 놓고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이웃나라 일본의 뻔뻔스러움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가끔은 그들의 억지가 때로는 부럽기조차 했다. 아니,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우기는 그들의 욕심 뒤에는 분명 더 큰 칼날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독도 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의용 수비대원들의 앞서간 발자국들. 그저 그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되풀이 되는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일본의 욕심이 두 번 다시 바다를 건너오 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가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레이더 기지로 올라가는 길은 거센 바람으로 인해 발걸음 내딛기 조차 쉽지 않았다. 파 도가, 바람이 너울대는 이곳 울릉도, 바람은 한시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이 척박한 곳 에서도 풀과 나무는 자라고 있었다. 온몸으로 휘어지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는 한 이들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라는 말씀 같아 온몸으로 바람의 채찍을 맞았다. 저녁을 먹고 나니 옆방에서 회를 사 놓았다고 먹으러 오란다. 계속 머물러 있다가는 호 출을 피할 수 없을 것 같고 슬쩍 자리를 피해주는 것이 때로는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는 비결. 하여, 선비 같은 팀장님을 꼬드겼다. 호박 동동주 마시러 가자고 에구, 이 빗속에 왠 호박 동동주람? 팀장님, 속으로 엄청 구시렁댔을지도 모르지만 기센 여자들의 등살을 피하기보다는 들어주는 것이 일신에 편안하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덕분에 직립하는 거센 비를 맞으며 찾아간 곳에서는 호박 동동주를 팔지 않았다. 전화를 해서 배달 된 호박 동동주는 흔들지 않고 마시는 것 이라기에 마알간 윗물만 마셨다. 나 중에 안 것이지만 술은 흔들어서 마셔야 되는 것을 엉터리 술꾼들임을 확연히 드러낸 사 건이었다. 청량감을 느끼게 하는 빗소리를 듣는 것도 운치 있었다. 독도에 관한 시작 노트에 대해, 룸메이트 서정씨의 사진 작품에 대해, 시민 연대가 나아가야 할 일들 길이 없어도 길을 만 들어서 우리가 사랑해야 할 독도를 위하여 등등 선비님다운 팀장님의 강의에 고개 끄덕이 며 돌아왔다. 식구들을 챙기는 팀장님답게 함께 자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회 한 접 시와 소주까지 챙겨서 빗속을 걸어 왔다. 23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35 바람 <망루에서> 바다의 평온을 가로질러 달려온다. 숨이 찬 뜀박질 도무지 바로 서 있기를 원하지 않는 휘몰아치는 바람을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산다는 것은 저 푸른 풀들 같은 모습 허리를 꺾어 온 몸으로 바람 부는 곳으로 휘어져도 삶의 중심은 늘 그 안에 있는 것. 부드러움은 단단함보다 더 강인하다는 것을 바람이 지나가고 난 뒤 허리 꼿꼿이 세운 여리디 여린 저 풀들을 보며 깨닫는다. 사랑아~ 내 삶의 뿌리를 흔드는 폭풍우일지라도 너는 내 안에서 북극성으로 빛나는 별이 된 것을 사진 6 서망루터에 서 있는 태하등대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35

236 5. 5월 17일 울릉도의 비경을 찾아서 산등성이를 타고 태하 망루를 찾아 올라가는 길, 역사의 현장에서 함께 있었던 그 시대 의 산 증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그 시대를 살지 않은 우리들에게는 또 다른 느낌을 갖 게 했다. 우리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묶어 저 바다 건너 일본에게 던져, 독도를 다케시마니, 동해(한국해)를 일본해니 하는 그러한 망상도 망언도 하지 말라고. 멀어서 닿을 수 없는 것들, 마주 보면서도 스쳐 지나온 것들, 어쩌면 다시는 내 손끝과 눈길조차 닿지 못할 그 무엇을 위해 오늘 이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하자고 남들보다 더딘 내 발걸음은 산행에 뒤쳐지고 넘어졌지만 그래도 오늘 이곳의 비경을 만나지 않으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으랴? 하고 태어나 처음으로 그렇게 많이 걷고 또 걸었던 것이다. 울릉도 섬을 한 바퀴 도는 해양도로는 석포에서 내수전까지 끊어져 있다고 했다. 산책로 를 따라 비경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도 이곳 지리에 밝은 분들 때문이었다. 5월의 푸른 산 과 바다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파도소리가 우리들을 따라 오는 듯 했다. 흐린 하늘에서는 기어코 빗방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가파른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산길은 산길다워야 한다 며 이 길은 산길이라기에는 평범한 길이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앞선 이를 따라가는 것만으로 내겐 힘에 버거웠다. 눈을 들어 숲을 보면 산이고 아래를 바 라보면 푸른 바다가 출렁였다. 내수전 망루에서는 맑은 날 독도를 바라 볼 수 있다고 한 다. 그곳에 사는 주민은, 나는 늘 이곳에서 독도를 바라보기 위해 창을 냈습니다. 다른 것 말고, 망원경 몇 대 설치해 놓으세요. 그러면 이곳에서 독도를 바라보게 되니 일본 사람들 이 허튼 소리 안 하지요. 그렇구나. 망원경 몇 대 설치 해 놓는 일이 그리 돈 많이 드는 것도 아닐 터인데 울릉도 곳곳에 혹은 독도 곳곳에 망원경 설치 해 놓고 독도에서 울릉도 를 울릉도에서 독도를 그렇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일본이, 울릉도에서는 독도를 볼 수 없다. 그래서 한국영토가 아니다. 라는 일본의 주장을 일축할 수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숲 속에는 혼자 있어도 제 색깔을 잃지 않고 피는 꽃들과 풀들의 향기가 좋았다. 새소 리, 바람소리,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신선처럼 행복해진다는 느낌이 바 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울대는 포말이 하아얀 꽃으로 피어나는 바다위로 갈매기 피 었다 지듯이 날아오르는 깎아지른 절벽을 내려다보며 앞선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내 마음 만 급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23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37 석포에서 내수전 가는 길 숲으로 들어서면 후드득 쏟아지는 푸른빛으로 잠겨 있는 소나기 굵은 빗방울처럼 뻐꾸기 울음소리 울컥 울음이 솟구치는 새소리 그리움은 재를 넘다 아카시아 꽃망울이 구름처럼 한 그루 해동으로 서 있다. 바다의 물결로 출렁이고 너를 찾아 나선 길 나뭇가지 사이로 얼핏 얼핏 먹장구름 털어낸 빗물은 너의 눈빛이 보이고 산허리에 자옥한 운무 전설을 휘 감은 비경의 지울 수 없는 바다로 가는 길 파도소리가 응얼거리며 사진 7 비 맞으며 내수전 가는 길 제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37

238 6. 5월 18일 독도 너를 향하여 5월 17일 저녁까지 도저히 독도에 갈 수 없을 것이라는 푸른 독도 가꾸기 회장님의 말 을 듣고 허탈했다. 얼마나 멀리 이곳까지 달려 왔던가? 그리고 언제 다시 또 이런 시간을 내서 독도를 방문할 수 있겠는가? 하느님께 떼를 부려서라도 바람이 잠잠해 주기를 바랬 다. 함께 동행한 신목사님께 목사님의 기도가 부실한 탓인가 봐요. 하며 놀리기까지 했지 만 허탈감은 어떻게 표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울릉도까지 왔으니 다행으로 알자. 하며 스스로 위안을 보내며 잠자리에 들었다. 눈을 뜨니 4시 50분이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인스턴트커피 한잔으 로 졸린 눈을 깨웠다. 새소리가 맑게 지저귀는 밖을 보니 아마도 오늘의 날씨는 화창할 것 같았다. 오늘로서 울릉도에서 보낸 역사 탐방의 마지막 날인지라 혼자만의 생각을 정리하 기 위해 아침 산책을 나섰다. 일출을 보기 위해 바닷가로 나섰다. 아침 바다를 본 순간, 마치 온타리오 호수를 보는 듯한 잔잔한 새벽 바다였다. 순간 독도를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가슴이 떨리 기 시작했다. 어제 가지 못했던 울릉도 비경인 산책로를 걸어보고 싶었다. 이른 새벽이라 산책로에는 텅 비어 있었지만 다행히 먼 그림자처럼 나보다 먼저 산책로를 따라 가는 이들 이 있어 용기를 내서 걸었지만 두려움과 무서움에 발길은 쉽게 옮겨지지 않았다. 검푸른 빛깔로 포효하는 파도는 금방이라도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돌아가 야 할까? 하는 망설임도 있었지만 울릉도의 비경 1호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새벽은 솟아 오른 태양과 함께 환하게 주위가 밝아지고 인적이 없는 등대 길에서 한동안 바다를 응시 했다. 한때는 가까웠던 이들과 어디 선가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거리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좁 혀지기보다는 멀어져 갔다.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쓸쓸한 외로움을 이겨 낼 수 있었지만 꽃잎처럼 너울대는 파도를 바라보면 밀려오고 밀려가다 소멸하는 끝 없는 순환구조의 우주 앞에서 나의 이러한 생각들이 하잘것없이 느껴진다. 넓은 바다만큼 막막했던 일을 놓고 어떤 결정이라도 내려야겠다는 결심은 길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한때 삶을 이룬 사람들의 흔적은 폐허로 남아 있는 망루 터와 너와집. 그 흔적을 보면서 23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39 순간의 이익에 급급하기 보다는 멀리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우라고 파도는 말하는 것 같았다. 일출을 바라보기 위해 서 있는 내게 구름은 커튼을 드리우듯 태양을 가렸지만 그 붉은 빛까지는 가리지 못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을 아이들과 홀로 마음고생하고 있을 남편을 위해 평화를 위한 기도를 하고 있을 때 드문드문 오징어잡이 배가 아직도 환한 불빛을 비추며 항구를 항해 들어오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드디어 독도를 향해 출발했다. 설렘과 알 수 없는 흥분된 느낌을 안으로 삭이며 내 연민의 행간을 채울 단어들을 머릿 속에서 떠 올렸다. 뱃길 따라 삼백 리 웅얼웅얼 노랫말을 되새기다 잠시 잠이 들었다. 동 행했던 미경씨는 멀미로 인해 많이 힘들어했다. 그녀는 멀미로 힘들어하면서도 독도를 가 겠다는 열망 하나로 배에 오른 다부진 그녀의 열정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드디어 실루엣처럼 독도가 보이고 우리들은 환호의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우리들의 흥 분과는 달리 아쉽게도 거센 파도로 인해 우리들은 독도에 입도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바 라볼 수 있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했다. 정말, 독도까지의 뱃길은 머릿속으로 만 그려놓았던 단순한 여정이 아니었다. 맞아, 사랑! 쉽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 한 번 의 만남으로 이루어질 수 없지요. 최교수님과 신목사는 입도하지 못한 애석한 마음을 그 렇게 표현했다. 멀미를 잘 하지 않는 나조차 속이 울렁거렸다. 눈앞에서 바라만 보고 돌아 와야 했던 안타까운 마음은 심한 뱃멀미로 나타난 것 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 짝사랑의 실체를 확인한 순간, 이제 내 시의 모습도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 같았다. 사진 8 서도를 바라보며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39

240 섬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내게 있어 바다는 늘 그리움의 대 상이었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보낸 유년의 기억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산처럼 밀려오는 태풍이 지나고 나면 호수처럼 잔잔하게 빛나는 금빛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그렇게 역동적인 바다의 가늠할 길 없는 깊이를 닮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상상으로만 그려 왔던 독도를 만나고 돌아오는 뱃길에서 이 멀고 먼 외딴 곳에 있는 섬을 지키기 위해 목숨 을 잃은 사람들의 넋을 생각했다. 그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혼, 민족의 혼이 있었기에 스 스로 일어서서 민병대를 세우고 일본의 침략에서 지켜낼 수 있지 않았을까? 사랑은 말로 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함으로서 그 행위로 인한 책임까지 합하여 질 때서야 비로 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번 독도 역사 탐방으로 인해 나는 독도 시민 단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제각기 분산된 자료와 행동보다는 조금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 하다는 생각도 했다. 독도 영유권의 정당성을 국제 사회에 알릴 수 있는 방법 또한 작은 힘이지만 그러나 우리들이 해야 할 일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말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장 을 마련해 준 동북아 역사재단의 후원과, 시민 연대 한 사람 한 사람 배려하고자 땀을 흘 린 홍성근 박사와 조기철 팀장님께도 감사를 드리고 싶다. 사진 9 감사선물 전달 감사합니다 24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41 독도의 망루를 찾아서 윤미경 (독도의병대 총무) 그 동안 울릉도, 독도 견학은 관광위주였다. 2006년도 제 1회 동북아 역사재단 주최 독도 시민단체 연합행사인 이규원 검찰사의 발자취를 따라서 행사에 참여한 이후 독도의병대에서는 울릉도, 독도의 역사탐방의 가치를 인식하게 되 었고, 186명의 관광팀이 아닌 역사탐방팀을 구성해 울릉도, 독도를 방문함으로써, 방문했 던 이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은바 있다. 2007년 5월 15일 독도 시민단체 연합행사인 독도의 망루를 찾아라! 행사에 참가해달라 는 연락을 받고 우리는 이번에는 어떤 행사를 할까? 하는 궁금한 마음으로 구미에서 7시 30분쯤 출발해 포항선착장에 갔다. 대구 경북에 있는 단체는 포항에서 출발하고 서울지역 단체는 묵호에서 출발한다는 연 락을 받고, 다 함께 가지 못해 좀 섭섭한 마음으로 포항에 갔는데, 파도 때문에 큰 배 썬플 라워호로 간다고 서울지역 사람들이 모두 포항에 모여 있어서 반가웠다. 사진 1 울릉도 도착 사진 2 안내하는 푸른독도의 조영삼 전회장님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41

242 울릉도에 도착하니 푸른독도가꾸기 모임 회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중 나온 조영삼 전 회장님의 안내로 우리는 향군회관에 여장을 풀고 점심식사를 한 후 바로 독도박 물관으로 올라갔다. 독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대부분의 자료를 제공한 사운 이종학 선생님! 평생을 이순신 장군을 연구하시면서, 일본을 방문해서 주요 국공립도서관에서 일본인들 스스로 독도는 한국 것이라고 인정하는 자료를 구해, 독도박물관을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 할을 하신 장본인! 생전에 독도의병대와 만나 담화를 나누신 후, 독도지키기 100만인 서명운동에 참여한 서명용지는 독도박물관에 보관하면 좋겠다고 제안하셔서, 우리는 2001년도부터 그 서명용 지를 독도박물관에 전달했다. 가끔 의논할 일이 있어 전화를 드리면 말끝마다 감사합니 다. 하셔서 오히려 우리가 부끄럽고 듣기가 민망했는데, 관장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독도 를 사랑하는 그 분의 뜨거운 열정을 깨달아 가면서, 이제는 그 분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독도를 사랑하는 이만 만나면, 반갑고, 고맙고, 사랑스러운 이 심정이, 이 종학 관장님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이 종학 관장님을 찾아뵙는 마음으로 독 도 박물관을 방문하니 들어서면서부터 가슴이 뭉클해 왔다. 박물관을 돌아보고 울릉도 약수를 먹어보지 않으면 후회한다는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듣 고 처음으로 약수터를 방문했다. 약수터로 올라가는 길에는 청마 유치환의 시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 3 여기는 독도박물관이예요 24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43 울릉도 유치환 동쪽 먼 심해선( 深 海 線 )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 錦 繡 )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 長 白 )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창망( 蒼 茫 )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레 떠 있기에 동해 쪽빛 바람에 항시 사념( 思 念 )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지나 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풍랑 따라 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 멀리 조국의 사직( 社 稷 )의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 올 적마다, 어린 마음 미칠 수 없음이 아아, 이렇게도 간절함이여!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울릉도의 안정이 독도지키기의 지름길이라는 생각에서 국회에서 최저 100만인 울릉도, 독도 방문 발대식을 한 독도의병대나 유치환 시인의 마음이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 반가웠다. 입안에서 탁 쏘는 신기한 약수를 한 모금 마시고 우리는 바로 울릉도 남망루가 있다는 도동 망향봉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독도를 무인도 선점이론을 내세워 영토 편입한 후, 울릉도 독도에 망루를 만들어 놓고, 참호를 파 놓고, 해저케이블을 원산과 마츠에로 연결해 놓고, 숨죽이고 러시아 발틱함대를 기다리던 일본인들의 조직적인 준비에 전율이 느껴졌다. 전망대 휴게소에서 최문형 한양대 명 예교수님은 독도편입이 나까이의 생업보 호를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은, 그 목적이 전쟁에 있었음을 은폐하기 위해 내세운 명분이었고, 러일전쟁이 침략전쟁 일진데 폭력과 탐욕은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것이 고, 그럼으로써 일본의 독도점취는 카이 로선언 규제의 대상임을 부정할 수 없다 사진 4 최문형 교수님의 열띤 강의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43

244 고 하셔서, 참가자들은 공감했다. 교수님의 저서를 출간한, 일본 출판사 사장이 베푼 저녁모임에 참석한 일본의 저명한 신 문사 논설위원이,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했다고 이의를 제 기한 것은, 아무리 양식 있는 지식인일지라도 국익에 관한 한 예외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 예라는 말씀은, 우리가 명심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도 했다. 전망대에 올라서 망원경으로 독도를 바라보기는 했지만, 그 동안 이런 사정을 전혀 알지 못했는데 이 행사에 참가해서 망루를 찾아봄으로써 다시 한번 일본의 독도 침탈을 실감한 것은, 독도운동을 하고 있는 우리에겐 좋은 체험이었다. 2일차 되는 날은 태하리로 가서 등대가 있는 서망루를 돌아보고 석포 전망대가 있는 북 망루를 돌아보았다. 북망루 주위에 벽돌로 건축된 막사 자리를 살펴보니 벽돌이 삼겹으로 쌓여 있어서 막사 하나를 지어도 완벽하게 짓는 일본인들의 철저함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 막사자리에 모여서 그 당시 소학교 시절에 벽돌을 나르던 일, 철군할 때는 폭탄을 다 터뜨려버리고 완벽하게 철군 하던 모습을 목격한 일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홍연하(1926년 생)어르신으로부터 듣고 앞으로 독도를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에 대한 숙제를 안고 돌아 왔다. 석포 정류장에서 만난 백태철씨는 육안으로도 잘 보이는 독도를 더 많이 보기 위해 독 도방향으로 창을 냈다고 하면서 9, 10월이면 청명한 가을 날씨에 독도가 더 선명하게 잘 보인다고 하시며 반갑게 우리를 맞아 주셨다. 울릉도의 부속섬인 것을 증명하기에 가장 중요한 요건이 육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사진 5 북망루를 설명해 주신 홍연하 어르신 사진 6 석포 전망대에서 주민 백태철씨와 함께 24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45 이곳은 가을이면 육안으로 잘 보이니 평상시에 이곳에서도 독도를 잘 볼 수 있도록 망원경 을 설치하면 좋겠다는 백태철씨의 의견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김정일 경상북도 독도지킴이 팀장님을 주목했고, 망원경을 설치하도록 노력해보겠다는 김정일팀장님의 즉 석 약속에 모두 박수를 보냈다. 산을 오르내리는 이 날의 강행군이 얼마나 힘들었든지 자고 나니 팔다리가 모이고 입술 이 부르텄다. 3일차 되는 날은 봉래폭포로 향했다. 그 동안 울릉도를 돌아보면서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울릉도의 삼림을 일 본과 러시아가 탐내어 삼림벌채지를 삼았다는 것이다. 성인봉을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나리분지까지 차를 타고 다니면서 살펴본 나무들은 대체 적으로 벌채를 할 만한 나무가 되지 못했는데, 봉래폭포를 올라가다가 생전 처음 보는 우 람한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것을 보고는, 과연 이규원 검찰사가 울릉도를 방문 했을 때, 전국에서 온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고 있었던 것과, 일본과 러시아가 탐 낸 것이 이해가 되었다. 봉래폭포에서 내려와서는 저동 항구에 가서 촛대바위와 러시아 군함 돈스코이 침몰지를 보았다. 순양함 두 대가 충돌하고, 포함 두 대는 사고를 일으키고, 최신예 전함 하쯔세와 야지마가 러시아 전함의 어뢰공격에 격침당한 가운데도, 군, 관, 민이 하나가 되어, 민에서 는 독도 편입을 주장하고, 관에서는 그 주장을 받아들여 독도를 편입하고, 군에서는 울릉 도 독도에 망루를 설치한 후, 반격에 나선 일본군! 사진 7 봉래폭포 가는 길에 서 있는 나무들 사진 8 바람부는 북망루터에서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45

246 이 일본군에게 패해 침몰한 러시아 해군 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호의 잔해가 있는 촛 대바위 동쪽 약 1마일 앞 해상은, 그 날의 회오리를 재현이라도 하듯, 바람은 방파제 위의 사람을 금방 날려버릴 것처럼 불었다. 역사는 준비된 자에게는 웃어주지만, 준비되지 못한 자에게는 어제나 오늘이나 냉엄하 다는 현실을, 바람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4일차 되던 날 독도 방문! 이튿날부터 불어대던 비바람이 좀 멎는 것을 보고, 이제는 독도로 갈 수 있겠다고 다들 아침부터 들떠 있었다. 귀미테를 4시간 전에 붙여야 하는데, 울릉도 들어 올 때 바다가 잔잔했던 것을 생각하고 긴장을 풀고 있다가 2시간 전에 붙이고, 멀미약은 배에 오르기 직전에 먹었다. 깨끗하게 단장한 씨플라워호에 승선하여 옆 좌석에 앉은 분과 통성명을 하는가 했더니, 배는 벌써 흔들흔들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가 움직이자마자 시작한 멀미 때문에 체면도 없 이 바닥에 누워, 다들 독도에 도착했다고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어도 일어나지도 못하고, 울릉도에 도착할 때까지 누워서 계속 올렸다. 사진 9 촛대바위 뒷편, 저멀리 행남등대가 보여요 사진 10 촛대바위를 보며 24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47 그 날 오후 다른 사람들은 묵호로 나가는데 나와 몇몇 사람들은 결국 배를 타지 못하고 주저앉았다가 다음날에야 포항으로 나왔다. 우리는 6월 4일 5일 양일간 구미지역 종교단 체지도자들과 언론사 기관장님을 모시고 다시 울릉도, 독도에 갈 계획이다. 이번에 동북아 역사재단 행사에서 배우고 느낀 것을 이 행사 참석자들에게 그대로 전할 것이다. 작년보다 적은 예산으로 집행하는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이 행사를 마치면서 아쉬운 점 이 있었다면, 관광객들은 저녁시간을 술이나 노는 것으로 보내지만 독도를 지키기 위해 나 선 단체들이 모인 이 행사에서만큼은, 그 날 행사에 대한 소감을 발표하고, 숙소에 돌아가 서는 숙소가 그 날 행사의 반성과 아울러 연구하는 연구실이 될 수 있도록, 각 단체의 취 향과 연륜에 조화를 이룬 방 배정이 되어야 하는데 이번 행사에서는 그것이 안된 것 같아 그 점이 아쉬웠다. 패전은 기회화시키고, 소수는 매복으로 준비하고, 약한 힘은 선점으로 보완하고, 철저한 유비무환 정신으로 무장하여 개인의 욕심을 배제한 진실한 사랑으로 뭉치는 것이 무엇보 다 중요한 것을 깨달은 좋은 행사였다. 행사도중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고 참여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신 동북아역사재단 조기철 팀장님! 원활한 행사 진행을 위해 산봉우리 에 있는 망루마다 현지 답사하시느라 얼굴이 까맣게 타버린 홍성근 박사님! 독도만큼 개성이 다양한 사람들의 뒷바라지를 해주시느라 처음부터 끝까지 수고하신 울 릉도 푸른독도가꾸기 모임의 조영삼님과 회원 여러분! 바쁜 중에도 한결 같은 독도사랑의 열정으로 이 행사에 참여한 전국의 독도단체 임원 여러분! 고맙습니다. 사진 11 감사의 마음을 나누며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47

248 Ⅲ. 조선시대 수토정책관련 역사 유적지 답사 울진 구산포구 가는 길 나홍주 (흥사단 독도연구회장) 독도관련 역사유적지 탐방 가던 날, 12월 7일( 07)! 벌써 그리워 지네 전세 버스도 설레는 듯... 아스팔트길을 경쾌히 미끄러져 5시간 갔던 날... 수토사(첨사) 나리, 바람 기다리 던 구산포구! 구산포구 가는 길, 독도로 가는 마음 아득한 데 일찍이 나리들, 목숨 걸고 3년 마다 바람 기다렸네 울릉도 행 순풍 기다리던 대풍헌( 待 風 軒 ) 세월을 이겼네... 울진군 온정면 비석거리, 폐농가 생울타리 모퉁이 그늘 진 곳! 군수 겸 첨사( 僉 使 ) 심 아무개 공덕비 파괴된 체 땅위 나둥그네 무심한 후예들 먼지 속에 원망하는 듯, 애달파라 무거운 마음속에 잠시 잠기자, 곧 당도한 대풍헌 경탄케 하네... 독도 탐욕에 눈먼 일부 일본인들, 공도정책 운운 부끄러우리! 파괴된 울도첨사 공덕비 웅변하고, 개발계획 가까스로 벗어나 의젓한 대풍헌 실증하네 옛날에도 울도, 독도 3년 주기 영토관할권행사 실존을... 독도, 한 낱 바위섬 아니라, 영토주권 상징인 것을! 울도 첨사 공덕비, 대풍헌 세운 조상님들 말씀 함께 타니 귀환버스 서울길 무거운 듯, 아스팔트 길도 자갈길 되어 힘들어 캄캄한 밤에 잠긴 서울양반들, 조상님들 이 말씀 아는지, 모르는지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49 사진 1 학예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역사탐방단 사진 2 대풍헌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49

250 역사는 말이 없어도 살아있다 안용식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지도위원 / 독도리아 대표 1. 한 해가 저물어 가는 길목에서 1년을 결산하는 심정으로 홍성근 박사와 약속을 해놓 고도 출발 직전까지 갈등을 느꼈다. 역사 유적지 탐방 및 시민단체 대표자 간담회의에 참 석할 것인가, 아니면 창수문인등산회에서 산행수필집을 창간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행사에 불참할 것인가의 문제를 검토하면서 산행수필집의 편집책임을 맡았기에 더 깊은 번민에 사로잡혔었다. 스승을 따르자니 사랑이 울고 사랑을 따르자니 스승이 운다. 는 말 이 떠오를 만큼 갈등이 심했지만 결국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기로 했다. 2. 6시간을 달려 울진군에 도착했다. 군청에서 나온 심현용 학예사로부터 선정비가 세워 진 현지에 가보면 실망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무슨 뜻이 담겨 있 는지 그 말의 뜻을 알 수가 없었다. 온정면 외선미리(옛날에는 비석거리라고 했음)에 있는 심 외완 군수의 선정비를 보니 탑신이 조각난채 담장 밑 한 구석에 쓰러져 있었다. 먼저 비석 을 세우게 된 내력이 더 궁금했다. 비석에 새겨진 한문을 해석하여 소개하면, 양대(부자)가 일군을 맞아 큰 일하니 은혜를 비유하기를 여산 탓 것(중국여산)같으니 모든 업적(좋은 얘기)이 사방에 퍼져 소문이 나니 누군가 가서 우러러 기록하여 큰 덕이 춘 나라에 펼쳐진 것(공자님 덕)과 같으니 땀 흘려 일함을 천추만대에 전하나 그 업적을 크게 기린다. 내외선비 등 여러 마을 주민들이 성금을 내어 비석을 건립했다고 기록된 주인공 심의완 은 어떤 업적을 쌓았기에 선덕비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25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51 3. 고종 19년(1882년) 영의정 홍순목은 울릉도 개척 방안의 제안을 받아들여 공도( 空 島 ) 정책을 폐기하고 평해 군수인 심의완을 울릉도장( 島 長 )으로 겸임 발령을 시키고 평해 소속 월송만호 서경수를 울릉도와 독도를 왕래하면서 검찰하게 하였다. 울릉도 독도와 관련된 지방행정관이 최초로 발견된 선정비인 셈이다. 4. 학예사의 설명에 의하면 비석거리 바로 옆에 집 한 채(지금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음)가 있는데 그 집 아이가 뛰어 놀다 잘못으로 비석에 걸려 넘어져 머리가 깨지는 상처를 입었 다고 한다. 화가 난 아버지는 술을 잔뜩 마시고 만취 상태에서 비석을 큰 망치로 때려 부 셔버렸고, 그 후 갑자기 죽자 마을 사람들은 불행을 당할까봐 일체 비석에 손을 대지 않아 선정비가 지금처럼 방치되고 있다니 안타깝고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을 주민들은 물론 행정당국도 그 비석의 복원과 관리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울진 군 문화유적 이라고 하는 관광가이드 책에도 사진을 촬영하여 다른 비석들은 소개하고 관 광 상품으로 광고를 하면서 울릉도 독도수호와 관련이 깊은 인물의 비석을 이렇게 홀대하 는 것을 보고 분노의 감정이 끓어올랐다. 심현용 학예사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정보를 수 집하여 발굴해내지 않았으면 비석도, 사실( 史 實 )도 영원히 묻혀 버릴 뻔 했다는 생각을 하 니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5. 역사 유적지 탐방에 나선 우리들은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에 있는 대풍헌( 待 風 軒 )으로 가서 완문( 完 文 )과 수토절목( 搜 討 節 目 )의 진본을 보게 되었는데 이는 조선왕조 시절 울릉도 와 독도를 순찰하는 수토사( 搜 討 使 )일행들의 접대를 위해 소요되는 각종 경비를 부담했던 구산 동민들의 요청에 따라 각 마을마다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방책에 대해 당시 행정관 이었던 삼척부에서 발급해 준 문건이라 한다. 완문과 절목은 각각 6장으로 이루어져 있으 며 페이지 곳곳에 주문방인( 朱 文 方 印 )이 찍혀 있어 작성 당시의 원본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시대에 관에서는 구산리 주변 9개 마을에 돈을 풀어서 생긴 이자로 그 경비를 충당하였으나 각 마을의 동세( 洞 勢 )가 다르니 민원이 자주 일어나 그 해결 방도를 논의한 바를 관아에서 결정한 자로 했다. 이들 문서를 통해 조선 후기에 울릉도 독도를 수호할 당 시 평해군의 구산리가 기점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경기비의 조달 방법을 통하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51

252 여 당시 연해 촌락 주민들의 생활상의 편린을 엿볼 수 있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조선왕조실록 에서 울릉도에 수토사를 파견했다는 기사가 기록되 어있지 않아 수토사 파견이 없어진 것인지 아니면 파견되고 있었지만 기록되지 않은 것인 지 알 수 없었으나 이 문서들의 발견을 통해 19세기에서도 여전히 조정에서 울릉도와 독도 를 우리 영토로 인식하였으며 장기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려고 순찰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독도와 울릉도의 순찰 및 관리가 적혀있는 중요한 국가지정 문화재급 문서가 하 마터면 소각되어 버릴 뻔했다고 한다. 학예사가 한 민속학자의 글을 읽은 후 이 문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원문을 구하려고 여 러 갈래로 수소문을 해도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문헌의 가치를 모른 촌로들이 보관하기가 귀찮아 고서 한문서적들을 상자째 바닷가에 가지고 나가 1차로 소각해 버렸는데 천만 다 행스럽게 완문과 수토절목이 이때 소각되지 않았다고 했다. 어렵사리 문서를 구한 학예사 가 도지정문화재 위원으로 지정 받기까지 온갖 고생을 다했다고 한다. 아무런 역사적인 근거도 자료도 없는 일본이 1905년 시마네현고시로 병탄한 기록을 근 거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생떼를 쓰고 있는 시점에서 년 작성된 것으로 추 정되는 완문과 수토절목이 소실되어버렸으면 어떨 뻔했는가.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학예사의 숨은 노고와 공적을 새롭게 기려 주고 싶었다. 지금, 일본은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왜곡된 교과서로 학생들에게 교육을 시 키고 있으며 독도를 일본 지도에 그려서 전 세계에 배포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강한 첨단 무기로 무장한 무기강국이다. 국력을 업고 국방 백서에도 독도를 일본의 영토라 고 발표하고 있을 만큼 집요하고 뻔뻔스러운 나라다. 역사 현장을 돌아보고 난 후 역사 NGO대회에 참여하여 느낀 점과 보완할 점 그리고 새 로운 활동 계획 수립에 대해 의견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NGO대회 간담회장에서 독도와 나라에 대한 열정과 진지함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독도 NGO포럼에서 12개의 회원연대단체의 단체 대표들이 처음으로 함께 참석하 고 4개 단체가 새 식구로 가입하여 이번 행사를 통해 얻게 된 기쁨이었고 독도의병대의 공 로와 업적을 훼손하거나 폄하하는 음해 세력을 단호히 대처하기로 결의하고 정체성을 굳 게 세우는 자리가 되기로 했다. 새로 발행하게 될 100,000원 권에 문양그림에 독도가 비어 진 그림이 채택되지 않도록 연합회 명의로 개선, 보완책을 제기하기로 한 것도 보람과 기 25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53 쁨을 느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죽변에 세워졌던 망루자리를 답사했다. 향나무는 울릉도에서 죽변 앞 바 다로 그리 내려온 것을 건져내어 심은 것이 수령 500년 된 큰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을 지니 고 있었다. 울릉도의 향나무가 탈 때는 죽변의 항구에 있는 향나무에서도 불에 탄 냄새가 났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을 만큼 마을사람들은 이 향나무(국가지정 문화재 158호)를 신목 ( 神 木 )으로 알고 있었다. 울릉도와 독도가 제일 가까운 내륙항이 죽변이요, 향나무가 동일 수종이라는 것을 강조 해서 전하기 위해 전승( 傳 承 )되고 있는 얘기들이리라. 울진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재경울릉도향우회 조용대 회장이 내놓은 비장의 산삼물 한 병을 나눠 마시며 독도문제로 얘기를 나눴건만 관광버스에서 내려 일행들과 헤어진 뒤 곧바로 헤어질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1910년 한국강점 자료집 을 내고 독도에 관한 자료를 모아 울릉도에 독도 박물관을 설 립하고 초대 관장을 역임한 서지학자 사운( 史 芸 ) 이종학( 李 鍾 學 ) 선생의 친아우 이종호 선생 과 조용대 회장 세 사람이 맥주잔을 기울이며 독도사랑 운동을 효과적으로 펼쳐나갈 수 있 는 방안을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토의하였다. 조선왕조 말엽 일본과의 무력 전쟁에서 패배하여 한국은 정년동안 식민 통치 지배를 받 았다. 8 15해방과 독립 후 지금은 무역 역조로 300억 달러이상을 일본에 지불하고 있다. 경제전쟁에서 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제, 정신전쟁에서까지 져버린다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울진군 온지리에 방치된 선정비를 어떻게 하루 빨리 복원시키고 대풍헌( 待 風 軒 )에 소장 된 완문( 完 文 )과 수토절목( 搜 討 節 目 )의 소중한 국가 문서를 도서관이나 국가 박물관에 안전 하게 소장해야한다는 것을 활동과제로 떠올려 보았다. 역사는 말이 없어도 살아있다 는 것을 온 몸으로 체험한 뜻 깊은 역사 탐방이었다.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53

254 사진 1 깨어져 방치되어 있는 울릉도장 선정비 사진 2 대풍헌 내부의 모습 25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55 아들에게 - *온정 선정비 - 편부경 (한국시협 독도지회장) 아들아 아비를 탓하지 마라 초가문틈 황소바람 다랭이 논 해마다 흉년에도 추울까 곯을까 업고 안아 키운 자식 견줄 데가 있었겠나 넘어져 우는 아이 부모 눈에 불을 지펴 천지사방 보이는 것 분별하기 힘들었다 아들아 아비를 탓하거라 오늘처럼 과거에도 조상보다 나라보다 품 속 자식 우선 여겨 티끌 허물인들 덮으려는 어버이 사랑조차 태산만한 짐 지울 줄 미쳐 알지 못했으니 이제사 깨달은들 그 업이 가벼울까 심산골짝 만 그루 소나무 숲 먼지로 떠돌며 밤마다 소리없이 마을로 내려와 목 잘리고 허리 잘린 호국충정 선정비 조각 꿰어 세워본들 흥건한 출혈 멎지 않고 감나무 우듬지 까치 목청만 곤두서더라 아들아 누가 네게 돌팔매로 꾸짖거든 아비 죄 대신하여 모난 돌들 갈고 닦아 고운님 선정비로 우뚝 세우거라 변방군수 선정덕목 애통함에 비할까만 아비유골 진토라도 다져서 세우거라.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55

256 온정 선정비는 울릉도에 대한 공도정 책을 철폐한 후 고종 때 평해군으로 하여금 도장을 두어 다스리게 한 후 평해군수와 울릉도장을 겸했던 심의완 의 선정비로서 광서 11(1885)년 울진 군 온정면 외선미리에 세워졌으나 인 근 한주민이 자신의 아들이 비석주위 에서 놀다가 다쳤다는 이유로 도끼로 동강낸 뒤 수를 다하지 못하고 사망한 이후 마을에서는 이 사실을 토속신앙 의 측면으로 예사로이 여기지 않아 함 부로 손댈 수 없다하여 현재까지 그대 로 방치되어 있다. 이 선정비는 울릉 독도와 관련하여 역사적 중요한 사료 로 보존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 유물로 서 대책이 시급해 보였다. 25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57 구산 포구에서 *대풍헌 편부경 (한국시협 독도지회장) 누가 불러 나섰을까 섣달 이렛날 차운 바람의 방향으로 굽이길 달려 온 구산리 마을은 솔향기 그윽하고 해조음이 은은하네 여기는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 순조왕 때 신미년 계미년 쯤 조선의 영토 울릉 독도 함부로 드나들며 왜구들 도적질이 호기롭던 19세기 마을이룬 이웃들 끼니조차 추렴하여 바다건너 섬마을 위태로운 지경을 횃불 밝혀 지켜 낸 곳 격군들이 머물며 순풍을 기다리던 팔작집 대풍헌에 삼척사또 월송만호 수토사들 격려하려 수토금 모은 내력 섬섬옥수 기록들이 고이고이 숨쉬고 있네 마을의 어르신들 예전에도 오늘처럼 단정하게 둘러앉아 한푼 한냥 모은 정성 절목 따라 세었겠네 구산포 들고나는 소금 배며 어선들 백성의 부르튼 손 아니었다면 삼 칸 백골집인들 유지할 수 없었네 수토군 완문 절목 소중한 기록 남아날 수 없었네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57

258 침탈 역사 새로 쓰는 이웃 위선자여 월송진에 들려왔을 구산포를 휘감았을 수토군령 잠 깨우던 바람소리 듣는가 구국에 몸 바친 젊은 충정들 울릉 독도 향해 노 젓던 함성 들리는가 진하디 진한 자취 낱낱한 기록 울진에 와서 보라 대풍헌에 와서 보라 대풍헌 ; 1794년 정조실록에 기록된 울릉도의 수토( 搜 討 )정책에 이어 1811년대에도 지속적으로 울릉 독도를 왕래하며 검찰하게 하였다는 증거로서, 상세한 기록의 간지로 된 완문과 절목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조선후 기, 울릉독도를 수토할 당시 평해군의 구산리가 기점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며, 일본의 선점 주장에 대응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이다. 추신 : 위 두 편의 시에서 주제가 된 <온정 선정비>와 <대풍헌> 소장문서는 울진군청의 심현용 학예사의 안내로 탐방하고 직견할 수 있었으며 설명은 답사자료 및 울진 문화유적 해설집을 참고하였음. 25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59 울진 유적지를 다녀와서 윤미경 (독도의병대 총무) 1. 백암온천 2007년 12월 7일 8일 양일간 울진에서 조선시대 울릉도 수토정책 관련 역사 유적지(대 풍헌, 구산항, 선정비)를 돌아보고, 백암 한화콘도에서 1박하며 간담회를 개최한다고 참석해 달라는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의 연락을 받고 7일 아침 울진을 향해 출발했다. 돌풍주의보가 내려 바람이 너무 세서 독도차 상부의 간판이 흔들려 마치 배가 흔들리는 것처럼 독도차가 흔들려 속력을 낼 수가 없다 보니 머나먼 서울에서 오는 팀들이 5시간 걸 렸는데, 같은 경상북도에서 출발한 독도의병대도 공평하게 5시간 걸려, 백암 한화콘도에는 2시쯤 도착했다. 결혼 전 교사 재직 시에 경북교육 선양교사로 뽑혀 방문한 이후 20여 년 만에 다시 찾게 된 백암온천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별로 없어 보였다. 사실 경북교육 선양교사로 뽑힐 만큼 큰일을 한 것도 없는데, 경주시 교육청에서 나를 추천한 것은 관내 학교에 근무하면서, 국립 경주 박물관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에 개최하는 박물관 학교에서 교사로 봉사활동을 하고, 교육청에서 발간하는 문화유적 관련 책을 같이 만들다 보니, 그것이 그 해 경북교육 선양교사로 추천 받은 동기가 된 것 같았다. 취직하기 힘든 교사직을 그만 두고 독도운동 한다고, 남편과 전국을 돌며 방랑자와 같은 생활을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 교사들과 친지들 중에는, 독도가 당신 것도 아닌 데 굳이 꼭 그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만류하는 사람들도 있고, 내가 어리석은 길을 가고 있 다고 비웃는 사람도 있고, 안쓰럽게 생각하고 동정하는 사람들도 있어, 이런 일들이 때로 는 독도운동 하는 것보다 더 나를 피곤하게 만들 때가 있었는데 이번에 동북아역사재단 초청으로 백암온천을 다시 방문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과거에는 동료 교사들의 부러움을 사면서 경북교육 선양교사로서 찾았지만 지금은 독도 를 지키는 대한민국 NGO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 그 곳을 찾았으니 그 동안의 삶이 결코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59

260 어리석거나 동정 받을 일은 아니었다는 생각에 조금은 위로가 되기도 했다. 먼저 도착해서 숙소를 정하고, 조금 있으니 다른 팀들도 도착해서 우리는 반가워할 틈도 없이 공적비가 있는 울진군 온정면 외선미리(비석거리)로 서둘러 갔다. 2. 공적비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문화유적이 잘 보존되어 후손에게 물려주는 모습을 보여 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죄 송합니다. 울진군청 심용현 학예사님의 안내로 찾아간 곳에는 부서진 비석이 땅바닥에 방치된 채 그대로 있었다. 양대(부자)가 일군을 맞아 큰 일 하니 은혜를 비유하기를 여산 탓 것(중국 여산) 같으니 모든 업적(좋은 얘기)이 사방에서 퍼져 소문이 나니 누군가 가서 우러러 기록하여 큰 덕이 춘나라에 펼쳐진 것(공자님 덕)과 같으니 땀 흘려 일함을 천추만대에 전하니 그 업적을 크게 기리다. 광서 11년 을유 10월 일 내외선미(선구리, 외선미리), 탑구 3동(선구2리 부달)에서 삼가 세움 비석 옆에 집을 짓고 살던 사람이 자신의 어린아이가 비석에 올라가 놀다가 떨어져 다 치자, 화가 나서 술을 마시고 비석을 부셔 버렸다고 한다. 그 사람은 죽고 그 집은 빈집이 되어 있었다. 깨어져 방치된 이 비석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해도, 주민들의 반대로 그것조차 잘 안되 고, 대한민국의 법은 이미 지정된 문화재만 관리를 하고 있어, 손을 쓰지 못하고 있어 안타 깝다는 심용현 학예사님의 안내를 받고 참가한 모든 이들도 안타까워했다. 그 다음 방문지는 구산리의 대풍헌이었다. 26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61 3. 대풍헌 고종 22년 공도정책을 철폐한 이후, 평해군수 심의완을 울릉도장으로 겸임시키고 월송 만호 서경수가 울릉도를 오가면서 검찰을 했을 당시, 울릉도, 독도를 순찰하는 수토사들이 파도가 잔잔해질 때까지 머물렀던 대풍헌! 지금은 구산리 주민들의 자치조직인 노반계의 집회장으로 쓰여지고 있었는데 우리가 온 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 어르신들이 몇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계시다가 들어서는 일행을 반 갑게 맞아 주셨다. 어르신들이 보여주신 오동나무 상자에 보관해 둔 완문과 절목은 원래 마을 어르신들이 바닷가에서 불에 태웠다고 말하고 세상에 내놓지 않았었는데, 심용현 학 예사님의 끈질긴 설득과 조사로 다시 이 중요한 자료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하셨다. 조선시대 국가가 구산동민에게 보내는 이 관찬 문서 자료는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삼 척진장과 월송만호가 번갈아 가며 울릉도 독도를 수토한 내용을 증명해주는 중요한 역사 적인 자료로서, 공도정책으로 울릉도, 독도를 버렸다는 일본의 주장이 잘못된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자료였다. 삼척진영 사또와 월송만호가 3년에 한 번씩 울릉도를 수토 할 때 평해 구산리에서 출발 하는데, 바람의 형편에 따라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므로 관아에서는 구산리 주변 9개 마을 에 돈을 풀어서 생긴 이자로 그 경비를 충당하게 하였으나, 각 마을의 형편이 달라 민원이 자꾸 발생하니 다시 그 해결방안을 적어 내려 보낸 내용이 적혀 있었다. 심용현 학예사님은 이 중요한 원본 자료를 그 곳에 보관해 두면 분실이나 화재의 위험 이 있어 박물관 등에 보관을 하자고 해도 마을주민들이 승락을 하지 않아 그대로 두고 있 다고 하셨다. 내 것에 대한 인식보다 우리 것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므로 생긴 이 문제는 그 자리에 참가한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풀어야 할 숙제였다. 급하게 가느라 어르신들을 대접할 것을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아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 으로 작별하고 나와서 우리는 월송정으로 향했다. 4. 월송정 학예사님은 현판은 최규하 전 대통령님이 쓰셨고 그 동안 소실과 중건을 여러 차례 반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61

262 복하면서 과거의 모습이 많이 변했다고 하셨다. 월송정에서 내려다보이는 시원스러운 넓은 들이 원래는 바다였다고 한다. 워낙 경치가 일품이다 보니 조선 성종임금은 전국에서 가장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정자라고 극찬을 하셨다는데 지금은 그 바다가 다 농토로 바뀌어 그 옛날의 경관은 볼 수 없었다.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과 세상이 얼마나 바뀌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5. 소신 있는 공무원 의병, 심용현 학예사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심용현 학예사님이 저는 울진이 고향입니다. 고향의 중요한 유물, 유적들이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군민 들의 무관심 속에서 버려지고 훼손되어가는 모습을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어 각종 자료를 살려 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개인의 욕심을 챙기자면 내가 학계에 발표하기 전에, 이 중요한 자료들을 여러분에게 먼 저 보여드려서는 안되겠지만, 내 개인의 욕심보다는 함께 이 문제를 인식하고 이 자료들을 지켜나가야 하겠기에 여러분들에게 공개했습니다. 앞으로 독도를 지키는 일에는 역사 쪽도 중요하지만 문헌은 한정되어 있으니, 좋은 증거 자료가 될 수 있는 유물이나 유적을 잘 보관해서 같이 활용해 보는 방안도 검토해보면 좋 겠습니다. 문헌에 안 나와 있는 현판 글 내용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번역을 부탁하니 돈 을 요구하고, 사진 한 컷에 100만원을 요구할 때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지난번에는 현판 번역을 하면서 한문학자 혼자서 번역하다 보니 매우 중대한 착오가 있 었습니다. 앞으로는 중요한 한문 자료를 번역할 경우에는 역사학자가 같이 동석해서 번역 을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분들도 참고 하십시오. 이제 돌아가시면 여러분들이 이런 자료들을 지키고 독도를 지키는데 앞장서 주십시오. 나이가 40세라는데, 이런 소신 있는 의식으로 울진의 문화유적을 지키기 위해 사비까지 들여가며 사방팔방으로 뛰어 다니다 보니, 아직 20대로 보이는 심용현 학예사님에게 독도 단체들 대표들은 진심 어린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피차 이심전심이었다. 26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63 6. 대한민국 독도 의병들의 독도사랑 열정 이미 주위는 어두움이 짙게 깔려 우리는 숙소인 한화콘도로 돌아와 맛있게 저녁식사를 했다. 계속되는 무리한 일정으로 다들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런 기색 없이 식사 후에 다시 모여 밤 깊도록 진지하게 회의를 진행 하는 모습은 독도단체 대표들의 뜨거운 독도사 랑 열정을 느낄 수 있는 한 단면이었다. 기타토의에서는 독도NGO의 선배이신 홍순칠대장이 추천한 독도의용수비대 33인을 분 열시키거나 훼손되어서는 안되고 생존자와 유족들이 모두 같이 예우를 받도록 해야 한다 는 안건이 나와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회의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6년 전, 아시안 게임이 열리는 부산에서 독도의병대가 아시안게임 본부장을 찾아와 한반 도 지도에 독도를 꼭 넣어야 한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그 때 받은 명함으로 전화한다고 하면서 이번에 만들어지는 10만 원 권에 독도 빠진 대동여지도가 들어가는 것을 아느냐고 물어 왔다. 바빠서 언론을 접할 시간이 없어 몰랐다고 했더니 조금 전에 언론에서 발표 난 것을 보았는데 독도의병대도 알아보고 대처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그 때가 밤 12시경이었다. 아시안게임 본부장을 찾아갔을 당시 대화중에 일본에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상대는 독도 를 넣으면 아시안게임 행사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압력을 넣는 것 같았다. 본부장은 아래 사람들이 하는 중이라 아직 잘 모르겠다면서 전화를 하면서도 계속 우리 눈치를 보았다. 그 당시 아시안게임에 나온 한반도기는 처음에는 독도가 있었는데 흰색으 로 지워져 있어 많은 물의를 일으켰었다. 본부장이 한반도 지도에 독도를 넣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독도가 없는 한 반도기를 내놓은 것을 보고 분노했던 독도의병대는 한반도지도에 울릉도가 빠진 것을 발 견했다. 다음 순간 독도를 넣었다가 다시 지운 행사 담당자들의 안타까움을 생각했다. 수많은 네티즌들의 항의를 받고 있는 아시안게임 홈페이지에 독도의병대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울릉도까지 지운 독도사랑!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63

264 전국에서 독도를 사랑해서 항의 글을 올린 네티즌 여러분! 독도가 대한민국 것이기에 독도만 빼면 오해를 받을 까봐 울릉도까지 뺀 주최측의 고충 을 이제 우리가 이해합시다. 다시는 저 일본인들의 농간에 휘말리지 않도록 똘똘 뭉쳐 대한민국의 국력을 키웁시다! 이 말은 말이 아니라 절규였다. 6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다시 세계인이 바라보고 한민족의 문화로 남을 10만 원 권에 독도 없는 대동여지도를 만들고자 하는 한국은행의 결정에 이제 독도단체들과 대한민국 국민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다시는 밀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기에 우리는 전화를 받은 즉시 한화콘도 사무실로 내려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이돈식씨의 안내로 사무실에 있던 배남기씨를 만나 같이 인 터넷으로 자료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배남기씨는 조사한 10만 원 권 자료를 칼라로 인쇄하려 했지만 여의치 못하자 새벽 2시 경 독도의병대에게는 숙소에 가서 자라고 권했다. 배남기씨는 밤샘 작업으로 칼라 인쇄를 하려 했지만 결국 안되어 흑백인쇄로 10만 원 권 모형과 언론 보도내용 등을 인쇄해서 새벽 6시경 사무실을 방문한 독도의병대에게 전 달했다. 그것은 한화콘도 사무실 배남기 직원의 독도사랑 열정이 만든 작품이었다. 우리는 그 유인물을 간담회에 참가한 전 독도단체 대표들에게 다 돌렸다. 즉석에서 나홍주 회장님을 위시한 대한민국 독도 시민운동단체 연합회 이름으로 항의서 를 전달하기로 결정하고 문구를 작성해서 보내기로 했다. 7.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개척한 역사탐방의 의의 동북아역사재단이 처음 출범 당시에는 여러 가지 우려도 있었지만 한 해가 저무는 지금 돌이켜보면 그 동안의 우려는 많이 불식되고 바람직한 열매들이 많이 열린 것 같아 감사하 26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65 게 생각한다. 매년 전국 독도사랑작품 공모대회 수상자들을 모시고 울릉도, 독도를 방문함으로써 독 도와 울릉도 방문이 수학여행과 관광의 범주를 넘지 못했는데,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개척한 역사탐방에 참가한 이후, 관광을 넘어선 역사탐방으로 국민에게 울릉도, 독도를 소개할 수 있게 되어 퍽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독도의병대가 2001년도에 국회의원들과 독도에서 8.15광복절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선플라워호 배 안에서, 우리 학생들은 경비와 풍랑을 이유로 울릉도, 독도 방문을 꿈도 못 꾸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을 만나 심히 우려를 해왔는데, 다행히 동북아역사재단이 출범하여 개척한 역사탐방 행사에 참가한 이후, 전국의 독도의병 186명, 종교지도자 125명, 제6회 전국 독도사랑 작품공모대회 울릉도, 독도 시상식에 참가한 수상 자와 가족들 315명을 모시고 울릉도, 독도 역사탐방을 개최한 결과, 참가자들 대부분이 동 북아역사재단에서 개척한 역사탐방에 큰 박수를 보낸바 있어 독도의병대는 앞으로도 계속 이 행사를 추진해 나가고자 한다. 8. 독도 시민운동 단체 대표들과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 역사재단에서 주최한 1, 2, 3차 역사탐방과 회의에 참가한 대부분의 독도단체 대 표들은 생업을 하면서 자비로 이 운동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일반인들보다 더 바쁘다. 그 바쁜 와중에서도, 이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진지하게 조사하고 밤늦 도록 의논하는 모습은 너무나 진지해서 한 명이 천 명 같고, 한 명이 만 명 같았다. 이 행사에 참가한 모든 독도단체 대표들과 활동가들은 안용복 장군처럼, 이규원 검찰사 처럼, 홍순칠 대장처럼 처음 가진 독도사랑 열정을 끝까지 간직해서 순수한 독도운동가들 로서의 올곧은 자세를 지킴으로써 국민과 정부의 중간다리 역할을 잘해나가야 할 것이다. 대를 이어 독도를 지속적으로 빼앗으려 드는 일본과, 조직적으로 고구려역사를 빼앗으 려는 중국을 상대로, 동북아의 바른 역사 정립과 국토 수호를 위해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출범한 동북아역사재단이 앞으로도 계속, 꾸준하게 활동함으로써, 관과 민이 하나 되어 독 도와 간도, 고구려 역사를 지키는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해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 절하다. 제 6 장 독도 시민활동가 역사기행 소감문 265

266 사진 1 울릉도장 선정비 앞에서 사진 2 구산항의 대풍헌 입구에서 26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67 제7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Ⅰ. 독도 시민활동가들의 의견 Ⅱ. 독도 시민단체 활동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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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Ⅰ. 독도 시민활동가들의 의견 죽도의 날과 독도 에너지 수급방안 김해일 (독도향우회 회장) 1. 일본 죽도의 날 대응 2005년 일본국 시마네현에서 대한민국의 영토인 독도를 일본국의 영토라고 공식발표를 하였으며, 대한민국 전역에서는 일장기를 태우고 찢는 행위를 함으로써 반일감정이 극에 달하였으며, 일본국에서도 뉴스 및 인터넷을 통한 자국 국기가 훼손 되는 것을 보고, 반한 감정이 생기게 되었다. 또한, 중국의 동북공정이 진행 되었어도 반일감정에 사로잡혀 정부와 국민이 하나로 목 소리를 내어야 하는 시기를 놓치면서 백두산마저 중국에 의해 자기네 땅이라고 외치는 지 경까지 온 것이다. 무작정 일본이 나쁘다는 식의 반일감정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생각 된다. 일본국의 의도 나 실행에 의한 감정만을 가지지 말고 왜 일본국에서 죽도의 날을 제정하고 일본국의 정치 인들이 공공연하게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하는지를 생각하여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반일이 아닌 일본국과 일본인에 대한 냉철한 판단 아래 극일운동이 되어야 한다 고 생각하며, 우리 역시 옛 문헌과 현대사에 사로잡혀 안일한 생각만을 가져서는 아니 될 것이며, 국민의 감정에 호소하여 자신과 자신의 단체만이 독도를 위하는 것과 같은 발언이 나 행동을 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2007년 시마네현의 죽도의 날 항의집회는 일시적으로 행사에 참석하는 단체가 규합하여 구체적인 주체를 정하여 행동하고 각 단체의 행동 역시도 주체자의 지시에 따라 행동을 하 였으면 한다. 단, 주체자 개인 및 주체자 단체가 주관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2008년의 집회 시에는 독도시민연대 공동명의로 책자나 팜프렛을 제작하여 배포 및 유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269

270 포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공동명의의 책자나 팜프렛은 개인의 성명을 쓰지 말고, 단체의 명단만을 기록하여야 협력이 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2. 독도 에너지 수급 방안 현재 독도에는 디젤발전기가 전력을 담당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약03시간정도의 시 간에 걸쳐 디젤을 공급하여 독도를 지키는 경찰병력과 등대 등이 사용을 하고 있다. 독도가 청정지역임을 누구나가 인식을 하지만, 디젤발전기에서 나오는 매연과 공해로 인하여 오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독도지역 내의 자체적인 자율 발전 에너지의 수급이 필요한 상태이며, 독도의 환경보호 에 능동적인 대처수단 마련의 필요성과 디젤의 유류비, 소음, 공해 등의 발생을 최대한 줄 임 및 현재의 디젤발전기와의 연계를 함으로써 독도주민 및 인력과 장비에 원활한 전기 공 급을 제공한다. 독도는 해풍이 연중 지속적으로 불어오는 천혜의 자연조건으로 풍력발전 부지로 손색이 없으며, 태양의 직사광선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요소가 전혀 없는 곳으로써 풍력과 태양광 의 풍부한 전력량을 만들 수가 있는 지역이다. 2000년과 2002년의 2회에 걸친 실태조사를 하였으나, 풍력과 태양광의 시설을 위해서는 최소 24개월 이상의 지속적인 풍량, 일조량, 일사량, 조도량 등등의 실태조사와 지질조사 를 위한 현장조사가 이루어져야 하나 민간단체의 한계성을 들어낸 바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여 대체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여 주기 바란다. 독도의 기상자료는 강원지방기상청에서 주관을 하고 있어 1999년부터 현재까지의 독도 기상자료를 구입하였으며, 2006년 3 월 20일자로 일사량의 데이터 구축을 위 한 일사량 측정기 설치 에 대한 공문을 제 출하였으나, 참고하겠다. 는 서식을 끝으 로, 현재는 태양광의 설치에 필요한 일사 량을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태이다. 27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71 현재까지 조사한 바로는 풍력 20kw+태양광 5kw 또는 풍력 10kw+태양광 10kw로 설 치를 하는 것이 최적인 상태이며, 연간 약 5만kw의 대체 에너지가 생성됨으로써는 수급 기여 효과는 아래와 같다. 도서지역의 20가구, 도심지역의 14가구의 1년 전기 사용량 화력발전에 의한 연간 석유 1만 1천 리터, 석탄 1만 8100kg 절약 효과 CO 2 가스 방출량 3만 3940kg, 황산화물 295kg, 질산화물 200kg 억제 슬래그 및 분진 2488kg, 부유물질 22kg 억제 시민단체 대표자회의에서 ( )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271

272 독도를 지키기 위한 방안 오윤길 (독도의병대 부대장) 과거 정부가 독도를 관리하기 힘들고 어려웠던 과도기에 홍순칠 대장님과 독도의용수비 대가 독도를 지키는데 큰 일익을 담당했던 것처럼 여와 야에 관계없이 사랑과 기대를 모으 며 출범한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역할을 지금 열심히 잘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 본 독도의병대에서는 영토를 지키기 위한 방안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안 하고자 한다. 첫째, 일본인들을 미워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가깝게 지내면서 우리민족의 독도사랑 열 정을 보여주면서 일본인들 스스로 독도를 포기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3만 개 이상의 섬을 가진 일본인들에게, 동해에 있는 단 두 개의 섬 중 하나인 독도를 빼앗으려고 하는 것이 과거 제국주의의 연장선이라는 이미지를 전세계인에게 심어주면 결 코 자국의 이미지 관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주지시켜야 한다. 실지로 한민족 모두가 만나는 세계인들에게 일본이 과거 제국주의의 습성을 아직도 버 리지 않고 계속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고 나팔을 불어야 한다. 세계를 놀라게 한 3 1운동처럼 독도의병대에서는 2002년 광복절 날 썬플라워호 배 안에서 울릉도에 수학여행 온 일본 인 학생들과 선생님을 만나 이 점을 간곡하게 설득한 결과 그들로부터 정중한 사과를 받아 내었고, 일본에 돌아가면 이 점을 알리겠다는 약속을 받아냄과 동시에 독도지키기 서명운 동에도 참여시킨 바 있다. 둘째, 자발적인 민간단체들이 많이 일어나야 한다. 접전 중에 가장 반가운 것이 증원군이다. 새로운 단체가 결성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함께 기뻐하고, 존중하고, 예우하면서 서로 의 자료를 공유해서 힘을 모아야 한다. 단체들이 직접적으로 정책을 내세우고 앞장서기보다는 각 단체의 개성을 잘 살려 국민 을 계몽하고 국민의 뜻을 모아 정부에 전달함으로써 정부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정책으로 27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73 국민의 뜻을 반영시키는데 일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셋째, 동북아역사재단이나 정부에서는 경제적인 뒷받침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 요한 것은 신속하고 정확한 행정적인 뒷받침이다. 1. 큰 목소리로 데모하는 군중들의 목소리도 귀를 기울여야 하겠지만, 소수의 조용한 목 소리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일본은 명백한 침략을 영토회복이라는 명분 하에서, 국민은 유언을 남기고, 스승은 제자 에게 모든 자료를 제공하고, 정부는 외교마찰까지 감수하면서 학생들을 교육하고 전문인을 양성하면서 대물림으로 독도를 빼앗으려고 하는데 우리는 어떤가? 해양수산부 독도 관련 실무 담당자는 독도사안의 중요성 때문에 퇴근 시간도 없이 밤낮 으로 수고해서 독도에 대해 좀 알게 될 즈음이면 1 2년 만에 교체된다. 한 자리에 너무 오래 있으면 진급이 안되고 부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계속 이동시켜 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은 이해가 되지만 영토에 관련된 공무원만큼은 특별 예우를 해서 일 본인들이나 중국인들과의 협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고 본다. 이 일에 동북아역사재단이 발족하여 앞장서게 된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빨리 끓고 빨리 식는 냄비근성이 인터넷 강국을 만든 장점도 있지만 독도에 대한 정책 만큼은 한민족 특유의 근성인 뚝배기 근성이 필요하다. 2. 독도의병대가 조사 해본 바에 의하면 전국에서 유일하게 군 안내 표시 이정표가 없는 곳이 울릉군이다. 포항, 후포, 묵호 등 울릉도 가는 모든 길목마다 대형간판에 울릉도와 독도 가는 길이라 는 안내를 한글과 영문으로 표기해야 한다. 세계지도에 독도표기운동을 펼치고, 우리나라 곳곳의 안내지도에 독도를 표기하고, 우리 만 아는 독도로 끝날 것이 아니라 모든 독도 간판에 영문 표기를 장려하여, 우리나라를 방 문한 외국인들이 우리 생활과 문화 속에 녹아 있는 독도를 보고, 확실히 독도가 대한민국 것임을 알고 돌아가서 그 나라사람들에게 알리도록 해야 한다. 3. 울릉도의 경제안정이 독도안정의 지름길이라고 볼 때, 인구 3만이던 울릉도가 만 명 이 안 되는 상황에서 울릉도에 관광객이 많이 들어갈 수 있도록 유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 이다.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273

274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주최한 2006년 독도 시민단체연합행사에 참가한 이후 단순한 관광 보다 역사탐방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독도의병대에서도 전국의 독도의병들을 모아 독도 울 릉도 역사탐방을 실시한 결과 지속적인 역사탐방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공감을 가진바 있 고, 이 행사 이후 전국에서 이 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하자는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일본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울릉도 독도로 오고 있는 상황에서 바다와 섬 경시 사상이 팽배한 한민족이, 바다 소중함을 일깨우고 애국을 교육하는 산 교육장인 울릉도, 독도에 어릴 때부터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서, 바다, 섬과 친숙해질 수 있도록 교육하기 위해서 는 수학여행지 개발이 시급하다. 앞으로는 울릉도 독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섬 관광에 가장 큰 걸림돌인 태풍을 대비하여, 관광객은 시간만 부담하고, 태풍 이후 들어가는 모든 경비는, 식당, 숙박업소, 여객선업체 등이 혼연일체가 되어서 관광객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제도를 만든다면 울릉 도, 독도, 바다, 섬들이 우리 국민과 더 가까워 지지 않을까? 시민단체 대표자회의에서 ( ) 27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75 독도운동의 나아갈 길 오윤길 (독도의병대 부대장) 1. 초식동물, 육식동물 육식동물은 자신이 배가 고플 때는 언제나 상대방의 상황에 상관없이 공격해서 자신의 배를 채운다. 정글의 왕 사자가 발에 가시가 들어가서 먹음직스러운 사슴사냥에 실패하면 시청자는 사슴과 사자 중 누구 편이 될까? 늘씬한 다리로 잘 달리는 사슴을 동정할까? 절 뚝거리며 달려가다 실패해서 배고파하는 호랑이를 동정할까? 세계사는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당해 왔다. 세상은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현상을 억울해하지만 대부분 받아들이고 결국은 흡수당한다. 여론은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억울해서 이곳저곳에 하소연 하지만 결국 그 종족은 망하고 사람들은 곧장 잊어버린다. 대한민국은 반 만 년 동안 주변강대국에 의해 끊임없는 침략을 당해왔지만 슬기롭게 극 복해왔다. 12척으로 300여 척의 왜선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쾌거는 지금도 미국과 영국 의 해군사관학교에서 연구할 정도로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고 적국이었던 일본의 도고 장군은 러일 전쟁 전에 먼저 이순신장군을 찾을 정도로 자랑스러운 쾌거였다. 관과 민이 하나 되어 독도를 지켜낸 홍순칠 대장과 독도의용수비대의 쾌거는 세계 속에 유례가 없는 쾌거여서 독도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안용복 장군, 이규원 검찰사, 홍순칠 대장이 위태로운 독도를 지켜올 수 있었듯이 모든 분야에서 시대마다 이순신장군과 같은 인물들이 제자리를 잡고 있다면 누가 감히 이 나라 를 넘볼 것인가? 2. 체질이 튼튼하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몸이 튼튼하면 웬만큼 세균에 노출되어 상처를 받아도 활발한 티 임파구의 활동으로 세 포를 재생시켜 건강을 되찾는다. 건강한 아들이 간 경변 걸려 있는 아버지에게 60%의 간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275

276 을 떼어주고도 다시 건강을 되찾은 것은 건강한 체질이 얼마나 중요한 지 잘 말해주고 있 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은 웬만한 깡패들의 공격에 대해서는 쉽게 동요하지 않는다. 하지 만 일단 신체적인 장애를 입게 되면 아무리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도 발휘할 수 가 없다. 깨끗한 혈액이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듯이 대통령을 위시하여 공무원, 기업 모든 국민이 각자 의 위치에서 근면성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때 그 나라는 건강한 나라가 된다. 부정부패 만연하고 욕심에 미혹되어 자기 것만 챙기는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팽배한 나 라가 되면 그 나라는 병들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부정부패는 혼탁한 혈액과 같아서 언 제 뇌출혈 뇌경색을 불러올지 모르고, 음주 운전자처럼 방향 감각이 없어 순식간에 사고를 초래한다. 병에 걸리면 본인이 가장 먼저 알고 가까운 가족과 이웃이 먼저 안다. 사기와 부정을 하게 되면 본인의 양심이 먼저 알고 주변 사람들이 먼저 안다. 암세포는 자리 잡는 그 순간부터 기존 질서가 파괴 되고 주변 양분을 빨아들여 주변 세 포를 잠식하기 때문에 암세포가 들어오면 즉각적으로 비상을 선포하고 주변 기관들이 하 나가 되어 암세포를 몰아내야 한다. 욕심으로 인해 부정과 비리가 침입해오면 내 자신보다 는 우리 모두를 생각해서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부정하는 사람들은 권면하고 설득해서 변화시켜야 하지만 설득을 받아들이지 않고 지속 적 계획적으로 부정을 계속하면 안타까운 마음으로 수술을 강행하더라도 건강한 체질, 건 강한 민족으로 다시 바꿔야 한다. 민족의 체질을 건강 체질로 바꾸려면 애국지사에 대한 예우가 필수적이다. 주변국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전범이 합사된 신사에 참배를 강행하는 일본수상의 행보는 많은 일본인 이세들에게 나라와 민족을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겠다는 용기를 심어주고 있 고 이것이 오늘의 일본을 만들고 있다. 대조적으로 애국지사에 대한 예우가 제대로 되지 않는 우리나라는 애국지사의 후손들은 자신들처럼 망하지 않으려면 독도운동 하지 말라고 독도의병대에게 만류하고 자라나는 학 생들은 전쟁이 나면 전쟁터에 나가는 것 보다는 피하고 싶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한, 중, 일, 삼국 중에 가장 많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7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77 3. 무관심의 병균을 축출해야 한다 침입해 오는 강대국을 원망하는 것보다는 내 자신의 우리 것에 대한 무관심을 더 탓해 야 한다. 떨어뜨린 고기, 개나 고양이가 물어가듯이 우리가 무관심으로 버려둔 영토와 독 도를 가치를 아는 주변 강대국들이 빼앗으려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침 입자를 원망하고 책임을 돌린다면 해결 방법이 없다. 아무리 원망해도 그들은 그들의 생각 을 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를 자신에게 돌리고 해결점을 스스로에게서 찾아볼 때 해결 방법이 나올 수 있다. 일본인들을 침략자라고 일본놈이라고 비난하기 이전에 우리의 무관심을 반성하고 독도를 한민족의 문화로 심어 국민의 가슴속에 독도사랑을 심고 교육으로 모든 국민이 의 병이 되게 했을 때 독도 지키기는 가능할 것이다. 4. 영토관련담당 공무원 노동일이나 회사일은 근무시간 외에 일을 하면 수당이 있다. 그런데 독도의병대가 방문 해서 만나본 독도에 관련된 공무원들은 수당을 따로 받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밤늦은 시간 까지 몸을 아끼지 않고 토요일도, 퇴근시간도 없이 헌신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이런 담당 공무원들이 독도단체들과 정이 들고 관련 분야에 전문가가 될 때 쯤 되면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서 떠난다. 이것은 독도단체들에게도 아쉬운 일이지만 국가적 으로도 대단한 손실이다. 스승은 제자에게 승계시켜 전문가를 키우고 부모는 자녀에게 찾 아야 할 자국의 땅이라고 상기시키고 우리는 풍랑과 경비를 이유로 독도 수학여행을 꿈도 꾸지 못하는데 일본은 고등학생들을 데리고 수학여행까지 오면서 독도를 교육하고 있고 일 본의 종교는 아예 울릉도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합법적인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이 대를 이어 전수하고 전문가를 키우는데 반해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깝다. 독도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독도 뿐 아니라 영토에 관련된 공무원들을 특별 한 전문가로 예우하여 보람을 가지게 하고, 물질적으로도 파격적인 예우를 함으로써 이동 해서 승진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도록 물리적인 배경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277

278 관련기관에서는 현장에서 뛰고 있는 독도단체의 어려움을 감지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같이 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주는 것도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는 좋은 기회라 할 수 있다. 5. 독도단체 관계 먼저 시작한 선배에게는 고마운 마음으로 예우하고 같이 시작한 동료들에게는 반가운 마음으로 더불어 가고 뒤에 시작한 후배들에게는 아끼는 마음으로 베풀어서 협력해서 독도를 지키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6. 권력과 NGO 활동 최근에는 NGO 활동이 곧 권력이라는 말이 생겼다. 활동으로 인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힘을 과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옛날의 NGO 의병들은 민족이 국난을 당했을 때 기꺼 이 자신을 내놓았다. 재산, 가족, 자신의 생명을 내놓고 적과 더불어 싸움으로써 이 나라를 지키는데 큰 일익을 담당했다. 이들의 희생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다 민주화 운동을 했던 근대의 NGO들은 데모하는 군중의 가장 선두에 서서 정의를 지키는데 앞장섰다. 최근 현대의 NGO들은 정부의 정책자들이 미처 알지 못하고 손이 미 치지 못하는 중요한 사안에 대해 NGO들이 수집해 온 자료들을 제공함으로써 보다 효과적 으로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붉은 띠를 두르고 과격하게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과의 협상 테이블도 중요하지만 더 중 요한 것은 민주사회에서 조용한 다수의 의사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 요한 것은 소수의 진실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NGO는 결코 정치권력과 손을 잡아서는 안 된다. 부득이 손을 잡게 된다면 그 권력이 사라짐과 동시에 NGO활동에서 손을 떼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NGO가 처음 시작했을 때의 순수함을 그대로 끝까지 지켜나가서 이 사회의 소금 같은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당사자들에게는 각고의 노력과 결단이 필요하고 주위 27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79 사람들은 이 일을 위해 같이 협력해야 한다. 7. 독도를 이용하는 것과 독도를 활용하는 것 이용은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독도에 피해를 주는 것이라면 활용은 독도에 유익 을 주면서 독도와 더불어 사는 것이다. 독도를 활용하는 자가 많아질 때 독도는 한민족의 문화 속에 녹을 것이고 세계 속의 대한민국 독도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영도자가 부패하면 나라가 망하지만 애국지사 사장하면 민족이 망한다!! 독도 시민활동가 워크숍에서( )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279

280 독도수호시민운동 활성화 고찰 나홍주 (전, 독도조사연구학회 회장) 1. 서론 독도주권수호 시민운동의 상대방은 역사적, 지리적 및 실효적 지배 상은 말할 것도 없 고, 국제법적으로도 대한민국의 영토인 독도 를 터무니없이 자국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일본인들과 그 정부의 망언 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독도주권 수호를 위한 시민운동은 다른 일반시민운동과는 그 성격 이 같지 않은 특성이 있다 할 것이다. 그 특성이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 독도에 대한 탐욕 (Greed)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일본인과 그 정부를 운동 대상으로 한다. 2 일본은 오늘날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다. 3 일본은 일찍이 부국강병 의 기치 하에 군사력을 양성하여, 이를 배경으로 조선국을 병탐하고(1910), 만주 및 중국대륙을 침략(1931 및 1937)하고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 (1941)하여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바 있는 막강한 군사적 전통을 가진 국가이며, 다 시 군사대국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4 독도를 자국 땅 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일본인들과 그 정부도, 독도 가 역사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국제법상 대한민국의 영토 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 데도 불구하고 소위 일본 땅 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속된 말로 밑져야 본전 식 책략 이거나 공동관리 (condominium)를 의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권은 배타적 관할권 을 그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런 공동관리 란 일본 측 의도 는 어불성설 이며,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한국 재침략 야욕을 들어내고 있는 것이라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참고:a 주한 일본대사 다카노 요시유끼( 高 野 紀 元 )는 서울 한복판 프레 스센터에서 외신기자 간담회 석상에서 독도는 역사적 및 국제법적으로 일 28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81 본 땅 이란 망언을 했다. b 일본 시마네현 의회는 동년 2월23일 매년 2월22일을 다케시마( 竹 島 )의 날 로 정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5 독도 에 대한 대한민국의 영토주권 수호는 우리 정부가 할 일이 있고, 국민이 할 일이 있다. 따라서 정부와 국민이 혼연 일체가 되어서, 독도 에 대한 일본의 침략적 의도를 분쇄해야 한다. 그런데 이 국민이 할 역할의 기반은 독도수호운동 을 영위하는 우리 독도운동 시민단체 에서 그 기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독도수호운 동 시민단체 등의 단합 과 정예화 가 요구 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더구나 이 시민우 동은 국토수호운동 이란 점에서 바로 애국운동 이고 국제적 운동 이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특성 을 가지고 있는 우리 독도수호시민운동 의 활성화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하여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2. 독도수호시민운동 현황 1) 시민단체 현황 독도수호시민운동은 여러 가지 방면에서 독자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우선 어떤 모임을 형성하여 일본의 독도침탈야욕에 맞서고 있는 단체를 기준으로 하여 고 려해서, 지난 9월 동북아역사재단 주관 영토문제와 국제 갈등의 국제법상 원인과 배경 주제 하의 NGO 서울국제대회 준비회의( )에 참여했던 단체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시민단체 1 독도의병대 부대장 오윤길 2 총무 윤미경 3 독도향우회 대표 김해일 4 발명계 독도개발지원운동본부 본부장 한송본 (계속)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281

282 5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 6 독도를 사랑하는 모임 감사 손용해 7 흥사단 지도위원 안용식 8 독도연구 연구자 나홍주 9 만화가(제목 : 독도는 알고 있다) 작가 최진규 10 NGO대회 사무국 간사 한정아 11 코리아 스코프 대표 장석훈 12 독도사랑협의회 회장 박정순 참고 : 동 회의에 불참한 단체로서 독도역사찾기운동본부, 독도수호대 및 독도연구보전협회 등이 있다. (2) 타(비시민 단체) (재)동북아역사재단(부연구위원 홍성근) 경북도 독도지킴이팀(이소리) 이외에도 학술단체로서 독도학회, 독도조사연구학회, 영남대학교 독도연구회 등이 있고 (사)한국영토학회 등이 있다. 2) 시민단체 활동 (1) 개황 앞에 열거된 독도수호시민운동단체는 각기 처하여 있는 입장에서 독자적인 나름대로 적 극적 독도수호활동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동 시민단체들 간 횡적 유대 관계가 성립되어 있지 아니하여, 그 활동내역이나 공동보조를 취한 활동상이 외부로 잘 드 러나 있지 않다. 다행히, 지난 9월 동북아역사재단이 영토관계 국제NGO대회준비 과정에 서, 독도수호시민운동단체들의 회의를 개최한 바에 따라 동 단체들이 모인바가 있다. 또한, 동 대회개최 일환의 행사 중 하나로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전시회 독도 관련부스에 각종 독도관련 단체들이 함께 참여하여 자료 등을 전시할 기회를 가졌던 것은 뜻 깊었다 할 것이다. 본인 기억으로는 비로소 동 시민운동단체 간 적극적 연대활동을 경험한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동 참여단체들이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오직 애국심을 바탕으로 28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83 각기 정성을 다하여 준비한 결과 커다란 실수 없이 독도 관련 전시를 잘 마칠 수 있었다고 본다. 다만, 전시준비 막바지에 이르러 전시대상물 선정 및 배치장소 결정문제로 다소 혼 선이 있었으나 상호 협의하여 원만히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것은 앞으로 어떤 어려운 문제점 들이 생기더라도 서로 협의하여 원만한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 문제점 독도영토주권수호민운동의 요체는 우선 우리 운동이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 것인가에 관 한 명확한 인식을 가지는 것 일 것이다. 그것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국가 중 하나로 막강한 군사적 전통을 가진 일본의 독도 에 대한 탐욕 (greed)과 싸워서 역사적, 지리적 및 국제법적으로 엄연히 대한민국의 영토인 독도 를 수호하는 것 이다. 근거 없는 일본의 소위 독도가 일본 땅 이란 주장을 논박하고 그 책동을 저지하며, 그들의 세계여론 호소를 봉쇄하는 일이다. 반면에, 대내적으로는, 대한민국의 독도에 대한 영토주권관할을 더욱 강화시켜 나가는 운동을 전개하여 나가는 것인데, 현재 다음과 같은 문제점 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1 동 시민운동단체 간 협의체 미 결성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인 일본을 상대로 하여, 전기 독도수호운동을 효율적으로 전개하여 나가기 위하여 상대적으로 여러 가지 약세를 면치 못 하고 있는 우리 동 시민운동단체들은 우선 뭉쳐야 마땅하다고 본다. 그러나 아직 유기적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협의체가 없다 는 것을 문제점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2 상호 정보 교환(일본의 독도 관련 행태에 관한) 체제 미비 독도 에 대한 탐욕 을 버리지 못 하고 있는 일본 측이 독도 관련 근거 없는 자국주장 을 자국 중등학교 교과서에 등재,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제정, 일본외무성 홈페 이지 독도 관계자료 등에 관한 신속한 정보교환 등 동 시민운동단체 간 횡적 협력체제형 성이 되어 있지 아니하여 늘 각개 각진 하는 비능률적 행태를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실정 일 것이다. 3 반박논리(일본주장에 대한) 공동개발 협력 미비 일본 측이 근거 없는 또는 타당성 없는 각종 독도 관련 주장이나 행태를 일본 내 외에서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283

284 벌일 때, 그 내용분석 및 대응논리 개발 및 공동대응책 강구 등이 필요할 경우가 발생한다 해도, 그런 협력체제가 미비되어 보다 실효적 대응 상에 애로사항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독도 관련 부당한 일본 측 주장이나 행태가 있을 시 실제로는 각 동 시민운동단체가 나름대로 반박이나 기타 적절한 활동을 할 수는 있을 것이지만, 사안에 따라서 때로는 동 시민운동단체 간 공동보조를 취함으로써 보다 강력하고 효율적 대외 운 동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3. 독도 가 한국령이란 기본논리 확립(역사적, 국제법적) 우리 독도수호시민운동단체는 물론 나름대로 각기 독도가 한국령이라는 당연하면서도 기본적인 논리(역사적, 국제법적)가 정립되어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논리적 확신은 독도수 호운동을 더욱 강력히 할 수 있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 요체를 다음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 역사적 기본 논리 근거 1 세종실록지리지(1454) 강원도 울진현조 于 山 武 陵 二 島 在 縣 正 東 海 中 二 島 相 距 不 遠 風 日 晴 明 則 可 望 見 新 羅 時 稱 宇 山 國 日 云 鬱 陵 島 2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 증본) : 권45, 울진현부 우산도. 울릉도 조 于 山 島, 鬱 陵 島 ;... 風 日 晴 明 歷 歷 可 見 風 便 則 二 日 可 到 一 設 于 山, 武 陵 本 島 地 百 里 3 (일본내 자료) 隱 州 市 廳 合 記 (1667) 隱 岐 는 北 海 가운데 있다.... 戌 亥 間 에 2일1 夜 로 가면 松 島 (독도)가 있다. 또 1일 거리 에 竹 島 (울릉도)가 있다. 이 2 島 는 無 人 島 인데, 高 麗 를 보는 것이 雲 州 에서 隱 岐 를 보 는 것과 같다 그러한, 즉 일본의 西 北 ( 乾 ) 境 地 는 隱 州 로서 限 을 삼는다. 4 안용복 사건(1693, 1696) 울릉도 및 독도 에 대한 일본정부의 한국령 인정 28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85 5 (일본 내 자료) 태정관(태정관) 문서( ) 竹 島 외 1 島 는 本 邦 (일본)과 無 關 공식적 확인 6 고종황제 칙령 제 41호( ) 제2조 鬱 陵 全 島 와 竹 島, 石 島 를 관할할 사 7 울릉군수 沈 興 澤 의 보고서( , 음력 3. 5) 本 郡 所 屬 獨 島 가 在 於 本 郡 外 洋 百 餘 里 許 이옵더니, 本 月 初 4일 辰 時 量 에 輪 船 一 隻 이 來 泊 于 島 내 道 洞 浦 而 日 本 官 人 一 行 이 到 于 官 舍 하여 自 云 獨 島 가 今 爲 日 本 領 地 故 로 視 察 次 內 島 였다 이온바, 其 一 行 則 日 本 島 根 縣 隱 岐 島 司 東 文 補 及 事 務 官 神 田 由 太 郞 稅 務 監 督 局 長 吉 田 平 吾 分 署 長 警 部 影 山 岩 八 郞 巡 査 一 人 會 議 員 一 人 先 問 戶 總 人 口 土 地 多 小 하고 次 問 人 員 금 經 費 幾 許 諸 般 事 務 를 以 調 査 樣 으로 錄 去 하오니, 照 亮 하심을 伏 望 ( 光 武 十 年 陰 3월 5일) 2) 국제법적 증거 문서 1 카이로 선언( )... Japan will also be expelled from all other territories which she has taken by violence and greed. The aforesaid Three Great Powers, mindful of the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 are determined that in due course Korea shall become free and independent 포츠담선언( ) (8) The terms of the Cairo Declaration shall be carried out and Japanese sovereignty shall be limited to the islands of Honshu, Hokkaido, Kyushu, Shikoku and such minor islands as we determine. 3 스카핀(SCAPIN) 재677호( ) (Governmental and Administrative Separation of Certain Outlying Areas from Japan)...(3) 독도를 일본범위에서 제외 한다 (...excluding Liancourt Rocks(Take Island)). (6) 본 지령 내의 어떤 것도 포츠담선언(8)에 언급된 소도서들에 관한 최종적인 연합 국결정의 표시로 추론되어서는 아니 된다.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285

286 참고 : Basic Initial Post-Surrender Directive to the Supreme Commander for the Occupation and Control of Japan( )의 (5) : Such other territories as may be specified in future directive. 4 구 일본영토조치에 관한 연합국 간 합의서(1950) (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1950) 제3조. 한국본토와 도도를 포함한 모든 부속도서를 대한민국에 이관할 것을 합의한다. (Article 3: The Allied and the Associated Powers agree that there shall be transferred in full sovereignty to the Republic of Korea all rights and titles to the Korean mainland territory and all offshore Korean islands, including Quelpart(Saishu To), the Nan How group(san To, or Komun Do) which forms port Hmilton), Liancourt Rocks(Take Shima) and all other islands and islets to which Japan had acquired....) 5 연합국과 일본 간 강화조약(샌프란시스코, ) 동 조약 II장(영토) 제2조(a): 일본은 Korea의 독립을 승인하며,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Korea에 대한 권리, 소유권 및 청구를 포기한다. 제19조(d) : (요약) 일본은 정령당국의 모든 조치의 효력을 인정한다.(Japan recognizes the validity of all acts and omissions done during the period of the Occupation Authorities...) 6 유엔헌장 제107조 규정 : (요지) 동 규정상 SCAPIN No. 677( )에 의한 조치 (일본 범위에서 독도제외) 등 유효(Article 7, The Charter of the UN: Nothing in the present Charter shall invalidate or preclude action, in relation to any state which during Second World War has been an enemy of any signatory to the present Charter, taken or authorized as a result of that war by the Governments having responsibility for such action.) 7 기타(일본공문서) (1) 태정관( 太 政 官 ) 문서( ) : 다케시마( 竹 島 ) 외 1도( 島 )는 본방(일본)과 무관 함을 심득할 것. (2) 일본 내각의 불법적이고 은밀한 독도 편입조치 ( ) (요지) 외국에 의한 점유를 인정할 만한 흔적이 발견되지 아니하므로 일본영토에 28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87 병합한다. 3) 일본의 독도 자국령 주장 저의 경계 독도 가 대한민국 영토라는 국제법적 증거문서는 전술한 바와 같이 다수 있으나, 일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국제법적 근거는 발견할 수가 없다. 다만, 일본 측의 주장 1905년 동해상 무주지(섬)를 일본영토에 편입조치 운운 은 그에 앞선 일본 태정관문서( ) 상 독도가 일본과 무관하다(즉, 조선국영임을 함축)는 결정에 반하는 것으로써 국제법상 금 반언의 원칙(the principle of estoppel)에 저촉되어 무효이다 는 것은 재론을 요치 아니한다. 따라서, 독도에 관한 한 일 간 문제는 법리상 문제가 아니라 독도에 대한 일본의 탐 욕 (greed)에 기인한 일본의 정략적 문제에 불과하다고 말 할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는 일본의 행태에 경계심을 늦추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아무리 독도가 국제법상 한국령 일지라도 국제법상 양자의 합의는 다른 법을 우선하기 때문이다(Modus et conventio vincunt legem). 우리 독도주권수호시민운동단체 들은 합심 단결하여 그들 일본인들의 행태를 경계 하면서 한 목소리로 강력히 대응해 나가야 마땅할 것이다. 동시에 주권은 배자적 관할권 이란 특성을 망각한 듯한 국내외의 어떠한 언동에도 경계를 늦추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4. 가칭 독도수호시민운동단체 포럼 구성 필요성 고찰 독도영토수호 문제는 정부와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일본 측의 부당한 주장에 대응하여 나가야 할 중차대한 주권수호문제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겠다. 다만, 그 역할분담 의 견지에서 볼 때, 우리 독도수회시민운동단체의 활동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어려운 여러 여건 하에서도 오직 애국심으로 이겨내며, 동 시민운동단체들이 그간 수행 한 업적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동 운동단체 간 어떤 협 력체제가 아직 갖추어져 있지 못하다는 것은 보다 효율적 활동을 기한다는 견지에서 재고 되어야 한다 할 것이다. 개별적 각기 처하여 있는 여건에서 독자적 활동을 영위하는 것도 좋지만, 때에 따라서는 어떤 통합된 힘을 발휘할 필요가 있을 때 그런 유대를 이룰 수 있 는 최소한의 체제의 구축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가칭 독도수호시민운동단체 포럼 같은 협의 및 협력체제의 마련 필요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287

288 성이 대두된다고 본다. 물론 이런 협의체 운영에는 일정한 재정부담은 불가피한 사안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의 지원을 기대할 수 는 없는 것이고, 또 그 것이 상책이 될 수도 없을 것이다. 그 만큼 활동의 제약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시민운동단체들이 최소한의 경비를 스스로 부담하는 선에서 그 운영을 영 위할 수 있는 수준의 어떤 포럼 구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럼으로써 전기 약 10개에 이르는 동 시민운동단체 들이 개별적으로 활동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동일한 목 적을 가진 동 운동단체들이 유기적 협력을 이룩하여 보다 강력하게 대외의 상대방에게 대 응할 수 있을 것이다. 5. 결론 및 건의 독도수호시민운동단체 간 상호 의견교환, 일본의 독도관련 행태에 관한 정보 등 교환, 일본주장을 반박하는 논리개발협력, 동 시민운동방향 등 상호 조율 및 협력과 침목을 도 모하면서, 보다 효율적 일본의 독도관련 주장 및 행태에 대한 대응을 목적으로 한 포럼 등 구성을 검토 할 것. 참고 : 가칭 독도수호시민운동단체포럼 구성(안) 1부, 끝 28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89 별첨 가칭 독도수호시민운동단체 포럼 (안) 독도는 일본의 한국침략에 대한 최초의 희생물이다. 해방과 함께 독도는 다시 우리 품 에 안겼다. 독도는 한구독립의 상징이다. 이 섬에 손을 대는 자는 모든 한민족의 완강한 저항을 각오하라. 독도는 단 몇 개의 바윗덩어리가 아니라 우리겨레의 영예의 닻이다. 이 것을 잃고서야 어찌 독립을 지킬 수가 있겠는가. 일본이 독도 탈취를 꾀하는 것은 한국 재 침략을 의미하는 것이다. (변영태 외무부장관 성명, ). 일부일본인들과 일본정부는 아직도 소위 독도는 일본 땅 주장을 하고 있는 한편으 로, 일본 중등학교 교과서에 그 내용을 싣고 있어서 이 문제가 후대에 까지도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독도문제를 우리 당대에 종결시켜야 할 사유가 여기에 있다. 독도문제는 법리상의 문제라기보다는 독도에 대한 탐욕 (greed)을 버리지 못한 일본 의 정략적 문제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독도문제 는 우리 관 민이 혼연일체가 되어서, 일본의 계속되는 독도 침탈야욕에 대응하여 나가야할 것이 다. 여기에서 우리는 독도수호시민운동단체의 소중한 사명을 인식할 수 있다. 즉, 오 늘을 사는 우리는 독도영토주권을 잘 수호하여 후대에 물려줄 그 사명의 주요함을 재 삼 발견케 된다 할 것이다. 독도수호시민운동단체가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대항해야 할 상대는 독도가 자국령 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일부 일본인들과 그 정부이며, 그 나라는 세계 제2의 경제대 국이며, 일찍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라들 중 하나로서 막강한 군사적 전통을 가 지고 있는 상대라는 점에서, 우리 운동단체들의 결속필요성을 웅변하고 있다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 독도수호시민운동단체들은 어려운 여러 여건 하에서도 그간 나름대로 각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289

290 자가 처하여 있는 입장에서 독도수호운동을 하여 온 것에 대하여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지 만, 보다 강력한 대응을 하기위하여 뭉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의 독도 침탈책략이나 행태파악에 상호 협력하고, 정보를 교환하고 일본의 주장에 대한 반박논리를 공동 개발하고 때로는 그 저지를 위한 공동행동을 조율할 수 있는 협의체가 필요할 것이라 믿으며, 다음과 같이 가칭 독도수호시민운동단체 포럼 을 구성할 것에 합의한다. 다 음 1. 목적 : 일본의 독도침탈책략이나 그 행태파악에 있어서 상호 협력하고, 정보를 교환하 고, 일본의 주장에 대한 반박논리를 공동 개발하고, 때로는 그 저지 등을 위한 공동행동 을 조율하고 친목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2. 포럼가입조건 : 한국의 독도수호시민운동단체에 개방한다. 다만, 초기 포럼 결성 단계에 서는 (재)동북아역사재단 주관 영토관계 NGO 국제대회( ) 참가 단체로 한다. 3. 포럼회원 : 정규회원과 비정규회원으로 구성한다. 정규회원은 독도수호시민운동단체로 하고, 그 외에 학술단체나 기타 개인은 포럼총회의 결의에 따라서 비정규회원으로 가입 할 수 있다. 4. 회장 선출 및 부회장 임명 : 회장은 포럼총회에서 선출하며, 부회장은 회장이 지명하고 총회의 인준을 받는다. 회장의 임기는 2년으로 하며, 재임할 수 있다. 5. 감사선출 : 감사는 2명을 총회에서 선출하며, 임기는 2년으로 한다. 6. 회장의 임무 등 : 포럼을 소집하고, 회의를 일반회의규정에 따라 주재하며 기타 포럼에 필요한 사항을 조치하고, 사후에 총회에 보고한다. 7. 포럼개최 : 정기 포럼은 연 2회(봄, 가을) 개최한다. 비정기 포럼은 회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거나 총 회원 과반수의 요청이 있을 때 개최한다. 8. 사무국 : 회장의 소속 단체가 겸임한다. 9. 회비 : 정규회원은 연 5만 원 이상, 비정규회원은 연 3만 원 이상으로 한다. 10. 기타 : 여기에 규정되지 아니한 사항은 일반관례에 따른다. 독도 시민활동가 워크숍에서 ( ) 29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91 Ⅱ. 독도 시민단체 활동 사례 연극 공연을 통한 독도운동 전개 방안 안용식 (극단 독도리아 대표) 1. 독도리아 설립 배경 울릉도에 현지 주민을 중심으로 구성된 향토극단 독도리아를 2007년 8월에 설립하였습 니다. 독도를 잃으면 동해를 잃는다 로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독도 수난의 실상을 연극으로 제작하여 울릉도와 독도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보내줄 독도비 를 공연하기까지의 설 립배경과 공연과정의 어려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의 수도는 서울이지만 우리 영토의 심장은 독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독도수 호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다고 할 사람은 없을 줄 압니다. 그래서 좋은 내용 의 극본을 가지고 새롭고 실질적인 독도운동의 취지를 설명하면 누구나 공감하고 참여할 것으로 알았습니다. 공연을 관람한 국민들로 하여금 독도지킴이 라는 나라 사랑의 실천정 신을 가슴 깊이 심어주자는 운동에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으로 믿고 극단 설립을 서두르게 되었습니다. 극본이 완성된 작년 가을, 울릉군청으로 공문과 계획서를 발송하고 직접 방문을 했습니 다. 배역을 맡을 학생들을 교섭하기 위해 학교를 찾아가 교장과 교사와도 협의를 하였습니 다. 독도 운동을 전개한 사회단체와 후원 은행과 기업체를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지원과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찾아간 곳의 사람마다 표현 방법은 달라도 거절하기로 함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거절했습니다. 이런 난관에 봉착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현 실은 매정했습니다. 극단설립의 준비 과정에서 취지와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주변의 사회 현실이 호응을 해주지 않으니 중단해 버리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291

292 저의 인생을 걸고 꼭 이루어 내겠다는 다짐을 하며 추진을 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는 말처럼 극단을 설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복 병이 나타났습니다. 배역진을 구성할 학생들을 모아 주기로 굳게 약속한 학교에서 여러 가 지 사유를 들어 협조해 주지 못하겠다고 통보를 해 왔습니다. 주부들을 상대로 배역진을 구성하려고 추진되다가 물거품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누구 엄마가 하면 나는 안해 하는 식으로 주부들 간의 시기와 반목과 갈등이 심해 진척이 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학생 들을 모아 연습을 시키려고 하니까 이번에는 교사가 와서 학생들을 꾀어 데리고 가버렸습 니다. 심지어 군청 문화관광과에다 전화를 걸어 극단을 해체시켜 섬에서 내보내 버릴 방법 이 없느냐고 문의를 할 만큼 악랄한 방해꾼으로 돌변해 버렸습니다. 아무튼, 배우 모집하는 일에 너무 힘들어 해양경비대 부대장을 만나 극본을 내보이며 극 중의 경비대장과 대원의 역할을 실제로 맡아 줄 5 6명의 사병을 파견해 달라고도 했습니 다. 부대장은 동의를 했지만 본부에서 거절하는 바람에 실현은 되지 못했습니다. 어려운 고비 고비를 넘기며 배역진을 구성하여 연습을 시키려다보니 기강을 바로 잡아 가며 강력하게 연기를 지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 힘들어서 내일부터 못 나오겠네요 하고 그 이튿날부터 안나와버리면 배역 인원 부족으로 극단 자체가 무너져 내릴 위기가 뇌관처 럼 도사리고 있어 연기면에서 실기 지도의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극작가와 연출가 의 열성적인 노력으로 8 15 광복절을 기해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공연과정의 시련과 좌절 울릉군민 회관에서 전국에서 모인 독도의병대원들의 시상식을 거행하는 날, 식전 행사 로 첫 무대를 올렸습니다. 감격스러웠습니다 까지 1차 공연을 하는 기간에 팸플 릿을 배포하고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중앙공원에 공연을 안내한 자막 광고판을 설치 했지만 광고를 보고 찾아온 관람객은 몇 명에 불과했습니다. 2차 공연은 개최된 제1회 역사NGO 세계대회 초청공연을 계기로 경기도 용인 시 수지구 여성문화회관에서 2회의 공연을 실시하였습니다. 관내 27개 초등학교에 공문을 발송하고 담임선생이 학생들에게 팸플릿 1매씩을 나누어 주면서 부모님과 함께 와서 관람 하고 가정으로 돌아가 독도수호와 나라 사랑에 대해 가족들끼리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 29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93 련해 주고자 했습니다. 주위에서 힘써 준 사람들의 기대와 노력과는 달리 호응은 의외로 저조했습니다. 이 공연 행사를 통해 얻은 교훈은 다른 지방에 가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교섭을 하면 전국 순회공 연을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하였습니다. 3차 공연은 10월 3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초청한 독도에 관해 학문적으로 깊이 연구한 관련 전문가들과 교수들이 울릉도에서 독도비 특별공연을 관람하고 소감을 말씀해 주었 습니다. 극본 내용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나 향토 극단임을 감안하더라도 배우들의 연기 수준의 질적인 향상이 없이는 장기 공연을 할 수 없겠다고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또 기성 세대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 학생들을 중심으로 배역진을 구성하여 학생들이 많이 관람 케 하여 독도 수난의 실상을 젊은 세대들에게 정확하게 인식시키고 독도 수호의지와 결의 를 불태울 수 있도록 독도비 공연 계획을 세우라는 조언은 독도리아 극단의 발전 계획으로 도 응용할 만큼 중요한 말씀이었습니다. 3. 극단 운영의 어려움 온갖 어려움이 장애가 되더라도 독도비 공연을 계속하여 실질적인 독도사랑운동을 펼쳐 나가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 하였습니다. 울릉군수와 담당과장을 만나 지원과 협조를 요청 했으나 예산이 없다고 거절을 했습니다. 경상북도를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 했습니다. 처음에는 실체와 실적이 없어 지원이 어렵다고 거절 했습니다. 두 번째는 공연 실적과 여러 가지 자료들을 가지고 가서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번에는 추정 예 산안이 통과되면 지원해 주려 했는데 예산안이 부결되어 지원해 줄 예산이 없다며 거절을 했습니다. 2008년 예산을 책정할 때 금액을 배정하여 지원되도록 반영하겠다는 다짐이라 도 해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공연 지원법 몇 조 몇 항은 자세히 모르겠으나 2년 동안의 공연실적이 쌓이면 그 성적을 보고 점수를 받아 지원해 줄 것인지의 여부를 그 때 가서 결정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답변을 듣고 절망을 하기에 앞서 분노의 감정이 치밀어 오름을 억제할 수 없었 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공연을 하면 90% 이상이 적자를 본다는 통계를 이해하게 되었습니 다. 이처럼 열악한 풍토에 있는 극단을 2년 동안 자생한 실적을 보고 국가에서 지원해 줄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293

294 것인지의 여부를 심사해서 결정한다니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경상도 지방에서 사용하는 속담에 솜으로 회쳐 먹을 사람 이라는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이불이나 요를 만들어 덮는데 사용되는 솜인데 생선회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 니까? 이루어질 수 없는 일, 불가능한 일을 이루겠다고 한 사람을 풍자해서 사용한 속담이 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말을 듣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당부한 선배의 조언과 충고가 현 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희 극단을 아끼고 성원하는 사람이 잘 아는 회사에 협찬을 의뢰했다가 망신을 샀다는 얘기는 저를 더 참담하게 해 주었습니다. 4. 앞으로의 운영 계획 경영논리로는 독도리아를 운영할 수 없다는 교훈을 체험적으로 터득하였습니다. 그러나 운영 계획을 세워 독도 잃으면 동해 잃는다 를 캐치프레이즈로 걸고 독도 사랑이 나라 사 랑이라는 의식을 국민들에게 확산시켜 나가는 운동을 계속 펼쳐 나가겠습니다. 울릉도와 독도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은 반드시 독도비를 관람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조 직적으로 홍보를 하겠습니다. 악세사리를 생산하여 판매하는 Tina승 이라는 회사에서 독도리아가 설립될 때 홍보를 담당하면서 자금도 지원하고 또 독도 모형의 핸드폰줄과 바다사자 모형의 목걸이를 제작 하여 백화점에서 판매한 이익금의 5%를 독도리아 후원금으로 내기로 협약을 체결하였습니 다. 이와 같이 사명감을 가지고 지원해 줄 수 있는 회사를 더 많이 발굴하는 노력도 병행 하겠습니다. <5대목표> 1 울릉군과 경상북도와 협력체계를 강화하여 독도 수난의 실상을 주제로 한 연극 독도 비 를 관람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관광 코스로 선정되게 함 2 관람료의 5%를 울릉 발전기금으로 정립하는 일 3 연기진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켜 섬 또는 직할시 단위로 순회공연을 할 수 있는 운영 위원회 구성 29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95 4 극단 인지도를 높이고 홍보를 강화하여 ARS로 극단 발전기금을 조성하여 독도비 공 연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기업체와 NGO간 연대강화 5 독도리아 극단을 지원하기 위해 5%를 적립 후원하는 회사와 부대사업 및 업무 협력 방안 모색 위의 5대 목표는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와 성원이 있으면 실현 가능한 사업이 됩니다. 그러나 팔짱을 끼고 강건너 불구경하는 식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면 저희들이 아무 리 뜨거운 열정을 바쳐도 큰 성과를 거두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여러분들이 극단 대표가 되고 운영이사와 운영위원이라는 마음으로 아끼고 키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295

296 독도아카데미 운영과 독도 교육 - 독도아카데미 사례보고 박창우 (독도아카데미 기획운영실장) 1. 독도아카데미 소개 설립배경:일본의 장기적 독도침탈 전략에 대비하여 독도수호 엘리트 양성의 필요성 절감 교육목표:도수호사관생도(Security Warrior) 육성배출 교육방향:영토주권이론교육 / 독도탐방훈련 / 독도표기오류시정마케팅교육 / 국제조직 및 실천 운동 조직구성 교수부(교수진 구성/Curriculum 편성) 교수기획부(교육 및 교재 기획) 교육출판부(교재편찬총괄) 교 장 교수평가부(교수진 평가/교육생 평가/Curriculum 조정) 교육처(교육 행정/교육생 관리/성적관리) 해외정책자문단(해외유학생 학자 네트워크 및 조직운영/해외 독도 역사문헌 고증 및 발굴팀 구성/독도 표기오류시정 실천운동) 기획운영실(교육기획운영) 학생회(학생회 자체조직 운영관리 / 독도아카데미교우회결성) 29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97 교수단 및 운영진 교 장 교 수 부 장 교수기획부장 교육출판부장 교육평가부장 교 육 처 장 기획운영실장 고창근 윤용희 김수일 장낙인 이창걸 이창우 박창우 <독도아카데미 1기 운영위원회> 1기 대표 김현희 운영위원 김경훈, 김윤수, 박지윤 우민호, 유보람, 유상일 이우형, 임건호, 임정미 2. 추진현황 2006년 11월 13일: 독도수호국제연대 출범식을 국회도서관에서 거행하고 고창근 초대 집행위원 장 추대함. 2006년 12월 2007년 3월:독도수호국제연대 산하 독도아카데미 준비위원회 (위원장 고창근) 발 족 및 개교 준비함. 2007년 3월:독도아카데미 제1기생 모집 및 초 대 교장으로 고창근 위원장 추대함. 2007년 4월 10일:선발된 150명의 제1기생과 국 회도서관에서 독도아카데미 제1기 개교식 거행함. 개교식 특강 독도아카데미 제1강 일본의 독 도영유권 침탈에 대한 대응방안 이장희 부총장(한국외국어대학교)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297

298 2007년 4월 20일 5월 18일 독도아카데미 제2강(4/20)-배진수 박사(동북아역사재단) 일본의 독도침탈 6단계 전략 독도아카데미 제3강(4/20)-김학준 사장(동아일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역사학적 반론 독립기념관 현장답사 및 독도아카데미 제4강(4/28)-김삼웅 관장(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방문 및 독립기념관 특강 독도아카데미 제5강(5/4)-호사카유지 박사(세종대교수) 일본의 태정관(1887년 일본내각) 문서의 비밀 독도아카데미 제6강(5/4)-백우현 박사(경상대 교수) 일본은 왜 독도를 노리나?-독도해저 천연가스의 진실 독도아카데미 제7강(5/11)-김봉우 의장(독도본부) 신한일어업협정과 배타적경제수역(EEZ)의 문제점과 대책 독도아카데미 제8강(5/11)-이화영 국회의원(국회통일외교통상위원회 간사) 일본의 독도영유권주장에 대한 남북협력방안 독도아카데미 제9강 및 토론회(5/18)-박기태 대표(반크대표) 독도표기오류시정 마케팅 교육 2007년 5월 25일 27일 울릉도 및 독도탐방교육 및 독도아카데미 제10강 독도탐방 및 특강 / 독도수호를 위한 국제적 네트워 크 구축 및 실천방안 고창근 위원장/교장(독도수호국제연대/독도아카데미) 2007년 6월 1일 독도아카데미 제1기 총 150명 중 127명 최종 수료심 사를 거쳐 수료식 거행함. 2007년 9월 12일 16일 독도아카데미 제1기 수료생 제1회 역사NGO세계대 회 자원봉사 참여함. 29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299 2007년 9월 14일 독도수호국제연대는 선발된 125명의 제2기생과 국회도서관에서 독도아카데미 제2기 개교식 거행함. 2007년 9월 21일 10월 5일 독도아카데미 제1강 및 토론(9/21) 김병렬 교수(국방대학원)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대한 역사학적 반론 독도아카데미 제2강 및 토론(9/28) 이태진 교수(서울대학교) 한국병합 성립하지 않았다 부제 : 한일 합방 조약상의 문제점 독도아카데미 제3강 및 토론(9/28) 이영수 교수(단국대학교) 문화로 독도지키기 독도아카데미 제4강 및 토론(10/5) 배진수 박사(동북아역사재단) 일본의 독도영유권침탈에 대한 국제법적 대응방안 독도아카데미 제5강 및 토론(10/5) 호사카유지 박사(세종대교수) 일본의 태정관(1887년 일본내각) 문서의 비밀 독도아카데미 제6강 및 토론(10/12) 박기태 대표(반크대표) 독도표기오류시정 마케팅 교육 독도아카데미 제7강 및 토론(10/12) 이장희 부총장(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의 독도영유권 침탈에대한 국제법적 대응방안 독도아카데미 제8강 및 토론(10/19) 김성만 전제독(전 해군사관학교 교장) 독도의 군사전략적 가치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299

300 독도아카데미 제9강 및 토론(10/19) 이기석 교수(서울대학교) 동해표기오류시정을 위한 전략적 고찰 2007년 10월 26일 28일 울릉도 및 독도탐방교육 및 독도아카데미 제10강 독도탐방 및 특강 / 독도수호를 위한 국제적 네트워크 구축 및 실천방안 고창근 위원장 / 교장(독도수호국제연대/독도아카데미) 2007년 11월 8일:독도아카데미 제2기 수료예정 3. 독도아카데미 독도탐방 사진 사진 1 독도아카데미 제1기 독도탐방 사진 2 독도아카데미 제2기 독도탐방 30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01 4. 교육훈련 성과보고 1) 독도수호 블러그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301

302 2) 독도수호 UCC 카툰 UCC외 동영상 UCC 제작-1기 30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03 동영상 UCC 제작 2기 독도수호국제연대 대학생 연합 club.cyworld.com/korea-dokdo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303

304 30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05 3) 독도수호활동 독도아카데미 1기 클럽 활동회원 151명 제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305

306 독도아카데미 2기 클럽 활동회원 142명 30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07 독도수호국제연대 대학동아리 활동회원 369명 / 40여 개 대학 340여명 대학별 동아리가입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307

308 4) 독도수호이론 5차 시험실시 <1차 시험> 1. 다음 중 독도와 관련이 없는 인물은? 1 이사부 : 신라의 장군으로서 512년에 우산국(울릉도, 독도)을 점령하였다. 2 안용복 : 조선의 어부, 두 차례에 걸쳐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임을 주장하였다. 3 홍순칠 : 1953년 독도의용수비대를 조직하여 일본으로부터 독도를 지켜내었다. 4 이종무 : 1491년(세종 1년)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2. 다음 독도의 역사에 대한 설명 중 잘못된 것은? 1 독도는 신라가 우산국을 점령하면서 신라 영토로 편입되었다. : 512년 신라 장군 이사부가 연을 이용하여 맹수를 풀겠다는 계략을 써서 우산국을 점령 하여 신라 영토로 귀속시켰다. 2 울릉도 독도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되어 있다. : 울릉도 독도와 관련하여 최초로 언급한 역사서는 고려시대 편찬된 삼국사기이다. 3 우산국의 왕자는 울릉도와 독도를 되찾기 위해 고구려에 망명하였다. : 우산국의 왕자 하발은 조국을 수복하기 위해 고구려에 망명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우산국 왕자의 조국수복작전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oard_no=14&search_type=&search_keyword=&item_seq= &cpage=1&list_type=2 4 러 일 전쟁 때 일제가 독도에 망루를 설치하였다. : 1905년 러 일 전쟁을 앞두고 일본은 전쟁에 독도의 지리학적 이점을 이용하기 위해 망루를 설치하였다. 3. 조선 정부가 대내외적으로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 펼친 정책은? 1 이주정책 2 쇄환정책 : 조선은 울릉도와 독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육지로 이주시키는 쇄환정책을 실시하였다. 3 편입정책 4 아무 정책도 취하지 않았다. 30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09 5) 언론보도 제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309

310 독도 시민운동과 자연보호 활동 손용해 (자연보호중앙연맹 상임감사) 자연보호중앙연맹은 1977년 5월 창설하였고 초대 총재는 태완선 전부총리가 취임하였 다. 1978년 10월 5일 이숭녕, 이은상, 이민제 교수들이 기초한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 연의 혜택 속에서 살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이 속의 온갖 것들이 우리 모두의 삶의 자원이다. 라고 시작되는 자연보호 헌장을 선포하고 전국에 3,700개의 자연보 호헌장탑을 설치하였다. 지금 현재는 전국에 16개 광역 시 도 협의회, 230개 시 군 구 협의회, 3,785개 읍면동 협의회와 회원 500,000명과 33개의 특수 연맹(직능) 회원 300,000명의 회원을 가진 조직이 되 었다. 주요 활동 내역은 아래와 같다. 자연 실태 학술조사 실시 18개 분야의 교수들로 이루어진 20여 회의 자연실태 학술조사를 실시하고 매번 종합 보 고서를 발간하였다. 그 대상 지역은 주로 낙후된 도서지방과 몽골과 베트남의 국외지역도 실시하였다. 특히 울릉도 독도는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1981, 1995년 두 번에 걸쳐 실행 하였고, 또한 년까지 5년에 걸쳐 동아일보의 후원으로 실시하고 있는 중 이며, 학술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자연보호 세미나 개최 전국 도 시에서 30여 회의 자연보호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금년에는 대구에서 1,000여 명의 회원이 참가한 세미나를 가졌다. 독도를 사랑하는 강연회 개최 1991년 독도를 사랑하는 모임을 만들고 매월 사계의 권위자들을 모시고 강연회를 개최 하였다. 31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11 독도 탐방과 수호 결의 대회 국토사랑이 나라사랑이라는 일환으로 2002년 9월부터 매달 약 100여 명의 인원으로 울릉도, 독도를 2박 3일로 방문하고, 독도의 중요성을 강의하고 독도수호 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독도 명예시민 100만 명 등록 운동 독도에 많은 주민을 상주시키고, 주민등록을 옮겨야겠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명예시 민 100만 명 등록 운동을 전개하고 있고, 이미 1년 만에 20,000여 명의 등록을 마쳤으며 그 숫자는 울릉도의 인구수를 돌파하였다. 이를 계기로 적극적인 홍보 활동과 등록 운동을 전개하여 100만 명 목표를 기필코 달성하겠다. 독도의 날 제정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며, 영토는 지키는 자의 것이다. 비극의 역사를 망각하면 비 극은 되풀이되고, 영토를 잃으면 망국의 노예가 되는 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33인의 사회 저명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독도의 날을 제정 선포하였다( ). 대한제국의 고종황제는 1900년 10월 25일 칙령 41호를 반포하고 독도를 울릉군에 편입 시키고 초대 군수 배계주를 임명한 역사적인 그날을 독도의 날로 제정 선포하였다. 일본이 시마네현 고시 40호로 독도를 불법으로 자신들의 영토로 강제로 편입시킨 1905 년 2월 22일 보다 무려 5년이나 앞선 때의 일이다. 연간 50,000회의 자연보호 운동 전국 시 군 구 협의회의 자발적인 자연보호 운동과 국민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생태공원 추진 인천시에 소재하고 있는 소래 포구 근처에 70여 만 평의 그린벨트를 인천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건설 교통부가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주택공사가 그 부지를 매입하였고 임대APT 를 짓고자 한다. 자연보호 중앙연맹은 인천시와 연계하여 그 음모를 분쇄하고 그 곳에 생 태공원을 만들려는 운동을 전국의 80여 만의 회원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자연보호 중앙 연맹은 정부의 보조를 받지 않고, 또는 어느 기업으로부터도 찬조를 받지 않는 회원들의 자발적인 회비만으로 운영되는 모범 NGO로서의 사명과 보람을 갖는 단체이다.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311

312 독도사랑 작품공모대회와 독도의병 활동 윤미경 (독도의병대 총무) 년도 활동일지 제6회 전국 독도사랑 작품 공모대회 개최(개최요강 첨부) 제2회 국회 한민족 독도사랑 발표회 개최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 로텐다 홀) 최소 100만인 울릉도 독도방문 발대식(국회의원회관대회의실) 제6회 전국 독도사랑 작품 공모대회 1차 시상식 개최 (울릉도 군민회관) 참전용사 33인 독도의병대 입단식 수상자, 가족, 6.25 참전용사, 내빈, 울릉도 군민회관에서 시상식, 입단 식을 마친 후 독도 역사 탐방 제6회 전국 독도사랑 작품 공모대회 2차 시상식 개최 울릉도 시상식 참가하지 못한 수상자와 가족, 내빈 구미 유채꽃밭 국토 체험장에서 실시 (수상자와 가족 독도모형연못에서 맨손으로 고기잡기 행사) 동북아 역사재단 주최 역사NGO세계대회 독도사랑작품 전시(독도서각, 독도도자기, 독도그림, 독도포스터, 독도표어, 독도행사 사진 등) 전라남도 구례 남도 사진 전시관에서 독도사랑 작품 전시 대구백화점에서 독도사랑작품 전시 구미시 6.25 참전용사 독도의병들과 유채꽃밭 국토체험장 유채씨앗 파종 31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13 2. 제2회 한민족 독도사랑 대회(2007년 4월 20일) 세부 일정표 식전행사 시 간 행사 내용 관 련 비 고 10:00 10:30 등록, 관람 독도 서각, 도자기, 사진, 시화, 그림, 작품 관람 독도 동영상관람 국회도서관 로텐다홀 전시 컷팅식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 10:30 11:00 소개 독도노래 독도단체 소개 아름다운 독도, 목련화 구미시립합창단 1부 행사 사회 : 최재익(독도수호전국연대 의장) 유영애(독도의병대 정읍지부장) 11:00 12:00 국민의례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 컷팅식 울릉도 독도 탐방 100만인 보내기 운동 발대식 내빈일동 내빈소개 대회사 축사 환영사 축사 격려사 격려사 격려사 기악연주 이정환(보좌관) 윤미경(독도의병대 총무) 이문원 대회장(전 독립기념관장) 이상득 국회부의장 제종길 국회의원(국회바다포럼 전회장) 이영호 국회의원(국회바다포럼 회장) 이재신 회장(이순신 장군 후손회) 이승진 (독도박물관장) 유근종 회장(독도관광해운 회장) 위풍당당행진곡, 독도는 우리땅(지도 이종덕교 사) 아이코리아부설 한국육영학교 기악부 감사장전달 광복회 회원외 독도의병대장 바다헌장 낭독 성태진 (전구미고등학교장) 독도시낭송 독도의 노래 (편부경 시인) 독도주민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313

314 2부 행사발표회 사회 : 조대용(재경독도향우회 회장) 박주이(재경독도향우회 시민문화부장) 12:00 14:00 독도합창 독도사랑나라사랑(이문원 작사) 사랑은 이규왕 목사(수원제일교회) 수원제일교회 합창단 성명서 일본의 역사왜곡 중단 촉구 이휘남 이사 매헌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태권도 태권도 시범(지도-김호길 감독) 서울특별시 대표 시범단 독도개발론 이희천 교수 국가정보대학원 독도합창 홀로아리랑, 경복궁타령(지휘-박영호) 구미시립합창단 독도시낭송 독도(안중식 시인) 나래시조문학회 독도시낭송 독도사랑(천숙녀 시인) 나래시조문학회 독도시낭송 독도영토사수총사령부(우명주 회장) 독도사랑문학회 독도웅변 독도(김자연) 임호초교 5학년 독도웅변 금도끼, 은도끼(이성현) 금파초 3학년 독도 단상 오찬미(김천대학, 선교학과) 독도의병대 위 행사내용은 주최측 사정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주최:독도의병대 주관:제종길 국회의원실 후원:국회 바다포럼 협찬:대구은행 대아고속해운 독도관광해운 31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15 3. 제6회 전국 독도사랑 작품공모대회 1) 개최 요강 글쓰기, 그리기, 표어, 포스터, 사진, 휘호, 노래, 서각, 도자기(독도를 문화로 심는 모든 부 문의 작품) **** 수상자 전원 독도, 울릉도 탐사 **** 대 상 : 전국 유, 초, 중, 고, 대, 일반인 접수기간 : 시 상 : 의병상(최우수상) 문무대왕상(경주시장) 세종대왕상(세종대왕 기념사업회) 이순신 장군상(덕수 이씨 풍암공파 회장) 거북선 최초 승첩지상(사천시장) 곽재우 의병장상(의령군수) 논개 열사상(진주시장) 안용복 장군상(안용복 장군 기념사업회) 광복회 회장상 백범 김구상(백범 정신 선양회) 김좌진 장군상(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 도산 안창호상(도산 안창호 기념사업회) 윤봉길 의사상(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안중근 의사상(안중근 의사 숭모회) 박차정 열사상(박차정 열사 숭모회)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장상(홍순칠 대장님 유족) 사운 이종학상(이종학 전 독도박물관장님 유족) 김제의 열사상(김제의 열사 유족)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315

316 장관상-문화관광부, 산업자원부, 해양수산부, 건설교통부, 통일부 국가보훈처 후원 교육부 국회의원상-이상득의원, 이병석의원, 지병문의원, 한화갑의원, 이군현의원 임태희 의원, 심재덕의원, 제종길의원 국회 도서관장상 독립기념관, 국립 진주박물관(임진왜란전문 박물관) 관장상 서울대학교, 대구대학교, 경일대학교 총장상, 대구공대 학장상 교육감상-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대전시, 인천시 교육청, 충청북도, 강원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전라북도, 제주도, 경기도 충청남도교육청 시장상-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대전광역시, 광주광역시장상, 구미시 장상 도지사상-경상북도, 경상남도, 충청남도, 전라남도 지사상 해양 경찰청장상, 포항 해양수산청장상 일랑 이종상상(독도문화심기운동 본부장, 최초의 독도화가) 동곡 권용섭화백상(독도화가) 아이코리아(전 새세대육영회) 회장상 푸른독도가꾸기회장상 대한민국 초대 독도 이장 최재익상 대구은행장(사이버 독도지점)상 대한지적공사 부산광역시 본부장상 대아고속해운 회장상 부산일보사장상 한국일보사장상 우수상-초, 중, 고, 대, 일반, 총 150명 장려상-초, 중, 고, 대, 일반, 총 150명 31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17 수상자 전원(최우수의병상, 우수상, 장려상):독도, 울릉도 탐사 자격이 주어집니다. 6회 대회 주제:순국선열, 애국지사, 통일, 환경, 교육, 바다, 독도, 수상자 발표: (제헌절) 독도 의병대 홈페이지 독도캠프: 시상식: 장소:독립기념관 본 독도의병대에서는 상이 남용되거나 이용되는 것을 막고, 진정으로 독도를 사랑하고 민족을 생각하는 인재를 발굴 격려하기 위해, 입상자가 시상식에 참여할 수 없는 경우 차점자에게 시상하고, 1인 여러 작품 응모는 허용하지만 수상작은 가장 우수한 작품 1 편만 인정하며 한 가족 중 여러 명이 응모할 경우 2인까지만 시상함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인적사항 기재:성명, 주소, 근무처, 학교, 이메일, 집, 학교, 근무처, 전화번호, 휴대폰 번호 보낼 곳:경북 구미시 고아읍 오로리 독도사랑작품 전시관 제출된 모든 작품의 저작권은 주최측에 있으며 작품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주최측 사정에 의해서 위 사항은 변동될 수 있습니다. 위 시상 내역은 5회 대회 시상내역이며 앞으로 계속 추가될 예정입니다. 제 7 장 독도 시민활동가의 의견과 활동사례 317

318 2) 구미 제2차 시상식 세부일정표 제6회 독도사랑작품공모대회 구미 2차 시상식 시간표 일시 : 장소 : 유채꽃밭 구미 국토 체험장 11:00 수상자와 가족여러분들은 운송수단과 참여 인원수를 독도의병대자유게시판에 사전에 알려주셔서 원활한 상장전달식이 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십시오 등록 접수 11:00 12:00 12:00 13:00 독도의병대 200만인 서명운동 발상지 구미시 명소 관람 차량 구미시 제공 구미 유채꽃밭 국토 체험장으로 이동 간단한 부페식 야외 식사 13:00 14:00 14:00 15:00 15:00 16:00 제6회 전국 독도사랑 작품 공모대회 2차 시상식 <2부 이벤트 행사> 맨 손으로 향어, 잉어, 장어, 메기, 고기잡기 6.25 참전용사 독도의병단 자원봉사 16:00 안녕히 다음에 다시 만나요 ^^ 31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19 제8장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Ⅰ. 독도 시민단체 활동가 포럼 Ⅱ. 독도 시민단체 대표자회의 Ⅲ. 독도 시민활동가 워크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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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Ⅰ. 독도 시민단체 활동가 포럼 년 10월 포럼 논의주제 : 독도관련 시민단체의 교류협력방안 일시 및 장소 10월 28일(토) 13 00부터 17 00까지 4시간 울릉군 재향군인회관 5층 회의실 (울릉도 도동) 참석 독도의병대 윤미경 外 30명 사회 동북아역사재단 홍성근 사진 독도어울림 김성호 내용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참여하여 단체의 현황 및 활동을 소개하고 독도관련 교 류협력방안에 대해 논의 사진 년 10월 28일 울릉도 향군회관 5층 회의실에서 열린 제1회 시민단체 활동가 포럼. 제8 장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321

322 단체명은 발언자명으로 대체 하였으며, 존칭은 생략함. 단체명과 각 소속 회원명은 첨부. 手 記 상의 한계로 누락된 부분은( 失 記 )라고 표시. 발언자 발언 내용 및 발언 요지 지금부터 시민단체 활동가 포럼을 뜻 깊은 울릉군 재향 군인회관에서 실시하 도록 하겠습니다. 뭐 형식에 구애 받지 마시고 자유롭게 이야기 해주시면 되겠 습니다. 다만, 오늘 배 시간 때문에 회의 도중에 나가셔야 할 독도의병대, 독도 수호국제연대 분들부터 먼저 좀 발언 시간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각 단체 대표 한사람씩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단 규 칙을 하나 정하면 발언 시간은 각 단체 당 5분으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 윤미경 (독도의병대) 반갑습니다. 독도의병대 윤미경입니다. (paper 배부) 여기 오실 때 고생들 많 으셨죠? (웃음) 단순히 배를 타고 오는 것의 힘듦을 넘어서 여기 오신 분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는 어려움을 이겨 내고 활동 하고 계신 분들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이 애국의 길을 가시는 것이 물론 많이 힘드시겠지만 그에 걸맞는 인식 과 이해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시더라도 항상 애국의 길을 가는 것에 대해 걸맞는 생각과 의지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드겠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께서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실 때 밤에 어떤 여자가 선생 님 방으로 들어왔더랍니다.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중국에서 홀로 지내고 있는 선 생님 방에 말이죠. 그런데 안창호 선생님께서는 나라를 지키고 일본놈들과 싸우는 이 상황에 당 신하고 나하고 어떤 일이 생기면 그게 무슨 꼴이 되겠느냐며 여자를 돌려보냈다 고 합니다. 우리는 비록 모든 것을 버려 가며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 지만 이와 같은 마음으로 임해야 하지 않나 생각을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32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23 윤미경 (독도의병대) 독도의병대 윤미경 총무 오윤길 (독도의병대) 사회자 박창우 (독도수호 국제연대) 네. 독도의병대의 오윤길 입니다. 이렇게 여 러 훌륭하신 선생님들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 입니다. 저희 독도의병대의 활동은 아침에 나 눠드린 책자에 보시면 잘 나와 있습니다. 독도 를 지키는 중요한 일을 하신 분께 장관상을 네 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러 훌륭하신 선생 님들의 적극적인 추천 바랍니다. 또 이렇게 만나서 이런 자리를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후의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 다. 제가 그 동안의 찍은 기록을 비디오테이프 자료로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찍 독도의병대 오윤길 부대장 으신 사진들 일주일 안으로 동북아역사재단으 로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들을 뵙게 되어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시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은 독도수호국제연대 박창우실장님 말씀해주 십시오. 안녕하십니까. 독도수호국제연대의 박창우입니다. 공식적으로 출범은 아직 되지 않았습니다만, 이 전의 여러 단체들과 활동들을 해왔습니다. 이 자리에서 독도 문제를 위해 함께 노력하시는 여러분들의 보습을 보고 참 많이 놀랐습니다. 여러 선배님들이나 어르신들께서 다들 꼭 필요하고 중요한 활 동들을 묵묵히 하고 계신 것을 보면서 시간을 쪼개 여기 오길 잘했다 하는 생 각이 듭니다. 저희는 선배님들의 뒤를 이어서 710만 재일동포들에게 독도를 아 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11월 13일 국회도서관 회 의실에서 출범식을 가질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리겠습니다. 여기에 는 얼굴이 그간 활동을 하면서 낯이 익으신 분도 있고 생소한 분도 계시지만 앞으로 어디 어떤 상황에서 뵙든지 반갑게 인사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 니다. 제 8 장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323

324 박창우 (독도수호 국제연대) 독도수호국제연대 박창우 기획팀장 사회자 그럼, 다음부터는 순서대로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재익 (독도향우회) 안녕하십니까. 우선 이런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동북아역사재단 측에 감사 를 드립니다. 또, 바쁜 시간을 이렇게 내 주신 여러 단체의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안타까운 것은 부산의 황백현 선생, 김봉우 소장님, 신용하 교 수님. 이 분들이 활동의 1세대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분들이 참석하지 못한 점은 좀 걸리긴 합니다. 저희 독도향우회는 2000년도에 창립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15일에 독 도수호 전국연대 창립 되었고 신용하 교수님이 초대 의장님을 맡으셨고, 제가 2 대 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 동안 유 무형의 많은 일들을 진행 하였는데 특히 독도리 행정 구역 문제, 호적 옮기기 운동 등을 진행하였습니다. 지금 진행 중인 활동으로는 현재 독도를 경찰만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데요. 대한민국 헌법 제5조 2항에 보면 대한민국의 영토는 군인이 지킨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따 라서 독도는 경찰 근무 뿐만 아니라 군인들도 경계를 서야 하는 것이 헌법에 맞 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희가 1000만원을 들여서 현재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또 1년에 1회 독도 사랑 웅변대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일본 내에서 비교 적 진보세력이라 할 수 있는 사회당의 후시마 미지오와 함께 활동도 하였습니다. 독도향우회 최재익 회장 32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25 최재익 (독도향우회) 사회자 김준연 (독도사랑 협의회) 작년 3월 15일. 3월 17일 일본의 시마네현에서 독도의 날을 제정하였고, 저희는 3월 19일날 시마네현에 항의 대표단을 보냈고 저는 그 대표단으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시마 네현 담당 관서로 가서 저희는 탁자를 엎고, 할복을 시도 하였습니다. 내년에도 역시 20여 명의 항의 대표단을 보낼 예정입니다. 대의를 위하여 소 아를 버리는 길에 같이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또 이규원 검찰사의 자료들이 묻히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관련기관과 협 의하여 규원길 등등의 제정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여러 단체들 서로 격려 하면서 열심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예비종을 치겠습니다. 이렇게 캔을 두드리면 예비종으로 생각해주시 기 바랍니다. 일단 사실 관계를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황백현 선생님은 같은 단체 대표로 계신 김해일 선생님께서 참석하셨습니다. 김봉우 선생님이 계신 독도본부에서는 이번 행사기간 중 학술세미나를 개최하 는데 일정이 겹쳐 참석이 어려우시다고 하셨습니다. 신용하 교수님은 학회에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나중에 사회단체와 학계가 같이 할 일이 있으면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종상 선생님은 어제 먼저 나가셨습니다. 다음 독도사랑협의회 말씀해주세요. 안녕하십니까. 독도사랑협의회의 김준연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주로 지방이나 중앙의 정부 차원에 서 이루어지는 반면 국내는 주로 시민단체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양상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이 자리가 매우 소중한 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희 독도사랑협의회는 주요 회원들로는 나호열 시인, 박정순 시인, 호사카 유 지씨 등이 있습니다. 2001년도에 중앙일보와 서명운동을 받으며 활동을 시작하였고 시집발간, 토론 토 총 영사관에 독도 관련 사진전 개최, 일본의 안보리 가입 반대, UN에 편지 발송하기 등. 독도사랑협의회 김준연 회원 제 8 장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325

326 김준연 (독도사랑 협의회) 사회자 주 활동이 외국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많습니다. 시집발간이나 시 낭송회 등을 꾸준히 개최하고 있습니다. 시류나 사안에 흔들리는 일시적인 활동이 아니라 지속적인 기록과 문화 활동 에 의해서 독도 운동이 이루어지는 것이 외국인들이나 일반 사람들에게 더 쉽고 진지하게 잘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성격을 가진 단체들이 많은데요. 저희는 앞으로도 문화 운동을 통해서 독도를 지키는 일에 한 몫 거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잘 들었습니다. 다음은 독도수호대 말씀해주시죠. 안녕하십니까. 독도수호대의 김점구입니다.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참 난감합니다. 일단 창립, 활동 방향, 문제점 순으로 크게 나눠서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저희 독도수호대는 2000년 3월 2일 창립이 되었습니다. 독도를 지키겠다고 시작하고 보니까 문제의 심각성이 파악되기 시작했습니다. 맨 처음 심각하게 다가온 것은 한일 어업협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어업협정에 관해서 일을 하다 보니까 다른 문제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김점구 (독도수호대) 독도수호대 김점구 대표 여러분 독도 문제가 무엇입니까? 많은 시민 사회단체들이 활동을 하고 계시지 만 대부분이 독도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른 채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 있었습니다. 이 점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 자체가 오늘날의 독도 현실이라는 인식하에 활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활동으로는 독도를 현충 시설화 하자는 운동입니다. 독도에 연간 수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하고 가지만 아까도 보셨다시피 그저 구경거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현실입니다. 일 년에 몇 사람 찾지도 않는 곳도 현 충 시설로 등록이 되는 현실에서 좀 불합리 하지 않느냐는 인식하에 추진하고 있으나 현재 국가보훈처에서 거부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 독도의 접안 시설에 독도 의용수비대 활동 사항들을 기념 시설화 하는 문 제입니다. 현재 독도 탐방은 분명 그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진이나 찍고 경 치나 보고 오면 끝나는 곳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또 독도의 날 제정에 관해서도 다시 문제 제기를 할 것입니다. 32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27 김점구 (독도수호대) 사회자 김성호 (독도어울림) 사회자 김해일 (독도향우회) 그리고 독도 의용수비대 분들에 대한 보훈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참 그리고 동북아역사재단의 홈페이지 관심 사항에 독도 문제가 없습니다. 네. 그 문제는 나중에 회의 시간에 다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88년에 한국 외대에 독도 연구회가 만들어져 18년 정도 활동을 해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서 기자 생활을 좀 하면서 작년에 일본은 죽어도 모르는 독도 이야기 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현재는 독도 폭격사건의 진상 규명에 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생존자 증언 채록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와 같은 자리가 만들어 진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지만, 이렇게 모 이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독도의병대 분께서 좋은 말씀 해주신 대로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영토, 주권 수호에 관한한 학계, 정치계, 시민 단체 등 모두 조금씩 성격이 다 르고 활동 분야와 목적도 다 다르겠지만, 모두 연대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생각은 달라도 국익과 관련된 일에 관한 뜻을 같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독도 문제를 다루는 많은 단체들이 있지만 사분오열된 양상으로는 효과적인 활 동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강하게 대응할 것은 대응하고 하나된 움직임을 보여 야 할 때에는 또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일치된, 일 관된 움직임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독도향우회 말씀해주시죠. 먼저 독도향우회는 2000년 2월 10일 한국일보 소회의실 에서 창립되었고 2003년 3월 1일 독도 우편번호를 제정하 였습니다. 그 밖에 각종 문화 행사등과, 작년서부터는 주로 해외 전 시 쪽에 치우친 감이 있는데요. 내년에는 태양열 및 풍력 발전 국내 전시를 할 예정입니다. 독도 단체는 크게 넷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2000년에 설립된 단체, 둘째 2005년에 설립된 단체, 독도향우회 셋째 2000년과 2005년 사이에 만들어진 단체, 마지막으로 김해일 사무총장 2000년 이전에 설립된 단체입니다. 각 시기별로 만들어진 이유와 활동 방식 혹 은 한계점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점은 통일도니 연합체가 존재 하지 않는다는 점, 각 단체 별로 정보의 공유가 되지 않는 다는 점 등을 들 수 있겠 습니다. 때문에 이번에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정보 공유의 장 을 마련할 수 있도 록 자리를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저희는 독도 관련 80여 점의 그림을 보유하고 있으며 혹 단체별로 전 시회를 한다거나 행사를 하시면서 필요한 단체가 있으면 공유할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시민 사회 단체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독도에 대한 혹은 활동에 대한 공부가 많이 부족했다는 것과, 왜 운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즉 동인( 動 因 )에 제 8 장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327

328 김해일 (독도향우회) 사회자 대한 고민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 각하는데 많은 시민 사회단체들이 공부를 하고 사업을 진행해 나가는데 동북아 역사재단이 시민사회단체들을 이끌어 가는 구심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 립니다. 네. 그 문제에 대해서 잠시 뒤에 말씀을 나누기로 하고 일단 발명계 한송본 소장님 말씀 들어 보겠습니다. 일단 반갑습니다. 참 독도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만, 5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독도 문제에 대해서 국가가 할 일이 있 고 국민이 할 일이 있는 법인데 서로 다 제 할 일을 못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1996년 하시모토 망언 이후 여러 단체들이 만들어졌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흐지부지 되고 그 와중에 학자도 정치인도 아닌 발병가가 나서게 되었습니다. 발명가들이 나선 이유는 독도에 대해서 독도를 개발하자는 말들이 많았는데 독 도 개발이라는 말만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분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독도를 개발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친환경적으로 좀 더 효율적이고 내실 있는 개발을 하여서 의미 있는 독도 탐방을 만들 수 있을까 하 는 마음에 저희 발명계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각설하고 일단 유인물 을 가져 왔으나 권수가 조금 모자란 것 같아 일단 제가 중요한 부분을 읽어 드 리고 나중에 쉬는 시간에 혹 필요하신 분 말씀하시면 나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송본 (발명계) 발명계독도개발지원운동본부 한송본 본부장 (유인물 낭독) 아울러, 전 옛날이야기는 모릅니다. 오로지 최근의 이야기, 최근의 사실에만 입각해서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독도의용수비대 홍순칠 대장의 동상을 만들기 위해 대통령께 5번 탄원을 드렸으나 번번이 그 뜻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보훈관련 법이 아직 미비해서 그렇다기에 그럼 의원 발의를 해서 법을 만들려 했으나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고, 그럼 의원발의 말고 국민발의 를 해서라도 하려 했으나 그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32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29 사회자 김기종 (우리마당) 네. 잘 알겠습니다. 일단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발언해주시죠. 네. 우리마당 독도지킴이의 마당지기로 활 동하고 있는 김기종입니다. 독도를 지키는 일 에 그야말로 지기, 문지기가 되어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만 아직은 많이 부 족합니다. 많은 관심과 조언 부탁드립니다. 먼저 몇 가지 제안을 드리면서 발표를 하도 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남북이 하나 될 수 있는 주제로서 독도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해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김기종 대표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독도 문제는 거의 유일하게 남북이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산문화제 등을 지금처럼 지역의 소규 모 축제로서 끝낼 것이 아니라 남과 북이 같이 만날 수 있는 민족적 형식으로 다가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 단체들이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요, 그렇게 된다면 여러 단체들이 뜻을 모아 서로 역할 분담을 할 수 있는 단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저희 같은 경우는 만약 그런 식으로 행사가 진행된다면 풍물패 등 여러 문화 패들이 있습니다. 그럼 저희 단체는 행사 앞을 여는 길놀이 등을 할 수도 있고 다른 단체는 또 다른 일을 나눠 하는 것입니다. (유인물 배부) 나눠드리는 유인물은 지난 5월 우리마당 독도지킴이본부를 발족시키면서 만든 결의문입니다. 저희 우리마당은 80년대 초부터 전 민족의 우리화 전 국토의 마당화 라는 구호 아래 활동을 해왔습니다. 이에 있어 일본 정부의 망언이나 몰 상식한 행위에 대해서 더욱 분노를 느끼고 독도지킴이본부를 발족시킨 것입니다. 저희는 다른 단체들과 우리가 되어 함께 하고자 합니다. 나아가 유인물에 나와 있듯이 독도 관련 단체들의 대응업무에 대한 공식적 간사단체를 자임하고 나서 동북아역사재단과 시민 단체들의 활동에 간사단체의 활동을 할 의향이 있습니다. 사회자 조대용 (재경독도향 우회) 네. 잘 들었습니다. 자연보호 연맹 부총재님께서는 사정이 있어서 먼저 나가셨 습니다. 그럼 재경 독도향우회 분 발언 해주시죠. 네. 반갑습니다. 저희 재경 독도향우회는 2003년 6월 19일 창립총회를 가졌고 현재 회원은 약 80여 명 정도가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경실련에서 남북 경제 협력을 선언 한 것에 힘입어, 파주시 적송면에 북한군 묘소 민간 출입에 관한 일을 시작으로, 그 전에는 그 곳에는 민간이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으니 현재는 민간인도 들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8 장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329

330 재경독도향우회 조대용 회장 조대용 (재경독도향 우회) 사회자 조영삼 (푸른울릉독도 가꾸기 모임) 그 후에 독도를 방문하였고 태풍 매미에 의한 독도 풍수해 지원과 그 후속조 치로 일기예보를 좀 더 자세하게 알아 볼 수 있도록 조치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독도 전체를 문화재화 하는 건에 대해서 유홍준 문화재청과 면담을 실시하였 고, 5 16 지방선거 당시 구청장 후보들에게 독도 관련 문제에 대한 홍보를 실 시하기도 했습니다. 환경문제와 관련 환경청과도 계속 면담을 실시 중이고 일본에서는 일인 시위 를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경북도청에도 울릉도에 대한 지원을 건의 드리기 도 했습니다. 통일부에는 한일 정상회담을 독도에서 할 것을 건의하기도 했습니 다. 그러니까 선상 회담이죠. 외국에는 여러 선례들이 있고 세계에 좋은 홍보기 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004년 4월 12일 허성관 장관을 면담하여 울릉도의 전진기지화를 건의하기 도 했습니다. 그 밖에 흥사단 면담, 한국과학문화재단에도 공문을 발송 하였습 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서 공직자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고 또 일의 진행, 또한 더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공직자들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생 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이번 행사를 위해 애쓰고 계신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의 조영삼 님 네. 이번 행사의 진행을 맡고 있는 조영삼입니 다. 사실 이번 일을 맡고 속으로 매우 기뻤습니다. 독도 관련 단체들이 현재는 많은 분들이 활동하고 계시지만 87년 당시에는 두 단체 밖에 없었습니다. 외대의 독도 연구회도 대학가에는 유일한 단체였습 니다. 그 후로 우후죽순처럼 많은 단체들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흥망성쇠를 겪었습니다만, 오늘 이렇게 많은 분들이 자리 해주시고 애써주시는 모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 습을 보면서 매우 감개가 무량하고 기쁜 마음입니다. 조영삼 직전 회장 재단 측에 1년에 한 번 씩이라도 연석회의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 립니다. 그리고 한 말씀만 더 드리자면 울릉도는 이제 점점 단순한 관광지에서 독도를 보러 오는 애국적 관광 의 형태로 그 관광의 속성이 변하고 있는데요. 33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31 조영삼 (푸른울릉독도 가꾸기 모임) 정부에서도 이 점을 잘 살피셔서 독도 여행 인원제한 문제 같은 작은 문제부터 라도 일단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거창한 일도 좋지만 변화는 이런 작은 문제부터 바꿔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이렇게 독도를 지키는 활동을 하시는 많은 단체의 선생님들을 만나 뵐 수 있어서 기쁘고 이런 만남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연석회의를 만들어 정기 적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긴급 동의 합니다. 이럴 것이 아니라 해외동포들도 이번 기회에 초청합시다. 해외에 계신 분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독도를 한 번이라도 보는 기회를 가져 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오면서 보니까 독도 노래도 딱 한 곡 밖에 없는 것 같은데 노래도 한 곡 더 만들도록 합시다. 김광식 (발명계) 발명계독도개발지원운동본부 김광식 회원 한송본 (발명계) 편부경 (시인협회) 아, 박수 칠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 독도 여행 인원제한을 푸는 문제와 관련하 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일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동 박수) 네. 반갑습니다. 편부경입니다. 먼저 제 말씀을 드리기 전에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독도는 어떤 의미입니까? 다들 많은 의미들이 있으시겠지만 제 생각은 사람이 사는 땅입니다. 제 아무리 독도가 우리 땅 이라고 말하지만 사람이 살고 있으면 그런 말조차 도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겠지요. 그와 관련하여 저는 2000년에 본적을 독도로 옮기고, 2003년 주민등록 주소를 독도로 옮겼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저는 독도의 유인도화 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저희 시인협회 독도지회에서는 작년 4월에 고은 씨를 비롯한 105명의 시인들을 모시고 바위를 깨면 피 가 흐른다. 라는 표제 하에 시낭송회를 열기도 하였습니 다. 독도지키기 운동은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저희 는 이와 같이 문화 운동을 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인입니다. 다른 좋은 말씀들은 이미 여러 선 생님들께서 다 해주셨기 때문에 저는 시를 한편 낭송하 한국시인협회 독도지회 도록 하겠습니다. 편부경 지회장 제 8 장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331

332 편부경 (시인협회) 감사합니다. (시집 <독도 우체국>의 시 낭송) 사회자 잠시 쉬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0분 후에 다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 다. 휴식을 갖기 전에 다음 회의 때 이야기 할 주제를 먼저 정했으면 좋겠습니 다. 말씀해 주십시오. 그럼. 다음 5가지 주제, 즉 첫째. 시마네현의 죽도의 날 대응방안 둘째. 시민단체 간의 네트워크 구축 등 교류 협력 방안 셋째. 독도리 섬마을, 유인도화 문제 넷째. 의용수비대 보훈추서 관련안 다섯째. 결과보고서(책자 발간)안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20분 후에 다시 만나겠습니다. (일동 박수) 휴식시간. 3시 20분, 회의 재개 사회자 김해일 사회자 김해일 김기종 네. 그러면 앞서 말씀드린 총 다섯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첫째 2월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 대응방안에 관한 건 둘째 시민사회단체간의 교류방안에 관한 건 셋째 독도리 섬마을, 유인도화 문제에 관한 건 넷째 의용수비대 보훈 추서에 관한 건 다섯째 결과물을 만드는 건 이상 다섯 가지입니다. 자 그러며 첫 번째 안부터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자 유롭게 말씀해주시고 또한 기록의 용의를 위해 말씀하시는 분은 성함을 말씀해주 시기 바랍니다. 시마네현에 가는 목적은 단 한 가지입니다. 즉 항의 표시를 하기 위해서지요. 방법은 두 가지로 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여러 단체가 각자 가서 힘을 보여 주는 방법 두 번째는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는 개인들을 하나로 규합하여 가는 방식입니다, 이때에는 목적이나 방법 등이 나뉘겠지만 이것들을 잘 조절하는 것 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좋은 안이 있으십니까? 네. 제 생각으로는 단체가 같이 가는 방법이 좋겠구요, 그에 맞춰 각 단체 별 로 플랭카드나 구호, 준비물 등을 정하지만 전체적인 큰 틀과 스케쥴을 준비해 움직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개인보다는 단체로 가는 것이 좋겠지만, 단체가 가기에는 역시 재정적인 문제 가 취약합니다. 재단에서 여러 사람, 여러 문화 단체를 파견할 수 있도록 경비를 지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우리 단체도 준비하겠습니다. 33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33 양태진 사회자 양태진 한송본 김점구 최재익 편부경 지금 안건의 요지가 무엇입니까? 대응 방식의 문제인지 아니면 날을 정하는 것입니까? 대응 방안에 관한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 스스로 날을 정한다면, 좀 더 의미 있는 날을 정해서, 즉 저들의 그릇 된 인식을 어떤 날이 가지는 의미로서 바로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무작정 날을 정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지요. 날을 정하는 인식의 전제가 좀 더 의미 있는 날로 정합시다. 그리고 대응 방안에 대해서도 지금 여러 단체가 있으신데 각 단체별로 조금씩 성격이 다릅니다. 일본에 가신다고 하는데 거기에 참여할 단체끼리만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일단 그것부터 정하도록 합시다. 하나만 질문 합시다. 지금 공동의 대응 방안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데 각 단체별로 진보니 보수니 성격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연합해서 움직일 때 벌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재단이 책임질 수 있습니까? 심사숙고해 야 할 문제입니다. 뜻 맞는 사람들끼리 이야기 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이는 일본을 가고 말고의 문제가 절대 아닙니다. 방법론상으로 차이가 있을 수있습니다. 어떤 단체는 일본을 가고 또 어떤 단체는 일본을 가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는 방법론상의 차이입니다. 그 차이는 집회의 방법과 대화의 방법입니다. 어떻게 활동하느냐보다는 무엇을 목적으로 가 더 중요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목적을 분명히 하기 위해 다께시마의 날 이 일본 내부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더 조사를 해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일본에 갔다 왔습니다. 목적은 역사교과서 채택율을 낮추기 위한 일을 했습니다. 뭐 가시적인 성과라기보다는 여러 의미 있는 작업들을 진행했지만 가 장 힘든 일은 일본 시민단체들의 협조가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확실한 목표가 있으면 일본 시민단체와 협력 할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을 경우에는 일본 내부의 협조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주제 자체가 좀 성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응방안이니 하는 것들을 논의하기 전에 이론에 대한 정립이 필요합니다. 각 단체별로 주장하는 바도 다르고 대응 양상도 다 다르겠지만 이렇게 우왕좌 왕 하지 말고 이론을 먼저 정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맨 먼저 일측의 주장과 우리의 대응 논리 등을 잘 정리하여 한일 2개 국어로 만든 자료집 같은 것을 먼저 발행하는 것이 향후의 활동에 더 필요한 것이 아닌 가하는 것이지요. 제 8 장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333

334 한송본 김해일 정본훈 김점구 사회자 정봉훈 한송본 사회자 김기종 사회자 단체별로 기본적인 문제부터 이야기 해봅시다. 내실 있는 운동이 필요한데 그것의 서포트도 중요하지만 논의가 헛도는 기미 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정도로 해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늘 이야기를 드리고 싶은 것은 두 가지입니다. 독도 운동을 하는 서로 다른 여러 단체들은 무엇보다 먼저 단체들의 구심점, 즉 의견의 통합, 그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대응방안의 개발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거기에 정부 예산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 하는 것입니다. 동북아역 사재단은 시민단체의 활동과 정부 사이에 가교 역할만 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 말씀을 좀 드리겠습니다. 일단 여러 말씀들을 해주셨는데요. 시민단체와 정부, 즉 공무원들의 역할에 대해서 좀 더 논의가 필요하겠고요. 대 응방안에 대해서 저희의 의견은 가능한 한 단체로 크게 활동의 폭을 잡자 하는 의견인데 다들 생각들이 다르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점에 대해서 결 론이 나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두 세 번의 회의를 더 거쳐야 할 문제인 것 같 습니다. 오늘 이 모임의 성격을 규정해보면, 일단 동북아역사재단과 이 회의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정부에 어떤 손을 빌리거나 힘을 빌리게 되면 끌려가는 운동 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줄 알고 정부 관련 없이 정말 다양하게 우리의 의견을 이야기 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마네현이 정한 독도 의 날 문제도 시간이 그리 많이 남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야기 할 주제들이 다 어려운 주제들입니다. 겉돌지 말고 작은 거 하나 라도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민단체의 자율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저희들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번 행사를 준비하면서도 그 점을 많이 고민했습니다. 대다수 단체들이 서로 다들 방향들이 다른 만큼 단체별 역량에 맡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재단이 이끌어 준다는 생각은 표현이 좀 그렇습니다. 그럼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갈까요? 재단에서 심사숙고 하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단체별 위상이 많이 다릅니다.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은 굳이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철저하게 사업계획을 세운 뒤 요구 할 수 있는 부분 은 요구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네. 알겠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효과적으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수도 있고 별개로 갈 수도 있지만 그 점은 합리적으로 조율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3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35 김해일 사회자 김점구 사회자 각 단체별 성격이 다른데 막상 단체들의 구심점이 없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시민단체들이 같이 협의 할 수 있는 터를 만들어 주되 정부 의 입김은 내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시안은 시안대로 중요하고 다급한 문제인데 전체적으로 모인 적이 없습니다. 재단은 이에 앞으로도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논의 사항으로 넘어 간 것 같습니다. 제가 4시 반에 약속이 있는데, 죄송하지만 두 번째로 의용수비대 이야기를 했 으면 좋겠습니다. 프랑스 방송국과 의용수비대 분들의 인터뷰가 있습니다. 양해 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네. 일단 첫 번째 2월 대응방안에 대해 각 단체별로 활동 방향이 다른 만큼 뜻이 맞는 단체들끼리 분임토의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직 유형의 안이 마련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유형의 안이 마련되면 안에 따라 분임토의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김해일 일단 2월 행사에 일본에 가실 단체부터 손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독도지킴이, 독도수호대, 독도향우회, 독도의병대 거수) 사회자 김해일 조대용 사회자 김점구 조대용 그럼 이 단체들은 향후 분임토의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고 그 다음으로 의용 수비대 건에 대해서 이 안을 말씀해주신 김해일씨가 간단한 설명을 좀 부탁드립 니다. 네. 의용수비대 분들의 명예 회복과 국가 유공자 지정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했습니다. 현재 의용수비대 분들의 국가 차원의 예우 및 보훈 현황에 대해서 말씀해 주 시겠습니까? 네. 그 점에 대해서는 김점구씨가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법률에 의해 독도의용수비대 분들이 국가 유공자가 되었지만 아직은 많이 미 비한 실정입니다. 전병호 의원 발의 의용수비대 지원법이 11월 시행 예정에 있 습니다. 현재 그러나 아. 시간관계상, 잠시만요. 그럼 지금 현재 정부 지원금은 하나도 없는 것 입니까? 김점구 네. 조대용 알겠습니다. 제 8 장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335

336 김관일 사회자 민주화 인사들도 다 지원해주는데, 왜 독도 의용수비대 분들은 안 해주는 것 입니까? 논지에 조금 어긋나는 것 같아 제한을 좀 하겠습니다. 조대용 정봉훈 김점구 조대용 김점구 조대용 편부경 김해일 김성호 김점구 아니 왜 의용수비대 분들에게 지원이 안 되고 있죠? 그 점에 대해서는 김점구 사무국장님이 설명을 드리도록 하는게 좋겠습니다. 일단 의용수비대 분들의 안과 정부의 안이 서로 맞지 않아 지원이 지연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월요일 국감 때도 이야기가 되겠지만 각 기 관 단체별로 사안의 진행과 방향이 서로 맞지 않는 점도 있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관련 공무원들을 징계 및 감사를 신청해 놓았습니다. 이 분들의 국가 유공자 예우에 대해 지금 연금을 지급 받고 계시지만 한달에 30만원 정도입니다. 이걸로는 생활이 안되는데 거기다가 독도 의용수비대 지원법 에서 연금때문에 생활지원부분이 삭제가 되었습니다. 또 국립묘지 안장에 대해서 도 현재 보류중인 상태 입니다. 그 점에 관한 정확한 자료가 현재 있습니까? 지금은 없습니다. 일단 이것부터 끝내도록 합시다. 독도가 지금 우리 땅인 것은 그 분들의 덕택 인데 아직까지 이런 상황이라니요. 일단 이 논제를 꺼내신 분은 독도의용수비대의 어떤 점에 대해서 오늘 논의를 하고자 하신 거죠? 제대로 된 예우를 해드리기 위해서이고, 또 그를 위해 각 단체별로 의용수비 대 관련 일을 찾아보고자 하는 차원에서였습니다. 네. 지금 여러 말씀들이 많으신데요. 우리는 지금 한 쪽의 이야기만을 듣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 자리에 양자, 혹은 다자간의 참석자가 필요합니다. 유족 분들과 정부 대표, 관련 기관 분들의 말씀이 다 필요 한 것입니다. 의사 진행 발언 하겠습니다. 어떤 단체든지 공식적인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 다. 정부도 정부의 입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어느 선 까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 정황상 객관적 인 의견 추렴이 힘든 것입니다. 유족대표의 예를 들면 유족분들도 단체가 있고 그 단체의 공식 입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공식적 입장과는 다른 의견이 유족들 사이에서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간극에 대해 누구의 말이 옳다 그르다 할 수 있습니까? 33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37 최재익 한송본 김점구 사회자 한송본 편부경 한송본 김기종 정봉훈 김기종 정봉훈 사회자 저도 의사진행 발언 하겠습니다. 현재 독도 의용수비대 지원법이 입법이 되었 음에도 불구하고 시행령이 없어서 그런 문제가 생깁니다. 조속한 시일내에 객관 적 자료에 의거한 시행령이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정부의 불과 오십년 전 사료가 없다는 것이 통탄할 일입니다. 33인의 의용수 비대라는 것이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해서만 33명이라는 인원의 불확실성 때문에 여러 법률적 지원관계가 지연된다면 이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 들 중 기록 이 없다 해서 누구는 맞고 누구는 아니다 라는 것이 참 우스운 일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국가 보훈처 및 경찰청도 잘못을 시인했습니다. 그러나 역 사는 바로 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정에 휩쓸려서 아닌 분도 맞다고 하고 그래서 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닌 것은 아닌 것으로 바로 잡아야 합니다. 왜 일본에게 는 역사를 바로 잡으라고 하면서 우리 스스로는 역사를 바로 잡지 못합니까? 여러 말씀 잘 들었습니다. 좋은 숙제를 안겨 줬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으므로 다음부터는 좀 짧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셋째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여기 많은 단체들이 참여 했지만, 여기에 참여 하지 못한 단체들도 많습 니다. 예산을 좀 아껴서 더 많은 단체가 참가 할 수 있도록 합시다. 너무 호강 스러운 면도 좀 있는 것 같고, 경비를 절감해서 그 돈으로 의용수비대 분들이라 도 더 찾아봅시다. 네트워크와 관련해서 동북아역사재단 홈페이지에 단체별 발언란을 만들어 주 십시오. 그럼 I.D.를 발급하고 쓰기에 제한을 해야 합니다. 단체별 상호 교류가 힘이 듭니다. 사실 일년에 한 번 모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재단이 이 점을 고려해서 계속 이런 자리를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재단의 목적은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지원 협력의 형태로 가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물론 내년에도 이런 간담회 자리 등을 계속 마련하도록 검토 하 겠습니다. 간담회도 좋지만 더욱 수준 놓은 교류의 장과 방법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한 다고 생각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교류와 협력의 필요성은 여기 계신 분들 다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8 장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337

338 송재익 사회자 최재익 저는 전주지역에서 독도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독도 공원을 만들고 여러 가지 행사도 실시했습니다만, 국민들의 참여도가 저조하고 또 행사를 진행하기 위한 단체 개개의 역량이 달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기 많은 분 들이 독도를 지키기 위해 일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참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아울러 말씀드리면 단체별 연합의 성격이 너무 약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좀 더 큰 힘을 내기 위해서는 연합체의 성격이 분명 필요한 법인데 재단에서 이런 행사를 만들어 준 것에 대해서 너무 고맙게 생각합니다. (일동 박수) 네. 구체적인 것들은 돌아가셔서 많이 제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교류 협력이라는 것이 참 어려운 문제 입니다. 일단은 참여를 잘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식당 같은 것 하나 예약을 해도 막판에 안 온다 그래버리면 낭패거든요. (좌중 웃음) 사회자 편부경 한송본 김해일 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네. 다음 주제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독도 유인화 관련 이야기는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유인화가 뭐 현재 여 러 가지문제가 많지만 일단 실현이 되었습니다. 현 거주자는 김성도씨와 그 사 모님이시구요. 현재 어업활동을 하며 대피소를 운영하시며 살고 계십니다. 그런 데 어쨌든 사시려면 경제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현재 어로 작업에 문 제가 많습니다. 울릉도 어촌계와의 문제도 있고 김성도씨 내외께서 독도내의 경제 활동을 위한 여러 문제에 관심을 가져 달라 는 차원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얼마 전에도 태풍 때 파도가 지붕까지 덮쳤다 고 그러는데 동도 쪽에도 비상 대피소 겸 한 가구가 더 사실 수도 있는 문제이 구요. 작은 문제 같지만 작은 문제가 곧 큰 문제인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 부연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독도 개발 특별법이 만들어 지고 나서 97년도에 울릉군청에서 독도 주민을 모집을 했습니다. 그런데 뭐 한 가구 당 5000만원을 지원해준다 하는 식의 헛소문이 퍼져 가지고 한 200세대가 지원 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편부장님 말씀대로 소수 의 정말 독도를 사랑하시고 생활 할 수 있는 분이 오셔야 하고 이 시설에 대해 서는 국가가 지원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어촌계는 5명 이상이어야 가능합니다. 독도에는 경찰과 군대가 있는데 군대에 서 퇴임하시는 분들이 독도에서 살 마음은 있으나 생활 지원의 문제를 말씀하십 니다. 대전 엑스포에서 미래 주택을 계발 했는데 비용이 좀 많이 들어서 지지부 진한 상태 입니다. 편부장님 말씀대로 동도의 대피소를 하나 더 건설 하는 것 차원에서 유인화 운동이 더 활발하게 진행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3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39 사회자 네. 마지막으로 자료집 발간 건에 대해서 김성호 선생님이 말씀을 좀 해주시죠. 김성호 네. 오늘 같은 자리가 매우 중요한 자리입니다. 여러 단체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행사가 끝나고 어 떤 결과와 평가를 받을지는 모르지만 모임의 성패 여부를 떠나서 첫 발자국을 잘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관변 잡지의 성격 을 벗어나 좀 더 자유롭고 재밌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같은 경우는 회의 내용, 기록내용, 사진, 연구 자료 등을 취합해 자료집 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의견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송본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필름을 몇 통 쓰고 다들 많이들 찍으셨을 텐데 서 로 자료도 공유합시다. 사회자 독도의병대는 개인적으로 찍은 비디오테이프를 기부 하셨습니다. 이것 역시 자료화해서 나누어 드릴 수 있도록 하겠고요. 자료집도 발간해서 배부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재익 보고서 형식으로 갈 것인가 단행본 형식으로 갈 것인가를 먼저 결정을 해야 하는데요. 3박 4일의 일정으로 단행본을 만들기에는 조금 내용이 부족하지 않을 까 하는 우려가 됩니다. 만약 단행본을 만들려 한다면 전원 기행문을 제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해일 자유롭게 제출하면 될 것 같은데요. 편부경 출판을 하려면 글의 양도 중요하지만 편집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재단 측에서 편집 방향이나 주제를 정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송본 이규원 검찰사의 금석문이나 석장 기록등도 탁본으로 남기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사회자 네. 이미 탁본이 박물관에 전시 되어 있습니다. 다른 의견 있으십니까? 김기종 저희도 단행본을 만든다면 물심양면 도와 드릴 수 있습니다. 좋은 자료를 주 십시오. 사회자 마지막 정리하겠습니다. 마지막은 재단에서 나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 8 장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339

340 네. 오늘 정말 좋은 자리에서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좀 피곤한 상태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홍 박사님이 밤에 코를 너무 고셔서 제 가 잠을 좀 설친 것 같기도 한데요. 사실 홍 박사님이 이번행사를 추진하면서 20일 전부터 밤늦게까지 준비하느라 피로가 누적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홍 박사님이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는데 격려의 박수 한번 드리죠. (최종박수) 울릉도 현지에서 준비하시느라 고생 많이 하신 울릉문화원 분들에게도 박수 부탁드립니다. 정봉훈 (박수) 오늘 참 좋은 말씀 많이 나왔는데요, 뭐든 초심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처음 에 말씀하셨던 좋은 의견들을 기록해 보았습니다. 마음가짐이나 이런 것들은 편 시인님이 읽어 주신 시에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일단 처음 부분을 다시 한 번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부분 낭독) 여기 울릉도에 들어오실 때 기상이 않좋아 멀미도 하고 고생 많이 하셨는데요. 시내물이 모여 바다가 되듯 지금 이 시작은 비록 미약하지만 앞으로 더욱 발 전시켜 독도 관련 시민단체의 연합활동이 활성화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일동 박수) 34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41 년 5월 포럼 일시:2007년 5월 15일(목), 17시 18시 50분 장소:울릉군 재향군인회관 5층 회의실 참석:독도수호국제연대 외 33명 사회:동북아역사재단 홍성근 내용 요약 포럼은 정윤열 울릉군수님의 인사말씀으로 시작되었다. 울릉군수님은 우리가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국가가 인정했고 모든 사람이 인정했다면 독도에 대한 실질적인 점유권 조성의 기반을 만 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독도에 사람이 정주하게 된다면 다른 이유로 싸울 필요가 없으므로, 설사 자연 환경을 조금 훼손한다 하더라도 동도와 서도를 연결하여 사람의 정주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는 것이다. 사진 2 정윤열 울릉군수님 사람의 정주에 따르는 생계유지 문제는 관광수입으로 해결될 수 있으며, 관광개발로 인 해 독도의 자연 환경이 무조건 훼손되는 것은 아니므로 독도를 잘 가꿈으로서 오히려 독도 를 유지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독도를 사랑하는 방법은 독도를 잘 관리 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정주권의 조성 기반 마련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또한 독도 바다 밑의 지하자원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독도를 잘 관리하고 보존 할 수 있 는 방안을 찾는 것이 곧 실효적 지배라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동도와 서도의 연결 예상지역에 대한 환경 영향 평가가 이루어졌는지의 질문이 있었고 물골의 용역이 지자체 사항만이 아닌 전국적 사항이었으면 좋겠다는 의견과 북한 동포도 독도에 올 수 있게끔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제시가 있었다. 편부경 선생님의 시 낭독이 있은 후 세 가지 안건에 대한 토의가 이루어졌다. 안건은 역 사NGO세계대회에 대한 것과 동북아역사재단 홈페이지에 시민단체 코너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사항, 그리고 역사기행 일정에 관한 것이었다. 제 8 장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341

342 첫째로 역사NGO세계대회에 관해서는 20개국이 참여하는 이 대회는 일제피해자분과위 원회, 역사교과위원회, 역사교류분과위원회, 고대사역사분과위원회, 이렇게 4개의 분과위 원회로 나뉘는데, 독도는 외국과의 국제적 네트워크가 성립되어 있지 않은 점이 문제가 되 어 여기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독도가 가지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특별분과위원회를 조 직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왔고, 그래서 참여 여부를 결정하고, 만약 참여한다면 어떤 형 태로 분과위원회를 만들 것이냐 등의 의견이 필요하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NGO세계대회가 매우 큰 행사이고 이 행사에서 시민사회단체의 역 할이 매우 중요한 만큼, 준비과정에서 독도단체가 같이 참여하여 독도문제가 심도 있게 다 루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과 대회가 준비되었으니 참여하라 는 식이 아니라 먼저 대 회에 독도분과가 들어갈 경우에 어떻게 준비할 수 있는지 등의 자료가 필요하고 대표들만 이 아니라 회원들과 함께 의견을 모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그래서 5 월말이나 6월초에 역사NGO세계대회와 관련된 시민단체대표자회를 갖기로 의견을 모았다. 둘째 안건은 재단 홈페이지에 시민단체 코너를 만들어서 시민단체 아이디를 제공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재단 안의 단락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 소리가 있었고 하지만 각 단체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장으로 활용된다면 바람직한 일이 고 각 단체의 링크를 거는 것도 방법으로 제시되었다. 셋째로 독도역사기행 중 독도생활 체험 행사에 대해 재단 교류홍보실 조기철 팀장의 설 명이 있었다. 현재 울릉도, 독도의 일기가 고르지 않으므로 기상 상황에 따라서 세부 일정 이 조정될 것이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독도의용수비대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이것에 관해서는 지금 쟁점이 되 고 있는 사항이 전체에 관련된 문제라고 보기 어렵고 또한 지금 논의하기에는 시간적 문제 사진 3 시민 활동가 포럼 34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43 도 있으므로 별도의 자리를 마련하여 논의하기로 하였다. 사회자는 마지막으로 논의 내용을 정리한 후, 우리가 함께 계속 의견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다 보면 내일은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이 될 것이므로 그런 모습을 기대하면서 한발 한발 나아가자는 말로 토의를 마무리하였다. 제 8 장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343

344 Ⅱ. 독도 시민단체 대표자회의 년 2월 대표자 회의 1) 회의 개요 일시: (화) 16:00 18:00 장소:동북아역사재단 중회의실(11층) 참석:대한민국독도향우회, 독도사랑협의회, 독도수호국제연대, 독도수호대 등 11개 단 체 19명 2) 일본 시마네현 행사(죽도의 날)에 대한 토의 행사 관련 대응수위 조절에 어려움이 있으나, 냉정하고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며, 시 민단체 명의의 공동성명서 발표도 검토해 볼 필요(푸른 울릉도 독도가꾸기모임) 시마네현 현지를 방문하여 행사를 참관할 계획이며, 일본어 자료집을 준비하여 배포 할 예정(독도수호대) -자료집:시마네현 홈페이지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일어판 / 12쪽 분량) 정부나 재단의 신중한 대응 입장에 반대하며, 현지 행사에 13명 정도가 참석하여 토 론회 및 규탄대회를 개회할 계획(독도수호전국연대) 시마네현 행사에 대응하여 국내 집회 개최를 검토 중에 있으며, 시마네현 상품의 불 매운동도 전개해 볼 필요(독도지킴우리마당) 냉정한 자세를 견지하되, 중앙정부보다는 경북도 차원에서의 대응이 바람직하며 장 기적 대응 전략 준비가 필요(독도사랑협의회) 독도 관련 전문인력 양성이 필요하며, 자라나는 청소년에 독도 수학여행 기회 제공 등 독도 사랑을 경주할 필요(독도의병대) 34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45 3) 기타 재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시민단체 협력사업에 많은 관심을 표명하고, 앞으로 적극적 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을 부탁 년 12월 대표자 회의 1) 2007년 독도 시민단체 관련 사업 실적 평가 재단에서 실시한 2007년 독도 시민단체 관련 사업 실적을 설명하고 시민단체 대표자 들의 의견을 청취 2007년 사업이 독도 시민단체 상호간의 협력 증진 및 시민활동가들의 독도관련 전문 성 제고에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 - 독도 시민활동가 워크숍, 독도문화축전 등 독도관련 행사를 계기로 독도 시민단체 자체적으로 연합회인 독도NGO포럼 발족(07.11) - 독도 역사기행, 역사유적지 탐방, 전문가 초청강연 등 시민단체 대상 강연 및 교 육을 통하여 시민활동가들의 독도관련 전문성 제고 2) 2008년 독도 시민단체 관련 사업 계획 설명 2008년 재단에서 추진하는 독도 시민단체 관련 사업의 계획을 설명하고 시민단체 대 표자들의 의견을 청취 - 독도 역사기행, 독도 워크숍 등에 큰 기대 표시 시민활동가 대상의 강연 및 교육 프로그램 개설 요청 - 독도 동해관련 홍보기법 제고 방안 - 세계 역사 영토 분쟁지역 관련 NGO활동 등 모범 사례 소개 -독도 영유권 관련 교육을 통한 이론 무장 등 시민단체 행사 지원 시 지원대상 기관의 설립목적, 사업실적 등을 면밀히 평가하여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 표시 제 8 장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345

346 사진 1 독도 시민단체 대표자 회의 사진 2 독도 시민단체 간담회 1 사진 3 독도 시민단체 간담회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47 Ⅲ. 독도 시민활동가 워크숍 년 7월 워크숍 1) 개요 일 시: (월) 31(화) 세부 일정 <별지 1> 장 소:아카데미 하우스(서울 수유동 소재) 주 제:역사NGO세계대회와 새로운 독도 시민운동 참가인원:김해일(독도향우회) 등 18명 참가자 명단 <별지 2> 2) 워크숍 내용 역사 관련 NGO들간의 네트워크 강화 및 동북아역사재단과의 바람직한 민관협력 모 델 형성을 위한 역사NGO세계대회의 전체 목표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기존 독도 시민운동의 문제점을 점검하며, - 시민단체별 개별적 의사표출, 국내위주의 활동, 강한 정치지향적 성향, 시민단체 상호간의 갈등, 정부와 시민단체간의 의사소통 채널 부족 등 향후 독도 시민운동에서 역사NGO세계대회가 갖는 의미를 되새김 - 독도 시민운동의 패러다임 전환, 국내외 독도 시민단체 상호 간의 연대 모색, 동 북아역사재단을 중개자로 한 민관협력 추진체계 형성 등 지난 6월 이후 독도관련 특별분과위원회의 활동 및 향후 추진일정에 대해 보고 특별분과위원회에서 준비하고 있는 전시회, 심포지움, 문화예술 행사 등에 대해 주관 단체별로 발표하고 심의 제 8 장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347

348 3) 성과 평가 금번 워크숍은 역사NGO세계대회 및 독도 시민운동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그동안 특별분과위원회에서 수행한 역사NGO세계대회의 준비 작업을 중간 점검하고 향후 준비작업을 위해 힘을 다지는 중요한 자리였음. 34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49 별첨 1 - 세부 일정 일 자 주 요 일 정 비 고 7.30(월) (회의장) (1부) 세미나 (사회:홍성근) 14:30 참가자 등록 15:00 개회 15:10-15:30 1주제 역사NGO세계대회의 개요와 행사내용 -한정아 (NGO대회 사무국 간사) 15:30-16:00 2주제 역사NGO세계대회와 독도 시민운동의 나아갈 길 -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부연구위원) 16:00-16:30 3주제 특별분과위원회의 활동과 향후 추진일정 -김해일 (특별분과위원회 분과장) 16:30-16:50 휴식 16:50-18:00 종합토론 18:00-19:30 식사 아카데미 하 우 스 (불암실) (2부) 특별분과의 부문별 행사관련 협의 (1차) (사회:김해일) 19:30-20:00 심포지움 부분 발제:강성호 (경희대 밝은사회연구소 교수) 20:00-20:30 문화예술 부문 발제:박정순 (독도사랑협의회 대표) 20:30-21:30 종합토론 7.31(화) (회의장) (3부) 특별분과의 부문별 행사관련 협의 (2차) 09:00-09:30 퍼포먼스 부문 발제:김해일 (특별분과위원회 분과장) 09:30-10:00 전시회 부문 발제:한송본 (특별분과위원회 운영위원) 10:00-12:00 종합토론 및 기타 협의 12:00 중식 후 귀가 아카데미 하 우 스 (불암실) 제 8 장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349

350 별첨 2 - 참가자 명단 순번 소 속 직 위 성 명 1 동북아역사재단 실 장 배진수 2 부연구위원 홍성근 3 행정원 정은정 4 경상북도 독도지킴이팀 공무원 이소리 5 경희대 밝은사회연구소 교 수 강성호 6 독도의병대 부대장 오윤길 7 총 무 윤미경 8 독도향우회 대 표 김해일 9 발명계 독도개발지원운동본부 본부장 한송본 10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 표 김기종 11 독도를 사랑하는 모임 감 사 손용해 12 흥 사 단 지도위원 안용식 13 독도연구 연구자 나홍주 14 만화가(제목:독도는 알고 있다) 작 가 최진규 15 NGO대회 사무국 간 사 한정아 16 코리아 스코프 운영위원 장석현 17 독도사랑협의회 대 표 박정순 18 독도수호전국연대 실 장 박창우 35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51 년 11월 워크숍 1) 행사 개요 일 시: (수) 8(목) 세부 일정 <별지 1> 장 소:아카데미 하우스(서울 수유동 소재) 주 제:독도 시민운동의 역할과 발전방안 모색 참가인원:독도 시민활동가, 연구자 등 28명 참가자 명단 <별지 2> 2) 주요 강연내용 (1) 독도 연구 활동의 회고와 전망(김명기, 명지대 명예교수) 주요 쟁점별 장기 연구계획을 수립 시행하고 연구에 관한 보안 유지 필요 독도에 대한 권원을 응고시키는 실효적 지배 조치 강화 필요 독도연구자들이 정부 당국, 학자, 자료 및 연구비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편견 없이 지원할 필요 시민단체들은 활동의 특성화,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정부시책의 사각영역을 보완하는 활동 필요 (2) 독도에 연구된 러시아측 자료 및 일본과 꾸릴열도, 따오위다오 (박종효, 전 모스크바대 객원교수) 러시아가 독도 명칭 표기, 영유권 문제에 대해 침묵한 것은 미 소 냉전 이래 학술 교류 단절이 원인 독도에 대한 올바른 인식확산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에 지도 제작 배포, 해외 국제학 술회의 개최 등 적극적 노력 필요 3) 주요 내용 시민단체 상호 간 협력체제 마련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가칭 독도수호시민운동단 제 8 장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351

352 체 포럼 구성 제의(나홍주, 전 독도연구조사학회장) 자세한 내용 <별지 3> 참조 독도 시민활동의 최근 사례 소개 - 자연보호중앙연맹:독도 자연보호실태 조사(2009년 보고서 발간예정), 독도의 날 (10.25) 제정, 독도 명예시민 100만 명 등록 운동 등 - 독도수호국제연대: 07년도 제1, 2기 독도아카데미를 개최하여 약 230명의 대학생 독도 지킴이 양성 - 극단 독도리아:20세기 초 일본의 독도침탈을 내용으로 한 연극 독도비 를 역사 NGO세계대회 등 모두 3차례 공연 극단 독도리아:문화를 통한 독도수호 운동을 목적으로 2007년 8월 설립, 울릉 도 현지주민으로 구성된 울릉도 향토 극단 4) 성과 평가 독도 관련 시민단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대화의 만남을 주선해 준 재단 측에 대 해 참석자 모두 깊은 감사 표시 독도시민네트워크 구축사업의 실질적 성과로서 참여 단체들 간 자발적으로 독도포 럼 구성이 제안됨 전문가 초청강연을 통해 독도 시민활동가들의 독도관련 전문지식 제고 시민단체 간 교류협력 증진 및 시민활동가들의 독도관련 활동의 올바른 방향 모색의 계기 마련 35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53 별첨 1 - 워크숍 세부 일정 일자 주요일정 비고 14:30 참가자 등록 15:00 18:00 초청강연 독도 연구 활동의 회고와 전망 -김명기 교수 (명지대 명예교수) 독도에 연관된 러시아측 자료 및 일본과 꾸릴열도, 댜오위다오 -박종효 교수 ( 前 모스코바대 객원교수) 18:00 19:30 식사 19:30 21:30 제1차 간담회 아카데미 하우스 (불암실) 11.7 (수) <발 표> 독도 회고 -이정근 ( 前 공무원) 연극 공연을 통한 독도운동 전개 방안 -안용식 (독도리아 대표) 독도아카데미 운영과 독도 교육 -박창우 (독도수호국제연대 기획실장) 독도운동의 나아갈 길 -오윤길 (독도의병대 부대장) 11.8 (목) <종합토론> 발표자 및 참가자 07:30 09:00 조식 09:00 11:30 제2차 간담회 <발 표> 독도수호시민운동 활성화 고찰 -나홍주 (독도조사연구학회 전 회장) 독도시민운동의 반성과 건전성 확보 방안 -한송본 (발명계독도개발지원운동본부 본부장) 독도시민운동 사례 -손용해 (자연보호중앙연맹 상임감사) 아카데미 하우스 (불암실) <종합토론> 발표자 및 참가자 12:00 중식 후 귀가 제 8 장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353

354 별첨 2 - 참가자 명단 순번 소 속 직 위 성 명 1 독도의병대 부대장 오윤길 2 독도의병대 총 무 윤미경 3 발명계독도개발지원운동본부 본부장 한송본 4 자연보호중앙연맹 총재 이수광 5 자연보호중앙연맹(독도를 사랑하는 모임) 상임감사 손용해 6 흥 사 단 연구자 나홍주 7 독도수호전국연대 실 장 박창우 9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 고 문 조영삼 10 독도사수대 대 표 이상훈 11 명지대학교 명예교수 김명기 12 모스크바대학교 전 객원교수 박종효 13 독도리아 대 표 안용식 14 독도 시민활동가 전 공무원 이정근 15 독도조사연구학회 전 회장 유하영 16 재경독도향우회 회 장 조대용 17 코리아독도녹색운동연합 회 장 박순종 18 코리아독도녹색운동연합 사무처장 김금숙 19 코리아독도녹색운동연합 총 무 한서정 20 한국환경미술협회(독도사랑 사무국) 위 원 이민규 21 한국환경미술협회(독도사랑 사무국) 위 원 강일구 22 한국환경미술협회(독도사랑 사무국) 위 원 남성주 25 환경종합신문 논설위원 방길남 26 이종학 독도박물관장유족회 대 표 이종호 27 동북아역사재단 실 장 배진수 28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 홍성근 합계 28명 35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55 별첨 3 가칭 독도 시민단체 포럼 구성 협의 내용 정리 제안 배경 및 경과 금번 워크숍에서 가칭 독도수호시민운동단체 포럼 구성 제안(나홍주, 독도 조사연구학회 전 회장) - 일본측의 부당한 주장에 대한 효율적 대응과 대응능력 강화를 위해 시민단체 간 협력 체제 구축의 필요성 제기 독도관련 시민단체 협력체제 구축은 일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에서도 제안된 바 있음(조영삼,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 고문) 워크숍 참석자 전원일치로 가칭 독도수호시민운동단체 포럼 (이하, 독도포럼) 구성을 위한 임시회의 개최 결의 이어, 회의 진행을 위해 임시회의 의장 및 서기 선출(참석자 전원일치) (임시의장) 안용식, 흥사단 지도위원, (서기) 박창우, 독도수호국제연대 기획실장 의결 사항 임시회의 참석자 전원을 독도포럼 발기인 자격으로 참여하기로 의결 이전에 독도포럼 구성을 위한 회의를 개최하기로 의결 - 포럼의 설립목적, 포럼 가입조건, 회장단 선출 등 논의 계획 검토의견 독도포럼 구성은 시민활동가들의 자율적 의사에 따라 발의되고 추진 - 독도포럼 회의 장소는 재단 이외의 장소인 임시의장 소속기관(흥사단)에서 개최 - 임시회의는 간담회 사회자인 재단 직원을 대신하여 참석자 중에서 임시의장을 선 출하여 진행 독도 시민단체 네트워크 추진은 민간의 비효율적이고 산발적인 기존의 대응행태로부 터 탈피하여 일본의 부당한 주장에 대한 기초한 대응능력 강화 기대 제 8 장 독도 시민활동가 포럼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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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 제9장 독도 시민협력 지원사업 Ⅰ. 한국시인협회 Ⅱ. 한국수중환경협회 Ⅲ. 역사NGO세계대회 독도특별분과 Ⅳ. 영토NGO국제포럼 Ⅴ. 역사NGO국제포럼 관련 해외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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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 Ⅰ. 한국시인협회 민족의 섬, 문화의 섬, 울릉 독도 사랑 1. 사업 개요 사업명:민족의 섬, 문화의 섬, 울릉 독도 사랑 일시 및 장소:2007년 5월 22일 25일, 울릉도/독도 참석자:한국시인협회 회원 등 30명 주 최:한국시인협회, 한국시인협회 독도지회 2. 행사 내용 문학강좌:울릉도의 주민 및 학생들을 대상으로 중앙문단의 시인 문학가들의 문학강연 강연자:오세영 시인(서울대 교수, 한국시인협회 회장), 이생진 시인, 이근배 시인(재능 대 교수), 강은교 시인(동아대 교수) 등 대 상:울릉종합고등학교(170명), 울릉중학교(64명), 우산중학교(24명), 울릉경찰서 (52명) 등 시 낭송회:독도 경비대 내에서 독도 관련 시낭송회를 계획하였으나, 높은 파도로 인해 독도에 입도하지 못하고 선상에서 시낭송회 개최 컬러 사화집 제작:행사기간 중 작성한 문학가들의 독도 관련 시, 사진, 그림, 언론기사 등 원고를 취합하여 사화집 발간 3. 성과 평가 해상의 기상 악화, 예산 부족 등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사업 수행 제 9 장 독도 시민협력 지원사업 359

360 문학계 및 국내사회에 울릉도가 살아야 독도가 산다 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언론보도:연합뉴스/한겨레신문( ), 월간 오늘의 한국(7월호) 등 문학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울릉도 지역 주민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문학강연을 실시 함으로서 울릉도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일조 컬러 사화집 독도는 낭만이 아니다 를 발간하여 독도 관련 문학의 발전 및 시민사회 의 다양하고 성숙된 독도 관련 인식 제고에 기여 36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61 Ⅱ. 한국수중환경협회 독도탐험대 독도수호바다체험 행사 1. 사업 개요 사업명:독도탐험대 독도수호바다체험 행사 일시 및 장소:2007년 6월 6일 10일, 울릉도/독도 참석자:한국수중환경협회 회원 등 30명 주 최:한국수중환경협회 2. 행사 내용 독도 바로알기 세미나:독도가 왜 우리 영토인가 에 대한 정확하고 간결한 지식전달을 위해 참석한 각계각층의 지도자와 지식인을 대상으로 미디어 및 홍보물을 통한 교육 및 의견 교환 김기옥 현 호남대 경영대학원장, 이규정 전 국회의원, 홍성제 예비역 준장, 박규신 (주)한국SHI대표이사, 정윤열 군수, 이우종 문화원장 등 참석 독도 바다 체험 행사:독도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고 해양환경 보전 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해 독도 바다체험 및 환경보전 활동 실시 어선 등에서 투기한 폐어망, 어구 등 수중폐기물 수거 3. 성과 평가 각계각층의 사회 지도층인사들이 앞장서 독도 수호 및 독도 환경보전 캠페인을 벌임 으로써 모든 한국인들이 독도를 사랑하며 바로 알도록 올바른 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일조 제 9 장 독도 시민협력 지원사업 361

362 Ⅲ. 역사NGO세계대회 독도특별분과 독도 문화축전 내 삶의 터전, 독도 1. 행사 개요 사 업 명:독도문화축전 내 삶의 터전, 독도 사업 기간: (수) 9. 16(일) 역사NGO세계대회 기간 중 개최 지원단체명:독도수호대(독도향우회 등 영토 영해 관련 단체 컨소시엄) 운영위원단체(2):독도향우회, 발명계독도개발지원운동본부 참가단체(7):재경독도향우회, 한국수중환경협회, 전국지리교사연합회 독도수호대, 독도사랑협의회,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코리아스코프 참가자:국내외 역사 및 영토관련NGO활동가, 일반 시민 등 예산총액:일금 39,800천 원 2. 행사 내용 일 시 식 순 내 용 9.12(수) 16(일) 9.15(토) 18:00 20: (일) 전시회 연 극 문화공연 전시회:아름다운 우리의 땅, 독도 - 독도를 주제로 다룬 전시회 - 장소:시청광장 앞 상설 전시장 전시회 기간 중 홍보물 및 기념품 제작 배포 연극공연:독도비 년 일본의 독도 영토편입을 주제로 한 연극 - 장소:둘로스 소극장 문화행사 - 독도 시낭송, 북춤, 자이니치독도아리랑, 판소리 등 - 장소:시청광장 앞 상설무대 36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63 3. 성과 평가 독도 관련 9개 시민단체가 독도특별분과를 구성하여 행사를 추진함으로써 국내 시민 단체 네트워크 구축의 계기 마련 - 참가단체 공동으로 전시물 기획 설치 및 관람객 안내시 참가단체 회원 및 자원 봉사자 동원 행사 중 문화공연, 홍보물 제작 배포를 통하여 일반 시민들과 해외NGO관련자들에 게 독도에 대한 올바른 인식 제고 독도 관련 문화공연을 통하여 독도가 분쟁지가 아닌 우리의 삶의 터전임을 인식시키 는데 기여 별첨 - 독도 문화축전 행사 사진 사진 1 독도 특별전시관 (외부) 사진 2 독도 특별전시관 (내부) 사진 3 독도 문화공연 사진 4 연극 공연 제 9 장 독도 시민협력 지원사업 363

364 Ⅳ. 영토NGO국제포럼 1. 행사 개요 1) 추진 목적 우리 재단 출범 1주년을 맞아 영토 영해와 관련된 국내외 인사를 초청하여 국내외 전 문인력 인프라 및 NGO네트워크 구축강화 일시: (토) 17(월) 장소:사랑의열매회관(사회복지공동 모금회) 등 주최:동북아역사재단 주관:동아시아갈등해결국제연대 참가자:200명 2. 국제심포지움 1 1) 개요 주제:영토문제와 국제갈등의 원인과 배경 일시 및 장소: (토) 14:00 16:30 / 사랑의 열매회관 발표자 Jessica Evangeline(인도네시아, ProPatria Institute 기획부장) Norihisa Fujita(일본, 소피아대학교 연구원) Hosaka Yuji(한국, 세종대 교수) Marzena Parzych(폴란드, 경상대) 나홍주(대한변호사협회 독도특별위원회 자문위원) 36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65 2) 발표내용요약 (1) 시파단-리기탄 영토분쟁의 교훈:영토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예방책 Jessia Evangeline(인도네시아) _ 국제분쟁 관련 NGO활동가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정부 주도로 진행된 시파단-리기탄섬 사건에서 패소하자 크게 실망하고 충격을 받음 시파단-리기탄섬 사건: 년간 인도네시아와 말레시아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시 파단-리기탄섬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다툰 사건으로 ICJ는 두 섬의 영유권이 말레이시아에 있 다고 판결 영토분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영토수호에 대한 국가의 분명한 의지와 그에 따른 실효적 조치들 이 필요하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함 시파단-리기탄 영토 분쟁 시파단과 리기탄을 둘러싼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간 분쟁은 섬에 대한 단순한 주권 분쟁이었다. 두 섬은 보르네오섬 북동 해안 너머 셀레베스 해상에 있으며, 두 섬 사이의 거리는 약 15.5해리이다. 리기탄은 매우 작고 영구적으로 해수면 위에 위치했으며 대부분 모래로 이루어진 영구적 무인도이다. 반면 시파단은 리기탄보다 크고 1980년대에 스쿠버 다이빙 위주의 관광 리조트로 개발되었다. 이 섬들에 대해 인도네시아는 1891년 체결된 네덜란드와 영국간의 협정과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가 수년 간 실행해 온 실효적 지배 원칙 적용을 토대로 주권을 주장했다. 역사 적 관점에서 보면 이 섬들은 여전히 인도네시아에 속한다. 인도네시아가 섬에 대한 권한을 술탄 부룽간으로부터 이어 받았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의 영유권 주장은 과거 섬의 주권자였던 술탄 술루(Sulu) 소유의 토지 재산 소 유권이 여러 차례 이전 되었다는 주장을 근거로 한다. 이 소유권이 술탄에서 스페인으로, 이 후 미국, 보르네오를 대신하여 영국과 Northern Island, 끝으로 말레이시아로 이전되었 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와 영국 정부는 모두 이 섬들에 대한 효과성 원칙을 적용해왔다. 제 9 장 독도 시민협력 지원사업 365

366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시파단-리기탄 분쟁 판결 국제사법재판소는 시파단과 리기탄 주권이 말레이시아에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ICJ는 양측 모두 1891년 협약에 대체로 의존하기 때문에 토지 소유권이 부족하다고 여겼다. 그러 나 재판관들은 국가의 주권이 협정이나 조약에서 나오는 토지 소유권에 대부분 혹은 전적 으로 의존할 수 없다고 하였다. 토지 소유권이 국제법의 규제를 받는 추상적인 권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규제를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소유권을 국내법에 명시해야 한다. 그 구체 적 명시는 실효성 원칙을 지속적으로 적용함으로써 나타난다. 또한 그 원칙 적용은 실제 실행의 형태로 뿐만 아니라 실제 권한의 표출로 현실화 된다. ICJ는 최소한 그 표출이 입 법, 행정, 준사법적 행위를 포함해야 하며 그 행위는 반드시 시간을 걸쳐 지속적으로 표출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원칙의 적용을 통해 토지 소유권은 국가의 추상적 권리일 뿐 아니라 국가 주권과 관련한 국내 및 국제 규정상의 구체적인 승인이 된다. 영토 분쟁의 평화적 해결 국제법은 이러한 분쟁 해결 방법을 몇 가지 제시한다. ICJ, ITLOS, 중재 등의 몇 가지 법 적 소송 방법이다. 그 밖의 소송 외 방법으로는 협상과 국가외교 등이 있다. 인도네시아 경험으로 볼 때 외교가 이러한 분쟁 해결의 효과적인 방안이다. 소송은 영토 분쟁 해결에 있어 국가의 역사적, 감정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고려하지 않을 것인 반면, 외교적 노력은 이러한 면을 영토 분쟁 해결에 감안하기 때문이다. 영토 분쟁의 예방책 영토 분쟁을 피하려면 국가가 자국 주권에 대한 의도와 관심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의 도 란 법적, 정치적, 기술적 의미를 포함한다. 법적 의도란 국가의 해양경계를 규제하는 국 내법 제정을 뜻하며 정치적 의도에는 국경 확립에 관해 이웃국가와의 의사소통 및 외교적 노력 확립이 포함된다. 그러나 정치적 의도에는 또한 해양경계 관련 법적 도구를 적용할 특정 정책 마련도 포함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측지학 담당 기관 등의 기술 보조로 정확하며 믿을 수 있는 국가 영토 관련 측정을 지원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의도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권한의 집행 및 표출을 담당하는 정부의 지속적 관심 이 없다면 국가 주권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제기될 수 있다. 권한의 집행은 영토 내 위반 36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67 행위에 대한 정기적 순찰 및 법집행으로 이루어진다. 권한의 표출은 도서 관광 혹은 등대 와 같은 항해 지원 시설 건축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의도 및 관심은 정부 혼자의 몫이 아니며, 특히 기술 및 권한 표출에 있어서 시민 사회 기구의 적극적 역할이 매우 필요하다. 결론 해양경계는 결코 정부의 문제가 아닌 국가의 문제이다. 시파단-리기탄 분쟁 패배는 인 도네시아 정부에 실망을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인니 정부 및 국민에게 충격 요법으로 작용 했다. 인도네시아는 군도 영유권을 주장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국 영토와 해양 및 육지 경 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국경 지대 국민의 복지에도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시 파단-리기탄 분쟁은 인도네시아 국민에게 또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주었다. 실천 없는 민족주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2) 한국과 일본의 비대칭적인 관계 극복:일본의 입장 Norihisa Fujita(일본) _ 소피아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연구원 독도논쟁은 한일간 비대칭적 관계의 산물로서 독도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음 발표자는 비대칭적 관계 를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일본은 잊고 싶은 나라이지만 잊을 수 없는 나 라이며, 일본인들에게 있어 한국은 잊지 말아야 하는 나라이지만 잊혀진 나라 라는 말로 설명 - 독도 관련 주장에서, 한국인들은 과거의 한을 극복하고 인간으로서의 자긍심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이며, 일본인들은 독도문제를 국제법이나 어업의 측면에서 바라보면서, 한국측이 지나치게 감정적이라고 비난 한일간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한일 양국에 대한 상호 이해, 독도 및 과거사 인식에 대한 양국 국민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 독도 논쟁:원인이 아닌 비대칭적인 관계의 산물 이 논쟁을 제로섬 게임 이라고 한다면 이것에 관해 논의 할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하 지만 이 논쟁이 한 일 관계 비대칭 의 상징이라는 점에 반대합니다. 제 9 장 독도 시민협력 지원사업 367

368 독도 논쟁이나 역사 해석과 같은 주요한 마찰들이 양측을 더 멀어지게 한다는 것이 일 반적인 해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들은 양측 마찰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닙니다. 이러 한 논쟁들은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비대칭적 관계의 산물입니다. 독도 논쟁을 예로 들겠습니다;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하나의 영토 문제입니다. 일 본인들이 그 섬의 권리를 주장할 때 그들의 주장은 국제법과 어업에 근거를 둡니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제가 이해하기로는, 이것은 영토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지난날의 가혹했던 경험의 상징이며 현존하는 한국인들의 강한 애국심입니다. 제게 한국인들의 주장 은 한국 국민으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긍심을 회복하기 위해 과거의 한을 극복 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보입니다. 일본인들을 때때로 한국인들이 이 문제에 있어 지나치게 감정적이라고 비난합니다. 그 렇습니다. 이는 국제법으로 볼 때 정당한 견해입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법정 판결로 소 유권을 포기 한다고 해도 일본인들이 독도에 대한 한국인들의 기억과 자긍심을 이해하지 못 한다면 두 나라간의 좋지 않은 관계는 지속 될 것입니다. 한국인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우리가 토론하고 있는 상호관계의 기반 확립으로 이어질 수 없습니다.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의 감정을 직면해야 하는데 그것은 한국인들의 한의 목 소리를 반영하며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이기 때문입니다. 양측은 같은 섬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한국인 들이 일본을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그들의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인내를 가졌음 합니다. 지진 발생시 나의 경험과 바램 저는 일본의 가장 큰 항구도시로 유명하고 1995년 겨울 큰 지진이 발생했던 고베에서 태어났습니다. 지진에 대하여 말하자면, 1923년 도쿄에 살고 있던 많은 한국인이 학살당했 던 역사가 있습니다. 고베 또한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도시입니다. 그러므로 초토화 된 도시에 서 있자면 혐오스러운 과거가 우리에게 떠오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본 것은 가족과 친구들의 소중한 삶을 빼앗기고 우리가 소유했던 모든 것을 약탈당한 현실이었습니다. 고베 사람들은 국적, 태생, 언어와 상관없이 협동하 며 이 슬픔을 극복하고 험난한 생활 조건에서 살아남고 우리 삶을 다시 재건하기 위해 서 로를 도왔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능력에 크게 감동하였습니다. 36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69 그러므로 저는 우리의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다고 100% 장담하며 양측의 관계는 인간으 로서 서로 존중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독도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한국측 요인 고찰 호사카 유지(한국) _ 세종대학교 교수 독도논쟁의 근본적 원인은 일본측이 역사적 사실을 은폐, 왜곡하는데 있는데, 한국 내에서는 이를 객관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수단이 부재 이와 관련, 독도 관련 일본 고문헌을 해석하고 논리적으로 일본측의 주장을 비판할 수 있는 노력이 요구됨. [연합뉴스 ] 日 정부, 독도 시마네현 편입 허구성 사실상 자인 (서울 연합뉴스) 김용수 편집위원 일본 정부가 1905년 단행된 독도 시마네( 島 根 ) 현 편입 조치의 불법성과 독도 고유 영토설 의 허구성을 사실상 자인했다. 일본 외무성은 1877년 메이지( 明 治 ) 정부가 독도와 울릉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다 고 확 실히 인정한 태정관 지령문 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연합뉴스의 서면 질의에 대해 현재로 서는 답변할 수 없다 고 밝혔다. 태정관 지령문이란 메이지 시대의 최고 국가기관이었던 태정관( 太 政 官, 다조칸)이 독도와 울릉도가 일본 영토인지를 조사한 뒤 1877년 3월 독도와 울릉도는 일본 영토와 관계가 없 으니 명심하라 고 내무성과 시마네현에 지시한 공문서다. 한국 학계는 이 문서를 일본 정 부가 독도를 조선 영토로 공식 인정한 결정적 사료 로 보고 있다. 외무성의 이 같은 궁색한 답변은 태정관 지령문이 사실이라면 늦어도 17세기 중반에는 일본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해 영유권을 확립했고 1905년 각의 결정을 통해 영유권을 재확인했다 는 일본의 주장은 완전히 허구가 아니냐 는 국내 학계의 지적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제 9 장 독도 시민협력 지원사업 369

370 연합뉴스는 지난 9월 중순 아소 다로( 麻 生 太 郞 ) 일본 외상과 자민, 민주, 공산, 사민, 공 명당 대표 앞으로 1905년 일본 각의의 독도 시마네현 편입 결정에 관한 질의서 를 보냈다. 주된 질의 내용은 태정관 지령문 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면 독도 영유권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문서인 태정관 지령문에 대해 지금까지 왜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는지 태정관 지령문에 따르면 17세기 중반까지는 독도 영유권을 확립했 다 는 일본정부의 주장은 허구가 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1905년 일본각의의 독도 시 마네현 편입 결정문서는 태정관 지령문을 변경시키는 문서임에도 불구하고 태정관 지령문 을 검토한 흔적이 전혀 없는데 이것이 의도적인 행위였는지, 등이었다. 질의서에는 일본 국립공문서관에 보관돼 있는 태정관 지령문 복사본(B4용지 14쪽)을 첨 부했으며 각 정당에는 태정관 지령문 내용에 대해 국회에서 정부에 질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같은 질의에 대해 일본 외무성은 수차례나 검토 중이니 조금 기다려 달라 고 계속 답변을 회피하거나 시간을 끌다가 질의서를 보낸 지 60여 일 만인 11월 13일 태정관 지 령문의 존재는 알고 있다 그 역사적 사실 등에 대해서는 지금 조사, 분석 중이어서 현 시점에서는 일본 정부 입장에서 코멘트할 수 없다 는 내용의 답변을 보내왔다. 일본정부가 태정관 지령문의 존재 사실을 공식 인정하고 이에 대해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일 양국은 1950년대 초 독도 영유권을 놓고 정부 차원에서 문서를 주 고받으며 격렬한 논쟁을 벌였지만 태정관 지령문은 거론되지 않았다. 이에 앞서 자민당은 10월 18일 자민당 차원에서 (태정관 지령문에 대해) 통일된 정식 견 해가 없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는 답변을 보류한다. 자민당 입장은 기본적으로 정부 견해에 준한다 는 답변을 보내왔다. 이와 관련해 자민당의 한 관계자는 태정관 지령문이 일본 국 내적으로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라고) 말했지 한국에 대해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 않느 냐 고 말해 태정관 지령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공산당은 9월 30일 보내온 답변에서 일본이 메이지 시대에 독도가 일본 영토와는 무관 하다고 인정한 태정관 지령문의 존재를 알고 있다.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검토해야 할 자 료가 많이 있으며 태정관 지령문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고 밝혔다. 공산당의 이 같은 답변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민주, 사민, 공명당 은 답변을 끝내 회피했다. 37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71 한국정부의 독도문제에 대한 정리된 공식견해가 외교통상부 등의 홈페이지에 없으므로 일본이 은폐행위나 왜곡을 저질러도 그것을 객관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수단이 한국 내 에 부족하다는 점. 한국이나 일본에 독도문제를 연구할 수 있는 전문가가 많지 않기 때문에 독도문제의 실 상이 무엇인가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적다는 점. 한국 내에서는 태정관 문서 등의 140년 이상 이전의 일본 공문서를 해석할 수 있는 독 도전문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일본 측의 문제가 있는 주장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잘 못 한 태도가 최근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 일본정부의 독도 관련 홈페이지를 논리적 자료적으로 반박해 일본정부로 하여금 그 기 술내용을 시정하도록 하는 본격적인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 독도전문가가 적기 때문에 실제로 독도문제를 둘러싸고 일본 측과 논의할 때 한국 측이 논리적으로 밀리는 현상이 있고 이것이 법적으로도 불리한 현상을 만들어 왔다는 점 등. 이와 같은 한국 내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 독도문제는 보다 신속히 해결로 향할 것이다. (4) 오데르-나이세 국경에 관한 폴란드-독일의 담화 사례 연구 Marzena Parzych(폴란드) _ 경상대학교 윤리교육과 독일은 1945년 이후 오데르-나이세 강을 폴란드와의 국경선으로 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였으나, 1990년 독일-폴란드 국경선으로 승인함으로써 양국간 우호 협력 관계를 증진시킴. 독일-폴란드간 우호협력 관계 증진에 있어 독일 Friedrich-Ebert재단, Friedrich Naumann재단 등 비정부기관을 비롯하여 시민사회의 역할이 컸음. 독일-폴란드 협력 오데르-나이세 국경은 본래 독일과 폴란드의 양 국민을 갈라놓으려는 것이었으므로 이 국경 주변에는 언어가 섞이지도 않았고 독일인과 폴란드인이 함께 거주하며 혼인 관계를 제 9 장 독도 시민협력 지원사업 371

372 맺는 곳도 없다. 그러나 독일과 폴란드 간 역사적 화합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과거를 이 해하고 미래를 창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는다는 의미에서 두 나 라의 이익을 위해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비정부적 기관 뿐 아니라 교육기관을 수립하는 데 막대한 노력(특히 독일 측에서)을 기울였다. 독일 Friedrich-Ebert 재단과 폴란드-독일 협력 회사는 특별한 주목을 받을 만한 두 중 요 조직이다. Friedrich-Ebert-Stiftung(FES)는 독일 최초로 민주적으로 당선된 대통령인 Friedrich Ebert 의 정치적 유산으로서, 1925년에 설립되었다. Friedrich-Ebert-Stiftung은 개도국에서의 활동이 다음에 기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국민 간과 협력국 내 평화증진과 이해 국가와 사회의 민주화를 지원하고 시민사회 강화 전반적인 정치, 경제, 사회적 조건 개선 직업별 노동조합 강화 독립적 미디어 구조 개발 국가와 서로 다른 이익집단 간 지역적, 세계적 협력 촉진과 인권을 위한 인지도 획득 이와 더불어, 재단은 서유럽, 중앙과 남동유럽, CIS 국가들과 미국, 일본 등 33개국에 사 무국을 설치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들에서 재단은 이익의 균형을 목적으로, 갈등을 해결하 고 정책을 입안하면서 민주적 세력 간의 대화를 장려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무역 조합, 정 당, 교육 연구기관, 행정과 시 지역 정부와 같은 다양한 사회적 집단, 조직과 협력한다. 유럽 동부의 개혁 아래 Friedrich-Ebert-Stiftung은 특히 노동시장, 사회적 환경적 미디 어 정책의 분야에서 민주화 과정, 시장 경제로의 전환과 시민사회 설립을 지원하는 데 참 여하고 있다. 이 재단은 EU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국가들을 지원한다. (중략) Friedrich-Ebert-Stiftung의 미래 위원회의 보고서에 의해 이러한 활동들의 내용과 방향이 결정된다. 동시에 대외, 안보 정책의 문제에 관한 정치적 학술적인 대화가 진행되고 있 다. 심포지엄, 특별 주제 대회와 토론 포럼을 통해 나온 분석과 잠재적인 해결책을 통해서 정치, 경제와 학술 분야의 더 많은 전문가들과 수많은 출판물들에 의해 관심 있는 시민들 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37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73 (5) 국제법상 독도가 한국 영토인 증거 고찰 나홍주(한국) _ 전 독도조사연구학회 회장 연합국최고사령관 훈령(SCAPIN) 제677호, 일본 명치정부의 태정관 문서(1877년) 등에 의거, 국제 법상 독도는 한국의 영토이며, 한일간 독도문제는 독도에 대한 일본의 탐욕(greed)이 원인인 바, 우리 국민들의 독도 주권수호 에 대한 단호한 결의와 일본의 행태에 대한 경계심 필요 서론 독도( 獨 島 )가 역사적, 지리적 및 그 실효적 지배(jurisdiction)상 대한민국의 영토임은 재론 을 요치 않으며, 국제법적으로도 그렇다. 여기서는 국제법적 제 증거를 검토해 보고자 한 다. 도서 분규(island disputes)에 관한 몇 가지 주요 국제재판 판례들(Minquiers and Ecrihos Islands Case, Palmas Island Case, Clipperton Island Case)을 살펴보아도, 한국의 독도만큼 국 제법적 근거가 명료한 경우를 찾아 볼 수는 없다 하겠다. 국제재판상 최선의 증거는 문서적 증거이며, 그 중에서도 정부공문서나 공공기록임을, 사계의 권위자로 알려진 미국의 샌다이퍼 교수(Professor D. V. Sandifer)는 그의 역저 1) 에서 강조하고 있다. 이런 견지에서, 독도와 관련된 국제기관의 문서적 조치 및 내외국 정부문 서와 기타 공공자료들을 중심으로, 독도가 국제법상 엄연히 한국영토란 제 증거들을 살펴 보고자 한다. 1) Durward V. Sandifer, Evidence Before International Tribunals(Charlottesville: University of Virginia Press,1975), p. 197(Importance of Documentary Evidence). p.208: Generally speaking, an official document on a public record is the best evidence of the facts on rights it purport to record and is always admissible in international as it generally is in municipal proceedings. 제 9 장 독도 시민협력 지원사업 373

374 본론 연합국최고사령관 훈령(SCAPIN) No.677( ) 2) 가. 스카핀 제677호( )의 주요 내용 (1) 제목:일본으로부터 일정한 외곽지역을 통치적 및 행정적 분리 (Governmental and Administrative Separation of Certain Outlying Areas from Japan) (2) 일본으로부터 독도 분리조치 동 훈령 3항(일본의 정의)에서,...독도를 일본범위에서 제외한다 ( excluding... Liancourt Rocks(Take Island) )고,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Korea 는 동 훈령 4항에서 일본 으로부터의 제외 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즉, 일본범위 에서 제외된 독도 는 필연적으로 Korea 에 포함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Korea 는 일본의 주권회복(1952년)에 앞서서 수립된 대한민국정 부의 영토 가 된 것이다. 동 정부는 수립 직후, 미국 및 중화민국 등 우방국 들과 유엔총회에 의하여 승인을 받게 되었다. 만일, 일부 일본인들의 주장처 럼, 스카핀 제677호( )에 의한 독도와 Korea 의 일본으로부터의 제외 조치가 잠정적인 것이었다면, 어떻게 그런 잠정조치를 근거로 대한민국 을 수립할 수 있으며, 우방국들 및 유엔총회에 의거 합법적 정부로서 승인을 받 았었을 수 있었던 것인가에 대한 합리적 및 국제법적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다. 다. 독도 제외조치 (일본 범위에서) 불변 스카핀 제677호( )에 의한 동 독도제외 조치 는 그 조치 후 변경되거나 취 소된 적이 없다. 일본은 동 독도 제외조치 를 무효화 시킬 의도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6차 초안에, 일본은...Liancourt Rocks(Takeshima)를 포함한다 ( Japan comprises...liancourt Rocks(Takeshima)) 라는 조항을 반영코자 하였으나 주로 영 연 방국가들의 반대로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만일, 동 독도 제외 조치 가 일본인들 이 해석하려고 하는 것처럼, 잠정적인 조치라고 한다면, 어찌하여 전기 제6차 초 안에 일본은...독도를 포함한다 는 조항을 일본 측이 설정하려고 했는지 그 의도 2) SCAPIN은 The Supreme Commander For the Allied Powers Instruction의 약자이며, 여기서 주의를 요하는 것은 Powers 는 군 이 아니라 국가 를 의미하는 것이다. 37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75 를 이해할 수 없다 할 것이다. 참고:전기 6차 동 수정초안(일본은...독도를 포함 한다 등)에 대한 영연방의 반대 취 지 성명(1950년 스리랑카 개최 영연방회의). 결론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것을 거증하는 국제법상 증거 가 되는 문서 등 자료는 많고 또 다양하다. 이와는 달리 일본이 독도가 자국령 이라고 주 장하는 역사적 증거는 말 할 것도 없이 국제법적 증거는 전무하다. 그들 일부 일본인들이 주장하는 소위 1905년 동해상 무주도를 일본영토로 편입조치 했다 운운 의 주장은, 앞에 서 이미 살펴 본바와 같이, 그에 앞서 일본정부 최고위직 태정관( 太 政 官 )이 공식 문서 ( )에 의거 독도 가 일본과 무관하다(즉 조선땅 임을 함축)는 것을 내무성에 시달한 내용과 상치되므로, 국제법상 금반언 원칙(the principle of estoppel)에 저촉되어, 그런 주장 은 효력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독도에 관한 한 일간 문제는 법리상의 문제라기 보다는, 일본의 독도 에 대한 탐욕 (greed)의 문제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인들이 그 탐욕을 버리지 않는한 조 금도 경계심을 늦추어서는 아니 된다. 아무리 국제법상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여러 증거가 있다손 치더라도. 국제법상 양자 간 합의는 다른 법을 우선하기 때문이다(Modus et conventio vincunt legem). 우리 한국인들은 합심 단결하여 어떠한 일부 일본인들의 책동에 도 현혹됨이 없이 독도주권수호를 위한 단호한 결의를 유지함과 동시에 그들 일본인들의 행태에 경계심을 늦추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3. 국제심포지움 2 1) 개요 주제:평화적 갈등해결을 위한 국제협력 증진과 NGO의 기여 방안 일시 및 장소: (일) 14:00 16:30 / 사랑의열매 회관 제 9 장 독도 시민협력 지원사업 375

376 발표자 Kamarulzaman Askandar(말레이시아, 평화교육센터 및 동남아분쟁연구네트워크 대표) Yu-An Rao(중국, 태평양지역개발 및 평화교육센터-PRIED 의장) 배진수(동북아역사재단 제3연구실장) Rebecca N. Mbuh(카메룬, 숙명여대 국제경영대 갈등해결전공 교수) 2) 발표내용요약 (1) 평화구축과 갈등해결에 있어서 NGO의 역할:동남아의 사례를 중심으로 Kamarulzaman Askandar(말레이시아) _ SEACSN 대표 동남아시아의 제 갈등은 그 성격, 주요요구사항, 무장투쟁의 역사 등 유사성을 가짐 - 아체문제, 민나나오문제, 남부태국문제, 캄보디아문제 등 성공적인 평화구축을 위해서는 근본적 원인에 초점을 맞추고, 상황의 특이성에 관심을 가지며, 평화구축 과정을 지속해 나가며, 고유한 재원의 동원이 필요 37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77 (2) 21세기 UN/NGO의 새로운 역사적 역할 Rao Yu-An(중국) _ 태평양지역개발 및 평화교육센터(PRIDE) 의장 UN/NGO회원들의 영향력 증대를 위해서는 지구는 하나이며, 우리는 하나라는 협력적 사고하에서 회원들에게 국제 윤리의 중요성 을 강조하고 회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기심을 극복하고 민주적 참여 방법을 정착시킬 필요 개요 NGO는 세계 여러 나라의 UN을 보조하여 그들의 활동 기반을 제공하고자 1948년 설립 되었으며, 일반 대중과 단체들이 비정부기관으로서 정부가 하는 일에 그들의 의견을 표현 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군사력 경쟁이 계속되는 곳 그리고 여러 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정부 방침을 의심하고 불신한다. 국가 간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단지 자신 들의 이익만 있을 뿐이다. 라는 말이 있다. NGO에 속하는 전세계 일반 대중과 리더들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어떻게 그들의 정부가 현재와 미래의 세대를 위하여 더 평화롭고, 정당하고, 평등하고, 지속적인 세계를 만들 수 있는 영향력을 발휘하느냐는 것이다. 또한 별들의 전쟁, 자살 폭탄 그리고 핵무기 같은 대량 폭력 없이 충돌 종결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 발표에서 셀프 트레이닝을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함 으로써 UN/NGO 회원들이 향후 그들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게 하고자 한다. 1) UN/NGO 회원들에게 국제윤리의 중요성 강조. 2) UN/NGO 의사결정 스타일을 증진시키기 위한 이 기심극복과 줄이기. 3) UN/NGO 회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민주적 참여 방법 증진. 4) 충고, 제안 그리고 결의로 통합. 서로 감싸 안는 상호보완적 관계 구축. 세계화 라는 용어를 깨 우친 사람들의 가장 큰 힘은 윤리적 가치, 정신 수양, 국제 우호 증진, 우리는 하나라는 개 념, 이해의 교류와 모든 나라 모든 세대의 통일된 행보에 달려 있다. 제 9 장 독도 시민협력 지원사업 377

378 현대 NGO의 새로운 역할 1 지구는 하나이며 자기 변화는 우리는 하나라는 생각이라는 기본 원칙에 입거한 국제 윤 리의 중요성 교육을 모든 UN/NGO회원들에게 강조한다. 협동정신 보다는 경쟁을 만들 어내는 편견과 이기적인 생각의 감옥으로부터 모든 UN/NGO회원들을 자유롭게 한다. 세세 문제와 마찰을 다루는데 있어 더 세계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NGO가 함께 일 할 수 있도록 서로를 더 잘 이해 할 수 있게 될 것이며 UN개혁과 세계 평화와 안보에 관 련한 의사결정을 내림에 있어 더욱 효율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2 UN/NGO 방식의 의사결정 방법을 증진시키기 위해 이기적인 태도를 줄이고 극복하고 자 하는 원칙 장려. 이것은 UN-NGLS와 NGOIC가 국가간 그리고 NGO회원간의 화합 을 돕고 서로 다른점을 연결시켜 주려는 노력을 보조해 줄 것이다. 또한 이것은 의사결 정의 투명성 그리고 UN/NGO회원들의 화합이 룰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3 UN/NGO회의 시 참여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법 증진과 그들의 결과가 어떻게 모니터 될 수 있으며 통일된 활동을 위한 효율적 방이 뒤따르는지. (중략) 각 나라들은 세계화를 여러 다른 입장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강국들은 그들의 주도적인 입장을 잃게 되는 것을 우려하고 후진국들은 세계화가 그들의 가치 기준과 삶의 방식을 위협할 것을 걱정한다. 몇몇 나라들은 여전히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파워 클럽에 가 입하는 중요한 조건이라고 믿고 그들의 지도자는 그러한 위치를 위하며 그의 국민들이 삶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분투한다. 우리의 과업은 우리 자신을 이 감 옥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모든 생명체와 모든 자연 안의 아름다움을 포괄할 수 있도록 넓은 마음을 갖는 것이다. 아무도 완벽히 이룰 수는 없지만 그러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 는 것 자체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그것이 우리 안의 평화의 근본이 된다 알버트 아인 슈타인-( ) 물리학자 노벨상 수상 교수. 세계화 라는 용어를 깨우친 사람들의 가장 큰 힘은 윤리적 가치, 정신 수양, 국제 우호 증진, 우리는 하나라는 개념, 이해의 교류와 모든 나라 모든 세대의 통일된 행보에서 나온다. 37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79 (3) 동북아 영토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NGO의 역할:평화 갈등해결 NGO의 국 제연대를 중심으로 배진수(한국) _ 동북아역사재단 제3실장 일본내 독도 관련 NGO활동이 부진한 것은 독도문제가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행위에서 비롯된 것임을 일부 인정하는 것임 영토/역사문제는 정부차원의 대응보다는 반전 평화NGO들간의 국제적 연대 및 정책적 연계를 통한 갈등해결이 바람직 (4) 여성과 아프리카 분쟁 해결을 위한 NGO의 역할 Rebecca N. Mbuh(카메룬) _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아프리카의 여성NGO는 용서와 화해를 도모하며, 아프리카의 평화구축을 위해 역할 증대 년 르완다 인종학살사태 이후 갈등해결과 평화정착에 기여 평화구축을 위해서는 여성의 적극적 참여와 역할이 중요하고, 여성들이 폭력이나 학살의 피해자 가 되지 않도록 사전에 분쟁을 예방하는 노력이 필요 UN안전보장이사회는 여성이 평화와 안보의 대변인으로서 모든 UN평화중재, 평화구축, 평화 유지, 인도적 활동 및 재건 노력에 여성을 포함시켜야 한다 고 결의(여성, 평화 그리고 안전 에 대한 결의안 1325, ) 제 9 장 독도 시민협력 지원사업 379

380 (5) 평화구축과 갈등예방을 위한 교육 모델:UN평화대학의 역할을 중심으로 Victor Valle(엘살바도르) _ UN평화대학 교수 UN평화대학은 인간사회에서 상호 협력 증진, 평화 공존과 이해, 관용의 정신을 증진시키기 위해 UN에 의해 1980년 코스타리카에 설립 UN평화대학의 교육은 갈등의 성격, 인간 사회에서의 차이, 인간 사회의 건강한 관계 형성 및 유 지에 관한 평화로운 방법에 대한 이해 도모를 기본 원칙으로 평화와 분쟁에 관한 교육과정 진행 3) 전문가 토론회 2회 주제:영토문제와 국제갈등에 대한 NGO활동 현황 일시 및 장소: (토), 17(월) 토론자 Victor Valle(엘살바도르, 유엔평화대학교, 평화 분쟁연구학과 학장) LI Kotetsu(일본, 北 陸 大 学 미래창조학부 교수) Richard Doweling(미국, The University of Maryland 한국분교 교수) Panta Nava Raj(네팔 NGO대표) Huseyn Aliyev(아제르바이잔) 김갑열(동아시아갈등해결국제연대 사무총장) 38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81 김영경(한국버츄프로젝트 대표, 전 시민운동정보센터 소장) 이부균(한국독도연구원 원장) 4) 성과 평가 국내외 평화 영토 관련 NGO대표 및 전문가 22명이 발표 토론자로 참석한 대규모 행사로서 향후 독도 관련 국제적 NGO네트워크 구축 및 국제적 연대의 기반 마련 -해외 초청자 Victor Valle(엘살바도르, UN평화대학 교수) 등 5개국 6명 -재외국인 Rebecca N. Mbuh(카메룬, 숙명여대 교수) 등 5개국 5명 -호사카 유지(한국, 세종대 교수) 등 국내 전문가 6명 해외 참가자들에게 독도가 20세기 초 일본의 한반도 침략 과정에서 비롯되었다고 하 는 독도문제의 근본 원인과 배경, 나아가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올바로 이해시킬 수 있는 계기 마련 4. 행사 이모조모 환영만찬 전경 환영만찬장에서 심포지엄 전경 심포지움 후 단체사진 제 9 장 독도 시민협력 지원사업 381

382 DMZ 방문차 안에서 전문가 워크숍에서의 Dr. Victor Valle 퍼포먼스 공연 환송만찬 전경 환송만찬에서의 Dr. Rebecca N. Mbuh 환송만찬에서 즐거운 한때 38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83 Ⅴ. 역사NGO국제포럼 관련 해외언론보도 Malaya SATURDAY SEPTEMBER 22, 2007 PHILIPPINES Europe moved forward but Asia continued as a prisoner of the war. History and democracy in Asia Prof. Bernard Magno Karganilla Chairman Social Sciences Department College of Arts and Sciences 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Manila On the 35th anniversary of the Marcos declaration of martial law and the Sakay Centennial, we offer some findings from the 1st International Conference of History- related NGOs held September 14-16, 2007 in South Korea. 1. Barry A. Fisher, Fleishman & Fisher, Los Angeles, USA: As the 20th century ended and a new millennium began, Japan s wartime allies, Austria and newly-unified Germany, along with Holocaust-profiting Swiss banks, settled remaining victim claims for some seven billion dollars, with full acknowledgment and apologies, making efforts to close the book on their stained past. Europe moved forward but Asia continued as a prisoner of the war. Korea s division of Soviet and American creation remained, and Japan still refused even to consider, much less settle, the 제 9 장 독도 시민협력 지원사업 383

384 claims of the victims of its wartime atrocities, instead dragging its last century of horror into the new one... Japan has seemingly paid no price, receiving no criticism from its most important ally the US for failing to come to terms with its past. The United States may have been able to exert leverage in this area, but has not done so. 2. Utsumi Aiko, Keisen University:The Japanese were never prepared to accept prisoners of war. They divided the POWs into two, Asians(170,000) and white men (120,000). Since it was difficult to feed the POWs three times a day, the Japanese used them as unpaid labor. The Japanese also conscripted the youths of Korea and Taiwan as laborers and prison guards. After the war, there were trials in the Allied countries where 148 Koreans and 173 Taiwanese were judged as war criminals. The Allies adjudicated the conscripted Koreans as Japanese, and Japan s colonization of Korea was not considered as a problem in the Tokyo trials nor in the trials of Class B and Class C war criminals. 3. Koichi Ikeda:I am a war veteran who survived as a Siberian detainee. I was forced to work for two years in Manchuria and for three years as a captive of the Soviet Union. I want to appeal that the Japanese government should pay the wages and damages for our forced labor during the post-war period. The most painful thing in this matter is that of my country s cruelty and heartlessness. We are fighting against our own country. This is more shameful and painful than our suffering in Siberia. But we want to clear our country s old responsibilities that were neglected for 62 years since the war. Furthermore, we try to exert ourselves to make humble admittance of past conduct and reimbursement against the Pacific War as the new Japanese policy and the foundation stone for East Asian peace. 4. Kwak Kwi-hun, Association of Korean Victims of the Atomic Bombings: Mitsubishi forced Koreans to work in its shipyards in Hiroshima and Nagasaki and the company is also responsible for these Koreans getting injured by the atomic bombs...how can we forgive a company like this? 38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85 In addition to the testimonies of the World War II survivors and the analyses of Japan s obligations, the history conference was bolstered by a coincident international symposium on Peaceful Resolution of Territorial Issues and International Conflict held at the Community Chest Foundation office in Seoul. Here are selected summaries. 1. Jessica Evangeline, ProPatria Institute, Indonesia:The dispute between Indonesia and Malaysia concerning the islands of Sipadan and Ligitan were merely a dispute of sovereignty over the islands, which are located in Celebes Sea, off the northeast coast of the island of Borneo. The dispute was submitted to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for resolution. The ICJ decided that the sovereignty of Sipadan-Ligitan belongs to Malaysia...The loss was a shock therapy for the Indonesian government and people. The nation learned that it should be attentive to their territory, maritime and land boundaries as well as to the welfare of the people in the surroundings. The Sipadan-Ligitan case also taught the Indonesians that nationalism without action is simply nothing. 2. Norihisa Fujita, Sophia University:The largest problem between Japan and Korea lies in the asymmetric nature of their bilateral relationship. Japanese should face more with Koreans in order to understand Koreans emotions. For the Koreans, Japan is a country that they want to forget but cannot forget. To the Japanese, Korea is a country that should not be forgotten but they have forgotten. When the Japanese claim sovereignty over the Dokdo Islands, their claim is based on international law (and fish). But to Koreans, in my understanding, it is not just a territorial issue, but the symbol of the harsh experiences of the past and the existing goal of Korean resilient nationalism. I hope that Koreans are patient enough to explain their emotions. 3. Nah Hong-ju, ex-president, Dokdo Research Society:It is the indisputable fact that the Dokdo Islets are Korean territory in light of historic, geographic and effective jurisdictional aspects as well as in international law. Therefore, Koreans hardly 제 9 장 독도 시민협력 지원사업 385

386 accept any existence of territorial dispute over the islets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Japan...We, Koreans, however, should always be careful about those greedy Japanese, though they are in the minority, particularly of their activities, selling something similar to condominium over the islets, until they give up completely their illegal, unreasonable and futile greed for Dokdo. 4. Huseyn Aliyev, Graduate Institute of Peace Studies, Kyung Hee University: I come from a country that is officially in a state of war for the last 19 years. This is an example of ethnic conflict in the post-soviet era-the Nagorno-Karabakh War, or armed conflict between Azerbaijan and Armenia. It started in 1988 as a dispute over the mountainous enclave located in the South Caucasus on the territory of Azerbaijan Republic. The enclave is inhabited by ethnic Armenians, constituting 60 percent of its population, and ethnic Azeris, composing around 20 percent of its population. The enclave s parliament voted in favor of uniting itself with Armenia and the majority in a referendum of the Karabakh Armenians voted in favor of independence. The demand to unify with Armenia, proliferating in the 1980s, began relatively peacefully, however, as the Soviet Union s disintegration neared, it gradually grew into a violent conflict between the two ethnic groups, resulting in claims of ethnic cleansing by all sides. Full-scale fighting erupted in the late winter of A series of Armenian offensives, backed by Russian armed forces, resulted in the Armenian occupation of Nagorno-Karabakh. International mediation failed to end the fighting, and in the spring of 1993, the Armenians captured regions outside of the enclave. When Russian-brokered ceasefire was signed in May 1994, the Armenians were in full control of not only the enclave but also of 9 percent of Azerbaijan s territory outside of Nagorno-Karabakh. No peace treaty was ever signed and daily fire exchanges in border confrontations cause casualties to both sides. On the heels of the Seoul symposia was the Second Biennial Conference of the World Forum for Democratization in Asia held September 19-21, 2007 in Manila. 38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87 Much of Asia had placed economic growth as the top priority, but it has become clear that without political development, economic growth cannot deliver true human development. Hence, the WFDA was launched as an effective region-wide forum to discuss and coordinate the promotion of democracy. In October 2004, the Taiwanese Foundation for Democracy initiated the formation of an international steering committee composed of the Alliance for Reform and Democracy in Asia, the Alternative Asean Network on Burma, the Forum Asia Democracy, and the Initiatives for International Dialogue of the Philippines that hosted the gathering. At the WFDA conference, a video presentation of Thich Quang Do, deputy head, Unified Buddhist Church of Vietnam, reported that there is no social freedom in his country, appealing for the right to vote in order to institute a government of their choice. Sam Rainsy, who founded the first opposition party in Cambodia in recent history, listed the three conditions needed for real democracy: a vibrant and real opposition, an independent court and transparent elections. One last report. In collaboration with progressive local governments and Filipino artists, the Constantino Foundation initiated the making of murals of Macario Sakay and Lean Alejandro at the Ospital ng Makati at Pembo and at the San Juan City Hall, respectively. It hopes to start a national trend to reclaim public space and transform these into visual tools for social emancipation. 제 9 장 독도 시민협력 지원사업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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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 제10장 시민단체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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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 대한민국 독도의용수비대 가족협의회 단체명 주 소 및 연 락 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한 글 한 자 영 문 대한민국 독도의용수비대 가족협의회 大 韓 民 國 獨 島 義 勇 守 備 隊 家 族 協 議 會 주 소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 전 화 FAX 홈페이지 독도의용수비대 33인의 역사적 의의와 활동을 계승하여 그 명예를 선양하고 후세에 기리기 위한 제반활동 및 회원 상호간 친목도모 2005년 8월15일 발기인 모임 (독도의용수비대원 33인의 대원 또는 유족대표) 2005년 9월 5일 창립총회 개최 (회장 유병태, 부회장 1, 이사 6, 감사 1명 선출) 대표자 : 유 병태 회원수 : 21명 사무국 직원수 : 1명 회장 기구현황 부회장 총무이사 이사 이사 이사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 적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예산총액 : 천원 재원구성( %) : 회비수입( %), 기부금 및 모금활동( %) 군비보조( %), 사업수익( %), 기타( %) 해양수산부 주관 독도해맞이행사 참여 정동영 열린우리당의장 독도방문 초청 동행 독도탐방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의 활동 발자취 찾기 제 10 장 시민단체 현황 391

392 대한민국 독도향우회 한 글 대한민국 독도향우회 단체명 한 자 大 韓 民 國 獨 島 鄕 友 會 영 문 주 소 서울시 중랑구 상봉동 주 소 및 연 락 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전 화 02) FAX 02) 홈페이지 dokdori.co.kr 독도 호적 갖기 운동을 통해 애국심 고취와 민족의식을 고취키 위함 민족의 성지 탑골공원에서 창립대회 2000 현재까지 매년 4 5차례의 각종 일 규탄대회 및 기념행사 개최 역사적인 대한민국 독도리 이장선거(초대이장 최재익) , 일 시마네현 방문 독도의 날 철회촉구. 할복기도 및 혈서항의 대표자 : 최재익 회원수 : 3500여 명 사무국 직원수 : 회장 기구현황 부회장단 지도위원 대외협력국 사무국 국제국 2006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2007 주요사업 계 획 예산총액 : 천원 재원구성( %) : 회비수입( %), 기부금 및 모금활동( %) 군비보조( %), 사업수익( %), 기타( %) 독도의 날 행사 저지차 일 시마네현 항의방문 (혈서 항의행진) 日 고무라의원과 환담(한국의 독도 영유권 및 새로운 역사인식 공유) 3.1절 및 8.15광복절 기념행사. 독도수호 결의대회 독도사랑 전국 웅변대회 日 야당 정치지도자 면담(올바른 역사인식을 통한 日 정부의 억지논리 반대촉구) 시마네현 방문 3.1절 및 8.15광복절 기념행사. 독도수호 결의대회 독도사랑 전국 웅변대회 및 세미나 개최 39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93 독도 간도교육센터 한 글 독도 간도교육센터 단체명 한 자 獨 島 間 島 敎 育 센터 영 문 Dokdo & Gando Educational Institute 주 소 및 연 락 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주 소 (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부호리 33번지 경일대학교 3호관 117호 독도 간도교육센터 전 화 053) FAX 053) 홈페이지 본 교육센터는 독도와 간도에 대한 각종 연구결과 및 동향을 일반 시민들에게 지속적으 로 교육함으로써 독도와 간도에 대한 국민공감대를 형성하여, 독도 및 간도문제에 효율 적으로 대처하는데 개설 목적이 있음 2006년 3월 7일 경일대학교 부동산지적학과 독도론 강좌개설 2006년 9월 7일 경일대학교 부동산지적학과 간도론 강좌개설 2007년 3월 27일 독도 간도교육센터 개설 대표자 : 이범관 교수(독도 간도교육센터장) 회원수 : 사무국 직원수 : 6명(2007년 5월 7일 현재) 조직 및 인력구성 경일대학교 총장 기구현황 사회과학연구소장 독도ㆍ간도교육센터장 연구팀 교육팀 홍보팀 자료팀 재정/서무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 적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예산총액 : 30,000천 원 재원구성(100%) : 회비수입( %), 기부금 및 모금활동( %) 군비보조( %), 사업수익( %), 기타( 100%) 경일대학교 부동산지적학과 국내 최초 독도론, 간도론 개설(2006년 3월, 9월) 대구은행 임직원 및 사이버독도지점 고객 대상 독도 현지교육(2006년 5월 18~20일) 대구지역 고3학생을 대상으로 한 독도교육(2006년 11월~12월) 독립기념관 독도의병대 회원에 대한 독도교육(2006년 8월 14~15일) 대구 경북지역 고3학생을 대상으로 한 독도교육(연중) 대구은행 임직원 및 고객 대상 독도교육(연중) 독도 간도 시민강좌를 통한 독도 간도교육(연중) 독도 간도 교육자 양성과정 실시(연중) 제 10 장 시민단체 현황 393

394 독도를 사랑하는 모임 한 글 독도를 사랑하는 모임 단체명 한 자 영 문 주 소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5가 526 대우재단빌딩15층 주 소 및 연 락 처 전 화 02) FAX 02) 홈페이지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온 국민의 관심사인 독도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고 독도 수호의지를 다짐하고 국민 의 경각심을 고취하며 독도의 자연을 잘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주고자 함 2002년 5월 창립 대표자 : 이수광 회장 회원수 : 1,230명 사무국 직원수 : 2명 기구현황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 적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예산총액 : 천원 재원구성( %) : 회비수입( %), 기부금 및 모금활동( %) 군비보조( %), 사업수익( %), 기타( %) 독도의 자연환경과 역사 강의 독도탐방사업 독도의 자연환경과 역사 강의 독도탐방사업 39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95 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 한 글 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 (독문운) 단체명 한 자 獨 島 文 化 심기 運 動 本 部 ( 獨 文 運 ) 영 문 주 소 및 연 락 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주 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전 화 02) FAX 02)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홈페이지 이종상 / 일랑 / 일랑미술관 독도에 문화를 심어 실효적 점유를 공고히 함을 목적으로 한다. 지도의 모체가 진경 산수임을 자각, 1977년 최초의 화가로 독도에 입도 진경제작. 1977년부터 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를 조직, NGO활동으로 독도전시, 국제전 홍보 서울대학교박물관 중심으로 역사와 의식 <독도진경전> 개최, 순회강연. 전국 60인의 독도문화의병 조직. 전국 6회 순회전 18여 만 명 관람, 독도박물관 전시 중 대표자 : 이종상(대한민국예술원회원/서울대학교명예교수/상명대학교 석좌교수) 회원수 : 전국 7개 시도지구 60명 문화의병 외 일반회원 234명 사무국 직원수 : 직원 9명, 운영위원 8명, 자문위원 6명 고문 3명 본부장 : 이종상 기구현황 운영위원 사무국 문화의병대 총무팀 재무팀/기획팀 홍보팀/진행팀 2006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2007 주요사업 계 획 예산총액 : 1억 1천 300만원 재원구성(%) : 회비수입(40 %), 기부금 및 모금활동(50 %) 군비보조( 0 %), 사업수익(0 %), 기타(10 %) 1월 제2회 전국순회전 고양시 초대 독도진경전 / 독도 부채전 / 일본 동경 스카 프전 4월 제3회 전국순회전 경북도 초대 독도진경전 / 5월 제4회 충북 청원미술관 초 대전 9월 제5회 전국순회전 전북도 초대 독도진경전 / 독립기념관 초대 독도사랑 30년전 10월 제6회 전국순회전 울릉도 초대 독도박물관 특별전 독도소재 생활용품 문화상품 개발 및 독도 소재 생활도자기전 독도 판화집 제작, 홍보용 독도 카렌더 제작 독도문화재단 설립 추진. 독도문화제창설, 해돋이문화축제 행사기획 미술, 문학, 무용, 음악, 연극 제 10 장 시민단체 현황 395

396 독도사랑협의회 한 글 독도사랑협의회 단체명 한 자 영 문 The Assoication of Dokdo Sarang 주 소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4동 신동아파밀리에 101동 402호 주 소 및 연 락 처 전 화 031) FAX 홈페이지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나라사랑, 환경사랑, 독도사랑 2001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설립. 대표자 : 박정순 회원수 : 30명 사무국 직원수 : 한국본부 기구현황 북미지부 미동부 유럽 미서부 서경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 적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예산총액 : 천원 재원구성( %) : 회비수입( %), 기부금 및 모금활동( %) 군비보조( %), 사업수익( %), 기타( %) 수정 문화센터 어린이 독도사랑 연극 성남시민회관 독도사랑 영어, 스피치 및 연극 독도에 관한 백문 백답 출판 계획 사화집및 독도 홍보 39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97 독도수호국제연대 한 글 독도수호국제연대 단체명 한 자 영 문 주 소 및 연 락 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주 소 서울시 종로구 적선동 156 광화문 플래티넘 빌딩 604호 전 화 02) ~20 FAX 02) 홈페이지 독도수호 국제 인력양성을 위한 교육 사업 독도 및 동해 표기 오류 시정을 위한 국제 네트워크 구축 사업 2006년 9월 28일 비영리민간단체 등록 2006년 11월 13일 창립식 인력현황 대표자 : 고창근 회원수 : 135명 발기인 사무국 직원수 : 3명 총 회 상임고문단 상임공동의장 기구현황 독도오류표기시정팀 집행운영위원회 독도아카데미 재 정 정책기획 대학특위 홍보기획 대외협력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 적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예산총액 : 180백만 원 재원구성(100%) : 회비수입(30%), 기부금 및 모금활동(50%) 정부보조(0%), 사업수익(0%), 기타(20%) 2006년 11월에 단체 설립(창립)하여 2006년 활동은 내부역량 강화 및 System 구축에 주력함. 독도수호사관생도 육성을 위한 독도 아카데미 운영 사업 독도 / 동해 표기오류시정을 위한 해외현지 네트워크 및 실행사업 독립기념관과 독도 축소 조형물 건립 공동사업(독립기념관 내 설치) 세계 스킨스쿠버다이빙 연맹총회 독도 유치 준비 제 10 장 시민단체 현황 397

398 독도수호대 단체명 주 소 및 연 락 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한 글 독도수호대 한 자 獨 島 守 護 隊 영 문 A Party for Tokdo Protection 주 소 서울시 종로구 계동 133-6번지 2층 전 화 02) FAX 02) [email protected] 홈페이지 독도에 대한 역사적 자료와 객관적 근거로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국내외에 알린다. 감정 에 치우친 극단적 주장으로 일본이 아닌 정부와 국민의 대립으로 변질된 독도문제를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알림으로서 올바른 독도인식을 형성하기 위한 활동을 한다 독도수호대 창립 울릉도-독도 뗏목 탐사(독도입도) 일본대사관 앞 1인시위(100회, ~9.6) 04.8 독도의용수비대창설 50주년 기념식 및 초청행사(국회) 04.9 독도의용수비대동지회 사무국 담당, 업무 시작 05.5 독도 영상물(DVD,국어,영어), 독도자료집, CD발행 일본어 자료집 및 홈페이지 제작 07.2 일본내 공동행동 네트웍 구성 관련 방문 활동 인력현황 대표자 : 김점구 회원수 : 2,500명 사무국 직원수 : 3명(비상근 1명) 총 회 기구현황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 적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감 사 운영위원회 사무처(국) 예산총액 : 천원 재원구성( %) : 회비수입( %), 기부금 및 모금활동( %) 군비보조( %), 사업수익( %), 기타( %) 지역조직본부 일본어 자료집 및 홈페이지 제작 배포 일본방문활동-공동행동 네트웍 구성을 위한 관련단체 방문 및 자료배포 시마네현 오키섬 조사(시마네현에서 전시중인 독도돌 최초 발견 국내소개) 독도의용수비대 관련사업-증언 청취, 자료조사(78년 경찰청보고서 발굴 소개) 독도의용수비대 생존대원 및 가족 초청 울릉도 독도탐방 행사 독도의용수비대지원법 조속시행을 위한 대정부활동 독도의용수비대 진실규명 활동(감사원감사청구, 감사종료) 독일지부, 베델스만 지도책(Der grossere Welt Atlas)의 독도 표기 방법 개선 변경전 : Tokdo Take Shima(J) 변경후 : Dokdo(Takeshima) (Admin by South Korea Claimed by Japan) 2월, 일본 방문활동(도쿄, 시마네현, 돗토리현) -공동행동 네트웍 구성관련 방문활동(공동대응 가능성 타진 및 자료집전달) -시마네현 : 다케시마의날 행사 참관, 행사장내 기자단에 자료집 배포 현황조사 및 자료집 배포(어민 및 수산청 관계자) 독도입도 어민 면담 녹취(당시 독도 상황, 강치잡이 상황 등) -돗토리현 : 안용복 도일 활동 주요 장소 답사, 현청 방문(자료집 전달) 계획-독도의용수비대지원법 조속시행을 위한 국회 및 대정부 활동 -독도의용수비대 진실규명 사업 및 독도의용수비대 활동 백서 발간(예정) -안용복프로젝트-일본 등 해외 네트워크 구성 기반 조성 사업 39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399 독도수호전국연대 한 글 독도수호전국연대 단체명 한 자 獨 島 守 護 全 國 連 帶 영 문 주 소 및 연 락 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주 소 서울시 중랑구 상봉동 전 화 02) FAX 02) 홈페이지 dokdori.co.kr 독도관련단체들의 협의체로서 중요 현안문제에 공동 대처를 위해 설립 종로구 한일관에서 14개 독도관련단체 대표 간담회 종로구 한일관에서 독도수호전국연대 초대 대표의장 선출(신용하교수) 광복절기념 독도수호 전 국민대회 세종문화회관에서 제2대 대표의장으로 최재익회장 선출 대표자 : 최재익 회원수 : 15개 단체 사무국 직원수 : 2명 대표의장 기구현황 공동의장단 자문위원 대회협력국 사무국 홍보국 2006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2007 주요사업 계 획 예산총액 : 천원 재원구성( %) : 회비수입( %), 기부금 및 모금활동( %) 군비보조( %), 사업수익( %), 기타( %) 일 시마네현 방문 3.1절 기념행사 8.15광복절 행사 독도학회와 공동으로 독도영유권 학술행사 日 정치 지도자와의 역사왜곡과 독도문제 간담회 3.1절 기념행사 8.15광복절 행사 독도관련단체 세미나 제 10 장 시민단체 현황 399

400 독도 어울림 한 글 독도 어울림 단체명 한 자 영 문 주 소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주 소 및 연 락 처 전 화 02) FAX 02) 홈페이지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독도 어울림은 연구. 홍보 등 제반 활동을 통해 독도를 둘러싼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고, 독도를 지키고 가꾸는데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2003년 3월 1일 설립. 2005년 6월 8일 독도 폭격사건 희생자 위령제(제1회) 2006년 6월 8일 독도 폭격사건 희생자 위령제(제2회) 및 독도환경정화활동 대표자 : 류진촌(경북대 교수), 이예균 공동대표 회원수 : 100명 사무국 : 직원 1명 기구현황 공동대표 상임대표 운영위원회 학술위원회 사무국 자문위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 적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예산총액 재원구성( %) : 회비수입( %), 기부금 및 특별회비( %) 독도폭격사건 진상규명 백서발간을 위한 자료수집 발해 1300호 기념사업을 위한 사전조사 홈페이지 작성을 위한 자료 정리 (홈페이지 dokdonet.com) 독도폭격 진상규명백서 발간 발해 1300호 기념사업 전개 독도 탐사대 운영 독도문제관련 세미나 40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401 독도연구보존협회 한 글 독도연구보존협회 단체명 한 자 獨 島 硏 究 保 存 協 會 영 문 주 소 및 연 락 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주 소 서울시 송파구 신천동11-6 수협중앙회4층 독도연구보존협회 전 화 02) FAX 02) 홈페이지 본 협회는 독도의 한국 영유권에 대해 연구와 홍보를 하고 일본측 주장의 허구성을 분석 비판하며, 독도의 역사적 정치적 국제법적.해양과학적.수산학적.중요성을 국내외 에 널리 알리며 독도의 보존 이용에 대한 범국민적 관심을 확대시키고자 하는 목적임. 1996년 3월1일 창립. 1996년 초대회장 신용하회장님 취임. 2005년 김학준 회장님 취임. 대표자 : 김학준 회원수 : 19명(단체 및 전문가) 사무국 : 직원 2명 회 장 기구현황 부회장 부회장 간사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 적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예산총액 30000원 재원구성(100 %) : 회비수입( %), 기부금 및 특별회비(100 %)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 에 대한 성명서 발표 독도에 대한 심포지엄 매년 개최 우리땅 독도이야기 번역사업 각계 독도 행사에 대한 학술 지원 독도에 대한 심포지엄 제반 학술에 대한 지원 대국민 독도에 대한 알리기 활동 제 10 장 시민단체 현황 401

402 독도의병대 단체명 주 소 및 연 락 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한 글 독도의병대 한 자 獨 島 義 兵 隊 영 문 dokdoyobyeongday 주 소 경북 구미시 고아읍 오로리 전 화 054) FAX 054) 홈페이지 o-dokdo.com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에게 독도 소중함을 일깨우고 다 같이 독도 사랑에 참 여하도록 한다. 2000년 구미 낙동강 4만평의 둔치에 3000평 우리나라 지도와 독도모형을 만들고 유 채꽃밭 국토 체험장을 만드는 중에 독도의 어려움을 처음 알게 됨 2001년 독도 지키기 1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해서 전 광역시, 전 도청 해외 교포들 이 참여한 가운데 200만인 달성함 독립기념관 겨레의집에서 개최된 5회 대회 전국 독도사랑 작품 공모대 회 시상식에는 수상자 가족, 애국지사 후손들이 1500여명 참여한 가운데 진행됨 대표자 : 윤상현 회원 수 : 2000여 명 사무국 직원 수 : 4명 기구현황 부대장 대장 총무 전국 시도 지부장 2006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2007 주요사업 계 획 예산총액 : 50000천 원 독도의병대는 회비, 보조금, 받지 않고 공금 조성, 하지 않으 나 매 대회마다 전국의 의병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모든 행사가 치러지고 있음 한민족 독도사랑 국회 대회(장소-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 독도사랑 캠프(독립기념관 야영장) 제5회 전국 독도사랑 작품 공모대회 시상식(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월 중 유채꽃밭 국토 체험장 유채 씨앗 파종 유채꽃밭 국토 체험장 활성화 한민족 독도사랑 국회 발표회 개최 독도 작품 전시-( 일 간) 독도 시화, 독도 도자기, 독도 서각, 독도 연, 독도 사진 전시 제6회 전국 독도사랑 작품 공모대회 실시 수상자 전원(최우수 의병상, 우수상, 장려상) 울릉도, 독도 탐방 행사 40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403 독도의용수비대동지회 한 글 독도의용수비대동지회 단체명 한 자 獨 島 義 勇 守 護 隊 同 志 會 영 문 주 소 서울시 종로구 계동 133-6번지 2층 주 소 및 연 락 처 전 화 02) FAX 02) 홈페이지 설립목적 독도의용수비대의 역사적 의의와 활동을 계승하여 독도를 지키고 알리는 활동. 회원상호간의 친목과 복리증진. 단체연혁 창립 인력현황 대표자 : 서기종 회원수 : 사무국 직원수 : 1명 총 회 기구현황 회장단 사무처(국)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 적 예산총액 : 천원 재원구성( %) : 회비수입( %), 기부금 및 모금활동( %) 군비보조( %), 사업수익( %), 기타( %) 독도의용수비대 진실 규명 사업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울릉도-독도탐방 행사 독도 바로 알리기 사업(홍보책자 발간) 5월 5일 총회에서 장학사업등 사업계획 논의 예정 제 10 장 시민단체 현황 403

404 독도향우회 한 글 독도향우회 단체명 한 자 영 문 주 소 및 연 락 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주 소 춘천시 동내면 거두리 독도빌딩 7층 전 화 033) FAX 033) 홈페이지 독도의 실질적 이익과 독도수호 2000년 2월10일 독도향우회 창립 (한국일보 송현클럽) 2000년 4월 7일 독도리 명칭 확정 (동년 1월11일 울릉군청 청원) 2000년 7월10일 독도공시지가 확정 (동년 1월11일 울릉군청 청원) 2000년 9월27일 독도의용수비대원등보상특별법 제정 청원 (정무위원회) 2003년 1월 3일 독도우편번호 확정 (체신청 청원) 독도는 우리 땅 등 다수의 책 출판 대표자 : 김해일 회원수 : 약 2천 명 사무국 직원수 : 2명 독도향우회 기구현황 부회장 고문 각 지부장 사무총장 감사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 적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예산총액 : 오천만원 ( 50,000,000-) 재원구성(100%) : 회비수입(0%), 기부금 및 모금활동(0%) 군비보조(0%),사업수익(0%), 기타(100%) 2006년 2월22일 시마네현 현지 독도(죽도)의 날 규탄집행(5명 참석) 미국 L.A 독도전시회(1/2 2/19, 8/13 26) 일본인학교독도전시회(3/25 4/1) 독도향우회원 독도입도 추진 독도의 태양력, 풍력, 화력의 복합발전 추진 국내 독도 전시회 및 해외전시회 개최 및 독도향우회원들의 독도방문 추진 독도의 월간지 발행 예정 40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405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한 글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단체명 한 자 東 ASIA 平 和 問 題 硏 究 所 영 문 Institute for East Asia Peace Studies 주 소 및 연락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주 소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호 전 화 02) FAX 02) 홈페이지 본 연구소는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역학관계를 심층 분석하고, 현재 이 지역에서 대 두되고 있는 제반 현안들(다자안보협력체제 구축문제, 동북공정문제를 비롯한 역사서 술 문제, 한반도의 통일문제, 지역 내의 육상 및 해상네트워크 형성 등 경제협력문 제, 분쟁도서에 관련된 영토문제, 한류의 확산을 포함한 문화교류문제 등)에 대한 연 구를 목적으로 설립된 순수 학술연구기관임 2006년 1월 9일 창립 2006년 1월 23일 사단법인 설립허가 대표자 : 이재형 회원수 : 187명 사무국 직원수 : 2명 조직 및 인력구성 이사회 기구현황 자문위원 감사 연구부 번역부 사무국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 적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독도문제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우리의 대응전략-세미나 실시 2006년 국방부 용역(북중의 군사관계와 우리의 대응전략)수행 2007년 3월20일 한국-몽골 국가연합의 가능성분석 세미나 실시 2007년 6월-9월 병무청 용역추진 중(대체복무자등 자원관리 일원화 방안연구) 2007년 5월-9월 동북아역사재단 용역<독도체험 전시관 운영>추진 제 10 장 시민단체 현황 405

406 발명계독도개발지원운동본부 한 글 발명계독도개발지원운동본부 단체명 주 소 및 연 락 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한 자 發 明 界 獨 島 開 發 支 援 運 動 本 部 영 문 dokdocaptain 주 소 서울시 종로구 와룡동 전 화 02) FAX 홈페이지 dokdocaptain.com 1996년 일본외상의 망언으로 영토주권의 보호차원으로 천연자원의 보고인 독도의 현지지형에 적절한 공법을 적용 자연을 보존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자유로이 독도에 접근 한민족의 단결된 애국심을 고취 克 日 運 動 의 기점을 마련하고자함. 1996년 3월 발명계독도개발지원운동시작(경실연 강당에서 성명서발표 및 가두행진) 1996년 독도개발특별법제정 전국서명운동 6만 명 1997년 독도연구보존협회 창설참여 및 이사단체로 선임 1998년 국회 윤한도의원과 독도개발특별법제정 공동추진 1999년 특별법관련 자료조사 일본방문 2004년 독도특별법관련 공청회참여 2005년 국회의원25인의 자금지원으로 독도의용수대 홍순칠대장 동상제작 대표자 : 한송본 회원수 : 400여 명 사무국 직원수 : 1명 대 표 기구현황 국제수상발명가협회 원로자문단 기술 총무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 적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예산총액 : 천원 재원구성( %) : 회비수입( %), 기부금 및 모금활동( %) 군비보조( %), 사업수익( %), 기타( %) 정부 각 부처에 독도의용수비대 홍순칠대장 동상설치 4차 청원 한민족의 구심점으로 독도를 알려 극일 운동 전개 관련단체와 연합 영토의 중요성 및 보존을 위한 수단 마련 정부 각 부처에 독도의용수비대 홍순칠대장 동상설치 재청원 한민족의 구심점으로 독도를 알려 극일 운동 전개 관련단체와 연합 영토의 중요성 및 보존을 위한 수단 마련 40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407 사단법인 동북아우의연맹(FAFA) 단체명 주 소 및 연락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한 글 사단법인 동북아우의연맹(FAFA) 한 자 Far east Asia Fraternity Association 영 문 서울시 마포구 도화동 555 한화오벨리스크 오피스 3316호(우 ) 전화 : 0505) , 02) 협력사업담당 : 김 봉 종 FAX : 0505) , 02) [email protected] 인터넷 홈페이지 : com / wekorean.net 이기는 것보다 친구가 되는 것이 더 좋다 는 모토로 한국에 영향을 미치는 미국 및 동북아지역 국가의 주요 인사들과 실질적 친선우의관계를 확대, 친한화하고 국가이미 지를 제고하여 국익에 이바지하는 활동 동북아연맹우의연합 창립(중국 창춘시/한국, 중국 참석) 동북아우의포럼 (한국 프레지던트호텔/한 중 러 참석) 동북아우의포럼(한국 마포) 일본 거류민단청년회, ONE ASIA 클럽 방한 우의협력(한국 4일) 대표자 : 김충조 회원수 : 468 사무국 직원 수 : 3명 기구현황 및 운영실적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추진실적 2007 주요사업 계 획 예산총액 : 43,720만 원 재원구성(100%) : 회비수입(10%), 기부금 및 모금활동(23%) 정부보조( 54 %), 사업수익( 1 %), 기타 (12%) FAFA 友 誼 文 化 大 典 (한중백두 페스티발) 생명사랑, 나라사랑 전국마라톤대회(대한민국 자부심 갖기 캠페인) (가) 외국인 유학생 DB구축 및 친한화 프로그램 운영 (나) 이해증진과 국가이미지 제고 사업 (다) 문화적 코드를 무기로 이해와 승낙의 우의와 평화 확대사업 (라) 정체성 확보와 리더쉽 확대사업 제 10 장 시민단체 현황 407

408 사단법인 자연보호중앙연맹 한 글 사단법인 자연보호중앙연맹 단체명 한 자 社 團 法 人 自 然 保 護 中 央 聯 盟 영 문 The Korean 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주 소 및 연락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주 소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5가 526 대우재단빌딩15층 전 화 02) FAX 02) 홈페이지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민간봉사단체로서 우리의 자연을 오염과 파괴로부터 보호하고 아 름다운 국토를 소중히 보존하고자 범국민적으로 자연보호운동을 전개함을 목적으로 한다 자연보호협의회로 창립총회 제14대 이수광총재 취임(자연보호중앙연맹으로 개칭) 대표자 : 이수광 총재 회원수 : 500,000명 사무국 직원수 : 6명 기구현황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적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예산총액 : 천원 재원구성( %) : 회비수입( %), 기부금 및 모금활동( %) 군비보조( %), 사업수익( %), 기타( %) 자연보호 誌 발간 배포(년 4회) 40,000부 자연정화 활동 및 자연복원 운동 전재 자연보호독도탐방 자연보호 誌 발간 배포(년 4회) 40,000부 자연정화 활동 및 자연복원 운동 전개 자연보호독도탐방 40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409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한 글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단체명 한 자 영 문 WOORIMANG 주 소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2-44 주 소 및 연 락 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전 화 02) FAX 02) 홈페이지 독도관련 시민단체들의 협력단체로 활동하다가 실천적인 간사역할을 하고자 창립. 1982년 10월 창립 1988년 9월 통일문화큰잔치 개최 1998년 12월 통일문화연구소 창립 2006년 5월 독도지킴이 창립 대표자 : 김기종 회원수 : 9명 사무국 직원수 : 2명 대표 기구현황 고문 자문위원 정책위 사무처 기획단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 적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예산총액 : 천원 재원구성( %) : 회비수입( %), 기부금 및 모금활동( %) 군비보조( %), 사업수익( %), 기타( %) 2006년 5월 동안(4주간) 일본대사관 앞 시위 및 성명서 전달 2006년 5월 17일 일본정부 사과 요구 성명 발표(정신대대책협의회와 공동 집회) 독도관련 예술제 기획(사정으로 연기) 2006년 10월 독도 시민단체 연합행사 참가(울릉도 독도 방문) 독도 예술제 개최 준비 중(11월 3일 예정) 독도 시민단체 연합행사 참가 기타 독도관련 시민단체와 협력사업 추진 제 10 장 시민단체 현황 409

410 재경독도향우회 단체명 주 소 및 연락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기구현황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 적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한 글 재경독도향우회 한 자 在 京 獨 島 鄕 友 會 영 문 JAE KYUNG DOK DO HYANG WOO HOE 주 소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32-2 중앙빌딩 1층 15호 전 화 02) FAX 02) 홈페이지 재경독도향우회는 본적을 독도로 이적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이며 국토와 독도에 대 한 애정으로 독도가 확실한 대한민국 영토임을 확고히 하고 독도를 위하는데 있음 서울시 의회 강당에서 창립총회 울산 양포항에서 편부경(독도주민)씨와 함께 독도주민 김성도씨에게 독 도 1호어선 기증 및 진수식으로 독도에서 운행되고 있음 문화관광부에 언론 매체에 일기예보 및 독도표기 요청 하여 현재 방 송, 언론에 실시되고 있음 대표자 : 회원수 : 약 80여 명 사무국 직원수 : 고문 : 박인주 고문 : 박계동 고문변호사 : 전상화 회장 : 조대용 감사 : 편부경 사무국장 정책국장 교류협력국장 홍보실장 여성국장 총무간사 백 명 권 홍 성 룡 송 재 진 장 정 태 최 미 자 박 수 임 예산총액 : 1,200만 원 재원구성( 100% ) : 회비수입( 30% ), 기부금 및 모금활동( 30% ) 군비보조( 0 %), 사업수익( 20 %), 기타( 20 %) 공선협 보궐선거 참여 우이동 등산로 독도 홍보책자 배부 독도 방문 문화관광부 일기예보시 독도 울릉도 언론에 표기 제도화 (현재 TV등 모든 언론에 실시되고 있음) 독도사랑 예술제와 협조 기념 행사 3/ 참배 후 독도 유인물 배부 현수막설치(독도는 한국땅 대마도는 조선땅) 4/20-국회의원 회관에서 독도사랑 사진전시회 행사 참여 410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411 전국지리교사연합회 한 글 전국지리교사연합회 단체명 주 소 및 연 락 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한 자 全 國 地 理 敎 師 聯 合 會 영 문 Korea Geography Teachers Association 주 소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 692 중동중학교 內 전 화 02) FAX 02) 홈페이지 내실있는 지리교육 실현을 위해 전국단위 회원 세미나 및 회원연수 실시 전국 16개 시도의 각 지역 단체와 공동으로 우수 수업자료의 개발ㆍ보급 창립대회 겸 제1회 전국지리교사대회 개최( 월 10회 대회 진행) 제1회 전국 고등학생 지리올림피아드대회를 대한지리학회와 공동 개최 (2007년 5월 19일 7회 지리올림피아드 예정) ~ 8. 3(9박 10일) 제1회 지리교사를 위한 해외 답사 실시(총 3회 실시) ~25(2박 3일) 제1회 청소년 지리 캠프 개최 ( 월 8회 캠프 예정) 대표자 : 최병천 회원수 : 3,127명 사무국 직원수 : 10명 기구현황 고문단 회장 자문단 지역회장단 사무국 이사단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 적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예산총액 : 3000만 원 재원구성( %) : 회비수입( 10%, 기부금 및 모금활동( 20%) 군비보조( 0%), 사업수익( 30%), 기타(40%)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2006년 전국단위 교과교육연구회 로 선정 제9회 전국 지리교사 대회 개최 제6회 전국 고등학생 지리올림피아드대회를 대한지리학회와 공동 개최 제5, 6회 청소년 지리 캠프 개최 (각 2박 3일간) 제3, 4회 우리 산하 바로 알기 현장 학습 진행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2007년 전국단위 교과교육 연구활동 지원대상연구회 로 선정 제10회 전국 지리교사 대회 개최 5월 19일 제7회 전국고등학생 지리올림피아드대회를 대한지리학회와 공동 개최 예정 여름, 겨울 방학중 제 7, 8회 청소년 지리 캠프 개최 예정(각 2박 3일간) 5월, 10월 중 제 5, 6회 우리 산하 바로 알기 현장 학습 예정 제 10 장 시민단체 현황 411

412 코리아독도녹색운동연합 한 글 코리아독도녹색운동연합 단체명 주 소 및 연 락 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한 자 영 문 korea dokdo green sport 주 소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리339-2 전 화 033) FAX 033) 홈페이지 코리아독도녹색운동연합은 한국령인 독도의 주권을 지키며 일본의 침략적 망언 또는 행동에 대해 강력히 대처하며 민족의 얼을 심고 가꾸어 차세대에게 창의적이며 능동 적인 자유수호 정신을 계승시키며 독도는 대한민국의 미래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해 양 생물 자원의 보고이며 차세대 에너지 자원으로 이를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임 을 인식하고 단결하여 타국의 간섭으로부터 독도를 지키는 것으로 목적으로 한다. 2001년 투명사회국민운동본부로 출범 2004년 4월20일 코리아독도 녹색운동연합 창립 (현) 까지 대표자 : 박순종 회원수 : 420명 사무국 직원수 : 2명 총회 기구현황 감사 자문위원 대표 사무국 홍보위원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 적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예산총액 : 5,000만 원 재원구성( %) : 회비수입( 10 %), 기부금 및 모금활동( 30 %) 군비보조( 5 %), 사업수익( %), 기타( 55 %) 2월 20일 죽도의 날 취소하라(일본대사관)규탄대회(관광버스 2대 인원 75명) 광복60주년 독도는 대한민국 해상캠페인(강원도 도립대학, 경양호 105톤) 인원 80명 신 한일어업협정 전면파기하자 규탄대회(강릉시 주문진항) 어민. 회원 일반인 일본 수로탐사 취소하라. 8/15 독도는 대한민국 동해안 해상 캠페인 신 한일어업협정 전면파기해 줄 것을 해양 수산부 건의 독도를 세계 관광지로 활성화 시키자. 문화제청 건의(청와대 건의) 412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413 코리아 스코프 한 글 코리아 스코프 단체명 한 자 영 문 주 소 및 연 락 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주 소 서초구 양재동 16-1번지 302호 전 화 FAX 홈페이지 / 한국을 사랑하는 인터넷 동호인들 중심으로 세계에 한국을 홍보하기 2006년 한국을 알리는 포털사이트화 추진 대표자 : 윤한경 등 공동대표 5명 회원수 : 사무국 직원수 : 기구현황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 적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예산총액 : 천원 재원구성( %) : 회비수입( %), 기부금 및 모금활동( %) 군비보조( %), 사업수익( %), 기타( %) 독도 동해 등 한국의 영유권에 대한 해외 홍보 남북 교류 협력 사업의 진정성을 알림 미 하원의 종군 위안부 결의안 지지 온라인 투표 개설 한국의 독도영유권 당연성을 해외 네티즌들에게 홍보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 고구려사 적극 홍보 제 10 장 시민단체 현황 413

414 (사)평화통일시민연대 단체명 주 소 및 연 락 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한 글 (사)평화통일시민연대 한 자 平 和 統 一 市 民 連 帶 영 문 Citizen's Solidarity for Peace & Unification 주 소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2가 98-4 전 화 02) FAX 02) 홈페이지 7 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 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에 입각하여 시민운동차원 에서 민족화해 그리고 평화통일의 실천을 위한 민족화해 주체역량의 구축과 국민적 공감대 확산을 위해 통일운동의 대중화, 통일논의의 균형화, 통일정책의 대안제시에 기여하고 나아가 한반도 평화 달성에 이바지한다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시민연대 창립 제2차 정상회담 왜, 언제, 무엇을 할 것인가 토론회 개최 대표자 : 송선근 이사장 회원수 : 330명 사무국 직원수 : 4명 총 회 이 사 회 운영위원회 기구현황 각 위원회 평화연구소 사 무 처 정 책 조직 화해협력 남북경협 청년학생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 적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예산총액 : 10,000천 원 재원구성(100%) : 회비수입(50%), 기부금 및 모금활동(20%) 군비보조( 0%), 사업수익(10%), 기타(20%) 제1회 찾아가는 평화통일 강연회 제1회 한반도 평화통일 조찬 포럼 북한 핵실험 이후 한반도 정세와 대응방안 토론회 제3회 평화와 통일을 위한 방송토론회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에 기초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사업 평화통일 대중화를 위한 교육사업 평화와 통일을 위한 언론사업 41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415 푸른울릉 독도가꾸기모임 한 글 푸른울릉 독도가꾸기모임 단체명 한 자 영 문 주 소 및 연 락 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주 소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178번지 전 화 054) FAX 054) 홈페이지 독도의용수비대의 얼을 이어받아 독도보전의 일환으로 독도를 지키고 가꿈. 88년 설립 초대회장:이덕영 2대회장:조영삼 현 회장:이예균 대표자 : 이예균 회원수 : 102명 사무국 직원수 : 5명 부회장 회장 감사 기구현황 사무처장 사무국장 간사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 적 예산총액 : 20,000천 원 재원구성( 100 %) : 회비수입( 80 %), 기부금 및 모금활동( %) 군비보조( 20 %), 사업수익( %), 기타( %) 독도 유인도화 실시(운영위원 김성도부부, 현 회장 이예균) 독도 정화작업 실시 독도 어민, 순직자 폭격 위령제 실시(6월 8일)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독도 어민 순직자 위령제 실시(천태종 본산과 공동실시) 독도 정화작업 및 생태계 조사 군내 학생대상으로 독도바로알기 홍보활동 독도사진전 개최 제 10 장 시민단체 현황 415

416 (사)한국수중환경협회 한 글 (사)한국수중환경협회 단체명 주 소 및 연 락 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한 자 (사) 韓 國 水 中 環 境 協 會 영 문 Korea Underwater Environment Association 주 소 서울특별시 강동구 성내1동 547 미주상가 2층 전 화 02) FAX 02) 홈페이지 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회원이 되어 독도주권국민운동을 전개하여 독도사랑, 바다사랑 체험을 통해 독도 지킴이의 육성활동 궁극적으로 맑고 깨끗한 삶의 터전을 보존하여 후대에 물려주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음 한국해양탐험대 발족 (수중환경보호운동, 특수구조봉사단, 독도탐험대) 전라남도 목포시 목포항 수중폐기물 수거 및 수중환경보전캠페인전개 대표자 : 황대영 회원수 : 1200명 사무국 직원수 : 상근 총 3명 총 재 공동대표 운영위원회 수중환경신문사 기구현황 특수구조봉사단 수중환경감시단 사무총장 해양탐험대 독도탐험대 기획총괄팀 미디어팀 사업팀 청소년팀 전국지부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 적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예산총액 : 253백만 원 재원구성(100%) : 회비수입(37.5%), 기부금 및 모금활동(7.4%) 정부보조(51%), 사업수익(4%), 기타(0.1%) 독도, 울릉도 수중 폐기물 수거 및 수중생태계 조사 캠페인 전개 독도주권운동 및 독도 바다사랑체험 행사 독도와 바다사랑 체험 활동을 통한 주권수호 캠페인 해양탐험대 독도지킴이 육성 활성화 41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417 한국시인협회 독도지회 한 글 한국시인협회 독도지회 단체명 한 자 韓 國 詩 人 協 會 獨 島 支 會 영 문 주 소 및 연 락 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주 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 호 전 화 02) FAX 02) 홈페이지 민족의 터전인 독도를 문화 예술의 측면에서 접근하여 영토사랑을 실천하며 시와 문학작품을 통하여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고 청소년의 창작력과 애국심을 고 취시킴 2005년 4월 설립 2005년 4월 시인 100여 명 울릉독도 탐방 시낭송 축제 개최 2006년 10월 태백산 산정 <국토사랑 시낭송회> 2007년 5월 시인 33명 <민족의섬 문화의섬 울릉독도사랑> 예정 대표자 : 1명 회원수 : 본회(1200명), 지회 (60명) 사무국 직원수 : 지회장 기구현황 사무국장 감사 홍보간사 총무간사 간사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 적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예산총액 : 천원 재원구성( %) : 회비수입( %), 기부금 및 모금활동( %) 군비보조( %), 사업수익( %), 기타( %) 태백산정 <국토 시낭송회> 개최 동북아역사재단 후원 협회중진시인 30명 <민족의섬 문화의섬 울릉독도사랑> 추진중 제 10 장 시민단체 현황 417

418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한 글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단체명 주 소 및 연 락 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한 자 영 문 주 소 서울 종로구 동숭동 1-28 흥사단회관 3층 전 화 02) FAX 02) 홈페이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애국정신과 흥사단의 이념을 바탕으로 민족의 발전과 평화통일 을 위한 연구 교육 실천사업을 전개함으로써 민족통일을 촉진하고, 세계평화에 기여 하기 위해 각계인사가 참여하여 설립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에 의해 흥사단' 창립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창립 통일부장관 표창 수상 (통일운동 우수 단체)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창립 10주년 대표자 : 박원철 상임대표 회원수 : 400여 명 사무국 직원수 : 상근 3명 상임대표 기구현황 운영위원회 이사회 사무국 2007 예산현황 2006 주요사업 실 적 2007 주요사업 현황/계획 예산총액 : 350,000천원 재원구성( 100%) : 회비수입( 20%), 기부금 및 모금활동( 50%) 군비보조( 15%), 사업수익( 15%), 기타( %) 청소년 통일교육 운동 통일포럼 6 15민족공동위원회 남측본부 서울본부(민족공동행사 참여) 제9회 한 중 청소년 친선문화제 통일교육 활성화(청소년 통일교육, 매뉴얼 북 보급, 통일캠프 등) 통일담론 형성 및 통일정책 연구기반 조성(통일포럼, 통일강좌, 통일의식 조사 등) 역사 관련 활동(동아시아역사시민네트워크, 제10회 한중 청소년 친선문화제) 연대활동(겨레의 숲, 6.15 남측본부 서울본부, 통일교육협의회 등) 418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419 독도NGO포럼 단체명 주 소 및 연 락 처 설립목적 단체연혁 인력현황 운동방향 회원자격 및 가입 한 글 독도NGO포럼 (독도 시민단체운동연합) 한 자 영 문 주 소 서울 종로구 동숭동 1-28 흥사단빌딩 2층 전 화 02) FAX 홈페이지 독도를 보호하고, 이에 반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치 않으며, 아울러 이사부, 안용복 및 홍순칠님의 정신을 계승하여 독도를 수호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 결성(11개 단체) 대표자 : 나홍주 회원수 : 1. 일본의 독도침탈책략이나 그 행태파악에 있어서 회원단체 간 상호 협력한다. 2. 회원단체 상호간 일본의 독도관계 부당한 주장에 대하여 반박 논리를 공동 개발한다. 3. 유사시 일본의 주장을 반박하는 공동행동을 조율한다. 4. 독도수호에 반하는 조치에 대하여 공동대응책을 강구한다. 5. 회원단체 상호 간 친목을 도모한다. 1. 회원자격은 한국의 독도수호시민운동단체로 한다. 2. 회원은 정회원과 준회원으로 할 수 있다. 정회원은 독도수호시민운동단체로 하고, 그 가입은 원칙적으로 개방하며, 기타 학술단체나 독도 관련 개인은 이 포럼총회의 결의에 의거 준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제 10 장 시민단체 현황 419

420

421 부록 독도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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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 Ⅰ. 위치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 96(분번 포함 101필지) 북위 : 37도 14분 26.8초, 동경 : 131도 52분 10.4초 울릉도 동남향 87.4km에 위치(일본 오끼섬 북서향 157.5km) 독도기점 주요지점 간의 거리 주요항 울릉도 동해 죽변 포항 부산 오끼섬 거리(km) 독도의 위치 및 울릉도와의 거리 부록-독도 현황 423

424 Ⅱ. 면적 187,554m2 동도 : 73,297m2, 높이 98.6m, 둘레 2.8km 서도 : 88,740m2, 높이 168.5m, 둘레 2.6km 문화재청 관보고시(관보 제16338호, ) 기타 부속도서(89개) : 25,517m2 Ⅲ. 주요 부속도서 424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425 Ⅳ. 부속도서의 지명 및 유래 지 명 큰가제바위 작은가제바위 지네바위 넙덕바위 군함바위 김바위 보찰바위 삼형제굴바위 닭바위 춧발바위 촛대바위 미역바위 물오리바위 숫돌바위 부채바위 얼굴바위 독립문바위 천장굴 한반도바위 탕건봉 물 골 코끼리 바위 지명 유래 강치(가제)가 출현하는 장소로 현지 어민들이 구전으로 불리어 온 바위 큰가제바위 우측에 위치한 작은 바위로 현지 어민들이 구전으로 불리어 온 바위 이진해 라는 어민이 매년 미역을 채취하던 바위로 진해 가 지네 로 불리어 온 바위 현지 어민의 구전으로 전하는 넙덕바위 (현지주민의 방언을 보전할 필요가 있음) 군함과 같은 독특한 모양으로 일관되게 어민들의 구전으로 불려지고 있는 바위 독특한 모양에 대한 일관된 명칭 구전으로 김은 해태를 의미함 보찰은 거북손으로 따개비와 유사한 서식 해산물임. 보살바위라고도 불림 형상을 아우르는 명칭으로 3개의 동굴이 있어 현지 어민들의 구전에 의한 명칭 서도 어민숙소에서 바라볼 때 마치 닭이 알을 품은 형상으로 닭바위로 전하고 있는 바위 춧발은 갑, 곶 등이 튀나온 곳을 의미하는 현지 방언으로 구전되어온 명칭 독특한 모양에 대한 명칭으로 장군바위라고도 불렀음 의용수비대원들이 미역채취를 많이 하여 붙여진 명칭 물오리서식지로서 현지어민들에 의해 불려진 명칭으로 물오리는 바다 가마우지를 지칭함 의용수비대원들이 생활할 당시 칼을 갈았다는 곳으로 바위의 암질이 숫돌과 비슷 하여 붙여진 이름 남측에서 바라보면 마치 부채를 펼친 모양이라 하여 현지어민들에 의해 구전으로 불리어온 바위 사람의 얼굴과 흡사한 독특한 모양으로 현지어민들의 구전으로 붙여진 이름 독립문 형상으로 독특한 모양에 대해 현지어민들에 의해 붙여진 명칭 분화구라고도 하였으나 학계에 의하면 침식에 의해 함몰로 생긴 천장동굴로 불린 명칭 북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한반도 형상과 꼭 닮아 붙여진 이름 서도 북쪽에 위치하여 봉우리 형상이 탕건을 꼭 닮아 붙여진 이름 탕건봉 밑에 위치하여 1일 400리터 정도의 물이 고이는 곳으로 붙여진 이름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형상의 독특한 모양에 대하여 불리는 바위 부록-독도 현황 425

426 Ⅴ. 지형 및 지질 해저 2000m에서 솟은 용암이 굳어져 형성된 화산섬으로, 신생대 3기 460만 년 전부 터 250만 년 전 사이에 형성 울릉도 : 250만 1만 년 전, 제주도 : 120만 1만 년 전 동도는 2개의 화산화구의 흔적이 있고 정상이 비교적 평탄한 반면, 서도는 산정이 뾰족한 원뿔형 지질은 화산활동에 의하여 분출된 알카리성 화산암인 현무암, 조면암 및 응회암 등 으로 구성 토양은 산정상부에서 풍화하여 생성된 잔적토로서 30도 이상의 급격한 경사를 이루 고 있고, 토성은 사양질이며 흑갈색 또는 암갈색을 띠고 있음 Ⅵ. 기후 및 자연환경 난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로 연평균 기온이 12 C이며 1월 평균 1 C, 8월 평균 23 C로 비교적 온난 연평균 풍속은 4.3m/s로 여름에는 남서풍, 겨울에는 북동풍 우세 안개가 잦고 연중 흐린 날이 160일 이상, 강우일수는 150일 연평균 강수량은 약 1,240mm, 겨울철 강수는 대부분 적설의 형태 강한 해풍과 암석류의 척박한 토질로 인하여 식물이 잘 자랄 수 없는 환경조건이며, 지질구조상(화산암) 지하수 저장이 곤란 426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427 Ⅶ.식생 및 생태계 철새 이동경로의 중간 피난처 및 휴식처로서, 우리나라 생물의 기원과 분포를 연구 할 수 있는 섬 생물 지리학적으로 중요한 도서 구 분 종 류 식 물 곤 충 동 물 조 류 해 양 생 물 현재까지 독도에서 조사된 식물의 종( 種 )은 약 50 60종 내외 초본류 : 민들레, 괭이밥, 섬장대, 강아지풀, 바랭이, 쑥, 쇄비름, 명아주, 질경이 등 목본류 : 곰솔(해송), 섬괴불나무, 붉은가시딸기, 줄사철, 동백 등 잠자리, 집게벌레, 메뚜기, 매미, 딱정벌레, 파리, 나비 등 37종 독도에 서식하는 자연산 포유류는 없음 바다제비, 슴새, 괭이갈매기, 황조롱이, 물수리, 노랑지빠귀, 흰갈매기, 흑비둘기, 까마귀, 딱새 등 22종이 관찰됨 주요어류 : 오징어, 꽁치, 방어, 복어, 전어, 붕장어, 가자미, 도루묵, 임연수어, 조 피볼락 등 패류 : 전복, 소라, 홍합 등 해조류 : 미역, 다시마, 김, 우뭇가사리, 톳 등 기타 수산동물 : 해삼, 새우, 홍게 등 Ⅷ.인구 및 주민 민간주민으로는 1965년 3월 울릉도 주민인 고 최종덕 씨가 거주를 시작하였고, 현재 독도의 서도에 김성도 씨 부부가 주민등록을 두고 거주하고 있으며 동도에는 독도경 비대와 등대관리원이 거주 부록-독도 현황 427

428

429 독도와 시민사회-독도 시민활동 백서 초판 1쇄 인쇄 2008년 4월 4일 초판 1쇄 발행 2008년 4월 11일 편 동북아역사재단 펴낸이 김용덕 펴낸곳 동북아역사재단 등록 제 호(2004년 10월 18일)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의주로 77 임광빌딩 전화 팩스 동북아역사재단, 2008 ISBN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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